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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지금 하지 않으면 언제 하겠는가?”

신희선 숙명여대 기초교양대학 교수·정치학 박사“저는 이번에 대통령으로서 이 금단의 선을 넘어갑니다. 제가 다녀오면 또 많은 사람들이 다녀오게 될 것입니다.”2007년 10월 2일 노무현 대통령이 군사분계선을 건너며 남긴 말이다. 그 후 10년이 지나 2018년 ‘4·27판문점선언’과 ‘9·19평양공동선언’이 나왔지만, 남북한 교류나 협력은 지지부진한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10·4 남북정상선언 12주년 기념식에 참석하여 들었던 생각, 지금 우리는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위한 운전자 역할을 잘 하고 있는가?지난 6일, 스웨덴 북미 실무협상이 결렬되었다는 소식이 날아왔다. 하노이 정상회담 이후 7개월만에 재개된 북미대화라서 전향적인 계기가 마련될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지만 아무런 진전도 없이 스톡홀름 협상이 종료되었다. 북미대화를 방관자적 입장에서 볼 수 없는 것이 우리의 형편이다. 한반도 평화를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우리는 관객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통일문제가 대외환경의 종속변수가 되어서는 안 된다. 북미대화 결렬이 남북한 관계를 좌지우지 하도록 둬서도 안된다.여야 공방이 치열하다. 자유한국당은 논평을 통해 북미대화 결렬은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의 실패라며 “김정은 몸값만 올려놓는 자충수”를 두었다고 하였다. 청와대는 “북미대화가 지속될 수 있도록 국제사회와 긴밀히 협력해 나갈 것”이라고 하였다. 통일 문제는 국내정치의 수준이 달라지지 않으면 사실상 어려운 숙제다. 내부통합이 전제되지 않은 채 진행되는 통일 관련 논의는 공허하다. ‘10·4남북정상선언’ 1주년 기념연설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대북정책을 놓고 벌어지는 정쟁이 빨갱이 만들기, 친북좌파 만들기 같은 맹목적인 이념대결과 정치 공작의 수준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정치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면 통일은 가망이 없다는 것이다.10여 년이 지난 지금에도 우리의 정치 현실은 별반 나아지지 않았다. 조국사태로 거리정치가 재연되고 여야가 극단적인 대결 양상을 멈추지 않고 있다. 소모적인 정쟁이 피로감을 증폭시키고 있다. 최근 경향신문과 한국리서치의 여론조사 결과는 46.4%만이 문재인 정부가 ‘국정운영을 잘하고 있다’고 지지하였다. ‘사회갈등 해소 및 국민통합’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는 지난 해보다 2배 이상 증가했다. 광복100주년이 되는 2045년 ‘One Korea’가 되자는 비전이 현실화 되려면 국민을 통합할 수 있는 구체적인 계획이 있어야 한다.통일 과제를 풀려면 긴 호흡이 필요하다. 그러나 변화의 속도를 높이는 혁신적인 셈법도 고려해야 한다. 일반 국민들의 피부에 와 닿지 않는 남북한 정상간의 공동선언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대내외 상황에도 흔들리지 않는 통일 비전을 확실하게 끌고 갈 동력이 있어야 한다. 장애물이 없는 경로는 존재하지 않는다. 10·4기념 심포지엄에서 나온 “중재자나 촉진자의 역할을 너머 쇄빙선을 띄우고 개척자가 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이 시점에 주는 울림이 크다. 격동의 시계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지금 하지 않으면 언제 그 일을 하겠는가?”

2019-10-07

북한 헌법 개정, 체제 변화의 신호일까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지난 7월11일 북한 최고인민회의는 개정 헌법을 ‘내 나라 홈피’를 통해 공개했다. 이 헌법 개정은 1948년 인민민주주의헌법 제정 이후 18차, 1972년 사회주의 헌법제정 이후 8차, 김정은 등장 이후 4차 개헌이다. 북한의 헌법 개정은 김정은 체제 하의 북한의 미묘한 변화를 감지하고 예측할 수 있다. 북한은 헌법 개정을 통해 선군시대의 당-군-정 체제를 당-국가 체제로 전환함으로서‘사회주의 정상국가’의 모습을 보이려고 노력하고 있다. 북한의 헌법 개정은 과연 북한체제 변화의 신호일까.먼저 이번 개정 헌법에서 북한은 통치이념을 주체사상과 선군사상에서 김일성·김정일 주의로 명시화하였다. 이는 북한이 위기 시의 선군정치와 결별하고, 김일성·김정일을 다시 받들어 김정은 권력의 정당성을 부각하려는 의도이다. 북한 당국은 군대와 무력을 앞세운 김정일 ‘선군 시대’ 흔적을 지우기 위해 ‘선군혁명노선’을 과감히 삭제한 것이다. 또한 종래의‘우리 민족제일주의’를 배제하고 ‘우리 국가 제일주의’를 강조하고 있다. 개정 헌법 서문에서도‘사회주의 조국’을‘사회주의 국가’로 변경하여 ‘세계 유일무이한 국가실체’로 규정하였다. 그러나 ‘핵 보유국가’라는 표현은 그대로 남겨 핵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밝히고 있다.이번 헌법은 김정은의 위상을 ‘국가를 대표하는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의 최고 영도자’로 표현하여 그를 명실상부한 국가수반으로 명시하였다. 이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국가수반으로 명문화하여 향후 남북 및 대미, 대 유엔 외교에서 그의 역할을 확장하려는 의도일 것이다. 또한 헌법은 국가 무장력의 사명을 ‘혁명수뇌부 보위’에서 김정은을 수반으로 하는 ‘당중앙위원회의 결사 옹위’로 변경하였다. (59조) 이는 김일성·김정일 시대를 넘어 김정은 시대의 도래를 헌법에 명시한 결과이다.이번 헌법 개정에는 과거 핵·경제 병진노선 대신 경제 총집중 노선에 따른 경제 발전노선을 명문화하고 있다. 그들은 대표적인 경제 관리지침인 ‘청산리 정신과 방법’과 ‘대안의 사업 체계’를 과감히 삭제하고 대신 ‘혁명적 사업 방식’과 ‘사회주의 기업 책임 관리제’를 대체했다. 북한이 경제 발전을 위해 내각의 역할(33조)과 실리 보장(32조)을 강조하여 김정은 집권 이후 취해온 경제 조치들을 보장한 결과이다. 또한 이번 헌법은 정보화(26조), 과학기술력(27조), 전민 과학기술 인재화(40조), 대외 신용과 대외 무역(36조) 등 경제 분야의 변화 양상을 적극 반영하였다.이처럼 북한의 헌법은 외형상 북한체제의 변화를 지향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이 북한의 적극적인 개혁·개방의 신호로 보기는 어렵다. 북한의 당-국가 체제는 북한 정치 개혁의 변화신호로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북한 헌법은 경제 발전의 동력을 확보 하려는 경제적 조치를 헌법 여러 곳에 명시하고 있다. 북한이 비핵 협상을 통해 체제의 안정을 보장받고, 실질적 경제 제재가 해제된다면 북한 개혁·개방의 동력은 가시화 될 것이다. 그러므로 북한의 헌법 개정은 체제 변화를 위한 신호라기보다는 생존을 위한 불가피한 경제 응급조치일 뿐이다.

2019-10-06

창조적 습관 만들기

‘천재들의 창조적 습관’이라는 책으로 알려진 세계적인 안무가 트와일라 타프는 말합니다.“창조성은 하늘로부터 떨어지는 선물이 아닙니다. 매일, 규칙적으로 시간을 투자해 멈추지 않고 노력할 때 비로소 빛을 발하기 시작하죠. 진부한 이야기 같지만 결국은 습관(habit)이 핵심입니다.”그녀의 하루는 일어나자마자, 새벽 5시 30분에 택시를 잡아타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그녀의 의식(ritual)은 자연스럽게 다음 단계로 이어지죠. 맨해튼 91번가와 퍼스트 애비뉴 모퉁이에 있는 펌핑 아이언 체육관으로 가서 2시간 동안 근육을 푸는 운동에 집중합니다. 엄숙한 종교 행위를 수행하듯 이 루틴을 마무리한 다음 창작에 시간을 투자합니다.트와일라 타프는 ‘새벽 5시 반에 택시 타기’가 본인의 의식이라 했습니다. 그것만 성공하면 그다음은 저절로 이어지는 법이라고요. 그녀는 말합니다. “창조성은 몸의 움직임과 아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정신적인 활동 이전에 몸을 먼저 움직여 보라.”제가 새벽마다 글쓰기에 도전해 이렇게 매일 새벽 편지를 독자님들께 전달하는 것도 트와일라 타프의 새벽 루틴에 자극받은 결과입니다. 업무에 치여 지친 영혼과 몸으로는 도저히 글을 쓸 수 없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 절실히 깨닫습니다. 밤에 아무런 일정을 잡지 않고 일찍 잠들며 무조건 새벽에 집필 공간으로 나를 밀어 넣기! 글쓰기는 그다음 이뤄지는 자연스러운 과정입니다.인공지능과 로봇의 발달로 앞으로 노동 없는 사회가 도래할 것으로 미래를 예측합니다. 10년 후일지, 15년 후일지 모르지만, 반드시 그런 날이 옵니다. 그 시대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인간다움의 향기와 맛을 낼 줄 아는 힘입니다. 그것을 ‘교양’이라 부르지요.가을이 점점 깊어갑니다. 이 가을 교양을 함양하기 위한 나만의 창조적 의식 하나쯤 만들어 보는 것은 어떨까요?/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대표

2019-10-06

딱딱이 박수와 바보 음악가

김도형아시아퍼시픽해양문화연구원 이사오페라는 화려하다. 호화 배역과 웅장한 무대, 장중한 음악은 관객들을 매료시키는 힘이 있다. 티켓값도 비싸 일반인들은 엄두를 내지 못한다. 평생에 오페라 한 번 보지 못한 사람이 대다수이다. 그런 까닭에 오페라 무대의 성악가는 머나먼 별나라의 외계인처럼 느껴지기도 한다.화려한 오페라 무대에서 내려와 그늘진 곳을 찾아다니며 클래식을 선사하는 성악가가 있다. 사연은 이렇다. 성악가는 어느 날 치매를 앓고 있는 어머니를 찾아가 노래를 불렀다. 중학생이던 그가 대도시로 성악 레슨을 받으러 가던 첫날, 이웃에게 빌린 지폐를 손에 쥐어주던 어머니였다. 어느덧 아들은 외국 유학을 마치고 세계적인 성악가로 성장해 어머니 앞에 섰지만, 어머니는 치매에 걸려 있었다. 아들이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자 어머니는 흥얼흥얼 따라 불렀다.그 순간 성악가는 강한 영감을 느꼈다. 평소 음악의 사회적 역할에 대해 깊이 고민하던 그는 어머니를 통해 음악의 치유능력을 확인하고, 어머니가 머무르고 있는 치매병동처럼 소외된 곳을 찾아다니며 클래식을 전하겠다고 다짐했다. 전국 방방곡곡 그를 찾는 곳이면 어디든 달려갔고, 그 횟수가 지난 2004년부터 지금까지 무려 1천800여 회에 이른다.강원도 농촌의 한 예식장에서 있었던 일이다. 성악가와 동료 10여 명이 고생 끝에 찾아갔는데 청중은 고작 20여 명에 불과했다. 많은 청중을 기대한 것은 아니지만 맥이 빠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정성을 다해 노래를 불렀고 박수소리가 터져 나왔다. 공연을 마친 후에 한 할머니가 어린 손자의 손을 잡고 찾아와서는 성악가에게 꼬깃꼬깃 접은 만 원짜리 한 장을 건넸다. 그리고는 손자에게 좋은 노래를 들려줘 너무 고맙다며 깍듯하게 인사를 했다. 성악가는 차마 거절할 수 없는 귀한 티켓값이었다.한센인들의 쉼터인 안동 성좌원에서는 이런 일도 있었다. ‘경복궁 타령’, ‘오 솔레 미오‘ 등을 부르자 박수소리가 쏟아졌다. 그런데 박수소리가 왠지 이상했다. ‘딱딱딱’ 하는 묘한 소리가 섞여 있었다. 알고 봤더니 팔순의 할머니가 노래에 감동을 받아 손에 피가 날 정도로 힘껏 박수를 쳤는데, 한센인의 손이어서 박수소리가 일반인들과는 달랐던 것이다. 성악가는 할머니의 손을 잡아주고 싶었지만 한사코 손을 피하는 바람에 따듯하게 안아주었다.성악가도 힘든 고비를 만날 때가 있다. 그때마다 할머니들을 떠올리며 위안과 용기를 얻는다. 그들을 위해 떠난 여정이건만, 그들로부터 힘을 얻는 아름다운 역설인 것이다.김병종 서울대 미대 교수는 그 성악가를 일컬어 ‘극장을 떠난 바보 음악가’라 했다.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극장을 떠나 그늘진 곳을 찾아다니며 음악으로 나눔을 실천하는 것은 바보이기에 가능한 까닭이다. 김병종 교수도 ‘바보 예수’ 연작으로 유명하다. 그러고 보면 천재가 세상을 바꾼다는 얘기는 일면의 사실일 뿐, 세상은 잇속에 능하지 않은 우직한 바보들이 바꾸고 있다. 그 가려진 진실을 독자들과 함께 굳게 믿고 싶다. 바보 음악가는 포항 출신의 바리톤 우주호임을 밝혀둔다.

