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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영호남 교류 학술대회

김규종 경북대 교수·노문학지난 10월 18일 전남대 ‘김남주 기념홀’에서 ‘영호남 지역담론과 대학의 역할’을 주제로 ‘제1회 영호남 교류 학술대회’가 열렸다. 전남대 박구용 교수, 성공회대 한홍구 교수, 황지우 시인과 필자가 발제를 맡았다. 오후 1시 반부터 시작한 학술대회는 5시 20분까지 이어지면서 지역감정과 지역갈등에 대한 다채로운 논의가 오갔다.남북이 분단된지 70여 년이 흘렀고, 동서분열까지 더해지니 더욱 고약한 노릇이다. 학술대회에서 지역감정을 논의하게 된 원인 제공자는 여러분도 익히 아시는 한국 제1야당 원내대표다. “문재인 정권은 광주일고 정권이고, 서울 구청장 24인 가운데 20명이 광주, 전남북 출신입니다. 우리 부울경 주민들이 뭉쳐서 심판합시다, 여러분!” 이것이 8월 30일 부산에서 열린 자한당 장외집회에서 서울법대 출신 원내대표가 내뱉은 말이다. ‘광주일고, 전라도, 부산, 울산, 경남’으로 요약되는 지역주의 망령이 선거철도 아닌 시점에 발화(發話)된 것이다.경북대와 전남대는 올해부터 교환교수제를 실행하고 있다. 학생교류에 교수교류를 더해 영호남 교류를 일상화-내실화하자는 취지에서 시작된 일이다. 그 일환으로 필자는 지난 2월 말부터 전남대에 머물고 있다. 5월 초에 이용섭 광주시장의 경북대 강연이, 9월 19일에 권영진 대구시장의 전남대 강연이 있었다. 양교 모두에게 소중한 자산이 되었으리라 믿는다.이와 같은 의미 깊은 행사가 진행되는 동안 “부울경 주민이 뭉쳐서 심판하자!”는 원색적이고 망국적인 지역갈등 선동발언이 터져 나온 것이다.4차 산업혁명이 눈부시게 현현하는 21세기에 원시적인 지역갈등을 조장하는 제1야당 원내대표라니. “우리가 남이가?!” 발언은 1992년 12월 11일 대선 직전에 나왔으나, 그들은 꼬리 내리고 어둔 곳에 숨어서 지역감정을 부추겼다. 그런데 이번에는 대낮 장외집회에서 야당 2인자가 대놓고 지역갈등을 선동한 것이다.지역갈등 조장과 선동이 분명 이득이 있는 모양이다. 아니고서야 반역사적이고 반민족적이며 반국가적이고 시대착오적인 지역감정을 부추기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1992년 대선에서 자한당의 선배격인 민자당의 김영삼은 그렇게 우울하게 승리했다.대선승리의 따뜻하고 화사한 기억이 지역감정을 조장하는 가장 큰 동인(動因)이자 원동력이 아닌가 한다.‘도덕의 계보학’에서 프리드리히 니체는 주인도덕과 노예도덕을 설파한다. “고귀하고 행복한 자들의 주인도덕은 자신과 외부세계의 긍정에서 생기고, 무력하고 악의적이며 비천한 자들의 노예도덕은 타자와 외부세계의 부정에서 생긴다.” 호남을 ‘타자화’하고, “우리 부울경”의 적대적인 외부세력으로 만든 원내대표의 발언은 문자 그대로 노예도덕의 전형이다.한국정치는 분단극복에 정진해야 한다. 고착화된 남북분단과 고질적인 동서갈등의 해결이야말로 우리의 시대사적 소명이다. 그것은 누구보다도 정치와 정치인들에게 맡겨져 있다. 주어진 소명을 외면하고, 정반대 행보를 보이는 저들을 어찌하랴?! 영호남의 진정한 교류로 노예도덕에 오염된 자들부터 구해내야 할 판국이다.

2019-10-23

학교, 수행평가 함정에 빠지다!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감10월 안개는 어느 달보다 진하고 무겁다. 눈으로는 한발조차 내딛기 힘들다. 안개에 쌓인 세상에서 생각한다, 안개는 너무도 빠른 10월 시간을 조금이라도 잡기 위한 자연의 벽이라고!시간은 나이의 속도(㎞/h)로 흐른다는 말이 있다. 그런데 달 또한 예외가 아니다. 10월 달의 빠르기는 1월의 10배 이상이다. 옆 한 번 돌아볼 겨를 없이 벌써 10월 말이다. 그 어떤 상실감이 이보다 더 클까! 필자를 위로하는 것은 역시 시(오세영, ‘시월’)이다.“무언가 잃어 간다는 것은/하나씩 성숙해 간다는 것이다./지금은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는 때/돌아보면 문득/나 홀로 남아 있다.//(중략) 마지막의 이별이란 이미 이별이 아닌 것/빛과 향이 어울린 또 한 번의 만남인 것을//우리는 하나의 아름다운 이별을 갖기 위해서/오늘도 잃어 가는 연습을 해야 한다.”시인의 말대로 지금 필자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잃어가는 연습이다. 하지만 늘 생각뿐이다. 놓고 살아야지 하면서도 현실에서는 뜻대로 안 되는 게 삶이라고 하면 너무 구차한 변명일까? 분명 필자는 많은 것을 잃었다고 생각하는데, 성숙은 늘 남의 일이다. 그런데 고등학교 학생들을 생각하면 필자의 이런 생각은 너무 사치이다. “중간고사 끝난 지 언제라고 11월 중순까지 매일 몇 과목씩 수행평가입니다! 정말 숨 한번 제대로 쉴 수조차 없습니다!” 누렇게 뜬 얼굴로 필자에게 하소연 하던 학생들의 모습이 비수가 되어 꽂혔다.교육 정상화를 위해 도입한 수행평가, 정말 이대로 괜찮을까! 교육부 지침을 잠시 보자!“수행평가는 교과 담당교사가 학습자들의 학습과제 수행 과정 및 결과를 직접 관찰하고, 그 관찰 결과를 전문적으로 판단하는 평가 방법이다. 학생의 수행과정과 결과를 평가해야 하며, 과제형(숙제형) 평가를 지양하고 다양한 학교교육활동 내에서 평가가 이루어지도록 한다.”정말 말로만 보면 이보다 더 완벽한 평가는 없다. 그런데 정말 말처럼 시행될까? 어느 방송사의 “새벽 4시까지 수행평가 ‘허덕’, 학생들 혼수상태” 라는 보도에 대해 교육부는 “과제형 수행평가가 이루어지지 않도록 지속적으로 관리·점검하겠습니다.”라고 교육 현장과 너무도 동떨어진 답변을 내놓았다. 과제형 수행평가라고 해서 과제를 해가는 것도 있지만, 모양만 과제형이고 사실은 암기형 서술 평가가 대부분이다. 학생들은 이런 구태 한 수행평가를 준비하느라 잠을 설치고 있는데, 교육부는 이런 현실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으니, 답답하다. 이 나라 교육을 암흑의 터널로 몰아넣은 것은 분명 평가이다.과정 중심 평가는 물론 그 어떤 평가가 되었던 이 나라 평가의 궁극적 목적은 ‘한줄 세우기’다. 평가 목적이 오류인데, 방법을 아무리 바꾼다고 해도 오류가 참이 될 수는 없다. 오류를 바로잡기 위해서 우선 그 오류를 인정해야 하는데, 교육 당국은 그걸 계속 외면만 하고 있다.교사들에게 묻는다. 당신들은 당신들이 낸 수행평가를 학생들보다 더 잘 볼 자신이 있는가?평가를 위한 무의미한 평가 대신 결실을 위해 기꺼이 자신을 내려놓는 자연을 학생들에게 마음껏 보게 하는 10월이면 어떨까!

2019-10-23

외로움에 대하여

키가 152㎝ 밖에 안 되는 남자. 안경을 벗으면 장님과 다름이 없어 형편없는 시력의 소유자. 등은 곱추처럼 구부정하고 매력이라고는 찾아보기 어려운 외모. 몇몇 여인들을 사랑했지만, 부모의 반대, 신분의 차이 등으로 번번이 열렬한 사랑은 차가운 냉대와 거절로 끝나버립니다.그리고 그는 음악에 완전히 빠져 있습니다.날마다 곡을 쓰고 싶은 주체할 수 없는 창작의 충동을 느낍니다. 오선지를 살 돈이 부족해 늘 전전긍긍하죠. 수시로 떠오르는 악상을 옮겨야 하는데, 노트를 살 돈이 부족한 청년. 돈이 떨어지면 물로 배를 채우기 일쑤입니다. 길게는 28일 동안 물만 마시며 굶었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견디다 못하면 부디 돈을 좀 빌려 달라는 편지를 보낼 정도로 구차하고 궁핍한 삶.그래도 이 남자는 미친 듯이 곡을 씁니다. 무려 700편 가까운 가곡을 쓰고 13편의 교향곡, 헤아릴 수도 없는 피아노 소나타, 오페라 등을 작곡합니다.프란츠 슈베르트. 오스트리아가 낳은 불멸의 작곡가. 가곡의 왕입니다.외롭고 불행했던 이 남자. 프란츠 슈베르트. 그에게 있어서 구원은 곡을 쓰고 또 쓰는 것이었습니다.세상이 인정해 주지 않아도, 아무도 자신의 가치를 몰라줘도, 존경해 마지 않는 상대가 자신을 무시하고 깎아내려도, 음악이 팔리지 않고 연주회는 흥행에 실패해도. 눈앞에 보이는 결과에 굴하지 않고 자기 작품을 꿋꿋이 써 내려갑니다.고독과 슬픔 가운데서 홀로 쓸쓸히 생을 마감하는 순간까지도.베토벤은 말합니다. “음악이란 흙과 같다. 그 안에서 영혼과 생명이 창조된다.”슈베르트의 삶은 고독과 슬픔이었지만, 그의 음악은 불멸로 남아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 마음의 흙 밭에 스며듭니다. 마음의 토양이 점점 비옥해집니다. 새로운 영혼의 힘을 느끼게 되고 반짝이는 아이디어들이 태동합니다./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대표

2019-10-23

이철우 지사, 약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이창훈경북도청본사 취재본부장지방의회 자치입법권 실현의 윤곽이 어느 정도 나타나면서 의회사무처도 변화의 바람이 불 전망이다. 사무처의 인사독립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상당한 기간이 남아있지만 직원 거취와 직결되기 때문이다.그동안 의회 사무처는 본청과 의회 사이의 어정쩡한 중간자적인 상태로 정체성이 혼란을 빚은 게 사실이다. 도 본청은 의회 사무처 근무를 본청보다 많이 쉽고 편하게 생각해, 좀 쉬러 간다는 인상을 갖고 있는 것이 공공연하다. 의회의 최고기능이 본청 집행부를 견제하는 기능이다 보니 의원들에게 집행부의 잘못된 부분을 고자질하는 일면 세작(細作)기능을 한다는 곱지 않은 시선도 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사무처 직원은 본청에 비해 좀 기가 꺾인게 사실이고 특히 고위직의 경우 심적으로 편하지 못하다. 이철우 경북도지사가 취임 이후 이러한 사무처직원들의 심리적 위축감은 더 한 듯하다.우선 취임 이후 실국장 최초 업무보고 때 당시 사무처의 업무보고를 받지않았다. 새로운 지사이고 당선 이후 첫 업무보고인 만큼 사무처는 준비를 갖고 대비했지만 대면보고가 무산돼 아쉬워했다는 후문이다. 그리고 지사가 의욕적으로 소통중인 본청 실국과장의 카톡방에 사무처 직원은 배제됐다. 이 경우 지사는 본청 업무가 주력이다 보니 사무처 직원의 배제가 이해되는 부분이긴 하나 그래도 사무처 직원들은 뭔가 소외된듯한 느낌이라고 한다. 각종 주요 행사에 사무처가 배제되고 있다는 말도 나온다. 최근 경부회(경북도 부지사 출신 모임) 행사 때도 본청 주요 실국장은 배석한 반면, 사무처의 경우 초청도 받지 못해 나름대로 준비한 사무처 고위직이 머쓱해했다고 전해진다.요즘 도청 내외부에서 화제가 되고 있는 일명 천년숲산책조에도 사무처 직원들은 배제됐다. 천년숲산책조는 이 지사가 중심이 돼 매일 새벽 도청 간부들과 천년숲을 걸으며 건강도 다지고, 그날의 일과 향후의 업무 등을 논의하는 형식파괴 모임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하지만 이 산책조에 도의 일부 간부들에게는 전화로 참석을 권유하는 등 적극성을 띠지만 또 다른 간부와 사무처는 배제돼 뒷말이 나오고 있다.이러한 일련의 일들은 사소한 것으로 아무 문제가 없을 수 있으나 조직 내부의 일부가 소외감을 느낀다는데 문제가 있다. 이는 이철우 지사가 도청에서 최고의 권력자이기 때문이다. 태양의 주위에는 해바라기가 자라나기 마련이고 온갖 억측들이 생성되는 게 세상사의 이치다. 본청 일부 간부들은 천년숲모임에 가기를 원하나 “불러주지 않아서 못간다”는 말들도 새나오는 반면 반대의 경우도 있다. 일부 고위직이 천년숲산책조에 우연을 가장하고 참여했다는 말도 들린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천년숲산책모임이 새로운 ‘이너서클’에 진입하기 위한 징검다리로도 볼 수 있는 만큼 세심한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본다. 그럴리야 없겠지만 혹시 천년숲을 중심으로 새로운 권력이 생겨나지나 않을까 하는 우려다. 지사는 경북도의 최고 수장으로 힘없고 약한 직원들의 작은 목소리에도 좀 더 귀를 열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2019-10-23

