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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미지의 양식(糧食)을 찾아서

도끼, 송곳, 측량자를 발명한 사내가 있습니다. 그의 이름은 다이달로스, 아테네 왕족 출신입니다. 지혜의 여신 아테나에게 건축 기술과 공예술을 배운 손재주가 뛰어난 발명가입니다. 크레타의 여인 나우카테와 결혼해 아들 이카루스를 얻습니다.다이달로스에게는 조카 탈루스가 있습니다. 조카가 너무 뛰어난 재능을 갖고 있습니다. 불과 12살에 조카는 물고기의 등뼈를 보고 날카로운 톱을 발명합니다. 막대기의 한쪽 끝을 고정하고 둥근 원을 그릴 수 있는 콤파스도 척척 만들지요. 다이달로스는 조카 탈루스의 재능을 보고 질투에 눈이 멉니다. 아크로폴리스의 절벽으로 유인해 밀어버립니다. 다행히 이 장면을 본 아테나 여신이 탈루스를 새로 변신시켜 목숨을 구하기는 합니다만, 조카를 살해한 죄로 다이달로스는 사형 선고를 받습니다.다이달로스는 아테네를 탈출하지요. 아들 이카루스와 아내를 챙겨 크레타 섬으로 망명합니다. 당시 크레타는 미노스 왕이 해상무역으로 전성기를 누리던 시절입니다. 미노스 왕은 사람 몸에 소의 머리를 갖고 태어난 아들 때문에 고민이 많습니다. 왕가의 수치요, 난폭하고 사나운 괴물인 아들. 그 유명한 미노타우로스입니다.다이달로스가 망명하자 미노스는 왕궁으로 받아들입니다. 극진히 대접하고 난폭한 괴물 아들을 가둘 수 있는 지하 궁전의 미로를 만들어달라 하지요. 한 번 들어가면 도저히 빠져나올 수 없는 미로를 만들고 아들 미노타우로스를 거기 가둡니다.크레테는 아테네보다 훨씬 부강했습니다. 해마다 아테네에서 선남선녀 7명씩을 공물로 받아 미로에 갇힌 미노타우로스에게 제물로 바칩니다. 이 가혹한 공물에 분노한 아테네 왕자 테세우스가 나서, 자신이 공물로 바쳐진 척하면서 미로에 들어가 미노타우로스를 처단하고 미로를 빠져나오는 데 성공하지요. 이때 테세우스가 미로를 빠져나온 것이, 다이달로스 덕분입니다. (계속) /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대표

2019-09-24

빙하 장례식

빙하는 눈이 오랫동안 쌓여 다져져 육지의 일부를 덮고 있는 얼음층이다. 매년 겨울에 내리는 눈의 양이 여름에 녹는 양보다 많다면 눈은 계속 누적돼 엄청난 두께층을 형성하게 된다.지구상에서 빙하가 차지하는 면적이 지구 면적의 약 10%다. 지구 담수의 68%가 빙하 형태고, 약 30%는 지하수다. 우리가 보는 호수나 강은 담수량의 겨우 0.3%라 한다.빙하는 넓이에 따라 대륙빙하와 산악빙하로 나뉜다. 대륙빙하는 면적이 100㎢가 넘고 두께가 3천m를 넘어 대륙 전체를 하나로 덮는다. 남극과 그린란드가 이에 해당한다. 산악빙하는 산위에서 눈이 쌓이기 쉬운 골짜기나 오목한 지형에 발달한 것으로 알프스, 히말라야 등이 이런 케이스다.지난 22일 스위스 북동부 알프스산맥 기슭에서는 상복 차림의 사람이 모여 빙하 장례를 치렀다는 외신보도가 있었다. 해발고도 2천700m에서 치러진 이날 장례식의 주인공은 사람이 아닌 사라져 가는 빙하였다. 이곳 피졸산 빙하는 2006년 이후 원래 크기의 80∼90%를 잃어 사실상 수명을 다했다 한다. 취리히 대학의 한 빙하학자는 스위스에서 1850년 이후 빙하 500개 이상이 사라졌다고 했다. 지구 온난화로 지구 곳곳이 홍수와 기상이변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가운데 전해진 빙하 장례 소식은 인간의 무모한 자연 파괴에 대한 준엄한 경고로 들린다.지난달 아이슬란드 서부 오크화산지대에서도 700년 동안 존재했던 빙하가 사라진 것을 아쉬워하는 추모비가 세워졌다. 고도 5천895m의 아프리카 최고봉 킬리만자로의 만년설이 1912년 이후 80%가 사라졌다는 소식도 우리를 우울하게 한다. 빙하를 보고 장례를 치르는 인간의 모습에서 우리는 또 다른 두려움을 느낀다./우정구(논설위원)

2019-09-24

‘초장수’시대, 삶의 질이 문제다

윤희정 문화부장(부국장대우)바야흐로 100세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고령화의 급속한 진전으로 100세 이상의 노인이 더 이상 신기하지 않을 만큼 인간의 수명은 길어지는 중이다.200년 전 인류의 평균 수명은 20∼30세에 불과했다. 60년 전 우리나라 평균 수명도 47세에 불과했다. 하지만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평균 수명은 2010년 기준으로 남자가 80세, 여자가 85세에 다가서고 있다. 40년 전 여성의 평균 수명이 66세였으니까 1년에 0.5년씩 늘어나는 셈이다. 이 같은 추세라면 30년 후쯤이면 여성의 평균 나이가 97세 정도가 될 것으로 보인다.줄기세포 등 요즘 생명공학의 발전 속도로 미루어 볼 때 100세 시대는 더욱 앞당겨질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인구의 상당수는 100세 이상의 초장수를 누리게 될 전망이다. 100세 시대에 대한 이해와 이에 대비하기 위한 실천이 필요해지고 있다는 뜻일 것이다.노화 연구의 권위자, 장수학자라 불리는 박상철 전남대 석좌교수는 ‘웰에이징’이라는 책에서 “실체적 초장수의 모습은 항노화, 노화 방지로 표현되는 안티에이징(Anti-aging)이 아니라, 오히려 노화를 받아들이고 능동적으로 수용함으로써 삶의 질을 향상하는 웰 에이징(Well-aging·참늙기)을 보여주고 있다”고 분석한다. “웰에이징으로 가는 길은 우리의 삶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통해 우리의 일상생활을 조금씩 고쳐 가면 된다”는 그는 웰에이징의 건강한 삶을 위한 다섯 가지 원칙을 제시한다. 첫 번째는 ‘움직여야 한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적응해야 한다’, 세 번째 ‘정확해야 한다’, 네 번째로 ‘느껴야 한다’, 다섯 번째로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희로애락애오욕(喜怒哀樂愛惡慾)에 대한 느낌을 솔직하게 표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아울러 인지적 기능을 포기하지 않고 계속 사용하는 것도 중요하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한편으로는 고령화가 사회적 재난으로 칭할 만큼 심각한 수준이라는 걱정도 있다. 지역 재정 악화부터 지방 소멸까지 얽혀 있는 문제들도 한두 가지가 아니라는 염려들도 이어진다.무엇보다 오래 사는 것보다 삶의 질이 문제다. 삶의 내용이 얼마나 보람되고 충실할 것인가, 이것이 문제다. 아무 의미 없이 생명만 연장하는 삶, 즐거움이란 없고 병환으로 고통만 있는 삶이 무슨 의미가 있겠나. 다만 장수는 비용 부담을 수반하므로 자칫 돈 있는 사람은 오래 살고 돈 없는 사람은 일찍 죽는 그런 세상이 오게 생겼다. 따라서 100세 시대를 축복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개인의 재무설계와 국가의 보편적 공공복지 노력이 필수적이다.정부가 2022년부터 사실상 정년을 단계적으로 연장하고 국민연금 의무가입 나이도 현행 60세에서 65세로 상향 조정하는 논의도 재점화된다고 하니 믿고 기다려 볼 일이다.머지않아 노인의 삶의 질 연구를 위한 정부 기구가 만들어져 풍요로운 백세인의 삶도 열릴 수 있지 않겠나 기대한다.

2019-09-24

곰탕은 그릇 바닥이 보일 정도로 맑은 것이 원칙이다

깊고 무겁다. 곰탕 이야기다.곰탕은 ‘大羹(대갱)’이다. ‘큰 국물’ ‘바탕이 되는 국물’이다. 제사상에 올랐다. 지금도 ‘탕국’으로 제사상에 오른다. 역사도 깊다. 수천 년 전부터 중국에서 사용한 음식이고 이름이다. 우리도 오랫동안 제사상에 올렸고 지금도 곰탕은 저잣거리 인기 아이템 중 하나다. 정작 중국에서는 사라졌다.‘조선왕조실록_세종실록_세종오례_길례_찬실도설’에서 전하는 ‘대갱’에 대한 설명이다.(전략) “대갱(大羹)은 육즙(肉汁)뿐이요, 양념[鹽梅]이 없는 것이다. 아주 오랜 옛날에는 저민 날고기뿐이니, 다만 그 고기를 삶아서 그 즙만 마시고, 양념을 칠 줄은 알지 못하였다. 뒤 세상 사람이 제사 지낼 적에는 이미 옛날의 제도를 존중하는 까닭으로, 다만 육즙만 담아 놓고 이를 대갱이라 이른다”고 하였다. (후략)양념[鹽梅, 염매]은 소금과 매실이다. “염매가 없다”는 것은 양념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양념하지 않은 고깃국물이 바로 대갱이고 오늘날 곰탕이다. 양념은 음식 맛을 도드라지게 한다. 왜 양념하지 않은 것을 최고로 쳤을까? 왜 대갱, 곰탕을 으뜸으로 여겼을까?‘예기 교특생(禮記_郊特牲)’에 “대갱을 조미하지 않는 것은, 그 바탕[質, 질]을 귀히 여기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고기를 곤 국물 맛이 바로 대갱의 바탕이다. 바탕 맛, 기본 맛이다. 고깃국물의 맛을 해치지 않기 위하여 조미하지 않았다. ‘본(本)’은 기본이다. ‘질(質)’은 사물의 근본이다. 질박(質朴), 소박함이다. 본질을 지키는 음식이 바로 곰탕, 대갱이다.고기는, 상상 이상으로, 귀했다. 냉장, 냉동시설이 없던 시절이다. 도축하면, 고기를 연기로 훈연하거나, 삶아서 보관했다. 육포(肉脯) 혹은 수육[熟肉]이다. 삶으면 국물이 생긴다. 이 국물이 대갱이다.조선 시대 기록에는 ‘육즙(肉汁)’이 자주 등장한다. 대갱, 육즙, 곰탕은 같다. 굳이 육즙이라고 부른 이유가 있다. 대갱은 무겁고 깊다. 국왕이라 해도 ‘대갱을 먹는다’고 하기에는 부담스럽다. 대갱 대신 육즙이라고 표현했다.세종 4년(1422년), 상왕 태종이 돌아가셨다. ‘조선왕조실록’ 세종 4년 11월의 기록이다. 제목은 “임금이 허손병이 있어 대신들이 육선 들기를 청하다”이다.임금이 허손병(虛損病)을 앓은 지 여러 달이 되매, (중략) 병세는 점점 깊어 약이 효험이 없으니, 유정현, 이원, 정탁 등이 육조 당상(六曹堂上)과 대간(臺諫)과 더불어 청하기를,“(중략) 옛사람이 말하기를, ‘죽은 이를 위하여 산 사람을 상해(傷害)하지 말라’고 하였으며, 또 ‘육즙(肉汁)으로써 구미(口味)를 돕는다.’는 말도 있습니다. 이제 세자가 어린데, 전하께서 상경(常經)만 굳이 지키어, 병환이 깊어져서 정사를 보지 못하시게 된다면 종사(宗社)와 생령(生靈)의 복이 되지 않습니다.”(후략)허손병은 오늘날의 당뇨다. 이해 태종이 돌아가셨다. 아버지, 스승이며 권력을 승계해준 이다. 당연히 소박한 음식, 소선(素膳)이다. 고기, 대갱(곰탕), 육즙은 언감생심 꿈도 꾸지 못한다. 게다가 효자다. 거의 곡기를 끊다시피 한다.세종은 고기 마니아다. 육선(肉膳), 고기반찬이 없으면 식사를 하지 않았던 이다. 몸이 수척해지고, 드디어 당뇨까지 나타난다. 육조에서 고기반찬을 권하지만, 세종은 움직이지 않는다. 육조의 당상관들과 대간까지 나서서 국왕에게 음식을 권한다. 그중 ‘육즙’이 나타난다. 신하들은 “죽은 이를 위하여 산 사람이 다치면 안 된다”는 옛 가르침을 꺼낸다. 그까짓 고깃국물이라고 가볍게 넘길 일은 아니다. 고기 대신 고깃국물[육즙]이라도 중하게 여겼다.고기와 육즙을 피했던 세종이 거꾸로 신하의 육즙을 챙긴 경우도 잦았다.세종 22년(1440년) 1월의 ‘조선왕조실록’ 기록이다. 제목은 “최칠 중에 있는 전 참판 권맹손에게 육식을 권하다”이다. ‘최질’은 상중에 입는 옷으로, ‘최질 중’은 상중이다.(전략) 경상도 관찰사에게 전지하기를, “이제 들으니, 전 참판 권맹손이 최질(衰絰) 중에 있는데 오랜 병으로 몸이 수척하여서 소식(素食)하기에는 적당하지 못하다고 한다. 그러나 경솔하게 권육(勸肉)할 수는 없다. 이제 의원 조흥주의 말을 들으니, 만약 과연 몸이 수척하다면 반드시 육즙(肉汁)을 먹어야 한다고 한다. 경이 전지(傳旨)라고 칭하고 육식하도록 권유해 보라.”역시 상중이고, 소식(素食)이다. 권육은 고기를 권하는 것이다. 아무리 몸이 수척해도 고기를 함부로 권할 수는 없다. ‘의원의 의견을 참고하여’ 육즙을 권한다. 육즙도 육식이다. 국왕이나 신하 모두 고기 먹는 일, 육즙 마시는 일이 이토록 자유롭지 않았다.부모가 돌아가시면 자식은 죄인이다. 삼베옷은 죄인의 옷이다. 음식도 마찬가지. 소식이다. 고기는 죄인의 음식이 아니다. 먼저 금하는 것이 고기, 육즙, 대갱, 곰탕이다.곰탕, 저잣거리로 나오다일제강점기, 대갱, 곰탕은 크게 바뀐다.한반도에서 가장 오래된 곰탕집은 서울 명동의 ‘하동관’이다. 곰탕, 대갱이 저잣거리의 음식으로 나온 것이다. 수하동에 ‘하동관’을 세운 이는 고 김용택 씨다. 김 씨는 1938년 무렵, 청계천에서 인쇄소를 경영했다. 인쇄소는 당시 ‘문화 사업’이었다. 일제가 만주를 시작으로, 중국 대륙을 침략하던 시기다. 경기가 좋지 않았다. 김 씨는, 먹고 살고 자식 공부시키기 위하여 곰탕집을 차린다. 가족들 특히 아들, 딸의 반대가 극심했다. 양과자 점이나 빵집이라면 모를까, 곰탕집은 친구들 보기 창피하다는 것이 아들, 딸들의 반대 이유였다. 김용택 씨는 “아들, 딸들이 등교한 후 오전 11시부터 학교에서 돌아오기 전인 오후 3시까지 곰탕집 문을 연다” 그리고, “자녀들이 학업을 마친 후에는 가게를 접는다”고 약속한 후, ‘하동관’을 열었다. 약속대로, 자녀들의 학업이 끝난 1963년 문을 닫았고, 곧 친구에게 ‘하동관’을 물려줬다. 곰탕은 반가의 음식, 설렁탕은 저잣거리의 음식이다. 인쇄업을 했던 김용택 씨가 곰탕집을 선택한 이유다.‘하동관’의 홈페이지 내용 중 일부를 소개한다.(전략) 서울 북촌 할머니 3대가 탄생시킨 한국 전통 탕반(湯飯) 문화의 절정 (중략) 하동관 1대 손맛 류창희 할머니(1939년~1963년) (중략) 북촌마을의 반갓집 딸로 태어나 북촌 양반집과 궁중음식에 해박하고 (중략) 하동관 2대 손맛 홍창록 할머니(1964년~1967년) (중략) 류창희 할머니의 뒤를 이어 1964년부터 하동관을 이어받은 홍창록 할머니 또한 북촌 토박이.키워드는 ‘북촌’ ‘반가’ ‘양반’ ‘궁중’ 등이다. 북촌은 경복궁 옆, 오늘날의 삼청동, 가회동 일대다. 고위직 반가, 양반들의 거처였다. 곰탕이 어떤 음식인지 보여준다. 곰탕은, 반가의 음식이다. 오랫동안 제사상에, 손님맞이에 사용했던 음식이다. 제사상에는 대갱으로, 일상에서는 육즙으로 먹었던 음식이다. 이 음식이 저잣거리로 나온 것이다.대갱, 곰탕은 정육(精肉)에서 시작된다. 정육은 뼈나 기름 등을 덜어낸 살코기다. 도축 후, 궁궐과 반가에 공납(貢納)한 것이다. 지방도 마찬가지. 관청, 현직관리, 지역 반가에서 정육을 구할 수 있었다. 그들은 법도에 따라 고기, 육즙, 대갱을 먹었다. 오늘날 중소도시인 전남 나주에 곰탕 전문점이 발달한 이유다. 나주는 목사(牧使)가 근무한 대도시였다.곰탕의 ‘곰’은 ‘고음’이다. 동사 ‘고다’의 명사형이다. ‘푹 곤 것’이 곰, 고음이다. 고음은 ‘膏飮’으로도 표기한다. 곰탕은, 푹 고아서 진액을 뽑아낸 것이다. ‘고(膏)’는 ‘살찐’ ‘기름진’이라는 뜻과 식물, 과일을 곤, 진액이라는 뜻도 있다.곰탕은 진화한다.소 대가리를 푹 곤다. ‘소머리곰탕’이다. 고기는 정육이 아니다. 소 대가리의 살코기다. 소 대가리는 곰탕의 재료가 아니다. 설렁탕의 재료다. ‘사골(四骨)’은 소, 돼지 등의 네 다리다. 사골곰탕은, 소의 네 다리를 푹 고았다는 뜻이다. 고기는 다리 살과 연골조직 등이다. 사골 역시 곰탕의 재료는 아니다. 설렁탕 재료다.대갱, 육즙, 곰탕은 맑다. 소머리곰탕이나 사골곰탕은 유백색이다. 곰탕은 설렁탕 재료와 뒤섞인다. 나쁘게 볼 일은 아니다. 곰탕의 변화, 진화다.포항 죽도시장의 ‘장기식당’ 곰탕도 유백색이다. 맛있다. 고기도 푸짐하다. 소머리곰탕이다. 곰탕이든 설렁탕이든 따질 바는 아니다. 맛있고, 푸짐한, 변화, 진화한 곰탕이다./맛칼럼니스트 황광해

