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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단지 써 보는 것 만으로

교교한 달빛. 영롱한 별들의 움직임. 어김없이 다시 떠오르는 태양. 새로운 하루. 흐르는 강물처럼 하루 24시간은 단 한 순간도 멈추지 않고 우리 삶을 태운 채 흘러갑니다. 그대에게 시간은 어떤 의미를 갖고 있나요?피터 드러커는 말합니다. “지식노동자들의 경우, 과업 성공 여부는 전적으로 시간을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육체노동자와 달리 머리로 일해야 하는 지식노동자는 목표를 스스로 결정하고 달성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데 이때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목표 달성을 위해 효과적으로 시간을 사용하는 일입니다. 시간이야 말로 지식노동자가 결과를 얻기 위해 투입하는 가장 중요한 자원이기 때문이지요.어느 기업의 회장은 자신이 시간을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 사용한다고 확신하고 있었죠. 3분의 1은 회사 간부들과, 3분의 1은 중요한 고객을 만나는 데, 나머지 3분의 1은 지역사회 활동을 위해 사용한다고 말했습니다. 정말 그랬을까요? 시간 관리 컨설팅을 위해 막상 6주 동안 실제 사용 시간을 기록하게 한 뒤 비교해 보았습니다. 앞에서 본인이 확신에 차 말했던 세 가지 활동에는 시간을 거의 사용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회장은 대부분의 시간을 부하 직원을 독촉하는 데 사용하고 있었습니다.”피터 드러커는 조언합니다. “시간을 제대로 관리하고 싶으세요? 그렇다면 당신이 쓰고 있는 시간을 철저히 기록해 보는 일로 시작하세요.”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진 하루 24시간은 1440분입니다. 초로 환산하면 8만6천400초. 최선을 다해 내게 주어진 시간을 진정한 삶으로 이루어가는 예술. 그것이 바로 인생입니다. 눈부신 5월에는 작은 노트 하나를 준비해 내가 매일 의식하지 못한 채 사용하는 시간들의 통계를 한 번 작성해 보면 어떨까요? 단지 사용 시간을 기록하는 행위 자체만으로도 지금까지와는 사뭇 다른 시간 관리 습관을 만들어 갈 수 있다고 하니까요.류비셰프는 나이 스물 여섯에 시간통계 노트를 쓰기 시작한 후 급한 일과 해결해야 할 바쁜 일들로 해방되어 하루 10시간 푹 자기. 운동하고 충분한 휴식 취하기. 주 1회 이상 공연, 전시회 관람. 주변 사람들과 충분한 시간을 내어 대화하고 소통하기. 170권의 책 쓰기로 여유로움과 탁월한 성과. 결코 양립할 수 없을 것 같은 이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았습니다. 바쁜 일상 가운데 시간을 다스림으로 얻는 풍요로움을 만끽하는 그대의 5월이시길 손모아 응원드립니다./조신영 인문학365 대표

2019-05-01

이젠 귀한 음식, 유슬짜장과 유니짜장 ‘청요릿집’을 기억하십니까?

이제는 잊어버린 단어가 있다. ‘청요릿[淸料理]집’ ‘유니짜장’ ‘유슬짜장’ 등이다. 이 단어를 기억한다면 50대 이상 나이다. 청요릿집은 중식당의 옛 이름. 청나라, 중국 음식을 파는 집이란 뜻이다.유니짜장[肉泥炸醬]은 고기 혹은 고기와 채소를 잘게 다져서 고명, 양념으로 쓴다. 고기는 돼지고기다. 유슬짜장[肉絲炸醬]은 고기, 채소를 길게 썰어 실처럼 만든 후 고명으로 쓴다. 이제 청요릿집, 유니짜장, 유슬짜장은 대부분 사라졌다. 화상(華商)이 아닌 한국인이 운영하는 중식당이 훨씬 많아졌다.◇ 짜장면은 한식인가, 중식인가?이제는 사라진 중식당이다. 2014년 문을 닫은 경북 경주 ‘산동반점’. 화교(華僑) 장충선 씨가 운영하던 화상노포. 장씨가 70세를 넘겼다. 나이가 들면 중식당의 웍(WOK, 중화요리용 팬)을 잡는 일이 힘들어진다. 조용히 50여 년의 역사를 접었다.이제 따님 장수화 씨가 서울 은평구에서 중식당을 운영한다. 몇 해 전 따님을 통해 이 집안의 청요릿집 역사를 들었다. 여느 중식당 이야기와 크게 다를 것은 없다.“짜장면은 한식인가, 중식인가?” 대부분 잠깐 망설이다가 “중식”이라고 답한다. 북경에는 한때 ‘한쳥짜장면[漢城炸醬, 한성작장]’이 유행한 적이 있다. 한성은 서울이다. 서울 짜장면, 한국식 짜장면이란 뜻이다. 우리가 먹는 짜장면이다. 중국인들이 보기에 얼핏 보면 중국식 짜장면과 흡사한데 전혀 다르다. 지금 우리가 먹고 있는 짜장면은 중식이라기보다 한식이다.짜장면의 짜장[炸醬, 작장]은 “장을 터뜨리면서 볶는다”는 뜻. 장은 발효식품이다. 발효식품에는 탄산가스가 있다. 장을 볶으면 작은 기포(氣泡)들이 생긴다. 기포는 장을 볶는 과정에서 생기고, 터진다. ‘터뜨리면서 볶는다’고 표현한다. 짜장면은 ‘볶은 중국 장(醬)을 얹은 국수 요리’다.‘중국식 장’은 첨면장(甛麵醬)이다. 첨면장은 우리의 된장과 닮았다. 콩, 혹은 콩과 밀, 콩과 다른 곡물들을 섞고 소금과 종국(種麴)을 넣어서 발효시킨다. ‘종국’은 ‘씨 누룩’ ‘누룩의 씨’다. 정제한 효모(酵母)다. 우리가 흔히 ‘춘장’이라고 부르는 ‘중국 된장’이 첨면장이다. 첨장(甛醬)이라고도 부른다.‘첨면장’의 ‘첨(甛)’은 ‘달 감(甘)’과 ‘혀 설(舌)’이 합쳐진 글자다. 혀에 달다는 뜻이다. ‘첨(甛)’은 한편으로는 낮잠을 뜻한다. 세상에 낮잠만큼 단 것도 없다. 첨면장은 “면을 맛있게(달게) 하는 장”이다.‘춘장’은 애매모호 하다. 첨장이 춘장이 되었다는 설이 있다. 봄에 만든다고 춘장(春醬)이라고 부른다는 설도 있다. 억지스럽다. 대부분 장이 봄에 만든다. 우리의 된장도 한겨울에 장을 담고, 봄에 장 가르기를 한다. 굳이 중국 첨면장만 봄에 만든다고 주장할 일은 아니다. 또 다른 해석도 있다. 파는 한자로 총(蔥)이다. 파를 찍어 먹는다고 ‘총장(蔥醬)’이고, 발음이 바뀌어 춘장이라 부른다는 주장이다. 정설도 다수설도 없다.중국 짜장면은 한국인의 된장찌개 비빔밥이다. 우리가 “된장찌개를 밥에 얹은 다음 쓱 쓱 비벼 먹듯이” 중국인들은 볶은 첨면장을 국수에 얹어서 비벼 먹는다.◇ 이제 원형 첨면장은 사라졌다흔히, “인천 ‘공화춘’에서 짜장면이 시작되었다”고 이야기한다. 그렇지는 않다. 인천시도 이 내용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공화춘’은 ‘짜장면을 메뉴로 내놓았던 집 중 하나’다. 짜장면을 처음 들여온 것도 아니고, 처음 메뉴로 내놓았던 것도 아니다. 중국 짜장면의 역사는 수천 년을 헤아린다.‘공화춘(共和春)’은 ‘공화국의 봄’이다. 공화국은 1911년 건국한 중화민국, 현재의 타이완이다.젊은 화상 우희광(于希光, 1886~1949년)은 ‘산동회관’을 경영하다가, 중화민국 건국과 더불어 이름을 ‘공화춘’으로 바꿨다. 1912년 무렵이다. 후손들이 운영하던 ‘공화춘’은 1983년 폐업했다. 현재의 ‘공화춘’은 원래 ‘공화춘’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이름만 남았고, 국내 대기업이 상표권을 가지고 있다.짜장면 마니아들은 인근의 ‘신승반점’을 ‘짜장면 원조집’으로 여긴다. ‘신승반점’의 주인 왕애주 씨는 우희광 씨의 외손녀다. 우희광 씨는 1남 5녀를 두었고 그중 막내딸 우란영 씨가 화교 왕입영 씨와 결혼, 1남 2녀를 낳았다. 그중 맏딸이 왕애주 씨. 왕입영·우란영 부부는 ‘공화춘’에서 일하다가, 1980년 독립, ‘신승반점’을 열었다.짜장면은 중국 서민들의 일상적인 음식이다. 제대로 형식을 차린 음식도 아니고 길거리 손수레, 작은 가게에서 내놓던 서민 음식이었다.1882년 임오군란이 일어났다. 청나라 병사들이 한반도로 몰려들었다. 1883년 인천항이 개항했다. 한반도와 가까운 중국 산둥[山東]성에서 중국인이 한반도로 들어왔다. 1894년 청일전쟁. 청나라 병사들이 들어왔고 민간인들도 따라왔다. 대부분 산둥성과 가까운 인천을 통해 들어왔고 그중 일부가 한반도에 정착했다.1930년대 만주사변과 중일전쟁이 일어났다. 한반도로 연결되는 중국 만주지역은 일본군인 천지였다. 인천-산둥반도의 뱃길이 편했다. 인천이 중국인들 조차지가 되고 인천에서 중식이 시작된 까닭이다.부두 노동자들, 서민 화교들은 길거리 수레, 작은 구멍가게에서 짜장면을 먹었다. 일제강점기, 인천에는 ‘중화루’ 등 ‘5대 청요릿집’이 있었고 그중 하나가 ‘산동반점, 공화춘’이었다. 길거리 음식이 ‘공화춘’ 등 정식 가게로 들어왔다.일제강점기에 개항한 군산 언저리로 중국인들은 모여들었다. 한 사람이 건너와서 자리를 잡는다. 가족들이 통째로 들어온다. 친척, 지인도 불러들인다. 한국에 사는 화교, 한화(韓華)사회는 이렇게 자리를 잡았다. 이들은 한반도 여기저기로 옮겼다. 강원도 깊은 산골 탄광촌에도 50년을 넘긴 화상노포가 남은 이유다.경주에서 ‘산동반점’을 하던 장충선 씨의 아버지 역시 마찬가지. 1940년대 언저리 한반도로 건너왔다. 대구에 중식당을 운영하는 형이 있었다. 형네 가게에서 중식 만드는 일을 돕다가 경주로 간다. “밀가루 부댓자루를 메고 대구에서 경주까지 걸어 갔다”. 아들 장충선 씨는 1938년생. 열 살 때까지 아버지 얼굴을 보지 못하고 중국에서 살았다. 한국전쟁 직전 장충선 씨는 아버지가 사는 한반도로 건너온다. 1960년대, 장충선 씨 부자는 경주에서 ‘산동반점’의 문을 열었다.◇ ‘미공법 480조’가 짜장면의 역사를 바꾸다짜장면 역사를 바꾼 것은 미국 법령 ‘미공법 480조(Public Law 480)’다. 한국전쟁이 끝났을 무렵, 미국은 밀을 대규모 잉여생산한다. 남아도는 밀을 일본, 한국 등에 거의 무상으로 원조한다.귀하던 밀가루가 흔해졌다. 주재료인 밀가루가 흔해지니 중식당은 호경기를 만났다. 미공법 480조에 의한 원조는 1965년까지 진행되었고, 그 이후에도 밀가루 값은 쉬 오르지 않았다. 짜장면 전성시대. 이 시기, 짜장면은 중식에서 한식으로 변화한다.1960년 언저리 오늘날의 춘장, ‘한국식 첨면장’이 개발된다. 콩, 곡물가루, 물, 소금으로 만들던 천연식품 첨면장은 수급이 불안정했다. 중식당 주변의 화교 가정이 ‘수제 첨면장’을 만들었다. 화교 상인은 이 첨면장을 모아서 식당으로 배달했다. 문제는 공급 물량 부족. 수요는 늘어나는데 수제 첨면장은 부족하다.공장에서 첨면장을 만들기로 한다. 콩, 밀가루 등을 비빈 후, 짧은 시간 발효시킨다. 오래 묵은 첨면장은 색깔이 검다. 짧은 시간 발효시키면 색깔은 누렇거나 붉은색이다. 황장(黃醬)이다. 1년 묵은 첨면장도 붉은 색깔이다. 식당 주인들은 오래 묵은, 검은색의 첨면장을 원한다. 캐러멜색소를 넣는 이유다. 원형 캐러멜색소는 설탕을 태운 것. 달고 윤기가 난다. 여기에 조미료를 넣는다.1960년대 이후 한국인들이 중식당 조리사, 혹은 주인이 된다. 화상들은 대부분 은퇴한다. 경주 ‘산동반점’ 장충선 씨도 마찬가지. 1960년대, 20대의 나이로 아버지와 식당을 열었던 그는 이제 일흔이 됐다. 은퇴한 이유다.많은 화상노포가 문을 닫는다. 첨면장은 화상노포들과 더불어 사라진다. 전북 익산의 ‘국빈반점’도 문을 닫았다. 주인 유비홍 씨는 화교 2세. 아버지는 금강 유역으로 한반도에 들어왔고, 한국에서 태어난 아들 유비홍 씨는 1960년대 아버지 가게였던 ‘국빈반점’을 물려받았다.‘원형 작장면’은 장을 볶아야 한다. 웍으로 장을 볶는 일이 힘드니 물과 전분을 넣고 걸쭉하게 끓인다. 여기에 당근, 양파, 감자 등을 넣는다. 한국식 짜장면, ‘한쳥짜장미엔’이다.누구나 자기만의 ‘짜장면 맛집’을 지니고 있다. 어린 시절, 부모님 손 잡고 갔던 청요릿집 혹은 중식당이다. ‘추억’을 이기는 ‘맛’은 없다. 추억 속의 음식은 늘 최고의 음식이다. 짜장면 맛집의 순위를 따지기 힘든 이유다./맛칼럼니스트 황광해

2019-05-01

숨쉬는 땅, 여유의 바다 울진, 삶의 휴식이 되다

전찬걸 울진군수‘육지속의 보물섬’으로 불리는 울진은 동해안의 가장 주목받는 휴식과 치유의 고장이다. 하지만 예전에는 교통이 불편해 일반인들에게는 쉽게 찾아가기 어려운 오지로 여겨졌다. 지금이야 36번 국도가 직선화되고 , 인근 고속도로가 개통돼 울진 오는 길이 훨씬 수월해졌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들에게 심리적으로 울진은 거리가 있는 듯하다.대부분의 지자체들이 관광 상품을 통해 지역경제 활성화를 도모하고 있는 상황에서 접근성이 떨어지는 것은 단점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조금만 생각을 바꾸고 눈을 돌리면, 오지라는 이미지를 가진 울진의 단점은, 사람이 발길이 닿지 않아 순수하게 보존된 청정한 자연이 살아있다는 장점으로 재해석할 수 있다. 또한 하루 일정으로 오고가기 만만치 않은 만큼 울진을 찾아오면 더 오래 머물다 갈 수 있지 않겠는가.그래서 울진은 살아있는 자연을 통한 휴식과 치유가 있는 도시를 향한 준비를 시작했다.어디에 내놓아도 빠지지 않는 명품 금강송숲, 112㎞에 달하는 해안선을 따라 각각의 매력을 가진 바다, 그리고 다양한 효능으로 입소문이 난 온천까지, 일명 삼욕(三浴)이라 불리는 이 모든 것이 가능한 울진은 그야말로 기본기가 튼튼하게 다져져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기본기를 바탕에 두고 현대사회에 맞는 다양한 관광소프트웨어를 가미, 관광객들의 취향과 개성에 맞는 맞춤형 힐링 명소로서의 특별함을 만들어갈 예정이다.먼저, 올해 6월 개장을 목표로 하고 있는 금강송면 소광리의 금강송에코리움은 울진 금강송을 주제로 한 체류형 산림휴양시설이다. 금강송테마전시관, 치유센터, 금강송산책길, 황토찜방, 유르트를 비롯해 하루 150여명의 숙식이 가능한 시설을 갖추고 있다.에코리움은 숙식이 가능하지만 일반적인 펜션이나 콘도 등과는 완전히 다른 성격이다. 프로그램을 기준으로 모든 것이 통합 운영될 예정으로 가장 중요한 컨셉은 숲을 통한 쉼과 여유 그리고 치유이다. 얼마 전에 직원들이 미리 체험해 보는 시간을 가졌는데 반응이 좋았다. 미세먼지와 탁한 공기, 바쁜 일상에 쫓기며 지낸 도시인들에게는 여유롭게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좋은 휴식을 제공할 것으로 기대가 된다.에코리움이 온전히 숲에 집중되어 있다면 백암온천 주변에 조성중인 숲 체험장, 치유의 숲은 온천에서 피로를 풀고 숲에서 산림치유를 병행할 수 있는 이른바 숲과 온천의 콜라보 공간이다. 관광특구로 지정된 백암온천은 이미 입소문으로 온천의 효능이 잘 알려진 지역이다. 여기에 숲이 함께 한다면 몸과 마음의 피로를 한꺼번에 풀어낼 수 있는 1석2조의 공간이 되지 않겠는가.또 하나 울진의 변화를 위해 중점을 두고 있는 부분이 해양치유에 관한 인프라 구축이다.해양치유는 이미 유럽에서는 활성화되어 있는 부분이다. 프로그램 색깔이나 방법에 따라 휴양형 이나 치유형 등으로 나누어지기는 하지만 해양자원을 활용해서 건강과 휴양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점은 일치한다. 울진군은 2017년 해양수산부로부터 해양치유 실용화사업 지자체 공모 사업에 선정된 이후 해양치유자원을 활용한 비즈니스 모델을 개발해 왔다. 치유관련 시설은 2022년까지 368억원 규모로 평해읍 월송리 일원에 조성할 계획이다. 치유센터, RD센터, 휴양 및 체험 시설 등을 조성할 예정이고 주변에 해양레저 시설인 요트학교, 해양레포츠센터 등을 활용해 가족 모두가 즐겁게 휴식을 취할 수 있는 프로그램들을 구성해 해양 치유 1번지로 발돋움 하기 위한 다양한 노력을 진행하고 있다사실 이미 많은 지역에서 관광 화두로 힐링을 표방해왔다. 그렇다면 울진에서의 힐링은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어떤 점이 다르다고 할 수 있을까.울진에서의 휴식은 맞춤형이다. 사람에 따라 격렬하게 땀을 흘리며 운동을 하며 쉬기도 하고 아니면 아무것도 안하고 쉬기도 하고. 명상을 하기도 하고 다양한 방법이 있을 수 있다. 울진의 휴식, 힐링은 그런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가능하도록, 자신이 원하는 색깔 원하는 장소에서 원하는 방법으로 쉴 수 있도록 만들어 가려고 한다.여기에 한가지 더!누구나 쉬어갈 수 있는 울진을 위해 준비하고 있는 것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기 위한 것! 바로 친절이다.편안하게 쉬려고 떠나왔는데 찡그린 얼굴에 서비스가 불친절하다면 다시는 찾고 싶지 않은 마음이 드는 것이 당연지사이다. 그래서 울진은 친절을 생활화 하고 미소가 자연스럽게 몸에 배이도록 범군민 친절 캠페인을 지속적으로 진행하며 형식이 아닌 마음으로 손님을 맞이할 준비를 철저히 해나가고 있다.숲과 바다와 온천속이라는 자연 안에 만들어진 전문화된 치유 프로그램에 따뜻한 미소와 배려에서 느껴지는 친절문화가 더해진다면 울진의 경쟁력은 더욱 무궁무진해질 것이다.‘한 번도 안 와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온 사람은 없다’ 바로 내가 바라는, 울진이 앞으로 만들어갈 이미지이다.한번 빠지면 헤어 나올 수 없는 울진의 매력으로 다시 찾고 싶은 곳으로 기억되는 울진. 환경과 시설 인프라와 진심으로 대하는 사람들이 있는 울진.울진을 여행하고 나면 일상의 무거운 고민, 힘들어진 마음은 내려놓고 건강해진 마음으로 돌아가기를 바란다. 지금 삶이 고단하다면 잠시 쉬어가기를 바란다. 여기 울진에서.

