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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해양관광도시의 성공조건

정철화 편집부국장최근 장기화된 경제난을 돌파하기 위해 지방자치단체들마다 갖가지 지혜를 짜내고 있다. 산업단지를 조성한 뒤 기업체 유치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당장 성과를 내기란 쉽지 않다. 때문에 지방정부마다 투자 대비 고용창출 효과와 부가가치가 큰 관광산업 활성화에 사활을 걸다시피하고 있다. 관광산업은 숙박과 음식, 상업, 교통 등의 관련 서비스 산업을 동시에 성장시키는 시너지효과가 커 너도나도 관광객 유치 경쟁을 벌이고 있다.유엔 세계관광기구(UNWTO)가 발표한 ‘2018년 국제관광 보고서’에 따르면 2017년 세계 관광객 수는 전년 대비 5% 증가한 14억 명, 관광 수입은 1조 7천억 달러에 이른다. 국제 관광산업은 지난 7년 동안 상품 수출보다 빠른 속도로 성장해 전 세계 수출액의 7%를 차지하는 수준까지 성장한 것으로 조사됐다. 국내 한 통계조사에서 직장인 10명 중 7명이 휴식 시간을 관광으로 보내고 싶다는 결과가 나왔다. 최근 근로시간단축 등 근무여건 변화로 일상을 즐기려는 젊은 직장인 세대의 새로운 라이프 스타일로 떠오른 ‘워라밸’과 맞물려 국내 관광산업도 급성장하고 있다. 전국 자치단체마다 ‘글로벌 관광도시 도약’을 주요 정책 과제로 내세우고 있는 이유로 풀이된다.포항시는 ‘해양관광 1번지, 명품해양관광도시’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관광산업 활성화에 나서고 있다. 특히 지난 8월 영일만 일대가 관광특구로 지정되면서 더욱 힘을 얻고 있다. 영일만 관광특구는 포항시 환호동에서 송도동을 잇는 약 2.41㎢(약 73만평)로 우리나라 관광특구로는 33번째다. 영일만 일대는 환호공원, 영일대해수욕장, 중앙상가 영일만친구 야시장, 죽도시장, 포항운하, 송도솔밭 도시숲 등 여러 관광 콘텐츠를 보유하고 있어 발전 가능성이 매우 높은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문제는 바다를 끼고 있는 전국 지자체들도 앞다퉈 해양관광 육성에 나서고 있는 상황에서 어떻게 차별화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관광객들이 ‘가보고 싶고, 머물고 싶은’ 관광지로서의 매력을 만들어 내느냐가 중요한 과제가 되고 있다.포항은 인접 자치단체들에 비해 관광 여건에서 많이 뒤진다. 먼저 광역단체인 부산시, 울산시와 경쟁해야 한다. 두 광역시의 시정 슬로건도 ‘해양관광도시’, ‘동북아 해양도시’로 포항시와 겹친다. 또 세 도시는 러시아 연해주 주도인 블라디보스톡과 나란히 자매결연을 하고 북방물류 선점 경쟁을 벌이고 있다.포항시는 영일만해수욕장을 가로지르는 포항여객선터미널과 환호공원 전망대를 연결하는 총 길이 1.8㎞의 해상케이블카 건설을 계획하고 있다. 부산은 지난 2017년 송도해상케이블카를 운행한데 이어 현재 국내 최장인 4.2㎞의 이기대 해상케이블카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포항의 해양관광은 이처럼 인접도시뿐만 아니라 전국 도시들과 치열하게 경쟁해야 한다. 가시적 성과에 얽매여 적당한 규모와 즉흥적인 아이디어로 사업을 추진한다면 ‘여럿 중의 하나’에 불과해 진다. 지역 실정에 맞고 환경에 어울리는 포항만의 독특한 개성의 관광콘테츠를 만들어 내야만 세계적인 해양관광도시로 성공할 수 있다.

2019-10-01

배고픈 시대 호박은 양식이 되어 주었다

호박, 억울하다. 호박은 좋은 농작물이자 식재료다. 가난한 농가의 소중한 구황작물이었다. 지금도 호박죽은 ‘비교적 귀한’ 대접을 받는다. 정작, 호박의 이미지는 그리 긍정적이지 않다. 못생긴 사람을, 특히 여자의 경우, 호박에 비교한다. ‘호박’이라고 부르는데 좋아하는 이는 없다.호박은 수박과 경쟁한다. “호박에 줄 긋는다고 수박 되지 않는다”고 한다. 수박은 끼닛거리가 아니나, 호박은 양식이 된다. 덜 익은 수박은 먹을 수 없지만, 애호박은 식량이 된다. 전, 된장찌개에 쓴다. 우리도 수박을 귀하게 여긴다. ‘그까짓 호박’이라고, 호박은 낮춘다.다산 정약용(1762~1836년)은 1801년 봄, 장기현(지금의 경북 포항 장기마을)으로 유배를 왔다. 220일. 다산은, 봄부터 늦가을까지 장기에서 귀양살이를 했다. 봄, 여름, 가을을 겪었다. 일곱 달 동안 장기의 바닷가 살림살이를 봤다. 글을 남겼다. ‘장기농가(長鬐農歌) 10장’에 호박과 수박이 나타난다(다산시문집 제4권_시).(전략) 부슬부슬 새벽 비가 담배 심기 알맞기에/담배 모종 옮겨다가 울 밑에 심는다네/올봄에는 영양에서 가꾸는 법 따로 배워(今春別學英陽法)/금사처럼 만들어 팔아 그로 일 년 지내야지(要販金絲度一年)/호박 심어 토실토실 떡잎이 나더니만/밤사이에 덩굴 뻗어 사립문에 얽혀 있다/평생토록 수박[西瓜]을 심지 않는 까닭은/아전놈[官奴]들 트집잡고 시비 걸까 무서워서라네(후략).몇 가지 사실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호박은 심되, 수박은 심지 않는다. 왜 그럴까? 호박은 트집을 잡지 않는다. 심든 말든 상관하지 않는다. 수박은 관(官)에서 시비를 건다. 수박은 과세대상이다. 관에서 트집을 잡는 이유는 간단하다. 호박은 농가 자체 소비지만, 수박은 환금작물이다. 내다 판다. 돈을 버는 작물은 세금을 내야 한다.시의 앞부분에 ‘담배 농사’ 이야기가 있다. 영양현(경북 영양)이 담배 농사를 잘 짓는다. 영양의 담배 농사 비법을 배워서 좋은 담배(금사)를 만든 다음, 그걸 내다 팔고 싶다. 요량대로라면, 일 년 동안 쓸 돈을 마련할 수 있다. 담배나 수박 모두 환금작물이었다. 1801년 이전부터 이미 수박은 호박보다 귀하신 몸이었다.1654년을 시작으로 대동법이 각 지역으로 확대되었다. 쌀이 세금의 기준이 되었다. 복잡했던 세금이 비교적 간편하게 정리되었다. 1791년(정조 15년), 신해통공(辛亥通共)이 시행되었다. 민간의 상행위가 상당히 자유로워졌다.다산이 장기현으로 귀양을 온 시기는 신해통공 10년 후다. 여전히 세민(細民)들은 관청의 세금과 탐학에서 벗어나기 어려웠다.다산 정약용은 다른 시에서도 호박의 유용함을 이야기한다. ‘다산시문집_제1권_시’의 내용. 제목은 ‘호박을 넋두리한다[南瓜歎, 남과탄]’이다, 남과(南瓜)는 호박이다.궂은비 열흘 만에 여기저기 길 끊기고/성 안에도 시골에도 밥 짓는 연기 사라져/태학에서 글 읽다가 집으로 돌아와/문 안에 들어서자 시끌시끌 야단법석/들어보니 며칠 전에 끼닛거리 떨어져서/호박으로 죽을 쑤어 허기진 배 채웠는데/어린 호박 다 땄으니 이 일을 어찌할꼬/늦게 핀 꽃 지지 않아 열매 아직 안 맺었네/항아리만큼 커다란 옆집 밭의 호박 보고/계집종이 남몰래 그걸 훔쳐 가져와서/충성을 바쳤으나 도리어 야단맞네/누가 네게 훔치랬냐 회초리 꾸중 호되네/어허 죄 없는 아이, 이제 그만 화를 푸소/이 호박 나 먹을 테니 더는 말을 말고/밭 주인에게 떳떳이 사실대로 얘기하소(후략)마치 그림 같다. 다산은 1784~1789년 사이, 태학(太學, 성균관)에서 공부했다. 이 시의 시기는 1785년 무렵이다. 다산은 ‘학생’ 신분이었다. 봉급을 받는 벼슬아치가 아니다. 성안이나 성 밖 시골 모두 밥 짓는 연기가 사라졌다. 굶는다. 다산의 집도 마찬가지다. 끼닛거리가 없으니 호박죽을 먹는다. 아마 늦여름, 초가을이었을 것이다. 애호박도 다 따버렸고, 늦게 핀 꽃은 아직 지지 않아 열매가 달리지 않았다. 계집종이 옆집 호박을 훔쳐 왔다. 호박은 소중한 구황작물이었다.호박, 흔하다, 그래서 천하다?창강 김택영(1850~1927년)은 조선 말기, 일제강점기의 학자, 우국지사다. ‘소호당시집_제3권_을유고’에 호박을 소재로 한 시가 남아있다. 제목은, 공교롭게도, 다산의 시와 같다. ‘남과탄(南瓜歎)’, 1885년(고종 22년) 지은 작품이다. 다산의 ‘남과탄’과는 딱 100년의 차이가 난다. 100년 뒤에도 호박은 여전히 구황작물이었다.(전략) 올해 심은 호박은 씨가 좋지 못하여/헛되게도 많은 꽃들, 벌들만 길렀네/아침 내내 따고 따도 광주리 못 채우고/돌아와 처자식 대하니 면목이 없네/산중이라 고기라곤 맛볼 수 없고/어린 이들이나 먹을 호박뿐/온 가족의 실망 이미 매우 탄식스러운데/좋은 손님 방문하면 장차 어쩌랴 (후략)호박은 언제 한반도에 전래되었을까? 조선 후기 실학자 성호 이익(1681~1763년)은 호박에 대해서 많은 기록을 남겼다. 성호는 스스로 호박 농사를 지은 적도 있다. 성호는, “호박은 100년 전에 시작되었다”고 했다. 대략 17세기 전반쯤이다. ‘성호사설_제6권_만물문’ 중의 내용이다.호남 지방에는 소마(蘇麻)가 없고 다만 수유(茱萸)나무 열매로 기름을 짜서 등불을 켜게 된다. 남과(南瓜)라는 호박이 난 지도 또한 거의 백 년이 가까이 되었는데, 아직 호남 지방에는 미치지 못했으니, (후략)소마(蘇摩)는 들깨, 수유(茱萸)는 산수유 열매다. 기름을 짜서 머릿기름 등으로 사용했다. ‘남과라는 호박이 난 지도 100년 가까이 되었다’고 했다. 호박은 임진왜란 이후 들여온 것이다. 무슨 이유에선지 알 수 없지만, 당시 호남에는 호박 농사가 드물었다.호박, 16세기에도 있었다호박의 전래는, 성호의 주장보다는, 조금 빠를 가능성도 있다. 교산 허균(1569~1618년)의 ‘성소부부고_한정록_제16권_치농’에 호박 기르는 법이 등장한다. ‘한정록’은 1610년에 썼다가, 교산이 역모죄로 죽던 해인 1618년 재편집한 것이다. 17세기 초반이다.동과(東瓜), 남과(南瓜)먼저 젖은 볏짚재[稻草灰]를 부드러운 진흙과 뒤섞어 땅 위에 깔고 호미로 둑을 짓고서 3월에 하종하되, 그 씨앗의 거리는 서로 1치쯤 떨어지게 심은 다음 젖은 재[灰]를 체로 쳐서 덮어주고는 물을 주고 또 거름물을 주기도 한다. (중략) 덩굴이 길게 뻗으면 시렁을 매어 끌어올린다. 이는 오이 심는 법과 모두 같다.동과(東瓜)는 동과(冬瓜)로 ‘동아’다. 크고 긴 열매로 껍질은 박 같다. 지금은 보기 힘들다. 동아나 남과(호박)을 기르는 법을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호박은 북쪽으로는 중국, 남방으로는 일본 큐슈, 오키나와, 동남아, 아라비아 등 다양한 루트로 들어왔을 것이다. 성호 이익의 또 다른 기록이다(성호사설 제5권_만물문_남과).채소 중에 호과(胡瓜)란 것이 있는데 빛은 푸르고 생긴 모양은 둥글며 무르익으면 빛이 누르게 된다. 큰 것은 길이가 한 자쯤 되고 잎은 박[瓠]과 같으며 꽃은 누르고 맛은 약간 달콤하다. 우리나라에는 옛날엔 없었는데 지금은 있다. (중략)/요즘은 사대부(士大夫)들에도 이 호과를 심는 이가 많은데, 어떤 이는 이르기를, “‘본초강목’에 남과(南瓜)라고 했다” 한다/(중략) 남과라는 것도 있고 또 왜과(矮瓜)라는 따위도 있는데, 이 왜과란 것도 남과와 흡사하다. 빛깔은 한껏 누르고 생긴 모양은 둥그스름하고 길며 맛은 단 편이다. 지금 시골에 혹 심는 이가 있는데 이름을 당호과(唐胡瓜)라고도 한다. 남과에 비교하면 조금 잘기 때문에 심는 자가 많지 않으니, 이는 대개 서북 지방에서 들어온 것인 듯하다.호박(남과)은 호과와 닮았다. 남과와 비슷한 왜과도 있다. 왜과는 ‘왜호과’라고도 한다. ‘호(胡)’는 아라비아, 중동이다. 당(唐)은 중국이다. 당호과는 아라비아, 중국을 거쳐 한반도에 들어온 것이다. 호박은, 호박죽처럼 뒤섞여 들어왔다./맛칼럼니스트 황광해