2019-10-06

몬스터 DNA

화성연쇄 살인사건의 범인을 잡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은 DNA 검사다. 수사 과학화의 힘이 범죄 검거율을 높인다는 것을 보여준 모범 사례의 하나다. 첨단과학이 발달하고 인구가 늘면서 범죄도 지능화하고 있을 뿐 아니라 다양한 형태의 범죄가 우리 사회를 위협하고 있다.화성사건은 당시의 검증 기술로는 풀 수 없었던 것이 과학적 기법이 새롭게 개발되면서 30여 년 전의 연쇄살인사건의 범인을 잡아내는 쾌거를 올린 것이다.과학수사의 혁명이라 할만하다. 더 흥미로운 것은 수사의 과학화가 진전되면서 그동안 풀지 못했던 강력범죄의 미스테리가 다시 풀릴까 하는 기대감이다. 개구리소년 실종사건 등 현재 밝혀내지 못한 강력 미제사건은 제법 많은 수를 기록하고 있다. NCIS(미 해군범죄수사대)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드라마에서 지능범죄를 소탕하는 과학수사팀의 활약을 조금은 이해하고 있으나 정말로 과학수사가 범죄의 증가율을 억제할 수 있을 것인지는 미지수다.올 5월 비무장 지대내 화살고지에서 발견된 군인 유해의 신원이 DNA 검사를 통해 밝혀진바 있다. 비록 60여 년의 세월이 지났으나 다행히 유족의 한을 푸는 데 작게나마 일조한 것은 과학의 힘 때문이다. 사람 몸은 100조개의 세포로 구성돼 있다. DNA는 세포마다 존재한다. 그러면서 모든 사람의 DNA는 서로 다르고 돌연변이가 없는 한 죽는 날까지 변하지 않는다고 한다. DNA가 유전자 물질이라는 것이 밝혀진 것은 20세기 들어서다. 과학의 힘이 질병의 예측과 치료는 물론 범죄 예방으로까지 광범위하게 활용된다는 사실에 새삼 감탄할 뿐이다. 화성사건을 계기로 과학수사의 맹활약으로 범죄가 줄어든 세상이 온다면 모두가 반길 일이다. /우정구(논설위원)

2019-10-06

‘진영의식’ 포로들의 백병전

안재휘 논설위원‘내로남불’이라는 용어는 1990년대 정치권에서 생산돼 현재까지 오프라인과 온라인에서 활발히 쓰이고 있는 말이다.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을 줄인 이 말은 똑같은 상황에서 자신과 타인을 다른 기준으로 단정하는 이중 잣대를 지닌, 남에게는 가혹하고 자신에게는 너그러운 사람을 뜻한다. ‘나는 옳고 다른 이는 그르다’라는 뜻을 가진 사자성어 ‘我是他非(아시타비)’보다도 한층 더 비틀린 모순을 일컫는다.만 두 달을 넘기고 있는 ‘조국 대전’이 마침내 백병전 차원으로 옮겨가고 있다. 이 논란은 원래부터 좌우 이념대결의 쟁점거리가 아니었다. 어떻게 보면 그동안 고위공직자 검증과정에서 숱하게 보아왔던 수위 높은 파열음 정도의 잡음이었다. 그러나 ‘조국’을 지키려는 세력은 마치 ‘조국’이 무너지면 자신들의 권력이 온전하지 못할 것이라는 강박관념으로 행동했고, 마침내 온 국민을 진흙탕 싸움으로 끌어들였다.백병전에서는 옳고 그름이 존재하지 않는다. 오직 죽이느냐 죽느냐의 이분법만 남는다. 뒤엉켜서 상대방을 죽일 생각에만 빠져들게 된다. 확증편향 사고체계 아래에서 마침내 이성은 마비되고 투철한 ‘내로남불’의식에 사로잡혀 앞만 보고 무한 작동하는 강시처럼 행동하게 된다. 길거리로 몰려나와 ‘맹종하는 존재감’을 과시하는 선동의 노예들이 부르는 무궁동(無窮動) 돌림노래가 짜증을 부른다. 거듭되는 그들의 백해무익 집회는 소름 끼치는 폭류다.‘조국 수호’를 부르대는 이들 사이에서 이미 피의자 정경심의 컴퓨터 반출은 ‘증거인멸’이 아닌 ‘증거 보전’으로 둔갑했다. 검찰의 압수수색은 ‘인권 탄압’이 됐으며, 연구논문 제1저자 허위등재와 표창장 위조는 ‘대수롭지 않은 일’이 돼버렸다. ‘살아있는 권력도 엄정히 수사하라’고 주문했던 대통령은 불과 두 달 만에 말을 바꿔 스스로 혼란한 진영대전의 진앙지임을 증명했다. 동원정치의 마법에 취한 채 야만의 시대로 퇴행하는, 정말로 우리는 지금까지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희한한 나라를 경험하게 되는가.김경율 참여연대 집행위원장은 참여연대의 침묵에 반발하여 SNS에 “시민사회에서 입네하는 교수, 변호사 및 기타 전문가 생퀴들아. 권력 예비군, 어공 예비군 생퀴들아. 더럽다 지저분한 놈들아”라고 울분을 토했다. 경실련 정책위원장인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도 “대중을 동원하는 경쟁은 그만두고 조 장관이 자진 사퇴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고언을 내놨다.유치한 동원정치 숫자놀음에 빠진 세력들의 편집적 행태에서 가장 걱정스러운 요소는 자기들끼리만 소통하고, 다른 말은 도무지 듣지 않는 의식구조다. 무엇보다도, 선악 개념은 물론 옳고 그름에 대한 이성마저 일제히 사라진 집권여당의 ‘선동정치’ 행태가 문제의 핵심이다. 아시타비, 내로남불의 혼돈을 획책하는 추악한 횡포가 역겹다. 정의-불의의 변별력마저 모조리 거세된 빛바랜 이념의 포로들이 펼치는, 이 더러운 합창은 하루빨리 중단돼야 한다. 파멸적 행군을 멈출 양보의 리더십은 이 땅에 정녕 없는 것인가.

2019-10-06

경북의 중심 도시로 위상 정립

김학동 예천군수올 한 해를 사자성어로 ‘해불양수(海不讓水)’라 정하고 한 사람의 백 걸음보다 백 명의 한 걸음이 소중함을 강조했습니다. ‘해불양수’는 ‘바다는 어떠한 물도 마다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바다처럼 넓은 포용력으로 서로 받아들이고 인정하며 화합하는 군정을 펼치겠다는 포부를 닮고 모든 역량을 결집해 나가고 있습니다.우리 예천군은 ‘예천〔醴泉, 단술 예(醴), 샘 천(泉)〕’의 지명이 말해주듯이 물이 좋고, 상서로운 기운이 서려있는 신비의 땅으로 송나라 시대 장자에서는 ‘봉황은 오동나무가 아니면 앉지 않고 대나무 열매가 아니면 먹지 않으며 예천(醴泉)이 아니면 마시지 않는다’는 신비의 물로 여기고 있습니다. 또, 중국 예기편 ‘태평성대에 하늘에서는 단맛의 이슬이 내리고 땅에서는 단맛의 샘물이 솟는다.(千降甘露 地出醴泉)’라고 기록하고 있으며, 택리지에서도 ‘사람이 살만한 곳은 물이 달고 토지가 비옥한 곳’이라고 했으니 맛이 단 샘물이 솟아나는 내 고장 예천은 최고의 고장이라고 기록된 것을 보면 축복받은 땅임에 틀림없습니다.그런 연유로 경북도청이 품 안으로 들어오고 그곳에 명품 신도시가 조성되면서 ‘경북의 중심 도시’로서 위상을 정립해 가고 인구가 증가하고 있는 살기 좋은 고장이지만 신도시로 사람과 상권 쏠림 현상으로 원도심 쇠퇴현상이 가속화되고 있어 획기적인 ‘변화’와 ‘개혁’이 필요한 때입니다.원도심 위축과 공동화 현상 극복을 위해 예천읍을 신경제 중심지로 경기활성화를 꾀하고 도시재생 뉴딜사업에 응모하기 위한 차별화된 전략계획을 짜기 위해 조직개편으로 도시활성화팀을 꾸려 공모사업에 적극 도전하고 있습니다.특히, 과감한 변화를 위해 지난 7월부터 공무원은 물론 시민단체, 시장상인회가 손을 맞잡고 재래시장 활성화 방안으로 추진한 시장로 주변 노점상 시장 내 유입이 가시적 성과를 거둔 것은 대단히 고무적이라 봅니다.협소한 도로와 인도에 무분별하게 난립해 온 노점상으로 도시미관을 해치고 장날 교통마비는 물론 보행자 안전을 위협하고 있어 끊임없이 설득하는 등 적극 행정을 추진한 결과 9월부터는 전통시장 내 노점허용구간으로 입점하는데 성공했고 이제부터는 깨끗한 환경과 정이 오가는 시장으로 변화되고 친절한 손님맞이, 고객선 지키기 실천을 강조하며 주문합니다.이와 더불어 원도심 문제 해결의 실마리는 주차장 부족문제와 결부되는 것으로 시가지내 주차난 해소를 위해 곳곳에 자투리땅을 활용한 쌈지주차장을 조성하고 부지 매입으로 주차장 조성을 계획하고 있지만 주차장 부족문제는 쉽게 해결되지 않는 과제로 기존 도로를 일방통행 노선으로 전환하는 방안도 신중히 검토 중입니다.농업정책의 큰 흐름을 기존 생산위주에서 가공, 유통판로 개척 정책으로 변화를 시도하면서 조직 내 유통마케팅 팀을 만들어 기업경영처럼 공무원들이 소비자를 찾아가는 농·특산물 판매로 큰 성과를 내고 생산자와 소비자간 직거래 확대로 대형유통업체와 MOU 체결 등 유통구조개선으로 부자농촌을 만들어 가는데 한 몫하고 있습니다.군정핵심 키워드 △명품 신도시 만들기 △원도심 경기 살리기 △부자 농촌마을 만들기 △경북으뜸 교육 도시로 이를 위해 과감한 ‘변화’와 ‘개혁’ 도전적이고 적극적인 행정을 펼쳐나갈 것입니다. 또한, 상명하복의 경직된 행정 조직을 탈피해서 유연하고 합리적이며 수평적 리더십을 발휘하여 공익 비즈니스 개념의 행정을 지속적으로 추진해 나갈 것입니다.지금 가을철 축제준비로 한창 바쁜 예천! 오는 18일부터 20일까지 3일간 예천군 대표 축제가 동시에 개최됩니다. ‘활’을 소재로 체험위주의 콘텐츠로 해가 거듭될수록 마니아층이 늘어가고 있는 ‘2019예천세계활축제’, 지역 우수 농·특산물을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는 전시·판매 행사인 ‘2019예천장터 농산물대축제’준비로 분주합니다. 특히, 이번 축제는 농가에 힘이 되는 농산물 판매와 지역 소상공인이 함께 참여하는 축제로 승화시키고 차별화된 축제로 기획해 전통시장 활성화와 지역경기에 활력을 되찾을 수 있도록 전시, 판매 등 다양한 볼거리와 체험거리, 먹을거리로 관광객과 함께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을 준비해 놓고 여러분을 정중히 초대합니다.

2019-10-06

‘그때의 나’는 ‘지금의 나’일까?

이미하 영어강사추석 연휴 마지막 날, 막역하게 지내는 친구 부부들과 만남을 위해 경주로 가고 있었다. 조수석에 앉아 벼 이삭이 바람에 흔들리며 물결을 이루는 모습, 한 잎 두 잎 단풍이 들기 시작하는 나무를 보며 살짝 멜랑꼴리해지려는 마음을 추스르고 있을 때 휴대폰 진동이 울렸다. 확인해 보니 SNS에 빛바랜 사진 넉 장이 올라와 있다. 경주에서 만나기로 한 J 언니가 보낸 그 사진을 본 순간 나도 모르게 탄성이 터졌다. 남편이 무슨 일인가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본다.잠시 차를 멈추고 추억 가득한 사진을 함께 보며 남편과 나는 바둑 수 되짚어가듯 과거를 복기했고 그 사진이 16년 전 보성 녹차 밭에서 찍은 것임을 마침내 기억해냈다. 경주에서 만날 네 부부를 포함, 친하게 지내던 아홉 가정이 아이들을 데리고 놀러 갔던 그때의 추억이 어제처럼 새록새록 떠올랐다. 초록빛 녹차 밭 한가운데 아이들이 늘어서고 그 뒤로 호위하듯 늘어선 부모들이 함께 찍은 단체 사진을 흐뭇하게 바라본다. 그 속에는 이틀 전 학업을 위해 새벽에 서울로 떠난 둘째 녀석도 있고 얼마 전 경찰 시험에 떨어진 후 새로 마음을 다잡고 대구에서 공부를 다시 시작한 첫째 녀석도 보였다.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긴 낡은 사진 속에서 웃고 있는 7살, 4살 앳된 두 녀석 얼굴이 낯설었다.다른 사진에는 경주에서 만나기로 여인 넷이 턱에 꽃받침을 만들어 괸 채 녹차 밭의 싱그러움을 닮은 소녀 같은 모습으로 활짝 웃고 있었다. 사진 속 젊은 모습들이 낯설고 생경하기가 아이들 사진을 볼 때보다 더했다. 마치 낯선 사람처럼 보이는 ‘그때의 나’를 한참 들여다보며 잠시 상념 속에 빠져들었다. ‘그때의 나’는 과연 ‘지금의 나’와 동일한 나일까?‘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다르다’라는 속담이 있다. 연속적으로 이어지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지금의 나’는 내가 살아온 과거 역사의 결과물이다. 16년이라는 세월의 간극을 뛰어넘어 문득 바라본 중년의 ‘지금의 나’와 두 개구쟁이 꼬맹이의 엄마이던 ‘그때의 나’는 참 많이 달라 보였다. 외모야 말할 것도 없고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삶의 모습도 판이하다.사내아이 둘을 키우느라 바빴던 ‘그때의 나’는 책에 전혀 손을 대지 않고 살았다. 삶에 치여 아등바등 살아가느라, 글을 쓰는 것은 꿈도 못 꿀 일이었다. ‘지금의 나’에게 중요한 삶의 부분이자 존재 양식인 독서와 글쓰기에서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 사이에는 어떤 연계성도 없다고 느꼈다. 이렇게 다른 두 존재를 두고 어떻게 ‘그때의 나’가 ‘지금의 나’와 같은 나라 말할 수 있을까?‘그때의 나’를 조금 더 시간을 두고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노라니 ‘지금의 나’와 비슷한 면을 떠올릴 수 있었다. 16년 전 어느 날, 두 아이는 모두 잠들어 있고 ‘그때의 나’는 갑자기 글을 쓰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한밤중에 컴퓨터를 켜고 앉아 결혼한 여자의 이중고, 삼중고에 대해 적어 내려갔다. 무슨 마음이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다음 날 중앙 일간지 H 신문사에 우편으로 원고를 보냈다. 며칠 후 신문사에서 연락이 왔고 내 글이 신문에 실렸다. 그러므로 지금 쓰고 있는 이 독자 수상은 내 두 번째 신문에 원고인 것이다. 이것으로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가 다르지 않은 동일한 ‘나’임을 증명할 수 있는 것일까?‘그때의 나’와 분명히 다른 ‘지금의 나’ 모습도 있다. 연약한 인간인지라 인생을 살며 몇 번 뼈아픈 실수를 했고 다시는 그런 실수를 하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이후 여러 선택의 순간, 이 교훈을 기억했고 용기를 내어 도전했을 때 삶은 멋진 보상들을 선물해 주었다. ‘그때의 나’에 머물러 있지 않고 더 행복한 ‘지금의 나’가 되게 해준 힘이다.앞으로 계속 이어질 미래라는 시간 속에서 ‘앞으로의 내 모습’또한 ‘지금의 나’의 연속인 동시에 새로운 선택과 도전을 삶에 고스란히 반영하며 만들어나갈 것이다. 10년 후 얼마나 낯설고 생경한 시선으로 ‘지금의 나’를 바라볼지 모르지만 한 가지 모습만은 변하지 않은 채 남아있길 바란다. 10년 후에도 책 읽는 나, 여전히 글을 쓰고 있는 ‘그때의 나’로 남아있기를.

