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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자녀와의 관계를 위한 마법의 언어

이수원계명대 교수·유아교육과말과 관련된 속담 중에 말 한마디가 천냥 빚을 갚는다는 속담이 있다. 말 한마디로 상대에게 용기를 주거나 기를 꺾을 수 있고, 위로를 하거나 좌절케 할 수도 있다. 성경 고린도전서를 살펴보면, 사랑은 불의를 보며 기뻐하지 않고, 진리를 보고 기뻐하는 것이라 했다. 자녀를 향한 부모의 마음도 이와 같을 것이다. 부모가 자식이 잘 되길 바라지만 그 마음이 말로 표현되지 않으면 누구도 이를 알 길이 없다.그러면 부모가 자식에게 하면 좋을 말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본 지면에서 두 가지 마법의 언어를 제안한다. 마법이라 명명한 이유는, 이 언어로 부모-자녀 간의 관계를 회복할 뿐 아니라 자녀가 성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첫 번째 마법의 언어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이다. 아이가(신체·정신의 안전이 보장된 상황이라는 전제 하에) 문제에 부딪힐 때 부모가 솔로몬이 되어 해결 방법을 알려주는 것 대신, 아이가 직접 해결 방법을 시험해 보도록 기회를 주는 질문이다.예컨대, “탑을 무너지지 않도록 쌓으려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부터 “바지를 입을 때 왼쪽 다리를 먼저 넣을 것인가 아니면 오른쪽 다리를 먼저 넣을 것인가” 등 삶 속에서 사소한 일까지 아이가 직접 해결하도록 기회를 줄 수 있다. 물론 시행착오를 겪을 수 있고 답을 찾기까지 시간이 걸릴 수 있다. 이 질문이 마법의 언어인 이유는, 아이가 직접 문제를 해결해 본 경험으로부터 자신감을 얻을 수 있고 의사결정 능력을 얻기 때문이다.각 가정에서 평균 자녀 수가 한 명 내지는 두 명이다 보니 자녀가 참으로 귀하다. 필자가 유치원에 근무할 때 한 아이가 내 손에 슬그머니 종이를 쥐어준 적이 있었다. 아이들은 선생님에게 사랑의 편지를 써서 선물로 주기도 했기 때문에 손에 있는 종이가 사랑의 편지일거라 생각했다. 손을 펴보니 그건 사랑의 편지가 아니라 쓰레기였다. 가정에서 부모님들이 아이의 쓰레기를 손수 버려주기 때문에 아이는 1m 앞 휴지통에 쓰레기를 직접 버리는 대신 선생님 손에 쥐어준 것으로 보였다. 아이가 할 일을 부모가 나서서 대신 해결해 주면 아이는 성장할 수가 없다.두 번째 마법의 언어는, “그럴 수도 있겠다”이다. 아이가 화가 나서 얼굴이 달아올라 당신을 노려본다고 치자. 혹은 아이가 화가 나서 발을 쾅쾅 굴린다고 가정해 보자. 어떻게 반응하겠는가? 동방예의지국인 우리 문화권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므로 어른 앞에서의 행동이 잘못되었다고 야단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상황을 솔직히 들여다보면 우리 어른도 화가 나면 할 수 있는 행동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 행동을 두둔할 뜻은 없다. 다만 아이가 느끼는 감정이 긍정적인 것이든 부정적인 것이든 있는 그대로를 인정해 주자고 말하고 싶다. 우리는 살면서 희로애락을 경험한다. 아이도 마찬가지다. 아이가 표현하는 감정을 억누르도록 지도하는 대신 “지금 네가 화가 났구나” 혹은 “서운한가 보다”고 공감해 보자. 아이 입장을 공감해 준다면 아이도 자신의 감정을 다룰 여유를 찾게 될 수 있다.“그럴 수도 있겠다”는 말은, 아이 뿐만 아니라 부부 관계, 직장 동료 관계 등에서 서로가 통(通)하게 하는 말이다. 이 말은 내 마음이 네 마음과 함께 한다는 말이다. 이 말은, 이데올로기나 이념을 뛰어넘어 서로의 처지를 이해하고 이해받고 싶은 우리 인간의 욕구를 인정한다는 말이다.계명대 유아교육과 학생들이 좋은 유아교사가 되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필자는 수업 중에 학생들이 위 두 언어를 되뇌도록 지도하고 있다. 언어는 습관이어서 위 두 언어가 우리 몸에 베여있지 않으면 쉽게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여기까지 읽은 독자들도 함께 되뇌어 보자. “어떻게 하면 좋을까?” “그럴 수도 있겠다.”

2019-04-11

한 계단 아래 서 볼 것

1980년대 중반의 일입니다. 한 유명한 교수가 뉴욕 지하철에서 큰 소리로 떠들고 객실 안을 마구 뛰어다니며 장난을 치는 아이들을 만납니다. 아버지로 보이는 남자는 고개를 푹 숙이고 눈을 감은 채 신경도 쓰지 않습니다. 무례한 사람입니다. 참다못한 교수는 말을 건넵니다. “여보시오, 아이들을 좀 어떻게 해 보시는 게 좋지 않겠소?” 그제서야 남자는 힘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합니다. “당신 말이 맞네요. 정말 미안합니다.” 남자의 눈에 눈물이 가득합니다. “하지만, 저는 지금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한 시간 전에 아이들 엄마가 수술실에서 사망했거든요. 그래서…”그 말을 듣고 난 교수와 지하철 객실 주위 사람들은 이 아버지와 그 아이들을 완전히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기 시작합니다. 방금까지 이 남자는 무례하기 짝이 없고 교양없는 쓰레기였지만 이제 아내를 너무도 사랑한 나머지 슬픔에 가득 잠긴 로맨티스트로 보이고, 돼먹지 못한 아이들은 엄마를 잃은 불쌍한 천사처럼 보이게 된 것이지요. 이 사건을 겪은 유명한 대학교수는 스티븐 코비 박사입니다. 그는 이 경험을 토대로 자신을 포함해 사람들이 얼마나 쉽게 눈 앞에 펼쳐진 현실을 ‘편견’에 사로잡힌 채 인지하고 있는가를 깨닫습니다.식량이 다 떨어져 일행과 함께 며칠을 굶으며 여행하던 중 공자는 제자 안회가 어렵게 쌀을 구해와 밥을 짓다 몰래 밥을 한줌 입에 넣는 장면을 목격합니다. 제자의 모습에 크게 실망했지요. 하지만 실상은 천장에서 흙이 떨어져 스승께 드리지 못할 부분을 버리자니 아까워 삼킨 것이었습니다. 공자는 잠시나마 의심한 것을 후회하며 말합니다. “나는 나의 눈을 믿었다. 그러나 나의 눈도 완전히 믿을 것이 못되는구나. 예전에 나는 나의 머리를 믿었다. 그러나 나의 머리도 역시 완전히 믿을 것이 못되는구나. 너희들은 알아 두어라. 한 사람을 이해한다는 것은 진정으로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이해는 영어로 Understand입니다. Under + Stand가 결합된 단어지요. 위에서 내려다보는 것도 아니고, 동일한 칸에서 수평적으로 눈을 맞추는 것도 아닙니다. 타인 보다 한 칸 또는 여러 칸을 아래에 서야 비로소 진실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안회처럼 억울한 사람은 없는가? 지하철의 아빠처럼 슬픈 사람은 없는가? 오늘은 계단에서 한 칸만 물러서서 상대를 텅 빈 마음으로 온전히 바라보아 주는 예쁜 하루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조신영 인문학365 대표

2019-04-11

한밤의 독바위역

신촌에 살 때는 그래도 시내 가까워 좋았다. 종로라 해도 지하철로 이십 분이나 걸릴까. 전철역까지 걸어가는 게 시간이 좀 걸리지만 교통이 그만큼 편한 데도 없다.은평 하고도 독바위역이라.북한산 자락이라 공기는 좋다지만 어디 한 번 가려면 시간을 꽤 들여야 하게 됐다.지하철 6호선이 있기는 있는데, 은평 쪽 끝이 고리 모양으로 생겨 응암역에서 역촌, 불광, 독바위, 연신내, 구산 거쳐 다시 응암역으로 나오게 된다. 이 사이에 있는 역들은 일방통행인데 특히 내가 오르내리는 독바위역은 지하철 출구가 하나밖에 없다. ‘1번 출구’가 처음이자 마지막 출구인 것이다.전철 노선 끝에 매달린 작은 고리 한 가운데 독바위역이 있다 보니 한 번 집에서 나오는 것도 일이요 들어가는 것도 일이다. 자칫 밤 열두 시를 넘기면 막차가 응암이나 그 앞의 새절까지만 운행하기 일쑤여서 다시 택시를 잡아타야 하는 고역을 치르기도 해야 한다.그런데 언젠가 보니 독바위역까지 운행하는 심야 막차가 있다. 지하철 시각표가 달마다 달라지는지 인터넷 포털 사이트나 어플에 없던 운행 전철이다.어디서 지체하든 지하철역까지 화급하게 달려가 막차를 잡아타는 기쁨은 나쁘지 않다. 더구나 이 6호선은 합정이나 마포를 지나면 막차인데도 승객이 뜸해진다.텅 빈 객차 안에 어떤 때는 혼자 호젓한 기분으로 앉아 가는 날도 있다.그러면 더욱 이 일 저 일 생각하는 게 많다.반대 방향 차창에 비친 내 모습을 바라보며, 나 지금 뭐하고 있나 생각하게 된다.작년에 세상 떠난 후배 웃는 얼굴이 요즘에는 자꾸만 생각난다.백혈병 걸려 항암해서 치유됐다 재발하는 바람에 몇 달 못 버티고 떠났는데, 그때 연세 세브란스 중환자실에 있는 것을 몇 번 찾아가 보지 못한 게 너무 미안하다.요즘에는 혼자 사는 사람처럼 옛 일들을 생각하며 가슴이 콱 막혀오는 통증 같은 슬픔을 느낄 때가 많다.독바위역까지만 운행한다는 안내방송이 나오고 전철이 이윽고 마지막 정거장에 서면 내리는 사람들은 그다지 많지 않다.지하철 6호선은 깊디깊다. 한밤의 지상으로 올라오는데 몇 층 되는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다시 절전으로 계단을 생으로 걸어 올라야 한다.힘들지는 않다. 다만, 지상으로 올라오는 시간이 길다는 것뿐.이윽고 하나밖에 없는 출구로 나온다.집으로 가는 길이건만, 외로움이 이렇듯 사무칠 수 있나.‘독바위’의 ‘독’ 자가 홀로 독 자 인 것 같다.깊고 깊은 어두운 밤이다./방민호서울대 국문과 교수 /삽화 = 이철진한국화가

2019-04-11

고려시대에도 ‘돼지고기 국’ ‘돼지국밥’이 있었다

서울 토박이가 물었다. 솔직히 표현하자면 ‘여자애같이’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조심스럽게 물었다. “얘, 너 대구에서 올라왔지? 너 시골 출신 맞지?”서울 토박이들의 특징 하나. 서울을 제외하면 죄다 ‘시골’이다. 이런! 광주도, 부산도 죄다 ‘시골’이다. 당연히 대구도 시골이다. 그래 인정하자. “응, 나 대구 출신이야!”또 묻는다. “그런데, 진짜 대구에서는 돼지고기로 국을 끓이니?” 한참을 못 알아들었다. 돼지고기로 국을 끓이지. 그럼, 끓이고말고. 그게 얼마나 맛있는데. 한참을 쳐다보다가 “그래 돼지고기 국 맛있다”라고 하자 못내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듯 묘한 표정이다. 조심스럽게 내뱉는다. “진짜 시골에서는 돼지고기로도 국을 끓이는구나!”아주 오랜 세월이 흐른 후, 알아차렸다. 서울 사람들은 국물에 빠진 돼지고기는 먹지 않는다는 사실을. 서울 사람들이 먹는 ‘국물에 빠진 돼지고기 음식’은 김치찌개뿐이다.◇ 불교를 믿어서 고기를 먹지 않았다?송나라 사신 서긍(1091~1153년)은 1123년 고려에 온다. 왕복 3개월, 고려 체재는 한 달 정도였다. 고려 수도 개성에 머물면서 대여섯 번 바깥나들이도 한다. 비교적 상세히 고려를 본 셈이다. 돌아가서 송나라 궁중에 고려에 대해서 보고한다. ‘고려 출장 보고서’가 바로 ‘선화봉사고려도경(고려도경, 高麗圖經)’이다. 이 책 제23권_잡속(雜俗)2_도재(屠宰) 편에 ‘돼지고기’가 등장한다.고려는 정치가 심히 어질어 부처를 좋아하고 살생을 경계하기 때문에 국왕이나 상신(相臣)이 아니면, 양과 돼지의 고기를 먹지 못한다. 또한, 도살을 좋아하지 아니하며, 다만 사신이 이르면 미리 양과 돼지를 길렀다가 시기에 이르러 사용하는데, 이를 잡을 때는 네 발을 묶어 타는 불 속에 던져, 그 숨이 끊어지고 털이 없어지면 물로 씻는다. (중략) 비록 국이나 구이를 만들더라도 고약한 냄새가 없어지지 아니하니, 그 서투름이 이와 같다.첫째, 불교를 믿어서 고기를 먹지 않는다는 것은 엉터리다. 만약 불교 때문이라면 지배층 즉, 국왕과 대신부터 모범을 보여야 한다. 고기를 먹지 않았던 것은 불교 때문이 아니다. 불교는 핑계일 뿐, 고기가 귀했기 때문에 금육을 한 것이다. 특히 소는 농사 도구였으니 피했고, 사신이 오더라도 미리 길러둔 양과 돼지를 내놓은 것이다. 둘째, 도축하는 방법은 서툴다. 오랫동안 도축을 하지 않으면 솜씨가 녹슨다. 게다가 원래 도축을 능숙하게 했던 나라가 아니다. 고기 만지는 모습이 아주 엉성하다.재미있는 것은 고기를 먹는 방법이다. ‘국과 구이[羹43D1, 갱자]’다. 고기를 자주 먹지 않았던 고려에서도 ‘돼지고기 국’ ‘돼지국밥’이 있었다는 뜻이다.중국의 시인 소동파는 1037년 태어나서 1101년 죽었다. 지금도 남아 있는, ‘동파육(東坡肉)’은 소동파가 시작한 음식이다. 소동파는 ‘고려도경’의 시대보다 약 50년 정도 앞선다. 소동파의 시대에 이미 중국에는 장에 고기를 넣고 졸인 음식이 있었다. 동파육은 선진적인 음식이다. 동파육을 먹다가 고려에서 불에 막 구운 돼지고기 국, 구이를 먹으며 얼굴을 찡그렸을 서긍의 얼굴이 떠오른다.◇ 기마민족인가, 농경민족인가고기는 유목, 기마민족의 먹을거리다. 깊은 산속 혹은 북방의 너른 터를 떠돌며 살았던 북방 기마, 유목민족들은 고기를 손질하거나 먹는 일이 익숙하다. 기후 때문에 어차피 농사는 힘들다. 곡물이 자랄 수 없다. 먹어야 산다. 사냥이 주업이다. 사냥을 통하여 얻은 고기는 유목민족의 식량이다. 지금도 몽골인들은 유목 생활로 짐승을 기른다. 고기가 주식이다.우리는 곡물을 주식으로 삼는 나라다. 우리도 기마민족의 피를 물려받았다. 고구려, 부여 등은 전형적인 북방 기마민족이었다. 이들의 피가 백제를 통하여 한반도에 스며들었다. 한반도 태백산맥 언저리에 살았던 동예, 옥저도 마찬가지. 부여, 고구려, 북방 기마민족의 피를 물려받았다.석학 이어령 선생은 “한민족은 모순된 민족”이라고 이야기한다. 기마민족의 피를 물려받았고 농경민족화 되었다. 기마민족과 농경민족의 특질이 뒤섞여 있다. 활을 잘 쏜다. ‘빨리빨리’를 외치면서도 된장, 간장 등은 오랫동안 묵힌다. ‘빨리’와 ‘느리게’가 뒤섞인, 모순된 민족이다. 오래전에는 우리도 고기를 잘 다루었다. 조선 후기 실학자 안정복(1712~1791년)이 쓴 ‘동사강목(東史綱目)’에 나오는 부여의 돼지 이야기다.“(전략) (부여는) 육축(六畜)으로 관직의 이름을 지어, 마가(馬加), 우가(牛加), 저가(猪加), 구가(狗加), 견사(犬使,) 대사자(大使者), 사자(使者)가 있다. 읍락(邑落)에는 토호[豪]가 있어, 백성을 하호(下戶)라 하여 (후략)”부여의 연맹체를 구성하는 중심세력 중 하나는 저가(猪加)였다. ‘저(猪)’는 돼지다. 때로는 ‘시(豕)라고도 한다. ‘가(加)’는 윗글에 나타나는 대로 지역을 다스리는 이, 즉 족장(族長)이다. 돼지 토템을 지닌 부족의 족장이 바로 ‘저가’다. 부여인들의 돼지는 집에서 기르는 돼지가 아니라 산속 멧돼지일 가능성이 크다. 멧돼지든, 기른 돼지든 돼지는 부여사람들 곁에 있었다.고구려 시대에도 돼지가 등장한다. 제사상에 돼지를 사용하고, 결혼 예물로도 등장한다.중국 ‘북사(北史)_고구려(高句麗)’ 편이 전하는 고구려의 결혼 풍습이다.“혼인에 있어서는 남녀가 서로 사랑하면 바로 결혼시킨다. 남자 집에서는 돼지고기와 술만 보낼 뿐이지 재물을 보내 주는 예는 없다. 만일 여자 집에서 재물을 받는 사람이 있으면, 사람들은 모두 수치스럽게 여기며 ‘딸을 계집종으로 팔아먹었다’고 한다.”낭만적이다. 서로 사랑하면 결혼시킨다. 재물을 받지 않고 돼지고기와 술 정도가 예물(?)이다. 고기는 귀하지만 아주 드문 식재료는 아니었다. 돼지고기와 술은 재물은 아닌 예물이다. 고급 음식이었지, 귀한 물품은 아니었다는 뜻이다.부여, 고구려는 기마민족의 나라다. 기마민족의 풍습은 따뜻한 곡창지대로 넘어오면서 변한다. 고려 역시 백제, 태백산맥 지역을 통하여 기마민족의 피를 물려받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기마민족의 특성은 사라졌다. 고려인들의 돼지 다루는 솜씨는 서툴렀다.◇ 거란과 몽골의 고려 침략과 고기 문화 전래고려 시대 고기 문화는 두 차례 한반도에 전래한다. 한번은 거란 침략기고 또 한번은 몽골 침략기다. 거란 역시 고기 문화를 가진 나라였다. 북방 기마민족인 거란과 몽골이 고려를 침략하면서 고기 문화도 자연스럽게 한반도로 들어온다.삼국시대 무렵 큰 도시였던 경주와 가야에는 난생설화가 전해진다. 경주는 계림(鷄林)이다. 닭의 도시다. 가야의 김수로왕도 마찬가지. 알에서 태어났다. 닭이나 새다. 돼지, 소, 개 등과는 거리가 있다. 호남지역은 백제, 고구려, 부여의 피를 받았다. 기마민족의 피다. 엉뚱하게도 한반도의 남쪽은 기마민족과 농경민족의 피가 뒤섞인다. 끊어졌던 기마민족의 고기 문화는 기마민족의 침략으로 다시 이어진다.조선 초기 기록이다. 세조 2년(1456년) 3월, 집현전 직제학 양성지의 상소다. 북방 기마민족의 고기 문화가 고스란히 드러난다.“(전략) 대개 백정을 혹은 ‘화척(禾尺)’이라 하고 혹은 ‘재인(才人)’, 혹은 ‘달단(97C3977C)’이라 칭하여 그 종류가 하나가 아니니, 국가에서 그 제민(齊民)하는 데 고르지 못하여 민망합니다. (중략) 또 전조(前朝) 때, 거란(契丹)이 내침(來侵)하니, 가장 앞서 향도(嚮導)하고 또 가왜(假倭) 노릇을 해 가면서, (후략)”화척은 양수척이라고도 불렀다. 천민이다. 재인은 묘한 단어다. 이들이 떠돌이 생활을 하면서 재주도 부렸다. 광대 패의 시작이 백정집단이라고 주장하는 근거가 된다. 달단은 더 묘한 단어다. 달단은 타타르 혹은 타르타르다. 터키, 동유럽의 북방 기마민족과 연관이 있는 민족이다. 생고기 스테이크를 타타르 스테이크(tartar steak)라고 부른다. 우리 육회와 닮았다. 이들은 모두 소를 도축하거나 동냥질, 도둑질한다. 자기들끼리 모여 살고 전국적으로 흩어져 있다. 굶주리는 이들이 늘어나면 도둑이 된다.뿌리는 거란 혹은 거란 주변의 기마 민족들이다. 이들은 거란의 고려 침략 시기, 한반도로 들어왔다. 침략군 혹은 침략군의 앞잡이로 고려에 들어온 이들이 전쟁 후 그대로 고려에 눌러앉는다. 할 줄 아는 것은 사냥과 도축. 사냥으로 잡은 짐승을 도축하고, 그걸 먹거나 내다 판다. 부족하면 도둑질이다.몽골인들도 마찬가지다. 제주도에 목장을 만들어 말을 키우고 고기 문화를 전한다. 그들은 일상적으로 먹던 고기다. 고려 사람들도 이들을 따른다. 사람, 문화가 같이 들어온다.돼지고기 이야기는 다음 회로 이어진다. 그 전에 돼지 이야기를 조금 더 잇는다. 내 추억 속의 돼지고기는 축구공이다. 시골에서 돼지를 도축하면(불법으로) 오줌보가 나온다.오줌보에 물을 채워서 축구공 대신 찼다. 물이 찰랑찰랑한 ‘가죽 축구공’으로 한나절씩 놀았다. 오줌보 축구공을 자주 찼으면 오늘날 훌륭한 축구선수가 될 수도 있었을 터이다.불행히도 시골 마을의 돼지 도축은 일 년에 네댓 번이었다. 축구공이 없었으니 실력이 늘 수 없었다./맛칼럼니스트 황광해

