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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인생 파일럿(pilot)의 기본 덕목

무사히 비행기가 이륙하고 안전벨트 사인이 풀리지요. 기장이 방송으로 자기 소개를 합니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저는 이 비행기의 기장 제임스 마틴입니다. 지금 여러분이 탑승하신 비행기는 인천 공항을 이륙했습니다. 현재 고도 1만 5천 피트, 속도는 300노트입니다. 그리고…” 기장은 잠시 망설이더니 이상한 말을 쏟아냅니다.“여기 조종석은 전망이 좋습니다. 두루 살펴보다 산 좋고 물 좋고 도시도 잘 발달한 곳이 나타나면 인근 공항에 여러분들을 안전하게 모셔 드리겠습니다. 현재로서는 예상 도착시간을 뭐라고 말씀드리기 어렵네요. 불확실한 점이 많지만, 그래도 제가 30년 경력 조종사입니다. 저를 믿고 모쪼록 즐거운 여행 되시기를 바랍니다” 만약 이런 방송이 나왔다면 어떤 느낌이 드시겠습니까?철학자인 하워드 헨드릭스 박사가 자신의 책 ‘철이 철을 날카롭게 하듯’에서 언급한 비행기 조종사의 비유입니다. 비행기 여행의 경우 예외없이 승무원이나 승객 모두 분명한 목적지를 알고 탑승합니다. 그저 비행기를 조종하다 적당한 곳에 내리려는 방식으로 여행을 시작하는 사람은 지구상에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 인생은 어떤가요?비행기 여행보다 10만배 더 길고 100만배 이상 소중하고 가치 있는 우리 인생은 과연 어떤가를 꼬집는 비유입니다. 인생이라는 한 번 밖에 없는 소중한 비행을 터무니없는 기장 방송과 같은 태도로 살아가는 사람이 많습니다. 고도 1만 5천 피트, 속도 300노트. 사회적 지위와 삶의 속도를 상징합니다. 조종 실력 또한 뛰어나지요. 그러나 속도와 고도에 집착한 나머지 정작 인생이라는 비행기가 어디로 날아가는 지에는 별로 관심이 없는 경우가 흔합니다.어떻게 내 인생이라는 비행의 목적지를 알 수 있을까요? 목적지가 상징하는 것이 어떤 신분이나 지위, 또는 성취의 목록들이라고 누구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인생을 마친 후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기억해 주면 좋을까 하는 목록이 바로 그 목적지 아닐까요?“더 사랑해 주지 못해서, 더 표현해 주지 못해서, 더 충만한 삶의 기회를 놓쳐서” 죽음을 앞둔 사람들이 후회하는 것은 이런 내용들입니다. “더 벌지 못해서, 더 쓰지 못해서, 더 높은 곳에 오르지 못해서”를 후회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하지요. 내 인생의 비행기는 지금 어디를 향해 날고 있는가? 나는 과연 내 인생의 목적지를 분명히 설정하고 있는가? 인생 파일럿(pilot)이 질문해야 할 기본적인 덕목입니다./조신영 인문학365 대표

2019-03-11

30-50클럽과 선진국

강희룡서예가‘30-50클럽’은 1인당 국민총소득(GNI)이 3만 달러 이상이면서 인구 오천만 명이 넘는 국가를 말하며 미국을 비롯해 한국을 포함한 7개국이다. 한국은행은 지난해 우리나라의 GNI는 3만3149달러라고 최근 발표했다. 이 3만 달러를 4인 가구로 계산하면 한 가구 당 연소득이 대충 1억3천400만원정도가 된다. 하지만 국민들의 경제적 괴리감은 더욱 깊어지고 있다. 실제생활이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 현실에서 선진국 진입이라는 정부의 상징성 홍보와 통계가 결과적인 수치에만 매몰된 나머지 다양한 사실들을 외면하는 함정에 빠진 것이다. 우리나라는 세계에서도 그 사례를 찾아볼 수 없는 단기간 고속성장으로 세계10위권의 경제대국으로 성장했으나, 산업화를 통한 물질적 성과와는 달리 국민들의 의식구조는 아직도 선진국에 비해 한참 뒤쳐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선진국’이라는 단어는 매우 모호한 의미로 ‘경제적 필요를 채우는 일’ 외에도 다양한 사회적 요건들을 충족시켜야 한다. 한국이 아직 선진사회로 갈 수 없는 이유 몇 가지를 들면, 미숙한 사회구조로 중요한 위치의 정치나 교육계의 지도자들이 공동체에 대한 의식이 취약하다는 것이다. 국가나 사회관에 대한 자기인식이 부족하여 자신이 처한 위치에서 사회적으로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잘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다음은 독서량으로 선진국은 국민의 절대다수가 책을 읽는다. 독서는 일평생 자기계발을 위한 필수적 행위인데 한국은 기득권으로 먹고 사는 사회에 머물러 있기에 독서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직장 역시 생산성에 관계없이 단지 선임자라는 이유만으로 사회적으로 지나치게 많은 차등보상을 받고 있다.모든 선진국들의 공통점은 안정된 시민민주주의다. 강력한 공권력과 국가의무에 대한 엄격성이 그 안에 있다. 그것은 하나의 커다란 사회계약이며, 그 계약 내용에 대해 충실한 것이 바로 선진국이다. 모두가 함께 만든 동일한 법을 어겼을 때의 불이익과 처벌이 크다는 것을 그들은 알고 있으며, 또 얼마나 가혹해지는지 보면 알 수 있기에 선진국 국민들이 준법정신이 강한 것이다. 이처럼 선진국이라는 개념은 ‘경제적으로 잘 사는 나라’를 일컫는 것이 아니라 국가가 운영하는 정치나 경제정책 외에도 법질서와 사회규범과 문화까지 포함해서 종합적으로 판단했을 때 ‘발전한 나라’라는 뜻을 가진다.한국과 같이 작은 나라의 거대한 정부나 입법부는 그 규모에서 이미 관료조직을 능가하고 있다. 이러한 조직으로 파생된 관료주의는 만연된 부정부패가 사회 전반적으로 나타나며 파킨슨법칙으로 그 수만 더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전형적인 후진적 행태는 국가적 재난과 대형사고에 대처하는 미숙함과 무사안일, 아마추어적인 시스템운영, 흑백논리가 지배하는 사회, 재벌세습과 천민자본의 갑질, 반칙의 일상화와 질서의식의 실종, ‘설마’라는 안일한 생각, 입시위주의 몰입식 교육은 가장 중요한 덕목인 사회규범준수와 남을 배려하는 인성교육을 사라지게 했다.영국의 싱크탱크 레가툼 연구소가 지난해 11월 28일 발표한 세계번영지수에서 한국은 전체 149개국 중 35위에 올랐다. 총 9개 항목 중 교육 분야가 17위, 보건시스템항목에서 19위로 비교적 높은 수준에 올랐으나, 기본권과 사회적 관용은 75위, 사회적 규범과 시민참여 등 사회적 자본은 78위로 중위권이다. 사법 분야의 독립성은 0~1점 중 0.47점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국 중 28위로 하위권이다.영국 이코노미스트가 지난 8일 세계여성의 날을 맞아 여성의 노동환경을 종합적으로 따져 매긴 ‘2019년 유리천장 지수’ 평점에서 한국은 조사대상인 OECD 29개 회원국 중 최하위를 기록했다. 선진국 조건은 돈에 앞서 사람이다. 지금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모든 부정적인 요인들은 결국 선택을 잘못한 우리들에게 있으며 국민들의 수준이다.

