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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인류는 하이디라오를 막을 수 없다(1)

홍콩 증시에 한 업체가 1조원 기업공개에 성공합니다. 2018년 신규 상장 기업 중 5위에 해당하는 규모지요. 전문가들이 발표한 이 회사의 기업가치는 120억 달러. 어떤 회사기에 이런 평가를 받고 있는 것일까요? IT기업? 4차 산업관련? 인공지능? 모두 아닙니다. 식당입니다. 중국서 흔하디 흔한 훠궈, 즉 중국식 샤브샤브 체인입니다. 훠궈는 육수에 고기나 채소를 담가 익혀 먹는게 전부입니다. 중국의 국민 음식이라 할 수 있지요. ‘인류는 이미 하이디라오를 막을 수 없다.’ 인터넷에 떠도는 농담입니다. 이 훠궈 체인점의 이름이 하이디라오입니다. 무엇을 막을 수 없다는 말일까요? 직원들입니다. 이 식당 직원들의 서비스를 막을 방법이 없습니다. 손님이 기다리는 동안 지루하지 않도록 음료, 과일, 스낵 등을 제공합니다. 포커, 장기, 바둑 등 오락거리를 제공해 기다리는 동안 시간을 재밌게 보낼 수 있도록 배려합니다. 구두가 더러운 손님에게는 신발을 벗으라고 하고 슬리퍼를 줍니다. 구두를 닦아주는 거죠. 여성들이 좋아하는 네일 케어 서비스를 기다리는 동안 받습니다. 종이 학 30 마리를 접거나 루빅 큐브를 맞추면 18위안 (약 3천원)어치 서비스를 제공합니다.김이 모락모락 나는 훠궈의 특성상 안경 낀 손님들이 불편합니다. 직원들은 테이블을 돌며 안경닦이를 제공하지요. 따뜻한 물수건은 15분마다 제공합니다. 5성 호텔급 서비스입니다. 머리가 긴 여성들에게는 머리 끈을 갖다 주고 휴대폰이 국물이 튀어 젖지 않도록 휴대폰을 전용 비닐케이스에 넣어 줍니다. 직원들은 항상 활짝 웃고 있습니다. 눈만 마주치면 냉큼 다가와 필요한 것이 없느냐 묻습니다. 아기가 있으면 부모가 식사하는 동안 진심으로 아기를 돌보아 주기도 하지요. 하이디라오의 서비스는 끝이 날 줄을 모릅니다. 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요? 경쟁업체가 스파이를 몰래 취직시켜 서비스 비밀을 캐내려 애쓰기도 합니다만 어떤 식당도 하이디라오의 방식을 복제할 수 없었습니다. 마음에서 우러나지 않은 서비스는 흉내를 잠깐 낼 수 있었지만 이내 예전의 태도로 되돌아가 오히려 역효과만 난다고 합니다.‘사람을 사람으로 대접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사람은 손님이 아니다. 직원이다.’경영학자 황티에잉의 말입니다. 하이디라오의 서비스를 다른 식당이 흉내낼 수 없었던 것은 창업자의 철학과 신념 그리고 직원을 사람으로 대하는 그의 진심을 따라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내일 계속)/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 대표

2019-05-08

끝나지 않은 라돈공포

라돈(radon, Rn)은 원자번호 86번의 원소로, 강한 방사선을 내는 비활성 기체 원소다. 우라늄과 토륨의 방사성 붕괴 사슬에서 라듐(radium, Ra)을 거쳐 생성되는데, 원소 이름은 원천 원소 라듐에 비활성 기체의 접미어‘on’을 붙여 지었다. 지구 대기 중에는 기체 분자 1천20개당 대략 6개의 비율로 들어 있다.라돈은 미국환경보호국이 흡연 다음가는 주요 폐암 원인이라고 경고하고 있는, 건강에 위험한 기체다. 지난해 5월 대진침대 문제가 불거진 이후 기준치 이상의 라돈이 검출되는 침구류, 온수매트, 미용 마스크 등 생활제품이 꾸준히 발견돼 국민건강을 위협하고 있다. 이번에는 기준치 이상의 라돈이 전기매트와 침구류에서 또 검출돼 비상이 걸렸다.원자력안전위원회는 “삼풍산업·(주)신양테크·(주)실버리치가 제조한 가공제품에서 나온 라돈이 생활주변방사선 안전관리법에서 정한 안전기준(연간 1mSv)을 초과해 해당 업체에 수거명령을 내렸다”고 7일 밝혔다. 삼풍산업은 2017년 3월부터 전기매트‘미소황토’, ‘미소숯’, ‘루돌프’, ‘모던도트’, ‘스노우폭스’ 등 모델 5종에 모나자이트를 쓴 것으로 나타났다. 모나자이트는 우라늄과 토륨이 1대 10 정도로 함유된 물질로, 우라늄과 토륨이 붕괴하면 각각 라돈과 토론이 생성된다. (주)신양테크는 2017년 3월부터 ‘바이오실키’ 베개에 모나자이트를 썼고, (주)실버리치는 2016년 8월부터 2017년 6월까지 ‘황금이불’, ‘황금패드’ 등 침구류 2종에 모나자이트를 사용했다. (주)시더스가 태국에서 수입·판매한 ‘라텍스 시스템즈’ 역시 안전 기준을 초과(연간 5.18mSv)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업체가 2015년 3월 파산해 정확한 판매 기간과 수량을 파악할 수 없어 문제다. 원안위는 방사능이 의심되는 제품은 즉시 생활방사선 안전센터로 신고해 달라고 요청했다. 아울러 원안위는 모나자이트 같은 방사성 원료물질을 넣은 제품의 제조·수출입을 막는 ‘생활주변방사선 안전관리법 일부개정법률’을 마련, 오는 7월 시행한다. 국민들을 걱정케하는 라돈공포를 끝낼 수 있도록 정부가 만전의 방안을 강구해주길 바란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19-05-08

공감백배

장규열 한동대 교수편을 가르기 좋아하는 세상이다. 어쩌면 그렇게 다른 것을 집요하리만치 틀린 것으로 확신하는지 때로는 안타깝기가 도를 넘는다. 오른쪽과 왼쪽은 절대로 섞일 수가 없으며 남성과 여성도 우리 사회에서 평등하려면 아직도 멀었다. 국경이 거의 의미가 없어져 간다는 21세기에 한반도 만큼 동과 서가 어울리지 못하는 나라가 또 어디 있을까. 어느 작가의 날카로운 눈은 세상이 ‘너는 어느 쪽이냐고 묻는다’고 하였다. 존재의 가치가 내 생각을 드러나기도 전에 나의 조건으로 이미 판단되기 일쑤인 것이다. 어느 동네에서 났거나 살고 있기 때문에 나는 벌써 어느 편인 것이고, 나의 성별은 나의 능력과 상관없이 나의 위치를 대개 결정하고 있다. 그런 부조리를 그냥 그대로 받아들이는 세상이 또 웃기는 것일까.편을 가르는 잣대에 무서운 게 또 하나 있다. 나이. 어른에게 청년은 언제나 불안하고 젊은이에게 노인은 늘 어렵다. 끼워주지 못하고 어울리지 않는다. 함께 나누는 기회를 스스로 가로막고 생각을 견주기를 항상 꺼린다. 웬만하면 섞이지 않으려 하고 끼리끼리 서로를 탓하기만 한다. 온갖 사회적 담론도 같은 색깔의 무리들 안에서만 나누고 확인하며 규정하고 성토한다. 그 같은 공론의 장에서 담론은 제자리를 맴돌 수 밖에 없지 않을까. 벽을 허물지 않고는 다시 세울 방법이 없다. 폭 넓은 아량이 필요하고 속 깊은 배려가 절실하다. 스스로들 세운 벽 속에 갇힌 21세기 한국사회를 구출해야 한다. 이념, 성별, 지역, 나이, 아 그리고 종교. 이들 기준을 모두 동원하면 우리는 또 얼마나 좁디좁은 울타리에 갇힐 것인가.가정의 달 5월에도 가슴아픈 뉴스로 한가득이다. 마침 어린이날 새벽에 생활고에 시달린 젊은 부부가 두 아이들과 생을 마감하였다. 하필 어버이날을 앞두고 부모 앞에서 분신자살을 한 젊은이는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서였다고 한다. 다리에서 투신하려던 모녀를 설득 끝에 가까스로 구했다는 소식도 있다. 스승의날과 부부의날을 눈 앞에 두고도 아슬아슬할 뿐. 우리 사회는 어디로 가고 있을까. 대립과 갈등, 반목과 질시를 거듭한 나머지 대화와 타협, 화합과 상생을 정말로 망각해 버리는 것이 아닐까. 어려운 젊은이들의 처지를 듣고 도울 방법이 그렇게 없을까. 힘든 가정들의 상황을 헤아려 세워줄 장치가 정말로 불가능한 것일까. 울타리 밖 남들의 삶을 이해하고 배려할 널푼수를 우리는 가질 수 없는 것일까.‘세대공감’ 한 방송프로그램의 이름이지만 세대 간 생각과 해석의 차이를 짚어보고 공감대를 넓혀가려는 의도로 읽힌다. 앞으로 세대 뿐 아니라 지역들 사이에는 다른 느낌들이 어떻게 도사리고 있는지 드러내 보았으면 한다. 같은 주제를 놓고도 혹 남성과 여성 간에는 어떤 다른 생각이 흐르고 있는지 살펴보았으면 한다. 종교들 간에 그리고 신학적 해석들 가운데 존재하는 갈등과 마찰은 무엇 때문일까. 다른 흐름과 느낌을 어떻게 조화롭게 어울리게 할 것인가. 우리는 이들 다른 생각과 느낌을 안고 어떻게 함께 잘 살아갈 것인가. 반목이 무관심을 키우고 무관심은 자칫 혐오를 일으킨다. 혐오와 무관심은 고립과 절망을 초래할 터이다. 극단적인 선택이 뉴스가 되는 일은 이제 그만 보았으면 한다.함께 나누고 서로 도우며 더불어 고심하면서 마음을 모으는 사회. 고립과 절망으로 무너져 내리는 이웃을 소통과 대화로 건져 올리는 공동체. 공감하는 나 하나로부터 시작할 일이 아닌가. 남에게 공감능력이 부족하다는 탓은 그만 하여야 한다. 당신이 어디서 무엇을 하든, 내 안의 공감능력을 백배로 끌어올려 이웃과 사회를 따뜻하게 만들어 주시라. 5월을 다시 눈부신 계절로 만들기 위하여.

2019-05-08

벗, 스카프에게 바치는 예

강길수 수필가생이별을 당했다. 세상에, 바람에게 생이별을 당하다니 어처구니 없다. 사월 말에 불어닥친 살바람이 기습적 일격을 가할 줄이야. 흐드러지게 핀 이팝꽃을 시샘하는 심보인지, 꽃샘추위 몰고 온 살바람은 정든 벗을 낚아채 가버렸다. 있는 듯, 없는 듯 목을 감싸 안아 언제나 따사하게 하던 벗이었다. 벗을 만난 뒤로는 덕분에 감기도 거의 걸리지 않았다. 흠뻑 든 정에 가슴이 먹먹하다. 세상의 어떤 헤어짐도 서운하지 않은 게 없겠지만, 생각지도 못한 생이별이기에 더욱 마음이 싸하다.현관에 들어서자마자 목이 허전했다. 저절로 목에 손이 올라갔다. 있어야 할 벗이 없어졌다. 오랫동안 한 몸으로 잘도 지냈는데, 이런 일이 닥치다니! 간혹 목에서 이탈하려 할 때는, 곧 알아채고 다시 바르게 하거나 주머니에 넣곤 했었다. 한데, 오늘은 느슨해지는 목과 벗의 틈을 왜 감촉하지 못했을까. 피부의 촉감 세포가 무뎌졌었나. 맞다. 그놈의 센 꽃샘 살바람 때문이다. 퇴근길 내내 거의 태풍처럼 느껴졌으니까 말이다. 사람들은 몸 웅크리고 옷깃여며, 종종걸음에 바빴었다. 그러니 태풍 같던 살바람의 위력이, 목의 감촉 안테나도 앗아가 버린 거다.이튿날 아침. 추적추적 부슬비 오는 날씨가 꼭 마음 같다. 잃었던 벗을 찾아 나선다. 마음 한쪽에 ‘어차피 떠났는데, 뭐 하러 빗속에 나가느냐’는 만류의 여울이 일었다. 곧바로 오래 길들여진 정의 너울이, 여울을 삼키고 온 마음에 파문(波紋)되어 밀려왔다. 우산을 쓴다. 어제 퇴근길을 역순으로, 벗이 떨어지거나 걸릴만한 이곳저곳 살피며 걷는다. 봄비 속에 자태 뽐내는 이팝꽃은 벗이 간 곳을 알까. 바람 모일만한 구석진 곳, 가로 가 화단의 화초나무 사이나 가지, 자동차 밑, 축대의 외진 곳 등 바람 방향을 고려해 다 찾는다. 사무실까지 가도 벗은 안 보였다. 책상과 근무복 주머니에도 없다. 실망이다. 아깝다. 아내에게도 미안하다. 하지만, 엎질러진 물이다. 나이 들면서 언제부턴가 아내가 겨울에 목도리를 하면, 감기도 덜 걸리고 좋다면서 권했다. 나는 그때마다, 거추장스럽고 찝찝해서 못한다고 버텼다. 어느 날, 얇은 화학섬유로 만든 스카프를 내밀며, 일단 한 번 목에 해 보라고 강권 하다시피했다. 보니까 정말 얇고, 큰 손수건 만하며, 색깔도 엷은 남색계통에다 둥근 무늬를 기반으로 도안한 것이어서 싫지 않았다. 목에 두르니 착용감도 좋았다. 아내의 성의를 보아서 며칠 해보기로 했다. 아내는 전에 성당 행사 때 받은 귀한 것이니, 잃어버리지 않도록 잘하고 다니란 말도 잊지 않았다.겨울은 물론 다른 계절에도 쌀쌀하거나, 감기기가 드는 날이면 어김없이 목에 스카프를 하고 다녔다. 다만, 풀리지 않게 묶지는 않았다. 매듭이 이물질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스카프 대각선 모서리를 양손가락으로 잡고 당기면, 접어져 긴 삼각형 꼴이 된다. 가운데 넓은 부분을 목 앞으로 하고, 양손 쥔 부분을 목 뒤로 하여 위, 아래를 한번 뒤집어 당겨 목과 밀착 정도를 맞추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스카프는 절친한 벗이 되어갔다. 없는 듯 있어 부담 없고, 필요할 때 꼭 거기에 있는 존재, 바로 둘도 없는 벗으로 변한 것이다. 섭섭한 마음으로 사무실을 나섰다. 이런 생각이 났다. ‘오늘 봄비 속에 잃은 벗을 찾는 일을 벗, 스카프에게 바치는 예(禮)로 삼자!’고…. 사람이나 절대자에게만 예를 바치라는 법은 없으니까. 또 정든 벗 잃었으니, 예를 갖추는 것이 옳다는 마음 추임새도 생겼다. 큰 나무나 바위 같은 자연물을 숭배의 대상으로 했던 선인들의 토테미즘도, 미신으로만 터부시할 일은 아니리라. 어떤 존재가 뜻을 갖기 위해서는, 뜻을 부여할 수 있는 의식(意識)의 소유자가 그 존재에게 뜻을 부여할 때만 생겨나는 법일 테니까 말이다. 돌아올 때 벗을 한 번 더 찾아보는 행동이, 마치 예에서 올리는 행위기도로 여겨졌다. 결국 벗, 스카프는 돌아오지 않았다. 이런 기도가 우러났다.“벗, 스카프야! 부디 어느 아리따운 소녀의 새 벗으로 부활하여, 더 아름다운 또 한생을 살려무나!”

