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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길에서 숨다

김순희 수필가아버지는 길에서 가셨다. 일하던 곳이 길이었고, 쉬는 곳 또한 길이었다. 그래서인가. 그 곳에서 또 다른 길로 가버렸다. 아버지는 청소부였다. 이른 새벽 청소차를 뒤따르며 길을 쓸었다. 손톱과 손가락의 경계가 선명해서, 길 위에 선 아버지와 보행도로를 걷는 사람들을 구분지었다.‘아버지’ 하고 몇 번이나 불렀던가? 지금 생각해보아도 한 손으로 꼽을 정도이다. 집에서도 멀찍이 앉았고, 눈 한 번 제대로 맞춰본 적이 없었다. 아버지는 늘 혼자였다. 아버지와 얘기하는 사람은 막내동생 뿐이었다. 아버지는 나이가 어린 막내에게는 무동과 말이 되는 놀이터였다. 점방에 갈 수 있게 해주는 돈주머니였고, 흙투성이로 집에 돌아와 엄마의 꾸중, 잔소리로부터 숨을 곳이었다. 그것도 막내가 중학생이 되기 전까지였다.다음으로 아버지와 대화를 하는 사람은 엄마였다. 두 분의 대화는 독특했다. 새벽부터 잠들 때까지 눈만 마주치면 다투었다. 귓바퀴에 먼지가 가득하니 씻어라, 남들이 내 욕한다며 엄마가 내뱉으면 아침부터 잔소리라며 눈을 부라렸다. 밥 먹을 때 쩝쩝거리지 말라하면 먹을 땐 개도 안 건드린다며 더 소리를 냈다. 싸울 때만 쿵짝이 맞을 뿐 사이가 좋은 적은 없었다. 방에 누워 그 소리를 들으며 나는 다짐을 했다. 결혼하지 말아야지, 만약에 하더라도 부부싸움은 하지 않아야지, 아이들 앞에서는 절대로 절대로.길에서 아버지를 마주칠 때면 나는 얼른 골목길로 숨어들었다. 아버지도 못된 딸이 피하는 걸 아는지 불러 세운 적이 없었다. 친구들이 알아볼까 두려웠다. 내가 하던 거짓말이 들통날까 겁이 났다. 멀리 아버지의 뒷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꼭꼭 숨어있었다.그날은 숨을 수가 없었다. 집이 싫었던 나는 교회에서 늦게까지 청년부 일을 도맡곤 했다. 늦은 밤 같은 부서 후배가 나를 집까지 바래준다고 했다. 두런두런 이야기를 하며 걸었다. 산 중턱에 자리한 우리 집이 가까워진다는 걸 밤공기에 묻어나는 아카시아 향기로 알 수 있었다. 간간히 들려오는 소쩍새 소리로도 느껴졌다.저만치에 짐자전거 한 대가 휘청거리며 언덕을 오르고 있었다. 빈자전거를 끌고 가기에도 숨이 턱에 차는 오르막이었다. 자전거 뒤에 종이상자며 고철덩이가 잔뜩 실려 있어서 헉헉 소리만 들려 올 뿐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옆에 걷던 후배가 뛰어 가더니 뒤에서 힘껏 밀었다. 나에게도 손짓했다. 나는 그 자리에 멈췄다. 멀리서도 한 눈에 자전거 주인이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산에서 울어대는 소쩍새울음에 내 심장소리가 묻히길 바라며, 어둠이 나를 숨겨주길 바랐다.아버지는 날 좋은 봄에 가셨다. 뺑소니 사고였다. 소식을 듣고 한달음에 쫓아온 할머니의 통곡소리가 밤새 끊이지 않았다. 방바닥을 내리치며 우시다가 자식을 잡아먹었다며 며느리에게 욕을 해댔다. 할아버지는 마른 헛기침으로 시끄럽다며 역정을 내는 걸로 아들의 죽음을 슬퍼했다. 정신없이 하루가 지났다. 초상을 치러야 하니 아픈 아이를 시어머님께 맡겼다. 모유를 먹이던 터라 삼우까지 지내려면 젖을 뗄 수밖에 없었다. 약국에 가서 젖 삭히는 약을 샀다. 하지만 한 번도 먹지 않았다. 매일 줄줄 흐르던 젖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숙모들이 옆에서 아기가 입을 대지 않으면 젖이 잘 마른다고 거들었다. 그런 줄 알았다.둘째를 낳아 기르며 두 돌이 다 될 때까지 젖을 물렸다. 젖을 떼려고 삭히는 약을 지어먹었다. 엄마가 일러주는 대로 엿질금을 앉혀 먹어도 보았다. 가슴이 아파 얼린 양배추로 열을 식히며 선잠을 잤다. 보름 정도가 지날 때까지 젖이 자꾸만 불어서 물 한모금도 아껴 마셨다. 아버지 가실 때가 생각났다. 그 때는 아무런 통증도 없이 삭아진 젖멍울이었다. 멍울이 사그라질 때까지 실컷 울었다. 아버지 생각을 하면 길이 떠오른다. 기우뚱거리는 자전거가 보인다. 한 번도 아버지 곁에 선 적이 없었던 소녀가 가로등 그림자 뒤에 숨어있는 것이 보인다.

2019-05-15

스마트세상은 모두에게 환영받을까

곽지영 포스텍 산학협력교수·산업경영공학과얼마 전 지역 공무원 대상 특강에서 있었던 일이다. 언제나처럼 강의에 온통 열정을 쏟아 부은 후 방전된 상태로 걸어 나오는데, 수강생 한분이 본인 담당 업무에 대한 고민을 털어 놓았다.심사를 일주일 정도 앞둔 마을 공동체 혁신 사업 건에 대해 스마트시티로 연계 가능한 부분이 있을지 의견을 듣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강의 중에도 얘기한 스마트시티의 특성을 다시 설명드리며, 일정이 너무 촉박해 보이니 이번에는 당초 계획대로 진행하시는 것이 좋겠다고 말씀드렸지만 거듭 부탁하시는 통에 시간을 내어 도움을 좀 드리기로 했다.준비된 내용을 받아서 동료 교수님들과 함께 꼼꼼히 살펴보았다. 예상대로 목표로 잡은 아이템은 스마트 기술의 활용과는 거리가 멀었고, 심사를 며칠 앞둔 상황에 방향을 바꾸기에는 불가능해 보였다. 당장은 도움이 안 될 것이 분명했지만 향후에라도 참조하시라는 뜻으로, 우리가 가진 솔루션 목록을 보내드렸다. 잠시 후 다시 걸려온 전화에서 도움에 대한 감사의 인사나 후일을 기약하는 말씀을 기대한 내 기대와는 달리 목록 중에 마음에 드는 것이 없었고 대부분 ‘시기상조’인 것같다는 부정적 의견만이 돌아왔다.반응이 예상된 일이었지만 나는 고민에 빠졌다. 스마트시티는 그렇게 카탈로그를 넘겨보며 남이 만들어 둔 기성품을 쇼핑하듯이 쉽게 단숨에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지역의 문제와 혁신의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를 가진 시민과 전문가가 팀을 이루어 함께 머리를 맞대고 만들어가야 하는 혁신활동 그 자체라는 점을 어떻게 설명해야할지 난감해졌다. 다음 강의에서는 이점을 한 번 더 강조해야겠다고 마음먹는 것 외에는 도리가 없었다.하나의 에피소드에 불과하지만 어쩌면 이것이 바로 스마트시티를 비롯한 첨단 기술 기반 산업의 본질이기도 하다. 누군가는 어떤 새로운 기술이나 제품의 잠재력만을 보고 먼저 받아들이거나 투자를 하는가 하면, 다른 누군가는 현재의 방식을 최대한 유지하기를 원하고 따라서 새로운 기술의 도입에는 소극적, 방어적이 된다.첨단 기술 기반의 창업 기업들을 ‘벤처’라고 부르는 데서 알 수 있듯, 신기술의 등장 초기에는 그 산업적 파괴력을 예견하기가 쉽지 않으므로, 이런 경우의 선제적 실행이나 투자는 일종의 모험이라 할 수 있다.모험에 따른 실패의 가능성 때문에, 먼저 움직이는 것이 항상 유리한 것만은 아니다. 설익은 첨단기술의 실패사례는 세계 역사 속에서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한때 화려하게 등장하여 세상을 뜨겁게 달구고 사라진 개인휴대용단말기(PDA), 넷북, 3D TV의 실패와 몰락은 겨우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실제로 첨단제품의 시장 성숙도 곡선 상에는 소위 얼리어답터의 성공 다음에 따라오는 ‘죽음의 계곡(Death Valley)’이라는 것이 있을 정도이니 말이다.그러나 만약 그 예상이 적중한다면 그 결과는 어떨까? 먼저 움직인 모험적 성향의 사람들은 그 혜택을 먼저 누리고 많은 수익을 올린다. 뿐만 아니라, 점점 더 자신에게 유리하도록 판을 다시 짜며 시장에서 우위를 차지하고 후발 주자들과의 격차를 더 벌여 간다. 한편 그 가치가 확인된 후에야 비로소 움직이는 보수적 성향의 사람들에게는 누군가가 치밀하게 짜 놓은 판과 복잡한 규칙에 맞추어 따라가느라 그 혜택을 누리거나 수익을 얻을 기회도 현저히 줄어든다.변화의 바람은 언제나 거세고 차갑다. 휘몰아쳐 오는 바람 앞에서 이솝우화 속 나그네처럼 옷깃을 단단히 여미고 방어하려는 본능은 어쩌면 당연하다. 그러나 금세 바람이 그치고 약속한 듯 따뜻한 해가 비치는 것은 동화 속이라서 가능한 일이다. 옷깃만 부여잡고 해가 비칠 날만 기다리는 것은 변화무쌍한 4.0시대에는 어울리지 않는다. 바람이 부는 방향을 잘 살펴서, 필요하다면 돌아서서 그 바람을 이용할 줄도 아는 현명한 나그네가 되어야 한다.

2019-05-14

님비와 핌피의 융합

김진홍 한국은행 포항본부 기획조사팀장포항, 경주, 울진 등 경북 동해안지역에는 굵직한 위험 시설들이 많다. 중앙정부가 탈원전 정책을 주창한 이후 신규 원자력발전소 건설에 대한 향방은 불투명한 상황이지만 경주에는 방사성폐기물저장소까지 있다. 사실 행정구역상 시군 간 지역이 구분되어 있기는 하지만 원전과 관련한 것은 일본의 사례를 보더라도 큰 의미가 없는 것도 사실이다. 때문에 탈 원전 이후 이 지역의 항구적인 안전 확보를 위해서는 가동 종료와 해체에 관한 연구도 꾸준히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 이와 같은 범국가적인 사업 가운데 위험, 혐오시설 등을 특정지역이 자의반 타의반으로 떠안게 될 경우에는 이에 상응하는 반대급부도 당연히 주어지기 마련이다.하지만 국가사업이 아니더라도 우리가 자신의 주거지역 주변에 없기를 바라는 기피대상시설은 수없이 많다. 이러한 이기적인 행동을 님비(NIMBY) 현상이라고 부른다. 이와 반대로 누구나 선호하는 이기적인 행동은 핌피(PIMFY) 현상이라 부르는데 이러한 시설에 대한 지자체 사업은 비교적 순조롭게 진행되기도, 때에 따라서는 특혜논란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포항시뿐만 아니라 앞으로는 거의 모든 지방도시에서 고령화가 급격하게 진전됨에 따라, 과거 젊은이들이 넘쳐나던 시절에는 그다지 주목받지 못하거나 부족함이 없이 큰 불편을 느끼지 못했던 시설들이 많이 필요해질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이러한 시설들의 부족현상이 점차 확대될 가능성도 크다. 그중 대표적인 것으로는 장례시설과 화장시설 등을 들 수 있다. 포항시의 경우에도 시 승격 70주년을 맞이할 정도로 도시 나이도 들었고 인구도 50만 명이면 적지 않은 규모지만 그동안 도시가 발전, 성장하는 과정에서 인구가 순차적인 확장을 하였다면 이와 같은 필수시설도 당시에는 도시외곽에 만들어 졌더라도 다시 도시의 확장단계를 지난 시점에서는 결과적으로 편리한 부도심지역에 이러한 시설들이 이미 충분히 적절하게 포진하고 있을 것임에 틀림없다.하지만 포항의 경우에는 특이하게도 1994년까지는 인구 30만 명 수준의 도시였지만 1년 후인 1995년 도농복합도시로 주변 읍면지역을 통합하면서 일시에 50만 명이 넘는 대도시로 탈바꿈하게 된 것이 문제다. 이에 따라 인구 30만 명 수준을 감당하던 시설들로는 50만 명 수준의 수요를 감당할 수 없게 된 대표적인 것 중 하나가 바로 이러한 장례시설 등인 것이다. 포항시가 지금 추진하고 있는 다양한 사업들 중에는 공원과 같은 핌피 대상은 가까이, 장례시설과 같은 님비 대상은 멀리 갔으면 좋겠다는 주민의 반응은 인간인 이상 어쩔 수 없는 민원의 대상으로 나타나기 마련이다.그렇다면 이와 같은 님비와 핌피의 갈림길에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만 할 것인가. 정답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이러한 주민반대를 상호 해소시키는 정책은 가능할 것이다. 요즈음 유행하는 1+1과 마찬가지로 님비와 핌피를 묶은 패키지로 동반시키는 융합정책도 하나의 대안으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포항의 경우에는 앞으로 도시의 역사가 깊어져 갈수록 지역에 대한 연구도 강화될 것이다. 지역만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역사의 유물과 흔적들을 관광객과 방문객들이 많이 드나들 수 있는 멋진 역사문화박물관의 건립요구도 높아지고 있다. 그렇다면 박물관과 조화로운 건물의 디자인과 다양한 편의시설, 외형적으로도 미관을 갖춘 장례시설이나 화장시설을 함께 건립하는 것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모두들 과거의 역사를 되새김하고 선조들의 흔적을 살피는 박물관의 옆에는 언젠가 우리도 가야할 그러한 시설이 있다면 눈을 찌푸리지 않고 오히려 다시 한 번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는 교훈을 주는 시설로 자리매김할 수도 있을 것이다.

2019-05-14

10년 후는 반드시 온다

청년 시절, 소속 단체에서 몇 년간의 격무에 대한 보너스로 7주 미국 연수를 보내주었습니다. 시카고 인근의 휘튼대학에서 여름학기 과목들을 수강하며 세계 각국의 한인 리더들이 모이는 컨벤션 행사 스태프로 봉사하며 경험을 쌓았습니다. 그 행사 기간 중 명사들의 특강이 여럿 있었는데, 25년이 흐른 지금까지 기억에 남는 강연이 있습니다. 당시 한남대 총장이었던 이원설 박사 강연이었지요.“시간의 흐름에 대한 역사 학자들의 관점이 바뀌고 있다. 멀리 과거가 있었고, 시간의 흐름에 따라 현재가 지금 우리 앞에 주어졌으며 미래는 미지의 것, 시간이 흐르면 우리에게 오는 저 뒤 편의 무엇으로 생각했지만 이제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 앞에 놓여 있는 것이 과거가 아니라, 선명한 미래에 대한 통찰이며, 그 통찰이 현재로 흘러 들어오고, 과거는 역사 뒤편으로 사라져 버리는 것이다.”오래 전 기억이라 확실치 않지만 그런 요지였습니다. 내 삶으로 흘러 들어오는 그 무엇으로 생각했던 미래가, 현재의 내가 어떤 꿈과 설계를 갖고 있느냐에 따라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는 커다란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납니다. 그 강연 이후 “10년 후는 반드시 온다”는 사실을 잊을 수 없었습니다. 로큰롤 황제 엘비스 프레슬리는 위대한 가수로 등극하기 10년 전, 초라한 트럭 운전수에 불과했습니다. 러시아의 대문호 레프 톨스토이는 작가의 길을 걷기 10년 전 ‘배우려고 하는 의욕도 없고, 또 배울 능력도 없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 토마스 제퍼슨은 조지 와이드라는 걸출한 멘토를 만나기 전 농부의 아들에 불과했습니다. 제대로 된 멘토링을 받은 후 10년 만에 그는 미국 정치계에 혜성같이 떠오르는 빛나는 지성으로 탈바꿈하지요.앨빈 토플러는 “21세기 문맹은 읽고 쓸 줄 모르는 사람이 아니라, 학습하고 또 계속 학습해야 한다는 걸 모르는 사람이다. 미래는 예측하는 것이 아니고 상상하는 것이다. 미래를 지배하는 힘은 읽고, 생각하고, 정보를 전달하는 능력으로 좌우된다”라고 말합니다.깨어 있지 않으면 우리를 마비시키고 21세기 문맹으로 만들어 버리는 거대한 힘에 치여 순식간에 나 다움을 잃어버릴 수 있는 시대입니다. 지금 읽는 책 한 줄이, 끙끙거리며 지웠다 쓰기를 반복하는 한 줄의 노트가 오늘로 편입한 10년 후의 미래입니다. 10년 후 빛나는 날개 달고 푸른 창공 훨훨 비상하시는 그대 모습을 봅니다. 그날까지 서로 격려하는 법 잊지 않기를!/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 대표

