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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평생의 잠을 깨우는 스승

위대한 인물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세상과 단절한 경험입니다.무작정 저 높은 고지를 향해 돌격하는 삶이 아닙니다. 그들에게는 멈춤의 시간이 생의 한복판에 존재합니다. 텅 빈 공간. 그 안에서 마음껏 사유하고 자신을 돌아보고 진짜 나를 만나 앞으로 다시 나아갈 힘을 얻는 시간을 충만하게 누립니다.교부들 가운데 사막으로 나간 구도자들이 많았습니다. 세상과 단절하고 오직 신과 자신을 만나기 위해 가장 열악한 환경인 사막으로 들어가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대표적인 인물이 교부 안토니우스입니다. 그는 사막에 들어가 20년을 씨름합니다. 고독하고 팍팍한 사막의 한가운데서 홀로서기를 시도합니다. 안토니우스는 지혜와 능력, 인격과 사랑을 갖춘 현자로 그의 손길이 닿는 곳마다 기적이 일어나지요. 그를 만난 사람들은 더 이상 예전처럼 살지 않습니다. 안토니우스를 한 번 만나는 경험만으로도 삶의 변화가 일어납니다.해마다 한 번씩 정기적으로 안토니우스를 찾아오는 제자 세 사람이 있었습니다. 두 제자는 1년에 한 번 스승을 만나는 기회라 잠시도 스승을 내버려 두지 않습니다. 끊임없이 묻고 대화하고 무어라도 하나 더 배워 가려고 애를 씁니다. 그런데 유독 한 제자는 말이 없습니다. 첫해, 둘째 해도 그랬습니다. 해마다 그 제자는 말이 없이 조용히 방문했다가 아무 말 없이 다시 돌아가지요. 몇 년을 거듭한 후 한 번은 안토니우스가 제자에게 묻습니다.“형제님은 해마다 저를 찾으시지만, 한 번도 제게 묻지 않으시는군요. 혹시 어떤 이유라도 있으신지?”제자는 대답합니다. “스승님을 뵙는 것으로 족합니다. 스승님의 얼굴을 보고 하루 종일 함께 한 공간에 있는 것만으로도 저는 1년 동안을 살아갈 힘을 얻습니다.”난초 향은 하룻밤 잠을 깨우고 좋은 스승은 평생의 잠을 깨운다는 공자의 말씀을 떠올립니다./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대표

2019-10-09

이사철 집수선 상식

이사철 전·월세집을 들고날때 잘못 알고 있는 상식들이 많다. 특히 집수선과 관련, 전세는 세입자가, 월세는 집주인이 수리하면 된다고 알고 있다. 다만 주요 시설물에 대한 수리는 집주인이 부담해야 하나 전세의 경우 대부분 세입자가 수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그러나 현행법과 판례에 따르면 월세와 전세의 수리 비용 부담에는 차이가 없다.민법 623조 ‘임대인의 의무’에 따르면 임대인(집주인)은 목적물을 임차인에게 인도하고 계약 존속 중 그 사용, 수익에 필요한 상태를 유지하게 할 의무를 부담한다. 세입자의 경우 민법 374조에 따라 임차한 물건을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로 보존해야 하며, 민법 615조에 의거 원상 회복의 의무를 진다. 따라서 주요 설비에 대한 노후나 불량으로 수선, 기본적인 설비 교체, 천장 누수, 보일러 하자, 수도관 누수, 계량기 고장, 창문 파손, 전기시설 하자 등은 집주인에게 수리 의무가 있다.반면 임차인(세입자)의 고의나 과실로 인한 파손, 간단한 수선, 소모품 교체, 집을 사용하는데 지장이 없는 수리(형광등, 샤워기 헤드, 도어록 건전지 교체 등) 등은 직접 부담한다.통상적으로 임대차계약기간인 2년을 채웠을 때 집주인이 이사를 가라고 하지 않는 한 자동연장, 즉 묵시적 갱신이 이뤄진다. 주택임대차보호법 제6조 2항에 따르면 묵시적 갱신이 되면 언제든지 세입자는 계약 해지를 통지할 수 있으며 묵시적 갱신에 따른 해지는 그 통지를 받은 날로 3개월이 지나면 그 효력이 발생한다. 판례에 따르면 약정한 계약 기간 중 3개월을 남기고 나갈 경우 중개보수는 임대인이 부담해야 한다. 그러므로 세입자는 최소 3개월의 여유를 두고 계약 해지를 통보하면 된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19-10-09

광장과 국회

장규열한동대 교수·언론정보문화학부국회가 필요한가. 국회는 국민을 대표하여 국정을 감시하고 국론을 조정하며 국사가 올바르게 진행되도록 이끌어야 한다. 국회가 국민을 제대로 대표하고 있는가. 국회가 국론을 적절하게 조절하고 있는가. 국사가 국민을 편안하게 하는가. 국민은 왜 여의도에 주목하기보다 서초동과 광화문으로 달려 갔을까. 정당과 국회의원들이 광야에 모인 국민들에게 오히려 기대는 듯 보이는 것은 필자만의 착각일까. 아까운 공휴일과 금쪽같은 주말을 마다하고 길바닥에 앉은 국민들은 무엇이 저토록 억울한 것일까. 국회는 국민의 생각을 어떻게 담아 무엇을 해야 하는가. 모인 사람들 숫자를 놓고 입씨름이나 벌였던 당신은 국민의 생각이 무섭기는 했는가. 광화문과 서초동에는 진심어린 주장이 있고 진정 가득한 절박함이 있다.국민은 알고 있다. 들은 만큼 알게되었고 헤아린 만큼 진실에 접근한 국민은 무엇이 중요한지 모두 알고 있다. 가짜뉴스와 억지동원도 분명히 보았고 어린이들이 선동에 이용된 모습도 보고 말았다. 확인없이 기사를 날리는 언론 관행도 알아버렸고 급하면 슬쩍 흘리는 수사진의 모습도 눈치채 버렸다. 개혁이 급선무임을 충분히 들었고 그게 왜 필요한 것인지도 보고 말았다. 진보정치의 두 얼굴도 목격하였고 보수정치의 고집스러움도 확인하였다. 세상이 바뀌었다. 숨길 수가 없다. 드러내지 않고 적당히 누리던 기득권력에는 이제 설 자리가 없다. 철저한 자기반성을 토대로 소임에 따를 것을 국민은 기대하고 명령한다. 어차피 세상은 바꾸어야 할 일들이 가득한 곳이 아닌가. 변화가 기대되는 실체가 확인된 바에야, 더는 머뭇거릴 겨를이 없다.국민이 보고 있다. 태풍피해도 아랑곳 아니하고 서울로 달려간 당신을 기억하고 있으며, 이천 날이 넘도록 답 한 자락 듣지 못한 상처는 오히려 생생하다. 이해당사자이면서도 수사를 하지 말도록 공개적으로 요청하는 당신을 보고 있으며, 마약범죄혐의가 짙은데도 경찰이 풀어준 명문가 자녀를 모두 보았다. 촛불의 희망으로 이어받은 정권이 상응하는 능력으로 답하지 못하는 안타까움도 국민은 느끼고 있다. 그 밖에 나라에 닥친 어려운 자락들도 깨알같이 보고 있다. 어려운 과제들이 산더미인데, 정부 기관 한 군데 개혁에 더는 휘둘릴 수가 없다. 권력이 주도한 ‘광장파시즘’이 아닌 것은 거리에 나가면 분명히 보인다. 답답하고 목마른 시민의 함성을 확인하는 일은 생각보다 쉽다. 제각기 다른 생각을 다양하고 풍성하게 쏟아내는 광장의 뜨거움은 그곳에 나서면 금방 보인다. 폭력과 광기는 기억 속에만 있지 않은가. 바램과 열기는 확인되었다.국회가 존재 이유를 확인하려면, 광장의 목소리와 함성의 진정성을 담아 국회가 돌아가야 한다. 당신이 대표하는 국민의 마음을 담아내는 국정에 임해 주시라. 어느 여검사의 표현처럼 ‘당장 없어져도 할 말이 없을’ 국회가 되면 되겠나. 곧 선거 아닌가, 지금부터 소임에 충실해 주시라. 나라와 국민을 바라보는 당신을 만나보고 싶다.

2019-10-09

심지 굳은 바람처럼-안동 봉정사 영산암(靈山庵)

적요를 먹고 크는 배롱꽃, 깊이를 알 수 없는 평화, 오래된 침묵, 그리고 무슨 말이 필요할까. 오후의 햇살이 관심당 툇마루의 나이테를 세다 창살에 기대 졸고 있다. 모두 하나가 되어 멎어 있는 풍경들, 발걸음 소리에 정제된 시간들이 파문을 일으키며 깨어날 것만 같아 고양이 걸음으로 들어선다. 귀 밝은 솔이가 컹컹 영산암이 떠나가도록 짖는다.봉정사 영산암은 석가불이 법화경을 설법하던 영취산에서 유래되었으며, 영취산에 모여 설법 듣는 나한을 모신 응진전이 주법당이다. 온통 국보와 보물로 가득한 봉정사와 달리 경상북도 민속자료라는 아주 작은 명함이 전부지만 어느 암자와는 다른 독특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하늘에서 꽃비가 내린다는 우화루, 이름의 유래는 불교적 색채를 띠지만 유학자의 선비다운 풍류마저 느껴진다. 키가 닿을 듯 낮은 누하문을 조심스럽게 들어서면 자연석을 이용한 계단 위로 사대부집의 아담한 정원과도 같은 편안함을 만난다. 명문가의 자존심이 묻어나는 노할머니의 장죽(長竹)이 기척 소리에 문을 열며 내다볼 것 같은 환상에 사로잡히기도 한다.완만한 구릉지를 깎거나 다듬지 않고 바깥의 자연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정원, 그래서 관심당 마루는 우화루 쪽으로 내려갈수록 높아진다. 뿐만 아니라 문의 크기도 다르다. 단아하고 기품 넘치는 유가적인 분위기의 건물들과 시공간을 압축시켜 놓은 듯한 묘한 공간배치 앞에서 낮은 탄성이 절로 나온다.응진전 좁은 툇마루는 낡고 삭아서 내려앉을 듯 안쓰럽다. 법당에 들어서기도 전에 저절로 두 손부터 모으게 되는 인고의 고단함이 마음을 시리게 한다. 응진전보다 낮은 자세로 송암당과 관심당이 좌우를, 맞은 편 입구에는 우화루가, 세 건물은 툇마루로 연결되어 건물이 가지는 위계질서조차 잃지 않는다.송암당 나지막한 처마와 소나무 한 그루의 어울림, 서로가 서로에게 배경이 되어주며 모두가 주인공이 되는 관계가 조화롭다. 시설 좋은 봉정사 템플관을 굳이 마다하고 영산암에 머물기를 고집한 이유다. 영산암 해주 스님은 출타 중이라 봉정사 주지 도륜 스님의 배려로 관심당 방 하나를 차지한다.오랫동안 떠나 있다 옛집을 찾은 것처럼 편안하다. 주지 도륜 스님의 자상한 설명으로 봉정사도 영산암도 내 안에서 새롭게 태어난다. 시대별 특징들이 모여 살아 숨쉬는 건축박물관, 봉정사가 세월의 맛이 자연스럽게 배어나오는 시간의 멋을 지녔다면 영산암은 미학적인 혜안 속에서 오로지 지금 나로만 머물 수 있는 공간이다.새벽 4시 도량석 목탁소리에 천등산이 눈을 뜬다. 새벽예불을 위해 나도 주섬주섬 옷을 갈아입는다. 툇마루를 내려서는데 무심코 기봉의 눈빛이 느껴진다.‘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 영화는 모든 것을 깊고 쓸쓸하게 담아냈다. 최대한 빛을 아끼고 말을 아꼈다. 돌보지 않은 영산암은 쓰러질 듯 고뇌에 찼으며, 한국의 아름다운 자연조차 투명하도록 슬펐다.절제된 대사들이 오래도록 마음에 파문을 일으켰다. ‘지옥과 극락은 둘이 아니라 하나다’, ‘가는 것이 오는 것이고, 오는 것이 가는 것이다’. 노스님의 기름기 없는 목소리가 들려 올 것만 같다. 죽음을 앞 둔 노스님과 호기심으로 세상을 열어가는 동자승의 뒷모습이 우화루 위에서 아른거린다.어둠 속의 영산암은 어제의 옷을 벗고 무의식 속의 또 다른 풍경을 만들어 내 앞에 선다. 대자유의 길을 걷고자 출가하지만 생애의 고뇌마저 사랑하지 않고서는 피안의 완전함에 이를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다시 사바세계로 돌아가는 기봉의 뒷모습은 그래도 희망적이다. 영산암은 사바와 피안 사이에 앉아 말이 없다.대웅전에 앉아 오래 전 기억을 떠올린다. 타종 소리와 함께 어둠이 밀려들고 은행잎이 아픈 소리를 내며 떨어지던 늦가을 저녁, 고령의 은행나무를 바라보며 새로운 나를 다짐했다. 오로지 나 혼자만을 위한 설레는 부름들, 영원할 것 같은 순간들, 잎새의 마지막 떨림처럼 의욕이 살아 숨 쉬던 젊은 날의 각오, 봉정사는 모든 것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조낭희 수필가변화는 있어도 변함이 없어야 한다고 했던가. 안타깝게도 봉정사보다 더 빨리 변한 건 나였다. 지나친 의욕과 많은 생각은 엉뚱한 결과를 가져오곤 했다. 도시를 벗어나 길과 숲, 오래된 공간 속으로 자주 떠나 볼 일이다. 오래된 것들은 시간에 휘둘리지 않고 장악할 수 있는 힘을 준다. 어둠을 품고 잠든 나무들 사이로 새벽이 꿈틀거린다.유명세로 봉정사 문턱은 높을 거라 생각했다. 그것은 나만의 기우였다. 날마다 긴 세월을 견뎌내 준 극락전에 감사 기도부터 드리고 새벽 예불을 보신다는 도륜 주지스님, 끼니때마다 환한 미소까지 덤으로 얹어주던 공양주 보살님, 친절함이 몸에 배인 종무소 보살님, 모두에게서 잘 여문 과일향이 난다.차를 내린지 반나절이 지나도 차향이 남아 있듯, 좋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기품 넘치는 사찰이다. 스님과 나눈 대화를 가슴에 품고 봉정사를 내려오는데 천등산 맥박소리가 들려온다. 숨을 쉴 때마다 느껴지는 지독히도 낯익은 소리였다.

