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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2년차 이철우 지사의 과제

이창훈 경북도청본사 본부장이철우 경북도지사가 경북도청호(號)의 닻을 올린지 2년차에 접어들었다. 취임한 후 1년여 동안 이 지사는 조직 분위기 쇄신과 향후 성과의 발판을 놓기 위해 드라이브를 걸었지만 생각대로 되지 않았고 여러 가지 사업들도 발목을 잡히는 등 힘든 한해를 보냈다. 이 과정에서 직원들은 새로운 수장에 적응하는 기간을 비롯, 새 인물이 유입되는 과정에서 크고 작은 마찰 등도 있었다. 도청 공무원은 김관용 전 지사가 연속해서 도정을 12년간 이끌어온 만큼 김 전 지사스타일에 길들여져 새로운 수장에게 적응하기가 쉽지않았던 게 사실이다.김 전 지사와 이 지사는 상당한 차이점이 있다. 김 전 지사는 보스형으로 실국장들에게 상당한 권한을 위임했으나, 이 지사는 리더형으로 모든 것을 직접 챙기는‘만기친람(萬機親覽)’스타일이다. 또 이 지사 취임 후 도청을 비롯 산하기관에 20여 명의 새 인물이 둥지를 틀었다. 이 또한 행정가 출신인 김 전 지사 시절과는 다른 분위기로 설왕설래도 많았다. 이 지사는 3선 선량의 정치인 출신으로 과거 한솥밥을 먹던 직원들을 비롯 평소 눈여겨봤던 사람들을 스카웃, 도정을 변화시키기 위해 시동을 걸었다. 1년여가 지나면서 합격점을 받은 이들이 있는가 하면, 전문성 부족 등으로 옥상옥이라는 말도 나오는 등 평가가 엇갈리고 있다. 무엇보다 이 지사는 도청 분위기 쇄신을 위해 ‘환골탈태’라는 모토로 고군분투했다. 구두 대신 운동화에 점퍼를 입고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달리며 분위기 쇄신을 주도했지만 직원들이 따라가기에는 힘들었을 것이다, 이제 어느 정도 적응기를 가진만큼 올해부터는 취임 첫해의 프로젝트에 가속도를 내야 한다.정책이 속도를 내기 위해서는 우선 직원들과 조화가 되어야 한다. 지사가 아무리 동력을 걸더라도 직원이 움직이지 않으면 만사휴의다. 현재 직원들의 분위기는 지사가 너무 큰 목표치를 내세워 홀로 독주, 따라가기가 힘이 들고 너무 세세한 것까지 챙겨 힘이 든다는 분위기다. 하지만 조직의 수장은 일할 수 있는 분위기 메이커가 되어야하는 만큼, 실국장들에게 권한을 과감하게 위임하는 것은 어떨까 하는 생각이다. 또 도가 추구하는 프로젝트가 국가도 해내기 힘든 너무 큰 스케일이라 순항할 수 있을지, 아니면 돈먹는 하마가 되어 흐지부지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나온다. 이 지사의 빅프로젝트는 저출산인구 극복, 일자리창출, 투자유치 등이지만 이 세가지가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소멸해가는 지역의 인구를 늘리고 투자유치를 이끌어 내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보다 더 좋은 정책은 있을 수 없다. 하지만 이 정책들은 대통령도 하기 힘든 것으로 자치단체 차원에서 결실을 보기에는 지난한 과제다. 이에따라 일부에서 이 지사가 너무 큰 공약을 준비해 실현해 나가는 과정에서 성과가 부진할 경우 동력을 잃어 도정에 차질이 생기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하고 있다.또 다른 일각에서는 이 지사가 차기 또는 차차기 대권을 위한 포석을 너무 처음부터 과하게 잡은 것 아니냐는 말들이다. 광역단체장이 지역을 발판으로 업적을 쌓아 대권에 성공하면 지역민으로서 더이상 바랄게 없겠지만 너무 처음부터 헛심을 빼는 것 아니냐는 걱정에서 나온 말이리라. 또 이 지사는 직무수행에 있어 절대다수의 지지를 염두에 두는 것 같다는 생각이다. 표를 먹고사는 정치인이 다수의 사람으로부터 지지를 받야야 하겠지만, 분명한 자신의 철학을 보이고, 철학이 다른 사람은 따라오게 하든지 아니면 과감히 도태시키는 등 결단력도 필요하다.더불어 도는 건강한 언론에 의한 건전한 비판 속에 더욱 단단한 열매가 열린다. 시도민의 여론과 도정이 조화를 이루기 위한 미세조정 차원에서 언론정책 재고도 필요해 보인다. 경북도청호의 선장을 맡은지 2년차에 접어든 이철우 지사가 향후 도정에 더욱 매진해 좋은 결실을 맺기를 바란다.

2019-07-16

삶이 말(言)로 말에서 글(文)로

1960년대. 경북 시골 초등학교에 깡마른 선생님이 부임합니다. 어느 교실에서도 들어보지 못한 새로운 국어 수업을 진행합니다.“어린이 여러분. 글짓기하지 마세요.”선생님은 시골 아이들에게 글은 짓는 것이 아니라 쓰는 것임을 강조하면서 네 가지를 당부합니다.첫째, 자신이 평소에 하던 ‘말’을 그대로 글로 옮겨 써도 괜찮아요. 둘째, 더러 서툰 말이 나와도 아무 상관없어요. 착한 어린이가 된 것처럼 꾸며서 쓰지 마세요. 칭찬을 받거나 잘 보이기 위해서 글을 꾸미지 마세요. 셋째, 슬프고 괴로운 일, 부끄러운 일도 괜찮아요. 얼마든지 좋은 글이 될 수 있어요. 넷째, 잘 쓴 글이라고 해도 남의 글을 절대 흉내 내지 마세요. 단 그 글에서 정직함만 배우세요. 만들어 내는 ‘글짓기’는 하지 마세요. 있는 그대로를 쓰는 ‘글쓰기’를 하세요.옳은 가르침은 위대한 결과를 낳습니다. 하얀 백지처럼 순수한 아이들에게 글 짓기가 아닌 글쓰기를 할 수 있도록 가르치기 시작하자 아이들은 쓱쓱, 삶을 놀랍도록 맑고 순수한 글로 풀어내기 시작합니다.내가 학원을 / 밤 일곱 시에서 아홉 시까지 해서/ 마치고 오는데 / 별이 있나 없나 / 하늘을 보면서 / 터벅터벅 걸어간다. / 집 가까이 가는데 / 현호가 있어 / 함께 한 바퀴 또 돌고 / 외로운 길을 두 번 간다. -초등학교 4학년 남학생 /외로운 길 전문이오덕(李五德) 선생 이야기입니다. 아동 문학계는 충격을 받습니다. 그때까지 동시 속 아이들은 곱디고운 천사같은 천편일률적인 모습이었는데 동심 천사주의를 여지없이 깨 버린 작품들이 가득했기 때문입니다. 이오덕 선생은 힘주어 말합니다.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할 가장 중요한 삶의 태도는 사람다운 감정과 생각을 갖고 사람다운 행동을 하는 것이라 믿습니다. 글쓰기는 그런 삶을 가꾸는 참으로 귀한 수단입니다. 글을 쓰게 하는 것보다 더 좋은 교육이 있는지를 나는 모릅니다.“이오덕 선생이 항상 강조한 것은 삶이 말이 되어야 하고 말이 글이 되어야 한다는 겁니다. 그래야 비로소 올바른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이지요. “삶에서 말로, 말에서 글로.” 당연한 말씀입니다. 선생은 되묻습니다. 삶은 말이 되고 말이 글이 되어야 하는데 실제로 그렇게 글을 쓰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요? 오히려 정반대라고 지적하지요. 글이 말을 지배하고 말이 삶을 지배하는 것이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의 모습이 아니겠느냐고요.(내일 편지에 계속)/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 대표

2019-07-16

앞으로의 경제전쟁에서 이기려면

김진홍 한국은행 포항본부 기획조사팀장일본이 소재를 무기로 한국경제에 대한 영향력을 가늠하려는 간보기가 시작되었다. 공교롭게도 올해는 우리 민족이 일본제국에 맞섰던 3·1운동 100주년이 되는 해다. 당시 만세운동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목숨 건 대한의 애국지사들이 한민족의 자존감을 세계만방에 알린 사건이었다. 그로부터 100년이 흘렀다. 우리는 한국전쟁과 전후 재건, 고도성장, 올림픽, 민주화운동, 외환위기 등 산재한 현안 해결에 골몰하느라 불과 36년 동안 일본이 뿌리내렸던 잔재들을 100년이 지난 지금까지 제거하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게다가 밀레니얼세대들은 부모세대들과 달리 공무원시험 준비생이 아닌 한 ‘국사(역사)’라는 과목은 말 그대로 역사 속으로 사라진 셈이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우리는 적어도 과거 일본이 한반도를 식민지화하던 과정만큼은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당시 일본은 각 분야의 모든 계층과 계급이 치밀한 계획 하에 한반도에 사전 침투하여 바닥을 다진 다음에야 사후적으로 조약이라는 형식을 갖추어 공식화하는 방식을 채택하였다. 조약 체결 시점 이전부터 이미 식민정책은 선행되고 있었던 것이다.이를 고려하면 최근 일본이 수출 제한이라는 칼을 빼든 것도 그저 일본 총리의 즉흥적인 발언이라 쉽게 여기지 말아야 한다. 그들은 분명 한국이 보일 다양한 반응에 대해 사전시뮬레이션을 수없이 거친 후 시기와 범위 등을 결정하였을 것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당장 매출감소를 우려하는 일부 대기업들이야 과거처럼 정부가 나서서 정치적인 협상이나 양보를 통해 현재의 위기상황을 넘겼으면 하겠지만 앞으로 이러한 일이 다방면에 걸쳐 재발할 경우까지 고려한다면 보다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최근 일본의 한 언론에서는 한국 내 일본 불매운동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논조를 피력하였다. 사상 최악의 한일관계였다는 지난 수년 간 한국이 정치나 역사문제로 일본을 기피하였으나 실제 한국인의 문화와 소비, 레저 등에서는 반대로 일본 붐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해당 기사는 다음과 같은 근거를 제시하였다. 한국인의 일본방문은 2005년 174만 7천명에서 2018년 753만 9천명으로 늘어났다. 또한 2019년 상반기 수입차 중 일본차 비중은 21.5%였는데 이는 2015년의 2배 수준이다. 그리고 2017년 한국인 청년의 일본취업비중은 해외취업자중 약 29%에 이른다. 이외에도 한국 내 일본음식전문점이 늘어나고, 어패럴이나 일용잡화는 유니클로나 무인(無印)양품이 시장을 석권중이라 밝히고 있다. 실제 편의점에서 일본 주류, 과자, 커피 등이 많이 늘어난 것은 사실이다.지금 세계는 ‘자유’와 ‘공정’보다는 ‘국익’을 최우선하는 경제 전쟁이 한참이다. 사드배치를 빌미로 한 중국의 한국에 대한 보복조치의 여파가 여전한 가운데, 미국우선주의로 촉발된 미중간 무역전쟁도 현재진행형이다. 중요한 것은 경제전쟁에는 해당국 국민이 동참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번엔 일본이 불씨를 지폈다. 어떠한 전쟁이건 승리를 위해서는 후방의 협력이 있어야만 한다. 경제전쟁에서 과연 우리의 경제체질과 구조가 견딜 수 있는지를 시험받는 순간이 왔다. 후방의 국민들이 경제전쟁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그저 평소 생활습관에서 의식하지 않았던 의식주와 관련된 소비재의 선택에 조금만 유념해도 충분하다. 일례로 2018년 일본으로 여행했던 한국인이 가령 2박 3일 일정으로 60만원의 경비를 지출하였다면 이것을 국내여행으로 바꾸기만 해도 단순 계산으로 한일 양국에는 4.5조원이 각각 가감되는 효과를 발휘한다. 적어도 3·1운동 100주년인 올해 우리를 향한 일본의 작은 불씨조차 제대로 밟아 끄지 못한다면 앞으로 어떠한 경제전쟁에도 승리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점이다.

2019-07-16

인(忍)·인(仁)·인(人)

박상영 대구가톨릭대 교수·국어교육과얼마 전 갓 입사한 지 얼마 안 되어 방실 웃던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어느 정도의 직책을 얻은 후배 한 명이 회사를 그만둔다고 했다. 늘 둥글둥글 살아왔던 후배였기에 무슨 일인가 했더니, 같이 일하는 직장동료들이 너무 못살게 굴어 도저히 참기가 힘들다는 것이었다. 무엇보다 나이가 가장 어린 데다 싱글이라는 이유로, 잡다한 업무는 당연히 모두 그의 몫으로 여길 때는 참을 수 없는 분노마저 일기도 했다는 것이다.업무 몰아주기는 물론, 직장 내 따돌림은 비단 어제 오늘만의 문제는 아니다. 한솥밥을 먹는 식구끼리 고소·고발하고, 네가 옳니 내가 옳니 하는 아웅다웅은 이제 너무나 식상할 정도다. 그래서 뉴스 헤드라인을 장식할 만큼의 칼부림정도가 나면 모를까, 더 이상 이런 건 이슈거리도 아닌 세상이 되었다. 심지어 그것이 인간사라며, 직장스트레스 증후군을 앓는 이들을 오히려 사회부적응자로 낙인찍기도 한다.이는 비단 직장에서만의 문제도 아니다. 학교에서도 소위 ‘왕따’, ‘은따’를 당해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10대들의 비율이 해마다 늘고 있다. 집단의 횡포는 소수자의 목소리를 여지없이 밟아서 사회적 약자들을 공동체의 테두리 밖으로 쫓아내는 또 하나의 어긋난 ‘권력’행사다. 최근 노인이나 장애인들을 대상으로 한 복지센터 직원들의 횡포와 눈가림, 직위와 직권을 남용해 대학원생들을 착취하는 교수들, 하청업체 직원이라는 이유로 오만불손하게 행동하며 거들먹거리는 대기업 인사들 등. 우리 주위에는 ‘집단’이라는 이름으로, 또 ‘권력’이라는 이름으로, 얼마나 많은 이들이 소수자의 권익을 짓밟고 있는지 모른다.인간관계에서, 남들과 마찬가지로 공정하게 대우받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면, ‘억울함’이 생겨나고 ‘분노’가 싹튼다. 이러한 분노는 심지어 범죄 행위로 이어지거나 스스로의 건강을 해치기까지 한다. 위나라 때, 시문에 뛰어난 조식(曹植)이라는 인물은, 일곱 걸음 걷는 동안 시를 짓지 못하면 벌을 주겠다는 질투 많은 권력자 형 조비(曹丕) 때문에, 울음을 삼키며 ‘칠보시(七步詩)’를 지었다. ‘콩대를 태워 콩을 삶으니/솥 안에서 콩이 눈물 흘리네/본래 같은 뿌리에서 났건만/어찌 이리 심하게 들볶는고’라고. 결국 조식은 시달리다 못해 울화병으로 죽었다.사회적 약자, 소수자들은 늘 이렇게 당하고만 살아야 하는 것일까? 늘 이야기하듯, 인생은 돌고 도는 것이다. 어제 강자였다고 해서, 오늘 강자가 되라는 법이 없다. 마찬가지로 오늘의 약자가 또 내일의 약자가 되라는 법도 없다. 힘이 센 개가 늘 큰 밥그릇을 먼저 차지했는데, 힘이 약한 개가 늘 밀려 제대로 먹지 못하니, 이를 불쌍히 여긴 주인이, 오히려 힘없는 개 밥그릇에 더 많은 음식을 주자, 어느새 비실비실하던 개가 더 크게 자라, 큰 개가 제 밥그릇을 기웃하니 쾅하고 짖어대더라는 이야기가 있다. 인간만사가 그런 것이다.맹자의 ‘고자(告子)’ 장구(章句)편에는 또 이런 말이 있다. ‘하늘이 장차 그 사람에게 큰 사명을 주려 할 땐 반드시 먼저 그의 마음과 뜻을 흔들어 고통스럽게 하고 그 힘줄과 뼈를 굶주려 궁핍하게 만들어 그가 하고자 하는 일을 어지럽게 하나니, 그것은 타고난 작고 못난 성품을 인내로 담금질 하여 하늘의 사명을 능히 감당할 만하도록 그 기국(器局)과 역량을 키워주기 위함이다.’맹자의 구절대로, 현재의 힘듦은, 더 큰 일을 능히 감당할 만하도록 담금질하는 과정이라 생각하면 마음이 편하다. 담금질 과정은 뼈를 깎는 고통이 수반되기에 인간의 인내(忍)를 시험하는 과정이다. 그런데 어느 정도 담금질이 되고 나면, 웬만한 일들은 웃으며 넘길 수 있게 된다. 참고 또 참으며 인(忍)하는 과정에서, 세상을 널리 보는 안목과 어짊(仁)이 생겨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忍)은 무작정 참는 것이며 손해 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갈고 닦는 과정에서 인(仁)을 얻는 것이자, 나아가 각양각색의 인간(人)을 이해하는 토대이기도 한 것이다.

