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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봉준호 감독과 한국 정치

문화는 워낙 광범위한 의미를 가지고 있어 콕 찍어 “이것이다”고 설명하기가 쉽지 않다. 영어의 culture는 원래 경작이나 재배의 뜻을 가졌으나 이후 교양, 예술 등의 뜻으로 바뀌었다고 한다.막연히 문화라고 하면 추상적으로 높은 교양이나 깊은 지식, 세련된 생활 등을 떠올리지만 그것으로 모든 것이 설명될 수 없다.영국의 인류학자 타일러는 “인간이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획득한 능력 또는 습관의 총체”를 문화라 설명했다.그러나 이것 역시 포괄적 의미로만 이해할 수 있다. 다만 문화는 집단이나 구성원에 따라 성격의 차이가 있음을 우리는 인식한다. 동양과 서양은 물론이거니와 지역에 따라서, 좁게는 가문에 따라서도 다름이 여실히 나타난다.문화에 대한 중요성이 높아지면서 현대인들도 수준 있는 문화생활을 매우 중시 여기는 성향이 늘었다. 음악과 예술을 즐기고 품격 있는 라이프 스타일로 마음의 여유와 양식을 풍요롭게 하고자 노력한다.때마침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프랑스 칸영화제 최고상을 수상하면서 한국의 문화가 세계 최고 수준급으로 인정받는 쾌거를 올렸다. 이번 봉 감독의 황금종려상 수상은 한류로 높아진 한국의 문화적 위상을 더 올리는 계기가 됐다는 점에서 의미도 크다. 특히 한국 영화를 사랑해 온 많은 국민에게 이보다 자랑스런 경사는 없을 것 같다.그러면 문화의 카테고리 안에서 바라본 우리의 정치문화는 과연 어느 수준에 있을까 궁금하다. 정치 혐오현상이라는 결코 바람직스럽지 못한 문화가 우리 주변에는 여전히 깊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정치인 스스로가 만들어 낸 나쁜 정치행위에 대한 산물이다. 문화가 품격을 향상시키고 지적인 활동 영역을 확대해가는 과정이라면 우리의 정치는 아직 한참 먼 거리에 있다.5월 임시국회가 무산된 가운데 6월 국회도 개점휴업일 거라는 우려가 나온다. 평행선을 달리는 여야는 자신들의 주장만 고집하고 있다. 타협과 포용, 협치의 문화는 찾아 볼 수가 없다. 한국 영화 100년에서 일궈낸 봉 감독의 쾌거를 계기로 한국의 정치문화도 좀 바뀌어져야 할 것 아닌가 싶다./우정구(논설위원)

2019-05-28

누가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있는가?

박준섭 변호사자유한국당 지도부가 몇 주간 장외투쟁을 하였다. 연동형비례대표제에 관한 선거법개정 등 패스트 트랙으로 상정한 법률 때문이다.이를 두고 여야4당은 이제 장외투쟁은 과거의 투쟁방식이고 반민주적이라며 비판하고 있다. 그러나 사태의 본질은 그것이 아니다.여야 4당의 의원수가 의회의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의회로 들어가서 논의를 진행해 봐야 선거법개정안이 통과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이런 상황에서 여야 4당이 형식적인 다수결에 참여하지 않는다고 자유한국당을 비민주적인 행태라고 압박하는 것은 잘못된 프레임에 가둬 놓은 채 악의적인 비방을 하는 것에 가깝다. 오히려 현대 민주주의의 의미를 생각해보면 여야4당이 생각하는 민주주의가 더 문제 일수 있다.그것은 현대의 민주주의는 다수의 절대주의가 아니기 때문이다. 단순히 형식적 다수가 결정하는 것이 민주주의가 아니라 자유, 평등, 정의와 같은 실질적인 가치가 실현되어야 한다.민주주의의 본질은 정치적 의사형성의 개방적 과정에 있다.다수는 절대적 최종적 진리임을 주장할 수 없고 언제든지 바뀔 수 있는 ‘순간의 우위’에 불과 하다.이는 다수이기만 하면 어떤 내용이라도 상관없다는 상대적 민주주의를 취했던 독일의 바이마르 공화국이 전체주의 나찌에게 권력을 넘겨주었던 역사로부터 우리는 뼈저리게 배웠고 현대는 그런 민주주의를 민주주의라고 생각하지 않는다.이번 연동형 비례대표제 선거법개정은 소수당의 의원수가 느는 문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필연적으로 대통령제 권력구조의 변동을 초래할 수밖에 없다. 소수의석을 가진 다수당이 난립하게 됨으로써 우리 헌법상의 의원내각제 요소가 부각될 것이다.의원내각제 요소가 부각되면 현실적으로 대통령제가 아니라 이원집정부제로 운영해야 할 수도 있다. 현행헌법의 해석상으로 이것이 가능하기는 하겠지만, 국민들이 과연 원하고 있는가. 국민들에게 선거법개정이 이런 권력구조변동을 초래한다는 것을 제대로 알리기는 하였는가.지금의 여야4당이 확보한 “순간의 우위”인 다수만으로는 지속적으로 헌법상의 국가권력구조에 영향을 미칠 선거법개정을 하기에는 실질적인 관점에서 보면 민주적 정당성이 미약하다.거부권 정치가 여전한 현실에서 연정과 협치를 할 준비도 하지 않은 채, 그리고 1년도 채 남지 않은 다음 총선을 앞두고 개정이후의 사항들이 구체적으로 합의도 되지 않은 채, 불확실한 미래에 대해 준비도 부족한 상황에서 국회의석의 1/3이 넘는 제1야당이 반대하는 선거법개정을 다수의석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밀어붙이는 것은 자유, 평등, 정의를 지향하는 현대의 민주주의이념에 반한다.스티븐 레비츠키, 대니얼 지블랫은 그들의 저서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에서 우리에게 민주주의에 대한 중요한 통찰을 제공해 준다.그들은 모든 성공적인 민주주의는 ‘비공식적인, 보이지 않는 규범’에 의존한다고 하면서, 비록 이러한 규범은 헌법이나 법률에 명시적으로 규정되어 있지 않지만 시민사회에서 널리 존중 받는다고 한다.그들은 영국왕이 총리를 임명할 권한을 갖지만 스스로 임명하지 않고 하원의 다수당의 대표에게 총리를 맡겨온 것과, 미국이 헌법에 명문의 규정이 없을 때에도 두 번의 임기만 허용하였던 임기제한규범도 예로 든다.우리나라는 민주화 이후에 수 십년간 선거법이 일방적으로 강행처리 된 적이 없었다.문재인 대통령도 야당시절에 ‘선거법은 경기의 규칙이다. 지금까지 일방의 밀어붙이기나 직권상정으로 의결된 전례가 단 한 차례도 없다’고 하였다. 이것은 선거법 개정은 합의에 의해 처리해야 한다는 ‘보이지 않는 규범’이 과거부터 존재해 왔다는 의미이다.이제 여야4당은 자유한국당을 시대착오적인 반민주세력이라고 몰아붙일 것이 아니라 자신들 스스로가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잘 성찰해 보아야 할 것이다.

2019-05-28

영원한 방랑자의 음악-슈베르트

청춘을 지나온 사람이라면 누구나 젊은 시절을 그리워한다.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말이 있듯이 돌이켜 보면 젊은 시절은 누군가를 그리워하고 소설이나 영화의 주인공을 동일시하며 밤 세워 이유 모를 아픔으로 밤을 세는 그런 시절이다. 하지만 클래식 음악으로 청소년들이 ‘속앓이’를 하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이다. 하지만 필자는 젊은 시절, 음악으로 인해 아픔으로 밤을 보낸 경험이 있다. 바로 슈베르트(Franz Peter Schubert·1797-1828)의 음악 때문이었다. 특히 가곡집 ‘겨울 나그네(Winterreise) D.911’의 24곡으로 구성된 곡들마다 실연으로 인해 방황을 선택한 고뇌하는 영혼의 아픈 모습이 녹아 있으며 그 속에서 구원을 찾고자 하는 희망의 메시지가 보인다. 이 곡은 어떤 이유인지 알 수 없지만 제목이 잘 못 번역되었다. ‘겨울여행’으로 해석되어야 정확하지만, 곡을 감상해 보면 오역된 제목이 오히려 더 잘 어울린다.이 곡의 가사는 슈베르트의 친구였던 시인 ‘빌헬름 뮐러(Wilhelm Muller,1794-1827)’가 당시에 겪었던 실연의 아픔을 시로 표현한 것을 슈베르트가 책상 위의 원고를 발견하고 연가곡이란 모노드라마로 완성한 것이다. 슈베르트의 가곡은 성악만 노래하지 않는다. 피아노는 반주의 위치를 넘어서 때로는 손을 잡고, 때로는 경쟁하며 극적인 드라마를 표현하는데 24개의 곡 모두가 아름답고 뛰어나다. 특히 1곡인 ‘잘자요(Gute Nacht)’ 와 5곡인 ‘보리수(Der Lindenbaum)’ 11곡인 ‘봄의 꿈(Fruhlingstraum)’ 은 사랑을 아름답게 노래하며 13곡 ‘우편마차(Die Post)’ 18곡 ‘폭풍우의 아침(Der Sturmische Morgen)’은 슬픔 속에서도 영혼의 구원을 갈구하는 희망이 엿보이는 곡이다. 전곡을 감상할 시간이 부족하다면 앞 서 소개한 다섯 곡은 꼭 들어보길 권한다.그의 대표적인 작품이 ‘미완성 교향곡’인 것처럼 그의 인생도 다른 사람의 절반도 채 되지 않는 ‘31년’의 짧은 삶이었다. 다른 작곡가에게도 미완성으로 끝난 작품이 많지만 ‘미완성(Unfinished)’이란 제목으로 그의 교향곡이 사랑받는 이유가, 그의 인생 또한 이 교향곡의 제목과 매우 닮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의 인생에는 빛과 어둠의 양면성이 있었다. 어두운 면은 바로 가난과 열등감이었다. 그는 콤플렉스가 많았다고 한다. 키가 매우 작았으며 시커먼 피부에 외모가 너무나 볼 품 없었다. 그리고 가난하여 평생의 대부분 자신의 피아노를 가져보지 못했다. 1823년 그의 자작 연주회가 성공을 거두어, 적지 않은 돈을 벌어 그토톡 원하던 자신의 피아노를 장만하였으나 그 해 11월 세상을 떠나 그는 일생동안 자신의 피아노를 8개월밖에는 가지지 못했다. 그래서 그의 작품에는 기타로 작곡된 작품들이 매우 많으며 실제로 가곡 작품들 중 기타 반주가 피아노보다 더 잘 어울리는 곡들이 매우 많다.그리고 그의 인생에서 밝은 면은 바로 친구들이었다. 알고지내는(?) 친구들이 아니라 슈베르트의 재능을 사랑하고 미래를 걱정해주는 진정한 친구들이었다. 그의 친구들은 당시 빈의 예술문화계를 이끌어 가던 다양한 장르의 전문가들이었으며 슈베르트의 작품을 이해하고 사랑하였으며 작곡가로서의 슈베르트를 세상이 알아주길 바라는 높은 예술적 소양을 가진 친구들이었다. 당시 출판업이 활발하여 높은 인세 수입을 올리는 작곡가들도 있었으나 슈베르트는 경제적인 수완이 거의 없었다. 이에 친구들은 밤마다 슈슈베르트의 초상.베르트의 사적인 음악회를 열어주기로 계획한다. ‘슈베르티아데(Schubertiade)’즉 ‘슈베르트의 밤’이라고 부르며 일주일에 두어번씩 사교적인 연주회를 열어 어쩌면 발표되지 못하고 사라질 뻔한 많은 작품들이 이 연주회를 통해 발표되었으며, 이 밤의 음악회는 슈베르트에게 삶의 큰 삶의 활력이 되어 다음 작품을 구상할 수 있는 구체적인 이유를 주었다. 슈베르트의 친구들 중 ‘프란츠 폰 쇼버’는 경제적인 도움을 주었을 뿐만 아니라 독일 문학에 정통하여 모임에서 독일 문학을 소개하기도 하였다. 그 덕분에 슈베르트는 새로운 시를 접해 끊임없는 영감을 가질 수 있는 기회를 가졌으며 당대의 유명 성악가 ‘요한 미하엘 포글’은 슈베르트 보다 24살이나 많았지만 슈베르트의 신작들을 모임에서 꾸준히 연주하여 슈베르트와 작품에 대한 의견을 나누었다. 슈베르티아데의 모임에 화가들도 참석하여 당시의 그림들이 제법 많이 남았 있는데 그 그림에서 피아노를 치는 사람은 슈베르트이며, 노래 부르는 사람은 포글이다.슈베르트는 감성과 떠오르는 찰나의 영감으로 곡을 만드는 작곡가였다. 그의 작품에는 베토벤의 작품처럼 환희에 찬 승리나 기승전결의 서사적인 구조가 중요하지 않다. 주로 순간적인 악상으로 작곡하였으며 곡을 쓰는 시간이 따로 존재하지 않았다. 악상이 떠오를 때면 친구와 식사 중 메뉴판에도 음표를 그렸으며 잠을 자던 중 악상이 떠올라 밤새 작곡한 일도 많았다.계획적으로 곡을 쓰지 않았으며, 새로운 곡이 떠오르면 바로 착수하였기에 곡을 쓰다 다음으로 미루는 경우가 많았으며 건망증이 매우 심해 자신이 쓰던 곡을 잊어버린 경우도 많아 미완성 교향곡 이외에도 완성되지 못한 작품이 많이 남아있다.이와 같이 규칙적인 생활이 되지 않았으므로 그가 가졌던 유일한 직업이던 초등학교 교사를 계속할 수가 없었다. 초등학교 교사를 그만 둔 후 가난한 생활은 더욱 심해졌으며, 그가 사랑한 유일한 연인이었던 ‘테레제 그루프’와도 그녀 아버지의 격렬한 반대로 헤어지게 되었다. 이 후 슈베르트에게는 ‘음악과 친구’ 두 가지만 남게 되었다.슈베르트는 베토벤과 거의 동시대를 살았다. 그가 그토록 존경하던 베토벤이 사망한 후 일 년 후에 그도 세상을 떠났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슈베르트의 음악을 베토벤보다 훨씬 이후의 작곡가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베토벤의 음악과는 성격이 많이 다르다는 것인데 그것을 슈베르트 음악의 ‘여성성’과 ‘감수성’이라고 말하고 싶다. 당시의 음악에서 베토벤은 대형으로 기획되어 제작된 블록버스트 음악이었다면 슈베르트의 음악은 드라마가 잘 만들어진 독립영화였다.슈베르트가 살던 시대는 정치적으로 안정된 시대가 아니었다. 나폴레옹 전쟁이 끝난 후 총리 메테르니히(Klemens F. von Metternich·1773-1859)체제에 의해 정치적 자유에 대한 열망이 억압되고 언론의 자유가 통제되던 독재의 시기였다. 나폴레옹 전쟁 사후 처리가 논의되던 빈 회의가 열렸던 1815년부터 이 후 약 30년간의 시기를 ‘비더마이어(Biedermeier)의 시대’ 즉 자유와 해방 같은 표현은 금지되고 평범한 소시민적 삶을 추구하는 시대라고 얘기하는데 베토벤이 교향곡 9번 4악장에서 쉴러의 시를 ‘자유의 송가(An die Freiheit)’로 연주하지 못하고 ‘환희의 송가(An die Freude)’로 제목을 바꿔 발표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 시기의 작곡가들은 예술의 주제를 외적인 사회현상에서 찾기 보다는 주관적인 작곡가의 내면의 감정에서 찾았다. 즉 안락하고 안정적인 시민 문화를 찾던 시기였다. 그래서 당시 가장 활기를 띤 장르가 소규모의 음악인 실내악과 예술 가곡이었다.요한 미하엘 포글의 초상.슈베르트는 베토벤을 닮고 싶어했다. 그는 시에 음악을 붙이는 예술가곡을 무려 650여곡이나 작곡하였지만 베토벤과 견줄 만큼 많은 기악곡들도 남겼다. 하지만 감상해보면 베토벤의 음악과는 분명히 구분된다. 슈베르트의 실내악곡은 악기로 연주되는 가곡이라고 보면 된다. 악기의 표현과 효과에 집중하기 보다는 악기특유의 음색으로 무엇인가를 노래하려고 했다. 필자가 가장 즐겨듣는 슈베르트의 가곡은 ‘그대는 나의 안식(Du bist die rhu D.776)’이다. 이 노래를 들을 때면 누군가에 기대어 지친 영혼을 쉰다는 느낌을 받는 편안한 곡이다. 슈베르트의 기악곡에서도 이러한 느낌을 받는다. ‘피아노 트리오 D.929 2악장 Andante con moto’,‘아르페지오네 소나타 D.821’과 같은 실내 기악곡을 감상해 보면 악기로 연주되기 위해 작곡되었지만 듣는 사람의 마음에 따라 가사가 들리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너무나 아름답고 호소력이 강한 곡이다.슈베르트의 음악은 위로받기에 좋은 음악이다. 그의 음악에는 열광보다는 감동이, 장엄함보다는 부드러움이 있다. 그는 친구들을 좋아했고 친구들과 함께했던 순간만큼은 외로움을 잊을 수 있었다. 그리고 자신의 음악을 이해하는 이들이었기에 음악을 같이 할 수 있어 더욱 행복했을 것이다. “벗이 애꾸눈이라면 나는 벗을 옆얼굴로 바라볼 것이다”, “진정한 친구를 만든다는 것을 행복이다. 그리고 아내를 진정한 친구로 만든다는 것은 더욱 큰 행복이다” 이 말은 친구를 좋아했던 슈베르트가 남긴 말이며, 그가 어떤 사랑을 하고 싶어했는지도 잘 녹아 있는 말이다. /문양일 포항예술고 음악교사