2019-04-30

안내견(guide dog), 리트리버

세계 최초의 안내견은 독일 셰퍼트로 알려져 있지만 현재 전 세계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안내견의 90% 이상은 기질, 품성, 사람과의 친화성 등이 연구되고 검증된 리트리버이다.시각장애인 안내견 훈련센터에서는 방문객들에게 안내견 체험을 통해 시각장애인들의 불편을 느껴보고 안내견이 얼마나 큰 도움이 되는 지를 체험하게 해준다. 체험자들의 눈을 안대로 가리고 안내견에게 의지해 체험장의 여러 환경을 걸어보도록 하는 것이다. 눈을 가린 채 계단을 오르내리고 길 한가운데 놓여져 있는 장애물을 피해가는 것이 생각보다 두렵고 힘듦을 깨달을때에 사람들은 시각장애인 도우미견, 즉 안내견의 고마움을 절감하게 된다.그런데 안내견이 어떻게 온갖 장애물을 피해가고 계단이나 도로의 경계턱에서 시각장애인을 멈춰 세우는지 생각 해 본적이 있는가? 원리는 간단하다. 시각장애인 안내견은 교육을 받는 기간 내내 안내견 훈련 전문가에 의해서 산책을 하고 도로에서의 경험을 쌓으며 교육장에서 훈련받은 관계로 보행속도가 정형화되어 있고 ‘걷다 멈추다’의 반복이 잘 교육되어 있다.도우미견은 선발된 이후부터 은퇴할 때까지 단 한 번도 예외 없이 계단 앞에서는 멈추도록 훈련받았고 ‘가자’고 하면 계단을 오르도록 훈련 받았고, 걷는 앞에 어떤 형태의 장애물이 나타나든 일단 멈추고, ‘가자’고 하면 그것을 우회하도록 훈련받는다. 안내견에게 있어 이런 습관은 100% 유지돼야 한다. 단 한 번의 실수는 교육 후 함께 걷게 될 시각장애인을 크게 다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시각도우미견이 함께 걷는 사람이 계단에서 위험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 멈춰서는 것이 아니다. 많은 시간동안 습관적으로 그렇게 하도록 반복 훈련받았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 있는 것 뿐이다. 안내견은 자신과 함께 길을 걷고 있는 사람이 누구이든지 다르게 여기지 않는데, 안내견은 옆에서 걷고 있는 사람이 자신과 익숙한 훈련사가 아니라는 사실은 알고 있지만, 반복된 훈련을 통해 훈련사와 수년동안을 그래왔듯이 계단 앞에서 멈추고, 바닥에 있는 장애물 앞에서 멈추는 것이 가능하다. ‘어, 시각장애인이 걷는데 위험한 방해물이 있구나!’라고 생각하고 그 앞에서 위험사실을 확인하도록 정지하고 기다려 주는 것이 아니라, ‘저 물체 앞에 가면 함께 걷고 있는 이 사람이 나에게 정지하도록 하겠지!’, ‘ 그 다음에는 나에게 옆으로 우회하라고 지시하겠지!’라고 반복 습관된 행동을 하는 것이다.이런 이유로 비장애인에게 안대를 씌우고 안내견과 걷게 하거나, 시각장애인이 안내견과 걷게 할 때 사람들은 안내견에게 의지해 걷고 있지만, 안내견은 하네스를 잡고 함께 걷고 있는 사람이 안대를 썼는지, 앞을 보는 것이 불편한지 생각하지 않은 채 그냥 자신을 교육시킨 핸들러와 동일하게 여긴다. 개의 입장에서 하네스를 잡은 사람은 자신을 교육시키고 리드하고 있는 사람일 뿐이다.이처럼 시각도우미견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는 다르게 횡단보도를 건널 때나 버스를 탈 때, 도심의 인도를 걸을 때마다 하네스를 잡고 있는 사람에 의해 교육을 받는 상황이라 생각하고 또 교육받아 온 내용을 되풀이하고 있는 것이다. 시각장애인과 살아가는 동안 여전히 교육의 연속성은 유지되어야 하기 때문에 시각도우미견을 훈련시킨 핸들러는 시각장애인에게 안내견을 인계하면서 장애우가 자신처럼 도우미견을 대하고 행동과 움직임도 자신과 유사하게 따라하도록 조언한다.훈련사는 안내견에게 “너 배운대로 안전하게 잘 리드해라!‘ 하며 당부하는 것이 아니라, ”이런 상황에서는 이렇게 하고 저런 상황에서는 저렇게 하세요!“, “안내견이 이런 실수를 하게 되면 이렇게 대처하세요!” 라며 안내견를 데리고 다녀야할 시각장애인에게 개가 언제나 교육받는 상황처럼 움직일 수 있게 하는 방식을 설명해주는 것이다.즉, 교육시켜 온 훈련사가 하던 역할을 시각장애인이 하도록 인계해 주는 것이며 시각장애인은 도우미견이 은퇴할 때까지 실수없이 자신의 역할을 잘 수행할 수 있도록 핸들러의 역할을 이어 나가는 두 번째 핸들러가 되는 것이지 개가 똑똑해서 알아서 하는 것이 아니다. 사람처럼 개가 판단할 것이라는 생각이 개의 문제행동을 만든다. 개의 입장과 행동이유를 알게되면 오늘날 개 때문에 생기는 많은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서라벌대 반려동물연구소 소장(마사과 교수)

2019-04-30

대구의 랜드마크

어느 나라를 가든 그 나라의 대표적 상징물인 건물이나 문화재 등이 있기 마련이다. 이러한 상징물은 그 나라나 도시를 널리 홍보하기도 하고 그로 인해 그곳의 관광산업 등이 발전하는 계기가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파리의 에펠탑이나 뉴욕의 자유여신상, 런던의 타워 브릿지 등은 그 나라의 이미지를 전달하는 건축물로 유명하다. 시드니하면 오페라하우스를 연상하듯 이런 상징물들을 우리는 ‘랜드마크’라고 부른다. 랜드마크는 원래 여행가들이 어느 지역을 여행하면서 처음 있던 장소로 돌아올 수 있도록 표시를 해둔 것을 가리켰으나 지금은 건물이나 조형물 등 그 지역을 대표하는 상징물이란 뜻으로 통한다. 한때는 63빌딩이 서울의 상징이 된 적도 있다. 지금은 제2 롯데타워가 그 이름을 대체하고 있다. 세계 5위 높이의 롯데타워는 대한민국 서울의 역동적인 현대 문화를 함축적으로 표현하는 건물로 보아도 무방하다. 세계 10대 도시라 일컫는 서울만 해도 도시를 상징하는 이와 같은 건물과 문화재는 수두룩하다.고속 성장한 중국도 이젠 건축물만으로도 도시의 랜드마크가 될 만한 것들이 상당히 많이 있다. 24명의 황제가 나라를 통치하며 머물렀던 자금성은 베이징의 대표적 상징이다. 세계 5대 궁의 하나로 손꼽힌다.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곳이다.상하이 푸둥 지구에 있는 동방타워 역시 건물의 높이나 웅장함으로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광저우 타워, 텐진의 영락교와 선전의 지왕빌딩 등도 한 도시의 상징으로 내세워도 부끄럽지 않을만한 건축물들이다. 도시의 대표성만큼이나 관광자원으로서 홍보와 효과도 뛰어난 건물이라 할 수 있다.인구 250만 명이 살고 있는 대구는 어떤 상징물을 가지고 있는지 궁금하다. 퍼뜩 떠오르는 상징물이 생각이 나지 않는다. 대구시가 시청 신청사 건립을 위해 본격적인 준비에 나섰다고 한다. 최고의 정성을 들여 대구의 랜드마크가 되도록 하겠다는 얘기도 들린다. 늦은 걸음이라도 괜찮다. 100년 대구를 내다본 신념이 담긴 건축물로 탄생하였으면 하는 게 시민의 생각이 아닐까 싶다. /우정구(논설위원)

2019-04-30

유감, ‘어벤져스 엔드게임’

홍성식 특집기획부장대부분의 가정에서 ‘VHS 테이프’로 영화를 즐기던 때이니 30년 전쯤이다. 골목길과 아파트 단지마다 ‘비디오 대여점’이 1~2개쯤은 있던 시절. 그러나 그곳에서 빌릴 수 있는 영화는 극히 한정적이었다.주로 미국에서 제작돼 극장에서 인기를 끈 영화를 비디오테이프로 옮긴 건 수십 개씩 진열돼 있었지만, 찾는 이들이 드문 동유럽과 남아메리카의 예술영화는 하나도 발견하기가 힘들었다.할리우드 영화와 함께 이른바 ‘에로 비디오’가 대여점 매출의 80~90%를 차지하던 시기. 영세 상인들이 먹고사는 문제와 직결돼 있었기에 ‘독특하고 특별한 영화’를 찾는 사람들의 취향은 묵살됐다. 한국에 멀티플렉스가 우후죽순 생겨나고, 언필칭 ‘천만 영화’가 나오기 시작한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는 영화 배급과 상영에서의 독과점이 보다 심화됐다. 주류 영화가 아닌 피터 그리너웨이, 데이빗 린치, 홍상수의 영화를 보고 싶은 관객들은 여전히 무시와 소외의 대상이었다. 그 무렵 한 시인은 “인구가 5천만인 나라에서 천만 명이 본 영화가 한 해에 3~4편이나 된다는 건 일종의 코미디”라는 말로 이 나라의 ‘영화 편식’을 장탄식했다.자본은 이익을 기대할 수 없는 곳에 투자의 씨앗을 뿌리지 않는다. 땅을 구입하고 건물을 세워 근사한 인테리어로 장식한 멀티플렉스 영화관. 이걸 만든 대기업들이 ‘돈 되는 영화’만을 상영하고 싶은 욕심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가능하면 다수가 찾는 영화를 많은 스크린에 걸고 거기서 투자한 자본의 반대급부를 얻으려는 걸 비난할 수는 없는 일. 하지만 그건 재벌들이 입버릇처럼 말하는 ‘문화를 통한 사회적 기여’와는 거리가 먼 행위 아닐까?최근 또 하나의 ‘천만 영화’가 될 게 명약관화(明若觀火) 한 ‘어벤져스 엔드게임’이 개봉했다. 수천억 원의 제작비를 투입해 인간의 상상을 현실로 구현해내는 할리우드의 연출력에 영화 한 편당 출연료가 수백억 원에 이르는 인기 배우들이 곳곳에서 출몰하니 기다려온 관객들에겐 근사한 선물 같을 게 분명하다. 하지만 해도 너무했다. ‘어벤져스 엔드게임’의 상영 점유율이 80%에 육박한다는 소식은 실소를 부른다. 이 정도면 한국 멀티플렉스에선 다른 영화를 선택할 권리가 박탈된 것과 다름없다. 비슷한 시기에 개봉된 일본 건축가에 관한 다큐멘터리, 미국 정치계의 어두운 그림자에 주목한 영화, ‘세월호 참사’의 기억을 불러내는 작품 등은 아예 스크린을 잡지 못하거나 하루에 1~2번뿐인 상영 시간이 한밤중으로 밀리고 있는 형국.인구가 1천만 명인 서울에서도 예술영화 개봉관, 독립영화 상영관이 사라지고 있는 게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자본의 거센 파도 앞에 예술은 무력해 보인다. 겨우 50만이 사는 중소도시 포항에서 “소수의 문화향유권도 보장하라”고 목소리 높이는 건 철없는 아이의 반자본주의적 떼쓰기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다양성을 거세한 문화와 예술을 제대로 된 문화·예술이라 부를 수 있을까? 파리 바스티유 광장 인근엔 100석 남짓의 객석을 갖춘 작은 극장이 있다. 3년 전 파리로 출장 갔던 날. 거기서 20세기에 만들어진 흑백 영화를 봤다. 관객이라곤 10여 명이 전부였다. 프랑스 사람들은 ‘돈 되는 영화’를 몰라서, 자본주의에 관해 무지해서 21세기에도 이런 극장을 운영하는 걸까.“여기만이 아니라 옆 동네에도 옛날 영화를 상영하는 극장이 있다”는 매표소 직원의 말에 프랑스를 왜 ‘문화 강국’이라 부르는지 알 것 같았다.모두가 같은 곳을 보며 한 방향으로 달리는 것에 익숙한 한국 사회. 예술의 다양성에 등 돌리고 ‘어벤져스 엔드게임’ 상영관 앞에만 사람들을 줄 세우는 자본과 멀티플렉스에 유감(遺憾) 있다.

2019-04-30

한류의 위기?

김학주한동대 교수버닝썬 사태로 인해 한류 음악(K-pop) 이미지가 실추됐다. 한 외국인 투자자는 “싸이가 외쳤던 강남스타일이 섹스와 마약이었냐?”라고 비난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는 예고된 사태였다. 어려서부터 연예기획사 골방에서 오직 스타가 되기 위해 고된 훈련을 인내했던 청소년들의 가치관이 세속적일 수 밖에 없지 않은가? 이로 인해 관련 연예기획사 주가는 폭락했다. 그러나 머지 않아 회복될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인간이 어차피 세속적인 본성을 극복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처벌도 소용 없다.이런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 “과거에는 자원이 부족해서 경쟁이 치열했고 남을 돌아볼 여유가 없었다. 이제는 배부르고, 등 따뜻하니까 예술도 하게 되고, 또 저성장하는 경제 속에서 노력해도 예전처럼 크게 얻을 것도 없으니까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만족하고, 이웃을 돌아보며 살지 않을까?”라는 기대였다. 그러나 완전히 오산이었다.시간이 갈수록 세속적인 것들이 인간의 몸에 누적되는 것 같다. 인구가 많아져 지구가 더러워지고, 그 오염물질과 스트레스는 사람 몸에 질병을 일으키는 나쁜 단백질을 만들고, 심지어 그것이 유전까지 된다는 것이 후성유전학에서 이야기하는 논리다. 또한 정신도 병들어 간다.성경에 등장하는 아담처럼 창조주께서 허락하신 것에 감사하지 못하고 인간은 끊임없이 더 쾌락적인 것을 요구한다. 대마초를 비롯한 마약류를 허용하는 지역이 점점 더 확대되고 있다. 관련 기업의 주가는 오를지 모르나 그 삯은 사망이다. 또한 나이가 들수록 통증이 가중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마약성 진통제를 찾게 된다. 나중에는 마약에 중독된 사람들을 구하기 위한 바이오 해법을 제시하는 산업이 유망해질 것 같다. K-pop뿐 아니라 K-beauty(한국의 화장품)도 한류의 중심에 있다. 그런데 로레알(L’Oreal)을 비롯한 글로벌 명품 브랜드 주가는 오르는 반면 한국 화장품 업체들은 힘을 잃었다. 한때는 중국에서 글로벌 브랜드들이 고객 취향에 맞는 신제품 출시 능력에 관해 한류 화장품 업체들을 벤치마크하려고 노력했었는데 분위기가 역전된 모습니다.명품 화장품이 약진하는 이유를 먼저 전자상거래에서 찾을 수 있다. 로레알의 지난 1분기 전자상거래 매출은 전년비 44% 급증했다. 사실 아마존을 비롯한 전자상거래 업체들이 그 동안 제조업체들을 끊임없이 비교하며 경쟁을 심화시켰다. 그 등살에 못 이겨 질레트, 네슬레 같은 명품 브랜드조차 가격을 할인하며 팔 정도였는데 화장품은 반대 결과를 보이고 있다. 아마존의 알렉사(Alexa) 같은 쳇봇(chatbot)에게 화장품을 주문하면 로레알 등 명품을 권유한다. 이런 쳇봇들도 일을 해 본 후 화장품에 관한 한 명품 권유가 맞다고 학습된 것이다. 이는 마치 타이어의 경우 한국 제품 가격이 미쉐린 등 명품 브랜드 가격을 따라가지 못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된다. 타이어는 목숨과 직결되므로 명품을 쓰고 싶은 것처럼 사람들이 외모를 함부로 하지 않는 것이 본능이라는 것이다.한편 밀레니얼 세대(Y세대) 젊은이들은 저성장 속에서 큰 기회를 얻기 어려우니까 자신의 삶의 질을 위해 더 많은 돈을 투자하는 경향이 있다. 그 결과 명품 수요가 증가한다. 이런 여러 것들이 명품 브랜드를 차별화시키는 요인이다.로레알의 주가 상승의 또 다른 이유는 아시아 판매가 전년비 23.2%나 증가했다는 것인데 이는 화장품 산업 전반적으로 좋은 소식이다. 아시아 여성들은 곱고 흠 없는 피부를 소중하게 생각한다. 즉 기능성 스킨 케어 화장품 수요가 증가하며 부가가치를 확대할 수 있다. 이런 움직임이 더 진전되면 화장품 업체들이 제약, 바이오 분야로도 사업을 다각화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 화장품 업체들의 성장도 아직 끝났다고 이야기할 수는 없다.