2019-05-14

세종대왕 탄신일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가장 존경받는 역사적 인물을 설문조사해 보면 대개 세종대왕이나 이순신 장군을 손꼽는다. 그 중 세종대왕은 한국 역사를 통틀어 대표적인 성군(聖君)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조선시대 4대 국왕이며, 태종의 셋째 아들이다. 선왕 3명(태조, 정조, 태종)이 모두 고려왕조에서 신하로 일하다 왕위에 올랐으나 세종은 조선시대 조선 사람으로 태어나 왕위에 오른 첫 임금이다.세종대왕의 업적은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만큼 무궁무진하다. 우리민족 역사에 가장 훌륭한 유교정치와 찬란한 문화를 꽃 피웠던 왕으로 평가된다. 어릴 적부터 책 읽기를 좋아했던 세종은 집현전을 통해 많은 인재를 양성하고 방대한 편찬사업을 펼쳤다. 측우기 개발 등 농업과 과학의 기술을 획기적으로 발전시켰다. 우리민족 문화유산 가운데 가장 빛나는 업적인 훈민정음을 창제한 왕이다. 세계 문자 가운데 유일하게 창제자와 창제 시기를 알 수 있는 글자를 그는 만들었다. 세계인이 극찬하는 과학적 원리의 글자이다. 특히 “어리석은 백성들로 하여금 쉽게 글을 익혀 편안하게 사용하고자 함에 있다”고 밝힌 그의 한글 창제 배경이 백성을 사랑하는 애민(愛民)정신에 있어 한글 창제의 의미가 더 값져 보인다. 이 분의 위대한 업적을 기리기 위해 세종의 이름을 딴 명칭이 우리나라 곳곳에 사용된다. 대한민국 최초의 이지스함을 세종대왕함이라 명명했다. 1만 원권 지폐에는 세종대왕의 얼굴이 실려 있다. 세종특별자치시의 이름에도 이 분의 이름을 사용했다.5월 15일은 세종대왕 탄신일이다. 올해로 622돌이다. 이 날은 바로 스승의 날이기도 하다. 스승의 날을 세종대왕 탄신일로 잡은 것은 민족의 큰 스승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대만이 공자 탄신일을 스승의 날로 삼은 것과 비슷한 경우다. 세종이 성군일수 있었던 것은 뛰어난 능력가이기도 하지만 백성을 사랑하는 어진 왕이었기에 가능했다고 한다. 백성에게 자주 은전을 베풀고 노비의 처우를 개선하는 등 애민의 정신을 통치이념으로 삼았다. 스승의 날을 맞아 성군 세종의 애민정신을 모두가 되돌아보는 일은 퍽 의미가 있는 일이 된다. /우정구(논설위원)

2019-05-14

경북도, 원전안전센터 새로운 도약의 마중물로

이창훈 경북도청본사 본부장국내 원전의 집적지로 그동안 갖은 고생을 하며 우리나라 전력의 절반을 담당해 온 경북도가 요즘 마음이 편치않다.그동안 경북도는 국내원전의 절반이 밀집된 만큼 경북을 원전클러스터로 만들어 미래 먹거리산업은 물론 세계로의 수출 등 원전관련 산업의 메카로 만든다는 야심찬 계획을 세웠고, 이러한 프로젝트는 순조로웠다. 하지만 2년전 현 정부가 집권하면서 탈원전 정책으로 기조가 바뀌며 이러한 계획이 엇박자가 나기 시작했다.우선 그동안 상당한 노력을 기울였던 원전안전해체연구센터도 경수로해체와 중수로 해체로 분리되면서 부산울산이 경수로, 경주는 중수로 해체 등 반토막이 나면서 규모가 축소됐다. 그리고 울진과 영덕에 예정된 신한울 3·4호기와 천지원전도 중단됐다. 과거정부가 충분한 논의후 미래프로젝트로 계획한 사업을 새 정부가 하루아침에 뒤집은 것이다.이로 인한 피해는 상상 이상이다. 한 보도에 의하면, 건설 중단에 따른 고용감소 등 직간접 피해는 9조원에 이르고, 대학과 대학원의 핵공학 전공 인력이 급격히 줄어들고 원전산업을 떠받쳐온 부품업체의 휴폐업이 느는 등 파장이 커지고 있다.탈원전에 따른 산림파괴도 심각하다. 지난 3년 동안 태양광 발전을 위해 훼손된 산림 면적은 서울 상암 월드컵경기장 6천개에 달한다고 한다. 게다가 정부가 현재 7.6%(2017년 기준) 수준인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2040년까지 30%에서 최대 35%까지 높인다는 방침이어서 산림훼손은 갈수록 급증할 전망이다.이렇듯 탈원전에 따른 폐해가 심각한데도 정부는 ‘마이동풍’이니 답답함을 넘어 분노까지 치민다.탈원전정책을 고수하려면 과거정부때 계획한 것은 그대로 두고 신정부들어서 새롭게 추진 안하면 되지 않는가. 굳이 과거정부의 정책을 뒤업으면서까지 무리한 정책을 추진하는 이유가 답답할 뿐이다.현 정부의 임기는 불과 5년이다. 만약 차기 다시 정권을 이어받더라도 10년에 불과하다. 이미 2년이 지난만큼 새롭게 정권이 바뀌고, 정책이 원전회귀로 복귀되면 그 원망을 어떻게 다 감당할지 벌써부터 걱정이다. 5년 단임에 불과한 정권이 국가백년대계인 원전산업을 무모하게 붕괴시키는 것은 국가적 자해행위로도 볼 수 있기 때문이다.이러한 사태가 진행되면서, 최근 경북 울진과 경남 창원이 문재인정부의 탈원전 정책에 대응하기 위해 손을 맞잡는 등 새로운 변화도 일고 있다. 울진과 창원시 원전관련 단체들은 간담회를 갖고 신한울원전 3·4호기 건설 재개를 촉구하는 울진·창원공동협의체를 구성하는 등 공동 대응하기로 했다. 양 지자체의 결속은 위기감의 발로로 또다른 파장도 예상되고 있다.경북도는 원전과 관련, 현정부의 정책에 좌고우면하지 말고 ‘무소의 뿔처럼 앞으로 전전하라’고 말하고 싶다. 비록 원해연을 완전체로 유치하지는 못했지만 반쪽이라도 유치한 만큼, 이를 마중물 삼아 보다 큰 그림을 그려야 한다. 큰 그림의 뼈대가 경북도가 공을 들이고 있는 원전안전연구센터다. 원전안전연구센터는 해체연구소와 달리 다른 지방자치단체와 경쟁 없이 경북도가 유일하게 유치를 추진해온 사업인 만큼 낙점 가능성이 커 기대가 되고 있다. 확정되면 2028년까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한국원자력연구원과 함께 사업비 7천200억원(국비 6천억원·지방비 1천200억원) 규모로 안전연구센터를 건립한다는 구상이다.이를 바탕으로 또다른 원대한 프로젝트를 만든다는 숨은 계획도 갖고 있다. 지난 2014년부터 수년간 공을 들이고 있는 원전안전연구센터 입지 발표가 카운트다운에 들어가는 등 이달안에 있다는 소식이다. 여러 소식통에 따르면 경북 경주가 거의 확정적이라는 반가운 전언이다. 올해들어 여러 가지 좋지않은 소식에 축 늘어진 경북도민의 어깨가 불쑥 솟을 수 있는 소식이 곧 전해지기를 희망한다. 마지막까지 경북도는 긴장의 끈을 놓지않아야 할 것이다.

2019-05-14

지상낙원 울릉도 만들기

김병수울릉군수동해의 진주 울릉도는 대한민국 국민관광지다. 특히 올해 울릉도 섬 일주도로가 완전개통 됨에 따라 관광객이 급증하는 등 희망이 넘치는 섬으로 도약하고 있다.최근 울릉공항건설 사업비 6천633억 원이 확정됐고, 곧 발주에 들어간다.이제 오는 2025년이면 비행기를 타고 울릉도·독도관광을 즐길 수 있는 시대가 도래한다. 서울에서 울릉도까지 버스와 선박으로 7시간이 걸려, 외국보다 먼 여행길이 1시간 이내로 단축되고 전국 어디서든지 40분∼1시간이면 천혜 자연의 아름다운 섬 울릉도와 민족의 섬 독도를 방문할 수 있게 된다.울릉도와 독도는 한국인이 꼭 가봐야 할 관광명소 ‘한국관광 100선’ 선정을 시작한 후 한 번도 빠지지 않고 4회 연속 선정됐다.섬 전체가 한국관광 100선에 선정된 곳은 단 한 곳도 없다. 대학교수, 전문가, 빅데이터, 여행기자, 여행업계 등 객관적인 의견을 종합해 엄격한 심사를 거쳐 결정됐다.따라서 누구나 오고싶어 하는 보물 섬 울릉도지만 교통이 문제다. 가장 큰 걸림돌이었던 교통이 해결됨에 따라 이제부터 울릉도를 천혜의 자연 관광섬으로 개발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울릉도는 지난 2018 한국관광의 별 자연 자원부문에 전국에서 유일하게 선정됐다. 보석같은 자연과 인문환경의 조화, 소중한 문화재의 보존 보호와 우리만의 고유한 문화를 발굴하고 복원하는데 적극적으로 힘쓰겠다. 인위적 개발이 아니라 자연을 보존하고 공해가 없는 맑고 깨끗한 섬으로 가꾸고 개발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과제다. 이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취임 때 군정목표를 ‘꿈이 있는 친환경 섬 건설’로 정했다.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섬이 지방자치단체인 울릉군은 우리나라 마지막 남은 천혜의 자연을 간직한 보고(寶庫)다. 모든 국민이 울릉도에서 쉬어가는 행복한 섬을 만드는 데 주력하겠다.섬 일주도로 완전 개통은 울릉도 관광패턴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가져왔다. 지금까지는 시간에 쫓겨 차량으로 관광지를 방문하는데 그쳤다. 섬을 일주하는데 차량으로 3∼4시간 소요됐지만, 일주도로가 개통되면서 1시간30분∼2시간이면 충분하다.나머지 시간을 도보를 이용해 좀 더 알차고 보람 있는 관광을 즐길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울릉도 관광은 차량보다 자연을 즐기면서 걷는 것이 몸과 마음을 힐링하며 좋은 여행을 할 수 있다.공항건설과 함께 비행기로 수용할 수 없는 관광객을 위해 울릉(사동)항이 내년에 완공되면 대형여객선 유치를 통해 보다 안전하고 편안하고 안락한 뱃길이 되도록 노력하겠다.대형여객선은 울릉도 주민의 삶과 직결되기 때문에 이철우 경북지사와 함께 해결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이 지사도 울릉도의 대형여객선은 국가가 반드시 해결해야 할 사업이라고 말했다. 따라서 울릉주민의 생활교통수단을 위해 어떤 방법이 합리적인지 전문기관의 용역을 통해 가장 옳은 방법을 선택, 울릉주민들이 불편하지 않고 관광객도 함께할 수 있는 대형여객선을 유치할 계획이다.아름다운 자연보존과 함께 관광객들이 울릉도에서 즐길 수 있는 음식 등 관광 인프라 구축에도 최선을 다하겠다. 먹을거리 만들기에 힘쓰겠다.슬로푸드 홍보관 운영과 지역농특산물을 활용한 향토음식을 발굴육성할 계획이다. 지난 2013년 우리나라 최초로 울릉도 칡소와 섬말나리가 국제 본부 ‘맛의 방주’(Ark of Taste)에 등재됐다.지난 2012년부터 시작된 울릉군 슬로푸드 육성사업은 2014년 울릉 옥수수엿 청주, 울릉 홍 감자, 손꽁치 등 5종이 등재됐다. 이어 ‘두메부추’를 비롯한 산채 4종이 슬로푸드 육성 프로젝트인 프레지디아(Presidia)에 선정됐다.울릉도서 생산되는 특산물 중 9개 종목이 선정돼 울릉도 특산품은 국제적으로 공인하는 슬로푸드 음식이다. 이 재료를 통해 울릉 도만의 특유한 맛의 음식을 개발해 관광객에게 제공하겠다.볼거리와 먹을거리가 있고 공해가 없다면 이게 바로 지상낙원이다. 여행은 인위적으로 꾸민 시설보다 자연을 벗 삼아 자연에서 생산되는 음식을 먹고 힐링과 웰빙을 동시 체험하는 지상 최고 여행이 될 것이다.자연을 훼손하지 않고 머물 수 있는 공간 개발을 통해 관광객도 즐겁고 울릉군민이 소득도 올릴 수 있는 관광인프라 구축에도 힘쓰겠다.특히 내륙은 자연보존을 위해 개발을 최소화하고 해안을 개발하는데 중점을 두겠다.행남 지구 스카이 힐링로드를 조성한다. 최고의 경치를 자랑하는 도동(행남)등대와 저동항 청정바다 위를 연결하는 안전한 아라길 조성(해상 테마공원), 관광객에게 명품 힐링 관광 명소를 제공하겠다.280억 원을 들여 바다 위에 보행교 길이 550m, 산채로 15m 부대시설을 만든다. 올해 착공 2022년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저동항에 670억 원을 들여 다기능복합항은 물론 관광거점기능 개발을 위해 저동마을과 방파제에 아름다운 교량과 조형물을 설치, 방파제 주변 낚시터를 개발하는 등 머물 수 있는 관광 인프라를 구축하겠다.또 270억 원을 들여 일출감상길, 경관 조명, 수산물종합물류센터, 편의시설 등을 갖춰 저동항을 새로운 관광명소를 탈바꿈시키겠다.울릉읍 도동리∼사동리 해안가인 와록사 해안에 산책로를 개발,개선한다.울릉도 관문 도동항과 울릉도 새로운 교통허브인 울릉(사동)항과 연결하는 해안 지질체험 산책로를 70억 원을 들여 마무리한다.울릉도 여행은 단순한 관광객이 아니라 바다와 아름다운 자연, 맑은 공기와 물, 세계적인 슬로푸드 음식을 먹는 등 편히 쉬고 힐링하고 웰빙음식을 즐기는 지상의 낙원으로 만들어 삶에 지친 도시인들이 편안하게 쉴 아름다운 섬 수도(首島) 울릉도로 가꿔나가겠다.

2019-05-14

사랑스런 페스탈로치, 반려동물 교감교육

반려동물이 인간에게 정서적 문제완화, 정서적 외상의 최소화, 건강한 정신건강, 학습기회 제공, 그리고 사회수준에서의 능력감등을 향상시킨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반려동물이 치유와 교육에서 효과적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또한 반려동물과의 교감 프로그램이 손상된 사회적 상호작용 및 의사소통, 자아개념개선, 공감, 자기통제감 증진 및 스트레스 감소 등에 매우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1960년대 정신과 의사였던 보리스 레빈슨은 전통적인 치료에 대한 부수적 치료로 동물매개 치료를 적극적으로 활용할 것을 제안하였는데, 그는 진료를 받기 위하여 대기실에서 기다리던 아동들이 진료를 기다리고 있는 동안 개와 놀면서 치료를 받지 않고도 저절로 회복되는 놀라운 사실을 목격하였고, 이를 계기로 반려동물의 치료적인 효과에 대한 신념을 가지고, 여러 영역에서 반려동물 교감프로그램을 활발히 실시하여 그 효과성을 입증한 바 있다. 그는 현재의 반려동물 교감프로그램이 다양한 영역에서 보급되고 활용되는데 크게 기여한 개척자였다.최근 급증하고 있는 청소년 범죄문제는 법률적 제재나 임시적인 행정 처리로는 해결이 불가능한 수준에 도달했는데, 근본적 문제해결을 위한 실천대책이 요구되고 있다.인성 회복을 위한 하나의 활동으로 각 가정에서 반려동물을 키우는 것이 효과적인 수단이 된다는 주장과 연구들이 있다.독일에서 555명의 아이들과 그 아이들의 가족들을 대상으로 아동과 개와의 관계를 탐색한 연구가 있었다.아이들은 개를 독특한 능력을 가진 친구이자 놀이친구로 인식하고 있음을 밝혔는데, 개는 어른처럼 행동하지 않기 때문에 아이들은 개를 거리낌 없이 대할 수 있고, 아동이 수행하는 사회적 방식은 개와도 쉽게 이루어질 수 있으며, 어린아이들이 자신과 똑같은 욕구를 가지고 있는 반려견에 대해 편견 없이 정서적, 신체적으로 접촉을 할 수 있다.어린이들은 자신이 기르는 반려견과의 관계를 통해, 반려견을 주의 깊게 기르는 과정에서 자긍심을 얻게 되고 또한 타인의 감정을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게 된다.이런 능력은 계속 변화하는 사회 환경에 적극적이며 긍정적으로 대처하기 위해 중요하다.자신에게 의존하고 순응하는 동물을 통해 책임감과 자신의 능력에 대한 자신감을 갖게 되고, 동물의 감정과 욕구를 직접경험하고 충족시켜 줌으로써 다른 사람들의 감정과 욕구에도 관심을 갖고 이해할 수 있게 된다.어린이들은 반려동물이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자신의 편에 서서 무조건적으로 자신을 사랑하고 따라줄 것이라고 믿고 있으며, 이것이 아이에게 든든한 힘이 되는 것이다.또한 반려동물을 사육하는데 따른 역할분담을 통하여 가족 내의 교류를 촉진하는 역할을 하며 가족간의 유대를 더욱 강하게 하는 경향이 있다.따라서 어린이들은 반려동물을 키움으로서 사회적, 감정적 발달을 성공적으로 이루고 또 다른 사회에 적응할 준비를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반려동물을 키우면 어린이의 지각발달과 언어습득을 촉진시키며 말하는 기술을 향상시킨다고 알려져 있는데, 이러한 현상은 반려동물이 어린이가 말하는 것을 끝까지 들어주는 대상으로, 어린이로부터 칭찬과 지시, 격려, 처벌과 같은 형태의 의사소통을 끌어내는 언어 자극제로서의 기능을 하기 때문이다.이동훈또한 반려동물은 아이에게 생명의 신비, 죽음등에 관해 자연스럽게 알려 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도 하고 동물과 같이 놀면서 다른 어린이와의 관계 형성이나 유지에 촉진제 역할을 하여 아이의 사회성이 증가하는데 도움을 주기도 한다.어린이는 반려동물을 키움으로써 긍정적인 경험과 함께 부정적인 경험도 하게 될 것이다. 아이들은 자기가 기르던 동물이 죽거나 다쳤을 때 경험해야 하는 고통, 동물의 본능적인 요구에 대한 불만, 동물 때문에 부모에게 혼나는 문제 등으로 스트레스를 받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동물을 키움으로써 얻는 혜택은 그 부작용을 불식시키기에 충분하므로 어른들이 치유적, 교육적 여건을 만들어 주고 그 효과를 극대화시키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서라벌대 반려동물연구소 소장(마사과 교수)