2019-05-08

절망 속에서 살아가기 - ‘백범일지’를 읽고

△왜 우리는 억압에 저항하는가?‘인간들은 태어나자마자 기계들이 만들어낸 인공 자궁(Matrix)안에 갇혀 AI의 생명 연장을 위한 에너지로 사용된다. 인간의 즐거움, 슬픔, 분노 등 이런 것들이 AI의 에너지로 쓰인다. 그런 에너지를 얻기 위해 인간의 뇌세포에 매트릭스라는 프로그램을 입력시킨다.’이것은 1999년에 나온 ‘메트릭스(The Matrix)’라는 영화의 줄거리이다.이 매트릭스라는 프로그램은 현실과 꼭 같은데, 자신이 있는 곳이 현실이 아니라 프로그램 속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얼마 되지 않는다. 그러나 그 사실을 깨닫게 되면 자신이 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은 무엇이든 할 수 있게 된다.허공 위를 걸을 수도 있으며 날아오는 총알을 피할 수도 있다. 현실이 아니라 가상의 프로그램이기 때문에 그의 믿음대로 모든 것이 이루어질 수 있다.지금 살고 있는 세상이 현실이 아니라 가상의 세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은 누구나 해보았을 것이다. 종종 내가 꿈으로 꾸었던 일이 현실에서 똑같은 모습으로 재현될 때, 혹은 어떤 물건을 놓아 둔 장소를 분명히 아는데 그곳에서 그 물건을 찾을 수 없을 때, 또는 아침에 반갑게 인사했던 옆집 아저씨 부부가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다는 말을 들었을 때, 우리는 세상을 의심하게 된다.그런데 정작 이 영화에서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은 매트릭스라는 프로그램의 허구성을 알게 된 몇몇의 사람들이 프로그램을 현실로 믿고 살아가는 타자들에게 그 허위성을 알리기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운다는 것이다. 그것이 억압이라고 여겨지 않는 사람에게 그것은 억압이 될 수 없다.그런데 이들은 애써 억압기제를 찾아내고, 그 억압의 부당성을 폭로한다. 그들의 말을 사람들이 믿어주지 않아도 그들은 끊임없이 억압기제에 저항한다. 현실의 세계는 매트릭스의 세계보다 나은 것이 없다.그런데, 인간은 왜, 도대체 왜 억압에 저항하는가? 왜 목숨을 담보로 저항을 멈추지 않는가? 1987년 6월 항쟁, 1980년 5월 광주, 1970년 11월 전태일의 죽음, 1960년 4월 민주화 운동, 1945년 신탁통치 반대 운동, 1919년 3·1운동….일련의 사태가 있는 동안에도 아무렇지도 않게 살아온 사람은 얼마든지 있다. 그냥 그러려니 하면 역사는 그렇게 흘러가 버린다. 1980년대 민주화 운동을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은 사람들이 있다.그때 그들이 하는 운동은 인정을 받지 못했다. 그들은 ‘집안 말아 먹는 짓’이라는 소리를 들으며 그 일을 했다.△김구는 왜 독립 운동을 하였나?물론 일제치하의 독립운동가들 역시 ‘독립운동은 집안 말아 먹는다’는 소리를 들어야 했을 것이다.그런데 그들은 왜 독립운동을 위해 목숨을 바쳤는가? ‘백범일지’를 읽으며 백범이 광복을 위해 평생을 바치게 된 어떤 이유를 찾고 싶었다. 무엇이 일제라는 억압과 싸울 수 있게 하였는지, 온갖 고초와 수모를 겪으면서도 독립운동의 뜻을 굽히지 않을 수 있게 한 어떤 신념, 그것을 알고 싶었다.그러나 애석하게도 백범이 독립운동을 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 같은 것은 찾을 수가 없었다. 아니 그런 것은 애초에 없었는지도 모른다. 어떤 특별한 사건이 있었던 것도 아니며 어떤 사람에게 지대한 영향을 받은 것도 아니다.도리어 김구라는 인물이 건방져 보이기까지 하였다. 왜냐하면 그가 자신의 호를 ‘백범’으로 고친 이유를 ‘백정, 범부들이라도 애국심이 현재의 나 정도는 되어야 완전한 독립국민’이 된다고 믿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그러니까 백범은 백정과 범부의 앞 글자를 따온 말이다.이 얼마나 건방진 말인가? 자신이 독립의 유일한 잣대인양 떠들지 않는가.독립운동에 가담하기 전 그는 17세에 과거시험의 폐단을 알았고, 18세에 동학에 가담을 하였고, 21세에 일본인 ‘쓰치다’를 죽였다.그렇게 그는 감옥을 전전하며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독립운동가가 되어갔던 것이다.개인적 자각, 깨달음, 성찰 그런 것들을 통해 독립운동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적은 없었다.이상하게 들릴지 모르나, 살다보니 사람들과 어울리다 보니,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독립운동을 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에게 있어서 독립운동이란 삶의 연장선일 따름이며 그가 독립운동을 한 가장 큰 이유는 살아가기 위한 하나의 방법은 아니었을까?△김구와 이완용다시 말하지만 ‘백범일지’에는 그가 독립운동에 매진하게 된 거창한 이유 따위는 나오지 않는다. 다만 그는 열심히 살았을 뿐이다.그런데도 ‘김구’는 추앙을 받는다. 이와 반대로 이완용은 나라를 팔아먹은 사람으로 국민 모두의 기억 속에 각인되어 있다.그런데 열심히 산 것으로 따지면 이완용도 마찬가지다. 그는 1910년 8월 22일 총리대신으로 정부 전권위원(全權委員)이 되어 일본과 한일병합조약을 체결하였으며, 그 공으로 일본 정부로부터 백작(伯爵)의 지위를 받을 만큼 일본 정부에 충성을 다하였다. 그에게 있는 잘못이란 어쩌면 열심히 살았다는 것, 일본을 위해 열심히 살았다는 죄 밖에는 없다.누가 더 열심히 살았는가를 따져 둘 중 하나를 선택하기는 어렵다. 똑같이 열심히 살았음에도 그들에 대한 평가가 너무도 다르다는 것을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 둘의 결정적인 차이점은 상반된 믿음일 것이다. 이완용은 일본이 언제까지나 건재하리라 믿었다면, 김구는 언젠가 일본은 망할 것이란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그 믿음이 옳은지 그릇된 것인지 그들 스스로 알지 못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 옳고 그름에 대한 답은 오직 역사만이 답을 내려줄 수 있는 그러한 성질의 것이기 때문이다.그런데 김구는 어떻게 독립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목숨까지 내어 놓고 독립운동을 할 수 있었을까? 그는 그의 믿음이 옳음을 무엇으로 확신한 것일까? 아무도 걸어본 적이 없는 그 길을, 자신의 신념만을 가지고 걸어가는 일, 짐작할 수 없는 미래를 신념을 가지고 나아가는 일, 이것이 어쩌면 삶인지도 모른다. (김구와 이완용이 열심히 살았다는 점에서 같다고 했지만 바른대로 말하자면 그것은 비교할 수 있는 성질이 아니다. 왜냐하면 이완용은 아무런 방해도 없는 편안한 길을 걸어갔지만, 김구가 걸어간 길의 목적지는 너무나 멀리 있었고, 그 길 또한 험난했기 때문이다.)공강일 서울대 강사·국문학어떤 믿음이든 우리는 선택할 수 있고, 그 믿음에 맞게 살아갈 수 있다.하지만, 이 믿음이 옳은가 그릇된 것인가에 대한 명확한 답을 얻을 수는 없다. 그럼에도 우리는 하나의 믿음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이 선택을 위해 우리가 의지해야 하는 것은 ‘나’라는 개인을 넘어 사회와 역사 전체를 바라볼 수 있는 안목이 필요할 것이다. 그것은 역사를 내다볼 수 있는 예지력이 아니라 역사적 의식을 가지고 살아갈 때 비로소 가질 수 있는 것이리라.‘백범일지’를 읽는 내내 그 시대에 내가 살았다면 어떠했을까를 생각하며 화끈거리도록 얼굴이 달아올랐다.지금도 비굴하게 최대한 비굴하게 살아가는 나의 모습을 되돌아볼수록 씁쓸해지는 마음을 가눌 수 없었다.그러나 감히 나는 바란다. 가능한 한 열심히 살아갈 수 있길, 당당히 살아갈 수 있길 바란다. 더 바란다면 옳은 삶을 살길 바란다. 적어도 김구와 같은 삶을 살 수는 없더라도 삶 앞에서 떳떳해지고 싶다.삶을 진지하게 응시하며 그 속에서 진실된 믿음을 얻고 싶다. 그리고 그 믿음대로 살아가고 싶다.

2019-05-08

밀레니얼세대의 물결을 타야 한다

김진홍 한국은행 포항본부 기획조사팀장우리는 그동안 다양하게 세대를 정의하여 왔다. 통기타와 그룹사운드라고 하면 7080세대라는 말이 떠오른다. 컴퓨터를 기준으로 삼은 386세대라는 말은 정치적 영향력을 의미하기도 한다. 고령화가 진전되는 동안에는 베이비붐세대라는 말이 오래 지속되었다. 이 베이비붐세대의 자녀세대라고 할 수 있는 1981년부터 1996년 사이에 태어난 세대를 미국의 퓨 리서치에서 밀레니얼세대라고 명명한 바 있다. 현재 나이로 치면 25세부터 39세에 이르는 연령층이다. 이들 세대가 점차 자신들의 취향에 맞게 행동하기 시작하면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각 방면에서 서서히 영향력을 발휘하기 시작하였다.이러한 흐름에 미국도 예외는 아닌듯하다. 전 세계가 혁신의 상징으로 여기던 미국 캘리포니아 샌프란시스코 해안 일대의 첨단기술 연구단지인 실리콘밸리에서 최근 이들 세대가 이탈하려는 조짐을 보인다고 한다. 얼마 전 한 리서치회사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이 베이에어리어에 거주하는 18∼34세의 밀레니얼세대들 가운데 5분의 2는 향후 1년 이내에 다른 지역으로 이전할 생각이라고 응답하였다. 실제 지난 수년간 이 지역을 포함한 캘리포니아 전체 인구의 증가세도 점차 둔화되고 있다고 한다. 미국 전체 국내총생산의 12%에 해당하는 2.6조 달러 규모의 경제력을 지닌 캘리포니아주 당국도 밀레니얼세대들의 의사결정과 행동에 영향을 받기 시작한 것이다.이 밀레니얼세대들은 자라는 과정에서 그전까지 비교적 순탄한 성장을 이루었던 것과 전혀 다른 수많은 사건과 위기를 모두 겪었다. 2001년 911테러부터 이라크전쟁,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등을 부모세대와 함께 겪었다. 우리나라의 이 세대는 심지어 IMF외환위기까지 경험하였다. 게다가 PC는 물론 휴대폰이 스마트폰으로 바뀌는 동안 함께 나이를 먹었고, 다양한 SNS를 통해 적극적으로 자신의 생각과 일상을 공개하고 정보를 공유하면서 부모들이 이해하기 힘든 세대이기도 하다. 미국의 비즈니스기술전문 사이트인 비즈니스인사이더가 이들 세대의 특징을 11개의 추출한 바 있다. 몇 가지 살펴보면 요리보다는 테이크아웃을, 맥주보다는 와인이나 증류주를, 강의 출석보다는 온라인학습을 선호한다. 육아는 어르신보다는 구글에 의존하며 백화점쇼핑대신 패스트패션으로 치장한다.이들 세대는 전 세계 인구의 25% 수준인 18억 명에 달하며 중국에만 3억5천100만 명이 존재한다. 우리나라도 2019년 4월 주민등록기준으로 비슷한 연령층(25∼39세) 인구는 1천만 명이 넘는 20.5%에 이르렀다. 포항도 9만1천890명으로 18.1%에 이른다. 다만 아직은 부모세대의 비중이 높아 포항의 전 부문에서 이루어지는 의사결정에서는 아마도 이들 세대보다는 부모세대의 가치관에 좌우될 가능성이 높다.그러나 이미 세계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거의 전 분야에 걸쳐 이들 밀레니얼세대 중심으로 움직이는 상황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이제 포항도 이러한 물결에 늦지 않게 올라타야만 한다. 최근 포항에서는 관광산업의 육성을 산업다변화의 대안 중 하나로 추진하고 있다. 문제의 핵심은 이 세대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정책인지 여부다. 그들이 관심을 갖는 볼거리, 그들이 좋아하는 먹거리, 그들의 취향에 맞는 쇼핑거리를 어떻게 부모세대의 취향과 균형을 맞출 것인가에 달려있다. 어떠한 조형물을 세우거나 과거 성공하였던 관광인프라가 베이비붐 세대들과는 전혀 가치관이 다른 이들 세대들에게도 그대로 통용될지 여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최소한 이들의 취향과 선호를 염두에 둔 의사결정이 이루어져야만 포항이 추진하고 있는 청년층의 유입, 청년창업 유도, 지속가능한 관광산업의 육성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보다 긍정적인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2019-05-07

마을이 있는 학교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교무실 뒤뜰이 아이들의 웅성거림으로 소란하다. 점심시간이면 으레껏 학생들은 운동장 여기저기에서 자신들의 놀이방식으로 후회 없는 시간을 보낸다.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학생들은 창조적인 방법으로 시공간을 종횡무진 한다. 무리를 이룬 학생들은 그 학생들대로, 혼자인 학생은 또 그 나름대로 1시간이라는 짧지만 귀한 시간을 설계한다. 그 모습은 마치 시간 설계자 같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운동장에 있는 것이 산자연중학교 점심시간의 모습인데, 아이들이 교무실 뒷공간을 점령한 것은 흔치 않는 일이다. 그 공간은 도로와 학교를 구분하기 위해 나무를 심어 놓은 공간이어서 선생님들도 잘 가지 않는 곳이다. 그래서 그곳은 들풀들의 천국이다.창문을 통해 본 그 곳에는 머리를 맞대고 앉아 뭔가를 열심히 하고 있는 4명의 학생이 있었다. 아이들 손에는 호미로 보이는 물체가 들려 있었다. 필자의 상상력으로는 도저히 짐작할 수 없었다. 그래서 용기를 내어 물었다. “얘들아, 거기서 뭐하니?” 아이들은 고개도 들지 않고 자신들이 하고 있는 일에 집중하였다. 필자가 아이들의 시간에 들어갈 수 있는 방법은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몇 분이 지나고 그 중에 3학년 아이가 고개를 들어 필자의 참견을 허락하였다. “교감 선생님, 해바라기 심고 있어요!” 짧은 대답에는 더 이상 방해를 하지 말라는 뜻이 담겨 있었다.아이들이 잠시 고개를 들었을 때 필자는 아이들이 일궈 놓은 3평 남짓한 공간을 보았다. 녹색의 힘을 한껏 자랑하기 시작한 풀들을 뒤엎고 만든 공간은 눈에 확 띄었다. 질서정연하게 이랑까지 만든 학생들은 해바라기 모종을 이랑 위에 올려놓고 있었다. 아이들은 필자를 보면서 외쳤다. “교감 선생님, 점심시간 얼마나 남았습니까?” “10분!” “얘들아 조금만 서두르자, 누구야 빨리 가서 물 좀 떠와!” 3학년의 정중한 지시에 무리 중에서 지명을 받은 아이가 수돗가로 뛰어갔다. 나머지 학생들은 해바라기를 심었다. 아이들의 호흡은 프로 팀을 능가하였다. 점심시간 마침 예비 종이 울림과 동시에 아이들은 작은 해바라기 밭을 완성했다. 그리고 유유히 그 자리를 떠났다.마을이 있는 학교의 학생들은 지금까지의 내용과 같이 스스로 숨은 땅을 찾아내어 해바라기를 심는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김을 매고 땅을 일군다. 가급적이면 무딘 호미로 땅을 달랜다. 해바라기의 키를 생각할 줄 아이들은 이제 막 그늘의 품을 키우기 시작한 키 작은 나무를 피해 해바라기 밭을 일군다.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거름이 된 해바라기 밭의 가을 모습을 상상하는 즐거움은 마을이 있는 학교의 교사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필자는 필자에게 이런 특권을 준 학생들이 너무 고맙다. 그리고 필자가 특별히 감사 인사를 전해야 할 분들이 있다. 학교가 소재한 영천시 화북면 오산리 마을 어르신들이 그 분들이다. 산자연중학교 학생들은 서울, 인천, 강원 등 전국에 주소지를 두고 있다. 동네로 봐서는 이방인이다. 하지만 동네 주민들께서는 행복 교육을 찾아 멀리서 온 학생들을 친 손주 이상으로 보살펴 주신다. 그리고 기꺼이 학생들을 위해 인성수업을 맡아 수업을 해 주시고 있다. 수업 제목은 “마을 인성 교실”이다.매주 목요일 아침 8시30분 산자연중학교에 오시면 마을 어르신들과 학생들이 함께 수업하는 참의미의 인성 수업 모습을 보실 수 있다. 가정의 달, 감사의 달 5월이라고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는, 특히 학교에서는 가정과 감사가 사라지고 있다. 그 결과 영화에서 보던 끔찍한 사건들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다. 지금 이대로 가다간 우리 사회는 어쩌면 사건 공화국이 될 지도 모른다. 그러기 전에 학교에서부터 의미 없는 교과서와 시험 따위는 과감히 버리고 그 자리에 사람향기 가득 한 마을을 들이면 어떨까! 아니 정말 더 늦기 전에 마을을 학교로 들이자!

