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오피니언

오르막과 내리막

운동으로 걷기를 좋아하지만, 간혹 속도감을 느끼고 싶을 때는 헬멧을 쓰고 자전거에 오릅니다. 왕복으로 달릴 때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은 딱 절반씩 있습니다. 내리막이 없는 오르막이 없고, 오르막이 없는 내리막은 있지 않지요. 힘든 오르막길을 페달을 밟으며 끙끙 오를 때는 조금만 더 가면 자전거가 내리막을 만나 절로 굴러가며 시원한 바람 한 줄기 맞을 생각에 괴롭지 않습니다. 지형에 따라 다르기는 하지만 광활한 대륙이 아닌, 우리나라의 지형에서 오르막과 내리막은 수시로 나타납니다.인생도 비슷하게 오르막 내리막이 있고, 짧게 보면 하루를 살아가는 것도 오르막과 내리막이 있습니다. 힘든 시간을 보내면 즐거운 시간도 있고 맑고 환한 빛나는 시간이 있는가 하면, 어둡고 우울한 시간들이 항상 우리를 뒤따릅니다. 날씨가 항상 흐리고 비가 오는 날만 있지 않고 맑고 환한 날, 바람 부는 날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책 읽고, 글 쓰고, 운동하며 내면을 가꾸고 돌보는 일. 건강하고 의미 있는 삶을 위한 가장 중요한 요소들입니다. 습관 만들기는 마치 아이들이 걸음마를 배우는 과정과 흡사하지요. 단번에 이뤄지지 않습니다.시도하고 넘어지고, 나는 왜 늘 이럴까 좌절하기도 하고 실패도 많이 합니다. 특히 공동체를 이루며 함께 습관을 만들어 가는 과정은 서로가 지켜봐 주는 것이 좋은 자극이 되지만, 한편으로는 남의 시선을 의식해 그저 흉내만 내면서 헉헉 따라가는 경우도 간혹 있습니다. 그래도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고 삶에 떠밀려 하류로 두둥실 흘러내려 가는 수많은 삶보다는 천만 배 가치가 있는 시도들입니다. 누구나 시행착오를 반복하면서 버둥거리고, 물결을 거슬러 올라가는 연어처럼, 안주하려는 내면의 속삭임과 싸우곤 합니다. 커다란 에너지를 소모하지요. 어떻게 하면 물결을 거슬러 올라 저 원천에 닿는 것이 가능할 수 있을까요? (계속)/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대표

2019-09-29

트럼프의 임기응변식 ‘막말 정치’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이 될 것으로 예측한 사람은 우리나라에서 드물었다. 그는 미국 중하층 백인들의 지지로 대통령에 당선되어 ‘미국 우선주의’ 정치를 활발히 펼치고 있다. 그러나 임기 초부터 트럼프의 절제되지 않는 발언은 세계인들을 불안케 하고 있다. 무슬림에 대한 비하 발언에서부터 최근 우크라이나 대통령에 대한 전화는 트럼프를 탄핵의 궁지로 몰아가고 있다. 트럼프의 한반도 문제에 관심은 미국의 역대 어느 대통령보다 높다. 그러나 그의 정제되지 않은 한반도 관련 발언은 그의 신뢰를 더욱 떨어뜨리고 있다.트럼프는 북한 김정은에 대한 평가도 여러 차례 바꾸었다. 그는 임기 초 핵실험을 강행하는 김정은에게 ‘작은 로켓 맨’으로 비하하였다. 트럼프는 ‘독재자’ 김정은을 이제 ‘좋은 친구’라고 부르고 있다. 그는 북한을 ‘화염과 분노’ 국가에서 ‘엄청난 발전 가능 국가’로 치켜세우고 있다. 물론 흥정의 달인답게 김정은을 협상 테이블로 끌어들이려는 술책이다. 하노이 회담 결렬 후 트럼프는 김정은의 우호적인 편지를 직접 소개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북미 핵 협상이 성공할지는 여전히 의문이다.트럼프는 그의 북미 협상의 성과를 지나치게 선전하고 있다. 그는 북미 간 대화를 하지 않았다면 ‘한반도에서는 벌써 전쟁이 났을 것’이라는 발언도 하였다. 내년 대선을 앞둔 시점의 발언이지만 북미 협상이 없었다고 한반도의 전쟁이 일어났을 것으로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트럼프는 한반도 평화를 위한 그의 역할을 노벨 평화상 감이라는 발언을 수차례 하였다.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오바마보다 자신의 역할이 크다는 것이다. 그는 노벨 평화상위원회의 심사가 공정하지 못하다고 비판하였다. 북한과의 비핵화 협상도 타결되지 못한 시점의 그의 발언은 아무래도 지나치다.트럼프는 주한 미군의 방위비 분담을 과도하게 요구를 하고 있다. 지난해 10억달러(1조3천억원)의 5배인 50억달러를 요구하고 있다. 그가 ‘안보 무임승차론’을 내세워 기존 방위비의 5배나 요구하는 것은 협상의 기본 상식에도 어긋난다. 트럼프는 지난번 한미 합동훈련 중인데도 ‘돈이 많이 드는 한미 합동훈련은 필요 없다’는 말까지 하였다. 미군의 합동훈련 비용까지 한국 측에 전가하려는 내심일 것이다. 다시 한미 방위비 협상은 시작되었다. 트럼프의 이러한 무리한 요구가 관철될 수도 없고 되어서도 안 된다.트럼프의 잦은 이러한 막말은 그의 한반도 평화 노력을 의심케 한다. 세계 지도국 행세를 하는 미국 대통령의 막말은 그의 정치 품격을 떨어뜨린다. 얼마 전까지 같이 일했던 안보 특보 존 볼턴에 대한 비난 발언도 상식에 어긋난다. 부동산 재벌 출신 트럼프의 정제되지 않은 즉흥적 발언은 결국 트럼프식 비즈니스 정치의 화신일 것이다. 그의 변질된 미국식 실용주의적 사고인 그의 발언은 그에 대한 불신을 더욱 증폭시킬 뿐이다. 트럼프의 이러한 정치를 이해하려면 그의 공저인 ‘거래의 기술’부터 읽어야 한다. 트럼프의 이러한 처신이 미국의 내년 대선에서 다시 먹혀들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2019-09-29

학교 패드립 경보

김현욱 시인학기 초에 두 남학생이 주먹다짐을 했다. 친구들이 말려도 막무가내였다. 한 아이는 눈이 뒤집혀서 죽기 살기로 달려들었다. 이마가 찢어지고 코피가 터졌다. 웬만해서는 이 정도로 과하게 싸우지 않는다. 두 아이를 진정시키고 다친 곳을 치료하고 싸운 이유를 물었다. 한 쪽에서 “패드립”이란 말이 나왔다. 어안이 벙벙해서 그게 뭐냐고 물었다. “우리 엄마 욕을 했어요. 니 에미 어쩌고 저쩌고요.”패드립. 패륜과 애드리브를 합친 신조어. 자신의 부모나 조상을 비하하는 패륜적인 언어를 가리킨다. 시사상식사전을 찾아보니 2010년경 온라인게임에서 시작됐다고 한다. “그걸 어디서 배웠어?” “유튜브요.” 아이들에게 물어보니 패드립은 대체로 “니 에미…, 니 애비….”로 시작한다고 한다. “니 에미 애자(장애인)지. 니 애비 없지.” 이게 애들 입에서 나올 소린가. 기가 막혀서 먼 하늘만 바라봤다.요즘은 눈에 띄게 아니 귀에 띄게 청소년들의 욕설을 자주 듣는다. 학교뿐만 아니라 버스에서, 길거리에서, PC방에서, 식당에서 온갖 욕들이 날아다니고 튀어나온다. 욕에도 수준이 있다면 청소년들의 욕하는 습관은 이미 위험수위를 넘은 것으로 보인다. 자신의 자녀는 그렇지 않을 거라고 장담하다가 자녀의 단톡방이나 문자메시지, 연습장에서 육두문자를 보곤 소스라치게 놀라는 학부모도 적잖다.정치인들의 막말, 어른과 부모의 위선, 유튜브와 SNS를 통해 일상적으로 접하는 욕설, 패드립, 막말에 우리 아이들은 이미 병들었다. 학급장기자랑 시간에 동요를 부르고 시를 암송하는 아이는 사라졌다. 학교에서 교사의 생활지도는 명분만 남았다. 좋은 게 좋은 거라는 변명만 남았다. 솔직히 어쩔 도리가 없다. 진심으로 다가가 감화시키는 방법이 유일하지만, 학교 여건은 녹록치 않다. 교사로서 아버지로서 부끄럽고 참담하다. 말은 물과 같다. 물이 오염되면 뭇 생명이 병든다. 말이 오염되면 수많은 정신이 병든다.며칠 전에 학부모에게서 패드립을 당했다는 전화를 받았다. 자신의 아이가 다른 반 친구들에게 패드립을 당했다는 것이다. 학부모는 분노와 모욕감으로 치를 떨었다. 다음 날 패드립을 한 아이들은 친구에게 진심으로 사과하고 반성했다. 그게 그렇게 나쁜 말인지 상처를 주는 말인지 몰랐다고 했다. 그렇다. 우리 아이들은 패드립과 막말과 욕설이 그렇게 나쁜 말인지, 상처를 주는 말인지, 칼보다 더 위험한지, 모르고 마구 내뱉고 있다. 어쩌면 다행이다. 알고 그런다면 얼마나 끔찍하겠는가!얼마 전 수원 어느 노래방에서 중학생들이 초등학생을 잔인하게 폭행하는 영상이 올라와 공분을 샀다. 네티즌들은 소년법을 개정하라며 또다시 국민청원을 냈다. 갈수록 청소년들의 인성은 메마르고 영혼은 거칠어지고 있다. 패드립이란 말이 서글프다. 쉬는 시간에 아이들 몇몇이 욕설을 하는 소리를 듣는다. 어디서 배웠을까? 어쩌면 좋을까? 적어도 친구의 부모를 비하하고 모욕하는 패드립만은 하지 말아야 할 텐데.

2019-09-29

수면자 효과를 극복하려면

정은숙 생각학교ASK 연구원신뢰도가 낮은 출처에서 나온 메시지가 시간이 지나면서 오히려 설득력이 증가하는 현상을 수면자 효과라고 한다. ‘소문은 자고 일어나면 어디서 들었는지 잊어버린다.’는 외국 속담에서 비롯한 심리학 용어다. 사람들이 정보를 접할 때 얼마나 쉽게 받아들이는지 경고하는 용어다.정보가 폭증하는 현대 사회는 출처가 분명하지 않은 말이나 지식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다. 때로 검증되지 않은 정보가 내 기억창고에 흘러들어 진짜와 가짜의 분별없이 한 자리를 차지하는 경우가 있다. 같은 말을 여러 사람으로부터 반복해 듣다 보면 진실이 아니라 해도 결국 진실로 둔갑해 힘을 발휘한다. 불분명한 정보나 지식이 꾸역꾸역 흘러들어오면 나도 모르는 사이 그런 관념이 선입견이 되기도 하고 결국에는 고정관념으로 인격의 한 모퉁이를 차지한다. 무서운 일이다. 이렇게 무방비 상태로 들어오는 잘못된 정보나 관념은 어떻게 걸러낼 수 있을까? 최소한 긴장하며 확인해 보려는 노력은 해야 하지 않을까?독서 모임을 통해 책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는 즐거움이 크다. 몇 년째 독서 모임에 참여하다 보니 어느 시점이 되면 꼭 나오는 말이 있다. “책 안 읽는 사람들은 말이 안 통해요. 만나서 대화를 나눠도 재미가 없어요.” 책에 재미를 붙이고, 한 권 한 권 독파해 나가고 토론하면서 즐거움에 빠져 악의 없이 던지는 말이다. 그런데 여기서 한 번 의문을 제기해 본다. 과연 그럴까? 반드시 책을 읽어야 말이 통하는 것일까?책을 많이 읽을 형편은 못 되지만 제대로 된 인격을 갖춘 사람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나도 책을 조금 읽기 시작하면서부터 조금 아는 것이 전부인 양 진리인 양 상대를 설득하고 계몽하려는 교만함이 있었다. 책이나 관계를 통해서 무의식 가운데 수면자 효과로 흘러들어온 얇은 지식은 심지어 ‘책을 읽지 않으면 말이 통하지 않는다’라는 편견까지도 만들어 낸다.일상생활에서도 마찬가지다. 관계 속에서 부딪히는 많은 불협화음도 나중에 찬찬히 따지고 보면 잘못된 정보나 오해가 유발한 선입견이 원인으로 밝혀지는 경우가 의외로 많다. 모호한 대답, 정확하지 않은 정보를 적당히 혼합해 내 생각으로 예측한 ‘카더라(그렇다고 하더라)’통신에 우린 얼마나 길들어 있고 희생당하고 있는가?내게는 수면자 효과에 기인한 고정관념은 없는가 따져봐야 한다. 확인되지 않고 이치에 맞지 않는 근거 없는 정보들을 가볍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일이다. 사사로운 개인적 감정을 기준으로 눈 가리고 귀 닫고 쏟아지는 정보를 분별없이 받아들인 것은 얼마나 많았던가. 아이들에게 스마트 폰을 맡기지 않으려고 하는 엄마들의 고민도 이런 염려 때문이다.정보들은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는데 과연 어떤 것들이 진실이고 어떤 것들이 가짜인지 분별하기란 쉽지 않다. 그렇다면 이미 생활 깊숙이 자리잡은 검증되지 않은 정보와 지식은 어떻게 다뤄야 할까? 최소한 확인 가능한 정보인지, 내가 잘못 알고 있는 선입견으로 판단을 잘못 하가 있는 것은 아닌지 확인하려는 시도 정도는 필요하지 않을까?나의 작은 실천 사항은 이렇다. 첫째, 하지 않아도 될 말은 굳이 입 밖으로 꺼내려 하지 말자. 둘째, 내가 확인하지 않은 사실을 진짜인 것처럼 전하지 말자. 셋째, 사물이나 사람에 대한 정보가 확실하지 않다면 내가 아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하자. 넷째, 사람에 대한 선입견이 있다면 바로잡으려는 노력을 통해 드러나지 않은 속뜻을 살펴보는 정성을 갖자.우리는 모두 무한한 가능성을 분명히 갖고 있지만 새로운 일이나 환경에 도전하지 못하는 이유는 직접 경험해 보지 않은 세상에 대한 막연한 편견이 발걸음을 뗄 수 없게 만든다. 슬픈 일이다.내 지식을 도둑맞지 않도록, 거짓이 잘못 침범하지 않도록 깨어나야 한다. 수시로 진실인지 점검하는 일을 멈추지 않아야 한다. 진짜와 가짜를 분별할 수 있는 지혜를 길러야 한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라인홀드 니버를 따라 기도한다. “변화시킬 수 있는 것들은 실천하는 용기를 주시고 변화시킬 수 없는 것들은 받아들이는 침착함을 주소서. 내게 이 둘을 구별하는 지혜를 주소서.”

