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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장님 코끼리 만지기’란 말이 있다. 불교 열반경의 일화에서 비롯된 말이다. 인도의 경면왕(鏡面王)이 여러 맹인들에게 코끼리를 만져보게 하고 어떻게 생겼는지 말해 보라고 했다. 상아를 만져본 사람, 귀를 만져본 사람, 머리를 만져본 사람, 코를 만져본 사람, 다리를 만져본 사람, 배를 만져본 사람, 꼬리를 만져본 사람이 저마다 다른 대답을 했다. 그들 각자는 직접 생생하게 체험을 한 것이니 누가 다른 소리를 하면 절대로 용납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옥신각신 서로 제 말이 옳다고 싸운다면 얼마나 우스꽝스런 노릇이겠는가.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이 다반사로 일어나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제 손으로 직접 만져본 구체적이고 생생한 체험이 오히려 사실을 오해하고 왜곡하는 편견과 고정관념을 낳을 수 있으니 과연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고 하겠다.대한민국이라는 코끼리에 대해서도 맹인모상(盲人摸象)식의 편견과 왜곡이 난무하고 있다. 자신이 겪어 알고 있는 부분을 전체인 양 일반화하거나 이념과 진영논리에 빠져서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대로 듣는 사람들끼리 세력을 형성해서 생각이 다른 사람들은 악으로 몰아 적대시하는 대결구도로 치닫고 있다. 대한민국을 제대로 평가하기 위해선 정부 수립 당시와 현재를 비교해 보는 것이 가장 타당한 방법이 될 것이다. 정치·경제·사회·문화 각 방면에서 어느 정도의 발전과 성과를 거두었는지 따져 보면 성장과 성공을 한 나라인지 실패와 퇴행을 해온 나라인지를 알 수가 있다. 또 한 방법으로는 다른 나라들과 비교를 해보고 상대적인 평가를 내리는 방법이다. 대한민국이 출발할 당시에 비슷했거나 오히려 나은 나라들이 지금은 어떠한지를 비교해보면 성패에 대한 판단이 나올 것이다.어느 경우를 보더라도 우리나라는 세계가 놀랄 정도의 성공을 한 나라임에 틀림이 없다. 다만 그 과정에서 독재니 혁명이니 쿠데타니 하는 시행착오도 있었지만, 그런 분쟁과 부작용도 결국에는 산업화와 민주화라는 성장과 발전의 밑거름이 됐다. 그것은 지난 정권들에 잘잘못이 있었지만 과보다는 공이 더 컸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소위 좌파들이 내세우는 혁명이니 개혁이니 하는 논리는 기왕의 대한민국을 부정하고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전혀 새로운 세상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조국사태’로 드러난 좌파세력의 민낯은 그것이 얼마나 허황된 망상이고 자가당착인가를 알게 한다. 심지어 일부 교수나 작가들까지 ‘조국’을 비호하고 나선 것은 우리 사회에 뿌리 내린 편향성이 얼마나 심각하게 최소한의 정의나 윤리마저도 훼손하고 있음을 보여준다.대북정책에 대해서도 장님 코끼리 만지기 식의 접근으로는 근본적인 해결을 기대할 수 없다. 김일성 일족을 신(절대존엄)으로 떠받드는 사이비종교집단에 불과한 것이 북한이라는 코끼리의 실상일진대, 김정은 일당은 대화나 타협의 상대가 아니라 수백만 원혼들과 칠천만 민족의 이름으로 처단해야할 대상일 뿐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2019-10-17

시간에 대하여

일주일은 168시간입니다. 새로운 계획에 참여하자고 설득하면 대부분 이렇게 반응합니다. “정말 좋겠는데, 시간이 없어서요.” 화장품 업체 매리 케이(Mary Kay)사 회장 매리 케이 여사가 신입 사원들에게 항상 들려주는 조언이 있습니다. “30분만 일찍 일어나세요. 1주일이면 210분을 벌 수 있습니다. 3시간 30분이죠? 1년은 52주니까 182시간을 확보하는 셈이에요. 우리 회사의 1주일 근무시간이 40시간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매일 30분 일찍 일어나 독서나 자기 계발에 투자할 수 있으면 연간 4.5주의 새로운 근무 시간을 얻는 셈이에요. 한 달 조금 넘지요? 매일 30분씩 일찍 일어나는 것만으로도 여러분은 1년을 12개월이 아닌 13개월을 사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이 조언은 젊은 시절 저에게 큰 영감을 주었습니다. “새벽 30분이면 1달 근무시간과 맞먹는 새로운 시간을 준다고? 만약 3시간을 투자할 수 있으면 6개월을 벌 수 있겠어!” 매력적이었습니다.그런데 이 이론과 정반대로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여성 언론인 로라 밴더캠입니다. “시간을 아껴서 원하는 삶을 만드는 게 아니고 원하는 삶을 만들어 나가면 시간은 저절로 아낄 수 있다.” 즉, 사람들에게 시간이 부족한 근본적인 이유는 시간을 쥐어짜는 기술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삶의 목적’이 분명치 않기 때문이라는 겁니다.시간은 탄력적인 생물에 가깝습니다. 쥐어짜려 하면 실패하지만 정말 필요로 하면 늘어나기도 하고 줄어들기도 하는 존재입니다. 그 필요는 우리 마음이 선택하는 법이고 무엇을 간절히 마음으로 원하면 그 원하는 곳에 시간을 쓰게 되어 있는 법이기 때문이지요. 시간을 못 만드는 이유는 그만큼 절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한 주를 마무리하는 금요일. 내게 주어진 168시간을 어떻게 채웠는지 돌아보는 시간입니다./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대표

2019-10-17

입단속

‘신상구(愼桑龜)’라는 말 속에는 전해오는 고사가 있어 소개한다.옛날 효자로 소문난 젊은이가 목숨이 경각에 달한 아버지의 병 구완을 위해 오래 산 거북이가 영험하다는 말을 듣고 거북이 잡이에 나섰다. 한달쯤 됐을 때 천년은 됨직한 거북이를 잡았다. 젊은이는 집으로 오던 중 뽕나무 아래서 잠깐 쉬면서 잠이 들었다. 이때 잠결에 거북이와 뽕나무가 나누는 대화를 듣게 된다.거북이가 먼저 말했다. “나는 영험해서 나를 솥에 넣어 끓여도 죽지 않는다”고 자랑했다. 거북이 말을 들은 뽕나무가 가당치 않다는 듯 말했다. “너무 큰소리치지 말게 자네가 아무리 신기한 거북이라도 뽕나무 장작으로 불을 피워 끓인다면 당장 죽는다네”라고 했다. 효자 젊은이는 집으로 돌아와 거북이를 가마솥에 넣고 삶았으나 정말로 거북이가 죽지 않았다. 이때 뽕나무 아래서 들었던 말이 기억나 뽕나무를 잘라와 불을 때자 거북이는 금방 죽고 만다. 거북이 덕분에 아버지의 병은 말끔히 낫게 된다.우리 속담에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 했다. 거북이의 만용과 뽕나무의 교만이 없었다면 거북이도 살고 뽕나무도 온전했을 것이라는 일화다. 입 조심하라는 교훈이다. 말 한마디로 천냥 빚을 감는다고 한다. 어리석은 사람은 남을 헐뜯고 비방하지만 지혜로운 사람은 그 말을 듣고 자신을 되돌아보며 성찰한다고 한다. 말이 난무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독설과 막말이 오가며 상대에게 많은 상처도 입힌다. 그러고도 반성은 커녕 독설을 자랑하는 잘못된 세태다.유튜브 방송으로 논란을 일으킨 유시민의 알릴레오가 출연진의 성희롱 발언으로 홍역을 치른다는 소식이다. 유 이사장의 사과에도 당사자의 반발은 여전히 거센 모양이다. 입 단속하는 지혜부터 배워야겠다. /우정구(논설위원)

2019-10-17

사색의 산책길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초선 국회의원은 국회내 다니는 길을 알고 나면 임기가 끝난다’는 우스갯말이 있다. 이같은 우스갯소리가 나온 데는 국회를 방문하는 방문객들의 출입이 통제되는, 국회의원회관과 국회 본관, 그리고 국회도서관을 잇는 지하통로의 존재여부 때문은 아닐까 싶다. 일반인들은 알기 어렵고, 출입도 안되는 길이기 때문이다. 방공호를 겸한 듯 보이는 이 통로는 적막감이 들 정도로 조용해 ‘사색의 산책길’로 일컬어져도 좋을 법하다. 이 지하통로 가운데 국회 본관과 국회의원회관을 잇는 길은 본회의나 상임위 회의 및 당무관계로 의원회관 사무실과 본청을 오가는 국회의원들과 보좌진, 그리고 취재진들이 주로 지나다닌다.며칠 전 국회에 들렀다가 이 통로를 지나다보니 한쪽 벽에는 우리 국토 최동단인 독도의 전경, 일출과 일몰때의 신비한 풍경이 담긴 사진들이 걸려있었다. 바로 그 맞은 편 벽에는 전·현직 국회의원들의 서예작품들이 줄지어 걸려있었다. 작품을 내건 주체들도 다양하다. 국회부의장을 지냈던 6선의 중진 의원으로부터 19대 총선에서 처음 당선된 재선 의원까지, 선수(選數)와 당색(黨色)을 달리하는 의원들의 작품이 다채로운 개성을 뽐내고 있다.장경순 전 의원이 쓴 매월당 김시습의 글귀에서는 불운한 시대의 천재가 내뱉은 시대의 탄식을 되새기게 한다. 바로 ‘꽃이 피고 지는 것을 어찌 봄이 다스리랴 구름이 가고 오더라도 산은 다투지 않는다(화개화사춘하관 운거운래산부쟁/花開花謝春何管 雲去雲來山不爭)’이란 대목이다. 김시습은 학식에 있어서는 당대 최고였으나 벼슬은 하지 않았다. 그가 잘못된 고관 인사를 보고 ‘이 백성이 무슨 죄가 있어서 이런 사람이 이런 자리를 맡게 되었나’하고 탄식하며 지은 한시다. 지금의 국회 역시 국민들로 하여금 김시습의 한탄을 자아내고 있다.4선의 바른미래당 주승용 국회부의장은 서산대사의 한시인 ‘답설야중거(踏雪野中去)’로 후세의 경계를 삼았다. 전문은 ‘답설야중거 불수호란행 (踏雪野中去 不須胡亂行)금일아행적 수작후인정(今日我行跡 遂作後人程)’(눈 내린 들판 걸어갈 때 발걸음 함부로 딛지 마라. 오늘 나의 발자국이 뒷사람의 이정표가 되리니)이다.산민(山民) 문희상 국회의장의 ‘태산불양토양 하해불택세류(泰山不讓土壤 河海不擇細流)’라는 글귀도 의미심장하다. 태산은 작은 흙덩이도 꺼리지 않고, 강과 바다는 실개천도 가리지 않는다는 뜻이다. 큰 당과 큰 나라는 인재의 출신과 성분을 가리지 않는다는 의미다.무엇보다 현 시점에선 청강(靑江) 이만섭 전 국회의장이 임오년(2002년)에 쓴 ‘대도재중화(大道在中和)’가 가장 눈길을 끌었다. 큰 도는 중용과 화합에 있다는 뜻이다.여당에 있었을 때도 정부에 쓴소리를 하며 치우치지 않았고, 야당에 있었을 때도 무작정 발목잡는 반대만 하지 않고 중용의 처신을 보여주려 노력했던 그의 처신이 새삼 아쉬운 요즘이다. 이러고 보니 극한대립의 조국 정국을 지나 ‘포스트 조국’ 해법이 그리 멀리 있지 않았다. 사색의 산책길에 걸린 지혜가 우리 정치판에 넘쳐 흐르기를 소망한다.

