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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독도 지킬 의지 있나?

김두한경북부바다 등 해양을 연구하는 데 선박이 없다고? 그렇다면, 무엇으로 연구할 것인가. 울릉도·독도해양연구기지에 해양을 연구할 배가 없다고 지적된 것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울릉도·독도해양연구기지는 일본 시마네현이 지난 2005년 매년 2월22일을 다케시마의 날로 선포하자 경북도가 ‘독도 지키기 5대 종합대책’ 중 하나로 설립됐다.하지만, 바다의 해양생태 등 해양을 종합적으로 조사하는 해양연구기지에 전용 연구 선박이 없다는 것은 상식적으로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특히 일본의 독도 침탈 행위가 끊이지 않는 가운데 울릉도, 독도해양연구소에 연구선을 배정하지 않은 것은 정부가 독도연구에 소홀하다는 지적이 높다.독도는 울릉도에서 87.4㎞ 떨어져 있다. 울릉도·독도해양연구기지는 독도 전용 연구조사선이 없어 소형어선이나 낚싯배를 임대해 독도에 대해 연구하고 그나마 정밀 연구는 울릉도에 한정돼 있다.정부가 건물만 지어놓고 연구 장비 없이 독도와 울릉도 동해 해양 전체를 연구하라는 것이다. 낚싯배와 어선을 임대해 독도현장 조사를 한다지만 연구 장비를 매번 옮겨야 하고 경비는 임차비도 모자라 연구의 질 향상 기대는 어렵다.울릉도∼독도 간 왕복 8시간 이상 소요되는 낚싯배의 선박임대료가 하루 400만∼450만 원 선. 경비 충당이 어려워 연구 선박을 제때 제대로 임대하지 못해 임무수행에 차질은 물론 연구가 반쪽으로 전락할 우려마저 낳고 있다.전문가들은 독도에서의 연구탐사시간 확보를 위해 울릉도∼독도 간을 왕복 4시간대에 운항할 수 있는 쾌속(32노트)연구조사선이 필요하다고 했다.이른 봄과 겨울철 해상기상 악화로 독도 접근이 어려워 독도 현지에 대한 체계적인 4계절 조사가 힘들기 때문에 더욱 울릉도, 독도해양연구기지의 전용 연구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수없이 제기돼 왔다.어려운 환경 속에 박사급 석학들과 울릉도 출신 직원들이 독도를 지킨다는 사명감과 울릉도, 동해바다의 더 발전 앞날을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이런 열악한 형편에도 울릉도·독도해양연구기지는 지난해 11월 한국해양과학기술원 남해연구소와 공동 연구한 논문이 전 세계 우수 학술저널에 계재되는 등 독도와 울릉도 동해에 대해 많은 연구 자료를 발표하고 있다.따라서 독도영토주권수호와 울릉도, 동해의 더 체계적이고 정확한 해양조사 연구를 위해서는 반드시 전용 연구선이 필요하다. 정부의 인식전환을 기대해 본다./kimdh@kbmaeil.com

2019-08-20

시장의 지배자는 소비자다

김진홍 한국은행 포항본부 부국장매일 같이 쏟아지는 다양한 뉴스를 보거나 들으면서 심장이 뛰거나 울리는 경우는 그리 흔하지 않다. 그럼에도 최근 한일, 미중, 남북 등 국가 간 뉴스가 자신뿐만 아니라 가족이나 지역사회 전체, 때로는 국가 전체를 한 마음으로 결집시킬 정도로 마음을 뒤흔드는 경우도 발생한다. 이처럼 개인들의 입장에서는 그 뉴스가 자신의 인생사 속의 어느 한 구석과 동화되거나 마치 자신을 이야기하는 것처럼 느끼기도, 자신의 생업과 직결되는 어떠한 영향을 주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하지만 지역사회 전체를 결집시키는 문제부터는 다소 성격이 달라진다. 지역민의 결집은 국제정세 변화보다는 대부분 국내 사정에 따르는 경우가 많다. 가령 국책사업의 배정을 둘러싼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간 갈등 같은 경우다. 그런데 범국가적인 관심사이면서 국민들 대부분이 동조하는 것은 종교적인 문제, 역사적인 문제, 국제 정치외교적인 다툼, 그리고 민족 문제인 경우가 주류를 이룬다. 사실 이번에 발생한 한일 간 사태의 도화선에 불이 쉽게 붙은 것도 앞서 언급한 4대 문제 가운데 3개나 중첩되면서 국민 각자가 일본제품 불매운동에 적극 동참하는 계기로 작용하였기 때문이다.그런데 이와 같은 갈등을 계기로 어느 일방이 선제적인 공격을 하고 상대방이 수비에 나섰다고 하여 반드시 공격자가 경제적 이득을 얻는다는 보장은 없다. 때로는 양측 모두가 손해를 입을 수도 있으며 공격자가 얻을 수도 수비자가 얻을 수도 있다. 누구나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는 경제문제에 관한한 누가, 어떤 지역이, 어느 나라가 더욱 치밀한 전략을 세우고 시장을 읽고 있는가에 승패는 갈린다.미중 무역전쟁, 남북 경협문제, 사드배치를 둘러싼 한중간 갈등, 최근의 한일경제전쟁도 마찬가지다. 비록 정치외교적인 마찰이 원인이라도 외형적인 싸움의 수단은 결국 군사력이 아닌 경제력으로 결정될 수밖에 없다. 경제의 싸움터는 수요와 공급이 만나는 시장이다. 그런데 국가나 지역의 문제로 발발하는 경제 전쟁이 어떠한 의사결정체계를 가지더라도 그 영향의 파급력은 결국 공급자 주도냐 소비자 주도냐에 따라 결정된다. 달리말하자면 과연 어느 측이 보다 정확하게 자신의 한계와 능력을 진단하고 시장의 향방을 예측할 수 있는가에 승패가 결정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일례로 최근 유럽의 고급브랜드들이 홍콩을 중국과 다른 별개의 국가처럼 인식하면서 때 아닌 곤혹을 겪고 있다. 이는 중국이라는 시장(market)의 소비자를 무시한 결과다. 중국은 자신들이 세계의 공장이었지만 이제는 시장이기도 하다는 자신들의 힘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다. 이번에 이탈리아의 베르사체, 프랑스의 지방시 등 세계적인 고급브랜드를 공급하는 그들이 세계 고급시장의 30% 이상을 소비하는 화교권의 반발에 바로 사죄한 것도 처음에는 안일했을지 모르지만 사태 발생 이후 시장의 지배자가 소비자임을 즉각 깨달았기 때문이다.포항도 자신을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과거 한때는 공급자로서 철강시장에서 지배력을 가지기도 하였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진지 오래되었다. 그렇다고 대단한 구매력을 지닌 소비자도 아니다. 최근 강소특구에 이어 관광특구까지 지정되면서 조금은 자신감을 되찾은 모습이지만 그럴수록 보다 냉철해질 필요가 있다. 포항이 추진 중인 다양한 관광 사업들도 실은 관광서비스를 공급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 포항이 준비하고 있는 관광서비스의 공급이 과연 관광소비시장에서 지배력을 발휘하는 국내외 소비자들을 만족시킬 수 있는지를 끊임없이 살펴보아야만 한다. 무엇보다도 가장 최초의 소비자가 될 포항시민에게, 그리고 국내 다른 지역의 서비스를 소비해 온 내국인, 나아가 국제크루즈여객선을 타고 세계의 관광서비스를 소비해 온 외국인들의 눈높이 수준에 맞출 수 있을지를.

2019-08-20

1945년 광복과 한국미술

김태곤 대백프라자갤러리 큐레이터현재 대한민국은 36년이라는 일제식민지의 역사를 이겨내고 쟁취한 ‘광복(光復)’이라는 진정한 의미를 다시 한 번 상기해보는 소중한 시간을 경험하고 있다. 조선의 개방정책과 근대화 과정에서 뼈아프게 겪어야했던 식민지 역사와 흔적은 씻을 수 없는 아픔으로 기억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고난과 아픔을 통해 우리가 극복해야 할 과제는 무엇이며, 치욕과 역경의 역사를 대물림하지 않기 위해서 우리의 정치·경제·국방 등 모든 면에서 갖추어야 할 정도(正道)는 과연 무엇인지 각성해야 할 것이다. 우리 근대사의 전개 과정에서 이루어졌던 모색과 문제점들을 되돌아보며 지금부터라도 새롭게 개선해 나간다면 이번 위기는 분명히 극복될 것이라고 믿는다.한국사의 근대적 출발점을 1919년으로 본다면 우리 민족은 불합리와 함께 모순의 정치적 환경 속에서 한국 근대사를 경험했다. 더불어 일제의 지배라는 비극 속에서도 민족적 고난과 비애를 강인한 저항정신으로 이겨내며 극복함으로써 새로운 민족적 원동력을 얻는 계기가 되었다. 이러한 위기를 극복했던 시대정신을 통해 오늘날 우리가 가져야 할 정신적 가치가 무엇인지 되찾아 보아야 할 것이다.미술 분야 역시 진정한 한국적 미의식은 해방과 함께 새롭게 정립되기 시작했다. 일제강점기 서구의 미술양식과 미학적 요소들은 식민통치를 위한 문화정책의 일환으로 보급되기 시작해 ‘전통서화’와 ‘서양화’의 갈등과 모순 속에서 우리의 미의식은 서구미술의 형식만을 흉내내는 수준으로 지속되었다. 하지만 해방 이후 한국회화의 근대적 과정은 격동기의 파란만장한 변화 속에서 진정한 가치를 찾기 위해 부단한 노력들이 이어졌다.1945년 8월 15일 광복과 함께 숨 가쁘게 진행되었던 한국미술의 주요 사건들을 간단히 살펴보자.먼저 해방 직후인 8월 18일에 전국 문화예술인들을 규합한 단체로 ‘조선문화건설중앙협의회’가 결성되고, 그 산하에 문학, 미술, 음악, 영화, 연극의 5개 분과 중 하나로 ‘조선미술건설본부’가 결성되었다. 조선미술건설본부는 고희동을 중심으로 동양화부, 서양화부, 조각부, 공예부, 아동미술부, 선전미술대 등 6개 분과로 활동을 펼쳤는데, 186명의 미술가들을 총괄한 해방 후 최대 미술가 조직이었다. 덕수궁 석조전에서 제1회 ‘해방기념과 연합군환영 미술전람회’(1945.10.20∼29)를 개최했으며, 해방 기념행사에서 국기 제작과 함께 표어·도안을 작성하기도 했다. 그리고 연합군 환영식에서는 미국·소련·영국·중국 등 4개국 국가원수들의 초상화를 제작했다. 11월 20일 ‘조선미술건설본부’가 해산되고 “정치에의 불간섭과 엄정 중립”을 강령으로 내건 ‘조선미술가협회’로 새롭게 결성되었다.하지만 1946년 8월 11일 미군정청 문교부가 미술을 선택 과목으로 결정하자 ‘조선미술가동맹’과 ‘조선조형예술동맹’과 함께 ‘조선조각가협회’가 합류해 ‘조선미술동맹’을 발족하여 공동투쟁을 결의해 나갔다. 이들 단체는 ‘해방기념문화대전람회 미술전’(8월20∼27일)을 개최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보였지만, 이 역시 남북 이데올로기의 차별에서 비롯된 분열과 갈등이 지속되었다.지역 1세대 화가 이인성(1912∼1950)과 이쾌대(1913∼1965) 역시 이러한 질곡의 시대적 변화를 직접 체험하며 참여해 한국 근·현대미술을 이끌어 나갔다. “과거가 햇볕을 쬐면 역사가 되고, 달빛에 젖으면 신화가 된다.”는 말처럼 격동의 시대를 파란만장하게 살다간 지역 예술가들은 조국 광복을 위해 무엇을 하였으며, 해방된 나라에 새로운 예술과 문화를 만들기 위해 어떠한 노력을 경주했는가는 이제 새로운 시각에서 살펴야할 우리들의 과제이다. 대구·경북을 대표하는 화가들을 이제는 ‘신화의 존재’가 아닌 ‘역사적 인물’로 기록하기 위해서는 보다 체계적이고 전문화된 연구가 이어져야 할 것이다.

2019-08-20

아프리카에는 자폐아가 왜 없을까요?

맨발 학교를 아십니까? 대구교대 특수교육과 권택환 교수가 지난 2013년 3월 1일 시작한 신통방통한 학교입니다. 이 학교에는 다섯 가지가 없습니다.1. 건물 2. 교사 3. 교재 4. 시험 5. 시간표.맨발 학교의 수업은 운동장, 산, 바닷가 모래사장 등 흙이 있는 곳이면 어디서든 수업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이 학교의 수업은 새벽, 한밤중, 낮, 저녁을 가리지 않습니다. 맨발로 걷는 것이 수업이니까요.‘진리는 단순하고 실력은 꾸준함에서 나온다. 작고 단순한 것도 꾸준히 하는 사람이 행복을 잡는다’가 맨발 학교 교훈입니다.권택환 교수가 맨발 학교를 시작한 계기는 한 권의 책을 읽은 후입니다. 세계 지적장애인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김진호군의 어머니가 쓴 ‘자폐아는 특별한 재능이 있다’라는 책이지요. 김진호군이 맨발 걷기로 자폐를 극복한 것을 깨닫습니다. 그 책에서 발견한 한 문장이 권택환 교수의 뇌리에 번개처럼 번쩍입니다. “아프리카에는 자폐아가 없다.”권택환 교장은 말합니다. “교육부에서 일할 때, 한국의 자폐성 아동이 매년 1천명씩 급증하는 것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학생들이 갖는 10개 장애 유형 중에 과거 7위였던 자폐가 지금은 2위까지 올랐습니다. 미국은 자폐 발병률이 68명 중 한 명입니다. 특히 실리콘 밸리에 많아요. 유럽은 미국과는 달리 자폐 아동이 적습니다. 어려서부터 흙과 교감하는 교육 방식을 택하고 있기 때문이죠. 흙 속의 무해 박테리아와 접촉하면서 몸의 면역력이 길러지고 몸속의 유해 전자파를 흙이 흡수합니다. 이런 과정을 어싱(earthing)이라고 합니다.”정현종 시인은 ‘한 숟가락 흙 속에’에서 이렇게 노래합니다.“한 숟가락 흙 속에 / 미생물이 1억5천만 마리래! / 왜 아니겠는가, 흙 한 술, / 삼천대천세계가 거기인 것을! / 알겠네 내가 더러 개미도 밟으며 흙길을 갈 때 / 발바닥에 기막히게 오는 그 탄력이 실은 / 수십억 마리의 미생물이 밀어 올리는 / 바로 그 힘이었다는걸!”아인슈타인이 연구소 근처를 맨발로 걷다가 상대성 이론의 아이디어를 떠올렸다는 일화는 우연으로 들리지 않습니다. 양말, 신발, 아스팔트로 겹겹이 우리의 몸은 흙과 차단되어 있지요. 그 차단을 훌훌 벗어버리고 자연과 교감하는 맨발 걷기는 실로 혁명입니다. 태어날 때 부여받은 맨발로 한 숟가락에 1억5천만 마리 미생물이 꿈틀거리는 맨땅을 밟는 일. 가족과 함께 안전한 곳에서 시작해 보시면 어떨까요?/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대표

