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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초미세먼지 날

요즘은 몸이 좋았다 나빴다 한다. 몸이 큰일은 큰일이다. 가뜩이나 목 디스크에 통풍인데, 관절도 하루하루 안 좋아지고 있다.그렇게 좋아하던 막걸리, 뚜껑이 흰 마개로 된 장수 막걸리는 파란색 뚜껑보다 거금 200원이나 비싼데도 많이 마셨지만 지금은 그것조차 사양이다.이번 학기 끝이 불과 두 주도 안 남았는데 이렇게 허덕일 수가 없다. 사실, 대학 선생들 방학 얘기도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이야기다. 눈코 뜰 새 없다는 말보다 더 좋은 말이 있었으면 싶다. 바쁘기로 말하면 재벌 반열에 들어도 부족하지 않을 것 같다.학교까지 줄잡아 한 시간 사십 분, 오십 분이 걸리니 왕복 서너 시간, 아깝기 짝이 없다. 전철 타고 앉아 세월아 네월아 염치 없이 자리 차고 앉아 책을 읽든 뭐라도 끄적거리든 해야 한다. 그래도 꼼짝없이 전철 타는 그 시간이 제일 행복하다면 행복하다. 어디로 도망갈 수도 없고 딴 짓도 하기 힘들다.그런데 사흘씩이나 초미세 먼지라고 한다. 미세도 아니고 초미세라니, 세사도 아니요 극세사, 그냥 고생도 아니요 개고생이라 하는 요즘 세태에 어울릴 만 하다.하지만 전철이라도 타야 좋은 것을 전철역까지 걸어갈 일이 무서울 지경이다. 오늘은 아침에 좀 늦게 일어났는데도 사방이 캄캄해서 아직도 날이 안 샜나 했더니 미세먼지라는 것이었다. 심해도 이렇게 심할 수가 있나.생전 처음으로 방독 마스크를 쓰고 집을 나서는데 을씨년스러운 공기가 아무래도 몸에 좋을 것 같지 않다.가람 이병기 선생 때문에 익산 여산에 갔더니 미세먼지인가 초미세먼지가 전국 수위를 다툰다던가. 새만금 어쩌구 때문에 그렇다는 소리를 흘려 들었는데, 오늘 이 먼지 안개가 그런 것인 듯하다.하루 종일 조심은 하노라고 한 것 같다. 모든 주의에 게으른 나로서는 이런 날도 일생에 꼽을 듯한 날이겠다.초미세먼지는 듣고 보면 황해 바다 건너 중국에서 날아온다고들 하고, 어떤 사람은 한국 땅 안에서 화석 연료를 태워서도 그렇다고 한다. 옛날에는 황사라고 했건만 지금은 초미세먼지라 하니 그럴 것도 같다.저녁이 되자 난방 때문인지 눈이 따갑다고 생각했다. 언젠가부터 조금만 건조해져도 눈이 뜨거워졌다. 헌데, 이건 난방 건조하고는 뭔가 다르다. 아하, 초미세 먼지라더니. 바로 이것이로구나. 옛날에는 눈에 왕방울만한 황사 알갱이가 들어가도 떼굴떼굴 눈동자 위를 구르기는 해도 이렇게 따갑지는 않았다.세상은 좋은 게 좋게만 이루어지는 것 같지는 않다. 글쎄, 언제 이 짙은 안개 먼지가 개일 수 있을까. /방민호서울대 국문과 교수/삽화 = 이철진한국화가

2019-12-12

초겨울 숲에서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야산을 밀어 만든 아파트 단지에 아담한 공원이 있다. 새로 나무를 심어서 조성한 공원이 아니라 원래의 산 일부를 그대로 보존한 공원이다. 키 큰 교목들로는 소나무도 더러 있지만 참나무들이 대부분이어서 여름에는 그늘이 좋고 가을에는 단풍과 낙엽이 좋다. 참나무도 종류가 다양한데 우리나라에서는 밤나무를 비롯해서 상수리나무, 신갈나무, 갈참나무, 굴참나무, 떡갈나무, 졸참나무가 대부분이다. 잎이나 도토리의 모양과 크기, 나무껍질의 모양으로 구별을 하는데 이 공원에는 상수리나무가 주종이고 떡갈나무, 신갈나무, 갈참나무도 더러 보인다.큰 나무 밑에는 어린 참나무들과 싸리, 개옻나무, 아카시아, 청미래, 인동덩굴, 찔레, 억새 등이 덤불을 이루고 있다. 산책로 오솔길 가에는 풀을 벤 자리에 파랗게 새로 자란 풀과 뒤늦게 꽃을 피운 쑥부쟁이가 추위에 떨고 있다. 얼핏 보아서는 어지럽게 무질서한 풍경 같지만 인위적으로 가꾸고 다듬은 공원보다 오히려 편안한 기분이 든다. 고층아파트 단지 안에 이렇게 자연생태계를 그대로 유지한 공원이 있다는 건 여간 흐뭇한 일이 아니다.초겨울의 숲에서 먼저 눈길을 끄는 것은 바싹 마른 잎을 달고 있는 참나무들이다. 키 큰 나무들은 거의 다 낙엽이 졌는데, 어린나무들은 대부분 마른 잎을 그대로 달고 있다. 상록수가 아닌 활엽수들이 마른 잎을 단 채로 월동을 하는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산책로 가의 벤치에 앉아 그 까닭을 생각해보다가 문득 ‘바스락거리기 위해서’라는 답을 떠올린다. 아직 어린 나무들이 앙상한 가지로 삭풍의 겨울을 견딘다는 것은 아무래도 너무 혹독할 것 같다. 사람들도 몸살이 나서 삭신이 쑤시고 아플 때 신음소리라도 내면 견디기가 조금은 나은 것처럼 채찍으로 감기는 매운바람 앞에서 바스락 소리라도 내기 위해서가 아닐까. 스스로 대견할 정도로 그럴싸한 추측인 것 같다.다분히 감성적인 상상을 하며 숲을 바라보다가 이번에는 보다 현실적인 생각을 하게 된다. 관목들과 덩굴들이 뒤엉킨 덤불숲 밑에는 마른 나뭇잎을 바람막이로 월동하는 풀뿌리나 벌레들이 있을 거라는 생각이다. 아무래도 후자가 더 당위성을 갖는 결론일 것 같지만, 전자를 아주 버릴 생각은 없다. 세상의 이치란 그렇게 사실적인 당위로만 따질 일이 아닌 것이다. 아니 어쩌면 바람막이가 되기보다는 바스락거리기 위해서 마른 잎은 달고 있다는 것이 더 절실하게 와 닿는 결론일지도 모른다. 초겨울 숲에서 이런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 상념에나 빠져 있는 것도 한갓 부질없는 일만은 아니라는 생각과 함께.또 한 해가 저물도록 대한민국의 정세는 시끄럽고 어수선하기 짝이 없다. 거짓과 위선과 탐욕과 망집으로 얼크러진 실타래를 쾌도난마 할 묘책은 어디에도 없어 보인다. 천심이라는 민심도 떨어져 뒹구는 가랑잎처럼 이리저리 휩쓸리지 않던가. 이 나라의 권력자와 위정자들을 모두 겨울 숲으로 데리고 가서 온종일 찬바람에 가랑잎 바스락거리는 소리나 듣게 하면 어떨까. 미세먼지처럼 자욱한 인간사의 소음 너머로 무엇이 참인지 보일 때까지.

2019-12-12

기적의 사과 (3)

무농약 재배를 시작한 첫 여름 95% 사과 잎이 벌레에게 초토화되어 떨어집니다. 기무라와 가족들은 망연자실합니다. 다음해에는 6만평 사과 밭에 단 한 그루도 꽃이 피지 않습니다. 수확량은 제로로 떨어집니다. 수천만원 이익을 남기던 과수원 수입이 0으로 떨어집니다. 건강보험료, 아이들의 학비, 생활비가 사라집니다. 아이 지우개를 3개로 잘라 써야 할 정도로 궁핍합니다.주위에서는 다시 농약을 뿌리라고, 무슨 정신 나간 실험이냐고 책망합니다. 기무라는 생활비를 벌기 위해 마을의 캬바레에 가서 호객꾼 아르바이트를 합니다. 이때 조폭들에게 두드려 맞아 앞니가 왕창 빠집니다. 기무라의 사진을 보면 앞니가 없어서 약간 모자라는 사람처럼 보이는 인상입니다. 궁핍한 시절의 아픈 기억이지요.벌레와 사투를 벌인 게 6년입니다. 정말 미친 사람이 아닐까요? 절대 포기하지 않는 불굴의 의지를 가진 기무라 아키노리 나이 서른다섯. 6년의 시간 동안 그는 온갖 방법을 다 써서 농약을 쓰지 않고 벌레를 퇴치할 방법을 연구합니다.모든 수입이 다 끊어지고 가족들은 거지가 되었습니다. 사과 밭 모든 나무마다 빨간 딱지가 붙었습니다. 빚더미에 올라앉은 겁니다.“포기하느니 죽고 말겠다!” 서른다섯 기무라 아키노리는 자살을 결심합니다. 밧줄 세 가닥을 엮어 산으로 올라갑니다. 아무 탈출구가 없습니다. 지금이라도 농약을 치면 6만평의 밭을 살릴 수는 있습니다. 사과나무가 죽은 것은 아니니까요. 벌레들에게 착취당하고 수탈당하고 있을 뿐이지 사과나무는 아직까지는 살아있으니까요.자살하려 새벽에 산 중턱에 올라 체중을 버텨줄 큰 나무를 고릅니다. 밧줄을 가지에 던지려 하는 순간, 기무라의 눈에 이상한 것이 보입니다.분명 깊은 산 속인데 나무에 주먹 만한 사과가 주렁주렁 달려있는 겁니다. ‘저게 뭐지?’(계속)/인문고전독서포럼대표

2019-12-12

김우중

서의호 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1998년 봄날 서울의 한 호텔에서 김대중 정부 청와대 경제수석과 김우중은 마주 앉았다. 이 자리에서 김우중은 정부에 협조를 요청했다. 경제수석의 답은 “이제 시장경제 중심으로 하니 안됩니다”였다. 그러자 김우중은 그러면 시장경제 하는데 청와대 경제수석이고 비서관이고 필요없겠네”라고 반발했다. 그걸로 김우중의 운명은 나락의 길로 걸었다.초겨울의 한파속에 대우그룹의 신화를 쓴 김우중 회장이 세상을 떠났다. 그가 대우그룹의 전성시절 힘을 기울여 세웠던 아주대학교의 병원에서 오랜 투병을 하다가 홀연히 떠났다. 그의 빈소에는 정계, 재계의 많은 인사들이 찾았다. 한국 경제의 큰 축이었던 대우를 이끌었던 김우중의 떠남은 그렇게 무게감 있게 다가왔다.한국경제발전의 아이콘인 그는 떠났다. 그는 1989년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는 책을 썼다. 그 책의 말처럼 그는 세계방방곡곡을 누비면서 한국을 알렸다. 대우는 한국 산업의 세계경영의 첨병이었다. 김 회장은 바둑 실력이 꽤 좋은데도 가끔씩 너무 호방한 수를 두다가 망하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그는 꿈과 포부가 너무 큰 나머지 현실적인 수를 고려하지 못한다는 점이 그의 일생의 행보와 맥을 같이 하는 듯하다.1936년 대구 출생인 김우중 회장은 경기고와 연세대 상대를 졸업한 후 만 30세인 1967년 대우실업을 창업했다. 1981년 대우그룹 회장에 오른 이후 세계경영을 기치로 내걸고 그룹을 확장해 1999년 그룹 해체 직전까지 자산 규모 기준으로 현대에 이어 국내 2위로 일군 대표적인 1세대 기업인이다.그러나 1998년 IMF 이후 정치적 상황과 맞물리면서 대우는 해체되었다.그가 한국발전에 끼친 경제적인 공헌은 후세의 평가에 맡기기로 하자. 그가 무엇을 잘했고 무엇을 잘못했는지도 후세에 맡기자.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가 ‘세계경영’이라는 개념을 우리에게 심어준 것이다. 세계 어디를 가도 대우의 그림자가 있고 아직도 남아 있다. 그리고 그가 세계경영과 함께 1977년 그의 사재를 털어 인수하여 키운 아주대는 그의 교육의 세계경영의 일환이었다. 아주대는 공과대를 필두로 한국 사학의 한 축으로 한국 고등교육에 공헌해 왔다. 무엇보다 그의 교육에 대한 투자에는 아무도 토를 달지 못할 것이다.‘아덴만의 영웅’으로 알려진 아주대 이국종 교수는 대한민국의 복합중증외상치료를 이끌고 있다. 학생들이 스스로 하고 싶은 일을 찾기 위해 도전하고 이를 통해 인생과 진로에 대한 자신감을 얻도록 하는 아주대의 파란학기제는 새로운 시도로 교육부의 인정을 받으며 큰 주목을 끌고 있다. 포스코의 박태준 회장이 포스텍을 세워 국가 과학기술 발전에 크게 이바지 하였다면 대우의 김우중 회장은 아주대를 세워 국가와 사회에 공헌하였다. 먼훗날 두 회장은 기업인에 앞서 한국의 교육현장을 이끈 위인으로 기억될지도 모른다.김우중 회장의 명복을 빈다.

