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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가계 빚과 나라 빚

2013년 대법원은 “부부 사이에 남는 게 빚밖에 없어도 나눌 것은 나눠야 한다”는 요지의 내용으로 판결을 했다.부부라면 빚이든 재산이든 공동 책임이 있다는 양성평등 의식을 강조한 판결로 유명하다. 그러나 한편으로 보면 빚에 대한 우리 사회의 책임을 좀 더 분명히 한 판결이라고도 볼 수 있다.한국 경제에 부채가 빛의 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2018년 말 우리나라 가계 빚은 1천534조 원에 달했다. 2007년 631조 원과 비교하면 무려 두 배 이상으로 늘어난 규모다. 국민 10명 중 4명이 부채를 보유하고 있다.자본주의 경제에서 빚은 필연적 유통 구조라 한다. “자본주의가 빚을 먹고 산다”는 말은 이런 뜻의 의미다. 은행은 개인이나 기업에 빌려준 돈의 이자로 수입을 올리고, 돈을 빌린 사람은 그 돈으로 재산을 불려나간다.“돈은 빌려 써야 제 맛이 난다”는 것도 이런 유통구조 때문에 생긴 풍자어다.빚에 대한 잘못된 인식도 한몫 한다. “빚도 재산이다”라고 한 것이나 “빚지는 것도 능력이다”는 말이 대표적이다.빚이 우리 경제 흐름에 중요한 입장에 있지만 빚이 커지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 결코 아니다. “빚이 약이 되느냐 독이 되느냐”는 빌린 돈을 얼마나 잘 쓰야 하는데 달려있다.요즘 세상에 집을 사는데 빚내지 않는 사람 있을까만은 빚은 감당할 만큼 쓰는 지혜가 있어야 한다. 과도한 빚으로 망한 사람이나 기업을 우리는 수도 없이 보아왔다. 빚이 무슨 공짜처럼 인식되는 우리 사회의 그릇된 생각부터 사라져야겠다.개인이나 국가나 부채가 많다면 그 경제가 건전할 수가 없다. 특히 국가부채는 뒷날 우리 후손의 짐으로 남는다고 생각하면 국가 재정 운용은 신중해야 할 일이다. 국가 부채가 사상 최초로 1천700조 원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다고 한다. 개인 총 부채보다 조금 더 큰 규모다.공무원과 군인연금 충당분 때문이라는데 당분간 좋아질 구조가 아니라는 것이다. 옛말에 하늘은 근면 검소한 사람에게 복을 내린다고 했다. 국가나 개인할 것 없이 절제있는 씀씀이가 있어야겠다. /우정구(논설위원)

2019-04-04

귀 닫은 대통령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최근 대통령이 나라 살림살이 사정을 아는지 모르는 지, 혹은 알고도 모른 체 하는 지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전문직 종사자나 일반 가정, 기업 할 것 없이 한결같이 살림살이가 팍팍해졌다고 하소연하는데도 대통령은 최저임금제나 소득주도성장 정책 등의 정책을 고수하겠다는 결기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실제로 문재인 대통령은 신년기자회견에서 많은 이들이 보완을 요청한 소득주도성장 정책의 지속을 천명했다.그 이유도 명확히 했다. ‘1대 99 사회’또는‘승자독식 경제’라고 불리는 경제적 불평등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성장의 지속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됐기 때문이란다. 이에 따라 혁신성장과 소득주도성장을 통해 성장을 지속시키면서 ‘함께 잘사는 경제’를 만들고, 개천에서 용이 나오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이대로 계속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문 대통령은 “(소득주도성장 등) 정책을 통해 지난해 전반적인 가계 실질소득을 늘리고, 의료, 보육, 통신 등의 필수 생계비를 줄일 수 있었고, 혁신성장과 공정경제에서도 많은 성과가 있었다”라고 진단했다.경제현실과는 다른 대통령의 인식에 언론도 문제를 제기했다. 경기방송 김예령 기자는 기자회견장에서 “(정부의 경제정책에 대한) 여론이 냉랭하다. 그럼에도 변화하지 않으려는 이유와 그 자신감의 근거를 알고 싶다”고 따져물었고, 문 대통령은 굳은 표정으로 “우리 사회가 양극화 불평등 구조를 바꾸지 않고선 지속성장이 불가능하다는 점은 오늘 제가 모두 기자회견 30분 내내 말씀 드렸다”고 짧게 답했지만 분위기는 냉랭했다. 회견직후 김 기자와 경기방송의 SNS가“질문이 지나쳤다”와 “사이다 발언”이란 반응으로 마비될 지경이었다니 먹고사는 문제를 둘러싼 논란은 언제나 ‘뜨거운 감자’인 모양이다.대통령의 보편적이지 못한 경제인식은 여전하다. 지난 달 19일 국무회의에서 문 대통령은 “우리 경제가 올 들어 여러 측면에서 개선된 모습을 보이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라며 “국가 경제는 견실한 흐름을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산업 활동 측면에서 생산, 소비, 투자증가와 경제심리 지표 개선, 벤처투자와 신설 법인수 증가, 2월 취업자 수 전년대비 증가 등을 사례로 들었다. 그러나 보라. 대통령이 이처럼 경제 상황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발언이 나온 이후 보름도 안된 지금 정반대 지표가 줄줄이 쏟아지고 있다.급기야 지난 3일 문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가진 진보·보수 정부의 고위직을 지낸 경제계 원로 간담회에서 정부의 경제정책 방향에 대한 쓴소리가 쏟아졌다. 이 자리에서는 정부의 대표적 경제정책인 소득주도성장정책은 물론 급격히 오른 최저임금과 주 52시간 근무제도에 대한 문제점도 지적됐다. ‘촛불혁명에 의해 태어난 정권’이라 주장하는 문재인 정권은 소통의 중요성을 강조해왔다. 청와대 참모진과 격의 없는 오찬을 하고, 참모들과 함께 청와대 경내를 커피를 마시며 산책하는 모습이나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타운미팅홀 방식의 연두기자회견을 가진 모습 등에서도 그런 소통행보를 볼 수 있다.그러나 문재인 정부의 소통은 진정한 의미의 소통이라 하기 어렵다. 소통이란 용어를 쓰려면 서로 다른 의견, 정강 정책을 가진 사람들과 의견을 나누고 견해차이를 좁혀나가는 행보라야 한다.문 대통령의 행보는 권위적이거나 불통이었던 전 정권에 비해 여론을 중시하는 정치적 추임새를 잘 보여온 것에 불과하다. 그러니 경제 원로들의 고견을 들으면 뭘 하나. 한결같이 문제있다고 지적해도 소득주도성장 정책 일점 일획도 변함없으니 말이다. 이제라도 다른 사람의 의견에 귀닫은 대통령의 귀가 ‘심봉사 눈 뜨듯’ 열려지길 바란다.

2019-04-04

보이지 않는 진실을 볼 수만 있다면

루벤스는 평생 종교화를 그렸습니다. 2천여 점의 작품을 남긴 유럽 최고의 화가로 성서 에피소드를 다양하게 묘사했지요. 오스트리아 왕실 전속 화가로 임명 받으면서 전 유럽에 명성을 떨칩니다. 그러나 한 작품으로 인해 루벤스는 몰락합니다. 거룩한 그림만 그리던 루벤스가 어느 날 갑자기 퇴폐적인 그림을 내 놓았기 때문이지요. 시몬과 페로입니다. 젊은 여인 가슴에 얼굴을 파묻고 있는 노인의 그림이지요. 37살이나 어린 여인과 갓 재혼한 것도 이런 비난의 불길에 기름을 끼얹는 빌미가 되었습니다. 실은 이 장면을 루벤스가 처음 그린 것도 아닙니다. 미술사에는 로마시대 이후 다양한 버전의 시몬과 페로를 만날 수 있거든요. 하지만 누구도 루벤스의 해명에 귀를 기울이지 않습니다. 결국 루벤스는 왕실에서 쫓겨나 어둡고 쓸쓸한 풍경화를 그리다가 1640년 아무도 찾는 이 없는 집에서 홀로 외롭게 죽습니다.문제의 작품 ‘시몬과 페로’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국립 미술관에 전시되어 있습니다. 시몬과 페로. 이 두 남녀는 아버지와 딸입니다. 아버지인 시몬은 로마 고위 관료입니다. 황제를 독살하려는 음모에 가담했다가 발각되어 사형 언도를 받고 감옥에 갇힙니다. 굶겨 죽이는 아사(餓死)형을 선고받고 복역중입니다. 수십 일 동안 물 한 모금 먹지 못한 시몬은 혼수 상태에 빠집니다. 이때 딸 페로가 아버지를 면회하러 옵니다. 페로는 해산 직후 만사를 제쳐 두고 감옥에서 죽어가는 아버지를 만나러 달려온 것이지요. 바닥에 쓰러진 아버지를 보고 딸은 오열합니다. 수십 일 굶주린 아버지에게 자신의 살이라도 떼어 주고 싶은 마음이지만 아무 것도 먹일 수 없는 형벌입니다. 출산 직후라 페로의 가슴에는 모유가 흘러나옵니다. 아버지를 살려보겠다는 일념으로 끌어안고 자신의 모유를 먹이는 모습입니다.파수병들이 이 장면을 목격하고 상부에 보고합니다. 딸의 극진한 효성에 감동한 로마 황제는 시몬을 풀어주라고 석방을 명령하지요. 유럽판 효녀 심청이 이야기입니다. 루벤스가 쓸쓸히 죽은 지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 비로소 이 작품의 진정한 가치는 빛나기 시작합니다. 지금은 루벤스 대표작으로 시몬과 페로를 손꼽습니다.자칫 진심을 이해 받기 어려운 시대입니다. 때로는 우리 편견과 아집이 눈을 어둡게 해 진실이 무엇인지 알 수 없게 합니다. 당혹스러운 행동을 하는 주변 사람이나 상황을 마주할 때 섣부른 판단과 비난보다 차분히 진실을 살펴보는 지혜가 필요한 날입니다. /조신영 인문학365 대표

2019-04-04

지방분권시대의 지역문화

김태곤대백프라자갤러리 큐레이터지방분권은 국가의 통치권과 행정권의 일부가 각 지방정부에 위임 또는 부여되어 지방주민과 그 대표자의 의사와 책임 아래 행사하는 체제를 말한다. 우리나라에서 이러한 지방자치제가 처음 시행된 건 1991년 지방의회 선거와 1995년 지방 단체장 선거부터 시작되었다. 그리고 20여 년이 지나면서 새로운 법률과 정책이 지속적으로 만들어지고 있다. 하지만 서울과 지방간 모든 분야의 불균형은 더욱 커지고 있다. 보다 완벽한 지방분권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제도적 문제점을 보완하고 기울어진 시각과 잣대를 바로 잡는 노력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고 본다. 이런 변화 속에서 문화·예술분야는 새로운 발전 가능성을 찾기 위한 분주한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다.문화라는 분야는 ‘지역’과 일상을 빼고는 논할 수가 없다. ‘지역’은 중심과 주변부로 나뉘는 것이 아니며, 중앙과 지방으로 나눠서도 안 된다. 한 지역에서 태어나 관계를 맺는 우리 모두는 각자 ‘지역’을 기반으로 일상을 만들어 가고 있다. 이는 자연과 언어뿐만 아니라 독특한 삶의 방식과 문화를 기억하고 있는 것이 지역이기 때문이다. 그 지역과 일상이 가진 고유한 환경과 개별성이 오랫동안 문화를 축적해왔고 또 독창적인 문화를 만들어내기 때문에 지방분권에 있어 지역 문화의 중요성은 더욱 부각되고 있다. 또한 정부는 ‘문화입국’을 국정목표로 삼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2001년 ‘지역문화의 해’사업을 추진해 지역 문화컨설팅과 지역 특화형 문화 프로그램 등 다채로운 사업을 추진해오고 있다.세계 문화·예술의 선진국이라고 할 수 있는 프랑스의 문화정책은 살펴보면 한 마디로 ‘문화민주화’로 표방된다. 문화강국 프랑스의 기치를 내세운 프랑스는 문화예산을 파리에 집중된 문화생산 및 보급 활동의 분산화와 문화예술창작 활동의 지원, 예술시장의 활성화, 문화유산의 보존·개발과 부가가치 창출, 전문예술인 교육·고용·지원, 문화에 대한 접근용이성 증대, 뉴 미디어의 개발, 문화다양성 증진을 위한 국제교류, 불어 진흥 등 다양한 문화민주화를 위해 투자해오고 있다. 그리고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프랑스 정부는 장기적으로 차세대의 문화생산, 소비주체가 될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교육부와 협력하여 문화예술에 대한 접근성을 높일 수 있는 문화적, 지적 소양교육 체계를 굳건히 하고 있다. 또한 경제적 이유로 문화에 대한 접근이 어려운 계층을 고려, 박물관, 문화유적지, 공연극장 등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기 위하여 매월 첫 주 일요일 무료입장, 일정한 시간대를 기준으로 차별화된 가격을 적용하는 가격정책 등을 활용하고 있다. 그 외에 문화향유에 대한 지리적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 주거지 근처에 도서관, 인터넷 활용, 영화상영, 연극공연 창작 및 전시 공간 제공 등의 공적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이러한 프랑스의 문화정책은 결국 수도 파리와 지방간의 문화적 격차를 줄여 가고 있는 것이다. 과거의 프랑스 문화정책이 파리를 중심으로 중앙집권적 비중이 중요하게 차지하고 있었으나, 1980년대 이후 현대미술관의 지방 분산화를 시작으로 적극적인 지방분권사업이 진행되고 있다.이러한 정책의 변화는 지역사회의 특성과 함께 미술관의 운영체계가 통일성을 유지하게 되며 이러한 통일성의 주요한 기반은 대부분 정부의 재정적 지원 하에 중앙과의 친밀한 협의가 이루어지고 있다.이제 우리나라도 지방분권화시대에 문화도시 건설, 지역문화 인프라확대, 지역문화예술교육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다양한 지방 문화예술교육정책의 활성화를 이루어나가야 할 것이다. 더불어 지방고유의 문화를 육성 발전시키기 위한 구체적인 정책의 수립이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 급속한 도시화와 산업화, 인구감소·고령화 등으로 인해 소실될 위기에 처한 지역문화를 보전하고 새로운 산업과 지역의 역사를 보존해 나가기 위해서 보다 입체적이고 체계적인 노력이 경주되어야 할 것이다.

2019-04-04

대학의 또 다른 사명

서의호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지금 대전 카이스트(KAIST) 캠퍼스에서는 흥미로운 국제회의가 열리고 있다.카이스트와 세계 대학 랭킹 발표로 명성을 가지고 있는 영국 고등교육평가기관인 THE(Times Higher Education)가 공동 개최한 ‘KAIST-THE 이노베이션 임팩트 서밋’(혁신과 영향력 대학 정상 회의)이라는 회의가 그것이다.필자가 이 회의에 참석하면서 지금까지 기존 관념을 뒤엎는 이채로운 토의내용과 새로이 발표되는 대학랭킹을 접했다.이 회의 주제는 ‘대학이 사회, 문화, 경제, 기술 등 사회전반에 어떤 영향과 기여를 하는가’를 가지고 대학의 서열을 매겨 보자는 것이다.대학의 서열을 정할 때 학생의 수준, 교수의 연구능력과 결과, 대학의 명성 등을 주로 고려하는게 일반적인데 비하여 이러한 시도는 매우 신선하고 흥미롭다.행사 마지막 날 4일 발표된 ‘세계 대학 영향력 순위’는 UN총회가 2015년 채택한 지속 가능한 발전 목표에 대한 고등교육기관의 직무이행 여부를 평가 기준으로 한다.THE는 UN이 제시한 17개 목표 중 11개를 평가 항목으로 삼았고, 6개 대륙, 75개국, 500개 이상의 기관이 평가 자료를 제출했다고 설명했다. 다수의 기관이 참여한 이번 평가 결과는 각 대학의 사회·경제적 영향력을 가늠하는 척도로 활용할 수 있다. 기후변화, 환경, 양성평등, 기술 및 사회혁신 같은 독특한 평가 지표들이 사용되었다.이번 서밋은 ‘4차 산업혁명 시대 대학의 역할 변화’를 주제로 한다. 각 대학과 그 졸업생들이 국가 발전에 기반이 되는 우수한 연구를 얼마나 수행하는지와 해당 지역에 얼마나 기여하는지를 중점적으로 평가했다고 THE는 밝히고 선진국 대학들 중심의 기존 세계 대학 랭킹과는 크게 다를 것이라고 전했다. 그래서 이번에 발표된 랭킹에서 뉴질랜드 오크랜드 대학이 1위를 하고 캐나다의 대학들이 상위권에 포진했다. 한국도 전통적인 상위권 대학을 제치고 경희대가 1위를 차지하는 이변이 있었다.몇 년 전부터 ‘혁신대학 랭킹’이라는 것도 발표되고 있다. 그것도 세계적으로 권위있는 로이터라고 하는 회사에서 혁신 대학의 랭킹을 발표하고 있다.매년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첨단 과학 연구를 이끌고 신기술에 대한 개발 성과가 우수하며, 새로운 시장과 산업을 창출하고 성장시키는데 기여도가 높은 대학을 발굴해 순위를 발표한다. 여기서 특허출원, 특허 성공률, 상업화 비율 및 특허의 피인용지수 등이 주요 평가 항목이다. 작년에 로이터가 ‘2018년 아시아 최고 혁신대학 75곳’(Reuterksns Top 75: Asia’s Most Innovative Universities)을 선정 발표하면서 로이터 발표에 따르면 카이스트는 평가 첫해인 2016년 이래 한 번도 1위를 놓치지 않았다. 포스텍은 2016년 5위에서 매년 한 단계씩 상승했다.대학의 목적은 무엇일까?인재를 길러내 우수 졸업생을 배출하여 사회 각계에 공급하는 것이 대학의 목적이라고 쉽게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대학의 시설, 교수, 학생, 연구력 등 모든 제반 조건들의 최종 목적은 우수 졸업생의 배출이라는 목적으로 수렴된다. 그래서 대학들은 우수 졸업생을 배출하기 위한 조건으로 우수 입학생을 받아들이기 위해 온갖 힘을 기울이고 있다. 대학의 시설, 재력, 연구력, 명성 등을 총동원해 우수 학생을 유치하기 위해 전력을 다한다.그런데 이번에 시도된 새로운 발상은 대학이 사회적·경제적으로 혁신을 일으켜야 함은 물론 문화, 환경, 정의 등에 공헌해야 한다는 새로운 대학의 사명을 제시한 것이다.대학은 이제 교육, 연구와 같은 전통적인 개념에 충실하면서도 새로 제시된 사명감에 관심을 더 크게 가져야 할 것이다.