2019-08-20

태평양전쟁, 그리고 경성과 상해

일제강점기 당시 경성 그러니까 현재의 서울은 일본인이 거주하는 남촌과 조선인이 거주하는 북촌으로 분리되었다. 그 역사는 188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같은 해 2월 주한 일본대리공사가 일본인의 안전을 위해 일본공사관과 영사관 주위에 집단거주를 요청하면서 거주가 시작되었다. 한일합방 이후 진고개 일대 충무로, 명동에 이르는 지역은 완전한 일본인 거주지역으로 변모되었다. 특히, 1911년에 개설된 황금정(현 을지로)은 일본인 거주지를 청계천변까지 확장시키면서 본정통(현 충무로)과 함께 일본인 주거지의 중심가로로 성장한다.특히 본정통은 가장 먼저 일본 민간자본에 의해 형성된 지역이라는 특성상 일본식 목조2층 건축에 의한 전형적인 일본식 가로 경관을 갖고 있었다.난징조약으로 개항하게 된 상하이는 1843년 영국과 후면조약, 1844년 미국과 왕샤조약, 프랑스와 황푸조약을 맺었다. 이때부터 자국의 국민들이 거주할 수 있는 치외법권 지역이 만들어졌다. 영국이 제일 먼저 토지를 빌려 와이탄 도로를 중심으로 거리를 조성했고 미국과 프랑스가 뒤를 이어 조계지를 만들었다. 그 후 1861년 화이하이루 지역에 프랑스가 단독으로 조계를 차지하게 되었고 1863년 영국과 미국이 공동 조계가 되어 와이탄과 난징루 지역을 중심으로 자리잡게 되었다.일본과 조선은 하나의 나라라는 의미의 ‘내선일체’를 사상적으로 주입했다. 하지만 이 말의 허위성을 증명이라도 하듯 경성은 남촌과 북촌으로 분리되어 있었다. 상하이 역시 경성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상하이시는 조계지와 비조계지로 엄격히 분할되었다. 이러한 분리 속에서 경성과 상하이는 근대성을 대표하는 고층빌딩이 들어섰으며, 근대적 소비문화를 상징하는 호텔, 백화점, 커피하우스, 댄스홀, 극장과 영화관, 공원과 경마장 등이 생겨났다.경성의 경우 1910년대까지만 해도 균형을 이루던 북촌과 남촌의 경제력은 1920년대에 이르면 현저한 차이를 보이게 된다. 경성부내 주요 공공건물 중 북촌에 위치한 것은 식민지배의 상징인 조선총독부 하나에 불과했으며, 주요 건축물은 남촌에 위치하고 있었다. 상권성장과 변화를 주도한 것은 근대적 유통구조인 백화점의 급속한 확산이었다. 주요 간선도로에는 근대적 상업시설과 은행사옥과 지점들이 빠르게 지어졌고, 재래상권도 백화점을 필두로 하는 근대적 유통구조와 서비스중심으로 재편되었다. 이는 경성의 주요 간선도로변의 경관을 빠르게 변모시켰다. 카페와 함께 주목할 수 있는 것이 극장이다. 카페가 당시 지식인 교류장소의 역할을 수행했다면, 극장은 일반의 대중적 오락기능을 수행했다. 이 무렵 서울에 설립된 서대문의 연극전문극장인 동양극장(1935)은 장식이 제거된 차가운 무채색으로 포장된 전형적인 근대주의 양식으로 지어진 신파극의 중심극장이었으며, 한국 사람을 위한 극장으로는 단성사·조선극장·우미관 등이 종로에 위치하고 있었다. 이밖에 일본인의 영화관으로 황금좌, 약초좌, 명치좌, 희악관, 대정관 등이 있었다.상하이의 조계지 조성 초기에는 와이탄의 스카이라인은 영국에서 유행했던 신고전주의 양식을 따른 영국영사관, 팰리스호텔과 같은 영국식 건물들이 지어졌으며, 1920년대부터 파크호텔과 같이 높고 내부에 아르데코 형식이 더해진 현대식으로 설계된 미국식 건물들이 생겼다. 또 1892년 난징루에 최초의 백화점인 홀앤 홀츠가 개장을 하고 위크백화점, 레인 크로우포드 백화점 등이 잇달아 개장하였다. 1930년대 백화점은 유럽풍의 르네상스와 바로크 양식을 적용해서 고급스럽고 웅장함을 보여주고 소비자에게 이국에 온 것 같은 환상을 심어 주었다. 그러나 이러한 도시의 호황은 오래가지 못했다. 경성은 1937년, 일본이 군벌체제를 갖추고 중국대륙에 대한 본격적인 침략을 감행하면서 전시체제로 돌입하게 된다. 1941년 태평양전쟁이 시작되면서 경성의 철도와 철도역은 군수물자를 수송하기 위해 전용된다.또 대공 취약성을 강화하기 위해 곳곳에 방공시설이 확충되었으며, 전쟁 수행을 위해 일정한 구역 내에서 ‘건축물의 건축금지, 제한 또는 철거’ 등 물리적인 조치를 취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마련되었다.상하이 조계는 1845년부터 약 100년간 계속 되다가 1937년 중일전쟁과 제2차 상하이 사변이 일어나면서 일본군의 통제하에 놓였다. 1941년 태평양 전쟁이 일어나면서 일본군은 공동 조계에 진주하면서 영국인, 미국인을 억류했다. 1943년 난징의 왕조명 정권이 공식으로 공동조계, 프랑스 조계를 접수하면서 조계의 역사는 끝을 맺었다.태평양전쟁과 함께 경성과 상하이는 일본의 영토가 되었지만, 여전히 안심할 수 없는 내부 속의 외부로 자리잡고 있었다. 일본은 서구 열강과의 전쟁도 전쟁이었지만, 내전에도 상시 대비해야 했다. 전쟁 동안 경성과 상하이는 내부이면서도 동시에 외부로 존재하고 있었다.상하이에 살았던 장아이링은 1943년 ‘봉쇄’라는 소설 속에 식민지 도시가 처한 상황을 재현했다. 이 소설은 상하이 공습 시기의 어느 전차 위에서 벌어진 사건을 다루고 있다. 공습으로 인해 봉쇄를 알리는 종소리가 땡땡 울리자 소심한 남자가 원래 자신이 앉았던 자리에서 일어나 한 여성에게 다가와 말을 건다. 그들은 대화를 나누기 시작한다. 그들은 점차 사랑에 빠지게 되고 결혼 가능성까지 얘기하게 된다. 몇 시간 후 공습이 해제되고, 전차는 다시 출발한다. 하지만 그녀에게 말을 걸었던 남자는 원래의 자리에 앉아 있다. 그녀는 이를 통해 깨닫게 된다. “봉쇄 순간의 모든 일들은 발생하지 않은 것과 같았던 것이다. 상하이 전체가 잠에 빠져 들고, 말도 안 되는 꿈을 꾼 것이다.”이 소설은 어쩌면 전쟁 전 식민지 도시가 이룩한 근대적 발전이 꿈과 같은 것임을 알려주는 알레고리처럼 느껴진다. 경성과 상하이는 지배자와 피지배자, 식민본국인과 피식민지인과 같이 대립을 실체화하는 공간으로 분할되어 있었다.이러한 분할 또는 이항대립은 잘못된 관념이 만들어낸 허구에 지나지 않지만 엔블록으로 구체화되었고, 엔블록은 다시 태평양전쟁으로까지 이어지게 되었다. 주변을 분할하여 다시 중심과 주변을 만드는 일이나, 중심을 분할해 이것을 다시 중심과 주변을 만들려는 이유는 동일한 이유에서다.공강일 서울대 강사·국문학그것은 중심이나 주변이 충족할 수 없는 욕망의 덩어리이기 때문일 것이다. 데리다는 이렇게 말한다. “중심은 현전적 존재자의 형태로 사유될 수 없다는 것, 중심은 자연적 장소를 가지지 않는다는 것, 중심은 고정된 장소라기보다 어떤 기능이며 기호의 대체가 무한히 일어나는 일종의 비장소라는 것”이다.중심으로 인해 주변이 생겨나고 주변은 중심의 영향을 받게 된다. 중심은 주변을 동질화시키려는 제스처만 취할 뿐 결코 동질화를 용납하지 않는다. 이 중심에서 벗어날 때 억압도 배제도 사라진다. 중심과 주변의 끊임없는 분할은 결국 전쟁으로 이어졌고, 이런 비싼 대가를 치르고 세계는 ‘탈중심’의 가치를 존중하게 되었다. 그러나 중심과 주변을 나누려는 욕망은 여전히 위협적인 존재로 세계의 한 편에 도사리고 있다.

2019-08-20

개의 질병

개의 질병 중에 가장 위험하며, 잘 알려져 있는 광견병은 동물과 사람사이에 전파되는 병원체에 의해 생기는 질병이다. 법정 전염병으로 분류되는 광견병에 의해 세계적으로 10분당 1명이 사망하고 있다는 통계가 있는데, 사망자의 40%가 15세 이하의 어린이들이다.광견병에 걸린 개에게 사람이 물릴 경우 상처부위를 타고 침입한 바이러스가 가까운 신경을 타고 하루에 8~22㎜ 정도 뇌를 향해 이동하는데, 발열, 경련, 마비 증상을 일으키다가 발병 후 일주일 정도가 되면 사망에 이르게 하는 치명적인 질병이다.광견병에 감염된 개는 침을 많이 흘리고, 어두운 곳으로 숨으려고 하며, 물을 극히 싫어한다. 행동은 느리지만 닥치는 데로 무는 등의 난폭한 행동을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아직 특별한 치료방법이 없어서 백신을 통한 예방접종이 최선의 예방법이다. 그러므로 우리나라 지자체별 유기견 보호소에 개들이 들어올 때, 광견병 초기인 개들의 감염여부를 객관적으로 판정할 수 있는 시스템의 도입이 필요할 것이다.바이러스로 인해 걸리는 질병 중 광견병에 이어 개의 치사율이 높은 질병은 개 디스템퍼이다. 디스템퍼 바이러스에 감염된 개와 직접 접촉을 하거나 분비물과 배설물의 접촉으로 감염될 수 있다. 일주일 정도의 발열기간 후 2주일째가 되면 비강, 눈, 폐, 내장기관의 세포들에 심각한 상해를 일으킨다. 손상된 조직에 세균에 의해서 2차적 감염이 일어나는 것이 보통인데, 세균과 바이러스의 복합적인 감염은 부위에 따라 다양한 증상을 일으킨다.특히 디스템퍼 바이러스가 뇌조직에 감염된 경우 경련이나 떨림 등 신경증상이 나타나는데 뇌와 척수에 손상을 받을 경우 간질성 발작을 일으킬 수 있고, 심하면 사지마비를 일으킨다. 현재는 디스템퍼를 치료하는 약물은 없는 상태이며, 항생제는 2차적 세균감염을 막기위해 사용될 뿐이다. 디스템퍼도 백신을 통한 예방이 최선이다.갓 태어난 강아지나 이유기 이후의 강아지에게서 많이 발병하는 대표적인 접촉감염 질병은 파보바이러스 감염증이 있다. 심장근육에 기생하는 심근형과 장에 기생하는 장염형으로 나눌 수 있는데, 장염형이 일반적으로 많이 발생하므로 파보 장염으로 불린다.구토와 설사가 대표적 증상인데, 탈수증세에 의한 쇼크상태에 빠지고 심하면 죽게된다. 파보장염 또한 효과적인 치료방법이 없기 때문에 백신을 통한 예방이 최선이다.민간요법으로 한의학에서 쓰는 대표적 지사제인 작약을 파보장염에 의한 설사가 심할 때 사용하여 효과를 보기도 하지만 근본적 치료방법은 아니다.개 심장사상충은 개의 심장 우심실이나 폐동맥에 기생하면서 최대 30cm까지 자랄 수 있는 기생충이다. 이 기생충은 마이크로필라리아라는 유충이 모기의 체내에서 성숙한 후 개에게 전염되는데, 이에 감염되면 심장에서 혈류의 흐름을 방해해 기침, 호흡곤란, 실신, 복수, 심부전증 등을 일으켜 사망에 이르게 한다.다량의 유충에 감염된 경우 치명적 증상이 나타나지만 소량에 감염된 경우에는 대부분 증상이 나타나지 않은 상태에서 일생을 보내기도 한다. 심장사상충은 사람에게도 감염될 수 있다.이동훈그 외에도 개들이 쉽게 감염되는 질병은 켄넬코프,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아데노바이러스 감염증 등이 있다. 또한 개는 피부병이 빈번한데 개의 피부는 사람의 피부층에 비해 얇은 편이고 털을 가지고 있어서 진균성 피부병, 습진, 개선충성 피부염, 알러지성 피부염 등 다양한 질병에 노출될 수 있다. 개가 건강한 피부를 가지기를 원한다면 매일 빗질을 해주고 좋은 세정제 등을 활용하여 한달에 한번 이상은 목욕을 해주는 것이 좋다.개들에게서도 사람에게 나타나는 당뇨병, 관절염, 골다공증을 비롯해 각종 암이 나타난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동물들 중 사람과 유사한 자연발생적인 유전질병이 원숭이를 제외하면, 개들에게서 가장 많이 발생하는 것으로 밝혀져 있다. 함께 살아가는 반려견들의 질병연구를 진행하다 보면 사람의 질병원인도 밝힐 수 있게 되므로 반려견 질병연구가 증가하는 추세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반려견의 질병연구와 동물의약품 연구의 경쟁력을 갖춰나가는 정책을 고민해볼 시기이다./서라벌대 반려동물연구소 소장·마사과 교수

2019-08-20

태종은 윤돈을 파직했다 김문에게 소주를 많이 권하여 죽게 한 때문이다

주량보다 술을 많이 마시는 일. 우리는 과음(過飮)에 대해서 관대하다. 요즘 현상이라고? 아니다. 뿌리가 깊다. 술은 두 종류다. 발효주(醱酵酒)와 증류주(蒸溜酒)다. 과일, 곡물을 발효시킨 것이 발효주다. 자연생태계에서도 생긴다. 알코올 도수는 19도 미만이다. 한국 막걸리, 일본 청주(사케), 유럽의 와인 등이 발효주다. 중국 고량주(高粱酒, 수수), 일본 고구마 소주(고구마), 프랑스 코냑(포도), 유럽의 각종 위스키(보리 등), 한국 안동소주(쌀)는 증류주다. 인위적으로 증류해야 얻을 수 있다. 도수가 높다. 대부분 40도 이상이다. 우리가 마시는 희석식(稀釋式) 소주는 주정(酒精)에 물을 더한 것이다. 주정은 에탄올(ethanol)이다. 증류주는 발효주보다 고급술, 비싼 술로 친다. 발효주를 만든 다음, 증류 과정을 한 번 더 거치기 때문이다. 곡물, 과일로 발효주를 만든 다음, 증류한다. 곡물 소비도 심하고 술의 양도 줄어든다. 예나 지금이나 증류주는 비싼 고급술이다.술을 마시고 사람이 죽는다. 설마? 설마가 여러 사람 잡았다. 조선 시대 기록을 보면 퍽, 자주 ‘음주 사망사고’가 등장한다. ‘조선왕조실록’ 태종 17년(1417년) 윤 5월 4일의 기사다. 제목은 ‘박강생, 윤돈을 파직하다. 김문에게 소주를 많이 권하여 죽게 한 때문이다’이다.수원 부사 박강생, 봉례랑(奉禮郞) 윤돈을 파직(罷職)하였다. 이 앞서 윤돈이 과천 현감에서 교대되어 서울로 돌아올 때, 박강생과 금천 현감 김문 등이 윤돈을 안양사(安養寺)에서 전별하였더니, 김문이 소주(燒酒)에 상(傷)하여 갑자기 죽었다. (중략) 헌부(憲府)에서 죄를 청하니, 임금이, “술을 권하는 것은 본시 사람을 죽이고자 함이 아니고, 인관(隣官)을 전별함도 또한 상사(常事)인 것이다.” 하고, 명하여 다른 일은 제외하고 파직하게 하였다.윤돈이 과천 현감으로 일하다가 서울로 전근한다. 인근 수령인 수원 부사 박강생과 금천 현감 김문이 전별연을 열었다. 이 자리에서 김문은 소주를 많이 마시고 상해서 죽는다. 이 죽음에 대해 사헌부에서 문제 삼는다. 태종의 대답이 재미있다. “설마 사람을 죽이려고 술을 많이 권했겠느냐? 벼슬아치들이 전별연을 여는 것도 늘 있는 일이다. 큰 잘못이 아니니 파직만 시키라”이다.태종도 호주(豪酒) 꾼이었다. 조선 초기 왕실은 술에 대해서 상당히 관대했다. 술 때문에 희생된 이들도 많았지만, 음주를 엄하게 금하거나 처벌했다는 기록은 없다. 조선 초기 태조 이성계의 집안은 모두 호주 꾼이었다. 술맛을 아니, 과다 음주에도 관대했다고 추정할 뿐이다. 진안대군 이방우(1354~1393년)는 조선 건국 이듬해 죽었다. 일설에는, 고려의 신하였던 진안대군이 아버지 이성계의 조선 건국을 반대했고, 1392년 조선 건국 후 황해도 해주와 고향 함흥에서 술을 마시다가 죽었다고 전해진다. 죽었을 때 나이 마흔 살. 불과 5년 전인 1388년, 별 탈 없이 사신단으로 중국에 다녀왔다. 아버지는 조선을 건국했고, 자신은 왕자가 되었다. 죽을 이유가 없다. 조선 건국 반대, 시대에 대한 불만으로 통음(痛飮), 술병으로 사망? 실제 ‘조선왕조실록’에서는 “진안군이 술을 좋아했다. 날마다 마시더니 결국 소주를 마시고 병이 나서 죽었다”고 했다. 태종의 아들이자 진안대군에게는 조카인 양녕대군도 술에 대해서는 뒤처지지 않는다.세종 4년(1422년) 11월14일, 대사헌이 양녕대군을 탄핵한다. 죄목이 엉뚱하다. ‘소주를 마시게 해 사람을 죽게 했다’는 것이다.이제 재궁(梓宮)이 빈전(殯殿)에 계시온데, 일찍이 슬퍼하지 않고, 살림을 차리고자 하여(중략) 함부로 마을 사람을 불러서 돌을 실어다가 집을 꾸미었는데, 소주(燒酒)를 지나치게 먹여서 인명(人命)을 상하게 하니, (중략) “삼가 바라옵건대, 특히 유사(攸司)에 내리시어, 그 뜻에 있는 바를 국문(鞫問)하시면 매우 다행하겠습니다.” 하였으나, 윤허하지 아니하였다.이해 5월10일(음력) 태종이 세상을 떠났다. 11월이면 아직 탈상도 하지 않았을 때다. 맏아들인 양녕대군은 ‘부모를 돌아가시게 한 죄인’으로 거친 옷을 입고, 거친 밥을 먹으며 근신해야 한다. 그런데 함부로 마을 사람을 불러 집을 지었다. 큰 죄다. 하물며 일하는 이에게 소주를 많이 권해서 죽게 했다.세종의 태도도 재미있다. 국문해야 한다고 탄핵하자 “윤허(허락)하지 않았다”고 했다. 이듬해인 세종 5년, 이번에는 대사헌 혼자가 아니라 문무관 2품 이상의 고위직들이 연대하여 양녕대군을 탄핵한다. 이 탄핵에서도 “소주로 사람을 죽게 했다”고 명기했다. 여전히 세종은 움직이지 않는다. 한참의 세월이 흐른 후인 세종 14년(1432년) 7월의 기록에는, 세종이 양녕대군에게 “좋은 안주와 소주[宣醞, 선온]를 내렸다”는 내용이 남아 있다.세종 15년 3월의 기록에는 세종대왕의 술에 대한 ‘속마음’이 나온다. 이조판서 허조가 “소주로 목숨을 잃는 이도 흔하니 술을 과하게 마시지 못하게 법을 세우자”고 건의한다. 세종이 대답한다. “비록(소주 마시는 일을) 굳게 금하더라도 그치게 할 수는 없을 것이다”. 허조도 물러서지 않고 “그래도 법을 세우자”고 하니 세종이 마지못해 대답한다. “술을 경계하는 ‘주고(酒誥)’를 내리겠다”. 그뿐이었다.관대한 분위기 때문인지, 벼슬아치들은 꾸준히 음주 사고를 일으킨다.‘경차관(敬差官)’은 특정 임무를 띠고 지방으로 파견되는 임시직 관리다. 태종 4년 7월, 경차관 김단이 옥주(沃州, 옥천)에서 급작스럽게 죽는다. 사인은 ‘과다 음주’다. 한양을 출발, 경상도로 향하던 김단은 청주를 지나면서 소주를 과다하게 마셨다. 지방 관청에서는 중앙에서 파견된 관리들에게 음식을 대접한다. 공식적인 ‘지응(支應)’이다. 아마 지응 자리였을 것이다. 김단은 청주에서 과음, 멀지 않은 옥주에서 죽는다.소주 때문에 패가망신을 당한 이는 고려 시대 김진(생몰년 미상)이다. 조선 후기 문인 낙하생 이학규(1770~1835년)의 ‘낙하생집_권20_동사일지’에 기록된 김진의 이야기다.“소주(燒酒)는 노주(露酒)다. 원나라 때 처음 들어왔다. 고려 신우 원년, 임금이 말하기를, 사람들이 (소주를) 아낄 줄 모른다. 많이 마시면 재물을 잃는다. 앞으로는 소주를 비단, 금이나 옥같이 여겨 일절 금한다. 최영 전에 이르기를, 김진을 경상도원수로 삼았더니, 경상도 기생을 많이 모아, 무리와 밤낮으로 소주를 마셨다. 김진이 소주를 좋아하니 군중(軍中)에서 ‘소주도(燒酒徒)’라 불렀다. 마침내 왜구가 합포(마산)를 쳐서 불태우는데, 사람들이 소주도를 앞세워 왜구를 공격하라며 움직이지 않았다.(후략)”노주는, 소주가 마치 이슬같이 맑아서 붙인 이름이다. ‘신우(辛禑)’는 우왕을 이른다. 조선의 선비들은 우왕이 고려 왕통이 아니라 승려 신돈의 아들이라고 여겼다.우왕 원년에 이미 소주에 대한 경계문이 나온다. 몸을 상하기 전 재물을 먼저 잃는다고 했다. 소주를 금은보화같이 귀하게 여기고 앞으로는 금한다고 했다. 소주는 여전히 사라지지 않는다. 김진이 경상도원수가 된 것은 불과 2년 후인 우왕 2년(1376년)이다.‘음주 도원수’ 김진은 처참하게 패배하고, 그 벌로 서민으로 강등된다. 김진은 창녕, 가덕도에서 귀양살이했다. 조정에서 다시 부르려 했지만, 직속 상관인 최영이 끝까지 반대한다. 이글에는 “소주가 몽골의 원나라에서 한반도에 전래하였다”고 했다. 조선 중기 문신, 유학자 이수광(1563~1629년)도 ‘지봉유설’에서 “소주는 원나라 때 시작되었다”고 했다. ‘원나라 전래설’은 다수설이다.소주는 아랍권에서 처음 발명되었다는 것이 정설이다. 몽골의 원나라가 아랍의 ‘아라크’(Araq)를 배워서 고려에 전한 것이다. 소주는 한반도 개성, 안동, 제주도 등에서 처음 시작된다. 개성은 고려의 수도다. 원나라와의 교류가 잦았으니 소주 양조장도 많았다. 제주도는 말을 기르는 몽골 주둔지였다. 안동은 원나라의 일본 침략 시, 군수기지, 내륙집결지였다. 몽골은 개성-안동을 거쳐 마산 지역에서 일본 침략에 나섰다. 지금도 ‘안동소주’는 유명하다. ‘아라크’는 아랍어로 ‘땀’을 의미한다. 소줏고리로 소주를 내리면 마치 땀 같이 방울방울 떨어진다. 지금도 안동 지방의 노인들은 소주를 ‘아래기’라고 부른다. 아랍어 ‘아라크’나 우리의 ‘아락주’와 비슷하다.재미있는 것은 소주 기원, 전래에 대한 ‘이설’이다.조선 후기 실학자 청장관 이덕무(1741~1793년)는 ‘청장관전서’에서 “소주가 원나라 때 전해졌다고 하나 그렇지 않다. 송나라 사람 전석이 이미 ‘섬라주는 소주를 두 차례 내린 것’이라고 했다. 우리나라에도 두 차례 내리는 환소주가 있으니 섬라(暹羅)주와 같다. 오키나와와 (일본) 사츠마[薩摩] 의 소주는 포성주(泡盛酒)라 한다”고 했다.‘섬라’는 태국(SIAM)이다. ‘포성주’는 지금도 남아 있다. 소주는 기원전 3천 년에 메소포타미아 문명권에서 시작되었다는 설도 있다. 원나라보다 훨씬 오래전이다. 청장관의 주장은 간단하다. 소주의 한반도 전래는 원나라 때인 12~13세기가 아니라 그 이전이라는 것이다. ‘원나라 전래설’이 다수설이지만 청장관의 주장도 무시할 바는 아니다. /맛칼럼니스트 황광해

