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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도시재생, 점촌 원도심을 새로운 지역발전의 동력으로

고윤환문경시장현대 도시개발의 패러다임은 인구 및 산업구조의 변화에 따라 급격하게 바뀌고 있다. 출산 감소 및 대도시권 중심의 지식서비스산업 집중 등 인구·산업 구조의 변화로 인해 대도시권의 집중성장과 광역화는 점차 확산되고 있다. 성장시대를 지나 쇠퇴시대에 부합하는 도시재생 패러다임에 대한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하고 2040년까지 지방 중소도시의 30%가 소멸되는 시대에 걸맞은 도시정책의 변화도 요구되고 있다.문재인 정부 핵심 국책사업인 도시재생 뉴딜사업은 이러한 변화에 맞춰 낙후된 지역의 주거복지 실현과 일자리 창출, 구도심이 보유하고 있는 역사적 문화적인 가치를 보존하는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문경시는 과거 대한민국 석탄의 10%를 공급하던 탄광도시로 1970∼80년대 성장의 절정기를 누리던 도시 중 하나였다. 석탄산업의 쇠락과 함께 급격한 인구감소를 겪었다. 1975년에 16만명을 넘던 인구가 이제는 8만여명을 채 넘기지 못하고 있고, 10년 전인 2007년에 65세 이상 인구가 20%가 넘어 초고령사회에 진입했다.특히 점촌 원도심은 도시의 산업기반 붕괴와 시청 이전에 따른 신시가지로의 인구유출 등으로 도심 공동화현상과 상권쇠퇴가 가속화되고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필자는 문경시장이 된 2012년부터 구도심을 활성화하고자 863억원 규모의 ‘도심재창조 20대 프로젝트’를 기획해 진행해 왔다.또한 2017년 도시재생의 본바탕이 되는 도시재생 전략 및 활성화계획 수립 용역을 착수했고, 지난 4월 정부의 도시재생 뉴딜사업 대상지 전국 22곳 중 1곳으로 선정되는 쾌거를 이뤘다. 이번에 선정된 점촌 원도심 활성화사업은 점촌 1·2동 일대 22만4천㎡에 올해부터 2023년까지 5년간 250억원 규모로 점촌 광부의 거리, 찻사발 공방, 세대 공감 어울림 센터, 문학 어울림 아카데미 등을 조성할 계획이다.점촌 원도심은 도시재생에 대한 주민들의 열망과 관심이 높은 지역이다. 또한 지역문화의 거점으로서 문경문화원, 노인복지관과 문화의 거리가 입지하고 있으며, 원도심으로서 중앙시장 등 상업기능이 집약되어 있고, 역사성을 가지고 있는 지역이다.이와 같은 지역자원 등을 토대로 점촌의 문화자원을 활용하고, 원도심 활성화와 지역일자리 인프라 개선, 지역커뮤니티 강화 및 생활SOC확충을 위한 3가지 재생방향을 설정했다.1975년처럼 북적이던 점촌의 과거를 회상하며, 그때의 화려했던 시간을 이어나가 점촌 원도심의 활력을 되살리기 위해 ‘점촌 C!! RE:Mind 1975’란 주제로 총 14개 사업을 구성하였다. 특히 3개의 가로와 각 가로의 거점을 조성하고 대상지내 주요 공간들이 네트워크를 구축해 시너지를 내도록 하는 데에 목표를 두고 있다.또한 지역 일자리 창출 및 산업기반 구축을 위해 구 극동호텔부지에 세대공감어울림센터를 조성해 청년과 시니어 등 점촌에서 창업을 준비하는 사람들을 위한 창업지원과 보육, 거주의 기능을 복합화하고, 코워킹스페이스를 조성해 스타트업과 예비창업자의 비즈니스 거점으로서 활용할 계획이다.마지막으로 지역커뮤니티 활성화와 생활SOC확충를 위해 시에서 추진하는 문학의 거리사업과 연계하고 주차장으로만 쓰고 있는 점촌역 광장을 시민에게 환원하는 사업도 추진할 계획이다.이러한 도시재생사업의 성공적인 실행을 위해서는 주민협의체, 중앙시장 상인회 등 지역주민 조직체계와 도시재생지원센터, 기업, 대학교 등 다수의 이해관계자들이 서로 소통하는 것이 중요하다.추진 중인 점촌 원도심 도시재생사업과는 별개로 현재 문경시의 가장 큰 화두는 대한민국의 근대화와 산업발전을 주도했으나 60년의 역사를 뒤로 하고 사라진 국내 최초의 내륙형 시멘트 공장 문경 쌍용양회의 활용 방안이다. 문경 쌍용양회는 UN이 한국전쟁 후 대한민국의 구호와 경제 재건을 목적으로 설립한 UNKRA(국제연합한국재건단)가 건립한 근대산업유산이다. 당시의 시대상과 기술력이 반영된 역사적 의미가 매우 깊은 유산인 UNKRA는 쌍용양회 외에도 서울 국립중앙의료원, 충주 비료공장, 인천 판유리공장 등이 있으나, 문경 시멘트공장은 이 중 유일하게 원형의 80% 이상이 보존되어 있어 활용가치가 매우 높다.석탄산업으로 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컸던 독일 졸페라인 탄광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대신 도시재생을 통해 관광명소로 다시 태어났다. 문경 쌍용양회도 경제기반형 도시재생사업을 계획하고 있으며 재정 부담과 열악한 재정여건이 극복된다면, 국가재건의 상징에서 도시재생의 성공모델이 되어, 보존과 재활용의 가치를 일깨우는 국가적 큰 자산이 될 것이다.7만1천874명. 2018년 말 기준 문경시의 인구이다. 이 수치는 지난 2월을 기점으로 증가세로 돌아섰다. 6월 21일자 기준으로 문경시의 인구는 지난해 대비 272명이 증가한 7만2천146명이다. 문경시의 인구가 늘고 있다는 것은 큰 의미를 가진다. 특별한 지역적, 환경적 증가요인이 없음에 더욱 주목받고 있다. 900여 공직자가 아이디어를 모아 파격적인 출산·양육·교육정책과 차별화된 귀농·귀촌·귀향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또한 앞으로 진행되는 도시재생을 통한 점촌 원도심의 변화를 통해 지역경제의 새로운 바람을 일으켜 나갈 준비에 분주한 문경은 지금도 끊임없이 도전하고 있다.

2019-06-25

개와 산책하는 올바른 방법(下)

개는 산책에서 만나는 다른 개들을 잠깐 만날 때 외에는 대부분 다른 개들과 떨어져서 지낸다. 개들은 어떻게 살아가는데 필요한 지식을 얻을까? 결국에는 곁에 있는 반려자 즉 사람에게서 배운다. 사람이 개와 올바른 방법으로 산책하면 개와 더 친해질 수 있지만 잘못하면 개의 문제행동을 만들 수도 있다.개와의 산책에 대하여 매우 상반된 두가지 견해가 있는데, 사람이 산책시 주도권을 가져야 개가 서열관계를 바르게 인식하여 평상시에도 사람을 잘 따른다는 견해가 있고, 정반대로 서열 가르치기는 나쁜 방법이고 개들에게는 지배관계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개들에게 지배관계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완력을 쓰지않는 훈련법을 강조하고, 지배에 근거한 방법을 비난하기도 한다.사람이 우두머리임을 개에게 각인시킬 필요가 없고, 친절과 사랑만으로 충분하다는 주장도 있다.과학적으로 밝혀진 동물행동학 연구결과들은 개들의 세계에는 분명 서열관계와 지배관계가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준다.개들에게 적용되는 지배, 주종관계 개념은 사람들이 사람사회를 떠올려 대부분 생각하는 고통을 주고 조종하고 벌하는 방식으로 적용되는 지배개념과는 분명히 다르긴 하다.개 세계에 실제 존재하는 서열과 주종관계 개념은 사람과 개가 조화롭게 잘 살아가기 위한 올바른 관계형성을 위해 정확히 이해되고 적용되어야 한다.개들이 산책시 자유롭게 냄새를 맡게 해주기 위해 목줄을 풀어 주거나 자유롭게 해주는 것이 개들을 위해 좋은 일이긴 하다. 하루종일 실내에서 개를 가두어 키우기 때문에 산책을 나가는 시간만큼이라도 자유롭게 개들 특유의 감각을 활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자유롭게 마킹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개들 입장을 배려하는 개 주인의 사랑이라 생각한다.하지만 산책에서 이런 자유로운 시간을 가질 수 있으려면 최소한 주인이 불렀을 때 개가 주인에게 돌아오는 관계는 먼저 형성되어 있어야 한다. 개가 산책 시 야외에서 주인이 불러도 올 생각을 하지 않는 상태라면 자유롭게 풀어주어서는 안된다. 개를 산책할 때 “하지마”, “그만해”, “안돼”라고 주인들이 자주 말하는 것을 듣게 되는데, 산책할 때 “옳지”, “착하지”, “잘했어”등의 칭찬을 통한 긍정강화법을 사용할 수 있는 관계라면 매우 훌륭한 상황이다. 개 주인이 개를 지배할 수 있는 지위획득을 위해 개에게 강압적 방법을 꼭 사용할 필요가 없긴 하지만 이미 개가 주인보다 서열상 위에 있다면 좋은말과 칭찬만 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평소에 주인이 자신의 개들을 통제하고 사회에서 조화롭게 살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어야 한다.산책시 낯선 사람들이 개를 귀엽다고 만지려고 하면 “그러지 마세요”라고 거부하는 것이 좋다.주인은 개를 귀여워해주어 자랑스러울지 몰라도 개는 큰 스트레스를 느낀다.산책과 배변은 할 수 있다면 분리해서 길들이는 것이 좋은데 산책할 때만 배변하도록 습관을 들이면 비가 오거나 날씨가 좋지 않아 산책을 갈 수 없을 경우에 배변장애가 큰 문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풀숲을 산책하다 개가 진드기에 물리게 되면 기구를 이용해서 피부 속에 박힌 침까지 다 제거한 후 피부 상처 소독제로 소독해주어야 하는데 직접 하기 힘들다면 바로 동물병원을 찾아 진드기 제거와 함께 정도에 따라 연고 및 내복약을 처방받아야 한다.진드기에 물린 부위는 수일 동안 발작, 부종과 가려움증이 동반될 수 있고 드물지만 진드기에게 물리면서 감염되는 진드기 매개 질환이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진드기 매개 질환에 감염되면 빈혈이 생기거나, 혈소판 감소증 또는 백혈구 감소증이 흔히 발생하므로 진드기에 물린 후 또는 풀밭을 산책한 후에 피부 여러 부위에 피멍이 든다거나, 식욕과 활력이 저하되고, 체중감소 또는 열이 나는 등의 증상이 보인다면 즉시 동물병원으로 가야한다. 이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산책할 때 목줄을 착용하여 개가 풀숲으로 마구 뛰어드는 것을 막아서 노출을 최소화하고, 동물병원에서 판매되는 진드기 기피제나 진드기 구제약물을 정기적으로 적용하는 방법이 있다.하지만 진드기 구제약물 등은 간혹 개의 신경계에 부작용이 있을 수 있는데 약물 적용 후 경련 혹은 기면과 같은 증상을 보인다면 수의사와 상담하여 적절한 약물을 선택하는 것이 중요하다./서라벌대 반려동물연구소 소장(마사과 교수)

2019-06-25

만약 ‘감사’를 잊고 살았다면 (2)

고장률이 0.44%였던 기계가 실험 이후 0.29%로 낮아집니다. 부공장장의 호기심이 회사 전체를 움직입니다. 전사적으로 실험을 확대하지요. 기계에 감사 스티커를 붙입니다. “고장나지 않아 고마워”라는 식의 감사 메시지를 전합니다. 한 직원은 말합니다. “기계가 말을 알아들을 리가 없지요. 고장률이 낮아질 거라고는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거짓말처럼 고장률이 떨어지기 시작합니다. 2010년 0.23%였던 고장률이 실험 1년 만에 0.17%로 뚝 떨어진 것입니다. 2012년에는 다시 0.12%로 줄어듭니다. 2년 동안 52%가 감소한 수치입니다. 야간 돌발 호출 건수도 2010년 899건에서 2012년 320건으로 줄었습니다. 과연 이런 현상을 어떻게 해석해야 좋을까요? 자체 조사결과 비결은 따로 있었던 것으로 결론이 납니다. 설비를 관리하는 직원들이 이 운동을 시작한 이후에 전보다 기계에 더 관심을 보인 것이지요. 기름칠도 신경 써서 하고 설비 체크도 예전과는 다른 태도로 임했기 때문이라는 겁니다.반도체 부품을 제조하는 N사에는 스퍼터(sputter)라는 50억원짜리 장비가 있습니다. 365일 24시간 풀 가동해야 하는 이 기계가 에러로 멈추면 손실이 큽니다. 월 평균 10건 정도가 에러가 발생합니다. 손실액은 약 1억7천만원입니다. 직원들은 스퍼터에 이렇게 써 붙입니다. ‘고장 ZERO 감사합니다.’ ‘가동 100% 감사합니다’ 간절한 마음이 통했던 것일까요? 이 운동을 시작한 이후 스퍼터의 고장 횟수가 90% 감소합니다. 월 평균 10회의 고장이 단 1회로 줄어든 것이지요. 금액으로 환산하면 연 18억원을 절감한 셈입니다.산업체에 감사 운동이 퍼지면서 여러 부작용도 있었던 게 사실입니다. 이익과 효율에 관심이 많은 탐욕적인 사장이 설비 고장율이 낮아지고, 이익이 증가한다는 것에 착안해 직원들의 내적 동기유발 없이 강제적으로 감사를 시킨다고 해서 과연 성과가 나올 수 있을까요? 오히려 반발심과 부정적인 마음이 더욱 커져 역효과를 불러올 것이 뻔한 이치입니다. 감사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와 비슷합니다. 강요된 감사는 거위의 배를 가르는 것과 다름없지요. 중요한 것은 거위의 충만한 상태입니다.강요가 아닌, 표정과 눈빛으로부터 마음 가득 담은 진정 어린 감사가 내 안에서 우러나올 수 있다면 우리를 둘러싼 환경은 조금씩 선하고 아름다운 것으로 바뀌어 갈 것이라는 기대를 갖는 감사한 새벽입니다./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 대표

2019-06-25

이제부터는 주변을 자세히 살피자

김진홍 한국은행 포항본부 기획조사팀장최근 포항은 연구개발특구, 첨단과학비즈니스벨트 등 그동안 유치에 실패했던 사업들 대신 ‘강소연구개발특구’ 지정에 성공하였다. 포스텍과 포항산업과학연구원을 중심으로 ‘첨단신소재’ 분야의 혁신생태계를 구축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사실 포항은 ‘산업의 쌀’이라 불리는 ‘철강’을 오래 전부터 공급해온 가장 원천적인 ‘소재’의 생산기지였던 만큼 ‘소재’라는 말이 붙은 특구를 가볍게 여길지도 모른다. 하지만 포항은 보다 더욱 세심한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소재가 최종제품으로 탈바꿈하기까지 단계별로 부품, 반제품, 최종제품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생산 공정은 예전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모든 제품의 생명주기와 재고관리의 시간만큼은 크게 단축되었다. 과거처럼 단일 소재가 더 이상 단일 제품군에만 쓰이지 않게 되었고 유일무이한 핵심소재가 아닌 한 시장지배력도 완성품업체가 소재업체보다 우위에 서게 되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크다. 결국 어떠한 소재기업이라도 종전과 같이 시장의 변화와 다양화에 무관심해서는 생존하기 힘든 시대가 왔다.포항은 그동안 ‘철강’ 소재만으로도 충분히 먹고 살았다. 지금까지 소재 생산업체들은 시장 즉, 소비자 기호와 감성 변화 등은 완성품 제조업체의 몫이라 여기고 그저 자신의 입맛대로 소재를 공급하면 그뿐이었다. 그러니 부품이나 반제품, 부분품을 만드는 중간재업체가 소재를 가공, 조립할 때 어떠한 불만이 있는지도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다. 결국 자동차, 조선, 건설자재 등 최종 공급업체들만이 극심한 시장의 변화를 조기에 감지하며 현실적인 전략적 대응체계를 구축했을 뿐이다.그러는 동안 전 세계는 하나의 네트워크로 이어지고, 소비자들의 감성과 기호는 매우 다양해졌다. 가격이 싼 것만으로 통하는 시대는 지났다. 우리는 매일같이 신제품이 쏟아지고 그에 적합한 신소재도 실시간으로 진화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자동차산업이 환경규제에 대응하여 초경량 소재로 철강을 대체하는 가운데 가전부터 항공우주분야까지 아우르는 고기능성과 범용성을 지닌 첨단신소재 시장의 수요는 폭발적인 성장을 거두고 있다. 이 치열한 경쟁분야인 첨단신소재를 연구 개발하고 이를 통한 혁신생태계를 구축하기 위한 최적의 특구로 포항이 선정된 것이다.그런 맥락에서 포항은 지금까지의 연구개발론을 재고할 필요가 있다. 앞으로의 신소재는 단지 개발만 하고 활용방안을 전방산업에 맡겼던 종전 소재분야의 방식만으로는 살아남기 힘들다. 연구 개발단계부터 그 신소재가 어떤 시장과 제품에 사용될 것인지도 염두에 두어야만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당연 소재사용기업의 필요나 소비자시장의 수요를 면밀히 파악하고 이에 부합하는 최적의 첨단신소재를 개발해야만 한다. 즉 무엇을 연구할까가 아니라 어디에 어떻게 쓰일 연구인가를 고민해야만 한다. 음식점의 소재라고 할 수 있는 농산물을 생산하는 농가조차 바뀌고 있다. 과거에는 무농약 채소라며 흙이 묻은 채로 식당에 넘겼지만, 이제는 식당에 따라 필요한 규격대로 세척하고 다듬어 납품하는 시대가 되었음을 깨달아야만 한다.모처럼 강소특구로 지정되어 기회를 잡게 된 포항이 첨단신소재를 개발하고 이를 이용한 완성품을 지역에서 생산하여 팔아야만 지역 경제가 활성화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6개 강소특구 가운데 반제품이나 부품분야의 특구들에 대해서는 더욱 자세히 살펴보아야만 한다. 그래야만 다른 특구가 필요로 하는 맞춤형 소재까지 포항에서 생산하는 확장성도 도모할 수 있을 것이다. 즉 소재수요처에 대한 면밀한 관심과 소통을 통해 그들이 요구하는 맞춤형 첨단신소재를 연구 개발하고 그것을 포항이 생산하여 공급할 수 있게 되는 순간 이미 포항에는 혁신생태계가 구축되어 있을 것이다.