분양가상한제

분양가 상한제는 아파트 분양가를 일정 가격 이하로 낮추도록 강제하는 제도를 말한다. 새 아파트의 분양가는 택지비(땅값)와 건축비로 결정되는데, 이것을 일정 가격을 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 특히 땅값은 분양가의 70% 가량을 차지하는데, 분양가 상한제가 시행되면 시세의 65% 수준인 표준지공시지가가 적용돼 땅값이 싸져서 분양가가 크게 떨어지게 된다. 분양가의 70%를 차지하는 땅값이 시세의 2/3 수준으로 떨어지니 분양가가 하락하게 되는 것이다. 여기에다 표준형 건축비가 적용돼 거품이 빠져서 분양가가 더욱 하락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아파트 분양가가 떨어지면 기존에 인근 주택가격도 내려가게 돼 무주택 서민들이 쉽게 내 집 마련의 꿈을 실현할 수 있게 된다. 분양가 상한제가 부동산가격 정책에서 중요하게 여겨지는 이유다. 분양가상한제는 지난 1977년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 민간 아파트를 대상으로 처음 도입됐다. 이후 부동산 경기에 따라 나타났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했고, 가장 최근에는 참여정부 시절인 2007년 시행하다가 2015년부터 민간에 대해서는 분양가 상한제를 없애고, 공공택지에 대해서만 분양가 상한제를 시행해왔다.민간주택에도 분양가 상한제를 적용하는 주택법 시행령 개정안이 22일 국무회의를 통과했다. 이로써 투기과열지구인 서울시 25개 자치구와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와 과천시, 광명시, 하남시를 비롯해 대구 수성구와 세종시 등 전국 31곳에 적용된다. 부동산 가격 폭주를 막겠다는 정부 정책의 의도, 방향성은 좋지만 효과는 학계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논란이 많다. 단기적 효과는 있으나 인위적 가격조절로 공급량이 떨어져 역효과가 난다는 우려도 적지 않다. 분양가 상한제의 득실이 궁금할 따름이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19-10-23

맹탕 국감

국회의원이 하는 일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일 년에 한번 열리는 국정감사다. 국감을 통해 국회의원은 자신의 권한을 강력하게 행사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이를 통해 자신의 존재감도 확실하게 확인시킬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국회의원을 보좌하는 보좌관도 마찬가지다. 각 부처와 산하기관의 문제점을 찾아내 자신이 모시고 있는 국회의원의 역할을 돋보이게 하여야만 능력 있는 보좌관으로 인정된다. 잘만 하면 스카우트도 가능하다.국정감사는 국회가 전 행정부서가 한 일을 감사하고 감독하는 일이다. 특히 야당 국회의원은 국정감사를 잘해야 유권자로부터 칭찬받고 다음 선거에서도 유리하다. 유권자의 눈에 잘 띄게 하기 위해선 국감장에 톡톡 튀는 소품을 들고 나오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번 국감에서 김진태 의원은 프랜차이즈 업체의 떡볶이를 들고 나와 눈길을 끌었다. 국정감사를 잘하기란 쉽지가 않다. 300명 가까운 국회의원이 20여일 동안 800여개에 달하는 공공기관을 감사하면서 국민의 관심을 끌만한 일을 찾는다는 것은 사실 매우 어렵다.올 20대 국회 국감은 이런 측면에서 성과가 별로 없다. 맹탕 국회라는 비판이 나온다. 조국 사태로 각 상임위별 국감이 조국 장관 문제에만 매달리다 보니 민생과 정책국감이 실종됐다는 평가다.지난해 경우 사립유치원 회계 비리나 서울교통공사의 친인척 채용 특혜 등이 국감의 핫이슈로 다뤄진 것과는 대조적이다. 조국사태가 올 국감의 이슈를 삼켜 버렸다. 덕분에 각 부처 공무원들은 모처럼 편안한 국감을 치렀다며 기뻐했다는 후문이다. 국정감사가 조국 사태에 가려지면서 결과적으로 국민의 알 권리가 그만큼 묵살되고 만 셈이다./우정구(논설위원)

2019-10-22

고3과 경주시민

황성호 경주취재본부장한낮의 뙤약볕은 아직도 따가운데 설악산에 올해 가을 들어 첫 얼음이 얼었다는 뉴스를 접했다. 이제 한창 추수 중인 풍성한 가을 들판을 뒤로 하고 대구·경북지역 북동산지에도 기온이 영하로 내려가 춥겠다는 예보가 있다.수학능력시험이 채 한달도 남지 않은 지금 공부에 열중하는 고3수험생들과 묵묵히 힘든 과정을 함께 견디며 자식들 뒷바라지하는 학부모들에게 목표하는 대학 입학이라는 풍성한 결실을 맺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쳐야하는 과정이라 생각된다.중장년 세대들의 학창시절과 달리 요즘은 시원한 에어컨이 나오는 교실 또는 독서실에서 부모님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으며 공부하는 요즘 학생들이 뭐가 힘드냐고 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힘듦의 잣대는 항상 같을 수 없고 시대마다 사람마다 다 다른 인생의 무게를 지니고 있으니 어른들의 눈으로 가늠하기에도 요새 학생들의 몸과 마음이 우리 때와 많이 다르다. 휴일에도 학업에 매진하는 수험생들을 보면서 쉬엄쉬엄 하라고 말하고 싶지만 모든 것이 때가 있기에 그런 어설픈 위로는 목 뒤로 넘기고 연말에 웃으려면 조금만 더 고생하자고 한다. 어설프게 노력했다가 쓰라린 결과를 얻으면 나이 먹어서도 대학입학시험에 낙방하는 헛꿈을 꾼다고 겁을 주기도 한다.고3수험생과 같이 경주시민 전체가 올해 연말의 결실을 맺기 위해 매진해야 할 일이 있다. 바로 맥스터(사용후핵연료 건식저장시설) 추가건설 문제이다. 경주시에 국한된 문제가 아닌 나라 전체가 관심을 가져야 될 문제이지만 우리 경주는 시기적으로 좀 더 급박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마치 다른 지역은 고2지만 우리는 고3인 것처럼 말이다.지금 원자력발전소에는 사용후 핵연료가 2021년 11월 월성원전을 시작으로 포화상태에 이르며 월성원전은 올해 2분기를 기준으로 임시저장시설의 포화율은 건식 96%, 습식 83.13%에 달해 한수원은 월성원전 내 사용후 핵연료 16만8천다발을 임시 저장할 수 있는 맥스터 7기를 건립할수 있는 6천300㎡ 규모의 부지를 확보했다, 그러나 공사착공을 위한 행정절차는 아직 시작도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이에 맥스터 7기 건립을 위해 지난 5월 재검토위원회가 발족되었으나 아직 경주시민들의 관심과 중지(衆智)를 모으기에는 여러 가지로 부족한 면이 많아 보인다. 정부의 사용후 핵연료 공론화 정책에 따르면 원전 내 임시저장시설의 확충 관련 사항은 지역 실행기구를 구성해 주민 토론회 등 시민 참여형 조사를 거쳐 지역의견을 수렴해 정부에 전달한다.하지만 첫 단추인 경주시의 지역실행기구 위원 선정에서부터 논란이 일고 있다. 그러니 이제라도 각계각층의 지역 인사들이 좀 더 열심히 활동해 경주시민들에게 많은 정보를 주고 의견을 모으는 노력들을 좀 더 보여주어야 한다. 결론 내려야 할 때를 놓쳐서 재수생처럼 후회하는 일이 없도록, 경주시와 시민들, 사업자가 모두 상생하는 방향으로 적기(適期)에 결론이 날 수 있도록 당사자인 한수원은 물론이고 경주시와 시민들이 한마음으로 좀 더 관심을 가져 주길 바란다.

2019-10-22

배움과 학문

△배움과 학문의 차이배움과 학문의 차이는 뭘까? 하나는 한자, 하나는 한글? 그런 재미없는 농담을 하려는 것은 아니다. 학문과 배움은 둘 다 새로운 지식을 얻는 것을 말한다. 사전적으로 보면 학문은 새로운 지식을 ‘체계적’으로 배운다는 의미가 덧붙어 있다.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과연 그럴까?배움은 필요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걷는 법, 밥 먹는 법, 글을 읽는 것, 자전거를 타는 것, 수영을 하는 것, 이런 것들은 모두 배움과 관련되어 있다. 이것들은 우리가 살아가기 위해서 꼭 필요한 것이기 때문에 체화된다. 결국 체화된다는 것은 몸의 일부가 된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예를 들어 컴퓨터를 배울 때는 자판부터 익힌다. 처음 배울 때는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생각하고 키를 누르지만 다 배우고 나면 정작 키가 어디에 있는지를 알지 못해도 글을 쓸 수 있다. 자판으로 문서를 작성하거나 글을 쓸 때 특정 자음이나 모음이 어디에 있는지를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손가락이 알아서 움직인다.몸과 완전히 일체가 되기 때문에 우리는 한 번 배운 것은 잊어버릴 수 없다. 글을 배운 사람은 다시 글을 배울 수 없으며, 자전거 타는 법을 배운 사람은 다시 자전거 타는 법을 배울 수 없다. 우리가 배워야 할 것들은 우리의 삶의 일부로 자리잡는다. 그래서 처음 배울 때가 가장 중요하다.학문은 ‘체계적’으로 배우는 것이라고 했다. 여기서 체계적이란 일정한 순서와 규칙이 있다는 것을 뜻한다. 수학을 배우려면 수학의 기호를 알아야 하고, 그러한 기호들이 사용되는 규칙을 알아야 한다. 이렇게 기초적인 것을 배운 후에 이를 활용한 더 복잡하고 더 많은 사고를 필요로 하는 영역으로 나아가게 된다. 우리는 이것을 지식이 깊어지는 것이라고 말한다.젓가락질을 아무리 체계적이고 깊이 있게 배워봐야 젓가락질은 거기서 거기다. 하지만 수학이나 물리학을 깊이 있게 배운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는 너무도 크다. 수학이나 물리학을 깊이 있게 배운 사람은 바람의 특징을 토대로 하늘을 날 수 있는 방법을 고안해낼 수 있으며, 태양의 고도와 그림자를 활용하여 산의 높이를 측정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학문은 깊이를 지향한다.그런데 이런 학문은 어디에서 비롯한 것일까? 배움은 경험을 바탕으로 이뤄진다. 그래서 옛날에는 많은 경험을 한 사람이 대우를 받았다. 하지만 학문은 경험만으로 구축되지는 않는다. 학문은 기본적으로 현상이라는 경험에서 비롯하지만, 그것을 체계적으로 정립하는 일은 지적 능력과 관련이 있다. 아무리 경험이 많다고 하더라도 산의 그림자의 길이를 통해 산의 높이를 구할 수는 없다. 학문을 하는 사람, 즉 학자는 경험을 종합하고 정리해 하나의 이론을 구축한다. 학문은 현상의 종합이며, 다양한 현상들 속에 존재하는 공통점을 추출해 내는 일이다. 이것을 이론이라 부르고 이런 이론을 학문이라고 부르며, 이런 이론을 만들어낸 사람을 학자라 부른다.즉 학자는 현상을 탐구해 이론을 구축한다. 이렇게 정립된 이론은 실제 생활에 유용하게 활용된다. 산의 높이를 구할 수 있다면 피라미드나 나무의 높이도 알 수 있듯이 말이다. 물론 그런 것을 몰라도 사는 데는 지장은 없다. 하지만 산의 높이를 알면, 다른 산을 넘었던 경험을 바탕으로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릴지, 얼마나 힘이 들지, 산 정상이 날씨는 어떨지를 예측할 수 있다. 이런 예측을 바탕으로 산을 넘을 때 준비를 할 수 있게 된다.이러한 지식은 살면서 좋든 싫든 습득되는 것이 아니라 작정을 하고 익혀야 한다. 젓가락질을 정식으로 배우지 않아도 포크처럼이라도 사용하면 그만이지만, 수학이나 물리적 지식은 배우려고 마음먹지 않으면 결코 이 지식을 익힐 수 없다. 그래서 학문은 자발적으로 배우려고 하는 사람이 있으며, 이러한 사람들에 의해서 새로운 수준으로 거듭하여 도약한다.△제4차 산업혁명 시대의 교육학문은 의식적인 체계화다. 그래서 학문을 개척한 최초의 사람이 존재한다. 학문은 새로운 배움의 길을 만들고 그 길을 열어가는 일과 같다. 이런 학문은 오랜 전통을 가지고 있는 것도 있지만 무수히 새롭게 생겨나고 필요가 다하면 소멸되기도 한다.수렵채집 사회에서는 수백만 년 동안 사냥과 채집을 잘 할 수 있는 지식이면 충분했고, 농경사회에서는 농경과 관련된 지식이면 충분했다.고대의 그리스, 중국, 이집트 등과 문명권에서는 철학과 자연과학, 수사학, 군사학 등이 필수과목이었고, 그 경계가 따로 없었다. 고대 사회에서 군사학이 중요했던 것은 그만큼 전쟁이 잦았기 때문이다. 즉 교육은 필수 학문을 바탕으로 만들어진다. 꼭 배워야만 하는 것들은 시대마다 달라지고 그럴 때마다 교육의 필수과목도 달라진다.공강일 서울대 강사·국문학지금의 교육은 제4차 산업혁명 시대를 이끌어 가기에는 낡은 감이 있다. 지금 교육의 변화가 필요하다.우리는 미래를 대비할 수 있는 지식을 배우고 이를 토대로 새로운 지식을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 미래에 대한 준비는 정부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의 몫이다. 우리 사회의 구성원 모두 미래를 준비해 나가야 한다. 미래는 미래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현재 속에 있다. 예견된 미래가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준비할 때만 우리가 바라는 미래로 다가올 것이다. 이제는 대학이 지식 플랫폼으로 거듭나 투명하고 효율적인 방법으로 사회와 소통하며, 국민과 함께 대한민국의 미래를 만들어야 한다.