2019-09-29

행정에서 변화의 시작은 소통이다!

오도창 영양군수지난 선거운동 과정에서 목이 쉬도록 민선 7기의 청사진을 제시하고자 지역 곳곳을 살피던 시기가 있었다. 영양을 변화시킬 다양한 구상안을 염두에 두고 그 계획을 이루고자 다짐했던 나 자신과 군민과의 약속을 실현하고자 매일 숨가쁘게 달려왔다.하지만 많은 일을 해도 돌아보면 늘 제자리 인듯 아무런 변화를 느끼지 못할 때가 많다. 아쉬움에 내가 가는 이 길이 맞는가에 대한 의문도 가지게 되고 영양군수라는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인지에 대해서도 확신하지 못하는 때도 있다. 그러나 쉽게 좌절하지는 않았다. 이상과 현실이 마주하는 모든 문제들은 늘 해결하기 어렵지만, 내가 만들어가는 행정이란 ‘다른 생각들을 모아 더 큰 다름을 만들어가는 과정’이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진짜 행정’을 갈망했던 나의 절실함은 시간이 차차 흘러 ‘변화’와 ‘행복’이라는 민선 7기의 군정철학으로 구현되었으며 이를 실천하는 기본은 바로 소통이었다. 군민과의 소통은 물론 영양군 공직 내부의 목소리를 듣는 일도 중요했다. 우리가 아는바 모든 권력은 군민에게 있으며, 군민이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를 펼칠 수 있도록 돕는 일은 공직자들의 몫이기 때문이다.가장 먼저 6개 읍면을 방문하는 일로 시작했다. 1만 7천여명의 영양군민을 직접 만나 그들의 얘기를 들어보는 것이 우선이었기 때문이다. 민원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우리의 일상생활과 관련된 생활 민원인 건의 사항들이었다. 정말 중요한 것은 민원내용 뒤에 숨겨진 군민들의 현실을 체감하는 일이었다. 영양군수로 취임하기 전 2년이 넘는 시간을 영양부군수로 재직하였고 고향인 영양에서 공직을 시작해 누구보다 지역 현안을 잘 알고 있다고 자부했지만 때로는 나의 경험과 지식이 무용하게 여겨질 때도 있었다.단순히 민원을 해결하는 것을 넘어 구조적이고 만성적인 영양의 문제점을 찾아내는 일이 무엇보다 시급하고 중요했다. 군민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야 했다. 눈높이를 맞춰야 했고 읍면을 방문하고 시간이 되면 미처 돌아보지 못한 시장이며 마을 경로당 같이 사람이 있는 곳이면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방문하여 듣고 또 들었다.수많은 각기 다른 민원이지만 결국 가리키는 곳은 하나였다. ‘영양군은 어떻게 변화 되어야 하는가?’‘작은 변화와 혁신’은 시간이 지나 차차 쌓여 큰 변화를 이루게 된다. 민선 7기 영양군은 시작부터 행보를 달리했다. 형식적인 인수위원회가 아닌 실질적인 업무 인수인계로 시작해 순수 민간으로 구성된 민선 7기 영양군수 공약 군민평가단 위촉, 생활민원바로처리반과 소상공인 지원을 위한 각종 경제 관련 조례 재개정 추진으로 생활밀착 행정과 지역경제 회복에 토대를 둔 행정에 방점을 찍었다.취임 초기부터 정책의 방향성을 선명하게 결정한 것이 시작이었다면 새로운 추진력으로 삼고자 내부 구성원들과의 소통에도 집중하였다. 공직자의 소통의 창구를 늘리고자 조회에서 석회로 변경하고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충실한 내용으로 영양군의 바람직한 변화에 대해 생각하고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깊이 고민하는 체계를 다졌다고 생각한다. 담당부서에도 정책에 대한 더 많은 고민을 던져 영양군의 주인인 영양 군민들의 뜻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요청해왔다. 영양의 미래와 변화에 대한 우리의 생각을 정확히 정의하기엔 이제 막 1년이 넘은 시간으로는 명확한 정답을 내릴 수는 없다. 하지만, 적어도 영양군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을 같이 고민하고 나누는 관점의 방향은 하나로 가까워졌다고 말할 수 있다.작지만 변화의 시간을 거치며 어떤 오류가 있었는지 행정이 군민에게 군민이 행정에게 어떤 생각을 달리하고 있는지, 그 모든 오류와 다름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상황을 행정의 기준으로 보고 있는 것은 아닌지를 두고 치열하게 고민하고 있다. 관례적으로 실시하는 사업을 재검토하고 정비하는 일, 새로운 변화를 유도하는 일, 주민 편의에 맞춘 생활 행정을 실천하는 일 등이 그러했다.원칙은 만들어졌고 이것을 토대로 민선 7기 영양군은 군민 중심의 정책을 펼 수 있는 새로운 공간들이 만들어졌으며 만들어 가고 있다. 그러다 보면 나, 영양군 공직자 그리고 영양 군민 모두가 영양군을 넘어 사회 전반이 과거와 현재를 넘어 미래로 향하고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언제쯤에는 “늘 제자리라고 느꼈으나 사실 우리는 한걸음씩 진보하며 변화하고 있었다”라거나 “더 큰 다름, 그것은 다름 아닌 ‘변화’다”라는 말을 서로에게 해줄 수 있지 않을까.

2019-09-29

균형발전을 위한 제언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2019년 대한민국균형발전박람회가 25일부터 27일까지 사흘동안 전라남도 순천시 순천만국가정원 일대에서 열리고 있다. 지난 2004년 부산을 시작으로 해마다 열리는 국내 최대 규모의 지역박람회가 기초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 열리기는 처음이어서 더욱 의미가 깊다.특히 이번 박람회에 참석한 지역균형발전위원회 멤버들 가운데 국장급 3명이 내년 총선에 출마하기 위해 조만간 위원회를 떠난다고 해 환송회를 치렀다. 경북 경산에 출마 예정인 전상헌 국장, 경기도 김포에 박진영 국장, 전라남도 광주에 조오섭 국장이 그 주인공들이었다. 이들 가운데 전성헌·박진영 국장은 대구·경북출신이어서 자주 만나 지역균형발전정책에 대한 의견을 나누던 사이였고, 조오섭 국장 역시 광주 출신이지만 지역균형발전위원회에 몸담은 동안 균형발전정책에 대한 여러 제안을 함께 고민했던 사이인지라 무운을 빌어주었다.그들과 내년 총선에 대한 얘기를 나누다 대구·경북이 찬밥신세가 되고 있다는 대목에 이르러 여러 상념이 떠올랐다. 국가균형발전위원회는 대통령 직속 위원회로서 지역균형발전정책을 총괄하는 기관인지라 행정부처에 대해서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하곤 했다. 실제로 지역의 현안사업에 대한 예산을 확보하는 데, 집권여당 소속인 이들의 입김과 영향력이 적지않게 작용하는 듯 했다. 그래서 지역균형발전정책에 대한 식견도 상당하고, 처신도 반듯한 이들이 각자 원하는 지역구에서 국회의원 뱃지를 달게 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하지만 정치현실은 필자의 바람과는 다르다. 대구·경북지역의 경우 더불어민주당 간판으로 국회에 입성하는 것은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지난 총선에서 대구 수성갑의 김부겸 의원이 거의 유일하게 민주당 소속으로서 당선됐고, 홍의락 의원은 무소속으로 출마해 민주당에 입당한 경우다. 나머지 대구 10곳, 경북 13곳은 모두 자유한국당 소속 국회의원들이 당선돼 ‘자유한국당 텃밭’으로 불리는 게 대구·경북의 실상이다. 최근 민주당이 자유한국당의 아성인 대구·경북지역 공략을 위해 젊고 참신한 당료나 공무원 출신들을 차출해 새바람을 불러일으킬 채비를 하고 있다. 또 이해찬 대표와 이인영 원내대표 등 더불어민주당 지도부는 25일 이날 국회에서 ‘민주당 대구시당 예산정책 간담회’를 열고, 대구시에 대한 전폭적인 예산 지원을 약속하는 등 대구 민심 구애에 나섰다. 대구·경북지역 내년 현안사업 예산을 당지도부가 직접 나서 챙겨주겠다니 약속이 실현되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어쨌든 우리나라는 정치가 사회·경제·문회 모든 분야를 끌어가는 정치과잉이 문제다. 필자는 정치는 정치인들끼리 알아서 하도록 내버려두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다만 지역민을 대표해 일할 일꾼을 뽑는 총선에서는 무슨 당소속이냐가 아니라 지역을 위해 열심히 일할 수 있는 역량이 있는지를 보고 뽑아야 한다고 믿는다. 그래야 당별로 패거리를 나눠 싸움박질이나 하는 정치꾼들을 배제할 수 있다. 또 그런 민주적인 표심의 발현이 지역균형발전에 도움이 될 인재를 뽑을 수 있다고 믿는다.

2019-09-26

삼겹살의 위기

삼겹살은 한국인이 즐겨 찾는 대표 요리다. 돼지 갈비 부근에 붙은 부위로 살과 비계가 세겹으로 겹쳐 보이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삼겹살이 우리 국민의 대중적 요리로 자리를 잡은 것이 언제인지는 정확지 않다. 돼지고기를 구워먹는 문화는 고구려 때부터 있었지만 돼지고기 구이는 양념구이지 삼겹살처럼 생고기를 불판에 굽는 형태는 아니었다. 조선시대 때도 고기를 삶거나 찌거나 국으로 끓이는 형태가 보통이었다. 굽는 요리는 한참 뒤다.언론에서 삽겹살을 처음 언급한 것은 1934년 서울 모 일간지에서다. 삼겹살이 우리 국민의 대표 음식인 반면에 등장 시기는 그리 오래전이 아님을 짐작할 수 있다. 속설에 따르면 1980년대 강원도 탄광촌 광부가 기름기 있는 음식을 먹으면 목의 먼지를 씻겨낸다고 하여 시작했다는 설도 있으나 근거는 없다. 요리업계는 1970년대 중반 우리경제 발전과 더불어 육류소비가 늘면서 삼겹살이 널리 보급됐다고 본다. 특히 휴대용 가스레인지 보급이 확대되면서 삼겹살을 구워먹는 문화가 전국화됐다고 한다.삼겹살은 서민의 단백질 공급원으로서는 이만큼 좋은 음식도 없다. 풍부한 지방 덕에 맛도 뛰어나다. 값이 비교적 저렴하고 영양학적으로도 알맞다. 돼지고기에 있는 필수아미노산과 비타민 B₁은 쇠고기보다 10배나 많다. 지친 피로를 풀고 몸의 활력을 돕는 데 최고다.아프리카 돼지 열병이 확산되면서 삼겹살 애호가의 불안감이 증폭되고 있다. 돼지열병에 걸리면 무조건 폐사하는데 돼지 열병이 진정될 기미가 안보여서다. 북한에서는 돼지열병으로 일부 지방에서는 돼지가 전멸한 상태라 한다. 이러다 삼겹살을 영 못 먹는 건 아닌지 우스개 소리도 나온다. 서민 요리 삼겹살이 위기에 빠졌다./우정구(논설위원)

2019-09-26

지금 생각 옛날 생각

요즘 매일같이 조국 교수 얘기가 방송 화제다. 한 사람이 이렇게까지 화제가 되는 일도 따로 없을 것 같다.사실 나는 요즘 정치라는 것에서 의도적으로 거리를 두려 한다. 뉴스도 자세히 보려 하지 않아서 무슨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수 없다.어제는 옆 방 계신 선생님이 무슨 시국 성명을 같이 하자고 하시는데, 깊이 생각해 보겠노라 답하고 나왔지만 이런 성명까지 하다가는 내 이름이 얼마나 닳아 버릴지 알 수 없어 그럴 생각도 없다.며칠 전 청문회라는 것을 할 때가 생각난다. 그날 텔레비전 방송이래야 우연히 보게 된 것뿐이다. 하루 종일 기자 간담회를 하고 청문회를 하니 지나가다 안 볼래야 안 볼 수 없는 것이다.청문회 풍경이라는 게 새삼스러웠다. 사회를 보는 사람은 판사 출신, 질의를 하는 야당 의원들 가운데에는 검사 출신, 또 그 당의 대표라는 사람은 공안검사 출신이었고, ‘심문’을 받는 당사자는 왕년의 ‘사노맹’ 활동으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언도 받은 사람이었다. 지나가는 얘기지만 이 사노맹은 내가 알기로 6·25 한국전쟁 이후에 이 땅에서 펼쳐진 비합법적 사회주의 운동 그룹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크고 지속적인 조직이었다. 물론 나도 모르게 생겨났다 사라진 그룹들도 있겠지만 말이다.그때는 사회주의 운동이라 해도 그 실체가 당사자들 스스로에 의해서도 실체적으로 인식되지 못한 면이 컸다. 그러니 그 실체적 현실이 소련이나 중국이나 북한의 그것이라 생각되지 못한 면도 있고, 군사독재 체제나 그 직접적인 후계체제에 대한 저항이나 민주화운동의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는 면이 있었다. 그것이 1980년대에 ‘대중화’ 된 ‘사회주의적 민주화운동’을 정당화 할 수 있는 한 요소일 수도 있었다.물론 나는 이 문제를 그렇게 느슨하게 사고하고 있지는 않다. 지적 무능력이나 게으름 같은 것이 세계사의 추이에 둔감하게 했다면 그 책임을 변명해 줄 어떤 근거도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변명에 발빠르지 말아야 한다.세월이 흘러 안기부나 공안검찰이나 정보 경찰에 쫓기던 사람이 전혀 다른 사유로 ‘심문’을 받는 듯한 느낌이 들었고, 그것이 나를 고통스럽게 했다. 자본의 탐욕을 비판하던 사람이 바로 그 죄명으로 왕년의 판검사들 앞에 선 것이라고나 할까.나는 매일 계속되는 ‘조국’ 사태에 가급적 눈 돌리지 않을 것이다. 페이스북에서는 문학인들이 조국을 지키느라 난리가 난 모양이다. 문학은 과연 무엇이며 무엇을 해야 하는지 생각들이라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방민호 서울대 국문과 교수 /삽화 = 이철진한국화가