2019-06-25

수행평가 이대로 괜찮은가?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아아 잊으랴 어찌 우리 이 날을 / 조국을 원수들이 짓밟아 오던 날을 / 맨 주먹 붉은 피로 원수를 막아내어 / 발을 굴러 땅을 치며 의분에 떤 날을 (후략)”정부가 바뀌면서 국민들에게서 잊힌 노래 중 하나다. 노래가 잊히면서 노래가 기념하는 날의 의미도 특정 세대의 기억과 일부 박물관에만 존재하는 날로 변해 버렸다. 분명한 건 이 날이 지금처럼 쉽게 잊혀서 안 된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굳이 설명을 하지 않아도 알 것이다. 대표적으로 이산가족이 그렇고, 또 이 날의 상처 때문에 지금까지도 힘들게 살아가시는 분들이 이 나라에는 너무 많기 때문이다. 민족상잔(民族相殘)의 최대 비극 한국전쟁!그런데 이 날이 잊히고 있다. 정확히 말해 정치인들에 의해 이 날의 의미가 국민들의 머리와 마음에서 지워지고 있다. 정치인들은 적(敵)의 개념까지 바꾸면서 한국전쟁 전범(戰犯)의 눈치를 보고 있다. 그런 정치인들의 입방정 때문에 참전군인 가족 앞에서 북쪽을 찬양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 되어버렸다. 시대가 변해도 지켜져야 할 것은 지켜져야 하는 것이 원칙이다.현 정부 들어 정치인들은 그 어느 때보다 정의와 원칙을 외치고 있다. 어떤 사건이 터질 때마다 이 두 단어가 무기처럼 등장했다. 누군가가 이의를 제기하면 이들만 제시하면 그 누구도 더 이상 말을 못한다. 그런데 정말 재미있는 것은 남쪽 사람들에 대해서는 이 정의와 원칙을 칼같이 적용하면서, 이 단어와 가장 거리가 먼 북쪽에 대해서만은 이 나라 정부와 정치인들은 정말 관대하다는 것이다. 이런 정부에 있어 한국전쟁과 관련된 올바른 역사 교육이 가능할까?남북관계 개선도 좋고, 다른 뭐도 다 좋지만 그 전에 한국전쟁을 일으킨 쪽의 진정한 사과(謝過)는 있어야 하지 않을까? 이것이야 말로 역사 인식을 같이 할 수 있는 최소한 도리요, 새로운 시대의 시작을 여는 출발점이 아닐까? 우리 역사 교육이 걱정이다.그런데 걱정은 이것만이 아니다. 교육이야기를 몇 년째 쓰고 있지만 단 한 번도 마음 편하게 써 본 적이 없다. 교육의 가장 기본은 학생 행복이다. 하지만 우리 학생들의 행복(幸福)지수는? 학생이 학교에서 행복을 느끼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지만 우리 교육 현실은? 안타까운 마음에 행복의 의미를 찾아보았다. “욕구가 충족되어 충분한 만족과 기쁨을 느끼는 상태”막상 뜻을 찾고 보니 행복이라는 것이 정말 어렵다는 것을 깨달았다. 위의 뜻에서 ‘만족과 기쁨’ 즉 행복의 조건이 ‘욕구 충족’이라는 것을 알았다. 다시 욕구의 의미를 찾았다. “무엇을 얻거나 무슨 일을 바라고 원함” 과연 우리가 교육을 통해서 얻거나 바라고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여기서 문제는 그 대상이 누구이냐는 것이다. 교육의 주체를 흔히 ‘학생, 학부모, 교사’라고 한다. 이들 교육 주체들의 욕구가 같으면 얼마나 좋을까마는 지금 정치판처럼 이 나라 교육 주체들의 욕구는 모두 다르다, 거기다 정부의 교육 욕구까지도!최근 자사고 재지정이 이슈이다. 전북의 한 학교가 이미 기준에서 미달된다는 보도가 나왔다. 한 교육 관계자는 “설립 취지에서 벗어나 ‘입시 중심고’가 된 이들 학교를 폐지하고 일반고로 전환해 고교 교육을 정상화하겠다는 이유에서다.”라고 말하였다. 이 말을 듣고 실소가 나왔다. 대한민국 학교 중에서 “입시 중심 학교”가 아닌 곳이 어디인지를 따져 묻고 싶었다.지금 학교는 또 입시를 위한 평가 시기다. 그런데 큰 문제는 학생들의 평가에 대한 부담을 줄이고 학생들의 성장 과정에 대해서 살펴보겠다는 수행평가들이 오히려 학생들에게 더 큰 시험 부담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말이 좋아 과정중심 평가이지 지금 학교들은 기말고사까지 서술형 평가를 한다고 또 학생들을 괴롭히고 있다. 수행평가를 포함하여 서술형 평가를 없애달라는 국민청원을 넣겠다는 학생들의 생각에 필자는 적극 동감한다.

2019-06-25

자율형 사립고 철폐 논란

자율형 사립고는 기존의 자립형 사립고보다 학교의 자율성을 더 확대, 발전시킨 것으로 학생의 학교선택권을 다양화하기 위해 교과과정 등을 확대한 고교를 가리킨다. 이명박 정부가 다양한 교육수요를 수용하겠다며 2010년 도입한 학교 모델이다. 자사고는 학생의 학교선택권을 다양화하기 위해 고교 정부 규정을 벗어난 교육과정, 교원 인사, 학생 선발 등 학사 운영의 자율성을 최대한 보장한다. 자사고는 정부 지원 없이 등록금과 재단 전입금으로 운영되며, 등록금은 일반고의 3배 수준까지 받을 수 있다.그러나 문재인 정부 들어 공교육 내실화를 위해 자사고 폐지와 일반고 전환을 국정과제로 삼고 있어 재지정여부를 놓고 논란이 한창이다. 특히 전북·경기교육청이 지난주 전주 상산고와 안산 동산고에 대해 자율형사립고 재지정 평가에서 지정취소로 결정나자 파문이 커지고 있다. 지정취소에 반대하는 학생들과 학부모들은 상산고의 경우 자사고 재지정 평가점수, 사회통합전형 10% 적용 등에 형평성이 없다며 반발하고 있다. 교육부가 재지정취소에 동의할 경우, 소송전이 불을 보듯 뻔하다. 또 정치적으로는 호남 민심 악화로 내년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에 불리하게 작용할 공산이 크다. 그렇다고 지정 취소에 동의하지 않을 경우, 자사고의 일반고 전환이라는 공약 파기 책임을 묻는 진보진영의 공세에 할 말이 없게 된다. 진퇴양난이다.경북의 경우 전국단위 자율형 사립고인 포철고와 김천고가 24일 경북교육청의 자율학교 등 지정 운영위원회에서 자율형 사립고 지정기간을 연장토록 결정함에 따라 자율형 사립고로 재지정됐다. 대구의 경우 계성고, 대건고, 경일여고 3개 자사고 가운데 계성고가 올해 재지정 평가 대상으로 27일 재지정 여부를 심의한다. 학생 모집에 어려움을 겪어온 경일여고는 지난달 자사고 포기 방침을 밝혔고, 대건고는 내년에 재지정 평가를 받는다.백년대계로 이 나라의 미래를 떠받칠 동량을 빚어낼 막중한 책임을 진 교육정책이 아직도 오락가락하며, 국민을 어지럽게 만들고 있으니 그저 개탄스러울 뿐이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19-06-24

한국 외교, 장밋빛 환상에서 벗어나라

변창구 대구가톨릭대 명예교수·국제정치학한국의 외교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한미동맹은 균열되어 있고 한일관계는 최악으로 치닫고 있으며, 북·중·러 협조체제는 더욱 강화되고 있는데 한·미·일 공조체제는 와해되고 있다. 미국과 중국은 무역전쟁을 빌미로 패권전쟁을 벌이면서 서로 자신의 편에 줄을 서라고 협박하고 있는데 우리의 대응전략은 보이지 않는다. 문재인 정부가 거의 올인 하다시피 한 북핵 중재외교도 난관에 봉착하면서 북한으로부터 “오지랖 넓게 중재자 행세하지 말라”는 핀잔만 돌아왔다.이러한 문재인 정부의 외교 참사(慘死)는 ‘정치적 이념에 토대를 둔 장밋빛 환상’에서 비롯된 것이다. 외교는 ‘정치적 이념(ideology)이 아니라 정확한 사실(fact)’에 바탕을 두고 그 전략을 모색할 때 비로소 성공할 수 있다. 문재인 정부는 외교 전략의 수립 및 집행에서 우리에게 특히 중요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다음과 같은 사실들에 각별히 유의하지 않으면 안 된다.첫째, 우리의 외교환경은 세계를 움직이는 미·일·중·러 등 4강에 포위되어 있으며 ‘국제정치는 힘을 가지고 있는 강대국들이 주도’한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국제정치를 주도해야 한다는 주장은 듣기에 좋을지는 모르지만 비현실적이다. 남북 분단은 우리의 의사와 관계없이 미국과 소련이 38선을 경계로 분할, 점령하기로 합의한 강대국정치의 산물이었다. 이는 강대국들의 이해관계가 예리하게 충돌하는 한반도에서 상대적으로 힘의 열세에 있는 한국 외교가 감당해야 할 제약요인이다. 둘째, 미·중 패권전쟁(hegemonic war)에 대한 정확한 인식이다. 현재의 세계정치질서에서 패권국은 미국이며, 그에 대한 도전국은 중국이다. 미국은 한국의 안보동맹국이고 중국은 한국과 전략적 협력관계에 있다.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이 확전(擴戰)시키고 있는 미중 무역전쟁은 단순한 관세문제가 아니라, 그 본질은 세계적 패권전쟁의 일환이다. 한국이 추구해야 할 최선의 외교는 양국 모두와 우호관계를 유지하는 것이지만, 패권전쟁이 격화되어서 양국 가운데 어느 하나의 선택을 강요받는 상황이 온다면 우리는 국익에 유리한 전략적 판단을 할 수밖에 없다. 셋째, 북한은 현재 핵보유국이며, 핵보유국(북한)과 비핵국가(한국) 간의 1 대 1 전쟁은 불가능하다는 사실이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미국의 핵 공격을 받았던 일본은 무조건 항복할 수밖에 없었다. 북한의 핵무기는 미국만을 공격하려는 것이 아니며, 언제든지 한국을 겨냥할 수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이는 비핵국가인 한국이 미국의 핵우산 보호를 받을 수밖에 없는 절실한 이유인 동시에, 한미동맹의 현실적 중요성이 어디에 있는지를 분명히 말해주고 있다. 마지막으로 국제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국가이익은 ‘국가안보(national security)’라는 사실이다. 국민의 생존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삶의 질은 의미가 없기 때문에 안보이익이 경제이익보다 더욱 중요하다. 따라서 모든 국가는 외교 전략의 우선순위를 결정할 때 국가안보를 최우선으로 상정한다. 이러한 사실은 안보는 미국에, 그리고 경제는 중국에 가장 크게 의존하고 있는 우리의 상황에서 만약 양국이 충돌하게 된다면 어느 나라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가를 말해주고 있다.이처럼 힘과 국익이 지배하고 있는 냉혹한 국제관계에서 한국외교는 이념이 아니라 사실에 기반을 두고 실용적으로 추진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실용외교는 정치적 이념에 집착하는 아마추어 외교관이 아니라 문제해결 능력을 갖춘 전문외교관들에 의해서 가능하다. 문재인 정부의 외교는 전문외교관들로 구성된 외교부의 역할은 약화된 반면, 정치적 이념으로 무장한 청와대가 주도하고 있다는 사실은 외교 참사의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를 웅변으로 말해주고 있다. 성공하는 외교는 현실을 직시하지만 실패하는 외교는 이념이 제시하는 환상을 쫓아다니기 때문이다.

2019-06-24

미-중, 타협 보나?

김학주 한동대 교수이달 말 일본 오사카에서 있을 G20정상회담을 앞두고 시진핑은 북한을 방문했다. 중국은 트럼프를 “무서워서 피하는 것이 아니라 더러워서 피한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일단 불편한 것은 사실이다. 그의 눈치를 살필 필요가 있다.트럼프 입장에서 내년 말 대선 경쟁후보인 민주당 바이든에게 크게 열세를 보이는 것이 고민이다. 그는 분위기 반전을 위해 중국으로부터 선물을 기대하고 있고, 북한의 핵폐기가 그 가운데 하나일 수 있다. 물론 바이든과의 격차가 너무 크면 더 큰 선물을 위해 좀 더 기다려 볼 수 있겠지만 트럼프에게 선물이 급한 것은 사실이다.중국은 언젠가 북한을 중국 중심의 경제권으로 끌어 들여야 한다. 어차피 투자는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북한도 중국 성장모델을 따를 수 밖에 없다. 시스템이 비슷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북한 투자에 있어 한국도 자유로울 수 없다. 북한이 의도 했든, 안 했든 핵미사일이 미-중 갈등 해결 국면에서 보상을 받을 것 같다.이런 상황에서 남북경협주가 조명을 받을 수 있으나 민간주도의 거래가 아니라면 그 실익을 장담할 수 없다. 원화가치도 미-중 화해무드로 인해 단기적으로 안정될 수 있지만 궁극적으로 북한 투자부담으로 인한 절하 압력이 훨씬 클 것이다. 우리가 북한에 ‘돈 버는 방법’ 대신에 돈을 퍼주기 시작하면 재정은 쉽게 고갈된다. 가뜩이나 인구가 빠르게 노령화되는 국면에서 의료보장 비용이 급증하고, 한국 기업의 경쟁력이 약화되며 기업 부실을 처리해야 하는 공적자금 지원이 늘어날 것임을 감안할 때 한국의 정부재정 악화가 우려된다.트럼프는 답례 선물을 준비한 것 같다. 화웨이 제재를 점차 완화하는 것이다. 사실 트럼프가 그 동안 엄포를 놓았던 3000억불 규모의 중국 제품에 대한 25% 관세는 그 자신도 비현실적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이는 세계경제 시스템을 흔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트럼프도 그 적용 시기를 밝히지 않았다. 트럼프는 현실적인 대안으로 화웨이 제재를 선택했던 것으로 보인다. 만일 북한 핵폐기를 포함해 중국의 선물이 충분하다면 화웨이에 대한 제재가 완화되며 세계 기술주들의 회복세가 좀 더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물론 갈등의 근본적 원인이 패권 다툼에 있으므로 트럼프는 좀 더 공세를 이어갈 확률도 있다. 이 경우 중국 화폐 가치가 달러당 7위안을 넘으며 세계경제를 위협할 수 있다. 2016년에도 미국의 가파른 금리 인상으로 인해 중국에서 자금이 이탈할 수 있다는 우려와 함께 위안화 가치가 달러당 7위안을 넘어가기 직전까지 몰렸었다. 그 당시 중국 인민은행이 외환보유고 달러자산을 3%가량 팔며 위안화 가치를 방어하려 했지만 소용 없었다.그런데 위안화 가치는 그 후 저절로 안정됐다. 미국 스스로가 가파른 금리인상을 못 견뎠기 때문이다. 2016년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는 힐러리를 이길 수 없었지만 예상을 뒤집고 승리한 이유는 민주당이 구조적인 저성장 기조를 읽지 못하고 금리를 빠르게 올려 경기가 급격히 냉각됐기 때문이다. 이런 패착으로 인해 직업을 잃고 실의에 빠진 젊은이들이 마약, 알코올에 중독되어 일찍 죽는 사태가 심각했다. 트럼프는 이 문제를 해소하겠다며 지지층을 늘려 나갔었다.금리로는 중국을 흔들 수 없음이 확인된 바, 트럼프는 좀 더 직접적인 공격법인 관세를 통해 중국을 압박하고 있다. 그러나 이번에도 미국의 다국적 기업들이 중국의 보복에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의문이고, 또한 무역분쟁 속에 미국경제도 멍이 들기 때문에 트럼프 입장에서는 라이벌인 바이든에게 경제 실패라는 약점을 제공할 수 있다.결국 일시적으로 달러당 7위안이 넘어갈 수 있지만 오래지 않아 위안화가 안정될 것으로 판단된다. 특히 미국 공격을 버티면 중국 위안화의 위상은 더 강화될 수 있다. 즉 위안화 자산 가치가 하락하면 저점매수 전략이 바람직해 보인다.

