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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레이더 vs 라이더

레이더(Radar)는 전파를 사용해 목표물의 거리, 방향, 각도 및 속도를 측정하는 감지 시스템이다. 전쟁에서 적 비행기의 위치를 알아내기도 하며, 사람이 들어가지 못하는 심해의 수심을 알아내기도 한다. 또한 물체의 형상을 확실하게 인식할 수는 없지만 날씨나 시간과 관계없이 제 성능을 발휘하는 센서여서 자율주행자동차에 널리 쓰인다. 주파수에 따라 단거리부터 중거리, 장거리를 모두 감지할 수 있어 현재도 긴급자동제동장치, 스마트크루즈컨트롤 등 다양한 첨단운전자 지원시스템 기술에 적용되고 있다. 중장거리 레이더는 150~200m 이상을 확인할 수 있지만 화각이 40도 안팎으로 좁고, 단거리 레이더는 100m 이내 거리를 감지하되 화각이 100도 이상으로 넓다. 중장거리 레이더 센서는 앞차와의 거리와 속도를 측정해 충돌을 피하는 전방충돌 방지보조기술 등에 주로 활용되고, 단거리 레이더 센서는 후측방 사각지대 감지 기술 등에 주로 활용된다.라이더(Lidar)는 전자파가 아니라 직진성이 강한 고출력 레이저를 발사하여 산란되거나 반사되는 레이저가 돌아오는 시간과 강도, 주파수의 변화, 편광 상태의 변화 등으로부터 측정 대상물의 거리와 농도, 속도, 형상 등 물리적 성질을 측정하는 센서를 말한다. 이 센서는 고해상도의 3차원공간 정보를 확보할 수 있어 오차가 cm단위에 불과할 정도로 정확하다. 다만 비싼 가격과 짧은 수명 등으로 상용차에 적용하기는 어렵다는 기술적 한계가 있다. 레이더와 라이더 센서는 카메라와 함께 미래기술인 자율주행자동차의 3대 핵심센서로 꼽힌다. 공상과학영화에나 나오던 자율주행자동차의 출현에 가장 큰 기여를 하고 있는 기술의 발전이 눈부신 요즘이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19-12-18

툰베리와 트럼프 그리고 보우소나루

김규종 경북대 교수12·12 군사쿠데타 40주년이던 지난 12일 시사주간지 ‘타임’은 올해의 인물로 그레타 툰베리를 선정했다. 스웨덴 국적의 약년(弱年) 16세 소녀 툰베리는 특별한 이력의 소유자다.그녀는 ‘포브스’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 여성, 영국 ‘비비시’가 선정한 올해의 여성 100인, ‘타임’이 선정한 가장 영향력 있는 지도자 100인으로 선정된 바 있다. 툰베리는 세계적인 기후위기에 매주 금요일 학교를 가지 않고 스웨덴 국회 앞에서 1인 시위를 시작한다. 그리하여 세계 150개국 청소년들이 기후변화를 막기 위한 각국 정부의 즉각적인 대응을 촉구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툰베리는 말한다.“오늘날 우리는 석유 1조 6천억 리터를 단 하루 만에 사용합니다. 어떤 정치체도 이것을 바꾸려하지 않아요. 석유를 지하에 묶어두려는 법규는 없어요. 따라서 법을 따르면 세상을 구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법이 바뀌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이 바뀌어야 합니다. 그리고 오늘 시작해야 합니다.”트럼프는 2016년 11월 4일 발효된 ‘파리협약’을 2019년 11월 4일 탈퇴한다고 선언한다. ‘파리협약’은 세계가 기후위기에 한마음으로 대응하기로 한 약정이지만, 탈퇴는 발효시점에서 3년이 지나야 가능하다. 더욱이 탈퇴가 완료되는 데에는 다시 1년의 시간이 필요하다. 따라서 미국의 ‘파리협약’ 탈퇴가 실효를 거두는 시간대는 2020년 11월 4일, 미국 대통령선거 다음날이다. 과연 다음 미국 대통령은 누가 될 것인지 궁금한 대목이다. 그러하되 ‘타임’이 올해의 인물로 툰베리를 선정한 당일 73세의 노인 트럼프는 툰베리에게 고약한 트위터를 날린다. “아주 웃긴다. 그레타는 자신의 분노조절에 애써야 한다. 그러고 나서 친구랑 좋은 옛날 영화를 보러 가라. 진정해라 그레타, 진정해!”열여섯 살배기 툰베리의 응수가 재미있다. 그녀는 트위터의 자기소개 공간에 ‘자신의 분노조절 문제에 애쓰는 10대 청소년. 현재 진정하고 친구와 좋은 옛날 영화를 보고 있음’이라고 쓴다. 누가 더 성숙한 인격을 갖추고 있는 교양인이자 어른인지, 가늠하기 어렵지 않다.이것은 보수우익 트럼프에 국한하지 않는다. 보우소나루 브라질 대통령도 툰베리를 ‘버릇없는 꼬맹이’라고 비난한 바 있다. 툰베리는 보우소나루의 방조 아래 아마존 삼림을 불법으로 벌채하는 브라질 당국에 맞서 싸우다가 원주민들이 계속 살해당하는 현실에 침묵하는 세계가 부끄럽다고 비판했기 때문이다. 64세의 환경파괴자 극우파 브라질 대통령에게 맞서 툰베리는 트위터에 자신을 ‘버릇없는 꼬맹이’라고 응수하면서 맞장 뜬 것이다. ‘브라질의 트럼프’ 혹은 ‘열대의 트럼프’로 불리면서 친기업-반환경정책을 밀어붙이는 보우소나루에게도 툰베리는 눈엣가시가 분명하다. 하지만 그녀가 물러설 기색은 없다. 사회관계망 서비스로 세계 전역에서 이들의 흥미진진한 대결을 응시하고 있다. 노년의 남성 정치가들과 소녀티를 벗지 못한 툰베리의 대결이 21세기 지구촌의 운명과 직결되어 있는지도 모른다.

2019-12-18

12월에 읽는 10월 시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감“무언가 잃어 간다는 것은/하나씩 성숙해 간다는 것이다. (중략)// 낙과(落果)여, 네 마지막의 투신을 슬퍼하지 말라./마지막의 이별이란 이미 이별이 아닌 것/빛과 향이 어울린 또 한 번의 만남인 것을//우리는 하나의 아름다운 이별을 갖기 위해서/오늘도 잃어 가는 연습을 해야 한다.” (오세영, ‘시월’)지난 10월을 건너면서 필자는 매일 ‘시월’을 읽었다. 아름다운 이별과 잃어가는 연습이라는 두 단어가 힘겨운 10월을 견디는 힘을 주었다. 참 어수선했던 나라, 올해만 살고 말 것처럼 숨 막혔던 집회의 대한민국 2019년 10월! 절망의 10월을 넘어오면서 필자는 “빛과 향이 어울린 또 한 번의 만남”을 상상했다. 그 만남은 안정되고 희망찬 12월이었다. 그런데 그 상상은 허상이 되었다. 10월을 데자뷰 하듯 광장은 또 시끄럽다.오로지 집권 연장에 혈안이 되어 있는 사람들과 다시 그 자리에 가기 위해 사생결단을 하고 있는 사람들! 대한민국 정치엔 이 두 부류의 사람들 말고 오롯이 국민에게 희망을 제시하는 정치인은 단 한 명도 없다. 패스트트랙이고 뭣이고 이 나라 정치인들이 하는 모든 짓은 자신들의 정치 생명 연장을 위한 정쟁(政爭) 수단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그런데 아픈 것은 이 나라 정치야 태생부터가 국민과는 별개로 정치인 자신들의 영욕을 위한 싸움의 장이라고 치더라도 교육은 왜 이 모양이냐는 것이다. 정치판에 구속된 교육의 모습이란? 교육 전문가도 아닌 대통령의 감정적인 말 한 마디에 교육 시스템 전부가 바뀌는 이런 말도 안 되는 교육 판에 우리는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맡길 수 있을까?대학수학능력시험 성적 발표가 끝나기 무섭게 고등학교 정문은 물론 골목마다 대학 합격을 축하하는 가로펼침막이 내걸렸다. 대상 학교는 S대학교! 축하할 일이고, 축하받을 일이다. 그 학교에 합격하기 위해 얼마나 고생했을지 알기에 필자도 뜨거운 축하의 박수를 보낸다. 그러면서 필자는 생각한다, 정말 이 나라 초중고 교육의 끝이 어디인지? 그 끝을 이야기 해주는 말이 있다. “서, 고연, 서성한, 중경외시, 건홍동 ……” 필자도 오래 전부터 씁쓸하게 이 말을 학생들과 학부모들에게 노래하듯 해오고 있다. 그런데 수십 년이 지났지만 이 말은 없어지기는커녕 더 큰 생명력을 얻고 있다.이 나라 학생들은 역사 속 임금 순서보다 이 말을 더 절실히 외우고 있다. 이것이 마치 이 나라 교육의 종착지인 양 생각하고 무조건 앞쪽에 들기 위해 올인한다. 만약 들어가지 못하면 실패한 인생 취급을 받는다. 그래서 다시 공부해서라도 순서를 당기려 애쓴다. 학생들의 희망과 행복지수, 출산율 등 이 나라 교육은 참 많은 것을 잃었다. 시에서는 “잃어 간다는 것은/하나씩 성숙해 간다는 것”이라고 했는데, 이 나라 교육은 언제 즈음 성숙의 반열에 올라 모든 학생들이 행복하게 학교에서 자신과 나라의 밝은 미래를 준비할 수 있을까? 올해가 이런데 내년이야? 희망 없는 내년을 맞이해야 할 학생들에게 미안하기만 한 연말이다.

2019-12-18

몽롱한 글쓰기 (2)

줄리아 카메론은 일상에서 창조성이 필요한 디자이너, 작가, 미술가, 음악가, 안무가들, 영화인 등 수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었습니다.매일 글을 써야 하는 저는 이 방법을 읽었을 때 깊이 공감했습니다.저도 새벽에 일어나 첫 작업으로 무조건 한 페이지 쓰는 행위를 일종의 의식처럼 해 오고 있었거든요. 20년이 훌쩍 넘는 세월 동안 빠지지 않고 해왔습니다.글을 잘 쓰는 방법은 딱 한 가지입니다. 많이 써 보기지요. 대부분 많이 쓰는 일 자체를 못하기 때문에 궤도에 올라가지 못합니다. “글을 잘 쓰는 사람은 많이 써 봤기 때문에 잘 쓰는 것이고, 글을 못쓴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글을 많이 써볼 기회를 갖기 못했기 때문에 못쓰게 되는 원리입니다.”빈익빈, 부익부와 같지요? 글을 많이 쓰는데 결정적인 장애물이 바로 ‘자기 검열’입니다.이 글을 다른 사람들이 봤을 때 무엇이라고 평가할 것인가? 다른 사람의 글과 자신을 비교하며 위축되면서 온갖 장애물들이 글을 쓰는 동안 우리의 뇌에 갖가지 야유를 퍼붓습니다. 그 검열관을 죽여버릴 수 있어야 글쓰기의 날개를 달 수 있습니다.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훌륭한 방법이 눈뜨자 마자 마구 마구 글을 써 대는 겁니다. 이런 방식의 글쓰기 훈련을 저는 ‘몽롱 쓰기’라고 표현합니다.전날 밤에 잠들기 전에 노트와 연필을 준비합니다. 아침에 눈뜨자 마자 책상에 앉아 ‘의식의 검열관’이 깨어나 찾아오기 전에 몽롱한 상태에서 무조건 쓰기 시작하는 거죠. 내용은 그 무엇이라도 상관이 없습니다. 그냥 무의식 가운데 떠오르는 대로 일필휘지로 씁니다.간단한 규칙이 있습니다. 몽롱 쓰기를 할 때는 절대로 이미 썼던 내용을 되돌아가 다시 읽지 않습니다. 말이 되든 안되든, 논리적이든 논리적 비약이 있든 그냥 마음 속에 떠오르는 내용을 줄줄 써 내려가면 그만입니다. (계속)/인문고전독서포럼대표

