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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태종, 군역의 회피 수단인 수유치(酥油赤)를 폐지하다

‘한반도 우유’는 뒤죽박죽이다. 도무지 정확한 내용을 알 수가 없다. 두 편의 글로 ‘뒤죽박죽 우유 이야기’를 시작한다. 먼저 용주 조경(1586~1669년)의 ‘용주유고 제1권 칠언절구’의 내용이다.양공 집의 행락(杏酪)은 우유보다 맛있는데/옥그릇에 담아 오니 눈처럼 하얗구나/만약 신선이 대약(大藥)을 만든다고 하면/향긋한 이것 두고 무엇을 다시 구하랴‘행락(杏酪)’은 ‘은행나무(열매)+우유 성분’이다. 은행나무 열매와 우유를 넣고 끓인 죽쯤으로 짐작한다. 우유, 은행의 비율? 어떻게? 정확지 않다. ‘대약(大藥)’은 신선이 만들 법한, 대단한 효력의 약을 의미한다. 불로장생약이나 숨 넣어가는 환자를 살리는 약쯤으로 짐작한다.행락은 신선이 대약을 만들 때 사용할 법한 재료보다 더 좋은 것이다. 행락의 비교 대상은 우유다. 행락이 우유보다 더 맛있다 했다. 거꾸로 우유가 대단한 식품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조경은 16세기 후반인 선조 조에 태어나서 현종 조 때 죽었다. 조선 중기가 지나며 후기를 시작할 때다. 이때도 우유는 귀했다. ‘낙(락, 酪)’을 한정하지 않고 ‘우유 성분쯤’이라고 ‘짐작’하는 이유가 있다. 유암 홍만선(1643∼1715년)의 ‘산림경제’ 중 한 구절이다.우유가 낙(酪)이 되고, 낙이 소(酥)가 되고, 소가 제호(醍醐)가 되니, 제호는 소(酥)의 정액(精液)이다. (증류본초)우유는 연유, 분유, 요구르트, 버터, 치즈 등으로 변화한다. 건조 과정을 거칠 때도 있고, 발효, 숙성 과정을 거칠 때도 있다. 냉장, 냉동이 시원치 않았을 때는 장기 보관을 위하여 건조하거나 끓이기도 했다.조선 시대 기록에서는 이 모든 ‘유제품’에 대한 구분이 명확지 않다. 낙, 소, 제호가 모두 불분명하다. 조선 상황에 맞춘, 조선의 창의적인 이야기도 아니다. 중국 ‘증류본초(證類本草)’가 원본이다. ‘증류본초’의 내용을 그대로 따왔다. ‘증류본초’는 중국 송나라 휘종 때 편찬한 책이다. 11세기 말. ‘산림경제’보다 약 600년 전의 내용이다. 600년의 세월이 지나는 동안 ‘우유’에 대해서는 여전히 중국 책을 고스란히 옮기고 있다. 한반도의 ‘우유 연구’가 있었다면 600년 전 중국 ‘증류본초’을 어렵게 인용하지는 않았을 것이다.왜 이렇게 우유에 대해서 시큰둥하고, 별다른 연구, 기록이 남아 있지 않았을까? 다산 정약용의 ‘다산시문집_제13권_서(序)’에 그 대답이 있다. 제목은 ‘금성방략 서(金城方略序) 내각에서 교지에 응하여 지음’이다. 정조가 방책을 물으니, 궁중의 관계부처에서 대답을 올린다는 뜻이다. 내용은 ‘대 북방 군사전략’이다.(전략) 대체로 둔전법(屯田法)이란 군량 수송을 줄이고 집을 지키면서, 도로에 오래도록 있음으로써 적이 저절로 지치게 하는 방책이다. (중략) 손무(孫武)가 말하기를, “적에게서 양식을 얻으면 군량을 충족시킬 수 있다” 하였는데, 이는 중국으로써 중국을 공격하는 경우를 두고 이르는 말이다. 저 오랑캐들의 성질은 살육을 농사로 삼고 있으므로, 날마다 목축에 적합한 물과 풀이 있는 곳을 찾아 이주하면서 우유, 양유 같은 것이나 먹고 살며 창고에 저축해 놓은 곡식이 없으니, 싸워서 그들을 이기더라도 내 근심거리를 제거하는 데에 지나지 않고 그들의 양식을 빼앗아 이용할 수는 없다. 양식이 떨어지면 멀리 실어날라야 하고, 실어나르는 길이 멀면 군사는 주리고 백성은 고달파서, 오랑캐가 기회를 타서 침략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중국이 오랑캐에 누차 패하게 된 까닭이요, 둔전의 법이 생기게 된 까닭이다. (후략)한반도 북방에는 유목, 기마민족들이 산다. 끊임없이 국경에서 문제를 일으킨다. 군사 정벌이 필요하다. 문제는 병참이다. 손자는 “적에게서 양식을 얻으면 군량을 충족시킬 수 있다”고 했지만, 주식(主食)이 같을 경우나 가능하다. 중국 내의 전쟁에서 가능한 이야기다. 북방민족의 주식은 고기와 우유, 양유 등이다. 정벌은 쉽지만, 이들의 본거지를 점령하더라도 양식은 얻을 수 없다. 먹는 것이 다르기 때문이다. 물리치더라도 오래 가지 못한다. 결국, 농사지으며 머문다. 둔전이다.한반도에 살았던 우리 선조들은 우유를 그리 편하게 여기지 못했다. 양은 자라지 않으니 양유는 불가능하다. 쇠고기는 금육(禁肉)이다. 소는 농사의 필수품이다. 사사로운 도축은 엄하게 금했다. 소가 귀하니 우유도 구하기 힘들었다. 젖소가 없던 시절이다. 우유는 송아지를 낳은 어미 소의 젖을 통해서 구했다. 송아지의 입을 막고 젖을 못 먹게 한 다음, 어미 소의 젖을 빼앗았다. 차마 할 짓이 아니다.우유에 쌀 혹은 찹쌀을 넣고 끓인 것이 타락죽이다. 귀하게 여겼다. 궁중에서도 한정적으로 사용했다. 비교적 살림살이가 좋았던 영조 시절에도 타락죽은 귀하게 여겼다.영조 29년(1753년) 7월9일의 ‘조선왕조실록’ 기사다. 제목은 ‘은여결, 타락죽, 통영의 일을 하문하다’이다.(전략) 또, 하문하기를, “(중략) 낙우(酪牛)가 비록 짐승이기는 하나 예전부터 봄갈이를 위하여 봉진(封進)을 멈추었으므로 낙우가 이토록 많지 않았는데, 이제 책자(冊子)를 보니 열여덟 마리나 되어 그 송아지를 아울러 서른여섯 마리이다. (중략) 이제 다섯 주발의 타락죽을 위하여 열여덟 마리의 송아지가 젖을 굶게 하는 것은 인정(仁政)이 아니다. (중략) 그 소는 내의원으로 하여금 수를 줄이게 하여, (후략)”선정을 보여주기 위한 쇼가 아니다. 영조는 젖 짜는 소, 낙우(酪牛)의 숫자도 정확하게 알고 있다. 젖 짜는 소가 열여덟 마리면 젖 굶는 송아지도 열여덟 마리다. 모두 36두의 소가 고통을 겪는다. 낙우는 농사에 동원하지 못한다. 민폐다. 고작 다섯 그릇의 타락죽을 위하여 서른여섯 마리의 소를 고통스럽게 하고 민폐를 끼칠 일은 아니다. 어진 정치, 인정(仁政)이 아니다.우유 문화 역시 몽골의 고려 침략 시기에 한반도에 들어왔을 것으로 추정한다. 음식 문화는 쉬 바뀌지 않는다. 곡식이 주식인 민족이 어느 순간 고기, 우유를 주식으로 삼기는 힘들다. 몽골의 원나라가 우유, 양유를 먹더라도 고려인들이 주식으로 삼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오늘날 치즈로 유추하는 수유(酥油)와 수유치[酥油赤]는, 몽골 침략기와 가까운 조선 초기 기록에 나타나고 곧 사라진다. 조선 중기, 후기로 가면서 타락죽은 남지만, 우유의 핵심 생산물인 치즈는 오히려 사라진다. ‘조선왕조실록’ 세종 3년(1421년) 11월 28일의 기록에 ‘치즈는 왜 사라졌는가?’에 대한 설명이 남아 있다. 제목는 ‘군역의 회피 수단인 수유치를 폐지하다’이다.수유치(酥油赤)을 폐지하였다. 황해도, 평안도에 수유치가 있는데, 스스로 달단(韃靼)의 유종(遺種)이라 하면서 도재(屠宰)로써 직업을 삼고 있었다. 매 호(戶)에 해마다 수유(酥油) 한 정(丁)을 사옹방(司饔房)에 바치고는 집에 부역(賦役)이 없으니, 군역(軍役)을 피하는 사람이 많이 가서 의지하였다. 그러나, 수유는 실로 얻기 어려우므로, (중략) 국가에 들어오는 것은 얼마 안 되는데도 주현(州縣)의 폐해(弊害)가 되는 것은 실제로 많았다. 서흥군(瑞興郡)에 한 호(戶)에 건장한 남자가 21명이 있으면서 부역(賦役)을 하지 않으려고 하였다. 태상왕이 병조에 명하여 각도의 수유치(酥油赤)의 호수(戶數)를 두루 살펴서, 있는 곳의 고을에서 군역(軍役)에 충당(充當)하게 하니, 참의 윤회가 아뢰기를, “수유는 어용(御用)의 약(藥)에 소용되며, 또 때때로 늙어 병든 여러 신하들에게도 내리기도 하니, 이를 폐지하지는 못할 듯합니다.” 라고 하였다. 태상왕은 말하기를, “그대의 알 바가 아니다.” 라고 하면서, 드디어 이를 다 폐지하니, 모두 수백 호(戶)나 되었다.조선의 치즈는 왜 사라졌는가? 치즈 만드는 일이 힘들었다. 전문 기술자가 아니다. 상당수는 병역을 피해서 숨어든 조선의 장정이다. 비 전문가가 치즈 만들기는 힘들다. 짐승의 고기, 우유 등 부산물을 이용하여 음식을 만들거나 먹는 것은 농경민족화 된 조선 사람들에게 여전히 어색했다.병역제도가 어그러진다. 태종은 살아 있으면서 왕권을 아들 세종에게 물려주었다. 병권과 외교 문제는 죽을 때까지 자신이 쥐고 있었다. 문관 출신이지만 군사에도 밝았다. 아들 세종이 문약하다고 믿었을 것이다. 힘든 일은 자신이 짊어졌다. 태종은 국가의 정상적인 부역, 군역을 위해 수유치를 폐지했다.치즈를 ‘불요불급한 것’으로 여겼다. 참의 윤회의 말도 정당하다. “치즈는 임금이 드시는 약에도 필요하고 병든 노대신들에게 선물로 내려 주는 것으로도 요긴하다”고 하지만 태종은 단칼에 자른다. 태종의 수유, 수유치 폐지는 정확했다. 이후, 조선의 어느 임금도 치즈를 먹거나 수유치 제도를 부활시키지 않았다. 타락죽은 있지만, 치즈, 수유는 없다. 치즈가 우유의 정수라면 타락죽은 ‘곡물+우유’다. 타락죽은 16세기 초반 탁청정 김유(1491∼1555년)의 ‘수운잡방’에도 나타난다. 16세기 초중반에 이미 경북 안동, 예안에서도 타락죽은 만들고 먹었다. 대중적이었다. 치즈는 없다. 우유를 깊이 알지 못한 이유다./맛칼럼니스트 황광해

2019-07-29

괴로움이라는 언덕 너머

온종일 500℃의 뜨거운 아연 국물과 씨름하고 돌아온 청년은 다음 날 밤에도 글을 한 편 뚝딱 지어냅니다. 숱하게 보아온 밑바닥 인생들이 펼치는 이야기입니다. 200자 원고지 20∼30매 정도 분량의 이야기 한 편을 지어내면 자정을 훌쩍 넘긴 시간. 눈을 질끈 감고 게시판에 올리지요. 조금씩 댓글이 늘어나기 시작합니다.“아주 좋아요. 매일 올려주세요.”, “맞춤법이 틀리셨네요. ‘붇는다.’가 아니고 ‘붓는다.’라고 고쳐주세요.”, “궁금해서 끝까지 읽었는데, 띄어쓰기에 신경 써주세요.” 한 명, 두 명 팬이 늘어납니다. 청년은 댓글에 힘을 얻고 맞춤법에 대한 지식을 쌓아갑니다. 글을 쓰다 막히면 포털 사이트에서 글 잘 쓰는 법에 대한 자료를 찾아 연구합니다. 퇴근 이후 시작해 자정이 넘어서야 끝나는 글쓰기는 이렇게 매일의 의식처럼 청년의 삶을 파고듭니다.나이 서른하나에 시작한 글쓰기. 그는 2∼3일에 한 편씩 꾸준히 글을 올립니다. 1년 6개월을 반복해 5천 자 분량 단편 소설 350편을 완성합니다. 원고지 1만 장 분량. 두꺼운 장편 소설 10권을 묶을 수 있는 탄탄한 콘텐츠가 맞춤법도 제대로 모르는 노동자 청년의 손끝에서 탄생합니다. 온라인 반응은 폭발적입니다. 게시물이 올라가면 순식간에 조회 수가 1만, 2만을 훌쩍 넘습니다. 글을 올린 후 자고 일어나면 폭풍 댓글들이 올라옵니다. 주물공장에서 일하는 일자무식 청년이 빚어내는 굴곡진 우리 사회의 모습에 사람들은 빠져듭니다.2018년. 청년의 온라인 게시물은 책으로 묶여 서점에 등장합니다. 반응은 뜨겁습니다. 학벌도, 지식도, 세련된 문장력도 없는 무명 청년이 3권의 책을 동시에 세상에 내놓습니다. 두 달 만에 5쇄를 찍습니다. 2만 부가 순식간에 팔립니다. 연이어 4권, 5권도 책으로 묶어 나옵니다. 발간 두 달 만에 시리즈 합계 총 5만 부를 찍습니다. 괴력에 가깝습니다. 얼어붙은 한국 출판 시장에 신선한 바람을 일으키는 이 청년, 이름은 김동식입니다.먹구름 아래 인생 태풍으로 힘든 시간을 보내는 분들. 안개 자욱한 미래로 마음이 묵직한 분들. 자신감이 떨어진 분들. 관계의 어려움 때문에 한없이 우울하신 분들. 성수동 아연공장에서 뜨거운 아연 국물을 국자에 퍼 담으며 10년을 묵묵히 견딘 청년 김동식에게 인생을 함께 배우면 어떨까요?몽테뉴는 말합니다. “괴로움을 슬퍼하지 말라 인생의 희망은 늘 괴로움이라는 언덕 너머에서 우리를 기다린다.”/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대표

2019-07-29

카디즈(KADIZ) 침범의 의미

강희룡 서예가영공은 해안선에서 바다로 12해리(약 22㎞)까지인 영해와 영토의 상공을 일컫는다. 모든 나라들은 자국을 지키기 위해 타국의 군용기가 자국 영공에 들어오면 국토침범 행위로 간주한다. 일단 영공을 침범 당하게 되면 일반적으로 경고방송 후 진로를 차단하게 되며, 플레어 발사 후 경고사격의 단계를 거쳐 강제착륙을 시키거나, 이에 따르지 않을 경우에는 격추시켜버린다.영공을 침범했다는 이유로 민간기까지 격추한 사례도 있다. 이 대표적인 사례는 소련은 1978년 4월 파리에서 출발한 KAL707기가 자국 영공을 침범했다는 이유를 들어 전투기를 띄워 미사일로 공격했다. 비행기는 다행히 인근에 비상착륙에 성공했지만 그 과정에서 2명이 숨졌으며 나머지 95명의 승객은 목숨을 건졌다. 국제사회는 소련군 전투기가 민간 항공기를 공격한 것을 강하게 비난했지만, 소련은 영공을 침범했다며 격추에 책임이 없다는 입장을 보였다. 다른 예는 1983년 9월 1일 소련에 의해 격추된 KAL007기다. 미국 뉴욕을 출발해 당일 저녁 서울에 도착하려던 KAL기는 오전 3시쯤 일본 홋카이도 근해에서 연락이 끊겼다. 정규 항로를 이탈해 소련 영공에 들어간 KAL기는 사할린 상공에서 소련 전투기의 미사일에 격추되어 탑승자 269명 전원이 숨졌다. 소련은 사건 발생 8일 만에야 자국 영공을 침범한 KAL기가 착륙 유도에 불응해 취한 불가피한 조치라고 발표했다. 당시 전투기 조종사는 2013년 언론 인터뷰에서 KAL기를 군 정찰기로 확신하고 격추했다고 주장했다. 격추명령 이유와 KAL기의 항로 이탈한 이유 등은 아직도 미궁이다.남의 영공을 침범한 군용기를 격추하는 사례는 최근에도 많이 발생한다. 특히 적대적 관계에 있는 국가들 간에는 일촉즉발의 대치상황으로까지 이어진다. 지난달 20일 이란 혁명수비대는 자국 영공을 지나는 미국의 군사용 드론(무인항공기)을 격추했다고 발표했다. 이란 남부지역 상공을 날던 미군 드론 ‘RQ-4 글로벌호크’를 대공 방어시스템으로 파괴한 것이다. 하지만 미국은 해당 드론이 이란 영공이 아닌 국제공역을 비행했다고 강하게 반발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란의 드론 격추 사실을 보고받고 이란 공습계획을 승인했다가 실행 직전에 철회하기도 했다.2019년 7월 23일 오전 9시 1분경 러시아 항공우주 방위군 소속 조기경보기 A-50이 대한민국 독도 영공을 무단 침입했다. 앞서 카디즈(KADIZ·한국방공식별구역)를 침범한 중국과 러시아의 군용기에 맞서 경계비행을 실시한 대한민국 공군이 대응사격을 하자 러시아 조기경보기는 9시 37분 독도영해를 벗어나 56분 방공식별구역에서 빠져나갔다. 남북이 휴전 이후 중국과 러시아 폭격기가 한꺼번에 한국을 상대로 이렇게 도발에 나선 것은 처음이다. 중국은 23일 중국과 러시아의 연합비행은 전면적인 전략적 파트너 관계를 심화 발전시키고 연합작전 능력을 향상하며, 공동으로 글로벌 전략 안정을 지키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러시아는 당초 한국 영공 침범 사실을 인정하고 깊은 유감 표명했다가, 나중에 독도 영공 침범에 대해 증거가 명백한데도 공식 부인하는 전문을 우리나라에만 보내왔다. 일본의 자위대 군용기도 긴급 발진을 했으나 한국에만 전문을 보낸 것은 독도가 한국영토인 것이 국제적으로 다시 한 번 확인된 셈이다. 러시아의 이러한 말 바꾸기 수법은 공산권이 남긴 화법으로 전형적인 외교 수법이다. 올 들어 군용기 카디즈 무단진입은 중국이 25차례, 러시아가 13차례나 한 것으로 집계됐다고 한다.한일관계가 최악이고 한국이 외교적으로 고립된 상황에서 한미일 공조의 틈새를 벌리며, 중국과 러시아가 한반도를 자신들의 영향력 안에 두고자 하는 ‘패권심리’를 여과 없이 드러낸 것이다. 풀어진 우리의 국가안보를 강한 국방으로 원칙을 천명할 것인지, 유토피아적인 발상의 남북관계 개선과 한반도 평화를 꿈꿀 것인지 결단의 순간이 지금의 우리나라 현실이다.