2019-04-04

씨, 자 붙이시는 서울

하노이도 나쁘지는 않았지만 인천 공항에 내리자마자 밀려드는 공기. 고국의 공기는 정말 정겹더군요. 코를 킁킁거리며 익숙한 바람 냄새 맡아보니 정말 이 나라로 돌아와 있는 거예요. 사람들은 또 얼마나 반가운가요? 같이 모여 살 때는 서로 으르릉거리는 게 어지간히 질리기도 했는데, 몇 일 안 봤다고 그립기까지 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그리고 커피. 베트남 커피 맛있다고 원두커피도 몇 봉투 사고, 베트남식 믹스커피도 사마시기는 했지만, 역시 한국식 아메리카노가 아쉬운 여행이었지요. 비행기에서 내려 귀국장으로 나오자마자 프랜차이즈 아무데나 찾아든 한국식 원두 커피의 쓰디쓴 맛!사실, 마음에 걸리는 게 하나 있기는 있었어요. 비행기에서 내려 모노레일 타려고 플랫폼에 서 있을 때였어요. 제 기내용 캐리어가 중심이 잘 안 잡혀서 넘어지곤 해요. 그래도 세워놓고 잠깐 볼 일을 보는데, 그게 그만 앞으로 넘어지며 캐리어 손잡이가 앞에 서 있는 젊은 여성 분의 다리를 친 거예요.ㅡ에이, 씨.화장도 곱게 한 오피스 직원 차림 여성 분이 고개를 휙 돌리며 ‘뱉은’ 말씀이셨어요. 그 분은 다른 일행도 한 사람 같이 있었는데요.ㅡ죄, 죄송합니다.그런데 그것만은 아니었어요. 인천 공항에서 서울로 들어올 때 공항철도 탈 때였어요. 플랫폼에 섰으니, 어김없이 전철이 들어오고 차문이 열려요. 다들 짐이 많잖아요? 저도 캐리어가 있고 앞 사람도 큰 트렁크를 밀고 뒤에는 아주 젊은 커플도 하나씩 트렁크를 끌고 있었어요. 차문이 곧 닫힐 테니, 마음들은 조금씩 급했을 테지요. 그래도 다들 들어오기는 했어요. 제2터미널에서 제1터미널로 온 전철에는 빈 자리가 몇 개밖에 없었어요. 저한테도 다행히 차례가 오겠더군요.ㅡ씨@!엥. 이건 무슨 소린가요. 맙소사. 그건 제 뒤따라 들어온 젊은 커플 중 ‘남자애’ 입에서 나온 소리였어요. 앞에서 거리적거린다는 거였어요. 혼잣말 하듯 했지만 목소리가 결코 작지 않아서 그건 마치 저보고 들으라는 소리 같았어요. 제 행동이 좀 굼떴던 것 같아요. 보통보다도 굼떴던 모양이지요.한 삼 주 지났나 봅니다.밤에 집에 돌아가느라 저는 또 전철 타고 에스컬레이터를 탔어요.제가 사는 곳은 역이 통행인이 적어서인지 에스컬레이터 폭이 아주 좁은 편이예요. 한 사람이 서면 그만인 거지요. 에스컬레이터 마지막 계단까지 저를 데려갔고, 이제 저는 지상에 발을 겨우 내딛었죠.ㅡ에이, 씨.바로 뒤에 섰던 여학생의 목소리였어요. 여학생은 저를 약간 밀치듯 스치면서 아주 바쁜 걸음으로 멀어져 가 버렸어요.아. 세 번째 씨 자 소리를 듣고 나자, 저는 드디어 정신이 번쩍 드는 것이었어요. 굼뜨면 안되는 것을. 플랫폼이나 전철이나 에스컬레이터 같은 데서는 절대 해찰 부려서도 안되고요.혹시 서울 오시는 분 있으시면 명심하셔야 해요. 요즘 씨, 자 입에 달고 사는 젊은 분들 아주 많거든요. 그리고 다들 제갈길 가느라 엄청 바빠요. 공연히 굼뜨게 다니시다가는 큰 코 다치실 수도 있어요./방민호서울대 국문과 교수/삽화 = 이철진한국화가

2019-04-04

한국판 ‘푸거’는 가능할까

김규종 경북대 교수·노문학나이 들어 세상과 인간을 들여다볼라치면 문득 허망해질 때가 있다. 인간과 세상에 드리워진 선명한 모순의 그림자 때문이다. ‘사랑’과 ‘이차돈의 사’를 읽으면서 어린 시절 나는 춘원(春園)의 필력에 감읍했다. 인간의 원초적인 욕망을 극복하고 지고지순한 사랑과 지극한 도에 이르는 인물을 형상화하는 대가의 솜씨. 훗날 그가 봉은사에 칩거하며 썼다는 반성문 ‘산중일기’도 친일부역의 흠집을 지우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때의 망연자실함이라니!15-16세기 신성로마제국 신민(臣民)으로 거부(巨富)가 된 야코프 푸거(Jakob Fugger)라는 인물이 있다. 푸거는 아우그스부르크의 평민 출신으로 젊은 시절 베네치아에서 금융과 복식부기를 배운다. 유럽의 근대 혹은 르네상스를 열어젖힌 요소로 우리는 원근법, 대학, 아르스 노바, 기계시계, 금속활자 등을 거명한다. 하지만 일상생활과 긴밀하게 연결된 복식부기를 빼놓을 수 없다. 루카 파촐리(Luca Pacioli)는 1494년 ‘산술집성’에서 복식부기를 다룬다.파촐리가 이론적으로 복식부기에 접근한 수도사이자 수학자였다면, 속세의 장사치 푸거는 세계교역의 중심지 베네치아에서 복식부기를 배우고 익힌 인물이다. 근대적인 은행업의 본산 베네치아에서 장사에 눈을 뜬 푸거는 제국의 변방 아우그스부르크가 좁다하고 활동영역을 넓혀간다. 직물업, 은행업, 광산업에 손대고, 정치와 종교와 결탁하여 고리대금업도 마다하지 않는다. 1525년에 타계했을 때 그가 소유한 부는 유럽 총생산의 2%에 이르렀다고 한다.헝가리 구리광산을 경영하면서 노동자들을 가혹하게 착취하고 노동 선동가를 처형하는 악행도 서슴지 않은 푸거. 그는 마인츠 대주교 선정과 관련하여 교황 레오10세와 결탁해 면죄부 판매이익 절반을 챙기기도 한다. 고로 루터의 종교개혁 여파로 발생한 독일농민운동 (1524-1525) 과정에서 푸거가 공격의 표적이 된 것은 이상하지 않다. 정작 이상한 일은 그토록 돈에 집착한 푸거가 세계최초의 사회복지주택 ‘푸게라이(Fuggerei)’를 지었다는 사실이다.그는 1521년에 5만㎡ 부지에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집단거주시설을 건설한다. 두 채의 집으로 시작한 푸게라이는 오늘날 67동의 건물 142가구를 포괄한다고 전한다. 푸게라이 거주요건은 가톨릭 신자로서 하루에 세 차례 기도를 하고, 연 0.88유로의 집세를 내면 된다고 한다. 1년에 1천300원의 집세로 거주 가능한 녹지(綠地)와 아늑한 방과 마당이 딸린 집단거주시설! 푸거는 그런 시설을 500년 전에 생각해내고 구현한 인물이다.그의 동시대인 화가 알브레히트 뒤러가 1516-1517년에 그린 푸거의 초상화를 보면 뭔가 짚이는 것이 있다. 이지적으로 보이는 넓고 단단한 이마, 먼 곳을 응시하는 단호한 두 눈, 얇지만 꼭 다물려 있는 입술, 강력하게 발달한 굵고 두툼한 목. 그가 입고 있는 검정색 겉옷과 자줏빛 숄은 거부의 옷차림이 아니라, 경건한 수도사나 구도자의 옷처럼 보인다. 돈으로 한평생 정치와 종교를 주무르고, 세계최고 갑부가 된 인물로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그래서일까. 나라도 하지 못한다는 가난구제에 나서서 ‘푸게라이’를 지은 모순적인 행태를 보인 까닭은. 뜬금없이 500년 전 유럽인 이야기를 꺼낸 것은 우리가 아직도 낯설어하는 보편적 복지나 토지공개념 같은 공적 영역의 담론과 실천부재 때문이다. 유럽의 보편적 복지나 무상교육을 부러워하면서도 우리는 여전히 ‘부자 되세요!’라는 구호에 귀를 기울인다. 그것은 여지없이 청와대 대변인의 사퇴와 장관 후보자 낙마(落馬)로 허망하게 종결된다.삼성총수의 개인주택 2채의 공시가격이 736억원이며, 보유세 합계만 12억원이라 한다. 돈 많이 벌어 호화로운 집을 사지 않고, 가난뱅이들을 위해 공공주택을 지은 푸거와 현저한 대비(對比)가 아닐 수 없다. 이참에 한국의 부자들, 권력자들, 지식인들은 조금만이라도 돌아보면 어떨까?!

2019-04-03

위기의 대기

류영재 포항예총 회장벚꽃이 흐드러진 마을길을 지나가다 골목에서 담배를 맛나게 피우고 있는 학생을 보았다. 교복을 입었으니 분명 학생일 터, 학생이 교복을 입은 채로 대놓고 흡연을 하는 경우는 보기 흔한 장면이 아니다. 아무리 세상이 변했다고 하나 사복차림으로 일반인 행세를 하며 거리담배를 피우거나, 교복을 입은 경우는 여러 명이 떼거리로 모여서 무리의 힘을 믿고 골목담배를 감행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오랫동안 교사였던 사명감이 아니라도 어른으로서 당연히 뭐라고 간섭을 해야 마땅한 장면이었으나 헛웃음이 나오며 멀거니 바라보다 그냥 지나쳤다. ‘교직에서 퇴직한 탓일까?’하는 생각을 잠시 하였으나 아무래도 그건 아닌 것 같다. 저 싱싱한 폐를, 간을, 두뇌를 함부로 손상시키는 흡연행위가 안타깝고, 공중도덕에도 문제가 있는 행동이지만 누가 말린다고 고쳐지는 것이 아니라 때가 되어야 고쳐진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해악도 스스로 충분히 체험한 후에야 비로소 고치는, 그래서 젊음을 젊은이에게 주기는 아까운 것이라 했던가?필자도 고등학교 시절 우연한 기회에 담배를 경험했고, 대학에 가서는 급속도로 애연가가 되었으며, 암울하기만 하던 청춘시절 내내 나의 가장 가까운 벗이 바로 담배였다. 언제나 곁에 있었고 지친 영혼을 위로해주는 벗으로 믿었던 담배는 연인보다 더 영원할 것만 같던 것이었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건강에 해롭다는 것을 몸으로 직접 느끼게 되었고, 굳이 해로움을 인지해서라기보다는 몸이 담배를 받아주지 않아서 저절로 금연 대열에 동참하게 되었다. 이런 것도 섭리라 해야 할지.초임시절 교무실의 남교사 책상 위에는 대부분 재떨이가 놓여 있었고, 공공장소 곳곳에도 그랬으며 일반 자동차는 물론 대중이 함께 타는 버스의 의자 뒤편에도 재떨이가 장착되어 있었다. 애연가들은 때와 장소를 구분하지 않고 스스럼없이 담배연기를 뿜어대곤 하였으니, 요즘은 도저히 볼 수 없는 풍경이며 상상조차 힘든 풍속도이다. 언젠가 동남아 여행에서 시내버스를 탔는데, 버스 안에서 담배를 피우는 모습이 매우 생경하였으며 어쩐지 미개해보이기까지 하였다. 문명의 탑이 높아질수록 그 그림자도 길어지는 법, 환경문제는 갈수록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지구환경을 말하려다 담배 얘기가 너무 장황해지고 말았는데, 얼마 전 최악의 미세먼지를 경험하고 암담했던 기억이 오버랩 된 까닭이다. 황사니 미세먼지 등으로 대기의 질이 심각하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그러나 막상 내가 살고 있는 이 땅에서 눈앞에 펼쳐진 최악의 상황은 지난해 겪은 지진의 충격 못지않았다. 지인들과 함께 죽도시장에 들렀는데, 그날따라 주차장이 복잡하여 주차타워 6층, 맨 꼭대기 층까지 올라가게 되었다. 거기서 목격한 풍경은 마치 재난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았다. 포항시의 모든 건물, 차량, 사람들과 길거리 풍경이 미세먼지로 인하여 흐릿하게 사라져 버렸으니 사방을 둘러보며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맑고 푸른 형산강 강변에서 유년을 보낸 필자는 여름철이면 물놀이를 하다 강물을 먹기 일쑤였지만 아무 탈이 없었고, 파란 하늘과 초록의 산천을 바라보며 금수강산임을 자부하였는데, 불과 한 사람의 생애 도중에 이렇게 엉망이 되어버린 환경을 보며 후손들의 미래가 암담하지 않을 수 없다.대지에 어김없이 봄은 왔고 산천에는 온갖 꽃들이 지천이다. 오늘 아침 영일만에 부는 바람은 봄바람치고는 몹시 차다. 이른바 ‘꽃샘추위’다. 봄꽃들은 꽃샘추위가 있을 줄 알면서도 꽃을 피운다. 봄에 피는 꽃은 꽃잎이 작고 향기도 강하지 않은 편이라 꽃이 한창인 계절에 피면 벌들의 관심을 끌기 어려울까 염려하여 추위가 닥칠 것을 알면서 잎을 내기도 전에 꽃부터 피운다고 한다. 이런 것이 대자연의 섭리라면, 포항지진이 인재이듯 대기의 위기는 인재다. 대재앙으로부터 인류를 지키기 위한 대오각성이 필요한 시점이다.

2019-04-03

나는 나에게 어떤 CEO일까?

연극인 출신 공대생들이 설립한 전기 부품업체가 있습니다. 직원 850명인 회사는 오후 4시 45분이면 전 직원이 퇴근합니다. 비정규직은 물론 정리해고도 없습니다. 정년은 70세, 연 140일 휴무 여기에 덧붙여 유급 휴가는 40일 추가. 급여를 지급하는 육아 휴직은 3년까지 보장. 5년마다 전 직원이 해외여행을 갑니다. 이렇게 퍼 주다가 회사가 망하지 않을까요? 2017년 결산 연 매출은 3천360억원, 영업이익률은 업계 최고 수준입니다.“사원이 회사의 전부다. 사원을 감동시켜라. 기업은 사원을 위해 존재한다. 사원 스스로가 감동해 열심히 일하지 않으면 기업은 성장하지 못한다.” 미라이(未來)공업 이야기이죠. 일본 ‘샐러리맨의 천국’이라 불립니다. 창업주 야마다 사장은 직원 승진 심사를 할 때, 대상자의 이름을 적은 쪽지를 선풍기에 날려 가장 멀리 간 사람을 승진시키거나, 볼펜을 쓰러뜨려서 볼펜의 심이 향한 직원을 부장으로 임명하기도 합니다. 그의 철학은 간단하지요. “누가 승진해도 결과는 똑 같거든. 모두 잘 해!” 직원 평균 연봉은 6천100만원입니다. 일본 기업의 평균 연봉 4천200만원을 감안하면 상당한 수준입니다.‘항상 생각한다!’ 회사 곳곳에 이 표어가 붙어 있습니다. 눈만 돌리면 이 문구가 보이지요. 야마다 사장은 말합니다. “사람은 생각하는 존재요. 생각은 그 자체로 수익을 올릴 수 있는 아이디어로 연결됩니다. 잘 대접받는 사원들은 끊임없이 회사에 기여할 방법을 찾느라 생각합니다.” 실제 미라이 공업에는 연 2만 건에 이르는 사원들의 아이디어가 쌓입니다. 이 가운데 상당수가 특허 출원으로 연결되지요. 아이디어를 제출하면 1만원 미만의 소소한 보상금을 지급합니다. 잔업 없이, 휴일 근무 없이도 회사가 승승장구할 수 있는 비결은 직원들이 아이디어로 똘똘 뭉쳐 독창적인 제품을 끊임없이 선보이기 때문입니다.이 사례를 기업의 문화 차이로 생각하는 것을 뛰어넘어 나 자신의 문제에 대입해 보는 것은 어떨까요? 짧은 경험을 통해 확신하는 바, 최고의 투자는 자신의 가치를 높이는데 투자하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책 한 권에는 평균 3억원 정도 부가가치를 갖는 저자들의 아이디어가 집약되어 있습니다. 불멸의 고전은 그 가치가 수백, 수천억이 될 수 있지요. ‘나 주식회사’의 CEO는 ‘항상 생각한다!’ 스스로에게 독려하며 최고의 것으로 예우하고 에너지를 충만하게 채우려 애쓰고 있는지를, 걸음을 멈추고 돌아보는 시간입니다 /조신영 인문학365 대표