2019-09-23

정치인의 삭발

강희룡 서예가우리 민족은 머리카락을 중요하게 여기고 가꾸는 풍속이 있다. 조선조말의 개화기 상황을 보면 머리카락에 부여된 의미가 어떠했는가는 더욱 쉽게 이해할 수 있다. 1895년(고종32년)에 내려진 단발령(斷髮令)은 조선 사회에 일대 혼란을 불러왔다. 남녀를 불문하고 머리카락을 기르고 가꾸는 것이 효(孝)의 근본이라고 여기고 있던 사상 속에서 그것을 잘라버리라는 국가적인 주문은 백성들의 분노를 샀다. 이 시기 최익현(1833∼1906)은 ‘내 머리는 잘라도 이 머리카락은 자르지 못한다(吾頭可斷 此髮不可斷)’라며 저항하다 투옥되기도 했다.조선시대의 효에 대한 사상은 유가(儒家) 13경전 중 하나인 공자가 제자인 증자에게 전한 효도에 관한 논설 내용을 훗날 제자들이 편저한 ‘효경, 개종명의장(孝經, 開宗明義章)’에 기록된 ‘우리 몸의 머리카락 하나 살갗 한 점도 부모에게 물려받은 것이니 감히 훼손하거나 상하지 않게 하는 것이 곧 효의 시작이니라’ 라는 사상 때문에 인체구성 요소를 매우 소중히 여겼다.불가의 삭발은 출가 수행인의 모습으로 세속인과 다름을 나타내며 세속적 번뇌의 단절을 의미한다. 불가에서는 머리카락을 무명초(無明草)라 일컬으며 세속적 욕망의 상징으로 보기 때문에 매월 초하루와 보름에 삭발을 통하여 자신의 수행일상을 점검하며 출가자의 청정의지를 표현한다.또한 고대 인도에서는 아이가 첫 걸음마를 뗄 때, 병에 걸리지 말라는 뜻으로 귓불을 뚫었으며 아이가 브라만의 자녀일 경우 세살이 되면 ‘추다카라나’라는 삭발의식을 치렀다. 아프리카 성년의식인 할례에서도 나타난다. 할례를 받은 상처가 한두 주일 후 치유되면 삭발을 한다. 이 머리가 다시 자란 후에야 비로소 ‘전사(모란)’가 된다.저자 잭 캔필드의 ‘내 영혼의 닭고기 ’라는 책 내용처럼 뇌종양의 치료로 항생제에 의해 머리가 다 빠진 15세의 친구를 위해 같은 반 친구들이 모두 삭발을 하는 아름다운 삭발도 있다. 삭발은 심리학적으로 사람들을 통솔하는데도 이용되기도 한다. 대표적인 사례로 독일 민족이 유태민족을 지배하기 위해 머리를 깎이고 화장실을 남녀공동으로 사용하게 하였던 것도 개인의 개성을 없애고 동물적인 본능만 살아있게 하기 위함이다. 각 나라마다 군대에서 군복을 입고 머리를 자르는 경우와, 교도소에서 범죄자들에게 삭발시키고 죄수복으로 입히는 것도 개개인의 개성을 없애므로써 조직이나 단체의 목표달성을 위해 일사불란한 통솔력에 따르게 하는 행위인 것이다. 요즘 한국정치는 ‘삭발정국’이다. 지난 16일 조국 법무부장관의 파면을 요구하며 사상 초유의 제1야당 황교안 대표의 삭발이 도화선이 됐다. 황 대표의 삭발 이후 매일 현역 국회의원 10명을 비롯해 원외 인사들까지 포함하면 삭발 동참 인원은 20명 이상이다. 황 대표의 삭발은 흔들리던 그의 리더십을 막았지만 삭발에 동참한 현역이나 원외 인사들은 내년 총선 공천과 연계할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다선 중진의원이나 퇴출돼야 할 이들이 하는 삭발은 향후 당 쇄신에 상당한 부담이 될 것이다.본연의 메시지보다 삭발이란 그 수단 자체만 남아버리고, 아무리 삭발해도 머리털은 다시 자라기 시작한다.

2019-09-23

학교진로교육에 대한 제언

조현명 시인TV 인기드라마로 교육문제를 다룬 ‘스카이 캐슬’을 통해 확인하게 된 사실이 있다. 교육은 우리 사회에서 신분 상습의 수단이라는 것이다. 부정할 수 없이 출세주의, 학력간판주의가 뿌리 깊다. 최근 정치권에서 불거져 나온 ‘논문 1저자 등재’에 관한 논란도 다 그런 바탕에 있다. 이런 바탕에서 학교 진로교육은 방향을 잃고 표류해 가고 있다.먼저 진학 지도에 비해 진로 지도와 상담은 상대적으로 지지부진하다.부분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진로교육에 있어서도 학생의 적성과 내면적인 성숙을 근거로 한 것이 아니라 학교성적과 진학, 취업가능성 위주로 다루고 있다. 현재 적용하고 있는 2015 개정교육과정은 더욱 심각하다.고교 1학년 2학기면 진로를 선택하고 그에 맞는 2, 3학년에 배울 과목을 선택하도록 강요한다. 중학교의 자유학기제와 진로교육에 의해 학생들이 대부분 진로를 확정했다고 보는듯하다. 잘못되었다. 기초공사가 안 된 바탕 위에 집을 지으려고 하는 일이다.학생선택형 교육과정이 마치 진로교육을 위한 것인 것처럼 포장하고 있지만 그 반대이다. 선택형교육은 이미 실패로 보고된 바 있다. 그런 실패의 보고에도 불구하고 계속 시도되는 것은 이론적으로는 매우 이상적인 정책이기 때문이다. 정책당국의 입장에서 보면 그럴듯하고 국민들에게도 치적을 드러내고 홍보하기 좋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매우 불합리한 정책이다. 시범학교들은 늘 자화자찬의 결과논문을 보고한다. 이것은 교직사회에 만연한 무사안일과 복지부동의 결과이다. 안 될 정책들이 계속 현장에 적용되면서 기형적인 교육이 만들어져가고 있다. 그중 자유학기제와 진로선택중심형 교육과정이 1순위로 손꼽힐 만하다.사실상 학교진로교육은 결국에는 학생 자신과 학부모에게 맡길 수밖에 없다는 한계가 있다. 게다가 우리나라는 유교적인 정신이 남아있어 ‘사’자로 끝나는 직업을 선호하고 일부 직업은 천하게 여겨 기피하는 풍토다. 그래서 교육당국은 학부모교육까지 실시하고 있다. 한 번 하겠다고 시작한 정책을 쉽게 포기하기란 어렵다. 그러나 무용에도 불구하고 학부모의 의식까지 바꾸면서 가야겠다는 발상은 계란의 바위치기로 보인다. ‘시장의 흐름에 따라가라’는 금융시장의 격언이 있다. 교육에 시장논리를 적용하기란 문제있어 보이지만 학부모들의 의식과 풍토 그리고 움직임은 시장의 흐름을 닮았다. 그동안 교육당국이 사교육시장을 잡으려고 노력해 보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학생부종합전형의 자기소개서 대필이나 스펙 만들기를 없애려고 노력했지만 결국 근절되지 않고 있다. 그러므로 다음 두 가지로 간단히 학교진로교육에 대해 제언하려 한다. 첫째, 진로교육의 한계를 인정하고 기본교육의 바탕 위에 진로교육을 도입하자. 그러므로 자유학기제와 고등학교 진로선택형 교육과정을 완화해야 할 것이다. 둘째, 학교에서 진로교육이 행사 위주가 되지 않도록 유도하고 학교의 모든 교육에 자연스럽게 흡수되도록 해야 한다. 그러므로 진로상담에 대한 체계화가 필요하고 담임교사가 진로교사가 되는 학교진로교육의 시스템화가 필요하다. 차라리 담임교사라는 명칭보다 진로교사라고 부르는 건 어떨까 싶다.