2019-12-18

언어라는 불투명한 거울

디지털 시대로 접어들면서 대중매체가 미치는 영향력이 점점 커지고 있다. 이러한 대중매체는 사람들의 가치관 및 자아 정체성 형성 과정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이 때 사람들이 접하는 매체들에서 사용되는 언어는 그 형태에 따라 보고 듣는 이의 사고에 막대한 변화를 불러일으킨다. 즉, 어떤 단어나 어떤 표현을 사용하느냐에 따라 그 문구를 접한 사람들의 사고의 방향이 무의식중에 바뀔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비단 대중 매체 뿐만 아니라 실제 생활에서도 나타난다는 것을 알아둘 필요가 있다.언어와 사유(여기서는 감각기관을 통해 지각한 내용, 사물에 대한 느낌, 기억, 추상적 사고 등을 모두 포함시키는 개념으로 간주한다)의 관계를 바라보는 두 가지 관점을 이해해야 한다.첫 번째 관점은 우리가 이미 전(前)언어적으로 이해한 어떤 것을 타인에게 전달하는 수단이 언어라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는 사유가 언어에 선행한다. (정확히는 사물이나 사태로 이루어진 세계→이에 대한 우리들의 관념→이를 표현하고 전달하기 위한 언어의 순서일 것이다)우리가 자신의 생각에 맞는 적당한 단어를 찾아내려고 애를 쓸 때, 새로운 물건이나 세태를 표현하려고 신조어를 만들 때, 사유는 언어에 앞서 이미 존재한다. 그리고 이때 언어는 사유를 전달하는 매체일 뿐이며 사유의 내용에 하등의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그러나 두 번째 관점 즉 언어가 사유를 규정한다는 관점에서 보면, 이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우리가 스펙트럼인 무지개를 일곱 가지 색깔로 지각하는 것은 무지개의 색깔을 일곱 가지로 표현하는 언어의 영향 때문이다. 또한 조선시대의 사람들이 남녀차별적인 생각을 가졌던 근본적 이유도 그들의 언어 속에 담겨 있는 역사와 전통의 영향력 때문이다. 이러한 사정은 전술한 예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수 있는 적당한 단어를 찾으려 할 때나 신조어를 만들 때에도 우리는 ‘다른 단어들을 가지고’ 사유하고 있는 것이다! (가령 television이라는 신조어도 tele라는 접두사와 vision이라는 명사의 합성어이다.)즉, 우리의 세계에 대한 지각, 느낌, 사유는 언어의 틀 속에서 세계를 해석한 결과물이다. 갓난아이들처럼 언어라는 매체 없이 바라보는 세상은 연속적으로 변화하는 무지개의 색깔처럼 미분화된 덩어리일 뿐인 것이다.첫 번째 관점, 즉 사유와 언어는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있다는 관점에 따르면 언어의 영향력으로부터 자유로운 우리의 의식이 이 세계를 맑고 굴곡 없는 거울처럼 비출 수 있다.가령 무지개를 바라볼 때 무지개가 가지는 스펙트럼이 우리의 의식에 그대로 반영될 가능성을 인정하는 것이다. 결국 언어는 사고를 전달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고 보고 언어 역할을 이차적으로 평가한다. 이런 주장을 펼치는 대표적인 철학자로는 플라톤(Platon), 데카르크(R. Descartes), 로크(J, Locke), 칸트(I. Kant) 등이 있다.공강일 서울대 강사·국문학그러나 두 번째 관점, 즉 언어와 사유는 분리불가능하며, 나아가 언어에 의해 사유가 결정된다고 보는 입장에 따르면, 우리의 의식은 언어의 규정을 받으며 이 세계를 해석한다. 언어의 규정을 받는 의식이라는 거울은 일그러지고 불투명한 거울이어서 이 세계를 그대로 반영하지 않는다. 가령 우리의 의식은 스펙트럼 형태의 무지개를 일곱 가지 색깔의 무지개로 해석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 관점에서는 우리의 경험 혹은 감각적 지각은 사유에 바로 닿는 것이 아니라 언어라는 필터를 거쳐 우리에게 전달된다. 이러한 사정은 이성적 사유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진자운동 또는 낙하법칙이라는 이론(이러한 이론들도 언어로 되어 있어 우리들의 사유를 규정함을 명심하자.)을 가지고 끈에 매달린 돌의 운동을 관찰(엄밀히 말하면 해석)할 수 있을 뿐, 돌의 운동을 굴절되지 않은 형태로 의식 속에 그대로 비출 수는 없는 것이다. 언어와 사고를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대표적인 철학자로는 훔볼트(W.v Humboldt), 비트겐슈타인(L. Wittgenstein) 등이 있다.미국의 현대철학자 로티(Rorty)는 “우리는 피부의 바깥으로 나갈 수 없듯이 언어의 바깥으로도 나갈 수 없다”는 말을 했다. 이것은 우리가 언어라는 안경 없이는 세상을 보지 못한다는 뜻이며, 언어라는 안경을 통해 사물을 바라보는 이상, 렌즈의 굴절률(언어 속에 담긴 편견, 전통 등)로 인해 변형(해석)되지 않은 세상을 인식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렇다. 언어로부터 해방된 어떤 성찰의 순간이 절대로 오지 않는다는 주장은 다소 과장된 것이라 할지라도, 그러한 순간이 인생에서 극히 예외적인 순간일 것이라는 점은 분명한 것 같다.만약 여러분도 언어가 사유를 규정한다는 두 번째 관점을 지지한다면, 앞 절에서 제기한 질문에 대한 답을 얻게 될 것이다. 우리들의 감각적 지각은 물론 이성적 사유조차도 언어의 규정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이상, 관념과 사실의 완전한 대응을 토대로 절대적 진리를 추구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2019-12-17

반려동물 교감치유(中)

최근 반려동물교감 프로그램의 긍정적 효과가 입증되면서 국내에서도 많은 관심을 나타내고 있다.자폐아동, 우울증환자, 학교폭력으로 인한 대인 기피증을 보이는 청소년, 고아, 치매환자, 외로운 독거노인 등이 반려동물들과 만나는 과정속에서 마음의 치유 및 정서적 안정을 얻고 사회성을 회복하게 되었다는 사례들이 알려지고 있다.반려동물과의 일상생활을 통해, 동물과의 많은 대화를 통해 어휘구사능력이 향상되고 의사소통이 원활해져서 대인관계가 증진되었다거나 동물을 규칙적이고 반복적으로 관리하면서 생활태도와 기억력이 향상되는 사례도 있고, 양육능력과 생명존중감을 키우면서 양육받고 싶어하는 자신의 욕구를 충족하게 되는 사례도 있다.반려동물은 특히 감정적으로 상처를 입은 사람들의 닫혔던 문을 열리게 하는 효과가 있다. 사람들은 사회생활에서 만나게 되는 사람들에게 상처를 받고 그 정도가 심할 경우 정신적 질환을 가지게 되는데 사람에게 받은 상처를 사람이 낫게 하는 것이 어려운 경우 치유프로그램에서 반려동물과의 교감이 중요한 역할을 하기도 한다.동물교감치유 및 교육프로그램에서 학교의 모든 학생들이 대상자가 될 수 있는데 청소년의 학교부적응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이해와 적합한 중재 및 상담활동이 부족한 실정임을 고려할 때 반려동물교감치유 프로그램을 어린이, 청소년, 부적응아, 특수교육대상자 등의 사회성 향상, 대인관계증진, 비행습관 교정, 정상적인 발달과업 증진을 위해 구성할 수 있다. 교내 동물사육장을 활용하여 전담교사의 지도에 따라 학생들이 당번제 활동으로 사육동물을 관리할 수 있도록 하고 수업전, 방과후 활동프로그램을 구성해 관찰, 활동일지를 기록하는 형태로 운영이 가능하다.또한 예방웰빙의 측면에서 고아,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는자나 독신자, 배우자 상실 독거인, 소년소녀 가장들에게는 반려동물과 함께하는 시간을 통해 즐거움과 안정을 줄 수 있도록 하여 긴장, 불안등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구성할 수 있다.이동훈가족간의 불화가 있는 경우 반려동물은 가족간의 대화주제가 될 수 있도록 구성하고 은퇴자, 독거노인, 고령자의 경우 반려동물과 함께하는 대화와 놀이친구가 될 수 있도록 하여 외로움을 극복 할 수 있도록 구성할 수 있다. 나아가 재활과 치유분야의 경우 우울증, 기억력, 집중력 치료에 반려동물이 참여하는 국내외 사례가 보고되고 있으며 반려동물과 함께하는 프로그램 구성을 통해 소근육, 대근육의 기능회복과 치유에 도움이 되도록 하는 사례들도 보고되고 있다. 많은 연구에서 동물이 곁에 있으면 심박수와 혈압이 감소하고 행복감을 주는 호르몬 수치가 증가했다는 결과가 보고되고 있다.물리치료를 위해 기구를 한시간 돌리는 것보다 반려동물을 빗질하거나 반려동물과 함께 산책하며 운동하는 프로그램들이 정서적인 부분을 포함하여 신체적 정신적으로 긍정적인 효과가 있음도 밝혀지고 있다.동물교감치유 분야의 활성화를 위해서는 다학제간 협력이 필요한데 의료분야, 심리·상담분야, 동물·수의분야, 사회복지분야, 자원봉사분야 등 산학민관 전문가들과 활동가들의 참여로 이론적 정립과 다양한 프로그램의 개발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대학의 동물자원 및 반려동물 관련학과의 교육과정에 동물교감치유 분야 교과목을 개설해 훈련된 전문 동물교감치유사를 양성될 필요가 있다. 국내 동물교감프로그램의 전문화와 활성화를 기대한다./서라벌대 반려동물학과 학과장

2019-12-17

참수제도

사형수의 목을 베는 사람을 예부터 망나니라 불렀다. 닥치는대로 한다는 뜻의 접두사 ‘막’에다 ‘낳은 이’를 합해 부른 이름이다. 나라마다 그들은 대개 천인이나 중죄인 가운데 뽑아 강제로 일을 시켰다. 요즘은 언행이 좋지 않거나 버르장머리가 없는 이를 망나니라 부르지만 그 어원을 따져보면 사형수의 목을 벤 사람이다.사람의 목을 베어 형을 집행하는 참수형(斬首刑)은 동서양 어느 문화권에서든 쉽게 만날 수 있는 사형제도다. 조선조에도 1896년까지 이 제도에 의해 죄인을 다스렸다. 한국인 최초 천주교 사제인 김대건 신부가 참수형으로 처형된 것은 잘 알려진 일화다. 중국에서는 오래전부터 오형(五刑) 중 하나로 참형 또는 참시라고 불렀다. 근대에 와서 대부분의 나라에서 이 제도가 사라졌으나 아랍권 일부 국가에서는 아직 잔존한다. 그러나 실제 집행되는 나라는 사우디가 유일하다. 사우디에서는 아직 참형을 집행하는 망나니를 공개 모집까지 하고 있다고 한다. 원래 참수는 동물의 도살을 모방한 것으로 아랍권에서는 치욕스런 죽음으로 인식한다. 극렬 테러리스트가 인질을 참수하는 장면을 공개하는 것도 적군은 사람 취급을 않겠다는 나쁜 의도를 담고 있다. 그러나 참수형 자체가 비인간적이며 혐오성이 강해 사회적 거부감은 크다. 조선조에서도 극악무도한 범죄자가 아니면 참수형 보다는 사약으로 형을 다스렸다는 기록이 있다.최근 친북 반미단체가 주한 미 대사에 대한 참수 퍼포먼스를 벌여 논란을 빚었다. 한미동맹 관계에 갈등을 일으킬 외교적 문제와는 별개로 참수 퍼포먼스 행위 자체가 자극적이고 충격적이어서 높은 비난을 쌌다. 우리 사회의 무질서가 어디까지 갈 것인지 우려되는 일이다. /우정구(논설위원)

2019-12-17

2020년 포항경제가 나아갈 길

김진홍 한국은행 포항본부 부국장매년 새해를 맞이할 시기가 되면 무사히 한 해를 보낸 것에 감사하기보다는 다가오는 새해에 뭔가 새롭고 희망적인 일들이 실현되기를 기대하는 마음이 더욱 부풀어 오르기 마련이다. 하지만 포항의 올해는 그 어느 때보다도 감사할만한 일이 많았다. 시 승격 70주년을 맞이하여 연중 다양한 문화, 예술 행사가 끊이지 않았고, 포항지진특별법 제정을 위한 국민청원에 시민들이 일치단결하였으며, 암각화 특별전을 개최하면서 뿌리 깊은 역사유적을 지녔다는 자긍심을 가지기도 하였다. 또 강소연구개발특구와 영일만 관광특구의 지정 등 지속 가능한 도시 포항의 미래먹거리도 착실히 마련한 성공적인 한해였다고 자평할 수 있을 것이다.그렇다면 새해는 어떠할까. 먼저 포항 지역경제를 둘러싼 대내외 여건부터 점검해 보자. 현시점에서 확실한 것은 정치 일정뿐이다. 21대 총선과 관련한 예비후보자 등록 신청이 어제부터 개시되면서 지역의 정치 시계는 이미 빠르게 돌아가고 있어 국내의 정치정세는 내년 4월 중순이면 마무리된다. 다만, 세계 정치경제정세에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칠 미국의 대통령 선거와 관련하여서는 2월에 예비선거가 있지만 11월에 선거가 있어 연중 미국 정세의 변화에 따라 국내외 금융시장은 상당히 민감하게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영국의 브렉시트이행기한도 12월이어서 정치정세와 관련한 불확실성은 연말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그렇다면 포항의 경제정세는 어떠할까. 지역의 주력부문인 철강산업은 주요 국제 철강재 가격이 하락 경향인 데다, 올해 들어 다시 상승하기 시작한 국제철광석 가격도 높은 수준을 지속하고 있어 적어도 내년 상반기까지는 매출 감소와 원가상승에 따른 수익성 악화요인이 해소되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게다가 지역 철강업체의 내부요인도 상황은 만만치 않다. 숙련기능직의 정년 도래로 기술력 보존이 쉽지 않은 데다 직원들의 고령화와 더불어 3년간 최저임금이 32.8%가 상승하면서 평균 인건비 부담이 커진 점까지 고려하면 철강을 중심으로 하는 포항경제의 내년 기상도는 대체로 흐린 날씨가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결국, 포항경제를 조금이라고 회복시키려면 비철강, 비제조 부문에 주목할 수밖에 없다. 그러한 맥락에서 내년에는 지진재해 복구 관련 사업을 최우선 추진할 필요가 있다. 지역 건설업체가 주도하는 토목, 건설사업이 활발해지면 지역 철강의 부진도 다소 완화시킬 수 있다. 이왕이면 지금 시범 운항에 나선 국제크루즈산업의 육성을 위한 기반조성사업도 동시에 추진하였으면 한다. 크루즈산업의 경제효과는 영일만항에서 도보로 이동하거나 가까운 지역에 위치한 최상급의 요리를 제공하는 음식점, 포항에서만 체험하거나 볼 수 있는 독특한 관광상품, 크루즈선이 제공하는 최고 수준의 숙박여건을 경험한 관광객이라도 만족할 만한 특급호텔 등과 같은 기반인프라에서 창출되는 것이다. 크루즈선의 기항은 항만의 접안능력의 대소가 아니라 기항지가 지닌 소비기반의 매력에 좌우되는 것이다. 적어도 2020년은 포항경제가 지닌 약점을 보완하고 인내하면서 밝은 미래를 대비하기 위한 기반 조성에 매진하는 한 해가 되었으면 한다.