2019-10-06

한국의 군사력

항공전문매체 ‘플라이트 글로벌’은 미국이 전 세계에 운용되는 군용기 5만3천대 가운데 25%인 1만3천여 대를 보유하고 있다고 했다. 2위인 러시아 4천78대, 3위 중국 3천187대와 비교하면 압도적 격차다.군사력이란 한 국가가 가진 병력 등 전장에 투입되는 무기와 정보능력, 군수지원이 가능한 경제력, 외교력 등 전쟁 수행이 가능한 능력을 종합평가한 것이다. 미국의 군사력은 막대한 예산과 더불어 전 세계에서 불변의 1위다.2019년 미국 GFP(Global Force Power) 발표에 따르면 세계 각국의 군사력은 미국 1위, 러시아 2위, 중국 3위다. 한국은 일본 다음으로 7위다. 북한은 18위로 평가됐다.발표대로라면 한국의 군사력도 꽤 높다. 북한과 비교해서도 월등하다. 그러나 실제로 북한보다 나을지는 미심쩍은 데가 있다. 북한 핵무기 보유가 공식적으로 인정되지 않는다는 점을 간과할 일이 아니다. 또 북한의 경제력이 허약하다고 군사력을 저평가했다면 그것도 잘못 짚은 것이다. 북한은 경제력에 비해 전투 능력이나 도발의지가 세계 최강이다. 일부에선 북한은 핵무기를 포함하면 군사력이 중국에 이어 4위라는 평가다.올 국군의 날을 맞아 국방부는 북한이 가장 걸끄럽게 여기는 F-35A 스텔스 전투기를 처음 공개했다. 레이더에 걸리지 않고 평양 상공에 접근해 김정은위원장이 사는 주석궁을 정밀 타격할 수 있는 무기다. 아니나 다를까 다음날 북한은 11번째 탄도 미사일을 쐈다. 스텔스기 공개에 대한 반발로 보인다.국군의 날을 보내며 우리 군의 군사력이 새삼 궁금하다. 군사력만 믿다가 큰 코 다치는 건 아닌지 걱정도 있다. 허술해진 안보의식부터 다잡아야겠다./우정구(논설위원)

2019-10-03

자기확신의 오류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벨기에의 수도인 브뤼셀로 가는 기차안에서 있었던 일화다. 한 승무원이 기차에 타고 있는 승객들의 표를 검사하고 있었다. 그런데 연신 혼잣말을 하고 있었다. “아이고 큰일났군, 큰일났어.”이윽고 기차의 한 칸을 모두 검사하고 나서 승객들을 향해서 큰소리로 말했다. “승객여러분, 여러분은 모두 반대방향으로 가는 기차를 타셨으니 다음역에서 내려서 갈아타시기 바랍니다.”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기차의 안내방송에 의하면 분명 브뤼셀로 가는 기차가 맞았다. 그렇다. 사실은 기차를 잘못 탄 것은 승객이 아닌 승무원이었다. 보통사람 같으면 승객 모두가 브뤼셀로 가는 기차표를 지니고 있었다면 “내가 기차를 잘못탔나?”하고 생각했겠지만 이 승무원은 자기 자신에 대해 너무나 강한 확신을 지닌 나머지 이같은 실수를 저질렀다. 기차였기에 망정이지 그 승무원이 운전하는 차였다면 승객 모두는 브뤼셀이 아닌 반대 방향으로 가게됐을 것이다. 자신에 대한 지나친 과신은 우리의 삶이나, 역사를 다른 방향으로 끌고 갈 수 있다는 교훈이다.수많은 국민들이 조국 사태를 걱정스런 마음으로 지켜보고 있는 것도 이같은 우려에서 비롯되는 건 아닐까. ‘최초’ 현직 법무부 장관 자택 압수수색, 장관 후보자 임명·철회 청와대 청원, 장관 후보자 청문회 전후 아내 기소, 검찰총장에 대한 정치권의 비판, 제1야당 대표 등 야당 의원들의 릴레이 삭발투쟁, 대학생들의 임명 반대 촛불집회, 검찰개혁 주장 촛불집회 등 장관 한 명 때문에 빚어졌다고 보기에는 믿기 어려울 만큼 이례적인 사건들이 잇따라 터져나왔다. 청와대 정무수석을 지낸 박형준 교수의 말 처럼 ‘청와대가 조국 장관을 손절매하는 시기를 놓친’ 것일 수 있다. 조국 사태는 당초 ‘평등·공정·정의’를 강조해 온 진보진영의 대표주자인 조국 장관이 평소 언행과 달리 가족 문제와 관련해 특권과 특혜를 아무렇지 않게 누려온 듯한 의혹들이 불거지면서 비롯됐다. 특히 조 장관 아내의 사모펀드 투자나 자녀 입시와 관련된 일부 의혹은 위법시비에 휘말렸다. 이쯤되면 예전의 인사청문회였다면 장관 후보자가 자진사퇴하거나 추천을 철회하는 조치로 마무리되는 게 순리였다. 하지만 문 대통령이 장관임명을 강행하면서 온 나라가 진영논리로 갈라졌다.‘진보논객’인 진중권 동양대 교수가 최근 지역 언론사 특강에서 “대통령이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 했는데 지금 기회가 평등한가. 안 그렇다. 과정이 공정했나. 아니다. 그렇게 나온 결과가 그럼 정의롭다고 할 수 있나. 이게 뭐냐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조국 사태에서 자기확신의 오류를 인정하지 않는 이들에 대한 실망스러운 심경을 토로한 것으로 보인다.평화를 말하는데, 갈등이 심해지고, 청렴을 말하는데, 부정부패가 심해지고, 민생을 말하는데 생활이 어려워진다. 정치현실에 흔히 나타나는 모순이다. 이런 현실을 바꾸려면 내가 믿고있는 확신이 과연 옳은 지 되짚어보는 성찰이 꼭 필요하다.

2019-10-03

이념은 죽었을까

장규열 한동대 교수·언론정보문화학부몸살은 언제 끝이 나려는지. 장관직 한 자리를 놓고 씨름한 지가 두 달이 되어간다. 처음에 조금씩 물러섰으면 싶었던 일도 시간이 지나면서 절체절명의 승부처가 되어 버린다. 어느 쪽도 돌아갈 길은 생각도 하지 않는 사이에 나라와 백성은 절반으로 갈라져 버렸다. 이 일도 지나는 가려는지, 소동 끝에 무엇을 거둘 것인지 생각해야 한다. 여와 야가 갈등을 겪고 국민이 편갈린 모양은 그리 낯설지 않아도, 싸움을 거듭하는 동안 다툼이 품은 내용은 조금씩 그러나 분명히 달라져 간다. 우리에게는 이념 갈등의 흔적이 제법 남아있어 ‘빨갱이’와 ‘꼴통보수’를 사용하지만, 낱말에 실리는 느낌과 생각이 꾸준히 바뀌어 간다. 보수와 진보를 이해하고 해석하는 방식도 변화해 간다.프린스턴대 제이콥 샤피로(Jacob Shapiro) 교수는 ‘이념이 죽었다(Ideology is dead.)’고 선언한다. 지난 세기를 휩쓸었던 방식의 이념 구분은 힘을 잃었다고 설명한다. 즉, 1991년 소련 붕괴와 함께 스러져간 ‘공산주의’와 미국이 대표하던 ‘자유진영’ 간의 대결 구도는 의미가 거의 없다는 것이다. 세계는 이제 새로운 이념 구도를 향하여 나아가야 하지만, 아직 뚜렷한 이념의 정체성이 나타나지 않았다고 진단한다. 한반도에 20세기식 이념의 구분이 남아있기는 해도, 이를 바라보는 우리의 인식도 바뀌어 간다. 오늘 당장 겪는 갈등의 모습에도 오른쪽과 왼쪽이 이전처럼 선명하지 않다. 좌우가 아니라 ‘계급’ 간의 다툼으로 바라보는가 하면, 각 진영 내에서 다양한 생각들이 표출되기도 한다. 지난날엔 칼날처럼 선명했을 대결의 전선이 날이 갈수록 무디어 보이지 않는가. 우리는 누구와 싸우고 있는 것일까.무엇을 살필 것인가. 이 모든 진통이 진정 ‘민주주의’를 위한 일이라면, 결국 ‘국민의 눈빛’을 헤아려야 한다. 국민을 주인으로 섬기기 위하여 바라볼 곳은 역시 국민이 아닌가. 깃발과 선동에 흔들리는 우중(愚衆)이 아니라 잘 새겨 판단한 끝에 움직이는 시민(市民)의 발길을 바라보아야 한다. 완벽한 사람도 없고 끝판왕 제도도 없다. 끊임없이 자각과 반성을 거듭하며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만들어 가는 몸부림이 있을 뿐이 아닌가. 허수아비 이념에 휘둘리기보다 시민의 하루하루가 편안해지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모인 사람의 숫자에 겁먹기보다 그들이 가진 진정성의 무게를 달아보아야 한다. 그 억울함은 당신 자신의 것이었는지 아니면 누군가 남이 넣어준 생각이었는지. 주장이 정당하려면, 시민으로서 당당한 자신의 생각과 판단이어야 한다.방점은 ‘개혁’에 있다. 생각을 모아야 한다. 온 세상이 다른 판에서 씨름 중인데, 우리만 케케묵은 방식에 머물 수는 없다. 모색 중이라는 새 이념의 정체성을 우리가 신박하게 발견할 수는 없을까. 20세기엔 우리가 따라잡기에도 버거웠지만, 21세기에 우리는 거의 맨 앞에 서 있는 것이 보이지 않는가. 진영으로 갈라서 죽고 사는 게 아니라 모두 함께 잘 살아내는 길을 찾아야 한다. 묵은 이념에 머물기보다 새로운 생각으로 나아가야 한다.

2019-10-03

명예교수

서의호 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세월은 정말 빠른 것 같다. 필자가 포스텍을 정년퇴임하고 명예교수가 된 지도 벌써 2년이 지났다. 퇴임강연, 퇴임식을 치루던 날이 어제 같은데 벌써 두 해가 흘렀다.1986년 개교한 포스텍에서 교수로 계시다가 정년 퇴임하고 명예교수로 임명된 교수는 현재 약 100명에 이른다. 그래서 명예교수님들의 모임인 APPE(Association of Postech Professors Emeriti)라고 하는 ‘포스텍 명예교수회’도 만들어졌고 여러 가지 활동을 하면서 친목과 모교 발전에 도움이 되려고 노력하고 있다. 아마도 전국에서 가장 모범적인 명예교수회가 아닐까라는 생각도 들어간다.통상 대학에서 퇴임한 교수를 명예교수로 부르긴 하지만 교육부의 명예교수규칙에 따르면, 명예교수로 추대될 수 있는 교수는 당해 대학에서 전임강사 이상의 교원으로 15년 이상 근무하고, 재직 중 교육 및 연구 업적이 현저하여야 한다는 조건이 붙어있다. 그래서 최근 친일문제로 화제가 된 한 유명대학의 교수도 6개월 부족으로 명예교수가 아니라는 신문보도도 있었다.명예교수의 퇴임 후 삶은 100인 100색이라는 말도 있다. 해당 대학에 특임교수나 연구교수로 남아 강의나 연구를 계속 하는 일은 흔히 많은 경우이다. 또한 다른 대학이나 연구소로 가서 보직을 하거나 계속 강의와 연구를 하는 경우, 해외대학으로 가는 경우도 종종 있다. 또한 벤처회사를 만들거나, 기업에 취업하여 일을 하시는 퇴임교수님들도 있고 특이하게 사회봉사에 몰입하시는 교수들도 있다. 과거 학문적으로 유명하셨던 교수가 퇴임 후 다문화가정의 돌봄으로 전국을 돌아다니시는 교수님도 보았고 특이하게도 농부로 변신하여 농사를 짓는 공학교수님도 보았다.필자도 포스텍 명예교수가 된 후 대구권의 특성화 과기대 본부 보직을 맡아서 있다가 최근 수도권의 한 대학의 학장직을 맡게 되었다. 거의 50명에 이르는 교수와 1천명이 넘는 학생들이 있는 단과대를 경영해 나간다는 건 그리 쉽지는 않지만 나름 큰 보람을 가지고 있다. 여기에는 10명이 넘는 명예교수님이 계신데 원래 친분이 있는 선배님들이라 때로는 이런저런 충고와 자문을 해주신다. 이러한 자문을 듣고 학장으로서 필자는 항상 “감사합니다. 앞으로 많이 도와 주십시요”라고 반드시 말씀 드린다. 그리고 학교 세미나에도 초청을 하고 와서 좋은 말씀과 충언을 해달라고 부탁드리고 교수 워크숍에 명예교수님들을 초청해서 고견을 듣는다. 명예교수님들의 지혜를 높이 사겠다는 의미도 담고 있고, 또한 명예교수님들에게 모교를 위해 할 일이 있다는 자부심을 갖게 해주어서 흐뭇해 하시는 모습을 보게 된다. 그분들의 건강에도 참 좋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간다.사람은 누구나 나이가 들고 늙어간다. 그리고 현직에서 은퇴하는 날이 온다. 젊은 교수들도 언젠가는 명예교수가 된다. 그들이 명예교수가 되었을 때 그들이 갖고 있는 지헤와 경륜을 존경하는 후배교수가 있다는 사실, 또 그러한 지혜와 경륜의 자산을 대학을 위해 사용할 수 있다는 보람이 명예교수들의 삶의 보람과 건강을 지켜 주리라고 생각해 본다. 그건 또한 대학발전을 위해서도 좋은 일이기도 하다.