2019-05-14

포항의 미래를 여는 그린바이오 산업

황인환 교수 포스텍 생명과학과최근 4차 산업혁명을 주도할 핵심 7대 기술로 사물인터넷, 인공지능, 빅데이터, 3D프린팅, 자율주행차, 지능형로봇, 클라우드가 주목을 받고 있다. 이들 기술과 함께 생명과학기술(Biotechnology)이 미래 신성장 바이오산업을 주도할 기술로 부각되고 있다.바이오산업은 생물체 기능을 활용해 제품을 생산하거나 유전적 변형 또는 유전자 정보를 활용해 새로운 특성을 나타내게 하는 기술을 기반으로 고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산업이다. 건강을 중시하는 현대인들의 헬스케어 및 바이오소재 등의 다양한 분야에 적용되고 있다.국내에서는 중앙정부를 비롯해 각 지자체에서 RD지원, 기업지원, 육성펀드 조성 등을 통한 바이오기업 육성 및 지역 내 유치를 위한 다양한 노력을 하고 있다. 재계 굴지의 대기업들도 제약·바이오산업을 신성장 동력으로 육성하는데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대표적으로 포항시가 미래 경제성장을 주도할 핵심성장산업으로 백신 및 바이오산업에 주력하고 있다. 포항시는 바이오산업을 전략적으로 육성하기 위해 가속기 기반 신약 개발 클러스터 구축 등을 추진하고 있다. 세계 3번째로 보유한 제4세대 방사광가속기와 세포막단백질연구소, 포항지식산업센터, 식물백신기업지원시설 등을 포항융합기술산업지구(포항시 흥해읍 일대)에 조성하고 있다. 이와 함께 지난해 말 국내 최초로 강소연구개발특구 지정(AI·바이오)을 신청하기도 했다.포항시는 특히 포스텍과 방사광가속기연구소와 포항산업과학연구원, 막스플랑크연구소, 생명공학연구센터 등 세계 수준의 첨단과학 RD 인프라가 구축되어 있는 것이 강점이다. 여기에다 포스코가 1조원 규모의 벤처밸리 조성 계획을 발표하면서 강소특구 지정에 힘을 보태고 있다.일반적으로 제약기업 분야에서는 똑똑한 신약 하나로 20년간 시장 독점권을 확보, 적게는 연간 4천억에서 많게는 11조원의 고수익을 창출하고 있다. 신약 한 개의 가치는 자동차 300만 대의 수출효과와 같다는 통계가 발표되기도 했다.하지만 평균 10~15년의 개발기간과 8천억~1조원에 이르는 개발비용 때문에 단기적인 성과를 기대하기 보다는 장기적인 안목으로 투자·육성할 필요가 있다.이에 비해 식물을 이용한 그린바이오 산업분야는 지역의 대학과 기업에서 세계적 수준의 원천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신약개발에 비해 개발기간이 짧고 투자비용이 훨씬 낮기 때문에 우선적으로 집중 육성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특히 그린바이오 소재는 산업용 첨단 신소재뿐만 아니라 백신, 치료제, 진단제 등 의약품 소재로 활용 가능하기 때문에 적용분야 및 관련 기업군이 매우 다양하다. 밀폐형 식물공장(스마트팜)의 시설 표준화 기술개발 등을 통한 첨단농업 육성 및 식물자원을 활용한 고부가가치 창출에도 크게 기여를 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포항시는 최근 수년간 경북도와 함께 미래 산업을 주도할 신성장동력으로 그린백신과 그린바이오 산업을 전략적으로 육성하기 위해 지속적인 투자와 노력을 아끼지 않고 있다.국내 그린백신산업 육성을 위해 매년 국내외 전문가들이 참석하는 학술대회 등을 개최해 산·학·연·관 네트워킹, 기술 및 정보교류, 사회적 공감대 형성 등의 성과를 거두고 있다.‘그린바이오산업 육성을 위한 전문가포럼’이 16일 포항시청 대회의실에서 열린다. 이 포럼은 지역 중심의 그린바이오산업 육성을 위한 방안이 제시될 것으로 보여 학계와 기업 등지에서 지대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최근 최정우 포스코 회장이 포스코의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바이오’를 선정하고 본격적인 움직임을 시작한 것으로 전해진다. 정부, 지자체와 더불어 포스코가 그린바이오 산업 육성에 힘을 모은다면 포항의 미래는 더욱 밝아질 것이다. 영일만에 터를 일군 포항제철소가 조국근대화의 기적을 일궈냈다. 이제 바이오산업을 기반으로 한 ‘제2의 영일만기적’을 일궈내는 일도 먼 미래가 아닐 것으로 확신한다.

2019-05-14

세상의 모든 첩보원과 직장인에게

△사소한 즐거움을 위해 던진 사표뒤늦은 나이에 홍보담당으로 7년여의 직장생활을 경험할 기회가 있었다. 처음 몇 년간의 직장생활은 좋았다. 금전적인 안정과 ‘이것도 경험’이라는 배짱과 적지 않은 역사를 가진 회사의 체계적으로 갖추어진 편리한 시스템과 직장 문화가 그리 낯설지 않았다. 무엇보다 피로가 누적되고 한번쯤 딴 생각을 할 시점에 정확하게 통장으로 입금되는 급여가 달콤했다. 거기다 내가 회사를 선택한게 아니라 회사가 나를 선택했으니 언제든 왔던 곳(들판)으로 돌아갈 마음의 각오가 되어 있었다.횟수를 거듭할수록 자신있고 당당했던 들판의 정서가 옅어지고, 승진을 거듭하면서 부딪치게 되는 인간관계와 묶여 있다는 강박관념이 마음을 짓누르기 시작했다. 그간 정확하게 지켜졌던 정시출근·정시퇴근과 휴일의 자유로움이 침해받으면서 안정된 생활과 들판의 기질이 수시로 부딪치고 있었다.저녁 여섯 시, 피곤한 어깨를 주무르며 퇴근길에서 듣던 라디오 방송을 들을 수 없는 나날이 많이지면서 ‘사표’를 던져야한다는 울림은 커져만 갔다. 퇴근길 운전하며 즐겨 듣는 라디오 방송을 들을만큼의 사소한 즐거움을 누리지 못한다면 더 나은 삶이란 있을 수 없다는 생각이었다. 당시 나에겐 특별한 계획이나 더 나은 자리에 대한 약속이 없었다. 그저 내가 왔던 곳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뿐이었고, 더 이상 몸과 마음이 망가지기 이전에 고단한 직장생활의 종지부를 찍어야 한다는 것을 깨닫고 있었다. 사직의사를 전하고 사직서가 수리되기까지 한달여 동안 그 어느 때보다 마음은 황폐했으며, 갑상선 기능 항진증 등 몸엔 이상 반응들이 일어나고 있었다. 그때 내가 돌아가고 싶었던 ‘들판’은 여느 직장인들이 꿈꾸는 일탈과 희망의 장소가 아니었다. 근사한 여행의 계획도, 평소 하지 못했던 버킷리스트를 이루기 위해 자유의지로 분주한 삶을 살고 싶었던 것도 아니었다. 그저 묶이지 않는, 알람이 울리지 않는 아침과 의무적으로 해야할 약속이 없음과 2천여 명의 직장동료와 같은 시간의 궤적(삶의 궤적까지)을 그리고 싶지 않았다.지극히 나의 전공과 맞았으며, 여느 동료들보다 상대적인 자유로움을 가졌던 직장생활이었으며, 드라마틱한 순간과 이색적인 체험의 순간이었던 직장이었지만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오게 된 이유는 대다수의 직장인들이 겪었으며 겪고 있을 지극히 현실적인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했음이다. 화려하고 이상적인, 신비롭고 은밀한 직업, ‘직장인으로서의 스파이’를 보여주는 두 편의 영화를 이야기하고자 개인적인 이야기를 먼저 꺼내게 되었다.△직장인의 해고, 그리고 사내 정치이번 ‘영화 읽기’에 소개할 두 편의 영화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와 ‘모스트 원티드 맨’은 첩보소설로 유명한 영국의 소설가 ‘존 르카레’의 소설을 영화화 한 것이다.존 르카레는 영국 정보국 비밀정보부(SIS, Secret Intelligence Service) 출신으로 MI6(영화 007시리즈에서 제임스 본드가 소속된 정보기관으로 영국의 대외 정보를 담당하고 있다)에서 근무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비밀정보요원 신분으로 소설작가로서 일을 병행하고 있던 르카레는 ‘추운 나라에서 돌아온 스파이’가 흥행을 하게되면서 전업작가로 나서게 된다. 그의 소설처럼 두 편의 영화엔 화려한 액션이나 박진감 넘치는 작전, 자유롭게 국경을 넘나들며 시선을 빼앗는 풍광도 스파이를 유혹하는 아름다운 여성도 등장하지 않는다.영화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는 “썩은 사과가 있네 짐. 찾아서 도려내야해” 영국 비밀정보부(MI6) 국장인 ‘컨트롤’은 ‘짐 프리도’에게 조직(서커스)내 침투한 러시안 스파이(두더지)를 밝혀내기 위한 비밀임무를 맡긴다. 그러나 작전의 실패로 인해 책임을 지고 ‘컨트롤’은 조직에서 물러나게 되고, 그의 오른팔이었던 ‘조지 스마일리’는 해고 당한다. 스파이의 해고. 여느 직장인의 해고와 다르지 않다. 조용히 책상을 정리하고 쓸쓸히 다니던 직장을 나와 집으로 돌아온다. 그 이후의 일상은 습관처럼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 갑자기 찾아 온 넉넉한 시간과 특별한 목적없는 일상을 묵묵히 받아들이는 모습으로 영화 전반부를 채우고 있다. 이후 은퇴한 스파이 ‘조지 스마일리’에게 서커스 내에 침투한 러시아의 이중 스파이를 색출해달라는 임무를 맡기를 맡긴다.1960년대 미소 냉전시대 첩보전이 심화되던 당시, 영국 케임브리지 출신 엘리트들의 소련 이중간첩 사건인 ‘5명의 고리(Rings of five)’라고 불리는 실제 사건을 존 르카레가 소설로 재구성했고, 이 원작이 바탕이 된 영화엔 그간 봐왔던 스파이의 첨단 무기나 액션, 스릴있게 펼쳐지는 긴장감과 배신에 배신을 거듭하는 반전은 없다. 서류를 챙기고, 보고하고, 분석하고, 점심 메뉴를 고민하고, 승진을 위해 동료를 견제하는 자잘한 직장 내의 정치가 있을뿐이다. 인정을 받고 승진을 위해 노력하고 노후를 위해 스트레스를 참고 직장에서 잘리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직장인의 애환으로 보여질만큼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는 여느 첩보물과는 다른 결을 지니고 있다. 여기에 존 르카레의 실제 직업 경험에서 나왔던 전문 용어와 은어들, “원작을 본 사람만이 이해할 수 있다”고 할 정도로 방대한 분량의 원작을 축약해서 보여주며 전혀 친절하지 않은 전개 탓에 더욱 더 낯설고 지루하게 볼 수도 있다. 또한 등장하는 인물들의 이성, 동성, 양성의 성적정체성까지 복잡하게 얽혀 있는 설정을 간단하고 은유적으로 처리해 버림으로써 영화의 이해를 쉽지 않게 만들고 있기도 하다. 이렇게 보면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가 무슨 영화적 재미를 지니고 있을까라는 의문을 가질 수 있겠지만 역설적으로 단 하나의 장면과 대사도 놓칠 수 없는 빡빡한 구성으로 이루어졌다는 의미도 된다.등장인물들의 성적 정체성은 동료이며 연인으로, 적으로 그 위치를 바꿔가며 영화를 또 다른 차원에서 읽을 수 있는 여지를 만들어 주고 있다. 영화 전체에서 딱 네 발의 총성이 울리고, 세 명의 남자가 눈물을 흘리는 장면이 나온다. 이것이 이 영화를 첩보물이며, 연애담(혹은 치정극)으로 읽고 느낄 수 있는 장치들이다.마지막에 이중 간첩이 밝혀지고 스마일리는 그에게 “왜?”라는 질문을 던진다. 이에 이중 간첩은 “도덕적 선택 못지 않은 미학적 선택”을 했다고 말한다. 여기서 ‘도덕적 선택’은 이념과 애국심 사이의 선택이었으며, 또 다른 선택의 요인으로 애정의 문제를 고려한 선택, 복잡하고도 미묘했던 순간의 ‘미학적 선택’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긴말 필요없이 단순하게 이 영화의 구조는 ‘집 나간 아내의 구구절절한 사연’으로 시작하여 ‘집 나간 아내가 돌아왔다’고 표현해도 될 것이다.스파이, 특급비밀, 첩보활동, 은어들이 난무하는 영화 속에서 직장인의 애환과 애정사를 배치할 때, 영화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는 1970년대의 냉전 속에서, 나와 다른 직업을 가진 직장인의 애환이 겹쳐지며 묘한 매력과 다양한 퍼즐 맞추기의 재미를 선사하는 영화 읽기가 된다. 이 모든 것들을 매끄럽게 끌어가고 있는 것으로 존 허트, 게리 올드만, 콜린 퍼스, 마크 스트롱, 톰 하디, 베네딕트 컴버배치까지 쟁쟁한 배우들의 말끔한 연기가 한몫을 하고 있다. 이 영화가 주는 또 다른 매력이다.△결재서류에 사인하는 순간이 주는 극도의 긴장감역시 존 르카레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는 영화 ‘모스트 원티드 맨’은 ‘2001년 모하마드 아타는 독일의 항구도시 함부르크에서 911 테러를 구상, 계획하고 정보 수급 실패와 부처간 경쟁 탓에 별다른 방해 없이 공격을 시행하게 된다. 현재까지 함부르크는 주요 경계 도시로 분류돼 2001년의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으려는 독일 및 국제 정보기관의 주목을 받고 있다.’는 자막과 함께 시작된다.미소 냉전시대가 저물고 주적이 서방과 아랍으로 대치되었다. 전쟁의 위협에서 테러의 위협으로 갈등의 양상은 전이 되었고, 내부의 적을 향하던 사건의 전개는 외부의 적을 향한 확신의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이 영화 역시 화려한 액션이나, 첨단 무기, 탄탄한 몸매와 외모를 자랑하는 스파이와 풍성한 볼거리는 제공하지 않는다. 그나마 몇 발의 총성이 울렸던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에 비해 단 한 발의 총성도 울리지 않는다. 그래도 여느 첩보영화 못지 않은 극도의 긴장감을 유지하고 있는데, 한 발의 총성보다 서류에 사인하는 것이 더 긴장감 있음을 보여주는 영화다.독일 최고의 스파이였으나 좌천되어 정보부 소속 비밀조직의 수장인 군터 바흐만. 정보원을 미끼로 대어를 낚는 탁월한 재능을 가진 그에게 함부르크로 밀항한 무슬림 청년이 나타나고, 이를 통해 대어를 낚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간명한 스토리만큼 영화는 직선적이다.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처럼 은유적이지 않고, 친절한 설명이 필요할 만큼 복잡하지도 않다. 바로 이 직선적이고 간명함이 이 영화를 이끌어가는 힘이며, 극도의 긴장감을 유발하는 원동력이다. 가장 현실적인 스파이의 모습을 보여 주고 있으면서도 ‘직장인으로서의 스파이’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필립 세이모어 호프만이 연기한 군터 바흐만의 뒷모습은 일상의 피곤함에 찌들려 퇴근하는 직장인의 쓸쓸한 뒷모습과 닮았다. 그리고 이 영화는 필립 세이모어 호프만이 단독 주연한 마지막 영화가 되었다.△‘저녁이 있는 삶’을지금도 즐겨 듣는 저녁 6시 라디오 방송프로의 오프닝 멘트에서 언제였던가 “우리를 위로하러 날마다 저녁이 오고 있다”는 대목을 들었을 때의 벅차오름을 기억하고 있다. 이 땅의 모든 첩보원과 직장인에게 ‘저녁이 있는 삶’을 살고 계신지, “오늘 하루도 수고 많으셨습니다”로 시작하는 라디오 오프닝 멘트와 ‘세상의 모든 음악’을 보낸다. /김규형 문화기획사 엔진42대표*토마스 알프레드슨 감독의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와 안톤 코르빈 감독의 ‘모스트 원티드 맨’은 네이버영화나 구글플레이에서 다운로드하여 볼 수 있다.