2019-07-16

선글라스의 과학

여름철 뙤약볕 아래서 눈을 보호하기 위한 선글라스는 과학문명의 산물이다. 여름철 자외선은 염증 반응과 광산화 반응, 광화학 반응 등을 일으켜 결막, 수정체, 망막 조직에 손상을 일으키고 대사 노폐물 생성을 촉진시킨다.이에 따라 광각막염, 결막주름, 익상편, 백내장, 황반변성 등의 안과질환을 유발할 수 있다. 따라서 여름 눈 건강을 위해서는 선글라스가 필수다.각막을 보호하는 색소상피와 맥락막의 멜라닌 성분이 나이가 들수록 더 약화돼 고령자일수록 햇빛이 강한 날에는 반드시 선글라스를 써야한다.어떤 선글라스를 고를까. 우선 자외선 차단율이 100%인 렌즈가 좋다.단, 렌즈 착색 농도는 70∼80% 정도가 좋다. 너무 짙은 선글라스는 오히려 동공이 빛을 받기 위해 커지기 때문에 좋지 않다. 렌즈 크기가 커서 렌즈의 옆 공간으로부터 들어오는 자외선도 차단되는 형태가 좋다. ‘UV400 인증’ 여부도 확인해야 한다.이는 400㎚ 이하 파장을 가진 자외선을 99% 이상 차단한다는 의미여서 지표에 도달하는 UV-A와 UV-B를 대부분 차단할 수 있다. 선글라스의 자외선 차단지수는 가장 높은 수치인 100%가 가장 좋고, 최소 90% 이상은 돼야 한다. 또 UV-A와 UV-B 코팅이 돼 있는 멀티코팅이면 더욱 좋다. 자외선은 파장에 따라 UV-C(100-280㎚), UV-B(280-315㎚), UV-A (315-400㎚)로 구분되며, UV-C는 대부분 오존층에서 흡수되지만, UV-B 일부와 UV-A는 지표면까지 도달하기 때문이다.렌즈 색상에 따라 기능이 약간씩 다르다. 가장 많이 쓰는 검정색이나 회색, 갈색은 운전할 때나 자외선이 강한 바닷가에서 쓰면 좋다. 회색은 명암이나 색을 왜곡시키지 않아 자연색 그대로 느낄 수 있다. 녹색렌즈는 눈의 피로를 덜어주는 색으로 시원해 보이는 효과가 있고, 붉은색 계통의 렌즈는 사물과 주변 환경이 또렷하게 보여 자전거 탈 때나 골프 칠 때 적당하다. 미러렌즈는 백사장이나 스키장 등 자외선 반사가 심한 곳에서 착용하면 좋다. 과학문명이 눈을 보호하는 선글라스 하나에도 짙게 반영돼 있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19-07-15

글로벌탐방단이 만난 스페인 MTA

신희선 숙명여대 기초교양대학 교수·정치학 박사“세상에 대한 우리의 반응은 함께 가는 사람에 의해서 결정된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기대에 맞도록 우리의 호기심을 다듬기 때문이다.”‘여행의 기술’에서 알랭 드 보통이 말한 것처럼, 스페인 ‘몬드라곤 팀 아카데미(Mondragon Team Academy)’에 주목하게 된 것은 학생들과 다녀온 글로벌탐방단 덕분이다. 7월 1일 출발해 10박 11일동안 ‘플랫폼 협동조합’을 주제로 빌바오와 바르셀로나를 방문하는 일정이었다.사회적경제의 상징인 몬드라곤 지역은 빌바오에서도 한 참 떨어진 작은 소도시였지만 협동조합의 성공을 통해 전 세계의 관심을 모으는 곳이었다.몬드라곤 대학은 스페인 내전 이후 피폐해진 바스크 지방을 살리기 위해 호세 마리아 신부가 세운 기술학교로 시작되었다. 현장에서 쓰임새가 있는 실질적인 교육을 강조하는 몬드라곤 대학의 MTA 졸업생들이 설립한 협동조합 TZBZ은 바스크어로 “Why not?”의 의미를 갖고 있었다. 여러 스타트업이 실험하며 공존하고 있는 현장에서 우리가 만난 LEINN(Leadership, Entrepreneurship and Innovation)의 팀 코치들과의 대화는 한국의 대학교육에 대해 여러 생각을 하게 했다. 교수와 학생, 수업과 시험이 없는 교육, 팀코치가 유럽 학사학위과정으로 인정된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Talk, Do, Connect’라는 슬로건 하에 혁신적인 창업을 하는 글로벌 리더들을 육성하고 있었다. MTA는 사회적 경제를 인큐베이팅하는 랩이다. 협업을 위한 열린 공간에서 다양한 만남과 아이디어를 논의하며 창업을 시도하는 젊은 기업가들을 키우고 있었다. 다양한 문화권에서 온 사람들이 서로의 경험과 관심을 나누며 유럽, 미국, 중국 등 전세계를 다니면서 창업 프로세스를 익히고 경영관리기법을 배우는 실제적인 교육을 실시하고 있었다. LEINN은 사회가 직면한 과제를 협력적으로 해결하는 과정에서 학생들을 혁신적인 사업가로 육성하는데 목적이 있었다. 우리가 MTA 랩에서 만난 세 명의 젊은 여성 팀코치들의 도전적이고 열정적인 모습은 학생들에게도 큰 자극이 되었다.유발 하라리는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에서 교육에 대해 말한다. “학교는 기술적 기량의 교육 비중을 낮추고 종합적인 목적의 삶의 기술을 강조해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변화에 대처하고 새로운 것을 학습하며 낯선 상황에서 정신적 균형을 유지하는 능력”을 키워주어야 한다. 앞으로 AI가 인간보다 더 잘하는 기능적인 교육이 아니라, 비판적 사고(Critical thinking), 의사소통(Communication), 협력(Collaboration), 창의성(Creativity)을 키우는 4C교육으로 전환을 강조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MTA는 학습자들이 스스로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창업하는 과정에서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익히며 융합적 지식과 경험을 축적해 가는 모델이었다. 실제 비즈니스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가운데 세계시민의식도 키우고 공동체 정신을 형성하고 있는 점도 교육적 의미가 있었다.이번 글로벌탐방단 일정을 함께 하며 ‘모든 길은 구글로 통한다’는 사실을 새삼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앱 네이티브(App Native) 세대답게 학생들은 구글 맵으로 약속된 장소의 주소를 입력하여 익숙하게 찾아다녔다. 스마트폰과 구글로 장착한 신세대들은 거침이 없었다. 구글로 관련 정보를 입수하고 구글맵을 활용해 자유자재로 돌아다니며 낯선 곳에서의 여러 일정들을 소화했다. 7명의 학생들이 한 팀을 이루어 스스로 주제를 선정하고 기획서를 작성하며 주도적으로 진행된 프로젝트였던만큼, 직접 스페인에 와서 현지 담당자를 만나 질문하고 대화하는 과정을 통해 더 깊은 공부로 이어졌다. 강의실 밖에서 이러한 구체적인 배움의 기회가 확대되어야 한다. 온 몸으로 현장 분위기까지 기억하며 체험을 내재화하기 때문이다.

2019-07-15

무너져 내린 천년의 역사,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

2019년 4월 15일 오후 6시 50분. 프랑스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에서 불길이 솟아올랐다. 사실이라고 믿기 힘든, 아니 믿고 싶지 않은 참사가 벌어졌다. 화마가 덮쳐 천년의 역사를 일순간 잿더미로 만들어 버렸다. 원인을 규명하고 책임을 따져보겠지만 이미 불타버린 역사는 영영 돌이킬 수 없다. 이제 우리는 영원히 노트르담 대성당의 옛 모습을 볼 수 없게 되었다.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인류가 고이 간직해온 가치라는 것이 영속은커녕 일순간 먼지로 사라져 버릴 수 있음을, 그러니 겸손해야 한다는 뼈저린 교훈을 세계인들에게 생생히 보여주었다.파리의 노트르담 대성당은 중세의 고딕건축의 백미로 손꼽히는 걸작 중에 걸작이다. 사람의 손으로 돌을 쌓아 만들었다고 믿기 어려울 정도다. 그것도 지금으로부터 거의 천 년 전에 말이다. ‘노트르담’(notre-dame)이라는 이름은 파리의 노트르담 대성당을 가리키는 고유명사처럼 사용되고 있지만 사실 ‘우리의 여인’(our Lady)이라는 뜻으로 ‘성모 마리아’를 가리킨다. 성모 마리아에게 봉헌된 파리의 대성당이 어떤 미술사적 의미를 지녔기에 그토록 많은 세계인들을 유혹해 왔던 것일까?천년의 중세에서 처음으로 유럽 전 지역에 널리 나타난 미술양식은 로마네스크이다. 대략 1000년경에 시작되어 200여 년 유행했던 양식인데 고대 로마를 닮았다하여 ‘로마네스크’라는 이름이 붙었다.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지어진 건축은 그 외형이 육중해 보인다는 특징이 있다. 벽체가 두텁고 장식이 절제되어 있기 때문에 웅장함과 함께 소박한 느낌을 준다. 로마네스크 양식에 이어 나타난 것이 고딕(gothic)양식이다.‘고딕’은 그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고트족’ 다시 말해 야만족들의 미술양식이라는 뜻으로 폄하하기 위해 붙여진 명칭이다. 로마네스크 다음에 등장한 미술 양식을 이처럼 불렀던 이들은 이탈리아의 르네상스 사람들이다. 르네상스 인들은 고대의 예술 정신을 되살린 자신들의 미술에 고귀한 가치를 부여하기 위해 바로 이전 수백 년 동안 유행했던 미술양식을 야만적인 것으로 치부했던 것이다. 그런데 르네상스가 만들어 놓은 이 용어는 결코 정당하지 않다. 왜냐하면 그들이 생각했던 것처럼 고딕 양식은 고트족으로부터 온 것도 아니었으며, 야만적인 양식은 더더욱 아니었기 때문이다.고딕은 12세기 초반에서부터 15세기까지 400년 이상 유럽 각 지역에 널리 퍼져있던 중세를 대표하는 미술양식이다. 고딕은 1120년 경 파리를 중심으로 한 일 드 프랑스(Ile-de-France) 지역에서 발달했다. 특히나 1135년 경 개축된 파리 북부에 위치한 생-드니 대성당의 주보랑은 고딕 양식의 발생지로 미술사적으로 아주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참고로 생-드니 대성당은 프랑스의 부르봉 왕가가 무덤으로 사용하던 교회이다. 12세기 초 고딕양식으로 대성당들이 지어지기 시작했고, 반세기 동안의 건축적 실험을 거쳐 파리의 노트르-담 대성당이 지어질 1163년 무렵에는 완성도 높은 건축이 기술적으로 가능하게 되었다. 1345년 93m에 달하는 대성당이 완성되었을 때 하늘을 찌를 것 같은 높이감은 분명 중세 사람들에게 잊지 못할 충격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마치 신의 세계가 땅위에 펼쳐지는 듯한, 곧 종말이 도래할 것이고 높이 솟은 신의 집에서 자신들은 구원을 받으리라는 확신으로 감격의 순간을 맞이했을지도 모른다.신의 세계에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 다가가고자 했던 욕망은 비단 고딕양식으로 대성당을 쌓아 올렸던 중세 사람들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고딕에 앞선 로마네스크 양식 역시 그 높이와 웅장함에서 결코 고딕에 뒤지지 않았다. 로마네스크 양식을 대표하는 독일의 슈파이어 대성당이 좋은 예이다. 슈파이어 대성당은 몇 차례의 개축을 거쳐 1106년에 완공이 되었는데, 가장 높은 첨탑의 높이가 자그마치 71m에 달한다. 1345년 완공된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의 높이가 93m이니 건축물의 높이가 20m 자라나는데 무려 240여 년의 시간이 걸린 셈이다.독일의 한적한 마을 슈파이어에 우뚝 솟은 대성당을 짓기 위해 건축가들이 할 수 있었던 것은 벽면을 투텁게 하고 육중한 기둥을 촘촘히 세우는 것 이외에 별다른 방법이 없었던 듯 보인다.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지어진 대성당들이 무겁고 투박한 외형을 지닐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반면 고딕 시대에 접어들면서 건축 기술의 혁신이 일어났다. 위로부터 내려오는 엄청난 무게를 효율적으로 분산시키는 방법을 알아내어, 더 이상 두터운 벽면 없이도 역학적 안전성을 확보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파리의 노트르담 대성당을 지은 건축가들 역시 고딕의 새로운 건축술을 사용하였는데, 대성당의 외벽을 한 바퀴만 돌아 제단 쪽으로 향하기만 하면 그 증거들을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가 있다.파리 노트르담 대성당의 제단이 위치한 동쪽 외벽을 비롯해 남쪽과 북쪽 외벽 상단부를 유심히 관찰해 보면, 갈비뼈처럼 돌출되어 무지개다리처럼 건물 아래로 이어진 건축 요소를 발견할 수 있다. 한 두 개가 아니라 대성당 외벽 전체를 두르며 나타난다. 이를 가리켜 ‘플라잉 버트레스’(Flying Buttress)라고 부르는데, 우리말로는 ‘공중부벽’으로 번역될 수 있다. 부벽이라는 것은 흔히 벽면에 일정한 넓이를 가지고 돌출되어 수직으로 뻗어 있는 부분을 가리키는데, 벽을 보강하는 역할을 한다. 이러한 부벽은 로마네스크양식의 건축물에도 보편적으로 사용이 되었다. 그런데 이 부벽이 고딕양식으로 넘어 오자 더욱 발달하게 되면서 플라잉 버트레스라는 구조가 나오게 된 것이다.노트르담 대성당 내부 천장과 벽면 구조를 외벽으로부터 돌출되어 아래로 흘러내리는 공중부벽과의 관계 지어 생각해 본다면 어떻게 고딕 건축가들이 두터운 벽면과 육중한 기둥 없이 하늘로 솟아 오른 엄청난 높이의 대성당을 지을 수 있었는지 이해할 수 있다. 대성당의 천장은 움푹 폐인 궁륭(Vault)으로 이루어져 있다. 궁륭은 세 개의 늑재(rib)들이 서로 교차하면서 여섯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다. 이 늑재들이 벽면으로 연장되어 얇고 작은 기둥다발을 이루어 벽면을 타고 아래로 내려온다. 천정을 올려다보면 늑재들이 서로 그물처럼 단단히 얽혀 있으면서 하중을 아래로 고루 분산 시킨다는 사실을 알아차릴 수 있다. 그리고 그 하중들이 외벽에 연결되어 있는 공중부벽을 타고 다시 한 번 나누어지게 되는 것이다.이처럼 건축의 각 부분들이 서로 유기적 관계를 맺으며 위에서 내려오는 힘을 건물 전체에 고루 분산시킬 수 있었기 때문에 고딕 대성당은 높이를 지향할 수 있었던 것이다. 건축구조가 하중을 충분히 처리하면서 또 다른 이점이 생겼다. 벽면이 더 이상 두터울 필요가 없어졌다. 아예 벽면 전체를 없애 버리고 그 자리에 ‘색유리그림창’ 스테인드글라스를 설치하게 된다. 돌로 막혀 있던 벽면에 넓은 창이 생겼고 자연광이 창의 색채를 입고 교회 안을 형형색색 채워주니 전에 없던 환상적인 공간이 연출되었다. 이렇게 고딕의 빛의 미학은 건축적 혁신으로부터 덤으로 선물받은 것이나 다름없다.노트르담 대성당에서 마주할 수 있는 고딕건축의 형식적 특징은 수직 상승성이다. 하늘로 오르려는 듯 대칭되어 나타나는 정문 위 두 개의 탑들과 빈틈이라고는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섬세하고 정교한 조각들이 대성당의 외벽을 장식하고 있다. 둥근 아치보다는 끝이 날카로운 아치들이 수직으로 대성당을 장식하고 있어 시각적으로 무게감이 사라지고 위로 솟구치려는 인상을 남긴다.화재로 인해 지붕이 내려앉은 파리의 노트르담 대성당은 언젠가 복원되어 다시 우리를 맞이하겠지만 더이상 중세 고딕의 건축 정신이 고스란히 담긴 모습을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못내 아쉽지만 이 또한 예술의 운명이 아닐런지. 우리가 생의 무게와 세월을 견디듯 예술작품들도 그러하다는 사실에 조금의 위안을 얻는다./김석모 포항시립미술관 학예실장

2019-07-15

왜 분양가 상한제에 미련을 못 버리나?