2019-04-30

포항의 새로운 역사의 흐름

김진홍한국은행 포항본부 기획조사팀장2019년 5월 1일은 우리에게는 수많은 일상 중 하루에 불과할 것이다. 굳이 의미를 부여한다면 일부 근로자들은 노동절로서 하루 휴식할 수 있는 날 정도의 감흥뿐일 것이다. 그러나 일본은 다르다. 새로운 연호(元號)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일본은 1867년 메이지(明治) 이후 일왕(天皇)이 바뀔 때마다 연호가 바뀐다. 이후 다이쇼(大正), 쇼와(昭和)를 거쳐 4월 30일까지는 헤이세이(平成)였다. 이번의 연호 변경은 금년 85세인 일왕이 고령으로 사임하고 황태자인 나루히토(1960년생)가 새로 즉위한 때문이다. 일본 당국은 일본이 국가승인을 하고 있는 195개 각국 정부 등에게 새로운 연호인 레이와(令和)를 영문으로는 ‘Beautiful Harmony’로 로마자표기로는 ‘Reiwa’로 한다는 통지를 마쳤다. 우리에게야 큰 느낌이 없지만 의외로 일본에서는 이러한 변화가 정치, 사회, 문화 등 모든 방면에서 변화를 촉진시키는 영향력을 발휘하기도 한다.포항은 올해가 시 승격 70주년을 맞이하는 해다. 그에 따른 기념행사도 다방면에서 진행되고 있다. 다만 이러한 일상적인 행사들이라도 지역 주민들이 진지하게 귀중한 의미를 부여하게 된다면 그것은 더이상 하나의 행사로 그치지 않게 된다. 그것이 새로운 변화를 촉발시키는 힘을 가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사실 포항(浦項)이라는 지명 자체는 비교적 신흥도시여서 경주와 같은 천년 단위의 역사성은 없다. 구한말인 1900년 전후만 하더라도 연일군 북면 포항동(浦項洞)이라는 작은 어촌부락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그 포항동이 지금의 50만명이 넘는 지방의 대도시로 성장 발전하기까지는 결과적으로 보면 역사적 분기점이라고 할 수 있는 충격유인이 적어도 4차례는 있었다.포항동이 포항면, 포항읍 그리고 포항시로 승격하기까지는 물론 해방 이후 지금까지도 포항의 역사는 대체로 20년에서 25년을 주기로 분기점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일제강점기시절에 찾아온 제1차 충격으로 포항의 역사적 분기점을 이룬 것은 1923년 4월 12일의 폭풍우였다. 당시 공식인명피해만 하더라도 689명이었는데 이는 당시 포항인구의 9.8%에 이르는 대참사였다. 물론 이를 계기로 포항항 축항과 형산강 개수가 이루어지면서 포항읍은 이후 발전을 거듭하여 1949년 8월 15일 포항시로 승격하게 되었다. 제2차 충격은 27년 후인 1950년의 한국전쟁이었다. 또 다시 전쟁의 폐허에서 포항은 재건에 성공하였다. 그로부터 23년 후 찾아온 제3차 충격은 1973년 포항제철의 제1고로 준공이었다. 당시 인구 6만명에서 32만명의 철강도시 포항으로 대도약을 이루었다. 제4차 충격은 1995년 도농통폐합으로 주변 읍면을 흡수하면서 일약 50만명의 대도시로 탈바꿈하게 된다.그로부터 20년차인 2015년에는 KTX동해선이 개통되고, 22년차인 2017년에는 포항지진이 발생하였다. 이 두 개의 사건이 제5차 충격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포항에는 어떠한 위기가 다가와도 이를 극복해온 DNA를 갖고 있다. 최근 발생한 두 개 사건 중 KTX개통은 포항을 누구든 드나들 수 있는 개방도시로 만들었다. 그리고 두 번째 포항지진은 얼마 전 특별법 제정 국민청원기간 동안 어려운 전자기기 사용법을 감내한 어르신들까지 합세하며 21만2천675명이 서명을 마쳐 여전히 대결집의 DNA가 존재함을 증명하였다. 이제 도시 포항은 새로운 역사의 흐름을 맞이할 준비가 끝났다. 부디 다양하게 펼쳐질 70주년 행사가 단순한 이벤트에 그치지 않기를 바란다. 이번 행사를 통해 시민 각자가 서로를 믿고 의지하며 제6차 충격이 오기전까지의 새로운 25년 동안 시민들 스스로 재건해 나갈 또 다른 모습의 포항을 그리면서, 새로운 도약을 위해 각 분야가 각오를 다지는 기회로 삼았으면 한다.

2019-04-30

시간을 지배한 사나이

러시아 곤충학자 알렉산드로 류비셰프는 매일 10시간의 넉넉한 수면을 취했을 뿐 아니라 운동과 산책도 한가롭게 즐깁니다. 연 평균 60여 차례의 공연관람, 전시장 방문 등 문화 생활도 소홀히 하지 않습니다. 1972년 작고할 때까지 서신 왕래를 통해 세계 각국의 학자들, 벗들과 왕성한 소통을 했습니다. 피로감을 느낄 때는 언제든 일을 중단하고 충분한 휴식을 취한다는 것이 그의 철칙이었죠.넉넉하고 여유롭게 살았던 류비셰프가 자신의 분야에서 낸 성과는 놀랍습니다. 평생 학술서적 70권을 저술했습니다. 30대 이후 1년에 평균 책 1∼2권을 50년 동안 줄기차게 쓴 거죠. 이게 다가 아닙니다. 책 이외 그가 쓴 연구 논문은 무려 1만2천500 페이지에 이릅니다. 단행본으로 출판하면 대략 100권 분량의 논문들이지요. 여기에 수천 권 소책자를 펴내기도 했습니다. 곤충분류학 뿐 아니라 물리학, 생물학, 철학, 역사, 문학, 윤리학을 두루 섭렵하고 글을 썼습니다. 과학자이면서 동시에 인문학자였던 신비로운 사나이. 비결이 궁금하지 않으십니까? 그의 독특한 시간관리 방식에 비밀이 있습니다.26세가 되는 어느 날 결심합니다. 매일 사용하는 시간을 꼼꼼이 기록하기로! 노트를 준비해 사용한 시간을 꼼꼼하게 기록합니다. 시간 통계노트라고 불렀습니다. 회계장부를 기록하듯 매일 자신이 사용한 시간을 계산하고 기록합니다. 연구 도중 서재에 들어온 딸과 대화하는 시간도 기록에 남깁니다. 버스·기차 타는 시간, 회의 시간, 줄 서있는 시간조차도 셈합니다. 출장이 있으면 책 목록을 정한 뒤 출장지에 미리 부쳐 놓을 정도로 철저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렇게 쌓은 시간기록을 매달 말 합산했으며 연말에는 이를 다시 결산했습니다. 5년 주기로 자신이 사용한 시간의 통계를 내고 분석했으니, 류비셰프는 실로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치열하게 관리했던 달인이 아닐 수 없습니다. 시간관리의 세계 챔피언입니다. 자기에게 주어진 1분 1초에 의미를 부여했습니다. 시간을 사랑하고 아꼈으며 시간 앞에 경건한 삶을 살았습니다. 82년 인생을 25억8천5백95만2천초로 미분(微分)했습니다.메마른 삶이 아니라, 시간을 완전히 장악하고 정복해 내편으로 만들어버린 예술의 경지를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충분한 휴식, 여유로운 문화 예술 생활, 방대한 독서, 어머어마한 저술. 사람들과 충분한 소통. 어쩌면 그는 인생 자체를 가장 아름답고 충만하게 즐기다 간 지고의 로맨티스트입니다./조신영 인문학365 대표

2019-04-30

조선의 건국이념과 지금의 정치현실

강희룡 서예가1392년 7월 17일 문무백관이 지켜보는 가운데 태조 이성계가 수창궁에서 왕위에 올랐다. 500년의 고려가 끝나고, 조선의 새로운 500년이 시작되는 순간이다. 최영 장군과 정몽주 등 즉위식을 치르던 그때 이성계의 머릿속에는 그 절체절명의 순간이라든가 삶과 죽음으로 엇갈린 얼굴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을 것이다. 열하루 뒤인 7월 28일 새로운 국왕의 즉위를 알리는 교서가 반포되었다. ‘태조실록, 1년 7월 28일’에 ‘문무과 두 과 가운데 어느 하나는 취하고 어느 하나는 버릴 수 없다. (중략) 세 차례의 시험을 통해 합격한 자 33인을 상고해 이조로 보내면 이조에서는 재주를 헤아려 임용하도록 하겠다. 감시(監試)는 폐지한다.’이 즉위교서에는 호포(戶布)감면과 국둔전(國屯田) 폐지 등 민생을 추스르기 위한 개혁안으로부터 충신, 효자, 절부(節婦)의 포상, 즉위식 이전까지 범했던 일반 범죄에 대한 사면령에 이르기까지 총 17항목에 달하는 새로운 국가 건설의 개혁 방안이 담겨 있다. 모든 계층의 현안을 포착하여 민심을 얻으려는 의도가 뚜렷하다고 하겠다.이 가운데 가장 중요한 첫째 항목은 종묘사직을 바로잡고 고려 왕족을 대우하겠다는 의례적인 것과 다음 항목에 이어진 과거시험의 개혁 방안이었다. 그 세 번째로 문과와 무과 그 어느 하나도 소홀하게 여기지 않겠다는 약속과 중앙과 지방 그 모든 곳에서 인재를 고루 육성하겠다는 의지, 공적 제도(公擧)를 사적 관계(私恩)로 전락시켜 버린 고려왕조의 과거제에 대한 비판 등 이런 일련의 구절은 모두 새 나라를 함께 다스릴 문무 관료들을 투명하고 공정한 절차에 의해 선발하겠노라는 천명한 정책이었다.여기에서 우리는 관료선발의 공정성을 뒷받침하기 위해 시험의 절차를 투명하게 밝히는 것은 물론, 출제의 범위를 사서오경이라는 유가경전으로 특정해 뒀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즉 유교사상이 학문권력으로 바뀌는 시대를 의미하는 것이고 지배층의 대대적인 물갈이를 예고하는 것이기도 했다. 그런 점에서 이성계의 즉위식은 단순히 국가 권력이 왕씨에서 이씨로 옮겨간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한반도에서 1천여 년 동안 이어져 온 불교사상의 국가가 유교사상의 국가로 옮겨가는 문명사적 대전환의 순간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시작된 유교를 바탕으로 한 조선의 문명과 국가로서의 정체성은 1894년 갑오개혁으로 과거제가 폐지되고 한문이 언문에 국어(國語)의 지위를 넘겨주기까지 강고하게 유지돼 왔다. 이처럼 의미심장한 내용을 담고 있는 즉위교서는 정도전이 작성한 것으로, 유교정신에 충만한 인물인 정도전이 가장 이상적으로 생각하던 인간의 전범인 동시에 그가 꿈꾸던 새로운 조선의 국가 비전이기도 했다.오늘날의 우리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 국가로 국민의 직접선거를 통해 대통령과 국회의원을 뽑는다. 일부 국회의원은 내각제적 요소가 있는 비례대표라는 정당 득표율을 통해 간접으로 선출된다. 선거를 통해 선택된 대통령과 소속 정당은 임기동안 국민들로부터 국가통치의 권력을 부여받는다. 이러한 제도의 흐름 속에서 좌우로 쪼개진 정치집단은 어느 한 쪽에서 정권을 잡으면 지난 정권의 폄훼와 동시 언론장악을 통해 장기집권을 획책하려는 방법은 이제 일반화됐다. 더 나아가 비례대표를 늘리려는 가장 중요한 선거법 개정까지 당리당략에 따라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에 옭아매려는 발상에 여야충돌로 의원들의 육탄전으로까지 번져 국회가 난장판이 되는 극한국회가 됐다. 이러한 상황을 국민들은 극한이 아니라 ‘극혐국회’로 생각한다. 이렇게 혼란스럽기 그지없는 정치집단의 충돌은 정치철학이 취약할 뿐 아니라 당파 싸움으로 심각한 리스크들만 만들기 마련이다. 정치는 국민에게 제시할 아이디어와 해결책, 그리고 국가발전의 전망이 있을 때만이 강력하다. 국가의 현상은 시민현상의 반영이다. 그러므로 국민이 더 훌륭해지지 않는 한 더 좋은 국가나 정치는 기대하지 말아야 한다.

2019-04-29

그가 방에 들어오면

어제 편지에서 말씀드린 피그말리온 효과, 로젠탈 이펙트는 군인, 기술자, 사관생도 등 다양한 집단에 골고루 동일한 효과가 입증된 이론입니다. 교육의 주도권을 갖고 있는 사람이 누군가에게 긍정의 기대 신호를 보낼 때 상대방은 분명한 성장 반응을 나타낸다는 것입니다. 정 반대의 경우로 스티그마 효과라는 게 있습니다. 호주 원주민들은 마법사의 저주를 받으면 시름 시름 앓다가 며칠 후 실제로 숨을 거둡니다. 1942년 미국 생리학자 월터 캐넌은 이런 현상을 ‘부두 죽음(voodoo death)’라고 명명하지요. 아이티의 원시 종교인 부두교의 주술사로부터 저주를 받고 죽은 사람이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집니다.2009년 5월 영국의 뉴사이언티스트 커버스토리에 따르면 부두 죽음과 같은 유사한 사례가 선진국에도 빈번하게 일어난다고 밝혀 충격을 주었습니다. 마법사의 긴 주문이 ‘의사의 짧은 몇 마디’로 바뀌었을 따름이라는 겁니다. 예컨대 의사로부터 죽음을 암시하는 말을 들은 환자가 절망에 빠져 삶의 의지를 포기해 버리는 경우가 자주 발생한다는 거지요.일상에서도 이런 부정적인 편견이 얼마나 사람에게 위험한 영향을 주는지에 대한 연구가 있습니다. 일명 스티그마 효과입니다. 스티그마는 낙인을 뜻합니다. 빨갛게 달군 인두를 가축에게 찍어 소유권 표시를 하는 게 바로 스티그마지요. 타인에게 부정적인 낙인을 찍힌 사람이 실제로 그렇게 되거나 더 나쁜 상황으로 빠지게 되는 경우를 스티그마 효과라고 합니다. 탈옥수 신창원은 어릴 적 어머니와 사별하고 가난하게 살았는데, 학교에서 ‘돈 없으면 학교 다닐 필요 없으니 꺼져버려’라는 말을 듣고 마음 속에 범죄의 악마가 자라났다고 고백해 충격을 주었습니다.긍정 혹은 부정의 기운들이 전파처럼 세상에 감돌고 있습니다. 나에게 부정적인 기운을 끼치는 주변 인물이나 환경이 무엇인지 잘 생각해 보고 어떻게 이를 차단할 수 있는지를 막는 방법을 연구해야 합니다. 한 사람의 힘은 약하지만, 우리가 서로 연대하고 서로 격려할 수 있다면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긍정의 안테가가 될 수 있습니다. 부정의 파장을 차단하고 긍정의 물결을 일으키는 강력한 안테나의 삶이 필요합니다.리더스 다이제스트라는 잡지를 만든 드와이트 월레스의 이야기를 저는 잊을 수 없습니다. 잡지사의 모든 직원들은 드와이트 월레스를 진심으로 좋아했는데 그 이유를 이렇게 말합니다.“드와이트가 방에 들어오면 언제나 그 주변이 환하게 밝아지거든요.”/조신영 인문학365 대표