2019-05-13

내 마음의 중심에 있는 것

순천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한 마리 개를 자식 삼아 살고 있는 가난한 노부부가 있습니다. 할아버지가 가끔 산에서 나무를 해 장작을 만들어 시장에 내다 파는 걸로 겨우 먹고 살았습니다. 할머니는 백내장으로 앞을 볼 수 없는 상태였지요. 개를 키우기 시작한 지 3년이 되는 날 할아버지가 노환으로 돌아가십니다. 마을 사람들이 장례를 치러 주었지요.장례 다음 날부터 개가 자기 밥그릇을 입에 물고 이웃 집에 들어섭니다. 밥그릇을 마당 한 가운데 놓더니 멀찌감치 뒤로 떨어져 엎드려서 가만히 밥그릇만 쳐다보고 있는 것을 목격합니다. 주인을 잃은 뒤 밥을 제 때 못 얻어먹어 그런가 보다 하며 불쌍히 여겨 밥을 퍼주었지요. 개는 밥그릇을 물고 집을 나섭니다. 아주머니는 시장 가는 길에 맹인 할머니가 걱정돼 담 너머로 집안을 바라봅니다. 할머니가 마루에 걸터앉아 있는데 손도 대지 않은 밥그릇을 마루에 올려놓고 개가 할머니 소맷자락을 물고 밥 먹으라고 계속 재촉하고 있습니다. 할머니는 한참 후에 상황을 알아차리지요. 밥을 절반 먹고 개에게 밥그릇을 밀어줍니다. 개는 그때서야 자기 밥을 먹기 시작합니다.소문이 마을 전체에 퍼집니다. 다른 집으로 개가 밥을 얻으러 옵니다. 한 번 들린 집은 또 들르지 않고 한동안 새로운 집을 찾아 다닙니다. 사람들은 소문을 들었던지라 깨끗한 새 그릇을 준비해 밥과 반찬을 고루 넣어 줍니다. 개는 그것을 물고 집으로 돌아가 할머니에게 밥을 먹이고 남은 것으로 자기 몫을 먹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사람보다 나은 개’라며 군청에 효자 상을 주어야 한다며 건의를 했습니만 공무원들은 사람이 아닌 개에게 효자 상을 줄 수 없다고 답변했다지요.흔히 충견(忠犬)이란 표현을 사용합니다. 충성이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한자의 충(忠)은 가운데 중(中) 아래에 마음 심(心)이 놓여 있습니다. 내 마음의 중심에 놓여 있는 것. 우리는 그것에 충성을 바치게 되어 있습니다.그 중심에 놓인 것이 돈이면 우리는 돈의 충실한 노예입니다. 그 중심에 놓인 것이 명성이면 우리는 날마다 자신의 몸값과 명성을 높이기 위해 충성을 다 합니다. 그 중심에 놓인 것이 권력이라면, 우리는 파워를 획득하기 위해 시간과 에너지를 쏟아붓겠지요. 결국 지금 현재의 내 모습은 내가 무엇에 중심을 두고 충성을 바쳐왔는가의 최종적인 결과물입니다. 10년 후의 내 모습은 어떨까요? 내 중심에는 어떤 주인이 지금 자리잡고 있는지 돌아봅니다./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 대표

2019-05-13

이율배반적인 꼼수정치는 망국의 지름길이다

강희룡 서예가조선후기 문신이며 학자인 윤기(1741∼1826) 선생은 그의 저서 ‘무명자집, 잡기’에 인간행위의 욕망에 대해서 잘 설명하고 있다. 내용을 요약하면 인간 행위의 근본은 욕망이다. 무언가를 하고자 하는 그 마음에서부터 인간사회의 모든 관계와 행동이 시작된다. 욕망은 부정적인 것이 아니다. 다만 나의 욕망과 남의 욕망이 상충하는 관계망 속에서 나의 욕망이 타인에게 해를 입히지 않고 긍정적으로 발현되느냐가 중요한 문제일 뿐이다. 그런데 욕망의 기본은 갈구(渴求)다. 이 갈구가 실제와 분수를 앞서 나가다보면 사람은 마침내 자신을 자신이 아닌 무언가로 꾸미고 포장하기 시작한다. 그리고는 실제와 분수는 다 잊어버리고 목표를 향한 폭주의 바퀴를 굴린다는 것이다.윤기는 다음과 같은 상황을 열거했다. 사람들은 질박한 태도를 잘 지켜내지 못하면서 자신은 질박한 사람이라 말하면서 행여 교묘한 사람으로 취급받을까 두려워한다. 또한 검소한 생활을 하지 않으면서 자신은 검소한 사람이라 말하며, 행여 사치한 사람으로 취급받을까 두려워한다. 청렴하지 못하면서 탐욕스러운 사람으로 취급받을까 두려워한다. 정직하지 못하면서 정직하다 말하고는 거짓된 사람으로 취급받을까 두려워한다. 각박한 사람은 자기가 후하다 말하고, 사기 치는 사람은 자기가 진실하다고 말하고, 폭력적인 사람은 자기가 인자하다 말하고, 교만방자한 사람은 자기가 공손하다 말한다. 그리고 사람들이 자기를 훤히 꿰뚫어볼라치면 또 미워하고 싫어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열거된 이러한 성격의 소유자들은 모두 인간 내면에 원초적으로 자리잡고 있는 이율배반적인 성격의 인간형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현대인들 중에서 이러한 이율배반적인 인간형이 가장 많이 존재하는 집단은 역시 정치집단일 것이다. 자신의 영욕과 명예의 허상을 얻기 위해 가식을 꾸미고 과장하다가 마침내는 자신의 치부가 드러날까 전전긍긍하며 남을 미워하고 싫어하는 행태를 보이고 있다. 가만히 살펴보면 나라를 운영한다는 사람들로부터 노동을 하는 이에 이르기까지 모두 이 이율배반이라는 그물에 걸리지 않는 이가 드물 것이다. 하지만 자신을 제대로 직시하고 자신의 실제를 잘 인지하면서 차곡차곡 내가 바라는 것을 향해 실다움을 쌓아나간다면 이 그물을 피할 수 있을 것인데, 욕망이라는 허상이 앞을 가려 유혹하기 일쑤이니 정신을 제대로 차리고 스스로를 돌아보기가 어려울 것이다.욕망은 오직 그 실다움을 제대로 획득했을 때에만 우리에게 이로움을 주지만, 자본주위 사회에서 살고 있는 현대인들은 그 욕망의 늪에서 나오기가 그리 쉽지 않다. 문제는 이 이율배반적인 행태가 일반 개개인들에게서 나타나면 그 피해는 한정적일 수 있으나 정치집단에서 나타나면 국가 전체에 미치는 피해는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심지어 제왕적 대통령제의 일당독재로 망국(亡國)을 재촉할지도 모른다. 이율배반적인 지금의 우리정치의 상황을 보면, 국민들의 삶에 직결된 민생법안을 신속하게 통과시키기 위해 만든 패스트트랙을 민생법안도 아닌 공수처법과 선거법개정을 패스트트랙에 올려 여당과 야 3당이 위헌(바른미래당의 두 의원 강제 사보임)까지 저지르며 통과시킨 사례이다.공수처법의 조직은 비리의 온상인 국회의원과 대통령 친인척에 대한 기소권은 없고, 경무관 이상 경찰과 검사 판사 등에 대한 수사와 기소권을 가지는 삼권분립을 무너뜨리는 권력기관이며, 국민들은 지금의 국회의원 수 300석에도 피로감을 느껴 의원 수 증가에 매우 부정적이며 줄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이러한 분위기에서 희한한 비례성 강화와 연동형 선거제로 의원 수를 늘리려는 위정자들의 망발과 국민의 눈높이와는 반대로 질주하는 정치권의 꼼수정치는 결국은 망국이나 망권의 지름길이 될 것이다.

2019-05-13

미-중 무역갈등의 속내

김학주 한동대 교수잘 마무리될 듯 보였던 미-중 무역협상이 다시 난항에 빠졌다. 최근 트럼프는 중국에게 협상 마지막 국면에서 “다른 이야기를 한다”며 화를 내고 관세 폭탄을 투하했다. 겉으로는 무역갈등처럼 보이지만 속내는 패권다툼이다. 미국이 근본적으로 두려워하는 것은 ‘Made in China 2025’처럼 중국이 첨단분야에서 미국을 따라 잡아 패권을 뒤집는 것이다.중국이 첨단산업을 전략적으로 육성하려면 국내기업에 보조금을 주며 키워야 하고, 미국은 이를 원천봉쇄 하겠다는 입장이다. 이번에도 이 부분에서 마찰을 빚었다. 미국이 패권을 쉽게 놓지는 않을 것이다. 따라서 이런 서열 싸움은 계속될 수 밖에 없다. 지금은 서로의 힘을 확인하는 과정이다.사실 트럼프의 무역갈등은 순기능보다 역기능이 훨씬 크다. 일단 세계교역이 줄어든다는 것 자체가 국가간 비교우위가 사라지고, 그 결과 경제활동 및 거래의 기회가 줄어든다. 미국의 녹 슨 제조업 설비(rust belt)가 일부 재가동될 수 있지만 미국인들은 비싼 부품을 써야 한다.그럼에도 미국 민주당은 트럼프가 일으키는 무역갈등을 비난하는데 주저한다. 왜냐하면 이는 서열 싸움이기 때문이다. 경제적 실리를 넘어선 자존심 싸움이라는 것이다. ‘미국우선주의’는 미국인으로 하여금 이성보다 감정이 앞서게 할 수 있는 구호다.그렇다면 미국은 이런 싸움을 통해 확실한 이득을 얻을 수 있을까? 트럼프는 트위터에 “중국은 쉽게 이길 수 있는 상대다”라는 표현을 자주 쓴다. 그러나 그의 말처럼 중국을 쉽게 이길 수 있었으면 싸움은 벌써 끝났다. 미국의 다국적 기업들은 이미 세계 최대 소비시장인 중국에서의 영업 악화로 고통을 받고 있다. 애플도 타격을 받았다. 중국에 물건을 수출하는 독일을 비롯한 유럽의 제조설비도 가동률이 떨어지고, 그 결과 미국의 다국적 기업은 유럽에서도 고통을 호소한다.특히 중국의 보복은 아직 본격화되지 않았다. 약자이므로 인내심을 발휘하고 있다. 만일 중국이 이판사판으로 가면 중국 내 미국 기업들은 지금보다 훨씬 큰 타격을 받는다. 규제라는 측면에서 중국이 미국보다 한 수 위일 수 있다. 한편 갈등이 조장한 불안심리로 인해 나타난 달러강세도 미국 다국적기업 실적에 부담이 된다.어차피 패권다툼인데 미국은 이런 비용을 치르더라도 중국을 더 몰아붙일 힘이 남아 있을까? 지난 4월 미국의 실업률은 3.6%로 49년래 최저를 기록했다. 미국이 상대적으로 좋아 보인다. 이런 노동력 부족 현상으로 인해 인건비 인상 압력이 나타난다. 지난달 미국의 시간당 임금상승률은 3.2%였다.그럼에도 핵심 소비자 물가지수는 1.6%에 불과했다. 즉 돈을 벌어도 소비 대신 저축을 한다는 이야기다. 노인은 당연하고 젊은이들도 미래에 불안해 하고 있다는 증거다. 고용도 인프라 투자로 인한 건설과 헬스케어 위주로 좋았다. 즉 정부 재정지출의 인위적 힘으로 버티는 셈이다.결국 미-중 패권다툼은 계속되겠지만 어느 쪽의 일방적인 게임은 아닐 것이다. 즉 상대방의 힘을 느끼는 순간 이를 부정할 만큼 맹목적이지는 않을 것이다. 서로를 인정할 것이며, 그 위치에서 다시 힘을 겨룰 것이다. 즉 서로가 치킨게임으로 가지는 않을 것이므로 이런 정치적 위험만 잘 피하면 오히려 증시에서 큰 돈을 벌 수도 있다.단, 싸움이 거듭되는 과정에서 돌발적 충돌의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다. 미국이 갑갑해지면 마지막으로 휘두를 수 있는 것은 군사력이다. 중국의 100배의 위력을 과시한다. 그러나 중국을 직접 공격할 수는 없다. 그런 측면에서 북한이 미국의 무력시위 대상이 될 수도 있다. 뒤집어 이야기하면 지금 트럼프가 북한에 인내심을 발휘하는 이유는 중국 때문으로 보인다. 중국과의 협상이 훨씬 중요하기 때문에 북한을 공격해서 협상을 그르치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2019-05-13

레깅스 논란

레깅스는 요가나 운동을 할 때 거추장스러움을 막기 위해 몸에 딱 달라붙도록 입는 복장을 가리킨다. 레깅스가 일상복이 되면서 찬반 논란이 미국에서 한창이다. 논란의 불씨를 지핀 것은 지난 3월 가톨릭 계열의 인디애나 노트르담 대학 신문에, 가톨릭 신자이며 4명의 아들을 둔 엄마라고 밝힌 여성이 노트르담 대학 여학생들에게 레깅스를 입지 말 것을 당부하는 글을 기고한 것이 시작이었다. 이 엄마는 여학생들이 레깅스 대신에 청바지를 입어달라고 호소했다. 이 글을 읽은 노트르담 학생들은 오히려 반발하면서 ‘레깅스 시위’를 벌였다. 여성의 복장이 남성을 유혹해서 부적절한 행동을 하게 만든다는 식으로 책임을 여성의 잘못이라고 암시한 것이 문제가 됐다. 이들은 여성들은 자유롭게 의상을 선택할 권리가 있으며, 남성 때문에 특정 의상을 입지 못한다거나 행동의 제약을 받는 것은 여성을 성적 도구로만 국한시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그러는 와중에 미국의 일부 보수적인 학교 등에서 레깅스를 착용한 여성의 출입을 금하면서 논란이 거세지고 있다. 미 인터넷 매체인 복스는 최근 텍사스 휴스턴 제임스 메디슨 고등학교에서 교장이 학부모들에게 보낸 편지를 통해 ‘노출이 심한 옷과 여성 몸의 굴곡이 그대로 드러나는 레깅스, 깊게 파인 옷 등을 입은 학부모는 학교 출입을 제한하도록 하겠다’고 공지했고, 일부 학부모들이 “시대작오적인 발상”이라며 반발했다고 보도했다.그러나 여성들이 레깅스를 일상복으로 입는 것 자체가 여성을 성상품화하는 데 무의식적으로 동조한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얼마 전 뉴욕타임즈의 기고에서는 운동을 할 때 몸에 편하고 활동성이 좋으려면 트레이닝복을 입어도 되는데, 언제부터인가 모든 여성들이 비싼 요가복이나 레깅스를 입는다고 지적했다. 비싼 레깅스를 팔려는 스포츠 의류업체들의 마케팅에 놀아나는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미국 여성들이 2007년에는 레깅스보다 정장을 구입하는 데 21억달러를 더 사용했으나 2017년에는 그 차이가 1억5천800만달러로 줄었다고 한다. 미국에서 뜨거운 레깅스 논란이 우리나라에도 머지않아 보인다. /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19-05-13

무엇을 위한 원로와의 대화인가

변창구대구가톨릭대 명예교수·국제정치학문재인 대통령이 최근 사회원로들을 청와대로 초청하여 오찬간담회를 가졌다. 청와대가 원로와의 대화를 앞두고 “국정운영에 대한 조언을 구할 예정”이라고 발표하였던 것처럼, 이번 간담회는 국내외의 어려운 국정현안들에 대한 원로들의 지혜를 구하기 위한 것이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이 ‘원로와의 대화’에서 보여준 인식과 태도는 청와대의 간담회 목적을 의심케 한다. 보수와 진보를 가릴 것 없이 대다수 원로들의 고언(苦言)은 매우 중요한 국정현안이라고 할 수 있는 국민통합·적폐청산·소득주도성장·한일관계 등에 집중되었는데, 이에 대한 대통령의 반응과 수용가능성은 매우 부정적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국민통합과 관련하여 대통령은 모두 발언에서 “정치권의 대립과 갈등이 심해지고 그에 따라 국민들 간에 적대감이 높아지는 현상들이 가장 걱정스럽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김우식 전 부총리가 “대통령은 한 계파의 대통령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대통령”이라면서 ‘탕평과 통합’을 강조하였고, 윤여준 전 환경부장관이 “국회가 극한 대결로 치닫는 상황에서는 대통령이 직접 정국을 풀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는 충언(忠言)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마이 웨이(my way)’를 고집하고 있다.“적폐청산 피로증이 심하다”(윤여준)는 지적에 대해서 대통령은 “살아 움직이는 적폐수사는 정부가 통제할 수 없고 통제해서도 안 된다.”고 답변하였다. 과연 그럴까? 적폐청산을 이유로 검찰과 경찰에 철저한 수사를 지시하던 사람이 누구인가. 청와대의 지시로 각 부처에 ‘적폐청산TF’가 만들어졌음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대통령은 “적폐청산이 이루어진 다음, 그 성찰 위에서 새로운 나라를 만들어나가자는 데 대해서 공감이 있다면 협치하고 타협할 수 있다.”고 하니 적폐청산과 정치보복을 둘러싼 사회적 갈등이 앞으로도 계속될 것 같다.송호근 포스텍 교수는 소득주도성장정책에 대해서 “이 정책은 효과가 없으니 고용주도성장으로 바꾸는 것이 좋겠다.”고 제안하였으나 대통령은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게다가 송 교수가 지적한 “노조가 이익집단화 됨으로써 촛불민심이 왜곡되었다”는 뼈아픈 지적은 간담회 내용을 소개한 청와대 대변인의 기자발표문에서 제외됨으로써 그 의도를 의심케 하고 있다.최악의 한일관계에 대해서도 “일본의 국왕이 바뀌었으니 새로운 움직임이 필요하다.”(이종찬 전 국정원장)는 조언에 대해서 대통령은 “일본이 과거 역사에서 비롯된 불행한 문제들(위안부·징용문제)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면서 갈등을 증폭시키고 있다.”고 했다. 한일관계가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는 것은 일본 못지않게 현 정부도 이 문제를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있기 때문임을 정말로 모른다는 말인가.이처럼 원로들의 고언에 대해서 대통령은 변명에 급급하거나 답변을 회피하였으며, 일부 날카로운 충고는 청와대 대변인의 브리핑에서 아예 삭제되었다. 이 간담회에 참석한 한 원로는 “대통령이 중요한 문제는 바꾸지 않겠다고 하니 걱정”이라고 하였다. 그렇다면 수용하지도 않을 원로와의 대화는 무엇 때문에 하였는가? 청와대는 비판적 의견들도 경청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정치적 쇼’를 할 필요성이 있었는가?원로와의 대화에서 보여준 대통령의 ‘유체이탈’ 화법은 상당히 우려된다. 문제는 자신에게 있는데도 자신은 전혀 관계가 없는 것처럼 말하는 그것이 바로 문제이다. 사회원로들이 고언을 하게 된 원인을 제공한 사람이 대통령이며, 그러한 문제들을 반드시 해결해야 할 책임도 대통령에게 있다. ‘좋은 약은 입에 쓴 법’이니 부디 원로들의 고언을 국정운영에 잘 반영하여 성공한 대통령이 되기를 바란다.

