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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우리’는 우리의 생각보다 강하다

장욱현영주시장우려했던 일이 결국 벌어지고야 말았다. 최근 일본이 무역과정에서 우대 조치하는 백색리스트+에서 대한민국을 제외하는 결정을 내렸다. 이는 우리나라 경제 전반에 걸쳐진 중대한 사안임과 동시에 우리지역에서도 결코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될 현실이기도 하다.일본이 먼저 수출제한 조치를 했던 불화수소 등 우리지역에 소재한 기업인 SK머티리얼즈에서 생산하는 반도체 식각가스의 고도화와 영주시가 주력하고 있는 향후 로봇산업과 무기 등 군수산업에 필수품인 부품소재 첨단베어링 분야에도 미치는 영향이 결코 가볍지 않기 때문이다.어려운 현실을 맞이해 첨단베어링 국가산업단지 조성 등 우리 영주시가 해야 할 일을 착실히 추진해 나간다면 우리의 선명하고 확실한 성과를 거둘 것이 틀림없다.세계적인 경기침체와 불안한 정치상황 속에서 전국의 자치단체들은 한 발짝이라도 앞서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그러나 변화를 수용하면서 이를 구체적인 정책으로 만드는 일은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영주시는 힐링중심, 행복영주를 시정목표로 시민이 행복한 도시를 만드는 데 힘써 왔다. 영주가 자랑하는 사람을 살리는 산 소백산에 걸 맞는 생명력 넘치는 도시로 영주를 바꾸어 보자는 꿈, 다른 도시와는 다른 새로운 길을 걷는 행복도시를 영주의 비전으로 삼았다.비전을 현실화하기 위해서는 바른 정책과 실천이 필요하다. 영주는 다양한 정책으로 시민이 행복한 도시의 기반을 착실히 다져왔으며 이를 바탕으로 영주의 면모가 확 바뀌기 시작했다.먼저 새 정부의 국정과제인 첨단베어링산업을 비롯해 영주의 도시 경쟁력을 높일 새로운 경제정책을 추진했다. 산업의 쌀이라 불리는 베어링은 첨단산업 핵심부품으로 해외시장 100조원, 국내시장 6조원에 이르는 미래 첨단산업의 하나로, 지역의 새로운 미래를 이끌어 나갈 핵심 산업으로 육성해왔다. 모든 시민이 한마음으로 노력한 결과 100대 국정과제에 포함되었으며, 국가산업단지 최종 후보지로 선정되는 쾌거를 이루었다. 영주에서 추진되는 또 다른 국책사업인 중부권 동서내륙철도건설 사업 등 영주를 철도 물류 중심도시로 부활시키기 위한 다양한 사업들도 진행 중이다.다음으로 농업혁신을 통해 부자농촌의 기반을 다져왔다. 서울 청계산 한우 프라자, 석촌역 농·특산물 직판장, 인천 문학경기장 영주한우셀프장 등 지역 우수 농·특산물의 직거래를 통한 수도권 시장을 확보했다. 또한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베트남 호찌민, 미국 로스앤젤레스 농·특산물 홍보전시 판매장 개장 등 공격적인 수출 마케팅으로 해외시장 개척에 전환점을 마련했다. 외국인 계절 근로자 도입으로 농가의 고질적인 일손문제를 덜고, 농기계 임대사업을 대폭 확대한 것은 다른 지역에서는 보기 드문 사업으로 영주 농민들에게 큰 호응을 얻고 있다.영주는 우리나라의 전통문화를 간직한 문화도시다. 지난해 부석사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데 이어 지난 7월 아제르바이잔 바쿠에서 열린 제43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에서 소수서원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됐다, 영주의 문화적 가치가 다시 한 번 인정받는 순간이었다.대한민국을, 그리고 영주를 알렸다는 데서 큰 의미가 있지만 경제적인 분야에서도 가지는 의미가 크다.영주가 갖고 있는 문화전통 자원은 어느 산업자원 보다도 더 훌륭한 영주의 미래 먹거리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영주는 가진 문화적 강점은 전통문화를 박제하지 않았다는 데 있다. ‘유물’로서가 아닌 ‘유산’으로 전통문화를 이어가고 있기 때문이다.영주는 모든 정책의 원동력을 영주가 가지고 있는 고유한 유산에서 찾는다. 영주시가 전국 최초로 시행한 초·중·고 선비인성교육이 그렇고 대한민국 선비대상 조례 제정 등 전 분야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정책도 궤를 같이한다. 살아있는 문화와 전통을 세계에 알리고, 대한민국의 전통문화산업을 주도해 나갈 계획이다.이밖에도 영주시는 도시재생사업을 통해 시민들의 쾌적한 생활환경을 조성하는 것은 물론, 우수하고 아름다운 공공건축물로 전국에서 주목받는 건축의 도시로 이름을 알렸다. 이낙연 국무총리의 방문과 각 지방자치단체의 벤치마킹이 이러한 성과를 증명했다.시민의 삶을 보듬는 생활밀착형 복지와 유니세프 아동친화도시 인증에 걸 맞는 아동친화 정책의 추진 등 도시의 비전과 정책을 다듬어 나가고 있다. 국제적인 정세로 보나, 국내 여건으로 보나 어려운 시기가 도래했음은 분명하다. 그러나 어려운 시기를 겪을 때야말로 우리가 성장하는 시간이 될 것이다. 영주가 첨단베어링 국가산업단지 후보지로 선정될 때도 부석사와 소수서원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선정될 때도 쉽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었다. 돌이켜보면 지나온 과정 하나하나 쉬운 걸음은 없었지만 그때마다 우리는 앞으로 나아갔고 선명한 자취를 남겼다.우리 모두가 각자의 자리에서 본연의 역할을 다할 때 위기는 기회가 될 것임을 믿는다. 도전할 줄 아는 용기와, 하나로 힘을 모을 줄 아는 지혜를 갖춘 영주시의 미래는 그래서 희망적이다.

2019-08-11

대통령은 응답하라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일본이 우리나라를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하는 수출규제조치를 강행한 이후 온 나라가 시끄럽다. 일본의 이같은 조치에 강하게 반발한 문재인 대통령의 결기는 시원·통쾌·상쾌할 정도였다.특히 “우리는 다시는 일본에 지지 않을 것”이란 대통령의 선언에는 마치 3.1독립운동 선언때 같은 비장함이 서려 있었다. 일본의 무역보복 조치에 대한 문 대통령의 태도는 그 이후에도 한결같이 단호하다.지난 5일 청와대에서 열린 대통령 주재 수석보좌관회의에서도 문 대통령은 “일본은 결코 우리 경제의 도약을 막을 수 없다”면서 “오히려 경제강국으로 가기 위한 우리의 의지를 더 키워주는 자극제가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그러면서 “남북 간의 경제협력으로 평화경제가 실현된다면 우리는 단숨에 일본의 우위를 따라잡을 수 있다”는 새로운 주장을 펼쳤다. 바로 다음 날 북한이 단거리 탄도미사일로 보이는 발사체를 쏘는 바람에 평화경제에 대한 비판론이 들끓기는 했지만 말이다.지난 7일에는 문 대통령이 일본 경제보복 사태 후 첫 부품소재 생산기업 현장 방문에 나섰다. 문 대통령이 찾은 경기 김포시의 정밀제어용 감속기 생산 전문기업인 SBB테크는 일본에서 수입해 오던 ‘로봇용 하모닉 감속기’기술을 국내 최초로 개발한 업체다.문 대통령은 “수출규제 때문에 어려움이 있는데 SBB로서는 오히려 기회가 될 수 있다”고 격려했다. 8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가경제자문회의에서도 문 대통령은 일본의 수출규제조치에 대해 “자유무역 질서와 국제분업 구조의 신뢰를 무너뜨리는 조치”라고 비판했다.문 대통령은 “국제적으로 고도의 분업체계 시대에 나라마다 강점을 가진 분야가 있고 아닌 분야가 있는데, 어느 나라든 자국이 우위에 있는 부문을 무기화한다면, 평화로운 국제 자유무역 질서가 훼손된다”면서 “일본의 기업들도 수요처를 잃는 피해를 입게 될 것이므로 부당한 수출규제 조치를 하루속히 철회해야 한다”고 강조했다.그러면서 “변명을 어떻게 바꾸든, 일본의 조치는 우리 대법원의 강제징용 판결에 대한 경제보복”이라고 규정한 뒤 “이는 다른 주권국가 사법부의 판결을 경제문제와 연결시킨 것으로, 민주주의 대원칙인 ‘삼권분립’에도 위반되는 행위”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당장 기업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단기대책부터 시작해서 우리 부품·소재 산업의 국산화 등 경쟁력을 높이고, 더 나아가서는 전반적으로 위축된 우리 경제의 활력을 되살리는 보다 종합적이고 근본적인 장기대책까지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그러나 대통령의 말잔치에는 우리가 일본에 맞대응할 카드가 정확히 무엇인지 친절한 설명이 없다. 알맹이가 빠져 있다. 그냥 우리나라도 경제적으로 많이 발전했고, 국력도 많이 신장했으니, 맞싸워서 이기겠다는 얘기다. 최근 퇴근 뒤 술자리에서 만난 사람들의 궁금증은 한결같았다.우리 정부가 일본을 압박해 이길 카드가 무엇인지, 앞으로 어떻게 사태를 풀어 나갈지에 대해 상세히 알고 싶다는 주문이었다. 필자도 민심의 요청에 따라 대통령과 청와대의 자신감이 어디서 나오는 지 열심히 취재해 봤지만 근거없는 자신감의 피력만 반복될 뿐 설득력있는 답변은 들을 수 없었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기자들의 질문에 “일본의 조치에 상응해 맞춤형 대책을 세우기 위해 구체적으로 어떤 대책을 세우고 있는 지는 밝히기는 어렵다”고 했다. 작전상 알려주지 않겠다니 마구 따지기도 어렵게 됐다.다만 큰 소리는 쳤지만, 별다른 대책이 없는 건 아닌가 싶어 걱정일 뿐이다. 이쯤되면 대통령은 응답해야 한다. 일본 수출규제조치는 이런저런 방안으로 헤쳐나갈 작정이고, 단거리미사일 쏴대며 난리치는 북한은 요런저런 방법으로 살살 달래서 협상장에 자리 앉혀 평화경제를 실천해나가겠다는 구상을 밝혀야 한다. 대통령은, 국민이 주인인 나라, 주인의 궁금증을 풀어줄 의무가 있다. 대통령은 응답하라.

2019-08-08

위기의 망월지

충북 청주시에 있는 ‘원흥이 두꺼비 생태공원’은 전국 최초로 아파트 단지 안에 조성된 생태공원이다. 4천900가구가 들어선 택지개발지구내에 생태공원이 조성된 것 자체부터가 이색적이다. 이렇게 조성되기에는 자연을 보존해야겠다는 이곳 주민들의 노력이 크게 작용했다.2003년의 일이다. 토지공사가 산남지구 택지개발공사를 시작하기 전 인근 구룡산에서 동면하던 두꺼비 수만 마리가 알을 낳기 위해 방죽으로 들어가던 모습이 주민들에 의해 포착됐다. 이곳이 두꺼비의 집단 산란지임이 알려지게 되었고, 개발과 보존을 둘러싼 논란이 벌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업무방해와 환경평가 소홀 등으로 서로 맞고소를 하던 양측이 합의점을 찾아 이곳에 두꺼비 생태공원이 지어진다. 원흥이 두꺼비 생태공원은 이처럼 시민의 뭉쳐진 힘으로 만들어졌다. 자연을 보존하겠다는 주민들의 뜻이 모아지면서 만들어진 생태공원은 우리나라 환경운동의 새로운 이정표로 평가를 받았다.33만평 규모 아파트 단지를 끼고 100억 원 가까운 예산이 투입돼 만들어진 이곳 두꺼비 생태공원은 전국 최고의 두꺼비 생태공원으로 지금도 명성을 날리고 있다. 자연생태 학습장으로서도 많은 인기를 모으고 있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전국 최대 규모 두꺼비 산란지로 알려진 대구 수성구 망월지가 존폐 위기를 맞고 있다는 안타까운 소식이다. 해마다 수만 마리의 두꺼비들이 알을 낳고 이동하는 자연의 신비로움을 선사했던 이곳은 주변의 개발과 지주들의 연이은 용도폐지 신청으로 어쩌면 못의 일부가 메워질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에 빠져있다. 사유권 행사를 막을 수는 없겠지만 막무가내로 자연생태계가 훼손되는 것을 방치하는 일도 있어서는 안 된다. 2007년 새끼 두꺼비 300만 마리가 이동하는 모습이 카메라에 잡혀 이곳은 도심 속 자연생태공원이라는 별명으로 전국적 유명세를 탔다.원흥이 두꺼비 생태공원처럼 개발할 수야 없겠으나 생태적 가치를 살리는 행정당국의 관심과 지혜가 필요하다. 최근 20년간 양서류의 급격한 감소가 진행되고 있다고 한다. 망월지 위기에 대한 해법이 있어야 할 이유다./우정구(논설위원)

2019-08-08

무궁화의 날을 아시나요

심한식경북부8일은 우리나라 꽃인 무궁화의 날이었다. 별 의미없는 상업적인 이벤트에도 관심을 보여온 방송에서도 무궁화를 들먹이거나 의미를 되새기는 보도조차 없이 넘어가 무궁화를 아끼는 국민으로서 실망스러운 하루였다. 지난2007년 민간단체가 주도해 옆으로 누운 8자가 무한대(∞)의 무궁(無窮)을 상징한다는 의미로 8월 8일을 무궁화 날로 지정했다. 정부의 공식 지정을 받지는 못했지만, 무궁화의 날로 지켜져 오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이를 아는 국민은 아주 극소수에 그치고 있다.기자는 이른 아침부터 공영방송을 중심으로 방송매체의 뉴스 시간을 주의 깊게 시청했다. 그러나 “오늘이 무궁화의 날”이라는 보도나 발언은 한 마디도 들을 수 없었다. 일본의 식민통치 잔재로 이 땅에 남겨진 벚꽃철에 벚꽃축제는 주요 뉴스로 다투어 반복 보도해온 모습과 대비돼 씁쓸하기조차 했다.“무궁화 무궁화 우리나라 꽃 삼천리강산에 우리나라 꽃” 무궁화를 너무나 쉽게 이해하며 따라 부르던 동요이다. 지금은 어린아이들이 이 동요를 부르는 것을 듣기도 어렵다. 숨바꼭질 하는 아이도 찾아볼 수 없지만 술래가 수를 셀 때 반복했던 것이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였을 정도로 무궁화는 항상 우리 곁에 있었다.지금의 현실은 이 뿐이 아니다. 무궁화의 의미를 교육하고 가꿔야 할 대다수 관공서와 교육현장에서 무궁화를 홀대하고 있다. 이런 사정을 감안하면 공영방송에서조차 무궁화에 대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있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귀결인지도 모르겠다.서울시가 8일부터 15일까지 서대문형무소와 독립문, 3·1운동 기념탑을 품은 서대문 독립공원에서 ‘서울 무궁화 축제’를 진행하고 있다.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서란다. 무궁화는 특별한 날에만, 특정한 인사들에게, 특정한 곳에서만 대접받아야 할 꽃이 아니다. 전국 어디서나, 국민 누구에게나 가슴속에서 우러나오는 존경을 받아야 명실상부한 나라꽃이 될 것이다. 시인 김춘수는 시 ‘꽃’에서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로 노래했다.누구나 쉽게 볼 수 있고 쉽게 이야기 속에 등장할 때 무궁화가 진정한 나라꽃이 될 것이다. 지금 정부와 국민들은 일본의 무역규제에 따른 경제전쟁의 일환으로 일본제품에 대한 불매운동을 가열차게 진행하고 있다. 극일(克日)을 외치고 있는 시점에서 우리에게 더욱 다가오는 것이 무궁화다. 일제 강점기 때 우리의 선조들이 목숨바쳐 지킨 것 중의 하나가 무궁화임을 감안하면 무궁화의 날을 올해처럼 흘려보내는게 과연 옳은 일인지 되묻고 싶다./shs1127@kbmaeil.com