2019-04-10

브라운모터

브라운모터는 초미세공간에 있는 비평형 상태의 입자를 일정한 방향으로 이동시키는 동력장치를 말한다. 나노크기의 분자들은 용액속에서 다른 용매들과 충돌하면서 방향성없이 움직이는 ‘브라운 운동’을 하는데, 이 운동때문에 나노스케일의 초미세공간에서 분자들을 원하는 곳에 선택적으로 이동시키는 것이 지금까지는 불가능했다. 이 브라운운동을 제어해 나노입자를 특정방향으로 이동시키는 모터, 일명 ‘브라운모터’가 최근 국내연구팀에 의해 개발됐다. 이화여대 김준수 교수 연구팀이 올린 성과다. 연구팀은 나노입자가 DNA를 따라 한쪽 방향으로 이동하도록 DNA를 설계하고, 이를 이론 및 계산화학 연구로 증명했다. 음전하의 DNA와 양전하의 나노입자는 정전기적 인력으로 결합한다. 이 때 DNA구조가 유연할수록 나노입자와의 결합에너지가 낮고 결합하기 쉽다. 따라서 나노입자는 DNA의 유연한 부분을 향해 이동한다는 것이 확인됐다. 연구팀은 이 원리를 이용해 DNA의 유연성이 점진적으로 증가하는 구조가 반복되도록 합성했다. 그리고 주변 이온의 농도를 급격히 증가, 감소시키기를 반복했다. DNA와 나노입자의 결합에너지가 끊임없이 변화하면서 나노입자가 한쪽으로 이동하는 것이 증명됐다. 즉 384개의 염기쌍을 순차적으로 합성해 반복적으로 유연성이 변화하도록 설계된 DNA모델과 나노입자와의 결합에너지를 이용했다. 여기서 이온농도가 낮을 때는 반복적으로 비대칭적인 DNA-나노입자 결합에너지를 가지고, 이온농도가 높을 때는 대칭적인 결합에너지를 가진다는 사실이 확인됨에 따라 용액의 이온농도를 주기적으로 변화시킴으로써 비평형상태를 유도하고 나노입자를 일정방향으로 이동시킬 수 있게됐다.세계적 학술지인 ‘사이언스 어드밴시스(Science Advances)’에 게재된 이 연구로 초미세공간에서 DNA에 결합한 나노입자를 원하는 방향으로 이동시키는 나노스케일 브라운 모터의 설계 및 개발가능성이 증명됐다. 이에 따라 공상과학에서 등장하던 나노디바이스 및 나노응용기술의 개발이 한 걸음 앞당겨졌다는 평가니 인간의 과학이 어디까지 발전하는 지를 지켜보는 것은 매우 흥미진진한 일이다. /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19-04-10

산불과 지진

장규열 한동대 교수장래 희망이 ‘소방관’이라는 어린이들이 꽤 있다고 한다. 오늘처럼 자기중심적이며 이기적인 세상에 거칠고 험한 뉴스들이 흘러넘쳐도, 화마(火魔)로부터 사람들과 재산을 지켜주는 모습이 어린이들의 눈에도 감동을 주는가 보다. 동해안을 할퀴고 지나간 산불은 많은 사람들에게 피해와 상처를 남겼으며 정부와 지역공동체에 수다한 숙제를 안겨주었다. 계절적으로 건조한 공기와 때마침 불어오는 광풍에 급속하게 번져가는 불길을 하루 만에 막아낸 모든 이들의 수고와 헌신에 가슴을 쓸어내린다. 지난 수년간 우리에게 여러 모양으로 학습효과를 남긴 ‘안전’을 생각하는 사회 일반의 경계심이 이번 산불로부터 인명과 재산을 지켜내면서 시험대에 올랐던 것으로 보인다.이번 산불지역과 유사한 지리적 계절적 환경을 가진 여러 지역들에서 이번보다 훨씬 큰 피해를 남겼던 사례들을 기억하면서, 우리가 이번에는 천만다행의 경우를 남긴 것으로 보인다. 소방 공무원들과 산림청 특수진화대 등 현장에서 위험을 무릅쓰고 막아낸 이들에게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전국 각지로부터 출동하여 강원도의 산불을 함께 막아낸 이번의 경험은 아직도 우리에게 ‘함께 호흡하는 공동체’를 이루어낼 희망의 불씨가 남아있음을 확인하는 계기이기도 하였다. 더없이 경쟁적이며 필요 이상으로 다투기만 하는 세상의 모습 가운데에도 어려움을 당한 이웃을 위하여 모두의 가슴과 손길을 모았던 기억을 오래오래 간직했으면 한다. 공동체를 위협하며 다가오는 위험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으며 빈부를 구분하지 못하고 좌우를 차별하지도 않는다. 안전한 사회를 이루어 가는 일은 모두가 공평하게 안아야 하는 짐이 아닌가.‘포항지진’도 지역의 공동체가 공평하게 지혜를 발휘하여야 한다. 이를 두고 이념으로 덧칠을 하거나 진영의 정치적 이득을 생각하는 일은 없었으면 한다. 지역에 닥쳤던 우리 모두의 불행이며 모두에게 함께 닥쳤던 피해였음을 기억하면서 이를 어찌 함께 극복하고 새로운 지역공동체로 나아갈 것인지 생각을 모았으면 한다. 이를 잘못 다루어 자칫 갈등과 불화의 빌미가 된다면, 지진으로부터 오히려 돌이킬 수 없는 2차 피해를 모두가 떠안을 참이다. 책임의 소재를 차분히 가려내고, 피해정도에 상응하는 적절한 보상과 배상방법을 찾아내며, 포항의 미래를 열어가는 회복의 길을 만들어야 한다. 일련의 모색과 구상의 길에는 지역 공동체가 상식과 지혜를 모아 우리 지역이 이전보다 더욱 맑고 밝으며 미래지향적인 도시공동체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보통 시민의 눈에는 산불에도 지진에도 담론을 진영의 울타리에 가둘 까닭이 없다. 모두가 한마음으로 불이 난 자리에 달려가 힘을 합친 끝에 그나마 다행스런 결과를 보지 않았던가. 지진으로 무너진 지역의 경제와 심사에 우리도 한번 공동체가 하나가 되어 슬기로운 결과를 맞아볼 수는 없을까. 내 편과 네 편이 따로 있을 까닭이 없으며 편을 가른다 하여 더 챙길 이득도 딱히 보이지 않는다. 이제껏 혹 따로 앉아 생각을 모아왔다면, 이제라도 무릎을 맞대고 앉을 자리를 마련해 보면 어떨까. 지진 담론에 진영의 논리가 끼어들지 말아야 하는 까닭은 의외로 소박하다. 지진도 결국 ‘안전’과 뗄 수 없는 사안이 아니었던가. 커다란 충격과 혼돈을 겪은 터이라 격한 감상과 아픈 기억은 이해하고도 남는다. 지역의 미래를 세우기에 속좁은 진영논리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폭넓게 바라보고 더 멀리 내다보는 시선의 지평을 가져야 한다.산불을 막아내며 공동체 회복의 가능성을 엿본 김에 지진을 딛고 일어서는 길에서 이 지역의 ‘공동체’가 다시 살아나기를 기대해 본다. 지역은 내 것일 수도 없고 네 것일 수도 없다. 포항은 우리 모두의 것이 아닌가.

2019-04-10

지역경제의 해법은 ‘허리’에 있다

김진홍 한국은행 포항본부 기획조사팀장최근 경기부진으로 어려움을 호소하는 곳은 유독 포항만이 아니다. 전국에 소재한 다른 지방 도시들도 각자 나름의 고민거리를 하나 이상씩은 가지고 있을 것이다. 모두들 과거의 화려했던 그 지방의 경기를 추억으로 간직하고 있을 뿐이다. 추억은 언제나 아름답지만 그럴수록 바람직한 미래를 꿈꾸려면 지금의 현실에 대한 냉정한 진단이 전제되어야만 한다.경제는 심리라고들 한다. 맞는 말이다. 더구나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이른바 신바람 이론처럼 주변에서 북돋아 주면 자신이 가진 능력 이상을 발휘하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하지만 보다 냉철하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분명히 문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것을 그냥 덮어두기만 해서는 절대 그 현상의 병인(病因)은 해소할 수 없다. 어쩌다 운 좋게 그때마다 위기를 넘길 수는 있겠지만 유사한 여건이 다시 찾아오면 위기는 재발하기 마련이다.포항경제도 수십 년에 걸쳐 축적된 구조적인 문제가 있다. 누구나 직시하고 있는 문제이지만 단순한 단일 산업구조의 문제가 아니다. 그마저도 소재-중간재-최종재로 이어지는 순환구조가 부족하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어찌어찌 이어지는 대형 이벤트나 대내외 여건의 변화로 그때마다 위기를 잘 해소해왔다. 지난 10여 년 동안에도 굵직한 이벤트들이 많았다. 그로 인해 지역민들은 포항이 도약할 것이라는 기대감에 부풀었다. KTX의 개통, 포항-울산 고속도로 개통, 포항운하크루즈 등은 지역 관광산업의 주요 인프라로서 기대를 높였고 또 나름의 성과를 거둔 것도 사실이다.그러나 보다 근본적인 지역경제의 메커니즘에는 전혀 변함이 없다. 여전히 철강을 주력산업으로 하고 있고 그로 인한 지역 내 소비, 고용, 투자 등 모든 지표들은 덩달아 큰 힘을 쓰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면, 앞으로도 철강 산업을 둘러싼 대내외 여건이 계속적으로 악화된다면 여전히 지역경제는 활력을 잃고 버티기만 하면서 좋은 시절이 오기를 기다리기만 해야 할 것인가?우리는 이제 이 병인(病因)을 제대로 치료해야할 때가 왔다. 인구 50만 명의 대도시라는 직위조차 흔들거리고 있다. 거기에다 유례없는 지진까지 겪었다. 언제까지 우리 스스로 경제는 심리이므로 걱정하지 말고 아직은 괜찮다며 우리 스스로를 속여서는 안 될 것이다. 오히려 괜찮은 부분이 있더라도 심각한 위기상황이므로 일치단결해야한다고 세뇌할 수 있다면 그리해야만 할 것이다. 그래야만 어떠한 사안이라도 시론(市論)의 분열을 막고 지역의 동반자로서 공동의 목표를 위해 결집할 수 있다.그렇다면 우리의 병인이 무엇인지부터 인식할 필요가 있다. 포항경제를 몸으로 본다면 우리는 튼튼한 다리인 철강 즉 제1차금속제조업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우리의 머리도 뛰어난 편이다. 포스텍, 한동대와 같은 지역대학의 우수성은 새삼 말할 필요도 없다. 거기에 경주의 양성자, 포항의 방사광과 등 가속기 클러스터까지 갖추고 있다. 적어도 연구개발(RD)능력만큼은 전국 광역자치단체와 비교하더라도 전국구에 속한다.하지만 포항경제는 허리가 없는 기형적인 몸을 가지고 있다. 우리가 철강이라고는 하지만 제1차 금속은 수동적인 소재에 불과하다. 정밀기계, 금속가공, 부품제조분야가 허리인 셈이다. 모든 공업 분야에 적용 가능한 엔진, 기계공학이 적용되는 정밀기계 등 허리가 없는 셈이다. 포항경제는 뛰어난 머리와 튼튼한 다리만으로는 유연한 움직임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전문 기술을 보유한 수많은 중소기업으로 ‘허리’를 보완해야만 한다. 그래야만 포항경제는 온몸에 활력이 넘치고 어떠한 상황에서도 유연성을 잃지 않고 탄력적인 움직임을 보일 수 있는 완전체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

2019-04-10

유연한 사고방식을 키우려면

“2030년까지 20억개의 일자리가 사라질 것이다.” 토마스 프레이의 경고입니다. 구글이 선정한 세계 최고의 미래학자이지요. 70억 인류 가운데 직장을 갖고 있는 사람은 몇명이나 될까요? 절반을 잡아도 35억명입니다. 20억개의 일자리가 사라진다는 이야기는 앞으로 11년 동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 천지개벽이 일어난다는 뜻입니다.한국고용정보원은 최근의 보고서에서 2025년까지 국내 일자리의 60%가 로봇과 인공지능으로 대체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6년 후 이야기입니다. 늦기 전에 대비해야 합니다. 무엇을 어떻게 준비할 수 있을까요? 모든 것을 새로운 시각으로 보기 시작해야 합니다. 교육도, 직업도, 우리의 일상도. 이제 그 무엇도 우리를 보호해 주지 않습니다. 저 멀리 쓰나미가 100m 높이의 파도로 시시각각 다가오는 중입니다.일자리는 사라질 수 있지만 일거리는 지속적으로 생겨납니다. 토마스 프레이는 미래 일거리를 만들어 내는 ‘촉매 기술’에 주목하라고 힌트를 줍니다. 한 예를 들어 볼까요? 인공지능과 로봇이 앞으로 우리 사회 대부분의 노동을 감당한다면 무엇이 과도기적으로 필요할까요? 이런 시스템을 구축하기까지 어마 어마한 양의 코딩(coding)이 필요합니다. 프로그램을 짜는 사람, 그걸 코드로 변환하는 사람. 앞으로 미국에서만 100만개의 프로그래머 일자리가 필요하다고 예측합니다.미국의 어느 프로그래머 양성 아카데미는 코딩을 전혀 모르는 초보자를 놓고 가르칩니다. 4개월이 지나면 능숙하게 코딩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어 프로그래머로 거듭나게 해 줍니다. 4개월 학비는 1천200만원. 그러나 졸업 즉시 연봉 7만~10만달러(8천만~1억 2천만원) 계약으로 즉시 일자리를 얻습니다. 기존 직장에 불안을 느낀 사람들, 유명한 대학을 졸업하고도 취업 못하는 구직자들이 이 프로그래머 아카데미에 입학하려고 줄을 서고 있습니다.유연한 사고방식을 갖고 있느냐 굳어버린 사고방식을 고집하느냐가 생과 사를 가르는 문제일 수 있습니다. 유연한 사고방식은 헬스장에서 근육을 단련하듯 매일 일정한 방식으로 훈련해야 발전할 수 있습니다. 책과 물음표 그리고 노트와 연필 한 자루가 필요합니다. 시시각각 다가오는 거대한 쓰나미를 보고 발만 동동 구를 것이 아니라, 지금이라도 유연한 사고 방식을 키우기 위해 애쓰는 변화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날마다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며, 굳어버린 내 사고방식을 깨부수려 애써야 합니다./조신영 인문학365 대표