2019-05-13

예천읍 공동화 문제 해결 방안은

정안진경북부도청 이전으로 예천읍 공동화가 가속화 되고 있다. 예천읍 시가지가 텅 빈 거리로 바뀌고 있는 실정. 공동화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지난 1965년 말 16만5천886명이었던 예천군 인구는 2018년 말 5만3천274명으로 감소했다.또 지난 2016년 3월 경북도청이 안동시로 이전한 후엔 예천읍 인구가 1만6천869명(12월 말 기준)에서 2017년 12월 말엔 1만6천240명, 2018년 12월 말에는 1만5천579명으로 매년 700여명 감소하고 있다.이로 인해 유동인구가 줄어들면서 상가 매출이 떨어지고, 폐업하는 곳이 속출한다. 이같은 현상은 신도시가 형성되면서 기존 예천읍 상가 이용객들이 새롭게 형성된 곳으로 빠져나가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이를 막기 위해 예천읍 시장 현대화 사업의 일환으로 ‘맛고을 길 사업’을 지난 2016년 62억원을 들여 조성하였으나 실효성은 적었다.또 재래시장 현대화사업에 상설시장 15억원, 남본시장 고추전골목 4억4천만원을 투자했지만 인구 감소로 인한 상권 살리기에는 역부족이다.김학동 예천군수는 공약으로 원도심 경기활성화 사업을 1순위로 꼽았다.예천군은 예천읍 상권 활성화를 위해 도시재생협의체, 기차선로 폐선부지 공원화, 청년몰 사업 지원, 주차장 확보, 시장현대화 사업 등을 진행하고 있지만 뚜렸한 해결책이 없어 고심이다. 하지만, 김학동 군수는 단 1%의 가능성에도 도전한다고 각오다.이에 대한민국 축구종합센터 유치전에 뛰어들어 군의 행정력을 올인하고 있다. 또 도민체전 유치를 위해서도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하지만, 경상북도 체육회 이사들은 “도체 유치전에 신청서를 제출했지만, 종목 분산 개최로 인해 얻어지는 시너지 효과는 적을 것”이라 전망한다.안동 모 업체에서도 오는 6월 개포면 일대에 농산가공산업단지를 조성해 250개 기업을 유치한다는 계획을 김학동 군수를 비롯한 군 관계자와 지역 인사에게 브리핑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나, 이마저도 사업이 성사될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보인다.예천군은 도심 공동화 현상을 막기 위해 각종 대책 마련에 나서고 있지만, 빠르게 진행 중인 공동화를 막아낼 수 있을 방법을 찾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특단의 대책이 나올 가능성이 낮기에 예천군의 고민이 커지고 있다. 예천/ajjung@kbmaeil.com

2019-05-13

비운의 ‘홍길동전’

안재휘 논설위원불상(佛像) 이미지 밑에 로켓 엔진을 달아 하늘로 쏘아 올리는 합성 패러디 사진들이 인터넷을 장식했다는 뉴스는 실소(失笑)를 터트리게 한다. 북한이 발사한 미사일을 ‘불상 발사체’라고 한 합참의 발표를 희화화한 민심의 발로다. ‘미사일이 아니라면 그럼 새총이란 말이냐?’라는 일각의 비아냥도 폭소를 부른다. ‘미사일을 미사일이라고 부르지 못하는’ 모습을 홍길동전에 비유한 ‘홍길동 정권’이라는 작명 또한 신랄하다.북한의 잇따른 미사일 발사는 ‘한반도 평화 쇼’ 국면에서 엉망진창이 된 나라의 국방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정부 여당이 지난 4일 북한이 동해안에서 감행한 발사실험을 굳이 ‘미사일’이 아니라고 두둔하는 모습은 어설프기 짝이 없었다. 그런 가운데 9일 평양 북방 내륙인 구성에서 동해안을 향해 발사한 두 발의 미사일이 ‘탄도’냐 아니냐를 놓고 한심한 논란을 지속하고 있다. 합참과 국방부는 웬일인지 며칠이 지나도 계속 ‘분석 중’이란다.북한이 발사한 미사일은 제주도까지 타격할 수 있는, 핵탄두 탑재가 가능한 무기로 밝혀지고 있다. 실제 전쟁이 벌어져 남한 전체가 핵폭탄으로 초토화가 된 뒤에도 국방부는 계속 ‘분석’만 하고 있을 참인가, 분통이 터지지 않을 수 없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가 ‘9·19 남북 군사합의’ 위반인가 여부를 놓고도 당국의 언급들은 도무지 헛갈린다. 도대체 위반이라는 건지 아니라는 건지 거의 말장난 수준이다.신임 이인영 민주당 원내대표는 “법률적으로는 위반이냐 아니냐를 따져볼 수 있겠지만 정신적으로는 평화를 향해 나아가는 합의에서 반대로 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국정원은 “문구상으로만 보면 위반이라고 얘기하기는 어려운데 군사적 충돌의 근원이 되는 일체의 적대적 행위를 전면 중단하자는 취지는 위반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국방부의 입장은 더 종잡을 수가 없다. 지난 4일 강원도 원산 북쪽에 있는 호도반도 일대의 발사를 놓고는 9·19 군사합의에 명시된 포병 사격훈련 금지 구역을 벗어난 지역이어서 합의 위반이 아니라는 궤변을 늘어놓았다. 그러나 9일 미사일 발사에는 “9·19 군사합의 취지에 어긋난다”고 말했다. 모두 짜 맞춘 듯이 북한의 도발을 ‘합의 위반’이라고 말하지 않고 ‘취지 위반’이라고 언급하고 있다.미국 국방부는 북한의 발사체를 ‘복수의 탄도미사일’이라고 발표했다. ‘탄도미사일과 관련한 모든 활동 중단’을 명시한 유엔 안보리 결의에 대한 명백한 위반이란 의미다. 우리 국방부의 “단거리 미사일이라고만 말하겠다”면서도 “탄도가 아니라는 말은 안 하겠다”는 교졸한 입장과 대비된다. 우리 군이 이렇게 이상한 표현에 발이 묶인 것은 북한이 유엔 결의를 어겼다는 사실을 애써 흐리려는 것이라는 해석이다.그러나 우리가 정말 주목해야 할 대목은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변화무쌍한 반응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처음에 북한의 발사에 대해 “아무도 그에 대해 행복하지 않다”고 밝혔다. 하지만 트럼프는 10일 폴리티코와 인터뷰에서 “그것들(북한의 미사일)은 단거리 미사일이었다”면서 “나는 그것이 신뢰 위반이라고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우리는 ‘미국은 언제나 미국 편’이라는 현실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 미국에 위협적인 존재만 아니라면 언제나 ‘북핵’ 문제는 미국 외교정책의 우선순위에서 밀려날 수 있다. 미국 대통령이 북한의 도발이 ‘단거리 미사일’이기 때문에 괜찮다고 말하는 시점에 우리 국방부는 ‘미사일을 미사일이라고 말하지 못하는 현대판 홍길동’ 처지가 돼 있다. 청와대와 정부여당은 남북대화의 판을 깨지 않기 위해서만 전전긍긍한다. 어느 날 갑자기 처절한 비극이 되어버린 ‘홍길동전’ 무대 위에 갇힌 우리는 대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나. 안팎으로 위태로운 이 나라가 정말 걱정이다.

2019-05-12

민생고(民生苦)

민생고란 일반 국민들이 생활을 영위하는데 겪는 고통을 말한다. 예로부터 백성한테는 먹고 사는 문제만큼 중요한 것은 없었다.인류의 생존 과정도 자세히 따지고 보면 잘 먹고 잘 살기 위한 투쟁의 역사라고 감히 말해도 된다. 오죽했으면 먹고 사는 것이 쉽지 않았기에 호구지책(糊口之策)이라는 말이 생겨났을까 싶다. 입에 풀칠이라도 해 살길을 찾아보겠다는 인간 본능적 욕구를 강하게 표현한 말이다.맹자는 백성의 생활이 얼마나 안정되느냐 하는 것이 통치의 근본이라 했다. “정치가 뭐냐”고 묻는 제(齊)나라 선왕의 물음에 “백성이 배부르게 먹고 따뜻하게 지내면 왕도의 길은 저절로 열린다”고 콕 집어 설명했던 것이다.조선시대 최고의 개혁적 조치로 평가받는 대동법(大同法)은 먹고 살기에 지친 농민에게 생존의 희망을 준 착한 정책이다. 가구 기준으로 받았던 세금을 토지 기준으로 바꾸면서 소작농을 비롯한 많은 서민이 세금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는 것이다. 토지의 많고 적음이 세금의 기준이 되었기 때문이다. 당연히 지주 계층인 양반사회의 극렬한 반대가 뒤따랐다. 제도가 정착하기까지 100 년의 세월이 걸렸다고 전해지니 당시 양반들의 저항이 만만찮았음을 짐작케 한다.몇 년전 청백리로 칭찬받던 전직 대법관이 민생고 해결을 위해 대형 로펌에 들어가면서 던진 말이 있다. “무항산 무항심(無恒産 無恒心)”이다. “생활이 안정되지 않으면 바른 마음을 가지기가 어렵다”는 뜻이다. 그의 로펌행은 씁쓸한 여운을 남겼지만 보통시민으로서 살아가기에 경제 문제가 간단치 않다는 뜻을 전하고 있다.문재인 대통령 취임 2주년을 맞아 문 정부의 경제 정책이 호된 비판을 받고 있다. 경제 정책에 대한 부정 평가가 긍정 평가의 배를 넘는다. 야당의 비판도 경제 실정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정부여당이 곤혹스러워하는 문제도 경제 분야다. 먹고 사는 문제가 꼬여 국정 지지도가 떨어지니 이래저래 경제가 골칫거리다.일찍 정치의 요체가 민생이라 했던 맹자의 말이 새삼 와 닿는다./우정구(논설위원)

2019-05-12

‘핵 보유국’ 북한의 식량 외교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북한의 비핵화 문제가 여전히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북한의 인권문제나 식량문제에는 관심이 부족하다. 북미 하노이회담 결렬 후 북한은 최근 두 번이나 단거리 미사일을 발사하였다. 북한은 방어용 훈련이라고 하지만, 북미 대화 촉진을 위한 방책이라고 볼 수 있다.그에 앞서 북한 당국은 그들 특유의 자존심을 버리고 유엔 등 국제기구에 식량지원을 요청하였다. 북한 인구 2천500만 명이 배불리 먹으려면 600만t의 식량이 요구되는데 북한은 지난해 더위와 재해로 식량생산이 460만t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북한이 스스로 ‘핵 보유국’임을 선언하면서도 식량문제도 해결되지 못함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흔히 북한의 3대 경제 위기를 외환, 에너지, 식량이라고 한다. 북한의 식량위기는 1990년대 후반 ‘고난의 행군’시부터 시작되었다. 북한 주민의 식량부족은 기아문제로 연결되며 북한주민들의 저항까지 초래할 심각한 인도적 문제이다. ‘위대한 수령국가’이지만 배고프게 하는 수령을 따를 수 없는 주민들은 탈북하고 있다.일찍이 김일성은 ‘이밥에 고기 국 먹고, 비단옷 입고 기와집에 사는 인민의 꿈을 실현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그 꿈은 김정은 시대에도 실현되지 않고 있다. 북한은 ‘고난의 행군’ 이후 통계는 확실치 않지만 100만 명 이상의 인민이 아사했다는 보고도 있다. 배급제는 사실상 폐지되고 주민들의 식량구걸 행렬이 거주이전의 자유로 연결되고 있다.북한 당국은 이에 당황하여 여러 식량증산사업을 벌였으나 아직도 해법을 마련치 못하고 있다. 북한은 집단농장의 생산성 향상을 위하여 관리 인원을 25명 내외에서 대폭 줄여 5∼10명의 가족영농형태로 바꿔 보았으나 별 성과가 없다. 북한에서 개인 집 옆의 30평 내외 남새밭은 농작물이 잘 되는데 집단 농장의 농사는 한계에 이른지 오래다.개인의 소유욕을 막아버린 사회적 소유형태의 병폐 때문이다. 북한 당국이 하천부지나 야산의 소 토지개간을 허용했으나 식량의 증산에는 크게 기여치 못했다. 오히려 북한의 늘어나는 시장이 아사자를 구할 수 있었다. 북한의 집단 소유 형태를 바꾸지 않고는 식량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책은 없다.이러한 상황에서 ‘핵 보유국’이라 선전하는 북한이 특유의 자존심마저 버리고 대외 식량지원을 요구하게 되었다. 북한은 종래 그들의 경제 위기를 ‘미 제국주의의 압제’ 때문이라고 선전해왔다. 그러나 이러한 북한의 주장이 주민들에게 먹혀들리 없다. 북한 김정은은 핵 개발을 통해 대미 협상 방식을 시도했던 것이다. 그러나 미국은 아직도 북한의 비핵화 선언을 신뢰치 못하고 완전한 비핵화를 위한 대북 제재를 더욱 강화하는 채찍을 사용하고 있다. 북한에 대한 이러한 전 방위적 제재 강화는 북한의 경제를 더욱 어렵게 하고 있음은 분명한 사실이다. 북한이 유엔 식량농업기구(FAO)나 세계 식량프로그램(WFP)을 통해 식량사정의 어려움을 호소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이러한 상황에서 정부는 뒤틀어진 남북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대북 식량지원을 계획하고 있다. 인도적 대북지원은 유엔의 제재 범주에서 벗어나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약 50만t 규모의 식량지원을 북한에 제공할 전망이다. 트럼프도 문재인 대통령과의 전화에서 이번 남한의 대북 식량지원은 무방하다는 입장을 천명하였다. 그러나 국내의 대북 식량 지원에 대한 여론은 찬반이 갈리고 있다.보수적 여론은 북한의 미사일 발사에도 불구하고 북한에 대한 식량지원을 용납할 수 없다는 입장이고, 진보적 여론은 남북의 화해를 위해 인도적 식량지원은 찬성한다는 입장이다. 여야는 이 문제에 합의가 있어야 갈라진 여론을 잠재울 수 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화(和)자에서 보듯이 벼(禾)를 같이 먹는데(口)에서 화해는 출발한다. 북한에 대한 대북 식량지원이 남북관계와 북미 관계 개선의 새로운 전기가 마련되길 바란다.

2019-05-12

오사자연(吾師自然)

류영재 포항예총 회장요즘은 아침마다 자동차를 뒤덮은 노란 송홧가루를 털어내는 일이 여간 귀찮은 게 아니다. 송화는 곤충을 이용하여 수분하는 여느 꽃들과는 달리 풍매화인데, 바람이 일 걸 알고 꽃을 피우는지 꽃이 필 걸 알고 바람이 부는지는 모르나 솔 꽃이 한창인 시기에 부는 봄바람은 유별나게 극성스럽다. 이도 자연의 섭리일 것이다.한때 ‘금수저’라는 말이 유행했다. 부자 부모를 둔 덕으로 고생하지 않고 풍족하게 잘 먹고 잘 사는 계층을 이르는 말이다. 반대가 ‘흙수저’다. 바삐 사느라 한 번도 스스로 무슨 수저인가를 따져본 적은 없지만, 세간의 기준으로 보면 필자는 분명 흙수저다. 가난하였으나 안분지족하셨던 부모님 모습을 추억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한데 새삼 무슨 수저타령이겠는가마는 퇴직을 한 지금까지 노후를 위한 저축이 없으니 내심으로 약간은 걱정이 된다. 그래서 나름 궁리한 것이 전원생활이다. 도심이 지척이니 전원이라 말하기는 좀 민망하지만 어귀에 들어서면 개구리 울음소리가 제법 요란한 산자락 마을이니 전원임에 틀림없다. 그렇지만 여느 사람들처럼 공기 좋은 곳에서 여유롭게 노후를 즐기자는 의미로 선택한 전원생활이 결코 아니다. 집이 없던 시절에도 월세를 내는 작업실은 늘 따로 있었으니 집에 작업실을 두면 절약이 되겠다는 연구 끝에 결행한 것이다. 시골에 주택 겸 작업실을 소박하게 짓고 보니 아파트처럼 관리비를 따로 낼 필요도 없고, 작업실 월세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어서 일견 괜찮은 선택인 것같다. 그러나 만만치 않은 일 또한 한두 가지가 아니다.장단점을 제대로 파악하자면 적어도 사계절은 겪어봐야 될 것이다. 이사하고 이제 두 계절을 지났으니 아직은 많은 시행착오를 겪을 것이므로 속단하긴 어렵지만, 오래토록 문명의 그늘에서 살던 사람에게 자연은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정도는 느낀다. 추운 날 아침이면 출근이 바쁜 시간에 차창에 붙은 성에를 제거해야하는 당혹스런 일도 있고, 거실의 창을 열면 신선한 공기와 함께 불청객인 벌레들도 함께 덤벼들기 일쑤다. 봄철이면 사방에 지천으로 피는 꽃들이 황홀경을 연출하지만 꽃가루 알레르기가 있는 필자는 꽃피는 봄이 괴롭기도 하다. 환경의 변화에는 적응기간이 필요하다.사람 뿐 아니라 식물들의 몸살도 생각보다 심각하다. 아파트에서 함께 살던 식물들이 자연과 한 발 더 가까워지면서 오히려 시름시름 앓기도 하고, 심지어 때 아니게 잎을 내리더니 죽어버린 화분도 있다. 초임지의 제자가 선물한 작은 화분을 십여 년간 애지중지 키웠는데, 좋은 햇살을 보이려 이삼일 밖에 두었더니 잎을 내리고 시름시름 하여 다시 들여놓고 온갖 정성을 다해도 결국 안타깝게 죽고 말았다. 문명에 길들여진 생물에게 자연은 약이 될 수도 독이 될 수도 있음이다. 이 모두가 자연의 가르침이다.햇살 좋은 날, 모처럼 가까운 곳에 있는 식물원을 찾았다. 오월의 식물원은 짙어지는 신록과 늦은 봄꽃이 대비를 이루어 장관이었다. 식물원 한켠에 걸린 현수막에 ‘오사자연…’이란 구절이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식물원의 새소리를 들으며 원장님께 물었다.“선생님, 까치가 색이 곱다고 길조로 알려져 있지만 곡식을 해치므로 해충을 잡아먹는 까마귀보다 해로운 새라는데 맞습니까?”“까치가 곡식을 먹으면 얼마나 먹는다고….” 즉각 대답하시며 중국에서 있었다는 일화를 얘기하셨다. 연속으로 큰 흉년이 들자 참새들이 곡식을 먹는다하여 대대적인 참새 소탕령이 내려졌고, 참새들이 사라지자 해충들이 기승을 부려서 농사가 더욱 황폐해지자 결국은 러시아에서 참새를 수입하는 소동이 있었다는 얘기다. 세상의 생명에는 다 존재이유가 있는 법이다.오사자연(吾師自然), 자연이연(自然而然)이라 하던가.