2019-12-12

붉은깃발법

붉은깃발법은 영국 빅토리아 여왕시절인 1865년 제정돼, 1896년까지 약 30년간 시행된 세계 최초의 도로교통법인 동시에 시대착오적 규제의 대표적 사례다. 정식 명칭은 ‘The Locomotives on Highways Act(약칭 Locomotive Act)’이다. 당시 증기자동차가 출시되면서 마차(馬車)업자들의 항의가 계속되자 제정된 법안으로, 기존의 마차 사업을 보호하고 마부들의 일자리를 지키기 위한 조치로 시행됐다. 이 법안에 따르면 한 대의 자동차에는 반드시 운전사, 기관원, 기수 등 3명이 있어야 하며, 자동차의 최고 속도는 6.4km/h, 시가지에서는 3.2km/h로 제한했다. 기수는 낮에는 붉은 깃발, 밤에는 붉은 등을 들고 자동차의 55m 앞에서 차를 선도하도록 했다.즉, 자동차를 운행하기 위해서는 붉은 깃발을 앞세워 자동차가 마차보다 빨리 달릴 수 없게 한 것이다. 이 법은 소비자들의 자동차 구매 욕구를 감소시키는 주원인이 됐다. 특히 산업혁명의 발상지였던 영국은 자동차를 가장 먼저 만들고도, 이 법 때문에 자동차 산업의 주도권을 독일·미국·프랑스 등에 내주는 결과로 이어졌다.우리나라에서는 차량공유서비스인 타다서비스를 금지하는 타다금지법이 붉은 깃발법에 비유되며 찬반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쏘카의 이재웅 대표는 최근 ‘타다금지법’이 국회 교통위를 통과하자 “150년 전 영국의 ‘붉은 깃발법’과 다를 것 없다”고 비판했다. 타다금지법은 관광 목적으로 ‘11인승 이상 15인승 이하 승합차를 빌려줄 수 있는 조건’을 한 번에 6시간 이상 대여하거나, 고객이 승합차를 타고 내리는 장소가 공항·항만이어야만 가능하도록 규정해 타다 서비스는 조만간 중단될 위기에 처해 있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19-12-11

안전은 상식이다

장규열 한동대 교수일은 왜 하는가? 땀흘리는 수고와 노력이 돌려주는 보람과 만족은 여러 모양을 하고 있다. 가족의 하루 하루를 지키는 가장의 흡족함, 성과로 만들어내는 기업의 든든함, 노력이 대가로 돌아오는 나만의 기특함, 일하면서 생기는 동료의식과 협동정신, 그리고 경제활동의 결과로 빚어지는 사회활동과 지역공동체. 일은 사람에게 경제적 가치를 확인하게 하고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문화적 소통구조를 만들어내며 사회가 유기적으로 돌아가도록 함께 사는 공동체를 만들어낸다. 일하면서 보람을 찾고 일에서 나를 발견하며 일이 또 다른 일을 만들어낸다. 비판적 사고와 창의적 발상도 일이 있어야 가능하고, 사회와 국가에도 ‘즐거운 일자리’가 풍성해야 ‘나라다운 나라’도 만들 수 있다.잘사는 나라들의 모임인 G20 국가들 사이에서 대한민국은 ‘기업하기 좋은 나라’로 알려져 있다고 한다. 그런데 웬일일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들 가운데 ‘산업재해사망율’이 또 1등이라는 것은. 경제수준이 비슷한 나라들 가운데 이를 다시 분석해 보면 다른 나라들보다 거의 세 배나 많은 사람들이 일하다가 죽어간다고 한다. 해마다 2천명이 넘는 노동자들이 일하는 현장에서 목숨을 잃어야 한다면 이 나라는 과연 선진국이라 불릴 자격이 있는가. 하루에도 대여섯 사람이 일자리에서 살아 돌아오지 못한다면 그런 일터를 ‘행복한 산업현장’이라 부를 수 있는가. 사망사고가 그 정도라면 크고 작은 산업현장 안전사고 탓에 다치고 병든 사람들은 또 얼마나 많을 것인지.‘모든 사고는 예방이 가능하다.’ 전문가들의 생각이라고 한다. ‘막을 방법이 없는 것이 아니라 관심과 투자가 턱없이 부족한 것이 문제’라고 진단한다. 대기업들이 생산비용을 절감하고 위험을 외주화하여 책임을 회피하는 데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안전은 누구에게 떠넘겨 해결하는 문제가 아니다. 그가 누구라도 모두 귀한 생명이며 일에서 보람을 찾으러 또 다른 의미의 ‘고객’이 아닌가. 노동으로 행복한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일이 보람찬 환경을 회복하여야 한다. 이익보다 생명이 소중한 경영철학을 세워야 하며 한 사람도 빼놓지 않고 안전한 현장에서 일할 권리가 있다.안전은 상식이다. 불안한 일터에서 행복할 사람은 없다. 청년들에게 일자리를 충분히 제공하지 못하는 것도 부끄러울 판에, 그게 핑계가 되어 일자리가 위험하다면 이는 거의 범죄가 아닌가.유엔이 정한 ‘인권의 날(Human Rights Day)’은 각국의 기업들에게 노동인권을 보장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제도와 규제 때문에 ‘마지못해 돌아보는 안전’에는 빈 틈이 있게 마련이다. 생명을 귀하게 여기고 공동체의 가치를 높이 생각하는 기업문화가 살아나야 한다. 안전을 상식으로 여길 때, 비로소 현장의 안전은 지켜질 터이다. 모두가 안심하는 일터가 보장되어야 한다. 안전이 여지껏 비상식이라면 나라가 선진국이 되는 길은 멀고도 멀다.

2019-12-11

암의 습격

김규종 경북대 교수요즘 마음이 아주 무겁다. 즐거운 일이 있어도 흔쾌하지 않다. 오랜 세월 가까이 지낸 후배교수가 항암투병 중이기 때문이다. 지난 9월 30일 ‘담도암’ 4기로 각종 장기를 제거하는 대수술을 받은 그는 몸무게가 15㎏이나 줄었다고 한다. 그것도 부족해 5개월 예정의 기나긴 항암투쟁이 시작된 것이다. 요즘에는 10분 앉아있는 것도 힘들다고 한다. 그토록 활달하고 건강했던 50대 초반의 가장이 한순간에 고통의 나락에 떨어지다니?!울림 좋고 당당한 그의 목소리를 들은 것이 7월 중순 일이다. 울산에 일이 있어서 전화했을 때, 그는 두 아들과 저녁식사를 하는 중이라고 했다.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던 쾌활하고 명석하며 해맑은 웃음소리가 아직도 귓전에 쟁쟁하다. 조만간 한 번 보자며 전화를 끊고, 불과 2개월, 암수술을 받은 게다. 아니, 이런 경천동지할 일이 있나?! 멀쩡하던 사람이 느닷없이 암의 습격을 받고 병상에 누워있다니.지금도 그의 투병생활이 실감나지 않는다. 두 아이의 아버지이자 가장이며, 대학교수이자 교양교육원장 직책을 수행하면서 연구와 교육에 전념하던 창창한 장년의 사내. 언제나 밝은 웃음과 투명한 성정으로 주변을 환하게 밝혀주던 사람이 암에게 불의의 일격을 받아 쓰러진 것이다. 현대의학은 어디까지 인간의 생명을 보장할 수 있는지, 단단히 회의가 드는 것이다. 무의미한 생명연장에 반대하는 자발적인 연명의료 중단노력이 진척됨으로써 의술에 대한 믿음이 커지는 상황에서 예기치 못한 일이 일어나 당황스럽기 짝이 없다. 한편에서는 ‘길가메시 프로젝트’가 진행되면서 이른바 500세 인생에 도전하는 신기원이 싹트고 있다. 여타 두더지들보다 노화가 훨씬 느리고 4배나 오래 사는 장수 유전자를 가진 두더지에서 단서를 얻은 연구자들이 진행하고 있다는 ‘길가메시 프로젝트’는 극소수 부자들을 위한 것이겠다.하지만 세월이 흐르면 의료비는 하락할 것이고, 그러다보면 호모사피엔스의 평균수명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여지가 충분하다. 하지만 후배교수를 생각하면 앞이 캄캄하다. 언제 어디서 ‘암’을 비롯한 치명적인 질병의 급습으로 생명에 적신호가 켜질지 모르기 때문이다. 현대의학은 아직도 암과 싸우고 있지만, 총체적인 승리에는 이르지 못하고 있다.도대체 그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 생각하면 답답하기 이를 데 없다. 그저 안부를 묻고, 삶을 향한 강렬한 의지를 일깨우고, 생명에 대한 의욕을 고취시키는 일 말고는 애당초 아무것도 가능하지 않다는 사실에 무력해지곤 한다. 그를 공격한 암이 어느 날 갑자기 나를 덮칠지도 모른다는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 거리를 배회하는 수많은 인총들이 암과 무관하다는 사실마저 새삼 경이롭게 다가오기도 한다.그가 얼마나 고통스럽고 외로우며 원망의 나날을 보내고 있을까, 생각하면 가슴이 무너진다. 그래도 어찌 하겠는가?! 끝까지 싸워서 이겨내기를 바라는 간절한 염원을 담아 하늘로 날려 보낸다. 이 친구야, 훌훌 털고 일어나시게! 반드시 살아서 인간세상으로 귀환하시게!

2019-12-11

달나라 교육(부)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감어찌 이 나라 교육은 시간이 갈수록 달나라로 가고 있을까! 정말 우리 교육이 달나라로 갈 수 있는 길을 만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이 나라 교육은 설령 우주과학 기술이 발달해 우리가 달나라에 간다고 하더라도 분명 그곳에서 의미도 없는 줄기세우기 식 시험을 볼 것이 확실하기에 달나라 교육이라는 말도 참 조심스럽다.요즘 교육계 돌아가는 꼴을 보면 휘황하다는 말밖에 나오지 않는다. ‘휘황(輝煌)하다’의 뜻을 사전에서는 “행동이 온당하지 못하고 못된 꾀가 많아서 야단스럽기만 하고 믿을 수 없다.”라고 정의하고 있다.필자는 휘황(찬란)하다는 단어를 아는 게 너무도 다행스럽다. 왜냐하면 지금 이 나라 교육이 돌아가는 꼴을 가장 잘 표현하는 단어이기 때문이다.묻고 싶다. 이 나라에는 교사가 있는지? 물론 필자의 이 말에 분노해 하며 나는 교사다고 말하는 학교에서 일하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필자가 말하는 교사는 그런 학교 직장인이 아니다. 교육의 본질에 대해 끝없이 고민하고, 참으로 학생들을 위하는 스승을 말한다.한 때 우리 교육에는 스승이 많이 계셨다.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 제자를 살리시는 스승의 노력 덕분으로 아무것도 없는 이 나라가 그나마 지금의 모습까지 올 수 있었다. 우리가 분명하게 알아야 할 것은 지금 우리가 이만큼 먹고 살 수 있는 것은 한 때 이념 운동을 한 이데올로기 집단 때문이 아니라 우리들의 스승이 계셨기 때문이라는 것을. 그 스승들을 우리는 오래 전에 잊어버렸다. 그래서인지 우리 교단에는 스승이라는 단어가 사어(死語)가 된지 오래다. 몇몇 단체에서 스승 상을 주고는 있는지만, 과연? 필자가 기억하는 스승은 필자에겐 달과 같은 분이셨다. 스승께서는 어두운 밤길 당신을 태우셔서 기꺼이 필자의 길을 밝혀주셨다. 이 나라의 스승들은 제자들에게 길이 되어 주시기도 하셨지만, 교육의 본질을 지키기 위해 끝없이 노력하셨다. 한 때이지만 그나마 이 나라 교육이 정부 하명과 같은 심한 외풍에도 쓰러지지 않고 이 나라를 이만큼이라도 키울 인재를 양성해서 사회로 배출시킬 수 있었던 것도 모두 스승들께서 몸으로, 정신으로 그 외풍을 막아주셨기 때문이다.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거의가 YES를 외치는 교사들뿐이다. 그저 교육부 하명이 떨어지면 그것을 따르기 급급하다. 그러한 데에는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진정으로 학생들을 위한다면 아닌 것은 아니라고 말해야 하지 않을까! 과연 우리는 학생들에게 정의를 말 할 수 있을까? 설사 말을 한다고 하더라도 학생들이 우리의 말을 얼마나 믿을까?이 나라 교사들에게 묻는다. 다음과 같은 교육부의 하명이 우리 교육에서 정말 실현 가능하다고 보는가?“부모나 사교육의 영향력이 학생부 생성 단계에서부터 개입되어 학종의 공정성을 해치고 있다는 지적이 있어 왔습니다. 이에, 정규 교육과정 내에서 교사가 학생의 학교생활을 직접 관찰·평가·기록한 내용을 바탕으로 학생을 선발토록 함으로써 학종의 공정성을 높이고 고교 교육을 정상화하고자 합니다.”12월, 달나라로 가는 교육을 막지 못하는 마음이 시리다.