2019-04-29

북·러 정상회담의 국제정치적 의미

변창구대구가톨릭대 명예교수·국제정치학북한의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집권 후 처음으로 러시아를 방문하였다. 북·러 정상회담은 ‘힘(power)’과 ‘국가이익(national interest)’이 지배하는 냉혹한 국제정치의 현실을 잘 보여준다. 지난 2월 베트남에서 개최된 제2차 북·미 정상회담이 결렬됨으로써 북한의 비핵화협상이 교착상태에 빠진 시점에서 이루어진 이번 북·러 정상회담은 양국이 상호협력을 통하여 대미협상력을 제고하는 동시에 정치경제적 이익을 공유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다.북한의 입장에서 볼 때 힘의 열세에서 초래되는 북·미 협상의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자신에게 우호적인 중국뿐만 아니라 러시아의 후원도 절실하다. 북·러 협력의 강화는 북한의 대미협상력을 제고시켜줄 뿐만 아니라, 중국에 대한 지나친 의존에서 야기되는 문제점을 완화시킬 수 있다. 게다가 러시아는 중국과 함께 북한이 주장하는 단계적·동시적 비핵화방식을 지지해 왔다는 점에서 북·중·러 3국 공동전선을 구축할 수도 있다. 또한 경제적 차원에서 러시아는 유엔제재로 인한 북한의 경제난 극복에 도움이 될 수 있으며, 현재 러시아에서 일하고 있는 만 여 명의 외화벌이 노동자들의 체류기간이 연말에 만료됨으로써 초래되는 추방위기를 시급히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다.한편 러시아의 입장에서 볼 때 김정은의 방문은 한반도문제에 대한 영향력을 제고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다. 러시아는 북·미 중심의 비핵화 협상과정에서 중국에 버금가는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 지난해부터 북·러 정상회담의 개최를 지속적으로 타진해 왔다. 북한이 중국에 지나치게 편향되는 것은 러시아의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더욱이 러시아는 북한과 마찬가지로 미국의 제재를 받고 있는 상황이며 미국 주도의 세계질서에 대항하여 러시아의 국익을 확대하기 위하여 북한 및 북·미 협상을 적절하게 활용하는 것이 매우 유용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이번 북·러 정상회담에서 러시아가 북한의 비핵화에 따른 안전보장을 위해서는 자신을 포함한 ‘6자(남·북·미·중·일·러)회담’과 같은 ‘다자안보체제’가 필요하다고 제안한 것도 바로 이러한 사실을 뒷받침한다.이처럼 북·러 정상회담은 ‘힘’과 ‘국가이익’이라는 현실주의 국제정치이론에 철저히 기초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북한과 러시아의 이해관계가 일치되는 한 앞으로도 북·미 비핵화협상의 과정에서 양자 간 협력은 물론이고, 북·중·러 3국의 공조도 계속될 것이다.그런데 우리 정부의 외교는 어떠한가? 북한의 비핵화 협상전략을 둘러싸고 한·미 동맹은 균열되고 있고, 한·일 관계는 사상 최악이다. 그렇다고 해서 북한과 공조하고 있는 중국과 러시아가 한·미 동맹관계에 있는 우리의 입장을 지지하는 것도 아니다. 더욱 참담한 것은 현 정부가 집권이후 남북협력에 거의 올인 하다시피 했는데 김정은으로부터 돌아온 것은 ‘오지랖 넓은 중재자’라는 비판이었다. 이처럼 현재 한국의 외교는 ‘사면초가(四面楚歌)’이다. 이것은 현 정부가 힘과 국가이익이 지배하고 있는 국제정치의 본질적 속성을 경시하고 ‘무지개’를 쫓아다닌 결과이다. 북한의 비핵화라는 이상(理想)은 냉혹하고 변화무쌍한 국제정치에 대한 정확한 인식에 토대를 둔 전략이 뒷받침되지 못하면 일장춘몽(一場春夢)으로 끝나고 만다.따라서 이제 정부는 북한의 비핵화를 실질적으로 견인할 수 있는 현실적 대안을 원점에서부터 재검토해야 한다. 국제정치의 역사는 어떤 외교도 현실을 직시하지 않는 한 결코 성공할 수 없었다는 사실을 가르쳐주고 있다. 한반도문제의 이해 당사국들은 모두가 현실주의 외교에 혈안이 되어 있는데, 오직 우리 정부만 이상주의에 집착한다면 그 결과가 어떻게 될 것인지는 두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2019-04-29

전기차 vs 수소차

전기차는 디젤 엔진과 가솔린 엔진 등의 내연기관을 장착한 자동차나 전동기와 내연기관을 같이 장착한 하이브리드 자동차와는 달리 순수히 전기만 사용해 구동하는 자동차를 의미한다.전기자동차의 역사는 의외로 길다. 내연기관 자동차와 비슷한 시기인 1830년대에 최초로 개발됐다. 심지어 100㎞/h를 처음 돌파한 것도 전기자동차였다. 그러나 당시의 전기자동차는 기술적인 한계로 인해 성능 향상이 지지부진했고, 비싼 가격, 심하게 무거운 배터리, 너무 긴 충전 시간 등의 문제가 있었다. 결국 전기자동차는 경쟁력을 잃고 시장에서 사라졌다. 그러다가 1990년 이후 화석연료로 인한 이산화탄소 증가가 지구온난화의 원인으로 밝혀지면서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해 세계 각국에서 앞다퉈 전기차 개발에 뛰어들고 있다. 전기자동차의 본격적 개발은 21세기의 눈부시게 향상된 전력전자 기술과 우수한 반도체 등의 첨단 기술에 힘입어 내연기관 차량이 100년에 걸쳐 쌓아올린 내연기관의 성능을 고작 10년도 안 돼서 쫓아오는 데 성공했다.최근 정부가 지원을 약속한 수소차 역시 전기차의 일종이다. 다만 기존 가솔린 내연기관 대신 수소와 공기 중의 산소를 반응시켜 전기를 만드는 연료전지를 이용한 차세대 친환경 자동차를 말한다. 전기차와 수소차는 전기를 이용해 모터를 구동한다는 구동방식에서는 똑같다. 다만 전기 충전 방식이 다르다. 전기자동차는 일반적으로 관공서, 아파트, 개인주택에서 전기 충전기를 설치해야 충전이 가능하고, 충전 시간이 급속 기준으로 40∼50분 걸려 상대적으로 길다는 단점이 있다. 반면 수소차는 수소를 충전하므로 충전 시간이 매우 짧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국내 수소 충전소가 많지 않고, 충전소 시설비용도 수십억원으로 비싸 운영이나 충전 인프라 구축에 어려움이 많다.어떻든 전기차든 수소차든 향후 충전 인프라만 충분히 구축된다면 점유율이 높아질 것은 분명하다. 환경문제가 심각해지면서 친환경자동차를 선호하는 분위기가 대세인 만큼 수출에 의존하는 우리나라에서도 전기차나 수소 자동차가 대중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바야흐로 친환경자동차시대가 다가온다. /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19-04-29

미술전시의 기원

미술관은 유럽인들의 발명품이다. 유럽에서는 미술관을 뜻하는 ‘뮤지엄’(Museum)이 미술관과 박물관 둘 다를 가리키는데 그 기원을 살펴보면 쉽게 이해가 된다.흔히들 뮤지엄의 시작을 ‘분더캄머’(Wunderkammer)에서 찾는다.분더캄머라하면 독일어에서 온 말인데 개인이 지적 호기심으로 수집한 진귀한 물건들을 모아 진열해둔 방을 뜻한다. 항해술이 발달하면서 유럽의 귀족들은 남들이 본적이 없는 식물이나 광석 혹은 미술품 등을 서로 경쟁적으로 수집하기 시작한다.예컨대 유럽의 유명한 궁전들을 방문해 보았다면 ‘오랑주리’(Orangerie)라고 불리는 건물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독특한 향과 맛을 가져 진귀한 식물로 여겨진 오렌지 나무를 키우기 위해 마련된 일종의 온실이다.진귀한 물건을 소장하고 있다는 것은 학식뿐만 아니라 그것을 손에 넣을 수 있을 정도로 막강한 부를 소유하고 있다는 것을 뽐내는데 아주 손쉬운 방법이었기 때문에 귀족들은 분더캄머의 규모를 늘리는 것에 열을 올렸다.엄밀히 말해 분더캄머가 박물관에 가깝다면 지금 식으로 미술 작품을 걸어 두고 보여주기 시작한 미술관의 기원은 프랑스 대혁명 이후 프랑스의 왕실이었던 루브르가 대중들에게 개방된 것에서 찾을 수 있다.이탈리아의 피렌체가 르네상스를 꽃피웠고, 로마의 교황이 바로크 미술을 이끌었다면, 17세기 베르사유에 궁을 지어 스스로를 태양 왕이라 불렀던 루이 14세의 절대왕정 이후로 프랑스는 유럽 미술의 중심지가 되었다. 루이 14세는 절대왕정을 위한 문화정책을 폈고 그 일환으로 예술가들을 체계적으로 육성하는 교육기관을 설립했다. 그것이 그 유명한 ‘왕립예술원’이다.왕립예술원은 국가를 위해 봉사할 엘리트 예술가들을 체계적으로 길러내던 공립교육기관으로 미술에만 국한되었던 것이 아니라 건축과 무용 등 예술 전반을 총망라했던 국립종합예술학교의 성격을 지녔던 곳이다.미술 분야에 한정해 왕립예술원이 어떻게 미술을 정치권력 아래에서 철저히 통제했는지 살펴보자.우선 교수진과 학생 선발 방식에서부터 이미 특정한 미술의 방향성이 정해져 있었다.이른바 ‘역사화’라고 하는 그림의 특정 장르로 국한되어 있어 제 아무리 그림 솜씨가 뛰어나다 하더라도 역사화를 그리지 않고서는 화가로 성공할 방법이 없었다. 쉽게 말해 역사화는 ‘위대한 사람들의 위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그림이다.성서의 이야기가 될 수도 있고, 그리스 로마의 신화 이야기나 실제로 일어난 역사적 사건을 다룰 수도 있다.누구나 본받아 마땅한 위대한 인물들의 영웅적인 행위가 거대한 크기로 그려져 벽을 장식했다.왕이나 귀족들은 자신들의 치적을 신화적 소재를 가져와 공공연히 과시하기도 한다. 지금 우리가 생각하듯 미술은 순수한 미적 동기에서 창작된 그런 것이 아니었다. 분명한 목적을 위한 도구였던 것이다.왕립미술원의 교수들은 역사화를 그리던 화가들이었고, 학생들에게는 역사화가로 이름을 날리는 것이 화가로 성공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회화의 다른 장르인 정물화나 풍경화를 그려서는 입에 풀칠하기가 어려웠던 게 당시의 냉혹한 현실이었다.프랑스는 미술의 선진지였던 로마에 궁을 매입해 왕립미술원 로마 분교를 설립한다. 초대 원장을 지낸 인물이 프랑스 고전주의 바로크 미술을 확립한 니콜라 푸생이다.왕립미술원은 해마다 공모를 통해 가장 우수한 학생 한 명을 선발한 후 로마 분교로 유학을 보내 3년에서 5년 동안 고대 문물을 직접 연구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로마 대상’(Prix de Rome)이라고 불렸던 이 상을 받는 것은 미술가로 성공할 수 있는 첫 번째 공식적인 관문이었기 때문에 경쟁도 치열했고 심사도 엄격했다. 물론 최우수작 선발이 항상 투명하고 공평했던 것은 아니다.로마대상이 탁월한 학생을 엘리트로 키우기 위한 교육정책이었다면 본격적으로 이름을 걸고 화가로 활동하기 위해서는 ‘살롱전’이라는 또 다른 관문을 통과해야만 했다.왕립미술원은 루이 14세의 명을 받아 정기적으로 대규모 전시회를 개최하게 되는데 이 전시회가 나중에 루브르의 ‘살롱 카레’에서 열리게 되면서 살롱전이라는 이름이 붙게 되었다.2, 3년에 한 번씩 정기적으로 개최된 대규모 전시인데 살롱전에 작품을 소개하기 위해서 화가들은 역시나 역사화를 그려야만 했다.살롱전은 최초로 개최된 근대적 형태의 전시회라는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살롱전이 있기 이전에 미술작품들은 대부분 개인의 저택을 장식했었다. 혹은 종교화라면 교회 건축이나 제단을 장식하며 종교적 기능을 수행했다.그러던 미술이 순수하게 감상의 목적으로 개최된 것이 바로 살롱전에서부터이다.살롱전이 열리는 기간이면 파리 전체가 축제 분위기로 들뜨게 된다. 미술하면 귀족들의 전유물이겠거니 지래 짐작할 수 있겠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물론 경제적 효용성이 없는 값비싼 미술작품을 소유할 수 있었던 것은 예나 지금이나 특정 계층에 국한되었던 것은 어쩔 수 없는 사실이다. 살롱전이 열리면 왕궁이 모두에게 개방되었다.사회적 신분의 높고 낮음에 관계없이, 미술에 대한 조예가 있건 없건 관계없이 모두가 살롱전이 열리는 루브르를 향했다. 그도 그럴 것이 정책적으로 역사화를 장려했던 것은 왕의 업적을 찬양함과 동시에 왕과 국가를 향한 민중의 충성심을 고양할 목적이 있었던 만큼 왕궁의 문을 활짝 열었던 것은 당연하게 보인다.살롱전이 도시 전체의 축제였던 만큼 그와 얽힌 에피소드들도 적잖이 생겨났다.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몰려들었으니 소매치기들이 들끓었고, 그림보다는 어여쁜 아낙들을 감상하기 위해 눈이 바빴던 남정네들도 한 둘이 아니었다고 한다.아무래도 미술전시의 초기 형태이다 보니 기술적으로 아주 허술해 보인다. 좁지 않은 전시공간이지만 수 백 점의 작품들을 동시에 걸어야 하니 바닥에서 천정까지 온 벽면이 빼곡히 그림으로 채워졌다.요즘처럼 쾌적한 감상을 위해 작품과 작품, 작품과 감상자 간의 최소한의 거리를 확보해야한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작품들을 주제나 화풍에 따라 분류하여 전시할 수 있다는 관념은 아예 존재하지를 않았다.어떻게 보면 전시라기보다는 벽의 빈 공간들을 그림으로 채운 수준에 불과하다.살롱전의 전시 방식이나 내용이 지금의 전시와는 상당한 거리를 보이지만 이를 통해 미술사적으로 아주 중요한 현상들이 함께 발생했다는 것은 반드시 언급될 수밖에 없다.우선 전시도록이라는 것이 출현했다. 작품들이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다 보니 누구의 어떤 작품이 어디에 걸려 있는지 확인할 방법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혹은 벽에 걸려 있는 어떤 작품이 누구의 그림이며 무엇을 그리고 있는지 확인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살롱전으로 생겨난 또 다른 현상은 ‘미술비평’이다.살롱전 출품작들을 감상하고 자신들이 보고 느낀 것을 통해 비판적인 평가를 내리는 사람들이 생기기 시작했다.주제를 표현하는 방식에 대해 평가를 하고 색채 사용과 인물 묘사에 대한 판단이 내려졌다. 문헌적으로 가장 처음으로 이루어진 미술비평가들 중에 백과사전을 편찬한 디드로의 이름도 등장한다.이렇게 시작된 미술관과 미술전시가 이제는 진화를 거듭해 단순히 작품을 보여주는 것에 그치지 않고 새로운 콘텐츠를 생산해 내는 창작의 장이 되었다.미술의 형식이 달라지면서 미술관의 형태도 달라졌고, 미술의 내용이 달라지면서 전시의 방식도 달라지게 된 것이다./김석모 포항시립미술관 학예실장

2019-04-29

개의 이빨처럼 맞물려 있던 시절의 ‘신라·고구려·백제 왕성들’