2019-08-19

도무지 잠들 수 없는 여름밤, 문득 내게 말을 걸어왔던 ‘책’들에 대하여

갑자기 내려 창가로 들이치는 비가 오히려 반가울 만큼, 불같은 여름 더위가 한창이다. 최근에야 집집마다 에어컨을 구비하고 있는데다가, 어디든 널려 있는 카페로 나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한 잔 시켜 놓고 시원하고 편한 의자에 앉아 있으면 여름 더위랄 것이 특별할 것도 없는 것 같다. ‘피서’라는 것이 1년 중에 꽤 큰 행사였던 시기에, 산으로 바다로 떠나거나, 물이 있는 곳에 모여 ‘납량회’ 같은 것을 열던 감각에 비해, 집에 가만히 있으면서 밀린 드라마를 보거나 ‘호캉스’를 즐기거나 하는 것처럼 더위를 피하는 일이 커다란 일이 아닌 것처럼 돼버렸다.사실, 인간이 쌓아올린 근대적인 문명이라는 것은 인간이 갖고 있는 물리적 한계를 넘어서도록 하는 방향으로 급속도로 발전해왔다. 예전이라면 갈 수 있으리라 생각하지도 못했던 거리를 비행기로, 기차로 연결하고, 더울 때 더위를 피할 수 있게 하고, 추울 때 추위를 피할 수 있게 하며, 시끄러움 속에서 소리를 사라지게 하고, 조용함 속에서 소리를 들을 수 있게 하는 것처럼, 인간이 갖고 있는 태생적인 감각을 보다 무디게, 혹은 편하게 바꾸어 왔다. 그것이 말하자면, 기계문명의 발전이 인간에게 제공해온 감각의 즐거운 퇴화였던 것이다.이러한 문명의 발전과 인간의 본래적인 감각의 변화 앞에서, 더울 때는 좀 더워야 하고, 추울 때는 추워야지, 같은 의견이야말로 시대착오적인 꼰대스러운 것임을 부인하고 싶지는 않다. ‘자연스러움’이라는 것이 어디 태초부터 정해져 있는 것이랴. 인간의 감각은 시대의 변화에 따라 변화하는 것이 당연하니 말이다.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자고, 하루에 세 끼를 먹고 하는 감각 내지는 삶의 문화적 습관은 조금 더 시간이 지나면 점차 변화하여 우리는 또한 새로운 ‘자연스러움’을 만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이처럼, 인간의 감각적 변화에 있어서 당연한 것이나 부당한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예전에 존재했던 감각들이 사라져 가는 아쉬움이 있을 뿐이다. 여름밤 낮에 다 소진되지 못한 열기가 공기 속에 남아 여전히 살갗을 파고드는 후텁지근한 감각 같은 것들은 일반적으로야 좋을 수 없는 감각이겠지만, 어떤 기억과 얽혀 있을 때, 그것은 전혀 싫지 않은 감각이 된다.내게 여름은 어린 시절 방학이면 언제나 찾아갔던 큰집의 기억과 뗄레야 뗄 수 없게 엮여 있다. 낮 동안 더운 줄도 모르고 돌아다녀 벌겋게 상기된 내 팔을 어루만졌던 할아버지의 서늘한 손길. 땀으로 끈적거렸던 등에 얼음장 같이 차가운 물을 부어 등목을 했던 기억. 인근의 큰 도시로 진학하여 남겨진 사촌 형, 누나들의 책이 보관된 웃방에서 책들을 하나하나 열어보던 것이 바로 내가 갖고 있는 여름의 기억이다. 지금이라면 분명 책들보다도 그 위에 뽀얗게 내려 앉아 있었던 먼지가 더 신경 쓰였겠지만, 그때는 그 책 하나하나가 마치 미지의 어딘가로 막 떠나버릴 것만 같은 기차표처럼 보여 허겁지겁 하나, 둘 씩 뒤지느라 먼지 따위에는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당연히 이마를 따라 쉴 새 없이 흘러내리는 땀도 신경 쓰이지 않았다.확실히 어린 시절에는 무언가 하고 싶은 대상을 위해서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던 것 같다. 지금이라면 과자를 먹을 때 손에 달라붙는 과자부스러기들이 신경 쓰여 정작 과자의 맛에는 집중하기 어렵지만, 어린 시절에는 손에 달라붙는 것 따위에 신경 써본 사람은 아무도 없지 않은가. 인간이 어떤 대상에만 집중해서 모든 그 외의 것들을 잊어버릴 수 있다는 것은 복잡한 세계 속 인간관계에 존재하지 않는 어린 시절의 특권인 것만 같다.마찬가지로, 우리에게 있어서 여름철의 ‘피서’라는, 더위를 피한다고 하는 행위는 물리적으로 차가운 것을 먹거나 접촉하여 열기를 내리는 것이기도 하지만, 더위에도 불구하고 무언가 그보다 더 집중할 거리를 만들어 더위를 잊게 하는 것이기도 했다. 인간의 감각이란 사실 단순하고 상대적이라, 덥다는 감각에만 집중하고 있으면 온몸에서 느껴지는 더위의 신호들을 예민하게 받아들이지만, 그에 비해 더 집중할 만한 대상을 찾게 되면, 더위는 금방 잊어버릴 수도 있게 된다.책을 읽으면서, 또 무언가 즐거운 일을 하면서 더위를 피한다는, 지금 생각해서는 좀처럼 납득하기 어려운 옛사람들의 감각은 어쩌면 이와 같은 발로일지도 모른다. 더워서 견딜 수 없는 열대야의 밤을 지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입 안에 들어오는 얼음 한 조각일 수도 있고, 더위를 잊어버릴 만큼 집중할 수 있는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좀처럼 더위를 견디기 어려운 여름밤, 책 속의 이야기가 내게 반가운 말을 걸어오는 순간, 나는 그 이야기 세계로 걸어 들어가 피부에 달라붙은 끈끈한 땀의 열기나 한참 전에 꺼진 선풍기 같은 다른 현실적인 것들은 모두 잊어버리게 되는 것이다. 물론, 문자가 보여줄 수 있는 거의 모든 것을 시각으로 보여줄 수 있는 시대, 상상의 힘은 더욱 약화되고 있어 책을 매개로 하는 이야기 세계에는 좀처럼 집중하기 어려워진 것도 사실이긴 하지만 말이다.그래도, 여전히, 더위를 견딜 수 없는 밤에 여전히 생각나는 책들이 남아있다는 사실은 꽤 다행한 일인 것 같다. 어떤 여름날 만큼은 TV를 켜거나 유튜브의 영상을 보기보다는, 수박 한 조각과 맥주 한 잔을 따라 놓고, 책을 읽고 싶은 날이 있는 것이다. 그런 날 만큼은 심오한 내용이 담긴 철학이나 역사에 관한 책이나 예술이나 문학에 관한 책이 아니라, 시리즈로 된 미스테리나 스릴러가 어울린다. 내친 김에 몇 편의 시리즈를 더 볼 수도 있고, 중간에 그만두고 잠을 청해볼 수도 있다.여름밤이라면 탐정의 현란한 추리에 압도되어 종종 밤을 새버리기 일쑤였던 아서 코난 도일의 셜록 홈즈 시리즈나 사건과 추리 모두에서 극적인 상황을 제시해서 입을 벌어지게 만드는 길버트 체이스 체스터튼의 브라운 신부 시리즈보다는, 감정이입을 자극하는 조르주 심농의 매그레 경감 시리즈나 애거서 크리스티의 마플 시리즈가 추리소설의 팬들에게는 더 좋을 것 같다. 미스테리라는 장르의 특성상 머리를 쓰지 않는 경우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겠지만, 언제나 타인의 상황 속에 들어가 문제를 해결하려는 열혈 형사 ‘매그레’ 경감의 뒤를 따라가는 일이나 옆집 아주머니처럼 수더분한 태도로 동네 곳곳을 누비는 ‘제인 마플’의 뒤를 따르는 일은 책을 계속 읽어나가는 것도, 중간에 그만두고 잠으로 빠지는 일에도 부담은 적다.다음날 해야 할 일이 아무 것도 없어 잠들지 않고 깨어 있을 수 있다면, 조금 긴 역사소설책에 손을 대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첫 부분만 잘 넘기게 된다면, 눈을 감아도 천정에 책의 한 장면, 한 장면이 펼쳐지고 위기에 빠진 주인공의 운명이 궁금해지는 탓에 아마 쉽게 다시 잠들기는 어려워질 것이다. 사실 역사 소설이라면, 역시 한민족의 역사를 다룬 것들이 입에 맞는다. 홍명희의 임꺽정이나 황석영의 장길산처럼, 역사의 바깥으로 밀려난 사람들의 호쾌한 모험담을 다룬 것도 좋고, 사실 이제 와서 추천한다는 것이 새삼스럽지만, 이번 여름을 기회로, 조정래의 현대사 3부작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에 도전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우리의 선조들이 이야기인 만큼 크게 어렵지 않게 소설 속에 펼쳐진 세계를 남김없이 내 머리 속에 담아낼 수 있다. 그 세계의 재료가 모두 내 머리 속, 내 경험에서 온 것인 만큼, 책을 읽고 내 머리 속에 만들어진 세계는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문자로 가득한 책을 읽는다는 것은 그렇게, 영화를 보는 것과는 다르다. 저기 내 바깥에 존재하는 스크린에 영사된 영화가 오직 감각만으로 수용 가능한 유사 현실을 보여주는 것과 달리, 책 속에 존재하는 세계는 어느 것이나 독자가 그 속에 존재하는 이미지를 만들어내지 않으면 안 된다. 시각적 이미지가 넘쳐나는 시대에 시각적 이미지를 만들어내지 않으면 안 된다는 고단함 때문에, 책읽기가 점점 힘들어지고 있는 것이리라.어쨌거나, 여름밤은 그렇게 흘러간다. 누군가는 여름밤을 빨리 보내고 싶어서, 누군가는 이 여름밤을 쉽게 보내고 싶지 않아서 못 다 읽은 책을 펴든다. 비록 몇 장 읽지 못하고 그만두기를 반복하면서도 쉽게 책을 아예 덮지는 못하는 것은 분명 아직 어딘가에 그리운 무엇인가가 남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 여름밤은 흘러간다./송민호 홍익대 교수

2019-08-19

님비 vs 핌피

님비(NIMBY)는 Not In My Back Yard라는 영어 알파벳의 각 단어 머리글자를 따서 만든 신조어다. 쓰레기 매립장이나 소각장, 산업폐기물 처리장 등 혐오시설들이 자신이 거주하는 지역에 설치되어서는 안 된다는 지역이기주의를 지칭한다. 이런 현상은 공공정신이 약화됨에 따라 나타난 현상으로 볼 수 있다.이와 반대로 지역 발전을 꾀할 수 있는 체육경기장 시설이나 각종 대형사업을 적극 유치하려 하는 현상은 핌피(PIMFY : Please In My Front Yard)라고 불린다. 지방자치제 실시 이후 우리나라에서도 님비와 핌피 현상이 극도로 심화되어 공공사업 추진에 걸림돌이 되는 등 큰 사회 문제가 되고 있다.최근 님비와 핌피 논란을 불러일으킨 사례로 네이버 데이터센터가 대표적이다. 논란은 네이버가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공세동에 총 5천400억원을 들여 약 13만2천230㎡ 규모 데이터센터를 2023년까지 완공할 계획을 밝히면서부터 시작됐다. 전자파 및 오염물질 발생 등을 우려한 인근 주민들이 반대하는 바람에 네이버는 지난 6월13일 건립계획을 전면 백지화했다.그러나 용인 주민 반대 이후 분위기가 급반전됐다. 네이버가 제2 데이터센터 부지 공개 모집에 돌입하자 전국 지자체에서 ‘러브콜’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부지 공개모집에 경기, 인천, 수원, 전남도(해남/순천), 포천, 새만금, 평창 등 각지에서 신청이 밀려들었고, 심지어 반대했던 용인조차 다른 부지를 제안했다. 데이터센터는 일자리 창출 및 관련 IT기업의 투자 유치, 세수 증대 등의 막대한 경제적 효과를 낼 것이란 기대로 ‘황금알을 낳는 거위’란 평을 들었다. 실제로 네이버는 최근 “제2 데이터센터 부지 공개 모집에 전국 지자체 및 민간사업자 137곳이 1차 의향서를 냈으며, 접수된 최종제안서는 96개”라고 밝혔다. 네이버는 제안 부지에 대해 서류 심사 및 현장 실사 등을 거쳐 9월 말까지 우선협상부지를 선정할 계획이다.경주시가 최종 유치한 방사성폐기물처리장 유치전에서 벌어진 낯뜨거운 님비와 핌피논란이 재연되는 모습에 입맛이 씁쓸해진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19-08-19