2019-08-08

장맛비

두 주 동안 서울 가까운 곳에 가 갇혀 있었다. 시험문제를 내는 일이었는데, 출입이 금지되어 있는 것은 물론 휴대폰도 사용할 수 없었다.건물 바깥으로도 나갈 수 없을 뿐 아니라 건물 중앙의 창으로 보이는 뜰에도 출입할 수 없는 ‘감금’은, 몸 아픈 사람의 ‘휴양’에는 더 없이 좋은 약이었다. 아침이 오면 일찍 일어나 식사를 하고 문제를 내다 보면 금방 점심 때가 되고 오후는 조금 더 길게 느껴졌지만 아무 나갈 일도 없고 연락올 데도 없는 두 주일이란 얼마나 귀한 시간이었던가! 바깥 소식은 오로지 텔레비전으로만 접할 수 있었으니, 이 일방통행식 수신도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 보고 듣고 생각만 하면 되니 말이다.텔레비전 뉴스는 세상의 소식을 먼데 일처럼 실어다 주었다. 안타까운 죽음의 소식이 들려왔다. 정두언 전 의원이 세상을 떠났다는 것인데, 경찰은 휴대폰의 행방을 찾고 있다고 했다. 지난 번에 노회찬 의원이 세상을 떠날 때도 휴대폰이 없어졌다 나타났던 기억이 되살아났다. 황병승 시인도 자신의 집에서 세상 떠난지 근 보름만에 발견되었다고 했다. 지난 ‘미투’ 열풍 때 안 좋은 일이 있었다는데, 그때부터 세상으로부터 고립된 삶을 살아왔다 했다. 나는 ‘미래파’라는 ‘소동’ 가까운 ‘유파’에 ‘전혀’ 냉담한 편이었다. 그의 죽음은 지난해 그를 후원해 주던 비평가의 타계와 함께 이 ‘유파’의 ‘치세’가 끝났음을 알려주는 듯했다.세상에서는 폭염이 계속되고 있다고 했다. 벨기에에서는 사상 유례없는 더위로 무슨 조치가 내려졌다고도 하고 서울에서도 관측 이래 최고였다나 하는 무더위 소식이 이어졌다. 갇혀 있기는 해도 문제를 ‘뽑아내기’ 위해서 실내 온도만큼은 적절한 수준에서 유지할 수 있게 해주는 ‘당국’의 배려가 고마울 지경이었다. 옛날에는 겨울이 좋고 더운 여름이 싫었는데, 지금은 겨울도, 여름도 다 좋아진 나 자신의 삶을 생각했다. 체온이 내려가고 심장이 느리게 뛰고 사람들을 만나는 활기보다 홀로 주어진 시간이 반가운 나이.갇혀서는 술도 마실 일 없으니, 지난 오 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막걸리로 오염된 몸의 독소도 서서히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 좋은 일이었다. 난생 처음으로 드디어 술을 끊을 때가 왔다고 생각했다. ‘출소’해서 나가면 새 삶을 살겠다고 생각했다.몸이 덜 시달리게 하니 잠도 규칙적으로 잘 수 있기는 하지만 이미 두세번은 깨다자다 해야 하는 체질, 새벽이면 저절로 눈이 떠졌다. 검은 창밖으로 비 내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렇게 가까이서 비내리는 소리 듣는 게 정말 오랜만이었다. 도시에서 창은 이중창일 때가 많고 그나마 허공에 뜬 아파트에서 날것 그대로의 빗소리란 쉽게 듣기 어렵다.‘비가 내리는군.’그러고 보니, 장마전선이 북상해서 며칠 동안 수도권 일대에 비가 계속될 거라는 소식을 들은 것도 같았다. 며칠 전에는 태풍으로 제주도 무슨 오름인가에는 사상 초유 천 밀리미터가 넘는 비가 내리기도 했다고도.사람들로부터 세상으로부터 떨어져 있는 날들, 새벽의 장맛비는 내 몸속에 남아있는 소년 시절을 되살아나게 했다. 참 비가 좋은, 비가 오면 몸이 흠뻑 젖도록 자전거를 타고 학교까지 한 바퀴 돌아오고서야 직성이 풀리던 시절이었다. 새벽에 줄기차게 내리는 빗소리를 하나하나 세면서 생각했다. 정말 이번에 출소하면 새로운 삶을 살아야 하겠다고. 하루하루가 새로운 삶을./ 방민호 서울대 국문과 교수 /삽화 = 이철진한국화가

2019-08-08

사람과 쓰레기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여름 휴가철이면 온 산천이 몸살을 앓는다. 물 좋고 경치 좋은 곳마다 사람들이 북적대고, 사람들이 다녀간 곳마다 쓰레기 더미가 악취를 풍긴다. 모처럼 기대를 걸고 계곡이나 바닷가를 찾았다가 함부로 버린 쓰레기가 눈에 띄면 기분을 잡치게 마련이다.그런 쓰레기와 악취를 좋아할 사람은 없을 터인데, 상당수의 사람들은 의외로 그것을 당연한 일로 받아들이는 것 같다. 그래서 저들도 갈 때는 태연히 거기다가 쓰레기를 버리고 간다. 심지어는 먹고 마시고 놀던 자리에 쓰레기를 그대로 두고 가는 파렴치들도 적지가 않다. 가뜩이나 일손이 부족한 농어촌 사람들이 행락객들이 버리고 간 쓰레기까지 치워야 하는 처지가 된다.행락철의 쓰레기문제는 해결방법이 의외로 간단하다. 자기가 가져온 것은 도로 가져가는 것이다. 자기가 먹고 마신 쓰레기는 집으로 가져가서 평상시처럼 분리 배출하면 그만이다. 그러면 어느 계곡 어느 바닷가에도 담배꽁초나 수박껍질 하나 없는 깨끗한 환경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토록 쉽고도 좋은 일을 사람들은 왜 한사코 마다하는 것일까.인간은 인간으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인간으로 길러진다고 한다. 젖먹이 아이를 늑대가 데려가서 키우면 늑대의 습성을 그대로 가진다는 건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어떤 교육을 받고 무엇을 학습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인간이 될 수 있다는 것인데, 우리나라 산천에 쓰레기가 넘쳐나는 것은 그만큼 교육이 잘못되었다는 반증인 것이다.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고, 사회생활을 하려면 어려서부터 남과 더불어 사는데 필요한 사회성을 길러야 한다. 그 사회성의 기본은 역지사지하는 마음, 즉 타인에 대한 이해와 배려다. 올바른 인성을 위한 교육은 유치원에서부터 철저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고 하지 않는가, 건전한 사회의 바탕이 되는 가장도 기본적인 인성을 함양하는 교육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가 않다. 삽으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는다는 말도 있지만, 올바른 인성교육으로 절감되는 사회적 비용만 하더라도 실로 엄청난 것일 수 있다.남이 버리고 간 쓰레기가 악취를 풍기며 나의 기분을 잡쳤다면, ‘이렇게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는 것은 남에게 피해를 주는 일이구나. 나라도 이런 짓을 하지 말아야겠구나.’라고 생각하는 것이 제대로 교육을 받은 사람의 태도일 것이다. 유치원생들에게 설명을 해도 충분히 알아들을 일인데도,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많은 것은 교육과 학습이 충분히 되어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은 곧 그런 교육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다는 걸 의미한다.남을 배려할 줄 아는 능력, 역지사지하는 공감능력은 올바른 인성의 기본이고 교육의 최종 목표라야 한다. 학문과 종교와 예술이 지향하는 궁극적인 목표도 바로 그런 것일 때 그것이 인류에게 기여하는 바가 될 것이다. 남에게 해를 끼치느냐 덕을 끼치느냐가 인격을 평가하는 기준일진대 이해와 배려와 공감능력이 부족한 사람에게 높은 점수를 줄 수는 없는 일이다. 아무리 학식이 많고 지위가 높다고 해도 남에 대한 이해와 배려가 부족한 사람이라면 제대로 인격을 갖춘 사람일 수가 없는 까닭이다.우리나라가 한 걸음 더 선진국이 되고 국민들이 보다 성숙한 시민이 되려면 무엇보다 우선으로 유치원에서부터 철저하게 올바른 사회성을 기르는 학습을 시켜야 한다.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는 것은 남에게 불쾌감을 주는 것이고, 그것은 결국 나에게로 되돌아온다는 것을, 학습하고 또 학습하여 뇌리에 각인하고 몸에 배게 하는 것이 바로 바람직한 교육이 될 것이다. 제가 먹은 쓰레기를 되가져 가는 정도의 교양이나 상식도 갖추지 못한 사람이라면, 그가 무슨 짓을 하고 아무리 잘난 척을 해도 한낱 저급한 인간에 불과할 뿐이다.

2019-08-08

교육부가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

서의호 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대학 교무회의에 참석하면 가장 골치 아픈 논의가 하나 있다. 그것은 어떤 학과의 정원을 줄여서 어떤 학과의 정원을 늘리느냐 하는 것이다. 대학에서 가장 골치아픈 논의 중 하나다. 학과의 정원을 줄이고 싶은 학과는 없기 때문인데, 대학의 입장에서는 잘 나가는 학과의 정원을 늘리고 싶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논의는 한국대학에서만 빚어지고 있는 기현상이기도 하다. 그건 대학정원의 결정을 교육부가 틀어쥐고 있기 때문이다.그런데 오랜만에 교육부가 다소 충격적인 발표를 하였다. 교육부가 대학입학정원 감축을 대학 자율에 맡긴다는 다소 듣기에 생소한 정책 발표를 하였다. 지금은 교육부가 전체 대학에 점수를 매겨 ‘재정 지원 제한 대학’을 선정, 국가 장학금 등 교육부 지원금을 받을 수 없게 만들어 사실상 대학의 정원조정을 압박하고 퇴출시키는 방식으로 대학정원에 간섭하고 있다. 그런데 내년부터는 이렇게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평가는 원하는 대학만 하고 평가 결과를 내놓을 때도 ‘일반 재정 지원 대학’만 선정하겠다고 했다. 다소 획기적이다. 아마도 이런 조치의 배경은 구조조정을 해봐야 학령인구 감소를 따라가지 못한다는 점에서 정책변경이라기보다는 정책포기로 봐야 할 것이다.고된 과정을 통해 힘들게 평가해서 줄인 정원이 5년간 6만5천 명 정도인데 앞으로는 5년간 학령인구는 15만 명 가량 줄어든다는데 주목해 본다. 2000년 수능에 응시했던 학생은 89만 명이었다. 수능 시험일 일정 시간에는 비행기가 날지 못하고, 전 국민이 수험생을 위해 숨을 죽이고, 모든 언론 매체가 수능 시험을 톱 뉴스로 다루는 그런 분위기였다. 대학으로 가는 길은 그만큼 치열했다.그런데 금년 수능시험 응시자 수는 55만 명으로 예상된다. 2000년보다 35만 명 가량 줄어들었고 역대 최저라고 한다. 그리고 당장 내년부터 만 18살 학령인구 숫자는 50만 명 밑으로 내려가고, 5년 뒤 2024년이 되면 37만 명이 된다고 한다. 2000년에 비하여 정확히 반으로 줄어든다는 이야기이다.그래서 이번 발표는 교육부가 구조조정을 하는 속도보다 인구 감소 속도가 훨씬 빠르기 때문에 공연히 고생만 하고 문제해결을 못한다는 비난을 피하기 위한 고육지책의 정책좌절로 보인다. 그동안 교육계에서는 “교육부가 없는 것이 최선의 정책이다”라는 자조적인 말이 있어왔다. 교육부가 대학지원을 무기로 입학정원에서부터 대학 구조조정까지 여러 가지로 대학을 규제하여 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학의 고통은 생각하지 않은채 대학을 규제하여 오던 교육부가 이젠 가만 내버려 두어도 대학은 고통 속에 스스로 규제될 것이라는 기대감으로 손을 놓겠다는 뜻으로 보인다.교육부가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혼돈하고 있다. 상황이 좋을 때는 대학을 규제하지 않는 것이 교육부가 할 일이고 상황이 안좋을 때는 대학을 도와주는 것이 교육부가 할 일이다.지금 상황은 거꾸로 가고 있다. 대학을 규제하는 힘을 과시하기 위해 교육부가 평시에도 대학지원을 무기로 대학을 규제하고 있다가 지금과 같이 위기 상황에서 대학은 고통을 대학자율에 맡기고 있는 것이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앞으로 고통을 받게 될 지역 군소 대학이나 전문대 같은 취약 대학에 좀더 많은 지원책을 입안하여 그러한 대학들이 입학정원 감소에도 불구하고 생존할 수 있는 지원책을 마련해 주어야 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평가는 필요하고 평가를 징계의 수단으로 사용하기보다는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지의 잣대로 삼아야 한다. 평소에 규제의 칼을 사용하던 교육부는 이제 대학생존을 위한 적극적인 정책을 펼 필요가 있다.교육부가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좀 더 잘 구분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2019-08-08

황금을 가장 많이 캘 수 있는 곳은?

“넓고 넓은 바닷가에 오막살이집 한 채 고기 잡는 아버지와 철모르는 딸 있네. 내 사랑아 내 사랑아 나의 사랑 클레멘타인.”이 노래 원곡은 어부 이야기가 아니라 광부와 딸 이야기입니다. “In a canyon, in a cavern, 골짜기와 동굴 안에서 Excavating for a mine 광산을 캐며 Lived a miner, forty niner, 살아가는 포티나이너와 And his daughter, Clementine. 그 딸 클레멘타인.”포티나이너는 금광을 찾아 1850년대 미국 서부로 몰려간 사람들, 금을 찾아 헤매던 사람들을 뜻하는 말입니다.금광을 통해 벼락부자가 될 수 있다는 소망을 가진 사람들이 캘리포니아로 몰려드는 현상을 ‘골드러시’라고 하지요. 일부 성공한 사람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금광을 찾는 데 실패합니다. 정작 부자가 된 사람들은 금광에 달려든 사람이 아니라 몰려든 그들에게 온갖 생활용품을 팔던 사람들입니다.리바이 슈트라우스(Levi Strauss)는 천막 캔버스 천으로 바지를 만들어 팔았고 바로 그 청바지가 리바이스입니다. 찰리 채플린 주연의 영화 ‘골드러시’를 보면 먹을 것이 떨어지자 가죽으로 된 신발을 삶아 먹는 장면이 나옵니다. 골드러시에 휩쓸려 삶이 무너져 내린 사람들을 묘사한 장면이었지요.일리노이대 해부학 교수 할리 먼센은 인체를 화학 성분으로 분석했습니다. 사람의 몸은 칼슘 2.25㎏, 인산염 500g, 칼륨 252g, 나트륨 168g, 마그네슘 28g, 그리고 소량의 철과 구리 성분으로 구성됐음을 밝혔습니다. 체중의 65%는 산소, 18%는 탄소, 10%는 수소, 나머지 3%는 질소로 돼 있다는 것도 입증했지요. 이 모든 인체 구성 물질의 값을 계산했을 때는 단돈 89%, 우리 돈 1천원에 불과하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한 사람의 가치는 어떻게 결정할 수 있을까요? 물질로 생명의 가치가 정해질 수는 없는 법입니다. 우리의 이마 안쪽에 있는 그 무엇. 체중의 0.2%밖에 차지하지 않지만, 산소는 거의 20%를 소비하는 신체 기관. 두뇌 속에 과연 어떤 것이 채워져 있는 가로 한 인생의 가치를 결정하는 법입니다.“황금은 땅에서 채굴된 것보다 인간의 생각 속에서 더 많이 채굴되었다”라고 나폴레옹 힐은 말합니다. 캘리포니아 골드러시의 주 무대가 샌프란시스코였고 그 지역에서 훗날 실리콘 밸리가 탄생했으니 멋진 비유가 아닐 수 없습니다. (내일 편지에 계속)/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대표

2019-08-08

조롱 당하는 기상청

이시라 기획취재부“아침에 일어나니 아무 일도 없었던 것 같았는데”제8호 태풍 프란시스코가 지역에 많은 비와 함께 초속 25∼30m의 강풍이 몰아칠 것으로 보도된 뒤끝이라 어리둥절했다는 시민들이 많았다. 물론 태풍 피해가 없었기에 다행스러웠지만 오락가락한 예보 때문에 많은 인력과 행정력이 낭비됐다는 측면에서 뒷맛이 개운치 않다.기상청은 제8호 태풍이 한반도에 근접해오던 초기인 지난 5일 “6일 밤 남해안에 상륙한 뒤 한반도 내륙을 관통하며 7일 오전 경북 안동 서쪽 약 90㎞ 육상을 거쳐 강원도 속초 부근에서 동해안으로 빠져나가며 소멸할 것”이라고 예측했다.하지만, 불과 하루도 지나지 않은 6일 기상청은 태풍이 동해로 빠져나갈 것이라는 초기의 전망과 달리 경북 안동 주변에서 열대저압부로 약화하면서 소멸할 것으로 말을 바꿨다. 뭐가 뭔지 모르게 계속해서 바뀐 기상청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정작 태풍은 6일 오후 8시 20분께 부산으로 상륙하고 나서 열대저압부로 인해 세력이 약해지면서 40분 만에 소멸했다. 태풍이 온 사실을 느끼지 못한 지역민들은 이런 이유로 분통을 터뜨렸다. 기상청은 당초 경북 지역을 통과하며 강한 바람과 함께 최대 200㎜ 폭우가 쏟아질 것으로 전망했다. ‘태풍예보 시 바다 기온이 낮아 급속히 열대저기압으로 변할 가능성이 있다’는 ‘면피 사유’를 끼워넣은 것이 기상청으로서는 천만다행이었다.어쨌든 경북지역의 민관은 태풍 피해를 최소화하기 만반의 준비를 하느라 갖은 부산을 떨었다. 공무원 2천487여명이 밤샘 비상근무를 했다. 태풍과 같은 재난에 과잉대비를 한다 해도 무방비 상태로 맞는 것보다는 낫다. 하지만, 기상청이 통보문을 발표할 때마다 태풍의 상륙지가 수시로 바뀌고 시민들에게 혼란만 준다면 기관의 존재가치를 찾기도 어렵다는 비판까지 나오고 있다.태풍의 경로는 얼마 동안 제자리에 멈춰 있기도 하고 다양하게 움직이기 때문에 변수가 많아 진로 파악이 어렵다. 더욱이 한반도와 같은 반도지형을 거쳐 가는 태풍의 진로 예보는 특히 어려움이 있기 때문에 기상청은 그동안 항상 슈퍼컴퓨터 타령을 해왔다. 지금과 같은 예보능력이라면 슈퍼컴이 아무리 많아도 책임 있는 기관이 되기는 글렀다는 비판을 어떻게 감당할지 의아할 뿐이다. 가장 중요한 순간에 기상청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자 ‘예보’가 아니라 ‘중계’를 하고 있다는 따가운 조롱거리로 전락한 상황이다.기상 예보 하나로 수많은 인력과 예산이 투입되는 상황이다. 지구온난화 등으로 기후 변화가 무쌍한 지금, 삶의 질에 영향을 미치는 정확한 일기예보가 갈수록 요구되고 있다. 민간기상업체만도 못한 이번 태풍 예보를 보면서 많은 시민이 조롱해온 ‘구라청’이란 별명이 피부에 와 닿은 며칠이었다./sira115@kbmaeil.com