2019-10-17

인텔리겐차의 자유

최근 세태를 보면 인텔리겐차(intelligentsia)는 설 자리가 없다. 옛날에는 지식인 대접을 그래도 좀 했던 것 같고 받았던 것 같은데, 지금은 절대 아니올씨다, 다.그럴 만한 이유들이 있다. 먼저, 돈, 자본, 금권이 옛날보다 훨씬 더 세졌고, 이에 따라 지식, 지식계급, 지식인은 이것을 치장하는 용도 같은 것으로 떨어져 버렸다. 지식은 큰 회사 사장 집무실 뒤 서가의 금장 책들처럼 금권을 더 빛나게 하는 장식품 같은 것이 된다.다음으로, 권력이 옛날 같지 않다. 옛날 옛적에는 ‘삼고초려’하는 것이 있어 어디 훌륭한 사람 숨어 있나 찾아다니기도 하고 통치자의 덕성을 드러내느라 일부러라도 학계 사람을 모셔가기도 했다. 다 옛날 말이다. 노무현 정부 이래 통치는 오로지 자기 사람들로나 거행된다. 그룹에 들지 못하면 아무 것도 없다.이런 것들보다 더 큰 이유가 있다고 생각되는데, 이 인텔리겐차들 스스로 타락해 버렸다는 사실이다. 옛날 옛적이 인텔리겐차들은 자신들의 존재 의미를 자기 자신을 위한 ‘사업’에 두지 않았다. 그들은 지식 자체를 위해 존재해야 했고 나아가 자신들을, ‘민중’ 같은, 비록 추상적이기는 해도 어떤 대의를 위해 쓰여야 하는 것으로 믿었다.1980년대에 한국의 통치체제는 러시아 짜리즘 같은 것으로 상상되었고 많은 대학생들은 자신들이 러시아의 인텔리겐차 계급처럼 민중들을 위해 헌신할 수 있어야 한다고 믿었다. 사상의 훌륭함 여부는 그 내용이 얼마나 올바른가에 의해서뿐 아니라 그것을 밀고 나가는 태도가 얼마나 순수한가에 의해서도 ‘결정’된다.지식인은 몸이 감금되어 있을 때조차 자유로울 수 있으니, 그들은 본래 스스로를 정신적인 존재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물질과 돈과 육체성, 권력에 스스로 거리를 둘 때 그는 비로소 자유로울 수 있다.그러니, 어떻게, 요즘 지식인들이 자유로울 수 있으랴. 의식이 이미 대부분 금권과 권력의 노예니 몸이 자유로울 수 있을 리 없다.러시아 ‘브나로드’ 운동 같은 것은 얼마나 성스러웠던가? 『무엇을 할 것인가』를 쓴 체르니세프스키는 얼마나 고매했던가? 도스토옙스키는 그의 논리를 미워해서 『지하생활자의 수기』를 써서 밑바닥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수정궁’ 같은 세계는 인간 세상에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 된다고 했다.하지만 체르니세프스키는 투명한 이상을 꿈꾸었던 것이다! 그는 1862년에 시베리아 유형에 처해졌고 1883년에 풀려나 곧 세상을 떠났다./방민호 서울대 국문과 교수/삽화 = 이철진한국화가

2019-10-17

교육 개혁의 희망 경북도의회!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감잦은 태풍 소식에도 자연은 자신의 할 일에 최선이다. 나무들은 10월의 언어인 단풍으로 대화의 문을 열었다. 그 문으로 때론 누군가의 가슴 저린 첫사랑 이야기가 흘러나오기도 했다. 귀 밝은 감나무는 가지마다 그들을 저장했다. 길이를 늘리기 시작한 가을밤에 감들은 그 순수한 사랑 이야기를 몰래 펼쳤다. 그리고 홀로 붉어졌다. 그 붉음에 자연은 더 풍성해진다.풍성한 가을과는 달리 이 사회는 더 흉악해지고 있다. 독단과 독선, 고집과 아집만이 존재하는 이 사회에서 순수는 예전에 죽었다. 순수가 죽은 자리엔 추악함이 자리했다. 한때 가장 순수했던 촛불도 이젠 아니다. 오염된 촛불은 사람들의 눈과 마음을 멀게 만들었다. 막무가내인 사람들이 떼로 외치는 소리는 소음에 불과하다. 소음만 가득한 도로에서 정의는 죽었다.개혁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목적도, 과정도 순수해야 한다. 그런 개혁만이 모두의 절대적 지지를 받으며 성공할 수 있다. 그런데 지금 개혁은 명분은 있지만 방법은 틀렸다. 당정청(집권당, 정부, 청와대)이라는 말은 특정 이데올로기와 동의어이다.당정청이 개입된 개혁의 방향은 그들의 특정 이데올로기가 추구하는 방향이다. 이런 개혁에 순수는 없다. 교육 개혁에는 제발 당정청이 개입하지 않기를 바란다.당정청 타령만 하는 중앙 정치를 보면 이 나라 미래는 0% 출산율보다 더 암담하다. 그래도 이 나라가 버티는 것은 경북도의회처럼 일하는 지방 의회가 있기 때문이다.필자는 지난 6년 동안 당정청은 물론 교육부, 도교육청, 인권위원회, 권익위원회 등에 대안학교 학생들이 받고 있는 차별을 철폐해달라고 수십 차례 읍소했다. 하지만 돌아오는 답은 필요성은 알지만으로 시작하는 행정기관 특유의 미꾸라지 어조의 빈정거림뿐이었다. 그 사이에 많은 학생들이 교육기회를 놓치고 학교 밖 청소년이 되었다. 교육행정기관들은 늘 뒷북만 쳤다.그런데 드디어 경북도의회가 교육행정기관들의 앵무새 화법을 끊는 조례개정안을 발의 통과시켰다. 교육청 실무자들과 6년 동안 이야기를 하고 있는 필자로서는 이번 일이 얼마나 큰 사건인지, 아니 사건을 넘어 개혁에 가까운 일인지 안다. 교육 개혁의 서문을 연 조례개정안은 “경상북도 사립학교 재정보조에 관한 조례 일부개정조례안, 경상북도교육청 학업중단 예방 및 대안교육 지원 조례 일부개정조례안”(이재도 의원)이다. 다음은 전자의 개정 사유이다.“경상북도교육청에서는 ‘지방교육재정교부금법 시행령’을 근거로 하여 일부 사립학교(각종학교 포함)에 대한 재정지원을 제도적으로 보장하지 않고 있으나, 교육부에서는 시행령 자체가 교육청의 재정지원 여부를 구속하지 않는다고 밝히고 있음. (중략) 사립학교 재정보조사업에 단서조항을 두어 재정지원이 필요한 사립학교의 형평성 문제가 제기됨.”교육 평등권의 실질적인 보장을 위해 경북도의회가 보여준 초당적인 모습이 당리당략에 빠져 있는 중앙 정부는 물론 편협한 교육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교육 관계자들에게 큰 울림이 되길 바란다. 그 울림이 교육 개혁의 신호탄이 되어 희망을 잃어버린 이 나라 교육에 새로운 희망의 불씨가 되길 간절히 기원한다.

2019-10-16

설리의 죽음

김규종 경북대 교수·노문학“실제 내 생활은 너무 구렁텅이인데 여기 바깥에서는 밝은 척하는 게… 너무 이게 사람들한테 내가 거짓말하고 있는 게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었는데… 어떤 사람이든 다 뒤에 어두운 부분이 있는데, 바깥에서는 안 그런 척하고 사는 거다, 그게 이상하다고 생각하고 살지 말라 해서. 그냥 되게 양면성 있게 살아가고 있어요. 지금.” 10월 14일 스물다섯 나이로 세상과 작별한 설리가 ‘악플의 밤’ 방송에서 남긴 말이다.공감 가는 말이다. 세상에 그늘진 구석 없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솔직하게 터놓고 살기 어려운 사회가 우리나라다. 다른 사람 눈치 보면서, 안색 살피면서, 비위 맞춰가면서 하루하루 살아가는 사람들의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그러다보니 우울증으로 고생하는 사람도 적잖다. 나의 가치관과 세계관에 입각해서 타자를 의식하지 않고 살아가는 한국인은 없다.혹은 그럴 여건이 아직 불가능한지도 모른다.가수이자 연기자로서 설리는 강인한 내면을 가진 청춘이라고 생각하곤 했다. 사회관계망 서비스에 자신의 견해를 자신만만하고 당당하게 밝히는 면모를 보면서 ‘허, 당찬 친구일세!’ 하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힘차고 용감한 젊은이가 늘어나면 우리도 유럽의 청춘 남녀들처럼 외부의 시선에서 벗어날 수 있을 텐데. 아까운 청춘 설리가 세상을 버린 것이다.본디 죽음은 무겁고 무서우며 견디기 어려운 것이다. 따라서 삶은 죽음보다 가볍고 유쾌하며 견딜만해야 한다. 하지만 결과는 반대로 나왔으니 허무하다. 빛과 그늘이라는 양면성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해 죽음의 길로 들어섰으니 말이다. 그런 연유로 설리가 선택한 죽음은 그녀가 견뎌야 했던 삶보다 가볍고, 견딜만하며 무섭지 않은 것으로 생각해야 할 것이다.진정 그러한가?! 한국 사회에서 죽음은 그토록 가벼운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든다. 왜 이리들 황망하게 지상의 삶과 인연을 끊어버리는 것일까?!어제 설리가 생을 뒤로 하더니, 오늘 10월 15일에는 거제 단칸방에서 일가족 3명이 목숨을 끊었다는 보도가 나온다. 39세 아버지와 6세, 8세 두 아들이 동반 자살했다는 것이다. 아이들 엄마는 혼수상태로 위독하다 한다.그들을 죽음으로 몰고 간 원인은 또 무엇인가?!나라 한쪽에서는 권력 잡겠다는 정파(政派)의 대표자들이 태극기 동반한 칼춤을 추고, 정의로운 검찰은 사법정의를 앞세워 장관을 바꾼다. 태극기와 정의가 막지 못하는 이런 죽음을 어찌 하랴. 권력도, 돈도, 대통령도, 감찰총장도, 법무장관도, 서초동도, 광화문도 결국 부질없는 것이다.그 모든 것의 앞자리에 인간과 생명과 자유와 평등과 형제애가 우뚝 서야 한다. 그래야 죽어나가는 청춘과 가족이 생겨나지 않는다.죽음을 가벼이 여기고, 삶을 견딜 수 없을 만큼 무겁고 한스러운 것으로 만드는 한국사회의 전면적인 혁신과 재생이 절실하다. 최소한의 생명권을 보장하는 인권국가의 면모를 되살리지 않으면, 이 나라의 미래도, 권력도, 돈도, 검찰총장도, 태극기도, 칼춤도 없기 때문이다.

2019-10-16

소리의 발명가

음악을 좋아하는 소년이 있습니다. 아버지는 1차 세계대전 때 잠수함을 발명한 사람입니다. 정전기장 이론으로 우주 연구의 기초를 놓은 과학자이지요. 소년은 피아노를 배우면서 바흐와 베토벤에 빠집니다. 하지만, 악보대로 연습해 완벽하게 연주하는 일에 싫증을 냅니다. 처음 본 악보를 연습 없이 즉석에서 연주하는 방식에 흥미를 느낍니다. 그에게는 늘 새로운 악보가 필요했습니다.소년은 세상 누구도 해 보지 않은 시도를 하지요. 피아노 위 뚜껑을 열고 피아노 줄 사이에 다양한 물건을 끼워 넣기 시작합니다. 털실, 포크, 나무 빗장, 플라스틱, 지우개, 볼트. 마침내 소년은 아버지를 뛰어넘어 새로운 소리를 만들어내는 ‘소리의 발명가’ 세계에 입문합니다. 존 케이지 이야기입니다.그는 1951년 세상에서 그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는 완벽한 공간을 찾아 나섭니다. 그가 발견한 장소는 하버드 대학 녹음실이었습니다. 모든 소리를 집어삼키는 방음 공간입니다. 존 케이지는 그곳에서도 소리를 듣습니다. 먼저 자기 숨소리를 듣습니다. 호흡을 가라앉히자 이번에는 심장 소리가 들려옵니다. “쿵, 쿵, 쿵…”문득 영감이 떠오릅니다. 아무리 차단해도 어딘가 소리가 들려온다는 것을 깨닫고 부랴부랴 오선지에 악보를 끄적입니다. 순식간에 완성한 이 작품이 존 케이지의 가장 유명한 작품이 됩니다. 어제 편지에 설명한 4분 33초가 바로 그것입니다.나다운 삶은 멈춤으로부터 시작합니다. 온갖 소음과 자극으로부터 나를 분리하는 일로 시작합니다. 내 심장 소리, 호흡 소리. 저만치 아래 내 의식의 심연 깊은 곳에 가두어 두었던 내면의 소리가 들리기 시작할 때, 진정한 내 삶을 시작하는 법입니다. 상대방 마음의 소리를 듣기 시작할 때, 아름다운 공명이 일어나 질적으로 완벽하게 새로운 너와 나의 관계 또한 시작할 수 있습니다./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대표

2019-10-16

오픈뱅킹 시대

오픈뱅킹은 제3자에게 은행 계좌 등에 대한 접근을 허용하고 지급결제 기능을 개방하는 공동결제시스템이다. 한마디로 은행의 금융결제망을 핀테크기업이 사용할 수 있도록 공개하는 것이다. 이 시스템이 도입되면 앱 하나로 모든 은행 계좌에서 출금이나 이체를 할 수 있으며, 핀테크 사업자들도 개별 은행과 제휴를 맺을 필요 없이 결제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게 된다.은행권은 이달 30일부터 오픈뱅킹 시범 운영을 시작하게 돼 오픈뱅킹 시대 개막을 앞두고 있다. 이후 12월부터 전면 시행된다. 기존에는 A은행 계좌를 조회하려면 반드시 A은행 앱을 사용해야 했지만 오픈뱅킹서비스가 도입되면 B은행, C은행 앱이나 핀테크 앱에서도 모든 은행의 계좌를 조회할 수 있고, 이체도 할 수 있게 된다. 즉 한 앱에서 모든 은행 계좌 업무 처리가 가능해진다. 오픈뱅킹에 제공되는 서비스는 모든 은행 계좌의 잔액조회와 거래내역 조회, 계좌실명조회, 송금인 정보 조회가 가능하다. 또 이용기관의 지급계좌에서 자금을 인출해 수취인 계좌로 입금 가능하며, 출금에 동의한 고객 계좌에서 자금을 인출해 이용기관 계좌로 집금도 가능하다.오픈뱅킹에는 모든 핀테크 결제사업자와 은행이 참여하게 된다. 참가은행은 산업은행, 농협은행, 신한은행, 우리은행, 제일은행, 기업은행, 국민은행, 하나은행, 씨티은행, 수협은행, 대구은행, 부산은행, 광주은행, 제주은행, 전북은행, 경남은행, 카카오뱅크와 케이뱅크 등 18개사이다. 인터넷전문은행은 시범 실시 전 내부 개발 및 전산테스트를 거쳐 제공기관으로 참가한다. 금융환경의 급격한 변화에 발맞춰 보수적인 은행들도 디지털 경쟁력 제고에 힘써야 할 때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19-10-16

