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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문재인 대통령의 아세안 순방외교

변창구 대구가톨릭대 명예교수·국제정치학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3월 10일부터 일주일 동안 브루나이·말레이시아·캄보디아 등 3국을 방문하였다. 이번 아세안(ASEAN: Association of Southeast Asian Nations) 순방외교는 2017년 11월 대통령 취임 이후 처음으로 인도네시아·베트남·필리핀을 방문한 이후 두 번째로서 현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신남방정책’의 일환으로 이루어진 것이다.신남방정책은 문 대통령이 인도네시아 방문에서 사람(People)·평화(Peace)·번영(Prosperity) 등 이른바 ‘3P’를 중심으로 인도 및 아세안 회원국들과의 정치적·경제적·전략적 협력관계를 미국·중국·일본·러시아 등 주변 4강 수준으로 높이겠다는 것을 천명한 외교정책 선언이다. 이 정책은 그동안 강대국에 편중된 한국외교의 다변화를 모색함으로써 우리의 외교적 입지를 확대하고 이를 통하여 강대국이 지배하는 국제정치에서 한국의 자율성과 발언권을 제고하고자 하는 것이다.이번 순방은 신남방정책의 지속적 추진을 위한 구체적 실행외교라는 점에서 그 의의가 있다. 과거 정부에서도 유사한 정책선언들이 있었으나 지속적인 후속조치들이 미흡했던 반면에, 현 정부에서는 대통령이 신남방정책의 구체적 청사진을 밝힌 후 또 다시 아세안 국가들을 방문하여 협력강화를 모색하고 있다는 점에서 평가할만하다. 또한 올해는 우리가 아세안과 대화관계를 수립한지 30주년을 맞이하여 제3차 ‘한·아세안 특별정상회담’을 추진하고 있다는 점에서 현재 아세안측 대화조정국인 브루나이를 직접 방문하여 사전에 협의하였다는 점도 시의적절한 조치였다.그럼에도 현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신남방정책이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여전히 해결해야할 과제들이 적지 않다. 우선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신남방정책이 ‘일회성 외교 이벤트’가 아니라 실질적 성과를 거둘 수 있도록 뒷받침하는 제도적 장치와 전문가그룹의 역할이다. 이미 신남방정책을 지원하기 위하여 대통령직속 정책기획위원회 산하에 ‘신남방정책특별위원회’가 설치되어 있지만, 이 위원회가 제 기능을 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최근 이 위원회의 위원장을 맡고 있던 김현철 청와대 경제보좌관이 “50, 60대는 댓글 달지 말고 아세안에 가라”는 막말파문으로 경질됨으로써 한 동안 신남방정책의 차질이 불가피해졌기 때문이다.한 나라의 외교정책은 대통령의 정책선언이나 일회성 순방외교로 성과를 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한국과 아세안의 협력과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실질적 회담, 즉 외교부를 비롯한 관계부처 각료회의, 고위관료회의 등 실무적 차원의 외교가 지속적으로 뒷받침되어야 한다. 양측이 서로 다른 입장과 이해관계를 조율해 나가면서 상생과 번영을 모색하기 위해서는 전문가그룹의 자문도 절실하다. 게다가 실용성과 중립성이 강한 아세안 국가들과의 대화에 있어서는 이념적·정치적 색채가 강한 사람들보다는 실용주의적 전문가들이 문제해결에 유리하다. 이 점은 이념적 성향이 강한 참모들에 둘러싸여 있는 문 대통령으로서는 특히 명심하지 않으면 안 된다.나아가 향후 아세안 국가들에 대한 신남방정책은 그 구체적 미래비전이라고 할 수 있는 ‘한·아세안 미래공동체 구상’이 보다 명확한 지향점을 설정하고 상호관계가 양적 성장과 함께 질적 도약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추진되어야 한다. 한·아세안 관계는 지난 30년 동안 양적으로는 크게 성장하였으나 그것이 질적 심화로 연계되지 못하였다. 그 이유는 우리의 인식과 접근방법이 그들과 많이 달랐기 때문이다. 아세안의 국제협력은 이른바 ‘아세안 방식(ASEAN way)’, 즉 주권존중, 협의를 통한 합의(consensus), 조용한 외교(quiet diplomacy), 비공식적 접근 등을 중요한 특성으로 하고 있음에 유의해야 한다. 신남방정책의 추진에 있어서도 지피지기(知彼知己)의 자세는 성공의 기본이다.

2019-03-18

패스트트랙

패스스트랙은 국내 정치에서 국회에서 발의된 안건의 신속처리를 위한 제도로, ‘안건 신속처리제도’라고도 불린다. 국회법 제85조의 2에 규정된 내용으로, 발의된 국회의 법안 처리가 무한정 표류하는 것을 막고, 법안의 신속처리를 위한 제도다. 경제 분야에서는 일시적으로 자금난을 겪고 있는 중소기업을 살리기 위한 유동성 지원 프로그램을 가리키며, 기업이 은행에 패스트트랙을 신청하면 은행은 기업의 재무 및 경영 상태를 심사해 A∼D 등급을 판정하게 된다. 국제 분야에서는 미국 행정부가 국제통상 협상을 신속하게 체결할 수 있도록 의회로부터 부여받는 일종의 협상특권을 지칭한다. 무역촉진권한(TPA·Trade Promotion Authority)으로도 불린다. 의회가 대통령에게 신속협상권(Fast Track) 권한을 부여한 경우, 의회는 행정부의 협상 결과를 일정기한(90일) 내에 수정 없이 찬반결정만을 하게 된다.요즘 핫이슈가 되고 있는 것은 정치분야 패스트 트랙이다.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을 제외한 여야 4당이 선거제 개혁 단일안을 도출하고 선거제·개혁법안 패스트트랙을 추진하고 있어 국회가 시끄럽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과 바른미래당·민주평화당·정의당 등 야 3당은 최근 ‘지역구 225석·권역별 비례 75석 고정·연동률 50% 적용’을 핵심으로 한 선거제 개혁 합의안을 정당별 추인을 거쳐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 설치, 검찰·경찰 수사권 조정 등 개혁법안과 함께 패스트트랙에 올릴 작정이다. 한국당은 여야 4당의 패스트트랙 공조에 강력히 반발하며 모든 수단을 동원해 저지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바른미래당과 민주평화당 역시 선거제에는 합의했지만 총선을 앞둔 시기에 선거법 개정안을 패스트트랙에 올리는 데는 부정적인 여론이 많아 실제 패스트트랙으로 처리될 지는 불확실하다.당리당략으로 싸우느라 꼭 처리돼야 할 민생법안의 통과가 하염없이 늦어지는 것도 문제지만 민감한 시기에 야당의 반대를 무릅쓰고 선거제를 바꾸는 법안을 패스트트랙으로 처리하려는 것은 그리 현명치 않아 보인다. 국회판 레드테이프를 막기 위한 패스트트랙이 다수결의 독재에 쓰였다는 비판을 받아서야 되겠는가. /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19-03-18

지열 발전 대응 ‘범시민 대책기구’ 발족을 제안한다

김정재 국회의원포항지진 발생 후 어느덧 세해째를 맞고 있다. 난생 처음 겪은 재난임에도 불구하고 포항 시민들이 보여준 침착함과 단결된 모습은 재난 대응의 모범사례라 할 만큼 높은 수준으로 평가받고 있다. 항상 진심어린 존경의 마음으로 감사드리고 있다.하지만 시민들의 침착함 뒤에는 겉으로 드러난 상처뿐 아니라, 드러나지 않은 내상까지도 지역 곳곳은 물론 시민들 가슴 그대로 남아있는 상황이다. 지난날의 재난쯤으로 여기기에는 너무도 깊고 아픈 상처들이다. 지난 1년 4개월의 노력을 돌아보면, 포항의 깊은 상처만큼이나 이를 이겨내기 위한 우리의 노력은 너무도 절박하고 처절한 몸부림의 수준이었다.원인규명을 위한 노력부터 체계적 재난대응 시스템 구축과 현실적 재난지원을 위한 노력까지, 그간 우리의 노력은 반드시 성과로 이어져야 한다. 단순히 일회성 사업이나 예산지원에 그쳐선 안 된다. 재난으로부터 안전한 나라, 안심하고 살 수 있는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 그것만이 지금껏 흘려온 포항의 피와 땀에 대한 보상과 성과라 할 것이다.이제 포항지진의 복구와 극복은 달성해야 할 ‘목표’가 아닌, 관리해 나아가야 할 ‘과제’가 되었다. 이는 궁극적으로 정부와 국가가 나서야 할 재난관리의 과제라 할 것이다. 재난관리의 핵심은 원인 규명이다. 제대로 된 원인 규명만이 재난의 반복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오는 20일, 정부합동조사단의 지진원인 조사결과 발표가 있을 예정이다. 포항지진이 발생한지 만 1년 4개월, 정부 합동조사단 구성 1년만의 발표이다.조사발표의 핵심은 포항지진과 지열발전과의 연관성 유무이다. 조사 결과를 예단할 수는 없지만, 조사결과는 크게 두 가지로 예측해볼 수 있다. 하나는 일부 또는 상당 수준의 연관성을 입증함으로써 지열발전에 따른 유발지진으로의 결론일 것이다. 이 경우, 포항지진은 자연재난이 아닌 인재라는 결론에 다름없다. 전적으로 정부의 책임인 것이다. 정부는 물론 시행업체인 넥스지오가 물적·정신적 피해배상의 책임을 져야 한다. 우리는 곧바로 법적·행정적 절차를 밟아가야 한다.다른 하나는 미미한 수준의 연관성 또는 연관성 없음을 입증함으로써 자연지진으로의 결론일 것이다. 만에 하나라도 이러한 결론이 날 경우, 포항시민은 결코 이를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즉시 지진 원인규명을 법정 투쟁으로 옮겨가야 한다.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이를 각오하고 치열하게 투쟁해 나가야 한다.이제 다시 시작이다. 둘 중 어느 쪽으로 결론이 나더라도 이는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마침표가 될 것이다. 새로운 단락의 시작을 의미하는 것이다.이 두 경우 모두 시민의 하나된 목소리가 필수적이다. 다시 한번 시민의 단결이 필요한 시점이다. 정부 조사단 발표 이후 진행될 법적·행정적 대응을 위한 시민대표단 구성이 시급하다. 법조계와 학계의 전문가를 비롯한 시민단체가 함께하는 체계적이고 조직적인 대응이 필요하다.이에 범시민대책기구의 발족을 제안하는 바이다. 하루 속히 대책기구의 활동방향과 구성에 대한 논의가 시민 주도로 이루어지기를 희망한다. 범시민대책기구 활동의 성패는 시민의 절대적 지지와 공감대에서 시작된다. 필자를 비롯한 지역 국회의원은 물론 지역 정치인들의 초당적 지원이 뒷받침돼야 할 것이다. 작은 분열도 있어서는 안 된다. 오직 하나 된 단결과 끊임없는 소통만이 재난극복의 새로운 시작을 성공으로 이끌 것이다. 부디 재난극복의 새로운 이정표가 포항 땅에서 수립되기를 기대해본다.

2019-03-17

낮잠

매년 3월 둘째 주 금요일은 세계수면의 날이다. 세계수면학회가 수면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2008년 처음 지정한 이후 매년 나라별로 학술행사 등 크고 작은 기념행사가 벌어진다. 사람의 수면은 보통 7시간 30분∼8시간 정도가 적정 수면시간이다. 그러나 현대인의 바쁜 생활패턴으로 수면 부족을 호소하는 사람이 많아졌다. 한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직장인의 하루 평균 수면시간은 6시간(42%)이 가장 많았다. 다음이 7시간(24%), 5시간(21%)으로 조사됐다. 응답자의 75%는 수면 부족을 호소한다고 했다. 수면이 부족하면 체내 호르몬 분비가 잘 안 되고 비만이나 심혈관 질환 같은 또 다른 문제를 유발할 수 있다는 의학적 근거도 속속 입증되고 있다.그러면 낮잠은 어떻게 볼까. 부족한 수면을 보충하는 수단이 될까. 갈수록 낮잠에 대한 긍정 평가가 많아지는 분위기다. 서울과 도쿄 등에는 낮잠카페가 등장, 업무과로에 지친 직장인의 휴식처로 인기를 모은다고 한다.이솝 우화에서 등장하는 토끼는 낮잠을 자다 그만 거북이에게 달리기 경주에서 지고 만다. 잠꾸러기 토끼는 게으른 사람, 거북이는 성실한 사람의 상징이 된다. 그러나 지금은 낮잠이 게으름의 상징이 되는 것은 적절치 않다. 적당한 낮잠은 오히려 일의 활력소 내지 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평가가 많다. 스페인, 이탈리아 등 지중해 연안 국가들의 풍습인 시에스타는 이런 측면에서 낮잠이 생활의 활기를 주는 수단임을 보여준 좋은 사례다. 시에스타는 한낮의 무더위를 피해 잠시 낮잠을 잔 뒤 저녁 늦게까지 일하며 일의 능률을 찾는 그들의 생활 습관이다.우리나라도 농사가 주업이던 시절 오수(午睡) 혹은 오침(午寢)라는 이름으로 한낮 더위를 피해 낮잠을 즐겼던 선조들의 지혜가 있었다. 최근 그리스 한 병원 연구팀이 낮잠이 혈압을 낮추는데 큰 도움이 된다는 연구 내용을 발표했다. 과거 하버드대학 연구팀이 낮잠은 심장병으로 인한 사망률을 37%나 낮춘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낮잠의 유용성이 확인된 결과다. 지나치지 않다면 낮잠을 청해 보는 습관도 좋을 것 같다./우정구(논설위원)

2019-03-17

‘핵무장론’ 필요하다

안재휘 논설위원북한은 지금 ‘핵보유국’인가, 아닌가. 스웨덴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IPRI)는 최근 “올 2월 기준으로 북한은 20~30개의 핵탄두를 보유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발표했다. 이는 지난해 3월 추산치인 ‘핵탄두 10~20개 보유’에서 10개 나 늘어난 것이다. 주일미군사령부(USFJ)도 지난해 말 공개한 자체 제작 동영상을 통해 북한이 “핵무기를 15개 이상 보유하고 있다”고 밝혔다. 북한은 지금 핵보유국인가, 아닌가.참으로 희한한 일이다. 세계가 북한을 ‘실질적 핵보유국’이라고 인정하고 있는데, 대한민국만 입을 다물고 있다. 미국이 굳이 공식적으로 북한을 ‘핵보유국’이라고 말하지 않고 있는 것은 단지 핵 도미노 현상을 우려한 것이다. 그야말로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격이다. 북한 핵을 해결하기 위해서 우리가 핵무장을 하기는커녕 오히려 무장해제하는 것이 유리하다는 판단의 근거는 도대체 어디에 있는지 참으로 궁금하다.워낙 예측 불가능한 집단이니 달래는 수밖에 없다는 말을 한다. 막무가내 어린아이라면 맞는 말이다, 그러나 칼을 들고, 총을 들고, 나아가 핵미사일을 내세워 협박을 일삼는 무리에게 일방적 평화놀음이 무슨 해법이 될 수 있다는 말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한 핏줄, 한 동포’라는 낭만적인 접근은 저들의 전술 전략에 딱 맞아떨어지는 먹잇감이다. 우리는 지금 평화로운가, 아니면 그냥 평화를 갈망하다 못해 정신줄을 놓은 것인가.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자체 핵무장 필요성’을 언급했다. 그는 ‘이제 핵무장을 검토할 때’라는 이름의 정책토론회에 보낸 서면 축사에서 “자체 핵무장이 그리 간단한 문제는 아니지만, 폭넓은 국민 여론 수렴이 필요함과 동시에 국제사회와도 함께 고민하면서 풀어가야 할 과제”라며 “(자체 핵무장은) 최악의 상황이 올 수도 있는 우리 현실을 감안하면 무조건 접어놓을 수만도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지난 달 전당대회 과정에서 오세훈 후보는 “전술핵 재배치를 뛰어넘어 핵 개발에 대한 실증적 논의를 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지난 4일 한국당 조경태 최고위원은 “북한이 핵 포기 의사가 없다는 것이 확인된 이상 문재인 대통령은 자체 핵 개발이나 전술핵 주장을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홍준표 전 대표는 전술핵 재배치와 핵무장을 촉구하는 서명 운동을 벌이기도 했다.문제는 집권 여당인 민주당의 시각이 여전히 정파적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것이다. 민주당 이해식 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황 대표가 사실상 불가능한 핵무장론으로 보수층에 구애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한국당은 당 대표까지 나서 핵무장으로 한반도와 동북아를 화약고로 만들겠다는 무지막지한 생각을 보여줬다”며 “표만 얻을 수 있다면 악마와도 손잡겠다는 수구냉전세력의 민낯을 보는 것 같아 씁쓸하기 짝이 없다”고 비판했다.임진왜란 10년 전 병조판서로 있던 율곡 이이가 일본과의 전쟁을 예상하고 10만 대군 양병을 주장했다는 설이 있다. 당파에 눈이 멀었던 주류 서인들이 공연히 전쟁위험을 조장한다고 반대해 결국 실현되지는 않았다는 내용이다. 율곡의 10만 양병설이 실재했는지에 대한 논란은 있지만, 소중한 교훈을 남긴다. 군사적 대비에 필요한 비용은 전쟁으로 겪게 되는 막대한 참화에 비할 바가 못 된다는 점이다.비대칭 전략자산의 차원에서 보면, 한반도는 이미 균형추가 기울었다. 자주국방을 해야 한다면서 ‘미군 철수’를 부르대는 사람들이 ‘핵무장’은 절대 말하지 않는 것은 자기모순이다. 태영호 전 북한영사의 “김정은은 절대로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말을 허투루 들어서는 안 된다. 남북의 ‘핵 균형’ 말고는 답이 없다. 다시 묻는다. 북한은 핵보유국인가, 아닌가. 다 알면서 지금 스스로를 속이고 평화놀음에 취한 자들은 대체 무슨 속셈인가.