2019-10-07

사람들 사이의 섬… 영화 ‘김씨 표류기’

섬이다. 스스로를 유폐시키고 안으로 문을 걸어 잠군 사람과 죽음의 경계에서 삶의 또 다른 섬에 다다른 또 한 사람. 천혜의 고도가 아니라, 서울 한강변 아파트 숲 속 작은 방에 스스로를 고립시키고 나만의 세계를 구축하고 있는 여자 김씨. 그리고 63빌딩이 지척인 한강의 밤섬에 갇힌 남자 김씨.아파트 현관문을 열면 여자 김씨에게는 언제든 사람과 사람 사이의 섬으로 다가갈 수 있는 방법이 있지만 그 문은 쉽게 열리지 않는다. 아니 열지 않는다. 유람선이 지나가고 인근 아파트와 빌딩의 낮과 밤 풍경을 손에 잡힐듯 지척에 두고서 다가가지 못하는 맥주병 남자 김씨. 아파트의 작은 방에 스스로가 만든 섬에 고립된 여자와 자살시도가 실패로 끝나 밤섬에 고립된 남자의 표류기다.우리의 가장 가까운 곳에서, 표류될 수 없는 곳에 표류된 두 사람의 고립된 표류기가 시작된다. 망원경으로 관찰할 수 있는 정도의 거리에서, 쾌속의 속도를 자랑하는 첨단의 디지털 세상에서 무엇보다 느리고 불확실한 아날로그적인 방법으로 그들의 커뮤니케이션이 시작된다.두 명의 김씨는 열렬히 섬 밖의 세상을 갈구하지만 두려우면서 쉽게 나아가지 못한다. 내레이션은 남자 김씨의 이야기에서 여자 김씨의 이야기로 옮겨 간다. 전혀 공통점이 없는 두 사람의 내레이션은 조금씩 조금씩 서로의 섬으로 다가가고 동화되어 간다. 밤섬으로 떠내려온 쓰레기를 모아 무인도에서의 삶을 살아가는 남자와 일상의 쓰레기를 치우지 않는 여자. 옥수수에서부터 자장면으로 이어지는 느슨한 연결고리의 에피소드는 마지막 장면에서 극적인 해후를 이룬다.외로운 섬에서 서서히 달아오르며, 열렬히 갈망하는 한 없이 느린 대화가 시작된다. 그리고 그 대화는 그들이 잡을 수 있는 마지막 희망이 되고, 고립된 섬에서 타인의 섬으로 도약을 결심하는 계기가 된다.무거운 내용을 무겁지 않게, 자잘한 소품 하나까지 세심히 살려 영화 속에서 의미를 부여 한다. 쪽지가 담긴 빈 와인병, 오리배, 옥수수, 빈 깡통, 우산과 민방위 훈련까지 재치있는 소품들이 이야기를 풍성하게 이끈다. 이러한 소품들 중에서 단연 최고는 자장면이다. 빈 짜파게티 봉투에 담긴 수프를 발견하면서부터 시작되는 에피소드는 세상 최고의 맛을 자랑하는 짜장면으로 완성된다. 야생(?)의 무인도에서 각고의 노력과 인고의 세월을 거쳐 완성되어가는 자장면 만들기는 희망이 어디에서 어떻게 오는가를 보여준다.남자 김씨의 자장면은 잊고 있었던 삶의 또 다른 살아갈 이유가 되고, 이 과정을 지켜보는 여자 김씨에게 자장면은 누군가를 위해, 세상을 향해 손을 내미는 이유와 희망이 된다.일상의 속도에서 이탈한 두 사람. 그 속도를 따라잡기 위해 아둥바둥했던 이들은 세상 속에서 세상의 속도와는 다른 속도로 이탈한 이들의 세상에 가 닿는다. 세상 모든 속도가 일순간에 정지되는 민방위 훈련 에피소드는 바로 이 두 사람의 속도이며, 이들의 간절한 희망의 순간이 된다.세상의 속도에서 잠시 이탈하고 싶은 사람과 사람들 속에서 갑자기 밀려오는 외로움과 무너지는 자존감이 엄습해 오는 순간, ‘내 삶에도 민방위 훈련의 싸이렌이 울렸으면’하는 이들을 위한 영화. 무엇보다 자장면이 너무 먹기 싫어질 때나 자장면이 너무 먹고 싶을 때, 이 모든 순간과 이 모든 이들을 위해 이해준 감독의 ‘김씨 표류기’를 권한다./김규형 문화기획사 엔진42대표*이해준 감독의 ‘김씨 표류기는 네이버영화나 구글플레이에서 다운로드하여 볼 수 있다.

2019-10-07

한비자의 망국론과 한국의 정치현실

강희룡 서예가한비자(전280?∼전233)는 전국시대 말기 법가의 집대성자이고, 통치술, 제왕학의 창시자이기도 하다. 그는 형명법술에서 군주는 법을 세움과 동시에 신하에게는 법을 지키고 공을 세우게 하는 신상필벌의 법치설을 주장하였다. 당시 예치(禮治)의 정치적인 실효성이 빛을 잃으면서 예치와 덕치(德治)를 보조하는 정치수단에 불과했던 법이 통치이념으로 자리를 잡게 된다. 자신의 저서 ‘한비자15편, 망징(韓非子15篇, 亡徵)’에서 망국(亡國)의 징조 47가지를 일찍이 설파한 바 있다. 그의 말대로 망할 조짐을 보였던 전국시대의 6국은 천하통일로 중앙집권을 이룬 진나라에 의해 병합돼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한비자의 망징 47가지는 크게 나누어 분열, 부패, 무원칙, 안보의식해이, 가치혼돈으로 정리할 수 있다. 나라의 쇠망을 알려주는 징표 대표적인 7가지를 지금의 우리 정치현실을 우려하며 나열해 본다.첫째, 법을 소홀히 하고 음모와 계략에 힘쓰며, 국내정치는 어지럽게 두면서 외세에만 의지하는 경우이다. 둘째, 군주가 누각이나 연못을 좋아하며 수레나 옷 등에 관심을 기울여 국고를 탕진하는 경우이다. 셋째, 군주가 간언하는 자의 벼슬이 높고 낮은 것에 근거하여 의견을 듣고 여러 사람 말을 견주어 판단하지 않으며, 어느 특정한 사람이나 계층의 의견만을 받아들이는 창구로 삼는 경우이다. 넷째로 군주가 고집이 세서 화합할 줄 모르고, 간언을 듣지 않으며 승부에 집착하고 사직은 돌보지 않고 제멋대로 자신만을 위하는 경우이다. 다섯째, 나라 안의 인재는 안 쓰고 나라밖에서 사람을 구하며, 공적에 따라 임용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평판에 근거해서 사람을 뽑는 경우이다. 여섯째, 군주가 대범하나 뉘우침이 없고 나라가 혼란해도 자신은 재능이 많다고 여기며, 나라 안 상황에 어둡고 이웃 적국을 경계 하지 않는 경우이다. 끝으로 나라의 창고는 텅 비어 있는 반면 대신들의 창고는 가득 차 있고, 백성들은 가난한데 나라밖 이주자들은 부유하며 농민과 병사들은 곤궁한데 상공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이득을 얻는 경우이다.현 문재인 정부는 지금까지 국회인사청문회에서 부적격자로 판정되어 청문보고서 없는 인사들을 보고서 채택 여부와 상관없이 대통령이 무려 22명이나 ‘묻지마 임명’을 강행했다.그 중 각종 비리의혹으로 국민의 비난과 검찰수사선상에 있는 조국을 검찰개혁의 적임자라는 명분으로 법무부 수장에 앉혔다. 이 조국 게이트는 단순히 윤리의 실종이나 도덕의 추락이 아닌 범법의 문제로 정의와 공정, 도덕을 강조하던 개혁진보세력과 좌파정치세력들의 부패와 도덕적 불감증의 민낯이 국민 앞에 드러났다. 이러한 범법행위에 대한 국민적 원망을 무마하려고 이번에도 과거처럼 촛불로 거리에 어릿광대들을 풀어 ‘조국지지와 검찰개혁의 국민적 요구’ 라고 숫자 부풀림으로 여론조작을 통해 덮으려 하지만, 한비자는 ‘나무가 부러지는 것은 반드시 벌레가 파먹었기 때문이고, 담장이 무너지는 것은 반드시 틈이 생겼기 때문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2019-10-07

두려움이 없는 아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조현명 시인A는 문제아였다. 만나는 선생님들마다 외면했다. 도와준다고 말을 건넸다가 오히려 나쁜 일을 당하는 수가 많았다. 후배들의 돈을 빼앗는 것은 작은 일이었다. 오토바이를 훔치거나 성폭행범으로 신고 되기도 하고 동네 불량배에 끼어서 사건에 연루되기도 했다. 당연히 선도위원회나 학교폭력대책 자치위원회에 이름이 여러 번 올라오기도 했다. 그때마다 위원들은 한탄만 하고 끝이 났다.“이런 아이는 작은 잘못에도 강하게 처벌해야합니다. 그러질 못하니 잘못을 키워주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몽둥이찜질로 정신 차리게 할 수 있는데 요즘은 그렇게 하지도 못하고….”, “경찰과 검찰에서도 청소년이라고 양형기준을 낮추어버리니 그걸 이용합디다.”결국 A는 폭력과 절도 강도 성폭행으로 소년원 생활을 했다. 이후 학교생활에서도 사고뭉치였다. 오히려 더 대담하게 사고를 쳤다. 교사들은 “앞으로 큰 범죄자가 될 것이다.” 라고 했지만 아무도 교정하려는 사람은 없었다. 이런 아이는 극소수다. 대다수의 아이들은 그에 비하면 착한 수준이다. 그러나 두려움이 없다는 것에는 동일한 것 같다. 두려움을 기반으로 하는 교육현장에서 학생들이 두려움이 없어진다면 교육이 뿌리 채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학교에서 선생님에게 개×× 같은 욕을 하는 것은 차라리 애교스럽다.“당신은 우리가 낸 세금과 납입금으로 월급을 받지 않느냐?”는 말을 해, 당혹스럽게 하기도 하고 컴퓨터가 말썽일 때 학생의 도움을 받으면 “너는 손이 없냐? 발이 없냐?” 같은 요즘 힙합가사를 흥얼거린다. 교사를 비아냥대고 교사로 대하지 않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화를 내고 체벌을 하면 신고하겠다고 협박한다. 흉기를 들고 달려들거나 주먹질해오면 교사는 방어권도 없다. 방어하다가 되려 학생에게 폭행을 가한 것으로 책임질까 두렵다. 피하는 것이 상수다. 이것은 교육을 포기하는 일이다.이지경이 된 것은 기존의 교육철학이 뒤흔들렸기 때문이다. 교육당국이 두려움을 기반한 교육을 부정하고는 대안을 제시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학교는 아직도 두려움을 기반해 운영되고 있다. 그런데 교사들에게 ‘사랑의 매’를 빼앗고 ‘학생 인권 조례’ 같은 것으로 학생들의 권리를 신장시켰다. 무조건 오래 참고, 교사의 사랑으로 감화하라는 무언의 압력이 매뉴얼처럼 내려 보내졌다.두려움을 기반으로 하지 않는 교육사례는 ‘서머힐’이나 뉴욕의 ‘자유학교’정도이다. 그것은 성공했다고 보기 힘이 든다. 왜냐하면 소수교육에 적용된 것이기 때문이다. 다수의 보통학교에서 그런 예를 찾기 힘 든다. 세상의 질서는 ‘두려움’으로 계층지어 있고 그것을 학교교육 또한 따라 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지금이라도 A같은 아이는 두려움으로 바로잡아야 한다. 아니면 ‘서머힐’ 같은 대안교육으로 보내든지.다수 보통학교에서 두려움이 없는 아이들이 양산되는 것을 이제는 막아야한다. 그러기 위해서 뭘 해야 할지는 뻔하다. 현장 교사들에게 물어보면 된다.

