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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3월은 희망을 품는 계절

윤희정 문화부장“고모, 나 목요일에 개학이야!” 며칠 전 고등학생이 된 조카로부터 카톡 메시지를 받았다. 예쁜 곰돌이가 하트를 발산하며 360도 회전하며 춤추는 이모티콘과 함께였다. 봄이 제법 몸으로 체감되는 때다. 아직‘겨울바람의 꼬리’가 남아 있지만 오는 봄을 무엇으로도 막을 수는 없다. 봄 안에서 그 어떤 사회 경제적 어려움과 변화에도 불구하고 끄떡없이 우리의 일상적 삶 안에서 구동되는 자연의 원리, 희망의 싹이 튼다.봄은 겨우내 숨을 죽였던 생명 활동이 다시 시작되는 때다. 작은 야생초들이 땅 속에서 의연히 솟아오르고, 채소의 씨앗들은 뿌려지는 손길을 따라 헛기침 인기척을 하면서 올라오고, 나무들의 푸른 싹들도 줄기의 곳곳에서 보물찾기의 주인공처럼 뜸을 들이면서도 어느새 초록의 형체를 드러낸다. 누가 명하지 않아도, 누가 지켜보지 않아도 올라오는 싹들, 우리의 희망도 그런 것이 아닐까? 많은 시인들이 봄을 밝음·탄생·생명·이상·기쁨 등의 긍정적이며 희망적 이미지로 표현한다. 작품 가운데서도 봄은 밝고 경쾌하거나 혹은 이상향을 대변하는 긍정과 희망의 상징으로 표현된 것이 일반적이다.희망은 삶을 이끌어가는 원동력이다. 미래, 당장 내일이 기다려지지 않는 삶은 맹목적이고 허무할 수밖에 없다. 최근 언론에 회자되는‘삼포 세대’란 여러 가지 이유로 희망을 갖기 어려운 젊은이의 현실을 함축한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직장인, 외로움에 힘들어하는 노년 세대 모두 꿈과 희망을 갖기 어려운 세상이다. 독일의 사상가인 에른스트 블로흐(1885∼1977)는 “인간은 끊임없이 희망을 품는 존재다”라고 했다. 희망이 인간 고유의 원초적 생명력이라는 것을 표현한 말이다. 블로흐의 ‘희망철학’의 출발은 근본적인 질문 3가지로부터 출발한다. 첫째, 나는 무엇을 알 수 있는가? 둘째,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셋째, 나는 무엇을 희망해도 좋은가? 이다. 우리는 자유주의 시대를 살아왔고, 현재 신자유주의 시대에 살고 있다. 현 사회에서 인간은 자본주의 쳇바퀴의 노예가 되기 위해 혼란, 불안 그리고 공포를 느끼며 살아갈 뿐만 아니라 자본주의의 산업예비군으로 무장돼 있다. 이 시대의 노동자는 자본주의 하의 노동이라는 울타리에서 허우적거리는 존재이다. 그렇기에 노동자들뿐만 아니라 우리도 유토피아를 꿈꾸고, 만들어 나가야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유토피아를 꿈꾸지 않는 자는 개와 같은 삶을 살아가기 때문”이다. 블로흐는 희망을 찾는 작업은 개와 같은 삶을 용서하지 않는다고 한다. 왜냐하면 개는 자기 자신의 현존재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이고, 비참하게 인식되고, 파악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미 우리의 귀에 익숙해진 청년실업, 저성장, 저출산과 고령화, 양극화, 사회안전망, 젠더 갈등, 세대 갈등, 이념 갈등, 정치 개혁 등 중대 현안들은 밝은 미래로 나아갈 앞길을 가로막은 장벽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3월이다. ‘지역과 나라, 세계의’다채로운 동산에서 피어나고 있는 ‘희망의 싹’들이 여기저기 뿌려져 있다. 그 싹의 생명력이 우리 각자의 시선과 마음속에서 한순간이라도 희망으로 정착되기를 희망한다. ‘내일’이 기다려지는 뚜렷한 이유 한 가지만 있어도 우리는 희망을 가질 수 있다. 로마의 철학자 키케로는 ‘숨쉬는 한 희망은 있다(dum spiro, spero)’라고 하지 않았던가.“겨울이 오면 봄도 멀지 않으리”란 유명한 싯귀가 있다. 앙상한 나뭇가지에 새싹이 돋아나는 것을 보면, 얼어붙었던 흙속에서 새움이 트는 것을 보면, 인간세상에 절망이란 없다는 것을 깨닿게 된다. 처칠경의 유명한 연설이 있다. “포기하지 마라! 절대 포기하지 마라!”현실이 어렵다 해도 노인층이 겪어온 세월보다 더 어려운 역경이 있었겠는가? 못 먹어서 부황이 들고, 봄이 오면 얼굴에 허옇게 봄버섯 피는 소년시대를 거쳐온 어르신세대를 보면서 용기를 얻을 일이다. 세상에 극복 못할 역경은 없다.

2019-03-05

지역철강업계 부활의 프로세스

김진홍한국은행 포항본부 기획조사팀장포항 경제계는 그 어느 지역보다도 남북관계개선과 북미정상회담 등에 대한 관심이 높았다. 특히 이를 계기로 한반도 동해안철도와 북한을 경유하는 한·러 간 가스파이프라인이 연결될 경우 미국의 수입규제나 조선 등 철강수요 부진을 대체할 수 있다는 기대감이 작지 않았기 때문이다.그러나 북핵문제와 유엔 등의 제재조치가 모두 해결되어 북한이 중국처럼 개혁개방에 나서더라도 우리나라가 대북 투자나 대북경협을 독점한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남북 당사자에게만 해당되는 프로젝트가 아닌 한 북한도 자신들에게 가장 유리한 투자조건이나 협력방식을 택할 것이기 때문이다. 당장 가시화되고 있는 남북한 철도현대화사업과 한·러 가스파이프라인 건설만 하더라도 사업예산과 북한 측의 사정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보면 저가의 중국산 철강자재를 배재하고 한국산 자재만을 고집하거나 미국과 러시아 업체가 동참하려 할 때 지속적인 한반도 평화를 고려한다면 무조건 한국의 배타적인 독점권을 고집하기 어려울 수도 있기 때문이다.따라서 국내외 정세변화에 일일이 실망할 필요도 과도한 기대도 가질 필요는 없다. 그보다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지역 철강자재가 가격, 품질, 기술면에서 절대 우위의 경쟁력을 갖추는데 주력해야만 한다. 지금까지 포스코의 기본 강재를 2, 3단계 정도까지 절삭, 가공, 조립 등 중간재 형태로 생산, 판매하며 포항 지역경제를 성장시켰던 프로세스는 더 이상 통용되지 않게 되었다. 이러한 프로세스는 중국을 비롯한 인도, 베트남 등 후발국에서 이미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에 포항지역경제가 그동안 부진에 빠지게 된 것임을 깨달아야 한다. 우리가 철강 산업을 사양 산업이라고 이야기하는 근거는 바로 이와 같은 과거의 성장 프로세스만을 연상하기 때문이다. 물론 앞으로도 철강은 ‘산업의 쌀’의 위치를 고수하겠지만 이 ‘쌀’을 씻어 단순하게 밥을 짓기만 하면 되던 시대는 분명히 끝났다.그렇다면 지역철강업계는 어떠한 프로세스로 부활할 수 있을까. 철강이라는 산업의 ‘쌀’을 ‘밥’이 아닌 그 이상으로 활용하도록 해주거나 직접 새로운 용도의 최종제품으로 만들어 내면 되는 것이다. 쌀을 곱게 갈아 케이크를 만들 수 있게 해준다거나 녹차가루와 견과류 등을 혼합한 ‘철이 포함된 복합재료’로 재탄생시켜 ‘떡’처럼 다양한 모습으로 제품화할 수 있도록 재료의 복합화, 용도의 다양화, 사용의 편리성 등을 높여야만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준비는 아이러니하게도 과거와 같이 생산 공정을 풀가동하는 성장단계에서는 불가능하다. 쌀에 불순물이 들어있어도 물량이 부족할 때에는 그것으로 만족하기 쉽기 때문이다. 오히려 지금처럼 자신과 무관한 외부여건으로 기업이 어려움을 겪으며 시간과 인력이 남을 때, 용돈벌이라도 하겠다는 은퇴한 숙련기술자가 남아돌 때 이 가용자원들을 활용하여 연구개발에 힘써 자사의 기술력 향상과 고부가가치 신제품개발, 품질경쟁력 강화 등 체질개선에 힘쓸 절호의 기회다.이와 같은 체질개선과 연구개발로 품질과 기술경쟁력을 갖추는데 투입된 비용은 지역 철강제품의 가격에 그대로 반영하면 된다. 이러한 경우에는 최소한 가격 덤핑문제에서는 자유를 얻게 되어 수출경쟁력도 한 단계 높아질 것이다. 포항 경제와 지역 철강업계가 부활하려면 이 기회를 결코 놓쳐서는 아니 된다. 물론 남북관계 개선에 따른 특수나 영일만대교 건설 등과 같은 단발적인 프로젝트를 굳이 거부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메인 식사가 아닌 디저트로 여겨야만 한다. 앞으로도 세계적인 철강수요의 급증은 기대하기 어렵다. 이번 기회를 놓칠 경우 지역철강업계는 정치적인 개발 사업과 가격경쟁에만 목숨을 거는 사양 산업으로 시계를 되돌리게 될 것이다.

2019-03-05

오일러수가 담긴 광고판

김현욱시인구글(Google)은 2004년과 2005년에 1만 5천명의 직원을 뽑았다. ‘오일러수가 담긴 광고판’이라는 기발한 채용방식도 이때 사용되었다. 2004년 7월 9일, 미국 캘리포니아 실리콘밸리 101번 고속도로에 이상한 광고판이 세워졌다. 그 광고판에는 회사 이름도, 홍보하는 제품도 없었다. 하얀 바탕에 다음과 같은 문장 하나만 적혀 있었다. First 10-digit prime found in consecutive digits of e}.com닷컴 앞에 필기체로 쓴 e는 오일러수를 뜻한다. 광고판을 해석하면, 오일러수의 숫자 나열에서 제일 처음 나오는 10자리 소수를 찾아 닷컴 앞에 넣으라는 것이다. 수많은 사람이 고속도로를 지나며 저 광고판을 보았지만, 대부분은 ‘저게 뭐야?’하고 그냥 지나쳤다. 물론 그중에 호기심이 발동하여 오일러수를 찾아보는 소수의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인터넷 검색으로 정답을 찾을 수 없다면 잠깐 호기심이 발동했던 소수의 사람들도 거기서 멈췄을 것이다.하지만, ‘도대체 저게 뭘까?’, ‘10자리 소수를 입력하면 뭐가 나올까?’ 너무 궁금해서 도저히 못 참는 사람들은 자신이 직접 문제를 풀어보려고 시도했을 것이다. 고속도로에서 광고판을 본 사람들 중에 극소수의 사람만이 C++ 컴퓨터 프로그래밍 언어로 프로그램을 만들어 ‘7427466391’이라는 정답을 찾았을 것이다. 정답을 인터넷 주소창에 입력한 사람은 ‘축하합니다!’라는 글과 함께 좀 더 수준 높은 문제를 만난다. 왕성한 호기심으로 여기까지 온 사람이 그 문제를 피할 리는 없다. 두 번째 문제까지 풀어 다음 페이지에 접속한 사람들은 ‘축하합니다!’라는 메시지와 함께 구글 채용사이트로 접속하여 간단한 이력서 제출만으로 누구나 선망하는 구글에 취직하는 기회를 얻게 된다.위 글은 정재승 박사의 책 ‘열두 발자국’ 서문에 나오는 에피소드다. 필자라면 어땠을까 자문해보니 그냥 지나치지 않았을까 싶다. 물론, 문학과 관련된 것이었다면 호기심이 발동하여 덤볐을지 모른다. ‘오일러수가 담긴 광고판’은 당시 실리콘밸리와 미국 사회에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고 한다. 이렇게 뽑힌 사람들은 얼마나 창의적이고 열정적일까? 창의적인 사람들은 호기심이 왕성하고 관찰력이 뛰어나며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한다.무엇보다 정재승 박사는, “결과를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서 호기심, 도전정신 같은 자발적 동기만으로 끝까지 몰두해 해답을 얻거나 무언가를 이루어내는 건 세상을 바꾼 사람들이 보이는 가장 강력한 특징입니다. 호기심이나 꿈, 재미, 보람 등 다양한 내적 동기. 그리고 명예, 인정, 직위, 인센티브 등 외부에서 부여된 외적 동기. 이런 동기들에 지속적인 의미를 부여하면서 뜻한 바를 이루기 위해 끝까지 천착하는 사람들이 결국 세상을 변화시킵니다. 사회적 성취를 이루는 데 있어 외적 동기와 내적 동기가 잘 균형 잡힌 사람들이 세상을 의미 있게 변화시킨다.”고 정리했다. 최근 미국 일간지 LA타임스는 하버드 합격보다 더 어려운 한국 공무원시험 열풍을 꼬집었다. 하버드 입학률이 4.59%인데, 한국 공무원 합격률은 2.4%에 불과하다. 3년 넘게 공시를 준비한 어느 공시생의 사연을 소개하며, 한국의 수많은 청년들이 공무원이 되기 위해 인생을 바치고 있다고 전했다. 공무원 열풍이 거세지는 이유는 복합적이다. 그중에 공공기관의 채용비리 백태도 한국 청년들의 도전정신을 꺾는데 일조했다. 공정하지 못한 나라에서 그나마 공무원 시험이 공정하다는 인식도 크다. 구글처럼 창의적인 채용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문재인 대통령의 약속처럼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운” 대한민국이 된다면 공시열풍은 옛말이 될 것이다. 0.98명이라는 세계 최저의 출산율 해결 비법도 여기에 있다. 참고로 세종시의 출산율은 1.57명이다.

2019-03-05

지옥에서 벗어나는 방법

때는 1976년. 시각 장애인들이 점자 책을 어렵게 읽는 모습을 보고 좀더 편리한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던 천재가 있습니다. 얼마를 고민하던 그가 뚝딱, 발명품을 내 놓습니다. 이름하여 Reading Machine(독서 기계)입니다. 레이 커즈와일(Ray Kurzweil)의 작품이지요. 점자로 된 문서나 다른 사람이 녹음해준 테이프를 듣는 것이 고작이었던 시절, 이 기계를 이용하면 시각장애인도 혼자서 손쉽게 읽을 수 있습니다. PC도 없던 40년 전에 이런 제품을 개발하다니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한 시각 장애인이 독서 기계를 판매한다는 소식을 듣고 급거 비행기를 타고 날아옵니다. 160㎏, 가격 5만달러나 하는 거대한 장치를 즉석에서 체험해 본 후 구입하지요. 늘 독서에 목말라 있던 그에게 이 기계는 너무도 기쁜 소식이었습니다. 너무 행복한 나머지 밤새워 책에 빠져듭니다. 락 음악의 대부라 불리는 흑인 가수 스티비 원더(Stevie Wonder)의 이야기입니다. 커즈와일과 스티비 원더는 이후 40년 우정을 이어가지요.어떤 책은 맛보고, 어떤 책은 삼키고, 어떤 책은 씹어서 소화를 시켜야 합니다. 책 중에는 가볍게 맛만 보고 넘어가도 될 것이 있고, 어떤 책은 단숨에 먹어 치울 수 있는 책도 있지만 고전의 경우는 꼭꼭 씹어서 잘 소화시켜야 하는 책도 있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프란츠 카프카의 책은 도끼여야 한다는 이야기,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인용하지요. 즐거움을 위해 읽는 독서와는 다른 비장함을 느끼게 합니다. 우리 자신이 얼마나 얼어붙기 쉬운지, 내 안의 인식체계가 얼마나 자기 중심적인지, 우리의 사고 방식은 늘 내가 편한대로 보고, 느끼고 결론 내리기 쉬운지를 인정해야 카프카의 독서론을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작가 이탈로 칼비노는 그의 대표작 ‘보이지 않는 도시들’에서 주인공 마르코 폴로의 입을 빌어 말합니다. “지옥 같은 세상을 벗어나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내가 그것의 일부분이 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지옥 속에 살지 않으려는 의지를 가진 사람들과 세상 속에서 지옥 아닌 것을 찾아내고 지속시키고 그것들이 자라갈 공간을 부여하는 것이다.”레이 커즈와일은 보이지 않는 시각 장애인을 위해 독서 기계를 만들었습니다. 그대를 포함 오늘 이 순간도 지옥 속에 살지 않으려는 의지를 가진 사람들과 어떤 공간을 함께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인지 고민하는 따스한 마음들이 늘어났으면 좋겠습니다./조신영 인문학365 대표