2019-04-03

人頭 대신 만두? 제갈공명 전설은 거짓… 몽골 유목민족에서 시작됐다

개인적이고 엉뚱한 ‘추억’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만두와 ‘50환짜리 백동전’ 이야기다. 50환짜리 백동전은 1959년부터 1975년까지 통용됐다. ‘5원’짜리 동전으로 썼다.1970년 무렵. 대구 시내버스 차비가 4원에서 6원으로 올랐다. 50% 인상. 왕복 차비가 8원에서 12원으로 올랐다. 통학하던 중학생들은 끔찍해졌다. 10원 지폐 한 장 받아서 8원 쓰고, 나머지 2원으로 군것질을 했는데 그게 불가능해졌다. 군것질은 학교 앞에서 팔던 ‘납작만두’였다. 이제 납작만두를 먹으려면, 1시간 거리 하굣길을 걸어가는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납작만두를 포기할 수도 없고.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는 법이다. 누구 발상인지 알 수는 없으나, ‘인상 충격’을 줄이는 방안이 나왔다. 버스 차비 6원을 내는데, 10원 지폐를 내면 비닐봉지에 든 4원을 거스름으로 준다. ‘50환 백동전’을 내면 그대로 인정해준다.지금 생각하면 엉뚱했지만, 제법 긴 기간 동안 ‘50환 백동전=6원’ 셈법이 통용됐다. 이런 ‘훌륭한 제도’는 빨리 퍼진다. 대구 시내 모든 중학생들이 50환 백동전으로 버스비를 냈다. 방과 후에는 죄다 학교 앞 구멍가게에서 1원에 5개쯤 주는 납작만두를 베어 물었다.◇ 만두를 제갈공명이 만들었다고?납작만두도 만두다. 만두라 부르긴 잔망스럽지만, 만두는 만두다. 만두는 언제, 어디서 시작되었을까? 어디서 와서 대구에서 ‘납작하게’ 됐을까?‘성호사설_제4권_만물문’에 나오는 만두 이야기다.“(전략) 만두는 세속에서 전하기를, ‘노수(瀘水)에서 제사 지낼 때 처음으로 만들어졌다.’고 하는데, 이 역시 겉은 떡이고 속은 고기이다. 다만 뇌환은 작고 만두는 크며, 뇌환은 밀가루로 뭉쳐서 만들고 만두는 떡으로 만드는 것이 조금 다를 뿐이다. (후략)”‘성호사설’은 성호 이익(1681~1763년)이 쓴 책이다. 1740년 무렵 편집되었다. 위 내용에 만두와 만두보다 작은 ‘뇌환(牢丸)’이라는 음식도 등장한다. 만두와 뇌환 모두 겉은 떡, 속은 고기다. 만두는, ‘곡물로 만든 피+고기로 만든 소’다.“(만두는) 노수에서 제사 지낼 때 처음 만들어졌다”는 문구가 나온다. ‘제갈공명 노수대제(瀘水大祭) 만두 기원설’이다. 엉터리다. 후한 촉의 승상 제갈량(諸葛亮)은 181년 출생해서 234년에 죽었다. 6세기에 나온 중국의 ‘제민요술(齊民要術)’에 곡물 가루음식이 구체적으로 소개되지만, 아직 만두라는 이름도 정확하게 등장하지 않는다.제갈공명이 남만을 정벌하고 돌아오는 길에 풍랑이 이는 노수를 만났다. 노인들이 “사람 머리 49두를 강물에 던지고 제사 지내면 풍랑이 가라앉을 것”이라고 한다. 제갈량은 “전쟁터에서 이미 사람을 많이 죽였는데 또 죽일 수는 없다”며 양고기로 속을 만들고, 겉에는 밀가루 반죽을 더해서 사람 머리 모양의 ‘蠻頭(만두)’로 제사를 모셨다. ‘만두(蠻頭)’, 남만 인의 머리에서 음식 만두(饅頭)가 시작됐다는 이야기다.제갈공명을 신격화하기 위해 후대 민중들이 만든 이야기다. 이른바 ‘스토리텔링’이다.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의 ‘연의’는 소설이다. ‘정사 삼국지’에는 노수를 간 흔적도, 노수대제도 없다. 가지도 않은 곳에서 무슨 만두를 빚었으랴? 만두도 없었던 시절에.◇ 만둣집 주인이 내 손목을 잡았다?고려 시대 가요 ‘쌍화점’의 시작 부분이다.“쌍화점(雙花店)에 쌍화(雙花) 사라 가고신댄회회(回回)아비 내 손모글 주여이다.이 말사미 이 점(店) 밧긔 나명들명다로러거디러 죠고맛감 삿기 광대 네 마리라 호리라 (후략).”“쌍화점에 쌍화 사러 갔더니/회회아비가 내 손목을 쥐더이다/이 말이 가게 밖에 들고 나면/조그만 새끼 광대 네 말이라 하리라”.‘쌍화’는 한반도식 만두다. 쌍화는 ‘상화(霜花)’에서 비롯됐다. 상화는 만두 등을 찔 때 생기는 뽀얀 수증기, 서리꽃이다. 곡물 덩어리를 찐 음식을 상화, 쌍화로 부르는 이유다. ‘쌍화점’에 대한 이론도 있다. 쌍화점이 만둣가게가 아니라 세공 유리제품 등 액세서리를 파는 가게였다는 주장. 또 다른 주장도 있다. 쌍화가 만두가 아니라 단 것으로 속을 채운 찐빵, 호빵류였다는 것이다. 아직은 ‘만둣가게’가 다수설이다. ‘쌍화점’은 고려 충렬왕(재위 1274~1308년) 시기의 작품이다.만둣가게의 주인은 회회아비다. 고려의 수도 개성에는 아라비아 사람 등 외국인이 많았다. 몽골의 원나라는 기술력이 뛰어난 아라비아 사람, 색목인(色目人)을 중용했다. 수도 개성에는 아라비아 사람들이 운영하는 만둣가게가 있었다.만두는 유목민족의 음식이었다는 주장이 다수설이다. 거란의 요나라(大遼, 916~1125년) 벽화에도 만두 찌는 그림이 있다. 원나라 시절 유목민족에 의해 한반도에 전래 되었다는 주장이 설득력이 있다.고려사 충혜왕 4년(1343년)의 기록에는 ‘만두 도둑’이 등장한다. 궁궐 주방에 들어와 만두를 훔쳐먹은 도둑이 있었고, 왕이 도둑을 죽이라고 명했다는 내용. “그까짓 만두를 훔쳐먹었다고 사람을 죽이냐?”는 주장도 가능하지만, 만두는 귀한 물건이었다.고려 말, 조선 초기를 살았던 목은 이색(1328~1396년)도 만두에 대해서 시를 남겼다. ‘목은집’의 ‘금주음(衿州吟)’이다.신도가 스님을 먹이는 것이 원래 정상인데/산승(山僧)이 속인을 먹이다니 놀라서 자빠질 일/흰 눈처럼 쌓은 만두 푹 쪄낸 그 빛깔 하며/기름 엉긴 두부 지져서 익힌 그 향기라니당시 만두 겉껍질 재료는 메밀이었다. 목은의 만두는 메밀 겉껍질을 벗긴 녹쌀 정도로 만들었을 것이다. ‘조선왕조실록_세종 4년(1422년) 5월17일’의 기록에도 만두가 나타난다. 태상왕 태종의 수륙재를 앞두고, “(행사 참석인원 들의 밥상에) 만두(饅頭), 면(麵), 병(餠) 등의 사치한 음식은 일체 금단하소서(후략)”라고 신하들이 말한다.‘쌍화점’과 궁궐 주방의 만두 도둑, 목은이 스님에게 대접받은 만두, 세종대왕의 수륙재 만두는 약 100년 남짓의 차이가 난다. 만두는 귀한 음식이었다.◇ 만두는, 곡물 껍질 속에 고기, 채소, 생선 등을 넣고 만든 음식곡물로 만든 껍질에 속을 채운 것이 바로 만두. 만두 속은 고기, 채소, 생선 등이 주류를 이룬다. 단맛을 내는 소도 있다. 찐빵, 호빵 같은 만두다. 고려, 조선 시대 내내 만두, 쌍화, 상화는 혼란스럽다. 한반도 자체 개발품 만두, 상화와 외래 만두가 뒤섞인다. 단맛이 나는 것과 짭조름한 것, 빵과 떡의 차이 등이 혼란을 부른다.만두는 여러 지역에서 다양하게 나타난다. 이탈리아의 라비올리, 깔조네, 남미대륙의 또르띠야도 만두다. ‘남미식 만두’는 곡물이 옥수수다. 몽골에도 만두가 있다. 보츠, 호쇼르 등이다. 문명권 국가에는 대부분 만두가 있다.겉껍질인 피도 밀, 메밀, 서양의 경질 밀(硬質, durum wheat), 옥수수, 감자와 고구마 전분 등 여러 종류를 사용한다. 속은 지역마다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다.조선시대, 한반도 만두의 껍질은 메밀이었다. 추사 김정희 ‘완당전집_10권_시’에도 “메밀꽃 희끗희끗 은속은 눈부시니/온 산에 뒤덮인 게 다 만두의 재료로세”라고 했다. ‘은속(銀粟)’은 조, 좁쌀로 추정한다. 쌀과 밀가루는 귀했고, 만두는 주로 메밀, 좁쌀로 만들었다. 메밀로 만든 건 만두, 옥수숫가루로 만들면 만두가 아니다? 이것도 어색하다.우리는 ‘만두’를 섬세하게 가르지 않았다. 곡물 피로 겉을, 각종 고기, 생선, 채소 등을 속으로 만든 건 모두 ‘만두’라고 부른다. 그렇지는 않다.중국인들은 만두, 교자, 포자를 섬세하게 나눈다. 만두(饅頭, mantou)는 반드시 발효한 밀가루 등 곡물가루로 만든 ‘중국식 밀가루 빵’이다. 속이 없는 찐빵이나 중식당에서 내놓는 꽃빵이 만두다. 한, 중, 일이 일치하는 음식은 교자(餃子)다. 발효시키지 않은, 생피로 만든 겉껍질에 채소, 고기, 생선 등으로 속을 채운 것이다. 찌거나 삶으면 증교자(蒸餃子), 수교자(水餃子)다. 오늘날 우리가 ‘군만두’라고 부르는 것은 ‘튀김만두’다.포자(包子)는, 발효한 밀가루 반죽으로 겉껍질을 만들고 속에는 생선, 고기, 채소 등을 넣은 것이다. 윗부분을 마치 보자기 묶듯이 틀어 올린다. 뜨거운 육즙으로 유명한 ‘소룡포(小籠包)’는 ‘소룡포자(小籠包子)’의 준말이다. 포자의 일종이다.우리는 음식을 잘 섞는다. 중국인들은 상상도 못할 ‘교자 만두’도 만들었다. 교자면 교자고, 만두면 만두다. 한반도에는 교자 만두도 있다.사족. 나이가 든 후, 어머니께 납작만두 사 먹었던 이야기를 꺼냈다. 오래전 일이니 기억이 아물아물. 한참 설명했다. 어머님 왈 “아, 만두 찌지미 말하는구나!”온 세계를 떠돌았던 만두가 한반도에서 ‘만두+전(煎)’이 되었다. 만두, 교자, 포자, 상화, 쌍화가 뒤섞였다고 이상하게 여길 것은 없다. 한반도에서는 만두가 부침개가 되기도 한다./맛칼럼니스트 황광해

2019-04-03

한국형 레몬법

한국형 레몬법은 한국에서 내년부터 시행되는 자동차 교환 환불제도를 가리킨다. 레몬법은 미국에서 1975년부터 시행됐으며, 결함 있는 신차를 환불·교환해주는 소비자보호법이다. 법 이름이 레몬법(Lemon Law)으로 지어진 데는 유래가 있다. 흔히 영미권에서는 결함 있는 불량품을 ‘레몬’으로 지칭한다. 즉, 오렌지인줄 알고 샀는데 집에 와서 보니 오렌지(정상자동차)를 닮은 신 레몬(하자발생 자동차)이었다는 말에서 유래한다.한국형 ‘레몬법’은 내년 1월부터 본격 시행된다. 정부가 최근 국무회의에서 ‘자동차관리법 시행령’ 개정안을 심의·의결했기 때문이다. 본 시행령이 내년 1월 1일부터 시행되면, 신차 인도 후 1년 안에 중대한 하자가 2회 발생하거나 일반 하자가 3회 발생해 수리한 뒤 또다시 하자가 발생하면 중재를 거쳐 교환·환불이 가능해진다. 레몬법 적용에는 하자 발생 이외에도 갖춰야 할 요건이 있다.우선 신차로의 교환·환불의 보장 등이 포함된 서면계약에 따라 판매될 것, 하자로 인해 안전우려, 경제적 가치 훼손 또는 사용이 곤란할 것, 하자차량소유자가 중대한 하자는 1회, 일반하자는 2회 수리 후 하자가 발생한 사실을 자동차제작자등에게 통보할 것 등이다. 교환·환불 신청 요건을 충족한 하자차량 소유자는 국토부 자동차안전·하자심의위원회에 중재를 신청하고, 위원회는 3인의 위원으로 중재부를 구성, 중재는 중재위원 전원 출석으로 개의하고, 구성원 과반수 찬성으로 의결한다. 또 중대한 하자에 해당하는 장치의 범위에 법에서 정한 원동기, 동력전달장치, 조향·제동장치 외에 △주행 △조종 △완충 △연료공급 장치 △주행 관련 전기·전자 장치, 차대 등을 추가했다. 다만 단순히 운행 중 엔진경고등이 뜨거나 편의장치 작동 오류 등 일반 하자는 레몬법 적용 대상에서 제외됐다.이제 한국형 레몬법이 도입된 데는 국내 및 해외 자동차 메이커들의 하자보수에 대한 무성의한 태도가 촉발요인이 됐으리란 짐작이다. 외국에 비해 늦어도 너무 많이 늦게 도입된 레몬법, 이제부터라도 자동차 소비자들의 권익을 제대로 지켜줄 수 있길 기대한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19-04-03

망친 교육, 살릴 교육

장규열 한동대 교수독일의 철학자 한스게오르크 가다머(Hans-Georg Gadamer)는 교육의 핵심이 ‘자기교육’에 있다고 하였다. 교육은 사람이 더 나은 사람으로 변해갈 수 있도록 이끌어 주는 일이라는 것이다. 사람이 가족, 친구, 교사들을 만나고 타인과의 다양한 공동체적 관계를 가지지만 교육의 요체는 결국 스스로 자기도야(自己陶冶)의 길에 서도록 돕는 것이라 하였다. 교육의 성패는 만나는 모든 사람들과 경험하는 모든 일들을 통해 내가 무엇을 어떻게 배우느냐에 달려있다는 것이다. 또한, 사람이 끊임없이 새로운 세상을 만날 것이므로, 이를 조화롭게 받아들이고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하였다. 즉, 교육은 ‘낯선 것과의 만남을 통하여 스스로를 도야하는 과정’이라는 것이다.교육이 해야 하는 일에 대하여, 결국 두 가지 가닥이 손에 잡힌다. ‘스스로’ 찾아가도록 돕는 일과 그런 길에서 ‘공동체적 관계’를 유지하는 것. 최근 보도에 따르면, 사회지도층 인사들이 그들의 자녀에게 일자리를 만들어 주기 위하여 여러 모습으로 개입하면서 부적절한 힘을 사용하여 불공정한 결과를 빚어낸 일이 있다고 한다. 젊은 시절 앞이 캄캄하던 기억들이 대개 있을 터이다. 사방이 적으로 막힌 듯 숨쉬기도 버겁던 나날을 어렵게 힘들게 통과하여 오늘에 이른 어른들이 수없이 많을 것이다. 그렇게 수다한 고뇌와 난관을 지나왔기에, 오늘 여러 모양으로 삶을 이어가며 보람을 나누는 인생의 선배들이 있지 않은가. 당신의 자녀들에게 그런 수고의 의미와 결실의 기쁨을 맛보게 하고 싶지 않다는 말인가. 당신의 알량한 권력을 부당하게 사용하여 결국 교육을 망치고 싶은 것인가.작은 것이라도 ‘스스로’이루어가는 보람은 또 얼마나 즐거운 기억과 가슴 뿌듯한 보람을 남기는가. 두드려도 두드려도 열리지 않는 듯한 그 기회의 문은, 도전하는 이의 간절함과 수고의 크기에 비례하여 반드시 열리게 되어 있다. 그런데 당신같이 비신사적이며 몰상식한 어른이 개입하여 그 질서를 무너뜨린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당신 자녀의 교육과 앞길을 망칠 뿐 아니라, 오늘도 성실하게 내일을 준비하며 공정한 겨룸을 기대하는 수많은 젊은이의 미래마저 무너뜨리는 것이다. 그럼에도 아직 당신은 한 마디 사과조차 없이 이 또한 지나갈 것으로 기대하며 숨죽이고 있는가.두 번째 가닥. 저렇게 하면, 당신의 자녀가 ‘타인과의 공동체적 관계’를 순조롭게 만들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시는가. 오늘 수많은 다른 젊은이들이 들이는 수고와 노력을 그들은 경험하지 않았을 것이 아닌가. 공유하는 시간의 기억과 함께 느끼는 공감이 없는 사람이 어떻게 남들과 ‘공동체’를 이루어 갈 수 있을까. 남들과 나눌 그 무엇을 상상도 못할 터에 함께 호흡하고 소통하는 공동체를 어찌 만들어 갈 것인가. 당신은 자녀의 교육을 망쳤을 뿐 아니라 우리 사회의 기틀을 병들게 하였다. 당신이 가진 그 힘으로 공동체의 가능성을 깨알처럼 허물고 있었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 그렇게 하여 어지러워질 세상의 불공정함을 당신은 어떻게 대하려 하는가. 이쯤해서 이 땅의 청년들이 이제는 공동체를 온당하게 회복하도록 도와주실 생각은 혹 없으신가.세상은 험하고 시간은 거칠다. 내일을 기대하며 갈고닦는 이 땅의 젊은이들이 험하고 거친 세상과 시간을 이겨내길 기대한다. 그 이겨낸 끝에 함께 지나온 길을 돌아보며 마음껏 이 땅의 부조리와 불공정을 바꾸어 주길 바란다. 당신이 이겨낸 시간은 바뀐 세상으로 보답할 것이며, 그러는 사이 당신은 누구도 몰라볼 만큼 자라있을 것이다. 교육은 사람이 ‘스스로’ 배우게 하여야 하며 ‘공동체’를 건강하게 키워내는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 교육이 살려야 하므로.