교육, 누가 하는가

장규열 한동대 교수·언론정보문화학부갈등에는 끝이 없는가. 당신은 어느 편인가 늘 궁금하다. 항상 조심스럽다. 우리 편끼리만 나누고 소통한다. 다른 편에게는 등을 돌린다. 말을 섞지 않을 뿐 아니라 만나는 일도 어색하다. 읽고 보는 매체가 전혀 딴판이니 생각의 틀도 완전히 다르다. 친구와 적이 분명히 구분되니, 칭찬과 비난도 정반대를 향한다. 다양한 의견이라 여겨 보지만, 오늘 우리의 모습은 건강한 것일까. 생각과 의견이 주장과 고집을 넘어 막말과 폭력, 차별과 혐오로 이어진다. 적절하게 조절하고 순조롭게 타협할 수 없을까. 갈등과 반목의 연속으로 보이는 우리의 모습은 어떻게 생겨난 것일까. 정치와 언론에 책임을 묻지만 뾰족한 답은 돌아오지 않는다. 우리 모두 거쳐온 ‘교육’에 혹 실마리가 있지 않을까.‘한 아이를 기르는 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It takes a whole village to raise a child.)’ 나이지리아 속담이라는데, 사람을 길러내는 일에는 가정과 학교, 마을과 사회가 모두 나서야 한다는 생각이다. 교육은 학교의 전유물이 아니다. 물론 학교가 교육의 중요한 부분을 담당하지만, 한 사람의 인성을 길러내는 일을 학교에만 기대할 수가 없다. 우리는 어떤가. 교육은 학교에서만 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은 아닌가. 아이들은 학교에 고립되어 있다. 학과목을 따라가느라, 세상과 단절되어 있다. 인간이 살아가는 사회의 모습을 자연스럽게 배울 수가 없고, 삶의 맥락을 익힐 방법이 없다. 교육행정은 일반행정과 따로 진행되지 않는가. 학교에서 배운 다음 사회에 나오면 처음부터 다시 배우라고 한다. 살려고 공부했는데, 진짜로 살려면 다시 배워야 한다니!학교에서는 사회에 넘실거리는 파도를 본 적도 없다. 학교 밖 현실을 느낄 겨를이 없다. 교과목에 매달려 세상을 배우지 못한다. 그러니 주장과 선동에 휘둘리고 가짜와 막말에 귀가 솔깃할 수밖에. 풍성한 생각과 다양한 태도, 다수의 접근방법과 싱싱한 토론양식을 익혀야 한다. 학교가 사회를 향하여 문을 열고 지역공동체와 함께 가르쳐야 한다. 지역에는 대학, 지방자치체, 도서관과 미술관, 그리고 다양한 직업군과 산업현장이 존재하지 않는가. 지역공동체가 연합하여 살아 숨쉬는 교육을 만들어 갈 수는 없을까. 학생들이 학창시절부터 교과목과 함께 사회를 배우고 세상을 접하며 사람들을 만나는 교육이 되어야 한다. 어렸을 적부터 생각하고 함께 고민하며 토론하고 어울려 타협해 내도록 가르쳐야 한다.경상북도와 경상북도교육청이 함께 ‘경북형 교육협력거버넌스’를 만들기 위해 정책포럼을 열었다. 경북에서 교육이 학교 뿐 아니라 지역공동체도 함께 참여하고 기여하는 물꼬가 터진 것이다. 선생님들 뿐 아니라 우리 사회의 모든 어른들이 다음 세대를 가르치는 일에 나서게 되었다. 그처럼 폭넓게 배운 끝에 나라와 사회는 갈등과 반목이 줄어들고 대화와 소통이 넘실대는 곳으로 바뀌어 갈 터이다.교육은 학교만 하지 않는다.교육에 모두가 나서야 한다.

2019-10-16

통합공항 이전 방식과 철인 4인방

이창훈경북도청본사 취재본부장대구경북지역의 최대 현안의 하나인 통합신공항 이전 후보지 선정이 겉돌고 있다. 지역 갈등을 해결하지 못하고 카드 패만 돌리는 모습을 보면 안타까운 마음이 앞선다.대구경북민의 미래가 걸린 문제를 대구시와 경북도 등 상위 지자체가 의성군과 군위군의 지역 여론을 제대로 수렴하지 않은채 섣불리 끌고가려다 불거진 지역 리더십의 위기로도 볼수 있다. 즉 지역의 백년대계를 설계하는 중대 현안을 연내 부지 선정이라는 작은 목표에 쫓겨 섣부른 합의를 하고 반발이 나오자 다시 뒤집는 과정이 수차례 반복되고 있다. 시도지사가 해당 지역 군수와 허심탄회하게 4자회동을 거쳐 현안을 논의하는 것이야 말로 바람직하다.그러나 군위군수와 의성군수는 지역민의 민심이나 의사를 수렴하는 사전 내부절차가 없었다. 이런 선행 과정을 거치지 않고 방안부터 공개적으로 제시하고 이를 받으면 어떻게 하고 아니면 또 저렇게 한다는 방식이 수차례 반복됐다. 통합신공항은 군위와 의성군에 터를 잡는 것이지만 대구경북 전체 시도민이 이용하는 관문이 될 것이므로 여러 이해 당사자의 의사도 필요하지만 배제됐다.이런 점을 감안한 주도면밀한 설계나 합리적 논의 없이 ‘현인’ 4명이 플라톤식 철인(哲人)정치를 보여주려다 화를 좌초했다고 본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이번에는 대구경북민 여론조사를 반영한다고 조항을 또 추가했다. 어떤 이유인지는 모르나 뒤늦게 일을 키우고 있다는 인상마저 든다. 두 지역 주민투표율과 찬성률, 전체 시도민의 여론조사 비율을 어떻게 배분할 것인지도 결정짓지 않았다.‘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는 말을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다.군위와 의성도 처음부터 너무 지역의 이기주의 세력에 이리저리 휘둘려 대승적인 소신행정을 펼치지 못한 점에도 시선이 곱지 않다. 다선의 단체장이 보여줘야 할 경륜이라고는 찾아볼수 없다. 챗바퀴를 돌다 결국에는 국방부가 제시한 안으로 원점회귀하면서 지방자치를 부르짖는 명분마저 민망하게 만들고 말았다.통합신공항이 제대로 이전하려면 ‘일정을 역산, 험로가 예상된다고 더 이상 갈지자 행보가 반복되어서는 안된다’는 교훈을 주고 있다. 대구시와 경북도는 군위 의성 두 지역의 여론수렴과 함께 이번에 제시한 방안을 정교하게 가다듬어 마지막이란 각오로 원만한 합의를 이끌어내야 할 역사적인 책무를 안게 됐다. 입지선정이 이렇게 꼬인 것은 대구시와 경북도가 내년도 총선을 의식해 충분히 숙의된 큰 대안없이 지나치게 졸속행정을 펼쳤다는 일부의 우려를 흘려들어서는 안될 것이다. 총선 후에는 사업의 속도가 더딜 것으로 판단, 충분한 사전 논의없이 너무 성급하게 밀어붙인 결과라는 소리다.공항실무진들도 좀 더 매끄럽게 시장과 지사의 소신행정을 뒷받침해야 한다. 언론을 피하려고만 하지 말고, 시도민의 큰 관심사항은 미리 언론에 고지하거나 여의치 않으면 추후 결과를 공개하는 등 적극적인 공개행정이 필요하다.공개적이고 투명한 행정은 시도민 의 지지를 끌어내는 행정의 첫걸음이기 때문이다.

2019-10-15

지역축제란 이런 것이다

심한식 경북부청도군과 청도반시축제추진위원회가 최근 3일간 ‘2019 청도반시축제’를 청도 야외공연장에서 개최했다.많은 사람이 찾아 성황을 이뤘다. 기자의 눈은 이들의 축제 준비와 축제의 기본이 되는 지역민을 배려하는 모습에 쏠렸다.끊이지 않고 연결되는 프로그램과 남녀노소 누구나 즐기고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 먹을거리, 접근성이 좋은 주차장 등은 지역축제가 추구해야 하는 모든 면을 고스란히 보여줬다.감을 주제로 열리는 축제임을 부각시켜주는 체험과 다양한 농산물에 대한 정보제공 등은 가족단위 관람객의 증가를 설명해 주는 듯했다.수많은 사람이 찾은 축제장임에도 눈에 띄는 쓰레기가 보이지 않을 정도의 세심한 준비성에도 감탄했다.청도세계코미디아트페스티벌인 ‘코아페’가 함께 진행돼 관람객이 많을 수도 있겠지만 축제의 기본이 되는 지역민을 배려하는 모습은 11일의 개막식에서도 찾아볼 수 있었다.시간적으로 늦은 오후 7시에 열린 개막식은 행정편의보다는 농사 일로 바쁜 지역민이 함께 즐길 수 있는 행사가 되도록 해 지역민이 대접받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대다수의 지역축제는 축제추진위원회와 자치단체의 이견조율 실패로 지역색깔을 살리지 못하고 있다. 타성에 젖은 축제로 관람객과 지역민에게 지탄의 대상이 되기도 하고 축제추진위원회의 배만 불린다는 따가운 시선도 있다.하지만, 청도반시축제는 지자체와 축제추진위원회가 힘을 합치고 민의의 전당이라는 청도군의회도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고 있어 다른 자치단체의 부러움을 살만하다.지역축제는 관람객의 수도 중요하지만 축제의 기본이 되는 지역민이 대접받아야 한다. 주최·주관 측의 편의가 아닌 지역민과 관람객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올 가을엔 많은 자치단체가 축제를 진행 중이거나 예정하고 있다. 행정편의와 부수적인 조건을 탓하기보다는 ‘지역민과 관람객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축제는 성공할 수 밖에 없다’는 명제를 기억해야겠다./shs1127@kbmaeil.com

2019-10-15

10월, 天高心肥

박상영 대구가톨릭대 교수10월은 천고마비(天高馬肥)의 계절, 가을이 한층 더 깊어지는 달이다. 천고마비는 원래 ‘추고마비(秋高馬肥)’에서 유래되었는데, 송대 정강전신록에는, ‘가을이 깊어지고 말이 살찌면 오랑캐들이 다시 쳐들어와 이전의 맹약을 책할 것을 두려워한다.’라는 기록이 있고, 사마천의 사기에는 흉노족들이 ‘가을에 말이 살찌면 대림(8E5B林)에서 큰 모임을 갖고 가축들의 수를 비교한다.’고 적혀 있다. 흉노족은 가을철이면 살찐 말을 타고 중국 변방에 쳐들어와 노략질을 일삼았는데, 이로 인해 변방 중국인들은 가을이면 늘 전전긍긍해야만 했다.이처럼 가을이, 한쪽에선 약탈하기 좋은 계절로, 다른 쪽에선 두려움에 떠는 계절로 다가온 것은 아이러니컬하다. 그러나 선우(흉노족의 우두머리)의 입장에서는, 겨울을 대비해 중국 변방을 공격하여 자국민의 양식을 비축할 필요가 있었고, 중국 군왕들의 입장에서는 장성을 쌓아 흉노의 침입을 막는 게 최우선의 과제였을 테니, 이해가 안 가는 것도 아니다. 어느 쪽이든 모두 자국민의 생업 보장과 안전을 위한 위정자들의 고민이 ‘추고마비/천고마비’속에 함의되어 있었던 셈이다. 비록 한쪽에게 좋은 것이 다른 쪽에게는 그렇지 않긴 했어도. 적어도 자국민들을 위한 최선이 무엇일지는 늘 고민했던 위정자들의 흔적만큼은 엿볼 수 있다.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간사는 다 비슷비슷해서, 옛날이라 하여 위정자들이 늘 백성들만을 생각했던 것은 결코 아니다. 수많은 당쟁과 사화들, 그 속에서 고통 받던 백성들이 일으킨 수많은 민란들이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렇기에 이러한 위정자들을 깨치려는 노력은 옛부터 줄기차게 일어났던 바다. 이와 관련해, 허균이 남긴 논설 호민론은 주목할 만하다.호민론에서는 백성을 세 가지로 분류한다. 위정자들에게 가만히 순종하기만 하는 항민(恒民), 윗사람을 원망하기만 하는 원민(怨民), 가만히 참으며 틈만 엿보다가 시기가 오면 일어나는 호민(豪民)이 바로 그것이다. 이 중, 호민이 반기를 들면 원민들은 소리만 듣고도 절로 모이고, 항민들 또한 살기를 구해서 따라 일어나므로, 관직에 있는 자라면, 이러한 호민들을 두려워하여, 정치를 똑바로 하라는 것이 요지이다.옛말에 ‘민심은 천심이다’라는 말이 있다. 민심에 근간한 정치를 왕도 정치라 하여 가장 이상적으로 여긴 것도 이 때문이다. 옛 제왕들은 민심을 잘 파악하고자 언로(言路)를 확대하고 상소제도를 두었으며, 끊임없이 자기 수양 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제도만 두고 그것을 받아들일 마음의 여유나 ‘귀’가 없다면, 그 또한 옳지 않다고 여긴 탓이다. 그래서 우리 선조들은 스스로의 몸과 마음을 끊임없이 갈고 닦는 수신(修身)을 무엇보다도 크게 생각하곤 하였다.요새 들어 인재 등용 문제를 비롯해 여러 가지 사회 이슈들로 나라가 떠들썩하다. 정치적 입장에 따른 시위대들의 시시비비를 논하기에 앞서, 이 천고(天高)의 계절 가을에, 위정자들은 민심의 소리에 깊이 한번 귀를 기울이고,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도록 스스로의 마음을 맑게 가꾸고 살찌워 보는, 심비(心肥)를 우선적으로 실천해 보면 어떨까?