2019-03-05

음악의 궁극적 질문에 답하다-슈만의 사랑과 음악

인간은 어디에서 왔으며 살아가는 이유는 무엇이며, 결국 어디로 가는가? 예술에서는 그것에 대해 끊임없이 묻는다. 클래식 음악에서도 예외 없이 해당되며, 어디에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 라는 질문에는 신에 대한 물음과 인간의 탄생과 죽음으로 표현되었으며, 왜 살아가는가? 라는 질문에는 ‘사랑’이란 주제로 그려졌다.우리가 기억하는 사랑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그 중 가장 열광하는 사랑은 남녀 간의 순수한 사랑이며, 특히 이루어지지 못할 사랑, 불행해 질 것이 뻔한 운명임을 알면서도 마법처럼 이끌려갈 수밖에 없는 사랑을 우리는 기억한다.음악사에서 가장 유명한 힘겨웠던 사랑과 몇 개의 작품을 소개하고자 한다.‘클라라 슈만(Clara Shumann·1819∼1896)’은 행복하게 태어난 여인이었다. 그녀는 당시 최고의 피아노 교수를 아버지로 두었으며 자신도 천재적인 피아노연주의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그녀의 아버지 ‘프리드리히 비크(Friedrich Wieck·1785∼1873)’는 딸 클라라의 천재성을 미리 알아보고 어린 나이의 클라라를 음악계에 화려하게 데뷔시켰던, 지난 회에 언급했던 모차르트의 아버지, 레오폴트 모차르트와 유사한 자식에 대한 기대가 많은 사람이었다. 하지만 자신의 운명을 결정지을 한 청년을 만난다. 바로 ‘로베르트 슈만(Robert Schumann·1810∼1856)’이다. 클라라의 아버지였던 비크 교수가 가장 아끼는 제자였으며 재능이 뛰어났지만 최고의 피아니스트가 되기 위해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려고 무리한 연습을 하다 손가락에 치명적인 상처를 입는다. 슈만의 교양과 지성은 문학과 음악방면에서는 당대 최고였으며 쇼팽과 브람스를 음악계에 소개하고 칭찬을 아끼지 않는 등 인격도 넉넉한 사람이었으나 후에 우울증을 앓는 등 정신적으로 온전치 않았으며 손가락 부상으로 인해 피아니스트로서의 장래도 비관적이었다.비크 교수는 이들의 비극적인 미래를 예측했던 것일까? 1835년 둘은 사랑을 확인한 뒤에 비크 교수의 결혼 반대로 소송까지 휘말렸고 아버지였던 비크는 이들을 떼어 놓고자 4년 동안 클라라를 유학 보냈지만 결국 1840년 결혼에 성공했다. 슈만의 작품 중 뛰어난 걸작들이 결혼한 직후 많이 작곡되었다. 그래서 1840년을 슈만에게 있어서 ‘가곡의 해’라고 부르기도 한다. 연가곡집 ‘리더스크라이스’‘시인의 사랑’‘여인의 사랑과 생애’등 많은 명 가곡들이 있지만 특히 슈만이 결혼 선물로 클라라를 위해 작곡한 연가곡집 ‘미르테의 꽃’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연가곡 ‘미르테의 꽃’은 유명한 시인 26명의 시로 구성된 가곡집인데 그 중 뤼케르트의 시로 작곡된 ‘헌정(Widmung)’이 가장 아름답다. 그리고 클라라에 대한 슈만의 마음이 가장 잘 드러나 있다. 가사는 매우 아름다우며 요즘 결혼식장에서 축가로 써도 만족할 만하다. 가사 일부를 소개하자면,당신은 나의 휴식/당신은 마음의 평화/당신은 나에게 주어진 하늘당신이 나를 사랑한다는 사실은 나를 가치 있게 만들어 줍니다.당신의 시선은 나를 환하게 합니다/당신은 나를 사랑스럽게 존중합니다.나의 선한 영혼을/보다 나은 나를아름다운 사랑의 고백이며 선율도 독일 가곡 특유의 함축성을 가지며 화려하진 않지만 내면의 사랑을 표현하기에 손색이 없다. 후에 리스트는 이곡을 피아노 독주곡 버전으로 편곡하여 연주하기도 하였다. 그래서 이 곡은 성악가와 피아니스트에게 모두 사랑받는 곡이 되었다.슈만이 태어나고 살던 시기는 프랑스에서 일어난 대혁명과 계몽주의의 영향으로 진보와 보수가 격렬히 대립하던 시기였으며 자유주의가 보급되어 시민계급의 자기 권리의 주장으로 나타나던 시기였다. 그 영향으로 나타난 것이 국민주의와 개인주의였는데, 국민주의는 자국어의 아름다움과 소중함을 일깨우는 예술작품을 선호했으며 개인주의는 예술가의 주관적인 개성과 경험들을 표현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슈만의 예술가곡 뿐만이 아니라 당시 독일에서 작곡되었던 슈베르트의 작품을 비롯한 수많은 독일어 가곡들은 이러한 시대상을 반영하였다고도 할 수 있다.성악곡뿐만 아니라 슈만은 기악곡에서도 걸작이 많이 있지만 필자는 결혼한 2년 후인 1842년에 작곡된 ‘피아노 4중주op.47’의 2악장을 권하고 싶다. 슈만의 ‘안단테 칸타빌레(Andante catabile)’라고도 부르는 이곡은 차이코프스키의 현악 4중주 안단테 칸타빌레에도 뒤지지 않으며 슈만의 작품 중 최고의 선율이라고 평가된다. 누군가에게 위로를 받고 싶은 심정에 처했을 때 이 곡을 듣는다면 분명 큰 도움이 될 것이다.이들이 결혼한 지 14년이 지난 1854년 운명은 비극이라는 날카로운 창을 이들에게 던진다. 슈만이 라인강에 몸을 던지는 자살 시도를 한 것이다. 결국 자살은 실패로 끝났지만 스스로 정신병원을 찾아갔다고 한다. 암세포는 젊은 신체를 가진 사람에게 더 빨리 전이된다고 한다. 슈만이 숭고하고 높은 교양을 지녔기에 그의 정신에 있던 어두운 그림자가 더 빨리 그를 잠식해 버린 것일까?우리가 간과하는 것이 클라라를 슈만의 아내, 브람스의 정신적 연인 정도로만 알고 있지만 사실은 당대 최고의 피아니스트였다. 당시 시내의 선술집에 가면 리스트와 클라라 슈만을 놓고서 누가 더 우월한 연주자인지 논쟁을 벌이는 모습을 흔하게 볼 수 있었다고 한다. 독일의 통화권이 유로화로 통합되기 전 독일의 마르크 화폐에 클라라의 초상이 그려진 것을 봐도 클라라의 명성을 알 수 있는 부분이다.이러한 클라라의 남편이었던 슈만은 작곡자이자 평론가, 저술가로 입지가 있었지만 클라라가 연주 여행을 할 때는 매니저의 역할을 하며 동행하곤 하였다. 연주하는 클라라의 모습을 보며 젊은 시절, 원래 자신의 꿈이었던 피아니스트가 되지 못한 부분에 아픔을 느꼈을 것이다.슈만은 음악작품 외에도 브람스와 쇼팽이라는 음악가를 소개하여 그들에게 길을 열어 주었다.특히 브람스는 자신의 음악적 재능을 인정해 준 슈만에 대한 존경이 열렬하여 슈만이 1854년 정신병원에 입원하고 난 뒤 클라라와 함께 슈만을 돕기 위한 연주회를 개최하여 경제적인 도움을 주었을 뿐만 아니라 슈만이 3년 뒤 세상을 떠난 뒤에도 클라라와 그 가정의 후견인으로서의 역할을 하였으며 경제적, 음악적으로 도움을 준다. 이 후 클라라와 함께 슈만의 작품을 연주하고 알리는 역할을 함으로서 슈만을 대작곡가의 반열에 올려놓는데 공헌이 있다.세상은 슈만이 떠난 후 브람스와 클라라와의 관계를 의심하곤 한다. 브람스가 별 이유도 없이 6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독신으로 지낸 것이 의아하긴 하지만, 드라마적인 상상력에 브람스의 작품까지 창의적으로 엮어 다양한 상상을 하곤 한다. 대표적인 예로 슈만이 정신병원에 입원한 후 클라라가 한 번도 남편을 방문하지 않은 것을 예로 들며, 이때 이미 슈만에게서 클라라의 마음이 떠났다고들 말한다. 필자도 이 부분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지만 무너져 가고 있는 슈만을 클라라는 보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과거 열렬히 사랑하고 존경하였던 시절의 슈만을 영원히 기억하고 싶었을 것이다.브람스와 클라라는 음악의 동료이자, 슈만 작품의 알림이 역할을 충실히 하였을 뿐 둘의 관계는 아무 일도 없었다. 클라라는 40년을 더 살고 1896년 슈만의 곁으로 간다. 그리고 브람스는 그 이듬해에 눈을 감는다.클라라에게는 슈만과 함께 했던 시간보다 브람스와 함께한 시간이 더 많았던 셈이다. 글의 서두에 클라라는 행복하게 태어난 여인이라고 시작했었는데 어쩌면 슈만, 브람스와 같이 인생의 절반을 나누어 함께한 클라라는 음악적으로 가장 행복하게 살아간 가장 행복한 여인이라 할 수도 있겠다. 슈만은 영혼의 자유를 갈망하는 낭만주의 음악을 실천한 인물이었으며 한 여인과 음악과 문학을 사랑하기 위해 이 세상에 온 사람이었다. 그가 말한 것처럼 ‘Frei Aber Einsam(자유로우나 고독하다)’ 자유와 이성의 경계에서 음악에게 물음을 던진 외로운 지성이었다. /문양일 포항예술고 음악교사

2019-03-04

바른(正) 삶(生)에 대한 짧은 생각

1937년 도쿄 빈민가에서 태어나 쓰레기더미를 뒤지며 자란 한 아이가 있습니다. 해방 후 먹고 살 길을 찾아 귀국해 경북 청송군 현서에 정착합니다. 이때 동네 교회를 잠시 다닙니다. 거기서 소년은 눈빛이 살아있는 선생님 한 분을 만납니다. 고달픈 삶에 선생님의 이야기는 생명이자 빛이었습니다. 하지만 인연도 잠시, 안동으로 옮겨 나무꾼, 고구마 장수, 날품팔이로 연명합니다.열 아홉 살 청년이 된 그는 폐결핵을 앓더니 이내 신장 결핵과 방광결핵으로 번져 온 몸이 망가집니다. 의사는 조심해 살면 2년 정도 더 살 수 있다 합니다. 평생 오줌통을 몸에 차고 살아가야 하지요. 안동 일직교회 토담 방 한 칸을 얻어 평생을 종지기로 살아갑니다.뚫린 창호지 구멍으로 개구리가 들어와 방에서 개굴거리고 생쥐들이 침입해 발가락을 깨무는 비천한 나날이지만 규칙적인 생활로 다행히 건강을 조금 회복합니다.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절박감에 몇 줄 글을 씁니다. 어린 시절 맑은 눈으로 이야기를 들려주던 주일학교 선생님을 기억하지요. 아픈 몸을 달래며 한 글자 한 글자 써 내려가 신춘문예에 응모합니다. 탈락 후 전달해 주는 심사평을 스승 삼아 자신의 글을 다듬습니다. 심사평이 결국 글쓰기 코칭이 된 것이지요.‘몽실 언니’, ‘강아지 똥’을 쓴 권정생 선생 이야기입니다. 그의 작품을 유심히 본 한 남자가 있습니다. 남자는 권정생의 글에 흠뻑 취합니다. 너무도 아름다운 우리말 솜씨에 반해 권정생을 찾습니다. 서로 기억을 못하지만 초등학교 시절의 눈빛 맑고 빛나던 그 분입니다. 이오덕 선생이 바로 그 주일학교 선생이었지요. 이후 두 사람은 평생 동지가 되어 서로 응원하고 격려합니다. 이오덕을 만난 이후 권정생의 삶은 빛으로 가득합니다. 2년 밖에 살지 못할 것이라는 의사의 예언은 보기 좋게 틀렸습니다. 70년을 동화와 함께 살아온 권정생은 90편의 작품을 남깁니다.2007년 장례식에 전국 각지에서 수많은 명사들이 몰려오자 동네 사람들은 충격을 받습니다. 가난한 종지기로만 알았던 권정생이 그렇게 유명한 동화작가인 것을 아무도 몰랐습니다. 연 1억원이 넘게 들어오는 인세와 10억원의 통장을 어린이를 위해 써 달라는 유언과 함께 70세 고단한 생애를 마감합니다. 그의 이름 두 글자를 찬찬히 살펴봅니다. 정생(正生) 바른 삶입니다. 올바르고 정의로우며 향기로운 삶입니다. 권정생 선생의 얼굴을 들여다 보니 소크라테스와 많이 닮았습니다. /조신영 인문학365 대표

2019-03-04

양화소록과 매화예찬

강희룡 서예가조선 초기 문신이자 서화의 삼절(三絶)로 추앙을 받던 강희안(417∼1464)은 꽃과 나무에 대한 재배법과 이용법을 설명한 책인 ‘청천양화소록(菁川養花小錄)’을 저술했다. 이 책의 내용은 예로부터 사람들이 완상(玩賞)해온 꽃과 나무 몇 십 종을 들어 그 재배법과 이용법을 설명했으며, 또한 꽃과 나무의 품격과 그 의미와 상징성을 논하고 있다.원예나 골동품 수집 등 취미생활은 선비의 학문과 수양을 방해한다는 이른바 완물상지(玩物喪志)의 전통 때문에 원래 유교사회에서 선비들의 꽃가꾸기는 일종의 금기였다. 그러나 강희안은 양화소록 후기에서 “화훼를 재배하는 것은 사람의 심지를 굳건히 하고 덕성을 기르기 위해서다”라며 완물상지를 반박하고 있다. 몰두하지 않고 취미생활을 조절하면 하등 문제가 없고 오히려 학문에도 도움이 된다는 입장이다. 실제 그는 이른 봄꽃이 필 때 등불을 켜고 책상머리에 두면 벽에 비친 잎의 아름다운 그림자를 즐길 수 있고 책을 읽는 동안 졸음을 없앨 수 있다며 체험적 난초 감상법을 들려준다. 또한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의 미물이라도 이치를 탐구해 근원으로 들어가면 지식이 미치지 않음이 없다”면서 꽃을 기르는 것을 학문 연구 및 경륜의 한 방편으로 끌어올리고 있다.양화소록에는 ‘무릇 꽃을 재배하는 것은 오직 마음과 뜻을 굳건히 닦고 어질고 너그러운 성질을 기르는 데 있다.’라면서, 소나무는 굳은 의지를, 국화는 세상을 피해 조용히 사는 은일(隱逸), 매화는 높은 품격, 난초는 품격과 운치를 본받아야 한다고 적고 있다. 양화소록을 보면 당시 한국인이 좋아했던 꽃들을 알 수 있는데 주로 매화, 석류화, 단계화(丹桂花), 백일홍, 동백같은 수목화요, 화초는 목단 국화, 연꽃, 창포정도에 불과했다. 당시 선비 층에서는 꽃과 나무에 그 상징적 의미에 따라 품계나 등수를 매겼다. 강희안은 매, 국, 연, 죽, 소나무는 1품, 모란은 2품, 월계, 영산홍, 석류, 벽오동은 3품으로 단풍은 4품, 장미는 5품, 목련은 7품에 들어 있다. 특히 매화는 화괴(花魁), 즉 꽃의 우두머리이며 선비의 꽃이다. 청아하면서 속기(俗氣)가 없고 평생 춥게 살아도 향기를 팔지 않는다[梅一生寒不賣香]. 선비의 삶이 가시밭길같이 춥고 배고파도 그 정신만은 저버리질 않는다. 때문에 추위가 한바탕 뼛속 깊이 사무치지 않고서는 매화의 은은한 향기를 맡을 수 없다.고려중기 문인인 진화(1179~?)는 매화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읊고 있다. ‘봄의 신이 뭇 꽃을 물들일 때/ 맨 먼저 매화에게 옅은 화장을 시켰지/ 옥결같은 뺨엔 옅은 봄을 머금고/ 흰 치마는 달빛에 서늘해라.’강희안의 할아버지인 강회백이 심은 정당매(政堂梅)의 일화는 유명하다. ‘우리 선조 통정공이 어려서 지리산 단속사에서 책을 읽었다. 그 때 절 마당 앞에 매화 한 그루를 심었다. 공이 과거에 합격한 후 여러 관직을 거쳐 정당문학의 벼슬에 올라 지금까지도 그 매화를 정당매라고 부른다’라고 적고 있다. 600여 년이 흐른 오늘날 단속사의 가람은 찾아볼 길 없지만 석탑과 초석만이 남아있는 단속사 터에는 양화소록이 전한 매화가 해마다 화사한 군자의 자태를 뽐내고 있다.산청 3매 중에서 으뜸인 남명매가 있다. 칼 찬 선비였던 남명 조식(1501~1572) 선생이 61세 때 산천재 앞뜰에 심은 것이다. 연분홍빛과 흰색 겹꽃이 황홀하다 못해 올곧은 남명정신이 물욕에 쪄든 현대인의 등짝을 때리는 듯하다. 이황(1501~1570) 선생은 매화 화분을 앞에 놓고 술벗을 하다 말년에 병들어 눕게 되자 매형(梅兄)에게 누추한 모습을 보이기 싫다며 화분을 다른 방으로 옮긴 후 눈을 감았다. 얄팍한 지식 한 장으로 세상에 출사해 입으로는 천리를 말하며 헛된 이름이나 훔쳐서 남들을 속이려 드는 지금의 위정자들은 곳곳에 활짝 피어 있는 매화의 군자상(君子像)을 보며 자신의 참 모습을 돌아보는 계기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2019-03-04