2019-12-17

소통

류영재 포항예총 회장12월은 여느 달보다 모임이 많기 마련이다. 공적인 성격을 띤 단체는 의례히 한 해의 결산을 해야 할 것이며 사적인 모임이라하더라도 이런저런 의미를 붙인 마무리가 거의 12월에 집중된다. 특히 송년회는 빠지기도 찜찜하여 일일이 참석하다보면 피로감이 쌓여 일상이 불편할 지경이다. 쌓여가는 송년의 피로 중에도 더러는 휴식 같은 모임도 있다.며칠전 40년 지기가 되어버린 후배가 카톡으로 초대장을 보내왔다. “○○아트팜 송년파티에 초대합니다.” 과수원 냉장창고를 리모델링한 작업실을 ‘아트팜’이라 이름붙이고 가끔씩 지인들을 불러서 예술행사를 벌이는데, 송년회에 초대되기는 처음이다.먼저 도착한 일행들은 클래식기타 연주에 심취해 있었는데, 귀에 익은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을 비롯하여 이문세의 ‘행복한 사람’으로 연주를 마친 팀은 놀랍게도 포스코 사원이라 소개되었다. 푸짐하게 준비된 음식을 먹고 차를 마시며 대화하다 다시 음악감상 시간을 가졌는데, 해설을 곁들인 희귀음반 감상이었다. 일본의 시라토리 에미코를 시작으로 미국의 싱어송라이터 주디 씰의 앨범이 소개되었고, 천상의 목소리라 불리는 브라질의 재즈싱어 마르시아 로페즈 등 격이 다른 음악이었다. 음악은 국적과 언어를 넘어 감동의 커뮤니케이션이 가능케 하였다.옆 자리에 앉은 이가 스스럼없이 얘기를 건넸다. 분명히 일본, 미국, 브라질 등 한마디도 알아들을 수 없는 내용의 음악을 들으며 이렇게 소통이 되는데, 얼마 전 라오스 여행에서 한국사람을 만났는데 그렇지 못했다면서 웃었다. 충청도 출신인 한국인이 베트남에서만 난다는 향료인 ‘침향’을 팔고 있었는데, 경상도 사람인 이 양반이 “그거 빠사 무도 돼요?”라고 물으니 무슨 말인지 도통 알아듣지를 못하더라는 얘기였다. 물론 심한 사투리 탓이긴 하나 한국인간에도 한국말로 소통이 어려울 때가 있다.소통이 화두인 시대이다. 온갖 방식으로 전 세계가 실시간으로 소통하는 세상에 여전히 불통인 경우도 허다하다. 소통의 부재는 오해를 불러오기도 한다.도시의 미래는 청년문화가 좌우한다. 문화는 그 특성상 뿌리 내리는데 오랜 시간이 소요되며 반드시 선행학습이 필요하다. 포항시도 청소년문화센터의 건립 등을 통하여 청년문화의 계발과 청년창업에 집중하고 있다. 포항예총에서 청소년들의 꿈과 재능을 키우기 위하여 ‘틴틴페스티벌’이라는 청소년공연예술축제를 위한 예산을 신청했는데, 시의회 심의에서 예총회원들의 연령이 높으니 청소년문화를 이끌 수 있겠는가를 걱정하며 예산을 배정해도 이벤트사에 위탁하지 않을까를 우려한다고 들었다. 당연한 염려이다. 그러나 이 일은 누가해도 해야 한다. 가장 잘 할 수 있는 사람이 하면 된다. 예총회원들의 연령이 높은 것도 사실이지만 일천명 회원 중에는 젊은 회원들도 많다. 그리고 청년문화를 꽃피우는 주체는 청소년들이지만 문화제공자는 기성세대일 수밖에 없다. 문제는 얼마나 정성을 다하여 올바르게 운영하느냐 일 것이다.진정한 소통은 무조건 믿고 보는 것도 아니고 ‘우리가 남이가’ 하는 패거리 문화도 아닌 공감과 경청에 기반한 쌍방의 소통일 것이다. 문화예술인들도 시민의 대의기관인 의회와 긴밀하게 소통해야 할 때이다.

2019-12-17

몽롱한 글쓰기 (1)

유명한 할리우드 영화감독을 남편으로 둔 시나리오 작가가 있습니다. 삶은 찬란했습니다. 남편은 택시 드라이버, 휴고 등 대표작을 내며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로버트 드 니로 등과 함께 일하는 거장입니다.부부가 성공 가도를 달리고 있던 어느 날, 남편이 외도를 합니다. 딸 하나를 낳고 달콤하게 살던 이 여인의 삶은 그대로 추락하지요. 술이 없이는 하루도 잠을 이루지 못합니다. 작가로서의 경력 또한 올 스톱. 삶은 의미를 찾을 수 없는 고역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혼 후 우울증이 그녀를 덮칩니다. 알코올에 의지하지 않고는 한 글자도 쓸 수 없습니다.그러던 어느 날. 도저히 이렇게 살 수 없다 생각한 그녀는 산책하며 몸을 움직이기로 결심합니다.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어느 날, 집 앞에서 고양이 한 마리를 발견하지요. 고양이와 조금씩 가까워진 그녀. 일주일 후에는 고양이와 오랜 이야기를 나눕니다.“고양이와 대화하면서, 주위에 관심을 기울이는 연습을 시작했어요. 그동안 내 문제에만 함몰되어 주위를 돌아볼 생각조차 못하고 살았었죠. 내가 고통에서 빠져나오는 탈출구였어요.”우울감과 무기력의 연속에서 빠져나와 회복한 그녀는 이후의 삶을 ‘창조성 회복의 전도사’로 살아갑니다. 이혼, 우울증, 알콜 중독을 이겨낸 시나리오 작가 줄리아 카메론(Julia Cameron 1948∼) 이야기입니다. 카메론은 창조성을 회복하기 위해 두 가지 도구가 필요하다고 말합니다.하나는 아침에 눈 뜨자 마자 일어나 무조건 한 페이지를 쓰는 ‘모닝 페이지’입니다. 두 번째는 일주일에 2시간을 자신만을 위한 창조성 회복에 투자하는 일입니다. 공연을 보거나, 박물관을 찾아가거나, 해변을 산책하는 등, 누구도 의식하지 않고 오롯이 자신의 내면을 돌아볼 수 있는 경험을 매주 한 차례 2시간 정도 의식처럼 수행하라는 것이지요. (계속)/인문고전독서포럼대표

2019-12-17

울릉군 공무원청렴도의 이면

김두한 경북부울릉군 공무원 청렴도는 왜 전국 꼴찌 수준을 이어갈까. 정말 부조리가 많고 상사들이 부당한 지시를 하고, 금품요구를 하고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아니다.국민권익위원회가 2019년도 공공기관 청렴도 측정 결과를 최근 공개했다. 기초 자치단체에서 울릉군은 지난해 대비 한 단계 상승한 4등급을 기록했다. 하지만, 여전히 꼴찌 수준이다.울릉군은 지난해 종합청렴도 측정 결과 최하위등급인 5등급에서 올해는 한 단계 상승한 4등급을 받았다. 지난해 5등급을 받았던 외부청렴도가 1단계 올라 4등급이 됐다. 하지만, 내부청렴도는 1단계 하락한 5등급이다.이 같은 결과가 왜 나올까? 울릉군공무원의 구조를 보면 알 수 있다. 울릉군의 공무원 정원은 399명(공무직, 기간제 근로자 제외), 현원 382명이며 이 가운데 전출제한이 적용되는 공무원이 211명이다.울릉군공무원 임용 조건에 아예 5년, 7년 근무를 해야 전출 가능한 공무원이 55.23%다. 절반이 넘는다, 이들은 육지 전출이 가능하면 대부분 육지로 나갈 의향이 있는 공무원이라고 봐야 한다.특히 울릉군공무원 임용때는 전출기간이 5년이었다가 임용 때 7년으로 바뀐 공무원도 34명이나 된다. 이들은 시험을 칠 때 조건은 내년부터 전출할 수 있었지만 2년 늘어났다.이들의 불만은 하늘을 찌른다. 승진을 거부한 공무원도 30여 명이나 된다. 9급에서 8급 승진하려면 1년 6월이 걸리고 8급→7급은 2년이다. 공무원으로 임용돼 3년6개월 근무하면 7급으로 승진하지만 7급으로 승진하면 타지역 전출이 어려워지게 돼 아예 승진조차 꺼린다.요즘은 육지로 전출하려면 울릉도에서 7년을 근무해야 한다. 이 같은 조건에서 근무에 전념하라고 요구하기 어렵다. 불만이 쏟아질 수밖에 없다. 어려가지 사정으로 고향 등 육지로 나가려고 혈안이 돼 있는데 뜻대로 안 되니 울릉군 행정에 우호적일리 만무하다.울릉도를 떠나야 하는데 여건은 안 되고 그렇다고 근무환경이 좋은 것도 아니다. 직원 사택은 턱없이 부족하고 울릉도는 물가가 비싸 원룸 임대도 보증금 500만 원에 월임대료로 50만 원을 내야 한다.이 같은 구조에서 업무처리, 보조금 지원업무, 부당한 영향력 행사, 부정청탁에 따른 업무처리, 공용물 사적이용 등을 평가하면 곱게 보일리 만무하고 상사 지시가 귀에 들어 올리도 없다. 이런게 내부청렴도란 점수로 나타나게 된 것이다.육지 나갈 근무연한이 되면 근무성적에 상관없이 힘 좋고, 배경 좋은 사람이 먼저 나간다. 이유는 타 시군에서 울릉군에 할애 요청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성적에 따라 전출 가는 것이 아니다.근무 성적이 나쁜 사람이 오히려 유리할지도 모른다. 울릉군이 소위 일 안 하는 골통을 붙잡아 놓을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이래저래 불만이 더 쌓일 수밖에 없는 구조다. 근본적인 방안을 더 늦기 전에 찾아야 할 때다./kimdh@kbmaeil.com

2019-12-16

예산농단과 세금도둑

강희룡 서예가조선시대는 토지에 세금을 부여하는 것이 국가의 가장 큰 재원이었다. 건국 초기에는 손실답험법(損失踏驗法)이라 하여, 풍·흉년을 직접 조사하여 세금을 매겼으나, 토지를 조사하는 관리들의 성향에 따라 좌우되었기 때문에 문제가 많아 세종시대 역시 과세기준에 고민이 있었다. 이에 임금은 공법(貢法)이라는 새로운 세법을 마련했다. 공법이란 국가가 수취하는 토지세의 한 제도로서, 수년간의 수확고를 통산하여 평년의 수익을 정해진 비율로 삼아 세금을 매기는 제도였다. 세종 12년의 ‘세종실록’ 기록을 보면 세종은 공법 결정 이전에 과거시험에 공법 관련 내용을 출제하여 공법 제정 문제가 조정의 현안임을 강조하는 한편, 공법시행 이전에 신하와 유생들의 의견을 알아본 후에 최종적으로 공법의 시행은 백성이 결정할 사안으로 판단하였다.1430년(세종12) 세종은 이 새로운 세법 시안을 갖고 백성들에게 그 찬반 의사를 묻는 국민투표를 3월 5일부터 8월 10일까지 무려 5개월간 실시하였다. 치밀한 성품과 백성들을 최우선으로 하는 세종의 의지가 워낙 강했기 때문이었다.세종실록에는 ‘정부와 육조, 각 관사와 각 도의 감사, 지방수령 및 여염(閭閻)의 세민(細民)에 이르기까지 모두 가부(可否)를 물어서 아뢰게 하라.’는 기록은 임금이 백성들이 좋지 않다면 이를 행할 수 없다고 천명한 것이다. 8월 10일 호조에서 발표한 국민투표 결과보고를 보면 17만여 명의 백성들이 투표에 참여하여, 9만8천657명이 찬성, 7만4천148명이 반대한 것으로 집계됐다.그 시절에 수많은 백성들을 대상으로 일일이 투표에 참석하도록 한 점은 매우 눈길을 끈다. 아무리 좋은 제도라도 특히 조세에서 백성이 찬성하지 않으면 행할 수 없다는 성군으로서 세종의 선언은 오늘날에도 많은 시사점을 주고 있다.지난 10일 여당은 제1야당을 배제하고 4+1협의체라는 정당구조로 512조의 슈퍼예산안을 28분 만에 날치기로 통과시켰다. 즉 대대적인 세금 ‘나눠먹기 짬짜미’를 한 것으로 그야말로 예산을 농단하며 희대의 ‘세금 도둑질’을 한 것이다. 입법부 수장으로 중립의무를 지켜야 할 국회의장이 그의 지역구에 아들 세습공천을 위해 여당의 선봉대 역할을 했다는 게 진실이라면 그는 이미 의장으로서의 역할과 정치인으로서의 생명은 끝난 것이다.더구나 박지원 의원은 그의 지역구 목포에서 의정보고회 때 아예 ‘예산농단주범, 세금도둑 박지원입니다’를 인사말로 세금도둑질을 공개적으로 자랑하며 다니니 이런 부류의 정치인들로 인해 납세의무를 성실히 수행한 국민들은 세금을 내면서도 뭔가 빼앗기고, 분하고, 부당하다는 느낌을 받지 않을 수 없다. ‘민본과 민주적 절차’와 소통을 중시했던 세종의 의지는 600년 전의 국민투표를 가능하게 했고, 그 성과물인 공법은 시대를 더욱 빛나게 했다.지금 한국사회에서 벌어지는 정치인의 작태를 보면 ‘납세의무를 국민이 당연히 져야만 하는가?’라는 의문만 더욱 강하게 든다.