2019-12-11

기적의 사과 (2)

서점을 아무리 뒤져도 농약을 치지 않고 성공했다는 정보는 찾을 길이 없습니다. 오히려 이런 정보만 찾아냅니다. “무농약 사과 재배에 도전하면 1년 만에 95%의 사과나무가 열매를 맺지 않습니다. 당장 죽지는 않지만, 열매를 맺지 않습니다. 2년차에는 수확량이 정확히 제로로 떨어집니다.”그만큼 사과 농사는 농약에 길들여져 있었던 거지요.청년이 서가에서 책을 뒤지던 중 신기한 일이 일어납니다. 손이 닿지 않는 맨 위 칸에 있던 책 한 권이 툭, 하고 머리에 떨어집니다. ‘자연농법’이란 책이었지요. 사과 농사에 관한 책은 아니지만, 비료와 농약을 쓰지 않고 작물을 재배하는 일반적인 방법에 대한 책이지요. 청년의 얼굴에 환하게 미소가 피어납니다. 어쩌면 이 방법을 사과 농사에 적용해 볼 수 있겠다는 희망이 싹트지요.장인어른과 식구들을 설득합니다. 가족들은 이 청년의 집념을 잘 압니다.한 번은 영국의 제조사에 직접 주문해 트랙터를 수입한 적이 있는데, 고장이 나자 트랙터 전체를 다 해체하고 뜯어 구조를 완전히 파악할 때까지 집요하게 파고드는 것을 목격한 적이 있었습니다.한 번 마음먹은 일은 절대 포기하지 않는 청년이라는 것을 알았기에 가족들은 고개를 끄덕입니다. 이 승낙이 얼마나 큰 재앙을 몰고 올지, 그 당시는 결코 알 수 없었겠지요. 이 청년의 이름은 기무라 아키노리입니다.이듬해부터 농약을 중단합니다. 한 그루 한 그루에 붙은 벌레들을 떼기 시작합니다. 농약을 멈추자 벌레들은 신났습니다. 달고 향기로운 사과 이파리에 들러붙어 마음껏 식사할 수 있으니, 이 과수원은 벌레들의 천국입니다.“벌레들이 어린 새 잎이 붙은 가지 끝까지 바글바글 몰려들어서는 만원 지하철처럼 야단법석을 떨었어요. 벌레 때문에 사과 가지가 휠 정도였으니까요!” 당시를 회상하던 기무라씨는 담담하게 말합니다. (계속)/ 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대표

2019-12-11

지금부터 후계자를 키우자

김진홍 한국은행 포항본부 부국장최근 지역에서 개최되는 학술세미나는 물론 다양한 이벤트에 이르기까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예술계 등 어떠한 분야든 그곳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대부분 같음을 새삼 느낀다. 물론 재임기한이 있는 주요 임명직 기관장들이야 바뀐다. 하지만 그들을 제외하면 지역 각계의 유지라고 불리는 각 기업체의 임원진이나 단체 대표, 학계의 전문가 등은 대부분 같다. 그저 다들 얼굴의 주름살만 하나씩 늘어날 뿐이다. 그런데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하는 것이 하나 있다. 지역에서 매번 마주치는 사람들이라고 하더라도 필자와 같은 급여생활자들은 가령 본인이 은퇴하더라도 그 역할은 당연히 후임으로 임명되는 그 누군가에 의해 앞으로도 꾸준히 지역 경제를 연구하는 일을 수행하게 될 것이 틀림없다. 하지만, 우리나라 전체 기업의 99%를 차지하는 중소기업이라면 사정이 다르다. 사실 사람만 나이가 드는 것은 아니다. 100년 기업이라는 말처럼 기업들은 세월의 흐름과 함께 업력이 쌓이는 것이다. 다만, 그동안 기업이 100년 동안 이어지려면 그 구성원만큼은 꾸준히 물갈이를 해 줄 필요가 있다는 점만 다르다.문제는 지역경제와 한 몸이나 마찬가지인 지역의 향토 중소기업들은 대부분 대표나 사장 한 사람의 사정에 따라 기업의 존속 여부가 결정되기 쉽다는 점이다. 지금 지역의 유지라고 할 수 있는 지역 중소기업 사장들은 젊을 때 창업하여 불철주야 노력해 비록 손에 기름때가 남아있기는 하지만 나름 일가를 이룬 분들이다. 그런데, 그들 자녀 중 비록 작은 공장이라도 부모가 일구어낸 중소기업을 가업으로 삼아 그 뒤를 이으려는 이들은 많지 않다. 지금 포항에서 이삼대에 걸쳐 가업을 잇고 있는 곳은 소수의 음식점을 빼면 제조업체에서는 손에 꼽을 정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어느 정도 안정화된 향토 중소기업 중에는 사장, 종업원이라는 금을 긋지 않고 서로가 한 몸이 되어 수없이 다가온 위기를 함께 극복해온 전우애로 다져진 중소기업들이 적지 않다. 그리고 바로 그러한 기업들이 지금까지 포항경제를 뒷받침해 왔다. 바로 그것이 문제다. 포항의 우수한 중소기업일수록 숙련된 기능공들을 다수 보유하고 있지만, 이들 중소기업의 경영자부터 종업원에 이르기까지 대부분 함께 지난 세월을 보냈기에 고령화라는 피할 수 없는 상황을 맞이하고 있다. 유독 우리나라나 포항만 그런 것도 아니다. 세계적인 기술력을 자랑하는 일본도 중소제조업체의 약 70% 이상이 후계자 부재에 허덕이고 있다.우리는 그동안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이라는 화두에 매달려왔다. 하지만 정작 지역경제를 지탱해왔던 향토 중소기업의 지속가능성에 대해서는 그다지 신경을 쓰지 못했던 것도 사실이다. 대기업이나 재벌가가 아니라 자신이 일으켜 세운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작은 철공소라고 하더라도 그들이 생존해야만 지역경제가 순환하는 것이다. 지금부터라도 지역 중소기업 경영자는 자신이 평생 일군 기업이 100년 기업이 될 수 있도록 자식이 아니더라도 뒤를 이을 지역 인재들을 발굴해 후계자로 삼아야만 한다. 지역 각계의 전문가도 자신의 후계자를 미리미리 육성해 나가야 할 책무가 있다.

2019-12-10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이수원계명대 교수·유아교육과매슬로우의 욕구 이론에 의하면 우리에게는 생리 욕구, 안전 욕구, 소속감과 애정 욕구, 존경 욕구, 자아실현 욕구가 있으며 이 욕구에는 위계가 있어서 하위 욕구가 만족되지 않으면 상위 욕구를 추구하고 어렵다고 한다. 식욕, 수면욕, 배설 등 생리 욕구가 가장 기초적인 욕구이며 이 욕구가 충족되면 위험이나 고통으로부터 안전하고자 하는 욕구, 누군가를 사랑하고 사랑받고 싶은 소속과 애정 욕구, 사회적으로 인정받고자 하는 존경 욕구, 마지막으로 자신의 잠재력을 극대화하고자 하는 자아실현 욕구를 추구하게 된다. 욕구 이론은 연령이나 성, 인종을 초월해서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것으로 보인다.매슬로우의 욕구 이론은 육아에도 적용된다. 아이를 지도하기 위해서는 아이의 생리 욕구와 안전 욕구가 충족되는 환경이 우선되어야 하고, 아이와 성인과의 관계에서 충분한 애정 관계가 형성되어 있어야 한다. 그런 상황에서 아이는 주변 사람으로부터 인정받고자 행동하게 된다. 아이들은 인정받고 싶으나 주변 사람들이 자신에게 기대하는 행동이 무엇인지 알 수 없거나 서툴러서 못할 수도 있다. 주변 사람들이 기대하는 행동이 무엇인지 알 수 없는 대부분의 경우는, 행동의 한계가 명확하지 않거나 어른의 지도 방식이 일관되지 않을 때이다. 같은 행동도 어른의 기분이 좋고 나쁨에 따라 허락되거나 허락되지 않을 때 아이는 혼란을 느낀다. 이러한 이유로 아이에게 허락할 수 있는 행동의 경계를 명확히 알려주고 일관되게 지도할 필요가 있다. 일관되어야만 아이도 행동의 결과를 예측할 수 있고 예측이 가능할 때에 상황에 대한 통제감과 자신감을 얻을 수 있다.아이를 인정하기 위해 우리 어른들이 하는 칭찬 중에 비효율적인 칭찬이 있다. 비효율적인 칭찬의 예로는 “네가 최고야”처럼 다른 사람과 비교하여 우열을 가리는 칭찬이 있고, “착하구나”와 같이 착함의 기준이 상대적이고 모호한 칭찬 등이 있다. 남들과 비교하는 대신, “어제는 나무만 그렸는데 오늘은 나무에 매달린 사과까지 그렸구나”처럼 지난 날보다 현재 아이가 얼마나 달라졌는지를 인정해 주는 것이 필요하다.본 지면에서 아이를 인정하는 방법 중 하나를 공유하고자 하는데 그것은 바로 긍정적인 자아상 만들기이다. 긍정적인 자아상 만들기는, “너는 남을 돕기를 좋아하는 사람이어서 색연필을 친구에게 빌려주는구나”처럼 “너는 어떠한 사람이니까 그렇게 행동하는구나”라며 아이에게 바라는 모습을 담아 칭찬하는 방법이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라는 김춘수의 ‘꽃’처럼 아이를 꽃처럼 귀하고 아름다운 존재로 불러줄 때 아이는 그렇게 성장할 것이다. 언어도 습관이어서 쉽게 바꿀 수가 없고 연습이 필요하다. 종이와 연필을 꺼내서 아이를 인정하는 말을 적어보자.

2019-12-10

기적의 사과 (1)

어릴 적 홍옥이라는 예쁜 이름의 사과가 있었습니다. 잘 닦으면 붉은색이 반짝반짝했지요. 중학생쯤 달콤하고 사각사각 식감이 뛰어났던 사과를 처음 맛보았습니다. 어른들은 그 사과를 ‘부사’라고 불렀습니다. 알이 큼직하고 홍옥의 시큼한 맛 없이 입에서 살살 녹았습니다.부사는 일본 아오모리현에서 1962년 처음 생산한 사과계의 혁명입니다. 달고 상큼한 맛은 전 세계를 석권합니다. 1911년 꽃 썩음 병과 갈색 무늬 병이 사과 재배 농가를 강타했을 때 아오모리 현에 최초로 농약이 살포됩니다. 이 농약 덕분에 아오모리 사과 농사는 멸망하지 않았다고 기록은 전합니다. 한 번 농약의 효험을 몸으로 느껴본 아오모리 농가 사람들은 끊임없이 더 좋은 약을 개발하기 시작하지요.더 달고 더 크고 더 맛있는 사과를 재배하려는 실험이 농약 개발과 더불어 진행되었음을 이 청년은 깨닫습니다. 더 달콤한 사과를 만들어 내려면, 그만큼 더 많은 벌레들이 달려든다는 뜻이고 점점 더 독성이 강한 농약이 개발되어야 사과밭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겁니다. 부사는 결국 51년 동안의 품종개량과 농약개발의 열매였습니다.1978년. 아오모리 현에 이상한 젊은이가 등장합니다. 나이는 스물아홉. 그의 사과 밭은 약 6만 평입니다. 이 밭에서 풍요로운 사과를 수확하려면 연간 13번 정도의 농약을 밭 전체에 뿌려주어야 합니다. 지역 농업지도소에서 알려주는 대로 때에 맞추어 아오모리 현의 모든 사과재배자들이 함께 농약을 칩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농약을 한 번 제대로 뿌리고 나면, 아내가 며칠을 앓아눕는 겁니다.청년은 결심합니다. 아내를 위해 농약을 획기적으로 줄이거나 아예 뿌리지 않고 사과를 재배하는 방법을 찾기 시작합니다. 평소 습관대로 곧장 서점으로 달려갑니다. 그의 눈에는 실망스러운 정보들만 가득합니다. (계속)/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대표

2019-12-10

허무 속에서 살아가기 - 김훈 ‘칼의 노래’를 읽고

제목을 보았을 때는 ‘이순신’의 화려한 영웅담이 펼쳐져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것도 아니라면 박진감 넘치는 전쟁 장면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기대에 미치는 내용은 아무 것도 없었다. 뚜렷한 줄거리도 없었고, 뚜렷한 사건도 없었다.다만, “오늘도 적은 오지 않았다.”라는 말이 주문처럼 되풀이 되었고, 적은 좀체 오지 않았다. ‘나’의 지리멸렬한 기다림이 이어졌다. 그럼에도 이 책 속으로 마법처럼 빠져들었다. 소설 속에 두텁게 베인 허무와 비관이 어떤 식으로 끝을 맺을지 궁금했다. ‘나’가 분명 죽을 것임을 알았음에도 그 끝이 궁금했다.“포탄과 화살이 우박으로 나르는 싸움의 뒷전에서 조선 수군은 머리를 잘랐고 일본 수군은 적의 코를 베었다. 잘려진 머리와 코는 소금에 절여져 상부에 바쳐졌다. 그것이 전과의 증거물이었다. 잘라낸 머리와 코에서 적과 아군을 식별할 수는 없었다. 머리를 얻기 위해 코를 얻기 위해 아군과 적군은 싸운다. 피난민들은 다만 얼굴 가운데 코가 있기 때문에 죽었다.”‘나’가 인식하고 있는 전쟁, ‘나’가 생각하는 전투는 ‘부지런히 잡초를 뽑는 농사일’ 과 같다. 전쟁은 잔악하며 참담하다. 무엇을 위해 싸우는지 알 수 없다. 그저 싸울 뿐이며, 서로를 죽일 뿐이다. ‘나’에게 전쟁은 끼니와도 같다.“끼니는 어김없이 돌아왔다. 지나간 모든 끼는 닥쳐올 단 한 끼니 앞에서 무효였다. 먹은 끼니나 닥쳐올 끼니를 해결할 수 없었다. 끼니는 시간과도 같았다. 무수한 끼니들이 대열을 지어 다가오고 있었지만, 지나간 모든 끼니들은 단절되어 있었다. 굶더라도, 다가오는 끼니를 피할 수는 없었다. 끼니는 파도처럼 정확하고 쉴새없이 밀어닥쳤다. 끼니를 건너뛰어 앞당길 수도 없었고 옆으로 밀쳐낼 수도 없었다. 끼니는 새로운 시간의 밀물로 달려드는 것이어서 사람이 거기에 개입할 수 없었다. 먹든 굶든 간에, 다만 속수무책의 몸을 내맡길 뿐이었다. 끼니는 칼로 베어지지 않았고 총포로 조준되지 않았다.”그 연장선상에 있는 삶은 다만 허무할 뿐이다. 비 오는 날 면사첩의 면사(免死) 두 글자를 바라보는 ‘나’의 심정은 어땠을까? ‘죄가 없다는 것도 아니고 죄를 사면해 주겠다는 것도 아니고 다만 죽이지 않겠다는 것’임을 생각하며, 비 오는 밤을 뒤척이는 ‘나’의 심정은 어땠을까?‘나’를 죽이고 임금에게 갈 적은 동시에 나를 살려주고 있기도 하다. 이 모순, ‘나’가 뒤로 물러나도 앞으로 나아가도 죽음은 똬리를 틀고 기다리고 있다. 결국 ‘나’가 할 수 있는 일은 죽음을 인정하고 그 죽음을 준비할 수밖에 없는가?“마침내 적의 전체로 맞아야 하는 날은 정확하고 분명하게 다가오고 있었다. 우수영으로 돌아온 날 밤에 나는 모처럼 깊이 잠들었다. 섬 앞 바다가 막힌데 없어서 죽기에 편한 자리였다.”하이데거는 현존재는 ‘죽음을 향하여 있음’을 이야기한다. 현존재가 죽음과 관계를 맺지 않고는 존재할 수 없다고 한다. 또한 이 죽음의 알 수 없음, 죽음의 서로 다름은 “고유한 존재 가능성”임을 역설한다.소설 속의 ‘나’는 ‘죽음과 관계 맺은 고유한 존재의 가능성’보다는 죽음에 더 역점을 두고 있다. 끊임없이 적의 전체를 기다리며 죽을 장소를 찾고 있다. 장인처럼 죽음을 다듬으며, 그 죽음을 탐닉한다.소설을 읽으며 내내 기다리고 있었다. 저 죽음을 떨쳐버리고 조금 더 치열해지길 간절히 바랬다. 하지만, 소설 속엔 끝끝내 죽음을 떨쳐버리지 못한 채 죽음을 인정하고 수긍하는 나약한 ‘나’ 외에 더 무엇은 없었다.김훈의 거개의 소설들은 삶의 끝자락으로 몰린 자들의 삶에 대한 기록이다.‘칼의 노래’에서 이순신은 왕명 속에 깃든 것들이 헛것임을 알면서도 그 헛것을 놓지 않는다. 삶은 수많은 헛것으로 이뤄졌더라도 그 헛것을 놓지 않는 일이라고, 그 헛것이 끝끝내 헛것으로 스러져 버리더라도 그 헛것을 끝끝내 지켜내는 그 부질없음이 삶이라는 것을 말하였다. 김훈은 그 지독한 허무를, 그토록 담담하게 그려냈던 것이다.김훈의 소설에 등장하는 허무한 이순신이 지금 나를 바라보고 있다. 삶과 죽음은 타원형과 같다. 그 타원형은 양극을 가지고 있으며, 그 극과 극의 양상은 다르다.공강일 서울대 강사·국문학하지만, 그 극에서 조금이라도 비껴서면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이다. 삶의 극에 서 있는 자는 죽음으로, 죽음의 극에 서 있는 자는 삶으로 떨어져 버리는 것이다. 나는 지금 삶의 극을 약간 비껴나 있는 것 같다.몇 해 살지 않은 삶, 그 속에서 얼마나 많은 잘못을 저지르며 살아왔는지 알 수 없다. 어느 날, 그 잘못들이 내 머리 속을 헤매는 것이다. 며칠 째 고열로 혼자 앓다가 애써 밥을 먹을 때, 벌겋게 부은 편도를 스치는 밥 알갱이들의 질감과도 같이, 삶 킬 수도 없고, 눈물이라도 나면 좋을 테지만, 눈물도 흐르지 않는다. 그래서 ‘칼의 노래’의 ‘나’가 삶을 당당히 헤쳐 나가길 원했는지 모른다.