2019-10-07

잭 런던과 모차르트

‘야성의 부름’으로 알려진 잭 런던(1876∼1916)이란 작가는 하루에 무려 20시간씩 글을 썼습니다. 글쓰기의 진정한 장인, 마에스트로입니다.“영감이 떠오를 때까지 그저 기다리기만 해서는 안 된다. 몽둥이라도 들고 찾아 나서야 한다.” 그의 각오를 엿볼 수 있는 말입니다.잭 런던은 20시간 글을 쓰고 나머지 4시간으로 잠을 보충했는데, 자꾸만 침대에서 빠져나오는 것이 힘들게 되자 놀라운 일을 벌입니다. 침대 위에 역기를 매달아 두었습니다. 그만큼 절박하게 글을 썼습니다.모차르트는 친구에 보내는 편지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사람들은 내가 쉽게 작곡한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네, 유명한 작곡가들의 작품들을 나는 이미 수십 번에 걸쳐 꼼꼼하게 분석하고 연구해 보지 않은 작품이 하나도 없다네.”영화 아마데우스를 보면 모차르트를 신에게 키스를 받은 존재로 묘사하지요. 궁정 악사 살리에르가 왜 자신에게는 영감의 키스를 해 주시지 않느냐고 신에게 저항하는 장면을 볼 수 있습니다. 영화의 묘사와 달리 모차르트는 하루 대부분 시간을 음악에만 온전히 바친 인물입니다. 그의 손은 작곡을 위해 가느다란 깃털 펜을 너무도 오래 사용한 나머지 손의 뼈마디가 온통 뒤틀려 있었다고 합니다.창작은 하늘의 영감을 받아 뮤즈가 나에게 불어넣어 주는 숨결을 들이마시는 일이 아닙니다. 매일 정해진 루틴이 있는 작업이 비로소 영감 넘치는 작업을 가능케 합니다.가장 능률적으로 일하는 예술가들은 거의 예외 없이 이른 아침에 작업합니다. 세상은 고요하고, 전화도 오지 않고, 마음은 평안하되 깨어 있고, 다른 사람의 말로 아직 오염되지 않는 시간은 하루 중 오직 새벽뿐입니다. 위산일궤의 마음가짐으로 매일 한 삼태기의 흙을 모아 나르는 결심으로 책을 읽고 글을 쓰는 독자님들이 늘어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대표

2019-10-07

소머리곰탕...이미 진한 설렁탕을 먹고 있었다

설렁탕은 서울 지방 음식이다일제강점기인 1930년대 중반, ‘경성 종로경찰서’에 설렁탕 배달꾼이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를 받았다. 사건은 ‘외상 설렁탕값’에서 시작되었다. 단골집에 설렁탕 배달을 갔다. 외상값이 밀려 있었다. 수금은 배달꾼 책임이다. 밀린 외상값을 달라고 했다. 설렁탕을 배달 시킨 이는 “나는 이 집 객이다. 지금 주인이 없으니 설렁탕값은 나중에 주인에게 받아라”고 했다. 이 말끝에 배달꾼과 객 사이에 시비가 붙었다. 시비 끝에 주먹다짐이 오갔다. 둘 다 경찰서 행.조서에 배달꾼의 말이 남아 있다. “내 뒤에는 설렁탕 배달꾼 300명이 있다”는 내용이다. “우리 큰 조직이야!”라고 엄포를 놓은 셈이다. 당시 경성(서울)에는 냉면, 설렁탕 배달이 성했다. 음식 배달꾼들의 노동조합도 있었다. 300명이라면 적지 않은 숫자다. 주로 종로통 부근에 있었으니 설렁탕 배달꾼이 집집이 서너 명은 있었다는 뜻이다.당시 경성에는 설렁탕 집들이 유달리 많았다. 협객 김두한의 회고에도 숱한 설렁탕집들이 등장한다. ‘원 씨 성’을 가진 이는 경남 진주 형평사(衡平社) 간부 출신이다. 형평사는 1920년대 백정을 중심으로, 진주에서 시작된 ‘형평 운동’ 단체다. 사회주의 조직이다. 신분제도가 무너졌지만, 여전히 백정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았다. 원 씨는 진주에서 형평사 운동을 하다가 서울로 이주, 종로통에서 설렁탕 집을 열었다. 문제는 아이들의 취학이다. 대부분 학부모가 자신들의 아이가 백정의 아이와 같은 학교를 다니는 것을 반대한다. 원 씨는 “신분제도가 무너졌지만 여전히 백정에 대한 인식은 나아지지 않았다”고 항의한다.설렁탕 집은 서울(경성)에서 널리 유행했고, 진주에도 있었다. 설렁탕은 언제, 어디에서 시작되었을까?하루 소 500마리를 도축했다일제강점기 ‘소의 생산량’이 늘어나면서 설렁탕이 시작되었다는 주장이 있다. 일제강점기에 농, 축산물 생산이 늘어났다. 소의 소비가 늘어났고, 쇠고기 소비도 증가한다. 이때 소 부산물로 만드는 설렁탕 등이 등장했다는 뜻이다. 그렇지는 않다. 일부 맞지만 틀린 표현이다.조선 후기에 이미 소, 쇠고기의 소비는, 지금으로서는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많았다. 일제강점기에 갑자기 쇠고기 소비가 늘어난 것은 아니다.설렁탕의 등장은 오히려 ‘느슨해진 금육(禁肉) 정책’ 덕분이다.조선은, 삼금(三禁)의 나라다. 금육(禁肉), 금송(禁松), 금주(禁酒)다. “쇠고기 먹지 마라, 소나무 베지 마라, 술 마시지 마라”가 국가의 주요 정책이다.모두 농사, 식량 확보와 연관이 깊다. 소나무를 베면 홍수가 난다. 술을 많이 마시면 결국 곡식이 허비된다. 곡식은 농본 국가의 주요 어젠다다. 소도 마찬가지. 우역(牛疫)이 돌면 정부는 “성한 소를 사고 지역으로 보내서 농사에 지장이 없게” 했다. 함경도의 멀쩡한 소를 수백, 수천 마리 삼남지역으로 보낸다. 심한 경우, 중국에서 소를 수입했다. 쇠고기를 먹는 일은 농사를 망치는 일이었다. 쇠고기 낭비를 철저하게 막았다. 문제는 민간이다. 민간에서는 여전히 쇠고기 먹는 일을 즐겼다. 정부에서는 강력하게 막고, 민간에서는 여전히 쇠고기를 즐겼다. 민간이, 반가(班家) 혹은 권력 계급이니 막기가 힘들었다.다산 정약용의 ‘목민심서_호전6조_권농’의 기사다. 제목은 ‘농사는 소로 짓는 것이니 진실로 농사를 권장하려 한다면 마땅히 도살을 경계하고 목축을 권해야 할 것이다’이다.박제가(朴齊家)의 ‘북학의(北學議)’에는 이렇게 되어 있다. (중략) 중국에서는 소의 도살을 금한다. 북경 안에는 돼지고기 푸줏간이 72개소, 양고기 푸줏간이 70개소가 있어서 (중략) 고기를 이같이 많이 먹는데도 쇠고기 푸줏간은 오직 2개소뿐이었다. 우리나라에서는 매일 잡는 소를 계산하면 500마리가 된다. 나라의 제향(祭享) 때나 호상(犒賞) 때에 잡는 것, 또는 반촌(泮村)과 서울 5부(五部) 안 24개소의 푸줏간에서 잡는 것, 게다가 전국 300여 고을마다 관에서 반드시 푸줏간을 열게 한다. 작은 고을에서는 날마다 소를 잡지는 않으나 큰 고을에서 겹쳐 잡는 것으로 상쇄되고, 또 서울과 지방에서는 혼례와 잔치, 장례, 향사(鄕射) 때 그리고 법을 어기고 밀도살하는 것을 대강 헤아려 보아도 그 수가 이미 500마리 정도가 된다. (후략)하루 500마리를 도축한다. 셈법도 정확하다. 전국 300개의 지방 관청마다 푸줏간(懸房, 현방)이 있다. 합법적인 도축 기관이다. 작은 곳에서는 소를 잡지 않는 날도 있지만, 큰 곳에서는 하루 몇 마리도 도축한다. 어림잡아 하루 한 마리씩 도축한다고 셈했다.서울이 문제다. 서울은 5부로 나누었다. 도성 안이다. 이곳에 푸줏간이 24개소. 여기서 200마리쯤 도축한다. 합계 500마리. 박제가나 정약용 모두 한양에 살았으니 한양의 도축 숫자는 비교적 정확히 알고 있었을 것이다.‘하루 500마리 도축’은 18세기 후반부터 19세기 초반의 일이다. 망국의 시기보다 100년쯤 앞선다. 망국 100년 전에 이미 쇠고기 생산, 소비는 상당했다. 일제강점기 쇠고기 생산, 소비가 늘었고 설렁탕이 시작되었다는 말은 틀렸다.금육이 무너지니, 설렁탕이 생겼다?쇠고기 생산, 소비가 늘고 설렁탕이 유행한 것은 다른 이유 때문이다.나라가 무너지면서, ‘금육’ 정책도 무너졌다. 조선 말기, 일제강점기에는 사회 질서가 무너지면서 금육 정책도 무너졌다. 정조 사후(1800년)부터 조선이 공식적으로 망하는 1910년의 ‘한일늑약(韓日勒約)까지 110년 동안 조선의 사회 체재는 서서히 허물어진다. 쇠고기 식육을 강하게 막던 정부 정책도 힘을 잃는다.조선 말기, 일제강점기 민간의 쇠고기 소비가 얼마간 늘어났다.서울 ‘이문설렁탕’은 1904년 무렵 문을 열었다. 대한제국(1897-1910년) 시기다. 금육 정책은 완전히 무너졌다. 민간의 쇠고기 소비가 자유로워지고, 더불어 상업행위도 활발해진다. 국가의 공식적인 시전(市廛)도 무너졌다. 길거리 사설 식당은 주막이다. 주막에서는 주로 개장국을 내놓았다. 일제강점기를 전후하여 근대화된 식당들이 나타난다. 일제는 세금을 목적으로 적극적인 ‘가게 창업 신고’를 장려했다.조선 말기에도 쇠고기 소비가 있었다. 소의 부산물인 뼈, 대가리, 꼬리 등을 버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탕, 국[羹, 갱]으로 만들어 먹었을 것이다. 음식을 이르는 정식 이름이 없었을 뿐이다. 1776년(정조 1년)의 기록물인 ‘명의록’에는 개장국 집이 등장한다. ‘쇠고기 부산물로 만든 음식’이 아니다. 쇠고기 소비가 비공식적이면 쇠고기 부산물로 만든 음식을 지속적으로 만들고, 공공연히 팔기는 힘들다. 정조 시절에도 개장국이 최선이었다. 설혹 쇠고기 부산물로 음식을 만들더라도 ‘구장(狗醬, 개장국)’같은 이름을 쓰지 않았다.금육 정책과 공식적인 시장, 시전이 무너진다. 주막과 사설 식당이 활성화된다. 개고기를 먹지 않는 사람들이 많아진다. 한양도성에서 설렁탕은 개장국을 대신하는 음식으로 등장한다.설렁탕과 육개장서울 ‘이문설렁탕’이 생기고 경북의 중심도시 대구에서 육개장이 시작된다. 모두 개장국 대용품들이다. 서울의 경우, 주막의 개장국이 식당의 설렁탕으로 대체된 된 것이다.해방 후에는 변형된 설렁탕도 나타난다.포항 죽도시장에는 ‘곰탕집 골목’이 있다. 소머리곰탕이다. 영천 공설시장 안에는 몇몇 곰탕집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고기 곤 전통 곰탕도 있지만, 내장, 소머리 등을 곤 변형 곰탕도 많다. 경북, 대구에는 설렁탕 전문점은 귀하다. 지방도시인 전남 나주에도 곰탕 노포들이 많다. 나주의 곰탕은 서울 ‘하동관’ 곰탕과 닮았다. 맑은, 고기 곤 국물이다. 포항 죽도시장 ‘장기식당’의 곰탕은 소머리 곰탕이다. 정확하게 짚자면, 곰탕이 아니라 설렁탕이다. 언론인 고 홍승면 씨는 수필 ‘백미백상’에서 “설렁탕 집 옆을 지나가다가 하얗게 탈골한 소머리를 보고 질겁한 후 오랫동안 설렁탕을 먹지 못했다”고 했다. ‘장기식당’의 곰탕은,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소 대가리 중심의 설렁탕이다. 소 대가리 뼈나 사골, 잡골 등으로 국물을 내고, 머릿고기 등을 넣은 것은 설렁탕이다.서울을 제외한 지방 특히 경북 지방에는 설렁탕 전문점이 드물다. 이유는 간단하다. 소머리곰탕 등의 이름으로 이미 진한 설렁탕을 먹고 있기 때문이다. /맛칼럼니스트 황광해

2019-10-07

실손의료보험의 함정

의료보험실손의료보험(이하 실손보험)은 건강보험에서 보장하는 의료비를 제외하고 병·의원 및 약국에서 실제로 지출한 의료비를 최대 90%까지 보상하는 보험으로, 보험 가입자가 질병이나 상해로 입원 또는 통원치료 시 의료비로 실제 부담한 금액을 보장해 주는 건강보험을 말한다.즉 아프거나 다쳐서 병원 치료를 받았을 때, 국민건강보험법 등에 의해 발생한 의료비 중 환자 본인이 지출한 의료비를 보험가입금액 한도 내에서 보장하는 보험이다. 이같은 실손보험은 나이가 들수록 병에 걸릴 확률이 높아 보험료가 올라가고, 유병자의 경우 보장내역이 줄어 효율적인 보험활용이 어려울 수 있다. 따라서 가급적 건강할 때 보험에 가입해 두는 것이 유리하다.특히 실손의료보험은 ‘비례보상 상품’이어서 중복가입하지 않는게 중요하다. ‘의료비 비례보상’은 부당이득의 문제점과 불필요한 장기입원 및 과잉진료행위 등 사회적 폐해를 예방하기 위한 조치다.피보험자가 상해 또는 질병으로 인해 의료기관에서 치료받아 발생하는 의료비에 대해 다수 상품에 중복가입 하더라도 피보험자가 실제 부담한 의료비 이상은 보상되지 않고 피보험자가 부담한 의료비를 보험사간 비례분담하게 된다. 예를 들어 甲이 1천만원을 한도로 의료비를 보장하는 A보험과 B보험 두개의 상품에 가입하고 병원비를 100만원 부담한 경우 두개의 보험사로부터 각각 100만원이 지급되는 것이 아니라 A보험과 B보험 각각에서 50만원씩 지급받게 된다.따라서 신용정보원 홈페이지나 인슈어테크 전문기업에서 내놓은 통합보험관리앱 등을 활용해 보험가입 내역을 조회, 보험료만 이중으로 납부하는 피해를 입지 않도록 주의해야한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19-10-07

“지금 하지 않으면 언제 하겠는가?”