2019-04-03

당달봉사

김순희수필가‘진달래는 바빠서 꽃부터 대뜸 피운다. 재거나 뜸들이지 않고 결론부터 말한다. 가지 끝에 여러 송이 분홍빛을 켜고 봄은 이래요 한다.’ 친구가 보내준 문자메시지다. 어느 사진작가가 한 말이라며 꼭 나를 두고 하는 말 같다고 했다. 봄꽃은 꽃을 먼저 피운다. 눈 속에 피는 매화를 시작으로 산수유, 목련, 벚꽃, 개나리까지 회색빛 가지에 푸른 물이 들기도 전에 꽃잎을 장식한다. 성질 급한 나와 닮았다.그런데 며칠 전 아침신문에서 개나리나 진달래도 잎이 난 다음에 꽃을 피운다는 기사를 보았다. 새로 가지가 자라서 잎이 난 뒤에 꽃눈이 맺힌다. 그런데 막상 꽃을 피울 때가 되면 겨울이 닥친다. 꽃눈은 눈 속에서 겨울을 나고 따뜻한 봄이 되면 비로소 꽃이 된다. 그 꽃이 지고나면 나무는 겨울을 나려고 떨구었던 푸른 잎을 다시 만들어 입는다.성질이 급해서가 아니고 더 많은 자손을 퍼뜨리기 위해서 미리미리 준비한 것이란다. 식물은 동물처럼 좋은 환경을 찾아 옮겨 다니지 못한다. 할 수 없이 꽃피는 시간이라도 달리해야 다른 식물과 경쟁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할 수 있다. 오랜 경험에서 꽃을 먼저 피웠건만 사람들은 자기가 아는 만큼만 본다.결혼을 코앞에 둔 봄이었다. 남편이 나를 내려 주려고 우리 집 앞에 주차를 했다. 하루 종일 데이트를 하고 돌아온 시간인데도 헤어지기 아쉬워 차에서 두런거렸다. 그러다 앞에 세워진 차를 보며 내가 물었다. “우리 집 근처에 인천시장님이 사나봐.” 무슨 뜬금없는 소리냐며 남편이 자세히 말해보라기에 앞 차를 가리키며 얼마 전부터 근처에 세워져 있는데 ‘인천시장 1234’라고 써 있지않냐며 얼굴에 물음표를 그려보였다.남편은 한참을 웃고 나서야 설명해주었다. 그건 임시번호판이었다. 차가 출고된 공장이 인천에 있어서 인천시장이라 적는다고 했다. 울산시장과 창원시장 차는 못 봤냐며 껄껄댔다. 그때까지 우리 집엔 자가용이 없었다. 그래서 임시번호판이 뭔지 알지 못했다. 그런 내가 부끄럽기도 하고 무안하기도 했다. 사람은 자기가 보고 싶은 대로 세상을 본다.초등학교 시절 O헨리의 마지막 잎새를 읽었다. 그림을 공부하는 존시는 유명한 화가가 되겠다는 꿈도 이루지 못한 채 폐렴으로 죽어 간다. 창밖에 보이는 담쟁이 잎을 세면서 그 잎이 다 떨어지면 자신도 죽을 거라고 말한다. 마지막 잎이 떨어지던 날 밤, 이웃에 사는 베어만이 비바람을 견디며 인생의 역작을 벽에 남겼다. 그 그림을 담쟁이 잎으로 본 존시는 용기를 얻고 살아난다. 사람의 목숨과 담쟁이가 잎을 떨구는 것은 아무런 관계가 없다. 하지만 병에 못 이겨 약해질 대로 약해진 존시는 자기가 보고 싶은 대로 보고 의미를 부여했다.글을 읽고 궁금한 것이 있었다. 비가 오면 벽에 그린 그림이 지워질 텐데 어떻게 담쟁이 잎이 밤새 그대로 있었을까? 시골 초등학생이던 나는 그때까지 물감이라고는 수채화 물감 밖에 몰랐다. 물을 타서 쓰는 수채화물감으로는 비바람을 견디는 잎을 그려 낼 수 없었다. 글쓴이가 뭔가 착각을 했을 것이라고 여겼다. 눈을 뜨고도 제대로 보지 못하니 장님이나 다름없다.지금 나는 당달봉사를 면해보려고 신문을 본다. 더 깊이 알고자 책을 읽고, 계절이 바뀔 때마다 여러 강의를 찾아다닌다. 고전문학읽기를 몇 년째 참여하고, 지난해부터는 보드게임 동아리에 들었다. 그 흔한 블루마블 게임조차 구경도 못해 본 내가 한참 어린 회원들 사이에서 게임의 룰을 익히느라 머리에 쥐가 난다. 도형으로 심리 알아보기는 올 봄에 새로 시작한 공부이다. 동그라미, 세모, 네모, S 중에 하나를 선택하면 타고난 기질을 알게 된다. 봄 내내 사람에 대한 공부를 할 것이다.문제는 오늘 하나를 머리에 저장하면 어제 배운 두 가지가 빠져 나간다는 사실이다. 뭐가 그리 바쁜지 금세 저버리는 봄꽃처럼.

2019-04-03

산다는 건

△망각의 속도영화 ‘거북이는 의외로 빨리 헤엄친다’의 공안부의 간부와 배관공은 이런 대화를 한다. 배관공으로부터 대화는 시작된다.“그 거북이 분명 어디서 본 건데….”“생각 안 나나?”“분명 어디서 봤는데….”“산다는 건 생각나지 않는 게 늘어가는 걸지도 몰라.”“왜 그런 말을 하시나요.”“아니, 그냥.”“방금 뭐라고 하셨나요?”“인생이라는 건 생각나지 않는 게 늘어가는 것. 어?…. 이게 아니잖아.”망각의 속도는 어처구니 없을 정도로 빠르다. 그러하다면 ‘생각나지 않는 것이 늘어가는 것’이 삶이 아니라 그러한 말조차도 잊어버리는 것이 삶일 것이다. 근사한 말의 ‘세부’가 아니라 근사한 말을 했다는 ‘느낌’만을 어루만지며 사는 것이 삶의 진짜 모습일는지도 모른다. 헌데, 그 세부를 잊어버려서 기억을 못하는 것일 수도 있겠으나, 그 세부가 그리 대단할 것이 없기 때문에 기억을 안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세부를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자꾸만 그 ‘느낌’만을 부여잡고 살려는 것인지도….기실 근사한 것은 그 ‘세부’가 아니라 그 ‘느낌’일테니까. 하여 한 때 잘 나갔노라고 떠벌리는 사람들이 그 세부를 이야기하지 않는 까닭은 그 세부를 잊었기 때문이라기보다는 그 세부가 별반 대단할 것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추억은 디테일이 아니라 그 잡히지 않는 아련한 것들을 원료로 하므로 그러하다.△증상스트레스를 받거나 신경이 날카로울 때면 턱이 민감해진다.이런 증상이 생기면 공교롭게도 글을 쓰거나 책을 읽는 일을 하기가 어렵다. 미간에 손가락이 다가올 때 느껴지는 저릿한 느낌을 턱으로 느끼는 셈이긴 하지만, 이 느낌은 훨씬 강하고 강렬하다. 마치 날카로운 칼이 턱의 살과 뼈를 베고 지나가는 듯 선뜩하다. 날카롭건 뭉툭하건, 멀리 떨어져 있건 가깝건 턱 언저리에 있다고 느껴지기만 하면, 그것들은 모두 칼로 변해서 턱을 서늘하게 노린다. 모든 감각기관이 오직 턱에만 집중되기 때문에 모든 것을 턱으로 인지하고 지각하게 된다.책을 읽을 때는 책의 하단 모서리가, 글을 쓸 때는 노트북의 모서리가 턱을 겨눈다. 이 지랄맞을 지랄지랄한 느낌 때문에 몇 번이고 턱을 손으로 쓸어내리거나 손으로 턱을 가려야 한다. 이런 지경이니 어떤 일이든 잘 될 턱이 없다.△슬픔죽음은 슬프다. 죽은 자가 다시 삶의 세계로 돌아올 수 없으므로 슬프다. 그 슬픔은 죽은 이의 것이 아니라 산 자의 슬픔이다. 죽은 자는 죽었으므로 산 자의 슬픔을 느낄 수 없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죽은 자는 다시 죽을 수 없다. 그러므로 죽음은 유일하며 또 유구하다. 죽음은 비록 인간에게 주어진 운명이지만, 그 죽음은 아무렇지도 않게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치열한 삶 속에서 완성된다. 그런 점에서 죽음은 수동적인 것이 아니라 능동적이고 적극적이며 고유하다.하지만 완성되지 않은 죽음은 어떠한가? 원하지 않은 죽음들, 완성되지 않은 죽음들, 사소한 사고, 또 홀로코스트와 같은 처참한 죽음, 그리고 세월호…. 이러한 죽음은 어떻게 위로되는가? 슬픔이란 감정은 이러한 죽음에게 보내는 조사(弔辭)다. 슬픔은 당신과 나, 죽은 자와 산 자, 보이는 곳과 보이지 않는 곳, 차안과 피안을 향해 나아간다. 아니 죽은 이들의 넋을 위무하며 동시에 그 불완전한 죽음을 완성하기 위해 슬픔은 뻗어가고 있다.이제 다시 삶을 알겠다. 죽은 이가 다시 죽을 수 없듯이 산 자는 삶을 멈출 수 없다. 오직 쉼 없는 것만이 삶이다. 그러므로 삶의 연장선에 죽음이 있을 리 없다. 삶은 삶이고 죽음은 죽음이므로 죽음과 삶은 연속적일 수 없으며 죽음과 삶은 결코 만날 수 없다. 슬픔이라는 감정은 죽음 속에서 죽음을 완성시키며 삶 속에서 삶을 연속시킨다. 슬픔은 삶과 죽음에 취해 있는 것이 아니라 삶의 유일함에 취해 있고, 죽음의 고유함에 취해 있다. 하여 슬픔은 크고 높은 것들의 한 부분이다.△왜 하필 그런 일을 하시죠?혹 당신이 애매한 일을 하고 있거나 그런 유의 학과를 다니고 있다면, 사람들은 이렇게 물을 것이다. 왜 하필 그 일을 하게 되었죠? 이런 질문을 던지는 상대는 십중팔구 당신의 직업이 실용적이지 안다고 여기고 있을 것이며 실용적이지 않다는 말은 돈이 안 된다는 말과 정확히 일치한다.나의 경우, 왜 국문과를 가셨죠, 문학을 공부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따위의 질문을 듣는다. 이 질문에 적절하게 답하고 싶다면, 오히려 대답의 내용보다는 질문 자체를 분석하는 편이 낫다. 우선 당황하지 말고, 그 물음이 어떤 상황에서 던져진 것인지, 그런 질문을 던진 상대방의 성향은 어떤지를 살피는 것이 중요하다. 문제의 답은 늘 나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낸 사람에게 있기 때문에 그러하다. 오답은 오답이기 때문에 오답인 것이 아니라, 출제자가 요구하는 답이 아니기 때문에 오답이다.예컨대 초등학교 시험 문제에 이런 것이 출제된 일이 있다. 사슴이 손에 거울을 들고 자신의 얼굴을 비춰보고 있다. 그 그림 아래 “사슴이 ○○○ 봅니다”라고 적혀 있다. 빈칸을 채워야 했던 한 아이는 사슴이 ‘미쳤나’봅니다, 라고 썼다. ‘미쳤나’가 어떻게 오답일 수 있겠는가. 그 답은 출제 의도에 맞지 않을 뿐이다. 아이는 ‘봅니다’를 교육과정을 초과하는 수준에서 활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천재적이며, ‘미쳤나’는 학교교육과 시험제도의 한계를 향해 던지는 도발적 구호처럼 들린다는 점에서 전복적이기까지 하다.하지만 학교교육은 천재의 저항을 부추기기보다는 천재의 저항을 거세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러니 진짜 하고 싶은 말은 배속에 숨기고 상대가 듣고 싶은 말을 하는 것이 좋다. 이것은 상대의 비위를 맞추는 일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나를 지키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이상(李箱)은 극도의 권태 속에서도 ‘동공이 내부를 향하여’ 열리는 일을 자기 자신에게도 허락하지 않았다. 돈 꼴레오네가 다혈질의 소니에게 머릿속의 생각을 함부로 발설하지 말라(Don‘t let anybody outside of the family know what you’re thinking), 고 말한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비밀이 없다는 것은 재산이 없는 것처럼 가난하고 허전한 일”이니까.공강일 서울대 강사·국문학그러니 왜 국문과를 가셨죠, 따위의 말을 듣는다면 “저도 당신처럼 사업을 하였더라면 당신만큼 훌륭한 사업가가 되지는 않았겠지만, 그래도 먹고 사는 일로 난감해지는 일은 없었을 텐데, 그때는 치기어린 마음에 멋모르고 국문과를 들어가게 되어 후회가 막심합니다.”라고 말을 하라. 이 말을 들은 상대는 금세 우쭐해져 자신이 어떤 계기로 사업을 하게 되었고, 어떻게 돈을 벌게 되었는지 신나게 늘어놓기 시작할 것이다. 그렇다고 고깝게 여길 것은 없다. 그는 자신의 외로움을 그런 식으로 떠벌리는 것으니, 당신은 측은지심의 인륜을 발휘하여 상대의 말을 잘 들어주면 된다.이런 유의 질문이란 늘 상대가 당신의 말을 듣고 싶어서가 아니라 상대방이 하고 싶은 말이 있기 때문에 던지는 질문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정답은 늘 질문자에게 있으니 질문에 사로잡힐 필요는 없다. 대답보다는 질문하는 자가 누구인지를 파악하고 그가 듣고 싶은 말을 하라. 이것은 정답에 근접하는 일일 뿐 아니라, 훌륭한 처세의 전략이기도 하다.

2019-04-03

‘레이와(令和) 시대’

일본은 우리와 어떤 관계의 나라로 볼 것인가. 멀고도 가까운 나라일까. 조선시대 우리를 침범했던 임진왜란이나 36년의 강점기 등 과거사를 되돌아보면 도저히 가까워질 수 없는 두 나라의 관계다. 그러나 두 나라는 지난해 852억 달러 규모의 무역을 할 정도로 경제적 교류가 왕성하다. 양국을 오가는 국민의 숫자가 연간 1천만 명을 넘는다. 국민적 감정만 보면 잘 이해되지 않는 일들이 지금도 양국 사이에 벌어진다.일본이 오는 5월 1일부터 나루히토(德仁) 일왕이 즉위하면서 새로 쓸 연호를 ‘레이와’(令和)로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아키히토(明仁) 현 일왕이 30년 사용해 왔던 ‘헤이세이’(平成) 연호는 이날부터 사라진다. 레이와는 평화와 조화의 뜻을 가졌다고 한다. 아베 총리는 “일본인 개개인이 희망의 꽃을 피우라”는 의미라고 풀이했다.연호는 원래 군주국가에서 군주가 자기의 치세연차(治世年次)에 붙이는 칭호다. 중국 한(漢)나라 무제 때 처음 사용했다고 전해진다. 우리나라도 삼국시대에 사용됐던 것으로 사료로 확인된다. 고구려 광개토왕이 영락(永樂)이라는 연호를 사용한 것이 비문으로 확인됐다. 일본은 서력(西曆)과 함께 연호를 함께 사용하는 세계 유일의 국가다. 관공서뿐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도 연호가 광범위하게 쓰이고 있다. 정부가 발행하는 신분증과 여권 등은 서기를 사용하지만 지방자치단체나 경찰 등이 발행하는 각종 증명서에는 연호를 사용한다.우리나라는 1948년 정부 수립 후 연호에 관한 법률에 의해 단군기원을 공용 연호로 사용했다. 1961년부터 국제 흐름에 따라 서력 기원을 공용연호로 사용 중이다. 일본의 연호 사용은 자국민의 불편함에도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 645년 다이카(大化)라는 연호를 채택한 이래 오늘까지 사용되고 있다. 일본인들의 독특한 국민성을 짐작해 볼 수 있는 단면이다. 어쩌면 국수적일 수 있는 그들의 모습을 읽어 볼 수도 있다. 북핵 문제를 둘러싸고 한국과 일본의 관계가 크게 불편해진 지금이다. 새로 즉위하는 나루히토 왕의 ‘레이와 시대’가 이름처럼 양국 간에 새로운 협력관계의 전기가 될지 궁금하다./우정구(논설위원)