2019-10-15

포항경제의 새로운 가치사슬을 기대하며

김진홍 한국은행 포항본부 부국장지난주 세계은행은 “글로벌 가치사슬시대의 개발을 위한 무역”이라는 제목의 ‘세계개발보고서 2020(World Development Report 2020)’을 발표하였다. 이 보고서에서는 개발도상국이 고용확대와 소득증대 등을 동반하며 성장하기 위해서는 선진국들과의 글로벌 가치사슬(value chain)에 참가하여야만 무역 확대와 더불어 성장을 촉진하는 변화를 가속시킬 수 있다고 주장한다. 결국 어느 특정 국가나 지역이 자체적인 순환경제만으로는 성장이나 발전에 한계가 있다는 이야기다.그런 면에서 포항 지역 경제는 우리나라 고도 성장기에 건설, 자동차, 조선 등 수많은 성장산업들과 연계된 국내 가치사슬의 한축을 담당하면서 성장과 발전을 이루어 왔다. 그러한 가치사슬에 동참함으로써 지금 포항지역 주민소득은 전국 지자체별 평균소득에 비해 전혀 손색이 없는 수준까지 올라왔다. 다만 2000년대 이후 가속화되기 시작한 자동차 공장 등의 해외이전 등 여파로 포항과 연결되었던 국내의 공급사슬 또는 가치사슬이 매우 느슨해져 지역경제 부진으로 이어지고 있다. 때문에 적어도 지역 철강과 연계된 국내 가치사슬의 성장 동력 약화를 보완할 수 있도록 포항은 지역 자체의 철강생태계 조성에 더욱 힘써야한다는 과제를 안고 있다.마침 그동안 경북도와 포항시가 한국로봇융합연구원(KIRO)과 함께 추진해왔던 안전로봇실증센터가 10월 17일 개소된다. 이 센터는 포항경제의 새로운 돌파구의 하나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점에서 더욱 기대된다. 하지만 한국은행 포항본부가 2013년 9월 한국로봇융합연구원과 공동으로 지역의 로봇산업 육성을 위한 공동연구를 진행한 지 만 6년이 지났지만 당시에 제기되던 정책과제들이 여전히 남아 있는 실정이다. 포항이 로봇산업의 핵심 연구기관을 보유하고 있는데도 로봇산업의 불모지나 마찬가지인 것은 로봇개발에 막대한 자금이 투입되어야하는 특징 때문이며, 그나마 이를 뒷받침하는 공공수요도 개발 이후의 상용화가 아닌 개발 자체에 목표를 두는 단발적인 사업성격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포항경제가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해결해 나가야할 최대의 과제는 비록 일회성의 단발적인 공공수요라고 할지라도 해외의 공공수요를 추가로 개척하거나, 개발된 기술이 민간수요로 원만히 이어질 수 있도록 지속적인 투자와 관심을 가지는 것이다.그러한 맥락에서 이번에 문을 여는 안전로봇실증센터는 앞으로 포항 로봇산업의 새로운 출발점이 될 것이다. 일례로 영일만대교를 건설하는데 사용할 수 있는 수중건설로봇, 해양탐사 등에 활용할 수중안전로봇 등 실제 사업에 활용할 수 있는 로봇기술들은 많다. 세계은행이 지적한 것처럼 한 지역이 모든 것을 끌어안을 필요도 없다. 국내 안전로봇의 공공수요가 부족하면 영일만항의 주요 기착항인 동남아시아 등지의 정책당국과 협의하여 포항발 안전로봇의 가치사슬을 확장시키는 전략도 필요하다. 그러기에 앞으로 영일만항 배후단지에 자리잡게 된 실증센터를 더욱 적극적으로 활용해 나가야만 한다. 부디 실증센터의 개소를 계기로 포항 경제가 새로운 가치사슬을 엮어낼 수 있기를 기대한다.

2019-10-15

4분 33초

연미복을 차려입은 피아니스트가 무대 위로 올라옵니다. 우레 같은 박수를 받은 뒤 피아노 앞에 앉습니다. 호흡을 가다듬은 피아니스트는 조심스레 피아노 뚜껑을 열고 악보를 제자리에 놓습니다. 청중들은 연주를 기다리지요.그런데 연주자는 묵묵히 피아노 건반을 응시합니다. 33초의 시간이 흐른 후 피아노 뚜껑을 닫습니다. 1악장이 끝났다는 것을 알리는 행위입니다. 잠깐 호흡을 고른 후 다시 뚜껑을 열고 2악장 연주를 시작하지요.이번에도 역시 연주자는 건반을 응시할 뿐,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습니다. 콘서트홀의 무대는 고요한 정적이 흐르고 청중석에서는 약간의 기침 소리, 사람들이 두리번거리며 부스럭대는 소리, 한숨 소리, 에어컨 소리가 가늘게 들립니다. 오히려 벽면의 시계 초침에서 미세한 울림이 들리듯 합니다. 2분 40초의 2악장이 끝나고 다시 피아노 뚜껑 덮기.마지막으로 1분 20초의 3악장을 동일한 방식으로 연주하고 피아니스트는 자리에서 일어납니다. 악보를 경건하게 다시 품에 안고 청중에게 절을 하고 퇴장합니다. 관객들은 어쩔 줄 몰라 하다가 박수를 치기 시작하지요. 세상에서 가장 황당한 연주회. 4분 33초의 공연 모습입니다.작곡가 존 케이지는 말합니다. “우리가 하는 모든 행위가 곧 음악이다.”침묵은 우리의 귀를 활짝 열도록 인도합니다. 평소 연주회장에서 소음으로 인식되었던 기침소리, 부스럭 소리, 바람 소리를 주인공으로 초대하는 것이죠. 케이지에게 있어서 침묵은 진정한 평화에 이르도록 하는 하나의 수단인 동시에 재료인 셈입니다. 자신의 이름 케이지(Cage 새장)처럼 전통적 시스템이라는 새장에 수천 년 동안 묶여 있던 작곡가, 연주자, 청중에 대한 고정 관념과 음악과 소음에 대한 개념들을 모두 새장 밖으로 훨훨 날려 보냄으로써 진정한 소리를 찾을 수 있었던 셈입니다./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대표

2019-10-15

사랑하기와 용서하기-‘멜로가 체질’을 뒤늦게 보고

안재홍(범수)은 내가 좋아하는 배우다. 천우희(진주)는 잘 모르는 배우인데 연기를 잘 한다.그리고 난 이런 느낌의 드라마가 좋다. 가볍고 가벼워서 날아갈 것 같은 영화. 아무런 무게도 교훈도 없는 그런 내용. 그런데 말이다. 이 드라마는 정말 감동이다. 왜냐고? 내 모습하고 비슷하니까. 내가 범수였으니까. 드라마라는 게 그런 것 같다. 결국 내 이야기를 해주는 느낌.진주는 이렇게 말한다. “그 사람이 손을 잡아주면 이상하게 마음이 편안해져. 안아도 될 것 같고. 후회하지 않을 것 같고. 뭐 그런 믿음이 깨져가는 과정이 연애지만….”그래 나도 그랬던 적이 있다. 당신을 만나고 열심히 일을 하고 싶어졌고, 무슨 일이든 가능할 것 같았던 때가 있었다. 이런 근거 없는 자신감이 모두 당신에게서 비롯되었던 때가 있었다.그런데 진주의 말처럼 연애란 상대방에 대한 믿음이 깨져가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처음엔 너무 좋아서 죽을 것 같은 느낌. 당신을 사랑하면 왠지 내가 착해지는 듯한 느낌. 그런 느낌에 하늘을 걷는 듯한 느낌.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그 죽을 것 같은 느낌, 착해지는 듯한 느낌이 일상이 되어 버리고, 내가 들떠 있는 상태가 평상의 상태가 되어 버릴 때 우리의 사랑은 조금씩 식어 간다.그런데 그런 좋았던 느낌들이 일상이 되어 아무것도 아닌 상태가 되면 이제 당신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된다. 그러한 객관적 상태에서 당신에게 싫은 부분이 많은지 좋은 부분이 많은지를 비교할 수 있게 된다. 물론 그렇게 되기까지는 긴 시간이 필요하고 그 사람을 알아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하여 사랑에도 노력이 필요하다.이 드라마가 내게 와 닿았던 이유는 이런 부분 때문이다.범수: 정신이 없었어요. 오만가지 컨펌을 하느라.진주: 핑계~범수: 근데 나는 이게 왜 핑계가 되는 줄 모르겠는데? 일이잖아. 내가 동호회 활동을 한 것도 아니고 술을 퍼마시고 논 것도 아니고. 바쁜 와중에 이렇게 틈내서 만나는데 어떻게….진주: 틈내서?범수: 틈내서라는 말이 기분 나쁜 말인가? 작가님도 나도 지금 너무 바쁘잖아. 그 와중에 틈내서 만난다는 게 얼마나 멋진 일이야.나도 범수처럼 항상 바빴고 상대방은 그런 바쁜 나를 이해해주지 못했고. 바쁜 걸 이해해주지 못한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짜증을 냈고. 상대는 더 짜증을 냈고. 그렇게 조금씩 멀어져 가는 거다. 여기서 범수의 결정적인 실수를 범한다.범수: 말을 그렇게 해요? 빨래라니. 처리라니. 아니 바쁜 거 뻔히 알면서 왜 항상 이런 식으로 기분 상해해요?진주: 항. 항상이라뇨? 난 그런 적 없어요. 처음인데?범수: 맞아요.진주: 내가 감독님 전 여친한테 바통 이어받은 건가요?범수: 내가 그렇게 들릴 수 있게 말을 한 것 같아요. 내가 잘못했어요. 내 실수예요. 미안해요.진주: 난 내 출발선에서 출발했어요.범수: 맞아요.진주: 제가 오늘은 좀 실망을 해야겠어요. 갈게요.진주가 화가 난 이유는 범수가 진주를 옛날 연인과 비교했기 때문이다. 옛날에 바쁜 자신을 이해해 주지 못했던 과거의 연인과 진주를 동일시한 것이다. 그래서 진주는 화가 났다. 진주는 범수에 실망했다고 말하며 돌아선다. 그러면서 많은 잔고 끝에 “니놈은 나쁜 것보다 좋은 게 더 많은 놈이다.”라는 결론에 이르게 되며, 범수를 용서한다. 많은 사람을 만났고 지금의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게 된 후에야 겨우 알게 되었는데 진주는 어떻게 이런 걸 알게 된 거지?그래 상대방을 용서할 수 있다는 것은 일종의 계산의 결과이다. 사랑하는 사람의 싫음을 참아낼 수 있는가, 그렇지 않은가, 이것이 사랑을 이어갈 수 있느냐 그렇지 않느냐의 가장 중요한 사항이라고 생각한다. 상대방의 싫음을 도저히 참아낼 수 없다면, 헤어지면 된다.공강일 서울대 강사·국문학그런데 그 사람의 싫음을 참아낼 수 있는 정도라면, 지금 화나는 기분을 억누르면 된다. 그리고 사과하라. 사과할 일이 아니라면 솔직하게 말하라. 무엇이 그렇게 싫은지. 그런데 내 경우에는 내가 싫다고 생각한 당신의 싫음은 더러운 내 성격 때문이지 당신의 잘못이 아니더란 거다. 결국 내가 이상한 놈이라는 걸 깨닫게 되는 거다. 그래서 사랑에는 또 다시 노력이 필요하다는 거다. 자신의 상태를 바라볼 줄 아는 노력. 상대가 아니라 나를 돌아볼 수 있는 노력 말이다. 사랑이 노력 없이도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야 말로 가장 잘못된 생각이다. 그건 망상이다.결국 사랑의 최종 단계에서 보게 되는 것은 당신이 아니라 ‘나’다. 당신이 아니라 ‘나’를 관찰할 수 있게 된다. 그러니 용납할 수 있는 싫음을 가진 사람을 만나는 것은 얼마나 멋진 일인가. 그러니 이유 불문하고 사랑하라.

2019-10-15

개의 발정기와 마운팅

개는 수컷과 암컷의 교미시기가 차이가 있다. 개의 경우 수컷은 일년내내 교미가 가능하지만 암컷은 한 해에 두 번 정도 발정기가 있는데, 수컷의 성욕을 활성화시킬 수 있는 것은 발정기의 암컷이 눈앞에 있거나 적어도 그 냄새를 맡았을 때이다. 즉 수컷은 항상 교미에 관심이 있긴 해도 발정기에 있는 암컷이 있어야 교미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야생 개과동물의 발정기는 한 해에 한 번이고, 집개는 대부분 한 해에 두 번의 발정기를 가진다.발정기의 암컷은 난소가 수정을 가능하게 하는 여러 가지 성호르몬을 분비하고 동시에 수컷을 끌어들이는 독특한 냄새를 만들어낸다. 발정기(Estrus) 라는 단어는 ‘광기’를 의미하는 라틴어에서 나온 것인데, 발정기의 호르몬이 암컷을 평소보다 활동적으로, 때로는 지배적이고 공격적으로 만들기 때문이다.개의 발정기는 21일간 지속되고 세 단계가 있다. 1단계는 발정 전기인데 9일정도 계속된다. 이 시기의 암컷은 안절부절하게 되고 평소보다 왕성하게 돌아다닌다. 물을 먹는 양도 늘어서 가는 곳마다 방뇨를 하는데, 이는 오줌냄새를 통해 수컷을 끌어들이기 위함이다. 수컷은 암컷의 냄새를 아주 멀리서도 맡을 수 있기 때문에 발정기의 암컷이 있는 집 주위로 수컷들이 몰려들기도 한다. 발정전기 단계가 끝날 무렵이 되면 질 분비물에 피가 섞여 거무스름해지기 시작하는데, 사람의 경우 생리가 배란 후에 시작되지만 개의 경우에는 배란전에 시작된다. 이것은 질벽에 변화가 생겨 배란 준비가 갖추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수컷입장에서 보면 이 시기의 암컷은 교미를 위한 강력한 유혹을 하고 있는 것인데, 정작 이때 수컷이 다가가도 암컷은 수컷을 거절한다. 다가오는 수컷에게 으르렁거리기도 하고, 위협하며 물어뜯기도 한다. 공격적이지 않은 암컷은 도망가거나 수컷이 등에 올라타려고 하면 방향을 바꾸어버리거나 하는데, 이런 행동은 수컷을 애태우기 위한 것이 아니라 암컷이 아직 배란을 하지 않은 것 뿐이다. 분비물의 수분이 많아지고 색이 투명해지면 암컷이 교미를 받아들일 준비가 된 것인데, 배란이 일어나더라도 개의 난자가 정자를 받아들일수 있게 되려면 72시간이 걸린다. 개는 난자가 성숙한 상태에서 배란되는 것이 아니라 배란 후에도 시간을 가지면서 성숙해지기 때문이다. 암컷의 거절행동은 배란기가 2∼3일밖에 지속되지 않기 때문에 그때까지 자신의 주변에 가능한 많은 수컷을 끌어들여 두는 것으로 해석된다.이동훈개를 기르다 보면 수컷이 교미흉내를 내는 마운팅 행동을 하는 경우들이 있다. 강아지는 생후 6개월부터 8개월 무렵이 사춘기인데, 이 시기를 맞기 전부터 마운팅과 유사한 행동을 시작한다. 강아지는 보통 걷기 시작하면서부터 동료와 놀게 되면 곧바로 마운팅을 하는 데 이것은 성적인 행동이 아니라 사회적인 행동이다.기본적으로 이 행동은 지배성의 표현인데 강하고 튼튼한 강아지는 단순히 주도권이나 지배성을 나타내기 위해 복종적인 형제나 자매의 등에 올라탄다. 이런 행동은 성장해서도 계속되는데 마운팅은 주도권의 신호여서 생식과 무관하므로 상대가 암컷이든 수컷이든 상관없이 나타나는 것이다. 개가 사람에게 마운팅을 시도하는 경우도 많은데 이때 개들이 성적으로 흥분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자신이 그 사람보다 우위라는 것을 주장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개가 사람에게 마운팅을 시도하는 것을 그만두게 하려면 사람이 우위인 것을 인식할 수 있도록 기본적인 복종훈련을 개에게 가르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서라벌대 반려동물학과 학과장