도무지 불혹(不惑)할 것 같지 않았던 미혹(迷惑)의 마흔에 문득 “지금껏 피하고 꺼리던 일을 해보자”며 백두대간 종주에 도전했다. 청계산과 관악산에 둘러싸여 이십 년을 살고도 단 한 번 스스로 산행을 결심해 본 적 없는 ‘평지형 인간’ 주제에 첫걸음이 백두대간이라니! 첫 번째 산행 길에 일찌감치 깨달았다.“이건, 미친 짓이다!”내 발등을 내가 찍었다는 후회를 수십 수백 번 곱씹으면서, 2년 동안 지리산 천왕봉부터 진부령까지의 백두대간 남한 구간을 완주하고야 말았다. 지금 돌이켜 봐도 참으로 미련하고 무모한 짓이었을 뿐더러 일생에 다시 못할 뿌듯하고 용감한 일이었다.그때 얻은 족저근막염과 무릎 통증으로 지금은 험산이나 오랜 시간 산행을 하지 못하지만 적어도 더 이상은 오르기 전부터 두려움에 떨지 않는다. 산은 글자부터 속성까지 삶을 닮았다. 결국, 삶은 두려워하지 않는 자의 것이다.2차 산행은 전북 남원 운봉읍에서 시작해 통안재에서 사치재를 넘어 복성이재에서 마루금이 끝나는 총 16㎞의 코스였다. 재로 이어지는 구간인지라 산보다는 완만했지만 그때만 해도 울트라 왕초보 산객이었던 내게 힘들기는 매한가지였다. 그날 사치재에서 북진하다 781m봉을 지나 복성이재로 이어진 길에서 이끼 낀 커다란 돌무더기로 남아있는 아막산성을 만났다. 아막산성은 백제와 신라가 주도권 쟁탈전을 벌였던 곳이다.백제 무왕은 즉위 3년(602·진평왕 24년)에 신라의 아막산성을 공격했는데, 그 전투에서 백제군이 평상시에 유지하는 전체 병력 6만 중 3분의 2에 달하는 4만을 상실하는 대패를 당했다고 한다. 승리한 신라군 역시 귀산과 추항이라는 장수를 잃었다. 잠시 스틱을 내려놓고 장갑과 무릎 보호대를 벗은 뒤 석벽에 기대어 쉬노라니 당시 그 무섭다는 중2였던 아들아이와 친구들이 엉두덜거렸다.“그냥 산만 타도 이렇게 힘든데, 어쩌자고 여기까지 기어 올라와서 싸움질을 한단 말이야?”아무래도 4만이 전사할 정도의 치열한 전투를 벌이기엔 비좁고 가파르다. 해발 680m 지점에 2m 이상의 성벽을 쌓으려면 고생이 만만찮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라인들은 필사적으로 성을 쌓고 목숨으로 고개를 지켰다.이때의 정세를 한마디로 표현한 것이 ‘삼국사기’에 나오는 견아(犬牙), 개의 이빨이라는 뜻이다. 고구려와 백제와 신라가 ‘개 이빨처럼 서로 맞물려 있던’ 시절, 그 돌무더기 고개가 바로 피가 흐르고 불꽃이 솟는 승리와 패배의 격전지였던 것이다.실로 고대사는 먼 하늘의 달무리처럼 흐리마리하다. 남아있는 금석문은 많지 않고 문헌은 혼돈스러우며 유물유적은 외세에 약탈당했거나 전란에 소실되었다. 게다가 고구려의 땅인 북쪽과 신라와 백제의 땅인 남쪽이 분단되어 학문적 교류마저 단절된 채 세월을 흘려보냈다.그나마 과학 기술의 발전으로 현대 장비를 이용한 고고학적 조사가 이루어지면서 조금씩 비밀의 실마리가 풀리고 있어 다행이다.여전히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훨씬 많지만 이런 수수께끼라면 얼마든지 즐겁다. 좀 더 호기심과 인내심을 발휘해야 마땅하다.‘삼국시대 고고학개론1-도성과 토목 편’(대한문화재연구원·2014)을 살펴보면 삼국의 도성 조영이 각 나라의 흥망을 좌우했음을 알 수 있다. 신라의 왕도 서라벌은 건국부터 패망까지 전 시기를, 왕성 월성은 101년부터 935년까지 834년 동안 50대의 왕을 거치며 건재했다. 그러나 고구려와 백제의 사정은 신라와 달랐다.고구려는 3번에 걸쳐 도성을 옮겼다. 환인 지역 졸본에서 압록강 가 국내성으로, 그리고 다시 대동강 유역 평양으로 천도했다(평양에서도 처음에는 시가지 동북쪽에 머물다가 586년 현재 평양 시가지에 자리 잡았다). 백제는 크게 한성에서 웅진(공주)로, 웅진에서 사비(부여)로 이동했다. 한성에서도 처음에 한강 이북 하북위례성에 있다가 온조왕 때 한강이남 하남위례성으로 옮겼고, 근초고왕 때 한산(漢山=한성)으로 이도했다고 추정된다.구글(Goole) 이미지에서 ‘우뉘산(Wun Mountain)’을 검색하면 가히 신비롭다 할 만한 풍경과 만날 수 있다. 해발 8백여m의 산 정상에 1백m가 넘는 수직 절벽이 깎아지른 듯 솟구쳤고, 그 위에 거짓말처럼 성터가 있다. 바로 고구려의 첫 번째 왕성으로 비정되는 오녀산성이다.고려 후기 이규보의 ‘동국이상국전집’ ‘동명왕편’에 “7월에 검은 구름이 골령에 일어나서 사람들이 그 산은 보지 못하고 오직 수천 명 사람의 소리가 토목 공사를 하는 것같이 들렸다. 왕이, 하늘이 나를 위하여 성을 쌓는 것이다, 하였다. 7일 만에 운무가 걷히니 성곽과 궁실 누대가 저절로 이루어졌다. 왕이 황천께 절하여 감사하고 나아가 살았다.”는 대목이 절로 떠오른다.고구려 시조 주몽이 건국 직후 골령에 성곽과 궁실을 조영했다는 사실은 ‘광개토대왕비’를 통해서도 확인되는데, 과연 하늘의 도움을 받는 영웅이 정치적 권위를 과시하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웅장한 풍경이다.하지만 중국이 관광지로 조성해 개방한 오녀산성 내부를 들여다보면 일상적으로 거주하기에는 쉽지 않은 조건임을 확인할 수 있다.차마가 다닐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는 십팔판은 938m의 끝없는 돌계단으로, 정상까지 열여덟 굽이를 건너야하기에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그래서 연구자들은 산상(골령) 성곽인 오녀산성을 의례 공간이나 군사방어성으로, 평상시 거주한 홀본(졸본)은 오녀산성 바로 동쪽의 혼강 연안에 위치했다고 본다(여호규). 다만 이 지역은 환인댐 수몰지구로 물속에 잠겨 있어 유물유적을 확인하기 어렵다.고구려의 도성은 이후 국내성과 평양으로 천도하고도 졸본에서처럼 이중구조를 보인다. 평상시와 비상시가 분리된 구조는 결국 전쟁에 대비한 것이다. 고구려는 삼국 중에서도 가장 많은 전투를 치른 나라다. 북으로 부여, 거란, 전연, 북위, 수, 당 등의 대륙 세력들과 갈등하면서 수도가 국내성에서 평양까지 남진했으며 이후 백제, 신라와 맞섰다. 전쟁 같은 삶, 삶의 전쟁. 고구려의 수도가 여러 번 바뀐 데에는 절박한 대내외적 요구가 있었다.백제도 마찬가지였다. 한성 백제의 도성은 평상시의 풍납토성(북성)과 비상시의 몽촌토성(남성)이 정궁-별궁 양궁성제로 운영되고, 인근에 왕릉구역(석촌동-가락동고분군)이 위치하며 그 외곽에 일반 취락(하남미사동유적, 서울암사동유적 등), 산성 등이 분포하는 양상이었을 것이라고 본다(김낙중). 고구려의 한성 함락으로 백제는 갑작스럽게 웅진으로 천도하고, 웅진기 도성도 왕궁 위치, 축조 시기, 나성의 존재 여부, 도성 내부 등등이 논란 중이지만 일단 웅진성은 현재의 공산성 자리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고구려에게 밀리고 신라에게 치이며 백제는 필사의 발버둥을 한다. 백제의 마지막 도성인 부여 사비성은 이런 절박함을 드러낸다.사비도성은 부소산성과 이곳에서 연결되는 나성으로 둘러싸여 있다. 즉 도성을 두르는 나성과 청마산성 등의 외곽 방어시설이 사방에 포진된 형태다. 경주에는 나성이 없다. 대신 사방에 산성이 배치되어 있어 도성을 방비하는 방어시설의 기능을 한다.부소산성의 내부 시설은 조사가 미흡하고 나성 또한 마찬가지다. 부소산성은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22세기를 위해 보전해야 할 아름다운 숲’으로 선정되었고 낙화암의 일출 또한 그토록 장관이라지만, 낙화암의 본래 이름이 떨어질 타의 타사암(墮死巖)이라는 것을 떠올리면 스산한 기분이 든다. 부여 또한 더 많은 이야기가 묻혀 있는 땅이다.고구려와 백제의 도읍지 변천과 도성의 형태를 살펴보노라니 월성의 존재가 더욱 유의미하다. 신라는 삼국 가운데 유일하게 천도(遷都)가 없었던 나라다. 후발 주자로 척박한 지역에 터를 잡았지만 먼저 건국한 고구려나 백제에 비해 외부 세력과의 갈등이 상대적으로 적었다.고구려의 고국원왕이나 보장왕, 백제의 개로왕과 책계왕과 침류왕과 성왕처럼 전쟁터에서 전사한 왕도 없다. 정복전쟁의 격전장에서 사령관과 근거지를 잃지 않았다는 것만으로도 승기를 잡을 조건이 충분했다.‘삼국사기’에는 689년 신문왕이 “도읍을 달구벌(대구)로 옮기고자 하였으나 실현하지 못했다.”는 기사가 나온다. 하지만 그것은 달구벌의 새로운 세력을 통해 서라벌의 진골 귀족 세력을 견제하여 왕권을 강화하려는 목적이지 외부의 압력에 의한 것이 아니었다.도읍을 옮기는 것 자체가 얼마나 큰일인가? 현재도 곳곳에서 이루어지는 신도시 건설만 생각해 봐도 후보지가 결정되면 토지 수용부터 인프라 조성까지 쉬운 일이 하나도 없다. 기득권 세력의 저항은 물론이거니와 전부터 살던 주민들의 반발과 강제 이주에 따른 갈등도 만만찮다. 낯선 곳에 적응하고 뿌리를 내리기까지의 스트레스와 시행착오는 또 어떤가?신라는 이런 과정에서 소모되는 에너지가 없었다. 그래서 에너지를 비축해 또 다른 곳에 쓸 수 있었다. 월성은 5세기 후반 성벽 축성한 뒤 삼한 통합을 기점으로 궁궐을 대대적으로 개보수와 궁역을 확장한다. 왕궁을 중심으로 왕경은 점점 넓어진다. 도로가 정비되고 재개발과 신축이 차근차근 진행된다. 서라벌이 계획도시로 조성된 것은 6세기 중엽 진흥왕 때부터이며, 신라 도성이 가장 확장된 시기는 9세기 후반으로 추정된다(홍보식).‘개의 이빨’의 시기를 지나며 서라벌을 중심으로 외곽으로 확장하는 방어체계를 구축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영토 확장에 따라 방어체계는 여러 겹으로 확대되었고, 성곽의 경우 점차 규모가 커졌으며, 하천이 교차하는 핵심 거점에는 성벽 규모가 큰 성을 구축했다(조효식).새로운 도시의 건설은 인구 증가와 토목 기술 발달의 증거일 뿐더러 왕권강화를 위한 정치적 행위이기도 했다. 천년 도읍 서라벌과 천년 왕성 월성은 신라의 터전이고 국력이었으며, 신라 그 자체였다. 깊은 강은 멀리, 그리고 오래 흐른다.

2019-04-28

경북 농업의 힘

얼마 전 농림식품부가 ‘2018년 귀농귀촌 실태조사’를 발표했다. 설문조사에 참여한 귀농인은 귀농 결심 이유로 ‘자연환경이 좋다’(26.1%) ‘귀농비전과 발전 가능성’(17.9%) ‘도시생활의 회의’(14.4%) 등을 차례로 손꼽았다. 특히 귀농인의 60.5%가 만족한다고 말했다. 불만스럽다는 7%였다. 32.5%는 보통이라고 답했다. 또 귀촌 가구의 19.7%가 귀촌 이후 5년 이내에 농업으로 유입됐고, 귀농 준비에 평균 27.5개월이 소요된 것으로 조사됐다. 귀농 5년차에 들어 평균 소득이 3천896만원으로 올라서 농가의 평균 소득을 웃돌았다고 한다.베이붐 세대의 귀농 행렬에 이어 최근 심각한 취업난의 영향으로 젊은 세대도 귀농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17년 한해동안 귀농귀촌 인구가 51만 명을 넘어섰다. 급격한 고령화가 진행되고 있는 우리의 농촌 현실에 귀농인구 증가는 반가운 소식이다. 각별히 주목되는 것은 40세 미만 청년 귀농가구가 전체 귀농가구에 차지하는 비율도 해마다 증가세에 있다는 점이다.본래 귀농은 농촌을 떠나 제2차 3차 산업에 종사했던 사람이 농촌으로 환류하는 현상을 말한다. 대체로 불황에 의한 노동력의 환류나 은퇴노동자의 복귀가 대부분이다. 외환위기 이후 우리농촌의 귀농 사정이 이랬다. 그러나 최근 젊은 엘리트의 귀농도 부쩍 늘어난다 한다. 고학력자나 전문직 종사자의 귀농은 귀농 현상이 새로운 일자리 창출로 연결될 가능성을 보이게 한 낙관적 변화다.경북도가 14년간 귀농 1위 지역을 고수하고 있다고 한다. 2017년 귀농귀촌 통계에서 전국 가구의 18.3%가 경북에서 이뤄졌다. 1960년대 이후 오랫동안 경북도를 웅도(雄道)라 불렀다. 전국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제1의 도시란 뜻이다. 웅도의 위세가 많이 쇠퇴한 측면이 있으나 경북은 여전히 전국 최고의 위용이 곳곳에 남아 있다. 그 중 농축산물의 생산과 판매는 최고다. 다양한 고소득 작물과 선도농가가 많은 것도 장점이다. 귀농 1등 경북은 ‘경북의 농업’의 매력을 의미한다. 전통 경북 농업의 힘이라 하겠다./우정구(논설위원)

2019-04-28

‘김관영의 난(亂)’

안재휘 논설위원유승민의 선택은 옳았나. 어지럽게 돌아가고 있는 여의도 정치권 한가운데에서 요즘 가장 곤혹스러운 인물 하나를 꼽으라면 단연 유승민일 것이다. 안철수 역시 좌불안석이긴 마찬가지일 테지만 짐작이 쉽지 않다. 개혁적 보수, 합리적 진보의 ‘중도정치’ 건설에 뜻을 합쳤던 두 사람은 좌우 거대정당의 블랙홀 구심력에 속절없이 부서지는 바른미래당을 바라보며 망연자실하리라. 용어도 생소한 ‘패스트트랙’을 둘러싼 정국혼란의 진원지는 단연 바른미래당 지도부다. 지난 대선에서 실패한 유승민과 안철수는 중도정치 건설의 꿈을 품고 바른정당과 국민의당을 합쳐 바른미래당을 꾸려 놓고 일단 뒤로 물러앉았다. 거대 양당의 인력을 버티면서 독자적인 정치색을 굳건히 만들어가는 것이 그들의 숙제였다.그 첫 번째가 좌파-우파로 통칭되는 거대 양당과는 차별화된 정책 능력이었다. 어젠다를 생산하고 이슈를 선점해나가는 결기도 보여주어야 했다. 그러나 바른미래당은 창당 초기부터 정체성 혼란을 드러냈다. 2018년 연초 결성된 통합추진위원회에서 일어난 ‘햇볕정책 폐기’ 논란이 그 시작이었다. 바른정당이 ‘햇볕정책’을 존중한다고 선회함으로써 곧바로 봉합되긴 했었다.그러나 오늘날 혼란한 정국에서 돌이켜보면, 바른미래당은 ‘중도정치’에 대한 확고부동한 철학을 생산하지도, 공유하지도 못한 오합지졸들의 집합체였다. 꼴통 보수정치를 바꾸고 싶어 하는 일부와 호남에서 미래를 보장받지 못한 정치꾼들이 한쪽 발만 들여놓고 오직 ‘교섭단체’의 꿀단지를 향유하기 위해 뭉친 임시천막, 비 맞은 철새들의 초라한 둥지에 불과했던 것이다.바른미래당의 허술한 실체는 국민이 먼저 알아챘다. 민심은 좀처럼 지지를 보내주지 않았다. 정의당을 2중대, 민주평화당을 3중대로 삼은 좌파정당 본부중대 더불어민주당의 흡인력은 깊어만 갔다. 손학규 대표-김관영 원내대표 체제가 들어선 이후 바른미래당은 민주당의 4중대, 호남 정치의 별동대로 색깔을 호시탐탐 변화시키기 시작했다.‘패스트트랙’ 난장판의 본론으로 잠시 들어가 보자. 바른미래당 원내대표 김관영과 국회의장 문희상이 합작 행사한 ‘사보임’은 우선 언어적으로 치명적인 모순을 안고 있다. 사임(辭任)의 사전적 의미는 ‘맡아보던 일자리를 스스로 그만두고 물러남’이다. 오신환과 권은희 두 사람 모두 스스로 물러나지 않았다. 해임(解任)과 보임을 합친 ‘해보임’이라고 부르지 않는 한 어불성설인 것이다.국회법 48조 6항은 ‘임시회의 경우에는 회기 중 개선될 수 없고’라고 명시돼 있다. 반쪽짜리 최고위원회의에서 “내가 더불어민주당을 확실하게 지킬 것이다. 왜? 이게 내가 추구해온 정치적인 가치니까”라고 했던 손학규의 말은 단순한 실언이었을까. 손학규를 비판했다가 ‘당원권 정지 1년’이라는 퇴출 조치를 당한 이언주 의원의 “찌질하다”는 비난이 새록새록 떠오른다.‘김관영의 난(亂)’은 국회의장 문희상의 동조 때문에 가능했다. ‘신(新) 동물국회’라는 비아냥으로부터 문희상의 책임은 자유로울 수 없다. 너나없이 그럴싸한 이중인격의 사시이비(似是而非)다. ‘협치’의 정신이란 모조리 쓰레기통에 처박아 버리고, 정치보복에만 혈안이 된 그릇된 통치 기조에 그 시원(始原)이 존재한다. 이렇게 가서는 안 된다.손학규와 김관영, 그리고 문희상은 틀렸다. 정치를 이렇게 해서는 안 된다. 편파적 법안을 급행열차(패스트트랙)에 올려놓고 시간만 보낼 게 뻔한 꼼수 정략을, 짜고 치는 술수로 밀어붙이는 것은 결코 ‘바른’길도 ‘미래’를 위한 길도 아니다. “쉽고 편하고, 계산기 두드려서 그때 더 이익이 많아 보이는 길로 가지 않겠다”는 유승민의 작심은 여전히 옳다. 그러나 지금은 ‘진심’만 가지고는 안 된다. 이 난국이야말로 어긋난 것을 제자리로 돌려놓는 사필귀정(事必歸正)의 능력을 보여줄 때다.