2019-04-10

피렌체와 파리 그리고 문화·예술의 도시, 대구

박준섭 변호사메디치가는 15세기에 모직물 공업조합과 금융업을 통하여 부호가문이 되었고 당시 공화정이었던 피렌체를 지배하게 되었다. 이 시기의 르네상스의 움직임은 베네치아, 제노바, 피렌체 등 이탈리아의 여러 도시에서 먼저 일어났지만 그 중에서도 피렌체는 르네상스를 이끈 중심이었고 메디치가는 그 피렌체를 만들었다. 메디치 가문의 시조인 코시모는 동서양을 합하고 세계제국의 수도가 되고 싶어 했다. 코시모는 찬란하던 고대 로마의 부활이라는 큰 목표를 세우고 이를 위해 인문주의 운동과 예술의 부흥을 실천했다. 또 코시모의 손자 로렌초는 플라톤 아카데미를 만들어 인문주의운동을 후원하였고,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선발하여 위대한 화가의 길을 걷게 했다. 그가 문예 부흥에 투자한 금액은 40만 프로란에 달하는데, 이를 현재 화폐가치로 환산하면 최소 3천억원에 이른다고 한다. 결국 피렌체는 메디치 가문이 주문한 예술품들로 도시 곳곳이 가득 채워졌다. 피렌체는 당대 유럽최고의 도시였을 뿐만 아니라 지금도 르네상스의 기원을 돌아볼 때 반드시 가봐야하는 세계적 도시가 되었다.또 파리는 르네상스 시대 이후에 이탈리아 여러 도시에 비하여 예술의 변방이었다. 프랑스를 중앙집권국가로 만든 루이14세가 국가적 차원에서 예술을 집중육성하면서 파리 예술은 압축성장을 하였다. 그는 르네상스에 이어 바로크 예술을 창조함으로써 예술의 중심이었던 로마를 따라잡기 위하여 로마에 아카데미 본원을 설립했다. 그는 치열한 경쟁 속에서 영재를 선발하여 교육시켰고 뛰어난 화가를 선발하는 살롱전도 열었다. 그 결과 로마에서도 인정받는 수준급 화가들이 배출되었다. 루이 14세는 이탈리아 유학파인 르브륑으로 하여금 베르사이유 궁을 건축하게 하였다. 르브룅은 총길이 670m에 달하는 이 궁을 지으면서 전쟁의 방, 대계단, 거울의 방의 상들리아, 천정화 등을 기획하여 만들었다. 파리는 드디어 세계가 주목하는 건축물과 예술품을 갖게 되었다. 근대 프랑스의 패스트팔로업 문화정책은 이후에도 계속되었고, 혁명기를 지나 나폴레옹의 시대에 이르자 로마의 수준이 근접하게 되었다. 그러나 파리의 살롱전 출신의 예술가들은 로마와 비슷한 작품을 만들어낼 뿐 더 이상의 발전은 없었다. 그저 로마와 비슷한 그림을 만들 뿐 파리는 로마를 결코 뛰어넘을 수 없었다.형식화되고 보수화된 파리의 살롱전에서 낙선한 화가들에게서 불만이 터져 나오자 나폴레옹 3세는 1863년에 결국 낙선한 작품들만 모아서‘낙선전’을 열었다. 낙선전에 출품한 마네를 비롯한 작가들이 후에 모네, 르누아르 등 인상파화가라고 불리는 작가들이 되었다. 쏟아지는 눈부신 빛의 순간을 포착한 그림이 새로운 미래를 만드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파리는 마네와 모테, 세잔 르누아르로 시작하여 고호, 고갱에 이르는 고난의 긴 여정을 거치고 나서야 비로소 새로운 미래를 제대로 창조할 수 있었고 세계 예술의 중심지가 될 수 있었다.대구는 언제부터인가 문화·예술의 도시를 표방하고 있다. 미술관, 음악당, 도서관 등 다른 도시에 있는 모든 건축물이 대구에도 다 있지만 어디를 돌아보아도 세계적으로, 아니 전국적으로 내세울만한 건축물이 하나도 없다. 뛰어난 예술품도 소장하고 있지 않다. 메디치가가 한 시기에 현재돈으로 3천억원을 예술에 투자한 것과 루이 14세가 관주도로 예술을 진흥한 이후에 인상파의 혁신이 있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중요한 시사점을 던져준다. 이제 대구시는 예산부족만을 탓하지 말고 선택과 집중을 하여 공공건축물에 예산을 집중투입하고, 예술품을 적극 구입하여 예술가를 지원하는 방안을 고려하여야 한다. 유럽역사의 교훈으로부터 그들이 한 자원과 집중과 열정의 몰입을 배워야 한다.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가는 이때에 대구시가 진정한 문화·예술의 도시가 되기 위하여 메디치 가문과 루이 14세가 되는 현대적 모습이 과연 무엇인지 진지하게 고민하여야 할 때이다.

2019-04-10

좀머 씨에 대한 물음 - ‘좀머 씨 이야기’에 대해

1. 나오래전, 그러니까 거의 20년쯤 전에 나는 ‘좀머 씨 이야기’를 처음 읽었다. 아니 읽었다고 말하기도 민망한 것이 한 두어 페이지를 읽고는 덮어버렸다. 그 이유는 순전히 이 문장들 때문이다.“오래전, 수년, 수십 년 전의 아주 오랜 옛날, 아직 나무 타기를 좋아하던 시절에 내 키는 겨우 1미터를 빠듯하게 넘겼고, 내 신발은 28호였으며, 나는 훨훨 날아다닐 수 있을 만큼 몸이 가벼웠다. 정말 거짓말이 아니었다. 나는 그 무렵 정말로 날 수 있었다. ….중략…. 어쨌든 나는 그때 날 수 있었고, 내가 만약 외투의 단추를 풀고 그것의 양끝을 양손으로 잡아 주기만 했더라면, 바람을 타고 둥둥 떠다닐 수 있어서 학교 앞 동산에서 언덕 아래에 있던 숲 위로 거침없이 훨훨 날아다니다가, 숲을 지나 우리 집이 있던 호숫가로 날아가서, 우리 집 정원 위에서 멋지게 한 바퀴 선회하면, 날아다니기에는 이미 몸이 너무 무거운 우리 아버지, 어머니, 누나, 형들이 깜짝 놀란 눈으로 나를 쳐다보는 모습을 볼 수 있었을 테고, 다시 호수의 반대편 제방까지 날아가 점심 식사 시간에 늦지 않게 집에 도착하기 위해서 마침내 우아한 몸짓으로 착륙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인용한 부분은 이 책의 첫 문단이다. 정확히 말해 난 딱 첫 문단만을 읽고 책을 덮어버린 셈인데, 그 이유는 이 두 문단으로 충분했기 때문이다. 안 그래도 얇은 이 책의 딱 두 문단만으로도 나는 가슴이 벅찼고, 이 두 문단조차 감당할 수가 없었다. 너무 좋았으니까, 더 안 읽어도 될 만큼 너무 좋았으니까. 아마 더 읽었다면 내 심장은 아마 터져버리거나 멎어버렸을 것이다. 혹은 질투심에 부들부들 떨면서 오열을 했을지도 모른다. 그래, 이토록 아름다운 글자와 문장과 문단 앞에서 나는 심한 질투심에 사로잡혔고, 그래서 더 읽을 수 없었다,고 말하는 것이 가장 적확할 것 같다.그 때 이 책을 그만 읽기로 한 것을 참 잘한 일이라고, 지금 다시 이 책을 읽으며 생각하게 된다. 왜냐하면 나는 이 책을 처음 읽는 기쁨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20년 전 그 때와 달리 어떤 질투심이나 열등감도 없이 이 책을 진심으로 사랑할 수 있게 되어 감사할 따름이다. 그럼 어디 쉼 호흡을 하고 이 책을 다시 읽어볼까.2. ‘나’그런데 먼저, 문학 작품 특히 이 책을 읽을 때는, 이 작품의 서술자인 ‘나’에게 나의 감정을 일치시켜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글자는 글자로만 흘러가버리고 공허만 남는다.예컨대 처음 누군가를 지독하게 사랑해 본 사람은 ‘사랑’이 단순히 말이나 글자가 아니라는 것을 안다. 왜냐하면 그 사람은 사랑이라는 감정을 온전히 느낄 수 있을 테니까. 사랑이라는 감정을 가진 사람이 사랑이라는 글자를 받아들이듯이 그렇게 이 책에 나의 감정의 주파수를 일치시켜야 한다.감정의 주파수를 맞추려면 우선 이 소설의 서술자인 ‘나’에 대해서 먼저 알아야 한다. 이 소설의 첫 문장인 “오래전, 수년, 수십 년 전의 아주 오랜 옛날,”에서 알 수 있듯이 ‘나’는 중년의 나이를 가졌거나 아니면 그보다 더 많은 것 같다. (소설 속의 ‘나’와 작가가 꼭 일치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 소설을 썼을 때 작가의 나이가 40대 초반이었으니, ‘나’의 나이는 작가의 나이와 엇비슷할지도 모른다. 이런 ‘나’가 초등학교 1학년이었을 때부터 고등학교 4학년, 우리나라 학교 제도와는 다르니 나이로 치면 6살부터 14살 때까지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서술자가 그 8년 동안을 회상하는 이유는, 그 기간에 만난 좀머 씨 이야기를 하려하기 때문이다. 미리 말해두자면, 14살 이후 ‘나’는 더 이상 좀머 씨를 만나지 못하게 된다. 여하튼 이 소설을 읽기 위해서 우리는 6~14살 때의 ‘나’의 감정에 우리의 감정을 일치시켜야 한다.3. 좀머 씨그럼 이 소설의 표제이자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좀머 씨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좀머 씨는 항상 걸어 다니는 사람이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1년 365일 하루도 안 쉬고 매일 매일 걸어만 다니는 사람이다. 어딜 그렇게 바쁘게 싸돌아 다니냐고 물으면 좀머 씨는 이렇게 대답한다.“…. 아주바빠서이제학교 뒷산을 올라갔다가…. 호수를 빨리빨리 지나서…. 오늘아직시내에도꼭가보아야하고…. 너무바빠지금당장너무바빠시간이없어….”한마디로 말해 좀머 씨는 이상한 사람이다. ‘나’는 6~14살까지 좀머 씨를 총 네 번에 걸쳐서 만나고 이 소설은 그러한 네 번에 걸친 좀머 씨와의 만남에 대한 이야기다.먼저 첫 번째 만남은 ‘나’가 아버지와 함께 경마장에서 돌아오는 길에서다. 그 날은 우박이 쏟아지는 몹시 험상궂은 날이었고, 그런 날에도 좀머 씨는 여전히 걷고 있었다. 아버지는 좀머 씨를 차에 태워 주려고 하지만 그는 한사코 거부한다. 아버지가 그러다 죽겠다고 말하자, 좀머 씨는 이렇게 말한다. “그러니 나를 좀 제발 그냥 두시오!”두 번째 만남은 ‘나’가 카롤리나 퀴켈만이라는 여자 아이에게 바람을 맞은 날이다. 퀴켈만은 방과 후 ‘나’와 함께 걸어서 집으로 가기로 했는데, 그래서 온갖 준비를 다해 뒀는데 퀴켈만은 일방적으로 약속을 파기한다.‘나’가 풀이 죽어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여전히 ‘시계의 초침처럼 빠른 속도’로 걷는 좀머 씨를 만나게 된다.세 번째는 ‘나’의 피아노 선생님인 미스 풍켈로부터 모욕적인 꾸중을 들은 후다. ‘나’는 세상을 버리기 위해 오직 미스 풍켈지나친 다그침을 들은 후이다. ‘나’는 세상 전체가 ‘불공정하고 포악스럽고 비열’하게 느껴져 자살을 결심하고는 가문비나무 숲에 올라가 떨어져 죽으려고 한다. 그 때 좀머 씨가 숲에 나타나 쉬려고 한다. 좀머 씨는 사람이 없는지를 살핀 후 긴 한 숨을 내쉬는데 그 소리를 들은 ‘나’는 죽기를 포기한다. ‘나’는 좀머 씨의 한숨을 통해 그의 고뇌를 읽을 수 있었고, 그 고뇌의 무게에 비해 자신이 죽으려는 이유는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나’가 마지막으로 좀머 씨를 본 것은 어느 날 밤, 호수로 걸어 들어가는 좀머 씨를 본 후이다. ‘나’는 좀머 씨가 죽을 것을 알면서도 말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좀머 씨의 고뇌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공강일 서울대 강사·국문학4. 물음이제 질문을 할 차례다. 그 질문은 왜 좀머 씨는 계속 걸어 다니는가,여서는 안 된다. 좀머 씨가 걸어다니는 이유는 이미 이 책의 초반부에 나와 있다. ‘좀머 씨는 밖에서 돌아다녀야만 하는 것이니까 밖에서 돌아다녀야만 돼….’(42면) 즉 좀머 씨는 그냥 그런 사람이다. 그러니 좀머 씨가 걷는 이유보다는 왜 우리는 좀머 씨가 걷는 이유를 자꾸 알려고 하는가,에 대해 물어야 한다. 결국 알지도 못할 일을 자기 마음대로 해석하는 우리는 왜 좀머 씨를 좀머 씨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자꾸만 좀머 씨를 판단하려고 하는가에 대해서 물어야 한다. 그러니까 이 소설은 우리에게 ‘우리는 왜 나와 다른 누군가를 판단하려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소설이라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2019-04-10

보라고 봄이구나

김병래수필가·시조시인“봄이 쳐들어오는구나 혁명처럼 목련이 피고 목련이 후두둑 지고 동백과 개나리 진달래 잇달아 피고 복숭아꽃 살구꽃 수수꽃다리…. 차례를 기다리고 눈부신 봄볕에 부드럽고 은밀한 봄바람에 천지가 꿈틀대며 기지개를 켜는구나 아아, 봄이 불가항력으로 진주해 와서 구악과 폐습을 무찌르는구나 천지는 시시각각 혁명이로구나 그래서 언제까지 늙지를 않는구나. 모든 감았던 눈까풀이 열리고 눈부시게 눈부시게 보는구나 나무 줄기마다 수액이 흐르는 소리 보리밭 푸른 갈기를 흔들며 달려가는 바람 높이 떠 지저귀는 종달새 밭 어귀 샛노란 배추꽃 유채꽃 노랑나비 흰나비… 이십 년 전 삼십 년 전 사십 년 전 봄이 온갖 그리움과 설렘과 아픔과 회한으로 물밀어 오는구나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 한 줌 잿가루가 되기 전에 밝게 눈부시게 보라고 봄이구나 인생이여 천지여 무얼 감추고 숨기겠느냐 명명백백 백일하에 드러나는구나 껍질을 벗고 알을 깨고 나오는구나 생명의 신비의 비밀들이 낱낱이 열리는구나 부화하는 길이여 보라고, 봄이구나” - 拙詩 ‘보라고 봄이구나’다시 4월입니다. 4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라는 시인도 있었지만 잔인한 것은 4월이 아니라 사람일 뿐입니다. 눈부시게 꽃들이 피고 연초록 광휘의 새잎이 돋는 4월은 가장 찬란한 달입니다. 눈 있는 자들은 누구나 보라고 다투어 꽃들이 피고 가지마다 새 움이 돋습니다.보라고 민들레가 핍니다. 세상에 낮고 천한 것이 어디 있느냐고, 골목길 담장 밑에도 피고, 오폐수가 흐르는 시궁창 가에도 피고, 아스팔트나 보도블록의 틈에서도 핍니다. 자신의 처지가 바닥이라고, 사는 일이 고달프고 치욕이라고, 비관하고 절망하는 사람들이 보라고 민들레가 핍니다. 그래도 생명이란 은총이라고 민들레가 활짝 웃고 있습니다.거창한 것만이 행복은 아니라고 양지꽃이 핍니다. 크고 화려한 것들에 기죽고 초라해질 필요가 없는 거라고, 상대적 박탈감 따위로 의기소침해서 어둡고 우울한 사람들은 보라고 봄볕에 반짝이며 양지꽃이 핍니다. 작다고 사소한 것이 아니며 흔하다고 천한 것이 아니라는 걸 보여줍니다. 봄볕 하나면 족하다고 무덤가나 봄 언덕에 양지꽃이 피어서 세상 한 귀퉁이를 환하게 밝힙니다. 양지꽃 이웃에 제비꽃도 핍니다. 오랑캐꽃, 앉은뱅이꽃, 병아리꽃, 장수꽃, 반지꽃, 여러 이름으로 불려도 아랑곳하지 않고 제 생긴 모습대로 핍니다. 키가 작다고 비관하지 않고 누구를 닮으려고 애쓰지 않습니다. 보라색이면 보라색인 대로 하얀색이면 또 그런대로 염색을 하거나 성형을 할 필요를 느끼지 않습니다. 이웃인 양지꽃과 많이 달라도 서로 다투거나 배타적인 감정 따위 가지지를 않습니다.봄꽃 중에 상당수는 장다리꽃이지요. 무 배추로 담근 김치는 날마다 먹으면서도 무와 배추의 장다리꽃은 모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봄에 심은 무 배추를 그대로 두면 장다리가 나와서 꽃이 피지요. 그 씨를 받아서 다시 심으면 가을의 김장거리 무와 배추가 되고요, 사람들은 무 배추를 채소로만 생각하지만 정작은 장다리꽃이이야말로 본연의 모습입니다. 아지랑이 아롱거리는 봄날 밭머리에 노랗게 핀 장다리꽃이 가장 배추다운 모습이라는 걸 모르는 사람이 많습니다. 명성이나 감투에 가려진 것이 사람의 참모습이 아니란 것도 잊고 살지요. 부와 권세와 명예를 쫓다가 자기를 잃어버린 사람들이 보라고 장다리꽃이 핍니다.모든 나쁘고 아픈 기억과 상처들을 지우고 다시 시작하라고, 겨우내 삭막하고 앙상했던 산과 들을 온통 신록이 뒤덮고 있습니다. 얼어붙었던 대지를 뚫고 일제히 폭죽처럼 터져 나오는 신생의 함성에 귀막고 눈 감은 사람은 누구입니까. 온갖 꽃과 신록이 형형색색 광휘를 내뿜는 생명의 축제를 한사코 외면하고 비탄과 절망에 빠져있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눈 있는 자들은 보라고 다시 봄입니다.