2019-09-30

임마누엘 칸트의 조언

임마누엘 칸트는 일정한 시간에 산책하기로 유명합니다.주위 사람들이 칸트를 보고 시계를 맞췄다고 할 정도였지요. 어느 날 한 부인이 칸트에게 질문합니다. “저도 선생님처럼 시간을 잘 다스리고 질서 있게 살고 싶습니다. 비결이 뭘까요?”칸트의 답은 뜻밖입니다. “부인, 바느질 바구니를 깨끗하게 정리해 보세요.” 선문답 같은 대화지요. 무질서하게 흐트러진 바느질 바구니를 정돈하면서 작은 실천을 해 보면, 보이지 않는 삶의 질서를 바로잡을 동기 부여가 되는 법이니까요.인생에 백해무익한 것들은 소리 없이 강합니다.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지독하게 파고들죠. 세상이 척박하고 삶이 피폐할수록 달콤한 유혹들은 삶을 어느 순간 점령해 버립니다.삶을 바로 세워줄 지렛대 역할을 하는 ‘좋은 습관’은 저절로 주어지지 않습니다. 마치 오르막길을 오르는 자전거 여행자처럼, 끙끙거리면서 에너지를 쏟아부어야 합니다. 저는 인생에서 소중한 그 모든 행위를 새벽에 다 몰아서 실천합니다. 지상 최후의 자유시간, 새벽이 있어서 얼마나 감사한지요. 모든 저녁 일과를 포기하고 늦어도 밤 9∼10시에는 침대에 들어갑니다. 결단과 삶의 가지치기가 필요하지만 뚜렷한 목적이 있기에 할 수 있습니다.새벽 2시부터 아침 8시까지 업무를 제외한 나머지 소중한 행위들 책읽기, 글쓰기, 사색하기, 묵상하기, 운동하기, 일기 쓰기 - 모두를 끝냅니다. 여기까지가 하루 일과의 오르막길입니다. 아침 8시 이후에는 신나는 내리막길 하루가 활짝 열립니다. 휴식과 업무를 적절히 조절해 남은 하루를 저절로 굴러가도록 합니다. 업무는 스스로의 동력이 있기 때문에 굳이 제가 억지로 의지를 발휘하지 않아도 나를 몰고 가는 힘이 있거든요. 반면 인생에서 진정 소중한 것들은 의지를 발휘하고 습관을 만들지 않으면 저절로 굴러가지 않습니다. /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대표

2019-09-30

교수들의 시국선언

강희룡 서예가대학하면 최고의 지성을 대표하는 교육기관이다. 대학은 그만큼 가기도 어렵고 선택된 교육기관이다. 후진국에서 대학생이 되는 비율이 고등학교 졸업생 수의 5% 미만인 경우도 있을 정도로 쉽지 않은 교육의 영역이다.하지만 한국은 고등학교 졸업생이 줄면서 많은 대학에서 신입생 모집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대학이 학생 모집에 전력을 기울이다 보니 진리의 상아탑이라는 본질은 사라진 지 이미 오래다.교수라는 직업은 당연히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지만 정치 또는 사회적으로 큰 혼란이 있거나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판단될 때, 현안에 대한 우려를 표명하고, 사태 해결을 촉구하는 시국선언을 하기도 한다. 이들의 시국선언은 애국이 목적이며, 대표적인 사례는 4·19혁명이 일어난 직후인 1960년 4월 25일 당시 자유당정권의 부정선거와 부패에 항거하여 교수들의 시국선언으로 인해 이승만은 다음날 대통령직을 물러났다. 1986년 5공정권의 군부독재를 비판하고 민주화를 요구하는 각계각층의 움직임이 가시화되었을 때도 교수들의 시국선언이 민주화의 여망을 대변하면서 시민과 학생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아 1987년 6월 민주항쟁을 이끌어내는 데에도 중요한 기여를 했다. 이렇듯 교수들의 시국선언은 우리사회에서 그들이 가진 비판적 지식인의 위상과 책임을 자리매김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지금 우리사회는 조국 법무장관 임명을 두고 가족이 검찰수사를 받기에 사퇴를 촉구하는 측과 조국 장관만이 검찰개혁 적임자라며 지지하는 측이 시국선언을 위한 교수들의 서명을 받고 있다. 문제는 지지하는 측에서는 조국 장관만이 검찰개혁의 엄중한 역사적 과업의 도구로 선택된 것이라며, 수사로 온 가족의 삶이 망가지는 위기에 처했음에도 불구하고 국가의 민주주의를 위해 자신이 그 운명을 바치기로 결심했기에 그를 지지한다는 것이다. 또한 이들은 검찰의 조국 가족 수사가 촛불혁명으로 출범한 개혁정부의 미래를 좌초시키려 한다는 것이다. 앞으로 수십 년 동안 이 나라 민주주의의 성패를 결정지을 핵심적 사안이 바로 검찰개혁이기에 조 장관 일가 수사를 두고 마녀사냥식이라고 몰아붙인다. 아마 이런 해괴한 궤변을 늘어놓고 있는 사이비교수집단이 많은 것도 한국이 아마도 세계에서 선두일 것이다. 교수직을 발판으로 오로지 벼락출세와 권력지향적인 욕망을 꿈꾸며 정치권을 오가는 행태를 보이는 자들을 ‘폴리페서’라 한다. 이 폴리페서를 자신이 하면 앙가주망(지식인의 사회참여)으로 즉 내로남불 이야기하는데 앙가주망 이전에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배웠어야 할 것이다.학문 연구는 뒷전이고 정치권력에나 기웃거리면서 아부나 일삼는 자들은 이미 교수로서의 품격을 버린 것이다. 한 번 교수는 영원한 교수라는 철밥통 관행 풍토가 사라져야 21세기 지식기반 사회에서 대학경쟁력이 살아날 것이다. 교수들 스스로도 학문적 능력과 연구실적 만으로 인정받아야겠다는 각오를 다져야 하며 교수평가 온정주의는 배척해야 할 것이다.지금 그들은 조 장관의 일가가 보여준 삶의 궤적이 개천에서도 용이 날 수 있다는 우리 사회의 실낱같은 서민의 사다리를 꺾어버린 행태를 민주주의로 포장해 궤변으로 국민 앞에 지지선언을 하고 있는 것이다.

2019-09-30

죽음마저 극복한 음악 구스타프 말러(上)

젊은 시절의 구스타프 말러.오시카 마사코가 쓴 ‘누구나 마지막에 꾸는 꿈, 집에서 죽음을 맞이하다’란 책을 보면 죽음이란 누구나 한번은 겪어야 할 경험이지만 대부분이 원하지 않음에도 집을 떠나 병원에서 객사(?)하는 사람이 많은 슬픈 현실을 언급한다.필자의 어린 시절을 떠올려 보면 골목길에 초상이 났음을 알리는 근조등을 자주 볼 수 있었다. 죽음을 알리는 근조(謹弔)등은 빨강과 파랑으로 예쁘게 구성되어 기묘한 감정을 불러일으켰으며 친구들과 신나게 놀다가도 근조등이 달린 문 앞을 지나갈 때면 본능적으로 침묵할 수밖에 없었던 어린 날의 기억이 있다.20세기 최고의 교향곡 작곡가로 불리는 구스타프 말러(Gustav Mahler·1860∼1911)의 음악세계는 ‘죽음’을 얘기하지 않고는 설명하기 어렵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죽음과 가까이 있었다. 15남매 중 둘째로 태어났으나 그 중 9명이 어린 시절 세상을 떠나는 것을 지켜보았으며 말러가 15세가 되던 해 바로 아래 동생 에른스트가 세상을 떠난 일은 가장 큰 상처로 남았다.장례의식은 모순된 분위기가 있다. 슬퍼하는 유족의 오열 속에 손님들은 문상이 끝난 후 음식을 대접받고 서로 친목하고 인사하며, 웃고 즐기는 묘한 분위기다. 형제를 잃은 슬픔이 큰 말러에게 이러한 모순된 경험은 매우 특별한 경험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말러가 유년 시절 처음으로 작곡한 곡이 ‘장송곡이 포함된 폴카’였음에도 어린 시절 죽음의 경험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말러의 모든 교향곡에 ‘장송 행진곡’ 풍의 악장이 들어 있으며, 특히 ‘교향곡 1번의 3악장’에서는 동요를 캐논의 형태를 사용하여 장송곡으로 편곡하는 새로운 시도를 한다. 여기서 사용된 동요는 누구나 한번쯤은 들어본 익숙한 동요인데 ‘프리레 자크’ 또는 ‘브루더 마르틴’ 등으로 불린다. 영어권에서는 주로 아이를 깨우는 노래로 쓰이며 “Are you sleeping, Are you sleeping”으로 시작되는데 동생 에른스트의 죽음을 애도하며 3악장에 동요를 단조화 하여 아이들의 장르인 동요와 죽음을 결합시키는 모순된 음악의 형태를 만들어 낸다.베토벤과 드보르작, 슈베르트 등은 9개의 교향곡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말러도 8번 교향곡을 작곡한 뒤 9번째 교향곡 착수를 앞두고 죽음의 딜레마에 휩싸였다. 그래서 아홉 번째 교향곡을 9번 교향곡이라 명명하지 않고 ‘대지의 노래’라고 불렀으며 중국의 한시를 텍스트로 사용하여 연가곡과 교향곡의 혼합된 작품을 남겼다. 이후 9번 교향곡을 완성한 후 10번 교향곡을 미완성으로 남겨 놓은 채 세상을 떠났으니 말러는 그가 우려한대로 9번 교향곡을 넘어서지 못했다.말러는 1884년 청년기인 24세에도 가까웠던 친구를 떠나보내는 죽음의 경험을 한다. 가장 친한 친구이자 음악의 동료였던 한스 로트(Hans Rott·1858∼1884)의 죽음이었다.말러의 친구 한스 로트는 작곡 능력이 탁월한 사람이었다. 그의 작품은 말러의 음악에 많은 영향을 주었을 뿐만 아니라, 만약 인생이 조금만 더 살았더라도 말러를 넘어서는 작곡가가 되었으리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다.19세기 말은 베토벤을 계승하고 음악의 순수성을 지향하는 브람스를 필두로 하는 ‘보수파’와 리하르트 바그너(R.Wagner·1813∼1883)와 프란츠 리스트(F.Liszt·1811∼1886)를 필두로 극적인 음악을 지향하는 ‘개혁파’의 팽팽한 대립이 있던 시기였다. 한스 로트는 ‘개혁파’의 음악적 성격을 가졌기 때문에 ‘베토벤 대상’에 작품을 응모했을 때 뛰어난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당시 심사 위원이었던 보수파의 브람스가 집요하게 선정에 반대하여 탈락시켰다. 그리고 한스 로트가 교향곡 1번을 완성한 뒤 당시 빈 필하모닉을 지휘하던 한스 리히터에게 보여 초연을 추진했으나 브람스는 한스 리히터(Hans Richter·1843∼1916)를 찾아와 교향곡 초연의 반대를 설득했다. 결국 초연은 무산됐으며 이후 한스 로트는 괴로워하며 정신병에 걸려 25세의 젊은 나이에 정신병원에서 생을 마감한다. 초연이 무산된 로트의 교향곡은 그가 죽은 지 100년이 넘은 1989년 신시내티 교향악단에 의해 초연됐다고 하니 한 세기가 지난 뒤 빛을 보게 된 셈이다./문양일 포항예술고 음악교사

2019-09-30

가을, 선정에 들다 - 상주 원적사(圓寂寺)

십여 년 전 원적사에 들렀던 적이 있다. 청정한 절의 경관보다 닳고 해진 소매끝과 천을 덧대 기운 젊은 스님의 승복 앞에서 가슴 서늘했던 기억이 또렷하다. 그 청빈한 산사의 이미지는 오랫동안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불자도 아닌 내가 산문을 쉽게 개방하지 않는다는 선원에 다시 가볼 기회는 오지 않았다.무작정 원적사를 찾아 나섰다. 문경과 상주, 괴산을 끼고 있는 청화산 중턱을 향해 가파른 산길을 오르자 ‘청정수행도량이니 돌아가라’는 표지판이 가로 막는다. 절은 660년(신라 태종무열왕7년) 원효 대사가 창건하였다는 설이 있지만 확실치는 않다. 풍수지리설에 따르면 학이 하늘을 향해 날아오르는, 비학승천혈(飛鶴昇天穴) 명당이라 예로부터 깨달음을 빨리 얻을 수 있는 수도처로 알려졌다. 학의 부리에 해당하는 크고 뾰족한 바위 아래 원적사(圓寂寺)라는 현판을 단 주법당이 좌선하듯 앉아 있다.석가여래좌상이 봉안되어 있는 법당에는 불전함이 보이지 않는다. 제단 위에 발가벗은 지폐 한 장 올려놓기가 민망하다. 나의 공양은 정성스런 마음보다 그저 습관 같은 의식에 지나지 않았는지 모른다. 요사채에서 차담을 나누던 주지 스님이 소탈하고 쾌활한 얼굴빛으로 맞아 주신다. 가을빛 한 아름 안고 따라오던 숲이 그제서야 뒤로 물러나 앉고, 머지않아 이 골짜기도 짧고 깊은 사색의 계절로 접어들 것이다.교통사고로 왼팔에 깁스를 한 채 보이차를 대접하는 범린 주지 스님은 오랫동안 알아온 사람처럼 어색하지 않고 편안하다. 형식적인 틀과 권위를 좋아하지 않는 스님은, 저절로 내면이 원숙해지고 중물이 자연스럽게 몸에 배어 나오길 원하신다며 두루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하신다.승(僧)과 속(俗)은 하나일 수 없다. 그렇다고 온전히 분리될 수도 없기에 스님 노릇도 쉽지 않으리라. 공양주 보살을 두지 말고, 산방도 꾸미지 말고, 산문도 열지 말고 수행에만 전념하라던 서암 스님은 이제 벽에 걸린 사진 속에서만 환하게 웃으신다. 해우소 가는 길섶에는 때이른 가을이 선정에 들고, 나무들은 서로를 품고 기도하듯 온화하다.부처님 오신 날만 산문을 여는 수행도량 봉암사와 50여 년 수좌로서의 품격을 잃지 않고 입적하실 때까지 지켜온 원적사, 두 사찰의 맑은 이미지 속에는 서암 큰 스님이 계신다. 나는 한 그루 갈매나무를 떠올린다. 백석의 시 속에서 하얗게 눈 맞으며 맑고 깨끗하게 살아가는, 곧고 의연한 아름다움을 지닌 갈매나무.젊은 시절 토굴에서 지내며 용맹정진하셨다는 스님은 인도의 오르빌과 명상센터를 수차례 다녀온 경험담을 꺼내신다. 기억이 희미해져 가는 나의 인도여행기와 책에서 만났던 오르빌의 환상들을 뜻밖에도 산중에서 만나게 될 줄이야. 세계적인 지휘자 첼리 비다케와 폰 카라얀, 말러와 베토벤의 교향곡, 철학자 쇼펜하우어와 오쇼 라즈니쉬, 전문적인 깊이는 가늠할 수 없지만 스님의 해박한 식견은 쉬지 않고 이어진다. 어둠의 경계를 허물기 위해 아침이 오도록 저린 걸음으로 걸었을 스님, 선정을 위해 곱게 물 들어가는 담쟁이덩굴의 안색조차 눈부시다.조낭희 수필가잠시 전생의 습을 생각한다. 안간힘을 써도 털어내기 힘든, 일종의 굴레 같은, 그 업을 벗기 위한 노력을 나는 하긴 했던가? 스님은 약자와 소수자에 대한 정의감도 유별나다. 중이 정치에 관심을 가지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며 씁쓸해 하신다. 내 몸 하나 위로하며 살기도 바빴던 나를 원적사 가을빛이 말없이 다독인다. 보물 하나 없어도 원적사가 아름다운 까닭이다.“불교는 종교를 넘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어 주는 철학이지. 공부해야 시건방 들 새가 없어.” 스님의 말씀이 소슬하게 날아와 꽂힌다. 그것은 가난한 절 살림을 겸허히 받아들이며 수행하는, 서암 큰스님의 상좌다운 자존심이다.산중 생활이 무섭지 않느냐고 여쭙자 “뭐가 무서워. 무서운 건 나지.” 우문현답이다. 어김없이 2시 50분이면 일어나 도량석을 시작으로 두어 시간씩 조석예불을 드리고 혼자서도 잘 논다던 스님은, 하루 30분이라도 명상하는 습관을 들이라고 당부하신다.“명상이란 내 안에 침잠해 들어가서 실체, 즉 본체를 확인하는 작업이지. 명상을 하면 생각의 흐름이 잡히고 소중한 것과 가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정리가 되거든. 아침에 명상하는 습관을 들여 보셔요. 습은 길들이기 나름이지. 모든 것은 내 의지, 마음 안에서 나오는 것이야. 끊임없이 변화하는 세상, 끊임없이 정진하는 길밖에 없어.”“불자들이 찾아오면 좋은 말씀 좀 해달라는데 참 딱해. 이 세상에 좋은 얘기가 적어서 이 모양인가? 작은 것부터 실천할 수 있어야지.”나의 허약한 의지가 댓돌에 벗어놓은 신발을 물끄러미 쳐다볼 뿐 어떤 추임새도 넣을 수가 없다, 가까운 곳에서 가을이 익어가는 소리가 들린다.행여 원적사가 궁금하여 청화산 가파른 언덕길 오르거든, 반야라는 이름을 가진 영리한 개와, 공부하기 좋아하는 스님 한 분을 찾아보라. 해우소 창틀로 들어오는 푸른 잡목 숲 닮은 스님이 그대를 반겨 맞을 것이니.

