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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풍류가 넘실대는, 어둠의 비밀과 빛의 신비가 함께했던 ‘아, 신라의 밤이여!’

최치원은 난랑비의 서문에서 말하기를, “나라에 현묘한 도(道)가 있으니, 이것을 풍류(風流)라고 한다. 가르침의 근원에 대해서는 선사라는 책에 잘 설명되어 있는데, 실로 이는 유교 불교 도교의 3교를 포함하고 있어 뭇 백성들을 감화시킨다. 집안에서 부모에게 효도하고, 밖에서는 나라에 충성함은 노나라 공자의 가르침이다. 무위에 머물며 말없는 가르침을 행하는 것은 주나라 노자의 뜻이다. 모든 악행을 멀리 하고 모든 선행을 받들어 행함은 천축국 석가의 교화이다”라고 하였다.‘삼국사기’에 등장하는 ‘풍류’는 화랑도의 사상이다. 최치원의 뜻과 별개로 유학자 김부식의 손끝에서는 ‘엄(숙)·근(엄)·진(지)’하게 풀이된다. 유불선을 포함하되 유불선으로 환원될 수 없는 풍류도는 신라의 고유한 세계관이자 문화다.‘삼국사기’에 ‘풍류’라는 말은 한 번 더 등장한다. 김유신이 압량주 군주로 있을 때 백성들의 패기를 시험하기 위해 군사 일에 뜻이 없는 듯 술을 마시고 ‘풍류’를 즐기며 몇 달을 보냈다는 대목이다. 그러니까 ‘풍류’는 별생각 없이 편하게 먹고 노는 것이다. ‘삼국유사’에도 몇 차례 등장하는데, 제49대 헌강왕 때 성 안에 초가집이 하나도 없었으며 추녀가 맞붙고 담장이 이어져 있어서 노래와 ‘풍류’ 소리가 길에 가득 차 밤낮 그치지 않았다는 대목이다. 그렇다면 ‘풍류’는 노래하며 놀 때 터져 나오는 진진한 소리이기도 하다. 사전적으로는 ‘멋스럽고 풍치가 있는 일. 또는 그렇게 노는 일’로 풀이되어 있다. 어쨌거나 노는 일, 그런데 난잡하게 막 노는 것이 아니라 멋있게 잘 노는 것이다.네덜란드의 문화사학자 요한 하위징아는 인간은 ‘호모 루덴스(Homo Ludens)’, 놀이하는 존재라고 밝혔다. 놀이는 문화적 현상이며, 경쟁 혹은 재현이고, 의례와 축제와 종교와 관계한다. 인간 사회의 법과 제도 역시 놀이적 성격을 지닌다. 소송과 결혼제도, 전쟁까지를 포함한다. 그러니까 하위징아의 주장은 한마디로 ‘모든 것이 놀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인간이 인간답기 위해서는 삶이 놀이 같아야 마땅하다고.신라인들은 하위징아의 이론을 천년 전부터 실현했다. ‘풍류’의 연구자들은 자연스러운 놀이가 음악과 시와 종교 등과 만나 현실을 뛰어넘는 이상이 되는 과정을 밝혔다. 잘 놀다 보면 마침내 ‘하늘’과 만난다. 풍류객은 신과 하나 되어 누추하고 왜소한 자신을 뛰어넘는다. 경상도와 강원도 어디쯤 물 좋고 경치 좋은 곳에서 종종 발견되는 화랑도의 흔적은, ‘사다함이랑 무관랑이랑 모월모시 놀다 감. 우리 우정 영원히!’ 같은 놀이의 흔적이다. 풍류는 우정과 의리를 고양시켜 화랑도의 결속을 다지는 매개가 된다.어울려 풍류를 즐길 수도 있지만 혼자 풍류에 젖어들 수도 있다. 아취(雅趣), 고아한 정취나 그런 취미에 빠지면 홀로 풍류랑이 될 수 있다. 혼자 놀아도 외롭지 않고, 함께 놀아도 누군가 소외되어 괴롭지 않은, ‘풍류’야말로 독거와 혼밥의 시대에 다시금 북돋워야 마땅한 흥취가 아닐까?“아아, 신라의 밤이여!”유호 작사에 박시춘이 작곡하고 현인이 노래한 ‘신라의 달밤’은 신라를 추억하는 대표곡이다. 달과 밤을 빼놓고는 신라와 서라벌을 이야기할 수 없는 게다.월성은 반달을 닮은 터전 위에 지은 달의 궁궐이다. 풍류를 이야기하며 즐기기에는 쨍한 낮보다 어둑한 밤이 어울리는 듯하다. 나만의 생각은 아니었던지, 경주에는 다른 도시들과 다르게 밤을 배경으로 한 행사가 많다.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에서 ‘빛의 궁궐, 월성’이라는 주제로 월성 발굴조사 현장을 야간에 개방하는 행사를 주최할 뿐더러, 매년 가을 사단법인 경주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주최하는 ‘신라의 달밤 165리 걷기대회’도 열린다. 165리면 약 66㎞, 황성공원에서 출발해 보문호수와 석굴암과 불국사를 거쳐 황성공원으로 돌아온다. 소요시간이 약 12~13시간이라니 밤을 꼬박 새워 경주를 돌아보는 흥미로운 행사다.사단법인 신라문화원이 주최하는 ‘신라달빛기행’은 여름밤과 가을밤을 즐기기에 맞춤하다. 월성 일대를 돌아보는 ‘유네스코 세계유산’ 코스가 있는가 하면 감은사지와 문무대왕릉을 포함하는 ‘감포·동해안권’, 선덕여왕릉과 보문사지 황금 들녘을 걷는 ‘가을들판을 거닐며’, 김유신묘와 무열왕릉 등을 돌아보는 ‘구절초와 함께하는 화통콘서트’ 등 다양한 코스가 있다. 참가비는 버스와 해설을 포함해 5천원인데, 투어를 마칠 무렵 서악서원에서 열리는 ‘고택음악회’와 서악동 삼층석탑에서 열리는 ‘구절초 음악회’가 눈길을 끈다. 밤과 음악, 그야말로 ‘풍류’의 향연이다.달 뜨는 시간에 모여 남산 일대를 둘러보는 사단법인 경주남산연구소의 ‘경주남산달빛기행’도 있다. 겨울을 제외하고 한 달에 한 번씩 개최되는데 참가비는 무료다. 달빛에 비친 바위 부처님을 바라보면 그야말로 ‘홀리(holy)’해서 없던 신심마저 돋아날 듯하다.민간 여행사에서 진행하는 ‘동궁과 월지 달빛 산책’이라는 야간투어도 있다. 어떤 코스로 진행되나 궁금해 숙소 카운터에 꽂혀있는 홍보지를 펼쳐보았다. 밤 7시 30분 첨성대에서 모여 출발해서 계림-월성-동궁과 월지까지 약 2시간 동안 도보 이동으로 이어진다. 문화해설사 비용과 동궁과 월지 입장료를 포함해 성인이 8천원, 소인이 7천원이란다.사실 여행지에서 ‘나이트 라이프’를 즐기는 편은 아니다. 외국에서는 안전 문제 때문에 그렇거니와 밤을 즐기는 건 아무래도 젊음의 몫인 듯하다. 밤눈이 어두워지면서 행여 허방이라도 짚을까 밤나들이가 꺼려진다. 그래도 귀차니즘을 간신이 잠재우고 길을 나섰다. 이미 낮에 돌아본 곳들이지만 밤의 월성을 보고 싶다. 풍류가 넘실대는, 어둠의 비밀과 빛의 신비가 함께했던 그곳을.쌀쌀하지만 청량한 밤이다. 월성은 순량한 초식동물처럼 어둠 속에 나부죽하다. 발굴조사 현장인 동시에 시민들의 산책로 역할을 하는 월성에는 LED등이 길을 따라 켜져 있어 천년 전의 횃불과 등롱을 대신하고 있다.“아름다운 궁녀들 그리웁구나. 대궐 뒤에 숲속에서 사랑을 맺었던가? 님들의 치마소리 귓속에 들으면서, 노래를 불러본다 신라의 밤 노래를.”‘신라의 달밤’ 2절과 3절 가사는 좀 야릇하다. 1절의 ‘고요한 달빛’ 사이로 울려 퍼지는 ‘불국사의 종소리’ 대신 아름다운 궁녀들과 버석거리는 치마소리를 읊조린다. 노래 가사 속의 ‘대궐’이라면 바로 월성이 아니런가? ‘신라의 달밤’이 노래하는 월성은 사랑의 공간이다.도덕주의자들에게는 그저 음란하고 방종한 이야기일지 모르지만, 다른 한편으로 신라의 원기왕성한 생명력을 이해하는 근거가 되는 ‘화랑세기’가 떠오른다. ‘풍류’를 이야기함에 있어 ‘풍류도’라는 이름을 지닌 화랑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풍류도의 우두머리인 풍월주의 계보이자 연대기가 ‘화랑세기’일지니, ‘화랑세기’는 풍류의 역사책이자 해설서인 셈이다.그들의 삶과 놂은 매우 에로틱하다. 도덕과 제도를 훌쩍 뛰어넘으니 당황스럽기까지 하다. 그러나 진위 논쟁과 별개로 ‘화랑세기’를 통해 드러나는 신라인의 삶을 단순히 에로틱하다거나 난삽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색공지신(色供之臣:색을 바쳐 왕족을 보필하는 신하)과 삼서제(三壻制:여왕이 3명의 색공지신을 둠), 마복자(磨腹子)제도(신라의 독특한 대부(代父) 풍습으로, 임신한 여자가 상위계급의 남자와 동거한 후 낳은 아들이 마복자) 등은 삼국 가운데 후발주자인 신라가 왕통을 잇고 사회적 통합을 이루기 위해 그들의 방식으로 발버둥질한 흔적이다. 실제로 동서양을 막론하고 혈통을 보존하기 위한 왕실의 근친혼이 빈번했으며, 계급제도를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계급상승의 사다리는 최소한이나마 보존해야 했다.세상이 좋아져 조상들의 절박함을 이해하지 못할 후손들을 예상이라도 한 듯, ‘화랑세기’에는 신라의 캐치프레이즈가 빈번히 등장한다. 중국이나 다른 어느 세상에도 없는 그들만의 고유한 사상과 문화를 주장한다.“신국(神國)에는 신국의 도(道)가 있다!”월성을 빠져나와 길을 건너면 동궁과 월지다. 난데없이 도로가 생기는 바람에 나뉘어져버렸지만 원래 동궁은 월성의 연장이다. 애초에 동궁이라는 명칭이 월성에 정궁이 있다는 것을 전제하고 있다. 월성과 동궁을 하나의 왕성으로 치면 면적은 약 21만㎡에 이른다. 증축한 경복궁의 면적이 약 34만㎡이니 고대의 왕성으로 대단한 규모가 아닐 수 없다.삼한통합 후 월성은 물론 서라벌에 큰 변화가 일어난다. 유입 인구와 우대할 귀족들이 늘어나자 서둘러 확장과 증축 공사에 들어간다. 문무왕 19년(679) 월성 동쪽에 큰 연못을 가진 동궁을 짓고 연못을 월지라고 불렀다는 기록이 있다. 당시는 월지라 불렀으나 조선시대 기러기와 오리가 많이 논다고 안압지라 바꿔 불렀다.동궁과 월지는 1975년 정비 과정에서 우연찮게 유물 유적이 발견되면서 발굴조사로 전환해 큰 고고학적 성과를 거둔 장소다. 동궁과 월지가 이 정도일진데 과연 월성은? 이런 추측이 월성에 대한 기대를 더욱 크게 만든다. 단, 너무 큰 기대는 조바심과 성과주의를 부추길 수 있으니 조심조심해야겠지만.지금은 동궁이 월성보다 인기 있는 관광지다. 일찍이 발굴조사를 끝내고 복원한 동궁과 월지는 낮보다 밤이 더 아름답다. 때마침 주말이라 표 사는 줄도 길고 화장실에서도 한참을 기다려야 했다. 동궁과 월지의 조명보다 먼저 눈을 쏘는 빛은 아이들의 손에 들린 야광 풍선이랄까 불빛 풍선이랄까, 심해의 해파리 모양의 장난감 풍선이다. 왜 아이들은 저걸 갖고 싶은지, 어쩌다 부모들은 저걸 아이에게 사주는지 잘 모르겠다. 달빛으로 모자라 인공조명을 비추고, 인공조명으로도 모자라 야광 풍선을 들고 다닌다. 어둠이 사뭇 희귀해진 세상이다.너희들 도시의 길은 너무 밝다! 너희는 별이 겁나느냐?너희 음악 소리는 너무 크다! 너희는 바람의 속삭임이 두려우냐?혹시, 너희는 너희 자신을 두려워하는 것은 아니냐?멕시코 아즈텍족의 후예인 크소코노쉬틀레틀은 어둠과 침묵을 몰아내고 우쭐해하는 우리에게 묻는다. 어쩌면 마음을 비추는 듯한 별빛이, 진실을 전하는 바람의 속삭임이 겁나는 게 아니냐고. 혹은 어둠과 침묵 속에서 더욱 명백해질 스스로의 비밀을 두려워하는 게 아니냐고.월성과 동궁 사이로 난 원화로를 걷는다. 별을 겁내지 않고, 바람의 속삭임을 두려워하지 않고, 마음껏 생을 즐기며 힘껏 놀았던 사람들의 길을 걷는다. 아, 신라의 밤이여!

2019-03-31

영덕 장사상륙작전

2010년 상영된 ‘포화 속으로’는 6.25 전쟁에 참여한 학도병의 이야기를 소재로 만들어진 영화다. 학도병 71명이 인민군 유격대대의 공격을 11시간 반 동안 막아낸 ‘포항여중 전투’가 영화의 배경이어서 우리에겐 매우 흥미로운 소재로 관심을 끌었다. 불과 2주 정도의 훈련을 받고 전투에 투입된 학도병 2개 소대가 장갑차와 기관포로 무장한 북한군에 대응해 싸운다는 것 자체가 무모한 일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사투를 벌인 이 작전 때문에 포항시민과 피란민 20만 명은 형산강 이남으로 무사히 탈출할 수 있었고, 후방의 국군도 반격을 위한 전열을 정비할 수 있었다고 한다.포항여중 전투에서는 47명이 전사하고 6명이 부상, 4명은 실종됐던 것으로 알려졌으나 사실상 모두가 전멸한 거나 다름없다. 포항에 있는 학도의용군 전승기념관은 그들의 희생정신과 넋을 위로하기 위해 세워진 기념관이다. 기념관 앞에는 당시 16살의 학도병이었던 한 학생의 옷 안에서 발견한 어머니에게 보내는 편지 내용을 비문에 새겨 전시해 두었다. 어린 학생이 감내해내기 어려웠던 전쟁에 대한 놀라운 심정을 글로 남겨 보는 이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갑작스런 북한군의 침범으로 6·25 전쟁이 나자마자 대한민국은 붕괴 직전 위기로 몰렸다. 남쪽에 있던 학도병의 군 입대는 어쩌면 자연스런 현상이었다. 징집 혹은 자원 형식의 전쟁터 투입이었으나 군인으로서 올바른 대접은 아무것도 없었다. 제대로 된 훈련도 없었고 계급도 군번도 없었다. 그들은 오직 고향의 부모형제를 지켜야 한다는 마음 하나만으로 전쟁터에 나섰던 것이다.인천상륙작전의 양동전략으로 실시됐던 경북 영덕군 남정면 장사리에서 벌어진 장사상륙작전이 영화화 된다고 한다. 인천상륙작전보다 이틀 앞서 벌어진 장사상륙작전은 북한군의 눈을 돌리는데도 성공했지만 인민군의 보급로를 차단하는데도 성공한 전투다. 놀랍게도 이 작전에 투입된 병력은 중학생과 고등학생으로 구성된 학도병이 대부분이었다고 한다. 대구경북지역에서 벌어진 학도병 참여전투가 영화화되면서 우리 고장의 호국정신이 또 한번 빛나게 됐다./우정구(논설위원)

2019-03-31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안재휘 논설위원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북방의 흉노족에게 억지로 시집을 간 중국 한나라 때 궁녀 왕소군(王昭君)의 심경을 헤아리며 당나라 시인 동방규가 쓴 시 ‘소군원(昭君怨)’에 나오는 대목이다. 우리 정치사에서는, 지금은 고인이 된 거물 정치인 김종필(JP)의 인용으로 유명하다. 박정희 대통령 서거 이후 ‘서울의 봄’이 거론될 적에 전두환이 쿠데타를 감행하자 김종필은 ‘봄이 왔어도 봄 같지 않구나’라는 뜻의 이 말을 사용해 촌철살인의 어록을 남겼다.또다시 ‘춘래불사춘’이다. 이 나라 국민 노릇 하기가 힘겹도록, 계절은 봄이로되 바람은 여전히 삭풍이다. 집권세력은 자기들 아집대로 정국을 끌고 가려는 강다짐을 놓지 않고 있다. ‘적폐청산’으로 포장된 포퓰리즘 정치보복은 끊임이 없고, 민생은 도무지 피폐의 암운을 걷어낼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 북한 김정은의 ‘비핵화’ 약속은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를 허물기 위한 어설픈 사기극으로 귀결돼 문재인 대통령이 대략난감에 빠졌다.그럼에도 권력자들의 오만방자가 하늘을 찌른다. ‘내로남불’의 신생 사자성어로 표현되는 이중인격적 언행들은 이미 여야를 막론한 정치권의 폐습으로 굳어졌다. 주야장천 상대방 쓰레기통 엎어놓고 냄새나는 ‘남 탓’ 퍼레이드만 벌인다. 도무지 달라지는 게 없다. ‘내가 잘해서’ 민심을 얻기보다는 ‘상대방 허점’만을 욱대겨서 거꾸러뜨리려는 악의만 무성하다.문 대통령이 정권 중반기를 맡기겠다며 내정한 장관후보자들의 살아온 내력들이 가관이다. 자기들이 정한 7대 불가 기준에 이리저리 걸려있는 하자들이 화려하다. 국회에서 열린 청문회에서는 ‘능력 검증’ 따위는 시작조차 하지 못했고, 티 듣기와 육탄방어만이 난무했다. 검증받으러 나온 후보자가 제1야당 대표를 공격하는, 듣도 보도 못한 희한한 장면마저 연출됐다. 국회 장관후보자 청문회의 의미는 바야흐로 완전히 퇴색하고 말았다.자유한국당이 외치는 ‘좌파독재’·’폭정’비판에 당장 흔쾌히 동의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그 징후가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음은 역연하다. 촛불 민심을 핑계 삼아 하염없이 끌고 가는 ‘적폐청산’ 드라이브를 ‘보복정치’·‘공포정치’의 다른 이름이 아니라고 주장할 명분은 점점 더 희미해지고 있다. 김경수 경남지사의 구속 이후 벌어지는 여당의 무차별 판사공격은 이 나라 민주주의에 심각한 적신호다.작금 일어나는 정치권 안팎의 이슈들도 그렇다. 문 대통령은 동남아순방에서 돌아오자마자 ‘버닝 썬’과 ‘김학의’와 ‘장자연’ 문제를 언급하며 특명을 내렸다. 자유한국당의 대표가 된 황교안과 문 대통령 가족 문제를 건드린 곽상도를 때려잡으려는 보복행위라는 것이 호사가들의 입방아다. 김은경 전 환경부장관의 직권남용 혐의에 대해서 이중잣대를 우겨야 하는 처지가 된 청와대에 이번에는 대통령의 입인 대변인의 부동산 투기 의혹이라는 핵폭탄이 터졌다.한국갤럽이 지난달 26~28일 전국 성인 1천3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문 대통령의 직무수행을 긍정적으로 평가한 응답자가 43%에 불과해 최저점을 경신했다. 부정적 평가는 46%였다. 부정평가의 이유로는 ‘경제·민생 문제 해결 부족’(36%)이 단연 으뜸이다. ‘북한 관계 치중·친북 성향’(16%)이 다음이었다.민심은 시시각각 변한다. 정치를 제대로 하는 사람이라면 출렁거리는 민심에 일희일비(一喜一悲)할 일이 아니다. 그러나 분명 잘못하고 있다고, 길을 바꾸지 않으면 큰일이 난다고 외치는 숱한 곧은 소리에도 정권은 야릇한 맹신에 빠져서 오기를 부리고 있다. 오만한 권력은 스스로 힘겨울 뿐만 아니라, 나라를 위태롭게 할 수도 있다. 봄이 왔으되 도무지 봄 같지 않아서 더 슬픈 민초들의 삶을 좀 돌아보라. 봄이 봄 같이 느껴지는 따뜻한 나라를 제발 좀 만들어 달라.