2019-03-17

자신과 화해하는 삶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말이 있다. 여러 해 동안 학기 시작 초 대학생들에게 ‘나는 누구입니까’라는 제목의 한 장짜리 리포트를 부여한바 있다. 정답이 없는 자유로운 숙제인데도 학생들은 쓰기가 힘들다고 했다. 대부분의 학생이 자신의 성장과정, 가족 관계, 현재의 입장만을 열거하고 정작 자신이 누구인지를 기술하는 데는 부족했다. 종교를 가진 일부 학생들이 자신의 절대자와의 관계를 중심으로 자신 있게 써 내려가기도 했다. 특이한 것은 상당수의 학생들이 자신의 현재의 삶에 만족치 못하고 자신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사람이 많았다. 결국 그것이 자신과 화해(和解)하지 못하고 자존감마저 상실케 하는 요인이 되었다.세상에는 자신과 화해하지 못하여 불행하게 살아가는 사람이 많다. 우리가 외적 평가나 자극에만 민감하여 내적으로 자신의 헛된 욕망을 채우려는 경향이 증가하기 때문이다. 자신에게 솔직하지 못하고 자신을 비하하거나 과시하는 것도 ‘거짓 자아’에 의존한 결과이다. 거짓 자아는 때로는 열등감으로 때로는 상대에 대한 지배나 공격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심리학자 구스타프 융은 이를 ‘자기 방어’ 기제라 명명하였다. 자신의 결점이나 능력을 감추기 위하여 자신을 방어하려는 욕망은 거짓 자아와 결합한다. 인간이 강한 자에게 아부하고 약한 자를 괴롭히는 매저키즘이나 새디즘적 본능도 모두 여기에서 나온다. 인간의 삶에는 실수도 있고 실패도 있다. 그것이 때로는 상처로 남는다. 결국 그것이 자신을 용서하지 못하고 자신과 화해하지 못하는 요인이며 자존감을 상실케 하고 타인과의 관계마저 단절시킨다.자신과 화해하는 삶은 자신의 참 자아에 일치하는 삶이다. 인간은 자신을 바르게 알고 긍정적으로 평가할 때 자존감을 지킬 수 있다. 우리 주변에는 자존감을 상실한 채 살아가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심지어 사회적 일탈행위나 자해를 통해 자신을 드러내려는 어리석은 사람도 있다. 자신의 약점과 장점도 그대로 인정하고 수용하는 긍정적인 삶이 자신과의 화해하는 길이다. 그것이 자신의 능력을 인정하는 삶이며 자신의 부족을 메우려는 긍정적인 삶이다. 그러한 삶속에는 거짓자아는 발동할 수 없으며 에릭슨은 이를 ‘통합자아’라고 말했다. 그러므로 자신과 화해하는 삶은 신앙인이 절대자 앞에서 겸손하듯이 자신에게 정직하고 솔직한 삶이 될 수 있으며 행복한 삶으로 나아갈 수 있다.정직하고 공정한 사회는 자신과 화해한 사람이 많은 사회이다. 자신을 위로하고 칭찬하는 사람이 많은 사회가 삶의 만족도가 높은 사회이다. 도덕성과 준법성이 살아 숨 쉬는 선진사회는 대체로 개인의 긍정적 자아가 발달한 사회이다. 우리의 삶에는 물질과 경제가 필요하지만 그것이 충분조건은 아니다. 우리나라도 이제 국민소득 3만달러가 넘어선 선진사회라고 하지만 아직도 문화적으로 성숙한 사회는 결코 아니다. 우리 사회는 아직 자살률이 세계 1위이고 교통사고가 빈발하고, 정치적 갈등이 난무하는 사회이다. 일본의 집단주의적 정치는 형편없지만 국민 개개인의 민도는 우리보다 높다. 자신에게 정직한 사람이 많기 때문이며 그것이 국가 발전의 원동력이다. 우리도 극일(克日)을 위해서 그들 개개인의 정직성을 배워야 한다.우리가 행복한 삶을 위해서는 먼저 자신의 거짓 자아를 버리고 참 자아를 마주해야 한다. 참 자아를 회복하기 위해서 우리는 조용한 자기 성찰이 우선되어야 한다. 우리 주변의 널려있는 매스미디어는 참 자아를 방해하고 자신과 화해까지 가로막고 있다. 그렇다고 자신과의 화해는 인격 교육을 통해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현대인은 바쁠수록 일기를 쓰는 등 자신과 대화 시간이 필요하다. 다행히 여러 종교의 가르침이 그것을 안내하고 있다. 그리스도교의 기도와 묵상, 불교의 참선은 결국 인간이 자신과의 올바른 관계를 가져야함을 일깨우고 있다. 만물이 소생하는 봄, 자신과 화해하는 성찰의 계절이 되길 바란다.

2019-03-17

봄, 소통과 공감의 시간

박상영대구가톨릭대 교수·국어교육과3월은 여전히 꽃샘추위가 한창이지만 왠지 달이 주는 어감 때문인지 벌써 ‘봄’이 온 것같은 느낌이다. 생각만 해도 가슴 설레는 봄, 이러한 ‘봄’에 우리 선조들(특히 여성들)은 무엇을 했을까?음력 삼짇날이 되면, 우리네 할머니, 어머니들은 친족 혹은 이웃들과 삼삼오오 야외로 나가 꽃놀이를 즐기곤 했다. 이를 화전놀이라고 하는데, 화전놀이는 봄의 시작을 알리는 역할뿐만 아니라 한해의 시작을 즐기는 것을 의미하기도 했다. 이 화전놀이의 전통은 신라 때부터 있어 왔다. ‘교남지(嶠南誌)’에는 궁인(宮人)들이 봄놀이 하며 꽃을 꺾은 데서 화절현(花折峴)이라는 고개가 유래했다는 기록이 있고, 같은 책 고적 조에는, 매년 송화(松花)가 가득한 봄이면, 집안의 부녀자들이 재매곡(財買谷: 김유신의 맏딸 재매 부인을 묻은 자리) 골짜기 입구에 초막을 하나 지어 송화방(松花房)이라 부르며 남쪽 물가에서 잔치를 벌였다는 기록이 있다. 물, 산, 꽃이 한데 어우러진 곳에 놀이를 위한 초막까지 따로 얽었으니, 송화로 전 부쳐 먹었을 풍경이 눈에 선하다.이러한 전통은 조선조에 와서도 이어지던 바였다. 세조 3년 4월 22일(을묘)의 실록 기록에도 무풍(巫風)이 성행하여 도성의 남녀들이 떼 지어 술을 마시며 날이 저물도록 즐겼는데, 귀가(貴家)의 부인들 또한 이를 많이 본받아 장막을 크게 설치하고는 며느리들을 다 모아서 호세(豪勢)와 사치를 다투어 준비했다는 기록이 보인다. 특히 진달래꽃(杜鵑花)이 필 무렵에는 이러한 행사를 더욱 자주 했으며 이를 전화음(煎花飮)이라고 특별히 부르기도 했다.이렇듯 나와 남이 한데 모여 먹고 놀고 마시며 이야기하는 화전놀이판은 그야말로 신명으로 가득하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주목할 것은, 반드시 이 놀이판이 소비적이거나 향락적이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는 점이다. 오히려 즐거운 놀이판, 그 신명풀이의 화전놀이의 공간 속에는 그간 깊이 감춰왔던 아픔과 고통이 실타래 풀어지듯 하면서 ‘너’와 ‘나’가 하나로 봉합되는 과정이 담겨 있다. 봉합의 과정은 다름 아닌, 타자와의 소통과 공감에 다름 아니다.우리의 고전 시가 중 ‘덴동어미화전가’라는 가사가 있다. 이 노래는 불에 덴 아이(덴동이)를 둔 한 여인의 파란만장한 삶에 관한 것으로, 여기에는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네 차례나 결혼했지만 모두 상부(喪夫)로 점철된 삶을 살게 된 한 여인의 인생 역정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덴동어미는 갓 스물 결혼할 당시에는, 아무 것도 모르는 한없이 어리고 방황하는 주체의 모습을 보여주지만, 이후 무수한 타자들(남편들)과의 균열과 실패로 얼룩진 삶을 살아가면서 점차 인생을 알아가게 되고 자신을 돌아보게 됨으로써 성숙된 주체의 모습을 보여준다.이러한 성장통의 결과로, 마침내 모든 것이 심(心)이라는 글자 하나, 곧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깨달음을 얻게 되고, 핍진한 삶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덴동어미의 진심은 다른 사람에게 호소력 있게 전달된다. 남편을 잃고 슬픔에 젖어 화전놀이를 즐기지 못하는 청춘과부에게 먼저 다가가 고민을 함께 한 덴동어미, 그가 보여준 타자와의 소통과 공감 능력은 결국 봄춘(春)자 꽃화(花)자 노래를 부르며 마침내 놀이판에 서먹서먹하던 타자들을 한 데 묶는 거멀못 역할을 한다. 이처럼 화전놀이는 허심탄회한 이야기를 나누는 소통의 장이자, 자신을 돌아보는 성찰의 시간이면서, 타자와의 화합을 꿈꾸던 공간이었다. 우리 옛 할머니, 어머니들은 긴 겨울을 뒤로 보내며 이처럼 소통과 화합의 화전놀이로 한해의 시작을 의미있게 준비했던 것이다. 바야흐로 3월, 새 봄의 시작이다. 모쪼록 봄이 주는 따스함과 더불어 이러한 타자를 향한 소통과 공감의 시간으로 첫 발걸음을 떼어보면 어떨까.

2019-03-17

자아의 고갈에 대처하는 방법

한 대학 연구실에서 초콜릿 쿠키 굽는 냄새가 은은하게 퍼집니다. 연구자는 실험 대상을 두 그룹으로 나눕니다. 한 그룹에게는 초콜릿 쿠키를 맘껏 먹도록 합니다. 반면 다른 한 그룹에게는 초콜릿 쿠키를 먹지 못하게 금지하는 대신 얇게 자른 씁쓸한 무를 억지로 먹게 합니다. 일정 시간이 지난 후 이들에게는 풀기 어려운 문제가 주어집니다. 연구자는 두 그룹 학생들이 얼마나 오랫동안 문제를 푸는데 에너지를 쏟는지 측정합니다.쿠키를 먹은 학생들은 평균 19분 가량 문제 풀이에 시간을 투자합니다. 반면 쓴 무를 먹게 한 그룹은 겨우 8분 정도 문제를 풀다가 중도에 포기해 버리고 말지요. 19분과 8분. 의미있는 격차가 발생합니다. 이번에는 음식을 차려 놓지 않고 평균적인 학생들을 실험대상으로 불러 모아 문제를 풀게 합니다. 그들이 문제를 붙잡고 씨름하는 시간 역시 평균 19분입니다. 케이스 웨스턴 리저브 대학의 부부 심리학자 로이 바우마이스터와 다이엔 타이스가 진행했던 실험으로 ‘의지력’은 과연 고갈되는 자원인가를 입증해 보는 실험입니다.쿠키가 코 앞에서 식욕을 자극하는데 먹지 말 것을 강요당한 학생들은 맛없는 무를 먹으면서 쿠키를 한 입만 먹으면 좋겠다는 욕구와 씨름하지요. 식욕을 참는 것은 상당한 의지력을 요구합니다. 이들이 문제를 푸는데 불과 8분 밖에 집중할 수 없었던 이유는 쿠키를 먹고 싶은 욕구를 참느라고 의지력을 이미 상당부분 고갈시켰기 때문이라는 것이지요. 연구자는 이 효과를 ‘자아의 고갈’이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인간 의지력은 한정적 자원이고 의지력을 쓰는 빈도에 따라 총량이 감소한다는 겁니다.삶을 풍요롭게 만들어주는 여러 행위들은 의지력의 고갈을 불러옵니다. 예를 들면 독서입니다. TV나 인터넷의 유혹, 스마트 폰의 달콤함을 참으면서 책에 집중하는 일이 힘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거지요. 스마트폰이 갓 구운 쿠키라면, 책은 쓰디 쓴 무 아닐까요? 지혜의 산삼에 비유되는 고전은 씁쓸하고 맛이 없습니다. 한참을 씹어 먹어야 깊은 향과 맛을 느낄 수 있겠지요.한정적 자원인 ‘의지력’을 고갈시키지 않으면서 의미있는 행동을 반복하기 위해서는 이를 ‘습관’으로 만들어 버리는 것이 좋은 방법입니다. 비록 초기에 투자해야 하는 에너지가 막대하기 때문에 실패할 확률이 높지만 말입니다. 약간의 어려움이 있다 해도 이 아름다운 봄날에 어떤 좋은 습관을 만드는 일에 에너지를 투자할 것인지 고민하는 하루는 어떠신지요? /조신영 인문학365 대표