2019-09-30

내 마음 갈 곳을 잃어

변창구 대구가톨릭대 명예교수·국제정치학우수(憂愁)의 계절, 가을이다. 가수 최백호의 ‘내 마음 갈 곳을 잃어’라는 노래에 공감이 가는 것은 계절 탓만은 아닌 것 같다. 만나는 사람마다 “요즘 정치판 돌아가는 꼴을 보니 마음 둘 곳이 없다”고 탄식하니 말이다.정부·여당이 하는 짓을 보면 화가 나서 죽겠는데, 한국당도 변화와 혁신에 소홀하니 끌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공정과 정의를 부르짖던 진보에게 사기당하고, 보수에게는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의 마음은 갈 곳을 잃어버렸다. 최근 한 여론조사에 의하면 여야 정당 모두가 싫다는 무당파(無黨派)가 40%에 육박할 정도로 마음 둘 곳 없는 유권자들이 많다.부정과 비리가 보수·우파에게만 있는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진보·좌파는 한 수 더 뜬다. 얼굴도 붉히지 않고 거짓말을 밥 먹듯 하는 사람이 정의를 수호하는 법무부장관이 되었으니 말문이 막힌다. 민주당 대표는 “정권을 절대로 뺏기면 안 된다”고 벌써부터 내년 총선전략 마련에 분주하고, 한국당은 국민의 정부 비판이 한국당 지지로 연결되지 않는 데에 조바심을 느끼고 있다. 여야 모두가 고달픈 민생에는 안중에 없고 총선 승리에만 혈안이 되어 있을 뿐이다.게다가 나라는 극심한 대결과 분열로 인해 내란의 위기로 치닫고 있는데 국민통합을 약속했던 대통령은 보이지 않는다. 정당은 물론이고 언론과 지식인들까지도 ‘내 편 네 편’으로 갈라서 사생결단의 싸움을 벌이고 있는데 대통령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 남북대화에는 그렇게 적극적인 대통령이 왜 남남대화에는 소극적인지 이해하기 어렵다. 대통령이 진영 프레임에 갇힌 것이 아니라면 이렇게 방관만 할 수는 없는 일이다.이처럼 정치꾼(politician)들의 주된 관심은 ‘국민이 아니라 권력’이다. 그들이 말하는 평등·공정·정의는 선거 때마다 등장하는 정치적 수사에 불과했다. 자신에게 이익이 되면 정의이고 아니면 불의라는 궤변이다. 너를 청산해야 내가 권력을 지킬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잠시 착각했던 것은 사익(私益)밖에 모르는 정치꾼을 공익(公益)을 추구하는 참된 정치인(statesman)으로 생각했다는 사실이다.따라서 이제 우리는 두 눈 부릅뜨고 정치꾼들의 감언이설(甘言利說)에 속지 않아야 한다. 나아가 우리는 주권자로서 그들을 감시·감독하고 잘못을 저지른 자는 반드시 퇴출해야 한다. 국민의 지속적인 정치적 관심만이 민주주의의 반동화를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무당파여! 내 마음 갈 곳 없다고 슬퍼하지 말라. 진영논리에 갇히지 않는 당신이야말로 한국정치의 희망이다. 무당파는 ‘외눈박이 프레임’에 갇힌 좌파나 우파가 아니라 ‘정의파’이기 때문이다. 당신들이 있기에 극단적 대결로 치닫고 있는 이 나라가 두 동강 나지 않고 가까스로 유지되고 있다. 게다가 당신들은 선거에서 ‘캐스팅보트(casting vote)’까지 쥐고 있으니 그 영향력이 막강하다. 따라서 당신들의 올바른 인식과 선택이야말로 ‘한국정치에서 희망의 촛불’임을 잊지 말자.

2019-09-30

가을산행의 복병

온 산이 단풍으로 물드는 계절, 등산에 나서는 이들이 부쩍 늘었다. 하지만 산에는 자칫하면 다치거나 건강에 해로울 갖가지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우선 산에서 만나는 버섯은 아예 손을 안 대는 게 좋다. 식용 버섯과 비슷하게 생긴 개나리광대버섯, 화경버섯 등은 맹독을 갖고 있다. 성묘하다 보면 뱀과 마주칠 수 있는데 독사에 물리면 뛰지말고 상처를 묶어 혈액 순환을 억제한 뒤 병원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벌초를 하다 만나는 말벌도 위험하다. 말벌은 화려한 색상보다 어두운 색상에 공격성을 보이는 만큼 옷차림에 유의하고 말벌집을 건드렸을 경우 뒷머리를 감싸고 반경 15m를 빨리 벗어나는 게 좋다.꽃가루가 날리는 식물도 주의해야 한다. 보통 꽃가루가 기승을 부리는 계절은 대개 봄으로 알려져 있지만 여름이 지난 뒤 날씨가 선선해지는 9월과 10월에 알레르기를 본격적으로 유발하는 식물도 있다. 대표적인 게 환삼덩굴이다. 잎이 쑥잎과 비슷한 돼지풀도 꽃가루의 주범이다. 단풍잎돼지풀도 강한 알레르기를 유발한다. 풀이 가득한 숲속을 헤치고 가는 일을 최대한 줄이는 게 바람직하고, 지정된 탐방로를 이용해야 한다. 숲속 습한 곳에서 자라는 쐐기풀류도 주의해야 한다. 몸 전체에 돋아난 작은 가시털이 문제인데, 무심코 만졌다간 피부에 큰 고통을 느끼게 된다. 가시털에 독성 물질 ‘포름산’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우연하게라도 스치지 않도록 긴 소매옷을 입는 게 상책이다.태풍에 때이르게 낙과한 밤송이도 주의해야 한다. 등산이나 나들이 때 무심코 앉거나 손을 짚었다 밤가시에 찔리면 피부 표면에 있던 포도상구균이나 사슬알균이 피부 깊숙이 침투하여 염증을 일으킬 수 있다. 가을 산, 운치는 좋지만 다치는 일이 없도록 주의해야 한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19-09-30

‘사냥개’ 딜레마

안재휘 논설위원지난 1925년 소설가 박영희(朴英熙)가 발표한 ‘사냥개(원제는 산양개)’라는 단편소설이 있다. 섬세한 심리묘사가 돋보이는 이 작품은 자린고비 백만장자 정호가 양심의 가책과 연결된 연상작용에서 점증한 몽환적 공포를 견디지 못하고 한밤중 금고를 들고 집을 나섰다가 굶주린 자신의 사냥개에게 물려 죽는다는 내용이다. 박영희는 이 작품을 쓴 이후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KAPF) 조직에 가담했다.대한민국이 온통 ‘사냥개’ 딜레마에 빠졌다. 날마다 새로운 역사를 써온 ‘조국 논란’은 전혀 예기치 못한 방향으로 비화하고 있다.문제의 핵심은 조국 일가의 놀라운 편법 또는 불법 의혹인데 순식간에 친문(親 문재인)대 반문(反 문재인) 대전(大戰)으로 변질돼 버렸다. 대통령이 검찰에 ‘성찰하라’고 한 말씀 하자 동원된 친문들이 서초동에 모여 실력행사를 벌였다.많은 사람이 “문재인은 왜?”, 또는 “윤석열은 왜?”하고 의문부호를 붙인다. 멋진 진보지식인으로만 비치던 조국은 언행이 도무지 일치하지 않는 사람이라는게 낱낱이 드러났다. 장관이 되고 나서도 깜냥이 안된다는 증거가 속출한다. 자택 압수수색 팀장과 전화통화를 한 사실은 공사(公私)조차 구분 못하는 인물임을 만천하에 입증했다.검찰을 ‘증거조작단’으로 간주한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의 궤변은 혀를 내두르게 만든다.그는 조국의 아내 정경심의 ‘PC 무단 반출’을 놓고 “검찰이 압수수색해서 장난칠 경우를 대비하기 위해 복제하려고 반출한 것”이라고 강변했다. 검찰 측에서 “이쯤 되면 막 가자는 것”이라는 격앙된 반응까지 나왔다.유시민의 논리가 참이 되려면, 최소한 검찰은 지금까지 ‘적폐청산’이라며 잡아들인 전직 대통령들과 수많은 전 정권 인사들에 대해 숱하게 증거를 조작해 기소했다는 말이 된다. 유시민은 나아가 윤 총장을 겨냥해 “총칼은 안 들었으나 위헌적 쿠데타나 마찬가지”라고 선동하고 있다. 그에 발맞춰서 문재인 지지자들은 윤석열을 일제히 ‘배신자’로 몰아간다.윤석열은 문재인 정권 출범 이후 중앙지검장으로 발탁돼 벼락출세한 사람이다. 지난 2년여 동안 ‘적폐청산’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된 보복 정치의 ‘으뜸 사냥개’로 충성을 다한 인물이다. 그리고 마침내 검찰총장이라는 최고봉에 올랐는데 검찰의 힘을 반 토막 내려는 ‘개혁’의 칼을 받으라는 압박을 받고 있다. 영락없이 벼슬과 조직을 바꿔먹은 배신자가 될 판이다. ‘오직 조직에만 충성한다’는 신념의 윤석열은 어쩌면 자신의 처지가 토사구팽(兎死狗烹) 직전에 몰린 사냥개 같을지도 모른다.‘검찰 개혁’은 독립성 보장에서 시작돼야 한다. 그런데 청와대와 여당이 말하는 ‘검찰 개혁’은 정권의 말 잘 듣는 사냥개를 만들겠다는 엇나간 개혁임이 분명하다.“살아있는 권력까지도 엄정하게 수사하라”던 문재인 대통령이 또다시 일구이언(一口二言)을 보태기 시작했다. 누가 물려 죽을지 모르는 이 혼란한 ‘사냥개’ 딜레마의 끝은 대체 어디인가.

2019-09-29

승시(僧市)

전라도 화순군 어느 마을의 이름이 ‘중장터’다. 그 이유는 옛날 승려들의 물물교환이 이뤄지던 장터였다는 데서 유래돼 붙여진 이름이다. 원래 승시는 승려들이 필요한 물품을 조달하기 위해 사찰에서 생산한 물자를 유통시킨 장소다. 승려들이 만나 생필품과 불교용품 등을 물물교환 형식으로 거래했던 곳이다. 불교문화가 찬란했던 고려시대에는 전국 곳곳에서 이 같은 형태의 승시가 성행했다고 한다. 그러나 조선시대 들면서 숭유억불 정책에 따라 승려들의 도성 출입이 제한되고 덩달아 생필품 구입이 어려워지면서 그들만의 장터가 산중에서 열리게 된다. 이것이 산중 승시의 출발이다.팔공산 동화사와 부인사 등지에 열렸던 승시는 규모도 컸지만 가장 늦게까지 장이 선 곳이다. 동화사 총림이 승시를 재현한 축제를 열게 된 배경도 여기에 있다. 올해 10번째 승시 축제가 팔공산 동화사 일원에서 다음달 3일부터 나흘간 열린다. 대덕스님의 법문을 시작으로 개최되는 승시 축제에는 승시재현 마당을 비롯 사찰음식 강연, 음악회, 전시회 등 다양한 행사로 진행될 예정이다. 승시 축제가 해를 거듭하면서 팔공산에 남아 있는 역사와 문화자산의 재발견이라는 의미에 접근하고 있다는 사실에 흥미가 간다. 승시를 통해 사찰문화의 의미를 되새기면서 한편으로는 대구의 유명 관광자원화되고 있다는 것은 축제의 의미를 더 뜻 깊게 한다. 승시 축제를 주관하는 동화사 주지 효광 스님은 “승시의 근원적 의미는 의식주에 기반하는 삶의 모습”이라 했다. 그 속에서 살아가는 지혜를 배우고 우리사회 공동체적 선을 추구해보자는 그의 말은 승시의 현대적 의미의 정신이라 하겠다. 단풍이 물드는 가을날 산 중에서 보는 승시 축제는 혼탁한 세상 일을 잊게 할만하다. /우정구(논설위원)