김학주 한동대 교수강남 아파트 가격이 들썩거리자 정부는 다시 ‘분양가 상한제’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2000년대 중반 참여정부는 강남 집값을 잡기 위해 분양가 상한제를 도입했었다. 그러나 결과는 의도와 반대였다. 그 당시 한국의 전후세대들이 30대 중반에서 40대 중반에 걸쳐 있어 주택수요가 뜨거웠기 때문이다. 반면 분양에 의욕을 잃은 건설업자들이 주택공급을 줄여 주택가격이 상승했고, 이로 인해 서민들이 오히려 피해를 봤다.지금은 한국의 전후세대들이 은퇴하고 있다. 이제 거주비를 절감하고 의료비를 비롯해 여생의 생계비를 충당해야 하는 노인들이 증가하는 것이다. 즉 주택의 실수요는 꺾였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금융투자 수단으로서의 주택 수요가 새롭게 대두되고 있다.은행 정기예금 금리가 연 1%대 중반이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세계적으로 채권 수익률이 연 평균 1.76%까지 하락했다고 한다. 참을 수 없이 낮은 수익률이다. 뒤집어 이야기하면 모든 자산가격에 거품이 있을 만큼 비싸다는 이야기다. 주택이라고 예외일 리는 없다.은퇴하는 인구가 증가할수록 월급 대신 정기적인 보상을 해주는 투자수단이 더욱 필요하다. 그런 자산 가격에 프리미엄이 생긴다. 그런데 이제 한국의 소비자들도 ‘월세’에 익숙해진다. 특히 집값이 상승해서 주택을 소유의 개념에서 이용 목적으로 생각하는 분들이 많아진다. 결국 주택을 투자목적으로 구입하면 ‘월세’라는 정기적인 수입이 생긴다. ‘역모기지론’도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주택이 매력적인 투자수단이 되어 간다.특히 비싼 고급 주택 수요는 더 증가한다. 예전에 경제가 고성장하던 시절에는 집에서 머무는 시간이 많지 않았다. 바빴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은퇴인구가 많아질수록 집에서 지내는 시간이 길어진다. 경제적 여건이 되는 한 좋은 집에 살고 싶다. 한편 최근 분양되는 아파트들을 보면 ‘살아보고 싶을 정도로’ 스마트한 기능들이 많다. 결국 전반적으로는 한국에서 주택 수요가 꺾였지만 고급 아파트에는 프리미엄이 붙는 주택의 양극화가 나타날만한 환경이다.이런 상황에서 분양가 상한제가 효과적일까? 건설사들의 국내 아파트 분양에서의 세전이익률은 10%로 추산된다. 물론 강남권 아파트는 더 높을 수도 있다. 그런데 여기서 얼마나 가격을 낮출 수 있을까? 건설사들의 경우 고정비 부담(leverage)이 낮기는 하지만 없는 것은 아니다. 다시 말해서 아파트 가격을 1% 깎는다고 할 때 이들의 수익성은 1%보다 훨씬 더 훼손될 수 있다. 당연히 건설사들의 주택공급 의욕이 쉽게 꺾일 수 있다. 반면 2000년대 중반과 이유는 다르지만 강남 등 월세를 안정적으로 받을 수 있는 지역의 주택 수요는 강하다. 과거처럼 정부의 의도와는 다른 결과가 나올 것이라는 점은 자명하다.강남 집값을 잡으려면 토지공개념을 도입해야 한다. 집을 투자수단으로 삼지 못하게 해야 한다. 1가구 다주택을 금지하고, 정부만이 소비자에게 낮은 월세로 임대할 수 있는 권리를 가져야 한다. 이 경우 투자수단으로서의 가격 거품이 빠질 수 있다.그러나 싱가포르처럼 처음부터 그렇게 했으면 모를까 지금 그러려면 엄청난 혼란이 따른다. 평생 벌어서 강남에 집 한 채 산 사람도 있고, 다른 자산을 팔아서 주택을 구입한 분들도 있다. 특히 주택시장에서 자금이 빠진다면 어디로 갈까? 국내 금융자산을 더 비싸게 만들 수 있는데 이것도 서민들이 여생을 위해서 꼭 필요하다. 또한 주택이탈 자금이 해외로 빠져 나가면 원화가치가 떨어져 수입물가가 상승하는데 이는 서민들의 삶의 질을 훼손할 수 있다.자금을 강남 부동산에서 지방으로 유도하려면 새로운 부가가치를 만드는 훌륭한 신성장기업들이 지방 도시에 많이 생겨야 한다. 그 쪽으로 사람들이 모이며 생태계가 조성될 것이다. 왜 근본 대책을 도외시하고 편법을 쓰는가?

2019-07-15

가장 위험한 거짓말

강희룡 서예가이솝우화 중 하나로 ‘양치기 소년’이 있다. 양치는 소년이 심심풀이로 늑대가 나타났다! 며 자주 거짓말로 소란을 피웠다. 동네사람들은 소년의 거짓말에 속아 무기를 가져오지만 번번이 헛수고로 끝났다. 여러 번 반복되는 소년의 거짓말은 신뢰를 잃어갔고 어느 날 정말 늑대가 나타났지만 사람들은 더 이상 이 소년의 말을 믿지 않아 결국 마을의 모든 양이 늑대에 의해 죽었다. 거짓말은 하나하나 뜯어보면 말 자체는 틀리지 않았으되, 듣는 사람의 상식과 심리를 기만하여 이득을 얻은 경우다.사실이 아닌 것을 상대방에게 이것을 믿게 하려고 사실처럼 꾸며서 하는 말은 대개 네 가지 유형이 있다. 첫째가 죄가 없는 거짓말로 원만한 인관관계를 위한 거짓말이나 농담을 말하며, 자식 자랑을 하는 부모에게 ‘아이가 참 이쁘네요.’라고 말하는 사례이다. 둘째로는 방어적인 거짓말로 가장 흔한 형태이다. ‘늦잠을 자놓고 차가 막혀서 늦었다.’고 하는 사례이다. 셋째로는 남에게 잘 보이기 위한 거짓말로 허풍이나 허세를 부리는 경우로 이승만 정부의 ‘북진통일론’이다. 이 주장은 실제로 전투능력이 있어서가 아니라 북한위협으로부터 국민의 동요를 막고 반공정신과 안보의지를 다지는데 그 목적이 있었다. 당시 신성모 국방장관은 ‘점심은 평양에서 먹고 저녁은 신의주에서 먹는다.’라는 허황한 허풍을 떨었다. 끝으로 자신의 이익을 위해 남을 속이기 위한 거짓말로 가장 악의적인 말이다. 이 악의적인 거짓말은 일반인들이라면 개인이나 사회에 부분적으로 그 피해가 미치겠으나 의사결정권을 가진 사회 지도층에서의 거짓말은 한 국가의 멸망까지도 이어질 수 있다.조선의 역사에서 가장 큰 거짓말은 서인 황윤길의 왜적 침입보고에 대해 동인 김성일이 민심이 흉흉할 것을 우려하였다는 반대보고이다. 당시 조정의 동·서인의 치열했던 정파싸움을 감안하면 주리론과 예학에 밝았던 김성일이 풍신수길의 흉계를 간파하지 못했을 리 없다. 결국 민심은 거짓으로 밖에 볼 수 없다. 김성일의 보고서를 선택한 조선은 7년이라는 전란 속에 조선백성의 삼분의 일이 도륙당하는 화를 입었다. 분명히 사실 혹은 진실을 말하는데 거짓인 경우가 있는데 특히 정치인들이 이 방법을 자주 쓴다. 많은 정치인이 거짓말쟁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쓰면서도 ‘기억에 없다.’는 수사를 활용하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윤석열 검찰총장 후보의 거짓말 논란 파장이 크다. 그의 강직하고 정의로운 이미지에 큰 생채기를 입었고 검찰 신뢰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게 됐다. 하지만 이 거짓말은 개인의 도덕이나 특정 조직의 신뢰훼손에서 그치고 만다.가장 위험한 거짓말은 군 조직의 거짓보고이다. 지난달 16일 군 경계를 뚫고 들어온 삼척 북한 목선사건에 대한 국방부 대국민 발표는 한마디로 드러난 상황과는 동떨어진 거짓말 보고였다. 또한 지난 4일 평택 해군 2함대사령부 탄약고 인근에 거동 수상자가 나타나 암구호를 확인하려 했으나 응하지 않고 달아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틀 뒤 2함대 소속 병사가 본인이라 자수했는데 조사 결과, 상급자의 명령으로 허위자백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경계실패의 책임론이 커질 것을 우려해 사건의 은폐, 조작을 시도한 것이다. 13일 국방부 조사본부가 밝힌 범인은 인접 초소에서 경계근무 중이던 병사로 밝혀졌다. 현장의 오리발에 대한 설명이 없어 신뢰성이 없다. 더구나 사실 관계를 확인하는 국회의원에게 거짓대답을 일삼는 합참의장의 행위나 국방장관의 인식이 국민에 대한 거짓발표를 별 것 아니라는 것을 보면 속이고 거짓말하는 것이 일상인 모양이다. 목선사건은 진실을 비틀었고, 이번 2함대 사건은 통째로 조작한 것이다. 적(敵)의 눈치 속에 군기는 무너지고, 자리와 영욕에 연연하는 지휘관들이 우글거리는 군대는 더 이상 군이 아니다. 한비자의 ‘망징편(亡徵篇, ‘나라가 망하는 징조’)’이 떠오른다.

2019-07-15

목숨 걸고 따를 지도자

‘단숨에 죽여버리겠어!’ 안회는 허리 춤에 차고 있던 보검을 조용히 뽑아 듭니다. ‘음탕한 계집을 먼저 죽일 것인가? 사내를 먼저 죽일 것인가?’ 아내를 먼저 죽이기로 하고 칼끝을 겨누는 순간 머리를 때리는 생각이 있습니다. 스승의 두 번째 문장입니다.‘명확히 하지 않고서 함부로 살인하지 말라.’ 눈물이 솟구칩니다. 칼을 내려 탁자에 올려놓고 촛불을 켭니다. 잠들어 있는 아내 옆에 누워있던 사람은 가끔 놀러와 아내를 위로하던 누이였습니다. 안회는 공자에게 달려갑니다.“스승님의 두 마디 문장 때문에 제가 살고, 아내가 살고, 누이동생이 살았습니다. 대체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날 것을 미리 아셨습니까?”“별것 아닐세. 어제는 날씨가 너무 건조하고 더워서 천둥 번개가 칠 것을 예상했을 뿐일세. 고향으로 떠나는 자세 표정을 살펴보니 왠지 분한 마음이 가득해 보였네. 허리춤에 차고 있는 보검이 유독 눈에 들어오더군. 그뿐일세. ”흐느끼는 어깨를 토닥이며 스승은 말을 잇습니다. “자네가 집으로 돌아간 이유를 알고 있네. 집안 일은 핑계였을 뿐, 포목점 손님에게 터무니없는 대답을 한 것에 자네가 얼마나 실망했는지 보았지. 내가 너무 늙고 사리판단이 분명치 않아 더 이상 배울 게 없다고 생각한 것이라 직감했네. 내가 23이 맞다고 하면 그저 관 하나 내주는 것뿐이지만 24가 맞다고 하면 그 사람은 목숨을 내 놓아야 하지 않겠나? 관이 중요한지 사람이 중요한지는 어린 아이라도 분별할 수 있는 일이 아니겠나?”안회는 큰 절을 올리며 말합니다. “부끄럽습니다. 대의(大義)를 중시하고 보잘 것없는 작은 시비(是非)를 무시하는 그 도량과 지혜에 감탄할 따름입니다.”이후 안회는 가는 곳마다 스승 곁을 떠난 적이 없었습니다. 유교5성 중 공자 다음 위치에 있습니다. 공자를 따르는 제자들의 삶은 궁핍하기 이를 데 없었습니다만 이들 무리가 역사에 끼친 영향은 그 어떤 자본보다 크고 강합니다. 2500년의 세월을 지나 더 강렬하게 빛을 발하고 있지요. 1960년대 하버드 대학의 개혁을 주도했던 내이턴 M. 푸시(Nathan M. Pusey) 총장은 이렇게 외칩니다.“오늘날 젊은이들에게는 네 가지가 필요하다. 마음껏 흔들 수 있는 깃발, 목 놓아 부를 수 있는 노래, 철저히 믿을 수 있는 신조, 목숨을 걸고 따를 수 있는 지도자.” 젊은이들의 결핍을 채우기 위해 오늘도 땀과 눈물을 흘리는 그 누군가가 바로 그대라는 것을 믿습니다. /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 대표

2019-07-15

고려인 이바짐과 김발레리야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러시아의 고려인을 현지에서는 까레이츠키라고 부른다. 이들 고려인 55만 명은 우즈베키스탄 19만, 카자흐스탄 10만,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 5만, 사할린 4만, 이곳 연해주에 4만 명이 어렵게 살아가고 있다. 1937년 10월 스탈린이 연해주 고려인 17만2천명을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시킨 결과이다. 스탈린은 연해주 고려인들이 일제 첩자가 될 것으로 우려해 멀리 중앙아시아로 쫓아버렸다. 세계 이민사에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일을 독재자 스탈린이 저지른 것이다. 연해주 고려인들은 스탈린의 명령 하나로 이틀분의 식량만 걸머메고 이곳 라즈도리노예역에서 열차에 올랐다. 한 달간의 이동 중 2만여 명이 질병과 굶주림으로 죽어나갔다. 일제로부터 수탈당한 민족이 러시아에서 다시 수탈당하는 비극이다.고려인들은 중앙아시아 황무지 벌판에서 농사를 지어 연명하였다. 이들은 ‘고본질’이라는 독특한 협동영농방식으로 생산량을 대폭 증가시켰다. 고려인 중에는 소련 당국정부로부터 노력 영웅칭호를 받은 사람도 많다. 우즈베키스탄의 김병화는 대표적인 노력 영웅이다. 이들의 고통은 말로 형언할 수 없었을 정도로 비참했단다. 10여 년 전 내가 이 지역을 방문했을 때 고려인 2세들 중에는 조선말을 하는 사람을 찾기 어려웠다. 이들의 얼굴 모습까지도 우리와는 다르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곳에는 상당히 성공한 사람도 있었지만 대부분 고난의 세월을 참고 살아온 사람들이다. 나는 그들 앞에 할 말을 잃었다.스탈린 사후 그들이 다시 연해주 고향땅으로 오고 있다. 연해주 학술 간담회에서 발표한 이바짐과 김발레리야도 고려인 2세들이다. 우수리스크 노인회 부회장인 이바짐은 첫인상이 무척 당차 보였다. 그는 소련군 출신이란다. 그는 우리말도 잃어버리고 오직 소련을 위해 총을 들었던 사람이다. 그는 이번 발표 때 한국어는 모르고 러시아어로 주제를 발표하였다. 스탈린의 철권 통치하에서 민족어 사용을 금지시킨 결과이다.그는 러시아말로 발표하고 러시아인 통역 세르게이가 한국어로 통역하는 아이러니가 발생하였다. 꽃미남 세르게이는 한국에 유학한 러시아 청년이다. 발표자 이바짐은 러시아 고려인들의 비극을 보는 것 같아 씁쓰레한 기분을 지울 수 없었다.우수리스크 민족학교를 운영하는 김발레리야는 예상과 달리 한국어를 잘 구사하였다. 그는 우즈벡에서 이곳으로 이주해 한국어를 독학으로 익힌 장한 여성이다. 그는 우수리스크 고려인 학생들을 모아 우리 문화와 우리말을 가르치고 있었다. 그는 고려인들이 러시아에서 동화되어 살 수밖에 없지만 우리 민족 전통을 지키는 가정이 많다고 소개했다. 고려인들은 생일, 결혼, 회갑은 반드시 상을 잘 차려 잘 대접한단다. 그래야 죽어서도 제사상을 잘 받을 수 있다고 믿는다. 그는 지난해 조부상을 당하여 딸의 결혼식을 연기시켰다고 전했다. 그들은 아직도 제삿날 부모님 산소를 찾는 전통도 이어 오고 있단다. 우리에게서 잊어버린 조선의 옛 풍습을 이곳에서 찾아볼 수 있어 만감이 교차하였다.이곳 연해주 일대는 러시아 고려인, 중국 조선족, 남한인, 북한인이 4만 명이 공존하는 공간이다. 모두 민족은 같지만 국적이 다른 사람들이다. 중국의 조선족은 이곳 시장에서 장사를 한다. 귀국길에 블라디보스토크 공항에서 평양으로 들어가는 북한 노동자 일행을 마주했다. 하나 같이 키 작고 야위고 초라한 얼굴들이다. 같은 동포로서 연민의 정이 들었다. 비행기를 기다리는 동안 우리는 자연스레 그들에게 말을 걸고 손을 내밀었다. 일행 중 북한 여성이 ‘북남 수뇌회담을 했으니 이제 우리도 좋아지겠지요.’라는 말로 화답하였다. 정상회담 이후 달라져 가는 화해 분위기를 대변해 주었다. 우리는 평양 순안 비행장으로 먼저 떠나는 그들에게 힘껏 손을 흔들어 주었다. 언제쯤 남북주민이 함께 열차를 타고 두만강을 넘나들 수 있을까. /블라디보스토크에서

2019-07-14

천년 묵은 나무에 숨지 말라

안회(顔回)는 공자가 가장 아끼고 사랑한 제자입니다. 스승의 심부름으로 시장에 가보니 포목점 앞에 사람들이 수군거리고 있습니다. 3x8이 23전(錢)이라 주장하는 손님과 24전이라 말하는 주인간의 다툼입니다. 안회가 끼어들지만, 손님은 공자에게 가서 따지자며 내기를 걸어오지요. 손님은 내기에 지면 목숨을 내 놓기로 하고, 안회는 본인이 틀릴 리가 없다 생각해 머리에 쓴 관을 내 놓기로 합니다.공자는 이야기를 다 듣더니 웃으며 말합니다. “안회야. 네가 졌으니 이 사람에게 관을 벗어 내주거라.”안회는 스승이 늙고 우매해서 더 이상 배울 것이 없다고 결론을 내리지요. 다음 날 안회는 핑계를 대고 고향에 잠시 다녀와도 좋을지 묻습니다. 스승과의 결별을 생각하면서요. “급한 일을 처리하면 곧장 돌아오거라.” 공자는 주머니에서 종이 한 장을 꺼내 안회에게 건넵니다. 두 문장이 들어 있습니다. 千年古樹莫存身 殺人不明勿動手.안회는 스승의 문장을 주머니에 구겨 넣고 발걸음을 옮깁니다. 하늘에 먹구름이 끼며 천둥 번개가 치더니 후드득 비가 쏟아지기 시작합니다. 멀리 큰 고목나무를 보며 한 걸음에 달립니다. 몸을 숨긴 안회는 안도의 숨을 내쉽니다. 문득 스승의 쪽지가 생각납니다. 주머니에서 문장을 꺼내 읽습니다. 千年古樹莫存身(천년고수막존신) 천년 묵은 나무에 몸을 숨기지 말라.안회는 나무를 빠져나옵니다. 몇 걸음 옮기는 순간, 쾅! 굉음과 함께 벼락이 떨어져 고목나무를 반으로 갈라버립니다. 간발의 차이로 목숨을 건진 안회는 공포에 휩싸이지요. 생전 처음 벼락이 코앞에 떨어지는 모습을 보았으니 그 두려움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더 큰 전율은 스승의 문장입니다. 만약 공자가 써 준 이 문장이 없었더라면 자신은 이미 세상 사람이 아니었겠지요.고향을 향해 발걸음을 재촉합니다. 걷는 내내 스승의 두 번째 문장이 머리를 어지럽힙니다. 殺人不明勿動手(살인부명물동수) 명확하지 않고서는 함부로 살인하지 말라.‘내가 살인을 저지를 수도 있다는 말인가?’ 안회는 벼락 맞은 충격과 살인에 관한 스승의 경고에 심란한 마음을 주체하기 어렵습니다. 집에 도착한 시각은 새벽 3시. 세상 모두 잠든 깊은 밤입니다. 조용히 침실 문을 열고 들어갑니다. 아무래도 이상하지요. 침대에는 아내 홀로 있는 것 같지 않습니다. 오랫동안 집을 비운 탓에 아내는 딴 사내를 불러들인 것이 분명합니다. 안회 눈동자에 불꽃이 일렁입니다.(내일 편지에 계속) /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 대표