2019-03-17

유물에 담긴 먹고 살기 위한 발버둥… 탄화된 쌀·콩으로 남아

“먹기 위해 사느냐, 살기 위해 먹느냐?”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만큼이나 오래된 질문이다. 누군가는 먹는 행위 자체가 삶의 목적이며 즐거움이라 하고, 다른 누군가는 삶의 최소 조건이자 구차한 일상이라 한다. 이처럼 떼려야 뗄 수 없는 욕망이기에, ‘먹다’와 ‘살다’라는 단어가 엄연함에도 ‘먹고살다’라는 단어가 따로 존재한다. 생계를 유지하다, 즉 살림을 살아나갈 방도를 보존하고 지탱한다는 뜻인데, 그야말로 삶 자체다.‘먹방’이 유행이 되다 못해 범람하는 세상이다. 고전적인 요리 프로를 비롯해 요리사들끼리의 경연, 맛집 탐방으로도 모자라 음식을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꾸역꾸역 먹어대는 인터넷 개인 방송까지 등장했다. 한국의 특이한 사회현상의 사례로 외신에 소개되기까지 한 ‘먹방’의 원인으로는 1인 가구의 증가, 외로움, 불황 등이 지목된다.멍하니 ‘먹방’을 보노라면 마음이 편하다. 정치나 경제나 사회 뉴스를 볼 때와 같은 부담이 없다. 정보를 얻기 위해 보기보다는 ‘백색 소음’처럼 일상의 익숙한 배경이 된다. 먹는 일만큼 남녀노소 빈부귀천 가릴 것 없이 모두에게 통용되는 소재가 흔할까? 동서고금의 경계도 없을 터이니, 문득 월성의 사람들이 무엇을 먹고 살았는지 궁금해진다.경주로 가기 전 정보를 찾다 보니 다른 지역에 비해 ‘맛집이 없다’는 평이 왕왕 눈에 띄었다. 여행의 즐거움 가운데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식도락인데 맛집이 없으니 아쉽다는 것이다. 2014년에 홀로 훌쩍 여행을 떠나왔을 때는 맛집을 검색하거나 찾아다닐 엄두를 내지 못했다. 시티투어버스에 실려 단체로 먹은 점심이 가격 대비 썩 만족스럽지 않았다는 기억은 있지만, 단체 관광객을 상대하는 식당에 큰 기대는 무리다. 두부나 한우는 식재료이지 요리가 아니다. 정말 없는 건지 알려지지 않은 건지 모르겠지만 경주 하면 떠오르는 ‘향토 음식’이 없다는 건 안타까운 일이다.평소에 맛집 탐방을 즐기는 편은 아니지만 이번에는 마음먹고 맛있는 음식을 찾아다녔다. 내게 ‘먹일’ 의무가 있을뿐더러 뭐든 가리지 않고 잘 먹는 아들아이가 동행한 덕택이기도 하다. 광고로 넘치는 인터넷 검색은 신중하게 가려 했고, 게스트하우스의 주인이나 택시기사 등 현지인의 추천을 구했으며, 가끔은 지나가다가 손님이 많거나 주차장이 꽉 차 있으면 불쑥 들어갔다. 유명한 가게나 지도를 찾아가며 어렵게 갔던 곳보다 불쑥 들어갔다 의외의 맛집을 발견한 경우가 더 많았으니, 우연은 참 즐거운 것이다. 관광이 아닌 여행의 묘미가 여기에 있다.첫날부터 성공한 선택이었다.숙소에서 가까운 중앙시장(아랫시장)에서 소머리국밥과 돼지국밥 골목을 찾았다. 둘이 메뉴를 하나씩 시키고 지역 소주인 ‘참’을 반주로 곁들였다. 첫맛은 옅으나 뒷맛에서 예전의 ‘경월소주’ 같은 쇳기가 느껴진다. 일단 내 입맛에는 별로였는데 현지의 술꾼인 H기자에게 듣자니 먹을수록 참맛이 있다고 한다. 후식으로 떨이하는 떡볶이를 샀다. 떡볶이는 특이하게 무가 들어있어서 시원하고 맛있었다.둘째 날엔 월성을 한 바퀴 돌고 성동시장(웃시장)에서 점심을 먹었다. 경주의 시장들은 특이하고 재미있는 구조인데, 중앙시장이 그렇듯 성동시장도 중심부쯤에 문을 막아 식당 공간을 만들었다. 성동시장의 식당은 아는 사람만 안다는 한식뷔페다. 말로 설명해서 그림이 그려질지 모르지만, 홀과 같은 공간으로 들어가면 여러 아주머니가 갖가지 반찬을 쌓아놓고 기다린다. 약간의 호객과 망설임 끝에 쭈뼛거리며 자리를 잡고 앉으면 아주머니가 마음껏 반찬을 골라 먹으라며 접시와 수저를 주고 밥과 국을 떠준다. 반찬 종류는 비슷비슷한데 서로 벤치마킹한 결과인 듯하다. 제철 나물과 옛날 소시지, 달걀말이와 시래기 국으로 한 끼를 든든하게 먹었다. 가격은 6천원, 요즘 흔치 않은 밥값이다. 혼밥이 어색하지 않도록 아주머니와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재미도 쏠쏠하다. 나와 아들이 밥을 먹은 ‘숙이네’ 주인아주머니는 20년 동안 성동시장에서 한식뷔페를 하셨단다.그밖에 경주에서 먹은 인상적인 끼니는 불국사역 앞의 돼지갈비와 국수와 김밥 정식, 법흥왕릉에 갔다가 모량에서 먹은 손칼국수와 콩국수, 게스트하우스 주인장의 추천을 받아 황성동까지 택시를 타고 가서 먹은 경주 한우, 그리고 성건동의 닭갈비 등이 있다. 문무대왕릉을 보고 감포항에서 먹은 유명 횟집의 물회는 큰 감명이 없었고, 보문단지의 육회는 너무 유명해서 폐점 시간이 되기도 전에 재료가 소진되는 바람에 문지방도 밟아보지 못했다. 관광지의 음식점이나 인터넷 블로그에서 소개한 맛집들보다는 현지인의 추천이나 차라리 우연히 찾은 식당이 나았다. 그럼에도 끼니때가 다가올 때마다 습관적으로 스마트폰을 열어 맛집을 검색하는 일을 반복했으니…. 그런데, 정말 우리가 경주에서 먹은 것이 월성의 사람들이 먹었던 것일까?앞서 밝힌 대로 지금까지 월성 발굴조사를 통해 출토된 약 40만 점에 이르는 유물 중 가장 많은 것은 기와다. 월성 내부 같은 건물지에서는 건물 지붕에서 눈비로부터 건물을 보호하거나 장식적으로 건물을 돋보이게 하는 기와가 주로 출토된다. 그중 C지구에서 출토된 기와에 새겨진 ‘전인(典人)’이라는 글자와 토기에 새겨진 ‘도부(嶋夫)’라는 글자는 기존에 볼 수 없었던 것이라 주목받는다. 전인은 기와와 그릇을 담당하는 관청인 와기전에 소속된 담당자를 가리키고, 도부는 토기를 만든 사람으로 추정된다.또 월성 해자에서는 정보 전달이나 글씨 연습 등의 목적으로 나무 조각에 글자를 쓰거나 새긴 목간(木簡)이 출토되었다. 특히 ‘병오년(丙午年)’이라고 적힌 목간이 7점 발굴되었는데, 법흥왕13년(526년)과 진평왕8년(586년)이 병오년이니 월성 해자에서 출토된 목간 중 최초로 정확한 연대가 확인된 것이다. 토기, 벼루, 어망추, 흙으로 만든 공과 가시연꽃, 복숭아, 자두 등 식물의 씨앗들, 그리고 소의 어깨뼈를 비롯해 개, 가슴, 곰을 비롯한 동물 뼈들도 나왔다. 그중에서도 곰은 신라 시대 유적에서 최초로 확인된 동물이니, 어떻게 서라벌까지 이동해 왔으며 곰의 뼈로 무엇을 어떻게 했는지가 수수께끼로 남았다.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기...지는 못해도 삶의 흔적은 타다 만 쌀과 콩으로나마 남았다. 먹고사는 발버둥은 그들과 우리가 다르지 않을지니 희로애락 또한 어금버금하지 않겠는가? 월성에서 출토된 유물들을 바라보노라니 느꺼움과 허무함이 동시에 물밀어든다.경주 한국역사문화음식학교를 운영하는 차은정 박사가 ‘서라벌 신문’에 기고했던 ‘신라음식 이야기’에서 힌트를 얻어 보기로 한다. 삼국시대 초기부터 안정적인 농경 생활을 했던 신라의 식문화는 조리 기구나 시설의 발달로 변화된 조리방법의 차이를 제외한다면 ‘밥상의 구성 면에서 현재와 크게 다를 바가 없었을 것으로 짐작된다’는 의견에 근거해, 월성 사람들의 먹거리를 헤아려본다.콩잎, 재피잎, 가죽나무잎, 더덕, 도라지, 전복, 개암, 무, 땡감 등 먹을 수 있는 것이라면 뭐든 장아찌감으로 치는 경상도의 식문화는 월성의 입맛과 닿아 있을 것이다. 현대에 이르러 논란의 대상이 되었지만 선사시대부터 단백질 공급원이던 개고기도 빠질 수 없을 것이다. 대추는 가야의 황후인 허황옥의 결혼예물이었고, 경주 민요 ‘효행가’에 등장하는 잉어는 효의 상징일 뿐만 아니라 고급 보양제였을 것이다.‘삼국유사’의 ‘진정사 효선쌍미’에서 진정의 어머니가 솥을 시주하는 장면이 등장하는바 무쇠 솥이 일반화되었을 것으로 보이는데, 무쇠 솥으로 익히기 좋은 잡곡 가운데 팥은 불교 의식에 사용됨과 동시에 민간에서 액운을 막는 상징으로 쓰였을 것이다. 중국의 고의서 ‘남해약보’에는 “신라인이 다시마를 채취하여 중국에 수출했다”는 기록이 있으니 다시마를 비롯한 해초 요리도 먹었을 것이다. 경주에서 ‘깨금’이라 불리는 개암열매는 미추왕과 문무왕, 신라 마지막 임금인 경순왕의 위패를 모신 숭혜전에서 진설되기도 한 식재료였다.월성 사람들의 먹거리로 한정시키면 차은정 박사의 의견대로 약선(藥膳)요리를 떠올릴 수 있다. 약이 아니라 음식으로 병을 고치거나 예방하는 식치(食治)는 황제의 건강관리를 위해서 식의(食醫)제도를 도입했던 당나라 때부터 왕실 음식의 특징이 되었다. 음식만이 아니라 마시는 물, 그리고 소화와 배설에까지 세심하게 신경을 쓰는 것이 식치일지니, 배가 고프지 않아도 꾸역꾸역 먹고 마시는 허기는 사뭇 현대적인 경망일지 모른다.아랫시장(중앙시장)은 2일과 7일이 장날이랬다. 장 구경은 언제나 재미있고 괜스레 신난다. 날씨가 추워 평소보다 장꾼들이나 손님들이나 많지 않은 게 아쉽다. 그래도 여전히 벅적벅적한 시장 골목을 두리번거리며 휘돈다. 꽤 많은 동네의 꽤나 많은 장터를 돌아봤건만 날이 갈수록 지역적 특색이 사라지고 비슷한 풍경에 비슷한 먹거리뿐이다. 수입 농산물이 밥상을 점령하고 장터 대신 대형 마트를 찾는 발길이 늘어나니 아무래도 경쟁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간식거리도 마찬가지다. 아들아이와 갓 구운 호떡을 하나씩 베어 물었지만 여느 호떡과 다를 바 없는 그냥 호떡이다. 황남빵, 찰보리빵 등 경주를 브랜드화한 간식거리들은 관광객들을 위한 상품일 뿐 ‘로컬 피플’의 입맛과는 별개인 듯하다.프랑스 미식가 브리야 사바랭이 했다는 “당신이 무엇을 먹는지 말해 주면, 나는 당신이 누구인지 말해 주겠다”는 말은 이제 너무 유명한 잠언이 되었다. 음식은 우리의 피와 살을 만들고 에너지를 제공하는 동시에 우리의 개성과 존재 자체를 특징하는 매개임직하다. 개개인이 그러하거니와 지역이나 나라도 마찬가지다. 경주의 음식, 신라의 식문화, 월성만의 먹거리를 고민해야 한다.기어이 매의 눈을 뜨고 다른 지역의 장터와 구분되는 특징을 찾아본다. 경주 장에서 눈에 띄는 지역 농산물은 상주 곶감, 예천 땅콩, 청송 사과 정도다. 채소류로는 시래기와 버섯이, 수산물로는 가자미와 도루묵 등의 반건조 어물이 유달리 많다.“새댁! 이거 좀 사가시오!”아직도 나를 새댁이라 불러주는 고마운 할머니가 벌여놓은 난전에는 철 이른 냉이가 소복하다. 숙소에서 끓이거나 무쳐 먹을 방도가 없어 사고 싶어도 살 수 없지만, 생각해보니 경주에서 먹은 음식에 고명으로 냉이가 오른 것이 꽤 많다. 봄이 오면 밥상도 더 푸릇하고 풍성해질 테다. 다가올 봄을 기다리며 군침을 삼킨다.

2019-03-17

산책은 산 책이다

김병래수필가·시조시인산책을 하려고 날마다 들로 나간다. 마을 주변에 너른 들이 있어 발길 가는 데로 이리저리 걸어 다니다 오는 산책이다. 몸의 건강을 위해 걷기운동을 하는 사람들은 양 팔을 크게 흔들며 빠른 걸음으로 걸어야 효과가 크다고 하지만, 별다른 목적이 없이 이것저것 해찰을 하며 느릿느릿 걷는 게 나의 산책이다.산책은 말마따나 살아있는 책이다. 달마다 철마다 새로이 출간되는 계간지나 월간지다. 하루하루 촘촘히 들어있는 건 월간지이고 가끔씩 듬성듬성 읽는 사람에겐 계간지이다. 나는 거의 매일 빼먹지 않는 월간지 구독자다. 하루라도 밥을 먹지 않으면 허기가 지는 것처럼 어쩌다 산책을 하지 못한 날은 마음이 헛헛하다. 하루도 독서를 하지 않으면 입에 가시가 돋는다는 안중근 의사의 경구를 실감하게 된다.산책은 어렵지 않다. 삼척동자도 까막눈도 읽을 수 있고 백세 노인도 걸을 수만 있으면 읽을 수 있다. 걸을 수 없는 사람은 휠체어로도 읽기도 한다. 요즘은 전동 휠체어까지 나와서 더 편리해졌다. 산책은 난해하지는 않지만 누구에게나 똑 같이 읽히는 건 아니다. 아무것도 감추거나 속이지 않지만 시간과 장소와 사람에 따라 천차만별 내용이 다르다. 주마간산 건성으로 읽는 사람도 있고 자세히 정독을 하는 사람도 있다. 바쁘고 급한 사람에게는 잘 보이지 않지만 눈과 마음을 열어놓은 사람에게는 무궁무진 읽을거리가 많다.산책은 어느 경전보다도 생생한 생명의 말씀이다. 과장이나 왜곡이나 허위가 없는 진리의 말씀이다. 병이 든 몸과 마음을 치유하는 말씀이고, 지치고 좌절하는 사람에겐 용기와 활력을 불어넣는 말씀이다. 악성(樂聖)이라 불리는 베토벤은 비가 쏟아지는 날에도 거르지 않은 산책으로 귀가 들리지 않는 절망을 이겨내었고, 철학자 칸트도 날마다 일정한 시간에 산책을 하는 것으로 위대한 사유체계를 이루었다.지난 겨울에는 겨울마다 새로 연재하는 청둥오리와 겨울보리를 감명 깊게 읽었다. 해마다 비슷한 내용이지만 읽을 때마다 새로운 게 산책이다. 오로지 맨몸 하나로 먼 하늘을 날아와 얼어붙은 들판에서 겨울을 나는 청둥오리는 걸핏하면 죽네 사네 엄살을 부리는 인간들에 비해 얼마나 씩씩하고 꿋꿋한가. 겨울보리의 어처구니없는 막무가내는 또 어떤가. 남들은 겨울을 나기 위해 단단히 준비를 하는 늦가을에 막무가내로 싹을 틔우고, 발가벗은 어린아이 같은 여린 싹으로 겨울을 견디는 모습은 오소소 소름이 돋는 전율이요 충격이었다.새로 나온 3월호 오늘의 페이지에는 연못가 버드나무가 눈길을 끈다. 앙상한 가지에 언제부턴가 보일 듯 말 듯 봄빛이 감돌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제법 연둣빛이 짙어졌다. 누군가가 날마다 묽은 연두색 물감을 조금씩 덧칠하는 모양이다. 마치 한 폭의 담채색 동양화를 보는 듯 가슴 설레는 이른 봄의 정경이다.봄까치꽃과 광대나물도 한층 생기를 띠었다. 보통은 한해살이풀로 알려져 있지만 상당수는 죽지 않고 월동을 한다. 그 냥 죽은 듯이 동면을 하는 것이 아니라, 명주실 같은 겨울 햇살을 붙잡고 꽃을 피우기도 하는 걸 보면 그 맹목의 생명력에 아연하고 숙연해진다. 한갓 보잘것없는 풀꽃까지도 사는 데까지 살아있는 일에 도무지 핑계나 엄살이 없다는 걸 시리게 읽는다.거대한 딱정벌레 같은 트랙터가 봄갈이를 하고 있다. 겨우내 묵혔던 벼논을 갈아서 햇볕과 공기를 쐬어 주면 굳어 있던 땅이 부드럽고 싱싱해진다. 완고하고 거칠어진 사람의 마음밭도 수시로 반성과 성찰의 쟁기로 갈아주어야 이해와 포용의 토양이 될 것이다. 그러고 보니 어제 그제가 경칩이었다. 옛날에 소가 끌던 쟁기와는 달리 트랙터의 쟁기질은 사납기 그지없다. 땅속에서 동면하던 개구리들이 저 무지막지한 횡포에 얼마나 살아남을 수 있을까. 이 들판의 살아있는 읽을거리가 점점 줄어드는 것이 못내 안타까운 마음이다.

2019-03-14

비극과 카타르시스―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에 대해

△순환논증의 비순환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은 순환논증의 오류를 범하는 곳이 적지 않다. 이를 테면, “행동자는 필연적으로 성격과 사상에 있어 일정한 성질을 가지게 마련이다. 왜냐하면 이 양자에 의하여 우리는 그들의 행동을 일정한 성질의 것이라고 말하기 때문이다.”와 같은 부분이 그렇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행동자가 성격과 사상을 갖는 이유를 ‘필연적’이라고 설명하고 있다(51면). 성격과 사상은 일정한 성질을 갖고 있는데,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이유는 우리가 그렇게 말하기 때문이다. 이런 아리스토텔레스의 순환논증 중 가장 압권은 이것이다.그런데 전체는 시초와 중간과 종말을 가지고 있다.시초는 그 자체가 필연적으로 다른 것 다음에 오는 것이 아니라 그것 다음에 다른 것이 존재하거나 생성되는 성질의 것이다. 반대로 종말은 그 자체가 필연적으로 또는 대개 다른 것 다음에 존재하고, 그것 다음에는 다른 것은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성질의 것이다. 중간은 그 자체가 다른 것 다음에 존재하고, 또 그것 다음에 다른 것이 존재하는 것이다(56면).이 말을 정리하면, ‘시초’는 시초에 있는 것이고 ‘중간’은 중간에 있는 것이며, ‘종말’은 종말에 있는 것이다. 장난처럼 들리는 이 말을 조금 깊이 생각해보면, ‘처음-중간-끝’에 대한 간략하면서도 가장 적확한 정의라는 것을 알 수 있게 된다.‘시초’란 다른 것 다음에 올 수 없는 것으로 모든 사건들이 응축되어 있는 특이점(singularity)이다. 여기에서부터 사건은 ‘분규’(스토리의 시초부터 주인공의 운명에 전환이 일어나기 직전까지, 108면)하면서 ‘급전’(사태가 반대 방향으로 변하는 것, 69면)과 ‘발견’(무지의 상태에서 지의 상태로 이행하는 것, 71면)을 포함하게 된다.‘중간’은 ‘시초’와 ‘종말’을 그럴 수밖에 없도록 연결한다. 특정한 ‘시초’를 특정한 ‘종말’로만 이끌어가게 만드는 유일무이한 매개항인 것이다. 그리하여 사건은 완전히 닫히게 된다. 그 지점이 ‘종말’이다.△인간의 급수 혹은 수용론이러한 비극의 구조는 인간의 탄생과 죽음을 모방하고 있다. 그런데 아리스토텔레스가 비극이 “행동하는 인간을 모방”한다거나, “완결된 행동을 모방”하고 있다는 것을 이 책 전체에 걸쳐 지속적으로 강조하고 있다(31면: 49면). 생각해보아야 할 것은 아리스토텔레스가 모방이라고 부른 것은 인간의 삶 전체가 아니라 ‘행동하는 인간’에게서 일어난 중차대한 사건, 혹은 ‘급전’과 ‘발견’으로 인한 급격한 변화가 이뤄지는 삶의 한 부분을 모방한다고 말하고 있다.하지만 우리는 삶의 처음과 끝을 모르며 그 진행방향에 대해서도 예측할 수 없다. 그러하다면 행동하는 인간의 모방이라는 말이 가능할까. 우리는 우리의 삶의 방향을 모르기 때문에 급전이나 발견의 순간을 알 수 없다. 따라서 모방을 하려면 행동 중인 인간이 아니라 행동이 완료된 인간을 모방해야 한다. 다시 말하면 진행 중인 사건이 아닌 이미 완료된 사건을 모방해야 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것을 “완결된 행동[의] 모방”이라고 말한다.그렇다면 행동이 완결된 것들은 모두 모방 가능한가. 꼼꼼한 아리스토텔레스는 이것 역시 빼놓지 않고 “완결된 행동을 모방”할 수 있는 범위까지 언급하고 있다. 모든 인간이 아닌 “큰 명망과 번영을 누리는 자들 가운데 한 사람”, “[명망 있는] 소수의 가문” 중의 한 사람이다(79: 90면). 그 중에서도 “무서운 사건이 일어난 가문”을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90면). 아리스토텔레스가 일종의 수용론적 입장까지 고려하고 있는 듯하다. 관객이 전혀 모르는 사람을 관람객에게 이해시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관객이 이미 알고 있으면서 같이 공감할 수 있는 사람을 선택할 것은 아리스토텔레스는 말했던 것이다.△모방의 논리모방의 대상은 신화적 인물이나 영웅을 모방하라고 아리스토텔레스는 말한다. 하지만 그는 대상의 삶을 사실 그대로 묘사하라고 말하지 않는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개연성’을 중시한다. “실제로 일어난 일을 이야기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일어날 수 있는 일”을 이야기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이야기 한다(62면).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러한 개연성을 위하여 실제로 일어난 사건 중 불필요한 것은 버려도 좋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이것들은 “전체 중에[서] 아무런 크기를 가지지 않[는] 전체” 즉 “통일을 이룰 수 없는” 사건이기 때문이다(56면: 59면). 이러한 사건 속이 펼쳐질 때 “비극의 카타르시스”가 행해진다(49면).이렇게 본다면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모방은 대상에 대한 사실적이고 객관적인 묘사가 아니라 실제적인 사건의 조합과 배치에 가깝다. 그러한 조합과 배치의 지향점이 ‘카타르시스’일 것이다. 결국 비극의 모방이란 조합과 배치의 기술이라 할 수 있다.공강일서울대 강사·국문학△카타르시스: 정화 혹은 배설그렇다면 이 완성된 작품 속에 깃드는 ‘카타르시스’는 무엇일까.카타르시스는 ‘정화’나 ‘배설’이라는 뜻을 갖는다. 정화는 더러운 것을 씻어낸 후의 결과를 말한다면 배설은 더러운 것을 씻어내는 행위를 말한다. 하지만 더러운 것을 씻어냈다고 해서 꼭 깨끗해진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배설이라는 말은 이보다는 더 의미심장하다. 배설의 논리는 이렇다. 우리의 몸은 이미 더러운 배설물을 가지고 있다. 배설물은 우리 몸이라고도 그렇다고 우리의 몸의 일부가 아니라고도 말할 수 없다. 그런 점에서 배설물은 온전하고 완전무결한 우리를 구성하지 못하게 만드는 균열점이다. 다시 말하면 비극은 카타르시스를 통해 ‘나’라는 인식의 틈을 비집고 들어와 ‘나는 누구인가’를 끊임없이 묻게 만든다. 비극의 가치는 완고한 ‘나’를 주체가 아닌 비주체로 만들어내는 바로 거기에 있다.*덧: 니체의 ‘비극의 탄생’은 이렇게 정리될 수 있다. 슬픈 감정은 축제에 참여한 사람들이 광란과 착란을 가라앉혀, 보다 이성적이고 침착하게 사유하도록 만든다. 성적인 것들이 삭제되고 금기시되며, 애도와 경건함이 축제의 중요한 형식으로 자리잡게 된다. 축제에서 ‘축’을 분리하여 삭제하고 ‘제’의 기능만을 활성화시킨다. 그러한 ‘제의적’ 성격은 종교적 특징으로 자리잡게 된다. 그리스 비극의 역사는 감성의 영역을 몰아내고 이성이 지배하는 사회를 구축해가는 시대로 이끌어가게 만드는 장치는 아니었을까. 남성중심적 그리스 사회가 고안한 남성적 장치는 아니었을까. 그리스 비극은 오늘날 삶의 비극으로 이행하게 만든 출발점은 아니었을까.