2019-10-22

터칭과 홀드 스틸

개는 주인과 무엇인가를 하는 것을 좋아한다.산책을 하거나 공놀이를 함께 하는 것도 개가 좋아하지만 가장 좋은 놀이는 주인과 접촉하는 스킨십, 터칭(touching)이다. 터칭은 시간을 따로 내지 않아도 되고, TV를 보거나 책을 읽으면서도 언제든지 할 수 있다.개는 몸의 끝부분을 만지면 싫어하는데, 특히 주인과의 접촉이 별로 없던 개에게 갑자기 터칭을 시도하면 개는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는다. 사회화를 배우는 강아지 때부터 사람의 손길에 익숙해진 경우는 주인의 터칭을 좋아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주인을 물거나 난폭하게 돌변할 수 있다. 이때는 맛있는 먹이를 이용해서 터칭에 익숙하게 할 수 있다.우선 개를 옆으로 눕히고 귀, 입, 손발, 꼬리를 만진다. 이때 먹이는 몸을 만져도 개가 가만히 있을 때에만 준다. 조금이라도 싫은 기색을 보이면 먹이를 주어서는 안 된다. 이때 먹이를 주면 역효과가 나타난다. 옆으로 눕혀두고 몸을 만져도 싫어하지 않으면 개의 배를 드러낸 자세로 눕혀서 터칭을 반복한다. 개에게 가장 취약한 부위는 아랫배와 접한 넓적다리 주변인데 개들은 항문 주위부터 뒷다리로 이어지는 서혜부를 만지면 민감하게 반응하며 싫어하는 기색을 드러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정성을 가지고 반복해서 터칭을 시도할 경우 서혜부를 만져도 가만히 있는다. 개가 주인 앞에서 배와 서혜부를 모두 드러내고 눕는 것은 절대적인 복종을 의미한다. 이것은 개를 길들일 수 있는 가장 좋은 자세다. 강압적인 드러눕힘이 아니라 시간과 정성을 다해 터칭을 해보라. 터칭은 개가 가장 좋아하는 놀이이자 스트레스를 풀어주는 좋은 활동이 된다. 터칭에서 나아간 방법은 홀드 스틸(hold still)이다. 훈련을 잘 받은 개들은 아무 문제가 없을 것 같지만 어느 정도 훈련에 익숙해진 영리한 개들은 어려운 과정을 통과하게 되면 성취감 때문인지 심하게 흥분하는 경우들이 있다. 이때 훈련사들은 구부린 자세로 개의 등을 훈련사의 허벅지 사이에 끼우고 꽉 껴안아 주는데 이 상태를 유지하는 것을 홀드 스틸이라 부른다. 홀드 스틸의 포인트는 개와 밀착한 자세로 껴안는 것이다. 훈련사는 무릎을 꿇고 개를 단단히 껴안아 개를 안정시킨다. 개가 저항하고 움직이면 힘을 주어 꽉 껴안고, 얌전해지면 풀어준다. 개가 안심하고 주인에게 몸을 맡기면 홀드 스틸을 성공한 것이다. 개의 흥분을 가라앉히기 위해 실시하는 홀드 스틸은 개의 정신적·육체적인 스트레스를 효과적으로 줄여주는 좋은 방법이다. 다만 개의 입장에서 볼 때는 처음에는 느닷없이 뒤에서 껴안게 되면 당황하게 되고 당황하면 진정이 되지 않을 수 있다. 가장 좋은 방법은 강아지 때부터 홀드 스틸에 익숙해지게 하는 것인데, 주인이 등 뒤에서 껴안아주면 긴장이 풀린다는 사실을 체험을 통해 개 스스로 알고 있게 하는 것이 좋다.이동훈연습이 필요할 때는 한 사람이 개를 껴안고, 다른 한 사람은 개가 저항하지 않을 때 먹이를 주는 방법을 사용한다. 계속 버둥거리고 싫어하면 개의 아래턱을 손으로 잡는 머즐 컨트롤(Muzzle control)을 사용한다. 안정을 되찾으면 다시 먹이를 주는 방법을 반복한다.홀드 스틸은 놀이의 일환으로 만지는 터칭보다 버릇을 고치거나 마음을 진정시키고 긴장을 푸는 목적이 강하다. 개의 등 뒤에서 귀, 손발, 꼬리를 만져나가는 홀드 스틸을 성공하게 되면 사람이 만지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개도 긴장이 풀리면서 얌전해지는 것을 볼 수 있게 될 것이다. 산책을 할 때 낯선 사람이 다가와 개를 쓰다듬을 때 주인이 홀드 스틸을 하면 개는 긴장을 풀고 안정적으로 반응할 수 있다. 터칭과 홀드 스틸을 통해 개가 주인에게 복종하고 사회에서도 개가 안정적으로 지낼 수 있도록 할 수 있다./서라벌대 반려동물학과 학과장

2019-10-22

일학습병행 지원 법률제정과 금속특구지원센터의 역할

최원삼일학습병행 금속특구지원센터장경북동부경영자협회 상근부회장정부가 2014년에 법률안을 제출한 지 6년 만인 지난 8월 27일 ‘산업현장 일학습병행 지원에 관한 법률’이 시행됨에 따라 학습기업 인재육성지원·학습근로자 보호·일학습병행 자격 부여 등 제도의 안정적 운영을 위한 기반이 마련됐다.일학습병행법이 통과됨으로써 기업과 학습근로자 간 책임과 권리·보호 내용이 명확해지고, 일학습병행 자격 발급이 가능해지는 새로운 전기가 마련된 것이다.이번 법의 통과는 학교교육과 기업 현장훈련을 결합한 독일식 이원화 제도, 학습근로자 보호 및 일학습병행자격(국가자격) 등에 대한 법률상의 근거도 명확히 마련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우리나라는 산업현장 직무와 학교 교육의 불일치로 특성화고, 대학에서 전공 과목을 배웠다고 해도 현장에서는 다시 배워야 하는 경우가 많았고, 기업에서는 막대한 재교육 비용이 필요했다. 이러한 문제 해소를 위해서는 기업들이 일학습병행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할 것이다.새로운 제도가 우리나라 교육훈련 분야에서 성공리에 정착되기 위해서는 학교·훈련기관은 물론 대기업과 중소기업, 산업별 단체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경북동부경영자협회는 2016년부터 특화업종(특구)지원센터로 선정, 금속특구지원센터를 운영하는 운영기관이다. 특화업종(특구)지원센터는 일학습병행 도입에 적합한 업종이나 동종업종 기업이 밀집돼 효율적 인력양성이 가능한 지역·산업계 특성을 고려한 기업 발굴·선정, 채용·확산모델 개발, 프로그램개발·운영지원, 학습근로자 평가 지원, 훈련질관리 등 주요역할을 수행하는 전담 기관으로서 일학습병행의 확산을 목적으로 두고 있다.금속특구지원센터는 매년 학습기업을 26개사 내외로 선정, 훈련실시함으로써 우수운영기관으로 선정되는 등 우수한 평가를 받고 있고 2019년 현재 30개사를 선정해 학습근로자 198명이 훈련중에 있다.부정훈련방지와 제도의 공공성 전파, 사후관리 모니터링을 강화해 현장에 실질적인 훈련이 되도록 관리함으로써 제도의 무분별한 확산이 아닌 질 관리에 힘쓰고 있다.정부나 운영기관 모두 세계적으로 확산되는 일학습병행을 한국 현실에 맞게 이론과 실무를 병행하는, 즉 기업이 학생 또는 구직자를 채용해 업무를 담당하며 보완적으로 현장에서 활용되는 기술과 지식을 담은 NCS(국가직무능력표준) 기반의 교육훈련 프로그램을 가르치는 선순환 구조의 인재양성에 힘써야 할 것이다.또한 법제정으로 근거를 명확하게 구축했다는데 의의가 있고, 일선 현장에 뿌리를 내리기 위해서는 학습기업, 훈련기관은 물론 금속특구지원센터 등과 같은 일학습병행 지원기관들의 역할과 협업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고 본다.

2019-10-22

詩의 향기 속으로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파란 하늘에 두둥실 떠가는 구름이 유유자적 시를 쓰고, 산으로 들로 번져가는 단풍 잎새가 말을 걸어오는 계절. 푸른 물이 뚝뚝 떨어질 것만 같은 가을하늘에 제 나름의 감성의 촉수로 시의 감흥을 펼쳐보면 어떨까?시는 인간의 순수한 감정의 발로(發露)이다. 시는 말로 그리는 그림이며 마음의 소리이기도 하다. 그것은 곧 보이지 않는 세상을 보이게 하고,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하기 위한 언어실천이다. 또한 시는 그리움의 소산이기도 하고 깨달음과 깨침의 통찰이자 지혜이기도 하다. 결국 시는 충만한 생명과 무한한 정신을 드러내어 사람의 가슴에 울림을 주고 마음을 움직일 수 있도록 하는 언어적 구성물이라 할 수 있다.시를 쓰는 일은 축복이다. 상처가 조개 속에서 진주를 키우듯이, 삶의 자극이나 어느 순간의 감동이 시의 씨앗이 되고 한편의 시를 싹트게 한다. 시를 쓴다는 것은 사물에 대한 새로운 감수성을 개척하는 것이며, 그것을 표현할 수 있는 새로운 형식과 이미지를 만드는 것이다. 시를 만나러 가는 길은 항상 가슴이 설레고 조금쯤은 흥분되거나 긴장하기 마련이다. 시인의 정신세계는 무한대여서 어느 선현의 말씀처럼 ‘한 알의 모래에서 우주를 보고 한 송이 들꽃에서 세상을 보면서’ 산다. 그래서 시인들은 시를 쓰면서 부단히 고민하고 감성을 연마하여 삶의 행복을 정련(精鍊)하는지도 모른다.시를 읊거나 낭독하는 것은 시의 행간에 날개를 달아주는 일이다. 시가 지닌 사회성과 역사성, 교훈성과 계몽성을 차치하고라도, 시를 음미하며 감정을 살려 낭송하는 것은 시에서 묻어나는 감동의 향기를 세상에 널리 피워내는 것이다. 그것은 어찌 보면 꽃자리를 옮겨가며 나풀대는 나비의 날갯짓 같기도 하고, 들풀을 쓰다듬으며 잎새를 흔들고 지나가는 바람의 몸짓 같기도 하다. 이른바 시 낭송이란 생명의 언어로 만들어진 시를 우아한 육성으로 전함으로써 시 본연의 울림과 스밈을 더해 주는 표현의 미학이 아닐까 싶다.포항지역에는 8,9년 전부터 시의 몸에 목소리의 옷을 입히며 정갈함과 향긋함을 전해온 분들의 노력으로 지역의 특색있는 시낭송 문화가 자리매김해가고 있다. 그들은 해마다 시낭송 발표회를 가지면서 경북교육청문화원에서 개최하는 ‘찾아가는 행복콘서트’와 포항시 주관의 ‘향교서원 문화재 활용사업’ 등에 동참하거나 재능기부를 하면서 문화사업 활성화에 일조하고 있다.특히 최근에는 도심 속의 휴식처 같은 서옥(書屋)의 뒤뜰에서 서울과 지방의 저명한 시인들을 초청해 시담(詩談)을 나누고 시낭송회를 열어 시민들로부터 큰 호응을 받았다. 또한 전국규모의 시낭송대회에서 대상을 수상하기도 하는 등 실로 왕성한 활동과 내실있는 행보가 참으로 고무적으로 여겨진다.하늘빛 그리움으로 잔잔히 여울지는 시와 그윽한 목소리를 타고 흐르는 향기나는 시낭송의 삼매에 빠져, 가슴 붉게 물드는 낭만으로 이 가을이 익어갔으면 좋겠다.

2019-10-22

전통시장이 살아남는 법

김진홍 한국은행 포항본부 부국장각 지역의 전통시장은 해당 지방의 발전사와 동고동락해왔다는 점에서 소중하다. 정치인들이 시민들과 만나기 위해 시장으로 향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곳은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모여드는 데다 가장 민감한 정치 문제부터 경제, 사회 전반에 대해 주부나 상인들의 여과 없는 이야기가 오가 민심의 동향을 파악하는데도 최적의 장소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지금도 장날에만 열리는 시장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특정 장소의 전통시장들도 처음에는 장날에만 상거래를 하였지만 수요가 늘어나면서 고정된 장소에 자리잡은 것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들이 장날의 상인에서 고정형 상인으로 변신하기까지는 많은 혁신과 생존의 노력이 뒤따랐다고 할 수 있다.이제 또 전통시장이 지금의 방식만으로는 결코 살아남기 힘든 상황을 맞이했다. 1인 가구라도 부담 없이 장바구니에 담을 수 있는 깨끗하고 소량 단위로 포장된 것, 굳이 바쁜 상인에게 일일이 물어볼 필요도 없이 중량과 원산지 그리고 가격까지 인쇄된 식품, 야근하고 퇴근이 늦어도 구매 가능한 영업시간, 차량도 없고 깔끔한 옷차림에 약속장소로 가기 전이라도 마음껏 필요한 물품을 구매한 후 주소만 대면 택배가 가능한 곳이 대형유통점포다. 이들과 전통시장이 경쟁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되지 않는다. 그동안 상품권 발행 등 전통시장 살리기 정책과 시장 근처 일정거리 범위 내에는 대형유통점이 아예 입점하지 못하도록 하는 제도적 장치까지 마련하면서 어찌어찌 생존해왔다. 하지만, 그마저도 골목마다 작고 깔끔한 소매형태의 프랜차이즈 유통업체들이 진출하면서 이제는 더 이상 버티기 어려워졌다.포항의 전통시장들은 그동안 교통오지였던 만큼 물류비용까지 가미된 다소 비싼 가격이었어도 고도 성장기에 힘입어 무리 없이 성장해왔다. 그러나 이제는 교통망이 확충되어 시민들의 선택의 폭도 넓어졌다. 게다가 도시외곽으로 주거지가 형성되면서 굳이 구도심의 전통시장까지 찾아올 특별한 유인책까지도 필요하게 되었다. 이제 전통시장 상인들은 과거 장날 상인에서 붙박이 상인으로 변신하였던 것처럼 또 다른 변혁을 통해 생존해야만 하는 기로에 섰음을 깨달을 필요가 있다. 전통시장이 모든 부분에서 대형마트와 동등한 여건을 갖추고 경쟁하라고 하는 무리한 요구를 하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시장 손님의 생활패턴이나 환경이 바뀐 부분에 대해서는 전통시장도 수용해 나갈 필요가 있다.그런 의미에서 최소한 두 문제만큼은 해결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도, 시민들이 전통시장을 이용할 수는 있어야만 한다. 직장인들이 퇴근해 시장을 가려면 빨라도 오후 7시는 넘어야한다. 그러나 그때쯤이면 식당들을 제외하면 대부분 문을 닫아 어둠만 반기고 있어 이용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둘째, 전통시장 전체를 아우르는 일괄 결제시스템은 무리라도 시장에서 구입한 물품들을 가정까지 배달해주는 통합택배시스템은 갖춰야만 한다. 자동차가 없어도, 장바구니가 없어도, 편하게 전통시장을 이용하려면 택배서비스는 선택이 아닌 필수다. 주차장 부족문제가 전통시장 활성화를 저해하는 절대적인 원인은 결코 아니다.