2019-07-14

대구 근대미술 연구의 중요성

김태곤 대백프라자갤러리 큐레이터1922년 대구·경북 서화가들이 중심이 되어 설립된 ‘교남시서화연구회(嶠南詩書畵硏究會)’는 일제강점기 서구의 개방정책에서 우리 전통문화를 지키고 계승발전시키며 지역 서화계의 교류와 교육을 위해 개설된 기관이다. 서화 교육을 담당하는 강습소 역할 외에 서화 전람회와 강연회를 개최하고, 서화를 상설로 전시할 수 있는 전시관 등을 설립하려는 취지로 활동을 이어간 교남시서화연구회는 당시 ‘서화(書畵)’와 ‘미술(美術)’이라는 두 단어가 주는 시대적 변화를 단편적으로 보여주었다. 서구미술문화를 대표하는 서양화보다는 우리의 전통문화와 민족 정체성을 지키고자 하는 노력을 서화를 통해 계승하려는 노력을 이어나갔다.서구미술의 대표적인 표현양식인 서양화는 1900년대 초반 일본에서 서양미술을 익히고 귀국한 한국인 화가들에 의해 본격 이루어졌지만, 그 이전 각 지역에서는 이미 활동했던 일본인 화가들의 활동이 적잖은 자극이 되었다. 학교 교육과 미술공모전 출품을 위해 보급되기 시작했던 서양화가 일본인들에 의해 교습되는 것은 단순한 기술 전수를 넘어 문화를 통한 이념과 의식의 확산이라는 점이 식민체제하에서는 더 큰 문제가 되었을 것으로 판단된다.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서화가 석재 서병오는 앞서 교남서시화연구회를 결성하고 영남지역 서화인들과 애호가들이 함께 참여하는 미술 단체 운영을 주도적으로 이끌어 나갔다. 그리고 지역서양화가 1세대라 할 수 있는 이여성과 이상정 등과 함께 서양화 보급에도 후원을 아끼지 않았다. 1922년 5월 대구부청(당시 경상북도청) 내에 위치했던 뇌경관(賴慶館)에 ‘교남시서화연구회전’을 개최해 대구 전통서화의 현주소와 발전 가능성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었다. 그리고 이듬해인 1923년에는 대구의 청년 지도자였던 이여성, 정운해, 서건호, 서병인 등이 마련한 ‘대구미술전람회’에서는 대구 서양미술의 본격적인 발표장이 되었다. 이 전시는 당시 지역 미술인들이 주도한 대구 최초의 서양화 전시였다.서성로에 있었던 노동공제회관(구 은사관)에서 열린 전시회는 새로운 미술 양식을 감상하며 배울 기회를 마련하기 위한 관람객들이 인산인해를 이루었다고 한다.이러한 반응 때문이었을까. 1923년 12월 이상정과 이여성, 황윤수, 박명조, 정용택, 그리고 경북 청도의 부호였던 상계도가 체계적인 미술교육을 위해 ‘벽동사(碧瞳社)’를 설립한다. 이는 교남시서화연구회와는 또 다른 근대미술의 체계적이고 조직적인 교육을 위해 대구 문화인들과 지역 유지들이 조직한 교육기관으로 연구소의 위치는 서성로(서성정 1정목 89번지)에서 운영되었다. 이곳은 이상정 본가 옆에 위치해 있었으며, 백부 이일우가 설립한 사설도서관 ‘우현서루’가 인근에 있던 곳이었다. 일본인 상가들이 운집해 있던 북성로와 대조를 이룬 지역으로 대구문화와 정신의 구심점이 되기도 했다. 이러한 대구 근대기 미술교육은 서울, 평양 등 타 지역과 달리 선진화된 미술교육기관을 통해 체계적으로 이루어졌다고 본다.‘대구미술계는 제전, 선전에 다수의 특선을 내고 있어 경성 다음으로 평양, 부산보다 압도적 우수함에도 아직 미술 단체가 없이 다만 내지인들의 대구미술협회와 조선인 측의 향토회라는 미미한 존재였던 바-’ 라는 1941년 당시 매일신보 기사처럼 대구는 한국의 서양화 도입기에 서울과 평양의 근대화단 형성기와 같은 시기에 활발한 미술 활동이 이루어져 왔음을 알 수 있다. 이는 뒷날 이인성의 ‘양화미술연구소’와 서병기의 ‘향토회 미술연구소’ 등을 설립되는 원동력이 되었다. 한국 근대기 서화와 미술이라는 시각예술 장르를 주도적으로 이끌어 나간 대구미술은 지역예술인들의 화합이 주는 절대적 가치를 승화시켜 대구의 저력을 보여주었다. 이는 오늘날 한국현대미술의 구심점 역할로 이어지고 있다.

2019-07-14

새로운 천년의 중심 상주! 초석을 다진다

예로부터 상주는 경상도와 낙동강의 어원을 낳은 고장으로 영남의 중심도시였다.옛 명성을 되찾기 위해 지금 상주는 발상의 전환에 몰두하고 있다. 센티미터에서 미터 단위의 더 큰 시각과 사고를 바탕으로 희망 넘치는 도시를 만들고자 행정의 모든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이런 결과로 스마트팜 혁신밸리 유치, 상주일반산업단지 조성 지정계획 반영, 국가철도망 상주구간 예비타당성 조사대상 확정 등 굵직한 대형 사업들이 순조롭게 추진되고 있다.여기에 글로벌 악재에도 불구하고 1천50억원의 투자유치를 통해 325명의 신규 고용을 창출했다.또 국내 대형유통업체인 쿠팡(coupang)의 물류센터 건립 투자에도 많은 공을 들여 최종 성사 단계까지 왔다.이런 변화에 안주하거나 만족하지 않고 먼 미래를 보고 시정 전반에 걸쳐 작은 것부터 차근차근 준비해 나가고 있다.젊음과 미래가 있는 활기찬 경제도시 구축을 위한 중장기적 전략과제로 행정·문화·의료 복합타운 조성과 더불어 육군사관학교, 상급 종합병원, 지방이전 공공기관 유치활동을 활발히 펼치고 있다.상주일반산업단지를 조기에 완공해 우량기업을 유치하고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하는 등 고용안정에도 주력할 계획이다.특히, 기업이 원하는 투자환경 조성, 기업 경쟁력 강화와 경영활동 지원 등을 대폭 확대해 기업하기 좋은 도시로 탈바꿈하고 있다.지역사랑 상품권 등 지역화폐를 도입해 침체된 상권을 되살리면서 소상공인이 안심하고 생업에 종사할 수 있는 안전장치도 마련할 계획이다.대한민국 농업의 수도라는 호칭에 걸맞게 스마트팜 혁신밸리 조성과 경상북도 농업기술원 이전의 차질 없는 추진으로 대한민국 첨단농업의 거점도시로 확실히 자리매김해 가고 있다. 서울농장 조성과 서울자연가족 캠핑장 활성화를 통해 귀농·귀촌인 유치는 물론 안정적인 정착에도 세심한 배려를 하고 있다.또 지난해 농식품 수출 실적은 567억원으로 2017년 392억원 대비 44.6% 증가했다. 이에 탄력을 받아 농식품 수출 확대는 물론 농특산물 유통을 더욱 활성화는 등 돈이 되는 농촌을 만들어 가고 있다.품격과 특색이 있는 문화·관광·스포츠 도시 건설을 위해 청소년 해양교육원 조기 건립에 박차를 가하면서, 국내 최장의 경천섬 보도현수교도 금년 내에 완공한다. 낙동강 자전거 이야기촌과 낙동강 휴 관광벨트 조성, 사벌권역 관광벨트 도로 개설 등 관광산업 활성화를 위한 사업도 착착 진행 중이다. 기존 주변 관광자원과의 시너지 효과를 노려 낙동강 관광권역 연계 시스템을 구축함으로서 신낙동강 시대를 선도해 나갈 것이다.한복진흥원과 경상제일문 건립, 태평성대 경상감영 조성 등도 차질 없이 진행하고 있다. 견훤산성의 국가지정 사적 승격, 충의사 정기룡 장군 유적지 정비 사업과 함께 훈민정음 해례 상주본 보존 등 유무형의 문화유산 보존 계승에도 각별히 신경쓰고 있다.2018 아시안게임 4관왕을 배출한 상주시청 여자 사이클팀과 지방중소도시에서는 유일한 상주상무 프로축구단의 효율적 운영, 유·청소년 승마교육센터 및 다목적 생활체육관 건립, 전국 및 도 단위 각종 체육대회 개최 등으로 명실상부한 스포츠 도시로서의 입지를 확실히 다져가고 있다.문경∼상주∼김천 구간 국가철도망 구축사업과 관련, 상주에 반드시 역사가 건립되도록 하는 한편, 도청 신도시간 도로 확포장, 국도 3호선 대체우회도로 건설, 국도 25호선 도로 확포장 등 대형 SOC 사업에도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도시재생 뉴딜사업 등 사람중심의 살기좋은 도시기반을 구축하고, 병성천·북천 생태하천 복원과 상하수도 시설 확충 등으로 시민의 삶의 질을 높여 가고 있다.국가유공자 예우 및 복지 사각지대 해소와 함께 자활기반 마련으로 기초생활보장에도 더욱 내실을 기하고 있다.나아가 맞춤형 보건의료 서비스와 100세 시대 건강한 노후생활 지원을 늘리고, 공공산후조리원 및 육아종합지원센터 건립 등 출산·양육 지원시책도 한층 강화하고 있다.청년과 소상공인 등 각계 각층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 주민참여예산제도를 확대 실시하는 등 투명하고 건전성 있는 지방재정 운영에 소홀함이 없도록 하고 있다.소상공인 특례보증 지원 확대, 전통시장 골목 특화 등 친서민 정책을 더욱 강화하고, 상주시 중장기 종합발전계획을 수립해 미래 먹거리 핵심 전략산업을 집중 발굴하고 있다.또 시민 생활밀착형 사업을 적극 추진하는 한편, 장학사업 확대 및 서울학사 운영, 중모고 농업계 특성화고 전환 등 우수인재 육성을 위한 교육기반도 착실히 다져 가고 있다.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가 없다는 ‘십벌지목’의 마음가짐으로 치적 중심의 사업보단 무엇이 시민을 위한 행정인지를 깊이 고민하고 있다.새로운 천년의 중심 상주를 만드는 초석을 다지고, 떠나는 도시에서 찾아오는 도시로 변모할 수 있도록 심혈을 기울일 것이다.

2019-07-14

클로버, 다모작 도전장 내밀다

강길수 수필가회색 구름 사이를 비집고 나온 햇살이 나무와 풀들을 스캔하고 있다. 한 초등학교 운동장 한쪽에 만든 녹지(綠地)다. 따가울 여름 햇볕을 향해 풀, 나무들은 박수갈채를 보내고 있다. 그 중에도 가장 열렬히 환호하는 주인공은, 하얀 꽃을 내민 클로버다. 해님에게 잘 보이려 함인가. 한 톨의 햇빛이라도 더 받으려는 몸부림일까.장마철인데도 클로버는 올해 들어 두 번째 꽃피우기를 하고 있다. 아니, 사실을 말하면 벌써 네댓 번째인지도 모른다. 지난 겨울 소나무 아래서 월동한 클로버들은, 이월부터 한두 송이씩 줄곧 꽃을 피웠으니 말이다. 지난 봄엔 이상할 정도로 알차고, 다부지고, 통통한 꽃들을 촘촘히 많이도 피워냈었다. 그 모습이 결전을 앞둔 선수들처럼 결연해 보였고, 무명의 선수가 도전장을 내미는 초조함도 깃들어 보였다.지금 피우는 꽃은, 지난봄보다는 약하고 순하여 예전에 보아왔던 그 모습이다. 마음이 찜찜하여 백과사전에 ‘클로버’를 찾아보았다. 개화기가 육, 칠월이란다. 그러니 지금 피는 꽃이 정상(正常)이고, 이월부터 봄까지 피웠던 꽃은 비정상이란 말인가. 사람들은 기후 변화가 불러온 자연현상이라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그 이상의 무엇이 클로버의 도전장 안에 서려 있을 것이란 마음이 자꾸 드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이 클로버들과 이웃하며 출퇴근한 지가 벌써 네 번째 여름을 맞았다. 그간, 클로버가 녹지에서 차지한 영역이 어림잡아 열 배도 더 커져 보인다. 처음엔 보도 옆에 보도블록 네댓 장 정도의 넓이로 두세 군데 있었는데, 지금은 녹지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니 말이다. 장미꽃이 계절을 잊고 피어난다든가, 다른 꽃들도 꽃피는 시기를 모르고 피는 모습이 사람들 눈에 띄는 것은 이제 흔한 일이 되었다.클로버는 왜 한해에 저토록 여러 번 꽃을 피울까. 자기가 멸종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라도 느끼는가. 유럽이 원산지인 풀 클로버는 씨앗 번식 외에, 마디에서 뿌리가 내리며 개체를 늘리며 살기에 적응력이 강하다. 그런 풀이 꽃을 여러 번 피우는 이유가 뭘까. 다모작(多毛作)에 목숨이라도 걸었단 말인가. 하긴 동물처럼 움직일 수 없어, 기후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은 다모작인지도 모른다. 씨앗을 많이 퍼뜨려 놓아야, 그중 일부라도 변화된 세상에 살아남을 게 아닌가.외유내강으로 사는 저 하얀 클로버꽃은, 이 시대를 사는 나에게 클로버가 내미는 ‘다모작 도전장’으로 다가온다. 세상에 생명보다 귀한 것은 없다. 살아야 다른 그 무엇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도대체 체제와 이념, 국가와 민족, 종교와 신념 같은 것들이 뭘까. 그것들이 무슨 대수라고 거기에 매달려 아웅다웅하며, 지구촌 모든 생명의 목숨이 걸린 문제를 등한시하고 외면할까. ‘사람이 온 세상을 다 얻는다고 해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고 예수그리스도는 이미 이천 년 전에 설파했다.어찌 보면, 생명체 중에 인간이 가장 무디고 멍청한 존재인지도 모른다. 지구촌의 유일한 이성적 존재라고 자화자찬하면서, 목숨 걸린 기후변화에는 발 벗고 나서지 않고 사니 말이다. 욕망에 사로잡혀 끊임없는 패권과 금력 쟁탈에 빠져, 이성을 마비시킨 존재가 현대인이란 말인가. 스톡홀름에서 ‘유엔 인간환경선언’이 채택된 지 반세기가 다 되어간다. 이후, ‘리우선언’이나 ‘교도의정서’같은 기후변화를 다룬 국제 협약이 있었으나. 피부에 와닿는 실천 현장은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최근 미국 국토 넓이의 땅에 일조(一兆) 그루의 나무를 심으면, 지구온난화에 대처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는 보도를 보았다. 스위스 취리히연방공대 크라우더연구소 프랑스와 바스탱 박사팀이 주인공이다. 기존 도시나 농경지를 그대로 두고, 어디에 얼마의 숲을 새로 조성 가능한지에 대한 계량화 연구다. 결과, 숲 가꾸기를 통해 지구촌에 삼분의 일 가량의 숲을 늘릴 수 있다고 결론내렸다. 그리되면, 산업화 등 인간에 의해 대기에 오염된 삼천억톤에 달하는 탄산가스 중, 이천오십억톤을 늘어난 나무가 흡수할 수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나무나 풀이 탄소동화작용을 통해, 공기 중 탄산가스를 흡수한다는 사실은 누구나 아는 상식이다. 그런데도, 환경의 위험을 인지한 지 반세기가 지나도록 지구촌은 발 벗고 나서지를 않았다. 이런 여건 하에 숲이 이산화탄소를 줄이는 것을 과학적으로 계량화하여, 달성 가능한 목표로 제시한 연구가 발표된 일은 고무적이다. 지구온난화와 생태환경의 황폐화는 인간을 포함한 지구 모든 생명들의 목숨이 걸린 문제다.지구온난화로 머지않아 북극 얼음이 다 녹을 것이라는 보도도 있다. 온난화를 극적으로 보여주는 물증이다. 풀 클로버는 기후변화에 곧바로 도전하여 저렇게 다모작으로 대응하고 있지 않은가. 겨울 끝자락부터 시작된 클로버의 하얀 꽃 다모작 도전장은 어쩌면 인간에게 내민 경고장인지도 모른다. 이 미증유의 지구온난화는, 인간이 만든 자업자득이니 꼭 결자해지하라고. 그리고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고.