2019-03-14

파란 리본

선생님이 학생들을 한 명씩 앞으로 부른 후 얼마나 특별한 존재인가를 설명해주며 “당신은 내게 특별한 사람입니다”라고 쓴 파란 리본 하나를 달아줍니다. 선생님은 파란 리본 3개씩 더 나눠줍니다. “여러분, 리본 3개를 갖고 가서 주위 사람들에게 오늘 제가 여러분에게 한 것처럼 당신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말해 주는 거에요.”한 학생이 학교 근처 회사를 찾아갑니다. 진로 상담을 해 준 회사 부사장이 떠올랐기 때문이지요. 정중하게 호의와 친절에 감사를 표한 후 2개의 리본을 선물하며 말합니다. 부사장은 다음 날 회사의 CEO를 찾습니다. 사장은 구두쇠에 자기 이익만을 추구하는 자로 회사에서 누구에게도 존경을 받지 못하는 인물입니다. 부사장은 그에게 파란 리본을 달아 주며 사장의 천재성과 창조성에 대해 진심으로 존경을 표합니다. 사장은 눈물을 글썽이며 말합니다. “아, 정말 고맙소.”퇴근 후 사장은 열일곱 살 아들에게 말합니다. “아빠에게 오늘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부사장이 내가 창조적이고 천재적인 인물이라면서 이 리본을 달아 주었단다. 다른 리본을 하나 더 건네며 내가 특별히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에게 달아 주라는 거야. 집으로 오면서 누구에게 이 리본을 달아 줄까 생각하다가 널 생각했어. 아빠는 너에게 이 리본을 달아주고 싶다.”먹먹한 침묵이 흐릅니다. “바빠서 너한테 별로 신경을 쓸 수가 없었어. 네가 성적이 떨어지고 방안을 어질러 놓는 것에 대해 고함을 지르곤 했지. 하지만 아빠는 이 말을 꼭 해 주고 싶어. 너는 내게 누구보다도 특별한 사람이야. 넌 내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이지. 넌 훌륭한 아들이란다. 아빠는 널 정말로 사랑해.” 아들은 흐느껴 울기 시작합니다. 아빠도 눈물을 쏟기 시작합니다. 아들이 울먹이며 말합니다. “아빠, 사실 저는 오늘 밤 자살하기로 결심하고 유서를 쓰고 있었어요. 세상에서 그 누구도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했거든요. 이제 자살 따위는 필요 없어졌어요.”열일곱 아들처럼, 누구에게도 사랑받지 못한다는 생각에 혼자 울며 외로워하는 사람들이 주변에 있지는 않은 걸까요? 비록 파란 리본은 없어도 내 곁의 소중한 사람들에게 그들이 얼마나 특별한 존재인지를 표현해 보는 어떨까요? 어색하고 쑥스럽겠지만 말입니다. 작은 실천이 누군가에게는 암흑에서 빛을, 죽음에서 생명을 선물하는 위대한 선물이 될지도 모르는 일이니까요. 그대에게 파란 리본 3개를 살포시 놓아 드립니다. /조신영 인문학365 대표

2019-03-14

중국의 결단과 세계경제

김학주 한동대 교수중국에서 전국인민대표회의가 개막되었다. 중국정부는 우선 경제성장률을 연간 6-6.5%로 낮춰 잡았다. 그런데 이것도 비정상적인 성장이다. 중국의 국내총생산(GDP) 규모가 2017년 12.2조 달러였는데 미국은 2004년 이 수준에 도달했고, 그 당시 성장률은 3%대였다. 즉 이렇게 거대한 규모의 경제가 6%대의 성장을 반복한다는 것이 무리가 있다는 이야기다.물론 중국의 1인당 GDP는 아직 8827달러에 불과하여 성장 여력은 있다. 그러나 큰 덩치가 성장할 때 생기는 부작용을 감안해야 한다. 예를 들면 지금 우리를 힘들게 하는 미세먼지나 지구온난화 등 환경문제, 그리고 자원부족 등이 제약조건으로 등장한다. 즉 중국의 성장여력은 충분하나 속도는 떨어질 수 밖에 없다.지금까지 중국이 고속 성장한 배경은 수출중심, 즉 다른 나라의 2차산업을 빼앗는 손쉬운 성장에 있었다. 이제 자체적인 소비로 성장의 축을 옮긴다는 것은 중국의 산업구조 변경을 의미한다. 그런데 신경제 서비스 위주의 3차산업은 노동력을 덜 필요로 하는 바, 중국경제가 부분적으로는 1차산업, 즉 농업으로 되돌아가야 함을 의미한다.특히 경제성장에 있어 인구구조가 결정적 요인인데 중국의 가파른 인구노령화를 감안할 때 세계 소비의 심장이라고 할 수 있는 중국의 성장률은 떨어질 수 밖에 없고, 이는 세계 경제의 저성장 기조가 이제 시작일 수 있음을 시사한다.‘저성장’이란 과거 형성된 부가가치가 커 보임을 의미한다. 즉 돈이 투자되기 어려운 환경이므로 화폐의 가치가 하락하고, 그 결과 금융자산의 가격 거품은 더 커질 수 있다. 저성장 속에서 ‘가치’란 수익을 안정적으로 제공할 수 있는 능력이다. 따라서 신뢰도가 높은 기업에 프리미엄이 생긴다. 한편 성장기회는 드물지만 그런 성장을 구체화하는 기업이 있다면 마찬가지로 프리미엄이 확대될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은 넘치는 자금이 이 두 쪽으로 쏠릴 것이다.한편 중국정부 입장에서 위축되는 소비를 두고 볼 수만은 없다. 따라서 이번 전국인민대표회의에서 인프라 투자 규모를 정할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인프라 투자를 위한 자금조달 과정에서 지방정부의 부채가 늘고, 편법 금융(shadow banking)이 확대된다는 것이다. 즉 근절하고 싶은 문제가 재발하게 된다. 따라서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을텐데 그것은 금융시장 개방을 통한 해외자금 유치다.지난해 미국이 기준금리를 인상하며 중국으로부터 자금을 빼냈을 때 중국정부는 중국을 해외자금의 매력적인 투자처로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절실하게 깨달았을 것이다. 그 동안 중국이 금융시장을 개방하지 않았던 이유는 이념과 체제의 문제도 있었지만 거대한 중국 시장을 나누기 싫은 이기주의가 큰 부분을 차지했다. 그러나 이제는 상생을 위해 개방이 불가피함을 인식할 것이다.중국이 금융시장을 개방하면 한국에서 자금이 중국으로 이탈될 수 있다. 모건스탠리(MSCI) 신흥국 지수에서 중국의 비중이 높아지는 만큼 한국 비중이 떨어지는 것이 대표적인 예다. 만일 한국의 산업구조가 중국과 차별화되지 못한 채 남아 있다면 그 속도는 더욱 빨라질 것이다.금융시장 개방과 더불어 중국의 두번째 결단은 5세대(5G) 통신시장을 열어 미래의 주도권을 잡는 것이다. 중국은 자체적으로 5G시장을 만들 수 있는 규모다. 최근 미국과 서방국가들이 연대하여 화웨이를 고립시키고, 견제하려다 실패했다. 오히려 그런 행동들이 화웨이의 글로벌 경쟁력을 홍보해준 꼴이 되었다. 결국 중국으로 인해 5G시장이 우리의 예상보다 빨리 도래할 것이므로 여기에 대비해야 한다.미국 입장에서 중국의 5G 주도권을 인정하는 것은 패권을 다소 넘겨주는 모습이므로 유쾌하지는 않으나 세계경제의 저성장을 목전에 두고 서로 다툴만한 형편은 못 되는 것 같다.

2019-03-14

“서잡대”라고 부르면 좋을까?

서의호 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과미국의 아이비 리그(미국 동부의 8개의 명문대)의 하나인 코넬(Cornell)대학은 이타카(Ithaca) 라고 하는 아주 작은 마을에 있다. 몇 년전 그곳을 찾아가는데 시골길을 한참 차를 몰고 가니까 멀리서 나타나는 그런 소위 ‘촌구석’에 있는 대학이었다. 정문이 그러니까 후문 쪽은 좀 번화하지 않을까 하고 후문 쪽으로 가보았는데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런 소위 ‘시골대학’인 코넬 대학은 노벨상 수상자도 여럿 배출하고 경제학, 경영학, 공학, 자연과학 등에서 미국의 최고 명문 대학으로 수 백년간 칭송받고 있다.미국의 많은 우수한 대학들이 대도시가 아닌 소도시에 있는 경우가 많다. 사실상 주요 명문 주립대학들은 주의 수도가 아닌 작은 마을에 있다. 이것은 교육선진국이라는 유럽이나 일본도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마찬가지이다.한국도 요즘 포스텍이나 명문 과기대 등이 서울이 아닌 곳에 세워지고 있다. 또한 서울이 아닌 지방(필자는 지방이란 말을 쓰지 않지만 편의상 써본다)의 대학들도 우수한 대학이 많아지고 있다. 그런데 한국에는 지방에 있는 대학을 교육의 품질과 상관없이 ‘지잡대’ 등으로 싸잡아 부르며 멸시하고 차별하는 풍토가 있다. 서울 중심의 불균형한 사고방식과 왜곡된 학력 경쟁이 낳은 지방차별화의 실상이다.몇 년전 서울대 대나무숲 페이스북에는 ‘지방대생인 친구와 쇼핑몰에서 놀다가 충격적인 일을 당했다’는 서울대생의 글이 올라왔다. 한 지방대 마크가 들어간 후드 티셔츠를 입은 친구와 떠들고 있었는데, 서울 소재 한 대학생이 지나가면서 얼굴을 찌푸리며 ‘어휴 지잡대 냄새’라고 말했다는 사연이었다. 정말로 상식을 넘어선 충격적 사건이었다.그러나 이 사건은 그 학생 개인의 문제라기 보다는 지방을 무시하는, 그래서 지방에 있는 대학을 무시하는 우리사회의 뿌리깊은 차별의 문제이다. 미국, 영국 등 서구 교육 선진국에도 대학 간 우열은 있지만 지방에 위치하고 잇다는 이유만으로 멸시와 조롱을 받는 일은 결코 없다. 학력차별이 비교적 심한 일본에서조차 최하위권 대학을 뜻하는 ‘에프(F)랭크 대학’이라는 용어가 있지만 한국의 ‘지잡대’처럼 지방대 전체를 싸잡아 비하하는 말은 없다.지방대 출신이 전체 대학 졸업자 중 70%를 차지하는 다수인데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차별받고 멸시의 대상이 되는 것은 한국사회의 뿌리 깊은 지방 경시 상황에 근거하고 있다.역설적으로 지방대 무시의 시발점은 학생들이 공부하는 곳, 학교와 학원이다. 명문대 진학에 초점을 맞추는 입시중심 교육 속에서 지방대는 ‘낙오’의 동의어로 각인하고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최고 인기강사라는 학원강사들이 지방대 비하 발언을 유튜브에서 서슴지 않고 있다.지방에 있는 많은 고등학교들은 이른바 ‘명문대’ 진학생 숫자를 홍보하는 현수막을 정문에 거는 경우가 종종 있다. 성적순으로 대학을 줄 세우고 지방에 있는 대학에 가는 것을 ‘실패’와 ‘낙오’로 치부하는 일부 교사의 언행과 학교 분위기가 지방대 혐오를 키우고 있는 것이다.여기서 파격적인 제안을 한번 해본다. 서울에 있는 대학들을 싸잡아 “서잡대”라고 부르면 어떨까? 물론 그래서는 안 되지만 그런 가정을 해본다. “아휴 서잡대 냄새”라고 코를 잡고 지나간다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서울·지방 이분법은 이 사회에서 반드시 사라져야 할 악습이다. 특히 대학은 실력과 경쟁력에 의해 구분되어야지 서울, 지방 등 위치하고 있는 지역으로 구분해서는 안 된다.

2019-03-14

이집트 룩소르

세계 4대 문명의 하나인 이집트 문명은 나일 강 유역에 자리 잡았다. 이집트왕조가 수립된 기원전 3천년 경부터 시작된 문명이다.피라미드 문화가 있는 우리에겐 이색적으로 느껴지는 문화권이다. 전제군주인 파라오가 통치한 나라다. 정치, 경제, 종교에 걸쳐 파라오는 막강한 권력을 휘둘렀다.막강한 권력의 상징물로는 언제나 피라미드가 대변한다. 왕과 왕족의 무덤인 피라미드는 그 크기나 건축 과정이 지금의 과학으로도 풀지 못하는 수수께끼라 한다. 높이 140m, 2.5t 무게의 돌만 230만 개가 동원됐다. 상상이 되지 않는 자체만 해도 신비와 권위를 느끼게 해 주기에 충분하다.이집트 룩소르시는 고대 이집트를 대표하는 도시다. 나일 강을 따라 동쪽은 웅장한 신전과 궁전이 자리를 잡고, 서쪽은 왕들을 위한 공간으로 왕가의 무덤이 있다. 1천600년 동안 이집트왕국의 중심지로 번창한 도시이자 문화유적의 보고다.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곳이다. 신라 천년의 역사를 간직한 우리의 경주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것이나 찬란한 고대 역사도시라는 측면에서는 두 도시는 많이 닮았다. 룩소르시 어느 곳을 가든 파라오가 지은 웅장한 신전과 유적들이 지천에 널려 있다. 발길이 닿는 곳곳에서 문화유적을 접할 수 있는 점도 경주와 흡사하다. 1922년 11월 세상에 공개되면서 고고학의 위대한 발굴로 일컬어졌던 투탕카멘 왕의 무덤이 이곳 왕가의 계곡에 있다. 투탕카멘 왕은 이집트 제18왕조의 12대 왕이다. 18세의 젊은 나이로 죽었지만 죽음에 관한 역사는 잘 모른다고 한다.그러나 영국인 고고학자 하워드 카터가 발견한 투탕카멘 왕의 묘는 어마어마한 양의 유물이 쏟아져 나오는 바람에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한다. 황금 마스크와 투탕카멘의 왕좌, 황금 미라, 황금으로 그려진 벽화에 이르기까지 무덤 안이 온통 황금으로 장식돼 있다.경주시장 일행의 이집트 룩소르시 방문이 눈길을 끈다. 역사를 공통점으로 하는 룩소르시와의 교류는 두 도시의 역사 의미를 더하는 재미가 있다. 역사란 언제나 우리에게 호기심을 안겨 주기 때문이다. /우정구(논설위원)

2019-03-14

국가원수모독죄 논란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야당 의원이 정부나 여당의원을 향해 비판발언을 하는 것은 정치적으로 용인되는 폭이 상당히 넓다. 여야가 서로 견제·비판하는 것이 민주주의 체제에서 지극히 당연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통령에게 권력이 집중되는 대통령제라는 우리 정치 풍토상 야당 의원이 대통령을 직설적으로 비판한 경우에는 적지않은 풍파가 일곤 했다.첫 정권교체가 이뤄진 김대중(DJ) 정부 때엔 대통령 개인에 대한 모욕과 고소·고발 사례가 적지 않았다. 빈민ㆍ노동 운동가 출신의 제정구 전 한나라당 의원이 1999년 폐암으로 사망하자, 당시 이부영 의원이 “제 의원은 김대중 대통령 때문에 억장이 터져‘DJ 암’에 걸려 사망했다”고 했고, 김홍신 의원은 “김 대통령 입을 공업용 미싱으로 박아야 한다”고 했다. 김 의원은 모욕죄로 기소돼 대법원 유죄 판결(벌금 100만원)을 받기도 했다. 노무현 정부때는 당시 한나라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이상배 정책위의장이 일본 순방을 마치고 온 노 대통령을 향해 “이번 방일 외교는 한국 외교사의 치욕으로, ‘등신 외교’의 표상으로 기록될 것”이라고 비판하자 청와대는 즉각 “정상외교 중인 대통령에 대한 한나라당의 망언은 국가원수와 국민에 대한 있을 수 없는 모독”이라고 반발했다. 2008년 출범한 이명박 정부도 출범 직후 광우병 파동을 겪으면서 일찌감치 조롱의 대상으로 전락했다. 이 대통령의 생김새를 비하한 ‘쥐박이’ 등의 신조어가 대표적이다. 당시 야당인 민주당 천정배 의원은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이명박 정부는 국민주권을 짓밟은 쿠데타 정권”이라며 “쥐박이·땅박이·2MB”라는 말을 거침없이 사용해 당시 한나라당 의원들의 반발을 샀다.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해서는 야당의원이 ‘태어나지 않아야 할 사람’이란 뜻의 ‘귀태’ 라는 표현을 썼다가 논란을 빚었다. 2013년 7월 홍익표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브리핑에서 “만주국의 귀태(鬼胎) 박정희와 기시 노부스케의 후손들이 아이러니하게도 한국과 일본의 정상으로 있다”고 비판해 ‘귀태’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이번에는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가 문재인 대통령을 겨냥해 “김정은 수석대변인”이라는 표현을 쓰자 민주당 의원들이 크게 반발하고 나섰다. 민주당 이해찬 대표는 아예 “대한민국 국가원수에 대한 모독죄”라며 윤리위에 제소하겠다고 나섰다.그러나 우리 형법에는 ‘국가원수모독죄’라는 죄명이 없다. 다만 과거에 국가모독죄란 죄명이 있었다. 박정희 정권의 유신체제 아래에서 만들어진 죄목이다. 1975년 3월 당시 여당이던 민주공화당과 유신정우회가 형법을 개정해 신설했던 것으로, 그 내용은 내국인이 대한민국이나 헌법에 따라 설치된 국가기관을 비방하거나 허위사실을 유포하면 7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에 처하도록 형법 제104조 2항에 규정한 것이다. 한 마디로 유신체제나 박정희 대통령과 정부를 비판하는 것을 형사처벌하자는 독소조항이었던 이 조항은 1987년 6월 항쟁 이후 폐지 논의가 일었고, 1988년 총선에서 여소야대 국회가 되자 여야 4당은 ‘국가모독죄 삭제와 정치풍토쇄신법 폐지’의 여야단일안을 상정했고, 같은 해 12월 국가모독죄 조항은 삭제됐다. 특히 헌재도 폐지 27년 만인 2015년에 국가의 위신 등의 불명확한 이유로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은 민주주의 정신에 위배된다고 판단했다. 아이러니한 것은 형법개정 당시 초선의원으로서 국가모독죄 폐지에 동참했던 이해찬 대표가 국가원수 모독죄를 거론하고 나섰다는 점이다. 어쨌든 야당의원이 정부의 외교정책을 비판하기 위해 대통령을 겨냥한 발언을 했다고 해서 형법에도 없는 ‘국가원수모독죄’를 거론하는 것은 지나친 리액션이다. 오히려 4월 보궐선거와 일년 앞둔 총선을 의식한 여야가 힘겨루기에만 골몰하는 것은 아닌가 싶어 입맛이 씁쓸하다.서민 살림살이가 어려워지고 있다는 아우성에도 불구하고 여의도에서 벌어지고 있는 정치권의 한판 씨름은 ‘우습지 않은 억지 춘향 코미디’처럼 느껴진다.