2019-10-22

듣는 법을 가르치는 청각 장애인

에벌린 글레니는 맨발의 연주자입니다. 세계 최고의 퍼커셔니스트입니다. 런던올림픽에서는 1천명의 타악기 연주자들을 총지휘하는 독주자로 활약했고 그래미상을 두 번 수상한 경력도 있습니다.어릴 적 앓은 후유증으로 두 귀의 청력을 완전히 상실한 여인입니다. 귀가 들리지 않기 때문에 그녀는 온몸으로 사람들의 목소리와 세상의 모든 음을 다 흡수하는 법을 터득하지요. 맨발로 무대에 서는 이유이기도 합니다.그래미상 수상 직후 희망을 묻는 기자들에게 그녀는 눈을 반짝이며 말합니다.“듣는 것을 가르치는 센터를 세우고 싶습니다. 단지 듣는 법(how to listen)이 아니라 듣는 것 그 자체를 가르치는 곳이지요. 제대로 듣는 일은 절대로 대충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거든요.”듣는다는 것은 주의를 기울이는 행위입니다. 주의를 기울이는 것은 내가 지금 이 순간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은 오직 당신뿐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컴퓨터나 휴대전화, 시계 따위에 관심을 뺏기지 않는 거지요. 지금 이 순간만큼은 당신이 내 삶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하는 거지요. 경청이 어려운 이유는 귀가 들리기 때문입니다. 역설이죠. 당신의 말은 내가 잘 들리는 두 귀로 모두 들을 수 있다고 생각하니 집중력이 떨어집니다. 상대를 진정으로 이해하려는 의도로 듣는 것이 아니라 내 생각과 주장을 들려주기 위해, 그 목적으로 듣기 일쑤입니다.CNN 래리킹 쇼를 수십 년 진행하며 세계 최고의 달변가로 알려진 래리 킹은 이렇게 말합니다. “말하고 있을 때 나는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다. 귀 기울여 들을 때 비로소 배운다.”내 청력이 완전히 소실되었다는 상상으로 상대방 입술 모양과 눈빛에 온전히 집중하며 듣는 연습을 해보고 싶습니다. 평소 들으려 노력하지 않은 심장 소리, 발걸음 소리에 귀 기울여 보는 순간을 만나보면 어떨까요?/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대표

2019-10-22

삼사일언(三思一言)의 교훈

강희룡 서예가조선후기 문신이며 학자인 윤기(1741∼1826)는 그의 ‘무명자집(無名子集)’에서 ‘사람에게 있어 말은 물이나 불과 같다. 사람은 물과 불이 없으면 살아갈 수 없지만, 수재(水災)나 화재(火災)를 당하면 참혹하기 그지없으니, 조심하여 사용해야 그 폐해가 없다.’라고 경고했다. 윤기는 남인(南人)출신 학자로 33세라는 늦은 나이에 소과(小科)에 합격한 뒤 20년을 성균관 유생으로 있었다. 52세에 겨우 대과(大科)에 합격했지만, 86세로 죽을 때까지 미관말직을 전전했다. 극도로 문란했던 당시 과거제도 아래에서는 권문세가에 연줄을 대거나 뇌물을 쓰지 않고는 과거에 합격하거나 높은 지위에 오르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호(號)를 무명자 곧 ‘이름 없는 사람’으로 불렀는데, 거기에는 개인의 실력과 노력이 통하지 않는 시대에도 절망하지 않고 의연하고도 초연하게 살고자 한 그의 정신이 담겨 있다. 당시의 과거제도나 많은 사회문제의 한 요인으로, 윤기는 ‘긴속(緊俗)’ 즉 자기에게만 긴요한 일을 좇는 세태에 주목하고, 천하 사람들의 미혹함이 모두 이 ‘긴’이라는 한 글자에서 연유한다고 보았다. 하지만 인간은 사회성의 존재이므로 자기만을 위한 긴요함을 좇다 보면 자칫 자신의 의도와는 반대로 실패와 치욕을 맛보게 되는 것이 하늘의 떳떳한 이치라고 했다. 윤기는 서문에도 말조심에 대해 ‘입은 화(禍)를 부르고, 행동은 흔단(91C1端·틈이 생기는 실마리)을 여니 경계하고 조심하라.’ 적고 있다.유시민 노무현재단이사장이 진행하는 ‘알릴레오’라는 유튜브방송에서 15일 오후 패널로 출연한 한 경제지 기자가 KBS의 여성 법조기자와 검찰 간의 관계에 대해 언급하며 ‘검사들이 이 여기자를 좋아해서 조국수사 내용을 흘렸다.’는 망언을 해서 문제가 됐다. 조국 장관이 검찰 장난으로 인해 사퇴했다는 가짜뉴스를 방송으로 퍼뜨리려다 이런 재앙이 생긴 것으로 풀이된다. 다급해진 유 이사장이 사과했으나 평소에 그의 신뢰 없는 말 몇 마디로 얼버무릴 일이 아니다. 유 이사장 본인도 조국 전 법무장관의 부인 정경심 교수가 검찰 압수수색 전 자신의 컴퓨터를 빼돌린 행위에 대해 검찰이 압수수색해 장난칠 경우를 대비한 것이라며 PC 반출행위를 ‘증거인멸이 아니라 증거보존을 위한 것’이라는 해괴한 궤변을 늘어놓았다. 방송에 출연하여 마구 내뱉는 그의 궤변에 대해 국민들은 크게 신뢰를 두지 않는다. 그의 상식파괴적인 ‘요설(妖說)’을 대하면 고려 말 요승(妖僧)으로 기록된 신돈(?∼1371)이 떠오른다. 이런 행태는 결국 국민을 선동하여 이 사회를 교란시켜 병들게 한다. 세치 혀로 자신이나 패거리의 이익을 위해 정제되지 않고 진실을 왜곡하여 쏟아낸 말의 결과는 그의 자신을 향해 설화(舌禍)로 돌아갈 것이다. 말에 대한 경계는 어느 시대 누구나 언급하고 있다. 말을 조심하지 못하면 크게는 패가망신하고 작게는 창피나 미움을 받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까지 대부분의 화근이 말에서부터 비롯되니 한 번 입에서 나오면 되돌릴 수도, 손으로 가릴 수도 없다. 이렇듯 말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두려운 일이기에, 삼사일언(三思一言)의 교훈을 새겨야 하지 않겠는가.

2019-10-21

검찰개혁도 역사의 질서 안에 있음을…

서정목 대구가톨릭대 교수필자는 통번역학을 전공하였다. 그래서 통번역 업계와 업무를 잘 안다. 통역업무가 필요한 업체에서는 통역사를 부른다. 모신다는 말을 쓰지 않는다. 대신 통역을 붙인다는 말을 쓴다. 과외 선생도 모신다는 말을 쓰지 않는다. 과외선생도 붙인다. 변호사는 붙인다거나 댄다는 말을 쓴다. 존경받는 직업에는 아마 이런 말을 쓰지 않는 듯하다. 과거 변호사를 보고 칼 안든 강도라는 말이 유행했었다. 요즘이야 변호사를 비롯한 사짜 직업들의 수난시대이니 옛말이려니 한다. 그러나 대체로 검사, 판사, 변호사에 대한 이미지가 좋지는 않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검사와 재벌, 검사와 조폭, 그리고 이들을 돕는 변호사는 막장드라마 못지않게 단골 소재가 되었다. 이처럼 법조계는 대중들에게 그다지 호의적이고 친근하게 느끼는 직업군이 아니다. 이들이 대중들의 불신을 받는 것은 공정하게 법의 잣대가 적용되지 않은 때문이다. 그리스신화에 등장하는 정의의 여신은 디케(Dike)이며, 로마신화에서는 유스티시아(Justitia)이다. 유스티시아의 조각상은 한손에는 칼, 한손에는 저울, 그리고 눈에는 눈가리개를 하고 있다. 법을 심판하는데 있어 칼같이 저울질하되, 눈가리개로 눈을 가리는 것은 편견없이 공정하게 재판하라는 의미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법에 관한한 최고의 가치는 공정함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유전무죄(有錢無罪), 무전유죄(無錢有罪)’라는 말이 이를 잘 대변해 준다.며칠 전 저녁, 한 TV 드라마에 놀라운 대사가 쏟아져 나왔다. “이 세상은 수많은 혁명을 통해 인간의 삶은 개선되어 왔고 앞으로는 더 좋아진다. 부딪히고 깨지고 엎어져도 다시 일어서고 하는 것이 역사의 질서”라는 것이다. 그저 드라마 대사로 받아들이기로는 너무나 감동적이고, 무게감이 느껴지는 말이다. 권위주의 체제의 몰락과 민주화도 이러한 역사의 질서에서 이해될 수 있다. 우리나라도 그렇다. 서구에서 수백 년에 걸쳐 이룩한 민주화를 우리나라는 해방 이후 수많은 시민의 피와 땀을 바탕으로 민주화 투쟁을 통해 이루었다. 우리의 민주화는 시민들이 부딪히고, 깨지고, 엎어져도 다시 일어서면서 당면한 과제를 극복하여 온 역사의 질서인 것이다. 다만 경제적으로 압축 성장한 것처럼, 민주화도 압축해서 압축 민주화(!)를 이루다 보니 아직 덜 다듬어진 부분이 군데군데 남아있다. 검찰개혁, 사법개혁의 과제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역사는 인간을 위주로 인간의 삶에 유용하고 합리적인 방향으로 진보한다. 검찰개혁도 역사의 질서에서 보면 이루어져야 하는 수순이다.한국인들은 평등의식이 강하다. 평등의식이 강한 한국이 자본주의 사회가 되고, 부를 숭배하고 부자를 존경하는 중국이 사회주의 사회가 된 것이 아이러니하다고 누군가 한 말이 떠오른다. 공정하지 않은 법의 적용은 평등에 위배된다. 그래서 시민들은 무소불위의 검찰권을 거부하고, 수사권과 기소권의 분리를 외친다. 민주화는 별 볼일 없는 보통 사람이 많이 사는 사회가 되는 과정이다. 함께 더불어 사는 이런 사회는 온다.

2019-10-21

평화의 도구

“이해받기보다는 이해하며 사랑받기보다는 사랑하게 해 주소서.”성 프란체스코가 쓴 평화의 도구라는 시(詩)에 나오는 표현입니다. 우리가 경청에 익숙하지 못한 이유는, 상대를 이해하려는 의도로 대화를 하지 않고 나를 이해시키려는 목적으로 대화를 나누기 때문입니다. 수요와 공급의 불일치가 일어나죠. 경청의 목적은 ‘이해’입니다.사람은 누구나 이해받고 싶은 갈망이 있습니다. 누군가 나를 이해하고 인정해 줄 때 숨통이 트이고 심리적 산소를 공급받습니다. 이해받지 못한 삶, 인정받지 못하는 삶은 우울하고 무기력에 빠질 수밖에 없지요.그래서 우리는 본능적으로 누군가에게 이해받고 싶어 합니다. 이해받고 싶은 사람 99명이라면 내가 먼저 상대를 이해해 줄 수 있는 힘을 가진 사람 1명에 불과합니다.어쩌면 더 심각할 수도 있습니다. 이해받고 싶은 사람 999명에 내가 먼저 상대를 이해해 줄 수 있는 사람 1명일지도 모릅니다. 수요와 공급의 불일치입니다.서로 자기를 이해시키려 몸부림치면 결과는 감정의 충돌, 분노, 절망입니다. 이 순서를 바꿀 때 기적이 일어납니다. 내가 먼저 상대를 이해하려 애쓰는 것입니다. 나를 이해시키는 노력은 다음 순서에 하면 됩니다.상대방이 한참을 떠들며 자신을 이해시키려는 노력에 귀 기울여 주면, 상대는 이해받았다는 안도감과 후련함을 느낍니다. 이때는 조금 마음의 여유를 갖지요. 그럴 때 나를 이해시키려는 노력을 하면 상대도 쉽게 나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단지 순서만 잠깐 바꿀 뿐인데, 우리는 평화의 도구로 쓰임을 받을 수 있는 것이지요.나를 둘러싼 먹구름 아래 고단한 삶은 이해받고 싶어하는 마음의 외침으로 가득합니다. 귀 기울여 주위 신음을 포착하는 일에 전심전력하는 하루이기를 소망합니다. 그대가 평화의 도구로 쓰임 받기를 기도합니다./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대표