스마트시티와 합창의 닮은 점

곽지영 포스텍 산학협력교수·산업경영공학과우리 대학에는 독특한 전통이 있다. 선배 교수님들의 정년퇴임식 자리에서 교수합창단이 축하공연을 하는 것이다. 내가 학부시절 합창단이었다는 것을 아시는 교수님의 권유로 뒤늦게 합창단에 합류하게 된 터라 그것이 언제 어떻게 생긴 전통인지는 잘 모른다. 하지만 두어 차례 공연에 참여해 보니, 퇴임을 맞으신 스승이자 선배 교수님들께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전할 수 있어 더 없이 좋은 일이라 생각됐다.2019년 정년퇴임식을 며칠 앞둔 어느 날, 교수합창단 연습 일정 공지도 함께 날아들었다. 내 일정표를 보니 개강 첫 주에다 여러 일들이 겹친 소위 ‘지옥 주간’이라, 연습 시간을 비우는 것이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았다. 하지만, 학부시절 지도교수께서 정년퇴임을 맞으시는 자리라, 며칠간 일정 몇 개를 무리해 앞당겨 소화한 후 겨우 참석할 수 있었다.실은 나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연구에 밤낮이 없으면서도 공연 일정이 잡히면 어떻게든 시간을 내어 모이는 단원들. 좋은 소리를 기대하는 열정에 비해 연습 시간은 언제나 턱없이 부족하다. 짧은 준비 시간을 알차게 활용하여 최대 효율을 내는 것이 가장 큰 목표라고 할까. 서로의 시간을 아끼기 위해서는 스스로 부족한 부분은 파트별 가이드 음원을 들으며 혼자라도 틈틈이 익힌 후 연습에 임해야 한다.혼자 연습할 때나 파트 연습에서는 언제나 뭔가 부족한 내 목소리가 언짢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모든 파트가 모여 다 같이 한번 불러 보고 나면 어디서 나오는지 모르는 화음에 스스로 놀라 기분이 좋아진다. 각자의 목소리는 온데간데 없고, 우리 모두의 머리 위에서 동그랗게 하나로 모아진 화음만이 지휘자의 지휘봉 끝자락을 따라 춤을 춘다.학부 시절부터 합창 동아리 활동을 했으니 합창단 경력이 내 연구 경력보다 더 길다고 우스갯소리를 하곤 한다. 생각해 보면 내가 취미로서 좋아하는 합창과 연구 분야로서 좋아하는 스마트시티 사이에는 묘하게 닮은 구석이 있다.첫째, 당연하지만 어쩌면 가장 중요한 것은 혼자서는 절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둘째, 개개인의 소리가 함께 어우러지면 1+1은 2가 아니라 화음이라는 시너지가 더해져 그 이상이 된다. 셋째, 단원 개개인의 음악적 기교나 성량이 아니라 전체 소리의 어울림이 새로운 성공의 지표가 된다. 넷째, 청중의 입장에서 듣기 좋은 소리를 만들기 위해서는 곡의 큰 그림을 보는 유능한 지휘자가 필요하다. 다섯째, 단원들은 자기 소리에만 열중해서는 안 되며, 옆 사람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서로 눈빛과 호흡을 맞춰야 한다. 여섯째, 그렇게 잘 만들어진 합창의 화음은 화려한 아리아보다 더 강하고 긴 여운을 단원들 모두와 청중의 가슴속에 남긴다.스마트시티도 마찬가지다. 첫째, 인공지능, 블록체인, IoT, 빅데이터 등 소위 4차 산업혁명의 시대 영웅으로 떠오른 그 어느 기술도 단독으로는 스마트한 세상을 절대 만들 수 없다. 둘째, 이들 기술이 함께 활용되면 1+1은 2가 아니라 시너지가 더해져 그 이상이 된다. 셋째, 스마트시티의 성공 지표는 특정 기술의 우수성이 아니라 전체의 조화와 그것이 가져올 시민 혜택에 있다. 넷째, 시민이 체감할 도시의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큰 그림을 보는 유능한 지휘자가 필요하다. 다섯째, 도시를 구성하는 제품과 서비스, 기술은 단독(Stand-alone)으로만 존재해서는 안되며, 전체가 하나의 시스템을 이뤄야 한다. 그렇게 잘 만들어진 스마트시티여야만 그 구성원인 정부, 시민, 민간 기업 모두의 공감대를 얻어낼 수 있다.한주 간 무리하게 일정을 소화한 탓에 좀 힘겨웠는지, 다음날은 코피로 하루를 열었다. 지혈하려 휴지를 코에 말아 넣으면서도 연신 합창곡 마지막 소절을 흥얼거린다. ‘오늘 이렇게 멋진 날에~’ 스마트 세상에서는 사람들이 그렇게 아침마다 웃으며 콧노래를 부르게 되길 간절히 빈다.

2019-03-04

교수는 무엇으로 사는가

변창구대구가톨릭대 교수·국제정치학대학교수 38년을 마무리하고 며칠 전 정년퇴임을 하였다. 돌이켜보면 교수의 3대 책무라고 할 수 있는 교육·연구·봉사에 나름대로 최선을 다한다고 노력했지만 능력과 덕(德)이 부족하다보니 회한(悔恨) 또한 적지 않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대학의 위기상황에서 고군분투(孤軍奮鬪)하고 있는 후배 교수들의 ‘행복하고 가치 있는 교수생활’을 위하여 선험자로서 몇 가지 조언을 드리고 싶다.최근 급속히 악화되고 있는 대학을 둘러싼 환경, 즉 학령인구의 급감, 대학의 구조개혁, 교수연봉제 시행, 기업마인드(mind) 요구, 가중되는 행정업무, 돈과 권력에 대한 유혹 등 교수들의 신분과 품위를 위협하고 있는 요인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기 때문이다.따라서 교수로서 당연히 걸어가야 할 정도(正道)로부터 일탈(逸脫)의 위험에 직면에 있는 사람들은 특히 다음과 같은 점들에 유의하지 않으면 안 된다.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교수는 무엇으로 사는 존재인가’에 대한 자기 성찰이다. 교수를 둘러싼 교내외적 환경이 악화될수록 자칫 본연의 책무를 잊어버리기 쉽다. 교수는 ‘생업(career)으로서의 교수’가 아니라 ‘천직(vocation)으로서의 교수’가 될 때 비로소 연구·교육·봉사라는 본업에 충실할 수 있다.교수는 돈이나 권력을 추구하는 사람이 아니라 지식과 명예를 먹고 살아가는 존재임을 명심하여야 한다. 학생들에게 삶의 소중한 가치와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바람직한 방향, 즉 ‘가치와 당위의 문제’를 연구하고 가르치는 교수는 먼저 자기 자신부터 ‘올바른 교수관’이 정립되어 있어야 함은 물론이다.둘째, ‘정치권력과 일정한 거리두기’, 즉 교수는 권력의 유혹에 무너지지 않도록 스스로에게 보다 엄격해야 한다. 정치의 계절이 오면 언제나 철새처럼 권력자를 쫓아다니는 폴리페서(polifessor)들, 즉 정치교수들에게서 학생들은 무엇을 배울 수 있겠는가?마찬가지로 대학의 총장선거에 개입하거나 각종 보직을 탐하는 ‘캠퍼스 폴리틱스(campus politics)’에도 초연해야 한다. 캠퍼스 밖의 권력이나 캠퍼스 안의 권력이나 ‘권력의 속성은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셋째, 교수의 사회봉사는 개인적 영달을 위한 것이 아니라 사회발전과 정의구현이라는 공동체의 대의(大義)를 위한 것임을 잊지 않아야 한다.교수가 대외적 봉사활동을 수행함에 있어서 객관성을 상실하고 개인적 이익을 고려하거나 특정의 정치성향을 앞세우는 것은 봉사자의 자세가 아니다. 따라서 교수는 사회봉사에 있어서 언제나 ‘공정한 심판자’이자 ‘적극적 관찰자’의 자세를 견지하지 않으면 안 된다.넷째, 힘든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아픈 청춘들’, 즉 우리 제자들의 병을 치유할 수 있는 ‘명의(名醫)’가 되어야 한다.‘아프면 환자이지 뭐가 청춘이냐’라고 항의하는 제자들에게 청춘의 고통은 인생에서 당연히 겪는 하나의 과정이라고 위로한다면 설득력이 있겠는가?나아가 교수는 아픈 청춘들의 인기에 영합하여 일시적으로 고통을 잊게 하는 마약과 같은 ‘진통제 처방’을 할 것이 아니라, 병의 원인을 근본적으로 치유할 수 있도록 정확히 진단, 처방해주는 ‘명의’가 되어야 한다.마지막으로 교수는 가진 자로서 당연히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를 실천해야 한다.교수에게는 사회를 이끌어가야 할 지식인으로서 솔선수범(率先垂範)하는 선비정신이 요구되고 있으며, 그것은 결국 ‘행복한 교수’로 거듭나게 해 줄 것이다.프랭크 시나트라(Frank Sinatra)의 노래 ‘마이 웨이(my way)’처럼 교수는 아무리 비바람이 몰아쳐도 당당하게 ‘교수의 길을 교수답게’ 걸어가야 한다.

2019-03-04

북튜브

북튜브(Booktube)는 책과 유튜브의 합성어로, 책과 관련된 리뷰 등 콘텐츠를 다루는 유튜브 채널을 의미한다. 북튜버는 이 채널을 운영하는 사람을 칭한다.게임, 먹방, 쿡방, 뷰티 콘텐츠가 대세인 유튜브에 북튜브 채널이 등장한 것은 불과 2~3년 전이다. 우리 사회가 책읽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는 건 그리 큰 비밀이 아니다. 그런 와중에 책을 다루는 북튜브가 유행하는 것은 바람직한, 새 트렌드다. 최근에는 북튜브 전성시대라 할 만큼 20여개 채널이 생겼다.우선 초보 독서인에게는 북튜브 ‘겨울서점’을 추천한다. 북튜버인 김겨울이 공들여 ‘엑기스’만 추린 콘텐츠, 부드러운 저음의 여성 목소리, 깔끔한 말솜씨로 책을 좋아하게끔 만든다.‘공백의 책단장’은 지난해 10월 문을 연 북튜브로, 하나의 주제를 프로젝트처럼 다뤄 깊이 있는 독서를 돕는다. 고전을 다루는 ‘사월이네 북리뷰’와 조선시대 선비처럼 갓을 쓰고 자기계발서와 공상과학(SF) 소설을 소개하는 ‘책선비’도 잘난 척하지 않아 초보 독서인에게 적합하다. 경제·경영서를 다루는 ‘책읽찌라’나 톨스토이와 같은 고전문학을 다루는 ‘문학줍줍’은 완독이 버거운 수험생이나 문학 소양이 아쉬운 직장인에게 인기다.지친 직장인들을 위해 가만히 책을 읽어주는 낭독 채널형 북튜브도 인기다. ‘책 읽기 좋은 날’은 세계 문학, 한국 문학, 에세이, 신간을 두루 읽어준다.‘루나 펄스(lunar pulse)’는 톨스토이, 안중근 의사 자서전 같은 무게감 있는 책을 여러 편으로 나눠 끝까지 읽어준다. ‘쏭아지네’는 심리 분야 도서만 리뷰한다.영어와 지식을 동시에 공부하는 해외 북튜브도 있다. 영어 초보자에게는 곰 인형을 안은 할머니가 그림책을 또박또박 읽어주는 ‘스토리타임위드미즈베키(StoryTimeWithMsBecky)’가 좋다.‘폴란드바나나스북스(polandbananasBOOKS)’는 코믹 북튜브로, 요가를 하면서 책꾸러미를 자랑한다.‘어북유토피아(abookutopia)’는 만화책을 비롯해 다양한 책을 소개한다북튜브는 스마트폰 시대를 주름잡는 유튜브가 시대의 변화를 자극하고 있는 증좌다. /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19-03-04

다크 투어리즘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에 패배하고 한반도에서 철수하면서 우리 정부에 귀속된 일본인 주택을 적산(敵産)가옥이라 부른다. 포항의 구룡포 일본가옥거리에 남아 있는 일본식 주택이 우리지역에 있는 대표적 적산가옥이다.적산가옥은 전국적으로 보면 과거 일본인이 많이 살았던 항구지역에 집중 분포돼 있었다. 포항 구룡포는 1883년 ‘조일통상장정’체결 이후부터 일본인이 건너와 거주해 왔던 곳이다. 10년 전만 해도 100채 가량의 일본식 집들이 남아 있었으나 지금은 반쯤으로 줄어들었다고 한다. 전라도 목포와 여수, 군산 등 항구도시들도 적산가옥이 아직 많은 곳이다.큰 도시 중에는 대구도 비교적 많은 적산가옥이 분포돼 있는 곳으로 전해지고 있다. 특히 일제시대 대구역이 처음으로 들어서면서 역세권이 형성된 북성로 일대는 일본 식민기업의 진출로 당시 일본식 건물들이 많이 지어졌다. 최근 개장한 북성로 공구박물관은 1936년 지어진 일본식 건물로 당시에는 미곡창고로 사용됐던 곳이라 한다.대구 삼덕동 일대도 행정기관의 사택이나 일본인의 집들이 많이 있었다. 도시발전 과정에서 대부분 사라지고 지금은 1939년 지어진 대구덕산공립 심상소학교 교장 관사로 사용됐던 건물만 남아 있다. 이 건물은 이후 삼덕초등학교 관사로 사용되다 지금은 삼덕마루란 이름으로 어린이 도서관으로 활용하고 있다.적산(敵産)은 적의 재산으로 붙여진 이름이다. 적산이란 이름보다 수탈당한 재산을 되찾았다는 의미로 재해석돼야 한다는 주장이 요즘 들어 새삼 설득을 얻고 있다. 때마침 3·1만세 운동 100주년을 맞아 다크 투어리즘(Dark Tourism)이 다시 조명을 받는다는 소식이다. 아픈 과거 역사에 대한 교훈적 의미를 찾는 우리민족의 당연한 자세다. 국립국어원에서는 다크 투어리즘을 ‘역사교훈 여행’으로 풀어 쓰고 있다. 2차 세계대전 때 약 400만 명을 학살했던 폴란드의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대한 견학 등이 이런 경우에 속한다.일제 강점기라는 비극적 역사를 가진 우리가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가족과 함께 가까운 우리지역 역사교훈 현장을 찾아나서는 것은 훌륭한 일이 될 것이다./우정구(논설위원)

2019-03-03

황교안, 미더운 ‘대안야당’ 구축하길

안재휘 논설위원자유한국당 ‘황교안 체제’ 출범을 놓고 ‘탄핵 궤멸’ 이후 처음으로 ‘오너 당 대표’가 등장했다는 평가에 동의한다. 경선 과정에서 드러난 황 대표의 이미지는 비교적 강단 있는 모습이었다. 어떻게든 그를 헐뜯으려는 진보진영 논객들은 ‘탄핵 총리’, ‘두루뭉술한 화법의 기회주의자’에 심지어는 ‘두드러기를 이유로 군대를 슬그머니 빠진 사람’이라며 까마득한 병역면제 이력까지 들쑤시지만, 그는 생각보다 단단하다.한국당 전당대회 자체는 아쉽다. 기대했던 국가미래 청사진은 눈을 씻고 찾아보려고 해도 없었다는 점에서 좋은 점수를 주기 어렵다. 폐허에서 의연히 일어설 혁신의 깃발이 무성히 나부끼길 기대했던 다수의 기대에는 한참 못 미쳤다는 게 냉정한 관전평이다. 또다시 ‘그들만의 리그’가 펼쳐진 데 대한 서운함은 예상보다 짙다.일단 ‘범보수 통합’을 외친 황교안 후보가 ‘중도 외연확장’을 부르짖은 오세훈 후보, ‘강성야당’을 주창한 김진태 후보를 넉넉한 표차로 눌렀다는 점에서 자유한국당이 나아갈 대로(大路)는 일단 ‘범보수 통합’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투표결과에 나타난 민심의 함의를 가볍게 읽어서는 안 된다. 일반국민 여론조사 득표내용을 살펴보면 그 뜻은 명확하게 드러난다.황교안은 최종 50% 득표율로 당 대표에 당선됐다. 오세훈이 31.1%, 김진태는 18.9%를 얻었다. 여기에서 30%가 반영되는 일반국민 여론조사에서 오세훈이 50.2%를 얻어 37.7%에 그친 황교안은 물론 12.1%를 얻은 김진태를 압도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일반민심은 한국당의 ‘중도 외연확장’을 절실하게 요구하고 있다는 점을 정직하게 읽어야 한다.‘중도 외연확장’은 ‘범보수 통합’의 가치와 어긋나는 개념이 아니다. ‘중도 외연확장’은 ‘범보수 통합’의 가장 강력한 수단이 될 수 있다는 측면에서 새로운 매듭이요 접착제일 수 있다. 민심이 뒷받침하고 있는 이 같은 환경은 철저하게 국가와 민생의 질을 개선할 ‘미래 정책’을 펼쳐내야 할 당위성으로 연결된다.김진태의 꼴등은 어설픈 선명성만으로는 ‘범보수 통합’의 기저 구축이 불가능하다는 한계를 증명한다. ‘문 대통령 모두까기’ 합창만으로는 흩어져 있는 ‘보수 민심’을 결코 하나로 모아낼 수 없다. 그렇게 해서는 미래를 책임질 미더운 정치세력으로 인정받기 어렵다는 현실을 깊이 깨우쳐야 한다.원래 진보란 ‘자유’를 으뜸철학으로 놓고, ‘국가주의’를 해체하는 사상에서 출발해야 맞다. 적지 않은 지식인들이 보수가 ‘자유’를 말하고 진보가 ‘국가주의’에 집착하는 한국의 정치 현상에 고개를 갸웃댄다. 평등한 세상을 만든다며 강력한 ‘국가주의(전체주의)’를 동원했던 사회주의 국가들은 모조리 민중의 피맺힌 한만 남기고 무덤 속으로 처박혔다. 그 역사를 애써 외면한, 넋 나간 외눈박이 앵무새들의 노래가 난무하는 일은 참담하다.황교안 대표는 자유·실용·경쟁·개방·통합 등 보수의 아름다운 이정표들을 새롭게 세워내야 한다. 극단보다는 ‘중도’, 비난을 위한 비난보다는 ‘대안’, 비관보다는 ‘낙관’, 부정보다는 ‘긍정’, 안주보다는 ‘변화와 도전’을 추구하는 참보수의 모습을 일궈내야 한다. 특히 집권 정부여당에 대한 티 뜯기 일변도에서 벗어나 신실한 대안을 꾸준히 제시하면서 감동적인 정책들을 쏟아내는 대안야당 전통을 세워내는 새로운 역사를 써야 한다.온종일 정부여당 헐뜯는 형용사만 연구하다가 건듯하면 자극적인 플래카드 들고 길거리에 나서는 일로 할 일을 다 한 듯이 우쭐대는 야당 노릇에 국민은 넌더리가 나 있다. ‘그래서 뭘 어떻게?’ 하는 민심의 목마름에 정확하게 답해야 한다. 그것만이 ‘중도 외연확장’의 소명으로 ‘범보수 통합’의 긍극적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첩경이다. 황교안의 제1야당은 달라야 한다.