2019-03-14

동양과 서양, 테크놀로지와 인간성, 과거·현재·미래가 맛깔나게 뒤범벅

비빔밥을 적확하게 표현한 이는 비디오 아티스트 고 백남준 선생이다. “비빔밥은 2개 이상의 문화가 같은 공간에서 충돌, 융합하여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했다.“‘한국에 비빔밥 정신이 있는 한 멀티미디어 시대에 자신감을 가질 수 있다.’ (중략) 실제로 나는 서로 섞일 것 같지 않은 이질적인 것들을 비빔밥처럼 버무려 새로운 것을 만드는 걸 즐겼지. 쉬운 예로 서울 아시안게임을 위해 만든 ‘바이 바이 키플링’을 볼까. 서양 연주가가 음악을 연주하는 모습, 일본 마라톤 선수가 결승 테이프를 끊는 장면, 서양의 타악기 연주와 한국의 사물놀이 연주가 함께 울려 퍼지는 장면. 그야말로 동양과 서양, 테크놀로지와 인간성,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온갖 요소를 뒤범벅으로 섞은 ‘비빔밥 정신’이 담겨 있지. 자네 작업도 보니 영락없이 비빔밥 같더군. (후략)”우리는 비빔밥을 모른다. 어느 항공사 고객들이 첫째로 손꼽는 기내식. 혹은 팝스타 마이클 잭슨이 한국에 왔을 때 몇 차례나 주문해서 먹었던 음식 정도로 기억한다.쌀을 먹는 나라는 많다. 비빔밥을 먹는 나라는 없다. 비빔밥은 한반도 고유의 것이다. 일본에는 여러 종류의 덮밥과 가마메시[釜飯, 부반]가 있다. 비슷하지만 우리 비빔밥과 다르다.덮밥은 말 그대로 밥 위에 여러 가지 고명을 얹어서 먹는다. 고명을 덮은 음식이지 비빔밥처럼 ‘비비다’에 방점이 있지 않다.가마메시는 솥밥이다. 비벼 먹는 것이 아니라 양념을 얹어서 떠먹는다. 가마메시를 비비는 것은 예의에 어긋난다. 일본인들도 비빔밥을 모른다. 그들 눈에는 비빔밥이 ‘양두구육(羊頭狗肉)’의 음식이다. 양 머리를 내걸고 개고기를 판다. 겉 다르고 속 다르다. 뉴욕에 비빔밥 광고 사진이 걸렸을 때 일본 언론인 구로다 가쓰히로[9ED2田勝弘, 1941년~ ]는 말했다.“아름답게 준비한 다음 왜 모든 걸 뒤섞어서 엉망을 만들까?” 구로다 씨의 한국 인연은 약 40년이다. 일본 우익이지만 ‘한국을 아는’ 지한파다. 그도 비빔밥은 모른다.비빔밥은 밥, 고명, 장(醬)이 한 그릇에 뒤섞여 새로운 제3의 맛을 창조해내는 음식이다. 백남준 선생이 비빔밥, 멀티미디어를 이야기한 것은 1993년이었다. 25년 전에 비빔밥 정신을 말했다. 멀티미디어 시대의 ‘통합’이 비빔밥의 ‘섞임’과 같다고 표현했다.백남준은 동서양 문화의 충돌, 융합을 나타내는 자신의 예술 세계가 “비빔밥의 원리와 같다”고 표현했다. 파리 8대학에서 ‘백남준 비디오론’을 강의했던 평론가 장 폴 파르지에(J. P. Fargier)도 “백남준의 예술세계는 비빔밥처럼 충돌, 융합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각각 다른 문화들이 뒤섞여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내는 힘은 ‘예술적 상상력’이다. 새로운 맛을 만드는 힘은 비빔밥의 ‘장(醬)’이다. 비빔밥의 ‘섞임’과 ‘비빔’은 “두 가지 이상의 식재료가 융합하여 제3의 맛을 만들어내는 과정”이다.◇ ‘시의전서(是議全書)’의 비빔밥‘골동반(骨董飯)’이 곧 ‘부븸밥’ 즉, 비빔밥이라고 처음 표기한 책이 ‘시의전서’다. 몇몇 조건이 붙는다.“지금까지 발견된 책 중에는”이란 전제가 있다. ‘시의전서’는 19세기 말에 간행되었다고 추정한다. 필자, 연대가 모두 불확실하다. 20세기 초반에 경북 상주에서 발견되었다. 내용 등을 볼 때 1900년 가까운 시점에 간행되었으리라 추정한다. 지금으로부터 약 120년 전이다. 조선왕조의 끝자락에 발간된 책이다. 오래된 ‘고조리서(古調理書)’라고 부르기엔 어색하다. ‘부븸밥’으로 표기한 책이 ‘시의전서’이지 ‘시의전서’가 비빔밥의 존재를 처음 알린 것은 아니다. 비빔밥 레시피도 지나치게 화려하다.“밥을 정성들여 짓는다. 고기는 재워서 볶고 간납[간전肝煎]을 부쳐서 썬다. 각색(여러 종류)나물을 볶아놓고 좋은 다시마로 튀각을 튀겨서 부숴놓는다. 밥에 만든 모든 재료를 다 섞고 깨소금, 기름을 많이 넣어 비벼서 그릇에 담는다. 위에는 계란지단을 붙여서 골패 짝만큼씩 썰어 얹는다. 고기완자는 곱게 다져 잘 재워 구슬만큼씩 빚은 다음, 밀가루를 약간 묻혀 계란을 씌워 부쳐 얹는다. 비빔밥 상에 장국은 잡탕 국을 쓴다.”고기, 간납, 구슬처럼 빚은 고기완자와 달걀도 여러 번 등장한다. 아무리 봐도 한식과는 거리가 있다. 나물을 볶는 부분이나 지나친 고기, 달걀 사용 등은 한식이 아니라 서양식 혹은 일본식이다. 재료나 조리법이 지나치게 화려하고 복잡하다.비빔밥은 ‘시의전서’ 이전에도 있었다.‘오주연문장전산고’는 19세기 중반에 나왔다. 여러 종류의 비빔밥이 등장한다.“비빔밥, 채소비빔밥, 평양 것을 으뜸으로 친다. 다른 비빔밥으로는 갈치, 준치, 숭어 등에 겨자 장을 넣은 비빔밥, 구운 전어새끼를 넣은 비빔밥, 큰새우 말린 것, 작은 새우, 쌀새우를 넣은 비빔밥, 황주(황해도)의 작은 새우 젓갈 비빔밥, 새우 알 비빔밥, 게장비빔밥, 달래비빔밥, 생 호과비빔밥, 기름 발라 구운 김 가루 비빔밥, 미초장비빔밥, 볶은 콩 비빔밥 등이 있다. 사람들 모두 좋아하고 진미로 여긴다.”50년 후에 나온 ‘시의전서’보다 간결하다.비빔밥 종류도 다양하다. 조리 과정이 복잡하거나 식재료가 화려한 것은 없다. ‘오주연문장전산고’의 비빔밥이 살갑게 다가온다. 그 훨씬 전에도 비빔밥은 있었다. 조선중기 문신 박동량(1569~1635년)이 쓴 ‘기재잡기’의 내용이다.“(전략) 곧 밥 한 대접에다가 생선과 채소를 섞어 세상에서 말하는 비빔밥[混沌飯, 혼돈반]과 같이 만들고 술 세 병들이나 되는 한 잔을 대접하니, 전임이 두어 숟갈에 그 밥을 다 먹어 치우고 단숨에 그 술을 들이켰다. (후략)”엄청난 양의 ‘밥=혼돈반’을 먹어 치운 주인공은 조선 전기의 무관 전임(田霖 ?~1509년)이다.전임은 밥에 생선과 채소를 섞어 만든 것을 먹었다. ‘混沌飯(혼돈반)=비빔밥’이다. ‘혼돈’은 뒤섞여 어지러운 상태다. 혼란, ‘골동’과도 비슷하다.‘혼돈반’이란 표현은 박동량과 ‘기재잡기’의 시대인 17세기 초반에 사용했다. 전임의 시대는 그보다 앞선 세조 시절이다. ‘기재잡기’의 기록이 맞는다면, 비빔밥은 15세기에도 있었다. ‘시의전서’의 기록보다 400년이 앞선다. 비빔밥은 오래 전부터 한반도에 있었다.◇ 헛제사밥과 비빔밥오밤중이었다. 졸린 눈을 부비며 잠을 참고 또 참았다. 멀리서 개 짖는 소리가 들리더니 마당에 두런두런 말소리가 들렸다.아버지가 할머니를 모시고 집안 제사에 다녀오셨다. 손에는 신문지와 한지로 싼 제사음식이 들려 있었다.염불보다 잿밥. 제사음식이 궁금했다. 지금도 어느 집, 누구 제사인지 기억하지 못한다. 한 달에 한두 차례 있었던 일이다.참 미안하게도 어느 집 제사인지 알아볼 염량도 없었다. 비빔용 큰 그릇과 간장 종지가 마련되었다. 집에 있던 식은 밥에 나물을 넣고 간장을 얹은 다음 비볐다. 여러 가지 전 쪼가리와 생선 등은 좋은 반찬이 되었다. 주전자에 담아온 탕(곰국)은 국물이다. 어린 동생들을 제외하고 온 가족이 둘러앉아 제사 나물 비빔밥을 먹었다. 그게 비빔밥이자 ‘헛제사밥’임을 그때는 몰랐다.헛제사밥은, 공부하던 유생들이 맛있는 음식을 먹고자 시작했다고 말한다. 그렇지 않다. 음식은 법도다. 향교에서 공부하던 유생들이 맛있는 음식을 먹고자 헛제사를 핑계로 상을 차렸다? 유교, 선비를 모르기 때문에 하는 소리다.민간에 ‘헛제사밥’이 있었다면 1670년 무렵 발간된 ‘음식디미방’에 헛제사밥이 있어야 한다. 없다. 조선후기 ‘오주연문장전산고’ ‘동국세시기’ ‘시의전서’에도 없다.‘헛제사밥’은 일제강점기, 해방 후에 나타난 음식이다. 유교, 오래 전 향교문화, 선비가 모두 사라진 후에 나타났다. 제사도 없는데 화려하게 차려서 슬쩍 먹었다? 그게 헛제사밥이다? 비루하고 천박하다.제사 모시는 일은 당시에도 버거웠다. 제사 닮은 음식을 일상에서 만들어 먹는다? 불가능하다.필자 기억에는 모든 제사 음식은 비벼먹는, 비빔밥이었다. 지금의 헛제사밥은 식당, 고객들이 합작한 이름이다.‘음식디미방’의 ‘잡채’ 중 몇 가지를 추려서 밥을 더하고 간장으로 비비면 비빔밥이다. 제사상의 오색 나물은 잡채의 부분집합이다. 잡채, 비빔밥, 헛제사밥은 맞물려 있다.“(전략) 허기가 들면 탕과 숙채(熟菜, 익힌 채소), 배추전과 간 고등어, 상어 ‘돔베기’ 산적으로 상을 차려낸 헛제사밥과 안동식혜를 먹으며 우리 조상의 지혜가 깃든 안동의 맛에 감탄한다. 한 도시, 한 나라의 문화를 말할 때 음식만큼 좋은 소재는 없다. (후략)”-경북매일 2017년 2월27일, 윤희정 기자헛제사밥은 우리 시대의 음식이다. 특징이 있다. 육회, 고추장이 없다. 전통 간장을 사용한다. 조미료, 감미료 사용을 절제한다. 건강식이다. 생채 대신 숙채다. 음식의 뿌리는 ‘고조리서’다. 홍보, 마케팅은 특장점을 널리 알리는 것이다. 지자체의 분발을 기대한다. /맛칼럼니스트 황광해

2019-03-13

주목받는 할랄산업

할랄(Halal)의 사전적 의미는 ‘허용된 것’으로, 이슬람교도가 먹고 쓸 수 있는 제품을 총칭해 할랄이라 한다. 과일·야채·곡류 등 모든 식물성 음식과 어류·어패류 등의 모든 해산물이 이에 해당한다. 육류 중에서는 이슬람 율법에 따라 도살·처리·가공된 염소고기·닭고기·쇠고기 등이 해당한다. 할랄의 반대는 하람(haram)이다. 술과 마약류처럼 정신을 흐리게 하는 것이나 돼지, 개, 고양이 등의 동물 고기, 자연사했거나 잔인하게 도살된 짐승의 고기 등 무슬림에게 금지된 음식이 이에 해당한다. 할랄 시장에 진출하기 위해선 할랄 인증을 받아야 하는데, 하람 성분이 들어간 식품은 할랄 인증을 받을 수 없다. 육류는 할랄 인증을 받은 도축장에서 ‘알라의 이름으로’라는 주문을 외운 뒤 날카로운 도구를 사용해 동물의 앞쪽에서 도살하는 이슬람 방식에 의해 도축된 것만 수출할 수 있다. 화장품은 콜라겐 등 동물성 성분과 알코올이 들어 있지 않아야 하며, 의류 패션 분야는 생물체 문양을 이미지화해서는 안 된다. 우상 숭배를 금지하는 무슬림의 특성 때문이다.할랄 산업은 블루오션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슬람 인구가 전 세계 인구의 4분의 1에 달하는 18억 명에 이르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 식품 위주였던 할랄 시장은 의약품과 화장품 등으로 확대되고 있으며, 여성을 겨냥한 미용 산업과 무슬림들을 겨냥한 관광 상품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터키, 중국, 말레이시아 등은 오일머니 부국인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 등을 겨냥해 할랄 음식점과 숙박업소를 마련하고 있다.기업들도 할랄 시장 편입을 위해 발빠르게 할랄 인증을 받고 있다. 네슬레는 2010년 말 전 세계 85개 공장과 154개 제품이 할랄 인증을 받았으며, 버거킹, KFC, 까르푸, PG 등도 할랄 제품 개발에 나섰다. 할랄 제품 수출을 주도하는 국가는 태국, 브라질, 호주, 말레이시아 등이다. 이 가운데 말레이시아는 할랄 제품 수출만으로 2012년 11억 5천700만 달러(약 1조 3천억 원)의 매출을 올렸다. 한-말레이시아 정상회담의 의미가 할랄산업과 관련된 것이란 걸 미뤄 짐작할 수 있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19-03-13

