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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명품참외와 생명문화의 행복도시 성주

이병환성주군수성주군은 전국 최고의 명품 참외 주산지며 세종이 선택한 생명의 땅이다.영남의 젖줄인 낙동강과 조선 8경이자 한국 12대 명산인 가야산의 수려함이 어우러진 천혜의 자연환경을 간직하고 있다. 한강 정구, 동강 김우옹 선생 등 수많은 유학자를 배출하고 조국 광복을 위해 항거한 심산 김창숙 선생 등 애국지사를 배출한 유림의 고장이다.중부내륙고속국도 등 사통팔달의 교통망, 대구·구미·김천시 등지와 인접해 성장 잠재력이 풍부한 살기 좋은 고장이다. 180만㎡ 규모의 성주 1, 2차 일반산업단지는 성주 발전의 마중물 역할을 하며 지역경제에 생명을 불어넣고 있어 농업과 산업이 어우러진 도농복합도시로 크게 발돋움하고 있다.아삭하고 달콤한 여름 제철 과일로 사랑받고 있는 생명의 열매 성주 참외는 전국 참외생산량의 70%를 차지하고 있다. 4천여 농가에서 3천500ha의 참외를 재배해 5천여억 원의 조수입을 올리고 있다. 세계 최고 품질의 맛과 향을 자랑하는 명품 ‘성주참외’는 맛과 향이 탁월하며 지속적인 연구개발, 엄격한 품질관리로 브랜드 경쟁력을 강화해 지역을 대표하는 특산물로서 지역경제 발전과 부자 성주 건설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성주참외는 국내시장뿐만 아니라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일본 등 해외시장 개척 등을 통해 농산물의 판로를 다양화하고 있다. 소비자 계층 확대를 위한 다양한 홍보 마케팅 전략을 시행하고 세계 수출시장 확대를 위한 지적재산권 확보, 유통망 확충 등을 통해 국내외 과일시장에서 경쟁력을 지속해서 확보해 나갈 계획이다.군은 경쟁력 있는 지역 농업 육성 및 친환경 부자농촌 건설을 위해 권역별 농산물 APC 건립과 성주군 농산물 자원순환센터 확충으로 유통혁신을 이끌고, 참외대체작물 개발, 곤충사업 발전, 6차산업과 연계한 성주형 스마트팜 시범단지 조성, 해외시장 개척 등 농업발전에 집중할 방침이다. 또한, 참외산업의 과학화와 데이터베이스화로 참외 산업 육성과 함께 농업 발전을 이끌어나갈 유망한 청년창업 농업인, 후계 농업경영인 등을 적극 육성하여 농업 조수입 1조원의 부자 성주 건설과 일류 농업의 미래를 열어가고 있다.성주군은 지역만의 독특한 자원, 역사, 문화를 활용한 관광 콘텐츠 개발로 문화관광도시로 탈바꿈하고 있다. 세종대왕자태실 유네스코 잠정목록 등재 신청, 한개마을, 성산고분군 사적정비(전시관건립) 등을 통해 ‘생명문화도시 성주’ 브랜드 창출과 심산문화테마파크 및 성주역사테마파크 조성사업도 차질없이 추진하고 있다. 특히, 지방도 903호선 가야산 순환도로 완성으로 가야산 선비산수길, 오토캠핑장, 역사신화공원 등 가야산을 중심으로 하는 체류ㆍ체험형 관광산업으로 발전시키고, 가야산-성주호-독용산성을 연계한 종합관광벨트화를 다각적으로 모색하고 있다.세계적 가치를 지닌 생활사(生活死) 생명 문화와 성주의 명물인 참외를 볼 수 있는 ‘2019 성주생명문화축제·제6회 성주참외페스티벌’이 지난 16일부터 19일까지 4일간 성밖숲 일원에서 개최됐다. 이번 축제는 세계의 명물 성주참외를 모티브로 한 참외축제를 부활함과 동시에 성주의 생명문화를 알릴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을 준비해 예년과 다른 더 특색 있고 매력적인 축제를 선보였다는 평가를 받았다.성주는 세계적 장태(藏胎) 문화의 산실인 세종대왕자태실의 생명문화를 바탕으로 특산물·전통문화·민속·관광자원 등을 종합화한 문화관광축제인 성주생명문화축제를 탄생시켰다. 특히 올해 경북도 유망축제로 선정돼 국내 유일의 생명문화 명품축제로 인정받아 성주만의 독특한 문화인 생·활·사 문화를 통해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최근 성주의 화두는 단연 남부내륙철도 성주역 유치다. 정부는 지난 1월, 국가 균형발전을 위한 국책사업으로 김천에서 거제를 잇는 남부내륙철도 건설 사업을 예비타당성 조사 면제 대상으로 발표했다. KDI(한국개발연구원) 보고서에 따르면, 역사 후보지 중 김천~합천 구간이 65km로 가장 긴 노선이지만 성주역사 건립 계획은 없다. 성주군 통과 구간에는 신호장(철도 운행을 위한 신호체계)만 설치할 것으로 알려져 사드배치로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는 군민들에게 더 큰 실망감과 상대적 박탈감을 안겨주고 있는 현실이다. 이는 정부가 경제성 논리가 아닌 국가 균형발전을 위해 예비타당성 조사 면제를 한다는 명분에 맞지 않게 경북에는 기점인 김천역 외에는 역사 건립계획이 없고 경남에만 집중(5개소)돼 국가 균형발전에 역행하고 있다.성주역 유치는 성주를 비롯한 낙후된 경북 서부권 시군과의 동반성장은 물론 경북의 발전, 나아가 국가균형 발전과 직결된다. 우리 성주는 대구를 비롯한 인근 대도시와의 접근성이 뛰어나고, 중부내륙 고속도로와 향후 건설될 동서 3축 대구~무주간 고속도로, 국도 30호선이 남부내륙철도와 연계되면 고령·칠곡·대구(달성·달서) 주민 100만명이 다 같이 이용할 수 있는 교통 요충지로서 입지를 다질 수 있다. 국립공원 가야산을 둘러싸고 있는 김천, 거창, 합천, 고령 등 5개 시·군에 35만명이 거주하고 있어, 교통 및 물류, 관광 등을 획기적으로 성장시킬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될 것이 명백하다.성주는 지난 120년 철도 오지라는 불명예를 안고 살아왔고 교통 오지로서 발전에 소외되어 왔지만 더 이상 우리 아이들에게는 그 설움을 물려주어서는 안된다. 남부내륙철도 성주역를 반드시 유치해 성주 미래 100년을 준비하는 재도약의 기틀을 마련하도록 모든 행정력을 집중하겠다.

2019-05-21

의성군 반려동물문화센터의 성공 조건

한창 공사가 진행중인 의성군 반려동물문화센터의 현장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올해 완공이 목표인 이곳은 행정구역상 경상북도의 중간에 위치하고 있는 의성군의 서북쪽인 안계면에 있다.이곳이 내년 상반기부터 전국의 반려동물 소유자들이 기대감을 가지고 방문할 수 있는 곳으로 자리매김 할 수 있을지, 예산이 낭비되는 사례로 남게 될지는 지금부터의 운영준비 과정에서 운영주체의 진정성 있는 노력과 참여하는 산학민관의 협력 여부로 결정될 것이다.의성군이 경북의 중간지점에 있긴 하지만 대구경북의 시민들이 개를 데리고 찾아갈 이유를 만들지 못하면 시설만으로는 방문객을 유치하기 힘들것이라서 방문을 유도하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콘텐츠가 개발되고 제공돼야 할 것인데, 개를 동반할 수 있는 공간이나 숙박시설들은 최근 인프라가 잘 갖춰진 가까운 곳에 민간주도로 특화된 시설들이 장점을 갖추고 운영되고 있으므로 사람들이 의성까지 와야 할 이유가 있어야 한다.비유하자면 극장을 아무리 잘 만들어둬도 재미있는 영화가 상영되지 않으면 사람들이 그 극장을 찾을 리가 없다는 것이다. 의성만이 가지는 컨텐츠의 개발과 운영이 핵심이기 때문에 시설을 만들었다고 해서 초기 운영 투자에 소극적이어서는 곤란하다.민간이 만들 수 없는 핵심적인 콘텐츠가 있어야 한다. 반려동물을 기르는 인구증가와 트랜드의 변화에 따라 반려동물과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장소가 전국에 1천여 개 정도 운영되고 있지만 공적예산을 투입해 지자체 주도로 기획된 곳은 경북에서 이곳이 처음이다. 의성 반려동물문화센터의 성공적 운영여부가 향후 다른 지자체에도 영향을 줄 것이고, 국내 반려동물 문화의 성숙을 위해서도 매우 중요하다.현재 대구경북의 반려동물 사육가구는 32만가구 정도이며, 사육인구는 80만명 정도로 추산할 수 있다.농장 등에서 길러지는 개를 제외하고 가정에서 길러지는 개는 41만마리 정도로 추정되는데, 동물보호법에 의해 의무적으로 동물등록을 하도록 하고 있으나 실제 대구경북에서의 반려동물 등록현황은 8만마리 정도로 등록대상의 20%가 되지 않는다.41만마리의 대구경북 반려견들과 함께 의성에 오고 싶도록 만들고, 의성 반려동물문화센터에 입장하려면 동물등록이 확인돼야 입장할 수 있도록 해서, 의성 반려동물 문화센터가 대구경북의 반려동물 등록률을 획기적으로 높이는데 기여할 수 있으면 좋겠다.유기견은 매년 증가하고 있고, 한해동안 전국의 버려진 반려동물들을 관리하는데 들어가는 공적예산만 112억원 이상이 든다. 국비와 의성군비로 조성되는 이곳에서 유기동물 문제해결의 근본 해법을 제시하는 운영을 기대한다.시설유지만 고려할 것이 아니라 최신기술을 도입하여 큰 비용부담없이 자발적 반려동물 등록이 가능하도록 하여 분실 및 유기방지 시스템이 도입되도록 해보면 좋겠다. 반려동물의 DNA를 활용한 등록방법과 세계 견종별 유전병 검사방법을 도입한 세계반려동물유전자 은행을 의성군과 경상북도가 한발 앞서 운영한다면 전국을 선도하는 사례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최근 강아지 비문을 핸드폰으로 등록해 개체식별을 제공하고 보험회사와 협업하는 기업이 등장했는데, 결국 개인정보를 다뤄야 하므로 한계가 있을 것이다. 법률적 근거를 마련해 의성군 반려동물문화센터가 주도해 나가면 민간이 추진하지 못하는 근본적이고 핵심적인 과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이동훈반려동물문화센터를 통해 반려동물 유기문제를 해결하는 노력을 의성군이 진행한다면 사람들의 공감을 기반으로 많은 기회를 창출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아이들을 위한 반려동물 교감교육프로그램이 체계적으로 이뤄질 필요가 있는데, 교육청과의 협력을 통해 반려동물 안전교육과 진로체험 등이 가능하도록 구성과 준비를 하고 운영은 대학의 전문인재를 활용하면 효과적일 것이다.계약학과 운영 등으로 운영자들의 전문성을 높이는 것도 필요하다. 방문객들이 재방문할 수 있도록 운영되는 컨텐츠의 개발과 운영은 결국 누가 하는 지가 핵심이다.남녀노소가 공감하는 이야기를 통해 반려동물 문화센터의 이야기가 반려동물 문화산업으로 발전할 수 있겠는데, 운영초기 과감한 기획과 운영으로 의성 반려동물문화센터가 성공적으로 운영될 수 있기를 기원한다. 반려동물은 문화동물이고, 문화컨텐츠 사업은 하이리스크 하이리턴이다./서라벌대 반려동물연구소 소장(마사과 교수)

2019-05-21

문화의 도용과 독창성

김진홍한국은행 포항본부 기획조사팀장최근 구찌(Gucci)가 발표한 새로운 디자인 하나가 논란에 휩싸이고 있다. 지난 봄 패션쇼에서 구찌는 터번형태의 모자를 선보였는데 이것이 문제가 된 것이다. 시크교에서는 시크교도의 상징이라고도 할 수 있는 이 터번이 지닌 신성한 종교적인 의미를 무시하고 구찌가 이것을 단지 패션의 한 형태로 모방 내지는 도용한 것을 비난한 것이다. 결국 이 모자는 전 세계 매장에서 품절표시 등으로 판매를 중단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구찌는 이 사건 이전에 선보였던 패션쇼에서는 흑인에 대한 ‘인종차별’적인 색채가 보인다는 비난을 받기도 하였다.이는 한 지역이나 나라의 독특한 풍습, 문화, 예술 등이 지구 반대편에 전달되기까지 짧게는 수개월 길게는 십년이 지나도 어려웠던 과거와 달리, 이제는 전 세계 구석구석까지 거의 실시간으로 연결되어 있는 것도 한 원인일 것이다. 현재는 국제적으로도 저작권법 등이 정비되어 있지만 정보 전달이 원활하지 않았던 불과 수십 년 전만 하더라도 일부 국내 대학교수들 중에는 해외의 저작물을 번역하고는 버젓이 자신의 저작물로 둔갑시키는 사례도 적지 않았다.이처럼 지식정보는 물론 문화, 예술 등 모든 분야에 걸쳐 어느 특정 지역이나 사회가 자신들만의 고유한 문화적 독창성을 보호, 유지하는 것이 쉽지 않은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그리고 다른 지역이나 다른 국가로부터 영향을 받지 않았다는 독창성을 주장하기도 쉽지 않은 시대이기도 하다. 결국 새로운 문화 사조를 받아들일 경우 얼마나 자신의 정체성을 훼손시키지 않으면서 융합시킬 수 있는 가에 문화적 도용 여부가 결정되는 것이다.포항에서는 최근 철강경기 부진이 장기화됨에 따라 철강에 더하여 지역경기를 뒷받침할 수 있는 새로운 성장 동력의 발굴에 고심하고 있다. 가속기 기반의 바이오신약산업, 이차전지산업 등이 그것이다. 이외에도 바다와 국내 최초의 도심형 운하크루즈를 중심으로 하는 해양관광산업에 대한 기대감도 부풀고 있다. 이에 따른 새로운 볼거리를 위한 아이디어도 적지 않다. 수년전에는 파리의 에펠탑을 세운다, 독도와 같은 인공 섬을 조성한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최근에는 케이블카의 설치를 추진한다고 한다.하지만 이번 구찌의 사례에서도 알 수 있듯이 우리가 벤치마크라는 미명하에 다른 지역이나 다른 나라에서 성공한 사례를 도입함에 있어 해당 지역의 산업생태나 문화적 독창성을 도외시한 채 다른 지역과 거의 흡사한 형태 그대로 도입하는 것은 경계할 필요가 있다. 후발주자가 지니는 유일한 기회이자 장점은 철저한 분석으로 선발주자가 보인 문제점에 대한 대안이 있을 때뿐이다. 그러므로 따라만 하는 것은 이른바 ‘짝퉁’에 불과할 뿐이다. 게다가 그것이 지역사회에서 오랫동안 형성된 지방색과 조화되지 못하면 더욱 관광자원으로서의 역할은 기대하기 어렵다.포항이라는 도시 자체는 비교적 신흥도시에 속한다. 하지만 서울시 면적보다 1.8배나 큰 포항의 넓은 구석구석에 흔적을 남기고 있는 향토역사는 무척 오래된 역사문화도시라 자부할 만하다. 선사시대의 고인돌, 암각화는 물론 신라비, 유배지, 서원 그리고 일제강점기 시절의 독특한 흔적들도 적지 않다. 새로운 관광테마의 도입이나 개발에 굳이 다른 지역의 사례만 찾아다닐 필요는 없다. 누가 보더라도 ‘아, 포항이구나!’라고 다른 지역에 없는 독창적인 관광시설이면 제일 좋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다른 지역의 선진사례를 도입할 때에는 최소한 외형적인 디자인에서라도 포항의 역사와 문화적 정체성을 은연중 나타내어야만 외부방문객이 관심을 가지는 관광테마의 하나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다.

2019-05-21

개정교육과정과 지방 차별

조현명시인·대동고 교사현 시행중인 2015 개정교육과정이 도입 된지 2년째다. 벌써 현 고2 학생들이 선택형과정에 들어가 있다. 그런데 학교현장의 혼란스러움은 이루 말 할 수 없다.문·이과를 폐지하고 통합과 융복합을 내세운다. 그런데 정작 과목 선택의 문제에 들어가면 문·이과 폐지라기보다는 더 수많은 계열로 세분화한 듯한 모습을 갖추고 있다. 현재 경북의 경우 자원의 제약으로 몇 개의 트랙을 나누어 교육과정을 운영할 수밖에 없는 학교가 많다. 이럴 경우 문·이과 통합이나 융복합은 의미를 잃는다. 자원이 풍부한 서울경기 일원의 학교는 다양한 교육과정을 갖추고 발 빠르게 바뀌고 있다. 이것으로 지방은 특히 경북은 학생 선택형 교육과정으로 인해 중앙과 차별되기 시작했다.진로에 대한 강요는 큰 문제점이다. 개정교육과정은 1학년에서 선택과목에 대한 안내를 하면서 진로선택을 빨리해야 유리하다고 안내한다. 대학 4학년이 되어도 진로가 정해지지 않은 학생도 많고 진로를 바꾸는 학생도 많은 우리나라에서 고1에 진로를 정하고 선택과목을 정하여 맞추라니 매우 폭력적이다. 여러 가지를 탐색해보고 체험해보면서 개척능력을 신장해가는 것이 진로교육 목표가 되어야 할 것인데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가고 있다. 진로선택과목이 학생부종합전형과 관련되어 잘못선택하면 불이익이 주어질 거라는 불안감만 늘어가고 있다.프로젝트수업이나 토론 수업 등 학생참여중심의 다양한 수업의 혁신을 가져올 것, 과정중심의 평가로 학생들의 역량을 평가하고 능력을 기르는 방향으로 갈 것, 등 긍정적으로 보이는 내용은 많으나 정작 간과되고 있는 것이 있다. 그것은 중앙과 지방의 차이와 도시와 농촌의 차이 등을 고려하지 않은 발 빠른 도입이다. 무조건 바꾸라고 해도 쉽게 바꿔지지 않는 가치와 내용이 있다.정책이 잘 정착되어 열매까지 거두려면 국민 대다수의 여건이 따라갈 최소한의 시간이 필요하다. 서울과 경기는 고교학점제를 후내년 2022년에 도입한다고 발표하였다. 그런데 지방은 전혀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맹모삼천이라는 정신이 살아 있는 우리나라에서 중앙으로 전학시키려는 부모가 많이 나올 게 뻔하다. 개정교육과정의 도입과 고교학점제의 시행으로 상당히 중앙과 지방의 차이가 심화될 것으로 보여 걱정이다.학생들을 미래 4차 산업 혁명에 대비할 융복합인재로 만들어 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당장 성숙치 못하고 부모가 해주는 것 외에는 스스로 잘 하지 못하는 것을 이끌어 주어 주체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인간으로 길러야 한다. 선택과목으로 심화교육을 하기보다 자신의 진로를 스스로 개척해나가는 힘을 길러주는 기본에 충실하도록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복잡한 시대에 교육은 더욱 단순해져야 인재를 길러 낼 여유가 생길 것이다. 세상을 이해할 문리를 틔워줄 국어 영어 수학시간을 줄이고, 선택과목 심화과목을 늘려 배우면 미래인재가 된다는 발상은 뜬구름이다. 기본교육에 충실해야 미래인재가 길러진다.또한 학교 현장의 피로도가 증가하고 있다. 현재의 시스템만 해도 교사들이 감당하기가 어려울 정도인데 새로운 교육과정이 도입되면서 교사가 더욱 어려워진다. 가르쳐야할 과목수가 늘어나고 더군다나 그 내용 또한 생소한 것들이 많아 어떤 내용을 가르쳐나가야 할지 걱정인 내용이 대다수이다. 그렇다고 교사 인원을 늘리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교육연수 또한 매우 부족한 편이다.지금까지의 교육과정에 대한 기조는 철회할 수 없다하더라도 연장선상에 있는 교교학점제 도입에는 속도 조절을 해야 한다.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부작용이 많은 정책은 오랜 준비를 거쳐 시행하지 않으면 결국 실패할 것이다.