2019-03-03

새끼손가락만 한 이방인, 작지만 선명한 존재감 그대로

미국이 멈췄다. 정당간의 협상 실패로 새해 예산안이 통과 시한을 넘기는 바람에 정부기관이 폐쇄되는 ‘셧다운(shutdown)’ 사태가 일어난 것이다. 미국은 물론 세계 경제를 강타한 사상 초유의 최장기 셧다운은 ‘반(反)이민정책’이라 할 만한 트럼프 대통령의 이민정책 때문이었다.트럼프는 후보자 시절 “멕시코 국경에 장벽을 세우고, 그 비용을 멕시코가 내게 하겠다!”고 공약했는데, 농담처럼만 들리던 그 말이 ‘카라반(Caravan)’을 둘러싼 갈등과 대립으로 현실화된 것이다.미국-멕시코의 국경 장벽에 까맣게 달라붙은 카라반 즉 이민자 행렬은, 2018년 10월 온두라스의 도시에서 모였을 때만 해도 고작 160여 명이었다고 한다. 그러다 과테말라를 거치면서 3천여 명으로 늘어났고, 멕시코에 들어설 무렵에는 7천여 명이 되어 있었다.이들을 바라보는 시각은 극과 극이다. 인권 보호와 온정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있는 반면 거부감을 넘어 혐오감을 드러내는 이들도 있다. 그리고 트럼프 대통령을 ‘탄생’시킨 반(反)이민 정서와 배타주의는 미국만이 아닌 세계적인 현상이 되어간다. 유럽과 남미 곳곳에서 인종과 문화의 충돌이 일어나고, 한국도 제주도에 예멘 난민이 입국하면서 더 이상 갈등의 무풍지대일 수 없게 되었다.본디 외부자, 이방인, 타자에 대한 내부자들의 심리에는 매혹과 공포가 뒤엉켜 있다. 선진 문물과 문화를 가졌을 때는 신성한 존재로까지 숭배되지만, 수준이 낮거나 빈털터리일 때는 언제 돌변할지 모르는 약탈자로 경계의 촉수를 세우기 마련이다. 이러쿵저러쿵해도 곳간에서 인심 나는 법이다. 불황과 경기 침체로 ‘내 코가 석 자’인 지경에 숟가락 하나 들고 달려드는 밥그릇 싸움의 경쟁자를 환대할 리 없다.그렇다면 수도 서라벌에 35개의 금입택(金入宅)이 있고(‘삼국유사’), 모두가 기와집에 살며 숯으로 밥을 짓고 땔나무를 쓰지 않는다(‘삼국사기’)던 신라에서는 어땠을까?딱 새끼손가락만 했다. 신라월성학술조사단 수장고에서 만난 이방인은 작지만 선명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는 흙으로 만든 형상, 토우(土偶)다. 신라 토우는 1960년대 황남동 무덤에서부터 토기 뚜껑이나 항아리 장식용으로 확인되기 시작했다.가야금을 뜯는 임산부, 남녀의 성행위, 개구리를 물고 있는 뱀 등 신라 토우는 언제 보아도 재미있고 정겹다.과시하며 겉멋을 부리기보다는 소박하고 솔직한 신라인의 심성이 흙 인형에 고스란하기 때문이다. 2018년 2월에는 월성에서 나온 토우들을 장난감 ‘레고’와 조합한 작품을 전시하기도 했다는데, 레고로 만들어진 유물을 가지고 노는 동안 아이들은 따분한 옛날이야기가 아니라 재미있는 놀이로 역사를 손끝에서 느꼈으리라.지금까지 월성 해자에서 출토된 토우는 총 32점으로 사람 형상이 19개, 동물은 12개, 그리고 정체를 확인하기 어려운 게 1개라고 한다. 그중 계림 남쪽에 자리한 월성 1호 해자에서 그가 나왔다. 깊은 눈에 오른쪽 팔뚝까지 내려오는 터번을 머리에 두르고 무릎을 살짝 덮은 옷을 입고 있었다. 팔소매가 좁고 허리가 꼭 맞아 활동성을 고려한 옷은 당나라에서 호복(胡服)이라 불리던 카프탄(caftan)으로 보인다. 그래서 월성 해자 속에 천년이 넘도록 잠들어있던 그는 소그드(Sogd)인으로 추정된다.소그드인은 중앙아시아의 이란계 민족으로 ‘스키타이’ 혹은 중국에서 ‘속특(粟特)’이라 불렸다. 상술이 능해 일찍부터 실크로드 요지에서 교역활동을 벌여 동서 문명교류에 많은 기여를 했다고 한다.특히 중국과의 교역이 활발했는데 이를 통해 신라까지 진출했음이 유물로 확인된다. 이미 경주 지역에서는 유리공예품, 장식보검 등 다양한 서역산 유물이 출토되었다. 또 괘릉의 호인상(8세기), 용강동 고분 출토 호인상(7~8세기) 등 서역인의 형상을 한 조각물도 여럿 있다.월성 해자에서 출토된 터번을 쓴 토우는 6세기 것으로 추정된다. 그는 지금까지의 발견 가운데 가장 오래된 이방인이다.석굴암에 올랐다가 불국사역 앞에서 점심을 먹고 시내로 돌아오는 길에 괘릉을 들렀다. 돼지갈비와 국수와 김밥의 기묘한 세트 메뉴가 예상보다 만족스러워서 허허벌판의 무덤 앞에 서서도 헛헛함이 덜했다. 경주에는 보물이 너무 많아서 보물이 보물처럼 보이지 않는 것이 매력이자 안타까움이다. 평일 한낮의 괘릉도 텅 비어 있었다. 서울의 조선시대 왕릉에는 주변에 CCTV와 함께 접근을 막는 사이렌이 설치되어 있는데, 여기는 없는 건지 보이지 않는 건지 모르겠다. 이런 적막지경에 무덤의 주인을 지키는 것은 뜻밖의 이방인이었다.신라의 왕릉 중 피장자가 확실한 것은 능비가 있는 태종무열왕릉과 비편이 출토된 흥덕왕릉뿐이다.이외 기록상 위치와 시대적 형식에 맞아 학계에서 인정하는 것이 선덕여왕릉, 문무왕릉, 성덕왕릉, 원성왕릉, 그리고 헌덕왕릉 등 5기다. 원래 연못이 있던 자리라 돌 위에 관을 걸었다는 속설이 있어 걸 괘(掛)자의 괘릉이라 불리는 이곳은 제38대 원성왕릉으로 추정된다.원성왕 김경신은 선덕왕과 함께 반란을 평정한 뒤 상대등이 되었다가 선덕왕이 후사 없이 죽자 왕위에 오른 인물이다.김경신은 자신보다 서열이 높은 김주원을 물리친 것으로도 유명한데, 권력투쟁에서 밀려난 김주원은 강릉 김씨의 시조인 명주군왕이 되었다.나는 그의 40세손이다. 시조 할아버지의 막강한 경쟁자이자 승자인 원성왕릉 앞에 서니 기분이 야릇한데, 그 야릇함을 더하는 풍광이 무덤 앞을 지키는 석물들이다.돌사자가 한 쌍, 문인석이 한 쌍, 그리고 무인석이 한 쌍인데…. 입구를 지키고 선 무인석의 생김새가 예사롭지 않다. 2m가 넘는 키에 부릅뜬 눈과 매부리코, 말려 올라간 콧수염과 주름진 옷이 이국적이다.그리스의 영웅 헤라클레스처럼 곤봉을 닮은 무기를 짚고 있다.허리를 살짝 비틀어 몸을 젖히고 단체 사진을 찍을 때 “파이팅!”을 외치는 포즈로 주먹까지 불끈 쥐고 있다. 한눈에 보아도 신라인은 아니다.여기까지는 당나라에서 유행하던 흙으로 만든 서역인상인 호인용(胡人俑)을 본떴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런데 문명교류학자 정수일의 지적처럼, 오른쪽 옆구리에 차고 있는 지름 10㎝ 가량의 복주머니가 문제다. 한국의 고유한 장신구인 복주머니를 서역사람이 차고 있다? 그것은 상상이나 모사가 아니라 실제로 신라인과 서역인이 어울려 살았다는 강력한 증거가 아닐 수 없다. 게다가 왕릉을 지키는 호위무사라니, 신라에 인종차별이 있었다면 그는 결코 그곳에 서있을 수 없었을 것이다.3월에 왕이 나라 동쪽에 있는 주군(州郡)을 순행할 때, 어디서 온지 모르는 네 사람이 왕의 행차 앞에 나타나 노래를 하고 춤을 추었는데, 그 모습이 해괴하고 옷차림이 괴이하여 사람들이 산과 바다의 정령(精靈)이라 하였다.‘삼국사기’에서 헌강왕 앞에 나타난 정령은 시기상(879년 3월) 황소의 난(874~884) 때 일어난 외국인 대학살을 피해 당나라에서 신라로 도망 온 아랍 상인일 가능성이 높다(이희수). 낯설고 기이한 생김새와 옷차림에 신라인들은 귀신을 본 듯 놀랐지만, 정령 혹은 귀신을 잡아 가두거나 구경거리로 삼지 않는다.‘삼국유사’ 기이편에 기록된 정황은 좀 더 다채롭다.헌강왕이 개운포(지금의 울주)에 나갔다가 구름과 안개가 자욱해져 길을 잃었다. 동해 용이 조화를 부린 것이라는 일관의 조언에 용을 위해 절을 지으니 비로소 맑아졌다. 선물을 받고 신이 난 동해 용은 일곱 아들을 거느리고 나타나서 춤을 추며 풍악을 연주한다. 그리고 용의 아들 중 하나가 헌강왕의 수레를 따라 서라벌로 들어와 정사를 돕게 되는데, 그가 바로…동경(東京) 밝은 달에 밤새도록 노니다가들어와 자리를 보니 다리가 넷이구나.둘은 내 것이지만 둘은 누구의 것인가.본래 내 것이지만 빼앗긴 것을 어찌 하리.역사적인 오쟁이를 진 사내, 처용이다. 처용을 울주에서 경주로 데려온 왕은 ‘마음을 잡아 머물도록’ 하기 위해 미녀를 소개해주고 급간 직책도 준다.하지만 명령이나 다름없는 중매로 처용의 아내가 된 미녀는 남편이 썩 마음에 들지 않았던지 사람으로 변한 역신(疫神)과 정을 통한다. 통정의 현장을 잡고도 처용은 치정 살인 대신 ‘처용가’를 지어 부른다. 웃는 듯 울며 허위허위 춤추며 노래한다. 칼부림보다 그게 더 무섭다.“(상략)...공이 노여워하지 않으니 감탄스럽고 아름답게 생각합니다. 맹세코 오늘 이후로는 공의 형상을 그린 그림만 보아도 그 문에는 절대로 들어가지 않겠습니다.”역신을 무릎 꿇리며 사악함을 물리치고 경사스런 일을 맞이하는 상징이 된 처용. 처용설화는 이국적인 용모의 이방인을 신묘한 힘의 소유자로 여기며 존중하던 당시 신라의 분위기를 반영한다.물론 당나라에서 비즈니스를 할 만큼 선진한 문물과 자본을 가졌으니 내칠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또한 그 이면에 이방인의 낯선 문화와 문물을 기꺼이 받아들인 신라인들의 높은 자존감을 인정해야 한다. 열등감이나 패배감을 갖고서는 절대 유연함과 포용성을 발휘할 수 없으니.온정과 혐오, 어느 편의 손도 쉽게 들어줄 수 없을 때는 현실을 들여다봐야 한다. 2018년 교육기본통계를 보면 전국 초등학생의 100명 중 3명 이상이 다문화학생이며 전남(4.3%), 충남, 전북, 경북, 충북 순으로 전체 학생 중 다문화학생의 비율이 높다. 학령인구의 감소에도 불구하고 국적이 다른 부모를 둔 학생들이 매년 1만여 명씩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낮은 취학률, 높은 학업중단율, 그로 인한 빈부 격차의 심화를 외면한다면 머지않아 새로운 갈등의 요소가 될 것이 확실하다.자욱한 구름과 뽀얀 안개를 감고 덩실덩실 신비와 해탈의 춤을 추지는 않을 지라도, 이제 우리 곁에 바싹 다가온 더 이상 이방인 아닌 이방인들을 어떻게 마주해야 할까?새끼손가락만 한 이방인, 짐짓 무표정한 그의 두 눈과 벌어진 입을 오래 들여다본다.그에게 물어보고 싶다. 1500년의 세월을 훌쩍 뛰어넘어 21세기 햇빛 아래 모습을 드러낸 그의 눈에 그때의 신라와 지금의 한국은 얼마나 같고 어떻게 다른지? 과연 서로가 상처 주지 않으면서 공존 공생할 방법은 없을는지?

2019-03-03

책의 힘

홍인자 시인다치바나 다카시는 독서론, 독서술, 논픽션 명저들로 유명한 이 시대 최고의 저널리스트다. 도쿄대학 불문과를 졸업하고 문예춘추에서 기자로 활동하던 그는 뜨거운 지적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퇴사했다. 그리고 다시 도쿄대학 철학과에 입학하여 평론활동을 시작하며 일본의 지성인으로서 명성을 쌓았다. 그는 다양한 책을 읽고 독특한 지의 세계를 구축하며 독서의 노하우나 독서론 등의 저서를 통해 지적 바람을 일으켰다.그가 말하는 독서론 독서술 서재론은 지적 호기심이 왕성한 한 시대의 지성인이 얼마나 지적 열망이 뜨거운지를 잘 보여준다. 특히 그의 저서 ‘나는 이런 책을 읽어 왔다’에서 들려주는 서재론은 참 신선하다. 책을 읽다보면 작가는 서고를 만들기 위해 시간을 보냈다고 할 정도로 책에 대한 애정이 대단하다.경제적 여유가 많지 않던 젊은 시절의 그는 많은 책을 보관하기 위해 여러 가지 방법 끝에 기능적이고 합리적인 방법으로 책장 대신 나무로 만들어진 사과 상자를 택했다. 책상 주위로 빼곡한 사과 상자에는 그가 좋아하는 책들이 가득 채워졌다. 사과 상자 책꽂이는 조립식 가구처럼 자유자재로 꾸밀 수 있는 장점이 있었고, 이사 시에도 간편했다. 이사할 때는 사과 상자에 책을 담아 그대로 옮기는 것이다.책이 점점 많아지자 그는 거주하는 집을 빼고도 두 개의 아파트 방을 빌려서 책을 보관했다. 많은 책들 때문에 가는 곳마다 벌어졌던 에피소드들도 그의 책 사랑의 추억과 함께 했다. 그는 합리적인 작업을 위해 모든 책을 하나의 공간에 두기를 원했고 마침내 빌딩을 지어 소형 박물관 같은 서고를 만들었다. 그가 소장한 수많은 책들은 지금 그와 함께 동고동락하고 있다.책을 많이 읽는 민족을 꼽으라면 단연 유대인을 꼽을 수 있다. 유대인은 5살이 될 때쯤이면 히브리어 알파벳을 습득하고, 10살이 되면 ‘토라’라 불리는 모세오경을 거의 달달 외울 정도가 된다. 그리고 성년식을 할 때 중요한 성경 부분을 암송하고 소감을 말하도록 한다. 경전을 읽기 위해 글자를 빨리 습득하면서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책을 가까이 하는 문화가 형성되어진 것이다. 그들은 성경을 암송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그에 대한 토의를 끊임없이 한다. 이러한 토론 문화는 하브루타라는 독특한 교육법을 만들어냈다. 나이, 계급, 성별에 관계없이 두 명이 짝을 지어 서로 논쟁을 통해 진리를 찾는 하브루타 교육법은 각 나라의 교육 현장에서도 활용하고 있다.이스라엘 현지를 수십 번 방문한 어느 영화감독의 말에 따르면 유대인들은 걸어 다닐 때도 책을 읽는다고 한다. 책을 읽다가도 누군가를 만나면 또 그 책에 대한 토의를 끊임없이 한다고 한다. 유대인들이 토론하기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2명의 유대인이 모이면 3개의 정당이 생긴다’는 유대인 속담만 보아도 알 수 있다.또 이스라엘에서 유대인 가정집들을 방문하면 특이한 사실이 있다고 한다. 집집마다 그 흔한 가전제품은 별로 보이지 않고 책들이 거실을 메우고 있단다. 심지어 책이 너무 오래 되어서 책 냄새가 가득할 정도라고 한다. 다양한 신상 가전제품들로 채워진 우리네 거실 풍경과는 사뭇 다른 것 같다.책을 읽고 토론을 즐기는 유대인들의 저력은 전 세계에서도 빛을 발한다. 전 세계 인구의 0.3%에 지나지 않은 유대인들은 다양한 분야에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노벨상의 20% 이상을 유대인들이 받았고, 세계 상위기업 30%를 그들이 경영하고 있다. 또한 다수의 유대인들이 미국의 정계와 법조계를 주름잡고 있으며, 월가의 경제를 움직이고 있다.빌 게이츠는 ‘오늘의 나를 만든 것은 우리 마을의 도서관이었다. 하버드대학의 졸업장보다도 소중한 것이 독서하는 습관이었다’라고 고백했다. 한 사람의 인생을 바꿀 수 있는 것이 책이다. 집집마다 미니서재를 만들어 좋아하는 책들로 채우고 독서하는 문화를 만들자. 책은 세계와 우주를 이해할 수 있는 통로가 되고, 무한한 상상력을 키워준다. 책을 읽는 것은 지혜의 문을 여는 것이고, 책을 읽는 민족은 강대하다.