2019-10-15

조국 장관 사퇴가 남긴 것

박준섭 변호사조국 장관이 전격 사퇴했다. 그동안 광화문 광장과 서초동 검찰청 앞에서 조국 사퇴와 검찰개혁을 요구하는 대규모 촛불시위가 여러 차례 열렸다. 조국 전 장관은 촛불시위가 ‘주권자인 국민의 준엄한 명령‘이라고 주장하였다. 이제는 우리가 촛불민심의 의미에 대하여, 광장 민주주의의 의미에 대해서 고민해야 할 때가 되었다. 과연 촛불 민심은 주권자 자체인가 아니면 주권자의 또 다른 대표인가.그러나 광장의 민주주의가 주권자의 의사라고 규정한 곳은 헌법 어디에도 없다. 우리 헌법은 대의제 민주주의에 입각하여 대통령과 입법부를 국민의 대표로 뽑고 입법부에게 법률을 만들게 하고 대통령을 수반으로 하는 행정부에 법률의 집행을 맡겼다. 입법부가 만든 법률에 의하여 지배하여야 한다는 헌법이념은 독재자의 자의(恣意)에 의한 지배를 받지 않기 위해 고안해 낸 근대헌법의 지혜이다. 근대 대의제 민주주의가 현대에 와서는 국민이 뜻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아직까지는 주권자인 국민의 의사를 실현할 더 나은 대안은 없고, 이것이 최선의 지혜이다.먼저 박근혜 대통령 탄핵 당시의 촛불시위를 생각해 보자. 이것이 미래의 민주주의에 대하여 성찰하는 계기가 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 문제의 핵심은 촛불민심이 아니라 의회의 탄핵소추의결과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인용이라는 헌법적 절차였다는 점이 더 중요하다. 그래서 절차 등을 비롯하여 여러 가지 아쉬운 부분이 있지만, 우리는 전통과 제도와 국가의 권위를 중시하는 보수주의의 관점에서 이를 긍정하고 다음의 역사로 나아가야 하는 것이다. 한편, 최근의 조국장관과 관련된 촛불시위는 그 명분이 아무리 검찰개혁의 지지에 있다고 하더라도, 촛불의 민심이라는 이름으로 주권자의 의사와 동일시 될 수는 없다. 사실 서초동 촛불시위는 문재인 대통령 행정부와 여당 그리고 조국 장관을 지지하는 집단의 의사표현에 불과해 보인다. 그 시위에 참여한 사람들과 의견을 달리하는 국민들이 너무 많다. 조국 장관의 검찰개혁이 공정하고 정의로운 검찰개혁이 아니라 특정 정파를 위한 것이 아닌지 의구심을 갖는 국민들이 많다는 것이다. 그래서 자유한국당 등 보수적 정파와 시민들이 조국 장관에 반대하는 시위를 대규모로 하게 되었고 그 결과 촛불은 갈라졌다. 결국 광장의 촛불은 국민의 민의가 아니라 특정 정파들의 의사표현일 뿐인 것으로 드러났다. 광장촛불의 진실은 여기에 있다.국민들은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서 두 눈을 부릅뜬 파수꾼처럼 지켜보아야 한다. 조국 장관도, 지난 주 서초동 검찰청 앞에서 촛불을 든 시민들도, 광화문 광장에 모인 시민들도 스스로 주권자의 의사를 빙자한다면 그것은 민주주의를 위험에 빠뜨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토크빌은 ‘미국의 민주주의’에서 여론의 다수가 이끌어가는 폭정의 위험성을 지적하였다. 우리의 소중한 민주주의의 촛불이 포퓰리즘의 회오리에 꺼지지 않고 민주주의의 미래를 밝히는 지혜가 되어 주기를 간절히 바란다.

2019-10-15

노벨상 유감

10월은 노벨상 시즌이다. 올해도 어김없이 수상자가 발표된다. 세계적으로 가장 권위 있는 노벨상을 받는 나라와 개인이 이맘때쯤이면 자연스레 궁금해진다. 다이너마이트를 발명한 스웨덴의 알프레드 노벨의 유언에 따라 1901년부터 시작한 이 상은 올해로 벌써 118년째다. 그러면서 그 권위는 여전히 세계 최고다. 특히 과학분야의 수상자는 그 나라의 과학문명 발달 수준을 가늠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가장 눈길을 끈다.역대 노벨상 수상자를 출신지별로 보면 미국이 가장 많다. 특히 과학분야 노벨상 수상자는 미국 국적 보유자가 271명으로 전체의 43%를 차지한다. 영국 14%, 독일 11%, 프랑스 5.5%다. 아시아에서는 24명을 배출한 일본이 최다 기록 보유국이다. 노벨상 수상자를 가장 많이 배출한 대학별로 보아도 미국이 단연 뛰어나다. 1위에서 8위까지 모두가 미국 소재 대학이 차지하고 있다. 가장 많이 배출한 1위 대학은 스탠퍼드 대학이다. 실리콘밸리에 가까이 위치하고 있어 교육 및 연구에서 더 많은 기회를 누릴 수 있었던 것 같다. 구글이나 야후 등의 창립자가 이 학교 출신이다.무역전쟁으로 우리와 각을 세우고 있는 일본은 올해도 과학분야 노벨상 수상자(화학상)를 배출했다. 작년에 이어 연속 수상의 영광도 안았다. 일본과의 기술 격차를 좁혀가며 노벨상 수상자 탄생을 고대하던 우리의 처지가 갑자기 초라해진다. 특히 올해 화학상을 수상한 일본인 요시노 아키라씨가 리튬이온 전지업체 샐러리맨 출신이라는 사실이 더 충격적이다. 일본의 연구 문화가 우리와 다름을 설명하는 대목이다. 짧은 시간 안에 성과를 내겠다는 한국적 조급함으로 노벨상 문턱을 넘기는 쉽지 않다./우정구(논설위원)

2019-10-15

대중조작과 간신 비무극과 백비

강희룡 서예가인간 악행의 동기는 과연 무엇일까라는 물음에 대한 명쾌한 정답을 찾을 수는 없다. 보통은 이기심에서 악행을 저지른다지만 역사에서는 이유를 찾으려 해도 특별한 동기 없이 악행을 저지르는 사람이 자주 등장한다. 어쩌면 그들은 자신의 행동이 악인지 모를 수 있다. 그러나 이 악인들의 공통된 특징이 있으니, 목적을 위해서라면 복잡한 음모도 한 순간에 만들어내는 천재적인 재주를 가졌다는 점이다.중국의 춘추전국시대의 역사를 기록한 열국지(列國志)에 등장하는 인물 중 희대의 간신은 비무극(또는 비무기)과 백비로 기록된다. 비무극(?~전515년)은 춘추시대 초나라의 정치가로 평왕의 아들인 태자 건의 소부(少傅·부스승)를 맡고 있었다. 권력에 야심이 많은 비무극은 우매한 평왕을 이용하여 태부(태자스승)였던 오사부자를 처형했고 군주와 신하들 사이를 이간질하여 자신의 정적들을 숙청했고, 생각이 다른 신하들을 주살하고 권력을 휘둘렀다. 결국 백성의 원망으로 초나라는 혼란에 빠졌다. 결국 오, 월, 초의 광폭한 복수극은 이 한 사람의 악인으로부터 시작됐고, 그리고 끝내 남방을 피로 물들이게 된다.백비는 초나라 대부 백극완의 아들로 간신 비무극의 흉계로 부친이 억울하게 처형되자 오나라로 도망쳐 동병상련의 처지인 오자서에게 의탁했고 그의 추천으로 오왕 합려와 부차를 섬기게 된다. 감언이설과 아첨에 능해 곧은 충정을 지닌 오자서와 계속 대립했고, 결국에는 월왕 구천의 책사인 범려의 꾀에 넘어가 월나라를 대파한 공에 자아 도취되어 부차를 안일과 환락에 빠지도록 만들었으며 충신 오자서를 참소하여 결국 자결하게 만들었다. 결국 오나라의 세력은 약화되어 마침내 월나라의 공격을 받아 멸망했다. 그의 일족도 월왕 구천에게 처형당하고 도륙됐다. 이렇듯 역사에서 읽을 수 있는 간신의 영향은 망국과도 직결됨을 알 수 있다.사람들의 의견이나 생각, 경험 등을 서로 공유하는 온라인인 소셜 미디어나 신문, 방송 또는 유튜브 등을 통해 민주주의가 얼마나 쉽게 교란될 수 있는지, 또는 얼마나 쉽게 무너질 수 있는지를 지금의 정치현실에서 우리는 생생하게 느끼고 보고 경험하고 있다.지금처럼 정교한 가짜 뉴스가 사방에서 몰아치며 진실을 가리고, 현재의 불평등과 미래의 불확실성이 엄습할 때 우리는 민주주의로 가장한 권위주의에 이끌리게 된다. 이러한 현상은 결국 국민들의 판단을 흐리고 무기력하게 만든다.국정농단으로 대통령이 탄핵되고 정권교체가 이뤄졌지만, 현 정부 역시 고도로 발달한 매스미디어를 통해 대중을 상대로 일방적 선전과 설득이나 상징정책을 통해 대중으로 하여금 무의식중에 동조하고 지지하도록 양분된 선동정치를 하고 있다. ‘역사는 되풀이되지 않지만 교훈을 준다.’는 교훈처럼 역사를 있는 그대로 보며, 그 속에서 우리가 놓인 위치를 알면, 나아가 우리가 무엇을 바꿀 수 있는지를 알 수 있다. 그렇게 할 때 우리는 비로소 가짜 민주주의를 더듬던 발걸음을 멈추고 불확실한 미래를 우리의 것으로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바로 ‘책임의 정치’이며 역사의식이다.

2019-10-14

슬픔의 미학

러시아 음악의 진정한 별. 표도르 차이코프스키가 세상을 떠나기 2개월 전에 쓴 만년의 걸작은 교향곡 6번 ‘비창’입니다. “나의 인생에서 가장 뛰어난 작품”이라며 만족했습니다. 낭만주의 교향곡 중에 작품성이 가장 탁월하다는 평을 받습니다. 원래 차이코프스키 교향곡에는 표제가 붙지 않지만, 아끼던 동생 모데스트 차이코프스키의 제안으로 ‘비창’이라는 표제를 악보에 적어 넣었다고 하지요.이 작품을 첫 연주한 지 9일 만에 차이코프스키는 세상을 떠납니다. 그래서 이 작품은 더욱 불멸의 명성을 얻습니다. 음악 전체에는 비통함의 감정이 뚝뚝 묻어납니다. 연주의 하이라이트 4악장은 울부짖는 아다지오의 비통한 현악으로 시작하지요. 투티의 포르티시모로 고조한 뒤 피아노시모로 툭 떨어집니다. 서서히 하강하는 파곳의 독주를 거쳐 애절하기 이를 데 없는 안단테 2주제가 등장합니다. 2주제는 탐탐(징)이 공허하게 울리며 시작하고 금관이 절망의 소리를 내며 코다로 들어갑니다. 피치카토의 쓸쓸함과 더불어 스러지는 종결부는 긴 여운을 남깁니다.인생이 느낄 수 있는 절망과 슬픔을 음악적으로 가장 극명하게 묘사한 걸작입니다. 슬픔이 가득할 때 차이코프스키를 들으면 그대의 마음이 한결 편안해지는 것은, 그의 음악이 우리 마음을 다독여주기 때문이지요. 그 상처들을 속속들이 어루만져 주는 힘일 것입니다. “행복은 인간의 몸에 좋다. 하지만, 인간의 정신력이 키워지는 것은 바로 깊은 슬픔의 체험을 통해서이다.” 마르셀 프루스트 말입니다.삶은 빛과 그림자의 연속입니다. 그림자를 거부하고 밀쳐내려 하면 할수록 우리 삶은 더 피곤하고 공허할 수 있습니다. 슬픔 속에 감춰진 연금술의 마법 같은 요소를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슬픔을 거부하지 않고 오히려 껴안아 삶의 보약으로 승화시키는 일은 난이도가 높지만 궁극적 삶의 지혜입니다./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대표