2019-09-26

함박도

서의호 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함박도를 아십니까?갑자기 함박도 라고 불리는 섬이 관심을 끌고 있다. 아마도 이런 섬이 있다는 걸 이번에 알게 된 국민들도 많을 것 같다. 조그만 한반도에 3천여 개의 섬이 있다고 하는데 독도의 10분의1 밖에 안 되는 작은 무인도 섬 함박도를 기억하긴 쉽지 않다.그런데 갑자기 이 함박도가 관심을 끄는 건 웬일일까? 최근 서해 북방한계선(NLL) 인근 함박도에 북한이 레이더 기지를 건설한 것이 확인되었다고 한다. 함박도 정상에는 감시소로 추정되는 2층 건물 위에 인공기가 펄럭이고 있고 이 건물 바로 옆 철탑에는 레이더 감시시설이 설치돼 있고 북한군 30명이 막사로 쓰는 것으로 추정되는 건물 2개도 포착되었다고 한다.국방부 관계자는 “이 레이더는 군사용 레이더가 아니라 일반 상선이나 어선에 달려있는 항해용 레이더”라며 “선박 감시만 가능한 것”이라고 애써 강조하고 있다. 함박도는 서해 연평 우도에서 북쪽으로 8㎞, 말도에서 서쪽으로 8㎞ 떨어진 1만9971㎡(6000평) 크기의 작은 섬이다. 대연평도와는 28㎞ 떨어져 있다. 섬의 모양이 함박(함지박)과 닮아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이 섬의 주소는 공식적으로 인천광역시 강화군 서도면 말도리 산97번지이다. 함박도는 강화군 서도면 어민들이 오래전부터 갯벌에서 조개잡이 어업을 하던 무인도였으나 현재는 어로가 금지된 군(軍)의 작전구역이고 주소가 인천광역시라면, 북한군이 한국 땅에 무단 상륙했다고 밖에 볼 수 없다.함박도가 대한민국 영토였다는 증거가 많이 있지만 1965년 10월 발생한 북한의 우리 어민집단 납치 사건을 보도한 당시 신문 기사를 보면 더욱 뚜렷해진다. 1965년 10월30일자 주요 일간지들의 1면 기사의 큰 제목은 ‘서해 말도 근해서 북괴 무장선에 50여 명이 조개 캐다 집단 피랍’이었다. 이 신문 1면에 실린 지도에는 함박도가 휴전선 아래에 그러져 있다. 이들 신문 기사 어디에도 어민들이 NLL(북방한계선)을 ‘넘었다’거나 ‘침범했다’는 표현은 없었다.‘남방한계선 근처에서 조개잡이를 했다’는 기록뿐이었다. 또 함박도 인근을 ‘(조개잡이) 황금어장’으로 표현하기도 했다.현재 주소가 대한민국으로 되어 있는 섬이고 한국의 땅을 북한이 불법 점령하고 있는 것이다. 정부는 주소 등록이 잘못되었다고 변명을 할 일이 아니라 명확히 함박도의 소유권을 규명해야 한다. 대한민국 땅을 북한이 장기간 실효 지배해온 것이라면 그렇게라도 발표하고 당장 찾지 못한다고 하여도 우리 땅임을 선언해야 한다.북한의 눈치를 보고 있는 정부의 대북정책의 모습이 이번 함박도 사태에서도 여실히 보여지고 있다. 함박도가 한국의 영토라고 선언하고 북한에게 철수하라고 왜 소리치지 못하는지 국민들은 답답하기만 하다. 정부가 앞장서서 북한 땅이라고 홍보하는 모양새는 국민으로서 너무 자존심이 상하는 모양새이다. 그렇지 않아도 조국 사태로 어수선한 정국에 국민의 자존심이라도 세워주어야 하지 않을까?

2019-09-26

한국, 2019년 가을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소설가 김승옥의 단편 ‘서울, 1964년 겨울’에는 세 젊은이가 등장한다. 스물다섯 살 대학원생인 안(安)과 구청직원인 나, 서른다섯 살 가량의 월부 서적외판원이 포장 술집에서 우연히 만난다. 외판원이라는 사내는 그날 급성뇌막염으로 죽은 아내의 시체를 병원에 팔았다는 고백을 하고, 그 돈을 다 써버릴 때까지 같이 있어주기를 간청한다. 마지못해 함께 술을 마시고 화재현장 구경을 하고 밤늦게 여관에 들었는데 이튿날 아침에 보니 그 외판원이 죽어 있었다는 내용이다.제3공화국이 출범한 이듬해인 국민소득 103달러 시절었다. ‘뚜렷한 가치관을 갖지 못한 도시인들의 방황과 연대감 상실로 인한 절망’을 주제로 한 이 소설은 암울하고 께름칙한 분위기로 끝나지만 정치적 현실의 단면을 보여주는 작품은 아니었다. 이른바 4·19와 5·16이라는 양대 정변을 겪은 후의 불안정한 상태에서 젊은이들이 정체성의 혼란과 경제적 궁핍에서 오는 실존적 불안과 좌절을 앓을 수밖에 없는 현실을 반영한 소설이었다.그로부터 55년이 지난, 2019년 가을을 시대적 배경으로 하는 소설을 쓴다면 어떤 캐릭터가 적절할까. 아마도 대다수가 요즘 연일 매스컴을 도배하는‘조국’ 일가와 그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가 더없이 좋은 소설거리라는 생각에 동의할 것이다. 아니 ‘조국사태’ 그 자체가 어떤 소설보다도 더 극적이고 적나라하게 이 시대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흥미진진한 한 편의 드라마다. 한 가지 더 흥미로운 사실은 일부 유명 소설가들이 ‘조국’을 비호하는 발언을 내놓고 있다는 것이다. 소설이란 냉철한 이성의 산물은 아니라는 반증이라고나 할까.한 때 운동권에 속하기도 했던, 사회주의 성향의 한 인물이 국립대학 교수가 되고 마침내 법무부 장관에 오르기까지의 과정에서 노정하는, 우리 시대의 속살과 민낯은 대다수 서민들에게 적지 않은 충격과 배신감을 안겨준다. 강남좌파로 불리는 기득권층의 실상과 내면세계에 대해서는 심도 있는 분석과 새로운 조명이 필요한 시점인 것 같다. 그들이 우리 사회에 끼친 영향과 그로 인해 형성된 세력이 국가의 존망을 좌우하기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그들이 공평과 정의라는 명목으로 포장한 사회주의적 이념을 맹목적으로 신봉하고 추종하는 무리들이 떠받치고 있는 기득권의 위험성이 도처에 불거지고 있는 현실이다.현 정권을 장악한 좌파세력은 사회주의적 이념을 실현하겠다는 의지와 행동을 공공연하게 드러내고, 그런 시책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색깔론이니 냉전논리니 하는 프레임을 씌우거나 적폐로 몰아 속박하기를 서슴지 않는다. 때마침 ‘조국사태’가 터져서 그들이 내세우던 공평과 정의가 위선과 가식이었다는 게 밝혀져 분노와 원성이 높아지고 있다. 결국 국민들 각자가 깨우치는 수밖에 도리가 없다. 그러기 위해서는 좌우 편향의 정권이 여러 번 뒤집혀야 한다. 그래서 어느 쪽이든 맹목적인 진영논리의 추종이나 고정관념이 허망하다는 걸 체득해야 한다. 태풍 ‘타파’가 지나가고 다시 날이 갰다. 이 가을 우리 정국에도 모든 악습과 불의를 타파하고 공명정대한 계절이 오기를 기대한다.

2019-09-26

목숨을 바칠만한 귀중한 것

이카루스의 실패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그 도전은 죽음으로 끝났지만, 고대 그리스에서 잉태한 하늘을 날려는 염원은 라이트 형제에 의해 비행기를 꿈꾸게 했고 미국과 소련이 죽을 기세를 다해 우주선 개발에 착수하게 했으며 불과 반세기 만에 엘론 머스크는 지구로 귀환하는 우주선까지 뚝딱 만들어 냈습니다.오늘날 이카루스의 비극에 도전이라도 하듯 태양을 향해 녹지 않을 탄소 복합섬유로 몸을 감싼 태양 탐사선 파커를 날려보내는 데까지 인류의 꿈은 이뤄지고 있습니다.꿈을 향해 날갯짓하는 우리의 인생. 추락할 수도 있고 크게 다칠 수 있으며 목숨까지 잃을 수 있지만 도전하는 인생이 아름답습니다.마틴 루터 킹이 38세에 남긴 명연설 ‘목숨을 바칠만한 귀중한 것’, 쩌렁쩌렁한 그의 음성에 귀 기울이며 생각에 잠깁니다. “목숨을 바칠 수 있을 만큼 귀중한 것을 찾지 못한 사람은 고달픈 인생을 살아야 합니다. 저처럼 서른여덟 나이 먹은 사람이 있다고 합시다. 언젠가 이 사람은 어떤 위대한 원칙이나 위대한 사안, 위대한 대의를 위해 일어나야 할 시점을 맞이합니다. 이 사람은 겁이 나서 혹은 좀 더 오래 살고 싶어서 그런 사명을 거부합니다. 직장을 잃을까 걱정하기도 하고, 남들에게 비난을 받고 신망을 잃게 될까 걱정하기도 합니다. 칼에 찔리지 않을까, 총에 맞지나 않을까, 집이 폭파되지 않을까 걱정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결국 대의를 포기하게 됩니다. 좋습니다. 그렇게 해서 아흔 살이 되었다고 합시다. 하지만 이 사람은 서른여덟에 죽은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벌써 오래전에 있었던 영혼의 죽음을 뒤늦게 알리는 것에 불과합니다. 정의를 위해 일어서기를 거부한 그 순간 죽은 것입니다.”가을이 깊어갑니다. 2020년을 석 달 남짓 앞둔 지금. 무엇을 향해 자신의 삶을 일으켜야 할지 성찰하고 고민하는 가을입니다./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대표

2019-09-26

대구시장과 달빛동맹

김규종 경북대 교수·노문학지난 9월 19일 오전 10시 30분부터 낮 12시까지 전남대 인문대학 소강당에서 의미 있는 사건이 있었다. 대구시장이 전남대 학생들을 대상으로 최초로 강연을 펼친 것이다. ‘권영진이 들려주는 달빛동맹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90분 동안 진행된 강연회에 300여 전남대 학생들이 자리를 빼곡하게 채웠다. 휴대전화 한 번 울리지 않는 분위기에서 학생들은 끝까지 경청하는 자세로 권 시장이 전하는 달구벌 대구와 빛고을 광주 강연에 임했다.“대구하면 맨 먼저 떠오르는 게 뭐죠?” 하는 질문으로 학생들의 말문을 틔운 권 시장은 정치학 박사답게 능수능란하게 강연을 인도했다. 그는 학생들에게 유익할 만한 경험을 골라내 인생 선배로서 깨우침을 나누어 주었다. 안동에서 대구로, 대구에서 서울로, 서울에서 다시 대구로 이주한 간단치 않은 인생사는 정치인 이전에 자연인 권 시장을 이해하도록 한다.“나는 왜 대구시장이 되었는가?!” 하는 대목이 인상적이다. 제18대 국회의원 이력을 가진 그는 무엇 때문에 대구에 왔을까. 정쟁국회를 일신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던 그는 정당을 변화시키지 않고는 한국정치의 변화 가능성이 없음을 절감했다 한다.공천권을 가진 자가 여의도 정치를 좌지우지하고, 그에게 줄을 대야 국회의원이 되는 정치상황에 절망했다는 권 시장. 대구의 12명 국회의원보다 1명의 시장이 되어 대구를 변화시키는 일이 국회의원 직분보다 소중했다는 말도 보탠다. 청년들이 해마다 대구를 떠나는 비감한 사태를 종결하고, 그들에게 꿈을 주는 시정(市政)을 펼치고자 진력해왔다는 권 시장. 목표달성은 미완이지만, 그것을 향한 여정은 지속되고 있음을 강조한다. 대구처럼 광주 청년들도 서울로 떠나가고 있음을 적시하면서 그는 대구와 광주의 상생과 공존을 피력한다.임란 당시 의병활동과 1929년 광주학생운동 그리고 5.18 민주화운동의 광주와 1907년 국채보상운동과 1960년 2·28의거를 경험한 대구의 협력을 언급한다. 의향이자 예향인 대구와 광주가 과도한 수도권 집중으로 피폐해진 지역발전의 견인차 노릇을 하자고 목소리를 높인다. 그것을 위해 광주와 대구를 잇는 고속철도건설이 필수적이라고 방법론도 제시한다. 대구와 광주를 오가는 과정에서 영호남의 단결과 시너지 효과가 배가될 것이라고 말한다.서울과 경기도에 특혜와 특권이 몰려있음에도 신도시를 만들고 지하도로를 뚫겠다는 발상은 지방말살을 결과하는 것이 아닐 수 없다. 이런 까닭에 대구와 광주, 영남과 호남이 손을 맞잡고 지역의 상생과 화합과 발전을 함께 도모함은 당연한 일이다. 전남대 학생들에게 넓은 시야를 가지도록 권 시장 강연은 시의적절하다고 생각한다. 그의 강연을 계기로 영호남 인적교류가 보다 활발해지기를 기대한다.이번 강연은 전남대 인문대학 류재한 학장이 권영진 대구시장을 초청하여 진행되었으며, 정병석 전남대 총장과 대학본부 관계자들의 노고에 힘입은 바 크다. 역동적인 대한민국의 미래를 걱정하는 양심적인 지식인들이 있는 한 우리나라는 오래도록 건재할 것이다.