2019-04-10

칠곡군이 일상의 보훈문화를 확립하겠습니다

백선기 칠곡군수미국은 참전용사들을 특별하게 예우하는 국가로 호국보훈에 관한 최고의 선진국이다. 미국에선 전사자가 돌아올 때 대통령 또는 부통령이 직접 맞이하는 게 관례다. 또 평생 의료 혜택과 같은 금전적인 보상은 물론 야구장이나 미식 축구장 같은 곳에 가면 군인들을 위한 별도의 좌석이 마련돼 있다. 음식점과 커피 전문점에서 재향 군인증을 보여주면 할인해주고 옷을 살 때도 깎아준다. 미국은 영웅을 만들고, 영웅은 미국을 만든다는 말처럼 사회 전반에 걸쳐 나라를 위해 싸운 군인들을 일상의 삶속에 예우하는 정서가 아주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대한민국의 경우는 어떠한가? 2002년 벌어진 서해교전 전사자들은 군인연금법에 전사(戰死) 항목이 없어 공무상 사망자로 처리되는 바람에 당시에는 평균 3천900만 원 규모의 공무 보상금만 받기도 했다. 북한군 목함지뢰 도발로 희생된 국군장병의 치료과정에서 공무 수행 중 부상당한 군인은 민간병원에서 진료를 받을 경우 진료비를 최대 30일만 지원된다는 규정이 밝혀져 사회적 논란이 되기도 했다.미국은 일상의 삶 속에서 보훈문화가 자연스럽게 스며있는 반면 한국은 보훈의 달인 6월이나 특정한 사건이 발생하면 요란하게 떠들다가 금세 잊히는 이벤트이자 유행에 가깝다. 그러한 차이가 양국의 보훈제도와 문화의 격차를 벌려왔다.칠곡군은 예로부터 국방의 요충지로 6.25전쟁 당시에는 칠곡 다부동 지구 전투의 승리로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진 조국을 구하고 오늘의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을 있게 한 호국의 도시이다. 호국을 도시 정체성으로 삼고 있는 칠곡군은 365일 일상의 생활 속에서 호국과 보훈의 소중함을 느끼고 실천할 수 있도록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적어도 칠곡군에서는 365일 현충일이고 24시간 꺼지지 않는 호국과 보훈의 등불로써 대한민국을 비추고자 한다.칠곡군은 호국보훈 관련 인프라 구축은 물론 다양한 문화 콘텐츠를 개발하는 데 전력을 다하고 있다. 또 국내를 넘어 해외로까지 보훈의 가치를 전파하는 한편 전국에서 가장 선진화된 보훈정책도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있다.이를 위해 칠곡군은 호국을 테마로한 매머드급 칠곡호국관광벨트를 조성하고 있다. 칠곡호국관광벨트는 호국과 평화를 주제로 생태, 역사, 문화, 예술 관람과 체험을 한곳에서 할 수 있는 복합 관광단지로 전체 면적은 약 3㎢, 총사업비는 1천400억 원 가량 투입되는 대규모 사업이다.칠곡호국관광벨트가 완성되면 박물관이 아닌 관광을 통해 호국과 보훈의 가치가 자연스럽게 전파됨은 물론 지역 경제 활성화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것으로 기대된다.칠곡호국관광벨트의 대표 시설이자 칠곡군의 랜드마크인 칠곡호국평화기념관을 비롯해 칠곡보 생태공원, 칠곡보 오토캠핑장, 관호산성 둘레길, 낙동강 역사너울길, 덕산체육공원, 꿀벌나라테마공원, 관평루 등은 이미 조성되어 많은 관광객들로 붐비고 있다. 또 향사 박귀희 명창 기념관, 호국문화체험 테마공원, 자고산 한미 우정의 공원, 수변레저공원 등은 속속 선보일 예정이다. 특히 왜관읍 중심지에 자리 잡은 ‘호국의 다리’ 일대 정비를 추진하고 있다. 호국의 다리와 인근에 위치한 애국동산을 정비하고 호국의 다리 남쪽과 북쪽에 음악분수와 다목적 광장을 각각 조성해 도심 속에서도 호국과 보훈의 가치를 느낄 수 있도록 한다.칠곡호국관광벨트의 교차점이자 출발점인 호국의 다리 주변의 개발을 통해 호국의 다리 일대가 새로운 관광명소의 하나이자 칠곡호국관광벨트의 허브로 자리잡을 것으로 기대된다.이를 위해 1905년 개통된 호국의 다리의 상징성 제고를 위해 철교 형상을 구현하고 6.25전쟁의 잔혹함과 평화의 소중함을 표현한다. 또 호국의 다리에서 왜관터널까지 기차가 다녔던 철로의 형상을 복원한다. 더불어 호국의 다리 남쪽 둔치에 2020년까지 62.5m, 세로 20m의 수조형 음악 분수와 상징조형물을 설치한다.이밖에도 지역 출신 애국지사의 기념비를 모신 애국동산을 2019년까지 정비한다. 올 연말까지 애국동산 확장, 주차장 조성, 조경공사 등을 실시하는 한편 지역 보훈단체의 숙원사업인 보훈회관도 건립된다. 이를 통해 왜관읍 석전리에서 낙동강을 건너 약목면 관호리와 연결되는 U자형 칠곡호국관광벨트를 완성한다.인프라뿐만 아니라 낙동강세계평화 문화대축전, 호국평화음악회, 칠곡스토리텔링 등 호국관련 문화 콘텐츠 마련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올해로 7번째 열리는 낙동강세계평화 문화대축전은 국내 유일의 호국축제이자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명품축제로 자리매김했다. 내용과 흥행 두 마리 토끼를 잡은 축제로 ‘극찬’ 받으며 인근 자치단체로 부터 벤치마킹의 대상으로 떠오르고 있다. 아울러 전국 자치단체로는 최초로 ‘보훈정책 자문위원회’를 출범시키는 등 선진화된 보훈정책을 마련하고 있다.또 칠곡군은 보훈을 해외로까지 확대됐다. 2014년부터 아프리카 유일의 6.25전쟁 참전국 에티오피아 돕기에 나서고 있다.보훈없는 호국은 없다. 그러기에 유치원 아이들의 소풍지에도 가족들이 따뜻한 봄볕을 맞는 공원에도 호국보훈의 가치를 생각하고 그들의 고마움을 느낄 수 있기를 소망한다. 호국보훈은 이제 박물관과 책에서 벗어나 삶의 현장에서 함께 숨 쉬고 부딪혀야 한다. 험한 바다의 등대처럼 그 길을 칠곡군이 밝게 비추겠다.

2019-04-09

개 행동 유전학

어느 TV방송에서 개가 아무도 살지 않는 빈집에 혼자남아 생활하는 사연을 방영한 적이 있었다. 그 집에 살던 사람들이 개만 남겨두고 이사를 갔는데, 개는 그 집을 떠나지 않고 주인이 돌아오길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다. 혼자 동네를 배회하는 것이 자연스럽게 습관화되어 있는 이 개의 경우 집에 돌아왔을 때에 가족들이 집안에 있고 없고는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다.개와 사람 사이에 강한 유대관계, 즉 무리, 공동체, 반려라는 개념이 형성되기 위해서는 보통 개와 사람이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공유하고 지속적인 스킨십과 유희적 행위 등의 반복적 교감이 있을 때 가능한 것인데, 평상시 나 홀로 마당의 개집에 들어가 쉬다가 온종일 밖을 쏘다니며 살아가는 개가 동네를 한 바퀴 돌고 집에 돌아와 ‘어! 왜 집에 사람이 안보이지?’하면서 집안을 살피거나 가족들을 걱정할 가능성은 없다.언제나 그랬듯이 자연스레 집에 들어가 쉬거나 그릇에 먹을 게 놓여있는지를 확인하는 것이 전부일 것이다.그러다가 쉴 만큼 쉬었으면 동네 이곳저곳을 다니며 나름의 활동을 하고 집에 돌아오기를 반복하며 살아가는 것인데, 이런 행동들을 감수성이 풍부한 사람의 관점에서 놀이공원에서 부모를 놓쳐버린 아이가 엄마를 애타게 찾아다니는 것처럼 개들도 그렇게 행동하는 것으로 방송이 각색한 것 뿐이다.사람의 관점에서 볼 때 이 개가 리차드 기어가 출연한 영화 ‘하치이야기’에 나온 하치처럼 돌아오지 않는 주인을 매일 매일 기다리는 듯이 보이지만, 개는 사실 그냥 자신의 집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우리는 사람의 관점에서 개를 바라보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개는 늑대와 유전자가 유사하므로 지금까지 잘 연구되어 있는 늑대의 행동 습성과 비교해 개를 바라보고 이해하는데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과학자들은 지난 10년 동안 개의 몸집, 털가죽, 털모양 등의 변이에 관여하는 DNA를 발견해 왔으며, 개 질병관련 유전자에 대해서도 많은 연구를 진행해 왔다. 그 결과 일부 사람들에 의해 주관적으로 주장되던 내용들이 객관적으로 설명되기 시작했다. 개의 행동학적 연구만 제외하면, 개에 관한 유전학적 연구는 지난 10년간 가히 폭발적인 수준이었다.연구기법들이 점차 발전해 최근에는 늑대와는 다르게 개에게서 특이하게 나타나는 유전자를 포함해 행동관련 유전자, 뇌에 작용하는 유전자가 어떤 것이 있는지 살펴보기 시작하면서 더 깊이 있게 개의 행동을 분석하고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고 있다.최근에는 개의 뇌파를 분석해서 개와 대화를 시도하려는 브레인 머신 인터페이스(Brain Machine Interface, BMI)라고 불리는 기술, 즉 뇌에서 발생하는 전기신호로 컴퓨터나 기계를 작동시키는 기술을 이용해서 강아지 뇌에 BMI 장치를 이식하고, 그 뇌파를 컴퓨터가 분석해 주인이 어떤 질문을 하면 강아지의 특정한 뇌파를 인식해 음성으로 만드는 시도가 성공한 바도 있다.늑대와 개의 행동을 구별하는 핵심적인 특징은 과사회성(hypersociability)인데, 늑대보다 사람에게 더 친근한 사회성을 보이는 개의 행동 유전자를 탐색하는 연구들이 진행중이다.GIF21이라는 단백질은 다른 유전자의 활성을 조절하는 역할을 하는데, 사회성이 강한 개들은 GIF21유전자가 특정한 형태를 보였다. 반면 늑대와 비슷한 냉담한 행동을 보이는 개들은 늑대의 GIF21유전자와 비교해보면 차이가 별로 없다는 것이 지금까지 연구결과이다.이런 연구들은 늑대와 개 행동의 차이에 대한 이해를 위한 시작이기도 하지만, 어떤 유전자를 통해 사회적 행동이 나타나는 것인지, 나아가 인간의 행동학적, 정신적 문제들을 더 이해하기 위한 연구자들의 관심 분야이기도 하다.이동훈윌리엄스-보이렌 증후군(WBS)을 가진 사람들 역시 과사회성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WBS에 걸린 어린이들은 종종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아무 사람하고나 허깅을 한다. 유전자를 비교분석한 결과, 개의 6번 염색체에는 인간의 WBS 유전자와 비슷한 부분이 있는 것으로 밝혀져 있다.실험쥐를 통한 검증에서도 이 유전자에 변화를 주면 사회성이 강화되는 것으로 관찰되었다. 앞으로 개의 행동연구는 더욱 세분화 될 것이고, 그에 따라 행동 관련 유전자들을 찾아내는 연구들이 IT기술과 접목하여 더욱 본격화 될 것으로 보인다./서라벌대 반려동물연구소 소장(마사과 교수)

2019-04-09

‘연봉 킹’

연봉이란 한 사람이 일년동안 받는 봉급의 총액을 일컫는다. 현대사회에서 연봉이 많은 직장에 다닌다는 것은 좋은 직장에 다니고 있다는 것과 같은 말로 통한다. 사람으로 말하면 연봉을 많이 받을수록 능력이 있는 사람이란 평가를 받는 게 요즘 세상의 인심이다.모두가 꼭 그런 것은 아니라고 우겨대지만 연봉의 많고 적음이 우리사회 평가의 중요한 척도가 돼 버린 걸 부인할 수 없다. 대기업이나 신의 직장으로 통하는 공기업 등이 취업 준비생들에게 큰 인기를 모으고 있는 것도 연봉이 큰 잣대가 되기 때문이다. 특히 유명 스포츠맨이나 인기 연예인의 경우 그들의 인기와 연봉은 정비례한다. 일반인의 상상을 뛰어넘는 그들의 연봉액에 입이 쩍 벌어진다. 연봉이 마치 세상 모든 일의 큰 기준점이 되는 듯한 인상을 받게 되는 것이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른다.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고 한다.모든 직업은 그 고유의 역할과 가치를 각기 가지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적으로 직업에 따라 천차만별식 연봉을 쳐다보면 직업에 귀천이 없다는 말은 별로 맞지가 않아 보인다.연봉이 높다고 좋은 직장이라고 단정 짓지는 않으나 내 가치를 높게 평가해준다는 측면에서 볼 때 연봉이 높다는 것은 괜찮은 직장임을 간접적으로 말해 주는 것이나 다름없다. 세상은 어쩔 수 없이 돈으로 평가받아야 할 때가 많다. 그래서 돈 많이 버는 직업의 순위가 발표되고 연봉 높은 인기인의 연봉액도 공개된다. 세인의 관심도 유별나게 높은 게 현실이다.최근 국회의원의 평균 소득이 돈 많이 버는 기업 임원이나 의사보다 높다는 조사결과가 발표돼 국민을 허탈케 했다. 정치인도 직업이란 면에서 소득이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국내 모든 직업인을 제치고 ‘연봉 킹’ 자리에 올랐다는 사실이 충격으로 다가온 것이다. 열심히 일한 사람이 많이 번다는 개념에서 볼 때 우리나라 정치인의 역할이 ‘연봉 킹’이란 결과와 잘 어울리지 않아 보이며 그래서 오히려 그 결과가 황당한 느낌으로 다가온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연봉은 땀 흘려 일한 만큼의 가치가 있어야 빛나는 법이다./우정구(논설위원)

2019-04-09

대구·경북을 노리는 비례대표 국회의원

김영태 대구취재본부 부장총선을 1년여 앞두고 여야 비례대표 국회의원들이 대구·경북으로 몰리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의 비례대표 김현권 의원과 자유한국당 강효상·김규환·임이자 의원 등이 주인공이다.여야 비례대표 의원들의 잇따른 대구·경북행을 보노라면 무주공산인 지역구 쟁탈전이라는 씁쓸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국회는 철저히 지역구 중심으로 흘러가기 때문에 여야 가릴 것 없이 비례대표 출신 국회의원은 항상 재선을 앞두고 지역구를 원했고 여야 각 당은 당내 가장 험지를 이들에게 배당하고 정치력과 생존력을 시험해 왔다. 이같은 혹독한 경쟁을 통해 국회의원의 지역구 관리의 어려움과 당원 및 민심을 정확히 파악하는 계기를 마련했고 이후 지역민의 선택을 받아 다선으로 가는 발판이 되기도 했다. 물론 민주당 김현권 의원은 여당의 무덤인 경북지역인데다 한국당 경북도당 위원장 지역구에 출마하는 것 자체가 험지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경북지역 유일한 민주당 단체장이 당선된 지역을 택했다는 사실에 비춰보면 꼭 험지라고 우기기는 좀 그렇다. 결국, 자신이 터전으로 생각했던 상주보다는 당선 안정권에 가까운 구미를 선택한 것이나 다름없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한국당 강효상 의원도 3선의 대한애국당 조원진 의원이 버티는 지역구에서 표밭갈이를 하고 있어 험지에 포함시킬 수 있다. 그러나 한국당 당세가 강한 지역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험지로 분류될 지역은 아니라는 소리를 듣는다.한국당 김규환 의원이 노리는 지역구 역시 4선에다 전국적인 지명도가 있는 바른미래당 유승민 의원이 버티고 있다. 과거 당협위원장이 선거법 위반 등으로 재판을 받고 있는 등 당으로서는 상당히 어려운 지역이기 때문에 대구에서 가장 선거하기 어려운 곳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김 의원도 이같은 상황을 충분히 고려했을 터이고 과거 근무한 기업이 있다는 점과 무시못할 한국당 지지세를 볼 때 험지라고 보기엔 설득력이 약하다.한국당 임이자 의원은 경기도 안산과 상주를 두고 고민을 하다가 당 지지세가 높은 경북지역을 선택했으니 이 역시 당선 안정권을 먼저 고려한 선택이라는 지적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만일 경북이 당 지지세가 높지 않은 험지였다면 오히려 경기도에 자리를 잡았을 가능성이 커보인다. 최근 대구·경북행을 선택한 여야 비례대표 국회의원들은 하나같이 이른바 ‘서울TK’로 통하는 인사들이다. 출신만 대구·경북이지 서울에서 활동해온 사람들이다.대구·경북지역은 그동안 총선과 지방선거에서 어김없이 이른바 서울TK 출신 인사들이 낙향해 지역 발전과 경제회복에 앞장서겠다는 포효를 관례처럼 들어왔다. 비례대표 국회의원이 대구·경북 지역을 선호하는 것도 이같은 전례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닌 셈이다.지역민의 대구·경북출신 서울인사들에 대한 호감도는 그동안 여러차례 선거를 통해 지역보다는 자신이 터전인 이른바 서울과 수도권의 입장을 대변하는 듯한 정서상 차이로 인해 점차 낮아지는 추세다. 더이상 지역을 거론하면서 표를 달라는 시대가 끝나고 있음을 웅변하는 예고편인 셈이다.이같은 분위기임에도 정치권에서 지역 출신 비례대표 국회의원들에게 ‘고향 앞으로’를 부추기는 최근의 모습은 서울TK 인사를 위한 또다른 출정식이나 다름없는 셈이다. 당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대구·경북 출신 국회의원들이 다른 지역 의원들에 비해 조금 낮게 평가되고 있다는 사실은 언급하지 않아도 익히 알려진 내용이다. 대구·경북 시도민의 서울 TK에 대한 생각이 달라진 상황에서 오는 총선이 비례대표 국회의원의 성지가 될지를 지켜보자.