2019-07-29

한국형 디스커버리제도

디스커버리 제도는 본안 재판 전 증거조사 절차로 미국과 영국 등에서 시행되고 있는 제도로, 일종의 증거제시제도다. 상대방이나 제3자로부터 소송에 관련된 정보를 얻거나 사실을 밝혀내기 위해 변론기일 전에 진행되는 사실 확인 및 증거수집 절차를 가리킨다. 재판이 개시되기 전에 당사자 양측이 가진 증거와 서류를 서로 공개해 쟁점을 명확히 하는 제도다. 이 제도는 의료기관이나 기업, 국가기관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낼 때 개인인 원고의 증거 확보권을 보장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한국형 디스커버리 제도에 대한 말이 나오게 된 것은 바로 대웅제약과 메디톡스 간 ‘보톡스 분쟁’을 조사중인 중소벤처기업부가 처음으로 ‘한국형 디스커버리 제도’를 적용한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이는 지난 4월 LG화학이 ‘영업비밀 침해’를 이유로 SK이노베이션을 미국 국제무역위원회 ITC와 델라웨어주 지방법원에 제소했던 일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LG화학이 굳이 미국까지 가서 소송을 제기한 이유는 우리나라에는 없는 ‘디스커버리’ 제도를 이용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미국의 디스커버리는 사실심리(Trial)가 개시되기 전에 당사자가 가진 증거와 서류를 확보하고 이를 상호 공개하여 쟁점을 명확히 정리하는 제도다. 미국의 절차는 증명책임이 없는 당사자라도 서로가 가진 증거와 서류를 상호 공개하는 당사자의 증거공개의무를 핵심으로 하면서, 이를 위반시 강력한 제재수단을 두고 있다. 대웅제약과 보툴리눔 톡신, 즉 보톡스 분쟁을 벌이고 있는 메디톡스 역시 대웅제약이 영업비밀을 이유로 국내에서 증거를 공개하지 않아 미국 ITC에 제소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보톡스’분쟁을 제1호 ‘중소기업 기술 침해 행위 행정조사’사건으로 결정한 중소벤처기업부는 이번 사건에 한국형 디스커버리 제도를 활용할 계획이다. 중기부는 먼저 기업에 적극적으로 증거 제출을 명령하고 이에 불응하면 입증 책임을 해당 기업에 묻거나 증거 확보를 위한 비용을 부담하게 하는 등의 방안을 검토하기로 했다. 한국형 디스커버리제도의 본격 도입이 필요하게 됐다. 정부의 대책마련이 시급하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19-07-29

촛불 시민이 만들어가는 ‘준비시대’

신희선 숙명여대 기초교양대학 교수·정치학 박사“독립운동은 못했지만 불매운동엔 동참한다” 아베정권에 반대하며 일본 제품을사지 않겠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일본상품 불매운동의 일환으로 7월에 개설된 ‘노노재팬’은 대체재를 제안하는 참여형 사이트다. 일본산을 보이콧하고 일본 여행마저 반납하는 등 ‘안사고 안가는’ 항일운동이 확산되고 있다. ‘위안부’와 강제징용에 대한 사죄가 없는 상황에서 2019년 한국에 대한 일본의 경제제재는 경제침략으로 인식되어 시민들은 ‘NO아베’를 외치고 있다. 한일관계의 갈등의 고리를 어떻게 풀어가야 할 것인가?한일관계가 위기에 처한 배경에는 아베정권의 반역사적 태도에 기본적인 문제가 있다. 일본은 한국을 식민지화하면서 야기했던 ‘위안부’와 강제징용에 대해 한번도 진정성 있는 사죄를 하지 않았다. 오히려 1965년 한일협정, 2015년 ‘한·일 일본군 위안부 합의’로 최종적, 불가역적으로 해결되었다고 강변하였다. 아베정권은 참의원 선거에서 이기면서 우경화 분위기를 가속화하며 한국에 대해 더욱 강경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반도체 핵심소재의 수출규제를 시작으로 ‘화이트리스트’에서 한국을 제외하는 조치를 취함으로써 ‘한국 때리기’를 노골화하고 있다. 한일 무역갈등이 장기화될 것이라는 점에서 경제전쟁의 가능성마저 제기되고 있다.대외적으로 위중한 시기에 우리의 내분된 모습도 심각성을 더한다. 조국 전 민정수석이 SNS에 일본의 수출 규제와 관련하여 “일본의 궤변을 반박하기는커녕, 노골적 또는 암묵적으로 동조하며 대법원과 문재인 정부를 매도”하고 있다고 한 발언에 대해, 일부 보수 언론은 “값싼 관제 민족주의가 강변의 핵심”이라며 “중학생 수준의 B급 어법”이라고 비난하였다. 또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도 “문재인 정권의 무능, 무책임, 그리고 권위주의 정치를 온몸으로 상징”한다며, 조국 전 민정수석에 대한 비난을 이어갔다. 현정부에 대한 불편한 시선과 정략적 접근의 발언으로 인해 새삼 ‘친일파’ 논쟁이 일어나고 있다.일본 우익세력을 등에 업은 후안무치의 아베정권보다 문재인 정부를 탓하고 있는 상황이 심히 안타깝다. 3·1 독립선언을 주도했던 민족대표 33인 중의 한 분인 손병희 선생은 1905년에 쓴 ‘준비시대’에서 “오늘날의 급한 일은 진실로 국민의 단결에 있다”고 강조한 바 있다. 그는 “국내외 정세를 고려하여 미래 세계를 이끌어가기 위해서는 남보다 먼저 여러 분야에서 준비를 해야 하는 시대를 맞이했다”고 하며 모든 일에는 사람의 마음을 모으는 일이 우선이라고 하였다. 문재인 정부를 세웠던 시민들이 일본 대사관과 광화문 광장에서 역사를 왜곡하고 평화를 위협하는 아베 정권을 규탄하는 촛불시위를 펼치고 있다. 우리를 둘러싼 현재의 복잡다난한 관계 속에서 외교가 더욱 중요해지고 있는 지금 일본과의 갈등을 풀어가려면 우리의 단결된 모습이 요구된다. 지금의 위기가 기회가 되도록 우리의 자생력을 키우고 만일의 사태에 대비한 다양한 준비를 해야 한다.매년 ‘겨레얼 살리기 국민운동본부’가 주최하고 있는 ‘전국대학생독서토론대회’에서 오는 10월 9일 손병희 선생의 ‘준비시대’를 읽고 생각을 나누는 자리를 마련한다. 상해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 되는 올해 3·1독립운동으로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다가 순국한 의암의 책을 통해 반성과 사과가 없는 아베정권의 행태와 ‘친일파’ 논쟁의 면면을 생각해 보고자 한다. 손병희 선생은 “여러 나라가 대치하여 노리는 틈새에 위치하면서 그 나라를 보전하는 방법이 강력하지 않거나 부강하지 않으면 견디지 못하나니, 부강할 수 있는 방법은 아무 것도 없이 앉아서 담소 중에 찾아지지 않고, 국민이 분발하고 진취적인 하나의 마음을 가져야 시작할 수 있다”고 강조하였다. 한일관계가 악화되고 있는 지금, 미래 세대를 위해 우리는 무엇을 준비해야 할 것인가?

2019-07-29

경북 사과의 봉변

프랑스의 화가 모리드 드니는 역사상 유명한 사과가 셋 있다고 했다. 첫째는 ‘이브의 사과’이며 둘째는 ‘뉴턴의 사과’, 셋째는 근대 회화의 아버지 ‘세잔의 사과’라 했다. 여기에 우리가 덧붙인다면 ‘윌리엄 텔의 사과’와 ‘백설공주의 사과’ 이야기까지 말할 수도 있겠다.사과는 동서고금을 통해 인류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은 과일 중 하나다. 사과가 인류의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맛과 향, 그리고 효능 때문일 것이다. 미국 속담에 “하루 한 개의 사과면 의사를 멀리 한다”는 말이 있다. 사과가 품고 있는 풍부한 비타민과 미네랄이 사람의 건강을 지켜준다는 뜻이다. 백과사전에 나오는 사과의 효능을 보면 정말로 놀랍다. 자료에 따르면 사과에 포함된 식이섬유는 혈관에 쌓이는 유해 콜레스테롤을 몸 밖으로 내보내고 유익한 콜레스테롤을 증가시켜 동맥경화를 예방한다. 하루 한 개의 사과만 먹어도 나쁜 콜레스테롤을 40% 가량 감소시킨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사과의 섬유소는 혈중 인슐린을 통제, 혈당치 변동을 예방하여 당뇨병 환자에게도 좋다고 한다. 사과에 함유된 케세틴은 폐기능을 강화한다. 또 사과의 과육은 잇몸 건강에 좋으며, 사과산은 어깨 결림을 감소해 준다고도 한다.사과하면 대구를 떠올리지만 지구온난화의 영향으로 이제 그 명성은 경북지방으로 넘어갔다. 경북은 전국 사과 생산량의 약 60%를 차지한다. 우리나라 사과 주산지다. 사과 재배의 역사와 노하우도 으뜸이다. 청송사과는 저농약 재배로 껍질째 먹는 사과를 전국 처음 개발한 곳이다. 전국 어느 지역 사과보다 사과의 육질이 단단하고 저장성이 뛰어나다. 당도도 높으며 과즙이 많아 신선도가 오래 유지되는 것으로 유명하다.최근 충주시가 충주사과 홍보 동영상을 제작하면서 경북 청송사과와 영주사과를 비교 폄하하는 내용을 담아 말썽을 일으켰다. 청송과 영주지역 농민들의 즉각 항의로 사과는 받았지만 찜찜한 뒷맛을 남겼다. 우리나라 사과산업 발전을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못한 홍보 내용이었지만 해당지역 농민에게는 큰 상처를 안겨주었다. 전국 최고 명품에 대한 모욕이자 자존감에 대한 명예훼손이다. 경북 사과의 난데없는 봉변이었다./우정구(논설위원)

2019-07-28

늑대 ‘하나’, 호랑이 ‘넷’

안재휘 논설위원피장봉호(避獐逢虎)라는 옛말이 있다. 직역하면 ‘노루 피하려다가 범 만난다’가 되고, 의역으로는 ‘작은 해를 피하려다 도리어 큰 화를 당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정도가 될 것이다. 급변하는 국제정세 속에서 나라 안팎이 단 하루도 평안할 날이 없다. 날만 새면 한 건씩 일이 터진다. 도무지 쓸만한 외교전략 하나 안 보이는 대한민국은 바야흐로 처절한 ‘동네북’ 신세다. 사면초가(四面楚歌)를 넘어서 오면초가(五面楚歌)라는 신조어마저 나돈다. 일본은 무역보복의 칼끝을 도무지 거둘 기미가 없다. 오랫동안 기획한 것으로 보이는 이번 사변(事變)은 아무래도 적지 않은 피해를 감수해야 매듭을 드러낼 것 같은 불안감이 엄습한다. 미국이 중국과 무역 공방을 지속하는 모습을 강 건너 불 보듯 하면서 여파를 짐작하지 못한 업보가 너무나 깊다. 정부가 스스로 ‘위안부 협상’을 파기하고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 같은 변수를 가볍게 본 것은 결코 작은 허물이 아니다. 일본은 무역 문제를 정치수단으로 철저하게 활용하고 있는 트럼프를 따라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그렇게 보면 일본이 우리에게 저지르고 있는 해코지를 트럼프에게 말려달라고 부탁하면 되리라고 믿은 안일한 판단은 우스꽝스럽기 짝이 없다. 일본은 미국을 설득하기 위해 우리보다 열배 백배 공을 더 들이고 있을 게 분명하다. 찰떡궁합을 나타내온 미국과 일본의 관계를 망각해서는 안 될 일 아니던가.며칠 사이 많은 일이 더 발생하고 있다. 북한은 신형 잠수함 개발에 성공했다고 떠벌리더니, 동해안으로 신형 탄도탄 미사일을 두 발이나 쏴댔다. 러시아전투기가 독도 하늘 우리 영공에 두 차례나 침범해 우리 공군기의 수백 발 경고 사격을 받았는데도 러시아는 “넘어간 적 없다”고 오리발을 내밀었다. 우리 전투기의 사격을 놓고 일본은 “(독도 상공은) 일본 영공인데 한국전투기가 왜 사격을 하느냐”고 얄밉기 짝이 없는 참섭을 내놨다.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 현상은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한 집권세력의 대응이다. 국방부는 최현수 대변인이 읽은 입장 자료에서 “(독도가 일본의 영토라는) 일본 측의 주장은 일고의 가치도 없으며, 독도는 역사적·지리적·국제법적으로 명백한 대한민국 영토”라고 강조했다. 그게 다였다. 아니, 이 나라 안보를 책임지고 있는 국방부가 탄도미사일을 쏴대는 북한이나 전투기로 영공을 침범한 러시아·중국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고 얄미운 논평을 내놓은 일본만 물어뜯는 게 말이 되나? 어느새 우리의 적은 오직 일본뿐이고, 북한과 러시아·중국은 아름다운 우방이 되었나. 트럼프 대통령이 경제성장을 이룬 국가들이 WTO에서 개발도상국으로 분류돼 무역 혜택을 받는 것을 막기 위해 모든 수단을 강구하라고 USTR(미 무역대표부)에 지시했다. 중국을 겨냥한 조치라지만, 우리나라도 유탄을 맞을 가능성이 있는 변화여서 허투루 보아넘길 일이 아니다. 북한의 단거리 탄도미사일 발사를 딱총 놀이쯤으로 여기는 트럼프의 야멸찬 언행이 분노를 부른다. ‘동맹국’인 우리가 북한의 핵 인질이 돼가고 있는 비극을 트럼프는 도대체 무슨 감상으로 관망하고 있나. 국가 안위를 온통 트럼프의 ‘힘’과 김정은의 ‘배려’에 맡겨놓고 사는 이 나라 국민의 삶이 새삼 애달프다.일련의 사태 발생에 대한 책임 있는 자세도, 외교력을 포함한 성숙한 해법도 오리무중이다. 문 대통령은 물론, 국방부 장관조차도 러시아 전투기의 영공 침범이나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에 대해서 꿀 먹은 벙어리 놀음이다. 대한민국은 지금 어떤 처지인가. 북한이라는 ‘늑대’ 한 마리 잘 다루면 끝날 줄 알고 내부 분열상만 드러내고 있다. 그러는 사이에 우리는 미국·러시아·일본·중국 그렇게 네 마리 ‘호랑이들’의 먹잇감이 되어버린 토끼 같은 처량한 몰골은 아닌가.