2019-10-14

천고마비

류영재 포항예총 회장가을! 천고마비의 계절이다. 긴 장마에도 끝이 있듯이 지루하게 이어지던 더위가 꺾이는가 싶더니 어느새 열린 창으로 선선한 바람이 들고, 새벽녘에는 발치에 두고 자던 이불을 슬며시 턱까지 끌어당긴다. 절기의 변화는 언제나 느끼는 것이지만 참으로 심오하다. 이제 추분이 지났으니 낮보다 밤이 길어지기 시작할 것이며 곧 월동준비를 해야 할 것이다.미세먼지 스트레스로 하늘 쳐다 볼 일이 별로 없다가 추석 달 보느라 모처럼 올려다 본 가을하늘은 더 없이 높고 공활했다. 아! 이래서 천고마비라 하는구나. 예나 지금이나 하늘 높은 건 반가운 일이지만 마비(馬肥)는 좀 다르다.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살찐 말은 아름답지만 사람의 경우는 기준이 좀 달라서 살을 빼느라 온통 난리법석이다. 살찐 말만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사람도 불룩 나온 아랫배가 부의 상징이라 자랑스럽게 내밀고 다니던 때도 있었다. 그들을 부러워하던 이 땅의 부모님들 눈에는 학업이나 직장 등의 이유로 오랜만에 만난 자식들은 언제나 ‘얼굴이 반쪽’이었다. 배나온 사장님은 흠모의 대상이었으며, 그가 타고 온 포니자동차가 내뿜는 연기 냄새는 향수보다 매혹적이라 동네 아이들은 자동차 꽁무니를 무작정 따라 뛰곤 했다.불과 몇 십 년 만에 세상은 놀랍도록 변했다. 집집마다 자동차가 있고, 배기가스가 대기오염의 주범이라 하여 오래된 경유차는 서울시내 진입을 제한할 지경이 되었으니 자동차는 더 이상 자랑이 아니라 재앙일지도 모를 일이다. 빌렌도르프의 비너스를 가치롭게 여기던 시대가 있었으나 미의 기준도 달라져서 TV에 나오는 아이돌의 얼굴모습이나 몸매는 하나같이 바비인형을 닮았다. 그런 비현실적인 몸매가 선망의 대상이 되자 다이어트 열풍이 불었다. 사람마다 체질이 다르기는 하지만 살 빼는 일이 그리 쉽지는 않은가 보다. 음식조절과 운동은 기본이고 약물이나 성형수술을 무리하게 하다가 심각한 부작용이 생기기도 한다.다이어트가 쉽지 않은 까닭이 조상 탓이라는 설도 있다. 현생인류의 조상인 호모사피엔스가 경작을 시작한지는 불과 1만년 정도에 불과하니, 19만년 동안은 수렵, 채취로 연명했음은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사냥에 성공하고 맛있는 열매를 발견해야 먹을 수 있었으니 있을 때 최대한 많이 먹어야 했을 것이고, 많이 먹고 몸속에 저장하여 다시 먹을 때까지 오래 견딜 수 있어야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이다. 동물은 배가 부르면 먹지 않으나 사람은 그렇지 않다.인체에는 그만 먹으라는 신호가 한 가지인데 반하여, ‘계속 먹어라’ 하는 신호는 무려 일곱 가지나 되며, 살이 빠지게 되면 위험신호로 인지해 기초대사량을 줄이게 되어 더 이상 살이 빠지기 어려워진다고 한다. 그러니 다이어트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초인적인 노력을 하거나 무리한 수단을 동원하다 부작용의 위험을 겪기도 하는 것이다.멋진 계절 가을, 부작용 없이 다이어트하면서 내면은 부디 풍성하게 살찌우자. 깊어가는 가을밤, 월동준비 하듯 마음의 양식을 준비하자.

2019-10-14

동심의 세계로 가는 길 - 청도 대적사(大寂寺)

길은 와인 터널 옆 감나무 밭을 끼고 이어진다. 소란스러운 인파의 그림자를 사뿐히 벗어날 즈음 감나무 잎새에 머물던 계절이 풀잎 위로 내려앉는 소리가 들린다. 최대한 느긋하고 여유롭게 시간을 즐기고 싶었지만 길은 짧았다. 키가 큰 나무들 사이로 높은 석축이 보이고 절은 그 위에서 흔들림 없이 고요하다.대적사(大寂寺)는 876년(신라 헌강왕 2년) 보조선사가 토굴로 창건한 후 조선 숙종 15년 성해대사가 중수하면서 사찰의 면모를 갖추었다. 돌계단에는 젖은 이끼가 법문처럼 자라고 절 문 안으로 불교도의 이상향인 극락정토를 표현한 극락전(보물 제 836호)이 보인다. 절간을 지키던 낮달 같은 독백 하나 마중을 나온다. 인기척이라곤 느껴지지 않는다.극락전은 크지 않지만 탄탄한 기단 위에 앉아 당당하다. H자형의 선각과 연꽃이 새겨진 기단은 멀리서도 시선을 사로잡는다. 자연스럽게 풍화된 시간의 흔적과 살아 있듯 활기찬 움직임들에 절로 미소가 번진다. 아이의 그림 속에서 몰래 도망쳐 나온 듯한 바다 생명체들이 소금기를 풍기며 절간을 활보 중이다. 사랑스럽고 앙증맞다.동화 속 같은 그곳에도 고독과 가난, 죽음의 그림자가 있나 보다. 어미거북은 필사적으로 새끼를 데리고 극락정토로 가려고 애를 쓴다. 가파른 면을 힘차게 부여잡고 올라가는 거북의 네 발이 안쓰러우면서도 대견하다. 반야용선에 오르기 위해 용맹정진하는 악착보살과 같은 숨결이 읽혀진다.우측에는 거북 한 마리 연꽃 위에서 한가롭다. 영혼 없는 연꽃 위가 지상 최고의 낙원인 줄 알고 빈둥거리는 팔자 좋은 녀석, 어느 것 하나도 밉지 않다. 이토록 온전한 풍경이 있을까. 아이와 동물들의 경계 없는 혼재로 천진함의 세계를 표현했던 화가 이중섭의 그림을 보는 것 같다. 그런데 들여다볼수록 의미심장해진다. 인생을 탕진한 바람 한 줄기 불어올 것만 같다.극락전으로 오르는 중앙 계단 소맷돌에 새겨진 투박한 용비어천도는 세련되거나 장중함과는 거리가 멀다. 소맷돌과 계단의 아귀가 맞지 않은 것을 두고 옛날의 석재를 이용하여 고쳐 쌓은 거라 전문가들은 추측한다지만 나는 이 어색함이 오히려 좋다. 마치 추사 김정희가 죽기 사흘 전에 쓴 봉은사 판전을 보는 것 같다. 불심으로 빚어진 이름 없는 석공의 노숙함이 묻어나는 무구(無垢)의 경지라고나 할까. 오랜 숙련을 거쳐 그 법마저 지워버리고 해체하는, 깨달음의 세계도 이렇지 않을까.어렵고 방대한 경전보다 시각적으로 단순화 시켜놓은 작품 앞에서 더 큰 감동이 밀려올 때가 있다. 혼탁한 정신을 치료해 주는 정화수 같은 세계에 시간을 담근 채 한참이나 행복하다. 어디에서도 맛볼 수 없는 특별한 느낌들, 가까운 곳에 보물을 두고도 가치를 몰랐던 나의 무지와 고비처럼 살다가는 찰나의 생에 대한 존재의 질문도 해본다. 햇살 눈부신 마당에 홀로 서서.텃밭 너머 산신각 근처에서 일 하는 스님이 보인다. 주지 정혜(精慧) 스님이시다. 장화와 토시, 밀짚모자 아래로 흐르는 땀, 손길 닿지 않은 곳이 없을 만큼 경내가 정갈한 까닭을 알았다. 사찰을 답사하는 동안 절도 주지스님을 닮아간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요사채에 앉아 스님과 대화를 나눈다. 방치하듯 낙후된 절을 살리기 위해 고군분투하신 흔적이 역력하다. 좋은 기도처로 거듭나기 위한 스님의 의욕과 열정은 굳이 묻지 않아도 드러난다. 북적이는 와인터널 인파의 반이라도 찾아 왔으면 하는 아쉬움을 드러내자 “모두 제 정진이 부족한 탓이지요.”무심한 스님의 말씀에 쓸쓸한 가을 공기 한 줌 출렁거린다.“가난한 시절의 기도는 부처님의 공덕이 느껴졌는데, 지금은 기도가 더 기복적으로 흐르는 것 같아요. 입시나 승진, 집안에 우환이 있을 때는 지극정성 기도하다 일이 해결되면 기도를 멀리 하니 답답한 노릇이지요. 절박함이 닥쳤을 때 하는 기도는 이미 때가 늦은 겁니다. 곳간이 비면 마음이 허전하듯 평상시 늘 기도로 삶을 충전하고 복을 지어야 하는데, 다들 뭐가 그리 바쁜지….”스님의 말끝은 흐려지고 나는 마당에 핀 국화를 보면서 찬란한 생의 한때를 장식할 그 향기를 더듬는다. 잠시 침묵이 흐른다. 아침마다 백팔배로 하루를 열겠노라 다짐해 보지만 쉽지 않음을 토로했다.조낭희 수필가“기도도 대상이 있어야 수월합니다. 집에서는 청정수 한 사발이라도 떠놓고 오욕의 탐욕을 씻는 마음으로 해 보세요. 기도도 욕심을 부리면 안 돼요. 욕심을 내면 혼탁해지고 힘들어지니 작은 것부터 설정해서 집중기도를 해 보세요. 하루 이십 분 정도 편한 시간을 이용하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지요.”무너진 흙담 사이에 온기가 피어오르듯 희망이 생긴다. 철웅 스님의 법어집 한 권을 받아들고 내려오는데, 연꽃 위에서 놀던 거북 녀석이 꾸역꾸역 따라온다. 습은 그저 고쳐지는 것이 아니라는데, 산사 가는 길은 여전히 외롭고, 계절은 또 이토록 아름답다.굽이굽이 옛길 따라 산을 넘는데, 스님 말씀 자꾸만 밟힌다.“눈이 밝은 자는 오겠지요.”

2019-10-14

미술을 정신작용으로 상승시킨 지오토

서양미술사의 지각변동을 일으킨 가장 위대한 거장들을 꼽는다면 의심의 여지없이 화가 지오토 디 본도네(Giotto di Bondone·1266∼1337)의 이름이 거론될 수밖에 없다. 어떤 미술사 책을 열어보더라도 이구동성으로 그의 업적을 칭송한다. 중세를 살면서 중세를 극복했기 때문이다. 지오토의 위대한 회화적 발견이 있었기 때문에 르네상스가 꽃피울 수 있었다고 말하더라도 전혀 과장이 아니다.지오토가 남긴 수많은 작품들 중에서 베네치아에서 그리 멀지 않은 북부 이탈리아 파도바의 스크로베니 예배당 벽화가 그야말로 일품이다. 이 예배당을 건립한 사람은 엔리코 스크로베니인데 아버지 레지날도 스크로베니는 아주 유명한 고리대금업자였다. 얼마나 유명했으면 단테의 신곡 지옥편에도 등장할 정도였다. 아들 엔리코는 아버지로부터 막대한 유산을 물려받았지만 불안했다. 혹시라도 아버지가 지옥에 떨어졌다면 조금이라도 지은 죄가 감해지기를 기원하면서 예배당을 지었다. 그리고 최고의 화가 지오토를 초빙해 내부 전체를 프레스코화로 장식하게 했다.지오토는 서로 마주하고 있는 양 측면의 벽면을 각각 네 개의 구획으로 나눴다. 상단부에는 마리아의 일생을 중간과 그 아랫단에는 그리스도의 일생을 그리고 가장 낮은 단에는 미덕과 악덕을 상징하는 알레고리를 그려 넣었다. 가장 인상적이면서 화가의 상상력이 돋보이는 부분은 출입문 상단에 그려진 ‘최후의 심판’이다. 이 작품으로부터 영감을 받은 미술가들이 적지 않은데 미켈란젤로가 바티칸 시스티나 성당에 최후의 심판을 구상하면서 지오토를 인용한 사실이 가장 잘 알려져 있다.스크로베니 예배당 벽면을 장식하면서 화가 지오토는 ‘마리아의 일생’과 ‘그리스도의 일생’을 큰 주제로 택했다. 넓은 벽면을 구획 짓고 어떻게 화면을 채울지 많은 고민을 했을 것이다. 성서나 문헌이 전해주듯 시간적 순서에 따를 것인가? 아니면 특정한 의미를 강조하기 위해 몇몇 장면들을 부각시킬 것인가? 지오토의 그림이 장식할 공간이 다른 곳이 아닌 교회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화가도 그것을 정확히 인지하고 있었다. 목적성이 분명한 공간에는 분명한 목적성을 띤 작품 구성이 요구된다. 수직 4단으로 구성된 스크로베니 예배당의 측면 벽면에 그려진 상하 그림들 간에는 흥미롭게도 주제의 병렬적 관계가 숨어 있다. 쉽게 말해 벽면에 들어갈 장면을 선택하면서 화가는 의도적으로 의미상 서로 연결되는 장면들을 위아래로 배치한 것이다. 예컨대 ‘최후의 만찬’ 바로 위에 ‘예수의 탄생’이 나타난다. 둘 사이에 무슨 관계가 있을까? 예수는 말구유에서 태어났다. 하늘의 영광을 다 버리고 가장 낮게 인간으로 이 땅에 왔다는 뜻이다. 예수의 이러한 탄생은 미래에 겪게 될 십자가의 고난과 희생을 예견하는 것이다. 그리고 제자들과 함께한 마지막 저녁 식사 이후에 그 험난한 고난이 시작된다. 두 그림 사이에는 이러한 의미적 관계성이 존재한다. 여기서 그치는 것이 아니다. 예수의 탄생은 신의 ‘성육화’(incarnation)를 뜻한다. 신이 인간의 몸을 입고 태어났다는 말이다. 일종의 변용이라고 할 수 있다. 유사한 변용이 최후의 만찬에서도 일어난다. 빵과 포도주가 그리스도의 살과 피로 변한다는 성찬식의 종교적 의미를 떠올려 보면 된다.지오토가 서양미술사를 움직인 가장 영향력 있는 화가로 손꼽힐 수밖에 없는 이유는 단순히 자연을 모방하는 탁월한 기술력 때문은 아니다. 주어진 텍스트를 시각화하면서 서로 간에 흐르고 있는 내적 관계성을 만들 줄 알았기 때문이다. 미술이 기술이기만 했던 시대에 미술을 정신작용으로 상승시켰다는 것이 다른 미술가들과 견줄 수 없는 지오토 디 본도네의 탁월함이다./김석모 포항시립미술관 학예실장

2019-10-14

세종 임금이 서민과 함께 고깃국을 먹었다?