2019-07-14

94세 총리

불로장생(不老長生)을 꿈 꾼 진시황은 불로초를 찾기 위해 백방으로 사람을 보냈다. 그러나 중국을 최초로 통일한 그도 49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하게 된다. 불세출의 재간을 가졌다 하더라도 사람의 수명은 마음대로 할 수가 없다. 인간의 한계다. 예로부터 사람은 무병장수(無病長壽)를 인간의 가장 소중한 소망으로 삼았다. “사람의 목숨이 길고 짧은 것은 하늘에 달렸다”는 인명재천 의식 속에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은 그나마 아프지 않고 오래 살도록 희망을 갈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100세 시대라 하지만 실제로 90세가 넘는 고령의 나이에 건강하게 일한다는 것은 천운(天運)이라 할 만큼 행운이다. 올해 100세를 맞는 철학자 김형석 교수는 “인생의 황금기를 70세”라 했다. 그는 “100세 나이까지 일할 수 있고 그것이 자신을 건강하게 하는 비결”이라고 소개했다. 그러나 막상 90세를 넘겨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은 현실적으로 많지 않다. 건강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요, 그 나이에 맞는 일자리를 구한다는 게 쉽지가 않다. 김 교수처럼 책을 쓰고 강연을 한다는 것이 일반인에게는 그리 간단한 일이 결코 아니다.KBS 전국노래자랑 대회의 사회를 맡는 송해 선생의 경우도 이례적이다. 93세의 고령에도 젊은이 못지않게 활약하는 그가 우러러 보이는 것도 나이를 초월한 그의 열정 때문이다. 그러나 과거에 없었던 노익장을 과시하는 사람이 늘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투자의 귀재 워렌 버핏은 88세의 고령에도 여전히 자신의 존재 가치를 입증하고 있다. 최근 그는 “내가 하는 일과 나와 일하는 사람들을 사랑한다”고 말해 아직 현직에서 물러날 뜻이 없음을 내비쳤다.말레이시아 국가 정상인 마하티르 모하맛 총리가 최근 94회 생일을 맞았다는 외신이다. 93세가 되던 지난해 5월 두 번째 총리직에 올랐던 그는 현재 세계 최고령 국가 정상이다.말레이시아 장수포럼에서 장수의 아이콘으로 추대받을 만큼 건강 상태가 양호하다고 한다. 세계는 지금 100세 시대를 실감케 하는 일들이 지구촌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100세 시대 돌입을 앞두고 인간의 한계 극복을 위한 현상들이 어른거리는 것 같다./우정구(논설위원)

2019-07-14

‘사면초가’의 대한민국

안재휘 논설위원대한민국이 ‘사면초가(四面楚歌)’의 위기에 빠졌다. 경제는 좀처럼 활기를 찾을 기미가 없고, 한반도 평화의 길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맹점을 드러내며 허둥대던 외교는 드디어 일본의 무역보복이라는 전대미문의 경제침략 국면을 맞이하고 있다. 사분오열의 파열음을 점점 더 키워가고 있는 국론은 더 참담하다. 나라가 망해도 권력만 잡겠다는 욕심에 찌든 정치권은 볼썽사나운 드잡이질만 벌인다. 국민은 도무지 기댈 언덕조차 없는 막막한 처지다.문재인 정권이 마법의 주술처럼 되뇌던 소득주도성장의 ‘상징’ 최저임금 폭등세가 한풀 꺾였다. 최저임금위원회는 내년도 최저임금을 올해보다 2.87% 오른 시간당 8천590원으로 결정했다. 하지만 소상공인들의 처참한 실정을 개선하기에는 역부족일 듯하다. ‘인하’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동결’까지는 했어야 옳았다는 이야기에 힘이 실린다.지난달 30일 판문점에서 펼쳐진 장면은 가히 역사적이었다. 미국 대통령이 분단의 상징인 판문점에서 북한 김정은 국방위원장을 만나 웃으며 사진을 찍었으니, 그 사실만으로도 놀라운 일이었다. 그런데 그 뒷맛이 개운하지 않다. 왕따 모습의 문재인 대통령 모습을 놓고 논란이 일었다. 하지만, 그게 어떤 형태든 만나는 일 자체를 시비하는 손가락질들은 온당치 못하다.당연한 말이지만, 트럼프는 어디까지나 트럼프 편이다. 이 유치한 명제를 대입해보면, 판문점 정상회담은 우리에게 그리 큰 의미로 다가오지 않는다. 국내외 호사가들은 판문점 촬영 쇼는 두 사람에게는 분명 ‘남는 장사’였다고 분석한다. 그런데도 왠지 ‘북한 비핵화’가 제자리걸음인 작금에, 앞질러 날아다니는 ‘종전선언’ 화두는 분명 선후(先後)가 뒤바뀐 난수표다.남북, 북미 정상회담의 요란한 평화잔치 분위기에 취해 우리의 안보는 확실히 좌표를 잃었다. 국방 전선에서 벌어지는 현상들이 말하듯 우리는 스스로 무장해제를 해가고 있는데, 북한의 가공할 핵무기는 오히려 더 늘었다는 애타는 소식뿐이다. 우리가 누리는 일상의‘평화’가 대체 언제까지‘모래 위의 성’ 양상이어야 하나 두렵기만 하다.일본이 작정하고 무역보복을 감행해왔다. 우리가 무역을 ‘전쟁’이라고 일컬어온 세월이 길었으니 이건 분명 또 다른 형태의 왜란이다. 아베가 추악한 정치적 목적으로 일을 저질렀다느니 하는 치자들의 한가로운 해석은 참혹한 무역 전장에 도무지 효험이 있는 처방이 아니다. 일본의 무역보복이 민초들에게 또 얼마나 혹독한 빈곤을 몰고 올까 한걱정이 쌓인다.민심을 흔드는 것은 일본의 야멸찬 보복공격 자체가 아니라, 뻔히 알았을 텐데도 마땅한 대응방안을 못 내놓는 정부·여당의 아둔한 태도다. 1차원적 ‘반일감정’에 기대어 어찌어찌 반전을 노려보려는 운동권 기질이 얼비치는 대목은 아연실색을 불러일으킨다. ‘적폐청산’ 편법으로 정적 때려잡는 일에 보여주던 능수능란들이 반만큼이라도 발휘됐으면 좋겠다.아무렇거나, 우리의 운명을 결정하는 것은 민심의 향배다. 무구한 민심을 텃밭에 잡아 가두려는 정치꾼들의 선동술수들이 활개를 친다. 내년 총선을 겨냥한 무책임한 선심 정책들이 쏟아져나오기 시작했고, 민심은 또다시 흙탕물 와류에 휘말리기 직전이다. 찢어진 민심을 덧내는 여야 정치권의 온갖 험구들마저 경계가 없다.트럼프의 재선을 아무리 담보한다 한들, 대한민국이 북한의 핵인질이 되는 일은 비극이다. 정치권은 지금 무조건 불황을 반전시킬 비책부터 찾아내야 한다. 방황하는 실직자들의 뒷주머니에 푼돈 질러주며 지지표나 구걸하는 걸 정치라고 말하는 건 돌이킬 수 없는 죄악이다. 사방에서 들려오는 고향 초나라의 노래들로 사기가 땅에 떨어진 군사들을 이끌고, 패장 항우(項羽)가 돌아갈 땅은 어디인가. 돌아갈 곳이 그 어디든 있기는 한가.

2019-07-14

물건 처분하기

아주 가까운 분이 세상을 떠나신지 7개월이 흘렀다. 그 사이에 그분 계시던 곳 물건들을 정리해야 한다고 벼르기만 했지 정말 몸을 움직이지는 못했다. 사람의 일생이 담긴 ‘유산’들을 정리한다는 건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이제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생각되어 결국 폐기 처분해야 할 것들을 시간을 내어 정리하기로 했다. 그 물건들은 생전에 그 분이 운영하던 공장 안과 공장 뜰에 가득 차 있었다. 보기에도 물건들은 무척 많아서 손이 몹시 많이 가야 할 것 같았다.내 손은 보기는 뭉툭해서 막일 깨나 할 것 같지만 언젠가부터는 책이나 보고 글이나 썼던 터라 아무래도 다른 사람 손을 빌려야 했다. 폐기물 처리 업체도, 고물상도 여기저기 많아서 그중 한 곳에 우연히 들렀다가 인상 좋은 걸 믿고 맡겨 보기로 했다.와서 보고는 한 이틀 걸리겠다고, 폐기물은 5톤짜리 한 차에 75만 원 해서 두 차, 여기에 쇠붙이나 비철 금속은 1킬로에 200원씩 쳐서 가져가겠다고 했다. 두 사람 쓰는 것까지 합쳐서 적당히 계산하기로 하고 일을 시작했는데, 맡겨 놓았다 해서 모른 척 할 수는 없고, 그중에는 남겨 두어야 할 것도 있을 것 같아 내내 지켜보지 않을 수 없었다.이틀 걸리겠다던 것이 실제로 일을 시작해 보니 이틀 가지고는 어림 턱도 없었다. 이틀에 다시 이틀을 더하여 일을 하는데, 공장 안과 뜰에서 나오는 물건들이 실로 어마어마했다.끝이 없을 것 같다는 말이 어울린다고 해야 했다.‘세상에는 이런 일도’ 같은 프로에 출연해도 좋겠다는 농담까지 하면서,‘자원 회사’ 사장님 부부 두 분에 일하는 분 두 분 합쳐 네 분에 지켜보는 나까지 다섯 사람이 산더미 같은 물건들을 나흘을 걸려 처분하는 일에 매달렸다.나는 목디스크도 목디스크지만 사실 이런 일에 길 든 사람은 전혀 아니기에 옆에서 보다 딴청도 무척 피웠지만 일의 피로는 똑같이 느꼈다고 할 수 있었다. 1990년 정도에 팔린 브라더미싱 기계, 필시 복사본일 청전 이상범의 산수화 한 점, 1992년인가에 만들어진 삼성 완전 평면 티비 같은 것들이 나의 전리품이라면 전리품이었다. 그런데, 이 일을 지켜 본 내 주요 목적은 다른 데 있었다. 이 분이 남겨 놓은 물건들을 처분하는데 대한 가까운 다른 사람들과 나의 의견은 아주 달랐다. 나는 그분이 공장에서 손수 만들어 놓은 여러 가지‘독창적’발명품들을 그냥 처분하면 안 된다는 입장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살아생전에 식구들 고생만 시킨 그분의 지나친 발명욕의 소산들을 한시 바삐 없애 버리고 싶어 했다. 그 명품 기계들은 당신의 아이디어가 십 분 발휘되기는 했지만 상업적 이득을 남기지는 못한 현대 부적응증을 보여준 것들이었다. 나는 그 분의 노고가 담긴, 그러나 쓸모없는 기계들을 지키기 위해 물건들을 처분하는 공장을 나흘씩 지키고 섰던 것이었다.결국 나는 그분의 발명품 기계들을 열 대 정도 지켜내기는 했다. 대신에 그 나흘 동안 내가 새삼스레 깨달은 것도 있다. 공장 안과 뜰에서 끝없이 흘러나오는 물건들, 그 대부분들은 폐기물, 즉 없애 버려야 할 것들이었다. 뭐랄까, 살아서 뭔가를 자꾸 모으고 쌓는 것이 결코 좋은 일은 아니라는 생각!나흘 동안의 고생을 뒤로 하고 나는 당장부터는 모으지 않고 버리리라 생각했다. 내 것을 내 것 아닌 것으로 자꾸 밀어내야만 나랑 가까운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더 편할 테니 말이다. 평소에 많이 가졌다고 자부하던 그 책들부터 한시바삐 정리해야 하겠다. 책처럼 무겁고 처리하기 어려운 것도 없는데, 도대체 얼마나 살아 읽겠다고 그렇게 잔뜩 쌓아뒀단 말인가./방민호 서울대 국문과 교수 /삽화 = 이철진한국화가

2019-07-11

인사청문회 유감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대한민국 최고 권력기관 중 하나인 검찰총장 인사청문회가 막을 내렸다. 정치권과 국민들의 관심이 쏠리자 공중파 TV에서 생중계에 나섰다. 그러나 예전의 총리나 장관 청문회나 다를 바 없이 식상하고 실망스런 청문회였다. 여당은 그저 후보자를 감싸며 시간만 떼우려 하는 기색이 역력했고, 야당은 야당대로 후보자의 자질을 검증하기보다 후보자의 지난 과거 비리와 관련해 명확한 증거없이 의혹만 부풀리는 수준에 그쳤다. 겨우 한 건 했다는 것이 후보자의 위증논란이었다. 야권은 청문회장에서 공개된 2012년 기자와의 전화통화 녹취 내용과 윤석열 검찰총장 후보자의 발언이 다르다는 점을 들어 위증이라고 몰아세웠다. 윤 후보자는 “7년 전에 어떻게 이남석 변호사에게 이야기했는지는 기억이 안 난다”며 “윤 검사가 형 사건에 개입한다는 오해를 불식시키기 위해 얘기를 한 건지 잘 모르겠다”고 설명했다.법률 전문가들에 따르면 윤 후보자와 기자와의 통화 내용 자체에 대한 사실관계가 불분명하거나 사실이 아니라면 ‘위증’은 성립되기 어렵다고 한다. 설령 소개해줬다고 해도 단순한 소개만으로 변호사법위반에 걸리지는 않는다는 설명이다. 이런 상황이면 윤석열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는 그만 넘어가야 하는 데, 한국당과 바른미래당 등 야당은 사퇴를 촉구하고, 수사기관에다 고발하겠다고 엄포를 놓는다. 하지만 알 사람은 다 안다. 이미 문재인 정부는 국회가 청문보고서를 보내주지 않아도 윤석열 검찰총장 임명을 강행할 것이란 사실을 말이다. 이런 분위기에서 내년 총선을 앞둔 한국당 등 야당이 고집스레 사퇴를 촉구하는 것은 그리 현명하지 않다. 옆에서 지켜보기 답답했을까. 홍준표 전 대표가 한마디 했다. 검사출신인 그는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정국 때 국회선진화법 위반으로 한국당 의원들이 대거 고발된 점을 거론하며“엉뚱한 짓을 해 약을 잔뜩 올려놨다.지금 임명되면 바로 (한국당 의원들은) 을(乙)이 돼 버린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국회의원들이 출석을 거부한다고 기소를 못 할 것 같으냐. 조사 안 해도 기소할 수 있다”며 “동영상이 확보돼 있다. 참고인, 증인 조사를 한 뒤 법정 가서 따지라며 기소하면 당이 어떻게 할 것이냐”라고 한국당 지도부의 대응 전략을 비판했다. 패스트트랙 관련 고소·고발로 현재 한국당 의원들이 대거 수사대상에 오른 상태에서 왜 검찰총수로 취임할 사람과 지나치게 각을 세우느냐는 충고다. 차라리 정치적 중립을 당부하는 게 나았다는 말이다.청문대상자인 사람의 자질을 판단하는 인사청문회가 언젠가부터 후보자의 비리를 파헤치고 재산신고사항이나 주민등록법 위반여부, 논문중복게재 여부 등을 문제삼아 흠집내는 양상으로 변질됐다. 언제부터일까. 이는 ‘5·18민주화운동 청문회’가 ‘청문회 스타’를 만들고, 대통령과 총리를 배출하면서 불붙기 시작했다는 분석이 있다. 5·18청문회는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발포책임자를 가려내기 위한 청문회로서 청문위원들이 군부정권에 대해 공격적으로 진상을 밝히려는 차원이었기 때문에 자질을 판단하는 지금의 청문회와는 다른 성격이었던 게 사실이다. 어쨌든 그 이후 정치권에선 인사청문회를 인지도를 올리는 정치적 쇼로 활용하려는 양상이 늘어난 듯 하다.또 하나 국민들이 인사청문회에 대해 실망하는 것은 국회 스스로가 인사검증을 제대로 하기 어렵도록 제도를 만들어놓은 채 상대방탓만 한다는 점이다. 예로 들면 국회 인사청문회는 정부가 인사청문안을 국회에 넘기면 20일이란 짧은 기간내 인사청문 절차를 마치도록 돼 있다. 이후 청문보고서를 송부하지 않아도 대통령은 10일 이내 기간을 정해 재송부요청을 한 뒤 임명을 강행할 수 있다. 이러니 여당은 시간떼우기나 하게 되고, 야당은 자질 검증보다 손쉬운 흠집내기에 골몰할 수 밖에 없다. 이런 인사청문회 문화, 정말 바뀌어야 한다.

2019-07-11

홍콩의 민주주의

영국으로부터 홍콩을 반환받기로 한 중국은 3가지 원칙을 지키기로 약속했다. 일국양제(一國兩制)와 고도자치(高度自治) 그리고 항인치항(港人治港)이 바로 그것이다.일국양제는 하나의 나라에 2개의 체제를 뜻한다. 즉 국가는 사회주의 체제의 중국이지만 자본주의와 민주주의 체제에 따른 각종 제도를 홍콩의 것을 그대로 유지한다는 것을 말한다. 고도자치는 외교와 국방을 제외한 모든 분야에서 홍콩 스스로가 자율권을 행사한다는 것. 항인치항은 홍콩을 중국인이 아닌 홍콩인이 통치하는 것을 뜻한다. 당시 중국의 덩샤오핑과 영국의 대처 수상은 이 같은 3가지 원칙을 50년간 유지하기로 확약했다.알다시피 덩샤오핑은 중국의 개혁과 개방을 이끌어 오늘의 중국경제를 있게 한 장본인이다. 중국 개방 경제정책의 상징이던 흑묘백묘론(黑猫白猫論)을 설파한 인물이다.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는 이론으로 자본주의든 공산주의든 상관없이 중국 인민을 잘 살게 하자는 것이 그의 경제개발 논리였다. 세계사에서 유례없는 중국식 사회주의가 탄생한 것은 덩샤오핑의 ‘신의 한수’가 있었던 때문이라는 평가도 있다. 2013년 시진핑 취임 후 홍콩에 대한 중국의 생각은 달라졌다. 이같은 협약에도 홍콩을 중국화하기 위한 중국의 내정간섭과 압박은 이어졌다. 송환법을 둘러싼 홍콩의 대규모 시위의 배경에는 중국과의 투쟁이 숨겨져 있다. 캐리 람 홍콩 행정장관의 백기 선언으로 홍콩의 시위는 일단 한 숨을 돌리게 됐으나 불씨는 여전히 남아 있는 셈이다.1997년 홍콩의 중국 반환 후 22년의 세월이 흘렀다. 앞으로 28년만 지나면 홍콩의 운명은 중국의 지배하에 놓인다. 영국의 지배로 자본주의와 민주주의 경제체제에 익숙해진 그들이 중국의 공산주의 체제를 선뜻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100만 명이 넘는 대규모 시위에서 보았듯 민주주의에 대한 홍콩사람의 열망은 절박하고 간절하다. 그러나 홍콩을 길들이려는 중국 정부의 대응 또한 만만치 않다. 홍콩의 민주주의가 이제 시험대에 올랐다. 세계인의 이목이 모아지는 대목이다./우정구(논설위원)

2019-07-11

예산에 젠더 감수성을 더하다!