2019-04-28

‘운명’과 ‘기적’ 사이

서수백 대구가톨릭대 교수·한국어문학부한국어를 배우는 외국인들에게 한국어 공부가 어떠냐고 물으면 이구동성(異口同聲)으로 하는 말이 있다. “어렵지만 재미있어요”이다. 그렇다. 한국어는 어렵지만 재미있는 언어다. 외국인들이 한국어를 어려워하는 이유 중 하나가 한국어는 비슷한 말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얻다’와 ‘받다’, ‘인간’과 ‘사람’, ‘모든’과 ‘온갖’, ‘놓다’와 ‘두다’, ‘달리다’와 ‘뛰다’, ‘한가하다’와 ‘여유롭다’, ‘바라보다’와 ‘쳐다보다’ 등등 수많은 유의어들을 구별하여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 외국인들에게는 복잡하고 어려운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한국어의 묘미에서 한국 사람들이 얼마나 언어에 민감하고 섬세한지를 알 수 있다.한국어 단어 중 ‘운명’과 ‘기적’을 생각해 보고자 한다. 두 단어의 명확한 의미 차이를 말하기가 쉽지 않다. ‘운명’이 ‘그렇게 되도록 정해져 있는 것’이라면 ‘기적’은 ‘그렇게 되리라고 예상치도 못하였던 것이 이루어진 것’이다. ‘운명’과 ‘기적’이 모두 ‘사람이 어찌할 수 없는 신의 섭리’라는 뜻이라면 두 단어는 유의성이 충분하다.이 세상에 ‘운명이나 기적 따위는 없다’고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생(生)에 ‘운명’의 가혹함과 ‘기적’의 짜릿함은 함께 존재하는 듯하다. 그래서 ‘사필귀정(事必歸正)’, ‘인과응보(因果應報)’, ‘전화위복(轉禍爲福)’이란 말도 우리의 운명 같은 인생, 기적 같은 인생에서 생겨난 말일 것이다. 삶에서 ‘운명 같은 일’은 곧 ‘기적 같은 일’이 될 때가 참으로 많은 듯하다.‘기적’은 대부분,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운명’으로 귀결되고 그것은 현실적인 결과로 받아들이게 된다. 그러나 때때로 사람들은 감당할 수 없는 가혹한 현실을 ‘운명이었다’라고 단정해 버리기도 하고, 누구도 헤아리지 못하는 인내와 노력의 현실을 ‘기적이다’라고 그 가치를 평가절하하기도 한다.2002년 월드컵 축구대회 4강 진출은 ‘신화(神話)’라고 할 만큼 큰 ‘기적’이었다. 그러나 그 기적같은 결과는 히딩크 감독의 뛰어난 지략(智略)과 선수들의 피나는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었다는 데 우리 스스로 한 목소리를 내었다. ‘한강의 기적’도 마찬가지다. 살고자 했던, 살리고자 했던 우리 모두의 힘이 있었던 것이다.얼마 전 치러진 창원 지역 ‘4·3 보궐 선거’는 또 한번 삶의 ‘운명 같은 일’, ‘기적 같은 일’을 생각하게 했다. 나는 정치적인 해석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 창원 성산구는 고(故) 노회찬 의원의 지역구이기도 해서인지 왠지 관심이 더 갔다. 늦은 시간까지 박빙(薄氷)의 투표차를 지켜보다 가슴 졸이는 심리적 스트레스를 피해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 날 아침 ‘4·3 보궐선거는 여야(與野)의 무승부 결과’라는 보도를 보았다. 박빙의 상황에서 역전(逆轉)이 일어난 것이다. 당락(當落)을 결정한 표차는 단 504표다. 선거 전부터 알려진 여론조사의 결과와 달랐다. 당선 결과에 대한 정의당 의원들의 세리머니(ceremony)가 여느 선거 때와는 달라 보였다.내 감정이 너무 이입되어서일까? 그들은 ‘기적’과 ‘운명’을 가슴 깊이 체감한 듯했다. 그리고 현실을 잘 살아가고자 하는 다짐도 보였다. ‘운명’과 ‘기적’ 속에 수많은 해석을 하며 깨닫고 다시 새로운 에너지를 충전하였을 것이다.우리는 ‘운명’과 ‘기적’ 사이에서 ‘현실’을 살아가고 있다. 그 속에 우리가 장담할 수 있는 ‘운명’이나 ‘기적’은 없다. ‘운명’과 ‘기적’이 ‘현실’의 반의어도 아니다. 때문에 현실을 살아가는 가운데 ‘운명’과 ‘기적’을 삶의 ‘핑계’나 ‘행운’쯤으로 여기며 그것으로 자신의 삶을 합리화해서는 안 될 것이다. 현실을 충실히 잘 살아낼 때 진정으로 ‘운명’과 ‘기적’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운명’과 ‘기적’의 체험이 우리를 날마다 살아가게 하는 힘인지도 모를 일이다.

2019-04-28

김정은의 리더십은 어떻게 변할 것인가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미 국무장관 폼페이오는 김정은에 대한 평가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독재자라고 표현하였다. 그는 베네수엘라의 마두로를 독재자라고 표현하면서 김정은도 같다는 입장이다. 북한 당국으로는 그의 이 같은 발언이 그들의 최고 존엄을 훼손하는 행위로 단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북한 당국이 폼페이오를 북미협상 창구에서 배제할 것을 요구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김정은을 몇 차례 독대한 미국의 협상 창구인 폼페이오의 교체를 요구한 것은 당연한 순서일 것이다. 북한 당국은 수령의 절대적 권위를 손상하는 그를 대화의 파트너로 인정하지 않고 회담 결렬의 책임마저 전가하려는 의도로 보인다.막스 베버는 리더십을 전통적 리더십, 카리스마적 리더십, 합리적 리더십으로 구분하였다. 김정은의 리더십은 어디에 해당될까.김정은은 북한식 당·국가 일원 체제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하면서 북한 인민의 절대적인 숭상을 요구하는 카리스마적 지도자이다. 베버의 분류상 그는 군주의 전통적 권위와 카리스마적 권위를 공유하는 지도자 유형이다. 1984년생의 30대의 지도자인 그는 조부 김일성의 모습으로 부족한 카리스마를 보완하고 있다. 사회주의적 왕조국가인 북한 체제에서 그는 김일성의 리더십을 벤치마킹하고 있다. 지난번 하노이 회담이나 이번 블라디보스토크 행차에서 그 모습은 재현되었다. 그는 김일성이 즐겨 쓰던 중절모, 인민복, 뿔테 안경, 옆머리를 쳐올린 헤어스타일, 걸음걸이까지 그대로 재연하였다. 그에게는 이러한 정치적 상징 조작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조언한 결과이다.그러면서도 집권 8년차를 맞이한 김정은은 김정일과는 다른 정치적 제스처를 여러 면에서 보이고 있다. 그는 은둔자인 부친과 달리 대중 앞에 직접 나서기를 좋아한다. 그는 서구 지도자처럼 양복 차림으로 집무실에서 신년사도 발표하기도 했다. 그는 농구를 좋아하고 미국의 농구 스타 데니스 로드맨을 평양에 초청하기도 하였다. 부인 리설주와 나란히 팝콘을 먹고 공연장을 찾는 모습도 보였다. 2017년 신년사에서 “능력이 따라서지 못하는 안타까움과 자책 속에 지난 한 해를 보냈다”고 말하는 특유의 솔직한 화법도 보였다. 하노이 회담 후에는 “수령의 혁명 활동과 풍모를 신비화하면 진실을 가리우게(가리게) 된다”는 의외의 경고까지 하였다.그러나 이러한 그의 리더십은 본질적 변화라고는 볼 수는 없다. 약간의 파격적 행동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정보화 시대의 65시간의 하노이행 열차 이동, 간이역 새벽 재떨이를 떠받쳐 든 여동생 김여정의 모습, 그의 현장 시찰시 지시사항을 기록하는 ‘적자생존’의 노 간부들, 평양 시민들의 열광하는 새벽 환영 행사, 모두가 왕조국가의 옛 모습이다.이번 북러 회담출발 전 평양 역두 간부들의 환송행사도 마찬가지다. 북한 권력 2인자 상임위원장 최룡해(70)의 가슴을 두드리면서 당부하는 수령의 모습, 노령의 간부들이 수령 앞에 읊조리는 모습은 왕조시대의 모습을 재현했다. 북한의 언론은 최고 지도자 위대성을 대대적으로 선전하고 있다.김정은의 정치적 제스처가 변모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의 리더십이 바뀐 것은 아니다. 그의 명령은 북한체제에서 법 이상의 최고 권위를 가지고 있다. 그의 리더십은 언제쯤 정상국가의 합리적 리더십으로 바뀔 것인가. 수령 절대론과 집단주의, 당 권력 독점과 병영 통제 사회가 지속되는 한 그의 리더십은 바뀌지 않는다. 아직도 당권과 군권이 분리되지 않고 권력의 분립장치가 없는 땅에서 그의 권력의 독점은 지속될 수밖에 없다. 여기에 중국이나 베트남식의 집단지도 체제는 엄두도 내기 어렵다. 아직도 수많은 정치범이 정치범 수용소에서 고통받는 현실에서 언론의 자유는 찾아 볼 수 없다. 이러한 체제 전반의 압제 상황에서 김정은의 리더십은 합리적으로 바뀔 수 없다. 북한의 개혁 개방이 그의 리더십 변화의 단초가 될 것이다.

2019-04-28

미세먼지보다 더 위험한 것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키프로스 섬에 한 조각가가 있습니다. 작품의 주요 테마는 여자의 상(像)이었지요. 불후의 명작을 만듭니다. 자신이 만든 조각상이 너무 아름다워 이 조각상과 사랑에 빠져들고 말지요. 여러분 잘 아시는 조각가 피그말리온 이야기입니다. 피그말리온의 이야기는 수많은 심리학자, 철학자, 작가, 화가 등에게 예술적 영감을 불어넣습니다. 그 가운데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이야기가 있으니 피그말리온 효과라는 것이지요. “긍정적인 기대를 심은 대로 상대방이 긍정적인 행동을 한다.”피그말리온 효과의 가장 극적인 사례는 하버드대학 교육 심리학자 로버트 로젠탈의 실험입니다. 로젠탈은 20년 이상 초등학교 교장을 지낸 레노어 제이콥슨(Lenore Jacobson)과 샌프란시스코의 한 초등학교에서 전교생을 대상으로 아이큐 테스트를 진행합니다. 그리고 이 학생들 가운데 테스트 결과와 아무 상관없이 무작위로 20%이 학생을 추려냅니다. 이 학생들의 명단을 각 반의 담임 교사에게 건네면서 이렇게 말하지요. “지적인 능력이나 학업 성취의 향상 가능성이 높은 학생들입니다.”8개월 후 20% 무작위로 뽑아준 학생들의 지능이 전보다 높게 나왔을 뿐만 아니라 학업 성취도 역시 크게 향상된 것으로 밝혀집니다. 교사들이 그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우습게 봤던 학생의 행동에서 의미를 찾으려 태도가 바뀌고 한결 부드럽고 기대에 넘치는 것으로 교사의 행동이 바뀝니다. 아이들은 교사의 눈빛과 표정을 1초만에 해석해 낸다고 하지요. 긍정 신호는 고스란히 격려와 응원의 메시지가 되어 아이들의 학업 성취도를 끌어 올립니다.전파는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공기 중에는 수많은 종류의 전파가 지금 이 시간에도 우리가 사는 공간을 떠 다니고 있습니다. 세상 역시 긍정 혹은 부정의 기운들이 전파처럼 감돌고 있습니다. 우리가 부정의 파장을 쏘면 그 파장을 받는 이는 피를 흘리고 -보이지 않는- 마음 속에 구멍이 뻥뻥 뚫립니다. 반대로 긍정의 파장을 보내면 그 긍정의 물결이 상대를 살리고 빛나게 하고 삶의 활력을 가져줍니다.미세 먼지보다 백 배 천 배 더 위험한 것이 우리로 하여금 낙담케 만들고 열등감에 빠지게 하는 존재들입니다. 부정의 파장을 차단하고 긍정의 물결을 일으키는 강력한 안테나의 삶. 그대의 눈빛과 표정, 말투, 언어와 몸짓으로 그대 주위의 사람들에게 긍정의 파장을 날려보내는 멋진 날 만드시기를!/조신영 인문학365 대표

2019-04-28

패스트트랙, 한국당의 딜레마

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한국당이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지정)을 놓고 딜레마에 빠졌다. 여야4당이 밀어붙이는 패스트트랙을 홀로 맞서 장외투쟁이란 극단적인 투쟁으로 막고 있지만 힘겹고 부담스럽다. 그렇다고 이제와서 갑작스레 협상으로 자세전환하는 것도 사실상 어렵다. 어디로 나아가야 하나. 해답을 찾지 못한 채 국회 밤샘농성과 사무실점거 등 초강경 대응책으로 바쁘다. 극한 대치정국이 이어지면서 재난대처 및 선제적 경기 대응을 위한 추가경정예산안의 국회 심의가 어려워진 것도 여야 모두에게 곤혹스런 일이다. 정부는 24일 국무회의에서 확정한 6조7천억원 규모의 추경안을 25일 국회에 제출했다. 재난대처 강화, 미세먼지 저감, 선제적 경기 대응을 위해 편성된 이번 추경안을 5월 임시국회에서 처리할 방침이다. 하지만 추경안 통과를 위해서는 국무총리 시정연설 후에 기획재정위, 행정안전위,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 환경노동위 등 12개 상임위원회의 예비심사, 예산결산특별위원회의 심사, 본회의 의결 등의 처리 절차를 거쳐야 한다. 패스트트랙 추진을 놓고 여야4당과 제1야당 자유한국당이 정면충돌하고 있는 상황에서 추경안 심사가 언제 시작될지조차 가늠하기 어렵게 됐다.여야가 이같은 극한대치국면에 빠져들게 된 데는 여당이 패스트트랙을 놓고 협상을 제안할 때 한국당이 별 생각없이 반대한 것이 단초가 됐다는 분석이 많다. 심리학에서 말하는 이른바 ‘현상유지편향’이 한국당을 곤경에 빠뜨렸다는 것이다.현상유지편향은 자신에게 특별한 이득이 되지 않는 한 어지간해선 자신의 행동이나 상태를 바꾸려 하지 않는 태도를 말한다. 이런 성향은 불확실한 미래를 두려워하고 환경변화를 좋아하지 않는다.확실한 현재만이 안전을 보장하고 위안을 준다고 생각한다. 이런 편향성은 생명과 재산이 걸린 중대 사안과 관련된 경우엔 나름 긍정적인 역할을 한다, 심리학자들은 원시 시대 인류가 처한 환경이 현상유지편향을 낳았다고 설명하고 있다.원시인들에게 잠자리로 쓸 동굴을 결정하는 것과 어떤 버섯을 먹을지 여부를 결정하는 일은 생명을 담보로 하는 위험한 선택이다. 자칫 낯선 동굴에 들어가면 맹수를 만나거나 잠자는 동안 독충에게 쏘여 죽을 수도 있다. 음식 역시 마찬가지다. 못 보던 버섯을 함부로 먹었다가는 독버섯을 먹고 죽을 수도 있다. 따라서 원시인들이 특별한 변화나 확실한 정보가 없을 때 기존에 해왔던 검증된 선택지만 고르는 것은 합리적인 선택이다. 그런데 현대 사회에서 옷을 고르고, 버스를 탈 때 자리를 선택하는 것, 그리고 특정 정당이나 법안을 지지하거나 반대하는 것은 생명과는 무관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은 기존의 선택을 바꾸지 않는 현상을 보여왔다. 자유한국당이 정국주도권을 잡기 위해 여당이 발의한 법안에 대해 반대를 일삼는 것이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그러나 이번 충돌국면에서 보인 현상유지편향은 한국당을 곤경에 몰리게 한 요인이 됐다. 한국당 지도부가 더불어민주당과 야3당의 움직임을 안이하게 지켜보다가 이같은 사태를 자초했다는 것이다. 한국당은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에 소극적이라고 판단한 민주당이 공수처와 검경 수사권 등을 놓고 민주평화당 등과 전격 합의할 것이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한국당이 선거제, 공수처, 검경수사권 등 다른 당의 협상제의에 응하지 않다가 여야4당이 패스트트랙을 추진하게 만들었다는 분석이다.한국당은 선거법 등 혁신법안에 대해 다른 야3당과도 대화의 창구를 열어놓고 여당을 견제하거나 여당과 좀더 전향적인 태도로 협상하는 자세를 견지하며 실리를 챙기는 유연한 협상전략을 구사하는 게 옳았다. 어떻든 싸움만 일삼는 정치를 누가 좋아할까. 이제 정부여당의 잘못된 정책에는 가차없이 비판을 가하되 올바른 국정운영에는 힘을 보태주는 건전한 야당을 보고싶다.