2019-12-16

기적의 사과 (5)

이후 몇 년을 기무라는 지력 회복에 모든 초점을 맞춥니다.벌레 잡는 일을 그만두고 산속의 생명력 넘치는 흙을 과수원에 구현하려 애씁니다. 콩을 뿌리고 잡초를 기르고 식초를 뿌리고, 생명체들이 자연스럽게 자신의 밭에 생태계를 이루도록 각고의 노력을 기울이지요.“10년째 처음으로 사과꽃 일곱 송이가 피었어요. 온 가족이 얼싸안고 눈물을 흘렸습니다.” 이듬해 6만평 전체에 사과꽃이 피었습니다. 수확은 보잘 것 없었어요. 탁구공 만한 사과가 열렸으니까요. 그러나 정말 맛있었지요.11년 동안의 사투 끝에 그는 마침내 6만평의 사과 밭에서 기적의 사과를 수확합니다. 그 밭은 잡초와 온갖 생물로 가득합니다.연구 결과 약 2천종의 생명이 이 밭에 공생한다고 합니다. 완벽한 생태계의 평형을 이룬 거지요.이제 벌레가 전혀 없습니다. 농약 한 방울 치지 않는데 말이지요. 벌레를 잡아먹는 포식자들이 있고 나무 자체가 저항력이 생겨 스스로 자가 치유를 합니다. 비밀은 뿌리에 있습니다. 토양이 미생물로 가득한 풍요로운 흙이 되자, 뿌리는 더 깊게 자랍니다.일반적으로 사과 뿌리가 1∼2m인데 기무라의 뿌리는 최소 10m, 긴 것은 20m가 넘도록 깊습니다. 기적은 땅속 깊은 곳, 보이지 않는 지점에서 일어나고 있었던 겁니다.이 기적의 사과는 1년에 2천명만 맛볼 수 있습니다. 응모기간에는 순식간에 신청이 마감되지요. 그의 사과로 만든 사과 수프를 판매하는 도쿄의 레스토랑은 6개월 예약이 꽉 차있는 상태입니다.한 입 베어 물면 그 향기로운 맛에 누구라도 눈물을 흘린다는 기적의 사과입니다. 천재라고 칭송하는 말에 기무라씨는 대꾸합니다. “아니야, 난 바보야. 바보니까 이런 일을 하는 거지. 힘을 내 준건 나무들이야. 나무들이 힘을 내 주지 않았으면 절대 이 일은 성공할 수 없었어.”/인문고전독서포럼대표

2019-12-16

학과와 전공에 대한 디지털 시대의 논리

서정목 대구가톨릭대학교 교수·번역학 전공바야흐로 대학 정시모집기간이다. 수험생들은 어느 대학, 무슨 과를 지원할지 실로 고민이 많을 것이다.오늘날의 대졸 취업준비생들은 단군 이래로 최대의 스펙을 갖추고 있다지만 막상 취업은 녹록치 않은 것이 현실이다. 취업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것이 바로 학과와 전공의 선택이다. 옛날에는 다니는 대학을 그만 두지 않은 이상 입학 시에 선택한 전공을 바꾸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러나 과거와는 달리 요즘에는 대학에서 전공을 바꾸는 제도인 전과 제도, 그리고 한 개 이상의 전공을 더 이수할 수 있는 복수전공 제도가 있다. 옛날부터 있어온 부전공 제도도 여전히 존재한다. 다른 대학교로 편입하는 기회도 과거와는 달리 많이 제공되고 있다.대학의 입장에서도 천편일률(千篇一律)적이던 학과의 명칭과 전공의 개념도 많이 변화하였다. 일반적으로 과거 대학의 조직은 인문과학, 사회과학, 자연과학, 공학, 농학, 사범대학, 법학, 의학으로 구분되었고, 각 단과대학의 개별 전공들이 독자적으로 하나의 전공으로 자리매김하는 데에는 큰 어려움이 없었다.가령, 기계과는 기계과, 자동차과는 자동차과와 같이 각자 독자적으로 운영되었고, 영어영문과, 중어중문과와 같이 어문계열의 경우, 문학과 어학을 위주로 학과의 명칭이 구성되어 운영되었다. 그러나 오늘날 융복합의 시대에서 외국어와 관광, 항공 서비스와 무역을 결합한 새로운 이름의 학과가 생겨나고, 전기자동차, 드론, 빅데이터와 인공지능과 같은 키워드를 학과 명칭에 포함한 학과와 전공이 속속 출현한다. 아울러 학교별 특성화에 따라 특색 있고 전문성을 지닌 다양한 전공을 제시하면서 고객 유치(!)에 나서고 있다.이제는 학과와 전공에 관한한 학생도 생물(生物)이고 대학교도 생물(生物)이어야 한다.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진화해야만 한다. 필자가 항상 학생들에게 강조하는 것은 하나의 전공에 너무 연연하지 말자는 것이다. 전통적인 학과의 개념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말이다.오늘날 우리 사회는 융복합을 지향하는 시대가 되었다. 하나의 전공에 자신의 적성과 희망, 그리고 특기를 살리기 위해 전과를 하거나 복수전공, 부전공, 연계전공, 자기설계전공 등을 결합해서 융복합적인 전공 지식을 형성하면서 창의적이고 융복합적인 인간이 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필자가 추천하는 전공은 소프트웨어공학이다.또한 막상 공부하고 싶은 전공이 없거나, 딱히 들어맞는 적성이 없다면, 소프트웨어공학, 또는 관련 전공을 선택하기를 권한다. 소프트웨어공학은 문과생들도 접근하기에 비교적 무난한 전공이다. 문과생이든 이과생이든 각자 자신의 전공에서 소프트웨어공학을 접목한다면, 단순한 산술적 합이 둘이 아닌 더 이상의 시너지를 발휘하게 된다.너도 나도 소프트웨어를 전공하면 그 분야에는 인력이 넘치지 않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각자의 전공과 전산의 융복합은 새로운 가치를 창조할 수 있다. ‘Atom’의 아날로그 세계와는 달리 ‘Bit’의 디지털 세계에서는 공유해도 줄어들지 않는다. 그래서 가능하다. 디지털의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

2019-12-16

포항의 맛? 과메기 받고 가자미

포항 먹거리? 라고 물으면 대부분 과메기와 물회를 대표적인 ‘포항의 맛’으로 손꼽는다. 맞다. 구룡포 과메기는 대표적인 포항의 맛이다. 초겨울, 구룡포 일대에 과메기 덕장이 선다. 바닷가 골목마다 과메기를 말린다. 실내에서 온풍 혹은 냉풍으로 말리는 곳도 있다. 겨울 구룡포는 과메기다.물회도 마찬가지. 포항에 오는 관광객들은 누구나 물회 한 그릇씩은 먹고 간다. 저마다 ‘포항 물회의 추억’을 가지고 돌아간다. ‘물회 마니아’들은 겨울을 노린다. 겨울에는 물가자미가 등장한다. 영덕, 울진 지역이 물가자미로 유명하지만, 오히려 생산, 소비량은 포항이 앞선다.그러나, 포항을 대표하는 것은 가자미다. 참가자미, 용가자미, 범가자미, 분홍 가자미, 홍가자미, 물가자미 등 가자미 종류도 숱하다. 포항 토박이들은 여러 종류의 가자미를 세심하게 가르고, 먹는다. 봄철에 물회용 가자미가 따로 있고, 구이용, 조림용 가자미를 따로 가른다. 죽도시장, 구룡포 시장에 가면 사시사철 가자미를 볼 수 있다. 싱싱한 생물 가자미, 말린 가자미, 반건조 가자미가 지천이다.웬만한 밥상에는 가자미구이 한 마리가 나온다. 찜이나 조림으로, 때로는 구이로 내놓는다. 제법 큼직한 가자미를 내놓으면 외지에서 온 관광객들은 당황한다. “가자미구이는 주문하지 않았는데”라고 생각한다. 반찬 중 하나다.포항 사람들은, 가자미를,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가자미는 늘, 곁에 있다. 시장에서, 바닷가에서, 골목에서, 식당에서 그리고 가정의 밥상에서 만난다. 수시로 만나는 흔한 생선이니, 포항 사는 이들은, 그저 그러려니 한다. 골목마다 가자미를 말리거나, 팔거나, 음식으로 내놓는 곳은 포항밖에 없다고 믿는 이는 없다. 전 국민이 가자미를 흔하게 대한다고 믿는다.아귀도 재미있다. 아귀는 마산에서 처음으로 ‘식용화’되었다고 전해진다. 정설이다. 지금도 ‘마산 아귀’는 고유명사다. 그동안 아귀가 ‘이사’했다. 최근 몇 년 동안 포항에서 가장 많이 잡히는 생선 중 하나가 아귀다. 아귀가 남해안에서 동해안으로 거슬러 오면서, 포항에 아귀가 흔해졌다.아귀 간을 일본인들은 ‘안키모(ankimo)’라 부른다. 귀하게 여긴다. 일본인 중에는 아귀 간이 프랑스의 푸아그라(foie gras)보다 낫다고 여기는 이들도 있다. ‘푸아(foie)’는 간이다. ‘그라(gras)’는 지방이다. 푸아그라는 지방 덩어리다. 아귀 간도 상당 부분이 지방질이다. 만지기 까다롭다. 열기가 강하면 물처럼 흘러내린다. 덜 익은 것은 날생선의 비린 맛이 느껴진다.신선한 아귀 수육과 더불어 아귀 간 찜을 먹을 수 있는 곳은 드물다. 아귀는 옮기는 과정에서 쉬 신선도가 떨어진다. 마산, 부산 그리고 포항에서 손질한 아귀를 대도시에 공급한다. 단언하기는 힘들지만, 포항에서 버스 편으로, 서울로 올라가는 ‘손질 아귀’의 양은 만만치 않다.포항 구룡포 일대에서 질 좋은 자연산 미역이 난다는 사실을 아는 이도 드물다. 외지 사람들은 “포항에서 질 좋은 자연산 미역이 생산된다”는 사실을 잘 모른다. 외지인뿐만 아니라 포항에 사는 이들도 마찬가지다. 죽도 시장에 가면 ‘완도 미역’이라고 표기한 마른미역이 심심치 않게 눈에 띈다.미역은 양식 미역과 자연산이다. 한때 동해안 울산, 부산 언저리에서도 미역을 양식, 재배했다. 없어진 이유는 간단하다. 공장 지대가 들어섰다. 울산 이진, 당월, 온산 미역도 사라졌다. 동해안 다른 지역도 마찬가지. 차가운 물에서는 미역 성장 속도가 느리다. 물이 따뜻한 남해안을 따르지 못한다. 겉모양도 남해안 것이 낫다. 먹어보면 다르지만, 소비자들이 그 내용을 알 리는 없다. 전국 어디서나 완도 미역을 쉽게 구할 수 있으니 이제 대도시 소비자들도 완도 미역을 최상품으로 여긴다. 그렇지는 않다.자연산 미역은 돌미역, 산모 미역, 해녀 채취 미역이라고 부른다. ‘돌’은 자연산, 거칠다는 뜻을 지니고 있다. 거친 자연산 미역이라서 돌미역이라고 부른다. 미역 줄기나 잎이 두껍고 거칠다. 웬만큼 삶아도 풀어지지 않는다. 푹 고면 뽀얀 국물이 우러난다. 산모를 위하여 사용하는 질 좋은 미역이 산모 미역이다. 해녀 채취 미역은 해녀가 한 올, 한 올 채취하기 때문에 붙인 이름이다. 마치 밭에서 채소를 채취하듯이, 바다의 미역밭에서 미역을 채취한다. 소량이다.식재료 가격은 인건비다. 해녀가 일일이 따 모은 미역은 비싸다. 구룡포에서 양포항 일대까지 자연산 미역을 채취한다. 생산 물량은 적지만, 품질은 수준급이다.포항 구룡포, 양포, 흥해, 칠포 일대의 깔떼기국, 깔떼기국수, 깔떼기도 특이한 음식이다. ‘미역국+곡물’ 형태다. 곡물은 수제비, 칼국수, 새알심 등이다. 수제비 미역국, 칼국수 미역국, 새알심 미역국이다.포항에는 여러 종류의 추어탕이 있다. 고등어추어탕, 꽁치추어탕 등이다. 추어탕의 ‘추어(鰌魚)’는 미꾸라지다. ‘고등어 미꾸라지탕’은 어색하다. 고등어를 재료로, 마치 추어탕처럼 끓인다. 포항 흥해에는 고등어추어탕 집이 몇몇 있다. 50년의 업력을 자랑하는 노포도 있다. 서울 등 대도시에서는 ‘추어탕에 미꾸라지 대신 고등어’를 넣은 집이 있다. 손님들은 질색한다. 포항의 고등어추어탕은 다르다. 포항 것은 고등어로 만든다. 대도시의 고등어추어탕은, “미꾸라지를 넣었다고 거짓말하고, 고등어를 넣은 것”이다. 고등어추어탕을 보면서 고개를 갸웃거리는 이들은 미꾸라지 대신 고등어를 넣은 ‘엉터리 추어탕’을 보았기 때문이다. 포항의 고등어추어탕은 죄가 없다. 떳떳하다. 처음부터 고등어를 넣는다고 밝힌다. 국산, 신선한 고등어를 넣은 고등어추어탕은 비린내도 거의 없다. 담백, 고소하다. 추어탕 산초가루는 고등어추어탕에도 유효하다.‘당구국’ ‘꽁치다대기추어탕’도 희한한 음식이다. 내용은 간단하다. 꽁치를 재료로 추어탕처럼 끓인 것이다. ‘꽁치국’을 ‘당구국’이라 부른다. ‘꽁치다대기추어탕’이라 부르는 곳도 있다.고등어추어탕과 꽁치추어탕은 큰 차이가 있다. 고등어추어탕은 신선한 고등어 살을 잘 발라서 여러 채소를 넣고 국을 끓인다. 꽁치추어탕은, 꽁치를 잘게 다진 다음 ‘꽁치 완자’를 만들어 넣는 방식이다. 잘 다지면 꽁치살은 점도가 높아진다. 전분, 밀가루 등을 조금만 넣어도 완자 만들기는 가능하다.포항에는 ‘숨어있는 음식’이 많다. 포항은 맛의 고장이다. 포항 사람들도 포항 음식을 잘 모르고 있을 뿐이다.장기 ‘창바우마을’의칼국수 미역국, 꽁치추어탕,그리고 성게덮밥‘경북 포항시 남구 장기면 동해안로 3404번길 55’는 신창리의 공식적인 주소다. 지역주민들은 ‘신창리’ 혹은 ‘창바우마을’이라고 부른다. 작은 자갈이 많은 해안선과 인근 경치가 좋다. 다산 정약용 유배 유적지와 일출암이 지척 간이다. 다산은 1801년 장기로 유배 와서 약 10개월간 있었다. ‘장기농가 10수’를 남겼다. 일출암은, 육당 최남선이 조선 10경 중 하나라고 손꼽은 곳이다.경치도 좋지만, 앞바다가 보물이다. 질 좋은 자연산 미역, 각종 성게가 풍성하다. 인근 항구에서는 대왕문어, 아귀, 꽁치 등을 비롯한 신선한 생선이 흔하다.‘어업회사법인_창바우마을(대표 김태섭)’은 2012년 설립, 그동안 후릿그물, 고둥잡기체험 등 다양한 체험프로그램을 선보였다. 체험프로그램에 참가하거나 예약하면 이 지역의 특산물을 이용한 음식도 맛볼 수 있다.‘성게덮밥’은 성게 알, 해조류, 채소를 가득 올린 후, 가마솥밥을 새로 지은 것이다. 정성이 많이 든 음식이다. 동해안 일대에서는 성게를 ‘앙장구’라고 부른다. 보라성게와 말똥성게가 흔한데, 앙장구는 말똥성게다. ‘창바우마을’에서는 계절별로 생산되는 성게를 이용하여 ‘성게덮밥’을 만든다. 성게덮밥보다는 ‘성게 가마솥밥’이 어울린다.‘깔떼기’ 혹은 ‘깔떼기국수’는 식당이 아니라 ‘창바우마을’에서만 맛볼 수 있는 음식이다. 앞바다에서 동네 해녀들이 채취한 미역에 들깻가루 등을 넣고 국을 끓인다. 한소끔 끓은 다음, 준비한 칼국수를 넣고 다시 끓인다. 칼국수는 직접 반죽한 것을 널찍하게 썰어서 사용한다. 오래전에는 칼국수 대신 수제비나 새알심을 넣기도 했다. 자연산 미역의 독특한 식감과 칼국수의 푸짐한 식감이 잘 어울린다.‘당구국’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마치 장구 치듯이 꽁치를 잘게 두드리기 때문에 붙인 이름이라는 ‘설’이 있다. ‘꽁치를 마치 장구 치듯이 다진 다음 끓인 국’이라는 설명이다. 어색하지만 현재로서는 이 설명밖에는 뚜렷한 설명이 없다.‘당구국’은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이다. 신선한 꽁치를 손질한 다음, 잘 다진다. 손으로 주물러 완자 형태를 만든다. 육수에, 준비한 우거지, 시래기, 각종 채소와 꽁치 완자를 넣는다. 꽁치 완자는 모양이 일정치 않다. 고소하면서도 꽁치 특유의 쌉싸래한 맛을 살린 꽁치국이다. 꽁치국인 ‘당구국’은 꽁치의 신선도가 생명이다. 신선하지 않은 꽁치는 쓴맛을 낸다./황광해 맛칼럼니스트