2019-05-21

행복을 만드는 연결

1962년 1월. 탄자니아 카샤샤에 사는 야미는 열두 살 사춘기 소녀입니다. 수업을 시작했는데도 웃음을 멈추지 않는 행동을 합니다. 선생님의 주의에도 불구하고 야미는 더 크게 웃기 시작하지요. 친구들이 따라서 웃기 시작합니다.다음 날 학생들은 얼굴을 마주치자 마자 웃기 시작합니다. 웃음은 이제 옆 교실로 전염되지요. 또 옆 교실로. 학교 전체가 삽시간에 웃음 바다가 되어버립니다. 복통을 호소하듯 배를 움켜 쥐고 웃는 아이들도 있고 연신 싱글벙글 미소를 짓는 아이들, 소리를 내며 깔깔깔 웃는 아이들…. 그 누구도 이 아이들의 웃음을 멈출 수 없었습니다. 카샤샤의 한 미션 스쿨에서 발생한 이 웃음은 7주 동안이나 지속됐고 학교는 두 달 만에 문을 닫고 말았습니다. 특정 감정 상태가 마치 전염병처럼 퍼지는 사례는 수백 년 전부터 흔히 있는 일입니다. 중세 시대 14세기에는 독일의 아헨에서 갑자기 지역 주민들이 춤을 추기 시작하는 현상이 일어나기도 했지요.웃음이나 춤이 일으키는 격렬한 감정은 사람의 정서에 큰 영향을 끼칩니다. 하버드 대학의 니콜라스 크리스태키스 박사는 감정이 어떻게 전이되고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가에 대해 전문적으로 파헤치기 시작합니다. 1971년부터 2003년까지 총 1만2천67명을 추적, 연구해 발표한 결과입니다.내 친구(1단계)가 행복할 때, 내가 행복할 확률은 15%가 상승한다. 친구의 친구(2단계)가 행복할 때, 그 행복이 친구를 거쳐 나에게 전달될 확률은 10% 상승. 친구의 친구의 친구(3단계)가 행복할 때, 그 행복으로 내가 행복해질 확률은 평소보다 6% 올라간다.행복을 만드는 비결은 주위에 행복한 사람을 두는 것입니다. 좋은 사람들이 있는 곳에 나를 놓아 두는 일입니다. 훌륭한 삶을 위해 분투하고 격려가 넘치는 곳에 머물러 있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불행해지는 방법은 간단합니다. 우울한 사람, 불평 불만이 입에서 떠나지 않는 사람들이 주위에 많이 있으면 그만입니다. 사회적 연결망은 이렇게 강렬한 힘으로 공기처럼 소리없이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괴테는 이렇게 말했지요. “지금 네가 읽고 있는 책, 네가 자주 가는 곳, 네 곁에 있는 사람이 네가 누구인지 말해준다.”내가 행복하면 내 옆에 사람들이 행복해질 확률이 15% 상승합니다. 나 한사람의 행복이 내 친구의 친구를 10% 더 행복하게 만듭니다. 친구의 친구의 친구는 6%를 행복하게 하는 거죠. 내가 곧 등불입니다./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 대표

2019-05-21

위대한 미술관의 탄생,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잘 알려져 있는 것처럼 미국 뉴욕의 중심에는 100만평이 넘는 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1857년 만들어진 센트럴 파크이다. 세계 경제수도의 한 가운데 거대한 면적의 부지에 고층 빌딩들을 지었다면 경제적으로 훨씬 효용성이 높았을 텐데 휴식의 녹색공간을 마련할 생각을 했다는 것 자체가 이미 도시, 사람 그리고 자연의 관계를 단순한 경제논리로 접근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그런지 그토록 많은 차들이 거리를 가득 메움에도 불구하고 매연이 코끝을 크게 괴롭히지는 않는다. 좁은 공간에 사람들이 밀집해 살아가는 도시는 파괴적 본능을 가질 수밖에 없다.도시의 몸집이 크면 클수록 파괴의 정도와 범위가 그에 비례해 증가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뉴욕은 도심에 버티고 있는 거대한 공원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도시의 폭력성이 어느 정도 잘 다스려지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이는 도시의 지속가능성과 직결된 아주 중요한 문제이다.세계에서 가장 바쁘기로 소문난 뉴요커들은 아침저녁으로 넥타이와 하이힐을 벗어던지고 센트럴 파크를 걷고 달린다. 볕 좋은 주말을 즐기기에 센트럴 파크보다 좋은 곳은 없다. 그 많은 사람들을 동시에 담아내고서도 누구나 각자의 여유와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것은 100만평이라는 상상을 넘어선 규모 덕분이다.선진국들을 방문해 보면 자연이 있고 사람이 모이는 곳에는 어김없이 미술관이 있다.센트럴 파크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공원을 동쪽으로 접하며 뻗어 있는 그 유명한 5번가(5th Avenue)에는 ‘뮤지엄 마일’(Museum Mile)이라고 불리는 곳이 있는데, 구태여 번역하자면 ‘미술관지구’ 정도가 된다. 이곳에는 아홉 개의 미술관들이 가까운 거리에 모여 있습니다.그중에는 이름만 들어도 알 법한 메트로폴리탄미술관(1870년)과 구겐하임 미술관(1937년)도 있고 아담한 규모에 탁월한 소장품을 자랑하는 ‘프릭 컬렉션’(1935년)과 클림트의 걸작 ‘우먼 인 골드’ 등 오스트리아 미술가들의 작품을 전시하고 있는 ‘노이에 갈러리’(2001년)도 빠뜨릴 수 없다.파리에는 루브르가, 런던에는 내셔널갤러리가, 마드리드에는 프라도 미술관이 있다면 뉴욕에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이 있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이 설립된 것은 1870년인데, 믿기 어렵겠지만 처음 시작할 때는 단 한 점의 작품도 소장하고 있지 않았다.그런데 미술관이 문을 연지 149년이 지난 지금 300만 점 넘는 작품들을 소장하고 있다. 루브르가 공식적으로 밝히는 소장품의 수가 약 38만 여점이니 그 보다 10배에 달하는 엄청난 숫자이다.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은 두 개의 분관까지 함께 운영하며 로마의 바티칸 미술관을 제치고 루브르에 이어 세계에서 관람객이 가장 많이 찾는 두 번째 미술관으로 이름을 올렸다. 루브르가 프랑스 왕실의 소장품에서 출발하여 시대의 요청에 따라 공공미술관으로 다시 태어났다면, 바티칸 미술관 뒤에는 교황이라는 절대 권력의 엄청난 수집품들이 있었다. 그렇지만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은 그 시작부터 달랐다.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역사는 1866년 7월 4일 파리의 어느 레스토랑에서 시작되었다. 그날은 미국의 독립 기념일이었는데 프랑스에 거주하던 미국인 기업가들이 조국의 독립을 기억하고 축하하기 위해 회합을 가졌다.그 자리에 존 제이(John Jay)라는 인물이 외교관 자격으로 참석해 청중들 앞에서 연설을 하게 된다. 그는 미합중국이 영국으로부터 독립한지 백 년이 다 되어가지만 제대로 된 미술관하나 가지지 못한 자신들의 현실을 지적한다. 그리고 미국인들이 미술을 향유하고 수준 높은 예술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공공미술관을 지어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다.다수의 위대한 역사가 누군가의 작은 목소리에서 시작된 것처럼 메트로폴리탄미술관의 역사도 그렇게 시작되었다.수 년 간의 설득 끝에 1870년 4월 13일 뉴욕 주(州)의회는 미술관 설립을 승인했고 2년 뒤인 1872년 뉴욕 맨하튼 5번가 681번지에 문을 열었다. 임대건물에 크지 않은 규모였지만 그나마 미술관을 시작할 수 있었던 것은 철도회사를 운영하던 존 테일러(John Taylor)의 기증 덕분이었다. 테일러가 기증한 개인 소장품에서 시작된 미술관이 오늘날 세계가 인정하는 인류문명의 보고(寶庫)로 자라난 것은 기업인들의 헌신적인 나눔이 있었기 때문이다.예컨대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동편 건물에는 ‘록펠러 윙’이라는 별명이 붙어 있다. 이곳에는 아프리카나 태평양 섬 원주민들의 전통미술이 소개되고 있는데, 1969년 넬슨 A. 록펠러가 기증한 3천여 점의 작품이 토대가 되어 지금은 그 규모가 1만1천점 이상으로 늘어났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성장에 결정적으로 기여한 또 다른 인물이 있다. 금융회사리먼 브라더스의 최고경영자였던 로버트 리만이다. 1969년 로버트 리만은 세상을 떠날 때 자신이 평생토록 수집한 2천600여점의 걸작들을 모두 메트로폴리탄미술관에 기증했다. 그리고 미술관은 리만의 정신을 기리기 위해 그의 이름에서 딴 전시관 마련하여 기증 작품들을 전시하고 있다. 리만 컬렉션은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이 자랑하는 최고의 하이라이트이다.리만이 남겨준 유산들은 이탈리아 거장들의 대표작에서부터 바로크 그리고 모던 클래식으로 이어지는 서양미술사 전체의 흐름을 총망라한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은 리만의 특별한 컬렉션을 관람객들에게 가장 현장감 있게 소개하기 위해서 실제 그의 저택과 꼭 닮은 전시실을 조성하여 작품들을 전시하고 있다. 은은한 자색의 비단으로 꾸며진 따듯한 분위기의 전시실.그 한 가운데는 보기에도 안락한 소파가 놓여 있어 방문객들에게 쉼터를 마련해 준다. 여기 앉는 누구라도 마치 리만에게 초대받아 그의 아주 사적인 공간에 머물며 작품들을 감상하는 것 같은 느낌을 가질 수밖에 없다.그런데 사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이들이 정해놓은 입장료 정책이다. 이른바 ‘pay-as-you-wish’(원하는 만큼 지불하시오)라는 정책인데 공식적인 입장료를 부과하는 대신 미술관 운영을 위해 모든 방문객들의 자발적인 기부를 끌어내겠다는 획기적인 발상이다. 누구나 원하기만 한다면 부담없이 형편에 따라 미술을 즐길 수 있도록 문을 열어 놓은 것이다.이러한 입장료 정책은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숭고한 설립정신을 고이 이어가겠다는 고집이자 미술의 공적 가치를 자본의 논리로부터 지켜가겠다는 확고한 의지처럼 보인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반백년이나 이어온 이러한 전통이 재정 압박에 무릎을 꿇고 말았다.2018년 3월 1일 미술관은 입장료를 징수하겠다는 공식발표를 했다. 다만 공공기관으로서의 성격 때문에 뉴욕에 거주하는 시민들에게는 원래의 혜택이 그대로 적용된다는 단서 조항이 붙기는 했다. 책정된 입장료가 성인이 제값을 모두 주었을 때 25달러이니 적지 않은 금액이다.발 디딜 틈 없이 세계 곳곳에서 밀려드는 관람객에도 불구하고 이익은 고사하고 적자를 면치 못했다니 미술관 운영을 위해 입장료 징수를 결정한 사정이 이해가 되기도 한다.그렇더라도 50년 동안이나 방문객들의 자발적 참여를 고집해 온 것을 고려해 보면, 유료로 전환되었다고 해서 지난 정책이 반드시 실패한 것이라고 평가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개장 시간은 오전 10시이지만 이른 아침부터 신전처럼 생긴 미술관의 높은 계단을 따라 입장을 기다리는 방문객들의 길고 긴 줄이 이어져 있다. 매일 같이 벌어지는 일상적인 풍경이다. 참 부러운 풍경이다. 훌륭한 소장품으로 가득 찬 보물창고 같은 미술관이 부럽고, 그런 미술관이 가능하도록 동참한 사람들의 고귀한 정신이 부럽고, 끊임없이 찾아드는 사람들의 발길이 부러울 따름이다./김석모 포항시립미술관 학예실장

2019-05-20

입맞춤보다 강렬한 눈맞춤

반대 성격을 가진 부부가 있습니다. 남편은 실수나 잘못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아내는 남편의 잘못을 늘 지적하며 잔소리합니다. 남편은 결혼 이후 한 번도 미안하다는 말을 한 적이 없습니다.이들이 우연한 기회에 행복한 부부생활 세미나에 참석합니다. 수업을 마칠 때마다 독특한 실습을 합니다. 아무 말 하지 않고 부부가 3분 동안 서로의 눈을 바라만 보는 겁니다. 마지막 날 수업을 마칠 무렵, 신기한 일이 벌어집니다. 눈망울이 촉촉해지더니 아내의 눈을 바라보던 남편이 갑자기 눈물을 쏟기 시작한 겁니다. “미안해. 그동안 내가 미안했어. 정말 미안해.” 그 많은 잔소리에 꼼짝하지 않던 남자가 3분 눈 맞춤 실습 몇 번에 무너져 내리고 만 것입니다.눈 맞춤의 위력은 심리학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합니다. 보스톤 대학 심리학센터 연구는 남녀 한 쌍씩 짝을 지어 두 그룹으로 나눕니다. 한 그룹에게는 아무 지시를 하지 않고 대화를 2분간 나누도록 하고 다른 한 그룹은 상대방이 대화 도중 눈을 몇 번이나 깜빡 하는지 세어 보라는 지시를 내렸지요. 눈 깜박임을 헤아리기 위해 자연스레 눈을 응시할 수밖에 없었던 그룹의 남녀가 그냥 대화만을 요청받은 그룹에 비해 압도적으로 호감도와 존경심이 상승했습니다.대화할 때 평균 4초 정도 눈 맞춤을 유지한다고 합니다. 그 이후는 시선을 자꾸 딴 데로 돌리지요. 그래서 눈 맞춤 연습을 하고 싶으면 4초 후에 더 집중하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2초는 상대의 눈을 응시하고 나머지 2초는 미간을 보면 좋습니다. 이렇게 평소 누구나 할 수 있는 4초의 눈 맞춤으로 시작해 조금씩 상대의 눈을 바라보는 시간을 늘려갑니다. 8.2초의 법칙이 있습니다. 상대에 대해 호감을 느끼는 사람이 눈 맞춤을 유지하는 평균 시간이 8.2초입니다. 조금씩 눈 맞춤 시간을 늘려 9초~10초 정도 눈 맞춤을 지속할 수 있다면 서로에 대한 우호적인 마음을 제법 향상시킬 수 있지 않을까요?가장 중요한 눈 맞춤은 자신과의 눈 맞춤입니다. 하루 3분 정도 시간을 내어 거울 앞에 서 보는 겁니다. 거기 존재하는 얼굴. 두 개의 눈동자를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럽고 따뜻한 눈빛으로 바라보아 주세요. 모든 허물을 용서하는 눈 빛으로, 그동안 살아오며 받은 모든 상처를 품어주는 눈 빛으로, 앞으로 살아갈 날들 용기와 힘을 내라고 든든히 지지하는 눈 빛으로 거울 속의 그대에게 눈을 맞추어 주세요. 촉촉하게 살아갈 힘을 얻습니다./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 대표