2019-04-02

문 정부 인사 검증 제대로 했나

이곤영 대구취재본부장지난주 친한 선배 사무실을 들러 TV를 켜고 인사청문회를 보려고 하니 그 형님이 대뜸 “짜증나게 그딴거는 뭐할려고 보냐. 이번 청문회에 나온 장관 후보들 면면을 보면 하나같이 부동산투기, 위장전입, 세금탈루 등 구린 냄새 풀풀 풍기는 인물들 뿐이다. 사람이 그렇게도 없냐”고 혀를 찼다.나라를 이끌어갈 정책결정자를 뽑는 인사청문회를 바라보는 국민들의 시각이 이런 이유는 뭘까? 이는 보수나 진보나 정권을 잡고 나면 국민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을 위해 일할 사람을 뽑으려 하기 때문이다.미국은 1960년부터 2000년 사이에 상원 본회의에서 장관 등 고위공직자들의 인준이 거부된 경우는 6명밖에 안 된다고 한다. 그만큼 인사검증을 철저히 하기 때문이다. 미국은 대통령 인사 참모들이 각계각층의 의견을 들어 후보자를 압축해 보고 대통령이 승인하면 국세청과 연방수사국(FBI) 등이 청문회에 앞서 3~4개월간 신상을 검증한다.후보자는 물론 부모, 배우자의 부모, 형제의 전과 기록, 납세기록 등 과거 자료와 사전 질문지를 토대로 후보자에 대해 싸그리 파헤친다. 최근 인사청문회를 들여다보면 후보자 면면의 경력은 화려하지만 각종 불·탈법 의혹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어 청와대 인사시스템이 이렇게도 허술한 것인지, 아니면 인사검증을 아예 하지 않은 것인지 의심도 든다. 최정호 국토교통부, 문성혁 해양수산부, 박양우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자 등 대부분의 후보들은 위장전입, 병역기피, 세금탈루, 부동산투기, 논문표절, 음주운전, 성범죄 등 문재인 대통령이 대선공약으로 제시한 7대 인사배제원칙에 걸린다.집값을 잡아야 할 최정호 국토부 장관 후보자는 서울 잠실 아파트와 경기 분당 아파트, 세종시 펜트하우스로 20억이 넘는 시세차익을 올렸다는 의혹이 나왔다. 장관 지명에 이르러서는 월세 인생으로 급회전하는 꼼수를 부렸다.조동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후보자는 아들이 고급외제차에 월세 240만 원짜리 아파트에 사는 등 ‘황제유학’ 생활을 하고 외유성 출장 등 각종 의혹에 모르쇠로 버티자 여당측으로부터 핀잔을 듣기도 했다.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후보자는 해외 소득신고를 누락시키고 남편과 아들 관련 자료는 개인정보보호 등 이유로 못 낸다고 하는 등 청문회 자료제출을 거부한데 이어 2013년 황교안 당시 법무장관과 식사했다며 정치자금 지출 내역을 신고해놓고, 당시 지역구 주민과 먹었던 점 등 의혹이 불거졌다.김연철 통일부장관 후보자는 “천안함 폭침은 ‘우발적 사건’이다. 박왕자 씨 피격 사건은 통과 의례였다”라며 이념과 대북관에서 문제를 드러내는 등 7명의 장관 후보자 대부분이 결격사유가 드러나고 있다. 이에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 발표 24일 만인 지난달 31일 조동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후보자에 대한 지명을 철회했고 최정호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는 자진 사퇴했다. 그러면서도 청와대는 조 후보는 거짓말을 해서 확인을 못했고, 최 후보는 국민 눈 높이에 맞지 않아 사퇴했다며 부실 인사 검증 문책 여론을 피하는 데에만 급급하다는 인상을 줬다. 오히려 국민 눈높이에 맞춰 ‘7대 인사 배제 기준’ 강화를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나머지 5명의 장관 후보자에 대해 1기 내각과 마찬가지로 인사를 강행할지는 미지수지만 이번 인사로 정부에 대한 불신은 더욱 팽배해질 것은 분명하다. 문재인 대통령의 7대 인사배제원칙을 지키지 못한 청와대 인사라인은 이번 인사청문회에 대한 제대로 된 사과와 함께 책임지는 모습을 분명히 보여줘야 한다. 보편타당성이 결여된, 내 편에만 관대한 잣대를 들이대는 것에 대해 국민들이 모른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2019-04-02

스탠다드 푸들과 미니어처 푸들

필자가 제일 처음 키운 개 품종은 푸들이었다. 푸들은 개들 중 지능이 매우 높은 편이다. 털이 잘 빠지지 않아 키우기도 좋지만 관리를 잘 해 주지 않으면 털이 빠지지 않고 엉키기 때문에 자주 관리해 주어야 하는 견종이기도 하다. 푸들은 미용방법이 다양하게 개발되어 있어서 멋스러운 연출과 다양한 스타일링이 가능하다. 똑똑해서 주인의 행동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성격이고 주인을 많이 의지한다. 주인을 많이 의지하는 기본성향 때문에 주인이 보이지 않으면 분리불안과 같은 문제행동이 많이 나타나는 편이다. 다른 견종에 비해 빨리 성숙하는 편이어서 6개월 정도의 초기 성장기가 지나면 많이 먹지 않는다. 사료를 섞어서 주어도 먹고 싶은 것만 골라먹기도 하는데 입이 짧은 편이다. 푸들은 크기에 따라 네 가지 종류가 있다. 가장 크기가 큰 스탠다드 푸들은 체고가 45~60㎝이다. 수컷 진돗개가 50~55㎝ 정도이니 진돗개와 비슷하거나 더 큰 푸들이 스탠다드 푸들이다. 미디엄 푸들은 체고가 35~45㎝ 정도이다. 우리가 흔히 알고 가정에서 많이 기르는 푸들은 체고가 24~28㎝이고 몸무게가 3㎏정도 되는 토이푸들 또는 28~35㎝인 미니어처 푸들인데, 스탠다드 푸들을 개량한 것이다. 푸들은 본래 대형견이었으나 점차 작게 개량하여 작은 사이즈의 푸들이 널리 퍼졌고 이들을 그룹화 하면서 ‘스탠다드-미니어처’로 이분화 되다가 미니어처에서 좀 더 작은 집단을 구분하면서 ‘토이’그룹까지 생겨난 것이다.토이푸들이나 미니어처 푸들, 치와와나 몰티즈, 포메라니안, 퍼그, 페키니즈 등의 작은 개들은 아이리쉬 울프하운드나 그레이트 데인, 세인트 버나드와 같은 큰 개와는 다른 유전자를 가지고 있는데, ‘유사 인슐린 성장인자 1(insulin-like growth factor 1, IGF-1)’로 불리는 특별한 호르몬을 만드는 유전자에 미세한 유전적 변형을 가지고 있다. IGF-1은 개 뿐만 아니라 사람이나 생쥐 등을 비롯한 포유류의 출생 직후부터 자랄 때까지 성장에 관여하는 호르몬이다.143품종 3천마리의 개들의 DNA를 분석한 결과, 몸집의 크기가 작아진 개들은 공통된 IGF-1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져 있다. 즉 개 몸집의 크기 결정에 있어 IGF-1이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다. 과학자들은 개의 성장이 억제되는 현상을 이해하면 성장호르몬의 이상으로 생기는 질병이나 암 등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으므로 다각도로 연구하고 있다. 개들에게 나타나는 질병들 중 사람에게서 나타나는 질병과 유사한 질병은 고혈압이나 자가면역성질환, 암 등을 비롯해 200~300가지나 되기 때문에 개들의 병을 치료하는 방법을 발견하면 사람의 병 치료에도 일대 도약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푸들이나 대부분의 개 품종에는 품종화와 개량의 과정에서 유전자의 변형으로 인해 해로운 돌연변이가 나타나 많은 문제를 가지고 있다. 푸들에게서 나타나는 주요 유전병은 뒷다리 관절 이형성증, 슬개골 탈골, 추간판 변성, 연골 무형성증, 대동맥 및 폐동맥 문제, 눈물샘 폐쇄증, 미성견 백내장, 녹내장, 혈우병A인자 VIII 결핍, 진행성 망막위축, 망막 박리, 선천성 난청, 간질, 기면증, 행동이상, 아토피성 피부염, 외배엽 결손 등의 피부문제 등, 이외에도 다양하다.개의 유전적인 질병들이 많이 알려지고 연구되면서 최근 개를 위한 건강 보험이 관심이 높아지고 있고, 보험회사들이 관련 상품들을 내어놓고 있는 추세이다. 간단한 검사로 발병할 수 있는 개 유전병을 예측할 수 있고, 미리 대비 할 수 있도록 하는 서비스도 점차 사용자가 늘고 있다. 개는 사람들의 선택에 의해 품종화되며 특정 유전병들을 가질 수 밖에 없었다. 이제 최첨단의 기술과 보험 등을 통해 질병이 예상되는 개들이 사전 검사와 적절한 예방, 치료를 통해 함께 살아갈 수 있는 방법들이 논의되고 만들어지고 있다. 지금은 볼 수 없는 내 첫 사랑 토이푸들 장군이. 다시 만날 수 있다면, 유전자 검사도 직접해주고, 보험도 들어 주고, 더 잘 대해 줄 수 있을 것 같은데…./서라벌대반려동물연구소 소장(마사과 교수)

2019-04-02

시민을 행복하게, 영천을 위대하게

최기문 영천시장“시장님, 영천시 인구가 늘어날 수 있겠습니까?”취임 후 민생현장을 찾을 때마다 듣는 우려 섞인 질문이다.모두가 공감하듯이 인구가 늘어야 소비도 살고 도시에 생기가 돌게 된다. 고령화로 인한 인구감소 현상은 영천시만의 문제가 아닌 전국 중소도시들의 존폐가 걸린 보편적인 현상이다. 특히 인구 10만 미만의 중소도시는 열악한 경제, 교육, 주거, 보육 환경으로 갈수록 인구가 줄어드는 현실이다.이런 열악한 현실에서도 감소세였던 시 인구가 지난해 연말 기준 6년 만에 10만 1천 명을 회복했다. 이는 관내 기업체와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인구 늘리기 캠페인에 참여해 한마음으로 지켜낸 성과라 더욱 값지다.하지만, 이런 캠페인으로 이룬 단기적인 성과에 안주할 수 없는 게 작금의 현실이다.그렇다면, 과연 어떻게 해야 영천시가 사람이 모여들고 아이 낳고 기르기 좋은 도시로 탈바꿈할 수 있을까? 지난해 7월 영천시장에 당선된 후 ‘인구늘리기’를 최우선 과제로 밤낮없이 고민하고 전 공직자와 해결책을 마련하고 있으나 근본적인 정주 여건이 변하지 않는 한 단기적인 대책만으로는 실질적인 해결책으로 볼 수 없다.인구증가를 위해서는 두 가지 방향으로 접근해 볼 수 있는데 우선 기존 영천에 터를 잡고 살던 인구의 유출을 막아야 하고 동시에 경제활동과 출산을 할 수 있는 젊은 층의 유입을 늘려야 한다. 보통 인구유출은 양질의 일자리 부족과 자녀교육 문제가 가장 크다고 생각한다.젊은 부모들에게 왜 아이들을 영천에서 키우기 어렵냐고 물어보면 대부분이 교육문제라고 많이들 대답했다. 아울러 영천에서 먹고 살 문제가 해결된다면 우리 지역으로 들어오는 인구 또한 자연히 늘어날 것이다.물론 단기간에 구체적인 성과가 나오기는 어렵다. 하지만, 살고 싶은 영천을 위해 다양한 분야를 빠짐없이 차근차근 다져나간다면 불가능한 일도 아니라고 확신한다.◇일자리를 늘려 인구 유입일자리를 늘리려면 기업을 유치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기업이 들어설 만한 땅이 필요하다. 영천시에 규모가 큰 기업을 유치할 만한 땅이 없다는 사실에 놀랐으나 다행히 해결의 실마리를 찾고 있다. 지지부진했던 하이테크파크지구 개발이 농어촌정비법 개정으로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 산업단지 공영개발도 추진 중이다. 경기침체로 경영난을 겪는 기업에 운전자금 지원과 RD 기술개발과 연구인력 지원은 물론 4차 산업시대에 걸맞은 고부가가치 산업구조로의 전환을 위한 다각적인 지원도 함께 추진하고 있다.영천시는 전형적인 도농복합도시인 만큼 농가 소득 증가에도 소홀히 할 수 없다. 농촌인구 격감을 대비해 청년, 여성농업인들을 육성하고 귀농 귀촌인들 정착을 돕는 농업창업지원센터도 내실 있게 운영할 계획이다.신품종 육성과 와인 등 농산물의 6차 산업화를 통한 농가소득 증대에 앞장서야 한다. 작년에는 영천의 샤인 머스켓이 큰 인기를 끌어 농가소득 증대에 많은 보탬이 되었다. 없어서 못 판다는 말을 실감했다. 앞으로도 돈 되는 품종 발굴에 많은 노력을 기울여 부자 농촌 건설에 앞장서 나가겠다.◇시민의 불편함 작은 곳부터 개선시민들이 일상생활에서 소소하게 느꼈던 불편함부터 하나씩 챙겨나가는 민생행정을 추진해 나가겠다.시민들의 오랜 숙원사업 사업이었던 영천-대구-경산 간 광역교통 무료 환승제를 성사시켜 올 하반기에 시행될 예정이다. 무료환승으로 주변 도시 간 공동생활권 형성으로 경제적 교류가 늘어나고 세 도시 간 상승 발전에 대한 기대가 크다. 아울러 상대적으로 집값이 싼 영천으로 인구 유입 효과도 기대된다.올해 확대 운행하는 오지마을을 누비는 마을버스와 행복택시는 대중교통 소외계층에게는 단비와 같은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또, 분만 시설이 없어 출산을 위해 대도시로 나가던 열악한 현실을 극복하기 위한 분만산부인과 유치도 성공해 소아과와 산후조리원도 함께 개설해 출산과 육아를 위한 최적의 환경을 갖출 수 있게 되었다. 출산양육지원금도 대폭 인상해 셋째 자녀 출산 시 1천만 원이 지원된다. 이제 어디를 가든 ‘아이 많이 낳으세요.’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그런 영천시를 만들어 나가고 있다.◇명품 교육과 생동감 넘치는 도시자녀 교육의 궁극적인 목표가 좋은 대학, 좋은 직장이 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영천시는 다양한 장학 사업을 통해 공교육은 강화하고 사교육을 보완하면서 중소도시의 단점을 극복할 수 있도록 다양한 혜택을 지원하고 있다. 장학기금으로 운영되는 인재 양성원은 매년 서울의 최고의 강사진을 보유한 교육기관과 계약해 진학 컨설팅뿐만 아니라 최신의 강의를 제공해 지역 인재 양성의 토대가 되고 있다. 자녀교육을 위해 대도시로 나가는 것만이 능사가 아닌 것을 강조하고 싶다. 영천에서 우수한 학생이면 학군이나 지역에 상관없이 입시에서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 확신한다.이처럼 시정목표인 ‘시민이 행복하게, 영천을 위대하게’를 위해 저와 전 공직자가 열심히 앞만 보며 달리고 있다. 앞으로 영천시가 변모해 가는 모습을 응원해 주시기 바란다.