2019-07-28

아베 극우 정치의 사상적 뿌리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아베의 극우 정치가 한일관계의 균열을 초래하고 있다. 이번 참의원 선거에서 절반의 승리를 차지한 아베는 그의 정치노선을 더욱 강화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그는 집권 이후 미일동맹을 강화하고 군국주의 부활을 획책하고 있다. 그는 일본 헌법 9조의 무력행사와 군사력 보유 금지 조항을 개정해 자위대 증강을 합법화하겠다는 것이다. 그는 2006년 관방장관 시절부터 야스쿠니신사를 은밀히 참배하면서도 야스쿠니 참배가 결코 군국주의 강화는 아니라고 항변한다. 그것은 국가를 위해 희생된 사람에 대한 경의의 표현이며 국민의 권리와 의무라고 주장한다.1954년생 아베는 친가, 외가 모두 일본 보수정치의 맥을 잇고 있다. 그의 외조부는 기시 노부스케 전 총리이며, 외종조부 역시 사토 에이사쿠 총리다. 그의 외사촌 기시 노부오는 참의원 출신이다. 그의 조부 아베 칸은 중의원이었고 부친 아베 신타로는 자민당 간사와 일본 외상을 지냈다. 아베는 1961년부터 1977년까지 세이케이 초중고, 대학을 나온 후 미국 남가주대학에서 2년간 어학연수를 하였다. 귀국 후 그는 고베철강 조후제재소에 잠시 근무했고 외상인 아버지의 비서관으로 일했다. 그는 1993년 아버지 선거구 야마구치에서 부친의 명성과 인맥 금맥을 그대로 이어받아 중의원이 됐다. 그 후 그는 3선 총리가 되었으니 대표적 금수저 정치인이다.아베가(家) 3대는 메이지 유신의 이론가들을 사상적 고향으로 삼고 있다. 아베가는 조슈의 인맥의 좌장 요시다 쇼인, 다가스키 신사쿠를 특별히 존경한다. 요시다 쇼인은 맹자의 철학을 실천적 행동철학인 양명학으로 해석하고 따랐다. 요시다 쇼인은 쇼카손쥬쿠를 세워 젊은이들을 제자로 삼았으며 이 학숙에서 배출된 인물들이 후일 명치유신의 주역들이 됐다. 이들 중에는 일본 막부정치 타도의 영웅 다가스키 신사쿠, 초대 조선통감을 암살된 이토 히로부미, 3대 조선총독 데라우치 마사다케도 들어 있다. 아베는 고교시절 야마구치현의 다가스키 신사쿠의 묘를 참배하고 그의 이름에 신(晉)자도 다가스키 신사쿠에서 따올 정도로 그를 사상적으로 흠모하였다.아베의 사상의 뿌리인 요시다 쇼인은 급진적 개혁을 시도하다 1859년 29세에 막부정권에 의해 처형당했다. 그는 천황중심의 강력한 국수주의적 중앙집권 국가건설을 꿈꾸었다. 그는 천하는 천황이 지배하고 그 아래 만민이 평등하다는 일군만민론(一君萬民論)를 주장하며 당시로서는 위험한 막부정치에 맞섰다. 그는 구미 열강과의 불평등조약에서 야기된 당시의 국가적 손실을 조선 만주 등 영토 확장을 통해 만회해야 한다고 주창하였다. 그것이 소위 조선반도 침략론인 정한론(征韓論)이 되었으며 그 뜻은 후일 그의 제자 이토 히로부미에 의해 실현된다. 쇼인의 제자 다가스키 신사쿠 역시 스승의 뜻에 따라 존왕양이 부국강병(尊王攘夷 富國强兵)의 철저한 옹호자가 된다. 결국 쇼카손쥬쿠의 야마구치 인맥들은 군국주의 명치유신의 계승자가 된다. 이 인맥에서 8명이나 총리가 되고 아베 역시 이 인맥의 일환이다.이 야마구치 인맥은 명치유신을 통한 일본 근대화의 영웅이지만 우리 역사에는 국권 강탈의 주범이며 원흉인 것이다. 그러므로 아베의 이번 대한무역제재는 일시적인 단순한 선거용 책략 이상의 반한감정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일본의 보수우익들은 아직도 아베의 극우 국수주의를 절대적으로 지지하고 여론도 나쁘지 않다. 일본 청년들도 잃어버린 일본의 경제 침체를 극복하고 취업 천국을 이룩한 아베노믹스를 지지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극일(克日)을 위해 아베 정치의 사상적 뿌리를 철저히 분석하고 지혜롭게 대처해야 한다. 아베의 대한관(對韓觀)은 단순한 역사해석의 차이가 아니고 아베의 몸에 체득된 국수주의의 산물이다. 우리가 이러한 아베의 이러한 역사인식과 무모한 경제전쟁에 일치단결하여 대응해야 할 이유도 여기에 있다.

2019-07-28

수도산에게 미안하다

김도형 아시아퍼시픽해양문화연구원 이사높아야만 산이 아니다. 수려해야만 산이 아니다. 도심에서 멀리 떨어져야만 산이 아니다. 낮은 산도 있고, 밋밋한 산도 있고, 도심 깊숙이 들어와 있는 산도 있다.영남의 소금강(小金剛)이라 불리는 내연산, 금세라도 날개를 활짝 펼치고 하늘로 날아오를 듯한 비학산, 원효와 자장, 혜공 등 고승들의 재미난 옛이야기를 품고 있는 운제산, 그리고 동대산, 도음산, 천마산, 봉좌산, 형산 등 포항에는 크고 작은 산들이 은은히 펼쳐져 있다. 이 산들과 이어져 도심에는 수도산, 학산, 양학산 같은 낮은 산들이 나지막이 엎드려 있다. 도심의 낮은 산들은 도심 밖 높은 산들보다 사람들과 더 친숙하기 마련이다.“사람들이 서로 미워서 잡아죽일 듯 / 이빨을 갈고 손톱을 세우다가도 / 칡넝쿨처럼 머루넝쿨처럼 감기고 어우러지는 / 사람사는 재미는 낮은 산만이 안다 / 사람이 다 크고 잘난 것만이 아니듯 / 다 외치며 우뚝 서 있는 것이 아니듯 / 산이라 해서 모두 크고 높은 것은 아니다 / 모두 흰 구름을 겨드랑이에 끼고 / 어깨로 바람 맞받아치며 사는 것은 아니다” - 신경림 ‘산에 대하여’중에서포항사람들의 가장 친근한 벗은 수도산이다. 산이라 하기에 겸연쩍은, 마을 뒷동산 같은 곳이다. 수도산은 원도심인 중앙동과 덕수동을 비롯해 우창동, 용흥동 등에 두루두루 걸쳐져 있다. 원래 백산(白山)이라 불렀으나, 조선 세조의 왕위 찬탈에 항거한 모갈(茅葛)거사가 은둔하며 곡기를 끊고 순절한 후부터 모갈산이라 불렀다. 일제 강점기에 상수도를 시설할 때 배수지(配水池)를 이 산정에 설치한 연유로 수도산이라 했고, 해지는 서쪽에 있다 하여 서산이라 부르기도 한다.수도산에는 수많은 추억이 무늬져 있다. 포항사람 치고 이 산에 추억 한 자락 묻어두지 않은 사람이 없다. 산책로가 되기도 하고, 운동장소가 되기고 하고, 백일장과 사생대회의 마당이 되기도 하고, 은밀한 사랑의 장소가 되기도 한다.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수도산 밑자락 철로에도 수많은 사람들의 애틋한 사연이 묻혀 있다.이 산은 그런 까닭에 늙은 어머니의 가슴처럼 편안하고 아련하다. 왠지 마음이 허전한 날이면 이 산에 올라 멀리 호미곶에서부터 영일만, 제철공장, 동빈내항, 도심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영일만을 천천히 빠져나가는 배 한 척이 눈에 띄면 멀리 길 떠나는 아버지의 뒷모습을 떠올리게 된다.포항의 작가 손춘익의 대표작인 ‘어린 떠돌이’에서 서산 밑 가난한 동네에 사는 주인공도 무시로 수도산에 올라 영일만을 내려다본다.“나는 그 옹달샘 곁에 오도카니 앉아 먼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가없이 넓은 바다에는 흰 돛단배가 서너 척 한가롭게 떠간다. 그러고 보니 그곳은 워낙 내 자리였다. 어느 날이고 틈만 나면 그곳에서 살다시피 했다. 기쁘면 기쁜 대로 또 슬프면 슬픈 대로 나는 으레 그곳을 찾아 하염없이 먼 바다를 바라보곤 했다. 한 마리 외로운 짐승처럼.”작품 속 옹달샘은 서산, 곧 수도산에 있다. 그렇다. 수도산에 올라 영일만을 물끄러미, 하염없이 바라보는 것, 그것은 그 자체로 가장 포항다운 풍경의 하나이다.지난 2013년 봄날의 큰 산불은 수도산에 깊은 생채기를 남겼다. 자연의 복원력 덕분에 산은 원래 모습을 되찾고 있지만 상처는 곳곳에 남아 있다. 굳이 산불 후유증을 떠나서라도 수도산은 방치돼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시민들의 추억과 그리움, 꿈이 아로새겨져 있는, 늙은 어머니 같은 저 키 낮은 산은 그렇게 상처를 안고도 말없이 도심을, 영일만을 내려다보고 있다. 이제 그 품속에서 자란 사람들이 저 산을 정성으로 보살펴야 할 때가 되지 않았을까.

2019-07-28

험난한 삶이라도

아침마다 학교 가는 게 두려운 중학교 1학년 남학생이 있습니다. 형편은 말할 수 없이 어렵고 공부는 따분했습니다. 숙제를 하지 않아 혼나고, 지각했다고 혼나고, 별 볼 일 없는 이 학생에게 학교는 가혹합니다. 결국, 어느 날부터 학교에 가지 않습니다. 닥치는 대로 아르바이트를 합니다. 원단 공장에서 가위질도 해 보고, 건설 현장에서 막노동꾼으로도 살아봅니다. 하루 벌어 하루 살기를 몇 년째. 소년은 이십대 청년으로 자랍니다.고향 부산을 떠나 대구로 올라오면서 피시방 아르바이트를 시작하지요. 온갖 밑바닥 인생의 굴곡진 모습을 여기에서 다 목격합니다. 사채업자, 노래방의 도우미로 일하는 여인들, 문신 가득한 조폭. 불법 온라인 게임 도박장 아저씨. 늘 야한 동영상을 보는 할아버지 등. 제대로 배운 게 없으니 청년의 맞춤법은 엉망입니다. 문장 한 줄을 써 본 적이 없습니다. 피시방의 월급은 60만원. 생계가 힘듭니다. 이때 외삼촌이 서울의 공장에 자리 하나를 만들어 소개해 줍니다. “특별한 기술은 없어도 돼. 몸만 있으면 할 수 있는 일이야.” 서울 성수동에 있는 주물 공장이었습니다. 500℃ 뜨거운 화로에 아연을 넣어 녹이고 나서 지퍼나 단추 등을 만드는 회전 금형에 천천히 붓는 작업입니다. 월급은 130만 원으로 오릅니다. 첫 월급날, 피자 한 판을 시켜 먹은 청년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뿌듯한 밤을 보냅니다.청년은 공장에서 벽을 바라보며 10년을 일합니다. 퇴근하고 자취방에 들어가면 고독이 엄습합니다. 어느새 나이 서른하나. 스마트폰으로 ‘오늘의 유머’ 커뮤니티에 들러 재밌는 이야기를 골라 읽는 취미가 생겼습니다. 가끔 댓글로 사람들의 창작물에 응원을 던지던 일자무식 청년에게 용기가 생깁니다. “나도 한 번 글을 써 볼까?” 청년은 인터넷에 검색하지요. ‘글 잘 쓰는 법’용기를 내서 이야기 한 편을 써 올립니다. 누구나 올리는 곳이거든요. 맞춤법이 하나도 맞지 않습니다. 재미없다고 욕먹을까 봐 두려움이 엄습합니다. 후다닥 컴퓨터를 끄고 이불을 덮고 눕습니다. 출근하기 전에 조심스럽게 사이트에 접속해 봅니다. 글은 이미 게시물의 숲 속에 파묻혔습니다. 불과 몇 건의 조회 수. 청년의 눈이 동그랗게 커집니다. 댓글이 달린 거지요. “재밌어요.” 비록 네 글자의 짧은 댓글 하나였지만, 발걸음이 날아갈 듯 가볍습니다. 내 글이 재미있다니. 태어나서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받아본 인정과 칭찬입니다. (내일 편지에 계속)/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대표

2019-07-28

두고 볼수록 의성! 살고 볼수록 의성!

김주수의성군수5년 전 군청에 첫 출근하던 그때처럼 나는 매일 새롭게 긴장하는 마음으로 출근길을 서두른다. ‘지방소멸지수 1위’농촌소도시의 군수라는 자리가 주는 중압감 탓만은 아니다. 굳이 부연한다면 ‘농촌도 사람이 사는 곳’이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욕심이 주는 무게가 두 어깨를 짓누르기 때문은 아닐까 싶다. 농업을 주력산업으로 하는 대다수의 농촌 소도시가 그랬듯, 의성도 한때는 인구가 21만여 명에 육박하는 거점도시였다. 그러나 산업화시대를 거치면서 맞은 급속한 이농현상은 치명적이었다. 청년인구의 지속적인 유출은 지역경제에 직격탄을 날렸다.우리 농촌이 처한 문제는 이 뿐만이 아니다. 저출산 고령화가 그렇다. 전 세계가 공통적으로 안고 있는 고민거리다. 결국 청년 인구의 유입을 장려하기 위한 경쟁이 과열되다보니, 국가 간 경쟁을 넘어 도시 간 경쟁의 시대로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정보의 공유가 보다 손쉬워지면서 국가, 민족, 지역 간의 경계가 사라지는 ‘초연결 사회’의 도래와 함께, 4차 산업혁명 시대 속에서 대도시 중심의 성장은 가속화될 수 밖에 없다. 이는 다시 청년인구의 지속적인 유출을 부채질하면서 지역경제의 붕괴를 앞당긴다. 악순환이 끊이지 않으면서 지역이 소멸될 수 있다는 위기감이 빈말이 아닌 셈이다.인구를 비롯한 경쟁력을 갖추지 못한 중소도시들이 소멸될지 모르는 위기 앞에서 하루하루가 살아남기 위한 처절한 ‘생존경쟁’의 극단적인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 농촌지역은 마케팅 차원을 넘어 새롭게 브랜딩되어 차별화된 경쟁력을 갖춰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리고 있다. 소멸 위험에 처한 지역은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해 매력적인 지역으로 거듭나게 하는 전략이 절실하다.이러한 상황은 지방소멸지수 1위를 차지한 내 고장 의성에 암담한 현실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나는 절망이 아닌 희망을 택했다. 사실 의성을 이끌기 전부터 이미 가장 고령화 지역임을 알고 있었기에, 의성의 수장이 된 민선 6기 때부터 단단히 각오를 하고 지방소멸 위기에 대응할 공격적인 성장주도형 정책으로 의성의 성장기반을 마련해왔다. 의성군 종합발전계획 수립을 시작으로, 미래의성 마스터플랜 완성, 의성건강산업(K-health) 프로젝트와 세포배양산업화 허브 구축 등 미래성장동력 확보에 특히 힘썼다.먼 옛날 ‘의(義)로운 성(城)’ 의성이란 지명을 만든 홍술 장군이 백성들과 함께 결사의 항전으로 지금 내가 서있는 이곳을 사수하여 ‘의성의 희망’을 지켜냈던 것처럼, 나 역시 지금의 의성의 희망을 찬란히 지켜내고자 현실과 당당히 맞서는 중이다. 노력의 결과는 민선 7기에 접어들며 가시적인 결과로 나타나고 있다. 유입 귀농·귀촌인구가 대폭 늘어났고, ‘이웃사촌 청년시범마을 사업’을 유치함으로써 지방소멸 문제를 해결해나갈 전환점을 마련했다.안계면에 조성 중인 이웃사촌 청년시범마을에서는 청년을 위한 창업모델을 발굴하고, 창업사업화자금, 리모델링비용 및 전문가 컨설팅을 지원할 계획이다. 이웃사촌 지원센터도 설치하여 청년들이 활발하게 활동할 수 있도록 하고, 안계면 마을만들기와 도시재생에 관한 컨설팅을 지원함으로써 도농교류의 협력사업을 추진한다. 이웃사촌시범마을을 미리 체험해보는 청년플러스사업과 청년예술캠프 등도 진행한다.청년들의 정착을 위한 공간도 마련한다. 안계면 일대의 빈집과 빈 점포를 리모델링하여 주거 및 공동작업장으로 제공하고, 980억원을 들여 신규주거단지도 총 300여 세대 더 조성한다. 농축산물과 식료품 가공업 등 생산시설과 체험공간을 갖춘 6차 산업 특화농공단지도 마련하여 의성의 미래를 책임질 청년이 중심이 되는 6차 산업 현장으로 운영할 예정이다. 이웃사촌 청년시범마을 사업과 같은 맥락으로, 도시청년 시골파견제 사업을 통한 창업자금 지원 및 컨설팅, 마을자원을 활용한 분야별 일자리 제공 등 다각적인 측면으로 지원할 방침이다.이처럼 청년들이 유입되어 일자리를 가지고, 가정도 이루고, 출생과 육아도 할 수 있는 삶의 환경을 조성하여 저출생, 고령화, 지역소멸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매력적이고 경쟁력있는 지역으로 거듭나는 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지역은 관광이나 유휴 시설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도 지역주민이 살기 좋은 정주여건이 마련돼야 한다. 주민의 삶의 질과 만족도가 높아지게 되면 행복한 주민을 보고 타 지역민도 아름다운 제2의 인생을 꿈꾸며 의성에 오고 싶고, 살고 싶어지기 때문이다. 의성이 품고 있는 사회적, 인문적, 문화적인 요소와 자원들을 잘 활용하여 지역주민의 생활과 생존을 보장하는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나는 앞으로도 전력 질주할 것이다.사람이 모두 ‘자기다움’을 가지고 있듯, 지역도 모두 ‘지역다움’을 갖고 있다. 의성은 이웃사촌 청년시범마을을 포함하여 현재 추진 중인 도시재생 사업들을 통해 “두고 볼수록 의성! 살고 볼수록 의성!”이라 인정받는 매력적인 ‘의성다움’을 브랜딩하고자 한다. 산업화 시대에 대도시가 청년들을 모여들게 했듯이, 이제 지역의 시대가 도래하여 청년들이 고향을 떠나지 않고, 대도시 청년들이 지역을 기회의 장으로 여겨 찾아드는 시대가 열리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 중심이 의성이 되기를 희망한다.