극일(克日)로 가는 길

변창구 대구가톨릭대 명예교수·국제정치학반일과 친일, 항일과 극일을 둘러싼 논쟁이 뜨겁다. 이 논쟁의 내용을 분석해보면 이성과 감성이 뒤섞여 있다. 게다가 정치권은 내년 총선을 겨냥해서 이 논쟁에 정치공학적으로 개입함으로써 사회적 갈등을 부추기고 있다. 여당과 야당, 보수와 진보는 모두 하나같이 극일을 주장하고 있지만 그 구체적 인식과 방법에서는 이견을 보이고 있다.그렇다면 우리는 한일 경제전쟁에 어떻게 임해야 하는가?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전쟁 당사국에 대한 정확한 인식이다. 손자병법은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知彼知己 百戰不殆)”고 했다. 일본의 경제력은 세계 3위이고 한국은 11위로서 GDP가 우리의 3배를 넘는다. 인구규모·경제기반·부채 대 자산비율·첨단기술능력 등에서 일본이 한국보다 앞서있다는 것은 ‘불편한 진실’이다. 이것은 강대국인 일본과 중견국인 한국이 전면전으로 치달을 경우 그 피해는 일본보다 우리가 더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이 ‘불편한 진실’은 우리의 극일전략이 ‘감정적 대응이 아니라 이성에 기초해야 한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공영방송인 KBS 앵커가 “이 볼펜은 일제가 아닙니다”라고 하자 KBS 노조가 “공영방송으로서 경솔하고 선동적이다. 방송국에 고가의 일본 장비가 많다고는 왜 밝히지 않는가”라고 비판하였다. 또한 서울 중구청이 1천100개의 ‘No Japan’이라는 반일 현수막을 걸자 시민들은 구청이 주도하는 감정적 반일운동의 부적절성을 강력히 비판함으로써 바로 철거하는 코미디가 벌어졌다. 극일은 말이나 선동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때문에 ‘반일의 가슴’은 뜨거워도 ‘극일의 머리’는 냉철해야 한다.‘극일’은 ‘과거의 시제(時制)가 아니라 미래의 시제’이다. 따라서 극일의 올바른 방향은 과거의 불행한 역사를 반복하지 않기 위한 미래전략의 모색이어야 한다. 우리가 ‘일본이 자행한 과거사’를 문제삼은데 대해서 일본의 경제보복은 ‘한국의 미래를 겨냥’하고 있다는 사실은 섬뜩하다. 역사는 국제분쟁에서 승리한 나라는 언제나 미래를 먼저 준비했던 강대국이었음을 가르쳐 준다. 그럼에도 대통령은 “남북 간의 경제협력으로 평화경제가 실현된다면 우리는 단숨에 일본의 우위를 따라잡을 수 있다.”고 매우 비현실적인 환상을 주장하고 있다. 세계 최빈국의 하나인 북한과의 경제협력을 통해 단숨에 일본을 이긴다는 발상은 놀라울 뿐이다. 정부는 이념이 아니라 실용의 관점에서 4차 산업혁명시대를 선도할 수 있는 첨단기술력을 배양함으로써 ‘아름다운 보복’을 준비해야 한다.극일의 성공여부는 선거와 권력만 생각하는 ‘선동적 정치꾼들’이 아니라 그들을 감시·감독하는 ‘이성적 시민들’에 달려 있다. 최근 성숙한 시민들의 극일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 정치꾼들의 잘못을 일깨워주고 있음은 ‘불행 중 다행’이다. 민주당의 ‘한일갈등이 총선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보고서를 접한 시민들은 경제전쟁마저도 정치적으로 이용하느냐고 꾸짖고 있다.일본이 화이트리스트에서 한국을 배제한다고 발표하던 날 긴급국무회의를 소집한 자리에서 “일본에 다시는 지지 않는다”고 격분하던 대통령이 이제 “감정적 대응은 안 된다”고 말을 바꾸게 된 것도 지식인의 비판과 유권자의 힘이다.정부가 경제문제를 정치이념으로 극복하려고 한다면 사태를 더욱 악화시킬 뿐이다. ‘경직된 이념’에 매몰되면 ‘살아서 움직이는 경제’를 따라잡을 수 없다. 대통령이 광복절 경축사에서 말한 “이념에 사로잡힌 외톨이로 남지 않기를 바란다”는 충고는 보수뿐만 아니라 진보에게도 해당되며, 대통령 자신도 결코 예외가 될 수 없음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2019-08-19

원화가치 하락의 근본적 이유

김학주한동대 교수원화의 가치 하락이 심상치 않다. 한국인으로서는 신경이 쓰일 수 밖에 없다. 자원이 부족해서 수입 의존도가 높은 가운데 석유를 포함한 해외 원자재를 비싸게 사다 써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해외 여행도 부담스러워진다.많은 이들이 지금의 원화가치 하락을 미국과 중국의 갈등에 따른 여파로 생각한다. 그런 부분이 분명히 있기는 하다. 그렇다면 이런 갈등이 가까운 장래에 해소될 수 있을까? 최근 미국 무역대표부는 9월 1일부터 실시 예정되었던 3천억달러 규모의 중국 제품에 대해 일부는 12월 15일로 연기시켰고, 일부 제외된 품목도 있다. 일각에서는 트럼프가 내년 말 대선을 앞두고 이제부터는 ‘끝내기’에 들어갈 것이라고 전망한다. 즉 성과를 챙기기 위해 더 이상의 갈등보다는 타협의 수순에 접어들 것이라는 기대다.과연 그럴까? 그 동안 트럼프가 중국과의 갈등 유발을 통해 얻은 성과를 계산해 볼 때 내년 대선에서 민주당 경쟁자들에 뒤쳐지는 그의 지지율을 뒤집기는 턱 없이 부족하다. 따라서 대선까지 중국과 대결구도를 유지하며 포퓰리즘에 의존하는 편이 트럼프에게 유리해 보인다. 그리고 그런 트럼프를 민주당이 비난하지 못한다. 고된 삶을 사는 미국인들이 불평할 수 있는 창구를 포퓰리즘이 만들어주고 있는데 거기에 잘못 휘말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국가간 교역에 차질이 생기는 한 한국기업이 해외에서 달러를 벌어 오기는 힘든 상황이 된다.그런데 원화가치 하락에는 이런 갈등보다 더 근본적 요인이 있다. 세계적으로 경제 저성장이 고착화된 상황에서 환율을 결정하는 요인이 해당국의 성장 잠재력보다는 “현재의 상태를 얼마나 버티고 유지할 수 있느냐?”, 즉 지속성(sustainability)으로 평가하는 쪽으로 기울고 있다. 한 국가의 지속성을 평가하기 위해 보유 자원을 본다. 예를 들어 천연자원, 인적자원, 모아 놓은 유보 자산, 일본처럼 다른 나라의 자산을 얼마나 보유하고 있는지 등이다. 한국은 뭐가 있을까? 달러를 벌어 올 수 있는 인적자원뿐 아닐까? 문제는 저성장 속에서 한국의 젊은이들이 일해야 할 동기를 잃고 있다는 것이다. 주위를 돌아보면 펀드 매니저들 가운데 똑똑한 많은 젊은 친구들이 집으로 갔다. 자발적으로 회사를 그만 둔 것이다. “예전처럼 펀드가 성장하는 것도 아닌데 무슨 의욕이 있겠는가?” 또는 “왜 남의 자산을 운용해 줘야 하는가? 내 자산을 굴려도 밥벌이가 되는데… 차라리 삶의 질을 찾겠다”는 대답을 한다.과거 성장하던 시절 한국의 잘 교육된 인적자원은 꿈을 갖고 열심히 일했다. 그러나 저성장 환경이 그들을 무력하게 만들어 버렸다. 더 이상 한국은 신나지 않는 동네가 되어 간다. 그래서 한국을 떠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늘어난다. 내국인 외국인 가릴 것 없다. 이것이 원화가치 하락의 근본 요인이다.과거 원화가치 하락의 수혜주가 뭐냐고 물어보면 얼른 수출주를 연상했다. 그러나 이제는 저성장 기조 속에서 그런 성장을 위한 도구보다는 차라리 해외자산을 직접 본다. 또 지속성을 담보할 수 있는 이익의 안정성을 높게 평가한다. 따라서 원화절하의 진정한 수혜주를 배당지급능력이 있는 해외 필수소비재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늘어난다. 대표적인 예가 미국의 콘텐츠 업체들이다. 또한 친환경을 포함하는 사회책임 펀드, 즉 ESG(Environmental, Social and Governance) 관련주도 대안으로 제기된다.심지어 술, 담배, 도박, 마약 등 중독성이 주는 이익의 안정성까지 탐을 내는 펀드가 늘어 날 정도다. 이런 죄악과 관련된 주식(Sin Stock)을 과거 공익펀드에서 모두 팔았었는데 이제 다시 사고 있다. 그 만큼 투자자들은 불확실한 환경 속에서 확실한 것에 굶주려 있고, 자원이 부족한 우리나라는 이런 환경에서 불리하다.

2019-08-19

집착은 미생지신(尾生之信)의 우(愚)를 범한다

강희룡 서예가장자, 도척편(莊子, 盜跖篇)에는 춘추시대 노나라의 미생이라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실려 있다. 내용인즉 사랑하는 여자와 다리 아래에서 만나기로 약속하고 기다렸으나 여자가 오지 않자 소나기가 내려 물이 밀려와도 끝내 자리를 떠나지 않고 기다리다가 마침내 교각을 끌어안고 죽었다는 기록이다. ‘미생지신(尾生之信)’이 만들어진 고사이다. 사기 소진열전(史記, 蘇秦列傳)과 전국책(戰國策), 회남자(淮南子) 등에도 보이는데 소진만 미생의 행동을 신의로 보고 다른 곳에서는 모두 이 이야기를 작은 명분에 집착하는 고지식하고 융통성 없는 예로 들고 있다.전국시대의 종횡가로 이름이 난 소진은 연나라의 소왕을 설파할 때에 이 이야기를 예로 들어 자신의 신의를 강조했다. 그러나 장자는 도척편에서 공자와 대화를 나누는 도척의 입을 빌어 미생의 융통성 없고 어리석음을 다음과 같이 통박하고 있다.‘이런 인간은 제사에 쓰려고 찢어발긴 개나 물에 떠내려가는 돼지, 아니면 쪽박을 들고 빌어먹는 거지와 다를 바 없다. 쓸데없는 명분에 빠져 소중한 목숨을 가벼이 여기니 진정한 삶의 길을 모르는 놈이다’라고 기록하고 있다.전국책에서는 미생과 같은 신의는 단지 사람을 속이지 않는 데 불과할 따름이라고 하고, 회남자에서도 미생의 신의는 차라리 상대방을 속여 순간의 위험을 피하고 후일을 기하는 것만 같지 못하다고 했다. 송양지인(宋襄之仁)과 일맥상통하는 말이다.사람들 삶의 과정이 대체적으로 겉으로 꾸밈이 많은 오늘날 미생과 같은 행동은 비극을 봄으로써 마음에 쌓여 있던 우울함이나 불안감, 긴장감 따위가 해소되고 마음이 정화되는 잠깐의 카타르시스는 될지 모르지만, 참다운 삶의 도리를 알고 인간 본성으로 돌아가기에는 너무 고지식하고 융통성이 없는 행동이라고 할 수 있다.큰 흉년 때 자신에게 혀를 찼다는 이유로 그가 주는 구호 음식을 거절하고 굶어 죽은 제나라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상대가 일단 사과를 했으면 그냥 받아먹었어도 되는데 너무 소심하게 예의를 따졌다고 증자가 부정적 평가를 내린 것도 그런 맥락에서다. 신의와 예의와 명분은 유가의 절대적인 가치이다. 그러나 지나치게 경직된 사고로 흘러 중용의 도를 해치는 것은 크게 경계했다.공자는 ‘군자는 무조건적으로 고집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오직 그 상황에서 가장 의로운 선택인가가 판단의 전제였을 뿐이었다. 예기 단궁(檀弓)에 보이는 고사인데, 이 고사는 두 가지 가치를 보여준다. 하나는 아무리 중요한 원칙이라도 상황에 맞게 권도(權道), 즉 융통성을 부려야 한다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목숨을 버리는 한이 있더라도 현실에 타협하거나 비굴하게 굴지 않는다는 것이다.지금 우리나라는 국내외적으로 전례 없이 큰 갈등과 고립된 외교를 겪고 있다. 대통령이 이번 광복절 경축사를 통해 거듭 강조한 ‘평화경제론’과 이례적으로 통일의 시점을 제시하고, 통일 이후 한국의 밑그림을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이 대북 메시지를 던진 지 불과 24시간도 되지 않은 시점에 북한은 문 대통령을 향해 심한 조롱 섞인 말 폭탄과 미사일 발사로 답했다.‘남한 패싱’을 노골화한 북한이 남북 관계의 창구를 닫고 저 혼자만의 길을 가겠다고 밝힌 것이다. 풀리지 않고 있는 일본과의 경제대립이 그렇고, 북한과의 관계도 하나도 화해의 진전 없는 현실에서 한반도가 통일이 된다면 세계 경제 6위권이 될 것이라는 환상과 ‘평화경제’라는 모호한 단어를 국민 앞에 들고 나와 자화자찬하는 정부와 여당도 그렇다. 미생지신이나 송양지인 같은 우매한 생각은 결과적으로 국민들을 도탄 속으로 몰아넣을 것이다.시리아 난민을 돕기 위한 TV 광고가 나온다. 영화 ‘국제시장’속의 자유를 향해 남쪽으로 향하는 흥남부두 피난민의 처절한 모습도 함께 떠오른다.

2019-08-19

책이 있는 구석방보다 나은 곳은 없더라

“나는 산 정상에서 내 위로 번개가 먹구름 가운데 반짝이며 갈라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초록빛 숲, 평야, 강과 호수 마을들을 보았습니다. 세이렌의 유혹하는 노래들을 들었으며 양치기의 굵은 고동 소리를 들었습니다. 하늘에서 내려와 신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악마들의 날개 끝을 만져보았습니다.당신의 책을 통해서 나는 끝도 없는 절망의 수렁에 빠진 적도 있고 기적을 행하기도 했으며 한 마을을 불태우고 살육했고 새로운 종교를 설파했으며 전 세계를 정복하기도 했습니다. 책들을 통해 나는 지혜를 얻었습니다.고금에 걸쳐 인간들이 만들어낸 불안한 사상들이 내 머릿속에 작은 덩어리로 압축되어 있습니다. 나는 당신들 중 누구보다도 내가 현명하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중략) 당신들이 살아가면서 의존하는 모든 것들에 대한 나의 진정한 경멸을 표현하기 위해, 나는 내가 한때 천국의 축복처럼 여겼던 200만 루블의 재산을 포기할 것입니다. 재산을 포기하는 방법으로 나는 계약의 규칙을 어기기 위해 정해진 마감 시간 5분 전에 이곳을 떠날 것입니다.”변호사는 약속대로 11시 55분에 탈옥을 감행하고 은행가는 쪽지를 금고에 넣어 보관하는 것으로 체호프 단편 ‘내기’는 여운을 남긴 채 끝납니다.책을 통해 사람은 변합니다. 마르틴 발저는 ‘우리는 우리가 읽은 것으로 만들어진다’고 했습니다.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젊은 변호사의 15년을 묘사하듯 이렇게 말합니다. “책을 읽으면서 단단하든 부드럽든 단어들의 껍질을 깨고 그 단어 속으로 들어가 그곳에 응축되어 있는 의미가 자신의 가슴속에 폭발하게 해야 하는 것이다.”책은 생각을 서서히 변화시킵니다. 일정 임계량을 넘는 순간 젊은 변호사처럼 폭발적인 진보가 일어납니다. 그 임계점은 1천 권일 수도, 3천 권일 수도, 1만 시간 의식적 연습일 수도 있습니다. 책을 손에서 놓지 않는 삶을 꿈꾸어 봅니다. 책으로 대화하고 책으로 교감하고 성장하는 빛나는 나날들이 우리 앞에 놓여 있습니다. 책이 있는 구석방에 나를 유폐시키고 진정한 삶의 가치와 더불어 행동하는 양심으로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될 그대 용기에 큰 박수를 드립니다. 세상 도처에서 In omnibus 쉴 곳을 찾아보았으되, requiem quaesivi, 마침내 찾아낸, et nusquaminveni 책이 있는 구석방보다 nisi in angulo 나은 곳은 없더라 cum libro -토마스 아 켐피스 Thomas 00E0 Kempis/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대표

2019-08-19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의 눈물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 정치학8월 14일 ‘기림의 날’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을 기억하자는 날이다. 1991년 8월 14일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고(故) 김학순 할머니의 실명 증언한 날을 기념하여 2017년 12월 이날을 국가 기념일로 지정했다. 지난해에 이은 기념식 행사 장면을 보니 여성가족부 장관과 정치인들이 참석하고 아직 생존해 있는 피해 할머니도 여러 명 참석하였다. 낯익은 얼굴의 이용수 할머니가 소복차림으로 앞줄에 앉아 눈물 짓는 모습도 보였다. 일본 군속명부에 정식 등재되어 있는 김복동 할머니도 올해 세상을 떠났다. 일본의 한국에 대한 경제 제재 조치로 한일 관계가 뒤엉킨 상황에서 치러진 이번 기념식은 우리에게 많은 의미를 남기고 있다.일본군 피해 당사자인 이용수 할머니는 대구에 살아 계신다. 그는 일본 정부의 진정한 사과 없는 위안부 합의는 무효라고 선언하면서 활발한 인권 운동을 펼치고 계신다. 1927년 생 92세인 그는 아직도 수요 집회에 참여하고 있다. 그는 도쿄뿐 아니라 뉴욕도 여러 차례 방문하여 아베 정권의 부당성을 알리고 일본정부의 공식적인 사과를 요구하고 있다. 전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는 한·중, 베트남 등 약 20만 명으로, 추정되는 대한민국의 등록된 피해자는 238명이며, 2019년 5월 현재 21명이 생존해 있다.일본은 아직도 위안부의 강제 동원은 없었다고 억지를 쓰고 있다. 지난 7월초 연해주 학술행사에서 이용수 할머니의 용기 있는 증언을 들을 수 있었다. 할머니의 증언은 아베 정권의 주장을 근본적으로 뒤집고 있다.“나는 1928년 12월 13일 생입니다. 우리 나이로 92살입니다. 나는 15살인 1943년 일본군에 끌려가 대만 신숙에서 3년간 고통을 겪다 해방 후 1946년 가까스로 풀려난 사람입니다. 그 때를 다시 기억해 봅니다. 내가 끌려간 그날 밤 여자 아이와 군인이 나의 방 뒤의 봉창으로 들여다보며 나오라고 손짓했습니다. 그때 나는 장난하는 줄 알고 몰래 마루에 나와 앉아 있었는데 여자 아이와 군인이 갑자기 들어닥쳤습니다. 나는 나와 비슷한 또래의 아이들 5명과 어디로 가는 줄도 모르고 배를 탔습니다. 취직시켜 준다는 말에 그날 밤 갑자기 끌려간 것입니다. 어린나이에 나는 너무 몰랐습니다. 그 길로 끌려간 곳이 대만 신죽(新竹)의 일본 특공대부대인 것을 뒤늦게 알았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곳은 대만 일본 가미가제 부대였습니다. 그곳에서 군인 방에 들어가지 않는다고 머리채를 잡혀 끌려가고 다리를 칼로 치고 죽이고 전기고문도 당했습니다.…… ”이러한 수많은 피해자들의 증언에도 불구하고 일본 정부는 공식적으로 사과하지 않고 있다. 위안부 문제와 강제 징용 문제가 일본의 한국에 대한 경제 제재로 연결되고 있으니 더욱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 극우의 아베 정권은 한국 피해자들의 사죄와 배상 요구에 대해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면서 억지를 쓰고 있다. 아베 측근들은 강제 위안부는 한 명도 없으며 심지어 한국에는 본래 기생문화가 있었고 위안부들은 경제적 이득을 위해 종군했다고 강변하고 있다. 아베는 2015년 박근혜 정권 말기 한일 간의 위안부 문제의 ‘불가역 협정’으로 모든 것이 끝났기 때문에 문재인 정권은 외교 관례를 어겼다고 비난한다. 과거의 고노 담화를 뒤집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한일 간의 합의를 정부가 파기한 것은 정당하지 않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일제 강제 징용의 대한민국 법원의 판결처럼 국가 간 협정에도 불구하고 개인의 법적 구제 절차는 마련되어야 한다는 것이 국제법의 상식이다. 문재인 정부는 2018년 할머니들의 동의와는 무관한 10억 엔짜리 화해치유재단을 해체해 버렸다. 시민들은 평화의 소녀상 앞에서 27년간 1천400회의 수요 집회를 계속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민족적 반일 감정이 아니다. 미국과 일본의 양식있는 시민들까지 이에 동조하고 있다. 아베 정권은 지금이라도 위안부 문제에 관한 진정한 사과가 있어야 한다. 그것이 한일 간 화해의 첫 단추이기 때문이다.