2019-05-20

중국의 성장과 원화가치 하락

김학주 한동대 교수원화가치 하락세가 예사롭지 않다. 5월이 모건스탠리 신흥국 지수에서 한국 주식을 팔고 중국 본토주식을 사는 시기라서 수급상의 요인도 있지만 좀 더 구조적인 이유를 찾아보자.중국은 신경제의 핵심분야인 환경과 데이터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그런데 관련 핵심기술을 얻은 과정이 이색적이다. 즉 미세먼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난 10년간 엄청난 보조금을 투입해 신재생 에너지 기술을 확보했다. 또 빠르게 노령화되어 가는 인구의 질병을 예방하기 위해 건강관련 데이터를 수집했다. 고난이 기술을 선물한 셈이다.중국은 주요 11개 지역에서 태양광 및 풍력 발전이 석탄발전보다 경제성을 갖기 시작했다. 사실 중국 정부는 2023년경 이런 수준에 도달할 것으로 생각했지만 4년 먼저 실현됐다. 그렇다면 석탄과 석유관련 설비 및 가치 사슬은 예상보다 일찍 무용지물이 될 수 있다. 또한 중국은 2021년까지 전기차 생산이 늘어 석유차가 소멸되기 시작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중국의 최대 전기차 생산업체인 BYD는 이미 생산능력을 2018년 수준의 5배로 늘리고 있다. 그들은 “루비콘 강을 건넜다”고 이야기한다. 중국이 움직이면 어떤 경제라도 만들어진다. 그 만큼 규모가 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석탄, 석유 등 화석연료 수요가 줄어들면 OPEC을 비롯한 자원보유국들은 공급을 줄이는 수 밖에 없다. 그래서 동맹(cartel)이 강해진다. 그 결과 수요가 줄어듦에도 불구하고 가격이 오히려 상승하는 기이한 현상이 벌어진다.쉐일(shale) 유전을 보유한 미국도 중국이 에너지의 중심을 석유에서 전기로 돌리는 것에 기분이 상한다. 하지만 어차피 석유의 수요가 줄어든다면 미국입장에서 남의 점유율을 뺏는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중동을 건드린다고 생각한다. 이란이 목표물이다. 중동에서 긴장이 고조되면 석유 생산 및 운송의 채널이 막히게 되고, 그 만큼 미국이 쉐일오일을 더 많이 팔 수 있다. 석유관련 부가가치를 통제할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중국의 신경제에서의 약진이 지정학적 리스크를 고조시킨다. 그리고 먹이가 부족해질수록 짐승들은 사나워진다. 세계경제가 저성장으로 갈수록 이기주의가 팽배해지고, 지금처럼 무역갈등이 나타난 후 군사적 충돌로 이어지기 쉬운 환경이다. 한반도가 지정학적 리스크에 노출될 수 있는 지역임을 감안할 때 원화가치에 부정적일 것이다.한편 최근 미국과 중국의 무역갈등으로 시끄럽다. 미국이 중국산 제품에 25% 관세를 부과하면 중국은 미국에 팔지 못하는 물건을 다른 나라에 팔아야 한다. 즉 단기적으로 위안화를 절하시켜 중국산 제품의 가격경쟁력을 높인 뒤 이웃나라의 점유율을 뺏겠다는 계산이다. 한국은 일본과 달리 중국과 직접 경쟁하는 제품들이 많다. 결국 미국의 관세 압박이 우리나라에 전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중국 위안화는 중국 수출이 회복되며 다시 안정될 수 있지만 한국은 수출에서의 경쟁력을 잃으며 원화가치 절하 추세가 고착화될 수 있다.중국이 전기차를 보급하면 한국의 자동차 산업은 위협을 받을 것이다. 이처럼 중국이 만드는 신경제로 인해 아직 구경제 산업구조에 머물러 있는 한국이 취약할 수 밖에 없다. 이번 달 미국 중앙은행은 한국을 환율조작국에서 제외시킬 것 같다. 물론 우리가 미국 현지생산화를 많이 진행했고, 미국으로부터 에너지 수입을 늘려 미국에서 얻는 경상흑자가 축소된 부분도 있지만 우리의 수출경쟁력이 미국에게 걱정되지 않을 만큼 약해진 부분도 포함될 것이다.한편 중국의 성장이 지정학적 위험을 만들고, 이로 인해 달러가 강세로 간다. 또 자원보호국의 카르텔이 강해지며 에너지 가격이 동반 강세를 보인다. 이로 인해 달러로 에너지를 수입해야 하는 우리나라의 수입물가가 상승한다. 이처럼 수출이 줄고 수입물가가 상승하여 원화가치가 하락하는 악순환이 추세적으로 이어질 수 있어 우려된다.

2019-05-20

스승의 날과 스쿨미투

강희룡 서예가육조(六朝) 이래의 산문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하여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의 으뜸인 당(唐)의 대문장가인 한유(768~824)는 스승을 따라 학문을 닦아야 할 당위성을 역설한 문장인 사설(師說)을 지었다. 먼저 스승의 정의를 제시하고 다음으로 스승의 필요성과 스승 삼는 방법 등을 개진한 후에 당시에 남을 따라 배우기를 꺼렸던 잘못된 풍조를 비판하고 있다. 이러한 세태에도 불구하고 육경의 경전을 모두 익힌 이반이 자신에게 가르침을 청한 것을 기회로 이 글을 지어서 주게 됐다고 그 배경을 밝히고 있다.내용을 보면 ‘옛날의 배우는 자들은 반드시 스승이 있었으니 스승이란 도(道)를 전하고 학업을 내려 주고 의혹을 풀어주는 존재이다. 사람이 나면서부터 아는 자가 아니라면 누가 의혹이 없을 수 있겠는가. 의혹되었으면서 스승을 따르지 않는다면 그 의혹된 것은 끝내 풀리지 않게 된다.(중략), 공자가 말하기를, ‘세 사람이 길을 가는데 반드시 나의 스승이 있다.’라고 했다. 그러므로 제자가 반드시 스승만 못한 것이 아니요, 스승이 반드시 제자보다 나은 것도 아니다. 도를 들은 것에 앞뒤가 있고 학술에 전공이 있으니 이와 같을 뿐이다.’라고 정리했다.선생과 스승이란 단어를 새겨보면 선생은 학생을 가르치는 사람이나 어떤 일에 경험이 많거나 잘 아는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로 나와 있다. 스승은 자기를 가르쳐 인도하는 사람으로 배울만한 것이 있는 사람을 말한다. 스승은 배울만한 것이 있어야 비로소 스승이 된다. 이에 근거하면 학교의 교사만을 스승으로 삼을 근거는 사라진다고 보겠다. 또한 지식과 가르침을 주는 사람만이 스승이 아니다. 관계를 통해서 성장할 수 있게 했다면 그것 또한 스승이다.우리사회는 스승에 대해 감사와 존경의 마음을 표현하는 ‘스승의 날’을 정해놓고 그 의미를 새긴다. 하지만 인성이 실종된 학교 안에서 벌어지는 교권침해는 매년 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경기도교육청에 의하면 지난 15일 최근 3년간에 접수된 교원의 교권침해 현황을 보면, 학생에 의한 교권침해가 2016년 442건(95%), 2017년 467건(94%), 2018년 478건(92%)이다. 10건 중 9건 꼴로 학생들이 교권침해 가해자로 나타난 것이다. 그 유형으로는 교사에 대한 폭언과 욕설이 가장 많았으며 수업진행 방해, 교사성희롱, 폭행 등이 뒤를 이었다. 심지어 어떤 학교에서는 학부모가 학생들 앞에서 교사에게 폭언이나 멱살을 잡는 황당한 경우도 있다. 이런 실태가 아마도 경기도뿐만이 아닐 것이다.교권침해의 반면에는‘스쿨미투(학교 성폭력 등 학교미투)’가 있다. 서울에서 시작된 이 흐름은 순식간에 전국으로 번졌고, 교육당국의 방치 하에 학교 성폭력을 고발한 학생들은 2차 가해까지 시달린다는 지적도 나온다. 시민단체인 ‘정치하는 엄마들’은 스승의 날을 하루 앞두고 스쿨미투 전국지도를 공개하고 ‘가해교사는 스승의 탈을 쓰고 교권을 무너뜨리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이들은 학교성폭력 공론화를 이끌어낸 재학생이나 졸업생 고발이야말로 시대의 참스승이라고 말한다.교권과 학생인권은 대립하는 개념으로 보이지만, 교사의 교육활동이 안전하면 학생들의 학습권도 보장받을 수 있게 서로 연계되어 있다. 교사는 다른 직업보다 높은 윤리적 기준이 요구되는 직업이다. 학생과 학부모, 교사, 나아가 전 국민이 함께 학교 내 성폭력이나 위계에 의한 폭력 그리고 교권침해는 뿌리 뽑아야 할 것이다. 그것만이 교사와 학생관계의 신뢰를 회복하고 교육의 본질을 회복하는 길이다. 한유의 말처럼 단편적인 지식전달이 아니라 인성과 지성을 함께 가르치는 참스승 밑에 훌륭한 제자가 나온다. 스승의 날 폐지까지 언급되는 오늘날과 같은 불확실성 시대에 황폐해진 교단(敎壇)을 바로잡지 않으면 국가의 미래는 암울할 것이다.

2019-05-20

5·18과 공감

신희선숙명여대 기초교양대학 교수·정치학 박사“같은 시대, 같은 아픔을 겪었다면, 그리고 민주화의 열망을 함께 품고 살아왔다면 그 누구도 그 사실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2019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에 참석한 대통령 연설의 한 대목이다. 북한군 특수부대가 광주에 침투했다는 말부터 “종북좌파들이 5·18유공자라는 괴물집단을 만들어내 세금을 축내고 있다”며 사실을 왜곡하고 희생자를 모독하는 발언이 쏟아지는 가운데,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반쪽짜리 기념식을 본 듯해 씁쓸하다”고 했다. 1980년 5·18 광주를 떠올리며 드는 생각, 39년의 세월동안 우리 사회는 얼마만큼 성숙해졌을까?1980년 광주는 고립무원이었다. 당시 광주는 철저하게 외부와 차단되고 봉쇄되었다. 유언비어가 난무했고 언론은 침묵했다. 민주주의를 외치는 사람들이 공수부대의 곤봉에 의해 거리에서 죽고 다치고 행방불명이 되었다. 계엄군에 의해 인권이 유린되었던 5월 광주의 진상은 아직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다. 국회 차원의 5·18 진상규명위원회는 출범조차 못했다. 39년이 시간이 지나도록 진전이 없는 것은 일부 정치인의 빈약한 역사의식에도 기인한다.“5·18문제 만큼은 우파가 절대 물러서면 안된다”고 자유한국당 당대표로 나섰던 이는 말한다. 극우 보수층 지지를 위해 당리당략적으로 광주에 접근한다. 호남이라는 지역과 종북좌파 프레임을 엮어 광주의 진실을 왜곡하며 선동한다. 민주주의를 요구하던 시위와 투쟁을 ‘군화발로’ 짓밟으며 ‘광주사태’로 불렀던 군부정권을 지나 1997년 법정기념일로 지정되고 ‘5·18민주화운동’으로 불려지지만, 2019년 가짜뉴스와 망언들이 난무한다. 그런 점에서 40주년이 되는 내년이 아니라 올해 기념식에 참석하여 “5·18의 진실은 보수, 진보로 나뉠 수 없다”고 천명한 대통령의 메시지는 의미가 깊다.제러미 리프킨은 “공감은 사람들을 진정으로 평등한 위치에 올려놓는 유일한 인간적 표현”이라고 하였다. “한 사람의 존재가 다른 사람과 감정적으로 같은 지평 위에 있지 않으면 진정한 공감은 불가능하다. 공감은 같은 영혼이라는 공동의식이며, 그것은 사회적 신분의 구별을 초월하는 시간과 공간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영화 ‘택시운전사’만 보더라도 한강의 소설 ‘소년이 온다’만 읽더라도, 1980년 광주에서 스러진 망월동의 비명만 봐도, 아픔을 느끼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5·18 광주라는 공간의 역사를 가벼운 말로는 다할 수 없다.내년이면 5·18 민주화운동 40주년이 된다. 40세의 성숙한 중년처럼 자신의 삶과 세상에 대한 책임감 있는 자세로, 우리가 만들어온 역사와 만들어가야 할 미래를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사람은 시간에 따라 저절로 익어가지 않는다. 성찰하고 반성하며 올바른 선택과 행동을 하면서 성장하고 성숙해가는 것이다. “성공과 성장 사이, 사람의 그릇을 키울 수 있는 삶의 무기는 무엇인가?” 존 헤네시는 ‘어른은 어떻게 성장하는가’를 통해 우리에게 역설한다. 타인과 공동체 문제에 진정성을 갖고 고민하고 머리와 가슴이 함께 하는 공감의 자세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사회적으로 성공했다고 하는 국회의원들이 우리 사회 리더로 불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겸손과 진정성, 공감적 감수성이 전제되어야 한다. “이제 당신이 나를 이끌고 가기를 바랍니다. 당신이 나를 밝은 쪽으로, 빛이 비치는 쪽으로, 꽃이 핀 쪽으로 끌고 가기를 바랍니다” ‘소년이 온다’에서 한강은 빛고을 5·18 광주항쟁의 의미를 우리에게 생각해 보도록 이끈다. 광주에서 살아남은 자와 죽은 자의 입을 빌어 앞으로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말한다. 광주 시민들이 온 몸으로 지키고자 했던 가치는 39주년 기념사에서 대통령께서 강조했던 ‘자유’와 ‘민주주의’다. 우리 사회가 민주화되는 과정에서 이정표 역할을 했던 5·18 광주가 정략적 의도에 의해 더 이상 폄훼돼서는 안된다.‘공감’이 더욱 아쉬운 시대다.

2019-05-20

국제기본단위 재정의

‘세계측정의날’인 20일부터 우리가 흔히 쓰던 질량의 단위 킬로그램(㎏), 전류의 기본 단위 ‘암페어(A)’, 온도 단위 ‘켈빈(K)’, 물질의 양을 나타낸 ‘몰(㏖)’ 등의 4개 단위에 바뀐 표준이 적용된다. 이날부터 전 세계 산업계와 학계는 새롭게 정의된 단위를 사용해야 한다.산업통상자원부 국가기술표준원은 국제기본단위의 정의를 규정하고 있는 국가표준기본법 시행령을 개정하고, 국제기구 약속에 따라 20일(세계측정의 날)자로 시행한다고 밝혔다.과거에는 기본단위가 실물을 기반으로 해서 변형(질량·kg, 물질의 양·mol)이 생기거나, 특정물질에 의존하여 불안정(온도·K)했다. 애매한 표현의 사용으로 혼란을 야기(전류·A)했다.바뀐 단위 기준은 우리 일상생활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지만 마이크로 수준의 오차도 치명적인 오류로 이어질 수 있는 과학기술 분야 정부출연연구기관이나 대학·기업 연구소에는 영향을 미친다. 독성 조절 등 초정밀 측정기술을 필요로 한 제약업계나 정밀 측정이 필요한 산업계에선 일부 설비 보완이 필요한 사건이다.국제 도량학계는 1889년 백금 90%, 이리듐 10%로 구성된 높이, 지름 각각 39㎜인 원기둥 모양의 원기 일명 ‘르그랑K’를 1㎏의 국제 기준으로 정한 뒤 파리 인근 국제도량형국(BIPM) 지하 금고에 보관해 왔다.그러나 르그랑K가 130년이 다 되어 가면서 처음 만들었을 때보다 최대 100㎍(마이크로그램ㆍ100만분의 1g) 가벼워졌다. 이에 따라 도량학계는 물리상수 중 하나인 ‘플랑크 상수(h)’로 질량을 정의했다. 플랑크 상수는 빛 에너지와 파장 사이의 관계를 설명하는 양자역학 상수이자 전류 및 전압의 강도를 토대로 중량을 재는 특수저울 ‘키빌 저울’로 측정할 수 있는 불변의 자연 상수이다. 이번에 ㎏뿐 아니라 암페어(A), 켈빈(K), 몰(㏖)도 같은 물리상수인 아보가드로 상수, 기본 전하(e), 볼츠만 상수를 이용해 재정의했다.우리 역사에서도 조선시대 암행어사가 마패·봉서와 함께 도량형 통일을 위한 ‘유척’을 지니고 다녔다니 도량형의 중요성을 앞서 깨달은 선조들의 지혜에 다시 한번 놀라움을 금치못한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19-05-20

누가 진정한 강자(强者)일까?

3천년 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은 쉐펠라에서 일전을 겨루게 되지요. 먼저 공격에 나서면 불리하기 때문에 섣불리 움직이지 못하는 교착 상태에 빠지고 한참 시간이 흐릅니다.팔레스타인은 최고의 전사로 일대일 결투로 승부를 가리자고 제안합니다. 그들이 내보낸 전사는 키가 2m70㎝에 이르는 골리앗입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번쩍이는 청동 갑옷으로 무장하고 양 손에 칼과 창을 들고 있습니다. 겁에 질린 이스라엘에서는 아무도 나서지 못하지요. 어린 양치기 소년 한 명이 자원하고 나섭니다. 분노한 골리앗은 외칩니다. “내게 오라. 너의 살점을 하늘의 새와 들의 짐승에게 던져 줄 테니.”소년은 주머니에서 조약돌 하나를 꺼내 물매에 끼워 빙빙 돌리다가 정확하게 거인의 두 눈 사이 급소를 향해 돌을 날립니다. 정통으로 맞은 거인은 그 자리에서 쓰러지고 양치기는 달려가 거인의 칼을 꺼내 거인의 목을 베어버리죠. 다윗과 골리앗입니다.고대 근동지역 군대는 기병·보병·궁수병 외에 물매병이 있었습니다. 물매는 비장의 무기입니다. 1초에 약 6∼7번 회전한 후 발사하면 초속 35m쯤 되는데, 웬만한 투수가 던지는 강속구보다 더 빠른 속도입니다. 물매는 대단히 정교해서 200m 이상 떨어진 목표도 오차없이 맞출 수 있다 합니다. 다윗은 골리앗 방식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골리앗은 말단비대증을 앓고 있는 환자여서 시력이 좋지 않았습니다. 골리앗은 일대일 대결의 상식인 접근전을 기대했겠지만 다윗은 휘말리지 않았지요. 자기 강점으로 게임의 방식을 바꿉니다. 판을 뒤집어 보니 골리앗은 허점투성이의 거인일 뿐이었고 다윗은 권총만큼 강력한 무기를 지닌 셈입니다. 겉보기에 강자는 진짜 강자가 아니고 표면적 약자는 진짜 약자가 아닌 것입니다.말콤 글래드웰은 ‘다윗과 골리앗’에서 말합니다. “피할 수 없는 시련을 겪는 사람들은 그 어려움으로 인해 좋은 결과를 낼 수도 있다는 확신을 주고 싶었습니다. 큰 어려움에 직면했을 때, 그 어려움에 함몰되지 않고, 새롭게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약자의 약점에 숨겨진 아름다움과 위대함이 분명히 있는 법이니까요. 반면 강자의 강점에는 반드시 숨겨진 나약함과 한계가 있습니다. 영민하게 자신의 약점을 승화시켜 시대를 앞서가는 지혜를 구해야 합니다.”나를 초라하게 만드는 약점, 그 속에 감춰진 아름다움이 어쩌면 내 인생을 가장 빛나게 해 줄 수 있는 지고의 강점으로 변할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 대표