2019-07-28

모고헌에서 물소리를 듣다

김순희 수필가비는 물의 다른 이름이다.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자리를 바꾸며, 이동할 때마다 독특한 소리를 낸다는 것이 같은 족속임을 증명한다. 그 소리로 사람들을 부르는 것도 물이나 비나 매 한가지이다.여름에 들면서 장마가 시작되었다. 후두둑 떨어지는 빗소리가 발걸음을 횡계서원으로 이끌었다. 서원은 옛 모습을 지키고 섰으나 마당의 쑥부쟁이의 큰 키로 보아 사람이 지나친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성큼 댓돌을 딛고 마루에 앉았다. 그사이 비는 더욱 거세어졌다. 거친 소리를 만들며 비는 물로 모습을 바꾸었다.영천 횡계서원은 숙종 때 정규양이 지은 곳이다. 마당 한가운데 향나무가 외로이 비를 맞고 섰다. 300년은 족히 넘었을 나무다. 저 나무가 이곳의 역사다. 이제는 힘에 겨운 듯 목발에 팔을 의지하고 있다. 나무 앞에 학처럼 날렵한 정자가 앉아 있다. 집처럼 아늑한 학교이길 바랐던 정규양의 마음이 느껴진다.숙종 때 지어진 것을 영조 때 문인들이 수리한 후 ‘모고헌’이라 고쳐 불렀다. 높은 벼슬길로 오르려하지 않고 물처럼 낮은 곳으로 흐르며 수많은 제자를 길러낸 뜻을 존경하여 ‘옛사람을 흠모하는 집’이라 고쳐 부른 듯하다.계곡 아래로 내려갔다. 비탈에 서 있어서 물 가까이 선 누각의 다리가 더 길다. 까치발로 담장에 기대서 서당을 넘겨다보며 글 읽는 소리에 귀 기울이는 듯하다.그래서인지 물가에서 보면 이층 같고, 마당에서 보이는 건물은 단층이라 두 가지 모습을 한 모고헌이다. 앞면 두칸, 옆면 두 칸으로 지붕은 옆면이 팔작지붕이다. 지붕의 휘어진 곡선이 학이 날개를 펴서 막 날아오르려는 폼새다.신발을 벗고 모고헌 마루에 올랐다. 툇간으로 둘러싸인 독특한 집이다. 계곡으로 향해 열린 창으로 들어오는 경치에 눈이 환해지는가 싶더니 물소리가 가까이 들려와 듣는 사람의 마음을 풀어놓게 한다. 그 소리를 만드는 것은 계곡의 모난 돌들과 빗물이다. 자기만의 공법으로 기막힌 음악회를 만든다. 그 소리를 모아서 마음까지 시원하게 만드는 툇간이 있어서 모고헌의 가치가 높아지는 듯했다.방의 주인은 가끔 문을 닫고, 제자들의 글 외는 소리를 자장가 삼아 오수를 즐기기도 했을 것이다.그러다 한 제자의 느닷없는 질문에 선생이 일어선다. 방 윗부분 벽장형식의 책장에 손을 뻗어 눈으로 훑는다. 어느 건물에서도 보지 못한 특별한 공간, 이곳이 학문을 논하던 곳이란 것을 보여주는 책장이다. 조그만 방에 한 사람의 제자라도 더 들여 놓기 위해 머리 위로 책장을 올렸던 것 같다. 나도 깨달음을 얻을까하고 손을 내밀어 책장을 쓸어본다. 같은 장소에서 다른 시간에 여기 서있던 그들이 책장 넘기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오랫동안 마루에 앉아 계곡의 음악회를 듣는다. 방밖은 사방이 툇간으로 둘러져 있어서 방안에서는 물소리가 잘 들리지 않겠지 했다. 자세히 보니 이런 내 짧은 소견에 일침을 가하듯, 삼면에는 문을 달아 놓아 계곡을 향해 열면 방에서도 물이 연결되는 구조이다. 그날 기분에 따라 계곡에 쓸리며 내려오는 물소리를, 글 읽는 소리 들으려 잠시 소에 머무르는 물소리를, 모고헌을 뒤로 하고 내달리는 물소리를 골라 들을 수 있다.물소리는 휘모리장단으로 계곡을 쓸고 오다가 모고헌 앞에서는 잠시 걸음을 늦춰 진양조 장단으로 서성이며 맴을 돈다. 선비들의 글 읽는 소리에 취할까 싶을 때 자진모리 걸음으로 소를 빠져나간다. 명인이 연주하는 가야금산조가 계곡에 그득하다.옛 장인이 들려주는 물소리에 내 마음을 꺼내 씻고 싶다. 몸이 힘겹다고 마음에게 신호를 보내도 나는 무시했다. 위로가 필요할 때 찾은 곳이 모고헌이다. 남편과 다툼이 있던 날에도,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에도 나는 이 곳을 찾았다. 모고헌은 학문만 가르친 곳이 아니었다. 삶에서 휴식이 중요하다는 것을 일러주는 공간이었다.휴(休)는 나무 옆에 사람 인자를 붙여 만들었다. 사람이 나무 그늘에 들어가는 것이 쉬는 것이다. 모고헌은 향나무 그늘에 앉아 나도 그늘로 들어오라고 손짓하며 쉬는 것이 더 오래 걸을 수 있다고 가르쳐주었다. 모고헌을 좇아 내 삶에도 휴식을 주어야겠다. 오늘 같이 비가 내려 계곡 가득 물이 들어찰 때, 이곳으로 와 물소리를 길어 올려야겠다. 찾아오는 이의 발걸음에 화답하듯 모고헌의 물소리는 쉼 없이 여름을 실어 나르며 가슴 깊은 곳까지 푸르름을 새겨 넣는다.시원한 음각의 물소리가 내 마음을 거풍시켜 준다. 저 계곡이 있어서 모고헌이다. 마음을 시원하게 만드는 물소리가 있어, 학문이 있어 모고헌이다. 글 읽는 소리와 물소리가 맥놀이 되어 한 폭의 그림이 된다. 그림 속에 내가 있다.

2019-07-28

때아닌 친일공방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때아닌 친일공방이 한창이다. 여야가 서로 상대방을 향해 친일파로 낙인찍으려 안간힘이다. 논란은 일본의 반도체 소재 수출규제 조치에서 비롯됐다. 청와대와 더불어민주당이 죽창가 등을 언급하며 반일, 일제불매운동을 선동하는 듯한 분위기로 흘러가자 자유한국당은 한일관계를 외교적으로 해결하지 못한 정부를 외교무능으로 몰며 비판하고 나섰다. 이에 대해 더불어민주당은 공개석상에서 자유한국당의 행태를 친일적 행각이라고 몰아세웠다.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는 최근 당 확대간부회의에서 “(한국당이) 일본 정부가 이렇게 터무니없는 행위를 하는데도 일본 정부를 견제할 생각은 않고 친일적 언동을 하는 것은 참 안타깝고 유감스럽다”며 “이런 비상시국에 자유한국당은 추경 처리는 물론이고 일본에 대해서도 친일적 행각을 계속해 정말 유감스럽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한국당의 친일적 언동이 무엇인지는 별도로 언급하지 않았다. 이인영 원내대표 역시 “한국당이 정부·여당을 향해 ‘철없는 친일 프레임에 집착하는 어린애 정치를 그만두라’고 했는데, 부당한 경제보복에 당당히 대응하는 것을 철없다고 하는 데 대해 참담한 심정을 느낀다”고 했다. 전날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가 “문재인 정부는 철없는 친일 프레임에만 집착하는 어린애 같은 정치는 그만 멈추고 제발 현실을 직시하길 바란다”고 한 것을 비판한 것이다. 이 원내대표는 이어 “한국당의 백태클은 신(新) 친일”“한국당은 일본을 위한 엑스맨”“한국당은 자책골 쏘는 팀킬” 등으로 발언 수위를 높이며 한국당을 비난했다.친일공방에 불이 붙자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는 당 차원의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듯 하다. 황 대표는 당 차원의 일본 수출규제 대책 특별위원회 첫 회의에 참석해 정부와 여당이 한국당에 ‘친일 프레임’을 씌우는 데 대한 대책을 마련하라고 주문했다. 황 대표는 “우리 당이 언제 일본에 굴복하자고 했냐. 특사 보내서 돌파구를 마련하자고 하는데 지적할 사항이냐”면서 “문제를 풀 고민은 없이 야당 비난에만 골몰하는 것은 참으로 치졸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고 청와대와 여당을 겨냥했다. 그러면서 황 대표는 친일 프레임의 위험성을 강조하며 “친일-반일 편가르기에 대비해 국민 여론을 올바르게 이끌어갈 방안을 고민해달라”고 당부했다.황 대표의 고민은 일본이 수출규제조치로 우리 기업에 압박을 가하고 있는 마당에 자칫 ‘친일 VS 반일세력’으로 편가르기를 할 때 이성적인 판단보다 감성적인 판단이 앞서게 된다는 점 때문일게다. 이성적인 판단으로는 분명히 국민과 국익을 위해서 합리적이고 이성적이고 외교적인 해결이 중요하지만 감성적인 판단으로는 죽창가를 부르짖는 조국 수석의 선동정치에 비해 이목을 끌기 어려운 현실의 딜레마는 분명하다.이쯤되자 나경원 원내대표와 민경욱 대변인이 함께 반격에 나섰다. 나 원내대표는 “친일 몰이나 하는 한심한 청와대”, “정부야말로 신 친일파”, “얼빠진 정권의 얼빠진 안보정책” 등으로 자극적인 발언을 쏟아냈다. 급기야 나 원내대표는 “친일파 후손들은 민주당에 더 많더라”며 민주당을 겨냥한 뒤 “문재인 대통령도 그렇게 따지면 친일파 후손이 국가를 상대로 한 재산환수 소송 변호사도 하셨더라”며 민주당과 문 대통령을 싸잡아 친일파라고 비난했다. 민경욱 의원은 평화의 소녀상 옆에서 ‘하와이는 미국 땅, 대마도는 몰라요, 독도는 우리 땅’이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1인 시위를 벌인 뒤, 자신의 SNS에 이 사진과 함께 올린 글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아버지까지 거론하며 문 대통령을 친일파로 몰아세웠다. 일국의 대통령까지 친일파로 몰아가는, 끝간 데 없는 친일파 공방을 바라보는 국민들의 마음은 참담하다. 여야가 서로에게 친일파의 굴레를 씌우는 것은 국민들에게 정치혐오를 불러올 뿐이고, 정치적 자살행위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 역사에 지워지지 않는 화인이 된 친일파 공방, 여야 모두 자제하길 바란다.

2019-07-25

“바캉스다”

본격 무더위와 함께 바캉스철이 시작됐다. 왜 우리가 여름휴가를 바캉스라는 말로 사용하고 있는가에 대해 그 근원을 알 수 없지만 아마 프랑스 사람의 유별난 휴가문화가 작용한 탓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프랑스 사람은 세계에서 가장 긴 휴가를 즐긴다. 물론 유럽 국가들이 비슷한 문화를 가지고 있지만 그 중 프랑스는 계절별로 바캉스가 있을 정도로 바캉스 문화가 잘 발달된 나라다.프랑스에서는 1936년부터 시작된 유급 휴가가 오늘날까지 시행되고 있다. 1년에 4∼5주 정도 유급휴가를 쓴다. 여름철이면 프랑스 파리가 텅 빌 정도로 많은 사람이 휴양지를 떠난다고 한다. 게다가 프랑스는 주 35시간 근무제를 허용하고 있는 나라다. 일하는 날보다 쉬는 날이 더 많다. 바캉스의 개념이 우리와는 당연히 차이가 있다. 고작 4∼5일 여름휴가를 즐기는 한국인에게 그들은 별천지 사람이다.휴가는 생활의 여유에서 시작한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사람에게 휴가란 그림의 떡이나 마찬가지다. 산업이 고도성장하면서 생활의 여유가 생기고 여가활동도 생각하게 된 것이 휴가의 개념이다. 선진국이거나 부자 나라일수록 휴가의 개념이 더 철저히 지켜지고 휴가 문화도 더 발달된 이유다.7월 마지막 주다. 직장인의 올여름 휴가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직장인의 76%가 여름휴가 계획을 가졌다고 한다. 우리에게도 여름휴가는 이제 일 년 중 가장 소중한 휴식의 시간이며 문화다. 그러나 휴가 기간이나 휴가비 등을 보면 아직 선진국 수준에 도달하기에는 많이 부족한 모습이다. 같은 설문조사에서 우리나라 직장인의 휴가비는 평균 54만 원 정도로 조사됐다. 올해는 경기가 나빠서인지 국내 휴가가 해외 휴가보다 배가 많았다. 휴가 일수는 평균 4.1일 수준이었다.그러나 휴가는 많든 적든 모두에게 즐거운 시간이다. 이 기간만큼은 모든 일상의 짐을 던져놓고 마음껏 여유를 즐겨 보고 싶은 것이다. 경제적 이유로 방에 콕 박혀 있는 것보다 작은 비용이지만 알뜰한 준비로 휴가를 보내는 지혜를 발휘해 보는 것은 좋은 생각이다./우정구(논설위원)

2019-07-25

이공계생을 적극 키워야

서의호 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반세기 전인 1971년 이공계 육성의 엄청난 정책이 발표되었다. 한국에 카이스(KAIS·KAIST의 초창기 이름) 라는 특수 이공계 대학원을 만들어 재학생 전원을 특례보충역으로 3주 훈련만 받고 병역특례를 준다는 발표였다. 당시 충격적인 조건으로 카이스를 향한 이공계 대학생들의 합격열망은 대단하였다. 미국 스탠퍼드 대학 공대학장이었던 터만 조사단이 내한하여 계획을 구상하였고, 지금 카이스트 경영대가 있는 홍릉단지에 카이스가 세워졌다. 발표 2년 후인 1973년 첫 입학생을 모집하였다.필자도 1975년 카이스 3회로 입학하여 직접 교육과정을 받으면서 당시 한국의 일류라고 하는 일반 대학들과는 전혀 다른 미국식 교육과 연구방식에 큰 감명을 받았던 기억이 있다. 현재 이공계 대학의 상당수의 교수가 카이스트 졸업생이고 산업계에도 엄청난 기여를 하였다는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사실상 이러한 카이스트의 성공에는 초창기 병역특례가 기여한 것임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엄격히 말하면 병역특례는 당시에도 병역의무의 다른 형태였다. 왜냐하면 병역특례를 받은 졸업생들은 국내의 산업, 연구소에 최소한 3년을 근무해야 한다는 조항이 달려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의 카이스의 병역특례는 여러 가지 과정을 겪으면서 오늘날 이공계전문연구요원 병역특례로 이어져 오고 있다. 한 해 약 2천500명이 혜택을 받는다고 한다. 군복무 기간을 대강 2년으로 볼 때 약 1%의 젊은이들에 대한 혜택이다.최근 정부는 이 제도의 대폭 축소 내지는 폐지를 구상하고 있다고 보도되었다. 국방부는 현역병 자원 감소를 이유로 연간 2천500명 규모 전문연을 2022년부터 단계적으로 감축해 2024년에는 50% 이상 줄이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이에 대하여 과학계 원로인사들로 구성된 한림원이 성명서를 내고 이에 KAIST 등 국내 4대 과학기술원 교수들까지 이공계 전문연구요원 축소 방안에 반대하고 나섰다.포스텍, 서울대 등 주요 일반대학의 이공계 교수들도 같은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교수들은 축소안이 이공계 대학원의 인적자원을 붕괴시키고 인구역량 저하를 가져올 뿐 아니라 중소기업 및 연구기관의 첨단기술인력 부족을 초래해 기술주권 상실까지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전문연구요원 선발 규모가 현역 입영인원에 1% 수준으로 군 복무자원의 확보 차원이 아니라는 의미다.사실상 전문연구요원 제도는 과학기술을 활용한 국가사회적 문제해결과 함께 국방과학기술 고도화를 통한 군의 현대화·선진화·고급화에 직접적으로 기여해 왔기 때문에 궁극적으로 군의 전력 강화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고 본다. 또한 국가 기술주권과 산업경쟁력 강화에 크게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초창기 카이스트가 병역특례로 그 명성을 유지하면서 오늘날 각종 이공계 인재를 배출한 것과 맥을 같이 한다.이런 점에서 전문연구요원은 병역면제라기 보다는 병역의무의 또다른 형태라고 보는 것이 타당해 보인다. 전문연구 요원 제도는 우수 과학기술인재의 해외 유출 방지에 기여한 대체불가능한 제도라고 본다. 전문연 제도 감축·폐지가 이공계 연구실 연구능력과 중소기업의 고급기술인력 확보뿐 아니라 국가경쟁력까지 약화시킬 수 있다. 특히, 최근 일본의 반도체 부품 수출규제 사태에서 보듯이 이제 우리 기술을 더 강화하여야 할 시기에 중소기업 및 연구기관의 첨단기술인력 부족을 초래는 불보듯이 뻔하다.정부가 좀더 소통과 대안 없이 전문연을 감축하면 지금도 부족한 고급 과학기술인재를 해외로 유출시키고 대학-연구소-기업으로 이어지는 과학기술 생태계를 붕괴시켜 종국엔 국가 산업경쟁력을 무너뜨릴 수도 있다. 지금은 이공계생들을 더 적극 키워야 할 시기이다.