2019-09-29

오르막과 내리막

운동으로 걷기를 좋아하지만, 간혹 속도감을 느끼고 싶을 때는 헬멧을 쓰고 자전거에 오릅니다. 왕복으로 달릴 때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은 딱 절반씩 있습니다. 내리막이 없는 오르막이 없고, 오르막이 없는 내리막은 있지 않지요. 힘든 오르막길을 페달을 밟으며 끙끙 오를 때는 조금만 더 가면 자전거가 내리막을 만나 절로 굴러가며 시원한 바람 한 줄기 맞을 생각에 괴롭지 않습니다. 지형에 따라 다르기는 하지만 광활한 대륙이 아닌, 우리나라의 지형에서 오르막과 내리막은 수시로 나타납니다.인생도 비슷하게 오르막 내리막이 있고, 짧게 보면 하루를 살아가는 것도 오르막과 내리막이 있습니다. 힘든 시간을 보내면 즐거운 시간도 있고 맑고 환한 빛나는 시간이 있는가 하면, 어둡고 우울한 시간들이 항상 우리를 뒤따릅니다. 날씨가 항상 흐리고 비가 오는 날만 있지 않고 맑고 환한 날, 바람 부는 날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책 읽고, 글 쓰고, 운동하며 내면을 가꾸고 돌보는 일. 건강하고 의미 있는 삶을 위한 가장 중요한 요소들입니다. 습관 만들기는 마치 아이들이 걸음마를 배우는 과정과 흡사하지요. 단번에 이뤄지지 않습니다.시도하고 넘어지고, 나는 왜 늘 이럴까 좌절하기도 하고 실패도 많이 합니다. 특히 공동체를 이루며 함께 습관을 만들어 가는 과정은 서로가 지켜봐 주는 것이 좋은 자극이 되지만, 한편으로는 남의 시선을 의식해 그저 흉내만 내면서 헉헉 따라가는 경우도 간혹 있습니다. 그래도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고 삶에 떠밀려 하류로 두둥실 흘러내려 가는 수많은 삶보다는 천만 배 가치가 있는 시도들입니다. 누구나 시행착오를 반복하면서 버둥거리고, 물결을 거슬러 올라가는 연어처럼, 안주하려는 내면의 속삭임과 싸우곤 합니다. 커다란 에너지를 소모하지요. 어떻게 하면 물결을 거슬러 올라 저 원천에 닿는 것이 가능할 수 있을까요? (계속)/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대표

2019-09-29

트럼프의 임기응변식 ‘막말 정치’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이 될 것으로 예측한 사람은 우리나라에서 드물었다. 그는 미국 중하층 백인들의 지지로 대통령에 당선되어 ‘미국 우선주의’ 정치를 활발히 펼치고 있다. 그러나 임기 초부터 트럼프의 절제되지 않는 발언은 세계인들을 불안케 하고 있다. 무슬림에 대한 비하 발언에서부터 최근 우크라이나 대통령에 대한 전화는 트럼프를 탄핵의 궁지로 몰아가고 있다. 트럼프의 한반도 문제에 관심은 미국의 역대 어느 대통령보다 높다. 그러나 그의 정제되지 않은 한반도 관련 발언은 그의 신뢰를 더욱 떨어뜨리고 있다.트럼프는 북한 김정은에 대한 평가도 여러 차례 바꾸었다. 그는 임기 초 핵실험을 강행하는 김정은에게 ‘작은 로켓 맨’으로 비하하였다. 트럼프는 ‘독재자’ 김정은을 이제 ‘좋은 친구’라고 부르고 있다. 그는 북한을 ‘화염과 분노’ 국가에서 ‘엄청난 발전 가능 국가’로 치켜세우고 있다. 물론 흥정의 달인답게 김정은을 협상 테이블로 끌어들이려는 술책이다. 하노이 회담 결렬 후 트럼프는 김정은의 우호적인 편지를 직접 소개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북미 핵 협상이 성공할지는 여전히 의문이다.트럼프는 그의 북미 협상의 성과를 지나치게 선전하고 있다. 그는 북미 간 대화를 하지 않았다면 ‘한반도에서는 벌써 전쟁이 났을 것’이라는 발언도 하였다. 내년 대선을 앞둔 시점의 발언이지만 북미 협상이 없었다고 한반도의 전쟁이 일어났을 것으로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트럼프는 한반도 평화를 위한 그의 역할을 노벨 평화상 감이라는 발언을 수차례 하였다.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오바마보다 자신의 역할이 크다는 것이다. 그는 노벨 평화상위원회의 심사가 공정하지 못하다고 비판하였다. 북한과의 비핵화 협상도 타결되지 못한 시점의 그의 발언은 아무래도 지나치다.트럼프는 주한 미군의 방위비 분담을 과도하게 요구를 하고 있다. 지난해 10억달러(1조3천억원)의 5배인 50억달러를 요구하고 있다. 그가 ‘안보 무임승차론’을 내세워 기존 방위비의 5배나 요구하는 것은 협상의 기본 상식에도 어긋난다. 트럼프는 지난번 한미 합동훈련 중인데도 ‘돈이 많이 드는 한미 합동훈련은 필요 없다’는 말까지 하였다. 미군의 합동훈련 비용까지 한국 측에 전가하려는 내심일 것이다. 다시 한미 방위비 협상은 시작되었다. 트럼프의 이러한 무리한 요구가 관철될 수도 없고 되어서도 안 된다.트럼프의 잦은 이러한 막말은 그의 한반도 평화 노력을 의심케 한다. 세계 지도국 행세를 하는 미국 대통령의 막말은 그의 정치 품격을 떨어뜨린다. 얼마 전까지 같이 일했던 안보 특보 존 볼턴에 대한 비난 발언도 상식에 어긋난다. 부동산 재벌 출신 트럼프의 정제되지 않은 즉흥적 발언은 결국 트럼프식 비즈니스 정치의 화신일 것이다. 그의 변질된 미국식 실용주의적 사고인 그의 발언은 그에 대한 불신을 더욱 증폭시킬 뿐이다. 트럼프의 이러한 정치를 이해하려면 그의 공저인 ‘거래의 기술’부터 읽어야 한다. 트럼프의 이러한 처신이 미국의 내년 대선에서 다시 먹혀들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2019-09-29

학교 패드립 경보

김현욱 시인학기 초에 두 남학생이 주먹다짐을 했다. 친구들이 말려도 막무가내였다. 한 아이는 눈이 뒤집혀서 죽기 살기로 달려들었다. 이마가 찢어지고 코피가 터졌다. 웬만해서는 이 정도로 과하게 싸우지 않는다. 두 아이를 진정시키고 다친 곳을 치료하고 싸운 이유를 물었다. 한 쪽에서 “패드립”이란 말이 나왔다. 어안이 벙벙해서 그게 뭐냐고 물었다. “우리 엄마 욕을 했어요. 니 에미 어쩌고 저쩌고요.”패드립. 패륜과 애드리브를 합친 신조어. 자신의 부모나 조상을 비하하는 패륜적인 언어를 가리킨다. 시사상식사전을 찾아보니 2010년경 온라인게임에서 시작됐다고 한다. “그걸 어디서 배웠어?” “유튜브요.” 아이들에게 물어보니 패드립은 대체로 “니 에미…, 니 애비….”로 시작한다고 한다. “니 에미 애자(장애인)지. 니 애비 없지.” 이게 애들 입에서 나올 소린가. 기가 막혀서 먼 하늘만 바라봤다.요즘은 눈에 띄게 아니 귀에 띄게 청소년들의 욕설을 자주 듣는다. 학교뿐만 아니라 버스에서, 길거리에서, PC방에서, 식당에서 온갖 욕들이 날아다니고 튀어나온다. 욕에도 수준이 있다면 청소년들의 욕하는 습관은 이미 위험수위를 넘은 것으로 보인다. 자신의 자녀는 그렇지 않을 거라고 장담하다가 자녀의 단톡방이나 문자메시지, 연습장에서 육두문자를 보곤 소스라치게 놀라는 학부모도 적잖다.정치인들의 막말, 어른과 부모의 위선, 유튜브와 SNS를 통해 일상적으로 접하는 욕설, 패드립, 막말에 우리 아이들은 이미 병들었다. 학급장기자랑 시간에 동요를 부르고 시를 암송하는 아이는 사라졌다. 학교에서 교사의 생활지도는 명분만 남았다. 좋은 게 좋은 거라는 변명만 남았다. 솔직히 어쩔 도리가 없다. 진심으로 다가가 감화시키는 방법이 유일하지만, 학교 여건은 녹록치 않다. 교사로서 아버지로서 부끄럽고 참담하다. 말은 물과 같다. 물이 오염되면 뭇 생명이 병든다. 말이 오염되면 수많은 정신이 병든다.며칠 전에 학부모에게서 패드립을 당했다는 전화를 받았다. 자신의 아이가 다른 반 친구들에게 패드립을 당했다는 것이다. 학부모는 분노와 모욕감으로 치를 떨었다. 다음 날 패드립을 한 아이들은 친구에게 진심으로 사과하고 반성했다. 그게 그렇게 나쁜 말인지 상처를 주는 말인지 몰랐다고 했다. 그렇다. 우리 아이들은 패드립과 막말과 욕설이 그렇게 나쁜 말인지, 상처를 주는 말인지, 칼보다 더 위험한지, 모르고 마구 내뱉고 있다. 어쩌면 다행이다. 알고 그런다면 얼마나 끔찍하겠는가!얼마 전 수원 어느 노래방에서 중학생들이 초등학생을 잔인하게 폭행하는 영상이 올라와 공분을 샀다. 네티즌들은 소년법을 개정하라며 또다시 국민청원을 냈다. 갈수록 청소년들의 인성은 메마르고 영혼은 거칠어지고 있다. 패드립이란 말이 서글프다. 쉬는 시간에 아이들 몇몇이 욕설을 하는 소리를 듣는다. 어디서 배웠을까? 어쩌면 좋을까? 적어도 친구의 부모를 비하하고 모욕하는 패드립만은 하지 말아야 할 텐데.

2019-09-29

수면자 효과를 극복하려면

정은숙 생각학교ASK 연구원신뢰도가 낮은 출처에서 나온 메시지가 시간이 지나면서 오히려 설득력이 증가하는 현상을 수면자 효과라고 한다. ‘소문은 자고 일어나면 어디서 들었는지 잊어버린다.’는 외국 속담에서 비롯한 심리학 용어다. 사람들이 정보를 접할 때 얼마나 쉽게 받아들이는지 경고하는 용어다.정보가 폭증하는 현대 사회는 출처가 분명하지 않은 말이나 지식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다. 때로 검증되지 않은 정보가 내 기억창고에 흘러들어 진짜와 가짜의 분별없이 한 자리를 차지하는 경우가 있다. 같은 말을 여러 사람으로부터 반복해 듣다 보면 진실이 아니라 해도 결국 진실로 둔갑해 힘을 발휘한다. 불분명한 정보나 지식이 꾸역꾸역 흘러들어오면 나도 모르는 사이 그런 관념이 선입견이 되기도 하고 결국에는 고정관념으로 인격의 한 모퉁이를 차지한다. 무서운 일이다. 이렇게 무방비 상태로 들어오는 잘못된 정보나 관념은 어떻게 걸러낼 수 있을까? 최소한 긴장하며 확인해 보려는 노력은 해야 하지 않을까?독서 모임을 통해 책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는 즐거움이 크다. 몇 년째 독서 모임에 참여하다 보니 어느 시점이 되면 꼭 나오는 말이 있다. “책 안 읽는 사람들은 말이 안 통해요. 만나서 대화를 나눠도 재미가 없어요.” 책에 재미를 붙이고, 한 권 한 권 독파해 나가고 토론하면서 즐거움에 빠져 악의 없이 던지는 말이다. 그런데 여기서 한 번 의문을 제기해 본다. 과연 그럴까? 반드시 책을 읽어야 말이 통하는 것일까?책을 많이 읽을 형편은 못 되지만 제대로 된 인격을 갖춘 사람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나도 책을 조금 읽기 시작하면서부터 조금 아는 것이 전부인 양 진리인 양 상대를 설득하고 계몽하려는 교만함이 있었다. 책이나 관계를 통해서 무의식 가운데 수면자 효과로 흘러들어온 얇은 지식은 심지어 ‘책을 읽지 않으면 말이 통하지 않는다’라는 편견까지도 만들어 낸다.일상생활에서도 마찬가지다. 관계 속에서 부딪히는 많은 불협화음도 나중에 찬찬히 따지고 보면 잘못된 정보나 오해가 유발한 선입견이 원인으로 밝혀지는 경우가 의외로 많다. 모호한 대답, 정확하지 않은 정보를 적당히 혼합해 내 생각으로 예측한 ‘카더라(그렇다고 하더라)’통신에 우린 얼마나 길들어 있고 희생당하고 있는가?내게는 수면자 효과에 기인한 고정관념은 없는가 따져봐야 한다. 확인되지 않고 이치에 맞지 않는 근거 없는 정보들을 가볍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일이다. 사사로운 개인적 감정을 기준으로 눈 가리고 귀 닫고 쏟아지는 정보를 분별없이 받아들인 것은 얼마나 많았던가. 아이들에게 스마트 폰을 맡기지 않으려고 하는 엄마들의 고민도 이런 염려 때문이다.정보들은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는데 과연 어떤 것들이 진실이고 어떤 것들이 가짜인지 분별하기란 쉽지 않다. 그렇다면 이미 생활 깊숙이 자리잡은 검증되지 않은 정보와 지식은 어떻게 다뤄야 할까? 최소한 확인 가능한 정보인지, 내가 잘못 알고 있는 선입견으로 판단을 잘못 하가 있는 것은 아닌지 확인하려는 시도 정도는 필요하지 않을까?나의 작은 실천 사항은 이렇다. 첫째, 하지 않아도 될 말은 굳이 입 밖으로 꺼내려 하지 말자. 둘째, 내가 확인하지 않은 사실을 진짜인 것처럼 전하지 말자. 셋째, 사물이나 사람에 대한 정보가 확실하지 않다면 내가 아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하자. 넷째, 사람에 대한 선입견이 있다면 바로잡으려는 노력을 통해 드러나지 않은 속뜻을 살펴보는 정성을 갖자.우리는 모두 무한한 가능성을 분명히 갖고 있지만 새로운 일이나 환경에 도전하지 못하는 이유는 직접 경험해 보지 않은 세상에 대한 막연한 편견이 발걸음을 뗄 수 없게 만든다. 슬픈 일이다.내 지식을 도둑맞지 않도록, 거짓이 잘못 침범하지 않도록 깨어나야 한다. 수시로 진실인지 점검하는 일을 멈추지 않아야 한다. 진짜와 가짜를 분별할 수 있는 지혜를 길러야 한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라인홀드 니버를 따라 기도한다. “변화시킬 수 있는 것들은 실천하는 용기를 주시고 변화시킬 수 없는 것들은 받아들이는 침착함을 주소서. 내게 이 둘을 구별하는 지혜를 주소서.”