2019-03-31

율산리 別曲-감자심기

송귀연 수필가바야흐로 봄이다. 이맘때면, 언 땅이 녹고 동면 들었던 벌레가 기어 나오며, 물고기들이 얼음장 밑을 돌아다닌다. 남편은 묵혀두었던 관리기를 꺼내 엔진이 부식되었거나 고장 난 곳이 있는지부터 점검했다.우수가 지나면 밭갈이가 시작된다. 울퉁불퉁 했던 땅이 순식간에 갈아엎어지면서 부드러운 평면이 펼쳐진다. 기계가 해내는 작업을 바라보노라면 마치 마법을 부리는 것 같다. 유박비료와 퇴비를 듬뿍 뿌리고 다시 한 번 갈아엎은 뒤 고랑을 만든다. 땅이 가르마처럼 정갈하게 양쪽으로 갈라진다. 다음은 비닐 씌우기이다. 작업순서가 바뀔 때마다 부속품을 교체하기만 하면 관리기가 척척 알아서 해준다.감자심기는 대체로 3월 중하순경 시작하지만 우린 3월초에 심기로 했다. 대신 냉해를 대비해 이중 비닐멀칭을 할 예정이다. 이 방법은 처음 시도해 보는 것이지만 북쪽지방에서 고추재배 때 하는 방법을 응용해보려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수확이 앞당겨진다. 감자를 일찍 캔 뒤 곧바로 고구마를 심을 계획이다. 늦어지면 심이 생겨 맛이 떨어지게 된다.올해는 수미감자, 홍감자, 자주감자 등으로 골고루 섞었다. 웰빙, 다이어트 등 건강에 관심이 높아진 요즘엔 사람들이 다양한 색깔의 감자를 찾기 때문이다. 사과농사 뿐 아니라 밭작물도 재배하기에 잠시도 한눈팔 겨를이 없다. 때때로 고달프다 푸념도 늘어놓지만 이는 잠시 뿐이다. 다른 생각할 틈도 없이 일에 매진하다보면 그 가치가 참으로 소중하게 다가온다. 고진감래의 의미를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것이 농사이다.일 년 농사의 계획은 영농일지를 기록한 후 이를 활용한다. 지난해 이맘 땐 뭘 했는지, 어떤 병충해엔 무슨 방제로 효과가 있었는지를 일일이 정리해놓았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함이다. 정약용은 가난을 딛고 성실하게 일하는 농민의 모습을 노래한 ‘보리타작’이라는 농부가를 지었다. 그의 둘째아들 정학유는 ‘농가월령가’를 지어 농가에서 각 달마다 해야 할 농사일과 세시풍속, 예의범절 등을 꼼꼼하게 적었다. 이는 새롭고 가치 있는 삶을 평민들의 현실에서 찾고자 한 당시 지식인들의 경향을 엿보게 하는 자료들이다.도연명의 ‘도화원’ 같은 이상향을 이곳 전원에서 꿈꾸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는 ‘마음이 멀리 있으면 사람 많은 곳에 있어도 그 곳은 산중과 마찬가지’라고 하였다. 나는 사람에 섞여서도 외로움을 느꼈다. 지난날 사소한 갈등으로 시간을 허비한 것이 후회스럽기까지 하다. 이곳에선 다툴 사람이 없어 마음이 편안하다. 전원생활은 늘 자연과 함께 하기 때문에 고요하고 평화롭다. 과수나 채소들은 때가 되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다. 자연을 거스르거나 시간을 역행하지 않는다. 자신의 운명에 순응하고 욕심을 버리게 한다. 작은 것에 만족해하며 유유자적하게 된다. 차가운 시멘트로 둘러싸인 아파트에서는 결코 느낄 수 없는 행복감이다. 젊은 나이에 일찍 선택하지 못한 것이 아쉬울 뿐이다.아이들은 들어서자마자 소파에서 쿵쿵 뛰기도 하고 두 팔 벌리고 비행기놀이도 한다. 번개파워맨 옷을 걸친 손자가 이얍! 소리를 내지르는 모습에 모두가 폭소를 터뜨린다. 남편 역시 산기슭에 쓰러진 잡나무들을 끙끙거리며 실어 나르면서도 즐거운 표정이다. 전기톱으로 길이를 알맞게 자르고, 다시 정과 도끼로 쪼개어 장작을 만든다. 도끼질 하는 자세가 익숙한 자연인 같다.남편이 모종삽으로 구덩이를 파면 감자의 씨눈이 위로 향하도록 해 얼른 집어넣었다. 그리곤 흙을 이랑보다 도탑게 덮었다. 그런 후, 이중멀칭을 위해 비닐을 덧씌웠다. 잡초와 햇볕을 동시에 해결하는 방편으로 가장자리는 검정, 가운데는 흰색인 비닐을 사용했다. 양쪽 끝에 둥근 모양의 철사를 40㎝ 정도의 간격으로 박은 다음, 바람에 잘 견디도록 흙으로 덮고 나자 작업이 끝났다. 포근한 바람이 볼을 어루만진다. 잘 발아하여 제대로 싹이 트기를 빌면서 뻐근해진 허릴 편다.

2019-03-28

나의 결핍이 인류의 결핍이다

△미메시스: 배움의 작동 방식지금으로부터 1만2천여 년 전 인류가 수렵채집의 문명에서 농경 사회로 옮겨가는 인류문명의 시작기인 구석기시대의 원시인을 상상해 보자. 머리는 산발을 하고, 한 손에는 돌도끼나 창을 들고 있다. 그러면 그들의 스타일은? 트렌치코트를 입고 바람머리를 휘날렸을 리는 만무하다.수렵생활을 했던 원시인은 나뭇잎이나 가죽으로 몸을 가리고 살았을 것이다. 그런데 구석기시대의 유물 중에는 뼈로 만든 바늘이 있다. 이로 미루어 보아 구석기시대에도 옷을 만들고 깁는 의류생활을 했으리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이들은 가죽을 연결하여 더 크고 두툼한 옷을 만들고, 해지거나 낡은 부분에 가죽을 덧대어 꿰매었을 것이다. 하지만, 가죽을 꿰매는 일은 쉽지 않다.그것도 쇠가 아닌 뼈로 된 바늘이라면 열 개 중 아홉 개는 부러진다. 이런 불편함을 감수하던 구석기인들은 가죽보다 만들기도 쉽고, 수선도 쉬운 재료를 찾았을 것이다. 그러던 중 누군가 거미가 거미줄 치는 것을 보고 실을 엮으면 옷이 된다는 것을 생각하기에 이르렀을 것이다. 유레카! ‘거미줄과 같은 것을 촘촘히 엮으면 옷을 만들 수 있겠구나!’하고 무릎을 쳤을 것이다. 무릎이라는 말조차 없었겠지만, 무릎을 쳤을 것이다.여기서부터 인간의 옷은 혁신적 변혁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거미가 거미줄을 뽑고 거미줄을 치듯이 인간은 거미를 따라 실을 뽑고 천을 짰을 것이다. 처음에는 그냥 무작정 거미를 따라했을 것이다. 거미가 왜 거미줄을 뽑는지, 거미줄을 어떤 방식으로 뽑을 수 있는지, 거미줄의 성분이 무엇인지 그런 것 따위는 모른 채 무작정 따라했을 것이다. 그러면서 인간은 점차 거미를 알고, 거미줄의 특성을 파악하게 되었을 것이다.배움은 그런 식으로 작동한다. 그러니 이렇게 말해도 좋다. 인간의 배움은 단순히 자연을 따라하는 것을 통해 시작된다고 말이다.자연은 인간이 가지지 못한 것을 가지고 있다. 그렇긴 하지만 자연 속에는 참고할만한 구체적인 매뉴얼이 없다. 자연은 설계도도 없고 지도도 없는, 미로다. 무엇인가를 안다는 것은 칠흑 같은 어둠을 걷어내는 일이다. 원리도 모른 채 자연을 흉내내는 것은 어둠속을 끊임없이 헤매는 것과 같다. 그런데도 인간은 그러한 시련 앞에 좌절하지 않는다. 부단한 시행과 간단없는 반복과 끝없는 착오! 인간은 다시 시도하고, 다시 실패한다. 이러한 불멸의 노력을 통해 동물과 다른 유일무이한 이름을 얻는다. 그 이름은 바로 ‘인간’이다.인간은 무작정 따라하고 본다. 아기가 언어의 원리나 체계를 이해하고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엄마의 입모양을 흉내내듯이, 인간은 자연을 따라한다. 그 과정을 통해 인간은 자연에 깃든 오묘하고 숭고한 원리를 배우고 이해하게 된다. 이 원리는 지금도 빅데이터 기반 인공지능의 알고리즘 개발에 그대로 응용된다. 결핍을 절실하게 느끼면 느낄수록 실현하려는 의지도 커진다. 이제 노력하면 된다. 이러한 결핍을 채우는 과정이 곧 기술발전의 과정이라 해도 크게 틀린 말이 아니다. 문제는 그 결핍을 찾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결핍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바로 내 앞에, 아니 바로 나에게 있다.△프로메테우스와 지포 라이터‘먼저 생각하는 사람’이란 뜻의 프로메테우스는 불을 훔쳐 인간에게 주었다는 이유로 제우스에게 낮에 독수리에게 간을 쪼이는 엄한 형벌을 받는다. 이 형벌이 끔찍한 이유는 재생력이 강한 간은 밤에 다시 원상태로 돌아가기 때문인데, 프로메테우스는 그 고통을 영원히 감당해야만 한다.인간은 왜 자연을 흉내내고 그것을 따라하려고 애쓰는 것일까? 그 이유는 간단하다. 인간은 새처럼 날 수 없고, 거미처럼 실을 뽑을 수 없고, 물고기처럼 자유롭게 헤엄칠 수 없다. 이 결핍, 이 결여가 인간을 욕망하게 하고 꿈꾸게 한다. 인간이 가지지 못한 것을 자연은 가지고 있고, 인간은 자연이 지닌 것을 갖고 싶어 한다.하지만 그러한 노력은 열에 아홉은 실패하고 만다. 불을 훔친 프로메테우스가 제우스에게 받은 끔찍한 형벌을 우리는 알고 있다. 신은 자신의 원천기술을 인간에게 쉽게 허락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인간은 포기하지 않는다. 인간은 에덴동산에서 살았던 태초부터 신의 말을 어기며 살아오지 않았는가.원시인간은 자연 발화가 아니면 불을 구할 수 없었다. 프로메테우스(Prometheus)는 신에게 불을 훔쳐왔고 그 벌로 간을 쪼이는 형벌을 받았다. 이 신화는 인간이 불을 얻기까지의 과정에 대한 이야기이며, 그것이 얼마나 위험하고 힘들었는가에 대한 이야기일 것이다.우여곡절 끝에 인간은 불을 직접 만들 수 있게 되었다. 이를 위해 수만 년 동안 부싯돌을 사용해왔다. ‘불씨’는 거의 모든 나라에서 ‘희망’의 은유로 사용된다. “불씨가 있다”는 말은 희망이 있다는 뜻이지만 “불씨가 꺼졌다”는 말은 희망이 없다는 뜻으로 쓰인다. 이것은 부싯돌이나 그 외의 다른 것을 사용하여 ‘불씨’를 얻는 일이 그만큼 어려웠다는 것을 의미한다.휴대용 불은 1826년 영국의 화학자 존 워커(John Walker·1781~1859)가 성냥을 처음 발명하면서부터다. 성냥이 출현하기까지 수십 만 년이 걸렸지만, 더 나은 제품이 더 빠른 속도로 등장하게 된다. 줄리어스 마이스터는 1907년 임포라이터 공장을 설립하였다. 그는 1차 대전 당시 참호에 뒹구는 탄피를 이용하여 라이터를 만들었고, 1918년에는 이를 개량해서 바람이 불어도 꺼지지 않는 방풍라이터를 만들어 전세계적으로 유행시켰다. 1933년에는 브래드퍼드(Blaisdell)가 임포 방풍라이터를 개량한 지포(zippo) 라이터를 만들어 새로운 유행을 만들었다. 이것은 흡연자의 필수품으로 자리잡았고, 우리나라에서는 혼수품의 목록에 끼어들 정도였다.지금의 관점에서 보자면 불을 가지고 다니는 것은 대단한 일이 아니지만 몇 백 년 전에 이런 소망을 말했다면 아마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았을 것이다. 당시로는 전혀 불가능한 기술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하찮다고 생각하는 불의 휴대는 사실 하찮은 것이 아니라 어마어마한 과학과 기술의 집적물이다. 단지 이뤄지고 나니까 그것이 별것이 아닌 것처럼 느껴질 뿐이다.△메우치와 전화기전화기는 그러한 ‘나’의 결핍을 채우기 위해 발명되었다. 전화기의 발명자를 그레이엄 벨(Alexander Graham Bell·1847~1922)로 알고 있지만, 사실 전화기를 발명한 사람은 이탈리아 출신의 미국 이민자 안토니오 메우치(Antonio Meucci·1808~1889)다. 메우치의 아내는 몸이 마비되어 침실에서 생활해야 했다. 그는 집에 딸린 연구실에서 일했지만, 아내가 어떤 상태인지를 알려면 매번 침실에 가봐야 했고, 아내는 필요한 것이 있어도 남편이 올 때까지 침대에서 기다려야 했다. 이런 불편을 해소하려고 침실과 자신의 작업실을 연결하는 시스템을 개발했다. 이것이 바로 전화기다.이 전화기로 1860년에 공개시연회를 열었다. 그런 후 보다 정교하게 고쳐 특허신청을 하려 했다. 하지만 메우치에게는 신청에 필요한 250달러가 없었다. 눈물을 머금고 1871년, 1년짜리 임시 특허를 신청했다.제품 상용화를 위한 재정적 후원자를 찾지 못했으며, 3년 뒤에는 임시 특허조차 갱신하지 못했다. 이때 메우치와 연구실을 함께 사용하던 벨은 1876년 새로이 특허를 내고 웨스턴 유니언 전신회사와 계약했다. 벨은 큰돈을 벌며 유명인사가 되었고 메우치는 가난 속에 허덕였다.벨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지만 이 재판의 승리를 눈앞에 둔 메우치가 1889년 숨지면서 소송 역시 중단됐다. 미국 하원은 그가 죽은 후 113년 만인 2002년, 최초 전화기 발명가로 메우치를 공식인정했다. 역사는 기어이 진실을 꺼내놓는다. 메우치의 이야기는 슬프다. 하지만 그 덕분에 우리는 모두 전화기를 사용한다. 메우치가 느꼈던 불편함은 자신만의 것이 아니라 전 인류의 불편함이었다. 그러하다면 메우치는 그러한 전 인류적 결핍에 맞섰다고 해야 옳지 않을까.공강일 서울대 강사·국문학불편함과 결핍은 나와 함께 있다. 나의 불편함이 곧 인류의 불편함이며, 나의 결핍이 인류의 결핍이다. 이 결핍을 메울 수 있다면 인류는 또 그만큼 발전하게 될 것이다. 인간은 자연 속에서 인간의 결핍을 발견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리고 그 꿈을 마침내 실현시킨다. 문제는 자연은 언제나 인간에 앞서 있고, 우리는 자연에 뒤처져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결코 자연을 앞지를 수 없다.인간이 자연을 통해 만든 어떤 모방품도 자연의 정교함을 능가하는 것은 없다. 그렇다고 좌절하거나 침울해 할 필요는 없다. 자연이 인간보다 늘 앞서 있기 때문에 우리의 욕망은 고갈되지 않는다. 우리는 끝없이 욕망하고, 끝없이 꿈꿀 수 있다. 그러한 꿈이 우리의 사유를 추동하며, 그 속에서 우리는 앞을 향해 나아갈 수 있다. 자연이 인간보다 우월하다는 것은 인간의 발전이 영속하리라는 말과 다르지 않다.