설렁탕에는 근거 없는, ‘전설 같은 이야기’가 늘 따라 다닌다. ‘선농단(先農壇)’에서 ‘설렁탕’이란 이름이 시작되었다는 이야기다. 지금도 이 ‘전설’은 다수설이다. 많은 사람이 이렇게 믿고 있다. 근거는 전혀 없다. ‘주장’도 아닌 ‘전설’이라고 표현하는 이유다. 아마도 일제강점기, “그랬으면 좋겠다”는 이야기가 꾸준히 와전되었다고 믿는다. 왜 일제강점기일까? 그 이전의 기록에는 ‘설렁탕’이 나타나지 않는다. 일제강점기를 전후하여 설렁탕이 나타난다. 조선 말기, 대한제국, 일제강점기에 ‘선농단=설렁탕’이 시작되었다.세종대왕과 설렁탕 이야기를 하는 이들이 많다. 세종대왕은 예나 지금이나 성군으로 추앙받는다. 그래서 ‘세종대왕 때’다. 내용은 “그랬으면 좋겠다는 동화”인데 이야기 얼개는 제법 그럴듯하다.설렁탕은 조선 말기 주막과 더불어 시작된다“세종 임금이 선농단에 제사 모시고, 행사하러 갔다. 하필이면 행사가 끝날 무렵 비가 억수로 왔다. 세종대왕은 제사에 사용한 고기를 큰 가마솥에 끓이게 한 다음, 행사에 참석한 동네 사람들과 나눠 먹었다. 선농단에서 먹었기 때문에 설렁탕이라고 한다.”대략 이런 내용이다. 세종대왕이 흉허물 없이 일반 서민들과 고깃국물을 나눠 먹었다는 동화다. 물론, 터무니없다.지금도 마찬가지. 최고 통치자가 위급한 상황을 만나면 최우선으로 취하는 행동은 ‘정위치’다. 대통령이 외부 행사에 참석했는데, 대형 천재지변이 발생했다. 빨리 청와대로 돌아간 다음, 상황을 살피고 조처를 해야 한다.비가 많이 와서 움직이지 못할 정도면 국왕은 먼저 환궁(還宮)한다. 높고 낮은 벼슬아치들이 동행하고, 그중에는 국왕의 안위를 챙기는 군인, 궁중의 인력들도 있었을 터이다. 선농단이 있었던 서울 동대문구 제기동에서 궁중으로 되돌아가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선농단 행사는, 우리가 지금 그리는 것 같이, 소박하고 작은 행사가 아니다. 조선은 농본국가다. 농사가 국가의 바탕이다. 풍년은 ‘국왕의 선정’이다. 풍년이 들면 ‘성군(聖君)’이 된다. 홍수, 가뭄 등 천재지변으로 농사가 순조롭지 않으면 국왕은 멍석, 거적을 깔고 하늘에 죄를 고했다. 죄인이다.선농단은 한양도성의 동쪽에 있다, ‘동(東)쪽’은 생명, 생산, 새롭게 시작되는 것을 의미한다. 차기 왕위 계승권자인 세자는 ‘동궁(東宮)’이다. 국왕은 궁궐 동쪽의 선농단에서 모든 물산이 풍부해지기를 기원한다. 나라와 백성의 삶이 ‘농업 생산’에 달려 있다. 국왕은 ‘생산의 기본인 농사’를 직접 시범한다. 친경(親耕)이다. 국왕은 새벽부터 일어나 목욕재계(沐浴齋戒)하고 준비한다. 술잔을 따르고, 제사상에 드나드는 모든 절차까지 미리 준비한다. 제사상에 드나드는 사람에 맞춰 음악도 꼼꼼히 챙긴다. 이토록 꼼꼼하게 준비하는 행사에 비상 매뉴얼이 없을 리 없다.두 번째는 고깃국물과 설렁탕의 차이에 대한 오해다. 궁중이나 지방 관청에서는 정육(精肉)을 공급받는다. 오늘날 정육점에서는 고기와 더불어 사골 등 뼈도 판매하지만, 원래 정육은 ‘기름이나 뼈를 제거한 고깃덩어리’를 이른다.선농단의 제사다. 날고기라도 정육을 올렸다. 정육을 고면 대갱(大羹), 곰탕이 되고 고기 부산물을 고거나 끓이면 설렁탕이다. 부산물은 뼈와 사골, 잡뼈, 대가리, 기름 부위 등이다. 세종대왕이 촌노, 마을 주민들과 제사에 사용한 고기를 끓여서 나눠 먹었다면 설렁탕이 아니라 곰탕을 먹은 것이다.덧붙일 이야기가 또 있다. 지금과 같이 불, 주방 도구 사용이 자유롭던 시절이 아니다. 백 명 정도의 식사를 준비하는 것은 대단한 일거리다. 고기를 끓일 가마솥, 장작, 그릇, 수저, 음식을 장만하고 내놓는 인원 등 어느 것 하나 편하지 않던 시절이다.예나 지금이나 최고 통치자의 동선에 돌발적인 일이 끼어드는 것은 최악이다. 비 온다고 국왕이 세민(細民)들과 식사를 같이 했다? 그야말로 “그랬으면 좋겠다”는 동화다.쇠고기는 있되, 설렁탕은 없었다?왜 조선 초, 중기에는 설렁탕이 없었을까? 왜 조선 후기까지도 설렁탕이 없었을까? 양이 많든 적든 ‘소의 도축’은 있었다. 제사, 손님맞이에 고기는 필요하다. 종묘, 성균관을 비롯한 각종 제사, 외국에서 오는 손님맞이 등이다.조선 초기에도 소의 공식적인 도축은 있었다. 문제는 양이다. 조선 후기에 비하면 양이 적었고 더더욱 불법 도축은 엄히 금했다.‘조선왕조실록’ 세종 7년(1425년) 2월의 기사다. 제목은 ‘한성부에게 우마를 도살하는 자를 수색 체포하여 엄히 금단하게 하다’이다.(전략) 우마(牛馬)를 도살(盜殺)하는 자는 오로지 이 신백정(新白丁)이기 때문에, 영락(永樂) 9년에 신백정을 조사 색출하여 도성으로부터 3사(舍) 밖으로 옮겨 놓았던 것입니다. 근래에 와서 이 금지법이 무너져, 드디어 성안과 성 밑으로 모두 돌아와 살면서, 한가로운 잡인과 더불어 같이 우마를 훔쳐내어 도살(屠殺)을 자행하니, 그 간악(奸惡)함이 막심하옵니다. 위에 말씀드린 백정과 그 처사를 모두 조사 탐색하여 아울러 해변 각 고을로 옮겨, 군관(軍官)으로 하여금 수시로 핵문(覈問)하여 원주지로 도망해 돌아오지 못하도록 하여야 할 것입니다. 또, 우마의 고기를 먹는 자에게 다만 태형(笞刑) 50대를 가하니, 사람들이 이를 모두 가볍게 여기고, 〈그 고기가〉 나온 곳을 묻지 않고 공공연하게 사서 먹으므로 도살이 근절되지 않고 있사오니, 매우 부당한 일입니다. 금후부터는 (중략) 한성부(漢城府)로 하여금 이를 수색 체포하여 엄중히 금단(禁斷)을 가하도록 하소서. (후략)같은 시대임에도 글의 ‘신백정’은 다른 글에서는 ‘양척’ ‘화수척’ 등으로 더 험하게 표현했다. ‘새롭다’라는 ‘신’은 이들이 아직 조선 사회에 적응하지 못했음을 의미한다. 백정은 ‘일반적인 백성’을 의미한다. ‘신백정’은 새로운 백성이다. 외부에서 온 사람들. 농사를 짓지 않고 고기를 만지는 이들이다. 도축은 이들의 손에 달렸다.신백정은 ‘3사 밖으로’ 쫓겨냈다. 1사는 30리, 3사는 90리다. 도성 바깥으로 쫓아낸 다음, 철저하게 관리했다. 벌이 너무 약하다. 아예 바닷가 마을로 쫓아내자고 말한다. 조선 시대 내내 바닷가는 사람이 살지 않았던 곳이었다. 왜구들의 침략이 잦으니 바닷가 사람들은 전부 내륙으로 옮겼다. 이런 곳에 살게 하자는 것이다. 온전한 국민으로 여기지 않았다.불법 도축한 고기를 사 먹는 이에 대한 벌도 낮지 않다. 태형 50대다. 이것도 법이 너무 무르니 더 심하게 하자는 상소다.민간의 고기 수요도 철저히 통제되었다. 제사나 손님맞이 등에 고기가 필요하면 관청에 신고하고 특정 시기, 특정 양을 공급하는 방식이었다. 불법 도축은 좀 더 많은 고기를, 좀 더 편하게 구하려는 사람들을 위한 편법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고기를 도축하고 그 부산물을 사용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설렁탕이 나오지 않았던 이유다.시중(市中), 난전(亂廛)에서 특정 음식을 내놓으려면 음식 재료가 꾸준히, 일정 물량 공급이 가능해야 한다. 조선 전기에는 모든 면에서 설렁탕이 나올 수 없었다.설혹 부산물을 구할 수 있다 해도 ‘시장’ ‘식당’이랄 수 있는 ‘주막’이 아직 제대로 자리 잡지 않았다. 조선 초기, 상업이 발전하지 않았고 공식적인 시전(市廛) 이외에는 시장이 아예 없었다. 대부분 민간은 물물교환 경제였다.관리들은 역원(驛院)을 이용했고, 사설의 주막은 조선 후기의 이야기다. 고기 부산물도 없고, 주막도 없다. 더더욱 주민들의 이동이 드무니 설렁탕이 있었다 하더라도 사 먹을 사람이 없었다.개장국[狗醬, 구장]이 흔하던 시절이다. 조선 후기까지 주막의 주요메뉴는 개장국이었다. 쇠고기 부산물로 만든 설렁탕이 조선 말기, 일제강점기에 시작된 이유다. 조선 후기부터 소의 생산이 늘어난다. 금육이 풀리고 주막이 활발해진다. 청나라 영향으로 개고기를 피하는 이들이 생긴다. 여전히 정육, 살코기는 비싸다. 소 부산물로 끓이는 설렁탕이 급작스럽게 시작된다.한 가지 의문. 조선 초, 중기, 쇠고기 부산물은 먹지 않고 버렸을까? 그렇진 않다. 냉장, 냉동시설이 없던 시절이다. 각종 뼈, 소 대가리, 기름 등도 백정 혹은 인근 주민들이 먹었을 것이다. 다만 상업적으로, 설렁탕이라는 이름은 없었다.세종의 선농단, 설렁탕은 전설이자 아름다운 동화다./맛칼럼니스트 황광해

2019-10-14

스니커테크

스니커테크는 한정판 운동화를 가리키는 스니커와 재테크의 테크가 합쳐진 신조어로, 한정판 운동화를 새로운 투자 수단으로 삼는 것을 말한다. 한때 고가의 명품백을 되팔아 재테크하는 것을 샤테크(샤넬+재테크)라 불렀다면 이제는 운동화에 투자하는 스니커테크가 대세라고 한다.실제 얼마전 서울 마포구 나이키 조던 홍대점 앞에 긴 줄이 늘어섰다. 그날 발매하는 ‘에어 조던 6 트래비스 스콧’의 드로우(Draw·제비뽑기)에 참여하려는 인파가 몰려서다. 드로우란 추첨을 통해 신발을 구매할 권리는 주는 것으로, 한정판 운동화 판매 방식으로 쓰인다.나이키는 이날 1만 개의 응모권을 발행했고, 총 656명에게 운동화를 살 기회를 줬다고 한다. 판매된 운동화 가격은 30만 9천 원이었지만, 출시 사흘 만에 이 운동화 가격은 중고거래 사이트 등지에서 140~180만 원에 거래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출시 3일 만에 가격이 6배나 오른 것이다. 180만원에 판다면 수익률은 482%. 운동화 구매권 응모에 사람들이 몰린 이유다.젊은이들의 이런 운동화 재판매 열풍은 세계적인 추세다. 미국의 한 투자은행은 2025년까지 전 세계에서 60억 달러, 우리 돈 7조 1천600억여 원 규모의 스니커즈 재판매 시장이 형성될 것으로 추정했다.인기가 높은 신발은 당첨만 되면 리셀(Resell·재판매)로 2~3배의 수익을 낼 수 있고, 수수료도 세금도 낼 필요가 없으니 이만한 투자처가 없다. 만약 팔리지 않아 수익을 내지 못한다 해도 큰 문제는 없다. 신으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한정판 운동화는 시간이 지날수록 가치가 더 높아진다니 변화하는 세태가 어지러울 따름이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19-10-14