2019-05-27

일체유심조를 잊었는가

강희룡 서예가지난 석가탄신일에 제일 야당 대표인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는 경북 영천 은해사에서 열린 봉축 법요식에 참석했다. 이 자리에서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황 대표가 합장 등 불교의식을 따르지 않은 것에 대해 언론을 비롯한 정치권에 비판이 쏟아졌다. 조계종 종교평화위원회는 22일 보도자료를 내고 황 대표에게 매우 유감스럽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또한 대한불교 조계종 측으로부터 ‘내 신앙이 우선이면 공당 대표 내려놓고 자연인으로 돌아가라’는 항의까지 받았다 한다. 처음 있는 이런 논란에 과연 정치인의 종교관은 어떠해야 바람직한가라는 의문이 든다. 지금까지 보아왔던 기독교인 정치인들은 표를 의식해서인지 대선 후보로 나선 어떤 장로 정치인의 아내는 심지어 그들의 종교를 떠나 불자들의 마음을 달래기 위해 법명을 받는 경우까지도 있었다. 이렇듯 기독교인 정치인들은 대부분 사찰을 방문해 떠밀리듯 알아서 합장을 했고, 이것을 언론에서는 ‘포용적 불심달래기’로 포장해왔다.정치와 종교는 엄연히 다른 개념을 가지고 다른 영역을 주관하기 때문에 결코 가까워서는 안 된다. 하지만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정치와 종교의 관계는 동전의 앞뒤와 같다. 정치의 입장에서는 종교를 이용함으로써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를 공고화하고 정치적 헤게모니를 유지할 수 있으며, 종교의 입장에서는 정치를 이용함으로써 다른 경쟁자(종교)에 대한 배타적 우위를 유지할 수 있다. 삼국시대부터 고려시대의 호국불교, 중국의 위진남북조 시대의 도교와 불교의 관계가 그 대표적인 사례라 하겠다.불교적 세시명절인 석탄일은 연등과 욕불행사가 가장 큰 2대행사로 꼽힌다. 연등은 진흙 속에서 피어난 깨끗한 연꽃이라는 불교적 의미가 강조된 것이고, 욕불이란 부처가 태어나자 구룡(九龍)이 와서 목욕시켰다는 설에 따라 탄생불(誕生佛)을 욕불기(浴佛器) 안에 모셔놓고 신도들이 돌아가면서 바가지로 물을 끼얹어 목욕시키는 의례를 말한다. 즉 민중의 지혜를 밝힌다는 상징적 의미의 의례들이다. 여기에 합장이란 불교뿐만 아니라 옛날부터 인도에서 행해지는 예법으로 힌디어로 ‘그대에게 보내는 경례’라는 뜻으로 서로 합장을 하는 것은 인도에서의 일상적인 인사법이다. 불교에서도 이 예법은 인사법이었으며 불타와 보살에 대한 예배의 방법이다. 이 의례는 자신의 마음이 불타와 보살에 전념하고 있음을 나타내려는 것이다.불교의례는 그에 따른 공덕을 쌓음으로써 원망(願望)을 처리하려는 신앙행위라 할 수 있다. 문제는 이러한 의식행사에 참여하는 출가 수행자나 신도들의 믿음에 대한 진정성이 어느 정도냐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 불교종단에서 불거지는 사찰 주지를 포함 조계종 유명 간부 스님들의 술 담배와 함께 밤새 벌인 억대 도박판, 무소유와 청빈을 부르짖으며 주지선거에서의 금품살포 등 지난해 세수 87세인 설조 스님이 조계사 옆 우정공원에서 40일 넘게 단식을 했다. 이유는 조계종단의 불행한 사태의 원인은 비(非) 비구(比丘)들의 종권장악이며, 정식으로 비구계를 받지 않은 승려가 80년대 이후 행정을 장악하고, 군화가 사찰을 짓밟고, 노름꾼의 수괴가 수많은 불자들의 존경을 받는 스님을 종단 밖으로 내몰고, 악행의 유례가 없는 자가 종단의 행정대표가 되어도 거침이 없다라는 것이다. 실제로 숨겨둔 아내와 자녀, 재산 은닉, 학력 위조 등 조계종 총무원장인 설정 스님의 3대 의혹도 드러났다. 이러한 상황에서 초파일에 합장 등 불교의식을 따르지 않았다고 기독교인인 황 대표의 태도에 비판을 해서는 안 될 것이다. 표면적인 허례허식보다 내면의 진정하고 경건한 마음의 봉축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형식에 의미를 두고 얽매어 남을 평하기보다 진정한 것은 보이지 않는 마음이다. 천길 물속은 알아도 한길 마음속을 모른다는 속담이 있듯이 화엄경의 중심사상이며 고승 원효와 관련된 ‘모든 것은 오로지 마음이 지어내는 것이다’라는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를 잊었는가.

2019-05-27

조슈아 벨의 쓸쓸한 연주

2007년 1월 12일 워싱턴 DC 랑팡 지하철 역. 한 남자가 야구 모자를 눌러쓴 채 구석에 자리를 잡습니다. 거리의 악사이지요. 아름다운 선율이 흐릅니다. 바흐의 샤콘느. 아무도 귀 기울이는 사람은 없습니다. 3분이 지나자 한 중년 남자가 몇 초 정도 걸음을 늦추는 것이 첫 반응이었습니다. 4분이 흐른 뒤 한 여성이 총총 걸음으로 다가와 1달러 지폐를 넣고 개찰구 안으로 사라집니다.거리의 악사는 이후로 45분 동안 바흐의 작품 6곡을 내리 연주합니다. 그동안 지나간 사람은 모두 1천97명. 그 중에서 단 7명만이 걸음을 멈추고 잠시 그의 음악에 귀를 기울입니다. 돈을 기부한 사람은 총 27명. 32달러 17센트가 모였습니다. 연주를 마치고 떠날 때 아무도 박수치지 않았으며 누구도 그를 주목하지 않았지요.거리의 악사 연주회는 ‘워싱턴 포스트’가 진행한 실험이었습니다. 곳곳에 카메라를 설치하고 기획자는 연주회를 관찰합니다. 연주자는 거장 바이올리니스트 조슈아 벨이었지요. 전설의 악기 스트라디바리로 연주했습니다. 조슈아 벨은 불과 이틀 전 보스톤에서 동일한 레파토리로 독주회를 가진 적이 있습니다. 바흐의 샤콘느와 대표 곡들이었지요. 이날 연주회의 평균 입장료는 100달러가 넘었고 보스톤 심포니 오케스트라 홀은 전석 매진이었습니다.실험을 기획할 때 진 바인가르테는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었습니다. ‘조슈아 벨이 공연을 하면 아마도 지하철 여기 아수라장이 되어 지하철 역 자체가 마비될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기자는 말합니다. “행인들의 발걸음은 무관심과 타성, 복잡한 현대 사회에 맞추어 추는 어두컴컴한 죽음의 무도처럼 보였습니다. 그 장소에 진실로 존재한 것은 조슈아 벨 한 사람뿐이었어요. 유령은 행인들입니다.”멈추어 설 때 비로소 들리고 보일 수 있는데, 멈추지를 못합니다. 가만히 멈추고 서서 귀를 기울이고 세심하게 관찰하는 여유를 우리가 만들 수 있다면 일상에서 위대함을 발견하는 일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닐지 모릅니다.클래식북스 서가에는 최고의 지성들이 평생을 통해 쏟아낸 보물들, 고전으로 가득합니다만 아쉽게도 조슈아 벨 연주처럼 이 보물에 관심을 갖는 이는 흔치 않습니다. 2만원짜리 고전 한 권을 내 삶으로 녹여 20억원, 200억원의 가치를 만드는 투자. 이것이야 말로 세상에서 가장 흥미롭고 가슴 뛰는 일 아닐까요? 극심한 변화의 시대를 대비하는 지혜입니다. /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 대표

2019-05-27

인터넷 전문은행 시대

인터넷 전문은행은 모든 금융서비스를 온라인 상에서 제공하는 은행이다.오프라인 지점을 토대로 하고 있는 기존 은행과 달리 인터넷 은행은 물리적 공간이 존재하지 않는다.1990년대 IT 발전과 함께 인터넷 이용률이 증가하고, 음반·영화 등 전 산업에 걸쳐 온라인 채널 혁신이 일어나면서, 은행 산업에서도 인터넷을 주 영업채널로 활용하는 인터넷 전문 은행이 등장했다. 세계 최초의 인터넷 전문은행은 ‘SFNB(Security First Network Bank)’로, 1995년 10월 미국에서 설립된 이후 유럽·일본 등 전세계로 확산됐다. 2000년 말까지 미국에서만 40개 이상의 인터넷 전문은행이 설립됐다. 2014년 9월 말 총자산 기준으로 미국 50대 은행에 6개 인터넷 전문은행이 순위에 올랐으며, 일본의 SBI(Sumishin Net Bank)는 일본 인터넷 전문은행 최초로 예금규모 3조 엔을 달성하며 일본 은행 전체 37위(105개 지역은행 기준)를 기록하는 등 위상이 증대됐다.국내에서는 2008년 인터넷전문은행을 도입하려는 시도가 있었지만 금융실명제법 및 자금 확보 문제, 은산분리 규제 등에 의해 무산됐다.특히 산업자본(비금융주력자)의 은행 지분 소유 한도를 4%로 제한하는 은산분리 규정은 인터넷전문은행 설립에 걸림돌로 작용했다.2014년 금융위원회는 30대 그룹과 상호출자제한 대상 그룹에 인터넷전문은행 설립을 제한하고, 나머지 기업에 참여 기회를 줘 인터넷전문은행 설립을 허가했다.즉, 삼성, 현대자동차, LG, SK 등 30대 그룹 계열 제조사, 금융회사는 설립이 제한되며, 네이버, 다음카카오 등의 기업은 인터넷은행을 설립할 수 있게 됐다.이에 따라 2017년 4월 국내 첫 인터넷전문은행인 케이뱅크가, 7월에는 카카오뱅크가 영업을 시작했다. 금융위원회는 최근 제3인터넷전문은행 설립인가 신청을 키움뱅크와 토스뱅크 컨소시엄으로부터 받았으나 두 곳 모두 심사에서 탈락했다.그러나 IT와 금융시장 환경의 급변은 인터넷전문은행의 전성시대를 예고하고 있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19-05-27

교수의 품격, 딸깍발이 선비정신

변창구 대구가톨릭대 명예교수·국제정치학최고의 지식인집단이라고 하는 교수사회가 하루가 다르게 무너져 내리고 있다. 지식을 팔아서 권력을 사려는 ‘정치교수(polifessor)’들의 문제는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며, 연구비 수주에 혈안이 된 교수들은 ‘비즈니스맨(businessman)’을 뺨치는 영업활동을 하고 다니면서도 부끄러움을 모른다. 약자의 입장에 있는 제자들에게 치졸한 갑질을 자행하는가 하면, 잊힐 만하면 또다시 성희롱과 성폭력이 불거지고 있다. 연구비를 해외 부실학회 출장비로 남용했으면서도 무엇이 잘못이냐고 되레 항의하는 교수들도 있고, 심지어 연구력도 없는 미성년 자녀를 대학입학에 유리하도록 공동연구자로 넣는 부정행위도 서슴지 않는다.이처럼 대학교수들의 문제가 날로 심각해지자 교육부는 다음 달부터 3개월 간 전국 15개 대학에서 특별감사를 실시하기로 하였고, 교육부 홈페이지에는 ‘갑질 신고센터’를 개설했다.또한 대학원생들은 자구적 차원에서 교수들의 갑질을 근절하기 위하여 ‘대학원생 119’를 출범시켰다. 더욱이 우리나라 최고의 명문대학이라는 서울대 학생들은 며칠 전 스승의 날을 맞아 ‘반복되는 교수 갑질과 성폭력사건으로 학생인권이 사라져 버렸다’고 하면서 ‘진짜 교육은 죽었다’고 ‘교육영결식’을 열었다. 스승의 날에 버젓이 살아 있는 교수들을 향해 ‘스승은 죽었다’고 울고 있는 제자들과 마주해야 하는 교수들의 마음은 참담하다. 여러 대학에서 적지 않은 교수들이 교육부의 특별감사를 받거나 제자들로부터 버림을 받고 있는 이 빗나간 교수사회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물론 이러한 문제들은 일부 교수들에 국한된다고 치부할 수도 있지만, 결코 가볍게 넘길 수 없는 지식인사회의 일탈(逸脫)이다. 지식인을 대표하는 교수사회가 부도덕하고 돈과 권력에 유착되어 심각하게 병들어가고 있는 작금의 상황은 절대로 과소평가할 수 없다. 당위적 가치를 추구하는 교육자이자 연구자로서 명예를 먹고 살아가야 할 교수가 아무런 양심의 가책도 없이 돈과 권력을 쫓아다닌다면 결국 자신은 물론이고 국가적 불행을 초래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국어학자 고(故) 이희승 교수는 그의 작품 ‘딸깍발이’에서 “청렴개결(淸廉介潔)을 생명으로 삼는 선비가 재물을 알아서는 안 된다. …현대인은 전체를 위해서 약은 것이 아니라 자기중심, 자기본위로만 약다”고 하면서 청빈(淸貧)한 남산골샌님(별명 딸깍발이)의 ‘의기(義氣)와 강직(强直)’을 배워야 한다고 역설했다. 지식인으로서 사회공동체의 정의 구현에 앞장서야 할 교수들에게 ‘딸깍발이 선비정신’이 중요하다는 사실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어떤 사람은 교수도 생활인이기 때문에 돈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현재와 같은 대학의 위기상황에서 치열한 생존경쟁을 벌이고 있는 교수들에게 ‘딸깍발이 선비정신’을 요구한다는 것은 시대착오(時代錯誤)라고 말할지도 모른다.그러나 교수들은 자신의 존재가치가 어디에 있는가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아야 한다. 교수의 품격은 돈이나 권력으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니라, 교수의 본업인 교육·연구·봉사에 얼마나 충실한가에 달려있다. 따라서 교수에게 요구되는 ‘딸깍발이 선비정신’을 고리타분한 옛날 얘기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 남산골샌님의 고지식함과 절개는 교육자로서 교수가 당연히 가져야 할 자세이다.누구보다도 깨끗하고 공정해야 할 교수들이 돈과 권력의 유혹에 무너진다면 사회정의는 누가 지킬 수 있겠는가? 최고의 지성이라고 할 수 있는 교수들마저 정도(正道)에서 벗어난다면 우리는 더 이상 희망을 말할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황금만능주의와 극단적 이기주의가 난무하고 있는 오늘날의 교수들에게 정말로 필요한 것은 돈이나 권력이 아니라 ‘딸깍발이 선비정신’이다.