2019-09-25

한계를 넘어선 도전

테세우스에게 한눈에 반한 크레타 공주 아리아드네는 미궁을 설계한 다이달로스를 찾아와 탈출법을 알려 달라 떼를 씁니다. 다이달로스는 공주에게 괴수를 죽이는 칼과 붉은 실뭉치를 전합니다. 미궁에 들어갈 때 실을 풀어 나중에 그 실을 따라 빠져나올 수 있었던 거지요.아무리 괴수지만, 자기 아들을 죽이는 음모에 가담한 다이달로스를 크레타 왕 미노스가 가만히 둘리가 없습니다. 파란만장한 다이달로스의 운명. 결국, 그는 아들 이카루스와 함께 높은 탑 안에 갇히는 신세가 됩니다. 이카루스는 창밖에 날아가는 새를 보면서 반짝이는 아이디어를 얻습니다.“아버지. 저 새들처럼 날개를 만들어 달면, 우리도 이 탑을 빠져나갈 수 있지 않을까요?”크레타 왕 미노스는 다이달로스의 재능을 아까워해서 파수병에게 그가 발명을 하겠다고 하면 언제든지 재료를 공급해 주라 명령한 바 있습니다.나라에 보탬이 되는 발명을 기대하면서요. 다이달로스는 날개 발명에 착수합니다. 며칠에 걸쳐 그는 튼튼한 날개 발명에 성공합니다. 새의 깃털을 모으고 밀랍을 채취해 날개를 붙입니다.이들 부자는 극적으로 크레타 탈출에 성공하지요. 왼쪽으로는 사모스와 델로스섬을, 오른쪽으로는 레빈토스 섬을 지나 고대 그리스판 아이언 맨처럼 자유롭게 에게해 상공을 날아오릅니다. 아들 이카루스는 비행에 심취해 아래로는 바다 물 가까이 접근하지 말고 위로는 태양을 향해 가까이 날지 말라는 아버지 충고를 잊어버립니다.날개의 신통방통한 능력에 심취해 점점 더 높이 날아오릅니다. 태양을 향해 자신의 한계를 잊어버린 채 더 높은 곳으로 더 높은 곳으로 비행하는 데서 환희와 절정을 맛봅니다.결국, 이카루스의 날개를 붙인 밀랍이 뜨거운 열에 녹아내리고, 바다를 향해 거침없이 추락해 죽고 맙니다. 아버지가 뒤늦게 아들을 만류하려 했지만 때는 늦었습니다. (계속)/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대표

2019-09-25

선물같은 만남

강성태 서예가·시조시인우리의 일상은 모두 만남으로 이어진다. 사람과 만나고 사물을 대하며 자연과 어우러져 살아간다.또한 문명과 만나고 문화를 접하며 사회와의 관계 속에서 새로운 만남의 끈을 이어간다. 만남으로 연결되는 수많은 고리와 인연들, 이 세상 사람들은 모두 저마다 만남에서 비롯되는 촘촘한 관계의 그물망 속에서 살아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러한 선물같은 만남과 인연을 바탕으로 가정을 이루고 공동체를 형성하며 사회생활을 영위해간다.그래서 삶은 끝없는 조우요 부단한 해후라 했던가.예로부터 우리 민족은 씨족이나 부족단위로 마을을 이루며 살아왔다.조상대대로 한 지역에 살면서 계(契)나 두레, 향약(鄕約)같은 것을 정해 서로 도움을 주고 받으며 협력을 도모했다. 바쁘고 힘든 농사일을 같이 하며 협동심과 공동체의식을 키워왔다.그것은 곧 단위 부락의 단합과 결속력을 다지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마을에 큰 일이 생기면 내 일처럼 발벗고 나서서 서로 돕고 위로하며 다독이는 인정 어린 풍습이었다. 어쩌면 동심협력(同心協力)과 상부상조의 미풍은 우리 민족의 큰 저력이 아니었던가 싶다. 이와 같은 미덕의 기저에는 만남과 인연이 있었다.시대의 가치와 사회적인 양상이 많이 변모된 요즘은 어떤가? 지연, 학연 등에서 비롯된 공동체와 이익집단 등 특정한 목적이나 이념을 내세운 각종 단체와 모임이 얼마나 많은가. 그러나 진정한 마음으로 진지한 의견을 개진하며 견제와 균형으로 조직의 순기능적인 면을 살리기 보다는, 배타적이며 맹신적으로 비방과 왜곡을 일삼는 단체가 허다하다. 이른바 ‘내로남불’로 치부하는 사람들이 많아져 대부분 자신과 다른 것을 틀린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다른 것을 틀린 것이라 생각하면 ‘차이’는 ‘차별’이 되고, 사회는 조화의 빛을 잃은 흑백지대가 된다. 그러나 나와 다르다고 생각하면 그것은 이해해야 할 대상이 되고 그에 대한 관심이 상대에게 전해지면 ‘다름’은 점차 ‘같음’이 되기도 한다.최근들어 국내외적인 정세(情勢)가 심상치 않게 흐르는 것 같다. 무역의 파고와 안보의 불안이 가중되고 정치, 사회적 갈등과 경제상황이 바닥을 치는데도 정치권이나 시민단체, 사회단체 등에서는 아전인수격으로 소모적인 논쟁만 벌이고 있다.한데 힘을 모으고 지혜를 짜내도 부족할 판에 목전의 유불리만 따지니, 한심하고 우려스러운 작태가 아닐 수 없다. 상대방과의 차이와 다름을 인정하고 배려와 타협으로 합리적인 중지를 모아가는 슬기가 필요하다. 독단과 배척은 고립과 파멸을 자초하고 비난과 반대를 위한 반대는 공동선을 해칠 뿐이다.하루하루 선물같은 만남이 계속 유지되려면 서로의 관계를 소중히 여기고 존중과 겸양의 미덕으로 이해와 공감의 폭을 넓혀나가야 한다.더불어 손잡고 아름다운 동행으로 나아갈 때 모두의 밝은 내일을 기약할 수 있다.그것은 곧 붕정만리(鵬程萬里)로 향하는 대승적인 길이기도 하다.

2019-09-25

저금리시대

1% 초중반으로 낮아진 은행 예금금리가 앞으로 0%대로 내려갈 가능성이 커지면서 저금리시대가 닥쳤다. 이에 따라 이자를 받아 생활하는 고령층의 한숨이 깊어지고 있다. 지난 7월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인하하면서 시중은행도 연 1% 중후반이던 주요 수신상품 금리를 1% 초중반으로 내렸다. 한은이 내년 1분기까지 기준금리를 현 1.50%에서 1.0%로 내린다면 예금금리 연 0%대 상품도 잇따라 나올 전망이다.뚝뚝 떨어지는 금리에 이자생활자의 고민은 깊어졌다. 2억원을 신용협동조합의 연 2% 후반대 정기예금에 묻어두고 1년에 500만원 가량의 이자를 받아 쓰는 사람들의 경우 금리가 내려 이자소득이 반토막 난다는 소식에 마음이 불편하다. 금리가 더 내려가도 주식을 잘 모르는 어르신들은 예금에 묶어둘 수밖에 없다. 부동산에 투자하고 싶지만 그만한 돈이 없고, 고금리 상품은 원금 손실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저금리가 심화할수록 금융 자산가는 해외투자 상품으로, 자산 규모가 작은 이들은 부동산 리츠 등 중위험 상품으로 옮겨가는 양상이 벌어질 것으로 보인다.정부가 최근 서민들을 대상으로 고정금리형 안심전환대출을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29일 자정까지 신청하면 주택가격 9억원 이하 낮은 가격의 주택대출에 대해 우선지원한다. 하지만 저금리시대를 맞아 시장금리가 하락세를 타고 있는 상황에서 고정금리 대출을 유도하는 격이라는 비판이 있다. 지난 2015년 안심전환대출을 추진했을 때도 정부 말만 믿었다가 손해를 본 차주가 많았다는 점을 생각하면 무턱대고 신청했다가는 오히려 낭패를 볼 수 있다. 저금리시대, 자금운용은 돌다리를 두들겨보듯 조심스러워야한다는 게 전문가의 조언이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19-09-25

비무장지대

장규열 한동대 교수·언론정보문화학부‘삶은 어렵다.’ 심리학자 스캇펙(Scott Peck) 교수의 저서 ‘아직도 가야 할 길(The Road Less Traveled)’의 첫 문장이다. 힘들고 거칠고 고생스러운 길이 싫기는 해도, 살아가는 일이란 누구나에게 어렵다. 이 한 문장은 저자가 ‘진리’라고 표현했을 만큼, 삶은 예외없이 어렵다. 모두에게 어렵다는 확인은 우리를 차라리 안심하게 한다. 내가 힘든 만큼 남도 힘들다는 게 아닌가. 생업에 지치고 입시에 시달리느라 일상이 팍팍하다. 가파른 경쟁의 언덕은 언제나 낮아지려는지. 비좁은 취업의 관문은 혹 열릴 날이 있을까. 다투고 헐뜯으며 끌어내릴 게 아니라, 사실은 모두 서로서로 다독여야 하는 게 아니었을까. 어려운 삶은 가히 ‘전쟁’이 아닌가.비무장지대. 살육과 포화의 기억으로 가득한 한반도의 허리춤. 대통령은 유엔연설에서 비무장지대를 ‘국제평화지대’로 만들어보자고 제안하였다. 전쟁의 기억을 평화의 기대로 바꾸어보자는 생각. 분단의 현장을 화합의 들판으로 바꾸어 보자는 요청에 세계는 어떻게 반응할 것인지. 지난 세월 나뉘어 살았던 길을 돌아보면서 앞으로는 어울려 살 희망을 지어보자는 제언이 아니었을까. 그 옛날, 국제연합 유엔(United Nations)을 세우면서 전쟁을 극복하고 평화롭게 공존하는 지구를 꿈꾸었던 이들의 원대한 소망을 다시 확인하고 있지 않은가. 한반도를 언제까지 강대국의 틈바구니에서 생존이나 모색하는 처량한 신세로만 여길 것인가. 세계가 한반도에서 평화와 소통을 배우는 ‘다리’ 역할을 해야 하지 않을까.꿈이 그렇게 있어도 현실은 이렇게 어렵지 않은가. 비무장지대가 반도의 허리를 가르듯, 국민의 마음은 절반으로 나뉘었다. 생각은 ‘비무장지대’인데 현실은 ‘무장지대’인 셈이다. 겉으로는 웃는 낯인데 속으로는 칼을 품는다. 무기보다 마음이 더 무서운 것일까, 좀처럼 다가설 줄 모른다. 21세기에도 이념은 작동하는지, 끊임없이 너는 어느 쪽이냐 묻지 않는가. 편갈라 줄세우고 내 편 아니면 귀를 닫는다. 확증편향의 무한반복이라 겨레의 마음은 편할 날이 없다. 팩트를 놓고 상식으로 답하면 될 일도 좌우를 가르고 나면 의미가 없다. 언제쯤 우리는 이념으로 갈등하는 일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유엔의 무대에서도 국익을 다투기는 해도 더 이상 이념으로는 경쟁하지 않는다. 비무장지대가 참으로 평화의 무대가 되려면 이념에 붙들린 우리의 모습부터 살펴야 한다.한반도에서 갈등은 분단 탓이라 한다. 세계가 이념을 걷어내는 만큼, 시대가 요청하는 가치에 답해야 한다. 경쟁을 극복하고 상생하며, 다툼을 넘어 공존하고, 이념의 갈등을 딛고 함께 나아가는 한반도를 만들어야 한다.오늘 당장 갈등의 소용돌이 속에서라도, 이를 어떻게 이겨낼 것인지 생각해 보았으면 한다. 삶이 어차피 어려운 것이었다면, 오늘 힘든 한반도와 우리의 운명도 날마다 이겨내야 할 숙제가 아닌가. 삶이라는 전쟁터에도 비무장지대와 평화의 마당을 만들 수 있을까.전쟁보다는 평화가 낫지 않은가.다툼보다는 화합이 낫지 않은가.

2019-09-25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정보와 아날로그아침에 눈을 뜨면 태양이 떠 있고, 알람이 울린다. 이것들은 실제로 일어났고, 이 실제적 일을 우리가 스스로 경험했다. 이러한 경험들, ‘태양이 뜬다’는 사건을 접하고, ‘아침에 태양은 뜬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사건과 사실은 ‘나’의 경험에서 기인한다. 이 경험은 ‘나’ 뿐만 아니라 ‘너’ 혹은 ‘그’의 경험까지 포함한다. 그렇게 본다면 사건과 사실은 ‘우리’가 살아가면서 겪게 되는 모든 것들이다.우리가 살아가는데 있어 이러한 경험들 중 어떤 것은 기억된다. 기억되는 것들 중에서 우리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의미 있고, 가치 있는 것을 정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정보는 우리가 살아가는데 있어 유용하고 중요한 것이다.갑자기 얼굴을 찡그리는 연인은 일종의 신호를 보내고 있다. 그 신호를 제대로 해석하지 못한다면 곤란한 상황에 처할 수도 있다. 그래서 정보는 지식이기도 하다.정보는 직접 말로 전달할 수도 있고, 그림을 그리거나 글로 쓸 수도 있다. 인간은 이런 식으로 정보를 전달하고 전파했으나 정보는 시대를 거듭할수록 다양해졌고 복잡해졌다. 축음기와 사진기가 등장하면서 인간이 아니라 기계가 새로운 정보전달의 주체로 등장하게 되었다. 소리를 저장하는 것 바로 녹음이다. 이것은 획기적인 방법이긴 하지만 그 방법은 간단하고 어떤 면에서는 원시적이기까지 하다. 소리는 진폭을 가지는 파동이다. 즉 말을 하면 공기가 떨리게 되는데 이 진동을 감지해 함께 떨릴 수 있는 날카로운 바늘로 레코더판에 그 파동을 똑같이 새기면 된다.△정보기술의 혁명, 디지털다시 말하지만 정보는 의미 있는 사실이다. 그런데 녹음을 하면 잡음까지도 기록된다. 그렇다면 이것을 엄밀한 의미에서 정보라 부를 수는 없을 것이다. 녹음된 것 안에는 녹음하고 싶은 것과 녹음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 섞여 있다는 것을 간파한 클라우드 섀넌은 자연적인 것 전체가 아니라 정보만을 기록하고, 전달하고자 했다. 섀넌이 찾은 방법, 그것이 바로 디지털이다. 디지털의 어원인 디지트(digit)는 손가락이나 발가락을 의미하는 라틴어이다. 손가락은 접었다, 폈다 하는 방식으로 수를 센다. 손가락으로 숫자를 셀 때 구부린 정도에 따라 저건 0.5, 저건 0.7이다, 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 손가락으로 숫자를 셀 때 ‘0’ 다음에 ‘1’일 뿐 중간값은 없다. 이렇게 어떤 값을 딱 떨어지게 끊어서 표시하는 방식을 디지털이라고 부른다.섀넌 식으로 말하자면 중간값은 일종의 노이즈다. 그러나 어떤 중간도 없이 딱 떨어지는 값은 정보다. 섀넌은 정보만을 저장하는 방법을 찾음으로써, 저장용량을 극대화시켰다. 뿐만 아니라 디지털은 이렇게 저장된 정보를 자유롭게 이동하고 활용할 수 있게 만들어 주었다. 아날로그 정보에는 소리, 그림, 사진, 문자, 필름영화 같은 것들이 있다. 이런 것들은 그 특징에 맞는 저장 공간이 필요하다. 그림이나 문자를 저장하기 위해서는 종이가 필요하며, 소리를 저장하기 위해서는 레코드판이나 테이프가, 사진이나 필름영화는 필름이 필요하다. 이렇게 정보가 저장되는 공간을 매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이러한 아날로그 정보와 달리 디지털 정보는 저장을 위한 특별한 매체가 따로 필요하지 않다. 메모리 칩에 형식과 성질이 다른 정보를 한꺼번에 담아 둘 수 있다. 정보를 전송하고 공유하는 일이 간단히 이뤄진다. 아날로그 시대에 음악을 듣기 위해서는 워크맨과 음악 테이프를 몇 개씩 가지고 다녀야 했다. 영상을 찍으려면 카메라, 필름이 필요했고, 이것을 재생하기 위해서는 인화해야 했다. 하지만 CD플레이어는 음악을 듣는 것을 훨씬 간편하게 만들었으며 캠코더는 필름 없이 찍을 수 있었고, 인화하는 과정 없이도 찍은 것을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많은 시간이 필요하긴 했지만, 지금은 스마트폰 하나만 있으면 된다. 이걸로 음악도 듣고, 영상도 찍고 송신도 할 수 있다.또한 디지털 정보는 가상현실(Virtual Reality) 기술이 결합되면서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뛰어넘을 수 있게 되었다. 현재 각광 받고 있는 VR여행은 집 쇼파에 앉은 채로 그랜드캐넌을 둘러볼 수 있고, 세계최대 산호초 지역인 그레이트배리어리프나 중국의 만리장성을 여행할 수 있다. 그런가하면 실제로 갈 수 없는 화성이나 달 탐험도 가능하다.공강일 서울대 강사·국문학△기술이 자리 잡는 시간디지털 정보기술은 많은 장점들을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기술이 자리 잡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린다. 그건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하나는 가격이 너무 비싸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일종의 편견 때문이다. 새로운 기술이 일상화되기 위해서는 시스템 전체가 그런 기술을 받아들일 수 있는 상태로 바뀌어야 한다. 컬러 TV를 보려면 기존의 수신 방식을 바꿔야 하고, 핸드폰을 사용하기 위해서 기지국이 필요하다. 새로운 기술이 비싼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공학자의 노력과 자본은 이런 기술을 우리의 삶으로 끌어올 수 있다.문제는 사람들은 아무리 편해도 익숙한 것을 더 선호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진기를 처음 본 사람들은 사진에 찍히면 영혼을 빨아들인다고 거부했다. 핸드폰이 등장했을 때 전자파가 사람에게 암을 유발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사용을 꺼리기도 했다. 지금까지 공학은 기술의 발전만을 생각했다면 이제 공학은 인간의 사고나 행동방식과 인식까지로 그 영역을 넓힐 필요가 있다.