2019-03-11

양성평등 문화, 일상에서 만나다

박은미경북여성정책개발원 정책개발실장1995년 유엔 4차 북경세계여성대회 이후 성주류화 전략이 채택되면서 양성평등에 관한 관심이 높아졌다. 우리나라에서도 세계적인 흐름에 발맞춰 양성평등을 위해 법률의 재정비와 정책이 도입되어 그 내실화를 다져가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2017년 세계 각국의 성평등 순위를 매긴 세계경제포럼(WEF) 연례 보고서에서 우리나라는 세계 144개국 중 118위를 기록했다. 이 보고서는 성격차 지수를 측정하는 도구로 경제참여기회, 교육성취, 정치적 힘, 건강 등이 사용되는데 한국의 경우는 여성의 정치, 경제 참여 분야의 고위직 진출에 있어서는 지속적으로 낮은 점수를 받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성격차가 발생하는 원인 중의 하나가 한국 사회의 문화와 가치관에 기인한 것인데, 유교적인 문화와 관습에 의한 사회화가 중요한 원인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여성 또는 남성이라는 성별은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자연의 섭리에 의해 결정되어진 것이기 때문에 여성과 남성 간에는 어떠한 차별도 존재하지 않아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과 남성 간에는 분명히 차별은 존재한다. 성이라는 본원적이고 생리적인 차이로부터 야기되는 자녀출산이나 육체적 한계와 같은 생물학적 원인보다는 윤리적·도덕적 규범을 통해 자녀양육이나 경제활동 과정에서의 사회적 역할을 구분하는 것까지 확대·적용되어 차별화되어 왔다. 역사적으로 사회·문화적, 법적, 제도 내 관계에서 남성보다는 여성이기 때문에 당하는 부당한 대우와 억압이 거의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성차별을 여성차별의 의미와 같은 개념으로 인식하고 있는 경우가 다수이다. 이처럼 사회적 차별성을 극복코자 할 때 우선적으로 근본적으로 무엇을 다뤄야 할 것인가?한편, 생물학적 차이인 ‘여성과 남성 사이에 존재하는 본질적 차이’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 하는 점도 검토해야 봐야 한다. 절대적 평등인 여성과 남성 간 차이를 무시하고 성 중립적인 평등주의를 채택할 것인가, 아니면 상대적 평등인 여성과 남성간의 생물학적 차이를 인정하고 그 바탕 위에서 평등주의를 택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여기서 두 평등의 개념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경우 실질적인 의미의 양성평등 실현은 불가능할 것으로 보인다.우리는 절대적 평등에 기초하는 법적 평등을 통해 여성과 남성에게 동등한 권리와 기회를 부여했음에도 불구하고 결과적으로 실질적 평등 수준까지 달성되지 못했던 경험을 가지고 있다. 양성평등이 제대로 나아가려면 양성 간의 차이에 대해 사회적으로 동일한 가치를 부여하고, 그들이 수행하는 다양한 역할을 편견 없이 수용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양성평등은 단지 양 성간의 똑같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를 수도 있는 권리까지도 포함하는 개념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양성평등은 남녀 간 권력 불평등을 해소하고 사회구조를 바꾸며, 여성과 남성이 갖고 있는 다양한 가치들 간의 균형을 이루는 방법이 무엇인지를 함께 모색하는 과정일 것이다. 이 과정에서 여성의 권리가 특혜가 아니라 보편적 인간의 권리라는 인식도 함께 동반돼야 한다. 그럼 인식의 변화를 위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일상 속으로 양성평등 의식 교육이 확산돼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유아기부터의 생애주기별 양성평등 의식 교육이 중요할 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지 제도적인 측면에서 양성평등 의식을 논의하거나, 정책적인 측면에 양성평등 의식이 형성된 사례는 드문 것으로 판단된다. 이젠 공공분야를 벗어나 학교, 기업 등 다양한 분야와 대상들에게 양성평등 의식 교육프로그램이 제공돼야 할 것이며, 이를 실행하고자 하는 의지를 고취시키는 교육도 중요하다.특히 성평등 고정관념이 존재하는 경우 교육의 필요성을 인지하지 못하고 교육 받기를 꺼려하는 것으로 보아 양성평등 의식을 변화시키기 위한 지속적인 홍보도 필요할 것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2019-03-11

산성비협약

미세먼지 유발을 둘러싼 한중 갈등 해법으로 1970년대 영국, 서독, 스칸디나비아 제국이 유럽 대륙의 산성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맺었던 국제협약인 이른바 ‘산성비협약’이 주목받고 있다. 산성비협약은 유엔 유럽경제위원회(UNECE)가 주관해 1979년 체결한 ‘장거리 이동 대기오염물질에 관한 협약(CLRTAP)’을 가리킨다. 관련 국가들은 40여 년이 지난 현재도 매년 대기오염 물질 감축목표를 설정하고 감축방법 및 비용 분담을 논의하고 있다. 처음 협약의 출발은 1950년대 북유럽 국가 호수들에서 물고기가 떼죽음을 당하고 숲이 사라지는 재앙에서 비롯됐다. 유럽이 이 협약을 추진할 때 실현 가능할 것이라고 기대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그러나 누구 탓이냐를 따지기보다 큰 틀에서 함께 줄이는 방향으로 접근하니 가능해졌다. 실제로 1967년 스웨덴의 과학자 스반테 오덴이 ‘외부로부터 유입된 아황산가스가 원인’이라는 연구 결과를 내놓고 1971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영국과 서독에서 발생한 대기오염물질이 스칸디나비아 산성비의 주요 원인이라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두 나라는 지금의 중국처럼 연구결과 자체를 부정했다. 이에 스웨덴이 1972년 스톡홀름 유엔인간환경회의(UNCHE)에서 산성비를 국제 이슈로 제기하는 등의 노력이 이어졌다. 그 후 과학적 검증과 국제여론의 도움에 힘입어 영국과 서독이 과학적 연구를 진행하기로 합의, OECD 주도하에 11개국이 참여하는 ‘대기오염물질 장거리 이동 측정에 관한 협동 기술 프로그램’이 시작됐다. 대기오염 물질에 대한 과학적 조사결과가 축적되면서 UNECE 차원의 협력 방안이 논의됐고, 1979년 UNECE 회원국 34개 중 31개국이 CLRTAP에 서명했다. 협약 이후 유럽대륙은 오염물질 배출량 감소라는 성과를 얻어냈다. 산성비의 원인인 이산화황 배출량은 오염이 가장 심했던 체코, 독일, 폴란드에서 모두 감소했다. 특히 독일 인근 지역의 이산화황 배출량은 1989년 142만t에서 1996년 59만t으로 크게 줄었다. 국가간 협상을 하려면 서로 체면을 세워줘야 하는 법인 데, 우리 미세먼지 대책은 너무 일방통행식은 아닌가 반성할 필요가 있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19-03-11