2019-03-03

세상 모든 지도자를 사로잡은 사람

종교 경전 외에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책은 무엇일까요? 세르반테스가 쓴 ‘돈키호테’라고 합니다. 5억부가 팔렸지요. 뒤를 이어 찰스 디킨스의 ‘두 도시 이야기’가 2억부, ‘반지의 제왕’은 1억5천만부, ‘어린 왕자’는 1억4천만부 팔렸습니다. 1억부 이상 팔린 책을 두 권 이상 쓴 작가는 JRR 톨킨이 유일합니다. ‘호빗’과 ‘반지의 제왕’이지요. ‘가르시아 장군에게 보낸 편지’. 조금 낯선 책이지요? 이 책도 1억부가 넘게 팔렸습니다.스페인과 전쟁 때 미국 맥킨리 대통령은 쿠바 지도자인 가르시아 장군에게 중요한 편지를 전달하기로 결정합니다. 아무도 모르는 요새에 은거하며 전투를 지휘하던 가르시아 장군에게 편지를 전하라는 특명을 받은 사람은 로완 중위. 그는 맥킨리 대통령에게 편지를 전달받은 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즉시 백악관을 떠납니다. 가르시아 장군이 어디에 있는지 누구를 만나 설명을 들어야 하는지 대체 무엇부터 해야 하는지 아무 것도 묻지 않습니다. 묵묵히 편지를 품고 길을 떠났을 뿐입니다. 모든 것을 스스로 결정하고 추진합니다. 결국 로완 중위는 3주 만에 빗발치는 총알을 뚫고 쿠바의 깊은 산 속에 있는 가르시아 장군을 찾아내 편지를 전달하고 유유히 쿠바를 빠져나옵니다. 로완 중위는 결핍에 대해 불안해하지 않았습니다. 말없이 행동으로 옮겨 목적을 달성해 냅니다.저자 앨버트 하버드는 한 시간 만에 이 글을 써서 잡지 ‘필리스틴’에 기고합니다. 경제 공황에 빠진 미국에서 폭발적인 반응이 일어납니다. 1천부를 찍은 잡지가 2천부 주문이 들어오고, 5천부 주문이 들어옵니다. 결국 소책자로 판매하지요. 러시아 황제는 이 책을 접하고 큰 충격을 받습니다. 러일 전쟁 중이던 러시아 모든 군인들에게 이 소책자를 배포합니다. 러시아 군인 시신마다 이 책을 발견한 일본 군대는 책을 천황에게 보냈고 ‘가르시아 장군에게 보낸 편지’는 천황을 사로잡습니다. 일본 각계 각층 조직에 이 책이 뿌려집니다. 독일, 프랑스, 스페인, 터키, 인도, 중국 등으로 삽시간에 퍼져 나가지요.3월입니다. 지난 겨울, 쉼없이 달려온 우리에게 박수 치면서 격려와 위로를 아끼지 않아야 할 때입니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조용히 속삭여 물어볼 때이기도 합니다. 나는 지금 주어진 사명을 이루기 위해 로완 중위처럼 행동하고 있는가? 아니면 결핍을 핑계삼아 때를 기다리고만 있는가? 새 학기, 새 마음으로 새 출발합니다. 오늘도 그대의 건투를 빕니다. /조신영 인문학365 대표

2019-03-03

대구는 항일 독립운동의 성지(聖地)다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대구는 3·1운동 당시 서울 부산 원산을 잇는 교통의 중심도시이며 상업 거점 도시이기도 하다. 오늘의 대구의 달성공원, 두류공원, 망우공원, 앞산공원에는 허위, 이상룡, 이상화, 우재룡, 이상설 등 항일 독립지사들의 기념비와 공적비가 즐비하다. 팔공산은 한말 산남의진의 본거지이며 앞산 안일사는 조선국권 회복단이 창립된 곳이다. 대구의 도심 곳곳에서는 항일 지사들의 생가, 집터, 유적 등이 있다. 대구 계성학교의 아담스관은 독립선언문을 등사한 곳이고 서문시장은 만세 운동의 시발점이다. 대구의 제일교회와 남산교회는 만세운동의 산실이며 보현사 역시 태극기를 제작한 곳이다. 현 삼덕교회의 자리인 대구형무소는 애국지사들이 고초를 받고 순절한 곳이기도 하다.대구가 독립운동의 성지라고 불리는 것은 항일운동의 지사들이 많기 때문만은 아니다. 대구는 일제의 강제 병합 후 자발적인 항일운동 결사체가 많이 창립되었다. 대구는 1907년 국채보상운동이 시작된 자랑스러운 도시이다.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된 후 일제는 한반도의 경제적 수탈을 위해 이 나라에 차관을 강요하였다. 국채보상운동은 일제에 대해 빚을 갚기 위한 민간 운동이다. 대구 광문사(수창초등학교 뒤) 사장인 김광제와 서상돈 등 13인은 나랏빚 1천300원(당시 우리나라 1년 예산)을 갚기 위한 운동을 전개하였다. 금연과 금주를 통해 개인이 매달 20전씩 헌금하자는 운동이다. 여러해 전 대구에는 국채보상공원이 조성되고, 국채보상운동이 유네스코 세계 기록문화 유산으로 등재된 것은 대구의 자랑이다.대구 달성공원에서는 3·1 운동 4년 전인 1915년 독립무장단체인 대한광복회가 창설되었다. 조선 8도에 지부를 둔 항일 비밀 무장 조직인 셈이다. 이 조직은 대구 앞산 안일사에서 창설된 조선국권회복단과 풍기에서 결성된 광복단을 통합한 전국적 조직이다. 총사령 박상진, 지휘장(참모장) 우재룡, 권영만 지사는 만주의 지부(길림광복회 김좌진 장군)까지 두었다. 이들은 조선 국권 회복을 위한 과감한 의혈 투쟁을 전개하고, 만주 무관학교 설립을 위한 자금도 모금하였다. 이들은 일제의 조세 운반 마차를 습격하여 자금을 조달하기도 하고, 친일 부호 장승원 등을 처단하는 일도 서슴지 않았다. 대구의 3·8 만세 운동의 위세도 대단하였다. 이날 1919년 3월 8일 오후 2시 대구 서문시장(현 섬유회관 건너편)에서 출발한 만세 시위는 중부경찰서를 지나 종로와 약전골목, 중앙 파출소를 거쳐 현 대구백화점(당시 달성군청)까지 계속되었다. 거사 당일 기독교인 이만집 김태련이 선언문을 낭독하고, 당시 계성학교, 신명여학교 선생과 학생들이 선도하고 대구고보(현 경북고)학생 200명이 가세하여 1천여 명이 만세 시위에 가담하였다. 이후 4월15일까지 한 달여간 의성·청송·안동·예천 등 경북 각지에서 84회에 걸쳐 2만8천여 명이 참여하였다. 일본 경찰과 군인들은 이들을 무자비하게 진압하였다. 주모자와 가담자 3천296명은 체포 감금되어 옥살이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이처럼 대구는 항일 운동 본산으로 항일 독립 운동의 성지라고 불릴 만하다. 대구 신암 선열공원에는 독립 애국지사 52명이 나란히 누워 있다. 이러한 대구의 항일독립 정신은 1960년 대구 2·28 학생 민주 운동으로 부활되고, 4·19 혁명 정신으로 이어졌다. 대구는 한때 한국의 모스크바라 불릴 정도로 진보 세력의 중심 무대가 된 적도 있다. 대통령 후보 조봉암이 이승만을 누른 것도 이곳 대구이다. 대구는 전통적인 정의와 의혈의 DNA를 간직한 도시임에 틀림없다. 그러던 대구가 수구 보수의 도시가 되어버렸다. 3명의 수구 대통령을 배출한 때문일까. 여하튼 대구에 사는 시민들은 항일 성지라는 역사적인 자부심부터 가져야 할 것이다.

2019-03-03

건강, 돈, 그리고 행복

장규열 한동대 교수최근 발표된 건강국가지수(Health iest Country Index)에 따르면 한국은 17위에 머물렀다고 한다. 전세계 거의 모든 나라의 위생상태와 기대수명, 수질과 환경을 종합적으로 감안하였으며 아시아에서는 일본과 싱가포르가 10위권에 들었다는 것이다. 상대적으로 유럽 국가들이 높은 순위를 차지하였으며 미주국가들은 그리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고 한다. 놀랍게도 미국은 35위에 머물렀다는 것이다. 1위를 차지한 스페인에서는 국민들에게 무료로 모든 1차진료를 제공하며 질병치료 보다는 질병예방, 식습관 관리와 건강환경 유지 등에 초점을 맞춘 보건시스템을 갖추고 있다고 한다. 매슬로우(A. Maslow)의 ‘인간욕구 5단계’에서 가장 기초적인 욕구가 ‘생리적 욕구’임을 볼 때 건강국가지수는 이들 나라에서 국민들이 행복을 위한 기초적인 조건을 어떻게 확보하고 있는지를 보여 준다.건강과 더불어 생존을 위하여 경제적인 뒷받침이 따라야 할 터이다. 건강이 제공하는 에너지와 함께 보다 나은 경제력이 삶을 지탱하게 되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한 인생을 구가할 것으로 생각한다. 국가 간 경제성장의 상대적인 차이를 비교하고 정부의 성공여부를 가늠할 때에도 주로 국민총생산과 소득수준을 기준으로 평가하곤 한다. 일반적으로 소득이 높으면 보다 만족스러운 삶을 영위할 것으로 생각한다. 여러 사회적인 문제와 갈등이 경제적인 어려움으로부터 비롯되는 것도 사실이다. 최근 어느 건강하고 부유해 보이는 부인이 남편과 아이를 향해 던지는 고성과 폭력이 담긴 동영상은 건강과 재력이 인간 행복의 충분한 조건이 될 수 있는지를 다시 생각해 보게 하였다.영국의 신경제재단(New Economics Foundation)은 생각이 다르다고 한다. 인간의 삶은 건강하고 돈이 많아서 행복해 지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 스스로 삶을 어떻게 느끼며 살아가고 있는지 직접 물어보아야 하며 돌아오는 답변에 따라 정부와 관련 공동체들이 적극적으로 반응하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난 세기 동안 중앙정부와 대기업들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경제체제는 불공정한 결과들만 만들어 온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보통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함께 문제점을 발견하며 보다 나은 사회를 만들어 가기 위하여 경제시스템을 새롭게 만들어 가야 한다고 제안한다. 2010년 신경제재단이 발표한 ‘국가별 행복지수’는 놀랍게도 아시아의 작은 나라 ‘부탄’이 지수 상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라고 하였다. 소득수준과 성장중심 사고에 익숙한 우리들에게 사뭇 생경한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최근의 사건을 접하면서 다시 들여다 보게 되는 것이 아닌가.어떻게 행복할 수 있을까. 건강과 돈만으로 행복해 지는 것은 일단 아닌 것으로 보인다. 조금 양보하여 건강과 재력이 인간에게 행복을 가져다 줄 수 있는 조건을 마련해 주기는 하는가 보다. 매슬로우도 이들을 일차적 욕구로 지적하였으니까. 그의 이론은 ‘5단계’를 제시하였다. 건강과 생리적 욕구를 넘어, 안전, 소속, 존중, 그리고 자아실현의 욕구들도 적절히 충족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이들 높은 수준의 욕구들은 거의 모두 그 어떤 객관적인 조건변수로 확보된다기 보다는 개인의 주관적인 판단과 의지에 따라 정해진다는 것이다. 어느 누구와 견주어 나의 삶과 조건을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나 스스로 묻고 답하는 가운데 결정되는 것이 ‘만족’이며 ‘행복’이라는. 그런 결과 미진한 부분이 발견되면 공동체적으로 반응하고 해결책을 제시해 볼 수 있지 않겠느냐는 권고가 뒤따른다. 결국, 삶의 주인은 나 자신이며 행복한지 여부를 결정하는 것도 스스로였다는 것. 건강해 보이고 또 부유하다고 알려졌어도 어느 한 구석 행복하지는 않아 보이는 저 여인에게서 우리는 무엇을 배우는가. 삶은 나의 것이다. 행복은 내가 만든다.

2019-02-27

전세금 지키기 완결판

이사철, 전세보증금을 떼일까 걱정하는 세입자가 많다. 전세보증금을 지키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먼저 전셋집을 구할 때 세입자는 거래할 집의 등기사항전부증명서(구 등기부등본)를 직접 떼어 계약 상대방이 전셋집의 진정한 소유자인지, 계약할 경우 자신의 배당 순위는 몇 번째인지 등을 확인해야 한다. 보통 근저당설정액에 전세보증금을 합한 금액이 집값의 50~70% 아래여야 거래할 만한 집이다. 물론 대출이 하나도 없는 집이 가장 좋다. 집주인의 세금 체납여부도 확인하는 게 좋다. 체납국세는 전세보증금보다 배당 순위에서 앞서기 때문이다. 집주인의 동의를 얻어 국세청의 ‘미납국세열람제도’를 이용한다. 마침내 계약을 맺었다면 잔금을 치르기 직전에 다시 한번 등기사항전부증명서를 떼어 확인한다.계약후에 주택임대차보호법상 세입자로서 권리를 완전히 누리려면 점유, 전입신고, 확정일자 받기를 하나도 빠뜨리지 말아야 한다. 이사 즉시 가까운 주민센터에서 전입신고를 해야 ‘대항력’을 얻는다. 대항력이란 집주인뿐만 아니라 미래의 새로운 집주인에게도 자신이 임차인임을 주장할 수 있는 힘이다. 여기에 더해 주민센터에서 확정일자까지 받으면 ‘우선변제권’을 갖게 된다. 확정일자 이후에 설정된 근저당권자 등보다 배당순위가 우선한다.이런 조치를 해도 같은 날 몇 시간 뒤 집주인이 새로 근저당권설정을 한다면 세입자의 배당 순위는 해당 근저당권자보다 밀리게 된다. 주택임대차보호법상 세입자로서 법적 효력은 주민등록을 마친 다음날부터 생기기 때문이다. 따라서 계약서에 ‘세입자가 주택 인도·전입신고·확정일자 받기를 마친 다음 날까지 임대인은 근저당권설정 등의 행위를 하지 않으며 위반 시 임대차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는 특약을 넣어두는 게 좋다. 더 나아가 전세권 설정 등기를 하면 보증금 지키기가 쉽다. 이 경우 계약기간 만료 후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면 소송 절차 없이 집을 경매에 부칠 수 있다. 그래도 불안하면 주택도시보증공사(HUG)와 서울보증보험(SGI)에 보증금반환보증보험을 들면 된다. 없는 집의 전재산, 전세보증금 지키기에 만전을 기할 필요가 있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19-02-27