2019-04-02

과연 4월 학교의 모습은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온천지가 겨울을 승화시킨 꽃들의 이야기이다. 모진 추위를 이겨낸 꽃들이기에 어느 정도의 무용담(武勇談) 정도는 있을 법도 하지만 꽃들은 절대 소란하지 않다. 야단법석을 떠는 건 역시 사람들뿐이다. 그런 사람들에게 박노해 시인은 꽃들의 이야기를 대신 전한다. 그런데 꽃의 모습에만 눈이 먼 사람들에겐 꽃의 이야기를 들을 귀가 없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시인의 말(‘꽃은 달려가지 않는다’)을 글로 전한다.“꽃은 자기만의 리듬에 맞춰 차례대로 피어난다/누구도 더 먼저 피겠다고 달려가지 않고/누구도 더 오래 피겠다고 집착하지 않는다/꽃은 남을 눌러 앞서 가는 것이 아니라/자기를 이겨 한 걸음씩 나아갈 뿐이다//자신이 뿌리내린 그 자리에서/자신이 타고난 그 빛깔과 향기로/꽃은 서둘지도 않고 게으르지도 않고/자기만의 최선을 다해 피어난다//꽃은 달려가지 않는다”세상을 뒤덮은 꽃들이지만 시인의 말처럼 그들에겐 순서가 있다. 아무리 인간들이 자연 생태계를 엉망진창으로 만들어 놓아도 집착을 모르는 꽃들은 차례를 지켜 피고 진다. 그러기에 개성을 잃어버린 인간들과는 달리 극한의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꽃들은 자신의 빛깔과 향기를 잃어버리지 않는다. 서로를 존중하는 꽃들의 모습에는 부자연스러움이란 있을 수 없다.하지만 아집, 독선 등으로 똘똘 뭉친 인간들은 아무리 자연스럽게 행동을 해도 그 자체가 가식(假飾)이기에 어색하기 그지없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인간들이기에 어색한지도 모르고 자연 앞에서 자연스러운 척 포즈를 취한다. 그리고 그것이 진짜 자연스러움이라는 착각에 빠져 산다. 안타까운 것은 물귀신 같은 인간들은 꼭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착각을 강요한다. 그 모습은 병적이다. 병명은 집착증(執着症)!최근 정치인들과 그 하수인들이 목숨을 걸고 집착하는 대상은 과거이다. 정말 지겹지도 않은지 정권 초부터 지금까지 줄곧 과거 이야기뿐이다. 현 정부 인사들은 물론 정치인, 언론인, 법조인들은 전 정부의 과거에 목숨을 걸고 있다. 그들의 모습은 과거에서 온 사자(死者)들 같다. 정말 이러고서야 이 나라에 현재와 미래가 존재한다고 할 수 있을까? 현재도 없고, 미래는 더 없는 이 나라는 정말 암흑기(暗黑期)이다. 과거를 현재 자신들의 출세 수단으로 이용하는 이들이 없어지지 않고서는 우리는 1900년대 초보다 더 혹독한 암흑기를 보내야 할지도 모른다.이 나라에는 과거에 묶여 있는 것이 또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교육이다. 이를 증명하는 법이 있다. “공교육 정상화 촉진 및 선행교육 규제에 관한 특별법” 이 법은 이 나라 교육 현실을 극명히 보여주는 법이다. 법이 만들어져야 할 정도로 이 나라 교육은 비정상적이다. 그런데 법으로 모든 것이 정상화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마는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법을 비웃기라도 하듯 우리 교육은 하루가 다르게 교육의 본질에서 멀어지고 있다. 인디언들은 4월을 “생의 기쁨을 느끼게 하는 달”이라고 했다. 과연 우리 학교 현장은 어떨까? 학교 현장의 4월은 학생들이 학교생활의 기쁨을 느끼기는커녕 법이 얼마나 현실과 동떨어져 있는지를 거듭 확인하는 달이다. 이 나라 학생들에게 있어 4월은 ‘시험을 보는 달’이다. 교사들의 칼 퇴근 시간에 맞춰 교문이 굳게 닫히는 학교와는 달리 법을 비웃기라도 하듯 사교육 현장은 불야성(不夜城)을 이루는 것이 이 나라 4월의 교육 모습이다.정말 아이러니 하게도 학생들은 학교 교사가 출제하는 시험을 풀기 위해 학원에서 밤늦게까지 아주 열심히 공부한다. 그리고 학교 수업 시간에는 다른 일을 한다. 교사들은 그런 학생들을 자신의 수업에 집중시킬 마음이 많이 없다. 왜냐하면 괜히 힘을 뺄 필요가 없으니까! 수업 시간이라는 자신들의 일당만 채우면 되니까!양육강식 시험에 주눅 든 학생들로 가득한 4월 학교 모습이 어떨지 기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2019-04-02

무엇을, 그리고 누구를 위한 특별법인가

김진홍 한국은행 포항본부 기획조사팀장최근 포항지진과 관련하여 정치권, 재계, 시민 등 각 계층별로 각자가 추구하는 목적은 다를지 모르나 특별법 제정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모두 공감하고 있는 모습이다. 실제 법을 제정하는 것은 입법부인 국회에서 이루어지겠지만 우리나라의 특수성을 고려하면 청와대 홈페이지에서 이루어지는 국민청원제도는 무시할 수 없는 민의를 수렴하는 하나의 장치임은 분명한 사실이다. 포항 지진과 관련한 특별법 제정을 청원하는 항목은 ‘안전·환경’분야에 청원기간만료가 4월 29일인 “11·15 포항지진 피해배상 및 지역재건특별법 제정을 간곡히 요청합니다.”라는 다소 긴 제목인데 4월 2일 오후 6시 현재 10만5천251명이 동참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그런데 다소 이상하다는 의문이 들었다. 불과 몇 해 전, 정확히는 2015년 9월 10일 모 방송사가 보도한 바에 따르면 당시 포스코의 화력발전소 건설을 위해 상공회의소를 주축으로 70여 개 단체가 2주간에 걸쳐 이루어진 서명운동에는 무려 32만 명의 시민들이 서명하였다. 그런데 이번 포항지진과 관련한 범시민적인 운동은 생각만큼 폭발적이지 않은 모습이다. 이는 아마도 무엇을, 그리고 누구를 위한 특별법인가라는 것에 대해 명확하게 인식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첫째, 오해를 하지 말자. 포항시민은 물론이고 다른 지역민을 포함한 모든 국민들에게도 마찬가지로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지만 이번에 특별법을 제정하고자 하는 것은 단돈 1원이라도 포항지진에 따른 보상금을 더 받기 위한 목적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어떠한 국가적인 차원에서 시행하는 프로젝트가 정상적인 절차와 단계를 밟아 사업이 추진되고, 포항지진이 발생하기 까지 철저한 관리감독과 더불어 국민의 안전을 저해하는 행위는 없었는지, 그리고 앞으로도 이러한 일이 재발되지 않도록 국가시스템을 확립하기 위해서는 포항지진을 반면교사로 삼아 특별법을 제정하자는 취지인 것이다. 때문에 포항시민가운데 나는 피해를 받은 것이 없고, 보상을 요구할 것도 없으므로 국민청원이나 특별법 제정은 나와 무관하다는 오해를 하지 않았으면 한다. 내가 아닌 우리 사회 전체의 안전을 도모한다는 시각에서 이번 특별법 제정을 인식해야할 필요가 있다.둘째, 대의명분을 잊지 말자. 국민청원의 제목에서는 피해배상과 지역재건이라는 핵심적인 요청사항도 들어있기는 하다. 하지만, 이번에 특별법이 제정된다면 적어도 그 포괄범위는 포항이라는 지역을 벗어나야만 의미가 있는 특별법이 될 것이다. 지열발전에 대한 시험연구 프로젝트는 범국가적인 차원에서 미래 먹거리를 찾기 위한 새로운 에너지원 발굴을 위한 사업의 하나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러한 의미에서 앞으로도 첨단과학기술 등 국가 차원의 프로젝트에서 국가가 국민의 안전을 최우선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미처 예견하지 못한 부작용이 발생하였을 때 합리적인 피해의 산정과 사회적 안전을 최대한 보장할 수 있는 투명한 관리체계를 확립하기 위해서라도 그와 관련한 특별법을 이번 기회에 제정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지난 몇 년간 온 국민이 관심을 가졌던 세월호에 관한 특별법의 정식명칭은 “4·16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 등을 위한 특별법’이다. 단순히 세월호 피해자를 보상하기 위한 특별법이었다면 국민적 관심에서 많이 벗어났을 것이다. 하지만 앞으로 이러한 일이 어디의 누구에게도 발생할 수 있다는 대의명분에 국민 모두가 동참하였던 것이다.이제 지진피해를 자신이 직접 받았는지 아닌지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적어도 국가의 사업보다 국민 안전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특별법 제정에 대해서는 포항 시민은 물론 다른 지역의 국민들도 적극 동참해야만 할 것이다.

2019-04-02

한 계단 아래 서서 바라보기

공자 일행이 채(蔡)나라로 가던 중 식량이 떨어져 채소로 일주일을 버티는 중입니다. 지친 그들은 한 마을에서 잠시 쉬기로 합니다. 공자가 깜박 잠든 사이 제자 안회(顔回)가 몰래 빠져나가 쌀을 구해옵니다. 구수한 밥 익은 냄새가 흐릅니다. 공자가 잠에서 깨어나지요. 코끝을 스치는 밥 냄새에 밖을 내다봅니다. 아.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안회가 솥뚜껑을 열고 밥을 한 움큼 입에 넣고 허겁지겁 먹고 있는 겁니다. 공자는 슬쩍 빈정이 상합니다. ‘안회는 평상시에 내가 먼저 먹지 않은 음식에는 손도 대지 않았는데 이것이 웬일일까? 지금까지 안회 모습이 거짓이었을까?’ 제자에 대한 의심이 모락모락 피어납니다.안회가 밥상을 차려 공자 앞에 내려놓습니다. 공자는 안회를 어떻게 가르칠까 생각하다가 묘안을 떠올립니다. “안회야, 내가 방금 꿈속에서 선친을 뵈었는데 밥이 되거든 먼저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라고 하더구나.” 제사에 올릴 음식은 아무도 손을 대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안회도 알기 때문에 먼저 밥을 먹은 것을 뉘우치게 하려는 의도를 품고 말했던 것이지요.안회의 대답은 공자를 부끄럽게 만듭니다. “스승님, 이 밥으로 제사를 지낼 수는 없습니다. 제가 밥이 익었나 보려고 뚜껑을 연 순간 천장에서 흙덩이가 떨어졌습니다. 스승님께 드리자니 더럽고 버리자니 아까워서 제가 그 부분을 이미 먹어 버렸습니다.” 공자는 잠시나마 안회를 의심한 것을 후회하며 다른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나의 눈을 믿었다. 그러나 나의 눈도 완전히 믿을 것이 못되는구나. 예전에 나는 나의 머리를 믿었다. 그러나 나의 머리도 역시 완전히 믿을 것이 못되는구나. 너희들은 알아두어라. 한 사람을 이해한다는 것은 진정으로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누군가를 이해한다는 것은 내 인식의 틀에서 벗어나는 노력을 필요로 합니다. 영어로 이해 즉 Understand는 Under + Stand 가 결합된 단어지요. 다른 사람보다 한 계단 아래 서는 것을 의미합니다. 위에서 내려다보는 것도 아니고, 동일한 칸에서 수평적으로 눈을 맞추는 것도 아닙니다. 타인 보다 한 칸 또는 여러 칸을 아래에 서야 비로소 진실이 보이기 시작합니다.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어려움을 겪을 때 공자와 안회의 이 사건을 기억해 볼 일입니다. 평화의 도구는 이해받기 보다 먼저 이해하는 사람입니다. 한 칸만 아래로 내려가 텅 빈 마음으로 주위 사람들을 바라보는 하루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조신영 인문학365 대표

2019-04-02

늑대가 올까?

김학주한동대 교수최근 독일 10년물 국채금리는 마이너스로 전환됐다. 미국 국채 10년물 금리도 예상외로 빨리 하락해 이제는 3개월물 금리를 하회하기 시작했다. 장단기 금리가 역전된 것이다. 2차대전 이후 이렇게 장단기금리가 역전됐을 때마다 경기 침체가 있었다. 그 만큼 기업들의 투자기회가 없고, 상업은행이 부실해졌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미국 중앙은행은 장단기 금리 역전을 막으려고 무차별적으로 우호적인 정책을 펼쳤지만 실패하는 모습에 투자자들은 긴장하고 있다.또한 올 들어 세계증시가 반등할 수 있었던 이유는 우호적인 정책으로 인해 풍부한 유동성이 증시에 남아 있을 수 있겠다는 기대뿐 아니라 휘청거리던 유럽의 실물경기가 안정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그러나 오히려 미국조차 흔들리는 모습이다. 최근 발표된 3월 미국 제조업 구매관리자 지수는 전월 53에서 반등할 것으로 기대됐지만 52.5로 주저 앉았다. 정책이 먹히지 않았던 것이다.이제 쓸 수 있는 카드를 다 썼다면 금융 쇼크가 오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린다. 역사적으로 금융위기는 어떤 경로를 통해 왔을까? 첫째, 정부의 정책착오에서 오는 경우다. 정부는 과거의 위기(crisis)에 대해 트라우마가 있다. 리먼 사태 당시 금융시스템이 완전히 붕괴됐었고, 이를 인위적으로 복원한 상태다. 그런데 그 금융기관들이 얼마나 회복됐는지 자신이 없다. 그래서 경기가 과열되어 정점을 찍는데도 불구하고 더 강한 정책을 내 놓고 있는 것이다. 그럴수록 후폭풍이 클 수 밖에 없다.둘째, 금융기관들은 쉽게 돈 벌 수 있는 상황에서 탐욕스러워진다. 과거 은행들은 심부름만 하고 수수료를 받았는데 2000년대 들어 저성장을 극복하기 위해 각국 정부가 돈을 풀고 금융자산에 가격 거품이 생기자 고유계정을 확대하고, 레버리지(leverage)까지 추가했다. 심지어 구조가 복잡한 사금융(shadow banking) 상품이 난무하게 되었는데 정부 규제는 이를 따라갈 수 없다. 지금은 그 상품들이 멀쩡해 보여도 어디서 곪고 있는지 당장 드러나지 않을 수 있다.셋째, 투자자들도 “과거는 과거일 뿐 이번에는 다르다”라고 이야기한다. 그래서 뉴노멀(New normal)을 주장한다. 사실 이번이 과거와 다른 부분은 있어 보인다. 인구구조에서 차이가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더 이상 얻을 것이 없는 상태에서는 빠져 나오려는 돈의 속성은 변함이 없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맹목적인 신뢰는 경계해야 한다.지난 10년간 성장기회를 찾지 못했던 기업들이 풀린 돈으로 할 수 있었던 것은 MA를 통한 경쟁완화뿐이었다. 그런데 구경제 한계기업들이 이런 MA를 통해 지금까지 수명은 연장시킬 수 있었지만 구조적 문제는 시한폭탄처럼 그대로 안고 있다. 언제 터질지 모른다. 따라서 급작스러운 시장의 충격(tail risk)에 대비해야 하며, 특히 증시가 컴퓨터 프로그램 매매에 의해 쏠려 있기 때문에 불확실성이 생길 때마다 헤지(hedge)를 통해 증시 위험에서 피해있는 수고는 할 필요가 있다.장단기 금리 역전 현상이 지속되는 것을 막기 위해 미국 연준은 기준금리를 다시 내려야 할 형편이다. 다행스러운 것은 마이너스 금리조차 받아줄 만큼, 즉 더 낮은 수익률을 참을 수 있을 만큼 금융자산이 필요한 은퇴인구가 아직 늘고 있어 금융자산 가격거품은 좀 더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낮은 수익률을 참을 수 있는 사람의 인내력에는 한계가 있다.결국 각국 정부는 민간경제를 통한 새로운 부가가치를 만들어 희망을 줘야 한다. 이를 위해 규제를 완화할 수 밖에 없다. 특히 데이터 관련 규제가 풀리며 맞춤형 서비스가 확대될 것이다. 이런 신경제가 만들어질텐데 그 속도가 실망스러우면 금 가격이 급등하며 금융위기가 찾아 올 것이다.

2019-04-01

기러기 선비(士), 그대를 응원합니다

톰 워샴(Tom Worsham)은 기러기의 생태를 연구한 사람입니다. 그 연구에서 보여주는 기러기는 먹이와 따뜻한 곳을 찾아 4만㎞를 비행하는 능력을 갖춘 것으로 밝혀집니다. 서울서 뉴욕까지의 거리가 1만 1㎞쯤 되는데 4만㎞면 지구 한바퀴를 도는 실로 어마어마한 비행능력이지요.기러기의 이런 놀라운 비행 능력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요? 홀로 날지 않고 무리가 그룹을 지어 비행하는데 그 비밀이 숨어 있습니다. 기러기는 리더를 중심으로 V자 대형을 그리며 먼 여행을 합니다. 맨 앞에서 날아가는 리더의 날갯짓은 기류에 양력(揚力)을 만들어 주어 뒤따라오는 동료 기러기들이 혼자 날때보다 대략 71%의 에너지를 절약하면서 가볍게 날 수 있는 힘을 준다고 합니다.기러기들은 그룹으로 편대 비행을 할 때 끊임없이 소리를 냅니다. 영어로는 기러기 울음을 Honk(홍크)라고 하지요. 앞에서 거센 바람을 가르며 힘들게 날아가고 있는 리더에게 보내는 응원의 소리입니다. “홍크, 홍크, 홍크!” 앞서가던 기러기가 맞바람과 싸우며 지치고 힘들면 어느 새 다른 기러기가 그 자리를 대신합니다. 주기적으로 이들은 맨 앞 자리를 번갈아 가면서 교대로 앞장을 서고 무리가 뒤따르며 응원하는 방식으로 비행을 지속하는 거지요.만약 무리 중 한 기러기가 아프거나 총에 맞아 다치거나 하면 혼자서 그룹을 이탈하도록 방치하지 않습니다. 몇 마리의 기러기가 연약한 기러기와 함께 대열에서 빠져나와 아픈 기러기를 돌봅니다. 지친 동료가 원기를 회복해 다시 날 수 있을 때까지 곁을 지킵니다. 혹은 생명을 다할 때까지 마지막을 함께 지켜 주는 것이지요.도산 안창호 선생은 기러기의 이런 그룹 리더십에서 영감을 얻어 흥사단의 상징에 기러기를 그려 넣습니다. 기러기 모습은 한자로 선비(士)를 의미하기도 하지요. 기러기와 같이 서로 협력하고 응원하며 돌보는 멋진 선비정신 리더십으로 우리 민족을 구하자는 흥사단의 열망이 담겨 있습니다.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습니다. 아무리 뛰어난 천재라 해도 말이지요. 사람과 사람의 마음이 하나로 묶어지고 서로의 뜻이 통할 때, 하나가 둘이 되고, 둘이 넷이 되고 넷이 열 여섯이 되고 열 여섯이 육십사가 될 때, 우리 몸짓은 기러기처럼 가볍게 길고도 먼 여행을 무사히 해 낼 수 있는 법입니다. 시대의 지도자로, 기러기를 닮은 선비로 오롯이 우리와 여행을 함께 하실 그대를 응원합니다. 홍크, 홍크, 홍크!/조신영 인문학365 대표