2019-09-23

미지의 양식(糧食)을 찾아서

그레고르는 꿈꾸던 구원, 즉 변신에 이르는데 결과는 해충이라는 반전으로 작품은 시작합니다. 가족조차 받아주지 않는 완전히 고립된 존재. 카프카는 누구에게도 이해받지 못한 자신의 꿈과 이상을 해충으로 변한 그레고르를 통해 그려냈습니다.카프카의 글은 생전 몇 작품이 출판되었지만 거의 팔리지 않았습니다. 친구 막스브로트에게 본인의 사후 모든 작품들을 태워 없애 달라고 유언할 정도로 지독한 소외감에 시달리던 카프카는 40대 초반에 생을 마칩니다.문학을 통해 구원에 이르고 싶은 그의 열망은 여러 장애물에도 꿋꿋이 펜을 놓지 않게 했습니다. 남들이 모두 잠든 한밤중에 항상 깨어 끊임없이 원고지와 씨름했습니다.우리를 일상에서 건져 줄 미지의 양식(unknown food)은 무엇인가요? 더듬거리며 늘 그곳을 향해 나아가도록 우리를 움직이게 하는, 가슴 고동치는 꿈은 무엇입니까? 생각만 해도 심장이 뛰고 혈관이 꿈틀거리며 근육이 팽팽해지는 그 무엇. 떠올리는 순간 저 하늘의 북극성처럼 우리의 눈빛을 반짝이게 만드는 것, 그것을 우리는 꿈이라고 부릅니다. 꿈은 잘 짜진 계획이 아닙니다. 견적이 제대로 나오는 것은 ‘기획’이요 ‘플랜’일뿐, 꿈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 없습니다. 꿈은 탐욕으로 비롯한 야망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것입니다.레미제라블을 유산으로 남긴 빅토르 위고는 이렇게 말합니다. “혁명이란 무엇인가를 이해하고 싶다면 그것을 ‘진보’라고 불러보라. 진보란 무엇인가를 이해하고 싶다면 그것을 ‘내일’이라고 불러보라. ‘내일’은 억제할 수 없게 자신의 일을 하는데, 그 일을 바로 오늘부터 한다.”억제할 수 없는 내일을 준비하기 위해 밤을 꼬박 지새운 카프카의 열정. 그가 작품을 쓴 지 벌써 100년의 세월이 넘게 흘렀지만, 여전히 우리는 카프카의 생명력 넘치는 문장들 때문에 전율합니다./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대표

2019-09-23

간절함의 끝은 어디에… 경주 감은사지(感恩寺址)

막 깎아놓은 풀냄새가 좋다. 먼 곳으로 자식을 떠나보낸 늙은 부모처럼 국보 제 112호 감은사지 동서 삼층석탑은 오늘도 기다림에 젖어 있다. 장중함의 눈빛이 하도 외롭고 쓸쓸하여 한참 동안 고개를 젖히고 우러러본다.삼국을 통일한 문무왕이 왜구의 침입을 부처의 힘으로 막으려고 짓기 시작한 감은사는 신문왕 2년(682년)에야 완성된다. 죽어서도 용이 되어 나라를 지키겠다는 부왕의 유언을 받들어 동해에 해중릉을 만든 후, 절의 금당 밑으로 용이 드나들 수 있도록 물길을 낸 충과 효가 배어 있는 절이다.천천히 서탑을 돌며 까마득히 역사 속으로 사라져간 신라를 생각한다. 긴 회랑으로 둘러진 감은사, 13.4m의 장대한 동서 삼층석탑은 최초의 쌍탑으로 통일신라시대 석탑 중 가장 크다. 폐사지를 지키는 퇴락의 그림자는 마르지도 않고 두 탑은 해탈이라도 한 듯 초연하다.창건 당시 감은사 앞까지 이어지던 바다는 천년의 세월 속에서 자꾸만 물러나 앉고 감은사도 사라졌다. 길 잃은 문무왕의 애타는 넋이 떠돌았을 동해를 뒤로 한 채 두 탑의 기다림은 하염없이 길었다. 저녁 연기처럼 흩어지는 옛 왕조의 기억과 낙서 자국이 눈물로 번져간 상처들, 수많은 시인의 찬란한 시구(詩句)들이 서로를 다독이며 절터를 지킨다.늦더위가 기승을 부린다. 바람이라도 불면 울창한 대숲에서 만파식적 소리라도 들릴 것 같은데 늙은 느티나무의 투병하는 소리만 애처롭다. 들판을 가로지르며 달리는 차들과 술렁거리며 오는 계절의 풍경에 익숙해진 삼층석탑은 또 다시 천년의 기다림을 반복이라도 할 듯 말이 없다.천년 세월의 간절함을 담고 있는 그의 눈빛에 비해 나의 기도는 조촐하기만 하다. 사람들은 어디론가 바쁘게 달려가고 또 누군가는 잠시 머물다 훈장 같은 말씀 한 마디 던져 주고 떠난다. 바람을 잠재우고 물결이 되어 뒤척였을 수많은 날들의 기다림은 모두 헌사가 되어 그를 위무한다.묵직해진 마음을 끌고 솔숲에 앉아 문무대왕릉을 바라본다. 햇살 아래 연거푸 일어섰다 쓰러지는 파도들, 여름날의 빈집을 기웃거리듯 조용한 발걸음으로 가을이 들어서는데, 꽹과리 소리에 춤을 추며 무아의 경지에 빠져 접신 중인 무녀가 보인다. 이 곳 저 곳, 솔밭이 온통 굿판이다. 나는 반신반인(半神半人)의 위치에서 신탁을 받을 영매자를 위해 조심스럽고 미안한 구경꾼이 된다.문무대왕릉을 향해 정성스럽게 예를 올리는 무녀의 손에 들린 붉은 깃발은 언젠가 네팔 여행 중에 보았던 룽다와 타르초를 떠올리게 했다. 소음과 공해로 정신없이 어수선하던 카트만두의 오래된 사원에서, 안나푸르나를 보기 위해 오르던 전망대 근처에서도, 오색 깃발들은 경전을 읽듯 바람 앞에서 사정없이 울어댔다. 많이 펄럭일수록 신에게 그들의 기도가 더 간절히 전해진다고 믿는 이색적인 풍경 앞에서 신의 부름 앞에 무릎걸음으로 다가가는 가난한 영혼을 보았다.더위를 업고 답을 기다리는 동해의 붉은 깃발, 환생을 꿈꾸는 미이라처럼 젊은 여인의 몸을 감싼 채 자갈밭을 구르던 흰 천의 오열, 모래사장에 수없이 꽂혀 타다만 향의 잔해들, 갈매기와 까마귀의 번들거리는 군무, 굿당이 되어버린 솔밭을 수중릉은 말없이 바라볼 뿐이다.문무왕의 호국정신이 서려 있어 신령스러운 기운이 강한 곳이라고 한다. 이제는 절터만 남은 감은사지, 그래서 갈 곳 잃은 천년의 정신이 끝내 신탁으로 양도되기라도 한 것일까. 온갖 염원이 대왕암을 향해 끓어오른다. 세상의 모든 고통과 아픔이 이곳으로 뛰어들어 동해는 깊고 푸른지 모른다. 간절함을 이기는 능력은 없다 했던가. 그들의 곡진한 의식을 있게 한 그 간절함은 도대체 무엇일까.까마귀 떼들이 버려진 젯밥에 몰려들어 배를 채우고는 유유히 날아간다. 윤이 나는 깃털이 햇살에 반사되어 반짝일 뿐, 그들에게 간절함은 없다. 파도를 바라보며 하염없이 시간을 보내는 갈매기 무리 속에도 이제 조나단 리빙스턴의 후예는 없다. 높이 나는 법을 잊어버렸으며 더 이상 높이 날 명분마저 사라졌는지 모른다. 풍요 속에 가려진 나른하고 권태로운 눈빛들, 꽹과리 소리는 접신의 문턱을 몇 번이나 넘나들며 절정을 향해 치닫는다.조낭희 수필가서너 시간을 솔밭에 앉아 바다를 바라본다. 삶은 불가해한 것들로 가득하다. 무너지지 않으려 발버둥치는 절박한 몸짓들이 때 아닌 폭설 되어 내 안에 쌓인다. 지척에 보이는 대왕암은 꼼짝도 않는데 숨 가쁜 염원들은 하혈하듯 동해로 흘러들고 바다는 답신하듯 파도를 만들어 보낸다.도시가 갑갑하면 찾아오던 바다에서 오늘은 교만의 옷을 벗는다. 삶의 완성도는 슬픔과 기쁨 사이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관조하는 것. 새살이 돋아 그들의 영혼이 좀 더 말랑말랑해지길 바라며 가을 햇살 같은 기도 한 줌 보낸다.어찌하랴. 가장 영험해 보이는 신을 찾아 간절히 두 손 모을 수밖에 없는 운명 앞에서 우리는 차안과 피안 사이를 정처 없이 오가며 때때로 난처해지기도 하는 것을.하늘과 맞닿은 수평선은 저리도 평온한데….

2019-09-23

현실의 여백, 환상을 모험하는 경험

문학에 있어서 ‘환상’은 예로부터 중요한 주제였다. 사실, ‘환상’ 말고 달리 더 문학적인 주제가 존재하기나 할까. 우리 모두가 좋아하는 이야기란 ‘여기’, 현실적 세계의 이야기가 아니라 그 여백 어딘가에 존재할지도 모르는 비현실의 세계에서 일어났을지도 모르는 환상에 대한 이야기니 말이다.이처럼 어린 시절 누구나 매료되기 마련인 환상이야기 가운데 루이스 캐럴(Lewis Carroll, 1832~1898)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빼놓기는 어려울 것이다. 나는 아직도 이 작품을 처음 열어보았을 때 경험했던 최초의 당혹감과 이어 찾아온 그 세계에 대한 매혹을 기억한다. 그리고 그로부터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그 세계는 아직도 내 마음 어딘가 한 구석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누구나가 그러했을 것처럼.‘이상한 나라의 앨리스(Alice’s Adventures in Wonderland, 1865)’에서 ‘거울 나라의 앨리스(Through the Looking-Glass, 1871)’로 이어지는 루이스 캐럴이 만들어낸 앨리스적인 세계가 그토록 특별하게 남아 있을 수 있었던 것은 별다른 이유는 아니다. 인간의 이성이 중심이 되는 근대 세계와 표준시로 대표되는 일말의 여백도 존재하지 않는 동조화된 세계에서는 생각하기 어려운 여백의 사고가 들어 있기 때문이다.따분한 역사공부를 하던 앨리스는 ‘늦었다’‘늦었다’고 외치는 조끼를 입은 토끼를 발견하고 그를 따라가다가 환상의 세계로 굴러 떨어진다. 우리의 정신은 조금의 실마리라도 눈앞에 나타나면 그 실마리를 따라 제멋대로의 상상의 세계로 떠나가 버리지 않는가. 그것이 따분한 공부를 하는 와중이라면 더욱 그렇다. 그렇게 ‘꿈’과 ‘거울’이라는 근대 세계의 두 가지 여백을 통해 만들어진 환상의 세계에 굴러 떨어진 앨리스는 현실의 답답한 규칙성이 아니라 완전히 독자적이고 환상적인 규칙의 지배를 받는 세계를 모험한다.이렇게 자신의 눈앞에 존재하는 한 번도 본 일이 없는 세계를 여행하는 앨리스의 모험이 흥미로운 것은 그것이 새로운 환상적 세계의 규칙을 발견하는 인간의 태도를 가장 잘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환상이 환상으로 남아 있을 수 있는 것은 그것이 단지 지금까지 본 일이 없는 기괴한 것이기 때문만이 아니다. 그것이 어떤 규칙으로 이루어져 있는가 우리가 잘 알 수 없기 때문이다. 현실 세계와 유사한 규칙을 가지고 단지 창조된 세계에서 일어난 기괴한 소재만으로 만들어진 환상 문학은 그것을 보는 인간에게 당혹감을 줄 수 없다.자신이 마주친 이전까지 한 번도 본 일이 없는 세계 속에서 앨리스는 무엇을 해야 한다는 목적도 없이 그저 아이다운 호기심으로 그 세계를 경험한다. 세계의 규칙을 알 수 없으니 그 경험은 이성적으로 주어지지 않는다. 무엇이든 입안에 넣어보지 않으면 대상을 알 수 없는 아기처럼. 앨리스는 실제로 먹어보지 않으면 효과를 알 수 없는 약을 먹어보기도 하고, 말을 하는 기괴한 대상들과 만나 그들과 나름의 방식으로 이야기하기도 한다.결국 루이스 캐럴의 ‘앨리스’는 진정한 환상의 이야기이자 낯선 세계에 던져진 아이가 세계의 규칙을 이해해나가는 경험에 대한 알레고리다. 어른이 된 사람은 결코 아이가 세계를 어떻게 이해하는가 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현실 세계의 여백에서, 그렇게 우리는 가끔씩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대상에 대해 매혹되어 붙들린다. 아마 그것 없이는 문학도 존재할 수 없을 것이다./송민호 홍익대 교수

2019-09-23

“잠+재력을 달라”는 학생들의 외침

신희선 숙명여대 기초교양대학 교수·정치학 박사“잠재력은 1도 없으니 ‘잠’과 ‘재력’을 따로 달라.” 학생들 사이에 떠도는 우스개 소리다. 잠재력 개발을 강조하지만 불가능하게 만드는 현실에 죽비와 같은 말이다. 학생들은 밤늦게까지 학원을 전전하느라 언제나 잠이 부족하다. ‘조물주 위에 건물주’인 한국에서 학생들은 건물주가 되는 게 소원이라고 말한다. 개인의 잠재력을 최대한 이끌어내는 과정이 교육의 목적일터인데 실상은 거리가 멀다. 남보다 앞서야 한다며 선행학습으로 몰아치고, ‘할아버지의 재력과 엄마의 정보력’이 지배하는 문화에서 학생들은 점점 피폐해지고 있다. 학생들이 진정 무엇을 원하는지, 과연 우리는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열고 있는가?한국의 ‘교육열’은 학생들의 과도한 학습노동으로 드러난다. 학생들은 옆을 돌아볼 여지도 없이 주어진 트랙 안에서 전방 질주해야 한다. 집에서 가장 먼저 나가고 가장 늦게 들어오는 이도 학생들이다. 학원을 다니며 내신 성적을 관리하고, 생기부용 수행평가와 봉사활동으로 주말조차 쉴 시간이 없다. 돈과 권력과 네트워크가 있는 부모가 대신해주거나 그도 아닌 경우 학생이 그 많은 것을 감당해야 한다. 최근 서울시 교육청에서 제안한 ‘학원일요휴무제’도 지쳐가는 학생들에게 쉴 기회를 주자는 문제의식의 발로지만, 실제 학생들의 휴식권이 보장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경쟁을 조장하는 교육환경에서 학생들은 시들어간다. 제시카 조엘 알렉산더가 쓴 ‘행복을 배우는 덴마크 학교 이야기’는 신뢰, 공감, 진솔함, 용기, 휘게(hygge)의 가치를 강조하는 덴마크 학교 현장을 보고한다. ‘트리브젤 테스트(trivsel test)’는 ‘좋은 삶’을 체크하고 평가하는 시험으로 학교에도 적용된다. ‘식물’과 관련된 북유럽 고어인 ‘트리브젤’이 상징하듯, 인간을 기계가 아닌 식물과 같은 존재로 바라본다. 그들은 교육환경에서 “학생들이 충분한 관심을 받고 있는지, 학생들의 이야기가 경청되고 있는지, 학생들의 사회, 정서적 발달이 순조롭게 이루어지는지”를 성적보다 우선적으로 고려한다. ‘이거 해라, 저거 해라’고 강요하는 교육이 아니라 아이들이 스스로 배우는 이유를 깨달으며 질문과 대화로 문제를 풀어가는 방법을 배우도록 한다.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고 경쟁하며 보여주기식 교육에서 한 발짝도 벗어나지 못한 우리에게 경종을 울려준다.아프리카 물소떼는 물가에 도착하려고 단체로 질주하다가 아비규환이 되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남보다 먼저 물을 먹으려는 욕심과 속도 경쟁이 결국 벼랑 끝으로 몰고 가는 결과를 낳는다. 학생들이 쏟아지는 잠을 이기지 못해 수업시간에 졸거나 엎드려 자는 교실 풍경이 낯설지 않다. 휴일에 놀 시간은 고사하고 휴식 시간조차 없이 대학입시를 향해 계속해서 달려가는 형국이다. 남보다 빨리 도착하는 것보다 올바른 방향을 잡아 자신의 보폭대로 나아가도록 하는 교육은 불가능한가? 학생들의 질문으로 생기가 넘치는 교실, 학생들이 각자의 잠재력이 꽃 피울 수 있도록 기다려주는 교육이 그리 어려운 일인가?