‘꿩 대신 닭’… 닭이 꿩보다 못하다고? 닭은 억울하다

닭은 억울하다.‘꿩 대신 닭’이라는 표현이 있다. 꿩이 좋다, 꿩이 닭보다 맛있다는 뜻이다. 꿩이 ‘갑’이다. 의문스럽다. 과연 꿩이 닭보다 나은 존재일까? 그렇지 않다. 오해다. 꿩보다 못하다니, 닭으로선 억울할 노릇이다.왜 꿩이 먼저일까? 간단하다. 꿩은 공짜다. 요즘은 꿩이 없다? 그렇지 않다. 꿩은 지금도 있다. 꿩을 잡는데 품이 많이 드니 기른다. 예전에는 ‘인건비’ 개념이 없었다. 꿩은 공짜고 닭은 집에서 기르던 것을 잡아야 하니 ‘재산’이 줄어든다.주변 지인 중에 북한 출신의 80대 노인이 있다. 가끔 식사를 같이 한다. 늘 하는 이야기가 “내레 피양에서 중학교 다닐 때 말이야”로 시작하는 꿩 잡았던 이야기다. 월남 직전까지 이분의 집안 어른이 평양에서 냉면 집을 운영했다. 겨울철이면 형들을 따라서 눈 덮인 산에서 꿩을 잡았노라고 했다. 그걸로 국물 내고, 살코기는 냉면 고명으로 썼다. 이른바 ‘꿩고기 냉면’이다.꿩을 구하지 못하면 결국 꿩 대신 닭이다. 아깝지만, 닭을 사용해야 한다. 꿩 대신 닭은 ‘공짜 대신 아깝고 귀한 것’의 개념이다. 닭이 꿩보다 못하다는 뜻이 아니다. 꿩은 개체가 무척 작다. 비경제적이다.야생 꿩은 특유의 누린내와 신맛이 있다. 꿩은 새다. 새의 뼈는 가볍다. 꿩의 뼈는 가늘고 속이 텅텅 비어 있다. 발라내기 번거롭다. 칼로 다진다. 꿩고기 만두를 먹다보면 작은 뼈 조각이 씹힐 때도 있다. 꿩고기를 몇 번만 먹어보면 “닭이 억울하다”는 확신이 든다.닭의 억울함을 입증할 근거(?)도 있다. 찜닭을 올리는 제사는 있어도 꿩을 사용하는 제사는 드물다.‘봉제사접빈객(奉祭祀接賓客).’ 음식은 제사 모시고, 손님맞이 하는 주요 도구다.귀한 음식은 제사상과 손님상에 오른다. 닭고기는 제사에 사용할 정도로 귀한 식재료였다. 태종18년(1418년) 5월 9일의 어전회의에서 엉뚱하게도 닭고기 이야기가 나온다.“‘소경공(昭頃公)이 평소에 쇠고기를 좋아하였으니, 삭망제에 내가 이를 천신하고자 한다. 그러나, 그 물건이 심히 크니 가볍게 쓸 수가 없다. 내 생각에는 혹은 연빈(燕賓)이 있거나 혹은 종묘에 제사할 때 이를 천신하는 것이 어떠할까 한다.’ 여러 대언(代言)이 대답하기를, ‘옳습니다.’ 하니, 또 명하였다. ‘희생(犧牲)으로 계를 쓰는 것이 예(禮)에 있느냐?’ 여러 대언이, 계는 ‘닭’을 말하는데, 희생에 계를 쓰는 것이 고례(古禮)입니다’ 하니, 임금이, ‘소경공이 또 닭고기를 좋아하였다’ 하고, 즉시 본궁의 사람에게 명하여 닭을 길러서 5일에 한 마리를 삶아서 천신하는 것으로써 항식(恒式)을 삼게 하였다.”태종에게는 양녕, 효녕, 충녕 이외에 4번째 왕자가 있었다. 늦둥이 성녕대군(소경공)이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늦둥이가 이해 3월에 죽었다. 14살. 아버지 태종은, 쇠고기를 아들의 제사상에 놓고 싶으나 소는 너무 크다. 중국사신(연빈)이 오거나 종묘 제사 때 소를 도축한다[‘봉제사접빈객’이다]. 그때 쓰자. 소 대신 닭이다. 평소에는 닭을 올리자.어색한 부분도 있다. 태종은 고려 말기 과거에 급제한 문관이다. 과거에 급제할 정도로 공부한 사람이 제사에 닭을 쓴다는 사실을 몰랐을 리 없다. 유교의 육축, 즉 인간이 먹을 수 있는 6가지 가축은 소, 말, 개, 돼지, 양, 닭이다. 문관 출신 국왕이 닭이 육축의 하나임을 몰랐을까? 굳이 신하들에게 묻는 절차를 거친 것은 이미지를 위한 ‘쇼’가 아니었을까, 라고 믿는다.“귀한 사위가 오면 씨암탉을 잡는다”고 이야기한다. 이 표현에도 오해가 있다. 씨암탉은 귀한, 맛있는 닭이라고 믿는다. 그렇지 않다. 씨암탉은 이듬해 병아리를 생산을 위해 아껴둔 닭이다. 아깝지만 반드시 맛있지는 않다.이른 봄철, 닭이 알을 낳는다. 스무 개쯤의 달걀을 모아서 암탉이 품는다. 일정 기간이 지난 후, 대략 15~20마리의 병아리가 태어난다. 여름이 된다. 자라고 있는 닭을 한두 마리씩 먹는다. 이때의 닭이 살이 부드럽고 연한 닭, 연계(軟鷄)다. 달걀도 낳고 여름, 가을을 지나며 한두 마리씩 줄어든다. 크기도 제법 크다. 달걀을 낳지 않는 수컷을 먼저 해치운다.늦가을 암컷 몇 마리와 수컷 한두 마리가 남는다. 추수도 끝나고 날씨도 춥다. 문제는 먹이다. 한겨울에는 오롯이 곡물로 닭을 키워야 한다. 들판은 곧 얼 것이다. 잡초, 씨앗도 귀하고 벌레들도 귀하다. 한두 마리 정도의 암탉만 남긴다. 씨암탉, 내년의 병아리를 위한 것이다. 겨울철 귀한 사위가 왔다. 귀한 손님이니 고기를 내놓아야 한다. 농촌에 고기가 있을 리 없다. 마지막 남은 것이 씨암탉이다. 고기가 맛있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내년을 위해서 아껴둔 닭이다. ‘그것까지’ 내놓는 것이다.‘음식디미방’에는 ‘수증계(水蒸鷄)’라는 음식이 있다. 물에 찐, 끓인 닭찜이다.암탉은 손질하여 기름을 넣고 볶는다. 맹물을 부어 토란, 순무 등을 넣고 삶는다. 고기와 나물을 건져내고 국물에 장으로 간을 잡는다. 고기와 나물을 다시 넣고 밀가루를 푼다. 파, 염교, 동아, 오이 등 채소를 넣고 끓인다. 다 익으면 마치 잡채 쟁반 같이 나물, 고기를 펼치고 국물을 붓는다. 그 위에 계란지단을 얹고 후추, 생강 등을 뿌린다. 지금의 ‘안동찜닭’과 흡사하다.국수를 좋아하는 안동 지역 사람들이 국수와 비슷한 당면을 쉽게 받아들였다. 당면과 각종 채소를 넣고 손질한 닭고기를 넣은 다음, 간장 양념으로 졸인다. 채소가 당근 등으로 변했을 뿐 안동찜닭은 수증계와 흡사하다.대척점에는 백숙(白熟), 삼계탕이 있다. 백숙은 흰 닭찜이 아니다. 백숙은 별다른 양념없이 닭을 찌거나 삶았다는 뜻이다. 백수(白手)는 흰 손이 아니다. 아무런 일을 하지 않는 손이다. 백숙은 수증계처럼 양념을 하거나 복잡한 절차를 거치지 않고 닭을 찌거나 삶은 것이다.삼계탕(蔘鷄湯)은 우리 시대의 음식이다. ‘인삼이 들어간 백숙’이다. ‘안동찜닭’이나 ‘수증계’처럼 찌고, 삶고, 졸이는 등의 복잡한 과정을 거치지 않는다. 별다른 양념 없이 한번 끓일 뿐이다. 삼계탕에는 수삼(水蔘)을 사용한다. 수삼은 건삼, 홍삼과 달리 냉장 유통이 필요하다. 한반도의 냉장유통은 1960년대 무렵에 시작되었다. 도로 사정도 나아졌다. 수삼을 멀리 보내는 일도 가능해졌다. 닭고기에 수삼을 얹은 음식, 계삼탕(鷄蔘湯)이 삼계탕으로 이름을 바꾼다.수증계가 안동찜닭과 비슷하다면 삼계탕은 백숙과 닮았다. 문제는 음식에 사용하는 닭의 크기다. 삼계탕의 닭은 대략 550~600g 정도다. 닭이 아니라 병아리다. 20여 일 ‘닭 공장’에서 ‘찍어낸’ 닭들이다. 닭고기의 맛이 있을 리 없다. 삼계탕에 들깨를 비롯한 견과류를 많이 얹는 이유다.‘영계백숙’도 엉터리다. ‘영계’라는 닭은 없다. 영계는 ‘YOUNG(영)+鷄(계)’다. ‘영계(英鷄)’는 광물질인 석영(石英)을 먹여서 기른 닭이다. 중국 이시진의 ‘본초강목’에 시작된 표현이다. ‘본초강목’에 “석영을 먹여서 기른 닭(석영)이 낳은 알이 약효가 있다”는 대목이 나온다. 그뿐이다. ‘영계백숙’은 ‘연계백숙(軟鷄白熟)’에서 파생된 단어일 것이다. 연계는 어린 닭이다. 대략 100일 정도 지나면 닭은 중간 크기의 몸집을 지닌다. 부드럽고 연하다. 사육기간 20여 일은 잔망스럽다.‘일성록’ 정조 24년(1800년) 5월 22일의 기록에 닭에 대한 상세한 설명이 있다.“(전략) 대체로 진배(進排)하는 생계(生鷄)에는 모두 세 가지 명색(名色)이 있습니다. 여러 해 자란 닭을 진계(陳鷄)라고 하고 부화된 지 얼마 안 되는 것을 연계(軟鷄)라고 하며 진계도 아니고 연계도 아닌 것을 활계(活鷄)라고 합니다. 무신년(1788) 이후로 여름철에 대신 바칠 때에는 연계를 진배하고 겨울철에 대신 봉진할 때에는 활계를 진배하며 혹 아래에서 대신 사용하는 경우에는 진계를 진배한 전례도 있습니다. (중략) 지금부터는 여름이든 겨울이든 막론하고 대신 봉진할 때에는 모두 활계로 봉진하고 (중략) 또 부득이 진계를 사용해야 할 경우가 있으면 진계 1마리를 활계 2마리로 쳐서 계산해 줄여 주라는 내용으로 정식을 정해 시행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후략)”닭에 대해서 상세히 규정한다. 여름철 무렵의 닭은 연계, 1년이 되지 않은 산 닭은 활계, 1년을 넘긴 묵은 닭은 진계다. 여름에는 연계, 겨울에는 활계를 세금으로 바친다. 가끔 실무자 급 하급관리들이 활계 대신 비싼 진계를 요구한다. 만약 공식적으로 진계가 필요하면 진계 한 마리에 활계 두 마리로 셈하자고 청한다. 묵은 닭, 해를 넘긴 큰 것은 일반적인 닭 값의 두 배다.우리는, 닭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20여 일 기른 어린 병아리를 몸보신하겠다고 먹는다. 우리 시대의 천박함이다. 아무 맛이 없으니 조미료와 각종 양념, 견과류를 뒤섞는다. ‘영계’를 먹는 것은 ‘음식의 성희롱’이다.사족으로 개인적인 바람을 적는다.안동 구 시장에는 찜닭골목이 있다. 40년 정도의 업력을 이야기한다. 그렇지 않다. 오래 전에 전국적으로 ‘봉추찜닭’을 유행시킨 것도 안동, 안동찜닭의 힘이다. 업력 40년이 아니다. 350년 전의 ‘음식디미방’에 수증계가 있다. 안동찜닭과 흡사하다. 왜 스토리텔링으로 이용하지 않는지 궁금하다. 저자 장계향이 바로 안동 출신이다.더 답답한 것은 경주다. 경주는 계림(鷄林)이다. 신라의 왕도를 이은 것은 알에서 태어난 김알지의 후손들이다. 계림은 경주 일대, 신라 더 나아가서 한반도 전체를 이르는 표현이었다. 외국 자료에도 계림은 남아 있다. 국내외 관광객이 많이 드나드는 곳이다. 이름에 걸맞은 ‘계림 스타일의 닭고기 요리’ 한둘쯤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맛칼럼니스트 황광해

2019-02-27

촛불에 갇힌 교육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촛불을 켜지 않아도 되는 나라를 만들어 달라고 촛불을 들었는데, 청와대도 정부도 촛불에 갇혀 버렸어요. 뭔가 불리하면 누구 탓만 하는 정치꾼들, 그들은 얼마나 교육을 잘 받았기에 촛불이 만들어 준 이 나라를 이 모양으로 만들고 있는 걸까요? 정치꾼들 정말 한결같네요.”식당에서 선후배로 보이는 젊은이들이 하는 대화를 들었을 때 필자는 섬뜩함을 느꼈다. 말하는 사람들의 어조와 말이 전달되는 상황을 더 생생하게 전달할 수 없음이 안타까울 따름이다.필자는 이 말을 들으면서 현 정부의 교육철학을 생각해 보았다. 그런데 딱히 떠오르는 게 없었다. 3년 째 적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정부에 새로운 교육철학이 있을 리 만무하다는 어느 지인의 말이 진실처럼 다가왔다. 이 나라에서 적폐는 마치 주홍글씨와도 같은 힘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적폐는 현 정권의 무기처럼 사용되고 있다. 정권 출범 전부터 지금 교육 환경 타령을 하는 사람들은 사회 모든 곳에 적폐 딱지를 붙였다. 적폐 정치, 적폐 언론, 적폐 사법, 적폐 행정, 적폐 경제, 적폐 교육 등! 그리고 적폐 청산의 장군이 되어 사회를 휘젓고 다녔다. 그 모습은 마치 변방 나라의 장수 같았다.어용(御用) 언론들은 모든 잘못된 것이 바로 잡힌 이상적인 새 사회가 곧 펼쳐질 것처럼 떠들었다. 아닌 줄 알면서도 그렇게 되었으면 하는 믿음 하나로 국민들은 참고 기다렸다. 적폐 완장을 찬 정치인들은 여론조사 결과에 도취되어 모든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최저임금인상, 고교무상교육 등 과정에 대한 고민 대신 오로지 정권 연장에 필요한 정책들을 쏟아냈다.기고만장의 정점에서 정치인들은 자신들은 완벽하다는 착각에 빠져버렸다. 그 착각은 그들에게 도덕적으로든 사상적으로든 자신들은 무결점의 경지에 있다는 환상을 만들어주었다. 환상 속에서 정치인들은 우월주의에 사로잡혀 자신들의 말과 행동이 마치 절대 진리인 것처럼 설교를 하고 다녔다. 이들은 자신들의 생각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그것은 “틀렸다!”라고 지적하고 무리수를 두어서라도 그것을 바로 잡으려 했다. 그 무리수가 그들에게 부메랑이 되어 반드시 돌아온다는 것을 우월주의에 중독된 그들은 결코 받아들이지 않았다.그들이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것이 또 하나 있다. 그것은 영원한 권력은 없다는 말이다. 권력의 맛에 중독된 이들은 자신들만큼은 실패한 역사의 주인공들과는 다르다고 외친다. 그리고 모든 것에는 예외가 있듯 자신들은 영원하다고 서로에게 최면을 건다. 그러면서 그들은 늘 자신들의 주장을 뒷받침해 줄 희생양을 찾는다. 희생양을 찾지 못하면 기꺼이 만든다. 그러면서 끊임없이 불안과 두려움을 조성한다. 그리고 그것을 없애 줄 존재는 자기들뿐이라고 말한다.어느 정당 정치인들이 불러일으킨 교육환경 논쟁 또한 이와 맥락을 같이 한다. “20대 남성의 낮은 ○○당 지지와 관련해 지난 정권 시절의 교육적 환경이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짐작” 지난 정권에서도 교육을 담당했던 한 사람으로서 필자는 이 말을 듣고 화가 나서 참을 수 없었다. 그리고 과연 이들이 말하는 교육적 환경이란 무엇인지 생각해 보았다. 분명 이들은 교육을 정치의 수단으로 생각하고 있음이 틀림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20년째 교육현장에 있는 사람으로서 이 나라 교육환경이 달라진 때가 있었는지 떠올려 보았지만 찾을 수가 없었다. 생각해보면 혼돈만 가중되고 있는 지금 교육 환경이야말로 이 나라 교육 역사상 가장 낯선 교육 환경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교문마다 입학식 관련 가로펼침막이 내걸렸다. 저마다 교육에 대한 큰 희망을 가지고 교문을 들어설 학생들! 만약 그 학생들이 지금 이 나라 정치적 환경에 대해 묻는다면 필자는 꼭 말하고 싶다, 말할 가치가 없다고. 교육 독립 운동을 펼치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한 요즘이다.

2019-02-27

3·1운동 100주년에 부쳐

김규종 경북대 교수·노문학100년은 긴 세월이다. 100년 전 이 땅에 살았던 민초(民草)들은 100년 후인 2019년을 상상했을까?! 아마 아닐 것이다. 1819년 순조 19년을 살았던 조선의 백성들이 100년 후인 1919년을 상정하기 어려웠던 것과 마찬가지다. 그러하되 21세기 19년을 살아가는 우리는 2119년을 가늠하려 한다. 시공간의 무한축소와 과학기술문명이 호모사피엔스에게 부여한 선물 덕분이다. 100년 뒤 세상은, 인류는, 지구는, 우주는 어떤 양상일 것인가?!어릴 적 3월이 되면 “3월 하늘 가만히 우러러보며 유관순 누나를 생각합니다.”로 시작하는 유관순 노래를 부르곤 했다. 만 열일곱 살이 되기 전에 운동에 참여하여 민족의 해방과 독립을 부르짖었던 열혈 선구자 유관순. 이화학당 2년생으로 운동에 참가하고, 휴교령이 내리자 고향인 천안으로 내려가 아우내장터에서 만세시위를 주도했던 유관순. 그녀는 100년 뒤 우리나라와 한민족의 모습을 머릿속에 그리고 있었을까?!이른바 33인의 민족 지사들이 하나둘 변절하여 일제 앞잡이로 전락해갔던 것과 대조적으로 순국의 길을 걸었던 유관순. 서대문형무소에서 일제의 잔악한 고문에도 끝내 굴하지 않았던 시대의 등불 유관순. 죽어가면서 그이는 조선의 푸르른 하늘을 그리며 무엇을 생각했을까?! 해방된 조국의 장려(壯麗)한 모습이었을까, 민족 전체가 하나 되어 기쁨의 눈물을 흘리는 장면이었을까?! 그도 아니면 100년 뒤의 2019년 모습이었을까?!그이가 살아생전 헤아릴 수 없었던 100년 세월 한반도에는 너무도 많은 사건이 있었다. 그 가운데서 3·1운동 100주년에 각별하게 떠오르는 것은 친일부역자 무리의 색출과 처벌에 실패했다는 뼈아픈 현실이다. 반민특위의 와해(瓦解)로 무산된 반민족행위자 척결은 지금까지도 짙은 암운을 드리우고 있기 때문이다. 친일부역 매국노들이 반공 투사로 탈바꿈하면서 이 나라 민초들과 독립 운동가들은 너무나 많은 피를 흘려야 했다.“나, 밀양사람 김원봉이요!” 하는 말로 유명한 약산 김원봉은 3·1운동의 영향으로 1919년 12월 항일무장투쟁의 선두였던 ‘의열단’을 조직한다. 일제가 320억원의 현상금을 걸고 잡으려 했던 신출귀몰 김원봉은 광복군 부사령관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위원을 역임한다. 그러나 해방 후에 약산은 친일부역 악질매국노 노덕술에게 갖은 고문과 치욕을 경험한다. 독립 운동가를 반공의 이름으로 고문하고 승승장구했던 반공 투사들!이런 일은 수없이 일어났고, 지금도 되풀이되고 있다. 반공 투사들은 훗날 민주화운동에 매진했던 숱한 지식인과 청년들을 투옥·고문하고 죽음으로 몰고 갔다. ‘빨갱이 사냥꾼’이 된 것이다. 그것의 정점은 1980년 5월 ‘광주민중항쟁’이다. 이 나라 민주주의를 지키려고 분연히 일어선 광주시민을 폭도로 몰아 죽음의 질곡으로 몰아갔던 사냥꾼들과 그 후예가 제1야당의 간판 아래 버젓이 활개치고 있다.열여덟 나이에 세상을 버린 유관순 열사는 이런 정황을 알고 있을까. 남과 북 모두에게 버림받은 비운의 혁명가이자 전설적인 항일전사 김원봉은 죽음이 임박한 시점에 깨달았을까?! 그가 꿈꾸었던 민족해방과 조국의 본령이 쥐새끼나 다름없는 친일 매국노와 그 후예에게 처절하게 짓밟힐 것을! 그자들을 대한민국의 역사와 민족의 이름으로 영원히 추방하여 다가올 새로운 100년의 미래를 그리는 작업이 절실하리라.과거를 돌이킴은 지난날의 과오(過誤)를 성찰하고, 다가올 날들의 기획에 필수적이다. 부패, 무능, 타락, 패거리주의로 무장한 자들의 무리가 역사를, 열사를, 투사를, 민주화 운동가를 다시는 모욕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우리의 최소과제일 것이다. 그것은 100년 뒤를 생각하고자 하는 우리 모두의 시대적 소명이다.