2019-12-10

반려동물 교감치유(上)

반려동물은 인간에게 친근한 동반자의 역할을 하고 있다. 복잡한 일상생활에 지친 사람들에게 순수한 우정과 기쁨을 주고 정신적, 신체적 재활과 회복 그리고 치유에까지 관여하는 등 인간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데 기여하고 있다.최근 반려동물이 참여하는 동물교감치유의 효과가 입증되면서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에서는 어린이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모든 영역의 환자에게 대체 치료요법으로 적용되고 있다.우리나라에서는 아직 활발하진 않지만 정부차원의 정책적 노력과 활동가들의 경험, 연구자들의 학술적 내용들이 정립되고 있는 단계에 있다.동물교감치유는 도움이 필요한 사람과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 그리고 일정한 훈련을 받은 반려동물 사이의 동반자적 생활과 활동을 통하여 인지적, 정서적, 사회적, 교육적, 신체적 발달과 적응력을 향상시킴으로써 육체적 재활과 정신적 회복을 추구하는 전문적인 분야이다. 첨단과학기술과 산업의 발달은 현대사회의 물질적 풍요와 인류생활에 편리함을 가져다주었지만 동시에 많은 문제점을 발생시켰다.동물과 인간의 정서적 유대를 바탕으로 한 동물교감치유의 역사에서 가장 오래된 이야기는 선사시대부터 인간과 동물의 정서적 유대관계에 대한 주장이 있긴하지만 BC 400년경 부상당한 병사를 말에 태웠더니 치료효과가 있었다는 그리스 문헌에서 시작한다.이동훈1792년 영국의 요크셔지방에서 퀘이크 상인들에 의해 만들어진 정신 장애인들이 생활하던 공간에서 토끼나 닭을 키우면서 자기 통제력을 향상시킬 수 있는 긍정적 강화프로그램을 환자에게 적용하였는데 오늘날 동물교감치유 프로그램의 모델의 시초라고 볼 수 있다. 1867년 독일에서는 간질환자 치료를 위해 주거시설 내에 새나 고양이, 개, 말 등을 돌볼 수 있도록 했고 동물농장과 동물 보호구역도 설치했었다. 1901년 영국에서는 재활승마라는 승마치료의 개념을 도입해 재활승마에 대한 전반적인 기준과 표준을 만들어 세계 각국이 활용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으며 옥스퍼드 대학병원에서 재활승마치료를 실시했었다. 1919년 미국 엘리자베스 병원에서 정신질환을 앓는 군인의 치료에 개를 활용했고 1942년에는 적십자사와의 협조로 뉴욕의 파울링 공군요양병원에서 2차세계대전에서 다친 환자의 휴식과 긴장완화를 위해서 다양한 종류의 농장동물과 함께하는 프로그램을 적용했다. 1952년 헬싱키 올림픽에서 덴마크의 하텔이라는 승마선수가 소아마비 장애를 극복하고 올림픽 은메달을 획득하면서 재활승마의 효과가 입증되었고 이후 재활승마는 유럽에 전파됐다. 반려견이 참여하는 동물교감치유는 1962년 미국 소아정신과 전문의인 레빈슨이 개와 놀면서 아동이 회복되는 장면을 목격하고 동물교감치유를 임상심리학에 적용시킨 최초의 활동으로 역사에 남아있다.최초의 동물은 사람에게 단백질을 제공해 주던 식량자원이거나 인간을 공격하는 위협적인 존재이기도 했다. 식량으로 이용할 수 있는 동물을 더 많이 포획하기 위해 사냥기술과 개 육종이 발전하기도 했고 맹수들은 숭배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오늘날 인간과 함께하고 있는 개들은 인간의 목적에 따라 육종되고 발전해 왔는데, 앞으로의 개들은 반려동물로서 어떤 역할들을 담당하게 될까? 아마도 반려동물과 함께하는 활동과 교육, 치유는 앞으로 시대의 반려동물이 가지게 될 최고의 활동분야가 될 것이다. 인간과 동물 그리고 자연은 함께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서라벌대 반려동물학과 학과장 이동훈

2019-12-10

황금률(Golden Rule)

박상영 대구가톨릭대 교수필자의 지인 중에, Y라는 사람이 있다. 그는 구김살 없이 성격도 좋고 경우도 바르며 인물과 능력도 매우 뛰어나 어딜 가나 늘 인기가 있는, 타고난 호감형의 인물이다. 부유하나 돈 자랑은커녕, 오히려 가난한 이웃을 소리 소문 없이 도와주고, 뛰어난 능력자이나 항상 겸손하며, 남의 불행엔 진심 마음 아파하고 남의 행복엔 누구보다 먼저 달려가 축하해주는 그런 위인이다. 그런데 그가 벌레 보듯 하는 이가 하나 있었으니, 그는 바로 속 좁기로 소문난 L이었다.하루는, 왜 L이 그렇게 싫은가 물었더니, Y의 말인즉슨, L의 속 좁음 때문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본인은 상대를 예로써 대하지 않는데, 상대방으로부터는 존경받으려 하는 모양새가 싫고, 자기가 하기 싫은 일은 골라서 남에게 시키니 그런 무례함이 싫으며, 특정인을 챙기려고 작정하면 애꿎은 주변 사람들을 불편하게 해서라도 무리수를 두니, 그 민폐가 이만저만이 아니기에 싫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필자에게 포스트잇이 붙은 성경 한 권을 건네었다. 펼쳐 보니 그 곳은 다름 아닌, ‘남에게 대접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라’는 마태복음 7장 12절, 바로 그리스도교의 핵심 윤리인 황금률(Golden rule) 부분이었다.예수는 이 황금률을 율법서와 예언서에 나오는 모든 규칙들 중 가장 으뜸으로 여겼다. 사실 남에게 대접받고 싶은 대로 남을 대접한다는 것이 쉬운 것만은 아니다. 이는 단순히 물 한 그릇 밥 한 그릇 대접한다는 차원이 아니기 때문이다. ‘남을 대접한다’는 말에는 이미 내가 어떤 대접을 받을 사람인지가 정해졌다는 말이 내포되어 있다. 옛날 무학 대사가, 저를 ‘돼지 같다.’고 한 이성계를 향해, 오히려 부처 같다하면서 ‘돼지의 눈에는 돼지만이, 부처의 눈에는 부처만이 보인다.’는 말을 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돼지만 보이는 당신은 돼지처럼 대접받으면 될 일이고, 부처를 보는 나는 부처같이 대접하라는 명쾌한 촌철살인이 아닐 수 없다.이처럼 ‘남을 대접한다’는 것은 곧 타자를 향한 베풂이자 나를 향한 베풂이기도 하다. 논어 위령공 편에는, 자공이 공자에게 평생 실천할 수 있는 한 마디의 가르침을 요구하자 공자가 이렇게 말한 대목이 나온다. ‘기소불욕 물시어인(己所不欲勿施於人: 자신이 원치 않으면 타인에게도 시키지 말라)’. 그렇다. 내가 대접받고 싶으면, 내가 하기 싫은 일은 남에게 절대 시켜서는 안 된다. 그런데 요즘에는, 이러한 인간관계의 기본원칙을 망각한 채, 내가 하기 싫은 일을 남에게 시키는 ‘기소불욕 시어인(己所不欲 施於人)’ 족속들이 참으로 많은 것 같다.바야흐로, 한 해의 끝자락 12월이다. 이맘때면, 올 한 해를 찬찬히 돌아보기도 하고, 다가올 신년 계획도 세우기 마련이다. 한해를 마무리 하면서, 여러 가지 기억들, 추억들이 많겠지만, 그 틈 사이로, 스스로 황금률을 제대로 실천해 왔는지, 혹 ‘기소불욕 시어인’ 하지는 않았는지 모두가 스스로 한번쯤 성찰해 보는 시간을 살짝 넣어보면 어떨까?

2019-12-10

명문 집안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지도층 인사에게 요구되는 높은 수준의 도덕적 의무감이다. 고대 로마시대 왕과 귀족들이 전쟁에 직접 출전하는 등 실천적 솔선수범 정신이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기원이 됐다. 지금도 유럽의 여러 나라에서는 이런 도덕적 의무감을 정신적 지주 혹은 자부심으로 삼는다. 실제로 영국의 명문가 집안 자녀가 많이 입학하는 이튼스쿨은 1·2차 세계대전에 참여해 목숨을 잃은 2천여 명의 모교 졸업자 명단을 비문에 새겨 희생정신을 기리고 있다.달성 서씨는 대구에 터를 잡은 700년 전통의 명문 집안이다. 조선조 대제학을 지낸 서거정 선생을 비롯, 현대사에서는 시서화에 능한 서병오, 항일 투쟁에 앞장섰던 서상일, 총독부 요인을 암살하려다 체포된 서상한 등 많은 애국자와 선비가 난 집안이다. 특히 조선 영조대왕의 원비 정성왕후의 본관이 바로 달성이다. 영조가 왕자였던 시절 가례를 올려 달성군부인에 봉해진다. 그러나 영조와 좋지 않은 관계로 비운의 시절을 보낸 왕비다. 달성 서씨 문중의 유허비가 달성공원 안에 세워진 것은 이곳이 본래 달성 서씨 세거지였기 때문이다. 1424년 세종 6년 구계 서침(徐沈)은 서씨 일문의 근거지인 달성공원을 나라에 헌납하게 된다. 이에 세종이 포상하려 하자 서침은 상 대신 주민에게 거둬들인 환곡의 이자를 감해 줄 것을 조정에 건의한다. 이 같은 사실이 알려져 뒷날 서침 선생의 공덕을 기린 구암서원이 건립된다.달성 서씨 대종회는 동산동에 있는 옛 구암서원의 터를 대구시에 기증했다. 지금 평가 가치로 35억원 정도 된다고 한다. 대종회는 이번 결정이 서침의 뜻을 따르는 일이라 했다. 나라와 지역을 사랑하는 숭고한 정신이 바로 명문 집안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다./우정구(논설위원)

2019-12-10

나의 태양이 밤에도 빛날 수 있다면 (2)

벨라가 죽은 후 오랜 슬럼프에 빠졌다가 겨우 몸을 일으킨 샤갈, 이후의 작품에는 주로 푸른 빛이 등장합니다.이 시기를 샤갈의 푸른색(Chagall’s blues)라고 지칭하기도 합니다. 샤갈이 태어났을 때 고향 마을은 큰 불이 났습니다.샤갈이 태어난 마을 전체가 한 시간 만에 불길에 휩싸입니다.어머니는 아들을 살리기 위해 안전한 곳을 찾아 거리 여기저기로 요람을 들고 다녔지요. “어쩌면 이 때문에 항상 불안을 느끼며 방랑벽을 겪고 있는지 모릅니다.” 샤갈의 고백입니다. 평생 세상의 불길과 화염을 피해 이 나라에서 저 나라로 피해다닌 노마드의 삶이었기에 샤갈은 더욱 본향을 그리워했습니다.“만일 우리들이 부끄럼 없이 사랑이란 말을 할 수 있다면 모든 것을 변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예술의 참다운 정신은 사랑에 있다”러시아 혁명과 스탈린의 피비린내 나는 숙청, 유대인으로 늘 직면했던 살해위협, 1차 대전과 2차 대전을 겪으며 인류가 저지를 수 있는 잔혹한 인간성 상실의 시대를 살았던 샤갈. 암울한 시대에 색채를 무기로 싸운 사랑의 투사였습니다. 샤갈의 언어 중 제 가슴을 찌른 말입니다.“나의 태양이 밤에도 빛날 수 있다면 나는 색채에 물들어 잠을 자겠네.”시대는 밤이었습니다. 대규모 학살이 버젓이 자행되고,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일이 파리 죽이는 것보다 쉬웠던 시절. 사랑하는 이를 잃은 슬픔. 전혀 소망이 없을 듯한 암울한 세상을 살면서도 샤갈은 결코 꺾이지 않습니다. 짙은 밤처럼 어두운 시대, 그는 사랑이라는 이름의 색채에 물들어 자신의 태양을 빛내고 밝힌 등대였습니다.누구는 총과 칼로 또 다른 누구는 지성으로, 그리고 세상은 돈과 권력으로 혁명을 꿈꾸지만 여기 사랑으로 인류의 내면에 불꽃을 피운 진정한 혁명가의 삶이 있습니다. 우리가 믿고 따를만한 사랑의 깃발이 펄럭입니다./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대표