2019-03-28

500세 시대를 준비하는 회사

“2029년, 인간은 불멸의 과정에 도달할 것이다.” 이런 과감한 선언을 한 과학자가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표현하면 ‘2019년에 잔여 기대 수명이 해마다 1년씩 늘어날 것’이라는 선언입니다. 이 말을 제대로 이해하고 싶어 엑셀로 계산을 해봤습니다.10년 후 2029년에 66세가 되는 분을 가정합니다. 2029년 인간의 기대 수명을 100이라 하면 남은 기대 수명이 34년입니다. 2030년 즉 그가 67세가 되는 해는 잔여 기대수명이 1년 증가하므로 35년, 2031년에는 36년... 이렇게 해마다 잔여기대 수명이 1년씩 증가한다는 겁니다. 나이를 먹을 수록 기대 수명이 -1로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1로 늘어나는 셈이니 인간은 불멸한다는 이야기와 다름이 없습니다.구글 미래학자이며 인공지능 연구를 총괄 지휘하고 있는 과학 사상가 레이먼드 커즈와일의 말입니다. 에디슨의 후계자로 공인된 인물로 그가 내 놓은 147개의 미래 예측 가운데 86%가 현실로 이미 이뤄진 바 있습니다.커즈와일은 머지 않은 미래에 유전자 편집 기술과 나노 공학으로 우리 몸의 건강을 위협하는 온갖 요소들이 거의 제거될 것으로 예상합니다. 그저 초라하게 불편한 몸으로 오래 버티는 것이 아니라 활력 넘치며 건강한 상태로 불멸에 가까운 존재로 변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71세인 커즈와일의 목표는 2029년까지 최고의 몸 상태를 유지하는 겁니다. 자신의 예측이 그저 이론이 아니라는 것을 입증이라도 하고 싶은 듯 치밀한 식단관리, 운동, 영양제 복용 등으로 현재 40대 중반의 신체 상태를 지속하고 있다 하지요. 구글에서는 2013년 캘리코라는 생명공학 회사를 설립합니다. 목표는 인간 수명 500세 시대를 여는 것입니다. 유전자 공학이 곧 특이점을 돌파해 기하급수적 발전이 이뤄질 것을 기대하며 체계적이고 구체적인 연구들을 진행하고 있습니다.“죽음은 최고의 발명품이다.” 스마트폰을 발명해 낸 스티브 잡스가 한 말입니다. 모든 인문학적 성찰은 ‘죽음’을 마주하는 인생이라는 명제를 기본에 깔고 시작합니다. 잘 죽기 위해서는 잘 살아야 함을 늘 기억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이 근본 패러다임이 흔들리고 있습니다.죽음이라는 거울을 마주 보며 대오각성하는 것은 오히려 쉬운 일이었을지 모릅니다. 온갖 편리함과 물질주의의 만연, 게다가 불멸의 기대감까지 차오르는 이 시대에 진정 의미있는 삶을 살아내기 위한 몸부림은 고독한 투쟁일 수밖에 없습니다./조신영 인문학365 대표

2019-03-28

디지스트(대구경북과기원)의 새 출발

서의호 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오랜 공백 끝에 디지스트(DGIST·대구경북과기원)의 새로운 총장이 결정되었다. 아직 정부의 승인 절차가 남아있긴 하지만 신임 총장이 결정된 것은 매우 환영할 일이다. 디지스트는 지난 26일 이사회를 열어 전 서울대 명예교수인 국양 교수를 디지스트 4대 총장으로 선임했다. 디지스트는 작년 11월 총장이 사임한 후 4개월 가까운 오랜 총장 부재의 공백기를 거쳤다. 사임 전에도 수개월간 과기부의 감사가 이어지면서 대학은 힘든 과정을 겪었다.디지스트는 학부에서 학과에 소속되지 않은 자유전공으로 공부하고 대학원에서 전공을 확정하는 한국 최초의 융복합대학으로 미래의 한국대학 교육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는 대학이다. 이러한 융복합 과정은 학생들의 창의력과 상상력을 자극할 수 있기에 이는 매우 신선하고도 중요한 시도로 여겨진다. 그래서 명성에 있어서도 전통적인 소위 ‘스카이’ 대학들이나 포스텍, 카이스트 같은 명문 과기특성화 대학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로 대학수험생들에게도 환영을 받고 있다.그러나 거의 1년 가까이 디지스트는 안팎으로 시달려 왔고 상당한 리더십 공백기를 거쳤다. 그 문제의 시시비비를 가리는 것은 훗날의 판단에 맡기더라도 이제 디지스트는 상처를 씻고 새로운 출발을 해야 한다. 따라서 디지스트를 이끌 새로운 수장으로서 신임 국양 총장의 임무는 막중하다고 생각된다.신임 총장은 서울대에서 오랜 연구경력과 행정경력을 쌓았고 최근 삼성기술재단 이사장 역할을 통해 과학계에서 리더십이 인정되었기에 지금 디지스트가 당면한 문제들을 잘 극복할 것으로 기대하면서 몇 가지 주문을 해 본다.우선 디지스트 구성원 전체에게 심기일전의 목표를 제시하고 그들의 용기와 희망을 북돋는 일이 필요하다. 그동안 특히 디지스트 교수 및 직원들은 어려움 속에서 대학을 이끌어 가야 하는 각고의 과정을 겪었다. 따라서 신임총장은 교수 및 직원들을 격려하고 그들의 의견을 청취하여 화합과 단결 속에서 새로운 힘을 얻도록 해야 할 것이다. 요즈음 유행하는 단어가 ‘소통’이다. 캠퍼스는 다른 조직들보다 특히 소통이 중요하며, 교수, 직원, 학생들 이러한 구성원과 소통을 통해 새로운 추진력을 얻는 조직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둘째로는 정부와의 관계 정립을 새롭게 해야 한다. 디지스트의 재정을 책임지고 있는 정부는 이제 새로 출발하는 디지스트와 신임총장에게 전폭적인 신뢰와 필요한 지원으로 화답해야 한다고 본다.마지막으로 디지스트의 국내외 위상제고이다. 사실상 디지스트는 해외에서는 물론이고 국내에서조차 그 이름을 생소하게 느끼는 사람들이 많다. 국내외 우수 교수, 우수 학생 유치에 있어서 대학이 널리 알려져야 한다는 것은 당연한 과제이다. 국내에서 타 특성화과기대와 기존의 명문대학들과의 선의의 경쟁과 또한 글로벌 경쟁시대에서 해외의 명문대학들과의 경쟁은 그리 만만한 것이 아니다. 세계의 여러 평가기관들이 앞다투어 대학들을 평가하는 대학랭킹을 발표하고 있고 이러한 평가에서 디지스트는 좋은 평가를 받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교수들의 연구의 질이나 양에 있어서 수월성을 제고하여야 하며 또한 세계대학 평가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 중의 하나인 ‘명성’ 부분에서 특히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국내 타 신설 과기대도 마찬가지 문제를 안고 있긴 하지만 디지스트는 특히 이 문제에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으로 보인다.디지스트의 신임 총장에게 기대를 걸고 싶다. 기대가 꼭 현실로 나타나길 간절히 소원해 본다.

2019-03-28

블라디보스톡을 다녀와서

박수철 서양화가얼마 전 블라디보스톡을 다녀온 후 한동안 심각한 열등의식에 잠겼다. 그들의 생활수준이 우리나라 80년대 정도의 수준이라고들 애기하나 경제적, 환경적 문제가 아니라 문화적 예술적으로는 엄청난 차이를 느꼈기 때문이었다. 우리의 문화·예술은 경제적 수준이 높아짐에 따라 생성되는 다변적이고 규모의 확장성, 테크니시스트(Technicist)가 주류를 이루고 있지만 그들의 문화적, 예술적 수준은 깊고 넓은 인간내면에 근거하는 힘으로 오랫동안 뿌리 깊게 이어져왔고 고스란히 그들의 삶 속에 품격있는 삶의 가치로 지켜지고 있었다.그곳에 도착하여 처음 느낀 것은 그들의 타고다니는 차들의 거의가 오래된 낡은 차였고 건물의 대부분 또한 오래되고 낡은 흠집과 균열 투성이었는데 왜 새롭게 고치거나 바꾸지를 않는지 의심스러웠다. 시내를 돌아다니는 버스의 대부분 역시 70,80년대의 한국의 ‘대우’, ‘현대’차들로 매우 낡고 험했고 거리를 다니는 그들의 무표정한 모습을 보며 그런 현상들이 경제적 낙후 때문인 것으로만 여겨졌다. 그러나 2박3일의 짧은 여행 마지막 날, 미술관과 므라빈스키대극장의 발레를 보고나서 그 의문이 풀렸다.미술관 입구의 오래된 낡은 구조물의 내부로 들어서니, 자본에 의해 길들여져 무엇이든 새것을 추구하려는 우리의 사고와는 달리 그것을 있는 그대로 손질해놓은 그 느낌이 고풍스럽고 엄숙성마저 느껴졌다. 관람실 방마다 나이가 지긋한 여자들이 품격있게 앉아있거나 서있는 모습에서도 결코 가볍지 않은 무엇을 느끼게 하였고 걸려 있는 그림들의 시대적 배경과 작품의 위대함에 압도당해 버렸다. 발레를 보러 가던 날, 그동안 그들의 생활을 눈여겨 본 바로 “과연 얼마나 사람들이 올까?”를 의심했지만 광장에 모인 수많은 군중들을 보고서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러나 정작 놀란 것은 그 많은 군중들의 상당수가 노년층이었고 더더욱 놀란 것은 그들이 “인텔리켄쟈”가 아니라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이 대부분이라는 사실이었다. 모두가 정중한 옷차림이었고 턱시도와 드레스를 입혀 온 아이들이 군데군데 보였다. 나는 그 순간 그들이 왜 좋은 차와 새로운 시설물에 자본과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지 않는지를 알 것만 같았다. 그들은 불편하지만 않다면 그런 것에 투자하는 것이 아니라 가족들과 연인과 함께 발레를 보러 오는 것이었다. 그들은 물리적, 현실적 가치보다 문화적, 예술적, 전통적 가치를 더 소중히 여겼다. 거리곳곳에서 높은 수준의 연주를 하는 거리의 악사들을 보며 그 엄숙한 미술관에서 진지하게 모사하는 미술학도를 보며 나는 감동했다. 신호등조차 몇 군데 없는 그 도시에서 사람이 다가서면 무조건 서는 차를 보며, 자신이 세워놓은 차 앞을 다른 차가 막아놓아도 경음기 한번 소리내지 않고 그 차가 갈 때까지 기다리는 그 무지막지한 인내심에 놀랐다. 거리를 활보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한국과 중국관광객들이었고 그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관광객들의 거의가 먹는 일과 쇼핑에 몰두했다. 일부 중국관광객들은 뭔가를 질겅질겅 씹어가며 집단으로 모여 떠들며 다니는 모습을 보며 그들의 얼굴표정이 왜 그리 무표정 했는지를 알 것만 같았다. 만약 내가 여기 살았다면, 나는 심하게 욕설을 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그들은 아무 말도 없었다. 그들에게 경제적 부(富)를 주기 때문이었다. 있는 자들의 거들먹거림, 나는 그 거들먹거림의 패거리 속에 끼여 심한 굴욕감을 느꼈다. 과연 우리는 여행에서 무엇을 보며 무엇을 느끼는가?나는 블라디보스톡을 다녀와서 내 그림이 얼마나 보잘 것 없는지를 뼈저리게 느끼며 아주 심한 패배의식에 빠져 오랫동안 붓을 들 수가 없었다. 밤이면 가족끼리 산책을 나오는 그들을 보며 삶의 진지함을, 소녀들의 발랄함을 보며 그들의 삶속에 꺾이지 않는 열정을 느꼈다. 그리고 그 모습들이 내 머릿속에 내 가슴속에 오래도록 자리하고 있었다. 블라디보스톡을 다녀와서….

2019-03-28

걱정스런 부동산투기 억제정책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어느 정권이든 부동산 시장을 왜곡하는 투기를 차단하는 일을 국정의 핵심 과제로 꼽는다.열심히 일해 버는 게 아니라 불로소득에 가까운 투기소득을 방치했다가는 국민적 반발에 부딪치기 때문이다. 그래서 역대 정부는 부동산 투기에 나름대로 발 빠르게 대처해왔다.특히 문재인 정부는 다주택자 규제정책으로 부동산 가격을 잡겠다고 공언해온 정부다.서울과 수도권은 물론 지방에서도 투기가 심각하다고 판단되면 주무부처가 청와대 및 관계부처와 협의·조율 과정을 거쳐 투기를 막기 위한 여러가지 대책을 내놓았다.그러나 지난 28일 공개된 공직자 재산신고 내역을 들여다본 국민들은 현 정부가 과연 부동산 투기억제정책을 제대로 추진할 의지가 있는 지 의심스러운 정황을 맞게됐다.부동산 정책을 기획하거나 추진하는 고위 공직자들 가운데 다주택자가 너무 많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우선 청와대 참모 중 집을 2채 이상 소유한 다주택자가 13명이었다.박종규 재정기획관은 서울 강동구 고덕동과 서초구 우면동 아파트를 부부 명의로 신고했다.부동산 정책을 맡은 윤성원 국토교통비서관도 강남 논현동과 세종시에 아파트 1채씩 갖고 있다.청와대 참모 중 가장 많은 148억원의 재산을 신고한 주현 중소벤처비서관은 배우자와 공동명의로 강남구 개포동 개포자이아파트를, 본인 명의로 세종시 새롬동 새뜸마을 아파트를 갖고 있다.강성천 산업정책비서관은 본인 명의로 용산구 한남동 단독주택과 세종시 새롬동 더샵힐스테이트아파트를 보유하고 있다.박진규 통상비서관은 배우자와 공동명의로 된 과천시 별양동 주공아파트와 본인 명의로 된 세종시 어진동 더샵센트럴시티 아파트를 신고했다. 참모들의 다주택은 부모 부양, 퇴직 후 실거주 목적 등의 이유였지만 군색한 변명이다.주택입법을 맡는 국회의원들 중에도 다주택자가 많았다.국회 공직자윤리위원회에 따르면 작년 말 기준으로 국회의원 286명(갑부의원 3명 제외) 가운데 113명(39.1%)이 다주택자였다. 자유한국당 정종섭 의원은 강남 3구에만 아파트와 오피스텔 등 4채를 갖고 있고, 민주평화당 이용주 의원의 서울 시내 소유 주택은 6채에 달했다.이번 재산공개에서 가장 큰 논란을 불러일으킨 사람은 바로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이었다.김 대변인은 서울 동작구 흑석동 복합건물을 배우자 명의로 국민은행에서 10억2천만원을 빌려 25억7천만원에 사들인 것으로 나타났다.이 사실이 알려지자 한국당 대변인인 민경욱 의원은 이날 페이스북을 통해 “‘전셋값 대느라 헉헉 거리는데 누구는 아파트값이 몇배로 뛰며 돈방석에 앉는다’고 한탄하던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이 드디어 16억 빚내서 재개발지역에 25억짜리 건물을 사며 꿈을 이뤘다”며 “격하게 축하한다”고 비꼬았다.민 의원은 이어 “국민들한테는 집값 100% 폭락하니 절대 사지 말라더니…”라고 원색적으로 비판했다.이에 대해 김 대변인은 “결혼 후 30년 가까이 집 없이 전세 생활을 했고, 지난해 2월 (대변인 임명 뒤에는) 청와대 관사에서 살고 있다”며 “이미 집이 있는데 또 사거나 시세차익을 노리고 되파는 투기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해명했다.재개발 뒤 아파트와 상가를 각각 하나씩 받는데 아파트에선 노모를 모시고 살고 상가 임대료는 노후생활비이기 때문에 전형적 투기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설명이다.하지만 대통령의 뜻을 알리는 청와대 대변인이 노후대비 방법을 연금 등 사회안전망이 아니라 재개발되는 부동산에서 찾으려 한 것은 문제라는 지적이다.다주택자를 모조리 투기꾼으로 몰 필요는 없다. 하지만 부동산 투기대책을 마련해야 할 각료, 청와대 비서진, 국회의원들이 떳떳한 이유 없이 집을 2채 이상 갖는 것은 국민들 눈에 곱게 보이지 않는다. 이래서야 주택정책에 관한 한 ‘고양이에게 생선가게를 맡기는 격’이란 지적을 받아도 할 말이 없지 않겠나.

2019-03-28

소비자와 친환경 자동차

자동차 업계는 자율 주행차 시장이 이르면 2020년부터 본격화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자율 주행이란 운전자가 핸들과 가속 페달, 브레이크 등을 조작하지 않아도 위성항법 시스템(GPS) 등 차량에 부착된 각종 센서가 주변의 상황을 살펴 목적지까지 안전하게 도달하는 시스템이다.거의 상상 속에서나 가능했던 자율주행차가 내년부터 우리의 현실로 나타난다고 한다. 경이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그 선봉에 전기차가 있다. 휘발유와 디젤 등 기존의 자동차 연료가 공해문제로 배척당하면서 앞으로는 전기차가 대세를 이룰 것이란 전망에는 이론이 없다. 공해가 없을 뿐 아니라 연료비 지출이 거의 없다. 정비할 것도 거의 없으며 차량 소음도 없으니 선택의 여지가 없다. 배터리 수명과 충전 인프라 확충 등 몇몇 문제점만 개선되면 전기차 시장은 무한대로 뻗어 나갈 것이 확실하다. 미세먼지와 같은 공해 문제도 지금보다 크게 개선될 것이다. 미세먼지의 주범으로 지목받는 디젤차를 타는 것도 지금 우리의 세대가 마지막이 될 것으로 보면 틀리지 않다.전기차의 시작은 다른 한편으로는 자율주행차의 급속적인 발전을 의미한다. 마치 휴대폰이 처음 등장했던 때처럼 자동차 패러다임의 획기적 변화가 예상된다. 처음에는 통화가 목적이었던 휴대전화가 지금은 휴대용 컴퓨터로 변했다. 휴대전화가 아닌 스마트 폰이어야 정확한 표현이 된다. 카메라, 게임, 인터넷, 영화, 쇼핑 모든 생활의 도구들이 이 안에서 해결되는 세상이다.자율주행차의 등장은 자동차가 수송 수단을 넘어 스마트 플랫폼이 된다는 뜻이다. 전기차로 넓어진 차내 공간에 운전이 필요 없는 시간이 주어짐으로써 자동차 안은 또하나의 스마트 플랫폼을 창출한다.정부가 미세먼지 저감 대책의 일환으로 LPG 자동차 구입을 일반인에게도 허용했다. 기존 차량을 LPG차로 개조하는 것도 가능케 했다. 연료비가 상대적으로 저렴함에 따라 소비자의 관심도 높다고 한다. 그러나 전기차로 가는 자동차 패러다임 변화의 과도기적 현상으로 보인다. 지금부터 소비자의 현명한 선택이 시작된다./우정구(논설위원)

2019-03-28

‘정구지’는 먹을 것 없는 경상도 산골사람만 먹는 희한한 풀?