2019-09-24

개의 번식(上)

생물은 어떤 자극에 대해 몸을 움직여서 그 자극에 접근하거나 피하는 성질을 가진다. 이것을 주성이라 하는데 주화성(chemotaxis)은 화학물질의 농자차에 자극을 받아 나타나는 주성으로 음식물이나 이성의 탐지에 도움이 된다. 파리는 암모니아에 끌리고, 나방류의 수컷은 암컷이 분비하는 유인물에 의해 끌리는데, 주화성은 많은 고등동물들이 짝을 찾을 때 활용된다. 개들의 경우 암컷이 발정기에 분비하는 물질로 수컷을 유혹하는데, 이런 화학물질을 페로몬이라고 한다. 자연상태에서 개들은 페로몬에 의해 이성을 찾고 자손을 생산하나 현대사회에서는 사람의 선택에 의해 개들의 번식이 결정된다.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번식가는 외형이 멋진 남녀 개를 선택하여 자손을 생산한다. 개 순종의 의미는 그 종이 지니는 모든 특징을 총체적으로 물려받은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데, 그 종의 특징을 객관적이고 서술적인 약속으로 정한 것이 견종 표준이다. 다양한 개 품종들은 자연상태에서 교배되고 자손을 형성하던 초기시대를 지나 사람이 특정 목적을 가지고 개들의 교배에 관여하고 선택한 특정 외형이나 능력이 유전에 의해 후세에 전달된다는 것을 알게 되고 꾸준히 특정 순종들을 만들어왔는데, 다양한 개 품종들은 품종형성과정에 각기 다른 환경과 역사적 배경을 가지고 있다. 견종표준에는 이런 배경과 환경, 각 견종의 특정한 형태, 성품과 능력 등에 대한 규정과 신체 각 부위에 대한 이상적인 모습이 명시되어 있는데, 이것을 바탕으로 각 견종 품종의 선발대회인 전람회, 도그쇼에서 우수한 개를 선발하고 선발된 개는 많은 암컷들과 교배의 기회를 가지게 된다.최근 가십거리로 언론에 보도된 해외 유명 축구선수와 유명 모델의 만남이 운명적 인연에 의한 것인지, 우연히 만들어진 자연스런 기회였는지, 신의 섭리에 의한 만남인지 각자의 가치관에 따라 생각이 다르겠지만, 개의 경우 자손을 만들어 유전자를 후세에 전달하는 과정이 사람의 섭리에 의함임을 개들은 잘 모른다.현대화된 시대에 개들의 사랑과 자손의 번식은 사람에 의해 결정되고 사람에게 버려진 개들은 자연상태의 페로몬에 의해 운명적 인연이나 우연히 만들어진 기회 속에서 자손들을 낳게 되지만 그 자손들은 사람과 함께 살아가는 세상 속에서 환영받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사람과 살아가는 개들 세상에서는 사람의 선택이 절대적인 것이다.스키타이를 비롯한 유목 기마민족들은 동물을 토템으로 삼은 사회였기 때문에 동물이 인간보다 못하다는 생각 자체가 없었다. 이 때문에 자연스럽게 동물을 인간의 동반자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이동훈개들이 노동력을 제공하고 사냥에 관여하고 집을 지켜주던 시절도 있었다. 현대사회의 동물 토템이 사라진 환경과 기계의 발전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은 앞으로 어떤 의미로 개들을 받아들이고 개들의 번식에 관여하게 될까?개들이 지금까지 인간사회에 관여하고 제공했던 노동력제공, 사냥, 경비업무 등은 이미 현재도 그렇고, 미래에도 개들의 주요 임무가 아니다. 결국 개와 인간이 정서적으로 교감할 수 있고 개들을 자녀로 대하기도 하고, 개와 함께하는 시간을 통해 사람이 행복해질 수 있는 분야가 개의 존재 이유가 될 것이다. 어르신들의 노년을 함께하고 빈둥지 증후군의 외로움을 달래줄 수 있는 존재, 미래 사회의 상황에 맞도록 한국의 개에 대한 견종표준과 품종개를 어떻게 만들어갈 것인지 정책적으로 고민해볼 때이다. 독일 쉐퍼트는 벤츠보다 부가가치가 높았었다./서라벌대 교수·반려동물학과 학과장

2019-09-24

학교 내 대안교실의 가능성은? (下)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감출근길에 올려다 본 서쪽 하늘에 한가위 달이 하얗게 떠 있었다. 비록 모습은 한가위 날에 본 둥근 보름달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힘들게 사는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한가위의 희망을 마지막까지 나눠주려는 달의 모습에 힘이 났다. 필자는 생각했다, 저 달이 다시 둥글게 차오르는 날엔 지금보다 더 환하게 살리라고. 그리고 ‘달빛기도’(이해인)라는 시를 떠올렸다.“너도 나도 집을 향한 그리움으로/둥근 달이 되는 한가위//(중략) 우리의 삶이 욕심의 어둠을 걷어 내/좀 더 환해지기를/모난 마음과 편견을 버리고 좀 더 둥글어지기를//(중략)//한가위 달을 마음에 걸어 두고/당신도 내내 행복하세요, 둥글게”시를 생각할수록 시인의 간절함이 느껴졌다. 모난 마음과 편견을 버리고 우리 모두가 내내 행복하기를 바라는 시인의 기도가 꼭 이루어지기를 바랐다. 시인은 시를 통해 우리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을 제시하였다. 그것은 달처럼 둥글게 사는 것이다.모처럼만에 시상이 떠오르려는 순간 방정맞은 메시지 알림 소리에 시상이 날아가 버렸다. 메시지 내용은 개혁을 외치는 장관 이야기! 개혁이라는 말을 보면서 대통령 취임사를 생각했다.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울 것” 도대체 뭐가 평등하고, 뭐가 공정하고, 뭐가 정의로운지 대통령에게 따져 묻고 싶었다. 대통령이 생각하는 평등과 공정이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이 조국에서 가장 불평등하고, 불공정한 분야는 바로 교육이다.그것을 잘 보여주는 제도 중 하나가 ‘학교 내 대안교실’이다. 왜냐하면 같은 중학생이지만 일반 중학교 학생들은 무상교육에 대안교실 프로그램까지 지원받으면서 학교생활을 하지만, 대안학교 학생들은 국가로부터 단돈 1원의 지원도 못 받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많은 예산이 투입된 학교 내 대안교실 프로그램이 효과가 있냐면 그것도 분명 아니다. 대안교실을 정규 교육과정에서 운영하고 있는 학교가 과연 몇 개나 될까? 교무실에서 상담실로 떠넘기기식으로 맡겨진 대안교실이 교육 본연의 기능을 할 수 있을까?“예산은 있는데 대안교실 프로그램에 참가하고자 하는 학생이 없어요. 많은 학생들이 자신들이 문제아로 낙인 찍힐까봐 거부해요. 체험활동도 한 두 번이지, 진짜 힘들어요.”3년 전 컨설팅에서 들은 어느 대안교실 운영자의 하소연이 지금도 귀에 생생하다. 필자는 대안 교실이 성공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다음과 같이 대안교실 컨설팅 보고서를 작성하였다.“담당자를 전문 상담사에서 일반 교사로 전환, 학습과 체험 프로그램이 조화를 이루도록 사업 계획서에 명기, 관리자 및 담당자 연수 조기 시행 (…)”지난 8월 경북 남부권 대안교실 운영자들이 산자연중학교를 찾았다. 필자는 이들이 더 없이 반가웠다. 왜냐하면 학교 내 대안교실 제도가 얼마나 발전했는지, 또 필자의 제안이 얼마나 받아들였는지를 듣고 싶었기 때문이다. 결론은 3년 전과 변한 것이 없었고, 대안교육 담당자들의 한숨소리는 더 커졌다. 예산 쓰기용 학교 내 대안교실, 과연 이대로 좋을까? 이 제도를 주관하는 교육청 관계자에게 묻고 싶다, 대안 교육이란 무엇입니까?

2019-09-24

20대를 위한 지역이벤트도 만들자

김진홍 한국은행 포항본부 부국장요즈음 과거에는 들어보지도 못했던 기발한 지역 축제나 선발대회들이 많다. 영양의 고추아가씨, 김천의 포도아가씨, 남원의 미스 춘향, 장성의 홍길동축제가 있다. 그리고 천안의 흥타령춤 축제나 성남의 춤짱 선발대회 등도 젊은이들이 끼를 마음껏 발산할 수 있는 놀이터가 됐다. 이처럼 지역 특산물이나 지역과 관계되는 옛날 이야기속의 등장인물, 그도 저도 아니면 하나의 주제로 특화시켜 국제적인 규모의 행사까지 확대 가능한 분야를 선정해 지역의 명물로 키워나가고 있다. 각 지역이 이처럼 자기 고장의 독창적인 무엇인가를 열심히 찾고 만드는 데 열중하는 것은 모두 지역경제 활성화라는 최종목표를 이루기 위함이다.그런 면에서 포항도 이들 지역에 비해 전혀 밀리지 않는 소재와 자원을 가지고 있다. 도농복합도시답게 전국 브랜드로 성장한 구룡포과메기를 비롯하여 이제는 부추, 시금치, 문어, 아귀, 가자미 등 지역농수산물을 ‘영일만 친구’라는 통합브랜드로 묶었고, 최근에는 같은 이름의 야시장까지 열고 있다. 포항산 시금치는 수도권에서 이미 ‘포항초’라는 별칭이 붙을 만큼 유명하다. 하지만 이와 같은 농수산물은 계절이나 기후변화에 따라 품질, 시세가 달라질 뿐만 아니라 그마저도 전국 어디에서든 온라인구매가 가능해 관광객을 모으는 역할까지 기대하기는 어렵다.반면, 지역이 지닌 유무형의 문화유산은 연중 어떠한 상황이라도 큰 영향을 받지 않고 고부가가치의 관광자원으로 탈바꿈시킬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금년은 특히 포항시가 시로 승격한지 70주년을 맞이하는 해이기도 하여 지역 단체들도 이를 이용한 다양한 축제나 행사를 기획하고 있다. 포항의 읍면동 단위에서도 해당 지역에 의미 깊은 행사를 적지 않게 개최하고 있다. 그만큼 포항에는 유무형의 문화유산이 차고 넘친다는 이야기다.당장 다음 달인 10월은 문화의 달이기도 하다. 그 직전인 이번 주부터 포항문화재단이 야심차게 준비해온 한국형 암각화의 원형이라고도 평가받고 있는 포항암각화의 특별전(아로새기다, 바위그림 인류최초의 기록)이 포문을 연다. 그 후 포항의 전설인 연오랑 세오녀를 배경으로 하는 제13회 일월문화제도 개막된다. 특히 삼국유사에 나오는 연오랑 세오녀의 설화는 오직 포항만이 유일하게 내세울 수 있는 콘텐츠다. 이것을 주제로 삼은 축제나 행사는 기획하기에 따라서는 전국을 뛰어넘어 국제행사로도 확장시킬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닌다. 포항이 가진 강력한 무형자산의 하나인 것이다.금년에도 일월문화제와 함께 연오랑 세오녀 부부선발대회가 개최된다. 바로 여기에 새로운 축제를 기획할 수 있는 여지가 남아 있다. 지금까지 포항에서 개최해온 부부선발대회는 그대로 두면 된다. 여기에 20대, 30대 젊은이들을 포항으로 유인할 수 있는 이벤트를 새로 만들었으면 한다. 굳이 이름을 붙여본다면 미스터 연오랑, 미스 세오녀 선발대회가 되지 않을까. 다소 철지난 축제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전국의 끼 넘치는 20대, 30대의 미혼 남녀들이 미스터 연오랑과 미스 세오녀를 꿈꾸며 찾아오는 새로운 놀이마당. 이 또한 포항만이 할 수 있는 새로운 관광 상품의 하나가 될 수 있을 것이다.