함께 할 수 있을까

장규열한동대 교수1992년 봄, 온 미국을 뒤흔들었던 사건이 있었다. ‘로스앤젤레스 폭동(L.A. Riot)’. 흑인 운전자 한 사람을 단속하던 백인 경찰 네 사람이 사정없이 때렸던 영상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촉발된 도시소요. 흑인, 히스패닉, 아시안계를 망라하는 유색 인종에 대한 미국인들의 태도에 대해서 심각하게 성찰하는 기회가 됐고, 지역의 한국교민들에게도 여러 형태의 피해를 입히며 미국과 미국인에 대해서 거듭 경계심을 가지게 했다. 이후 법정다툼에 불려나온 피해 당사자 로드니킹(Rodney King)은 증언과정에서 이 모든 혼란과 소란에 혼란스러운 심경을 한 마디로 요약하며 울부짖었다. “우리 그냥 좀 어울려 살 수 없겠습니까? (Can we just get along?)”그는 피부색깔이 다르다는 차별적 조건을 극복할 방법이 이렇게도 없겠냐는 그 나름대로의 안타까움을 그렇게 표현했던 것이다. 차별적 조건을 찾아내며 끊임없이 서로 다르다는 것을 발견해 내는 능력은 인간이라면 거의 본성에 가까운 게 아닌가 싶다. 피부가 다르고 출신이 다르며, 성별이 다르고 성씨가 다르며, 혈액형이 다르고 키와 몸무게가 다르다. 겉으로도 다르고 속으로도 다르다. 생각이 다르고 느낌이 다르며 이념이 다르고 사상도 다르다. 사회를 이루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제각각 다른 모습과 속마음을 가지고 있지만 사회와 국가를 구성하며 살아가는 이상 어우러져 살아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흑인 피해자 한 사람의 저 외침은 오늘 우리에게 어떤 울림을 주는가. 우리는 어울려 살아낼 수 있을 것인가.‘다르다’는 데서 출발해 ‘틀리다’는 생각에 이르면, 자칫 구별을 넘어 차별하게 되고 혐오하게 되며 배척하게 되어 폭력과 불공대천의 경지에까지 이르게 된다. 그 같은 파국에 도달하는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조절하고 조정하며 견제하고 경계하도록 우리에게는 ‘정치’라는 장치가 있다. 정치는 국가의 권력을 획득하고 유지하며 행사하는 활동이기는 하지만, 국민들이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게 하고 상호 간의 이해를 조정하며, 사회질서를 바로잡는 일을 하도록 국민이 맡겨준 행위인 것이다. 그런데 오늘 우리 정치인들은 그렇게 하고 있는가. 정치인이 뱉어낸 말 한마디가 조정과 질서를 불러오기는커녕, 오히려 정치인들 사이의 단절과 반목의 도화선이 되어 사회 일반의 분열과 등돌림의 발화점이 된다면 그는 정치를 하는 게 아니라 싸움꾼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당신은 접점을 찾아내는가, 아니면 분열을 조장하는가.사회공동체가 조정과 타협을 통해 잘 굴러가도록 돕는 또 하나의 기제가 ‘언론’이다. 언론은 사실을 밝혀 알리는 일을 통해 여론을 형성하는 활동을 하면서, 민주주의가 실제로 구현되도록 사회적 공론의 장과 대화의 마당을 만들어 내어야 한다. 독자의 관심을 끌거나 충격적 사실을 전달하는 데에 머물 것이 아니라 보다 적극적으로 사회적 공감대 형성의 기초가 될 접점을 모색하고 해결책에 접근하는 대화의 토대를 불러와야 하지 않을까. 그간 언론이 문제를 알려내는 데 기여해 왔다면, 앞으로는 해결을 이끌어내는 일에 집중해야 하지 않을까. 이미 서구의 언론은 대안저널리즘, 지혜저널리즘, 또는 해결저널리즘 등의 표현을 써가며 새로운 시도에 나섰다고 한다. 남은 어차피 다르다. 남은 언제다 다르다. 그 다른 모습과 생각을 다른 그대로 인정하고 보듬을 수 있을 때에 민주주의로 가는 첫 걸음이 비로소 놓아지는 것이다. 다른 그대로 놓아두면 틀림없이 갈등이요 분열이었을 것을, 정치가 조정하고 언론이 담아낼 때에 대화와 타협이 가능해진다. 정치와 언론이 뿔뿔이 흩어놓는 일은 이제 그만 보았으면 한다. 정치와 언론으로 인해 다른 생각들이 더 당겨 마주 앉아야 한다.

2019-03-13

불평등과 천지불인

김규종경북대 교수·노문학‘도덕경’ 제5장은 우리의 고정관념을 전복시킨다. ‘천지불인 이만물위추구. 성인불인 이백성위추구.’ 간략하게 번역해보면 ‘하늘과 땅은 인하지 않아서 만물을 짚으로 만든 개처럼 여긴다. 성인은 인하지 않아서 백성을 짚으로 만든 개처럼 여긴다.’ 천지를 다른 말로 바꾸면 자연이 된다. 인간을 둘러싼 자연에 내재한 불편부당과 무심을 강조하는 말이 천지불인이다. 노자의 사유에 따르면, 자연의 본원적인 속성은 ‘인하지’ 않다는 것이다.2011년 3월 11일 일어난 동일본대지진은 진도 9.0의 강진으로 1900년 이후 네 번째로 강력한 지진이었다 한다. 1995년에 일어난 진도 7.8 고베지진의 180배 위력을 발휘했다고 하니 그 강도를 가늠하기 어렵다. 대지진의 여파로 사망-실종자가 2만 5천명을 넘고, 피해주민이 33만명을 헤아린다고 하니 지진피해가 흔치 않은 한반도 거주민의 상상을 뛰어넘는 재해다. 내가 관심을 가지는 것은 그런 참혹한 자연재해가 왜 일어나는가, 하는 점이다.지진으로 최고 20m 높이의 ‘쓰나미’가 발생하고, 후쿠시마 원자로 폭발로 대참사가 발생한 원인이 어디 있느냐, 하는 것이다. 왜 자연은 인간에게 너그럽고 관대하지 않느냐, 하는 사실에 고개를 갸웃하게 된다. 하기야 자연재해가 인간에게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예컨대 공룡 멸종을 불러왔다는 지구와 소행성 충돌은 측량하기 어려운 우주의 티끌에 거주하는 지구 생명체의 유한성을 몸서리치게 경각시킨다.그러하되 천지불인은 감당한다 해도 ‘성인불인’은 전혀 뜻밖이다. 만백성을 어버이처럼 긍휼히 여기고 인자하게 보듬어야 할 성인이 ‘인하지’ 않다는 것은 또 무슨 말인가?! 특별한 애착 없이 무심하고 초연하게 백성들을 대하는 위대한 정치 지도자를 어찌 성인이라 부를 수 있겠는가, 하는 의구심이 드는 것이다.그것은 ‘인’에 대한 노자의 반감을 표출하고 있는성싶다. ‘인’을 숭상한 공자의 유가에 대한 직접적인 반발이 아닌가 한다. 그것을 입증하는 구절이 ‘도덕경’ 제18장에 나오는 ‘대도폐유인의’이리라. ‘커다란 도가 사라져버리니 인과 의가 나오게 된다’ 정도로 이해할 수 있다. 노자가 생각한 도의 본질은 ‘인법지 지법천 천법도 도법자연’이었다.‘사람은 땅을 따르고, 땅은 하늘을 따르며, 하늘은 도를 따르고, 도는 자연을 따른다.’ 노장(老莊)의 도가에서 내세운 극상의 도는 ‘자연’에 있다. 고로 자연의 본성이 인하지 않기 때문에, 자연을 따르는 성인 역시 인하지 않다는 결론에 이름은 자명한 이치다. 그러하되 인간적인 것을 희구하는 21세기 현대인은 뭔가 아쉽다. 자연도 성인도 ‘인하면’ 좋지 않겠는가, 생각하는 것이다. 어쩌면 그것은 나만의 바람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다. ‘자연보호’를 외치는 일부 지각 있는 분들의 거룩한 외침이 허망하게 다가오는 까닭은. 나는 천지불인은 허하되, 성인불인은 21세기에 맞춰서 수정했으면 한다. 현대의 위대한 정치 지도자들은 유구한 자연을 따르되, 어질고 자상하며 인자했으면 한다. 세상에 차고 넘치는 숱한 가난뱅이들과 배우지 못한 사람들과 아무런 기댈 언덕 없는 사람들에게 그 끝을 모를 정도로 ‘인했으면’ 하는 것이다. 그것이 어쩌면 인간과 자연을 구별하는 가장 근본적인 차이이자 원리가 아니겠는가, 생각하는 것이다.근자에 보도되는 한국사회의 우심(尤甚)한 경제적 불평등에 관한 기사를 보면서 춘추전국시대의 노자를 새삼 생각한다. 인위가 아닌 무위자연에 의지했던 고대의 사상가를 떠올리면서 인간 불평등의 오랜 역사를 돌이켜보는 것이다. “가난 구제는 나라도 하지 못한다!”는 옛말을 훌훌 털어버리고 인간다운 공동체를 만들면 어떨까, 하는 백일몽을 꾸어본다.

2019-03-13

교사라는 탈

이주형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선생님께서 우리 학교에 와 주시면 안 되세요? 어떤 선생님도 우리말을 안 들어주세요. 무턱대고 거부부터 하세요. 제가 오늘 하루 종일 교무실이며, 특별실을 뛰어다녔는데 선생님들께서 짜증만 내시고, 어떤 선생님은 아예 교무실에 들어오지 말라고까지 하셨어요. 저희가 나쁜 짓 하는 것도 아닌데, 학교와 학생들을 위해 봉사를 하겠다는 건데, 더군다나 새로운 부서를 만들겠다는 것도 아니고, 작년에 열심히 활동한 부서인데 말이에요. 정말…!”올해 고등학교 고학년이 되는 학생과의 전화통화 내용이다. 학생은 “정말”이라는 말 다음에 뭔가 더 많은 이야기를 하려고 했으나, 말하고 싶은 것을 꾹 참았다. 학생은 그 학교 교사들보다 훨씬 더 현명했다. 동아리를 대표해서 시간이 날 때마다 교사들을 찾아다니며 부탁을 드렸을 학생의 모습을 생각이 안쓰럽고, 미안했다. 그리고 학생이 교사들에게서 받았을 창피와 모욕, 그리고 좌절을 생각하니 화가 치밀어 올랐다.“아마 학기 초라 선생님들께서 바빠서 그러셨을 거야. 그러니 다음에 정중히 다시 한 번 더 부탁드려 보렴. 열심히 했으니까, 너희들 뜻을 알아주시는 선생님께서 분명히 계실거야!”필자가 할 수 있는 것은 여기까지였다. 비록 이렇게 말하기는 했지만, 이 말 또한 형식적인 인사에 지나지 않았다. 전화를 끊고 필자는 한동안 아무 일도 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학생에게 말의 죄를 지었다는 죄책감도 있었지만, 더 중요한 이유는 지금 학교 현장의 분위기상 그 학생은 더 큰 마음의 상처를 받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설령 이 나라 교육 현실이 거지같다고 하더라도, 이번만큼은 기적(奇蹟)이라도 일어나기를 필자는 바랐다. 기적이 꼭 일어나서 그 학생이 학교와 교사들에 대해 가지고 있는 신뢰를 제발 잃지 않기를 빌고 또 빌었다.이제 우리 교육은 기적이 필요한 상황까지 와버렸다. 학생들이 학교 교육활동에서 교사들의 도움을 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교사들 또한 학생들의 발전을 자발적으로 돕는 일은 당연을 넘어 교사들의 의무이다. 그런데 이제 지극히 당연한 일조차 특별한 일이 되어버렸다.안타까움에 “당연(當然)”의 뜻을 찾아보았다. “일의 앞뒤 사정을 놓고 볼 때 마땅히 그러하다.” 여기에서 필자는 우리 교육이 무너진 이유를 찾았다. 그것은 바로 지금 우리 교육에는 “일의 앞뒤 사정”이 없다는 것이다. 우리 교육은 일의 앞뒤를 분간하지 못하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앞뒤’란 ‘일의 중요성’이다. 적어도 필자가 학창시절 때에는 학생이나 교사나 일의 앞뒤를 분간했다. 학생에게 있어 우선 된 일은 교사를 존경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교사들은 최우선적으로 세상 무엇보다도 학생을 사랑으로 지도하였다. 그런데 이것이 무너졌다.더 이상 학교의 교사는 학생들에게 존경의 대상이 아니다. 그들은 졸업을 위해서는 거쳐야 하는 학교라는 곳에서 월급받고 일하는 사람 정도로밖에 인식되지 않고 있다. 교사들에게 있어 학생은 자신의 모든 사랑을 쏟아부을 대상이 아니라 단지 직장에서 마주해야하는 업무의 대상이 되어버렸다. 교육 현실이 이러한데 학교에 무슨 ‘교사 존경’과 ‘학생 사랑’이 있을까.그런데 필자는 이 나라 교육이 이렇게 된 데에는 교사라 불리는 사람들의 책임도 매우 크다고 생각한다. 학생들이 학교 교육에 흥미를 잃게 만든 사람도, 그래서 그들이 학교를 떠날 수밖에 없는 결정적인 이유를 제공한 사람도 바로 교사들이기 때문이다(물론 이 나라 교사들이 다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과연 이 나라에 진정한 교육이 존재하기나 할까? 우리 학교 현장에 학생을 위해 당신의 모든 것을 내어주시던 그 옛날 스승과 같은 교사들이 아직 있을까?필자의 눈에는, 물론 스승도 계시겠지만, 필자를 포함해 이 나라 학교에는 교사라는 탈을 쓴 월급쟁이 직업인들밖에 보이지 않는다.

2019-03-13

아프리카 소년의 꿈 (2)

기력을 회복하는 동안 소년은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은 유혹을 받습니다. 어쩌면 목숨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엄습합니다. 부정적인 생각이 들 때마다 책을 꺼내 읽습니다. 닳아 빠진 두 권의 책은 외울 정도입니다. 불멸의 고전 두 권이 목표와 꿈을 되살려줍니다.여행 15개월째. 고향에서 1천500㎞ 떨어진 우간다 수도 캄팔라에 도착합니다. 6개월을 머물며 여비를 벌며 틈이 나면 도서관을 찾습니다. 어느 날 사진이 가득 실린 미국 대학 편람을 발견합니다. 수많은 캠퍼스 사진들을 마주하며 가슴이 뜨거워진 소년은 워싱턴 주 마운틴 버넌에 있는 스캐짓밸리 대학에 유독 마음이 끌립니다. 레그손은 학장에게 처지를 설명하고 장학금을 신청하는 편지를 쓰지요. 학장은 아프리카 소년의 편지에 감동해 입학을 허락할 뿐 아니라 장학금과 숙소, 일자리까지 제공하겠다고 약속합니다. 하지만 아직도 장애물이 첩첩산중입니다. 여권을 받으려면 정부에 출생증명서를 제출해야 하고 왕복 항공권을 살 수 있는 여비가 있다는 것을 증명해야 비자를 받을 수 있습니다. 소년은 멈추지 않고 다시 펜을 집어듭니다. 멘토인 선교사에게 도움을 요청하지요. 그들은 즉각 정부 관계자들과 협의, 레그손의 여권을 발급해 줍니다. 하지만 항공료를 마련하는 일은 진척이 없습니다. 레그손은 절망 대신 묵묵히 발걸음을 옮겨 북쪽으로 걷는 편을 택합니다. 카이로에 도착하면 돈을 마련할 수 있을 것으로 믿습니다. 오히려 수중에 남은 돈을 탈탈 털어 구두 한 켤레를 삽니다. 스캐짓밸리 대학 교문을 맨발로 들어가지 않으려는 결단입니다. 한 아프리카 소년의 꿈을 좇는 도보 여행에 대한 소문이 유럽과 대서양을 건너 미국 워싱턴주 마운트버넌까지 퍼집니다. 항공 운임 650달러는 스캐짓밸리 대학 학생들과 시민들이 성금을 모아 순식간에 해결하지요.결국 집을 떠난지 2년 2개월만인 1960년 12월. 레그손 카이라는 반짝이는 구두를 신고 보물처럼 간직한 책 두 권을 가슴에 품고 스캐짓밸리 대학 교문을 통과합니다. 소년은 대학을 졸업한 후 영국 캠브리지 대학의 정치학 교수이자 작가로 발돋움하지요. 레그손 카이라는 말합니다. “나는 환경의 희생자가 아니다. 내 인생의 주인이다.”닳아 빠진 두 권의 책, 언어를 사용하는 능력. 무엇보다 그 영혼 안에 담긴 위대함을 향한 배움의 열정과 꿈이 그의 삶을 당당하게 빛나게 했습니다. 그 빛은 등대가 되어 이 새벽 우리 마음을 환하게 밝힙니다./조신영 인문학365 대표