2019-09-23

붉은 하늘 현상

저녁 노을이 지면서 하늘이 붉어지는 것은 매우 자연스런 일이다. 하지만 대낮에 붉은 하늘이 펼쳐지는 기현상이 지구촌에 발생했다. 붉은 하늘현상은 최근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섬 잠비주 무아로잠비군의 여러 마을에서 발생했다. 사진과 영상을 보면 통상적인 노을처럼 하늘만 붉은 것이 아니라 주변 사물이 모두 붉게 보여 주민들을 놀라게 했다.인도네시아 기상기후지질청(BMKG)은 주민들이 불안해하자 공식 인스타그램 계정을 통해 붉은 하늘 현상을 과학적으로 설명했다. BMKG에 따르면 잠비의 미세먼지(PM10) 농도는 373.9㎍/㎥으로 매우 나빴으며, 붉은 하늘은 미세먼지 입자 크기가 태양의 가시광선 파장과 비슷해‘미산란’(Mie scattering) 현상이 발생한 것이라는 것. 미산란은 빛의 파장과 거의 같은 크기의 입자에 의한 빛의 산란을 뜻하며, 실제 자연에서 나타나는 ‘빛의 산란’의 대표적인 예다.구름을 형성하는 응집제 혹은 입자 역할을 하는 먼지, 꽃가루, 연기 및 미세한 물방울, 얼음 입자들도 미산란의 원인 물질이 된다. 미산란은 독일의 물리학자 구스타프 미(Gustav Mie)에 의하여 제시됐고, 1908년 그의 저명한 논문에서 콜로이드 금 입자를 이용한 색깔 효과(color effect)가 나타나는 것에 대한 시뮬레이션을 통해 미산란 현상을 증명했다.인도네시아는 매년 건기가 되면 수익성이 높은 팜나무 등을 심으려고 천연림에 산불을 내는 데, 특히 식물 잔해가 퇴적된 이탄지에 불이 붙으면 유기물이 타면서 몇 달씩 연기를 뿜어내 미산란을 일으켰다는 것이다. 공포영화에나 나올 법한 기상이변이 인간에 의한 산불로 빚어졌다는 설명은 묘한 기시감을 불러온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19-09-23

‘9·19 평양 공동 선언 1주년 학술대회’ 참관기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지난 18일 서울 앰베서더호텔에서 열린 통일연구원 주최 국제학술대회에 참가하게 되었다. 과거 재직시절 학술대회와는 완전히 달라진 모습이다. 이번 학술 대회에는 3개 세션으로 구성되어 국내 학자 뿐 아니라 미국의 학자, 언론인들이 대거 참석하였다.제 1세션은 ‘9·19 평양 공동 선언의 의의’라는 주제의 발표가 있었다. 미국은 사회과학원의 레온 사갈 등 4명이, 한국에서는 김갑식 통일연구실장 등 전문가 3명이 발표하였다. 사갈은 지난해 2018년 평양 공동 선언의 후속 합의서인 남북 군사 합의문을 높이 평가하였다. 그는 과거 남북의 상호 억지력 강화가 결국 연평해전이나 천안함 폭침 등 치명적인 군사적 충돌을 초래했음을 상기하였다. 그는 9·19 남북 군사적 합의문이 북미 군사적 신뢰구축 조치(CBM)를 위한 ‘잠정적 협정’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점을 높이 평가하였다.제 2세션은 ‘9·19 평양 공동 선언이후 군사 합의와 교류 협력 분야의 성과와 과제’에 관한 진지한 토론이 있었다. 미국 군축·비확산센터 선임국장인 알렉산드라 벨은 앞으로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에 참여하는 협상 당사자들이 지켜야 할 자세와 원칙을 제시하였다. 벨은 ‘작은 승리를 추구 하라’‘소통을 확대하라’‘외부의 압력에 유의하라’는 협상 성공을 위한 가이드 라인를 제공하여 참석자들의 관심을 모았다. 그의 주장은 앞으로의 북미 및 남북 협상 참여자들에게 일종의 기술적인 팁을 제공한 셈이다.제 3세션에서는 ‘북한 비핵화에 대한 상응 조치’에 관한 진지한 토론이 있었다. 북한 당국은 미국과의 비핵 협상에서 언제나 확실한 대가를 요구하고 있다. 하노이 북미 협상이 결렬된 것도 이 대가나 보상에 대한 합의를 구하지 못한 결과이다. 특히 미국의 브루킹스연구소 선임연구원 로버트 아인혼은 북미 비핵화 협상의 교착 상태를 타개하기 위해 완전한 비핵화의 시한과 방식은 뒤로 미루고 핵 동결 수준인 북미간의 잠정적 합의(interim agreement)를 주장을 하였다. 그러나 그의 이 같은 주장은 북한의 사실상의 핵보유국을 인정하는 형식이 됨으로써 우리로서는 수용하기 힘든 점이 문제이다.여하튼 이러한 학술 대회는 과거의 고답적인 학술 행사와 다른 형식임이 분명하였다. 발표자들도 학자들만이 아닌 이 분야의 전문 언론인이 패널리스트로 참석한 점이 눈길을 끌었다. 특히 미국 트럼프의 대북 정책이 ‘선 비핵화와 차후 보상’이라는 리비아식 방식을 탈피하여 ‘새로운 방식’이 제시될 수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것이 북한이 하노이 이후 제시한 미국에 대한 ‘새로운 셈법’에 대한 반응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이번 학술 대회는 작년 9·19 선언 이후 교착된 남북관계와 북미 협상을 예진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으며, 통일부 장관 등 정책 결정자들이 참여하여 우리의 정책 결정에 상당히 도움이 되리라는 생각도 들었다.

2019-09-22

첫 문장 쓰기

그레고르 잠자는 어느 날 아침 불안한 꿈에서 깨어났을 때, 자신이 잠자리 속에서 한 마리 흉측한 해충으로 변해 있음을 발견했다. - 프란츠 카프카 ‘변신’작가들은 집필을 마친 후 첫 문장을 수없이 다듬곤 합니다. 소설의 첫 문장 중 가장 유명한 것 하나를 꼽으라면 카프카의 변신이 손꼽히곤 하지요.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 첫 문장을 기억하는 분도 많습니다. “모든 행복한 가정들은 대개 비슷비슷하다. 그러나 불행한 가족은 모두 저마다 나름의 이유를 갖고 있다.”문장 하나를 만들어 내는 것. 인류의 머릿속에 각인되어 잊지 못할 문장을 쓰는 것은 모든 작가의 꿈입니다. 그대는 어떤 문장을 세상에 남기고 싶은가요?카프카는 프라하에 살았던 유대인입니다. 유대인도 독일인도, 체코인도 아닌 정체성 문제 때문에 늘 이방인으로 살았던 고독한 천재였지요. 카프카는 문학을 자기 삶의 구원으로 여겼습니다.글쟁이로 세상을 제대로 살아갈 수 없다고 믿는 유대인 장사꾼 아버지 압력에 짓눌려 법학 박사학위를 받고 국영 보험회사에 취직해 돈을 벌어야 했습니다. 일과 문학 사이의 경계에서 갈등했지요. 오직 글을 쓸 때만 자유로운 영혼이었던 카프카는 독특한 라이프 스타일로 유명합니다. 오후 2시에 퇴근하면 여름에는 몰다우 강에서 옷을 훌훌 벗어던지고 매일 1.6㎞를 수영했습니다. 오후 4시 전에 잠을 청하고, 저녁 늦게 일어나 식사와 산책을 하고 밤 10시 무렵 책상에 앉아 글을 쓰기 시작합니다. ‘변신’도 그런 삶의 방식으로 생산한 문장들입니다. 불과 며칠 동안 단숨에 써 내려간 걸작이지요.주인공 그레고르 잠자(Samsa)는 카프카(Kafka) 자신의 투영이라는 것을 이름을 통해 보여줍니다. 문학을 통한 구원에 도달하고픈 열망과 돈을 벌어 가족에게 보탬이 되어야 한다는 갈등과 충돌합니다. (계속)/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대표

2019-09-22

홍콩의 시위에서 바라본 우리나라는!

서정목 대구가톨릭대학교 교수지난 1960년대에서 90년대에 이르기까지, 한국은 고도의 경제성장 시대였다.어렵고 힘들었던 그 시절 홍콩영화는 일반인들이 쉽게 접할 수 있었던 오락물로 큰 인기를 누렸다. 60년대에서 70년대를 거쳐 80년대까지 홍콩영화는 한국의 극장가에서 주류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당시 홍콩영화는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는 위안거리였고, 만화경같은 존재였다. 해외여행 자유화가 실시되지 않았던 시절, 아니 해외여행 자유화가 있었다 해도 갈 돈이 없었던 시절, 이소룡, 성룡, 왕조현에서 주윤발, 장국영으로 이어지던 홍콩 영화는 당시 해외를 간접적이나마 볼 수 있었던 몇 안되는 창구였다.그러다 1997년 홍콩의 중국 반환이 이루어지고 일국양제라는 타이틀 아래 중화인민공화국이라는 하나의 국가 안에 사회주의와 자본주의라는 서로 다른 두개의 체제가 공존하게 되었다.홍콩의 주권 반환 후 50년간 중국은 외교와 국방에 대한 주권을 부여하고 홍콩은 자치권을 가지기로 하였다. 그러나 중국영향 하의 공산주의를 두려워한 수십만 명의 홍콩인들이 캐나다, 호주, 미국 등지로 이민을 떠났다. 이 시기를 전후해서 홍콩영화는 과거의 영광을 누리지 못하고 쇠퇴하고 만다. 홍콩의 경제도 이전과 같이 활성화되지 못하였다.이러한 홍콩이 요즘 난리를 겪고 있다. 오늘날 홍콩의 시위를 바라보노라면 데자뷔(deja vu)를 느끼도록 한다.우리나라가 70년, 80년대 민주화투쟁을 겪으면서 경험한 것이다. 최근 홍콩의 시위는 홍콩범죄인 인도법이 발단이다. 이는 홍콩에서 범죄자를 중국대륙으로 송환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법으로 홍콩에서 대만, 중국, 마카오 등 역외에서 범죄를 저지른 사람에 대해 해당 국가에 신변을 인도할 수 있도록 하는 취지이다. 하지만 중국 정부에 반대하는 인권운동가나 반체제 인사들을 중국으로 인도하는 데 악용될 소지가 크므로 홍콩시민들은 이 법안에 반대하고 있다. 결국 홍콩에 대한 중국의 간섭이 심화되고, 홍콩의 자유가 억압될 수 있다는 것이 홍콩시민들을 시위로 나서게 하는 것이다. 홍콩은 과거 약 150여년간 식민통치이기는 하지만 영국령으로서 민주주의를 경험하였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하는데 15번이나 지났으니 홍콩인으로서의 민주화의 열망은 당연할런지도 모른다.우리에게 눈을 돌려보자. 진보와 보수의 갈등, 일본의 수출규제, 장관 인사청문회 등의 문제로 현재 우리나라의 정치, 경제도 시끄럽기 짝이 없다. 하지만 우리가 완벽하지는 않지만 지금까지 이룩해 놓은 산업화와 민주화의 토대 위에서 벌어지는 갈등과 대결구도는 역설적으로 민주화를 보여주는 지표가 된다.‘여’가 ‘야’가 되고 ‘야’가 다시 ‘여’가 되고, 음지가 양지가 되고 양지가 음지가 될 수 있는 나라. 누구는 평생 ‘여’만 하고, 누구는 평생 ‘야’만 하면 불공평하지 않는가? 정책으로 평가받고, 표심으로 선택받을 수 있는 우리나라는 그래도 좋은 나라인 게다.