2019-08-18

다산(茶山)의 깊이 읽기

김현욱 시인휴식(休息)이란 멈추는 것이다. 쉼이란 내려놓는 것이다. 방학이 놓을 방, 배울 학(放學)이듯이. 영어 베케이션(vacation), 프랑스어 바캉스(vacace)의 어원은 라틴어 바카티오(vacatio)이다. ‘무엇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 ‘해제, 비움’을 뜻한다. 휴가(休暇)란 나무에 기대어 사람이 쉬는 모양이다.나무에 기대어 쉬는 것도 좋지만, 폭염에 가장 좋은 휴가는 시원한 도서관에서 쉬는 것이다. 그동안 못 봤던 책과 잡지들이 나무처럼 곁에 있다. 방학동안 포은도서관에 사람들이 붐비니 반갑다. 아이들과 함께 온 부모들은 더 반갑다. 빈자리 찾기가 쉽지 않지만, 아이와 어른들이 붐비는 도서관은 내 맘을 기쁘게 한다. 한 나라의 미래는 도서관에 있다. 교육감과 단체장들은 공공도서관 투자만큼은 아끼지 말아야 한다.휴가 중에 도서관에서 읽은 책 중에 정민 교수의 다산의 지식경영법이 가장 볼 만 했다. 정민 교수는 다산을 조선 최고의 지식경영자라고 칭했다. 다산이 남긴 저서는 500여권에 이른다. 시시껄렁한 책이 아니다. 목민심서, 경세유표, 흠흠신서 등 후손에게 끊임없이 회자되는 명저들이다. 세계사를 뒤져봐도 다산보다 뛰어난 저술가는 찾기 쉽지 않다. 도대체 다산은 어떤 방법으로 그런 위대한 일을 해낸 것일까?다산의 지식경영법에 따르면, 다산은 정독(精讀), 질서(疾書), 초서(抄書) 세 가지 독서법을 실천했다고 한다. 정독은 낱말과 문장, 전후 맥락을 아주 세세하게 뜻을 새겨가며 읽고, 모르는 것이 있으면 그 근본을 알 때까지 밝히는 것을 뜻한다. 다산은 아들 학유에게 그 방법을 편지로 전했다.“예를 들어 『사기』의 「자객열전」을 읽는다고 치자. ‘조(祖)를 마치고 길에 올랐다’라는 한 구절을 보고 “조가 뭡니까?”하고 물으면, 선생님은 “전별할 때 지내는 제사다”라고 하실 것이다. “하필 할아버지 조 자를 쓰는 것은 어째서인가요?”라고 물으면, 선생님은 “잘 모르겠다.”고 하시겠지. 그런 뒤에 집에 돌아오거든 사전을 뽑아다가 조 자의 본래 의미를 살펴보아라. 자전에서 조(祖) 자를 찾아보면 뜻밖에 ‘길제사 지낼 조’라는 뜻이 나온다.풀이를 찾아보면 “고대에 먼 길을 떠날 때 행로신(行路神)에게 안녕을 비는 제사를 지내는 일”이라고 되어 있다. 그래도 할아버지 조 자를 쓰는 까닭에 대한 궁금증은 여전히 풀리지 않는다. 여기서 한 번 더 나가야 한다. 더 자세히 찾아보면, 먼 옛날 황제의 아들 누조(累祖)가 여행을 좋아하다가 길에서 죽었다는 기록과 만나게 된다. ‘조(祖)’란 조상이 아니라 바로 누조의 귀신을 위로하기 위해 생긴 제사임을 그제야 알게 된다. 마음이 후련해진다.또 『통전』이나 『통지』, 『통고』 등의 책에서 조제(祖祭) 지내는 예법을 찾아보고, 한데 모아 차례를 매겨 책을 만든다면 길이 남는 책이 될 것이다. 이렇게만 한다면 전에는 한 가지 사물도 모르던 네가 이날부터는 조제의 내력을 훤히 꿰는 사람이 될 것이다. 주자의 격물(格物)공부도 다만 이와 같았다. 오늘 한 가지 사물을 궁구하고, 내일 한 가지 사물을 캐는 것도 또한 이처럼 시작하는 것이다. 격(格)이란 밑바닥까지 다 캐낸다는 뜻이다. 밑바닥까지 다 캐지 않는다면 또한 유익되는 바가 없다.”(학유에게 부침(寄遊兒) 9-40)세세하게 뜻을 새겨가며 읽다가 모르는 것이 나오면 그 근본을 알기 위해 밑바닥까지 다 캐내는 독서법이 바로 ‘정독, 깊이 읽기’이다. 스마트폰의 영향으로 요즘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장문 읽기를 버거워한다. 단문과 축약, 이모티콘이 횡행하는 시대에 깊이 읽기는 울림이 크다. 학교나 도서관에서 다산의 깊이 읽기를 실천하는 방법은 ‘인문고전 낭독교실’을 여는 것이다.

2019-08-18

15년 삶을 건 내기

독방에 홀로 있는 변호사는 결국 책을 손에 잡기 시작하죠. 첫해에는 가벼운 소설들을 읽습니다. 2년차에 접어들면서 고전을 읽기 시작합니다. 5년째에는 다시 피아노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고, 입에 대지 않던 와인을 요청합니다. 6년 반이 흐르자 그는 외국어와 철학, 역사를 공부합니다. 10년이 지나자 변호사는 일 년 내내 신약 성서만을 읽습니다. 마지막 2년 동안 그는 온갖 종류의 책을 닥치는 대로 읽습니다. 자연과학, 고전문학, 화학, 의학, 심리학, 생리학, 천문학, 물리학, 역사 등 인간 지성이 닿을 수 있는 모든 분야의 책을 섭렵합니다.그사이 은행가는 부주의로 인해 재산을 거의 날립니다. 15년이 다가오자 초조해진 은행가는 마감 하루 전에 변호사를 죽이고 200만 루불의 채무에서 벗어날 흉계를 꾸밉니다. 감시자의 눈을 피해 조용히 변호사의 방에 잠입한 은행가는 뼈만 남은 채 앙상하게 말라 꼼짝 않고 책상 앞에 앉아 잠들어 있는 그를 발견합니다. 훅 불면 날아갈 듯 가벼운 변호사를 침대에 옮긴 후 베개로 눌러 살해하는 것은 식은 죽 먹기처럼 보입니다. 범행을 저지르려는 순간 은행가는 책상 앞에 놓인 작은 쪽지 하나를 발견하지요.“내일 정오가 되면 나는 자유다. 그러나 나는 마감 5분 전에 이곳을 떠날 것이다. 지난 15년의 시간을 통해 나는 당신들이 추구하는 물질적 세계의 모든 것을 경멸하게 되었다. 나는 내 삶의 가치관이 완전히 바뀐 것을 입증하기 위해 200만 루블을 내 자유 의지로 포기함으로써 증명해 보이련다.”15년 책 읽기를 통해 변호사는 삶을 바라보는 시각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은행가는 눈물 흘리며 그의 이마에 키스하고 그곳을 빠져나갑니다. 변호사가 남긴 쪽지 내용은 안톤 체호프의 명문장으로 가득합니다.15년간 나는 세상과 삶에 대해 열정적으로 책을 읽었습니다. 비록 땅이나 사람을 직접 느끼지는 못했지만, 당신이 준 책들을 통해 나는 향기로운 와인을 마시고 노래를 부르고 숲에서 사슴과 멧돼지를 사냥했으며 여인들을 사랑했습니다.시와 천재적인 영감의 마술에 의해 창조된 모든 아름다운 것들은 구름처럼 신비롭고 영묘했으며 밤마다 나를 찾아와서 정신을 자극하는 놀라운 이야기들을 내 귀에 들려주었습니다. 책을 통해 나는 엘부르스 산맥과 몽블랑 산을 올랐으며 거기서 해가 뜨는 것을 보고 저녁에는 태양이 황금색과 진홍색으로 하늘과 바다 그리고 산봉우리를 뒤덮는 것을 감상했습니다. (내일 편지에 계속)/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대표

2019-08-18

제2의 천안문 사태

1978∼1992년 중국의 최고 실권자였던 등샤오핑은 오늘날 중국의 근대화를 이룬 정치 지도자다.‘작은 거인’이라는 별명을 가진 그는 흑묘백묘론을 앞세워 중국의 개혁개방 정책을 성공적으로 추진한다.자본주의든 공산주의든 중국 인민이 잘 살면 그것이 최고라는 사상으로 중국의 오늘을 있게 한 것이다.그의 개방 정책은 오늘날 중국을 G2 국가로 성장시킨 배경이 됐다는 점에서 그는 긍정적 지도자로 평가받는다.그러나 그의 개방 정책이 한편으로 중국의 민주화 열기를 끌어들였고, 이를 진압하는 선봉에 그가 섬으로써 그는 긍정과 부정의 평가를 동시에 받는 인물로 남아 있다.그의 개방 정책으로 일어난 중국에서의 민주화 요구는 급기야 천안문 사태로 발전한다.부정부패 척결과 민주화를 요구한 수십만 군중을 향해 등샤오핑은 전차와 장갑차를 동원, 진압에 나선다. 무차별적으로 쏘아 댄 최루탄과 실탄 등으로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한다.1989년 당시 중국 정부의 공식 발표는 사망자 200명 정도다.하지만 항간에서는 수천명, 영국정부의 외교문서를 인용한 언론 보도에서는 1만명이 넘는 사람이 숨진 것으로 전해졌다.올해 6월로 중국의 천안문 사태는 발발 30년째가 된다. 그러나 오늘날 많은 중국의 젊은이와 지식인에게 천안문 사건은 잊혀진 과거사일뿐이다.중국 정부가 빠른 경제성장에 집중하면서 중국인 머리에는 천안문 사태는 지워지거나 잘못된 민중 항거정도로 기억되고 있기 때문이다.공산당인 중국에서의 민주화는 여전히 미완의 숙제라 할 수 있다.송환법으로 촉발된 홍콩의 시위사태가 천안문 사태 30년을 기점으로 더욱 폭발하고 있다.중국 인민군의 홍콩 접경지 집결 등 중국 정부의 대응 움직임도 심상찮아 국제사회가 촉각을 곤두세우게 한다.중국으로 반환된 땅이라 하지만 홍콩의 국제적 위상은 여전히 자본주의 가치 존중과 인권의 보루라는 상징성에 있다.만약 만에 하나라도 무력진압이 진행되면 국제사회의 경제 질서는 심대한 타격을 입을 수 있다.홍콩경제가 예측불허의 충격에 빠져들 수 있는 것이다. 국제사회는 홍콩사태에 대한 중국의 접근 방식을 눈여겨보고 있다. 제2의 천안문 사태가 일어날까 봐서다. /우정구(논설위원)

2019-08-18

‘조국 청문회’ 관전법

안재휘 논설위원차기 법무부 장관으로 지명된 조국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동네북 신세다. 야당이 벌떼처럼 일어나 오만 의혹들을 밤낮을 가리지 않고 까발리고, 이 나라 언론들이 피를 본 상어처럼 특종 경쟁에 돌입했다. 법무부 장관이 어디 만만한 자리이던가. 이 나라 법치를 온통 책임지는 행정부의 으뜸 자리이니 관심을 기울이는 일이 이상할 까닭은 없다. 하지만 지금 펼쳐지고 있는 따따부따는 가히 대선주자 후벼 파기 수준이다.결론부터 말하면 야당이 무슨 푸닥거리를 하든, 문재인 대통령은 조국을 법무부 장관으로 임명할 개연성이 높다는 사실이다. 이번 청문회도 결국은 태산명동서일필(泰山鳴動鼠一匹)로 끝날 가망이 높다. 언론이 경쟁적으로 벌이는 취재 경쟁은 결과적으로 조국을 도와주고 있을지도 모른다. 예방주사를 놔주니 면역성을 기르는 데도 좋고, 청문회를 할 즈음이면 김이 다 빠져서 더 좋을 수도 있다. 민심을 돌아보니 조국의 법무부 장관 임명강행을 의심하는 사람은 없다. 그가 민정수석을 하면서 공직자에 대한 제대로 된 검증작업 한 번 제대로 못 한 무능 따위는 이미 까마득히 잊은 표정이다. 지금 시점에 오히려 관심은 과연 야당이 그동안 못 밝혀낸 중대한 하자 한줄기라도 더 찾아줄 것인가 말 것인가 하는 대목이다.정말로 걱정되는 것은 제1야당을 비롯한 야당이 또다시 이 중차대한 청문회를 구닥다리 ‘호통’과 ‘어깃장’ 쇼로 마무리하지 않을까 하는 예감이다. ‘송곳 검증’이네, ‘메가톤급 폭로’네 하면서 빈 깡통이나 요란하게 두드리다가 종 치고 막 내리는 꼴이 나지 않을까 하는 우려다.돌이켜보면, 국회에서 벌어진 인사청문회가 선진국의 수준에 닿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더욱이 제아무리 ‘부적격’ 딱지를 붙여도 대통령이 마음대로 할 수 있게 돼 있는 제도하에서 국회 ‘인사청문회’는 유치한 ‘통과의례’처럼 돼버린 지 오래다. 왜 그럴까. 궁극적으로 국회 청문회가 민심에 닿지 못하기 때문이다. 청문위원들의 낮은 의식과 역량 부족이 가장 큰 원인일 것이다.청문회(聽聞會)에 쓰는 문자는 ‘들을 청(聽), 들을 문(聞)’자로 구성돼 있다. 영어로도 ‘히어링(Hearing)’이다. 그런데 우리의 국회 청문회를 보면 청문회가 아닌 문문회(問問會)로 끝내는 경우가 다반사다. 대략 청문위원으로 나선 국회의원의 묻고 또 묻는 ‘원맨쇼’ 형태로 펼쳐진다. 어쩌다가 답변을 좀 하려고 하면 청문위원이 말을 끊고 시간이 없다고 윽박지른다. 물론 여기에는 청문위원에게 할당된 시간에 ‘답변시간’을 포함하는 결정적인 결점이 있다. 청문회의 본질적 목적을 달성하려면 ‘질문시간’만 할당해야 하는데, 왜 안 고치는지 참으로 모를 일이다. 야당이 ‘조국 청문회’를 또다시 관습대로 해나간다면 무조건 실패다. ‘어쨌든 임명될 것’이라는 예단을 전제로 청문회 자체를 보이콧 한다면 이야말로 하지하책(下之下策)이 될 것이다.조국 후보자에게 제기되고 있는 의혹은 사노맹 전력·사모펀드·동생의 위장 이혼과 편법 채무 문제 등 방대하다. 그러나 솔직히 야당이 결정적 허물을 밝혀내리라는 기대는 희박하다. 틀림없이 야당 청문위원들은 처음부터 흥분할 것이고, 중간에 논리가 부족하면 고함을 칠 것이고, 여차하면 파행으로 치달을 것이기 때문이다.풍부한 정보를 움켜쥐고 의혹의 내용을 조곤조곤 따져 물어 ‘듣고 또 들음’으로써 국민이 진실을 좀 더 알게 하는 모범적인 청문회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 아니 이번 청문회를 우리 그릇된 청문회 문화를 확실히 바꿔 낼 계기를 만들어낼 수는 없을까. 알고 물어야 한다. 답변을 들어야 한다. 목소리를 낮추어 짧게 묻고 또 물어야 한다. 국민이 듣고 싶은 것을 들을 수 있게 유도해야 한다. ‘국회 청문회의 혁신’을 바라는 국민의 희망이 이번만큼은 헛되지 않기를 바란다.