2019-09-29

행정에서 변화의 시작은 소통이다!

오도창 영양군수지난 선거운동 과정에서 목이 쉬도록 민선 7기의 청사진을 제시하고자 지역 곳곳을 살피던 시기가 있었다. 영양을 변화시킬 다양한 구상안을 염두에 두고 그 계획을 이루고자 다짐했던 나 자신과 군민과의 약속을 실현하고자 매일 숨가쁘게 달려왔다.하지만 많은 일을 해도 돌아보면 늘 제자리 인듯 아무런 변화를 느끼지 못할 때가 많다. 아쉬움에 내가 가는 이 길이 맞는가에 대한 의문도 가지게 되고 영양군수라는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인지에 대해서도 확신하지 못하는 때도 있다. 그러나 쉽게 좌절하지는 않았다. 이상과 현실이 마주하는 모든 문제들은 늘 해결하기 어렵지만, 내가 만들어가는 행정이란 ‘다른 생각들을 모아 더 큰 다름을 만들어가는 과정’이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진짜 행정’을 갈망했던 나의 절실함은 시간이 차차 흘러 ‘변화’와 ‘행복’이라는 민선 7기의 군정철학으로 구현되었으며 이를 실천하는 기본은 바로 소통이었다. 군민과의 소통은 물론 영양군 공직 내부의 목소리를 듣는 일도 중요했다. 우리가 아는바 모든 권력은 군민에게 있으며, 군민이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를 펼칠 수 있도록 돕는 일은 공직자들의 몫이기 때문이다.가장 먼저 6개 읍면을 방문하는 일로 시작했다. 1만 7천여명의 영양군민을 직접 만나 그들의 얘기를 들어보는 것이 우선이었기 때문이다. 민원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우리의 일상생활과 관련된 생활 민원인 건의 사항들이었다. 정말 중요한 것은 민원내용 뒤에 숨겨진 군민들의 현실을 체감하는 일이었다. 영양군수로 취임하기 전 2년이 넘는 시간을 영양부군수로 재직하였고 고향인 영양에서 공직을 시작해 누구보다 지역 현안을 잘 알고 있다고 자부했지만 때로는 나의 경험과 지식이 무용하게 여겨질 때도 있었다.단순히 민원을 해결하는 것을 넘어 구조적이고 만성적인 영양의 문제점을 찾아내는 일이 무엇보다 시급하고 중요했다. 군민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야 했다. 눈높이를 맞춰야 했고 읍면을 방문하고 시간이 되면 미처 돌아보지 못한 시장이며 마을 경로당 같이 사람이 있는 곳이면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방문하여 듣고 또 들었다.수많은 각기 다른 민원이지만 결국 가리키는 곳은 하나였다. ‘영양군은 어떻게 변화 되어야 하는가?’‘작은 변화와 혁신’은 시간이 지나 차차 쌓여 큰 변화를 이루게 된다. 민선 7기 영양군은 시작부터 행보를 달리했다. 형식적인 인수위원회가 아닌 실질적인 업무 인수인계로 시작해 순수 민간으로 구성된 민선 7기 영양군수 공약 군민평가단 위촉, 생활민원바로처리반과 소상공인 지원을 위한 각종 경제 관련 조례 재개정 추진으로 생활밀착 행정과 지역경제 회복에 토대를 둔 행정에 방점을 찍었다.취임 초기부터 정책의 방향성을 선명하게 결정한 것이 시작이었다면 새로운 추진력으로 삼고자 내부 구성원들과의 소통에도 집중하였다. 공직자의 소통의 창구를 늘리고자 조회에서 석회로 변경하고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충실한 내용으로 영양군의 바람직한 변화에 대해 생각하고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깊이 고민하는 체계를 다졌다고 생각한다. 담당부서에도 정책에 대한 더 많은 고민을 던져 영양군의 주인인 영양 군민들의 뜻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요청해왔다. 영양의 미래와 변화에 대한 우리의 생각을 정확히 정의하기엔 이제 막 1년이 넘은 시간으로는 명확한 정답을 내릴 수는 없다. 하지만, 적어도 영양군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을 같이 고민하고 나누는 관점의 방향은 하나로 가까워졌다고 말할 수 있다.작지만 변화의 시간을 거치며 어떤 오류가 있었는지 행정이 군민에게 군민이 행정에게 어떤 생각을 달리하고 있는지, 그 모든 오류와 다름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상황을 행정의 기준으로 보고 있는 것은 아닌지를 두고 치열하게 고민하고 있다. 관례적으로 실시하는 사업을 재검토하고 정비하는 일, 새로운 변화를 유도하는 일, 주민 편의에 맞춘 생활 행정을 실천하는 일 등이 그러했다.원칙은 만들어졌고 이것을 토대로 민선 7기 영양군은 군민 중심의 정책을 펼 수 있는 새로운 공간들이 만들어졌으며 만들어 가고 있다. 그러다 보면 나, 영양군 공직자 그리고 영양 군민 모두가 영양군을 넘어 사회 전반이 과거와 현재를 넘어 미래로 향하고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언제쯤에는 “늘 제자리라고 느꼈으나 사실 우리는 한걸음씩 진보하며 변화하고 있었다”라거나 “더 큰 다름, 그것은 다름 아닌 ‘변화’다”라는 말을 서로에게 해줄 수 있지 않을까.

2019-09-29

균형발전을 위한 제언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2019년 대한민국균형발전박람회가 25일부터 27일까지 사흘동안 전라남도 순천시 순천만국가정원 일대에서 열리고 있다. 지난 2004년 부산을 시작으로 해마다 열리는 국내 최대 규모의 지역박람회가 기초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 열리기는 처음이어서 더욱 의미가 깊다.특히 이번 박람회에 참석한 지역균형발전위원회 멤버들 가운데 국장급 3명이 내년 총선에 출마하기 위해 조만간 위원회를 떠난다고 해 환송회를 치렀다. 경북 경산에 출마 예정인 전상헌 국장, 경기도 김포에 박진영 국장, 전라남도 광주에 조오섭 국장이 그 주인공들이었다. 이들 가운데 전성헌·박진영 국장은 대구·경북출신이어서 자주 만나 지역균형발전정책에 대한 의견을 나누던 사이였고, 조오섭 국장 역시 광주 출신이지만 지역균형발전위원회에 몸담은 동안 균형발전정책에 대한 여러 제안을 함께 고민했던 사이인지라 무운을 빌어주었다.그들과 내년 총선에 대한 얘기를 나누다 대구·경북이 찬밥신세가 되고 있다는 대목에 이르러 여러 상념이 떠올랐다. 국가균형발전위원회는 대통령 직속 위원회로서 지역균형발전정책을 총괄하는 기관인지라 행정부처에 대해서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하곤 했다. 실제로 지역의 현안사업에 대한 예산을 확보하는 데, 집권여당 소속인 이들의 입김과 영향력이 적지않게 작용하는 듯 했다. 그래서 지역균형발전정책에 대한 식견도 상당하고, 처신도 반듯한 이들이 각자 원하는 지역구에서 국회의원 뱃지를 달게 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하지만 정치현실은 필자의 바람과는 다르다. 대구·경북지역의 경우 더불어민주당 간판으로 국회에 입성하는 것은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지난 총선에서 대구 수성갑의 김부겸 의원이 거의 유일하게 민주당 소속으로서 당선됐고, 홍의락 의원은 무소속으로 출마해 민주당에 입당한 경우다. 나머지 대구 10곳, 경북 13곳은 모두 자유한국당 소속 국회의원들이 당선돼 ‘자유한국당 텃밭’으로 불리는 게 대구·경북의 실상이다. 최근 민주당이 자유한국당의 아성인 대구·경북지역 공략을 위해 젊고 참신한 당료나 공무원 출신들을 차출해 새바람을 불러일으킬 채비를 하고 있다. 또 이해찬 대표와 이인영 원내대표 등 더불어민주당 지도부는 25일 이날 국회에서 ‘민주당 대구시당 예산정책 간담회’를 열고, 대구시에 대한 전폭적인 예산 지원을 약속하는 등 대구 민심 구애에 나섰다. 대구·경북지역 내년 현안사업 예산을 당지도부가 직접 나서 챙겨주겠다니 약속이 실현되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어쨌든 우리나라는 정치가 사회·경제·문회 모든 분야를 끌어가는 정치과잉이 문제다. 필자는 정치는 정치인들끼리 알아서 하도록 내버려두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다만 지역민을 대표해 일할 일꾼을 뽑는 총선에서는 무슨 당소속이냐가 아니라 지역을 위해 열심히 일할 수 있는 역량이 있는지를 보고 뽑아야 한다고 믿는다. 그래야 당별로 패거리를 나눠 싸움박질이나 하는 정치꾼들을 배제할 수 있다. 또 그런 민주적인 표심의 발현이 지역균형발전에 도움이 될 인재를 뽑을 수 있다고 믿는다.

2019-09-26

삼겹살의 위기

삼겹살은 한국인이 즐겨 찾는 대표 요리다. 돼지 갈비 부근에 붙은 부위로 살과 비계가 세겹으로 겹쳐 보이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삼겹살이 우리 국민의 대중적 요리로 자리를 잡은 것이 언제인지는 정확지 않다. 돼지고기를 구워먹는 문화는 고구려 때부터 있었지만 돼지고기 구이는 양념구이지 삼겹살처럼 생고기를 불판에 굽는 형태는 아니었다. 조선시대 때도 고기를 삶거나 찌거나 국으로 끓이는 형태가 보통이었다. 굽는 요리는 한참 뒤다.언론에서 삽겹살을 처음 언급한 것은 1934년 서울 모 일간지에서다. 삼겹살이 우리 국민의 대표 음식인 반면에 등장 시기는 그리 오래전이 아님을 짐작할 수 있다. 속설에 따르면 1980년대 강원도 탄광촌 광부가 기름기 있는 음식을 먹으면 목의 먼지를 씻겨낸다고 하여 시작했다는 설도 있으나 근거는 없다. 요리업계는 1970년대 중반 우리경제 발전과 더불어 육류소비가 늘면서 삼겹살이 널리 보급됐다고 본다. 특히 휴대용 가스레인지 보급이 확대되면서 삼겹살을 구워먹는 문화가 전국화됐다고 한다.삼겹살은 서민의 단백질 공급원으로서는 이만큼 좋은 음식도 없다. 풍부한 지방 덕에 맛도 뛰어나다. 값이 비교적 저렴하고 영양학적으로도 알맞다. 돼지고기에 있는 필수아미노산과 비타민 B₁은 쇠고기보다 10배나 많다. 지친 피로를 풀고 몸의 활력을 돕는 데 최고다.아프리카 돼지 열병이 확산되면서 삼겹살 애호가의 불안감이 증폭되고 있다. 돼지열병에 걸리면 무조건 폐사하는데 돼지 열병이 진정될 기미가 안보여서다. 북한에서는 돼지열병으로 일부 지방에서는 돼지가 전멸한 상태라 한다. 이러다 삼겹살을 영 못 먹는 건 아닌지 우스개 소리도 나온다. 서민 요리 삼겹살이 위기에 빠졌다./우정구(논설위원)

2019-09-26

지금 생각 옛날 생각

요즘 매일같이 조국 교수 얘기가 방송 화제다. 한 사람이 이렇게까지 화제가 되는 일도 따로 없을 것 같다.사실 나는 요즘 정치라는 것에서 의도적으로 거리를 두려 한다. 뉴스도 자세히 보려 하지 않아서 무슨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수 없다.어제는 옆 방 계신 선생님이 무슨 시국 성명을 같이 하자고 하시는데, 깊이 생각해 보겠노라 답하고 나왔지만 이런 성명까지 하다가는 내 이름이 얼마나 닳아 버릴지 알 수 없어 그럴 생각도 없다.며칠 전 청문회라는 것을 할 때가 생각난다. 그날 텔레비전 방송이래야 우연히 보게 된 것뿐이다. 하루 종일 기자 간담회를 하고 청문회를 하니 지나가다 안 볼래야 안 볼 수 없는 것이다.청문회 풍경이라는 게 새삼스러웠다. 사회를 보는 사람은 판사 출신, 질의를 하는 야당 의원들 가운데에는 검사 출신, 또 그 당의 대표라는 사람은 공안검사 출신이었고, ‘심문’을 받는 당사자는 왕년의 ‘사노맹’ 활동으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언도 받은 사람이었다. 지나가는 얘기지만 이 사노맹은 내가 알기로 6·25 한국전쟁 이후에 이 땅에서 펼쳐진 비합법적 사회주의 운동 그룹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크고 지속적인 조직이었다. 물론 나도 모르게 생겨났다 사라진 그룹들도 있겠지만 말이다.그때는 사회주의 운동이라 해도 그 실체가 당사자들 스스로에 의해서도 실체적으로 인식되지 못한 면이 컸다. 그러니 그 실체적 현실이 소련이나 중국이나 북한의 그것이라 생각되지 못한 면도 있고, 군사독재 체제나 그 직접적인 후계체제에 대한 저항이나 민주화운동의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는 면이 있었다. 그것이 1980년대에 ‘대중화’ 된 ‘사회주의적 민주화운동’을 정당화 할 수 있는 한 요소일 수도 있었다.물론 나는 이 문제를 그렇게 느슨하게 사고하고 있지는 않다. 지적 무능력이나 게으름 같은 것이 세계사의 추이에 둔감하게 했다면 그 책임을 변명해 줄 어떤 근거도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변명에 발빠르지 말아야 한다.세월이 흘러 안기부나 공안검찰이나 정보 경찰에 쫓기던 사람이 전혀 다른 사유로 ‘심문’을 받는 듯한 느낌이 들었고, 그것이 나를 고통스럽게 했다. 자본의 탐욕을 비판하던 사람이 바로 그 죄명으로 왕년의 판검사들 앞에 선 것이라고나 할까.나는 매일 계속되는 ‘조국’ 사태에 가급적 눈 돌리지 않을 것이다. 페이스북에서는 문학인들이 조국을 지키느라 난리가 난 모양이다. 문학은 과연 무엇이며 무엇을 해야 하는지 생각들이라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방민호 서울대 국문과 교수 /삽화 = 이철진한국화가