2019-10-21

일제강점기·해방 이후를 거치며 오늘날의 천일염이 시작됐다

소금 ‘SALT’에서 월급 ‘SALARY’가 파생되었다는 말은 정설이다. 소금을 빼고 인류 역사를 설명할 수는 없다. 고대 이집트 피라미드 노동자에게 반드시 소금과 마늘을 주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에이, 설마?”라고 하겠지만 한반도는 만성적인 소금 부족 지역이었다. 고려, 조선, 일제강점기, 대한민국 초기에 늘 소금이 부족했다. 1960년대까지 소금은 정부의 전매품(專賣品)이었다. 전매품은, 전매청 등 전매기관이 생산, 유통, 판매를 관리한다. 민간의 사사로운 소금 생산, 판매는 불법이었다.소금이 부족하니 정부가 직접 소금을 관리했다. 담배, 인삼, 소금 등이 예전에는 모두 전매품이었다. 1950년대, 천일염 주요 생산지인 목포시청에는 염업과(鹽業課)가 있었다. 염업과에서는 불법적인 소금의 유통을 철저히 막았다. 소금 불법 유통이 드러나면, 불법 유통 소금 몰수, 벌금 때로는 형사 처분도 했다.동아일보 1962년 3월13일자 2면의 기사 내용이다. 제목은 ‘상인 소금 사지 말라’다.상인 소금 사지말라/전매청서 요망전매청에서는 12일 鹽指定小賣所(염지정소매소)에서 배급하고 있는 소금 이외는 상인들로부터는 소금을 사지 말라고 전국의 수요자에게 요망하였다. 전국 소매소에 나가고 있는 소금은 118만여 가마니에 달하고 있다. 鹽田(염전)은 금년 5월부터 민영화되며 그때까지는 民間保有鹽(민간보유염)이 있을 수 없다.앞서 밝혔듯이, 소금은 전매품이었다. 전매청이 관리했다. 전매청에서 전국의 ‘염지정소매소’를 관리했다. 염지정관리소는, 소금을 취급하는 각 지역의 합법적인 소매점이다. 국가에서 관리하는 소금을 공급받아 소비자들에게 골고루 판매했다. 소금이 부족하니, 철저하게 관리하여, 골고루 나눠야 했다. 문제는 탈법적인 사설 판매상들이다. 생산지에서 관리가 되지 않으니 결국 소비지역으로 이런 불법, 탈법 소금들이 흘러 다닌다. ‘사설 소금 판매상’이다.내용 중에 ‘국가, 전매청’이 하고 싶은 이야기가 담겨 있다. 국가가 전매청, 염지정소매소 등을 통하여 118만여 가마니의 소금을 넉넉하게 공급하고 있다고 말한다. 합법적인 소금이 넉넉하니 불법 소금을 사지 말라는 뜻이다.이해 5월 소금이 민영화된다. 민영화 직전이니 소금 전매 제도가 어수선하게 무너지고 있었을 것이다. 전매청이 나서서, 민영화는 5월부터, 그 이전에는 일체 “민간 보유 소금은 없다”고 못을 박았다.소금 부족은 고질적이었다. ‘조선왕조실록’ 태종 9년 (1409년) 11월의 기사다.전지(傳旨)를 내려 구언(求言)하기를, (중략) 관중(管仲)은 소금을 굽는 이익을 계획하여 그 나라를 부강(富强)하게 하였고, 당(唐)나라 유안(劉晏)은 소금의 이익을 가지고 백성에게 무역하여 그 이익이 농사를 권하는 것보다 배나 되었으니, 그렇다면, 소금의 이익이 매우 중한 것입니다. 지금 국가에서 염장관(鹽場官)을 설치하여 소금을 구워 무역하니, 예전의 유법(遺法)입니다. 그러나, 포(布)라는 물건은 굶주린 사람이 먹을 수 없으니, 원컨대, 서울과 외방의 관염(官鹽)을 모두 쌀로 무역하여 군량(軍糧)을 보충하소서.중국도 만성적인 소금 부족국가였다.윗글에서, 소금과 관련하여 예로 든 사람이 2명이다. 관중(기원전 725?~기원전 645년)은 제나라 관리다. 춘추전국시대에 제나라 환공을 패자로 만든 명재상이었다. 그가 취한 정책이 ‘소금 굽는 이익을 계획하여 나라를 이롭게 만드는’ 것이었다. 국가가 소금을 관리했다. 소금을 팔거나 염세(鹽稅)를 지혜롭게 거두었다.유안(716~780년)은 당나라 현종 등 4명의 황제를 모신 관리. 소금과 쇠를 관리하여 당나라의 재정을 튼튼하게 했다. 유안은 “백성들에게 소금을 팔아서(무역) 그 이익을 크게 취했는데 (그 이익이) 농사의 배나 되었다”고 했다. 농업이 주요 산업이었지만, 그보다는 소금을 통한 이익이 훨씬 컸다. 글에는 ‘염장관(鹽場官)’이라는 직업도 등장한다. 염전을 관리하는 이다. ‘관염(官鹽)’은 관에 속한 ‘염전(鹽田)’에서 ‘구운’ 소금 혹은 관청에서 관리하는 소금이다. 이때도 민간에서 관리하는 소금 혹은 민간에서 사사로이 사고파는 소금이 있었다. 사염(私鹽)이다. 사염은 불법 혹은 탈법이다. 우리도 마찬가지. 소금은 국가, 관청에서 관리했다.소금을 사고파는데 포, 옷감을 사용하지 말고, 쌀을 사용하자고 말한다. 쌀은 먹을 수 있지만, 옷감을 먹고 살 수는 없다. 물물교환이 흔했던 시절이다. 염전에서 일하는 이들은 먹지 못하는 옷감보다는 바로 식량으로 사용할 수 있는 쌀을 원했을 것이다. 쌀이면 군량미로도 가능하다.소금 거래를 두고 많은 일이 벌어진다. 소금값으로 미리 옷감이나 쌀을 주었는데 미처 소금을 받지 못하는 일도 벌어진다. 지금으로 치자면, 사기에 해당하는 일이다.한때, “천일염(天日鹽)은 우리 고유의 소금이 아니다”는 주장이 있었다. 부분적으로 맞는 말이다. 고려, 조선 시대 소금은 천일염이 아니라 자염(煮鹽)이었다. 윗글에서 “소금을 굽는다”라고 표현한 것은 당시의 소금이 천일염이 아니라 자염이었음을 의미한다. 자염의 ‘자(煮)’는 삶고 끓이는 것이다. 자염을 만드는 방법은 간단하고 힘들었다. 바닷물을 퍼와서 농도를 높인 다음, 큰 솥에 넣는다. 장작불을 피워서 솥 안의 소금물을 끓인다. 오랫동안 소금물을 끓이면 수분이 증발, 소금 결정체가 나타난다. 자염이라고 부르는 이유다. 조선 시대 말까지도 우리는 자염을 먹었다.자염은 만들기 힘들었다. 바닷물을 퍼오고, 장작을 구해야 한다. 바닷물을 퍼오는 일도 힘들고, 장작을 구하고 운반하는 일도 힘들었다. 바닷물은 힘만 들이면 퍼올 수 있지만, 장작은 나무를 베고, 쪼개야 한다. 자염을 만드는 과정에 장작이 많이 들어간다. 나무를 구하는 일도 힘들었다.소금물, 장작을 구하면 소금을 구워야 한다.온종일, 장작불을 지펴야 한다. 이 과정도 힘들다. 여름이면 불가에 가기도 힘들다. 소금을 만든 다음, 운반, 관리하는 인원도 필요하다. 소금은 무겁다. 소금을 만든 다음, 배로 옮기고, 배를 운반하고, 다시 창고에 옮기는 모든 과정이 힘들었다. 특히 한여름, 한겨울에는 더 힘들었다.소금 굽는 일을 하는 이는 염부(鹽夫)다. 염부 일이 힘드니 이 일을 하려는 이들이 드물었다. 사염이 아닌 관염의 경우, 적은 급료를 받고 염부 일을 하겠다는 이들이 드물었다. 계급상으로 하층민인 승려, 관노(官奴)들을 동원한 이유다.자염이 지금의 천일염보다 편리한 점은 단 한 가지다. 지역과 관계없이 한반도의 모든 해안에서 소금을 생산했다. 바닷물, 장작, 가마솥, 염부만 있으면 자염을 만들 수 있었다.다산 정약용도 소금 세금, 염세에 대해서 상세한 이야기를 남겼다. ‘경세유표 제14권_균역사목추의(均役事目追議)_염세’의 영남 부분이다. “영남 해안에서 소금을 만들었을까?”라고 의문을 가질 필요는 없다. 영남 남해안 일대에서 많은 자염을 만들었고, 상당수를 영남 내륙에서 운반, 소비했다. 통영에서 김해 앞바다에 이르는 섬, 바닷가에서 많은 소금을 만들었다.영남/“(전략) 동해(東海) 소금은 미치지 못하므로 황수(潢水, 낙동강) 좌우 연변 여러 고을은 모두 남쪽 소금을 먹는다./(중략) 나라 안 소금의 이익은 영남 같은 데가 없다. 명지도(鳴旨島, 부산 강서구 명지동)에만 매년 소금 여러 천만 섬을 구우며, 드디어 낙동포변(洛東浦邊, 경북 상주)에다 별도로 염창(鹽倉)을 설치하기까지 했다. 감사가 해마다 천만으로 계산하고 해평 고현(海平古縣, 구미시 선산군 해평면)에 해마다 소금 만 섬이 오니, 소금의 이[利]가 나라 안에서 첫째임은 이것으로도 알 수가 있다. 영남 감사의 녹봉은 팔도에 첫째이다. 내 생각에는 영남 여러 해변에 관염전(官鹽田) 수십 곳을 두어서(후략)자염은 1907년을 기점으로 서서히 천일염이 바뀐다. 일제가 일본과 대만에는, 당시로써는 획기적인, 소금 생산 공장을 세운다. 한반도에는 대만, 중국의 천일염 방식을 들여왔다. 인천의 주안염전이 시작이다. 주안염전의 천일염 제조 방법은 서해안을 따라 남쪽으로 내려간다. 충청도 안면도, 전남 무안, 신안, 목포 일대의 염전이다. 일제강점기, 해방 이후를 거치며 오늘날의 천일염이 시작되었다./맛칼럼니스트 황광해

2019-10-21

낙조, 그 아름다움을 위해… 칠곡 도덕암(道德庵)

미모사를 아는가?살짝만 건드려도 잎이 밑으로 처지고 싸늘하게 오므라드는 풀꽃이다. 뜬금없이 날아든 시끄러운 소리에 마음이 불같이 달아올라, 결국은 부족한 스스로에게 상처받아 의기소침해진 나는 한 포기 미모사가 되어 집을 나선다.능엄경에 ‘반문문성(反聞聞性)이라는 말이 있다. 어떤 소리를 듣고 있는 나를 다시 들여다 본다는 말이다. 나의 반문문성은 늘 한 발 늦게 행해져 스스로를 비참하게 만든다. 예기치 못한 상황에서, 감정의 노예가 되어 허둥대는 마음을 또 다른 내가 조용히 지켜보는 일은 쉽지가 않다.무작정 절을 찾아 팔공산 순환도로를 달린다. 리기다소나무와 적송들이 어울려 있는 초입을 지나자 적송 우거진 숲이 이어진다. 호젓한 평화에 마음이 즐겁다. 모든 경계가 사라지는가 싶더니 임산물 체취를 막는 커다란 가로펼침막과 길가에 쳐진 줄이 묘한 긴장감을 불러일으킨다.세상 모든 사물에는 눈과 입이 있다. 남이 가지지 않은 무언가를 내세울 수 있다는 것은 자칫 교만함으로 이어지기 쉽다. 불필요한 오해는 사고 싶지 않아 경사 심한 비탈길을 용을 쓰며 오른다. 도시의 소음과 불협화음을 피해 왔지만 삶은 장소와 때를 가리지 않고 따라 온다.높다란 콘크리트 기단 위에서 도덕암(道德庵)이 나를 지켜본다. 팔공산 자락에 있는 사찰이지만 절 이름을 따서 도덕산 도덕암이라 부른다는 독자적인 자존감이 무엇보다 마음에 든다. 컹컹 개 짖는 소리에 팔공산이 떨리고 공양주 보살이 반긴다. 위협적으로 보이던 덩치 큰 두 마리 개가 법당으로 들어서는 나를 보고서야 이내 온순해진다. 낯선 이를 식별하는 그들만의 지혜조차 크게 보인다.435년(눌지왕 18년)에 창건한 것으로 전해지는 도덕암은 968년(광종 19년)에 혜거국사가 대대적으로 중수하여 칠성암이라 칭하다 1854년 선의대사가 중수하여 도덕암으로 부른 후 영남 3대 나한기도 도량으로 알려진 암자다. 스님은 저녁 무렵에나 돌아오실 거라는 귀띔에 홀로 햇살 따가운 경내를 산책한다.800년의 풍파를 견뎌온 모과나무나 고려 광종이 혜거 국사를 왕사로 모시기 위해 이곳에서 사흘간 머물며 속병을 고쳤다는 어정수도 건성으로 지나친다. 자연석 축대 위에 나란히 앉아 있는 나한전과 산신각, 응진전 사이에 나도 전각처럼 서서 서쪽을 바라본다. 저 멀리 물결을 이루는 산들을 넘고 넘으면 피안의 세계에 이를 것만 같다. 내 안에 느닷없이 들어온 껄끄러움을 피해다니느라 지쳐 있던 나를 가만히 다독여 주는 이는 누구일까?경내는 적막할 만큼 고요하다. 보살님들은 기척이 없고 덩치 큰 개들도 나른한 오후에 취해 졸고 있다. 요사채 돌담 위에 핀 꽃들을 카메라에 담는데 가파른 경사길을 차 한 대가 올라온다. 부리나케 공양주 보살이 마중나가는 모습이 잡힌다. 그 종종걸음을 따라 내 눈도 호기심 가득 안고 비탈길을 따라나선다. 저녁 무렵에나 오신다던 주지 스님이 일찍 돌아오신 듯하다. 스님의 가방을 받아 들고 오순도순 대화를 나누며 올라오는 보살님의 환한 표정에서 잊고 있었던 옛날을 떠올린다.내 어린 날, 출타하신 할아버지가 돌아오면 어머니는 언제나 하던 일을 멈추고 달려나가곤 했다. 조부의 손에 들려 있던 가방이나 짐을 받아들며 웃는 얼굴로 맞는 것은 집안의 질서와 공경의 표현이었다. 적당한 거리와 적당히 예가 우러나던, 그 그립고 따뜻한 풍경들은 모두 어디로 사라졌을까? 소소한 풍경에서 도덕암의 숨결이 읽힌다.나를 키워준 아름다운 기억들과 흔들리며 사라져간 그리운 것들로 가슴 한켠이 허전하다. 햇살도 한껏 자세를 낮추고 휘어질 무렵, 스님은 모과나무 있는 쪽으로 방향을 틀어 이쪽으로 올라오신다. 퍼뜩 정신이 든다. 하필이면 나는 주지 스님의 방 앞을 서성거렸던 모양이다.조낭희 수필가운이 좋게 스님과 차담을 나눈다. 임종을 앞둔 환자처럼 누워 있는 겹겹의 산들과 피곤한 하루가 너울거리며 사라지는 서쪽 풍경이 커다란 유리문으로 들어온다. 깔끔한 이미지를 풍기는 법광 주지스님, 산사에서 마시는 캡슐커피조차 낯설지가 않다. 모과나무, 어정수, 낙조, 도덕암의 세 가지 자랑거리와 대를 이어 찾아오는 불자들이 많아 가족처럼 화목하다는 스님의 말씀을 듣는 동안 어느 새 도덕암이 내 안에 자리잡는다.커피를 마시면서 내 눈길이 자꾸 서쪽풍경을 향해서였을까? 스님은 내면을 바라보고 성찰하기를 바라시며 회광반조(回光返照)에 대해 말씀하신다. 사람이나 사물이 쇠멸하기 직전에 잠시 왕성한 기운을 되찾는 경우를 비유하는 말이기도 하다. 여자의 일생 중 세 번의 아름다운 때를 언급하시며, 스스로를 돌아보며 중후함을 갖춰야 할 마지막 시기의 아름다움을 당부하신다.어떠한 상황에서도 자신을 돌이켜 볼 줄 안다면, 그것이 부처님 자리에 들어서는 순간이리라. 멀고도 먼 길이지만 가는 길은 뿌듯하다. 중후한 아름다움, 커다란 과제 하나 안고 도덕암을 나서는데 저녁 공양하고 가라는 보살님의 따뜻한 미소가 암자를 밝힌다. 덩치 큰 개도 더 이상 짖지 않았다. 도덕암의 낙조는 결국 보지 못했다. 하지만 이보다 아름다울까.