2019-05-07

어머니의 마지막 편지

“옳은 일을 하고 받는 형이니 삶을 구걸하지 말고 떳떳하게 죽는 것이 이 어미에 대한 효도인줄 알아라. 살려고 몸부림하는 인상을 남기지 말고 의연하게 죽으라. 사형선고 받은 것이 억울해 항소를 한다면 그건 일본에게 목숨을 구걸하는 짓이다. 너는 대한을 위해 깨끗하고 떳떳하게 죽어야 한다. 아마도 이 편지는 어미가 너에게 쓰는 마지막 편지가 될 것이다. 너의 수의를 지어 보내니 이 옷을 입고 가거라. 어미는 현세에서 너와 재회하기를 기망치 아니하니 내세에 반드시 선량한 천부의 아들이 되어 이 세상에 나오너라.”조마리아 여사가 아들 안중근에게 전한 편지입니다. 가슴 찢는 아픔을 속으로 삭이며 써 내려간 글입니다. 여사의 장남 안중근은 독립운동 역사에 가장 큰 획을 그은 인물이었습니다. 둘째 정근은 김좌진 장군의 청산리 전투 기초를 닦은 인물이고 셋째 공근은 백범 김구의 오른팔로 활동한 위대한 독립 운동가였습니다. 막내 딸 성녀는 탄압을 견디다 못해 중국에서 독립군 군복 만드는 일을 합니다. 조마리아는 김구의 어머니 곽낙원 여사와 함께 상해 임시정부의 안살림을 도맡아 하는 대한의 어머니가 되었습니다.안중근 의사는 옥중에서도 배움을 멈추지 않습니다. 사형에 이르기까지 불과 5개월도 채 남지 않은 시간을 아껴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일에 촌음을 바칩니다. ‘동양평화론’이라는 필생의 작품을 죽음 직전까지 집필하지요. 사형 직전 죄수에게 마지막 소원을 묻는 관례가 있습니다. 안중근 의사는 이렇게 대답하지요.“5분 만 더 시간을 주십시오. 아직 책을 다 읽지 못했습니다.”대한민국 어머니들의 자녀 사랑은 온 세계가 알아주는 뜨거운 것입니다. 사랑스러운 아이들이 빛나는 별이 되어 세상을 밝히고 아름답고 따스한 곳으로 만드는 일에 온전히 쓰임 받기를 원합니다. 그 과정에서 안중근 의사처럼 목숨을 내놓는 일이 있다 해도 한 순간도 망설이지 않을 위대한 어머니들이 이 땅 곳곳에 숨쉬고 계신다는 것을 믿습니다.죽기 직전까지도 책을 쓰고 5분만 더 책을 읽고 싶은 열망으로 심장에 불이 붙은 것처럼 뜨거운 아이들이, 책을 손에서 놓지 않는 엄마들의 손길로 자라나기를 기도합니다. 사랑을 위해, 대의를 위해 목숨까지 기꺼이 내 놓을 수 있는 멋진 의인으로 성장해 수 십년 후 대한민국의 미래를 밝히는 날 기다립니다. 마야 엔젤루는 이렇게 말합니다. “나의 어머니는 허리케인이다. 그것은 더할 나위 없이 강력한 힘이다.” 어머니는 위대합니다. /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 대표

2019-05-07

남부내륙고속철도 고령역 신설의 타당성

곽용환 고령군수지난 3월 21일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열린 문화재청 세계유산 분과위원회에서 고령군 지산동 고분군을 포함한 7개 가야 고분군이 세계유산등재 후보에 선정됐다. 세계유산등재를 위한 국내 첫 번째 관문은 통과했다. 올 7월 최종 등재신청 대상 선정을 거쳐 2021년 7월 최종 등재가 결정된다.대가야의 역사와 혼을 품은 지산동 고분군은 문화적으로나 역사적으로 우수한 국가였지만, 대부분이 사라진 왕국, 신비한 고대국가 정도로만 알고 있다.우리는 흔히 고대사회를 고구려, 백제, 신라의 ‘삼국’시대라 부르는데, 오늘날의 영·호남 지역을 아우르면서 삼국과 나란히 발전했던 ‘가야’는 포함되어 있지 않다. 가야는 520년 동안 삼국과 나란히 독립성을 유지하면서 역사와 문화를 창출한 고대국가로 전기는 김해를 중심으로 한 금관가야, 후기에는 고령을 중심으로 하는 대가야였다. 대가야는 가야의 최전성기를 이끌었다. 우리나라 최초로 확인된 최대 규모의 순장무덤인 고령 지산동 44호 고분군의 순장문화와 가실왕과 악성 우륵선생이 창제한 가야금은 대가야의 예술과 정신문화를 상징한다. 부드러운 곡선미와 안정감을 갖춘 토기문화를 비롯해 고대국가 발전의 원동력이었던 철기문화 등 독자적인 문화를 형성했던 국가가 바로 대가야다.최근 지산동 고분군의 탐방로 조성을 위해 실시한 발굴조사에서 5세기부터 6세기에 조성된 대가야 시대의 소형 석곽묘 10기와 석실묘 1기가 확인됐다. 특히 5세기 후반의 것으로 추정되는 석곽묘에서는 직경 5㎝ 정도의 작은 ‘토제방울’이 출토됐다. ‘토제방울’의 표면에 새겨진 그림은 가야 시조가 탄생하는 장면을 형상화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건국신화가 유물에 투영돼 발견된 최초의 사례로 가야사는 물론 한국 고대사 연구의 획기적인 자료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현재 가야사 복원이 국민적 관심사로 부각되고 있으며, 지산동 고분군을 비롯한 ‘가야고분군’의 세계유산 등재를 앞두고 있다. 이런 시점에 가야의 건국신화를 담은 소중한 유물이 출토된 것은 큰 의미가 있다. 따라서 고령군에서 출토된 토제방울을 보물 신청 및 향후 국보 승격을 위해 관련 절차를 추진해 나갈 계획이다.잘 보존하는 것이 가장 잘 개발한 것이라는 역설이 성립되는 것이 역사문화유산의 가치이고, 문화경쟁력이다. 가야문화권 최고의 경쟁력은 아직 밝혀지지 않은 가야의 역사성과 문화적 고유성이 조사, 연구를 통해 잘 보존되고 회복되는 데서 나올 것이다.고령은 남부내륙고속철도 ‘고령역’유치를 위해 속도를 내고 있다. 지난 2월 22일 남부내륙고속철도 ‘고령역 유치추진단’을 구성하고, 지난달 17일 지역을 대표하는 사회단체 및 주민대표로 구성된 ‘남부내륙고속철도 고령역 유치위원회’를 발족시켰다.‘고령역 유치위원회’는 수도권과 남부내륙 지역을 연계하는 지역의 접근성 개선 및 문화, 관광 활성화가 기대되는 남부내륙고속철도 고령역 유치 운동을 벌여 나갈 계획이다. 이에 발맞춰 행정기관에서는 전문가 자문 및 고령역사 입지타당성과 역세권 개발 용역, 세미나 등을 통해 당위성과 타당성을 확보하는데 주력할 것이다.시속 200㎞ 이상으로 주행하는 고속철의 역간 적정거리는 57㎞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경부고속철도의 경우 천안아산역, 김천구미역 등 28∼29㎞ 구간에 역사를 신설함으로써 운행시간이 20분 이상 지연되고 표정속도가 시속 164㎞로 감소하는 경우가 생겼다. 역간 거리가 가까울수록 운영비도 증가하고 운행시간은 지연돼 고속철도의 원래 의미는 퇴색되기 마련이다. 그렇기 때문에 역간 거리는 경제적 철도건설을 위해 선결해야 할 중요한 과제이다.올해 기본계획을 수립하는 남부내륙고속철도의 경우 김천에서 거제까지 총 172㎞ 구간 중 진주에서 거제까지 56㎞구간에 3개의 역사를 신설할 예정이어서 과잉설계로 제기능을 발휘할 수 있을지 회의적이다. 그리고 김천에서 진주까지 115㎞구간은 김천역 이외에 1개의 역사가 신설될 예정인데, 이 위치가 적정한 것인가에 대해 재고가 필요하다는 게 지역 최대 쟁점사항이 되고 있다. 합리적 기준에 의한 적정 역간 이격거리를 산정하는 것은 4조 7천억의 사업비가 드는 국가사업으로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사항이다. 비효율적인 운행으로 속도가 저하되고 과도한 유지비로 경제성이 저하되면 고속철도의 원래 의미를 담보할 수 없고 경쟁력을 확보할 수 없기 때문이다.또 고려해야 할 점은 접근성이다. 우리나라처럼 국토가 넓지 않은 나라에서는 항공기보다 고속철이 이동 효율성이 높다. 이를 더욱 잘 활용하기 위해서는 다른 교통수단과의 연계를 고려해야 한다. 그래서 신설 역사의 첫 번째 조건은 기존의 교통망과의 연계성이다.이런 의미에서 ‘남부고속철도 고령역 유치위원회’의 주장을 정부는 눈여겨 보아야할 것이다. 고령에는 2개의 고속도로 IC가 있고, 호남과 영남을 연결하는 고속도로, 중부내륙고속도로, 국도 26호·33호가 교차하며 대구산업선과 연계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현재 타당성 용역이 진행되고 있는 달빛내륙철도의 환승역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이 그 내용이다.김천역을 출발해 고속철도 역간 적정거리 50㎞지점에 위치한 고령역 설치의 타당성과 달빛내륙철도 환승, 대구산업선 연계, 대구광주간 고속도로 교차지점인 고령은 교통의 요충지로 경제성과 효율성 면에서 가장 적합한 역사가 될 것이라고 본다. 이에 따라 고령군은 앞으로 남부내륙고속철도 ‘고령역’이 건립될 수 있도록 전 군민과 함께 적극 노력해 나갈 것이다.

2019-05-07

진돗개의 날, 5월 3일?

5월 3일은 천연기념물 53호로 등록된 진돗개를 기념하기 위해 진도군이 2012년에 제정한 진돗개의 날이었다. 이맘때가 되면 진도군에 있는 진돗개 테마파크에서는 진돗개 페스티벌이 열리는데, 진돗개 달리기대회, 진돗개 공연단의 훈련시범등 다양한 행사가 진행된다. 지금은 진도의 군민들과 희로애락을 함께하고 있고 우리나라 대표 토종개로 자리잡은 진돗개이지만 진돗개의 시작은 우리가 잘 모르는 아픈 역사가 함께 하고 있다.진돗개라는 말이 처음 등장하는 문헌은 1937년 일본 동식물박사 모리 다메조가 작성한 보고서였다. 모리교수는 이 보고서를 바탕으로 1938년에 조선총독부를 통해 진돗개를 천연기념물로 등재시킨다.일본의 기주견, 시바견, 아키다견은 진돗개와 모양이 비슷한 스피츠 계통의 개였고 일본의 토착견들이 일본에서 천연기념물로 지정되고 있던 시기였다. 일본은 내선일체 정책의 일환으로 진돗개를 보호하기로 했지만, 종집 개가 주인집 개보다 좋아서는 안된다는 논리를 펼쳤으며 진돗개를 일본의 개들과 광범위한 교잡을 하여 혈통서를 발급했다.조선총독부에 의해 진돗개는 1938년 5월 3일에 천연기념물 53호로 지정되었고 곧바로 진돗개 보호위원회가 발족되어 개의 반출금지, 불량견 도태의 이름으로 보호사업이 해방 때까지 지속되었다. 조선총독부의 공권력으로 야견박살령을 내려 혈통서가 있는 진돗개를 제외한 나머지 한반도의 개들은 때려 죽였는데, 그 수가 150만 마리에 이른다.일제 식민지 시대 조선을 방문한 외국의 선교사들과 여행가들은 조선을 개고기 먹는 나라로 묘사하고 있는데, 일제가 박살한 개들의 가죽은 전쟁 군수용품을 만들기 위해 가져가고 고기는 가격을 책정하여 굶주린 조선인들이 먹도록 하였기 때문이다.사실 이전까지 조선에서 개고기는 가난한 사람들이 숨어서 먹는 정도였지 백성들이 일반적으로 광범위 하게 먹던 음식이 아니었다. 조선말기 조선에 와있던 미국인 선교사 헐버트는 ‘대한제국멸망사’에서 조선 말기 조선인의 개고기 식용 현황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서울에는 개고기를 공급하는 것을 주요 업무로 삼는 개 시장이 있기는 하지만 오직 빈민층에서만 개고기를 먹는다”고 말하고 있다. 어떤 사람들이 조선에 개고기 전문시장이 있었다는 부분만 인용하여 조선은 개고기 시장이 성행할 정도로 개를 즐겨먹은 나라였다고 주장하기도 하지만, 헐버트는 개고기를 먹는 것은 가장 낮은 계급의 사람들로 한정되어 있었음을 분명히 말하고 있다.즉 우리나라에서 일반적으로 개고기를 먹게 된 것은 개들을 공권력으로 박살하는 과정에서 고기를 장터에서 큰 솥에 끓여 사먹게 한 것이 시초인 것이다. 일제는 조선백성 중 일부계층이 먹은 개고기를 조선인 전체의 식생활로 규정했고 조선인을 개고기 먹는 야만인이라고 비난한 사건은 학생만세운동으로 번질 정도로 조선인의 민족감정을 자극하기도 했다.이동훈일제는 조선인이 야만스럽기 때문에 개화된 일본의 지배를 받아야 한다고 선전하고 있었지만 자존심 강한 조선 학생들이 그런 사실을 인정할 리 없었다. 1929년 6월 26일에 있었던 일이다. 광주고등보통학교 2학년 김기수와 광주중학교 3학년 일본인 곤도가 같은 통학열차를 타고 가다 운암역 부근에서 주막집 기둥에 개고기 뒷다리가 걸려있는 것을 보고 곤도가 저것이 조선인이 즐겨먹는 개고기라 소리치며 조선인은 야만인이라 욕하기 시작하자 조선학생들이 격분하여 폭력사태로 번진 사건이 있었다. 이 운암역 개고기 사건은 광주 전남지역 학생들에게 알려졌고 같은 해 10월 나주역에서 일본인 학생이 조선인 여학생을 희롱하는 사건과 겹치면서 광주학생운동의 도화선이 된다.1929년 11월 광주에서 촉발된 광주학생운동은 해를 넘겨 전국으로 파급되었고 만주, 일본등지까지 영향을 주어 학생들의 가두시위와 동맹휴교운동으로 발전하게 된다. 시민들도 여기 합세하여 시위대는 약 3만명 가량 되었다고 한다. 조선의 전통을 왜곡하려는 일제와 이를 바로잡으려는 조선 백성들의 충돌이 있었던 것이다.1962년 12월 3일 문화재보호법이 제정되면서 진돗개는 우리정부에 의해 천연기념물 53호로 재지정되었다. 천연기념물 53호여서 진돗개의 날을 5월 3일로 정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일제 강점기 조선총독부에 의해 지정된 1938년 5월 3일을 진돗개의 날로 기억하고 싶진 않다./서라벌대 반려동물연구소 소장(마사과 교수

2019-05-07

‘개나소나 콘서트’

2009년 청도에서 시작해 작년까지 10회 공연을 가졌던 ‘개나소나 콘서트’가 올해도 열릴 수 있을까 초미의 관심사다.‘개나소나 콘서트’는 반려동물과 함께 즐길 수 있는 음악공연으로 지방소도시에서 개최돼 전국적 명성을 날렸던 이색 행사다. 개그맨 전유성씨가 기획한 이 행사는 세계 최초로 반려동물을 배려한 음악회라는 점에서 세인의 관심을 모았고 시작 첫해부터 수천 명의 관중이 몰려올 만큼 큰 반향을 일으킨 행사다. 청도군이라는 소도시를 전국적으로 알린 계기가 됐으며, 다른 지자체가 호시탐탐 탐내는 행사가 됐다. 지금도 전씨에게는 지속적인 러브콜이 온다고 한다. 지난해 9월 전씨는 최근 10여 년 살아왔던 청도를 홀연히 떠났다. 청도 세계 코미디아트페스티벌(청도 코아페) 개최를 앞두고 청도군과 생긴 갈등이 이유라 했다. 무슨 영문인지 자세히는 몰라도 전씨의 말대로라면 페스티벌 행사와 관련해 “모욕감을 느꼈다”는 설명이다. 주변의 권유에도 다시 돌아올 생각은 없다고 했다.전씨는 청도에 이사 오자 재능 기부형식으로 농촌을 활성화해보자는 주변의 권유에 따라 벌여놓은 사업들이 꽤 많다. 복날 희생된 견공들을 위한 개나소나 콘서트 말고도 2011년에는 철가방 극장을 열었다. 웃음을 배달한다는 발상으로 전국 최초의 개그 전용극장을 세운 것이다. 개관 이후 4천400여 회의 공연을 개최했으며, 20만 명이 넘는 관객이 방문을 했다. 또 그는 2015년 청도 세계 코미디아트 페스티벌을 기획해 한적했던 농촌마을을 전국적으로 떠들썩하게 한 장본인이다. 누가 뭐래도 소싸움 도시 청도를 전국적으로 알린 일등공신이다. 그가 떠난 청도에 또다시 그가 기획하는 행사가 열릴까 걱정하는 사람이 많다.청도군으로서 그의 ‘탈 청도’가 뼈아픈 후회로 남을지 모를 일이다. 다행히 전씨 지인들의 도움으로 올해는 개나소나 콘서트가 청도에서 다시 볼 수 있을 것 같다는 소식이다. 콘서트 상표권을 가진 그의 구두 승낙이 있었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그가 없는 개나소나 콘서트가 ‘앙꼬 없는 찐빵’처럼 되는 건 아닌지 걱정된다./우정구(논설위원)