2019-12-16

아름다운 불국토의 나라… 경주 신선사(神仙寺)

신선이 노닐 법한 환상적인 이름과는 달리 시멘트로 포장된 길이 단조롭고도 가파르게 이어진다. 여느 산과 다름없는 겨울 풍경에 지쳐갈 무렵 독경소리가 마중을 나오고, 산 위의 양지바른 곳에는 바람 한 점 없이 따사롭다. 월동 중인 초록의 으름덩굴과 겨울햇살이 불이문 되어 진리의 세계인 불국토가 펼쳐질 것만 같다.신라의 명장 김유신이 한 노인으로부터 신검(神劍)을 얻어 이 산의 바위굴에서 검술을 닦았는데, 시험 삼아 칼로 바위를 내리치니 바위가 갈라졌다. 이에 산 이름을 단석산이라 했고 갈라진 틈에 절을 세워 단석사라 불렀다고 한다. 더러 신선사라는 절 이름을 화랑과 관련된 미륵신앙의 기도처로 생각하는 의견도 있다.신선사(神仙寺)는 7세기에 활동하던 자장의 제자 잠주(岑珠)가 창건한 법화종 사찰이다. 옛날 절 아래에 살던 한 젊은이가 이곳에 올라와 노인들이 바둑을 두는 걸 구경하고 집에 오니 아내는 이미 백발의 노파가 되어 있었다. 50년의 세월이 흐른 것이다. 그 뒤부터 이 바위를 신선이 바둑을 둔 곳으로 불렀고, 절 이름도 신선사라 했다는 전설도 있다.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염불소리에 귀를 세운 겨울 가지들의 눈빛이 신비스러울 정도로 빛난다. 골짜기는 봄 숲처럼 환하다. 좁은 비탈에 자리한 신선사도 계절의 을씨년스러움을 표정없이 비켜 앉아 있다. 콸콸 감로수 떨어지는 소리 요란한데 나이 많은 느티나무의 위엄이 눈길을 끈다. 겨울을 나기 위한 시래기 타래가 바람에 흔들리며 인사를 건넨다. 소박한 절이다. 산그늘에 발을 담그고 서 있는 대웅전과 석등조차 독송에 잠겨 스스로를 다스리고 있다.대웅전 법당은 작지만 안온하다. 앞마당을 지나치는 등산객들의 발자국 소리 때문일까 마음이 동요를 일으킨다. 대웅전 마당에서 서쪽으로 이어지는 나무데크 끝머리에 위치한 높다란 암벽과 인공 천정, 미륵전이라 적혀 있다. 나는 암벽을 돌아 서쪽으로 난 보다 넓은 출입구로 들어선다.신라 최초의 석굴사원, 거대한 ㄷ자 암벽의 자연석실에 들어서며 이십여 년 전 찾아갔던 이집트의 카르낙 신전을 떠올린다. 긴 시간을 뛰어 넘어 파라오를 만난다는 설렘으로 람세스를 탐독하던 시절, 나는 풍요로웠던 이집트의 물질 문명보다 람세스와 네페르타리의 성숙한 영혼을 찾아 헤맸다. 거대한 석상들의 웅장함과 물밀 듯 찾아드는 관광객들, 카이로의 회색빛 소음 속에서 나는 얼마나 혼란스러웠던가. 진정한 파라오의 힘과 자존심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가 없었다.듬성듬성 청이끼가 낀 미륵불이 지긋이 미소짓고 있다. 반쯤의 밝음과 반쯤의 어둠 속에서 느껴지는 신비로운 기운이 생동감으로 이어진다. 국보 제 199호인 단석산 신선사 마애불상군, 삼존불의 시선 속에 파라오와 비교할 수 없는 전율이 인다. 환상을 깨뜨리고 싶지 않아 두 손을 모으고 불상들을 우러러본다. 내부에 새겨진 명문은 마멸이 심해 완전한 판독은 어렵지만 이 석굴의 절 이름이 신선사이며 본존상이 미륵장육상임을 밝히고 있다.신라를 가장 현실적인 불국토라 여겼던 신라인들, 그들은 불교의 발생지인 인도를 종주국으로, 신라를 아류국으로 폄하하지 않았다. 서축에 견줄 만한 동축의 불교 주인국이라는, 강한 문화적 주체성을 가지고 있었다. 새로운 불교의 종주국으로 여기며 당당한 주체정신을 가졌던 신라인의 숨결, 마치 암벽으로 둘러싸인 영혼의 우물 속에 떠 있는 것 같다.가만히 눈을 감고 젊은 김유신을 생각한다. 성골이 아닌 비주류 가야 왕족 출신으로 신라의 중추적 인물이 되기까지의 갈등과 고뇌, 수많은 낭도들을 이끌고 중악석굴에서 자신을 단련시키는 의연한 모습까지. 8.2m 높이의 거대한 미륵보살은 알고 있으리라. 온화한 시선 속에 담고 있는 말씀과도 같은 궤적들을. 삼면에 10여구의 부처와 보살상이 조각되어 있지만 북쪽 암벽에 새겨진 주존불인 미륵불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다.중악석굴이 이곳인지 팔공산 중암암인지에 대한 의견은 분분하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이 땅을 빛나게 했던 신라인의 정신문화다. 원광법사와 세속오계, 삼국을 통일한 호국정신, 그들이 그토록 염원하던 미래상은 어떤 모습일까? 나는 칼로 잘린 듯한 거대한 암벽을 쓰다듬어 본다.조낭희 수필가주민들이 탱바위라고 부른다는 암벽 속을 염불소리 홀로 기도가 되어 드나들 뿐, 정상을 향해 오르내리는 등산객들만 바람처럼 들어왔다 또 바람처럼 사라진다. 한차례 왁자함을 쏟아내며 사진을 찍고 떠난 자리는 참으로 허전하다. 행여 우리는 설화적인 요소에 갇혀 고대 역사를 신화와 혼동하며 가볍게 여기지는 않는가?나와 역사에 대한 깊이가 빈약할수록 현실은 메마르고 비참해질 뿐이다. 신라인들이 가장 축복받고 이상적인 불국토라 여겼던 이 땅, 우리의 문화와 정서 속에 면면히 살아 있는 천년의 혼을 나는 외면한 채 무엇을 갈망하는가?심장에 가까운 붓다의 말씀이 들린다.“천상천하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 부디 자애의 마음으로 충만하라.”

2019-12-16

조국으로 돌아가지 못한 그리움의 음악

쇼팽은 처음 바르샤바를 떠난 후 비엔나에 정착했으나 러시아 제국주의와 동맹이었던 비엔나 사람들은 쇼팽이 폴란드인이란 이유로 ‘저항한 국가의 작곡가’라며 그의 음악을 외면했다고 한다. 그 후 프랑스 파리로 음악 활동의 근거지를 옮기게 된다. 이 후 쇼팽이 영국을 방문하려 한 적이 있었는데 프랑스 비자가 없어 어려움을 겪게 됐다. 쇼팽은 망명자 신분이었던 것이다. 이에 러시아 정부는 폴란드가 러시아의 식민지이므로 쇼팽만 인정한다면 ‘러시아 국민작곡가’로 선정해 러시아 비자를 발급하겠노라는 제의했으나 쇼팽은 단호히 거절했으며 이에 러시아 정부에 의해 ‘귀국 금지령’이 선포돼 다시는 고국에 돌아가지 못한 것이다.쇼팽이 조국의 독립을 위해 구체적인 행동을 하지는 못했지만 조국에 대한 사랑만은 그의 작품으로도 알 수가 있다. 폴란드의 민속춤인 ‘마주르카’와 ‘폴로네이즈’를 피아노곡으로 활용해 전 세계에 폴란드의 음악을 알렸으며 그가 창시한 피아노 장르인 ‘발라드’는 일정한 형식이 존재하지 않는 서사적이며 스케일이 큰 곡인데 이것은 폴란드의 애국시인 ‘아담 미키에비치(1798∼1855)’의 애국시에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쇼팽의 작곡 능력이 절정에 달하던 당시 유럽은 벨리니(1801∼1835)와 로시니(1792∼1868))의 오페라가 지배하던 시기였다. 정치적 이유로 폴란드에서 망명한 주위의 많은 이들이 쇼팽에게 애국적인 오페라 작품을 쓰길 권했지만, “나의 눈과 머릿속에는 오직 피아노건반 만이 보인다”고 말한 그의 말처럼 흥행을 뒤로 한 채 피아노만을 위한 새로운 음악세계를 고집스럽게 만들어 낸 것이다.쇼팽은 그보다 한 해 늦게 태어난 프란츠 리스트(1811∼1886)와 자주 비교된다. 피아노를 전공하는 학생이라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두 사람이다. 리스트는 잘생긴 외모를 과시하기 위해 피아노를 연주할 때 청중들에게 최초로 옆으로 앉아 연주를 시도한 슈퍼스타적 기질이 많은 인물이었다. 리스트의 작품들은 개인 감성의 표현보다는 한계를 뛰어넘는 초인적 연주법으로 일관돼 있으며 여인들과도 숱한 스캔들을 만들어낸 인물이다. 쇼팽은 리스트와 달라도 너무 달랐다. 남들 앞에 나서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으며 그의 일생을 통해 연주회는 50여회 밖에는 출연하지 않았고, 주로 소규모 모임의 살롱연주를 선호했다. 쇼팽의 음악은 구상된 작품이라기보다 현재의 감정을 표현해낸 즉흥적인 느낌의 곡이 많다. 그런 느낌을 가져야 효과적으로 연주할 수 있다.그의 피아노곡은 오케스트라나 다른 악기 편성을 위해 편곡을 통해 바꿔 놓으면 그 근본적인 악상이 손상되며 그 음악이 지니는 특수한 정서가 없어진다. 쇼팽에게 악상은 음악의 흐름으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피아노만이 가장 효과적으로 연주될 수 있게 작곡 되어진 것이다.요즘 유행하고 있는 주크박스 뮤지컬과 비슷한 ‘레 실피드(Les sylphides)’라는 발레곡이 있다. 쇼팽의 피아노곡만으로 구성된 옴니버스식 발레곡인데 편곡은 글라주노프(1865∼1936)가 담당했으며 줄거리는 없다. 이 곡을 감상하면 쇼팽의 작품을 오케스트라로 편곡함에는 한계가 있음을 실감하게 된다근대적인 형태의 최초의 지휘자인 한스 폰 뷜로는 ‘에튜드 op.25 no.11’일명 ‘겨울바람’을 두고 “오케스트라로서 표현할 수 없는 피아노로서의 가장 완벽한 곡”이라 평했다.쇼팽은 에튜드, 프렐류드, 발라드, 왈츠, 마주르카, 폴로네이즈, 녹턴 등의 피아노 형식에 특화된 장르만 창조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천재적인 창의성과 감수성으로 피아노만이 가질 수 있는 다양한 기법과 ‘템포 루바토’나 ‘헤미올라’ 등 특유의 릴렉스 기법을 통하여 피아노가 표현할 수 있는 모든 가능성들을 만들어 낸 것이다.고국을 떠나올 때 불안해했던 그의 예감대로 쇼팽은 죽을 때까지 고국 폴란드로 돌아가지 못했으나 그의 심장만은 돌아왔다. 그리고 그의 유언대로 장례식에는 모차르트의 ‘레퀴엠’과 그의 위대한 대작 ‘프렐류드의 op.28 no.4, e minor’ 가 오르간으로 쓸쓸히 연주됐으며, 그가 존경하던 J.S.바흐의 평균율 클라이비어곡집을 오마주하며 만들어낸 그의 작품, 전주곡처럼 그의 생도 너무나 짧았다. /문양일 포항예술고 교사