신희선 숙명여대 기초교양대학 교수·정치학 박사“저는 이번에 대통령으로서 이 금단의 선을 넘어갑니다. 제가 다녀오면 또 많은 사람들이 다녀오게 될 것입니다.”2007년 10월 2일 노무현 대통령이 군사분계선을 건너며 남긴 말이다. 그 후 10년이 지나 2018년 ‘4·27판문점선언’과 ‘9·19평양공동선언’이 나왔지만, 남북한 교류나 협력은 지지부진한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10·4 남북정상선언 12주년 기념식에 참석하여 들었던 생각, 지금 우리는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위한 운전자 역할을 잘 하고 있는가?지난 6일, 스웨덴 북미 실무협상이 결렬되었다는 소식이 날아왔다. 하노이 정상회담 이후 7개월만에 재개된 북미대화라서 전향적인 계기가 마련될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지만 아무런 진전도 없이 스톡홀름 협상이 종료되었다. 북미대화를 방관자적 입장에서 볼 수 없는 것이 우리의 형편이다. 한반도 평화를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우리는 관객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통일문제가 대외환경의 종속변수가 되어서는 안 된다. 북미대화 결렬이 남북한 관계를 좌지우지 하도록 둬서도 안된다.여야 공방이 치열하다. 자유한국당은 논평을 통해 북미대화 결렬은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의 실패라며 “김정은 몸값만 올려놓는 자충수”를 두었다고 하였다. 청와대는 “북미대화가 지속될 수 있도록 국제사회와 긴밀히 협력해 나갈 것”이라고 하였다. 통일 문제는 국내정치의 수준이 달라지지 않으면 사실상 어려운 숙제다. 내부통합이 전제되지 않은 채 진행되는 통일 관련 논의는 공허하다. ‘10·4남북정상선언’ 1주년 기념연설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대북정책을 놓고 벌어지는 정쟁이 빨갱이 만들기, 친북좌파 만들기 같은 맹목적인 이념대결과 정치 공작의 수준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정치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면 통일은 가망이 없다는 것이다.10여 년이 지난 지금에도 우리의 정치 현실은 별반 나아지지 않았다. 조국사태로 거리정치가 재연되고 여야가 극단적인 대결 양상을 멈추지 않고 있다. 소모적인 정쟁이 피로감을 증폭시키고 있다. 최근 경향신문과 한국리서치의 여론조사 결과는 46.4%만이 문재인 정부가 ‘국정운영을 잘하고 있다’고 지지하였다. ‘사회갈등 해소 및 국민통합’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는 지난 해보다 2배 이상 증가했다. 광복100주년이 되는 2045년 ‘One Korea’가 되자는 비전이 현실화 되려면 국민을 통합할 수 있는 구체적인 계획이 있어야 한다.통일 과제를 풀려면 긴 호흡이 필요하다. 그러나 변화의 속도를 높이는 혁신적인 셈법도 고려해야 한다. 일반 국민들의 피부에 와 닿지 않는 남북한 정상간의 공동선언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대내외 상황에도 흔들리지 않는 통일 비전을 확실하게 끌고 갈 동력이 있어야 한다. 장애물이 없는 경로는 존재하지 않는다. 10·4기념 심포지엄에서 나온 “중재자나 촉진자의 역할을 너머 쇄빙선을 띄우고 개척자가 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이 시점에 주는 울림이 크다. 격동의 시계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지금 하지 않으면 언제 그 일을 하겠는가?”

2019-10-07

북한 헌법 개정, 체제 변화의 신호일까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지난 7월11일 북한 최고인민회의는 개정 헌법을 ‘내 나라 홈피’를 통해 공개했다. 이 헌법 개정은 1948년 인민민주주의헌법 제정 이후 18차, 1972년 사회주의 헌법제정 이후 8차, 김정은 등장 이후 4차 개헌이다. 북한의 헌법 개정은 김정은 체제 하의 북한의 미묘한 변화를 감지하고 예측할 수 있다. 북한은 헌법 개정을 통해 선군시대의 당-군-정 체제를 당-국가 체제로 전환함으로서‘사회주의 정상국가’의 모습을 보이려고 노력하고 있다. 북한의 헌법 개정은 과연 북한체제 변화의 신호일까.먼저 이번 개정 헌법에서 북한은 통치이념을 주체사상과 선군사상에서 김일성·김정일 주의로 명시화하였다. 이는 북한이 위기 시의 선군정치와 결별하고, 김일성·김정일을 다시 받들어 김정은 권력의 정당성을 부각하려는 의도이다. 북한 당국은 군대와 무력을 앞세운 김정일 ‘선군 시대’ 흔적을 지우기 위해 ‘선군혁명노선’을 과감히 삭제한 것이다. 또한 종래의‘우리 민족제일주의’를 배제하고 ‘우리 국가 제일주의’를 강조하고 있다. 개정 헌법 서문에서도‘사회주의 조국’을‘사회주의 국가’로 변경하여 ‘세계 유일무이한 국가실체’로 규정하였다. 그러나 ‘핵 보유국가’라는 표현은 그대로 남겨 핵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밝히고 있다.이번 헌법은 김정은의 위상을 ‘국가를 대표하는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의 최고 영도자’로 표현하여 그를 명실상부한 국가수반으로 명시하였다. 이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국가수반으로 명문화하여 향후 남북 및 대미, 대 유엔 외교에서 그의 역할을 확장하려는 의도일 것이다. 또한 헌법은 국가 무장력의 사명을 ‘혁명수뇌부 보위’에서 김정은을 수반으로 하는 ‘당중앙위원회의 결사 옹위’로 변경하였다. (59조) 이는 김일성·김정일 시대를 넘어 김정은 시대의 도래를 헌법에 명시한 결과이다.이번 헌법 개정에는 과거 핵·경제 병진노선 대신 경제 총집중 노선에 따른 경제 발전노선을 명문화하고 있다. 그들은 대표적인 경제 관리지침인 ‘청산리 정신과 방법’과 ‘대안의 사업 체계’를 과감히 삭제하고 대신 ‘혁명적 사업 방식’과 ‘사회주의 기업 책임 관리제’를 대체했다. 북한이 경제 발전을 위해 내각의 역할(33조)과 실리 보장(32조)을 강조하여 김정은 집권 이후 취해온 경제 조치들을 보장한 결과이다. 또한 이번 헌법은 정보화(26조), 과학기술력(27조), 전민 과학기술 인재화(40조), 대외 신용과 대외 무역(36조) 등 경제 분야의 변화 양상을 적극 반영하였다.이처럼 북한의 헌법은 외형상 북한체제의 변화를 지향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이 북한의 적극적인 개혁·개방의 신호로 보기는 어렵다. 북한의 당-국가 체제는 북한 정치 개혁의 변화신호로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북한 헌법은 경제 발전의 동력을 확보 하려는 경제적 조치를 헌법 여러 곳에 명시하고 있다. 북한이 비핵 협상을 통해 체제의 안정을 보장받고, 실질적 경제 제재가 해제된다면 북한 개혁·개방의 동력은 가시화 될 것이다. 그러므로 북한의 헌법 개정은 체제 변화를 위한 신호라기보다는 생존을 위한 불가피한 경제 응급조치일 뿐이다.

2019-10-06

창조적 습관 만들기

‘천재들의 창조적 습관’이라는 책으로 알려진 세계적인 안무가 트와일라 타프는 말합니다.“창조성은 하늘로부터 떨어지는 선물이 아닙니다. 매일, 규칙적으로 시간을 투자해 멈추지 않고 노력할 때 비로소 빛을 발하기 시작하죠. 진부한 이야기 같지만 결국은 습관(habit)이 핵심입니다.”그녀의 하루는 일어나자마자, 새벽 5시 30분에 택시를 잡아타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그녀의 의식(ritual)은 자연스럽게 다음 단계로 이어지죠. 맨해튼 91번가와 퍼스트 애비뉴 모퉁이에 있는 펌핑 아이언 체육관으로 가서 2시간 동안 근육을 푸는 운동에 집중합니다. 엄숙한 종교 행위를 수행하듯 이 루틴을 마무리한 다음 창작에 시간을 투자합니다.트와일라 타프는 ‘새벽 5시 반에 택시 타기’가 본인의 의식이라 했습니다. 그것만 성공하면 그다음은 저절로 이어지는 법이라고요. 그녀는 말합니다. “창조성은 몸의 움직임과 아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정신적인 활동 이전에 몸을 먼저 움직여 보라.”제가 새벽마다 글쓰기에 도전해 이렇게 매일 새벽 편지를 독자님들께 전달하는 것도 트와일라 타프의 새벽 루틴에 자극받은 결과입니다. 업무에 치여 지친 영혼과 몸으로는 도저히 글을 쓸 수 없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 절실히 깨닫습니다. 밤에 아무런 일정을 잡지 않고 일찍 잠들며 무조건 새벽에 집필 공간으로 나를 밀어 넣기! 글쓰기는 그다음 이뤄지는 자연스러운 과정입니다.인공지능과 로봇의 발달로 앞으로 노동 없는 사회가 도래할 것으로 미래를 예측합니다. 10년 후일지, 15년 후일지 모르지만, 반드시 그런 날이 옵니다. 그 시대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인간다움의 향기와 맛을 낼 줄 아는 힘입니다. 그것을 ‘교양’이라 부르지요.가을이 점점 깊어갑니다. 이 가을 교양을 함양하기 위한 나만의 창조적 의식 하나쯤 만들어 보는 것은 어떨까요?/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대표

2019-10-06

딱딱이 박수와 바보 음악가

김도형아시아퍼시픽해양문화연구원 이사오페라는 화려하다. 호화 배역과 웅장한 무대, 장중한 음악은 관객들을 매료시키는 힘이 있다. 티켓값도 비싸 일반인들은 엄두를 내지 못한다. 평생에 오페라 한 번 보지 못한 사람이 대다수이다. 그런 까닭에 오페라 무대의 성악가는 머나먼 별나라의 외계인처럼 느껴지기도 한다.화려한 오페라 무대에서 내려와 그늘진 곳을 찾아다니며 클래식을 선사하는 성악가가 있다. 사연은 이렇다. 성악가는 어느 날 치매를 앓고 있는 어머니를 찾아가 노래를 불렀다. 중학생이던 그가 대도시로 성악 레슨을 받으러 가던 첫날, 이웃에게 빌린 지폐를 손에 쥐어주던 어머니였다. 어느덧 아들은 외국 유학을 마치고 세계적인 성악가로 성장해 어머니 앞에 섰지만, 어머니는 치매에 걸려 있었다. 아들이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자 어머니는 흥얼흥얼 따라 불렀다.그 순간 성악가는 강한 영감을 느꼈다. 평소 음악의 사회적 역할에 대해 깊이 고민하던 그는 어머니를 통해 음악의 치유능력을 확인하고, 어머니가 머무르고 있는 치매병동처럼 소외된 곳을 찾아다니며 클래식을 전하겠다고 다짐했다. 전국 방방곡곡 그를 찾는 곳이면 어디든 달려갔고, 그 횟수가 지난 2004년부터 지금까지 무려 1천800여 회에 이른다.강원도 농촌의 한 예식장에서 있었던 일이다. 성악가와 동료 10여 명이 고생 끝에 찾아갔는데 청중은 고작 20여 명에 불과했다. 많은 청중을 기대한 것은 아니지만 맥이 빠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정성을 다해 노래를 불렀고 박수소리가 터져 나왔다. 공연을 마친 후에 한 할머니가 어린 손자의 손을 잡고 찾아와서는 성악가에게 꼬깃꼬깃 접은 만 원짜리 한 장을 건넸다. 그리고는 손자에게 좋은 노래를 들려줘 너무 고맙다며 깍듯하게 인사를 했다. 성악가는 차마 거절할 수 없는 귀한 티켓값이었다.한센인들의 쉼터인 안동 성좌원에서는 이런 일도 있었다. ‘경복궁 타령’, ‘오 솔레 미오‘ 등을 부르자 박수소리가 쏟아졌다. 그런데 박수소리가 왠지 이상했다. ‘딱딱딱’ 하는 묘한 소리가 섞여 있었다. 알고 봤더니 팔순의 할머니가 노래에 감동을 받아 손에 피가 날 정도로 힘껏 박수를 쳤는데, 한센인의 손이어서 박수소리가 일반인들과는 달랐던 것이다. 성악가는 할머니의 손을 잡아주고 싶었지만 한사코 손을 피하는 바람에 따듯하게 안아주었다.성악가도 힘든 고비를 만날 때가 있다. 그때마다 할머니들을 떠올리며 위안과 용기를 얻는다. 그들을 위해 떠난 여정이건만, 그들로부터 힘을 얻는 아름다운 역설인 것이다.김병종 서울대 미대 교수는 그 성악가를 일컬어 ‘극장을 떠난 바보 음악가’라 했다.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극장을 떠나 그늘진 곳을 찾아다니며 음악으로 나눔을 실천하는 것은 바보이기에 가능한 까닭이다. 김병종 교수도 ‘바보 예수’ 연작으로 유명하다. 그러고 보면 천재가 세상을 바꾼다는 얘기는 일면의 사실일 뿐, 세상은 잇속에 능하지 않은 우직한 바보들이 바꾸고 있다. 그 가려진 진실을 독자들과 함께 굳게 믿고 싶다. 바보 음악가는 포항 출신의 바리톤 우주호임을 밝혀둔다.