박은미 경북여성정책개발원 정책개발실장1995년 베이징에서 개최된 유엔 세계여성대회에서 성 주류화(Gender Mainstreaming) 전략이 주요 의제로 채택되면서 해외 선진국을 비롯하여 우리나라에서도 그동안 많은 성과를 거두며 추진하여 왔다. 성평등 정책 추진에서는 예산을 편성하고 지출하는 성인지적 관점이 필요하다. 예산은 정부가 진정으로 어떤 정책을 수행할 의지를 가지고 있는가를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정책도구이며, 정책의 우선순위를 나타내는 단적인 지표라고 할 수 있다. 예산배분이 성별로 형평하게 이루어지고 있는가에 대한 문제의식이 국가재정법을 개정하는 계기가 된 것으로 보인다. 때문에 성인지예산제도란 예산이 여성과 남성에게 미치는 효과를 고려하여 국가나 지방 재원이 성평등하게 사용될 수 있도록 하는 자원 배분의 과정을 의미한다.성인지예산제도의 도입 경위를 살펴보면, 우리나라에서는 2001년부터 여성단체를 주축으로 지방자치단체 예산의 성인지적 분석을 시작하였고, 국회여성위원회에서 2002년 10월 성인지적 예산편성 및 자료 제출 촉구 결의안을 의결하였다. 그 후 제2차와 제3차 여성정책기본계획에 성인지적 예산정책이 포함되고, 기획예산처에서는 2003년부터 이 요구를 부분적으로 반영하여 왔다. 국가재정법이 개정되면서 2006년 준비과정을 거쳐 2010년부터 회계연도 성인지예산제도가 본격적으로 도입·시행되었다. 국가재정법 개정을 통해 성인지예산제도가 추진됨에 따라 지방재정법을 개정하였고, 지방자치단체는 2013년부터 성인지예산서와 결산서를 작성하여 지방의회에 제출하고 있다. 성인지예산제도는 여성을 특별한 이해집단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모든 정부 정책, 프로그램에 젠더 이슈를 반영하는 것임을 강조하였다. 또한 성인지예산제도는 성평등한 자원배분의 과정으로 전체예산액을 증가하거나 감소시키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예산내에서 성평등한 방식으로 자원을 재분배하는 것을 의미한다.그렇다면 성인지예산제도는 왜 중요한가? 첫째, 성인지예산제도는 성불평등 문제와 무관해 보이는 예산사업이라도 의도하지 않게 성불평등한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점에서 성불평등을 예방하고자 하는 제도이다. 모든 정책은 도민들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특정 성(性)에 대한 차별의도를 가지지는 않지만, 성별차이와 조건을 반영하지 않을 경우 균등한 혜택이 돌아가지 않을 수 있다. 재정의 균형 있는 배분을 통해 여성과 남성의 다른 역할과 책임에 따른 정책의 상이한 효과를 고려하여 예산을 편성함으로써, 정책의 만족도를 향상시키고 효율성을 보장할 수 있다. 둘째, 자원분배의 경제적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 성인지예산제도는 성평등을 고려한 예산 편성 및 집행을 통해 사회·경제적 비용을 감소시키거나 편익을 증가시키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이는 성인지예산제도가 가지는 특징으로 여성과 남성의 다른 요구에 다르게 대응하여 재원을 배분하기 때문에 낭비 없이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셋째, 국가 재정의 투명성을 강화할 수 있다. 예산의 편성, 심의, 집행, 평가 등 모든 예산과정에서 정책효과를 고려하고, 공공지출의 정확한 기록과 성별분리 통계, 객관적인 정보의 제공을 요구함으로써 예산에 대한 투명성이 확보될 수 있다. 넷째, 모든 예산의 성평등 효과를 분석하고, 적절한 대안을 모색함으로써 성평등에 대한 정치적 의지를 현실화할 수 있다.사회는 빠르게 변화하고 있고, 정책대상의 욕구도 다양해지고 있다. 반면 정책을 수립하고 집행하는 과정은 보수성을 띠고 있을 것으로 보인다. 사회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못해 정책 효과가 반감되어 정책자체가 무의미해지는 경우가 있는데, 사회변화에 따라 정책도 발전되고 향상되어야 할 것이다. 최고의 품질은 여성과 남성의 요구와 관점에서 판단되어져야 할 필요성이 있으며, 남녀의 요구를 반영한다는 점에서 성인지예산제도의 중요성은 더욱 부각된다.

2019-07-11

책임대표사원이 이끄는 회사

2018년. 일간지 기자가 구씨의 회사를 찾아갑니다. 68년에 아주머니 두 분과 세운 삼구가 50주년을 맞는 해입니다. 안내 데스크 직원이 묻습니다. “책임대표사원 만나러 오셨지요?” 멀리서 구씨가 달려나와 기자의 손을 맞잡습니다. “아이구. 뭐하러 이런 구멍가게까지 찾아오셨어요!” 구씨가 건네는 명함에도 책임대표사원 여섯 글자가 선명합니다. “수많은 회사를 취재하지만 이런 직함은 낯설어요. 무슨 의미가 있나요?” 구씨가 답하지요. “회사의 모든 것을, 사원들의 잘못까지 책임지겠다는 의미에요. 작은 회사에 회장이란 칭호는 어울리지도 않고요. 직원들은 호칭이 너무 길어 그냥 책임사원! 이라고 부릅니다.”구멍가게라고 손사래를 쳤지만, 삼구 Inc의 직원은 모두 2만 5천명에 이릅니다. 335개 회사, 1357개 사업장에 직원을 파견하는 아웃소싱 국내 최대업체의 회장입니다. 올해 창립 50주년을 맞아 매출은 1조원을 돌파할 예정입니다.사무실에 액자 하나가 걸려 있습니다. “노요지마력(路遙知馬力) 일구견인심(日久見人心). 명심보감 교우편에 나오는 귀절이에요.” 구자관(74세) 책임대표사원이 설명하지요. “말의 힘을 알려면 먼 길을 가 봐야 하고, 사람의 마음을 보려면 오래 사귀어 봐야 한다는 뜻입니다.”기자가 묻습니다. “자살 직전까지 코너에 몰린 상황에서 어떻게 이런 회사를 만드셨습니까?” “사람이지요. 남들이 꺼리는 일을 기꺼이 해 주시는 그분들 덕분입니다. 우리 회사에서는 청소하는 아줌마, 아저씨도 여사님, 선생님이라고 깎듯이 불러요. 모든 직원은 명함을 파 드립니다. 회사 주식의 47%를 직원들에게 골고루 나눠줬습니다. 제 가족은 단 한 주도 갖고 있지 않습니다. 가족이나 친척이 회사에 기여한 게 아무것도 없으니까요. 임원들도 100% 공채 출신입니다.”눈물겹게 어렵던 시절, 한 달 차비를 아껴 책 한 권씩 사 모으며 고전의 한 문장을 가슴에 새긴 결과입니다. 사무실에 걸린 액자의 명심보감 글귀는 그의 평생을 견인했습니다.언어에는 3가지 힘이 있습니다. 각인력. 견인력. 창조력. 우리에게 스며든 언어가 결국 우리 인생을 이끌고 갈 것입니다.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는 말합니다. “언어는 존재의 집이다. 거미는 자기 몸에서 나오는 거미줄로 집을 짓고 인간은 자신을 둘러싼 언어로 존재의 집을 짓는다.” 아름답고 훌륭한 언어의 세계에 풍덩 빠져, 내 인생을 견인할 문장을 만나 전율하는 그대의 하루시기를!/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 대표

2019-07-11

일본, 어떻게 다룰 것인가

서의호 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일본의 한국에 대한 경제규제, 수출규제로 한국 경제계가 크게 요동치고 있다. 삼성의 이재용 부회장은 급히 일본으로 달려가 머무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부회장의 일본체류가 길어지는 것으로 보아 협상이 쉽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일본에 대한 보복수출금지조치 등의 맞대응의 소식도 들린다. 수출규제, 보복수출규제 모두 감정적 대응이라는 소리는 한일 양국 국민들 사이에서도 나오고 있다.한 국가의 경제가 감정적 대응으로 좌지우지 되어선 안 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들린다. 한일관계의 근본적 붕괴에 대한 걱정도 앞선다.한국의 산업은, 특히 반도체 산업은 일본의 원자재나 부품공급에 상당히 의존하고 있다. 한국을 반도체 수출강국이라고 한다. 메모리 반도체는 한국이 세계 1∼2위이다. 그러나 컴퓨터 휴대폰 기억장치 연산장치 능력을 갖는 비메모리 반도체 부문에서는 세계 5위권 밖이며, 수입에 많이 의존하고 있다. 2010 후쿠시마 원전사고 발생 시 한국 IT산업분야가 타격을 입었다. 그 당시 후쿠시마 지역이 부품 소재 공업도시인데 부품 공급이 안 되어 그 피해를 한국이 입은 것이다.한국의 부품이나 소프트웨어 해외 의존도는 매년 1월 신문기사에 한국 삼성 엘지 등 휴대폰 제작사들이 미국 퀄컴사에 기술 로열티를 2조원을 내고 있다는 기사에서도 알 수 있다. 휴대폰 핵심소프트웨어는 이 회사 제품이기 때문이다. 한국 대기업이 부품소재 기술력이 없어서 이같은 일이 발생한 것이다. 일본 전자제품을 복사하여 자사 제품한 것에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실제로 개발보다 수입에 의존하는 게 비용이 저렴하기 때문이다.그리고 기업들이 협력사와 관계를 공조·공생관계를 기피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대기업 부품소재 분야는 제3국으로 생산기지를 변경하게 되고 반도체 분야에서는 일본이 제3국으로 급부상하게 되었던 이유도 한몫하고 있다. 일본은 후쿠시마 수산물 수입금지,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 위안부 협정 파기 등에 대하여 불만이 누적되어 왔으며, 이에 대하여 문재인 정부의 대일 강경정책 완화를 목적으로 이러한 경제규제의 대응전략을 세운 것으로 보인다. 한국과 일본은 1965년 한일협정을 맺었다. 필자가 초등학교 시절이었던 이 시절 거리로 뛰쳐나온 대학생들의 격렬했던 데모를 기억한다. 우여곡절 끝에 맺은 한일협정 후 한국과 일본은 사실상 애증의 관계를 반복해 왔다.가장 가까운 이웃나라이면서도 위안부 문제 등 끊임없이 전개되는 이슈로 갈등을 겪어왔다. 그러면서도 경제적으로는 사실상 동반자 관계였다. 한국의 자동차, 조선, 반도체 산업은 일본과의 협력으로 발전해 온 것임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진보적 현 정부가 일본에 대해 보수정부보다 덜 협력적이고 덜 우호적이라는 사실은 확실해 보이고, 그래서 일본은 큰 불만을 품어 온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상황에서 미일간의 관계는 한미관계보다 훨씬 강화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사실상 한미일 동맹에서 한국이 제3자로 돌아서고 있는 상황이다.일본은 미국과 함께 같이 가야 할 국가임은 엄연한 사실이다. 동북아시아 구도상 한미일 공조가 정치, 군사, 경제적으로 강한 한국을 만들어 낼 수 있고 핵개발로 안보를 위협하는 북한의 야욕을 막을수 있는 중요한 전략이라고 생각된다. 한일 동맹이 약화되면 경제는 물론이지만 정치, 군사적으로 동북아 정세의 불균형을 가져오게 되리라는 것은 불보듯이 뻔한 사실이다. 한미일 동맹강화는 건전한 한미, 한일 관계를 기초로 한다. 이번 일본발 한국에 대한 경제규제는 반발성 감정적 대응으로 해결할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 좀더 슬기롭게 협력적으로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일본을 감정적으로 다루어서는 안 된다.

2019-07-11

물건을 인쇄하다― 3D 프린터 기술에 대해

△제4차 산업혁명과 3D 프린터제3차 산업혁명은 아날로그 정보 중심의 사회를 디지털 중심으로 바꾸어 놓았다. 이를 통해 정보를 담을 수 있는 특정한 매체나 디바이스를 여러 개 가질 필요 없이 한 곳에 담을 수 있었다. 그것이 컴퓨터다. 이런 정보를 네트워크를 통해 빠르게 전달할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보자면 제3차 산업혁명의 중심에는 디지털, 컴퓨터, 인터넷이 있다. 그리고 이런 시대를 이끄는 물질적 기반은 반도체다. 반도체는 정보의 저장용량을 증대시키고 정보 처리속도를 향상시킴으로써 디지털이 일상화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그렇다면 제4차 산업혁명은 제3차 산업혁명과 다른 어떤 변별점을 가지고 있는가? 클라우스 슈밥은 제4차 산업혁명의 특징으로 “유비쿼터스 모바일 인터넷, 더 저렴하면서 작고 강력해진 센서, 인공지능과 기계학습”(25면)을 들고 있으며, 이를 기반으로 성장하고 있는 대표적인 기술로 “인공지능, 로봇공학, 사물인터넷, 자율주행자동차, 3D 프린팅, 나노기술, 생명공학, 재료공학, 에너지 저장기술, 퀀텀 컴퓨팅”(11면) 등을 거론하고 있다.이러한 다양한 기술들 중에서 3D 프린터에 대해서 알아보고자 한다. 올해 2월 중국 상하이에 3D 프린터로 만든 것들 중 가장 긴 다리가 완공되었다. 그 다리는 중국 상하이에 있으며 길이는 무려 26m에 달한다. 3D 프린터를 알기 위해서는 먼저 ‘찍다’라는 의미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겠다.△책을 찍다우리나라 헌법 제21조 1항은 “모든 국민은 언론의 자유를 가진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언론의 자유가 있으므로 자유롭게 생각이나 사상을 말할 수 있다. 이런 자유는 기술의 발전을 통해서 더욱 광범위하게 확장되었다. 컴퓨터가 발전하기 이전에 자신의 생각을 정리한 글을 읽히게 하려면 인쇄를 해야 했다. 책을 출간한다는 말보다는 ‘책을 찍는다’라는 말을 썼다. 그런데 이 ‘찍는다’는 말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인쇄를 하려면 나무나 쇠에 글자를 새겨야 한다. 다음에 그렇게 만들어진 글자에 잉크를 칠한 뒤 천이나 종이에 그 글자를 꾹 눌러 찍는다. 인쇄는 도장을 수없이 만들어 찍는 것과 같아서 ‘책을 찍는다’라고 했다.컴퓨터가 발전하면서 프린터를 사용하게 되었다.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레이저 프린터는 정전기의 원리를 이용하고 있다. 금속 원통에 레이저를 비추면 정전기로 글자 모양이 생긴다. 이 자리에 토너라고 불리는 다른 극성의 정전기를 띤 가루잉크를 뿌린다. 정전기의 원리를 이용하여 종이에 글자가 달라붙게 만든 후 열로 고정시킨다. 기본적으로 글자를 찍어낸다는 점에서 인쇄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과거의 인쇄가 글자를 새기는 일에 대부분의 시간과 노동력을 할애했다면, 레이저 프린터는 드럼에 글자를 새기는 것이 아니라 레이저로 비추기 때문에 인쇄시간과 비용을 획기적으로 절감할 수 있었다. 이런 프린터가 없었다면 1인 출판사는 불가능했을 것이다.그런데 ‘찍는다’라는 말은 인쇄물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우리는 지금도 ‘물건을 찍는다’라고 말한다. 이 말은 영어로는 mold goods인데, mold란 ‘본을 뜨다, 거푸집을 만들다’이며 goods는 ‘상품’을 뜻한다. 예를 들어 종을 찍어내려면 종 모양의 거푸집이 필요하다. 여기에 쇳물을 붓고 그것이 굳으면 거푸집을 떼어내는데 이 때 거푸집 모양이 찍혀 종이 완성된다. 인쇄에 사용되는 새겨진 글자는 거푸집에 해당한다.레이저 프린터가 글자를 일일이 새기지 않으면서 비용과 시간과 노동력을 대폭 줄일 수 있었듯이, 신제품을 개발할 때 제조 과정에서 3D 프린터를 이용하여 거푸집을 만드는 일을 하지 않는다면 제조업에서 신제품 개발이 획기적으로 변화하게 될 것이다.△물건을 찍다3D 프린터는 입체적으로 그려진 설계도를 미분의 방법을 이용하여 아주 얇은 막레이어(layer)로 잘게 잘라 분석한다. 레이어가 얇으면 얇을수록 물건이 더 정교해지는데 이 겹을 가루와 액체, 녹인 쇳물 등을 사용하여 무수히 쌓아 올려 물건을 만든다. 3차원 설계도면을 미분하여 분석하고, 이를 적분하면 물건이 된다.이러한 3D 프린터는 자동차를 비롯하여 제조업과 관련된 영역 전체로 확대되어 신제품 개발에서 모형을 만드는데 효율적으로 사용될 것이다. 오토데스크(Autodesk)가 설립한 로봇 회사 MX3D는 3D 프린터 기술과 로봇 기술을 접목해 2017년까지 암스테르담에 3D 프린터로 다리를 건설하기로 했다. 운하의 한쪽에서부터 철을 녹여 3D 프린팅할 수 있는 6축 로봇을 이용해 다리를 허공에서 바로 ‘출력’해 낸다. 이 다리의 길이는 7m 정도다. 3D 프린터를 이용하면 다양한 형태의 디자인이 가미된 다리를 만들 수 있으며, 인건비는 물론 제작기간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게 된다.3D프린터는 정교함을 필요로 하는 의료분야에서 폭넓게 응용되고 있다. 사람의 치아를 교정하거나 임플란트를 하려면 본을 떠야 한다. 예전에는 석고를 사용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인체에 무해한 알지 네이트, 폴리비닐실록산, 폴리설파이드와 같은 것을 사용한다. 이것은 액체에 가까운 물렁물렁한 고체인 졸(sol)로 되어 있다. 이것을 입에 넣고 꽉 물면 시간이 지나면서 고체로 변하게 된다. 이러한 본을 바탕으로 보정치아를 만든다. 그런데 인체는 매우 미세해서 조금만 맞지 않아도 불편함을 느낀다. 3D 프린터를 사용하면 훨씬 정확하고 정교한 보정치아를 만들어 심을 수 있다. 또한 개인의 신체 규격에 딱 맞는 보청기도 만들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더 세밀하고 정교한 것, 이를 테면 손상된 연골이나 뼈, 심지어 손상된 장기까지 개인 맞춤형으로 정확하게 만들 수 있다.3D 프린터를 이용하면 어떤 형태로든 디자이너의 콘셉트대로 옷을 만들 수도 있다. 이런 장점 덕분에 그동안의 기술로 불가능했던 디자인의 옷을 구현할 수 있다. 호랑이가 온몸을 감싸고 있는 듯한 옷이라든지, 천사의 날개 같은 디자인 말이다. 이 정도라면 앞에서 언급한 스프레이온 패브릭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 그러나 3D 프린터의 또 다른 장점은 착용감을 극대화할 수 있다는 점이다. 옷을 만들기 전에 몸의 치수를 재는 이유는 옷과 몸이 잘 맞아 맵시 있으면서 편안한 옷을 만들기 위해서다. 그래서라면 인체를 3D로 스캔하면 훨씬 정교하고 몸에 딱 맞는 맞춤형 옷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3D 프린터를 활용하면 창의적이고, 개성 넘치는 디자인을 적용한 자신만의 액세서리도 만들 수 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단 하나밖에 없는, 고유한 명품 액세서리를 만들어 볼 수도 있다. 자기만의 취향이 강조된 디자인의 옷도 마음대로, 개성껏 만들어 입을 수 있다. 자동차의 새로운 모델을 개발하는데 필요한 시제품 제작에 응용함으로써 시간과 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고, 건설 분야에서도 독특한 디자인의 건물을 짓는데 3D 프린터로 찍어내 건설 비용과 시간을 단축시킬 수 있다.이렇게 보면 3D 프린터는 청년들의 글로벌 감각, 도전적 모험의 식과 끼를 꽃피우는 도구가 되어 1인 창업도 활발해질 것이다. 이것은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라 짧게는 수년 길게는 10년 안에 이루어질 것이다. 그런 점에서 기술이 나가는 방향을 안다는 것은 변화할 미래를 예측하고 이를 준비하는 일인 것이다.