2019-09-26

함박도

서의호 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함박도를 아십니까?갑자기 함박도 라고 불리는 섬이 관심을 끌고 있다. 아마도 이런 섬이 있다는 걸 이번에 알게 된 국민들도 많을 것 같다. 조그만 한반도에 3천여 개의 섬이 있다고 하는데 독도의 10분의1 밖에 안 되는 작은 무인도 섬 함박도를 기억하긴 쉽지 않다.그런데 갑자기 이 함박도가 관심을 끄는 건 웬일일까? 최근 서해 북방한계선(NLL) 인근 함박도에 북한이 레이더 기지를 건설한 것이 확인되었다고 한다. 함박도 정상에는 감시소로 추정되는 2층 건물 위에 인공기가 펄럭이고 있고 이 건물 바로 옆 철탑에는 레이더 감시시설이 설치돼 있고 북한군 30명이 막사로 쓰는 것으로 추정되는 건물 2개도 포착되었다고 한다.국방부 관계자는 “이 레이더는 군사용 레이더가 아니라 일반 상선이나 어선에 달려있는 항해용 레이더”라며 “선박 감시만 가능한 것”이라고 애써 강조하고 있다. 함박도는 서해 연평 우도에서 북쪽으로 8㎞, 말도에서 서쪽으로 8㎞ 떨어진 1만9971㎡(6000평) 크기의 작은 섬이다. 대연평도와는 28㎞ 떨어져 있다. 섬의 모양이 함박(함지박)과 닮아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이 섬의 주소는 공식적으로 인천광역시 강화군 서도면 말도리 산97번지이다. 함박도는 강화군 서도면 어민들이 오래전부터 갯벌에서 조개잡이 어업을 하던 무인도였으나 현재는 어로가 금지된 군(軍)의 작전구역이고 주소가 인천광역시라면, 북한군이 한국 땅에 무단 상륙했다고 밖에 볼 수 없다.함박도가 대한민국 영토였다는 증거가 많이 있지만 1965년 10월 발생한 북한의 우리 어민집단 납치 사건을 보도한 당시 신문 기사를 보면 더욱 뚜렷해진다. 1965년 10월30일자 주요 일간지들의 1면 기사의 큰 제목은 ‘서해 말도 근해서 북괴 무장선에 50여 명이 조개 캐다 집단 피랍’이었다. 이 신문 1면에 실린 지도에는 함박도가 휴전선 아래에 그러져 있다. 이들 신문 기사 어디에도 어민들이 NLL(북방한계선)을 ‘넘었다’거나 ‘침범했다’는 표현은 없었다.‘남방한계선 근처에서 조개잡이를 했다’는 기록뿐이었다. 또 함박도 인근을 ‘(조개잡이) 황금어장’으로 표현하기도 했다.현재 주소가 대한민국으로 되어 있는 섬이고 한국의 땅을 북한이 불법 점령하고 있는 것이다. 정부는 주소 등록이 잘못되었다고 변명을 할 일이 아니라 명확히 함박도의 소유권을 규명해야 한다. 대한민국 땅을 북한이 장기간 실효 지배해온 것이라면 그렇게라도 발표하고 당장 찾지 못한다고 하여도 우리 땅임을 선언해야 한다.북한의 눈치를 보고 있는 정부의 대북정책의 모습이 이번 함박도 사태에서도 여실히 보여지고 있다. 함박도가 한국의 영토라고 선언하고 북한에게 철수하라고 왜 소리치지 못하는지 국민들은 답답하기만 하다. 정부가 앞장서서 북한 땅이라고 홍보하는 모양새는 국민으로서 너무 자존심이 상하는 모양새이다. 그렇지 않아도 조국 사태로 어수선한 정국에 국민의 자존심이라도 세워주어야 하지 않을까?

2019-09-26

한국, 2019년 가을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소설가 김승옥의 단편 ‘서울, 1964년 겨울’에는 세 젊은이가 등장한다. 스물다섯 살 대학원생인 안(安)과 구청직원인 나, 서른다섯 살 가량의 월부 서적외판원이 포장 술집에서 우연히 만난다. 외판원이라는 사내는 그날 급성뇌막염으로 죽은 아내의 시체를 병원에 팔았다는 고백을 하고, 그 돈을 다 써버릴 때까지 같이 있어주기를 간청한다. 마지못해 함께 술을 마시고 화재현장 구경을 하고 밤늦게 여관에 들었는데 이튿날 아침에 보니 그 외판원이 죽어 있었다는 내용이다.제3공화국이 출범한 이듬해인 국민소득 103달러 시절었다. ‘뚜렷한 가치관을 갖지 못한 도시인들의 방황과 연대감 상실로 인한 절망’을 주제로 한 이 소설은 암울하고 께름칙한 분위기로 끝나지만 정치적 현실의 단면을 보여주는 작품은 아니었다. 이른바 4·19와 5·16이라는 양대 정변을 겪은 후의 불안정한 상태에서 젊은이들이 정체성의 혼란과 경제적 궁핍에서 오는 실존적 불안과 좌절을 앓을 수밖에 없는 현실을 반영한 소설이었다.그로부터 55년이 지난, 2019년 가을을 시대적 배경으로 하는 소설을 쓴다면 어떤 캐릭터가 적절할까. 아마도 대다수가 요즘 연일 매스컴을 도배하는‘조국’ 일가와 그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가 더없이 좋은 소설거리라는 생각에 동의할 것이다. 아니 ‘조국사태’ 그 자체가 어떤 소설보다도 더 극적이고 적나라하게 이 시대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흥미진진한 한 편의 드라마다. 한 가지 더 흥미로운 사실은 일부 유명 소설가들이 ‘조국’을 비호하는 발언을 내놓고 있다는 것이다. 소설이란 냉철한 이성의 산물은 아니라는 반증이라고나 할까.한 때 운동권에 속하기도 했던, 사회주의 성향의 한 인물이 국립대학 교수가 되고 마침내 법무부 장관에 오르기까지의 과정에서 노정하는, 우리 시대의 속살과 민낯은 대다수 서민들에게 적지 않은 충격과 배신감을 안겨준다. 강남좌파로 불리는 기득권층의 실상과 내면세계에 대해서는 심도 있는 분석과 새로운 조명이 필요한 시점인 것 같다. 그들이 우리 사회에 끼친 영향과 그로 인해 형성된 세력이 국가의 존망을 좌우하기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그들이 공평과 정의라는 명목으로 포장한 사회주의적 이념을 맹목적으로 신봉하고 추종하는 무리들이 떠받치고 있는 기득권의 위험성이 도처에 불거지고 있는 현실이다.현 정권을 장악한 좌파세력은 사회주의적 이념을 실현하겠다는 의지와 행동을 공공연하게 드러내고, 그런 시책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색깔론이니 냉전논리니 하는 프레임을 씌우거나 적폐로 몰아 속박하기를 서슴지 않는다. 때마침 ‘조국사태’가 터져서 그들이 내세우던 공평과 정의가 위선과 가식이었다는 게 밝혀져 분노와 원성이 높아지고 있다. 결국 국민들 각자가 깨우치는 수밖에 도리가 없다. 그러기 위해서는 좌우 편향의 정권이 여러 번 뒤집혀야 한다. 그래서 어느 쪽이든 맹목적인 진영논리의 추종이나 고정관념이 허망하다는 걸 체득해야 한다. 태풍 ‘타파’가 지나가고 다시 날이 갰다. 이 가을 우리 정국에도 모든 악습과 불의를 타파하고 공명정대한 계절이 오기를 기대한다.

2019-09-26

목숨을 바칠만한 귀중한 것

이카루스의 실패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그 도전은 죽음으로 끝났지만, 고대 그리스에서 잉태한 하늘을 날려는 염원은 라이트 형제에 의해 비행기를 꿈꾸게 했고 미국과 소련이 죽을 기세를 다해 우주선 개발에 착수하게 했으며 불과 반세기 만에 엘론 머스크는 지구로 귀환하는 우주선까지 뚝딱 만들어 냈습니다.오늘날 이카루스의 비극에 도전이라도 하듯 태양을 향해 녹지 않을 탄소 복합섬유로 몸을 감싼 태양 탐사선 파커를 날려보내는 데까지 인류의 꿈은 이뤄지고 있습니다.꿈을 향해 날갯짓하는 우리의 인생. 추락할 수도 있고 크게 다칠 수 있으며 목숨까지 잃을 수 있지만 도전하는 인생이 아름답습니다.마틴 루터 킹이 38세에 남긴 명연설 ‘목숨을 바칠만한 귀중한 것’, 쩌렁쩌렁한 그의 음성에 귀 기울이며 생각에 잠깁니다. “목숨을 바칠 수 있을 만큼 귀중한 것을 찾지 못한 사람은 고달픈 인생을 살아야 합니다. 저처럼 서른여덟 나이 먹은 사람이 있다고 합시다. 언젠가 이 사람은 어떤 위대한 원칙이나 위대한 사안, 위대한 대의를 위해 일어나야 할 시점을 맞이합니다. 이 사람은 겁이 나서 혹은 좀 더 오래 살고 싶어서 그런 사명을 거부합니다. 직장을 잃을까 걱정하기도 하고, 남들에게 비난을 받고 신망을 잃게 될까 걱정하기도 합니다. 칼에 찔리지 않을까, 총에 맞지나 않을까, 집이 폭파되지 않을까 걱정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결국 대의를 포기하게 됩니다. 좋습니다. 그렇게 해서 아흔 살이 되었다고 합시다. 하지만 이 사람은 서른여덟에 죽은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벌써 오래전에 있었던 영혼의 죽음을 뒤늦게 알리는 것에 불과합니다. 정의를 위해 일어서기를 거부한 그 순간 죽은 것입니다.”가을이 깊어갑니다. 2020년을 석 달 남짓 앞둔 지금. 무엇을 향해 자신의 삶을 일으켜야 할지 성찰하고 고민하는 가을입니다./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대표

2019-09-26

대구시장과 달빛동맹

김규종 경북대 교수·노문학지난 9월 19일 오전 10시 30분부터 낮 12시까지 전남대 인문대학 소강당에서 의미 있는 사건이 있었다. 대구시장이 전남대 학생들을 대상으로 최초로 강연을 펼친 것이다. ‘권영진이 들려주는 달빛동맹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90분 동안 진행된 강연회에 300여 전남대 학생들이 자리를 빼곡하게 채웠다. 휴대전화 한 번 울리지 않는 분위기에서 학생들은 끝까지 경청하는 자세로 권 시장이 전하는 달구벌 대구와 빛고을 광주 강연에 임했다.“대구하면 맨 먼저 떠오르는 게 뭐죠?” 하는 질문으로 학생들의 말문을 틔운 권 시장은 정치학 박사답게 능수능란하게 강연을 인도했다. 그는 학생들에게 유익할 만한 경험을 골라내 인생 선배로서 깨우침을 나누어 주었다. 안동에서 대구로, 대구에서 서울로, 서울에서 다시 대구로 이주한 간단치 않은 인생사는 정치인 이전에 자연인 권 시장을 이해하도록 한다.“나는 왜 대구시장이 되었는가?!” 하는 대목이 인상적이다. 제18대 국회의원 이력을 가진 그는 무엇 때문에 대구에 왔을까. 정쟁국회를 일신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던 그는 정당을 변화시키지 않고는 한국정치의 변화 가능성이 없음을 절감했다 한다.공천권을 가진 자가 여의도 정치를 좌지우지하고, 그에게 줄을 대야 국회의원이 되는 정치상황에 절망했다는 권 시장. 대구의 12명 국회의원보다 1명의 시장이 되어 대구를 변화시키는 일이 국회의원 직분보다 소중했다는 말도 보탠다. 청년들이 해마다 대구를 떠나는 비감한 사태를 종결하고, 그들에게 꿈을 주는 시정(市政)을 펼치고자 진력해왔다는 권 시장. 목표달성은 미완이지만, 그것을 향한 여정은 지속되고 있음을 강조한다. 대구처럼 광주 청년들도 서울로 떠나가고 있음을 적시하면서 그는 대구와 광주의 상생과 공존을 피력한다.임란 당시 의병활동과 1929년 광주학생운동 그리고 5.18 민주화운동의 광주와 1907년 국채보상운동과 1960년 2·28의거를 경험한 대구의 협력을 언급한다. 의향이자 예향인 대구와 광주가 과도한 수도권 집중으로 피폐해진 지역발전의 견인차 노릇을 하자고 목소리를 높인다. 그것을 위해 광주와 대구를 잇는 고속철도건설이 필수적이라고 방법론도 제시한다. 대구와 광주를 오가는 과정에서 영호남의 단결과 시너지 효과가 배가될 것이라고 말한다.서울과 경기도에 특혜와 특권이 몰려있음에도 신도시를 만들고 지하도로를 뚫겠다는 발상은 지방말살을 결과하는 것이 아닐 수 없다. 이런 까닭에 대구와 광주, 영남과 호남이 손을 맞잡고 지역의 상생과 화합과 발전을 함께 도모함은 당연한 일이다. 전남대 학생들에게 넓은 시야를 가지도록 권 시장 강연은 시의적절하다고 생각한다. 그의 강연을 계기로 영호남 인적교류가 보다 활발해지기를 기대한다.이번 강연은 전남대 인문대학 류재한 학장이 권영진 대구시장을 초청하여 진행되었으며, 정병석 전남대 총장과 대학본부 관계자들의 노고에 힘입은 바 크다. 역동적인 대한민국의 미래를 걱정하는 양심적인 지식인들이 있는 한 우리나라는 오래도록 건재할 것이다.