2019-07-25

반응하는 능력이 책임감입니다

뱃사공이 노래를 부를 때 멀리서 들려오는 메아리 같은 화답이 없었더라면 어땠을까요? 물론 뱃사공 두 사람이 주거니받거니 하면서 괴테 일행을 즐겁게 해 주었을 것입니다. 틀림없이 풍부한 성량과 아름다운 목소리로 수로 사이 건물의 울림을 통해 감동을 선사했겠지만 무언가 부족합니다.정체불명의 누군가가 다음 멜로디와 가사를 추임새로 넣으며 멀리서 부르는 노랫소리의 감동에는 미치지 못합니다. 뱃사공의 노래는 누군가로 하여금 화답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반응을 불러일으키는 힘이 있었던 거지요. 남편들이 바다 한가운데서 열심히 일하고 있을 때, 응원하는 여인들의 아름다운 노랫소리에 멀리 바다 한가운데서 들리는 사랑하는 이의 화답 노래는 더 이상 완벽할 수 없는 예술로 이 장면을 승화시킵니다.2013년의 일입니다. 캘리포니아 엘카미노크리크 초등학교에 다니는 열 살 소년 트래비스셀린카는 뇌종양 판정을 받고 7주간 방사선 치료를 받습니다. 치료를 마친 트래비스는 학교에 나갈 수 있었지만, 머리카락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아 걱정 가득합니다. “모두 내 머리를 어떻게 생각할까?” 교실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트래비스는 그 자리에 얼어붙습니다. 두 눈에 그렁그렁 눈물이 차오릅니다. 친구 열다섯 명 모두가 삭발하고 등교한 것입니다. 친구 혼자 외롭지 않도록 모두 머리를 깎고 등교하기로 약속했고 한 아이도 약속을 어기지 않았습니다. 뇌종양이라는 끔찍한 지옥을 겪고 암과 싸워 이긴 트래비스. 다시 세상에 돌아온 순간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천국을 맛보았습니다.영어 단어 Responsibility는 책임감이란 뜻이지요. 반응한다는 뜻의 response와 능력이라는 뜻의 ability가 합쳐진 것이지요. 반응하는 능력이 곧 책임감입니다. 세상을 아름답게 하는 예술 같은 삶은 책임감의 열매들입니다. 그 책임감은 내게 주어진 상황에 가장 아름다운 반응을 선택하는 힘으로부터 오는 법입니다.멀리서 들려오는 뱃사공의 아름다운 노랫가락에 화답하는 익명의 노랫소리. 아내들의 응원하는 소리에 고단함을 잊고 자신들의 노래를 불러주는 배려. 친구로 하여금 외롭지 않도록 같이 머리를 깎는 용기 있는 선택. 뛰어난 반응 능력의 아름다움입니다. 이 순간도 내 곁 누군가는 세상과 싸우며 아무도 귀 기울이지 않는 신음소리를 내고 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귀를 열어 그 신음소리를 듣고 최선의 반응과 행동으로 화답하는 사랑으로 충만한 오늘을 만들고 싶습니다. /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대표

2019-07-25

요술 의자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만 원을 주고 의자 하나를 구입했다. 행사장 같은데 흔히 쓰이는 접었다 폈다 하는 철제의자다. 차 트렁크에 싣고 다니면서 바람 좋고 그늘 좋고 경치 좋은 곳에 놓고 앉아서 한참씩 쉬곤 한다. 그게 그런데 신통력을 가졌다. 그 의자에 앉기만 하면 그곳이 바로 내 별장이고 산천초목이 다 내 정원이 된다. 그 의자 하나로 나는 도처에 별장을 둔 갑부가 되었다. 이게 그냥 농으로 하는 허튼소리가 아닌 줄을 아는 사람은 알 것이다.여름철에는 주로 들로 나간다. 들판을 가로질러 난 고가철로 그늘이 여름 한 철 내 별장이다. 요술의자만 갖다 놓으면, 수백만 평 정원이 딸린 거대한 콘크리트 구조물을 별장으로 갖게 된다. 사방이 탁 트인 들판 한가운데는 어디선가 살랑바람이라도 불어오게 마련이다. 정 바람이 없으면 부채질이라도 하면서 여름의 한가운데 앉아있는 맛도 나쁘지가 않다. 하나의 생명체로 태어나서 지구생태계의 일원으로 살아가는 일 중에 이렇게 계절의 한가운데로 지나가는 일 말고 더 중요한 게 뭐겠는가. 사람이 가장 절실하게 살아가는 일도 바로 그렇게 온몸으로 계절을 사는 일이 아니겠는가.초록 물결 넘실대는 여름 들판 위로 잠자리들이 난다. 한두 마리가 아닌 수백 수천 잠자리들이 군무를 펼친다. 가만히 보면 먹이활동이 아니라 놀이로서의 비행이라는 걸 알 수 있다. 드넓은 여름 들판에서 펼쳐지는 한바탕 생의 페스티발인 셈이다. 삶이 곧 놀이고 잔치라는 걸 보여준다. 눈부신 태양과 산들바람, 초록들판 말고는 아무것도 더 필요가 없는 잔치마당이다. 영겁의 세월 속에서 백년을 산다 한들 그 역시 찰라 일진대, 잠시 살다가는 잠자리들의 군무에서 생의 환희를 본다.유명 여배우의 자살에 이어 이름 있는 한 정치인도 스스로 목숨을 끊어 세간에 충격을 주고 있다. 그 여배우는 영화의 개봉과 드라마 출연을 앞두고 있었고, 정치인의 경우 한때 정권의 실세로까지 올랐다가 지금은 비록 낙선을 한 처지지만 왕성하게 방송활동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객관적으로는 자살을 할 만큼 절박한 상황이 아니었기에 무엇이 그들로 하여금 그런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하였는지 모두가 의아해 하는 일이다.우리나라의 자살률이 OECD국가 평균의 두 배가 넘는다고 한다. 최근 몇 십년간 자살자가 급격히 늘어난 것은 고속의 산업화 과정을 거치면서 급변하는 경쟁사회 속에서 상대적인 박탈감이나 좌절감이 심해진 것에 기인한다는 분석이다. 팽배한 물질만능주의가 정신적인 가치보다 우위를 차지하여 정체성의 혼란을 야기하고 공동체적 삶의 와해로 인한 인간관계의 단절과 고립감이 주요 원인이라는 것이다.들판 한가운데 앉아서 산들바람을 맞으며 잠자리들이 나는 걸 보면서 문득 삶이란 게 무엇이며 무엇이 가장 절실한 삶의 조건인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사람들이 우울증에 걸리고 자살을 할 만큼 스트레스를 받는 것은 대부분 사회적인 조건 때문이다. 스스로 만든 사회로부터 받는 온갖 압박과 고통과 수모 때문에 좌절하고 절망하는 것이다. 삶의 기본조건은 그러나 사회적인 조건 이전에 햇빛과 공기와 물과 토양 같은 자연의 조건이 우선이다. 그런 조건들의 충족만으로도 삶은 충분히 누릴만한 것이라는 사실을 사람들은 곧잘 잊는다. 저 잠자리들의 군무가 보여주는 생명의 환희랄까 존재의 충일 같은 것 앞에서 인간의 사회적인 조건은 오히려 사소한 것이 될 것이다.가진 게 남보다 적거나 명예나 지위가 비천해도 그게 그렇게 절박한 열등감이나 좌절감의 이유일 수는 없다는 것, 그런 인식의 전환이 바로 요술의자다. 이것이 황당한 소리로만 들린다면 당신은 지금 자승자박 탐진치의 질곡에 묶여있는 신세다. 인식의 전환이 삶을 바꾼다.

2019-07-25

공인의 신뢰

김락현 경북부신뢰(信賴)란 서로 믿고 의지한다는 뜻으로, 사회생활을 하면서 꼭 갖춰야 할 필수 요건이다. 이런 신뢰를 깨뜨리는 사건이 구미시의회에서 발생해 지역사회에 파장이 일고 있다.더불어민주당 소속 한 시의원이 간담회에서 동료 시의원들의 발언을 녹음해 감청 논란을 일으킨 것도 모라자 이와 관련한 거짓 해명을 해 거짓말 논란으로 비화됐다. 더 큰 문제는 이 시의원은 아직도 자신의 잘못이 무엇인지 모르고 있다는 점이다.백번 양해해 녹음한 사실이 실수라면 동료 의원들에게 사과하고, 녹음을 지우면 될 일이다. 동료들과의 신뢰를 깨뜨리는 행위에 대해 사과했다면 이 사건이 이렇게 확대되지 않았을 것이다.하지만, 이 시의원은 동료들과의 신뢰는 뒤로하고 녹음에 아무 문제도 없다는 억지 입장만 고수하고 있다.정말 아무 문제가 없을까. 본인이 없는 상황에서 타인의 대화 등을 녹음하는 것은 현행법상 엄연한 불법이다. 그도 이러한 사실을 잘 알고 있는 듯하다.이 시의원은 사회관계서비스망(SNS)에 최근 불법 영상자료 수집으로 논란이 된 다른 시의원에 대한 글을 올리면서 답글에 감청하거나 청취하면 통신비밀보호법 위반으로 1년 이상 10년 이하의 징역과 5년 이하의 자격정지에 처해진다고 스스로 언급했다.그가 동료 간 신뢰를 깨뜨리는 행위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감청 논란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SNS상에 올리면서 끊임없이 동료 시의원들을 비하하고 있다.이 사건에 대한 취재와 관련해 그는 “수준미달 의원의 제보에 언론이 휘둘리지 말라”라고 밝혀 동료 시의원들의 공분을 사기도 했다.또 이 시의원은 지난달 열린 제231회 제1차 구미시의회 정례회 상임위에서 한 인터넷 언론 보도를 언급하며 “3월 승진을 앞두고 모 간부가 심야에 승진대상자를 불러내어 노래방에서 유희를 하고 성 알선과 청탁 등을 했다”고 언급해 공무원노조의 반발을 사기도 했다.결국 이 내용은 언론중재위에서 사실이 아닌 것으로 확인됐다. 정확한 사실도 아닌 것을 공개적으로 발언해 시 공무원들의 명예를 훼손하고 구미시의회에 대한 신뢰도에도 타격을 준 셈이다.한 구미시의원의 이러한 신뢰 상실은 결국 구미시의회 전체의 신뢰를 무너뜨리고 나아가 결국 소속 정당인 더불어민주당의 신뢰에도 영향을 주게 될 것이 뻔하다.지금도 늦지 않았다. 해당 시의원과 구미시의회는 깨진 신뢰를 어떻게 다시 회복할 것인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것이다./kimrh@kbmaeil.com

2019-07-24

괴롭힘금지법의 민낯

괴롭힘금지법은 직장 내 괴롭힘을 금지하는 개정 근로기준법으로, 직장에서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는 행동이 확인되면 사업주는 가해자를 즉시 징계해야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최근 직장인 퇴사 결심 이유 1위로 뽑힌 상사 갑질(취업포털 인크루트 조사결과), 재가 될 때까지 태운다는 의미의 간호사 태움 문화, 조현민 전 대한항공 전무의 물컵 갑질 사건 등 직장 내 괴롭힘 문제가 사회 이슈로 떠올랐다. 실제로 2017년 국가인권위원회의 조사 결과 직장생활 경험이 있는 만 20∼64세 남녀 1천500명 중 73.7%가 직장 내 괴롭힘 피해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이런 직장 갑질을 제재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필요하다는 사회적 요구가 많아지면서 직장내 괴롭힘금지법이 2018년 12월 27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 지난 16일부터 시행됐다. 법안에서는 직장내 괴롭힘 발생 시 조치 의무도 명시했다. 사용자는 직장 내 괴롭힘이 발생하는 경우 즉시 이를 조사하고, 피해 직원의 희망에 따라 근무 장소 변경, 유급휴가 명령 등 적절한 조치를 취하도록 했다. 만약 사용자가 직장 내 괴롭힘 발생사실을 신고하거나 피해를 주장했음을 이유로 해고 등 불이익 처우를 하는 경우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했다.그러나 시행 일주일여 만에 괴롭힘 금지법의 사각지대가 드러났다. 우선 괴롭힘방지법은 국가·지방공무원법의 적용을 받는 공무원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 이에 따라 공무원노동조합에서는 공무원도 괴롭힘을 당했을 때 구제받을 수 있도록 공무원 복무규정이나 행동강령을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특히 국회가 있는 여의도에서도 갑질을 호소하고 있다. 최근 국회 보좌관들의 페이스북 계정인 ‘여의도 옆 대나무숲’에 올라온 내용을 보면 “의원 보좌진은 국가공무원이지만 정작 국회의원들은 보좌진을 공무원으로 생각하지 않고 사노비 정도로 여기는 모양”이라며 “의정 활동과 관련 없는 잡다한 일들을 보좌진에게 시킨다”라고 했다. 괴롭힘 방지법을 만든 국회에서 직장내 갑질과 괴롭힘이 성행하고 있다니 매우 유감스런 일이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19-07-24

새옹지마(塞翁之馬)

장규열 한동대 교수옛 중국 한 노인에게 아끼는 말 한 마리가 있었다. 도둑이 들어 그 말이 없어졌는데도 노인은 오히려 ‘이게 좋은 일이 될지 누가 아느냐’며 태연하였다. 노인을 잊지 못한 그 말이 좋은 말 하나를 더 끌고 돌아왔다. 기뻐하는 이웃들에게 노인은 ‘이게 나쁜 일이 될지 누가 아느냐’며 경계하였다. 말타기를 즐기던 아들이 그 말에서 떨어져 다리가 부러졌다. 노인은 이번에도 ‘이게 좋은 일이 될지 누가 아느냐’며 안타까워하는 이웃을 오히려 달래주었다. 나라가 전쟁에 휘말려 젊은이들이 싸움터에서 죽어갔지만, 그 아들은 곁에서 노인을 보살펴 주었다. 시골 노인의 그 한 마리 말. 새옹지마(塞翁之馬).한국과 일본. 갈등이 깊다. 해외 언론마저 사설로 다룰 만큼, 이번 한일통상마찰 사태에는 무역 관계 외에도 깊은 골이 함께 보인다. 두 나라 역사의 흔적과 경제 논리뿐 아니라 국민의 자존심마저 함께 걸려있어, 스스로 헤어나오기는 어려울 모양이다. LA타임즈(LA Times)는 ‘한일무역갈등은 역사의 아픔을 품고 있다’고 하였다. 블룸버그(Bloomberg)통신은 ‘양국은 각자의 관점에 포획되었다’고 적었다. 특단의 해법이 필요하고 특별한 다짐이 요청된다. 일제강점기의 그림자가 아직도 우리를 힘들게 하는 일이라서, 우리는 어쩌다 이처럼 집요하고 사나운 이웃을 만났을까 안타까운 마음이다. 이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지혜를 모아야 할 터이지만, 이후에 일본과 또 어떤 관계를 만들어 갈 것인지 귀추에 국민의 관심이 쏠린다. 우리에게 일본은 어떤 이웃인가.일본이 우리에게 수출하지 않겠다는 품목들은 오히려 그들도 다시 수입해 갈 완제품들의 원재료가 되는 물품들이라고 한다. 제한되는 원료들을 우리의 기술로 만들어 내는 날에는 일본이 오히려 어려운 처지에 처하게 될 터이다. 실제로 우리 정부와 업계는 연구와 개발에 심혈을 기울여 이들 품목에 대하여도 일본에 의존하지 않고 독립할 것을 다짐하고 있다. 또한, 일본이 무역에 있어 호혜적인 특혜를 허용하고 있는 국가 리스트에서 한국을 제외하겠다는 발상도 분명한 사실과 논리에 근거한 설명이 부족한 상태라고 한다. 세계무역기구(WTO) 등 국제무대에서 일본이 오히려 설명과 설득에 노력을 기울여야 할 터이다. 뉴욕타임즈(NYT)는 ‘G20회의에서 자유롭고 공개적인 통상이 평화와 번영의 기초라고 천명했던 아베 수상이 이틀 만에 모호하고 불특정한 근거를 토대로 한국과의 교역에 제한을 가하였다’고 하였다. 이 어려움에서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2차대전은 74년 전에 끝났지만, 일제강점이 남긴 그림자는 아직도 길다. 물리적인 조건들이야 전후 태반이 복구되고 개선되었지만 한국민들의 마음 속에 드리워진 상처와 아픔은 여전히 길고 어둡게 여러 갈래로 작동하고 있다. 이를 해소하기 위한 일본의 적극적인 노력이 부족하여 안타깝다. 전후 독일이 유럽에서 보여주는 참회와 회복의 노력에 비하면 못 미쳐도 한참 못 미친다. 우리에게도 일본에 대한 우리의 태도와 인식 가운데 부적절한 앙금을 혹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살펴야 한다. 피해의식이나 패배의식은 물론 혹 일본이 우리보다 낫다는 식의 열등감은 이제야말로 말끔히 씻어내야 한다. 역사와 문화뿐 아니라 경제와 사회적인 측면에서도 나으면 나았지 손톱만큼도 모자란 부분이 이제는 없다. 글로벌시장에서 우리 상품이 절대우위를 더러 가지고 있으며 기술력과 정보력으로도 뒤질 바가 아니다.세계와 씨름하던 중에, 뜻밖에 일본의 일격을 만난 셈이다. 지혜롭게 대처하여 슬기롭게 이겨내야 하며, 이후에는 오히려 더욱 믿음직한 이웃으로 만들어 갈 아량이 우리에게 있어야 한다. 이 위기는 기회가 될 확률이 높다. 새옹지마이며 전화위복이므로.