2019-09-24

미지의 양식(糧食)을 찾아서

도끼, 송곳, 측량자를 발명한 사내가 있습니다. 그의 이름은 다이달로스, 아테네 왕족 출신입니다. 지혜의 여신 아테나에게 건축 기술과 공예술을 배운 손재주가 뛰어난 발명가입니다. 크레타의 여인 나우카테와 결혼해 아들 이카루스를 얻습니다.다이달로스에게는 조카 탈루스가 있습니다. 조카가 너무 뛰어난 재능을 갖고 있습니다. 불과 12살에 조카는 물고기의 등뼈를 보고 날카로운 톱을 발명합니다. 막대기의 한쪽 끝을 고정하고 둥근 원을 그릴 수 있는 콤파스도 척척 만들지요. 다이달로스는 조카 탈루스의 재능을 보고 질투에 눈이 멉니다. 아크로폴리스의 절벽으로 유인해 밀어버립니다. 다행히 이 장면을 본 아테나 여신이 탈루스를 새로 변신시켜 목숨을 구하기는 합니다만, 조카를 살해한 죄로 다이달로스는 사형 선고를 받습니다.다이달로스는 아테네를 탈출하지요. 아들 이카루스와 아내를 챙겨 크레타 섬으로 망명합니다. 당시 크레타는 미노스 왕이 해상무역으로 전성기를 누리던 시절입니다. 미노스 왕은 사람 몸에 소의 머리를 갖고 태어난 아들 때문에 고민이 많습니다. 왕가의 수치요, 난폭하고 사나운 괴물인 아들. 그 유명한 미노타우로스입니다.다이달로스가 망명하자 미노스는 왕궁으로 받아들입니다. 극진히 대접하고 난폭한 괴물 아들을 가둘 수 있는 지하 궁전의 미로를 만들어달라 하지요. 한 번 들어가면 도저히 빠져나올 수 없는 미로를 만들고 아들 미노타우로스를 거기 가둡니다.크레테는 아테네보다 훨씬 부강했습니다. 해마다 아테네에서 선남선녀 7명씩을 공물로 받아 미로에 갇힌 미노타우로스에게 제물로 바칩니다. 이 가혹한 공물에 분노한 아테네 왕자 테세우스가 나서, 자신이 공물로 바쳐진 척하면서 미로에 들어가 미노타우로스를 처단하고 미로를 빠져나오는 데 성공하지요. 이때 테세우스가 미로를 빠져나온 것이, 다이달로스 덕분입니다. (계속) /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대표

2019-09-24

빙하 장례식

빙하는 눈이 오랫동안 쌓여 다져져 육지의 일부를 덮고 있는 얼음층이다. 매년 겨울에 내리는 눈의 양이 여름에 녹는 양보다 많다면 눈은 계속 누적돼 엄청난 두께층을 형성하게 된다.지구상에서 빙하가 차지하는 면적이 지구 면적의 약 10%다. 지구 담수의 68%가 빙하 형태고, 약 30%는 지하수다. 우리가 보는 호수나 강은 담수량의 겨우 0.3%라 한다.빙하는 넓이에 따라 대륙빙하와 산악빙하로 나뉜다. 대륙빙하는 면적이 100㎢가 넘고 두께가 3천m를 넘어 대륙 전체를 하나로 덮는다. 남극과 그린란드가 이에 해당한다. 산악빙하는 산위에서 눈이 쌓이기 쉬운 골짜기나 오목한 지형에 발달한 것으로 알프스, 히말라야 등이 이런 케이스다.지난 22일 스위스 북동부 알프스산맥 기슭에서는 상복 차림의 사람이 모여 빙하 장례를 치렀다는 외신보도가 있었다. 해발고도 2천700m에서 치러진 이날 장례식의 주인공은 사람이 아닌 사라져 가는 빙하였다. 이곳 피졸산 빙하는 2006년 이후 원래 크기의 80∼90%를 잃어 사실상 수명을 다했다 한다. 취리히 대학의 한 빙하학자는 스위스에서 1850년 이후 빙하 500개 이상이 사라졌다고 했다. 지구 온난화로 지구 곳곳이 홍수와 기상이변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가운데 전해진 빙하 장례 소식은 인간의 무모한 자연 파괴에 대한 준엄한 경고로 들린다.지난달 아이슬란드 서부 오크화산지대에서도 700년 동안 존재했던 빙하가 사라진 것을 아쉬워하는 추모비가 세워졌다. 고도 5천895m의 아프리카 최고봉 킬리만자로의 만년설이 1912년 이후 80%가 사라졌다는 소식도 우리를 우울하게 한다. 빙하를 보고 장례를 치르는 인간의 모습에서 우리는 또 다른 두려움을 느낀다./우정구(논설위원)

2019-09-24

‘초장수’시대, 삶의 질이 문제다

윤희정 문화부장(부국장대우)바야흐로 100세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고령화의 급속한 진전으로 100세 이상의 노인이 더 이상 신기하지 않을 만큼 인간의 수명은 길어지는 중이다.200년 전 인류의 평균 수명은 20∼30세에 불과했다. 60년 전 우리나라 평균 수명도 47세에 불과했다. 하지만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평균 수명은 2010년 기준으로 남자가 80세, 여자가 85세에 다가서고 있다. 40년 전 여성의 평균 수명이 66세였으니까 1년에 0.5년씩 늘어나는 셈이다. 이 같은 추세라면 30년 후쯤이면 여성의 평균 나이가 97세 정도가 될 것으로 보인다.줄기세포 등 요즘 생명공학의 발전 속도로 미루어 볼 때 100세 시대는 더욱 앞당겨질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인구의 상당수는 100세 이상의 초장수를 누리게 될 전망이다. 100세 시대에 대한 이해와 이에 대비하기 위한 실천이 필요해지고 있다는 뜻일 것이다.노화 연구의 권위자, 장수학자라 불리는 박상철 전남대 석좌교수는 ‘웰에이징’이라는 책에서 “실체적 초장수의 모습은 항노화, 노화 방지로 표현되는 안티에이징(Anti-aging)이 아니라, 오히려 노화를 받아들이고 능동적으로 수용함으로써 삶의 질을 향상하는 웰 에이징(Well-aging·참늙기)을 보여주고 있다”고 분석한다. “웰에이징으로 가는 길은 우리의 삶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통해 우리의 일상생활을 조금씩 고쳐 가면 된다”는 그는 웰에이징의 건강한 삶을 위한 다섯 가지 원칙을 제시한다. 첫 번째는 ‘움직여야 한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적응해야 한다’, 세 번째 ‘정확해야 한다’, 네 번째로 ‘느껴야 한다’, 다섯 번째로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희로애락애오욕(喜怒哀樂愛惡慾)에 대한 느낌을 솔직하게 표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아울러 인지적 기능을 포기하지 않고 계속 사용하는 것도 중요하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한편으로는 고령화가 사회적 재난으로 칭할 만큼 심각한 수준이라는 걱정도 있다. 지역 재정 악화부터 지방 소멸까지 얽혀 있는 문제들도 한두 가지가 아니라는 염려들도 이어진다.무엇보다 오래 사는 것보다 삶의 질이 문제다. 삶의 내용이 얼마나 보람되고 충실할 것인가, 이것이 문제다. 아무 의미 없이 생명만 연장하는 삶, 즐거움이란 없고 병환으로 고통만 있는 삶이 무슨 의미가 있겠나. 다만 장수는 비용 부담을 수반하므로 자칫 돈 있는 사람은 오래 살고 돈 없는 사람은 일찍 죽는 그런 세상이 오게 생겼다. 따라서 100세 시대를 축복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개인의 재무설계와 국가의 보편적 공공복지 노력이 필수적이다.정부가 2022년부터 사실상 정년을 단계적으로 연장하고 국민연금 의무가입 나이도 현행 60세에서 65세로 상향 조정하는 논의도 재점화된다고 하니 믿고 기다려 볼 일이다.머지않아 노인의 삶의 질 연구를 위한 정부 기구가 만들어져 풍요로운 백세인의 삶도 열릴 수 있지 않겠나 기대한다.

2019-09-24

곰탕은 그릇 바닥이 보일 정도로 맑은 것이 원칙이다

깊고 무겁다. 곰탕 이야기다.곰탕은 ‘大羹(대갱)’이다. ‘큰 국물’ ‘바탕이 되는 국물’이다. 제사상에 올랐다. 지금도 ‘탕국’으로 제사상에 오른다. 역사도 깊다. 수천 년 전부터 중국에서 사용한 음식이고 이름이다. 우리도 오랫동안 제사상에 올렸고 지금도 곰탕은 저잣거리 인기 아이템 중 하나다. 정작 중국에서는 사라졌다.‘조선왕조실록_세종실록_세종오례_길례_찬실도설’에서 전하는 ‘대갱’에 대한 설명이다.(전략) “대갱(大羹)은 육즙(肉汁)뿐이요, 양념[鹽梅]이 없는 것이다. 아주 오랜 옛날에는 저민 날고기뿐이니, 다만 그 고기를 삶아서 그 즙만 마시고, 양념을 칠 줄은 알지 못하였다. 뒤 세상 사람이 제사 지낼 적에는 이미 옛날의 제도를 존중하는 까닭으로, 다만 육즙만 담아 놓고 이를 대갱이라 이른다”고 하였다. (후략)양념[鹽梅, 염매]은 소금과 매실이다. “염매가 없다”는 것은 양념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양념하지 않은 고깃국물이 바로 대갱이고 오늘날 곰탕이다. 양념은 음식 맛을 도드라지게 한다. 왜 양념하지 않은 것을 최고로 쳤을까? 왜 대갱, 곰탕을 으뜸으로 여겼을까?‘예기 교특생(禮記_郊特牲)’에 “대갱을 조미하지 않는 것은, 그 바탕[質, 질]을 귀히 여기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고기를 곤 국물 맛이 바로 대갱의 바탕이다. 바탕 맛, 기본 맛이다. 고깃국물의 맛을 해치지 않기 위하여 조미하지 않았다. ‘본(本)’은 기본이다. ‘질(質)’은 사물의 근본이다. 질박(質朴), 소박함이다. 본질을 지키는 음식이 바로 곰탕, 대갱이다.고기는, 상상 이상으로, 귀했다. 냉장, 냉동시설이 없던 시절이다. 도축하면, 고기를 연기로 훈연하거나, 삶아서 보관했다. 육포(肉脯) 혹은 수육[熟肉]이다. 삶으면 국물이 생긴다. 이 국물이 대갱이다.조선 시대 기록에는 ‘육즙(肉汁)’이 자주 등장한다. 대갱, 육즙, 곰탕은 같다. 굳이 육즙이라고 부른 이유가 있다. 대갱은 무겁고 깊다. 국왕이라 해도 ‘대갱을 먹는다’고 하기에는 부담스럽다. 대갱 대신 육즙이라고 표현했다.세종 4년(1422년), 상왕 태종이 돌아가셨다. ‘조선왕조실록’ 세종 4년 11월의 기록이다. 제목은 “임금이 허손병이 있어 대신들이 육선 들기를 청하다”이다.임금이 허손병(虛損病)을 앓은 지 여러 달이 되매, (중략) 병세는 점점 깊어 약이 효험이 없으니, 유정현, 이원, 정탁 등이 육조 당상(六曹堂上)과 대간(臺諫)과 더불어 청하기를,“(중략) 옛사람이 말하기를, ‘죽은 이를 위하여 산 사람을 상해(傷害)하지 말라’고 하였으며, 또 ‘육즙(肉汁)으로써 구미(口味)를 돕는다.’는 말도 있습니다. 이제 세자가 어린데, 전하께서 상경(常經)만 굳이 지키어, 병환이 깊어져서 정사를 보지 못하시게 된다면 종사(宗社)와 생령(生靈)의 복이 되지 않습니다.”(후략)허손병은 오늘날의 당뇨다. 이해 태종이 돌아가셨다. 아버지, 스승이며 권력을 승계해준 이다. 당연히 소박한 음식, 소선(素膳)이다. 고기, 대갱(곰탕), 육즙은 언감생심 꿈도 꾸지 못한다. 게다가 효자다. 거의 곡기를 끊다시피 한다.세종은 고기 마니아다. 육선(肉膳), 고기반찬이 없으면 식사를 하지 않았던 이다. 몸이 수척해지고, 드디어 당뇨까지 나타난다. 육조에서 고기반찬을 권하지만, 세종은 움직이지 않는다. 육조의 당상관들과 대간까지 나서서 국왕에게 음식을 권한다. 그중 ‘육즙’이 나타난다. 신하들은 “죽은 이를 위하여 산 사람이 다치면 안 된다”는 옛 가르침을 꺼낸다. 그까짓 고깃국물이라고 가볍게 넘길 일은 아니다. 고기 대신 고깃국물[육즙]이라도 중하게 여겼다.고기와 육즙을 피했던 세종이 거꾸로 신하의 육즙을 챙긴 경우도 잦았다.세종 22년(1440년) 1월의 ‘조선왕조실록’ 기록이다. 제목은 “최칠 중에 있는 전 참판 권맹손에게 육식을 권하다”이다. ‘최질’은 상중에 입는 옷으로, ‘최질 중’은 상중이다.(전략) 경상도 관찰사에게 전지하기를, “이제 들으니, 전 참판 권맹손이 최질(衰絰) 중에 있는데 오랜 병으로 몸이 수척하여서 소식(素食)하기에는 적당하지 못하다고 한다. 그러나 경솔하게 권육(勸肉)할 수는 없다. 이제 의원 조흥주의 말을 들으니, 만약 과연 몸이 수척하다면 반드시 육즙(肉汁)을 먹어야 한다고 한다. 경이 전지(傳旨)라고 칭하고 육식하도록 권유해 보라.”역시 상중이고, 소식(素食)이다. 권육은 고기를 권하는 것이다. 아무리 몸이 수척해도 고기를 함부로 권할 수는 없다. ‘의원의 의견을 참고하여’ 육즙을 권한다. 육즙도 육식이다. 국왕이나 신하 모두 고기 먹는 일, 육즙 마시는 일이 이토록 자유롭지 않았다.부모가 돌아가시면 자식은 죄인이다. 삼베옷은 죄인의 옷이다. 음식도 마찬가지. 소식이다. 고기는 죄인의 음식이 아니다. 먼저 금하는 것이 고기, 육즙, 대갱, 곰탕이다.곰탕, 저잣거리로 나오다일제강점기, 대갱, 곰탕은 크게 바뀐다.한반도에서 가장 오래된 곰탕집은 서울 명동의 ‘하동관’이다. 곰탕, 대갱이 저잣거리의 음식으로 나온 것이다. 수하동에 ‘하동관’을 세운 이는 고 김용택 씨다. 김 씨는 1938년 무렵, 청계천에서 인쇄소를 경영했다. 인쇄소는 당시 ‘문화 사업’이었다. 일제가 만주를 시작으로, 중국 대륙을 침략하던 시기다. 경기가 좋지 않았다. 김 씨는, 먹고 살고 자식 공부시키기 위하여 곰탕집을 차린다. 가족들 특히 아들, 딸의 반대가 극심했다. 양과자 점이나 빵집이라면 모를까, 곰탕집은 친구들 보기 창피하다는 것이 아들, 딸들의 반대 이유였다. 김용택 씨는 “아들, 딸들이 등교한 후 오전 11시부터 학교에서 돌아오기 전인 오후 3시까지 곰탕집 문을 연다” 그리고, “자녀들이 학업을 마친 후에는 가게를 접는다”고 약속한 후, ‘하동관’을 열었다. 약속대로, 자녀들의 학업이 끝난 1963년 문을 닫았고, 곧 친구에게 ‘하동관’을 물려줬다. 곰탕은 반가의 음식, 설렁탕은 저잣거리의 음식이다. 인쇄업을 했던 김용택 씨가 곰탕집을 선택한 이유다.‘하동관’의 홈페이지 내용 중 일부를 소개한다.(전략) 서울 북촌 할머니 3대가 탄생시킨 한국 전통 탕반(湯飯) 문화의 절정 (중략) 하동관 1대 손맛 류창희 할머니(1939년~1963년) (중략) 북촌마을의 반갓집 딸로 태어나 북촌 양반집과 궁중음식에 해박하고 (중략) 하동관 2대 손맛 홍창록 할머니(1964년~1967년) (중략) 류창희 할머니의 뒤를 이어 1964년부터 하동관을 이어받은 홍창록 할머니 또한 북촌 토박이.키워드는 ‘북촌’ ‘반가’ ‘양반’ ‘궁중’ 등이다. 북촌은 경복궁 옆, 오늘날의 삼청동, 가회동 일대다. 고위직 반가, 양반들의 거처였다. 곰탕이 어떤 음식인지 보여준다. 곰탕은, 반가의 음식이다. 오랫동안 제사상에, 손님맞이에 사용했던 음식이다. 제사상에는 대갱으로, 일상에서는 육즙으로 먹었던 음식이다. 이 음식이 저잣거리로 나온 것이다.대갱, 곰탕은 정육(精肉)에서 시작된다. 정육은 뼈나 기름 등을 덜어낸 살코기다. 도축 후, 궁궐과 반가에 공납(貢納)한 것이다. 지방도 마찬가지. 관청, 현직관리, 지역 반가에서 정육을 구할 수 있었다. 그들은 법도에 따라 고기, 육즙, 대갱을 먹었다. 오늘날 중소도시인 전남 나주에 곰탕 전문점이 발달한 이유다. 나주는 목사(牧使)가 근무한 대도시였다.곰탕의 ‘곰’은 ‘고음’이다. 동사 ‘고다’의 명사형이다. ‘푹 곤 것’이 곰, 고음이다. 고음은 ‘膏飮’으로도 표기한다. 곰탕은, 푹 고아서 진액을 뽑아낸 것이다. ‘고(膏)’는 ‘살찐’ ‘기름진’이라는 뜻과 식물, 과일을 곤, 진액이라는 뜻도 있다.곰탕은 진화한다.소 대가리를 푹 곤다. ‘소머리곰탕’이다. 고기는 정육이 아니다. 소 대가리의 살코기다. 소 대가리는 곰탕의 재료가 아니다. 설렁탕의 재료다. ‘사골(四骨)’은 소, 돼지 등의 네 다리다. 사골곰탕은, 소의 네 다리를 푹 고았다는 뜻이다. 고기는 다리 살과 연골조직 등이다. 사골 역시 곰탕의 재료는 아니다. 설렁탕 재료다.대갱, 육즙, 곰탕은 맑다. 소머리곰탕이나 사골곰탕은 유백색이다. 곰탕은 설렁탕 재료와 뒤섞인다. 나쁘게 볼 일은 아니다. 곰탕의 변화, 진화다.포항 죽도시장의 ‘장기식당’ 곰탕도 유백색이다. 맛있다. 고기도 푸짐하다. 소머리곰탕이다. 곰탕이든 설렁탕이든 따질 바는 아니다. 맛있고, 푸짐한, 변화, 진화한 곰탕이다./맛칼럼니스트 황광해