2019-05-27

북한 개혁·개방의 새로운 징후가 보인다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사회주의 국가의 개혁·개방은 체제 변화의 청신호이다. 그들이 경제 정책을 바꾸고 대외 개방을 하면 할수록 체제 변화가 따르기 때문이다. 소련은 고르바초프의 소련식 개혁·개방인 페레스트로이카와 그라스노스트의 와중에 소연방이 붕괴되었다. 오늘의 푸틴의 러시아를 사회주의 체제로 보는 사람은 드물다. 중국도 등소평 이래 과감한 개혁·개방을 추진하여 오늘의 사회주의적 시장 경제로 나아가고 있다. 베트남 역시 미국과 수교하고 도이 모이를 통해 초보적 시장경제로 가고 있다.‘민족 자립 경제’라는 명분으로 문을 걸어 잠근 북한은 어떻게 될 것인가. 북한 김정은 정권도 개혁·개방이라는 역사의 행보를 피할 수 없을 것이다.북한의 괄목할만한 개혁 징후는 그들의 경제 노선에서 나타났다. 김정은은 이미 ‘핵·경제 병진노선’을 폐기하고 ‘경제 발전 노선’을 과감히 채택했다. 북한은 경제 발전을 위한 라선, 금강산, 개성, 황금평과 위화도, 신의주 등 5대 경제 특구를 개설하고, 중국식 19개의 경제개발구를 설치하였다. 아직 외부 투자가 없는데 그들의 고민이 있다. 그들은 최근 제2 경제인 ‘군수경제’를 제1경제인 ‘인민 경제’에 종속시키는 조치를 취했다. 그렇다보니 종래의 선군 정치보다는 ‘당우위의 정치’로 나아 갈 수밖에 없다. 북한 권력 핵심인 총정치국장, 인민무력부장 등은 권력 서열에서 당 간부에게 밀리고 있다. 김정은은 최근 군부대 시찰보다 인민 경제 시찰 빈도를 높이고 있다. 노동신문은 원산항 갈마반도(명사십리)의 군사훈련장이 신도시로 변했다고 선전하고 있다. 함북 경성 증평리의 군사 비행장이 이제 대규모 온실 농장이 되어 채소를 재배한다고도 하였다. 북한의 군수 공장에서 농기계 건설기계를 생산한다는 소식까지 들린다.북한의 이러한 경제 우선의 정책은 그들의 농업과 공업부문 개혁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즉 자급자족적 폐쇄 경제를 초보적인 시장경제로 바꾸려는 징후가 곳곳에서 보인다. 농업 생산성 향상을 위해 협동농장 20명 여명의 분조원 수를 10명 내외 가족영농으로 바꾼 지 오래다. 사회주의 분배 원칙인 ‘평균주의’를 배격하자는 슬로건도 나붙기 시작했다. 소토지나 유휴지의 개인 경작까지 허용하고 다수확 농민을 포상하고 있다. 북한 당국은 생산이 중단된 국유 공장은 개인에게 임대하여 가동하고 있다. 북한 땅에도 자본주의적 능력제라는 바람이 분지 오래다. 이렇다 보니 북한 시장경제는 그 확산 속도가 빠를 수밖에 없다. 북한의 종합시장도 400개 이상이고, 개인 식당도 점차 늘어나고 있다. 정부는 상인들의 자릿세를 받아 부족한 세수를 충당하고 있다. 지난주에는 북한에서 450개의 외국기업의 상품전시회가 개최되었다. 남한 상품이 암시장에서 고가로 팔리고 한류의 바람이 불고 있단다. 평양에서는 도매시장이 개설되었고 돈 주를 중심으로 초보적 금융 시장이 개설되었다. 자본주의의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한 결과이다. 시장 경제와 소비 경제의 빠른 확산은 관료의 부패와 연결되어 북한 당국은 수차례 ‘부패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이미 권력층 여러 명을 부패분자로 숙청하였다. 미국의 대북 제재 해제는 북한개혁·개방의 본격적인 출발점이 될 것이다. 북한이 비핵화를 북미 협상 테이블에 올린 이유도 제재해제를 위함이다. 미국은 북한의 비핵화가 경제 발전의 인센티브가 된다는 당근전략을 쓰고 있다. 북미 간 평화 협정이 체결되고 북미 수교가 된다면 북한은 아시아의 매력적인 투자 경쟁 지역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중국은 이미 북한의 라선 경제 특구에 상당한 투자를 하고 있다. 투자 귀재인 짐 소로스는 북미 관계가 정상화되면 미국은 중국 이상으로 투자할 것이라 예측하고 있다. 이때 우리 기업도 과감한 대북 투자를 해야 할 것이다. 우리가 개성 공단의 재가동을 서두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2019-05-26

한바탕 울기 좋은 곳

한 선비가 있습니다. 서재를 짓고 이름을 ‘통곡헌(慟哭軒)’이라 짓습니다. 모두가 비웃습니다. 세상에 즐거운 일이 얼마나 많은데 하필이면 서실의 이름을 통곡(慟哭)의 집(軒)이라 이름을 짓는다는 말인가! 수군거리고 손가락질합니다. 어떤 이는 서찰을 보내 정식으로 유감의 뜻을 전합니다.선비는 붓을 들어 답합니다. “나는 세상이 좋아하는 것과 반대로 하는 사람이오. 세상 유행이 기쁨을 즐기므로 나는 슬픔을 좋아 하오. 세상 사람들이 즐거움을 누리므로 나는 또한 근심을 즐거워 하오. 세상 사람들은 부귀영화를 얻으면 기뻐하지만 나는 내 몸을 더럽히는 것처럼 여겨 내팽개치오. 가난하고 천박하며 궁색한 삶을 본받아 몸을 거처할 뿐이오. 나는 세상의 모든 일과 반대로 하려 하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이 가장 싫어하는 것을 선택하자면 통곡보다 더한 것은 없기에, 내 서실의 이름을 통곡헌이라 지었소.”선비의 이름은 허친(許親). 조선 중기 문인입니다. 그의 소명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구구한 말들이 많자 삼촌이 나서 조카를 변호하는 글을 씁니다. 통곡헌기(慟哭軒記)라는 유명한 문장입니다. 홍길동전을 쓴 조선의 반항아, 허균이 바로 허친의 삼촌입니다.“나는 비웃는 자들을 책망하며 말하였다. ‘무릇 곡에도 도가 있는 법이다. 대체로 사람의 칠정은 움직이기 쉽지만 감동이 일어나는 것으로는 슬픔만 한 것이 없다. 슬픔이 지극하면 반드시 곡을 하게 되는데 슬픔이 오는 방식 또한 여러 가지다. (중략) 국사는 날로 더 그릇되어가고 선비들의 행실은 날로 구차스럽고 경박하다. 벗과의 사귐은 배신으로 치달아 갈림길의 나뉨보다 더욱 심하여 현명한 선비들의 곤란함은 길이 막다른 처지에 있을 뿐만 아니라 모두들 세상 밖으로 숨을 궁리들만 한다. 만약 여러 군자들로 하여금 이 시절을 보게 한다면 어떤 생각을 품게 될지 모르겠다. 그러나 장차 통곡할 겨를도 없이 모두들 팽함이나 굴원처럼 돌덩이를 품에 안고 물속으로 뛰어들고자 하겠지. 허친이 곡으로써 편액을 삼은 것도 여기에서 나온 것이다. 여러분들은 그 곡을 비웃지 않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비웃던 자들이 물러났기로, 기록을 하여 이로써 무리들이 의심하는 것을 풀었다.”연암 박지원은 요동 벌판을 바라보며 이렇게 말합니다. “좋은 울음터로다. 한 바탕 울어 볼 만하구나!” 겉 보기에 멀쩡하지만 속으로는 공허와 무의미로 병들어가는 세상을 바라보며 통곡할 수 있는 그대 뜨거운 가슴이 필요한 때입니다./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 대표

2019-05-26

지역의 근본과 미래는 어디에 있는가?

김도형 아시아퍼시픽해양문화연구원 이사지난 20일 부산 영도구에 있는 국립해양박물관에서 흥미로운 사진 전시회가 열렸다. 해양 전문잡지인 ‘The OCEAN’에 게재된 사진 중 일부를 선별해 기획 사진전 ‘ONE WORLD ONE OCEAN’을 개최한 것이다. 국립해양박물관과 잡지 발간 주체인 한국해양수산개발원이 공동 주최한 이번 사진전에는 △어업, 그리고 바다음식 △해양강국으로 가는 길 △해양문화 탐방의 바닷길 △신북방·신남방 바다길 등 4가지 주제에 70여 점이 선을 보였다.전 세계 푸른 바다에서 역동적으로 펼쳐지는 다양한 삶과 문화, 풍경을 담은 사진은 관람객들에게 색다른 즐거움을 선사하고 있다.‘해양 전문 융·복합 미디어와 오션 소프트파워의 창출’을 주제로 한 사진전 오프닝 토크쇼도 잡지 편집위원들과 관객들 간에 격의 없는 소통의 장이 됐다.종이 잡지는 사멸 위기에 처해 있다고 해도 과장이 아니다. 디지털 문명이 도래하면서 수많은 종이 잡지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 2015년 1월 창간된 ‘The OCEAN’이 11호까지 발간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이채롭다. 비용 등의 부담 때문에 반년간으로 발간된다는 아쉬움이 있지만, 해양 융·복합 플랫폼으로서 그 소임을 충실히 감당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The OCEAN’은 우리 사회에서 그 가치에 비해 조명을 충분히 받지 못하고 있는 오션 소프트파워 담론을 생산, 전파한다는 데 종요로운 의미가 있다. ‘바다의 나라 포르투갈’이 특집으로 실린 11호부터는 중요 기사 몇 편을 추려 해양수산부 홍보실과 함께 유튜브 영상 등으로 제작하게 된다. 이제 ‘The OCEAN’도 시대 흐름에 발맞춰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확장을 도모하며 독자들과의 접촉면을 넓히게 된 것이다.시선을 지역으로 돌려보자. 포항은 시 승격 70주년을 맞이했다. 70주년이라는 의미 있는 나이테가 만들어지면 지나온 길을 되돌아보고, 가야 할 길을 내다보는 사색과 숙고가 필요하다. ‘지방의 소멸’이라는 유령이 대한민국을 배회하고 있다. 거의 모든 대한민국 지방 도시가 존립을 걱정해야 하는 심각한 위기에 직면해 있다. 포항도 예외라고 할 수 없다. 70주년을 기념하는 축포도 필요하지만, 지방에 드리운 짙은 그림자를 거둬내고 보다 나은 도시의 미래 청사진을 시민들이 공유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포항의 근본은 바다’라는 한 원로의 말이 떠오른다. 1970년대 초반 포항에 제철공장이 건립되기 전에 포항의 주된 먹거리는 바다였다. 거친 파도와 거센 바람이 몰아치는 바다에서 사투를 벌이며 고래와 상어, 정어리와 고등어, 꽁치 등 숱한 어류를 거둬 올리고, 김과 미역 등을 채취해 살림을 꾸려 나갔다. 원양어선을 타고 망망대해로 나간 사람도 많이 있었다. 머구리는 사라졌지만 해녀들은 여전히 해안선 곳곳에서 자맥질을 하고 있다. 철강도시가 된 이후로도 수산업은 포항의 변함없는 정체성이자 경제의 활력소이다. 동해안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죽도 어시장이 그 생생한 현장이다. 미래 청사진은 근본을 떠나 만들 수 없다. 지역의 미래를 다층적·입체적으로 분석하고 전망해야 하겠지만, 204㎞의 해안선을 떠날 수 없음은 자명한 사실이다. 이런 맥락에서, 지역의 근본인 해양수산 담론을 지역 스스로 생산하고 전파할 때가 됐다. 네트워크를 통해 타 기관의 힘을 빌릴 수도 있겠지만, 근본적으로 지역의 핵심 담론은 지역 스스로 생산할 수 있는 역량과 환경을 갖춰야 한다.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지역의 대학과 기관, 매체가 힘을 모은다면 길은 얼마든지 만들어 낼 수 있다. 바다는 넓고 깊다. 무한한 잠재력을 품고 있는 보고이다. 그 잠재력을 얼마나 끌어 올리느냐에 지역의 미래가 걸려 있다. 그 길은 지역 스스로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시 승격 70주년, 지역의 근본과 미래가 바다임을 잊지 말자.

2019-05-26

2019년 사회조사에 적극적인 참여를 부탁드리며

김유식 동북지방통계청 포항사무소장2017년 11월 15일 오후 2시 29분 포항시 북구 북쪽 8㎞ 지역에서 규모 5.4의 지진이 발생했다. 1978년 본격적인 지진 관측 이래 2016년 경주 지진에 이어 두 번째로 규모가 큰 지진이었고 또한 역대 가장 큰 피해가 발생한 지진이기도 했다.본진 이후에도 70∼80회 넘는 여진이 계속 발생하면서 많은 사람들은 두려움에 떨며 시간을 보냈다. 이렇게 본진 및 추가 여진 발생이 빈번해짐에 따라 우리나라도 이제 지진의 안전지대라고 말할 수 없게 됐다. 이렇게 지진의 빈도가 늘어남에 따라 사회 안전에 대한 인식의 변화도 쉽게 볼 수 있다.2018년 통계청 사회조사 결과에 따르면 경주 및 포항지진이 일어난 경북지역의 사회 안전에 대한 인식(지진 등 자연재해)에 관한 질문에 ‘안전하지 않다’라고 응답한 비율이 53%에 달했다. 2016년 33.5%와 비교해 큰 폭으로 증가함을 볼 수 있다. 막연히 지진 및 자연재해에 대해 품고 있었던 생각이 통계 수치로 나타나는 대목이다.통계청에서는 매년, 각 부문별 2년 주기로 사회조사를 실시하고 있다. 이는 삶의 질과 관련된 국민의 사회적 관심사와 주관적 의식에 관한 사항을 파악해 관련정책을 수립하고, 연구의 기초자료로 제공하기 위한 것이다.포항사무소에서도 올해 5월 15일부터 30일까지 지역 내 조사대상 표본가구 444가구, 만 13세 이상 상주 가구원을 대상으로 통계조사원이 직접 방문 또는 자기기입식으로 조사를 실시하고 있다.모든 조사가 그렇듯이 통계 조사가 진행될 때마다 듣는 이야기는 ‘이렇게 조사하는 것이 정책에 반영되는가’, ‘조사를 해주면 나에게 도움되는 것이 있는가’라는 이야기를 심심치 않게 듣게 된다.의미 있는 통계를 만들기 위해서는 정확한 통계자료 수집이 필수적이다. 최근 1인 가구 및 맞벌이 가구의 증가, 응답자의 개인정보 보호의식 강화 등의 영향으로 통계조사에 대한 비협조 및 불응이 심화되고 있는데, 이러한 현상은 정확한 통계를 만드는데 장애요인으로 작용한다.품질 좋은 통계생산은 통계 응답자의 협조 없이는 불가능하다. 이처럼 중요한 통계조사에 직접 참여한다는 것에 대하여 큰 자부심을 가지고, 조사대상 가구로 선정된 지역민 여러분의 적극적인 협조를 부탁드린다.