2019-04-25

약령시

약령시(藥令市)에 명령을 뜻하는 영자가 들어간 것은 관(官)의 명령에 따라 시장이 열렸기 때문으로 해석한다.우리나라는 옛날부터 중국으로부터 수입해 온 약재를 많이 사용했다. 그래서 중국에서 들어온 약재를 당약(唐藥), 당재(唐材)라 불렀다. 중국 약재와 구분해 국내에서 생산되는 약재를 향약(鄕藥)이라 부른다. 중국산 당약은 비싼 가격에 구입해야 하므로 일반인이 사용하기에는 힘든 약재다. 그래서 값싼 약재의 손쉬운 구매를 위해 조선 세종 때는 향약 생산을 장려하는 기구와 정책을 펴기도 했다.국내 약재의 주요 산지로는 예로부터 경상도와 강원도, 전라도를 손꼽았다. 특히 대구와 원주, 전주는 주변에서 반입되는 약재의 집산지로 잘 알려져 있었고, 이곳은 관할 관찰사의 명에 따라 약령시가 열렸다고 한다. 약령시는 음력 2월과 10월 1년에 두 번 열린다.약령시가 열리면 관리가 나와 중국에 바치는 약재(조공약재)와 우리나라 조정에서 필요한 약재를 먼저 매입했다고 한다. 약령시가 열리는 날이면 전국 각지의 약초 재배자와 채취자, 상인과 약재 수요자가 몰려 시장은 성시를 이뤘다. 약령시 가운데 가장 크고 대표적인 것이 대구약령시다. 대구약령시는 1658년 효종 9년에 시작된 것이 오늘날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당시의 약령시에는 단순 거래와 교환 외에도 많은 사람이 찾아와 약령시 개설을 알리는 각종 행사도 열었다고 한다.따지고 보면 올해가 대구약령시 개장 361주년 되는 해다. 이 만큼 긴 역사를 가진 축제도 잘 없다. 한국기네스위원회는 2001년 대구약령시를 한국 최고(最古)의 약령시로 인증을 했다.또 2004년에는 대구약령시 일원이 한방 관련 분야 최초로 한방특구 지정도 받았다. 귀중한 우리고장의 문화유산으로서 가치가 인정된 셈이다.대구약령시 한방축제가 5월2일부터 5일간 약전골목 일원에서 열린다. 거리극단, 한방미용체험, 정성탕 나누기 등 각종 행사도 덩달아 펼쳐진다. 조선시대부터 내려왔던 전국 최대의 약령시 축제가 이제 현대적 축제로 발전, 새로운 중흥기를 맞고 있다. 힐링감을 느낄 수 있는 한방축제 속으로 빠져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우정구(논설위원)

2019-04-25

삼일혁명 백 년, 임시정부 백 년

중국에서 보면 한국은 가까우면서도 멀다. 비행기에 실려, 버스에 실려 왔다 갔다 삼박사일. 상하이에서 항조우로, 그리고 다시 소흥으로.삼일운동 백주년이라고, 삼박사일 학술대회 겸 견학을 온 것이다. 상하이와 항조우에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옛 건물이 남아 있고, 소흥에는 루쉰의 자취가 남아 있다 한다. 이쪽으로 건너오기 전에 임시정부 백 주년 기념 원탁회의에 참석하기도 했다. 삼일운동은 운동이 아니라 삼일혁명이요, 왜냐하면 바로 이 의거를 통하여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태동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상하이의 임시정부 선언 날은 1919년 4월 11일, 삼일혁명 한 달 남짓한 때다.전국 방방곡곡에서 삼 개월 계속된 이 혁명에 이백만 명이 참여하여 7천500여 명이 살해당하고 1만6천여 명 부상, 경찰에 검거된 사람이 4만6천여 명, 검찰에 송치된 사람이 1만 9천54명, 이중 유죄판결 받은 이가 7천819명이었다고 한다. 이 혁명이 있고서야 혁명의 힘으로 임시정부는 태동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것도 대한제국식 임시정부 아니라 민주공화제를 표방한 ‘급진’ 정부를 말이다.새벽 네 시에 눈떠 인천공항에 여섯 시까지 가서 수속, 비행기 탑승 후 삼십 분 넘게 기다리다 한시간 사십 분 비행, 단체비자로 수속 밟고 나가 바로 임시정부 청사로. 또 버스 타고 세 시간 가까이 달려 항조우 임시정부 기념관으로.숨가쁜 첫날 일정이건만 마음은 더없이 숙연해진다. 그분들은 1910년 전후로 한 국가 존망의 위기에 처해 신민회를 결성, 투쟁하다 해외로들 망명 삼일혁명의 투쟁을 계기로 응집된 정부를 세웠던 것이다. 상해, 항주, 진강, 장사, 광주, 유주, 기강, 중경. 거듭되는 일제의 암살, 체포 기도를 헤치고 그분들은 대한민국의 기치를 내릴 수 없었고, 쫓기면서도 버티며 공격하고, 반격을 준비할 수 있었다. 둘째 날은 아침 여덟시부터 저녁 여섯시까지 하루종일 세미나다. 사회를 보고 발표도, 토론도 한다. 전원발표, 전원 토론이다.삼일운동을 전후로 하여 김동인, 염상섭, 이광수 세 사람은 각기 자신들의 방식으로 싸웠다. 김동인은 순문예지 ‘창조’를 펴내고 히비야 공원의 2·8 독립선언에도 참가, 3·1 운동때는 평양에서 동생이 돌리는 격문을 써주고 3개월이나 옥살이를 했다. 염상섭은 혼자서 재 오사카 조선인 노동자 대표를 자처하며 독립선언을 했다. 이광수는 2·8 독립선언서를 쓰고 상해로 건너가 임시정부에 참여, 기관지 ‘독립’의 창간으로 나아갔다.이광수는, 김윤식 선생은 말씀하시기를, 고아의식에 사로잡힌 사람이었다고 한다. 열한 살에 양친을 모두 잃은 육신의 고아요. 메이지중학을 졸업하던 해에 나라를 잃은 조국 상실의 고아였다는 것이다. 선생은 1969~1970, 1980년 등 두 차례에 걸쳐 일본에 가 자료를 섭렵, ‘이광수와 그의 시대’를 쓰셨다. 그래서인지 이 책에는 이광수의 일본 체험, 일본 사상과 일본을 통한 서양 사상의 접촉들이 잘 그려져 있다. 다만 모든 일에는 득이 있으면 실도 있다. 일본 근대가 이광수 문학에서 크게 부각되면서 이광수는 사상의 고아로, 그리하여 자신의 친아비와 형의 사상 대신에 ‘털빛깔’(정지용, ‘백록담’) 다른 의붓아비, 양부의 사상을 배육한 존재로 묘사된 점이 없지 않다.셋째 날은 루쉰의 고향 소흥으로 갔다. 18년산 소흥주가 달아 초두부 썩는 내음을 참을 수 있었다. 마지막 날 우리는 또 여섯 시에 길을 나서 ‘고국’으로 향한다.그분들의 희생이 없었던들 어떻게 오늘의 우리가 있으랴./방민호서울대 국문과 교수 /삽화 = 이철진한국화가

2019-04-25

학석사 연계과정

서의호 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10년전 프랑스 명문대학 에꼴폴리텍(Ecole Polytechnique)을 방문한 적이 있다. 에꼴폴리텍은 푸리어, 라그랑제, 포아송 등 수학, 통계, 공학 등에서 유명한 학자들을 배출한 나폴레옹이 만든 대학이며 프랑스 최고의 대학으로 꼽힌다.당시 인상 깊었던 것은 이 대학이 석박사 연계과정을 시행하고 있는 것이었다.모든 에꼴폴리텍 입학자는 석사까지 마치는 학석사 연계과정을 대부분 선택하게 된다. 이런 제도는 프랑스의 명문대학 그랑제꼴(Grandes Ecoles)에서 대부분 택하고 있는데, 이는 학문, 특히 공학이나 자연과학은 석사까지 마칠 수 있어야 그 분야를 어느정도 마스터 하게 된다는 철학에 근거한다.최근 주요 반도체 기업들이 대학들과 연계해 ‘반도체 계약학과’신설을 추진하고 있다고 한다. 정부와 반도체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서울대, 연고대, 카이스트(KAIST) 등과 반도체 계약학과 설치를 협의하고 있다고 한다. 기본적으로 학생장학금 학과 운영비 반도체 실습에 필요한 고가 기자재 등 각종 지원을 약속하고, 반도체 계약학과에 입학한 학생은 전원 해당 기업체에 취업이 보장된다.반도체 계약학과 설치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정부의 반도체 전문인력 양성 의지에 맞춰 추진하는 사업이다.산업통상자원부가 2018년 발간한 ‘산업기술인력 실태조사’에 따르면 반도체업계 전문인력은 1천500여 명이 부족한데 이는 디스플레이업계에 부족한 전문인력보다 5배 이상 많은 숫자라고 한다.흥미로운 것은 프랑스의 에꼴폴리텍처럼 최근 SK하이닉스는 카이스트와 추진 중인 ‘반도체 계약학과를 5년짜리 학·석사 연계과정을 통해 메모리는 물론, 비메모리 분야까지 한꺼번에 육성한다는 구상을 밝혔다는 점이다. 선발인원은 1년에 최소 50명. SK하이닉스는 카이스트에 학·석사 연계과정(3년+2년)을 검토해 달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중국은 최근 반도체 등 첨단제조업 분야에서 한국을 앞설 것이라고 공언했다. SK하이닉스와 카이스트가 2년 후부터 반도체 계약학과를 본격 운영한다고 가정할 경우 2025년에 첫 졸업생이 배출된다. 이때가 바로 중국이 한국을 앞설 것이라고 공언한 첫 해가 된다. 타이밍으로 보았을 때 시기적절한 시작이며 반도체 계약학과는 시급히 시행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규모는 차이는 있지만 SK하이닉스는 서울대 연고대 등에도 카이스트와 비슷한 내용을 제안한 것으로 전해졌다.반도체 계약학과를 설치·운영하기 위해서는 교육부의 관련 규정을 충족하고 인·허가도 받아야 하는 과정이 남아있긴 하지만 정부가 최근 비메모리 반도체를 ‘중점육성 산업’으로 선정한 만큼 시범적인 ‘SK하이닉스-KAIST 반도체 계약학과’ 출범은 문제가 없을 전망이다. SK하이닉스 반도체 계약학과 확정안은 정부가 이달 중 발표 예정인 비메모리 산업 육성방안에 담길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도 이날 반도체 계약학과 관련 내용을 내놓을 방침이다. 10년 전 에꼴폴리텍을 방문했을 때 방문단에 함께 했던 당시 포스텍 총장은 포스텍도 학석사 연계과정의 5년제로 운영하겠다는 신선한 뉴스를 발표했던 기억이 난다. 이 제도는 이런저런 이유로 실천 되지는 못했지만 상당한 수준의 연구가 진행된 적이 있다.지금 진행중인 반도체게약학과에 우리 지역의 포스텍이 포함되지 않은 것은 당황스럽다. 포스텍은 이러한 유수한 대학들과 공학분야에서 어깨를 겨루는 최고의 대학으로 당연히 이러한 계획에 포함되어야 한다. 또한 학석사 연계과정을 오래전부터 연구해온 노하우를 가진 대학으로 이러한 제도 정착에 선두를 끌어갈 수 있다고 믿는다. 포스텍이 학석사 연계과정의 선두주자로 국내 반도체산업 육성에 앞장서길 주문해 본다.

2019-04-25

문화의 바람

강성태 서예가·시조시인현대사회에서 문화란 삶의 유형 혹은 생활양식을 지칭하는 것으로, 그것은 곧 문학, 예술, 음악, 종교, 제도, 학문, 교육, 방송, 영화, 패션 등 우리의 삶과 생활에 밀접한 다양한 장르와 광범위한 양식을 포괄하고 있다.날씨가 화창해지고 기온이 오름에 따라 사람들의 바깥 활동이 많아지고 도처에서는 크고 작은 문화행사가 자주 열린다.지역별 특성화된 축제나 공연, 전시, 버스킹 등이 다채롭게 열리며 문화의 외침과 울림이 잔잔하게 퍼져나가고 있다. 자연이 꽃과 잎새, 신록으로 봄의 향연을 펼치고 있다면, 사람은 지혜와 정성, 의지와 참여로 그 나름의 특색 있는 문화의 향기를 피워나가고 있는 것이다.철강산업도시로 급성장한 포항은 철강이라는 다소 딱딱한 이미지와 유동인구의 영향으로 독특한 도시문화를 형성하지 못한 채 문화의 변방으로 밀려나는 듯 했다.그러나 필자가 알기로는 민선 5기가 시작되면서 포항시는 시민들이 진정으로 행복할 수 있는 문화, 환경, 복지, 관광 등을 아우르는 이른바 ‘영일만 르네상스’를 표방하며 문화도시 포항의 미래 발전을 위한 주춧돌을 놓았다고 여겨진다.그래서인지 포항에서는 수년 전부터 다양한 축제와 전시, 이색적인 공연, 포항운하 통수와 크루즈선 취항 등으로 볼거리, 즐길 거리가 눈에 띄게 많아졌다. 가는 곳마다 사람들이 모여들어 문화적인 프로그램에 동참하거나 이색문화를 즐기는 것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필자는 최근들어 인상깊게 본 공연과 전시회를 통해 포항 문화의 새로운 면모와 자생력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작년 말 KBS포항방송국 공개홀에서 열린 ‘자원봉사자를 위한 통기타 작은 음악회’는 포항지역의 순수 아마추어 기타동아리 뮤지션들이 열성적인 악기 합주와 시원스런 가창으로 자유분방함을 드러냈었고, 공연 틈새에 시낭송과 피아노, 대금 연주, 난타 등을 곁들여 한결 다채로움을 더했다.거기에 타지역의 통기타동호회까지 우정출연해서 어울리니 리듬과 선율이 흐르는 가운데 청중과 소통하고 교감하는 흥겨운 문화마당이 아닐 수 없었다.이러한 아이템은 지방 공영방송사의 장소 제공으로 민간영역 차원에서 뮤지션들의 재능기부와 발표를 통해 순수음악을 쉽고 편안하게 접하며 복합적인 공연 콘텐츠를 향유함으로써,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문화시민의 소양을 한층 더 높인 계기가 되지 않았을까 여겨진다.또한 포항시 승격 70주년 기념으로 (사)한국예총포항지회가 주관해서 중앙아트홀에서 열린 ‘영일만 사람들전’은 포항지역에 살았거나 현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영일만 사람들의 소박한 모습을 그림을 통해 만나볼 수 있어서 정겨웠다. 그림 속에는 작가의 가족이나 친구, 이웃, 예술가, 기업인, 정치인, 자화상 등 70명의 다양한 모습이 담겨져 있었는데, 인물전 기획 자체가 신선하고 이색적이며 인물에 투영된 포항의 역사와 개인적인 삶까지 더듬어볼 수 있어서 관람객들의 관심과 흥미가 컸었던 것으로 기억된다.영일만 르네상스는 문화예술이 주축이 돼야 한다.포항시는 이미 십수년 전부터 일월문화제, 스틸아트페스티벌 등 굵직한 문화사업을 전개하고 지원하는 등 문화적인 인프라와 예술적인 활동기반을 꾸준히 구축해왔다. 그 결실일까? 작년 말, 포항이 ‘철강산업 쇠퇴, 지진을 겪은 지역주민들의 일상을 회복하고 인문과 문화예술을 통해 다시 발전하겠다는 비전’을 담아 전국 10대 예비 문화도시에 선정됐다. 다행스럽고 고마운 일이다.문화예술의 품격이 그 도시의 품격이고 미래 경쟁력이다.돈으로 문화를 살 수는 없지만 문화는 분명 돈이 된다. 흥겹고 건실하고 자유롭고 독창적인 콘텐츠로 포항을 지탱해갈 수 있는 문화의 저력과 융합이 필요한 때이다. 행정 입안자의 거시적인 안목과 문화예술인들의 활발한 노력, 시민들의 적극적인 참여로 향기로운 문화의 꽃을 활짝 피워, 문화도시를 지향하는 포항시의 밝은 내일을 기약해본다.