2019-05-19

한반도 통일 환경, 독일과는 다르다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북미 하노이 회담 이후 남북관계는 다시 경색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독일은 벌써 30년 전 1990년 10월 3일 통일을 성취했는데 우리는 아직도 분단 상태가 지속되고 있다. 흔히들 우리는 독일 통일 과정을 보고 배워야 한다고 주장한다. 독일 통일 경험을 그대로 벤치마킹해야 한다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독일은 통일 당시 환경면에서 우리와 다른 점이 너무 많았다. 독일 통일은 그들 내부 통일 역량과 국제관계라는 외부 환경을 잘 조율하고 관리하여 이룬 성과이다. 우선 한반도의 통일 환경이 독일과 다른 점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를 잘 극복 조정하는 것이 우리의 우선 통일 과제이기 때문이다.서독은 분단 시부터 영토와 인구라는 하드웨어가 동독을 압도하였다. 서독은 전후 영국, 미국, 프랑스 점령지역을 토대로 수립된 민주 정부이고, 동독은 국토의 약 3분의1도 되지 않는 소련의 점령지역에 수립한 공산 정권이다. 통일시 동독은 인구 1천600만 명이었지만 서독은 6천500만 명으로 동독에 비해 월등히 많았다. 한반도는 분단 시 영토는 북한이 남한보다 조금 크지만 인구는 남한에 비해 적었다. 현재 남한은 인구는 5천만을 조금 넘었지만 북한은 2천500만 정도 일 뿐이다. 통일시 서독은 ‘라인 강의 기적’을 통해 1인당 국민소득이 약 2만 달러가 넘었지만 동독은 그 절반에 미칠 정도였다. 현재 남한의 1인당 소득이 3만 달러인데 북한은 겨우 1천500달러로 남북 격차는 20대1이다. 분단 시 동서독의 교류 협력과 남북 간 교류협력은 차이가 많다. 서독은 연 평균 26억 달러를 동독에 지원하였다. 이는 과거 김·노 민주당 정부 10년간 지원한 액수와 맞먹는데 우리는 ‘퍼주기’ 논쟁이 계속되었다. 전 동독인들의 서독에로의 탈출은 456만6천300명이라고 추정되지만 남한 정착 탈북자는 3만2천 명 정도일 뿐이다. 분단 후 서독에서 동독으로 가는 17억8천500만 통의 편지와 소포에는 커피와 초콜릿 등이 담겼지만 남북 간에는 서신 교환마저 되지 않는다. 양독 간에는 친인척 방문과 자유 여행이 허용되었지만 한반도에는 일부 이산가족 상봉만 있을 뿐이다. 동독에는 종교가 허용되었지만 북한에는 아직도 종교의 자유가 없다. 양독 간에는 상호 방송시청과 기자단 파견이 가능했지만 남북 간에는 언론이 엄격히 상호 통제되고 있다. 서독에는 공산당이 합법화되었지만 우리는 아직도 불법화되고 있다.통일의 외교 환경이 독일과 우리는 많이 다르다. 한반도의 분단이 얄타 협정에 의한 미소 신탁통치의 소산이라면 독일의 분단은 4국의 분할 지배의 결과이다. 독일은 주변의 미·영·불 등이 유럽 통합 차원에서 독일 통일을 희망했으며 당시 소련도 동·서독의 통일에는 적극 반대하지 않았다. 그러나 한반도 주변의 상황은 완전히 다르다. 주변 4강이 한반도의 통일에 관한 입장은 이해관계가 다르기 때문이다. 양독 간에는 전쟁이 없었지만 남북 간에는 3년간의 전쟁이 있었다. 그후 미국이 자유 민주주의적 친미 통일정부를 원한다면, 중국은 사회주의적 친중 통일 정부를 바란다. 과거 서독이 당시 구소련에 경제적 지원을 통한 선린관계를 유지했다면 북미 간에는 아직도 적대적 공존이 존속되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통일 환경을 우리도 독일처럼 순기능적 환경으로 바꾸어야 한다. 소득 수준의 향상이 주민 의식을 변화시킬 것이다. 남북 경제 교류 협력을 통해 북한 주민의 소득 수준을 올리면 그들 스스로 보다 살기 좋은 체제를 선택할 것이다. 이를 위해 우리도 서독처럼 경제적 통일 역량을 강화하여야 한다. 서독은 정권 교체와는 상관없이 브란트의 동방 정책을 지속적으로 추진하였다. 우리도 화해 협력이라는 대북 정책의 기본 틀을 정권 교체와 상관없이 유지해야할 것이다. 우선 비핵화와 대북 제재라는 현안이 해결되면 북미뿐 아니라 남북 관계는 획기적으로 변화할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통일 환경의 변화를 위해 매진해야할 시점이다.

2019-05-19

아, 경험(aha experience)

김현욱 시인직장 선배가 한숨을 쉰다. 무슨 일이냐고 물었더니, 딸이 연기를 하겠다고 결심했단다. 대도시에 있는 연기학원에 딸을 데려갔다 데려와야 한단다. 듣고 보니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다.“중학교 때 연극을 시작했는데 몇 번 무대에 서고, 크고 작은 상을 받더니, 결국 이렇게 됐다.”선배는 고생도 고생이지만 하나밖에 없는 딸이 험한 가시밭길을 가려고 하는 게 안타까운 모양이었다. 나는 언젠가 읽은 매슬로우의 ‘절정경험’이 떠올랐다.“무대에서 절정경험을 했기 때문에 쉽게 포기안 할 겁니다. 원하는 대로 밀어주세요.”심리학자 아브라함 매슬로우는 절정경험을 “인간의 최상의 순간들, 삶에 있어서 가장 행복한 순간들, 황홀, 환희, 행복, 큰 기쁨 등의 경험들”이라고 말했다. 매슬로우는 이 짤막한 신비의 순간들을 자아실현의 경험으로 보았다. 왜냐하면, 그런 경험들은 삶을 가치 있게 만들고 사람들의 내적 분열, 사람 사이의 분열, 사람과 세계 간의 분열 등을 치유함으로써 삶을 정당화시키기 때문이다. 마르틴 루터는 하느님을 엄격한 존재로만 알았다. 성서를 다시 읽으면서 하느님은 ‘사랑’이라는 것을 깨닫고는 자기도 모르게 “아!”하는 탄식을 질렀다고 한다. 이것을 ‘아! 경험(aha experience)’이라고 하는데, 루터의 ‘아! 경험’은 매슬로우의 ‘절정경험’처럼 인생에서 가장 큰 기쁨을 경험하는 일이다.필자는 중학교 2학년 여름방학 때 골방에 앉아서 첫 소설을 썼다. 200자 원고지 70매쯤 되는 엉성한 단편소설이었다. 태어나서 처음 써 본 소설이었고, 끝까지 써 본 소설이었다. 한 달 동안 원고지 앞에 앉아 쓰고 지우고, 쓰고 지우고를 반복하며 알 수 없는 희열과 시간이 왜곡되는 경험을 했다. 여름방학이 끝날 무렵, 마지막 문장을 쓰고 소설에 마침표를 찍었을 때 느낀 기쁨과 성취감은 아직도 생생하다.고등학교 때는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과 이문열의 ‘사람의 아들’, 박일문의 ‘살아남은 자의 슬픔’, 박노해의 ‘노동의 새벽’같은 책을 밤새워 읽다가 창으로 새벽이 밝아오는 것을 바라보며, 커다란 행복과 환희를 느끼곤 했다.유시민의 ‘공감필법’이란 책에도 루터의 ‘아! 경험’, 매슬로우의 ‘절정경험’과 상통하는 ‘결정적 순간!’이 나온다.“여러분은 혹시 그런 경험이 있으신가요? 책 읽다 말고, 도저히 계속 읽을 수가 없어서, 읽던 책을 가슴에 댄 채 ‘아’ 하고 한숨을 내쉬는 경험 말입니다. 여자분들이 보통 그렇게 하지요. 이런 순간을 자주 경험하셔야 합니다. 감정이 너무 강하게 일어나서, 그걸 가라앉히기 전까지는 텍스트를 더 읽어갈 수 없는 그런 순간을 누리자는 겁니다. 저는 이것이 공부와 독서의 ‘결정적 순간’이라 믿습니다. 남자들은 조금 다르게 행동하더군요. 책을 가슴에 붙이는 게 아니라 읽던 페이지가 아래로 향하게 엎어둡니다. 위를 보면서 ‘후’ 내쉰 다음, 창문을 열거나 마당엔 나가서 담배를 물어요. ‘끊어야 할 텐데…….’ 이러면서요. 그렇게 감정을 추스르고서는, ‘대박이야’ 이러면서 또 책을 봅니다. 바로 이거예요. ‘결정적 순간!’ 이런 순간을 체험하지 못하는 인생은 불행한 겁니다.”긍정심리학의 대표적인 연구자인 칙센트미하이 교수는 우리의 행동과 감정을 조절할 수 있을 때, 우리는 우리 삶의 주인이 된 듯한 느낌을 경험할 수 있다고 했다. 칙센트미하이 교수는 그것을 ‘최적 경험’이라고 했는데 ‘아! 경험’, ‘절정경험’, ‘결정적 순간’과 같은 맥락이다.‘아! 경험’을 해보지 못한 사람은 불행하다. 학교와 학원을 쳇바퀴처럼 돌고 도는 우리 아이들은 언제 ‘아! 경험’을 해보나?

2019-05-19

대구 도동서원

미술사학자 유흥준 교수는 말의 마술사처럼 책을 낼 때 한마디씩 던진 말이 히트를 쳤다. 대표적인 것이 “아는 만큼 보인다”이다. 우리의 문화재를 익히고 공부하는 만큼 우리 문화재의 아름다움을 더 깊이 이해하고 더 감동적으로 마주할 수 있다는 뜻이다.그가 쓴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가 100만권 넘게 팔리는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그가 유행시킨 이 말은 많은 사람의 공감을 얻어 다른 분야에서도 폭넓게 쓰이는 표현이 된다.인생도처유상수(人生到處有上手)도 그가 지어낸 말이다. 역사를 보아도 인생을 살아보아도 저절로 되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인생 도처에는 여러 고수(高手)들이 존재하며 그 고수들로 인해 비로소 그 가치가 밝혀진다는 뜻이다. 그는 “세상이 알아주든 말든 묵묵히 그것을 지키며 살아가는 모든 필부들이 상수”라고도 했다.문화를 직접 보고 배우며 체험하면서 느낀 인생철학의 화두 같은 말이다. 이제 많은 사람이 공감하며 잘 인용하는 표현이 됐다. 그는 “국토가 박물관이다”라고 자주 표현한다. 우리 문화유산에 대한 그만의 각별한 애정이 담긴 말로 여겨진다. 한 때 영남대에 재직하며 학생들을 가르쳐 지역과도 인연이 닿은 학자이다.달성군 구지면 도동리에 소재한 도동서원이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눈앞에 두고 있다고 한다. 대구로서는 세계문화유산 등재가 처음 있는 일이라 경사가 난 셈이다. 우리나라 5대 서원의 하나며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에도 보존된 전국 47개 서원 중의 하나로 “소중한 문화재산이겠지” 정도 여겼던 도동서원이 세계문화유산 등재까지 올랐으니 대구의 자랑이 아닐 수 없다.유 교수는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서 도동서원의 최대 특징을 미적 탁월함에 있다고 해설했다. 서원 곳곳에 조각을 가미하여 아름다움을 표현한 곳은 도동서원에서 밖에 볼 수 없다고 극찬했다. 특히 도동서원을 둘러싼 기와돌담은 전국에서 유일하게 보물(제350호)로 지정, 아름다움을 인정받은 문화재라 했다. 도동서원이 마지막 관문을 통과, 세계문화유산 등재가 된다면 대구의 가치를 알리는 또 하나의 콘텐츠로 충분한 것이다./우정구(논설위원)

2019-05-19

‘성역’과 ‘우상’이 민주주의 망친다

안재휘 논설위원어느새 39년 세월이 흘렀다. 문재인 대통령은 기념사를 하는 동안 24차례나 박수를 받으며 눈시울을 붉혔고, 황교안 제1야당 대표는 우산대로 찌르려는 사람까지 나오는 살벌한 분위기에 퇴로를 열지 못해 묘지 후문 펜스를 뜯고 피신할 정도로 위협과 박대를 받았단다. 5·18 광주는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라는 말에 동의한다. 강산이 4차례나 바뀐 긴 세월이 흐르고도 아직도 진상규명이 덜 됐다고 아우성치는 목소리가 있다는 것은 참으로 난감한 일이다.광주에서 열린 5·18 민주화운동 39주년 기념식에 참석한 문재인 대통령은 울먹이는 목소리로 ‘미안하다’며 광주 시민과 1980년 당시 희생자들을 위로했다. 온갖 협박에도 ‘안 가면 더 욕먹을 것’이라는 강박관념 속에 광주행을 결행했다가 갖은 수모를 겪었던 황교안 한국당 대표는 “광주의 상처가 치유되고 시민들의 마음이 열릴 때까지, 진정성을 갖고 광주를 찾고, 광주 시민들을 만날 것”이라는 입장문을 내놨다.그동안 ‘5·18 망언’이라고 일컬어지는 구설 사태들이 있었으니, 희생자 가족을 비롯한 피해자들의 억하심정을 헤아리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다. 그 분노의 수위를 함부로 시비할 계제는 분명 아닐 것이다. 그러나 작용 반작용의 법칙에도 금기는 있다. 특히 그것이 정치적인 재단일 경우에는 충분히 냉정하고 엄격한 게 맞다.극우성향의 인사들의 단언적 주장에서 비롯된 시빗거리 중 가장 첨예한 문제는 5·18 당시 북한군 특수부대 잠입설과 5·18 유공자 중 상당수가 가짜여서 명단 공개와 진상조사가 필요하다는 견해일 것이다. 두 주장은 쌍방의 논리가 워낙 첨예하고, ‘확증편향’에 빠진 이들의 침소봉대와 확대재생산으로 인해 진실 판별이 더 어렵게 돼 버린 형국이다.생각 같아서는 똑 떨어진 증거들을 펼쳐놓고 불순하거나 어리석은 억지를 펴온 인사들을 단박에 개망신 주고 싶지만 여의치 않다. 우리는 역사에 남아 있는 수많은 의혹이 수백 년을 흘러도 여전히 논쟁 중인 경우들을 무수히 본다. 권력에 의해 논쟁 자체가 봉쇄돼 꽁꽁 묻히고 세월에 씻겨 억울하게 사라진 진실은 또 얼마이던가.진보진영이 강력하게 추진 중인 소위 ‘5·18 망언 처벌법’은 발등에 떨어진 불이다. 민주당이 민주평화당·정의당과 바른미래당 일부 의원들의 법안을 종합할 예정이란다. 개정안은 5·18민주화운동 또는 5·18단체를 비판하는 자에게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7천만원 이하의 벌금형을 처하도록 하는 끔찍한 내용을 담고 있다.한마디로, 5·18을 ‘성역’으로 떠받들어 어떤 비판적인 견해도 내놓지 못하게 막는 금법(禁法)이다. 위험하기 짝이 없다. 국민의 기본권을 제약하는 위헌적 발상일 뿐만 아니라, 필시 이 나라의 민주주의를 후퇴시킬 악법이 될 여지가 있다.그동안 1987년 KAL기 폭파나 2010년 천안함 폭침, 더 올라가서 대한민국 정부 수립이나 6·25에 대해 진보진영에서 어떤 가당찮은 담론들을 퍼트려왔는지를 반면 교사할 필요가 있다. 이슈마다 특별법 자물쇠를 채워놓고 입만 뻥긋해도 잡아넣는다면, 그게 바로 ‘독재’ 아니고 무엇이랴. 멀리 갈 것도 없이 세기적 웃음거리가 되어버린 북한의 악랄한 독재가 어떻게 기형적으로 심화돼 왔는지만 보아도 금세 알 수 있는 패착이다. 누가 뭐래도 이건 아니다.참된 자유민주주의 전통을 쌓아가려면, 그것이 역사적 사실을 부정하는 행위라 하더라도 정치적 동기를 부여해서 처벌하는 것은 절대로 안 된다. 입만 열면 ‘민주주의’를 위해서 목숨 바쳐 투쟁해왔다고 우쭐대는 진보정치인들이 요즘 정말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그들 스스로 ‘좌파독재’의 업보를 쌓아간다는 힐난을 거듭거듭 자초하는 속내란 참으로 난해하다. ‘성역’과 ‘우상’은 어김없이 민주주의를 파괴한다. 이건 안 된다.