2019-04-01

7대 비리의 주범

강희룡 서예가문재인 정부의 민심을 사로잡고 혁신을 바라는 2기 내각 장관 후보자들의 국회 인사청문회가 끝났다. 이번 청문회 역시 여당에서는 참신하고 훌륭한 인물을 영입하였다고 내세우며 감싸는 반면, 야당에서는 그 인물의 전력을 거론하며 도덕성을 바탕으로 각종 비리를 들추어 질타하는 모습이 공수(攻守)만 바뀌었지 과거와 똑같다. 고위급 인사를 등용하기 전에 그 사람의 직무능력이나 도덕성에 문제는 없는지를 평가하는 인사청문회의 5대악이나 7대 비리는 늘 있는 일이기에 그만큼 인재 영입이 힘들고 어려운 일이라는 반증이라고도 하겠다. 그러나 훌륭한 사람을 뽑아 국가 발전을 위하여 일하게 하는 것은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서애 유성룡이 이순신 장군을 발탁한 일은 매우 좋은 사례라 하겠다.청와대가 제시하고 있는 7대 비리 관련 고위공직 후보자 인사검증 기준을 보면 병역 기피, 세금 탈루(꼼수 증여 포함), 불법적 재산증식(부동산투기나 다운계약서 포함), 위장 전입(주민등록법 위반), 연구 부정(논문표절 포함), 음주 운전, 성 관련 범죄 등 7대 분야에 대해 어느 하나라도 해당할 경우에는 임명을 원천 배제하는 것이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과거정부나 현 정부 모두 이 기준에 자유로운 인사가 한 명도 없으니 청문회를 바라보는 국민들의 심정은 공분을 느낀다. 현대에도 정부에 명마를 잘 고르는 백락같은 사람이 있다면 인사청문회에서 부정적인 사연이 드러나 모욕을 당하는 안타까운 일도 없을 것이며, 정당에도 백락같은 사람이 있다면 인재 영입에 있어서 호사가의 입방아에 오르내리는 일도 없을 것이다. 정부가 다주택자들을 집값 폭등의 주범을 규명했는데 정부가 죄악시하는 일을 오랫동안 해온 후보자는 고위공직자로서 자격이 없다. 자신의 비리행위를 합리화시키는 말잔치로 상황을 모면해보려는 자들이 관료로 입성하면 그들은 권력을 이용하여 또 비리를 저지를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지금까지의 인사청문회 후보자들 모두 이 7대 비리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을 보면 결국 사회 지도층의 상부구조에서 서로 국가정보를 공유, 이용하면서 물욕으로 인한 부의 축적에만 혈안이 돼 우리사회의 병리현상을 부추기는 세력의 주축이 되고 있다는 의구심이 든다. 그렇다고 이 땅에 인재가 없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인재는 대대로 끊임없이 나타난다고 했지만, 언제나 인물을 알아보는 안목이 문제였다. 그래서 한유(768~824년)는 ‘세상에 백락이 있은 다음에 천리마가 있는 것이니, 천리마는 항상 있으나 백락은 항상 있지 않다.’라고 개탄했다.이번 청문회의 특이점은 7명의 후보자 중 세 명의 자녀들이 해외유학 중으로 모두 국민 정서와는 동떨어진‘황제유학’을 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지명 철회된 과기부장관 후보자가 자식에게 1억 원이 훨씬 넘는 고가 외제차를 사주려고 전세금을 올려 세입자에게 허탈감을 안기는 행위는 공인으로서의 자세가 도를 넘었다. 자진 사퇴한 국토부 장관 후보자 역시 다주택 소유자로 부동산 투기 비난을 피해가려는 꼼수증여를 했다는 비판도 나온다. 중소기업 장관 후보자 역시 과거정부 인사청문회에서 자료 제출 거부, 부실 소명, 과소비를 강하게 질타하더니 정작 본인이 장관 후보자가 되자 재산 형성과정과 과소비, 해외송금 관련 기록 등을 일체 거부했다. 또한 일 년 씀씀이가 4억 수 천만 원이 넘는 것을 보면 ‘내로남불’의 극치이다. 2000년 2월 국회법 개정으로 인사청문회제도가 도입된 이후 지금까지 인사청문회를 받아온 후보자들은 사회지도층 인사들로서 모두 하나같이 7대 비리의 중추적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결국 국토부, 과기부 두 명의 후보자가 낙마하고 청와대 대변인 또한 물러났지만 거듭된 인사 참사는 국가와 국민을 병들게 한다. 인사는 만사(萬事)다. 그러나 인사가 잘못되면 망사(亡事)가 될 수도 있다. 이런 적폐를 막을 수 있는 현실적인 대안은 강한 야당과 깨어있는 국민뿐이다.

2019-04-01

외롭고 높고 쓸쓸한 강호(江湖)에서

△무협 영화의 ‘수직과 수평’, 그리고 ‘강호(江湖)’액션 영화의 기대치는 ‘강도’에 있다. 총이든, 칼이든 맨손이든 도구의 차이가 있을뿐 형식은 그것의 수직과 수평의 조화에 있다.박진감 있고, 멋지고, 화려하고, 호쾌하고, 아름답다는 표현의 기저에 바로 ‘강도’가 있다. 그리고 그 ‘강도’에 술(術)과 도(道)와 예(藝)의 의미를 부여하여 다양한 변주를 보여주고 있는 액션 영화의 장르가 있으니 친숙하고 좋아하는 무협 영화다.무협의 장소는 또 얼마나 매력적인가. 달빛 고요하고 갈대숲 바람에 살랑이는 나루터이거나, 번잡한 저잣거리이거나, 말을 묶어두고 협객들이 목을 축이는 주점이거나, 대륙의 깊은 곳 모랫바람 휘날리는 사막의 초입이거나. 무협 영화는 이 모든 장소를 묶어 ‘강호(江湖)’라 지칭한다. ‘강호’라는 말뜻의 유래는 다양하지만 그 단어가 주는 울림과 분위기는 수많은 무협 영화를 섭렵하며 자연스럽게 알고 있거나 알 것 같다.무협 영화의 협객들은 이 강호를 들고 남을 반복하며 강도의 수직과 수평을 반복한다. 강호에 들어갈 때의 명분(보통 이 명분은 역사적 사명이나 복수를 목적으로 한다)과 강호를 떠날 때의 구실을 통해 강도만 있던 무협의 세계에 철학과 함께 인간으로서의 다양한 삶의 모습들을 그려 넣는다.‘…. 도도한 파도는 해안에 물결을 만들고/물결따라 떴다 잠기며 아침을 맞네/푸른 하늘을 보고 웃으며 어지러운 세상사 모두 잊는다/이긴 자는 누구며 진자는 누구인지 새벽 하늘은 알까….’리듬만 들어도 한번쯤은 들어봤을 무협 영화의 유명한 노래 ‘창해일성소(滄海一聲笑, 푸른 파도에 한바탕 웃는다)’의 가사일부다. 모든 미련을 버리고, 피가 낭자하고 목숨이 오고갔던 강호를 물러나는 이의 인생무상의 정서가 가득하다.‘…. 의연하게 서서 일만근의 파도를 바라본다/열혈은 태양보다 더 뜨겁게 타오르니/담력은 단련된 무쇠와 같고, 뼈는 정련한 강철과 같다/가슴에 거대한 포부, 눈빛은 끝없이 멀리/온 마음으로 사나이가 될 것을 내게 맹세한다….’ 영화 ‘황비홍’의 유명한 노래 ‘남아당자강(남자는 마땅히 자기 스스로 강건해야 한다)’의 가사 일부다. 그 내용에는 만반의 준비를 하고 강호에 들어가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각오가 대단하다. 무협 영화의 가장 유명한 두 노래 역시 강호의 들고 남을 그 내용으로 하고 있다.무협 영화는 이처럼 강호(江湖)와 강도를 기반으로 한 구조적인 형태의 장르다. 이 구조 속에서 액션은 공중을 날아다니고 장풍이 오고가며, 칼바람에 거목이 쓰러지고, 휘어진 대나무 위에 가볍게 내려 앉아 몸짓 한 번으로 무수한 적들을 쓰러 뜨린다.△무협 영화의 형식을 빌어 상실과 고독을 이야기하는 ‘일대종사’왕가위 감독의 영화 ‘일대종사’가 시작되면 주인공 엽문(양조위)이 말한다. “쿵푸는 두 단어로 말할 수 있다. 수평과 수직! 지는 자는 수평이 된다. 최후에 수직으로 서 있는 자가 승리하는 것이다” 폭우가 쏟아지는 밤 거리에서 적들은 수직으로 다가와 수평으로 무너지고 그 적들과 함께 주변의 기물들은 함께 수평으로 밀려나 부서진다. 수직으로 내리긋는 비 속에서 최후까지 수직으로 남는 자가 바로 엽문이다. 이 대사는 다시 영화의 결말에서 반복된다.양조위가 연기한 영춘권의 일대종사 엽문이 실존인물인 반면, 팔괘장의 유일한 후계자로 남아 아버지의 복수를 하는 장쯔이가 연기한 궁이는 허구의 인물이다. “무술의 첫 번째 단계는 자신을 보는 것이고, 그 다음은 천지, 마지막으로 중생을 보는 것”은 팔괘장의 제창자 궁이 아버지 궁보삼의 대사다. 남방 무술의 영춘권과 북방 무술의 팔괘장, 남자와 여자의 차이만큼 무술을 대하는 두 사람의 세계관은 출발이 다르다.팔괘장의 수제자이며 궁이와는 남매와 같은 마삼(장진)이 궁이의 아버지를 해친다. 하지만 아버지의 벗과 친척들은 모두 복수를 말린다. 이는 궁이 아버지의 대사 속에 녹아 있는 무술을 대하는 태도와 통하는 지점이다. 그러나 궁이는 복수를 결심하면서 수평과 수직의 세계, 이기고 지는 엽문의 대사 속으로 들어간다.이에 반해 엽문은 수직과 수평의 세계에서 무술의 또 다른 세계로 한발짝 들어간다. 영화에서 엽문은 팔괘장, 형의권, 홍가권 고수에게 한 수씩 지도를 받는다. 이 지도는 무술의 우열을 가리는 것이 아니라 각 문파별로 계승되어 온 무술의 고유한 세계관을 읽는 과정이다. 이 세계관은 각 무술의 품새가 보여주는 동작의 의미를 통해 삶의 철학을 두고 겨루는 대결이기도 하다. 이 중 가장 백미는 엽문과 궁이가 ‘전병’을 맞잡고 겨루는 대결로 우아하고 아름다우며 느리면서도 팽팽한 긴장감이 가득하다. 대결의 와중에 궁이는 영춘권의 자세를, 엽문은 거기에 호응해 팔괘장의 자세를 취한다. 어찌보면 춤을 추는 것처럼, 두 연인의 희롱과도 같은 느낌으로 표현되었다.무협 영화의 형식을 빌어왔지만 ‘일대종사’는 기존의 무협영화와는 다르다. 이 속엔 액션의 강도를 표현하는 방식이 다르며, 강호(江湖)의 들고 남보다는 일제침략이라는 역사적 사실 속에 머무르며, 맞닿을 수 없는 인연과 높고 높은 경지에서 느끼는 인간적인 외로움을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 내내 흐르는 독백처럼 ‘일대종사’는 왕가위적인 색채가 고스란히 담겨 있는 영화다.△아름다운 풍경에 담긴 ‘인간’ ‘자객 섭은낭’수직과 수평, 강도의 무협영화에서 이 모든 것을 말끔히 지워낸 한 편의 무협영화가 있으니 허우 샤오시엔 감독의 ‘자객 섭은낭’이다. 액션은 아예 없다고 할 정도로 짧고 간단하다. 살인의 이유, 죽이는 자와 죽는 자의 관계는 구구절절한 사연이 없다. 여기에 영화 초반 흑백으로 섭은낭의 과거를 보여주는 장면을 제외하고 자객은 아예 살인에 대한 의지가 있는지 조차 의문스러울 정도다.영화의 무대는 당나라다. 당나라는 수차례에 걸쳐 변방의 위박을 속국으로 삼으려 했지만 만만찮은 저항에 부딪히게 되고 마침내 독립국의 지위를 인정한다. 그리고 위박의 절도사 전계안과 그 집안의 관계를 둘러 싼 암살과 복잡다단한 얽힘이 이야기를 끌어 가고 있다.어려서 집을 떠난 섭은낭은 스승에 의해 암살자로 키워진다. 어느 날, 위박 지역의 절도사이자 정혼관계였던 전계안을 암살하라는 명을 받고 고향으로 돌아 온다. 하지만 옛 정 때문에 암살을 포기하고 스승과 부모에게 작별을 하고 신라로 떠난다는 게 이야기의 전부다. 간단한 줄거리에 복잡다단한 얽힘이라고 표현했던 이유는 등장하는 인물들의 관계를 쉽게 파악할 수 없고, 감독 또한 이러한 관계를 설명할 별다른 장치들을 마련해 두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여기에, 이기고 지는 수직과 수평의 구도가 제외되어 있다. “너는 검술은 완벽하게 익혔으나 마음이 모질지 못하다”라고 말하는 섭은낭의 스승 가신공주의 말 속에 자객으로써 갖추어야할 필수적인 자격요건중 하나인 ‘마음’이 자객답지 못한 주인공이 등장한다. 그렇다고 해서 섭은낭이 암살을 포기하고 물러났을 때나, 두려움과 도덕적 갈등을 표정에 담거나 스스로를 질책하지 않는다. 늘 그렇듯 조용히 듣고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듯이 다가왔다가 사라질 뿐이다.‘이유없음’이다. 정치적 음모나 복수, 강호의 도리는 없다. 주인공 섭은낭의 표정에서조차 읽히지 않는 까닭모를 ‘멈춤’에 가깝다. ‘망설임’으로 읽힐지도 모르지만 섭은낭의 실력과 주저없는 물러남으로 봤을 때 ‘멈춤’이라고 표현하는게 적절하다. 섭은낭의 ‘섭’은 귀 이(耳)자 세 개가 모인 글자로 ‘소근거리다’는 뜻이다. 잘 듣는다는 의미다. 은(隱)은 ‘숨는다’는 뜻이다. 이름처럼 섭은낭은 잘 듣고 은둔하는 여인이라는 의미다. 영화의 모든 상황에서 섭은낭이 화면에 등장하지 않더라도 기등과 나무 위, 커튼 뒤 어느 곳에선가는 모든 상황을 듣고 바람처럼 나타났다가 바람처럼 사라지는 존재다.딱 이만큼이 영화 ‘자객 섭은낭’의 ‘강도’다. 현란한 칼놀림이나, 중력 법칙을 무시하고 공간을 자유롭게 지배하는 무협이 아닌, 잠시 칼을 맞대고 물러나는 정도의 ‘강도’. 장검이 아니라 단검을 들고 다가갈 수 있는 만큼의 거리, 잠시 장검의 길이를 벗어나 단검의 길이로 다가섰다가 뒷걸음질로 물러나는 정도의 간단한 강도다. 무협 영화의 장르를 빌어왔으나, 수직과 수평, 강도가 다른 영화로 봐야할 것이다. 무협영화에서 일반적으로 기대하는 것들이 말끔히 제거되어 버린 영화로써 허우 샤오시엔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것이 이 영화에서 무엇인가 쉽게 알 수 없다는 당혹감과 마주할 것이다.그러나 왕가위 감독의 ‘일대종사’가 무협 영화의 장르를 빌어 전작들에서 이야기하고자 했던 ‘상실’과 ‘고독’의 깊이를 말하고자 했듯이, 허우 샤오시엔 또한 ‘자객 섭은낭’에서 그가 끊임없이 밀고 왔던 영화의 중심이 그 속에 있음을 말한다. 2016년 영화 개봉에 맞춰 내한한 허우 샤오시엔은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이 영화의 중심과 그의 전작들의 중심은 모두 ‘인간’이며 ‘사람의 감정,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담아내는 데 있다’고 설명한 적이 있다.무협 영화에서 우리가 기대했던 것들을 발라내버리고, 허우 샤오시엔의 ‘중심(인간)’을 읽으려할 때, 잠시도 눈을 뗄 수 없는 아름다운 풍경과 그 풍경 속에 흐르는 바람소리, 물소리, 새소리 등이 ‘인간’과 조화롭게 어울리는 순간의 아름다움을 발견할 것이다. /김규형 문화기획사 엔진42대표*‘일대종사’와 ‘자객 섭은낭’은 네이버 영화와 구글플레이에서 감상할 수 있습니다.