2019-07-10

새참

송귀연 수필가다시마를 씻고 멸치를 다듬는다. 부추나물무침, 애호박볶음, 계란지단, 오이채, 김치, 이렇게 다섯 가지로 고명을 정했다. 맛있게 차려내야지 다짐을 하지만 마음만 앞설 뿐이다. 에어컨을 켜놓은 부엌이 한증막처럼 더워 연신 땀방울을 손등으로 훔친다. 혼자서 허둥대다보니 벌써 오전 새참시간이 코앞이다.장마가 온다는 일기예보에 부랴부랴 감자수확을 하게 되었다. 과수(果樹) 사이 노는 땅에 심은 감자는 생각보다 일이 많았다. 막상 급하게 수확을 하려들다 보니 손이 모자랐다. 겨우 세 명 정도 일손을 확보할 수 있었다. 귀농한 우린 둘 다 농사일이 서툴렀다. 체계적 일의 순서를 몰라 우왕좌왕이다. 하늘은 곧 비라도 뿌릴 것처럼 먹장구름을 안고 있다. 밖에서는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며 일꾼들이 주인을 부리는 진풍경이 펼쳐지고 있다.옛날 엄마는 일찌감치 아침 설거지를 끝내면서 미리 국수물을 우려내놓고 일터로 향했다. 그러고는 새참 때가 됐다 싶으면 어느새 장만했는지 정갈하게 만든 국수를 차려 내놨다. 호박볶음과 부추나물무침 정도의 고명을 얹어 내놓았지만 맛은 일품이었다. 여남은 명도 넘는 사람들의 새참을 준비하는 엄마의 몸놀림은 민첩했지만 부산하지 않았다. 내가 만든 국수는 코를 빠트리며 요란하기만 했지 결코 그 맛을 비교할 바 못된다.내가 살던 고향에는 들녘을 가로질러 기찻길이 있었다. 대체로 새참 먹을 시간쯤에 기차가 지나갔다. 시계의 알람처럼 산모퉁이 너머에서 기차소리가 들리면 아버지는 “어, 배가 출출하네. 새참 먹고 하세”라며 일꾼들을 불렀다. 품앗이 온 사람들은 저마다 하던 일을 멈추고 미루나무 아래 논둑에 걸터앉았다. 그럴 때면 어김없이 마을 쪽에서 엄마가 새참을 이고 오는 것이 보였다. 지금도 새참을 생각할라치면 빠-앙! 하고 기적소리가 들려온다.김홍도의 그림 중에 ‘새참’이라는 풍속화가 있다. 가히 더운 여름이었는지 열 명의 사람들이 윗도리를 벗다시피 하고 모여 있다. 앞섶을 풀어헤치고 아기에게 젖을 물리는 아낙이며, 큰 밥그릇을 든 아이, 삿부채와 술병을 든 사람, 사람들이 밥 먹는 모양을 저만치 떨어져 쳐다보고 있는 개까지 등장한다. 아마도 농사일을 하고 어데 논둑에 앉아 새참을 먹는 모습을 그렸지 않나 싶다. 어릴 적 농번기에 만날 수 있었던 정겹고 낯익은 풍경이다. 새참을 먹기 전엔 항상 고수레를 했다. 제일 나이 많은 어른이 올해농사 풍년들게 해달라고 기원을 했다. 고수레는 음식을 먹기 전 첫 숟가락의 음식을 떠서 지신이나 수신, 또는 산신에게 바치던 제의(祭儀)의 습속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고수레를 한 음식은 근처의 새와 벌레가 먹게 될 것이다. 비록 가난했지만 사람뿐만 아니라 자연과도 인정을 나누었던 그때가 지금보다 풍요로웠다. 새참 땐 모두 논두렁으로 모여 들었다. 푸짐하게 여분을 마련한 새참은 넉넉한 인심을 나누었다. 거나하게 막걸리 한잔 들어가면 광배엄마는 육자배기를 한가락 구성지게 뽑곤 했다. 막걸리가 과해진 만석이 아저씨는 가슴을 풀어헤치고 한나절 단잠에 빠졌다. 헤벌쭉한 입가에 파리들이 앉았지만 개의치 않았다.요즘은 거의 집에서 새참을 만들지 않는다. 아낙들이 양푼을 이고 걸어가는 대신 철가방을 매단 오토바이들이 쌩쌩 들길을 내달리는 광경을 자주 접하게 된다. 품앗이를 하며 서로 일손을 도우고 둘러앉아 농사정보도 함께 나누는 광경들은 이제 보기 힘들어졌다. 새참이 주는 고유의 정서가 사라지고 있어 안타까울 뿐이다.어느새 하루가 지나가고 있다. 두 번의 새참을 장만하랴, 감자를 캐랴, 정신없이 하다 보니 감자들은 크고 작은 박스에 잘 갈무리되었다. 제대로 씻지도 않고 누우니 팔다리며 허리가 욱신거리고 고단함이 온 몸으로 밀려든다. 다행히 장마는 조금 늦게 온다는 예보다. 마당에선 쓰르라미가 울고 고라니들 짝 찾는 소리가 이 산 저 산에서 들려온다. 낮에 장만했던 형형색색의 고명들이 눈앞에 펼쳐진다. 스르르 감자이랑같은 눈꺼풀이 닫힌다.

2019-07-10

뱀장어의 번식과정을 부분적이나마 알게 된 것은 20세기 들어서다

장어(長魚)는 미끄럽다. 맨손으로 잡으면 미끈거리며 빠져나간다. 정체를 알기도 힘들다. 장어의 정체를 비교적 정확하게 이야기한 것은 손암 정약전(1758~1816년)의 ‘자산어보(玆山魚譜)’다. 장어를 ‘해만리’라고 표기했다. 정확하게는 뱀장어, 민물장어다.“큰놈은 길이가 1장(丈)에 이르며, 모양은 뱀을 닮았다. 덩치는 크지만, 몸이 작달막한 편이고 빛깔은 거무스름하다. 대체로 물고기는 물에서 나오면 달리지 못하지만, 해만리만은 유독 뱀과 같이 잘 달린다. 머리를 자르지 않으면 제대로 다룰 수가 없다. 맛이 달콤하고 짙으며 사람에게 이롭다. 오랫동안 설사를 하는 사람은 이 물고기로 죽을 끓여 먹으면 낫는다.”해만리는 바닷장어 혹은 민물장어다. 일본인들이 ‘우나기(UNAGI)’라고 부른다. 뱀장어는 이름도 혼란스럽다. 뱀같이 생겼다고 뱀장어 혹은 ‘배암장어’다. 몸이 길다. 장어(長魚)다. 뱀장어의 준말이다. 바다에 나타나니 바닷장어다. 강이나 개울 등 민물에서도 발견되니 민물장어다. 같은 녀석이다. 뱀장어가 바다, 민물에서 동시에 발견되니 어쩔 수 없다.장어는 크게 세 종류다. 민물장어, 갯장어, 붕장어다. 여기에 먹장어(꼼장어, 곰장어)를 더하면 모두 넷이다. 모두 장어 혹은 뱀장어라고 부르기도 한다.갯장어는 견아리에서 비롯되었다. ‘견’은 개, ‘아’는 이빨, ‘리’는 장어다. 개 이빨을 가진 장어다. 개 이빨 장어, 개장어, 갯장어다. ‘자산어보’에서는 “입이 툭 튀어나온 것이 돼지와 같다. 또 이는 개와 같아서 고르지 못하다. 가시가 매우 단단하며 사람을 잘 문다”라고 했다. 갯장어 명산지인 여수 일대에서 갯장어를 만지는 사람들은 대부분 손에 갯장어에게 물린 자국이 있다. 갯장어를 이르는 ‘하모’는 일본어 ‘hamu(‘물다’는 뜻)’에서 비롯되었다는 ‘설’도 있다. ‘하모 유비키’는 갯장어 샤브샤브의 일본어 표기다.‘자산어보’에서는 붕장어를 해대리라고 했다. 설명도 사실적이고 정확하다. “눈이 크고 배 안이 먹빛이다. 맛이 매우 좋다.” 붕장어는 일본인들이 ‘아나고(ANAGO)’라고 부른다. 가격이 오르면서 회와 더불어 구이용으로도 널리 사용된다. 일본인들의 ‘우나기동(장어 덮밥)’은 ‘우나기’가 아니라 붕장어(아나고)로 만든다. 민물장어(우나기)의 가격을 생각하면 민물장어로 ‘우나기동’을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다.헛갈리는 녀석은 먹장어다. 먹장어는 이름은 장어지만 장어는 아니다. 흔히 ‘꼼장어’ ‘곰장어’라고 부른다. 먹장어 목, 먹장어 과의 동물로 연골어류다. 장어치고는 길이가 짧고 통통하다. 가격이 싸서 한때 포장마차의 주력 메뉴였다. 곰장어 인기가 높으니 붕장어(아나고)를 내놓으며 ‘곰장어’라고 소개하는 일도 더러 있다. ‘꼼장어 숯불구이’는 먹장어다.장어를 상세하게 나눈 것은 오래되지 않았다.손암 정약전이 ‘자산어보’를 쓴 시기는 19세기 초반(1814년)이다. ‘자산어보’에서도 민간의 황당무계한 이야기를 전한다. “뱀장어는 그믐밤에 자신의 그림자를 가물치의 지느러미에 비추고 그곳에 알을 낳는다. 뱀장어는 가물치와 교미하여 알을 낳고 수정한다.” 손암은, “민간에 이런 이야기가 있으나 믿을 수 없다”라고 적었다.동시대, 전남 강진에서 유배 생활 중이었던 다산 정약용(1762∼1836년)은 장어에 대한 서정적인 기록을 남겼다. ‘다산시문집_제4권_시’의 일부인 ‘탐진어가(耽津漁歌)’다. 탐진은 전남 강진의 옛 이름이다.“계량(桂浪)에 봄이 들면 뱀장어 물때 좋아/그를 잡으러 활배가 푸른 물결 헤쳐간다/높새바람 불어오면 일제히 나갔다가/마파람 세게 불면 그때가 올 때라네(후략)”활배는 궁선(弓船)이다. 배에 그물을 설치한 배를 이른다. 형 손암은 흑산도에서, 동생 다산은 강진에서 유배 중이었다. 형 손암이 ‘자산어보’를 기록하고 있는 동안 동생은 뱀장어에 대한 시를 남겼다. 이 뱀장어가 어떤 종류인지는 알 수 없다.조선 시대, 뱀장어의 정체를 정확히 알지 못한 이유가 있다. 뱀장어의 산란, 수정, 성장을 꼼꼼히 볼 수가 없었다. 산란 현장을 보지 못했다. “가물치와 교미하여 알을 낳고 수정한다”는 엉뚱한 추측을 할 수밖에 없었다.우리만 뱀장어의 정체를 몰랐던 것은 아니다. 뱀장어의 번식 과정을 부분적이나마 알게 된 것은 20세기 들어서다. 1927년 2월 발행한 잡지 ‘동광’ 제10호의 기사다. 제목은 ‘뱀장어와 잉어’.“(전략) 생물학자들의 연구에 의지하면 남아메리까에 살(居)는 뱀장어는 알을 쓸을 때가 되면 대서양을 건느어서 스코틀랜드나 혹은 알프스산 꼭닥이에 오아서 새끼를 깐다고 한다. 그 까지 찾아가는 동안에 세월이 걸닌다거나 사납은 짐승, 넘끼 힘 장애가 있다거나 생각하지 않고 오직 목적지에 이르기까지 아니 가고는 말지 않는다는 맘으로 (후략)”제법 과학적으로(?) 기술했지만, 이 내용도 틀렸다. 1920년대, 덴마크를 비롯하여 유럽학자들은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뱀장어는 무려 6,000㎞를 헤엄쳐서 깊은 바다의 산란지에 간 다음, 알을 낳고 죽는다”. 뱀장어는 민물에서 바다로 가서 알을 낳는다. 윗글에는 바다의 뱀장어들이 민물로 온 다음, 엉뚱하게도 알프스 꼭대기에서 알을 낳고 번식한다고 말한다. 거꾸로다. 연어는 깊은 바다에서 살다가 민물로 올라와서 알을 낳고, 생을 마감한다. 대부분의 회귀성 생선들이 그러하다. 뱀장어는 정반대다. 민물에서 살다가 바다로 돌아가서 산란하고 죽는다.아시아에서는 1990년대에 이르러서야 ‘뱀장어의 대체적인 삶’에 대해서 부분적으로 밝혔다. 동북아시아의 민물장어들은 먹이도 먹지 않고, 쉬지 않고 3,000㎞를 헤엄쳐서 산란지에 도착한다. 기진맥진한 상태에서 산란 후 삶을 마감한다. 산란지역은 필리핀 마리아나 해구 부근이다. 알에서 깨어난 뱀장어는 ‘댓잎장어’다. 생긴 모습이 대나무 잎 혹은 버들잎 같이 생겼기 때문이다. 정확한 명칭은 렙토세팔루스(leptocephalus). 댓잎장어는 실뱀장어로 바뀌면서 어미가 왔던 길을 되돌아, 육지로 향한다. 이때 어부들이 실뱀장어(실치)를 잡아서 양식장에서 기른다. 실뱀장어는 ‘유리뱀장어(glass eel)’로 부른다. 몸이 투명하기 때문이다.대부분 민물장어는 양식이다. 실뱀장어를 잡아서 기른다. 일본도 알 채취, 수정, 양식의 전 과정을 ‘산업적’으로 해내지 못했다. 뱀장어와 뱀장어 인공양식에 대해서 일본이 한걸음 앞선 이유가 있다. 일본인들은 오래 전부터 뱀장어를 즐겨 먹었다. 조선 중기 문신 남용익(1628∼1692년)은 조선통신사 종사관으로 일본에 갔다. 그는 ‘문견별록’에서 일본인들이 뱀장어구이를 귀하게 여긴다고 기록했다.“(전략) 회는 아주 굵고 굳은데 감귤을 조각조각 끊어 섞었고, 구이[炙]는 생선이나 새[鳥]로 하는데 뱀장어[蛇長魚 사장어]를 제일로 친다. 먹는 대로 가반(加飯)하고 잇따라 반찬이 나와, 많을 때는 열 두어 그릇이나 되고 반드시 즐기는 물건을 물어보아 더 내오며, (후략)”‘사장어(蛇長魚)’는 뱀장어다. 남용익이 기술한 뱀장어가 과연 어떤 장어인지는 알 수가 없다. 뱀장어(민물장어), 붕장어, 갯장어 중 어느 것인지 구분할 수 없다. 일본인들이 이미 17세기 중반에 뱀장어구이를 즐겨 먹었다는 사실은 확인할 수 있다.우리도 뱀장어를 먹었다. 매천 황현(1855∼1910년) ‘매천속집’의 ‘밀양 효자 박기재’ 이야기다. 박기재의 할머니가 풍진을 앓았는데 의원이 뱀장어가 좋다고 했다. 한겨울에 뱀장어를 구할 도리가 없어 박기재가 얼음을 손으로 긁고 있는데 갑자기 얼음이 갈라져 뱀장어가 나타났다. 그 뱀장어를 올리니 할머니의 병이 나았다는 동화 같은 이야기다. ‘밀양 효자 박기재’의 뱀장어는 민물장어다. 겨울철, 손으로 긁어야 할 정도의 얼음은 개울이나 강이다. 박기재의 장어는 민물장어다. 무태장어, 갯벌장어 등도 있다. 무태장어는 제주도 산 민물장어(뱀장어)다. 갯벌장어는 양식한 뱀장어를 갯벌에 일정 기간 풀어둔 것을 말한다. 양식 뱀장어와 큰 차이는 없다.영일만검은돌장어영어조합법인 김영운 회장.포항 검은돌장어 축제26~28일까지 개최도구해수욕장 일원돌장어는 포항 구룡포(포항시 동해면 흥환리) ‘검은 돌장어 마을’의 특미다. ‘돌장어’는 구룡포 언저리 검은 바위, 돌이 많은 곳에서 자란다. 이 지역은 물이 차고, 물살이 세다. ‘검은 돌장어’의 색깔이 검고, 맛이 찰진 이유다. ‘영일만검은돌장어영어조합법인(회장 김영운)’은 매년 ‘검은돌장어 축제’를 연다.올해는 도구해수욕장 일대에서 오는 26일부터 28일까지 열린다. ‘검은돌장어 축제’에서는 여러 종류의 돌장어 음식을 시식할 수 있고, 전문가들이 개발한 레시피도 배울 수 있다. 특히 후릿그물을 당기며 ‘맨손으로 검은 돌장어 잡기’는 짜릿한 손맛을 만끽하는 축제의 색다른 체험이 될 것이다.영일만검은돌장어축제/마을: 포항시 남구 동해면 흥환리/회장: 김영운(영일만검은돌장어영어조합법인)/행사일시: 7월26일(금)~7월28일(일)/장소: 포항시 남구 동해면 도구해수욕장/맛칼럼니스트 황광해