2019-02-27

일 더하기 일로 백(百)을 만드는 법

연애시(詩)를 썼다는 이유로 학교에서 쫓겨난 청년이 있습니다. 자물쇠 공장 기계공 보조로 일하라는 명령을 받습니다. 그는 시 쓰는 일을 멈추지 않습니다. 1950년대 동독에서 벌어진 일입니다.“자유 진영에서 제 시가 방송된다는 이유로 통제와 압박은 갈수록 심해졌습니다. 어느 날 멀리 체코슬로바키아에서 날아온 독자의 편지 한 통을 받았습니다. 그동안 보았던 가장 아름다운 독일어 문장이었습니다. 체코의 여자 의사였어요. 편지는 체코슬로바키아를 출발해서 서베를린, 동베를린 검열관들을 통과해 3개월만에 제 손에 전달된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 편지가 검열을 통과해 제게 전해진 것이 기적이라고 믿어요. 우리는 서로 편지를 주고받았습니다. 400통쯤 됩니다. 어떤 편지는 무려 26장이 넘는 것도 있었지요. 나는 그녀의 목소리가 듣고 싶었어요. 편지에 전화를 한 통 걸어달라고 썼습니다. 당시는 전화기가 드물었기 때문에 저는 약속한 날 퇴근 후 전화기가 있는 친구의 집에 가서 마냥 전화를 기다려야 했습니다. 새벽 3시 30분에 전화 벨이 울렸습니다. “당신이세요? 당신이 바로 그 사람입니까?” 멀고 먼 전화기 다른 한 쪽에서 떨리는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그래요. 제가 바로 그녀랍니다.” 청년은 한 번 침을 삼킨 후 묻습니다. “나와 결혼해 주겠소?” 현존하는 독일 최고의 서정 시인 라이너 쿤체(1933~)의 이야기입니다.두 사람이 노를 젓는다 / 한 척의 배를 /한 사람은 / 별을 알고 / 한 사람은 / 폭풍을 안다한 사람은 별을 통해 / 배를 안내할 것이고 / 한 사람은 폭풍을 통과해 / 배를 안내할 것이다 (라이너 쿤체 ‘노를 젓다’ 중)1차 대전 때 영국 공군은 독일에 번번히 패했습니다. 한 영국 조종사가 전투기 두 대가 힘을 합해 공격할 경우 명중 확률이 급증하는 것을 발견합니다. 지름 40m 안에 탄착점을 형성하면 상대를 격추시킬 수 있어 일대일 전투의 40㎝ 명중 확률을 100배 확대시킵니다. 이후 영국은 독일 공군을 궤멸시킬 수 있었습니다. 소 한 마리가 수레의 짐을 끌 수 있는 한계는 최대 6t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소 두 마리에게 수레를 끌게 했을 때는 무려 24t까지 가능했다고 하지요.그대가 별을 안다면, 폭풍을 잘 아는 누군가가 그대 곁에 나타나 함께 노 젓는 2019년이기를 기도합니다. 곁에 묵묵히 함께 멍에를 짊어지고 수레를 끌어 줄 아름다운 손길이 나타나는 행복한 순간을 꿈꾸어 봅니다./조신영 인문학365 대표

2019-02-27

열차 외교

북한의 열차외교의 원조는 김일성이다. 1949년 10월 북중 수교 이후 김일성 주석은 1994년 사망할 때까지 특별열차를 이용해 중국을 40차례 방문했다. 러시아도 여러 차례 열차로 방문해 그의 열차 방문은 외교적 이미지로서 강한 인상을 주고 있다.그의 중국 방문에 대해 당시 중국의 마오쩌둥은 특별한 배려를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그가 원하면 조선창 등 군사 및 경제시설을 둘러보도록 신경을 썼다. 당시만 해도 비행기 길이 지금 같지 않아 열차를 이용하는 것이 오히려 여러 면에서 편했을 수도 있었던 때다.아버지의 뒤를 이어 김정일 위원장도 중국 방문에는 꼭 열차를 탔다. 그의 열차 방문은 모두 7차례였다. 김 위원장의 첫 번째 방문은 2000년 5월이다. 집권 후 첫 방문인 만큼 장쩌민 지도부와의 상견례가 방문 목적이었다. 2011년 그의 마지막 방문에서는 김정은 후계 체제에 대한 지원 요청을 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김정일 위원장은 2011년 심근경색으로 사망할 때도 열차 안에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북한 지도자와 열차의 끈질긴 인연의 한 단면을 보여주었다. 어쨌거나 김일성 부자의 열차 외교는 군사, 정치, 경제 등에서 성과를 냈다는 평가다.김정은 위원장의 베트남 하노이 열차 방문이 또한번 집중 조명됐다. 비행기로 5시간이면 갈 거리를 60시간이나 걸리는 열차 길을 선택한 것에 대해 구구한 해석이 쏟아졌다. 경호 등 안전을 염두에 둔 선택이라는 분석도 있으나 60시간을 열차로 가는 것이 결코 비행기보다 안전할 수 없다는 분석도 만만치 않다.이유야 어쨌든 김 위원장의 열차 외교는 출발부터 시끌벅적했다. 세계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했다. 의도된 선택으로 보아도 좋을 것 같다. 김 위원장은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열차 외교를 답습함으로써 얻는 대외적 효과를 노린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4천500㎞의 중국종단이 주는 중국과의 유대감 과시 좋은 효과다. 북미정상회담을 앞둔 그의 중국종단 열차 대장정에 대한 세계적 시선이 이제 두 정상의 회담성과로 쏠리고 있다. 열차 외교가 한반도 평화를 위한 비핵화로 이어질지 두고 볼 일이다. /우정구 (논설위원)

2019-02-26

한국당은 어디로 가는가?

김영태 대구취재본부 부장자유한국당의 극우화에 대한 걱정이 쏟아지고 있다. 자유한국당 전당대회의 지역별 합동연설회 이후 좌우를 불문하고 보이는 반응이다. 전당대회 일정이 발표되기 이전 상승세를 탔던 한국당 지지세가 합동연설회 이후 다시 내림세를 보이고 있다는 평가다. 콘크리트 지지층은 변화가 없는 상황에서 당 지지도가 떨어지는 이유는 바로 중도를 표방하는 이들이 돌아선 데 있다.합동연설회마다 보수의 기본정신인 염치와 체면을 망각한 채 잔칫상을 엎을 기세로 뒤흔들어 버린 일부 인사들의 막말 잔치가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이들은 한국당 대표격인 김병준 비상대책위원장을 향해서도 ‘나가라’와 글로 옮길 수 없는 욕설 등의 야유와 막말을 퍼부었다. 이런 몇몇 인사들의 행위에 중도층이 등을 돌렸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막말 인사들 가운데엔 판사를 역임한 변호사도 있고 대학교수, 유명병원 병원장, 장성급 군 전역자, 목사 등 다양하게 분포돼 있다. 하지만, 염치와 체면을 모르고 거리낌 없이 내지르는 말과 행동에 당은 어떠한 제지나 자제를 요청하지 않았다. 이번 전당대회를 통해 선출된 한국당 대표의 어깨가 무거워질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새 당 대표가 행동으로 옮길 수있는 운신의 폭이 그렇게 넓지 않아 보인다.극우 성향을 보이는 인사들까지도 모두 포용하고 가는 방법과 이들를 철저히 배제하는 행보 등 두가지 가운데 어느 쪽을 선택할지 주목된다. 우선 보수의 기본 정신을 잊어버린 이들과 함께 가는 것은 탄핵정국 이전의 카테고리에 갇히는 우를 범하게 된다. 여당과 다른 야당은 일제히 도로 친박당이라는 비난을 퍼부으며 공격의 고삐를 바짝 당길 것이다.이럴 경우 내년 총선과 이어지는 대선에서 중도를 표방하는 국민으로부터 우파가 설자리는 외면받을 가능성이 크다. 이런 전조는 지역별 합동연설회에서 충분히 드러났다. 보수의 심장이라고 일컫는 대구·경북에서도 예외가 아님을 확인할 수 있었다. 즉 극우 성향의 프레임에 중도층 인사들이 갇혀 있기를 싫어함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이런 상황으로 흐르면 집권여당은 겉으로는 아니지만 속으로는 상당히 쾌재를 부를 것이다. 이미 지역에서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중량감 있는 민주당 인사가 자신의 지역구를 대구로 바꿔 출마할 것을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있다는 소문이 나돌고 있는 것이 좋은 예일 것이다. 이같은 현상이 가속도를 내면 여당의 전국 정당화를 위한 동진정책에도 상당히 힘을 보탤 것이라는 것이 지역 정가의 한결같은 전망이다. 민주당으로서는 유일한 미답의 땅으로 남아있는 경북지역이 더 이상 특정 정당의 텃밭으로 존재하기도 힘들고 새로운 변화의 바람이 일 것이라는 전망을 그래서 나온다. 한국당 경북도당이 젊은 혁신위원장을 선임한 것도 이같은 배경을 의식한 불가피한 선택지였을 것이다. 다음은 이들을 배제하는 방법이 남는다.이렇게 되면 그나마 총선과 대선에서 멀어져간 중도층 유권자들에게 지지를 호소할 기회가 주어지고 각종 선거에서 비빌 언덕을 만들 수 있는 것으로 정치권은 보고 있다. 그동안 여당의 경제정책 실패에 따른 반사이익으로 제1야당인 한국당에 조금씩 마음을 열던 중도층 국민들이 우파에게 조금 더 다가설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유일한 출구일 것이다. 새로운 당 대표와 최고위원들이 어떤 방향으로 키를 잡느냐에 따라 앞으로 남은 총선과 대선의 결과가 달라질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해있다.역대 선거에서 당선의 키를 잡고 있는 이들은 좌우 진영의 충성스런 지지자가 아니라 바로 중도를 표방하는 말없는 다수다. 이들이 표로써 심판해온 역대 선거를 통해 한국당은 당의 진로를 택해야 할 것이다.

2019-02-26

영덕, 2천만 관광객 시대를 꿈꾸다

이희진 영덕군수두 개의 기쁜 소식과 함께 새해를 시작했다. 모두 영덕대게 이야기다. 영덕대게축제가 2019년 문화관광유망축제로 선정됐고 강구대게거리는 4년 연속으로 한국 관광 100선에 올랐다. 민선7기 비전인 2천만 관광객 시대의 희망을 알리는 좋은 징조다. 천지원전이 백지화되면서 새로운 미래 먹거리를 계속 고민해왔다. 정부 에너지정책을 좇아 신재생에너지산업으로 내수를 진작하고 한편으론 천혜의 자연자원을 십분 활용해 관광산업을 꽃 피우는 전략으로 군정을 이끌 요량이다.관광산업 활성화의 기반은 교통망이다. 상주~영덕 고속도로와 포항~영덕 철도가 개통되면서 영덕으로 오는 길은 잘 닦였다. 2020년 영덕~삼척 철도가 개통되고 2023년 포항~영덕 고속도로가 열리면 금상첨화다. 안동~영덕 국도 34호선 개선 등 지역 도로망 구축에 힘쓰고 동해안과 고속도로, 국도를 연결하는 다양한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특색 있고 차별화된 관광지 진입도로도 조성할 계획이다. 2022년을 목표로 추진 중인 강구해상대교는 국도 7호선 병목지점의 교통체증을 해소하고 아름다운 해안, 해파랑 공원, 강구대게거리와 조화를 이루는 영덕의 랜드마크가 될 것이다.중요한 것은 관광 콘텐츠다. 올해 설립하는 영덕문화관광재단을 주축으로 축제 수준을 대폭 향상시킬 것이다. 오랜 경험과 노하우를 지닌 전문가를 영입해 특별한 컨셉의 기획으로 겨울철 영덕대게축제, 봄철 물가자미 축제, 여름철 황금은어축제, 가을철 영덕송이장터를 더욱 흥행시켜 보겠다. 올해 영덕대게축제는 3월 21일부터 강구항 해파랑 공원에서 열린다. ‘왕의 대게’라는 주제로 특별히 서울 광화문에서 거행하는 영덕대게 진상식으로 시작한다. 한 지역에 동일품목의 식당 200여 개소가 밀집된 강구대게거리같은 곳은 찾아보기 힘들다. 대게를 찌는 증기와 향이 거리를 가득 메우고 독특한 대게 간판이 늘어선 강구대게거리는 자체가 볼거리다.강구대게거리 못지않은 영덕대게 주산지가 한 곳 더 있다. 바로 축산항이다. KBS‘6시 내고향’에 소개돼 핫 플레이스로 떠오른 곳이다. 축산항을 중심으로 북쪽의 고래불 국민야영장과 해수욕장, 대진해수욕장, 영덕블루로드, 괴시마을 등 관광명소를 연계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축산 블루시티 사업이다. 올해 국토교통부 타당성조사로 확정되면 2023년까지 친환경 에코로드, 천변도로 경관, 동방언덕, 바다누리, 횃불동산, 블루빌리지를 조성한다. 이 외에도 산림레포츠단지, 바데산 휴양림, 영덕블루숲길, 미강(美江)트레일을 조성해 지역 고유의 재미와 색깔을 입히고 해안누리 워라밸로드, 오십천 수상관광레포츠 공원, 사계절 해수욕장 활성화 사업을 추진하겠다.너무나 유명한 탐방로, 영덕블루로드에는 푸른파도길과 포토존을 조성할 것이다. 영덕을 마음먹고 둘러보려는 분들에게는 영덕블루로드가 제격이다. 아름다운 해안과 숲길을 따라 곳곳의 명소를 즐길 수 있다. 영덕의 관문인 남정면 대게정원에서 D코스를 걷다보면 시원하게 탁 트인 장사해수욕장이 나온다. 한국전쟁의 흐름을 뒤바꾸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장사상륙작전 772명의 학도병의 투혼이 서린 곳이다. 이 전투를 소재로 태원엔터테인먼트에서 ‘장사리 9.15’라는 영화를 제작하고 있다. 영덕의 해변에서도 주요 장면을 촬영했다. 올 하반기에 개봉할 예정인데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져주시기 바란다.D코스와 C코스의 경계에서 바다를 향해 조금만 가면 강구항이 나온다. 지난해에는 강구 신항 건설사업이 시작됐다. 2020년 완공을 목포로 물양장, 방파제, 호안을 건설 중이며 장차 연안여객선 유치 등 관광개발사업을 확대할 계획이다. 강구대게축구장에서 영덕풍력발전단지까지는 제대로 된 산행을 만끽할 수 있다. 다리가 뻐근해지고 땀이 적당히 흐를 무렵 이국적인 풍력발전단지가 모습을 나타낸다. 산림생태문화체험공원, 신재생에너지·정크트릭아트 전시관, 왕발통 체험이 기다린다. 창포 해맞이 공원에서 축산항까지는 바다를 벗하는 해안길이다. 파도소리와 바닷바람을 쐬고 어촌에서는 소박한 어민의 삶을 엿볼 수 있다. 석리항은 지난해 어촌뉴딜사업에 선정돼 국민휴양형 어촌으로 거듭날 예정이다. 2020년까지 123억 원을 들여 방파제, 물양장, 계류시설 등을 정비하고 공원, 생태놀이터 등을 조성한다.C코스의 종착점인 축산항은 물가자미 축제가 열린다. 부담없이 오를 수 있는 죽도산에서 미항(美港)을 조망할 수 있다. 여기서 대소산 봉수대까지는 손색없는 등산로가 펼쳐진다. 대소산 정상 봉수대와 목은 이색기념관을 거쳐 괴시 전통마을로 들어간다. 오랜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고택들을 보면서 역사와 삶을 사색하다보면 다시 한 번 푸른 바다와 맞닥뜨린다. 김준호, 김종민 등 1박 2일 멤버들이 놀다간 대진해수욕장도 좋고 긴 해변을 자랑하는 고래불 해수욕장에선 아기자기한 동물 모양의 카라반에 여장을 풀고 하룻밤 묵어보는 것이 어떨까? 인근 영해 만세시장에서 고기와 채소를 사와 바베큐 파티를 벌여도 좋다. 영덕엔 내륙에도 내로라하는 명소가 많다. 달산 옥계계곡과 창수 인량테마마을, 장육사 등등.2천만 관광객 시대의 비전은 이런 풍부한 자원을 근거로 한다. 광역교통망과 지역 도로망도 확충되고 있으며 정부 공모사업을 공략하는 공무원 역량도 계속 향상되고 있다. 설립을 추진 중인 문화관광재단의 민간 노하우가 추가되면 더 좋은 성과가 있을 것이다. 프랑스 니스나 일본 오키나와 못지않은 관광도시로 영덕을 만들어 보겠다.