이제는 협상의 시대다

신희선숙명여대 기초교양대학 교수·정치학 박사올해 3월 1일은 여러 의미가 더해진 날이었다. 1919년 일어난 3·1운동 100주년이자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이하는 해였다. 지난 2월 26일 문재인 대통령은 백범 김구기념관에서 국무회의를 개최하며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하고 있는 정부의 상징성을 보여주었다. 그 자리에서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질서도 달라지고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스스로 그 변화를 주도할 수 있게 됐다는 사실”이라고 하였다. 3·1절 기념사에서도 “신한반도 체제로 담대하게 전환해 통일을 준비해 나가겠다”며, 이를 국민과 함께 남북이 함께, “3·1독립운동의 정신과 국민통합을 바탕으로” 만들어 가겠다고 선언하였다.또한 3월 1일은 통일부가 설립된 날이었다. ‘통일’이라는 헌법정신을 구현하는 정부 부처로 1969년 국토통일원이 창설된 이래로 50년이 지났다. 그동안 통일부는 통일정책을 수립하고 남북한 교류 협력 및 탈북자 지원, 국내외 각계각층을 위한 통일교육을 실시하며 통일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를 확산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그러나 지난 50년 동안 정권의 성격에 따라 가장 부침이 컸던 조직이기도 했다. 국내외 환경 변수로 통일부의 위상과 역할에 한계가 많았다. 통일의 비전과 정책이 일관성 있게 추진되지 못하고 대통령의 발언에 따른 진폭이 컸다.통일부 50주년 행사에서 조명균 장관은 “다른 조직은 유구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지만, 통일부가 오래 됐다는 것은 그 만큼 통일이 늦어졌다는 뜻”이라며 분단을 빨리 종결하는 것이 통일부의 소임임을 환기시켜 주었다. 하노이회담 이후 북미관계의 시계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재점검이 요구되고, 광화문 광장에서는 태극기 부대들이 “좌파 독재정권 퇴진”을 외치고 있는 현재 상황에서, ‘어떻게’ 통일 문제를 풀어가는 게 좋을지 쉽지 않은 장이 펼쳐지고 있다.2017년 5월 4일 타임지는 문재인 대통령을 ‘네고시에이터(The negotiator)’로 소개하였다. 강인하고 비장한 이미지의 표지 사진과 함께 “협상가 문재인, 김정은을 다룰 수 있는 남한의 리더를 목표로 하고 있다”는 문구로 대선 후보로 나선 문재인 대통령에 주목하였다. 2018년 4월에는 ‘2018년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에, 12월에는 매년 타임지가 선정하는 ‘올해의 인물’ 5위로 문재인 대통령을 꼽았다. 세 차례의 남북정상회담을 이끌고 북미정상회담을 중재하면서 한반도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한 점이 선정 이유였다. 타임지가 ‘위대한 협상가’로 부른 문재인 대통령이 제2기 통일부를 이끌 수장으로 ‘협상의 전략’을 쓴 김연철을 선택했다.‘협상의 전략’은 한국전쟁의 휴전협상 결과를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한반도는 지금도 휴전과 종전 사이에서 혹은 전쟁과 평화 사이에서 헤매고 있다”는 말로 표현한다. 또한 분단을 극복하고 통일을 달성한 독일사례를 다루며 빌리 브란트의 동방정책에 주목한다. 브란트의 ‘작은 발걸음 정책’이 불가능해 보였던 독일 통일을 가능하게 했다며 “진심만큼 강한 무기는 없다”고 강조한다. 내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체제와 이데올로기를 넘어서 인간적인 삶에 초점을 맞춰 대화하고 협상하는 과정에서 문제를 해결했던 브란트의 접근이 동서독 관계정상화와 결국 통일로 가는 길을 만들었다는 것이다.“이제는 협상의 시대다.” 제40대 통일부장관 내정자 김연철은 말한다. “협상은 문제해결을 위한 차선책이 아니라 최선의 방법이 되었다”고. 또한 “때를 아는 것이 협상의 유일한 기술”이라고 강조한다. 북미대화가 다시 교착상태로 빠진 지금, 우리 안의 분단을 넘어 평화와 통일로 나아가려면 협상이 필요하다. 남남갈등을 해결하고 주변 국가를 설득하며 통일 환경을 만들어가기 위해서는 협상력이 관건이다. 문재인 정부 2기 통일부가 통일을 향해 한 발 더 나아가는 중대한 역할을 하길 기대한다. 바로 지금이 협상력이 필요한 ‘때’다.