2019-05-07

식물국회나 동물국회부터 막아야 한다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우리나라 국회의원은 당선만 되면 엄청난 예우를 받는다. 한국고용정보원 공식 통계에 의하면 우리나라 평균연봉 1위인 1억4천만 원, 보좌관과 비서 9명을 둘 수 있다. 재임 중에는 해임될 걱정이 없고 몇 개월만 재직하면 연금이 보장된다. 회기 중 면책특권이 보장되고 어딜 가나 ‘갑’이 될 수 있는 정치인이다.그런데도 이 나라 국회의원에 대한 신뢰는 완전히 무너져 있다.우리 국회가 식물국회라는 비판을 받은 지는 상당히 오래되었다. 식물국회란 호흡만 하고 누워있는 식물인간처럼 우리 국회가 정상적 기능을 행사치 못함을 빗대는 말이다. 우리 국회는 여야 격돌로 수시로 문을 닫아 버린다. 그런데도 국회의원은 국민 혈세인 세비는 꼬박꼬박 챙기면서 엄청난 특권을 누리고 있다. 무노동 무임금이 원칙인데도 우리 국회의원들은 세비와 활동비는 받아 챙기고 상당한 특권까지 누린다. 의원들이 세비를 반납했다는 소리를 아직 한 번도 들은 적이 없다. 주변의 어떤 정치평론가는 선거 전술만 잘 세우면 국회의원에 당선되고 이것이 벤처 기업하는 것보다 훨씬 유리하다고 비아냥거리기도 한다.또 다시 제1 야당은 장외투쟁을 선포하고 국회는 개점휴업 상태이다.우리 국회는 최근에는 ‘동물국회’라는 소리까지 듣고 있다. 국회의원들이 동물처럼 몸싸움을 하는 것을 빗대하는 말이다. 정치의 기능을 흔히 권위의 합리적인 배분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 나라 국회는 비합리적인 행동으로 치닫고 있다. 패스트 트랙으로 야기된 이번 사태는 여야의원들이 이를 스스로 국회선진화법까지 팽개쳐 버렸다. 과거에도 단식 농성이 있고 수십 시간의 필리버스터식 연설은 있었지만 이번처럼 여야가 육탄전을 치르는 동물국회는 없었다. 국회의장은 저혈당 쇼크로 입원하고, 의장을 앞장서 저지했던 여성의원은 성추행당했다고 고소까지 했다. 자유한국당 의원 5명이 삭발 투쟁을 선언하고, 전국의 장외 투쟁은 더욱 가열되고 있다. 여야 가릴 것 없이 모두 의회 권위를 실추시키는 행위이다.이 나라 의회가 식물국회와 동물국회를 반복하는 것은 아직도 후진적인 한국 정치 상황을 그대로 반영한 결과이다. 파당적 이해관계로 여야가 상호 부정하고 거부하는 네거티브 정치가 판을 치기 때문이다. 솔직히 말해 한국의 정치는 사이비 보수와 사이비 진보 정당 간의 극한적인 투쟁만 있는 정치이다.우리 정치가 날로 참된 정책 대결은 없고 ‘너 죽고 나 살기’ 위한 살벌한 전투장으로 변하고 있다. 정당 간 두 번이나 정권교체가 있었지만 여당은 언제나 힘으로 밀어붙이고, 야당은 이를 결사 저지하는 관습적 정치가 반복되고 있다. 국회가 패거리 정치의 이전투구 하는 모습만 보이니 자라나는 세대가 무엇을 보고 배울 것인가. 정치인들의 이러한 극한 대결 구도가 국민들까지 적대적 대립관계로 몰아가니 한심한 일이다.우리 국회가 최소한 식물국회와 동물국회라는 소리를 듣지 않으려면 여야 정치인들이 먼저 대오각성(大悟覺醒)해야 한다. 모두가 역지사지(易地思之)하는 설득과 타협이라는 민주주의 원칙으로 돌아가야 한다. 국민들도 이제 ‘좌익 독재 타도’나 ‘독재정권의 후예’라는 주장에 관심이 없다. 시대는 저만 큼 앞서 가는데 정치는 아직도 과거로 퇴행하고 있다. 여야는 이미 발효된 국회선진화법부터 엄격히 준수해야 한다. 양보나 타협은 정치적 배반도 아니며 굴종은 더욱 아니다. 여야 정치인들은 가슴에 손을 얹고 스스로 퇴행적 정치부터 반성하고 국회로 돌아오길 바란다. 간음한 여인을 향해 돌을 던지려는 군중을 향해 ‘너희 중에 죄를 짓지 않은 사람은 이 여인을 돌로 쳐라’는 예수의 말에 정치인들은 진정 귀를 기울여야 한다.

2019-05-07

희망 있음과 희망 없음 사이에 존재하는 삶

물론 인간의 삶 속에 ‘절망’이나 ‘희망’이 본래부터 확정된 상태로 존재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희망’이나 ‘절망’은 개개의 사람들이 다가올 미래에 대해 가질 수밖에 없는 태도와 관계된다. 사실 아무 것도 없다고 생각되던 삶을 유일하게 반짝거리는 것이 되도록 만드는 ‘희망’이나 이제는 더 이상 할 수 있는 것이 없다고 생각하도록 만드는 ‘절망’의 상태가 “모든 것은 마음먹기 달린 것”이라는 식으로 편하게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절망이든 희망이든, 자신의 삶에서 무언가 그러한 요소를 진단하고 그러한 상태에 자신의 삶의 방향성을 맞춘 사람들에게 있어서 다가오는 현실은 언제나 더 치명적인 것이다.우리는 매일매일 무언가를 위해서인지도 모르게 바쁘게 어떤 길을 따라 걸어가고 있다. 또 가끔은 가는 길을 멈추고 길옆에 놓여 있는 의자에 앉아 내가 지금 어디로 향해 가고 있는가, 곰곰 생각해보기도 한다. 하지만 인간이 살아가면서 동시에 자신이 어떤 방향으로 살아가고 있는가 하는 것을 알 수는 없다. 달리기 선수가 결승점을 향해 달려 나가면서 자신이 어떤 모습으로 달리고 있는가 하는 것을 동시에 알 수는 없는 것처럼 축구선수가 축구를 멈추고 자신에 대해서 가만히 생각해보아야 자신이 지금 골대 앞에서 어떻게 했는가 하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처럼. 일상의 삶을 살아가는 우리의 삶의 영역과 그것이 어디로 향해가고 있는가 하는 조망하는 영역은 서로 분리되어 있는 것이다.내 작은 방 구석에 놓여 있는 화분 속 식물은 빛과 물이 가리키는 방향을 따라 자신이 담고 있었던 모든 가능성을 발휘하여, 그 작은 몸을 애써 새로운 싹을 틔운다. 자연스러운 생명의 작용이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우리에게 주어지는 자신에 대한 증명과 타인과의 경쟁으로 점철된 하루의 고단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그것은 누구나 모두 마찬가지이다. 그러다, 저녁이 되어, 잠시 치열한 일상의 삶에서 벗어나게 되면, 비로소 우리는 자신의 삶이 어떤 방향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가, 그것에는 희망이 있는가, 하는 것을 생각해보게 된다. 때로는 그 ‘희망 없음’에 절망하기도 한다.이렇게 삶의 궤도에서 잠시 내려와 있는 시간에, 우리가 ‘인생론’이나 ‘자기계발론’에 마음이 기울 수밖에 없는 것은 바로 시간이 흐르는 대로 이렇게 살아도 좋은가 하는 불안감 때문일 것이다. 삶은 누구에게나 처음이기 때문에 내가 향해가고 있는 길이 의미 있는 길인지 그 속에 ‘희망’이 있는지 하는 것은 누구도 확신할 수 없다. 번잡한 술자리에서 큰소리로 짐짓, 사람으로 태어난 이상, 이렇게 살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의 눈동자에 어려 있는 확신은 사실은 불안함을 이겨내고자 자신을 단련한 결과에 불과하다. 우리의 말은 ‘희망’을 말하지만 그 말속에 담긴 ‘희망’은 이 세상에 그것이 존재한다는 유일한 증거이기 때문이다.우리의 삶은 어디로 흘러가야 하는가. 또 우리의 사회는 어디로 흘러가야 하는가. 우리가 조망하는 삶의 이상은 우리가 살아가야만 하는 방향으로 일직선으로 펼쳐져 지평선을 만들고, 이상을 말하는 우리의 말과 글은 논리에 따라 전개된다. 그렇게 삶의 방향성을 향해 여러 가지 이상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그곳에서 희망을 발견한 사람들이 서로 교차하고 있는 것이 우리의 삶에 대한 관점을 만드는 것이다. 중세 이후 신의 언어를 대신하는 인간의 의미와 가치에서 희망을 발견했던 르네상스의 인간들이 그러했고,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군중’ 속에서 그 일원으로 살아가면서 동시에 ‘군중’ 바깥에 존재하는 현대인들에 대해 조감하는 시선을 갖고자 했던 보들레르 같은, 파리의 산책자들의 불가능한 꿈이 그러한 것이었던 셈이다.지금까지 인간의 삶에 존재하는 이상이나 희망을 말했던 많은 작가들이 있었지만 아마도 중국의 소설가 루쉰(魯迅·1881~1936)만큼 ‘희망’에 대해 조심스러운 견해를 가졌던 작가는 또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결연한 태도와 큰 목소리로 절망적인 상황과 그 속에 존재하는 ‘희망’을 이야기하는 사람에게 우리는 자연스레 마음이 기울고 그에게 막연한 기대를 걸어보고 싶어지게 되지만, 차분한 태도와 떨리는 목소리로 만연한 ‘절망’과 ‘희망’이 갖는 위험성에 대해 말하는 사람과는 차를 한 잔 나누면서 그가 갖고 있는 생각의 근거에 대해서 대화하고 싶어진다. 루쉰은 바로 결코 섣부른 절망이나 희망을 이야기하지 않는 그러한 작가이다. 작은 서가를 뒤져, 루쉰의 소설집 서문의 한 대목을 작게 소리 내어 읽어본다.“가령 말일세. 창문도 없고 절대로 부술 수도 없는 쇠로 된 방이 하나 있다고 하세. 그 안에 많은 사람들이 깊이 잠들어 있네. 오래지 않아서 모두 숨이 막혀 죽을 거야. 그러나 혼수상태에서 사멸되어 가고 있는 거니까 죽음의 비애 따위는 느끼지 못할 걸세. 지금 자네가 큰 소리를 질러 비교적 의식이 뚜렷한 몇 사람을 깨워 일으켜서, 그 소수의 불행한 이들에게 구제될 수 없는 임종의 고초를 겪게 한다면 자네는 그들에게 미안하지 않겠는가”“그러나 몇 사람이라도 일어난다면 그 쇠로 된 방을 부술 희망이 전혀 없다고는 할 수 없지 않은가”그렇다. 나는 비록 내 나름대로의 확신을 가지고 있었지만, 희망에 대해서 말하자면 그것을 말살시킬 수는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희망이라는 것은 미래를 향하는 것이므로, 반드시 없다고 하는 내 확신을 가지고, 있을 수 있다는 그의 주장을 꺾을 수는 없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나는 마침내 그에게 글을 쓰겠다고 응답했다.-루쉰, 김시준 역, ‘제 1소설집 납함의 자서(自序)’, ‘루쉰소설전집’, 서울대학교 출판부, 1996, 8-9쪽.‘쇠로 된 방에 대한 비유’로 알려진 이 대목은 ‘희망’이나 ‘희망’을 말하는 행위의 본질에 대해 가장 잘 알려준다. 루쉰은 식민지 상황에 놓여 있던 중국인들의 몸이 아니라 정신을 새롭게 바꾸기 위해서 문학을 하기로 결심하였다. 이를 위해, 자신이 생각했던 사회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잡지 ‘신생(新生)’이라는 야심찬 기획을 준비하였지만, 그 기획은 결국 여러 가지 현실에 부딪혀 아예 좌초되어 버렸다. 처음에 의기투합했던 세 명의 사람마저 장래의 꿈을 마음 놓고 이야기할 수조차 없게 된 것이다. 그야말로 적막 그 자체였다. 그곳에 ‘희망’이 있다고 할 수 없었을 것이다.일상의 삶에서 희망을 갖는 것은 누구에게나 나쁜 일이 아니지만, 그것을 소리 높여 말하여, 아마도 그 희망이 없었다면, 희망도 절망도 아니었을 사람들을 깨워 깊은 절망을 경험하도록 하는 일이 과연 옳은 일일 것인가 루쉰은 고민하고 있는 것이다. 아마 이러한 고민들은 사회적 이상을 말하거나 계몽을 말하는 정치가들이라면 결코 하지 않을 고민일 것이다.그럼에도 루쉰은 자신의 고민에 대한 친구의 발언을 듣고, 희망은 미래를 향해 있어 아무도 알 수 없는 것으로, 희망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자신의 확신이 타인의 희망을 꺾을 수는 없다는 생각을 하면서 소설을 쓰기 시작하고, 자신의 첫 소설인‘광인일기’를 완성했던 것이다.루쉰의 소설들은 대부분 섣불리 희망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의 위대함은 여기에 있다. 정치가든 소설가든 누구나 희망이나 절망을 입에 올릴 수 있지만 자신의 말 속에 담긴 그것이 아직 그러한 적막과 고독을 경험하지 못한 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줄 것인가 예민하게 자각하고 있는 작가는 그가 유일하다. 분명 그는 ‘희망’을 말하기 망설이고 있는 작가이며, 그 망설임은 작가에 대한 신뢰로 되돌아온다.당시 여느 중국인들이 그러하듯,‘정신적 승리’로 살아가다 나름의 이유로 대인의 댁에, 또 나름의 이유로 혁명당에 가담한 아큐나, 주점에서 일하면서 살아가는 소년에게 굳이 문자 쓰는 법을 알려주고 싶어 했던 쿵이지가 발견한 희망은 모두 각자 나름의 ‘희망’을 구성하는 것이었던 셈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삶은 결국 누군가 발견한 희망-있음과 희망-없음 사이에서 만들어지는 것은 아닐까. 오늘만큼은 소리를 낮추고 조용히 말해보는 것이다. /송민호 홍익대 교수

2019-05-06

새겨야 할 퇴역장군의 일침

강희룡 서예가조선 중기의 선비이자 재상이었던 유성룡(1542~1607) 선생의 ‘서애집(西厓集), 감사(感事)’에 ‘양을 잃었어도 우리를 고치고/ 말을 잃었어도 마구를 지을지어다./ 지난 일은 비록 어쩔 수 없지만/ 오는 일은 그래도 대처할 수 있으니.’라는 시 한 구절이 보인다. 서애 선생이 임진년(1592)의 왜란을 겪고 난 다음 해 어가를 모시고 도성으로 돌아온 뒤 지은 시의 한 구절이다. 유성룡은 수많은 인명을 앗아가고 비옥했던 강토를 초토화하게 만든 참혹했던 전화를 회고하면서 임진왜란의 원인과 배경 그리고 자신의 잘못과 조정의 실책 등을 진단하였다. 그중에서도 조정의 대비와 조치가 백약이 무효였던 근본적인 원인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읊고 있다. ‘기강이 이미 풀렸으니/ 만 가지 계책 허사로다./ 많은 병사가 시급한 것이 아니라/ 장수 하나 얻기 참으로 어렵구나.’다시 말해 조정 관료의 기강이 해이해지고 위정자의 용인(用人)이 실패함으로 인해 왜란을 미연에 방비하지도 초기에 막아내지도 못하여 전 국토가 병화에 휩싸이고, 생령이 도탄에 빠진 것은 물론 임금이 의주까지 몽진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이어서 다시는 그 같은 전철이 반복되지 않도록 대비해야 한다는 뜻에서 ‘양을 잃고 우리를 고친다.’는 고사를 인용하여 끝맺고 있다. 망양보뢰(亡羊補牢)는 어떤 일을 실패한 뒤에 뉘우쳐도 아무 소용이 없음을 이르는 말로 그 뜻이 변용되어 쓰이기도 하지만, 본래는 어떤 일을 실패한 뒤라도 재빨리 수습하면 그래도 늦지는 않다라는 뜻의 성어이다. 국가든 개인이든 양을 잃기 전에 미리 그 기미를 알아차려 우리를 고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것이 국가의 정책이나 제도, 법령에 관계된 것이라면 더욱 그러하다. 양을 잃은 뒤에라도 우리를 고치는 것이 차선책이라면, 여기서 중요한 것은 양을 잃은 원인을 정확하게 진단하는 것이다. 원인에 대한 정확한 진단 없이는 올바른 해결책이 나올 리 만무하기 때문이다.군 검찰의 수사를 받다가 전역식도 제대로 못하고 군을 떠났던 박찬주 예비역 육군대장이 지난달 30일 육군 후배들에게 뒤늦은 전역 인사를 했다. 그는 이른바 ‘공관병 갑질 의혹’ 논란에 휩싸인뒤 수뢰 혐의로 한때 구속됐다가 지난달 26일 항소심에서 뇌물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받았다. 박 전 사령관은 이날 후배 장교 및 장성들에게 보내는 전역사(轉役辭)에서 ‘네 가지 당부’의 메시지를 보냈다. 첫째로, 군의 정치적 중립. 둘째로, 정치가들이 평화를 외칠 때 전쟁을 준비하는 각오. 셋째로 정치지도자들에게 다양한 군사적 옵션을 제공, 넷째로, 군대의 매력 증진 등의 당부를 남겼다.간혹 정치인들이 상대편의 선의를 신뢰하더라도 군사지도자들은 그 선의나 ‘설마’를 믿어서는 안 되며 스스로의 능력과 태세를 믿을 수 있도록 대비해야 한다. 힘이 뒷받침되지 않은 평화는 허상이며, 전쟁을 각오하면 오히려 전쟁을 막을 수 있다고 했다. 평화를 유도하는 것은 정치의 몫이지만 평화를 지키는 것은 군대의 몫이다. 지금처럼 정치집단이 좌우로 나뉘어져 극도의 혼란이 거듭되는 극한대치상황과 현 정부의 장밋빛 친북정책행보는 국민들의 시선에는 대단히 불안정한 인식으로 비쳐지고 있다. 일 년 전의 판문점선언은 남북관계 발전을 바탕으로 한반도의 긴장완화와 나아가서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라는 등식으로 출발했지만, 비핵화를 위한 평화가 아니라 평화를 위한 비핵화 합의라는 성공조건은 애초부터 존재하지도 않았을지 모른다. 퇴역장군의 말대로 군 조직 내에 정치군인들이 활개치고, 정부 스스로 국가방위태세를 허물며 평화의 허상을 쫓는 정책이 지속된다면 국가의 유지조차 어려울지 모른다. 4세기 로마의 군사전략가 베게티우스가 말한 ‘평화를 원하거든 전쟁을 대비하라.’고 한 명언이 생각난다. 퇴역장군의 일침이 가슴 속 깊이 새겨드는 현실이다.