2019-07-24

아베의 황당한 백일몽

김규종 경북대 교수·노문학지난 7월 1일 시작된 일본의 경제침략이 진행되고 있다. 가장 가까운 이웃 나라 대한민국을 콕 집어서 일본이 자행한 경제보복이 세계적인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2차 대전 당시 도조 히데키가 주도한 진주만 공습에 비견되는 아베의 급습이 무엇을 겨냥한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분분하다. 7월 21일 참의원 선거, 남북과 북미의 급속한 해빙과 평화체제 구축방안 논의에서 일본의 배제, 한국과 중국의 부상(浮上)에 따른 열패감 등등.1965년 한일 국교 정상화 이후 제기돼온 징병과 징용, 위안부 문제, 과거사를 둘러싼 한국과 일본의 갈등,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 출신의 역사의식 없는 어리석은 대통령이 즉흥적으로 체결한 ‘최종적이고도 불가역적인 위안부 합의’를 둘러싼 문재인 정부와 아베의 대립과 각축, 일본 우익의 입맛에 맞는 수구적인 인물과 친일정당을 통한 한국의 정권교체, 트럼프와 제휴해 아베가 세계최강 한국의 반도체를 손보려 한다는 대리청정 주장도 난무한다.모든 것을 합치고 거기 무엇을 덧댄다 해도 남는 문제가 있다. 일본과 일본인들의 근본적인 문제점이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151년 전인 1868년 명치유신(明治維新)으로 일본은 아시아 최초-최강의 근대화를 성취한다. 애국적이고 진취적인 청장년 지식인 계층이 위로부터 개혁을 강인하게 추진해나간 결과다. 과거의 낡고 무기력한 일본과 작별하고 새롭고 강력한 일본을 드러내려는 문구가 ‘탈아입구(脫亞入歐)’다.후진동양(後進東洋)의 맹주 청나라를 부정하고, 선진서양에 의탁해 자본주의와 과학기술, 계몽주의를 수용한 일본. 근대국가의 이념과 내용을 혁신을 위한 방편의 전면에 내세우고 유럽을 배워 아시아를 탈피하려던 일본. 아시아를 벗어나 유럽으로 들어가려 했던 일본 지식인들의 열망이 ‘탈아입구’ 네 글자에 각인되어 있다. 나쓰메 소세키 같은 인물마저 러일전쟁의 승리에 도취하여 전염됐던 동북아 오리엔탈리즘의 원조 일본. 제국건설의 야망을 품은 그들이 실현한 식민주의는 유럽의 그것과 판이한 양상을 가진다. 그것은 가까운 이웃 나라들을 병탄(倂呑)하고 그 인민을 노예로 삼은 것이다. 유럽과 미국의 제국주의는 인접국을 병탄하여 그 나라의 인민을 노예화하지는 않았다. 그것은 이웃 나라에 대한 도리이자 예의이기 때문이다. 인도차이나를 둘러싼 영국과 프랑스의 반목(反目)이 극에 달했을 때조차 그들은 태국을 중립지대로 삼아 유혈사태를 피한다. ‘대동아공영권’이라는 논거로 태평양전쟁을 촉발한 일본은 식민지 조선의 허다한 인민을 전장으로 내몰았다. 얼마나 많은 조선인이 일제의 총알받이로, 탄광의 매몰사고로, 일본군 성노예로 죽어갔는지, 정확한 통계조차 없다. 우리는 일본 국왕에게 제대로 된 사죄 한 번 받아본 일도 없다. 그저 ‘유감’이니 ‘통석(痛惜)’이니 하는 수사(修辭)로 덧칠한 언어유희만 있었을 뿐.이런 맥락에서 이토 암살 100주년인 2009년 8월 30일 일본의 정권교체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하토야마 유키오 총리는 ‘탈아입구’ 대신 ‘탈미입아(脫美入亞)’를 외쳤다. 미국의 손아귀에서 벗어나 아시아로 돌아오겠다는 선언. 일본의 정체성을 유럽과 미국이 아니라, 동북아에서 찾겠다는 의지의 표현. 그러나 성숙하지 못한 일본의 관변 민주주의, 무기력한 소수의 시민사회, 강력한 비판적 지식인 세력이 부재한 일본은 2011년 3월 11일 동일본 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폭발로 속절없이 무너져버린다. ‘탈미입아’ 역시 허공 중에 산산이 부서진다.참의원 선거는 끝났지만, 일본군의 한반도 진군(進軍)을 가능하게 하는 헌법개정을 향한 아베의 백일몽은 진행 중이다. 아베와 일본의 극우세력을 대놓고 엄호하는 한반도의 정치 모리배와 정당과 언론의 칼춤도 끝날 줄 모른다. 강력한 시민사회와 비판적 지식인 세력, 역사의식으로 무장한 국민의 나라가 아베의 꿈을 황당한 백일몽으로 만들어버릴 것이라 확신한다.

2019-07-24

베네치아 뱃사공의 노래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계를 테스트해 볼 수 있는 초간단 유머 심리검사가 있습니다. “당신은 지금 베네치아 여행 중입니다. 곤돌라 뱃사공이 노래를 시작합니다. 잘 아는 노래입니다. 이때 당신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요? 1. 화음을 넣어 함께 부른다. 2. 멜로디를 따라 노래한다. 3. 콧노래를 흥얼거린다. 4. 웃으며 손뼉친다.”화음을 선택했다면 서로 감사할 줄 아는 환상의 커플, 같은 멜로디를 따라 부르기를 선택한 경우는 자신의 욕심을 챙기기보다 상대에게 맞춰주는 커플, 콧노래를 흥얼거린다면 관계에 확신이 낮은 커플이랍니다(이런). 손뼉만 치는 것은 서로 오해가 자주 발생할 수 있다지요. 그대 선택이 궁금합니다.괴테는 ‘이탈리아 기행’에서 베네치아 사공의 노래를 언급합니다. “달빛이 은은하게 비치는 가운데 곤돌라에 올랐다. 두 명의 가수는 배의 앞뒤에 각각 앉았다. 이들은 노래를 시작했고 번갈아 한 소절씩 불렀다. 폐부를 뚫고 들어가는 노랫소리는 잔잔한 물 위를 퍼져 나간다. 그때였다. 마치 이 노래 가사를 너무도 잘 이해하고 있어 보이는 어떤 사람이 멀리서 듣고 이어지는 시구로 응답했다. 그의 노래가 멈추자 다시 사공이 응답한다. 이렇게 한 사람은 다른 사람의 메아리로 기능한다. 멀리서 들려오는 목소리는 슬픔이 증발한 가여운 탄식처럼 들렸지만, 눈물 나게 감동적인 경이로운 요소가 담겨 있다. 기분 탓으로 돌리는데 늙은 하인이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저 노랫소리가 이상하게도 사람 마음을 흔드네요. 들을수록 감동적인데요.”늙은 하인은 내가 리도의 여인들, 특히 펠레스트리나 출신 여인들의 노래도 들어 보기를 바라며 말했다. “그 여인들은 남편들이 고기잡이를 나가면 바닷가에 앉아 폐부를 찌르는 목소리로 이 노래가 울려 퍼지게 하곤 합니다. 그러면 남편들도 멀리서 아내들의 목소리를 듣고 그런 식으로 서로 노래로 대화를 나눈다고 합니다.” 하인의 말에 괴테는 이렇게 대답하지요. “이 노래는 인간적이고 진실해서 어느 고독한 자가 같은 기분을 느끼는 다른 사람이 듣고 응답하도록 저 멀리 드넓은 세상으로 보내는 노래이구려.”뱃사공이 노래를 부를 때 아련히 들려오는 메아리 같은 화답이 없었더라면 어땠을까요? 물론 뱃사공 두 사람이 주거니받거니 하면서 괴테 일행을 즐겁게 해 주었을 것입니다. 틀림없이 풍부한 성량과 아름다운 목소리로 수로 사이 건물의 울림을 통해 감동을 선사했겠지만 무언가 부족합니다. (내일 편지에 계속) /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대표

2019-07-24

400년 전의 눈으로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필자가 이 글을 쓰고 있는 곳은 통영 세병관이다. 수차례 와보았던 장소이고, 그때마다 설명을 들었던 터라 필자는 교감 자격 연수단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홀로 앉았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한 쪽 귀는 문화관광해설사 방향으로 열어 놓았다. 설명의 앞부분은 크게 다를 게 없었다. 그래서 필자는 귀의 일부만 놔두고 마음을 거두고 다른 일을 했다.시원하게 불어오는 통영 바닷바람이 잔뜩 힘이 들어간 눈을 달래어 줬다. 이젠 힘을 빼고 살아도 된다는 바람의 속삭임에 눈꺼풀은 속절없이 내려왔다. 간간이 이순신에 대한 이야기들이 들려왔다. 어쩌면 이순신은 지금 시대에 더 필요한 영웅이라는 이기적인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목숨 바쳐 지켜낸 이 나라가 아직도 일본에 쩔쩔매고 있는 모습을 직접 보신다면 ‘어떤 마음이실까’라는 생각을 하였다. 생각의 끝에 죄송함과 부끄러움이 겹쳐서 일어났다.“이제부터는 등을 편하게 기대시고 왜 세병관을 이곳에 지었는지를 생각해보세요. 세병관이 처음 지어질 때는 당연히 앞에 보이는 건물들은 없었겠지요. 400년 전의 눈으로 보셔야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궁즉변(窮卽變) 변즉통(變卽通) 통즉구(通卽久) 구즉생(久卽生)이라는 말을 소개드리면서 저의 설명을 마치겠습니다. 나라 발전을 위해 큰 교육을 하시는 교감 선생님이 되세요. 장마의 궂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통영까지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400년 전의 눈’이라는 말에 필자의 눈이 번쩍 떠졌다. 해설사의 말이 수십 년 동안 필자를 답답하게 구속하고 있던 편견과 선입견 등을 단번에 날려줬다. 필자의 눈 앞 있던 복잡한 현대 건물들이 하나둘 지워졌다. 그러면서 400년 전 이순신께서 내려다보신 통영의 바다가 보이기 시작했다. 눈이 시원해졌다. 최근 며칠 동안 무겁기만 하던 몸과 마음이 가벼워졌다.세병관(洗兵館)의 뜻에 대해 다시 찾아보았다. “하늘의 은하수를 가져다 피 묻은 병장기를 닦아낸다.” 평화에 대한 메시지를 담고 있는 세병관! 평화를 지키기는 가장 큰 힘은 상대보다 더 강한 힘을 갖기 위해 늘 노력하는 것이라는 이순신의 생각을 읽을 수 있었다. 그리고 모든 것이 역부족이었지만 나라를 지켜내야 한다는 신념으로 두려움을 떨쳐낸 이순신을 만날 수 있었다. 그런 이순신 앞에서 과연 우리는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스스로에게 말문이 막혀버린 필자는 생각을 전환하기 위해 주역에 나온다는 궁즉변(窮卽變 궁하면 변하고) 변즉통(變卽通 변하면 통하고) 통즉구(通卽久 통하면 오래가고) 구즉생(久卽生 오래가면 살아남는다)에 대해 생각해봤다. 이 말의 핵심은 살아남기 위해서는 변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뜻을 가장 잘 실천하는 것이 자연이다. 그래서 자연은 끊임없이 변한다. 변화의 힘을 가지고 있는 자연은 인간들의 이기적인 욕심이 만들어낸 자연 파괴라는 대참사에도 끄덕하지 않고 오히려 인간들을 위로하고 지켜주고 있다.뉴스는 5호 태풍이 온다고 야단이었다. 뉴스의 선동에 인간들은 한 술 더 떠 호들갑을 떨었다. 하지만 자연은 달랐다. 자연은 겸손한 자세로 태풍을 맞이할 준비를 했다. 수백 년의 역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세병관은 분명 자연의 모습이었다. 출발을 알리는 소리가 들렸지만 필자는 세병관의 너른 품을 좀처럼 떠날 수가 없었다.우리 사회에는 변하지 않는 것이 많이 있다. 인간의 이기심, 정치인들의 탓하기, 옆 나라의 막무가내 떼쓰기, 그리고 교육! 다른 것들은 몰라도 교육을 하고 있는 필자이기에 세병관을 떠나기 전에 스스로에게 물었다. “우리 교육은 변화할 수 있을까?” 그랬더니 딸아이의 이야기가 갑자기 떠올랐다. “아빠 내 친구 이번 여름 방학에 학원 다섯 개나 다닌다.” 우리는 언제 아이들의 눈으로 교육을, 그리고 방학을 볼 수 있을까? 지워졌던 현대식 건물들이 더 어지럽게 세병관 앞을 흐렸다.

2019-07-24

무궁화 사랑

우리나라 국화(國花)인 무궁화를 근화(槿花)라고도 부른다. 신라시대 효공왕 때 외국에 보내는 국서에 우리나라를 근화향(槿花鄕)으로 표현한 글이 나오는데, 이는 ‘무궁화가 많이 피는 땅’이라는 뜻이다. 그밖에도 우리의 옛 문헌에는 근원(槿原) 혹은 근역(槿域)으로 표현한 글이 나오나 이는 ‘무궁화 땅’이라는 의미다. 우리 민족 스스로가 무궁화 땅에 살고 있음을 알린 표현들이다.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지리서인 산해경(山海經)에도 한반도에는 무궁화가 많이 자라고 있는 곳이라 소개하고 있다. 무궁화가 우리나라의 국화가 된 배경에는 이 같은 오랜 역사적 연결고리가 있음을 미뤄 짐작해 볼 수 있다. 무궁화가 나라꽃이란 말은 법령 어느 곳에도 없다. 애국가나 태극기와 같이 나라의 상징인 표상물이면서 법령에 명기되지 않고 있는 것도 특이하다. 그냥 자연발생적으로 국민 다수가 국화로 여겨왔던 것으로 보는 것이 대체적 견해다. 이홍직의 국어대사전에도 “무궁화는 구한국시대부터 우리나라 국화가 되었다. 국가나 일개인이 정한 것이 아니고 국민 대다수에 의해 자연발생적으로 그렇게 된 것”이라 설명했다.무궁화가 국화로 본격 인정된 시기는 일제 강점기다. 일제의 침탈에 저항하는 상징으로 국화가 자주 사용되면서다. 애국가의 후렴에 무궁화가 등장하고, 독립투사들이 무궁화를 우리나라와 일체화하는 글을 많이 남기면서 무궁화는 나라꽃으로 확실히 자리를 잡았던 것이다. 무궁화 꽃은 우리 겨레의 민족성을 나타내는 꽃이라 한다. 단결성과 협동심을 상징하기도 하고 인내와 끈기로도 표현한다. 꽃 말도 ‘일편단심’이다. 변하지 않는 민족의 마음과 통한다고 한다.한 때 국가의 경제적 형편이 넉넉하지 않았던 시절, 우리나라는 무궁화 꽃으로 애국심을 가르쳤다. “무궁화 무궁화 우리나라 꽃”이라는 노래도 부르고 학교와 직장 곳곳에는 무궁화 꽃을 심어 나라사랑 정신을 고취시켰다. 나라 꽃 하나로 애국심을 똘똘 뭉치게 할 수 있었던 그 시절이 그립다. 지금쯤 곳곳에 활짝 피어 있어야 할 무궁화 꽃이 구경하기조차 어려워졌다고 한다. 애국정신이 그만큼 희미해진것은 아닌지 걱정이다. /우정구(논설위원)

2019-07-23

일본의 제재 뒤에 숨은 것 있나

김학주 한동대 교수일본의 반도체 소재 수출 금지가 단순히 아베의 반한 감정이라면 오래 가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 뒤에 일본의 전략적인 계산이 숨어 있다면 한국경제에 큰 위협이 될 수 있다.일각에서는 아베가 반한감정을 자극하여 참의원 선거에 이용하려는 술책이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아베는 일본 내에서 아베노믹스를 통해 일본기업들의 지속적 성장을 위한 혁신의 발판, 즉 르네상스의 기틀을 만들었다는 비교적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굳이 반한 감정을 자극하여 극우세력을 결집할 필요는 없다는 이야기다. 특히 이런 식의 보복은 일본 반도체 부품업체들에게도 타격을 준다. ‘경제 동물’이라고까지 별명이 붙을 정도로 계산적인, 그리고 용의주도한 일본이 이런 대응을 한다는 것이 매우 낯선 상황이다. 그렇다면 일본의 무역 제재 뒤에 뭔가 숨은 것이 있지 않을까?일본의 최대 고민은 미국의 자동차 수입 관세다. 일본경제가 현재 자동차 산업에 대한 의존도가 너무 높기 때문에 미국 정부로부터 일본 차에 수입관세가 부과되면 일본경제는 치명타를 맞을 수 있다. 일본 내 자동차 생산에 직접 종사하는 종업원 규모가 83만명 정도로 알려지지만 자동차 수리, 보수, 마케팅, 금융까지 포함하면 500만명이 넘는다.1985년 9월 플라자 합의는 일본의 엔저에 따른 미국의 대일 무역적자를 시정하기 위한 강제 엔고 조치다. 그런데 당시 미국의 무역적자를 특히 키웠던 것이 자동차였으므로 그 후 일본의 자동차 업계는 충격을 받았다. 그럼에도 일본이 흔들리지 않았던 이유는 훨씬 더 큰 전자산업이 있었기 때문인데 지금은 IT의 주도권을 한국에 뺏긴 상황에서 자동차 관세는 치명적일 수 있다는 것이다.결국 일본은 자동차 산업을 지키기 위해 미국에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그것을 한국의 반도체 업체들이 내도록 하려는 것일까? 반도체 소재나 장비의 경우 세계적으로 독과점적인 것이 여럿 있고, 그 가운데 일본이 주도하는 분야도 있다. 예를 들어 이번에 제재 품목에 포함됐던 감광액(photo resist)이 공급되지 않으면 차세대 노광장비(EUV)를 쓰기 어려워 삼성전자가 야심 차게 준비하던 비메모리 분야에 차질이 불가피하다. 또 차세대 디스플레이인 OLED 소재 가운데 일본업체가 독점하는 것들도 있다.만일 일본이 삼성전자를 힘들게 하면 당장 미국의 마이크론 테크놀러지가 메모리 부문에서 반사이익을 받고, 또 인텔과 같은 미국의 비메모리 업체들이 삼성전자 같은 미래의 경쟁자를 제거할 수 있게 되는 셈이다. 과거 마이크론은 일본의 엘피다를 인수했었다. 그러나 마이크론 내 일본 지분은 없다. 즉 일본이 전략적으로 삼성전자 대신 마이크론을 밀어준다면 미국 제재를 피하기 위한 방편일 것이다.이런 생각이 “트럼프와 합의된 것인지, 아니면 아베가 알아서 기어보는 것인지” 불확실하다. 일본의 무역제재가 왜 하필이면 G20회담 직후에 나왔을까? 물론 단순한 아베의 반한 감정일 수도 있지만 말이다.물론 여기에는 일본 소재 업체들의 희생도 따른다. 반도체 부품의 소비자들이 삼성전자처럼 독과점 지위에 있으므로 납품선을 돌리기가 어렵다. 중국 업체들이 정부의 지원을 받으며 일본의 소재 및 장비 구입을 원하지만 트럼프가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 결국 마이크론이 설비를 충분히 확장할 때까지 일본 기업들도 기다리며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 그러나 일본 기업들은 정부 말을 잘 듣는다. 일본 정부가 “일본 자동차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그렇게 하자”고 설득하면 일본 반도체 소재 기업들이 따를 가능성이 높다.세계경제가 저성장으로 돌입하며 먹이가 줄어드는 가운데 힘이 약한 나라로 피해가 넘어오는 것 아니냐는 걱정이 든다. 성장기에는 모두가 너그럽지만 이제는 누가 하나 사라져 주면 나머지가 행복해지는 시대가 되어가는 것 같아 씁쓸하다.