2019-10-21

인간이기 때문에 갖지 않을 수 없는 한계

인간은 살아가며 수많은 한계와 마주한다. 어쩌면 자신이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 사이의 경계를 정하는 것이 ‘삶’이 아닐까. 태어남에서 죽음 사이에서, 인간은 누구나 자신이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결정하거나 결정하지 못한 채로, 또는 받아들이거나 받아들이지 못한 채로 살아가게 된다. 인간이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 사이에 명확한 경계가 있었다면 좋으련만, 언제나 그런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실제로 경험해 보지 않으면 그 한계는 결코 드러나지 않는다. 그 정도라면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했지만, 그렇지 않아서 충격을 받는 일도 있고, 때로는 충분히 할 수 있었던 일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해서 아예 하지 않는 일도 빈번하다.인간이 살아가면서 마주치는 한계는 지금까지 수도 없이 많은 위대한 문학의 주제로 다뤄져 왔다. 그것은 역설적으로 인간이 늘 마주치게 되는 한계들이 언제나 명확한 형태로 우리에게 주어지지 않기 때문일 터. 인간에게 있어 삶은 누구에게나 한 번 뿐인 것인 까닭이리라. 타인의 삶을 다룬 소설을 읽고 문학을 읽으며, 삶이란 어떤 것인가 하는 것에 대해서 알고 있는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정작 자신의 삶에서 도래하게 되는 한계라는 것에 대해 확신할 수 없다. 그래서 위대한 문학은 언제나 인간이 자신에게 도래한 한계에 대해 인식할 수 없다는 아픈 진실을 건드린다.어니스트 헤밍웨이가 1952년 쿠바에서 쓴 노인과 바다 역시 마찬가지이다. 이 작품 속 주인공 ‘산티아고’는 ‘늙음’이라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겪지 않을 수 없을 시간적인 한계에 직면해 있다. 당연하게도 그것은 시간적인 문제만이 아니라, 쇠약해가는 힘과 정신, 그리고 그로부터 초래되는 자기 확신의 문제와 관련된다. 분명 예전에는 전설적인 어부였을 테지만, 이제는 늙고 쇠약한 산티아고에게 사람들은 아무 것도 기대하지 않는다. 다만, 그에게서 여전히 신화적 환상을 보고 있는, 또 인간으로서 그를 동정하고 있는 아이 하나만이 그를 챙겨준다.하지만, 산티아고는 여전히 사자의 꿈을 꾸고 있다. 니체는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인간이 성장하는 단계를 세 가지로 나누어, 낙타와 사자, 어린아이로 나누고 있다. 자신이 정한 길만을 열심히 나아가는 낙타와, 그 단계를 넘어 누군가와의 인정 투쟁을 거쳐 자기 존재를 증명해야 하는 사자, 그리고 모든 것으로부터 초월한 어린아이의 단계가 그것이다. 산티아고는 자신의 늙음에 대해 받아들이기보다는 아직 사자의 꿈을 꾸며 자기를 증명하고자 하는 것이다. 세상에 어느 누가 그의 바람을 헛된 것이라 비난할 수 있을까.산티아고는 바람대로 커다란 청새치를 낚고 그와의 사투를 겪고 돌아온다. 그가 낚은 물고기는 돌아오는 길의 고난으로 인해 형체만 남았다. 그는 청새치의 뿔은 아직도 신화적 환상에 빠져 있는 아이에게, 머리는 지금까지 자신을 무시했던 어시장의 사람들에게 넘겨주고 스스로를 위해서는 아무 것도 남기지 않는다.사실 아무 것도 남지 않은 것은 아닐 것이다. 우리의 삶이, 하고자 하는 욕망과 한계 사이에서 결정되는 것처럼. 아무 것도 남지 않아도 그 곳에 무언가 의미가 남는 것처럼, 말이다. /송민호 홍익대 교수

2019-10-21

모바일 증명시대

머지않은 시일내에 종이 없이 모바일로 각종 증명서를 주고 받을 수 있는 모바일 증명시대가 열릴 전망이다. 이같은 전망이 가능하게 된 것은 데이터를 투명하고 안전하게 관리하는 블록체인 기술이 등장하면서 이 기술을 활용한 증명서 발급 애플리케이션(앱)이 상용화 초읽기에 들어갔기 때문이다.SK텔레콤과 KT, LG유플러스, 삼성전자, KEB하나은행, 우리은행, 코스콤 등 7개사는 컨소시엄으로 개발을 추진해 온 모바일 전자증명 서비스 이름을 ‘이니셜’로 확정하고 연내 정식 출시한다고 최근 밝혔다.이니셜 컨소시엄은 정보통신기술(ICT) 기업과 금융 기업의 강점을 융합해 편리하고 안전하게 이용할 수 있는 전자증명 서비스를 빠르게 사업화하는 게 목표다. 기본적인 이용 방식은 이니셜 앱 안에서 발급ㆍ제출을 원하는 기관의 증명서를 선택하는 것이다. 각 기관의 웹 페이지에서 제공되는 QR코드를 이니셜 앱으로 인식하면 증명서가 발급되는 방식으로 서비스를 구현한다. 우선 전국 6개 대학교의 제증명(졸업, 재학, 성적 증명 등) 발급 사이트와 연동해 자격 증명을 발급하거나 제출할 수 있는데, 이니셜을 통해 모교에서 한 번 발급받은 증명서는 기업 채용에 지원할 때 중복으로 제출할 수 있어 여러 번 내려받을 필요가 없다. 토익 성적표 발급이나 옥션에서 예술작품의 구매확인서를 취득하는 과정도 이니셜 앱 안에서 간편하게 처리할 수 있게 된다.앞으로 이니셜 컨소시엄에 참여하는 기관이 늘어나면 가능한 서비스들도 더 많아진다. 개인 대출에 필요한 기업 재직증명서, 근로소득 원천징수영수증 등 자격 검증 서류도 간편하게 제출할 수 있게 된다. 실손보험금 청구 때 진료비 영수증 제출 과정을 간소화하는 서비스도 검토하고 있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19-10-21

누가 사다리를 걷어차고 있는가?

신희선 숙명여대 기초교양대학 교수·정치학 박사“계급 아파르트헤이트가 생겨나고 있다”미국 사회의 불평등에 대한 로버트 퍼트넘의 지적이다. 한국 사회도 이와 다르지 않다. 부모들의 재력과 학력, 사회적 네트워크가 아이들에게도 대물림되면서 계급 분리가 일어나고 있다. 최근 교육부 특별감사로 적발된 대학 교수들이 미성년 자녀를 논문 공저자로 이름을 올린 사건만 봐도 단순히 연구윤리적 차원의 문제만은 아니다. 논문 공저자로 등재된 이들 자녀 다수는 학생부 종합전형으로 대학에 들어갔거나 해외 대학에 진학했다고 한다. 부모의 인맥과 연줄, 특권이 편입학 과정에 영향을 미치고 결과적으로 학벌이 세습되고 계층이 대물림 되는데 대학 사회가 진앙지가 되고 있다.공평과 공정의 가치가 모두 무너지고 있다. 과거 교육은 계층의 상향 이동을 가능하게 하는 사다리였으나 이제 “고등교육은 오히려 불평등을 일구는 기제”가 되고 있다. 출신 성분과 관계없이 자신의 노력만으로 ‘개천에서 용’이 될 수 있었던 시대는 끝났다. 더 높은 학력과 더 많은 사회적 자본을 갖고 있는 부모가 자신의 자녀들에게 득이 되는 방향으로 경쟁의 장을 왜곡하고 있다. 리처드 리브스는 20 VS 80의 사회에서 “불평등은 어린 시절에 시작되며 세대를 거쳐 전승된다”고 지적한 바 있다. 상위 20%가 기회를 ‘사재기’하기에 다른 아이들은 공정한 기회를 박탈당한다는 것이다. 학생들이 자신의 재능과 노력으로 좋은 대학에 진학하는 것은 사실상 전설이 되어버린 셈이다.현재 한국 사회의 불편한 문제의 본질은 ‘불평등’이다. 교육이 사회적 불평등을 고착화하고 있어 더 큰 문제다. 공평성의 측면을 고려해 만든 수시제도가 기회균등과 지역균형, 공교육 정상화라는 본래 취지와는 달리 운영되고 있음이 극명한 예다. 학생 개인의 노력보다 학부모의 재력과 관심, 교사의 부정이 개입할 여지가 있는 통로가 되어버렸다. 오죽하면 학생부종합전형을 ‘금수저’ 전형으로 부르고 있겠는가. 부모의 사회경제적 배경이 자녀들의 미래 학교를 결정하고 부모의 욕망이 자식으로 전이되는 이행기다. ‘억울하면 부모 탓을 해라’는 식의 부박한 논리가 교육 현실을 잠식하고 있다. 소수의 최상위권 학생에게만 모든 것이 집중된 나머지 학생들은 차별을 내면화하고 있는 것이다.누가 계층상승의 사다리를 걷어차고 있는가? SKY 대학을 정점으로 사회적 특권이 평생 카스트처럼 지배하고 있는 현실에 묻는다. 대학이 계급격차를 해소하기는커녕 신분과 위계를 더욱 견고히 만들고 있다. 집안이 좋으면 무임승차가 가능한 밀실문화, 성적만 좋으면 모든 것을 몰아주는 성적지상주의 구조가 문제다. 오는 28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민주평등사회를 위한 전국교수연구자협의회’ 주관으로 고등교육의 불평등 문제를 논하는 자리가 마련되었다. ‘캐슬의 구조와 캐슬 밖의 목소리’를 주제로 대학의 공공성을 어떻게 강화할 것인지 의견을 나누며 해법을 찾아보려는 노력일 터다. 승자독식의 피라미드 구조는 더 이상 민주주의 사회라고 말할 수 없다. ‘을의 민주주의’를 위한 정치혁명이 필요하다.

2019-10-21

평양 남북 ‘깜깜이 축구’의 내막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월드컵 지역예선 평양 남북 축구 경기에 대한 기대는 매우 컸다. 그러나 그 기대는 무(無)중계 무관중 경기로 우리를 실망시켰다. 평양 김일성 경기장의 남북 축구는 ‘깜깜이 축구’로 끝나버렸기 때문이다. 우리 축구팀은 남북 직항로를 포기하고 베이징을 경유하여 이틀 만에 겨우 평양에 도착하였다. 남북의 축구 대표 팀은 텅 빈 김일성 경기장에서 육박전에 가까운 거친 경기를 치른 것이다.우리는 오랜만에 열리는 남북 축구가 남북관계 개선의 계기가 되기를 바랐다. 그러나 북한 당국은 모든 협상을 배제한 채 관중과 중계가 없는 경기만을 허용하였다. 아시아축구연맹(AFC)도 경기 인원과 응원단의 차별 없는 비자 발급을 의무화하였는데 북한은 이를 무시한 것이다. 지난해 9·19 선언 시 문재인 대통령을 그렇게 환호하던 평양시민들은 도대체 어디로 갔는가. 북한 당국은 북미 회담이 기대되는 시점임에도 이를 정치적으로 이용하였다. 그러나 북한 당국의 이러한 태도는 많은 것을 잃게 하였다. 경기장의 무관중은 그들이 아직도 엄격히 ‘통제되는 전체주의 사회’임을 여실히 보여주었다.북한 당국이 금지시킨 중계방송도 스포츠의 보편적 보도 상식을 넘는 행위이다. 국제 축구연맹(FIFA) 규약은 스포츠의 ‘정치적 중립’을 의무화하고 있다. 북한의 처사는 북한이 언론의 자유가 없는 통제된 사회라는 사실을 스스로 입증한 셈이다. 북한 당국은 과거 정치적 필요에 따라 선수단과 응원단을 남한에 파견하여 정치적 선전의 도구로 활용하였다. 부산 유니버시아드, 인천 아시아경기대회, 지난해 평창올림픽에서도 그들은 대규모 미녀 응원단을 파견하여 선전효과를 노렸던 것이다. 이번의 북한의 무중계 방침은 아무래도 이해되지 않는다.우리는 북한 당국이 이러한 ‘깜깜이 축구’를 결정한 이유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하노이 노딜 회담 이후 남한 정부의 중재자 역할에 대한 불만에서 비롯되었다. 이는 북한이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에서 눈 흘기는 격이다. 북한 당국은 남한의 역할에 대해 최근에도 냉소적인 태도를 보였다. 특히 북한은 지난번의 한미 군사 합동 훈련과 최첨단 전투기 F35A등 도입에 대한 반응이다. 이들은 10여 차례의 잠수함탄도미사일(SLBM)의 시험 발사도 모자라 평양 축구 경기까지 압박용 카드로 선택한 것이다. 일부에서는 북한의 축구 실력이 남한에 현저히 뒤졌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모두가 북한의 유치한 발상이다.어떤 이유건 북한의 이번 처사는 북한 스스로 ‘비정상 국가’임을 스스로 보여주었다. 북한은 중요한 외교적 담판이 있을시 소위 ‘벼랑 끝 전술’을 구사하였다. 그러나 북한의 이러한 전술은 이를 간파한 미국이나 한국이 이제는 수용하지는 않는다. 결국 북한은 이번 ‘깜깜이 축구’에서 얻은 것은 없고 오히려 잃은 것이 많을 것이다. 북한의 처사를 비난하는 국제적 여론만 악화시켰을 뿐이다. 그러나 북한 노동신문은 김정은과 여동생 김여정은 백두산에서 백말 타는 모습만 보이며 체제의 안정을 과시하고 있다. 정부도 북한의 ‘깜깜이 축구’에 대해 단호한 입장을 보여야 할 것이다.