2019-05-06

자녀를 위해 중국 위안화 자산을 사라

김학주한동대 교수아직 중국의 위안화는 세계 중앙은행들의 외환보유고 통화로서는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지만 점유율 상승세는 두드러진다. 런던시장에서 파운드보다 위안화 거래가 더 많고, 러시아의 경우 이미 외환보유고의 15%가 위안화다. 시간이 갈수록 위안화는 다음과 같은 구조적 이유들로 인해 달러의 점유율을 가져 올 것이다.첫째, 석유결제 통화로 위안화가 포함되어 갈 것이다. 산유국들 가운데 러시아, 이란, 베네수엘라를 비롯해 상당 국가들이 미국을 싫어한다. 이들 산유국이 결제통화로 달러뿐 아니라 위안화도 받는다면 세계 중앙은행들은 외환보유고에서 달러를 일부 팔아 위안화를 사야 한다. 그 만큼 위안화 가치가 상승할 것이다.그런데 산유국 기업 가운데 중국에게 파는 석유에 대해서는 이미 위안화로 결제하는 곳이 있다. 그래서 미국은 이란을 제재한다. 이란이 수출하지 못하는 석유를 사우디가 대신 팔 것이다. 즉 미국은 말 잘 듣는 사우디를 챙겨주려는 계산이다.사실 유럽도 달러 단일결제 통화 시스템에 불만을 제기한다. 꼭 비싼 달러를 사서 석유를 구입해야 하느냐는 것이다. 상황에 따라 싸게 살 수 있는 통화를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는 논리다. 한편 중국은 세계 최대의 석유 수입국이 됐다. 그만큼 석유 거래에 있어 위안화 결제의 명분이 생길 전망이다.둘째, 중국은 이미 세계 최대 소비시장이다. 다른 나라 물건을 사 줄 수 있어야 ‘큰 형님’ 소리를 들을 수 있고, 이것이 ‘패권’이다. 중국의 내수 규모는 이미 미국을 추월했으므로 패권을 잡을 수 있는 자격이 생기고 있다. 1900년대 전반 미국은 세계대전에서 승리한 후 세계경제 재건과 성장에 필요한 자원을 생산할 수 있는 기술(RD)과 설비를 바탕으로 패권을 잡았다. 그러나 이제는 생산보다는 맞춤형 소비가 세계경제를 주도할 것이기 때문에 인구가 많은 아시아 지역으로 패권이 넘어 올 수 밖에 없다.셋째, 중국의 저축 감소로 인해 금융시장 개방이 불가피해지는 것도 위안화 절상 요인이다. 중국은 사회보장이 미흡해서 개인들이 저축을 많이 했다. 그런데 2013년 경제활동인구가 정점을 찍은 이후 저축이 줄고 있다. 이제는 저축했던 돈을 찾아 써야 하는 은퇴자들이 늘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중국의 수출이 감소하는 반면 중국인들의 해외여행은 늘어간다. 이런 요인들로 인해 중국의 경상적자가 커지고 있다. 즉 중국 내부에서 돈이 모자란다는 이야기다.이제는 중국이 물건을 판 대금을 해외로 보내는 나라가 아니라 국내에서 모자라는 돈을 채우기 위해 외국에서 자금을 들여 와야 하는 형편이다. 그러려면 금융시장을 개방해야 한다. 한편 중국 내부에서 필요한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위안화 표시 채권 발행도 늘어날 것이다. 이렇게 위안화의 사용처가 늘고, 유동성이 증가할수록 통화의 가치는 증가한다.모건스탠리(MSCI)는 신흥국 주가지수에서 중국의 편입비중을 20%까지 높여 갈 계획임을 발표했다. 세계 대표 채권지수(Global Aggregate Index)에서도 중국 채권 비중이 수년 내 20∼25%까지 확대될 전망이다.단, 중국 위안화로의 패권 이동 속도를 의심해 볼 수 있다. 중국의 금융시장은 아직 분화되지 않은 조직 같다. 지금 개방 의지는 보이지만 미국이 흔들면 다시 혼란에 빠질 수도 있다. 미국은 2015년에도 그렇게 흔들었고, 그 당시 중국정부는 증권의 거래를 중지시키는 등 미숙한 태도를 보이며 신뢰를 잃기도 했다. 그러나 떠오르는 태양을 막을 수는 없을 것이다.중국 위안화의 편의성이 여러 국가들에 의해 체감될수록 위안화로의 통화패권 이동은 순식간에 진행될 수 있다. 미국 달러가 1950년대 기축 통화로 자리를 잡는 모습도 그랬다. 여러분들은 자녀를 위해 투자하지 않는가? 위안화 자산을 공부시키고, 사 주시면 어떨까?

2019-05-06

그녀가 맨발로 연주하는 이유

피아노에 뛰어난 재능을 보이던 스코틀랜드 소녀가 있습니다. 볼거리 후유증이 나타나 여덟 살때부터 조금씩 청력이 사라지기 시작합니다. 열 두 살이 되자 완벽한 귀머거리가 되지요. 피아노 연주자가 되기를 원했지만 귀가 들리지 않는 이 소녀는 어떤 선택을 할까요?친구가 오케스트라에서 나무로 만든 타악기 마림바를 연주하는 모습에 푹 빠져 초등학교 음악부에 들어갑니다. “선생님이 팀파니를 치는 동안 저는 연습실 벽에 손을 대고 음의 높낮이를 구분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어떤 음은 손가락을 약간 울리는데, 어떤 음은 온 몸 전체로 퍼져 나가더라고요. 제 몸이 공명하는 방처럼 울린다는 것을 그때 확실히 느꼈습니다. 몸 전체가 거대한 귀로 변하기 시작한 순간이었죠.”몸으로 듣는 방법을 익힌 소녀. 원하는 대로 소리를 다루기 시작합니다. “귀로만 들을 수 있다고 생각했을 때는 낙담뿐이었어요. 보청기 같은 기구에 의존해 보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소리가 왜곡되거나 고통스럽게 들릴 뿐이었죠. 보청기를 벗어 던지니 자유가 찾아온거에요.”소녀 이름은 에벌린 글레니(Everlyn Glennie). 에벌린은 무대에 오를 때마다 맨발로 섭니다. 온몸으로 소리의 떨림을 느끼고 몸 자체로 음악과 교류하기 위해서지요. 그녀의 별명은 맨발의 연주자입니다. 포기를 모르는 열정의 소녀. 아침 7시 반부터 밤 10시까지 연습에 매달립니다. 밥을 먹을 때나 화장실에 가서도 악보만 생각하지요. 삶 전체가 음악이요, 몸 전체가 귀입니다. 에벌린은 1982년 런던 왕립 음악원에 입학을 시도합니다. 당연히 거절당합니다. ‘런던 왕립 음악원은 청각 장애인에게 입학을 허가하지 않습니다.’ 거절 사유가 분명합니다. 그녀는 이 거절을 거부합니다. 학교 측에 자신을 청각 장애인이라는 잣대로 볼 것이 아니라 음악가로서 봐 달라고 당당하게 요청해 입학 심사를 받습니다. 교수들의 반대에 불구하고 세계적인 마림비스트 게이코 교수가 제자로 받아들입니다. 꿈을 묻는 기자들에게 눈을 반짝이며 말합니다. “듣는 것을 가르치는 센터를 세우고 싶습니다. 제대로 듣는 일은 절대로 대충할 수 있는 일이 아니거든요.”경청이 어려운 이유는 귀가 들리기 때문입니다. 역설이지요. 귀로 다 들을 수 있다고 생각하니 집중하지 못합니다. 다른 잡념이 들어오고 이해하려는 동기로 듣는 것이 아니라 내 생각을 말하기 위해 듣습니다. 눈부신 오월에는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저와 그대 삶이기를. /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 대표

2019-05-06

전쟁터 대신 토론마당에 나서라

신희선숙명여대 기초교양대학 교수·정치학 박사자유한국당이 장외집회를 이어가고 있다. “염치없고 뻔뻔한 정부를 두고 볼 수 없다”며 전국 투어에 나섰다. ‘독재 타도’와 ‘헌법 수호’를 외치며 국회의원들이 머리를 삭발하고 “죽을 각오로 싸우겠다”고 열변을 토한다. 국회선진화법의 일환인 패스트트랙으로 선거법을 지정하며 벌어진 여야대결 정국이 점입가경이다. “다이너마이트로 청와대를 폭파시키자”는 주장마저 등장한 상황이다. 현 정부를 독재정권으로 규정하고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거리로 나섰다는 자유한국당의 주장은 야당 시절 민주당이 했었던 말들이다. “규탄의 언어는 유사해도 해결책의 언어에서 차이가 발생한다”고 했던가. 공격과 수비, 서로의 입장이 바뀌니 자유한국당이 ‘독재정치’ 종식을 외치고 있다. 이처럼 갈등으로 치닫고 있는 정국을 어떻게 풀어갈 것인가?“정치판에서 유일한 보상은 권력이다. 권력을 내가 잡지 않으면 빼앗기는 것이므로 제로섬 게임이다. 이기는 것이 제일 중요하고, 경쟁자를 헐뜯어도 시장의 규모가 줄어들 위험이 없다. 이런 조건에서라면 네거티브 광고는 절대적으로 필요한 무기다” 앤드류 포터는 ‘진정성이라는 거짓말’에서 이같이 말한다. “가짜인 것, 포장된 것이 넘쳐나는 세상에 살고 있다. 어디로 눈을 돌려도 터무니없는 광고나 거짓말을 일삼는 정치인을 피할 길이 없다” 정치인들은 누구나 예외 없이 국민을 위한다고 말하지만, 공허한 수사에 불과하다. 더구나 대화와 토론이 실종되면서 극단적이고 선동적인 언어들이 난무하고 있다.‘국민’을 앞세우지만 지금의 정치는 민생과 거리가 멀다. 국민들을 위한다는 말로 포장하였지만 “내 말은 진실이고 남의 말은 진실일 수 없다”는 입장에서 서로를 공격할 뿐이다. 청와대 홈페이지 국민청원 코너에 정당 해산을 촉구하는 글들이 이어지고 있다. “자유한국당을 해산시켜서 나라가 바로 설 수 있기를 간곡히 청원한다”는 국민 청원 글은 어느새 177만 명을 넘어서고 있다. 과거 청와대가 나서서 통진당을 해산했던 전례를 언급하며 자유한국당을 해산시켜 달라는 것이다. 국민들의 소박한 바람일 수 있으나, 행정 권력이 의회를 좌지우지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근본적인 훼손이다. 청와대가 정당 해산에 영향을 미치는 일이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 정당의 목적은 권력 쟁취에 있다. 그러나 그 권력은 어디까지나 국민을 위하는데서 출발하는 것이다. 그들만의 이해 다툼으로 이루어지는 정치에 국민들은 염증을 느낀다. 내우외환의 상황에서도 밥그릇 싸움에 골몰하고 있다. 대외적으로 북한 핵과 주변 4강국과의 복잡한 외교문제로 힘들고, 지난 1·4분기 경제성장률이 마이너스를 기록하고 있는데, 이렇듯 진흙탕 싸움을 하는 것이 과연 국회의 역할인지 묻고 싶다. 정권쟁취를 위한 집단이익에 함몰되어 있는 정당들의 이해타산적 계산방식이 개탄스럽다. 정치에는 항상 상대방이 있다. 이를 인정해야 정치 발전이 가능한 것이다. 자신은 옳고 상대는 그르다고 비난하는 비방의 메시지로는 상황을 해결할 수 없다. 상생과 협치의 측면에서 갈등 국면을 풀어가는 정치력이 요청된다.“정치는 양심과 권력이 만나는 영역”이다. 라인홀드 니버는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에서 “인간 사회의 집단적 이기심은 불가피하다”고 말한다. 만약 한 집단의 이기심이 비정상적으로 확장될 경우에는 다른 집단이 이를 견제할 수 있어야 한다고 하였다. 또한 정치적 혼란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사실들(facts)을 주도면밀하게 다루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강조하였다. 사회적 사실에 대한 합리적인 분석만이 가식을 벗겨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국민들을 위한다’는 말이 과연 진정성이 있는지 따져 물어야 한다. 설득과 조정을 통해 문제를 해결해 가도록 민주주의가 제 역할을 해야 한다. “경쟁하는 세력들이 ‘전쟁터 보다는 토론의 마당’을 사용할 것”을 국민의 이름으로 촉구한다.

2019-05-06

카톡 청첩장

청첩은 주로 경사스러운 일이 있을 때 주인이 사람들을 초청하는 글을 말한다. 따라서 청첩장은 혼인 잔치만이 아닌 돌잔치, 회갑잔치 등에 쓰이는 초대장을 가리킨다. 1973년 ‘새가정의례준칙’에“혼례, 수연의 청첩장이나 부고장을 돌리면 안 된다”라는 규정이 생긴 것으로 보아, 1970년대 이전에는 회갑잔치에도 청첩장을 돌리는 일이 많았던 것으로 추측된다. 그러나 1990년대 이후에 돌잔치, 회갑잔치 등의 규모가 축소되면서 혼례식에 초대하는 문서만을 보통 ‘청첩장’으로 부르고 있다.청첩장은 공문서가 아니지만 갖추어야 할 요건을 제대로 갖추어 매우 신중하게 보내는 것이 예의에 맞다. 보통 결혼식의 날짜와 시간, 장소, 예식장에 오는 길과 차편 등을 기록하며, 혼인 당사자의 부모와 당사자의 이름을 명기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1990년대 이후에는 결혼식 참석에 대한 감사의 뜻이나 신랑·신부의 결혼 생활에 대한 의지 등을 함께 표현하기도 했다. 194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는 제3의 인물인 청첩인을 내세워 청첩장을 보내는 것이 대부분이었으나 1970년대 이후의 청첩장을 보면, 청첩하는 주체는 신랑·신부의 부모, 즉 혼주인 경우가 많았다. 1990년대 이후에는 혼인 당사자가 청첩의 주체가 되어 직접 보내는 형식으로 바뀌었다. 결혼 당사자가 자신의 결혼식에 직접 청첩인이 된 것은 혼주의 역할이 축소됐음을 반영한다.청첩장 안내문의 변화는 결혼이 집안의 행사에서 개인의 일로 변화하고 있다는 걸 반영하고 있다. 2010년 이후에는 인터넷 통신 및 스마트폰의 발달로 친소관계에 따라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나 문자메시지, 이메일 등으로 간단하게 결혼 소식을 전하면서 종이로 된 청첩장을 대신하는 예가 크게 늘고 있다. 실제로 최근에는 카카오톡이나 문자메시지로 부고 또는 청첩이 왔을 경우 스마트폰 화면을 캡처해 프린트 해놓은 것 만으로도 종합소득세 신고시 비용처리가 가능할 정도로 보편화됐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결혼 소식을 전하는 데에는 종이로 된 청첩장이 여전히 중요하다. 예의를 다해 손님을 청하고, 대접하는 것이 현대라고 해서 나쁠리 없기 때문이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19-05-06