2019-08-07

항왜(抗倭)와 토왜(土倭)

김규종 경북대 교수·노문학1592년 4월 임진왜란 발발당시 가토 기요마사의 좌선봉장 사야가(沙也可)는 일본의 조선침략이 잘못되었음을 확신하고 경상좌병사 박진에게 부하들을 이끌고 투항한다. 사야가처럼 일본의 무의미하고 명분 없는 침략전쟁에 반대하여 조선에 투항해 일본에 맞서 싸운 왜인들을 ‘항왜’라 한다.반면에 조선인이되 왜군의 침략에 즈음하여 자발적으로 그들의 앞잡이가 되어 조선군과 대적한 자들을 일컬어 ‘순왜(順倭)’라 한다. 선조가 명나라 신종에게 요동태수 자리를 애걸한 이유 가운데 하나가 순왜가 너무 많았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휘하의 신료들조차 순왜의 규모를 이실직고할 수 없었을 정도였다니, 조선왕조의 피폐와 무능과 신하들의 타락과 분열상은 미루어 짐작 가능하다.22살 나이에 투항한 사야가는 왜군에 대적하기에 부족한 조선의 무기에 눈을 돌린다. 그는 충무공과 서찰을 교류하면서 조총제작과 화약제조에 관한 견해를 개진한다. 그를 기려 1798년에 간행한 ‘모하당문집’에서 일부 발췌한다.“소장은 비록 타국에서 온 천한 군인이오나 외람되게도 신민의 대열에 끼게 되었사오니 본국인의 심정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하문하신 조총과 화포와 화약 만드는 법은 전번에 비국(備局)으로부터 내린 공문에 의거 진에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제 또 김계수를 보내라 하명하시니 곧 보내옵니다. 총과 화약을 대량으로 만들어서 기필코 적병을 전멸시키기를 밤낮으로 축원하옵니다.”사야가는 충무공에게 부하 김계수를 보내고, 조선의 무기체계 개선에 진력한다. 아울러 그는 경주와 울산 전투에서 전공(戰功)을 세워 선조에게 가선대부 직함과 사성(賜姓) 김해김씨를 제수받는다. 그가 곧 김충선이다. 김충선은 1636년 발발한 병자호란에도 65세 노구를 이끌고 출정하여 청나라의 2대 칸인 홍타이지와 맞서 싸우는 애국정신을 발휘한다.아베 총리가 도발한 경제전쟁으로 나라가 온통 소란스럽다. 총칼과 대포를 동원한 살육전은 아니지만, 경제전쟁도 전쟁이다. 단지 총성 없는 전쟁일 뿐. 이럴 때 특히 유의할 것이 내부의 분열과 그것을 획책하는 자들의 분탕질이다. 임진왜란에서 조선백성이 고통받은 까닭은 암군(暗君) 선조의 무능과 우심(尤甚)한 당쟁으로 왜적의 침략을 예방하지 못했기 때문이다.21세기 한일 경제전쟁에 임해 우리는 국론을 통일하고, 침착한 자세로 저들의 도발에 응전해야 한다. 적전분열이나 과도한 공포, 지나친 선전선동은 백해무익할 뿐이다. 더욱이 순왜 못지않은 현대의 ‘토착왜구’ 준동은 기필코 막아내야 한다. 일제강점기에 친일부역자를 가리키는 ‘토왜’는 1910년 ‘대한매일신보’에 ‘토왜천지(土倭天地)’라는 글로 구체화한다. 신문은 토왜를 “얼굴은 조선인이나, 창자는 왜놈”이라고 규정하고, 네 가지로 부류로 나누었다.첫 번째가 일본의 앞잡이 노릇하는 고위 관료층이고, 두 번째는 일본의 침략행위와 내정간섭을 지지하는 정치인과 언론인이다. 세 번째는 친일단체인 일진회 회원, 네 번째가 토왜를 지지하고 애국자를 모함하는 가짜 소식을 퍼뜨리는 시정잡배다. 100년 전과 비교해보면 차이는 있지만, 아직도 토왜라 불러도 무방할 정도의 정치인과 언론인, 자발적 부역자(附逆者)가 적잖다. 그자들이 정보강국 민주국가 대한민국의 국민이라는 사실이 새삼 놀라울 따름이다.백기투항(白旗投降)을 주장하는 자들이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과 2015년 위안부 협상의 후예라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2차 대전의 영웅 처칠이 남겼다는 말을 깊이 생각해볼 때다. “싸워본 나라는 다시 일어나도, 싸우지도 않고 항복한 나라는 다시 일어나지 못한다.”

2019-08-07

달걀 껍데기를 품은 방학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달걀 껍데기에도 상처를 받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아십니까?” 필자를 포함해 2019년 중등 교감 자격 연수에 참가한 백 명이 넘는 연수생들은 아무 말도 못하고 강사만 바라보았다. 강사는 연수생들의 반응을 살폈다. 서로의 눈치가 몇 번 오가도 답이 없자 강의실 여기저기서 웅성거림이 일어났다. 그래도 강사는 계속 반응만 살폈다.필자는 강사로부터 이야기를 듣기까지는 육체적 상처 정도로 생각했다. 주변의 반응도 필자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시간이 조금 더 지나자 답답해진 연수생들이 강사에게 답이 무엇인지를 직접 물어보았다. 강사는 계속해서 강의실의 분위기만 살폈다. 여기저기서 생각한 답을 말하는 목소리보다는 답답함에 짜증이 난 목소리들이 터져나왔다. “달걀 껍데기에 상처 받은 사람은 지금 목소리를 높이고 계신 바로 여러분입니다.” 갑자기 강의실 분위기 싸늘해졌다. “여러분 말고도 있습니다. 집에서 아침밥으로 계란 프라이가 나왔는데 거기에 아주 작은 달걀 껍데기가 같이 나왔습니다. 과연 여러분들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강의실이 술렁이었다. 그냥 먹겠다는 사람들과 상황에 따라 반응이 달라질 수 있다는 등 여러 가지 반응이 나왔다. 반응을 지켜보던 강사의 말에 모두가 숙연해졌다.“물론, 아침상을 차려준 사람의 정성을 생각하며 맛있게 먹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작은 껍데기에 마음을 상하여 아침부터 험한 말을 하는 사람도 많이 있습니다. 이런 부류의 사람들은 마음 훈련을 받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긍정적으로 마음을 쓰는 교육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많은 상황에서 부정적인 것부터 먼저 생각을 하고 표현합니다.”필자의 몸에는 소름이 돋았다. 만약 필자였다면 어떻게 했을까를 생각해보았다. 굳이 말은 하지 않았더라도 불쾌감은 들었을 것이고, 만약 그때 기분이 좋지 않았다면 분명 불쾌감을 말로 표현했을 것 같았다. 결국 필자가 달걀 껍데기 때문에 상처를 받는 사람이었던 것이다.강사의 설명에 많은 연수생들이 격한 공감의 표시를 보냈다. 강의는 계속 이어졌다. 패턴은 똑같았다. 얼음 한 조각에 상처 받는 사람, 물 한 모금에 상처 받는 사람 등 사소한 것에 상처를 받는 유형에 대해 강사는 계속해서 이야기를 하였다. 비슷한 상황에 대한 자극이 이어지면서 연수생들의 연수 태도도 바뀌었다. 강사는 ‘자리바꿈’이라는 용어로 마음의 상처에 대한 이야기를 마무리 하였다. 마음의 상처는 결국 자리바꿈을 하지 못해서 생기는 현상이라는 너무도 당연한 결론에 필자는 많은 반성을 하였다. 역지사지(易地思之)를 줄기차게 이야기 했지만, 정작 필자는 이 역지사지를 단 한 번도 제대로 실행에 옮기지 못하고 있었다.최근 세계적인 이슈가 되고 있는 일본의 경제보복 역시 자국 이익에만 눈멀어 자리바꿈을 하지 못한 일본의 태도에서 비롯된 것이고, 미사일로 추정되는 발사체를 며칠 째 계속 쏘아대는 북쪽 또한 이 자리바꿈에 문제가 있어 발생한 것이다. 그런데 자리바꿈의 문제는 국내 교육계에도 있었다, 바로 자사고 폐지!강의 내내 강사의 접근방법이 필자에게는 너무도 신선하게 다가왔다. 필자 또한 달걀 껍데기와 관련된 여러 상황을 겪었을 텐데 왜 사람의 태도는 보지 못했는지 강의를 듣는 내내 필자의 획일적인 사고방식이 부끄러웠다. 그러면서 필자의 생각 방식에 대해 생각을 해보았다. 그런데 오래 생각 할 필요가 없었다. 왜냐하면 강사가 필자의 잘못된 사고방식에 대해 정확히 말해주었기 때문이다. “아마도 여기 계시는 교감 선생님들은 교사, 학부모, 학생과 대화하실 때 ‘직책’으로 대화 하시는 분이 많을 겁니다. 이제 ‘나’ 라는 사람으로 이야기를 해보세요.”교감 자격 연수를 마치면서 필자는 ‘달걀 껍데기’를 가슴에 품었다, 2학기가 시작되기 전에 ‘자리바꿈’이라는 가치가 필자의 마음에 꼭 부화하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2019-08-07

대오각성(大悟覺醒)

한 남자가 유서를 씁니다. 궁정 음악가 가정에서 태어나 승승장구하던 그는 스물일곱이 되었을 때 왼쪽 귀에 고음이 들리지 않기 시작하지요. 이 사실을 비밀에 부칩니다. 증세는 점점 심해집니다.1802년 의사 권고로 하일리겐슈타트라는 조용한 시골로 내려가 6개월을 쉽니다. 도시를 떠났지만, 증상은 나아지지 않습니다.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고 생각합니다.유서 마지막에 그는 이렇게 절규합니다. “신이시여! 제게 단 하루만 온전히 깨끗한 귀를 허락해주실 수는 없으신가요? 절대 안 된다고요? 안됩니다. 그것은 너무나 가혹합니다.”이 유서를 쓰고 난 후 남자는 다른 사람으로 변합니다. 대오각성(大悟覺醒). 죽음 문턱까지 다녀온 그는 남은 삶을 포기하지 않고 가혹한 운명과 맞서 싸우겠노라 다짐합니다. 루드비히 반 베토벤이지요.윙윙거리는 굉음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더 큰 소리로 울려댑니다. 자기 귀에서 울리는 이 지독한 소음 때문에 세상 모든 소리는 하나도 들리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속도로 작품을 쓰기 시작합니다. 결국, 완전한 귀머거리로 쓴 곡이 9번 합창 교향곡입니다. 프리드리히 실러 시에 베토벤이 곡을 붙인 4악장의 장엄함. 이 4악장을 빛나게 하려고 1악장에서 3악장까지 빠른 전개로 기대를 한껏 끌어올립니다.베토벤은 청력을 상실한 상태로 9번 합창 교향곡 초연 무대에 올라 지휘합니다. 현악 연주자들 활 놀림을 보며 곡 진행을 파악하려고 진땀을 흘립니다. 마지막 피날레에서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성악과 오케스트라의 소리를 들을 수 없어서 곡이 끝나는 지점을 파악 못 해 계속 손을 움직이지요. 알토 독창자 카롤리네 웅거가 베토벤 옷자락을 잡아끌며 청중 쪽으로 몸을 돌리게 했고 열광하는 사람들 모습을 보고 그제야 연주가 끝난 것을 알아차립니다. 하일리겐슈타트에서 유서를 쓴지 22년 세월이 흐르고 나서 일입니다. 베토벤 눈에 눈물이 고입니다.어떤 분은 해마다 12월이면 유서를 작성한다고 합니다. 신과 맺는 1년 동안의 인생 연장 계약서라고 표현하더군요. 대오각성, 이 네 글자 의미를 되새깁니다. 그럭저럭 살아온 지금까지 내 인생이라는 판을 뒤흔드는, 더 이상 이렇게 살 수 없다는 도끼질 같은 충격, 망치로 얻어맞은 것 같은 아픔. 하일리겐슈타트에서 죽음을 심각하게 고려하며 유서를 썼던 베토벤 심정 말입니다. 삶이 변하지 않고 늘 제자리걸음을 하는 이유는 대오각성이 없기 때문입니다./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대표

2019-08-07

가을을 기다리며

장규열 한동대 교수입추(立秋). 장마와 폭염 그리고 태풍이 지나간 자리에 입추를 맞는다. 여름의 끄트머리는 몇 자락 무더위를 남기고 있겠지만 다가오는 계절을 막을 길은 없다. 뜨거운 날들을 지나면서 빚어진 일본과의 갈등은 모두의 생각을 무겁게 한다. 한낮의 더위는 몸을 지치게 하지만, 이웃이 던진 불씨는 마음을 힘들게 한다. 두 나라의 역사 가운데 오래 쌓여온 불화는 이번에는 해소할 것인지 한 자락 기대도 얹어 보지만, 불편함의 빌미만 한 차례 더하는 게 아닐까 걱정부터 생긴다. 남들은 혹 모른다 해도, 두 나라 백성들은 이 다툼이 어디서 왔는지 알고 있다. 겉으로 보기엔 통상과 무역이 문제이지만, 속으로 멍든 까닭은 오랜 세월을 두고 쌓여온 탐심과 반목이 아닌가.전쟁이 시작되었다. 역사가 빌미인데 애꿎은 경제가 힘들 모양이지만, 따질 겨를도 없이 우리 기업과 경제가 흔들리고 있다. 글로벌경제가 지향하는 자유무역과 개방경제에 제동이 가해진 터에, 새로운 출구와 해결책을 찾아서 온 나라의 지혜를 모아야 할 모양이다. 나라 간 비교우위에 따라 국제적 분업의 균형과 흐름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일본이 그에 차단과 교란을 초래한 일은 세계시장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 두고 볼 일이다. 한국을 공격하기 위한 일본의 선택이라 해도, 글로벌시장에서 일본은 무엇을 얻을 것인지 궁금할 따름이다. 미국과 중국도 금융과 경제로 갈등의 소용돌이에 있어 한일 간의 문제는 국제적인 관심도 모아지지 않는다. 후텁지근한 기후만큼 답답한 실타래를 두 나라는 지혜롭게 풀어낼 수 있을까.전쟁은 이겨야 한다. 이기려면 모아야 한다. 지혜를 모아야 할 때에 생각을 흩어놓지 말아야 한다. 생각도 모으고 전략도 모으며 이기는 그날까지 최선을 다하여 싸워야 한다. 나라도 기업도 개인도 역량과 지혜를 한점에 모아 뚫고 나아가야 한다. 상대 앞에서 우리끼리 흩어지는 일은 우리를 얕잡아보게 할 치명적인 실책을 스스로 만들게 한다. 현명하고 치밀하게 대응하여야 하며, 이성적인 판단에 실수가 없어야 한다. 당면한 과제에 집중하여 정연한 논리와 협상의 포인트를 만들어야 한다. 일본이 우리를 힘들게 한 과거를 잊지 말아야 하겠지만, 옛일에 사무쳐 감정으로 흐르지도 말아야 한다. 통상과 외교에서 승부수를 만들어야 하며, 스포츠나 문화로 확산하지 않아야 한다. 글로벌환경도 염두에 두어 다른 나라들과의 관계에는 오히려 점수를 올리는 기회로 만들어야 한다.일본이 솔직해져야 한다. 경제가 문제인가 역사가 숙제인가. 한국경제를 욕보인 끝에 국제통상의 가치사슬(value chain)이 무너진다면 일본이 얻을 실익은 무엇인가. 사라질 고객들을 어떻게 다시 불러온 것인가. 나라가 빚은 역사의 상처 앞에 겸허하게 태도를 밝히고 분명하게 실천하여야 한다. 식민지 국민을 힘들게 하였던 굴곡진 기억을 왜곡하지 말아야 한다. 상대국이 원한다면 수없이도 돌이키겠다는 독일의 마음도 다시 보아야 한다. 일본이 궁극적으로 바라는 바가 21세기에 적절한 것인지도 살펴야 한다. 전쟁을 다시 하겠다는 야욕이 실재한다면, 일본 국민은 이를 분명히 판단하여야 한다. 우리는 하나가 되어야 한다. 전쟁은 74년 전에 끝이 났지만, 우리가 진정한 독립을 누리고 있었는지도 돌아보아야 한다. 아직도 남아 있을 미묘한 열등감이나 패배의식은 이 기회에 분명히 벗어야 한다.한국과 일본은 글로벌환경에서 어깨를 나란히 하는 이웃으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 아시아를 대표하는 선린관계를 다시 지어야 한다. 이념과 욕심을 앞세워, 성실하게 일하는 기업과 국민을 어렵게 하지 말아야 한다. 시원한 가을을 기다리듯이, 평화롭고 화합하는 한일관계를 기대해 본다. 갈 길이 멀다.