아마도 늦봄 무렵이었을 터이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1970년대 후반, 서울 장충동 하숙집. 지방에서 올라온 대학생 예닐곱이 옹기종기 모여 앉았다. 비 오는 늦은 오후. 하품을 댓 발이나 길게 하면서 시답잖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주제가 ‘먹고 싶은 고향 음식’으로 튀었다.경상도 출신 하숙생이 불쑥 내뱉었다. “오늘 같은 날, ‘정구지 찌지미’나 ‘부치 무쓰모’ 좋겠다.”서울 태생의 하숙집 주인아주머니. ‘부치 무쓰모’가 ‘부쳐 먹었으면’이라는 정도는 알아들었다. ‘정구지’는 요령부득, ‘찌지미’는 낯설다. 경상도 출신들은, 불행히도, ‘정구지’가 부추임을 몰랐고 ‘찌지미’가 부침개라는 세련된 이름을 가지고 있을 줄도 몰랐다. 또 다른, 혼란스러운 일도 있었다. ‘찌지미’가 뭐냐는 질문에 “찌지미요? ‘적’도 몰라요? ‘적’요, ‘정구지 찌지미’는 ‘정구지 적’을 말하는 거래요” 이번에는 ‘적’이 뭐냐는 말로 더 시끄러워졌다. 다행히, ‘적’은 부침개이며 ‘전(煎)’을 말한다는 사실은 곧 알아차렸다. “서울 사람들은 ‘정구지’를 반드시 부추라고 부른다”는 사실은 아주아주 오래 뒤에야 알았다.그날 ‘정구지 찌지미’는 결국 먹지 못했다. 정구지가 뭔지 알아야 정구지 찌지민지 뭔지를 만들 것이다. 그날의 슬픈 결론. “서울에는 ‘정구지’라는 채소가 없으며, 그건 먹을 것 없는 불쌍한 경상도 산골 사람들만 먹는 아주 희한한 풀.”부추는 동북아시아 세 나라가 널리 먹었다. 중국, 일본도 부추 나물은 즐겨 먹는다.부추는 여러 가지 얼굴을 가지고 있다. 부추는 에로틱(erotic)하다. 부추를 ‘기양초(起陽草)’라고 부른다. 양기를 북돋우는 채소라는 뜻이다. ‘정구지’를 ‘精久持’라고도 주장한다. 남자의 정기를 오랫동안 유지한다는 뜻이다. 누가 시작했는지 모른다. 별다른 근거도 없다. “이른 봄 첫 부추는 아들에게 주지 않고 사위를 준다”라는 얄궂은 표현도 있다. “아들이 양기를 세우면 며느리가 좋고, 사위가 양기를 세우면 딸이 좋다”는 희한한 표현이다. 어디서, 누가 시작했는지 알 수 없다. 오리무중이다. 전어 굽는 냄새에 집 나간 며느리가 돌아온다는 이야기와 다를 바 없다. 그저 ‘카더라’ 혹은 ‘아니면 말고’ 정도다.가장 널리 알려진 이야기는 부추가 ‘게으름뱅이 풀’이라는 것이다. 부추가 남자의 정력에 좋으므로 부추를 많이 먹은 부부는 들에서 일하지 않고 늘 방 안에서만 지낸다고 붙인 이름이다. 한편으로 부추는 생명력이 강해서 특별히 손을 보지 않아도 잘 자란다. 하여, 게으름뱅이도 쉽게 키울 수 있어서 붙인 이름이라는 ‘설’도 있다.근거 없고 터무니없다. 우리보다 의학, 과학 지식이 뒤떨어졌던 조선 시대에도 이런 식의 설명은 없었다.‘산림경제’ ‘의림촬요’ 등 조선 시대 의학서, 백과사전에는 부추를 약으로 사용한 여러 가지 실례가 있다. 부추, 잎, 대궁, 뿌리, 씨앗 등을 모두 약용으로 사용했다. 오늘날의 위암 같은 반위(反胃)를 다스리고 종기, 여성 질환에도 부추 잎 혹은 부추의 여러 부분을 사용했다. 항생제가 없던 시절이다. 당시의 처방 내용을 그대로 믿을 수는 없다.부추는 환자의 건강식, 치유식으로 널리 사용했다. ‘승정원일기’ 인조 24년(1646년) 5월 19일의 기록에는 중환인 중전에 대한 음식, 약물 처방 내용이 실려 있다. “술시(戌時)에 저녁 수라를 조금 올렸는데 연근채(蓮根菜)와 구채(韭菜)도 약간 올렸습니다”라는 내용이다. 연뿌리 나물과 부추 나물이다. 이틀 후인 5월 21일의 기록에도 “오늘 이른 아침에 구채죽(韭菜粥) 한 종지를 다시 올렸습니다”라는 내용이 있다. 부추는 궁중에서 제사에 사용하거나 죽, 반찬 등으로도 널리 사용했다. 애당초 부추를 이용한 ‘전통적인 비법 처방’이나 정력제로 사용한 흔적은 없다. 부추를 이용한 특효약(?)이 있었다 하더라도 당시의 치료법, 약을 그대로 따를 수는 없다. 우리가 따를 만한 ‘비법’은 ‘특효약’이 아니라 음식이다. 모든 식재료를 고귀하게 사용한 그 정신이다. 홍만선의 ‘산림경제’에 나오는 ‘부추 꽃 김치’ 담그는 법이다.부추 꽂지[淹韭花, 엄구화]는, 꽃과 열매가 반반인 것을 따서 억센 줄기는 버리고, 1근당 소금 3냥을 넣고 짓찧어 자기 그릇에 담아둔다. 혹 부추 꽃 속에 애오이, 애가지를 따로 소금에 절였다가 물기를 빼고 한 이틀 지난 뒤에 부추 꽃에 고루 버무려 넣되, 병 바닥에 동전을 넣으면 더욱 좋다. ‘신은지’ ‘거가필용’‘淹(엄)’은 ‘담글 엄’이다. 애오이, 애가지는 어린 오이, 가지를 말한다. 부추 꽂지는 부추 꽃을 소금에 절여서 만든 음식이다. 오늘날의 장아찌 혹은 서양 피클과 비슷하다. 이 레시피의 원전은 ‘신은지’(神隱志, 1400~1450년경)와 ‘거가필용’(居家必用, 초판은 원나라, 개정판 1560년 출간)이다. 조선과 중국에서 부추김치뿐만 아니라 부추 꽂지도 먹었음을 알 수 있다.부추에 대한 가장 오랜 기록은 중국에 있다. 부추로 만드는 ‘스물일곱 가지 반찬’ 이야기다. 다산 정약용(1762~1836년)이 전남 강진 유배 시절 남긴 시에 ‘스물일곱 가지 반찬’이 남아 있다(‘다산시문집 5권 시’).“(전략) 봄 산에 가랑비 지나가면/채소 싹이 맑은 기운 머금는데/누가 알리 ‘유랑의 부엌[廋郞廚]’에서/날마다 ‘삼구(三九) 반찬’ 장만하는 것을! (후략)”부추라는 표현은 없지만, 조선 시대에 늘 인용되던 부추 이야기다.‘유랑’은 유 씨 사내, 유 씨 성의 남정네를 이르는 존칭이다. 유랑은 남제(南齊) 시대를 살았던 청렴한 벼슬아치 유고지(庾杲之, 441~491년)다. 벼슬살이를 해도 청렴하니 늘 밥상이 부실했다. 반찬이라곤 흔하디흔한 부추뿐이었다.“누가 유랑이 청빈하다 하던가? 반찬이 늘 스물일곱 가지나 되는 것을”이란 문구는 “남제서 유고지 열전(南齊書 庾杲之列傳)”에 나오는 내용이다.청빈한 유고지는 평소 날부추, 삶은 부추, 부추김치 등 부추로 만든 반찬 세 가지만 밥상에 놓았다. 부추는 ‘구채(韭菜 혹은 韮菜)’다. ‘韭(구)’는 ‘九(구)’와 음이 같다. 3*9=27이다. 부추(구) 반찬 세 가지는, 곧 27가지 반찬이 된다는 표현이다.유고지가 살았던 5세기에는 중국에서도 부추김치, 부추지를 일상적으로 먹었다.다산은 강진 유배 시절, 부추 기르는 법에 대해서 상세히 연구했다. 아들 학연에게 보낸 편지의 내용을 보면 다산이 농사짓는 법을 꼼꼼히 살펴보고, 실제로 부추 농사를 지었음을 알 수 있다. 다산이 지적한 내용은 ’부추 베는 법‘이다.“(전략) (부추 등 채소를) ‘뜯는다’라는 것은 줄기를 절단하는 것을 이른다. (부추를 한낮에 베지 않는다고 말하는데) 한낮에 부추를 자르면 칼날이 닿은 곳이 마른다. 부추를 기르는 데 해로우니 텃밭을 일구는 사람들이 꺼릴 따름이지 먹는 사람에게 해가 있어서가 아니다. ( 후략)”_‘다산시문집’‘먹보 영감’으로 불리는 목은 이색(1328~1396년)이 부추 이야기를 놓쳤을 리 없다. 여말선초를 살았던 목은은 시집 ‘목은시고’에서 “부추 나물은 푸르고 또 푸르며, 떡은 색깔이 노란데/조석으로 잘게 씹어 먹으니 맛이 좋다”고 했다. 목은은 ‘시경’을 인용해 “이월 초하루 이른 아침엔, 양 잡고 부추 나물로 제사한다”고 했다. 떡은 귀한 음식이었다. 귀한 떡을 부추와 더불어 먹었고 한편으로는 제사에도 사용한다고 적었다. 목은뿐만 아니라, 조선의 궁중에서도 부추를 소중하게 사용했다.조선 초기, 국가의 제사, 민간의 각종 행사 등 절차에 대해서 기록한 서적이 ‘세종오례의’(世宗五禮儀)다. 이 기록에서도 “(제사상의) 첫째 줄에 부추김치를 놓고 무김치가 그다음이며, 둘째 줄에 미나리 김치를 놓는다”고 했다. 조선 중기의 문신 김장생(1548~1631년)이 엮은 ‘사계전서’도 제사 등에 대해서 많은 기록을 남겼다. “봄에는 부추를 천신(薦新)하고 여름에는 보리, 가을에는 기장, 겨울에는 벼를 천신한다”. ‘천신’은 계절 별 생산물을 가장 먼저 종묘나 민간의 사당에 올리는 제사다. 봄철에는 부추가 가장 의미 있는 것이었다.‘비 오는 날 하숙집의 정구지’ 뒷이야기를 전한다. 몇 달 후, 우연히 주인아주머니, 하숙생 몇몇과 시장을 갔다가 ‘정구지’를 만났다. “저게 정구지래요!”라고 했더니, “아! 부추” “아, 솔!”이라는 말이 동시에 터져 나왔다. ‘정구지’는 호남 사투리로 ‘솔’임을 그때 처음 알았다. 아래는 ‘경북매일’의 기사다.(전략) 과메기·대게·문어·시금치 등/오늘부터 사흘간 잠실 롯데百(중략) 포항특산품홍보 판매관은 오징어와 대게, 문어 등 동해안 수산물과 부추빵, 시금치, 부추, 젓갈, 사과, 쌀 등 포항지역 대표 농산품이 전시 판매된다. (후략)_ 2017.12.13.‘부추’ ‘부추빵’이 눈에 띈다. 서울 생활하면서 알아차린 부분이 있다. ‘정구지 적’은 ‘정구지 90%+밀가루 쬐끔’이다. 부추전은 ‘부추 50% 이하+밀가루 50% 이상’이다. 이게 ‘정구지 찌지미’인지 밀가루 전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다. 부추빵에는 부추가 얼마나 들어 있었을까? ‘정구지’에 대한 상상력을 기대한다. 부추빵을 넘어서는, 유고지의 스물일곱 가지 반찬 같은 ‘정구지’ 음식을 기대한다. 음식 역시 상상력이다. /맛칼럼니스트 황광해

2019-03-27

‘줬다 뺏는’ 기초연금

김규종 경북대 교수·노문학분노한 촛불이 새로운 권력을 탄생시킨 지 어느덧 2년 가까운 세월이 지나간다. 2016년 늦가을부터 2017년 신춘에 이르는 장정(長程)으로 우리는 부패, 무능, 타락, 패거리주의로 무장한 대통령과 집권세력을 교체했다. 그것은 낡고 타락한 지배권력을 일소하고, 민주공화국(民主共和國)의 본령에 충실하라는 국민들의 지상명령이기도 하다. 백성이 주인이며, 모든 사람의 입에 쌀밥이 들어가는 나라가 민주공화국이다.사정이 그럴진대 실제 돌아가는 상황은 그다지 탐탁지 않다. 세간에 떠도는 여러 가지 가설이 있지만, 기초연금 문제를 짚어보고자 한다. 만65세 이상의 대한민국 국민으로 국가가 설정한 소득기준금액 이하의 수입으로 살아가는 노인에게 제공하는 돈을 기초연금이라 한다. 지금까지 정부는 소득하위 20% 노인들에게 월20만원의 기초연금을 지급했지만, 다음달부터 30만원으로 올릴 계획이라고 한다. 좋은 일이되, 호사다마(好事多魔)인가?!보건복지부 추산에 따르면, 월30만원의 기초연금 수급대상 노인은 154만 명 정도라 한다. 그 가운데 정부에게 생계급여를 받는 37만명에게는 일명 ‘줬다 뺏는 기초연금’이 되리라 전한다. 3월까지는 월20만원을 줬다 뺏고, 4월부터는 30만원을 줬다 뺏는다는 것이다. 돈 1만, 2만원이 아쉬운 노인들을 대상으로 국가가 이렇게 무책임한 행정을 일삼는 것은 문자 그대로 적폐 자체이며, 참을 수 없는 분노를 야기한다.‘줬다 뺏는 기초연금’ 문제해결은 2016년 민주당의 국회의원 총선거 공약이기도 하다. 민주당은 2년 동안 무엇을 했는가?! 2018년에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는 기초수급 노인들에게 월10만원을 추가로 지급하는 방안에 합의했지만, 본회의에서 좌절되었다. 거기 소요되는 예산은 고작 4100억 원이다. 왜 ‘고작’인가?! 2019년 예산총액은 470조원에 달한다. 전체예산의 0.1%도 되지 않는 미미한 액수의 예산확보에도 실패한 집권여당은 대체 무엇하는 집단인가?!한국노인들의 빈곤비율은 2015년 기준 46%에 이른다. 100명 가운데 46명이 빈곤선 아래서 살아간다는 얘기다. 선진국 모임인 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의 평균 빈곤비율은 12.5%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국회의원들은 여야를 막론하고 지역구 예산확보에만 눈이 벌개져서 수천억 예산을 막판에 끼워 넣어 지역구에 ‘투하’하는 식으로 국민세금을 탕진(蕩盡)하고 있다. 이것이야말로 아침저녁으로 우리가 듣고 있는 ‘적폐 중의 적폐’가 아닐 수 없다.대통령과 장관들은 툭하면 ‘포용적 복지국가’를 말한다. 줬다 뺏는 기초연금을 그대로 놔둔 채 포용적 복지국가가 가당키나 한 말인가?! 가진 자들을 위한, 가진 자들의, 가진 자들에 의한 포용적 국민국가인가, 되묻고 싶다. 우리가 촛불을 들고 부패하고 타락한 권력자와 졸개들을 내친 까닭은 정반대되는 세상을 염원했기 때문이다. 돈과 권력을 ‘조자룡 헌 칼 쓰듯’ 한 무리를 준엄하게 징벌한 까닭도 민주공화국을 염원한 때문이다.‘적폐’라는 것은 과거에 누적된 폐단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적폐는 ‘지금과 여기’에서도 끊임없이 생산되고 축적되어 우리의 미래와 다음 세대의 발목을 붙잡는 것이다. 가난한 노인들에게 월10만원도 제대로 보태주지 못하는 정권은 우리가 꿈꾸고 염원한 권력이 아니다. 누군가는 말한다. 대통령이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시행령을 개정하면 기초연금 수급이 보장될 수 있다고. 국민들은 크고 엄청나며 역사적이고 미증유의 거대한 것을 바라지 않는다.한국사회를 떠들썩하게 하는 김학의, 장자연, 버닝썬, 그런 문제를 정의롭고 합당하게 해결하는 것은 국가의 당연한 의무다. 하되 당장의 생계가 아득한 노인들과 사회최하층 국민을 따뜻하게 보듬고, 그들에게 따사로운 밥과 옷과 집을 마련해주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적폐청산이자 사회통합 아닐까?! “줬다 뺏는 기초연금, 당장 해결하라!”

2019-03-27

봄의 길목에서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바야흐로 봄, 소생과 약동의 계절이 돌아왔다. 따사로운 햇살에 훈풍을 타고 꽃망울을 터트리며 봄날을 열어가는 몸짓이 사뭇 새롭고 진지하기만 하다. 산골에서 졸졸졸 흐르는시냇물처럼 봄이 오는 소리와 함께 맨 먼저 피어나는 매화를 시작으로 산수유, 개나리, 진달래, 민들레, 나비같은 목련, 팝콘같은 벚꽃 등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알록달록 피면서 봄의 서막을 알리고 있다. 이렇듯 봄이 다가오면 산과 들에는 꽃 잔치가 열리고 겨우내 온갖 숨어있던 것들이 고개를 내밀면서 그야말로 대지는 새봄의 향연을 펼쳐나가고 있는 것이다.봄날에 나무와 화초가 꽃을 피운다는 것은 극히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현상 같지만 기실은 꽃과 잎을 피우기 위해 덤덤히 땅의 말씀에 귀 기울이며 부단히 새봄을 준비해왔기 때문이다. 늦가을에 잎새를 죄다 떨구고 온몸으로 추위를 견디며 뿌리로는 차디찬 땅 속에서 쉼없이 물을 찾아 양분을 축적해서, 마침내 찬란하게 꽃을 피우며 향기를 전하는 것이다. 혹독한 시련과 고통 속에서도 창조적인 일손을 멈추지 않고 개화(開花)와 성장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듯하다. 봄은 비단 꽃나무 뿐만 아니라, 동식물이나 생물 등 자연만물을 깨우고 싹트며 움직이게 하는 생동의 기운을 골고루 불어넣어 준다.사람은 꽃처럼 망울을 피우거나 향긋한 향기를 직접 뿜어낼 수는 없다. 그러나 환한 웃음은 사람을 꽃피게 하고, 맑은 인품과 선한 덕행으로 얼마든지 아름다운 향기를 전할 수 있다. 사람이 꽃처럼 활짝 피어난다는 것은 긍정과 감사의 마음으로 자신이 주관한 일들에 소기의 목표나 괄목할 만한 일을 달성함으로써 나타나는 기쁨과 안도의 웃음꽃이 아닐까? 그러나 그러한 웃음꽃을 피워내기까지는 결코 만만찮은 고난과 역경이 따르기 마련이다. 늘 한결같은 마음, 깨어있는 정신, 살아있는 의식으로 날마다 새롭게 자신을 변화시키면서 간단없이 노력하고 인내하고 추구할 때 마침내 기쁨의 꽃은 피어나리라고 본다. 혹한의 겨울날을 이겨내고 축제같은 계절에 당당히 피어나는 봄꽃처럼.봄의 길목에서 지천으로 흐드러지게 피어나는 꽃차례를 보며, 봄에 꽃이 피고 가을에 열매를 맺는다는 ‘춘화추실(春華秋實)’을 생각해 본다. 꽃이 핀다는 것은 한 해를 다시 새롭게 시작하겠다는 뜻을 세상에 드러내는 모습으로, 지난 나날 동안에 준비해온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준비하지 않으면 뭐든지 다시 시작할 수 없음을 보여주는 자명한 일이지만, 세상의 모든 일은 준비만으로는 절대 이뤄지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실행과 치열한 과정에 있다. 계획은 꽃이요 실천은 열매라는 말처럼, 그러나 꽃이 폈다고 해서 그 자리에 다 열매가 맺는 것은 아니다. 나무는 꽃을 일제히 피우지만, 버릴 것은 버리고 떨굴 것은 떨구며 여름날을 지나면서 온갖 비바람과 태풍, 뙤약볕과 병해를 이겨내고야 비로소 가을날의 실한 열매로 자리매김하게 하는 것이다.그래서 어느 시인은 ‘열매를 위해/ 꽃자리를 비우는/ 한그루 나무처럼// 아파도 아름답게/ 마음을 넓히며/ 열매를 맺어야 하리’라고 읊지 않았던가! 이렇듯 ‘춘화추실’은 어쩌면 당연한 이치 같지만 자연의 섭리에 따라 성실하게 살아가며 과정에 충실하고 최고의 경지에 이르기까지의 피나는 노력과 인고가 있어야 함을 시사하고 있다. 꽃이 피고 열매를 맺는 과정은 쉽고 단순해 보이지만 그러한 자연현상에서 조차 의미를 부여하고 삶의 자세를 가다듬게 만든다. 세상에 쉽고 예사로운 일은 함부로 없는 법이니까.추위를 견디고 피어나는 꽃이 더 향기롭듯이, 고통을 겪은 뒤에 얻은 성과가 더 값지다. 사람도 나무처럼 자신만의 꿈을 가꾸고 그 자리에 열매를 거둬들여야 진정한 성취의 향기가 피어나는 것이리라. 온통 설레임과 기쁨의 꽃망울이 터지는 이 봄날, 모두 제 나름의‘기쁨꽃’을 피우며 가을날의 옹골진 열매를 위해 부지런히 움직여보자.