2019-09-23

정치인의 삭발

강희룡 서예가우리 민족은 머리카락을 중요하게 여기고 가꾸는 풍속이 있다. 조선조말의 개화기 상황을 보면 머리카락에 부여된 의미가 어떠했는가는 더욱 쉽게 이해할 수 있다. 1895년(고종32년)에 내려진 단발령(斷髮令)은 조선 사회에 일대 혼란을 불러왔다. 남녀를 불문하고 머리카락을 기르고 가꾸는 것이 효(孝)의 근본이라고 여기고 있던 사상 속에서 그것을 잘라버리라는 국가적인 주문은 백성들의 분노를 샀다. 이 시기 최익현(1833∼1906)은 ‘내 머리는 잘라도 이 머리카락은 자르지 못한다(吾頭可斷 此髮不可斷)’라며 저항하다 투옥되기도 했다.조선시대의 효에 대한 사상은 유가(儒家) 13경전 중 하나인 공자가 제자인 증자에게 전한 효도에 관한 논설 내용을 훗날 제자들이 편저한 ‘효경, 개종명의장(孝經, 開宗明義章)’에 기록된 ‘우리 몸의 머리카락 하나 살갗 한 점도 부모에게 물려받은 것이니 감히 훼손하거나 상하지 않게 하는 것이 곧 효의 시작이니라’ 라는 사상 때문에 인체구성 요소를 매우 소중히 여겼다.불가의 삭발은 출가 수행인의 모습으로 세속인과 다름을 나타내며 세속적 번뇌의 단절을 의미한다. 불가에서는 머리카락을 무명초(無明草)라 일컬으며 세속적 욕망의 상징으로 보기 때문에 매월 초하루와 보름에 삭발을 통하여 자신의 수행일상을 점검하며 출가자의 청정의지를 표현한다.또한 고대 인도에서는 아이가 첫 걸음마를 뗄 때, 병에 걸리지 말라는 뜻으로 귓불을 뚫었으며 아이가 브라만의 자녀일 경우 세살이 되면 ‘추다카라나’라는 삭발의식을 치렀다. 아프리카 성년의식인 할례에서도 나타난다. 할례를 받은 상처가 한두 주일 후 치유되면 삭발을 한다. 이 머리가 다시 자란 후에야 비로소 ‘전사(모란)’가 된다.저자 잭 캔필드의 ‘내 영혼의 닭고기 ’라는 책 내용처럼 뇌종양의 치료로 항생제에 의해 머리가 다 빠진 15세의 친구를 위해 같은 반 친구들이 모두 삭발을 하는 아름다운 삭발도 있다. 삭발은 심리학적으로 사람들을 통솔하는데도 이용되기도 한다. 대표적인 사례로 독일 민족이 유태민족을 지배하기 위해 머리를 깎이고 화장실을 남녀공동으로 사용하게 하였던 것도 개인의 개성을 없애고 동물적인 본능만 살아있게 하기 위함이다. 각 나라마다 군대에서 군복을 입고 머리를 자르는 경우와, 교도소에서 범죄자들에게 삭발시키고 죄수복으로 입히는 것도 개개인의 개성을 없애므로써 조직이나 단체의 목표달성을 위해 일사불란한 통솔력에 따르게 하는 행위인 것이다. 요즘 한국정치는 ‘삭발정국’이다. 지난 16일 조국 법무부장관의 파면을 요구하며 사상 초유의 제1야당 황교안 대표의 삭발이 도화선이 됐다. 황 대표의 삭발 이후 매일 현역 국회의원 10명을 비롯해 원외 인사들까지 포함하면 삭발 동참 인원은 20명 이상이다. 황 대표의 삭발은 흔들리던 그의 리더십을 막았지만 삭발에 동참한 현역이나 원외 인사들은 내년 총선 공천과 연계할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다선 중진의원이나 퇴출돼야 할 이들이 하는 삭발은 향후 당 쇄신에 상당한 부담이 될 것이다.본연의 메시지보다 삭발이란 그 수단 자체만 남아버리고, 아무리 삭발해도 머리털은 다시 자라기 시작한다.

2019-09-23

학교진로교육에 대한 제언

조현명 시인TV 인기드라마로 교육문제를 다룬 ‘스카이 캐슬’을 통해 확인하게 된 사실이 있다. 교육은 우리 사회에서 신분 상습의 수단이라는 것이다. 부정할 수 없이 출세주의, 학력간판주의가 뿌리 깊다. 최근 정치권에서 불거져 나온 ‘논문 1저자 등재’에 관한 논란도 다 그런 바탕에 있다. 이런 바탕에서 학교 진로교육은 방향을 잃고 표류해 가고 있다.먼저 진학 지도에 비해 진로 지도와 상담은 상대적으로 지지부진하다.부분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진로교육에 있어서도 학생의 적성과 내면적인 성숙을 근거로 한 것이 아니라 학교성적과 진학, 취업가능성 위주로 다루고 있다. 현재 적용하고 있는 2015 개정교육과정은 더욱 심각하다.고교 1학년 2학기면 진로를 선택하고 그에 맞는 2, 3학년에 배울 과목을 선택하도록 강요한다. 중학교의 자유학기제와 진로교육에 의해 학생들이 대부분 진로를 확정했다고 보는듯하다. 잘못되었다. 기초공사가 안 된 바탕 위에 집을 지으려고 하는 일이다.학생선택형 교육과정이 마치 진로교육을 위한 것인 것처럼 포장하고 있지만 그 반대이다. 선택형교육은 이미 실패로 보고된 바 있다. 그런 실패의 보고에도 불구하고 계속 시도되는 것은 이론적으로는 매우 이상적인 정책이기 때문이다. 정책당국의 입장에서 보면 그럴듯하고 국민들에게도 치적을 드러내고 홍보하기 좋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매우 불합리한 정책이다. 시범학교들은 늘 자화자찬의 결과논문을 보고한다. 이것은 교직사회에 만연한 무사안일과 복지부동의 결과이다. 안 될 정책들이 계속 현장에 적용되면서 기형적인 교육이 만들어져가고 있다. 그중 자유학기제와 진로선택중심형 교육과정이 1순위로 손꼽힐 만하다.사실상 학교진로교육은 결국에는 학생 자신과 학부모에게 맡길 수밖에 없다는 한계가 있다. 게다가 우리나라는 유교적인 정신이 남아있어 ‘사’자로 끝나는 직업을 선호하고 일부 직업은 천하게 여겨 기피하는 풍토다. 그래서 교육당국은 학부모교육까지 실시하고 있다. 한 번 하겠다고 시작한 정책을 쉽게 포기하기란 어렵다. 그러나 무용에도 불구하고 학부모의 의식까지 바꾸면서 가야겠다는 발상은 계란의 바위치기로 보인다. ‘시장의 흐름에 따라가라’는 금융시장의 격언이 있다. 교육에 시장논리를 적용하기란 문제있어 보이지만 학부모들의 의식과 풍토 그리고 움직임은 시장의 흐름을 닮았다. 그동안 교육당국이 사교육시장을 잡으려고 노력해 보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학생부종합전형의 자기소개서 대필이나 스펙 만들기를 없애려고 노력했지만 결국 근절되지 않고 있다. 그러므로 다음 두 가지로 간단히 학교진로교육에 대해 제언하려 한다. 첫째, 진로교육의 한계를 인정하고 기본교육의 바탕 위에 진로교육을 도입하자. 그러므로 자유학기제와 고등학교 진로선택형 교육과정을 완화해야 할 것이다. 둘째, 학교에서 진로교육이 행사 위주가 되지 않도록 유도하고 학교의 모든 교육에 자연스럽게 흡수되도록 해야 한다. 그러므로 진로상담에 대한 체계화가 필요하고 담임교사가 진로교사가 되는 학교진로교육의 시스템화가 필요하다. 차라리 담임교사라는 명칭보다 진로교사라고 부르는 건 어떨까 싶다.

2019-09-23

미지의 양식(糧食)을 찾아서

그레고르는 꿈꾸던 구원, 즉 변신에 이르는데 결과는 해충이라는 반전으로 작품은 시작합니다. 가족조차 받아주지 않는 완전히 고립된 존재. 카프카는 누구에게도 이해받지 못한 자신의 꿈과 이상을 해충으로 변한 그레고르를 통해 그려냈습니다.카프카의 글은 생전 몇 작품이 출판되었지만 거의 팔리지 않았습니다. 친구 막스브로트에게 본인의 사후 모든 작품들을 태워 없애 달라고 유언할 정도로 지독한 소외감에 시달리던 카프카는 40대 초반에 생을 마칩니다.문학을 통해 구원에 이르고 싶은 그의 열망은 여러 장애물에도 꿋꿋이 펜을 놓지 않게 했습니다. 남들이 모두 잠든 한밤중에 항상 깨어 끊임없이 원고지와 씨름했습니다.우리를 일상에서 건져 줄 미지의 양식(unknown food)은 무엇인가요? 더듬거리며 늘 그곳을 향해 나아가도록 우리를 움직이게 하는, 가슴 고동치는 꿈은 무엇입니까? 생각만 해도 심장이 뛰고 혈관이 꿈틀거리며 근육이 팽팽해지는 그 무엇. 떠올리는 순간 저 하늘의 북극성처럼 우리의 눈빛을 반짝이게 만드는 것, 그것을 우리는 꿈이라고 부릅니다. 꿈은 잘 짜진 계획이 아닙니다. 견적이 제대로 나오는 것은 ‘기획’이요 ‘플랜’일뿐, 꿈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 없습니다. 꿈은 탐욕으로 비롯한 야망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것입니다.레미제라블을 유산으로 남긴 빅토르 위고는 이렇게 말합니다. “혁명이란 무엇인가를 이해하고 싶다면 그것을 ‘진보’라고 불러보라. 진보란 무엇인가를 이해하고 싶다면 그것을 ‘내일’이라고 불러보라. ‘내일’은 억제할 수 없게 자신의 일을 하는데, 그 일을 바로 오늘부터 한다.”억제할 수 없는 내일을 준비하기 위해 밤을 꼬박 지새운 카프카의 열정. 그가 작품을 쓴 지 벌써 100년의 세월이 넘게 흘렀지만, 여전히 우리는 카프카의 생명력 넘치는 문장들 때문에 전율합니다./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대표