나방의 아름다운 고통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영국의 유명한 과학자 ‘알프레드 러셀 윌리스’는 고치에서 빠져 나오는 나방을 관찰·연구했다. 나방은 바늘구멍만한 구멍을 하나 뚫고 그 틈으로 나오기 위해 꼬박 한나절을 애썼다. 그렇게 아주 힘든 고통의 시간을 보낸 후 번데기는 나방이 되어 공중으로 훨훨 날갯짓하며 날아갔다. 어느 날 윌리스는 고치를 벗어나기 위해 애쓰는 나방이 안쓰러워 쉽게 빠져나올 수 있도록 칼로 고치의 옆부분을 살짝 째주었다. 나방은 쉽게 고치에서 빠져 나올 수 있었다. 하지만 좁은 구멍으로 나오려고 안간힘을 쓰던 나방은 영롱한 빛깔의 날개를 가지고 힘차게 날아오른 반면, 쉽게 고치에서 나온 나방은 날개의 무늬와 빛깔도 곱지 않았고, 몇 차례 힘없는 날갯짓을 하고는 죽고 말았다. 그렇다. 어려운 고통이 없다면 얻는 것도 없다. 한낱 나방의 삶도 그럴진 데, 하물며 인간의 삶을 좌우하는 정치는 말해 무엇하랴.지난 한 주 동안 패스트트랙 정국으로 여야가 난장판을 치른 뒤 패스트트랙 추진에 성공한 여야4당과 저지에 실패한 자유한국당의 득실을 조목조목 따져보는 사람들이 많았다. 일단 원내 제1, 2당인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은 패스트트랙 관철·저지로 엇갈렸지만 각각 나름의 성과를 거뒀다는 평가다. 여야당 모두 자신들의 구성원과 지지층 내부 결속을 강화하고, 지지층을 결집하는 계기로 승화했기 때문이란다.하지만 필자는 이번 패스트트랙 정국에서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이 더 많은 것을 잃었다고 생각한다. 우선 이번 패스트트랙 강행 자체가 현 정부의 경제실정에 대한 야당의 공격을 막고, 시선을 돌리기 위한 집권 세력의 전략적 선택이었다는 지적에 공감한다. 또 야당이 법안추진에 항의하고 반대하며 소리를 지르고, 국회 회의장 문앞을 점거해 몸싸움을 벌인 일련의 행위들은 동물국회를 막기 위해 발의한 국회선진화법을 정면으로 위반한 처사라는 비판을 면할 수 없게됐다는 점도 거북하다. 장외투쟁에 나선 한국당이 ‘광화문 문재인STOP집회’에 3만여명이 모였다며 지지층 결속에 성공했다는 평가를 내놓는 것 역시 섣부른 판단이다.극우로 치부되는 대한애국당의 ‘박근혜 대통령 살리기 집회’에도 3만여명의 인파가 모이는 광화문이고, 그나마 당력을 기울여 동원한 인파라는 걸 모르는 사람이 없다. 그나마 친박과 비박계로 나뉘어 싸우다가 시위와 농성과정에서 동지애 또는 전우애로 뭉칠 기회가 된 점은 평가할만 하다. 그렇다 해도 소탐대실이다. 한국당이 지금처럼 골수 보수나 적극적인 한국당 지지층의 입맛에 맞는 행보만 거듭해선 전세를 뒤집을 가망이 없기 때문이다. 여론조사에 나타나는 한국당 지지율이 30%대에 머무르는 이유다.따라서 지금부터라도 한국당은 중도보수를 끌어들일 수 있는 정책마련에 올인해야 한다. 소득주도성장, 최저임금소득 인상, 주52시간 근로제 등으로 중소기업과 영세자영업자들의 신음소리가 커지고 있는 상황인 만큼 현 정부와는 차별화된 새 비전을 제시하는 데 힘을 쏟아야 한다. 여당과 싸우는 방식도 바꿔야 한다.추경예산 심의를 보이콧하고, 광화문 집회 등 장외투쟁에 매달리는 구태의연한 방식으로 싸워선 안된다. 포항지진이나 강원도 산불같은 재해추경예산은 하루빨리 심의에 나서 통과시키고, 포퓰리즘 퍼주기 예산이나 불합리한 예산편성은 견제하며, 현안이 되는 법안의 불합리한 점은 국민앞에 낱낱이 반대 이유를 밝혀야 한다. 이대로 국회밖에서 장외투쟁만 일삼다가는 자칫 자유한국당이 문재인 정부의 가장 큰 아킬레스건인 경제실정에 대한 책임조차 나눠 짊어질 수 있다.특히 정부에 대한 중간평가 성격의 총선이 1년도 채 남지 않은 상황에서 대안을 제시하는 대안정당으로 거듭나야한다. 그런 과정이 고통스러울 수 있지만 애벌레가 고치를 벗고 나방으로 거듭나듯 제1야당이 새로운 모습으로 거듭나 국민들에게 희망이 되어주길 기대한다.

2019-05-02

미륵사지 석탑의 복원

불교에서 탑(塔)은 무덤을 뜻하기도 한다. 석가모니가 세상을 떠나기 전 탑을 세운 뒤 자신의 사리를 이곳에 보관하라고 하면서 탑의 역사가 시작됐다고 한다. 초기 불교에서 사리를 안치한 탑 중심의 신앙이 강했던 것은 이런 연유 때문이다. 탑은 나무로 만든 목탑, 돌로 만든 석탑, 벽돌로 만든 전탑, 돌을 벽돌처럼 쌓은 모전석탑 등 여러 종류가 있다. 인도나 중국은 전탑이 많고 일본은 목탑 그리고 한국은 석탑이 많은 나라다. 우리나라 석탑은 삼국시대부터 만들어졌다고 전한다. 삼국시대 석탑으로 현존하는 탑은 신라 경주의 분황사지 모전석탑과 백제의 익산 미륵사지 석탑, 부여 정림사지 석탑이다. 지금으로부터 1천여 년 전에 세워진 석탑인 만큼 모두가 보존 상태가 온전치 못한 건 사실이다.경주에 있는 분황사지 모전석탑은 신라 석탑 가운데 가장 오래됐을 뿐 아니라 걸작품으로 평가된다. 불행히도 원형의 모습은 사라지고 3층까지의 모습만 남아있어 아쉬움이 있다.1915년 일본인에 의해 개축·보수된 것이 지금의 모습이다. 기록에 의하면 이 탑은 처음 만들어진 이후에도 수없이 개축된 것으로 확인돼 신라시대 원래의 모습을 상상하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 이 탑은 멀리서 보면 벽돌로 쌓은 전탑 같지만 가까이 다가서 보면 돌을 하나하나 벽돌 모양으로 깎아서 만든 탑이다. 전탑이 유행한 중국의 영향을 받았던 것으로 보인다.익산 미륵사지 석탑(국보 제11호) 복원공사가 20년 만에 완공됐다는 소식이다. 백제시대 최대 사찰로 알려진 미륵사 금당 앞에 세워진 이 석탑은 반파 상태로 6층 일부까지만 남아 있었다.설상가상으로 일제 강점기에 파손된 부분을 콘크리트로 덧씌워 탑은 일찌감치 제 모습을 잃었다. 문화재 당국의 노력으로 장장 20년의 복원사업이 진행됐다. 우리나라 문화재 복원사업 사상 최장 기록이다. 석탑의 보수는 국제 수준에 맞게 보수, 정비과정을 거쳤다고 한다. 석조 문화재 수리의 선도적 사례가 될 것이라도 한다. 문화재 보존을 위해 20년을 공들여 온 문화재 당국의 인내와 의지가 놀랍다. 1천380년 전 삼국시대 석탑이 어떤 모습으로 복원됐을까 궁금하다. /우정구(논설위원)

2019-05-02

아부다비에서 원전을 생각하며

서의호 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1인당 국민소득 10만불이라는 초부유국 UAE 아부다비에 회의 참석차 왔다.회의 자체는 대학평가에 관한 회의이지만 초대된 많은 전문가들이 원전에 관한 전문가인 것들이 이채로웠다. 한국에서 초빙된 전문가도 원전 전문가였다. 그만큼 원전에 대한 이곳의 관심은 뜨겁다.7개의 토후국으로 이루어진 UAE에서 가장 면적이 크고 OPEC 석유생산의 10%, 세계 석유생산의 5%를 감당한다는 세계 초부유국 UAE의 아부다비는 고급 호텔 건물에서 잘 정돈된 거리까지 모두 풍부한 자금을 가진 아부다비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1980년 수교하고, 그리고 10년 전 원전수주를 계기로 맺어진 한국과 UAE의 ‘전략적 동반자 관계’는 보수정부 시절 바라카 원전 수주와 아크부대 파병 등으로 꽃이 피면서 중동에서 유일한 우리의 전략적 동반자 국가가 됐다. 교역량 150억달러, 중동에서 우리의 수출 1위국인 허브 국가이다.UAE는 한국을 선택했다. 계약대로 4개의 원전이 모두 완성되면 UAE 발전량의 25%를 우리가 지은 원전이 담당하게 된다. 이런 사업을 원전 수출 경험이 전무했던 한국에 맡긴 것은 UAE로선 중대 결단이었다.그런데 문재인 정부에서는 “원전은 안전하지도, 저렴하지도, 친환경적이지도 않다”며 원전폐기정책을 발표했다. UAE로선 황당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문 대통령은 UAE 방문중 “바라카 원전은 축복”이라고 달래긴 했지만 여전히 정부의 원전에 대한 국내 정책은 UAE 뿐만아니라 원전수출에 결정적 걸림돌이 되고 있다.포스텍, 카이스트, 서울대 등 전국 13개 대학의 원자력공학도가 모여 결성된 녹색원자력학생연대는 주말마다 전국 주요 KTX역에서 탈원전 반대 및 신한울 3·4호기 건설 재개 서명운동을 받기도 했다. “10∼20년 후 원자력계를 이끌어갈 학생들이 떠나면 원전 기술도 후퇴할 수 밖에 없다”고 원자력 관련 교수들은 말한다.한국이 UAE에 원전을 수출하는 것을 보고 원자력공학도의 꿈을 키웠던 학생들은 이제 바뀐 상황에서 원자력공학의 꿈을 접고 있다. 교수들도 원자력계 일자리가 줄어드는 문제 외에 공들여 쌓아올린 원전 생태계를 어떻게 가꾸어 갈지 고민이다.정부가 탈원전 정책으로 전기요금이 오르지 않을 것이라고 했지만 지난해 한국전력공사가 적자를 냈고 원전보다 비싼 LNG와 신재생에너지 발전을 확대하면 전기요금의 계속적 인상은 불가피하다는 것이 현실이다.이런 와중에 기쁜 소식이 들린다. 우리나라가 개발한 차세대 원전인 APR1400이 8년여 만에 미국 원자력 규제 당국으로부터 안전성을 입증받아 설계인증서(DC)를 취득하게 됐다는 소식이다. 원전 기술 종주국인 미국의 DC를 외국 기업이 단독으로 받는 건 사상 최초다. DC는 미국에서 APR1400을 짓고 운영할 수 있다는 세계 최고 수준의 안전성 인증이어서 차세대 한국형 원전의 수출 가능성이 한층 커지게 됐다. 미국원자력규제위원회(NRC)는 한국전력과 한국수력원자력이 25년 전 제출한 APR1400에 대해 더 이상 기술적 이슈가 없어 신속한 법제화 절차를 진행한다고 발표했다. 해외에서 더 인정받는 한국의 원전 기술이다.정부가 탈원전 정책이라는 대전제를 정해두기보다 원전, LNG, 석탄, 신재생에너지 등 각각의 에너지원별로 객관적인 평가를 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각각의 에너지원은 장단점을 함께 가지고 있고 서로 보완적 성격을 가진다.에너지정책은 경제성, 환경, 안전을 모두 감안해 정해야 하며 특정 에너지원에 일방적 단정을 하기 보다는 모든 에너지원에 대한 포트폴리오(자원배분) 정책을 세워야 한다.현 시점에서 최선은 무엇일까 생각해 본다. 신재생에너지와 원전이 함께 공유하는 포트폴리오 정책이 최선이라고 생각된다. 선거공약에 집착하기 보다는 진정 무엇이 국가경제발전에 도움이 되는가를 냉철하게 생각할 때이다.

2019-05-02

아동인권

김영식 굿네이버스 경북동부지부 초등교육전문위원·연일형산초등학교 교장어린이날을 제정한지 97년이 되었다. 우리 아이들 인권은 얼마나 더 나아졌을까?2019년 국내 청소년들이 직접 만들어 UN에 ‘한국 아동보고서’를 제출하였다. 이 보고서에서는 우리 학생들의 주당 평균 학습시간은 OECD 국가 평균의 최대 두 배이며, 놀 권리가 침해 되는 건 과도한 학구열, 학생이 놀면 안 된다는 인식에서 비롯된다고 한다. UN아동권리위원회는 이 같은 국내 아동청소년들의 의견을 반영해서 오는 9월 본회의에 참석할 우리 정부에 권고사항을 전달할 것이다. 그동안 교육현실에서 단지 학생이라는 이유로 이들의 인권을 너무도 쉽게 무시해 온 것이 사실이다.가정폭력은 학교폭력으로 이어지고, 어릴 적 피해자가 어른이 되어서는 가해자가 된다. 이들은 미래의 또 다른 폭력의 씨앗이 되기 때문이다. 이른바 악순환이 돌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장차 우리사회 전반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사회적인 문제이다. 가정폭력이나 학교폭력이나 괴롭힘은 희생자들에게 치명적일 수가 있다. 결과적으로 어린이나 청소년은 수업에 집중하기 어렵고, 수업을 빠뜨리고, 학교 활동을 피하고, 무단결석을 하거나 학교를 그만두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것은 학업성취와 미래교육 및 고용 전망에 악영향을 미친다.아동인권이란 아동들이 ‘인간답게 살 권리’이다. 기본적인 인권(생존권, 발달권, 보호권)이 보장되지 않으면 사람들은 그 만큼 인간다운 삶을 살 기회를 상실하게 된다. 그러면 우리는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이제 사회전반이 아이들의 인권, 건강한 학습권과 성장 발달권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때가 되었다. 더불어 학교에서 부딪치는 교권, 학습권, 학부모참여권 등의 인권충돌 현상에 대해서도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할 시점이다.다음으로 생각할 점은 이제 법으로 명시된 것이 아니라 인권이 실질적으로 우리 아이들의 삶에 반영이 될 수 있도록 지역사회와 학교 정책을 펼쳐나가야 한다. 일상적인 삶 속에서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 노력하는 ‘인권친화적 행위(人權親和的 行爲)’로 일반행정, 교육행정, 지역사회의 노력 등 통합적이 접근이 필요하다.더 이상 ‘학생들의 미래준비’를 담보로 하여 현재의 아이들의 행복성장이 보류되어서는 안 된다. 지자체 및 아동보호전문기관이 함께 나서서 학생들의 배움 그자체가 즐거움이 되도록 해야 할 때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는다. 아동인권 문제와 불만이 극에 달한 현시점이 교육혁신, 사회혁신의 골든타임인 것이다.‘준비하지 않는 국가(지방정부), 기업, 개인에게는 미래가 없다’고 한다. 이제 제2의 교육입국조서(敎育立國詔書)라도 발표하고 교육에서 가정 및 지자체발전을 도모해야 할 시점 왔다. 아이들의 인권문제를 개인의 문제, 학교의 문제만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견고하다. 더이상 아이들의 인권문제를 타자화하지 말고 우리사회 조직 모두의 문제로 가져와야 한다. 아동인권에 대한 민감성과 감수성을 높이고 우리사회의 통념과 인식체계가 바뀌어 나가야 할 때다.행복한 수업, 가정폭력 등 아동인권 문제 등 갈등과 불만이 극에 달한 현시점이 교육혁신, 사회혁신의 골든타임인 것이다.

2019-05-02

사막에서의 20년, 위대한 멈춤

위대한 인물들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세상과 단절한 경험이 있다는 것입니다. 무작정 저 높은 고지를 향해 “돌격 앞으로!”의 삶이 아니었습니다. 멈춤의 시간이 생의 한복판에 존재합니다. 텅 빈 공간에서 마음껏 사유하고 진짜 나를 만나 앞으로 다시 나아갈 힘을 얻는 시간들을 충만하게 누립니다. 신영복 선생은 20년의 옥고를 치르면서 달라졌습니다. 글 좀 쓰고 강연하고 살아가는 삶과는 차원이 다른 깊이를 우리에게 선물로 남겼습니다. 깊은 고독과 절망, 답답함이 그를 고전으로 이끌었습니다. 감옥은 새로운 학교였습니다.교부들 가운데 사막으로 나간 구도자들이 많습니다. 세상과 단절하고 오직 하나님과 자신을 만나기 위해 가장 열악한 환경인 사막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입니다. 교부 안토니우스는 사막에 들어가 20년을 씨름합니다. 고독하고 팍팍한 사막 한 가운데서 홀로 서기를 시도합니다. 20년 동안 사막에서 오로지 자신과 신을 대면한 안토니우스는 지혜와 능력, 인격과 사랑을 갖춘 현자로 손길이 닿는 곳마다 기적을 일으킵니다. 그를 만난 사람들은 더 이상 예전처럼 살지 않습니다. 안토니우스에게 많은 손님들이 찾아옵니다. 아프리카와 유럽에서 사람들이 그를 만나기 위해 끝없이 사막으로 몰려옵니다. 더 깊은 사막으로 피해야만 했지요.해마다 한 번씩 정기적으로 찾아오는 제자 세 사람이 있었습니다. 두 제자는 1년에 한 번 스승을 만나는 기회라 잠시도 스승을 내버려 두지 않습니다. 끊임없이 묻고 대화하고 무어라도 하나 더 배워 가려고 애를 씁니다. 그런데 유독 한 제자는 말이 없습니다. 첫 해, 둘째 해도 그랬습니다. 해마다 그 제자는 말이 없이 조용히 방문했다가 아무 말없이 다시 돌아가지요. 이렇게 몇 년을 거듭한 후 한 번은 안토니우스가 제자에게 묻습니다. “형제님은 해마다 저를 찾으시지만, 한 번도 제게 묻지 않으시는군요. 혹시 어떤 이유라도 있으신지?” 제자는 대답합니다. “스승님을 뵙는 것으로 족합니다. 스승님의 얼굴을 보고 하루 종일 함께 한 공간에 있는 것만으로도 저는 1년 동안을 살아갈 힘을 얻습니다.”훌륭한 스승들은 삶으로 일깨우지요. 수사와 현란한 말씀이 아니라, 눈빛과 표정 삶의 궤적으로 우리에게 말을 걸어옵니다. 해마다 찾아와 아무 질문도 하지 않은 제자에게 마음이 기웁니다. 바라만 보고 있어도 1년을 살 수 있는 힘을 주는 스승과 제자. 이런 아름다운 만남이 우리 시대에도 가능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조신영 인문학365 대표