2019-03-27

나만의 별 세계에 출입하는 방법

7살에 폐병으로 죽을 고비를 넘기고 몸이 약해 10살까지 학교 문턱을 넘지 못한 소년이 있습니다. 친구들은 이미 4학년. 공부하고 싶어 학교를 찾았지만 나이가 너무 많다며 거절당합니다. 공부의 기회를 놓친 소년은 절망하지 않습니다. 학교에 가지 않더라도 혼자 배울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다가 중국을 대표하는 지성 린위탕(林語堂) 선생의 글을 접합니다.“독서하지 않는 사람은 자기만의 세상에 감금당한 꼴이다. 그들이 접하는 사람은 극히 소수의 사람으로 보고 듣는 것이 신변 잡사를 넘지 못한다. 하지만 책을 읽으면 바로 별세계에 출입을 시작할 수 있다.” 소년은 이 문장에서 빛을 발견합니다. 즉시 1천일 독서를 결단하지요. 3년 동안 도서관이나 친구들에게 빌린 책들을 미친듯이 읽기 시작합니다. 책에서 만난 롤 모델은 두 사람. 헬렌 켈러와 강철 왕 앤드류 카네기입니다.나이 마흔 하나에 회사를 창업합니다. “25년 내에 세계적인 회사로 만들고 우리 나라에서 가장 좋은 땅에 가장 좋은 사옥을 짓겠습니다.” 1980년. 비전을 선포한지 꼭 23년째 되는 해 서울 광화문 1번지에 지하 4층, 지상 23층 사옥을 짓습니다. 교보문고와 교보생명을 설립한 대산 신용호 선생의 이야기입니다.초등학교도 밟아보지 못한 대산 신용호. 1천일 동안 책에 푹 빠져 지내며면 학력(學歷)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학력(學力)이 위대한 것임을 몸소 체득합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비싼 금싸라기 땅에 사옥을 짓고 지하 1층에 세계 최대 규모의 교보문고를 개장합니다. “그 금싸라기 땅에 서점이요? 상가를 지어 분양해야 합니다.” 임원들은 극구 반대에도 불구하고 대산은 책이 자신에게 베푼 혜택을 기억합니다.대산은 교보 매장을 매일 돌며 직원들이 지켜야 할 다섯 가지 지침을 강조합니다. 첫째 고객에게 친절하고 초등학생이라도 반드시 존대말을 쓸 것. 둘째 책을 한 곳에 오래 서서 읽는 것을 절대 말리지 말고 그냥 둘 것. 셋째 책을 이것 저것 빼보기만 해도 눈총주지 말 것. 넷째 책을 앉아서 노트에 베끼더라도 말리지 말고 그냥 둘 것. 다섯째 책을 훔쳐가더라도 도둑 취급해 절대 망신주지 말고 남의 눈에 띄지 않는 곳으로 가 조용히 말로 타이를 것.대산은 비록 별똥별처럼 아름다운 궤적을 남긴 채 떨어졌지만, 그가 남긴 유산은 오늘도 우리 가슴에 남아 두근거리고 있습니다. 책을 펴 ‘별세계’에 출입을 시작하는 그대와 저의 하루를 설렘으로 맞이합니다./조신영 인문학365 대표

2019-03-27

리디노미네이션

리디노미네이션은 한 나라에서 통용되는 모든 지폐나 동전에 대해 실질가치는 그대로 두고 액면을 동일한 비율의 낮은 숫자로 변경하는 조치를 말한다. 이는 인플레이션, 경제규모의 확대 등으로 거래가격이 높아짐에 따라 숫자의 자릿수가 늘어나면서 계산상의 불편이 발생하기 때문에 이를 해결하기 위해 도입한다. 예를 들면, 100원을 1원으로 하는 것이다.리디노미네이션은 기본적으로 인플레이션의 진전에 따라 경제량을 화폐적으로 표현하는 숫자가 많아서 초래되는 국민들의 계산, 회계 기장, 또는 지급상의 불편을 해소할 목적으로 실시된다. 장점은 국민들의 일상 거래상의 편의 제고 및 회계장부의 기장처리 간편화, 인플레이션 기대심리 억제, 자국통화의 대외적 위상제고 등을 들 수 있다.반면 단점도 있다. 화폐단위 변경으로 인한 불안정과 새로운 화폐의 제조에 따른 화폐제조비용, 신·구 화폐의 교환 및 컴퓨터 시스템 등의 교환 등 비용이 많이 든다는 점이다. 이론적으로는 소득이나 물가 등에 영향을 끼치지 않지만, 체감지수의 변화가 나타나기 때문에 현실적으로는 물가변동 등 실질변수에 영향을 끼칠 수도 있다.제1차 세계대전 직후 독일 물가는 전쟁 전의 1.3조 배여서 담배 한 갑 사는 데 보스턴백 가득히 돈을 담아가야 했다. 그래서 0을 12개(1조) 떼어 내 구마르크를 신마르크로 개명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헝가리는 구화폐에서 0을 30개나 떼내야 했다. 이것이 세계 최고기록이다. 그 다음은 1922년 제정러시아가 4년에 걸쳐 3번의 리디노미네이션을 단행했는데, 5억 구루블이 1신루블로 낙착됐다.우리나라에서는 1953년 2월 및 1962년 6월 신·구 화폐의 환가비율을 각기 100 대 1과 10 대 1로 리디노미네이션한 사례가 있다. 원이 환으로 바뀔 때(1953년), 환이 다시 원이 될 때(1962년) 0이 각각 2개와 1개가 떨어져 나갔다.최근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리디노미네이션을 논의할 때가 됐다는 입장을 밝혀 3번째 리디노미네이션이 시행될 지에 비상한 관심이 쏠리고 있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19-03-27

기회인가 위기인가

장규열 한동대 교수포항지진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한 낮 수업을 위해 이동하던 중 건물 안 계단에서 맞았던 격동과 충격. 밖으로 정신없이 빠져 나오면서 목격하였던 쏟아지는 담벼락과 혼란으로 가득했던 아우성. 다른 곳에서 겪었던 지진의 기억이 있었지만, 그 어느 때보다 강하였던 진동과 불안. 함께 겪어야 했던 학생들 걱정과 집에 두고 온 가족들 염려. 지진 이후 언론의 보도와 함께 모아진 전국적 관심. 연기되었던 수능. 무너진 아파트들과 아직도 그 곳에 서 있는 이재민 텐트들. 꽤 시간이 흘렀지만 포항지진의 충격과 그로부터의 회복은 아직도 진행형이다. 그런 지진이 ‘자연재해’가 아니었다는 공식 발표는 지역의 민심을 다시 들끓게 한다. 이를 어떻게 수용하여야 하는지 또 그에 따른 해결의 가닥은 어떻게 잡을 것인지 생각들이 봇물을 이룬다.포항지진이 ‘촉발지진’이었다는 발표를 포항의 회복과 새로운 발전 그리고 도약의 기틀로 삼아야 하며 이는 그 어느 진영논리로 해결할 문제가 아니라는 지적은 분명히 옳다. 즉, 이는 우와 좌의 문제가 절대로 아니며 포항지역의 앞날을 생각하면서 미래지향적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생각에는 동의하지 않을 사람이 없다. 하지만, 그렇게 언급하는 이의 의견 가운데 은근히 어느 진영의 주장이 실리며 상대 진영에 대한 질타가 감지되는 일은 안타깝기 그지없는 일이다. 포항의 위기에 대하여 걱정하면서 사심(私心)없이 수고해 온 분들도 즐비한 가운데 정치권의 힘을 배경으로 한 주장이 지역을 덮으려 하는 일도 경계하여야 한다. 선동적 외침이 적힌 가로펼침막과 누군가 준비한다는 궐기대회도 꼭 필요한 일인지 생각이 복잡하다. 까닭없이 한 편에 설 수 없는 보통 시민은 무엇이 어찌 돌아가는 것인지 혼돈스럽기 짝이 없다.오늘 우리의 자리를 분명히 설명하고 내일을 향한 가능한 계획이라도 누군가 조목조목 내어놓아 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포항이 위기를 극복해야 하며 지역의 내일이 오늘보다 나아져야 한다는 생각에 동의하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을까. 그 한 자락만 붙들고 성실하게 생각하고 일하려는 이들이 없지는 않을 터에, 지역은 무슨 까닭으로 진영에 휘둘리는가. 무슨 속셈으로 함부로 편을 가르는가. 모두가 한 마음이어야 하지만, 모두가 똑같은 생각일 까닭은 없다. 다양하고 풍성한 생각과 의견들이 청취되고 조율되어 지역이 화합하고 소통하는 내일로 나아가야 하지 않을까. 어느 한 가지 생각을 정해놓고서 그만을 따라가자는 주장도 시민에게는 피곤할 뿐이다. 모두 내어놓고 함께 지혜를 모으도록 서로 도울 수 없을까.정적(政敵)이었던 보수진영 정치인의 장례식에 참석한 진보진영 오바마 전 대통령이 ‘우린 서로 엄청 싸웠지만 결국은 한 편임을 한 번도 의심하지 않았다’고 했다. 수다한 정치적 결정과정에서 끊임없이 맞섰지만, 이루고 싶었던 일은 결국 나라와 국민이 잘 되는 일 그 한 가지였다는 고백이 아니었을까. 포항과 지역의 발전이 진정 당신의 바람이라면, 진영의 논리가 두드러지는 일은 거두어 주셨으면 한다. 지진으로 겪었던 아픔과 상처가 이념의 색깔 탓에 오히려 덧나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 그동안 욕심 한 자락 없이 수고해 온 분들의 목소리와 의견이 더 많이 들려지도록 배려했으면 한다. 전문성과 진정성이 실린 구체적이며 실질적인 제안들에 자리를 더 많이 내어 주어야 한다.그간 의심하며 궁금하였던 ‘지진지역’의 오명이 씻기운 것이 참으로 반갑다. 이제는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문제의 책임소재를 밝히는 일도 중요한 일이지만, 내일을 밝히는 일과 뒤섞이면 그도 어지럽다. 위기를 극복하고 미래를 여는 일은 지역의 손에 달려있다. 지역의 역량을 조화롭게 모아내어 포항이 글로벌 도시로 도약하는 기회가 되길 기대해 본다. 포항, 파이팅!

2019-03-27

인사와 청문회

우리나라 인사청문회를 지켜보노라면 가끔 궁금증이 생긴다. 선진국도 인사청문회가 열리게 되면 고위공직 후보자 신상에 관한 의혹들이 우리나라처럼 많이 쏟아져 나올까 하는 궁금증이다. 이번 주부터 장관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가 국회에서 시작됐다. 이번에도 여야 간에 난타전이 예상된다. 장관후보 대상자 7명 모두가 각종 결격 사유와 관련한 의혹이 제기된 인물이기 때문이다.후보자들은 청와대가 엄격히 관리하겠다며 자체 설정한 7대 인사기준에 모두가 미달이다.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는 7대 기준에 5개 분야가 해당된다고 한다. 7대 기준이란 병역기피, 세금탈루, 불법적 재산 증식, 위장 전입, 연구 부정행위, 음주, 성범죄 등이다.미국도 인사 청문제도가 있다. 대통령이 임명하는 2천여 명의 공직자는 연방 상원에서 인준 절차를 거쳐야 한다. 그러나 놀랍게도 미국에서는 인준 절차를 통과하지 못하는 사례는 극히 일부다. 전체의 2% 정도라고 한다. 청문제도가 물렁해서가 아니다. 검증자가 까다롭지 않아서도 아니다. 우리보다 더 많은 청문시간과 검증항목이 있다.다만 백악관 등 사전 검증과정이 엄격해 인준에서 탈락하는 경우가 적다는 것이 이유다. 고위 공직자의 자질을 검증하는 인사청문회는 대통령의 독단적 인사를 견제하고 도덕심이 강하고 유능한 인재를 등용하는 제도다. 특정한 제도가 사회적 기능을 이끌어 가는 시스템 사회로 변모하고 있는 요즘이다. 사람보다 법과 제도에 의존해야 하는 일들이 많아진 탓이라 볼 수 있다. 그러나 인사 문제는 시대가 바뀌어도 시스템으로 해결될 일은 아니다. 사람의 생각과 판단으로 결정할 일이다. 인사청문회가 시스템적이라면 후보를 추천하는 일은 사람의 몫이라는 뜻이다.“인사가 만사”라는 말은 인사가 어렵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인사가 잘 되면 모든 일이 잘 풀린다는 의미도 있다.인사청문회에 등장한 장관 후보자의 비리 의혹 논란도 제도의 문제보다 사람의 문제로 바라보는 시각이 필요하다. 인사청문회가 정파에 따라 한쪽은 무조건 찬성, 한쪽은 무조건 반대라면 그 근본 원인은 사람한테 있다./우정구(논설위원)

2019-03-26

로봇과 잉여인간

이창훈 경북도청본사 취재본부장문재인 대통령이 최근 ‘로봇산업육성 전략보고회’가 열린 대구 달성군 현대로보틱스에서 로봇을 이용한 작업을 시연했다. 문 대통령은 모니터를 통해 음료를 주문하면 직접 만들어 주는 바리스타 로봇이 만든 커피를 직접 맛보더니 맛이 좋다며 관계자들을 격려하는 등 큰 관심을 표시했다.우리나라는 제조업 종사자 1만명 당 로봇 활용 대수가 710대로 세계 평균 85대에 비해 압도적 1위를 차지하는 등 로봇강국이다. 향후 제조로봇은 2018년 32만대에서 2023년 70만대로 2배 이상 늘어나는 등 획기적으로 증가된다. 지금도 웬만한 제조공장, 특히 자동차 분야의 경우 로봇이 인간의 일을 대신하고 있다. 과학의 발달이 인류의 역사를 그만큼 풍요롭게 하는 건 사실이지만 이러한 산업의 발전에 걱정이 앞서기도 한다. 로봇이 사회 전분야로 확산되면서 인간의 일자리를 대신하기 때문이다.즉 로봇이 인간의 일을 대신하는 만큼, 인간은 설 자리를 뺏긴다. 남아도는, 필요없는 인간이라는 잉여인간은 이제 남의 일이 아니다. 바로 현실에 존재하는 필요인간과 경쟁이 불가피한 생존게임이 곧바로 눈앞에 닥쳐온 만큼 이에대한 대비 또한 필요해 보인다.최근 스웨덴에서 이 문제가 공론화됐으며, 다른 나라에서도 뒤따를 전망이다. 스웨덴에 인류 역사상 존재하지 않았던 초유의 일자리가 생긴다. 아무런 일을 하지 않아도 된다. 정반대로 무슨 일이든 해도 된다. 휴대폰 게임을 하든, 잠을 자든, 사무실을 벗어나도 상관없다. 휴가도 보장되고 종신직이다. 단 하나의 조건은 출근을 하고, 퇴근을 해야 한다. 인공지능과 자동화로 인간의 노동이 위협받는 시대, ‘잉여 인간 실험’이 나왔다.스웨덴 정부는 2026년 완공되는 남서부 도시 구텐베르크 코슈배겐역(驛)에서 이런 조건으로 일할 직원 1명을 뽑을 예정이다. 완공 1년 전인 2025년 전 세계 사람 중에서 공모를 받아 선발할 예정이다. 이 사람은 출근해서 사무실 스위치를 올려 승강장의 형광등이 깜박이도록 하는 것으로 자신의 출근 사실을 알리면 된다. 저녁이 되면 사무실 스위치를 내려 다시 한 번 승강장 형광등을 깜빡이게 한 뒤 퇴근하면 된다.‘영원한 고용’이라는 이름의 이 프로젝트는 코슈배겐역 디자인 공모에 뽑힌 이들의 아이디어다. 디자이너는 자신들이 설계한 역사(驛舍)에 ‘잉여 근로자’를 채용하는 것을 주요 콘셉트로 공모작을 내 당선됐다. 공모전 상금 700만코로나(약 8억4천만원)로 재단을 만들어, 잉여 근로자 한 사람의 월급 2천320달러(약 264만원)를 지급할 계획이다. 120년 정도 후 돈이 다 떨어지면 이 프로젝트는 마무리된다.다소 황당해 보이는 이 프로젝트는 왜 시작됐을까. 이들은 “대규모 자동화와 인공지능의 시대에 인간 모두가 생산성의 측면에서 쓸모없어질 것이란 위협이 임박했다”며 “이 프로젝트는 인간의 노동에 대한 다른 관점을 제시하고, 경제 성장과 진보라는 현대성의 본질에 의문을 제기한다”고 썼다.프로젝트가 시사하는 바가 작지 않다고 본다. 현재 빠르게 산업은 변화하고 있다. 과거 듣도보도 못한 AI(인공지능), IoT(사물인터넷) 등의 발전으로 산업판도가 급속도로 바뀌고 있지만 그리 마냥 반가운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산업화의 발달과 함께 대량해고와 실업으로 인간의 삶 또한 파괴되는 것을 무수히 봐오지 않았던가. 급속한 산업화의 시대에 인간의 휴머니즘도 동시에 감안하는 균형잡힌 발달을 기대하면 너무 사치스러운 생각일까. 하지만 하루가 다르게 진화하는 과학의 발달에 힘입어 ‘우리 인간이 잉여인간이 되지 않도록 대비해야 한다’는 생각을 해본다.