2019-10-06

몬스터 DNA

화성연쇄 살인사건의 범인을 잡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은 DNA 검사다. 수사 과학화의 힘이 범죄 검거율을 높인다는 것을 보여준 모범 사례의 하나다. 첨단과학이 발달하고 인구가 늘면서 범죄도 지능화하고 있을 뿐 아니라 다양한 형태의 범죄가 우리 사회를 위협하고 있다.화성사건은 당시의 검증 기술로는 풀 수 없었던 것이 과학적 기법이 새롭게 개발되면서 30여 년 전의 연쇄살인사건의 범인을 잡아내는 쾌거를 올린 것이다.과학수사의 혁명이라 할만하다. 더 흥미로운 것은 수사의 과학화가 진전되면서 그동안 풀지 못했던 강력범죄의 미스테리가 다시 풀릴까 하는 기대감이다. 개구리소년 실종사건 등 현재 밝혀내지 못한 강력 미제사건은 제법 많은 수를 기록하고 있다. NCIS(미 해군범죄수사대)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드라마에서 지능범죄를 소탕하는 과학수사팀의 활약을 조금은 이해하고 있으나 정말로 과학수사가 범죄의 증가율을 억제할 수 있을 것인지는 미지수다.올 5월 비무장 지대내 화살고지에서 발견된 군인 유해의 신원이 DNA 검사를 통해 밝혀진바 있다. 비록 60여 년의 세월이 지났으나 다행히 유족의 한을 푸는 데 작게나마 일조한 것은 과학의 힘 때문이다. 사람 몸은 100조개의 세포로 구성돼 있다. DNA는 세포마다 존재한다. 그러면서 모든 사람의 DNA는 서로 다르고 돌연변이가 없는 한 죽는 날까지 변하지 않는다고 한다. DNA가 유전자 물질이라는 것이 밝혀진 것은 20세기 들어서다. 과학의 힘이 질병의 예측과 치료는 물론 범죄 예방으로까지 광범위하게 활용된다는 사실에 새삼 감탄할 뿐이다. 화성사건을 계기로 과학수사의 맹활약으로 범죄가 줄어든 세상이 온다면 모두가 반길 일이다. /우정구(논설위원)

2019-10-06

‘진영의식’ 포로들의 백병전

안재휘 논설위원‘내로남불’이라는 용어는 1990년대 정치권에서 생산돼 현재까지 오프라인과 온라인에서 활발히 쓰이고 있는 말이다.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을 줄인 이 말은 똑같은 상황에서 자신과 타인을 다른 기준으로 단정하는 이중 잣대를 지닌, 남에게는 가혹하고 자신에게는 너그러운 사람을 뜻한다. ‘나는 옳고 다른 이는 그르다’라는 뜻을 가진 사자성어 ‘我是他非(아시타비)’보다도 한층 더 비틀린 모순을 일컫는다.만 두 달을 넘기고 있는 ‘조국 대전’이 마침내 백병전 차원으로 옮겨가고 있다. 이 논란은 원래부터 좌우 이념대결의 쟁점거리가 아니었다. 어떻게 보면 그동안 고위공직자 검증과정에서 숱하게 보아왔던 수위 높은 파열음 정도의 잡음이었다. 그러나 ‘조국’을 지키려는 세력은 마치 ‘조국’이 무너지면 자신들의 권력이 온전하지 못할 것이라는 강박관념으로 행동했고, 마침내 온 국민을 진흙탕 싸움으로 끌어들였다.백병전에서는 옳고 그름이 존재하지 않는다. 오직 죽이느냐 죽느냐의 이분법만 남는다. 뒤엉켜서 상대방을 죽일 생각에만 빠져들게 된다. 확증편향 사고체계 아래에서 마침내 이성은 마비되고 투철한 ‘내로남불’의식에 사로잡혀 앞만 보고 무한 작동하는 강시처럼 행동하게 된다. 길거리로 몰려나와 ‘맹종하는 존재감’을 과시하는 선동의 노예들이 부르는 무궁동(無窮動) 돌림노래가 짜증을 부른다. 거듭되는 그들의 백해무익 집회는 소름 끼치는 폭류다.‘조국 수호’를 부르대는 이들 사이에서 이미 피의자 정경심의 컴퓨터 반출은 ‘증거인멸’이 아닌 ‘증거 보전’으로 둔갑했다. 검찰의 압수수색은 ‘인권 탄압’이 됐으며, 연구논문 제1저자 허위등재와 표창장 위조는 ‘대수롭지 않은 일’이 돼버렸다. ‘살아있는 권력도 엄정히 수사하라’고 주문했던 대통령은 불과 두 달 만에 말을 바꿔 스스로 혼란한 진영대전의 진앙지임을 증명했다. 동원정치의 마법에 취한 채 야만의 시대로 퇴행하는, 정말로 우리는 지금까지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희한한 나라를 경험하게 되는가.김경율 참여연대 집행위원장은 참여연대의 침묵에 반발하여 SNS에 “시민사회에서 입네하는 교수, 변호사 및 기타 전문가 생퀴들아. 권력 예비군, 어공 예비군 생퀴들아. 더럽다 지저분한 놈들아”라고 울분을 토했다. 경실련 정책위원장인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도 “대중을 동원하는 경쟁은 그만두고 조 장관이 자진 사퇴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고언을 내놨다.유치한 동원정치 숫자놀음에 빠진 세력들의 편집적 행태에서 가장 걱정스러운 요소는 자기들끼리만 소통하고, 다른 말은 도무지 듣지 않는 의식구조다. 무엇보다도, 선악 개념은 물론 옳고 그름에 대한 이성마저 일제히 사라진 집권여당의 ‘선동정치’ 행태가 문제의 핵심이다. 아시타비, 내로남불의 혼돈을 획책하는 추악한 횡포가 역겹다. 정의-불의의 변별력마저 모조리 거세된 빛바랜 이념의 포로들이 펼치는, 이 더러운 합창은 하루빨리 중단돼야 한다. 파멸적 행군을 멈출 양보의 리더십은 이 땅에 정녕 없는 것인가.

2019-10-06

경북의 중심 도시로 위상 정립

김학동 예천군수올 한 해를 사자성어로 ‘해불양수(海不讓水)’라 정하고 한 사람의 백 걸음보다 백 명의 한 걸음이 소중함을 강조했습니다. ‘해불양수’는 ‘바다는 어떠한 물도 마다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바다처럼 넓은 포용력으로 서로 받아들이고 인정하며 화합하는 군정을 펼치겠다는 포부를 닮고 모든 역량을 결집해 나가고 있습니다.우리 예천군은 ‘예천〔醴泉, 단술 예(醴), 샘 천(泉)〕’의 지명이 말해주듯이 물이 좋고, 상서로운 기운이 서려있는 신비의 땅으로 송나라 시대 장자에서는 ‘봉황은 오동나무가 아니면 앉지 않고 대나무 열매가 아니면 먹지 않으며 예천(醴泉)이 아니면 마시지 않는다’는 신비의 물로 여기고 있습니다. 또, 중국 예기편 ‘태평성대에 하늘에서는 단맛의 이슬이 내리고 땅에서는 단맛의 샘물이 솟는다.(千降甘露 地出醴泉)’라고 기록하고 있으며, 택리지에서도 ‘사람이 살만한 곳은 물이 달고 토지가 비옥한 곳’이라고 했으니 맛이 단 샘물이 솟아나는 내 고장 예천은 최고의 고장이라고 기록된 것을 보면 축복받은 땅임에 틀림없습니다.그런 연유로 경북도청이 품 안으로 들어오고 그곳에 명품 신도시가 조성되면서 ‘경북의 중심 도시’로서 위상을 정립해 가고 인구가 증가하고 있는 살기 좋은 고장이지만 신도시로 사람과 상권 쏠림 현상으로 원도심 쇠퇴현상이 가속화되고 있어 획기적인 ‘변화’와 ‘개혁’이 필요한 때입니다.원도심 위축과 공동화 현상 극복을 위해 예천읍을 신경제 중심지로 경기활성화를 꾀하고 도시재생 뉴딜사업에 응모하기 위한 차별화된 전략계획을 짜기 위해 조직개편으로 도시활성화팀을 꾸려 공모사업에 적극 도전하고 있습니다.특히, 과감한 변화를 위해 지난 7월부터 공무원은 물론 시민단체, 시장상인회가 손을 맞잡고 재래시장 활성화 방안으로 추진한 시장로 주변 노점상 시장 내 유입이 가시적 성과를 거둔 것은 대단히 고무적이라 봅니다.협소한 도로와 인도에 무분별하게 난립해 온 노점상으로 도시미관을 해치고 장날 교통마비는 물론 보행자 안전을 위협하고 있어 끊임없이 설득하는 등 적극 행정을 추진한 결과 9월부터는 전통시장 내 노점허용구간으로 입점하는데 성공했고 이제부터는 깨끗한 환경과 정이 오가는 시장으로 변화되고 친절한 손님맞이, 고객선 지키기 실천을 강조하며 주문합니다.이와 더불어 원도심 문제 해결의 실마리는 주차장 부족문제와 결부되는 것으로 시가지내 주차난 해소를 위해 곳곳에 자투리땅을 활용한 쌈지주차장을 조성하고 부지 매입으로 주차장 조성을 계획하고 있지만 주차장 부족문제는 쉽게 해결되지 않는 과제로 기존 도로를 일방통행 노선으로 전환하는 방안도 신중히 검토 중입니다.농업정책의 큰 흐름을 기존 생산위주에서 가공, 유통판로 개척 정책으로 변화를 시도하면서 조직 내 유통마케팅 팀을 만들어 기업경영처럼 공무원들이 소비자를 찾아가는 농·특산물 판매로 큰 성과를 내고 생산자와 소비자간 직거래 확대로 대형유통업체와 MOU 체결 등 유통구조개선으로 부자농촌을 만들어 가는데 한 몫하고 있습니다.군정핵심 키워드 △명품 신도시 만들기 △원도심 경기 살리기 △부자 농촌마을 만들기 △경북으뜸 교육 도시로 이를 위해 과감한 ‘변화’와 ‘개혁’ 도전적이고 적극적인 행정을 펼쳐나갈 것입니다. 또한, 상명하복의 경직된 행정 조직을 탈피해서 유연하고 합리적이며 수평적 리더십을 발휘하여 공익 비즈니스 개념의 행정을 지속적으로 추진해 나갈 것입니다.지금 가을철 축제준비로 한창 바쁜 예천! 오는 18일부터 20일까지 3일간 예천군 대표 축제가 동시에 개최됩니다. ‘활’을 소재로 체험위주의 콘텐츠로 해가 거듭될수록 마니아층이 늘어가고 있는 ‘2019예천세계활축제’, 지역 우수 농·특산물을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는 전시·판매 행사인 ‘2019예천장터 농산물대축제’준비로 분주합니다. 특히, 이번 축제는 농가에 힘이 되는 농산물 판매와 지역 소상공인이 함께 참여하는 축제로 승화시키고 차별화된 축제로 기획해 전통시장 활성화와 지역경기에 활력을 되찾을 수 있도록 전시, 판매 등 다양한 볼거리와 체험거리, 먹을거리로 관광객과 함께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을 준비해 놓고 여러분을 정중히 초대합니다.

2019-10-06

‘그때의 나’는 ‘지금의 나’일까?

이미하 영어강사추석 연휴 마지막 날, 막역하게 지내는 친구 부부들과 만남을 위해 경주로 가고 있었다. 조수석에 앉아 벼 이삭이 바람에 흔들리며 물결을 이루는 모습, 한 잎 두 잎 단풍이 들기 시작하는 나무를 보며 살짝 멜랑꼴리해지려는 마음을 추스르고 있을 때 휴대폰 진동이 울렸다. 확인해 보니 SNS에 빛바랜 사진 넉 장이 올라와 있다. 경주에서 만나기로 한 J 언니가 보낸 그 사진을 본 순간 나도 모르게 탄성이 터졌다. 남편이 무슨 일인가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본다.잠시 차를 멈추고 추억 가득한 사진을 함께 보며 남편과 나는 바둑 수 되짚어가듯 과거를 복기했고 그 사진이 16년 전 보성 녹차 밭에서 찍은 것임을 마침내 기억해냈다. 경주에서 만날 네 부부를 포함, 친하게 지내던 아홉 가정이 아이들을 데리고 놀러 갔던 그때의 추억이 어제처럼 새록새록 떠올랐다. 초록빛 녹차 밭 한가운데 아이들이 늘어서고 그 뒤로 호위하듯 늘어선 부모들이 함께 찍은 단체 사진을 흐뭇하게 바라본다. 그 속에는 이틀 전 학업을 위해 새벽에 서울로 떠난 둘째 녀석도 있고 얼마 전 경찰 시험에 떨어진 후 새로 마음을 다잡고 대구에서 공부를 다시 시작한 첫째 녀석도 보였다.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긴 낡은 사진 속에서 웃고 있는 7살, 4살 앳된 두 녀석 얼굴이 낯설었다.다른 사진에는 경주에서 만나기로 여인 넷이 턱에 꽃받침을 만들어 괸 채 녹차 밭의 싱그러움을 닮은 소녀 같은 모습으로 활짝 웃고 있었다. 사진 속 젊은 모습들이 낯설고 생경하기가 아이들 사진을 볼 때보다 더했다. 마치 낯선 사람처럼 보이는 ‘그때의 나’를 한참 들여다보며 잠시 상념 속에 빠져들었다. ‘그때의 나’는 과연 ‘지금의 나’와 동일한 나일까?‘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다르다’라는 속담이 있다. 연속적으로 이어지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지금의 나’는 내가 살아온 과거 역사의 결과물이다. 16년이라는 세월의 간극을 뛰어넘어 문득 바라본 중년의 ‘지금의 나’와 두 개구쟁이 꼬맹이의 엄마이던 ‘그때의 나’는 참 많이 달라 보였다. 외모야 말할 것도 없고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삶의 모습도 판이하다.사내아이 둘을 키우느라 바빴던 ‘그때의 나’는 책에 전혀 손을 대지 않고 살았다. 삶에 치여 아등바등 살아가느라, 글을 쓰는 것은 꿈도 못 꿀 일이었다. ‘지금의 나’에게 중요한 삶의 부분이자 존재 양식인 독서와 글쓰기에서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 사이에는 어떤 연계성도 없다고 느꼈다. 이렇게 다른 두 존재를 두고 어떻게 ‘그때의 나’가 ‘지금의 나’와 같은 나라 말할 수 있을까?‘그때의 나’를 조금 더 시간을 두고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노라니 ‘지금의 나’와 비슷한 면을 떠올릴 수 있었다. 16년 전 어느 날, 두 아이는 모두 잠들어 있고 ‘그때의 나’는 갑자기 글을 쓰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한밤중에 컴퓨터를 켜고 앉아 결혼한 여자의 이중고, 삼중고에 대해 적어 내려갔다. 무슨 마음이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다음 날 중앙 일간지 H 신문사에 우편으로 원고를 보냈다. 며칠 후 신문사에서 연락이 왔고 내 글이 신문에 실렸다. 그러므로 지금 쓰고 있는 이 독자 수상은 내 두 번째 신문에 원고인 것이다. 이것으로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가 다르지 않은 동일한 ‘나’임을 증명할 수 있는 것일까?‘그때의 나’와 분명히 다른 ‘지금의 나’ 모습도 있다. 연약한 인간인지라 인생을 살며 몇 번 뼈아픈 실수를 했고 다시는 그런 실수를 하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이후 여러 선택의 순간, 이 교훈을 기억했고 용기를 내어 도전했을 때 삶은 멋진 보상들을 선물해 주었다. ‘그때의 나’에 머물러 있지 않고 더 행복한 ‘지금의 나’가 되게 해준 힘이다.앞으로 계속 이어질 미래라는 시간 속에서 ‘앞으로의 내 모습’또한 ‘지금의 나’의 연속인 동시에 새로운 선택과 도전을 삶에 고스란히 반영하며 만들어나갈 것이다. 10년 후 얼마나 낯설고 생경한 시선으로 ‘지금의 나’를 바라볼지 모르지만 한 가지 모습만은 변하지 않은 채 남아있길 바란다. 10년 후에도 책 읽는 나, 여전히 글을 쓰고 있는 ‘그때의 나’로 남아있기를.