2019-06-24

만약 ‘감사’를 잊고 살았다면 (1)

한 기업체에서 실제 일어난 실화입니다. 전 직원을 모아 놓고 강사를 초빙해 ‘감사가 삶에 끼치는 영향’에 대한 특강을 듣습니다. 강사는 다양한 사례를 들며 감사가 왜 중요한지, 어떻게 우리 삶에 긍정의 에너지를 불러오는 원리를 알려줍니다. 호기심이 발동한 부공장장은 직접 테스트해 보기로 하지요. 수퍼마켓에 가서 양파 2알을 사옵니다. 컵에 물을 가득 담고 양파를 올려 놓습니다. 컴퓨터로 출력한 스티커를 각각 붙입니다. ‘A컵. 감사합니다’ ‘B컵. 짜증나!’부공장장의 재밌는 실험에 흥미가 발동한 동료 파트장들과 직원들도 양파 주위를 지나면서 장난삼아 “감사합니다“ 또는 ”짜증나!“를 한마디씩 던지면서 실험을 거들었지요. 며칠 후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감사합니다를 붙인 A컵의 양파에서는 싹이 나고 뿌리가 건강하고 길게 자라는 반면, 짜증나 스티커를 붙이고 부정적인 말을 반복해 듣고 자란 B컵의 양파 쪽은 썩은 냄새가 나며 물이 뿌옇게 변하고 시커멓게 변해 버립니다. 부공장장은 의심합니다. 양파가 원래부터 한 쪽은 건강하고 한 쪽은 썩었던 것이 아닐까? 의심합니다. 건강한 양파를 구입해 면밀하게 체크하고 실험을 재개합니다. 첫 실험과 동일한 결과가 나왔습니다. 살짝 마음이 움직이지요. ‘이거 뭔가 있는데?’부공장장은 이번에는 실험 재료를 바꾸어 봅니다. 양파 대신 밥(rice)으로 실험을 해 본 것이지요. 결과는 양파 실험과 거의 비슷합니다. 감사의 스티커를 붙이고 긍정의 말을 들은 밥은 부패 속도가 현저히 느려지지만, 부정의 말을 붙여 놓은 밥은 금방 상하고 곰팡이가 핍니다.각 파트장과 직원들이 이 결과를 함께 지켜보면서 술렁이기 시작합니다. 한 직원이 말합니다. “부공장장님. 이 실험을 기계에 한 번 해 보면 어떨까요?” 놀라운 발상이었습니다. 양파나 밥 등은 세포가 있는 유기물이었기 때문에 이런 실험이 어느 정도 효과가 보이는 것은 일리가 있다 해도, 생명이라고는 없는 차가운 기계가 과연 이 실험에 반응을 보일까? 직원들은 갑론 을박 합니다.“까짓거, 돈 한 푼 들지 않는 일이니 뭐가 문제가 될까요? 한 번 실험해 봅시다.”평소 고장률이 높은 기계 한 대를 실험 대상으로 정합니다.그리고 기계에 이렇게 써 붙여 놓습니다.“최선을 다해 열심히 일해 주어 감사합니다.”직원들이 이 기계 앞을 지날 때마다, 감사의 말을 건네기 시작하고 심지어는 미소 지으며 기계에 인사까지 합니다. (내일 편지에 계속)/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 대표

2019-06-24

4예(四禮)의 적폐가 판치는 나라

강희룡 서예가‘살아있는 갈대’라는 소설은 펄벅이 1963년도에 출판한 역사소설로 한국의 구한말(1897)부터 해방되던 해(1945)까지를 배경으로 한국 근대사 격동기에 살아간 한 가족의 4대에 걸친 장편소설이다. 펄벅은 이 작품의 첫머리에서 한국을 ‘고상한 사람들이 사는 보석 같은 나라’라고 격찬하며 작품 곳곳에서 한국민족에 대한 극진한 애정을 표하면서 일제의 잔학성에 대한 강한 분노를 표시하고 있다. 이 소설이 처음 출판됐을 당시 뉴욕타임스에서는 흔히 외교관 100여명이 10년 걸려도 못할 일을 단번에 해냈다는 표현을 쓰며 ‘한국에 보내는 애정의 선물’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펄벅은 이 소설에서 한민족에 대한 역사적 사실의 고증이 놀라울 정도로 정확했으며 한국이 예절국가로 지구촌에서 제일 으뜸이라고 칭찬했다.인도의 시성(詩聖) 타고르도 우리나라를 ‘동방의 등불’이라고 칭송하는 시를 남겼으며 동방예의지국으로 불러왔다. 2천5백 년 전 이래 동방예의지국은 우리나라를 지칭하는 고유명사이지만 보통명사가 된 지 오래이다. 그 이유는 타 민족이 보아도 한민족은 ‘예의가 일상생활에서 몸에 밴 민족’이라 그랬을 것이다. ‘논어, 자한(子罕)’에도 공자가 구이(九夷는 東夷를 일컬음)에서 살고 싶다하자 제자가. ‘선생님 그곳은 누추할 터인데 어떻게 사시겠습니까?’라고 묻자 공자는, ‘군자가 사는데 무슨 누추함이 있겠느냐?’라고 답했다는 기록이 보인다. 그리고 공야장(公冶長)에서는 ‘도(道)가 행해지지 않으니 뗏목을 타고 바다를 항해하려 한다. 나를 따라올 사람은 아마도 자로일 것이다.’라고 하였다.‘예기, 잡기하(禮記, 雜記下)’에서는 ‘소련과 대련은 상을 잘 치러서 3일 동안 애통해 했으며, 석 달 동안 게을리 하지 않았고 1년 동안 슬퍼했으며, 3년 동안 근심했다. 이들이 바로 동이의 아들이다.’라는 기록도 보인다. 또한 ‘한서, 지리지((漢書, 地理志)’에 기록된 기자(箕子)의 팔조법금(八條法禁) 중 지금 전해지는 ‘사람을 죽인 자는 사형에 처해 갚아 주고, 남에게 상해를 입힌 자는 곡물로 보상하게 하며, 남의 물건을 도둑질한 자는 적몰(籍沒)하여 그 집의 노비로 삼되, 속죄하고자 하는 자는 1인당 50만을 내게 한다.’는 이 세 가지 조항만 봐도 당시 고대국가로서 체계와 면모를 갖춘 문명 선진민족이었음을 알 수 있다.인간관계에서 예절은 상대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사회의 불문법으로 올바른 습관이나 버릇이라고 할 수 있다. 오늘날의 우리사회상은 어떠한가. 특히 위정자들의 언행 속에 네 가지 적폐인 무례(無禮), 결례(缺禮), 실례(失禮), 허례(虛禮)가 아무 죄의식 없이 언론을 통해 이 사회에 마구 쏟아져‘동방무례지국(東方無禮之國)’이 된지 오래다. 국민들이 보기에는 정치인이 더 나은 국가의 미래를 만들어가는 존재인 줄 알고 있으나, 그들은 국가의 미래는 안중에 없고 오직 개인의 영달만 지속하려는 생각만 꽉 차 있으므로 그들의 실제 권모술수는 드라마나 영화보다 훨씬 더 치졸하고 위험하다고 어느 초선 비례대표 의원은 말한다.그들은 정치 그 자체를 목적으로 하기에 성실한 의정활동으로 국민의 마음을 얻기 보다는 나와 적을 구분하고 그 적을 공격하여 내 정치 생명을 연장하려고 한다. 이런 하류정치풍토에서 터진 사건이 윤지오건이다. 국민을 위한 의정활동은 뒤로한 채 장자연사건 증인인 윤지오의 증언에 민주당 안민석 의원을 비롯한 평화당, 바른미래당, 정의당 등 총 4개 정당 9명의 의원들이 가세하여 방패막이를 자처하고 나섰다. 대중적 이슈에 편승하여 본인들의 정치적 인지도를 높이는 좋은 먹잇감을 문 것으로 이들은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 증언이 거짓으로 드러나자 결과를 놓고 보면 이들은 되레 스스로의 발등을 찍은 셈이다. 이런 부류의 위정자들이 결국 정치와 나라를 병들게 하는 주역이다. 내년 총선에서 이런 위선적인 정치인들의 이름이 이 사회와 정치판에서 사라져야 선진국가로 갈 것이다.

2019-06-24

광활한 대륙의 우울한 외침? 차이콥스키

학생들에게 음악사를 가르치다 보면 다른 교과에 비해 좋은 점이 있다. 역사를 가르치는 이들은 다 느끼는 것이겠지만 기록된 역사는 변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국어나 영어 등 다른 교과를 가르치는 분들이 급변하는 시사적인 내용이나 새로 나온 문학작품을 탐독하느라 골치를 앓는 모습을 보면 시사를 읽는 능력이 부족한 필자로서는 다행이라고 느낄 때가 많다.하지만 음악사를 가르치면 불편한 점도 있다. 과거의 내용, 특히 음악가의 생애를 다룰 때에는 문헌으로만 확인할 수 있기에 여러 가지 해석과 학설이 있을 수 있어 학생들에게 잘못된 지식을 전달하는 것이 아닌지 늘 의심을 가져야 한다. 그것이 작곡가의 어두운 측면이라면 더욱 그러하다. 그 중 한 명이 러시아의 작곡가 차이콥스키(Pyotr L.Tchaikovsky·1840∼1893)이다.한 해의 마지막에 이르면 우리가 쉽게 접할 수 있는 곡이 3곡 있다. 바로 베토벤의 ‘교향곡 9번 4악장 환희의 송가’와 헨델의 오라토리오 ‘메시아’ 그리고 차이콥스키의 발레음악 ‘호두까기 인형’이다. 앞의 두 곡들은 다소 장엄하며 인류의 평화와 소망을 노래하고 극적이었던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과 죽음을 다룬다. 그러나 발레곡 ‘호두까기 인형’은 다른 두 곡들과는 성격이 다르다. 지극히 동화적이고 어린이들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그 음악도 매우 재미있으며 변화무쌍하며 이국적이다. ‘사탕요정의 춤’에서는 동심을 자극할만한 첼레스타 같은 특수 악기들도 나오는데 마치 ‘오르골’과 같은 효과를 내기에 아이들이 좋아할 만하다.차이콥스키 음악의 힘은 매우 강력하다. 선율은 아름답고 선명하여 한번 들으면 결코 잊지 못할 정도로 각인되며, 그 선율의 발전도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은 확대의 효과를 자아낸다. 화성의 사용은 조바꿈이 많으나 지극히 극적이고 자연스러우며, 관현악법도 대규모의 악기 편성으로 압도적이지만 극적이며 효과적이다. 차이콥스키 음악의 주목할 점은 발레음악이라 할 수 있겠다. 우리는 발레라고 하면 그 발상지가 프랑스임에도 러시아의 키에프나 볼쇼이 발레단을 떠올리는데 그것은 ‘백조의 호수’ ‘잠자는 숲속의 미녀’ ‘호두까기 인형’등을 남긴 차이콥스키의 업적이라 볼 수 있다. 발레를 제외하더라도 음악만으로도 훌륭하며 세 곡 다 연주 시간이 길지만 짧게 구성된 하이라이트 음반이 많이 있으니 꼭 감상해보길 바란다.흔히 예술에서 남성과 여성의 특징은 다르게 나타나는데 남성은 감정적이고 열정과 폭발적인 디오니소스적인 에너지를, 여성은 이성적이며 단아한 아폴론적인 에너지를 표현한다 차이콥스키는 동성애자였으므로 이 두 가지 요소를 다 가진 것으로 생각된다. 서유럽의 우아하고 지성적인 낭만주의적인 아폴론적인 음악유산과 디오니소스적인 중앙아시아의 야생적이고 광활한 표현의 이미지를 하나의 작품에서 결합시킨 최초의 작곡가였다. 19세기 러시아의 음악계는 루빈스타인(Rubinstein)형제, 안톤 아렌스키(Anton Arensky·1861∼1906)로 대표되는 서구 낭만주의를 따르는 이른바 ‘서구파’와 M. 무소르그스키(Muss orgsky ·1839∼1881), M. 발라키레프(Balakirev ·1837∼1910) 등의 러시아와 중앙아시아의 음악적 재료와 감성으로부터 서구의 음악과는 다른 새로운 음악을 창조하고자 하는 러시아 5인조가 대립하는 시기였다.차이콥스키는 이 두 그룹의 어느 쪽에도 환영을 받지 못했다. 그의 교향곡 1번 ‘겨울날의 환상’과 교향곡 2번‘소아시아(Ukraine)’‘현악 4중주 제 1번’ 등에서는 민요를 본격적으로 사용하였고 그 이후의 음악에서도 러시아의 정서를 표현하는 대작들을 선보이나 두 가지 양식이 융합되어 어느 한쪽으로의 확실한 색채를 가지지 않은 이유라고 생각된다. 정규적인 음악교육을 받지 않은 러시아 5인조 작곡가들에게는 서구 낭만파 음악에 늘 대립적이었으며 러시아 음악의 세계화를 위해서는 서구음악은 ‘극복’되어야 할 존재로 여겼다.차이콥스키가 곡을 초연하고 나면 이들에게 신랄한 혹평을 받아야 했고 음악에 대한 냉철한 평가가 아니라 비판을 위한 비판이 쏟아졌다. 차이콥스키는 소심한 성격으로 평소 다른 작품에 대한 언급을 조심하였다 하니 그 마음고생이 매우 심했을 것이다.서구의 낭만파 음악을 추구하는 이들에게도 혹평은 마찬가지였다. 지금은 피아니스트의 영원한 노스탤지어인 ‘피아노 협주곡 1번’ 은 안톤 루빈스타인(Anton Rubinstein·1829∼1894)에게 ‘바이올린 협주곡’은 레오폴트 아우어(Leopold Auer·1845∼1930)에게 심한 혹평을 당하며 연주불가 판정을 받았다. 특히 오스트리아의 저명한 음악 비평가인 E.한슬릭 (Eduard Hanslick·1825∼1904)은 “차이콥스키의 바이올린 협주곡은 사상 처음으로 음악작품에서도 악취를 들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 주었다.”라며 유례 없는 혹평을 퍼부었다. 이러한 이유는 두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는데 첫째는, 두 그룹의 인물들이 보편적으로 생각하는 음악양식에 그들이 적대하던 양식들이 복합되어 있었던 것이며 둘째는, 두 협주곡이 독주자에게 익숙한 협주곡의 형식을 탈피하였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실제로 두 곡을 들어보면 솔리스트보다 오케스트라의 연주 부분이 더욱 강조되며 솔리스트를 돋보이게 해주지는 않는다.차이콥스키는 동성애자였다고 서두에 밝혔는데, 당시 그리스정교(동방교회)를 종교로 가졌던 러시아는 매우 보수적인 사회였다. 동성애는 받아들여질 만한 사회적 환경이 되지 못했으며, 발각될 경우 심각한 위험에 처할 수 있었다. 차이코프스키는 동성애를 극복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였던 것으로 보이며 그가 37세가 되던 해인 1877년 9세 연하이며 모스크바 음악원의 제자였던 안토니나 밀류코바에게 열렬한 구애를 받아 결혼을 하기에 이른다. 소심했던 차이콥스키는 당시 오페라 ‘에프게닌 오네긴’을 작곡하던 중이었으므로 밀류코바를 극의 여주인공 타치아나로 투사하여 생각하여 구애를 거절하지 못하였다고 한다. 하지만 결국은 극복되지 못했으며 그는 결혼 2주째에 강물에 몸을 던지는 자살시도를 하였다. 결혼한 지 9주 만에 파경을 맞으며 밀류코바는 후에 정신 병원에서 쓸쓸히 죽어갔다고 하니 오페라 ‘에프게니 오네긴’의 여주인공 ‘타치아나’보다 더 슬픈 운명을 맞는 비운의 여성이었다.그러나 결혼생활이 파국으로 끝난 뒤 차이콥스키의 운명 교향곡이라 불리는 ‘교향곡 4번’과 ‘바이올린 협주곡’등 명곡들이 연달아 작곡되는데 이것은 그의 성정체성을 운명적으로 받아들인 후 자신의 정체성을 곡에 제대로 투사하였다고 생각된다. 교향곡 4번에서 운명적인 트럼펫 팡파레와 현파트는 고음을 오가며 끊임없이 울부짖으며 운명의 슬픔을 노래한다.그에게 진정한 인생의 연인은 후원자였던 철도 재벌 미망인 ‘폰 메크 부인’이었다. 그녀는 차이콥스키보다 9세 연상이었으며 차이콥스키 음악의 가치를 이해하고 진정으로 존경하는 여인이었다. 그녀는 14년 동안 매년 6천루블의 재정을 지원하였으며 이 액수는 당시 러시아 보통 공무원의 2년 치 연봉에 해당된다고 하니 큰 액수였다. 지원의 조건은 절대 만나지 않으며 마주치게 되더라도 이야기를 나누지 않는 것이었다. 실제로 두 번 만난 적이 있는데 두 사람은 눈만 마주치고 지나쳤다. 하지만 14년 동안 무려 1천200통의 많은 편지를 주고받았으며 그 편지의 내용에서 두 사람의 정신적인 교감을 확인할 수 있다. 고독했던 차이콥스키는 폰 메크 부인에게 정신적으로 크게 의지하였으며 그가 어린 시절 그토록 사랑했던 어머니의 모습을 연상하였으리라 생각된다. 어린 시절 어머니에 대한 애정이 매우 강하여 10살이었던 1850년 페테르스부르크 법률학교에 입학할 당시 그를 두고 떠나던 어머니에게 울부짖으며 마차를 따라 뛰어갔다고 한다. 일설로는 그의 동성애가 선천적인 것이 아니라 어머니에 대한 어린 시절의 지나친 집착과 14세 때 어머니가 콜레라로 사망한 것에 정신적인 상처를 입어 어머니 이외의 여성을 숙명적으로 거부하는 이유가 되었다고도 한다. 1890년, 알 수 없는 이유로 재정 지원이 중단된 후 차이콥스키는 매우 괴로워했으며 죽는 순간에도 폰 메크 부인을 원망하는 말을 남겼다고 하니 상실감이 매우 컸음을 알 수 있다.차이콥스키는 “영감은 게으르고 노력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결코 찾아오지 않는다. 게으름은 인간의 강한 습관이지만 그것에 극복하지 않는 것이 예술가의 의무이다”라고 말하였다.19세기의 러시아는 예술적 환경이 서유럽과 달라 매우 척박하였으며 자신의 미래를 음악에 투자한다는 것은 무모한 모험이었다. 하지만 차이콥스키는 엄청난 노력과 운명의 극복으로 이전에 접할 수 없었던 새로운 형태의 음악을 창조하였으며 러시아의 음악어법을 세계에 데뷔시킨 거대한 대륙의 거장이었다. /문양일 포항예술고 음악교사