2019-05-26

신라 월성, 천년의 폐허를 노래하다

열흘 붉은 꽃은 없다던가? 천년은 영화, 그리고 다시 천년은 폐허였다. 신라의 패망으로 더 이상 왕성일 수 없는 월성은 고려의 지배하에 3백 년 동안 방치된 채 잊혔다.한때 ‘황금의 나라’의 왕궁으로서 휘황했던 궁궐은 햇빛과 눈비와 바람과 이슬에 바래고 삭아갔다. 그럼에도 어쩌자고 흔적조차 말끔히 사라졌단 말인가?이에 대해 고고학계는 자연 풍화와 함께 몽골이 침입해 황룡사를 불태우면서 인접한 왕궁과 왕성이 모두 불타 소실됐을 것으로 추정한다.1238년 고려 고종 25년, 몽골이 3차 침입했을 때 몽골 지휘관 탕고는 의주에서 서경(평양)과 남경(서울)을 지나 동경(경주)에까지 닿는다. 몽골의 기병은 바람처럼 빨랐다. 철제 갑옷이 없어서가 아니라 전광석화 같은 기동력을 위해 그들은 춥든 덥든 가볍게 입고 유라시아 대륙을 휘저었다.몽골군은 적이 저항하거나 복수전을 펼칠 때는 노인부터 아이까지 한 사람도 남기지 않고 학살했기에, 칭기즈 칸의 군대가 휩쓸고 지나간 13세기에 3천만에서 6천만 명에 달하는 세계 인구가 줄었다고 한다. 그들은 정복하는 대신 약탈하고 떠난다. 무주공산의 경주는 그 무도한 말발굽 아래 맥없이 무너졌다.몽고병이 동경에 이르러 황룡사탑을 불태웠다.-‘고려사’고종25(1238) 윤4월몽고의 병화(兵火)로 탑과 장육존상과 전우(殿宇)가 모두 불탔다.-‘삼국유사’ 탑상편고지도 중 월성이 표기된 가장 오래된 것은 17세기 ‘동여비고 경상도 중부’ 지도다. 지도에서 월성은 산 아래 또렷이 자리잡고 있다. 금성과 만월성, 명활성 등은 때에 따라 빠지거나 심지어 위치가 조금씩 달라지는데 월성만은 대동여지도에 이르기까지 경주 지방을 그린 조선의 지도에서 빠지지 않고 존재감을 나타낸다.하지만 자세한 풍경을 찍은 사진은 일제강점기에 이르러서야 볼 수 있고, 1914년 도리이 류조가 제1차 월성 조사 당시 찍은 월성의 전경은 논밭이 된 성안과 둔덕으로 남은 성벽뿐이다.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때, 보이지 않는 것들을 노래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한 노래가 바로 문학이다. 월성이 불타거나 침식해 사라진 후에도 월성을 노래한 문학은 남았다. 우리는 그것을 통해 보이지 않는 것을 본다. 천년이 훌쩍 지난 지금도.첨성대는 반월성에 우뚝 서 있고옥피리 소리는 만고의 바람을 머금었구나.문물은 이미 신라와 함께 다하였건만슬프다. 산과 물은 고금이 같구나.월성에 대한 가장 오래된 시는 ‘포은집’(1439)에 실린 정몽주의 ‘첨성대’다. ‘포은집’은 세종 21년 정몽주의 두 아들이 아버지의 글을 모아 펴낸 문집이다. 조선 개국의 일등 공신 정도전조차 ‘도덕의 으뜸’이라고 찬했다는 고려의 충신 정몽주는, 선죽교에서 이방원의 수하에게 암살당하기 전 언제쯤인가 경주를 다녀갔나 보다. 그때도 첨성대는 우뚝이 남아있으나 문물은 간데없고, 신라의 쇠망이 남의 일 같지 않음에 정몽주는 한숨처럼 슬픔을 읊는다.국운이 쇠퇴하는 시기가 아니더라도 폐허가 된 월성의 풍광은 여행자들을 애상에 젖게 했다.외로운 성 약간 굽어 반달을 닮았는데가시덤불은 다람쥐 굴을 반쯤 가리웠구나.-이인로 ‘반월성’(‘동문선’, 1478)아득히 지난 일을 물어볼 데라곤 없으니모든 것이 쓸쓸하여 흥망이 서글퍼지네.흐르는 물은 일천년 오래된 나라와 같고찬 연기는 마흔여덟 왕의 무덤과 같네.첨성대 위에는 배 주린 까마귀가 모여들고반월성 곁에는 들 송아지가 올라가 있네.분황사 가에는 붉은 사립문이 닫혀 있고겨울 다리를 석양에 중이 혼자 건너가네.-이유원 ‘회고시-동경회고’(‘임하필기’, 1871)페이소스가 짐짓 감상적으로 흐르는 경우도 없지 않지만, 조선시대 시가에 드러난 월성의 모습은 고고학적 발굴과 과학적 조사가 진행되는 현재도 참고할 만한 데가 있다.조선조 내내 월성은 말 그대로 ‘빈 동산’이었다. 궁전은 먼지가 되어 흩어졌다. 새는 제멋대로 정적을 깨며 지저귄다. 우거진 풀숲에서 사슴과 노루가 뛰어다닌다. 무지렁이들은 월성의 흙을 파다가 농가의 벽을 바른다.이처럼 ‘땅도 늙고 하늘도 황폐해 다만 능곡뿐(조위 ‘반월성’(‘속동문선’, 1518))’인 궁터 앞에 서면 절로 인간사의 무상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히브리의 ‘시편’은 “죽지 않고 영원히 살 자가 어디 있으며, 누가 저승에서 자기 영혼을 빼내겠는가?”고 묻고, 신라의 월명사는 ‘제망매가’에서 “삶과 죽음이 여기 있으매 두려워, 나는 가노라 말도 못다 이르고 가느냐”고 탄식한다.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죽음을 기억하라!”는 오래된 잠언은 시작이 있으면 끝 또한 있음을 상기하며 삶의 오만함을 경계한다.그래서 월성의 폐허 앞에서 살아생전 부귀영화의 무상함을 깨닫고 속세를 떠났다는 최치원을 떠올리는 시가들도 종종 눈에 띈다. 최치원의 호는 고운(孤雲)과 해운(海雲)이니, 당나라 유학파인 신라의 천재였으나 6두품이라는 신분의 한계를 절감하고 경주를 떠나 부산 해운대에 머물다 가야산으로 들어가 신선이 되었다는 전설이 있다.고운 학사는 바로 시선이었기에천재에 높은 명성 만인에게 전해 오는데어젯밤 꿈속에 분명히 서로 만나 보았네.계림의 숲가 반월성 변두리에서.일찍이 해운대에 올라 사방을 조망하면서고운을 부르려다가 한번 웃음을 지었지.듣자 하니 그는 이미 청학 타고 떠났는데동문을 깊이 잠그고 돌아오지를 않는다네.-서거정, ‘꿈에 계림을 유람하다가 학사 최치원을 방문하다’(‘사가집’, 1488)그럼에도 불구하고 죽음을 기억하며 산다는 것은 괴롭기도 하려니와 어려운 일이다. 어리석은 자들은 죽지 않고 영원히 살 것처럼 여기며 죽음을 말하는 것 자체를 터부시한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영생불멸까지는 아닐지라도 죽음을 깜박 잊고 살기에 그토록 치열하게 싸우고 사랑하고 미워하고 욕심을 다할 수 있었는지 모른다.한 어미 자식도 아롱이다롱이려니, 때로는 천년 월성의 천년 폐허 앞에서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계림 숲 우거진 반월성은그야말로 옛날 왕성 터이지.천년 왕업 낙엽처럼 진 뒤화류가 한창 분분히 번성했지.그대 좋은 계절에 돌아가니농염한 미색이 눈길 빼앗으리.꽃구경하다 여가가 있거든귀찮더라도 자주 소식 전해주오.이행의 ‘임소인 영남으로 돌아가는 도사를 전송하다’에는 조선시대 경주의 또 다른 풍경이 등장한다. 이행은 조선 중기 연산군-중종 때의 문신으로, 사후 문집 ‘용재집’(1589)에 실린 이 시가는 관찰사와 함께 지방을 순력하고 규찰하는 임무를 담당하는 도사(都事)인 벗을 만났다 헤어지며 지은 것으로 보인다.기쁘게 보내는 환송이 아니라 서운해 보내는 전송이라 그랬을까, 중앙 관리에 비해 홀시되는 지방 관리로 떠나는 벗이 안쓰러워서였을까? 분명 이별 파티에 거나하게 취했을 터, 술김인지 홧김인지 화류며 미색이며 유학자의 시에는 좀처럼 등장하기 어려운 날것의 욕망이 쏟아진다.패망과 폐허의 끝에는 부패와 타락이 똬리를 트는 법! 조선시대 경주는 생뚱맞게도 화류항으로 유명했나 보다. 문득 주워듣기로 신라 귀족들의 묘역인 쪽샘 지구가 1960-70년대 요정 100여 곳이 성행하는 유흥가로 이름을 날렸다니, 그 또한 기이하고 유구한 역사랄까.문학 속에 남은 월성은 흰 재와 검은 그을음의 폐허뿐이다. 고려와 조선을 거치는 동안 신라는 까마득한 과거로 밀려났다.그런 의미에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개혁군주라기보다 보수주의자에 가까운 정조 임금이 ‘월성에 있는 신라 시조왕의 사당에 올리는 제문’(정조16, 1792)을 지어 바친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정조의 문집인 ‘홍재전집’(1814)에 실린 제문의 시가는 폐허의 송가(頌歌)요 그 나마의 위로다.동해의 모퉁이 양산의 언덕에 복숭아꽃과 박 잎의 이야기는 아득한 옛적의 제해였네.신인을 독생하여 육부의 진한에 사로국을 건국하니 왕호는 거서간이었네.육십일 년의 평생에 무성하게 거친 초목을 제거하니 수자리엔 야경꾼의 딱따기 소리가 없어 잠자리가 편안하고 들에는 뽕나무 가지가 잘 자라 의식이 풍족하였네.세대를 점치니 천년인지라 멀리 주 나라의 역년(曆年)에 이르니명활산과 금성에서 아직도 처음의 자취를 기억하겠네.아, 우리 열조에서 높이 보답하기에 허물이 없었으니사당에 위패를 봉안하고 왕릉에 비석을 세웠다네.돌아보건대 내가 광세(曠世)의 감회가 있어 문득 이날에제관을 보내어 정성을 드리게 하노니 멀리 잔을 드림이 있나이다.그러나 불 탄 자리에도 새로운 생명이 돋나니, 세월과 기억 속에 지워진 월성이 천년 왕성의 아름다운 위엄을 되찾는 날도 언젠가 오고 말리라.

2019-05-26

남성도 양산을 쓰자

예년보다 9일 빨리 폭염특보가 내려진 가운데 5월 중순 들면서 전국 대부분 지역이 30도를 웃도는 불볕 더위를 보이고 있다.특히 지난 주말은 경북 울진과 영천, 경주 등의 기온이 35도를 넘겨 전국 최고를 기록하면서 대구경북지역은 아열대 현상과 더불어 사실상 초여름 날씨를 맞고 있다. 유난히 더운 대구경북의 올 여름 날씨가 얼마나 뜨거울지가 벌써부터 관심이다.지난해 우리나라 여름 날씨는 역대 최대 폭염 일수를 기록할 만큼 무더웠다. 그동안 최고 기록을 유지해왔던 1994년의 폭염일수가 지난해 여름에 의해 기록이 무너졌다.지난해 여름 폭염 일수 31.3일로 폭염관측 이래 최고 일수를 기록했던 1994년(31.1일)보다 높았다. 기상청은 올해도 우리나라 여름날씨는 작년과 비슷하거나 더 높을 것으로 보인다고 예고했다.우리나라 기상 재해 통계를 살펴보면, 태풍이나 집중호우보다 폭염으로 인해 더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더위로 인한 온열질환자가 집중 발생하는 시기는 7월과 8월이다. 여자보다 남자한테서 온열질환자가 2.7배나 더 많이 발생한다. 유럽의 사례지만 2003년 유럽을 강타한 폭염으로 프랑스, 독일, 스페인 등지에서 7만여 명이 목숨을 잃었다. 1997년 미국 시카고에서도 40도가 넘는 살인적 더위가 5일간 연속되면서 700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적이 있다. 사상자의 대부분이 혼자 사는 노인이었다고 하니 그들에 대한 특별한 관리가 있어야겠다.최근 일본정부는 올여름 폭염대책의 하나로 ‘남자 양산 쓰기 캠페인’을 실시하기로 했다고 한다. 양산을 쓰면 3~7도 정도 기온을 낮출 수 있고 땀은 17% 정도가 감소돼 열대병 예방효과도 볼 수 있다고 한다. 일본 정부는 남성의 양산 쓰기 캠페인을 성공시키기 위해 일본에서의 아버지날인 6월 16일에 아버지에게 양산을 선물하도록 하자는 캠페인도 벌이고 있다고 한다. 폭염 예방을 위한 남자들의 양산 쓰기 운동은 관습적인 거부감 외에 별다른 문제가 없다. 남성의 양산 쓰기 캠페인 해볼 만한 일이다. /우정구(논설위원)

2019-05-26

‘증오 정치’의 역습

안재휘 논설위원남편의 정치적 성공을 위해 떡볶이 장사까지 하며 뒷바라지를 했던 여인이 골프채에 맞아 처참하게 숨졌다. 그런데 더불어민주당과 여성단체는 아무런 말이 없다. 민주당 소속 유승현 전 김포시의회 의장 이야기다. 우리 정치와 사회가 얼마나 천박한 의식에 발목이 잡혀 있는지를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이 비극적 장면은 이 나라가 정말 온전한 상황인지를 깊이 의심케 한다.‘박근혜 망신주기’ 드라마는 여전히 연장 방영 중이다. 박 전 대통령의 방중(訪中) 연설 문구를 놓고 최순실이 정호성 비서관에게 이런저런 지시를 하는 내용의 녹음파일이 폭로됐다. 지금 시점에 왜 이 녹음파일이 공개됐을까 하는 의구심을 넘어, 국정 경험도 직책도 없는 최 씨가 대통령의 연설문 문구를 좌지우지하는 대목은 부끄럽기 짝이 없는 대목이다.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의 장외투쟁 ‘민생투쟁대장정-국민 속으로’ 일정이 마무리됐다. 황 대표 개인적으로는 자신의 정치적 위상을 크게 높였고, 한국당에 대한 국민지지율도 상승시키는 성과도 거뒀다. 그러나 극한대결로 치닫는 여야 정치권의 비정상 기류가 개선되기는커녕 악화된 측면이 있다는 차원에서 숙제도 많이 안게 됐다. 여야 정치권의 막말 대치는 더욱 험악해지는 형국이다.여야 정치권의 맞대결 구도에서 가장 이해가 가지 않는 일은 집권 여당 대표의 정치력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부분이다. 걸핏하면 ‘장기집권론’을 부르대는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집권세력의 선두에서 칼을 휘두르는 용맹한 졸병의 역할에 줄곧 머물고 있다. 패스트트랙 갈등국면에서도 야당을 조준해 “도둑놈들한테 이 국회를 맡길 수 있겠냐”고 공격하는 게 고작이었다.민주당 원내대표를 지낸 우상호 의원은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를 겨냥 “지금 좀 미친 것 같다”고 막말을 했다. 5·18 민주화운동 39주년 기념식에 참석한 문재인 대통령이 날린 직격탄은 더 문제다. 한국당의 ‘좌파독재’ 공세를 문 대통령은 ‘독재자의 후예’라는 말로 되돌려줬다. 영부인 김정숙 여사는 황교안 대표와의 악수를 건너뛰고도 사과 한마디 없이 고의성을 시인하고 있다.문 대통령의 광주 발언에 대해 황교안 한국당 대표는 “진짜 독재자의 후예에겐 말 한마디 못하니까 여기서 지금 (김정은의) 대변인 하고 있지 않나”라고 예민한 부분을 건드렸다. 이주영 한국당 의원은 “‘남로당의 후예가 아니라면 천안함 폭침을 다르게 볼 수 없다’고 되돌려줘야 한다는 비아냥 소리를 여기저기서 많이 듣는다”고 공박했다. 5·18 기념식에 참석하려는 황교안 한국당 대표를 향해 이정미 정의당 대표의 ‘사이코패스’라는 공격은 막말의 극치다. 이정미 대표의 발언 논법을 패러디하는 가정법을 동원해 거꾸로 되받아친 한국당 김현아 의원의 ‘한센병’ 발언 파문도 심각하긴 마찬가지였다. 그렇듯 정치권의 험구는 좀처럼 개선되기 어려운 난치성 유행병이다.문재인 정권 출범 이후 정치권은 어느새 욕지거리 난장판이 돼가고 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촛불 정신’을 앞세운 문재인 정권은 왜 이렇게 정국을 험악하게 이끌어가는 것일까. ‘적폐청산’이라는 그럴싸한 이름으로 포장한 포퓰리즘의 화신이 되어 나라 곳곳에 과거의 ‘쓰레기통’ 엎어놓고 매타작하는 일에 몰두하다 보니 ‘국민의 대통령’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나라 경제마저 거덜이 나고 있는 중이다.백성들이 다 죽어가는 데도 권력만 줄창 탐할 것인가. 국민도 없는 땅에서 그 알량한 권력들 어디에다 써먹을 참인가. 민생을 살리기는커녕 모두를 절망의 구렁텅이로 몰아넣는 몹쓸 ‘증오 정치’부터 청산해야 한다. 미래를 이야기하고, 희망을 주는 정치를 펼쳐야 한다. ‘죽이는’ 정치가 아니라, ‘살리는’ 정치를 해야 한다. 민생을 지옥으로 몰아가는 이 ‘증오 정치’의 역습으로부터 영원히 탈출할 새길을 찾아내야 한다.

2019-05-26

바른말 고운말

미러링 효과(Mirroring Effect)라는 것이 있다. 상대방의 말이나 행동 등을 거울 속에 비친 것처럼 따라하는 행동을 일컫는다.상대에게 동질감을 느끼게 해 세일즈 마케팅 등에 많이 활용된다. 아이가 부모가 하는 말이나 행동, 표정까지 따라하는 것도 일종의 미러링 효과다.생후 6개월 이후의 아이는 부모의 반응을 통해 자신의 이미지를 형성 한다고 한다. 부모의 행동과 말, 작은 습관이 어린아이에게는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는 심리적 효과를 말한다.바른말 고운말을 쓰야 하는 것은 개인 간이나 집단 간에도 매우 중요한 일이다. 바른말 고운말은 상대 인격에 대한 존중의 출발점이 됨으로 원만한 의사소통의 수단으로는 최고다. 커뮤니티의 분위기를 밝게 해 커뮤니티 내의 문제점을 푸는데도 큰 도움이 된다.“말에도 품격이 있다”는 것은 말을 가려서 잘할 때 말하는 사람의 인격이 돋보인다는 것을 의미한다. 말은 말하는 당사자 생각의 또다른 표현이기 때문이다. 우리 속담에도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고 하지 않았던가. 말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상대방으로부터 듣게 되는 반응도 각양각색이다.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도 곱다”는 것이 모두 이런 연유에서 생긴 말이다.말이 많으면 화(禍)를 면하기 어렵다. 반대로 과언무환(寡言無患)이라 하여 말을 줄이면 근심도 줄어든다고 옛 성현들이 가르쳤다.서양의 격언에도 “웅변은 은이요 침묵은 금”이라 한다. 동서양 사람들이 가지는 말에 대한 신중한 생각은 크게 다르지 않음을 알 수 있다.세종대왕이 창제한 우리 말이 젊은 세대들에 의해 행여 잘못 사용되기 십상인 요즘이다. SNS를 통한 신조어나 줄임말 등이 한글의 훼손으로 이어질까 걱정스럽다. 이런 가운데 정치권의 막말이 연일 여론의 도마에 올라 국민을 언짢게 한다. 여야 구분 없이 자기가 필요하다고 생각되면 ‘내로남불’식 막말로 경쟁하듯 다투고 있다. 정치인의 막말 경쟁 이제는 끝낼 우리의 나쁜 문화다. “말이 도리에 맞지 않으면 말하지 아니함만 못하다”는 명심보감의 말씀을 되새겨 봐야겠다./우정구(논설위원)

2019-05-23

끊이지 않는 경제정책 논란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성장 경제정책을 둘러싼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는 가운데 이번에는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경제보고서의 왜곡인용이 문제가 되고 있다. 사건의 요지는 OECD 공식 보고서에서 문재인 정부의 최저임금 인상이 일자리를 감소시켰다는 분석이 나오자 기획재정부가 국내 번역본에서 이 내용을 통째로 들어냈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기재부가 국제기구 보고서를 번역해 언론과 대외에 제공하면서 정부 정책에 유리한 내용만 선별해 보고서 ‘왜곡’이란 비판을 받게 된 것이다.기재부가 지난 22일 번역해 발표한 ‘OECD 경제전망 보고서’ 원문에는 “한국의 경제성장률은 2019~2020년 사이 2.5%까지 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이는 국내 수요와 국제무역의 약세를 반영한 것”이라며 “제조업 분야의 구조조정과 두 자릿수의 최저임금 인상이 일자리 창출을 더디게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 대목이 OECD 보고서의 핵심이었다. OECD는 이어 “낮아진 경제성장은 고정투자 감소와 낮은 일자리 창출에 부분적으로 기인한다”며 “이는 제조업 분야 구조조정으로 나타나고 있으며 더불어 2018~2019년 사이의 29%에 달하는 최저임금 인상이 취업을 어렵게 했다”고 설명했다. OECD는 특히 “노동생산성 증가가 동반되지 않는 이상 추가적인 최저임금 인상은 일자리를 감소시키고 한국의 경쟁력을 떨어뜨리기만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OECD는 지난해 11월 발표한 경제전망에서도 최저임금의 추가적인 큰 폭의 인상이 고용과 성장에 부담이 될 수 있다며 점진적으로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밝힌 바 있다. 기재부는 “언론의 보도편의를 위해 요약·정리한 내용”이라고 해명했지만 정부가 강조하고 싶은 확장적 재정정책 부분은 고스란히 번역본에 포함돼 있어 ‘아전인수’란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이러니 국가 재정의 토대를 굳건히 하고, 국가 백년대계를 꾸려야 할 기재부가 앞장서서 재정건전성을 포기하고 총선 캠프로 변신한 민주당 정권의 재정집사 노릇하려는 것 아니냐는 야당의 비판에도 할 말이 없게 됐다. 이에 앞서 지난 21일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최저임금 현장 실태 파악’ 보고서에서도 최저임금 인상으로 고용이 감소했다는 내용이 드러나기도 했다.이런데도 문재인 대통령은 “소득주도 성장과 최저임금 인상 정책은 긍정적 효과가 90%”라고 했고, 이낙연 국무총리는 “최저임금 인상 때문에 경제가 나빠진 것처럼 몰아가는 것은 정확하지도 공정하지도 않다”고 강변했으며, 홍장표 전 경제수석은 “최저임금이 인상되자마자 1분기에 일자리가 대폭 줄었다면 그건 소설”이라고 주장한다. 문제점이 드러난 경제정책을 바꾸려 하지 않는 정부를 보며 이런 일화가 떠올랐다.어느 주막집에 드러누운 게으른 개가 있었다. 날이면 날마다 그 개는 같은 자리에 드러누워서 끙끙 앓았다. 주막에 올 때마다 개가 칭얼거리는 소리를 들은 어느 선비가 주모에게 물었다. “여보시오, 저 개 어디 아픈 거 아니요?” 주모가 대답했다. “아, 못이 박힌 나무 위에 누워서 아프다는 거에요.” 당황한 선비가 다시 물었다. “그러면 왜 다른 곳에 누워서 쉬지 않는거죠?” 주모가 대답했다. “아직 덜 아픈거죠.”이미 힘든 민초들이다. 지금보다 더 많이 아파야 한다면 미련하거나 무모하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국민들은 마냥 답답하다. 정부 보고서에서도, 국제기구의 경제보고서에서도 정부의 최저임금 정책 보완 내지 수정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쏟아지고 있는데도 정부와 청와대의 대응은 ‘마이동풍’‘오불관언’이기 때문이다. 야당의 주장처럼 현 정부가 추진중인 이른바 ‘소득주도성장’정책이 자기최면이나 희망고문에 그칠 경우 그 후환은 누가 감당하나. 민주주의 국가에서 다수결로 선택한 결과이니 마땅히 받아들이라 한다면 참으로 분통터질 일이다.