2019-08-07

환율전쟁

환율전쟁은 수출 경쟁력을 유지할 목적으로 외환시장에 인위적으로 개입하여 자국의 통화를 가급적 약세로 유지하는 것을 말한다. 자국 통화가치 하락(평가절하·devaluation)을 의도적으로 유도하는‘총성 없는 경제전쟁’이다.수출 증가와 자국 내 일자리 확보를 겨냥한 환율전쟁은 △1930년 대공황을 촉발한 1차 환율전쟁(1921~36년) △브레튼우즈 체제가 붕괴된 2차 환율전쟁(1967~87년) △2010년 이후 현재의 3차 환율전쟁 등 크게 세차례가 있었다. 특히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각국은 내수 확대와 수출 증대를 통해 경기 회복을 도모했지만 곧 한계점에 다다랐다. 이에 따라 수출 확대를 위해 자국의 통화를 약세로 유지. 수출제품의 해외 가격이 낮아짐으로써 매출 증가를 꾀했다. 따라서 환율전쟁은 일종의 근린궁핍화정책(beggar-thy-neighbor policy)라고 볼 수 있다.환율은 무역에서 큰 파급효과를 갖는다. 예를 들면 미국이 중국 수입품에 추가 관세를 붙이면 미국에서 중국 물건이 비싸지게 된다. 그러면 전에는 값싼 중국산을 살 수 있었던 미국인 소비자나 기업은 손해를 보지만 중국입장에서도 미국에서 제품을 팔기가 힘들어진다. 이때 중국 돈 가치가 떨어지면 미국이 중국 제품에 붙인 관세가 힘을 잃게된다. 즉, 어제까지 1달러로 6위안 어치밖에 못 샀는데 오늘부터 7위안어치를 살 수 있다면 관세를 1위안 붙인다고 해도 미국인 입장에서 어제랑 가격이 똑같기 때문이다.최근 미국과 중국이 무역전쟁을 벌이다가 결국 환율전쟁으로 불이 옮겨붙었다. 미국 재무부가 최근 중국을‘환율조작국’으로 지정했기 때문이다. 위안/달러 환율이 이른바 심리적 저지선으로 불리는 달러당 7위안선(포치·破七)을 돌파한 데 따른 것이다.미국이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한 것은 1994년 빌 클린턴 행정부 이후 처음이다. 어쨌든 우리나라와 긴밀한 관계인 두 강대국의 환율전쟁 파급효과만 생각해도 걱정이 한 짐인 데, 정부여당은 수출규제조치에 나선 일본과 대립각을 세우고 있으니 이래저래 걱정만 늘어난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19-08-07

감성교육과 캘리그래피

오늘날 커뮤니케이션의 환경은 디지털 미디어가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고 할 수 있다. 과거는 오프라인 만남이 중심이었으나 오늘날을 컴퓨터 이메일과 메신저, 문자 메시지, SNS 등이 더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이러한 변화의 이유는 컴퓨터, 핸드폰 단말기, 디지털 미디어 기술의 발달이라는 하드웨어적 환경과 함께 오프라인에서의 커뮤니케이션 부족을 시간과 공간을 초월할 수 있는 디지털 미디어를 통해 충족하려는 욕구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디지털 미디어의 대표적 예로서, 컴퓨터 미디어의 특성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먼저, 글자를 입력하고 출력하는 것이 빠르고 편리하다. 키보드와 마우스를 이용하면 입출력이 실시간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둘째, 잘못된 부분을 빨리 고칠 수 있고, 수정 횟수에 제한이 없다. 셋째, 컴퓨터는 모니터에서 출력이 되기 때문에 주로 시각을 이용한다. 넷째, 오프라인에 비해 공간적 제약이 덜하다. 시간만 약속하면 어디서든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하며, 자신이 할말을 메시지 형식으로 남길 수 있으므로 시간의 제약도 적다고 할 수 있다.이러한 컴퓨터는 일상생활뿐만 아니라 교육적으로 폭넓게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컴퓨터는 시각과 청각에 국한되며 키보드와 마우스 입력 방식은 학생들에게 무의식적으로 정형화된 컴퓨터 글씨로 제약당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컴퓨터의 입력방식이 가진 한계에서 벗어나 다양한 개인적 표현의 욕구를 보완할 필요가 있다. 비록 이모티콘, 영상, 기형화된 상징 등을 이용하여 자신의 개성과 표현 욕구를 표현할 수 있지만, 이것 역시 억압되고 왜곡된 정형화된 입력 방식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다.이러한 시대에 필요한 것이 감성교육이다. 감성교육의 중요성은 루소에 의해 언급되었다. 루소가 비록 감성교육에 대해 직접적으로 이야기하지는 않았지만, 감성을 통한 공감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분명히 알고 있었다.그는 ‘인간불평등기원론’에서 원시인들과 현대인을 비교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원시인들은 자기애와 연민이라는 자연적 미덕을 가지고 살아간다. 자기애란 배가 고프면 먹고 졸리면 자려고 하는 것과 같은 자기보존의 본능을 말한다. 자기애로부터 출발한 자기보존능력은 현대인의 욕망과는 차이가 있다. 예컨대 사자는 배가 고프면 임팔라를 잡아먹지만 배를 채운 뒤에는 더 이상 그들을 공격하지 않는다. 이렇듯 자기애는 무한한 욕망이 아니라 자연적 한계를 가지는 유한한 욕망이다.의식주와 같은 본능적 욕망에 있어서 자연적 한계가 있다는 것은 수긍이 간다. 그렇다면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는 어떻게 될까? 자기애를 가지고 있다고 했으니, 자신을 위해 이기적으로 행동한다면 원시인은 현대인과 다를 바가 없을 것이다. 여기에서 루소는 현대인과 다른 원시인의 매우 중요한 특징으로 연민 즉 공감능력에 대해 이야기한다. 건장한 원시인이 약한 어린 아이나 노인이 어렵게 획득한 식량을 강탈하지 않은 것은 바로 이 연민 때문이다. 원시인들은 타인의 고통에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인 연민에 의해 타인도 자신처럼 자기보존의 본능을 가지고 있음을 알고 스스로의 자기애를 조절할 수 있었던 것이다.그러나 사회적 관계가 긴밀해지고 문명이 발달함에 따라 인간은 점점 도덕적으로 타락하게 된다. 사회 상태에서 발달한 인간의 인성은 자신의 내면을 돌아보게 하여 자신을 흔들어 놓거나 고통스럽게 하는 외부의 모든 것들로부터 스스로를 격리시킨다. 그리하여 자기애는 남과 자신을 비교하는 심리에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에 결코 충족되는 법이 없는 자존심으로 대체되고, 자신보다 못한 자에 대한 연민이 사라진 자리에는 자신보다 나은 자에 대한 시기심만 남게 된다고 루소는 말한다.루소의 말을 모두 받아들일 수는 없지만, 현대사회에서 감성보다는 이성이, 이타심보다는 이기심이 팽배해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감성지능은 자신의 감정을 정확히 파악하고 타인의 감정을 이해하고, 이를 바탕으로 궁극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창의적이고 능동적인 능력을 말한다. 개인주의가 팽배해 있는 오늘날의 사회에서 감성을 발달시키는 일은 공존과 공생을 위해 꼭 필요한 덕목이라 생각한다.오감을 자극해 이루어지는 감성교육에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지만 현재 교육기관에서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이 바로 그리기를 통한 놀이이다. 흔히 심리학자들은 아이가 그리는 그림이 그 아이의 내면세계를 중심으로 하고 있으며, 그 그림 속에는 성격이 반영되기도 한다고 하는데 이를 통해 표현과 타인과의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형성할 수 있으며 이러한 그리기 놀이를 통해 교육하는 이유는 놀이는 아이들의 일상생활이며 그 자체가 학습활동이 되어 놀이를 통해 정신적인 즐거움을 맛보게 되며, 다양한 감각 능력과 기능을 습득함으로서 성취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이러한 놀이의 방법으로 캘리그래피를 적용할 수 있다. 캘리그래피(Calligraphy)란 ‘손으로 그린 그림문자’이다. 원래는 ‘아름다운 서체’란 뜻을 가진 그리스어 Kalligraphia에서 유래된 말이다. Calli는 미를, Graphy는 화풍, 서풍, 서법, 기록법의 의미를 갖고 있다(시사상식사전). 우리나라는 먹물을 묻힌 붓을 한 번의 획으로 써 내려가는 것을 예술로 여겨 서예, 일본은 이를 도의 경지라 하여 서도, 중국은 정해진 법칙대로 쓴다 하여 서법이라 칭한다. 서양의 경우, 동양권과 다르게 한자의 사용이 아닌 알파벳을 기본으로 하기 때문에 글씨를 쓰는 도구나 역사적 배경이 다르다.공강일 서울대 강사·국문학서양의 서예는 웨스턴 캘리그래피(Western Calligraphy)라고 부른다. 사실, 캘리그래피는 문자로서의 의미 전달 뿐 아니라, 조형미를 갖춘 예술로서의 역할도 한다. 문자가 가지고 있는 독특한 형태, 유연하고 동적인 선, 살짝 스쳐가는 효과, 글씨의 굵기, 여백의 균형미 등 순수 조형의 관점에서 보는 것을 뜻한다. 캘리그래피의 발전은 15∼16세기 이탈리아 문화에서 중세의 고딕적 경향이 물러가고, 예술의 자율을 존중하는 시대가 오자 많은 서예, 출판, 유통과 과정이 함께 활발해 졌다. 즉, 개성적인 표현과 우연성이 중시되는 캘리그래피는 기계적인 표현이 아닌 손으로 쓴 아름답고 개성 있는 글자체이다. 캘리그래피는 기계적 입력이 아니라 자신의 손과 손의 힘을 직접 조절하고, 펜이나 붓을 자신의 통제 안에 두는 훈련을 가능하게 한다. 이를 통해 자신의 감정을 표현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러한 감정을 효과적으로 발현할 수 있는 방법을 터득할 수 있다.21세기는 감성이 뛰어난 창의적 인재를 기대하며 긍정의 마음과 남을 배려하는 능력 등을 필수적으로 꼽고 있다. 따라서 어렸을 때 감성을 깨우며 그러한 능력을 길러주는 노력이 필요하다. 인간으로서 느낄 수 있는 여러 가지 감정들을 받아들여 가슴으로 충분히 느끼며, 상호 작용하여 내면의 감정을 아름답게 표현해 내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이라 말할 수 있어야 한다.

2019-08-06

개도 먹는 것이 중요하다

개의 몸은 음식물에 의해 만들어지고 유지된다. 매일 먹는 음식물의 영양소에 의해 성장하고, 신체가 구성되며 생명이 유지되므로, 사람을 포함한 다른 동물들과 마찬가지로 개도 먹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개와 관련한 산업분야 중 가장 큰 규모를 형성하고 있는 것은 사료시장인데, 생명체는 먹지 못하면 생존할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최근에는 아무 것이나 먹이지 않겠다는 트렌드가 보편화되어 점차 사료가 고급화 되는 추세이다.현재 시판되고 있는 개 전용사료는 크게 수분함량이 10% 미만인 건식사료, 수분의 함량이 72~85%인 습식사료, 건식과 습식의 중간형태로 수분함량이 15~35%인 반습식 사료로 나뉘어 진다. 일반적으로 개는 습식사료를 가장 좋아하는데, 가장 맛이 좋기 때문이다.하지만 건식사료에 비해 영양이 높지 못하고 가격 또한 비싸므로 간식용이나 식욕이 부진할 때 주로 사용된다.반습식 사료는 늙은 개나 치아 상태가 좋지 못한 개에게 주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 외에 원료나 성분을 특정 질병치료나 관리에 도움을 줄 수 있도록 만든 처방식 사료가 일반화되고 있고, 고급 유기농 사료도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는데 유기농 사료는 합성비료, 농약, 항생제, 유전자 조작식물, 환경호르몬 등을 사용하지도, 검출되지도 않아야 한다. 유기농사료는 재료가 유기농인지를 표시한 것이므로 사료 품질의 문제는 별도로 판단해야 한다.반려견들이 일반적으로 15년 정도 사는데, 야생에서 개는 24년 이상 살 수 있다. 야생을 떠나 사람과 살게 되는 개들이 상대적으로 활동의 제약이 더 있기도 하고, 스트레스 받을 일이 더 많기도 하겠지만, 야생동물들의 음식섭취 형태가 사람과 살아가는 동물들과는 다르므로 수명에 영향을 주는 요인이 되는지 궁금하여 과학적으로 밝혀낸 관련 연구들을 찾아보았다. 영양학자인 포텐저는 1932년부터 1942년까지 10년동안 고양이 연구를 했다.900마리의 고양이를 세 그룹으로 나누어 몇 세대에 걸쳐 똑같은 재료를 익히지 않은 음식, 조금 익힌 음식, 완전히 익힌 음식으로 나누어 먹인 후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익히지 않은 음식을 먹은 고양이 그룹은 매우 건강했고, 조리를 많이 한 음식을 먹은 고양이 그룹일수록 건강상태가 좋지 않았는데, 생식을 하는 고양이가 신체 내 에너지 효율이 높아지고, 면역력이 극대화되어 질병 발생률이 낮아진다는 결과를 발표했다. 로버트 맥캐리슨은 1천마리의 쥐에게 사람의 수명으로 환산하면 55년에 해당하는 27개월 동안에 첫 번째 그룹의 쥐에게는 다양하고 좋은 재료의 생식을 먹이고, 다른 그룹의 쥐에는 가난한 사람들이 주로 먹는 쌀만 공급하고, 다른 그룹의 쥐에게는 통조림 음식만 공급해보고, 결과를 발표했다. 다양하고 좋은 재료를 공급받은 쥐들은 건강한 상태였고, 쌀만 공급받은 그룹의 쥐들은 영양실조로 병들어 죽었다. 통조림 음식만 공급받은 쥐들은 각종 질병에 시달리면서 난폭해져 서로 잡아먹는 행동을 보이기도 했다. 동물들도 음식섭취가 매우 중요하고, 동물들을 위한 음식을 공급할 때 가능하다면 다양하고 좋은 재료를 익히지 않은 상태로 주는 것이 좋다는 것이다.개는 원래 육식성 동물이고 생식이 가능하면 좋겠지만 생식으로만 음식을 공급하는 것은 현대사회에서 쉽지 않은 일이다. 개가 사람과 함께 살아오며 잡식성에 적응되고 있지만 사실은 가능하다면 개가 먹는 것의 50% 이상은 육류를 제공해 주는 것이 좋다. 단백질은 신체를 구성하는 주요 성분인데, 호르몬과 면역물질의 생성재료로도 사용된다. 개에게 필요한 아미노산은 23종이고 그 중 10종류는 필수아미노산인데, 필수아미노산은 개가 스스로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 아니므로 반드시 음식 형태로 섭취되어야 한다.이동훈특히 사람과는 달리 아르기닌(Arginine)은 개에게 필수 아미노산이다. 아르기닌이 결핍되면 개는 아미노산을 이용해서 단백질을 합성할 수 없으므로 먹이고 있는 사료에 아르기닌을 포함한 필수 아미노산이 표준치 이상이 있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 개의 심혈관 건강에 필수적인 삼투압 및 칼슘이온 이동에 직접적으로 관여하는 타우린도 중요한데, 보통 충분한 육류섭취를 통해 얻을 수 있으나 대형견이나 초대형견들이 육류섭취 부족으로 타우린이 부족한 경우들이 빈번하다. 특히 복서나 코카스파니엘 등은 타우린 부족에 의한 심부전증 발병이 빈번하므로 주의해야 한다./서라벌대 반려동물연구소 소장·마사과 교수

2019-08-06

극일(克日)