2019-10-20

새(鳥)조차 귀를 기울이게 하는 남자

힘을 다해 주위 사람들을 사랑한 인물이 있습니다. 십자군 전쟁을 일으키며 종교 권력을 이용, 탐욕을 채우려던 당시의 종교 권력층과는 정반대로 걸었던 인류의 스승입니다. 앗씨시의 성자로 잘 알려진 성 프란체스코입니다.맑고 순수한 삶의 방식으로 신과 이웃을 섬겼던 성 프란체스코의 삶에 신기한 일이 많았습니다. 대표적인 것은 자연 만물과 소통하는 능력입니다. 성 프란체스코는 해와 달, 나무와 숲, 새와 물고기, 온갖 동물들과 대화가 가능했습니다. 그들을 “사랑스러운 형제들”이라고 인격화해서 불렀습니다.한 번은 프란체스코가 새들이 떼 지어 있는 것을 보고 가까이 다가가서 새들에게 설교했습니다. “나의 새(bird) 자매들이여! 여러분에게 평화를 주시기를 기원합니다.”그러자 새들은 눈을 반짝이고 귀를 쫑긋 세우며 프란체스코의 말을 경청했습니다. 목을 늘리거나 날개를 빼고 입을 벌려 기이한 몸짓으로 흥겨워하며 그를 응시했지요. 프란체스코는 수도복 자락으로 새들을 스치며 한가운데를 오가면서 대화했습니다. 성호를 그어 새들을 축복하자, 새들은 기쁜 듯이 몸짓을 하며 사방으로 날아갑니다.‘경청’ 책을 쓰는 과정에서 자료를 수집, 경청의 위대한 인물을 찾아 일화를 모았던 기억이 납니다. 빌 클린턴, 기업인 등 경청에 관한 유명한 일화들이 많이 있었지만, 역사상 ‘듣기’에 관한 세계 챔피언은 성 프란체스코였습니다. 그가 쓴 평화의 도구라는 시에는 경청의 핵심 원리가 고스란히 들어 있습니다. “이해받기보다는 이해하게 하소서.”러시아 혁명을 주도했던 레닌은 말년에 이렇게 후회합니다. “내 생애에 성 프란체스코 같은 이가 몇 분 있었다면 나는 피비린내 나는 혁명을 일으키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나를 부각시켜야 하는 고단한 세상살이, 어떻게 하면 성 프란체스코의 삶을 닮아갈 수 있을지 고민하는 새벽입니다./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대표

2019-10-20

미술전시 홍보의 중요성

김태곤 대백프라자갤러리 큐레이터밤낮으로 일교차가 심해지며 본격적인 가을을 실감하게 된다. 노랗게 물든 단풍나무 가로수만큼이나 가을의 분위기도 무르익어 간다. 지역 화랑가에는 크고 작은 전시가 열려 깊어가는 가을만큼이나 문화적 풍요로움을 선물해주고 있다. 화가들은 예술에 대한 열정과 창작의욕으로 작품을 제작하지만, 정작 전시회를 알리는 홍보방법과 필요성에는 적절한 방법을 알지 못해 아쉬움을 주고 있다. 전시는 작가 본인은 물론, 작가의 창의력과 장인정신이 담긴 작품이 일반인과 호흡하는 소통의 장이다. 따라서 전시는 관람객의 존재를 필수 전제로 하고 있다. 아무도 찾지 않는 전시는 존재가치가 없으며, 소통이 불가능해진다. 작품은 전시를 통해 대중에게 알려지고 평가받을 때 비로소 예술품의 가치를 인정받는 것이다. 힘들게 준비한 작품전을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새로운 미의식과 미술양식을 관람객들이 공감하는 시간은 성공적인 전시홍보를 통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다.일반인들이 작품을 만나기 위해서는 우선 전시 정보를 접할 수 있어야 한다. 어떤 전시가 어디에서 열리는지, 앞으로 열릴 전시는 어떤 것인지를 알아야 전시장을 찾아나 설 수 있다. 그리고 일반인들은 미술 관계자가 아니기 때문에 전시 정보를 얻는 방법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 중 가장 널리 활용되고, 대중에게 익숙한 경로가 바로 언론매체에 실리는 미술기사나 TV방송을 통해 전시 안내이다. 여기서 말하는 언론매체의 미술기사는 홍보활동의 성과물이다. 미술뿐 아니라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겠지만, 살아 숨 쉬는 정보, 유용한 정보, 작품과 세상의 소통을 가능하게 하는 전시 홍보 활동도 나름의 기준과 원칙이 있다.작가들은 본인의 전시를 알리는 보도자료 작성에 대해 한번쯤을 고민해 봐야 할 것 같다. 그러기 위해선 먼저 언론기자들이 요구하는 ‘전시 보도자료’는 육하원칙에 따라 사실에 입각한 정보를 바탕으로 전시회의 중요도 순서로 작성하면 좋다. 누가 봐도 간결하고 알기 쉬운 용어와 문장으로 사진과 같은 시각 자료와 함께 요점을 정확히 전달하면 성공적인 전시회를 위한 출발점이 되는 것이다. 보도자료는 공식자료이다. 언론홍보를 위해 언론사에 배포하는 문서이기 때문에 공식적인 성격성을 띤다. 허위와 왜곡, 과장은 삼가야 한다. 그리고 전시 정보의 실체를 쉽게 파악할 수 있도록 주제를 명확하게 밝혀야 한다. 보도자료에 전시 주제를 파악할 수 있는 내용이 없으면 전시의 성격과 특징을 헤아리기 힘들기 때문이다. 이러한 형식으로 보도자료를 작성하면 된다. 홍보방법에 있어 대중매체의 세계는 다른 분야처럼 끊임없는 변화와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파급효과의 증대, 정보의 전문화와 다양화, 언론시장의 발전, 온라인 공간의 등장 등으로 인해 어제와 오늘의 비교가 불가능 할 정도이다. 언론매체의 중요성 역시 시간의 흐름에 따라 커질 수밖에 없다. 정보의 중요성과 함께 홍보에 대한 새로운 관심이 앞으로는 작가의 작품세계를 대중들에게 알리는 절대적 수단이 될 것이다.

2019-10-20

전화금융사기(보이스피싱) 누구나 당할 수 있다

황태일 포항남부경찰서 수사과장보이스피싱 유혹에 누구는 속고 누구는 안 속고의 문제가 아니다. 몰라서 속는 것은 절대 아니다. 지능화된 범죄 수법에 노인, 학생, 지식인 등 누구든 당할 수 있는 것이 현실이다.보이스피싱의 피해는 지난해까지 전국적으로 19만9천여 건이 발생해 피해액이 2조원이 넘고, 피해 사례도 매년 증가하고 있다. 포항남부경찰서의 경우도 피해가 지난 2017년 178건(피해액 20억원)이 발생한데 이어 이듬해는 252건(25억원)으로 증가했다. 올해 9월까지 200건(30억원)이 발생했다.포남서는 금융기관 등과 연계해 보이스피싱 예방 활동을 했고, 그 결과 올해 9월까지 현금 인출책 등 280명을 검거해 그중 3명을 구속, 270여명을 형사입건했다.보이스피싱의 범행 수법은 크게 범죄연루형과 대출 사기형으로 나뉜다. 범죄연루형은 당신의 계좌에 있는 돈이 범죄에 연루됐다며 돈을 인출해 자신의 집 냉장고 등에 보관하라고 안심시키는 수법이 주를 이룬다.대출 사기형은 급전이 필요한 자영업자 등을 상대로 대출상담을 하며 신용등급이 낮아 대출이 되지 않으니 거래 실적을 높여야만 대출이 된다고 속이는 수법이다. 최근에는 문화상품권 구매, 악성 앱설치 유도 등의 신종수법이 개발되는 등 날로 진화하고 있다.보이스피싱은 전화상의 목소리를 타고 범행하기 때문에 누구나 주의를 기울이면 얼마든지 피할 수 있다. 피해를 입지 않기 위해서는 “경찰과 검찰, 금융감독원은 그 어떤 경우에도 전화상으로 개인정보를 요구하지 않는다”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 수사기관 또는 금융감독원 등을 사칭한 사람으로부터 전화를 받게 되면 일단 상대방의 말을 듣기 전에 전화를 끊어야 한다. 만약 피해를 당했다면 112 신고 또는 해당 금융회사 콜센터를 통해 사기 계좌에 대한 지급 정지 요청을 해야 한다.최근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단순가담자가 되어 경찰서를 방문하는 사람도 있다. 보이스피싱 일당에게 통장이나 휴대폰 개설 명의를 일정액의 현금을 받고 대여해 주었다가 자신도 모르게 범행에 연류된 사례다. 피해를 막기 위해서는 시민 스스로 개인정보보호에 대한 세심한 관리가 필요하다.보이스피싱의 수법은 날이 갈수록 교묘해지고 발전하고 있고, 피해를 당하면 회복이 어렵기 때문에 모르는 사람으로부터 전화를 받는 순간 일단 보이스피싱 전화라고 의심부터 하고 접근해야 할 것이다. 가족이나 동료 등 주변 사람들 일상 행동에 관심을 가져주는 것이 최선의 범죄 예방책이 아닌가 생각한다.

2019-10-20

황당무계한 북한

얼마전 백마 타고 백두산에 오른 김정은의 모습을 세계 언론이 관심 있게 다뤘다고 한다. 백마 탄 김 위원장의 백두산 정상등정을 정치적 의미로 해석한 것이다. 조만간에 북한에서 중대한 정치적 시도가 있을 것 같다는 내용이다. 북한에서 백마는 백두혈통의 상징이란 점을 안다면 김정은의 백두산 방문이 다분히 의도된 정치 게임으로 해석할 수 있다. 백두혈통이란 김일성 직계가족을 일컫는 말이다. 김씨 일가로 이어지는 세습 통치에 대한 정당성을 부여하는 상징적 선전물이다. 실제로 북한 곳곳에는 백마 탄 김씨 일가의 그림이 많이 전시돼 있다.세계 언론이 관심을 보이는 것은 김 위원장이 과거에도 중대 결심에 앞서 백두산을 방문했다는 사실이다. 이번 방문도 이런 점에서 곧 중대한 결정이 있을 거라는 추측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일반인의 눈에는 허무맹랑한 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일국의 지도자가 첫눈 내리는 날에 맞춰 백마 타고 백두산에 올라간다는 사실이 넌센스처럼 보인다. 방문 날짜도 알 수 없고 취재기자 동행도 없었던 백마 탄 사진만 두고 중대 메시지 운운하는 것이 우스꽝스러워 보인다는 것이다.더 황당한 일은 김 위원장의 백마 탄 사진이 언론에 보도되기 직전 북한에서 있은 남북 간 축구경기다. 축구 사상 초유의 무관중, 무중계 상태가 벌어진 것이다. 29년 만에 성사된 남북 축구경기를 볼 수도 없고 들을 수도 없었으니 이야 말로 황당무계하다. 축구경기는 욕설과 폭행이 난무해 전쟁을 방불케 했다 한다. 손흥민 선수는 “다치지 않고 돌아 온 것만 해도 다행”이라 설명했다. 한국의 평화적 제스처에도 미사일 발사만 연발하는 북한의 일탈된 행동과 축구경기에서 보여준 그들의 태도가 북한의 진면목이다./우정구(논설위원)

2019-10-20

‘입비뚤이들’의 참말

안재휘 논설위원“지금 공무원들은 나라가 망할 때까지 입을 다물고 있겠다는 심사다. 이는 내가 배웠던 충신(忠臣)의 자세가 아니다” ‘조국 대란’ 광풍에 묻혀 별로 알려지지 않았지만, 얼마 전 국장급 공무원 한 사람이 파면됐다. 한민호 전 국무총리소속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 사무처장 이야기다. 그의 핵심 파면 사유는 ‘근무시간에 페이스북에 VIP(대통령)와 정부를 원색적으로 비판했다’는 것이었다.한 전 사무처장의 이력은 특이하다. 그는 대학 시절 운동권에 몸담았다가 무기정학을 당해 간신히 졸업했다. 고등학교에서 한동안 역사교사를 하다가 ‘공산주의를 하려면 독재를 할 수밖에 없다’는 깨달음으로 전향한 뒤 1994년 행정고시를 거쳐 문체부 공무원이 된 인물이다. 재작년 문체부 노조 투표에서 ‘바람직한 관리자’ 부문 1등으로 뽑혔던 그에게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조국 대란’의 여파 속에 집권세력 안에서도 소위 ‘소신 발언’이라고 불리는 딴소리들이 불거지기 시작했다. 정성호 민주당 의원은 국회 대검찰청 국정감사에서 “정치인들이 자기 정당의 정파적 이익에 부합되면 ‘검찰이 잘했다’ 칭찬하고, 우리 정파에 불리한 사법 절차가 진행되면 비방과 외압을 행사한다”면서 “그런 행태야말로 사법농단”이라고 싸잡아 비판했다.같은 당 이철희 의원의 튀는 발언도 눈에 띈다. 그는 서울고법·서울중앙지법 국감장에서 지난 2017년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 구속영장 기각 당시를 거론하며 “2년 만에 여야가 바뀌었다. 이게 뭐냐. 창피하다”면서 “부끄러워 법사위원 못하겠고, 국회의원 못 하겠다”고 한탄했다. 이 의원은 자신의 블로그에 참회록을 쓰며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정부·여당이 밀어붙이고 있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에 대해 쓴소리를 내놓은 금태섭 민주당 의원의 소신 발언 또한 눈길을 끈다. 금 의원은 “전 세계 어디에도 공수처 유사 기관은 없다”고 상기하며 “수사·기소 분리가 글로벌 스탠다드이고 검찰개혁 방안도 분리하려는 것인데, 왜 공수처는 수사권과 기소권을 다 가져야 하냐”고 지적했다. 그는 작금 민주당 지지세력 안에서 영락없는 ‘미운 오리 새끼’ 신세다.‘조국 대란’ 한복판에서 하나의 변곡점을 형성했던 인물인 김경율 전 참여연대 집행위원장(회계사)의 말은 더욱 신랄하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조국 사태는 무능한 진보가 부패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었다”고 진단하고 “진보지식인들의 무비판적 태도는 단순한 ‘분열’이 아니라 ‘몰락’”이라고 단정했다.따지고 보면 지금 뒤늦게 ‘바른말’에 나서는 집권세력 인사들은 하나같이 나라를 이 꼴로 만드는데 앞장선 입비뚤이 궤변론자들이다. ‘입은 비뚤어져도 말을 바로 하랬다’는 속담이 떠오른다. 가증스럽기는 하지만, 이제라도 참말을 하니 다행이라고 여겨야 할까. 파면당한 한민호 전 사무처장의 항변이 여운을 남긴다. “내가 페북질로 징계를 받아야 한다면 ‘죽창가’ 등 폭풍 페북질을 하던 조국은 왜 괜찮은가.”