2019-03-11

하노이 회담과 김정은의 정치 행태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세계적인 관심사 하노이 북미회담은 결렬되고 말았다. 트럼프와 김정은의 세기의 담판은 빅딜도 스몰딜도 아닌 노딜(no deal)로 끝나고 만 것이다. 김정은은 그의 부친 김정일과 달리 언론 노출을 기피하기 보단 즐겨하는 편이다. 지난해 싱가포르의 회담에 이은 이번 하노이에서의 그의 노출은 세계인들의 관심을 모았다. 그는 조부 김일성의 인민복과 같은 옷을 입고 베트남의 하노이를 방문했다. 그는 중국을 종단하여 하노이까지의 당 간부와 수행단을 이끌고 66시간, 2박3일을 열차로 이동하는 장정(長程)이었다. 하노이 북미 회담은 실패로 끝났지만 이번 여행에서 그가 보인 몇 개의 정치 행태에 관한 함의를 분석해 본다. 트럼프와 첫 만남 시의 김정은의 표정은 예상과 달리 매우 초조해 보였다. 싱가포르에서의 첫 상견례시보다 그는 불안하고 당황한 모습을 감추지 못했다. 2천500만 조선인민의 수령인 그의 태도는 약간 겁먹은 표정이었으며 자연스럽지 않는 웃음을 짓기도 하였다. 돌이켜 보니 그는 톱다운(top down)식의 정상회담에 앞선 미팅에서 트럼프에게 모험적인 배팅을 시도했기 때문이다. 그는 영변 핵시설 정도만 폐기하면 미국이 대북제재를 풀 수 있다고 오판한 결과이다. 내년 미국 대선을 앞둔 트럼프를 북한식 ‘벼랑 끝 전술’로 밀어붙여 결판을 내려고 했던 것이다. 그러나 협상과 계산에 빠른 노련한 트럼프는 이를 덜컥 수용할 수 없었다. 영변시설 외의 플러스알파를 요구했던 것이다. 김정은의 초기의 불안했던 표정을 이해하는 포인트이다.김정은은 열차 이동 중 간이역에 내려 담배 피우는 장면이 노출되었다. 애연가 김정은이 담배를 피우고 여동생 김여정이 재떨이를 받치는 모습이다. 중국 당국의 철통보안을 뚫고 끈질긴 일본 사진 기자가 포착한 특이 장면이다. 머리가 흐트러진 김정은이 성냥을 그어 불을 붙이고, 동생이 재떨이를 들고 있는 모습이다. 북한의 독특한 측근 정치의 실상이 노출되는 순간이다. 20대 후반의 김정은이 북한의 노령 간부들 앞에서도 수시로 담배를 피운 것은 수령의 권위를 과시하기 위한 행태일 것이다. 고도 비만인 김정은은 의료진의 권고도 무시하고 술과 담배를 즐긴다. 이를 제지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것이 북한 정치체제의 불행이며 한계이다. 하노이 회담이 결렬된 후 두문불출하던 김정은이 하노이 주재 북한 대사관을 방문한다. 대사관 정문에서부터 수령 김정은을 맞이하는 베트남주재 북한 대사는 흥분된 표정으로 자신을 큰 소리로 소개한다. 북한 대사관 직원과 그 가족들의 환영 열기는 그야말로 열렬하였다. 텔레비전을 통해서만 보던 지도자 동지를 직접 맞으면서 울부짖는 여성 모습까지 보였다. 똑같은 장면이 그의 귀환길 새벽 3시 평양역에서도 연출되었다. 역두에는 90대 고령인 김영남, 당 서열 2위인 최용해 모습도 보였다. 당과 군의 간부들이 도열하여 협상에 실패하고 돌아오는 수령을 환영하는 장면이다. 북한식 일인 통치, 수령 통치의 진면목이 그대로 노출되었다. 김정은은 벌써 집권 8년차를 맞고 있다. 2011년 갑작스런 부친의 사망으로 승계된 그의 리더십은 흔들림 없이 집행되고 있다. 세습왕조체제 하의 30대 통치권자 김정은의 정치 행태도 이제 조금씩 변모하고 있다. 그는 작년 평양회담 시 문재인 대통령과 카퍼레이드를 하고 운동장에 운집한 평양 시민들을 향해 대중 연설도 하였다. 그는 집무실에서는 올해 서양식 신년사도 발표하였다. 그는 베이징, 싱가포르, 하노이 방문 등 선대의 ‘은둔의 정치’와는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북한의 경직된 정치 체제는 변하지 않아도 그의 정치 행태는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 북한 최고 통치자의 이러한 작은 변모가 북한 개혁 개방의 신호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김정은의 정치 행태는 아직도 정상국가의 지도자의 모습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2019-03-10

팔씨름에서 지고 세상을 얻은 남자

“담배를 피우실 분은 밖으로 나가셔서 비행기 날개 위에 앉아 마음껏 피우시면 됩니다. 흡연 중에 감상하실 영화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입니다.” (폭소) “오늘도 저희 사우스웨스트 항공사를 이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희는 여러분을 사랑합니다. 그리고 여러분의 돈도 사랑합니다.” (까르르)천편일률 기내방송을 바꾸어 인기를 끈 회사가 있습니다. 사우스웨스트 항공사. 설립자는 회사 CEO였던 허브 켈러허입니다. 자동차로 가기엔 좀 멀고 비행기를 타긴 아까운 애매한 거리, 즉 500마일 미만 노선 세 곳만 비행기를 투입합니다. 텍사스 주 휴스턴, 달라스, 샌안토니오 3개 도시죠. 경쟁사보다 요금을 30% 파격적으로 내립니다. 자동차로 가려던 승객들은 비행기 이동으로 즉각 방향을 선회합니다.‘저스트 플레인 스마트 (Just Plane Smart)’라는 광고를 시작하자 비슷한 캠페인을 이미 사용하고 있던 스티븐스 항공사가 저작권 침해 소송을 걸어옵니다. 고소장을 받은 허브 켈러허 회장은 곧장 전화기를 집어 들고 스티븐스 항공사 커트 허월드 회장에게 전화를 걸지요. “옥신각신 해봤자 변호사들 배만 불려줄 게 뻔하지 않소? 까짓 우리 두 사람이 직접 만나서 팔씨름 한 판으로 승부를 내는 게 어떻겠소? 이기는 편이 캠페인 광고 문구를 쓰는 걸로 합시다.”사우스웨스트 항공사는 두 사람의 팔씨름 내기를 대대적으로 홍보합니다. 미국 전역이 흥미롭게 이 대결을 지켜보지요. 법정 다툼에 신물 난 사람들은 이렇게 신선한 방식에 감탄합니다.레슬링 장외 특설링 한복판에 등장한 두 사람. 허브 켈러허는 심지어 입에 담배를 꼬나 문채로 머리에 띠까지 두르고 화려한 가운 차림으로 나타납니다. 쇼맨십이 작렬하지요. 시합이 시작되자 잠시 팽팽하게 엎치락 뒤치락 하더니 결국 젊은 스티븐스 항공 회장이 싱겁게 경기를 끝냅니다.비록 시합은 졌지만, 허브 켈러허는 모든 것을 얻었습니다. 엄청난 광고 효과를 거두었고 항공사의 이미지는 급상승했습니다. 직원들은 모두 즐거워했고 심지어 상대방 스티븐스의 커트 허월드는 기쁜 마음으로 캠페인 문구를 양보하겠다고 손을 내밀었지요. 모두가 승자가 되었습니다. 작은 이익을 위해 이전투구하기보다 더 넓고 큰 마음으로 상대에게 먼저 손을 내밀 때 세상은 좀 더 살만한 공간이 되지 않을까요? 오늘 하루 중 틀림없이 갈등 상황이 있겠죠? 허브 켈러허의 팔씨름을 생각해 보는 넉넉한 하루 만들어가면 어떨까요?/조신영 인문학365 대표

2019-03-10

연오랑 세오녀는 누구인가?