2019-05-02

호가호위

세상살이의 신기함.나이가 들수록 어려운 것도 이 신기한 세상살이의 하나일 것이다.하루하루 그렇게 자꾸 반복을 했으니 쉬워질 만도 하건만, 이 세상살이라는 것은 도무지 쉬운 상대가 될 것 같지 않다.무엇이 이렇게 힘들 게 하는 것이냐, 하면, 무엇보다, 그 원인은 자기 잘못에 있다.세상에 완전한 사람이란 없는데, 그중에서도 ‘나’는 절대 완벽할 리 없음을 모르지 않는다. 그런데도 ‘나’는 ‘내’가 모자라지도, 그릇되지도 않다고 생각하고 싶어한다. 남들이 그런 오기를 쉽게 봐줄 리 없다. 넘어가 줄 리 없다.다음 원인은 ‘남들’의 냉담함에도 있다. ‘나’ 빼놓고는 다 ‘남’이니 ‘남들’일 수밖에 없는데, 어떤 ‘남’도 ‘나’를 쉽게 받아들여 주는 법이 없다.어느 선생께서 말씀하셨다. ‘나’랑 생각이 다르다는 게 재미있지 않아? 그때 아하, 했다. ‘나’랑 다르니까 세상이 재미있는 거다. 그런데 이 ‘나’를 절대 용납하지 않으려는 ‘남들’이란 얼마나 차가운 존재들이란 말인가? 그 ‘남들’도 자기 시점에서 보면 전부 ‘나’들이기 때문이고, 지구가 그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믿는다. 그래서 남들에게는 차가울 수밖에 없다.원래 세상이란 그렇게 자기 아닌 사람을 재밌게 여기지 않고 달라서 싸워야 할 상대로 보는 법일까? 그것이 삶의 원칙일까? 하면 그런 것도 같다. 그래서 이 세상은 편안한 날, 평화로운 날, 그러니까 ‘영일(寧日)’이라는 게 없지 않은가 한다.그래서인지, 살다 보면 남한테 무서운 얼굴 보이는 사람들을 본다. 이런 얼굴들은 확실히 무섭다. 이런 무서운 얼굴들 때문에 겪는 무서움은 날이 갈수록 더 커지는 것 같다. 무서움도 세상살이를 어렵게 하는 큰 요인일 것 같다.‘나’란 본디 결함 많은 존재인데, 그 ‘나’를 보는 ‘남들’이 그렇게 무서운 얼굴들을 한대서야 세상을 어떻게 평온히, 평화롭게 살아갈 수 있을까.재미있는 것은 그 무서운 얼굴 때문에 한참 무섭다가도 이윽고 우습게 여겨지는 사람들도 있다는 사실이다.호랑이 행세를 하는 사람들. 스스로는 호랑이가 되지 못하고, 그럴 능력도 의지도 없고, 다만 호랑이만 되고 싶은 사람들을 보면, 무서워하다가도 우스워지곤 한다.호가호위다. 자기 뒤에 호랑이를 세워 두고 여우가 호랑이인 척 하고 싶은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 한참 이 사람이 호랑이 행세를 하다 문득 뒤돌아보니, 정작 호랑이는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이미 호랑이도 없는데 있는 줄 알고 호랑이 행세를 하는 여우라. 우습다. 우습기 짝이 없다.세상은 재밌다. 나랑 다른 사람들, 그중에서도 이런 호가호위 즐기는 사람들도 있어 더 재밌다. 나랑 다르기 때문이다.누군가 의미 있는 사람이 떠나고 나면 그 사람을 자기 뒤에 세워두고 마치 자신이 그 떠난 사람이라도 되는 양 으스대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죽었다 깨어나도 그 자는 그 사람이 될 수 없다. 그 자는 다만 흉내만 낼 수 있을 뿐이다.진짜 무서운 사람은 우선은 스스로 호랑이인 사람일 것이다.그 다음은 그 호랑이처럼 자신도 호랑이가 되려는 사람이다. 그 사람은 흉내도 내지 않고 떠난 호랑이를 뒤세우지도 않는다. 그 사람은 밤길을 혼자 걸어갈 줄 안다. 누가 옆에 없어도 무서워하지 않는다./방민호 서울대 국문과 교수/삽화 = 이철진한국화가

2019-05-02

정당해산의 역사

청와대 국민청원에 자유한국당과 더불어민주당의 정당해산 청원이 올라 이런저런 말들이 많다. 대한민국 헌법은 제 8조 4항에서 ‘정당의 목적이나 활동이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될 때에는 정부는 헌법재판소에 그 해산을 제소할 수 있고, 정당은 헌법재판소의 심판에 의하여 해산된다’고 규정하고 있다.즉, 대한민국의 헌정질서를 무너뜨릴 위험이 있다고 여겨지는 불순세력이 정당의 형태를 조직해 활동할 경우, 헌법에 정해진 바 정부가 헌재에 해산을 제소하게 된다. 다만 우리 정당 역사에는 위헌정당 해산제도 적용 없이 정당이 해산된 사례도 있다. 진보당 사건으로 해산된 조봉암의 진보당이다. 이 사건이 계기가 돼 1960년 위헌정당해산제도가 헌법에 들어왔다. 따라서 현재 대한민국의 정당은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나오지 않으면 4년 이내에 총선 혹은 지방선거에 후보를 내기만 하면 강제해산되지 않는다. 이전에는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2% 이하의 득표를 할 경우에는 정당등록이 취소됐는데, 이 부분이 위헌결정이 나오면서 득표율 부진의 이유로 정당은 강제해산 될 수 없다. 위헌정당해산제도는 민주주의와는 모순되는 야당 탄압용 수단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문제점이 있어 적용이 쉽지않다. 헌정사상 처음으로 위헌정당 해산심판에서 해산된 통진당의 경우에도 해산 청구를 한 박근혜 정부에 비민주적이란 비판이 많았다.청와대 국민청원에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 해산청원이 올라온 것은 2019년 4월 22일이었는데, 순식간에 100만명을 뚫어 주위를 놀라게했다. 이번 청원은 선거법과 개혁입법 패스트트랙을 둘러싼 폭력사태 등 자유한국당이 상대적으로 비판받을 만한 상황을 연출한 탓인지 5월 1일 오후 4시 기준 156만여명으로 신기록을 경신했다. 자유한국당 역시 더불어민주당 해산청원을 올렸으며, 등록한지 48시간이 되기도 전에 청와대 답변 기준선인 20만명을 넘겼다. 어쨌든 100명이 넘는 현역의원을 가진 제1야당을 정부여당이 해산절차를 밟는 무리수를 놓을 리야 없지만 자유한국당은 스스로를 돌아보는 계기로 삼는 것은 어떨까 싶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19-05-01

쓰기혁명

장규열 한동대 교수구텐베르크의 인쇄술은 인간의 문화와 역사를 바꾸어 놓았다. 중세의 암흑시대를 건너오고 있었던 유럽인들에게 아직도 문맹률이 95%에 달하였다. 성경을 비롯한 글로 적힌 문건들은 교회와 권력자들에게만 허용되었을 것이니, 보통 사람들이 글을 대할 필요조차 없었을 터이다. 인쇄술은 이후 르네상스 이성의 시대와 계몽의 새벽을 밝힌 혁명적인 사건이었다. 성경이 누구에게나 주어졌으며 종교개혁을 통하여 신의 말씀을 직접 읽고 스스로 해석할 수도 있게 되었다. 데카르트가 인간이 ‘생각하므로 존재하는’ 이유를 분명히 했으며 프랜시스 베이컨은 ‘아는 것이 힘이다’라고 하였다. 읽을 수 있어 알게 되었고 더 알게 되므로 생각하게 되었으며 생각을 이어 가면서 문명이 눈부신 궤도에 들어서게 되었다.지구상에 문맹은 거의 사라졌다고 한다. 읽을 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읽을 줄 안다는 것은 쓸 줄도 안다는 것이 아닌가. 모두 읽지만 모두 쓰지는 않는다. 왜 그랬을까. 까닭이 있었다. 모든 사람들에게 매체 즉 미디어가 사용할 수는 있되 주도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보통 사람들을 대신하여 기자, PD, 작가, 감독 등 생각과 이야기, 의견과 생각을 글로 적고 콘텐츠로 만들어 내는 사람들이 따로 있었던 것이다. 개인적인 역량이 출중하기도 했겠지만, 무엇보다 특별한 훈련과 교육, 노력과 경쟁의 산업적 구도와 제약이 있었다. 아무나 기자가 될 수 없고 누구나 언론사 또는 제작사를 경영할 수 없었다. 모두가 공평하게 누려야 할 ‘표현’의 자유는 사실상 많지 않은 전문인들이 누리는 ‘언론’의 자유로 대리되었다.세상이 다시 바뀌었다. 디지털의 습격은 상상을 넘는다. 가시적으로 늘어난 정보의 양이 우선 놀랍다. 온라인에 없는 게 없고 모든 게 손에 잡힐 듯 가까이 있다. 더 이상 공부와 노력이 필요없어 보인다. 읽을 줄 알지만 더 이상 읽지 않는다. 읽지도 않는데 쓸 필요는 이제 정말로 없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누군가 온라인의 바다를 채우고 있기에 저렇게 콘텐츠들이 있을 터이다. 그게 누굴까. 이전의 전문인들 뿐 아니라 이제는 누구나 적을 수 있다. 전할 수 있고 퍼뜨릴 수 있다. 남의 글을 퍼 올리는 게 가능할 뿐 아니라 나의 글을 바로 올릴 수 있다. 세상이 바뀐 또 하나의 대목은 바로 여기가 아닌가. 대신 만족하던 ‘언론의 자유’를 넘어 스스로 충족하는 ‘표현의 자유’가 가능해 졌다. 이를 나는 충분히 사용하고 있는가.위험은 있다. 글쓰기 훈련이 아직 모자라는가도 싶고 무엇부터 적어야 하는지 막막하기도 하다. 혹 지켜야 하는 무엇이 없는가도 궁금하고 아무나 쓰는 일이 적절한가 의문스럽기도 하다. 가짜뉴스의 위험은 이미 보이고, 시민언론의 가능성이 펼쳐지고는 있다. 15세기 인쇄술이 많은 사람을 긴장하게 했듯이, 21세기 디지털문명은 소통의 지평을 새롭게 열어가고 있다. 그 시절 더 많이 알게 된 용기있는 사람들이 개혁의 시대를 확장했듯이, 이제는 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생각과 느낌, 이야기와 담론의 단초를 드러내어야 한다. 누군가 나를 대신하여 적어내길 기다리는 일은, 빛의 속도로 변화해 가는 오늘의 흐름에 어울리지 않는다. 어설프고 어색한 표현과 문장들도 거듭 두드리며 시도하노라면 다듬어 지고 나아질 터이다.인쇄술이 읽기혁명을 가져왔다면 디지털은 쓰기혁명을 당겨주었다. 더 많이 읽는 일이 가능해 졌지만 내 손으로 쓰고 다듬어 세상을 직접 상대하며 소통하는 창문이 넓게 열렸다. 세상과 어떤 글로 나누며 소통할 것인지 오늘 생각해 보았으면 한다. 남이 만들어 주는 문명을 여기까지 따라왔다면 이제는 당신이 콘텐츠로 주도하는 세상을 열어주시라. 기회는 당신 손에 있으니.

2019-05-01

꽃눈 솎기

송귀연수필가봄의 잉여를 솎아낸다. 도톰한 입술을 내밀며 새순들이 해바라기하듯 가지 끝에 앉아 있다. 장갑 낀 손에 지긋이 힘을 준다. 겨우내 혹한을 견뎌낸 여린 생명들이 땅바닥에 떨어진다. 위로 향한 꽃눈들은 햇볕에 과다 노출되어 제대로 된 결실이 어렵기 때문에 솎아내기를 해야 한다. 채 피어나지 못한 생명들이 내지르는 단말마가 애처롭다. 하지만 가을의 알찬 수확을 위해선 어쩔 수 없이 겪어내야 하는 통과의례다.귀농은 퇴직 후 소일거리가 없어진 남편을 위한 궁여지책이었다. 처음엔 작은 텃밭을 꿈꾸었지만 뜻하지 않게 지인으로부터 과수원을 소개받게 되었다. 우리 부부는 과수원 모퉁이에 작은 컨테이너를 앉히고 집에서 자동차로 사십 여분의 거리를 오가길 몇 달간 반복하였다. 결국 일손이 자주가야 하는 과수의 특성상 무리라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다. 서둘러 전원주택을 지어 이사를 했다. 편리한 도시생활에 익숙해있던 몸은 갑작스러운 변화를 수용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시도 때도 없이 몸살이 나는가 하면 갑자기 사소한 일로 남편과 다투기도 했다. 도회생활에 대한 일종의 금단현상이었다.꽃눈솎기는 꽃이 필 때 영양분 소모를 줄이는 한편, 초기생육을 좋게 하여 결실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함이다. 욕심을 내어 필요이상의 꽃눈을 놔두면 전체적으로 나무는 충분한 결실을 맺지 못한다. 꽃눈 한 개 솎아낼 때마다 “미안해”라고 말하며 대신 아파했다. 그러면서 내 안의 욕심을 버리는 연습도 하게 된다. 법정스님은 버리지 않으면 새것이 들어오지 않는다고 했다. 제대로 버릴 수 있어야 제대로 소유할 수 있다는 것을 꽃눈솎기를 통해 배우게 된다.금을 추출할 때 연금술사들은 여러 차례 불순물을 버리고 걸러내는 제련과정을 거쳐 빛나는 보석을 만들어낸다. 불순물이 조금이라도 섞이면 그 가치가 낮아져버린다. 도자기를 만들 때도 마찬가지다. 채취한 흙을 물에 담가 두었다가 더러운 물질은 걸러서 버리고 가라앉은 깨끗한 흙을 분리 숙성시킨다. 숙성된 흙을 물과 반죽하는데 꼬막밀기로 흙속의 공기를 제거한다. 이처럼 제대로 된 여과과정을 거쳐야 아름다운 도자기가 탄생하는 것이다. 추사 김정희는 세한도에서 소나무 한그루, 잣나무 세 그루, 집 한 채가 전부인 쓸쓸하고 황량한 그림을 그렸다. 여백이 더 많은 그림임에도 불구하고 볼 때마다 꽉 차있다는 충만한 느낌을 받는다.남편과 나의 관계도 일련의 제련과정을 거쳤다. 성격이 급한 남편과 소심하고 조심성 많은 내가 흰머리 희끗한 세월을 함께 하기란 쉽지 않았다. 우린 서로 자신의 것은 내려놓지 않고 상대가 변하기를 고집했었다. 멀리 한곳을 보지 못한 채 마주보며 서로의 단점을 먼저 헤집었다. 싸우고 화해하고 다시 싸우고 화해하기를 반복했다. 그러다 나이가 들면서 차츰 편안한 관계로 변화하게 되었다. 서로의 단점을 이해하고 자신을 내려놓았기 때문일 것이다.생각해보면 움켜쥐려고 했던 것들이 너무 많았다. 남편의 출세며 아이들의 성공이며 돈과 명예에 대한 욕망은 올가미처럼 나를 옭아맸다. 욕심은 더 큰 욕심을 부르고 나는 그 속에서 허우적거리며 살아왔다. 이제 그런 것들이 얼마나 부질없는 것들이었는지 깨닫는 하루하루다. 창가에 날아와 아침을 깨우는 새 소리며 뒤란을 지나가는 바람의 발자국소리며 맞은 편 산 너머로 지는 노을의 뒷모습은 도회생활을 버리지 않았다면 결코 얻을 수 없는 행복이다. 비가 오면 비가 와서 좋았고 눈이 오면 눈이 와서 좋았다.다시 꽃눈솎기를 계속한다. 도톰한 꽃눈들이 발아래 눕는다. 남아있는 것들은 버려지는 것들로 인하여 소중하고 버려지는 것들은 남아있는 것들로 인하여 아름답다. 꽃눈 하나씩 솎을 때마다 내 안의 부질없는 것들도 함께 솎아낸다. 욕심과 집착과 원망과 두려움들. 삶을 완성하는 건 소유가 아니라 무소유일 것이다. 긴 겨울이 지나고 어느새 봄이다. 내 몸의 가지에도 푸른 수액이 듣는다.