2019-05-19

그 옛날 신라의 길을 찾아

경주에서 십여 년 동안 택시를 운전했다는 기사님도 처음 가보는 곳이라 했다. 네비게이션에 주소를 찍고 지칫지칫 좁은 길을 달려갔다. 로드뷰에도 나오지 않는 진평왕릉은 시내를 벗어나 한적한 마을의 허허벌판에 있다. 겨울이라 더욱 그렇겠지만, 인터넷에 멋들어진 사진과 함께 소개된 산책지로 좋다는 말만 믿고 왔다가는 ‘뭥미?’ 할 것 같다.진기하고 보배로운 것도 너무 많으면 평범하고 대수로울 수 있다는 것을 경주 여행을 통해 새삼 깨닫는다. 그렇다고 진기함과 보배로움이 사라질 것은 아니지만, 귀히 여기며 간직하기가 쉽지 않아진다. 진흥왕릉과 진지왕릉으로 전해지는 무덤을 보고도 그랬지만, 진평왕릉도 기대보다 작고 초라해서 실망이라기보다 안타깝다. 거의 방치되다시피 한 무덤의 주인 3명이 ‘미실’이 색공을 바친 ‘황제’였기 때문인지도 모른다.정복군주인 24대 진흥왕, 황음하여 왕좌에서 쫓겨난 25대 진지왕, 그리고 신라의 국운을 펼친 것으로 평가받는 26대 진평왕은 각각이 특별한 이야기를 지닌 왕이다. 진평왕은 무엇보다 13세에 왕위에 올라 69세에 세상을 떠날 때까지 54년에 이르는 긴 시간 동안 월성의 주인이었다는 점이 이채롭다. 98세까지 살아서 79년을 재위한 고구려의 장수왕에는 비할 수 없으나, 53년을 재위한 백제의 고이왕과 조선의 영조에 비견할 만하다. 무엇보다 신라 천년의 역사에서 가장 오랫동안 재위한 왕이었고, 그 시간만큼 업적도 많다.“내제석궁(천주사)에 행차하였는데, 돌계단을 밟으니 세 개가 한꺼번에 부러졌다. 왕이 좌우의 사람들에게 일러 말하기를 “이 돌들을 다른 곳으로 옮기지 말고 그대로 두어, 후세 사람들이 볼 수 있게 하도록 하라”했다.”‘삼국유사’에 나오는 진평왕의 일화는 키가 11척(약 3.5미터)이나 되었다는 믿거나 말거나 전설과 더불어 권력과 지배에 대한 강렬한 열망을 의미한다. 그도 그럴 것이 진평왕은 진흥왕의 손자지만 그의 아비는 임금이 되지 못하고 죽은 동륜태자다. ‘삼국사기’에 나와 있지 않은 동륜태자의 사인이 ‘화랑세기’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는데, 아버지 진흥왕의 후궁인 보명궁주와 몰래 정을 통하다가 보명궁에서 기르는 개에게 물려죽었다고 한다. 그야말로 개죽음이다. 이 대목에서 영조와 사도세자와 정조의 트라이앵글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정조가 아버지 사도세자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거의 강박적으로 노력했던 것처럼, 진평왕은 삼촌인 진지왕이 폐위하며 행운으로 오른 왕위를 허투루 여기지 않는다.콤플렉스를 품은 이들은 소리 없이 맹렬하다. 진평왕은 26세가 되던 해에 남산성을 쌓고 이어서 명활산성을 고쳐 쌓았다. 서라벌에 대한 경계를 확실히 하는 한편 백제와 고구려에 대항해 한판 벌릴 준비를 한 것이다.진평왕의 시절에는 전쟁이 끊이지 않았다. 칠숙과 석품의 반란을 비롯한 내부의 반란들 또한 그를 위협했다. 하지만 그는 무너지지 않았다. 기어이 버텨서 마침내 이긴 진평왕은 지혜로운 딸 선덕여왕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이 무덤 속에 누웠다. 여기서 멀지 않은 낭산 기슭에 선덕여왕릉이 있으니, 바람결에라도 부녀의 정담을 흔연히 나눌 수 있을 테다. 부디 고단했던 삶을 모두 잊을 만큼, 평안하시기를.‘월성 뚝방길’이라는, 이름 하나에 홀렸다. ‘비담과 김유신의 일화로 유명한 명활산성에서 보문들판 속 고즈넉한 진평왕릉으로 이어지는 뚝방길’이라는 설명도 그럴 듯했다. 물론 ‘월성 뚝방길’이 경주시 월성동에 있는 건 사실이다. 그런데 막상 가보니 우리의 월성과 너무 멀어서 의아했다. 확인해 보니 ‘월성 뚝방길’이라는 이름이 무리했는지 명칭을 ‘숲머리 뚝방길’로 바꾼 것 같다. 명활산성에서 숲머리 남촌마을 신라 제26대 진평왕릉까지 약 2km 구간의 둘레길이다.이름이야 어찌 되었든 나선 김에 걷기로 했다. 전국 어디를 가도 일종의 트레킹 코스인 ‘둘레길’을 만날 수 있다. 제주 올레길이 여행자들을 불러 모으고 북한산 둘레길이 화제가 되면서 각 지자체에서 경쟁적으로 둘레길을 조성하기 시작했다. 지리산 둘레길, 서울 두드림길, 충남 아라메길, 전북 구불길 등이 등장했고, 제주 올레길의 성공에 영감을 얻은 일본에서 로열티를 주고 수입해 가져가 큐슈 올레길을 만들었다.근래에 들어서는 둘레길이 남발되면서 지역의 관광자원을 개발한다는 명분으로 토목공사를 벌인다는 비판도 받지만, 자동차로 휙 돌아보는 관광이 아닌 도보여행 코스가 생긴다는 것 자체는 나쁘지 않다.프랑스의 사회학자 다비드 르 브루통은 ‘걷기 예찬’에서 이렇게 주장한다.“걷기는 세계를 느끼는 관능에로의 초대다. 걷는다는 것은 세계를 온전하게 경험한다는 것이다.”“걷기는 사람의 마음을 가난하고 단순하게 하고 불필요한 군더더기들을 털어낸다.”“걷는 사람은 모든 것을 다 받아들이고 모든 것과 다 손잡을 수 있는 마음으로 세상의 구불구불한 길을, 그리고 자기 자신의 내면의 길을 더듬어 간다.”이렇게 좋은 일을, 어찌 하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월성 뚝방길’, 혹은 ‘숲머리 뚝방길’은 지자체의 사업이 아니라 마을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해 정비했다고 한다. 그 사실이 나름의 의미를 갖긴 하지만 자원봉사자들의 청소와 전정 작업으로는 산책로 정비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진평왕릉에서 명활산성까지 약 1킬로미터 정도까지는 그럭저럭 산책할 만한 길의 꼴을 갖추고 있지만, 나머지 1킬로미터는 생활쓰레기와 마구 자란 나뭇가지들을 헤쳐가야 한다. 아무리 길은 걸어가면서 만들어진다지만 앞선 사람도 뒤따를 사람도 보이지 않으니 이게 과연 길인가 싶다.어쨌거나 길 끝에는 명활산성이 있을 것이다. 자비마립간 18년(475)에 월성에서 옮겨와 소지마립간 10년(488)에 다시 월성으로 돌아갈 때까지, 약 13년 동안 왕이 거주했던 성이다. 월성의 다른 이름을 재성(在城)이라 하는 것은 왕이 머무르며 거주했다는 뜻이니, 명활산성도 잠시나마 재성으로서 왕성의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다.명활산성을 언제 지었는지는 정확치 않다. ‘삼국사기’에 첫 등장이 실성이사금 4년(405) 왜병이 명활성을 공격했다는 기록인 것으로 미루어 그 이전에 축성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명활성이 월성의 동쪽에 있으며, 돌로 쌓았고 둘레가 7,818척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왕이 다급히 옮겨가야 했던 성, 머무르며 지켜야만 했던 성, 명활산성은 여전히 복원 공사가 한창이다.‘뚝방길’이 끝나고 보문단지로 건너가기 전에 오른편에 흰 돌무더기가 나타난다. 동절기 작업 중지 기간이라 빈 성에 운 좋게 들어가 보았다.입구 쪽 성벽을 작업하는 중이라 안쪽에 동네 주민들이 텃밭을 일군 흔적까지 고스란하다. 원래 명활산성의 축성 방식이 다듬지 않은 돌을 사용하는 신라 초기의 방식을 취하고 있다더니, 과연 성벽에는 크기와 모양이 다른 돌들이 서로 맞물려 쌓여있다.아래서는 정확한 성의 모양새가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산을 타고 올라가 임시로 터놓은 산길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명활산성의 쓰임새가 무엇인지 확연해진다. 산 아래 성 바깥에서 보는 모습과 산 위 성안에서 보는 모습이 확연히 다르다. 누군가의 공격에 방어하고, 또 누군가를 공격하기 위해 지어진 성이 분명하다.자비마립간이 월성을 비우면서까지 명활산성으로 몸을 옮긴 것은 백제 개로왕이 아차성에서 고구려 장수왕에게 살해된 사건과 관련된다. 이후 백제는 웅진으로 천도하고, 고구려는 죽령과 동해안으로 더욱 바싹 위협해온다.명활산성은 신문왕의 ‘호국행차길’과 이어지고, 호국행차길은 다시 동해로 이어진다. 문무대왕이 죽어 용이 되어서라도 지키고 싶었던 길, 그곳은 왜구의 침범 루트이기도 했다. 땅을 지키고, 왕국을 지키고, 그곳에서 살아가는 모든 생령을 지키기 위해 이 가파른 성이 지어진 게다. 치열한 전투 속에 수성의 깃발을 놓치지 않고 천년을 견딘 게다. 생각이 그에 이르자 마음이 아릿하다. 살아가는 것이 살아있는 것들의 본능일지니!명활산성 하면 떠오르는 사람이 비담과 김유신이다. 선덕여왕 14년(645) 상대등으로 승진한 비담은 2년 후(647) 정월에 염종과 함께 반란을 일으킨다. 은혜를 원수로 갚는다더니 반란의 명분도 “여자 임금은 나라를 잘 다스릴 수 없다”는 것이었다(그런 여자 임금한테 벼슬을 받을 때는 언제고!).선덕여왕은 월성을 지키며 방어하고, 비담의 반란군은 명활성에 주둔해 대치한다. 밀고 밀리는 공격과 방어가 10일 동안 이어지다가, 한밤중에 큰 별이 월성에 떨어지는 현상이 나타난다. 비담이 반란군에게 말했다. “내가 듣기로 별이 떨어진 아래에는 반드시 피 흘림이 있다고 하니, 이는 여자 임금이 패할 징조로다!”비담의 선동에 반란군은 사기가 충천해 환호를 지르니 그 소리가 천지에 진동했다. 선덕여왕이 공포를 느끼며 괴로워할 때 김유신이 상황을 역전시킬 묘안을 냈다. 허수아비를 만들어 불을 붙여 연에 실어 날려 보내니 마치 별이 하늘로 올라가는 것 같았다.다음날 사람들이 길가에 서서 이상한 이야기를 수군거린다. 어젯밤 떨어진 별이 다시 하늘로 올라갔다는 것이다. 김유신이 여론 조작을 위해 풀어놓은 사람들이었다. 김유신은 흰 말을 잡아 별이 떨어진 곳에서 신에게 제사를 바치며 빈다.“…하늘의 위엄으로 사람이 하려는 것에 따라 선한 이를 옳게 여기고 악한 이를 미워하시어 신(神)으로서 잘못을 하지 마시옵소서!”충격과 스트레스가 원인이 되었던지, 선덕여왕은 반란이 진압되는 것을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다. 그로부터 아흐레가 채 지나지 않아 반란 괴수 비담이 잡혀 목이 잘린다.비담의 난에 대해서는 상대등의 왕위추대운동이라는 설, 화백회의가 국왕에게 퇴위 요구를 하자 김유신을 위시한 선덕여왕측이 일으켰다는 설, 동륜태자 계열이 진지왕계에 대한 반대운동이라는 설 등등 숱한 추측이 있다.그 후로 세월이 흘러 월성은 사라지고 명활산성은 돌무더기로 남았다. 선덕여왕의 고통과 비담의 역심, 그리고 김유신의 충심이 어떤 빛깔이었는지도 시간 속에 흩어진 비밀이 되었다. 다만 힘껏 싸우고 힘껏 살았으니, 오로지 차곡차곡 쌓인 돌들만이 진실을 기억할 것이다. 사람이 기껏 할 수 있는 일은, 애당초 그리 많지 않은지도 모른다.

2019-05-19

현금으로 내는 사람

수원이라면 서울에서는 한 시간 거리다. 두어 주 전에 수원 화성 근처에 갔을 때다. 문학 하는 사람들끼리 모여 좋은 봄날에 화성 성곽 둘레길을 걸어 보자 한 것이다. 과연 아름다운 화성이었다. 정조가 임금 자리를 물려주고 상왕으로 거처하려 했다는데, 그럴 만큼 웅장하고도 수려한 성이라 할 수 있었다.봄날도 화창하고 인연 있는 사람들끼리 모처럼 만나 산책을 즐기는 것도 좋았다. 나중에는 시낭송도 했는데, 그 전에 우리 몇 사람은 먼저 자리 잡고 앉아 막걸리라도 두어 대접 마시자 했다.막걸리 사러 슈퍼에는 누가 가나? 하면 응당 나이 어린 내가 가야 하는데, 내가 먼저 커피를 샀다고 막걸리는 당신이 산다고 따라 나선 분이 계셨다.올해 초던가 작년 말이던가 건강이 안 좋아져 학교를 그만두고 양평 쪽으로 낙향해 가신 선배 시인이셨다. 이명이 심한 데다 또 어딘가 안 좋은 곳이 생겨 급기야는 몇 년 먼저 퇴직을 하신 것이다. 요즘은 향리에서 땅을 파다 보니 건강도 회복되시는 것 같다 해서 다행이라 여겨졌다.나는 막걸리라면 온 동네 막걸리를 다 먹어 본 솜씨라, 수원에도 수원 막걸리가 있는 것을 아는데, 정작 그 집에는 장수 막걸리만 있었다. 이제 돈을 내야 할 차례인데, 요즘 물건 값은 어디서도 전부 카드로 결제하기 마련이다.그분이 카드를 빼들고 얼마냐고 묻는데, 아마도 몇 천원 인가 했다. 서너 병 샀으니, 한 병에 천삼백원 정도 한다고 보면 아마도 삼천구백 원이나 사천이백 원 정도 아녔을까? 가게 주인이 막걸리 값을 말하자 그분은,어! 그러면 그건 현금으로 내야겠군요.하고 주머니를 뒤져 천 원짜리 지폐들을 꺼내 세어 내는 것이었다. 그러고는 나를 향해, 작은 돈이라 카드로 내기 미안하다고 하셨다.돈은 그분이 내서 좋았고 막걸리 든 ‘봉다리’는 내가 들고 낭송회장으로 쓰는 카페 자리로 돌아오는데 문득 생각되는 게 있다. 나도 그래야겠다는 것이었다.요즘 경기들이 좋지 않으니, 슈퍼나 편의점도 썩 잘 되지는 않을 것이다. 나도 슈퍼니 편의점에 들러 사는 것은 막걸리 등속이 고작인데, 나 편하자고 늘 ‘알바’생이나 점주에게 카드를 내밀곤 했다.현금이 돌지 않아 작은 장사를 하는 사람들이 더 힘들다고 들었건만 그건 그냥 남의 소식으로나 치부했었다. 사람이 사람을 생각한다는 것은 쉬우면서도 어려운 일이다. 또 어려우면서도 작은 것부터 쉽게 해낼 수도 있다.돌이켜 생각하면 퇴직 선배는 향리로 돌아가시지 전에도 다른 사람들 대하기를 사뭇 신중하고도 조심스러우셨고, 남의 험담 하기를 극력 꺼려하는 면모를 지니고 계셨다. 고향으로 돌아가 봄맞이로 땅을 갈아엎고 있다 하시니, 더욱 흙의 덕성을 태생적으로 가진 분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아니 들 수 없다.세상이 정의로워져야 한다고, 원칙도, 상식도 바뀌어야 한다는 목소리들이 높다. 맞는 말일 것이다. 그러나 내 생각하기에는 그런 큰 생각만으로 세상은 충분히 살만하게 되는 것 같지만은 않다. 그 빈틈들은 흙이, 흙의 부드럽고 따사로운 알갱이들이 메워 주어야 할 것이다.앞으로 현금을 자주 내는 사람이, 나도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 본다. 먼저 우리 집 앞 편의점에서부터 말이다. 봄빛 좋은 수원 화성 나들이 날이었다./방민호 서울대 국문과 교수 /삽화 = 이철진한국화가

2019-05-16

한국형 천재의 눈물

서의호 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최근 개최된 ‘서울포럼 2019’에서 과학계의 리더들은 기초연구 및 기초과학의 생태계, 그중에서도 특히 교육 분야의 혁신을 강하게 주문했다.현재와 같은 암기식 교육 중심의 중고등교육 구조에서는 과학영재가 있어도 세계적인 과학자로 육성하기 힘들고, 암기를 잘하는 인재를 키우는 방식에서 창의적 교육 시스템으로의 재설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사실상 수업시간에 필기를 잘한 학생들이 학점이 높은 대학의 현실은 심각한 문제이며, ‘시험기술자’가 성공하는 구조로 필기만 잘하는 학생에게서 창의적 연구가 나오기는 어렵고 그토록 원하는 노벨상도 나오기 힘들다는 것이다.이런 기사를 접하면서 필자는 문득 최근 서울대 신임총장으로 임명된 오세정 총장을 생각했다. 오 총장을 처음 만난 건 고교 1학년때였다. 그 시절 각 지역의 각 시도에서 1등을 해야만 들어갈 수 있는 최고 명문 고교였다. 그런데 그런 전국 각지의 쟁쟁한 수재들이 도저히 공부로는 이길 수 없었던 사람이 바로 오 총장이었다. 그는 초등학교 그리고 그 명문중고교를 내내 수석으로 다니면서 고교수석졸업-전국 대입 예비고사(지금의 대학 학력고사) 수석- 서울대 수석입학-서울대 수석 졸업의 수석 가도를 달렸다.그런데 그를 다시 만난 건 미국 스탠퍼드대학에서였다. 그는 스탠퍼드 물리학과 박사과정 자격시험에서도 수석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 어느날 그와 맥주 한잔을 기울이며 카페에서 이야기를 나눌 때 그의 입에서는 충격적인 이야기가 나왔다. 필자가 그에게 “박사학위 논문도 당연히 1등이겠지?”라고 물으니 그는 의외의 대답을 하였다 “아니, 아마도 20명의 박사학위 학생 중 중간정도 일거야”라고 답했다. 그리고 그는 이어 말했다. “난 한국의 암기식 교육의 피해자”라고 그의 눈가에는 가벼운 이슬이 맺히고 있었다.그가 미국에서 태어났다면 아마도 노벨상을 지금쯤 받지 않았을까? 그 정도로 그는 수재였고 공부를 뛰어나게 잘했기 때문이다.그러나 그가 받아온 교육은 ‘암기식’이었다. 문제를 창의적으로 풀어나가는 것이 아니라 뭐든지 외워서 써야 하고 해법을 암기하여 맞추어야 하는 전형적인 비창의적 교육을 받아왔기에 논문을 쓰는 단계에서 그의 수석의 행진은 멈추게 되었다.조그만 경험이 생각난다. 필자가 미국 대학에서 공부했을 때 미국의 수재들과 한국의 수재들의 차이점을 확연히 느낄 수 있었던 일화가 있다. 이미 알려진 해법을 통해 답을 구하는데 급급한 한국의 수재들은 해법이 없는 문제를 접하였을 때 며칠간 끙끙대다가 끝내 답을 구하지 못했다.문제를 풀지 못한 한국의 수재들은 미국의 수재들에게 해법에 대한 조언을 구했는데 그들의 대답은 간단했다. “해법이 없으면 해법을 만들어서 답을 구하면 된다.” 실제로 그들은 기존에 존재하지 않던 해법을 스스로 만드는 창의성을 발휘했으며, 그들이 새로이 제시한 해법은 몇 달 후 논문으로 출판됐다. 한국에서 수재라고 불리던 우리나라 학생들은 이러한 창의성의 차이에 부끄러움을 느꼈다.창의력은 태어날 때부터 주어진 것인가 혹은 훈련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인가에 대한 여러 논란이 있다. 결론부터 미리 말한다면 두 가지 모두가 창의력에 공헌을 할 것이다. 하지만 구태여 둘 중 비교를 한다면 창의력은 90% 정도는 훈련과 환경에 의해 더 많은 영향을 받을 것이다.어려서부터 한국에서 창의적인 환경에서의 교육이 이뤄졌다면…. 오 총장같은 천재들은 지금쯤 노벨상을 탈 수 있었을 것으로 우리는 나름 추측해 볼 수도 있을 것 같다.그가 이제 서울대학교 총장이 되었다. 이제 그가 자기가 걸어온 길을 반추하며 진정한 창의적인 교육을 시키는 대학의 수장이 되길 빌어본다. 아니 이에 앞서 한국의 초중고 교육이 그리고 대학교육이 창의적 교육의 산실이 되길 함께 빌어본다. 그래서 한국에서도 곧 첫 노벨상 수상자가 나오길!