2019-04-09

전교 꼴찌의 반란

공부는 이미 포기한 지 오랩니다. 전교 꼴찌에 춤꾼, 날라리라고 소문난 이 남학생. 주위 학부모들의 기피대상 1호입니다. 군대까지 다녀왔지만 누구에게도 환영받지 못하는 아들이 안타까운 부모는 어려운 형편에도 불구하고 미국 유학을 보냅니다. 영어 한 마디 못하는 청년. 사람들은 벙어리라고 놀리기까지 합니다. 자괴감에 빠져 한국으로 돌아갈 궁리만 하던 청년은 어느 날 문득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집니다. “너 원래 그렇게 나약한 놈이었어?”청년 송정훈은 답을 찾습니다. “아니다. 나는 나약한 놈이 아니다. 부모님을 생각하자. 한 달 10만원으로 생활하면서 유학 비용을 대는데, 이렇게 무기력하게 한국행 비행기를 타고 돌아갈 수는 없다. 죽을 힘을 다해 부딪쳐보자.” 레스토랑 알바를 하며 미친듯이 영어를 배우기 시작합니다. 학교 다닐 때 춤만 추던 자신의 끼를 살립니다. 손님 한 사람 한 사람에게 특별한 기쁨을 주는 서빙을 합니다. 춤을 추기도 하고 불쇼를 보여주기도 하지요. 자신에게 남을 기쁘게 해 주는 능력이 있음을 발견합니다.알바를 마치고 쉬던 중 다큐멘터리를 보다가 눈이 번쩍 떠집니다. 노량진 고시촌에서 유행하는 컵밥 스토리였지요. “노량진 컵밥으로 미국에서 푸드 트럭 장사를 해보면?” 또 질문을 던집니다. 친구 지형, 종근을 설득해 각자 1500만원씩을 모읍니다. 그 돈으로 살 수 있는 20년 된 중고 트럭 한 대. 이 결정이 정훈의 삶을 송두리째 바꿉니다.셋은 이 트럭에서 밤낮을 가리지 않고 연습합니다. 계획을 세우고, 연습하고 또 실행하지요. 컵밥 제조의 달인이 될 때까지 이들은 끊임없이 파고듭니다. 한국식 서비스를 도입합니다. 빨리 빨리 문화와 덤으로 듬뿍 얹어주기. 주문하면 30초 만에 음식을 제공하고, 손님들과 온 몸을 부대끼며 춤을 춥니다. 손해를 보더라도 손님들에게 기쁨을 줄 수 있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눈물어린 노력은 곧 결실로 이어집니다. 유타 사람들이 컵밥에 미치기 시작합니다. SNS를 점령하고 언론들이 앞다투어 경쟁적으로 보도합니다. 5년 만에 이들은 미국 전역에 21개의 매장을 오픈합니다. 전교 꼴찌 소년의 반란. 정훈이 일군 기적은 질문 한 가지로 시작했습니다. “너 원래 그렇게 나약한 놈이었어?”삶이 팍팍하고 가능성이 보이지 않을 때, 나 자신에게 어떤 질문을 던져야 하는가를 생각해 봅니다. 송곳처럼 예리한 질문 하나가 나 자신과 주변을 송두리째 바꿀 수 있습니다. /조신영 인문학365 대표

2019-04-09

산불과 식목일

김규종경북대 교수·노문학봄날이 산야를 초록으로 물들이는 시기의 불청객이 산불이다. 녹음(綠陰)이 대지를 완전히 점령하지 못한 4월의 건조함은 산불이 퍼지기 좋은 조건이다. 여기에 강풍이 불면 상황은 걷잡을 수 없다. 2000년 4월 7일 임야 2만3천 헥타르를 태우고, 재산피해 1천억과 이재민 850명을 만들어낸 고성산불을 기억한다. 천년고찰 낙산사를 태워버린 2005년 4월 4일 양양산불도 기억에 생생하다. 그리고 지난 4월 4일 고성-속초-강릉-동해-인제에 산불이 났다.동해가 고향인 지인이 보내온 휴대전화 사진은 언어도단(言語道斷)이다. 무너져 내린 기왓장들이 켜켜이 쌓여있고, 붉은 벽돌로 만들어진 벽체만이 군데군데 남아있다. 아직도 연기가 피어오르고, 문틀과 창틀은 검게 그을려 흉하게 모습을 드러낸다. 푸른 하늘 아래 꼿꼿하게 서있는 침엽수림의 몸체도 검게 타들어간 상처가 역력하다. 민가를 할퀴고 간 화마(火魔)의 상흔은 너르고 깊다.지인은 부친의 산소가 걱정되어 고향을 찾았는데, 정작 친구의 집이 불타버렸다고 한다. 그를 위로하며 낮술 먹고 있다는 전갈에 유구무언이다. 언론에서는 산불진화에 공을 세운 산림청 ‘특수진화대’와 소방관들에게 아낌없는 찬사를 보내고 있다. 산림청 특수진화대는 일당 10만원을 받고 불을 끄는 비정규직이다. 이참에 그들을 정규직으로, 지방직인 소방관직을 국가직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여론이 높다.위에 적시(摘示)한 날짜가 공교롭다. 4월 4일과 4월 7일. 기시감이 없으신가?! 그렇다. 4월 5일 식목일 전후한 날이다. 요즘에는 식목일이 공휴일도 아니고, 식목행사가 대대적으로 행해지지도 않는다. 주5일제 40시간 노동이 일반화되면서 2006년부터 식목일이 공휴일에서 제외된 것이다. 더욱이 나무를 심기 좋은 시기는 4월 초가 아니라, 3월 중순이라고 한다. 지구 온난화로 해방이후 한반도 평균기온이 2∼4도 상승한 때문이다.나무는 심는 것도 중요하지만 키우는 일도 그만큼 종요롭다. 자식농사의 핵심이 잘 키우는 것과 같은 이치다. 중학교 다니면서 해마다 워커힐 부근 아차산에서 송충이를 잡았다. 식목일 전후로 모든 학생이 도시락 싸들고 아차산 입구에 모이는 것이다. 배급받은 나무젓가락으로 어른 검지나 장지 크기의 송충이를 2-3가마 잡았던 기억이 새록새록하다. 송충이를 잡고 나면 우리는 풀독과 쐐기 통증으로 고생해야 했다. 양호실에서 발라주는 암모니아수가 치료의 전부였지만 크게 괴로운 줄도 몰랐다. 아차산 인근을 지나칠 때면 짙푸른 녹음으로 뒤덮인 산세에 내심 흐뭇하다. 저기 어딘가에 어린 시절 우리의 땀이 서려있지 아니한가, 하는 것이다. 안톤 체호프의 희곡 바냐 외삼촌에 등장하는 아스트로프가 나무를 만지면서 느끼는 소회와 별반 다르지 않다.일제의 가혹한 약탈과 6·25 한국동란, 그 후의 무분별한 벌목으로 흉물스러웠던 우리의 산야는 면모 일신했다. 대한민국은 핀란드, 일본, 스웨덴의 뒤를 이어 세계4위의 산림강국이다. 국토전역이 초록으로 넘쳐나는 조림(造林)의 나라가 된 것이다. 아프리카 신생국가들도 조림을 배우러 일본이나 도이칠란트가 아니라 한국을 찾는다. 식민지배를 경험한 나라 가운데 한국처럼 신속하고 성공적으로 조림에 성공한 경우가 없기 때문이다.하지만 봄철이면 되풀이되는 산불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는 너무 안이하다. 이번 산불을 교훈 삼아 소방헬기를 즉각 도입하고, 산불진화에 헌신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정규직으로 전환했으면 한다. 아울러 산불과 관련한 일부 후안무치한 정치인들의 무분별한 인신공격과 정치공세는 완전 진화·소멸되어야 하리라 믿는다. 화마보다 처참한 것이 무책임한 험담과 폭언이므로!

2019-04-09

교실 숲

이주형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인간은 품위 있고 행복한 생활을 가능케 하는 환경 속에서 자유 평등 및 충족한 생활 조건을 향유할 기본적 권리를 가지며 현세대 및 다음세대를 위해 환경을 보호 개선할 엄숙한 책임을 진다.”이는 유엔 인간환경 선언 내용 중 일부이다. 이 선언은 1972년 6월 스톡홀름에서 개최된 유엔 인간환경 회의에서 채택되었다. 이에 대해 한 사전은 “인간환경의 보전과 개선을 위하여 전 세계에 그 시사(示唆)와 지침을 부여하는 공통의 원칙이다.”라고 설명하였다.국제환경법 등 세계는 지구 환경을 지키기 위해 오래 전부터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하지만 지구 환경 파괴 속도는 국제적인 노력에 비례하여 더 빨라지고 있다. 지금 속도라면 수십 년 안에 인류파멸과 같은 환경 재앙 영화들의 내용이 현실화 될 지도 모를 일이다.물론 영화 속 이야기들이 현실이 되지 않도록 국제사회가 지속적인 노력을 할 것이다. 그리고 세계 각국에는 자신만이 지구와 인류를 구할 수 있다고 외치는 전문가들이 넘쳐난다. 그들에겐 공통된 이야기 패턴이 있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는 무조건 다 틀렸고, 지금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오로지 자신의 이야기만 들어야 한다고 목에 핏대를 세운다. 그 모습은 영웅모방 증후군에 걸린 꼭두각시 같다.최근에는 미세먼지 관련 전문가들의 목소리가 매우 높다. 그들의 목소리를 뒷받침하듯 대기(大氣) 상태는 최악이다. 정부는 미세먼지를 국가 재난으로 규정하였다. 공기정화기는 품귀 현상을 빚고, 다른 미세먼지 방지 관련 상품들은 없어서 못 팔 정도이다. 그런데 문제는 지금 우리 사회가 보여주고 있는 미세먼지 대책이 과연 옳은가 하는 것이다. 당장 살아야하니까 어쩔 수 없이 마스크나 공기정화기 등과 같은 물건들을 사용할 수밖에 없다고 하더라도 그 다음은 어떻게 할 것인가? 정부는 미세먼지 대응책으로 모든 유초중고 교실에 공기정화기를 넣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이에 대해 박수와 응원을 보내고 있다.그런데 정말 이렇게 하면 미세먼지와 같은 환경재앙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까? 그럼 교실을 나온 다음에는 어떻게 할 것인가? 이미 마스크는 학교생활 필수품이 되었다. 이대로 가다간 모든 학생들에게 방독면을 지급하자는 주장이 나올지도 모르겠다. 방독면을 쓰고 체육활동과 등하교를 하는 학생들의 모습을 상상하는 일이 그리 어렵지 않은 이유는 왜일까? 이런 일이 현실이 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하루 빨리 근원적인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그 답을 오래 전부터 알고 있다. 그 답은 인간환경선언에도 나와 있다. “환경을 보호 개선할 엄숙한 책임” 안타깝게도 편리주의에 빠진 요즘 사람들은 이 책임조차 모른다.지금부터라도 우리의 환경주권을 지켜나갈 환경 파수꾼인 학생들에게 적극적인 환경보호의식과 환경개선의지를 심어주어야 한다. 그 방법으로 필자는 ‘교실 숲’조성을 제안한다. 필자는 올해부터 산자연중학교 교실에 ‘교실 숲’을 만들고 있다. 아직은 많이 미비하지만 분명한 것은 자연에 대한 학생들과 교사들의 태도 변화다. 교실에 나무가 들어오고, 공기정화 식물 등 다양한 식물이 일가를 이루면서 교실에서의 학생들 생활은 분명 달라졌다. 자연과 학생이 공존하는 교실 모습이 어떨지는 거창한 숲 이론을 인용하지 않아도 충분히 상상 가능할 것이다.지금 교실 환경은 갈수록 삭막해지고 있다. 교실 삭막화에는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필자는 학생들의 학교생활 편리를 위해 교실에 들인 냉난방기, 공기정화장치와 같은 각종 기기(器機)들도 한몫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미 우리는 이런 기기들에 의해 길들여졌지만, 지금부터라도 교실에 자연을 들이면 어떨까? 그래서 자연의 자정(自淨)능력을 배우게 하면 어떨까?그 방법으로 나무와 학생이 함께 수업을 듣는 ‘교실 숲’은 어떨까?

2019-04-09

5G가 여는 민간경제

김학주 한동대 교수최근 비트코인 가격이 급등했다. 시장에서는 어리둥절하는 모습이다. 그 동안 가상화폐의 가격은 제도권의 견제 속에 폭락했었다. 그 과정에서 투기적인 공매도 세력도 많았을 것이다. 이 상황에서 가상화폐에 대한 약간의 긍정적인 요인만 생겨도 공매도 세력은 타격을 입게 된다. 특히 유동성이 작은 시장이므로 상처는 더 클 수 있다.최근 제도권 경제가 계속 한계를 드러내자 민간경제를 살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여기서는 블록체인 기반의 가상화폐 활용도가 높아질 수 밖에 없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가상화폐에 대한 공매도 포지션 정리(short cover)가 가상화폐 가격을 밀어 올린 것으로 보인다.지난해 12월 중국의 경제성장률을 연간 환산하면 4.8%에 불과했다. 중국의 성장둔화는 중국만의 문제가 아니라 세계 경제의 관심사다. 어떻게든 해결해야 한다. 리커창 총리는 최근 “중국 시장에서 내국인과 외국인을 동등하게 경쟁시키겠다”고 언급했다. 즉 강자만 살아 남는 시장원리를 확산시켜 중국 시장 개방을 위한 준비를 하겠다는 것이다. 그 동안 변칙 금융(shadow banking) 등 문제를 일으키는 요인들에 대한 근절 위주의 태도에서 이제는 시장을 통한 효율성을 제공하여 저절로 이런 문제들이 해결되도록 하겠다는 입장으로 선회하는 모습이다.또한 그는 민간경제를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즉 자본시장을 개방하여 해외에서 돈이 들어오면 투자효율이 높은 민간경제를 키워 자금을 흡수하겠다는 입장이다. 특히 중국에서 빠르게 확산되고 있는 5G 인프라의 이용을 극대화할 수 있는 분야도 민간경제다. 결국 세계 소비의 중심으로 떠오르는 중국이 저성장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시장을 개방하고 민간경제를 도입하려는 과정에서 블록체인 기반의 가상화폐가 조금씩 역할을 할 것이라는 기대가 나타나며 비트코인의 공매도 포지션도 줄어가는 것으로 판단된다.이런 민간경제를 대표하는 것이 공유경제 플랫폼이다. 최근 미국 증시에 자동차 공유 서비스를 제공하는 리프트(Lyft)가 상장됐고, 조만간 우버(Uber)도 상장될 예정이다. 저성장의 고통 속에서 사람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자원을 공유하여 경비를 절감하는 것뿐이다. 사실 이들 주식은 장외시장에서 비싸게 거래됐었다. 이렇게 성장잠재력이 큰 사업에 대해 더 높은 프리미엄이 주어지는 이유는 절망 속에서 희망이 더 커 보이기 때문일 것이다.관건은 투자자들이 이렇게 부담스러운 주가를 얼마나 오래 참고 기다려 주느냐는 것이다. 바이오 기업처럼 하나의 프로젝트 성패에 의존하는 경우 해당 프로젝트가 실패할 경우 주가가 급락한 후 오랜 기간 횡보한다. 그러나 이렇게 사람을 모으는 플랫폼 사업의 경우 보여줄 것이 여럿 있다. 즉 주가가 비싸 보이지만 모멘텀의 나이가 아직 어려 투자기회가 충분하다는 것이다.리프트는 아직 적자가 확대 중이나 규모를 갖춘 우버는 적자가 줄기 시작했다. 이렇게 수익성 개선의 방향성만 보여줘도 주가의 상승에는 문제가 없을 것이다. 특히 향후 개인정보에 대한 규제가 풀리면 사업이 확대되고, 마케팅 비용이 절감될 수 있다. 또 인공지능 관련 하이 테크도 비용을 혁신적으로 낮출 수 있다. 궁극적으로 자율주행 환경이 도래하면 시장이 훨씬 커질 수도 있다. 단, 증시가 쇼크를 받아 유동성이 실종될 경우 이런 주식들은 단기적으로 큰 타격을 받을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 유동성이 결핍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즉 투자자들이 오래 기다려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5G시대가 도래하고, 통신망 중립성이 부활되며 공유경제 플랫폼에 유리한 환경이 열리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5G 도입이 빠르고, 시장 규모가 큰 중국의 플랫폼 사업에도 관심을 가져볼 만하다. 소프트뱅크의 비전펀드는 최근 중국의 중고차 매매 사이트를 높은 가격에 투자했다.