진흙 속에 피는 연꽃

변창구 대구가톨릭대 명예교수·국제정치학정치꾼(politician)들이 권력을 두고 벌이는 진흙탕 싸움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내 편, 네 편 나누어서 ‘나는 천사, 당신은 악마’라고 우기는 진영논리는 한국정치를 진흙탕 싸움으로 만들었다.‘정치는 실종’되고 ‘정략(政略)만 난무’한다. ‘승자독식’의 정치풍토이니 대화와 타협은 없고 집권을 위한 투쟁만 있다. 진보진영이 50만 명 동원해서 시위하면 보수진영은 100만 명을 결집시켜 세(勢)를 과시한다. 정치가 실종되었으니 국민은 생업을 뒤로한 채 거리의 전장(戰場)으로 내몰리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국민을 위한 전쟁이 아니라 정치꾼들의 집권을 위한 대리전이다. ‘승자는 정치꾼’이고 ‘패자는 국민’일 뿐이다.거짓과 위선의 정치꾼들은 자연으로 돌아가서 ‘연꽃의 삶’을 배워야 한다. 연꽃은 ‘처염상정(處染常淨)’ 즉, 진흙 속에서 피어나지만 결코 더러운 흙탕물이 묻지 않는다. 색깔이 화려하지는 않지만 단아하며, 향기는 강하지 않으면서도 은은하다. 연꽃은 가장 화려할 때 물러날 줄 아는 ‘군자의 꽃’이다. 연꽃은 정치꾼들에게 ‘자기 정화와 겸손의 미덕’을 가르쳐 준다.조국 사태의 본질은 ‘이념이 아니라 공정의 문제’임에도 진영논리에 갇힌 사람들은 거짓과 진실을 구분하지 못한다. 특정 이념의 왜곡된 안경으로 세상을 바라보기 때문이다. 자신의 안경을 고칠 생각은 하지 않고 상대방만 탓한다. 반면에 ‘연꽃 같은 사람’은 자기 진영이라 할지라도 잘못을 저지르면 가차 없이 비판한다. 진흙탕 같은 정치판에서도 청정심(淸淨心)을 잃지 않기 때문이다.불행 중 다행인 것은 진보진영에도 ‘외눈박이 프레임’에 갇히지 않은 연꽃 같은 사람들이 있다. 참여연대의 김경율 집행위원장은 “조국은 민정수석 자리에서 시원하게 말아 드셨다”고 하면서 ‘시민단체인 참여연대 인사들의 권력과의 밀착’을 맹비난하였다. 경실련 정책위원장인 박상인 교수도 ‘진흙탕 싸움의 원인은 대통령의 조국장관 임명’에 있기 때문에 “국정을 책임지고 있는 대통령과 집권여당이 결자해지(結者解之)의 심정으로 조국 사태를 풀어야 한다.”고 고언(苦言)하였다. 이들 역시 진보주의자이지만 결코 정의를 외면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연꽃을 닮았다.정치적 동물인 인간은 ‘마약 같은 권력’을 항상 경계해야 한다. 대통령 취임식에서 ‘국민통합’과 ‘공정’을 철석같이 약속했던 문재인 대통령이 오히려 분열을 조장하고 공정하지 못한 태도를 보이는 것은 ‘이념과 권력에 대한 집착’ 때문이다. 이러한 인간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자연에서 배워야 한다.오물 속에 뿌리내리고 있으면서도 결코 청정함을 잃지 않고 단아한 꽃을 피우기까지 겪는 연(蓮)의 고통을 생각해 보라. 연이 꽃을 피우기 위해서는 오물을 걸러내고 또 걸러내는 자기 정화의 노력을 끊임없이 반복해야 한다. 따라서 문재인 대통령도 대의(大義)에 헌신하는 ‘올바른 정치인(statesman)’이 되고자 한다면 ‘연꽃 같은 삶의 자세’를 가져야 한다.

2019-10-14

인사가 망사(亡事)

인재 등용을 얘기할 때 삼성 창업주인 이병철 회장의 일화가 자주 인용 되는 것을 본다. 신입사원 면접 때 자신이 직접 참석할 뿐 아니라 관상가를 모셔놓고 면접을 보는 독특한 스타일 때문이다. 이 회장 자신도 평소 관상학에 관심이 많아 관련 서적을 탐독했다고 전한다. 사람을 잘 뽑아야 기업을 발전시킬 수 있다는 그의 경영철학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그는 “내 일생의 80%를 인재를 모으고 교육시키는데 시간을 보냈다”고 할 만큼 삼성의 발전은 유능한 인재에 있었음을 강조했다.삼국지에 등장하는 삼고초려(三顧草廬)는 인재를 알아본 영웅의 일화다. 촉한의 유비는 오두막집에 기거하는 제갈량을 세 번이나 찾아가 간청한다. 제갈량의 지혜와 재능으로 유비는 정치적 포부를 이루는데 인재 영입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가르치는 교훈이다. 세종대왕이 정치, 경제, 문화적으로 조선 최고의 융성함을 누렸던 것도 인재등용 정책 덕분이다. 조선시대 최고 발명가인 장영실은 본래 노비 출신이었으나 세종대왕에 의해 발탁된다. 세종은 그를 중국으로 유학보내 공부를 하게함으로써 그를 조선시대 최고의 과학자로 키웠다.인사가 만사(萬事)라는 말은 사람을 잘 뽑아 적재적소에 앉히면 모든 일이 잘 풀린다는 뜻이다. 단체든 기업이든 국가든 인재를 잘 등용해야 흥할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역사가 입증했다. 따지고 보면 세상사 모든 것은 사람의 손끝에 달렸다. 인사가 만사라는 인재 등용의 진리는 고금동서를 관통한다.조국사태가 두 달째 소용돌이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국민의 걱정이 온통 나라를 덮는다. 대통령의 인사 하나로 끝날 문제가 이 지경에 왔다. 인사가 망사(亡事)가 된 꼴이다. /우정구(논설위원)

2019-10-13

‘검찰 개혁’ 죽이기

안재휘 논설위원승불요곡(繩不撓曲)이라는 말이 있다. 한비자(韓非子) 유도(有度) 편에 나오는 이 말은 ‘먹줄은 나무가 굽었다 하여 같이 휘지 않는다’는 뜻이다. ‘법’이란 먹줄과 같은 효능을 갖고 있다. 곧은 길이 어디인지, 우리가 지켜야 할 경계가 어디인지를 가늠하게 해주는 불가침의 기준이다. ‘법치’란 바로 먹줄의 기능을 존중하는 데서 출발한다. 시대 상황이 제아무리 휘었다 한들 절대 휜 줄을 치지 않는 먹줄의 가치는 지켜져야 하는 것이다.‘조국 대란’에 휘둘린 지 석 달째 접어들면서 대한민국은 ‘궤변 공화국’으로 바뀌어 가고 있다. “조국의 문제는 ‘진보-보수’가 아니라 ‘정의-불의’의 문제”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절대다수다. 아무리 생각해도 논리적 연결성을 찾아내기 힘든 대목은 ‘조국 수호=검찰 개혁’이라는 구호다. 불법과 편법이 뒤죽박죽 엉킨 인생을 살아온 조국 일가의 온존이 어찌 검찰 개혁과 등치(等値)되는 개념인가.최고 수준의 교졸한 궤변론자로 유명한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은 지치지도 않고 서툰 훈수질을 멈추지 않고 있다. 조국 장관 딸 조민의 인턴 수료증 위조문제가 첨예하게 대두될 당시에 동양대 총장과 통화를 해 물의를 빚은 그는 대뜸 ‘유튜브 기자로서 취재한 것’이라고 세상을 희롱했다. 정경심 교수의 증거인멸을 ‘증거보존 행위’라고 강변해 또 한 번 그 진영주의 논법의 천박성을 드러낸 바 있다.이번에는 법무부와 대검찰청이 특수부를 반부패수사부로 바꿔 서울중앙지검을 비롯한 3곳에만 최소한으로 설치하기로 합의한 검찰개혁안을 물고 늘어졌다. 유시민은 이를 놓고 “영업 안 되는 데는 문 닫고, 잘 되는 곳은 간판만 바꿔서 계속 가면 신장개업이지 없어지는 게 아니다”라고 비아냥댔다.이쯤 되면 여권(與圈)이 추구하고 있는 ‘검찰 개혁’이 곧 ‘검찰의 무력화(無力化)’임을 단박에 알게 한다. ‘권력의 사냥개’였던 검찰을 ‘권력의 똥개’로 만들자는 흉계인 것이다.조국 장관이 내놓은 검찰개혁안도 마찬가지다. 법무부의 ‘인사권·감찰권’ 강화로 검찰을 통제하겠다는 그의 구상은 분명하게 ‘검찰 개혁’의 역방향이다. 검찰의 1차 감찰권을 법무부가 빼앗겠다는 방침은 ‘검찰독립’을 현저히 헤쳐 대통령의 ‘검찰 장악’을 더욱 강화할 게 틀림없는 개악(改惡)임이 분명하다. 서초동에 모여서 펼치는 친여세력 힘자랑의 목표가 ‘검찰 무력화’라면 이건 양두구육(羊頭狗肉)의 저질 선동정치에 불과하다.‘검찰개혁안’의 제1조가 ‘권력으로부터의 독립’이어야 한다는 것은 상식 중에도 상식이다. ‘검찰 개혁’이라는 구호를 앞세워서 ‘검찰 개혁’을 완전히 죽이고 있는 이 역설을 어찌 헤쳐가야 하나. 굽은 나무에 굽은 먹줄을 치려는 이 음험한 정치적 먹구름은 대체 어떻게 걷어내야 할 것인가.엉터리 궤변에 동조해 ‘조국 수호=검찰 개혁’ 팻말을 들고 길거리에 나가 말도 안 되는 구호를 외치며, 자신이 무슨 모순을 빚고 있는지도 모르는 무수한 편견의 노예들이 딱하기 그지없다.

2019-10-13

북한의 우상화와 시장화의 역설(逆說)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북한 당국은 최고 지도자를 항상 우상화하고 있다. 북한은 김일성과 김정일의 ‘혁명 역사’와 ‘혁명 활동’까지 초중등의 핵심교과로 삼고 있다. 김일성 부자의 신출귀몰한 ‘혁명적 행위’는 우상화를 넘어 신격화 수준에 이르고 있다. 김일성의 전기인 ‘세기와 더불어’도 그의 항일 투쟁과 빨치산 활동을 과장 선전하고 있다. 북한은 우상화를 통해 수령의 왕국 건설을 위해 일사불란한 체제의 안정을 도모하고 있다.이러한 수령 우상화 현상은 김정은 시대에도 그대로 계승되고 있다. 2011년 김정일 사후 1984년 생 28세 김정은은 세습왕조의 통치를 위임받았다. 북한 당국은 그의 일천한 경륜 보강을 위해 상징조작을 시작하였다. 그의 헤어스타일과 제스처, 검은 뿔테 안경, 흡연 장면, 복장까지 할아버지 김일성을 모방하고 있다. 김정일이 회피하던 대중연설도 그는 할아버지처럼 수시로 연출한다. 30대의 통치자 김정은을 노령의 간부들이 호위하고, 그의 현장지시는 모두 빠짐없이 받아 적는다.‘적자생존’의 경쟁이 시작된 것이다. 고모부 장성택처럼 조금이라도 불경한 태도를 보이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처벌받는다. 모두가 우상화 강화 현상이다.김정은 시대의 이러한 우상화에도 불구하고 북한 땅에서는 시장은 날로 확산되고 있다. 농촌의 소규모 장마당에서 출발한 종합 시장은 벌써 500여 개가 넘었다. 시장화에 따라 북한의 ‘돈 주’는 자본가 행세를 하고 빈부의 격차는 심화되고 있다. 북한의 시장화는 정보화가 촉진되어 휴대폰 소유자가 600만 명을 넘었다. 시장화의 급속한 진전은 기아자의 감소 등 긍정적인 측면도 나타난다. 그렇다보니 북한 당국은 이제 시장화의 물결을 막을 수 없다. 북한 시장에서 돈을 벌려는 사람은 증가하고 똑똑한 사람일수록 신흥 부자가 되려는 것이다.이러한 북한사회의 시장화 진전은 우상화의 역행 현상을 초래한다. 그러나 북한의 시장 정책은 가다 서다를 반복하지만 이제 시장화의 큰 물꼬를 막을 수는 없다. 벌써‘우리를 배고프게 하는 수령은 우리의 수령이 아니다’는 말까지 번지고 있다. 김정은이 작년부터 선군(先軍)보다는 선경(先經)을 앞세우는 이유이기도 하다. 시장은 중단된 북한의 공업을 다소나마 회생시키고 물류와 운수업이 동반 성장하게 된다. 동시에 시장을 통한 정보화의 진전은 주민들의 의식까지 변화시키고 있다. 이처럼 시장화가 촉진될수록 북한의 우상화 정책은 지장을 받는다. 북한 인민들은 ‘위대한 수령’보다는 ‘눈앞의 빵’을 더욱 선호하기 때문이다.시장경제는 결국 주민들이 이념보다는 실용적 가치를 선호케 한다. 그러다 보니 북한 땅의 시장화는 우상화정책에 역행할 수밖에 없다. 그리하여 북한 당국은 시장화의 부작용을 줄이려고 무던히 애를 쓰고 있다. 그러나 북한의 시장화에 따른 다양한 사회적 욕구마저 당이나 국가가 통제할 수는 없다. 시장화가 촉진될수록 독점 권력은 분산되고 다원화된다. 앞으로 북한 인민들의 정치적 욕구도 다원화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시장 경제의 초보 단계인 북한에서 주민들이 반정부 반체제 의식은 조직화되지 못하고 있다. 오렌지 혁명을 기대하기 어려운 이유이다.

2019-1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