2019-12-09

교육개혁과 관료주의와 일선교사

조현명 시인교육개혁을 바라보는 일선교사의 생각은 늘 주체가 되지 못하는 것에 대한 소외감이다. 우리나라의 교육정책과 시스템은 교육부라 이름하는 교육 관료주의로 이루어져 있다. 항상 그 시스템의 말단에 서있는 일선교사가 교육 개혁의 대상이며 개혁 실행의 당사자였기 때문에 개혁에서 소외가 될 수밖에 없다.결국 개혁은 이루어지지 못하고 지지부진하다가 정권이 바뀌면 새로운 정책으로 전환되는 악순환을 경험한다. 일선교사는 그러므로 생각하는 존재가 되어서는 안 된다.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라’는 관료주의 시스템이 단단하게 구축되어있다. 마치 검찰이 개혁되어야 한다고 촛불까지 켜들고 하지만 잘 안 되는 것과 같이 교육 관료주의 또한 만만치 않다.전국단위의 연수회에서 교육부 행정 사무관이 목소리를 높이는 것을 본 적이 있다. 학생 맞춤형 교육과정에 대한 질의 응답시간이었는데, 갑자기 “학교에서 고3의 교육과정을 제대로 편성 실행하고 있습니까? 전부 수능에 맞추어 왜곡 변경하지 않습니까?”라고 말해서 듣고 있던 교사들이 술렁거리기도 했다. 행정 사무관 한사람의 협박에 모든 학교와 선생님들이 죄인이 되어버린 현장이었다. 사실은 교육부가 만들고 해마다 땜질식으로 바꾸어놓은 입시제도에 의해 교육과정이 왜곡되고 있는데도 그 잘못을 일선 학교 교사들에게 전가하는 모습에서 나는 처음으로 교육 관료주의가 이런 것이구나 통감하게 됐다.20년 시차로 우리사회가 일본을 닮아가고 있다고 말한다. 동경대에 들어가기 위해 7수, 8수를 하던 경쟁과 사교육을 그대로 닮았고, 이후 유도리(여유)교육으로 공교육이 황폐화된 것도 닮았다.현재 일본은 ‘국제 바칼로레아(IB)’를 공교육에 도입, 미래사회를 준비하는 혁명적인 교육개혁을 실행하고 있다. 그것도 대구, 제주 교육청이 따라가고 있다. 우리나라 교육부도 시차를 두고 따라가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이 모든 것이 일본에는 문부과학성이 있고 우리나라에는 닮은꼴의 교육부가 있기 때문이다. 관료주의는 두 나라가 뼈 속까지 닮았다.교육개혁은 관료주의의 조직 하에서는 단언컨대 형식적으로만 이루어질 것이다. 실제적이려면 일선교사들의 공감을 얻어야하는데, 그것은 오랜 기간 동안 준비하고 함께해야 하는 것이다. 5년 주기의 정권하에서 가능한 일이 아니다. 게다가 ‘교육개혁이란 만병통치약을 믿으면 안 된다’ 라고 선언한 ‘다이안 래비치’ 같은 교육학자도 있다. 그는 대안으로 ‘풍부한 교육과정과 충실한 수업’을 제시하고 있기도 하다.일선 교사들의 입장에서 학생의 변화와 깨달음이 목표이지만 학생들은 전혀 변하지 않고 그대로인 것을 매년 목도한다.어쩌면 ‘수업을 통해 더 망가지는 것은 아닐까?’ 의심이 들 때도 있다.관료주의 안에서 개혁의 대상이 된 일선교사는 정작 교육개혁에 소외되는 것에 대해서는 중요하게 생각지 않는다. 매일매일 학생들에게 소외되지나 않을까 걱정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래서 교사의 일상과 진로를 방해하는 관료주의에 맞서기보다는 묵묵히 ‘풍부한 교육과정과 충실한 수업’을 위해 열심을 다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2019-12-09

수오재기(守吾齋記)의 교훈

강희룡 서예가조선의 중종 시대는 연산군 시절의 잘못된 정책과 사회풍속을 바로잡으려는 시기였다. 이 시기에 조광조는 도학정치의 실현을 위해 사림을 천거하여 인재를 등용하는 현량과를 주장하며 사림 28명을 선발했다. 또한 중종을 왕위에 오르게 한 정국공신(靖國功臣)들의 공을 삭제하는 위훈삭제 등 개혁정치를 서둘러 단행하다가 사흘 후 반발한 훈구세력에 의해 기묘사화가 일어나 이 개혁정책은 무산되고 한 달 만에 사사됐다. 후일 율곡 이이가 경연일기(經筵日記)에서 조광조를 평가한 내용은 오늘날 위정자들이나 관료들은 귀담아 들을만하다.‘옛사람들은 학문이 이루어지기를 기다려서야 도(道)를 행하려 했던 것이다. (중략) 조문정(趙文正·조광조)은 어질고 밝은 자질과 나라를 다스리는 재주를 가지고서 학문이 미처 이루어지기도 전에 갑작스레 요로(要路)에 올라, 위로는 임금 마음의 잘못을 바로잡지도 못하고 아래로는 권력세가의 비방을 막지도 못하여, 몸은 죽고 나라는 어지럽게 했으니 도리어 뒷사람들이 이것을 징계삼아 감히 일을 해보지 못하게 만들었다.’ 여기에서 학문이 이루어지기 전이라는 것은 아직 국가를 경영할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간절한 표현이다. 조광조가 학문이 이루어진 후에 관직에 나갔다면 국가에 큰 도움이 되고 국민을 행복하게 하였을 것이라는 탄식을 글로 적은 것이다. 겉으로 보아 아무리 훌륭한 인물이 있더라도 준비된 사람, 곧 학문과 인격을 이룬 사람이 먼저 있어야 한다. 학문이 논리적으로 완결됐다는 기준은 모호하지만, 지금처럼 학계출신들이 정부나 정치권에서 활동하는 것을 보면 이와 관련이 있다고 하겠다.벼슬과 학문의 관계에 대해 주자는 ‘이치는 같으나 하는 일은 다르다. 하지만 학문을 하고서 벼슬하면 그 배운 것을 실험함이 더욱 넓어진다.’라고 했다. 대체로 사람들은 벼슬길에 들어서게 되면 여러 요인으로 본성을 잃게 되어 일생을 망치게 된다.18세기 실학사상을 집대성한 조선 최고의 실학자이며 개혁가인 다산 정약용은 ‘여유당전서’에 자신을 지킨다는 ‘수오재기(守吾齋記)’를 실었다.다산의 강진 유배 시기는 관료로서는 암흑기였지만, 학자로서는 최고의 수확기였다. 자신을 잘못 간직했다가 잃어버린 본성을 발견하고 스스로를 관찰하여 적은 이 수오재기는 본인의 정체성을 깨우치며 경계한 글이다.‘어렸을 때는 과거에 급제해 명성을 얻는 일이 좋아 보여 공부에만 매달려 10년을 보냈다. 마침내 뜻을 이루고 처지가 바뀌어 조정에 나아가서는 화려한 관복을 입고 미친 듯 대낮에도 큰 도로를 활보하고 다녔다. (중략) 세상에서 가장 잃어버리기 쉬운 것이 바로 나다. (중략) 맹자는 가장 큰 지킴이란 몸을 지키는 것이라고 했다. 이 말이 진실이다. 내가 스스로 말한 것을 글로 써서 수오재에 관한 기(記)로 삼는다.’반복되는 시간 속에 저무는 해는 항상 아쉽고 오는 해는 늘 새롭다. 위정자들을 비롯한 이 땅에서 살고 있는 모든 이들은 본심을 잃고 가식적인 삶을 살고 있지는 않는지 한번쯤 자신의 정체성을 돌아보는 수오(守吾)의 시간을 살필 때이다.

2019-12-09

‘어만자’는 ‘물 일하는 벌레 같은 인간’

긴 세월이다. 달라진 것은 없다. ‘중국어선의 불법조업’ 이야기다. 답답하고, 안타깝다. 억울하지만 해결방법도 없다.오징어가 사라졌다. 수온, 조류의 변화 때문이라는 이야기도 있지만, 결국 중국어선 때문이다. 명태가 사라졌다. 마찬가지다. 중국어선 때문이다. 서해안의 불법조업과 동해안 불법조업은 방식이 다르다. 결과는 같다. 서해안의 불법조업은 우리 해역까지 중국 배가 들어와서, 작업하는 것이다. 동해안은 얼마간 다르다. 북한 해역에서 버젓이 조업한다. 중국어선들이 북한 해역의 입어권(入漁權)을 샀다는 흉흉한 소문만 돈다. 눈 감고 아웅 한다. 크기가 작은 치어(稚魚)도 마구잡이로 잡는다. 산란기, 금어기를 지키지 않는 것은 물론이다. 자기들끼리 ‘입어권’을 사고팔았으니 확인도 불가능하다.근래 일도 아니다. 이미 수백 년 이어졌다. 달라진 것은 없다. 조선 시대에도 이미 중국 배들과 숱한 마찰이 있었다. 불행히도, ‘마찰’이 아니라 일방적으로 당했다. 지금도 마찬가지. 우리가 불법적인 행동을 하는 것은 없다. 일방적으로 당하고 있다.이덕무의 ‘청장관전서 제62권_서해여언(西海旅言)’의 일부다. 제목은 ‘11일, 바람이 불고 조니진에 머물다’이다. 조니진은 황해도 장연의 바닷가 포구다. 지금도 ‘중국 배의 서해 불법조업’ 지역이다.(전략) 4월에 바람이 화창할 때면 황당선(荒唐船)이 와서 육지에서는 방풍(防風 한약재)을 캐고 바다에서는 해삼(海蔘)을 따다가 8월에 바람이 거세지면 돌아가기 시작한다. 8~9척에서 10여 척의 배들이 몰려오는데 배 1척에는 70~80명에서 큰 배는 1백여 명까지 타고 와 초도(椒島), 조니진, 오차포, 백령도(白翎島) 사이에서 출몰한다고 한다. (후략)북학파 실학자인 청장관 이덕무(1741~1793년)는 18세기 후반 사람이다. 중국은 청나라였다. 인조는, 만주족의 청나라에게 ‘삼전도의 굴욕’을 당했다. 세 번 절을 하고, 아홉 번 머리를 땅에 찧었다(三拜九叩頭禮, 삼배구고두례). 불과 100년 남짓 전의 일이다. 만주족에 대한 두려움, 분함이 살아 있었다.중국 배들이 우리 해안을 노략질한다. 조정에서는 아무런 대책이 없다. 단속할 수도 없다. 외교 분쟁(?)이 일어날 판이다. 청나라와 조선. 대등한 관계가 아니다. 조공 관계다. 형식이든, 실제 내용이든 신하의 나라다. 억울하지만 어쩔 도리가 없다. 지금의 중국도 마찬가지다. 외국에 가서 한반도를 설명하면서 “예전 우리 조공국”이라고 말한다. 조선 시대와 지금. 뭐가 달라졌는지 모를 일이다.숙종대왕 시절이다. 살림살이도 썩 좋지는 않았다. 참혹스러운 상황에서 막 벗어났을 때다. 임진왜란, 정유재란, 정묘호란, 병자호란, 경신대기근(庚辛大飢饉, 1670-1671년)을 막 지났다. 경신대기근은, “왜란과 호란보다 더 무서웠다”고 한다. 겨우 숨을 쉴 만한 시절이다. 중국 배들이 우리 서해안을 마구 침범한다. 바다뿐만 아니라 육지에서도 노략질을 한다.조선 초기 기록부터 황당선은 꾸준히 나타난다. 이덕무가 말하는 조선 후기, 18세기 후반의 ‘황당선’ ‘중국 막가파, 어만자’ 이야기를 들어보자.(전략) ‘황당선(荒唐船)’이란 무슨 말이냐 하면 의심스럽다는 뜻으로 혹 의선(疑船)이라고도 하는데, 다 등주(登州), 내주(萊州)의 섬 백성들로서 표독하고 날쌘데다 고기로 식량을 삼고 배로 집을 삼는 자들이다. 중국에서는 이른바 ‘어만자(魚蠻子)’라는 것들이고 (중략) 배들이 다 완전 치밀하여, 멎었을 때는 반드시 네 군데에 닻을 내리고 석회(石灰)로 배 틈을 발랐다. 밀랍 덩어리 같은 소금에 절인 돼지고기 안주에 독한 술을 마시고 머리를 흔들며 노래하면 용감하여 당하기가 어려운데, 4월에 오는 놈은 ‘망인(網人)’으로 그렇게까지 날쌔지는 않으나, 5월에 오는 놈들은 ‘수인(囚人 헤엄을 치며 해물을 채취하는 사람)’으로 뺨은 깎은 쇠붙이 같고 살결은 옻칠을 한 듯하며, 발을 위로 하고 이마를 거꾸로 한 채 발랄(潑剌)하게 파도를 가르기도 하며, 도끼를 들고 뭍에 나와서는 소나무를 진흙 쪼개듯 하고서는 어깨에다 도끼를 매고 힐끗힐끗하며 걸어가며, 남과(南瓜 호박)건 서과(西瓜, 수박)건 제멋대로 따먹고 반드시 뿌리까지 망쳐버리며, (후략)이 글을 쓴 시기는 기록에 남아 있다. 무자년, 1768년이다. 이해 10월(음력) 이덕무는 황해도 서해안 일대를 여행한다. ‘서해여언’은 ‘서해를 보고 남긴 여행 에세이’다.등주, 내주는 중국 산동성의 해안 도시다. 예나 지금이나 불법조업의 출발지다. ‘중국식 막가파 배’들은 청나라 강희제(재위 1661-1722년)때 심했다. 이덕무가 ‘서해여언’을 작성한 시기보다 50-100년 앞 시기다. 중국 배의 노략질은 꾸준했다.‘어만자’는 ‘물 일하는 벌레 같은 인간’이다. 해적, 수적 중에서도 하층을 뜻한다. 인간 이하의 인간이라는 뜻이다. 우리 측 표현도 아니다. 중국인들이 스스로 붙인 이름이다. 오늘날, 단속하는 우리 측 해양경찰들에게 흉기를 들고 덤비는 중국 불법 어선의 선원이 바로 당시의 ‘어만자’다.‘어만자’에는 두 종류가 있다. 망인의 ‘망(網)’은 그물이다. 추측컨대, 망인은 그물로 생선을 잡는 이다. 수인은, 맨몸으로, 바다 밑에서 해산물을 채취하는 이들이다. 수인이 망인보다 훨씬 거칠다고 했다. 오랫동안 당했으니 그들의 습성을 정확히 알고 있다. 역시 지금과 다를 것 없다. 아무리 단속해도 때가 되면 불법조업에 나선다.이들은 내륙에 상륙하여 호박, 수박 등을 마음대로 따먹고, 뿌리까지 망친다. 나물(약초)을 캐고, 술을 마시고, 행패를 부린다. 심지어 부녀자를 희롱, 겁간했다.황당선은 의심스러운 배, 의선(疑船)이다. 황당선은 조선 초기 기록에도 나타난다. 꼭 집어, 중국 배라고 이야기하지는 않는다. 중종 35년(1540년) 1월,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이다. 제목은 ‘황당선 한 척이 황해도 부근에 나타나 처리할 것을 예조에 이르다’이다.“황해도 관찰사 공서린의 서장을 보니 ‘도내 풍천부(豊川府) 침방포(沈方浦)에 황당선(荒唐船) 1척이 (중략) 실로 도둑들의 선박은 아니고 필시 중국 사람들일 것이다. (중략) 만약 이 사람들이 벌목(代木)이나 물고기를 잡을 목적으로 여기에 왔다면 나머지 선박들도 꼭 찾아내야 한다. 그들을 수색할 때는 대항해서 싸울 가능성도 없지 않으니 한학 통사(漢學通事) 2명을 속히 보내도록 하라. 첫째, 수색할 때는 대화로 설득하여 대항해 싸우지 못하도록 하고 우리 군졸들로 하여금 가벼이 사격하지 못하도록 할 것과 둘째, 중국인을 호송해 올 때에는 잘 구호(救護)하여 올라오도록 할 것을 예조에 이르라.”이 글에 나오는 황당선은 불법조업 어선은 아니다. 내용으로 봐서는 단순 표류한 배다. 글 중간에 재미있는 부분이 있다. “이들이 벌목이나 물고기를 잡을 목적으로 여기 왔다면, 나머지 선박들도 꼭 찾아내야 한다”라고 한 부분이다. 불법적으로 나무를 베거나 불법조업하는 배들이 이미 있었다는 뜻이다. 의심스러운 황당선이라고 했다가, ‘중국인이면’이란 단서로 도적은 아닐 것이라는 뉘앙스를 풍긴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다.대처도 애매하다. 불법 선박이 있다면 찾으라고 하면서, 한편으로는 통역사를 보내서 충돌하지 말고, 대화로 설득하라고 명령한다. 우리 병사들이 가벼이 사격하지 못하도록 하라, 만약 호송한다면 잘 보살펴 한양으로 보내라고 말한다.이때 중국은 명나라다. 이미 중국 배의 노략질은 있었다. 정부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다. 약한 나라의 서러움이다.중국의 약탈은 조선 시대 내내 이어졌다. 중종 때는 서해에서 우리 배의 소금을 약탈했다. 서해안 일대에서 해삼을 따고, 해안가의 약재를 채취했다. 조선 후기에는 황해도 앞바다에서 집중적으로 청어를 잡았다.숙종 43년(1717년)의 기록에는 “황당선이 오늘날같이 많이 나타난 적이 없다. 한꺼번에 32척이 나타났다”는 내용도 있다. 조선 정부는 외교문서를 보내는 등 여러 가지 조처를 하지만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그 사이, 동해의 오징어와 명태가 사라졌다. 우리 배들은 아예 출항도 하지 못한다. 출항해도 고기가 없다. 서해안 꽃게, 조기, 남해안 멸치도 마찬가지다.‘막가파 중국어선’. 어떻게 할 것인가?/맛칼럼니스트 황광해