반일(反日)을 넘어 극일(克日)로 가고 있다. 여기서 반일은 일본에 반대하는 사상이나 운동을 의미한다. 과거 우리 역사에 기억된 일본과의 나쁜 감정이 섞인 표현이다. 반일 감정이 더 악화되면 혐일(嫌日)이라는 표현도 가끔 사용한다. 그러나 극일은 반일과 혐일보다 좀 더 이성적이고 논리적 표현이다. 일본에 대한 무조건적인 나쁜 감정을 드러내기보다는 일본을 이겨 더 나은 나라로 가자는 뜻이다.지금 우리는 극일운동으로 나라가 온통 떠들썩하다. 한국경제의 숨통을 거두겠다는 일본의 경제보복이 시작되면서 정부와 기업 할 것 없이 일본의 경제 제재에 대응하는 움직임으로 연일 분주하다.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벌어지고 있는 일본제품 불매운동은 날로 기세가 등등해지고 있다. 여당 정치권에서는 “도쿄를 여행금지 구역에 포함시키자”는 과격한 발언까지 나왔다. 대통령도 “남북경협으로 단숨에 일본을 뛰어 넘겠다”고 하니 두 나라간 경제전쟁은 불가피한 한판 싸움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다.이런 분위기에서 협상과 타협의 얘기를 꺼내면 이는 친일이요 배신이다. 하지만 협상과 타협은 게임을 이기는 수단으로 매우 유효하게 쓰일 수 있다. 협상과 타협은 과거에는 대체로 나쁜 이미지로 사용되는 경향이 있었다. 승패를 가리는 방법으로 정도(正道)가 아니라는 점에서다. 그러나 지금은 협상과 타협이 대세를 이루는 글로벌 시대다. 국가와 국가간에도 상호 협상을 통해 부족한 부분을 채워가는 것이 새로운 국제간 질서다. 대립과 경쟁보다는 협상과 상생, 화해의 묘를 살리는 극일의 방법도 찾아보자는 것이다. 손자병법에도 “백번 싸워 백번 이기는 것보다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 최고의 기술”이라 했다. 무기로 상대를 굴복시키지 않고 상대가 스스로 굴복하는 것이 진정한 승리라는 뜻이다.일본의 경제 보복에 온 국민의 분노가 들끓고 있다. 그러나 출구가 보이지 않는 경제전쟁에 국민의 불안감도 증폭하는 것이 사실이다. 폭락한 국내 주식시장이 바로 냉엄한 현실을 반영한다. 협상의 달인 트럼프 대통령은 ‘기술의 거래’라는 책에서 “선택의 폭을 최대한 넓혀라”고 충고했다. 극일을 위한 선택의 폭도 넓혀보면 어떨까 한다./우정구(논설위원)

2019-08-06

일본 경제종속의 굴레를 벗을 기회다

이곤영 대구취재본부장대법원의 강제징용 판결로 촉발된 한·일 간의 외교분쟁이 무역 전쟁으로 심화되고 있다. 위안부 문제와 강제징용 문제의 당사자인 일본이 과거사 문제에 대해 사과는커녕 적반하장으로 경제 제재로 압박하고 있는 형국이다. 이번 사태를 이 지경까지 몰고 온 문재인 정부가 한심하지만 지금은 서로 잘잘못을 따질 때가 아니다. 경제보복이 현실화된 만큼 손을 맞잡고 현실을 직시하고, 지혜롭게 대처할 필요가 있다.일본은 자신들의 과거사에 대한 사과는 물론 아예 지우려고 하는 행위를 멈추지 않고 있다. 참으로 후안무치한 행동이다. 이에 비해 독일은 어떠한가? 독일은 하도 사과를 많이 해서 주변 국가들은 더이상 독일에게 사과와 배상을 요구하지 않는다고 한다. 독일은 1조5천억원의 기금을 마련해 피해자들에게 배상하고 있다. 교육에서부터 자신들의 잘못을 철저하게 교육해 어린이들조차도 과거사에 대해 사과하고 싶어한다. 이러한 과거 청산을 바탕으로 지금의 독일은 유럽의 경제위기에도 가장 굳건하고 강력한 기반 위에서 유럽을 지휘하고 있다.이에 비해 일본은 과거사에 대해 철저하게 부정하고 있다. 아베 총리는 지난 2014년 “일본이 국가적으로 성노예를 삼았다는 근거없는 중상이 세계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라고 망언을 했다. 2015년에는 아사히신문이 위안부 문제 관련 과거 보도에 대해 오보라고 밝힌 것과 관련해 일본 정부는 각의를 열고 이를 세계 각국에 적극 홍보키로 했다. 과거사를 부정하고 지우려고 하고 있는 것이다. 치졸하기 짝이 없다.한국 대법원이 강제징용 판결에 대해 일본은 한국을 ‘백색국가’에서 배제하기로 결정했다. 일본은 무역제재의 강도를 더욱 높여 갈 것이다. 중도에서 멈추거나 철회할 가능성을 거의 없을 것으로 보인다. 강대강 대결국면만 남았을 뿐이다. 다만 미국이 중재를 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지만 이것도 가능성일 뿐이다.이제는 우리 스스로 활로를 뚫어야 한다는 각오로 이번 일본과의 무역갈등을 뛰어 넘어야 한다. GDP 규모로 보면 일본이 6조 달러, 한국이 1조5천억 달러로 일본이 한국 보다 4배 정도 많다. 하지만 지난해 말 기준으로 수출을 보면 일본이 700조원인데 반해 한국은 600조원이다. 이처럼 한국이 일본의 턱밑까지 따라오자 일본은 한국 대법원의 판결을 계기로 작심하고 한국 경제를 마비시키려 하고 있다. 일본이 백색국가에서 한국을 제외하면서 우대조치 제외 품목 1천100여개 중 반도체 소재, 부품, 장비나 석유 화학제품, 공작기계 등 80여 개 품목 정도가 일본 수입 의존도가 높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어 한국 기업들의 피해는 현실이 되고 있다.그동안 한국은 양적 성장을 했지만 질적 성장은 하지 못했다. 소재, 부품, 장비 자체조달률은 60% 중반대에 그치고 있고 반도체, 디스플레이 등 정밀산업 자체조달률은 50%를 밑돌고 있는 실정이다. 만성적인 대일 의존도와 자체조달률을 극복하지 못하며 일본에게 공격의 빌미를 주는 상황에 처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부분에서 우리는 뼈저리게 반성하고 경쟁력을 갖추기 위한 노력을 배가해야 한다. 국내 대기업도 우리 부품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 지금이라도 수요기업과 공급기업이 협력하고 정부도 자금과 세제, 규제특례 등을 통해 우리 산업구조가 더욱 탄탄해 지도록 혁신을 해야 한다.최근 지역에서는 대구에 둥지를 튼 현대로보틱스가 부품수급을 국내 기업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는 희망찬 소식이 들려오고 있다. 그동안 일본 부품을 사용하던 현대로보틱스도 일본의 수출규제에 대해 선제적 대응에 나선 것이다.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대기업이 국산 부품에 눈을 돌리면서 지역 기업들에게는 기회로 다가온 것이다. 다소 시간이 걸리더라도 일본과의 무역전쟁을 통해 우리 스스로 내실을 다지면 언젠가는 일본이라는 장벽을 뛰어 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모두 힘을 모을 때다.

2019-08-06

화웨이(華爲)의 인재영입 전략에서 배우자

김진홍한국은행 포항본부 부국장아프리카의 정글에만 치열한 약육강식의 논리가 통용되고 있지는 않다. 세계경제의 생태계 또한 전혀 다르지 않다. 오히려 절대적인 천적관계를 형성하는 동물의 세계에서는 좀처럼 그 관계가 바뀌는 경우가 없지만, 세계경제에서는 영원한 우방이나 친구란 있을 수 없다. 오직 자국의 이익이라는 대원칙만 변하지 않을 뿐이다. 그래서 세계 각국은 상황에 따라 협정을 맺거나 파기하기도 한다.우리는 이러한 세계경제질서의 재편과정에서 언제나 그 과정을 주도하기보다는 대체로 주변에서 일으킨 풍파를 해결하는데 급급하였다. 그것은 우리가 세계경제를 들썩일 정도의 힘을 가져보지 못했기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달리 말하자면 우리가 그만큼 많은 약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최근 전국을 들썩이고 있는 일본의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강화 조치도 결국은 우리가 그런 약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일본제품 불매운동이나 일본여행자제 등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조차 하지 않으면 양국 간 협상이나 타협조차 시도해 볼 수 없다는 점에서 중요한 수단중 하나인 것도 사실이다. 문제는 일본도 그에 대해서는 맞불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일본이 한국을 여행위험국가로 지정하고 나선 것도 충분히 예상 가능한 수순이라 하겠다.그런데 그동안 우리가 겪어 왔던 위기들에 대한 대응책이 과연 옳은 방향이나 전략이었는지는 의문이다. 지금 이야기되고 있는 수입대체효과, 수출입 다변화 등은 수십 년 전에도 있었다. 물론 수치상 개선되고 있었기 때문에 전혀 효과가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살펴보더라도 그것이 최적의 대책이었는지에 대해서는 재고해볼 여지가 있다.최근 미국과의 무역 전쟁이 한창인 중국의 대형통신기업인 화웨이(華爲技術)의 런청페이(任正非) 회장의 발언이 새삼스럽게 떠오른다. 그는 지난 6월 사내 회의석상에서 금년에는 전 세계에서 천재소년 20∼30명을 채용하고, 내년에는 200∼300명을 채용하겠다고 하였다. 그는 미국과의 경제전쟁에서 승리하려면 적어도 3∼5년 동안 우수인재로 모두 교체할 생각을 가져야만 한다고 믿고 있는 셈이다.즉 당장 전쟁 중임에도 불구하고 눈에 보이는 대책에 앞서 보다 근본적으로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인재가 핵심이라고 본 것이다. 화웨이는 박사학위를 취득한 인재를 최대 약 200만 위안(약 3억 4천만 원)의 연봉으로 채용한다고 한다. 이에 대해 일부에서는 화웨이가 인재를 키우지 않고 단지 스카우트를 한다고 폄훼하기도 한다. 그러나 과감한 연봉으로 우수인재를 발탁하고 채용하는 방식은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미국에서 오래전부터 증명된 인재확보 전략이며 기업의 경쟁력 확보를 위한 최고 전략의 하나임은 분명하다.반면 우리나라에서는 아직까지 우수 인재를 보는 시각이 다소 다르다. 제대로 된 대우가 이루어지지 않아 우수한 젊은이들이 해외로 빠져나가고 있는 실정이다. 지금 우리는 호시탐탐 우리의 약점을 살피면서 틈만 보이면 우리를 먹이로 삼으려는 약육강식의 경제생태계속에서 살고 있다. 지난 수년간 중국이 미국이 그리고 이제 일본이 나선 것뿐이다.포항도 지역의 젊은 인재가 유출되는 것을 그저 막으려는 것에만 주목해서는 안된다. 화웨이의 전략까지는 아니더라도 지역 기업에 필요한 인재나 지역에 필요한 우수한 자원이 있다면 이들을 유인할 수 있는 무엇인가를 발굴해내야만 할 것이다. 그래야만 앞으로 지역경제와 지역기업의 경쟁력을 키우고 지역의 미래를 책임질 일꾼을 지키고 또 다른 일꾼을 지역으로 유인할 수 있을 것이다.

2019-08-06

허(虛)와 실(實)

박상영대구가톨릭대 교수오래 전, 구비문학 채록을 위해 읍면 단위의 시골들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그 중 한 곳에서 귀한 손님 왔다며, 수박, 옥수수 등 온갖 음식들을 한 상 가득 차려 내던 할머니 한 분이 계셨다. 푸짐한 시골 인심에 다들 즐거워하던 바로 그때, 갑자기 꼬꼬댁 꼬꼬 하면서 온 동네가 다 떠나갈 듯 요란스러운 닭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서둘러 닭장으로 가 보니 세상에 암탉이 작은 초란 하나를 낳고서 날개 죽지까지 푸덕거리며 어찌나 시끄럽게 울어대고 있던지. 큰 달걀을 여러 번 낳은 닭들은 오히려 우는 동 마는 동 하는데, 알 하나 낳았다고 저 난리치는 것 좀 보라던 할머니 말씀이, 당시 공부하던 우리들에게 산 교훈으로 다가왔던 기억이 있다.옛말에, ‘내허외식(內虛外飾)’이라는 말이 있다. 속이 비었으니 겉이라도 화려하게 꾸미려 한다는 뜻으로 허언장담하거나 허장성세하는 사람을 두고 일컫는 말이다. 아닌 게 아니라 사실 빈 수레는 요란한 법이다. 속이 꽉 찬 수레는 바퀴 굴러가는 소리가 육중하면서도 둔탁하다. 그 둔탁함에는 뭔가 모를 무게감이 있다. 반면, 속 빈 수레의 바퀴 소리는 덜컹덜컹 어찌나 가볍고 요란한지 모른다. 그 소리에 지나가던 사람들은 눈살을 찌푸리게 된다. 그것도 모르고, 빈 수레를 끄는 사람들은 자기 수레가 최고라고 떠들어댄다. 참으로 한심한 노릇이다.『논어』 위정편에 이런 말이 나온다.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 그것이 곧 아는 것이다(知之爲知之 不知爲不知 是知也).’. 그런데 우리 주변에는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 자기가 최고인 양, 소위 ‘척’ 하는 빈 수레가 너무도 많다. 대충 수박 겉핥기로 스캔한 지식을 자신의 것인 양 자신감으로 무장하여 떠들어대는 강사·교수들, 스스로도 잘 모르기에 투자해서 손해 보지 않으려 하면서 남들에게는 대단한 정보인양 얘기하며 투자를 강요하는 상인·기업가들, 서민들의 생활은 경험도 안했으면서 마치 잘 아는 양, 선거철마다 떠들며 민심을 얻으려는 정치인들 등. 이들 빈 수레들이 내는 소리로 인해 귀가 아플 정도이다.그 뿐만이 아니다. 빈 수레들은 자신의 빈 것(虛)을 포장하는 데에 온갖 열정을 쏟아 붓는다. 빈 수레를 가득 채울 노력 대신에 어떻게 하면 그 빈 수레의 겉을 페인트칠 해 황금 수레로 포장할까에 온 신경을 집중한다. 매달 납부해야 할 카드 값, 할부금, 빚 등으로 등골이 휘어지는데도 줄곧 번쩍거리는 명품백과 옷, 보석들로 치장하고 다녀야 직성이 풀리고, 사회적 지위가 이 정도이니 좋은 차는 몰고 다녀야 한다고 생각하며, 학군 좋은 곳에 위치한 아파트에 살아야 그나마 격이 높아진다고 생각하기에 어떻게든 그러한 곳에 살려고 아등바등한다. 그래야 남들이 무시하지 않는다 생각하고 스스로 마치 ‘황금 수레’가 된 양 착각을 한다.옷이 아무리 명품이면 무엇하랴. 그 옷을 입은 사람이 명품이어야 하는 것을. 인생사가 그렇다. 속이 꽉 찬 사람은 절대 자신을 과대 포장하려 하지 않는다. 그럴 필요도 없고, 그러지 않아도 남들이 알아준다. 설사 남들이 알아주지 않는다 한들, 크게 개의치 않는다. 누가 뭐래도 내면이 실하기에 스스로가 떳떳하며, 그 떳떳함이 남을 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허한 사람은 그 허함을 무엇인가로 끊임없이 채우려 한다. 채우면 채울수록 더욱 허해지기에, 그 허함의 굴레에서 벗어나질 못한다. 평생을 그렇게 살다가는 사람도 있다.인생은 참으로 짧다. 이 짧은 한 평생 어떻게 살 것인가는 각자의 선택이요, 몫이겠지만, 이제부터라도 虛를 감추는 데 아낌없는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기보다는 내면의 實을 가다듬는 데 보다 큰 열정을 쏟아 부어 보면 어떨까? 황금 칠을 한 수레는, 시간이 지나면 벗겨지기 마련이나, 황금 자체를 실은 수레는 그 빛과 무게가 영원할 것이기 때문이다.