2019-10-03

고장 난 활주로

스탠퍼드 대학 프레드 러스킨은 ‘용서학’을 연구합니다. 그는 용서는 화해와 다르다는 색다른 주장을 펼칩니다. “용서는 지극히 개인적인 일입니다. 상대와 무관하게 내 마음 안에서 일어나는 치유의 행위가 용서입니다.”공항 활주로 예를 듭니다. “착륙 유도 장치가 고장 난 경우를 생각해 보세요. 공항을 향해 날아오던 비행기들은 주변 상공을 선회하죠. 착륙 유도 장치의 수리가 끝날 때까지 모든 일들이 극심한 스트레스의 상태에 들어갑니다. 연료가 떨어지기 전에 착륙을 해야 하는 기장과 승무원들, 이미 착륙해 집에 돌아갔어야 할 시간에 공항을 아래 두고 선뜻 착륙을 못해 선회하는 짜증 난 승객들. 오랜만의 만남으로 흥분에 들떠 공항에서 가족을 기다리는 마중 나온 이들의 초조함.”프레드 러시킨은 ‘용서하지 못하는 마음 상태’를 고장 난 활주로에 비유하죠. 모두에게 힘든 상태라는 것입니다. 용서를 영어로는 Forgive라고 하지요. 상대가 아닌 나를 위하여(For) 주는(give) 가장 멋진 선물입니다. 찾아가서 화해하고 손잡고 포옹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것은 다음 단계의 행위로 꼭 필요한 일이 아닐 수 있습니다. 용서는 내 마음 안에서 빙글빙글 돌며 선회 비행을 계속하는 지긋지긋한 그 존재들을 착륙시켜 내 마음 밖으로 빠져나갈 수 있게 길을 터 주는 일입니다.프레드 러스킨은 덧붙입니다. “대부분 사람들이 쉽게 용서하지 못하는 한 사람이 있습니다. 누구일까요? 누구나 예외 없이 그 한 사람을 쉽게 용서하지 못합니다. 나 자신입니다.” 나를 평생 관찰했고, 내가 수치스러운 행동을 적나라하게 목격한 바로 그 눈길, 그 존재. 다른 사람을 용서하기 전에 먼저 나 자신을 용서하는 일. 삼각지 허름한 국숫집 할머니의 용서처럼 나 자신을 용서하는 일이 세상에서 가장 큰 선물을 스스로에게 주는 일입니다./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대표

2019-10-03

이제는 말할 수 있다

지난 박근혜 정부 시절이 생각난다. 세월이 빠르다더니 벌써 이 년하고도 반이나 흘렀나보다. 돌이켜보면 어지럽기도 어지간히 어지러운 시간이었다. 대통령이 탄핵되던 그 겨울에 우연히 SBS 8시 뉴스를 보다 깜짝 놀라고 말았다. 내 이름이 열 댓명 이름 속에 들어 있었고 그것도 지금은 작고한 비평가 황현산 씨 옆에 두 번째로 등장하는 것이었다. 이름하여 블랙리스트라는 것이었는데 무슨 무슨 심사위원장을 맡겨서는 안 되는 사람들 목록이라고 했다.온갖 블랙리스트들에 없던 내 이름이 8시 뉴스에 등장한 일은 기이하고도 소름끼치는 경험이었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일은 내 이름을 블랙리스트에 올린 정부 당국의 ‘핑계’였다. 이름하여 그 열댓 명은 제주도 강정 해군기지 건설에 반대하고 경상북도 성주 사드 미사일 배치에 반대하는 서명을 했다는 것이었다.다른 사람들은 어떤지 알 수 없으나 나 자신에 대해서만은 정확히 말할 수 있다. 나는 이 나라에 미군이 주둔하거나 철수하는 일 같이 ‘엄청난’ 일에는 한 번도 의사를 표명한 적이 없다.제주 해군기지 문제나 성주 사드 문제는 미국의 극동 전략에 관계되는 문제이고 아름다운 제주나 성주가 군사기지화 되는 것은 안타깝기 짝이 없는 일이지만 일개 서생인 내가 이 문제를 갖고 왈가왈부 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이렇게 생각하는 내가 어떻게 ‘감히’ 그런 문제에 서명하는 일을 할 수 있었겠는가.그러나 지난 정부는 나를 반미주의자로, 있지도 않은 죄를 뒤집어 씌워 낙인 찍어 마땅한 사람으로 둔갑시켰던 것이다.그 이유는 아마도 세월호 참사의‘비밀’에 관심을 갖는 내가 심히 못마땅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지난 정부의 사나운 심사는 이해가 가지만 한밤에 반미주의자가 된 아들의 이름을 들어야했던 나의 부모님은 무슨 죄를 지었더란 말인가.정부가 바뀌고 이제는 걱정과 두려움 없는 시대를 살아갈 수 있으려니 했다. 소나 말 궁둥이에 낙인을 찍고 죄인의 가슴에 주홍글씨를 새겨 넣는 시대는 지나갔으려니 했다. 그런데 근거는 분명하지 않지만 신문이나 방송에 오르내리는 뉴스나 각종 포털 사이트에 올라오는 ‘실검’ 순위 목록을 보면 뭔가 심상치 않은 상황이 전개되고 있음을 느끼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지난 정부에서처럼 피부에 와닿는 방식은 아닌 것도 같은데 그렇다고 해서 완전히 다르다고 말할 수도 없을 것 같은 이 이상한 기운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이 년 반 동안 ‘새로운’ 세상을 살면서 나쁜 꿈에서 이제는 깨어나고 싶었다. 그리고 정녕 바라마지 않는다. 나쁜 꿈에서 이제는 깨어나서 밝은 대낮의 삶을 살고 싶노라고. 이 우려가 기우에 그치기를 바랄 뿐이다. /방민호 서울대 국문과 교수 /삽화 = 이철진한국화가

2019-10-03

개의 번식(下)

개의 염색체는 39쌍이고, 78개이다. 말은 32쌍이고 64개 염색체를 가진다. 세포의 핵 속에 존재하는 염색체는 부모 양쪽으로부터 하나씩 받아 쌍을 이루게 된다. 염색체 쌍들에 의해 부모와는 다른 자손의 특성을 결정하게 되는데, 개의 경우 60일이면 출산할 수 있고, 많은 개체를 낳으며 가계도를 쉽게 그려볼 수 있으므로 유전학의 중요한 지식들을 제공할 수 있다. 특히 자연발생적으로 생겨나는 유전병들이 사람과 유사한 것들이 많아서 질병 원인연구와 의약품 개발 연구에 도움을 줄 수 있다.예로부터 개의 번식에서 유전학을 모르는 사람들은 경험이나 주관적 판단에 의해 부모견의 상태를 보고 원하는 자손을 얻고자 노력해왔다.순종 개는 동종번식을 통해 유전적으로 밀접한 관련이 있는 개체의 번식을 통해 후손을 얻는 것인데, 동종번식의 목적은 양쪽 염색체에 같은 형질이 나타나도록 하는 것이다. 동종번식은 원하는 유전자가 나타날 가능성을 높여주는 것인데 문제는 좋은 형질 뿐만아니라 나쁜 형질이 반복해서 후손에게 전달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스코티시테리어는 너무 흥분하거나 운동을 많이 하면 엉덩이 근육과 다리가 굳어지는 증상을 보이는데, 이는 유전학적 열성형질이 원인이다.플랫코티드 리트리버는 종양이 자주 생기고, 달마시안과 오스트레일리아 양치기 개들은 청각장애가 많다. 콜리, 노르위전 엘크하운드, 코커스파니엘, 아이리시 세터 등은 망막이 점차 퇴화하여 결국 실명하는 사례들이 적지않게 보고되고 있다. 복서는 심장이 약하고 맨체스터 테리어와 푸들에게는 혈우병이 많다.우성형질에 의한 유전성 질환은 바셋하운드나 닥스훈트에서 빈번한 연골무형성증이 있고 다른 품종견에서 선천성 후두마비, 선천성 백내장 등이 있다. 한 두개의 유전자 때문에 일어나는 털 감소증은 전신에 털이 없이 태어나는 차이니스 크레스티드 독과 멕시칸 무모견에서 많이 나타난다.초기 번식자들이 관심을 가진 개의 털 색깔, 모양, 형태와 관련된 유전학적 연구와 지식들은 이제 거의 과학적으로 밝혀지고 정리되어 있는데 앞으로는 개의 질병과 관련된 유전자 연구와 행동 뇌과학 연구와 관련된 분야가 본격적으로 진행 될 것이다.왜냐하면 현재 주로 쥐로 연구되고 있는 질병, 행동, 뇌과학 분야들은 결국 사람을 이해하기 위함인데, 쥐는 설치류여서 사람과의 생리적 차이가 너무 많다는 단점이 있다. 이에 반해 개는 쥐보다 유전병들이 사람과 비슷할 뿐만 아니라, 감정을 느끼고 뇌과학 영역에서 필요한 궁금증을 연구할 수 있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하지만 현재 국내에서 개와 관련된 연구들이 활성화 되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개를 전공한 연구자들이 부족한 이유도 있지만 동일한 환경에서 개를 기르고, 가계도를 정립하고 개의 특징을 객관적으로 분석할 수 있는 시설과 장비가 부족하여 체계적으로 개의 번식, 유전학적 연구를 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지 않았기 때문이다.이동훈국내에서 보존연구하고 있는 진돗개, 삽살개, 동경이의 체계적 보존과 연구를 위해서 경쟁력 있는 시설과 장비, 인력을 갖추고 과학적으로 한국 개들의 번식관련 연구를 진행할 수 있는 기반이 갖추어지면 세계적 반려동물연구의 메카기능을 수행할 수 있게 될 것인데, 관에서 주도하는 정책연구소를 비롯해서 민간의 연구기능과 학교가 참여할 수 있는 연구네트워크를 구성하는 것이 필요하다. 개 번식과정에서 다양한 질병들과 행동, 뇌과학적 연구가 가능하도록 하고 다양한 데이터 DB를 갖춘다면 세계적으로 경쟁력있는 바이오 연구를 통해 개의 건강뿐만 아니라 사람의 건강을 위한 결과들을 확보할 수 있게 될 것이다./서라벌대 교수·반려동물학과 학과장

2019-10-01

플랫폼의 시대

△도시는 시장이다킨들버거는 1500년부터 1990년까지 경제강대국의 흥망사를 기술한 일 있다. ‘경제강대국 흥망사’라는 이 책에서 언급한 도시와 국가들로는 베네치아, 피렌체, 밀라노 등의 도시국가들과 포르투갈, 에스파냐, 브뤼주 등을 들고 있다.킨들버거는 자원, 무역, 고업, 농업, 금융 등의 요소를 통해서 경제흥망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이 속에서 그가 한 가지 빼놓은 요소가 있다. 그것은 도시 혹은 국가의 흥망과 관련해 인구변동이 어떻게 일어나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오늘날 메트로폴리탄이라 불리는 1천만이 넘는 도시는 제조업의 발전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런던은 산업혁명과 함께 성장하였다. 방직, 석탄, 철광석 등의 공장들은 사람들이 많이 모인 곳에 세워졌다. 인력이 필요했기 때문이다.이렇게 공장이 세워지자 일하기 위해 다른 곳의 사람들까지 유입되었고, 그렇게 유입된 사람들과 비례해 공장이 늘어났다. 뉴욕, 도쿄 등이 그러했다. 서울만 보아도 당장 알 수 있다. 구로공단에는 IC회로 조립공장과 함께 방적공장이나 가발공장이 넘쳐났다. 문래, 종로 등에는 철공소가 모여들었고, 신대방동, 성수동에는 방직공장이 들어섰다. 그렇게 서울은 확대되고 커져 지금 천 만이 넘는 메트로폴리탄이 되었다.말이 태어나면 제주도로 보내고 사람은 서울로 보내라는 말이 있었다. 서울로 가야하는 가장 큰 이유는 먹고 살 일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이 많으면 일이 자연스럽게 생겨난다. 축제가 벌어지는 곳에 사람들이 몰려들고 그 몰려드는 사람들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다양한 장사꾼들이 몰리는 것처럼 사람이 많은 곳에서는 생각지도 못한 일이 생긴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많은 만큼 그들의 욕구도 다양하기 때문이다. 아무 짝에도 쓸데 없다고 여겨지는 능력이 어떤 부류의 사람들에겐 대단한 일로 받아들여진다. 도시는 거대한 생태계를 이루며 생명체처럼 성장해나간다.1970년대 서울이 제조업 중심으로 발전했다면 1980년에는 제조업과 함께 서비스업이 함께 성장하며 더 커졌고 1990년대에 이르러서는 제조업은 다른 곳으로 밀려나고 금융, 법률, 정보, 교육, 의료, 미디어 등과 같은 서비스업 중심으로 재편되었다. 이 과정에서 수없이 많은 일자리가 사라지고 또 다른 일자리가 등장했다. 소멸과 탄생을 거듭하며 도시는 변모했고, 사람들은 떠나거나 다시 유입되었다.그런 점에서 도시는 거대한 시장이다. 사람들의 유동 속에서 새로운 욕구가 생겨나고 욕구를 충족시키려는 노력 속에서 시장은 새롭게 변모한다. 새로운 시장이 생겨나면 새로운 사람들이 유입되거나 기존의 시장은 저항하면서 쇠퇴한다. 시장은 거대한 바다처럼 물결치고, 물은 흘러들어오고 흘러간다. 그런 점에서 도시는 ‘플랫폼’이다. 도시라는 거대한 플랫폼 안에는 거대한 빌딩, 광장, 대학, 주거밀집지역 등과 같은 하위 단위의 플랫폼으로 이뤄진다.플랫폼이 플랫폼을 낳는다. 오늘날 도시는 여전히 힘을 발휘하고 있다. 예컨대 캘리포니아주 내의 총생산량은 프랑스의 GDP와 거의 맞먹는 2조5천억 달러이며, 텍사스와 뉴욕은 1조5천억 달러를 육박한다. 이것은 브라질이나 캐나다와 같은 국가와 맞먹는 수준이다.△도시를 위협하는 플랫폼도시는 거대한 시장이다. 비록 도시를 플랫폼이라고 했으나 진짜 플랫폼만큼 유연하지는 않다. 도시의 시장 기능을 위협하는 ‘진짜’ 플랫폼은 우리의 컴퓨터 속에, 우리의 스마트폰 속에 있다. 본래 플랫폼은 컴퓨터 시스템의 기본이 되는 도스, 리눅스, 윈도우, 브라우저, 자바와 같은 운영체계에 국한되어 사용되었다. 사전적으로 ‘사람들이 기차를 쉽게 타고 내릴 수 있도록 평평하게(flat) 만든 장소(form)’라는 뜻이었다.그런데 어느 날 컴퓨터 공학은 플랫폼을 ‘많은 사람이 쉽게 이용하거나 다양한 목적으로 사용하는 프로그램’이라는 뜻으로 사용하기 시작했고, 자신들이 정의한 방식대로 플랫폼을 현실화하고 있다. 오늘날 플랫폼은 페이스북이나 카카오톡과 같은 SNS, 구글이나 네이버와 같은 포털, 앱을 판매하는 애플 앱스토어나 삼성 앱스토어, 유통과 관련된 아마존이나 알리바바, 새로운 교통과 숙박 산업을 열어가는 우버와 에어비앤비, 다양한 영상콘텐츠를 제공하는 유튜브와 넥플릭스, 교육과 관련된 테드 등 그 종류를 이루 헤아릴 수 없다.공강일 서울대 강사·국문학이러한 플랫폼에는 도시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이 몰린다. 세계에 천 만이 넘는 도시는 총 34개이며, 동경은 3천800만 명의 사람이 거주하는 가장 거대한 도시다. 이러한 수치는 페이스북에 비하면 새 발의 피다. 페이스북은 전세계 인구의 22%의 인구가 사용하고 있으며, 한 달 동안 서비스를 이용한 순수한 이용자 수(Monthly Active Users)는 약 21억에 이른다. 신규 사용자는 분당 400명 정도 증가하며, 매일 1억 시간 분량의 동영상 콘텐츠가 업로드 된다. 6천500만 이상의 기업이 비즈니스 페이지를 운영하고 있으며, 500만 명의 적극적인 광고주가 있다.이제 거대 도시는 저물고 거대 플랫폼의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이제 비즈니스를 하기 위해서는 자신만의 플랫폼을 가져야한다. 시대는 그렇게 변화한다.