2019-04-01

노키즈존

노키즈존(No Kids Zone)은 음식점, 카페 등에서 어린이들의 출입을 금지하는 곳을 의미하는 대한민국의 신조어로, 2014년 7월경부터 사용되기 시작했다. 노키즈존이 처음 이슈가 되기 시작한 것은 인터넷 커뮤니티등을 통해 9살난 아이가 한 여성에 의해 끔찍한 화상을 당했다는‘국물녀’왜곡사건으로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알고보니 아이가 무방비한 상태로 뜨거운 국을 들고 뛰어다니다가 여성에게 직접 부딪혀 발생한, 전적으로 아이의 잘못으로 인해 발생한 일이었다. 이를 무마하기 위해 부모가 언론을 왜곡하는 바람에, 아이들과 극성 부모에 대한 일반인들의 반감을 불러일으켰다.노키즈존을 이슈로 만든 또 하나의 사건은‘스타벅스 오줌컵’ 사건이다. 한 부모가 스타벅스 매장 내에서 공용으로 사용되는 머그컵에 아이의 소변을 받는 사진이 널리 퍼지면서 큰 이슈가 된 사건이다. 부모는 머그컵을 씻어쓰면 되니 문제가 없다는 듯 반납구에 머그컵을 올려놓고 가서 많은 사람들의 공분을 일으켰다.노키즈존은 가게도 가게주인의 사유공간이라는 인식에서 출발한다. 비상업 목적의 민간 주택지나 토지 등의 경우 어린이는 물론 일반인의 출입을 전면금지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에서 일부 가게 주인들은 사유지에 대한 권리행사는 당연하다고 주장한다. 반면 노키즈존에 반대하는 부모들은 아이들이 가게주인을 폭행하거나 영업방해를 하는 것도 아니고 그저 어린애들일 뿐인데 애들 장난 등을 가지고 노키즈존을 지정한 것은 차별 및 인권침해라고 주장하고 있다. ‘아동’이라는 특정 집단을 잠재적인 위험, 민폐 집단으로 간주하고 사전에 차단하는 함으로써 아동의 기본권을 침해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2017년 대한민국 국가인권위원회는 노키즈존에 대한 일부 부모 및 주부층들의 제소안을 심의한 결과 노키즈존은 명백한 인권상의 차별행위라고 권고하기도 했다.어쨌든 노키즈존은 공공장소에서 지켜야 할 예절교육에 관심없는 부모들의 과도한 아동옹호적인 태도가 사회적갈등으로 떠오른 대표적 사례로 평가된다. 동방예의지국으로 불려온 한국의 전통문화에 흙탕물을 끼얹는 신조어요, 신문화라 그저 씁쓸할 뿐이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19-04-01

동맹외교 vs 중재외교

변창구대구가톨릭대 명예교수·국제정치학문재인 정부는 ‘한미동맹의 당사자’인 동시에 ‘북미협상의 중재자’ 역할을 자임하고 있다. 국제관계에서 하나의 행위자가 ‘동맹외교’와 ‘중재외교’라는 상이한 두 개의 외교정책 목적을 동시에 추구할 수 있는가? 이 두 개의 외교정책은 모순되거나 충돌할 가능성은 없는가? 동맹외교와 중재외교에 대해서 우리는 어떻게 인식하고 접근하는 것이 바람직한가? 이러한 의문들은 현재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북한의 비핵화외교에서 시급히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되는 당면과제들이다.지난 2월말 베트남에서 개최된 제2차 북미정상회담이 결렬되면서 우리 정부의 중재외교는 중대한 시험대에 올랐다. 정상회담의 결렬 후 북한 외무성의 최선희 부상은 “한국은 워싱턴의 동맹으로서 중재자가 아니라 플레이어(player)”라고 비판한 바 있다. 또한 북한이 남북공동연락사무소에서 전면 철수했다가 3일 만에 일부 복귀한 것도 북미협상을 둘러싼 우리의 중재 역할에 대한 불만의 표시인 동시에, 향후 북미협상의 과정에서 그들의 의사를 제대로 대변하라는 압력이었다.미국 역시 우리 정부의 대북인식과 비핵화 접근방식에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미국은 북한의 비핵화를 위해서는 강력한 제재가 지속되어야 한다는 자신의 입장을 무시하고 한국이 북한에 기울어져서 단계적 비핵화 조치에 따른 제재완화를 주장하면서 남북경협을 가속화하려 한다고 비판하고 있다. 특히 미국은 국제외교무대에서 보여주는 문대통령의 행태가 한미동맹의 당사국으로서 자신과 공조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북한의 입장에 동조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이처럼 정부의 중재외교는 북미 양측으로부터 모두 그 진정성을 의심받고 있다. 북한의 위협에 대처할 목적으로 결성된 한미동맹의 당사자인 한국이 북미협상에서 중재자 역할을 하는 것은 그만큼 어려울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이제 정부는 중재외교와 동맹외교가 지니는 의의와 한계를 정확히 분석하고 향후 비핵화 외교전략을 제대로 설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중재외교는 북한을 협상테이블로 나오도록 설득하고 북미협상을 촉진함으로써 평화적 방법으로 북핵문제를 해결해 나가려한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있다. 특히 2차 북미정상회담의 결렬 이후 교착상태에 빠진 비핵화협상의 불씨를 다시 살려내는 것이 절실하다는 점에서 중재외교의 필요성은 인정된다. 트럼프 대통령이 문대통령과의 통화에서 “김정은 위원장과 대화해서 그 결과를 알려주는 등 적극적인 중재역할을 해 달라”고 요청했다는 사실은 바로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재외교가 동맹외교보다 결코 우선될 수는 없다. 왜냐하면 한미동맹은 북핵 위협에 대처하는 국가안보의 초석이기 때문이다. ‘한미동맹이 현재의 국가안보’를 보장해주는 것이라면, ‘중재외교는 미래의 한반도평화’를 구축하기 위한 것이다. 미래의 평화구축을 위한 중재외교가 현재의 국가안보를 위한 동맹외교를 위태롭게 하는 어리석음을 범해서는 안 된다.더욱 중요한 것은 강력한 한미동맹의 바탕 위에서 중재외교를 추진할 때 비로소 북한의 비핵화를 견인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북한은 2차 북미정상회담이 결렬되면서 대미협상력을 제고하기 위해서 중국 및 러시아와의 공조외교를 더욱 강화하고 있다. 이처럼 국제협상의 현실은 ‘힘의 논리가 지배’하고 있기 때문에 한미동맹의 균열은 오히려 우리의 중재외교 역량을 약화시킬 뿐이다. 따라서 한미동맹을 토대로 중재외교를 추진하고 있는 정부로서는 북한의 비핵화를 위한 한미 양국의 대북협상 목표가 상충되지 않도록 긴밀한 협의를 통하여 정책조율에 더욱 노력해야 한다. 국제협상에서 ‘중재가 실패할 경우에 믿을 수 있는 것은 오직 동맹밖에 없다’는 사실은 냉혹한 세계외교사가 가르쳐주고 있는 교훈이다.

2019-04-01

시간이 부족할 때 생각해 볼 일

미국 USA투데이 수석 칼럼리스트로 활동하고 있는 로라 밴더캠(Laura Vanderkam)은 두 아이를 키우는 워킹맘입니다. 그 와중에 소설도 쓰고 합창단을 조직해 단장으로 활동하며 소프라노 파트에서 노래도 하는 수퍼 우먼이지요. 로라 밴더캠은 자신의 시간관리의 비결을 이렇게 말합니다. “시간이 풍요로운 사람들의 비법을 조사하다가 놀라운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들은 시간을 아껴서 원하는 삶을 만드는 게 아니라 원하는 삶을 만들어 나가면 시간을 저절로 아낄 수 있다는 것을 터득한 사람들입니다.”로라 밴더캠은 빈틈없이 빡빡하게 사는 한 여성 CEO의 일주일 시간 사용 기록을 검토하다가 특이한 점을 발견합니다. 그 여성 CEO는 지하층 배관이 터지는 사건을 겪습니다. 수습하느라 정신없는 며칠을 보내지요. 체크해 보니 이 일로 7시간을 사용한 것으로 기록했습니다. 로라 밴더캠은 말합니다. “만약 이 여성 CEO에게 젊은 대학생이 찾아가서 진로에 대해 7시간만 멘토링을 해 달라고 했으면 뭐라고 대답했을까?” “가입한 어느 봉사 단체에서 7시간짜리 자원봉사 참여를 요청했다면?” “별로 친하지 않던 동창이 급한 일이 생겼다면서 7시간만 만나 이야기 좀 들어 달라고 한다면?” 아마 틀림없이 “시간이 없어서 아쉽지만 다음 기회에 하겠다.”라며 적당히 거절했을 것입니다.시간은 고정 불변의 딱딱한 물건이 아니라 탄력적인 생물과 흡사합니다. 쥐어 짜려 하면 거의 실패하지만 정말 필요한 곳이 나타나면 늘어나기도 줄어들기도 하는 존재입니다. 필요는 곧 우리 마음이고 자의든 타의든 무엇을 간절히 원하면 그것에 시간을 쓰게 되는 법이지요. 배관이 터지자 7시간을 낼 수밖에 없었던 CEO처럼 정말 해야 하는 일에는 시간을 낸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시간을 못 만드는 이유는 그만큼 절박하지 않기 때문인 거지요. 시간을 잘 관리하는 사람은 삶의 우선순위를 판단해 가장 중요한 일에 시간을 사용한다는 것을 로라 밴더캠은 배웁니다. 매주 우리 앞에는 168시간이 선물처럼 펼쳐집니다. 월요일 0시에 168만원이 들어오고 일요일 밤 12시면 잔고는 0으로 떨어지는 통장이 곧 시간이 아닐까요? 내가 가장 원하는 일에 이 소중한 자원을 사용하기 시작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 시간관리의 핵심입니다.3월을 마무리하고 더불어 새로운 한 주를 시작하는 박진감 넘치는 월요일입니다. 이번 주 우리에게 주어진 168시간을 어떻게 사용할지 즐거운 상상을 시작합니다./조신영 인문학365 대표

2019-03-31

타인과 화해하는 삶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인간은 누구나 태어나면서부터 타인과의 관계를 맺기 시작한다. 부모와 먼저 만나고 형제 자매를 접한다. 소꿉친구를 만나 놀다가 학교에서 친구를 사귀고 직장에서도 동료를 만난다. 인간은 가족, 이웃, 사회 공동체, 국가 공동체와 관계를 확대하면서 생활하는데 이를 생활원리 확대의 원리라고 부른다. 인간의 삶은 태어나서부터 세상을 떠날 때까지 이러한 삶의 굴레를 벗어날 수 없다. 나아가 이성적 존재인 인간은 종교적으로 초월적인 절대자와의 관계를 맺을 수 있다. 인간의 삶도 결국 타인과의 바람직한 관계를 맺어가는 과정이다. 이 모든 관계에는 바람직한 도덕율이 존재한다.현대 사회가 복잡해질수록 이러한 관계망이 흐트러지고 있다. 부모와 자식 간에도 가족 간에도 도덕률이 흐트러져 불화의 가정이 늘어나고 있다. 우리나라는 이혼율이 증가하고 파탄 가정도 점점 늘어나고 있다. 친구 간에도 끈끈한 우정은 사라지고 이해관계로 변질되고 있다. 사회 공동체 내의 경쟁은 날로 치열하고 인간의 관계는 더욱 이기적인 관계로 변질되고 있다. 사회 공동체 내의 개인간뿐 아니라 집단간에도 갈등과 대립이 심화되고 있다. 인간의 관계망은 물질적 풍요에도 불구하고 더욱 흐트러지고 있다. 세계 최빈국인 방글라데시가 행복지수가 오히려 높다니 이상한 일이다. 산업화 근대화의 역설적인 비극이 도처에서 발생한다.이 같은 비극의 원인은 어디에 있는가. 자신과 화해하지 못한 인간이 공동체 내의 타인과의 관계도 바람직하게 설정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주변에는 타인으로부터 약간의 공격만 받아도 어찌할 바를 모르는 사람이 많다. 타인에 대한 극한 감정으로 살인까지 저지르는 사람도 있다. 자신과 화해하지 못한 사람이 자존감이 결여되고 그런 사람일수록 타인과의 관계도 원만치 못하다. 독재자일수록 자존감이 결여된 사람이라는 분석도 있다. 윤리학자들은 인간이 타인과의 화해하는 방식을 제시하지만 그 실천은 어렵다. 타인과 불화의 증가는 사회 공동체의 위기구조를 양산한다.부활절이 가까이 오고 있다. 모든 종교가 남을 용서하고 사랑하라고 가르치고 있지만 용서는 사실상 어렵다. 용서라는 말은 쉬워도 인간의 감정이 앞서기 때문이다. 타인으로부터 받은 상처는 누구나 트라우마로 오래 간직한다. 용서는 결국 타인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을 위한 행위임을 알아야 한다. 남을 미워하면 상대가 망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먼저 망가진다. 주변에는 자신을 괴롭힌 상대를 죽을 때까지 보복하겠다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미운 상대가 죽기 전 자신이 먼저 세상을 떠나는 경우도 보았다. 자신부터 비워야 용서가 가능하다. 용서는 상대의 잘못된 행위만을 용서하라는 것이다. 이것을 심리학에서는 행동과 인격의 탈동일시(脫同一視)라고 부른다. 죄는 미워해도 사람을 미워해서는 안 된다는 법언과 같다.타인과 화해하기 위한 용서는 어떻게 할 것인가. 용서는 마음만 고쳐먹으면 어렵지 않게 할 수도 있다. 먼저 타인을 용서하기 위해서는 타인의 감정부터 잘 이해해야 한다. 세상에는 오해로 인한 불화가 많고 그것이 때로 평생 갈 수도 있다. 나는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했는데 상대는 그것을 ‘나의 자랑’으로 받아들이는 경우까지 있다. 모두 오해가 빚은 결과이다. 스티븐 코비의 ‘성공하는 사람의 7가지 습관’에는 이런 이야기가 있다. 지하철에 어린아이 두 명을 데리고 전철을 탄 아빠가 있었다. 차가 움직이자 두 아이가 천방지축으로 날뛰면서 울부짖었다. 차안의 승객들은 버릇없이 잘못 기른 이 아이들의 아버지에게 비난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승객들은 그 아이들이 교통사고로 숨진 어머니 장례를 치른 직후였음을 아무도 알지 못했던 것이다. 우리가 용서하기 위해서는 역지사지하여 상대를 이해하고 공감하는 자세가 무엇보다 필요하다. 용서는 내가 상대를 향한 결심이기에 우선 나부터 상대를 용서해 보자.

2019-03-31

장난

박상영 대구가톨릭대 교수·국어교육과바야흐로 4월 1일, 오늘은 만우절이다. 이 날 만큼은 누구나 악의 없는 거짓말을 하거나 장난을 쳐도 괜찮다고 여긴다. 이 날의 기원에 관해서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가장 흔히 알려진 것은 선물을 주며 장난치던 서구의 풍속에서 유래했다는 설이다. 프랑스에서는 1563년까지 정월 초하루가 3월 25일이었고 신년 축제의 끝 무렵인 4월 1일에 선물을 교환하며 즐기던 풍습이 있었다. 1564년부터는 정월 초하루가 1월 1일로 바뀌었는데, 이를 몰랐던 이들에게 짓궂은 사람들이 4월 1일에 신년 선물을 주며 장난쳤던 일이 그 시발점이 되었다는 것이다.그런데 이렇게 날을 정해 놓고 장난을 치던 것은 비단 서양의 풍습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우리의 옛 문헌들을 살펴보면 눈 오는 날, 장난치던 신설하례(新雪賀禮)의 풍속이 발견된다. ‘세종실록’ 즉위년 음력 10월 기사에는 첫 눈이 내리자 태종(52세)이 눈을 쓸어 나무 상자에 담아 환관 최유에게 형 정종(62세)에게 좋은 음식이라고 속이며 갖다 주라 했고, 정종이 그 의미를 이미 알아차려서 최유를 잡으려 했으나 잡지 못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눈 상자’를 모르고 덜컥 받으면 받은 사람이, 기미를 알아채고 상자 가져온 이를 붙잡으면 상자 보낸 이가 한 턱 내는 풍습, 속는 이나 속이는 이나 모두 한바탕 웃고 즐기는 그야말로 유쾌한 장난인 것이다.유쾌한 장난은 비단 눈 오는 날에만 있었던 것도 아니다. 이제현의 ‘역옹패설( 翁稗說)’에는 충렬왕 때 문신인 이순(李順)이 내기 바둑에서 절친 홍순(洪順)에게 모두 다 잃었지만 장난스런 말 한 마디로 잃었던 물품들을 죄다 되돌려 받은 사연이 전한다. 골동품과 서화를 모두 잃고 가보(家寶)인 현학금(玄鶴琴)마저 잃게 된 이순은 거문고를 주며 오래된 물건이라 귀신이 붙었을 거라며 장난을 친다. 어느 겨울밤 거문고 줄이 얼어 끊어지며 딩댕 소리가 났고 평소 겁이 많던 홍순은 귀신 소리인 줄 알고 놀라 날이 밝자마자 내기바둑에서 얻은 골동품과 서화까지 모두 거문고에 곁들여서 보내니, 이순이 못 이기는 척 받았다는 이야기이다.이처럼 우리 선조들의 장난에는 속이는 자-속는 자 간의 허물없는 유쾌함이 담겨 있다. 이 유쾌함의 근원에는 다름 아닌 웃음을 통한 나-너 간의 화합, 상대를 향한 ‘신뢰’와 ‘사랑’이 자리해 있다. 그렇기에 속이는 자도 속는 자가 자신의 장난으로 인해 크게 고통받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있고, 속이는 자 역시 속는 자가 저를 해하려는 심각한 뜻이 있는 게 아니라는 걸 매우 ‘잘’ 안다. 그렇기에 그 장난은 유쾌하고 즐겁고, 재미가 있다.한편, 자신의 유흥과 재미만을 위해 상대를 배려 않고 골탕 먹이려고만 하는 불순한 의도가 담긴 ‘장난’은 왠지 불편하다. 불편함이 수반된 ‘장난’은 결코 유쾌할 수가 없다. 이러한 ‘장난’은, 나-너 간의 거리를 만들고, 틈새를 만들고, ‘불신’을 가져온다. 마이크로소프트 회사가 직원들에게, 만우절 장난이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으며 원치 않게 가짜 뉴스를 만들어 낼 수 있다고 하면서, 공개적으로 만우절 장난 금지령을 내린 것이 그 단적인 예이다.‘웃음’은 유쾌한 웃음, 슬픈 웃음, 쓴 웃음, 따뜻한 웃음, 냉소적인 웃음, 비열한 웃음 등 그 종류가 무수하다. 이처럼 다양한 웃음을 연구하기가 얼마나 어려운가는 평생 웃음 연구를 해온 루이 카자미안이 ‘왜 유모어는 定義(정의)할 수 없는가’라는 책을 썼다는 사실에서도 짐작할 수 있다. ‘웃음’을 제대로 알 수는 없을 지라도, 요즘 같은 세상에 한바탕 웃을 수 있는 날이 있다는 것 자체는 얼마나 행복한가! 이왕 1년 365일 중 공공연히 ‘장난’이 허용되는 날이라면, 냉소적이고 쓴 웃음보다는 신뢰와 사랑을 바탕으로 한 따뜻하고 유쾌한 웃음을 유발하는 장난을 한번 쳐 보면 어떨까? 각박한 세상, 조금이나마 따뜻한 인간미를 느낄 수 있게 말이다.

2019-03-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