2019-09-22

물러설 때

작년 9월 중국 대표팀 사령탑을 맡았던 히딩크(73) 감독이 취임 1년 만에 경질됐다. 중국축구협회는 “올림픽 예선 준비가 효과적이지 못했다”는 공식 의견을 내놓았다. 이달 초 중국 올림픽 대표팀이 베트남에 0-2로 완패한 것도 경질의 결정적 이유가 됐다. 거스 히딩크는 축구감독으로서 세계적 명장이다. 특히 한국 사람은 그의 성공적 신화를 잘 기억한다. 한국 대표팀 감독을 맡으면서 2002년 한·일 월드컵 4강 진출 신화를 이룩하고 한국 사람에게 “꿈은 이뤄진다”는 희망 메시지를 안겨준 감독이다.한국팀 감독 이후에도 그는 첼시와 FA컵 우승, 레알 마드리드와 발렌시아 등 유럽 명문구단 감독을 맡아 그의 축구 용병술을 마음껏 펼쳤다. 러시아 대표팀 감독에서 밀려난 뒤 내리막길을 걸었던 그에게 중국이 대표팀 감독을 제안한 것. 그는 중국 올림픽 대표팀을 이끌고 치른 12경기 중 단 4경기만 승리하는데 그쳤다. 한국에서와 같은 성적을 올리지 못한데 대한 중국내 여론이 나빴다. 이유야 어쨌든 그의 경질을 두고 불명예 퇴진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그가 또다시 새로운 곳에서 옛 명성을 회복할지 모른다. 그러나 고령이라는 나이를 감안하면 쉽지 않은 일이다.인생에 있어 나아갈 때와 물러갈 때를 아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물러나라는 법 또한 없다. 진퇴(進退)를 잘하는 것이야말로 현명한 삶을 사는 지혜다. 누구나 알지만 실천으로 옮기는 사람은 많지 않다. 히딩크는 선수시절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다. 그러나 그가 감독을 맡고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드라마틱한 결과를 만들어냈다. 세상은 그를 영웅시했다. 중국으로부터 불명예 퇴짜를 맞은 그도 물러설 때를 몰랐던 것일까./우정구(논설위원)

2019-09-22

딱한 ‘조국’

안재휘 논설위원설마 설마 했는데, 점점 확신이 깊어간다. 저토록 집중사격의 표적이 되어 만신창이가 되고 오만 칼질에 너덜너덜해지고 있는데, 조국은 버티고 있다. 이게 혹시 정부 여당의 사석작전(捨石作戰)이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기 시작한 것은 문재인 대통령이 그에게 기어이 장관 임명장을 주면서부터다. 무자비한 사냥개로부터 전방위에서 물어뜯기는 그를 굳이 장관에 임명하는 까닭은 멀쩡한 상식으로는 이해가 가지 않는 처사였다.사석작전은 바둑의 독특한 전술의 하나다. 접전이 벌어졌을 때 아군의 일부를 ‘버림돌’로 내놓아 상대방으로 하여금 이를 잡도록 강요하고, 그 대가로 바깥쪽에서 외세를 쌓거나 그 이상의 실리를 확보함으로써 더 큰 이득을 취하는 작전이다. 미끼에 정신 팔려있는 사이에 유리한 고지를 먼저 점령하는 양동작전의 개념과 비슷하다.여권(與圈)이 조국 장관을 처음부터 ‘총알받이’로 쓸 생각은 없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난 8월 초 장관후보자로 지명한 이후 뜻밖의 일이 벌어졌다. 경제·안보·외교 실패에 대해 빗발치던 여론이 모조리 조국 난타전 블랙홀로 빨려 들어간 것이다. 정치공학적으로 볼 때, 여당으로서는 무조건 나쁜 국면이 전개되는 것은 아니다. 위험성이 전혀 없는 작전은 없다. 오면초가(五面楚歌)의 포위망을 뚫고 나가기 위해서 사석작전은 유효한 전략일 수 있는 것이다.물론, ‘조국 전쟁’이 파생하고 있는 요소 중에 문재인 대통령과 민주당의 지지율이 휘청거리고 있는 현상은 위태로울 수 있다. 그러나 그런 변화가 마냥 부정적인 환경만 조성하는 것은 또 아니다. 어쨌든 위기의식을 느낀 약 25∼35% 쯤으로 추정되는 골수 지지자들의 응집력은 더 커졌고, 민심을 얻기 위해 혹독한 ‘제 살 깎기’를 해야 한다는 공감대도 넓어졌다. 당장 민주당은 내년 총선을 겨냥한 ‘대규모 물갈이’에 선수를 치고 나오고 있지 않은가.민주당의 ‘물갈이’ 시동은 절묘하다. 제1야당 자유한국당이 환골탈태의 혁신은 아랑곳하지 않고 문재인 정권 정책실패에 기대어 ‘무조건 보수통합’이라는, 감동적 요소라곤 전혀 없는 케케묵은 잡가(雜歌)나 부르고 있지 않은가. 자유한국당엔 고목 나무에 꽃 피길 바라는 정치꾼들만 득실거리고, 바른미래당은 사이비 중도로 포장된 좌우 해바라기들의 내분 끌탕 드잡이질에 주야장천 여념이 없다. 민주당의 ‘대대적 물갈이’ 선수(先手)는 회심의 일격이다.이제 여기에서 구태정치에 넌더리를 내고 있는 국민의 관심을 ‘정치개혁’으로 반쯤이라도 돌리기만 하면 성공이다. 게다가 보수정치세력들이 그동안 별러왔던 권력다툼을 일시에 쏟아내며 극심한 아노미 국면으로 접어들기만 하면 더불어민주당의 그림은 완성된다. 작금의 시큰둥한 민심이 중도나 정치 무관심의 영역에 머물러주기만 해도 진보는 성공하게 돼 있는 구도다. 제아무리 시끄러워도, 제아무리 정책에서 죽을 쑤어도 진보정권이 이기게 돼 있는 이 야릇한 구도란 참으로 한심한 드라마다. 딱한 조국(曺國)이다. 아니 정말 딱하고 처량한 우리나라 조국(祖國)이다.

2019-09-22

친절배가운동을 신성장 동력으로

전찬걸울진군수‘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백범 김구 선생은 ‘나의 소원’에서 무력·경제력보다도 문화의 힘을 강조했습니다. 모든 것을 잃어도 다시 일어설 수 있게 하는 힘. 그것이 ‘높은 문화’임을 백범 선생은 익히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지금 울진의 상황은 매우 좋지 않습니다. 정부 탈원전 정책의 여파로 유동 인구가 급격히 줄어들고, 경기는 가라앉고 있습니다. 원전 지원금은 지속적으로 감소하는 상황에 울진 마린CC, 후포 국제마리나항 건설, 울진스포츠센터 등 대형 관광 인프라 건설 사업비와 향후 운영비 부담 등으로 인해 가용 예산은 더욱 줄어들 전망입니다.원전 건설에 의존해 호황을 누리던 시절은 이제 지나갔습니다. 발전기 터빈을 대신할 동력, 울진을 대대손손 번영시킬 힘, 지금 울진에 필요한 것은 높은 수준의 문화입니다. 민선7기 출범과 함께 추진 중인 ‘전 군민 친절배가운동’은 친절을 문화로 만들고자 하는 문화창조운동입니다. 울진에 친절문화를 확고히 정착시킴으로써 원전 의존형 경제구조를 탈피하고 자립형 경제구조를 구축하기 위한 신성장동력사업입니다. 의례적이고 상투적인 일회성 캠페인이 아니라 울진의 존립을 위한 핵심 과제인 것입니다.우리 군은 2020년을 원전 의존형 경제 탈피 원년의 해로 정하고 다음과 같이 발전방향을 설정했습니다. △산림과 온천을 연계한 힐링 관광 △해양자원을 활용한 치유 관광 △스포츠, 레저, 여행을 결합한 스포츠 관광 마케팅을 통한 신성장 동력 창출 △지역 친절문화 확립이 그것입니다.천혜의 자연환경을 바탕으로 힐링·치유·스포츠·레저·여행을 결합하여 관광 르네상스시대를 열어갈 것입니다. 친절문화는 그 토대이자 핵심 동력입니다. 친절문화가 기반되지 않은 관광산업은 사상누각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울진을 찾는 관광객들 중 상당수는 기본 200∼300km의 먼 거리를 이동해 옵니다. 멀리서 힘들게 왔는데 불친절을 경험한다면 지역에 대한 거부감이 상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훌륭한 관광 자원도 친절문화가 뒷받침되어야 빛을 발할 수 있습니다. 이제 군민 모두가 친절 군민으로 변해야 합니다. 울진을 찾는 관광객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가장 기초적인 방안이 바로 친절입니다. 관광객이 울진을 찾도록 하는 힘은 밝은 미소, 정겨운 말투, 따뜻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친절입니다.친절문화를 확립하기 위해 지난 8월 종합계획을 수립하여 모든 행정력을 집중하고 있습니다. 모든 군민이 친절을 습관화하여 울진에 친절문화를 꽃피운다는 목표입니다. 이를 위해 공직사회가 먼저 솔선수범에 나섰습니다. 민원친절도를 모니터링하고 전 직원을 대상으로 친절교육을 실시하는 한편, 우수 친절 공무원에 대해서는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또 부서별로 매일 아침 친절인사를 하는 등 친절을 생활화함으로써 딱딱했던 공직문화가 조금씩 바뀌어가고 있습니다. 민간부문에 있어서도 대대적인 친절운동을 펼쳐 나가고 있습니다. 상가를 중심으로 친절 스티커를 배부하고 거리 캠페인을 실시하는 등 분위기를 확산하고 있습니다. 또 찾아가는 군민 친절교육, 전 종업원 친절배지 달기운동, 친절 서약운동 등 다양한 친절 홍보활동을 추진할 계획입니다. 이제 군민들은 언제 어디서든 친절을 보고, 듣고, 말하고, 느낄 수 있게 될 것입니다.우리 군은 변화의 첫걸음을 이미 내디뎠습니다. 친절운동이 원동력이 되어 전 군민이 하나로 뭉친 결과, 2021년 경북도민체전을 극적으로 유치해냈습니다. 군민 여러분! 그리고 울진을 찾아주시는 관광객 여러분! 울진의 친절문화 운동은 이제 시작입니다. 도민체전을 기점으로 우리 군에 친절문화가 완전히 뿌리내릴 수 있도록 전 군민 친절배가 운동은 계속될 것입니다.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울진’하면 ‘따뜻하고 정이 많은 곳’, ‘가고 싶고, 또 찾고 싶은 곳’, ‘힐링과 치유룰 위해 머물고 싶은 곳’이라고 자연스럽게 떠올릴 때까지, 울진이 어떤 어려움도 극복하고 번영할 수 있는 ‘높은 문화의 힘’을 가지게 될 때까지 말입니다.

2019-09-22

너의 이름은?

박근영 회사원“용왕에게 잘 보이려 토끼를 유인했던 동물은? 이적과 유재석이 결성한 듀엣 이름은?” 정답은 거북이와 처진 달팽이다. 누군가를 이렇게 부르면 동작이나 판단이 느릴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다. 이름은 이런 연상 작용을 한다. 밥을 짓고 집을 짓는 것처럼 이름도 공을 들여 ‘지어서’ 아기에게 붙여준다. 아이 인생이 이름대로 펼치길 바라는 마음이 담겨있다. 누군가의 이름을 들으면 그 의미를 해석해서 성격이나 삶까지 유추한다.살면서 나쁜 일들이 연이어 벌어지거나 이름이 특정인을 떠올려 일상이 불편할 때 운을 바꾸기 위해 이름을 새로 짓기도 한다. 이름이 내포하는 힘이 없다고 생각한다면 왜 그렇게 많은 사람이 개명을 할까? 개명의 역사는 성경에 기록되어 있을 정도로 길다.10여년 전 고용센터에 경험한 일이다. 미국발 금융위기 때문에 실업급여를 지급하는 곳이 대기자들로 가득했다. 직원들은 민원인 이름을 일일이 육성으로 불러 일을 처리하고 있었다. 시간이 갈수록 대기자들 웅성거림은 커졌고 직원들은 그 소리에 호명하는 이름이 묻힐세라 더 크게 소리쳤다. 한참을 그렇게 일을 처리하던 어느 직원이 누군가의 이름을 힘차게 부르더니 황급히 목소리를 낮추어 부르는 것이 아닌가. 맨 앞자리에 앉아있던 남자가 후다닥 창구에 가서 앉는다. 그만 그 순간만큼 나는 1만5천㎐를 듣는 돌고래 청력으로 그 이름을 똑똑히 듣고야 말았다. 그 이름은 ‘○백수’. 속뜻이야 참 좋으련만(아마도 만물의 우두머리 정도가 아닐까?) 그 자리에서 불린 이름은 누구나 생각하는 바로 그 의미로 동시에 해석됐다. 하필 이곳이 ‘누구나 생각하는 바로 그 의미’에 해당하는 사람이 오는 장소인지라 난감한 상황이었다. 모인 사람들 처지가 다 같은데도 하필이면 이름 때문에 머쓱해진 것이다. 그 신사분은 나중에 개명했을까?S는 자기 이름을 참 사랑했다. 돌아가신 아버지가 지어주었는데 의미도 좋아서 어디든 이름을 내놓길 좋아했다. 하지만 그 이름은 역술인들이 풀이를 해주거나 인터넷으로 풀이를 할 때마다 점수가 낮게 나왔다. 그 이름을 가지고서는 크게 성공을 하지도 못할뿐더러 파도 위 돛단배처럼 언제 좌초될지 모르는 위험한 이름이라는 풀이까지도 나왔다. S는 자신의 이름이 의미도 좋고 부르기도 좋은데 이렇게 근거 없는 미신에 휘둘려 바꿀 생각은 없다고 했다. S는 집이 좀 가난하고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셨다는 것 외엔 특별히 인생이 힘들거나 어려운 일은 없었다고 했다. 그러나 S는 30대 중반 항암치료를 받았다. 세 사람당 한 명꼴로 암이 흔한 세상이니 자기가 걸렸다고 해서 특별할 것은 없다고 했다.1년여 투병을 한 뒤 자리를 털고 일어나 다시 씩씩하게 일을 했다. 그 후에는 이렇다 할 일이 없었는데 40대 초반 외국에 나갔다가 교통사고를 당했다. 대한항공 프레스티지석에 누워 이송되어 올 때도 비싼 자리를 제대로 즐기지 못한 게 아쉬웠다고 천진스럽게 얘기했다. S는 다행히 다리만 동강 났다. 이렇게 객관적으로 보면 그의 삶이 결코 쉬웠던 게 아닌데 당사자는 괜찮다고 하니 결국 인생은 자기가 마음먹기 나름이라는 생각도 든다.그랬던 S가 얼마 전 암이 재발해 치료를 받고 재수술을 했다. 살면서 암과 교통사고를 몇 차례씩 겪는 사람이 흔하지는 않다. 물론 S보다 더한 사람도 많다. 그러나 작은 고난도 연거푸 들이닥치면 힘에 부쳐 무릎을 접게 된다. S는 마음 한쪽에서 인내하며 기다리던 개명의 유혹과 손을 잡았다. 이제는 아름다웠던 옛 이름을 미련 없이 털어낼 수 있다며 고통의 과거는 추억 속으로 내보내겠다고 했다.개명이 좋다, 나쁘다를 논할 대상은 아니다. 개명을 의지박약의 결과물로 매도할 필요도, 그것에 초연한 것을 대단하다 추켜세울 필요도 없다. 최소한 개명은 이전 삶을 버리고 새로운 삶을 살아보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이름을 바꾸는 행위 하나가 마음에 희망의 씨앗으로 자리 잡아 오늘을 살아낼 힘을 준다면 그것만으로 충분히 가치 있는 일이다. S도 다시 툭툭 털고 일어나 예전의 그 웃음을 찾았다. 남은 것은 건강을 마저 회복하고 새로 시작한 인생을 행복하게 즐기는 것뿐이다.