2019-06-24

홍콩의 ‘우산 혁명’이 의미하는 것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이번 홍콩 시민 200만 명이 참여한 우산 혁명은 세계인들의 관심을 다시 촉발하고 있다. 1997년 중국에 반환된 홍콩에서 대대적인 반정부 불길이 타올랐기 때문이다.시위에 참여한 검은 옷의 홍콩 시민들이 한국의 시위 현장처럼 ‘임을 위한 행진곡’을 중국어로 불렀다고 한다. 한국 광화문 촛불 혁명 때처럼 그들은 촛불 대신 우산을 들고 저항하는 모습도 보였다. 한국의 방탄소년단과 같은 한류가 세계를 흔들더니 이제는 홍콩의 시위에도 ‘정치 한류’가 등장한 것이다. 물론 정치 문화는 비교되지 않지만 그들이 우리의 ‘광장 정치’를 벤치마킹하는 것은 나쁘지만은 않다.홍콩에서 반정부적인 우산 혁명이 시작된 것은 2014년이다. 이 운동을 주도했던 청년 지도자 조슈아 웡(黃之鋒·23)은 구금되었고, 세계는 그에게 높은 관심을 보였다. 웡은 한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번 범죄인 송환법 개정을 주도한 행정 장관 케리 람은 반드시 퇴진해야 한다고 했다.행정장관이 법 개정을 중지하겠다고 사과했지만 그것만으로 만족할 수 없다는 뜻이다. 홍콩 인구 700만 중 약 200만 명이나 거리로 뛰쳐나온 것은 법 개정에 대한 단순한 불만만은 아니다. 일국양제(一國兩制)를 표방하면서도 홍콩인들의 인권을 죄어오는 중국 당국의 통제에 대한 불만에서 비롯된 것이다. 인구 14억의 거대 중국은 2050년까지 세계 최강국이 된다는 중국몽(中國夢)을 선포했지만 내부적 모순이 산적해 있다. 중국적 특색의 사회주의가 가진 한계라고 볼 수 있다. 시진핑이 선포한 ‘일대일로(一帶一路)’와 ‘중국식 굴기(5D1B起)’의 내면에는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점이 도사리고 있다. 중국이 수치적으로는 이미 G2국가가 되었지만 G1국가인 미국에 비해 아직도 군사력이나 경제력에서 엄청난 격차가 있다. 중국은 사회주의적 시장 경제 접합과정에서 중국식 관료 부패가 만연되어 있다. 상해 등 강소성(江蘇省)의 비약적 발전에 비해 중국 내륙에는 아직도 발전이 더디다. 소수민족들의 독립 요구는 개혁 개방에 따라 더욱 커질 전망이 높다.이번 홍콩의 대규모 시위 사태도 사회주의 중국이 방치할 수 없는 문제이다. 그렇다고 홍콩시위를 중국 내륙처럼 무력으로만 진압할 수 없다. 홍콩인들은 이미 상당한 정도의 서구적 민주적 가치와 다원주의 문화가 내면화되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20여 년 전 중국본토에 편입되었지만 대부분 서구적 삶의 방식에 익숙한 사람들이다. 영어를 자유롭게 구사하고 워라벨을 추구하는 시민들이다. 이들 중에는 홍콩의 독립을 주장하는 사람도 상당수다. 이들은 간선제가 아닌 직선제를 통해 홍콩 공화국의 지도자 선출을 바라고 있다. 물론 중국 중앙 당국이 이를 허용할 리는 없다. 홍콩의 6월 시위는 중앙정부의 압제로만 해결되지 않음을 입증하였다. 홍콩의 시민 세력은 결코 중국식 공민으로 개조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홍콩의 민권에 대한 요구는 얼마나 확산될 것인가. 인접 광동이나 주해 지역에는 다소 영향을 미칠지 모르지만 중국의 여타 지역으로 확산될 가능성은 희박하다.1989년 천안문 사태는 이미 중국에서의 반체제 운동의 한계를 잘 보여 주었다. 당시 학생들의 시위는 유혈 무력으로 진압되었다. 천안문 광장의 진압은 수천 명의 살상과 이를 방치한 개혁적 지도자 조자양까지 실각시켜 버렸다. 지난번 중국학자들과의 만남에서 중국의 개혁 개방이라는 체제 변화과정에서 중국식 민중 항쟁이 일어나지 않겠느냐를 넌지시 물어 보았다. 그들은 중국 공산당이 건재하는 한 그런 사태는 없다고 잘라 말했다. 슬라보예 지젝은 ‘공산주의는 결국 자본주의와 결혼한다’는 가설을 설파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2019-06-23

기대치 위반 효과

미네소타 대학의 심리학자 애론슨과 린다는 재미있는 실험을 합니다. 실험대상 여학생을 뽑아 자신에 대한 지인들의 뒷담화를 몰래 듣게 합니다. 이후 이 대화에 참여한 사람들에 대한 호감도를 평가합니다. 지인들은 모두 네 사람입니다.A 항상 칭찬만 계속하는 사람. B 처음부터 끝까지 비난만 하는 사람. C 처음에는 비난하다가 나중에 칭찬으로 끝내는 사람. D 처음에는 칭찬하다가 나중에 비난으로 매듭짓는 사람.피실험자는 과연 어떤 사람에게 가장 호감을 느꼈을까요? 애론슨과 린다는 이 실험을 80회 새롭게 리셋하고 거듭 반복합니다. 각각 다른 여학생을 뽑아 동일한 상황을 설정하고 실험을 꾸준히 진행해 본 겁니다. 실험 결과 의미 있는 패턴을 발견합니다. 여러분은 어떤 결과를 예측하셨나요? 교수들은 가정하기를, 계속 칭찬만 했던 A가 가장 호감도가 높고 비난을 계속하며 멈추지 않은 B가 가장 호감도가 낮을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결과는 예상을 뒤엎었습니다. 호감도가 가장 높은 사람은 C였습니다. 처음에는 비난하다가 나중에 칭찬으로 바뀐 경우입니다. 반대로 호감도가 가장 낮은 사람은 D였습니다. 처음에는 칭찬하다가 나중에 비난으로 끝냈던 경우지요.심리학에서는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이유를 기대치 위반 효과(Expectancy violations theory)라고 합니다. 상대방이 내가 가지고 있는 기대치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면 그에 대한 평가가 일반적인 상황에 비해 매우 달라지는 현상을 의미하지요. 상대방의 행동이 내 기대치를 초과하는 방향으로 나타나면 호감, 감동, 긍정적인 평가가 이뤄지지만 상대방의 행동이 기대치에 미흡하거나 기대치에 반하는 방향으로 나타나면 반감, 실망, 부정적인 평가를 내리는 것이 사람의 심리입니다. 평소 싹싹하고 말 잘 듣고 효도하던 큰 며느리가 어느 날 한 번 섭섭한 행동 한 번 했을 때 역정을 내고, 평소 쌀쌀하고 까칠하던 둘째 며느리가 어쩌다 한 번 효도하면 살살 마음이 녹는 시부모들의 심리가 바로 기대치 위반 효과 때문이랍니다. 대단한 웅변술과 뛰어난 외모로 2004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초반에 큰 인기를 얻었던 엘 고어는 결국 막판에 조지 부시에게 역전패를 당했습니다. 부시는 어눌한 언변에 뛰어나지 못한 외모였지만, 기대치 위반 효과의 덕을 톡톡히 본 것이지요. 심리학에서 배우는 관계의 지혜입니다. 상대에게 지나친 기대감을 심어주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는 하루를 시작하는 새벽입니다. /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 대표

2019-06-23

그 많던 정어리는 어디로 갔을까

김도형 아시아퍼시픽해양문화연구원 이사물 반 정어리 반이었지.지역의 한 원로는 일제강점기 포항을 회고하다가 포항 앞바다에 정어리가 지천으로 널려 있었다며 눈에 힘을 주며 말했다. 정어리는 기름이 많은 생선이어서 기름을 짜내 산업용이나 군사용으로 많이 썼다는 얘기도 덧붙였다. 임진왜란 때면 모를까, 생선 기름을 근대의 대규모 전쟁에 썼다는 얘기는 도무지 실감이 나지 않았고 한동안 잊어버렸다.한 학자의 소개로 근래 이기복의 논문을 읽고 난 후 망각의 바다 저편으로 사라졌던 정어리는 암청색 몸을 빛내며 뇌리속으로 들어왔다. ‘경상북도수산진흥공진회(1935년)와 경북 수산업의 동향’(《역사와 경계》 2009년 12월)이라는 제목의 논문이다. 공진회(共進會)는 품평을 겸한 박람회를 뜻한다. 이 논문은 1935년 당시 수산업을 중심으로 포항에서 전개되는 역동적인 상황을 묘파하고 있다.“10일간 열린 이 수산공진회는 출품인원 1천884명(3천46점), 관람인원 5만9천642명으로 포항 전역이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박람회 역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녔던 1935년 경상북도수산진흥공진회는‘수산’이라는 산업적 주제, ‘포항’이라는 지역적 제한성 때문에 연구사적으로 간과되거나 무시되었다. 필자는 그 산업적 주제, 지역적 제한성이 역설적으로 관심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논문의 머리말은 호기심을 자극하고도 남았다. 대체 1935년 포항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1935년에 이르러 수산제조품 수요가 급증해 일본 당국은 산업적인 대응이 필요했고, 이를 배경으로 일본인들의 주도로 대규모 공진회가 개최된 것이다. 당연히 일본인들의 잔치가 된 공진회의 수상품 목록을 보면, 식용으로 청어와 고등어, 비식용으로 정어리 기름과 비료가 다수를 차지했고, 통조림 제조 등에 큰 비중을 두었다. 특히 이 수산제조품은 일본·만주 등으로 보내기에 유리했다고 필자는 밝히고 있다. 요컨대 경북수산공진회는 포항을 중심으로 경북지역 수산물의 수탈을 극대화하기 위한 방편으로 열렸던 것이다.그제서야 나는 원로의 얘기에 머리를 끄덕였다. 20세기 초반 정어리 기름은 산업용, 군사용으로 폭넓게 활용됐다. 특히 세계대전의 주범인 일본과 독일에게 정어리 기름은 아주 요긴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세계 최고의 정어리 어획량을 자랑하던 노르웨이를 점령한 독일군은 막대한 양의 노르웨이산 정어리를 군용 통조림과 군수용 기름으로 활용했다고 한다. 동해안에서 풍년을 이뤘던 정어리도 노르웨이산 정어리와 같은 운명이었다. 포항과 교류가 많았던 함경북도 청진이 정어리의 대량 어획과 가공을 기반으로 1944년 인구(18만4천여 명) 규모에서 조선 4위의 도시로 팽창한 것도 흥미로운 대목이 아닐 수 없다.일제강점기, 동해는 일본의 내해(內海)였고, 식민의 바다였다. 호미곶등대를 포함해 일제강점기 한반도 연안에 점점이 세워진 등대는 일본이 바다를 무대로 수탈을 손쉽게 하기 위한 식민지배의 인프라이다. 조선사람의 운명처럼 동해안의 어류도 일본의 손아귀에 있었다. 정어리처럼 활용도가 높은 어류는 남획을 피할 수 없었고, 독도 강치의 멸종은 그 극적인 사례다.포항은 한적한 어촌이었다가 제철공장이 들어오면서 비약적인 성장을 하게 되었다는 얘기를 간혹 듣는다. 일면의 사실일 뿐, 포항 역사의 깊이를 모르고 하는 얘기이다. 비록 수탈의 아픈 역사이기는 하지만, 일제강점기에 바다를 배경으로 역동적인 움직임이 있었고, 그것은 지금까지 이어지며 생생한 역사의 파노라마를 만들어내고 있다. 넓은 들판과 산맥, 형산강과 영일만을 배경으로 주옥 같은 얘기가 펼쳐지는 천일야화의 지역이 포항이다. 시 승격 70주년, 그 빛나는 구슬과 옥을 솜씨 있게 꿰는 안목과 정성이 절실하게 필요한 때이다.

2019-06-23

‘캉캉 쇼’ 시대는 갔다

안재휘 논설위원‘빨간 풍차’라는 뜻의 물랭루즈(Moulin Rouge)는 프랑스 파리 몽마르트르의 번화가 클리시 거리에 있는 댄스홀이다. 1889년 개장한 댄스홀인 이곳에서 펼쳐진 ‘카드리유(프렌치 캉캉)’라는 춤 공연은 한때 세계 최고의 명성을 누렸다. 옛날 중앙정보부가 세운 국제관광공사 소유의 호텔이었던 워커힐의 ‘캉캉 쇼’도 유명한 고급 관광상품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하이힐과 화려한 무용복 차림의 무희들이 집단으로 다리를 들어 올려 팬티를 아슬아슬 보여주는 댄스공연 ‘캉캉 쇼’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들은 없다.자유한국당이 범보수 진영의 인적기반 강화를 위해 외연 확장에 적극 나섰다. 최근 외연확장과 총선 대비를 위해 인재영입위원회를 출범하고 위원장에 이명수 의원을 임명했다. 황교안 대표는 “삼고초려, 오고초려, 십고초려를 해서라도 반드시 인재를 모셔와 주길 바란다”고 신신당부했다.인재영입위는 사회 각계각층의 2천 명 데이터베이스를 통해 1차 영입대상으로 각계인사 164명을 선정했다는 소식이다. 그 명단에 박찬호 한국야구위원회(KBO) 국제홍보위원과 이국종 아주대병원 교수, 다음커뮤니케이션 창업자인 이재웅 쏘카 대표가 포함된 것으로 전해지면서 화제가 되고 있다. 한국당 인재영입위는 이들을 상대로 영입교섭을 진행해 늦어도 9월 말까지는 결과물을 내놓겠다는 방침이다.지난해에도 한국당으로부터 비상대책위원장 직을 제안받은 바 있는 이국종 교수는 그러나 이번에도 “병원 내 정치도 잘 못 한다”며 “과대평가해 주신 것 같다. 그런 주제가 못 된다”고 사양 의사를 밝혔다. 한국당을 어떻게 평가하는지에 대한 물음에 이 교수는“한국당보다는 민주당 분들과 더 자주 접촉한다”고 선을 그었다.박찬호 위원의 국내 매니지먼트사인 ‘팀61’의 정태호 대표는 “박찬호는 정치에 전혀 관심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러면서 “(박찬호는) 정치할 의사도 전혀 없고 지금 미국에 거주하고 있다”고 전했다. 말하자면 한국당이 일방적으로 명단을 작성하고 일부 유명인사들의 이름을 흘려 애드벌룬을 띄워본 셈이다.자유한국당은 지난 19대 총선 때는 귀화 여성 이자스민 의원을, 20대 총선 때는 유명 바둑기사 조훈현 의원 등을 비례대표로 영입했다. 21대 총선을 앞두고도 ‘깜짝 발탁’ 전략을 그리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지역구마다 줄을 선 인물들이 넘쳐나는 더불어민주당은 비교적 느긋하다. 민주당 이해찬 대표는 ‘객관적이고 투명한 공천 룰을 마련하고 상향식 공천시스템을 완전히 뿌리내려 총선 승리의 발판을 마련할 것’이라는 방침을 밝힌 바 있다. 한국당의 인재영입 안간힘을 바라보는 민심은 어떨까. 지명도가 높은 인기인들을 영입해 관심을 높이는 일이 나쁠 까닭이 없다. 그런데 유명인들을 명단에 욱여넣고 알 만한 이름들을 치마폭 들어 올리듯 슬쩍 흘리는 자유한국당의 행태는 측은하기도 하고, 짜증을 부르기도 한다. 구멍 뚫려 새는 바가지를 들고 우물 앞에 선 모습이 연상된다. 무너지고 부서진 무대를 고칠 생각도 없이 철 지난 ‘캉캉 쇼’나 기획하고 있는 어설픈 풍경이다.문재인 정권 잘못하는 것들 줄줄이 꿰어 들고 민중을 향해 꽹과리 치며 흔들어대는 것 말고 자유한국당이 제대로 하는 게 뭔가. 무엇 하나 정리 정돈된 것 없는 갈등 시한폭탄들을 그대로 두고 정부·여당의 실정(失政) 부풀리기에만 여념이 없는 형편 아니던가. 국민은 아직 자유한국당에게 권력을 되돌려 맡길 준비가 돼 있지 않다. 미더운 무대도 마련해놓지 않은 마당에 무슨 꿍꿍이로 ‘캉캉 쇼’ 티켓이나 돌릴 궁리를 하고 있나. 중도 민심을 확실히 돌려세울 미더운 정책으로 무장된 건강한 조직으로 혁신하는 일부터 빨리 마무리짓는 게 맞다. 그래서 천하의 인재들이 스스로 몰려들게 만드는 게 자유한국당이 가야 할 바른 길이다.