2019-02-26

개는 친구인가 고기인가

개고기 식용이 우리 전통이라고 전한 신문기사가 있었다. 그 기사의 작성자는 사마천의 사기(史記) 기록을 가지고 개고기는 우리 전통이라고 정의했다. 우리나라에서 개고기를 약으로 소개하는 책들이 본격적으로 쏟아지기 시작한 것은 1611년 허준의 ‘동의보감’이 발간된 후의 일이다. 동의보감은 당시 다양한 관점의 의학 저서를 하나의 관점에서 통합·정리한 것으로, 당시 의학을 집대성했다는 평가를 받는 동시에 중국 의서의 짜깁기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동의보감의 99%는 중국 한의서의 단순인용이고 나머지 부분은 ‘신농본초경’에서 가져온 것이다.중국 황하강 유역에서 발달한 황하문명은 세계 4대 문명 중 지속적이고 광범위하게 개고기를 먹은 유일한 문명이다. 사마천의 사기에 보면 중국인은 개를 가축처럼 키워 해마다 복날이면 잡아먹었다. 반면 중국인이 보기에 오랑캐들은 개를 자신들의 시조나 혹은 최고신에 맞먹는 신성한 존재로 여겼다. 최고신을 잡아먹는 신자가 존재할 수 없는 것처럼 유목민에게 개를 잡아먹는다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할 일이었다. 바람 따라 말을 타며 평생을 산 유목민에게 먹을 갈아 글을 써 기록을 남기는 일은 애초에 어울리지 않았는데, 유목민들은 글자를 몰랐지만 모든 역사를 노래로 남겨 후세에 전했다. 세월이 흐르고 흘러 더 이상 조상들의 영광스럽던 역사를 노래할 자손이 남지 않게 되자 그들의 역사는 잊혀지고 말았다. 이런 유목민의 역사는 농경민이 쓴 역사를 토대로 유추할 수 밖에 없게 됐는데, 그들이 유목민에 대해 남긴 역사는 대체로 욕과 비방이 난무했다. 대표적인 욕이 ‘오랑캐’란 단어이다. 오랑캐란 말은 인간이 아닌 짐승이란 의미이다. 땅을 개간해 농사를 지으려 하면 유목민은 기껏 일궈놓은 땅을 갈아엎어 풀밭을 만들어 양을 치고 싶어 했으니 중국인 입장에서 유목민은 재앙이었다.사람과 가장 오랜 친구로 지내온 개를 두고 지금처럼 인간의 친구이냐, 인간의 식량이냐로 의견이 나뉘게 된 이유는 간단하다. 인간은 식량, 특히 고기가 충분히 공급되는 환경에서는 개를 친구처럼 사랑했으나, 식량이나 고기가 부족한 환경에서 개는 가축일 뿐이다. 이 법칙은 농경문화와 유목문화를 살펴보면 보다 구체적으로 알 수 있다. 신석기 농경민은 한곳에 정착해 땅을 개간해 농사를 지어먹고 살았지만 인간의 수에 비해 개간된 농토는 언제나 부족했고, 농사지을 땅도 없는데 풀을 키워 소나 양에게 먹여 그 고기를 먹는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사치였다. 대신 음식물 찌꺼기만 먹고도 잘 자라는 돼지나 닭, 그리고 개를 키웠다. 이와 달리 사냥을 하거나 양떼를 쳐서 먹고사는 사람들의 경우, 먹고 싶으면 언제든지 신선한 고기를 먹을 수 있었고 사냥과 목축에서 제 밥벌이를 하는 똑똑한 사냥개나 양치기 개를 잡아먹을 이유가 없었다. 농경사회와 반대되는 이런 사회를 유목사회라고 하는데 유목사회에서 개는 인간의 친구로 존재했다. 유목사회에서 개를 잡아먹는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고 개를 잡아먹는 행위는 금기가 되었다. 농경문화에서는 개를 가축으로 취급하고 유목문화에서는 개를 인간의 친구로 취급하는 이런 현상은 중국과 중앙아시아뿐 아니라 지구상에 존재한 모든 세계 역사에서 공통으로 나타난다. 개를 친구로 여겼는지 아니면 가축으로 여겼는지 알 수 있다면 그 사회가 농경문화였는지 유목문화였는지 알 수 있다는 의미이다. 개를 둘러싼 인식이 민족의 정체성을 말해주는 척도가 되는 것이다.이동훈현재 대한민국에는 개고기를 먹는 다수의 사람이 존재하지만 개고기를 먹으면 재수가 없다는 금기 또한 존재한다. 그 금기는 어디에서 온 것일까? 왜 고구려 사람들은 무덤벽화에 개를 영혼 인도동물로 그려 넣은 것일까? 중국역사에는 개를 가축으로 취급한 중국인의 역사와 개를 친구로 여긴 유목민의 역사가 뒤엉켜 있다. 단군의 하늘사상과 고구려의 정신을 버리고 농경민의 후손이 되고 싶어 한 중화 사대주의자들 입장에서 보면 개는 가축이었고 개고기 식용은 당연한 식문화의 하나였다. 하지만 우리는 중국과는 다른 문화를 가진 전혀 별개의 민족이며, 우리민족이 개를 신성하게 여겼고 전통적으로 개고기를 먹지 않았다는 사실은 우리가 원래 유목 기마 민족의 후손이라는 사실을 의미한다./서라벌대 반려동물연구소 부소장*참고문헌: ‘BOKA 늑대의 왕국’(주정은 저)

2019-02-26

포항의 역사에서 돌파구를 찾자

김진홍한국은행포항본부 기획조사팀장과거 독일이 그러하였듯이 어떠한 지역·국가를 불문하고 총체적인 위기상황에 부딪치면 새로운 분야에 눈을 돌리고 역사 등 인문학에 대한 연구에 주목하면서 민족적 지역적 자긍심과 정체성을 조망하기 마련이다. 최근 ‘포항지역학’에 대한 연구와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데는 경제부진이 장기화되면서 이와 같은 맥락에서 출발한 점도 있기는 하겠지만 그보다는 그동안 오랜 세월 축적되어왔던 지역의 정체성이라 할 수 있는 에너지가 3·1운동 100주년 기념, 시 승격 70주년 기념이라는 하나의 상징적 사건을 계기로 자연스럽게 분출되기 시작한 것이라고 본다.지방색이라고도 할 수 있는 특정 지역이 지닌 정체성은 같은 나라라고 하더라도 다소의 이질감을 띠게 마련이며 이것이 방문객에게 신선한 문화적 충격을 주기도하고 볼만한 볼거리, 특이한 먹을거리, 생소한 즐길 거리가 되기도 한다. 전국 어디에 가도 똑같은 모습이 아니라 반드시 여기에는 해당 지역에서 자신들이 지닌 전통, 풍습, 내지는 역사적 사실을 일반인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선행적인 연구의 축적이 있어야함은 물론 이것을 기반으로 하는 스토리텔링이 갖추어져야만 가능함은 물론이다. 지금도 국내외에서 인기를 끄는 대표적인 관광지들 가운데 바로 이와 같은 해당 지역만의 역사적 유물을 쉽게 보이고 이해할 수 있도록 현대적 재해석을 더하여 성공적으로 관광 상품화한 사례는 적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그러한 의미에서 포항에는 과연 어떠한 이야기가 잠자고 있을까? 천년수도 경주와 직접 비교하면 남겨진 문화유산 자체는 터무니없이 적지만 스토리텔링화할 각 시대별로 굵직한 이야기 거리 자체는 차고 넘친다. 그럼에도 최근 지역에서는 산업단지 분양 문제, 새로운 성장 동력의 발굴, 육성에만 연연하는 조급함만 가득한 것 같다. 하지만 달리 생각해본다면 무에서 유를 창조하기보다는 과거를 살펴보고 그중에서도 존재감이 컸던 것들을 발굴하여 재현하거나 재해석한다면 포항도 역사성과 더불어 포항만의 독특한 스토리텔링을 창출하여 관광 상품으로 만들 수 있다고 본다.얼마 전부터 포항의 근대 산업 경제 발달과정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자료를 찾아보던 중 재미있는 기사를 발견하였다. 일본 오사카아사히신문이 1931년 6월 25일자로 보도한 기사를 발췌하여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전략) 지금 일본에서는 이제 포도주라고 하면 ‘조선 경북이지’라고 정정할 필요가 있다. (중략) 조선 경북도 포항의 대포도원에서 생산된 포도주는 고급 포도주로 품질이 프랑스제 최우량품에 결코 뒤지지 않으며 (생략)”과거 영일군 동해면과 오천면 일대에 대규모로 포도밭이 조성된 것은 1918년 2월이다. 당시 이 포도농원에서는 레드와인, 화이트와인, 샴페인 등 최고급 포도주가 생산되어 일본 동경에서도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당연히 이 농원에는 화이트와인의 원료인 청포도가 대량 재배되고 있었다. 유명한 저항시인 이육사는 1929년 대구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른 후 포항에서 요양생활을 하였는데 이후 1937년 동인지 자오선을 통해 발표한 ‘청포도’라는 시는 포항생활 속에서 탄생한 듯하다. 이 시에 등장하는 ‘하늘 밑 푸른 바다’는 동해면 앞바다를, ‘이 마을 전설’은 연오랑 세오녀 전설과 일월지 등이 당시 포항의 청포도 밭을 거닐던 시인의 시상에 담기지 않았을까.포항의 역사에서 돌파구를 찾자. 포항에서 100년 전 크게 번성하고 당시 프랑스와인에 버금갔던 와인생산지로서 포항의 브랜드가치는 어마어마하다. 포도밭이 없으면 영천의 포도를 사용하면 양 지역 모두 윈-윈이다. 동해바다를 바라보며 강력한 스토리텔링을 갖춘 포항산 와인을 마시며 청포도의 시를 읊는 관광객이 넘쳐나길 기대한다.

2019-02-26

가장 큰 선물

사기를 당해 수억 원 빚을 짊어진 남자가 있습니다. 부도가 난 직후 부인은 바로 집을 나가버렸습니다. 세상에 대한 원망과 분노, 멈출 수 없는 울화가 치밀어 오릅니다. 회사 돈을 가로채 부도를 일으킨 원수같은 놈이 날마다 꿈에 나타납니다. 칼로 난도질하는 꿈을 꾸다가 깨어납니다. 깨어보면 지하도에 신문을 덮고 누워있습니다.며칠을 굶었습니다. 너무 배고파 하늘이 노랗게 보입니다. 용산역 출구로 나가 삼각지 인근 마을을 배회하다 골목 국수집 하나를 발견하지요. “할머니. 여기 국수 곱배기 한 그릇요!” 먹고나서 잽싸게 도망칠 생각으로 호기롭게 주문합니다. 테이블 네 개 밖에 없는 작은 가게. 할머니는 남자가 한 그릇을 비우기 무섭게 그릇을 빼앗아 이내 한 그릇을 더 퍼옵니다. “천천히 드시우. 체할라…” 고맙다는 인사도 못하고 남자는 다시 국수를 입에 쏟아 붓기 바쁩니다. 세 그릇을 다 비운 남자는 냅다 도망칩니다. 수치심과 분노가 뒤엉킨 슬픈 눈을 질끈 감은 채 골목길을 내 달리지요.급하게 문 여는 소리에 상황을 파악한 할머니가 뒤 쫓아 나옵니다. 남자의 등 뒤에 대고 크게 외칩니다. “그냥 가! 뛰지 말고. 넘어지면 다쳐! 천천히 가!” 코너를 꺾어 마구 달리던 남자는 숨을 헐떡이며 멈춥니다. 그렁그렁 눈물이 고이기 시작합니다. 땅바닥에 주저앉아 통곡합니다. 분노로 이글거리던 눈입니다. 한 번도 눈물을 흘려본 적이 없습니다. 국수집 할머니의 한 마디가 이 남자의 분노를 도려냅니다. 얼마를 울었을까요. 울화와 비통함, 분노가 흐르는 눈물에 씻겨 내립니다.15년 세월이 흘러 할머니 국수집이 맛집으로 방송에 소개되는 일이 있었습니다. 방송국에 전화 한 통이 울립니다. 중남미 파라과이에서 한 중년 남자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합니다. 그 국수집 할머니가 노숙자였던 자신에게 따스하게 용서의 말을 외치셨던 분이라며 PD에게 몇 번이나 한국 방문할 때 꼭 할머니를 찾아 뵙겠다는 말을 반복합니다. 그 한 마디에 세상에 대한 증오를 다 내려 놓고 재기를 결심했다고 말합니다. 이역만리 파라과이에서 사업을 일으켜 큰 성공을 일구었다고 하지요. 용서가 살려낸 인생입니다.험난한 시대 누구나 마음 속 응어리진 분노 한 웅큼 품고 살아가는 세상입니다. 용서를 영어로는 ‘Forgive’라고 하지요. 누군가를 위하여(For), 내어주는(give) 행위가 용서입니다. 가장 큰 선물이지요. 오늘 우리는 누구를 용서할 수 있을까요?/조신영 인문학365 대표

2019-02-26

글로벌 카드업체들의 성장

김학주한동대 교수한국인들도 해외투자를 준비해야 할 때다. 한국경제가 빠르게 늙어 가는 이유도 있지만 세계적으로 부의 불균형이 심화되며 부자세가 구체화되고 있어 이에 대한 대안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사실 세계 어느 증시에 가더라도 시세차익에 대한 과세를 피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그래도 한국의 증시관련 부자세 부담이 더 가파르게 늘어날 것으로 보이는 바, 해외로 투자의 선택 폭을 늘려야 한다.해외로 가야 하는 또 다른 이유는 해외선진국의 경우 믿고 투자할 수 있는 투자대상이 다양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장기적으로 흔들림 없이 성장하는 기업들이 많다. 반면 한국 증시에서는 투자대상을 잘 이해해도 그것을 믿고 투자하기 어려울 수 있다. 왜냐하면 증시 자체의 변동성이 심해 시장위험이 투자대상의 개별적 장단점을 압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한국인들이 그 동안 해외투자를 꺼렸던 요인 중 하나는 해외 시세차익에 대한 양도세 부담이었다. 그러나 국내도 대주주 의제에 대한 규정이 강화되어 2021년까지 종목당 주식보유 금액이 3억원을 넘으면, 즉 웬만한 투자자들은 시세차익에 대해 양도세를 부과할 방침이다. 즉 일종의 부자세가 신설되는 셈이다.세계적으로 부자세(net wealth taxes)는 과거에도 있었지만 성장저해 요인으로 간주되어 거의 소멸되거나 부동산세로 국한되었다. 그러나 이제는 부활되는 분위기다. 선거에서 이기려면 부자들의 돈을 뺏는 방법 밖에 없을 것 같다. 또 부자세의 대상이 부동산에서 금융자산으로 확산되는 것도 증시에는 반갑지 않은 현상이다. 결국 투자자들이 어차피 부자세를 내야 한다면 ‘안정성’이라도 확보해야 하고, 이런 투자대상은 해외에서 찾기 쉽다는 것이다.해외자산 가운데 어떤 것이 장기적으로 안정 성장할 수 있을까? 대표적인 예로 글로벌 카드업체를 꼽을 수 있다. 지난해 세계적으로 지불결제액 가운데 카드사용 비중은 28%였다. 금액으로는 25조달러로 집계된다. 그런데 카드사용액이 2023년까지 45조달러로 급증할 것이라는 분석이 있다.그 이유는 소액결제에 있어 직불카드(Debit card)가 대세로 등장하기 때문이다. 즉 직불카드가 비접촉식으로 변하며 편의성이 제고되어 현금결제를 빠르게 대체하고 있다는 것이다. 신용카드도 가전제품이나 여행상품 구입 등 고액결제로 제한되며 소액결제 기능은 직불카드로 넘겨 주고 있다.이렇게 직불카드가 지불결제를 주도하는 움직임은 세계인구의 60%를 차지하고 있는 아시아가 주도하고 있다. 따라서 카드업체의 중장기 성장은 담보되었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중국은 지하경제를 양성화하기 위해 전자결제 또는 모바일 결제 인프라를 구축하였고, 그 보급을 촉진해 왔는데 이런 전자결제도 카드회사의 네트웍을 을 쓰고 있다.또한 유럽 은행들에 이어 미국 은행들도 올해 들어 비접촉식 직불카드를 출시하고 있는데 은행들도 카드회사의 인프라를 사용한다. 따라서 비자카드(Visa Card)나 마스터카드(Master Card)는 장기적으로 안정 성장이 가능한, 즉 믿고 투자할 수 있는 기업으로 볼 수 있다. 카드시장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는 중국에서는 유니온 페이(UnionPay)가 카드업을 담당하고 있지만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의 통제를 받는 비상장 기업이므로 직접 투자는 어렵다.우리가 카드사업에 더 관심을 갖는 이유는 직불카드를 통해 얻어지는 소비자들의 구매행태가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직접적인 빅데이터(big data)라는 것이며, 그 자산을 카드회사가 소유하고 있다는 점이다. 단, 사이버 보안 문제는 아직 남아 있는 과제이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 블록체인(blockchain)이 도입될 전망이다. 따라서 우선 카드업체의 수혜가 예상되며, 시간을 두고 사이버 보안 및 블록체인 관련주로 관심이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2019-02-26

300년 세월을 이겨낸 작은 가게

나는 인류 최초의 발명품입니다. 어떤 지휘자는 나를 지휘봉으로 사용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어떤 의사는 저를 치료 도구로 쓰기도 하죠. 건축 재료로 저를 사용해 집을 짓는 사람도 있습니다. 아마도 당신은 분명 최근 일주일 동안 나를 한 번 이상 사용했을 겁니다. 나는 누구일까요?정답은 ‘이쑤시개’입니다. 네안데르탈인이 어긋난 치아 교정을 위해 이쑤시개를 사용했다는 발견으로 인해 이쑤시개는 인류 최초의 발명품으로 등극합니다. 지휘자 발레리 게르기예프는 이쑤시개를 가끔 지휘봉으로 사용합니다. 주로 맨손으로 지휘를 하지만 가끔 손이 심심할 때는 이쑤시개를 들고 지휘를 한다지요? 차이나 항공 CA1478편. 카슈가르에서 우르무치로 향하는 비행기에서 30대의 한 남성이 갑자기 입에 거품을 문채 쓰러집니다. 승무원들은 기내 방송으로 혹시 의사가 있으면 도와 달라 요청합니다. 티엔 위는 곧장 환자에게 달려가지요. 이 노련한 의사는 이쑤시개로 환자의 지압점을 찾아 마사지를 합니다. 남자는 5분 만에 의식을 되찾고 목숨을 건집니다.도쿄의 번화가 긴자 한 모퉁이에 ‘사루야’라는 가게가 있습니다. 이쑤시개만을 파는 전문점입니다. 창업은 1704년. 315년 세월 동안 이쑤시개 단 한 가지 품목으로 가게를 유지하고 막대한 매출을 올립니다. 300년을 견딘 상품이라면 장식적이고 예쁠 것이라 생각하지만 실제는 그냥 평범한 이쑤시개입니다. 그러나 장인의 손길로 섬세하게 다듬어진 좋은 재료의 명품 이쑤시개는 곧 하나의 작품입니다. 사루야는 일본 황실에도 납품하지요. 8대에 걸쳐 가업을 이어 오는 사루야 사장은 이렇게 말합니다. “이쑤시개도 세상에 필요한 물건이니 기왕이면 누군가가 사용하기 편리하고 아름답게 만드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요?”사람들이 하찮게 여기는 이쑤시개조차 고전이 있다는 것이 놀랍습니다. 고전을 정의할 때 늘 사용하는 표현이 세월의 풍파를 견딘 책이라는 표현입니다. 호메로스의 일리아스나 공자의 논어는 무려 2천500년 세월을 버텼습니다. 4차 산업혁명이 어떻고, AI 기술이 어떻게 발전한다 해도 사루야의 이쑤시개는 쉽게 사라지지 않을 듯합니다. 300년 세월의 이야기가 거기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가장 나다운 것을 찾는 것이 앞으로의 생존 전략입니다. 거기 내 이야기를 오롯이 담아낼 때 변화의 거센 물결이 우리를 휩쓸고 지나도 든든히 살아남을 수 있을테니까요. 이쑤시개를 사용할 때마다 한 가지 생각할 일이 생겼습니다. /조신영 인문학365 대표

2019-02-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