2019-05-16

위대한 세바스찬

바닷가재가 불멸이라는 것을 아셨나요? 모든 생명체는 염색체 가닥의 양쪽 끝에 붙어 있는 텔로미어가 닳아 없어지면 죽음을 맞이합니다. 바닷가재는 ‘텔로미어’를 스스로 복구하는 능력이 있다는 것을 과학자들이 밝혔지요. 비록 생물학적 불멸의 존재입니다만 먹이사슬에서 낮은 쪽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포식자들의 먹이감으로 불멸의 바닷가재는 하나 둘 사라집니다. 상당수가 전 세계 레스토랑의 테이블에 올려지겠지요?바닷가재는 성장을 위해 익숙한 껍데기를 박차고 나옵니다. 아기 바닷가재는 손가락사이즈 껍데기에 아기의 속살을 갖고 태어납니다. 껍데기에 갇혀 더 이상 성장할 수 없는 상태가 되면 고통을 느낍니다. 바위 아래 틈새 속으로 기어 들어가 껍데기를 옷 벗듯이 벗고 빠져나옵니다. 고통과 극한의 아픔이 있지만 큰 껍데기가 몸에 돋아날 때까지 포식자의 습격이라는 공포를 견디며 인내합니다. 탈피와 성장을 반복하면서 자신의 몸을 조금씩 키워가지요. 어린 개체는 일 년에 10회, 나이가 들면서 횟수가 줄어듭니다. 어른 바닷가재는 몇 년에 한 번 새 껍데기로 갈아입습니다. 이들은 성장의 한계를 느끼면 스트레스를 거부하지 않습니다. 안주하지 않고 과감하게 자신의 익숙한 껍데기를 박차고 벗어 버립니다. 부드러운 속살, 그 무방비 상태로 묵묵히 다음 단계의 보호막이 자라기를 기다리지요. 작은 고통과 스트레스에도 움츠러들고 적당한 성취에 만족하고 안주하려는 저의 속성과 정반대의 바닷가재를 보며 숙연해집니다. 디즈니 애니메이션 인어공주에 나오는 바닷가재 세바스찬을 기억하십니까? 갇힌 껍데기 안에 안주하며 고통과 번민 속에서도 결단하지 못하고 늘 쪼그라드는 자신과 타협하는 저에게 위대한 세바시찬은 구본형의 시 한 구절을 속삭이며 응원합니다.“다시 젊음으로 되돌아간다면, 겨우 시키는 일을 하며 늙지는 않을 것이니. 아침에 일어나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사람이 되어 천둥처럼 내 자신에게 놀라워하리라. 길이 보이거든 사자의 입 속으로 머리를 처넣듯 용감하게 그 길로 돌진하여 의심을 깨뜨리고, 길이 안 보이거든 조용히 주어진 일을 할 뿐 신이 나를 어디로 데려 놓든 그곳이 바로 내가 있어야 할 곳. 위대함은 무엇을 하느냐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며 무엇을 하든 그것에 사랑을 쏟는 것이니, 내 길을 찾기 전에 한참을 기다려야 할지도 모른다. 천 번의 헛된 시도를 하게 되더라도 천한 번의 용기로 맞서리니.” (‘미치지 못해 미칠 것 같은 젊음’ 중)/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 대표

2019-05-16

여성정책 변화, 준비는 기회일 것이다

박은미 경북여성정책개발원 정책개발실장‘위기는 기회다’라는 말이 있다. ‘위기’와 ‘기회’는 다른 것이 아니라 동전의 양면과도 같다는 것이다. 19세기 영국 빅토리아 시대 번영기를 이끌었던 벤저민 디즈레일리는 “인생에서 성공하는 비밀은 다가올 시간에 대해 준비하는 것이다”로 사전 준비의 중요성을 일깨워주었다. 유비무한을 이야기한 많은 리더들도 준비를 강조했으며, 특히 미국 여성 방송인인 오프라 윈프리는 “행운이란 준비와 기회가 만나는 것이다”라고 말하여 많은 이들에게 공감을 얻었다. 이처럼 현재 삶이 고단하고 주변 환경이 척박할지라도 스스로의 실력을 착실히 쌓으면서 미래를 준비하면 좋은 기회는 반드시 찾아올 것이라고 생각한다.그렇다면 지역여성정책은 변화에 무엇을 준비하고 고민해야 하는가? 그동안 지역의 여성정책은 중앙의 여성정책 지침에 따라 일률적으로 정책을 수행하였기 때문에 여성들의 사회·경제·문화·생활 욕구를 반영한 풀뿌리 지역생활 밀착형 여성정책을 성실하게 준비하지 못한 것도 사실일 것이다. 여성에 대한 사회적 편견, 각종 성차별적 관행, 가사 및 육아에 대한 부담 등으로 인해 성별 직종분리, 그리고 성별 임금격차, 고위·관리직에의 여성진출 미약 등 경제활동의 질적인 측면에서 많은 취약점이 있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여성정책은 여성 복지의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다가 1980년대 들어 국제 사회의 압력을 받아 형성되었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 여성정책 형성 이후 사회적 구조적 변화에 따라 여성의 역할에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이에 대한 점검과 준비도 함께 생각해 보아야 한다.첫째, 가족구조의 다양화이다. 맞벌이 부부가 증가하고 이혼율이 증가하며 1인가구가 늘어나고 있으며, 다문화 가족도 증가되었다. 여성의 고령화 현상에 따른 여성노인의 사회적 소외문제도 커지고 있으며, 가족에 대한 새로운 개념 형성과 가족 간의 새로운 역할 정립과 생애주기별 맞춤형 여성정책이 필요하다. 둘째, 세계화에 따른 여성참여 확대이다. 남녀평등 사상을 보편화함으로써 양성평등이 국제사회의 주요 이슈로 등장하고 있다. 사회변화와 문화의 다양성, 더불어 전반적인 사회 민주화와 인권 문제에 관심이 커져서 보다 더 평등 의식이 확산될 것으로 판단된다. 이러한 시대를 맞이하여 보다 미래지향적이고 변화에 대응하는 여성정책 수립이 꼭 필요하다. 셋째, 제4차산업혁명시대, 여성의 역할 증대이다. 점차 남녀 간에 노동의 질적 차이가 줄어들고, 서비스 경제화가 더욱 심화될 것으로 판단된다. 단순한 관리가 아니라 개인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변화에 대응하는 조직 원리가 요구됨으로써 섬세한 지도력이 부각될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정책환경에 부응하기 위해서는 여성능력 향상과 인력 활용에 적극적인 정책을 수립하고 추진해야 한다.현재까지도 많은 정책들은 여전히 여성의 전통적 역할을 전제하거나, 전통적 역할에서 나오는 욕구에 과도하게 치중하는 경향을 보였다. 더 나아가 여성과 직접 관련된 법안, 가족 및 아동과 관련한 의제들은 성인지적인 접근이 있어야 할 뿐만 아니라 그 비율 역시 증가되어야 할 것이다. 여성인력의 활성화와 사회참여의 기회가 없이는 국가는 물론 지역사회의 경쟁력을 기대할 수가 없다고 본다. 지역발전의 원동력은 남녀가 공동으로 사회발전에 참여하고 책임을 분담하는 데 있다고 생각한다. 이를 통해서 우리 지역사회 저변의 뿌리 깊은 성별 간 차별의식과 관행을 개선하고, 성불평등과 평등전략에 대한 새로운 패러다임이 제공될 것이며, 그것은 우리 모두에게 기회일 것이다.

2019-05-16

우리 시대 선비정신

국어사전에서 설명하는 선비란 대체로 이렇다. 지식이 있고 행동과 예절이 바르고 의리와 원칙을 지키고 관직과 재물을 탐내지 않는 고결한 인품을 지닌 사람이다.조선시대의 대표적 정신으로 많은 사람이 선비정신을 들고 있다. 유교적 철학을 바탕으로 청렴결백하고 가난하게 사는 것을 옳은 일이라고 여기는 청빈낙도의 삶을 사는 조선의 지식인을 선비 상으로 보는 것이다.유교에서 도덕적으로 완성된 인격자를 일컫는 군자(君子)와는 조금은 다르다. 그러나 학덕과 높은 도덕성을 가져야 한다는 점에서는 비슷하다.역사학자 가운데는 조선 왕조가 500년 역사를 지속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선비정신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조선 왕조가 힘에 의한 패도(覇道)정치가 아닌 명분과 포용의 왕도(王道)정치를 한 결과라는 것이다. 법치보다 덕치를 우선하는 성리학적 철학이 숨은 배경이라는 의미다.경북을 흔히 선비의 고장이라 부른다. 유교적 전통과 관습이 강하게 흐르고 양반 사회를 대표하는 고택들이 많이 남아 있는 지역이기 때문이다.우리나라가 세계 유산으로 유네스코에 신청한 ‘한국의 서원’ 9곳 가운데 4군데가 경북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를 입증한다. 특히 경북 영주는 선비의 고장을 도시 브랜드로 이미지화하고 있다.우리나라 최초의 서원인 소수서원과 선비마을을 테마로 선비문화축제 행사도 매년 열고 있다. 선비의 정신이 현대사회에 와서도 추앙을 받는 이유는 간단하다. 우리 고유의 전통이란 의미를 떠나 선비정신이 가지고 있는 청렴성과 도덕적 모범성 때문이다.특히 남을 위한 살신성인의 정신과 정치를 할 때는 사리사욕에 눈이 멀지 않는 선비의 자세가 시대를 초월해 존중받고 있다는 것이다.영주시가 고귀한 선비정신을 선양하기 위해 올해 처음으로 대한민국 선비대상 후보자 공모에 나섰다고 한다. 선비사상 구현과 선비정신 실천 등에 공이 큰 사람에게 상을 준다. 물질만능에 치우쳐 상실돼 가는 우리의 도덕성 회복에 각성제 역할을 했으면 한다./우정구(논설위원)

2019-05-16

대통령의 자신감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대통령이라면 의당 그래야한다. 수많은 정치역정속에서 가까스로 가다듬은 자신의 국정철학에 확신을 갖고, 초지일관 좌고우면하지 않고 밀어붙일 줄 아는 사람이 대통령이어야 한다. 전세계 주요 강대국에 둘러싸인 반도라는 지형적 특수성에다 자원빈국으로서 수출주도형 국가이자 분단국가인 우리나라 상황에서 대통령이란 역할이 그리 쉬울 리 없다.우리나라는 오랜 세월 국왕이 통치하는 봉건제 국가를 유지해오다 우리에 비해 서양문명을 일찍 받아들인 일본제국주의의 침탈을 받고 식민지 국가로서 온갖 설움을 겪었다. 일제 치하를 벗어나기 위해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의 피땀어린 독립운동이 이어졌고, 그런 노력끝에 제2차 세계대전이 원자폭탄의 공습을 받은 일본의 항복으로 끝난 이후 민주주의 국가체제를 갖추기 시작한 지 1백년도 채 지나지 않은 나라다. 그러니 산업혁명을 거쳐 자본주의와 민주주의 체제 아래 1백년 이상 나라살림을 꾸려온 서구 열강이나 미국 등과 비교할 때 이제 겨우 밥술이나 뜨는 수준이지 정면승부할 정도의 국력을 갖추고 있지 못하다. 그런 상황에서 대통령이란 직책은 어쩌면 고난과 고뇌의 세월을 보내야할 숙명이 예정된 직책일 수 밖에 없다.오늘의 이 나라를 그나마 유지하려면 분단국가이자 정전국가인 이 나라의 평화를 확보해야 하기에 남북정상회담을 주선해 성사시켜야 했을 것이고, 별다른 지하자원 하나 없는 자원빈국이자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 사정을 생각하면 어떡하든 다른 나라와의 관계를 돈독하게 해서 수출을 늘려나가야 한다. 국내문제는 더욱 속시끄럽다. 정부여당을 견제하는 야당은 정부가 주도하는 복지정책 하나하나에 제동을 걸고, 개혁입법 하나 하려해도 과반을 넘는 의석을 갖고도 국회선진화법에 막혀 옴짝달싹하기 힘들다. 그나마 요즘은 여야4당이 서로의 이해타산이 맞아 패스트트랙으로 손발을 맞추고 있지만 궁여지책이다.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의 ‘몽니정치’에 가로막혀 적시돌파를 하지 못한다.제일 큰 문제는 먹고사는 문제다. 구호가 아무리 좋아도 먹고살기 힘들면 정치는 ‘말짱 황’이란 건 이미 학습이 끝난 명제다. 그런데 그게 쉽지않다. 민주노총 등 노동계의 지지를 받으며 탄생한 촛불정권인 문재인 정부는 ‘소득주도성장’이란 경제정책으로 노동자의 소득을 올림으로써 소비를 진작시켜 궁극적으로 국민소득을 올리겠다는 이상론적인 경제정책을 펼쳐왔다. 그러나 2년간에 걸친 정책추진 결과 여러 경제학자나 국가원로들의 진단에서 보완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쏟아지고 있다.대통령이 최고 핵심과제로 꼽은 청년 고용지표가 계속 악화되는 걸 잡지 못하고 있으니 방향선회가 필요한 시점이다. 이런 상황에서도 대통령은 소득주도성장에 대한 소신을 굽히지 않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은 최근 열린 중소기업인대회에서 “정부의 경제정책과 성과가 당장은 체감되지 않을 수 있으며, 특히 경제정책의 근본적인 변화가 안착되기에는 시간이 걸린다”면서 “통계와 현장의 온도차도 물론 있을 것이지만 총체적으로 본다면 우리 경제는 성공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강조해 주위를 놀라게 했다. 대통령의 이같은 상황인식에 대해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는 “낡아빠진 사회주의 경제에 심취해있다”라고 비난했고, 바른미래당 유승민 의원은 문 대통령을 가리켜 “달나라 사람이 아닌가”라고 비난했다.문 대통령이 이대로 내달릴 경우 임기내내 자신감이 충만하게 넘친 대통령이란 평판을 받을 것은 확실해 보인다. 그럴 경우 문 대통령은 퇴임 기자회견에서 아마, 반드시 기자들의 이같은 질문에 답을 해야 할 것이다. “집권 3년차에 경제상황이 나빠지고, 대통령이 강조하던 청년고용지표도 나빠졌을 때 경제정책 변화를 거부하고 소득주도성장을 고집한 자신감의 근거가 도대체 무엇이었습니까” 이러니 어쩌랴. 힘겹고 어려운 이 나라 대통령에게 자신감은 꼭 필요하지만 ‘과유불급’이란 금언에 한 수 접어주길 바랄 뿐이다.

2019-05-16

귀 건강 지키기

전 국민이 스마트폰에 이어폰을 꽂은 채 음악이나 뉴스를 듣는 시대에 자칫하면 귀건강을 잃을 수 있다. 특히 이어폰을 통한 잦은 음악 감상은 고막에 무리를 줄 수 있다. 실제로 이어폰을 끼고 큰 소리로 음악을 들으면 ‘소음성 난청’에 시달릴 수 있다. 그러나 현대사회에서 전화 통화를 비롯해 음악 감상, 동영상 시청 등을 떼놓고 하루의 일상을 설명할 수는 없기 때문에 이어폰을 사용하지 않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게 문제다.그렇다면 ‘60·60 법칙’을 지키며 이어폰 사용을 최대한 자제해야 한다. 이는 WHO(세계보건기구)에서 권장하는 방법으로 이어폰 이용을 ‘최대 음량 60% 이하’, ‘하루 60분 정도’로 지키는 것이다. 큰 소리에 장시간 노출될수록 청력에 악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가급적 작은 음량, 단시간으로 이어폰을 이용해야 한다. 청력은 한번 손상되면 회복이 어렵다. 따라서 올바른 생활습관을 통해 청력 관리에 신경을 쓰고, 이상을 느끼면 즉각 병원을 찾아 검사를 받는 것이 좋다. 가장 좋은 것은 큰 소음을 피하는 것이지만, 피할 수 없다면 휴식기를 가져야 한다. 이어폰으로 30분 이상 음악을 들었다면 5∼10분간 이어폰을 빼고 쉬는 것이 좋다.또 샤워를 하거나 머리를 감은 후에는 바로 이어폰을 착용하지 않는 것이 좋다. 헤어드라이어나 선풍기의 찬 바람으로 귀를 충분히 말려 건조하게 유지해야 외이도염을 방지할 수 있다. 고온다습한 여름 장마철도 외이도염이 발병하기 좋은 환경이므로 이때는 이어폰 사용을 최소화할 필요가 있다. 고무 패킹이 달린 ‘커널형(밀폐형) 이어폰’을 사용할 때는 더더욱 주의해야 한다. 고무마개가 귓속 깊숙이 파고들어 완전히 밀폐되게 만들어 세균성·진균성 염증을 유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커널형 이어폰은 고무마개를 자주 교체하고 소독용 에탄올을 활용해 닦아주는 것이 귓병 예방에 좋다. 커널형 이어폰은 고막에 직접적인 부담을 주기 때문에 소리를 간접적으로 전달하는 방식의 헤드폰을 구입해 사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작은 이어폰 하나에 귀건강이 달렸으니 주의사항을 숙지해 사용할 일이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19-05-15