2019-10-06

한국의 군사력

항공전문매체 ‘플라이트 글로벌’은 미국이 전 세계에 운용되는 군용기 5만3천대 가운데 25%인 1만3천여 대를 보유하고 있다고 했다. 2위인 러시아 4천78대, 3위 중국 3천187대와 비교하면 압도적 격차다.군사력이란 한 국가가 가진 병력 등 전장에 투입되는 무기와 정보능력, 군수지원이 가능한 경제력, 외교력 등 전쟁 수행이 가능한 능력을 종합평가한 것이다. 미국의 군사력은 막대한 예산과 더불어 전 세계에서 불변의 1위다.2019년 미국 GFP(Global Force Power) 발표에 따르면 세계 각국의 군사력은 미국 1위, 러시아 2위, 중국 3위다. 한국은 일본 다음으로 7위다. 북한은 18위로 평가됐다.발표대로라면 한국의 군사력도 꽤 높다. 북한과 비교해서도 월등하다. 그러나 실제로 북한보다 나을지는 미심쩍은 데가 있다. 북한 핵무기 보유가 공식적으로 인정되지 않는다는 점을 간과할 일이 아니다. 또 북한의 경제력이 허약하다고 군사력을 저평가했다면 그것도 잘못 짚은 것이다. 북한은 경제력에 비해 전투 능력이나 도발의지가 세계 최강이다. 일부에선 북한은 핵무기를 포함하면 군사력이 중국에 이어 4위라는 평가다.올 국군의 날을 맞아 국방부는 북한이 가장 걸끄럽게 여기는 F-35A 스텔스 전투기를 처음 공개했다. 레이더에 걸리지 않고 평양 상공에 접근해 김정은위원장이 사는 주석궁을 정밀 타격할 수 있는 무기다. 아니나 다를까 다음날 북한은 11번째 탄도 미사일을 쐈다. 스텔스기 공개에 대한 반발로 보인다.국군의 날을 보내며 우리 군의 군사력이 새삼 궁금하다. 군사력만 믿다가 큰 코 다치는 건 아닌지 걱정도 있다. 허술해진 안보의식부터 다잡아야겠다./우정구(논설위원)

2019-10-03

자기확신의 오류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벨기에의 수도인 브뤼셀로 가는 기차안에서 있었던 일화다. 한 승무원이 기차에 타고 있는 승객들의 표를 검사하고 있었다. 그런데 연신 혼잣말을 하고 있었다. “아이고 큰일났군, 큰일났어.”이윽고 기차의 한 칸을 모두 검사하고 나서 승객들을 향해서 큰소리로 말했다. “승객여러분, 여러분은 모두 반대방향으로 가는 기차를 타셨으니 다음역에서 내려서 갈아타시기 바랍니다.”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기차의 안내방송에 의하면 분명 브뤼셀로 가는 기차가 맞았다. 그렇다. 사실은 기차를 잘못 탄 것은 승객이 아닌 승무원이었다. 보통사람 같으면 승객 모두가 브뤼셀로 가는 기차표를 지니고 있었다면 “내가 기차를 잘못탔나?”하고 생각했겠지만 이 승무원은 자기 자신에 대해 너무나 강한 확신을 지닌 나머지 이같은 실수를 저질렀다. 기차였기에 망정이지 그 승무원이 운전하는 차였다면 승객 모두는 브뤼셀이 아닌 반대 방향으로 가게됐을 것이다. 자신에 대한 지나친 과신은 우리의 삶이나, 역사를 다른 방향으로 끌고 갈 수 있다는 교훈이다.수많은 국민들이 조국 사태를 걱정스런 마음으로 지켜보고 있는 것도 이같은 우려에서 비롯되는 건 아닐까. ‘최초’ 현직 법무부 장관 자택 압수수색, 장관 후보자 임명·철회 청와대 청원, 장관 후보자 청문회 전후 아내 기소, 검찰총장에 대한 정치권의 비판, 제1야당 대표 등 야당 의원들의 릴레이 삭발투쟁, 대학생들의 임명 반대 촛불집회, 검찰개혁 주장 촛불집회 등 장관 한 명 때문에 빚어졌다고 보기에는 믿기 어려울 만큼 이례적인 사건들이 잇따라 터져나왔다. 청와대 정무수석을 지낸 박형준 교수의 말 처럼 ‘청와대가 조국 장관을 손절매하는 시기를 놓친’ 것일 수 있다. 조국 사태는 당초 ‘평등·공정·정의’를 강조해 온 진보진영의 대표주자인 조국 장관이 평소 언행과 달리 가족 문제와 관련해 특권과 특혜를 아무렇지 않게 누려온 듯한 의혹들이 불거지면서 비롯됐다. 특히 조 장관 아내의 사모펀드 투자나 자녀 입시와 관련된 일부 의혹은 위법시비에 휘말렸다. 이쯤되면 예전의 인사청문회였다면 장관 후보자가 자진사퇴하거나 추천을 철회하는 조치로 마무리되는 게 순리였다. 하지만 문 대통령이 장관임명을 강행하면서 온 나라가 진영논리로 갈라졌다.‘진보논객’인 진중권 동양대 교수가 최근 지역 언론사 특강에서 “대통령이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 했는데 지금 기회가 평등한가. 안 그렇다. 과정이 공정했나. 아니다. 그렇게 나온 결과가 그럼 정의롭다고 할 수 있나. 이게 뭐냐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조국 사태에서 자기확신의 오류를 인정하지 않는 이들에 대한 실망스러운 심경을 토로한 것으로 보인다.평화를 말하는데, 갈등이 심해지고, 청렴을 말하는데, 부정부패가 심해지고, 민생을 말하는데 생활이 어려워진다. 정치현실에 흔히 나타나는 모순이다. 이런 현실을 바꾸려면 내가 믿고있는 확신이 과연 옳은 지 되짚어보는 성찰이 꼭 필요하다.

2019-10-03

이념은 죽었을까

장규열 한동대 교수·언론정보문화학부몸살은 언제 끝이 나려는지. 장관직 한 자리를 놓고 씨름한 지가 두 달이 되어간다. 처음에 조금씩 물러섰으면 싶었던 일도 시간이 지나면서 절체절명의 승부처가 되어 버린다. 어느 쪽도 돌아갈 길은 생각도 하지 않는 사이에 나라와 백성은 절반으로 갈라져 버렸다. 이 일도 지나는 가려는지, 소동 끝에 무엇을 거둘 것인지 생각해야 한다. 여와 야가 갈등을 겪고 국민이 편갈린 모양은 그리 낯설지 않아도, 싸움을 거듭하는 동안 다툼이 품은 내용은 조금씩 그러나 분명히 달라져 간다. 우리에게는 이념 갈등의 흔적이 제법 남아있어 ‘빨갱이’와 ‘꼴통보수’를 사용하지만, 낱말에 실리는 느낌과 생각이 꾸준히 바뀌어 간다. 보수와 진보를 이해하고 해석하는 방식도 변화해 간다.프린스턴대 제이콥 샤피로(Jacob Shapiro) 교수는 ‘이념이 죽었다(Ideology is dead.)’고 선언한다. 지난 세기를 휩쓸었던 방식의 이념 구분은 힘을 잃었다고 설명한다. 즉, 1991년 소련 붕괴와 함께 스러져간 ‘공산주의’와 미국이 대표하던 ‘자유진영’ 간의 대결 구도는 의미가 거의 없다는 것이다. 세계는 이제 새로운 이념 구도를 향하여 나아가야 하지만, 아직 뚜렷한 이념의 정체성이 나타나지 않았다고 진단한다. 한반도에 20세기식 이념의 구분이 남아있기는 해도, 이를 바라보는 우리의 인식도 바뀌어 간다. 오늘 당장 겪는 갈등의 모습에도 오른쪽과 왼쪽이 이전처럼 선명하지 않다. 좌우가 아니라 ‘계급’ 간의 다툼으로 바라보는가 하면, 각 진영 내에서 다양한 생각들이 표출되기도 한다. 지난날엔 칼날처럼 선명했을 대결의 전선이 날이 갈수록 무디어 보이지 않는가. 우리는 누구와 싸우고 있는 것일까.무엇을 살필 것인가. 이 모든 진통이 진정 ‘민주주의’를 위한 일이라면, 결국 ‘국민의 눈빛’을 헤아려야 한다. 국민을 주인으로 섬기기 위하여 바라볼 곳은 역시 국민이 아닌가. 깃발과 선동에 흔들리는 우중(愚衆)이 아니라 잘 새겨 판단한 끝에 움직이는 시민(市民)의 발길을 바라보아야 한다. 완벽한 사람도 없고 끝판왕 제도도 없다. 끊임없이 자각과 반성을 거듭하며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만들어 가는 몸부림이 있을 뿐이 아닌가. 허수아비 이념에 휘둘리기보다 시민의 하루하루가 편안해지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모인 사람의 숫자에 겁먹기보다 그들이 가진 진정성의 무게를 달아보아야 한다. 그 억울함은 당신 자신의 것이었는지 아니면 누군가 남이 넣어준 생각이었는지. 주장이 정당하려면, 시민으로서 당당한 자신의 생각과 판단이어야 한다.방점은 ‘개혁’에 있다. 생각을 모아야 한다. 온 세상이 다른 판에서 씨름 중인데, 우리만 케케묵은 방식에 머물 수는 없다. 모색 중이라는 새 이념의 정체성을 우리가 신박하게 발견할 수는 없을까. 20세기엔 우리가 따라잡기에도 버거웠지만, 21세기에 우리는 거의 맨 앞에 서 있는 것이 보이지 않는가. 진영으로 갈라서 죽고 사는 게 아니라 모두 함께 잘 살아내는 길을 찾아야 한다. 묵은 이념에 머물기보다 새로운 생각으로 나아가야 한다.

2019-10-03

명예교수

서의호 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세월은 정말 빠른 것 같다. 필자가 포스텍을 정년퇴임하고 명예교수가 된 지도 벌써 2년이 지났다. 퇴임강연, 퇴임식을 치루던 날이 어제 같은데 벌써 두 해가 흘렀다.1986년 개교한 포스텍에서 교수로 계시다가 정년 퇴임하고 명예교수로 임명된 교수는 현재 약 100명에 이른다. 그래서 명예교수님들의 모임인 APPE(Association of Postech Professors Emeriti)라고 하는 ‘포스텍 명예교수회’도 만들어졌고 여러 가지 활동을 하면서 친목과 모교 발전에 도움이 되려고 노력하고 있다. 아마도 전국에서 가장 모범적인 명예교수회가 아닐까라는 생각도 들어간다.통상 대학에서 퇴임한 교수를 명예교수로 부르긴 하지만 교육부의 명예교수규칙에 따르면, 명예교수로 추대될 수 있는 교수는 당해 대학에서 전임강사 이상의 교원으로 15년 이상 근무하고, 재직 중 교육 및 연구 업적이 현저하여야 한다는 조건이 붙어있다. 그래서 최근 친일문제로 화제가 된 한 유명대학의 교수도 6개월 부족으로 명예교수가 아니라는 신문보도도 있었다.명예교수의 퇴임 후 삶은 100인 100색이라는 말도 있다. 해당 대학에 특임교수나 연구교수로 남아 강의나 연구를 계속 하는 일은 흔히 많은 경우이다. 또한 다른 대학이나 연구소로 가서 보직을 하거나 계속 강의와 연구를 하는 경우, 해외대학으로 가는 경우도 종종 있다. 또한 벤처회사를 만들거나, 기업에 취업하여 일을 하시는 퇴임교수님들도 있고 특이하게 사회봉사에 몰입하시는 교수들도 있다. 과거 학문적으로 유명하셨던 교수가 퇴임 후 다문화가정의 돌봄으로 전국을 돌아다니시는 교수님도 보았고 특이하게도 농부로 변신하여 농사를 짓는 공학교수님도 보았다.필자도 포스텍 명예교수가 된 후 대구권의 특성화 과기대 본부 보직을 맡아서 있다가 최근 수도권의 한 대학의 학장직을 맡게 되었다. 거의 50명에 이르는 교수와 1천명이 넘는 학생들이 있는 단과대를 경영해 나간다는 건 그리 쉽지는 않지만 나름 큰 보람을 가지고 있다. 여기에는 10명이 넘는 명예교수님이 계신데 원래 친분이 있는 선배님들이라 때로는 이런저런 충고와 자문을 해주신다. 이러한 자문을 듣고 학장으로서 필자는 항상 “감사합니다. 앞으로 많이 도와 주십시요”라고 반드시 말씀 드린다. 그리고 학교 세미나에도 초청을 하고 와서 좋은 말씀과 충언을 해달라고 부탁드리고 교수 워크숍에 명예교수님들을 초청해서 고견을 듣는다. 명예교수님들의 지혜를 높이 사겠다는 의미도 담고 있고, 또한 명예교수님들에게 모교를 위해 할 일이 있다는 자부심을 갖게 해주어서 흐뭇해 하시는 모습을 보게 된다. 그분들의 건강에도 참 좋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간다.사람은 누구나 나이가 들고 늙어간다. 그리고 현직에서 은퇴하는 날이 온다. 젊은 교수들도 언젠가는 명예교수가 된다. 그들이 명예교수가 되었을 때 그들이 갖고 있는 지헤와 경륜을 존경하는 후배교수가 있다는 사실, 또 그러한 지혜와 경륜의 자산을 대학을 위해 사용할 수 있다는 보람이 명예교수들의 삶의 보람과 건강을 지켜 주리라고 생각해 본다. 그건 또한 대학발전을 위해서도 좋은 일이기도 하다.