2019-09-23

간절함의 끝은 어디에… 경주 감은사지(感恩寺址)

막 깎아놓은 풀냄새가 좋다. 먼 곳으로 자식을 떠나보낸 늙은 부모처럼 국보 제 112호 감은사지 동서 삼층석탑은 오늘도 기다림에 젖어 있다. 장중함의 눈빛이 하도 외롭고 쓸쓸하여 한참 동안 고개를 젖히고 우러러본다.삼국을 통일한 문무왕이 왜구의 침입을 부처의 힘으로 막으려고 짓기 시작한 감은사는 신문왕 2년(682년)에야 완성된다. 죽어서도 용이 되어 나라를 지키겠다는 부왕의 유언을 받들어 동해에 해중릉을 만든 후, 절의 금당 밑으로 용이 드나들 수 있도록 물길을 낸 충과 효가 배어 있는 절이다.천천히 서탑을 돌며 까마득히 역사 속으로 사라져간 신라를 생각한다. 긴 회랑으로 둘러진 감은사, 13.4m의 장대한 동서 삼층석탑은 최초의 쌍탑으로 통일신라시대 석탑 중 가장 크다. 폐사지를 지키는 퇴락의 그림자는 마르지도 않고 두 탑은 해탈이라도 한 듯 초연하다.창건 당시 감은사 앞까지 이어지던 바다는 천년의 세월 속에서 자꾸만 물러나 앉고 감은사도 사라졌다. 길 잃은 문무왕의 애타는 넋이 떠돌았을 동해를 뒤로 한 채 두 탑의 기다림은 하염없이 길었다. 저녁 연기처럼 흩어지는 옛 왕조의 기억과 낙서 자국이 눈물로 번져간 상처들, 수많은 시인의 찬란한 시구(詩句)들이 서로를 다독이며 절터를 지킨다.늦더위가 기승을 부린다. 바람이라도 불면 울창한 대숲에서 만파식적 소리라도 들릴 것 같은데 늙은 느티나무의 투병하는 소리만 애처롭다. 들판을 가로지르며 달리는 차들과 술렁거리며 오는 계절의 풍경에 익숙해진 삼층석탑은 또 다시 천년의 기다림을 반복이라도 할 듯 말이 없다.천년 세월의 간절함을 담고 있는 그의 눈빛에 비해 나의 기도는 조촐하기만 하다. 사람들은 어디론가 바쁘게 달려가고 또 누군가는 잠시 머물다 훈장 같은 말씀 한 마디 던져 주고 떠난다. 바람을 잠재우고 물결이 되어 뒤척였을 수많은 날들의 기다림은 모두 헌사가 되어 그를 위무한다.묵직해진 마음을 끌고 솔숲에 앉아 문무대왕릉을 바라본다. 햇살 아래 연거푸 일어섰다 쓰러지는 파도들, 여름날의 빈집을 기웃거리듯 조용한 발걸음으로 가을이 들어서는데, 꽹과리 소리에 춤을 추며 무아의 경지에 빠져 접신 중인 무녀가 보인다. 이 곳 저 곳, 솔밭이 온통 굿판이다. 나는 반신반인(半神半人)의 위치에서 신탁을 받을 영매자를 위해 조심스럽고 미안한 구경꾼이 된다.문무대왕릉을 향해 정성스럽게 예를 올리는 무녀의 손에 들린 붉은 깃발은 언젠가 네팔 여행 중에 보았던 룽다와 타르초를 떠올리게 했다. 소음과 공해로 정신없이 어수선하던 카트만두의 오래된 사원에서, 안나푸르나를 보기 위해 오르던 전망대 근처에서도, 오색 깃발들은 경전을 읽듯 바람 앞에서 사정없이 울어댔다. 많이 펄럭일수록 신에게 그들의 기도가 더 간절히 전해진다고 믿는 이색적인 풍경 앞에서 신의 부름 앞에 무릎걸음으로 다가가는 가난한 영혼을 보았다.더위를 업고 답을 기다리는 동해의 붉은 깃발, 환생을 꿈꾸는 미이라처럼 젊은 여인의 몸을 감싼 채 자갈밭을 구르던 흰 천의 오열, 모래사장에 수없이 꽂혀 타다만 향의 잔해들, 갈매기와 까마귀의 번들거리는 군무, 굿당이 되어버린 솔밭을 수중릉은 말없이 바라볼 뿐이다.문무왕의 호국정신이 서려 있어 신령스러운 기운이 강한 곳이라고 한다. 이제는 절터만 남은 감은사지, 그래서 갈 곳 잃은 천년의 정신이 끝내 신탁으로 양도되기라도 한 것일까. 온갖 염원이 대왕암을 향해 끓어오른다. 세상의 모든 고통과 아픔이 이곳으로 뛰어들어 동해는 깊고 푸른지 모른다. 간절함을 이기는 능력은 없다 했던가. 그들의 곡진한 의식을 있게 한 그 간절함은 도대체 무엇일까.까마귀 떼들이 버려진 젯밥에 몰려들어 배를 채우고는 유유히 날아간다. 윤이 나는 깃털이 햇살에 반사되어 반짝일 뿐, 그들에게 간절함은 없다. 파도를 바라보며 하염없이 시간을 보내는 갈매기 무리 속에도 이제 조나단 리빙스턴의 후예는 없다. 높이 나는 법을 잊어버렸으며 더 이상 높이 날 명분마저 사라졌는지 모른다. 풍요 속에 가려진 나른하고 권태로운 눈빛들, 꽹과리 소리는 접신의 문턱을 몇 번이나 넘나들며 절정을 향해 치닫는다.조낭희 수필가서너 시간을 솔밭에 앉아 바다를 바라본다. 삶은 불가해한 것들로 가득하다. 무너지지 않으려 발버둥치는 절박한 몸짓들이 때 아닌 폭설 되어 내 안에 쌓인다. 지척에 보이는 대왕암은 꼼짝도 않는데 숨 가쁜 염원들은 하혈하듯 동해로 흘러들고 바다는 답신하듯 파도를 만들어 보낸다.도시가 갑갑하면 찾아오던 바다에서 오늘은 교만의 옷을 벗는다. 삶의 완성도는 슬픔과 기쁨 사이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관조하는 것. 새살이 돋아 그들의 영혼이 좀 더 말랑말랑해지길 바라며 가을 햇살 같은 기도 한 줌 보낸다.어찌하랴. 가장 영험해 보이는 신을 찾아 간절히 두 손 모을 수밖에 없는 운명 앞에서 우리는 차안과 피안 사이를 정처 없이 오가며 때때로 난처해지기도 하는 것을.하늘과 맞닿은 수평선은 저리도 평온한데….

2019-09-23

현실의 여백, 환상을 모험하는 경험

문학에 있어서 ‘환상’은 예로부터 중요한 주제였다. 사실, ‘환상’ 말고 달리 더 문학적인 주제가 존재하기나 할까. 우리 모두가 좋아하는 이야기란 ‘여기’, 현실적 세계의 이야기가 아니라 그 여백 어딘가에 존재할지도 모르는 비현실의 세계에서 일어났을지도 모르는 환상에 대한 이야기니 말이다.이처럼 어린 시절 누구나 매료되기 마련인 환상이야기 가운데 루이스 캐럴(Lewis Carroll, 1832~1898)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빼놓기는 어려울 것이다. 나는 아직도 이 작품을 처음 열어보았을 때 경험했던 최초의 당혹감과 이어 찾아온 그 세계에 대한 매혹을 기억한다. 그리고 그로부터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그 세계는 아직도 내 마음 어딘가 한 구석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누구나가 그러했을 것처럼.‘이상한 나라의 앨리스(Alice’s Adventures in Wonderland, 1865)’에서 ‘거울 나라의 앨리스(Through the Looking-Glass, 1871)’로 이어지는 루이스 캐럴이 만들어낸 앨리스적인 세계가 그토록 특별하게 남아 있을 수 있었던 것은 별다른 이유는 아니다. 인간의 이성이 중심이 되는 근대 세계와 표준시로 대표되는 일말의 여백도 존재하지 않는 동조화된 세계에서는 생각하기 어려운 여백의 사고가 들어 있기 때문이다.따분한 역사공부를 하던 앨리스는 ‘늦었다’‘늦었다’고 외치는 조끼를 입은 토끼를 발견하고 그를 따라가다가 환상의 세계로 굴러 떨어진다. 우리의 정신은 조금의 실마리라도 눈앞에 나타나면 그 실마리를 따라 제멋대로의 상상의 세계로 떠나가 버리지 않는가. 그것이 따분한 공부를 하는 와중이라면 더욱 그렇다. 그렇게 ‘꿈’과 ‘거울’이라는 근대 세계의 두 가지 여백을 통해 만들어진 환상의 세계에 굴러 떨어진 앨리스는 현실의 답답한 규칙성이 아니라 완전히 독자적이고 환상적인 규칙의 지배를 받는 세계를 모험한다.이렇게 자신의 눈앞에 존재하는 한 번도 본 일이 없는 세계를 여행하는 앨리스의 모험이 흥미로운 것은 그것이 새로운 환상적 세계의 규칙을 발견하는 인간의 태도를 가장 잘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환상이 환상으로 남아 있을 수 있는 것은 그것이 단지 지금까지 본 일이 없는 기괴한 것이기 때문만이 아니다. 그것이 어떤 규칙으로 이루어져 있는가 우리가 잘 알 수 없기 때문이다. 현실 세계와 유사한 규칙을 가지고 단지 창조된 세계에서 일어난 기괴한 소재만으로 만들어진 환상 문학은 그것을 보는 인간에게 당혹감을 줄 수 없다.자신이 마주친 이전까지 한 번도 본 일이 없는 세계 속에서 앨리스는 무엇을 해야 한다는 목적도 없이 그저 아이다운 호기심으로 그 세계를 경험한다. 세계의 규칙을 알 수 없으니 그 경험은 이성적으로 주어지지 않는다. 무엇이든 입안에 넣어보지 않으면 대상을 알 수 없는 아기처럼. 앨리스는 실제로 먹어보지 않으면 효과를 알 수 없는 약을 먹어보기도 하고, 말을 하는 기괴한 대상들과 만나 그들과 나름의 방식으로 이야기하기도 한다.결국 루이스 캐럴의 ‘앨리스’는 진정한 환상의 이야기이자 낯선 세계에 던져진 아이가 세계의 규칙을 이해해나가는 경험에 대한 알레고리다. 어른이 된 사람은 결코 아이가 세계를 어떻게 이해하는가 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현실 세계의 여백에서, 그렇게 우리는 가끔씩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대상에 대해 매혹되어 붙들린다. 아마 그것 없이는 문학도 존재할 수 없을 것이다./송민호 홍익대 교수

2019-09-23

“잠+재력을 달라”는 학생들의 외침

신희선 숙명여대 기초교양대학 교수·정치학 박사“잠재력은 1도 없으니 ‘잠’과 ‘재력’을 따로 달라.” 학생들 사이에 떠도는 우스개 소리다. 잠재력 개발을 강조하지만 불가능하게 만드는 현실에 죽비와 같은 말이다. 학생들은 밤늦게까지 학원을 전전하느라 언제나 잠이 부족하다. ‘조물주 위에 건물주’인 한국에서 학생들은 건물주가 되는 게 소원이라고 말한다. 개인의 잠재력을 최대한 이끌어내는 과정이 교육의 목적일터인데 실상은 거리가 멀다. 남보다 앞서야 한다며 선행학습으로 몰아치고, ‘할아버지의 재력과 엄마의 정보력’이 지배하는 문화에서 학생들은 점점 피폐해지고 있다. 학생들이 진정 무엇을 원하는지, 과연 우리는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열고 있는가?한국의 ‘교육열’은 학생들의 과도한 학습노동으로 드러난다. 학생들은 옆을 돌아볼 여지도 없이 주어진 트랙 안에서 전방 질주해야 한다. 집에서 가장 먼저 나가고 가장 늦게 들어오는 이도 학생들이다. 학원을 다니며 내신 성적을 관리하고, 생기부용 수행평가와 봉사활동으로 주말조차 쉴 시간이 없다. 돈과 권력과 네트워크가 있는 부모가 대신해주거나 그도 아닌 경우 학생이 그 많은 것을 감당해야 한다. 최근 서울시 교육청에서 제안한 ‘학원일요휴무제’도 지쳐가는 학생들에게 쉴 기회를 주자는 문제의식의 발로지만, 실제 학생들의 휴식권이 보장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경쟁을 조장하는 교육환경에서 학생들은 시들어간다. 제시카 조엘 알렉산더가 쓴 ‘행복을 배우는 덴마크 학교 이야기’는 신뢰, 공감, 진솔함, 용기, 휘게(hygge)의 가치를 강조하는 덴마크 학교 현장을 보고한다. ‘트리브젤 테스트(trivsel test)’는 ‘좋은 삶’을 체크하고 평가하는 시험으로 학교에도 적용된다. ‘식물’과 관련된 북유럽 고어인 ‘트리브젤’이 상징하듯, 인간을 기계가 아닌 식물과 같은 존재로 바라본다. 그들은 교육환경에서 “학생들이 충분한 관심을 받고 있는지, 학생들의 이야기가 경청되고 있는지, 학생들의 사회, 정서적 발달이 순조롭게 이루어지는지”를 성적보다 우선적으로 고려한다. ‘이거 해라, 저거 해라’고 강요하는 교육이 아니라 아이들이 스스로 배우는 이유를 깨달으며 질문과 대화로 문제를 풀어가는 방법을 배우도록 한다.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고 경쟁하며 보여주기식 교육에서 한 발짝도 벗어나지 못한 우리에게 경종을 울려준다.아프리카 물소떼는 물가에 도착하려고 단체로 질주하다가 아비규환이 되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남보다 먼저 물을 먹으려는 욕심과 속도 경쟁이 결국 벼랑 끝으로 몰고 가는 결과를 낳는다. 학생들이 쏟아지는 잠을 이기지 못해 수업시간에 졸거나 엎드려 자는 교실 풍경이 낯설지 않다. 휴일에 놀 시간은 고사하고 휴식 시간조차 없이 대학입시를 향해 계속해서 달려가는 형국이다. 남보다 빨리 도착하는 것보다 올바른 방향을 잡아 자신의 보폭대로 나아가도록 하는 교육은 불가능한가? 학생들의 질문으로 생기가 넘치는 교실, 학생들이 각자의 잠재력이 꽃 피울 수 있도록 기다려주는 교육이 그리 어려운 일인가?

2019-09-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