2019-08-06

마지막 5분

1849년 세모뇨프스키 광장에는 스물여덟의 꽃다운 젊은이가 스무 명의 사형수들과 함께 기둥에 묶여 있습니다. 눈보라가 몰아치는 영하 50℃의 추운 날씨. 세찬 바람이 뼛속까지 스며드는 가운데 광장은 몰려든 구경꾼들로 가득합니다. 집행관이 소리칩니다. “마지막으로 5분을 주겠다.”동지들과 독서토론 모임, 즉 반체제 활동 혐의로 사형을 선고받은 겁니다. ‘친구들이여! 먼저 세상을 떠나는 나를 용서하시오.’ 생각을 더듬는 동안 다시 소리가 들립니다. “남은 시간 3분!” 삶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지요. ‘다시 한 번 인생을 살 수만 있다면 일분일초를 아끼며 살고 싶다.’ “이제 마지막 1분!” 저승사자 같은 집행관 목소리가 들립니다. ‘이 매서운 바람도 냉기도 느낄 수 없다니. 모든 것이 너무 아쉽다.’ 격렬한 감정에 휩싸입니다.“자! 이제 사형을 집행한다.” 명령이 떨어지자 군화 소리가 들립니다. 일사불란한 움직임. 이윽고 “철커덕!” 탄환을 장전하는 소리가 들립니다. 사형수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최후의 순간을 맞이합니다. “탕!” “탕!” “탕!”세 명의 죄수가 목숨을 잃은 상황. 멀리서 고함이 들립니다. “멈추시오!”광장 끝에서 하얀 깃발을 펄럭이며 병사 한 명이 사형을 중지하고 사형수들을 시베리아로 유형 보내라는 황제 친서를 들고 옵니다. 기적입니다. 러시아의 대 문호 도스토옙스키 청년 시절 실화입니다.사형 집행 중단 사건은 황제 니콜라이 1세가 기획한 의도적인 연출이었지요. 물밀듯 들어오던 서유럽 사상을 두려워한 황제는 러시아 지식인들을 위협하고자 이런 장면을 연출한 것입니다. 사정을 모르는 젊은 도스토옙스키는 그날 경험을 평생 자산으로 삼아 치열한 삶의 태도를 갖습니다. 유형지에서 4년을 보내는 동안, 사형 집행 직전의 5분을 떠올리며 매 순간을 허투루 보내지 않으려 최선을 다했습니다. 하루하루를 인생의 마지막 순간처럼 소중하게 살아냈던 것이지요.혹한의 날씨, 무거운 족쇄를 차고 생활하는 비참한 유배지에서의 삶이었지만, 그는 창작 활동에 몰입했습니다. 상상의 원고지에 상상의 펜으로 한 줄 한 줄 글을 썼습니다. 유배 생활을 마친 후 집에 돌아온 후에도 도스토옙스키는 ‘인생은 5분의 연속’이라는 각오로 치열한 글쓰기에 매달렸고 1881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죄와 벌’, ‘카라마조프의 형제들’, ‘영원한 만남’, ‘백치’, ‘학대받은 사람들’ 등의 작품을 인류에게 선물했습니다./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대표

2019-08-06

귀한 얼음은 옥살이 하는 죄인들에게도 일정량 나누어졌다

얼음은 뜨거웠다. 시쳇말로 ‘핫 아이템’이었다.냉장, 냉동시설이 없던 시절이다. 겨울철에 얼음 준비해서 창고에 넣고 보관한다. 여름이 시작되면 얼음 창고를 열어서 얼음을 사용했다. 얼음은 필수품이었다. 얼음을 구하고, 보관, 사용하는 것은 간단하지 않았다. 얼음에 얽힌 이야기는 숱하다.겨울에 얼음을 마련하는 이들은 빙부(氷夫)다. 빙정(氷丁)이라고도 한다. 얼음 일하는 장정이다. 빙부는 계급이 아니다. 직업이다. 승려, 관노(官奴) 등 하층민이나 임금을 받고 얼음 일을 하는 서민들도 있었다. 군역에 동원된 사람들이 겨울철을 맞아 얼음 ‘자르는’ 일로 병역을 대신하기도 했다. 빙부는 늘 부족했다. 일이 고되니 한강 변에서 얼음 일을 하던 이들이 다른 지역으로 ‘불법 이주’하는 일도 있었다. 국가, 관청에서는 이런 불법 이주를 강력하게 단속했다.얼음 자르는 일은 벌빙(伐氷)이다. 12월 초순 무렵, 한강의 얼음이 4촌(12센티 정도) 되면 빙부들은 강으로 간다. 20센티 정도의 얼음이면 상품으로 치고, 더 두꺼운 30㎝쯤 되는 얼음은 보기 힘들었다. 겨울이 춥지 않아 얼음이 제대로 얼지 않으면 사한제(司寒祭)를 지내기도 했다.얼음을 깨고, 자른다. 적절한 크기로 자른 얼음은 빙고로 들어간다. 운반과 창고에 넣는 것도 모두 빙부의 일이다. 얼음을 저장하는 창고는 빙고(氷庫) 혹은 장빙고(藏氷庫)다. 대부분 나무에 이엉을 인 형태인데 돌로 만들면 비교적 견고하다. 석빙고(石氷庫)다.얼음 일이 얼마나 힘들었는지를 보여주는 시가 있다. 조선 중기 문신 농암 김창협(1651~1708년)의 ‘농암집’에 나오는 ‘얼음 깨는 노래’이다. 얼음 관련 일, 빙부의 일과를 잘 보여준다. 긴 시지만, 전문을 소개한다.늦겨울 한강에 얼음 꽁꽁 어니/천인만인 우글우글 강 위로 나왔다네/도끼로 쿵쿵 얼음을 찍어 대니/아래로 소리 울려 용궁까지 들리겠네/찍어 낸 얼음 쌓으니 하얀 설산 같고/쌓인 음기는 사람을 엄습하네/매일 아침 얼음 등짐 빙고에 져 나르고/밤이면 밤마다 강바닥으로 얼음 파 들어가네/낮은 짧고 밤은 긴데 밤늦도록 일을 하니/강바닥에는 온통 노동요만 들린다네/정강이 못 가리는 짧은 옷, 걸친 것 없는 발/매서운 강바람에 언 손가락 떨어지네/고대광실 한여름 무더위 푹푹 찌는 날에/아리따운 여인 하얀 손 맑은 얼음 내어오네/큰 칼로 얼음 깨서 자리마다 두루 돌리니/맑은 대낮에도 흰 안개 흐른다네/자리에 앉은 이들 한여름 더위를 모르니/그 누가 얼음 뜨는 고생을 알아주겠는가/길가에 더위로 죽은 백성 못 보았던가/강 위에서 얼음 뜨던 바로 그 사람이라네얼음을 깨고, 자르는 일이 마치 노예 부리듯이 한 일이었을까? 위 김창협의 시에서는 얼음 관련 일이 가장 힘든 일이며 마치 노예처럼 부리면서 얼음을 구했다고 표현했다. 그렇지는 않았다. 힘든 일이었지만 어차피 궁중, 관청 등에서는 매년 여름 얼음이 필요했다. 노예 노동처럼 관리해서는 오랫동안 유지할 수 없었다.‘조선왕조실록’ 인조 2년(1624년) 12월 22일의 기사다. 제목이 특이하다. ‘한강 가의 주민들이 서빙고를 불태우다’이다. 이른바 ‘서빙고 방화사건’이다.한강 가의 주민들이 서빙고(西氷庫)를 불태웠으므로 중사(中使)와 사관(史官)을 보내 적간(摘奸)하였다. 강가의 주민들은 폐조 때부터 얼음 저장하는 고역(雇役)을 기화로 이득을 취하며 국고의 곡식을 훔쳐 먹어 왔는데, 이제 간사하게 외람한 짓 하는 것을 금단하자, 이득을 놓치게 된 것을 원망하여 밤을 틈타 불을 지른 것이다.사건은 간단하다. 한강 가 서빙고 주변 사람들이 서빙고에 불을 질러서 태웠다. 궁궐에서 사용할 얼음을 보관하는 창고다. 중한 정부 부처는 아니지만, 종 6품 빙고별좌(氷庫別坐)가 책임자다. 일을 관리, 감독하는 감역부장과 빙고를 지키는 벌빙군관(伐氷軍官)도 있었을 것이다. 관리관과 군인이 엄하게 지키는 곳에 인근 민간인이 불을 질렀다.일은 점점 더 이상하게 전개된다. 국가 공식기관인 얼음 창고에 불을 질렀으면 포도청이나 중앙의 형조 등에서 수사를 해야 한다. “중사(中使)와 사관을 보내서 적간(摘奸)했다”라고 했다. ‘중사’는 내시다. 사관은 국왕을 따라다니며 일거수일투족을 기록하는 이다. ‘수사관’으로 나선 사람이 내시와 사관이다. ‘적간(摘奸)’은 수사가 아니다. 오늘날의 내사(內査) 정도다. 일의 속사정을 알아본다는 것이다. 얼음 창고에 불을 질렀으면 방화다. 내사가 아니라 엄한 수사를 해야 옳다. 결론은 더 이상하다. 폐조가 등장한다. 폐조는 광해군이다. 강가의 주민들은 광해군 시절, 얼음 저장하는 고역(雇役)을 했다. 고역은 ‘힘든 일’이 아니라 ‘돈 받고 일했다’라는 뜻이다. “이득을 취하며 국고의 곡식을 훔쳐먹었다”라고 했다. 믿지 못할 부분이다. 광해군 시절도 어렵긴 마찬가지였다. 광해군은 임진왜란으로 무너진 나라의 왕 노릇을 했다. 잠잘 곳이 마땅치 않아, 왕족의 사저인, 훗날 덕수궁에서 머물렀다. 대단한 임금을 주었거나 국고의 곡식을 훔쳐 먹는데 그냥 지나쳤을 리 없다. 인조는, 서빙고, 인근 주민들을 광해군 시절의 ‘적폐’로 여겼을 것이다.한양 도성에는 동빙고와 서빙고가 있었다. 오늘날의 용산구 서빙고동, 성동구 옥수동 부근인 두뭇개[豆毛浦, 두모포] 일대다. 동빙고는 종묘 제사 등에 사용하는 얼음을 보관했다. 서빙고는 궁중과 각급 기관에서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얼음을 보관했다. 서빙고가 동빙고보다 8배쯤 컸다고 한다. 조선 후기에는 개인적으로 얼음을 저장하는 창고도 있었다. 사빙고(私氷庫)다. 조선 시대 전에도 사빙고는 있었다. ‘고려사절요’ 고종 30년(1243년) 12월의 기록이다.(전략) 12월에 최이가 사사로이 얼음을 캐어 서산(西山)의 빙고(氷庫)에 저장하려고 백성을 풀어서 얼음을 실어 나르니[私伐氷藏之, 사벌빙장지] 그들이 매우 괴로워하였다. (후략)최이(崔怡, ?~1249년)는 고려 무신 최충헌의 아들이다. 원래 이름은 최우, 당대의 실세였다. 최이는 사람들을 마음대로 부려서 자신의 빙고를 채웠다. 조선 후기 사빙고는 성격이 다르다. 개인 사유의 빙고다. ‘사설 얼음 창고’이다. 업자들이 겨울에 얼음을 저장했다가 여름에 얼음을 판다. 주로 생선 보관 등에 사용했다. 국가에서도 사빙고를 이용했다.순조 8년(1808년), 서영보(1759~1818년), 심상규(1766~1838년) 등이 편찬한 ‘만기요람’에는, “영조대왕 당시, 부역으로 궁중에 바치는 얼음의 양을 반으로 줄이고 나머지는 현금으로 민간의 얼음을 사게 했다. 당시 1년간 필요한 얼음이 4만 여 정이고 백성들의 부역을 통하여 구하는 얼음이 3만 여 정이었다. 나머지는 사빙고에서 사들인 것이었다”라고 했다.동, 서빙고나 한강 변 등에 있는 빙고는 외빙고(外氷庫)다. 얼음은 쉬 녹는다. 바깥에서 궁궐 안으로 얼음을 가져오면 궁궐 안의 ‘내빙고(內氷庫)’에 보관했다.지방에도 빙고가 있었다.경북 안동의 ‘안동석빙고제’는 20년 가까운 역사를 자랑한다. 지방에도 빙고, 석빙고가 있었고 벌빙(伐氷), 얼음을 옮기는 일, 장빙(藏氷)의 일을 모두 해냈다. ‘경북매일’ 2004년 1월 28일의 기사다.조선 시대 장빙제 재연식이 30일 안동시 남후면 암산보트장과 안동댐 석빙고에서 재연된다./올해 3번째 열리는 안동 석빙고제는 (중략)/안동시 성곡동 안동댐 석빙고는 보물 제305호로 조선 영조 때 겨울철에 낙동강에서 잡아 올린 은어를 임금님 수라상에 진상하기 위해 돌로 만든 얼음 저장고이다./이번에 재현하는 장빙제는 낙동강에서 얼음을 채빙하는 모습과 채빙된 얼음을 석빙고에 장빙하는 과거의 모습을 재연하고 장빙행사에 (중략) 과거 채빙 당시 모습이 그대로 재연된다.‘지방의 얼음’은 향교의 제사(봉제사), 관청의 손님맞이(접빈객) 등에 사용했다. 현지의 현직 관리, 퇴직 관리들에게도 내주었다. ‘영조 은어 진상’은 오해가 있다. 궁중으로 올라가는 세금, 공물용 생선은 건어물이 원칙이다. 냉장 상태로 한양 도성에 은어를 보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한 달 이상 상하지 않는 냉장은 없다. 지방 빙고의 용도는 ‘한양 진상’이 아니라 현지 ‘봉제사 접빈객’을 위한 것이었다.지금도 남아 있는 지방의 석빙고는 안동 석빙고(안동시 민속촌길 13 박은숙초가), 경주 석빙고(경주시 인왕동 449-1), 청도 석빙고(청도군 화양읍 동상리 285), 현풍 석빙고(대구 달성 현풍읍 상리1길 36), 창녕 석빙고(창녕군 창녕읍 송현리 288), 영산 석빙고(창녕군 영산면 교리 산10-2) 등이다. 목빙고(木氷庫)가 아니라 석빙고이기 때문에 남았을 것이다. 더하여 이 지역은 유교 전통이 강한 곳이다. 역시 향교 제사가 큰 목적이다.한반도의 얼음 창고는 신라 지증왕 때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이 다수설이다. 조선 후기 실학자 순암 안정복(1712~1791년)은 ‘동사강목’에서 “‘삼국유사’에서는 신라 3대 왕인 유리왕(?~57년) 때 이미 장빙고를 만들었다고 하나, 신라 지증왕 6년(505년)에 얼음을 저장했다는 ‘설’을 믿는다”라고 했다.귀한 얼음은 귀하게 사용했다. 중앙에서는 궁궐 내부와 각 부처, 관리들에게 얼음을 나눠 주었고, 전옥서(典獄署)에서 옥살이하는 죄인들에게도 일정량의 얼음을 지급했다는 기록도 있다. 얼음을 나누어 주는 ‘반빙(頒氷)’이다. /맛칼럼니스트 황광해

2019-08-05

복합적 안보위기,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변창구대구가톨릭대 명예교수·국제정치학한국 안보가 사면초가(四面楚歌)다. 정치·경제·외교·국방 등 거의 모든 영역에서 ‘복합적 안보위기’가 일어나고 있다. 북한은 연일 미사일을 발사하면서 우리 정부의 신형전투기 구입과 한미훈련을 위협하고 있고, 중국과 러시아는 합동군사훈련을 빌미로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을 헤집고 다녔으며, 특히 러시아는 우리의 영토인 독도 영공까지 침범하였다.이들의 위협행위가 한미동맹이 균열되고, 한일갈등으로 일본의 경제보복이 이루어지는 시점에서 발생했다는 점에서 타이밍이 절묘하다. 위협한 결과는 그들이 의도한대로 한국과 동맹관계에 있는 미국마저도 자신에게는 위협이 아니라고 뒷짐만지고 보고 있고, 일본은 독도에서 우리 공군의 대응을 자국 영토인 다케시마(竹島)에 대한 불법행위라며 비난하였다. 나아가 일본 각의(閣議)는 ‘화이트리스트’에서 한국을 제외함으로써 역사갈등이 마침내 경제전쟁으로 비화되고 있다. 우리 편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고 모두가 자신의 정치적·국가적 이익을 챙기기에 바쁘다.우리의 안보상황이 어쩌다가 이 지경이 되었는가? 그것은 국제정치의 냉혹한 속성을 경시하면서 오직 북한에만 올인 하다시피 한 문재인 정부의 ‘이상주의적 안보관’이 자초한 결과이다. 따라서 정부는 현재의 외교안보전략을 전면적으로 재검토하여 수정·보완하지 않으면 안 된다. 특히 다음과 같은 점에 확고한 인식이 전제되어야 한다.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국제정치와 평화에 대한 현실주의적 인식’이다. 지난 6월 문재인 대통령은 스웨덴 의회 연설에서 “평화는 평화로운 방법으로만 실현될 수 있다”고 하였다. 반면에 북한의 김정은 위원장은 지난 5월 미사일 발사를 지도하면서 “강력한 힘에 의해서만 진정한 평화와 안전이 보장된다는 철리를 명심하라”고 하였다. 과연 누구의 안보관이 현실의 국제정치에서 평화를 지켜낼 수 있을까?4세기 로마의 전략가 베게티우스(F. Vegetius)는 “평화를 원하면 전쟁을 준비하라”고 하였고, 2차 세계대전 때 히틀러의 침공을 앞둔 영국의 처칠(W. Churchill) 수상은 “평화를 구걸한다고 평화가 보장되지는 않는다. 전쟁을 막기 위해서는 평화를 지켜낼 수 있는 힘이 있어야 한다”고 역설하였다. 이들이 유비무환(有備無患)을 강조한 이유는 힘이 뒷받침되지 않은 평화는 쉽게 깨어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제 정부는 ‘힘과 국가이익을 최우선하는 현실주의적 안보전략’을 추진해야 한다. 그 핵심은 대내적으로 국민통합을 바탕으로 자체 방위력을 제고하고, 대외적으로는 한미동맹을 강화하는 한편, 한일갈등의 적절한 관리와 외교적 해결을 모색하는 것이다. 핵 없는 한국이 북한의 핵위협과 북·중·러 협력체제로부터 야기되는 중첩적 안보위협에 대처하기 위한 한미동맹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또한 한일 경제전쟁의 확대와 장기화는 양국의 경제손실은 물론, 한·미·일 공조체제의 와해를 초래할 것이기 때문에 우리의 안보에도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 물론 정부는 일본의 부당한 경제보복에 단호하게 대처해야 할 것이지만, 감정적 대결보다는 냉정하게 상황을 관리하고 확전(擴戰)을 자제하면서 갈등해결을 위한 외교적 노력을 병행해야 한다.이를 위해서는 국정의 최고책임자인 ‘대통령의 통합적 리더십’이 절실하다. 통합적 리더십이란 여당과 야당, 진보와 보수를 내편 네편 가르는 ‘분열의 정치’가 아니라 애국적 비판자의 고언(苦言)도 경청하고 겸허하게 수용하는 ‘통합의 정치’를 말한다. 지금은 대통령 참모들이 ‘한일갈등이 내년 총선에 미칠 이해득실을 계산’하거나 ‘죽창가를 부르면서 감정적인 선동정치’를 할 때가 아니라, 보수와 진보를 가리지 말고 널리 인재를 찾아서 위기 극복의 지혜를 구할 때이다.