2019-03-13

상주, 새로운 천년의 기초를 다진다

황천모 상주시장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넷플릭스의 첫 한국 오리지널 드라마 ‘킹덤’의 주요 무대가 상주다. 조선후기를 시대적 배경으로 한 미스터리 스릴러이다. 이 드라마 속에서 다뤄진 것처럼 상주는 물류, 교통, 역사의 중심지였다. 상주는 성읍국가시대부터 조선 중기까지 영남지방 정치·경제의 중심지였다. 뿌리 깊은 전통과 문화유산을 간직하고 있는 유서 깊은 도시로 경상도의 이름을 낳은 고장이다. 신라시대에는 전국9주, 고려시대에는 전국8목 중의 하나였으며, 조선 초기 200년간 지금의 도청소재지인 경상감영이 소재했다. 이렇듯 영남의 중심지인 상주가 근대화와 산업화의 발전 축에서 빠졌고, 농업 중심의 지방 중소도시로 전락했다. 이로 인해 한때 26만5천여명이었던 인구가 지난달에 10만명 선이 무너지는 현실에 직면하게 됐다.이런 절박한 지역현실을 벗어나고, 앞으로 상주시가 지속 발전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공공기관 유치라 생각하고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공공기관 유치는 인구를 늘리고 경제활성화에 기여함은 물론 도시인프라 구축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먼저 대한민국축구종합센터(이하 센터) 상주 유치다. 대한축구협회는 지난 2001년 건립한 파주 국가대표트레이닝센터가 좁은 데다 2024년 무상임대 기간이 만료됨에 따라 새로운 센터 건립을 계획하고 전국 지자체로부터 유치 신청을 받았다. 그 결과, 상주시 등 전국에서 24개 지자체가 신청했고, 지난 2월 28일 상주시를 포함 12개 도시를 1차 서면심사로 선정했다. 2차 발표심사는 오는 3월 18일에 있다. 이후 우선 협상대상자 선정 및 최종 부지를 확정하고 2023년 센터를 완공할 계획이다. 상주시는 국토의 중심에 위치한 데다 중부내륙고속도로 등 사통팔달의 교통망을 갖추고 있다. 전국 기초자치단체 중 최초로 상무프로축구팀을 유치해 운영하고 있다. 지난 3월 2일 치른 2019 K리그 홈개막전에 유료 관중 5천372명이 입장할 정도로 축구 열기와 인프라가 우수하다. 이런 지역의 강점과 개발이 용이한 계획관리지역 43만㎡의 넓은 후보지 등 선정기준에 가장 적합한 도시임을 중점 부각해 센터를 반드시 상주로 유치할 계획이다. 대한축구협회가 계획하고 있는 센터는 기존 파주센터 부지 규모의 3배인 33만㎡로, 성인 대표 팀 등이 활용가능한 축구종합시설이다. 축구장 등 각종 체육시설 및 축구과학센터는 물론 선수 300명이 사용할 수 있는 숙소와 식당, 휴게실, 직원 200명이 상근할 수 있는 사무동 등도 마련된다. 건립에는 1천 500억 원을 투입할 예정이다. 이에 따라 생산유발 효과가 2조 8천억 원에 이를 정도로 지역경제 파급효과가 크고 인구증가에도 많이 기여할 것이다.이런 시설이 상주에 온다면, 분명 일본 후쿠시마 현에 있는 최첨단 축구전용 훈련센터인 J빌리지를 능가할 것으로 확신한다.유치에 공을 들이고 있는 또다른 공공기관은 하천수, 유량 등 수자원을 전문적으로 조사하는 ‘한국수자원조사기술원’이다.경기도 고양시에 위치한 수자원조사기술원은 환경부 산하기관으로 130여명의 직원이 근무하고 있다. 낙동강의 어원이 된 고장으로서 뛰어난 지리적 여건과 풍부한 수자원 활용이 가능한 낙동강권 내 유치를 목표로 부지 및 건립비용 분담 등을 제시하는 등 유치에 정성을 쏟고 있다. 이외에도 서울시 노원구에 있는 육군사관학교 이전에도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이와 함께 이미 상주시가 유치한 경북농업기술원의 순조로운 이전을 위해 도시관리계획을 변경하는 등 관련 행정절차를 밟고 있다. 올해부터 사벌면 삼덕리 일원의 이전 예정 부지를 매입하고 2020년에 착공해 2021년 말 완공할 예정이다. 농업기술원이 상주로 이전하면 농업분야에 ICT를 접목하는 등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맞는 첨단농업을 실현할 수 있다. 또 신품종을 육성하고 기후변화에 대응한 농작물 재배 기술을 개발 하는 등 상주의 농업 기술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역할을 할 것으로 전망된다.농업기술원 신축에 따른 경제효과도 클 것으로 전망된다. 내년이면 토목공사와 건물 신축 등으로 건설경기가 활성화될 것이다. 4천억원의 생산유발효과와 2천700명의 취업유발 효과가 발생할 것으로 예상된다. 청사 이전이 완료되면 농업기술원에 근무하는 직원 500여명에 더해 농업 교육을 목적으로 방문하는 인원이 연간 1만 명에 달해 연 600억 원의 생산유발효과가 예상된다.농업기술원은 사벌면 삼덕리 100만㎡에 2천340억 원이 투자되며 시험·연구용 포장, 농업인 교육시설, 도시민 체험시설, 대학과 기업 간의 협력연구 공간 등이 마련된다.그밖에도 스마트팜 혁신밸리 조성, 청소년해양교육원 건립 사업 등이 계획대로 차질 없이 추진되도록 최선을 다할 예정이다.이렇듯 정성을 쏟고 있는 공공기관 유치와 유치기관의 조기 정착 지원 등으로 인구가 크게 늘어나고 지역경제도 되살아나 새로운 천년 역사의 중심지로 다시 부각될 날이 멀지만은 않을 것이다.조선 중기 상주 향토지인 상산지 풍속조에 의하면 “상주사람은 간결하고 검소하며 사람을 사랑하고 착함을 탐하고 민심이 순박하다”고 기록돼 있듯이 현재도, 미래에도 상주는 누구나 살고픈 도시가 될 것이다.

2019-03-12

개 품종의 이해

태초에 회색늑대와 현재 개의 조상이 되는 개 종류(kind)의 동물이 있었다. 자연선택과 사람의 선택에 따라 다양한 개과 야생동물과 개들이 유전자 조절에 의해 분화되어 왔는데, 사람들은 시대와 상황에 맞도록 오래전부터 개에 대한 품종개량을 하여 왔다. 품종이라는 용어는 인간에 의해 개발된 동물에게 주로 사용되는 용어이다. 고립된 지역에서 자연선택에 의해 형성된 다른 모습으로 인해 구분되는 동물은 아종이란 말을 사용한다. 인도 코끼리와 아프리카 코끼리를 구별할 때 보통 아종이라는 용어를 주로 사용하고 품종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는 않는다. 또한 인도코끼리 순종이라는 말은 잘 사용하지 않는데, 순종이라는 용어도 인간의 선택이 많이 들어간 동물종들, 즉 경주마나 개의 경우에 주로 사용하는 용어이다. 우리가 길에서 만나는 개들의 품종이 뭔지 물어보고 순종이냐고 물어보는 경우가 많은데, 품종과 순종이라는 용어를 사용할 때 내포된 의미는 인간의 선택과 노력이 들어가 있는 동물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세계에서 가장 수가 많은 개 품종은 독일 셰퍼트인데, 역사가 오래된 품종들에 비하면 최근의 새로운 품종으로 볼 수 있다. 100여년 전에 독일의 기병장교인 스테파니츠가 독일 칼스루 지역의 외모와 능력이 뛰어난 개를 선택해 셰퍼트를 만들기 시작했는데 그때 선택된 최초의 개를 셰퍼트 순종이라 부르지는 않는다. 칼스루 지역에서 선택된 최초의 개들은 셰퍼트 원종이라 부르며, 세월이 지나 혈통기록이 갖춰지고 특정한 기준에 의해 외모, 품성 등 특징이 일정한 형태를 갖추게 된 개가 셰퍼트 품종이 되고, 혈통기록이 확인되는 개를 순종 셰퍼트라 부를 수 있게 된다. 스테파니츠는 당시에 말(馬)을 브리딩(breeding)하는 교과서로 불리는 “마체 심사론”이라는 책을 이해한 사람으로 보인다. 개 골격과 근육의 움직임, 비절 각도와 관련한 이야기 등은 대부분 경주마 브리딩 과정에 고려되었던 내용을 셰퍼트의 브리딩에 접목한 것으로 보인다.세계 최초로 우리나라 기술로 처음 생물학적인 복제에 성공한 개는 스너피라는 이름이 지어진 아프간하운드 품종이다. 누가 보더라도 감탄하게 되는 아름다운 긴 털을 자랑하는 아프간하운드의 원종은 쥐뜯어 먹은 모양의 털을 가진 볼품없고 보잘 것 없는 모양의 아프간 지역의 개였다. 척박한 환경에 있던 아프간하운드의 원종이 지금처럼 아름다운 품종의 개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아름다운 장미가 만들어진 과정과 비견할 수 있다. 장미의 원종은 야생 찔레꽃인데, 보잘 것 없는 야생 찔레꽃을 아름다운 장미꽃으로 만들기 위해 사람들의 많은 노력들이 있었다. 현재 전 세계에 있는 600여품종의 개들은 각각 사람들의 창의성과 노력으로 만들어졌고, 지금도 만들어 지고 있다.근대의 개 품종 분류는 영국에서 시작되어 여러 나라로 전파되었다. 그래서 영국애견단체는 세상에서 유일하다는 의미로 정관사 THE를 애견단체 이름 앞에 붙여서 사용한다.(The kennel Club은 영국애견단체이며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단체이기도 하다.) 영국애견단체인 The kennel Club은 개의 품종을 크게 사냥개인가 그렇지 않은가로 나누었다. 사냥개는 건독, 하운드, 테리어로 나누고, 개로는 유틸리티, 페스러럴, 토이 종을 포함한 7개 그룹으로 나누었다. 미국애견단체인 American kennel Club(AKC)은 하운드, 스포팅, 테리어, 논스포팅, 워킹, 허딩, 토이, 미설레니어스로 8개 그룹으로 구분하고 있다.개의 품종화와 브리딩에 의한 개량은 사람의 손을 거친 인위적 선택이기 때문에 적은 수의 개체군에서 많은 자손이 나오게 되는 경우가 있다.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유전자 병목 현상은 유전적 대립 형질 가운데 일부를 사라지게 한다. 개의 품종개량에서는 최초의 교배 개체군 선택에서, 그리고 품종을 공인받기 위해 특정한 특징만을 남기는 과정에서 유전자 병목 현상이 일어날 수 있는데, 적절한 유전적 건강성을 확보하지 않으면 품종 자체가 특이한 유전적 질병을 가지게 되기도 한다. 연구자들은 개 품종에서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유전병과 암과 같은 질병의 원인을 찾고 있는데, 품종화된 개 연구를 통해 사람 질병관련 유전자들을 찾아내고 있고, 향후 더 많은 정보가 제공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서라벌대 반려동물연구소 소장(마사과 교수)

2019-03-12

“脫 한국”

일반적으로 엑소더스는 많은 사람이 동시에 특정 장소에서 떠나가는 상황을 두고 하는 말이다. 우리 말로 굳이 표현한다면 대탈출 정도라 할 수 있을 것이다.한국 청년들의 일본 기업 취업 움직임이 전례 없이 러시를 이룬다고 한다. 지난해 한국 청년의 일본 유학 및 취업 신청자가 사상 처음으로 2만 명을 돌파했다고 한다. 일단 희망을 찾기 위한 젊은이의 선택이라 보지만 고국을 떠나는 청년의 입장에서는 비장한 각오가 선 결정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한번 발을 들여 놓은 직장에서 빠져나오기란 여간 쉽지 않다는 관점에서 쳐다보면 한국 청년의 일본 기업 취업은 고국을 떠나는 엑스더스처럼 보인다. 부모의 입장도 딱하다. 취직이라는 대의명분 아래 할 말은 못하겠지만 한국을 떠나 혼자 지내야 하는 자식의 처지를 생각하면 마음 한구석이 편치가 않은 게 사실이다.한국 경제의 심각한 취업난이 낳은 또 하나의 어두운 단면이다. 글로벌 시대라고 하지만 한국의 청년 인재를 데려다 가는 일본의 입장과 청년을 바깥으로 내보내야 하는 한국의 입장은 분명 다르다. 한국 내 취업 사정이 호전되지 않는 한 당분간 이런 현상은 계속 될 것으로 보인다고 한다.지난해 한국 제조업체의 해외 직접투자가 전년보다 92.8%나 늘었다고 한다. 금액으로 보면 163억 달러(약 18조 규모)로 관련 통계 작성 이후 투자액과 증가율이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고 한다. 국내 제조업체의 해외투자 증가는 국내의 낮은 생산성과 높은 임금, 반기업적 정서 등에 기인하는 것으로 분석된다고 한다.같은 기간 한국 내 기업의 설비투자는 전년보다 1.6%가 오히려 감소한 것으로 드러났다. 한국 제조업의 ‘탈 한국’ 현상이 아닐까 싶다.최근 미세먼지가 극성을 부리면서 포털 사이트 이민 카페에는 “한국을 떠나고 싶다”는 글들이 많이 올라온다고 한다. 특히 어린아이를 둔 젊은이가 이민 문제로 상담하는 사례가 많아졌다고 한다. 경제 선진국을 자처하는 한국에서 벌어지는 지금의 탈한국적 분위기를 바라보는 마음이 어쩐지 불편하다. /우정구(논설위원)

2019-03-12

집단 따돌림 범죄

정철화 편집부국장새학기가 시작됐다. 학교마다 학교폭력 문제로 바짝 긴장하는 시기이다. 특히 집단따돌림(왕따)은 피해 학생에게 심각한 상처를 줄 수 있는 중대한 범죄 행위로 간주해 정부가 나서 예방대책을 강구한다. 현 정부가 출범한 이후 대구와 경북이 처해 있는 현실이 왕따당하는 학생의 모습과 너무도 닮아 있다. 학교내 짱(?)을 중심으로 뭉쳐 있는 패거리들에게 돈과 옷, 신발 등을 빼앗기는 일은 다반사고 실컷 두들겨 맞고 다니는 왕따 학생과 흡사하다. 대구와 경북은 보수정당의 심장 역할을 해오고 있다. 보수의 적통을 이어받은 자유한국당을 지탱해주는 근거지이다.한국당은 지난 대통령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에게 참패하며 권력의 중심에서 밀려났다. 권력은 독식하는 속성이 있다. 차지한 권력을 지키기 위해 더욱 혹독해지고 더욱이 권력에 도전하는 정적에 대해서는 가혹하게 응징하는 속성이 있다. 정부 여당의 입장에서 한국당은 최대의 정적이고, 근거지인 대구 경북 또한 응징의 대상이 될 수 있다.국가 권력 싸움에서 승리하면 정부부처와 정부투자기관, 정부 출자기관의 인사권과 국가주요 정책 결정 및 예산권 등의 전리품을 얻는다. 정부와 여당은 전리품 배분권이란 권력의 칼을 전가의 보도처럼 마구 휘두를 수 있다. 문제는 그 칼끝이 유독 대구 경북지역을 표적으로 겨누고 있는 것같아 우려스럽다. 최근 문재인 정부의 2기 내각 인사가 단행됐지만 문 정부 출범과 함께 단행됐던 1기 내각 때와 마찬가지로 대구 경북지역 출신 인사들은 왕따였다.예산 배분에서는 더욱 심각하다. 이미 올해 국비예산 편성에서 대구 경북은 전국 17개 광역자치단체 가운데 유일하게 전년대비 삭감예산의 수모를 당했다.지난달 발표한 정부 예타면제 사업 선정에서도 경북도가 1순위로 요청했던 동해안고속도로(영일만대교건설) 건설 사업은 역시나 없었다. 대신 2순위였던 동해중부선 복선전철화사업이 단선전철화사업으로 대폭 축소된 사업비 4천억원을 반영한 것이 고작이었다. 다른 광역단체들에게는 평균 2조원대의 사업이 선정된 것과 비교하면 참담한 수준이다.경북의 중요한 경제동력이 되고 있는 원자력발전소 건설사업은 탈원전정책으로 무력화됐고, 국내 최대 원전력발전소가 집중된 경북에 당연히 건설될 것으로 여겨졌던 원전해체연구소의 경주 유치도 불투명해졌다. 울산과 부산 접경지역에 건설하겠다는 정부방침이 섰다는 소문이다. 또한 사업안이 확정되다시피해 있는 통합대구공항 이전도 불안하다.부산을 중심으로 제기되고 있는 가덕도신공항 건설을 통해 통합대구공항 이전사업을 백지화시키겠다는 의도가 엿보인다. 최근에는 이명박 정권의 최대 치적으로 평가받고 있는 4대강 사업도 표적이 되고 있다. 농업을 근간으로 하는 경북내륙권 주민들에게 크게 환영받고 있는 낙동강 보를 해체하려는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다.대구 경북은 이처럼 학교 짱과 그 무리들에게 두들겨 맞고 다니지만, 말리거나 나무라는 사람이 없다. 더욱이 보호자인 자유한국당은 가해자를 찾아가 항의하고 다시는 때리지 못하도록 대응을 해야하지만 그럴만한 힘이 없다. 민주당이 집권했던 김대중, 노무현 정권 시절에는 여소야대 정국으로 힘있는 보호자 덕분에 놀림을 당할 지언정 최소한 돈을 뺏기고 두들겨 맞지는 않았다. 힘없는 보호자 밑에 사는 대구 경북의 왕따 수모는 언제 끝날지 가늠하기조차 어렵다.정부의 집권여당의 노골적인 대구 경북 왕따시키기 행태도 정의롭지 못하다.가진 힘을 과시하며 약자를 괴롭히는 것은 뒷골목 불량배들이나 하는 비겁한 행동이다. 공자는 논어 자로편에서 ‘군자는 화이부동(和而不同)하고 소인은 동이불화(同而不和)한다’고 했다. 다른 사람과 생각을 같이 하지는 않지만, 서로 화목하게 지내는 것이 군자의 덕목이라고 했다.