2019-05-12

방법(how)보다 왜(why)가 중요한 이유

일본이 진주만 공격을 감행할 수 있었던 것은 항공모함 제조 기술을 보유했기 때문입니다. 항공모함에 전투기를 싣고 멀리 일본에서부터 거대한 함대를 몰고옵니다. 진주만 인근에서 전투기를 출격해 미군 기지들을 기습하지요. 비록 그들이 선제 공격에는 성공하지만 곧 전세는 역전되고 말았습니다. 미드웨이 해전의 영웅 니미츠 제독의 탁월한 리더십 때문입니다.일본 해군은 막강한 전력을 갖추었지만, 상명 하달의 명령 체계를 철저히 신봉하는 특성을 갖고 있었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카미카제 특공대입니다. 위에서 명령하면 전투기 자체를 폭탄 삼아 목표지점에 자신을 내 던집니다. 지금도 일본의 주입식 교육은 이런 인재를 우수한 인재로 생각합니다. 반면 니미츠 제독은 “오직 상대의 항공모함을 공격하라!” 이 한 가지 핵심 전략을 세우고 부하들에게 계속 그 이유(why)를 설명해 주는 방식을 택했습니다.지엽적인 전투에 일희일비 하지 않고 이 모든 전황의 뿌리가 되는 핵심 교두보였던 일본의 항공모함을 궤멸하는 전략입니다. 왜 항공모함 공격에만 집중해야 하는가에 대한 이유를 설득하고 병사들로 하여금 내가 왜 지금 이 작전을 수행하고 있는지 이해할 수 있도록 자신의 모든 역량을 총동원합니다. 결국 미드웨이 해전은 왜(why)?라는 질문에 분명한 답을 알고 움직인 미군과 그저 상부에서 시키는 대로 이유도 모른 채 목숨까지 내 놓았던 격렬한 방법(how)만을 따랐던 일본군의 차이, 그 보이지 않는 깊은 곳에 숨겨진 이유에서 승패가 갈라집니다.진주만 실패의 교훈을 뼈저리게 성찰한 일본 기업이 있습니다. 자동차 제조사 도요타입니다. 도요타에는 전통적으로 사원들에게 질문하기를 장려합니다. 상사에게 왜냐고 묻는 것을 주저하지 않도록 가르칩니다. 본질이 무엇인지를 명확하게 팀원들이 이해할 때까지 질문을 거듭하지요. 도요타에서는 어떤 명제를 두고 다섯 번을 깊이 캐묻고 들어가는 문화가 있습니다.왜(why)라는 질문이 빈약한 채 방법(how)만을 추구하는 삶은 기초가 허약한 건물을 무리하게 지어 올리는 것과 비슷합니다. 위태롭습니다. 지금 이 순간 내가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는 이유와 근거를 분명히 답할 수 있는 깨어 있는 삶이 지혜롭습니다. 도요타가 끊임없이 캐묻는 방식으로 자신들 만의 방법을 찾아냈듯, 소크라테스가 목숨까지 내 놓으면서 캐묻는 삶의 가치를 설파했듯, 끈질기게 묻고 또 물으며 삶의 정수를 찾아 누리는 그대 멋진 모습에 박수를 드립니다. /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 대표

2019-05-12

월성, 세월을 따라 흐르다

명리학에서 말하는 무토(戊土) 일간이라 그런지 땅에 관심이 많은 편이다. 낯선 동네를 지날 때면 주거지와 상가의 앉음새를 유심히 보고 인터넷 부동산사이트에서 시세도 살펴본다.애석하게도, 부동산에 관심이 많은 것과 투자 능력이 있는 건 다르다. 하지만 관심을 가지다 보니 많은 사람들이 살고 싶어 하는, 그래서 집값이 높은 ‘좋은 동네’의 특징 정도는 찾아낼 수 있다.근대 이후, 특히 근래에 들어서는 학군이나 인프라(이를테면 지하철역과 가까운 ‘역세권’이라든가, 공원과 가까운 ‘숲세권’ 같은 조건) 등 자연 외적 조건이 큰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그런데 개인적으로는 도시 생활에 적용되는 이런 현대적 요소보다, 학교도 지하철역도 공원도 없었을 때 옛사람들이 정한 삶터에 더 눈길이 간다.오래 된 동네는 사람들이 살기 좋은 자연 환경을 갖고 있다. 물과 볕이 좋고 바람이 잘 통한다. 산세가 안정적이고 주변의 마을과 잘 연결된다. ‘양택(陽宅)을 잘하면 당대가 성하고 음택(陰宅)을 잘하면 만대가 성한다’는 옛말이 있다. 살아있는 사람은 잘 살게끔, 죽은 사람은 잘 쉬게끔 만들어주는 터가 좋은 곳이다. 그래서 집터 위에 집터가 있고 무덤자리에 무덤이 들어서는 게 관습이었다. 왕궁 터인 월성에 켜켜이 왕조의 터전이 자리 잡은 것도 같은 이치다.산업 구조가 재편되어 농촌이 무너지고 도시집중화와 개발 바람이 불면서 모든 것이 달라졌다. 무덤을 밀고 아파트를 짓고, 왕궁으로 추정되는 자리에 공장을 지었다. 삶과 죽음이, 성과 속이 뒤엉켰다. 그곳에는 오직 하나의 힘과 그가 세운 질서가 존재하나니, 돈, 돈뿐이다.형산강을 따라 경주로 들어오면서 경주의 물길이 궁금해졌다. 선사유적이 있는 암사동이 한강 유역에 자리한 것처럼 물이야말로 사람살이의 기본 중 기본 조건이다. 물이 없으면 사람은 살 수 없다. 먹고 씻고 농업용수로 쓰기 위해 고대 도시들은 자연스럽게 큰 강을 끼고 형성되었다.서라벌 또한 18만 호에 가까운 사람들이 모여살기 위해서는 물이 필요했을 테고, 천년의 수도로 존재할 만큼 충분한 수량이 보장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오가며 살펴본 경주 도심의 하천은, 겨울이라는 계절적 조건을 감안하더라도, 너무 빈약하다. 아니나 다를까 조금만 검색해 보아도 경주의 물 부족을 염려하는 기사들이 쏟아진다.일설에 의하면 덕동댐과 보문호가 생기면서부터 이런 현상이 시작됐다고 한다. 주요 하천의 흐름을 막는 댐이 상류에 2곳이나 생기니 경주 도심의 하천이 건천이나 다름없어졌다는 것이다. 이에 더해 북천에 퇴적물이 쌓이면서 흐르는 물이 부족해졌다고 한다.북천, 남천, 서천 등이 합류해 북쪽의 형산강으로 흘러들어가는 경주는 결코 물이 부족한 도시가 아니었다. 큰비가 내리면 하류가 범람하는 일이 빈번했다.‘삼국사기’에는 아달라 5년(158), 알천(북천)의 물이 넘쳐 금성의 북문이 저절로 무너졌다는 기록이 있다. 유례이사금 7년(290)에는 여름에 큰 물난리가 나서 월성이 무너지기까지 했다.이외에도 ‘홍수’에 대한 기록은 차고 넘친다. 물난리에 민가가 떠내려가고 백성들이 표류하니 피해를 줄이기 위한 갖가지 방책이 동원되었다. 7세기 진흥왕 이후 천주사, 봉성사, 인용사, 분황사, 임천사, 동천사 등의 사찰을 천변에 건축한 것도 부처님의 염력으로(혹은 제방의 성격으로) 수해를 막아보고자 했던 것으로 짐작된다.근대까지도 상황은 변하지 않았다. 비보숲은 풍수적인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인위적으로 조성하는 숲이다. 조선시대와 일제강점기에 이르기까지 경상도 71개 군현 가운데 비보숲이 가장 많은 곳이 현재의 경주 시내였다. 그리고 그 15곳 중 7곳이 수해방지용으로 북천 주위에 집중되어 있었다.당연히 생활용수도 풍부했다. 지금까지 경주 지역에서 발굴조사를 통해 확인된 우물은 230여기에 이르는데, 그중 신라 우물은 60여기 정도라고 한다. 애당초 신라의 시조인 박혁거세가 ‘나정(蘿井)’에서 탄생했고, 혁거세의 부인 알영 또한 ‘알영정’, 즉 우물에서 태어났다. 그만큼 우물은 신성한 곳이었고 왕조 대대로 제사를 바치는 장소였다.월성 안에 보존된 우물은 숭신전지 부근의 것이 유일한데, 연꽃과 안상(眼象:코끼리 눈 모양)이 새겨진 사각 우물이다.(월성 우물은 수풀 속에 있어서 일부러 찾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다. 나 또한 직접 보지 못하고 자료로 확인했다) 이와는 별개로 동궁과 월지의 동쪽 우물에서는 4구의 인골이 발견되었는데, 제례의 인신공양이라기보다 고려시대에 신라와 관련한 사람이 희생(어쩌면 살해)되어 매장된 것으로 보인다고 한다.물 소비가 많았을 월성은 물론이거니와 주거지의 집집마다 깊은 우물이 발견되는 것은 서라벌에 물이 풍부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오랜 세월 물의 도시였다가 이제는 물 부족 도시가 되어버린 경주, 그 안타까운 목마름으로 월성의 물길을 더듬어본다.월성의 해자는 말라있다. 아무리 수로(물길) 형태의 여느 평지성 해자와 달리 수혈(웅덩이)이 배치된 것이라 해도 웅덩이 역시 흔적뿐이다. 북천, 남천, 서천의 세 물줄기를 끌어안은 월성을 직접적으로 휘감아 도는 것은 남천이다. 토함산에서 발원해 불국사와 월성을 지나 남산 밑으로 흘러드는 하천이다. 본래는 월성에서 형산강까지 물길이 3㎞, 폭이 70m였다는데…. 지금은 하천이라기에 심히 민망한 개천이다.천소영 교수가 쓴 ‘물의 전설(2000, 창해)’에서는 남천을 ‘사랑이 흐르던 시내’라고 표현했다. 물의 흐름이 급해 자갈이 많은 북천에 비해 흐름이 완만해 모래가 많으니, 금빛 모래가 반짝이던 남천을 건너며 수많은 사랑의 이야기들이 싹텄으리라는 것이다.“궁궐 남쪽의 문천(蚊川) 위에 월정교(月淨橋)와 춘양교(春陽橋) 두 다리를 놓았다.”‘삼국사기’ 경덕왕 19년 기사에 등장하는 두 다리를 찾아보기로 했다. 속칭 느릅나무다리(楡橋)라고도 불리는 월정교는 복원되어 2018년 하반기부터 개방되었다. 복원에 대한 논란과 비판만 숱하게 듣다가 이번에 처음으로 월정교를 건넜다. 일단 눈으로 보는 모습은 상당히 낯설다. 다리 양쪽의 문루와 지붕으로 이어진 회랑 등이 지금껏 보던(혹은 상상하던) 다리들과 사뭇 다르다.일일이 설명하기엔 지면이 좁지만, 월성과 황룡사 등 발굴조사를 거쳐 언젠가 복원을 논의할 유적들이 모두 거칠 수밖에 없는 논란이다. 그림이나 도면이 남아있지 않은 상태에서 상상으로 ‘복원’을 시도한다는 것 자체가 논란의 원인을 제공하는 셈이다.차라리 눈을 감고 그려본다. 태종무열왕 때 원효대사가 이 월정교를 건너다가 물에 빠져서 다리 건너에 있던 요석궁에 젖은 옷을 말리러 간다. 이두를 만든 신라의 천재 설총이 태어나는 전설이다. ‘찬기파랑가’를 지은 충담사도 남산에 갔다 돌아오는 길에 월정교 부근에서 경덕왕을 만나 왕의 요청으로 ‘안민가’를 짓는다. 형체가 사라지면 이야기가 도리어 선명해진다.춘양교는 다른 이름이 많은데 일정교, 효불효교, 칠성교, 칠자교, 어미다리 등으로도 불렸다. 춘양교를 찾으려고 월성 동쪽 기슭부터 경주박물관 사이를 헤매고 다녔다. 텃밭과 쓰레기장이 뒤엉킨 가운데 박물관 맞은편 동네 골목에서 ‘춘양교지’ 표석을 발견했다. 지금의 집터가 그때도 집터였다면 춘양교는 백성들이 자주 이용하는 다리였던 듯, 민간의 야릇한 전설이 깃들어있다.남천 건넛마을에 홀어머니와 일곱 아들이 살고 있었다. 어느 날인가부터 어머니가 밤마다 몰래 나가 새벽에 돌아왔는데, 알고 보니 애인을 만나기 위해 남천을 건너갔다 오는 것이었다. 일곱 아들은 추운 겨울 차가운 강을 건너는 어머니가 안타까워 편히 다녀오시라고 다리를 놓았다. 어머니를 위한 일이니 효도겠으나 죽은 아비에 대한 불효인 셈이니, 다리의 이름은 ‘효불효교’였다.이것이야말로 ‘인간’의 이야기다. 전설에는 아들들이 놓은 다리를 보고 어머니가 잘못을 뉘우쳤다는 사족이 따라붙긴 하지만(당사자가 아닌 오지랖 엄숙주의자들이 붙인 이야기일 가능성이 크다), 아들들은 어머니의 부도덕을 탓하기보다 시린 발을 걱정한다. 결국 도덕과 윤리를 뛰어넘은 ‘사랑’에 대한 이야기일지니, 수풀더미 속에 버려진 춘양교가 화려한 어느 다리보다 진한 여운을 남긴다.금장대에 서니 물의 도시 서라벌, 일렁거리고 출렁였던 신라가 비로소 느껴진다. 형산강의 절경 금장대에서는 건너편 경주 시내로 흐르는 북천이 눈앞에 시원하게 펼쳐진다. 신라 때 금장사가 있던 금장대는 김동리의 소설 ‘무녀도’의 배경이자 석장동 암각화가 남아있는 곳이기도 하다. 금장대 옆으로 돌아 들어가는 길에는 선사시대 부족민들이 그린 삼각형과 원형 등 기기묘묘한 문양을 만져볼 수도 있다(훼손될까 봐 만지지는 않았다. 사라져가는 ‘울주 반구대 암각화’를 생각하니 보호 장치가 없어 좀 불안했다).강은 바다와 또 다른 느낌을 준다. 바닷물이 먹을 수 없는 물이라면 강물은 먹는 물이라서 그런지 훨씬 친숙하다. 아들이 울주에서 발원해 영일만으로 흘러나가는 형산강은 남에서 북으로 흐르는 강이라고 알려준다. 우리나라의 강이 대부분 북에서 남으로 흐르는데 비해 특이한지라, 풍수지리의 신봉자들은 후발주자인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까닭이 북으로 흐르는 형산강의 기운 덕택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신라시대 알천으로도 불렸던 북천은 선덕왕 때 왕위 계승 서열 1위였던 김주원이 신라의 왕 대신 나의 40대조 할아버지가 된 빌미를 제공한 하천이기도 하다. 선덕왕이 승하하고 왕위 결정을 위한 화백회의가 열릴 무렵 갑자기 내린 비로 순식간에 북천의 물이 불어 다리가 떠내려갔다. 북천 건너편에 살던 김주원이 회의에 참석하지 못하니 왕의 임종을 지킨 김경신이 원성왕에 올랐다.‘삼국사기’에서는 혹자(아마도 김부식의 생각이겠지만)가 말하길, “임금은 큰 자리라 본디 사람이 꾀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오늘 폭우가 내린 것은 하늘이 김주원을 세우고 싶지 않음이 아닐까?”라고 했단다.김주원이 왕위에 오르지 못하고 외가인 명주로 왔으니 후손인 나도 태어난 게다. 옛날 옛적 조상의 권력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것 자체가 우스울지나, 그보다는 불어올라 넘실대는 북천을 바라보며 손아귀에 들어온 파랑새를 날려 보내는 김주원 할아버지의 마음을 생각한다.그가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더한 욕심을 부렸다면 돌아오는 것은 피바람뿐이었을 것이다(물론 김주원의 아들 김헌창과 손자 김범문은 미련을 떨치지 못했던지 후일 반란을 일으켰다가 진압당한다),흐르는 물소리를 듣는다. ‘물의 뜻’이 곧 ‘하늘의 뜻’이라는 소박하고도 염결한 가르침에 귀를 기울인다.

2019-05-12

문재인 정부의 초심

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문재인 정부가 10일 취임 2주년을 맞았다. 다사다난한 현 정부의 2년간 국정운영을 보며 초심의 중요성을 새삼 깨달을 수 있었다. 초심을 지키려 노력한 어느 재상의 얘기다. 어느 날 시골 마을을 지나던 임금님이 날이 어두워져 한 목동의 집에서 하룻밤을 묵게 됐다. 이때 임금님의 눈에 비친 목동이 욕심이 없고 성실하고, 지혜로운 것이 평소 자신의 신하들에게는 찾아보기 힘든 모습이었다. 젊은 목동의 모습에 끌린 임금님은 목동을 나라의 관리로 등용했고, 청빈한 생활과 정직성, 남다른 지혜로 왕을 잘 보필했다. 왕은 마침내 그를 재상에 임명했다.재상이 된 목동은 더욱 성실하게 나랏일을 처리해 나갔다. 그러자 다른 신하들이 그를 시기하기 시작했다. 일개 목동이 나라의 관리가 된 것도 모자라 재상까지 올랐는 데도 뇌물도 받지않고 모든 일을 공정하고 깨끗하게 처리해 자신들의 처지가 곤궁했기 때문이었다. 신하들은 재상이 된 목동을 쫓아내기 위해 티끌 하나라도 모함할 것이 있는지 찾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재상이 한 달에 한 번 자기가 살던 시골집에 다녀오는 것을 알게됐다.몰래 따라가 보니 그는 창고에 있는 커다란 항아리 뚜껑을 열고 한참 동안 항아리 안을 들여다보고 돌아오곤 했다. 신하들은 임금님께 ‘재상이 청렴한 척은 혼자 다하면서 항아리 속에 아무도 몰래 금은보화를 채우고 있는 것 같다’고 모함했다. 왕은 누구보다도 신임했던 재상에게 무척 화가 나 직접 사실을 밝히려고 신하들과 함께 재상의 집으로 찾아갔다. 재상의 시골집에 다다른 왕과 일행은 모두가 보는 앞에서 항아리를 열어보게 했다. 항아리 속에는 금은보화가 아니라 재상이 목동 시절 입었던 낡은 옷 한 벌과 지팡이가 들어있었다. 재상은 초심을 잃지 않기 위해 목동이었던 자신을 되돌아보는 노력을 그치지 않았던 것이다.지난 2017년 5월 10일 취임한 문재인 대통령은 같은 달 25일 첫 수석·보좌관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촛불혁명으로 탄생한 정부이기에 유능하고 청렴해야 한다”며 “부처들에 전화를 할 때 등의 상황마다 겸손하게 말부터 조심해야 할 것”이라고 당부했다. 의욕에 찬 대통령이 초심으로 당부한 것이 바로 청렴·겸손·유능이었다. 이 가운데 청렴과 겸손은 문 대통령을 대권으로 이끈 원동력으로 작용했을 뿐 아니라 집권 3년차를 맞은 청와대를 지탱하는 힘이 되고 있다는 평가다. 그동안 대통령이나 측근의 권력형 비리가 불거진 적 없으니 청렴이요, 사회원로들을 초청해 자문을 구할 때나 국가 유공자들을 만날 때 거의 90도로 허리를 낮추고, 어린이들과도 눈높이를 맞추니 겸손의 덕목은 아직도 유효하다.다만 ‘유능’이란 덕목에서 문재인 정부는 도전을 받고 있다. 80%를 넘나들던 지지율이 40%대로 반토막 난 것은 주로 소득주도성장과 최저임금제로 대변되는 경제정책이 경제적 불평등 완화 및 일자리 창출에서 제대로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회 각계각층에서 경제정책의 선회를 주문하는 목소리가 높아가고, 대통령의 초청을 받은 사회원로들도 정책의 수정·보완을 요청하고 있는 상황이다. 문재인 정부의 초심을 얘기하다보니 박노해 시인이 쓴 ‘행복은 비교를 모른다’는 시가 던지는 교훈이 와닿았다. “나의 행복은 비교를 모르는 것/나의 불행은 남과 비교하는 것//남보다 내가 앞섰다고 미소 지을 때/불행은 등 뒤에서 검은 미소를 지으니//이 아득한 우주에 하나뿐인 나는/오직 하나의 비교만이 있을 뿐//어제의 나보다 좋아지고 있는가/어제의 나보다 더 지혜로워지고/어제보다 더 깊어지고 성숙하고 있는가//나의 행복은/하나뿐인 잣대에서 자유로워지는 것/나의 불행은/세상의 칭찬과 비난에 울고 웃는 것”(전문) 문재인 정부가 초심을 지키려면 세상의 칭찬과 비난에 울고 웃지말고, 하나뿐인 잣대에서 자유로워져야 한다. 그래야 자신이 말한 유능의 덕목을 새롭게 세울 수 있다.