2019-10-03

고장 난 활주로

스탠퍼드 대학 프레드 러스킨은 ‘용서학’을 연구합니다. 그는 용서는 화해와 다르다는 색다른 주장을 펼칩니다. “용서는 지극히 개인적인 일입니다. 상대와 무관하게 내 마음 안에서 일어나는 치유의 행위가 용서입니다.”공항 활주로 예를 듭니다. “착륙 유도 장치가 고장 난 경우를 생각해 보세요. 공항을 향해 날아오던 비행기들은 주변 상공을 선회하죠. 착륙 유도 장치의 수리가 끝날 때까지 모든 일들이 극심한 스트레스의 상태에 들어갑니다. 연료가 떨어지기 전에 착륙을 해야 하는 기장과 승무원들, 이미 착륙해 집에 돌아갔어야 할 시간에 공항을 아래 두고 선뜻 착륙을 못해 선회하는 짜증 난 승객들. 오랜만의 만남으로 흥분에 들떠 공항에서 가족을 기다리는 마중 나온 이들의 초조함.”프레드 러시킨은 ‘용서하지 못하는 마음 상태’를 고장 난 활주로에 비유하죠. 모두에게 힘든 상태라는 것입니다. 용서를 영어로는 Forgive라고 하지요. 상대가 아닌 나를 위하여(For) 주는(give) 가장 멋진 선물입니다. 찾아가서 화해하고 손잡고 포옹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것은 다음 단계의 행위로 꼭 필요한 일이 아닐 수 있습니다. 용서는 내 마음 안에서 빙글빙글 돌며 선회 비행을 계속하는 지긋지긋한 그 존재들을 착륙시켜 내 마음 밖으로 빠져나갈 수 있게 길을 터 주는 일입니다.프레드 러스킨은 덧붙입니다. “대부분 사람들이 쉽게 용서하지 못하는 한 사람이 있습니다. 누구일까요? 누구나 예외 없이 그 한 사람을 쉽게 용서하지 못합니다. 나 자신입니다.” 나를 평생 관찰했고, 내가 수치스러운 행동을 적나라하게 목격한 바로 그 눈길, 그 존재. 다른 사람을 용서하기 전에 먼저 나 자신을 용서하는 일. 삼각지 허름한 국숫집 할머니의 용서처럼 나 자신을 용서하는 일이 세상에서 가장 큰 선물을 스스로에게 주는 일입니다./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대표

2019-10-03

이제는 말할 수 있다

지난 박근혜 정부 시절이 생각난다. 세월이 빠르다더니 벌써 이 년하고도 반이나 흘렀나보다. 돌이켜보면 어지럽기도 어지간히 어지러운 시간이었다. 대통령이 탄핵되던 그 겨울에 우연히 SBS 8시 뉴스를 보다 깜짝 놀라고 말았다. 내 이름이 열 댓명 이름 속에 들어 있었고 그것도 지금은 작고한 비평가 황현산 씨 옆에 두 번째로 등장하는 것이었다. 이름하여 블랙리스트라는 것이었는데 무슨 무슨 심사위원장을 맡겨서는 안 되는 사람들 목록이라고 했다.온갖 블랙리스트들에 없던 내 이름이 8시 뉴스에 등장한 일은 기이하고도 소름끼치는 경험이었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일은 내 이름을 블랙리스트에 올린 정부 당국의 ‘핑계’였다. 이름하여 그 열댓 명은 제주도 강정 해군기지 건설에 반대하고 경상북도 성주 사드 미사일 배치에 반대하는 서명을 했다는 것이었다.다른 사람들은 어떤지 알 수 없으나 나 자신에 대해서만은 정확히 말할 수 있다. 나는 이 나라에 미군이 주둔하거나 철수하는 일 같이 ‘엄청난’ 일에는 한 번도 의사를 표명한 적이 없다.제주 해군기지 문제나 성주 사드 문제는 미국의 극동 전략에 관계되는 문제이고 아름다운 제주나 성주가 군사기지화 되는 것은 안타깝기 짝이 없는 일이지만 일개 서생인 내가 이 문제를 갖고 왈가왈부 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이렇게 생각하는 내가 어떻게 ‘감히’ 그런 문제에 서명하는 일을 할 수 있었겠는가.그러나 지난 정부는 나를 반미주의자로, 있지도 않은 죄를 뒤집어 씌워 낙인 찍어 마땅한 사람으로 둔갑시켰던 것이다.그 이유는 아마도 세월호 참사의‘비밀’에 관심을 갖는 내가 심히 못마땅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지난 정부의 사나운 심사는 이해가 가지만 한밤에 반미주의자가 된 아들의 이름을 들어야했던 나의 부모님은 무슨 죄를 지었더란 말인가.정부가 바뀌고 이제는 걱정과 두려움 없는 시대를 살아갈 수 있으려니 했다. 소나 말 궁둥이에 낙인을 찍고 죄인의 가슴에 주홍글씨를 새겨 넣는 시대는 지나갔으려니 했다. 그런데 근거는 분명하지 않지만 신문이나 방송에 오르내리는 뉴스나 각종 포털 사이트에 올라오는 ‘실검’ 순위 목록을 보면 뭔가 심상치 않은 상황이 전개되고 있음을 느끼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지난 정부에서처럼 피부에 와닿는 방식은 아닌 것도 같은데 그렇다고 해서 완전히 다르다고 말할 수도 없을 것 같은 이 이상한 기운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이 년 반 동안 ‘새로운’ 세상을 살면서 나쁜 꿈에서 이제는 깨어나고 싶었다. 그리고 정녕 바라마지 않는다. 나쁜 꿈에서 이제는 깨어나서 밝은 대낮의 삶을 살고 싶노라고. 이 우려가 기우에 그치기를 바랄 뿐이다. /방민호 서울대 국문과 교수 /삽화 = 이철진한국화가

2019-10-03

개의 번식(下)

개의 염색체는 39쌍이고, 78개이다. 말은 32쌍이고 64개 염색체를 가진다. 세포의 핵 속에 존재하는 염색체는 부모 양쪽으로부터 하나씩 받아 쌍을 이루게 된다. 염색체 쌍들에 의해 부모와는 다른 자손의 특성을 결정하게 되는데, 개의 경우 60일이면 출산할 수 있고, 많은 개체를 낳으며 가계도를 쉽게 그려볼 수 있으므로 유전학의 중요한 지식들을 제공할 수 있다. 특히 자연발생적으로 생겨나는 유전병들이 사람과 유사한 것들이 많아서 질병 원인연구와 의약품 개발 연구에 도움을 줄 수 있다.예로부터 개의 번식에서 유전학을 모르는 사람들은 경험이나 주관적 판단에 의해 부모견의 상태를 보고 원하는 자손을 얻고자 노력해왔다.순종 개는 동종번식을 통해 유전적으로 밀접한 관련이 있는 개체의 번식을 통해 후손을 얻는 것인데, 동종번식의 목적은 양쪽 염색체에 같은 형질이 나타나도록 하는 것이다. 동종번식은 원하는 유전자가 나타날 가능성을 높여주는 것인데 문제는 좋은 형질 뿐만아니라 나쁜 형질이 반복해서 후손에게 전달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스코티시테리어는 너무 흥분하거나 운동을 많이 하면 엉덩이 근육과 다리가 굳어지는 증상을 보이는데, 이는 유전학적 열성형질이 원인이다.플랫코티드 리트리버는 종양이 자주 생기고, 달마시안과 오스트레일리아 양치기 개들은 청각장애가 많다. 콜리, 노르위전 엘크하운드, 코커스파니엘, 아이리시 세터 등은 망막이 점차 퇴화하여 결국 실명하는 사례들이 적지않게 보고되고 있다. 복서는 심장이 약하고 맨체스터 테리어와 푸들에게는 혈우병이 많다.우성형질에 의한 유전성 질환은 바셋하운드나 닥스훈트에서 빈번한 연골무형성증이 있고 다른 품종견에서 선천성 후두마비, 선천성 백내장 등이 있다. 한 두개의 유전자 때문에 일어나는 털 감소증은 전신에 털이 없이 태어나는 차이니스 크레스티드 독과 멕시칸 무모견에서 많이 나타난다.초기 번식자들이 관심을 가진 개의 털 색깔, 모양, 형태와 관련된 유전학적 연구와 지식들은 이제 거의 과학적으로 밝혀지고 정리되어 있는데 앞으로는 개의 질병과 관련된 유전자 연구와 행동 뇌과학 연구와 관련된 분야가 본격적으로 진행 될 것이다.왜냐하면 현재 주로 쥐로 연구되고 있는 질병, 행동, 뇌과학 분야들은 결국 사람을 이해하기 위함인데, 쥐는 설치류여서 사람과의 생리적 차이가 너무 많다는 단점이 있다. 이에 반해 개는 쥐보다 유전병들이 사람과 비슷할 뿐만 아니라, 감정을 느끼고 뇌과학 영역에서 필요한 궁금증을 연구할 수 있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하지만 현재 국내에서 개와 관련된 연구들이 활성화 되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개를 전공한 연구자들이 부족한 이유도 있지만 동일한 환경에서 개를 기르고, 가계도를 정립하고 개의 특징을 객관적으로 분석할 수 있는 시설과 장비가 부족하여 체계적으로 개의 번식, 유전학적 연구를 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지 않았기 때문이다.이동훈국내에서 보존연구하고 있는 진돗개, 삽살개, 동경이의 체계적 보존과 연구를 위해서 경쟁력 있는 시설과 장비, 인력을 갖추고 과학적으로 한국 개들의 번식관련 연구를 진행할 수 있는 기반이 갖추어지면 세계적 반려동물연구의 메카기능을 수행할 수 있게 될 것인데, 관에서 주도하는 정책연구소를 비롯해서 민간의 연구기능과 학교가 참여할 수 있는 연구네트워크를 구성하는 것이 필요하다. 개 번식과정에서 다양한 질병들과 행동, 뇌과학적 연구가 가능하도록 하고 다양한 데이터 DB를 갖춘다면 세계적으로 경쟁력있는 바이오 연구를 통해 개의 건강뿐만 아니라 사람의 건강을 위한 결과들을 확보할 수 있게 될 것이다./서라벌대 교수·반려동물학과 학과장

2019-10-01

플랫폼의 시대

△도시는 시장이다킨들버거는 1500년부터 1990년까지 경제강대국의 흥망사를 기술한 일 있다. ‘경제강대국 흥망사’라는 이 책에서 언급한 도시와 국가들로는 베네치아, 피렌체, 밀라노 등의 도시국가들과 포르투갈, 에스파냐, 브뤼주 등을 들고 있다.킨들버거는 자원, 무역, 고업, 농업, 금융 등의 요소를 통해서 경제흥망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이 속에서 그가 한 가지 빼놓은 요소가 있다. 그것은 도시 혹은 국가의 흥망과 관련해 인구변동이 어떻게 일어나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오늘날 메트로폴리탄이라 불리는 1천만이 넘는 도시는 제조업의 발전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런던은 산업혁명과 함께 성장하였다. 방직, 석탄, 철광석 등의 공장들은 사람들이 많이 모인 곳에 세워졌다. 인력이 필요했기 때문이다.이렇게 공장이 세워지자 일하기 위해 다른 곳의 사람들까지 유입되었고, 그렇게 유입된 사람들과 비례해 공장이 늘어났다. 뉴욕, 도쿄 등이 그러했다. 서울만 보아도 당장 알 수 있다. 구로공단에는 IC회로 조립공장과 함께 방적공장이나 가발공장이 넘쳐났다. 문래, 종로 등에는 철공소가 모여들었고, 신대방동, 성수동에는 방직공장이 들어섰다. 그렇게 서울은 확대되고 커져 지금 천 만이 넘는 메트로폴리탄이 되었다.말이 태어나면 제주도로 보내고 사람은 서울로 보내라는 말이 있었다. 서울로 가야하는 가장 큰 이유는 먹고 살 일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이 많으면 일이 자연스럽게 생겨난다. 축제가 벌어지는 곳에 사람들이 몰려들고 그 몰려드는 사람들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다양한 장사꾼들이 몰리는 것처럼 사람이 많은 곳에서는 생각지도 못한 일이 생긴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많은 만큼 그들의 욕구도 다양하기 때문이다. 아무 짝에도 쓸데 없다고 여겨지는 능력이 어떤 부류의 사람들에겐 대단한 일로 받아들여진다. 도시는 거대한 생태계를 이루며 생명체처럼 성장해나간다.1970년대 서울이 제조업 중심으로 발전했다면 1980년에는 제조업과 함께 서비스업이 함께 성장하며 더 커졌고 1990년대에 이르러서는 제조업은 다른 곳으로 밀려나고 금융, 법률, 정보, 교육, 의료, 미디어 등과 같은 서비스업 중심으로 재편되었다. 이 과정에서 수없이 많은 일자리가 사라지고 또 다른 일자리가 등장했다. 소멸과 탄생을 거듭하며 도시는 변모했고, 사람들은 떠나거나 다시 유입되었다.그런 점에서 도시는 거대한 시장이다. 사람들의 유동 속에서 새로운 욕구가 생겨나고 욕구를 충족시키려는 노력 속에서 시장은 새롭게 변모한다. 새로운 시장이 생겨나면 새로운 사람들이 유입되거나 기존의 시장은 저항하면서 쇠퇴한다. 시장은 거대한 바다처럼 물결치고, 물은 흘러들어오고 흘러간다. 그런 점에서 도시는 ‘플랫폼’이다. 도시라는 거대한 플랫폼 안에는 거대한 빌딩, 광장, 대학, 주거밀집지역 등과 같은 하위 단위의 플랫폼으로 이뤄진다.플랫폼이 플랫폼을 낳는다. 오늘날 도시는 여전히 힘을 발휘하고 있다. 예컨대 캘리포니아주 내의 총생산량은 프랑스의 GDP와 거의 맞먹는 2조5천억 달러이며, 텍사스와 뉴욕은 1조5천억 달러를 육박한다. 이것은 브라질이나 캐나다와 같은 국가와 맞먹는 수준이다.△도시를 위협하는 플랫폼도시는 거대한 시장이다. 비록 도시를 플랫폼이라고 했으나 진짜 플랫폼만큼 유연하지는 않다. 도시의 시장 기능을 위협하는 ‘진짜’ 플랫폼은 우리의 컴퓨터 속에, 우리의 스마트폰 속에 있다. 본래 플랫폼은 컴퓨터 시스템의 기본이 되는 도스, 리눅스, 윈도우, 브라우저, 자바와 같은 운영체계에 국한되어 사용되었다. 사전적으로 ‘사람들이 기차를 쉽게 타고 내릴 수 있도록 평평하게(flat) 만든 장소(form)’라는 뜻이었다.그런데 어느 날 컴퓨터 공학은 플랫폼을 ‘많은 사람이 쉽게 이용하거나 다양한 목적으로 사용하는 프로그램’이라는 뜻으로 사용하기 시작했고, 자신들이 정의한 방식대로 플랫폼을 현실화하고 있다. 오늘날 플랫폼은 페이스북이나 카카오톡과 같은 SNS, 구글이나 네이버와 같은 포털, 앱을 판매하는 애플 앱스토어나 삼성 앱스토어, 유통과 관련된 아마존이나 알리바바, 새로운 교통과 숙박 산업을 열어가는 우버와 에어비앤비, 다양한 영상콘텐츠를 제공하는 유튜브와 넥플릭스, 교육과 관련된 테드 등 그 종류를 이루 헤아릴 수 없다.공강일 서울대 강사·국문학이러한 플랫폼에는 도시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이 몰린다. 세계에 천 만이 넘는 도시는 총 34개이며, 동경은 3천800만 명의 사람이 거주하는 가장 거대한 도시다. 이러한 수치는 페이스북에 비하면 새 발의 피다. 페이스북은 전세계 인구의 22%의 인구가 사용하고 있으며, 한 달 동안 서비스를 이용한 순수한 이용자 수(Monthly Active Users)는 약 21억에 이른다. 신규 사용자는 분당 400명 정도 증가하며, 매일 1억 시간 분량의 동영상 콘텐츠가 업로드 된다. 6천500만 이상의 기업이 비즈니스 페이지를 운영하고 있으며, 500만 명의 적극적인 광고주가 있다.이제 거대 도시는 저물고 거대 플랫폼의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이제 비즈니스를 하기 위해서는 자신만의 플랫폼을 가져야한다. 시대는 그렇게 변화한다.