2019-04-25

하루에 한 번씩, 한 번에 한 걸음 전진하기

일본의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글쓰기를 위해 저녁 삶을 포기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저녁에는 일체 약속을 잡지 않습니다.사회 생활을 하는 유명인사가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궁금했습니다만 이는 명백한 사실이었습니다. 하루키는 자신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일을 위해 부차적인 활동들에 뺄셈을 제대로 했던 것이지요.매일 새벽 4시 전으로 일어나 오전까지 정한 분량의 글을 쓰고, 점심 식사 후에는 달리기를 통해 기분전환 겸 체력 단련을 합니다. 오후에는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고, 사람들을 만나기도 하죠. 그리고 일찍 저녁을 먹고 프로야구를 보다가 9시 무렵에 잡니다. 하루키는 매일 4천자 분량 글을 씁니다. 더도 덜도 말고 딱 4천자를 쓴다고 하지요. 그는 자신의 글쓰기 습관을 하루에 한 번씩 즉, One day at a time이라고 말합니다. 하루에 한 번씩 한 번에 한 걸음씩 멈추지 않고 나가는 거지요. 초보 작가들은 컨디션이 좋거나 영감이 마구 쏟아질 때 1만자도 쓰고 슬럼프에 허덕일 때는 한 글자도 쓰지 못하는 일들을 반복합니다. 그러나 대 작가 하루키씨는 글이 잘 써질 때든 막힐 때든 한결 같이 매일 4천자 쓰기를 고수합니다. 잘 풀릴 때는 절제하고, 글이 풀리지 않을 때는 힘을 냅니다. 무려 30년 동안 꾸준히 멈추지 않고 말이지요.출간을 위한 집필로서 하루 4천자는 만만치 않은 분량입니다. 소설 한 권을 쓰려면 대략 200자 원고지 1200매(24만자)를 써야 하는데 4천자씩 매일 쓰면 60일이면 24만자를 채울 수 있습니다. 두 달에 책 한 권을 써 내려가는 집필 속도입니다. 물론 초고 쓰기 이후 퇴고의 과정이 느리고 고통스럽습니다만.독일의 신학자 폴 틸리히는 이렇게 말합니다. “진정한 용기란 가장 중요한 일을 위해 두번째로 중요한 일을 포기하는 것이다.” 곱씹을수록 의미가 깊어지는 말입니다. 저도 새벽 편지로 독자님들을 꾸준히 만나려 용기를 내고 있는 중입니다. 가장 중요한 글쓰기를 위해 저녁의 잡다한 일들을 모두 포기하고 늦어도 8시에는 잠자리에 들려 매일 투쟁합니다. 한때 아침형 인간 열풍이 불었고 최근에도 미라클 모닝, 새벽 5시의 기적 등 바람직하고 건강한 사회 분위기가 형성되어 좋습니다만 뺄셈이 아닌 덧셈이 되면 곤란한 상황이 벌어집니다. 포기할 것을 내려놓지 않고 좋은 것들을 계속 더하기만 하면 삶에 무리가 발생합니다. 함께 건강하게 새벽을 깨워 책 읽고 글 쓰는 동지들이 늘어났으면 좋겠습니다./조신영 인문학365 대표

2019-04-25

조현병 논쟁

최근 경남 진주의 한 아파트에서 벌어진 방화·살인 사건의 피의자가 조현병을 앓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조현병 환자를 둘러싼 논란이 커지고 있다.조현병은 정신질환의 하나로, 과거 ‘정신분열증’으로 불렸다. 하지만 부정적 편견을 심어줄 수 있다는 지적에 따라 ‘악기의 현을 고르다’는 뜻의 조현병(調絃病)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현악기의 줄처럼 이어진 뇌의 신경구조가 잘 조율되지 않아 정신적 혼란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조현병의 주된 증상은 환청, 망상, 이상 행동 등의 증상과 감정이 메마르고 말수가 적어지며, 흥미나 의욕이 없고, 대인관계가 없어진다. 환자들은 흔히 환각을 경험한다. 어떤 환자들은 이런 환청과 대화를 하기도 하며 혼잣말을 중얼거린다. 환각과 함께 망상은 정신분열병의 가장 특징적인 증상이다. 주위에서 일어나는 일을 자신과 연관지어 개인적인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는 관계망상, 나를 감시하고 있다거나 누군가가 나를 조종하고 있다는 피해망상, 내가 구세주이거나 하나님의 계시를 받았다는 종교망상을 자주 볼 수 있다. 망상은 합리적인 설득이나 논쟁으로 쉽게 교정되지 않는다. 의사들은 망상이나 환각, 환청, 이상한 행동 등이 6개월 이상 지속하면 조현병으로 판단한다. 조현병 환자가 전부 극단적인 행동을 하는 건 아니지만 일부 환자들은 공격적 성향을 보이기도 한다.전문가들은 보건 당국, 경찰, 지역 사회 등이 나서서 정신질환자를 관리하는 사회 안전망을 서둘러 구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조현병 환자들의 범죄는 피의자와 관련이 없는 불특정 다수를 피해자로 만드는 강력 범죄로 이어진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따라서 기초수급자 등 정기적인 치료를 받기 어려운 조현병 환자들에 대해 우선적으로 공공의료 지원 시스템을 마련하고, 스스로 치료를 중단한 고위험군 환자는 방문 확인을 하는 등 예방조치가 필요하다. 또 치료조건부 기소유예나 현재 유명무실화된 치료명령제도를 활성화해 국가·지자체 차원에서 환자들을 관리해야 한다. 조현병 환자가 불특정다수를 향한 강력 범죄 피의자가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한 사회의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19-04-24

책맹

장규열 한동대 교수주식으로 거부가 된 워렌 버핏(Warren Buffett)이 성공에 이른 열쇠는 ‘책읽기’였다고 한다. 디지털문명의 한 가운데인 21세기, 거의 모든 정보를 온라인으로 찾아볼 수 있으며 손가락 하나로 세상의 온갖 지식을 검색할 수 있다. 그럼에도 버핏은 ‘의미있는 지식과 뜻깊은 정보는 책을 읽지 않고는 얻어 챙길 방법이 없다’고 고집하며 독서를 통하여 평생 배우는 일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90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세상과 너끈히 겨루며 싱싱함을 유지하는 비결 또한 책읽기라고 하였다. 하루 500페이지에 달할 정도의 독서량으로 다양한 종류의 책들을 섭렵하며 최첨단 정보를 기준으로 최우량 기업의 가능성을 판단하는 그만의 비법을 유지한다고 한다.양날의 칼. ‘지식정보시대’로 일컫는 오늘. 디지털문명이 안겨준 정보의 총량은 어마어마하다. 특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아도 온라인은 정보로 이미 차고 넘친다. 정보의 양이 많기도 하지만 정보가 진화해 가는 속도를 따라잡기도 버거울 판이다. 사이버공간의 ‘초연결사회’는 인간에게 필요한 정보와 지식을 손쉽게 획득할 수 있게 하였다.그러나 과연 충분할 것인가. 컴퓨터와 영상모니터에만 심취하고 몰두하는 현대인은 생존과 성장에 필요한 만큼 정보와 지식을 챙기고 있는 것일까. 놀랍게도 이렇게 풍성한 정보습득이 간편해진 세상에 온라인검색만으로 얻지 못하는 정보가 수두룩하다는 것이다. 글을 읽지 못하는 상태를 문맹(Illiteracy)이라 불렀었지만, 디지털시대 현대인은 문맹보다 훨씬 심각한 상태에 이르렀다고 한다. 이름하여 책맹(Aliteracy). 글을 읽을 줄은 물론 알지만 책을 읽지 않는 상태를 일컫는 표현이다.디지털정보와 영상전달에만 의존하는 사이 굳이 책을 읽을 필요를 느끼지 않게 되는 일이야말로 사람을 위험한 상태에 빠뜨리게 된다. 글을 따라 읽으며 자연스럽게 체득하였던 집중력과 판단력의 저하를 초래하여 급기야는 디지털로 정보를 습득하면서도 점점 더 조급해 지고 산만해 지며 인내력을 잃게 된다는 것이다.그런 결과, 지식듭득과 상관이 없을 평소에도 주의력에 손상이 발생하여 균형있는 인성을 유지하는 일마저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고 한다. 디지털중독이 가져오는 책맹현상은 위험하다. 유튜브와 게임과 SNS는 인간의 삶을 편리하게는 하였지만, 그 내용과 시야를 협소하게 하고 축소해 가는 경향성을 지닌다. 디지털의 모든 특장점을 충분히 활용할 줄도 알아야 하지만, 책읽기를 통하여 개발되는 집중력과 분석력도 절대로 포기할 수 없을 터이다.마이크로소프트의 빌게이츠(Bill Gates)도 소문난 독서광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따금씩 좋은 책들을 소개하기도 한다. 알리바바의 마윈(馬雲)은 성공에 이르는 동안에는 몰라도, 그 성공을 유지하려면 독서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하였다. 빛의 속도로 바뀌어 가는 세상에 간편한 도구인 온라인 접속에 더하여 지루하고 답답하기 할 독서에 몰입하는 일은 비효율적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인간의 문명은 독서를 통하여 사고력과 분석력을 진전시키고 통합과 협력을 위한 인성의 개발도 지식을 넘는 지혜로 가득한 책을 읽음으로 구현하여 왔다.지난 세기 초반 미국 작가 마크 트웨인(Mark Twain)은 아직 문맹이 존재하던 시절에 이미 ‘책을 읽지 않는 사람은 글을 읽지 못하는 사람보다 나은 게 하나도 없다’고 하였다. 인터넷과 온라인에 중독된 나머지 인간의 소중한 능력을 잃어버리는 누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 디지털문명을 더욱 꽃피우게 하기 위하여도 책의 가치를 다시 새겨야 하며, 읽는 일의 수고로움을 지켜야 한다. 아는 것이 힘이다. 제대로 알기 위하여 읽어야 한다.

2019-04-24

광주에서 대구를 생각하다!

김규종경북대 교수·노문학무등산 자락에 자리한 작은 원룸에 둥지를 튼 지 어느덧 두 달. 경북대와 전남대 교환교수제에 따라 광주에서 1년을 보내기로 한 때문이다. 광주와 대구의 거점 국립대학으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전남대와 경북대. 그동안 학생교류는 지속적(持續的)으로 진행됐으나, 교수교류는 이뤄지지 않았다. 그러던 차에 경북대와 전남대 양교 총장이 교환교수제에 합의함으로써 실질적인 교류가 시작된 것이다. 나는 거기에 첫 번째로 동승(同乘)한 셈이다.예전에 민교협 회의나 국교련 회의차 광주에 들른 적은 있지만, 장기체류는 이번이 처음이다. 관찰자나 관광객이 아니라, 거주민의 한 사람으로 광주를 살펴봄은 초로(初老)의 인생살이에 하나의 전환점이 되리라 희망한다. 역마살 탓인지 모르지만 나는 우리나라 곳곳을 떠돌며 지난 20년을 살아왔다. 자동차로 획득한 이동의 자유와 떠돌고자 하는 욕망에 방방곡곡을 누비고 다닌 것이다. 그리고 이제는 사계절 정착민으로 광주에 머물고 있다.대구나 광주, 어딜 가나 눈에 밟히는 것은 시장이며 노점상이다. 거주지 부근에 있는 말바우 시장은 2, 4, 7, 9일이 장날이다. 열흘 가운데 나흘이 장날인 셈이다. 그때마다 길거리에 영감과 노파들이 노점(露店)을 펼치고 줄지어 앉아들 있다. 쑥과 냉이, 달래에서부터 양배추와 대파, 각종 한약재 등속을 펼쳐놓고 하염없이 손님을 기다리는 사람들. 얼마 전에는 홍어를 전문적으로 판매하는 양동시장에도 들렀다. 노점은 거기도 예외가 아니었다.그러다가 대구의 크고 작은 재래시장이 떠올랐다. 그곳에 터를 잡은 숱한 노점상들의 모습과 매무새가 새삼스레 기억되는 것이다. 어디 그뿐이랴?! 도처(到處)에 깔린 24시간 편의점과 각종 마트와 슈퍼마켓, 소규모 점방과 대규모 할인매장들이 두 도시의 닮은꼴을 형성한다. 간간이 들려오는 누추하고 낡은 트럭의 녹음방송이 광주와 대구의 친연성을 강조한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이렇게 고단한 나날을 영위하고 있는 것일까, 하는 상념이 찾아든다.거리거리에서 폐지를 실은 손수레를 끌고 힘겹게 걸음을 옮기는 노인들의 행장(行狀)도 광주나 대구나 매한가지다. 빈자는 어디에도 있고, 그들의 팍팍한 삶은 지역을 가리지 않는다. 그러하되 대구와 광주는 확연히 다르다. “기억하고 행동할게요” 현수막이 내걸린 문흥초등학교 정문. 4·16 세월호 대참사 5주기를 추념(追念)하는 노란 현수막. 유민 아빠 김영오 씨가 광주에 정착한 데는 까닭이 있다.‘무등 공부방’에서 열린 김용운 선생 초청강연 진행자는 대구의 성리학과 광주의 실학을 대비하여 말한다. 과거를 투영하는데 거금을 들이는 대구와 소액을 미래에 투자하는 광주의 차이를 지적하는 것이다. 영광스러운 조선의 성리학과 빛나는 과거와 벼슬자리와 가문을 추억하는 대구와 실패한 조선의 성리학과 민초들의 신산(辛酸)한 삶과 미래를 떠올리는 광주. 아마도 그런 차이가 5.18 민중항쟁의 광주와 간첩과 폭도 운운하는 대구의 차이일지도 모른다.지난주에 문을 연 산수동의 인문연구원 ‘동고송(冬孤松)’ 창립대회는 은성(殷盛)했다. 한겨레신문 곽병찬 대기자의 ‘향원익청(香遠益淸)’ 출판기념회를 겸한 개원식에 60명도 넘는 사람들이 참여하여 가난한 지역 문사들의 후원을 자처한다. 1980년대 전두환-노태우로 이어지는 폭력적인 군부정권 아래서 12년 도피 생활을 했다던 황광우 소설가가 잠시 운을 뗀 지난날의 회억(回憶)은 참으로 따스하고 인간적인 것이었다.대구에서 광주로 올 때 어떤 분들은 대구에 없는 ‘무등 공부방’을 아쉬워했다. 반면에 대구에는 ‘지식과 세상’이나 ‘대경인문학협동조합’ 그리고 ‘가락 스튜디오’같은 곳이 있다. 그런 단체와 기관이 서로 어울려 소통하고 연대하면서 화합과 상생, 과거와 미래를 터놓고 논하는 자리를 만들어가는 것도 뜻있는 일이라 생각한다. 한여름을 방불케 하는 4월 하순의 상념이다.

2019-04-24

만약 모든 어린이들이 명상을 배운다면

김현욱 시인고통의 수레바퀴는 어떻게 돌아가기 시작할까?‘고엔카의 위빳사나 명상’(월리엄 하트, 김영사, 2017)에서는 ‘맛지마니까야’를 통해 모든 고통의 원인을 적시한다. “무지가 일어나면, 반응이 일어난다. 반응이 일어나면, 의식이 일어난다. 의식이 일어나면 마음과 물질이 일어난다. 마음과 물질이 일어나면, 여섯 가지 감각 기관이 일어난다. 여섯 가지 감각 기관이 일어나면, 접촉이 일어난다. 접촉이 일어나면, 감각이 일어난다. 감각이 일어나면, 갈망과 혐오가 일어난다. 갈망과 혐오가 일어나면, 집착이 일어난다. 집착이 일어나면, 되어감의 과정이 일어난다. 되어감의 과정이 시작되면, 태어남이 일어난다. 태어남이 일어나면, 늙음과 죽음이 일어난다. 슬픔, 애통함, 육체적 정신적 고통 그리고 고난과 함께. 이 모든 고통이 일어난다.”고통의 수레바퀴를 멈추려면, 자신의 마음에 대해 알아야 한다. 붓다는 인간의 마음이 크게 네 가지 과정으로 이루어져 있음을 알았다. 의식(원냐나), 지각(산냐), 감각(웨다나), 반응(상카라)이 그것이다. 의식은 분별하지 않는 알아차림·수용을, 지각은 인지행위·분류·분별과 평가를, 감각은 가치부여·호불호를, 반응은 갈망과 혐오를 가리킨다. 결국 인간이란, 끊임없이 변화하는 몸(아원자 입자)의 흐름과 이보다 더 빠르게 변하는 정신(의식, 지각, 감각, 반응)으로 이루어져 있음을 붓다는 발견했다.깜마(카르마)를 ‘운명’으로 알고 있는 사람이 많다. 깜마는 ‘운명’이 아니라 ‘행동’이다. 붓다는, 당신이 당신의 주인이고, 당신이 당신의 미래를 만든다고 설했다. 그러니까, 인생이 고통스럽다면? 그것은 ‘나’의 ‘반응’ 때문이다. 모든 고통의 원인은 ‘반응’ 때문이다. 그러니까, 반응을 멈추면, 고통도 사라진다. 모든 반응을 멈추면, 모든 고통이 사라진다.고통의 진짜 원인은 마음의 반응이다. 반응이 쌓이고 깊어지면 갈망과 혐오가 생겨난다. 붓다는 이것을 ‘갈애(渴愛)’라고 했다. 목마른 사람이 물을 찾듯이 인간이 삼독(三毒)과 오욕(五慾)에 집착하는 것을 갈애라고 한다. 갈애는 번뇌와 망상을 일으킨다. 번뇌와 망상은 인간의 정신을 병들게 한다. 이룰 수 없는 것을 끊임없이 바라면서도, 이루어진 것에 대해서는 불만을 갖는 정신적 습관이 바로 ‘갈애’다.고통의 수레바퀴를 거꾸로 돌려보자. 집착은 왜 일어날까? 좋아하고 싫어하는 정신적 반응이 쌓이고 깊어지면 집착이 생긴다. 무엇이 좋아하고 싫어함을 일으킬까? 감각 때문이다. 감각은 왜 일어날까? 몸의 감각과 마음, 즉 여섯 가지 감각 토대를 통해서 일어난다. 왜 여섯 가지 감각 토대가 존재할까? 그것들이 마음과 물질의 흐름에 필수요소이기 때문이다. 마음과 물질의 흐름은 왜 일어날까? 붓다는 ‘의식’, ‘나’와 ‘나 아닌 것’으로 세상을 분리하는 인식 행위 때문에 일어난다고 했다. 이것 때문에 ‘정체성’이 생기는 것이다. 매순간 의식이 일어나 특정한 정신적, 육체적 형태를 취한다. 따라서, 인간이 살아있는 동안 의식은 끊임없이 흐르고 변한다. 그렇다면 무엇이 의식의 흐름을 일으킬까? 붓다는 그것이 반응 때문에 일어난다고 했다. 고통의 수레바퀴를 움직이는 원인의 막바지에 다다랐다. 반응은 왜 일어날까? 붓다는 그것이 ‘무지’ 때문에 일어난다고 설했다.인간은 반응한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반응하는 대상의 본질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반응한다. 인간은 반응했다는 사실조차 모른 채 끊임없이 반응하고, 반응한다. 전 세계적으로 명상 붐을 일으킨 달라이 라마는 이렇게 말했다.“만약 세계의 모든 8세 아동들이 명상을 배운다면, 한 세대 만에 세계의 폭력을 없앨 수 있을 것이다.” 고통의 수레바퀴를 깨부수는 방법은 ‘명상’이다. 만약 한국의 모든 어린이들이 명상을 배운다면 어떻게 될까?

2019-04-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