2019-06-23

황제급 의전

중국 역사서 ‘사기’ 진시황본에 의하면 중국을 최초로 통일한 진시황은 신하들에게 왕을 대신해 천하의 지배자에게 적합한 호칭을 만들어 올리라고 했다. 신하들은 연구 끝에 천황(天皇) 지황(地皇) 태황(泰皇) 중에 가장 존귀한 것이 태황이라며 태황을 호칭으로 바쳤다. 그러나 진시황은 이를 거절하고 태황의 황과 신을 뜻하는 제를 붙여 황제(皇帝)라 불렀다고 전한다.중국에서 황제라는 호칭을 가장 먼저 사용한 인물은 진시황이다. 진시황 이후 중국은 환란이 일어나 소국가들은 싸움을 하더라도 중국을 하나의 나라도 통일하겠다는 일념으로 다투었다. 중국의 최고 권력자는 황제라는 공식이 정립하게 되고, 중국 정체성의 중심으로 등장했다. 이 때문에 일부 학자는 중국은 황제라는 구심점이 없었더라면 지금의 유럽처럼 수많은 국가로 나눠졌을 수도 있다는 가설을 내세운다.황제가 왕과의 차이점은 다른 국가의 군주인 왕을 자신의 밑에 둘 수 있다는 점이다. 중국에서는 황제와 비슷한 개념으로 천자(天子)라는 호칭이 진나라 이전부터 사용돼 왔다. 하늘의 아들 자격으로 천하를 다스린다는 뜻으로 황제와 비슷한 단어로 사용한 것이다.서양사에서도 황제라는 개념은 있었다. 영어로 ‘Emperor’라 불린다. 유럽에서 황제는 로마의 정통성을 이어받은 군주만이 대외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호칭으로 통한다. 이 역시 여러 왕국을 지배하는 자에게 주어지는 이름이다.중국 시진핑 국가주석의 북한 방문이 마무리 됐으나 그에 대한 황제급 예우는 긴 여운을 남겼다. 북핵 문제와 미중무역분쟁 등 미묘한 국제 관계 속의 두 정상의 만남이 주는 의미는 특별했다. 특히 김정은 위원장의 파격적인 의전 속에 묻어나는 두 나라간 친밀감은 한반도 국제질서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관심이 모아진다.시진핑 국가주석은 작년 이른바 셀프 종신개헌을 통해 사실상 황제자리에 등극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중국은 한반도를 자신의 속국으로 생각하는 왜곡된 역사관을 가진 나라다. 우리의 고구려사와 발해사를 자신의 속국 역사로 만들려는 것이 대표적 사례다. 시 주석에 붙여진 ‘황제급 의전’이란 말은 역사의 흐름 속에서 잘 살펴 볼 의미심장한 표현이다./우정구(논설위원)

2019-06-23

대학총장 선출방식

서의호 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대학들이 총장선출로 몸살을 앓고 있다. 매년 되풀이되는 현상이지만 금년에는 더 정도가 심한 것은 과거 보수정부에서 교수들의 직접 선거를 간접선거로 바꾸도록 하였는데 문재인 정부 들어서서 직접선거를 장려하는 분위기로 바뀌면서 대학총장 선출 방식에 혼선이 빚어지고 있다.한국의 대학들은 대강 4년에 한 번 총장을 선임하므로 4년제만 따져도 매년 50개 정도의 대학이 총장선출의 진통을 겪는다. 금년은 특히 디지스트(대구경북과기원), 지스트(광주과기원)가 새로운 총장을 선임하였고, 포스텍(포항공대), 유니스트(울산과기원) 등 특성화 과학기술 대학들이 유임이든 또 새로운 총장을 선출하든, 총장 선임의 상황이 되어 과기대의 총장 선임이 첨예의 관심사가 되고 있다. 과기원들은 전반적으로 총장추천위원회를 통한 간접 선출을 하고 있지만, 국립대를 중심으로 총장 직선제가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고 있다.총장직선제란 대학의 교수들이 총장을 직접 선출하는 방법이다. 1988년 민주화의 정치적 상황을 맞이하여 많은 대학들이 총장을 총장직선제로 선출하는 방식으로 바꾸었다가 여러 가지 부작용이 생겨나고 정부의 정책으로 인하여 2010년대에 이르면 국립대학교를 포함하여 많은 대학이 총장직선제를 포기했다. 특히 문재인 정부 이전 10년간 보수정부에서는 총장 간선제를 강권하여 국립대와의 마찰이 컸으며 일부 국립대에서는 강한 저항을 하며 한때 총장 부재 사태까지 빚었다.교육부에서는 총장직선제가 문제가 많으므로 폐지하고 추천을 받아 국가에서 총장을 임명해야 한다고 한다는 방침을 정해 추진했으나 정부가 입맛에 맞은 총장을 선출하여 대학 길들이기에 나선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사립대학의 경우에는 재단의 뜻으로 운영되므로 간선제가 비교적 많은데 비하여 국립대학의 경우 정부의 뜻에 따라 직선제, 간선제, 다시 직선제로 좌충우돌하는 모양새의 혼란을 빚고 있다. 어쨌든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면서 상당수의 학교들이 총장 직선제를 다시 추진하고 있는 상황이다. 직선제는 교수들이 직접 총장을 선출하므로 어느 정도는 교수들로부터 인정을 받은 사람이 총장이 될 가능성이 높다. 투표에 의해 민주적 절차를 거쳐 총장이 임명되므로 총장이 교수들의 지지를 유지하기 위하여 독단적으로 대학을 운영하는 것을 견제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리고 또한 교수 누구든 뜻이 있고 지지가 있으면 총장이 될수 있기에 교수들의 사기를 북돋우는 장점이 있다.그러나 직선제의 가장 큰 문제는 교수간 파벌이 생긴다는 점이다. 총장이 되기 위해서는 정치력이 있어야 하고 세력이 있어야 하므로 파벌의 부작용이 생겨난다. 이러한 파벌 형성은 교수사회에 심각한 부작용을 만들고 학교운영에도 파행의 요인이 될 수 있다. 선거철만 되면 교수들을 회유하기 위한 정치적인 작업으로 캠퍼스가 혼란스러울 수 있는 것도 상아탑에서 있어서는 안 될 단점으로 꼽힌다.반면 간선제는 어떤 형태가 되든 공정성 시비가 있을 수 있다. 재단이 직접 임명하든 위원회를 통한 추천을 하든 소수의 의견이 지배한다는 항의가 있을 수 있다. 그렇기에 직선제, 간선제를 둘러싼 대학들의 갈등은 그동안 끊임없이 있어 왔다. 이미 살펴본 바와 같이 직선제와 간선제는 각각의 장단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미국은 대부분 위원회를 통해서 총장을 찾는 게 관례로 되어 있고 위원회를 신뢰하여 이루어진다.결국은 신뢰의 문제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구성원들이 서로를 신뢰하고 구성원을 대표하는 위원회, 그리고 재단을 신뢰해야 하고 또한 위원회와 재단은 신뢰를 받도록 해야 할 것이다. 직선제를 가미한 간선제, 간선제를 가미한 직선제 등 다양한 형태의 총장선출 방식은 훌륭한 총장을 선임하기 위한 구성원들의 마음이 일관성 있고 신뢰에 바탕을 둔다면 방식에 관계없이 성공할 수 있다고 본다. 최근 총장선출을 둘러싸고 어려움을 겪고 있는 대학들은 이러한 신뢰의 바탕 위에 운영의 묘를 잘 살렸으면 한다.

2019-06-20

대구소년회와 벽동사(碧瞳社)

김태곤 대백프라자갤러리 큐레이터대구는 서울과 평양에 이어 1920년대 초부터 그 활동이 두드러진 곳으로 몇몇 선구자적인 서양화가들에 의해 근대 서양화단 형성이 두드러졌다. 그리고 이들 서양화 도입기 1세대 화가들을 중심으로 당시 대구화단을 이끌어간 영과회(零科會)와 향토회(鄕土會)의 회원들은 단순히 그림을 그리는 화가(畵家)라기보다는 근대 서구문화를 지역에 소개하고 보급하는 선구자적인 지식인으로 다양한 예술 활동을 펼쳤다.대구 근대화단의 대표적인 서화가 석재 서병오는 교남서화연구회(嶠南書畵硏究會)를 통해 근대화단 형성과 후진양성을 위한 다양한 활동을 펼쳤으며, 이여성, 이상정, 서동진, 김호룡, 배명학, 박명조, 김용준, 최화수, 이상춘, 이갑기, 이인성, 김용조, 서병기 등 다양한 서양화가들의 활동은 영과회와 향토회의 미술그룹 활동으로 이어졌다. “서양화 연구단체인 향토회의 활동은 대구서양화단의 기록적인 성사임은 물론 조선 미술계의 일익에 커다란 기염을 토하는 사건으로 출범했다”는 당시 신문기사처럼 당시 우리나라 화단의 화두였던 ‘향토색론’을 성실히 실현한 향토회의 활동은 단순히 지역성을 가진 미술그룹의 활동이 아닌 한국화단을 대표하는 작가들을 배출해 내는 산실 역할을 담당했다. 조선미술전람회에서 대구 작가들의 부각은 이러한 미술그룹들의 적극적인 활동과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1922년 제1회 교남시서화전(嶠南詩書畵展)과 함께 1927년 대구노동공제회관에서 마련되었던 영과회 창립을 시작으로 대구 근대화단의 새로운 역사가 시작되었다. 하지만 한편으로 대구미술은 일제강점기라는 시대적 상황과 수동적 근대문화의 수용으로 인해 적잖은 문제점을 낳은 것 또한 부정할 수 없는 사실들이다. 일본인 미술그룹인 자토회의 활동과 대구 화가들의 찬조출품 배경, 영과회 해체 이후 조직되어졌던 과료회의 출현과 진보적 좌파경향의 예술인들의 활동내용, 나아가 향토회가 한국 서양화단에 끼친 영향과 회원들의 작품 활동 규모 등 아직까지 정확한 자료와 수집된 추가 자료들이 전무하고, 선행 연구자들의 연구결과에만 의존해 나가고 있는게 대구근대미술사의 현실이다.필자는 최근 당시 발행된 신문보도들을 통해 당시 대구미술에 대한 일반인들의 관심과 활동들을 면밀히 살펴볼 수 있었다. 1924년 대구소년회(大邱少年會) 주최로 개최된 ‘대구아동자유화전람회’를 통해 당시 대구가 미술에 대한 관심이 얼마나 높았는지를 짐작해 볼 수 있었다. 5세부터 17세까지 유아부와 소년부로 나눠 마련된 전람회는 새롭게 건립된 조양회관에서 마련되었다. 서동진, 이상정, 최윤수, 나지강 등 심사위원 명단을 통해 전시회 규모와 성격을 알 수 있다. 이러한 활동은 1927년 지역 미술·음악·문학인들과 소년작가·화가들이 함께 마련한 영과회 창립 분위기를 짐작해 볼 수 있다. 이에 앞서 1923년 창립된 벽동사(碧瞳社)는 대구에서 활동 중이던 서양화가들의 연구단체로 그 존재와 의미가 새롭게 부각되었다. 이상정, 황윤수, 박명조, 이여성, 정용택, ○○○ 등으로 구성된 회원들은 미술연구와 창작을 목적으로 월 1회 정기 모임과 전람회 개최를 통해 지역미술인구 저변확대를 주도했다. 단체의 규칙을 좀 더 살펴보면 매월 정기적인 회비 납부와 완성된 작품의 보관을 통해 전문적 연구 활동을 펼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이는 1920년 후반 서동진에 의해 개설된 대구미술사(大邱美術社)와 1936년 남산병원에 문을 연 이인성양화연구소(李仁星洋畵硏究所)의 적극적인 활동으로 이어졌다. 대구는 이처럼 대구 서양화 1세대 화가들의 헌신적 노력 덕분에 대구·경북을 ‘한국 근대미술의 메카’라는 명성을 얻을 수 있게 된 셈이다. 이제 선배 화가들이 만들어 놓은 명성과 영애를 지키기 위해서는 현재 대구·경북미술을 지켜 나가고 있는 우리 모두의 몫이라 생각된다.

2019-06-20

책만 보는 바보

도서관에서 책을 읽다가 펑펑 운 적이 있습니다. 이덕무 이야기를 담은 ‘책만 보는 바보’였습니다. 이 책의 문장들이 눈물을 쏟게 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늘 가슴이 두근거린다. 방에 들어서는 순간 등을 보이며 가지런히 꽂혀 있는 책들이 모두 한꺼번에 나를 향해 눈길을 돌리는 것만 같다. 책 속에 담긴 누군가의 마음과 내 마음이 마주치는 설렘. 오래된 책들에 스며 있는 은은한 묵향은 마음을 편안하게 어루만져 준다.”이덕무는 먹을 거리가 없어 그토록 좋아하는 책을 내다 팔아야 하는 슬픔을 견딥니다. 먹는 것보다 굶는 것이 더 자연스러운 일상. 서얼 신분 때문에 관직으로 진출할 수도, 농사를 짓거나 장사를 할 수도 없어 가난을 대대손손 물려줄 수밖에 없는 처지입니다.“가난은 겨울에 더 비참한 법이다. 불을 때지 못해 온 식구가 추위에 시달리고 병들기 일쑤다. 한 번 발작이 시작되면 목과 가슴이 쓰리도록 아프고 온몸은 격렬하게 흔들려 나중에 뱃가죽까지 아파오는 것이 기침병이다. 애써 소리 내어 책을 읽고 또 읽는다. 책 읽기의 이로움을 나는 이렇게 써 두었다. 굶주린 때에 책을 읽으면 소리가 훨씬 낭랑해져 글귀가 잘 들어오고 배고픔도 느끼지 못한다. 추울 때 책을 읽으면 그 소리의 기운이 스며들어 떨리는 몸이 진정되고 추위를 잊을 수 있다. 마음이 괴로울 때 책을 읽으면, 눈과 마음이 책에 집중하면서 천만가지 근심이 모두 사라진다. 기침병을 앓을 때 책을 읽으면, 그 소리가 목구멍의 걸림돌을 시원하게 뚫어 괴로운 기침이 갑자기 사라져버린다.”책만 보는 바보 이덕무는 든든한 벗들이 있어 괴로움과 서글픔을 견딥니다. 박제가, 홍대용, 박지원, 유득공, 이서구, 백동수. 이들이 스승과 친구되어 곁을 지킵니다. 그들은 백탑 아래 모여 서로의 배고픔을 달래 주고 책을 교환했으며 밤 깊도록 함께 노래 부르고 악기를 연주하며 고단하지만 품격있는 삶의 끈을 놓지 않습니다. 정조는 그를 발탁해 규장각 검서관으로 임용하지요. 반딧불이 몇 십 마리 모아 명주 주머니에 넣고 밤에도 책을 사랑한 차윤. 추운 겨울 한 글자 더 알고 싶어 눈밭에 책을 비춰가며 한줄 한줄 읽어내려간 손강. 콜록이며 기침이 멎지 않아도 살을 에는 추위가 온 몸을 파고들어도 책을 읽으며 꿋꿋하게 버틴 이덕무는 한결같은 배움의 열정으로 손에서 책을 놓지 않습니다.이번 여름 휴가에는 무슨 책을 고를까, 설레는 고민을 지금부터 시작해 보는 것은 어떨까요? /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 대표

2019-06-20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

‘기생충’은 이 영화에서 누구냐?송강호 분 기택의 가족 기우는 명문대 다니는 친구 소개로 아마도 평창동일 부잣집 여고생 영어과외 교사로 들어간다.평창동 사람들은 이 영화 안 보는 게 낫겠다는 생각도 든다. 느긋하게 보기에는 꽤나 불편한 영화라고나 할까. 나도 옛날에 그 동네 과외 아르바이트 하는 친구 얘기를 들었는데, 집안에 에스켤레이터가 있다던가. 수영장 같은 건 말해봐야 빈축이나 살 것이고, 워낙 흔한 얘기여서 말이다.이 기택 가족은 한 마디로 말해 ‘악’하기 그지없다. 대학 졸업장 위조해서 과외 교사로 들어가 놓고 모자라 자기 동생을 외국 명문대 미대생으로 꾸며 그집 아들 미술 과외 교사로 끌어들인다. 아버지는 운전기사로, 어머니는 가정부로 끌어들이는데, 자신들이 모두 한 가족이라는 사실은 물론 감추면서다.이렇게 해서 기택의 가족은 이선균 분 동익과 조여정 분 연교의 세 식구한테 달라붙은 ‘기생충’ 같은 존재들이 된다. 한 몸에 회충, 촌충, 편충, 간디스토마 등등 여러 기생충이 영양분을 빨아먹듯 빼먹는 셈이다.이참에 사전을 보니, 광절열두조충이라는 희귀종 기생충은 몸길이가 자그마치 10미터에까지 이르기도 한다. 또 한 3미터쯤 되는 이 기생충으로 병원 찾은 남자 얘기도 있는데, 이 얘기를 보자마자 나는 옛날 어렸을 때 회충을 입 밖으로 토해냈던 아이 생각이 났다.여덟 살 때 얘기다. 어린 눈에 그것은 참 기이한 광경이었다. 회충은 다 자라면 30센티미터쯤 된다는데, 나는 그때 꽤나 큰 회충을 만났던 것 같다. 회충이 몸 안에 들어와 살면 복부 팽만도 일으키고 구토도 일으킬 수 있다 하니 그 기생충은 확실히 회충이었던 것 같다. 그런데 이 회충은 소화기관 없이 체표를 통해서 사람으로부터 자양분을 흡수해 들인다나?영화 ‘기생충’으로 돌아가, 이 영화의 기생충은 택시 운전하는 기택의 식구들이냐? 하고 묻는다면 그런 것만은 아니다. 이 영화는 한 바퀴를 돌아, 지하실에 숨어 사는 전 가정부 충숙과 그의 남편 근세도 물론 기생충적이지만, 뭣보다 동익의 식구들 같은 사람들도 사실은 기생충일 수 있음을 시사한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설거지를 맡기고 정원 관리도 맡기고 운전도 맡기고 자식들 교육도 다 맡기고 사는 이 맡김의 사람들이야말로 가난한 사람들의 노동에 기생하는, 이를 위한 재화도 사실은 알고 보면 그들이 부리는 가난한 사람들에게서 나오는, 말 그래도 기생충일 수 있다. 잔뜩들 빨아먹고 산다는 것이다.어지간히 끔찍한 영화라고나 할까. 아무튼 칸 영화제 힘이 크기는 큰가 보다. BTS가 빌보드 차트를 ‘점령’했을 때 환호한 것처럼 이번에는 ‘기생충’황금종려상이 무서울 정도로 스크린을 점령했다. 한국 사람들은 예나 지금이나 자기의 존재 증명에 목이 마르다.더이상 미루면 안 될 듯한 압박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어, 급한 대로 작은 영화관 찾아 아무데나 앉아 보기는 봤는데, 며칠 지나 보니 20일자로 누적 관객수 864만 명, 천만 돌파가 멀지 않았다. 나쁘지 않은 일이다./방민호서울대 국문과 교수/삽화=이철진한국화가