2019-09-22

김구 선생의 삭발

이 현재의 삶에서 훌륭한 사람을 찾기는 어렵다. 어딘가에 그런 분들 계시겠지만 텔레비전, 인터넷에 오르내리는 사람들 가운데에서는, 가히 모래밭에서 겨자씨 찾기다.이광수에서 안창호로 옮겨가고, 다시 안창호에서 신채호로 옮겨간 끝에 이번에는 백범 김구에 이르렀다. ‘민족의 죄인’ 이광수가 해방 직후에 백범의 일지를 정리하여 ‘백범일지’로 남겼는데, 여기에 얼마나 어떻게 그의 생각이나 판단이 개입해 있는지가 따져볼 일이다.김구는 해주 사람, 김자겸의 후손으로 양반이 몇 대를 내려온 끝에 상민이 된 집안에서 났다.‘백범일지’에 상민의 자식으로 나서 동학당이 되었다가 명성황후 원수 갚는다 하여 왜인을 처단하고 사형수가 된다. 그럼에도 어떻게 하여 천신만고 끝에 살아날 수 있었는데 그 연유가 흥미롭다. 도스토예프스키만 사형 집행 직전에 살아난 게 아니요 바로 김구 선생이 교수형 집행 직전에 살아날 수 있었던 ‘산’장본인이다. 그때 마침 서울에서 인천까지 장거리 전화가 개통되었다고 한다. 이미 김구 교수형이 결정되어 신문에까지 났다. 고종 황제께옵서 어전회의를 열어 김창수가 왜인을 살해한 것은 국제관계이니 나중에야 어찌 되었든 우선 사람부터 살려놓고 보자고 하셨다. 황제가 직접 전화를 걸어 집행 정지를 명령하였다고 한다. ‘백범일지’에서 김구 선생이 술회한다. 만약 이 장거리 전화가 개통되지 않았던들 목숨을 부지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이른바 신문명의 참 희한한 혜택도 다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목숨 살아난 김구가 파옥을 하고 무주로 도망쳐 세상 방랑에 들어서는데 어찌나 많은 곳을 돌아다녔는지, 아하, 큰 사람이 되려면 그렇게 먼 곳을 떠돌아야 하나보다 생각하게 된다.그런 김구 선생이 공주 갑사쯤 가서 어떤 사람을 만나 마곡사에 스님 되러 간다고, 같이 가서 승려가 되자는 권유를 받고 동행을 하게 된다. 신분을 감추고 이리저리 떠돌아야 하는 신세, 예나 지금이나 절집은 숨어 사는 사람들이 의지하기 좋은 곳이다.“시간이 지나서 사제 호덕삼이가 머리털 깎는 칼을 가지고 냇가로 나가서 삭발진언을 쏭알쏭알 하더니 나의 상투가 모래 위에 툭 떨어졌다. 이미 결심을 하였지만, 머리털과 같이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지지난 해에 학생들과 함께 공주 마곡사에 답사를 갔는데, 거기 김구 선생 사진이 크게 붙어 있고 그 옆에 어딘가에 앉았는 사람은 분명 이광수였다. 영웅과 ‘민족의 죄인’이 함께 동석한 희귀한 사진을 오래 쳐다 봤었다.요즘 삭발이 유행이지만, 그 많은 삭발 가운데 김구 선생의 삭발 같은 삭발은 과연 얼마나 되는가 생각해 보게 된다./방민호 서울대 국문과 교수 /삽화 = 이철진한국화가

2019-09-19

충신(忠臣)과 충언(忠言)

중국 고사에 잘 등장하는 충신으로는 백이(伯夷)와 숙제(叔齊)를 들 수 있다. 주나라 무왕이 은나라를 토벌하자 “천자를 공격한 신하는 섬길 수 없다”며 두 사람은 수양산으로 들어가 고사리만 먹다 굶어 죽는다. 굶어 죽어도 신하된 도리는 다해야 하는 것이 충신이다.역사 속의 충신은 몇 가지 특징이 있다. 먼저 바른말을 할 줄 안다. 임금이 올바른 정치를 하지 못할 때는 목숨을 걸고 바른 말을 하여 정사가 옳게 돌아가게 한다. 자신의 안위는 물론 돌보지 않는다.특히 충신은 한 나라가 망할 때 두 임금을 섬기지 않는 절개를 지킨다. 고려 말 정몽주가 대표적이다. 또 충신은 검소하고 청렴하다. 조선조의 최장수 재상인 황희 정승은 소신과 원칙을 견지한 인물로도 유명하지만 청백리로서도 더 잘 알려져 있다. 양녕대군의 세자 폐위를 끝까지 반대하다 유배를 당했지만 그는 오히려 세종으로부터 특별한 대우를 받으며 24년간 재상의 자리를 유지한다. 그의 탁월한 식견과 사리분별력 있는 충언 그리고 청렴성 등이 그를 명재상으로 있게 했다.충신과 간신(奸臣)은 항상 대립적 관계다. 한쪽은 국가를 최고의 가치로 생각하지만 한쪽은 자신의 이익이 먼저다. 공자는 마음이 음험하고 혜택만 누리는 사람 등 간신의 유형을 다섯 가지 언급했는데, 예나 지금이나 시각이 비슷하다. 중요한 것은 충신을 등용한 임금은 성군(聖君)으로 이름을 날렸다는 역사적 사실이다. 지금의 대통령은 옛날의 임금과 같다. 대통령이 올바르게 국사를 하도록 목숨을 걸고 충언하는 신하가 많아야 나라가 잘 된다. 조국 장관 임명으로 바깥 민심이 소란한데도 대통령의 귀를 열어 줄 충신은 없는지 궁금하다. 몸에 좋은 약은 원래 쓴 법이다./우정구(논설위원)

2019-09-19

삭발투쟁 뒷담화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자유한국당이 문재인 대통령을 향해 조국 장관의 파면을 촉구하며 릴레이 삭발투쟁을 벌여 정치권의 핫이슈가 되고 있다. 19일에도 김석기·송석준·이만희·장석춘·최교일 의원 등 자유한국당 현역 의원 5명이 조국 법무장관 사퇴를 요구하며 삭발했다. 황교안 대표가 16일 청와대 앞에서 삭발한 이후 현역 의원만 8명이 릴레이 삭발했다. 이로써 릴레이 삭발에 동참한 의원은 이주영·심재철·박인숙·강효상 의원을 비롯해 9명이 됐다. 원외에서도 17일 김문수 전 경기지사, 송영선 전 의원이, 18일 차명진 전 의원, 19일 김기현 전 울산시장이 삭발했다. 황 대표보다 먼저 삭발을 한 박인숙 의원과 전직 의원까지 포함하면 한국당에서 이날까지 총 14명이 삭발했다.하지만 며칠째 삭발이 이어지면서 아이스버킷챌린지 같은 이벤트로 희화화하고 있는 것은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특히 원내투쟁을 이끄는 나경원 원내대표가 삭발을 않고 있는 것을 겨냥, “언제 삭발하는지 두고보겠다”며 릴레이 삭발을 ‘조롱’하는 글마저 올라오고 있다. 또 정치권 일각에서는 자유한국당 의원들의 삭발을 ‘공천용 쇼’로 치부하는 시각도 있다. 민주당 이해식 대변인은 “한국당의 길거리‘쇼 정치’”라고 비판했고, 박찬대 원내대변인은 “(당 지도부에)‘공천 눈도장’을 찍기 위한 행위 아닌가”라고 대놓고 야유를 퍼부었다. 가장 적나라한 비판을 내놓은 것은 바로 민주당 정청래 전 의원. 정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황교안 대표가 삭발한 이유를 세가지로 들었다. 우선 조국 대전으로 얻은 게 없는 자유한국당의 지지율이 오르지 않자 당대표로서 뭔가를 보여줘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작동됐을 것이고, 국회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대한민국 정치판에서 정기국회가 다가옴에 따라 삭발이라는 극단적인 투쟁을 통해 마이크를 잡을 필요가 있었을 것이라는 게 두번째다. 세번째 이유로 이미 몇몇 여성의원들이 감행한 삭발이지만 “따라쟁이”라는 오명을 쓰더라도 별달리 뾰족한 투쟁방법이 없었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그는 삭발은 패착이라고 평가절하했다.‘삭발(Tonsure)’은 ‘큰 가위’라는 뜻의 라틴어‘Tonsura’에서 유래됐으며, 중세에 성직자와 세속인을 구별하는 기준이었다. 사제가 세속적인 죄를 범하지 못하도록 하는 역할을 했다고 한다. 불교에서는 오늘날에도 승려로 입문하는 의식을 치를 때 삭발을 하며, 그 후에 자격을 제대로 갖춘 승려가 될 때 다시 삭발식을 거행한다. 불교의 출가 수행자가 머리를 깎는 것에는 하나는 다른 종교의 출가 수행자와 모습을 다르게 하기 위함이요, 또 하나는 세속적 번뇌를 단절함을 뜻한다.그런 면에서 보면 정치권에 부는 삭발열풍은 종교적인 의미와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주변사람들에게 자신의 결의를 보여주기 위한 의식의 일환으로 해석할 수 있겠다. 어떻든 삭발투쟁은 야당답지않게 뜨뜻미지근한 대여투쟁으로 맥빠져 있던 자유한국당이 그나마 결의에 찬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만들어준, 또 하나의 정치투쟁 방식으로 자리잡게 된 듯 싶다.

2019-09-19

가을의 길목에서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추석이 지난 산천초목에 가을빛이 깊어간다. 지난 여름의 열기와 격정을 가라앉히고 뭔가 생각에 잠긴 표정이다. 나무와 풀들에게도 가을은 사색의 계절인가 보다. 높푸른 하늘 아래 갈대와 억새가 패고 드넓은 들판 가득 벼들이 영글어간다. 한결 시원해진 바람을 온몸으로 받으며 흰 구름 떠가는 하늘을 바라보면 마음도 따라서 청명해진다.인간은 생각하는 동물이라 한다. 하지만 다른 동물들에게도 어느 정도의 사고능력은 있는 것 같으니, ‘자기 존재에 대해 생각할 줄 아는 동물’이라는 말이 더 적절한 인간의 정의가 될 것이다. 자신을 성찰하고 반성할 줄 아는 능력이야말로 다른 동물과 구별되는 인간의 특성이 아니겠는가. 인간이 인간으로 살기 위해서 끊임없는 자기성찰을 필요로 하는 것은 문명화된 사회란 단순한 본능만으로는 영위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회 전체에 대한 인식과 나와 타인의 관계에 대한 성찰이 갖추어져야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자격이 생기는 것이다. 지나친 이기주의나 독선은 사회에 해악을 끼치게 마련이고 그만큼 인격적 결함이 될 수밖에 없는 일이다.우여곡절 끝에 법무장관으로 임명된 조국이란 사람을 둘러싼 의혹과 논란이 날로 확산되는 형국이다. 수사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검찰과 그것에 제동을 걸려는 정권이 존망을 건 힘겨루기를 하고, 그 양자를 비호하고 지원하는 세력들도 편을 갈라 난타전을 벌이고 있다. ‘조국사태’로 일컬어지는 이 난국은 한 고위층 가족의 일탈뿐 아니라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는 도덕적 불감증이 어느 정도인지를 짐작케 하는 사례인 것 같아 씁쓸함을 금할 수 없다. 학벌이든 지위든 최고의 위치에 있는, 소위 지도층 인사들의 사리사욕을 위한 곡학아세에다 지식을 악용한 편법과 탈법도 서슴지 않는 일탈행위는 많은 사람들에게 분노와 허탈감을 안겨 준다. 모쪼록 이번 사태가 사필귀정으로 끝이 나서 우리나라가 새로워지는 계기가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부부가 다 일류대학을 나와서 유학을 하고 박사학위를 받아 교수가 될 정도면 대한민국 최고 수준의 학벌을 갖춘 집안이다. 그런 지위에까지 올랐다면 학자로서 그리고 교육자로서 우리 사회의 가장도 정의롭고 덕망 있는 지성이요 사표로 존경을 받아야 마땅한 일 아닌가. 교육제도에 모순이 있으면 당연히 내 아이에게는 그 길을 걷게 하지 말아야 할 일이고, 더 이상 재물이나 권세 따위 기웃거리지 말고 학문 연구와 교육에만 전념을 한다면 오죽이나 좋은가.그들 가족이 야기한 사태로 학계와 사회에 끼친 해악이 얼마인데, 장관까지 되어서도 교수직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욕심도 그악스럽다. 도대체 학생들이 자신에게서 무엇을 보고 배우라는 것이며 사회에 나가서는 어떤 역할을 하길 바란다는 것인가. 사람이기를 포기하지 않았다면 어찌 그토록 자기성찰도 반성도 없는 후안무치일 수가 있는가. 이미 사태는 돌이킬 수 없는 파국으로 치닫고 있는 것 같다. 남은 것이라고는 갈 데까지 가보자는 오기 하나 뿐이라면 인생이 너무 허망하지 않은가.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다 놓아버리고, 국민들 앞에 참회하기 바란다. 그래야 사람이고 그것이 사는 길이다.