김도형 아시아퍼시픽해양문화연구원 이사연오랑의 ‘잃어버린 신발’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이런 문제의식을 미술적으로 해석한 작품이 작년 9월 서울 삼청동 ‘바라캇 서울’에서 전시돼 주목을 받았다. 영국 출신 작가 셰자드 다우드가 연오랑의 신발을 ‘잃어버린 난민의 소지품’으로 여기고, 세오녀가 짠 비단으로 제사 지내는 장면을 아소르스(Azores) 제도의 비현실적인 일몰의 순간으로 해석한 작품을 선보인 것이다. 현시대의 긴급한 문제에 관심이 많은 셰자드 다우드는 서울 큐레이터가 제안한 연오설화에서 영감을 얻어 천 위의 페인팅으로 재해석했다고 한다. 자신의 주된 관심사이자 지구촌의 과제를 외국의 고대 설화에서 모티브를 얻어 작품화한 것이다.설화는 다양하게 해석되거나 변주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려 있다. 실제로 연오설화는 수많은 연구결과가 있는데, 크게 세 가지로 나눠 볼 수 있다. 첫째 역사적 사실로 보는 견해, 둘째 모종의 사실이 은유와 상징으로 포장돼 있다고 보는 견해, 셋째 은유와 상징에 방점을 두는 견해다.첫째 견해의 대표적인 연구자는 이영희다. 이영희는 연오랑 세오녀를 우리나라 금속 제조 기술을 상징하는 실존 인물로 본다. 일월이 빛을 잃었다는 것은 제철 공정의 불이 꺼진 것이고, 일월이 예전같이 돌아왔다는 것은 제철 공정이 재개됐음을 의미한다고 풀이했다.둘째 견해, 곧 ‘비판적 신빙론’은 이문기를 꼽을 수 있다. 이문기는 “연오설화는 한반도를 떠나 일본열도의 어느 곳에 정착한 이주민 세력이 지배자로 군림했던 역사적 사실을 모티브로 성립했던 것으로 볼 수 있고, 특히 영일지역의 선주 토착세력이 새로 이동해 온 이주세력에게 밀려 일본열도로 건너가 그곳에 정착하여 지배자로 성장한 사실이 투영된 설화일 가능성도 있다”는 해석을 내놓았다.셋째 견해는 고운기가 대표적이다. 연오설화를 정치적 의미로만 풀어서는 곤란하고, 일월이 빛을 잃었다는 얘기도 일식, 월식 같은 자연 현상으로만 보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 고운기의 주장이다. 그는 일관이 이른 ‘일월지정(日月之精)에서 ‘정’을 ‘정령(精靈)’으로 번역한다. 즉 신라 사람들이 잃어버린 것은 해와 달을 해와 달로 볼 수 있는 정령이며, 연오 세오는 해와 달의 정령이자 의인화라는 해석이다. 정령을 잃은 사람은 눈 뜬 소경과 같고, 사회도 그러하다는 것을 일연이 강조했다고 보는 것이다.짧은 이야기 한 편을 놓고 해석에 이렇게 큰 편차가 있다. 신라 건국 초기의 은유와 상징으로 가득 찬 이야기를 13세기 후반에 일연이 편찬하고, 21세기에 우리가 풀이하고 있으니 이러한 현상은 어쩌면 자연스럽다고 볼 수 있다.연오설화는 지역의 정체성이자 소중한 문화유산이다. 동시에 초기 신라인의 심성과 세계관을 읽을 수 있고, 고대 한반도와 일본열도의 관계를 파악할 수 있는 귀중한 역사자료이다. 그동안 연오설화를 놓고 학문적 연구는 물론, 문학, 음악, 무용, 연극, 창극 등 다양한 장르에서 활발한 작업이 있었고, 앞으로 더 다채로운 시도가 이뤄질 것이다. 이 작업이 더 많은 관심을 모으고 오랫동안 생명력을 가지려면 보편적인 울림이 있어야 한다.연오설화는 단순히 한 지역의 이야기가 아니라 한반도와 일본열도의 관계를 넘어 현시대의 세계적 이슈와도 연결될 수 있는 메타포를 안고 있음에 주목해야 한다. 연오설화의 지역적 가치를 충분히 감안하되, 넓고 깊은 보편적 지평 속에서 해석해야 더 창의적인 성과를 기대할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국제무대에서 연오설화를 다양하게 해석하고 발표할 수 있는 기회를 적극적으로 마련해볼 필요가 있겠다. 그나저나 읽을 때마다 새로운 느낌을 주는 이 근사한 이야기의 작가는 누구인지, 연오랑과 세오녀는 누구인지 자못 궁금하다.

2019-03-10

“온종일 흙만 팔지라도 역사를 찾는다는 자부심 가집니다”