2019-07-23

개 세 달 버릇 15년 간다

사람과 마찬가지로 개가 교육을 받는다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야 할 개가 교육을 받지 않으면 자유롭게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구속된 삶을 살게 된다. 산책할 때 말을 듣지 않는다고 심하게 목줄을 당겨지게 될 것이고, 손님이 왔을 때 짖거나 공격하려 들테니 개 집에 가두어 두게 될 것이다. 식사 때 식탁에 오르려는 개들은 가족들과 함께 있지 못하고 묶여 있게 될 것이다. 개는 15년 정도가 평균 수명이다. 이 시간동안 사람들과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는 사람들과의 생활에 필요한 필수적인 행동방법을 교육받아야 한다.낯선사람을 만났을 때 당신의 개는 어떻게 행동하는가? 경계심이나 수줍음을 보이지 않고 당신의 곁에서 얌전히 잘 있어야 한다. 당신과 같이 있을 때 낯선 사람이 다가와 개를 만졌을 때 당신의 개는 경계심이나 수줍음을 보이지 않아야 한다. 개들이 많이 가는 장소인 동물병원이나 애견미용실, 애견 카페를 갔을 때 당신의 개는 어떠한가? 수의사의 진찰행동에 잘 응할 수 있는가? 애견미용사에게 까다롭게 굴지는 않는가? 애견 카페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처음보는 개들에게 약간의 관심정도가 아니라 다가가서 거친행동을 하지는 않는가? 당신의 개는 당신이 가자는 곳으로 가고, 앉아 기다리라고 하면 기다릴 수 있어야 한다. 사람이 다니는 길과 공공장소에서 얌전히 이동할 수 있어야 하고, 필요에 따라 앉아있고, 엎드려서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 당신이 부르면 개는 당신의 말을 듣고 당신에게 달려올 수 있어야 하고, 처음 보는 물체를 가진 사람들을 보더라도 당황하거나 짖거나 공격하거나 도망가는 행동을 보여서는 안 된다. 개는 어린이들 주변에서도 안전해야 하고, 이웃들이 보기에 안심할 수 있어야 하고, 주인과 있을 때 행복함을 주면서 타인에게 피해주지 않아야 한다. 당신의 개는 어떤가? 이런 조건을 만족하고 있는가?우선 강아지를 데려와서 함께 살겠다고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이 알아야 할 이야기를 먼저 해본다. 프로이트는 사람의 정신세계를 분석하며 유아기부터 성장기별로 성격형성에 관련된 주요한 단계를 설명한 바 있다. 개들도 태어나서 시기별로 특징을 알아야 하고 단계별로 교육을 위해 중요한 시기가 있다. 따라서 엄마 개가 강아지를 어떻게 교육시키는지를 아는 것이 엄마개의 역할을 대신 해야 하는 사람들을 위해 필요하겠다. 엄마 개는 강아지가 생후 5주가 되면 바른 행동을 가르친다. 젖을 먹는 시기에 엄마 개는 자신을 귀찮게 하는 것을 싫어하는데, 강아지가 잘못된 행동을 하면 엄마 개는 으르렁거리거나 짖고, 물기도 하여 강아지를 가르친다. 강아지들은 이런 상황을 몇 번 겪으면 엄마 개를 살피기 시작한다.이 시기에 엄마 개는 강아지에게 리더에 대한 존중을 가르치게 되는 것인데, 이런 교육을 받지 못한 강아지는 성장 후 보호자의 질책을 받아들이기 어려울 수 있다. 생후 7주 정도가 되면 강아지는 감각기능이 발달하여 사람과의 관계가 형성되기 때문에 새로운 집으로 가기 적당한데, 그 전에 엄마 개와 헤어지게 되면 향후 사람 보호자를 만났을 때 과잉집착, 공격성, 불안, 지속적인 짖음을 보일 수 있다.강아지가 12주가 넘도록 엄마 개나 형제 개들과 같이 생활한 경우에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할 수 있는 능력이 부족해져서 사람과 좋은 관계를 맺기가 어려울 수 있다. 이것은 강아지의 사회화 능력이 지나치게 단순해져서 자신의 행동을 관리하는 능력에 문제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인데 이런 강아지는 사람가족에게 신경을 안 쓰게 되므로 가정에서 길들이는 교육이 어려울 수 있다. 따라서 개는 생후 7주에서 12주 사이에 보호자가 되는 사람과 다른 사람들, 그리고 다른 개들과의 만남을 통한 사회화 과정이 중요하다. 이 시기에 강아지가 어린이들과 접촉을 많이 못했다면 성장해 어린이와 함께 있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이 시기의 정신적 충격이 있는 사건이나 나쁜 경험, 특히 공포감을 느끼는 상황은 매우 좋지 않다. 공포감을 느끼고 있는 강아지를 만져주거나 안심시키면 지금 하고 있는 행동이 괜찮다는 인식을 줄 수 있는데, 차라리 강아지가 좋아하는 것으로 주의를 돌려 겁먹은 행동이 사라지게 하는 편이 더 낫다. 강아지 시절에 투자한 시간과 노력은 경험이 되어 훗날 사회생활에 적응하는 반려견의 모습으로 나타날 것이다.기억하라. 생후 7주에서 12주 사이는 강아지가 보호자를 잘 따를 때이므로 생애동안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상황과 환경을 겪게 해주고 특별히 좋은 경험과 다양한 대상들과의 관계를 형성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서라벌대 반려동물연구소장(마사과 교수)

2019-07-23

이효석 정본 작업과 이상옥 선생님

△이효석 정본 작업이상옥 선생님을 처음 뵌 것은 지난 2012년 5월께로 이효석 전집을 재출간하는 일에 참여하게 되면서이다. 전집을 처음 출간하는 것도 아니고 재출간하는 데 이렇게 많은 시간이 걸린 것은, 원문과 이본 등을 비교하고 교정하여 원문에 가장 가까운 정본(定本)을 출간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검토한 내용을 가지고 매주 만나 토론하여 텍스트를 확정하는 이 지난한 작업에 참여하는 사람은 채정 선생님, 그리고 대학원 동료 두 명, 그리고 나, 이렇게 다섯 명이 팀이 최종적으로 팀을 이끌게 되었다. 이상옥 선생님은 70대에 뵈었는데 이제 80대가 되었다. 그리고 20대의 풋풋했던 친구는 30대가 되었고, 나도 지금은 40대가 되었다.우리 팀은 연령층이 다양하고 성장 지역도 각양각색었다. 연령층과 성장지가 다르다는 것은 이 작업을 하는데 있어 많은 도움을 주었다. 인간이 사용하는 언어는 인간을 닮아서 나이와 출신지를 갖는다. 30대에게 생소한 단어가 50대에겐 무척 익숙한 언어일 때가 있고, 서울 사람이 모르는 말을 강원도 사람은 일상적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이 작업을 통해 이러한 낯섦과 낯익음의 격차를 줄이고, 한자나 영어, 아주 곤란할 때는 각주를 덧대어 말을 곧추세웠다. 때로는 손을 대지 않으면 안 되는 오식과 비문을 바로잡았다.이 작업을 하면서 기억나는 건 ‘말결’이라는 단어를 만났을 때다. 두고 볼수록 예쁜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보통 ‘결’은 ‘무늬’라는 뜻으로도 쓰이지만, ‘겨를’(때, 사이, 짬)이라는 뜻으로도 쓰인다. (무늬라고 했으나 기실은 ‘조직이 굳고 무른 부분이 모여 일정하게 켜를 지으면서 짜인 바탕의 상태나 무늬’라고 해야 분명하다.) 무늬라는 뜻의 ‘결’과 사이라는 뜻의 ‘겨를’의 줄임말인 ‘결’은 음은 같지만 그 뜻은 현저히 다른데, 이를 동음이의어라고 한다. 그런데 이런 ‘결’이 ‘잠’이나 ‘물’과 같은 명사와 결합하면, 동음이의어적 성격이 헐거워져 ‘무늬’와 ‘겨를’의 경계가 모호해지게 된다. 예컨대 물결은 물의 무늬이면서 물의 흐름과 흐름의 사이이다. 잠결은 ‘잠을 자는 사이’이기도 하겠지만, 잠과 잠 아닌 것 사이의 일렁임이다. 그리고 말결은 말의 사이이자 말의 무늬다. 이렇게 보니 ‘무늬’와 ‘겨를’은 완전히 다른 것은 아닌 것도 같다. ‘사이’의 흐름, ‘사이’의 이어짐이 ‘무늬’이니 말이다.이효석 정본 작업은 이렇게 우리말을 더 풍성하게 알아가는 계기가 되었다. 2012년 가을께 ‘메밀꽃 필 무렵’의 4교를 끝냈는데 2년이 지나 다시 열어봤더니 여전히 문제가 되는 부분이 많아 몇 번의 작업을 더 거쳐야 했다. 그렇게 해서 2016년에 ‘이효석 전집’ 전 6권을 상재했다. 이 작업을 통해서 기존의 오류와 실수를 바로잡았다. 그 과정은 한글 프로그램의 ‘검토’와 ‘메모’ 기능을 활용하여 기록하였다. 품이 많이 들지만 그 빛은 미약할지 모른다. 가장 기초적이고 기본적인 일들과 꼭 필요한 일들이 그러하듯이 말이다. 그러니 이 일을 하게 되어 즐거웠고, 아직 끝나지 않았으니 계속 즐거울 것이고, 그리하여 오래도록 즐거울 것을 생각하니 벌써 뻐근하다. 갈비뼈 하나 쯤 떼어낸 것처럼 그렇게 말이다.△이상옥 선생님이 작업을 하면서 무엇보다 좋았던 것은 이상옥 선생님을 만났기 때문이다. 선생님은 기왕이면 정본 전집을 출간하고 싶어 하셨고, 이효석문학재단 측에서 이러한 선생님의 뜻에 선뜻 동의해주었기에 이 일은 가능했다. 우리는 이 작업을 ‘정본 작업’으로, 우리 스스로를 ‘정본 팀’이라고 불렀다. 매주 두세 번 정도 모여 작업을 진행했는데, 이상옥 선생님은 지각이나 결석을 하신 적이 단 한 번도 없으셨다. 선생님은 서울대 교수로 재직하시는 동안에도 강의 시간에 늦은 적이 없었다고 하셨다. 이런 분이라면 으레 당신과 같지 않은 사람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당연하겠지만, 선생님은 지각을 밥 먹듯이 하는 나를 책망하기보다는 격려하고 이해해주셨다.선생님은 정본 작업에 단지 참여만 하신 것이 아니라 누구보다 열심히 준비를 해오셨고, 원문의 어려운 한자는 물론 활자가 흐릿하여 어린 나조차 알아보기 힘든 글자까지를 읽어내셨다. 그러면서도 당신의 견해를 고집하는 법이 없으셨고, 우리가 내놓는 의견을 귀담아 들으셨다. 선생님은 아침 10시부터 때로 저녁 늦은 시간까지 이어지는 이 지난한 작업을 하면서도 언제나 웃음을 잃지 않으셨고, 팀에 활기를 불어넣으셨다.정본 작업을 하는 동안 선생님은 재단 측으로부터 단 한 푼의 돈도 받지 않으셨다. 심지어 전집에 편자나 감수라는 명목으로 당신의 이름을 올릴 법한데 그렇게 하지도 않으셨다. 어떤 영광도, 명예도, 이익도 없이 선생님은 정본 작업에 열정을 쏟으셨고, 그 일 자체에서 즐거움을 찾으셨다.선생님은, 나이로 치자면 우리보다 서른 살 이상 더 많으시고, 고작 박사학위를 막 받았거나 박사수료생인 우리와는 격이 다른 위치임에도 모든 팀원들을 동등하게 존중해주셨다. 선생님의 지식은 넓고 깊어 이야기는 끊어지는 법이 없었고, 마르는 법이 없었다. 그럼에도 듣는 법을 잊지 않으셨고, 토론을 포기하는 법이 없으셨다. 심지어 나와는 정치적 견해도 달랐지만, 선생님은 설익은 내 말을 들어주셨고, 내 생각을 존중해주셨다. 지금도 그러하시다.나는 평생 이처럼 고고(高高)하며, 학학(鶴鶴)한 분을 뵌 적이 없다. 나는 원체 막돼먹어 누군가를 존경할 줄도 모르고 나 잘난 맛에 살아왔다. 이상옥 선생님은 그런 내게 사람을 존경한다는 것이 얼마나 기쁜 일인지 알게 해주셨다. 이상옥 선생님에 대한 이러한 마음은 비단 나의 사견만은 아닐 것이다. 정본 출판을 마무리한 이후에도 여전히 자주 연락을 주고받으며 매년 서너 번의 모임을 이어가는 것을 보면, 우리 정본 팀 역시 이상옥 선생님의 성결에 감화된 듯하다.올해 5월, 우리 정본 팀은 함께 여행을 다녀왔다. 3박 4일간의 짧은 여행이었다. 내내 비가 오긴 했지만, 덥지도 않아서 좋았다. 이 여행을 선생님은 일종의 시험이라고 하셨다. 우리가 함께 여행을 오래 할 수 있는 ‘족속’인지 서로 알아보자는 것이었다. 우리 모두는 아무래도 이 시험에 통과하게 된듯하다. 이제 오랫동안 함께 가고자 했었던 영국으로 여행을 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나는 이상옥 선생님의 강의를 들은 적이 없고, 선생님은 나에게 가르침을 주려고 하신 적도 없다. 선생님은 내게 그저 당신의 행동만으로 말없는 가르침을 행하셨다. 이러한 선생님을 더 자주, 더 오래 뵐 수 있길 간절히 바란다.