2019-12-09

너를 위한 소중한 기도… 영천 묘각사(妙覺寺)

차는 영천댐을 끼고 달린다. 가끔 혼자서 찾아오던 길을 석 달 전 어미가 된 딸과 강보에 싸인 손녀가 동행중이다. 길은 한때의 화사함과 초록의 풍성함, 형형색색의 찬란함을 거친 후 차분히 스스로를 굽어보고 있다. 계절이 보내오는 완곡한 서두름들, 숨이 멎을 것 같던 풍경은 그 새 어디로 사라졌을까?겨울이 지닌 섬세한 생명력과 사색이 주는 충만함에 젖어들기를 바라는데 딸은 불쑥 직장 이야기를 꺼낸다. 육아 휴직으로 업무가 늘어나버린 부서원에 대한 미안함과 복직 후 육아 문제와 일에 대한 부담감이 시나브로 그녀를 흔들고 있었나 보다. 아이의 사랑스러움에 빠져든 달콤한 시간 속으로 찾아온 뜻밖의 갈등과 고민들이 겨울 풍경을 앗아가 버린다.한결 현실적이고 성숙해진 대화가 오간다. 잔잔한 수면 위로 장성한 자식의 든든함만큼 안쓰러움이 파도친다. 내 그릇의 크기만한 조언들을 주섬주섬 늘어놓다 습관적인 애착이란 걸 깨닫고, 바람 한 점 없는 수면 위로 빗나간 모성을 날려 보낸다. 잠시 말이 없다.차는 댐과 작별하고 단풍도 가을걷이도 끝나버린 쓸쓸한 산길을 꾸역꾸역 오른다. 나무들은 알몸이 되어서도 자리를 뜨지 않고, 차가 달릴 때마다 길가에 쌓여 있던 낙엽들이 가볍게 몸을 들썩인다. 딸은 젊은 혈기가 불러올 무모한 과욕을, 나는 시나브로 찾아드는 노욕을 경계해야 할 시점에 이르렀나 보다.신라 선덕여왕 때 의상조사가 창건한 유서 깊은 도량 묘각사가 보인다. 절이 있는 산은 창건할 당시 동해 용왕이 의상대사에게 설법을 듣기 위해 말처럼 달려 왔다고 해서 기룡산으로 불린다. 대사가 법성게 일구를 설 하자 용왕이 묘한 깨달음을 얻어 곧바로 승천하여 감로의 비를 뿌렸으며, 이는 당시 관내의 오랜 가뭄을 해소하는 단비가 되었다고 한다. 이에 대사가 묘한 깨달음을 얻어 사찰이름을 묘각사라 하였다.게다가 절의 부근은 예로부터 불보성지로 알려져 있다. 절의 뒷산은 보현보살이 머무른다는 보현산이며, 산 아래 동네는 미륵불의 용화삼회 설법을 상징하는 용화동에 이어 삼매동, 선원동 등 수많은 지명이 마치 불국정토를 칭하는 듯하다. 그래서인지 산문을 들어서기도 전에 마음이 평화롭다.겹겹의 산들이 적당한 거리를 두고 트인 시야를 막아주어 절은 아늑하면서도 시원하다. 일주문 없이 ㄷ자 건축물에 산문이 붙어 있는 독특한 건축양식은 단청이 없다면 여염집의 행랑채로 착각할 법하다. 전각의 문살들도 소박하고 단아하다. 온순한 눈빛의 백구 두 마리가 무료함을 달래며 길손을 맞는다.우리는 서로의 생각에 빠져 경내를 둘러본다. 극락전 법당에 앉아 스스로를 돌아보는 시간을 갖게 하고 싶었지만 아기가 칭얼대며 계획을 방해했다. 딸은 본능적으로 자기를 내려놓고 법당에 들어가는 일을 접고 아이를 어르며 산문을 나선다.엄마의 역할에 충실하기 위해서 다른 하나를 과감히 비울 줄 아는, 본능에 가까운 인내력을 발휘하는 딸아이의 모성이 짠하다. 그 마음을 알 턱이 없는 아이는 무엇이 불편한지 자꾸만 칭얼댄다. 아이 키우는 일은 숱한 노력과 인내의 연속임을 깨닫게 될 것이다. 누구나 피해가고 싶어하는 것들과 대면하면서 우리는 성장하는지 모른다.나는 극락전 법당에서 아미타부처님을 향해, 딸은 아이를 안고 묘각사 산문 앞을 서성이며 사색에 잠긴다. 숲은 한 순간도 같은 모습으로 살아가지 않는다. 숲이 열리는 소리, 한량없이 대지를 감싸 안은 하늘의 품을 올려다보며 딸은 무언가를 얻으리라. 그리고 무(無)를 향한 평온한 걸음에서 참 기쁨을 얻을 수 있다는 것도 깨달을 것이다.잠시 돌아앉아 열린 어간문 사이로 밖을 본다. 오후의 햇살이 내려 쬐는 산문 밖에 별천지가 보인다. 나와 딸, 그리고 어리석은 중생들의 번민과 사랑, 슬픔이 잉잉하게 차오르는 곳, 법당에 앉아서 바라보니 겹겹의 산 너머, 내가 사는 바로 그곳이 도솔천처럼 느껴진다. 묘하고 신통한 마음 잘만 다스리면 극락이 따로 없는데 등잔 밑이 어두웠던 것은 아닐까.조낭희 수필가우리는 지혜를 바로 옆에 두고도 어둠 속을 헤매듯 방황할 때가 있다. 언젠가는 딸도 추억을 되짚으며 이곳을 찾아 번잡한 마음 내려놓고 스스로를 되짚어 볼지 모른다. 그런 날 묘각사의 이름처럼 소중한 깨달음 하나 얻고 갈 수 있다면 좋겠다. 산문 앞에 서서 하염없이 사바의 세계를 바라보고 서 있는 딸과 그 품에 안긴 손녀를 위해 저절로 두 손이 모아진다.‘스스로 사랑하는 법과 침묵하는 법을 배우고, 넘어지면 스스로 일어서는 법을 배우게 하소서. 힘이 들면 가까이 갈 수 있는, 빗장 열려진 곳을 향해 사다리를 내릴 줄 아는 지혜를 갖추게 해 주소서. 마주 잡아 주는 손이 있지만 행여 외롭다 방황할 땐 같은 쪽으로 부는 바람이 있음을 깨닫게 해주시고, 아주 작은 것에 참다운 행복이 머물고 있음을 한 순간도 잊지 않게 해 주소서. 그리고 나 아닌 다른 이를 위해 기도할 줄 아는 넉넉한 사람이 되게 해 주소서.’겨울햇살이 감미롭다. 차담을 요청한 주지 스님에게선 아무런 소식이 없고 삼대를 지켜보는 아미타부처님의 시선만 유난히 자비롭다.

2019-12-09

작가의 글 쓸 권리와 글 쓰지 않을 권리

‘모비딕’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허먼 멜빌은 미국의 소설가로 뉴욕 세관의 검사계로 일하면서 법률 소설을 활발하게 썼다.작가는 자신이 생각하는 것을 글로 쓰는 사람이다.그렇게 생각하면, 지금 시대에 작가는 그리 특별날 것 없는 존재로 생각된다. 하지만, 우리의 눈이 책 표면에 새겨진 글자를 훑으며, 그것이 단지 까만 잉크로 된 물리적 실재가 아니라 생생하게 빛나는 또 다른 차원의 글자처럼 여겨지는 순간을 경험하게 되거나, 또는 글자들 낱낱을 읽어내는 파편적인 시선이 아닌 어떤 통합된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을 경험하는 순간, 우리는 바로 ‘작가’를 본다.과거, 문학 작가의 모델은 남들이 갖지 못한 특별한 지식이나 뛰어난 생각을 자신이 갖고 있는 문자 표기의 기술을 활용하여 글을 쓰고, 그 글을 읽는 누군가로 하여금 자신의 지식이나 생각을 이해하거나 공감하고 나아가 동의하는 것에까지 나아가 좀 더 나은 인간이 되는 과정을 포함하는 대상이었다. 글을 읽고 쓰는 능력이 지금보다 조금 더 특별한 것이었던 시대에 작가의 자리는 좀 더 특별한 곳에 마련돼 있었다.하지만, 대도시 파리의 아케이드 사이를 돌아다니며 그곳에 진열된 자본주의 상점의 상품들 속에서 희미하게 감지되는 고대의 향기를 맡았던 작가 보들레르 이후, 작가는 거리를 산책하면서 그 속에서 자신이 받은 감각이나 자신이 했던 정서, 생각 등을 단초로 글로 옮기는 사람이 되었다.조금은 특별한 곳에 마련됐던 온전히 창조적인 작가의 자리는 이제는 현실 세계의 감각을 받아들이는 예민한 자의식으로 환치된다. 글쓰기가 특별한 능력이랄 것도 없게 된 지금 시대에 우리 모두는 새로운 의미의 ‘작가’가 될 준비가 이미 되어 있는지도 모른다.미국 작가인 허먼 멜빌(Herman Melville, 1819~1891)이 1853년에 쓴 ‘필경사 바틀비-월가 이야기’라는 짧은 소설은 바로 새로운 시대의 작가의 모습에 대해 말해준다.바틀비는 월가의 변호사 사무소의 세 번째 필경사로 고용됐다. 필경사란 남이 쓴 글을 그대로 옮겨 적는 사람이다. 말하자면, 문서를 복사하는 기계 같은 존재이다. 바틀비는 엄청난 양의 문서를 믿을 수 없는 속도로 필사를 해낸다.하지만, 독특하게도 그는 자신이 쓴 글을 검토하는 일만큼은 하고 싶지 않아 한다. 그는 단호하게 “그렇게 안 하고 싶습니다”라고 말한다. 필경사로서 글을 옮겨 적는 것은 할 수 있지만, 검토하는 것은 거부하는 태도는 일반적으로 납득되지 않는다. 현대적인 작가의 관점에서 생각하면, 이 문제는 좀 더 복잡하게 다가온다. 우리는 글을 복제하는 기계인 복사기에게 그 글을 검토하기를 요구할 수 있을까.바틀비는 ‘진정한 의미의 작가’가 되지 못하는 시대에 ‘작가’가 되고자 했던 20세기의 돈키호테였을지도 모른다. 그가 필경을 멈추는 틈틈이 유일하게 하는 일이 가끔씩 창밖을 내다보며 공상을 하는 일이라는 사실은 그러한 지표이다. 그는 진정한 작가를 꿈꾸지만, 그가 하고 있는 일은 고작해야 남의 말을 옮기는 필경사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그는 남의 글이 자신의 살이 되는 것을 원치는 않았던 것이다. 그것이 지금 시대 작가가 처한 모순이다.결국 모든 것을 거부한 채 죽어가는 바틀비를 기억하며, 이 소설은 “아 바틀비여! 아, 인간이여!”라는 문장으로 끝맺는다. 바틀비는 작가가 되었지만 작가가 되지 못하는 바로 우리 시대의 인간이었던 것이다./송민호 홍익대 교수