한사코 손사래를 쳤다. 아는 게 없어 할 말이 없고, 누군가 그들의 말을 들으려 했던 적도 없다고 했다. 하지만 천년의 잠에 빠졌던 월성의 속살을 가장 깊숙이에서 온종일 어루더듬는 사람들의 말이 어눌할지언정 어찌 헐후할까? 월성의 주인은 알에서 태어난 조상을 가진 왕족들이었지만, 월성을 만든 사람은 흙투성이 손을 두려워하지 않는 평범한 백성들이었을 것이다.처음에는 1970년대 황룡사지 발굴 때부터 40여 년간 일해 온 경주 문화재 발굴조사의 ‘산증인’ 최태환 씨와의 만남을 시도했다. 하지만 개인적인 사정으로 최태환 씨의 인터뷰가 여의치 않아, 경주문화재연구소 최향선 학예사의 도움으로 권세규 작업반장을 소개받았다.권세규 씨는 사설 기관을 통해 이루어진 작업을 포함해 10여 년을 경주 문화재 발굴 현장에서 일해 왔고, 2014년 12월 월성 발굴조사 작업이 시작될 때부터 지금까지 작업반원이자 작업반장으로 일한 베테랑이다. 겨울철 작업 중단으로 휴가 중인 권세규(74) 씨를 성건동 자택 근처 찻집에서 만났다.- 현재 월성 발굴 조사 현장에서 일하는 작업반 인원은 얼마나 됩니까?△한 조에 약 20명 정도입니다. 월성 전체로 보면 7개 조, 약 140명 정도 됩니다. 날씨에 따라 너무 춥거나 더운 두세 달을 제외하고는 1년 동안 이 인원들이 출근합니다. 건강 문제라든가 집안 형편이라든가 개인적인 사정을 제외하고는 모두 상근하는 편입니다.- 작업반의 성별과 연령 구성은 어떻게 되나요?△연령별로는 작업반원 중 최고령자가 80세이고 최연소자가 50대 중후반입니다. 고령자들은 경력이 10년에서 20년 가까이 된 베테랑이고, 보통은 60대에서 70대가 가장 많습니다. 다들 연령대가 높은 편인데, 정년이 따로 없다가 올해부터 만75세 정년 규정이 생겼습니다. 성별로는 총 작업반원 140명 7개 조 가운데 여성이 1개 조 약 20명인데, 주로 물체질(water-sieving, water-floatation)을 맡고 있습니다. 물체질 조는 발굴 후 남은 흙을 체질해서 씨앗이나 토우 등을 낱낱이 건져내는 일을 합니다. 나머지 6개 조는 주로 남성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부부도 서너 쌍 있습니다.- 월성 작업반은 어떻게 구성되어 있습니까?△조사하는 지구별로 구성됩니다. 성벽, 해자, 왕궁 건물지 등 3개 현장에서 각각 조별로 작업합니다. 지금까지 성벽에 2개조, 해자에 3개조, 왕궁 건물지에 2개조가 작업해 왔는데, 현재는 해자 쪽에 일이 많아져서 왕궁 건물지 담당 1개조를 그리로 보냈습니다. 각 조는 작업반장 1명과 조원 19명가량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작업 현장을 총괄하는 학예사가 1조에 1인 또는 2조에 1인이 결합되어 있고, 연구원은 학예사 1인당 3~4인이 함께합니다. 연구원들은 작업반원들과 함께 호미질을 하기도 하고 이런저런 일로 현장에서 바쁘게 움직입니다.- 역할이나 구역으로 작업반이 나뉘어져 있다면 각 분반의 일과를 알려 주세요.△조별로 맡은 구역의 발굴조사 작업을 진행합니다. 하루 일과는 유구 보호를 위해 덮어두었던 ‘갑빠’를 여는 일에서 시작해 각자 맡은 지구에서 발굴조사를 돕습니다. 마무리는 역시 ‘갑빠’를 닫는 일로 끝이 납니다. 일과 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입니다. 12시에서 1시까지 점심시간을 제외하고 작업 중간에 10분에서 20분 정도 휴식 시간이 있습니다.- 월성 발굴 작업 중 특별히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해자를 발굴 조사할 때 목간과 작은 토우, 씨앗 등을 건져냈던 일이 기억납니다. 해자의 펄을 걷어내는 작업이 꽤나 만만치 않았습니다. 그 펄을 모두 물체질 해서 자칫하면 놓칠 수도 있었던 작은 유물들을 빠짐없이 찾아냈다는 것이 보람 있었습니다.2010년 이집트 유적 발굴을 이끌고 있는 고고학자 자히 하와스는, 피라미드는 비참한 강제노동으로 노예들이 채찍질을 당하며 만든 게 아니라 자유로운 노동자 약 1만 명이 날마다 버펄로 21마리와 양 23마리를 식량으로 제공받으며 만들었다고 주장했다.하와스가 그 근거로 제시한 것은 왕의 무덤 주변에 노동자들의 무덤이 자리했을 뿐더러, 노동자의 무덤 벽에 자신들을 ‘쿠푸 왕의 친구’라고 쓴 낙서가 발견되었기 때문이란다.덧붙여 발랄한 일설에 의하면 노동자들이 피라미드 건설에 자원한 이유가 물질적 보상만이 아니라 그것을 만드는 일이 ‘재미’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험하고 고된 노동일지언정 ‘의미’와 ‘재미’마저 없다고 치부하는 건 또 다른 오만일지 모른다.만약 허락을 받을 수 있다면 단 하루라도 작업반원으로 일해보고 싶었다. 발굴 작업마저 중단시킨 추위와 꽁꽁 얼어붙은 땅이 야속했다.- 만약 제가 경력 없는 초보자로서 월성 발굴 작업에 참여한다면, 작업반장님은 어떤 일을 맡기시겠습니까?△흙 나르는 것을 시키겠지요.(웃음) 초보자는 현장에서 파낸 흙을 나르는 작업부터 시작하는데, 경력에 따라 역할이 달라진다기보다 원하면 같은 작업을 계속하는 경우도 있고 상황에 따라 다릅니다. 흙 나르는 작업자는 5명당 1명 정도로 배정되니까 1개 조에 3~4명 정도 필요하지요. 그 외 호미질 하는 작업반원들이 다수입니다.- 월성 작업반에 취직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젊은 사람들은 하지 않으려는 일인데 왜 그러시는지…(웃음) 보통 1년 계약직으로 결원이 생길 때마다 충원됩니다. 작업반원의 조건이라면 우선은 맡은 일을 해낼 만큼 건강해야겠지요. 2014년에 발굴조사를 시작할 때는 1945년생 이하라는 나이 조건이 있었습니다. 역할이나 경력에 무관하게 임금은 동일하게 받습니다.권세규 씨는 1945년생, 해방둥이다. 기림사와 감은사지가 있는 경주시 양북면에서 태어나 7세에 부모님을 잃고 형제들에 의지해 어렵게 성장했다. 성인이 되어 결혼한 후에는 아내와 함께 성건동에서 40여년 동안 한식당을 운영했다. 그러다 1995년 위암 수술을 받았고, 투병을 위해 식당을 접고 쉬던 중 건강이 얼마간 회복되면서 일거리를 찾다가 사설 발굴 조사 작업에 참여하게 되었다.(경주 시내는 개인 주택을 건축하거나 도로를 확장할 때 발굴조사가 필수라, 입찰을 통해 사설 업체에서 발굴조사 작업을 진행한다.) 6~7년 동안 사설 발굴조사에 참여하다가 2014년 12월 월성 발굴조사 작업이 시작되어 경주문화재연구소에서 작업반원들을 모은다는 이야기를 듣고 지원하게 되었다.- 2014년 12월 월성 발굴조사가 시작될 때부터 작업에 참여하셨다면 월성의 초기 모습을 기억하고 계시겠네요. 발굴조사의 시작은 어땠습니까?△ 초기에는 잡풀이 무성한 언덕이었지요. 발굴 작업을 시작할 때는 일단 포클레인 같은 장비를 사용해서 가능한 지역을 파냅니다. 그 외에 유구에 탈이 날 수 있는 부분은 삽과 곡괭이, 그리고 호미와 꽃삽으로 작업합니다. 조원 15~16명이 모두 달라붙어 그 일을 하지요. 저의 경우 2014년 12월부터 2015년 말까지 왕궁 건물지에서 일했고, 2016년 초부터 2017년 말까지 해자에서 작업했습니다. 그리고 2018년 초부터 지금까지 왕궁 건물지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초기 1년은 최태환 반장 밑에서 일했고, 해자 지역으로 이동할 때 작업반장을 맡게 되었습니다.- 사설로 다른 지역 발굴에도 참여하셨다니, 월성 지역의 특이점이 있나요?△ 다른 곳과 달리 좀 더 시간적인 투자를 많이 해서 발굴조사를 진행하는 것 같습니다. 현장 관리도 철저하게 하는 편입니다. 여기는 사적(史蹟)이라 춥다고 해도 절대 현장에서 불을 피우지 못합니다. 또 연구자(학예사·연구원)들과 함께 일하니까 무작정 파고 진행할 수 없습니다. 중간에 뭔가 나오거나 의문점이 생기면 바로 작업을 멈추었다가 해결하고 진행하는 식입니다. 예를 들자면 성벽에서 유골이 나왔던 때처럼, 특이하거나 귀중한 게 나오면 작업반원들은 일을 중단하고 물러서고 대신 연구원들이 작업을 합니다.- 발굴조사가 아주 조심스럽게 진행되는군요. 작업반장님이 직접 찾은 유물들은 어떤 게 있나요?△ 사실 왕궁 건물지는 유물이 편(片)으로 나오지 완품은 드뭅니다. 주로 기와의 막새나 귀면 같은 것들인데, 완전한 건 없고 금가고 깨진 것이 대부분입니다. 건물지의 경우 뭔가 좋은 보물 같은 것을 찾는다기보다 삶터를 확인하는 차원에서 진행되는 것 같습니다.- 그렇게 더딘 작업을 하루 종일 하다 보면 좀 지루하기도 하실 텐데…. 그래도 작업에 어떤 ‘재미’를 느끼는 분들도 있나요?△ 물론 하루 종일 성과 없이 흙만 팔 수도 있습니다. 앉은 방석을 깔고 조금씩 움직이면서 땅을 팝니다. 가끔은 지루해서 옆 사람과 잡담하기도 하지만 대체로 숙연한 분위기에서 진지하게 작업을 진행합니다. 뭘 찾는다고 보상이 있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뭔가 조금이라도 찾을까 싶어 눈에 불을 켜고 일하지요. 재미까지는 모르겠지만, 작업반원 중에는 농사를 지으면서 부업이자 취미로 참여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천 년 전 왕성이었던 월성이 어떤 모습이었는지 상상해 보셨나요? 상상해 보셨다면 어떤 모습이었을 것 같나요?△ 잘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왕을 비롯해 여러 사람들이 살고 있었던 곳이었으니 대단한 건물들이 가득하지 않았을까요?- 문화재 발굴 작업의 현장에서 일하며 느끼는 감정은 어떠십니까? 자부심이나 사명감 같은 것이 있으신지요?△ 저 역시 경주 사람입니다. 물론 밥벌이로 하는 일이지만, 내가 태어나 살고 있는 땅에서 선조들의 흔적과 역사를 찾는다는 자부심이 있습니다.