벽(壁), 허물어야 하는

장규열 한동대 교수의사이며 미생물학자인 소크(Jonas Salk) 박사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50년 후에 곤충들이 사라진다면 지구가 멸망할 것이지만, 50년 후에 인간이 사라진다면 지구는 참으로 아름다운 곳이 될 것입니다.’ 왜 그렇게 이야기하였을까. 인간이 살아가는 이 땅을 살리기 보다 망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 아니었을까. 지구와 환경을 망치고 있을 뿐 아니라 사람이 모여 사는 공동체와 사회 구조마저 혼탁과 오염을 거듭하게 하여 황폐하게 만드는 실패를 반복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대로 가다가는 지구가 망가질 뿐 아니라 함께 살아가지도 못하는 더럽고 누추한 세상을 만나는 것은 아닐까. 우리는 이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지구와 인류에 해가 되기보다 도움이 되기 위하여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공부는 왜 하는가. 개인이 성공에 이르는 데 물론 힘이 되겠지만 더 배우는 까닭은 배움의 총량이 궁극적으로 세상을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게 함이 아니었을까. 전문가와 학자들은 분야마다 차고 넘치는데, 실질적인 개선과 회복에 어떤 기여들이 일어나고 있는지 의아할 따름이다. 언어학자 노암 촘스키(Noam Chomsky)가 ‘존경받는 지성인들은 그저 권력의 이해에만 복무하는 사람들이다’라며 빈정거린 것은 지식인들이 정말로 해야 할 일들을 덜 하고 있다는 따끔한 지적이 아닌가. 개선과 변화, 진보와 혁신에 도움이 될 만한 비판과 제언에 더욱 적극적이어야 함을 꼬집은 것이다. 언론이 문제라는데, 살피며 대안을 이야기하는 학자가 보이지 않는다. 사회가 병들었는데, 몰아세우며 다그치는 전문가는 어디 갔는가. 교회와 사찰이 저 모양인데 신학교와 현인들은 무엇 하는가.전문가 집단이 입을 다물고 있으니 보통 사람들이야 바람에 휘둘릴 밖에. 이 말을 들으면 그 말이 맞는 것 같고 저 말을 들으면 그 소리도 틀리지 않는다. 사회와 공동체가 나아가야 할 지향점이 온통 혼동스럽고 안개 속이다. 이웃과 대화가 없는가 했더니 이젠 가족과도 소통하지 않는 세상이 되었다. 개인은 보다 똑똑해 졌는가 싶지만 사회는 보이지 않는 벽들로 한 가득이다. 진영논리에 갇힌 사람들, 세대격차에 함몰된 사람들, 빈부양극에 짓눌린 사람들, 양성차별에 억울한 사람들, 학벌과 지연, 격차와 차별, 혐오와 차단으로 숨이 막힐 지경이다. 모두가 서로에게 적이 되어 우리 사회에는 집단적 자폐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세월이 가면 나아져야 할 터인데, 시간이 흐를수록 수렁에 처박히는 느낌은 어찌해야 하는가.드러나는 생각도 덜 깊어 보이는데, 사용하는 언어마저 저열하고 비속하다. 벽을 허물어야 하는데, 표현이 거칠면 본질에서 멀어져 감정만 상할 뿐이다. 감정이 상하면 이성으로 사고하고 판단할 가능성은 희박해 질 수 밖에. 저속한 한 마디를 뱉고 돌아서 ‘속이 시원하다’면 국민이 믿고 맡길 공복(公僕)의 자격이 있는 것일까. 동서냉전의 막바지에 미국 대통령 후보로 나섰던 부시(George Bush)는 ‘보다 친절하고 보다 부드러운 나라’가 되자고 미국인들에게 제의하였다. 악다구니 끝에 상처투성이가 되면, 이기든 지든 남는 게 없다. 선거철이 되면 똑같은 아귀다툼에 사회는 멍든 질곡을 반복할 뿐이다. 앞으로 나아가야 할 사회는 이루어야 할 목표를 잃고 부유(浮遊)할 것이 아닌가.소통이 바뀌어야 한다. 담론의 장이 넓어져야 하며 보통 사람들이 더 많이 참여해야 한다. 학자와 전문가들이 토론과 담론을 이끌어 조절과 조정에 나서야 하며, 생각과 의견이 조화롭게 적극 개진되도록 부추겨야 한다. 대화와 나눔이 활발해져야 하며, 사용하는 언어는 절제와 균형을 갖춘 격을 회복하여야 한다. 친절하고 부드러워야 막힘없는 소통이 가능해질 것이므로.

2019-05-15

동학농민혁명 기념일

김규종경북대 교수·노문학젊은 날 즐겨 불렀던 노래 가운데 ‘이 산하에’가 있다. 1894년 동학농민전쟁과 1919년 3·1운동, 1930년대 만주의 항일 무장투쟁을 내용으로 하는 3절 노래다. 형언하기 어려울 만큼 아프고 괴로웠지만, 눈부시게 빛났던 1987년 어느 여름날 새벽 거리에서 그 노래를 처음 들었다. 가사에 담긴 근현대 한국역사의 질곡과 해방을 절절하게 담아낸 ‘이 산하에’. 완창(完唱)하려면 10분도 넘게 걸리는 이 노래에 빠져든 것은 20대 청춘의 당연한 귀결이었다.유학시절 베를린 공대건물 야경꾼으로 일하러 가는 길에 나지막하게 부르곤 했던 ‘이 산하에’. 그것은 힘들고 지친 나를 위로하고, 주저앉거나 포기하는 것을 막아주는 든든한 요새이기도 했다. 귀국한 뒤에도 불렀던 노래는 제도적 민주화 성취와 평화적 정권교체 등으로 서서히 망각된다. 그러하되 언뜻언뜻 노랫말이 생각나 흥얼거렸던 ‘이 산하에’. 지난 11일 제1회 동학농민혁명 기념식이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렸다.고부군수 조병갑의 학정(虐政)과 탐욕, 가렴주구로 일어난 민란의 형태로 동학농민전쟁은 불타오른다. ‘사람이 곧 하늘이다’는 ‘인내천’ 사상으로 무장한 녹두장군 전봉준은 일개 탐관오리 조병갑의 척살(擲殺)을 넘어서는 대의를 생각한다. 제세안민(濟世安民), 축멸왜이(逐滅倭夷), 진멸권귀(盡滅權貴) 등이 그것이다. 세상을 구제하고 백성을 평안하게 하며, 왜놈 오랑캐를 몰아내 박멸하고, 권세 있는 부귀한 자들을 멸절(滅絶)시키겠다는 내용이다.전봉준을 수장으로 하는 동학농민군은 1894년 5월 11일 정읍 황토현 전투에서 관군에게 대승을 거둔다. 전봉준은 여세를 몰아 북접의 손병희와 함께 한양으로 진군한다. 그러나 동학농민군은 그해 11월 공주 인근 우금치에서 관군과 일본군 연합군에게 패배하고 전봉준은 체포되고 만다. 동학농민전쟁 시기에 발발한 청일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함으로써 조선의 운명은 백척간두에 서게 된다. 이후의 역사는 독자 여러분 모두가 아시는 바와 같다.2019년 5월 11일 기념식에서 이낙연 총리는 125년 만에 정당하게 역사적인 평가를 받은 동학농민혁명을 여러 갈래로 회고한다. 그는 동학농민혁명이 프랑스 대혁명 같은 서유럽의 근대혁명에 버금가는 대규모 민중항쟁이자 반봉건 민주주의 운동임을 밝힌다. 당시 동학농민들은 부패한 지배세력과 탐관오리의 가렴주구를 철폐하고 양반과 상민, 주인과 노비, 남자와 여자의 차별이 없는 사회를 만들려했다고 덧붙인다.이 총리는 동학농민혁명이 반외세 민족주의 운동임을 강조한다. 청일전쟁 승리를 바탕으로 경복궁을 무단 점거하고 국정을 농단하던 일본세력을 축출하려는 운동이 동학농민전쟁임을 말하는 것이다. 나아가 그는 동학농민혁명이 불붙인 민족의식을 지적한다. 기미년 3·1 만세운동의 민족대표 33인 가운데 동학교도는 15인, 그 가운데 9인이 농민전쟁 참가자였다.동학농민운동 정신은 연면부절(連綿不絶)하게 이어져 1929년 광주학생운동, 1960년 4·19혁명, 198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 1987년 6월 항쟁으로 나타난다. 국가가 누란(累卵)의 위기에 놓일 때 민초들이 동학농민들의 잠재적 후예로 출현하여 나라를 구해낸 것이다. 반외세 민족주의 운동이나 반독재 민주주의 투쟁으로 외연을 확장해온 동학농민운동. 그런 뜻깊은 역사적인 사건과 인물들을 되살려내는 작업은 우리의 어린것들과 미래를 위해서도 적실(適實)한 일이다.역사에서 배우지 못하는 개인과 사회, 공동체는 반드시 절멸한다. 패배와 실패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는 자는 끝내 파멸의 나락과 대면한다. 그것이 역사가 우리에게 내려주는 선물이다. 승리와 패배, 성공과 실패, 영광과 오욕(汚辱)은 기실 종이 한 장 차이일 뿐! 장쾌한 역사적 안목과 통찰을 가지고 우리의 어제와 오늘을 돌아보고, 내일을 기획하는 것이야말로 21세기 우리에게 부여된 역사적 사명이 아닐 수 없다.

2019-05-15

스승의 날 없는 5월 학교를!

이주형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폭풍 같은 시험이 휩쓸고 간 5월 학교! 덤불처럼 이리저리 나뒹구는 시험지들이 교실이 사막임을 증명해준다.학생들의 수많은 밤을 앗아간 시험! 휴지통에 처박힌 시험지들은 학생들의 한(恨)이 서린 몸부림을 꼭 기억하라고 시위를 하고 있다. 시험 시간이 끝나면 바로 사라지는 시험용 지식들에 우리는 왜 그토록 목숨을 거는 걸까? 불모의 땅 사막으로 변해가는 교실! 과연 우리는 사막 같은 교실에서 무엇을 가르치고, 또 무엇을 배울까? 분명한 건 지금 학교에서 자라고 있는 것은 믿음, 행복, 소통, 배려, 존중 등은 절대 아니라는 것이다.언젠가부터 교육계를 비롯한 사회는 사람들이 기대하는 것과는 정반대로 움직이고 있다. 사람들이 바라는 것은 위에 나열된 단어들이지만, 학교 현장에는 불(不)자가 전염병처럼 번지고 있다. 그래서 우리 교육계엔 불신(不信), 불행(不幸), 불통(不通), 불안(不安), 불만(不滿) 등만이 가득하다. 교육 감독 기관에서는 자유학기제, 미래역량을 키우는 학생 참여형 수업 확대, 과정중심 평가 확대 등 교육을 살리기 위해 갖은 애를 쓰고 있지만, 그 효과는 “글쎄요?”다.상처는 만질수록 덧난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은 현 우리 교육계의 상황을 두고 하는 말이다. 우리 교육계는 낯선 정책들로 큰 혼돈에 빠졌다. 어떤 정책이든 내용이 나쁜 것은 없다. 문제는 그 정책들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느냐는 것이다. 묻고 싶다, 과연 우리 교육현장은 학생 참여형 수업과 과정중심 평가 등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지?필자가 보기에는 학생들은 둘째치고라도 교사와 학부모, 우리 사회가 아직 준비가 많이 덜 된 것 같다. 말로는 학생들의 능력과 소질을 소중하게 생각한다고 하지만, 우리 사회는 아직 일류병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여전히 시험 성적으로 많은 것이 결정되는 게 우리 사회이다. 사회가 이렇다보니 학부모와 교사도 시험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어쩌면 집과 학교에서는 아이들에게 시험 공화국에서 살아남는 방법을 가르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런 학교에 무슨 희망이 있을 수 있겠는가? 이미 상당수 학부모들은 학교를 단지 졸업장을 받기 위한 통과의례 장소로밖에 생각하지 않는다. 이들에겐 학교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정말 어쩌다가 공교육이 이 지경까지 왔을까? 공교육은 심각한 문제의 늪에 빠졌다.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문제를 정확히 인지하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인식부터 잘못되었다. 그러니 제시된 해결책들은 모두 오류투성이다. 해결책이 오히려 더 큰 혼돈을 야기하는 이런 말도 안 되는 상황을 우리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반복하고 있다. 그래서 이제는 교육계의 문제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상황까지 와버렸다.그러면서 교육계는 주인을 잃고 말았다. 아니 주인이 공교육을 떠나버렸다. 주인 없는 교육계를 점령한 세력은 정치꾼들이다. 정치꾼들은 경제 논리로 교육계를 자신들의 정치 이데올로기로 난도질 하고 있다. 그들에 의해 오늘도 학교는 삭막한 정치판으로 변해가고 있다.삭막한 학교와는 달리 5월의 자연은 거리마다 아카시 향으로 가득하다. 달달한 아카시 향만으로도 사람들은 살아갈 힘을 얻는다. 그 과정에서 비록 어렵고 힘들지만, 감사의 달 5월의 의미를 생각한다. 그런데 학교는 그마저도 못한다. 정말 누구 하나 환영하지 않는 스승의 날 때문에 교사, 학생, 학부모 모두가 고통을 받고 있다. 학교 현장에서 사라진 말 중 하나가 사제(師弟)라는 말이다. 사제가 없어진 마당에 스승의 날이 과연 필요할까? 학교에 대한 불신만 키우는 스승의 날을 기념일에서 과감히 삭제하면 어떨까? 그러면 조금이라도 학교에서 숨을 쉴 수 있지 않을까? 스승의 날에만 하는 형식인 감사 인사가 아니라 평소에 교육 주체들이 서로에 대해 감사 인사를 전하는 문화를 만들면 어떨까?

2019-05-15

인디언 성인식의 지혜

조지 캐틀린은 1832년 하버드를 졸업하고 미주리 강 상류 인디언 부락을 찾습니다. 추장들의 초상화를 그려 큰 사랑을 받지요. 그의 그림은 정면에서 보면 시선도 똑바로 나를 바라보고, 왼쪽으로 옮기면 초상화 시선도 보는 이의 눈을 따라 움직입니다. 반대쪽도 마찬가지죠. 마치 살아있는 듯한 그림을 그린 덕에 인디언들은 조지 캐틀린을 마법사로 여기고 존중하며 예우합니다. 덕분에 캐틀린은 누구도 볼 수 없었던 인디언 비밀 의식(ritual)을 볼 수 있는 기회를 얻습니다. 모든 것을 기록으로 남긴 조지 캐틀린은 훗날 이 의식에서 받은 충격을 그림으로 남깁니다. 전사로 거듭나는 젊은 남자 아이들의 성인식 장면입니다.성인식이 열리기 5일 전부터 모든 음식을 끊습니다. 성인식의 출발입니다. 온 몸의 기력이 빠져나간 상태에서 이번에는 길이 40∼50㎝ 막대기를 아이들의 몸에 밀어 넣습니다. 등, 어깨, 가슴, 허리, 허벅지, 종아리 등 몸의 구석 구석에 막대기를 찔러 넣고, 공중으로 끌어올려 대롱대롱 매달아 놓습니다. 물소 해골을 하체에 꽂힌 나무 막대기에 걸쳐서 하중이 더 실리도록 만들지요.아이들이 공중에 매달려 막대기로 얻어 맞고 빙글 빙글 몸이 돌아가면 결국 정신을 잃습니다. 모든 아이들이 정신을 잃게 되면 그때 비로소 땅으로 내려지고 잠시 휴식을 취합니다. 정신이 돌아오는 즉시, 두 명의 거구의 사내들이 한 아이를 양쪽에서 붙잡고 주위를 빠른 속도로 빙글빙글 돕니다. 아이들의 몸에서 막대기가 다 빠져나올 때까지 몸을 흔드는 거죠. 이런 과정은 아이들을 완전히 파김치로 만들어 버립니다.조지 캐틀린은 말합니다. “인디언이 아이에서 전사로 거듭 태어나는 과정은 죽음을 경험하는 과정입니다. 이 경험을 통해 자신의 힘으로 무엇인가를 이루려는 욕심을 내려놓고 완전한 비움을 경험함으로써 세상 어떤 것도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를 배웁니다.”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질문은 이것이지요. “나는 어떻게 죽을 것인가?” 모든 인문학적 성찰의 시작은 죽음으로부터 시작하는 공통분모를 갖고 있습니다. 단순히 육체의 생명을 끝내는 죽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자기의 생각, 탐욕, 아집, 포기하지 않고 살아 꿈틀거리는 내 의견, 내 정당성, 자기 변명 등에 대한 철저한 죽음을 한 번 경험해 보는 것입니다. 온전한 포기, 완전한 무장해제를 내 삶에서 경험해 보는 순간, 우리는 인생에 대해 진정한 ‘성찰’을 시작할 자격을 얻게 될테니까요./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 대표