2019-05-23

우금치 방향으로

‘자연 부여 유스호스텔’이라는 곳은 부여에서 대천 쪽으로 가는 반교리에 있었다. 일하시는 아주머니들이 쬐끔만 더 가면 바로 대천이라고 했다. 유스호스텔은 1999년에 폐교된 반교 초등학교 자리에 세운 것이었다. 우리 3조는 한밤에 건물을 빠져나와 축구장에서 서로 공을 차넘기는 놀이를 했다. 잔디가 두텁게 깔린 축구장은 아침에 조기축구 시합이라고 하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했다.하지만 아침이 되자 우리는 모두 늦게 일어났고, 아름답게 단장한 유스호스텔을 아쉽게 떠났다. 다음 행선지는 공주, 우리는 우금치로 갔다 공산성을 보고 풀꽃문학관에 들렀다 마곡사까지 가도록 되어 있었다. 전날 우리는 부여에서 신동엽 문학관에 갔다 걸어서 구드레 조각공원에 가 정한모 선생의 시비를 찾았고 선착장에서 유람선을 타고 고란사 아래까지 갔다. 여기서 고란사로 해서 낙화암으로 가면 잃어버린 나라 백제의 하늘을 볼 수 있었다.반교리를 떠난 버스는 한 시간 남짓해서 우금치 고개에 우리를 세워 주었다. 조교가 오늘이 마침 동학혁명기념일이라 했다. 올해 들어 처음 기념일로 지정했다고, 황토현 싸움에서 승리한 날을 기념일로 삼았다더라고 했다. 옆에서 지금까지 기념일이 없었냐고, 놀랍다는 탄성을 발했다. 부패 정치와 외세에 대항하여 일어난 민중혁명을, 그것도 실패한, 좌절된 혁명을 국가가 선뜻 기념하려 했을 리 없다.이제 우리는 우금치 동학혁명군 위령탑 아래 섰다. 1973년 11월 11일에 건립되었다는 이 탑은 아직도 어디 하나 금간 곳 없이 깨끗해 보였다. 나는 학생들에게 동학의 이상과 구한말의 시대상황에 관해 간단히 설명해 주었다. 신동엽 시인의 서사시 ‘금강’에 나오는 해월 선생의 일화를 들어 동학의 만민 평등사상은 그리스 아테네의 민주주의보다 훨씬 더 근본적이고 철저하다고 했다.손상된 곳 없는 위령탑이지만 비문에는 누군가 훼손한 흔적이 남아 있었고 이에 대한 설명이 있었다. “1985년에는 한 사회단체에 의해 동학혁명과의 계승관계 등 이념 갈등 소지가 있는 비문의 일부 문구(5·16 혁명, 10월 유신, 박정희 대통령 등)가 훼손되는 사건이 있었음.” ‘포덕’ 114년 11월 11일에 당시 천도교 대령이던 최덕신은 박정희 대통령에게 이 위령탑건립위원회의 명예회장을 맡아줄 것을, 제자의 휘호를 내려줄 것을 “앙청”하였던 사실이 위령탑 뒤 비문에 기록되어 있다. 최덕신은 1986년 4월에 북한으로 가 천도교 청우당의 중앙위원장이 되고 다른 요직들을 거치다 세상을 떠났다.1970년대에 동학혁명을 10월 유신에 연결 지으려는 시도들이 있었음을 이 위령탑은 보여준다. 그러나 기념일은 이제야 마련된 모양이다. 나는 역사의 씁쓸함을 곱씹으며 그날 우금치에서 관군과 일본군에 ‘학살’당한 일만 명 동학군 영령들을 위해 다시 한 번 고개를 숙였다.우금치는 나 살던 공주 봉황동에서 지척거리다. 일곱 살 때 봉황동 산동네 샘골에 살 때는 아무 것도 몰랐다. 그때 공주고등학교에 김종필 씨가 헬리콥터를 타고 와서 두 살 아래 동생과 함께 구경을 나갔다. 공주고등학교 체육 선생이시던 아버지는 출근하실 때마다 코끼리 저금통에 십원짜리 하나씩을 넣어주셨는데, 동생이 이걸 들고 나갔다 헬리콥터에 넋이 나가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러고서는 1970년대와 함께 나는 아버지를 따라 대전으로 나가 초중고를 나왔다. 의식이 생기자 역사가 머릿속으로 들어오고 서울로 대학을 가서는 많은 일들이 벌어졌다. 나의 1980년대였다. 우리는 동학을 잊지 말아야 한다. 역사를 망각하면 똑같은 시련이 다시 닥치는 법이다. /방민호 서울대 국문과 교수 /삽화 = 이철진한국화가

2019-05-23

둥둥 떠다니는 행운을 붙잡는 법

LA다저스 류현진은 왼손 투수입니다만 공격할 때는 오른쪽에 타석에 서는 것을 기억하십니까? 류현진은 원래 오른손잡이입니다. 럭비 선수였던 아버지가 초등학교 3학년 류현진에게 글러브를 선물합니다. 이때 왼손 투수용 글러브를 사다 주었답니다. 실수였을 수도 있고 심오한 의도를 갖고 모른 척 던져 주었다 해석해 볼 수도 있습니다만 공은 왼손으로 던지는 것이라는 사실을 류현진은 이때부터 온 몸으로 받아들입니다.세렌디피티(Serendipity)는 의도하지 않은 발견, 뜻밖에 발견한 행운 등을 지칭하는 단어입니다. 과학분야의 연구에서 실험 도중 실패해서 얻는 결과에서 중대한 발견, 또는 발명을 한 경우를 일컫기도 합니다. 글러브를 착각해 선물한 것이 류현진을 왼손 투수로 길러낸 사연도 대표적인 세렌디피티입니다.한 남자가 사냥감을 찾아 풀 숲을 헤치고 다니다가 집에 와 보니 바지에 온통 씨앗들이 달라 붙어있습니다. 발명가였던 남자는 반짝이는 영감을 얻습니다. 씨앗은 갈고리 모양의 작은 가시로 둘러 싸여 있습니다. 바지에는 걸쇠가 될 그물조직이 있어 씨앗이 달라붙을 수 있었던 겁니다. 이 우연한 경험을 통해 흔히 찍찍이로 알고 있는 접착 도구가 세상에 등장합니다. 벨크로 테이프는 스위스의 전기 기술자 메스트랄이 세렌디피티적 행운으로 발명해 돈방석에 앉게 한 녀석입니다.페이스북은 짖궂은 남학생들이 하버드 여학생들 사진을 두 장씩 비교해 보면서 인기 투표하는 장난으로 시작했지만 곧 하버드생들이 서로 프로필을 보면서 안전하게 사귈 수 있도록 정보를 제공하는 쪽으로 발전합니다. 결과는 어마어마한 트래픽 발생. 주커버그는 이 세렌디피티를 사업으로 승화시킨 거지요.공기처럼 가득한 행운을 삶으로 끌어들이는 힘이 필요합니다. 세렌디피티는 우연히 다가오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오른손잡이 열 살 꼬마에게 왼손잡이 글러브를 선물한다고 다 메이저리그를 평정하지 않지요. 평소에 얼마나 자기 분야에 몰입하고 사색하고 연습하느냐가 행운을 볼 수 있는 눈을 뜨게 해 줍니다. 물이 99도까지 끓지 않다가 1도 차이로 기체로 변하는 것처럼, 세렌디피티의 임계점을 넘길 수 있는 힘이 있어야 행운이 우리 삶으로 흘러듭니다.헤르만 헤세는 말합니다. “우연이란 원래 없는 것이다. 간절히 소망했던 사람이 그것을 발견했다면 그것은 우연이 아니라 그 사람 자신이, 그 사람의 소망과 염원이 우연처럼 보이는 것을 그것을 가져온 것이다.”/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 대표

2019-05-23

싸이와 BTS

서의호 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세계를 휩쓸고 있는 한국의 젊은이들이 있다.미국 방송들은 60년대 영국의 비틀즈가 미국에 상륙해서 당시 젊은이들을 흥분의 도가니로 빠뜨렸던 상황과 현재의 상황을 비교 방송하고 심지어 비틀즈 복장을 입혀 방송에 출연 시키기도 하고 있다. 또한 미국 뉴욕을 상징하는 건물인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이 이 그룹의 방문을 기념해 보랏빛으로 물들었다. 이 그룹이 한국이 배출한 방탄소년단(BTS)이다.이날 BTS는 미국 최대 라디오 방송사인 아이하트미디어(iHeartMedia) 라디오 라이브 쇼 출연에 앞서 인근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을 찾았는데, 이에 빌딩 측은 이날 이 라디오 방송이 전파를 탄 오후 7시를 시작으로 이후 매시 정각부터 5분 동안 상층부 LED 조명을 BTS를 상징하는 보라색으로 바꿨다. BTS는 최근 총 6회의 미국 공연에서 32만 관객을 동원하면서 대성공을 거두고 남미 투어에 들어갔다고 한다. 남미 투어도 미국투어처럼 인터넷 판매 수 분만에 매진되었다는 소문이다. BTS는 빌보드 차트 1위를 세 번이나 했다. 한국 최초이기도 하지만 세계적으로도 드문 일이다.이런 돌풍을 일으킨 한국의 음악은 7년 전인 2012년에도 있었다. 가수 싸이의‘강남스타일’이 그것이다. 미국의 거의 모든 대학과 많은 나라의 도시들이 강남스타일 플래쉬몹(Fresh Mob·길거리 댄스)을 만들어 유튜브에 올렸다. 당시 필자가 감독하여 만든 ‘포스텍 강남스타일’은 현재 유튜브 조회 수 30만을 넘었다.싸이는 유창한 영어를 구사하면서도 한국말로 ‘강남스타일’을 노래하면서 전 세계 투어를 하고 미국 뉴욕의 타임스퀘어를 장악했다. 빌보드 차트 2위까지 갔다. 한국 대학 공연으로 귀국만 하지 않았다면 1위까지 갈 수 있는 상황이었다.세계적으로 휩쓴 음악은 과거에도 있었다. 60년대 영국의 비틀즈와 70년대 필리핀가수 프레디 아길라가 불러 세계를 휩쓴 ‘아낙(Anak)’이란 노래, 그리고 80년대 스페인 그룹 로스델리오의‘마카레나’가 그것이다. 그러나 필자의 견해로는 아낙이나 마카레나는 리듬이 단조로와 싸이의‘강남스타일’보다 못하고 춤의 다양성에서 뒤진다.그리고 현재 BTS의 열풍은 비틀즈에 필적한다. 추세를 좀더 기다려 봐야 하겠지만 현재로는 비틀즈를 능가할 수도 있는 추세이다.싸이와 BTS를 보면서 진정한 한국의 한국만의 국제화, 세계화가 무엇인가 생각해 보게 된다. 결국 세계화란 결코 국수주의가 아닌, 세계로 나아가 그들의 정서와 호흡을 같이하고 어울리는 것 아닐까? 세계의 모든 국가, 국민들과 함께 어울리면서도 한국을 알리고, 세계인들과 함께하면서 그들로부터 인정받을 때 그것이 진정 국제화, 세계화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전 세계를 뛰어다니며 외국어로 상품을 설명하면서 한국 상품을 파는 세일즈맨들. 한국 문학을 알리기 위해 우리 문학 작품을 외국어로 번역하는 작가들. 외국에서 제품 생산기지를 지키고 각종 건설을 하고 있는 기업인과 근로자들. 해외대학에서 강의하면서 각종 학회에서 발표하는 한국 학자들, 외국에서 한국어·한국문화를 가르치는 문화원들은 모두 한국의 세계화의 첨병이다.스포츠도 마찬가지이다. LPGA를 호령하는 한국 여자 골퍼들이나 피겨의 여왕 김연아 선수, 축구의 손흥민 선수 등은 세계에 한국을 알렸다.이제 우리 문화, 체육, 과학, 기술 모든 분야에서 세계로 나아가고 있다. 이제 세계화에 부응하는 국민적 정서가 필요하다. 그리고 필요한 인프라도 필요하다.싸이와 BTS가 펼쳐놓은 세계와 어울리는 장에 힘을 모을 때가 아닐까?

2019-05-23

스승의 진정한 미덕

김태곤 대백프라자갤러리 큐레이터1년 중 기념일이 가장 많은 달은 당연 오월인 것 같다. 계절의 여왕이라는 별칭에 걸맞게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 ‘성년의날’, ‘부부의날’, ‘근로자의날’과 함께 ‘발명의날’, ‘방재의날’, ‘바다의날’ 등 다양한 기념일들이 한 달을 정신없이 만들고 있다.필자는 유통업체에 근무하다보니 그중에서 어린이날은 가장 손이 많이 가고 바쁜 행사준비로 분주한 시간을 보내야 했다. 올해도 꼬마화가들의 그림 잔치인 어린이 미술대회가 무사히 마무리되고 긴 한숨을 내쉰다. 4∼5월만 되면 어린이날 기념행사와 축하공연 준비에 쫓겨 생활하다 보면 어린이날 뒤에 이어진 어버이날은 늘 정신없이 지나가 버리는 것 같다. 그리고 며칠 후 다가오는 스승의 날은 비교적 여유를 되찾으며 기념일이 주는 의미를 되새겨 보게 된다.“스승의 은혜는 하늘같아서 우러러볼수록 높아만 지네. 참 되거라 바르거라 가르쳐주신 스승은 마음의 어버이시다. 아 아 고마워라 스승의 사랑. 아 아 보답하리. 스승의 은혜” 학창시절 이맘때면 늘 불렀던 노래처럼 스승은 마음속에 늘 어버이로 자리매김해오고 있다. 아마 이런 감정은 필자만의 혼자 생각은 아닐 것이다. 초등학교 학생시절 담임선생님부터 대학 은사님, 사회생활을 하면서 모시게 되었던 선생님까지 인생을 살아오며 진정한 스승은 참 많은 것 같다. 그분들은 학문을 가르쳐주며 인성을 일깨워주기도 했고, 더불어 인생을 스스로 살아가는 지혜와 용기를 전해주셨다. 일찍 세상을 떠나 제자들의 기억 속에서 까마득히 잊혀진 분들이 계시는가 하면 아직까지 제자들의 삶의 버팀목이 되어주시는 참스승도 계신다. 그분들이 계시기에 늘 감사하고 행복하다.세계적인 과학자 아인슈타인은 “스승으로서 최고의 미덕은 창조적인 표현과 지식을 통해 학생들을 일깨우는 일이다”라고 말했다. 단순히 학문을 전달하는 선생님보다는 학생들의 의식을 일깨우고 창의적인 사고와 행동을 스스로 할 수 있게 자극과 격려를 전해주는 현대의 교육법이 진정한 선생의 역할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현대사회는 세계화, 정보화, 고도의 기술화, 다양화가 가속화되어 지식의 양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인간의 창의적 사고력을 필요로 하고 있다. 그리고 최근 인간의 지적능력을 정의하던 기존의 방식에 대한 비판이 일어나면서 개인의 적성과 소질, 특기 등 계발을 통해 창의성 신장과 창조적 표현능력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여기에서 ‘창의성’이란 단순한 능력이나 성질이 아닌 복합적인 성질이 하나로 통합된 것을 말한다.즉 앞으로 현대사회가 기대하는 진정한 교육은 창조적인 인격형성에 공헌할 수 있는 것으로 발전해 나갈 것을 시사하고 있다.현대교육은 이처럼 우리가 흔히 세계로부터 분리, 독립되어 있다고 여기는 개인에 한정되어 있으며, 자아(ego)를 극대화하는데 초점을 둔다. 교육의 궁극적인 목적은 이른바 개별 주체로서의 자아실현이다.다시 말해 인간의 내면에 지니고 있는 천성, 곧 타고난 소질과 성품을 보호, 육성하는 과정을 의미하기도 한다. 나아가 교육을 받는 피교육자가 가지고 있는 ‘성장하는 힘’, ‘창조적 능력’을 계발시켜 줌으로써, 그 자발성과 창조성을 충분히 조장시켜 자립을 키워주는 것을 의미한다.오늘날 현대사회에서 교육목적은 시대와 환경에 따라 그 목적하는 바가 변화되며 설정해 왔지만 교육 그 자체가 정의하는 바대로 인간을 인간답게, 사회와 국가에 바람직한 인간으로 만드는 것을 가장 이상적으로 생각하였다.다가오는 스승의 날을 맞아 현대교육의 진리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한다.