2019-08-18

희망경산의 내비게이션 ‘경산발전 10대전략’

최영조 경산시장우리는 지금 어느 지자체 할 것 없이 4차 산업혁명과 인구문제라는 도전을 마주하고 있다. 인구가 증가하고 있는 경산이지만 지역 내 균형 발전과 통합, 도시의 정체성 유지라는 새로운 과제를 해결해야 하는 숙제를 안고 있다.경산은 일찍이 1990년대 들어 산업단지를 조성하고 기계금속, 전기전자, 자동차부품 업종의 기업들이 모이면서 ‘산업도시’로 변모하기 시작했다. 인구가 증가하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다. 산업단지는 2016년 3개 단지 356만㎡로 확대되었고 2022년까지 경산지식산업지구와 경산 4일반산업단지, 화장품단지 등의 조성이 완료되면 산업단지 1천21만㎡ 시대가 열리게 된다.지난 2016년 1월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이 4차 산업혁명을 처음 의제로 제시하는 것을 보면서 자칫 머뭇거리다가는 뒤처질 수 있겠다는 위기의식을 느꼈다. 지역의 미래를 고심한 끝에 나온 것이 ‘경산발전 10대 전략’으로 10개 대학의 11만 명의 창의 인력, 170여개 부설연구소, 1천21만㎡ 산업단지, 3천500여개 기업체 등의 지역 강점을 극대화해 경산의 미래를 열어가고자 하는 전략이다.경산발전 10대 전략은 희망산업 5대 전략과 희망정책 5대 전략으로 구성된다. 희망산업 5대 전략은 4차 산업혁명에 직접 대응하는 대책으로서 4차 산업혁명 선도도시, 청색기술 중심도시, 美-뷰티도시, 휴먼의료도시, 청년희망도시 등이다. 이를 위해 첨단 복합신소재산업 분야, 스마트자동차 분야, ICT 전자 분야, 소프트웨어 분야 등에서 4차 산업혁명 전략과제를 발굴하고 국책사업 유치를 지속적으로 노력해 왔다.그 결과, ‘탄소복합 설계해석 기술지원센터 구축사업’, ‘생활소비재 융복합산업(패션테크) 기반 구축사업’, ‘도심형 자율주행 트램부품/모듈 기반조성사업’ 등 핵심선도 사업들이 국책사업으로 선정되었다. 또 2016년부터 화장품산업을 역점을 두어 추진해 지역 내 화장품 기업을 지원하는 글로벌 코스메틱비즈니스센터가 내년 개소를 앞두고 있고, 여천동 일원에 15만㎡ 규모로 화장품 특화단지가 곧 착공될 예정이다.4차 산업혁명 시대의 미래 선도 사업으로 게임·방송·만화 등의 콘텐츠산업을 역점적으로 육성하고 있다. 경북글로벌게임센터를 중심으로 다양한 게임산업을 지원하며 1인 미디어 크리에이터 양성사업, 웹툰 창작체험관과 전문교육을 통한 청년 일자리 사업도 추진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중산지구 등 명품 정주 여건과 문화생활 기반을 꾸준히 확충해 매년 3천명 정도의 인구가 계속 증가하고 있다.그러나 도시의 규모가 커지면 균형 발전과 통합이라는 또 다른 과제가 나타난다. 이를 해결하고자 하는 것이 바로 희망정책 5대 전략으로 착한 나눔도시, 행복건강도시, 창의문화도시, 중소기업경제 특별시, 스마트농업도시 등이다.나눔 문화의 의미 있는 지표의 하나인 ‘착한 가게’는 2009년 1호 가입을 시작으로 2018년 460호를 달성하였고, 올해는 25개소가 신규 가입했다. 지난 5월 ‘글로컬 6차산업 창업문화센터’가 개소하고 활력 넘치는 농촌 만들기 활동에 들어갔다. 이 센터는 6차 산업 창업을 지원하고, 지역의 다양한 농산물을 활용한 상품 개발 등 다양한 창업문화 조성에 앞장선다.압독국, 삼성현(원효, 설총, 일연), 자인단오제, 갓바위 등 경산의 역사문화도시로서의 가치를 높이는 사업, 경산 센트럴파크 등 경산을 고품격 문화를 가진 역사문화도시로서의 가치를 높이는 사업들도 힘써 추진하고 있다. 압독국 유적전시관은 2024년까지 건립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삼성현역사문화공원은 역사와 문화 생태가 어우러진 다목적 복합 관광시설로 청소년들에게 법고창신(法古創新 옛것을 본받아 새로운 것을 창조함) 교육의 장이 되고 있다.도시가 커지면 도시의 효율과 속도 즉, 사통팔달 도로망 역시 중요한 문제가 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대구도시철도 1호선 하양 연장 사업이 2022년 개통을 목표로 본격 추진되고 있다. 구미∼대구∼경산을 잇는 대구권 광역철도 사업 또한 올 하반기에 본격 공사를 시작한다. 경산지식산업지구와 경산 일반산단들을 연결하는 국도 대체 우회도로 개설공사도 실시설계에 들어간다.이와 함께 출산 육아의 공공성 강화, 일자리 창출, 도시재생, 농촌 6차산업도 차근차근 추진되고 있다. 지난 4월에 우리 시에서 열렸던 제57회 경북도민체육대회는 역대 최고의 대회로 평가받은 대회였다. 모두가 참여하며 화합체전·문화체전으로 끝난 이 대회를 통해 경산시는 외형성장만이 아니라 내실도 탄탄히 발전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이 모든 것을 한마디로 요약해 ‘희망경산 10년 대계’라고 할 수 있다. 그 핵심 전략이 경산발전 10대 전략이며 28만 시민이 모두 행복한 희망 경산으로 가는 원동력이다.

2019-08-18

숨비소리

송귀연 수필가휘-이유! 휘-이유!이랑사이로 가쁜 휘파람소리가 들려온다. 콩밭 매는 할머니가 굽은 허릴 펴면서 내는 소리다. 이랑 사이로 묻혔다 다시 일어서길 반복하는 모습이 꼭 자맥질하는 해녀 같다. 둥글면서 깊고 애절하면서 먼 소리는 맞은 편 산봉우리에 닿았다 메아리로 되돌아오곤 했다. 해가 서산마루에 걸릴 때쯤 김매기는 끝났다. 나는 준비해간 호야를 앞세우고 할머니와 함께 어둑해진 들길을 걸어 돌아왔다.할머니는 꽃다운 열다섯 나이에 할아버지와 혼례를 치렀다. 원삼족두리 차려입고 초례청 너머로 훔쳐본 신랑이 어찌나 준수하던지 내심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다고 한다. 때문에 시조부모 자리끼시중도 힘들지 않게 해낼 수 있었다. 무거운 밥상을 들고 하루에도 수십 차례 샛문을 드나들었지만 신랑 얼굴을 쳐다볼 때마다 힘이 불끈 솟았다고 했다. 그러나 그런 할머니의 행복은 오래가지 못했다.잠수하는 해녀가 물 위로 떠올라 참았던 숨을 휘파람처럼 길게 내 쉬는 게 숨비소리다. 떼 지어 물질하는 해녀들이 물 위로 떠오르면서 내쉬는 소리가 해변을 가득 메웠다. TV에서 보았던 고래 떼 같았다. 고래는 바다 속을 헤엄치다 숨이 차면 물 밖으로 나와 크게 숨을 쉬고 다시 물속으로 들어간다. 숨비소리는 물속에서 참았던 숨을 내쉬는 소리이기도, 다시 물속으로 들어가기 위한 준비이기도 하다. 들숨과 날숨의 수많은 숨비소리가 있고서야 그날의 수확을 망태기에 가득 담아 물 밖으로 나온다.할머니 삶에는 가슴을 짓누르는 커다란 고통이 있었다. 술과 노름으로 증조부 때의 가산을 거의 탕진해버린 할아버지는 해방과 함께 예전의 부(富)를 되찾겠다며 현해탄을 건너갔다. 그때 할머니 나이 사십 대 중반. 하나 뿐인 사위마저 데려간 할아버지는 세월이 흘러도 감감무소식이었다. 하는 수 없이 집안의 권유로 작은댁 큰아들이었던 아버지를 양자로 들였다. 홀로 사는 딸이 어렵게 사는 것이 늘 마음에 걸렸던 할머니는 아들내외 몰래 적잖이 도움을 주었다. 가뜩이나 어려운 살림살이에 시누이까지 돌봐주는 할머니가 못마땅했던 엄마와 자주 다퉜다. 그런 날이면 할머니는 잠을 뒤척이며 한숨을 푹푹 내리쉬었다.망부석이 된 당신의 마음은 풍파 일어나는 바다 같았지만 겉으론 늘 웃음을 잃지 않았다. 수십 년 째 할아버지로부터 소식이 없자 주위에서 재혼을 권하기도 했다. 그러면 “이 무슨 소리고?”라며 심하게 역정을 냈다. 할머니는 할아버지가 반드시 살아 돌아온다고 믿었다. 가끔씩 할아버지 얘기를 할 때의 할머니는 열다섯 살 연지 곤지 찍은 새악시처럼 두 볼이 빨개졌다. 언제나 웃음으로 우리를 다독였지만 그 근심의 바다 속 수심을 나는 알지 못했다.일본에서 인편으로 할아버지 소식이 온다는 전갈이 왔다. 온 집안사람들이 사랑채에 모여 기대와 희망으로 들떠 있었다. 낯선 남자가 검정양복차림에 사각가방을 들고 마당으로 들어섰다. 마루 끝에서 기다리던 시선들이 일제히 그 사람을 향했다. 할아버지가 돈을 벌기 위해 흘러들어간 곳은 조총련산하였다. 할아버지는 돌아갈 수 없는 고향이며 할머니 얘기를 자주했다고 한다. 그 얘기를 듣자마자 고모는 쓰러졌고 할머니는 긴 침묵 사이로 담뱃대만 땅땅 두드렸다. 밤색 가방 안에는 생전에 할아버지가 쓰시던 안경이며 낡은 옷가지가 몇 벌 들어 있었다.어떤 위로도 태산 같은 할머니의 슬픔을 덜어줄 수 없었다. 둘러 선 사람들은 저마다 한마디씩 했다. 돈벌어와 호강시켜준다며 옹서간(翁壻間)에 떠난 사람들이 남이 되어 돌아왔다는 둥, 진즉에 재혼을 했어야했다는 둥 안타까워했다. 지켜보던 나도 가슴이 먹먹했다. 그 날, 저녁상을 물리기 바쁘게 홍시 몇 개 품에 안은 채 고모네로 향하던 할머니 모습이 아직까지 눈에 선하다. 토닥토닥 고샅길 멀리 사라지던 지팡이소리는 할머니의 한숨처럼 오래 여운을 남겼다.정정하던 할머니의 기력은 시나브로 눈에 띄게 쇠잔해졌다. 희망의 끈을 놓아버린 탓일까. 할머니는 자주 한숨을 내쉬었으며 그 소리는 심해처럼 깊고 아득했다. 남편 없는 힘든 삶을 견뎌온 당신은 할아버지를 가슴에 품고 끝내 그 한을 풀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다. 할머니는 죽으면 무덤을 만들지 말라고 했다. 유언을 따라 주검은 한줌 재가 되어 동해바다에 뿌려졌다. 나는 고비마다 할머니를 떠올리며 칠흑처럼 캄캄한 순간들을 넘기곤 했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숨비소리로 힘든 시간을 이겨내고 다시 삶이라는 바다에 자맥질을 시도하지 않을까.방파제엔 흰 파도들이 물이랑을 이루며 밀려왔다 밀려간다. 가끔씩 바닷가에 앉아 쪽빛 바다를 바라보곤 한다. 발아래 부서지는 파도소리가 꼭 바다의 숨비소리 같다. 할머닌 지금쯤 꿈에 그리던 할아버질 만나 이승에서 못 다 이룬 정을 나누고 있을까? 갈매기들이 대답처럼 날아오르고 수평선 너머에서 할머니의 숨비소리가 크게 들려온다.휘-이유! 휘-이유!

2019-08-18

기미년 독립운동, 상하이로 간 사람들

아침부터 마음 바쁘다. 오늘은 학술대회가 열리는 날. 하루하루 일수 찍듯 살지만 오늘은 새벽부터 서둘러야 한다. 먼저 도서관에 가서 오후에 잠깐 인터뷰할 소설부터 찾아읽고. 하근찬의 ‘삼각의 집’과 정한아의 ‘할로윈’. 정한아 작가는 다른 작품도 읽어봐야겠다.도서관에서 책을 찾아 복사하고 읽고 하는 사이에 시간은 금방 흘렀다. 아홉시 사십분. 손님맞이에는 늦었다고 봐야 한다.서둘러 행사장으로 가니, 원탁회의식 구상과 달리 책상들이 전부 앞을 향했다. 독일, 중국, 한국, 일본 국기도 어디 갔는지 없다. 파스쿠치에서 커피는 가져온 상태. 팔 걷어부치고 서둘러 행사장 모양 바꾸고 국기도 찾아 앞에 붙이고 한다.운이 좋다. 낙성대에서 올라오는 버스들이 무슨 일인가로 잔뜩 밀려 있다는 문자들. 시작 시간을 조금 늦출 수 있는 명분 제공.올해 초부터 준비한 학술대회. 지금부터 백 년 전은 기미년 삼일운동이 일어나던 해다. 많은 젊은이들이 상하이로 떠났다.이미륵의 ‘압록강은 흐른다’에 연유가 나타난다. 삼일운동 두 달 시위에 참여했던 젊은이들은 사냥개에 쫓기는 토끼들처럼 숨을 곳 찾았다. 일제는 맨주먹의 청년들, 백성들을 총칼로 무자비하게 살상했다.압록강은 이 젊은이들이 목숨을 걸고 건너가야 했던 생과 사의 갈림길이었다. 이때 이 강을 건너 상하이로 간 젊은이들이 있었다. 이미륵, 서영해, 강용흘 등등.그들은 상해에 모였다. 둘은 인도양 건너 유럽으로, 하나는 태평양 건너 미국으로 갔다. 독일, 프랑스, 미국에서 공부하면서도 그들은 어떤 형태로든 독립운동과 관련을 맺었다. 그들에게서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안창호가 엿보인다.그리고 이광수와 주요한. 상하이까지 갔다, 가서 독립운동에 관계하다 조선으로 되돌아온. 총독부 체제의 강제적 포섭력이 그들을 기다렸다.중국 중앙민족대학의 이광수 연구자 김명숙 교수, 독일에서 이미륵의 산문들까지 본 박수영 작가, ‘압록강은 흐른다’를 일본어로 번역한 히라이 토시하루 교수, 이미륵을 독일 교양 소설 장르의 맥락에서 고찰한 최윤영 교수.주요한의 상하이 이전과 이후를 논의한 박현수 시인, 그리고 이극로라는 괴물을 상대하느라 몇 달 더 나이 먹어버린 김동식 평론가.살다 보면 운 좋은 때도 있다. 의도는 미미하였건만 그네들은 상상 이상이었다.1919년 3·1운동의 해는 사회역사적 운동만의 해가 아니었다. 현대문학 역시 격동을 맞았다. 다른 세계를 보고 다른 꿈을 꾸었다./방민호 서울대 국문과 교수/삽화 = 이철진한국화가

2019-08-15

‘창과 방패’

‘창과 방패’는 법 지상주의자인 한비자(韓非子)가 유가(儒家)의 덕치주의를 비판한 고사로 유명하다. 초나라 때 한 무기상인이 시장에 창과 방패를 팔러 나왔다. 상인은 먼저 창을 들고 외쳤다. “여기 이 창의 예리함은 천하일품으로 그 어떤 방패라도 단번에 뚫어버린다”고 했다. 이어 상인은 방패를 들고 소리쳤다. “이 방패는 견고하여 어떤 창이라도 막을 수 있다”고 했다. 이를 지켜본 구경꾼들이 “그러면 예리한 창으로 견고한 그 방패를 찔러보면 어떻겠소”라고 물으니 상인은 서둘러 시장을 떠났다. 모순(矛盾)이라는 말이 생겨난 고사로 한비자의 난세편에 나오는 이야기다.한 주제를 두고 한 사람이 말과 행동이 일치되지 않게 행동할 때 우리는 이율배반적이라 한다. 그리고 일이 생겼을 때마다 왔다갔다하며 자기에게 유리한 쪽으로 해석하는 사람을 자가당착적 행동자라 표현한다. 편협하고 이기적이며 옳지 못한 행동을 한다는 뜻이다.‘내로남불’이라는 말이 요즘 많이 유행한다. “남이 바람을 피우면 불륜이고 내가 바람을 피우면 로맨스”라는 것이다. “남이 벼락을 맞으면 하늘의 뜻이고 내가 벼락을 맞으면 재수가 없는 것”이라는 것과 같은 말이다. 자기에게 유리하게 마음대로 해석하는 모순적 태도를 꼬집는 표현이다. 지금 우리 정치판이 이런 모순적 상황에 빠져있다. 여야가 현안마다 집단의 이익에만 매달려 협치의 묘를 살리지 못하고 있다. 특히 인사 청문회를 마주할 때는 극과 극으로 대치한다. 언론에서는 이를 ‘창과 방패의 대결’로 비견한다.인사 청문회의 본질인 능력 검증이나 도덕성 검증은 처음부터 뒷전이다. 한쪽은 창을 들고 천하일품이라 떠들고 다른 한쪽은 천하무적의 방패라고 떠드니 국민이 보기에 어이가 없다. 8.9 개각에 따른 인사청문회가 곧 시작될 예정이다. 벌써 창과 방패의 싸움으로 갈 것이란 전망이다. 문재인 정부 들어 이미 16명의 장관급 인사가 청문보고서 없이 임명된 전례로 볼 때 결과는 뻔하다는 관측이다. 청문회 무용론이 고개드는 이유다. 내 기준과 내 이익만 생각하고 세상을 재단하면 모순은 필연적으로 생긴다. 이번 청문회는 국민의 눈높이에 맞는 정치력을 보여야 할 것이다./우정구(논설위원)