2019-07-23

귀했던 배추, ‘봉제사접빈객(奉祭祀接賓客)’의 음식으로

‘금제옥회’보다 맛있는 배추서울 토박이 친구 눈이 동그래졌다. “뭐? 너희들은 배추도 전 부쳐 먹니?”못 볼 꼴을 봤다는 표정이었다. “배추전이 얼마나 맛있는데!”라고 생각했지만 혼자 생각이었다. 옹기종기 모였던 대여섯 명 중 누구도 ‘배추전’을 경험해보지 않았다. 먹기는커녕 본 적도 없었다. 배추전? 상상도 해보지 않았다는 표정이었다.흔하면 홀대한다. 배추가 꼭 그러하다. 주변에서 쉽게 본다. 가격도 높지 않다. 일상적으로 사용한다. 조금만 가격이 오르면 ‘금배추’라고 부르며 야단이다. 농가에서 기르기도 그리 어렵지 않다. 우리나라 어디서나 쉽게 기르고 먹는다. 특용작물이라야 귀하게 여긴다. 배추는 어디서나, 누구나 기르고, 먹는다.한 포기를 가르면 열 장, 스무 장의 배추전을 부칠 수 있다. 흔하고 싸다. 치명적인 단점이다. 오랫동안 “배추전은 먹을 것 귀하던 경북 산골에서 궁여지책으로 먹었던 음식”이라고 생각했다. 어린 시절 제사를 모실 때 반드시 배추전이 상에 올랐던 것도 까맣게 잊었다. 하기야 ‘봉제사접빈객(奉祭祀接賓客)’의 음식이 가장 귀하다는 사실도, 미련하게, 오랜 세월이 흐른 후에 알았으니.하찮은 배추를 선물로 주다?사가정 서거정(1420~1488년)은 조선 전기의 문신이다. 세종부터 성종까지 여섯 임금을 모셨고 숱한 문집, 시를 남겼다. 벼슬도 만만치 않았다. 형조판서, 좌찬성을 지냈다.서거정의 ‘사가시집_제40권’에 ‘배추 선물’이 나온다. 선물을 보낸 이는 생원(生員) 안유문이다. 사가정은 배추를 선물 받은 후, 이 시를 남겼다. 제목은 ‘안유문(安有文)이 배추를 보내 준 데 대하여 사례하다’이다.가을이 되면 배추(菘, 숭) 또한 좋고 말고/좋은 맛이 고량진미와 맞먹는걸/옥삼갱(玉糝羹)을 어찌 자랑할 것 있으랴/금제회도 괜히 맛볼 것 없다마다/국을 끓이면 참으로 입에 딱 맞고/안주로 먹으면 배도 채울 만하네/고기를 먹는 건 내 일이 아니라서/향기로운 채소를 잊을 수가 없다네시에 등장하는 ‘옥삼갱’은 소동파가 별미로 쳤던 토란국이다. 중국에도 감자, 고구마 등이 전래되기 전이다. 토란, 마 등으로 끓인 국을 최고로 쳤다. 옥삼갱이다. ‘금제회’ ‘금제옥회’는 귤 등을 썰어서 버무린 잘게 썬 회다. 국화잎으로 무쳐서 노란빛이 난다고도 한다. 잘 만진 생선회다. 별미로 치는 음식이었다. 배추가 이런 별미, 옥삼갱이나 금제옥회보다 낫다는 내용이다.사가정은 배추로 국을 끓이고 술안주로도 만들었다. 우리는 술안주, 밥반찬을 혼동하고 있다. 550년 전의 사가정은 이 둘을 명확히 구분하고 있었다. 배춧국도 맛있고, 배추로 만든 안주도 좋고 배를 채울 만하다고 했다.사가정의 시절에는 배추를 귀하게 여겼다. 사가정과 이 시에 등장하는 안유문은 사돈지간이다. 사가정의 아들 충의위 서복경과 안유문의 맏딸이 혼인했다.가까운 사이지만 사가정은 높은 벼슬아치다. 사돈이자 고위직 벼슬아치에게 준 선물이 배추다. 그 배추를 받아들고 조선 전기 최고의 문인이 시를 남겼다. 배추는 귀한 선물이었다.배추는 ‘숭(菘)’이다. ‘숭’은 ‘숭채(菘菜)’의 줄임말이다. 다산 정약용(1762~1836년)은 그의 시에서 ‘납조냉면숭저벽(拉條冷麪菘菹碧)’이라고 했다. ‘숭저(菘菹)’는 배추김치다.배추는 백채에서 비롯되었음이 정설이다. 백채(白菜)는 줄기 부분이 흰색이라서 붙인 이름이다. 다산 정약용이 시에서 “배추김치가 푸르다(숭저벽, 菘菹碧)”고 한 것은 다산 시대의 배추가 지금의 배추와 다르기 때문이다. 우리가 사용하는 결구 배추는 속 고갱이가 노랗다. 줄기는 흰 부분이 많다. 당시의 배추는 비 결구 배추, 즉 얼갈이배추다. 흰 부분, 노란 부분도 있지만 적다. 결구 배추의 역사는 길지 않다. 불과 100년 정도다. 일제강점기에도 결구 배추, 반 결구 배추가 있었지만 널리 유행하지는 않았다. 한국전쟁 후 속이 꽉 찬, 노란색의 결구 배추가 널리 퍼졌다.배추는 ‘숭(菘)’ ‘백숭(白菘)’ ‘백채(白菜)’ ‘숭채(菘菜)’ 등으로 표기했다. 민간에서는 글자의 의미를 모른 채, 소리 나는 대로 ‘배초’라고 불렀다. ‘백채’ ‘배초’가 널리 퍼지니 ‘배초’를 한자 표기로 ‘배초(拜草)’로도 적었다. 다산 정약용은 “숭채는 방언으로 배초라고 하는데, 이것은 백채의 와전임을 (우리나라 사람들이)모른다”고 했다(다산시문집). ‘拜草(배초)’는 뜻이 없는 이두식 표현이다. 배추 이름은 ‘숭’ ‘숭채’와 백채, 두 가지로 진행되었다. 지금은 숭, 숭채는 사라지고 백채의 변형인 배추만 남은 셈이다.‘백채’라는 이름뿐만 아니라, 배추도 중국에서 전래 되었다. 중국에는 오래전부터, “‘이른 봄 부추, 늦가을 배추(早韭晩菘, 조구만숭)’가 가장 맛있다”는 표현이 있었다. 남제의 문혜태자(文惠太子, 458∼493년)가 주옹(5세기∼493년)에게 묻는다. “채식 중에 어떤 나물의 맛이 가장 좋더냐?” 주옹이 답한다. “초봄의 이른 부추 나물과 늦가을의 늦배추였습니다.(春初早韭 秋末晩菘, 춘초조구, 추말만숭)”이라고 했던 데서 시작된 표현이다.(南史, 남사_권34_周顒列傳, 주옹열전)한반도에서는 조선 시대부터 배추가 자주 나타난다. 고려말부터 배추 이야기가 시작되니 배추 역시 몽골의 원나라가 고려를 침공했을 때 전래한 것이 아닐까, 추정한다. 우리는 오랜 세월 동안 중국의 ‘앞선 배추’를 받아들인다.중종 28년(1533년) 2월6일의 ‘조선왕조실록’ 기록이다. 내용은 중국과 밀무역을 했던 이들이 자수하면서 진술한 것이다. 범인은 사노(私奴) 오십근과 청로대(淸路隊) 유천년이다. 공범(?)이지만 신분은 전혀 다르다. 사노는 관청이 아닌 민간의 노비다. 청로대는 국왕 거동 시, 호종(扈從)하는 군인이다. 이들은 자신들도 속았다고 진술한다.“주범은 용산의 관노(官奴) 이산송이다. 우리는 그의 거짓말에 속아서 사기그릇을 싣고 중국으로 가서 쌀, 콩, 조 등과 더불어 배추 씨앗(白菜種, 백채종) 등을 밀무역했다. ‘제주도로 간다’라는 이산송의 말을 믿고 가보니 중국이었다”중국에서 사들인 밀무역 품목에 배추 씨앗이 있다. 16세기 중반에도 배추를 백채(白菜)라고 표현했다.한반도 김장, 김치의 역사는 배추의 진화 역사다. 100년 전에는 결구 배추가 없었다. 결구 배추는 품종 개량을 통하여 얻은 것이다. 우리가 먹는 배추김치와 100년 전의 배추김치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배추가 다르기 때문이다. 조선 시대에는, 그나마, 중국 배추가 우리보다 나았다.장다리는 배추 혹은 무의 꽃이다. 장다리꽃이 피는 배추는 오늘날의 얼갈이배추 같은 것이다. 푸른빛이다. 속이 차지 않는 불 결구 배추다. 노랗게 속이 찬 결구 배추는 중국 북부지방이 원산지로 쉽게 꽃이 피지 않는다. 중국 동북부 랴오둥(遼東, 요동)지방은 북경, 심양을 오가는 통로다. 랴오둥을 통하여 중국과 교류했던 조선의 관리, 문인들은 배추에 대해서 많은 기록을 남겼다. 주로 중국 배추가 좋다고 부러워하는 내용이다. 조공 무역 등 국가 간의 공식무역이 아니라 사신단, 역관 등을 통하여 이루어진 사무역을 통해 배추 씨앗은 한반도로 흘러들어왔다.1832~1833년, 대 중국 사신단 서장관(書狀官)으로 청나라를 다녀온 김경선(1788~1853년)은 “(중국)배추는 한 포기에 수십 개의 잎사귀가 붙어 있어 우리나라 것보다 크기가 배는 되며, 살이 무척 연하다. 겨울에 지하실에 두었다가 먹으면 언제나 새로 뽑은 거와 같다”라고 적었다(연원직지). 재미있는 것은 ‘지하실’이다. 원문에는 “겨울에는 ‘지실’에 저장한다(冬月儲於地室, 동월저어지실)”라고 했다. 건물의 지하실보다는 땅을 파고 깊이 묻어두었다는 뜻이다. 50년 전에는 우리나라 시골에서도 ‘움’을 이용했다. 땅을 적절한 깊이로 파서 움을 만든 다음, 그 안에 배추, 무 등을 보관했다. 김경선이 중국에 갔던 19세기 중반에는, 중국인들도 땅을 파고 움처럼 사용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움으로 겨울철 채소를 보관하는 것은, 중국이 우리보다 빠르지 않았을까, 추정한다.배추는 오래전부터 환금작물 노릇도 했다.‘악학궤범’을 편찬했던 용재 성현(1439~1504년)의 ‘용재총화(1525년, 중종 20년 간행)’에서는 조선 초, 중기 채소 재배를 정확하게 설명한다. 그중 ‘왕십리 배추’가 등장한다.“(전략) 무릇 채소와 과실은 알맞은 흙에 따라서 모두 심어야 그 이익을 거둘 수 있는 것이다. 지금의 동대문 밖 왕십리는 무, 순무, 배추 따위를 심고 있으며, 청파(靑坡), 노원(蘆原) 두 역(驛)은 토란이 잘 되고, 남산의 남쪽 이태원 사람들은 다료(茶蓼)를 잘 심어 홍아(紅芽)를 만들고, 경기 삭령(朔寧) 사람들은 파를 잘 심고,(후략)” (용재총화_제7권)비슷한 시기에 편찬한 ‘신증동국여지승람(중종 25년, 1530년 편찬)’에도 “왕십리평(往十里坪)은 흥인문 밖 5리쯤에 있는데, 거주하는 백성들이 무와 배추 등 채소를 심어 생활한다”라고 했다. 배추는 제법 짭짤한 환금작물이었다. 18세기의 실학자 유수원(1694~1755년)은 “왕십리에서 채소를 키우는 이들은 도성뿐만 아니라 시골에서도 채소를 판다. 시골 사람들이 게을러서가 아니라 각자 자기 본업이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우서). 이미 ‘농산물 재배 분업’이 이루어지고 있었다./맛칼럼니스트

2019-07-23

포항에서 보고, 배우고, 체험할 수 있는 것

김진홍 한국은행 포항본부 기획조사팀장얼마 전 음식점에서 포항 12경이 인쇄된 종이 식판을 보았다. 시에서 관광객 유치를 위해 포항 12경을 선정하고 있는 것은 알았지만 일부가 바뀐 줄은 미처 몰랐다. 지난 2009년 포항시 승격 60주년 당시 선정했던 12경 가운데 몇 개가 금년 70주년을 계기로 교체된 것이다. 종전에 선정되었던 12경이나 이번에 선정된 12경 모두 선정될만한 곳이었다. 다만 10년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이번에 빠진 곳들의 경치에 하자가 생긴 것도 아니었을 텐데 빠지게 된 것은 아마도 자랑거리는 늘어났지만 12경을 고수하려는 숫자에 과도하게 얽매인 결과가 아닐까 싶다. 하지만 포항이 지속가능한 관광산업의 발전을 지향한다면 이러한 방식이 최선이었을 지는 의문이다.그동안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거주지와 전혀 다른 경치나 문화, 유적을 보는 관광을 선호하였다. 예로부터 유명 경승지인 단양8경, 관동8경과 같은 말이 나온 것도 그 때문이다. 최근에는 전국 어디를 가도 해당 지역 지자체 자신들이 자랑하고 싶은 10경, 12경을 선정하여 적극 홍보하고 있다. 이것이 전혀 효과가 없는 것도 아니다. 문제는 관광소비자들이 선호하는 취향이나 니즈를 무시한 채 관광지 공급자인 해당 지자체의 일방적인 정보 발신만으로는 해당 지역민은 물론이고 타 지역으로부터도 지속적인 관광객을 유치하는 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현대의 관광소비자들은 과거처럼 그저 보는 것에 만족하지 않는다. 무한경쟁에 지친 직장인들 중에는 새로운 것을 배워 정신적인 힐링을 얻으려는 학습파, 그저 맛난 음식이 있으면 최고라며 전국을 누비는 식도락파, 각종 체험에 도전하는 행동파 등 관광의 대상이나 형태는 복잡하며 회사, 동아리, 동창회 등 관광주체나 싱글, 커플, 가족, 단체 등 관광인원단위도 매우 다채롭다.포항 12경에 집착하여 스스로 한계를 지을 필요는 없다. 굳이 숫자를 정한다면 탑10도 나쁘지 않다. 대신 포항은 이번 기회에 관광객들이 자기 취향에 따라 보고, 배우고, 즐길 수 있는 선택의 폭을 넓혀주었으면 한다. 포항에서 봐야할 곳을 포항 10경(景), 포항에서 배우고 느낄만한 곳을 포항 10학(學), 포항에서 직접 체험하며 즐길 거리를 포항 10락(樂)으로 선정하는 것도 하나의 대안일 것이다. 이를 위한 마중물의 역할을 위해 먼저 세 분야에 대해 시범적인 예시를 제안하고자 한다. 물론 시민들마다 마음속의 10경, 10학, 10락은 다를 것이지만 이는 얼마든지 포항시가 시민 의견을 수렴하여 조정해 나가면 될 것이다.먼저 포항 10경에는 한반도에서 가장 해가 빨리 뜨는 호미곶, 내연산의 12폭포, 죽장 하옥계곡, 운제산 오어사, 경상북도 수목원, 영일대와 포스코 야경, 덕동 문화마을 숲, 환호공원 주변, 4.3㎞의 철길숲과 불의정원, 한반도 최동단 땅끝마을인 구룡포 석병리를 꼽았다. 포항 10학에는 장기읍성과 유배문화체험관, 연오랑세오녀 테마공원, 구룡포 일본인 가옥거리, 학도의용군 전승기념관과 포항지구전적비, 영일 냉수리 신라비와 고분, 칠포리 암각화군, 연일 중명자연생태공원, 포스코 역사관, 포항가속기연구소, 한국로봇융합연구원을 꼽았다. 포항은 석기시대부터 제4차 산업혁명 시대에 이르는 정치, 충의, 환경, 경제, 신화 등 다양한 학습이 가능한 곳이다. 포항 10락에는 호미반도 해안둘레길 산책, 포항운하 크루즈 탑승, 포항 꿈틀로에서 문화예술 체험, 영일신항만 방파제에서 바다낚시, 칠포 재즈페스티벌 감상, 포항국제불빛축제 구경, 포항스틸아트페스티벌 관람, 흥해 북송리 소나무숲 걷기, 동해안 최대 죽도어시장 탐방, 구룡포 대게와 과메기 먹어보기는 어떨까. 의외로 포항은 자랑거리가 풍부하다. 포항에서 보고, 배우고, 체험할 수 있는 관광프로그램이 활성화되기를 기대한다.

2019-07-23

‘다름’이 폭력을 정당화하는 근거가 되는 경우

홍은영 대구가톨릭대 교수·교양교육원한국 사회에서 다문화 관련 담론과 연구는 이미 많이 진행되고 있다. 또한 단일 민족 신화와 동화주의 다문화 정책에 대한 비판은 많은 사회구성원들의 동의를 얻고 있다.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베트남 출신 결혼이주여성이 남편에게 무차별 폭행을 당하는 영상’은 공분과 분노를 불러일으키며, 가해자의 엄중한 처벌을 촉구하는 국민 청원이 잇따르고 있다.필자 역시 가해 남편의 무자비한 폭행과 폭력 영상을 접할 때, 오랜 기간 피해여성이 겪었을 공포와 두려움을 생각하며 강력한 법적 처벌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그 남편이 경찰에 긴급 체포되면서 했던 말(“평소에 말대꾸를 한다.”, “맞을 짓을 해서 때렸다”, “언어가 다르니깐 생각하는 것도 다르고 하니깐 그것 때문에 감정이 쌓였다. 다른 남자들도 마찬가지일 것 같다. 이에 대해 신경을 써줬으면 좋겠다.”)은 필자를 더 분노하게 하였다. 언론은 남편의 말을 ‘변명’으로 해석하고, 이에 관련하여 가해 남편을 비난하며 글로벌하게 한국 망신을 하고 있다는 등 많은 댓글이 달려있다.필자는 이번 사건을 통해 우리 사회가 단지 폭력적인 특정 남성의 문제와 ‘변명’으로 축소하기보다, 한국 사회가 결혼이주여성을 포함하여 많은 소수자들이 겪는 인권유린, 공포, 가정폭력, 성차별, 인종차별을 사회구조적 문제로 파악하고 ‘다름’이 폭력을 정당화하는 근거로 작동하는 권력 기제를 간파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왜냐하면 그 가해 남편의 말은 자신의 범죄를 정당화하는 나름의 폭력적인 ‘논리’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사람들을 피부색, 민족적·인종적 출신, 언어, 성, 종교 등의 이유로 구분 짓고 규정하는 것은 차이를 만들고, 이러한 차이의 구성은 기존의 불평등한 사회 구조 안에서 차별을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로 작용하게 된다.나는 타자를 어떻게 지각하고 동시에 나의 자아상은 어떠한가?가해 남편은 베트남 출신 결혼이주여성을 동질적인 언어를 사용하고 생각도 비슷하다고 간주하는 ‘우리’가 아닌 ‘그들’로 간주하고, 그 다름은 ‘자연스럽게’ 공격적 감정을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이다.또한 여성을 종속적인 위치에 놓고 자신의 말에 순종해야한다는 발언에서 가정 폭력을 당연한 행동으로 착각하는 남편의 무지와 젠더의식의 결핍을 엿볼 수 있다.이주 사회에서 이주민에 대한 상(像)은 일상생활, 미디어, 정치, 교육 등의 영역에 따라 정형화되어 재현되고 있다.예를 들어 열악한 사회경제적 상황에서 살아가는 이주민을 시혜 대상으로 표상함으로써 경제적 지원과 온정적인 지원정책이 정당화되고 있다.이러한 주류 집단의 타자관은 이주민을 학습능력이 부족한 결핍의 존재로 규정하는 것에 기인한다. 이때 이주민은 온갖 다문화 정책의 효율적인 관리의 ‘대상’으로 전락하고 ‘객체화’되고 있는 반면, 정책을 계획하는 다수사회의 구성원은 주체의 위치에 자리매김하게 된다.이러한 타자화는 특히 결혼이주여성을 가부장제와 전 지구적 자본주의의 확산으로 인한 불쌍한 피해자로 보거나 ‘돈을 받고 결혼을 선택한 못사는 나라 출신의 사람’으로 낙인찍는 것에서도 나타난다.한국 사회 내에 작용하는 법제도와 병행되는 관습적인 차별적 담론과 시선은 그들을 공식적인 국민으로서 인지하지 못하게 한다.이렇게 볼 때 한국 사회는 동질적인 ‘자신’이라는 정체성을 자기동일적이지 못한 이질적 속성을 무의식적으로 배제하거나 의식적으로 거부하면서 획득할 수 있다는 것을 파악하고 자신의 타자관을 지속적으로 반성할 필요가 있다.

2019-07-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