2019-03-26

육지속의 섬 영양! 세상과의 만남을 준비하다

오도창 영양군수경상북도를 동서로 연결하는 상주~영덕 고속도로가 지난 2016년 12월 23일 개통했다. 2조7천500억 원을 들여 착공 7년만에 왕복 4차로 107.6㎞의 상주∼영덕 고속도로가 준공되면서 당진∼대전∼세종∼상주∼영덕을 잇는 동서4축 고속도로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렸다.하지만 애초의 장밋빛 기대와 달리 안동을 비롯해 의성, 청송, 영덕, 울진 등 인근 지역이 관광객과 유동인구 증가로 고속도로 개통에 따른 특수를 누리고 있음에도 영양지역은 여전히 교통 오지로 남아 발전의 전기를 잡지 못하고 정체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는 대체 접속 도로 미개설과 소재지와 IC를 잇는 국도 31호선이 2차선이어서 영양에서 가장 가까운 동청송·영양IC 진입에 30분이 걸리는 등 그 기능을 다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특히 BYC라는 이름의 봉화·영양·청송 지역 중에서도 영양은 교통 인프라 확충이 절실함에도 여러 주변 상황으로 인해 도시의 낙후도가 급격히 진행돼 왔다. 영양군은 제대로 난 길도, 가장 편리한 교통수단으로 여겨지는 기차가 다닐 레일도 없다. 면적이 서울시보다 넓은데도 여전히 교통 인프라 구축은 요원한 상태다. 영양에서 서울까지 270여㎞(영양군청∼서울 나들목 기준), 경북도청사(안동)까지 90㎞로, 이웃 청송에 비해 수도권의 주요 도시와의 직선거리에서 크게 차이가 나지는 않는다.하지만 실제 운행거리를 비교하면 평균적으로 30여분 이상의 시간이 걸린다. 수도권이나 주요 대도시를 가야할 경우 직접 고속도로를 이용할 수 있는 경우가 아니어서 서울의 경우 동청송영양IC를 통한 상주~영덕 고속도로를 타고 안동을 경유, 중앙고속도를 봉화의 현동면과 태백방면의 경우에는 일월산 재를 넘어 영주시를 거쳐 중앙고속도로를 이용해야 한다.상황은 여기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2017∼2021년 국가재정운용계획 SOC(교통)분야 보고서에 따르면 전국의 30분 내 고속도로 접근 가능지역은 약 70%로 조사됐다. 그러나 영양군은 직접 접근 가능한 고속도로가 없으며 전국의 고속도로망이 거미줄처럼 얽힌 와중에도 영양지역만이 나홀로 구멍이 생긴 외딴 지역으로 남아 있다. 그나마 상주∼영덕 고속도로 준공으로 동해안 방면이나 충청 방면은 이전보다 접근성이 높아졌지만 수도권 방면은 여전히 접근성이 낮아 주민들의 불만은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영양군에서 교통인프라 구축을 위해 노력하는 부분은 크게 국도 31호선 진보∼영양 16㎞의 4차로 확장과 상주∼영덕 고속도로 동청송영양나들목과 영양읍을 연결하는 접속도인 지방도 920호선 미개설 구간인 진보면 신촌리∼석보면 답곡리 3㎞ 개설공사의 조기 준공, 국도 31호선 입암∼영양 도로 선형 개량 등 세 가지다. 국도 31호선 4차로 확장사업의 추진은 청송군 진보면 월전리∼영양군 영양읍 서부리의 구간 16㎞로 동청송·영양IC의 접근성을 향상시키고자 추진하고 있으나 예비타당성 조사결과 경제성 부족으로 중기계획에 미반영되어 사업 추진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진보면 신촌리∼석보면 답곡리 3㎞ 개설공사의 조기 준공 추진은 상주∼영덕 고속도로가 준공되었음에도 현실적으로 여전히 진보를 돌아가는 상황을 개선해 접근성을 높이기 위한 방안으로 동청송영양IC인 진보면 신촌리에서 석보면 답곡리까지 지방도 920호선 미개설 구간을 연결해 실질적인 고속도로 접근성을 높이고자 추진 중에 있다.마지막으로 국도 31호선 입암∼영양 도로 선형 개량 사업은 산지가 많은 지형으로 인해 주변 낙석으로 인한 피해에 대해 근본적인 대책마련을 강구중이다. 특히 자연재해로 인한 낙석으로 도로지반 붕괴돼 인명 및 재산피해가 발생하는 등 우리 영양군은 교통 환경 개선 및 접근성 강화를 위해 경북도의 제5차 국도·국지도 5개년(2021∼2025년) 계획에 선정돼 조속히 시행될 수 있도록 요청할 예정이다. 그동안 영양군이 교통 인프라 구축을 위해 추진하는 사업들 대부분이 교통망 확대에서 제외되는 이유는 교통영향평가분석의 영향이 가장 크다. 현 도로 이용 상황을 분석해 과부하가 예상되면 교통망 확대를 추진하는 것이 교통영향평가분석의 목적이라 변변한 연결도로 없이 전국에서 유일한 3무(無)지역(4차로, 고속도로, 철도) 자치단체인 영양군으로서는 외부인의 방문이 적은 것은 당연한 이치라 매번 목표치에 미치지 못했다. 이것은 중앙정부에서 판단하는 경제적 타당성에 비춰 국가적 SOC 건설에 있어서 타 지역과 동일한 기준 잣대로 판단함으로써 경북 북부 권역에는 수혜를 볼 수 없는 구조가 반복돼 왔다.국토 균형발전과 생존권 차원의 보장이라는 측면은 제쳐두고 경제성으로만 정책을 판단한다면 영양군과 같은 낙후 지역은 꼬리표를 떼지 못하고 보편적인 교통 인프라를 누릴 수 없는 상황이 지속된다. 교통 인프라는 좁게는 지방자치단체, 넓게는 한 국가의 입장에서 물류의 흐름을 관통하는 중요한 혈관 같은 존재이다. 혈관의 막힘은 그 지역뿐만 아니라 주변 지역까지 흐름을 정체시킴으로써 모든 지역을 고사시켜 버린다. 그만큼 교통 인프라 구축은 지방자치단체가 발전할 수 있는 중요한 토대가 되고 소외되는 경우엔 쇠락의 길로 이끌어 낙후를 면치 못하게 되는 것이다.우리 민선 7기 영양군에서는 곳곳에 막힌 흐름을 뚫고자 도로 개설을 위한 움직임에 나서 사통팔달의 경북의 중심으로 도약하고자 행정력을 집중하고 있다. 영양 곳곳을 외부와 이어주고 만나는 도로의 개통으로 ‘사람과 물자가 몰리는 영양, 가고 싶고 머무르고 싶은 사통팔달 영양’을 그려보며 희망해 본다.

2019-03-26

페르시아 네눈박이 개, 파사구

2019년 이란 정부가 공공장소에서 개 산책을 금지했다. 개를 차에 태우는 일도 금지된다. 이란 정부가 국민이 개를 키우는 걸 막기 위한 정책이다. 이슬람교를 국교로 채택한 이란에서 개는 부정적인 동물로 여겨지는데, 개를 기르는 일은 ‘1979년 이란 이슬람혁명’이후 지금까지 논란거리였다.이란은 과거에 페르시아제국이라는 세계 최초의 세계제국을 건설했는데 아케메네스-페르시아 왕조는 조로아스터교를 국교로 믿었다. 조로아스터교는 조로아스터가 쓴 [아베스타]를 믿는 종교인데 히틀러 나치의 심볼과 불교의 만(卍)등은 조로아스터교의 지·수·화·풍(地水火風)에서 나왔다. 영어로 조로아스터이지만 페르시아식 발음은 짜라투스트라다. 니체의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라는 저서의 짜라투스트라가 조로아스터이다. 조로아스터교는 세상은 시작과 끝이 없고 무한대로 순환한다고 여기는데, 니체가 언급한 영겁회귀와 순환이 바로 여기서 나온 것이다. 조로아스터교에서는 죽으면 이란 고원 북쪽에 있는 알부르즈산과 하늘 사이에 걸려있는 친바트 다리를 건너야 한다고 믿는데, 다리를 무사히 건너면 천국이고 다리 밑으로 떨어지면 지옥이다. 이때 다리 옆을 네눈박이 개가 지키고 있다가 착한사람의 영혼이 건너려 하면 도와주고 나쁜사람의 영혼은 도와주지 않아 지옥으로 떨어지게 한다고 믿는다. 물론 생전에 개를 죽인 사람은 절대 도와주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네눈박이 개는 천국과 지옥을 판가름 하는 다리지기 역할 외에도 장례절차에도 관여하는 것으로 믿어져서 죽은 사람을 네눈박이 개에게 보여주는 의식을 치른다. 시체가 지나간 길을 정화하는 의식도 네눈박이 개가 있어야 치를 수 있다. [아베스타]에서는 네눈박이 개를 데리고 시체가 운반된 길을 세 번 지나가면 시체를 훔치러 온 악마들을 쫓을 수 있다고 가르친다.조로아스터교에서 개가 인간의 삶과 죽음을 상징하는 가장 신성한 동물로 여겨진 이유는 죽을 위기에 처했던 조로아스터를 암컷 늑대가 구해준 적이 있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조로아스터 교도들은 개를 아주 소중히 여기는데, 개에게 제때 먹이를 주지 않거나 괴롭히거나 죽이는 행위는 중죄에 해당하고 미친개라도 최대한 잘 돌보아 주고 치료해 줘야 한다고 믿는다. 이처럼 당시 조로아스터교를 국교로 하던 페르시아에서는 네눈박이 개를 신성시 했다. 651년 이슬람의 침공으로 조로아스터교를 국교로 삼았던 사산조 페르시아가 멸망하자 조로아스터교도들은 남아서 이슬람교로 개종하든지 아니면 다른 나라로 탈출하든지의 선택의 기로에서 개종을 하지 않은 이들은 인도로 피난했다. 페르시아에서 온 사람들이라는 뜻으로 ‘파르시’라고 부른 그들의 후손들이 지금까지 인도 뭄바이 지역에서 공동체를 이뤄 살고 있는데, 여전히 저승을 가는 도중에 죽은 사람의 영혼을 개가 보호해 준다고 믿고 있다.단군의 홍산문명권에 수도를 둔 선비족도 파사구(波斯狗), 즉 페르시아 개를 길렀다. 중국땅에 다섯 오랑캐가 16개 나라를 세웠다 해서 5호 16국 시대라 불리던 시기에 다섯오랑캐 중 선비족 계 왕조가 세운 북제의 고위는 페르시아산 개에게 최고 벼슬을 내렸다. ‘북제서’에 의하면 고위는 “파사구를 총애해 군국의 예로 대했다”고 적혀있다. 우리나라 개의 유래를 DNA 분석해 보면 북방계열의 개들이 한반도로 유입된 것으로 나타나고, 우리나라 문헌에도 파사구의 명칭이 보인다. 파사구의 이야기와 함께 페르시아 사상과 유목 기마민족들의 하늘사상은 초원길을 통한 교류로 다양하게 결합되고 재생산 된 것으로 보여진다.개는 예나 지금이나 사람을 말없이 바라본다. 개는 그 자리에 그대로 있을 뿐인데 개를 대하는 사람의 마음은 변해왔다. 개를 신성하게 여기든지, 불결하게 여기든지 개는 그 자리에 말없이 그대로 있을 뿐이다. 진리를 찾는 사람들이 여전히 각자의 이야기를 하겠지만, 진리는 말없이 그 자리에 그대로 있을 뿐이다. /서라벌대 반려동물연구소 소장(마사과 교수)

2019-03-26

다시 한 번 포항인의 뚝심을

김진홍한국은행 포항본부 기획조사팀장포항의 근현대사를 돌아보면 수많은 재해와 재난의 연속이었다. 그때마다 포항사람(浦項人)들은 특유의 기질로 그때마다 위기를 새로운 도약의 밑거름으로 삼아왔다. 굵직한 재해 가운데 가장 첫 번째 사건이라면 1923년 4월 12일에 발생하였던 유례없는 폭풍우로 인한 재해였다. 당시 포항경찰서가 피해상황을 공식 집계한 기록만 보더라도 사망자 311명, 행방불명자 355명으로 인명피해는 공교롭게도 ‘666명’이었는데 이는 당시 1만명이 조금 넘었던 포항면 인구의 6% 가까운 수치에 해당한다. 그밖에 바다 속으로 가라앉은 조난 선박도 95척에 달하였다. 당시의 경제상황은 청어, 고등어와 같은 영일만 앞바다의 어획량에 따라 좌우되던 시기였기 때문에 도시 전체가 쓸려나간 당시 포항면의 실상을 일부 자료에서는 현세의 생지옥이었다는 표현이 있을 정도였으므로 전무후무한 대참사였다. 그러나 그때의 선조 포항인들은 일치단결하여 자신의 이익보다는 도시 전체의 기능 회복에 매달려 포항항을 축조하고 형산강 대개수 작업을 통해 약 600만평 규모의 수혜지역을 확보함으로써 이후 포항읍으로 포항시로 발전하는 뚝심을 발휘하였다.두 번째 사건으로는 한국전쟁을 빠뜨릴 수 없다. 당시 낙동강전투의 최후 방어선이 포항이었던 만큼 포항은 괴멸적인 피해를 입었다. 당시 시가지 사진을 살펴보면 도시가 모두 파괴되고 오직 교회건물 하나만 지평선에 나타나 있었을 정도였다. 그 때에도 포항인은 대한민국의 수호자라는 자부심과 전후복구를 위해서는 동해안 유일의 무역항을 조기 수습해야한다는 사명감, 거친 파도와 상어를 두려워하지 않고 고기를 잡아 올리던 강인한 정신력으로 두 번째 위기도 슬기롭게 극복하였다.포항시는 이제 포항지진이라는 역사적인 세 번째 사건을 겪었다. 포항지진의 모습이 영상으로 전국에 전파된 데다 인구까지 감소하였다고 하니 모르는 사람들은 과거 70, 80년대에 타지에서 흘러들어왔던 산업인력들이 위기가 닥치자 삶의 터전을 버리고 포항을 떠났을 것으로 오해하기 쉽다. 하지만 실제 지진피해가 극심했던 포항 북구, 그중에서도 흥해 지역 등에는 오히려 인구가 늘어났다. 지진발생 전부터 전국적으로 진행되었던 국내 철강업체의 구조조정 등으로 인한 공장 통폐합과정에서 일자리를 중심으로 남구지역의 인구가 유출된 것에 불과하다. 일종의 오비이락인 셈이다. 하지만 이와 같은 경기요인으로 기업체와 연동되는 인구는 지역경제가 다시 활성화되면 다시 돌아오기 쉽다. 어지간한 자연재해로는 피해가 없는 풍요로운 현대사회에서 생활하던 포항인 들에게 발생한 세 번째 사건은 유례가 없던 지진이었기에 그 충격은 더욱 컸다. 그리고 살기 좋은 도시 포항으로 이사하려던 이들의 발걸음도 주춤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정부합동조사단의 발표는 이와 같은 우려를 말끔히 씻어주었다.이제 포항인은 과거의 뚝심을 다시 한 번 발휘해야 할 때가 왔다. 물론 ‘피해보상’도 중요하다. 그것은 전문성을 지닌 분들에게 믿고 맡기면 된다. 모든 시민단체가 거기에 매달릴 필요는 없다. 그보다는 앞으로 포항시가 어떠한 이미지의 도시로서 정체성을 확립해야 할지, 어떤 프로젝트로 포항의 경기를 살리고 재도약하는 기회로 삼을 수 있을지에 주목해야 한다. 포항인이 과거 근현대사를 통해 겪었던 괴멸적인 재해에서도 불굴의 의지로 새로운 도시 포항을 만들어내었던 것처럼 포항인의 기질을 다시 한 번 발휘해야 할 때다. 모처럼 다가온 포항의 도시재생, 도시재개발로 도약할 최고의 타이밍을 보상이나 소송이라는 문제에만 쏠려 놓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될 것이다.

2019-03-26

비둘기를 보면 떠오르는 것

로렌츠 연구에 의하면 비둘기는 늑대나 토끼, 개보다 훨씬 더 잔인하다고 합니다. 새장에 갇힌 비둘기들이 싸울 때 서로 죽일 듯 쪼고 물어 뜯고 푸드덕거리며 혈투를 벌입니다. 이때 패자는 목을 내밀며 죽여달라는 시늉을 합니다. 승자 비둘기는 관용을 베풉니다. 로렌츠 박사는 이를 ‘사회적 자제력’이라는 용어로 설명하지요. 개체수가 부족한 동물들은 멸종 위험을 극복하려 스스로 참을 성을 개발한다는 연구입니다.이렇게 잔인한 비둘기가 평화의 상징이 된 것은 1, 2차 세계 대전 영향이 큽니다. 비둘기는 최고 시속 112㎞로 무려 10시간을 연속 비행할 수 있습니다. 평균적으로 하루에 1천 ㎞를 비행하는 지구력도 있습니다. 게다가 비둘기 눈에는 특이한 능력이 있습니다. 헤드 업 디스플레이(Head Up Display) 즉 천연 HUD가 탑재되어 있습니다. 비둘기가 북쪽을 향할 때 눈에 보이는 색감이 달라져 방향을 알 수 있다는 것을 과학자들이 밝힙니다. 통신 수단이 발달하지 않은 1차 대전때는 비둘기가 중요한 군사적 연락 도구였습니다. 2차 대전 연합군 의사회 심볼이 비둘기였고 훗날 UN으로 전파되면서 비둘기는 평화의 상징으로 사람들 인식을 파고들지요.통일 연구원에서 한국인 1천명을 대상으로 ‘평화’라는 단어를 보고 떠오르는 단어 3개가 무엇인지를 물어보는 검사를 했습니다. 응답자의 21.1%가 비둘기를 떠올립니다. 같은 조사에서 덴마크인이나 미국인은 불과 1%가 평화와 비둘기를 연결지었을 뿐입니다.무엇이 이런 차이를 만들었을까요? 남북 대립 상황에서 자라온 기성 세대는 유난히 평화라는 단어를 많이 주입받았습니다. 인식의 골에 깊이 새겨 넣기 위해서는 상징이 필요했을 것이고 비둘기는 어느 새 우리 국민들의 인식에 평화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한 셈입니다. 미국이나 덴마크 사람들보다 24배쯤 더 많이, 더 자주 우리 뇌는 이런 자극에 노출되어 있었던 셈입니다.뇌는 언어에 의해 쉽게 조건화(conditioning)가 이루어집니다. 우리를 지배하려는 세력들이 덫처럼 풀어 놓은 언어들이 알지 못하는 사이에 우리 영혼에 스며듭니다. 하나의 이미지가 구축되면 꼼짝 못하고 그들이 원하는 자극-반응의 프레임에 갇혀 버리게 되지요.휘둘리지 않도록 우리의 주체적 생각을 키우는 두 가지 도구가 있습니다. 책과 질문! 끊임없이 질문하는 삶, 책을 손에서 놓지 않는 삶. 이번 한 주도 그대와 함께 신나게 도전해 봅니다. /조신영 인문학365 대표

2019-03-26

3월 학교에 무슨 일이?