2019-10-01

지금 포항경제의 우선순위

김진홍 한국은행 포항본부 부국장포항지역 경제를 주도하는 지역 철강업체들은 요즈음 매우 조용하다. 지난 수년간 미국에게 고율의 반덤핑관세와 쿼터물량 제한이라는 폭탄을 맞은 데다 유럽까지 수입물량 제한에 동참하면서 이를 극복하기 위해 애쓰느라 기진맥진 상태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위기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지금 당장은 가시화되지 않은 상황이지만, 미국과 중국 간 관세인상 등 양자 간 힘겨루기 결과가 본격적으로 나타나는 것은 내년 봄 이후부터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사실 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에서 가장 피해가 작은 분야가 철강분야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중 간 무역전쟁의 여파가 지역 철강기업에 미칠 영향을 간과할 수는 없다. 포항 지역 철강업체의 매출과 수익성은 국제 원자재 가격과 국제 철강재 가격이 어떤 방향인가에 따라 결정된다. 그런데 중국 당국이 미국과의 무역전쟁에 따른 영향을 줄이기 위해 금년 5월부터 그동안의 환경규제를 완화하고 국내 부동산개발에 주목하자 중국 철강사들이 생산을 다시 늘리기 시작했기 때문이다.미중 간 무역전쟁의 여파가 결과적으로 중국내 강재생산 증가로 이어지면서 국제철강재가격을 하락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이것이 야금야금 지역 철강업체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불과 한 두해 전만 하더라도 수출 강재물량 감소분을 국제 시황 개선이 메꾸면서 다소라도 버틸 수 있었지만 앞으로 내년까지는 매출액으로 직결될 강재시황이 하락 경향을 보일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중국 당국이 부동산개발업자의 과도한 부채비율을 우려해 대출심사를 강화하기 시작하면서 개발사업 위축에 따른 중국내 과잉 강재들이 언제든지 낮은 가격을 무기로 다시 국내시장으로 흘러들어올 우려가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다.이처럼 지역경제의 비중이 높은 철강 산업의 시계가 불투명한 상황에서 지금 포항경제에 시급하고 중장기적으로도 유익한 개발 사업은 무엇일까. 그리고 그에 대해 우선순위를 매긴다면 과연 어떨까. 지역 경제의 경기부양을 위해서는 지역 철강제품을 사용하고 지역 건설업체가 참여하여 최대한 개발사업의 과실이 지역에 떨어질 수 있는 사업이어야 함은 물론이다.그런 의미에서 첫째, 지진피해지역에 대한 도시재생사업은 도시의 활력과 시민의 자신감을 회복하기 위해서라도 최우선 실시되어야만 한다. 둘째, 당장 내년으로 다가온 국제크루즈여객부두의 완공 이후 외국인 관광객이 본격적으로 포항을 찾더라도 마음 놓고 휴식할 수 있는 고급숙박시설과 그들의 주머니를 가볍게 해줄 대형쇼핑시설도 서둘러 보완해야만 한다. 끝으로 국내외관광객들이 포항이 경유지가 아닌 시작점과 종결점이 되도록 노력하여야만 한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항만과 철도, 공항이 모두 자연스럽게 이어질 수 있는 연계교통망의 구축도 중요하다. 포항이 위기상황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기회는 남아있다. 다만 우선순위를 간과할 경우 모처럼 주어진 기회가 언제나 기다려주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적어도 미분양이 넘치는 상황에서 아파트를 개발하려는 사업만큼은 최우선순위가 아닐 것이다.

2019-10-01

응답하시오, 1998 교육부 장관!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감대통령께 읍소(泣訴)합니다. 제발 교육과 관련해서 대통령의 일방적인 지시를 자제해주십시오. 세간의 이런 말을 들어보셨습니까? 지금 이 나라는 대통령 말 한 마디에 우왕좌왕하는 나라라는 말을요. 다음은 어느 장관 임명식에서 하신 말씀입니다.“국민을 좌절시키는 기득권과 불합리의 원천이 되는 제도까지 개혁해 나가겠습니다. 고교 서열화 등 기회의 공정을 해치는 제도부터 다시 한 번 살피고, 특히 교육 분야의 개혁을 강력히 추진해 나가겠습니다.”대통령께서 보여주시는 특정인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처럼 대통령에 대한 맹신적인 신뢰를 가진 사람들이야 위의 말씀에 대해 무한 지지를 보내겠지만, 대다수의 국민들은 “기회의 공정을 해치는 제도”가 아닌 어느 장관처럼 “기회의 공정을 해치는 사람”에 대해 분노하고 있기에 대통령의 말씀이 또 다른 혼돈을 부르는 구호로밖에 들리지 않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대통령의 교육 개혁 주문에 정치인 교육부 장관은 “개혁안을 신속하게 마련하겠다.”고 즉답을 하였습니다. 과연 그 다음은 뭘까요? 보고용 졸속 정책들의 양산입니다. 그걸 마련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실무자들이 고생할 것이며, 또 교육 현장의 혼돈은 어떨까요?교실 교육이 무너진 지는 오래입니다. 대표적인 때는 1998년입니다. 그 때의 교육부 장관이 누구인지 아십니까? 당시 교육부 장관이 발표한 담화에 대한 기사입니다.“1998년, 교육부가 ‘2002년 무시험전형’이라고 발표했던 대입전형의 윤곽이 구체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당시 교육부 장관은 담화문을 통해 첫째, 암기위주의 낡은 방식의 교육을 지속시키고 사교육비 부담의 멍에를 지우는 입시 위주의 초·중등학교 교육이 이에서 벗어나 교육 본연의 모습을 회복하겠다고 밝혔다. (중략) 둘째, 새로운 대학입학 제도를 마련하면서, 학생 선발에 관한 대학의 자율성을 최대한 보장하는 것을 주안점으로 삼았다고 했다. 구체적으로 새로운 대학입학제도는 교장추천제, 무시험전형제, 다양한 기준에 의한 특별전형 등 다양한 방식으로 학생을 선발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교육부는 ‘한 줄 세우기’ 입시제도에 손질을 하여 대학 간 서열 완화를 꾀하겠다고 밝혔다.”20년 전에도 교육 개혁을 외쳤습니다. 그 때 필자는 초임이라 정치인 교육부 장관이 제시한 이상적인 교육정책에 대해 처음에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런데 금방 이는 교육 현실을 완전히 무시한 정책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야간자습 폐지 등 준비 안 된 요란한 정치적 교육 공약 때문에 교실은 심하게 요동쳤고, 급기야 교실 붕괴 현상까지 초래하였습니다. 이런 혼란을 틈 타 금수저 부모들은 자신들의 자녀만은 유명 대학이나 기관의 인턴 등에 참여시켜 황금 스펙을 쌓게 하였으며, 그 결과 금수저 세습에 성공하였습니다. 왜 그들에 대해서는 아무 말씀도 안 하십니까? 왜 애꿎은 제도에 대해서만 말씀하십니까? 만약 지금의 제도에 대해서 질타하시려면 위의 담화를 발표한 장관에게 먼저 책임을 물으셔야 합니다.세계 일로 바쁘시면 제가 묻겠습니다, 1998년 교육부 장관은 대입제도가, 교육이 왜 이 모양인지 응답하시오!

2019-10-01

증오를 씻은 한마디 말

사기를 당해 재산을 날린 남자가 있습니다. 회삿돈을 가로채 부도를 일으킨 원수 같은 놈이 밤마다 꿈에 나타납니다. 결국, 노숙자로 전락합니다. 하도 배가 고파 화장실에서 물로 배를 채우는 일도 이제 그만하고 싶습니다. 용산역 출구로 나가 배회하다가 뒷골목 국숫집 하나를 발견하지요. “여기 국수 곱빼기!” 호기롭게 주문합니다.마파람에 게눈 감추듯, 이 남자는 국수를 폭풍 흡입합니다. 할머니는 이 남자가 한 그릇을 비우기 무섭게 그릇을 뺏어 가더니 한 그릇을 더 퍼옵니다. “천천히 드시우. 체할라….” 며칠을 굶은 뱃속이 이제서야 꿈틀거리며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할머니! 여기 한 그릇만 더요!” 세 그릇을 다 비운 남자는 잠깐 할머니가 주방에 들어간 사이 냅다 도망을 칩니다. 할머니가 남자 등 뒤에 대고 크게 외칩니다. “그냥 가! 뛰지 말고. 넘어지면 다쳐!! 천천히 가!!”남자는 한참을 달린 후 숨을 헐떡이며 멈춰 섭니다. 눈물이 한없이 터져 흐릅니다. 울화와 비통함, 분노가 흐르는 눈물에 씻겨 내립니다.15년이 흐릅니다. 할머니 국숫집이 모 방송국에 맛집으로 방송을 탄 후 전화 한 통이 울립니다. 중남미 파라과이에서 한 중년 남자가 국제전화를 한 겁니다. 남자는 TV를 보면서, 그 할머니가 15년 전 노숙자였던 그에게 국수를 세 그릇이나 먹이고 도망치던 자신에게 따스하게 용서의 말을 던져주었던 바로 그 할머니였음을 깨닫습니다. 할머니의 한 마디가 자신을 살렸노라, 방송국 PD에게 몇 번이나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다음에 귀국하면 꼭 할머니를 찾아뵙고 인사드리겠다고 다짐하면서요.그는 할머니의 한 마디에 세상에 대한 증오를 다 내려놓고 다시 시작하기로 결심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한국을 떠나 이역만리 파라과이에서 새로 사업을 일으켜 큰 성공을 일구었다고 하지요.(계속)/인문고전독서포럼대표

2019-10-01

무항산(無恒産)

무항산은 일정한 재산이나 생업이 없음을 이르는 말이다. 맹자 편에 나오는 말로 “백성은 먹고사는 문제가 안정돼야 정치를 우러러 본다”고 한 것이다. 정치를 잘한다는 것은 백성을 잘 먹고 잘 살게 하는 것이 기본이라는 뜻이다.맹자는 무항산을 통해 무항심(無恒心)을 가르쳤다. 일정한 수입이 없으면 일정한 마음도 없다는 것이다. 무항심 상태가 되면 “방탕, 괴벽, 부정, 탈선 등 모든 악을 저지르게 된다”고 말했다. 우리 속담에 ‘곳간이 차야 예절을 안다’는 것과 비슷한 의미다.목구멍이 포도청이라는 말이 있다. 먹고 살기 어려워지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 죄를 지어 포도청에 잡혀가게 된다는 말이다. 먹고살기 위해선 해선 안 될 일도 할 수밖에 없는 딱한 처지를 뜻한다.1992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 나선 빌 글린턴은 경제 문제를 꼬집은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 (It’s the economy. stupid)란 캐치프레이즈로 아버지 부시 대통령을 이기고 42대 대통령에 당선된다. 선거에서도 경제 문제는 국민에게 가장 호소력 있는 이슈란 것이 확인된 사례다.사실 국민에게 잘 먹고 잘 사는 문제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 인간이 문명을 발달시키면서 경제는 더욱 중요해졌다. 경제적으로 윤택하다면 누가 정치를 해도 별로 상관이 없다는 생각이 주류를 이루는 요즘이다. 백성에겐 으뜸의 가치로 인식되는 우리나라 경제가 극도로 혼란한 정치적 게임 때문에 내팽개쳐진 느낌이다. 경제계가 우리의 경제를 걱정하는 목소리는 날로 높아가고 있으나 정부여당은 우이독경식으로 듣는 모양이다. 이러다가 정말 한국의 경제는 폭망하는 것은 아닌지 불안하다. 맹자의 무항산의 교훈을 되돌아 볼 시간이 필요하다./우정구(논설위원)