2019-05-09

안동의 겹경사

20년 전인 1999년 4월 21일은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안동을 찾은 날이다. 한영수교 116년 만에 영국 국가 원수의 처음 있는 한국 방문에 세계의 이목이 집중됐다.“가장 한국적인 곳을 보고 싶다”는 여왕의 뜻에 따라 안동 하회마을과 봉정사가 여왕의 방문지로 선택됐다. 여왕의 안동 방문을 두고 당시 언론은 영국 신사와 한국 선비의 만남이라고 비유했다.갓을 쓰고 도포를 차려입은 한국 종손의 동양식 환대를 조금도 어색하지 않게 받아들이는 여왕의 모습에서 왕국의 품격을 느끼게 했던 일이 벌써 20년 세월이 흘렀다.안동 하회마을은 풍산 류씨의 씨족 마을이다. 낙동강 줄기가 이 마을을 S자형으로 휘감아돈다하여 하회(河回)란 이름이 붙었다. 600여 년을 한 씨족이 대를 이어 살아온 마을이다.임진왜란 시절 영의정을 지낸 류성룡 등 많은 고관들을 배출한 양반 마을이다. 한국의 전통적 주거문화가 남아있는 곳으로 조선시대 사회구조의 독특한 문화를 잘 보여준다는 문화적 가치가 인정된 곳이다. 한국인의 전통적 삶이 그대로 전승되고 있는 생활공간으로 2010년에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봉황이 날아와 앉았다는 봉정사도 2018년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신라 고찰이다. 현존하는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목조 건물인 극락전이 이곳에 있다. 당시 여왕은 방명록에 “조용한 산사 봉정사에서 한국의 봄을 맞다”라는 글을 남겨 화제가 됐다.지금 안동은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아들인 앤드루 왕자의 이곳 방문을 앞두고 온통 축제 분위기다. 오는 14일 안동을 방문할 앤드루 왕자는 어머니가 다녀간 하회마을-농산물도매시장-봉정사 등 똑같은 길을 다녀 볼 예정이다.여왕이 다녀간 20주년에 영국 왕실의 손님까지 다시 맞게 된 안동시는 경사가 겹친 꼴이다. 앤드루 왕자가 걷게 될 길을 ‘로열웨이’라 부르고 손님맞이에 분주하다. 여왕의 안동 방문으로 하회마을은 해마다 100만 명 이상의 관광객이 찾는 명소로 변신했다. 앤드루 왕자의 안동 방문이 주는 의미 또한 크다./우정구(논설위원)

2019-05-09

인류는 하이디라오를 막을 수 없다(2)

중국 요식업계 말단 직원들은 “새보다 일찍 일어나 개보다 늦게 자고, 소보다 혹사당하면 돼지만큼 못 먹는다”라고 할 정도의 열악한 환경에서 최저 임금에 못 미치는 급여로 집단 숙소생활을 합니다.하이디라오는 이런 관행을 깨부수고 넓고 쾌적한 아파트를 제공할 뿐 아니라 식사, 청소, 빨래 및 위생을 책임지는 관리원을 별도로 고용합니다. 요식업계 평균 연봉이 약 600만원이었는데, 하이디라오는 월등하게 높은 1000만원 연봉을 지급하지요. 우수 직원에게는 부모에게 직접 보조금을 송금합니다. 효도 여행도 제공하고 일정액은 부모 노후 보험에 가입해 혜택을 듬뿍 제공합니다. 자녀가 있는 직원들은 학자금을 100% 지원하지요. 기업, 직원, 직원 가족으로 구성된 황금 삼각지대 경영모델을 창조했고 이 정책으로 직원 이직률이 크게 감소합니다. 지난 8년 동안 점장급 핵심 직원 이직률은 제로입니다. 이들은 억지로 시켜서, 혹은 인사 고과 평가 때문에 움직이는 게 아닙니다. 스스로 너무도 행복해고 감사해서 고객들에게 진심으로 다가가 서비스를 제공합니다.사람을 사람으로 대접한다는 말은 그들을 ‘믿는다’는 뜻입니다. 하이디라오의 진정한 힘은 말단 홀 서비스 직원까지 상당한 권한을 갖고 있다는 점입니다. 다른 업체들이 이 부분을 감히 따라하지 못합니다. 대량구매 책임자는 5천만원까지 결재 재량권이 있습니다. 점장은 500만원까지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집행할 수 있는 결재권을 갖습니다. 서빙 직원에게는 이런 권한이 있습니다. “메뉴 하나를 무료로 추가해 주기, 음식을 고객 옷에 쏟았을 때 세탁소에 맡겨 다시 내 주기, 고객이 맛있게 먹는 음식을 유심히 관찰한 후 한 접시 포장해서 선물로 제공하기, 문제가 있을 경우 한 테이블의 음식 값을 몽땅 무료로 제공해 주기 등.” 서빙 직원들은 고객을 직접 만나는 접점이고 다양한 요구와 기호는 현장에서 바로 해결해야 하므로 하이디라오의 이런 과감한 정책은 큰 만족감을 선사합니다. 창업자 장융은 말합니다. “모든 사람의 마음에는 선량함이 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신뢰를 저버리고 싶어하지 않습니다.”테이블 네 개로 시작한 장융의 식당. 사람이 중심이 되어 사람을 사람답게 인정하고 대접했을 때 그 결과가 어떤 열매로 드러나는지를 잘 보여준 아름다운 이야기입니다.“인류는 이미 하이디라오를 막을 수 없다.” 곱씹어 보는 새벽입니다. 세상에는 진심으로 사랑을 실천하는 등대같은 존재들이 있습니다. /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 대표

2019-05-09

얼음(氷)과 숯(炭)

박상영대구가톨릭대 교수·국어교육과몇 해 전의 일이다. 졸업생들과 함께한 자리에서 지난 4년간을 되돌아보며 가장 잘한 일과 후회되는 일이 무엇인가를 한번 물어본 적이 있다. 다들 나름대로 지난 추억들을 반추하는데, 대뜸 한 학생이 ‘남자친구랑 헤어진 일’과 ‘그를 만난 일’을 가장 잘한 일과 후회되는 일로 꼽는 것이었다. 이유인즉슨, 서로가 참 맞지 않았는데도 어쩌다보니 오래 사귀게 되었고, 그 결과 학업에 소홀했음은 물론, 주변의 관계들마저 많이 틀어져 버렸다는 것이다.옛말에, ‘빙탄상애(氷炭相愛)’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한 나라의 동방삭이 쓴 ‘자비(自悲)’라는 시의 한 구절에서 변용된 것으로, 원래는 얼음과 숯불은 용납될 수 없다는 ‘빙탄불상용(氷炭不相容)에서 나온 것이다. 차가움/뜨거움이라는 상반된 성질의 물(物)이 만나면 얼음은 녹고 숯은 식게 되니, 본질이 서로 화합할 수가 없다. 그런데 함께 할 수 없는 이 둘이 서로 사랑한다니, 무슨 말일까?함께할 수도, 해서도 안 되지만 서로 사랑하게 되어 물의를 일으킨 예는 우리의 옛 고전에서도 종종 발견된다. ‘세조실록’ 11년 9월 기사에는 세조의 후궁인 덕중이 조카인 귀성군 이준에게 애정 편지를 보낸 사건이 있었다. 덕중은 한 번도 아니고 여러 번, 연애편지를 보내다 발각된 주인공으로서, 당시 이 사건은 궁궐 내에서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또 ‘성종실록’11년 7월 9일자 기사에도 비슷한 사건이 있었다. 태강수의 아내였던 어우동이 왕실 종친들과 수차례 간통해 조선을 발칵 뒤집어 놓았던 것이다.그런데 사실 ‘빙탄상애’는 이처럼 금지된 ‘사랑’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관계’를 함축하는 말이기도 하다. 살다보면, 인간관계는 종종 일그러지고 틀어지기 일쑤이다. 적극적이고 쾌활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소극적이고 조용한 사람도 있고, 바쁘거나 성격 급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느긋한 사람도 있다. 매사 긍정적인 사람도 있고 부정적, 비판적인 사람도 있다.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한데 어우러진 게 곧 인간사이다.일면 공존하기 어려운 얼음과 숯불. 사실 인간사가 모두 얼음과 숯불의 집합체라면, 이는 곧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하는 문제에 다름 아니다. 얼음과 숯불이 서로 사랑하려면 얼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숯불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뜨거움을 받아들여야 물이 되고, 차가움을 받아들여야 재가 아닌, 숯으로 남는 과정이 된다. 이는 곧 ‘자기를 희생하는 소멸’의 과정이자 타자를 받아들이는 수용’의 과정이다. ‘나’를 내세우지 않고 ‘너’를 받아들이면서 ‘나’의 본질을 잃지 않는 것. 그것이 진정한 빙탄상애(氷炭相愛)인 것이다.그런데 주위를 둘러보면, 영원한 사랑을 속삭이던 신혼 초의 뜨거움(炭)이 시간이 지나면서 얼음장 같은 언행(氷)으로 바뀌어 상대의 가슴을 후벼파는 경우를 많이 본다. 가슴 뜨겁게 낳은 자식(炭)이, 뒷날 봉양 및 유산 문제로 부모 가슴에 대못을 박는 경우(氷)도 다반사고 그 반대도 수두룩하다. 아내/남편, 부모/자식 등이 모두 내가 옳니 네가 그르니 하다 서로에게 남긴 생채기들이 아닐 수 없다. 죄다 상실과 박탈감을 안겨주는 ‘빙탄상해(氷炭相害)’들이다.관계라는 것은, ‘나’를 크게 내세우는 순간 어긋나게 마련이다. ‘남’을 세우되 ‘나’를 잃지 않을 때, ‘남’도 ‘나’를 세워줄 수 있는 법이다. 얼음과 숯이, 비록 다르지만 함께할 수 있는 것은, 서로를 수용하고 인정하되, 스스로의 본질을 잃지 않았기에 조화로울 수 있는 것처럼.바야흐로 5월은 가정의 달이다. 어린이날, 어버이날 등 가족의 소중함을 한껏 되새겨 보는 날들로 가득한 달이다. 이러한 5월에, 주변의 소중한 이들을 가슴 따뜻하게 껴안는 빙탄상‘애(愛)’의 의미를 한번 깊이 되새겨 보면 어떨까? 서로 생채기내면서 허무히 소멸되는 빙탄상‘해(害)’대신에 말이다.

2019-05-09

평등교육과 자사고 폐지

서의호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최근 미국 일간지가 미국 사립고교 랭킹을 발표했다. 미국은 사립고교 입학 경쟁이 치열한 나라다. 학군제로 운영되지만 공립고교 랭킹도 존재한다. 뿐만아니라 주별로 때로는 도시별로도 고교랭킹을 보도하기도 한다. 대학랭킹은 이보다 더 치열하게 보도된다. 경영학석사인 MBA 대학 랭킹과 법학전문대학원 로스쿨(Law School)의 랭킹은 졸업후 연봉과도 직결된다.경쟁이 있는 곳에 랭킹이 있고 그러한 경쟁은 생산성을 높인다는 것은 경제학 제1장에 쓰여 있다. 사회주의 지상주의라는 중국이나 심지어 북한도 명문학교가 존재한다. 중국의 명문교 입학 경쟁은 치열한 것으로 세계적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최근 자율형사립고(자사고)를 둘러싼 사태는 이러한 논리를 어리둥절하게 만든다. 서울시교육청이 자사고의 존폐 여부를 가름하는 운영성과 평가를 한창 진행하는 가운데 서울 자사고 학부모들이 재지정 평가를 통한 자사고 폐지를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거듭 밝히고 광화문에서 대규모 시위까지 벌였다.서울시 교육청이 자사고 평가 기준을 대폭 높여 자사고 폐지를 유도하는 것에 대한 반발이다. 평가기준을 높인 이유야 간단하다. 폐지수순을 밟기 위함이고 이는 항상‘평등교육’이라고 포장되어 있다.연합회와 자사고 측은 줄곧 서울시교육청의 재지정 평가지표가 자사고에 불리하게 설정됐으며 이는 교육감 공약인 자사고 폐지를 위한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교육청은 재지정 평가 절차를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진행하겠다는 입장과 원칙을 강조하지만 평가지표의 변경과 강화의 의도가 어디에 있는지는 확연해 보인다. 자사고가 학교서열화의 주범이라는 것인데 그런 관점이라면 과학고·외국어고·국제고 등 특수목적고도 폐지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그리고 학교서열화의 득실은 무엇이고 서열화의 근본 원인이 무엇이고 그것이 고교만의 문제인가를 냉철히 살필 필요가 있다.고교의 다양성을 위해 만든 제도를 정부가 바뀌었다고 스스로 폐지하려는 발상은 왜 나오는가? 자사고는 과거 정부가 다양한 교육수요를 수용하겠다며 2010년 도입한 학교 모델로 학교의 자율성을 더 확대·발전시킨 것이다. 자사고는 학생의 학교선택권을 다양화하기 위해 고교 정부 규정을 벗어난 교육과정, 교원 인사, 학생 선발 등 학사 운영의 자율성을 최대한 보장한다. 그렇기 때문에 자사고는 정부 지원 없이 등록금과 재단 전입금으로 운영되며, 등록금은 일반고의 3배 수준까지 받을 수 있다.전국 교육청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진보 성향의 교육감들이 선거당시 공통적으로 내놓은 공약이 자사고 폐지였고 그 첫칼을 서울시에서 빼어 든 것이다. 진보성향 교육감들의 자사고 폐지의 명분은 ‘평등교육’이다. 과연 진보 교육감들의 ‘평등교육’이란 무엇인가?개인은 각각 다양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 다양한 능력에 맞는 교육을 시킬 필요가 있다. 그러한 기회를 누구에게든 부여하는 것이 평등교육의 기본 정신일 것이다. 평등교육이란 교육을 받을수 있는 기회의 평등이지 교육수준의 평등이 되어서는 안된다. 교육수준은 각각의 수준과 다양한 능력에 맞게 제공되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다양한 형태의 고교가 필요성은 간과되어서는 안 된다. 자사고의 커리큘럼을 조정한다든가 자사고와 같은 다른 형태의 수준별 고교를 만든다든가 하는 정책이 우리에게 필요한것이지 자사고 특목고들을 폐지하는 것이 평등교육은 아닐 것이다.평등교육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한다면 자사고 특목고 폐지가 우리 교육의 정답이 아님을 쉽게 알 수 있다. 올바른 평등교육에 대한 충분한 이해 없는 자사고 폐지정책은 재고 되어야 한다.