2019-04-08

봄의 단상(斷想)

강희룡 서예가고산 윤선도(1587∼1671)는 ‘고산유고, 봄의 의미에 대한 책문(對春策)’에서 ‘태극이 쪼개지고 음양이 나뉜 뒤 추위와 더위가 서로 밀어서 네 계절이 생기는데, 해는 황도의 별자리에서 운행이 끝나고 달은 열두 달 뒤 운행이 끝나서, 해와 달의 도수가 마감이 되면 한 해가 다시 시작되는데 이것을 봄이라고 한다. 봄과 관련된 날은 갑을이고, 봄의 임금은 태호(太769E)이며, 봄의 신은 구망(句芒)이라 한다. 봄은 무성하고 온화한 기운이 온 세상에 가득 피어 올라와 오로지 뭇 생명의 고동을 울려 만물을 이뤄 자라나게 하는 것을 일삼기 때문에 봄의 작용은 낳음(生)이다. 여름은 자람(長)이고 가을은 이룸(成)이며 겨울의 갈무리(藏)에 간여하지는 않지만 이른바 자람, 이룸, 갈무리가 낳음이 아니고서 어떻게 작용할 수 있겠는가! 이 때문에 봄은 네 계절을 두루 꿰뚫고, 만물이 바탕으로 삼아 시작되며, 한 해의 머리가 되는 것이다, 라고 봄의 의미에 대해 기록하고 있다.사람이 하늘을 본받는 도리로써 말하자면, 다른 데서 구할 수 없고 인(仁)이라는 한 글자에서 구할 수 있을 뿐이다. 일원(一元)이 흘러서 시간에 부여된 것을 봄이라 하고 사람에게 부여된 것을 인이라 한다. 시간상의 봄이 곧 사람에게서는 인이고, 사람의 인이 곧 시간상에서는 봄이다. 인을 얻으면 봄과 부합하고, 인을 잃어버리면 봄과 상반되니, 봄과 부합하면 온화한 기운이 이르러서 만물이 자라나고, 봄과 상반되면 사나운 기운이 응하여 온갖 재앙이 일어난다고 한다.비록 그러하나 이 봄은 사계절을 통털어서 시작이 되고, 이 인은 사단(四端)을 통괄하여 근본이 된다. 이 봄은 만고에 변하지 않으니 이 인은 천 년을 흘러도 다르지 않는다. 그렇다면 시간의 봄을 알고자 한다면 마땅히 나에게 있는 인으로 돌이켜야 하고 시간의 봄을 체득하고자 한다면 마땅히 나에게 있는 인을 다해야 한다는 것이다. 만일 인으로써 도를 닦고 정치를 행하여 인을 행하는 공이 쉬지 않고 오래 지속되어서 온 사방에 영향을 주어 두루 관통하면 온 세상이 인으로 돌아가니 한 나라가 인을 일으키고 백성이 화평하고 만물이 자라나며, 온 세상이 봄이어서 저마다 제자리를 얻을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가만히 앉아서도 성대한 세상으로 올라갈 수 있을 것이다.중국의 사상가 순자도 자연의 변화를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 적극적으로 자연의 변화원리를 파악해 거기에 적응하고 문명을 일궈내고 문화를 창조할 것을 강조했다. 사람은 자연에서 태어나 자연에서 살다가 자연으로 돌아간다고들 한다. 그러나 이제 사람의 삶은 태어남과 죽음 그것만 자연스럽고 나머지는 모두 인공과 인위의 조작 속에서 이뤄진다. 노자는 자연을 불인(不仁)하다고 했다. ‘천지는 불인하며, 만물을 풀개(芻狗)로 여긴다. 노자의 사상은 자연은 만물을 만들어내서 제각기 자기 생긴 대로 살아가도록 두되 절대로 어느 하나를 특별히 배려하거나 더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이다.유가에서는 춘하추동의 흐름에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자연스러운 정감을 도덕으로 추상화하고 이를 자연의 질서에 적용했다. 그리하여 유가사상에서 측은히 여기는 마음은 인의 덕이 된다고 만물을 소생시키는 봄의 위대한 작용으로 연결했던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 인간의 의식 바닥에는 자연에 대한 원초적 신화의식이 깔려 있어서 자연의 우호적인 측면은 부모의 자애로 여기고, 자연의 비우호적인 측면은 부모의 꾸짖음으로 여긴다. 이런 의식이 없었다면 우리는 봄을 찬미하는 온갖 음악과 축제, 그림 등을 갖지 못했을 것이다. 자연을 법칙으로 파악해 문명을 일궈가는 것도 인간의 숙명이지만 자연의 의미를 엿보고 삶의 의미를 넓고 깊게 하는 것도 인간 삶의 진실한 한 모습이다. 물욕에 젖어 사는 현대인들에게 사계절의 자연이 주는 교훈을 새삼 깊게 들여다보고 마음을 가다듬어 부끄러움이 없는 삶을 살아야하지 않겠는가.

2019-04-08

피파(Pippa)가 지나간다.

산업 혁명 직후에는 어린 소년 소녀들이 공장에서 하루 16시간이 넘는 중노동에 시달리는 일이 비일비재했습니다. 자유방임형 경제 정책이 난무할 때, 자본가들은 한 푼이라도 임금을 아끼기 위해 부녀자 혹은 아동을 고용하는 일이 당연했던 시절이었지요.베니스의 한 공장에서 일하며 어렵게 생계를 이어 가는 소녀 피파(Pippa)는 1년 중 단 하루만 주어지는 휴일의 아침을 맞이합니다. 이 소중한 하루의 휴가를 어떻게 사용할까 고민하던 피파는 결심하지요. 마을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들, 자신이 동경하던 삶을 누리던 네 사람을 떠올리고 이들의 창가를 지나며 진심에서 우러나온 존경과 기쁨의 노래를 부르기로….로버트 브라우닝은 이런 스토리를 담은 극시 ‘피파가 지나간다(Pippa Passess, 1841)’를 썼습니다. 피파가 부와 권력을 기준으로 행복할 것이라 믿었던 그 네 사람은 실은 제 각각 다른 이유로 인생에서 가장 참혹한 고통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던 사람들입니다.오티마는 살인을 저지르고 양심의 고통에 어쩔 줄 모르다가 지나가던 피파의 노래를 듣고 자신의 끔찍한 죄를 깨닫고 자수를 결심합니다. 줄스는 거짓 결혼에 분개해 아내를 버리기로 했다가 피파의 노래를 듣고 아내를 향한 새로운 사랑을 싹 틔우게 되지요. 루이는 폭정을 일삼는 난폭한 왕을 암살하려던 혁명가입니다. 그 또한 피파의 노래에 마음이 녹아내려 암살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자신의 이상과 꿈을 실현하고자 합니다. 한 늙은 성직자는 속세의 악에 무기력하게 굴복하기 직전, 피파의 노래를 듣고 영적 각성을 합니다. 자신의 영혼을 재무장하고 악과 싸우기로 결단하지요. 날이 저물고, 1년에 단 하루 밖에 없는 소중한 휴가를 헛되이 낭비했다는 생각으로 슬픔에 가득 잠긴 피파는 고달픈 내일의 노동을 위해 다시 잠자리에 듭니다.세상을 바꾸는 일은 거창한 계획과 막대한 자금, 그리고 엄청난 인력이 동원되어야 시작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피파의 노래처럼, 진심을 담은 내 영혼의 울림을 소리없이 누군가에게 전달할 때 그 파장은 한 개인의 삶을 송두리채 바꿀 수 있습니다.“작은 일도 무시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 작은 일에 최선을 다하면 정성스럽게 된다. 정성스럽게 되면 배어 나오고 배어 나오면 겉으로 드러나고 겉으로 드러나면 이내 밝아지고 밝아지면 남을 감동시키고 남을 감동시키면 이내 변하게 되고 변하면 생육한다.” 중용 23장의 지혜가 떠오르는 새벽입니다. /조신영 인문학365 대표

2019-04-08

탈코르셋 운동

탈코르셋 운동은 벗어나자는 뜻의 ‘탈’(脫)과 여성 억압의 상징 ‘코르셋’(체형 보정 속옷)을 결합한 말로 다이어트, 화장, 렌즈 등 ‘꾸밈 노동’으로 상징되는 여성 억압적 문화로부터의 해방을 부르짖는 운동이다. 탈코르셋을 외치는 여성들은 소셜미디어(SNS) 등에 ‘탈코르셋’을 해시태그(#)로 한 뒤 부러뜨린 립스틱 등의 화장품, 짧게 자른 머리카락, 노메이크업에 안경을 착용한 인증샷들을 올린다.최근 일본에서 유행되고 있는 ‘쿠투(#KuToo)’운동 역시 탈코르셋 운동의 일환이다. 일본어로 구두를 뜻하는 ‘쿠쯔(靴)’와 괴로움을 의미하는 ‘쿠쯔(苦痛)’의 ‘Ku’와 ‘MeToo(미투)’의 ‘Too’가 합쳐진 조어다.#쿠투는 지난 1월 배우 이시카와 유미가 트위터에서 여성이 호텔에서 다리를 다쳐가며 일해야 하는 현실에 의문을 제기한 게 쿠투의 시작이었다. 이시카와가 아르바이트로 장례식장에서 조문객 안내를 했는데 5~7cm 굽 길이의 검정 펌프스를 신는 게 규정으로 정해져 있었다고 했다. 해당 트윗은 3만 번 넘게 리트윗이 되며 누리꾼들의 호응을 이끌었다. 이후 한 누리꾼이 이시카와에게 ‘#KuToo’ 해시태그를 사용하자는 제의를 했다. 최근 한 여성은 ‘#KuToo’라는 해시태그와 함께 일본어로 “신오사카(新大阪)부터 5분 걸었는데 피투성이야. 이런 걸 강제로 신게 하는 건 잘못이야”라는 글을 올렸다. 오른발 뒤꿈치에 피가 묻은 사진과 함께였다. 이시카와는 직장에서 하이힐 신는 것을 강요하지 않아야 한다는 내용의 청원 페이지를 개설했고, 현재 1만6천건이 넘는 지지 서명을 받았다.우리나라 연예계에서도 걸그룹들이 탈코르셋 운동에 나서는 분위기다. 구두를 벗어던진 채 공연을 펼친 걸그룹 드림캐쳐, 화장과 하이힐을 거부하는 가사를 담은 곡 ‘NO’를 공연하고 있는 걸그룹 CLC, 편안한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무대에 오른 걸그룹 마마무 등의 모습에서 최근 K팝 아이돌그룹 사이에서 나타나고 있는 ‘탈코르셋’ 움직임을 감지할 수 있다.여성의 권리가 크게 신장됐다고는 하지만 자신도 모르게 얽매이는 관습을 끊어내는 데는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해보인다. /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19-04-08

우리 모두는 노인이 된다

신희선 숙명여대 기초교양대학 교수·정치학 박사키케로의 책 ‘노년에 관하여’는 30대 젊은이 라일리우스와 스키피오가 80대 카토를 찾아와 노년의 삶에 대해 묻고 답하는 방식으로 쓰여진 책이다. 카토는 “진실로 자기 자신 속에 행복하게 살기 위한 방법이 없다면 모든 인생 시기가 부담스러운 법”이라며 노년이 되었다고 특별히 불행한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로마 최고 정치지도자였던 키케로는 카토를 통해 철학하는 삶에 기반한 노년의 행복을 말하였다. 그러나 한국에서 평균적인 노인들의 삶은 어떠한지, 과연 영예롭고 행복하게 노년을 보내고 있는지, 고령화 사회로 접어든 우리 사회에 무엇을 시사하는가?유엔이 발표한 ‘2019 세계행복 보고서’에 의하면 핀란드가 지난 해에 이어 1위를 차지하였다. 현재생활만족도를 비롯해 사회적 지원, 1인당 국민총생산, 기대수명, 자유, 관용, 부패 등을 더해 행복지수를 산출한 결과다. 우리나라의 행복지수는 159개국 중에서 54위였다. 1인당 GDP 27위, 기대수명 9위는 상위권이었으나, 사회적 지원 91위, 부패 100위, 자유 순위는 144위였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기대수명과 사회적 지원 사이의 갭이다. 사회적 자본이 빈곤한 한국사회에서 노인들의 삶의 질을 좌우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노인 세대의 양극화가 심하다. 사회경제적 불평등은 노년기에 더 결정적이다. 호텔 수준의 고급 실버타운에서 안락한 노후를 보내는 노인과 대조적으로 쪽방촌에서 홀로 하루하루를 버티는 독거노인도 있다. 가난한 사람이 나이 드는 경우 불평등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OECD에서 발표한 ‘2019년 국가별 노인빈곤율 현황’에서 한국은 46.5%로 1위였다. 노인 두 명 중의 한 명이 경제적 궁핍감을 느끼고 있다. 지난해 4분기 저소득 계층 20% 중에서 가구주가 70세 이상인 가계 비중도 42%로 나타났다.행복지수가 높은 유럽국가 노인들은 여유로운 삶을 산다. 그러나 우리는 노년의 삶에 대해 불안감을 느낀다. 모아놓은 재산이 없다면 기본적인 생활조차 쉽지 않다. 계층간, 지역간 차이가 있지만 공식적인 은퇴 이후 노인문제는 두드러진다. 현재 국민연금 평균 수령액이 40만원이고 기초연금 최고액이 30만원이다. 노인복지를 위해 국가가 현금을 지급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그런 점에서 최근 대법원이 노인연령 기준을 상향하여 노동 가동 연한을 만 65세로 판결한 것은 평균수명의 증가한 현실을 반영함과 동시에 근로복지 차원에서 의미가 있다.경제적 문제보다 더 큰 문제는 노인에 대한 사회적 시선이다. 우리는 궁금한 게 있으면 이제 노인을 찾지 않는다. 노인의 경험과 지혜를 더 이상 필요로 하지 않는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노인은 무능력하다. ‘어르신’이라고 부르지만 권위를 지닌 원로는 사라지고 있다. ‘6·25를 겪고 박정희가 없었다면 대한민국은 없다’고 생각하는 노인들은 거리로 나와 태극기를 흔든다. ‘요즘 것들은 버릇이 없다’며 경로석에 앉은 젊은이들을 나무라고, 젊은 세대들은 ‘꼰대’로 부르며 이들의 말을 무시한다. 노인을 공경하는 문화가 실종되면서 노인혐오 문제가 불거지고 있다. 노인들은 점점 더 설 자리가 없다.한국사회에서 품위 있고 아름다운 노년은 가능한가? 노인의 삶의 질은 개인적 차원만이 아니라 사회적 문제다. “주류 집단에 속한 젊은 사람들 모두가 언젠가 비주류 집단으로 이동해야 하는 경우는 ‘노인’이 유일하다.” 고령화 사회로 접어든 지금 노년의 삶의 질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개인적으로 미래를 준비하는 것 못지않게 사회와 국가가 노인문제를 두고 토론해야 한다. 노인들이 고립되고 배제되는 것이 아니라 젊은 세대와 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 다양한 장이 마련되어야 한다. 키케로가 말한 것처럼, 노년은 “연극의 마지막 장”처럼 깊은 감동으로 기억되어야 한다. 노년의 문제는 특별한 사람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 모두는 언젠가 ‘노인’이 된다.

2019-04-08

파리가 만들면 클래스가 다르다!