2019-10-01

해양관광도시의 성공조건

정철화 편집부국장최근 장기화된 경제난을 돌파하기 위해 지방자치단체들마다 갖가지 지혜를 짜내고 있다. 산업단지를 조성한 뒤 기업체 유치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당장 성과를 내기란 쉽지 않다. 때문에 지방정부마다 투자 대비 고용창출 효과와 부가가치가 큰 관광산업 활성화에 사활을 걸다시피하고 있다. 관광산업은 숙박과 음식, 상업, 교통 등의 관련 서비스 산업을 동시에 성장시키는 시너지효과가 커 너도나도 관광객 유치 경쟁을 벌이고 있다.유엔 세계관광기구(UNWTO)가 발표한 ‘2018년 국제관광 보고서’에 따르면 2017년 세계 관광객 수는 전년 대비 5% 증가한 14억 명, 관광 수입은 1조 7천억 달러에 이른다. 국제 관광산업은 지난 7년 동안 상품 수출보다 빠른 속도로 성장해 전 세계 수출액의 7%를 차지하는 수준까지 성장한 것으로 조사됐다. 국내 한 통계조사에서 직장인 10명 중 7명이 휴식 시간을 관광으로 보내고 싶다는 결과가 나왔다. 최근 근로시간단축 등 근무여건 변화로 일상을 즐기려는 젊은 직장인 세대의 새로운 라이프 스타일로 떠오른 ‘워라밸’과 맞물려 국내 관광산업도 급성장하고 있다. 전국 자치단체마다 ‘글로벌 관광도시 도약’을 주요 정책 과제로 내세우고 있는 이유로 풀이된다.포항시는 ‘해양관광 1번지, 명품해양관광도시’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관광산업 활성화에 나서고 있다. 특히 지난 8월 영일만 일대가 관광특구로 지정되면서 더욱 힘을 얻고 있다. 영일만 관광특구는 포항시 환호동에서 송도동을 잇는 약 2.41㎢(약 73만평)로 우리나라 관광특구로는 33번째다. 영일만 일대는 환호공원, 영일대해수욕장, 중앙상가 영일만친구 야시장, 죽도시장, 포항운하, 송도솔밭 도시숲 등 여러 관광 콘텐츠를 보유하고 있어 발전 가능성이 매우 높은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문제는 바다를 끼고 있는 전국 지자체들도 앞다퉈 해양관광 육성에 나서고 있는 상황에서 어떻게 차별화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관광객들이 ‘가보고 싶고, 머물고 싶은’ 관광지로서의 매력을 만들어 내느냐가 중요한 과제가 되고 있다.포항은 인접 자치단체들에 비해 관광 여건에서 많이 뒤진다. 먼저 광역단체인 부산시, 울산시와 경쟁해야 한다. 두 광역시의 시정 슬로건도 ‘해양관광도시’, ‘동북아 해양도시’로 포항시와 겹친다. 또 세 도시는 러시아 연해주 주도인 블라디보스톡과 나란히 자매결연을 하고 북방물류 선점 경쟁을 벌이고 있다.포항시는 영일만해수욕장을 가로지르는 포항여객선터미널과 환호공원 전망대를 연결하는 총 길이 1.8㎞의 해상케이블카 건설을 계획하고 있다. 부산은 지난 2017년 송도해상케이블카를 운행한데 이어 현재 국내 최장인 4.2㎞의 이기대 해상케이블카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포항의 해양관광은 이처럼 인접도시뿐만 아니라 전국 도시들과 치열하게 경쟁해야 한다. 가시적 성과에 얽매여 적당한 규모와 즉흥적인 아이디어로 사업을 추진한다면 ‘여럿 중의 하나’에 불과해 진다. 지역 실정에 맞고 환경에 어울리는 포항만의 독특한 개성의 관광콘테츠를 만들어 내야만 세계적인 해양관광도시로 성공할 수 있다.

2019-10-01

배고픈 시대 호박은 양식이 되어 주었다

호박, 억울하다. 호박은 좋은 농작물이자 식재료다. 가난한 농가의 소중한 구황작물이었다. 지금도 호박죽은 ‘비교적 귀한’ 대접을 받는다. 정작, 호박의 이미지는 그리 긍정적이지 않다. 못생긴 사람을, 특히 여자의 경우, 호박에 비교한다. ‘호박’이라고 부르는데 좋아하는 이는 없다.호박은 수박과 경쟁한다. “호박에 줄 긋는다고 수박 되지 않는다”고 한다. 수박은 끼닛거리가 아니나, 호박은 양식이 된다. 덜 익은 수박은 먹을 수 없지만, 애호박은 식량이 된다. 전, 된장찌개에 쓴다. 우리도 수박을 귀하게 여긴다. ‘그까짓 호박’이라고, 호박은 낮춘다.다산 정약용(1762~1836년)은 1801년 봄, 장기현(지금의 경북 포항 장기마을)으로 유배를 왔다. 220일. 다산은, 봄부터 늦가을까지 장기에서 귀양살이를 했다. 봄, 여름, 가을을 겪었다. 일곱 달 동안 장기의 바닷가 살림살이를 봤다. 글을 남겼다. ‘장기농가(長鬐農歌) 10장’에 호박과 수박이 나타난다(다산시문집 제4권_시).(전략) 부슬부슬 새벽 비가 담배 심기 알맞기에/담배 모종 옮겨다가 울 밑에 심는다네/올봄에는 영양에서 가꾸는 법 따로 배워(今春別學英陽法)/금사처럼 만들어 팔아 그로 일 년 지내야지(要販金絲度一年)/호박 심어 토실토실 떡잎이 나더니만/밤사이에 덩굴 뻗어 사립문에 얽혀 있다/평생토록 수박[西瓜]을 심지 않는 까닭은/아전놈[官奴]들 트집잡고 시비 걸까 무서워서라네(후략).몇 가지 사실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호박은 심되, 수박은 심지 않는다. 왜 그럴까? 호박은 트집을 잡지 않는다. 심든 말든 상관하지 않는다. 수박은 관(官)에서 시비를 건다. 수박은 과세대상이다. 관에서 트집을 잡는 이유는 간단하다. 호박은 농가 자체 소비지만, 수박은 환금작물이다. 내다 판다. 돈을 버는 작물은 세금을 내야 한다.시의 앞부분에 ‘담배 농사’ 이야기가 있다. 영양현(경북 영양)이 담배 농사를 잘 짓는다. 영양의 담배 농사 비법을 배워서 좋은 담배(금사)를 만든 다음, 그걸 내다 팔고 싶다. 요량대로라면, 일 년 동안 쓸 돈을 마련할 수 있다. 담배나 수박 모두 환금작물이었다. 1801년 이전부터 이미 수박은 호박보다 귀하신 몸이었다.1654년을 시작으로 대동법이 각 지역으로 확대되었다. 쌀이 세금의 기준이 되었다. 복잡했던 세금이 비교적 간편하게 정리되었다. 1791년(정조 15년), 신해통공(辛亥通共)이 시행되었다. 민간의 상행위가 상당히 자유로워졌다.다산이 장기현으로 귀양을 온 시기는 신해통공 10년 후다. 여전히 세민(細民)들은 관청의 세금과 탐학에서 벗어나기 어려웠다.다산 정약용은 다른 시에서도 호박의 유용함을 이야기한다. ‘다산시문집_제1권_시’의 내용. 제목은 ‘호박을 넋두리한다[南瓜歎, 남과탄]’이다, 남과(南瓜)는 호박이다.궂은비 열흘 만에 여기저기 길 끊기고/성 안에도 시골에도 밥 짓는 연기 사라져/태학에서 글 읽다가 집으로 돌아와/문 안에 들어서자 시끌시끌 야단법석/들어보니 며칠 전에 끼닛거리 떨어져서/호박으로 죽을 쑤어 허기진 배 채웠는데/어린 호박 다 땄으니 이 일을 어찌할꼬/늦게 핀 꽃 지지 않아 열매 아직 안 맺었네/항아리만큼 커다란 옆집 밭의 호박 보고/계집종이 남몰래 그걸 훔쳐 가져와서/충성을 바쳤으나 도리어 야단맞네/누가 네게 훔치랬냐 회초리 꾸중 호되네/어허 죄 없는 아이, 이제 그만 화를 푸소/이 호박 나 먹을 테니 더는 말을 말고/밭 주인에게 떳떳이 사실대로 얘기하소(후략)마치 그림 같다. 다산은 1784~1789년 사이, 태학(太學, 성균관)에서 공부했다. 이 시의 시기는 1785년 무렵이다. 다산은 ‘학생’ 신분이었다. 봉급을 받는 벼슬아치가 아니다. 성안이나 성 밖 시골 모두 밥 짓는 연기가 사라졌다. 굶는다. 다산의 집도 마찬가지다. 끼닛거리가 없으니 호박죽을 먹는다. 아마 늦여름, 초가을이었을 것이다. 애호박도 다 따버렸고, 늦게 핀 꽃은 아직 지지 않아 열매가 달리지 않았다. 계집종이 옆집 호박을 훔쳐 왔다. 호박은 소중한 구황작물이었다.호박, 흔하다, 그래서 천하다?창강 김택영(1850~1927년)은 조선 말기, 일제강점기의 학자, 우국지사다. ‘소호당시집_제3권_을유고’에 호박을 소재로 한 시가 남아있다. 제목은, 공교롭게도, 다산의 시와 같다. ‘남과탄(南瓜歎)’, 1885년(고종 22년) 지은 작품이다. 다산의 ‘남과탄’과는 딱 100년의 차이가 난다. 100년 뒤에도 호박은 여전히 구황작물이었다.(전략) 올해 심은 호박은 씨가 좋지 못하여/헛되게도 많은 꽃들, 벌들만 길렀네/아침 내내 따고 따도 광주리 못 채우고/돌아와 처자식 대하니 면목이 없네/산중이라 고기라곤 맛볼 수 없고/어린 이들이나 먹을 호박뿐/온 가족의 실망 이미 매우 탄식스러운데/좋은 손님 방문하면 장차 어쩌랴 (후략)호박은 언제 한반도에 전래되었을까? 조선 후기 실학자 성호 이익(1681~1763년)은 호박에 대해서 많은 기록을 남겼다. 성호는 스스로 호박 농사를 지은 적도 있다. 성호는, “호박은 100년 전에 시작되었다”고 했다. 대략 17세기 전반쯤이다. ‘성호사설_제6권_만물문’ 중의 내용이다.호남 지방에는 소마(蘇麻)가 없고 다만 수유(茱萸)나무 열매로 기름을 짜서 등불을 켜게 된다. 남과(南瓜)라는 호박이 난 지도 또한 거의 백 년이 가까이 되었는데, 아직 호남 지방에는 미치지 못했으니, (후략)소마(蘇摩)는 들깨, 수유(茱萸)는 산수유 열매다. 기름을 짜서 머릿기름 등으로 사용했다. ‘남과라는 호박이 난 지도 100년 가까이 되었다’고 했다. 호박은 임진왜란 이후 들여온 것이다. 무슨 이유에선지 알 수 없지만, 당시 호남에는 호박 농사가 드물었다.호박, 16세기에도 있었다호박의 전래는, 성호의 주장보다는, 조금 빠를 가능성도 있다. 교산 허균(1569~1618년)의 ‘성소부부고_한정록_제16권_치농’에 호박 기르는 법이 등장한다. ‘한정록’은 1610년에 썼다가, 교산이 역모죄로 죽던 해인 1618년 재편집한 것이다. 17세기 초반이다.동과(東瓜), 남과(南瓜)먼저 젖은 볏짚재[稻草灰]를 부드러운 진흙과 뒤섞어 땅 위에 깔고 호미로 둑을 짓고서 3월에 하종하되, 그 씨앗의 거리는 서로 1치쯤 떨어지게 심은 다음 젖은 재[灰]를 체로 쳐서 덮어주고는 물을 주고 또 거름물을 주기도 한다. (중략) 덩굴이 길게 뻗으면 시렁을 매어 끌어올린다. 이는 오이 심는 법과 모두 같다.동과(東瓜)는 동과(冬瓜)로 ‘동아’다. 크고 긴 열매로 껍질은 박 같다. 지금은 보기 힘들다. 동아나 남과(호박)을 기르는 법을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호박은 북쪽으로는 중국, 남방으로는 일본 큐슈, 오키나와, 동남아, 아라비아 등 다양한 루트로 들어왔을 것이다. 성호 이익의 또 다른 기록이다(성호사설 제5권_만물문_남과).채소 중에 호과(胡瓜)란 것이 있는데 빛은 푸르고 생긴 모양은 둥글며 무르익으면 빛이 누르게 된다. 큰 것은 길이가 한 자쯤 되고 잎은 박[瓠]과 같으며 꽃은 누르고 맛은 약간 달콤하다. 우리나라에는 옛날엔 없었는데 지금은 있다. (중략)/요즘은 사대부(士大夫)들에도 이 호과를 심는 이가 많은데, 어떤 이는 이르기를, “‘본초강목’에 남과(南瓜)라고 했다” 한다/(중략) 남과라는 것도 있고 또 왜과(矮瓜)라는 따위도 있는데, 이 왜과란 것도 남과와 흡사하다. 빛깔은 한껏 누르고 생긴 모양은 둥그스름하고 길며 맛은 단 편이다. 지금 시골에 혹 심는 이가 있는데 이름을 당호과(唐胡瓜)라고도 한다. 남과에 비교하면 조금 잘기 때문에 심는 자가 많지 않으니, 이는 대개 서북 지방에서 들어온 것인 듯하다.호박(남과)은 호과와 닮았다. 남과와 비슷한 왜과도 있다. 왜과는 ‘왜호과’라고도 한다. ‘호(胡)’는 아라비아, 중동이다. 당(唐)은 중국이다. 당호과는 아라비아, 중국을 거쳐 한반도에 들어온 것이다. 호박은, 호박죽처럼 뒤섞여 들어왔다./맛칼럼니스트 황광해