2019-05-09

유럽에선 ‘악마’로, 조선에선 ‘뇌물’로… 팔자 센 여덟다리 어류

동양에서는 문어를 즐겨 먹는다. 일본 ‘다코야키(takoyaki)’는 문어가 들어간 풀빵이다. 중국도 오래전부터 문어를 먹었다. 우리는 문어를 귀하게 여겼다. 제사상에도 오른다. 귀한 선물로도 쓰였다. 고려 시대, 목은 이색(1328~1396년)도 동해안 영일만에서 잡은 문어를 선물로 받았다.◇ 목은, 영일만의 문어를 선물로 받다‘목은고_시’의 일부다. 제목은 ‘동경(東京)의 윤공(尹公)이 전운(前韻)에 화답하면서 문어(文魚)를 보내왔기에 붓을 달려 답하다’이다. ‘윤공’이 누군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동경’은 경북 경주다. 경주에서 보낸 선물이 문어다.(전략) 적을 소탕할 땐 맹호가 양 떼를 습격하듯/(중략) 삼한이 모두 그 공적에 고개를 숙인다오/(중략)전쟁을 종식할 계기가 이제 마련됐는지라/보내오신 고기 이름도 바로 문이로구려‘윤공’에 대한 찬사다. 목은은 벼슬살이 중 큰 내란을 겪은 적이 없다. ‘윤공’은, 왜구(倭寇) 소탕 차 파견된 군대의 장수였을 가능성이 크다. 고려 말기 ‘삼한’은 극성스러운 왜구의 노략질로 고통을 당한다. 얼마나 왜구가 많았으면 가짜 왜구, 가왜(假倭)도 등장한다. ‘동경(경주) 윤공’의 ‘적’은 경상도 동남 해안가를 침략한 왜구였음을 짐작케 한다.문어(文魚)는 머리가 크다. 머리가 크니 공부를 잘한다? 그래서 문어라고 부른다는 속설이 있다. 머릿속에 먹물이 들어 있어서 문어라 부른다는 이야기도 있다. 오늘날의 포항, 감포 등 영일만 일대는 영일현이었다. 경주권이다. 경주에서 보내온 문어는 이 지역 것이었으리라. 목은은 동해 남부 지역과 인연이 깊다. 태어난 곳이 경북 영덕군 영해면 괴시마을이다.중국 ‘괴시(槐市)’의 이름을 따서 고향 이름을 괴시마을로 바꾼 이도 목은이다. 일찍이 떠났지만, 목은은 태어난 곳, 어머니의 고향을 평생 잊지 않았다. 고향 가까운 곳에서 문어를 보내왔다. 감회가 새로웠을 것이다.유럽인들은 문어를 즐겨 먹지 않는다. 스페인 요리 중에 문어를 이용한 ‘뽈보 아벨라(pulpo a feira)’가 있지만, 유럽인들에게 문어는 ‘악마의 물고기(devil fish’)다. 영화 ‘캐리비안의 해적’에 등장하는 바다 괴물도 문어의 모습이다. 대왕 문어는 배를 침몰시키기도 한다. 할리우드 영화에서 외계인은 흔히 문어의 모습이다. 민대가리에 다리가 여럿으로 괴기스럽다. 성경에 나오는 “비늘 없는 물고기는 먹지 말라”는 경구도 유럽인들이 문어를 피하는 이유가 되었을 것이다.재미있는 것은 중국인들이다. 먹는 이도 있고, 먹지 않는 이도 있다. 임진왜란 때 원병을 이끌고 조선에 왔던 이여송(李如松, 1549∼1598년)은 ‘먹지 않는 이’였다. ‘성호사설_제5권_만물문’에 나오는 ‘이여송의 문어 이야기’다.조금 후에 문어갱(文魚羹)을 올렸는데, 문어란 것은 바로 팔초어(八梢魚)다. 그런데 천장도 역시 난처한 빛을 보이고 먹지 않았다. 사람들이 전하는 말에, “이 문어는 우리나라에만 생산되는 까닭에 천장이 처음 보게 된 것이다”고 한다./ 내가 천사 동월(董越)이 지은 조선부(朝鮮賦)를 보니, 그의 자주(自註)에, “문에는 바로 중국 절강(浙江)에서 나는 망조어(望潮魚)이다.”라고 하였다./그렇다면 임진년 난리 때 이여송(李如松) 무리들은 대부분 중국 북쪽 지방의 사람인지라, 남북 거리가 동떨어지게 멀기 때문에 강회(江淮)의 어물을 보지 못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중략) ‘장거(章擧)와 석거(石距)라는 두 종류가 있다’ 하였다./(중략) 이 장거와 석거란 것은 우리나라에서 나는 문어와 낙제(絡蹄) 따위처럼 생긴 것인 듯한데, 중국서도 역시 진귀(珍貴)하게 여긴다. 낙제는 속명 소팔초어(小八梢魚)라는 것이다.이여송은 요동성 철령위 출신이다. 바다와 멀다. 생선도 귀하다. 서해안 북쪽 지역은 문어가 생산되지 않는다. 이여송은 평소 문어, 문어국을 보지도 못했을 것이다. 입맛은 보수적이다. 어린 시절 먹지 않았던 음식을 나이가 들어서 먹는 것은 힘들다.“(문어가) 우리나라에서만 생산된다”는 표현은 틀렸다. 중국인들도 문어를 좋아하고 귀하게 여겼다. 윗글에 나타나듯이, 중국 절강성의 망조어는 곧 문어다. ‘장거’는 문어, 석거는 낙지(낙제)다. 문어는 다리가 8개다. 이름이 팔초어인 이유다. 팔초어 중 작은 것, 즉 소팔초어는 낙지다.교산 허균도 ‘성소부부고_도문대작’에서 ‘문어[八帶魚]: 동해에서 난다. 중국인들이 좋아한다’라고 했다. 이여송과 달리, 중국인들 특히 남방의 바닷가 지역에서는 문어를 먹었다. 팔초어(八梢魚), 팔대어(八帶魚) 등으로 혼란스럽게 표기한 것도 재미있다.◇ 뇌물로 받은 문어 두 마리세종 14년(1432년)에는 ‘문어 선물’이 문제를 일으킨다. 시작은 강원도 고성 수령 최치의 탐학, 뇌물수수, 거짓 수사였다. 최치를 수사하면서 사건은 일파만파 번진다. 드디어 대사헌 신개(1374∼1446년)에게 불똥이 튄다. 대사헌은 종 2품, 차관급이다. 죄목은 ‘문어 두 마리 뇌물수수’다. ‘조선왕조실록’ 세종 14년(1432년) 6월 25일의 기록이다. 제목은 ‘세 의정 등과 허조 등을 불러 논의하다’이다.(전략) 치(値, 최치)의 말이 ‘문어(文魚) 두 마리를 대사헌 신개에게 주었다.’ 하고 신개는 받지 않았다고 하니, 이것은 의심할 만한 일이다. (중략) 개(신개)는 풍헌관(風憲官, 대사헌)으로 있으면서 이와 같은 일이 있었으니 세상의 여론에 어떻겠는가. 천관(遷官)시킬 것인가, 그냥 둘 것인가 하니, 정초·신상 등은 아뢰기를, “(중략) 개가 〈남의 과실을〉 규찰(糾察)하는 직임에 있으니(중략) 벼슬을 옮기는 것이 옳을 것 같습니다” 하고, 안순·허조·권진·맹사성 등은 아뢰기를, “권세 있는 사람이면 온 집안의 하인들까지가 다 세가(勢家)의 종이라는 것을 자랑하면서 혹은 남이 증여(贈與)하는 물품을 함부로 받아서 제가 사사로이 써버리는 것이 있습니다. 이러한 일은 허다하게 많습니다. 개는 용렬한 사람이 아닙니다. 어찌 남몰래 그의 뇌물을 받고는 겉으로 안 받았다고야 하겠습니까” (중략)하매, 사성 등의 의논에 따랐다.사건을 수사하는 중에 ‘피의자 고성 수령 최치’로부터 “대사헌 신개에게 문어 두 마리를 선물로 주었다”는 자백을 받아낸다. 대사헌 신개는 “절대 받지 않았다”고 결백을 주장한다. 그 사이 이 사건에 얽혀든 중앙과 지방의 관료들은 모두 용서받는다. 문제는 신개다. 대사헌이다. 남들 잘못을 들추고, 탄핵하는 것이 주요 임무다. 비록 문어 두 마리지만 가벼이 지나칠 수 없다.신하 중 일부는 ‘대사헌 신개’의 죄를 묻자고 주장한다. 맹사성 등은 반대한다. 논리가 재미있다. ‘배달 사고’다. 권력자 집안의 종이 권력자를 대신하여 뇌물을 받는 일이 흔하다고 이야기한다. 신개의 경우도 마찬가지. 최치는 신개에게 문어를 줬다고 하고, 신개는 받은 적이 없다고 한다. 문어 두 마리는? 배달부인 신개 집 하인의 배달 사고일 가능성이 크다는 이야기다.◇ 혼란스러운 돌문어와 피문어냉동, 냉장이 없던 시절이다. 공물로 올라오는 문어는 대부분 말린 문어였다. 중국으로 보내는 문어도 대부분 건문어였다. 세조 6년(1460년) 8월, 중국에 갔던 사은사 김예몽이 칙서를 가지고 온다. 칙서 내용 중에 “문어(文魚)는 다만 모든 사신이 올 때 혹은 4, 5백 마리씩 혹은 7, 8백 마리씩 바쳐 오도록 하라”는 부분이 있다. 한양 도성에서 중국까지는 최소 3개월의 거리다. 말린 문어를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희한한 음식에 관심이 많았던 연산군은 문어에 대해서도 특이한 집착을 보인다. ‘조선왕조실록’ 연산군 5년(1499년) 11월 7일의 기록에는 ‘강원도 관찰사에게 생 문어(文魚)를 잡고 그 먹일 물건을 많이 구하여 들이라고 하였다’라는 내용이 있다. 희한한 식재료를 탐하는 것은 폭군의 길이다.문어는 크게 두 종류로 나눈다. 피문어와 돌문어다. 피문어는 붉은 색깔의 문어다. 돌문어는 남해안 돌 틈에서 잡은 문어다. 삶아도 질긴 문어라서 딱딱한 돌문어라는 주장도 있지만 그렇진 않다. 피문어는 동해안 깊은 바다에서 잡는다. 크기가 크다. 대문어라고도 한다. 서, 남해안의 돌문어는 작다. 피문어, 돌문어의 맛에 대한 평가는 제각각이다. 이제 피문어, 돌문어의 구분도 혼란스럽다. 동해안인 경북 포항 호미곶의 명산품 문어는 돌문어다. 이른바 ‘호미곶 돌문어’다. 해안가 얕은 곳에서 잡는 문어다.‘경북매일’ 2017년 9월 21일 기사다. 제목은 ‘관광객 미각 사로잡는 호미곶의 돌문어’.(전략) 연 500t만 잡히는 귀한 특산물… 육질 쫄깃하고 단단/ 호미곶돌문어홍보판매센터 개장, 다양한 수산물 판매/ 포항시는 국내 최대 문어 생산지다. 특히 육질이 쫄깃하고 단단해 최고의 맛을 자랑하는 호미곶의 특산품 ‘돌문어’는 어획량 연간 500여t으로 희소가치가 매우 높고 품질이 우수하다. 이에 포항시는 최근 호미곶면 대보리에 ‘호미곶 돌문어 홍보판매센터’의 문을 열고 호미곶 특산품의 전국적인 홍보에 나섰다. (후략)-고세리 기자 /맛칼럼니스트 황광해

2019-05-08

석현 박은용과 한국화

김규종 경북대 교수·노문학누구에게나 약점이 있다. 나의 치명적인 아킬레스건은 그림이다. 수많은 인간적인 결함도 그렇지만, 지적인 능력에서 가장 부족한 것이 그림 그리는 것이다. 오죽했으면 고교 시절까지 그림숙제를 형이 대신해주었을까?! 나무나 꽃을 스케치하는 것도 힘들고, 사람이나 개와 같은 대상을 그려보면 아예 비슷하지도 않다. 내가 자신 있게 그릴 수 있는 유일한 형상은 귀신 그림이다.서두가 장황한 데에는 까닭이 있는 법. 지난 4월 30일 광주 ‘무등 공부방’에서 특별한 경험을 한 때문이다. 박종석 화가의 강연 ‘검은 고독, 푸른 영혼’을 보고 들은 것이다. 강연의 주인공은 진도에서 나고 자란 한국화가 석현 박은용(1944∼2008)이었다. 귀밑머리 세도록 들어보지 못한 박은용 화백 이야기. 6·25 전란 중에 부모와 일가친척의 참혹한 죽음을 예닐곱 나이에 겪어야 했던 비극적인 개인사로 시작한 강연.석현은 그날 이후 학살에 대해 일체 함구하고 평생을 살았지만, 그로 인한 심리적 외상(外傷)을 평생 안고 살았다 한다. 분단과 전쟁의 서슬 퍼런 상처로 굴곡진 인생살이를 살아야 했던 신산(辛酸)한 운명. 그럼에도 석현은 생의 마지막까지 붓을 놓지 않았고, 그림으로 자신의 성성한 성정과 인고의 날들을 담았다 한다. 강연제목이 ‘검은 고독, 푸른 영혼’인 연유는 거기 있다. 죽음과도 같은 절대고독 속에서 피워낸 눈 시리도록 시퍼런 영혼!한국의 미술교육이 서양에 경도되어 있었기에 나는 서양화에 익숙한 편이다. 원근법을 발견한 이후 서양화가들이 보여주는 선연한 인간 중심적인 관점이 매혹적이기도 했다. 성서와 신화의 세계 그리고 유럽인들의 일상을 화폭에 담아낸 그들의 그림은 충분히 이해 가능한 것이다. 그런 정황이 인상파 등장 이후 근본적인 변화를 경험하고, 이제 우리는 ‘포스트모던’도 낡아져버린 21세기 시공간에 거주하고 있다.서라벌예대에서 서양화를 배우고, 하루 20시간 데생에 몰두했던 석현은 어느 사품엔가 한국화로 방향을 전환한다. 강연에서 만난 석현의 그림은 가슴을 뛰게 하는 것이었다. 박종석 선생에 따르면, 석현은 적어도 2만점 이상의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그 가운데 몇 점이나 살아있는지 확인할 수 없다는 것이다. 훗날 화순의 두강마을에 정착해 혼신의 힘으로 이 나라 산야와 민초들의 나날을 따뜻한 필치로 그려낸 석현 박은용.1568년 피터 브뤼헬이 그린 ‘장님의 우화’에서 나는 루터의 종교개혁 50년 세월의 허망을 독서한다. 프랑스 군대가 마드리드 시민들을 학살하는 장면을 담은 프란치스코 고야의 ‘1808년 5월 3일’에서는 신의 부재와 냉정한 무관심을 읽는다. 피카소의 ‘게르니카’(1937)에 드러난 전쟁의 참상에도 신은 결석한다. 그래서다. 인간의 구원은 인간적인 노력과 지극한 헌신으로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까닭이. 그런데 석현의 그림은 다른 세계를 열어젖힌다.2006년에 석현이 그린 ‘귀로’를 보자. 소장수가 큰 뿔을 가진 황소 세 마리를 데리고 담배를 피우며 느긋하게 걸어간다. 그 주변에 생선꾸러미와 작은 보퉁이를 둘러맨 두 사내가 걸음을 옮긴다.‘귀로’에서 내가 주목하는 대상은 붉은색 원피스를 입은 젊은 아낙이다. 머리를 질끈 동인 그녀의 광주리에는 닭 두 마리와 오리가 들어있다. 노란 옷을 입은 아이가 평온한 얼굴로 그녀 등에 업혀 있다. 삶을 향한 그녀의 갈망은 광주리를 움켜쥔 두 손과 금방이라도 뛰어내릴 것 같은 생명들과 이목구비 뚜렷한 아이로 형상화돼 있다.‘귀로’는 한국농촌의 장날풍경과 훈훈한 정감을 소환한다. 오래도록 잊고 살았던 까까머리 소년의 어린 기억이 환하게 살아오는 환각을 본 것이다. 그래서일까?! 굳이 한국화와 동양화의 경계와 근거를 물었던 어리석음을 새삼 반추하는 까닭은!

2019-05-08

강수진의 발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발레리나 강수진의 발’사진이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발가락 마디에 울퉁불퉁 혹이 생긴 기형적인 발이었다. 하루 19시간씩, 1천 켤레의 토슈즈가 닳아 없어지기까지 모질게 연습을 한 결과로 만들어진 ‘아름다운 발’이라는 설명이었다.발이 저 지경이 되도록 지독하게 연습을 했으니 열성과 노력을 아름다움의 기준으로 삼는다면 단연 가장 아름다운 발의 하나일 것이다. 사실 가장 아름다운 발레동작을 만들어낸 발이기도 하니까.그런데 내게는 그 발이 전혀 아름답게 보이지 않는 건 왜일까. 그 의지와 노력과 열정에는 오싹 소름이 돋을 정도지만, 그것을 아름다움이나 감동이라기엔 어딘가 석연찮은 느낌이었다. 만일 누가 그 사진을 걸어 놓고, 이것이야말로 인간이 이루어야 할 최선의 가치이고 목표라고 한다면 그것은 아마도 대다수 사람들에게 희망과 용기보다는 공포와 절망감을 안겨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작금의 우리 사회는 최고지상주의가 판치는 세상이다. 어느 분야에서건 최고가 되는 것이 최선의 목표이고 가치라는 것이다. 그래서 최후의 승자에게 모든 것을 몰아준다. 하지만 절망스럽게도 최고가 되는 것은 노벨상을 받거나 올림픽 금메달을 따는 것이 그렇듯 로또복권에 당첨되는 것보다 훨씬 더 희박한 확률이다. 복권을 사본 사람은 알 것이다, 그게 얼마나 허망한 꿈인지.최고를 목표로 전력질주하다보면 차상이나 차하 아니면 다문 뭐라도 될 게 아니냐는 말은 맞는 말이다. 하지만 어차피 극소수일 수밖에 없는 최고의 자리를 최선의 가치로 규정한다는 건, 그래서 끊임없이 경쟁심을 부추긴다는 것은, 결코 최고가 될 수 없는 절대다수에겐 사실을 호도하고 왜곡하는 일이자 억압이나 폭력과 다를 게 없다.흔히들 세계적인 스포츠 스타나 인기 연예인들이 자라는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준다고 말한다. 그들이 받는 돈과 명예를 열거하면서 누구든 꿈을 가지라고 한다. 열심히 노력만 하면 누구라도 그런 자리에 오를 수 있다는 것처럼. 그래서 우리나라에는 운동선수나 연예인이 꿈이라는 청소년들이 많다고 한다.하지만 그들 중에 과연 몇이나 그런 꿈을 이룰 수가 있겠는가. 대다수 아이들이 결국 좌절하거나 포기할 수밖에 없는 꿈이라면 차라리 그런 허황한 꿈으로 생을 낭비하지 않는 게 낫지 않을까. 설령 천신만고 끝에 그런 꿈을 이루었다 한들 그게 과연 가장 바람직한 삶이고 행복일 수가 있을까. 스타덤에 오른 사람들이 오히려 일반인들보다 마약복용이나 자살과 정신질환이 더 많다는 사실이 그 답이 될 것이다.삼라만상 자연계에선 선악미추(善惡美醜)란 없다. 치열한 생존경쟁과 적자생존의 와중에서도 승패가 곧 선악이나 미추의 기준이 되지는 않는다. 승자는 승자대로 패자는 패자대로 나름의 의미와 가치를 갖는 것이 자연의 섭리다. 약하고 병든 자의 희생이 없이는 결코 강한 자도 살아남을 수가 없는 게 자연의 법칙이고. 살아남은 승자가 아름다운 것이라면 패자의 희생도 당연히 아름다운 것이다.6·25전쟁 같은 극한상황에서는 거의 없다가, 먹고 살만해진 요즘에 오히려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고 절망한 자살자가 부쩍 늘어나는 건 대개가 남들과의 비교에서 오는 상대적 박탈감이나 좌절감 때문이라고 한다. 우리 사회에 만연된 최고지상주의와 승자독식의 풍조가 초래한 현상이다. 결코 자연스러운 모습이라 할 수 없는 강수진의 발에 지나치게 의미와 가치를 부여해서 기죽고 낙담하지는 말자. 하루살이 날벌레의 목숨이라고 코끼리나 사자의 목숨보다 하찮은 게 아닌 것이 건강한 자연생태계의 모습이다. 소질도 능력도 의지도 타고나지 못한 사람도 얼마든지 아름답고 소중한 존재라는 자긍심을 가질 수 있는 사회라야 바람직한 사회다.

2019-05-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