2019-03-10

‘역(逆)색깔론’ 망령

안재휘논설위원하노이 북미정상회담 관련 영상 중에서 소름 끼치는 장면이 하나 있었다. 호텔 방 소파에 앉아 담배를 피우는 김정은에게 가까이 다가서지도 못하고 저만큼 입구 쪽에 떨어져서 두 손을 앞에 모은 채 쩔쩔매고 서 있는 북한 고위참모들의 모습이었다. ‘북미회담 결렬 직후’라고 소개된 영상은 지구촌에서 가장 혹독한 독재 군주의 나라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한 컷이었다. 자유민주주의 역사의 기원은 18세기 유럽의 계몽주의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군주들은 왕권신수설에 기초하여 권력분산 자체를 신성 모독이라고 규정했다. 계몽주의자들은 ‘법의 지배’ 아래에서 모두가 평등해야 한다는 새로운 사상을 피력했다. 미국의 독립과 프랑스 혁명에 영감을 준 이 사상은 두 차례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오늘날 우리가 신봉하는 ‘자유민주주의’로 진화됐다.평등한 참정권 등 여러 가지 기본요소가 있지만, ‘자유민주주의’를 지탱하는 가장 핵심적인 요소는 ‘표현의 자유’다. ‘표현의 자유’가 정치권력에 의해 명시적으로 억압되고 제한되는 나라가 이상적인 민주주의를 구가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표현의 자유’를 지켜내는 일에 우리는 잠시도 소홀해서는 안 된다.민주주의를 위협하는 가장 위험한 일은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려는 움직임이다. 최근 한국당을 제외한 여야 4당이 국회에 제출한 일명 ‘한국판 홀로코스트 방지법(반 5.18 방지법)’은 결코 함부로 다뤄서는 안 된다. 개정안은 5.18 민주화 운동과 관련한 비방 또는 허위사실 유포 행위에 대해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7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일부 과격한 극우 세력의 망발이나 시대착오적 ‘색깔론’ 횡포를 두둔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명확한 근거도 없이 설익은 의혹을 단정적으로 내놓는 무례한 발언은 지탄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어떤 주장이나 행동이 옳지 않다면 그 비논리와 불합리를 비판받을 공간을 허용해주면 된다. 입을 틀어막거나 잡아 가둘 생각부터 하는 것은 그 자체가 이미 반민주적이다.1975년 3월 25일부터 1988년 12월 30일까지 대한민국 형법 제104조의2에 범죄로 규정되었던 국가모독죄(國家冒瀆罪)를 상기할 필요가 있다. ‘7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로, 외환유치죄·간첩죄 등과 함께 있었던 이 법률은 여소야대가 된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총선거 이후 12월 국회에서 삭제됐다. ‘국가모독죄’가 이슈가 된 계기는 시인 양성우의 ‘노예수첩 필화사건’이다. ‘겨울공화국’이라는 반골 시 한 편 때문에 교직을 잃은 그는 1977년 6월 발간된 일본 잡지에 유신을 비판하는 시를 실었다가 국가모독 및 긴급조치 9호 위반 혐의로 징역 3년에 자격정지 3년을 선고받았다. 헌법재판소는 2015년 10월 이 법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렸다. 민주주의의 진짜 반대개념은 공산주의나 사회주의가 아니라, 권위주의·전체주의·군국주의·독재라는 정의에 동의한다. 공산주의나 사회주의를 표방하며 지구상에 창궐했던 많은 나라가 독재정권으로 변질했다가 사라진 것은 인류사의 부끄러운 기록이다. ‘조선인민민주주의공화국’이 제아무리 민주주의를 표방하고 있어도 그 체제나 행태 어디에도 ‘민주주의’는 없다.인물이나 사건에 신성불가침의 ‘성역’이 존재한다면 그 체제의 민주주의는 하자가 있는 것이다. ‘5.18’에 대한 합리적인 문제 제기마저 원천봉쇄하려는 움직임은 자제돼야 한다. 지금은 ‘평화’라는 명분이 만들어낼 지도 모를 또 다른 ‘재갈’을 걱정해야 할 때다. 양성우가 시 ‘겨울공화국’에서 묘사하듯이, ‘다소곳이 거짓말에 귀 기울이며/뼈 가르는 채찍질을 견뎌내야 하는’ 노예나 머슴이나 허수아비로 살지 않기 위해서 우리가 지금 해야 할 일은 분명하다. 저 서슬 퍼런 ‘역(逆)색깔론’ 망령부터 하루빨리 물리쳐야 한다.