2019-09-30

임마누엘 칸트의 조언

임마누엘 칸트는 일정한 시간에 산책하기로 유명합니다.주위 사람들이 칸트를 보고 시계를 맞췄다고 할 정도였지요. 어느 날 한 부인이 칸트에게 질문합니다. “저도 선생님처럼 시간을 잘 다스리고 질서 있게 살고 싶습니다. 비결이 뭘까요?”칸트의 답은 뜻밖입니다. “부인, 바느질 바구니를 깨끗하게 정리해 보세요.” 선문답 같은 대화지요. 무질서하게 흐트러진 바느질 바구니를 정돈하면서 작은 실천을 해 보면, 보이지 않는 삶의 질서를 바로잡을 동기 부여가 되는 법이니까요.인생에 백해무익한 것들은 소리 없이 강합니다.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지독하게 파고들죠. 세상이 척박하고 삶이 피폐할수록 달콤한 유혹들은 삶을 어느 순간 점령해 버립니다.삶을 바로 세워줄 지렛대 역할을 하는 ‘좋은 습관’은 저절로 주어지지 않습니다. 마치 오르막길을 오르는 자전거 여행자처럼, 끙끙거리면서 에너지를 쏟아부어야 합니다. 저는 인생에서 소중한 그 모든 행위를 새벽에 다 몰아서 실천합니다. 지상 최후의 자유시간, 새벽이 있어서 얼마나 감사한지요. 모든 저녁 일과를 포기하고 늦어도 밤 9∼10시에는 침대에 들어갑니다. 결단과 삶의 가지치기가 필요하지만 뚜렷한 목적이 있기에 할 수 있습니다.새벽 2시부터 아침 8시까지 업무를 제외한 나머지 소중한 행위들 책읽기, 글쓰기, 사색하기, 묵상하기, 운동하기, 일기 쓰기 - 모두를 끝냅니다. 여기까지가 하루 일과의 오르막길입니다. 아침 8시 이후에는 신나는 내리막길 하루가 활짝 열립니다. 휴식과 업무를 적절히 조절해 남은 하루를 저절로 굴러가도록 합니다. 업무는 스스로의 동력이 있기 때문에 굳이 제가 억지로 의지를 발휘하지 않아도 나를 몰고 가는 힘이 있거든요. 반면 인생에서 진정 소중한 것들은 의지를 발휘하고 습관을 만들지 않으면 저절로 굴러가지 않습니다. /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대표

2019-09-30

교수들의 시국선언

강희룡 서예가대학하면 최고의 지성을 대표하는 교육기관이다. 대학은 그만큼 가기도 어렵고 선택된 교육기관이다. 후진국에서 대학생이 되는 비율이 고등학교 졸업생 수의 5% 미만인 경우도 있을 정도로 쉽지 않은 교육의 영역이다.하지만 한국은 고등학교 졸업생이 줄면서 많은 대학에서 신입생 모집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대학이 학생 모집에 전력을 기울이다 보니 진리의 상아탑이라는 본질은 사라진 지 이미 오래다.교수라는 직업은 당연히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지만 정치 또는 사회적으로 큰 혼란이 있거나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판단될 때, 현안에 대한 우려를 표명하고, 사태 해결을 촉구하는 시국선언을 하기도 한다. 이들의 시국선언은 애국이 목적이며, 대표적인 사례는 4·19혁명이 일어난 직후인 1960년 4월 25일 당시 자유당정권의 부정선거와 부패에 항거하여 교수들의 시국선언으로 인해 이승만은 다음날 대통령직을 물러났다. 1986년 5공정권의 군부독재를 비판하고 민주화를 요구하는 각계각층의 움직임이 가시화되었을 때도 교수들의 시국선언이 민주화의 여망을 대변하면서 시민과 학생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아 1987년 6월 민주항쟁을 이끌어내는 데에도 중요한 기여를 했다. 이렇듯 교수들의 시국선언은 우리사회에서 그들이 가진 비판적 지식인의 위상과 책임을 자리매김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지금 우리사회는 조국 법무장관 임명을 두고 가족이 검찰수사를 받기에 사퇴를 촉구하는 측과 조국 장관만이 검찰개혁 적임자라며 지지하는 측이 시국선언을 위한 교수들의 서명을 받고 있다. 문제는 지지하는 측에서는 조국 장관만이 검찰개혁의 엄중한 역사적 과업의 도구로 선택된 것이라며, 수사로 온 가족의 삶이 망가지는 위기에 처했음에도 불구하고 국가의 민주주의를 위해 자신이 그 운명을 바치기로 결심했기에 그를 지지한다는 것이다. 또한 이들은 검찰의 조국 가족 수사가 촛불혁명으로 출범한 개혁정부의 미래를 좌초시키려 한다는 것이다. 앞으로 수십 년 동안 이 나라 민주주의의 성패를 결정지을 핵심적 사안이 바로 검찰개혁이기에 조 장관 일가 수사를 두고 마녀사냥식이라고 몰아붙인다. 아마 이런 해괴한 궤변을 늘어놓고 있는 사이비교수집단이 많은 것도 한국이 아마도 세계에서 선두일 것이다. 교수직을 발판으로 오로지 벼락출세와 권력지향적인 욕망을 꿈꾸며 정치권을 오가는 행태를 보이는 자들을 ‘폴리페서’라 한다. 이 폴리페서를 자신이 하면 앙가주망(지식인의 사회참여)으로 즉 내로남불 이야기하는데 앙가주망 이전에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배웠어야 할 것이다.학문 연구는 뒷전이고 정치권력에나 기웃거리면서 아부나 일삼는 자들은 이미 교수로서의 품격을 버린 것이다. 한 번 교수는 영원한 교수라는 철밥통 관행 풍토가 사라져야 21세기 지식기반 사회에서 대학경쟁력이 살아날 것이다. 교수들 스스로도 학문적 능력과 연구실적 만으로 인정받아야겠다는 각오를 다져야 하며 교수평가 온정주의는 배척해야 할 것이다.지금 그들은 조 장관의 일가가 보여준 삶의 궤적이 개천에서도 용이 날 수 있다는 우리 사회의 실낱같은 서민의 사다리를 꺾어버린 행태를 민주주의로 포장해 궤변으로 국민 앞에 지지선언을 하고 있는 것이다.

2019-09-30

죽음마저 극복한 음악 구스타프 말러(上)

젊은 시절의 구스타프 말러.오시카 마사코가 쓴 ‘누구나 마지막에 꾸는 꿈, 집에서 죽음을 맞이하다’란 책을 보면 죽음이란 누구나 한번은 겪어야 할 경험이지만 대부분이 원하지 않음에도 집을 떠나 병원에서 객사(?)하는 사람이 많은 슬픈 현실을 언급한다.필자의 어린 시절을 떠올려 보면 골목길에 초상이 났음을 알리는 근조등을 자주 볼 수 있었다. 죽음을 알리는 근조(謹弔)등은 빨강과 파랑으로 예쁘게 구성되어 기묘한 감정을 불러일으켰으며 친구들과 신나게 놀다가도 근조등이 달린 문 앞을 지나갈 때면 본능적으로 침묵할 수밖에 없었던 어린 날의 기억이 있다.20세기 최고의 교향곡 작곡가로 불리는 구스타프 말러(Gustav Mahler·1860∼1911)의 음악세계는 ‘죽음’을 얘기하지 않고는 설명하기 어렵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죽음과 가까이 있었다. 15남매 중 둘째로 태어났으나 그 중 9명이 어린 시절 세상을 떠나는 것을 지켜보았으며 말러가 15세가 되던 해 바로 아래 동생 에른스트가 세상을 떠난 일은 가장 큰 상처로 남았다.장례의식은 모순된 분위기가 있다. 슬퍼하는 유족의 오열 속에 손님들은 문상이 끝난 후 음식을 대접받고 서로 친목하고 인사하며, 웃고 즐기는 묘한 분위기다. 형제를 잃은 슬픔이 큰 말러에게 이러한 모순된 경험은 매우 특별한 경험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말러가 유년 시절 처음으로 작곡한 곡이 ‘장송곡이 포함된 폴카’였음에도 어린 시절 죽음의 경험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말러의 모든 교향곡에 ‘장송 행진곡’ 풍의 악장이 들어 있으며, 특히 ‘교향곡 1번의 3악장’에서는 동요를 캐논의 형태를 사용하여 장송곡으로 편곡하는 새로운 시도를 한다. 여기서 사용된 동요는 누구나 한번쯤은 들어본 익숙한 동요인데 ‘프리레 자크’ 또는 ‘브루더 마르틴’ 등으로 불린다. 영어권에서는 주로 아이를 깨우는 노래로 쓰이며 “Are you sleeping, Are you sleeping”으로 시작되는데 동생 에른스트의 죽음을 애도하며 3악장에 동요를 단조화 하여 아이들의 장르인 동요와 죽음을 결합시키는 모순된 음악의 형태를 만들어 낸다.베토벤과 드보르작, 슈베르트 등은 9개의 교향곡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말러도 8번 교향곡을 작곡한 뒤 9번째 교향곡 착수를 앞두고 죽음의 딜레마에 휩싸였다. 그래서 아홉 번째 교향곡을 9번 교향곡이라 명명하지 않고 ‘대지의 노래’라고 불렀으며 중국의 한시를 텍스트로 사용하여 연가곡과 교향곡의 혼합된 작품을 남겼다. 이후 9번 교향곡을 완성한 후 10번 교향곡을 미완성으로 남겨 놓은 채 세상을 떠났으니 말러는 그가 우려한대로 9번 교향곡을 넘어서지 못했다.말러는 1884년 청년기인 24세에도 가까웠던 친구를 떠나보내는 죽음의 경험을 한다. 가장 친한 친구이자 음악의 동료였던 한스 로트(Hans Rott·1858∼1884)의 죽음이었다.말러의 친구 한스 로트는 작곡 능력이 탁월한 사람이었다. 그의 작품은 말러의 음악에 많은 영향을 주었을 뿐만 아니라, 만약 인생이 조금만 더 살았더라도 말러를 넘어서는 작곡가가 되었으리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다.19세기 말은 베토벤을 계승하고 음악의 순수성을 지향하는 브람스를 필두로 하는 ‘보수파’와 리하르트 바그너(R.Wagner·1813∼1883)와 프란츠 리스트(F.Liszt·1811∼1886)를 필두로 극적인 음악을 지향하는 ‘개혁파’의 팽팽한 대립이 있던 시기였다. 한스 로트는 ‘개혁파’의 음악적 성격을 가졌기 때문에 ‘베토벤 대상’에 작품을 응모했을 때 뛰어난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당시 심사 위원이었던 보수파의 브람스가 집요하게 선정에 반대하여 탈락시켰다. 그리고 한스 로트가 교향곡 1번을 완성한 뒤 당시 빈 필하모닉을 지휘하던 한스 리히터에게 보여 초연을 추진했으나 브람스는 한스 리히터(Hans Richter·1843∼1916)를 찾아와 교향곡 초연의 반대를 설득했다. 결국 초연은 무산됐으며 이후 한스 로트는 괴로워하며 정신병에 걸려 25세의 젊은 나이에 정신병원에서 생을 마감한다. 초연이 무산된 로트의 교향곡은 그가 죽은 지 100년이 넘은 1989년 신시내티 교향악단에 의해 초연됐다고 하니 한 세기가 지난 뒤 빛을 보게 된 셈이다./문양일 포항예술고 음악교사

2019-09-30

가을, 선정에 들다 - 상주 원적사(圓寂寺)

십여 년 전 원적사에 들렀던 적이 있다. 청정한 절의 경관보다 닳고 해진 소매끝과 천을 덧대 기운 젊은 스님의 승복 앞에서 가슴 서늘했던 기억이 또렷하다. 그 청빈한 산사의 이미지는 오랫동안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불자도 아닌 내가 산문을 쉽게 개방하지 않는다는 선원에 다시 가볼 기회는 오지 않았다.무작정 원적사를 찾아 나섰다. 문경과 상주, 괴산을 끼고 있는 청화산 중턱을 향해 가파른 산길을 오르자 ‘청정수행도량이니 돌아가라’는 표지판이 가로 막는다. 절은 660년(신라 태종무열왕7년) 원효 대사가 창건하였다는 설이 있지만 확실치는 않다. 풍수지리설에 따르면 학이 하늘을 향해 날아오르는, 비학승천혈(飛鶴昇天穴) 명당이라 예로부터 깨달음을 빨리 얻을 수 있는 수도처로 알려졌다. 학의 부리에 해당하는 크고 뾰족한 바위 아래 원적사(圓寂寺)라는 현판을 단 주법당이 좌선하듯 앉아 있다.석가여래좌상이 봉안되어 있는 법당에는 불전함이 보이지 않는다. 제단 위에 발가벗은 지폐 한 장 올려놓기가 민망하다. 나의 공양은 정성스런 마음보다 그저 습관 같은 의식에 지나지 않았는지 모른다. 요사채에서 차담을 나누던 주지 스님이 소탈하고 쾌활한 얼굴빛으로 맞아 주신다. 가을빛 한 아름 안고 따라오던 숲이 그제서야 뒤로 물러나 앉고, 머지않아 이 골짜기도 짧고 깊은 사색의 계절로 접어들 것이다.교통사고로 왼팔에 깁스를 한 채 보이차를 대접하는 범린 주지 스님은 오랫동안 알아온 사람처럼 어색하지 않고 편안하다. 형식적인 틀과 권위를 좋아하지 않는 스님은, 저절로 내면이 원숙해지고 중물이 자연스럽게 몸에 배어 나오길 원하신다며 두루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하신다.승(僧)과 속(俗)은 하나일 수 없다. 그렇다고 온전히 분리될 수도 없기에 스님 노릇도 쉽지 않으리라. 공양주 보살을 두지 말고, 산방도 꾸미지 말고, 산문도 열지 말고 수행에만 전념하라던 서암 스님은 이제 벽에 걸린 사진 속에서만 환하게 웃으신다. 해우소 가는 길섶에는 때이른 가을이 선정에 들고, 나무들은 서로를 품고 기도하듯 온화하다.부처님 오신 날만 산문을 여는 수행도량 봉암사와 50여 년 수좌로서의 품격을 잃지 않고 입적하실 때까지 지켜온 원적사, 두 사찰의 맑은 이미지 속에는 서암 큰 스님이 계신다. 나는 한 그루 갈매나무를 떠올린다. 백석의 시 속에서 하얗게 눈 맞으며 맑고 깨끗하게 살아가는, 곧고 의연한 아름다움을 지닌 갈매나무.젊은 시절 토굴에서 지내며 용맹정진하셨다는 스님은 인도의 오르빌과 명상센터를 수차례 다녀온 경험담을 꺼내신다. 기억이 희미해져 가는 나의 인도여행기와 책에서 만났던 오르빌의 환상들을 뜻밖에도 산중에서 만나게 될 줄이야. 세계적인 지휘자 첼리 비다케와 폰 카라얀, 말러와 베토벤의 교향곡, 철학자 쇼펜하우어와 오쇼 라즈니쉬, 전문적인 깊이는 가늠할 수 없지만 스님의 해박한 식견은 쉬지 않고 이어진다. 어둠의 경계를 허물기 위해 아침이 오도록 저린 걸음으로 걸었을 스님, 선정을 위해 곱게 물 들어가는 담쟁이덩굴의 안색조차 눈부시다.조낭희 수필가잠시 전생의 습을 생각한다. 안간힘을 써도 털어내기 힘든, 일종의 굴레 같은, 그 업을 벗기 위한 노력을 나는 하긴 했던가? 스님은 약자와 소수자에 대한 정의감도 유별나다. 중이 정치에 관심을 가지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며 씁쓸해 하신다. 내 몸 하나 위로하며 살기도 바빴던 나를 원적사 가을빛이 말없이 다독인다. 보물 하나 없어도 원적사가 아름다운 까닭이다.“불교는 종교를 넘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어 주는 철학이지. 공부해야 시건방 들 새가 없어.” 스님의 말씀이 소슬하게 날아와 꽂힌다. 그것은 가난한 절 살림을 겸허히 받아들이며 수행하는, 서암 큰스님의 상좌다운 자존심이다.산중 생활이 무섭지 않느냐고 여쭙자 “뭐가 무서워. 무서운 건 나지.” 우문현답이다. 어김없이 2시 50분이면 일어나 도량석을 시작으로 두어 시간씩 조석예불을 드리고 혼자서도 잘 논다던 스님은, 하루 30분이라도 명상하는 습관을 들이라고 당부하신다.“명상이란 내 안에 침잠해 들어가서 실체, 즉 본체를 확인하는 작업이지. 명상을 하면 생각의 흐름이 잡히고 소중한 것과 가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정리가 되거든. 아침에 명상하는 습관을 들여 보셔요. 습은 길들이기 나름이지. 모든 것은 내 의지, 마음 안에서 나오는 것이야. 끊임없이 변화하는 세상, 끊임없이 정진하는 길밖에 없어.”“불자들이 찾아오면 좋은 말씀 좀 해달라는데 참 딱해. 이 세상에 좋은 얘기가 적어서 이 모양인가? 작은 것부터 실천할 수 있어야지.”나의 허약한 의지가 댓돌에 벗어놓은 신발을 물끄러미 쳐다볼 뿐 어떤 추임새도 넣을 수가 없다, 가까운 곳에서 가을이 익어가는 소리가 들린다.행여 원적사가 궁금하여 청화산 가파른 언덕길 오르거든, 반야라는 이름을 가진 영리한 개와, 공부하기 좋아하는 스님 한 분을 찾아보라. 해우소 창틀로 들어오는 푸른 잡목 숲 닮은 스님이 그대를 반겨 맞을 것이니.