2019-06-20

봉화 석조반가사유상

서양에는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한국에는 ‘생각하는 싯타르타의 반가사유상’이 있다. 동서양과 시대를 떠나 사람은 삶과 자신의 운명에 대해 깊은 고민에 빠져드는 것은 비슷한 모양이다.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은 지옥에 스스로 몸을 내 던지기 전 자신의 삶과 운명에 대해 고민하는 내면세계를 표현한 작품이다. 독특한 사실성으로 긴장감이 잘 드러나 있다. 반가사유상은 부처가 깨달음을 얻기 전 태자였을 때 인생무상을 느끼며 고뇌하던 모습에서 유래됐다고 한다. 사람이면 누구나 가지는 인간적 고뇌를 형상화 한 점에서 로댕의 작품과 공통점이 있다.의자에 반가좌(半跏坐)한 자세로 사유하는 모습의 반가사유상은 현재 약 40여 점이 전해진다고 한다. 그중 국립중앙박물관 보관의 국보 제78호와 제83호의 금동반가사유상이 가장 유명하다. 독특한 형식과 예술적 가치로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불교문화재로 손꼽힌다. 국립중앙박물관 내에서는 당연히 독보적 존재다. 불교 문화재의 슈퍼스타로 불린다. “지치고 힘들 때마다 보러온다”는 마니아 그룹이 생겼을 정도이니 반가사유상의 매력을 한번쯤 느껴 볼만하다.국보 83호 반가사유상은 2013년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에 반출 전시된 적이 있다. 그 당시 문화재 보험료가 무려 500억 원이었다고 한다. 문화재를 돈의 가치로 논하기는 곤란하지만 엄청난 자산임에는 틀림이 없다. 불행하게도 일본인 도굴꾼에 의해 발굴돼 정확한 출토지를 알 수 없는 것이 흠이다.반가사유상은 한국도 중국도 크기가 30㎝ 정도인 것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봉화 물야면 북지리에서 발굴된 석조 반가사유상(보물 제997호)은 비록 하반신만 남아 있지만 복원 추정한다면 2.5m로 세계에서 가장 큰 반가사유상이 된다. 현재 석조반가상은 경북대학교 박물관에 소장돼 있으나 가치만큼 일반의 관심을 끌지 못해 안타깝다.최근 일부 지역학자들이 석조반가상의 존재 가치를 다시 조명하자는 주장을 제기했다. 역사성과 문화적 가치를 정밀 조사해 제대로 된 평가를 받자는 뜻이다. 지방에 있다는 이유로 문화재 가치까지 과소평가 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될 일이다./우정구(논설위원)

2019-06-20

4대강 전철 밟는 탈원전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이대로 가도 될까.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정책에 대한 우려가 날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심지어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사업의 전철을 밟는 것 아니냐는 지적마저 나오고 있다.이명박 정부의 4대강 사업은 2008년 12월 29일 낙동강지구 착공식을 시작으로 2012년 4월 22일까지 22조원의 예산을 투입해 추진한 대하천 정비 사업이다. 이 사업은 한강, 낙동강, 금강, 영산강 등 4대강을 준설하고 친환경 보(洑)를 설치해 하천의 저수량을 대폭 늘려서 하천 생태계를 복원한다는 것을 주된 사업 명분으로 했다. 노후 제방 보강, 중소 규모 댐 및 홍수 조절지 건설, 하천 주변 자전거길 조성 등은 부수적 사업이었다. 당시 여당인 새누리당은 “국가 백년대계를 위한 대업이 시작됐다”며 “4대강 사업은 홍수예방, 수질개선, 일자리 창출 등 1석7조의 친환경 경제사업으로 사업이 마무리되면 활기찬 대한민국의 상징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4대강 사업은 너무 짧은 기간에 전국토를 파뒤집는 토목건설사업을 졸속으로 추진했다는 대목에서 적지않은 문제들을 잉태했다. 천문학적 규모의 예산이 쓰이는 사업이 단 몇 개월만에 결정됐고, 전문가들이 반대를 하는 와중에도 법 규정까지 바꾸어 가며 황급히 시행하는 바람에 겪지 않아도 될 온갖 부작용이 뒤따랐다.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공약 역시 4대강 사업처럼 대통령이 대선 공약으로 졸속 결정·추진되고 있다는 심증이 짙다. 대선 당시 문 후보는 ‘원자력 제로’를 목표로, 신규 원전 건설계획 백지화, 노후원전 수명연장 중단, 월성1호기 폐쇄, 신고리5·6호기 공사 중단 등을 주장했다. 또한 원전 비중을 2030년까지 30%에서 18%로 낮추고, LNG는 20%에서 37%, 신재생 에너지는 5%에서 20%로 높이겠다고 발표했다. 문 대통령은 집권 이후 신고리원자력발전소 5, 6호기의 공사를 3개월 간 일시 중단하고, 시민 배심원단들로 구성된 공론화위원회가 공사의 중단·재개 여부를 결정하도록 했다. 이 과정에서 1천억 원의 손실이 발생했고, 한수원 노조 등 원자력업계의 반발도 있었다. 지난 해 6월에는 한국수력원자력이 이사회를 열어 월성 1호기의 조기 폐쇄와 천지 1·2호기와 대진 1·2호기 등 신규 원전 4기 건설 영구중단을 의결했다. 정부의 탈원전 기조에 맞춘 결정으로 보인다.탈원전정책으로 피해를 입은 TK지역 민심은 크게 악화되고 있다. 자유한국당 대구시당위원장인 곽대훈 의원은 최근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문재인 정부는 탈원전은 60년에 걸쳐 진행된다는 궤변만 늘어놓고 있다”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문 대통령이 고리 1호기 폐로식에서 탈원전을 선언한 지 2년 만에 한전 등 에너지기업은 적자에 허덕이고 전 국토는 태양광 패널로 뒤덮여져 있다”고 지적한 뒤 “원전 관련 기업들은 줄도산에 빠졌고, 근로자들은 갈 곳을 잃어가고 있다”고 탈원전정책의 폐해를 강조했다.옛말에 ‘친구와의 약속을 어기면 우정에 금이 가고, 자식과의 약속을 어기면 존경이 사라지며, 자기 자신과의 약속을 어기면 내가 나를 믿을 수 없게 된다’고 했다. 대통령 역시 국민과의 약속을 어기면 안된다. 다만 대통령이 지켜야 할 최우선의 약속은 취임선서의 정신이다. 대통령은 취임할 때 국민앞에 “헌법을 준수하고 국가를 보위하며, 조국의 평화적 통일과 국민의 자유와 복리의 증진 및 민족문화의 창달에 노력하여 대통령으로서의 직책을 성실히 수행할 것”을 선서한다. 바로 이 선서가 대통령이 지켜야 할 최우선의 약속이다. 대통령이 공약한 탈원전 정책이라 해도 바로 이 최우선의 약속을 지키기 위한 정책수단일 뿐이다. 따라서 급작스런 탈원전정책 실행이 국민들을 힘들게 하고 있다는 판단이 섰으면 새롭게 국민적 공감대를 모으는 과정을 거친 뒤 차근차근 추진하는 쪽으로 선회하는 지혜가 필요한 때다.

2019-06-20

홑눈과 겹눈

송귀연수필가대낮인데도 다람쥐쳇바퀴 돌듯 몇 번씩 같은 자리를 맴돌고 있다. 매번 딸네 집을 찾을 때마다 길눈도장 확실히 찍어둬야지 하지만 생각은 그때 뿐, 또 이 모양새다. 홑눈의 길치가 가진 치명적 약점이다.잠자리는 겹눈에 육각형처럼 생긴 수만 개의 낱눈이 붙어 있다. 이 낱눈들이 렌즈 역할을 하여 360도 시야 확보가 가능하다. 어릴 적, 울타리 끝에 앉은 잠자리를 잡으려고 숨죽이며 다가갔지만 매번 놓치고 만 것도 그 때문이다. 나비의 겹눈은 넓은 범위를 보기 때문에 예쁜 꽃을 찾을 수 있다고 한다. 색깔구분이 가능한 겹눈은 어떤 사안을 종합적으로 판단하는데 유효하다 하겠다.어릴 적 엄마는 사물에 대한 시계가 단순했던 것 같다. 슈퍼우먼 같은 엄마였지만 한 가지 못마땅한 게 있었다. 가족들이 모두 원하는 일이라 해도 당신의 생각과 맞지 않으면 끝까지 반대했다. 특히 남존여비로 굳어진 교육관은 딸들의 진학을 허락하지 않았으며 나와는 심한 갈등을 빚었다. 그 여파로 아들 셋은 대학을 졸업했지만 딸들은 평생 정규교육을 받지 못한 한을 안고 살아야 했다.집안의 큰일이나 제사 때면 꼼꼼하게 처리하느라 일이 끝날 즈음이면 아예 파김치가 돼 버린다. 쇼핑을 할 때도 찬찬히 살피지 못하고 대체로 한 가지 디자인에 꽂히기 일쑤이다. 성질이 급한 탓도 있겠지만 종합적인 판단을 하는 일이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옷장엔 판박이처럼 비슷한 옷들로 채워져 있다. 나는 어느새 단편적인 엄마를 대물림하고 있었다.원시시대엔 남자는 사냥을, 여자는 집안에서 요리를 했다. 위험으로부터 자신을 지키면서 가족의 식량을 구해야 하는 남자는 당연히 시야가 넓어야 했고 고도의 종합적 판단을 필요로 했다. 반면 여자는 집안에서 한 가지 일에만 집중하다보니 시계가 좁아졌다. 자연스럽게 사고가 단편적으로 굳어졌다. 남자와 여자의 차이는 성적이기보다 오래된 생활환경의 영향에서 기인했다고 볼 수 있다.젊은 날 나는 너무 많은 것을 가지려 했다. 남편과 자식이 남보다 앞서길 바랐으며 부와 명예마저 거머쥐고 싶어 했다. 수천수만 개의 낱눈을 만족시키고 싶었다. 하지만 세상의 것들은 가지려하면 저만치 달아났고 나는 또 그걸 허겁지겁 좇아갔다. 욕망의 겹눈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조선시대 화가인 최북은 사물에 대한 경도(傾倒)를 경계하여 자신의 한쪽 눈을 송곳으로 찔러버렸다. 시류에 얽매이지 않고 오직 그림 한가지만으로 일생을 살고자 했던 때문이었다. 샤갈의 그림은 노후로 갈수록 유아적이 되었고 사물을 단순화시켰다. ‘크게 교묘(巧妙)한 것은 서툰 것과 같다’는 말로 졸미(拙美)를 추구한 추사 역시 한 가지 정신세계에 집중한 인물이다. 이들이 세상의 권력이나 부를 지향하였다면 이와 같은 시대적인물의 탄생은 결코 쉽지 않았을 것이다.복잡했던 도시생활을 접고 시골에 들어와 소욕지족(所欲知足)의 삶을 산지도 어언 수년째이다. 식료품을 구하는 일부터 사람을 만나는 일까지 모든 것이 불편한 시골생활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이러한 불편함에 익숙해졌다. 복잡하기만 했던 수많은 낱눈 같은 것들을 하나 둘 버리고 나니 오히려 마음이 홀가분해졌다. 별을 관측하는 허블망원경은 천체를 정밀하게 보여준다. 초점을 단순화 또는 집중하는 원리로 먼 곳을 볼 수 있게 만들어졌다. 홑눈을 가진 거미는 동물처럼 정확한 상을 맺지는 않지만 세밀한 움직임을 감지하는 능력은 훨씬 뛰어나다. 모든 것을 다 보리라는 욕망을 버리고 단 하나만을 추구한다면 그것이 훨씬 가치 있는 일이 아닐까.어쩔 수 없이 딸에게 전화를 했다. “엄만 매번 왜 그러우?” 핀잔의 목소리가 휴대폰 저쪽에서 들려온다. 어쩌랴! 홑눈의 유전자를 가졌는데. 아파트 단지 위로 키클롭스의 눈 같은 해가 선명하게 떠 있다.

2019-06-19

댄디와 데카당스에 대해

영어의 댄디(dandy)는 ‘멋쟁이’를 뜻하며 댄디즘(dandyism)은 ‘멋쟁이 취미’를 뜻한다. 하지만 이들은 천박한 멋쟁이가 아니라 속물주의를 배격하며 정신적 귀족주의를 자칭하는 ‘진짜’ 멋쟁이를 일컫는다. 이러한 멋쟁이들은 지금도 프랑스에 많이 살고 있는데, 과거에는 조금 심했던 것 같다. 그들은 얼마나 멋쟁이였을까? 이를 위해서라면 댄디에 대한 묘사를 한 번 따라가 보는 것이 좋겠다.“귀금속 세공사 르콩트가 세공했다는 발작의 지팡이는 신화가 되었다. 끝이 금으로 된 그의 등나무 지팡이 끝에는 수많은 터키석이 박혀 있고 중앙의 작은 구멍 안에는 한스카 부인의 초상화와 그녀의 머리카락 한 움큼이 들어있다. 당시 발작은 이 지팡이 값으로 700프랑 가까이 되는 돈을 세공사에게 지불해야 했는데, 그 값어치는 파시 거리에 있던 그의 집 일 년 치 집세 만큼이었다고 한다. 댄디에게 있어 지팡이가 대변하는 소품이 단순한 과시 이상의 대상, 즉 숭배의 대상임을 알 수 있는 부분이다.여기서 ‘구별’에 대한 정의를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이탈리아의 초상화가 조반니 볼디니가 그린 몽테스키외의 초상을 보면 된다. 댄디 스타일의 가장 완벽한 이미지로 평가받는 그의 초상화에는 고전적인 절제미와 우아함, 19세기 후반의 현대성이 동시에 반영되어 있다. 갈색과 회색이라는 동색 계열의 양복은 모델의 섬세함을 나타내지만, 무심한 듯한 얼굴과 지팡이를 든 거만한 몸짓은 특권층의 그것에서처럼 거리감을 만든다. 한편으로는 드러내고 한편으로는 적당한 거리두기를 통해 진실을 숨기고자 하는 댄디의 욕망을 여실히 보여주는 부분이다. 어쩌면 댄디가 그토록 원했던 구별의 욕망은 실상 숨고자 하는 욕망의 다른 이름이 아니었을까? 몽테스키외의 초상에 영감을 받은 마르셀 프루스트는 후에 샤를뤼 남작이라는 인물을 창조하기도 했다.” (조은라, ‘댄디즘 - 이념과 형식의 철학’, 프랑스문화예술연구 41, 프랑스문화예술학회, 2012.8, 420~421).그런데 이러한 댄디는 퇴폐를 뜻하는 데카당스와 함께 연계되어 불린다. 댄디는 데카당스다, 뭐 이런 식으로 말이다. 데카당스란 파손, 폐허, 부패, 더 분명하게는 퇴행적 현상이다. 이렇게 서로 어울려 보이지 않는 단어들은 어쩌다 짝패가 된 것일까?이를 위해서는 근대성의 특성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근대성은 낭만주의와의 비교를 통해 분명해진다. 낭만주의는 목가적이며 전원적이다.이와 달리 모더니티는 도시적 감수성에서 비롯한다는 것이다. 낭만주의는 농업중심의 경제구조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면 근대성은 도시성과 자본주의적 경제구조를 근간으로 한다. 이러한 도시적 속성의 핵심에는 벤야민이 언급한 바와 같이 속도와 이러한 속도가 만들어내는 촉각적이며 즉각적인 반응이 놓여 있다.대중들은 대량생산되는 상품을 더 빨리 소비하고, 그 소비가 효력을 잃기 전에 또 다시 소비한다. 소비의 속도를 만드는 주체는 대중이 아니라 상품이다. 오히려 상품이 소비의 속도를 부추긴다. 상품은 망치로 내려치는 충격과 같은 직접성을 가지며, 대중은 그러한 상품 앞에서 이성과 합리성을 마비당한 채 계속해서 소비한다. 근대는 이성과 합리를 요구하지만, 근대적 자본이 만들어낸 상품은 비이성적이며 비합리적인 충동적 소비를 강요한다. 근대적 군중은 근대적 자본이 만들어낸 상품의 시장을 휩쓸면서 동시에 스스로 휩쓸린다.자본주의는 상품의 생산력과 제품의 질적 향상을 진보라고 부른다. 이러한 진보의 끝에 유토피아가 도래할 것처럼 광고한다. 하지만 그 끝은 영원히 걸어도 닿을 수 없는 소실점과도 같다.‘미델하르니스의 길’에서처럼 하나로 모여지는 점 따위는 멀리서 관조할 때만 나타난다.직접 그 길에서 걸으면 소실점은 항상 소실점으로만 나타날뿐 결코 하나의 점으로 모아지는 곳은 없다. 무한함수처럼 언젠가 어떤 수로 수렴할 것이라고 말하지만 아무리 늘어놓아도 수렴되지 않는다. 유토피아는 진보의 속도가 아무리 빠르더라도 그 속도만큼 뒤로 물러날 뿐 그 윤곽조차 보이지 않는다. 늘 그만큼의 점만으로 존재한다. 그러면 이렇게 요약할 수 있겠다. 근대의 가장 중요한 속성은 속도며 그러한 속도를 기반으로 한 진보다.데카당스와 댄디즘은 이러한 근대적 진보에 저항한다. 데카당스를 이루고 있는 수다한 의미 중 퇴행성은 퇴폐의 성격을 가장 잘 설명해주는 말일 것이다. 퇴폐는 근대적 진보에 저항하며 그 자리에서 썩어가고자 한다. 이 퇴행은 근대의 진보적 정신에 의문을 제기하며 그러한 정신 전체를 파괴하고 폐기시킨다.댄디즘은 이러한 데카당스와 공모한다. 댄디즘은 기본적으로 근대적 대량생산에 반대한다. 대량생산에 반대한다는 것은 이를 가능하게 만드는 수치화나 표준화를 반대한다.예컨대 로베르 드 몽테스키외 백작(Robert de Montesquiou·1855∼1921)은 슈트와 그가 낀 장갑과 오른손에 든 지팡이까지도 결코 대량생산 될 수 없는 수공예품으로 자신을 감싸고 있다.그램 질로크는 댄디로서의 산책자를 언급하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음’이 이 산책자의 유일한 일”이라고 했다. 이것은 매우 적확한 지적이긴 하지만 이어지는 설명은 수긍하기 어렵다. 그램 질로크는 댄디를 영웅주의에서 기인하는 자기과시 정도로 치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댄디를 “단지 속이 빈 저항”을 일삼는 게으름뱅이, “영웅이면서 영웅주의를 연기”하는 사기꾼 정도로 단정짓는다. 그러면서도 “불현듯 꿈에서 깨어나기를 기다리는 게으른 몽상가이기에 현대성의 참된 영웅”이라는 앞뒤가 맞지 않는 결론으로 논의를 마무리짓고 있다(발터 벤야민과 메트로폴리스, 304∼311면).그런데 왜 댄디가 ‘영웅적 성격’의 소유자인 것일까. 벤야민은 댄디가 가진 낭만성을 완전히 제거한 자리에서 교환가치나 사용가치로 환원될 수 없는 ‘무용의 가치’ 즉 ‘전시가치’를 발견해 내고 있다. 자본은 노동을 어떻게 생산성을 향상시키는 방식으로 이끌어갈 것인지를 고민한다. 그러한 효율성의 결과로 성립되는 것이 사용가치와 교환가치다.하지만 전시가치는 오로지 스스로를 과시할 뿐이다. 댄디는 아케이드를 런 어웨이처럼 오가며 자신을 과시한다. 그러한 전시는 결코 자본이나 전시로 환원되지 않는다. 바로 이 지점이 자본주의 스스로를 붕괴시킬 수 있는 균열지점이다. 아감벤식으로 말하면 이 장치가 포획하는 것은 인간의 행위를 자본주의적인 목적으로부터 떼어내 헛돌게 만드는 일이며, 그리하여 새로운 가치를 열어 보이는 일이기 때문이다(세속화 예찬, 134면).댄디는 돈의 경제적 쓰임과도 무관하게 사치하며 게으름뱅이와 같은 태도를 보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근대적 자본이 추구하는 이윤, 축적, 소유의 관념을 무너뜨리고 오로지 돈의 사용 자체에 몰입한다. 댄디는 비효율적 생산, 이윤 없는 소비를 일삼으며 생산과 소비, 이윤과 효율이라는 자본주의의 핵심적 두 축을 무력화시킨다.공강일 서울대 강사·국문학이것은 어떤 특정한 방향을 가진 가능성이 아닌 텅빈 공간을 만들어내는 가능성이다. 가능성은 오직 잠재태로 존재하며 그 잠재태의 가능성은 과거의 흘러간 이미지 속에 담긴 미래의 흔적을 발견하는 현재(지금-여기)의 임무다.현재는 규정될 수 없고, 관조될 수 없으므로 잠재적인 것은 늘 잠재적인 것으로 남는다. 댄디은 근대를 과거로 되돌리지 않는다. 다만 근대적 속도를 무화시켜 제자리에 머무르게 한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위협을 느낀 근대성은 데카당스와 댄디를 인신공격하여 불명예스러운 것으로 만들어 추방시킨다. 하지만 추방될 리 없다.왜냐하면 데카당스와 댄디는 근대성과 함께 태동한 것이지 근대성의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댄디와 데카당스는 근대적 정신과 더불어 언제든 균열과 전복의 지점으로 남는다.