2019-05-23

갈라파고스 신드롬

갈라파고스 신드롬은 세계적인 기술력으로 만든 상품이지만 자국 시장만을 생각한 표준과 규격을 사용해 국제적으로 고립되는 현상을 가리킨다. 즉, 다윈이 발견했던 고유종들은 대륙에서 멀리 떨어진 갈라파고스섬에서 독자적으로 진화를 거듭했는데, 일본 휴대전화 역시 최고의 기술을 가졌지만 세계시장 흐름과는 동떨어진 상황을 나타낸다.일본 휴대전화 인터넷망 아이모드의 개발자인 나쓰노 다케시 게이오대 교수가 맨 처음 이 용어를 사용했다. 일본 통신산업은 세계 어느 나라보다 빠르게 모바일인터넷, 모바일 TV 등이 상용화됐으며, 휴대전화 기술은 1999년 이메일, 2000년 카메라 휴대전화, 2001년 3세대 네트워크, 2002년 음악파일 다운로드, 2004년 전자결제, 2005년 디지털TV 등 매년 앞선 기술을 선보인 바 있다. 일본 내 3세대 휴대전화 사용자가 2009년 들어 미국의 2배 수준인 1억 명에 이를 정도였다. 하지만 커다란 내수시장에 만족해 온 일본은 국제 표준을 소홀히 한 탓에 경쟁력 약화라는 치명적인 약점을 만들어 차세대 스마트폰 생태계 앞에 무너지고 말았다. 정부와 의회가 각종 규제로 생태계를 보호했지만 이종 생태계가 진입하자 연약한 생태계는 그대로 파괴되고 말았다.이같은 갈라파고스 신드롬은 우리 사회 주변에도 널려 있다. 대표적인 예가 중소기업 적합업종 지정이다. LED 조명, PC 제조 등에 대해 중소기업 적합업종을 지정함에 따라 삼성과 LG의 제조와 생산은 막았지만 필립스, 레노버 등 글로벌 업체를 막을 수 없었다. 최근 사회적 물의를 빚고 있는 우버, 에어비앤비, 인터넷은행, 자율주행차, 카풀 규제 등도 갈라파고스 신드롬의 하나다. 못된 규제임을 인식하지만 시민단체와 택시기사들의 표를 의식해 눈을 감는다. 갈라파고스 신드롬의 해법은 승차공유 규제는 풀되, 예측 가능했던 삶이 무너진 이들을 어떻게 설득하느냐에 달렸다. 이미 자율주행차 시대로 굴러가는 시대의 수레바퀴는 브레이크 없이 가속도가 붙고 있는 데, 이를 중재해야 할 정부는 적극적인 노력 없이 정치권과 업계 눈치만 살피고 있어 걱정이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19-05-22

성공하여 무엇하는가

장규열 한동대 교수놀랍고 반가운 일이 벌어졌다. 애틀란타의 작은 사립대학 모어하우스칼리지(Morehouse College)에서 졸업축하 연설을 하던 로버트 스미스(Robert F. Smith)가 올해 졸업생들의 학자금대출을 모두 갚아주겠다고 발표한 것이다. 이를 들은 졸업생들과 교수들은 물론 단상에 앉아있던 총장마저도 처음 듣는 이 경이로운 소식에 놀랄 뿐이었다. 약 400명에 달하는 졸업생들은 이제 졸업하면 거친 사회에 나가 바로 그 대출금을 갚아야 할 처지에 놓였던 터에, 이 소식은 그야말로 크나큰 해방감을 가지게 하였을 것이다. 그가 대신 갚아 줄 대출금은 줄잡아 500억원에 달한다고 한다. 부호라서 후배들을 위하여 선뜻 좋은 뜻을 발휘한 일이지만, 아무리 돈이 많아도 이 정도의 후의를 발휘하는 것은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것이다.언론은 그가 거액을 내어놓았다는 점에만 주목하고 있지만, 그 발표 바로 앞뒤에 그가 무엇이라고 하였는지 주목하여 보자. 발표 직전에 그는 ‘졸업생 여러분에게 한 가지 도전하고 싶다’고 하였다. 졸업생들을 위하여 거액을 희사하겠다고 발표할 것이면서, 바로 그 기부행위가 당신들에게 구체적인 도전이 될 것이라는 것이다. 어떤 도전이었을까. 대출금상환을 위한 기부를 실현하겠다고 말하고 나서, 그는 ‘여러분이 사회에 나가 꼭 같은 일을 다시 할 수 있도록 최선을 던지며 열심히 살아 달라’고 요청하였다. 졸업생들은 물론 함성과 함께 박수로 반응하였다.오늘날 대학교육비가 천정부지로 올라가고 있음을 생각할 때, 학생들 어깨를 짓누르고 있었을 대출금의 무게는 얼마나 무거웠을까. 한 순간에 이를 갚아 주겠다는 선배는 얼마나 감사한 천사였을까. 기부와 함께 선배가 던진 도전의 의미를 그들은 얼마나 무겁게 받았을까.모어하우스칼리지는 미국 인권운동의 상징격인 마틴루터킹(Martin Luther King, Jr.)목사를 배출한 대학이다. 1948년에 졸업한 그가 그 유명한 ‘내게 꿈이 있습니다(I have a dream.)’연설을 통하여 미국흑인 인권역사를 바꿔내기까지 그를 사로잡았던 것은 대학에서 가르친 ‘삶을 함께 나누는’ 기준이었다고 한다.‘모든 이들이 누릴 수 있는 세상을 구현하기 위하여 신념과 소신을 가지고 노력하되, 그 모든 소득과 이익을 이웃과 함께 나누는 공동체를 실현하며 살아라.’ 졸업식 연설을 맺으며 그는 이 생각을 졸업생들과 함께 다시 힘주어 다짐했을 것이다. 학교와 공동체의 전통이 만들어지고 세대를 타고 흐르는 모습을 세계가 목격한 것이다. 이를 언론이 보도함에 있어 ‘돈의 크기’에만 집중한 것은 사뭇 아쉬운 부분이다.우리는 어떠한가. 자본주의의 본산인 미국에서 오히려 의미있는 기부와 뜻을 새긴 다짐이 일어나고 있는 때에 우리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가. 경제와 재정은 돈보다 높은 가치의 발현을 위하여 얼마나 수고하고 있는가. 재력이 소중한 디딤돌이 되어 도처에서 선하고 좋은 일이 많이 일어나도록 우리는 가르치고 있는가. 수고와 노력을 기울여 쌓아올린 경제력을 이웃과 사회에 희망이 되도록 후하게 내어놓는 부자들을 더 자주 만나보고 싶다. 욕심으로만 쌓으면 남을 위하여 쓸 준비를 할 겨를이 없을 터이다. 벌기 전에 다짐하는 훈련도 필요하지 않을까. 자본주의에 충실한 시스템을 신뢰하되, 어려운 이웃이 가진 가능성과 미래를 향한 도전에 믿음과 기회를 제공할 줄도 아는 사회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졸업식 연설을 마치면서, 선배 연사는 졸업생들을 모두 일으켜 세우고 서로 포옹할 것을 요청하였다. ‘성공적인 삶을 살아내기 위하여 누구보다 열심히 살되, 성공의 결실은 반드시 당신이 속한 공동체와 함께 나누는 사람이 되라’고 힘주어 강조하였다. 어떻게 성공할 것인가. 당신의 성공은 누구와 어떻게 나눌 것인가.

2019-05-22

물회, 단맛과의 싸움

병아리는 태어나서 처음 본 대상을 어미로 알고 따른다. 외지인에게 포항물회도 마찬가지다. 처음 만난 ‘포항물회’가 ‘진짜 포항물회’가 된다. 불행히도 처음 먹어본 포항물회가 수준 이하면? 포항물회는 맛없는 음식, 엉터리가 되고 만다.포항물회 사이에 맹물과 고추장, 물엿 덩어리 초고추장, 육수 슬러시를 둘러싸고 ‘다툼’이 진행 중이다. 외지 관광객들은 알 리가 없다. 포항 토박이들은 알면서 짐짓 모른 체한다. 몇 차례 물어보면 “나는 이 집 간다”라고 말한다.회(膾)와 물회 이야기다. 물회도 회의 한 종류다. 회의 역사는 길지만, 물회의 역사는 짧다. 물회의 역사도 길 테지만, 상업화의 역사는 짧다. 조선 시대 회 이야기로 글을 연다.◇ 금제작회(金虀斫膾)를 아시나요?두어 해 전, 어느 지면에 ‘금제작회’를 소개했다.“우리 생선회는 일본식, 일본에서 받아들인 문화”라는 말이 틀렸다고 이야기했다. 조선 시대에도 여러 종류의 회나 회 문화가 있었고, 그중 하나가 바로 ‘금제작회’라고 했다.멀리서 보낸 햇생강 어찌나 고마운지/시냇가 별장 채마밭에서 금방 캐낸 것이리라/홀연히 생각나는 금강의 그 별미/불그스름 여린 싹들 금제작회(金虀斫膾) 맛이라니계곡 장유(1588∼1638년)의 ‘계곡선생집_제33권’ 칠언 절구 중 ‘차운하여 나응서에게 수답하면서 생강을 보내준 데 대해 사례하다’의 한 부분이다. 여기에 금제작회가 나온다.햇생강을 보낸, 남간 나응서(1584∼1638년)는 문신으로, 이괄의 난과 병자호란 때 의병을 모집했던 의병장이었다. 몇 차례 벼슬살이를 했지만, 생애 대부분을 향리에서 검약한 선비로 살았다.계곡 장유와 남간 나응서는 호화로운 삶을 살았던 이들이 아니었다. 선물로 보낸 ‘시냇가 별장 채마밭에서 캐낸 햇생강’이 대단한 물건이 아니듯이 ‘금제작회’ 역시 대단한 음식은 아니다.‘금제작회’는 ‘금제’와 ‘작회’다. 금제는 금빛이 나는 푸성귀 정도다. 시의 한 구절인 ‘불그스름한 여린 새싹’이 바로 ‘금제’다. 여뀌로 추정한다. ‘작회’는 잘게 썬 회다. 금제작회는 금제옥회(金虀玉膾)라고도 부른다. 금제옥회는 ‘좋은 채소를 곁들인, 뽀얀 회’다.문제는 금제작회에 덧붙인 설명이다. “서리 내린 뒤 석 자 미만의 농어[鱸魚]를 잡아 회를 뜬 뒤 향기롭고 부드러운 화엽(花葉)을 잘게 썰어서 묻혀 먹는 것”이라는, 덧붙인 문장을 그대로 옮겼다. 서리 내린 후의 부드러운 꽃잎은 국화일 것이다. “국화, 국화 꽃잎도 먹느냐?”는 질문은 어리석다. 교산 허균(1569∼1618년)은 ‘도문대작’에서 서울(한양)의 계절 음식으로 ‘국화 화전(菊花 花煎)인 국화병(菊花餠)’을 손꼽았다.주변에 호사가, 호기심이 많은 이들이 있다. ‘금제작회’를 읽고, 죄다 연락이 왔다. 내용은 뻔하다. “빨리 농어를 구해서 국화 화엽에 찍어 먹어보자”는 것이었다.금제작회, 금제옥회는 특정한 회를 가리키는 표현이 아니다. 좋았던 회를 일반적으로 표현한 단어다. 예나 지금이나 시(詩)는 얼마쯤의 ‘과장’을 더하기도 한다. 내용은 단순하다. ‘채소와 더불어 먹었던, 가늘게 썬 뽀얀 회’다. 이게 국화 꽃잎 운운하는 통에 대단한 회로 부풀려진 것이다.회를 다른 식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목재 홍여하(1620∼1674년)는 조선 후기 문신이자 향리의 큰 유학자였다. 벼슬도 높았지만, 안동, 예천, 상주 등 지금의 경북 북부 지방에 은거하며 많은 글을 남겼다. ‘목재집 제2권_시’에 나오는 ‘죽파헌(竹坡軒)의 여덟 경치를 노래하다’ 중 한 부분이다(시탄의 가을 낚시).푸른 마름 물가에서 고깃배를 저으니/하룻밤에 가을 물이 삿대 반쯤 줄었네/낚시 마치고 등해(橙薤) 가져오라 재촉하는데/석양에 뛰어오르는 물고기가 번뜩이네예나 지금이나 낚시꾼들 혹은 낚시꾼 주변 사람들은 성질이 급하다. 낚싯대도 챙기기 전에 회부터 찾는다. ‘등해(橙薤)’의 ‘등(橙)’은 귤, 등자 나무, 등자 나무 열매 등을 이른다. 귤은 제주 특산으로 구하기 힘들었으니 탱자 등 신맛이 나는 무엇이었을 것이다. ‘해(薤)’는 염교다. 조선 시대 기록 여기저기에 귤이나 탱자 종류를 짓이겨 회와 더불어 먹었다는 내용이 나타난다. 귤, 탱자와 더불어 염교도 회와 더불어 먹는 것이다. 더러 ‘등해’를 회와 채소를 모은 ‘생선회 모둠 세트’로 여기기도 한다. 역시 금제작회의 다른 버전이다.조선 시대에는 ‘가늘게 썬 회’를 최고로 쳤다. 시작은 중국 공자다.공자의 ‘논어_10편_향당_8장’에 ‘食不厭精 膾不厭細(사불염정 회불염세)’라는 표현이 나온다. “(공자께서는) 밥[食, 사]은 정히 지은 것을 싫어하지 아니하셨고, 회는 가늘게 썬 것을 싫어하지 아니하셨다”는 표현이다.조선 시대 내내 이 문장은 두루 인용된다. 고종 시대, 경연에서도 이 표현은 나온다. 어린 국왕을 두고 노대신들이 묻고 설명한다. “‘공자께서 잘 지은 밥과 잘게 썬 회를 좋아하셨다고 하면 될 것을 왜 굳이 싫어하지 아니하셨다’라고 표현했을까요?”가 질문이다.답은 “굳이 구복(口腹)을 위하여 좋은 음식을 찾지 아니한다”이다. 잘게 썬 회가 좋지만, 맛있게 먹기 위하여 굳이 힘들여 찾지는 않는다는 뜻이다. “밥상에 앉아 반찬 평하거나 타박하지 말라”는 말과 일맥상통한다. ‘싫어하지 않다[不厭]’는 군왕과 유학자의 도리다.금제작회, 금제옥회도 마찬가지다. 잘게 썬, 채소 곁들인 회가 좋지만, 굳이 구복을 위하여 찾지 않는 것이 옳다.◇ 문제는 ‘단맛’이다포항물회도 마찬가지다. 문제의 핵심은 단맛이다.어느 물회나 마찬가지다. 시작은 어부, 바닷가의 일상 음식이다. 물회의 대상은 ‘그 지역에서 가장 많이, 흔하게 잡히는 생선’이다. 그중에서도 상품성이 떨어지는 잡어다. 포항물회는 가자미다. 가자미는 종류를 바꿔가며 1년 내내 잡힌다.포항에서 널리 먹었다는 ‘등 푸른 생선 물회’도 마찬가지다. 진귀한 생선이 아니라, 흔하게 잡히는 생선이다. 겨울철의 고등어, 청어, 방어 등이다.이른 아침 바다로 나간다. 바쁘다. 제대로 밥 먹을 틈이 없다. 논밭은 농부를 기다려 주지만, 바다는 어부를 기다려 주지 않는다. 일을 마치고 왔을 때도 마찬가지다. 배가 항구에 들어오면 더 바빠진다. 여자들도 한가하지 않다. 마땅히 밥상을 차리기 힘들다. 잡어 몇 마리를 뼈째 썬다. 고추장은 맛도 있지만, 생선 비린내를 가린다. 쉽게 구할 수 있는 무 등을 썬다. 거칠게 썬 회와 고추장, 무 썬 것이 뒤섞인다. 비벼서, 밥 한술, 비빔 회 한 젓가락을 입에 넣는다.문제는 ‘국물’이다. 국물 없는 밥은 맨밥이다. 맨밥은 목이 메고, 눈물이 난다. 멀리 타지로 떠나는 아들, 딸에게 따뜻한 밥 한 그릇, 국 한 그릇 먹이지 못한 ‘엄마’는 가슴에 못이 박힌다. 한민족에게 국물 없는 밥상은 없다. 회와 밥이 조금 남았다. 회에 맹물을 붓는다. 드디어 국물이 있는 밥상이 된다. 물회다.‘보이지 않는 싸움’의 시작은 ‘단맛’이다. 원형 포항물회는 달지 않다. 불행히도 외지 관광객은 단맛에 길들어 있다. 대부분 가게가 상당히 단 물회를 내놓는다.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단맛이 물회의 맛을 넘어선다는 점이다.단맛 물회와 전통 물회 사이에 보이지 않는 경쟁이 있다. ‘액상과당 잔뜩 넣은 육수 물회’와 전통 고추장을 사용한 물회 사이의 경쟁이다. 외지 관광객은 알 리가 없다. 단맛을 좋아하는데 전통 고추장, 맹물을 만나면 “아무 맛이 없다”고 타박한다. 생선 고유의 맛을 즐기는 이가 단맛이 강한 물회를 만나면 “너무 달아서 입에 넣기 힘들다”고 불평한다.너무 달지 않은, 전통 방식 ‘고추장 비빔 회, 맹물’을 내놓는 몇 집을 소개한다.죽도시장 안의 ‘승리회식당’은 고추장으로 비비는 전통 물회가 가능하다. ‘포항물회’에 대한 자부심이 있다. 북부시장의 ‘오대양물회’는 ‘고집’이 세다. 여전히 비빔 회를 고집하고, 손님이 육수를 찾으면 ‘얼음 몇 조각 넣어서 먹는 것이 맞다’고 말한다. 북구 여남동의 ‘태화횟집(태화회식당)’도 고추장, 맹물 물회가 가능한 집이다.북부시장 안의 ‘경아횟집’. 공간이 좁다는 점 빼고는 흠잡을 데 없다. 비빔 회를 고집하고, 가게 앞에서 회 써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생선의 싱싱함은 의심할 필요가 없다.도구리 ‘세영자연산활어회’은 포항에서도 외진 곳에 있다. 형제가 생선 공급, 횟집 운영을 나눠서 한다고 들었다. 횟감이 아주 좋다. 구룡포까지 나갔다면 ‘해궁회타운’도 권할 만하다. 경치가 좋고 반찬도 정갈하다. 전통적인 고추장 물회가 가능하다.오래전부터 유명한 ‘새포항물회’ ‘포항특미물회’도 전통적인 고추장, 맹물 물회가 가능하다. 북부시장 부근, ‘명천식당’과 ‘울릉천부식당’은 ‘등 푸른 생선 물회’가 아주 좋다. ‘명천식당’은 물회에 생미역을 내놓고, ‘울릉천부식당’은 미역과 쪽파 혹은 썬 대파를 내놓는다. 두 집 모두 추천한다.회 맛을 넘어서는 단맛이나 참깻가루 대신 ‘금제작회의 국화잎’ 혹은 귤을 짓이겨 넣었던 상큼한 물회를 기대한다. 음식은 상상력이다. /맛칼럼니스트 황광해