2019-10-20

청년에게 희망과 미래를

최영조경산시장경산은 경북에서 5년 이상 인구가 증가하고 있는 유일한 시로 15∼29세 청년층 비율은 18.6%로 경북에서 두 번째로 높고, 평균 연령도 40.6세로 젊은 도시이다.인구의 유입은 택지개발과 대중교통망의 확충, 산업단지를 통한 일자리창출 등이 주요 요인이다.특히 2022년까지 준공될 경산지식산업지구는 차세대 건설기계부품특화단지 등 6개 대형 국책사업을 성공적으로 마무리 중이며 화장품산업, 경북권역재활병원 등 경산 전역에서 미래 신성장 사업들을 야심차게 추진해 가고 있다.여기에 더해 2017년부터 ‘경산발전 10대 전략’을 신형엔진을 가동하며 10개 대학에 170여개 연구소를 가진 지역특색을 살린 4차 산업혁명을 선도하고 있다.또 2030년대를 준비하기 위한 ‘희망경산 4.0’이라는 중장기 발전계획을 전문기관 용역으로 수립 중으로 경북의 중심으로 비상하기 위한 준비를 착실히 하고 있다.그러나 경산에도 강점과 기회만 있는 것은 아니다. 전자·전기·자동차부품 등을 제조하는 뿌리산업이 80% 이상으로 대부분 대기업에 납품하는 산업구조로, 최근 내수부진 등에 따른 제조업의 성장세 약화, 전기자동차의 시장변화로 주력산업인 자동차부품 산업의 위기를 맞고 있다.지역대학 정원감축과 인구구조 변화에 따른 위기에 소득의 역외유출, 부자와 창조계급의 유출이라는 문제도 여전히 남아 있다.이러한 문제에 대해 경산시는 크게 두 가지 방향으로 대응하고 있다.먼저, 기존 뿌리산업은 RD기관을 유치해 탄소, 타이타늄 등 첨단 신소재를 활용한 복합재 기술개발 지원 등 기술고도화와 수요처 다변화를 꾀하고 사물 무선충전 산업과 디지털 뷰티산업 등 새로운 신전략 산업을 육성해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착실히 대응하고 있다.특히 경북도의 메가 프로젝트 신산업과 연계해 전기 차량, 드론, 사물 무선충전 등 사업을 추진한다.주거와 상업, 문화, 교육, 레저기능을 갖춘 고품격 복합 주거공간을 조성하고 청년인구와 신혼부부, 중장년과 노년을 위한 도시조성을 개발전략으로 삼고 있다.대학의 어려움을 대학발전협의회를 정기적으로 개최해 파악하고 대학 일자리센터지원 사업, 산학협력 선도대학 육성사업 등을 통해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다.경산시가 주목하고 있는 것은 4차 산업혁명 시대의 미래 선도사업이다.경북글로벌게임센터를 중심으로 다양한 게임 산업 지원에 1인 미디어 크리에이터 양성사업을 추진하고 웹툰 창작체험관을 개관하는 등 게임·방송·만화 등의 콘텐츠산업 등 청년 일자리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청년들의 창업을 지원하는 사업들도 하나둘씩 본궤도에 오르고 있다. 새로운 직업군으로 주목받고 있는 유튜버를 육성하는 ‘청년 소셜창업 크리에이터 아카데미’에서 지난해 교육받은 6명이 이미 유명회사와 계약해 활동하고 있으며, 1인 미디어 크리에이터들의 콘텐츠 창작공간도 9월부터 본격 운영에 들어갔다.공유주방에서 고정비용 없이 외식업 창업의 모든 과정을 경험할 수 있는 ‘청년들의 부엌’이 지난 8월부터 운영 중이며 최종 2개 팀이 개별 주방에서 마지막 실전영업과정을 진행하고 있다.청년들의 유망 스타트업 아이템을 발굴 육성하는 ‘경산 청년희망 창업 오디션사업’도 순항 중이다. 지난해 선발된 7개 팀 중 6개 팀이 아이디어를 상용화해 판매 중이고 1개 팀도 창업을 준비하고 있다. 청년 창업가들이 시제품을 바로 만들 수 있는 청년 공동작업장과 청년벤처를 위한 공유오피스 또한 내년 상반기까지 조성해 나갈 예정이다.이는 청년 스타트업의 생태계를 더 넓혀 가기 위한 단계에서 필수 공간이다.청년문화와 창업·커뮤니티 거점을 육성하는 사업이 최근 경북도의 ‘청년행복뉴딜 프로젝트 선도 사업’으로 선정되어 내년부터 4년간 73억원을 투입해 서울과 수도권 못지않은 생태계를 대학 주변 2곳에 조성한다.경산이 지향하는 미래 도시 모습은 청년이 자신의 꿈을 펼치며 행복을 누리고 모든 시민이 살기 좋은 글로벌 스마트도시다.

2019-10-20

끄적이는 삶이 내게 준 선물

박현미 회사원종이에 낙서하듯 끄적이는 게 좋다. 수업 시간에도 회의 시간에도 집중하지 못하고 이것저것 적어가며 무료한 시간을 달래곤 했다. 본격적으로 습작을 시작하면서 쓰는 행위는 나를 자유롭게 풀어내는 시간이자 동시에 사유를 깊게 해 주는 계기가 되었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고 그것을 쓴다는 것만으로도 묘한 희열을 느끼고 정체를 알 수 없었던 욕구 또한 충족되는 기분이 든다. 내가 살아있음을 확인한다.그냥 쓰는 것, 누구의 눈치를 볼 필요도 없고 평가 따위는 더더욱 필요하지 않은 시간이며 나를 회복하는 순간이다. 글을 쓰는 시간만큼은 자신에게 그 어느 때 보다 진솔할 수 있다. 어떤 것에도 종속되거나 얽매이지 않고 오롯이 나만의 생각과 감정을 마주하는 것이다. 누군가 내 글솜씨를 알아주거나 감탄해주는 일은 중요하지 않다. 단지 내 이야기를 주절주절 연습 삼아 써 내려가고 나 자신과 자유로운 대화를 하면서 감정을 배출하는 그 자체로 충분하다.글이 명확해져 간다는 것은 나 역시 구체화해 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들여다보며 나 자신에게 좀 더 관심을 보인다는 것이다. 어떤 대상에게 관심을 가지면 더 잘 보고 더 사랑하게 된다. 초점을 내게 맞추고 사랑하고 아껴주는 것은 그래서 중요한 일이다. 한 발짝 물러서서 제삼자의 관점으로 바라보고 생각하며 답을 구해야 한다. 최대한 객관적인 자세를 유지해 보려 애를 써본다. 이런 시간이 늘어나면서 사유하는 힘이 조금씩 길러지고 편협한 생각의 범위가 넓어지는 것을 느낀다. 상한 감정에서 빠져나오는 면역력도 조금씩 늘어갔다. 꼭 그렇지 않더라도 막연한 문제들이 점점 명료해지는 것을 느낄 때도 많다. 뚜렷이 알 수 없는 불안으로부터 안정을 찾기도 했다. 이렇게 쓴 내 글을 다시 읽어보면 알 수 없는 용기 비슷한 것이 불쑥 생기기도 했다.처음 나를 향한 질문의 글들은 대부분 부정적 감정을 배설한 밭이었다. 그것들을 거름 삼아 씨앗이 뿌려졌는지 어느 순간부터는 조금씩 긍정의 힘을 가진 이야기들이 자라나기 시작했다. 천천히 싹이 자랐나 보다. 이것은 실로 내게 큰 기쁨이자 벅찬 감동이 아닐 수 없다. 하루를 시작하는 매일의 짧은 글쓰기는 조금씩 나를 성장시키고 힘을 더해주고 있다. 글을 끄적거리고 있는 동안 나는 특별한 존재로 자신을 반기며 마중한다. 의식하는 나와 무의식의 내가 비밀을 공유한 친구가 된 기분이랄까? 써 내려간 글을 보며 만족에 빠진다. 나는 내가 가장 친애하는 독자이자 작가다. 일상 속에서 의미 없이 시간을 흘려보낼 때도 내 글은 공허함을 덮어준다.이렇게 내 끄적거리는 글쓰기는 비밀스러운 대화의 추억으로 쌓여간다. 이 보물은 자신감의 밑바탕이며 기죽지 않되 거만하지 않은 나로 성숙시켜 준다. 내게 이런 끄적임은 강하면서 유연한, 어제보다 조금 더 나은 사람으로 나를 만들어주는 중요한 행위이자 의식이다. 멈출 수도 멈추어서도 안 되는 일과로 변했다.운동하고 여행을 가고 맛있는 것을 먹는 모든 행위가 치유의 순간이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원초적인 회복의 계기가 되어 준 것은 읽기와 쓰기였다. 다른 이의 글을 먹으며 커갔고 내 글을 먹으며 딱히 표현하기 어려운 단단함이 생긴 것을 느낀다. 소심하고 차분하던 일상의 글들은 어느 순간 갑자기 거침없기도, 대담해지기도 했다. 이 모든 시간과 함께 나도 변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삶이라는 마라톤에서 승리하기 위한 완벽한 방법은 있지 않을 것이다. 공감받지 못하는 크고 작은 고민 속에서 방황할 수도 있다. 그럴 때 나만의 이야기를 써보는 것은 어떨까? 화려한 글을 쓸 필요는 없다. 대단한 글을 쓰지 않아도 괜찮다. 꼭 누군가에게 보여주지 않아도 된다. 매일 일정 분량 글을 쓴다는 것은 생각만큼 쉬운 일은 아니다. 짧게라도 의지적으로 시간을 내고 의자에 엉덩이를 붙여야만 한다. 바쁜 일과 중 미뤄지거나 건너뛸 수도 있지만, 하루에 한두 줄 나에 대한 기록을 놓지 않으려 한다. 나만의 노트에 써 내려가는 기록은 나 자신을 새롭게 하고 빛나게 해 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쓰고 내일도 쓰는 일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2019-10-20

과학자의 은퇴

서의호 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포스텍의 은퇴 과학자 교수는 이미 100명을 넘어섰다. 1986년 설립 초기 해외에서 귀국한 교수들의 대부분은 30대였고 그 교수들의 은퇴행렬이 절정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한국의 산업 발전을 이끌어온 50년대와 60년대 초반에 태어난 ‘베이비부머’ 세대는 당시 초등학교 교실은 한 반에 90명이 공부를 했고 교실이 모자라 오전반, 오후반이 있을 정도로 붐비던 시절이었다. 이들의 은퇴가 본격화되고 있는 것이다.문제는 인문계도 문제이겠지만 과학기술 분야의 전문인력·기술 공백 문제가 현실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과학기술 분야 정부출연 연구기관은 내년까지 500여 명의 연구자가 정년퇴임하고 전국대학의 이공계 교수는 1천명이 넘는 과학자가 정년퇴임할 것으로 예상된다.특히 전국 4대 과학기술원 및 포스텍의 이공계특성화 대학은 10년 내 퇴직하는 교원이 30%에 달한다고 한다.해외에서 유치해 수십년간 연구비를 지원하여온 고경력 과학기술인들이 교육과 연구 현장을 떠나는 건 국가 인력 활용 면에서 큰 문제점을 안고 있다.최근 20년간 노벨과학자 수상자 중 60대가 80%에 달한다는 통계와 금년 노벨과학상 화학 부문에서 최고령 수상자(존 B. 굿이너프·97세)가 탄생했다는 것을 생각할 때 현재 60대 초중반으로 되어 있는 과학자와 교수들의 은퇴는 이른감이 있을 뿐만아니라 전문성을 도외시한 법이다.미국대학의 경우 교수와 과학자의 강제적인 은퇴가 없다. 스스로 은퇴시기를 결정할뿐 제도적으로 연구력이 왕성한 교수와 과학자를 강제로 은퇴시키지는 않는다. 얼마전 스탠포드 대학을 방문하니 80년대 필자를 가르쳤던 교수들이 지금도 70∼80대의 나이로 강의도 하고 연구에 매진하고 있었다.한국의 경우 대학은 그래도 형편이 나은 편이다. 특임교수나 연구교수로 남아 강의나 연구를 계속하거나 다른 대학이나 연구소로 가서 계속 강의와 연구를 하는 경우는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기업에 취업을 하거나 벤처회사를 창립하는 경우도 있다.반면 연구소에서 은퇴한 과학자들은 많은 경우 충분히 그 전문성이 활용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측면에서 과학자들이 최근 은퇴 후에도 연구 및 산업 현장에 보탬이 될 수 있도록 하자는 논의가 이어지고 있는 것은 시의적절하다고 본다.은퇴 과학자들의 활용 방안을 장기투자가 절실한 부분에서의 RD(연구·개발)지원이나 자문, 고급인력이 기피하는 중소기업에 대한 기술 자문 등이 있다.대학에서는 기초과학과목에 대한 강의 등을 들 수 있고 학생들의 진로 및 미래상담 등에 오랜 경험과 경륜을 활용할 수 있다. 정부에서는 인증 실사 업무 등에선 평가자를 못 구해 안달이라고 한다. 이런 곳에 은퇴 과학자들을 쓰면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미국처럼 당장 은퇴나이를 없앨 수는 없다고 해도 퇴임 과학자, 교수의 전문성과 경험이 여러 가지 정책과 제도 수립을 통해 활용되도록 해야 한다. 전문성에 있어서 강제적 퇴임 자체의 개념을 없애는 것이 필요하다.

2019-1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