2019-05-01

예술 작품에 대해

언젠가 황현산 선생님의 강연을 들은 일이 있다. 강의가 끝나고 질문시간이 있었다. (황현산 선생은 불문학자이자 문학평론가이다. 1945년 목포에서 태어나 고려대학교에 입학해서 박사학위를 받고 그곳의 교수로 재직했다. 선생은 언뜻 배우 신구를 닮은 듯한 평안한 인상을 지녔고 말소리도 그윽하다. 학자로도 평론가로도 손색이 없다. 선생은 이 시대의 문장가로 그의 글을 읽으면 한 문장 한 문장이 몸속에 각인되는 느낌이다. 그의 책 ‘밤이 선생이다’를 추천한다.)그때 누군가 이런 질문을 했다. “선생님은 글을 읽다보면 사람들이 잘 사용하지 않는 단어들, 이를 테면 ‘악착스럽다’, ‘해찰’, ‘몸피’와 같은 단어들을 사용합니다. 왜 이렇게 어렵게 생소한 낱말을 쓰는지 듣고 싶습니다.” 선생의 정확한 워딩이 생각나진 않지만 이런 식으로 말했던 것 같다. “글은 전장터와 같습니다. 이 전장터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다른 평론가들과 구별되는 저만의 언어가 필요합니다. 다른 평론가와 구별되는 저만의 색깔을 드러내기 위해 특색 있는 어휘를 사용합니다.”언어는 그 사람을 드러내는 거울이다. 시정잡배의 언어가 있고, 그윽한 사람의 그윽한 언어가 있다. 우리의 정신이 우리의 언어를 결정하기도 하지만 때로 언어가 우리의 정신을 형성시키기도 한다. 글을 쓰는 사람은 글로 승부를 해야 하기 때문에 언어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작가가 언어를 사용하는데 있어 얼마나 신중한지를 보여주기 위해서는 다시 한 번 우리의 ‘그랑’을 소환하는 것이 좋겠다. 까뮈의 ‘페스트’에 등장했던 그 그랑 말이다.“말 탄 여인은 어떻게 됐어요?” 타루가 자주 물어보았다. 그러면 그랑은 한결같이 “달리고 있죠. 달리고 있어요.”라고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어느 날 저녁, 그랑은 말 탄 여인에 대해 ‘우아한’이라는 형용사를 완전히 포기하고 앞으로는 ‘날씬한’이라는 수식어를 사용하겠다고 말했다. “그것이 더 구체적이거든요.” 그가 덧붙여 말했다. 한 번은 이 두 명의 청중에게 다음과 같이 수정한 첫 문장을 읽어주었다. “5월 어느 화창한 아침에, 날씬한 여인 한 명이 근사한 밤색 암말을 타고 불로뉴 숲의 꽃이 만발한 오솔길을 달리고 있었다.”“어때요?” 그랑이 말했다. “그 여인이 더 잘 보이지 않나요? 그리고 ‘5월의’ 라고 하면 문장의 속도가 좀 늘어지는 것 같거든요” 그러고는 ‘근사한’이라는 형용사 때문에 무척 고심하는 것 같았다. 그의 말에 따르면, 그 단어로는 생생한 느낌을 전달할 수 없엇다. 그래서 자기가 상상한 멋진 암말을 사진 찍듯 단번에 전달할 수 있는 표현을 찾고 있었다. ‘살이 오른’도 어울리지 않았다. 구체적이기는 하지만 약간 경멸적인 의미가 느껴졌다. ‘윤기가 도는’에 마음에 끌린 적도 있지만 리듬이 적당하지 않았다. 어느 날 저녁, 그가 의기양양한 태도로 ‘검은 밤색 암말’이라는 표현을 발견했다고 말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검은색은 은근히 우아한 느낌을 준다는 것이었다.그랑은 “모자를 벗으시오.”라는 말을 듣기 위해 매일 매일 글을 쓴다. 하지만 여전히 같은 문장에 머물러 있다. ‘우아한’을 더 구체적으로 느껴지는 ‘날씬한’으로 바꾸고 ‘5월의’가 문장의 속도를 느리게 한다는 이유로 ‘5월’로 바꾼다. 그렇지만 어느 것 하나 마음에 드는 것이 없고, 바꾸고 나면 다시 그 단어에 균열이 생긴다. 그랑이 ‘근사한 밤색 암말’을 ‘검은 밤색 암말’로 바꾸고 의기양양해 하지만 리외가 바로 반론을 펼친다.“그건 안 돼요.” 리외가 말했다.“왜요?”“‘밤색’이라는 단어는 말의 품종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색깔을 가르키니까요.”“어떤 색요?”“글쎄요, 어쨌든 검은색은 아니죠!”그랑은 충격을 받은 것처럼 보였다.“감사합니다.” 그가 말했다. “선생님이 계서서 다행이에요.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이제 선생님도 아시겠죠.”그랑은 완벽한 문장을 완성하기 위해 수년 아니 수십 년 동안 이 일에 매달려오고 있다. 자신의 보잘것없는 공무가 끝나면 집으로 돌아와 이 글을 끝없이 고치고 고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완전한 문장에 닿는 것은 요원하다. 그랑이 생각하는 완전한 문장이란 말을 타고 사뿐히 달릴 때 ‘달그락 달그락’하는 말발굽소리와 그 속도, 그리고 문장이 만들어내는 리듬과 이미지가 완전히 일치하는 것을 말한다. 이렇게 완벽한 문장을 만들어내면 그 뒤로 이어지는 글은 일사천리로 진행될 것이라고 그랑은 생각한다.그랑의 바람은 언제나 좌절되지만 그랑은 끝없이 새롭게 시작한다. 마치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단어들을 다 대입해보기라도 할 듯이 말이다. 완전히 딱 맞는 단어를 찾아 문장을 완성하는 일, 이것이 작가의 일인지도 모른다. 그리하여 작가는 끝없이 쓰고 끝없이 고치길 반복한다. 그때 작가는 작가로서 성공하게 된다.앤절라 더크워스는 그릿이라는 책을 통해 성공의 공식을 소개하고 있다. 수천, 수만 명의 성공한 사람을 만나 그들을 인터뷰한 기록들을 바탕으로, 수년에 걸쳐 수없이 많은 공식과 수없이 많은 그래프를 그려낸 후 그녀가 얻은 결론은 이렇다.성공=재능×노력×노력흔히 작가라고 불리는 사람들은 아마 작가가 되기 전부터 주변 사람들 사이에서 글 좀 쓴다는 말을 들었을 것이다. 남보다 나은 재능이라는 것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이 재능을 믿고 이 재능에 만족하는 글을 쓴 사람은 그냥 친구들 사이에서 글 좀 쓰는 친구로 통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재능에 만족하지 않고 노력을 한 친구는 글 쓰는 기술을 익히게 되었을 것이다. 작가들 사이에서도 두각을 드러내는 수준에 이르게 된다. 하지만 다시 여기에서 만족하지 않고 노력을 퍼부으면 작가는 자기만의 독특한 작품 세계를 이루게 된다. 이것을 일가(一家)를 이루었다고 말한다.그럼 이런 질문을 던져보자. 그렇게 노력해서 일가를 이룬 작가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그 답은 간단하다. 아무것도 없다. 작가가 쓴 글은 실용적이지도 않고, 윤리적이지 않고, 심지어 아름답지 않을 수도 있다. 작가의 작품은 주인을 따라 나온 개와도 같다. 황현산은 이러한 작품 혹은 예술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공강일서울대 강사·국문학“(아이와 어머니가 품은) 목표는 마음속에 움터 오르는 온갖 생각을 다스리고 우리를 향해 노동하며 걸어온다. 그러나 개는 큰 주인과 작은 주인을 앞서기도 하고 뒤서기도 하며, 길을 멀리 벗어났다가 돌아오기도 하며, 이 겨울 풍경 속에서 해찰한다. 개는 지금 노동하는 주인들의 휴식이다. 망치로 두더지의 머리를 때리듯이 주인들이 억눌러버리거나 한쪽에 제쳐놓은 생각들을, 아니, 그 생각들보다 더 아래에 깔려 솟아오르지도 못하는 생각들을, 그래서 생각이라고 이름 붙일 수도 없는 생각들을 개는 주인들을 대신하여 생각하며, 이 겨울의 스산한 들판을 회색 꿈의 자리로 만든다. 그리고 또 거기서 비껴 선다.”해찰이란 ‘마음에 썩 내키지 아니하여 물건을 부질없이 이것저것 집적거려 해치다.’라는 뜻이다. 예술이란 그런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이러한 헤적거림, 쓸모없이 인간은 살 수 없다.

2019-05-01

대구시민대학

김규종 경북대 교수·노문학올해도 어김없이 숲은 일어서고 있다. 초록과 연두(軟豆)로 무장한 신록의 나무들이 팽팽하게 봉기하는 4월과 5월의 숲.이영도 시인은 “눈이 부시네 저기 난만(爛漫)히 멧등마다 그날 스러져간 젊은 같은 꽃사태”로 절창(絶唱)‘진달래’를 시작한다. 4월 혁명으로 산화해간 이 나라 청춘들의 붉은 피와 산야에 하염없이 피어나는 진달래를 대비한다. 오랜 세월 응어리진 한이 일순 터지듯 산등성이를 붉게 물들이는 진달래의 개화를 선연히 드러내는 것이다.해마다 봄은 그렇게 온다. 시인이 진달래를 바라보는 것처럼 나는 초록 초록한 색으로 산마루를 치달려 오르며 일어서는 숲을 예찬한다. 그것은 분명 지난 겨울 추위와 눈보라와 설한풍(雪寒風)을 이겨낸 자들의 장려(壯麗)한 저항의 결실일 터다. 이즈음 이 나라 산천을 돌아보는 것은 자연이 베푼 위대한 축복을 확인하는 일이다. 살아있음을 명명백백하게 확인하는 환희의 순간이 바야흐로 우리 곁에 있다.다정다감한 김영랑 시인은 울안의 모란으로 봄날의 서정을 그려냈으되, 눈 들어 먼 산 바라보면 거기 또 다른 봄의 일어섬이 있다. 혹자는 봄날에 꽃을 보며 찬탄하지만, 나는 일어서는 숲과 봉기하는 산야에 경탄한다. 거역할 수 없는 뭇 생명의 소리 없는 아우성과 침묵의 환호는 얼마나 깊고 웅장하며 창대한가?! 사계의 운항법칙에 순응하는 초목의 생동은 해마다 인간세의 번다함과 유한함을 깨우치곤 한다.2017년부터 시작된 ‘대구시민대학’이 올해로 세 해를 맞았다. 불초한 나도 인문학 강연 한 자락에 이름 올린다. 4월 25일 한반도를 노려보는 대륙과 해양세력이라는 제목으로 대구 시민들을 만났다. 대구시청별관에 마련된 강연장에는 200여 청중이 자리하고 있었다. 이순(耳順) 고비를 넘긴 분들이 다수였으나, 간간이 젊은 축들도 강연에 몰입하여 아연 흥미로운 이야기 마당이 펼쳐진다. 대구가 다시 숨을 쉬기 시작하는구나, 하는 사념.처절하게 실패한 역사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중심으로 일본과 청나라의 침략으로 이야기를 펼친다. 무능한 왕과 부패한 벼슬아치들의 행악질로 사그라지던 나라의 명운을 건져낸 임란의 의병들이 무명의 백성이었음을 밝힌다. ‘삼배구고두(三拜九叩頭)’로 황태극 앞에 온몸과 머리를 조아려야 했던 인조의 참혹한 몰골과 ‘환향녀(還鄕女)’와 ‘호로자식(胡虜子息)’을 말한다. 실패한 역사에서 교훈을 얻지 못한 왕조의 붕괴는 필연의 결과였는지도 모른다.21세기 우리도 실패를 실패로 받아들이지 않으려 한다. 병자호란을 다룬 ‘최종병기 활’(2011)은 가공인물 ‘남이’를 등장시켜 747만 관객을 동원한다. 조선 신궁으로 이름을 떨치던 남이가 ‘육량시(六兩矢)’로 무장한 청의 명궁 쥬신타를 혼내주는 허무맹랑한 영화. 반면에 김훈 작가의 소설원작에 기초한 ‘남한산성’(2017)은 385만 관객을 불러 모은다. 우울하고 참람(僭濫)한 실패를 수용하지 않으려는 완미(頑迷)하고 썰렁한 객석.공자는 “아는 것을 안다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 그것이 아는 것이다”(논어, 위정편)라고 갈파했다. 말을 바꾸면 이쯤 되리라. “실패한 것을 실패했다고 하고, 성공한 것을 성공했다고 하는 것, 그것이 성공하는 것이다” 실패를 외면하고 제대로 들여다보지 않으면 우리는 멀리 나아갈 수 없다. 패배를 인정하고 그것의 원인과 과정 및 결과까지 통렬하게 성찰해야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을 수 있는 법이다.시민들에게 나는 힘주어 말하고자 했다. 우리는 미-중-일-러 사이에 낀 새우가 아니다. 우리는 이제 최소 돌고래다. 우리만 우리의 힘과 능력을 과소평가하고 있다. 이 모든 것의 결과는 우리 국민이 하나 되어 만들어온 결과다.대구시민대학 강연장을 나서는 청중들의 발걸음은 무척 가벼워 보였다. 이참에 시민대학을 개설한 대구시에 재삼 감사와 축복을 전하고자 한다.

2019-05-01

학교급식법 개정법률(안)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포털사이트에서 혁신적 포용국가를 검색하면 맨 처음으로 “포용국가-교육부-모든 아이는 우리 아이”라는 링크창이 나온다. 그걸 클릭하면 포용국가에 대한 여러 가지 홍보자료들이 망라되어 있는 사이트에 접속된다. 그곳에서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모두를 위한 나라 다 함께 잘 사는 혁신적 포용국가”라는 문구이다.이 글만 보면 분명 이상(理想)에 가까우리만큼 좋은 내용이다. 그런데 이상적인 문구들을 보면서도 왜 감동은 남의 이야기처럼 들리는지 답답할 노릇이다. 그리고 혁신적 포용국가라는 말을 보고 있으면 왜 계속 마음이 무거워지는지 모르겠다. 그 이유를 필자는 문장 구조에서 찾았다. 혁신이 수식하는 정확한 범위는 어디까지일까? 물론 문법적으로야 알지만, 느낌상 그 범위가 포용인지, 아니면 국가인지, 그것도 아니면 포용국가인지 잘 모르겠다.그런데 그 범위가 어디든 “포용 국가”라는 말부터 낯선데, 거기다 “혁신적”이라는 강한 수식어까지 합쳐지면서 단어들은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본연의 의미를 상실하고 말았다. 그 자리를 정치적 의미가 차지하면서 억지스러운 의미가 만들어졌다. 특히 혁신과 포용처럼 의미 충돌이 강한 단어들을 합쳤을 때에 오는 오류(誤謬)는 이해가 불가능할 정도다.포용(包容)의 사전적 의미는 “남을 너그럽게 감싸 주거나 받아들임”이다. 사전에서는 포용의 순화어로 감쌈과 덮어줌을 제시한다. 혁신(革新)이란 단어는 쓰이는 분야에 따라 의미가 조금씩 다르지만, 일반적인 의미는 “묵은 조직이나 제도·풍습·방식 등을 바꾸어 새롭게 하는 일” 즉 “시대에 맞게 뜯어고쳐 새롭게 개혁하는 것”이다. 그럼 혁신적 포용이란 도대체 어떤 의미인가? 단어의 의미만 연결하여 재해석해보면 ‘뜯어고치면서 감싸자’ 정도이다. 그런데 이 안에는 엄청난 의도(意圖)가 숨어 있다. 그 의도가 지금의 국회 사태를 만들었는지도 모른다.혁신, 즉 변화를 위해서는 기준과 방향이 있어야 한다. 그것이 얼마나 진실하고, 절실하며, 또 객관적인가에 따라 변화의 성패가 결정된다. 그럼 지금 정부에서 말하는 혁신의 성공 여부는 어떨까? 어느 공당(公黨) 대표의 “20년 집권도 짧아, 할 수 있으면 더”라는 말을 보면 지금 정부에서 하고 있는 일들은 모든 국민들을 위함이라기보다는 현 정부의 집권 연장을 위한 수단임을 알 수 있다. 필자는 이 글을 쓰는 내내 지인이 한 말이 환청처럼 계속 들렸다. “정치인들이 저거 손해되는 짓 하는 거 봤나. 국민 위한다는 말은 새빨간 거짓말이다.”“특권과 반칙의 시대는 끝내야 합니다.” 혁신적 포용국가에 대한 대통령의 메시지 중 일부이다. 지극히 맞는 말이다. 그런데 “혁신적 포용”이라는 말이 새로운 특권과 반칙, 그리고 오류와 모순을 낳고 있음을 대통령은 아시는지 모르겠다. 국민들은 그 모습을 지난 주 지겹도록 보아서 아는데, 자기 이익에 눈 먼 정치꾼들이 대통령을 벌거벗은 임금으로 만들지나 않을까 걱정이 앞선다.비록 무법천지 정치판이지만, “학교급식법 일부개정법률(안)”과 같은 교육 소수자를 위한 법률개정안도 보여 그나마 위안이 된다. 이런 법률안이 패스트트랙에 반영된다면 지금과 같은 볼썽사나운 동물국회는 없을 것이다. 다음은 위 법률(안)의 개정사유이다.“‘초·중등교육법’ 제60조의3에 따른 대안학교의 경우 교육감의 정식 설립인가를 받아 학업중단 위기에 놓인 청소년들의 교육을 성실하게 담당해왔음에도 불구하고 학교급식 대상에서조차 제외되어 있어 형평성에 대한 문제제기와 함께 학교급식의 질 역시 담보하지 못하고 있음.이에 인가 대안학교까지 급식대상을 확대하여 교육의 보편성을 실현함과 동시에 안전하고 질 높은 학교급식을 보장함으로써 학생 건강권을 확보하려는 것임”

2019-05-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