2019-05-22

3억분의 1 확률 대신 3억번 도전하기

인도의 가난한 농사꾼 집에서 태어난 만지히는 어릴적부터 사랑을 키워오던 데비와 결혼합니다. 밖에서 밭을 갈며 고생하는 남편을 위해 데비는 도시락을 싸 밭으로 오던 중 넘어져 크게 다치는 사고가 발생합니다. 가까운 병원을 가기 위해서는 산을 돌아 88㎞를 아내를 업고 뛰어야 했습니다. 데비는 병원에 도착하기 전 숨을 거두지요. 아내를 잃은 만지히는 스물 여섯인 1960년에 아내를 앗아간 마을 앞의 거대한 산을 뚫어 길을 만들기로 결단합니다. 길을 만들 수만 있다면 80㎞ 넘는 길을 돌아서 가지 않고 단 1㎞ 거리에 병원이 있고 학교도 3㎞만 걸어가면 나옵니다. 문명의 물꼬가 트이는 셈이었지요.만지히에게는 도와줄 사람이 한 명도 없습니다. 그는 혼자의 힘으로 손수 망치와 정 단 두가지 도구만으로 산을 뚫기 시작합니다. 쿵, 쿵, 쿵. 거대한 해머로 바위를 깨부숩니다. 톡, 톡, 톡. 작은 망치와 정으로 바위를 잘게 부숴 나눕니다. 삽으로 흙을 퍼서 등짝의 지게에 옮겨 담습니다. 눈물 흘리며 먼 길을 걸어 흙을 버리고 다시 돌아옵니다. 이 일을 하루, 이틀, 열흘, 한 달. 그리고 1년을 반복합니다. 봄이 오고 여름이 가고 가을이 왔다가 추운 겨울이 할퀴고 지나갑니다. 다쉬라트 만지히는 아내를 잃고 미쳤다는 주위 사람들의 수군거림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도 멈추지 않고 바위를 깨고 흙을 퍼 나르지요.10년을 멈추지 않고 일을 계속하지요. 산이 많이 깎여 있습니다. 사람들은 내심 놀라지만 아무도 도와주지 않습니다. 11년, 12년... 만지히가 마흔 여덟 살이 되는 22년째. 세상 모든 사람들은 우공이산의 기적을 목격합니다. 산 허리가 잘리고 산 너머 도시까지 길이 뚫린 겁니다. 1982년의 일입니다. 무모한 도전이 22년만에 결실을 맺습니다.세상이 팍팍합니다. 앞길을 가로 막는 산들이 하나 둘이 아니지요. 힘겨운 삶. 높은 장벽. 이런 것들 때문에 지친 사람들은 복권 한 장을 사들고 3억 분의 1의 확률에 잠시나마 달콤한 꿈에 젖어 현실의 고단함을 잊기도 합니다. 3억 분의 1 확률에 자신을 맡기는 것이 아니라, 곡괭이질 해머질 3억 번을 반복할 각오를 하는 무서운 사람들이 있습니다. 세상은 이런 돈키호테 같은 사람들이 있어 살맛이 납니다. 자본과 권력으로 모든 것이 움직이는 이 시대에 맨주먹으로 세상을 바꿔 놓는 만지히나 우공 같은 사람들이 있기에 우리도 꿈을 꿀 수 있는 것 아닐까요?/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 대표

2019-05-22

정치인의 언어

김규종 경북대 교수·노문학날마다 마주하는 뉴스에 가장 많이 나오는 직업은 무엇인가. 필시 정치인일 것이다. 정치의 요체가 분배에 있고, 그것의 실행주체가 정치인이기 때문에, 우리 모두는 정치인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그렇다면 정치인의 밑천은 무엇일까?! 자의반 타의반으로 들여다보게 되는 국내와 세계정세의 변화양상을 보면서 가지는 의문이다. 무슨 자산을 가지고 정치인들은 지역사회와 국가, 세계를 쥐락펴락하는 하는 것일까.21세기 한국사회의 초석을 놓은 사람들은 노동자와 농어민이었다. 그들은 산업사회를 경과하면서 정치-경제적인 불평등과 소외를 우심하게 겪은 분들이다. 그들이 일궈낸 우골탑 (牛骨塔) 신화를 바탕으로 대졸자들이 양산되어 7∼80년대 수출역군이 된다. 그런 사품에도 사법-행정-외무고시가 젊은이들을 사로잡고, 그들이 한국사회의 주류를 형성한다. 오늘날 막강한 힘을 과시하는 이른바 관료들은 ‘고시족’의 선배인 셈이다.일본과 한국의 공통점 가운데 하나가 ‘관료공화국’이라는 점에 토를 다는 사람은 없을 터. 그들의 힘을 빌리지 않고서 국가를 논하는 것은 언어도단이다. 관료들의 최종 목표지점은 장차관이며, 그것을 위한 교두보는 1급 국장이다. 실무야 5급 사무관이 하겠지만, 최종 결재권자 직전의 국장이 가진 힘은 막강하다. 그들이 움직이지 않으면 우리나라는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결국 정치는 관료들을 어떻게 운용할 것인지가 핵심이다.한국사회의 최고 엘리트를 자임하는 관료집단을 효율적으로 제어하는 방도는 정치인의 사회정의와 역사관, 그리고 언어일 것이다. 정치인은 기획하고, 관료는 실행하기 때문이다. 기획의 정점에 자리하는 것은 기획자의 역사의식과 사회정의이며, 그것은 오직 언어로 온전하게 드러난다. 따라서 정치인의 언어는 그가 가진 자산과 밑천의 최대치를 발현하는 알파이자 오메가다. 요컨대 정치인의 언어를 분석하면 그의 모든 것이 명확하게 현현(顯現)하게 된다.세간에 회자되는 ‘달창(달빛창녀단)’과 ‘문빠’ 그리고 ‘독재자’ 같은 어휘는 이른바 판검사 출신 정치인들의 입에서 나왔다. 제1야당 대표자들이 대중적인 집회에서 박수와 환호갈채를 받으며 쏟아낸 반역사적이고 반지성적이며 거칠기 짝이 없는 발언이다. 우리는 박정희-전두환-노태우로 이어지는 30년 군부독재의 서슬 퍼런 폭력과 억압, 굴종과 투쟁의 시기를 지나왔다. 1980년 5·18 광주항쟁, 1987년의 87항쟁이 그것을 웅변한다.무명의 시민, 노동자와 농민이 거리에서 광장에서 지하철에서 뜨겁게 싸웠던 그 세월에 판검사 노릇했던 자들이 ‘독재와 독재자’를 논한다는 사실 자체가 실로 어이없는 노릇이다. 학살자들의 편에 서서 이 나라의 건강한 민중과 지식인을 투옥하고 중형을 선고했던 자들이 갑자기 민주주의를 외치고 있으니 말이다. 그것도 모자라서 ‘달창’과 ‘한센병환자’ 운운하는 정치인들을 볼라치면 그들의 영혼과 정신이 새삼 궁금해진다.정치인은 몸이 아니라 언어로 자신을 드러낸다. 언어는 사유의 결과물이자 등가물이기에 언어가 빈곤한 사람은 사유가 부족하거나 결석해있다. 인간은 생각하기 위해 언어를 만들었고, 언어를 가지고 사유를 표현했다. 따라서 거칠고 비속하며 저급하고 공허한 말을 쏟아내는 정치인은 영혼과 지식의 창고가 텅 비어있을 가능성이 크다. 그저 개인과 가문의 영광, 붕당(朋黨)의 이익을 위해 정치의 길로 나선 자인 것이다.언어의 빈곤은 사유의 빈곤과 동행하며, 양자는 행동의 빈곤과 위축을 초래한다. 결과적으로 그런 자들은 듣고 싶고, 보고 싶은 것만 듣고 본다.‘오디세이야’의 외눈박이 괴물 키클롭스처럼 방향감각과 균형감각을 상실함으로써 파멸과 대면하게 된다. 수준 높은 대다수 한국인은 투철한 역사의식과 사회정의로 무장한 정치인을 고대한다. 막말과 우격다짐으로 한국정치를 희화화하는 저급한 수준의 정치인과 정말 작별하고 싶다.

2019-05-22

5월 학교 편지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오랜만에 음성만 들었어도 너무 반가웠는데…(중략) 무심히 흘러간 세월 속에서도 그 누군가의 기억 속에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 행복하고 감사하네.(중략) 비록 힘들고 어려울지라도 험한 가시밭길 헤쳐 온 지난날 생각하며 열심히 또 열심히 하시게. 아울러 계획하고 추진하는 모든 일들을 통해 날마다 보람으로 마음 가득하길 멀리서 기원하겠네. 어제 우연히 버려진 신문 속에서 오랜만에 반가운 얼굴과 귀한 글(마을이 있는 학교) 잘 읽었네. 글 속에 담겨진 그 아름다운 소망이 산자연중학교에서만이라도 꼭 이루어지기를 기도하겠네. 고맙네.”고등학교 은사(恩師)님으로부터 온 장문의 문자 메시지이다. 몇 년째 안부를 몰라 5월이 다가오면 걱정이 더 컸던 은사님과 올해는 다행히 연락이 닿았다. 선생님께서는 건강하시다는 말씀과 함께 그동안의 근황에 대해 알려주셨다.그리고 마지막에 “요즘은 교육청에서 지원을 해주는가?”라며 학교 상황에 대해서 물어보셨다. 선생님께서는 교육청의 지원 없음에 대해 늘 안타까워하셨다. 그 안타까움은 대한민국 중학생이면서도 교과서마저 자비로 사서 공부해야 하는 산자연중학교 학생들에 대한 걱정에서 기인(起因)한 것이라는 것을 알기에 필자는 죄송할 따름이었다.“선생님, 아직은 교육청의 지원이 없지만 학교급식법 개정안 등 대안학교 지원에 대한 분위기가 마련되고 있습니다.” 필자의 말이 끝나자마자 선생님의 짧은 탄식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말씀하셨다. “모든 선생님들께서 열심히 하고 있으시니 분명 빠른 시일 내에 좋은 소식 있을 걸세! 학생들을 위하는 마음, 그 마음만 잃지 마시고 최선을 다 하시게!” 지금의 필자를 있게 한 선생님만의 희망 가득한 격려와 응원의 메시지였다. 희망이라고는 전혀 보이지 않던 필자의 20대, 그 어둡고 길기만 하던 20대의 험로를 필자가 꿋꿋이 헤쳐나 갈 수 있도록 불 밝혀주신 바로 그 등대와도 같은 말씀이셨다.2년여의 걱정을 떨쳐버리는 은사님과의 통화가 있은 다음 날 아침, 아직 많은 것이 부족한 제자가 걱정 되셨던지 선생님께서는 위에 인용한 장문의 응원 메시지를 보내주셨다. 필자는 꼭 말씀드리고 싶었던 감사한 마음을 답장으로 보냈다. “선생님께서는 제가 지금의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저를 다시 낳아주셨습니다. 낳아주신 은혜에 조금이나마 보답하고자 하는 마음이 지금의 제 모습을 만들었습니다. (중략) 늘 선생님께서 심어주신 뜻을 생각하며 더 열심히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선생님! 다시 한 번 제가 지금의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셔서 감사합니다.”필자는 은사님(전 경주문화고등학교 허상수 교장 선생님)을 생각하면 늘 고등학교 1학년 때가 떠오른다. 그 때는 문과(인문계)와 이과(자연계) 선택을 고등학교 1학년 2학기 때 하였다. 수학을 좋아했던 필자는 큰 생각 없이 이과를 선택했다. 당시 국어선생님이셨던 은사님께서는 계열 선택 이후 매 시간 들어오셔서 문이과 선택에 대해 손을 들게 하셨다. 필자는 당연히 이과에 계속 손을 들었었다. 다섯 번째 시간에 선생님께서는 필자를 교무실로 부르셨다. 그리고 필자에 대한 객관적인 정보를 바탕으로 문과를 추천해주셨다. 만약 그때 선생님께서 계시지 않으셨다면, 지금의 필자는 있을 수 없다. 필자는 지금까지의 선택 중에서, 또 앞으로의 선택 중에서도 그때의 선택만큼 최고의 선택은 없다고 확신한다.필자는 확신에 찬 그때의 선생님 모습을 잊을 수 없다. 필자는 그 모습을 닮은 교사가 되기 위해 교직을 선택하였다. 하지만 나름 노력한다고는 하고 있지만, 은사님의 근처에도 못가고 있다. 필자에겐 그래도 기억할 선생님이라도 계신데, 지금 우리 학생들은 어떨까? 감사함과 꿈이 부재한 교육계의 월급쟁이밖에 되지 않는 지금, 은사님과 학생들에게 죄송할 따름이다.