2019-08-15

다시 보는 광복절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3.1독립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년을 맞아 독립기념관에서 열린 광복 74주년 기념식이 전국에 생중계됐다. 유달리 많은 국민들이 광복절 경축식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일본의 수출규제조치로 인한 국민적 감정이 들끓고 있기 때문일게다. 그래서일까. 15일 저녁 광화문 광장은‘NO 아베’피켓을 든 인파의 물결로 뒤덮였다. 동족상잔의 비극으로 치달은 6.25전쟁의 군수물자 조달로 나라살림을 살찌운 일본이 뒤늦게 우리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판결을 빌미로 경제보복에 나선 것도 모자라 일부 극우 정치인과 극우언론들이 우리 국민과 나라를 희화화하며 혐한발언을 지껄여대는 장면이 그대로 전파를 타고 우리 국민들에게 알려졌기 때문이다.문 대통령은 이날 경축사를 통해 해방 직후 한 시인이 말한 새나라의 꿈인 ‘아무도 흔들수 없는 나라’를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문 대통령은 이어 “국제분업체계 속에서 어느 나라든 자국이 우위에 있는 부문을 무기화한다면 평화로운 자유무역질서가 깨질 수 밖에 없다”면서 “먼저 성장한 나라가 뒤따라 성장하는 나라의 사다리를 걷어차서는 안된다”고 직설적으로 일본을 비판했다. 그러면서 “지금이라도 일본이 대화와 협력의 길로 나온다면 우리는 기꺼이 손을 잡을 것”이라며 “공정하게 교역하고 협력하는 동아시아를 함께 만들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아울러 “평화를 번영을 이루는 평화경제를 구축, 통일로 광복을 완성하고자 한다”면서 “평화경제는 한반도의 비핵화위에 북한이 핵이 아닌 경제와 번영을 선택할 수 있도록 대화와 협력을 계속해나가는 데서 시작한다”고 설명했다.대통령의 경축사에 대한 야당의 반응은 여전히 시니컬하다. 자유한국당 전희경 대변인은 문 대통령의 경축사에 대해 “막연하고 대책없는 낙관, 민망한 자화자찬, 북한을 향한 여전한 짝사랑”이었다고 평가했다. 전 대변인은 “‘아무도 흔들수 없는 나라’에 대해서는 가슴이 뜨거워지는 말”이라면서도 “문재인 정부들어 외교·안보정책의 실패로 ‘아무나 흔들수 있는 나라’가 되고 있다”고 회초리를 날렸다. 야당의 독설이야 귀담아 들을 말만 챙기고 넘어가면 될 일이다.일본의 경제보복 이후 민간차원에서 일본제품 불매운동과 일본관광 거부운동이 빠르고 거세게 확산되고 있다. 수입맥주 시장에서 부동의 1위였던 일본 맥주가 지난 달 3위로 급락했는가 하면 이달 들어 일본 맥주 수입이 사실상 중단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달 한국에서 일본 수입차 판매도 급감했다.전국 17개 광역의원들은 ‘일본 전범기업 제품 공공구매 제한에 관한 조례안’제정 추진계획을 발표했다. 조례안에는 일본 전범기업 제품 공공구매 제한 대상기관과 금액, 일본 전범기업 제품 공공구매 지양에 대한 시장과 교육감의 책무 및 기본계획 수립 등의 내용이 담겼다. 이들은 기자회견에서 “3.1운동과 광복으로 부터 기나긴 시간이 지났는 데도 청산하지 못한 일제의 잔재, 특히 전범기업은 우리 사회 깊숙이 파고들어 있고, 우리는 그것을 잊고 살고있는 것 같아 매우 안타깝다”면서 “우리 국민들을 강제동원해 착취한 노동력으로 일어선 일본기업들은 강제동원 피해자들에게 배상은 커녕 공식사과조차 외면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가뜩이나 거센 일제 불매운동 불길에 기름을 붓는 회견이었다.이처럼 바짝 달아오른 일본과의 감정싸움에 다소 둔감한 아이들에게 일본 제국주의가 이 나라와 국민들에게 저지른 전쟁범죄를 하나하나 설명하다보면 어느새 일본의 부끄러움 모르는, 후안무치한 태도에 분노하게 된다. 특히 전 서울대 교수 이 모씨의 발언에는 입을 찢어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는 이들이 많았고, 친일파 언론인의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에 대한 모욕적인 발언에는 같은 하늘아래 산다는 게 부끄럽다는 반응마저 나왔다. 이래저래 올해 광복절은 밋밋하게 지냈던 여느 광복절이 아니라, 다시 보고, 듣고, 느끼게 된 특별한 광복절이 됐다.

2019-08-15

러다이트 운동과 4차 산업혁명

서의호 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40여 년 전 대학원을 갓 졸업하고 한국굴지의 모 건설회사에 취직하였을 때 일이다. 광화문 14층 기획관리실에서 근무할 때 어느날 건설노무자 여러 명이 갑자기 나타났다. 사무실을 박차고 들어온 그들은 흥분된 어조로 “왜 우리 봉급이 봉급봉투에 0 이라고 나오는가?” 라고 물었다. 컴퓨터의 실수였다. 당시 한국에 컴퓨터가 도입된지 몇 년 안되던 시절 건설노무자 봉급을 전산화하는 과정에서 에러가 발생한 것이다. 당시 컴퓨터는 빌딩 지하에 있었고 노무자들은 그리로 몰려갔다. 컴퓨터를 파괴할 기세였다. 평소에 컴퓨터가 노동을 뺏어간다는 피해의식 속에서 이런 컴퓨터 에러는 컴퓨터를 파괴하기에 충분한 동기부여가 되었던 시절이다. 다행히 사과하고 전산화 과정을 설명하고 과격한 행동을 만류하기는 했지만 정말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진땀을 빼던 기억이 난다.이와 비슷한 일이 200여 년 전 영국에서도 일어났다. 후세의 평가는 갈리기는 하지만 러다이트 운동(Luddite Movement)은 19세기 초, 1811∼1817년 사이에 일어난 “기계 파괴 운동”이다. 당시에 발명된 방직기의 등장으로 사람이 했던 노동을 기계가 빠르게 처리하게 되는데 위기감을 느낀 노동자들이 단합하여 대규모 기계파괴 운동을 벌인 것이다결국 기계로 인한 생산성은 무시할 수 없기에 러다이트 운동은 수그러들었지만, 노동자들은 노조설립 허용, 단체교섭을 인정받으면서 정치권과 자본가들의 양보를 받아내었다. 이는 어찌 보면 최초의 노동운동이었다.급격히 부각되는 4차산업혁명 시대에 네오 러다이트(Neo Luddite) 운동이라 하여 과학 기술에 적대적인 사상과 그 움직임을 뜻하는 새로운 용어가 탄생하였다. 네오 러다이트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첨단기술이 인류의 미래를 위협할 것으로 여기고 있다.4차산업혁명 시대의 언저리에서 네오 러다이트의 정당성에 대하여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4차산업혁명으로 인한 인공지능의 발전이 우리의 일자리를 빼앗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감 존재한다. 6만개의 일자리가 없어지고 2만개의 일자리가 생긴다는 전문가 견해도 있는데 그래도 4만개가 마이너스다.2016년 이세돌과 알파고의 대결을 시발점으로 사회 전반에 퍼진듯 보이는 4차산업혁명은 이미 이전부터 인공지능이란 형태로 과학자들에 의해 개발이 진행되어 왔지만 알파고의 활약에 의해 더욱 두드러지게 되었다. 기술적, 물리적인 문제로 인해 구현이 불가능했던 것들이 가능해지면서 인공지능의 연구가 활발해지기 시작했다.알파고 사건은 사람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으며 그 계기로 전세계는 인공지능에 대한 기대와 우려가 뒤섞여 나오고 있다. 아마존 고(Amazon Go)라고 불리는 무인스토어에서는 고객이 가게에 그냥 들어가서 물건을 들고 나오기만 하면 된다. 모든 과정은 센서와 인공지능이 처리한다. 제조업의 자동화인 스마트 팩토리(Smart Factory) 도 지능적 공장경영을 통해 직원수를 줄이는데 크게 공헌하였다. 아마존고와 스마트팩토리의 예에서 보듯이 일자리 감축에 대한 우려감이 생기는건 당연해 보인다.그러나 러다이트 운동의 예나 2차세계대전 후 발명된 컴퓨터의 도입에 의한 사무자동화의 예로 볼 때 네오 러다이트 운동의 정당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 기계화에서도 전산화에서도 당초 예상과는 달리 일자리가 감축되었다고 보기보다는 일자리가 다양화되고 고급화되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40년 전 공대생들이 연산자를 가지고 고생하면서 계산하던 시대에서 이제 스마트 폰을 간단히 계산하면 좀더 응용분야 연구에 시간을 쏟을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러다이트 운동의 4차산업의 적용인 네오러다이트 운동의 정당성은 별로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우리는 다가오는 아니 이미 도착한 4차산업혁명을 환영하는 것이 맞다.

2019-08-15

인류의 보편적 가치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가장 중요하고 기본적인 인류 보편의 가치란 무엇일까? 특정 종교나 문화에 따라서는 다를 수도 있겠지만 사람답게 살 권리, 즉 인권(人權)이야말로 가장 보편적인 인류의 가치가 될 것이다. 21세기인 지금은 많은 나라들이 개인의 인권을 보장하는 민주주의를 표방하고 있지만 그 역사는 그리 길지가 않다. 민주주의의 기원을 고대 그리스까지 소급하기도 하지만 노예나 여성을 차별하는 등 오늘날의 민주주의와는 다른 개념이었다. 현대적 인권의 개념은 자연법 사상에 의거한 자연권의 관념에서 시작하여 프랑스혁명 등을 거치면서 보편적 인권의 개념으로 형성·발전되었다.자연법 사상이란 모든 생명에 대한 존중으로 확대할 수 있을 것이다. 자연 생태계의 모든 생명체들은 우열이나 차별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이 자연의 섭리다. 인류 역시 생태계의 한 종(種)으로 자연의 섭리를 따른다면 모든 개인은 한 생명체로서의 존엄성을 갖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인간사회에 항상 적용되는 것은 아니어서 종교나 제도나 이념에 의해서 그런 존엄성이 침해되고 제약되는 경우가 허다했다.우리나라의 민주주의는 1948년 대한민국의 건국을 시작으로 한다. 당시 선포된 헌법에는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가진다.”라고 명시되어 있다. 이는 독일의 바이마르헌법에 따른 것으로, 헌법이 규정하는 인권이란 일차적으로는 정치적 권리의 보장을, 나아가서는 보편적, 경제적 권리의 보장과 복지사회의 구현까지 아우르는 것이다.인류 역사의 가장 위대한 업적 중의 하나를 꼽으라면 세계인권선언과 같은 보편적 가치에 대한 세계적인 합의에 이른 것을 들 수가 있다. 1948년 12월 10일 유엔에서 채택된 ‘세계인권선언’은 2차 세계대전으로 자행된 온갖 야만적이고 비인간적인 행위에 대한 반성과 대응으로 생겨난 것이다. 전문과 30개 조항으로 구성된 세계인권선언은, “인류사회의 모든 구성원이 갖는 고유한 존엄과 평등하고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승인하는 것은 세계의 자유와 정의와 평화의 기초”라고 선언하면서 전문을 시작한다. 그리고 각 30개의 조항은 인간의 생명과 자유, 개인의 안전, 시민사회 내에서의 권리, 정치체제 내에서의 권리,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권리를 잘 보장하고 보호할 것을 선언하고 있다.한편 유엔인권소위원회는 1997년 ‘북한인권결의안’을 채택함으로써 유엔 차원의 공식적인 논의를 시작하였다. 북한인권결의안은 2003년 제59차 유엔인권위원회부터 3년 연속 채택되었으나 북한인권 상황이 별다른 진전을 보이지 않게 되자, 2005년부터 유엔총회에서도 채택하고 있다. 그 결의안에는 북한의 열악한 인권상황에 대한 우려와 함께 개선을 위한 인도주의적 기술협력과 대화를 포함하고 있다. 북한인권결의안의 주요 내용은 고문, 공개처형, 정치범 수용소, 매춘, 영아살해, 외국인 납치 등 각종 북한 인권문제에 심각한 우려를 표시하는 한편 북한 주민의 인권과 기본적인 자유 보장을 촉구하고 있다.우리 정부의 대북정책도 이와 같은 인류 보편적 가치를 기본으로 하는 원칙을 벗어나서는 안 될 것이다. 통일이든 평화든 그것은 오로지 우리의 동포인 북한 주민들의 인권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 핵무기를 가지고 세계를 위협하는 김정은 일당과 협상을 하는 것도 저들이 저지를 수 있는 또 다른 범죄를 막기 위한 방편인 것이지 그들의 체제를 정당화해서가 아니라야 한다. 비록 전략적으로는 그들과 대화를 할지라도 북한 주민의 인권을 위한다는 대의에 어긋나지 않은 선에서만 명분을 가질 수 있다. 탈북자 모자가 굶어죽는 대한민국, 이 정부의 대북정책에 심각한 오류와 착각이 있는 것 같아서 하는 말이다.

2019-08-15

독방에 홀로

2010년 8월 17일, 의문의 심리 실험 아르바이트 모집 공고가 올라옵니다. 20평 안락한 공간에 홀로 30일 동안을 견디면 950만원을 지급한다는 것. 조건은 간단합니다. 30일 동안 TV, 책, 컴퓨터, 신문, 인터넷, 대화 등 모든 일상생활을 단절하고 오직 창조적 활동, 즉 그림 그리기나 손으로 쓰기만 할 수 있습니다. 주 2회 담당 심리학자와 대화하는 것 이외에는 어떤 외부와의 접촉도 금지합니다. 24시간 CCTV로 관찰한다는 조건도 있습니다. 7일까지는 중도 포기할 수 없으며 시급 1만1천원. 시간이 흐를수록 시급이 올라갑니다. 이런 조건으로 30일까지 버티면 950만원을 지급한다는 조건이었지요.많은 누리꾼이 후끈 달아올랐지만 실제로 지원한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실험 이후 정신적 문제가 생길 경우 국내 최고 의료진과 교수들로부터 무료 치료받을 수 있다는 내용을 보고 사람들이 망설였다고 합니다. 자해 등으로 생긴 문제에 대해서는 책임질 수 없다는 경고문을 보면서 대부분 포기했다고 하지요. 실험에 도전한 한 남성은 30일 동안 영어 단어 1만 개를 외우고 나올 것이라는 당찬 포부를 밝히고 시작했는데 13일 차에 악몽을 꾼 이후 견디지 못하고 포기 벨을 눌렀습니다.단편 소설의 최고봉이라 일컫는 안톤 체호프. 그가 쓴 1889년 작품 ‘내기’에 위 상황과 비슷한 내용이 등장합니다. 한 젊은 변호사가 부유한 은행가와 파티장에서 격론을 벌입니다. 사람을 단번에 죽이는 사형제도와 서서히 죽이는 종신형, 그 어느 것이 더 윤리적인가 하는 주제였습니다. 젊은 변호사는 죽는 것보다는 사는 것이 백번 낫다는 주장을 하고 부유한 은행가는 사형제도가 훨씬 인간적이라면서 불꽃 튀기는 설전을 벌입니다. 흥분한 은행가는 젊은 변호사에게 제안합니다. “만약 당신이 독방에 5년 동안 들어가 있을 수 있다면 200만 루블을 상금으로 걸겠소.”25세의 피 끓는 변호사는 한 술 더 뜨지요. “차라리 15년으로 합시다. 5년은 실험해 볼 가치도 없소.”내기는 단숨에 성립합니다. 은행가는 정원 바깥채에 변호사를 감금하죠. 조건은 작은 창문 하나를 통해 와인, 담배 등을 비롯한 음식을 제공하고 책은 무한정 넣어 주며 피아노도 한 대 제공한다는 조건입니다. 외부 접촉은 일체 차단합니다. 30일이 아닌 15년 조건이라면 최소한, 이 정도는 배려해 줘야 하겠지요? 무료한 젊은이는 하루 종일 피아노만 칩니다. (내일 편지에 계속)/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대표

2019-08-15

정부 분양가 상한제의 진실은

김영태 대구취재본부‘도대체 대구 수성구와 중구가 분양가 상한제에 들어가는건가, 아닌가’13일 조간신문을 본 독자들의 한결같은 의문이었다. 경북매일과 달리 대부분의 지역지가 수성구의 분양가 상한제 적용이 확정된 것처럼 보도해 독자들을 더욱 혼란스럽게 했다.국토교통부가 지난 12일 발표한 민간택지 분양 아파트를 대상으로 한 분양가 상한제 조치의 노림수는 서울 강남지역 재건축을 최대한 억제해 집값 상승을 막는데 초점이 맞춰졌다. 집값 폭등으로 인한 총선 민심을 다독이려는 심모원려도 깔려있다. 대구·경북의 관심사인 수성구와 중구는 당초 예상과 달랐다. 중구는 제외됐고 수성구는 투기과열지구임에도 국토부 발표를 적용하면 실행 여부는 세모를 쳐야 하는 상태다. 국토부가 ‘주거정책심의위원회에서 시장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서 결정하겠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현재 투기과열지구라도 주거정책심의위의 결정이 우선이라는 점을 명확히 했다.국토부의 장황한 발표도 결국 이 한마디로 수렴된다. 정책의 운용의 효과를 노리는 묘수를 둔 것으로 볼수도 있다. 머리 좋은 관료들의 발상답다. 내년 총선을 앞둔 시점에서 집값 상승세가 전국으로 확대될 경우 안게될 부담을 최소화하고 정책실무자인 관료들도 만일의 경우에 빠져나갈 퇴로를 열어두기 위한 방편이 맞아떨어진 지점이다. 어제 보도에서 드러난 것처럼 지역의 집값이 10월까지 원하는 선으로 안정(?)되고 굳이 분양가 상한제를 적용할 필요가 없을 경우에도 대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수성구가 분양가 상한제 적용에서 빠질 경우에는 지역언론의 자의적인 해석탓으로 돌릴수 있다. 이런 애매한 덫에 덜컥 걸려들었다고나 할까. 분양가 상한제를 두고 지역의 언론사마다 수성구의 포함 여부가 다르게 나타난 것은 이런 배경이 작용한 것이다.지역의 한 기자는 “분명히 중구는 제외되고 수성구는 10월 이후에야 적용 여부가 드러나는 상황이라고 판단되지만, 국토교통부의 발표자료와 달리 통신사 등 뉴스 보급사의 내용을 맹신하다가 빚어진 결과”라고 해석했다. 결국, 국토부가 정책 방향은 ‘엄포’로 소개됐지만, 가장 중요한 구체적인 조치인 시행령은 오는 10월로 미룬 노림수가 제대로 맞아떨어진 셈이다.총선을 앞둔 상황에서 칼자루를 휘두를지 다시 칼집에 넣을지는 상황을 봐 가면서 시장과 심리전을 벌이고 있는 셈이다. 국토부가 10월까지 집값 동향을 봐가면서 일종의 꼼수를 둔 셈이다.최근 공영방송의 유명 개그 프로인 개그콘서트가 2주간의 개편작업을 마치고 지난 11일 방영됐다. 어설프고 서툰 정치개그와 억지 애국심을 자극하는 코너가 난무하면서 일부에서 개콘 폐지론까지 일고 있다. 개콘 개편과 국토부의 분양가 상한제 발표가 오버랩되는 것은 기자만일까./piuskk@kbmaeil.com