2019-12-16

정어리집회

정어리 집회는 수만 마리가 무리를 지어 몸집이 큰 포식자에 대항하는 정어리처럼 시민들이 하나로 뭉쳐 반(反)이민 등 극우주의에 저항하자는 풀뿌리 시민운동이다.길이가 15㎝ 정도인 정어리는 동물성 플랑크톤을 먹는 먹이사슬의 가장 아래쪽에 있는 물고기다. 다른 어류는 물론 고래나 물개 같은 해양 포유류의 먹잇감이다. 하지만 무리를 이룬 정어리 떼는 조밀하게 뭉쳐 몸집을 키우고, 지느러미를 움직여 진동을 만들어내면서 포식자의 공격을 피한다.정어리 집회의 시초는 내년 1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伊 살비니의 동맹당과 우호 정당들이 지지 집회를 갖기로 하자 마티아 산토리와 친구들이 인근 광장에서 대응 집회를 갖기로 하고 소셜미디어로 알린 것이 시초다. 산토리와 친구들은 흩어져 있을 땐 공격에 속수무책인 정어리가 무리를 지어 큰 적을 물리치는 것처럼 극우주의에 대항해 힘을 모으자며 소셜미디어에서 호소했고, 시민들이 이에 호응해 정어리가 집회의 상징이 됐다. 볼로냐에서 1만5000명으로 시작된 시위는 시칠리아, 밀라노, 토리노 등을 거쳐 수도인 로마에 상륙하면서 세를 점점 불려 최근에는 스스로를 정어리(sardine)라 부르는 시민 약 10만 명이 로마 산조반니 광장에 모여 이탈리아에서 득세하는 극우주의에 반대한다는 목소리를 냈다.특징적인 것은 집회 참석자들은 각양각색의 정어리를 그린 그림과 포스터 등을 손에 들고 있었다는 점이다. 이 집회는 정당이나 시민단체 등 특정 단체가 주도하는 일반적인 집회와 달리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로 이뤄진다.이탈리아에서 벌어진 정어리 집회 역시 민의의 준엄함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대한민국의 촛불집회를 떠올리게 한다. 정어리로 변신한 촛불이 세계를 가만히 흔들고 있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19-12-16

당신의 귀인(貴人)은 누구인가?

신희선 숙명여대 기초교양대학 교수·정치학 박사‘운칠기삼(運七氣三)’, ‘운구복일(運九福一)’이라고 한다. 똑같이 최선을 다해 노력했으나 누군가는 승승장구 앞으로 나아가고 누군가는 그렇지 못하기에, 보이지 않는 힘이 작용한다며 하는 말이다. 사회적 성공은 자신이 가진 능력이나 실력만으로 결정되지 않는 경우가 더 많다. 로버트 H. 프랭크는 ‘실력과 노력으로 성공했다는 당신에게’라는 책에서 행운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인생의 중대한 성취에 훨씬 더 큰 영향을 미친다고 말한다. “크게 성공한 사람 대부분이 행운아”라며 ‘실력주의’라는 신화에 도전한다. 이제 인사평가가 끝나고 인사이동이 시작될 시기다. ‘누군가’의 평가가 앞으로 자신의 삶을 달라지게 만들 수 있다. 12월에 생각해 보는 질문, 당신의 삶에 도움을 준 귀인은 누구인가?성공과 실패는 한 개인의 노력과 능력 여부로만 결정되지 않는다.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여러 변수가 작용한다. 평소 맺어온 관계와 네트워크의 질이 성공을 보다 용이하게 하는 환경을 만들어준다. 경쟁의 상황에서 자신의 가치를 알아주는 결정적인 누군가가 있다면 동일한 조건의 다른 이들보다 더 쉽게 높은 자리에 오를 것이다. 자신의 삶은 혼자 힘으로 만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행운을 가져다주는 힘은 결국 네트워크 효과다. 등 뒤에서 기분 좋게 밀어주는 순풍은 자신이 가고자 하는 길에 속도를 더해 줄 수 있으나, 강한 역풍은 앞으로 한 발짝 전진하는 것조차 얼마나 어렵게 하는지 느끼는 것처럼 말이다.그런 점에서 자신이 이룬 그 어떤 성공에도 먼저 감사하는 마음을 가질 필요가 있다. 내가 능력이 있어 그 자리까지 오른 게 아니라 누군가가 이끌어준 덕분에 거기까지 갔고 그만큼 이룬 것이라는 겸손한 태도가 중요하다. 이전투구의 현실에서도 ‘밑지고 사는 게 밑지는 게’ 아니라는 진실을 믿는 것이 필요하다. 자신의 이해관계만 따지고 조금도 양보하지 않으려는 삶의 끝은 명확하다. 베풀어준 것이 없으니 받을 것도 없고 먼저 배려하지 않았으니 누군가의 마음에 따스한 존재로 기억될 리 없다. 유불리만 따져 당장 자신의 이익만 챙기려는 사람은 묵묵히 헌신하고 겸손하게 행동한 사람을 이길 수 없다. 평판은 그 사람이 만난 사람들로부터 자연스럽게 만들어져서 언젠가는 빛을 발하게 되는 것이다.한 해가 저물어가고 있다. 올해도 우리는 새로운 사람들을 만났다. 누군가는 스쳐 지나갔고 누군가는 더 특별하게 자리하였다. 우리의 삶은 무수한 관계 속에서 이루어진다. 궁극적으로 관계의 질이 삶의 질을 결정한다. 어떤 사람들과 일상을 공유하는지, 주변 사람들과 관계가 어떻게 형성되고 있는지가 그래서 중요하다. 행복은 ‘아는 사람이 많다’는 숫자에 있지 않다. 자신의 존재를 온전히 인정받고 자신의 삶을 풍성하게 만들어 주는 사람과의 깊은 만남에 깃들어 있다. 좋은 관계망이 좋은 삶을 만들어주기에 자신의 주변과 지금까지의 네트워크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당신 곁을 묵묵히 지켜준 사람들이 바로 당신의 귀인이기에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일과, 당신 자신이 누군가의 삶을 이끌어주는 귀인이 되고 있는지 스스로 물어보는 것이 필요한 때다.

2019-12-16

그 많은 남북 합의문 어디로 갔나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해방 후 남북한은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수많은 합의문과 선언문을 발표하였다. 박정희 정권은 유신 직전 1971년 7월 4일 이후락과 김영주 명의의 7·4 공동 선언을 발표하였다. 1992년에는 남의 정원식 총리와 북의 연형묵 총리간의 남북 합의서가 발표되었다. 남북 간 불가침과 교류와 협력의 의지를 담은 지금도 손색없는 문건이다. 2000년에는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 위원장 간의 6·15 남북 공동 선언이 발표되고 뒤이어 2007년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간의 10·4 평화와 번영을 위한 공공 선언을 발표되었다.지난해 판문점 남북 정상회담과 4·27 선언은 세계적인 뉴스거리가 되었다. 9월 문재인 대통령의 평양 시민들을 향한 7분간의 연설과 9·19 평양 선언은 남북관계의 획기적인 변화를 기대케 하였다. 그러나 금년 초부터 북한 당국은 남한 정부를 비난하고 남북관계는 다시 과거로 돌아가 버렸다. 북미간의 하노이 협상은 결렬되고 북한의 비핵화와 대북 제재문제는 조금도 해결되지 못한 결과이다. 남북관계는 다시 경색되고 결국 남북관계의 개선을 위한 그간의 합의와 조치들은 무용지물이 될 위기에 처해 있다.같은 분단국 운명으로 태어난 독일은 1972년의 양독이 체결한 기본 합의서를 충실히 이행하여 이미 1990년 통일의 꿈을 성취하였다. 1972년의 10개항의 양독 기본 협정문은 내용은 간단하지만 독일 통일의 초석이 되었다. 그후 서독 빌리 브란트의 동방 정책은 정권 교체에 상관없이 일관성 있게 꾸준히 추진되었다. 양독은 인적·물적 교류 뿐 아니라 방송까지 허용하면서 상호 신뢰를 구축시켰다. 통일 전 동독인들은 서독의 TV를 통해 분데스 리가 축구 경기를 같이 보았다. 양독 간 1972년 기본협약서 한 장이 결국 독일 통일로 이어진 것이다.우리는 남북 정상 간 지난해의 합의마저도 무용지물이 되고 있다. 그것을 지키지 못하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근원적으로 남북은 아직도 서로를 신뢰하지 못하고 적대적 공존 관계가 지속되는 한 그것을 지킬 의지가 사실상 없는 것이다. 더욱이 우리는 6·25 전쟁과 같은 비극을 겪었고 그것이 이념갈등과 불신을 부추긴 결과이다. 친북과 반북, 용공과 반공이라는 프레임이 정치에 이용되어 득표로 연결되기도 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남북 정상 간의 합의마저 국회의 비준은 엄두도 못 낸다.결국 남북 합의마저 무력화 되는 비극이 반복되는 것이다. 이제 우리도 그간의 남북 합의서 상의 공통분모를 뽑아 통일 헌장으로 만들어 둘 필요가 있다. 북한은 세습정권의 특성상 최고 지도자의 서명 문건은 폐기치 않고 보존할 수밖에 없다. 우리도 그간의 공동선언이나 합의문을 체계적으로 정리하여 통일 헌장에 담아 국회의 인준을 받아 둘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국회 외교 통일위원회가 선도적 역할을 해야 할 것이며 여기에는 통일관련 시민 단체의 의견도 수렴해야 할 것이다. 이 통일 헌장은 가칭 우리의 ‘통일 국민 협약’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이것은 정권 교체에 관계없는 우리의 일관성 있는 대북 정책의 추진을 위해서라도 필요한 장치이다.

2019-12-15

사진, 그 추억의 갈피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유사(有史) 이래 인류는 기호나 그림으로 기록을 남겼다. 대상을 본뜨거나 의미를 전달하는 회화(繪畵)문자 체계를 고대 이집트 등지의 그림문자에서 찾아볼 수 있다. 글이나 그림을 쓰거나 그리고 새긴 흔적을 통해 인류의 역사를 가늠해볼 수 있다. 그래서 역사는 기록의 산실이라 했던가?시간은 기록이 되고 기록과 사진은 역사가 된다. 사람의 생각이나 기억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흐려지고 잊혀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생각을 적어두거나 기억을 되새길 수 있는 사진 등으로 남겨두면 소중한 추억의 한 장면을 고스란히 간직할 수 있다. 사람들은 그래서 일상을 속속들이 일기처럼 적거나 사진으로 남기면서 자신의 삶을 풍부하게 가꿔 나가는지도 모른다.디지털카메라나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현대인의 생활은 그 면면이 찍히고 사진기록으로 남겨진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가령 여행을 한다거나 행사에 참관하거나 음식을 먹거나 하는 등의 소소한 순간들을 폰카메라를 이용해 손쉽게 사진으로 담을 수 있고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를 통해 실시간으로 공유할 수도 있다. 사진과 사연을 알리고 함께 나누며 관심과 소통, 안부와 공감으로 인맥과 관계망을 넓혀나가는 양상을 주위에서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다. 각박하고 스피디한 정보화시대에 친구나 지인 등을 자주 만나 담소할 수 없으니 온라인 상에서 서로의 근황을 나누며 교감하는 것도 그나마 다행스런 일이 아닐까 싶다.1990년대 말 디지털카메라가 본격 보급되기 십 수년 전부터 필자는 필름 카메라를 구입해서 친구들의 결혼식이나 자녀들의 성장과정 등의 사진을 거의 도맡아 찍어왔다. 오죽했으면 교수로 재직 중인 친구 시인이 필자 더러 ‘인연을 인감도장처럼 찍는 찍사다’ 라고 표현했을까? 살아오면서 몇 차례 이사를 했지만, 지나칠 정도로 숱하게 찍어 인화해둔 사진들은 아직도 없어지지 않고 창고 한 켠에 두어 박스 정도 쟁여져 있다. 몇 년 전부터는 수시로 그 빛바랜 사진들을 몇 장씩 꺼내 본인들에게 전해주니, 그렇게도 좋아하고 감격(?)해마지 않았다. 사진을 매개로 옛적을 회상하며 세월의 여울을 더듬어보는 시간이 되기도 했다.‘일상의 편린(片鱗)을/사진으로 켜켜이//기록영화 찍듯이/누리고 공유하는//저마다/기억의 곳간에/별로 뜨는 망울들’ -拙시조 ‘추억의 갈피’ 전문(2019)-현재 사진은 시각적인 언어로, 창조적인 예술로 생활 깊숙이 뿌리내리고 있다. 사소한 일상이라도 사진으로 남겨놓으면 거기에 담긴 풍경이나 인물의 표정, 몸짓 하나하나가 시간에 버물려지면서 스토리가 되고 작품이 된다. 사진 속에서는 아련한 옛날이 망각의 저편에서 넌지시 손짓하기도 하고, 무언의 얘기꽃이 새록새록 피기도 하며, 아린 그리움 속에 엷은 감미로움이 안개처럼 깔리기도 한다. 순간은 영속의 실재(實在)이듯, 찰나의 순간을 담는 사진이 시각 정보로, 예술로, 기록으로서의 쓰임새가 미치지 않는 곳이 없을 정도이다. 그렇듯 사진은 우리 삶의 각인이고 여운이자 기억의 곳간에 별로 뜨는 추억의 갈피이리라.