2019-05-22

바다를 추억함

△‘노킹 온 헤븐스 도어’혼자 간 영화관에서 본 기억도 게슴츠레한 ‘노킹 온 헤븐스 도어’라는 영화를 떠올린다. 뇌종양을 앓고 있는 루디와 골수암으로 죽어가는 마틴은 죽음의 언저리에서 바다를 향해 달려간다. ‘천국은 너무도 지리멸렬하여 바다이야기 밖엔 할 이야기가 없다’라는 이상한 믿음과 함께. 이것은 어쩌면 독일에서는 가능한 이야기인지도 모른다.독일에서 바다까지는 너무도 멀고, 그들은 겨우 바다에 이르고, 파도소리는 너무도 청명하여 어떤 기계음으로도 그것을 대신할 수 없다. 엄마가 섬 그늘에 굴을 따러 간 사이 혼자 남은 아가가 집을 보다 파도소리에 잠이 들만큼 그 소리는 감미롭다. 바다엔 파도 소리와 더불어 그들의 허름한 차와 훔쳐온 데낄라 한 병이 있다. 반병도 비우기 전에 루디는 죽어버리고 마틴은 혼자 남아, 남은 테킬라를 마시며 죽어간다.그런 와중에도 파도는 끊임없이 너울진다. 파도는 파도쳐 푸르기만 한데 영화는 그렇게, 밥 딜런의 ‘knockin’ on heaven’s door’가 천천히 흘러나오는 가운데 그렇게 끝이 난다.△산골에서 바다 생각하기신풍령을 넘으면 무주구천동이었다. 신풍령의 어느 능선에 있는 우리 동네 골터는 산동네 중에서도 산동네였다. 오죽하면 가정방문 온 선생님이 정말 하늘과 가까운 동네라며 감탄을 했을까?멀리서 다가온 구름은 신풍령을 넘지 못하고 그 고갯마루에 몰려 검게 변해갔다. 그럴 때면 어김없이 비 아니면 눈이 내렸다. 눈은 겨울이면 사흘이 멀다 하고 내렸지만, 내릴 때마다 신기하기만 하였다. 일곱 집 우리 동네엔 개도 짖지 않았고, 눈은 시나브로 쌓여 뒤안 대나무를 활처럼 휘어놓기도 하였고, 동네를 나가는 유일한 길목을 막아 놓기도 하였다. 그렇게 자주 눈이 내렸지만 여름보다는 겨울이 훨씬 수월하였다. 온통 나무였고, 온통 산이었고, 그 사이로 드문드문 드러나는 것은 하늘이었다. 커다란 강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넓은 저수지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하물며 넓은 들마저도 없었다. 골짜기는 마주보는 산과 산이 가까워 답답하게 느껴질 때도 있었다. 그런 곳이었기에 오히려 하늘과 바다가 닿아 기다란 선을 긋는다는 바다를 더욱 그리워했는지도 모른다.△첫 사랑중학교 1학년 때였다. 그렇다고 짝사랑은 아니었다. 그녀와 나는 편지를 주고받고 있었다. 그런데도 어쩌다 그녀의 눈과 마주치면, 남에게 들킬까봐 두방망이질치는 가슴을 부여잡으며 그녀의 눈을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바라만 보아도 온몸은 타들어가는 것처럼 떨렸다. 연애도 아니었고 짝사랑도 아니었다. 분명 사랑이었다. 그럼에도 남의 눈을 의식하느라 그녀 옆에서 나란히 걸을 수조차 없었다. 그렇게 시간은 흘렀고 우리의 그 이상한 관계도 시간을 따라 그렇게 기억 저편으로 달아나버렸다.우연히 졸업 전시회에 갔다가 그녀를 다시 만났다. 아무나 주려고 가져갔던 백합 한 다발을 그녀에게 안겨주었다. 우연처럼 혹은 우연이 아닌 것처럼 그녀를 다시 만날 수 있게 되었다. 몇 번 만나지도 않았는데, 입대영장이 날아왔다. 혼자 앓아야 했다. 입대를 채 일주일도 안 남겼을 무렵,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났는지 알 수 없다. 불쑥 그녀에게 결혼하자는 말을 했다. 그녀가 말할 틈도 없이 그리고 내일쯤엔 어느 바다에라도 가자고 했다. 따귀라도 때릴 줄 알았던 그녀는 얼굴을 붉히며 그러겠노라고 하였다.왜 하필이면 통영이었을까? 어줍지도 않게 그 때 읽고 있었던 ‘김약국의 딸들’때문이었을까? 아마 군대는 나의 젊음을 몰락으로 몰아가는 바다와 같은 존재로 여겨졌을 것이다. 마치 김약국의 집안을 비운과 몰락으로 몰고 가는 그 바다처럼…. 그래서 나는 통영의 쓸쓸한 겨울 바다를 느끼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통영까지는 세 시간이 넘게 걸렸다. 바다는 생각했던 것보다 아름답지도 쓸쓸하지도 않았다. 사실은 아름다운지 아닌지 느낄 겨를이 없었다. 내 옆에 있는 그녀의 흰 피부는 바다보다 더 차갑고 투명해 보였고 그래서 그녀는 더욱 아름답게 느껴졌다. 우리는 500m도 되지 않는 해저터널을 지루하도록 느리게 걸었다. 그곳을 지나는 사람은 없었다. 바다가 터널로 밀려들었다면 덜 어색했을까. 우리는 컴컴한 터널의 정적 속을 말도 없이 하염없이 걸었다. 그녀의 손은 고왔고, 목도리를 벗은 그녀의 목은 희었지만, 나는 손을 잡을 생각도 못한 채 마른침을 삼키며, 자꾸 그녀와 부딪히는 내 왼팔을 원망스러워하며, 백년보다 천년보다 더 길게 걸었다.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그녀는 곤히 잠에 취했다. 용기였을까? 참을 수 없음이었을까? 모으고 있던 두 손을 간신히 뻗어 그녀의 손등에 조심스럽게 얹었다. 그녀의 차가운 손이 스르르 풀리며 내 손을 다시 감싸 안던 그 느낌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차장 밖으로 멀어져가는 바다에는 밤이 내렸고, 바다 위 별들은 밤바람에 몸을 떨었다.△삼천포의 달나는 늘 삼천포로 빠지더니 결국엔 진짜 삼천포에서 군 생활을 했다. 저녁 식사 전에 남해로 지는 태양의 그늘은 바다마저 붉게 물들였다. 동해와 달리 드문드문 섬으로 이어지는 남해, 그리고 멀리 희미하게 보이는 남해대교와 그 사이로 석양은 앉은 자리에서 한 갑의 담배를 태우고 남을 만큼의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었다.어느 해 겨울. 아침 점호를 기다리는 우릴 물끄러미 내려다보는 그 달을 잊을 수가 없다. 꽉찬 달은 힘겹게 산을 넘어가고 있었고, 꼭 영화 ‘이티(ET)’의 포스터에서 보았던 달 만큼이나 컸고, 그 빛은 겨울 새벽바람을 잊게 할 만큼 자애로웠다.공강일서울대 강사·국문학그 생경한 모습을 보면서 엉뚱한 상상을 했다. 저 달이 바다 저기쯤에 풍덩하고 떨어지면 어떡하나 하는 그런 상상. 그러면 그 커다란 달은 깊이도 알 수 없는 바다 저 밑으로 한 없이 떨어질 것이고, 그 커다란 달에 놀란 고등어, 갈치, 숭어, 망둥이 할 것 없이 모두 뛰어오를 것이고, 그 커다란 달에 불어난 바다는 사람들이 잠들었을 저 마을로 밀려들 것이고, 파도는 누구누구 집 가릴 것 없이 담을 넘어 마당으로 마루로 몰아칠 것이라는 상상. 그 파도가 빠져나갈 쯤엔 무슨 일인가 하고 중년의 남자가 하품을 하며 방문을 나설지도 모르지. 그러면 미처 도를 따라가지 못한 물고기가 마당에 마루에 질펀하게 늘려 퍼덕거릴 것이고, 그러면 잠이 들깬 남자는 놀란 눈을 부빌 것이고, 그러는 사이 아버지를 따라 나온 세 살 박이 아들은 아랫도리도 입지 않은 채 쭈그리고 앉아 등 푸른 생선의 옆구리를 푹푹 찌르며 까르르 까르르 웃을지도 모르지.

2019-05-22

미주구리를 쓰다

송귀연수필가남편이 좋아하는 밥식혜를 담으려고 미주구리를 사왔다. 미주구리는 일본어에서 유래된 말로 물가자미의 경상도사투리이다. 미주구리라는 말이 더 친근감이 드는 것은 그 말이 주는 날 것의 어감 때문일 것이다. 밥식혜는 주로 경북 동해안지방에서 접할 수 있다. 생선과 밥을 적당히 섞어 삭혀서 만드는데 가자미와 오징어, 고둥을 사용하며 그중 최고로 치는 게 미주구리 밥식혜이다.미주구리 밥식혜를 만난 건 어느 식당에서였다. 사실 접시에 담긴 밥식혜의 형태는 먹다 남은 밥처럼 이지러진 밥알이 다른 찬들과 섞여 있는 모습에 영 비위가 상했다. 게다가 고춧가루 범벅이어서 바라보기만 해도 속이 매워 진땀까지 흘렀다. 그러나 사람들이 하도 맛있게 먹는 걸 보고 조심스럽게 한 점 먹어보았다. 그 순간 최초의 선입견은 완전히 사라지고 말았다. 새콤달콤하면서 알싸한 맛, 적당히 발효되어 쫄깃해진 생선과 아삭거리는 무의 식감은 담백하고 신선했다.어릴 적 아버지는 미주구리 생선회를 즐겨먹었다. 아버지는 미주구리회가 먹고 싶을 때면 유난히 장날을 손꼽았다. 시장가거든 잊지 말고 꼭 사오라며 집을 나서는 엄마에게 신신당부했다. 아버지는 미주구리 회를 안주로 막걸리 한 사발을 맛있게 들이키곤 했다. 눈을 지그시 감고 캬! 하며 미역과 함께 버무린 회를 한 입 가득 먹는 모습은 어린 내가 봐도 군침이 돌았다. 가자미는 한자로 비목어(比目魚)라 하며 이수광이 지은 ‘지봉유설에서는 첩류라고 했다. 미주구리는 수심 이백 미터 깊이의 모래나 펄로 된 해저에 서식한다. 우리나라 연안전역에서 잡히지만 동해의 것을 으뜸으로 친다. 차가운 바다에서 자란 것일수록 살이 단단하고 맛이 뛰어나기 때문이다. 동의보감에서 가자미는 맛이 달고 독이 없어 허약함을 보강하고 기력을 북돋아주는 생선이라고 한다.미주구리 밥식혜는 가을에 담으면 그 맛이 한결 더 난다. 가을엔 육질이 쫀득할 뿐 아니라 제 철인 가을무를 넣으면 단단해서 식혜가 무르지 않고 찰지기 때문이다. 깨끗이 손질한 미주구리를 소금과 엿기름을 뿌려 하루정도 발효시켜 둔다. 잘 발효되었으면 고슬고슬한 밥과 소금에 절인 무, 고춧가루, 생강, 마늘, 엿기름가루를 넣어 골고루 섞은 다음 사나흘 더 묵히면 맛있는 밥 식혜가 된다.미주구리는 가자미보다 기실 품위가 떨어지고 가격도 싸다. 외모로만 천한 취급을 당한다. 저라고 뭐 자존심이 없겠는가? 한번쯤 성골이나 진골인 광어, 도다리, 서대를 꿈꿔 본적은 없겠는가? 그러나 결코 헛된 욕망에 이끌려 자신의 자리를 일탈한 적이 없다. 질승문즉야 문승질즉사(質勝文則野 文勝質則史). 문장(文)이 내용(質)보다 승하면 사치스럽고 질이 문보다 승하면 거칠다는 뜻이다. 미주구리는 질이 문보다 승한 생선이다. 사치스러운 형식보다 내면의 가치를 더 소중하게 여기며 친서민적이다.물이라는 접두사는 기준치보다 모자라거나 얕잡아보는 의미로 쓰이기도 한다. 물박달나무, 물봉숭아, 물양지꽃처럼 사물과 비교하여 비슷하지만 정통이 아닌 것을 일컫는다. 물질지상주의가 지배하는 현대에서는 성공한 사람만을 최고의 가치로 인정한다. 이른바 주류와 비주류로 나누어지고, 사람들은 주류가 되기 위해서 경쟁하고 이기는 것만을 목표로 삼는다. 세상을 이끌어가는 힘은 소수의 주류가 아니고 다수의 비주류이다. 보통이라는 단어는 일견 힘이 없고 나약해보이지만 그것들이 뭉쳤을 때는 특별함을 뛰어넘는다. 물가자미야말로 갑남을녀이고 장삼이사이며 필부필부가 아닐까. 며칠이 지나자 밥식혜가 먹음직스럽게 익었다. 새하얀 쟁반에 정성스레 퍼 담는다. 식탁주변을 오락가락 하던 남편이 얼른 의자를 당겨 앉는다. 입안으로 한술 밀어 넣기 바쁘게 감탄사를 연발한다. 그리고는 “임금의 수라상이 이만할까?”라며 괜한 너스레를 떤다. 곰삭힌 미주구리 한 점을 집어 들자 동해의 깊고 푸른 파도소리가 쏴아! 하고 밀려온다.

2019-05-22

트램의 부활

프랑스 파리와 홍콩 등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트램(노면 전차)이 우리나라에서도 곧 선보일 전망이다. 국토교통부의 용역을 받아 한국철도기술연구원이 주관하는 저상트램 연구개발 과제 공모에서 부산광역시의 ‘오륙도선’이 선정돼 우리나라 1호 트램은 이르면 2021년부터 부산에서 시범 운행에 들어갈 것 같다는 소식이다.원래 전기트램의 발명은 독일 지멘스가 먼저 했으나 보급되는 실용화 단계는 미국에서 완성된다. 기존의 기차보다는 압도적으로 싼 시설비와 높은 수송능력 덕분에 트램은 불과 10년 사이 전 세계로 급속히 확산된다. 1920년 기동성이 뛰어난 버스가 보급되면서 전기트램도 점차 쇠퇴의 길로 접어들었지만 아직도 많은 나라에서는 트램을 유용한 교통수단으로 사용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1899년 서울 서대문과 청량리 사이에 트램이 처음 개통되면서 시민들의 사랑을 많이 받았다. 그러나 차량이 급격히 늘어나던 1968년을 기점으로 트램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트램은 전기를 사용해 움직이기 때문에 오염배출이 적은 친환경 교통수단이라는 장점 때문에 최근 또다시 각광을 받기 시작하고 있다. 또 지하철이나 경전철보다 공사비가 월등하게 저렴하고 노약자 등 교통약자의 이용이 용이한 점도 트램 부활의 이유가 된다. 우리나라에도 부산에 이어 울산, 대구, 인천, 대전 등 전국의 16개 지자체가 트램 도입을 추진 중이거나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특히 2층 구조의 홍콩 트램이 도시의 상징성을 나타내듯 트램을 도시의 이미지로 각색하려는 도시들의 움직임도 노골화되고 있다.최근 대구에서도 “트램, 새 교통수단으로서 가능한가”라는 주제로 트램 도입 여부를 묻는 정책포럼이 열렸다. 트램 설치는 원래 권영진 대구시장의 공약 중 하나여서 대구에서의 트램 설치 가능성은 비교적 높다 하겠다. 대구시는 동대구 역세권과 서대구 역세권을 잇는 도심 순환선과 달성선 등 몇 가지 노선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구시의 신교통 수단인 트램에 대한 논의는 지금부터 본격화 될 것같다./우정구(논설위원)

2019-05-21

지방의회가 지방자치의 핵심이다

김학홍 행정안전부 지역혁신정책관1948년 제헌헌법부터 1987년 현행헌법까지 지방자치의 요체는 지방의회에 있다.단체장은 입법에 따라 임명제부터 간선제, 직선제까지 다양한 방식이 적용되었지만 지방의회만큼은 주민들의 투표에 의한 직선으로 구성토록 헌법에 규정한 것은 지방 의회야말로 민의를 대변하는 풀뿌리 지방자치의 핵심가치이기 때문이다.이것은 지방자치단체의 형태를 다양하게 운용하는 선진외국의 사례를 살펴보아도 마찬가지이다.영국과 미국 등의 지방자치단체는 단체장을 뽑지 않고 행정전문가를 채용하는 사례도 있지만 지방의회 만큼은 주민들이 직접 뽑게 되어 있다.지난 3월 29일 국회에 제출된 지방자치법에는 지방자치의 핵심인 지방의회의 자율성과 전문성, 독립성과 책임성을 강화하는 과제들이 포함되어 있다.첫째, 지방의회 운영의 자율성을 제고하기 위해 그간 법률로 상세하게 규정해 왔던 회의운영 및 표결 방식 등을 해당 지방자치단체의 조례로 자율화하여 지역의 여건과 특성에 맞는 지방의회운영이 가능해진다.구체적으로 지방의회의장의 위원회 출석과 발언에 대한 내용, 의장의 직무대행, 표결의 선포방법 등을 지방의회의 자율적인 영역으로 넘긴다.둘째, 지방의회의 전문성을 강화하기 위해 ‘정책지원 전문인력’의 근거규정을 마련하여 지방의원의 자치입법·감사·예산심의 등을 지원한다. 지방자치단체의 사무가 점증하고 있는 현실에 비추어 지방의회의 의결과 심의사항도 증가하고 있다.정책지원 전문인력은 의원들의 자치입법과 예산안 심사 등의 과정에서 의정활동을 지원하여 지방자치의 내실화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그간 정책지원 전문인력 제도는 ‘제주특별자치도 설치 및 국제자유도시 조성을 위한 특별법’에 의거하여 제주도에서만 의원정수의 1/2규모로 운영해 왔다.제주도가 제도운영의 테스트베드가 되어 금번에는 전국으로 확산되는 셈이다.셋째, 지방의회의 독립성을 강화하기 위해 시도의회 사무직원에 대한 인사권을 시도의회의장에게 부여한다.지금까지 의회 사무기구 직원들에 대한 인사권은 단체장에게 있었다.금번 제도개선을 통해 독립적인 인사운영이 가능한 시도의회에 대해서는 시도의회의장에게 사무직원 인사권을 부여하여 의회사무처 인사권을 둘러싸고 집행기관과 의회 간의 법적공방 등이 벌어지는 갈등이 해소될 전망이다.무엇보다 집행부를 견제하고 감시해야 할 의회 본연의 기능이 더욱 강화될 것으로 기대된다.넷째, 지방의회의 책임성과 투명성을 제고하기 위해 윤리특별위원회 및 윤리심사자문위원회설치를 의무화한다.지방의회의 윤리특별위원회가 지방의원의 징계 등을 심의할 때 민간전문가로 구성된 윤리심사자문위원회의 의견을 듣고 존중하도록 하였다.그간 ‘제식구 감싸기’ 등으로 비판 받았던 징계 심사가 내실화될 전망이다.더불어 의정활동에 대한 정보공개도 강화하여 주민들의 참여와 감시를 유도한다.얼마 전 국민들의 공분을 샀던 예천군의회의 부적절한 해외연수와 같은 행태도 주민들의 감시와 제도적 보완을 통해 개선될 것으로 기대된다.주민에게 신뢰받지 못하는 지방의회는 존재의미가 없을 것이다.금번 지방자치법 전부개정을 계기로 지방자치의 핵심인 지방의회가 지역주민에게 사랑받고 신뢰받는 존재로 거듭나 지방자치 발전을 견인하기를 기대해 본다.

2019-05-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