2019-08-05

리얼돌 논란

리얼돌은 사람, 특히 여성의 실제 모습과 최대한 비슷하게 만든 인형을 말하며, 사람의 실제 모습과 거의 비슷하다는 뜻에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 리얼돌의 시초는 2002년 미국의 아비스사에서 영화의 특수 메이크업에 사용하는 고급 실리콘으로 만든 데서 비롯됐다. 피부를 실리콘으로 처리해 실제 사람의 피부처럼 말랑말랑하고, 구체관절인형처럼 손가락·무릎·발가락 등의 모든 관절이 움직이는 것도 있다. 식도까지 있어 입으로 음식을 먹일 수 있는 인형이 있는가 하면, 심지어 성기까지 있는 인형도 있다. 머리카락, 눈썹, 눈동자, 가슴 사이즈 등 신체의 각 부분을 섬세하게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제작 기간이 길고 가격도 비싸다.리얼돌이 논란을 불러 일으키게 된 것은 최근 대법원이 수입을 허용하는 판결을 냈기 때문이다. 대법원은 지난 6월27일 한 업체가 인천세관을 상대로 낸 리얼돌 수입통관보류처분 취소 청구 소송에 대해 원고 승소 판결을 확정했다. 이로써 해외 제작 리얼돌의 수입을 허가하면서 상용화를 사실상 허용한 셈이 됐다. 이후 논란이 불거진 것은 대법원 판결 직후 일부 판매 대행업체가 “연예인·지인 등 원하는 얼굴로 맞춤 제작을 할 수 있다”며 홍보를 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고, 심지어 아동의 신체를 본뜬 리얼돌이 등장하면서부터다. 결국 청와대 국민청원에 지난달 8일 ‘리얼돌 수입 및 판매를 금지해주세요’라는 제목의 게시글이 올라왔고, 지난달 31일 현재 동의 수 20만명을 돌파했다.이에 대해 여성 네티즌들은 “나도 모르게 내 얼굴이 성인용품이 될 수 있다니 끔찍하다”, “여성과 아동이 성적 대상화되고 있다”는 등의 반응을 보였다.반대로 “여성 성인용품과 동일한 하나의 도구일뿐”이라거나 “오히려 성적 욕망을 해소해 성범죄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이 될 수 있다”는 주장도 나왔다. 리얼돌의 사용 자체는 사회적 논의가 필요한 부분이지만 남녀갈등으로 번지고 있는 현재의 상황은 바람직하지 않다. 영화에서나 보던 리얼돌이 사회적 논란거리로 떠오르는 건 동양과 서양의 서로 다른 성문화가 마찰을 일으킨 때문으로 풀이된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19-08-05

석양에 돌아온 무법자, 황혼에 지다

배우이자 영화감독인 클린트 이스트우드. 한때 황야를 어슬렁거리며 숱한 서부의 악인들을 쓰러뜨린 사나이. 그가 출연한 영화는 아니었어도 당대 서부를 피로 물들이든 숱한 위인들이 존재했던 시대. 지금 그 위인들의 한때는 기억하지만 그들이 생존해 살아갔을 뒷모습은 한번도 이야기된 적이 없으며, 누군가의 총에 맞아 최후를 맞았는지, 어느 오두막에서 천수를 누리며 쓸쓸히 죽어갔는지 알지 못한다.화려했던 한때, 인생의 최절정기에서 소멸해갔던 이들 속에서 굳건하게 살아남은 한 인물의 이야기. 열차와 은행을 털며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살인을 저지르던 살인자는 젊고 어여쁜 아내를 맞아 술을 끊고 총을 놓은지 11년이 지났다. 아내가 천연두로 죽은 후에도 캔사스 촌구석에서 어린 아들과 딸을 돌보며 돼지를 키우며 생활고에 시달리며 살고 있다.우리는 그의 전성기(?)를 알고 있다. 과거 그의 행적과 악명을 알고 있으며, 젊은 시절 서부를 내달리며 그의 총구 앞에서 쓰러져갔던 또 다른 악인들의 모습을 기억한다. 1964년 세르지오 레오네 감독의 황야의 무법자에서 시작된 그의 행적은 이후 1965년 석양의 무법자에 이어 1966년 석양에 돌아오다의 무법자 3부작에 고스란히 기록되어 있다.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의 용서받지 못한 자는 살아남은 자, 서부에서 사라져갔던 이들의 뒷이야기이며, 스스로가 세르지오 레오네 감독과 함께 무법자 3부작에서 세웠던 서부극의 신화를 해체하는 영화다.1930년대부터 1950년대는 할리우드의 전성기였으며 서부극의 전성기였다. 당시 서부영화는 선악의 이분법이 분명한 정의로운 영웅과 전형적인 악인의 대립을 주된 테마로 삼았다. 선악의 대결이 얼마나 멋있고 치열한가, 살인의 명분을 악인의 악행으로 얼마나 쌓아 올리는가가 주된 내용이었다. 동일 주제로 다양한 변주와 유사품들이 헐리우드의 공장에서 숱하게 양산되던 시기다.1960년대 미국이 아닌 다른 국가에서 유사한 장르의 서부극이 만들어진다. 그리고 그 시절 최절정기에 이탈이아에서 만들어졌던 일련의 서부극을 지칭하는 스파게티 웨스턴의 거장 세르지오 레오네가 있었고, 그의 영화 속 주인공인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있었다.△ 석양을 등지고 황혼에 돌아온 사나이스파게티 웨스턴은 정통 서부극과 결이 달랐다. 선악의 이분법이 흐려지면서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은 선인과 악인의 명확한 지점에 있지 않았다. 정의를 위해 총을 뽑던 인물들은 돈을 위해 총을 뽑고, 정체성에 있어서도 선인과 악인의 경계지점을 오가고 있었다. 정통 서부극이 대결에 있어서 일련의 신사적(?)인 룰을 가지고 있었던데 반해 스파게티 웨스턴은 일대일의 결투에서부터 일대 다수의 결투까지 상상할 수 있는 대결의 다양한 구도를 보여주고 있었다.그곳에서 살아 남은 자. 무법의 세계에서 촌구석의 농부로 돌아 온 자. 이곳에서 나이를 먹은 무법자 윌리엄 머니(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지금도 회자되고 있는 무법자 3부작의 신화를 스스로 해체하고 재해석한다. 그것은 부정과 연민이 아닌 한 시대의 종말을 향해가고 있으며, 영화 속 인물과 함께 나이를 먹어가고 있는 현실 속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삶의 변화과정과 궤를 같이 하고 있다.영화 용서받지 못한 자가 황야에서 보냈던 과거를 마무리하는 중년의 고별사가 되었다면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의 2008년작인 그랜 토리노는 1970년대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주연했던 영화 더티 해리 5부작의 황혼에 들어선 마무리처럼 보인다. 형사물인 더티 해리는 미국이 지니고 있는 현실적인 문제를 다루고 있는 서스펜스 영화다. 이 영화에 출연했던 인물이 고스란히 나이를 먹고 황혼기에 접어 들었을 때, 그의 일상의 문제와 직면했을 때의 내용을 그리고 있다.자동차 공장에서 은퇴하고 무료한 일생을 보내는 ‘월트 코왈스키(클린트 이스트우드)’는 한국전 참전의 기억으로 괴로워한다. 이런 남편의 참회를 바라던 아내의 유언에도 불구하고 고집스럽게 버틴다. 그의 차고 속에 고이 모셔 두기만 했던 자신의 1972년산 자동차 그랜 토리노와 이웃집 몽족과의 예기치 않은 얽힘으로 전개된다.한국전 참전에서부터 미국의 현대사를 관통해 온 ‘월트 코왈스키’는 그가 직접 조립한 포드사의 그랜 토리노와 함께 전형적인 미국인을 상징한다. 이웃의 몽족은 다양한 인종이 어울려 있는 현대 미국의 한 모습이기도 하다. 그곳에서 가장 미국적이며 보수주의자인 그의 실제 모습을 투영하며 그의 영화 속 인물이었던 더티 해리와 또 다른 작별을 고한다.용서받지 못한 자에서 서부시대를 살았던 사나이의 중년에 들어선 고별을 목격했다면, 70년대 미국의 정의를 위해 총을 들었던 사나이의 황혼에 들어선 고별을 영화 그랜 토리노에서 목격할 수 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실제 살아왔던 영화 속 인물들이 늙어가는 모습으로 다시 등장해 영화와 실제 삶을 오가며 그의 과거를 영화 속에서 마무리하고 있는 것이다.두 편의 영화는 ‘클린스 이스트우드‘가 영화 속에서 쌓아왔던 삶과 영화 바깥에서 살아왔던 삶의 기록을 자연스럽게 넘나들며 전개시키고 있다. 그가 출연했던 영화, 그 이후 그가 직접 연출하고 출연한 영화 속에서 주인공은 같이 나이를 먹고 있었고, 그 모습 그대로 영화 속으로 이어진다.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영화적 역사와 개인적 역사가 함께 녹아 들어가 있다.2008년 그랜 토리노에서 이 일련의 작업은 종결되었다고 생각했다. 영화 배우이며 영화 감독으로, 영화 속 삶과 영화 바깥의 삶을 함께 녹여내며 마무리했던 최종 결과물이 영화 그랜 토리노라고 생각했다. 그 이후 몇 편의 영화들을 더 연출했지만 배우로 출연하지 않았다.△ ‘마지막’ 선택지를 들고 돌아 온 거장2018년 90세의 영화감독이자 배우가 87세의 마약 운반원의 실화를 다룬 영화 라스트 미션의 감독이자 주연 배우로 다시 돌아 온다. 영화 바깥의 삶을 영화 속으로 다시 끌어들여 자신의 실제 나이와 비슷한 이를 등장시켜 아직도 할 이야기가 남아 있음을 보여준다.원예사업을 하는 ‘얼’은 자기 분야에서 유명인이며 잘 나가는 사업가이다. 바깥으로 맴돌며 가족을 돌보지 못한 남자. 시대의 흐름을 읽지 못해 사업은 망한다. 늦게나마 가족에게 돌아가고 싶지만 그곳에 자신의 자리는 없다. 그리고 다시 가족에게 돌아가기 위해선 돈이 필요하다. 그래서 그는 물건을 운반해주면 돈을 준다는 이의 제안을 받아들인다. 그리고 그 물건은 마약이었다.영화가 시작되면 2008년의 황혼에 접어들었던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10년이 지난 모습이 등장한다. 황혼을 지나 노쇠한 그의 모습이 그대로 등장한다. 구부정한 어깨, 활처럼 휘어버린 등, 더욱 깊게 패인 얼굴의 주름살이 그대로 느리고 힘겨운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현실의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그 모습 그대로 다시 영화 속으로 걸어 들어 온 것이다. 세 편의 영화 속에서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영화는 그의 육체와 함께 늙어가고 있다.영화 그랜 토리노에서 종결되었던 그의 영화 속과 영화 바깥의 삶이 라스트 미션에 다시 이어지면서 마무리하고자 했던 그의 영화 안과 밖의 ‘미션’이 아직 남았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는 그랜 토리노의 주인공인 ‘월트 코왈스키’가 한국전에 참전한 용사라는 것과 라스트 미션의 ‘얼 스톤’또한 한국전 참전 용사라는 점과 가족과의 관계는 여전히 서먹하다는 동일한 설정을 가지고 있음에서 알 수 있다.클린트 이스트우드가 다시 영화 ‘안과 밖’을 버무려 돌아 온 이유, ‘마지막 미션’은 무엇일까. 정의로운 죽음, 혹은 사라짐의 선택지를 택했던 그가 또 다른 마무리를 보여주고자 했던 것. 그것은 라스트 미션의 마지막 장면인 교도소에서 평안히 자신만의 정원을 가꾸는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모습을 통해 이것이 또 다른 ‘마지막’선택지라고 그의 귀환을 알리는듯 하다. 90세의 노장. 죽음과 사라짐, 평안의 공간을 보여주었던 결말들에서 이제 더 이상 그의 영화 ‘안과 밖’을 함께하는 귀환(영화)은 없을 것 같다. 물론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또 다른 선택지가 있다면 기대에 가득 찬 영화관람을 할 것이다.영화적 삶과 영화 밖의 실제적 삶을 세월의 궤적과 함께 쌓고 해체하고 재해석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영화 감독이자 배우는 전무하다. 그의 온전한 인생이 ‘영화적 삶’으로 존재하고 있으며, 그것이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영화라는 장르가 되어 버렸다.락 그룹 시카고의 대표곡인 데스페라도(Desperado)의 가사,‘무법자여, 오, 당신은 더 이상 젊어지지 않아요 Desperado, oh, you ain‘t gettin’ no younger/…울타리에서 내려와, 문을 열어요 Come down from your fences, open the gate/만약 비가 올지 모르지만, 당신 위에 무지개가 있어요 It may be rainin‘, but there’s a rainbow above you/누군가 당신을 사랑하게 하는게 더 좋을 거에요 You better let somebody love you/ 더 이상 늦지 않게 Before it‘s too late ’의 가사처럼 시작해 조정권 시인의 독락당(獨樂堂),‘독락당(獨樂堂) 대월루(對月樓)는/벼랑 꼭대기에 있지만/예부터 그리로 오르는 길이 없다./누굴까, 저 까마득한 벼랑 끝에 은거하며/내려오는 길을 부숴버린 이.이처럼 스스로 올랐던 길을 부숴버린 그 어떠한 경지 위에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머물고 있다. 하지만 언제 다시 사다리를 내리고 조용히 찾아와 그의 이야기를 들려줄지도 모를 일이다. /김규형 문화기획사 엔진42대표*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의 영화 ‘용서받지 못한 자’ ‘그랜 토리노’ ‘라스트 미션’은네이버영화나 구글플레이에서 다운로드하여 볼 수 있다.

2019-08-05

한국이 헤지펀드의 공격 대상이 될까?

김학주 한동대 교수세계적으로 투자수익을 올리기 어려운 상황이다. 한편 저금리로 인해 헤지펀드들이 자금을 조달하기 쉬운 환경이다. 즉 약간의 취약성만 보여도 헤지펀드의 공격에 쉽게 노출될 수 있는데 지금은 한국의 약점이 드러나는 국면이라서 걱정된다.먼저 세계교역이 줄어드는 상황에서 수출의존적인 독일, 일본, 한국 등이 취약한 것은 당연하다. 만일 트럼프가 중국을 KO시킬 수 있다면 미-중 갈등은 쉽게 끝나고 이들 국가의 고통도 덜해질 수 있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중국의 지난 2분기 GDP성장률은 전년비 6.2%를 기록했다. 미국과의 통상마찰을 감안할 때 나쁘지 않은 숫자다. 특히 2분기 말로 갈수록 중국의 회복속도가 빨랐다고 한다. 트럼프가 중국을 두들기고 있지만 중국이 버티고 있다. 괜히 중국의 내구력만 입증시켜 준 셈이다. 여기서 트럼프가 꼬리를 내릴 수 없다. 더 강한 약을 쓸 수 있다는 것이고, 그 피해는 수출의존도가 큰 나라들 가운데 상대적으로 힘이 약한 한국으로 넘어 올 수 있다.또한 한국 산업의 두 기둥인 반도체, 자동차가 흔들린다. 원화가치가 절하되면 이를 가격경쟁력으로 활용하며 더 많은 달러를 벌어 들이던 건강한 수출기업들 때문에 헤지펀드들이 감히 한국을 공격하지 못했는데 이제 그 기능이 작동하지 않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자동차의 경우 세계 최대인 중국시장이 의외로 위축되고 있다. 다른 나라들의 자동차 보급과정을 감안할 때 중국 자동차 수요는 계속 증가할 것으로 예상됐고, 그래서 모두가 중국에서 설비증설에 공격적이었다. 그러나 중국 내 부의 불균형으로 인해 1선 도시의 자동차 보급이 포화상태에 이르자 자동차 수요가 급격히 둔화됐고, 도로 등 자동차 인프라의 더딘 보급, 그리고 예상보다 심각했던 대기오염이 수요를 제한했다. 그 결과 중국이 급작스러운 공급과잉으로 접어 들었다. 사실 중국 자동차 시장은 미국, 유럽처럼 경쟁이 치열하지 않아 수익성이 높았는데 그 시장이 위축된다는 것이 더 고통스럽다. 반도체는 아직 성장과정이 끝나지 않았다. 그래서 헤지펀드들도 중국정부가 삼성전자를 추격하여 흔들어 놓기 전까지는 한국을 관망하는 분위기였는데 의외로 한일 통상마찰로 인해 삼성전자가 한국을 떠나야 한다면 서둘러 공격해 볼만하다는 생각을 가질 수 있다.한편 한국은 인구도 가장 빨리 노령화되는 국가 중 하나다. 즉 향후 건강보험 재정지출이 급증할 것이다. 또한 연기금의 자산이 과대평가되고, 부채가 과소평가된 부분도 정부재정으로 충당해야 한다. 특히 한국에는 통일이라는 이벤트가 있다. 예전에 한 외국인 투자자가 “한국은 통일되면 달러당 3천원 갑니까?”라고 물은 적 있다. 통일비용을 염두에 둔 것이다.이런 한국의 구조적 문제들이 시간이 갈수록 더 나올 수 밖에 없으니 헤지펀드 입장에서는 시간을 끌더라도 승산이 높을 수 있기 때문에 편한 마음으로 한국을 공격할 수 있다. 만일 헤지펀드가 한국자산을 팔거나 원화를 공격해서 절하시키면 원자재 수입비중이 높은 한국은 수입물가가 상승해 서민들의 생활이 어려워진다. 정부가 이를 좌시할 수 없으므로 재정으로 그 부담을 흡수하게 될텐데 이는 또 다른 원화가치 하락 요인이므로 헤지펀드 입장에서는 해 볼만한 게임이 될 수 있다.2016년 초 소로스는 중국 위안화를 공매도하며 공격했다. 부채위주의 기형적 성장이 지속될 수 없고, 그 결과는 참담할 것이라는 판단이었다. 그러나 실패했다. 그 이유는 중국의 성장 잠재력 때문이다. 지금 빚이 있어도 성장을 지속하면 갚고도 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도 헤지펀드의 공격에서 벗어나려면 성장이 살아 있어야 한다. 새로운 부가가치를 만들어 내는 젊은 벤처기업들을 지속적으로 탄생시킬 수 있는 인프라와 규정을 시급히 갖춰야 하고, 이들의 성장을 해외 투자자들에게 알려야 한다.