2019-12-15

기적의 사과 (4)

어스름한 새벽이라 뭔가를 잘못 봤나 싶어서 나무 가지를 타고 올라 자세히 관찰합니다. 주렁주렁 매달린 것은 사과가 아니고 도토리였습니다. 6년 동안 사과에 집착한 나머지 도토리를 사과로 착각했던 거지요. 그런데 이 도토리는 크기도 엄청나고 더할 나위없이 건강해 보입니다. 집념의 기무라 아키노리, 이 상황에서 생각에 빠져듭니다. 자신이 지금 자살하러 갔다는 것도 잊어버린 채 “왜, 깊은 산속의 도토리는 이토록 건강한가?”를 집중적으로 생각합니다.하늘에서 무슨 계시라도 받은 듯한 깨달음이 머리를 때립니다. 미친 듯이 도토리 나무의 밑둥치 아래 흙을 두 손으로 파헤치기 시작하지요. 손톱에 피가 나도록 산속 도토리 나무 아래 땅을 파 들어갑니다. 마침내 그의 두 손에는 도토리 나무 뿌리가 닿아 있는 흙이 담깁니다. 그는 흙 냄새를 맡아봅니다. 형언할 수 없는 향기로움이 가득하지요. 온갖 미생물이 살아 숨쉬는 자연 그대로의 흙을 온 몸으로 느끼며 벼락에 맞은 듯한 전율을 느낍니다.“바로 이거다!” 그는 자살하려던 밧줄을 산 속에 버려둔 채, 정신없이 뛰어 내리막길을 달립니다. 몇 번이나 넘어졌는지 모릅니다. 웃다가 울다가 미친 사람처럼 킬킬거리며 한 밤 중의 산을 달려 초토화된 사과 밭에 도착하지요. 산에서 했던 것처럼 사과 나무 밑둥 아래 흙을 파헤칩니다. “역시, 완전히 다르구나”예상은 적중합니다. 산속 도토리 나무가 심겨 있는 토양의 흙 냄새와 사과 밭 흙 냄새는 생명의 향기로움과 죽음의 악취처럼 달랐습니다. 지난 6년의 실패는 눈에 보이는 것, 줄기와 가지와 이파리의 벌레만 바라보고 그것을 없애려는 노력에 집착했음을 깨닫습니다. 기무라에게 다시 희망이 싹트자 그는 놀라운 의욕으로 다시 작업에 착수합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사과 밭 토양을 완전히 갈아 엎는 일에 착수합니다. (계속) /인문고전독서포럼대표

2019-12-15

호구지책의 해

한해를 마무리할 때 흔히 다사다난(多事多難)이란 표현을 잘 쓴다. “한해동안 일도 많았으며 어려움도 많았다”는 뜻으로 한해를 회고하는 자리에서 사용하기에는 제격이다.연말이 다가오면서 올 한해를 되돌아보는 사자성어가 발표되고 있다. 다사다난했음은 물론이거니와 유난히 한해가 어려웠다고 회고하는 표현이 눈에 들어온다. 특히 청년 실업자가 내뱉는 아픔의 표현이 우리를 우울케 한다. 한 취업포털 사이트가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구직자가 가장 많이 뽑은 사자성어는 전전반측(輾轉反側)이다. 걱정거리로 마음이 괴로워 잠을 이루지 못해 몸을 뒤척인다는 뜻이다. 지난해 같은 시기에 그들은 “마른나무와 불기 없는 재와 같다”는 심정의 고목사회(枯木死灰)를 그해 사자성어로 선정한 바 있다. 한해가 지났어도 그들은 여전히 취업난에 시달리고 있음을 느끼게 하는 대목이다. 한 언론이 만들어 낸 3포세대란 말이 유행한 적이 있다. 어려운 경제사정으로 연애와 결혼, 출산을 포기한 젊은 세대를 두고 한 말이다. 세월이 지나 3포는 5포와 7포로 바뀌더니 지금은 포기할 것이 너무 많아 n포세대라 부른다고 한다.꿈을 먹고살아야 할 젊은이에게 들이닥친 호구지책(糊口之策)의 문제가 해결되지 못하고 또 해를 넘기고 있다. 최근 한 여론조사에서 젊은이는 삶의 가장 중요 가치로 ‘경제적 안정’을 압도적으로 손꼽았다. 도전과 성공, 성취라는 이상적 희망보다 경제라는 현실을 택한 젊은 세대의 생각이 반영된 결과라 하겠다. 워라벨(일과 삶의 균형)과 소확행(작지만 확실한 행복) 등이 새로운 트렌드로 등장한 것도 호구지책에 매달린 젊은이의 사고가 낳은 결과가 아닐까. 내년에도 모두가 각자도생(各自圖生)의 길로 가야겠다./우정구(논설위원)

2019-12-15

‘4+1’…협잡 정치의 끝판왕

안재휘 논설위원‘제1야당’이 사라졌다. 아니, 멀쩡히 살아남아서 삭발·단식·장외집회 등 한국 정치문화의 오만가지 극한투쟁 박람회를 열고 있지만, 여당과 그 위성 세력들에 의해 치욕스러운 ‘좀비’ 취급을 받고 있다. 참다운 정치가 사라진 자리에 목불인견(目不忍見) 협잡들이 판을 친다. 국민의 행복과 나라의 미래는 안중에도 없고 오직 권력 유지와 확대에만 혈안이 된 정치꾼들의 악취 향연이 펼쳐지고 있다.이 나라 정치에는 ‘교섭단체’라는 제도가 있다. 20석 이상의 국회의원 의석을 확보한 정당을 ‘교섭단체’로 인정하여 각 정당 지휘부들이 모여서 국민 여론을 반영해 국정을 논하고 타협하고 결정하는 시스템이다. 그런데 이제 여당과 뜻이 맞는 정치 패거리들끼리 따로 모여서 주요 결정을 내리는 형태로 변질하고 있다. 이른바 ‘4+1 협의체’라는 듣도 보도 못한 모임이 대한민국 국회의 상원(上院) 노릇을 하는 꼴이다.잘잘못을 따지자면 제1야당 자유한국당의 허물이 크다. 박근혜 정권의 비극적 종말 이후 한국당은 스스로 ‘좀비’ 정당으로 전락해간 측면이 있다. 국민이 그토록 보고 싶어 하는 ‘반성’도 ‘책임’도 실천하지 못했다. 오늘날 한국당의 가없는 추락은 딱 죽어야 할 때 ‘못 죽은 죄’, 아니 ‘안 죽은 죄’의 업보다. 땅에 떨어진 씨앗이 흙 속에서 다시 살아나려면 썩어서 흙과 동화될 준비가 되어야 하는데, 그들은 도무지 낯두꺼운 권력의 화신처럼 굴었다.‘4+1 협의체’는 제1야당을 보기 좋게 따돌리고 내년도 예산안을 후다닥 처리하면서 실력을 넉넉히 과시했다. 이제 남은 것은 패스트트랙의 선거법과 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 법안만 처리하면 되는 상황이다. 딱한 허수아비 제1야당은 국회 본회의장 정문 앞이나 광화문에 나가 소리나 질러댈 따름이다. ‘목숨 걸고 싸우겠다’고 부르대지만 민심은 구경꾼 자리에서 움쩍도 하지 않는 판이다.연동형 비례대표제도와 석패율제도 등 복잡한 방정식을 놓고 ‘4+1 협의체’에 참여한 군소정치 패거리들은 각자 유불리를 따져 권력 나눠먹기 몽니 게임에 열중하고 있다. 그들의 언행 이면에 진정한 ‘애국’은 종적을 감춘 지 오래다. 의석 몇 자리 더 훔쳐내자고 선거제도와 공수처법을 바꿔먹는 짓은 역사에 대죄(大罪)를 짓는 일이다. 현재의 공수처법안이 통과되면 검찰은 무력화되고 옥상옥 공수처가 현직 대통령의 미친개가 되어 좌파독재 시대를 열어젖힐 공산이 크다.지난 1905년 11월 20일 ‘황성신문’에 실린 장지연 선생의 시일야방성대곡(是日也放聲大哭)이 떠오른다. ‘저 돼지와 개만도 못한 소위 정부의 대신이란 자들이 영달과 이익만을 바라고….’ 공자께서는 논어 위정(爲政)편에서 무리를 지어 사익을 취하는 소인배 짓거리에 대해 이렇게 일갈했다. ‘군자는 두루 친하되 결탁하지 않지만(君子周而不比), 소인은 결탁하되 두루 친하지 않는다(小人比而不周).’ ‘4+1’…. 저 협잡 정치의 끝판왕을 막아낼 묘책은 정녕 없는가.

2019-12-15

앞으로 흘릴 땀을 생각하며

고윤환 문경시장문경의 3선 시장으로 7년 동안 시정을 이끌어오면서 우리 시의 무한한 잠재력과 발전 가능성을 보았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알 수 있듯이 인구 8만명도 되지 않은 중소도시에서 세계 3대 스포츠 이벤트의 하나인 2015경북문경세계군인체육대회를 저비용·고효율의 롤 모델을 제시하며 성공적으로 치러낸 것만 보아도 그렇다.지금 문경은 연간 500만 명의 관광객이 찾는 문화관광 도시로 화려한 변신에 성공해 전국 어느 지역에도 뒤지지 않는 관광의 도시로 거듭났다. 그리고 문경은 새로운 희망의 시대를 열어가기 위해 이 시간에도 변화하고 있다.2021년 중부내륙고속철도(이천∼충주∼문경) 개통을 대비해 문경역세권 사업 등 현안 사업을 순조롭게 실시하여 문경은 대한민국 신 수도권 시대 진입에 따른 준비를 착실히 해나가고 있다.새로운 희망 시대를 열어나가기 위한 2019년 문경의 노력은 △민선 7기 10개 분야 63개 공약 92% 이행 △올해 연말 예산 8천억 원 돌파 △도시재생 뉴딜, 농촌 신 활력 플러스사업 등 46건에 국·도비 736억 원을 확보한 것 등으로 이어졌다.또한 지속적인 인구 감소가 증가 추세로 돌아섰으며, 이는 다자녀 생활 장학금 지급, 파격적인 출산장려금 지원 등 대폭 확대된 인구증가 시책 및 귀농·귀촌·귀향 맞춤형 정착지원 사업 추진에 따른 정책 효과로 판단된다.지난해 10월 개장한 문경에코랄라는 효율적인 운영을 위하여 민간에 위탁한 결과 타시군의 롤 모델이 되었다. 휴식과 체험을 통해 바쁜 현대인의 지친 몸과 마음을 치유할 수 있는 문경 힐링휴양촌과 우리 지역 특산물인 문경 오미자를 테마로 하는 문경오미자테마공원도 개관하여 운영 중에 있다.문경찻사발축제에는 25만 명의 관광객이 찾아오고, 문경사과장터에는 35만 명의 관광객이 다녀가 사과를 포함한 농·특산물을 18억 원어치나 판매하는 등 흥행 대박을 터뜨렸다.기업유치 활동도 활발하게 추진하여 올 한해 (주)마루종합식품 등 11개 업체를 유치해 1천967억 원의 투자와 일자리 430개를 창출하였다. 역사문화관광 도시로 도약하고 침체된 점촌지역 경제를 활성화하기 위해 영강천변 청정자생식물원, 송진산 힐링공원, 귀농귀촌귀향 시설원예 시범단지 조성 등 점촌지역 랜드마크 조성사업도 활발히 추진 중에 있다.2020년 시정의 운영방향으로 크게 8대 방향을 설정했다. △농민이 잘 사는 부자농촌 건설 △인구증가 시책 지원 확대 △아이들의 보육과 건강 인프라구축 △명품교육도시 위상 공고 △문화관광수도 문경을 위한 인프라 구축 △시민이 행복한 복지도시 구현 △시민 중심 생명존중의 안전도시 문경 건설 △소통행정과 혁신으로 시민 체감도 향상 등이 바로 그것이다. 이를 위해 혼신의 노력을 다할 것이다.먼저 농민이 잘 사는 부자농촌 건설을 위해 청년 농업인 발굴과 조기 정착 등 농촌 일자리 창출과 귀농·귀촌·귀향자들의 안정적인 소득기반 구축에 만전을 기하고자 한다. 현실적으로 도움이 되는 출산장려금 지원으로 출산 친화적 사회분위기를 만들고, 놀이체험시설 및 맘 편한 돌봄 공부방을 운영하는 등 아이 돌봄 서비스를 확대한다. 화상영어교육 등 양질의 교육프로그램을 지원하여, 아이 낳고 키우기 좋은 명품 교육 도시를 반드시 만들어 나갈 것이다.아울러 문화재 103점 보유 도시로 향토 문화유산을 발굴·보존하고, 하늘재 옛길문화 관광자원화 사업, 세계명상마을 조성 사업, 문경돌리네습지 생태자원화 사업, 단산권역 개발사업 등으로 문화와 관광이 꽃피는 도시를 만들어 갈 것이다. 맞춤형 복지행정을 구현해 시민이 행복한 도시를 조성하고, 하천재해 예방사업, 도시재생 뉴딜사업 등을 통해 시민중심 생명존중의 안전도시를 이룰 것이다. 또한 시민의 작은 소리에도 귀 기울이고, 더 잘합시다 문경운동 등으로 시민이 체감할 수 있는 삶의 변화를 만드는데 중점을 두어 지금까지 흘린 땀보다 앞으로 흘릴 땀을 생각하며 8만 시민과 함께 시민 행복시대를 만들어 나가고자 한다.