2019-10-01

지금 포항경제의 우선순위

김진홍 한국은행 포항본부 부국장포항지역 경제를 주도하는 지역 철강업체들은 요즈음 매우 조용하다. 지난 수년간 미국에게 고율의 반덤핑관세와 쿼터물량 제한이라는 폭탄을 맞은 데다 유럽까지 수입물량 제한에 동참하면서 이를 극복하기 위해 애쓰느라 기진맥진 상태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위기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지금 당장은 가시화되지 않은 상황이지만, 미국과 중국 간 관세인상 등 양자 간 힘겨루기 결과가 본격적으로 나타나는 것은 내년 봄 이후부터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사실 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에서 가장 피해가 작은 분야가 철강분야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중 간 무역전쟁의 여파가 지역 철강기업에 미칠 영향을 간과할 수는 없다. 포항 지역 철강업체의 매출과 수익성은 국제 원자재 가격과 국제 철강재 가격이 어떤 방향인가에 따라 결정된다. 그런데 중국 당국이 미국과의 무역전쟁에 따른 영향을 줄이기 위해 금년 5월부터 그동안의 환경규제를 완화하고 국내 부동산개발에 주목하자 중국 철강사들이 생산을 다시 늘리기 시작했기 때문이다.미중 간 무역전쟁의 여파가 결과적으로 중국내 강재생산 증가로 이어지면서 국제철강재가격을 하락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이것이 야금야금 지역 철강업체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불과 한 두해 전만 하더라도 수출 강재물량 감소분을 국제 시황 개선이 메꾸면서 다소라도 버틸 수 있었지만 앞으로 내년까지는 매출액으로 직결될 강재시황이 하락 경향을 보일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중국 당국이 부동산개발업자의 과도한 부채비율을 우려해 대출심사를 강화하기 시작하면서 개발사업 위축에 따른 중국내 과잉 강재들이 언제든지 낮은 가격을 무기로 다시 국내시장으로 흘러들어올 우려가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다.이처럼 지역경제의 비중이 높은 철강 산업의 시계가 불투명한 상황에서 지금 포항경제에 시급하고 중장기적으로도 유익한 개발 사업은 무엇일까. 그리고 그에 대해 우선순위를 매긴다면 과연 어떨까. 지역 경제의 경기부양을 위해서는 지역 철강제품을 사용하고 지역 건설업체가 참여하여 최대한 개발사업의 과실이 지역에 떨어질 수 있는 사업이어야 함은 물론이다.그런 의미에서 첫째, 지진피해지역에 대한 도시재생사업은 도시의 활력과 시민의 자신감을 회복하기 위해서라도 최우선 실시되어야만 한다. 둘째, 당장 내년으로 다가온 국제크루즈여객부두의 완공 이후 외국인 관광객이 본격적으로 포항을 찾더라도 마음 놓고 휴식할 수 있는 고급숙박시설과 그들의 주머니를 가볍게 해줄 대형쇼핑시설도 서둘러 보완해야만 한다. 끝으로 국내외관광객들이 포항이 경유지가 아닌 시작점과 종결점이 되도록 노력하여야만 한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항만과 철도, 공항이 모두 자연스럽게 이어질 수 있는 연계교통망의 구축도 중요하다. 포항이 위기상황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기회는 남아있다. 다만 우선순위를 간과할 경우 모처럼 주어진 기회가 언제나 기다려주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적어도 미분양이 넘치는 상황에서 아파트를 개발하려는 사업만큼은 최우선순위가 아닐 것이다.

2019-10-01

응답하시오, 1998 교육부 장관!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감대통령께 읍소(泣訴)합니다. 제발 교육과 관련해서 대통령의 일방적인 지시를 자제해주십시오. 세간의 이런 말을 들어보셨습니까? 지금 이 나라는 대통령 말 한 마디에 우왕좌왕하는 나라라는 말을요. 다음은 어느 장관 임명식에서 하신 말씀입니다.“국민을 좌절시키는 기득권과 불합리의 원천이 되는 제도까지 개혁해 나가겠습니다. 고교 서열화 등 기회의 공정을 해치는 제도부터 다시 한 번 살피고, 특히 교육 분야의 개혁을 강력히 추진해 나가겠습니다.”대통령께서 보여주시는 특정인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처럼 대통령에 대한 맹신적인 신뢰를 가진 사람들이야 위의 말씀에 대해 무한 지지를 보내겠지만, 대다수의 국민들은 “기회의 공정을 해치는 제도”가 아닌 어느 장관처럼 “기회의 공정을 해치는 사람”에 대해 분노하고 있기에 대통령의 말씀이 또 다른 혼돈을 부르는 구호로밖에 들리지 않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대통령의 교육 개혁 주문에 정치인 교육부 장관은 “개혁안을 신속하게 마련하겠다.”고 즉답을 하였습니다. 과연 그 다음은 뭘까요? 보고용 졸속 정책들의 양산입니다. 그걸 마련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실무자들이 고생할 것이며, 또 교육 현장의 혼돈은 어떨까요?교실 교육이 무너진 지는 오래입니다. 대표적인 때는 1998년입니다. 그 때의 교육부 장관이 누구인지 아십니까? 당시 교육부 장관이 발표한 담화에 대한 기사입니다.“1998년, 교육부가 ‘2002년 무시험전형’이라고 발표했던 대입전형의 윤곽이 구체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당시 교육부 장관은 담화문을 통해 첫째, 암기위주의 낡은 방식의 교육을 지속시키고 사교육비 부담의 멍에를 지우는 입시 위주의 초·중등학교 교육이 이에서 벗어나 교육 본연의 모습을 회복하겠다고 밝혔다. (중략) 둘째, 새로운 대학입학 제도를 마련하면서, 학생 선발에 관한 대학의 자율성을 최대한 보장하는 것을 주안점으로 삼았다고 했다. 구체적으로 새로운 대학입학제도는 교장추천제, 무시험전형제, 다양한 기준에 의한 특별전형 등 다양한 방식으로 학생을 선발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교육부는 ‘한 줄 세우기’ 입시제도에 손질을 하여 대학 간 서열 완화를 꾀하겠다고 밝혔다.”20년 전에도 교육 개혁을 외쳤습니다. 그 때 필자는 초임이라 정치인 교육부 장관이 제시한 이상적인 교육정책에 대해 처음에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런데 금방 이는 교육 현실을 완전히 무시한 정책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야간자습 폐지 등 준비 안 된 요란한 정치적 교육 공약 때문에 교실은 심하게 요동쳤고, 급기야 교실 붕괴 현상까지 초래하였습니다. 이런 혼란을 틈 타 금수저 부모들은 자신들의 자녀만은 유명 대학이나 기관의 인턴 등에 참여시켜 황금 스펙을 쌓게 하였으며, 그 결과 금수저 세습에 성공하였습니다. 왜 그들에 대해서는 아무 말씀도 안 하십니까? 왜 애꿎은 제도에 대해서만 말씀하십니까? 만약 지금의 제도에 대해서 질타하시려면 위의 담화를 발표한 장관에게 먼저 책임을 물으셔야 합니다.세계 일로 바쁘시면 제가 묻겠습니다, 1998년 교육부 장관은 대입제도가, 교육이 왜 이 모양인지 응답하시오!

2019-10-01

증오를 씻은 한마디 말

사기를 당해 재산을 날린 남자가 있습니다. 회삿돈을 가로채 부도를 일으킨 원수 같은 놈이 밤마다 꿈에 나타납니다. 결국, 노숙자로 전락합니다. 하도 배가 고파 화장실에서 물로 배를 채우는 일도 이제 그만하고 싶습니다. 용산역 출구로 나가 배회하다가 뒷골목 국숫집 하나를 발견하지요. “여기 국수 곱빼기!” 호기롭게 주문합니다.마파람에 게눈 감추듯, 이 남자는 국수를 폭풍 흡입합니다. 할머니는 이 남자가 한 그릇을 비우기 무섭게 그릇을 뺏어 가더니 한 그릇을 더 퍼옵니다. “천천히 드시우. 체할라….” 며칠을 굶은 뱃속이 이제서야 꿈틀거리며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할머니! 여기 한 그릇만 더요!” 세 그릇을 다 비운 남자는 잠깐 할머니가 주방에 들어간 사이 냅다 도망을 칩니다. 할머니가 남자 등 뒤에 대고 크게 외칩니다. “그냥 가! 뛰지 말고. 넘어지면 다쳐!! 천천히 가!!”남자는 한참을 달린 후 숨을 헐떡이며 멈춰 섭니다. 눈물이 한없이 터져 흐릅니다. 울화와 비통함, 분노가 흐르는 눈물에 씻겨 내립니다.15년이 흐릅니다. 할머니 국숫집이 모 방송국에 맛집으로 방송을 탄 후 전화 한 통이 울립니다. 중남미 파라과이에서 한 중년 남자가 국제전화를 한 겁니다. 남자는 TV를 보면서, 그 할머니가 15년 전 노숙자였던 그에게 국수를 세 그릇이나 먹이고 도망치던 자신에게 따스하게 용서의 말을 던져주었던 바로 그 할머니였음을 깨닫습니다. 할머니의 한 마디가 자신을 살렸노라, 방송국 PD에게 몇 번이나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다음에 귀국하면 꼭 할머니를 찾아뵙고 인사드리겠다고 다짐하면서요.그는 할머니의 한 마디에 세상에 대한 증오를 다 내려놓고 다시 시작하기로 결심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한국을 떠나 이역만리 파라과이에서 새로 사업을 일으켜 큰 성공을 일구었다고 하지요.(계속)/인문고전독서포럼대표

2019-10-01

무항산(無恒産)

무항산은 일정한 재산이나 생업이 없음을 이르는 말이다. 맹자 편에 나오는 말로 “백성은 먹고사는 문제가 안정돼야 정치를 우러러 본다”고 한 것이다. 정치를 잘한다는 것은 백성을 잘 먹고 잘 살게 하는 것이 기본이라는 뜻이다.맹자는 무항산을 통해 무항심(無恒心)을 가르쳤다. 일정한 수입이 없으면 일정한 마음도 없다는 것이다. 무항심 상태가 되면 “방탕, 괴벽, 부정, 탈선 등 모든 악을 저지르게 된다”고 말했다. 우리 속담에 ‘곳간이 차야 예절을 안다’는 것과 비슷한 의미다.목구멍이 포도청이라는 말이 있다. 먹고 살기 어려워지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 죄를 지어 포도청에 잡혀가게 된다는 말이다. 먹고살기 위해선 해선 안 될 일도 할 수밖에 없는 딱한 처지를 뜻한다.1992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 나선 빌 글린턴은 경제 문제를 꼬집은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 (It’s the economy. stupid)란 캐치프레이즈로 아버지 부시 대통령을 이기고 42대 대통령에 당선된다. 선거에서도 경제 문제는 국민에게 가장 호소력 있는 이슈란 것이 확인된 사례다.사실 국민에게 잘 먹고 잘 사는 문제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 인간이 문명을 발달시키면서 경제는 더욱 중요해졌다. 경제적으로 윤택하다면 누가 정치를 해도 별로 상관이 없다는 생각이 주류를 이루는 요즘이다. 백성에겐 으뜸의 가치로 인식되는 우리나라 경제가 극도로 혼란한 정치적 게임 때문에 내팽개쳐진 느낌이다. 경제계가 우리의 경제를 걱정하는 목소리는 날로 높아가고 있으나 정부여당은 우이독경식으로 듣는 모양이다. 이러다가 정말 한국의 경제는 폭망하는 것은 아닌지 불안하다. 맹자의 무항산의 교훈을 되돌아 볼 시간이 필요하다./우정구(논설위원)

2019-1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