2019-12-09

포퓰리즘 마약: 베네수엘라 vs 스위스

변창구 대구가톨릭대 명예교수·국제정치학총선이 다가오면서 망국병 ‘포퓰리즘(populism)’이 또 다시 기승을 부리고 있다. ‘정치꾼(politician)’들은 선거 승리를 위해 ‘마약 같은 포퓰리즘’ 공약들을 쏟아내고, 유권자는 그들의 달콤한 유혹에 솔깃하여 이성을 잃어버린다. 때문에 포퓰리즘에 대한 베네수엘라와 스위스의 사례 비교는 우리에게 커다란 교훈을 준다.세계 최대의 석유매장량을 자랑하는 베네수엘라는 한 때 1인당 GDP가 일본이나 독일보다도 높은 부국이었다. 1999년 집권한 차베스(Chvez)와 2013년 그의 후계자 마두로(Maduro)에 의한 포퓰리즘 정책들의 시행, 즉 무상복지, 연금 및 최저임금 인상, 근로시간 단축, 대대적 공무원 증원 등으로 인하여 다시 최빈국이 되었다. 최근 4년(2015∼2018) 동안 370만 명이 생존을 위해 조국을 탈출했으며, 평균 몸무게가 10㎏이나 빠진 그들은 굶주림을 참다못해 쓰레기통을 뒤지고 있고, 살인범죄 세계 1위라는 오명의 나라로 폭망하는데 걸린 시간은 불과 20년이었다. 차베스와 마두로가 집권을 위해 사용한 마약, 즉 포퓰리즘에 취한 국민은 ‘금단현상’때문에 다른 길로 가는 것을 거부한 결과였다.반면에 스위스의 포퓰리즘 사례는 우리에게 신선한 충격을 준다. 2016년 6월 스위스기본소득(BIS)이라는 단체가 요구한 ‘모든 국민에게 월 300만원의 기본소득을 보장하는 내용의 헌법개정안’이 국민투표에 붙여져 77%의 반대로 부결되었고, 동년 9월 ‘국가연금 10% 인상안’도 60%의 반대로 역시 부결되었다. 양식 있는 스위스 국민들이 자신에게 더 많은 기본소득과 연금을 보장해주겠다는데도 거부한 것이다. 그 이유는 무상복지 확대를 위해서 사용하는 세금인상이나 국채발행 또는 통화남발의 부작용이 매우 심각할 뿐만 아니라, 놀고먹는 사람들이 늘어나 노동력이 저하된다고 판단하였기 때문이다. 당시 스위스의 정치권 역시 국민투표 과정에서 인기에 영합하여 복지 포퓰리즘을 부추기지 않았음은 물론이다.이처럼 베네수엘라와 스위스의 사례는 선·후진국의 차이를 분명히 말해주고 있다. 권력을 위해서라면 국민을 ‘마약환자’로 만들어도 좋다는 ‘정치꾼들의 나라는 후진국’이요, 인기가 없더라도 국민을 위해서는 절대로 ‘마약’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품격 있는 ‘정치인(statesman)들의 나라가 선진국’이다. 또한 포퓰리즘이 초래하게 될 문제점을 생각하지 않고 자신은 물론 자식들까지도 병들게 하는 ‘마약을 받아먹는 어리석은 국민은 후진국’이요, 그것이 초래하게 될 파괴적 결과를 너무나 잘 알기 때문에 ‘마약의 유혹을 단호히 거부하는 지혜로운 국민이 선진국’이다.한국정치의 비극은 진정한 정치인이 없고 권력에 눈먼 정치꾼들만 난무한다는데 있다. 총선이 다가올수록 매표를 위한 정치꾼들의 포퓰리즘 유혹은 더욱 심해질 것이다. 한국이 마약에 취해서 베네수엘라와 같은 후진국으로 전락할 것인지, 아니면 그것을 거부하여 스위스와 같은 선진국으로 도약할 것인지는 전적으로 국민의 선택에 달려 있다.

2019-12-09

에잇포켓족

에잇포켓(8 Pocket)족은 부모는 물론 양가 조부모의 식스 포켓에다 삼촌과 고모 또는 이모까지 더하여 아이를 위한 지출을 아끼지 않는 가족들을 이르는 말이다.아이 한 명을 위해 온 가족이 지갑을 연다는 의미의 ‘에잇 포켓’이라는 신조어에서 비롯됐다. 에잇포켓족이 늘면서 국내키즈 산업규모 역시 크게 성장하고 있다.KT경제경영연구소에 따르면 국내 키즈 산업 규모는 2002년 8조 원에서 지난해에는 40조 원까지 성장했다. 출산율이 둔화되면서 아이 한 명에게 소비가 집중됨에 따라 아이들을 위한 프리미엄 제품들이 인기를 끌고있다.특히 어린이 키성장과 건강관리를 위한 건강기능식품이 에잇포켓족들에게 큰 인기다. 장기적인 경기 불황으로 소비심리가 위축되고 있지만 자녀들의 건강을 위한 제품들의 경우 꾸준히 인기를 얻고 있다. 에잇포켓족의 소비경향 덕분에 아기를 덜 낳는 저출산 시대지만 유아와 어린이 시장은 쑥쑥 커지고 있다.또 연말연시를 맞아 백화점 유아·아동 매장에 중장년층 여성들이 붐비고 있다. 크리스마스 연휴와 연말연시를 앞두고 책가방과 옷 등 손주나 조카 선물을 사러 온 고객들이다. 백화점에서도 아동복과 완구 등 유아·어린이 상품 매출 역시 극심한 불황 속에도 쑥쑥 커지고 있다. 매장도 장난감 가게와 놀이 시설, 도서관 등 모두 아이 눈높이에 맞춰 꾸며 놓고 쇼핑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했다. 신도시 등 유아나 어린이 비율이 비교적 높은 지역의 백화점들도 아이들과 관련한 특화된 매장을 선보이며 고객 잡기에 나섰다.온라인 업체와의 치열한 경쟁 속에서 새로운 VIP로 떠오른 아이와 ‘에잇포켓족’의 발길을 잡기 위한 유통업계의 변신이 눈부실 정도다. /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19-12-09

편의점 일자리

생활의 편의성을 좇아 생겨난 편의점의 본산은 미국이다. 1927년 미국 텍사스주 달라스의 ‘사우스랜드’라는 작은 회사가 세븐일레븐이란 이름으로 소형점포 사업을 시작한 것이 시초다. 다른 소매점이 문을 닫는 오전 7시부터 오후 11시까지 영업을 한다는 뜻에서 ‘세븐일레븐’이다.국내에 편의점 형태의 점포가 들어선 것은 1982년 롯데쇼핑이 서울 약수동에 문을 연 점포가 처음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편의점이 대중적 붐을 일으킨 것은 1990년대 들어서다. 인기 드라마의 남녀 주인공이 편의점에서 라면과 김밥을 먹는 장면이 TV에 방영되면서부터다. 이때부터 편의점은 새로운 생활공간의 하나로 자리를 잡는다. 2017년도 집계에 따르면 전국적으로 4만개가 넘는 편의점이 생겨났다고 하니 놀라운 변화다.편의점은 이름 그대로 편리함을 개념으로 도입된 소형 점포다. 연중무휴와 24시간 영업이 특징이다. 맞벌이 부부와 1인 가구의 증가와 같은 새로운 사회 현상과 더불어 지속적 성장을 한다. 다른 업종에 비해 상대적으로 개설 비용 부담이 적어 자영업으로도 큰 인기를 모았다. 지금은 직장인 등 젊은층이 즐겨 찾는 휴식 공간으로 대중화된 셈이다.확산일로에 있던 편의점이 정부의 최저임금 인상 영향으로 지난해 2천 곳이나 문을 닫았다 한다. 인건비 부담으로 인한 수익성 악화가 주원인이다. 이에 따라 편의점에서 일하던 알바 일자리도 한해동안 4만개가 사라졌다는 소식이다. 짬짬이 틈내 일하던 대학생과 저소득층 근로자의 일자리가 사라져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이 한계 근로자의 일자리를 되레 뺏어갔다는 비판도 나온다. 우리 사회 곳곳에서 터져 나오는 고용쇼크의 비명소리가 우리를 우울케 하는 연말이다./우정구(논설위원)

2019-12-08

‘김정은’에게 당한 걸까

안재휘 논설위원상상하기 싫지만, 버릇 나쁜 어린아이가 날카로운 면도칼을 들고 휘두르며 심하게 생떼를 쓴다면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쓸 수 있는 수단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달래고 꾀어서 칼을 내려놓게 하는 방법이다. 두 번째는 꾸짖으면서 힘으로 빼앗는 수단을 동원할 수 있을 것이다. 두 번째 방법은 빠르고 효과적일 수 있으나 위험성이 높다. 그렇다 보니 가능한 첫 번째 방법을 써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이 일단 더 순리적으로 보이기 마련이다.한반도의 안보 시계가 거꾸로 돌아가고 있다. ‘연말까지’라며 일방적으로 협상 시한을 정한 북한이 모종의 도발프로그램을 획책하고 있는 징후가 뚜렷하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김정은을 향해 비핵화 협상 이후 사용을 중단했던 ‘로켓맨’이라는 조롱 호칭을 2년 만에 또다시 꺼내 들었다. 북한의 북미 협상 책임자인 최선희 외무성 제1부상은 담화를 통해 즉각 ‘늙다리 망녕(망령)’이라며 신랄하게 비난했다.북한이 고체 연료를 쓰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엔진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는 정보분석이 나왔다. 평안북도 철산군 동창리 미사일 발사대에서 장거리 미사일 발사 준비 징후로 추정되는 상황이 미국 상업위성에 잡혔다는 것이다. 미국의 첨단 정찰기들이 한반도 주변을 뻔질나게 드나들고 있다.전문가들이 일제히 한반도의 상황을 ‘긴박하고 엄중하다’고 분석한다. 크리스마스를 전후해 북한이 모종의 도발을 감행할 공산이 크다는 예측마저 나온다. 그런데도 외눈박이 평화론자들은 여전히 이 모든 정황을 ‘협상용’으로 해석한다. 남한을 향해 거듭되는 북한의 위협에도 “북한은 남한을 향해 절대로 핵무기를 쓰지 않을 것”이라는, 근거를 알 수 없는 맹신을 방패막이로 내세운다. 김정은으로부터 그런 철석같은 약속을 받은 사람은 도대체 누구인가.작금의 한반도 ‘긴장 고조’가 정말로 동트기 전 일시적인 어둠이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만에 하나 북한 김정은이 수준 높은 교언영색 위장평화 전술로 핵무기와 ICBM 기술개발의 시간을 넉넉하게 확보한 것이라면 정말 큰 일이다. 한미를 비롯한 전 세계가 2년 동안이나 농락당한 셈이라면 어떻게 되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대북제재위원회는 지난 9월 전문가 패널보고서에서 “북한이 함흥 미사일 공장 등에서 활발하게 고체 연료 생산과 연구개발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정신 차려야 한다. 우리 위정자들 누구도 ‘ICBM만 아니면 괜찮다’는 말을 해서는 안 된다. 대한민국에 대해 북한은 이미 가차 없는 ‘핵보유국’이고, 남한 전역은 핵미사일의 사정거리 안에 있다. 도대체 언제까지 터무니없는 김정은의 ‘선의’와 미국의 ‘핵우산’만 믿고 온 국민을 어설픈 ‘한반도 평화’ 착시에 빠져 살게 할 참인가. ‘자체핵무장’ 필요성을 명확하게 말해야 할 시점이다. 미국은 철저하게 ‘미국’ 편일 따름이다. 아무리 살펴봐도 김정은은 ‘햇볕정책’ 따위의 유화책으로 달래고 꾄다고 말을 들을 철부지가 아닌 게 분명하다.