2019-12-15

평범하고 작은 것이 쌓여 飛上하는 일에 대해

오지은 공무원나는 역사책 읽기를 좋아한다. 역사적 사건이 일어난 원인과 결과가 늘 궁금하기 때문이다. 왜 문명 발전이 늦었던 서양이 20세기에는 동양 대부분을 지배했을까? 왜 문명사에서 가장 앞선 비옥한 초승달 지역인 아랍 지역은 이후 한 번도 문명의 주인공 노릇을 못 했을까? 하루가 멀다 하고 전쟁이 터지는 중동 지역의 일상생활은 어떨까? 생활 전반이 불편해 보이는 히말라야 자락의 부탄이라는 최빈국의 행복지수가 왜 세계에서 가장 높을까? 그들이 행복하다면 왜 행복한가? 이런 것들이 늘 궁금하다.역사, 책을 보면 인류는 자연환경을 지혜를 모아 극복하면서 문명을 발전시켰음을 알 수 있다. 결국 문명은 작은 지혜가 모여 쌓인 결과물이다. 역사적 사건은 한 가지 단순한 원인에 의해 벌어지지 않는다. 여러 정황과 사건이 쌓이다가 마지막에 어떤 결정적인 변수 하나가 방아쇠를 당기면 비로소 거대한 역사적 사건으로 세상을 바꾼다. 이것을 티핑포인트(Tipping point)라고 한다. 작은 변화들이 쌓이고 쌓여 아주 작은 변화 하나만 일어나면 거대한 물결이 일어날 수 있는 상태를 뜻한다.제1차 세계대전이 오스트리아 황태자가 보스니아의 라틴 다리에서 암살당한 사건으로 벌어졌다고 한다. 그러나 물밑에는 다양한 사건들이 티핑포인트에 근접해 있었다. 늦게 식민지 경쟁에 합류한 독일, 보스니아를 점령해 지중해를 장악하고 아시아로 진출하는 교두보를 확보하고자 하는 오스트리아, 부동의 항구를 얻고 싶은 러시아, 대(大)세르비아 민족국가를 만들고 싶었던 세르비아. 발칸반도에 전운이 무르익을 대로 익었을 때, 세르비아 비밀결사체 흑수단 청년이 얼떨결에 죽인 오스트리아 황태자의 죽음으로, 발칸반도와 이해관계가 있던 모든 나라와 이를 저지하기 위한 강대국이 이권을 차지하기 위해 동시에 전쟁에 뛰어들었다.진나라가 멸망한 후 다시 분열한 중국을 통일한 한나라의 유방과 그의 강력한 라이벌이었던 초나라의 항우가 겪은 성공과 실패는 그 원인을 찾기 어렵지 않다. 완벽한 능력을 갖췄지만 백성보다 자신을 더 사랑했던 항우는 다른 사람의 생각에 귀 기울이지 않았다. 별다른 기술 없이 어쩌다 나라를 세운 느낌의 유방은 남의 말을 잘 들어주는 경청의 지혜가 있었다. 이 작은 차이는 두 사람의 운명, 두 나라의 운명, 중국이라는 문명의 운명을 바꾸었다.25년을 공무원으로 일하면서 인정받는 직원의 비결에 대해 그 공통점을 생각해 본 적이 있다. 그들은 진정성 있는 성실한 업무를 매일 수행해 조금씩 신뢰를 쌓고 성실성을 만들어 낸다. 결국 어떤 일이든 믿고 맡기는 선수로 인정받는다. 일단 인정을 받으면, 다음 일은 쉽게 풀릴 수 있다. 호감을 주는 직원은 누구든 도와주고 싶어 한다. 재테크에서 종잣돈과 비슷한 역할이다.올여름 농촌 여성을 대상으로 도 단위 경진대회를 목표로 부채춤 교육을 했다. 처음 시작할 때는 30명으로 시작했으나 결국 15명이 남았다. 그 15명이 무대에서 화려하게 부채춤을 추고, 대상을 받았을 때 미리 포기한 15명은 크게 후회했다.부채춤을 발표 과제로 결정하고 연습을 시작했을 때, 이들은 부채조차 펼 수 없는 왕초보였다. 부작은 원, 큰 원, 물결 모양 등 흐름이 변할 때마다 위치를 암기해야 했고, 음악에 순서를 맞추는 일은 60세에 가까운 농촌의 여성에게 쉽지 않은 도전이었다.이들이 끝내 대상을 받을 수 있었던 비결은 교육에 빠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저마다 바쁜 일이 있고, 동작이 어려워 힘들 때는 포기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교육에 참석한 사람들이 무대에서 공연하고 상을 받는 인생 경험을 할 수 있었다.주차를 할 때 작은 변화가 큰 결과를 만든다는 이치를 느낀다. 주차 라인에 차를 넣기 위해서는 각도를 조금씩 꺾으면서 움직이면 꼭 맞게 들어간다. 핸들 각도를 많이 틀지 않아도 된다.평범하고 작아 보이는 일상이 매일 쌓여 지금 우리 모습으로 나타났다. 조금씩 쌓인 것은 언젠가 결정적 순간을 맞이할 것이고 애벌레가 나비로 비상하듯 우리도 그런 날을 맞이할 것이다. 평범하고 작아 보이는 매일을 열심히 살아내야 하는 것 아닐까?

2019-12-15

박태준·김우중 ‘경제 거인’이 그립다

김순견 전 경북도 경제부지사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의 서거 8주기를 맞아 묘소가 있는 현충원을 다녀왔다. 함께 한 지인들과 고 박태준 회장과 있었던 추억을 나누기도 했다.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지난 9일 별세한 샐러리맨의 신화, 김우중 회장으로 이어졌다. 70년대 한국 경제를 일으켰던 주역들의 그야말로 신화 같은 이야기는 꿈과 용기를 가진 사람만이 할 수 있었던 일이었다. 1968년 기공식과 함께 모랫바람 속에서 이루어낸 포스코의 기적이 있었다면 1977년 서울역 앞에 솟아오른 대우빌딩은 우리나라 수출 백억 불 달성의 상징과도 같았다.수출 백억 불 시대를 넘어 6천억 불을 이야기하는 오늘날 그들이 새삼 그리워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현재 우리의 국민소득은 3만 불을 넘어섰으며, 성급한 사람들은 30-50 클럽에 들어가야 한다는 말을 꺼내기도 한다. 근거 없는 말은 아니다. 1970년대 국민소득 1천100달러 시대와 비교해 보면 30배 가까이 높아진 셈이다. 세계가 놀랄 정도로 엄청난 성장을 이룬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오히려 그때가 더 살기 좋았다는 말을 한다.포항의 경제가 침체되면 될수록 박태준 시대를 떠올리고, 청년 실업률이 높아질수록 김우중의 세계 경영이 회자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믿고 싶지 않지만 우리는 1960년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개도국이였다. 물론 1997년 김영삼 정부 시절 OECD에 가입하면서 선진국 대열에 올라섰다고 하지만 IMF를 겪으면서 우리 경제의 허약성을 깨닫는 계기를 만들기도 했다. 그런 일련의 과정 속에서 우리 경제의 맷집이 강해지고 세계 경제의 상황이 바뀌면서 2000년대는 그런대로 살기 좋은 나라, 행복한 국민이라는 생각을 하며 지냈다.그러나 2007년 우리 국민들이 간절히 바라던 국민소득 2만 불 시대에 접어들면서 글로벌 금융위기와 맞닥뜨리게 되었다. 고소득에 이를수록 성장률 둔화는 정해진 수순이라고 하지만 우리 경제는 세계적인 경쟁과 견제의 높은 파고에 휘청거릴 수밖에 없었다.여기에는 선진화되지 못한 정치 불안과 심화된 양극화와 이에 따른 계층 간의 갈등, 복지에 대한 욕구가 동반 분출하면서 경제는 더욱 침체되고 있다. 대책 없는 노동시간 단축, 성급한 최저임금제 도입은 집값 상승과 맞물려 가계부채 증가를 부추기고 있다. 정부에서는 노동자의 최저임금을 큰 폭으로 올려 국민의 소득을 올려놓으면 서민의 소비가 늘어날 것으로 판단하였다. 그러면 세수도 늘어나면서 전반적인 경제가 활성화될 것으로 생각하였다. 그러나 우리 경제는 활성화가 아닌 불황의 늪으로 빠지고 말았다. 한마디로 판단의 잘못으로 정책의 실패를 가져온 것이다. 국민들의 삶만 더욱 피폐해진 꼴이 되고 말았다.다시 70년대 경제의 주역들을 불러올 수는 없다. 그러나 그들의 정신만은 아직 우리가 기억하고 있다. 정책 당국자는 물론이거니와 우리 국민 모두가 다시 70년대의 그 정신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때의 그 희망 어린 몸짓과 정신으로 일어서야 다시 우리에게 희망이 돌아오게 될 것이다.

2019-12-15

30대 지도자

인간의 수명이 짧았던 공자가 살았던 시절의 나이와 지금의 나이는 무게감에서 차이가 있다. 공자 시절 15세면 성인이다. 지금은 청소년 정도로 부르면 적합할 나이지만 그 시절에는 결혼을 해도 무방한 성년의 나이로 인식됐다. 공자는 나이별로 30세를 이립(而立), 40세면 불혹(不惑), 50세는 지천명(知天命)이라 불렀다. 지금에도 그가 부여한 나이별 의미를 두고 삶의 가치 기준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수명이 거의 배 가까이 늘어난 지금의 현실에 부합할지는 모르나 생활 실천의 기준으로 보는 것은 무방해 보인다.지금 지구촌 곳곳에서 30대 총리의 등장이 화제다.핀란드에서는 34세의 여성 총리가 선출됐다. 핀란드 여성총리로서는 세 번째지만 최연소를 기록했다. 현직 총리로도 세계 최연소라 한다. 특히 워킹맘이자 교통통신부 장관인 그녀는 총리 선출과 함께 19명의 장관 중 11명을 여성으로 채워 우먼파워를 과시했다고 한다. 2017년 8월 뉴질랜드에서도 30대 여성 총리가 선출됐으며, 프랑스의 마크롱 대통령도 38세 나이로 대통령직에 올랐다. 우크라이나와 엘살바도르도 30대 총리가 등장했다. 오스트리아에서는 33세의 총리 탄생이 예고된다고 외신은 전한다.우리나라 30대는 과연 어떤 위치에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공자는 인생의 뜻을 세우고 장래를 고민할 나이를 30세로 보았으나 우리 현실은 아직 많은 이가 취업난에 허덕이고 있는 실정이다. 안타깝고 불운한 현실이다. 지구촌의 흐름을 보면서 우리 30대의 분발을 기대해 본다. 한편으로 30대 총리를 뽑고 그에게 국가 경영을 맡긴 그 나라 국민의 포용성이 돋보이기도 한다. 노령화된 우리 정치 현실이 안타깝다./우정구(논설위원)

2019-12-12

위기의 한국당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자유한국당이 위기를 맞고 있다. 새해 예산안 협의를 놓고 여당과 밀고당기며 버티다가 패싱당했고,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에 붙여진 선거제개편안과 공수처법안 저지를 위해 국회 로텐터홀에서 농성에 들어갔다. 황교안 대표는 “선거법과 공수처법마저 날치기 처리를 강행하려 할 것이다. 좌파독재 완성을 위한 의회 쿠데타가 임박했다”면서 국회 로텐터홀에 ‘나를 밟고가라’는 현수막을 바닥에 설치하고, 무기한농성에 들어갔다. 황 대표는 패스트트랙 법안 날치기 통과를 막기 위해 로텐터홀에서 잠을 자며 24시간 머무르겠다는 계획이다. 현역의원들도 10∼15명씩 돌아가며 취침하기로 했다. 한국당은 지난 11일 법안이 국회 본회의에 상정될 경우 상임위 소속 의원별로 조를 짜 본회의장 의장석을 점거해 본회의 개의를 막겠다는 의지를 보였지만 민주당이 본회의를 취소하자 농성을 풀었다.문제는 한국당이 여당에 맞서 강경투쟁을 하려해도 할 수 있는 카드가 그리 많지 않다는 데 있다. 범여권이 ‘4+1(민주당, 바른미래당, 정의당, 민주평화당 및 대안신당)협의체’로 수적 우세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당 상임고문인 박관용 전 국회의장도 황 대표와 오찬을 하면서 “정치는 투쟁이고 싸우는 것”이라며 강경투쟁을 주문해 이에 부합하는 모양새를 내고싶지만 현실이 여의치 않다. 우선 국회의장이 의사진행을 못하게 막는 것은 국회선진화법 위반이 우려돼 의원들을 마냥 몸싸움에 내몰 수 없다. 추가 고소와 고발 위험이 있으니 내년 총선을 치러야 할 현역 의원들에게는 큰 부담이다. 필리버스터로 맞선다해도 여당이 임시국회를 쪼개기로 대응하면 법안처리를 다소 지연시키는 정도의 효과밖에 기대하기 어렵다.비공개 회의에서는 의원직 총사퇴 주장도 나왔지만 현실적으로는 실행이 어렵다. 회기중 의원직 총사퇴가 본회의 표결에서 과반으로 가결돼야 하는데 그럴 가능성이 없다. 국회의장의 재가가 필요한 데, 재가해줄 리가 없다. 설령 의원직 총사퇴가 실현된다해도 사퇴 이후에는 대정부비판이나 견제 기능 자체를 잃어버리고 만다. 그 이후에는 더 이상 해볼 수 있는 게 없어지는 것이다. 막다른 골목에 들어 선 셈이다.자유한국당이 이같은 곤경에 빠진 것은 여당이 야당을 무시하고 일방통행식으로 예산이나 법안을 통과시키지는 않으리란 순진한 착각에 빠져 있었기 때문은 아닌가. 패스트트랙 자체도 국회 상임위원 5분의 3 이상의 입법의지를 존중하자는 취지로 만든 강행처리 입법절차다. 의회민주주의는 본질적으로 다수결의 원칙이 지배한다. 여당이 군소야당과 손을 잡고 법안을 통과시키는 행위를 ‘의회쿠데타’라고 목청높여 비난해봤자 별 소용이 없다. 법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는 합법적인 행위이기 때문이다. 한국당이 14일 다시 장외집회에 나서기로 한 것도 바로 합법적인 방법으로 법처리를 막을 방법이 없고, 협상도 쉽지 않은 처지를 반영한다. ‘억울하면 출세하라’고 했다. 소수당의 설움이 분하면 다수당이 되는 수 밖에 없다.

2019-12-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