지난해 1천20만 명의 사람들이 루브르 박물관을 찾았다. 전년과 비교했을 때 20%가 증가한 수다. 하루 평균 3만 명 넘게 루브르를 방문했고, 그 중 65%가 외국인이다.2018년 한국을 방문한 전체 외국인 수가 1천534만 명 정도라고 하니 루브르가 가진 브랜드 파워가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있다. 박물관 하나로 벌어들인 입장료 수입이 대략 1억7천340만 유로 정도로 추산, 어림잡아 2천230억 원이 넘는다. 입장료만 계산했을 때 그 정도이고, 출판물, 레스토랑, 아트상품 등의 판매 수익까지 합하면 상상을 초월한다.그 뿐만 아니다. 프랑스는 루브르를 해외로 수출까지 했다. 루브르는 하나의 상품이 되어 아랍에미리트로 수출되었고 2017년 11월 루브르 아부다비가 문을 열었다. 루브르는 이름을 빌려주는 대가로 5억2천500만 달러, 우리 돈으로 5천966억 원에 육박하는 금액을 챙겼다. 거기에 전시기획과 작품대여료, 운영 노하우 전수 명목으로 7억4천700만 달러(8천489억 원)가 추가로 지불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프랑스의 수도 파리에는 루브르만 있는 것이 아니다. 루브르에서 세계 각국의 유물들과 19세기 중반까지의 미술을 감상한 방문객들은 센 강을 건너 오르세 미술관으로 향한다.오르세 미술관은 원래 1900년 파리에서 개최된 만국박람회를 위해 기차역사로 지어진 건물이다. 1939년까지 파리와 남서부 프랑스를 연결하는 기차역으로 사용되었다. 기차의 도착과 출발 시간을 알리기 위해 역사를 장식했던 거대한 시계가 미술관이 된 지금도 하나의 상징이 되어 벽면에 걸려있다. 프랑스인들답게 과거의 작은 흔적 하나라도 가치 없이 버리지 않고 문화로 축적시켜 역사적 상징으로 승화시킨 것이다. 기차역으로의 기능을 다해 도시의 흉물로 전락할 처지에 놓이게 되자 미술관으로 활용하자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문제는 ‘파리의 역사를 품고 있는 기차역을 어떻게 미술관으로 탄생시킬 것인가?’하는 것이었다.기차역의 건축적 원형을 최대한 살리면서 미술관으로서 기능하는 건축물을 만들어 낸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과제였다.뿐만 아니라 허물고 새로 짓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예산이 들어 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 내고 역사적 정당성 그리고 문화적 가치를 충족해야 하는 등 넘어야할 산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오르세 역사 건물은 처음 지어졌을 당시의 최첨단 기술과 재료였던 철골과 유리가 그대로 보존되어 미술관으로 탄생하게 되었다.반구형 천장의 유리창들은 미술관에 필요한 자연광을 충분히 공급해 주었고, 기차선로와 플랫폼이 있던 공간은 대전시실과 개별 전시실로 재구성되었다.이렇게 태어난 오르세 미술관은 단순히 미술관으로서의 기능만을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건축역사의 생생한 현장이자 역사적 건축의 증언이 되었다. 1986년 미테랑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오르세는 미술관으로 문을 열었다. 그렇다면 이미 유수한 미술관과 박물관이 존재하는 파리에서 오르세는 미술관으로서의 자기 정체성을 어떻게 규정할 수 있었을까? 그 비밀은 컬렉션에 있다.미술관의 정체성은 소장품을 통해 드러난다. 루브르는 고대에서 부터 19세기 중반에 이르는 방대한 유물과 미술작품들을 소장하고 있다. 오르세의 차별화 전략은 소장 작품을 특정 시기에 집중하는 것이었다. 루브르에서 고전 미술을 경험한 관람객들이 이어지는 시기의 작품을 만날 수 있도록 오르세는 모던클래식 작품들을 소개한다. 마네, 모네, 쿠르베, 르누아르 등 현대미술의 신호탄을 쏘아올린 미술가들의 주옥같은 걸작들을 전시하면서 오르세는 문을 열자마자 파리의 명소로 떠올랐다.프랑스인들은 허물고 새로 짓는 것보다 훨씬 많은 예산이 소요되는 부담을 감수하고서라도 옛 역의 모습이 보존된 지금의 미술관을 탄생시켰다. 가성비에 목을 매는 우리식 사고로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접근방법이다.과거의 흔적이 문화가 되고, 문화가 상품이 되기까지는 그에 상응하는 시간과 노력 그리고 투자가 불가피하다. 루브르와 비교할 수는 없지만 연간 오르세 미술관을 찾는 방문객 수는 300만 명에 이른다. 이정도면 역사를 보존한 프랑스의 비효율적인 선택이 옳았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루브르에서 고전미술을, 오르세 미술관에서 현대미술의 태동을 경험했다면, 자연스레 또 다른 미술관으로 발걸음을 옮길 수밖에 없다. 바로 퐁피두센터이다. 루브르를 현대화하고 기차역을 개조해 오르세 미술관의 문을 연 것이 미테랑 대통령의 업적이라면, 퐁피두는 그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1969년에서 1974년까지 프랑스 대통령을 지낸 조르주 퐁피두의 공적이다. 퐁피두센터는 배수관과 통풍구의 파이프를 외장으로 드러낸 파격적인 건축으로 유명하다. 이탈리아 출신의 건축가 렌초 피아노와 영국의 건축가 리처드 로저스의 합작품이다.퐁피두센터는 현대건축의 패러다임을 바꾼 건축물로 평가받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안에서 예술 정신이 어떻게 도시의 미래를 결정하는지를 명확히 보여준다. 복합 예술 공간으로 구성된 퐁피두는 1977년 1월 31일 완공되었고, 1997년에서 1999년까지 2년 간 보수 공사가 이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누적 관람객이 1억5천만명이 넘는다.오르세 미술관의 소장품이 고전미술의 균열을 일으키며 현대미술을 이끌어낸 거장들의 작품들에 집중되어 있다면, 퐁피두센터는 1914년 이후 나타나는 미술 현상을 담아낸다.현대미술을 혁명한 마르셀 뒤샹을 비롯해 피카소의 큐비즘, 키네틱 아트의 선구자 장 팅겔리, 우리 모두를 예술가로 선언한 독일의 거장 요셉 보이스 등 동시대 미술의 담론을 끌어내는 곳이 퐁피두센터이다. 파리에 공존하는 여러 미술관들이 서로 불필요한 경쟁을 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분명한 특성을 가지며 도시 내에 거대한 망을 형성하여 관광객들을 끌어 들이는 거시적 안목에 찬사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파리에는 지금 언급한 3개의 미술관 이외에도 130여 개가 넘는 크고 작은 미술관, 박물관이 존재한다.이들도 결코 시시한 미술관들이 아니다. 그랑팔레, 피카소미술관, 로댕미술관 그리고 2014년 문을 연 루이뷔통 미술관도 포함되어 있다.다른 나라로 옮겨 놓으면 국보급 대접을 받을 만한 미술관들이다. 국가와 도시와 지역 사회가 오랜 시간 문화와 예술에 대한 열정을 불태운 결과 나라의 격이 높아졌고, 이것이 지금의 파리라는 브랜드를 만들어냈다. 아름다운 작품들로 채워진 미술관들이 사람들을 불러들인다. 예술에 대한 조예가 있건 없건 파리를 찾는 모든 관광객들은 미술관을 찾는다. 아니 찾을 수밖에 없다. 관점을 달리하면 미술관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세계인들이 파리를 갈망하는 것이다.먹고 살기 바빴던 시절, 문화와 예술은 배부른 사람들의 여유로 여겨졌던 적이 있다. 지금은 시대가 달라졌다. 문화와 예술이 산업이 되었다. 이제 문화를 향유하지 못하고 예술에 대한 조예가 없다는 것은 곧 사회적 고립과 소외를 뜻한다.예술 없이 굴뚝에 연기만 피어오르는 도시를 방문하고 싶은 사람은 지구상에 아무도 없다. 심지어 그런 곳에 살고 싶은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우리의 문화예술 정책이 제자리를 맴도는 동안 선진국들은 이미 수십 년 전부터 치밀하게 탈산업사회를 준비하고 있었고, 그 결과가 지금의 차이를 만들어 놓았다. 미세먼지, 더욱 정확하게 말하면 ‘맹독성 산업분진’이 연일 우리의 생존권을 위협하고 상황에 처하니 씁쓸함이 더할 뿐이다./김석모 포항시립미술관 학예실장

2019-04-08

신라가 불국토(佛國土)가 되기를 꿈꾼 월성의 주인들

나는 ‘믿는’ 사람이 아니라서 ‘믿음’의 경로를 잘 모른다. 하지만 믿음이야말로 인간의 고유한 마음이며, 그 마음이 지극해지고 신실해질 때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신비를 발휘한다는 것은 안다.지금은 탑과 당간지주, 주춧돌과 장대석 등의 치석재로만 남아있지만, 신라시대 월성 주변에는 황룡사를 비롯해 분황사, 미탄사 등 사찰들이 하고많았다. 법흥왕14년(527) 스무 살을 갓 넘긴 청년 이차돈이 자신의 몸을 던져 서라벌에 꽃비를 뿌린지 17년이 지나자 “(서라벌에) 절과 절들은 별처럼 벌여 있고, 탑과 탑들은 기러기 행렬인양 늘어섰다.(‘삼국유사’)”월성의 주인들은 꿈꾸었다. 신라가 불국토(佛國土)가 되기를, 그들이 전륜성왕으로 남기를. 부처님의 나라, 부처님의 가르침이 넘치는 땅이 불국토다. 전륜성왕은 통치의 수레바퀴를 굴려 세계를 통일하고 지배하는 이상적인 왕이다. 신라의 왕들은 세속의 전륜성왕으로 자신의 나라를 불국토로 만들고자 하였다. 무력이 아닌 정의에 의해서만 천하를 지배하기에 괴로움이 없으며 지극히 안락하고 자유로운 세상을.종교적인 의미만은 아니었다. 폐쇄적인 씨족사회였던 신라를 개방하고 개혁하기 위해 새로운 믿음이 필요했다. 사회를 통합하는 통치 이념으로도 긴요했다. 하지만 사람을 강제로 울릴 수는 있어도 강제로 웃기기는 어렵다. 믿음은 쥐어짜는 눈물보다 터지는 웃음에 가까운 것이다. 불교가 정착하기까지는 이차돈의 ‘순교’가 필요할 만큼 토착 신앙의 저항이 컸다. 법흥왕이 불교를 공인한 뒤 최초로 세운 사찰인 흥륜사의 절터가 굳이 신라인들이 신성시하던 천경림(天鏡林)이었던 까닭도 종교를 넘어선 정치 투쟁의 과정이었다.신라가 곧 불국토라는 불국토사상의 선봉은 선덕여왕12년(643) 당나라에서 귀국해 황룡사 9층 목탑을 세운 자장으로 일컬어진다. 자장은 신라의 원시 신앙인 오악숭배를 오대산신앙으로 도입해 신라인들에게 자부심과 긍지의 믿음을 심었다. 이후 원효와 의상을 거치며 불국토사상은 이상이 아닌 현실로 신라인에게 뿌리내렸고, 마침내 부처님 나라를 지켜야 한다는 호국사상으로 발전했다.아무래도 마땅찮다. 불신자(不信者)의 손으로 쓰면 건조한 역사적 사실의 나열일 뿐이다. 1973년에 관광지 개발 사업의 일환으로 포장된 도로를 따라 불국사 주차장에서 석굴암 주차장으로 이동하는 방식으로는 그 절박하고 간절한 마음을 헤아릴 수 없다. 월성의 주인들이 드나들던 사찰인 불국사에서 왕실의 신전과 같던 석굴암까지 오르는 데는 맨몸에 두 발이어야 마땅하다. 땀을 흘리며 허위허위 걸어 올라야 비로소 고(故) 김수환 추기경이 생전에 석굴암을 관람한 후 밝힌 소감처럼 “내 안에도 부처님이 계시구나!”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아, 정말 아름답다!”아들아이가 불국사의 석가탑과 다보탑을 보며 환호한다. 대여섯 살 때쯤 가족여행을 와서 전 국민의 포토존인 청운교 백운교 앞에서 찍은 사진이 있건만 무릎 아래 기억 따위가 남아있을 리 없다. 연신 감탄을 터뜨리며 사진을 찍어대는 아들 곁에서 신라의 대표 효자 김대성의 마음을 생각한다. 불교에서 부모와 자식은 8천겁의 인연이라 했던가? ‘삼국유사’의 설화에 의하면 불국사는 그가 현생의 부모를 위해, 석굴암(석불사)은 전생의 부모를 위해 지은 절이다.김대성은 ‘삼국사기’에 기록된, 경덕왕 때 국왕의 행정적인 대변자인 중시(中侍)로 임명되었던 김대정(金大正)과 동일 인물이다. 한편 절의 기록에는 불국사를 처음 창건한 김대성이 공사 중 죽자 나라에서 완성해 끝마쳤다고 하고, 조선시대 ‘불국사고금창기’에는 이차돈이 순교한 이듬해(528)에 법흥왕의 어머니 영제부인이 절을 창건하고 비구니가 되었다고 한다.기록이 상치되고 연대가 혼동된들 어쩌랴! 애당초 전생과 윤회를 비롯한 숱한 신비와 이적을 합리적으로 설명하기는 불가능하다. 그저 신라인들의 신비를 믿고 싶은 마음과 이적을 꿈꾸는 열망을 되새기면 그만이다.불국사 정문 매표소 옆으로 길이 하나 있다. ‘석굴암 가는 길’ ‘불국사길’ ‘석굴암길’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는 2.2㎞에 이르는 산길이다. 이 길을 오르려고 굳이 무거운 등산화를 챙겨왔다. 물 한 병과 사탕 몇 개도 준비했다.“얼마나 걸릴까?”“산길에서 2킬로 한 시간이니까, 그 정도 걸리겠는데요?”아들이 등산화 끈을 힘껏 졸라맨다. 우리 모자는 백두대간 남한 구간 632㎞를 함께 종주한 동지이자 동료이다. 그때 질풍노도의 중2였던 아들은 예비역 복학생이 되었고, 마흔 고비였던 나는 지천명의 시기를 넘어섰다. 그럼에도 우리가 함께했던 대장정의 기억은 산을 오를 때마다 되살아난다. 문제는 아들이 오르막 내리막에서 힘에 부쳐 쩔쩔 매는 나를 그때의 쌩쌩한 젊은 엄마로 오해하는 것이다.“이 길은 너무 빨리 가면 안 돼. 사방을 살피고 하늘도 보며 천천히 가야 해.”입구에서 1킬로 남짓까지는 경사가 거의 느껴지지 않을 만큼 평탄하다. 차량 출입은 금지되어 있지만 자동차도 너끈히 다닐 정도로 널찍하다. 길가의 나무들도 잘 다듬어져 있는데 겨울이라 마른 가지가 앙상하지만 안내판을 보니 불국사 청년회에서 심어 가꾼 단풍나무다. 가을에 오면 황홀하도록 아름답겠다. 봄이면 동자꽃, 은방울꽃, 물봉선화 등이 피고, 가을이면 작살나무, 범의부채, 누리장나무 등이 열매 맺는다고 한다.이 길이 월성의 주인들이 걷던 바로 그 길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그들이 자동차를 타고 불국사 주차장에서 석굴암 주차장까지 이동하지 않았음은 분명하다.“석굴암에 닿는 길이 찻길밖에 없습니까?”1992년 한국을 방문한 영국의 찰스 왕세자는 석굴암을 관람한 후 안내자에게 물었다고 한다. 그가 깨달음을 얻기 위해 고행을 택했던 부처의 내력을 알고 있었는지는 확실치 않다. 하지만 3백여 개가 넘는 화강암을 산꼭대기까지 운반해 쌓고 다듬어 장엄한 석굴사원을 지은 신라인들의 믿음 앞에 오체투지까지는 아니더라도 몸을 낮춘 산행으로 예의를 표하고 싶었나 보다. 숲길이 있다는 답을 얻어낸 찰스 왕세자는 이후 일정을 취소하고 불국사와 석굴암을 잇는 길을 걸어 내려왔다고 한다. 때마침 토함산 단풍이 한창인 11월이었다니, 먼 나라 왕세자의 걸음걸음도 울긋불긋 아름다웠을 것이다.1995년 석굴암과 불국사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고, 불국사에서 석굴암까지 도보로 이동하는 관람객과 승용차로 이동하는 관람객의 동선이 분리 정비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쉽고 빠르게 눈도장을 찍고 돌아서는 관광이 선호되는 듯, 우리가 불국사-석굴암-불국사를 왕복하는 동안 산길에서 마주친 사람들은 그다지 많지 않다.재미있는 것은 경주 현지인으로 보이는 등산객들이 아니라면 어떻게 알고 왔는지 신기한 서양인 여행자가 대부분이라는 사실이다. 때로 그들이 보는 것을 우리가 보지 못한다. 겉보기에는 멀쩡한 눈을 가졌지만 앞을 보지 못하는 청맹과니처럼, 익숙함에 속아 우리 곁의 보물을 놓치고 있는지도.절반쯤 지나고 나니 갑자기 경사가 가팔라진다.“좀 천천히 가자! 엄마 힘들다.”토함산은 암산(巖山)이기는 하지만 해발 745m로 그다지 높고 험한 편은 아니다. 그런데 너무 오랜만에 산행을 해서인지 오르막이 벅차다. 엄마의 체력 저하를 엄살이라 여기는 아들은 처음에 좀 기다려 주다가 이내 성큼성큼 앞서 나간다. 전생과 이생의 부모를 모두 섬긴 김대성의 효심을 녀석에게 기대하기는 어렵다. 현대의 부모는 자력갱생해야 한다.“와! 여기 전망이 정말 좋아요!”아들의 탄성에 고개를 돌려보니 발아래 경주평야가 진진하게 펼쳐져 있다. 석탈해는 토함산 정상에서 호공의 집이 있던 월성 부지를 발견했다는데, 아무리 산 정상에 올라도 월성이 보일 정도는 아닐 것 같다.체험한 바 평지 걷기와 산행이 다른 점은, 평지를 걸으면 생각이 돋아나고 산을 타면 생각이 지워진다는 것이다. 산행은 운동이라기보다 명상이다. 게다가 토함산은 오악 가운데 동악(東嶽)이라 하여 중사(中祀)를 거행하며 호국의 진산으로 신성시했던 산이다.그러니 신라인들에게 토함산 산행은 기도였을 것이다. 월성의 주인들은 불국사에서 석굴암까지 오르는 짬짬이 다리쉼을 하며 그들의 영지와 백성들의 삶터를 굽어보았을 것이다. 기도는 자연스럽게 일신의 복록을 비는 것을 뛰어넘어 나라의 태평과 안녕으로 번졌으리라. 사찰에서 신전까지, 이 길은 바로 ‘믿음의 길’인 것이다.길 끝에 석굴암 주차장이 있다. 매표소 앞에서 시간을 확인하니 딱 45분 걸렸다. 신라인들의 마음을 곱씹으며 걷기에 무리하지 않은 일정이다.석굴암은 언제 보아도 신비롭고 아름답다. 본존불 자체를 비롯해 광배와 백호와 주변에 둘러선 십대 제자들까지, 인간이 만든 예술품에 ‘완벽하다’는 말이 쓰일 수 있다면 석굴암에 그러할 것이다. 그토록 잘생기고 음전한 부처님은 싯다르타가 태어난 네팔에서도, 가는 곳마다 사원과 스투파(탑)가 널려있던 인도에서도, 일본이나 한국의 다른 어떤 사찰에서도 만나지 못했다. 아름다운 것이 주는 경외감 앞에 절로 머리가 수그러진다. 아들과 손을 모으고 삼배를 바친다.이전의 잘못된 복원으로 결로와 이끼가 심각해지면서 결국에는 완전 밀폐되어버렸지만, 본래의 석굴암은 석굴 안으로 들어가 본존불 주위를 한 바퀴 돌며 참배하는 방식이었다. 일 년에 딱 하루 부처님 오신 날에는 신자들에게 본존불 주변을 한 바퀴 도는 방식의 참배가 허용된다니 아쉽고 안타깝다.석굴암에서 불국사로 돌아오는 버스가 매시 정각 출발한다는데 시간을 맞추지 못해 놓쳤다. 무릎에는 좋지 않겠지만 내려오는 데는 올라가는 시간의 절반 정도밖에 걸리지 않는다.“참 좋다!”“참 좋네!”산속의 공기는 차갑고 무릎은 시큰하지만 마음만큼은 부듯하다. 지금 우리에게 그러하듯 신라 사람들의 삶 또한 마냥 평화롭고 행복했을 리 없다. 긴장과 갈등, 고통과 분노, 절망과 패배는 사람으로 태어났기에 겪는 업보일지 모른다. 그토록 뜨거운 불의 집, 화택(火宅)에 살며 불국토가 현현하길 간절히 빌었던 1천2백여 년 전의 마음이 믿음을 모르는 어리석은 내게마저 아련히 느껴진다.