2019-06-19

고르바초프의 교훈

김규종경북대 교수·노문학1985년 3월 10일 소련 공산당 서기장 체르넨코가 서거하고, 이튿날 고르바초프가 54세 나이로 서기장에 취임한다. 소련 공산당 서기장 가운데 1917년 10월 사회주의 혁명 이후 출생자는 고르바초프가 유일하다. 장로정치(長老政治)에 익숙한 소련은 젊고 역동적인 고르바초프에게 묵직한 과업을 부여한다. 위대한 미국의 재건을 내세운 레이건의 국방과 외교정책에 효율적으로 대응하고, 소련내부의 적폐를 청산하는 역사적인 과업.케네디와 존슨, 닉슨을 거쳐 15년 넘게 2천억 달러를 쏟아 부은 베트남전쟁에서 참패한 미국은 1979년 호메이니가 이슬람 혁명으로 이란의 최고지도자가 되는 것을 수수방관해야 했다. 인권과 민주주의, 동서화합을 주도한 카터는 강력한 미국의 재생을 선언한 레이건에게 패배한다. 친기업과 부자감세, 작은 정부로 표현되는 신자유주의를 내세운 레이건은 천문학적인 국방예산 증액으로 사회주의 심장부 소련을 압박한다.휘청거리는 제국을 물려받은 고르바초프는 페레스트로이카(perestrojka)와 글라스노스트(glasnost)로 국내문제에 천착한다. 사회주의 체제를 온존하면서 국가재건을 도모하겠다는 것이 페레스트로이카의 핵심이고, 각종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겠다는 것이 글라스노스트다. 후자의 극명한 본보기가 1986년 4월 26일 발생한 체르노빌 원전사고다. 이전 권력자들 같았으면 감추기에 여념이 없었을 터이나, 고르바초프는 모든 것을 밝히도록 한다.고르바초프는 소련의 당면문제를 관료주의와 알코올중독, 두 가지로 압축한다. 자동차에 문제가 생겨 수리를 맡기면 동베를린에서는 3개월, 레닌그라드에서는 6개월, 모스크바에서는 1년이 걸리던 때. 끝없는 서류와 문건, 승인절차와 도장 따위로 일을 지연시키고 효율을 떨어뜨리는 관료주의. 복지부동과 상명하복으로 악명 높은 관료주의 척결과 국민의 30%를 넘어서는 알코올중독이 제국을 80대 동맥경화 노인으로 만들고 있었다.산적한 현안에 고르바초프가 골머리를 썩일 때 예상치 못한 문제가 발생한다. 아제르바이잔 내부에 자리한 나고르노-카라바흐를 둘러싼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 사이의 해묵은 민족문제가 터진 것이다. 1988년 일이다. 이것은 이슬람의 아제르바이잔과 기독교의 아르메니아 사이의 종교분쟁이기도 하며, 훗날 유고연방에서 벌어진 보스니아 내전을 앞선 사건이기도 하다. 고르바초프는 이 문제를 지나치게 낙관적으로 생각한다.사회주의 소련에서는 200여 종에 이르는 모든 민족과 종족이 동등한 지위를 가졌다. 소련을 구성하는 핵심세력은 대러시아, 백러시아, 우크라이나였지만, 헌법상 지위는 차별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그루지야 출신의 스탈린이 레닌의 뒤를 이을 수 있었다. 사회주의 원칙에 충실했던 고르바초프는 민족문제 발생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것이 그의 실각과 제국의 몰락을 재촉하는 아킬레스건으로 작동한다.홍콩 시민들의 반중시위가 세계적으로 화제다. 중국 공산당 정부의 ‘송환법’에 저항하는 홍콩 시민들의 강력한 함성이 지구촌 곳곳을 달아오르게 한다. 중국이 원하면 홍콩인이나 홍콩을 방문하는 외국인까지도 중국송환을 가능하도록 하는 것이 송환법의 요체(要諦)다. 이 법안이 관철되면 홍콩의 반체제인사와 인권운동가들이 중국본토로 송환되는데 악용될 것이라는 해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홍콩은 1984년 등소평과 대처의 ‘일국양제(一國兩制)’ 원칙에 따라 1997년 중국에게 이양된다. 홍콩 주권반환 이후 50년 동안 중국이 홍콩의 외교와 국방주권을 갖되 홍콩에 자치권을 부여하는 것이 일국양제의 고갱이다. 송환법은 그것을 뿌리째 흔들고 있다. 740만 인구의 홍콩을 14억 중국이 경시한다면 그것은 대만과 또 다른 일국양제 문제로 확대될 수 있다. 나아가 그것은 중국전체의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고르바초프의 교훈이다.

2019-06-19

임금의 초대를 받은 남자

밤중에 누군가 대문을 두드립니다. “임금의 명령을 전하러 온 사람이오. 임금께서는 당신을 데려오라 하셨소.” 남자는 무슨 일로 임금이 자기를 부르는 지 알 길이 없습니다. 혼자서 궁궐로 갈 용기가 나지 않습니다. 밤을 꼬박 새우고 아침 일찍 집을 나섭니다.남자에게는 세상에 둘도 없는 친구가 있습니다. 친구를 설득해 궁궐에 같이 들어가자고 요청합니다. 친구는 안색이 변하며 거절하지요. “미안하네. 약속이 있어서 갈 수가 없네.” 두 번째 친구를 찾아갑니다. “자네 말 대로 함께 가기는 하겠지만, 궁궐 안까지는 어렵겠네.” 실망한 남자는 마지막으로 친구 집을 찾아 문을 두드립니다. “걱정 말게. 자네같이 착한 사람에게 무슨 잘못이 있다고 임금이 벌을 내리시겠는가? 내가 함께 가서 혹시라도 자네가 무슨 오해를 받는 일이 있으면 내가 잘 말씀드리도록 하겠네. 서둘러 궁에 가 보세. 12시까지 도착하려면 빨리 가야 할 것 같네.” 남자는 뛸 듯이 기뻐하며 친구와 함께 대궐로 향합니다.탈무드에서는 이 이야기를 이렇게 해석합니다. 대문을 두드린 자는 죽음의 사신이지요. 모든 사람은 어느 순간 죽음의 초대를 받는 순간이 온다는 것입니다. 첫째 친구는 재물입니다. 살아 있는 동안 누구나 재물이 가장 진실된 친구라고 생각하지만, 막상 재물은 살아 있는 동안 필요한 것이지 죽을 때는 동행할 수 없는 것을 의미합니다. 둘째 친구는 인맥 또는 가족, 친척입니다. 아무리 가까운 가족과 친척, 지인이라도 죽었을 때 장례식까지만 함께 하지 무덤 속까지 따라올 수는 없다는 것이지요. 마지막 친구는 무엇일까요? 탈무드는 선행이라 말합니다. 착한 행실은 그가 살아있을 때는 별로 보답도 해 주지 않고 빛나게 해 주지 못하지만 죽은 뒤에는 영원히 그와 함께 계속 동행한다는 것이지요.초등학교 다닐 때 일일일선(一日一善) 즉 하루에 착한 일 한 가지를 하기 숙제가 있었습니다. 아직까지 기억에 남아 있는 것을 보면 제 삶에 강력한 인상을 남긴 숙제였음이 분명합니다. 매일 한 가지 선행을 하기 위해 이리 저리 고심했으니까요. 약한 자들, 결핍 가운데 신음하는 이들, 굶주리고 있는 자들, 소망을 잃고 하루 하루 허무하게 지내는 이들에게 베푸는 우리의 작은 손길과 관심 한 조각이 우리를 살리고 그들을 살립니다. 톨스토이는 말합니다. “선행이 어떠한 목적을 위해 행해진다면, 그것은 이미 선행이 아니다. 목적이 없을 때 비로소 참된 선행이 되는 것이다.” /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 대표

2019-06-19

감성팔이

김병래수필가·시조시인인간은 이성적 동물이라고 하지만 인격의 형성에는 이성에 못지않게 감성(感性)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감성과 이성은 상반되는 개념이지만, 그 둘이 적절히 조화될 때에만 정상적으로 사고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서적 반응을 처리하는 뇌의 전두엽 부위가 손상되어 감성이 마비되면 기억이나 언어, 운동, 시각 등 다른 기능이 멀쩡해도 정상적으로 의사결정을 못하고 엉뚱한 말이나 행동을 반복하게 된다는 사실이 실험으로 밝혀졌다. 공감능력의 결핍으로 끔찍한 범죄를 저지르고도 죄의식을 못 느끼는 사이코패스나, 분노조절이 안 되어 폭력적인 언행을 일삼는 사람의 경우도 감성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범람하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서는 감성을 자극하는 것이 그중 효과적이다. 상품의 광고는 물론 개인이나 단체의 사업 홍보에도 감성적 접근이 우선으로 채택되는 이유다. 휴대전화 하나로 언제 어디서나 온갖 정보를 접할 수 있는 디지털시대에는 이성보다는 감성의 비중이 커지는 경향이다. 논리적인 사고나 판단보다는 말초적이고 감각적인 선전이나 선동에 휩쓸리기 쉽다는 얘기다.군중 속의 고독이라는 말처럼 감성을 자극하는 정보들이 넘쳐나는데 세상이 더 각박하고 삭막해지는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말초적인 감각이나 자극하는 것은 마치 바닷물로 해갈하는 것과 같다고나 할까. 목이 마르다고 바닷물을 들이켜 봐야 갈증이 더 심해지는 것처럼 오히려 감성의 피폐를 가져올 뿐이다. 맑은 우물물 같은 감성이라야 근본적으로 마음의 갈증을 해소하는 대책이 될 것이다.어떤 상품이 가진 성능이나 실용성도 감성의 포장을 하지 않으면 제대로 상품가치를 가질 수가 없기 때문에 감성적 접근을 상품 마케팅의 주요 전략으로 삼게 마련이다. 그런데 그 전략이 지나쳐서 실질과는 동떨어진 과대포장이나 허위광고가 되어서는 ‘감성팔이’라는 오명과 함께 불신과 외면을 받게 된다. ‘감성’에다 ‘팔이’란 접미사를 붙인 이 말은, 소기의 목적달성을 위해 일부러 대중의 감성을 자극하는 연출을 비꼬는 말이다.상업적 마케팅을 위한 감성팔이는 결국 소비자들의 비난이나 외면으로 끝날 일이지만, 정치권에서 자행되는 감성팔이는 그 미치는 여파가 상당히 심각할 수 있다. 왜냐하면 정치적 판단이나 결정은 국가의 명운이 걸린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나 경제와 국방의 문제를 감성팔이로 해결할 수는 없는 일이다. 최저임금 인상이나 퍼주기식 복지, 강성노조에 영합하는 정책 등은 감성팔이식 포퓰리즘의 혐의가 다분하다.좌파들 중에서는 세기적인 명장면이라고 감격해하는 이들도 있지만, 판문점 남북정상회담의 나무다리 연출도 결국은 감성팔이밖에는 남은 것이 없지 않는가. 북한의 김정은이 왜 핵을 포기하지 못하는지, 결국 핵을 포기할 수밖에 없도록 하려면 어떤 전략과 정책이 가장 적절한지, 냉철하고 엄정하고 치밀한 분석과 판단과 전략이 요구되는 것이지 감성놀음이나 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우리 민족의 일반적인 성향은 이성적이기보다 감정적이라고 한다. 정이 많다거나 정에 약하다는 것은 그만큼 감정적이라는 얘기다. 그만큼 감성팔이가 잘 먹혀드는 기질이라는 얘기도 된다. 국민을 선동하고 지지를 확보하기 위한 수단으로 정치권에서 자행되는 감성팔이는 심각하게 사실의 호도나 왜곡을 초래할 수 있다. 그런 선동이 역사의 흐름을 파탄의 길로 돌려놓을 수도 있다는 걸 베네수엘라 같은 외국의 사례에서 보게 된다.역사의 평가는 역사학자들에게 맡겨야 한다. 역사적 평가에도 좌우가 갈릴 수 있지만 정부가 나서서 한 쪽을 편드는 건 분명한 잘못이다. 현재의 정부가 할 일은, 지난 일을 자꾸만 들추고 뒤집는 게 아니라 오늘과 내일을 위해 전심전력 최선의 정책을 마련하고 실행하는 일이다.