2019-12-08

백마 탄 김정은의 백두산 리더십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김정은은 소위 그들의 혁명 성지 백두산을 자주 찾는다. 눈 길 속에서 그는 리설주와 나란히 선두에 서고 최룡해와 박정천 등 군 수뇌부가 말을 타고 그 뒤를 따른다. 김정은은 중대 결심을 앞두고는 백두산을 찾는단다. 나름대로 조부 김일성의 ‘항일 빨치산 정신’을 되새겨 보겠다는 뜻이다.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 북한은 미국에 ‘새로운 셈법’을 요구했으나 트럼프는 아직도 꿈쩍도 하지 않는다. 오히려 트럼프는 김정은을 향해 ‘로켓맨’이라 비하하면서 필요시 군사력 사용까지 언급하고 있다. 다급해진 김정은이 백두산을 찾은 이유일지도 모른다.몇 해 전 나는 백두산 서파로 등정을 한 적이 있다. 한국 관광객들이 자주 이용하는 북파가 아닌 서파를 통해 백두산 천지에 손을 담갔다. 백두산 서파는 계단 1천442개를 거쳐 5호경계비에 이른다. 이 국경 경계비에는 앞뒷면에 조선과 중국이라는 국호가 새겨져 있다. 북한 땅을 30m까지 밟을 수 있는 곳이다. 사드 문제로 한중관계가 원활치 못하지만 중국 당국은 관광 수입을 위해 이곳 관광은 허용하고 있다. 서파를 오르면서도 길 왼쪽의 북한 백두산을 바라보면서 여러 상념이 들었다. 우리도 중국 땅을 밟지 않는 백두산 관광은 언제쯤 이루어질까.얼마 전 독일에서 만난 이사벨라는 동독 훔볼트대학 조선어과 출신이다. 그녀는 김일성대학에 유학하여 한국어에 능숙했다. 북한 유학 시절의 기억에 남는 것을 물었더니 백두산 혁명전적지 답사 행군이라고 대답했다. 무거운 배낭은 군 출신 학우들이 대신 메어주었단다. 이처럼 김정은이 백마를 타고 찾아간 백두산은 북한당국이 오래전부터 성역화시킨 지역이다. 북한 지폐 2천원에는 김정일이 태어났다는 백두산 밀영이 새겨져 있고, 그 뒷 봉우리가 정일봉이다. 김일성이 항일 투쟁의지를 새겼다는 3천여 그루의 ‘구호나무’(?)까지 잘 보존되어 있다. 이처럼 백두산은 김일성의 백두혈통의 상징물이 되어 버렸다.김정은의 잦은 백두산 등정은 그의 카리스마적 리더십을 보강하기 위함이다. 김정은 세습정권은 대내적 안정을 위해 집권 초기부터 김일성의 상징을 조작하였다. 그는 조부 김일성의 헤어스타일, 복장, 중절모, 걸음걸이, 연설 행태까지 그대로 모방하였다. 그의 3대 세습에는 적대 세력을 과감히 제거하고 인민들의 충성심을 확보하기 위해 카리스마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는 ‘혁명 위업의 계승자’ 자격을 여전히 백두혈통에서 찾고 있다. 그는 조선노동당 7기 5차 전원회의를 앞두고 대내적 결속과 미국의 결단을 촉구하기 위해 백두산 등정길을 선택하였다.김정은은 2017년 말 당 중앙위 전원 회의에서 ‘핵, 경제 병진노선’을 포기를 선언하였다. 그는 2018년 4월 7기 3차 전원 회의에서 ‘경제 건설 총력 집중 노선’을 채택하였다. 그러나 북한의 자립 경제는 획기적인 개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김정은의 이러한 시대에 뒤진 카리스마적 리더십이 경제 발전 노선에 부합되지 않기 때문이다. 북한땅에서만 통용될 수 있는 그의 전통적 리더십은 오래 갈 수 없다. 김정은의 리더십이 합리적 리더십으로 바뀔 때 대남, 대미 수교도 경제 발전 정책도 빛을 발휘할 것이다.

2019-12-08

멜랑콜리아와 군자불기

김현욱 시인동네 취미 미술 학원에 등록해서 가장 먼저 그린 것은 내 왼손이다. 왼손을 관찰해 그려보라는 미술학원에서의 첫 번째 과제는 내가 그동안 반 아이들에게 시 쓸 때 주변 사물이나 사건을 잘 관찰해서 써보라는 것과 같은 주문이었다. 이왕 시작했으니 잘 배워보자는 마음으로 열심히 내 왼손을 그렸다. 다 그린 후 미술 선생님이 유심히 보더니 이렇게 말했다. “손과 스케치를 잘 비교해보세요. 다르지요? 눈에 보이는 대로 그려야 하는데 현욱 씨는 머릿속에 있는 손을 그렸네요. 검지를 자세히 보세요. 약간 굽어있는 부분이나 굵기, 손톱 모양이 닮았지요? 검지는 다른 손가락과는 다르게 잘 관찰해서 그렸어요.”두 번째 수업은 사진을 거꾸로 놓고 따라 그리는 것이었다. 돌이켜보면 모든 수업이 머릿속에 있는 관념을 그리지 말고 눈에 보이는 대로 유심히 대상을 관찰해서 스케치하라는 주문이었다. 글쓰기를 지도하는 입장에서 “머리로 꾸며 쓰지 말고 보고 들은 것을 솔직하고 자세히 써라.”는 말과 일맥상통한다. 요즘 미술 관련 연수를 들으면서 르네상스 최고의 발명품은 안경, 나침반, 현미경, 인쇄술, 총, 지도 같은 것이 아니라 원근법이라는 얘기가 솔깃했다. 원근법은 거리감 있는 현실 공간을 기하학적인 방법으로 평면 위에 구성, 재현하는 기술이다.원근법을 통해 르네상스 시대의 창조적 태도 세 가지를 들었는데, 첫 번째는 세계를 관찰하는 고정된 시점을 갖게 되었다는 점이다. 신의 관점이 아니라 인간의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신화나 신학이 아닌 경험주의적 태도로 세계를 직접 관찰하고 기록하고 분석하는 태도를 갖게 됨으로써 근대 과학발전의 토대가 마련되었다는 점이다. 세 번째는 여러 분야의 지식이 융합되어 세상을 보는 새로운 방법이 창조되었다는 점이다. 원근법은 기하학에 대한 이해가 광학으로 이어져 미술의 표현으로 발전했다고 한다. 3차원을 2차원 위에 옮겨 놓는 완전히 새로운 기술이 바로 원근법이다.15세기 화가 알브레히트 뒤러의 작품 ‘멜랑콜리아 I’에 그려진 인물과 소품이 참 흥미롭다. 날개를 단 르네상스 시대의 사람이 컴퍼스를 잡고 앉아 있다. 주변에는 원구, 톱, 대패, 망치, 시계, 저울, 종, 마방진이 보인다. 르네상스 시대에는 수학적, 과학적 탐구와 예술적 표현이 서로 융합된 시기였다. 문학, 철학, 역사, 과학, 수학 등의 학문을 구별하지 않았다. 논어 위정편에 ‘군자불기(君子不器)’라는 말이 나온다. “군자는 한 가지에만 쓰는 그릇이 되어선 안 된다”는 뜻이다. 맵찬 겨울바람처럼 수능 점수가 발표됐다. 고3이든 중3이든 학생들은 진로를 고민할 것이다. 취준생이나 이직을 고민하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날개 달린 르네상스 사람, 여러 그릇으로 쓰일 수 있는 군자가 되고 싶으면 문과, 이과에 너무 얽매이지 말고 자신의 소신대로 선택할 일이다. 실패와 절망이 후회와 눈물이 결국에는 거름이 되는 게 인생이니까.

2019-12-08

나의 태양이 밤에도 빛날 수 있다면 (1)

샤갈은 피카소와 어깨를 견주는 거장입니다. 화려한 색깔을 절묘하게 구사해 색채의 마술사라는 별명을 갖고 있습니다. 러시아에서 태어나 공산 혁명과 나치의 핍박을 피해 프랑스, 독일, 미국 등 세계를 떠돌며 노마드로서 살아간 유대인이지요. 샤갈을 이야기할 때 빠질 수 없는 것이 벨라와의 사랑입니다. 그의 작품은 대부분 사랑이 한가득 색채에 녹아 있습니다.붓을 놀릴 때마다 캔버스가 그의 밑에서 떨렸다. 붉은색, 푸른색, 흰색… 그는 나를 색채의 소용돌이 속으로 끌어들이더니 갑자기 바닥에서 떠오르게 했고, 그의 작은 방이 너무 비좁게 느껴졌는지 자신도 같이 날아올랐다. 그리고 몸을 길게 늘이고는 천장에서 떠다니는 것이었다. 고개를 뒤로 젖혔고 내 고개도 뒤로 젖혔다. 그리고 내 귀에 키스하며 속삭였다. “그림이 맘에 드오?” ‘첫 만남’- 벨라 로젠필드벨라와 샤갈의 만남은 신분 때문에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샤갈의 외가는 도살업을 했고 아버지는 노동자에 불과했지만 벨라의 집안은 보석 가게를 3개나 운영하는 명문 가문이었기 때문이었지요. 벨라 역시 역사, 문학, 철학을 공부하고 배우를 꿈꾸는 대단한 인재였으니 부모의 반대는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습니다.샤갈의 그림은 벨라를 만나면서 더 빛나고 아름답고 화려하게 무르익어갑니다. “예술에서도 삶에서도 진정한 의미를 부여하는 색깔은 오직 하나다. 그것은 사랑의 색이다.” 극심한 반대를 무릅쓰고 1915년 둘은 마침내 결혼을 합니다. 샤갈은 평생 자신의 그림에 벨라를 녹여냈습니다. 그녀와 함께한 시간은 절로 공중에 두둥실 떠오를 만큼 행복했던 샤갈. 하지만, 1944년 벨라는 감염에 의해 갑작스레 세상을 떠나게 되지요. 샤갈은 벨라의 죽음 이후 9개월 동안 제대로 먹지도, 잠을 잘 수도, 그림을 그릴 수도 없는 상태에 빠집니다. (계속)/인문고전독서포럼대표

2019-12-08

인구절벽의 위기를 마주한 영양군, 위기가 곧 기회다!

오도창 영양군수얼마 전 우리나라 3분기 합계출산율이 0.88명을 기록하며 역대 최소 기록을 새로 썼다. 작년과 비교해 출생아 수가 6천 687명(8.3%)이 줄어 1981년 관련 통계를 내기 시작한 이래 3분기 기준 최소 기록으로, 합계출산율 역시 전년 동기보다 0.08명 떨어지면서 2년째 합계출산율이 1.0명 미만이 확실시되고 있다. 1960년 중반, 합계출산율이 5.63명이던 시절이 우리나라에도 있었다. 정부가 강력한 산아제한 정책을 실시할 정도로 높은 출산율을 경제성장에 큰 걸림돌로 여기던 때도 있었다. 산아제한을 실시한 이후 60년이 지난 지금의 결과는 참담하기만 하다. 저출산을 넘어 이제 합계 출산율이 1.3명 이하인 초저출산 시대로 접어들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출산율 저하는 바닥을 모르고 떨어지고 있다. 정부도 대통령 직속의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를 조직해 지난 2006년부터 150조원 가까운 예산을 쏟아부었지만 2015년 반짝 회복했던 것을 제외하면 계속 줄어들어 지난해 합계출산율이 0명대에 진입해 세계 최초로 출산율 0명대 국가가 됐다. 백약이 무효인 상황이 되어 버렸다. 정부도 기존의 저출산 정책의 실패를 인정하고 인구 감소 충격을 완화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전환했다. 장기간의 출산율 저하가 단순히 출산장려금을 지급하는 정도의 대책으로는 지금의 방향과 추세가 바뀔 수 없기 때문이다. 정책 패러다임의 전환을 추진하면서 출산율과 출생아 수를 목표로 하는 국가주도 출산정책에서 삶의 방식에 대한 개인의 선택권을 존중하고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사람중심 정책으로 변화를 도모하고 있는 것이다. 영양군이 선도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출산양육비 지급도 최근 출산율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지자체마다 경쟁적으로 지급하던 양육비 지급도 원정출산과 같은 논란이 일고 있어 많은 지자체에서 사업 지속여부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정책의 추진에도 적절한 시기와 처방이 필요하다. 정책의 효과를 보기 위해서는 선제적이고 과감한 정책이 수반돼야 한다. 이런 점에서 영양군 역시 예외가 될 수 없다. 1973년 7만791명이던 영양군의 인구는 2002년 인구 2만명 선이 붕괴되더니, 이제 인구 1만 7천명선 붕괴를 걱정해야 하는 위기 상황에 다다랐다. 인구는 자치단체 조직규모를 정하는 기본척도이자 중앙정부의 지자체 평가에 있어 각종 교부세와 지방세 확충에 주요 산정 기준으로 활용되고 있기에 논란이 일고 있는 양육비 지급도 지자체에서는 경쟁적으로 지급하고 있는 것이다.인구급감으로 인해 자치단체의 존립을 걱정해야 하는 지금의 상황에 오기까지 영양군에서도 인구증가를 위한 많은 정책을 실시했다. 하지만, 타 지자체와 마찬가지로 만족할만한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되레 인구 감소 속도만 빨라졌다. 이런 급박한 상황을 맞아 더 이상의 인구 후퇴는 안 된다는 군민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지난 11월 29일, 인구감소 대책을 위한 간담회와 인구증가 결의대회를 개최하기에 이르렀다.영양군에서는 이미 당면한 문제 해결을 위한 사전 조치로 4월부터 준비한 ‘영양군 인구증가정책 지원조례’ 제정을 앞두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관내 신규 전입자에 대한 각종 지원을 할 계획이다. 이를 통해 단기간에 가시적인 성과를 거둘 수는 있지만, 그 효과 역시 크게 기대할 수 있는 정도는 아니다. 신규 전입자 유치에는 대규모 기업 유치와 같은 대규모 전입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큰 성과를 볼 수 없다. 그럼에도 인구증가 결의대회를 개최하는 것은 더 이상의 인구 감소를 방관하지 말자는 군민들과의 공감대 형성과 결의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이를 계기로 선제적이고 획기적인 인구증대 방안들을 마련하고자 많은 지원을 아끼지 않을 예정이다. 특히 출산과 양육의 정책적 지원과 영양군 저출산의 해결책을 총괄할 ‘영양군 인구지킴이 민관공동체 대응센터’건립사업과 방과후 학생들의 돌봄 공백을 해소할 ‘공립형 지역아동센터 건립사업’이 내년에 완공되면 인구 증가를 위한 대책에도 속도를 낼 예정이다. 아직은 정책적으로 아쉬움과 부족함이 많은 것이 현실이다. 차별화된 귀농귀촌 지원과 시행 중인 출산보육정책까지 보다 촘촘히 보완하고 새로운 시책을 발굴해 인구정책의 새 방향을 제시하고 싶다.‘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는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아프리카 속담처럼 아이들을 부모뿐만 아니라 가족, 이웃 등 온 마을, 온 나라가 하나 되어 함께 키운다는 마음가짐을 우리 모두가 가진다면 심각한 저출산 문제 해결이 멀게만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당장의 출산율을 올리기 위한 임시방편보다는 적어도 30∼40년 후의 미래를 생각하며 천천히, 그러나 견고하게 추진되는 정책의 고민을 이번 민선 7기 임기 내에서 담아보려고 한다. 인구 절벽에 마주한 지금 위기가 곧 기회가 되어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 영양의 모습을 상상해 본다.

2019-12-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