이주형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전학에 대해 문의드립니다. 중학교 1학년인데 전학이 가능할까요?”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의 목소리가 어떤 것인지를 묻는다면, 최근 산자연중학교로 전학에 대해 문의하는 학부모님의 목소리를 한 번 들어보라고 말하고 싶다. 목소리만으로도 이미 세상이 수없이 무너졌음을 짐작할 수 있는 학부모님들의 한 서린 목소리는 3월 이 나라 학교의 모습을 단적으로 말해준다. 죄책감에 필자는 최선을 다해 전화를 받는다.“왜 전학을 하려고 하시는지요?” 이 말은 그동안 참았던 말문을 여는 열쇠가 된다. “아이가 학교 가기를 너무 싫어합니다. 무슨 일인지 알아보려고 해도 아이가 입을 열지 않습니다. 학교에서는 특별한 일이 없다는 말만 되풀이합니다. 아무리 달래 봐도 말을 듣지 않습니다. 분위기를 바꿔주면 좀 괜찮을까 해서 학교를 알아보는 중입니다. 또 학교에서도…!”이 정도 되면 전학 상담이 아니라 교육 상담으로 전화 내용이 바뀐다. 개학한 지 한 달도 지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하루에 적어도 서너 통의 전학 문의 전화가 온다. 지역은 서울을 비롯하여 전국 각지이고, 학년은 1학년부터 3학년까지 다양하다. 그 중에서 1학년 학생들의 비율이 가장 높다. 다른 학년 학생들의 전학 상담도 물론 마음 아프지만, 특히 중학교 1학년 학생의 전학 상담은 필자를 더 아프게 한다.중학교 1학년! 이들이야말로 봄과 가장 닮은 학생들이다. 겨울을 이기고 가지마다 돋아난 꽃봉오리를 닮은 학생들! 분명 그 속에는 미래에 대한 희망과 그 희망을 현실로 만들어 갈 에너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세상을 행복하게 만들 환한 웃음이 가득할 것만 같다. 그런데 현실은 전혀 아니다. 학생들은 정말 피어보지도 못하고 벌써부터 시들고 있는 꽃봉오리 같다.도대체 3월 학교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어떤 일이 있었기에 많은 학생들이 3월도 가기 전에 학교를 거부할까? 물론 모든 것을 학교 책임이라고만 할 수 없다. 사회 문제, 정치 문제 등 다양한 요인들이 있겠지만, 학교도 분명 문제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과연 3월 이 나라 학교의 모습은 어떨까? 2019년 3월과 1979년 3월 학교의 모습을 비교해본다면? 크게 달라진 게 있을까? 필자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달라진 것은 전혀 없다고. 오히려 필자는 2019년의 교육상황이 1979년보다 훨씬 못하다고 생각한다. 비록 1979년에는 지금과 같이 화려한 교육 시설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그 시절의 학교에는 꿈이라는 것이 있었다. 학생들은 열심히 꿈을 찾았고, 선생님들은 학생들이 더 열심히 꿈을 이룰 수 있도록 기꺼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사다리가 되어 주셨다. 그래서 즐거웠다. “선생님께 도움을 청해 보시죠?” “몇 번이고 찾아가서 아이가 학교에 나올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했죠. 그런데 선생님께서는 방법이 없다고 하시더군요. 그리고 전학 이야기만 하시더라고요. 그러시면서 시계만 연신 보셨어요. 시간을 보니까 퇴근 시간이더라고요!”학교가 만능(萬能)일 수는 없다. 그래도 학교 때문에 학교를 포기하는 학생들이 더 이상 생겨서는 안 된다. 하지만 이것은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우리 모두는 안다. 그러기에 다음과 같은 시가 계속 나올 것이고, 학생들은 학교 때문에 학교를 계속 그만 둘 것이다. “수업 시간 강의가 시작되었다. (중략) 다시 떠드는 아이들/모두 눈감고 손들어/너희들의 미래는 교실에서 결정된다. (중략) 가르치기보다 아이들 감시에 열을 쏟는 교사/배우기보다 떠들고 조는데 더 열심인 학생들/이것이 대한민국 교육의 현주소/그리고 대한민국 가정교육의 결과/대한민국의 미래가 어떻게 될까 (진장춘 ‘대한민국 고등학교 수업 시간’)”3월 학교 모습이 이러한데, 4월은 어떨까!

2019-03-26

자유와 투쟁 그리고 성찰의 음악-L.V.베토벤

모리스 바링(1874∼1945)이 두 의사를 등장시켜 만든 가상의 유명한 대화가 있다.의사1: 임신중절에 관한 견해를 듣고 싶소. 아버지는 매독환자이고 어머니는 결핵에 걸렸소. 이미 자식을 넷이나 낳은 경험이 있는데 첫째는 맹인, 둘째는 사산, 셋째는 농아, 넷째는 결핵에 걸렸지! 당신이라면 어찌하겠소?의사2: 임신중절을 해야겠군요.의사1: 그렇다면 당신은 베토벤을 죽였소.위의 이야기는 ‘베토벤 오류’라고도 불리며 많은 버전의 다른 이야기로도 소개된다. 낙태 반대론자들에 의해 주로 인용되는 이야기인데 사실과는 다르다. 베토벤은 다섯째가 아니라 형이 유아 때 사망했기에 장남이었으며 사실보다 과장된 이야기이다. 필자는 여기에서 이 이야기의 사실관계를 따지려는 것이 아니다. 이야기의 주인공이 왜 베토벤인가 하는 것이다. 베토벤은 많은 어려움을 가진 작곡가였으며 그의 작품에는 그것을 극복하고 인류의 창대한 미래를 기원하는 위대한 작품을 썼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우리가 베토벤을 ‘악성(樂聖)’이라 말하고 그의 음악과 삶에 유독 열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베토벤의 어린 시절은 불운하다 못해 끔찍했다. 음악가 집안에서 태어나긴 하였다.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모두 궁정음악가였다. 아버지 ‘요한 판 베토벤’은 그 아버지의 후광으로 궁정악단에서 테너를 담당하는 성악가가 되었으나 그리 뛰어난 실력을 가지지 못했다. 이 후 베토벤이 3살 되던 해부터 그의 아버지는 알코올 중독 중세를 보이게 되었으며 그의 아들 베토벤보다 14살 많은 신동 모차르트의 소문을 듣고 모차르트 부자를 롤 모델로 삼기에 이른다. 모차르트의 아버지와는 달리 조기 교육에 대한 이론이 무지하였던 그는 술에 취한 채 집에 들어와 습관적인 폭력을 일삼았으며 자고 있던 어린 베토벤을 깨워 밤 세워 피아노 연습을 시키곤 하였다. 요즘 같았으면 가정 폭력으로 고소를 당했을 일이며 웬만한 아이들은 집에서 도망쳤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도 끝까지 자신의 의지로 버텨냈는지, 도망치지 못했는지는 모르지만 이것이 베토벤의 음악환경이었다.베토벤의 작품을 통틀어 보면 그의 인생이 나타난다. 그의 작품은 시기별로 나뉘는데 시기별 작품의 성격이 크게 차이가 나서 마치 다른 작곡가의 작품인 것처럼 느껴질 정도이다.살펴보자면 제 1기는 ‘습작의 시기’로 불리며 그의 나이 23∼32살 정도의 나이에 해당 되는데 모차르트와 하이든의 작품 등 기존 작곡가들을 모방한 시기이다. 베토벤의 본격적인 작품이 만들어질 준비의 시기라 할 수 있으며 고전주의가 중시하였던 형식의 틀을 충분히 지키며 아름다운 걸작을 만들어낸 시기였다.제 2기는 32∼44살 정도의 시기인데 자신의 음악세계를 펼쳐나가는‘자유와 혁명의 시기’라고 부르고 싶다. 과거 하이든과 모차르트를 통한 고전파 형식의 최고의 결실이었던 소나타 형식을 파괴, 확대하는 과감한 시도가 나타났다. 소나타 형식은 서사적인 플롯을 가진 이야기의 구조이다. 간단히 말하자면 크게는 제시부, 발전부, 재현부의 3부 형식으로 구성되나 1주제와 2주제, 소경과구, 대경과구, 종결부 등 다양한 음악적 프레이즈 들이 인관관계를 가지고 큰 스토리를 만들어 가는 형식이다. 많은 걸작들이 있지만 필자는 ‘교향곡 제 3번 영웅’을 최고의 걸작으로 뽑고 싶다. 음악도 뛰어나지만 소나타 형식의 위대한 혁명이 이루어 졌기 때문이다. 이전 곡에서는 2주제 까지만 구성되던 주제가 5주제 까지 쓰였으며 제시부와 재현부의 경과구로 역할로 쓰였던 발전부를 제시부보다 더 길게 작곡했다. 이전 모차르트의 교향곡에서 조차 발전부를 제시부보다 더 길게 쓴 예는 없었다. ‘장송 행진곡(Marcia funebre)’풍으로 작곡된 2악장은 다이나믹이 음악에서 얼마나 드라마틱하게 사용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며, 변주곡으로 구성된 4악장도 베토벤의 변주의 무한한 세계를 보여준다. 테마를 풀어나가는 고전의 변주방법을 넘어 ‘소프라노 독창 변주’, ‘중창 변주’, ‘코러스 변주’ 등의 방법을 도입하였는데 4악장을 다 듣고 나면 마치 오페라 한편을 모두 감상한 느낌이 든다. 베토벤은 어린 시절 부터 뛰어난 피아노 즉흥 능력을 가졌다고 전해지는데 이 능력은 그의 작품에서 변주적 발전의 능력으로 나타난다.실제 베토벤의 선율 창작 능력은 선율 작곡 능력이 뛰어난 인물들과 비교할 때 다소 의문이 있으나 짧은 악구를 발전 시켜 음악을 확대하여 작곡하는 변주 기법은 가히 최고이며 ‘교향곡 제 5번 운명(한국, 일본을 제외하고는 운명이라는 부제를 달지 않는다)’에서는 딴딴딴 따∼ 라는 음 4개를 1악장을 넘어서 4악장, 곡의 끝가지 활용한다. 이 능력은 작곡가에게 매우 중요한 능력이며 현재 대학에서 작곡과를 지원하는 학생들에게 가장 많이 바라는 능력이다.그는 또 바이올린 소나타 작품을 10개 남겼는데 그 중 9번 크로이처 소나타를 소개하고자 한다. 이 곡은 그의 나이 33세인 1803년에 완성되었으며 러시아의 대작가 ‘톨스토이(1828∼1910)’는 이 곡을 듣고 자신이 알고 있는 곡 중 “가장 음탕하고 무시무시한 곡”이라 평했다고 한다. 실제 톨스토이는 그의 소설 ‘크로이처 소나타’에서 주인공의 아내와 바이올리스트 트루하체프스키가 이 곡을 격정에 찬 열정으로 연주하는 것을 보며 질투와 불안을 느끼며 자신의 아내를 살해한다는 내용인데 이 곡의 1악장을 들어보면 톨스토이가 왜 그런 묘사를 했는지 이해가 갈 것이다. 바이올린과 피아노는 광기에 찬 음악으로 몰입되고 피아노는 반주에서 완전히 독립되며 바이올린과 피아노는 서로 독립적으로 맞서며 때로는 경쟁을, 때로는 화합을 하며 거대한 음악의 종지부를 찍는다. 베토벤의 젊은 시절의 격정과 방황을 느낄만한 곡이다.제 3기는 45세에서 만년의 시기인데 ‘내면과 성찰의 시기’라고 말하고 싶다. 그의 청각이 완전히 떠난 시기이며 오히려 바로크의 음악 어법인 푸가 기법을 작품에서 자주 볼 수 있고 당시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음악어법을 많이 사용하여 주위로부터 혹평을 많이 들었던 시기이다. 필자는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 op.125’ 과 최후의 곡 ‘현악 4중주 16번 op.135’를 강력히 권하고 싶다. 합창 교향곡은 최초로 인간의 목소리를 교향곡에 사용하였다는 시도를 거론하지 않더라도 말할 것이 너무 많은 곡이다. 베토벤은 이곡을 1823년, 그의 나이 53세에 완성했다. 세상을 떠나기 3년 전이다. 하지만 그가 이 곡의 4악장에 사용된 쉴러의 시 ‘환희의 송가’를 처음 만난 것은 27세의 청년 때였다. 베토벤은 이 시를 긴 시간동안 간직하여 끝내는 최고의 작품을 완성해 낸 것이다. 위대한 작품에 대한 긴 열망은 베토벤 작품의 원천이며 최고의 장점이다. 4악장으로 구성된 이 곡은 신과 인간의 장대한 승리와 희망의 드라마가 있으며 1악장의 서주부는 신의 천지창조를 느낄 수 있으며, 후기 낭만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구스타프 말러(1860∼1911)’의 교향곡 1번 서주부를 들어보면 베토벤의 교향곡 작품이 왜 교향곡의 신약성서로 불리며 이 후 작곡가들의 관현악곡에 얼마나 많은 영향을 주었는지 알 수 있다.베토벤의 최후의 곡은 현악 4중주였다. 그의 마지막 작품인 현악 4중주 16번 op.135의 4악장에는 ‘어렵게 내린 결정’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으며 Muss ess sein?(그래야만 하는가?), Es Muss sein!(그래야만 한다),라는 수수께끼 같은 메모가 있다. 많은 이들이 이 메모에 대한 창의적인 시도를 하였지만, 필자는 이 메모에 베토벤의 작곡의지가 모두 담겨있다고 본다. 베토벤은 자신의 작품에서 상상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음악의 가능성들을 항상 고민하고 선택하였으며 완벽한 확신이 들어야만 그 작품을 끝낼 수 있었다. 밤새워 한곡을 신이 주신 재능으로 간단히 작곡하는 그런 인물이 아니었다. 베토벤은 일일이 소개하기 힘들 정도로 문제가 많은 사람이었으나 늘 더 낳은 영혼을 가지고자 성찰했으며 인류에 보탬이 되는 한 사람이 되기를 갈망했다. 그는 음악에게 ‘철학과 정신’이라는 새로운 옷을 선사하였으며 음악으로 인류에게 구원과 미래의 희망을 보여준 진정한 악성이었다./문양일 포항예술고 음악교사

2019-03-25

노동이사제

근로자 대표가 이사회에 들어가 발언권과 의결권을 행사하는 제도로, ‘근로자이사제’라고도 한다. 이는 노동자를 기업 경영의 한 주체로 보고 노동자에게 결정권을 주는 것으로, 이사회에 참여한 노동이사는 노동자의 이익을 대변해 발언권과 의결권을 행사한다.유럽 대부분의 나라에서 보편화된 제도다. 독일의 경우 기업 규모에 따라 이사회의 최고 절반까지를 노동자 대표로 채우도록 법제화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서울시가 2016년, 정원이 100명 이상인 13개 서울시 산하 투자·출연기관에 근로자 이사를 의무적으로 도입하도록 하는 조례를 제정하면서 처음으로 도입, 시행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2017년 7월 발표한 ‘국정운영 5개년 계획’의 100대 국정과제에서 공공기관 지배구조 개선를 위해 2018년부터 노동이사제를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노동이사제는 아직도 제대로 정착되지 않고 있다. 가장 먼저 노동이사제의 도입을 추진해온 국내 주요 금융사에서부터 제도 도입이 벽에 부딪쳤다. 이번 주부터 시작해 이달 말까지 순차적으로 열릴 주요 금융사 주주총회에서 노동이사제는 주총 안건에 포함되지 못했다. 노동계에서는 회사 경영진에 대한 견제 및 노동자 이익 보호 등의 목적으로 근로자 추천 사외이사 선임을 사측에 요구해 왔다. 그러나 정부 출범 후 3년여가 지난 현재 금융권 노동이사제 도입 사례는 전무하다.KB국민은행·KEB하나은행 등 시중은행 노조 역시 사외이사 추천 및 선임을 위해 노력했으나, 번번이 실패했다.국민연금 등의 찬성표에도 불구 해당은행 지분구조에서 절대적 영향력을 갖춘 외국인 주주와 경영진 등이 근로자 추천 사외이사 선임 반대 입장을 고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윤석헌 금융감독원장이 출입기자단 기자회견에서 노동이사제 시기상조론을 언급해 금융권 노동이사제 도입은 앞으로 상당기간 쉽지 않을 전망이다. 윤 원장의 발언 하루 뒤 정부가 최대 지분을 보유한 기업은행이 근로자 추천 사외이사 선임을 사실상 부결시켰다. 노동이사제의 안정적 도입을 위해선 제도 개선 등 정부 의지가 가장 중요한데, 정부의 의지가 아직도 굳건한가 궁금하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19-03-25

‘몰카공화국’이 되었는가?