2019-09-19

트위터(Twitter) 정치

서의호 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미국 트럼프 대통령은 ‘트위터 대통령’이라고 불린다. 정책을 발표할 때 트위터를 종종 이용하기 때문이다. 참모진이나 장관들과 이야기되지 않은 것도 먼저 트위터로 발표하기도 한다. 심지어 장관의 해임이나 임명도 트위터로 하는 경우도 있어 정말 트위터광이라고 불릴만하다. 한국에서도 요즘 화제의 조국 법무부 장관이 과거 교수 시절 그 당시 정부나 여당을 공격하면서 주로 사용한 무기가 트위터였다. 그래서 수만개의 그의 메시지가 트위터에 남아있다고 한다. 트위터는 폐쇄하거나 트윗을 지워도 이미 리트윗된 메시지가 퍼져있어 주워 담기가 힘든 속성이 있기 때문이다.그래서 “조국 교수가 조국 장관과 다투고 있다”라는 조크도 나온다. 과거 정부나 여당을 공격하기 위해 트위터에 올렸던 많은 글들이 지금 조국 장관 자신을 향해 쏟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트위터의 전신은 2005년 설립된 팟캐스트 서비스업체인 ‘오데오(Odeo)’다. 오데오는 초기 시장의 선구자 역할을 수행했지만 애플이 팟캐스트 분야에 진출하면서 당시 CEO였던 에번 윌리엄스는 다른 프로젝트들을 모색하기 시작하였고 임직원들이 내놓은 새로운 아이디어가 트위터였다. 공원 어린이용 미끄럼틀에 앉아 멕시코 음식을 먹다가 ‘소그룹 내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려주는 단문 문자메시지’ 서비스를 해보는 것이 어떠냐는 아이디어가 나왔다고 한다.트위터는 2006년 본격적으로 서비스가 시작되었고 미국 텍사스주 오스틴에서는 매년 대중음악과 영화 웹 등의 해당 분야에서 발전에 기여한 사람들에게 상을 수상해주는 SXSW(South by southwest Web)가 열리는데, 이듬해인 2007년 트위터가 웹부문에서 수상을 하게 되면서 세상에 알려지게 되어 기존 서비스를 시작한 페이스북과 함께 사회연결망 서비스의 쌍두마차를 이루게 된다.근대 산업혁명을 1차에서 4차까지 분류하듯이 인간이 의사를 표현하는 방식도 1차에서 4차까지 분류해 볼 수 있다. 1차는 광장이나 카페에 모여 이야기하는 방식이다. 2차는 벽보를 붙이거나 신문에 의견을 내던 방식이다. 3차는 방송이나 TV 등을 활용하는 방식일 것이다. 그리고 4차는 트위터, 페이스북같은 SNS를 이용하는 방식일 것이다.그런데 트위터 정치는 던지는 트윗과 비야냥거리는 트윗으로, 어지롭고 매정하다. 인간미를 찾기가 쉽지 않다. 어떤 합의점을 찾기보다는 자기 주장만을 툭툭 내 던지는 그런 형태이다.광장이나 카페에 모여 서로 마주보고 이야기하던 1차 의사표현 시대가 그리워지는 건 필자만의 생각일까?트위터 등 SNS 정치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그건 길거리에서나 전철 안에서도 스마트폰만 들여다 보고 SNS만 읽고 있는 ‘독선과 단절의 시대’의 상징일듯하다. 댓글들은 독설로 가득하다.조국 사태를 맞이하여 트위터 정치의 매정함을 보면서 또 하나의 옛것이 그리워지는건 웬 일일까? 가끔씩 옛날로 돌아가고 싶다.

2019-09-19

빛과 그림자

캔디 챙은 동네 빈집 담벼락을 빌려 지나가는 사람이 죽기 전에 꼭 하고 싶은 소망을 적는 것 일종의 버킷 리스트를 작성하는 칠판을 만듭니다.뉴욕 한복판에서는 ‘살아가면서 가장 후회스러운 일을 적는 코너’도 있었습니다. 여기 적힌 수많은 대답의 공통점은 무언가를 시도하지 않았던 자신을 자책하는 내용이었습니다.의학 공부를 시도하지 않은 것, 꿈을 좇아 따라가지 않은 것, 그녀에게 사랑 고백을 하지 않은 것, 내 안의 예술가적 기질을 무시한 것, 더 나은 친구가 되어 주지 못한 것. 무언가 시도하지 못하고 훗날 큰 후회로 남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실패에 대한 두려움 아닐까요?의학 공부에 도전했다가 실패할 것을, 꿈을 따라가면 생계가 어려울 것을, 사랑을 고백했다가 버림받을 것을, 예술가로 살려 했다가 영감이 고갈돼 실패자가 될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우리는 선뜻 심장이 뛰는 삶에 도전장을 내밀기 어려워합니다.오래전 도올 김용옥의 미학 강의를 우연히 EBS에서 듣다가 무릎을 친 경험이 있습니다. 인간이 극한의 아름다움을 만나게 되었을 때,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아느냐는 질문이었습니다. 지고의 예술품이나 감탄을 자아내는 풍광을 만나면 누구나 감동하고 전율하고 힘을 얻습니다. 그런데 10분만 지나면 대부분 지루해하기 시작한다는 것이지요.톨스토이는 ‘안나 카레니나’를 통해 같은 말을 합니다. “인생의 변화, 인생의 매력, 인생의 아름다움, 그 모든 것은 빛과 그림자로 이루어져 있기 마련이야.”빛이 있으면 그림자가 있고 낮이 지나 밤이 오는 것을 어색하지 않게 여기는 것. 이 과정이 삶의 진리임을 받아들일 수 있다면, 우리는 무언가 시도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습니다. 카뮈는 말합니다. “깊디깊은 겨울에 결국 내 안에 아무도 꺾을 수 없는 여름이 도사리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대표

2019-09-19

경험과 기억

김규종 경북대 교수·노문학얼마 전 ‘무등공부방’에서 장편소설 ‘빨치산의 딸’(1990)을 쓴 정지아 작가의 강연을 들었다. ‘기억’에 대한 그녀의 생각은 단출하되 선명하다. 빨치산이었던 어머니가 올해로 94세가 되었는데, 그이의 기억에 자리한 장면은 200개 남짓이라 한다. 90년 가까운 세월을 살아온, 그것도 한반도 남단의 피어린 상처를 경험한 인간이 체화한 기억의 총량이 그것뿐이라니.“여러분도 살아온 날들의 기억을 헤아려 보세요!” 작가의 말이 새삼스레 다가온다. 대단한 기억력은 아니지만, 나는 세 살적부터 경험한 기억에서 출발할 것이다. 문제는 기억이 반드시 정확하지 않으며, 기억이 경험의 총량을 보존하지도 않는다는 자명한 사실이다. 아쿠타가와 류노스케는 단편소설 ‘덤불 속’에서 인간의 선택적 기억과 경험의 왜곡을 적나라하게 들춰낸다. 그것을 바탕으로 구로사와 아키라는 영화 ‘라쇼몽’을 만들 수 있었다.그럼에도 기억의 힘은 단단하고 강력하다. 설령 왜곡되고 굴절된 기억이라 하더라도 기억이 가지는 힘은 대단하다. 어쩌면 그래서 아흐마토바는 “태양에 관한 기억이 흐려져 간다”고 아쉬워했는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남자와 엮이지 않은 청춘의 아쉬움과 미련을 감상과 낭만의 영탄으로 교직(交織)한 아흐마토바. 사랑의 올가미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 20대의 지독하게 아름다운 슬픔과 기억을 앙상하게 남은 나뭇가지 사이로 퍼져 나가는 햇살에 의지한 그녀.무상한 자연이 늦가을에서 겨울로 접어들 무렵 페테르부르크의 운하를 서성대면서 아련하도록 애틋한 지난 일을 추억하는 아흐마토바. 그녀를 둘러싼 자연과 사물의 변화에 눈길을 주면서 자신의 헛헛한 내면세계를 돌이키는 시인. ‘그의 아내가 되지 않았음’을 그녀는 오히려 다행으로 여기지만, 한여름을 시뻘겋게 달구던 태양에 관한 기억은 점차 시들어간다. 암흑과 겨울이 하룻밤 사이에도 닥칠 것을 예감하는 우울하고 고적(孤寂)한 아흐마토바. 그녀는 어떤 경험을 ‘그’와 공유하고 있을까?! 언제 어디서 그와 만나고, 어떤 과정을 거쳐 그와 작별하여 오늘에 이른 것일까. 그녀가 기억하는 경험의 무게와 색깔은 그가 경험한 사랑의 색깔과 무게와 동일한 것일까. 아마 아닐 것이다. 그녀처럼 그 역시 선택적 기억과 그에 따른 독자적인 경험의 세계에 자리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우리가 기억의 세계에 빠져드는 순간, 우리가 경험한 모든 것은 각자도생의 길을 걷기 마련이다.‘나한테는 얼마나 많은 기억이 내재하고 있을까?!’ 하는 궁금증이 찾아든다. 언젠가 나 또한 켜켜이 쌓여있는 기억의 씨줄과 날줄을 찬찬히 엮고, 상상력과 통찰에 기초하여 기나긴 이야기를 풀어볼 요량이다. 문학은 기억이 전부는 아니다. 하지만 기억이 배제된 문학은 없다. 그런 까닭에 공상과학소설과 무협은 아직도 문학의 범주 밖에서 맴돌고 있다.기억을 배제하면 우리는 더 이상 우리가 아니다. 누구에게나 잊을 수 없는, 죽어도 잊히지 않을 경험과 기억이 있다. 그것의 색깔과 무게가 어떠하든 우리는 최후의 그날까지 기억과 함께한다. 그래서다. 우리가 과거를 물어야 하는 까닭은.

2019-09-18

진보 386세대 그들은 누구인가

박준섭 변호사386세대는 60년대에 태어나서 80년대에 대학을 다닌 이들을 일컫는다.386세대는 20대 때 독재에 대항하면서 목숨을 걸고 지하활동과 야학, 학회활동을 통하여 조직력을 키웠고, 이를 바탕으로 시민들과 연대해 마침내 절차적 민주주의를 성취했다.어떤 사람들은 과거에는 6·3세대와 민청학련, 긴급조치 세대가 민주화 선배세대로 있었고, 같은 시대에는 시민들의 참여를 통해 비로소 87년의 민주화를 이룰 수 있었으므로 민주화의 영광의 열매를 386세대가 독식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하기도 한다.그러나 386세대는 도시 빈민 및 노동자계층과 중산층의 연대를 통해 민주화를 주도적으로 이끈 세대만은 분명하다. 그들 가운데 진보진영은 집단적으로 공장으로 진출해 스스로를 ‘하방’ 시키면서 평등을 몸소 실천한 세대이다. 이들은 산업화 과정에서 독재화된 권력에 대항하면서 러시아와 중국, 북한으로부터 들여온 혁명적 사회주의를 이념적 도구로 사용했다. 이 세대는 90년대 구 소련이 몰락하자 집단적으로 전향하거나 전환했다.1997년 IMF를 통하여 대한민국이 신자유주의에 편입되는 과정에서 그들의 선배들은 주류에서 탈락됐고, 그들의 후배들은 아직 주류로 진입하지 못하면서 생긴 공백 상태가 오랫동안 계속됐다. 그들은 신자유주의 경제질서에 가장 강력한 비판자들이었으나, 역설적이게도 IMF사태 이후의 신자유주의 97경제체제가 그들을 일찍 사회의 주류에 올려놓았고 이후로도 20년 동안이나 기득권을 유지시켜주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진보 386세대는 노무현 행정부 때 국가정책의 결정권을 행사했으나, 정책적으로 무능하다고 의심받았고 패권적 권력을 추구하다가 몰락해 스스로 ‘폐족’선언을 하면서 사라졌다가 10년만에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사건 때 다시 전면에 등장했다. 국민들은 산업화, 민주화가 성취된 이후에 이명박, 박근혜 행정부의 10년이 대한민국의 미래를 만들기에는 너무 수구적이고 권위주의적이었으며, 무능하고 욕심 많은 집단의 정체나 퇴보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런 이유로 국민들은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 이후에 문재인 대통령과 함께 진보 386세대를 다시 소환했다.이제 국민들은 광복 된지 70년이 지난 우리나라가 산업화·민주화를 거치는 동안에 왜곡된 국가구조를 그들이 새롭게 혁신해 주기를 바랐다. 그런데 국민들은 이번 조국 장관의 임명과정을 지켜보면서 그 뒤에 있는 그림자를 슬쩍 보았다.니체의 말처럼 괴물과 싸우다 괴물이 되어 버린 386세대라는 괴물의 그림자를. 평등과 기회균등을 외치면서도 자신이 가진 모든 기득권을 사용하여 자신의 권리로 만드는 탐욕을 부렸으며 어쩌면 이제는 낡은 사상과 방법일 지도 모르는 것을 옳다며 자신들의 장기인 조직과 프로파간다를 통해 국민들에게 강요하고 반대하는 사람들과 싸움만 일삼는 괴물 말이다.국민들은 이제 자신들이 기득권자들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책임윤리를 통해 절제하고 희생하는 법을 모르는 괴물을 통제하고 다스려야 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2019-09-18