2019-09-30

내 마음 갈 곳을 잃어

변창구 대구가톨릭대 명예교수·국제정치학우수(憂愁)의 계절, 가을이다. 가수 최백호의 ‘내 마음 갈 곳을 잃어’라는 노래에 공감이 가는 것은 계절 탓만은 아닌 것 같다. 만나는 사람마다 “요즘 정치판 돌아가는 꼴을 보니 마음 둘 곳이 없다”고 탄식하니 말이다.정부·여당이 하는 짓을 보면 화가 나서 죽겠는데, 한국당도 변화와 혁신에 소홀하니 끌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공정과 정의를 부르짖던 진보에게 사기당하고, 보수에게는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의 마음은 갈 곳을 잃어버렸다. 최근 한 여론조사에 의하면 여야 정당 모두가 싫다는 무당파(無黨派)가 40%에 육박할 정도로 마음 둘 곳 없는 유권자들이 많다.부정과 비리가 보수·우파에게만 있는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진보·좌파는 한 수 더 뜬다. 얼굴도 붉히지 않고 거짓말을 밥 먹듯 하는 사람이 정의를 수호하는 법무부장관이 되었으니 말문이 막힌다. 민주당 대표는 “정권을 절대로 뺏기면 안 된다”고 벌써부터 내년 총선전략 마련에 분주하고, 한국당은 국민의 정부 비판이 한국당 지지로 연결되지 않는 데에 조바심을 느끼고 있다. 여야 모두가 고달픈 민생에는 안중에 없고 총선 승리에만 혈안이 되어 있을 뿐이다.게다가 나라는 극심한 대결과 분열로 인해 내란의 위기로 치닫고 있는데 국민통합을 약속했던 대통령은 보이지 않는다. 정당은 물론이고 언론과 지식인들까지도 ‘내 편 네 편’으로 갈라서 사생결단의 싸움을 벌이고 있는데 대통령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 남북대화에는 그렇게 적극적인 대통령이 왜 남남대화에는 소극적인지 이해하기 어렵다. 대통령이 진영 프레임에 갇힌 것이 아니라면 이렇게 방관만 할 수는 없는 일이다.이처럼 정치꾼(politician)들의 주된 관심은 ‘국민이 아니라 권력’이다. 그들이 말하는 평등·공정·정의는 선거 때마다 등장하는 정치적 수사에 불과했다. 자신에게 이익이 되면 정의이고 아니면 불의라는 궤변이다. 너를 청산해야 내가 권력을 지킬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잠시 착각했던 것은 사익(私益)밖에 모르는 정치꾼을 공익(公益)을 추구하는 참된 정치인(statesman)으로 생각했다는 사실이다.따라서 이제 우리는 두 눈 부릅뜨고 정치꾼들의 감언이설(甘言利說)에 속지 않아야 한다. 나아가 우리는 주권자로서 그들을 감시·감독하고 잘못을 저지른 자는 반드시 퇴출해야 한다. 국민의 지속적인 정치적 관심만이 민주주의의 반동화를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무당파여! 내 마음 갈 곳 없다고 슬퍼하지 말라. 진영논리에 갇히지 않는 당신이야말로 한국정치의 희망이다. 무당파는 ‘외눈박이 프레임’에 갇힌 좌파나 우파가 아니라 ‘정의파’이기 때문이다. 당신들이 있기에 극단적 대결로 치닫고 있는 이 나라가 두 동강 나지 않고 가까스로 유지되고 있다. 게다가 당신들은 선거에서 ‘캐스팅보트(casting vote)’까지 쥐고 있으니 그 영향력이 막강하다. 따라서 당신들의 올바른 인식과 선택이야말로 ‘한국정치에서 희망의 촛불’임을 잊지 말자.

2019-09-30

가을산행의 복병

온 산이 단풍으로 물드는 계절, 등산에 나서는 이들이 부쩍 늘었다. 하지만 산에는 자칫하면 다치거나 건강에 해로울 갖가지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우선 산에서 만나는 버섯은 아예 손을 안 대는 게 좋다. 식용 버섯과 비슷하게 생긴 개나리광대버섯, 화경버섯 등은 맹독을 갖고 있다. 성묘하다 보면 뱀과 마주칠 수 있는데 독사에 물리면 뛰지말고 상처를 묶어 혈액 순환을 억제한 뒤 병원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벌초를 하다 만나는 말벌도 위험하다. 말벌은 화려한 색상보다 어두운 색상에 공격성을 보이는 만큼 옷차림에 유의하고 말벌집을 건드렸을 경우 뒷머리를 감싸고 반경 15m를 빨리 벗어나는 게 좋다.꽃가루가 날리는 식물도 주의해야 한다. 보통 꽃가루가 기승을 부리는 계절은 대개 봄으로 알려져 있지만 여름이 지난 뒤 날씨가 선선해지는 9월과 10월에 알레르기를 본격적으로 유발하는 식물도 있다. 대표적인 게 환삼덩굴이다. 잎이 쑥잎과 비슷한 돼지풀도 꽃가루의 주범이다. 단풍잎돼지풀도 강한 알레르기를 유발한다. 풀이 가득한 숲속을 헤치고 가는 일을 최대한 줄이는 게 바람직하고, 지정된 탐방로를 이용해야 한다. 숲속 습한 곳에서 자라는 쐐기풀류도 주의해야 한다. 몸 전체에 돋아난 작은 가시털이 문제인데, 무심코 만졌다간 피부에 큰 고통을 느끼게 된다. 가시털에 독성 물질 ‘포름산’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우연하게라도 스치지 않도록 긴 소매옷을 입는 게 상책이다.태풍에 때이르게 낙과한 밤송이도 주의해야 한다. 등산이나 나들이 때 무심코 앉거나 손을 짚었다 밤가시에 찔리면 피부 표면에 있던 포도상구균이나 사슬알균이 피부 깊숙이 침투하여 염증을 일으킬 수 있다. 가을 산, 운치는 좋지만 다치는 일이 없도록 주의해야 한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19-09-30

‘사냥개’ 딜레마

안재휘 논설위원지난 1925년 소설가 박영희(朴英熙)가 발표한 ‘사냥개(원제는 산양개)’라는 단편소설이 있다. 섬세한 심리묘사가 돋보이는 이 작품은 자린고비 백만장자 정호가 양심의 가책과 연결된 연상작용에서 점증한 몽환적 공포를 견디지 못하고 한밤중 금고를 들고 집을 나섰다가 굶주린 자신의 사냥개에게 물려 죽는다는 내용이다. 박영희는 이 작품을 쓴 이후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KAPF) 조직에 가담했다.대한민국이 온통 ‘사냥개’ 딜레마에 빠졌다. 날마다 새로운 역사를 써온 ‘조국 논란’은 전혀 예기치 못한 방향으로 비화하고 있다.문제의 핵심은 조국 일가의 놀라운 편법 또는 불법 의혹인데 순식간에 친문(親 문재인)대 반문(反 문재인) 대전(大戰)으로 변질돼 버렸다. 대통령이 검찰에 ‘성찰하라’고 한 말씀 하자 동원된 친문들이 서초동에 모여 실력행사를 벌였다.많은 사람이 “문재인은 왜?”, 또는 “윤석열은 왜?”하고 의문부호를 붙인다. 멋진 진보지식인으로만 비치던 조국은 언행이 도무지 일치하지 않는 사람이라는게 낱낱이 드러났다. 장관이 되고 나서도 깜냥이 안된다는 증거가 속출한다. 자택 압수수색 팀장과 전화통화를 한 사실은 공사(公私)조차 구분 못하는 인물임을 만천하에 입증했다.검찰을 ‘증거조작단’으로 간주한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의 궤변은 혀를 내두르게 만든다.그는 조국의 아내 정경심의 ‘PC 무단 반출’을 놓고 “검찰이 압수수색해서 장난칠 경우를 대비하기 위해 복제하려고 반출한 것”이라고 강변했다. 검찰 측에서 “이쯤 되면 막 가자는 것”이라는 격앙된 반응까지 나왔다.유시민의 논리가 참이 되려면, 최소한 검찰은 지금까지 ‘적폐청산’이라며 잡아들인 전직 대통령들과 수많은 전 정권 인사들에 대해 숱하게 증거를 조작해 기소했다는 말이 된다. 유시민은 나아가 윤 총장을 겨냥해 “총칼은 안 들었으나 위헌적 쿠데타나 마찬가지”라고 선동하고 있다. 그에 발맞춰서 문재인 지지자들은 윤석열을 일제히 ‘배신자’로 몰아간다.윤석열은 문재인 정권 출범 이후 중앙지검장으로 발탁돼 벼락출세한 사람이다. 지난 2년여 동안 ‘적폐청산’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된 보복 정치의 ‘으뜸 사냥개’로 충성을 다한 인물이다. 그리고 마침내 검찰총장이라는 최고봉에 올랐는데 검찰의 힘을 반 토막 내려는 ‘개혁’의 칼을 받으라는 압박을 받고 있다. 영락없이 벼슬과 조직을 바꿔먹은 배신자가 될 판이다. ‘오직 조직에만 충성한다’는 신념의 윤석열은 어쩌면 자신의 처지가 토사구팽(兎死狗烹) 직전에 몰린 사냥개 같을지도 모른다.‘검찰 개혁’은 독립성 보장에서 시작돼야 한다. 그런데 청와대와 여당이 말하는 ‘검찰 개혁’은 정권의 말 잘 듣는 사냥개를 만들겠다는 엇나간 개혁임이 분명하다.“살아있는 권력까지도 엄정하게 수사하라”던 문재인 대통령이 또다시 일구이언(一口二言)을 보태기 시작했다. 누가 물려 죽을지 모르는 이 혼란한 ‘사냥개’ 딜레마의 끝은 대체 어디인가.

2019-09-29

승시(僧市)

전라도 화순군 어느 마을의 이름이 ‘중장터’다. 그 이유는 옛날 승려들의 물물교환이 이뤄지던 장터였다는 데서 유래돼 붙여진 이름이다. 원래 승시는 승려들이 필요한 물품을 조달하기 위해 사찰에서 생산한 물자를 유통시킨 장소다. 승려들이 만나 생필품과 불교용품 등을 물물교환 형식으로 거래했던 곳이다. 불교문화가 찬란했던 고려시대에는 전국 곳곳에서 이 같은 형태의 승시가 성행했다고 한다. 그러나 조선시대 들면서 숭유억불 정책에 따라 승려들의 도성 출입이 제한되고 덩달아 생필품 구입이 어려워지면서 그들만의 장터가 산중에서 열리게 된다. 이것이 산중 승시의 출발이다.팔공산 동화사와 부인사 등지에 열렸던 승시는 규모도 컸지만 가장 늦게까지 장이 선 곳이다. 동화사 총림이 승시를 재현한 축제를 열게 된 배경도 여기에 있다. 올해 10번째 승시 축제가 팔공산 동화사 일원에서 다음달 3일부터 나흘간 열린다. 대덕스님의 법문을 시작으로 개최되는 승시 축제에는 승시재현 마당을 비롯 사찰음식 강연, 음악회, 전시회 등 다양한 행사로 진행될 예정이다. 승시 축제가 해를 거듭하면서 팔공산에 남아 있는 역사와 문화자산의 재발견이라는 의미에 접근하고 있다는 사실에 흥미가 간다. 승시를 통해 사찰문화의 의미를 되새기면서 한편으로는 대구의 유명 관광자원화되고 있다는 것은 축제의 의미를 더 뜻 깊게 한다. 승시 축제를 주관하는 동화사 주지 효광 스님은 “승시의 근원적 의미는 의식주에 기반하는 삶의 모습”이라 했다. 그 속에서 살아가는 지혜를 배우고 우리사회 공동체적 선을 추구해보자는 그의 말은 승시의 현대적 의미의 정신이라 하겠다. 단풍이 물드는 가을날 산 중에서 보는 승시 축제는 혼탁한 세상 일을 잊게 할만하다. /우정구(논설위원)

2019-09-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