신희선 숙명여대 기초교양대학 교수·정치학 박사“한국에서는 몰래카메라를‘molka’라고 부른다.” 몰카는 은폐된 곳에 카메라를 설치해놓고 상대가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무단 촬영하는 것을 말한다.모텔 객실에 숨겨놓은 초소형 몰래카메라로 투숙객의 사생활을 찍어 생중계한 ‘모텔 몰카’ 사건이 세계적인 뉴스가 되었다.미국 CNN은 홈페이지 ‘탑 스토리’ 코너에 투숙객 몰래 온라인으로 생중계된 한국의 몰카 소식을 다루며, “한국에서는 2017년에는 6천400건이 넘는 불법 촬영이 경찰에 신고되었고 계속해서 급증하고 있다”고 보도하였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도 한국이 “불법촬영이라는 전염병과의 전쟁을 벌이고 있다”고 하였다.‘몰카 공화국’이 되고 있다. 지하철, 버스 등을 비롯해 공중화장실, 숙박업소와 사무실 등 장소를 가리지 않고 몰래카메라가 있다. 생각지도 못한 장소에서 몰카의 피해자가 될 수도 있다.‘모텔 몰카’사건은 몰래카메라를 활용한 성산업이 어떻게 진화했는지 보여주었다. 전국 10개 도시, 30개 모텔의 객실에 1㎜ 초소형·위장형 카메라를 설치해서 투숙객 1천600여 명의 침실을 몰래 촬영하고 음란사이트에 올려 수익을 창출한 디지털 성범죄였다.투숙객들이 전혀 생각지도 못하고 인지하지 못한 상황에서 사생활이 고스란히 생방송으로 유통되었다. 한국여성변호사회가 2016년 조사한 범죄판례 분석결과에서 몰카 재범률은 53.8%로 나타났다. 다시 되풀이할 만큼 중독성이 강한 범죄라는 점에서 몰카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몰카’가 더 심각한 이유는 상호불신을 조장한다는 점이다. 범죄라는 인식 없이 몰래카메라를 남용하는 개인들이 늘어나고 있다. 포노사피엔스(Phono Sapiens) 시대 첨단화된 스마트폰을 활용한 몰카도 급증하고 있다.비단 상업적 용도만이 아니다. 불순한 의도를 갖고 상대방 몰래 비밀스런 정보를 확보하려는 목적에서 몰카를 이용하는 것이다. 상대방이 인지하지 못한 상황에서 무차별적인 촬영이 이루어지기에, 낮은 수준의 사생활 침해라고 해도 몰카는 정당성을 갖기 어렵다.‘몰카포비아’가 확산되고 있다. CCTV와는 달리 몰래카메라는 자신도 모르게 비밀리에 촬영되는 터라 일상이 공포가 되고 있다. 화장실 공간만이 아니라 안경, 시계, 볼펜, 휴대폰충전기, 자동차 열쇠 등 생활용품으로 몰래카메라 시장이 확대되고 있다.특히 여성들에게 몰카포비아는 더욱 심각하다. 많은 여성들이 몰카의 폭력성에 분노하고 불안해한다. 불법촬영된 사진과 동영상이 온라인 공간에 유포되어 남성들의 눈요깃감으로 소비되고 있기 때문이다. 몰래카메라에 대한 위기의식은 ‘몰카 찾는 팁’, ‘몰카 탐지 어플’ 등 검색어로 나타나고 있다. 개인들이 몰카 탐지용품을 구입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여성들이 불법촬영을 규탄하는 거리시위를 하는 것은 몰카의 범죄성을 방증하는 것이다.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은 ‘몰카’라는 표현은 적절하지 않으며, ‘불법촬영’으로 부르는 것이 타당하다고 하였다.몰카로 인해 사생활이 노출되고 위협받는 것은 한 개인의 인격권을 침해하는 일이다. 더구나 ‘모텔몰카’처럼 개인의 은밀한 영역까지 카메라로 담아 실시간으로 유통한 것은 심각한 범죄행위다. 스마트폰과 인터넷을 통해 빠르게 전파되는 환경이기에 폭력성이 더 크다. 몰카 위험에 개인적으로 대처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나날이 발전하고 있는 몰래카메라로 인해 언제 어디서든 누구나 피해자가 될 수 있다.법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불법촬영에 대해 단호한 대응이 필요하다. 몰카는 프라이버시권을 침해하는 중대한 범죄다.

2019-03-25

맹씨행단(孟氏杏壇)의 세 청백리

강희룡 서예가충남 아산시 배방면에 ‘맹씨행단’이란 고택이 있다. 맹씨행단이란 말 그대로 맹씨가 사는 은행나무 단이 있는 집이란 뜻으로 조선 초기 세종 때 영의정으로 검소한 생활과 원칙에 철저한 학자로 명성을 높인 맹사성이 살던 곳이다. 이곳은 본래 고려 말 충절로 상징이 되는 최영 장군의 가옥이었는데, 최영과 맹사성의 할아버지와의 인연으로 맹사성은 그의 손녀사위가 됐다. 이후 맹사성이 물려받아 그의 집안이 살게 됐다.조선선비의 실천은 학행일치로 시작한다. 배운 것은 행동으로 옮길 때 의미가 있는 것이므로, 입으로 아무리 거룩한 말을 해도 그것을 실천하지 못하면 비판하고 매도했다. 배운 것을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고, 교묘한 말과 좋은 얼굴색을 지어 남과 자신을 속이는 짓을 ‘교언영색(巧言令色)’이라 하여 매도한 것이 바로 그 예이다. 또한 남에게는 후하고 자신에게는 박하게 하는 박기후인(薄己厚人)의 정신을 체질화하여 청빈하고 검약한 생활 방식을 자연스럽게 몸에 익혔다. 마음대로 다 쓰면 남는 여유란 있을 수 없으므로 자신을 위해서는 아끼고 절약해야 남에게 베풀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청렴 정신이 곧 청백리의 바탕이 된 것이다. 조선의 세종시대는 역사상 가장 진취적이며 창조적인 시대로, 사회정의가 구현되었다고 평가되는 청백리가 많이 배출된 시기로도 유명하다. 이 시기에 맹씨행단에서 우의를 다지며 청빈한 생활을 솔선수범한 그 대표적인 인물이 황희, 맹사성, 유관이다.황희는 18년 동안이나 영의정의 자리에 있으면서 청백리의 귀감을 보여 줬다. 그가 영의정 재직 시 공조판서 김종서가 자기 소속 관아인 공조로 하여금 약간의 술과 유과를 마련해 정승과 판서를 대접하게 했다. 이에 황희는 ‘국가에서 예빈시(禮賓寺)를 설치한 것은 접대를 위한 것이니, 만약 시장하다면 예빈시로 하여금 음식물을 마련해 오도록 할 것이지 어찌 사사로이 제공한단 말이오?’ 예산 외의 경비 지출로 인한 부작용을 경계했던 것이다. 그 후 조정의 조회에 모든 대신이 비단옷을 입고 나왔는데 황희만 거친 베로 만든 관복을 기워 입고 나왔다. 그러자 다음 날부터 모든 대신이 헌 관복으로 갈아입고 출근했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상징적인 인물의 일거수일투족이 관료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을 말해 준다. 그만한 인품과 인격을 평가받는 인물이기에 사치를 좋아하는 관료들을 감화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맹사성은 부인이 햅쌀밥을 해 올리니 어디서 햅쌀을 구했느냐고 물었다. 녹봉으로 받은 쌀이 너무 묵어서 먹을 수 없으므로 이웃집에서 꾸어 왔다고 하자 부인을 나무랐다. ‘이미 국가에서 녹미(祿米)를 받았으면 그것을 먹을 일이지 이웃집에서 꾸어 와서야 쓰겠소?’ 공사 구별 없이 똑같이 엄격한 기준을 적용함을 확인할 수 있는 일화이다. 당시 병조판서가 좌의정인 그를 찾아갔다가 자신의 행랑채보다도 못한 그의 집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는 기록도 있다. 우의정을 지낸 유관은 비새는 단칸 초가집에서 베옷과 짚신으로 생활을 했다. 어느 여름, 한 달 이상 내린 비로 지붕이 새자 유관이 우산을 들고 부인에게 말했다. ‘우산도 없는 집에서 어떻게 견디겠소?’ 그러자 부인이 대답했다. ‘우산이 없는 집엔 다른 마련이 있답니다.’ 대부분의 관리가 우산 걱정할 필요조차 없는 집에서 살고 있는 줄 부부가 모를 리 없건만 시침을 떼고 대화하는 모습이 해학에 가깝다.이들은 맹씨행단에서 평생의 지기로 우의를 다지며 서로에게 버팀목이 되고 격려했을 것이다. 나아가 누가 더 청렴할 수 있는지 내기라도 걸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상호간에 교감된 투철한 공인으로서의 사명의식일 것이다. 속이 꽉 찬 사람은 허기증이란 있을 수 없다. 청빈이 부귀와 영화를 누릴 만한 충분한 권력과 지위를 가진 위치에 있는 이들에게 요구되던 미덕인 것이다. 지금의 관료사회는 영욕에 쪄든 목마른 자가 소금물을 마시고 있는 형국과 다를 바 없다.

2019-03-25

5분만 더 용감하기

엘리자 패리시 러브조이(1802-1837). 미국 미주리 주에 사는 평범한 성직자입니다. 어느 날 흑인이 정당한 재판 절차도 없이 길거리에서 무참하게 처형당하는 장면을 목격합니다. 러브조이는 어떻게 이 끔찍한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을까 고민하지요. 언어의 힘을 믿는 그는 신문을 창간합니다. 칼럼을 통해 노예 문제의 심각성을 알리고 만인은 평등하다는 진리를 외칩니다.노예 해방을 반대하는 지역 주민들이 신문사로 몰려가 협박을 일삼습니다. 러브조이는 묵묵히 칼럼을 쓰고 신문을 발행하지요. 시민들은 폭도로 변합니다. 인쇄기를 쇠몽둥이로 부순 후 강물에 던져버리고 신문이 쌓여 있던 창고에 불을 질러버리지요. 결국 자신들의 뜻에 굴복하지 않는 러브조이를 살해합니다. 사건에 연루된 그 누구도 기소 당하거나 처벌받지 않습니다. 오히려 살인자 중 한 사람을 그 도시 앨턴 시장으로 선출합니다. 정의를 위한 러브조이의 위대한 도전은 무참한 실패로 끝나는 듯했습니다.그로부터 23년 후, 미국은 아브라함 링컨을 대통령으로 선출합니다. 스프링필드에서 활동하던 링컨은 과거 노예 해방을 부르짖던 엘리자 패리시 러브조이 칼럼의 열혈 팬이었습니다. 그의 글을 읽을 때마다 링컨 가슴에는 정의감이 불타오릅니다. 그 마음 한 켠에 심겨진 언어의 씨앗은 23년 동안 줄기가 자라고 잎이 무성하며 마침내 열매를 맺기 시작합니다.랄프 왈도 에머슨은 러브조이의 의로운 죽음에 대해 연설하면서 이런 표현을 남기지요. “영웅이란 보통 사람보다 더 용감한 것이 아니라 보통 사람보다 5분 더 길게 용감할 뿐이다.” 러브조이, 아브라함 링컨 모두가 우리의 영웅으로 부족함이 없는 분들입니다. 그들은 불의와 타협하지 않았고 결코 변할 것 같지 않던 세상을 변화시키고 말았습니다. 그 뿌리에는 ‘용기’가 자리잡고 있었습니다.이 시대의 노예는 과연 누구일까요? 완벽한 자유가 보장된 것처럼 보이는 21세기. 쇠사슬에 묶인 현대판 노예는 누구이며 이 노예를 해방하는 일은 무엇인지를 질문해 봅니다. 폭도들에게 둘러 싸인 러브조이의 공포를 생각해 봅니다. 자신을 죽음으로 몰고가는 살인자들의 광기에 포위당한 그는 두려움과 절망에 모든 걸 포기하고 싶은 순간을 직면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때 러브조이는 5분 더 용기를 낼 수 있는 힘이 있었다는 의미겠지요.“5초만 더 용감해지기”. 오늘 저의 결심입니다. 두려움이 엄습할 때, 심호흡 한 번 길게하고 5초만 더 용감해지고 싶습니다./조신영 인문학365 대표

2019-03-25

중국에는 관심, 한국은 소외

김학주한동대 교수모건스탠리는 그들이 만든 세계 최대의 주식 인덱스인 MSCI에 중국의 편입을 보류했었다. 그 이유는 중국 정부가 유사시 증시의 거래를 중단시키는 등 이해하기 어려운 규제를 했었고, 중국기업들도 지배구조 및 불투명한 회계 등 여러 문제를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직 이런 문제들이 해소되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MSCI는 중국의 비중을 예정보다 빠른 속도로 확대하려고 한다. 왜냐하면 중국이 미국과의 갈등 해소 과정에서 이런 문제들이 완화될 것이고, 이로 인해 적정가치에 비해 할인되어 거래되던 중국기업들의 주가가 회복될 수 있다는 기대 때문이다.MSCI는 패시브 인덱스지만 지금은 포트폴리오 효과보다 차라리 중국 모멘텀을 보는 것 같다. 시간이 갈수록 패권이 미국에서 중국으로 넘어갈 것이라는 점, 또 빅데이터 서비스, 맞춤형 헬스케어 등 신경제 사업의 경우 규모가 있는 시장을 가진 중국이 월등히 유리하다는 점에 주목하는 모습이다.한편 중국 증시의 또 다른 문제는 개인투자자 비중이 높아 변동성이 크다는 점이었는데 기관투자자 비중이 높아지고 있고, 최근 해외펀드 투자한도가 2배로 상향조정되는 등 외국인 투자비중도 확대되어 향후 증시도 안정될 것으로 기대된다. 그 만큼 주가가 오를 수 있다는 이야기다.MSCI는 올 5월, 8월, 11월에 신흥국 지수 편입비중을 재조정하는데 여기서 한국증시는 중국, 사우디에 점유율을 뺏긴다. 이로 인해 우리 증시에서의 외국인 순매도가 20조원에 달할 전망인데 지난 10년간 코스피(KOSPI)에서 외국인 순매도가 연간 10조원을 넘긴 적이 없음을 감안할 때 상당한 매물부담으로 보인다.최근 원화가치에도 약세의 조짐이 나타나며 한국에서 외국인 투자자 이탈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있다. 물론 세계경제의 경착륙에 대한 불안 때문에 달러가 강세를 보이는 부분도 있지만 달러의 주요통화대비 강세보다 원화의 약세가 더 두드러진다는 것은 한국 고유의 문제가 있음을 의미한다.먼저 달러박스였던 반도체 및 화학제품 가격 하락세가 두드러졌다. 또 한국의 수출산업 경쟁력이 흔들리는 점도 우려됐다. 과거 원화가 약세로 가면 수출기업들의 가격경쟁력이 생겨 더 많은 달러를 벌어 와 환율이 진정됐는데 그런 메커니즘이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걱정이다.한편 최근 북-미 대화 중단으로 인해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험을 제기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최근 한국의 국가위험(CDS premium)에는 별 변동이 없었다. 단, 이 문제가 어떻게 해결될지에 대해 고민하는 투자자들이 많다.북한이 핵을 폐기할 것 같았으면 처음부터 개발하지 않았을 것이다. 또 김정은은 이미 핵의 단맛도 보았다. 핵을 통해 미국 대통령을 몇 번이나 불러 낼 수 있고, 중국도 북한에 급관심을 보였다. 트럼프는 한국과 중국에 핵 폐기 비용을 요구하는 모습이다. 한국과 북한에 윈-윈(win-win)이 될 수 있는 남북경협이 되면 좋겠지만 자칫 독일처럼 통일비용이 커질 가능성이 우려되는데 이는 한국의 통화 가치에 부담을 줄 수 있다.외국인들 중 일부는 우리 정부의 초과세수를 지적한다. 세금을 많이 걷는다는 것은 시장의 기능을 무시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더욱이 현 정부가 세금을 제대로 쓴 적이 없지 않느냐고 주장한다. 최저임금으로 인한 부작용을 이야기하고, 광주형 일자리에도 의문을 제기한다. 이로 인한 재정 부실화를 우려하는 것이다.한국 개별적인 문제로 인해 원화의 추세적인 약세 가능성이 우려된다면 한국인 입장에서 투자자산을 해외로 다각화할 필요가 있다. 단기적으로는 글로벌 경기가 불안하므로 달러에 관심을 갖자. 달러를 가장 싸게 살 수 있는 방법은 달러 선물을 이용하는 것이다. 그 후 점차 패권이 중국으로 넘어 오는 것을 확인하며 위안화 자산으로 이동하면 된다.

2019-03-25

제비꽃의 기쁨

어느 날 임금님이 정원에 나가 보았더니 꽃과 나무들이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깜짝 놀란 임금님은 왜 그렇게 시들어가느냐고 물었습니다. 참나무는 전나무처럼 키도 크지 못하고 멋지지도 않기 때문이라고 대답했습니다. 전나무는 포도나무처럼 좋은 열매도 못 맺으니 죽는 것이 낫겠다고 말했습니다. 포도나무는 장미꽃처럼 아름다운 꽃을 피울 수 없기 때문이라고 대답했습니다.임금님은 생각에 잠겨 정원을 거닐었습니다. 그러다가 길 옆에 핀 자그마한 제비꽃에 눈길이 갔습니다. 제비꽃은 그 작은 보랏빛 꽃잎을 뽐내며 생기에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것을 본 임금님은 놀랍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해서 물었습니다. 모두가 다 죽어 가는데 왜 너만은 그리 생생하게 살고 있느냐고, 그러자 제비꽃은 말합니다. “임금님께서 저를 여기에 심으신 것은 제가 잘 자라서 꽃피기를 원하시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전 키가 작고 예쁘지는 않아도 꽃을 열심히 피워서 임금님을 기쁘게 해 드리고 저도 기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제비꽃의 기쁨, 즉 ‘나다움’의 비결은 과연 무엇으로부터 오는 것일까요? 무엇이 나를 나 답게 만드는 핵심일까요? ‘질문하는 능력’입니다. 세상만사 정답을 찾아 달달 외우고 익히고 정답의 논리를 내 것으로 우겨 넣는 작업은 나의 나다움을 파괴하고 시스템이 요구하는 사고방식에 나를 끼워 넣는 일의 반복입니다. 나를 서서히 파괴하고 없애는 소멸의 과정입니다. 질문하는 능력은 내 안에 꿈틀거리는 진정한 나를 찾을 수 있는 힘을 조금씩 길러 줍니다. 제비꽃은 스스로에게 질문하는 힘이 있었습니다. 임금님이 내게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일까? 나는 과연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생각하는 삶은 캐묻고 질문하는 습관으로부터 시작합니다. 만사를 어린아이와 같이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바라보는 순수함으로부터 나다움은 시작하는 법입니다.모두가 그럴 듯하다 여기는 집단적 사고방식의 익숙함을 깨부수고 낯설고 두렵고 이방인 취급받는다 해도 나만의 고유한 시선, 호기심 가득한 질문을 쏟아내는 힘을 길러야 합니다. 이런 힘이 일류국가를 만드는 저력이고, 위대한 삶을 추구하는 이들의 공통적인 특성입니다. 생명력 가득한 삶은 누구나 추구하는 것을 따라하는 일로부터 오지 않습니다. 진정한 나의 향기, 나다움, 내 안의 꿈틀거리는 진정한 나를 밖으로 끄집어 내는 용기로부터 시작합니다. 한 주를 시작하는 월요일, 생명 가득한 하루를 결심하는 그대에게 큰 박수를 드립니다./조신영 인문학365 대표

2019-03-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