2019-06-19

철립 테두리에 구워먹다 어느 순간 섞어 넣고 끓였다

쇠고기에 대한 열망은 강했다. ‘벌’도 무거웠지만 ‘열망’이 벌을 넘었다. “소를 불법 도축하면 사형, 전 재산을 몰수한다”라고 해도 소 불법 도축은 사라지지 않았다. 숙종 시대를 지나며, 소를 도축하는 이들을 부르는 이름이 ‘백정’으로 굳어진다. 그 이전에 사용했던 ‘화척’ ‘양수척’ ‘재우적(宰牛賊, 소 도축하는 도둑)’은 서서히 사라진다. 이민족으로 지냈던 이들이 조선 사회에 동화된다. 원래는 ‘도둑’이라고 불렀다. 우리 백성이 아니라는 뜻이다. ‘백정’은 하층민이지만 조선사람이다. ‘산속에서 모여 살면서 자기들끼리 결혼하고, 동냥질, 도둑질하던 이민족’이 조선사람이 된 것이다.소나 짐승을 도축하는 것이 합법적으로 바뀌었을까? 그렇지는 않다. 조선 말기까지도 민간의 사사로운 소 도축은 금지 사항이었다. 여전히 쇠고기의 이름은 ‘금육(禁肉)’, 먹지 말라고, 법적으로 금하는 고기였다. 법은 있되, 단속이 느슨해졌다. 법을 정확하게 지키지 않은 것이다.조선 초기는 경제적으로 어려웠다. 먹고 살기도 힘든 판에 농사용 소를 도축하여 쇠고기를 먹을 수는 없다. 단속이 엄했다. ‘조선왕조실록’ 태종 18년(1418년)5월의 기록이다.“(전략) 소경공(昭頃公)이 평소에 쇠고기[牛肉]을 좋아하였으니, 삭망제(朔望祭)에 내가 이를 천신(薦新)하고자 한다. 그러나, 그 물건이 심히 크니 가볍게 쓸 수가 없다. 내 생각에는 혹은 연빈(燕賓)이 있거나 혹은 종묘(宗廟)에 제사할 때 이를 천신하는 것이 어떠할까 한다.(후략)”연빈은 중국 사신이다. 종묘 제사는 왕실의 어른을 모시는 것이다. 역시 ‘봉제사접빈객(奉祭祀接賓客)’이다. 집권 18년. 태종은 힘이 강한 군주였다. 막내아들이 소경공, 성녕대군이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성녕은 열네 살에 죽었다. 삭망제는 매달 초하루와 보름의 제사다. 귀한 아들의 삭망제에 쇠고기를 사용하지 못한다. 소를 도축하는 것은 부담스럽다. 중국 사신, 종묘 제사에 소를 도축한다. 그때 조금 남겨서 소경공의 제사에 쓰자고 말한다. 소, 쇠고기는 이렇게 귀했다.조선의 1차 성장기는 태조 이성계(1335~1408년)로부터 성종(1457~1494년)까지의 100년간이다. 연산군, 중종 조를 지나면서 불과 100년 후에 임진왜란을 겪는다. 조선의 쇠퇴기다. 임진왜란 후 숙종 조까지 조선은 두 가지 어려움을 겪는다. 하나는 전쟁 피해고 나머지는 지구 전체가 겪었던 소빙하기의 대기근이다. 임진왜란의 상처를 치료하기도 전에 병자호란 등 모두 네 번의 큰 전쟁을 겪었고, 경신대기근(庚辛大飢饉, 1670~1671년) 등 4대 기근을 이 시기에 겪는다. 숙종 조를 지나며 정조대왕이 돌아가시던 1800년까지 조선은 제2의 르네상스를 맞는다. 숙종, 경종, 영조, 정조의 ‘제2 르네상스’ 시기 쇠고기 문화가 서서히 나타난다.무명자 윤기(1741~1826년)의 ‘무명자집_시고 제3책_시_시월 초하루의 고사’의 한 구절이다. 무명자는 영조 시절 벼슬살이를 시작하여 정조, 순조 등 세 임금을 모셨다. 18세기 중반에 태어나 19세기 초반에 죽었다.시월 초하루는 길한 날이니/옛 풍속이 또한 볼만했지/예법 있는 가문에선 묘사에 정성 쏟고/부유한 집안에선 난로회 단란하네(富戶煖爐團)‘난로단(煖爐團)’은 난로를 피워두고 모여 앉는 자리를 말한다. ‘난로회(煖爐會)’ 혹은 ‘난란회(煖暖會)’라고도 한다. 난로회는, “불판을 피우고 둘러앉아 고기를 먹는다”는 게 뼈대다. 당시로는 퍽 호화로운 풍습이었다. ‘무명자 윤기의 난로회’는 18세기 후반, 19세기 초반의 풍습이다.난로회는 우리 풍습이 아니다. 송나라에서 시작된 풍습이다. 18세기, 한반도에 새롭게 등장했다. 난로회에 대한 정확한 기록은 홍석모(1781∼1857년)의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 1849년)’에 나타난다.18세기 서울, 경기 지역에도 난로회의 풍속이 유행하여 10월 1일이 되면 화로에 숯불을 피우고 번철(燔鐵)을 올려놓은 다음 쇠고기를 기름, 간장, 계란, 파, 마늘, 후춧가루 등으로 양념하여 화롯가에 둘러앉아 구워 먹었다. 또 쇠고기나 돼지고기에 무, 오이, 채소 나물 등의 야채와 계란을 섞어 전골을 만들어 먹는데 이것을 열구자탕(悅口子湯) 또는 신선로(神仙爐)라고 부른다고 하였다.시기적으로 18세기라고 못 박았다. 기록은 19세기 중반이지만 난로회의 시기는 18세기다. 숙종, 경종, 영조, 정조가 집권기다. ‘난로회’의 날짜는 10월 1일이다. 음력이니 늦가을, 초겨울이다. 숯불을 피워 놓고 번철(燔鐵)에 고기를 굽는다. 오늘날 같이 가는 석쇠는 드물었다. 번철은 무쇠 솥뚜껑 같은 것이다. 전을 굽는 그릇이라고 전철(煎鐵)이라고도 한다. 기름, 달걀과 여러 가지 양념으로 간을 한다. 여럿이 둘러앉아 먹는다.“소의 숫자는 유한하니, 화수척, 백정뿐만 아니라 민간에서도 도축을 하면 언젠가 소의 씨가 마를 것”이라고 절박하게 상소했던 조선 초기 집현전 직제학 양성지가 보았다면 기겁할 풍경이다.난로회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이야기가 전해진다. “청국 사행(使行)이 빈번해지면서 새로운 소육(燒肉) 조리법인 난로회가 조선에서 유행하였다”는 내용도 남아 있다. 18-19세기 청나라에서 보았다고 했다. 만주족의 청나라 풍습이라는 뜻이다. 홍석모의 ‘동국세시기’에는 난로회가 ‘송나라 풍습’이라고 못 박았다. 근거도 뚜렷하다. “여원명(呂原明)의 ‘세시잡기(歲時雜記)’와 맹원로(孟元老)의 ‘동경몽화록(東京夢華錄)’에 기록되어 있다. 송나라 풍습에서 유래한 것으로 생각한다”고 했다.“세시잡기(歲時雜記)”에 “연경 사람들은 10월 초하룻날에 술을 준비해 놓고 저민 고깃점을 화로 안에 구우면서 둘러앉아 마시며 먹는데 이것을 난로(煖爐)라고 한다.”라고 하였다. 또 “동경몽화록(東京夢華錄)”에 “10월 초하루에 유사(有司)들이 난로에 피울 숯을 대궐에 올리고 민간에서는 모두 술을 가져다 놓고 난로회를 갖는다”라고 하였다.여원명은 여희철(Lü Xizhe, 呂希哲, 1039~1116)로 송나라 관료다. ‘원명(原明)’은 호다. ‘세시잡기’는 송나라의 풍습을 적은 것이다. ‘동경몽화록’의 저자 맹원로(孟元老) 역시 송나라 사람이다. 송(宋) 휘종(徽宗) 2년(1103년) 아버지를 따라 지금의 하남성(河南省) 개봉시(開封市)로 왔다. 동경(東京)은 개봉이다. 그 후 금(金)나라의 침입으로 남쪽 지방으로 피난 가서 산다. 여원명이, 자신이 살던 동경, 개봉의 번화함을 추억하며 기록한 것이 ‘동경몽화록’이다.구운 고기, 불고기로 짐작할 수 있는 ‘소육(燒肉)’은 이전 우리 기록에도 있지만, 18세기를 지나며 난로회와 연관되어 수시로 나타난다. 민간, 궁중을 가리지 않고 하나의 풍습이 된다. 조선 후기 실학자 연암 박지원(1737~1805년)의 ‘연암집_제3권_공작관문고_만휴당기’의 일부다.“내가 예전에 작고한 대부(大夫) 김공 술부(金公述夫) 씨와 함께 눈 내리던 날 화로를 마주하고 ‘고기를 구우며 난회(燒肉作煖會)’를 했는데, 속칭 철립위(鐵笠圍)라 부른다. 온 방안이 연기로 후끈하고, 파, 마늘 냄새와 고기 누린내가 몸에 배었다. (후략)”연암이 대단한 부호는 아니었다. 그런데도 난로회는 가능했다. 민간에 널리 퍼졌다는 뜻이다. 난로회는 ‘난란회’ ‘난회’ 등 여러 이름으로 불렸다. ‘소육(燒肉)’은 고기를 굽는다는 뜻이다. 일본인들이 ‘야키니쿠’라고 부른 것이다. 우리의 불고기가 일본 야키니쿠에서 시작되었다, 아니다를 따지는 것은 의미가 없다. 조선 시대 여러 기록에 ‘소육’이 여러 차례 나타난다. 부르는 이름이야 어떻든, 고기를 굽는 것, 불고기는 일제강점기 훨씬 전에 있었다. 특히 파, 마늘, 기름, 후춧가루 등을 양념으로 사용한, 오늘날의 불고기와 비슷한 것들도 유행했다.‘철립위(鐵笠圍)’라는 표현도 재미있다. ‘철립’은 쇠로 만든 군사들의 모자다. 모직 등 천으로 만들면 ‘벙거지모자(氈笠, 전립)’다. 철립위는 철립의 테두리에 고기를 굽는다고 붙인 이름이다. ‘전립투(氈笠套)’는 쇠로 만든 전골냄비다.철립위는 아래로 움푹한 그릇이다. 마치 전립, 벙거지모자를 뒤집어 놓은 것 같다. 둥근 테두리에 고기 놓고 굽는다. 움푹한 곳에는 각종 채소, 양념 등을 넣고 끓인다. 테두리의 고기가 익으면, 움푹한 곳의 국물에 찍어 먹는다. 석쇠나 번철이 아니라 벙거지모자 뒤집은 것 같다. 어느 순간, 고기와 채소, 양념을 벙거지모자 같이 생긴 ‘전립투(전골냄비)’에 섞어 넣고 끓였다. 섞는 것은 ‘골(骨)’이다. 비빔밥을 ‘골동반(骨董飯)’이라 부른다. ‘전립투+골’이다. 전립투골을 줄여서 전골(氈骨)이라 부른다. ‘전립투골’은 ‘전립골’ 혹은 ‘벙거짓골’이라고도 불렀다. 역시 전골이다. 불고기[燒肉, 소육]는 철립의 테두리에 고기를 구워서 중간 움푹한 곳의 장물에 찍어 먹는 구조다. 전골은 움푹한 곳에 모든 식재료를 다 넣고 끓여 먹는 음식이다. 입을 즐겁게 한다고 열구자탕(悅口子湯) 혹은 신선로라고 부른다고 했다. 불고기와 전골은 다른 음식이지만 같은 뿌리에서 시작했다. /맛칼럼니스트 황광해

2019-06-19

AI반도체

AI(인공지능)반도체는 정보를 저장하는 용도로 사용되는 메모리 반도체(D램, 낸드플래스 등)와 달리 정보를 처리하기 위해 제작된 반도체로, ‘시스템 반도체’라고 불린다.시스템 반도체는 주로 연산, 추론 등 정보 처리 목적으로 쓰이며, AI반도체를 비롯해 컴퓨터의 두뇌로 불리는 중앙처리장치(CPU), 스마트폰에서 CPU 역할을 하는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 차량용 반도체, 전력용 반도체, 이미지센서 등이 대표적이다.메모리 반도체 강자인 삼성전자가 이번에는 비메모리 반도체 공략을 위해 인공지능(AI) 시대를 선도할 핵심 기술인‘신경망처리장치(NPU·Neural Processing Unit)’사업에 본격 뛰어들겠다고 선언했다. NPU는 AI의 핵심인 딥러닝(심층학습) 알고리즘 연산에 최적화된 프로세서다.딥러닝 알고리즘은 수천개 이상의 연산을 동시 처리해야 하는 병렬 컴퓨팅 기술이 요구된다. NPU는 이러한 대규모 병렬 연산을 효율적으로 처리할 수 있어 AI 구현을 위한 핵심기술로 꼽힌다. 예를 들어 NPU를 활용하면 AI 연산 속도가 빨라져 증강현실(AR)·가상현실(VR) 등에서 인물과 사물의 특징을 빠르고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다.실생활에선 사진 촬영시 피사체 형태, 장소, 주변 밝기 등을 순간적으로 파악한 후 최적값을 자동 설정해 최상의 이미지를 얻어낼 수 있다.안면 인식, 지능형 개인비서, 자율주행 등에 활용 가능하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첫 결과물로 모바일 SoC(System on Chip)내에 독자 NPU를 탑재한 ‘엑시노스 9(9820)’을 선보였다.이 제품은 기존에 클라우드 서버와 데이터를 주고받으며 수행하던 AI 연산 작업을 모바일 기기가 자체적으로 할 수 있도록 스마트폰 자체 AI를 구현했다.삼성전자는 오는 2030년까지 시스템 반도체 분야 글로벌 1위를 목표로 NPU 인력을 2천명 규모로 10배 이상 늘리고 차세대 NPU 기술 강화를 위해 전사적 역량을 집중하겠다고 발표했다. 비메모리 반도체 분야에 새롭게 도전장을 던진 삼성전자가 AI 시대의 주도권을 잡게 되길 기대한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19-06-19

그만들 좀 하십시다

장규열한동대 교수놀라운 일이다. 어느 틈에 세계수준에 가 있는 한국인들이 있다. 손흥민과 이강인 선수가 그렇고 류현진 투수는 물론 BTS 일곱 청년들이 그렇다. 지금도 그러하지만 생각해 보면 이전에도 한국인들은 문화와 예술, 그리고 스포츠 분야에서는 이미 빼어난 기량을 표출해 왔다. 비디오아트 백남준은 앞선 감각으로 미술의 판을 흔들었으며, 정경화, 정명화, 정명훈 남매는 클래식 음악계를 한동안 쥐락펴락하였다. 분데스리가는 차범근 선수의 흔적을 기억하며 박지성 선수의 후광도 눈이 부시다. 김연아, 박찬호, 황영조, 조수미, 싸이 등을 거쳐 박찬욱과 봉준호 감독에 이르러 만개하고 있다. 반면, 우리 사회와 정치는 1990년대 초 구소련의 붕괴와 함께 저물어 간 이념의 잣대에 아직도 서슬이 퍼렇다. 왜 그러는 것일까? 정치와 사회도 문화나 예술처럼 변화와 발전을 보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보수와 진보 또는 우와 좌로 갈라서 대결을 벌이던 이념의 분단 현상은 사실상 지구상에서 한반도 이외의 지역에서는 그리 쉽게 발견되지 않는다. 완전히 소멸하지는 않았다 하더라도, 지난 세기 냉전의 소용돌이만큼 첨예하게 대치하는 일은 거의 없는 게 현실이다. 우리에게 그럴 까닭이 있다면, 아직도 극복하지 못한 분단의 현실이 아프게 다가오기 때문이 아닐까. 오천 년을 함께 살았고 (겨우) 칠십 년을 나뉘어 살았다는 대통령의 표현이 있었지만, 그 칠십 년 단절의 세월이 이처럼 뛰어넘기 힘든 철벽을 가져다주지 않았는가. 분단의 벽을 우리가 넘을 수 있을 것인지는 우리가 이를 넘기 위하여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살피면 알 수 있지 않을까. 아니, 우리는 정녕 분단을 해소하고 싶은 것일까? 닳아버린 표현, ‘통일’은 아직도 우리에게 소원이 맞는가? 질문은 각자에게 가능하다. 나는 통일을 바라고 있는가. 남과 북은 하나가 되어야 하는가.등 돌린 사람들이 다시 함께 하려면, 아무리 힘들어도 만나야 한다. 어색하고 거북하며 비위가 틀려고 셈법이 맞지 않아도, 꾸준히 만나 겨루고 맞추며 나누어야 하지 않을까. 끝내 밀어붙여 이루어내기가 어렵고 힘들기는 운동과 음악, 미술과 문화에도 마찬가지가 아니었을까. 가무에 능한 민족이어서 그런 분야에 일가를 이루어 왔다면, 21세기에는 소통과 화합에도 새 역사를 써 내릴 수 없을까. 예술과 문화가 주로 ‘개인’의 기량에 달린 일이었다면, 이제는 ‘집단’으로 민족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함께 모으는 기량을 발휘할 때가 되지 않았을까.나라와 백성을 위해 일한다면서, 정치인들은 명분과 실리를 따진다고 한다. 포항지진으로 집을 잃은 백성은 아직도 천막에 머문 지가 550일이 훌쩍 넘겼다. 속초를 산불이 매섭게 쓸고 간 기억도 계절을 넘긴다. 어려운 경제는 날이 갈수록 국민의 삶을 어렵게 한다. 이제 그쯤 했으면 함께 할 명분도 서로 만들어 주고 각 당의 실리도 적절히 챙길 만하지 않은가. 남북이 만나야 하듯이 당신들도 나라를 위하여 만나야 한다. 국민이 당신들을, ‘나라야 산으로 가도 철밥통 지키며 싸움만 하는 이상한 사람들’로 보기 시작했다는 걸 알고는 계시는가. 문제를 풀기 위해서 남북도 만나야 하고 여야도 만나야 한다. 해결의 가닥은 만나야 잡힌다.운동선수가 훈련에 땀을 흘리고 예술가가 혼을 불사르며 최고의 작품에 도전하듯이, 이제는 우리 정치가 걸작을 낳아주기 바랄 뿐이다. 이 땅의 백성이 가무에만 능하겠는가. 편 가르기와 패거리 정치에 능했던 만큼, 바른 정치와 선한 펼침에 몰두해 주시라. 믿고 맡긴 국민이 옛날과는 다르다. 당신의 모습에 진정이 실려있는지 국민이 알고 있다. 얼른 만나고 당장 섬겨 주시라. 국민은 오늘보다 나은 정치를 만나볼 자격이 있다.

2019-06-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