2019-09-25

한계를 넘어선 도전

테세우스에게 한눈에 반한 크레타 공주 아리아드네는 미궁을 설계한 다이달로스를 찾아와 탈출법을 알려 달라 떼를 씁니다. 다이달로스는 공주에게 괴수를 죽이는 칼과 붉은 실뭉치를 전합니다. 미궁에 들어갈 때 실을 풀어 나중에 그 실을 따라 빠져나올 수 있었던 거지요.아무리 괴수지만, 자기 아들을 죽이는 음모에 가담한 다이달로스를 크레타 왕 미노스가 가만히 둘리가 없습니다. 파란만장한 다이달로스의 운명. 결국, 그는 아들 이카루스와 함께 높은 탑 안에 갇히는 신세가 됩니다. 이카루스는 창밖에 날아가는 새를 보면서 반짝이는 아이디어를 얻습니다.“아버지. 저 새들처럼 날개를 만들어 달면, 우리도 이 탑을 빠져나갈 수 있지 않을까요?”크레타 왕 미노스는 다이달로스의 재능을 아까워해서 파수병에게 그가 발명을 하겠다고 하면 언제든지 재료를 공급해 주라 명령한 바 있습니다.나라에 보탬이 되는 발명을 기대하면서요. 다이달로스는 날개 발명에 착수합니다. 며칠에 걸쳐 그는 튼튼한 날개 발명에 성공합니다. 새의 깃털을 모으고 밀랍을 채취해 날개를 붙입니다.이들 부자는 극적으로 크레타 탈출에 성공하지요. 왼쪽으로는 사모스와 델로스섬을, 오른쪽으로는 레빈토스 섬을 지나 고대 그리스판 아이언 맨처럼 자유롭게 에게해 상공을 날아오릅니다. 아들 이카루스는 비행에 심취해 아래로는 바다 물 가까이 접근하지 말고 위로는 태양을 향해 가까이 날지 말라는 아버지 충고를 잊어버립니다.날개의 신통방통한 능력에 심취해 점점 더 높이 날아오릅니다. 태양을 향해 자신의 한계를 잊어버린 채 더 높은 곳으로 더 높은 곳으로 비행하는 데서 환희와 절정을 맛봅니다.결국, 이카루스의 날개를 붙인 밀랍이 뜨거운 열에 녹아내리고, 바다를 향해 거침없이 추락해 죽고 맙니다. 아버지가 뒤늦게 아들을 만류하려 했지만 때는 늦었습니다. (계속)/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대표

2019-09-25

선물같은 만남

강성태 서예가·시조시인우리의 일상은 모두 만남으로 이어진다. 사람과 만나고 사물을 대하며 자연과 어우러져 살아간다.또한 문명과 만나고 문화를 접하며 사회와의 관계 속에서 새로운 만남의 끈을 이어간다. 만남으로 연결되는 수많은 고리와 인연들, 이 세상 사람들은 모두 저마다 만남에서 비롯되는 촘촘한 관계의 그물망 속에서 살아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러한 선물같은 만남과 인연을 바탕으로 가정을 이루고 공동체를 형성하며 사회생활을 영위해간다.그래서 삶은 끝없는 조우요 부단한 해후라 했던가.예로부터 우리 민족은 씨족이나 부족단위로 마을을 이루며 살아왔다.조상대대로 한 지역에 살면서 계(契)나 두레, 향약(鄕約)같은 것을 정해 서로 도움을 주고 받으며 협력을 도모했다. 바쁘고 힘든 농사일을 같이 하며 협동심과 공동체의식을 키워왔다.그것은 곧 단위 부락의 단합과 결속력을 다지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마을에 큰 일이 생기면 내 일처럼 발벗고 나서서 서로 돕고 위로하며 다독이는 인정 어린 풍습이었다. 어쩌면 동심협력(同心協力)과 상부상조의 미풍은 우리 민족의 큰 저력이 아니었던가 싶다. 이와 같은 미덕의 기저에는 만남과 인연이 있었다.시대의 가치와 사회적인 양상이 많이 변모된 요즘은 어떤가? 지연, 학연 등에서 비롯된 공동체와 이익집단 등 특정한 목적이나 이념을 내세운 각종 단체와 모임이 얼마나 많은가. 그러나 진정한 마음으로 진지한 의견을 개진하며 견제와 균형으로 조직의 순기능적인 면을 살리기 보다는, 배타적이며 맹신적으로 비방과 왜곡을 일삼는 단체가 허다하다. 이른바 ‘내로남불’로 치부하는 사람들이 많아져 대부분 자신과 다른 것을 틀린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다른 것을 틀린 것이라 생각하면 ‘차이’는 ‘차별’이 되고, 사회는 조화의 빛을 잃은 흑백지대가 된다. 그러나 나와 다르다고 생각하면 그것은 이해해야 할 대상이 되고 그에 대한 관심이 상대에게 전해지면 ‘다름’은 점차 ‘같음’이 되기도 한다.최근들어 국내외적인 정세(情勢)가 심상치 않게 흐르는 것 같다. 무역의 파고와 안보의 불안이 가중되고 정치, 사회적 갈등과 경제상황이 바닥을 치는데도 정치권이나 시민단체, 사회단체 등에서는 아전인수격으로 소모적인 논쟁만 벌이고 있다.한데 힘을 모으고 지혜를 짜내도 부족할 판에 목전의 유불리만 따지니, 한심하고 우려스러운 작태가 아닐 수 없다. 상대방과의 차이와 다름을 인정하고 배려와 타협으로 합리적인 중지를 모아가는 슬기가 필요하다. 독단과 배척은 고립과 파멸을 자초하고 비난과 반대를 위한 반대는 공동선을 해칠 뿐이다.하루하루 선물같은 만남이 계속 유지되려면 서로의 관계를 소중히 여기고 존중과 겸양의 미덕으로 이해와 공감의 폭을 넓혀나가야 한다.더불어 손잡고 아름다운 동행으로 나아갈 때 모두의 밝은 내일을 기약할 수 있다.그것은 곧 붕정만리(鵬程萬里)로 향하는 대승적인 길이기도 하다.

2019-09-25

저금리시대

1% 초중반으로 낮아진 은행 예금금리가 앞으로 0%대로 내려갈 가능성이 커지면서 저금리시대가 닥쳤다. 이에 따라 이자를 받아 생활하는 고령층의 한숨이 깊어지고 있다. 지난 7월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인하하면서 시중은행도 연 1% 중후반이던 주요 수신상품 금리를 1% 초중반으로 내렸다. 한은이 내년 1분기까지 기준금리를 현 1.50%에서 1.0%로 내린다면 예금금리 연 0%대 상품도 잇따라 나올 전망이다.뚝뚝 떨어지는 금리에 이자생활자의 고민은 깊어졌다. 2억원을 신용협동조합의 연 2% 후반대 정기예금에 묻어두고 1년에 500만원 가량의 이자를 받아 쓰는 사람들의 경우 금리가 내려 이자소득이 반토막 난다는 소식에 마음이 불편하다. 금리가 더 내려가도 주식을 잘 모르는 어르신들은 예금에 묶어둘 수밖에 없다. 부동산에 투자하고 싶지만 그만한 돈이 없고, 고금리 상품은 원금 손실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저금리가 심화할수록 금융 자산가는 해외투자 상품으로, 자산 규모가 작은 이들은 부동산 리츠 등 중위험 상품으로 옮겨가는 양상이 벌어질 것으로 보인다.정부가 최근 서민들을 대상으로 고정금리형 안심전환대출을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29일 자정까지 신청하면 주택가격 9억원 이하 낮은 가격의 주택대출에 대해 우선지원한다. 하지만 저금리시대를 맞아 시장금리가 하락세를 타고 있는 상황에서 고정금리 대출을 유도하는 격이라는 비판이 있다. 지난 2015년 안심전환대출을 추진했을 때도 정부 말만 믿었다가 손해를 본 차주가 많았다는 점을 생각하면 무턱대고 신청했다가는 오히려 낭패를 볼 수 있다. 저금리시대, 자금운용은 돌다리를 두들겨보듯 조심스러워야한다는 게 전문가의 조언이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19-09-25

비무장지대

장규열 한동대 교수·언론정보문화학부‘삶은 어렵다.’ 심리학자 스캇펙(Scott Peck) 교수의 저서 ‘아직도 가야 할 길(The Road Less Traveled)’의 첫 문장이다. 힘들고 거칠고 고생스러운 길이 싫기는 해도, 살아가는 일이란 누구나에게 어렵다. 이 한 문장은 저자가 ‘진리’라고 표현했을 만큼, 삶은 예외없이 어렵다. 모두에게 어렵다는 확인은 우리를 차라리 안심하게 한다. 내가 힘든 만큼 남도 힘들다는 게 아닌가. 생업에 지치고 입시에 시달리느라 일상이 팍팍하다. 가파른 경쟁의 언덕은 언제나 낮아지려는지. 비좁은 취업의 관문은 혹 열릴 날이 있을까. 다투고 헐뜯으며 끌어내릴 게 아니라, 사실은 모두 서로서로 다독여야 하는 게 아니었을까. 어려운 삶은 가히 ‘전쟁’이 아닌가.비무장지대. 살육과 포화의 기억으로 가득한 한반도의 허리춤. 대통령은 유엔연설에서 비무장지대를 ‘국제평화지대’로 만들어보자고 제안하였다. 전쟁의 기억을 평화의 기대로 바꾸어보자는 생각. 분단의 현장을 화합의 들판으로 바꾸어 보자는 요청에 세계는 어떻게 반응할 것인지. 지난 세월 나뉘어 살았던 길을 돌아보면서 앞으로는 어울려 살 희망을 지어보자는 제언이 아니었을까. 그 옛날, 국제연합 유엔(United Nations)을 세우면서 전쟁을 극복하고 평화롭게 공존하는 지구를 꿈꾸었던 이들의 원대한 소망을 다시 확인하고 있지 않은가. 한반도를 언제까지 강대국의 틈바구니에서 생존이나 모색하는 처량한 신세로만 여길 것인가. 세계가 한반도에서 평화와 소통을 배우는 ‘다리’ 역할을 해야 하지 않을까.꿈이 그렇게 있어도 현실은 이렇게 어렵지 않은가. 비무장지대가 반도의 허리를 가르듯, 국민의 마음은 절반으로 나뉘었다. 생각은 ‘비무장지대’인데 현실은 ‘무장지대’인 셈이다. 겉으로는 웃는 낯인데 속으로는 칼을 품는다. 무기보다 마음이 더 무서운 것일까, 좀처럼 다가설 줄 모른다. 21세기에도 이념은 작동하는지, 끊임없이 너는 어느 쪽이냐 묻지 않는가. 편갈라 줄세우고 내 편 아니면 귀를 닫는다. 확증편향의 무한반복이라 겨레의 마음은 편할 날이 없다. 팩트를 놓고 상식으로 답하면 될 일도 좌우를 가르고 나면 의미가 없다. 언제쯤 우리는 이념으로 갈등하는 일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유엔의 무대에서도 국익을 다투기는 해도 더 이상 이념으로는 경쟁하지 않는다. 비무장지대가 참으로 평화의 무대가 되려면 이념에 붙들린 우리의 모습부터 살펴야 한다.한반도에서 갈등은 분단 탓이라 한다. 세계가 이념을 걷어내는 만큼, 시대가 요청하는 가치에 답해야 한다. 경쟁을 극복하고 상생하며, 다툼을 넘어 공존하고, 이념의 갈등을 딛고 함께 나아가는 한반도를 만들어야 한다.오늘 당장 갈등의 소용돌이 속에서라도, 이를 어떻게 이겨낼 것인지 생각해 보았으면 한다. 삶이 어차피 어려운 것이었다면, 오늘 힘든 한반도와 우리의 운명도 날마다 이겨내야 할 숙제가 아닌가. 삶이라는 전쟁터에도 비무장지대와 평화의 마당을 만들 수 있을까.전쟁보다는 평화가 낫지 않은가.다툼보다는 화합이 낫지 않은가.

2019-09-25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정보와 아날로그아침에 눈을 뜨면 태양이 떠 있고, 알람이 울린다. 이것들은 실제로 일어났고, 이 실제적 일을 우리가 스스로 경험했다. 이러한 경험들, ‘태양이 뜬다’는 사건을 접하고, ‘아침에 태양은 뜬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사건과 사실은 ‘나’의 경험에서 기인한다. 이 경험은 ‘나’ 뿐만 아니라 ‘너’ 혹은 ‘그’의 경험까지 포함한다. 그렇게 본다면 사건과 사실은 ‘우리’가 살아가면서 겪게 되는 모든 것들이다.우리가 살아가는데 있어 이러한 경험들 중 어떤 것은 기억된다. 기억되는 것들 중에서 우리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의미 있고, 가치 있는 것을 정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정보는 우리가 살아가는데 있어 유용하고 중요한 것이다.갑자기 얼굴을 찡그리는 연인은 일종의 신호를 보내고 있다. 그 신호를 제대로 해석하지 못한다면 곤란한 상황에 처할 수도 있다. 그래서 정보는 지식이기도 하다.정보는 직접 말로 전달할 수도 있고, 그림을 그리거나 글로 쓸 수도 있다. 인간은 이런 식으로 정보를 전달하고 전파했으나 정보는 시대를 거듭할수록 다양해졌고 복잡해졌다. 축음기와 사진기가 등장하면서 인간이 아니라 기계가 새로운 정보전달의 주체로 등장하게 되었다. 소리를 저장하는 것 바로 녹음이다. 이것은 획기적인 방법이긴 하지만 그 방법은 간단하고 어떤 면에서는 원시적이기까지 하다. 소리는 진폭을 가지는 파동이다. 즉 말을 하면 공기가 떨리게 되는데 이 진동을 감지해 함께 떨릴 수 있는 날카로운 바늘로 레코더판에 그 파동을 똑같이 새기면 된다.△정보기술의 혁명, 디지털다시 말하지만 정보는 의미 있는 사실이다. 그런데 녹음을 하면 잡음까지도 기록된다. 그렇다면 이것을 엄밀한 의미에서 정보라 부를 수는 없을 것이다. 녹음된 것 안에는 녹음하고 싶은 것과 녹음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 섞여 있다는 것을 간파한 클라우드 섀넌은 자연적인 것 전체가 아니라 정보만을 기록하고, 전달하고자 했다. 섀넌이 찾은 방법, 그것이 바로 디지털이다. 디지털의 어원인 디지트(digit)는 손가락이나 발가락을 의미하는 라틴어이다. 손가락은 접었다, 폈다 하는 방식으로 수를 센다. 손가락으로 숫자를 셀 때 구부린 정도에 따라 저건 0.5, 저건 0.7이다, 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 손가락으로 숫자를 셀 때 ‘0’ 다음에 ‘1’일 뿐 중간값은 없다. 이렇게 어떤 값을 딱 떨어지게 끊어서 표시하는 방식을 디지털이라고 부른다.섀넌 식으로 말하자면 중간값은 일종의 노이즈다. 그러나 어떤 중간도 없이 딱 떨어지는 값은 정보다. 섀넌은 정보만을 저장하는 방법을 찾음으로써, 저장용량을 극대화시켰다. 뿐만 아니라 디지털은 이렇게 저장된 정보를 자유롭게 이동하고 활용할 수 있게 만들어 주었다. 아날로그 정보에는 소리, 그림, 사진, 문자, 필름영화 같은 것들이 있다. 이런 것들은 그 특징에 맞는 저장 공간이 필요하다. 그림이나 문자를 저장하기 위해서는 종이가 필요하며, 소리를 저장하기 위해서는 레코드판이나 테이프가, 사진이나 필름영화는 필름이 필요하다. 이렇게 정보가 저장되는 공간을 매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이러한 아날로그 정보와 달리 디지털 정보는 저장을 위한 특별한 매체가 따로 필요하지 않다. 메모리 칩에 형식과 성질이 다른 정보를 한꺼번에 담아 둘 수 있다. 정보를 전송하고 공유하는 일이 간단히 이뤄진다. 아날로그 시대에 음악을 듣기 위해서는 워크맨과 음악 테이프를 몇 개씩 가지고 다녀야 했다. 영상을 찍으려면 카메라, 필름이 필요했고, 이것을 재생하기 위해서는 인화해야 했다. 하지만 CD플레이어는 음악을 듣는 것을 훨씬 간편하게 만들었으며 캠코더는 필름 없이 찍을 수 있었고, 인화하는 과정 없이도 찍은 것을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많은 시간이 필요하긴 했지만, 지금은 스마트폰 하나만 있으면 된다. 이걸로 음악도 듣고, 영상도 찍고 송신도 할 수 있다.또한 디지털 정보는 가상현실(Virtual Reality) 기술이 결합되면서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뛰어넘을 수 있게 되었다. 현재 각광 받고 있는 VR여행은 집 쇼파에 앉은 채로 그랜드캐넌을 둘러볼 수 있고, 세계최대 산호초 지역인 그레이트배리어리프나 중국의 만리장성을 여행할 수 있다. 그런가하면 실제로 갈 수 없는 화성이나 달 탐험도 가능하다.공강일 서울대 강사·국문학△기술이 자리 잡는 시간디지털 정보기술은 많은 장점들을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기술이 자리 잡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린다. 그건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하나는 가격이 너무 비싸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일종의 편견 때문이다. 새로운 기술이 일상화되기 위해서는 시스템 전체가 그런 기술을 받아들일 수 있는 상태로 바뀌어야 한다. 컬러 TV를 보려면 기존의 수신 방식을 바꿔야 하고, 핸드폰을 사용하기 위해서 기지국이 필요하다. 새로운 기술이 비싼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공학자의 노력과 자본은 이런 기술을 우리의 삶으로 끌어올 수 있다.문제는 사람들은 아무리 편해도 익숙한 것을 더 선호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진기를 처음 본 사람들은 사진에 찍히면 영혼을 빨아들인다고 거부했다. 핸드폰이 등장했을 때 전자파가 사람에게 암을 유발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사용을 꺼리기도 했다. 지금까지 공학은 기술의 발전만을 생각했다면 이제 공학은 인간의 사고나 행동방식과 인식까지로 그 영역을 넓힐 필요가 있다.