2019-03-12

아프리카 소년의 꿈 (1)

1958년 10월. 아프리카 말라위에 사는 한 소년이 야심 찬 꿈을 품습니다. 고향 작은 마을을 떠나 동부 아프리카 황무지를 가로질러 북쪽으로 이집트 카이로까지 6천800㎞를 걸어간 다음, 배를 타고 미국으로 건너가 대학에 진학하겠다는 꿈입니다. 소년은 막연히 꿈만 꾼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옮기는 첫 걸음을 내 딛습니다. 이 무모한 여행을 위해 소년은 네 가지를 준비하지요. 책 두 권(성경과 천로역정)과 닷새 분 식량, 호신용 작은 도끼, 담요입니다. 멀고 먼 여행을 위한 준비물은 이게 전부입니다. 부모는 미국이 어디 있는지도 모릅니다. 눈물로 배웅할 뿐입니다.꿈을 이루기 위해 배워야 한다는 것을 책을 통해 깨달았습니다. 아브라함 링컨과 부커 워싱턴 이 두 사람의 위대한 삶을 닮고 싶었습니다. 이를 위해 최고의 교육을 받아야 함을 알았기에 결심하지요.동전 한 닢 없고 배 삯을 낼 방법도 없지만 그런 것은 개의치 말자. 어떤 대학에 들어갈지 나는 모른다. 대학에서 나를 받아줄지 어떨지 모른다. 그것도 개의치 말자. 카이로는 장장 6천800㎞나 떨어져 있고 그곳까지 걸어서 가려면 수백 개의 부족이 사는 마을 무사히 지나야 하지만 그것도 개의치 말자. 그 부족들은 소년이 전혀 알아들을 수 없는 50개의 다른 언어를 사용하고 있지만 그것도 개의치 말자.소년은 그 모든 것을 개의치 않기로 결단합니다.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개척할 수 있는 나라에 가겠다는 꿈 말고는 모든 것을 마음 속에서 몰아냅니다. 소년의 이름은 레그손 카이라(Legson Didimu Kayira)입니다.닷새 동안 험준한 산악지대를 걸었지만 겨우 50㎞를 지났을 뿐입니다. 식량은 바닥나고, 물도 다 떨어져갑니다. 앞으로 6천750㎞를 더 걸어가야 하는데 가능성이라고는 제로였습니다. 그러나 발걸음을 집을 되돌리는 것은 꿈을 포기하는 것, 가난하고 무식한 인생을 감내해야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레그손은 다시 마음을 다잡습니다. “미국에 도착할 때까지 절대 걷는 것을 멈추지 않겠어! 죽을 때까지 해 보는 거야! 쓰러져 죽기 전까지는 멈추지 않겠어!”때로는 낯선 사람과 동행도 했지만 대개는 혼자서 걷습니다. 간혹 일자리와 잠잘 곳을 얻을 때도 있었지만 별이 총총한 밤하늘을 이불 삼아 노숙할 때가 대부분입니다. 먹을 것이 없으면 야생 열매를 찾아 끼니를 때우지요. 점점 야위었고 쇠약해지더니 결국 열병에 걸려 쓰러집니다. (내일 편지에 계속) /조신영 인문학365 대표

2019-03-12

공공도서관, 도시의 거실이 되어야 한다

박준섭변호사필자의 어린 시절 도서관은 접근하기 어려운 곳이었다. 그때는 새벽부터 줄을 서야 도서관 자리를 겨우 얻을 수 있는 시절이었다. 칸막이가 있는 책상의 작은 공간에서 모두들 수험서를 펴고 공부하던 어려운 시절이었다. 빌 게이츠의 말을 빌자면, 적어도 어린 시절 나를 키운 마을 도서관은 시립도서관이 아니라 책으로 가득 찬 캐비닛 몇 개를 가지고 있던 교회였다. 나중에 대학의 도서관 열람실에서 공부를 하면서 법서를 읽었고, 신학책, 철학책과 역사책도 읽었다. 도서관의 오픈된 서가에서 읽던, 아니 읽고 싶던 책들은 ‘세상을 향해 열린 나만의 창’이 되어 주었다.최근 몇 십년 동안에 공공도서관은 전통적인 도서관 개념에서 탈피하여 현대적으로 변화되었다. 영국은 18∼19세기 근대 자본주의와 자유민주주의를 발전시키는 과정에서 근대국가 건설에 필요한 지식과 도덕성을 갖춘 국민형성이라는 목적을 이루기 위해 공공 도서관을 설립을 계획하고 1850년 세계최초로 공공도서관법을 제정했다. 이후로 공공도서관은 백과사전적 ‘지식의 공간’과 ‘정보와 지식의 접근’이라는 개념을 전제로 민주주의 의사결정에 참여를 할 수 있는 근대적 시민형성을 뒷받침하는 계몽주의적 공공성에 가장 중요한 시설기반이 되었다.그러나 이런 공공 도서관의 근대적 이념은 다원화된 현대사회에 이르자 시민들의 다양한 욕구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없게 되었다. 실제로 영국 등 유럽에서도 1990년대 이후 도서관 이용율 감소가 사회문제로 대두되어 새로운 도서관 운동이 일어나게 되었다. 그것은 공공 도서관을 일상의 다양한 활동을 지원하는 매력적인 디자인 공간을 통해서 생활밀착형 소통과 공유를 촉발하는 지역 커뮤니티의 거점시설로 바꾸는 것이다.이제 도서관은 책을 읽는 곳일 뿐만 아니라 광장이기도 하고, 거실이자 발코니이기도 하여야 한다. 아이들의 놀이터이기도 하며, 음악 카페이기도 하고 전시장이기도 하고 소통의 장도 되어야 한다. 바로 복합문화공간이 되어야 한다. 영국의 대표적인 공공이론가인 켄 워폴(Ken Worpole)은 바람직한 공공도서관의 모습을 ‘도시의 거실’에 비유한다.이런 관점에서 보면, 우리도 이미 바뀌고는 있지만 공공 도서관의 정책을 이제 더 적극적으로 바꿀 필요가 있다.우선 수준높은 공공디자인을 감각을 가지고 도서관 건축을 하여 ‘와우(WOW) 효과’를 높여야 한다. 공공건물인 도서관을 지으면서 건축 디자인적으로 뛰어나게, 책상과 책장 등 비품을 고급스럽게 갖추고 예술품을 전시하는 것에 드는 비용을 아까와 하지 말아야 한다. 그래야 시민들뿐만 아니라 특히 가난한 어린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디자인감각과 예술적 감각을 배우고, 수준 놓은 문화를 누리면서 자랄 수 있기 때문이다. 부자들은 자비로 얼마든지 좋은 곳에서 좋은 것을 배우고 누릴 수 있지만 가난한 아이들은 그런 경험을 얻기가 어렵다. 그러니 복합문화공간인 공공 도서관에 머무르면서 자연스럽게 수준이 높아지도록 해야 한다.또 공공 도서관 건축이 바로 사회·문화적 도시재생과 이어지도록 해야 한다. 도서관 자체로도 카페, 레스토랑, 상점 등의 일상과 연결되도록 설계되어야 한다. 침묵의 원칙이 지배하는 경건하고 규범적인 공간이 아니라 먹고, 떠들고, 놀며 지식과 경험을 소통하고 교환하는 지식의 시장이 되어야 한다. 뿐만아니라 도서관과 주변의 시장, 광장, 아파트, 상가 등과 연속적 연결성이 아우러 지도록 해서 도서관이 ‘지붕덮힌 열린 공간’이 되어야 한다.대구에 대표도서관이 새롭게 지어진다. 세련되게 디자인된 새 도시의 거실에서 시민들과 아이들이 최고 수준의 문화와 예술을 즐기고 교육도 받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2019-03-12

일자리 만들기보다 더 중요한 것

김진홍한국은행 포항본부 기획조사팀장최근 실업률이 문제가 되고 있다. 이것은 어쩌면 한국경제의 구조적인 변화과정에서 발생하는 자연스런 현상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문제일지도 모른다. 과거 성장기에 있어서는 단순 노동에 가까운 인력들을 공장에서 거의 무한대로 늘릴 수 있었다. 또한 개발도상국으로서의 상대적 후진성을 무기로 임해지역에 위치한 다양한 수출특화공단에서도 일자리가 문제가 아니라 일할 사람을 구하는 것이 문제가 되던 시기에는 전국 실업계 고등학교의 취업률은 거의 100%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하지만 이와 같은 일자리의 창출 메커니즘은 사라진지 오래되었다. 대량의 고용을 수반하는 공장제 고용은 중국, 베트남 등지로 옮겨간 지 오래되었고, 그와 같은 고용이 필요한 중소기업에 적합한 일자리에 맞는 훈련기관격인 실업계 고등학교 또한 자취를 감추고 있기 때문이다. 그마저도 남아있는 흔한 말로 3D업종에는 외화벌이에 나섰던 과거의 우리 청년들의 모습을 지닌 동남아시아 등지로부터 찾아오는 외국인근로자들이 채우고 있다. 정작 일자리가 있기는 하지만 일할 사람도 없고, 실제 아무리 3D직종이라고 하더라도 중소기업이 필요로 하는 국내산 인력을 구하기 힘든 실정인 것이다. 한 나라의 경제구조가 제조업중심에서 유통, 금융, 서비스, 항공우주 등 선진국형 산업으로 전환되는 과정에서는 일자리의 창출방식과 인력양성 방식도 다양하게 발전되어야 마땅하지만 우리에게는 선진국과 같은 오랜 시간이 주어지지 않았다. 빠른 시간에 빠른 속도의 구조변화가 지금의 일자리문제를 만들지 않았나 싶다.포항도 일자리창출에 골몰하고 있다. 그러나 지역 경기가 부진한 상황에서 정책협조차원에서 기업이 만들어낼 수 있는 일자리란 한계가 있다. 깊이 있는 지식이나 숙련된 기술직의 자리는 갑자기 만들고 싶다고 만들 수 있는 것도 아니므로 그저 단순노무직 뿐이다. 안정적인 급여생활을 하고싶은 취업자 입장에서는 선뜻 내키지 않을 것이기에 실업률 문제가 쉽게 해결되지 않는 것이다.포항경제의 미래를 생각할 때 무리한 일자리창출은 오히려 독약과도 같다. 그보다는 포항에서 앞으로 어디에 어떤 인재가 얼마나 필요할지를 예측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 일례로 조만간 국제크루즈여객부두가 완성된다. 크루즈여객터미널에도 전문적인 지식을 갖추고 일본어, 중국어, 러시아어 등을 구사할 수 있는 인력들이 필요해질 것이다. 영일만항 배후단지에서 식품가공센터를 구축하여 6차 산업을 활성화시키려면 여기에도 농수산물 수집부터 공장의 생산과정, 유통판매를 책임질 전문 인력이 다수 필요해질 것이다. 또한 포항시는 올해 관광객 700만 명 유치를 목표로 하고 있다. 포항지역 곳곳에 숨어있는 고대사, 과거의 전설과 설화, 근현대사에서 중요한 스토리텔링이 무수히 잠자고 있는 핵심지역도 많다. 과연 포항을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포항을 제대로 알릴 수 있는 문화해설사는 어느 정도 확보되어 있는지 궁금하다.우리는 일자리 창출에 앞서 현재의 일자리, 그리고 앞으로 생겨날 일자리를 먼저 직시한 후 그에 맞출 수 있는 인력수요예측과 이들을 선제적으로 훈련, 양성하는 선행조건부터 갖출 필요가 있다. 그리고 예상되는 일자리에 대한 예비 전문 인력 양성프로그램을 다수 개설하여 알린다면 포항을 떠나려는 지역 청년들의 발목을 잡는 효과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 수년 후를 내다보는 선제적인 비전의 제시는 시민의 희망을 높이는 간접적인 효과뿐만 아니라 특화된 인력충원으로 기업의 서비스만족도와 지역 이미지의 제고 등 포항의 보이지 않는 가치까지도 함께 높여 이를 계기로 새로운 일자리가 동반 창출되는 선순환까지 기대할 수 있게 될 것이다.

2019-03-12

자연이 미술이 되고, 미술이 자연이 되는 곳! 홈브로이히 미술관

지키는 사람도, 바리케이트도, 명제표나 전시 설명도 없는 미술관이 있다면? 친절한 듯 전혀 친절하지 않은 그런 미술관이 정말로 독일 노이스(Neuss)라는 자그마한 마을에 있다. ‘보안이 허술한 것으로 보니 그리 값나가는 작품들이 전시된 것은 아니겠지’하고 어림짐작한다면 크나큰 오산이다.이름만 들으면 누구나 알 법한 폴 세잔(Paul Cezanne)이나 에두아르도 칠리다(Eduardo Chillida), 심지어 천문학적인 작품가를 자랑하는 알베르토 쟈코메티(Alberto Giacometti), 알렉산더 칼더(Alexander Calder), 요제프 보이스(Joeseph Beuys) 등 현대미술사를 움직였던 최고 거장들의 작품들이 아무런 감시나 보호 없이 전시되어 있다.작품 보호를 위해 감상자를 작품으로부터 격리시키는 수많은 물리적 장치들이 즐비한 보통의 미술관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가 감도는 미술관이다. ‘무제움 인젤 홈브로이히’(Museum Insel Hombroich), 네덜란드와 인접해 있는 독일 뒤셀도르프 근교 노이스에 위치한 미술관이 바로 그곳이다.그렇다면 충분히 보호되지 못한 고가의 미술작품들은 과연 안전할까? 답은 의외로 명확하다. 1987년 개관 이후 30여년이 지났지만 지금껏 작품 훼손이 심각한 문제를 일으킨 적은 전혀 없다. 이 현상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아마 이런 이유 때문은 아닐는지 추측해 본다. 작품보호를 위해 감상자를 물리적 강제력을 동원해 작품으로부터 분리시키는 방법은 아주 손쉽고 효과적이다. 하지만 감상자의 역할을 지나치게 제한시켜 버린다. 감상자에게 감시의 눈이 유쾌할 리 없다. 작품은 물리적으로 심리적으로 언제나 감상자와 멀리 떨어져 있다. 작품을 대하는 감상자는 수동적 관찰자나 방관자로 머무른다. 이에 따른 부작용도 적지 않다. 경고문이나 바리케이드가 없는 작품은 만져도 되는 것으로 인식해 숱한 해프닝들이 벌어지기도 한다. 그런데 최소한의 장치만 남겨두고 대부분의 규제들을 풀어버렸더니, 오히려 감상자들에게 작품을 함께 보호해야한다는 능동성이 작동하게 된 것이다.물론 여기에는 근본적으로 사회적 질서와 규범, 규칙을 지키려는 사회적 합의와 실천적 태도가 전제되어 있다.홈브로이히 미술관은 어떤 이유로 작가, 제목, 연도 등과 같은 기본 정보를 담은 명제표를 벽에서 제거해 버렸을까? 명제표는 보았던 작품을 기억할 때 유용한 측면을 가지고 있다. 허나 그 부작용 또한 적지 않다. 관람객들이 작품 자체보다는 명제표를 읽는데 상당한 시간을 할애하기 때문이다. 명제표를 붙이지 않았으니 작품이 시선을 끌지 못하면 감상자는 아무런 반응 없이 지나치기 쉽다. 그렇더라도 명제표를 표기하고 취할 수 있는 의미 있는 득이 있다. 작가의 유명세로부터 작품의 미학적 가치를 보호할 수 있다는 것이다.생각해보자, 작가의 유명세라는 프리미엄이 우리의 눈을 얼마나 흐려놓았는지를. 아름다운지 아닌지, 가치가 있는지 없는지, 보거나 따질 겨를도 없이 작가의 이름에 현혹되어 위선에 가까운 존경을 표한 적이 얼마나 잦았던가? 이름표도, 설명도 없기 때문에 감상자는 홀로 맨 눈과 정신으로 작품과 대면할 수밖에 없다.홈브로이히 미술관은 ‘화이트 큐브’(White Cube)로 대변되는 20세기 미술관의 한계를 극복하고 ‘미술-자연-사람’이 본질적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새로운 미술관에 대한 용감한 실험으로 볼 수 있다. 정제된 백색공간에 박제된 듯 전시된 미술작품들은 수많은 부대 장치들로 떠들썩하게 소개된다. 인공적인 공간에 인위적으로 설치된 작품들. 물리적 경계와 보이지 않는 감시 시스템들이 감상자와 작품 사이에 내밀한 관계를 지속적으로 방해한다. 반면 홈브로이히 미술관에서 감상자는 오롯이 작품과 단독으로 대면할 수 있다.홈브로이히 미술관의 설립자 칼-하인리히 뮐러(Karl-Heinrich M00FCller)는 뒤셀도르프 출신의 부동산 개발업자로 방대한 미술품을 소장하고 있었던 인물이다. 1982년 자신의 소장품을 전시하기 위한 미술관을 짓기로 결심했다. 기존의 미술관과는 전혀 다른 개념의 미술관을 짓 자는 조언을 한 사람은 미술가 고트하르트 그라우브너(Gotthard Graubner)였다. 일반적으로 미술관들이 시대별, 양식별, 장르별로 작품을 전시하는 반면 홈브로이히 미술관에서는 모든 전통적, 형식적 기준들이 파괴되었다. 아시아의 전통 공예가 유럽 현대미술과 함께 전시되고 있다. 중국 골동품으로 보이는 가구들과 현대 추상미술이 지역과 시대를 넘나들며 감상자들과 소통을 한다.라인강의 지류인 에르프트(Erft)가 만들어 놓은 늪지에 자연을 닮은 미술작품들이 곳곳에 자리하고 있고, 숲길을 걷다보면 뜻밖의 장소에 전시 공간이 숨은 듯 펼쳐져 있다. 매표소 안내 데스크에서 챙겨온 지도 한 장을 들고 각 전시장에 매겨진 번호를 찾아가며 자연 속을 걸어야 한다. 붉은 벽돌로 군더더기 없이 자연과 어우러진 10개의 갤러리 건물들은 건축가 에르빈 헤리히(Erwin Heerich)의 작품이다. 어떤 공간은 아무런 작품도 없이 비어 있다. 오로지 경험할 수 있는 것은 ‘소리’이다.건축물의 내부 구조는 사람이 만들어 내는 소리의 파장을 청각적으로 체험할 수 있도록 치밀하게 설계되었다. 서 있는 위치에 따라 마주하는 벽면에 따라 소리는 서로 다른 울림을 만들어 낸다. 이러한 공간을 계획하면서 에르빈 헤리히가 의도했던 것은 작품을 보여주기 위한 수동적 전시공간이 몸으로 ‘경험할 수 있는 조각적 건축’(begehbare skulpturale Architektur)이었다.무제움 인젤 홈브로이히. 그 이름에 나타나는 ‘인젤’(Insel)은 독일어로 ‘섬’을 뜻한다. 실제로 홈브로이히 미술관이 물위에 떠 있는 섬은 아니다. 일종의 은유이다. 철학자 발터 비멜(Walter Biemel)의 말을 빌자면 섬은 이런 곳이다.“섬의 존재는 경이로울 뿐이다. 그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또한 그것에 대해 묘사를 하거나 이해하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섬에는 다양한 생명체가 육지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독특한 생태계를 만들어 놓는다. 미술의 속성도 그렇다. 일상의 시선이 관심 없이 지나치는 것에 의미를 부여하고, 아무도 시도할 엄두조차 내지 못할 기막힌 예술적 실험들로 세계에 대한 새로운 접근을 열어주는 것이 미술이다. 그렇다면 홈브로이히 미술관은 분명히 미술의 섬이 맞다. 그리고 이러한 의미에서 존재하는 모든 미술관은 섬이 되어야 한다.미술가의 명성도, 미술 앞에 드리워진 고상한 사회적 벽도, 감상자를 혼란으로 빠트리는 작품에 대한 정보도, 작품과 감상자를 가로막는 어떠한 장애물도, 복잡하게 꼬여 있는 미술의 역사나 이론에 대한 지식도, 심지어 작품을 그럴듯하게 비춰주는 인공조명도 이곳 홈브로이히 미술관에서는 찾을 수 없다. 자연이 미술이 되고, 미술이 자연이 되는 홈브로이히 미술관. 자연과 미술의 경계가 사라진 이곳에서 감상자들 역시 방관자가 아니라 자연이 되고 미술작품이 된다.홈브로이히 미술관은 미술이 무엇인지? 왜 우리에게 미술이 필요한지? 그리고 우리 시대는 어떠한 미술관을 요구하는지 시사해주는 바가 아주 크다. 모두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지며 글을 맺고자 한다. “우리에게도 아름다운 미술관을 누릴 권리가 있지 않은가?”/김석모 포항시립미술관 학예실장

2019-03-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