2019-07-10

개인숭배와 상징조작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사람들은 대다수가 특정 대상을 숭배하는 유전자를 가지고 있다. 종교적 신앙이나 절대군주를 신성시 하는 것에서부터 아이돌그룹이나 스포츠스타에 열광하는 것까지 숭배의 형태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심리적인 근원을 따지자면 원시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겠지만, ‘개인숭배’는 1877년 카를 마르크스에 의해 정치적 용어로 쓰였는데, 흐루쇼프가 스탈린을 격하할 때 차용한 때문에 널리 알려졌다.독재자를 우상화하고 떠받들어 모시는 개인숭배는 주로 일인독재 체제의 장기화에 따라 대중들을 선동하는 상징조작을 통해 이루어진다. 대중매체 등을 통한 광고나 선전 등으로 이상적이고 영웅적인 이미지를 만들거나 신성한 느낌까지 불어넣어 숭배의 대상이 되게 하는 것이다. 그런 정치적이나 종교적 목적 말고도 요즘에 와서는 연예인이나 운동선수를 내세워 상업적 수단으로 삼기도 한다. 연예인들이나 스포츠스타들의 숭배는 스트레스의 해소나 대리만족 등의 순기능이 있지만, 정치나 종교 지도자의 우상화하는 경우에 따라서 인류의 역사를 바꿀 만큼 엄청난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인류 역사의 거의 모든 군주들은 온갖 수단을 동원해 개인숭배를 위한 상징조작을 해왔다. 고대 이집트나 로마, 잉카, 아즈텍 같은 제국들의 유적을 보면 얼마나 엄청난 규모로 군주의 신격화가 이루어졌는지 짐작을 할 수 있다. 절대군주에 대한 개인숭배는 근세에 오면서 점차 약화되는 추세였으나 20세기에 와서는 독일의 히틀러나 이탈리아의 무솔리니, 소련의 스탈린과 같은 독재자들의 전체주의 권력을 정당화하는 역할을 했다. 전체주의 정권이 급진적인 사상에 따라 사회를 변혁하려고 할 때 만들어지는 숭배 현상은 혁명적인 변혁을 주도하는 지도자에 대한 상징조작을 통해 이루어진다. 일개 평민 출신이었던 히틀러가 선동전문가 괴벨스에 의해 위대한 지도자의 이미지로 변신하는 과정은 바로 상징조작의 위력을 잘 보여준다.개인숭배와 상징조작이라면 북한을 빼놓을 수 없다. 독재자의 상징조작과 민중의 우민화가 어디까지 가능한지를 보여주는 예가 바로 북한의 경우다. 북한 체제의 원조인 김일성에 대한 상징조작은 해방 직후 소련의 로마넨코 사령관이 북한 지도자들에게 김일성을 가장 뛰어난 독립운동가로 소개하고 북한의 지도자로 내세우면서부터다. ‘조선로동당력사연구소’에서 발간된 ‘항일빨치산 참가자들의 회상기’에는 김일성이 축지법을 써서 하늘을 날고, 모래로 쌀을 만들며, 가랑잎을 타고 대하를 건너는 등 신출귀몰의 영웅으로 묘사되고 있다. 15년간 10만여 회 전투를 벌여 단 한 번도 패한 적이 없다는 황당하기 짝이 없는 얘기도 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예술에 걸쳐 김일성의 우상화를 빼고는 논의 자체가 있을 수 없는, 사회주의권의 대표적인 독재자인 스탈린이나 모택동과도 비교가 안 될 만큼 절대적인 개인숭배가 이루어졌다. 김일성의 우상화를 위한 구조물 또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북한 주요 도시에 세운 70여 개의 대형 김일성 동상을 비롯해 곳곳에 널려있는 흉상과 석고상을 합치면 3만5천 개가 넘는다고 한다. 김일성의 우상화는 혈통과 가족에 까지 확대되어 증조부 김응우는 셔먼호사건을 해결한 인물이고 아버지 김형직은 3·1운동을 이끈 사람이라고 역사의 날조도 서슴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게 조작된 절대권력은 결국 패망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역사가 증명하는 결말이 아닐까.정보를 실어 나르는 각종 매체가 날개를 단 디지털시대에는 상징조작이 훨씬 더 손쉬워졌다. 정치권에서는 당연히 그것을 최대한 이용하려 들기 마련이다. 어떻게 각종 매체를 장악하고 여론을 선도하느냐에 정치적 성패가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매한 군중들이 정보의 진위를 구별하지 못하고 불순한 상징조작에 부화뇌동하다보면 망국의 길로 갈 수 있다는 것도 역사가 주는 교훈이다.

2019-07-10

중국의 비상(飛翔)과 중국 유학생

김규종 경북대 교수·노문학2010년을 기점으로 세계경제의 위상에 변화가 표면화한다. 40년 가까이 부동(不動)의 2위를 고수했던 일본이 중국에 3위로 밀려난 것이다. 두 나라의 격차는 날이 갈수록 벌어져 작년의 경우 중국의 국내총생산은 13조 6천억 달러, 일본은 5조 달러 언저리다. 흥미로운 점은 3위 일본, 4위 도이칠란트, 5위 영국, 6위 프랑스의 국내총생산이 14조 5천억 달러로 2위 중국과 거의 맞먹는 규모라는 점이다.이런 추세 때문에 미국 제일주의를 주창한 트럼프가 중국을 강력하게 견제하기 시작한 것이다. ‘투키디데스의 함정’에 빠진 21세기 미국의 딜레마가 수치로 확인 가능한 시점에 우리는 살고 있다. 2010년 출간된 마틴 자크의 ‘중국이 세계를 지배하면’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유럽의 시대구분 방식인 기원전(BC)과 기원후(AD) 대신, 중국 이전(Before China)과 중국 이후(After China)로 경제사를 구분하는 학자들이 생겨났다는 지적은 통렬하다.습근평(習近平) 등장 이후 중국이 야심적으로 추진하는 일대일로(一帶一路) 정책은 세계인의 이목을 집중시키기에 부족함이 없다. 중국 최초의 통일왕조를 개창(開創)한 진시황과 비교되는 현대판 시황제 습근평의 자신 넘치는 프로젝트. 중국을 기점으로 하는 21세기 신실크로드를 육상과 해상의 두 가지 노선으로 육성하겠다는 원대한 기획. 한반도의 남단에 갇혀 70년 넘도록 살아온 우리로서는 경천동지(驚天動地)할 발상이다.그러나 교육현장에서 중국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바라보는 중국의 야망은 허망해 보인다. 지난 학기에 중국 유학생 5인을 포함한 다국적 학생들과 ‘영화로 보는 세상’ 수업을 진행했다. 마지막 수업에서 2002년 장예모가 연출한 영화 ‘영웅’을 다루었다. ‘영웅’은 사마천의 ‘사기열전’가운데 ‘자객열전’의 형가(荊軻)를 바탕으로 했음을 밝히고 물었다. 중국 학생들 가운데 ‘사기열전’을 읽은 학생들이 있는지?!형가와 ‘자객열전’은 고사하고 사마천이나 ‘사기’ 내지 ‘사기열전’에 대해서 그들은 들어본 적도, 읽은 적도 없었다. 돌이켜보니 당송 팔대가의 한 사람인 소동파의 ‘제서림벽 (題西林壁)’을 강의하다가 맞닥뜨린 떨떠름한 기억이 되살아났다. “가로로 보면 고개요, 돌려보면 봉우리라. 원근(遠近)과 고저(高低)에 따라 그 모양이 각기 다르구나. 여산(廬山)의 진면목(眞面目)을 알지 못함은 내가 산속에 있기 때문이리라.”장강 남쪽, 파양호 북쪽에 자리한 여산은 1996년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지질공원이자 문화유산이 넘쳐나는 곳이다. 도연명, 이백, 백거이, 왕안석, 소식, 곽말약에 이르는 1천500여 시인과 묵객이 아름다움을 예찬한 절승(絶勝)이기도 하다. 그런데 정작 거기서 나고 자란 중국 유학생은 그 내용을 온전히 기억하지 못하는 표정이 역력하다. 다른 학생들은 뭐, 그런 게 있기나 했나, 하는 생뚱맞은 얼굴이고.욱일승천(旭日昇天)하는 국가의 기세가 세계최강 미국을 위협할 지경에 이르고, 유라시아를 통관하는 육로와 해로를 개척하면서 세력을 확대해가는 중국. 전통적인 제국의 진면목을 21세기에 재연해보려는 야심만만한 포부로 가득한 중화세계. 하지만 중화의 청춘은 지나온 그들의 역사와 문화와 예술을 알지 못하고, 지금과 여기에 탐닉하면서 비상하는 조국의 힘을 막연히 향수(享受)하고 있을 뿐이라는 감상이다.20세기 초두(初頭)에 노신은 ‘아큐정전’에서 어리석은 중국인의 ‘정신승리법’을 통렬하게 풍자함으로써 무엇을 할 것인지를 제시했다. 덩치만 크고 내면은 텅 비어있는 지금과 여기의 중국인에게 무엇이 절실한지 갈파한 노신. 그의 가르침이 21세기 신흥강국 중국의 젊은이들에게 어떻게 수용되고 있는지, 생각한다.

2019-07-10

내게 스며드는 것

1940년대 대한민국. 아버지 사업이 쫄딱 망하는 바람에 초등학교를 중도에 포기한 소년이 있습니다. 초등학교도 학비를 걷을 때였지요. 소년은 신문팔이, 아이스케키, 메밀묵 장수, 구두닦이, 숯배달 등 온갖 밑바닥 일을 두루 거칩니다. 공부가 너무 하고 싶어 중학교 졸업장이 필요없는 야간 고등학교에 들어갑니다. 낮에는 걸레와 빗자루를 만드는 공장에서 일하고 밤에 공부합니다.공장 주임이 집요하게 괴롭힙니다. 시도 때도 없이 뺨을 때립니다. “없는 놈이 건방지게 공부라니!” 소년은 수업을 마치면 밤늦게 동대문에 있는 학교에서 미아리의 판잣집까지 1시간을 걸어서 하교합니다. 한 달 버스비를 아끼면 500원을 모을 수 있습니다. 책 한 권을 살 수 있는 돈입니다. 소년은 한 권, 한 권 책을 사 모으기 시작합니다. 셰익스피어. 단테. 도스토예프스키. 괴테. 명심보감. 논어. 맹자.늦은 밤 바람이 숭숭 들어오는 판잣집에 누워 책을 보는 시간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시간입니다. 낮에는 공장에서 일하고 밤에는 졸린 눈 비비며 공부하고, 다시 판잣집에 돌아와 책 읽는 고단한 시간이 흐릅니다.소년은 청년이 되어 야심을 갖습니다. 어깨 너머로 배운 지식으로 빗자루, 걸레, 솔을 만들어 파는 회사를 차립니다. 맨 주먹으로 시작한 사업이 잘 될리가 없습니다. 폭삭 망합니다. 100만원을 빌리면 매일 2만원을 이자로 내는 달러 빚더미에 올라섭니다. 당시 50만원이면 35평짜리 집 한 채를 살 수 있는 돈이었습니다. 빈털터리로 재기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 청소였습니다. 양동이 하나, 염산, 세제 한 봉지 들고 거리로 나서지요.군대를 다녀온 청년 구씨. 1968년에 아줌마 두 명과 함께 청소 회사를 세웁니다. 매일 밤을 새워 새벽까지 건물을 닦고 또 닦습니다. 60년대 경제 개발이 가속화되면서 서울에 빌딩들이 하나 둘 생길 때입니다. 일 잘한다는 소문이 나기 시작하지요. 8년 후 법인을 설립할 정도로 자리를 잡습니다.승승장구하던 회사는 삼구라는 이름을 얻은 지 6년 만에 폭삭 망합니다. 청소용 왁스를 직접 만들다 화재가 난 겁니다. 그는 몸에 전신 3도 화상을 입습니다. 공장도 불타 사라지고 빚더미에 다시 올라 앉습니다. 술을 잔뜩 마신 채 자동차를 몰고 잠수교 아래로 돌진합니다. 한강에 뛰어들 생각이었죠. 운명은 얄궂습니다. 운전 미숙으로 잠수교 돌출 기둥을 들이 받는 것으로 자살 시도는 실패합니다. (내일 편지에 계속)/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 대표

2019-07-10

스마트톨링

스마트톨링은 정차 없이 고속도로 주행 중 통행료가 자동으로 부과되는 시스템으로, 단말기가 장착돼 있지 않아도 요금소의 무인카메라가 차량번호를 인식한 후 이동거리를 계산해 운전자에게 요금을 통보하는 방식이다. 이 방식은 적외선과 주파수를 이용한 근거리전용무선통신(DSRC)을 이용해 고속도로를 주행하는 차량에 대해 통행료를 부과한다. 자동차의 번호를 인식해 개별적으로 요금을 부과하는 방식으로 이뤄지는데, 레이저 감지기로 차량의 진입을 감지한 후 위반 차량 촬영 장치 및 영상 인식 장치로 차량 번호를 인식하고, 차종 분류 장치로 차종을 구분하는 과정을 거친다.국내에서는 2015년부터 요금소를 통과하는 모든 차량을 대상으로 스마트톨링 사업이 추진돼 왔는데, 현행 유료도로법상 요금 미납 차량에 대해서만 고속도로 이용 기록을 열람할 수 있게 돼 있고, 수납 업무 일자리 감소 우려가 커지면서 스마트톨링에 가입한 차량으로 대상을 축소했다. 이에 따라 사전에 고속도로 영업소나 도로공사 홈페이지 등에서 가입한 차량은 2020년부터 스마트톨링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스마트톨링이 도입되면 통행료를 납부하기 위해 서행이나 정차를 하지 않아도 돼 교통 정체를 해소할 수 있어 온실가스 및 대기오염 물질 배출도 줄일 수 있다. 반면 기존 하이패스 통로를 스마트톨링 겸용 통로로 개량하는 데 비용이 들고, 차적 조회나 고지서 발송 등에도 비용이 발생한다. 국토교통부는 2017∼2019년 스마트톨링 시스템을 구축하고 시범 사업을 진행하며, 2020년 6월 전국시행을 목표로 하고 있다.그러나 최근 고속도로 톨게이트 수납원들의 반발 및 농성으로 스마트톨링의 시행이 2022년으로 연기됐다. 한국도로공사 이강래 사장은 지난 9일 정부세종청사에서 국토부 기자단과 가진 좌담회에서 “국토부와 국무총리실과 협의를 해 국정과제(스마트톨링 도입)를 연기하기로 합의한 상황”이라며 스마트톨링 연기를 결정한 배경으로 일자리에 미칠 충격을 꼽았다. 스마트톨링 연기 배경이 톨게이트 수납원 일자리를 걱정한 것이라면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19-07-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