2019-05-15

오이전과 참외 장아찌… 입맛 당기는 생소한 음식들

조금은 지저분한(?) 풍경으로 오이, 참외 이야기를 시작한다.1960년대 농촌, 초가집 마당 한 귀퉁이에 거름더미가 있었다. 열 살이 되지 않았던 나는, ‘통시’에 가지 않고 거름더미에 바로 ‘응가’를 할 수 있는 특권이 있었다. 어린아이니까. 무더운 한여름의 어느 저녁. 거름더미에 응가를 했다. 며칠 후 거름더미에 싹이 돋았다. 아, 그 무렵 먹었던 참외의 씨앗. 아름다운 참외 넝쿨은 여름 내내 죽죽 뻗었다. 뿌듯한 심정으로 거름더미에서 아름답게 자라는 참외 넝쿨과 꽃을 바라봤다. 이제 곧 열매를 맺을 것이다. 샛노란 참외가 달릴 것이다. 이른 가을, 서리가 내렸다. 비실비실, 참외 넝쿨은 시들어갔다. 조그맣게 열렸던 참외는 쪼그라들었다. 내 생애 첫 참외 농사는 그렇게 허망하게 끝났다.◇ 오이는 친척이 많다참외는 진과(眞瓜)다. ‘과(瓜)’는 오이다. 진과는 참 오이, 참외다. 맛이 달다고 ‘첨과(甛瓜)’라고도 한다. 참외도 오이 종류다. 수박도 오이 종류다. 서과(西瓜)다.‘서쪽에서 온 오이’가 수박이다. 우루무치 지방은 중국의 서쪽이다. 건조하고 덥다. 포도, 수박, 참외, 살구가 모두 맛있다. 서과(西瓜)는 서과(西果)로도 표기한다. 서쪽에서 온 과일이라는 뜻이다. 서남아시아와 유럽, 아프리카 등의 문물이 우루무치를 통하여 들어온다. 실크로드 상의 도시다. 오이, 참외도 이 지역으로 들어왔을 것이다. 호과(瓠瓜)는 박이다. ‘박 오이’다. 역시 오이 중의 한 종류로 여겼다. 남과(南瓜)는 호박이다. 우리는 오키나와, 규슈 등을 ‘남(南)’ 혹은 남방(南方)으로 여겼다. 선조들은 호박이 오키나와나 규슈를 통해 들어온 것으로 여겼다.모과도 오이와 연관이 있다. 모과는 ‘목과(木瓜)’에서 유래했다. ‘나무에서 자라는 오이’쯤 된다. ‘과갈(瓜葛)’이라는 표현도 재미있다. ‘과(瓜)’는 오이, ‘갈(葛)’은 칡이다. 과갈은 오이나 칡넝쿨같이, 이리저리 무수히 얽힌 일가친척들을 이르는 표현이다.오이는 참외와 늘 헛갈린다. 예전 기록에도 참외와 오이는 혼란스럽다.“참외밭에서 신 끈을 고쳐 매지 않고, 오얏나무 밑에서 관을 바르게 하지 않는다. [瓜田不納履 李下不整冠, 과전불납리 이하부정관]”라는 말은 “군자는 오해받을 짓을 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사용된다.위나라 조식(曹植, 192∼232년)의 ‘군자행(君子行)’의 문구다. 참외밭이 아니라 오이밭이다. ‘오얏나무’도 혼란스럽다. 오얏은 자두[紫桃, 자도]다.오이는 채소, 참외는 과일로 여기지만 참외도 채소의 한 종류다. 정확하게는 과채류(果菜類)다. 옥담 이응희(1579~1651년)의 ‘옥담사집’ 만물편_소채류에서는 참외를 여러 가지로 가르고, 참외와 오이도 분간했다.참외[眞瓜] 당종과 수통은 방언이다. [唐種水筒用方言]참외란 그 이름 뜻이 있으니/그 이치를 내가 궁구할 수 있네/몸통이 짧으면 당종(唐種)이라 일컫고/몸통이 길면 수통(水筒)이라 부르지/속을 가르면 금빛 씨 흩어지고/쪼개서 먹으면 꿀처럼 달아라/품격이 온통 이와 같으니/서과(西瓜)란 말과 뜻이 같으리.당시 참외 품종 중 ‘당종’과 ‘수통’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몸통이 짧으면 당종, 길면 수통이다. 옥담은, 오이에 대해서도 정확히 표기한다. 잘 익은 오이는 누런색이다. 그래서 황과(黃瓜)다.오이[黃瓜]빈 땅에 새로 채마밭을 만들어/오이를 가꾸는 데 재미를 붙였어라/몇 촌 길이 푸른 옥이 주렁주렁/일 척 크기로 황금빛이 빛나누나/총총 썰면 전 부쳐 먹기 좋고/통째로는 김치 담그기 좋아라/무엇보다 좋은 건 더운 여름철/씹어 먹으면 답답한 가슴 시원해져.오이는, 열매를 갓 맺었을 때는 몇 촌 길이의 옥같이 푸른색이고, 다 자라고 나면 30㎝ 정도 되는 누런색이다. 언젠가 꼭 한번 보고 싶은 것이 ‘오이 전’이다. 별맛이 있을까 싶지만, 옥담이 “총총 썰어 전 부쳐 먹었다”고 하니 호기심이 든다. 옥담 시절에는 오이 전도 있었다.◇ 오이의 역사, 뿌리가 깊다.흔히 김치 이야기를 할 때 중국의 ‘오이 김치’를 이야기한다. ‘저(菹)’는 넓은 의미로 김치다. 공자(BC 551~BC 479년)가 편찬했다고 전해지는 ‘시경 소아(詩經 小雅)’ 편에 오이지가 등장한다.“밭 속에 작은 원두막[廬]이 있고, 밭두둑에 오이[瓜]가 열려 있다. 이 오이를 깎아 저(菹)를 담가 조상께 바치면 자손이 오래 살고 복을 받는다.”원두막이라고 표기한 ‘여(廬)’는 농막(農幕)이다. 농막과 원두막은 다르다. 농막은 농사를 짓기 위하여 현장에 새운 가건물이다. 원두막은 농작물을 지키기 위하여 논밭에 세운 것이다. 원두막이든 농막이든, 오이밭에 가건물을 세웠음은 이 시대에 이미 오이 농사가 널리 퍼졌음을 뜻한다. 오이의 역사는 깊고 길다. 무려 2천500년 전이다.중국 진(秦)나라 소평(邵平, 생몰년 미상)은 진나라에서 ‘동릉후(東陵侯)’의 벼슬을 지냈다. 진나라가 망하자 소평은 평민을 자처, 장안성(지금의 서안) 동쪽에 오이를 심고 생계로 삼았다. 그가 심은 오이가 오색(五色)을 띠고 맛있어서, 당시 사람들이 ‘동릉후의 오이’ 즉, ‘동릉과(東陵瓜)’라고 불렀다(사기 소상국세가). 오이는 가장 널리 재배, 사용한 작물이다. 오이는 일상사 가까이에 늘 있었다.벼슬아치들의 임기를 이를 때, ‘과년(瓜年)’ ‘과한(瓜限)’ ‘과만(瓜滿)’이라 한다.모두 ‘오이 과(瓜)’로 표기한다. ‘조선왕조실록’ 영조 14년(1738년) 7월 15일의 기사 중 일부다.형조 판서 김시형이 아뢰기를 “신이 영남 방백으로 있었을 때 이진환이 진주 영장(晋州營將)에서 과만(瓜滿)하여 체직되었으므로, 신이 그의 재질을 애석하게 여겨 전관에게 서신을 보냈었는데, 이어 칠곡(漆谷)에 제배되었습니다.” 하였다.‘과만(瓜滿)’은 벼슬살이 임기가 다한 것을 말한다. 당시 경상관찰사로 일하던(1732년) 형조 판서 김시형(1681∼1750년)이 이진환을 천거, 칠곡으로 보냈다는 내용이다. 벼슬아치의 임기를 ‘과=오이’로 표기했다.‘오이=벼슬아치의 임기’는 중국 고사에서 비롯되었다. 춘추시대 제나라 양공(미상~BC 686년)이 부하들을 힘든 근무지인 변방(葵丘, 규구)으로 보냈다. 불만이 가득한 이들에게 “이듬해 오이가 익을 때 후임자를 보내 교체시켜 주겠다”라고 약속했다. 그 약속을 지키지 않으니 사달이 났다. 이때부터 ‘오이=관리들의 임기’가 시작되었다.‘조선왕조실록’ 성종 10년(1479년) 12월의 기사 중에는 오이가 등장하는 서글픈 내용이 있다. 명나라는 사대의 나라다. 명나라 사신들의 폐해는 심각했다. 뇌물을 요구하고, 받기 전에는 돌아가지 않았다. 뇌물을 주지 않으면 ‘오이를 심어서 그 오이가 익을 때까지 돌아가지 않은 일’도 있었다.창덕궁 선정전 어전회의.도승지 김승경(1430∼1493년)이 말한다. “만약 명나라 사신이 오게 된다면 반드시 3, 4월 무렵일 것입니다. 그들은 여름을 지나고 돌아갈 것입니다.” 성종이 대답한다. “어찌 그 정도이겠는가? 지난번에도 오이[瓜]를 심었다가 익기를 기다려 돌아간 일이 있었다.”일본인들은 오이를 좋아하지만, 참외는 모른다. 일본은 1960년대 무렵 ‘프린스 멜론’을 개발한다. 기존의 참외 품종과 서양의 멜론을 교잡한 것이다. 프린스 멜론이 참외를 대체하면서 참외는 사라졌다. ‘참외’ 발음이 힘드니 ‘차메’다.경북 성주가 2000년대 초반부터 ‘참외’를 일본으로 수출했다. ‘성주 차메’는 일본에서 인기가 높다. 경북 성주의 참외는 세계적이다. 홍콩, 싱가포르, 동남아, 러시아, 유럽으로 수출한다. 오이가 동북아 3국에 널리 유행하더니, 드디어 오이와 닮은 참외가 세계로 뻗어가고 있다. 가히 성주 참외의 ‘과갈(瓜葛)’이다. 아래는 경북매일 기사다.이병환 성주군수는 (중략) “수준 높은 문화행사로 자리 잡은 성주생명문화, 참외축제를 세계적 수준의 축제가 될 수 있도록 힘써 달라”고 당부했다. 한편 ‘2019 성주생명문화축제, 제6회 성주참외페스티벌’은 5월 16일부터 19일까지 성밖숲 일원을 비롯한 성주 시가지 일대에서 펼쳐질 예정이다.-전병휴 기자장계향(1598∼1680년)의 ‘음식디미방’에는 생치딤채법(生雉沈菜法)이 있다. 오이지에 생 꿩을 더한 김치다.“오이지의 껍질을 벗겨 속은 도려내고 가늘게 한 치 길이만큼 도독도독 썰어 물에 우려 둔다. 꿩은 삶아, 오이지와 같이 썰어 따뜻한 물에 소금을 알맞게 넣어, 나박침채같이 담가 삭혀서 먹는다.”농촌에서는, 풋내 나는 작은 참외는 장아찌로 담갔다. 마치 오이지 같았다. 언젠가 성주의 지인이 참외를 보내주었다. 달고 맛있는 성주 참외를 먹으면서, 문득 어린 시절 거름더미의 참외 넝쿨을 떠올렸다. 그때 그 거름더미의 참외도 장아찌로 만들었더라면?/맛칼럼니스트 황광해

2019-05-15

유행에 대해

△유행은 강물처럼 흐른다산업혁명은 값싸고 질 좋은 옷을 대량으로 제공했고, 덕분에 많은 사람이 옷을 입을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인간의 욕망은 멈출 줄 모르고 흐르며 변화한다. 원시인은 입을 거리를 두고 ‘무엇을 실로 쓸 수 있을까’ 같은 가장 기본적인 것을 고민했다. 산업혁명시대에는 ‘어떻게 하면 옷을 대량생산할 수 있을까’를 생각했다. 모두 옷을 입게 된 지금, ‘어떻게 하면 편안하고 질 좋은 옷을 만들 수 있을까’를 고민한다. 재화가 부족하고 소비가 많으면 물가는 상승하고 구매욕은 증가한다. 반대로 재화가 많고 소비가 적으면 물가는 내려가고 구매욕은 감소한다. 산업혁명 이전에 옷을 입는 것이 특별한 일이었다면 산업혁명 이후 옷을 입는 것은 일반화되었다.옷을 만들기만 하면 소비자가 벌떼처럼 몰리던 시대는 끝났다. 오늘날은 공급자가 상품을 팔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시대다. 서로 팔려고 경쟁을 벌이며, 소비자는 보다 싸고 질 좋고 스타일도 좋은 옷을 원한다. 옷 한 벌이면 만족했던 시대도 있었지만 이제 사람들은 외출복과 실내복을, 평상복과 연미복을 구분해서 입는다. 사계절에 따라 옷을 바꿔 입고, 나아가 계절을 더 분절하여 ‘팔계절’ 옷을 입는다. 단순히 옷을 입는 것이 아니라 옷을 즐기며, 옷을 통해 자신의 취향과 개성을 표출한다. 이러한 취향이 서로 접하고 영향을 받으면서 하나의 큰 흐름으로 통합된다. 그런 식으로 커다란 흐름이 생기고, 그 흐름은 새로운 취향과 만나며 변화한다. 우리는 이것을 유행이라 부른다. 유행은 누군가에 의해 주도되기도 하지만, 아무 이유 없이 출현하기도 한다. 다수에 의해 유행된 지배적인 스타일이 있는가 하면 소수에 의해 유행된 다양한 스타일도 있다. 유행은 지속이 아니라 변화를 모토로 삼는다. 유행에는 과거도 미래도 없다.지금, 여기의 가치를 반영하고 사회의 흐름과 분위기를 반향하며 인간과 물질문화 사이의 변화를 반영한다. 유행은 강물처럼 흐른다. 이 흐름의 집합을 패션이라고 부를 수 있겠다. 패션은 역사, 문화, 진화와 마찬가지로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 전개된다. 오늘의 패션이 과거의 패션보다 더 낫다고 할 수 없다. 과거의 패션이 ‘복고풍’이라는 이름으로 부활하곤 하는 것이 그 증거다. 따라서 유행은 강물처럼 흐르지만, 다시 발 담글 수 없는 강물처럼 흐르는 것은 아니다.△과거의 유행과 오늘날의 유행과거의 패션은 패션을 유행시키는 특정그룹이 존재했다. 상류층이나 연예인이 그들이었다. 우리나라에서의 미니스커트 유행은 이를 잘 보여준다. 1967년 가수 윤복희가 이것을 입기 시작하면서 젊은이들에게 열풍을 일으켰다. 당시에는 무릎 위 20㎝까지 허벅지를 드러내는 미니스커트를 입으면 풍기를 문란시킨다고 경범죄로 잡혀가는 해프닝이 있었다. 1990년대에는 서태지나 HOT와 같은 아이돌 스타를 따라하는 패션이 넘쳐났다.과거의 패션은 엘리트 집단, 또는 부와 권력을 가진 집단을 중심으로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하향식(top-down) 방식을 따랐다. 하지만 현대의 패션은 1950년대 매스미디어의 등장과 함께 전파의 방식도 다양해졌다. 다이나믹한 대중의 욕구와 젊은이의 시대상이 반영되어 아래에서 위로 솟구치는 상향식(bottom-up) 방식을 통하거나, 특정집단에 의해 수평적으로 전파되기도 한다.△깐깐하게 때로는 느릿하게19세기 산업혁명기에 공학이 생산속도의 증가를 핵심과제로 삼았다면, 산업이 고도화하기 시작한 20세기 공학은 소비의 속도를 증가시키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19세기 공학이 물질을 효율적으로 다루는 방법을 고려했다면, 20세기 공학은 새로운 물질의 발명과 발견을 요구받는다. 19세기 공학이 기술 발전을 통한 대량생산을 중요하게 생각했다면, 20세기 공학은 기술보다는 인간에게 편익과 유용성을 주는 질 좋은 제품의 생산을 중시하게 되었다. 21세기 들어 공학기술은 인간과 자연이 함께 하는 지속가능한 발전을 모색하게 되었다.현대 물질문명 사회의 생산이 소비를 초과하는 상황에서 소비자는 두 소비경향을 보인다. 제품의 특성을 요리조리 따지는 ‘깐깐한 소비족’이 있는가 하면, 소비의 속도를 즐기는 ‘스피드 소비족’도 있다.깐깐한 소비족은 상술에 현혹되지 않는다. 이들은 제품을 분석하고 비교하여 더 낮은 가격에 더 좋은 제품을 사려고 한다. 합리성과 효율성을 추구하며, 능동적이고 전문적으로 소비하는 ‘소비주체’다. 깐깐한 소비족은 느긋하고 침착하게 소비하면서 그 제품의 질적 완성도에 만족감을 느낀다.스피드 소비족은 무수한 상품 속에서 마치 햄릿(Hamlet)처럼 ‘이것을 살 것인가, 말 것인가?’ ‘저것을 살 것인가, 이것을 살 것인가?’를 고민하지 않는다. 이들은 부담스럽지는 않은 가격이면서, 최신의 트렌드를 반영하는 개성적인 상품을 찾아 빠르게 소비한다. 싸면서 질 좋고, 자신의 취향에도 맞는 상품을 빠르게 구매하여 소비가 주는 쾌감을 즐긴다.△상품의 예술화달빛을 받으며 한적한 모래사장을 걸으면 모든 것이 아름답게 느껴진다. 밤은 바다를 닮아 푸르스름하고, 파도소리는 하얗게 흩어진다. 우리는 이러한 경험을 맛보기 위해 돈을 아낌없이 지불한다. 그곳에서 돌아오더라도 파도소리며 별빛은 평생 가슴에 남는다. 하지만 그런 바닷가에 사는 사람은 어떨까? 마을 사람은 내일을 위해 이미 잠들 것이다. 아무리 아름다운 바닷가도 그곳에 사는 사람에겐 그저 일상일 뿐이다.새로운 것의 운명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산업혁명으로 물질적으로 풍요로워졌다고 해서, 그것에 언제까지나 취할 수는 없다. 그 풍요로움에 금세 익숙해진다. 옷을 갖고 싶던 사람에게 옷이 주어지면 당분간은 애지중지하겠지만, 그 옷이 생활이 되면 그 옷과는 다른 옷을 찾게 될 것이다. 기왕이면 디자인도 좋고, 옷감의 질감도 더 좋고 색상도 더 예쁜 옷을 찾게 될 것이다. 핸드폰이 처음 나왔을 때 디자인을 신경 쓰는 사람은 없었다. 핸드폰이 있다는 것으로 만족했다. 하지만 핸드폰을 누구나 갖게 되자 천차만별의 가격대를 갖게 되었고 소비자는 다양한 기술, 콘텐츠, 디자인을 원하게 되었다.공강일 서울대 강사·국문학예술과 일상이 구분되는 시대가 있었다. 중세시대에 예술이 하느님의 영광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쓰였다면 르네상스와 절대왕정 시대는 왕이나 귀족 혹은 재력가의 위엄과 권위를 드러내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었다. 산업혁명이 물질적 풍요를 가져오게 되자 질 좋고 보기에도 좋은 제품을 찾게 되었다. 생활수준은 그런 식으로 향상된다. 양이 문제였던 시대에서 질이 문제인 시대로, 형식이 중요했던 시대에서 내용이 중요한 시대로 바뀌게 된다. 제품의 사용 가치와 미적 가치가 동시에 중요하게 여겨지는 시대로 바뀌게 되는 것이다.사회가 풍요로워지면서 예술은 스스로의 경계를 허문다. 고귀함과 높은 지위를 버리고 일상 속으로 스며들며 도처에 넘쳐나기 시작했다. 공학은 예술을 상품 속으로 가져온다. 상품의 예술화, 이것이 이 시대의 새로운 슬로건이 되었다.

2019-05-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