2019-04-07

북한체제 변화를 보는 상반된 시각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김정은 위원장의 정치 행보는 과거와는 많이 다르다. 그는 북한의 선대 정권과는 달리 대내외적으로 많은 변화를 보이고 있다. 우선 ‘경제 발전’이라는 슬로건을 앞세우고 민생 현장을 찾아 나섰다. 수시로 생산 현장을 찾아가고 지난 4일에는 삼지연 건설현장도 방문하였다. 대외적으로는 핵·경제 병진 노선에서 비핵과 ‘경제 건설’을 앞세우고 있다. 5개의 경제 특구와 19개의 개발구를 선포한 후 해외 투자를 기다리고 있다. 그는 과거 김정일 시대의 은둔과 폐쇄 이미지 대신 인민들 앞으로 성큼 다가서고 있다. 그러나 이를 보는 외부의 시각은 상반된 입장이 대립되고 있다.그 하나는 북한체제의 변화를 믿을 수 없다는 입장이다. 대체로 서방의 자유주의적 시각에서 북한을 바라보는 보수적 입장이다. 북한 김정은 체제의 민생에 대한 정책 변화는 생존을 위한 불가피한 변화이지 실질적인 변화가 될 수 없다는 주장이다. 북한의 비핵화 선언도 대미 협상용 시간 벌기 술책이지 핵을 포기하기나 폐기하는 정책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나아가 북한의 비핵화는 북한이 핵보유국으로 인정받기 위한 술책이라고 본다. 이는 대체로 북한을 불신하고 반공적 보수적인 입장에서 보는 외재적 시각이다. 이 땅에는 북한 정권에 대한 강한 불신과 반공교육 등으로 반공, 반북세력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다른 하나는 북한의 변화를 북한식 관점에서 이해해야 한다는 내재적 시각이다. 과거 재독학자 송두율이 이러한 주장을 펼치다 국가 보안법 위반으로 처벌된 적이 있다. 이 주장은 북한 정권을 맹목적으로 옹호한다는 비판을 받기 쉽다. 이는 북한 문제와 북한적 현상을 북한 외부가 아닌 북한 내부의 논리로 이해하고 해석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가령 북한 경제의 현실은 어렵지만 그 원인은 미국 제국주의의 압제 때문이라는 것이다. 북핵 개발도 철저히 북한체제의 보위용이라는 것이다. 심지어 북한이 고난의 행군을 하면서도 자주적으로 살아가는 노선을 높이 평가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러므로 북한의 수령제, 주체사상, 우리식 사회주의, 인민 민주독재, 북한식 계획 경제도 북한식 논리로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그러나 이 두 입장은 문제점과 위험성을 동시에 내포하고 있다. 둘 다 극우와 극좌라는 이데올로기에 매몰되어 있기 때문이다. 전자인 외재적 입장은 보수 우익의 입장을 철저히 대변하는 입장이다. 이는 냉전시대의 철저한 반공 논리를 토대로 북한 공산체제를 철저히 비판, 응징해야 된다는 입장이다. 후자인 내재적 입장은 북한의 정치 현실과 변화를 인정하고 옹호하는 입장이다. 물론 여기에도 순수 진보적 입장에서부터 종북 좌파에 이르기까지 그 스펙트럼이 다양하다. 여기에는 북한의 수령론이나 주체사상까지 용인하자는 주사파까지 포함된다.이러한 상반된 입장을 극복하는 방식은 없을까. 그것은 북한 체제 변화 징후를 탈이데올로기적 시각에서 객관적으로 보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특정 이데올로기라는 안경을 사실상 벗기가 어렵다. 여기에 북한을 이념적 편견에서 탈피하여 내관적 시각에서 보자는 입장이 등장한다. 가령 북한의 400여개로 늘어난 종합 시장, 정보화 시대의 600만대의 휴대 전화보급, 북한 일인당 소득 1천불, 자영업의 증가와 관광 사업에 대한 열망을 사실로 그대로 수용하자는 입장이다. 북한 김정은 위원장의 비핵화와 인민 경제 발전 의지도 선입견 없이 바라보자는 입장이다. 그러므로 제3의 방식은 북한 체제의 변화에 대한 비판을 삼가하고 판단을 유보하자는 입장이다. 단 판단의 준거는 인간의 존엄성, 인류의 복지에 있음은 분명할 것이다.

2019-04-07

2045년

김현욱 시인어릴 때 드나들던 오락실에 ‘2022’라는 게임이 있었다. 로봇을 선택해 대결하는 게임인데 그때 느낀 2022년은 실감이 나지 않을 정도로 아득한 시간이었다. 그런데 2022년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오락실에 있던 게임들 중에는 이미 현실화된 것도 있고 현재 상용화를 추진하는 것도 있다. 조만간 5G 세상이 열린다고 한다. 5G는 ‘5th generation mobile communications’의 약자다. 2GHz 이하의 주파수를 사용하는 4G와 달리, 5G는 28GHz의 초고대역 주파수를 사용한다. 과거 2000년대 상용화한 3G 통신 방식인 ‘IMT-2000’을 계승해서 2020년 상용화를 목표로 삼는 모바일 국제 표준이다.국제전기통신연합(ITU)에 따르면 5G는 최대 다운로드 속도가 20Gbps, 최저 다운로드 속도는 100Mbps인 이동통신 기술이다. 또한 1㎢ 반경 안의 100만개 기기에 사물인터넷(IoT)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고, 시속 500㎞ 고속열차에서도 자유로운 통신이 가능해야 한다. 5G 다운로드 속도는 현재 이동통신 속도인 300Mbps에 비해 70배 이상 빠르고, 일반 LTE에 비해선 280배 빠른 수준이다. 영화 1GB 영화 한 편을 10초 안에 내려 받을 수 있는 속도이다. 그야말로 격세지감이 따로 없다.그렇다면 20년 후의 우리 삶은 어떻게 바뀔까? ‘유엔미래보고서 2045’는 이렇게 답한다. 유전자와 줄기세포 응용치료는 3D 바이오프린터를 이용해 낡은 장기를 바꾸거나 스마트 의수족 등으로 인간의 장애를 극복하는 휴먼 4.0의 시대가 열린다. 스페인의 몬드라곤과 거대 협동조합, 국가대체조직, 글로벌 시민연대가 만들어져 국가가 해체된다. 인터넷 대기업인 구글, 애플, 페이스북, 아마존 같은 기업이 세계의 부를 차지하게 된다. 가상화폐인 페이파이나 비트코인 등 다양한 디지털 통화가 발달한다. 특히 눈길은 끈 것은 ‘브레인 업로드’다. 인간의 뇌를 매핑(지도처럼 가시화하는 기술)해 그 안에 들어 있는 정보와 지식을 클라우드 등의 가상공간에 올리는 작업이다. 개인의 경험, 지식, 정보를 가상공간에서 판매할 수도 있다. 현재 유튜브나 페이스북에 올린 지식은 무료지만, 미래에는 저렴한 가격에 판매된다. 인터넷 기업은 두뇌를 업로드할 클라우드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경쟁한다. 증강현실이 삶의 부족한 현실을 채워주고, 가상현실이 삶을 대체해주는 미래가 도래한다. 가상현실 속에서 레저나 교육을 경험한다. 심지어 자신이 선호하는 시대의 가상현실을 만들어 자신이 만들어낸 삶을 살 수도 있다. 그러나 가상현실은 중독성으로 은둔형 외톨이처럼 가상현실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사람도 다수 발생한다. AI 인공지능 로봇이 인간의 삶을 주도하고 대행한다. 사물인터넷은 인터넷을 생명체로 만든다. 모든 사물에 센서와 칩, 인공지능 등이 삽입되면 모든 사물이 서로 소통하면서 스스로 제어하기도 한다. 2020년에는 사물인터넷에 사용되는 센서가 1조개. 그 이후는 100조개의 센서가 연결되는 세상이 올 것이다.특정 목적을 위해 생명체를 인공 합성하는 학문 ‘합성생물학’이 새로운 과학 분야로 탄생한다. 인공 생명체를 만드는 합성생물학의 응용 범위는 나무, 돌, 인간이 융합된 생명체도 탄생시킬 수도 있다. 가족 구조가 변한다. 1인 가구가 대부분이며, 결혼제도와 공동체의 구조가 변한다. 수명 연장으로 동거하는 파트너는 나이에 상관없이 다양한 관계로 이루어진다. 죽음이 늦게 찾아오면서 종교에 대한 무관심이 커진다.‘유엔미래보고서 2045’에서 소개한 2045년의 메가트렌드들이다. 우리가 맞이할 20년 후의 삶이다. 기존의 가족과 공동체가 붕괴되어 인간성을 상실한 디스토피아가 될 것인가, 눈부신 과학기술을 바탕으로 인간의 유한성을 극복하고 새로운 공동체가 출몰하는 유토피아가 될 것인가는 결국 우리 손에 달려 있다.

2019-04-07

매 순간 사랑으로 최선을 다 하기

아일랜드 거부 피츠제랄드 남작은 하나뿐인 아들과 아내를 동시에 사고로 잃습니다. 순식간에 가족을 잃은 슬픔에 남작은 폐인으로 지냅니다. 한참 시간이 흐른 후 남작은 슬픔을 잊기 위해 미술품 수집에 취미를 붙이게 되지요. 고대 그리스를 비롯, 로마 시대 및 르네상스 시대, 인상파 화가의 그림을 닥치는 대로 사들입니다. 세월이 다시 흘러 남작 또한 세상을 떠납니다. 유산을 상속할 자녀나 가족이 없는 남작은 미술품들을 경매에 부치라는 유언을 남깁니다.전 세계 수집가들이 소문을 듣고 모여듭니다. 한 소년의 초상화가 첫 경매 단상에 오릅니다. 누가 봐도 작품성이 떨어지는 초라한 그림입니다. “10파운드에 거실 분 안 계신가요?” 수집가들은 노골적으로 굳은 표정을 짓습니다. 사회자도 고집을 꺾지 않습니다. 싸늘한 분위기가 고조될 허름한 노인이 손을 듭니다. “내가 10파운드에 사겠소!” 몇 번이나 반복하며 20파운드에 걸 사람을 찾는 사회자에게 야유가 터집니다. 잠시 침묵하던 사회자는 “쾅!” 낙찰 봉을 두드립니다. 골칫거리를 치웠다는 생각에 수집가들은 박수를 치며 즐거워합니다. 긴장 섞인 표정으로 제대로 된 다음 작품을 기다리는데 사회자가 말합니다. “이것으로 오늘 작품의 경매를 모두 마칩니다. 땅땅땅!” 모두 격렬하게 항의하지요. “남작이 남긴 진귀한 작품을 구하기 위해 여기까지 왔는데 겨우 한 작품 팔고 끝이라니 이게 말이 됩니까?”사회자는 주머니에서 봉투 하나를 꺼내 남작의 유언장을 찬찬히 읽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하지요. “내 사랑하는 아들의 초상화를 산 사람에게 수집한 모든 작품들을 넘겨주십시오. 보잘 것 없는 작품이지만 아들의 사랑스러운 모습을 소장하려는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에게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남겨주고 싶기 때문입니다.”그림을 산 노인은 평생을 피츠제랄드의 정원사로 일했던 사람입니다. 남작이 평소 아들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그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 자신에게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를 알았기에 전 재산 10파운드를 털어 작품을 구입했던 것이죠. 사랑으로 가득한 최선의 선택이 뜻밖의 행운을 불러왔습니다.자사(子思)는 중용에서 말합니다. “세상에서 지극히 정성을 다하는 사람만이 나와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 매 순간 지극한 정성으로 사랑을 쏟는 일. 마주하는 한 생명에게 나의 진심을 전하는 것. 오늘 우리가 실천해야 할 소중한 일이 아닐까요? 비록 정원사의 행운이 뒤따르지 않는다 해도 말입니다. /조신영 인문학365 대표

2019-04-07

벚꽃 축제

벚꽃 축제가 전국에서 절정이다. 벚꽃은 평균적으로 개화일로부터 약 일주일 후에 절정기를 이룬다. 지금 우리나라 남쪽은 꽃이 활짝 피는 절정기를 이미 넘겼고, 중부 이북지역 중심으로 본격적 개화기를 맞는다. 지난 주말에는 경주의 벚꽃 축제와 대구 팔공산 벚꽃 축제가 상춘객들의 발길을 붙잡았다. 벚꽃 축제는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 많은 나라에서도 꽃구경 맞이 행사로 인기다. 워싱턴DC 벚꽃 축제는 100회가 넘는 미국의 전통 축제다. 미국에서 가장 큰 규모의 축제 중 하나며 축제기간 동안 다녀가는 사람의 수가 1백50만 명을 넘는다. 워싱턴DC 관광수입의 3분의 1 정도라고 한다. 워싱턴의 벚꽃은 1929년 우리나라 침탈기 시절에 일본이 정략적 목적으로 미국에 선물한 3천그루가 그 유래가 됐다고 한다. 지금도 미일동맹의 상징으로 통하기도 한다.우리나라는 진해 군항제가 벚꽃 축제로는 가장 오래된 축제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도 일본이 한국의 강제 점령기에 진해 군항을 지으면서 심었던 벚나무가 유래가 된 것이다.벚꽃은 피어 있는 모습이 화려하지만 피어 있는 모습 못지않게 떨어지는 모습도 인상적이다. 꽃잎이 유독 얇고 하나하나 흩날리며 떨어져 내리는 것이 마치 꽃비가 내리는 것을 연상케 한다. 피는 기간도 짧다. 아름다움을 채 느끼기도 전에 곧 푸른 잎으로만 남게 된다. 화려함을 짧게 뽐내고 사라지는 모습에서 인생의 덧없음을 느끼게도 한다.고려시대 몽골군의 침입을 부처님의 힘으로 막고자 만들었던 팔만대장경 판의 재질이 대부분 산 벚나무라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벚나무의 재질이 너무 단단하지도 않고 무르지도 않으며 잘 썩지 않아 목판인쇄 재료로 적당하다고 한다. 조선시대 무기였던 활의 재질에도 벚나무 껍질이 반드시 사용됐다는 기록이 있다.벚꽃의 꽃말은 순결과 절세미인이라 한다. 벚꽃의 간결하고 화려한 아름다움에서 취해 온 뜻으로 보인다. 벚꽃 구경으로 전국 곳곳이 상춘객들로 넘쳐나고 있다. 봄이 우리 곁에 왔음을 가장 먼저 전달하는 꽃들의 향연이 펼쳐지는 시기다. 벚꽃의 화려한 아름다움에 흠뻑 취해 보는 것도 봄을 맞는 큰 즐거움이다. /우정구(논설위원)

2019-04-07

‘적폐 몰이’의 역습

안재휘 논설위원4·3 보궐선거 결과를 해석한 정치권의 아전인수식 논평들이 우스꽝스럽다. 이번 선거의 최대 수혜자로 꼽히는 정의당은 “4·3 선거 승리는 선한 나비 날갯짓이 되어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드는데 지렛대 역할을 할 것”이라고 한껏 으스댔다. 하지만 민주당과의 후보 단일화를 통해 고인이 된 노회찬 의원의 지역구 의석을 진땀 승부 끝에 가까스로 물려받은 선거결과에 무슨 감상이 그렇게 요란한지 모를 일이다.자유한국당은 “이번 선거결과는 문재인 정권의 폭주에 브레이크를 걸어달라는 국민 여러분들의 절절한 목소리였다”고 말했다. 그러나 돌아보면 한국당은 황교안 대표가 선거현장에서 살다시피하고 온 당력을 집중해서 치른 선거였다. 결과적으로 근근이 예전 구도를 지켜낸 것에 불과하다는 점에서 정치적 의미를 과하게 붙일 일은 아닐 것 같다.어쨌거나 딱하게 된 쪽은 바른미래당이다. 통영·고성지역에 머문 황교안 한국당 대표처럼 창원·성산지역에 상주하며 10% 득표를 장담해온 손학규 대표의 입지가 한없이 쪼그라들었다. 민주당과 정의당의 후보 단일화로 득표의 의미가 퇴색해버린 상황에서도 올인하다가 이언주 의원에게 ‘찌질하다’는 소리까지 들은 망신을 두고두고 성찰해야 할 판이다.집권당인 더불어민주당의 “민주진보개혁 단일 후보인 여영국 후보의 승리는 우리 당의 승리나 마찬가지”라는 논평은 후안무치하다. 국회의원 선거구 2곳과 기초의원 선거구 3곳에서 실시된 이번 보선에서 민주당은 한 명의 당선자도 내지 못했다. 홍영표 원내대표의 “19대 총선의 2배 가까운 지지를 얻었다”는 발언은 차라리 측은하다. 보궐선거 직후 박지원 민주평화당 의원은 문재인 정부가 맞닥트린 ‘북경노적사(北經勞積司 북한·경제·노동·적폐·사법)’ 문제에 대한 자신의 발언을 상기하면서 “‘문재인 저수지’에 쥐구멍이 뚫렸다”고 경고했다.국회의 장관 청문회는 최근 정치권을 뒤흔들고 있는 이슈 가운데 단연 으뜸이다. 인사 참사 논란은 거듭돼왔지만, 이번 장관내정자 7명 중 두 명이 낙마한 현실은 자못 심각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청와대 전 대변인 김의겸의 개발예정지 부동산 투기 의혹은 정권 최대의 스캔들로 여론을 후벼 파고 있다.국회 운영위원회 청와대 업무보고에 참석한 노영민 대통령비서실장의 태도는 적절하지 않았다. 노 실장은 이날 4·3보궐선거 결과에 대해 “‘국민에게 겸손하게 다가가야겠구나’라고 자성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어서 “창원성산 지역구는 문 대통령이 (대선에서) 41%를 얻었는데 이번에 45%를 얻어서 4%포인트 지지도가 높아졌다”고 말해 초라한 견강부회의 의식을 드러냈다.그는 ‘문재인 정부 들어 청문 보고서 없이 임명을 강행한 장관이 12명’이라는 이만희 자유한국당 의원의 지적에 “청문 보고서 없이 청와대로 올라온 사람 중 역대 정권에서 대통령이 임명하지 않은 경우는 단 한 명도 없다”며 “국회가 국회의 직무를 다하지 못한 것”이라고 역공을 폈다. 그의 표정에 ‘자성’ 따위는 없었다.문재인 정부의 ‘남 탓’ 근성은 고질병 수준이다. 걸핏하면 문제의 원인을 ‘전 정부 탓’으로 돌린다. 노영민 대통령실장의 “전 정부도 다 그랬다”는 반박은 불행하게도 이 정권에서 단두대처럼 써먹고 있는 ‘적폐 몰이’의 역습이 시작됐다는 신호탄이다. 내가 하면 ‘촛불정신’이자‘관행’이요, 남이 하면 ‘적폐’라는 논리야말로 역사를 망치는 천박한 인식의 발로다.김의겸 전 청와대 대변인의 사례는 빙산 일각일 것이라는 끔찍한 풍문이 나돈다. 어림잡아 100여 명의 전 정부 인사와 공무원들에게 ‘적폐’ 딱지를 붙여 사법처리 중인 정부 여당이 자기편 김경수 한 사람 구속에 흥분하여 담당 재판관에게 무차별 신상털이 인신공격 몰매질을 가하던 모습이 떠오른다. 혼돈의 계절이 깊어지고 있다.

2019-04-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