2019-09-24

개의 번식(上)

생물은 어떤 자극에 대해 몸을 움직여서 그 자극에 접근하거나 피하는 성질을 가진다. 이것을 주성이라 하는데 주화성(chemotaxis)은 화학물질의 농자차에 자극을 받아 나타나는 주성으로 음식물이나 이성의 탐지에 도움이 된다. 파리는 암모니아에 끌리고, 나방류의 수컷은 암컷이 분비하는 유인물에 의해 끌리는데, 주화성은 많은 고등동물들이 짝을 찾을 때 활용된다. 개들의 경우 암컷이 발정기에 분비하는 물질로 수컷을 유혹하는데, 이런 화학물질을 페로몬이라고 한다. 자연상태에서 개들은 페로몬에 의해 이성을 찾고 자손을 생산하나 현대사회에서는 사람의 선택에 의해 개들의 번식이 결정된다.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번식가는 외형이 멋진 남녀 개를 선택하여 자손을 생산한다. 개 순종의 의미는 그 종이 지니는 모든 특징을 총체적으로 물려받은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데, 그 종의 특징을 객관적이고 서술적인 약속으로 정한 것이 견종 표준이다. 다양한 개 품종들은 자연상태에서 교배되고 자손을 형성하던 초기시대를 지나 사람이 특정 목적을 가지고 개들의 교배에 관여하고 선택한 특정 외형이나 능력이 유전에 의해 후세에 전달된다는 것을 알게 되고 꾸준히 특정 순종들을 만들어왔는데, 다양한 개 품종들은 품종형성과정에 각기 다른 환경과 역사적 배경을 가지고 있다. 견종표준에는 이런 배경과 환경, 각 견종의 특정한 형태, 성품과 능력 등에 대한 규정과 신체 각 부위에 대한 이상적인 모습이 명시되어 있는데, 이것을 바탕으로 각 견종 품종의 선발대회인 전람회, 도그쇼에서 우수한 개를 선발하고 선발된 개는 많은 암컷들과 교배의 기회를 가지게 된다.최근 가십거리로 언론에 보도된 해외 유명 축구선수와 유명 모델의 만남이 운명적 인연에 의한 것인지, 우연히 만들어진 자연스런 기회였는지, 신의 섭리에 의한 만남인지 각자의 가치관에 따라 생각이 다르겠지만, 개의 경우 자손을 만들어 유전자를 후세에 전달하는 과정이 사람의 섭리에 의함임을 개들은 잘 모른다.현대화된 시대에 개들의 사랑과 자손의 번식은 사람에 의해 결정되고 사람에게 버려진 개들은 자연상태의 페로몬에 의해 운명적 인연이나 우연히 만들어진 기회 속에서 자손들을 낳게 되지만 그 자손들은 사람과 함께 살아가는 세상 속에서 환영받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사람과 살아가는 개들 세상에서는 사람의 선택이 절대적인 것이다.스키타이를 비롯한 유목 기마민족들은 동물을 토템으로 삼은 사회였기 때문에 동물이 인간보다 못하다는 생각 자체가 없었다. 이 때문에 자연스럽게 동물을 인간의 동반자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이동훈개들이 노동력을 제공하고 사냥에 관여하고 집을 지켜주던 시절도 있었다. 현대사회의 동물 토템이 사라진 환경과 기계의 발전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은 앞으로 어떤 의미로 개들을 받아들이고 개들의 번식에 관여하게 될까?개들이 지금까지 인간사회에 관여하고 제공했던 노동력제공, 사냥, 경비업무 등은 이미 현재도 그렇고, 미래에도 개들의 주요 임무가 아니다. 결국 개와 인간이 정서적으로 교감할 수 있고 개들을 자녀로 대하기도 하고, 개와 함께하는 시간을 통해 사람이 행복해질 수 있는 분야가 개의 존재 이유가 될 것이다. 어르신들의 노년을 함께하고 빈둥지 증후군의 외로움을 달래줄 수 있는 존재, 미래 사회의 상황에 맞도록 한국의 개에 대한 견종표준과 품종개를 어떻게 만들어갈 것인지 정책적으로 고민해볼 때이다. 독일 쉐퍼트는 벤츠보다 부가가치가 높았었다./서라벌대 교수·반려동물학과 학과장

2019-09-24

학교 내 대안교실의 가능성은? (下)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감출근길에 올려다 본 서쪽 하늘에 한가위 달이 하얗게 떠 있었다. 비록 모습은 한가위 날에 본 둥근 보름달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힘들게 사는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한가위의 희망을 마지막까지 나눠주려는 달의 모습에 힘이 났다. 필자는 생각했다, 저 달이 다시 둥글게 차오르는 날엔 지금보다 더 환하게 살리라고. 그리고 ‘달빛기도’(이해인)라는 시를 떠올렸다.“너도 나도 집을 향한 그리움으로/둥근 달이 되는 한가위//(중략) 우리의 삶이 욕심의 어둠을 걷어 내/좀 더 환해지기를/모난 마음과 편견을 버리고 좀 더 둥글어지기를//(중략)//한가위 달을 마음에 걸어 두고/당신도 내내 행복하세요, 둥글게”시를 생각할수록 시인의 간절함이 느껴졌다. 모난 마음과 편견을 버리고 우리 모두가 내내 행복하기를 바라는 시인의 기도가 꼭 이루어지기를 바랐다. 시인은 시를 통해 우리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을 제시하였다. 그것은 달처럼 둥글게 사는 것이다.모처럼만에 시상이 떠오르려는 순간 방정맞은 메시지 알림 소리에 시상이 날아가 버렸다. 메시지 내용은 개혁을 외치는 장관 이야기! 개혁이라는 말을 보면서 대통령 취임사를 생각했다.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울 것” 도대체 뭐가 평등하고, 뭐가 공정하고, 뭐가 정의로운지 대통령에게 따져 묻고 싶었다. 대통령이 생각하는 평등과 공정이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이 조국에서 가장 불평등하고, 불공정한 분야는 바로 교육이다.그것을 잘 보여주는 제도 중 하나가 ‘학교 내 대안교실’이다. 왜냐하면 같은 중학생이지만 일반 중학교 학생들은 무상교육에 대안교실 프로그램까지 지원받으면서 학교생활을 하지만, 대안학교 학생들은 국가로부터 단돈 1원의 지원도 못 받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많은 예산이 투입된 학교 내 대안교실 프로그램이 효과가 있냐면 그것도 분명 아니다. 대안교실을 정규 교육과정에서 운영하고 있는 학교가 과연 몇 개나 될까? 교무실에서 상담실로 떠넘기기식으로 맡겨진 대안교실이 교육 본연의 기능을 할 수 있을까?“예산은 있는데 대안교실 프로그램에 참가하고자 하는 학생이 없어요. 많은 학생들이 자신들이 문제아로 낙인 찍힐까봐 거부해요. 체험활동도 한 두 번이지, 진짜 힘들어요.”3년 전 컨설팅에서 들은 어느 대안교실 운영자의 하소연이 지금도 귀에 생생하다. 필자는 대안 교실이 성공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다음과 같이 대안교실 컨설팅 보고서를 작성하였다.“담당자를 전문 상담사에서 일반 교사로 전환, 학습과 체험 프로그램이 조화를 이루도록 사업 계획서에 명기, 관리자 및 담당자 연수 조기 시행 (…)”지난 8월 경북 남부권 대안교실 운영자들이 산자연중학교를 찾았다. 필자는 이들이 더 없이 반가웠다. 왜냐하면 학교 내 대안교실 제도가 얼마나 발전했는지, 또 필자의 제안이 얼마나 받아들였는지를 듣고 싶었기 때문이다. 결론은 3년 전과 변한 것이 없었고, 대안교육 담당자들의 한숨소리는 더 커졌다. 예산 쓰기용 학교 내 대안교실, 과연 이대로 좋을까? 이 제도를 주관하는 교육청 관계자에게 묻고 싶다, 대안 교육이란 무엇입니까?

2019-09-24

20대를 위한 지역이벤트도 만들자

김진홍 한국은행 포항본부 부국장요즈음 과거에는 들어보지도 못했던 기발한 지역 축제나 선발대회들이 많다. 영양의 고추아가씨, 김천의 포도아가씨, 남원의 미스 춘향, 장성의 홍길동축제가 있다. 그리고 천안의 흥타령춤 축제나 성남의 춤짱 선발대회 등도 젊은이들이 끼를 마음껏 발산할 수 있는 놀이터가 됐다. 이처럼 지역 특산물이나 지역과 관계되는 옛날 이야기속의 등장인물, 그도 저도 아니면 하나의 주제로 특화시켜 국제적인 규모의 행사까지 확대 가능한 분야를 선정해 지역의 명물로 키워나가고 있다. 각 지역이 이처럼 자기 고장의 독창적인 무엇인가를 열심히 찾고 만드는 데 열중하는 것은 모두 지역경제 활성화라는 최종목표를 이루기 위함이다.그런 면에서 포항도 이들 지역에 비해 전혀 밀리지 않는 소재와 자원을 가지고 있다. 도농복합도시답게 전국 브랜드로 성장한 구룡포과메기를 비롯하여 이제는 부추, 시금치, 문어, 아귀, 가자미 등 지역농수산물을 ‘영일만 친구’라는 통합브랜드로 묶었고, 최근에는 같은 이름의 야시장까지 열고 있다. 포항산 시금치는 수도권에서 이미 ‘포항초’라는 별칭이 붙을 만큼 유명하다. 하지만 이와 같은 농수산물은 계절이나 기후변화에 따라 품질, 시세가 달라질 뿐만 아니라 그마저도 전국 어디에서든 온라인구매가 가능해 관광객을 모으는 역할까지 기대하기는 어렵다.반면, 지역이 지닌 유무형의 문화유산은 연중 어떠한 상황이라도 큰 영향을 받지 않고 고부가가치의 관광자원으로 탈바꿈시킬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금년은 특히 포항시가 시로 승격한지 70주년을 맞이하는 해이기도 하여 지역 단체들도 이를 이용한 다양한 축제나 행사를 기획하고 있다. 포항의 읍면동 단위에서도 해당 지역에 의미 깊은 행사를 적지 않게 개최하고 있다. 그만큼 포항에는 유무형의 문화유산이 차고 넘친다는 이야기다.당장 다음 달인 10월은 문화의 달이기도 하다. 그 직전인 이번 주부터 포항문화재단이 야심차게 준비해온 한국형 암각화의 원형이라고도 평가받고 있는 포항암각화의 특별전(아로새기다, 바위그림 인류최초의 기록)이 포문을 연다. 그 후 포항의 전설인 연오랑 세오녀를 배경으로 하는 제13회 일월문화제도 개막된다. 특히 삼국유사에 나오는 연오랑 세오녀의 설화는 오직 포항만이 유일하게 내세울 수 있는 콘텐츠다. 이것을 주제로 삼은 축제나 행사는 기획하기에 따라서는 전국을 뛰어넘어 국제행사로도 확장시킬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닌다. 포항이 가진 강력한 무형자산의 하나인 것이다.금년에도 일월문화제와 함께 연오랑 세오녀 부부선발대회가 개최된다. 바로 여기에 새로운 축제를 기획할 수 있는 여지가 남아 있다. 지금까지 포항에서 개최해온 부부선발대회는 그대로 두면 된다. 여기에 20대, 30대 젊은이들을 포항으로 유인할 수 있는 이벤트를 새로 만들었으면 한다. 굳이 이름을 붙여본다면 미스터 연오랑, 미스 세오녀 선발대회가 되지 않을까. 다소 철지난 축제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전국의 끼 넘치는 20대, 30대의 미혼 남녀들이 미스터 연오랑과 미스 세오녀를 꿈꾸며 찾아오는 새로운 놀이마당. 이 또한 포항만이 할 수 있는 새로운 관광 상품의 하나가 될 수 있을 것이다.

2019-09-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