2019-08-13

개도 사람처럼 감정을 느낀다

헝가리의 에오트보스 로란드 대학의 아틸라 앤딕스(Attila Andics)라는 동물 행동학자와 연구팀은 훈련된 개 11마리의 뇌 자기공명영상(MRI) 촬영을 진행했는데, 개의 뇌 스캔이 진행되는 동안 연구팀은 개들에게 ‘하하하’ 혹은 ‘흑흑’ 같이 사람이 울고 웃는 등 200여 가지의 감정 소리들을 차례로 들려주면서 뇌 조직 신호의 변화를 관찰했다.이와 똑같은 환경과 방식으로 사람을 대상으로도 실험을 진행하고 두 개의 실험 자료를 비교해 보니, 감정 소리를 인식하는 개와 사람의 방식이 매우 흡사한 것으로 나타났다.이를 테면 누군가 웃거나 울거나 하는 소리에 대한 개와 사람의 뇌 신호 움직임이 매우 유사하게 나타나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이는 개 역시 사람처럼 감정이 섞인 음향신호에 뇌가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것을 뜻한다.이 때문에 종종 사람이 말을 하면 마치 개가 알아듣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는 것이다.배가 고프거나, 덥거나, 목이 마르거나 소란스러운 스트레스 환경이 해소되지 못하면 개들은 사람이 그러하듯이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다.주인이 관심을 가져주지 않을 때 받는 외로운 감정이나 다양한 감정적 원인에 의한 욕구가 충족되지 못하면 개도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는데, 이런 스트레스가 지속적으로 반복되면 개의 육체적, 정서적, 심리적 균형이 깨질 수 있다.스트레스를 받는 개의 신체적 징후는 구토, 용변실수, 부적절한 배뇨, 피부병, 과도한 탈모, 식욕부진 등이 있고, 정서적인 이상징후는 떨기, 심하게 낑낑거리기, 지속적인 짖음, 물어뜯음, 물기, 활동량의 증가나 감소 등이 있다.스트레스나 불안감으로 인해 시작된 행동들이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버릇이 되고, 문제행동들이 되며 그 행동들을 하지 않으면 불안해지는 강박신경증을 가지게 된다. 사람이 스트레스로 인해 가지게 되는 신체적 질병을 비롯해 우울증, 강박증 등 심리적 문제들을 개 관련 연구로 원인을 밝히고자 하는 노력들이 진행되고 있다.이탈리아 트렌토 대학의 조르조 발로티가라(Giorgio Vallortigar) 교수 연구팀은 43마리의 개에게 미리 녹화된 영상을 보여주고 심장박동수를 측정하는 방식으로 실험을 진행했다.개에게 보여준 영상은 개가 꼬리를 왼쪽 방향으로 흔드는 영상, 오른쪽 방향으로 흔드는 영상, 꼬리를 흔들지 않는 영상 등 총 세 종류였는데, 연구팀이 세가지 영상을 본 개들을 관찰한 결과, 왼쪽 방향으로 꼬리를 흔드는 영상을 본 개들은 심장박동이 빨라지는 등 불안감을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하지만 오른쪽 방향으로 꼬리를 흔드는 영상을 본 개들은 반대로 안정감을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이는 개의 심리 상태에 따라 꼬리를 흔드는 방향이 다르다는 것을 의미한다. 왼쪽으로 더 강하게 꼬리를 흔드는 개들은 우뇌가 활성 되는데, 우뇌는 부정적인 반응이나 불안, 두려움과 관련되어 있다.즉, 영상 속 개의 불안한 심리가 흔들리는 꼬리를 통해 다른 개들에게도 전달된 것이다. 꼬리를 흔드는 행위가 다른 개들에게 이해될 수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이런 연구들이 진행되었는데 개가 다른 동물의 상태를 알기 위해 꼬리를 사용하는 것을 알 수 있다.또한 개는 눈빛으로 의사소통하기도 하는데 도쿄공업대학의 우에다 사요코 교수의 연구에 의하면 개들이 동료 간에 서로 눈빛을 확인하기 수월한 개과 동물일수록 무리지어 생활하고 협동해 사냥하는 생활방식을 가진다고 밝혔는데 사람들이 눈빛 교환을 하면서 의사소통을 하듯, 개 역시 유사한 방법으로 의사소통 하고 있음을 밝히기도 했다.이외에도 개와 관련된 지금까지의 연구들을 정리해보면 개는 사람과 유사한 뇌기능을 가진 영역이 있다.사람의 뇌와 개의 뇌를 비교해보았을 때 정보를 기억하거나 사고를 담당하는 대뇌신피질은 차이가 있지만, 기쁨, 슬픔, 두려움, 싫음, 좋음 등을 느끼는 감정과 관련된 대뇌변연계는 사람과 거의 차이가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인간과 같이 다양한 감정을 느낄 수 있는 동물인 개와 관련된 연구가 보다 체계적으로 진행되면 사람의 심리, 정신과 관련한 뇌과학 연구에 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서라벌대 반려동물연구소 소장·마사과 교수

2019-08-13

칸트와 기술과학 시대

△칸트의 물음기술과학 시대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일까?칸트(Immanuel Kant·1724∼1804) 씨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시죠. 칸트 씨의 말을 들으려면 우선 칼리닌그라드로 가야한다. 칼리닌그라드는 2차 세계대전 후 러시아령이 되면서 동유럽의 변두리 도시로 밀려나게 되었지만, 한때 이 도시는 독일의 정신적 수도였다. 칼리닌그라드로 이름이 바뀌기 전 이 도시의 이름은 쾨니히스베르크였다. 이곳은 근대 통일독일의 모태가 된 프로이센의 발상지였으므로 정치 중심지를 베를린에 둔 뒤에도 프로이센 왕들은 대관식만큼은 쾨니히스베르크를 고집했다. 동프로이센 지방의 중심이며, 해외 무역의 요지인 이 도시는 서구 근대사회로 통하는 관문이었다. 그런 점에서 세계시민도시의 성격을 띤다. 바로 이곳에서 독일의 철학자 칸트가 태어났다.칸트는 이 사랑하는 거리를 떠난 적이 거의 없었다. 독일의 정신과 새로운 근대적 기운이 교차하는 이곳에서 칸트는 인간의 삶과 그러한 삶을 살아가는 인간이 지켜야 할 윤리에 대해 고민했다. 산업혁명은 대량생산을 가능하게 했고, 그러면서 생산방식도 변하게 만들었다.예컨대 이런 것들 말이다. 하나의 제품을 한 사람이 처음부터 끝까지 만들 수도 있지만, 여러 사람이 한 가지 일만 해나가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다. 주방에서 한 사람이 재료를 다듬고, 요리하고, 설거지까지 하는 것보다는 일을 나누어 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다. 어떤 물건을 만들 때 전 과정을 습득하여 경지에 오른 사람을 우리는 장인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분업에 참여하는 사람은 일의 전체가 아닌 부분만 습득하면 된다. 이들을 노동자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장인이 만든 물건에는 그만의 혼이 실리고 독특한 흔적이 남지만, 노동자가 만든 물건에는 아무런 흔적이 남지 않는다. 노동자는 언제든 다른 사람으로 대체가능한 존재로 전락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인간의 고유성과 존엄성은 어떻게 확보될 수 있을까? 계몽주의는 이러한 시대에서 촉발된 철학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다른 사람으로부터 자기 자신으로 돌아간다, 자신의 삶을 이끈다, 스스로의 힘으로 생각하고 비판한다”라는 자발성 철학으로 요약될 수 있다. 이러한 계몽주의 사상을 펼친 인물의 중심에 칸트가 있다. 인간의 이성(순수이성비판), 실천(실천이성비판), 판단력(판단력비판), 윤리(윤리형이상학)가 중심주제였다.칸트의 철학은 인간과 인간의 이성에 관한 관심으로 귀결된다. 인간이 무엇을 인식한다고 할 때, 그것은 인간이 가진 인식 범위의 한계 속에서 이루어진다. 인식 대상이 무엇이건 간에, 그것은 인식 범위 안에 있다. 이 범위를 뛰어넘는 것에 대해서 우리는 안다고 할 수 없다. 더 급진적으로 말하자면 세계가 있고 인간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있고 세계가 있다.대상을 관찰하여 새로운 사실을 발견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상 얻는 것은 새로운 사실이 아니라 이미 가지고 있던 인식을 확고하게 만드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칸트는 아무리 부정하려 해도 인간은 유한하며 편협하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렇다고 유한한 인간의 한계를 인정하고 겸손하게 살라고 한 것은 아니다. 칸트는 그 한계 속에서 돌파구를 찾으려는 노력, 도전적이며 창조적인 삶을 포기하지 않는 것, 이것이 인간의 윤리라고 한다.공학기술 발전은 인간을 위해, 인간의 편익을 위해 존재해야 한다. 기술은 수단이며, 인간은 기술의 목적이다. 이것은 이윤추구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돈을 버는 일은 인간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수단이다. 그런데 현대사회는 목적과 수단이 역전되는 시대다. 그래서 기술과 이윤추구가 목적이 되고, 인간이 그 수단으로 동원된다.칸트는 이러한 목적과 수단의 전도 현상을 문제삼았던 것이다. 인간이라는 목적을 잃고 이윤추구에만 집중하게 될 때 그 수단은 불법적이고 비윤리적인 것으로 변질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결국 인간은 세계로부터 고립되고 삶의 의미를 잃게 된다. 이것을 ‘인간소외’라 부른다.△수단과 목적이 전도하는 시대,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수단과 목적이 뒤집힐 수 있는 시대, 이 시대에 우리는 다시 인간을 부여잡아야 한다. 과거 르네상스가 신이 아닌 인간을 중심적 가치로 두는 인본주의적 관점에서 시작되었듯이 오늘날의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우리는 다시 인간중심으로 돌아가야만 한다. 그리고 오늘날의 신르네상스는 예술이나 인문학과 공학에서 시작되어야 하고, 인간친화 기술이 그 바탕을 이루어야 한다. 과학기술은 문제가 발견되기만 하면 혹은 문제가 무엇인지 알기만 하면 그 답을 찾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한다. 이 말이 오만할 수도 있지만 인류의 역사를 통해서 우리는 이것이 거의 사실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날기를 꿈꾼 인간은 결국 날게 되었다. 그것도 엄청난 규모와 무게의 쇳덩이를 날 수 있게 만들었다. 우주가 궁금해지자 인간은 결국 우주탐사를 떠났다. 공학은 마음먹은 것을 분명히 이뤄내고야 만다. 공학의 이 엄청난 성취 앞에 순기능과 역기능도 있음을 생각해 봐야 한다.게임의 폭력성과 중독성이 심각한 사회문제를 일으켜도, 원자력 발전의 폭발의 위험성을 앉고 있음에도 이런 문제들이 무시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 이유는 간단하다. 그런 문제를 해결한다고 해서 이윤이 발생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산업사회는 이런 문제는 미뤄두고 더 큰 이윤을 낼 수 있는 기술 개발에만 몰두한다. 모든 것의 가치를 돈으로 환산할 때 인간의 삶은 피폐해진다. 돈이 되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생각, 어떤 식으로든 돈을 벌면 된다는 생각이 이 사회를 병들게 만든다. 이런 문제에 공학이 직접 나서야 한다. 윤리사회로의 길은 정치와 교육의 몫이기도 하지만 공학의 몫이기도 하다. 과학기술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면 도태되고 말겠지만, 그 변화를 무작정 따라간다면 재앙을 맞을 수도 있다. 이 양면의 압력을 이겨낼 수 있는 교육제도가 필요하다. 그러한 교육제도는 공학만을 강조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공학만큼이나 인문학·예술 등도 함께 강조되어야 한다. 공학자가 인문학이나 예술교양을 쌓아야 하듯 인문학이나 예술분야에서도 공학교양을 쌓아야 한다. 이런 융합교육이 불투명한 미래를 투명하게 만들 것이다.미래는 미래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현재 속에서 형성된다. 미래를 대비할 수 있는 지식을 배우고 이를 토대로 새로운 지식을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울 때 미지로 남겨진 미래는 서서히 그 윤곽을 드러낼 것이다.미래에 대한 준비는 국가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각자의 몫이기도 하다. 미래의 일을 미래에 준비할 것이 아니라 바로, 지금, 여기에서 준비해 나가야 한다. 오늘이 미래를 결정한다.

2019-08-13

포스코의 나눔활동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얼마 전 포항 환호공원에서는 소소하면서도 이색적인 나눔행사가 열렸다. 포스코 포항제철소 재능봉사단이 다양한 봉사활동을 펼치고 작은음악회를 열어 행사에 참여한 시민들에게 기쁨과 흥겨움을 안겨주었다.수지효행, 아동행복지킴이, 사진, 제빵 등 6개 봉사단은 환호동, 여남동 일대의 자매마을 어르신과 공원을 찾은 시민들에게 손마사지와 압봉시술을 해주고, 건강과 장수를 기원하는 인물사진을 찍어 주고 손수 만든 빵과 과자를 아이들에게 나눠주면서 어르신들에게는 말벗도 되어줬다. 저녁에는 사물놀이, 밸리댄스, 부채춤 등의 공연과 사내 문화예술봉사단이 기타와 하모니카, 대금, 색소폰 연주를 선보여 시민과 함께 즐기는 화합의 마당으로 어우러졌다.이러한 나눔활동은 포항시와 포스코가 지난 2001년에 함께 조성한 환호공원을 아름답게 가꿔 시민들에게 친숙한 공간으로 만들어 나간다는 취지에서 열린 것이다. 이처럼 직원들의 재능과 역량을 발휘하는 나눔활동을 통해 포스코는 지역사회에 한 걸음 더 다가가고, 시민들은 다양한 볼거리가 있는 공원을 찾으며 한껏 누리고 공감할 것이다. 물론 몇 차례의 재능봉사와 음악회로 환호공원이 금세 달라지고 활성화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지속성을 갖고 시민과 직원이 동참해 공원 내 환경정화와 다채로운 공연, 이벤트, 테마 활동 등을 해나갈 때 공원은 점진적으로 변화할 수 있다.포스코의 나눔활동은 지역사회의 발전과 활성화를 위한 자발적인 재능기부 활동을 포함해 임직원봉사단 활동, 대학생봉사단 운영, 포스코1%나눔재단의 사회공헌사업 등 실로 다양하고 광범위한 영역에서 공익적으로 전개되고 있다. 포항제철소에서는 1991년부터 포항시와 자매결연을 시작, 현재 127개 마을에 매월 나눔의 토요일 봉사활동을 실시해 환경정화와 일손돕기, 장학금 지급 등의 지원활동을 해나가고 있다. 또한 재능봉사단은 임직원들의 특색있는 봉사활동으로 지역사회에 보답하고자 2004년 창설돼, 최근 13개 신규 창단 발대식을 갖고, 총 23개 봉사단원 900여명의 개개인이 보유한 다양한 지식과 기술, 특기와 경험을 살려 포항시자원봉사센터 등 4개 복지기관과 협업해 지역사회 소외계층을 대상으로 유익한 봉사활동을 펼쳐나갈 계획이다.한편, 임직원들의 급여 1% 기부로 자발적으로 참여한 ‘포스코1%나눔재단’은 더 나은 세상을 향한 1%나눔문화를 확산시키는 다양한 공익활동을 전개함으로써, 포스코와 지역사회의 지속 가능한 성장을 도모하고 있다. 포스코 스틸 빌리지 건설, 국내 소외계층 사회복지 증진, 국내외 저개발지역 구호활동 및 미래세대 자립지원, 문화예술 진흥 및 전통문화 보존2219계승 사업 등을 공정하고 투명하게 지속적으로 추진함으로써 포스코의 창업정신과 역사적인 의미를 더하고 글로벌 포스코의 사회적 책임에 부응해가고 있다.이와 같은 제반 나눔활동과 지원사업은 ‘더불어 함께 발전하는 기업시민’의 포스코 경영이념에 부합하는 것으로 포스코가 사회적 책임과 역할을 다하는 기업시민으로서 적극적이며 능동적으로 경제적 가치와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는 기업시민활동으로 펼쳐지고 있다. 나눔과 베풂으로 이뤄지는 기업시민의 사회공헌활동은 지역사회와 더불어 포스코패밀리와 함께 해나갈 때 그 가치와 보람이 더욱 커지게 된다. 다만 일회성이나 전시성이 아닌, 꾸준히 실행하는 사명감과 확고한 정신으로 사회에 필요한 가치를 창출하는 의지와 노력이 무엇보다 중차대하리라고 본다.포스코재능봉사단의 열성적인 손길과 작은음악회의 열기로 초복의 더위마저 무색해진 환호공원에서는 시민들의 열렬한 환호(歡呼)와 갈채가 줄기차게 쏟아졌다. 작은 관심이 세상을 따뜻하게 만들 듯, 환호와 갈채가 계속 이어져 나눔이 즐겁고 베풂이 행복한 포스코와 포항시의 아름다운 동행을 기약해본다.

2019-08-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