2019-08-05

가깝고도 먼 나라

강희룡 서예가한반도와 일본의 관계를 보면 기원전 3세기경 한반도에 거주하던 사람들이 일본열도로 건너가 600여 년간 청동기와 철기문화를 일으켰는데 이를 ‘야요이 문화’라고 한다. 오늘날 일본인의 조상은 원주민인 조몬(繩文)인을 몰아낸 이 야요이인이라는 학설도 있다. 이후 백제와 가야, 고구려인의 상당수가 일본으로 건너가는데 이를 도래인(渡來人)이라고 한다. 일본의 건국과 일월숭배와 관련이 깊은 신화적 요소가 짙은 설화인 ‘연오랑 세오녀’도 삼국유사에 전한다. 이 설화가 고대 일본문화의 성립과 관련이 깊다는 것은 세오녀가 짠 비단의 존재에서 알 수 있다. 이는 일본으로 건너간 집단 가운데 직조 기술자가 있으며, 이들이 일본에 직조 기술을 전파한 것으로 이해된다. 이렇듯 한반도와 일본열도의 교류는 그 유래가 매우 깊음을 알 수 있다.일본인에 대해 일찍이 신숙주는 ‘해동제국기서’에 ‘그들의 습성은 강하고 사나우며, 무술에 정련하고 배타기에 익숙하다. 그런데 우리나라와는 바다를 사이에 두고 서로 바라보게 되었으니, 그들을 만약 도리대로 잘 어루만져 주면 예절을 차려 받들고, 그렇지 않으면 문득 함부로 노략질할 것입니다.’라고 하여 일본에 대한 경계심과 함께 교린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또한 신숙주는 임종 직전에도 성종에게 ‘일본과의 평화를 잃지 마십시오.’라는 말을 남겼다. 임진왜란은 명, 청의 교체, 일본의 에도막부와 같은 새로운 정권의 성립을 말해 준다. 이 전란의 시대를 살던 강항(1567∼1618)은 왜군에 잡혀 피로인(被虜人)의 신세가 된다. 그가 지은 ‘간양록(看羊錄)’은 일본에 끌려가 목격한 실상을 속속들이 기록한 체험기록이다. 그 중 ‘적중봉소(賊中封疏)’의 한 대목을 보면 ‘백만의 야인이 수십만의 왜병을 대적치 못할 터인데, 국가에서 남쪽을 가볍게 여기고 북쪽을 무겁게 여기는 까닭을 알지 못하겠습니다.(중략) 왜인이 포 쏘는 것을 배우기 시작했고 천성이 영리하여 지금의 왜인은 옛날의 왜인이 아니니, 조선의 방어 또한 옛날의 방어로는 안 되는 것이니, 국경의 방비를 전일보다 백배 더해야 할 것입니다.’ 당시 일본의 역사와 사회상을 객관적으로 제시한 기록이다.에도시대 조선통신사는 1607년에 시작되어 200년 동안 모두 열두 번 파견되었다. 통신사로 파견된 인사들 중 신유한(1681∼1752)이 쓴 ‘해유록(海遊錄)’의 기록을 보면, ‘통신사들은 일본 전국의 지식인과 민중에게 거의 열풍에 가까운 큰 환영을 받았다.’고 기록하였다. 즉 조선 문화전파의 길이었다. 하지만 통신사들은 문화적 우월감에 사로잡혀 일본 내부와 속사정을 자세하게 관찰하는 이가 드물었고, 일본의 참모습을 직시하기는커녕 깔보는 경우가 허다했다. 연암 박지원이 ‘우상전(虞裳傳)’에 남긴 언급을 보면, ‘수백 년 동안 사신의 행차가 내왕했으나 체통을 지키고 임무를 수행하는 데에 치중하느라 그 나라의 인물, 요새, 강약의 형세에 대해서는 털끝만큼도 실상을 파악하지 못한 채, 그저 왔다갔다만 하였다.’라는 기록이 당시 상황을 잘 말해주고 있다. 일본에 관한 종합 정보지의 성격을 지닌 이덕무(1741∼1793)의 ‘청령국지(873B86C9國志)’를 보면 조선후기 지식인들은 일본을 통해 서구에 관한 지식과 정보를 적지 않게 수용하였음을 알 수 있다. 역학에서는 한국과 일본은 모두 동쪽에 있는 나라라고 해서 목(木)으로 분류한다. 같은 목이지만 한국은 갑목이고, 일본은 을목이다. 이렇게 음양을 십성(十星)으로 분류하게 되면 겁재(劫財)가 되는데, 이 겁재는 사람으로 치면 배다른 형제이다. 즉 가까우면서도 먼 사이인 것이다. 한국을 백색국가에서 제외한 일본과 불붙은 경제전쟁은 목소리만 높인다고 이기는 게 아니다. 아베의 숨은 목적은 한국에서의 극대화된 반일감정을 이용하여 그의 목표인 전쟁 가능한 일본 헌법으로 개정하는데 있다. 국민들에게 죽창과 의병의 행동강령, 이순신의 12척의 배를 운운하며 국민을 애국과 이적으로 가르는 것보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반드시 이긴다.’는 손자병법이 필요한 시국이다.

2019-08-05

랍비와 황제의 밀약(2)

성문은 무너지고 로마 병사들은 예루살렘으로 진격합니다. 110만 명이 몰살당합니다. 예루살렘 길거리에 어린아이 무릎 높이까지 피가 강처럼 흘렀다고 역사학자 요세푸스는 말합니다. 150만 명 유대인은 전 세계로 뿔뿔이 흩어져 나라 없는 디아스포라의 운명으로 살아가지요.한 나라가 멸망하면 짧게는 50년, 길게는 100년이면 모든 문화나 문명은 다 사라집니다. 역사학자 아널드 토인비에 따르면 역사상 28개 문명이 발생했는데 유일하게 수천 년을 살아남은 문명은 유대 문명이 유일하다고 하지요. 멸절 위기에 처한 유대 문명은 어떻게 그 위기를 넘기고 살아남았을까요?랍비 벤 자카이는 예루살렘 멸망 후 야브네로 떠납니다. 제자들과 함께 작은 학교를 세우지요. 황제는 약속을 지켰습니다. 아들 티투스를 유대 총독으로 보내면서 작은 학교 설립을 돕습니다.그 학교에서 요하난 벤 자카이는 랍비들을 길러내기 시작합니다. 한 명 두 명 길러낸 랍비들은 유대 전역으로 흩어져 마을마다 토라를 가르칠 수 있는 회당을 짓습니다. 그곳에서 토라와 탈무드를 목숨 걸고 가르칩니다. 회당은 영토를 잃어버린 유대인들의 구심점입니다. 나라는 망했지만, 탈무드와 토라를 가르칠 수 있는 랍비를 길러낼 수 있으면 민족이 망하지 않으리라는 확신으로 뼈아픈 역사의 경험을 통해 학습 공동체로 새롭게 태어납니다.세계 인구 0.2%밖에 안 되는 유대인들이 세계 경제 70%를 장악하고 있고, 노벨상을 22% 휩쓸고 있으며 미국의 모든 언론과 영화, 포춘 500대 기업을 거의 쥐락펴락한다는 이야기는 신물나게 들었습니다. 배움이라는 것이 모든 민족의 뼛속에 DNA로 아예 각인되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랍비 요하난 벤 자카이의 작은 학교에서 시작한 교육이 2천 년의 세월 동안 흩어져 있는 모든 유대인의 삶에 스며들었기 때문입니다.먹구름 아래 환경이 로마 군인들에게 포위당한 예루살렘보다 낫다고 볼 수 없습니다. 칼과 창으로 살육하는 것은 아닐지라도 보이지 않는 장치들로 우리를 교묘히 길들여 소비하는 대중으로 만드는, 진짜 삶을 살지 못하게 가로막는 캄캄한 세상입니다.손 놓은 채 10년 후를 맞을 수 없습니다. 10명이 될지, 100명이 될지 모르지만 서로 연대하면 분명히 승리할 것이라 믿습니다. 독일 꼬마 펠릭스핑크바이너가 말합니다. “잊지 마세요. 모기 한 마리는 코뿔소에게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수천 마리 모기는 코뿔소의 길을 바꿀 수 있어요!”/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대표

2019-08-05

랍비와 황제의 밀약(1)

가장 참혹한 전쟁으로 1차 유대-로마 전쟁을 꼽습니다. AD 66∼70년 벌어진 끔찍한 전쟁으로 유대인들은 인구가 800만 명에서 400만 명으로 줄어듭니다. 그리스인과 유대소송에서 승리한 그리스인들이 유대인을 학살하는데도 로마는 개입하지 않습니다. 유대민심이 흔들리는 와중에 로마 총독 폴로루스가 성전에서 17달란트 금을 몰수하는 사건이 벌어집니다. 성전 모독 행위에 분노한 유대인들은 로마 수비대를 급습해 병사들을 살해합니다. 네로 황제는 유대를 공격하라고 명령합니다.베스파시아누스 장군은 완강한 저항 때문에 수도 예루살렘만은 함락시킬 수 없습니다. 장군은 예루살렘 성을 포위하고 주민들이 굶주려 항복하기를 기다립니다. 2백만 명 이상의 유대인들이 몰살당한 상태입니다. 온 나라는 피로 물들었고 성벽 내부는 굶주림과 질병, 끝없이 발생하는 아사자로 항복하자는 측과 끝까지 저항하자는 측으로 나뉩니다.예루살렘 지혜자 랍비 요하난 벤 자카이는 유대 민족이 살아남을 길은 협상을 하는 방법밖에 없다고 확신합니다. 전염병에 걸린 시신이라고 기지를 발휘해 예루살렘 성문을 통과해 베스파시아누스 장군 막사로 찾아갑니다. 면담은 흔쾌히 이뤄집니다. 랍비 요하난 벤 자카이는 사령관의 눈을 잠시 물끄러미 바라봅니다. “나는 장군에게 로마 황제에게만 표하는 존경을 드립니다.” 당황한 장군이 손사래를 칩니다. “황제를 모독하는 그런 발언은 삼가시오.” 벤 자카이는 말합니다. “아니오. 당신은 반드시 로마의 황제가 될 것입니다.” 베스파시아누스 장군은 주위를 살핍니다. “그런 얘기는 그만둡시다. 나를 찾아온 목적이나 말해 보시오.”“장군. 나에게는 작은 소원 한 가지가 있소.” “무엇이오?” “예루살렘은 궤멸 직전의 상황이오. 우리는 항복하고 성문을 열어 투항할 것이오. 그 대가로 작은 부탁이 하나 있소이다. 야브네 거리만은 파괴하지 말아 주시오. 방 한 칸의 교실이라도 좋으니 조그만 학교 하나만 그곳에 지어 주시오. 무슨 일이 있어도 그 작은 학교만은 없애지 말기를 부탁하오” “그 정도는 충분히 들어줄 수 있소.”대화를 나누는 도중 로마에서 파견한 전령이 헐레벌떡 막사로 뛰어들어옵니다. “황제가 돌아가셨습니다. 원로원에서 장군님을 차기 황제로 선출했습니다.” 베스파시아누스 장군은 큰 충격을 받습니다. 랍비의 통찰에 경의를 표하고 엄명을 내리지요. “작은 학교는 절대로 없애지 마라”(내일 편지에 계속)/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대표

2019-08-04

아베의 오만한 식민사관이 결국 화(禍) 불렀다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일본의 8·2 경제 보복조치는 아베의 오만한 식민사관에서 비롯되었다. 아베는 1997년 12월 중의원 역사모임을 결성하고 사무총장직을 맡는다. 아베는 신도(神道)정치 의원모임 등을 통해 자신의 역사 인식의 토대를 굳건히 하였다. 아베는 이 모임을 통해 그의 극우 군국주의적 신념을 전파하였고, 일본 역사 교과서 개정운동도 동시에 펼쳤다. 이들의 ‘역사 교과서의 의문-젊은 의원들에 의한 교과서 문제 총괄’이라는 보고서는 일본 역사 교과서의 개정의 지침이 되었다. 아베의 패권주의적 군국주의적 시각은 일본 국익 팽창에는 기여했겠지만 우리 경제에는 상당한 타격을 피할 수 없다. 아베의 오만한 일본 극우 식민사관이 오늘의 일본의 경제 보복으로 연결되었음은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아베의 오만한 역사인식은 우리의 징용자 보상 문제에도 적용되고 있다. 아베는 1965년 한일 간 체결된 3억불의 보상협약으로 징용자 보상 문제는 재론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특히 최근 한국 대법원의 징용자 일본기업 배상 판결은 그의 경제 보복으로 연결되었음은 부인할 수 없다. 이 같은 아베의 조치는 일본의 지식인들까지 수긍하지 못하고, 일본의 전 변협회장까지 국가의 잘못으로 인한 개인의 법적 구제 절차는 당연한 피해자의 권리라는 주장이다. 아베의 이러한 발상은 과거 국권 침탈과 식민지배를 사과한 무라야마 담화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행위이다. 일본은 공식적으로 부인하지만 아베의 과거사에 대한 오만한 인식이 한국에 대한 경제 보복으로 연결되었음은 분명한 현실이다.나아가 아베는 과거 종군 위안부 강제 동원까지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그는 위안부의 강제 연행을 인정한 1993년 고노담화까지 부정한 셈이다. 아베의 역사 모임은 조선의 위안부 문제도 ‘조선에는 기생집이 있어 위안부 문화가 보편화되어’ 강제 동원 자체를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들은 1965년 조약체결 시 위안부문제에 관해 아무도 이의가 없었는데 한국 생존 증언자 16명의 의견 청취를 토대로 군의 강제 동원 주장은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들은 종군 위안부의 강제 동원에 대해 물증 제시를 요구하고 있다. 그들은 2012년 박근혜 정부 시절의 ‘불가역’의 위안부 문제의 부당한 합의만을 이행할 것만 요구하고 있다.독도문제에 관한 일본 영토주장은 얼토당토않은 오만한 시각이다. 일본은 1905년 러일 전쟁 시 ‘주인 없는 섬 독도’를 러시아 함대 감시용으로 일본 영토에 편입시켰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독도가 한반도에 속한 영토임은 1145년 삼국사기, 1454년 세종실록지리지 등 우리 사료에 분명히 기록되어 있다. 일본의 1695년 돗도리번 답변서, 1877년 태정관 문서 등 그들의 문서에도 ‘독도는 일본과 관계없다’고 기록되어 있다. 독도는 울릉도에서 87㎞, 일본의 돗도리에서는 157㎞나 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영토인 독도는 사실 한일 합방에 의한 일본의 국권 침탈의 첫 희생물이다. 최근 러시아의 독도영공 침범에 대해 일본이 한국과 러시아를 싸잡아 비판한 것은 그들의 영토적 속내를 다시 드러낸 것에 불과하다.아베의 이러한 과거사에 대한 오만하고 왜곡된 인식이 이번 8·2 경제 보복의 단초이다. 아베의 집권 초기의 군국주의나 패권주의적 주장은 일본 경제위기 탈출에 기여한 측면도 있다. 아베는 이제 일본의 보수적인 여론을 토대로 헌법 9조 개정을 통해 무력강국의 합법화를 획책하고 있다. 그러나 아베의 이번 경제 보복조치는 결국 자유무역의 원칙에 반할 뿐 아니라 그것이 일본 경제나 외교에도 부메랑이 될 것이다. 세계 3위인 일본 경제도 12위의 한국 경제를 이제 마음대로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간 우리의 저자세 대일 외교가 오늘 아베의 오만성을 키웠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일치단결하여 아베의 너울성 파도부터 잠재워야 할 것이다.

2019-08-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