꿈의 나라, 몽상가의 땅

2017년 할리우드 최대 화제작은 ‘라라랜드’ 였습니다.골든 글로브 7개 부문, 아카데미상 6개 부문을 석권한 수작입니다. 3천만 달러 저 예산 영화로 막대한 수익을 올리기도 했습니다.라라랜드(La La Land)는 ‘꿈의 나라’로 사전에 나오기도 하지만, 실제로는 비현실적 세계라는 의미가 강합니다. 몽상가의 땅 정도 뜻이겠지요.영화는 불가능한 꿈을 위해 분투하는 아름다운 이야기를 보여줍니다.LA는 4월 어느 날 ‘라라랜드 데이’를 선포하고 시장이 피아노로 영화 OST를 연주할 만큼 반향을 일으켰죠. 재즈 음악도 환상적이고 화면 구성이나 카메라 앵글, 의상, 색상 등을 유심히 보면 재밌습니다.배우를 꿈꾸며 LA에 온 미아. 마음껏 재즈를 연주할 수 있는 바(Bar)를 꿈꾸는 세바스찬. 두 사람의 꿈과 사랑 이야기입니다. 미아가 오디션 보는 장면에서 이런 노래를 부르지요.“제 이모는 파리에서 산 적이 있어요/ 여행 중 일을 얘기해 주었죠/ 맨발로 강에 뛰어든 적이 있대요. (중략) 그 열정을 기억해요/ 그녀는 말했어요/ 그런 정신 나감이 세상을 보게 해 준다고/ 세상과 거꾸로 간다 해도/ 그 작은 조약돌이, 화가가, 시인이, 배우들이 말이죠./ 꿈을 꾸는 그댈 위해/ 비록 바보 같다 해도/ 상처 입은 가슴을 위해/ 우리의 시행착오를 위해…이모는 꿈꾸는 바보의 삶을 미아에게 보여줍니다.라라랜드는 이 영토 문법과 논리로 해석할 수 없는 저 영토 세상을 꿈꾸는 자들의 나라죠. 안전과 안정, 움켜잡은 것을 지키기 위해 꿈을 잃어버린 삭막한 세상에서 이해받을 수 없는 몽상가의 삶입니다.세상은 이런 정신 나간 라라랜드 시민들이 있기에 한 뼘씩 앞으로 전진합니다. 삶에 지쳐 꿈을 놓아버리고 먹고사는 일에 지쳐 방향과 기력을 잃었다면, 라라랜드 돈키호테 삶이 작은 위로가 되면 좋겠습니다./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대표

2019-09-18

새 공보준칙의 허실

공보준칙은 공적으로 보도하는 것에 대한 기준이 되는 규칙을 말한다. 조국 장관 인사청문회를 계기로 피의사실 공표가 논란을 불러일으킴에 따라 공보준칙 개정이 관심사로 떠올랐다. 새 공보준칙인‘형사사건 공개 금지 등에 관한 규정(안)’은 검찰 수사과정에서 서거한 노무현 전 대통령 사건을 계기로 2010년 마련된‘인권 보호를 위한 수사공보 준칙’을 대체하는 새로운 법무부 훈령이다. 이는 피의자에게 불리한 일방적 혐의사실 등이 언론을 통해 무분별하게 유포돼 피의자가 재판도 받기 전에 수사과정에서 이미 범죄자로 확정되고마는 폐해를 근절하자는 취지로 마련됐다. 다만 새 훈령은 국민의 알권리보다 무죄추정의 원칙 등에 기반해 공소제기 전 수사상황이나 혐의사실 등 피의사실 공표를 최대한 금지하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검찰도 피의사실 공표에 대해 엄격하게 제한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실제로 최근 울산지검이 울산지방경찰청 소속 경찰관 2명을 피의사실 공표죄로 입건한 바 있다. 당시 울산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는 약사면허증 위조 혐의 사건을 검찰에 송치하면서 수사 결과를 보도 자료로 언론에 배포했는데, 검찰이 이를 두고 재판에 넘기기에 앞서 피의사실을 알렸다며 문제삼은 것이다. 경찰이 사건을 마무리하고 송치하는 단계에서 수사 결과를 브리핑하고 보도 자료를 배포하던 일반 관행에 제동을 건 셈이다.문제는 이로 인해 일반에 알려야 예방 가능한 보이스피싱·이웃간 범죄·부동산 사기·인터넷 물품 사기 등 생활밀착형 범죄 정보마저 묻힐 우려가 있다는 점이다. 새 공보준칙이 인권을 보호한다니 부작용을 없애는 방향으로 바뀌면 좋겠다. 또 누군가에게 특혜가 되지도 않는다니 반대할 일도 아니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19-09-18

확인했어?

장규열 한동대 교수·언론정보문화학부사람은 이기적이다. 나빠서 그런 게 아니라 바빠서 그렇다. 내 주변만 걱정하고 살아도 시간이 모자란다. 생각거리가 많고 걱정거리도 많다. 청년은 입시와 취업에 목이 마르고, 어른은 가계와 생업에 목숨걸고 산다. 하루하루가 전쟁같은 판에 남을 생각할 겨를이 없다. 나와 내 가족 챙기기도 만만치 않은 세상에 남들과 사회를 염려할 여유가 있을 턱이 없다. 그럼에도 우리는 남북대화가 궁금하고 한일관계가 걱정이며 북미관계도 안타깝다. 나아가 4대강사업에도 관심이 있고 지구온난화도 띄엄띄엄 알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말투가 마음에 거슬리고 아베 총리의 망언에 핏대가 선다. 온갖 사건사고에 마음이 쏠리고 사회적 거대담론에도 제법 호기심이 발동된다. 어떻게 그렇게 됐을까?매우 이기적이긴 하지만 또 한편 끊임없이 무엇이라도 알아야 하는 우리는 어떻게 그 모든 것을 알게 되었을까. 언론(言論). 언론의 유익은 상상 이상으로 크다. 언론이 있어 나라와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수 있고, 언론이 있어 이웃과 세상이 사는 모습을 알게 된다. 언론이 전하지 않았으면 알 길이 없었을 뉴스가 하루에도 온갖 미디어에 한가득 실린다. 권력을 감시하고 정보를 전달하여 시민이 적절하게 판단하도록 돕는 언론은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버팀목이 아닐 수 없다. 알아야 결정할 것이므로. 미디어환경이 급격하게 변해 가지만, 언론의 할 일은 변하지 않는다. ‘시민으로 알게 하라’.시카고 트리뷴(Chicago Tribune)지 본사 복도에 현수막이 붙었다. 그것도 대문자로만. ‘엄마가 널 사랑한다 말한다면, 그거 확인해! (WHEN YOUR MOM SAYS SHE LOVES YOU, CHECK IT OUT!)’ 취재와 보도에 나선 기자들이 분명히 해야 할 일은 ‘확인하고 확인하는’ 일이라는 의미. 당연한 사안이라도 기자가 직접 확인하기 전에는 한 줄도 쓰지 말라는 간곡한 당부. 취재원으로부터 보내오는 보도자료는 그들 입장에서 적혔을 게 너무나 뻔하지 않은가. 보도자료는 기사가치를 결정하고 취재에 나설 시발점이기는 해도, 그 자체로 기사는 될 수가 없다. 기자의 이름을 걸며 적어 내릴 기사는 기자가 손수 확인한 내용을 토대로 작성되어야 한다. 검찰이 던져주는 단서가 기사의 줄거리가 되거나 포토라인에 선 피의자에게 묻는 일로 취재를 대신하는 일은 일선기자라 불리기에 아직 흡족하지 못하다.언론인 빌 코바크(Bill Kovach)와 톰 로젠스틸(Tom Rosenstiel)은 ‘저널리즘의 본질은 확인(verification)에 있다’고 하였다. 사실을 일어난 그대로 확인하는 일이야말로 언론의 가장 중요한 기능이라는 생각. 팩트가 기사의 토대가 될 때에만 진실에 접근할 수 있다. 팩트는 정확해야 하고 충분해야 하며 공정해야 하고 투명해야 한다. 누군가 던져준 사실과 문건은 기자가 확인하기 전에는 아직 취재를 위한 재료일 뿐이다. 시민의 민주역량은 ‘언론의 확인’에서 시작한다.언론이 민주주의를 완성한다.언론이 민주주의를 그르친다.

2019-09-18

제1차 산업혁명과 안젤루이스의 종

제1차 산업혁명, 이 말을 들어보지 못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채 일곱 글자 밖에 되지 않는 이 단어는 많은 것을 담고 있다. 먼저 ‘제1차’란 산업혁명이 여러 개로 나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혁명’이란 기존의 삶의 방식을 완전히 쓸어 가버리는 쓰나미와도 같은 거대한 변혁이다. 산업 혁명이라는 용어는 프랑스의 학자들이 가장 먼저 사용했다고 하지만 일반화된 것은 영국의 경제사가인 아널드 토인비가 영국경제발전을 설명하는 과정에서였다고 한다. 이후 이 용어는 보다 광범위하게 적용되어왔다. 이러한 산업혁명은 ‘농경’ 중심의 사회를 ‘산업’ 중심의 사회로 바꾸어 놓았다.동서양을 막론하고 인류는 삶의 중심에는 농업이 있었다. 땅에 작물을 심고 그것을 가꾸어 수확하는 삶, 이것이 모든 인류의 공통된 삶의 방식이었다. 농업 중심의 사회에 산다는 것은 우리의 문화 즉 삶의 방식 역시 여기에 맞춘다는 것이다. 문학, 예술, 음악 등은 농업과 그러한 농업을 가능케 하는 자연을 중심소재로 삼았다. 릴케의 ‘가을’, 드뷔시의 ‘목신에의 오후’와 같은 시와 음악들이 그것이다.또한 이것은 우리의 사고에도 영향을 미친다. 아침에 해가 뜨면 들에 나가서 일을 하고 해가 지면 아무 것도 보이지 않으므로 집으로 돌아온다. 이렇게 자연환경에 인간의 삶을 맞춘다. 변화하는 자연에 맞춰 옷을 입고, 제철 음식을 먹으며 자연의 순환을 인식하게 된다. 나아가 자연을 순환시키는 정체 모를 힘에 대해 생각하게 되고 인간의 삶 역시 그러한 순환적임을 인식하게 된다. 자연의 순환이 이미 정해진 것처럼 거부할 수 없는 숙명과 운명을 받아들이게 된다.감자를 심으면 감자가 자라고, 보리를 심으면 보리가 자라는 것을 보게 된다. 콩 심은 데 팥이 나는 일은 없고 불을 때지 않은 굴뚝에서 연기가 나는 일은 없다. 콩을 심으면 그에 비례해서 콩이 나는 것이지 이의없을 만큼 적거나 터무니없이 많은 수확을 거둘 수 없다. 뿌린 대로 거두리라는 것, 원인에는 그에 합당한 결과가 따른다는 인과론적 세계관이 자리잡게 된다. 운명론, 인과론은 농경중심사회에서 경험하고 배운 것들에서 기반한 지식이며, 이것이 당대의 종교와 윤리로 자리 잡았다.산업혁명과 함께 농업이 이룩한 삶의 방식 역시 사라진다. 사람들은 들에 나가서 일을 하지 않고 공장에서 일을 한다. 낮에도 일을 하지만 밤에도 일을 하기도 한다. 밤에도 일을 하려면 어둠을 극복해야 했다. 전기와 전구는 이런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출현한다.자신이 일하는 논과 밭을 중심으로 농촌에 드문드문 집을 짓고 살았던 사람들은 공장 근처로 몰려 거대한 규모의 집성지를 이루게 된다. 이러한 집성지에 새로운 공장이 들어선다. 왜냐하면 인력을 구하기 쉽기 때문이다. 다시 여기로 사람이 모이고, 또 그런 사람을 따라 공장이 지어진다. 공장들이 대규모로 들어서고 인간의 규모도 커져 거대한 도시를 이루게 된다.조용하고 따분한 농촌과 달리 도시는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 시끌벅적하고 야단스러운 일들이 매일 같이 일어난다. 인간보다 자연을 중심으로 삼았던 예술은 이제 도시와 그곳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에 집중하게 된다. 도시의 사람들은 공장에서 스스로 물건을 만들어 낸다. 운명보다는 개인의 역량을 중시하게 된다. 개인은 노력에 비례하여 결과를 얻기도 하지만 어떤 사람은 우연히 성공을 이룩하기도 한다. 우연히 사람을 만나 우연한 일을 경험하게 된다. 이제 사람들은 필연보다는 우연을 더 믿게 된다.산업은 농업의 자리를 차지하고 군림하며 인간을 산업에 맞게 개조한다. 인간은 더 이상 운명과 필연에 매달리지 않는다. 인간은 자연의 섭리에 저항하며 스스로의 운명은 스스로 헤쳐 나가고자 한다. 프론티어 정신! 산업사회는 이것을 종교처럼 섬기고 윤리규범처럼 따르고자 한다. 산업혁명은 대륙의 한 구석에서 시작하여 이제 전 세계로 들불처럼 번져나간다.‘만종’으로 널리 알려진 밀레의 ‘안젤루이스의 종’이라는 그림이 있다. 넓은 들판, 어둠이 서서히 다가오는 시간, 멀리 교회에서 종이 울려 퍼지면 일을 마친 농부 부부가 기도를 드린다.공강일 서울대 강사·국문학기도의 내용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 수 없으나, 그들 가운데 놓인 감자바구니를 통해 일용할 양식을 주신 것에 대한 감사하는 것이리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이 그림을 엑스레이로 촬영해 본 결과 밀레가 처음부터 감자바구니를 그린 것은 아니라고 한다. 저들 사이에는 감자가 담긴 바구니가 아니라 강보에 싸인 아기의 시체가 놓여 있었다고 한다. 농부 부부는 낳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아기를 묻기 위해 들판으로 나왔던 것이다. 아기를 묻기 전 그들은 기도를 드렸을 것이다. 그들이 경건하고 한편으로는 슬퍼 보이는 것은 이 때문인지 모르겠다.이 그림이 그려진 것은 사실 1857년 즈음이다. 영국에서 시작된 산업혁명은 물이 파문을 일으키듯 유럽대륙으로 번져나갔다. 이 그림과 산업혁명의 전파시점이 유사한다는 것은 공교롭게 느껴진다. ‘안젤루이스 종’에서 보인 농부와 그의 아내의 애도는 이제 저물어가는 농경 사회에 대한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2019-09-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