2019-03-10

그레이트 스모그

영국은 1년 중 절반이 비가 올 정도로 날씨 변덕이 심한 곳이다. 특히 영국의 짙은 안개는 런던포그라는 애칭이 따를 만큼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때로는 낭만적인 영국의 모습으로 ‘런던 포그’가 소개되지만 영국 안개의 이면에는 우울한 이야기도 많다.대표적인 것이 1952년 일어난 런던 스모그 사건이다. 그해 12월 4일 런던에는 짙은 안개가 끼기 시작하면서 하루종일 햇빛을 볼 수 없을 정도로 어두운 날이 이어졌다. 습도도 80%가 넘었다. 당시 영국의 가정과 공장은 석탄을 주 연료로 사용했다. 석탄을 대량 소모하면서 발생한 연기는 정제되지 않은 채 런던의 대기 권으로 마구잡이 쏟아져 나왔다. 연기는 짙은 안개와 합쳐져 스모그를 형성했고, 연기 속의 아황산가스는 황산안개로 변하여 런던 시민의 생명에 치명적 영향을 주게 된다.스모그 발생 3주 만에 4천여 명의 시민이 폐질환과 호흡기 질환 등으로 목숨을 잃었다. 이후에도 같은 증상의 환자가 발생해 8천 명이 넘는 사람이 추가로 사망하는 일이 벌어졌다. 끔직 했던 이 사건을 두고 ‘그레이트 스모그’라 부르고 있다.런던은 오래 전부터 스모그 문제로 골머리를 앓아왔던 도시다. 13세기 무렵에는 석탄을 연료로 쓰는 것을 금지하기도 했다. 17세기에는 매연보고서가 만들어지고 매연 저감을 위한 위생법을 제정하기도 했다. 1873년부터 스모그의 영향으로 사망자가 증가한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어쨌거나 영국의 ‘그레이트 스모그 사건’은 전 세계가 스모그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는 계기가 된다. 중국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석탄발전소를 운영하는 나라다. 2천927기의 석탄발전소가 운영 중이며 그 규모는 미국의 4배에 달한다. 중국이 또다시 464개의 석탄발전소를 증설하겠다고 한다.미세먼지 문제로 온 국민이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요즘, 중국의 석탄발전소 증설 소식은 또한번 한국 사람의 가슴을 짓누른다. 중국이 증설 예정인 석탄발전소의 상당수가 한국 서해안에 면한 중국 동부여서 한국이 아무리 미세먼지를 줄여 봐도 소용이 없을 거라는 얘기까지 나온다. 미세먼지 공포에서 벗어날 묘책은 정말로 없는 것일까?/우정구(논설위원)

2019-03-10

포항스틸러스, 시민구단으로 거듭나야

나영조 편집국 부국장“포항스틸러스는 시민구단이 아니다”스틸러스 경기가 열리는 포항스틸야드를 자주 찾는 열성팬들의 입에서 이런 소리가 나오기 시작한지가 꽤 됐다. 축구인이기도 한 필자가 지나가는 소리로 흘려듣기에는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보고 스틸러스 구단의 현실을 간단히 짚어보고자 한다.프로축구 1부 리그인 K리그1에는 포항스틸러스 등 모두 12개팀이 참가하고 있다. 스틸러스는 오랫동안 명문구단으로 평가받아 왔다. 언제부터인가 성적도 그렇지만 구단 운영행태가 팬들의 기대에 미치지 못해 실망을 안겨주고 있다. 급기야 포항시민들이 포항스틸러스를 외면하는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스틸야드를 찾은 관중 수가 2016년 14만5천937명, 2017년 15만9천100명이던 것이 지난해에는 14만668명으로 줄었다. “그럴수도 있지”라며 넘길 수도 있겠지만 포항구단을 아끼는 한 축구인은 “포스코 저들만의 잔치에 들러리를 서는 것 같아 기분 나쁘다”는 말에서 내막을 엿볼 수 있다.“포항스틸러스는 시민구단이 아니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 예전의 포항스틸러스는 완벽한 시민구단이었다. 승리의 기쁨도, 패배의 눈물도 포항시민들과 함께 한 것으로 기억된다. 포스코 출신 사장과 시민대표 단장이 포항시민들과 한마음이 돼 명문구단을 탄생시켰다.지금의 포항스틸러스는 분명 포스코 기업구단이다. 포항시민들이 왜 스틸러스를 외면하는지, 스틸러스가 시민들을 어떻게 무시하는지 세세하게 늘어놓기는 그렇지만 구단 운영에 큰 문제가 있다는 점만은 분명하다. 팬들의 가장 큰 불만이 최근 떨어진 성적보다도 팬들을 외면하는 구단운영에 있다고 입을 모은다. 가장 따가운 지적은 ‘축구를 모르는 축구단 책임자’란 소리다.포항스틸러스가 기업축구단을 계속 고집한다면 포항시민들이 애정을 줄 필요가 없다고 본다. 기업이익만 고려해 구단을 운영한다면 창단 취지에도 맞지 않는다. 포항스틸러스의 존재 이유는 포항시민들과 함께 함에 있다. 시민들에게 활력과 희망을 안겨주는 에너지원이 돼야 한다. 기업윤리면에서 봐도 지역사회 발전에 기여해야 되고, 사회 환원의 기본을 실행해야 한다. 유소년 축구단 지원도 점차 줄여오다가 이제는 거의 없어졌다. 지역민들과 같이 호흡하면서 친목을 도모한지도 까마득한 옛일이 되었다. 권위의식에 젖어있는 스틸러스의 나홀로 행보는 팀의 성적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고 여겨진다. 2013년 이후 우승컵을 들어 올린 적이 없다. 올 시즌 개막전 패배도 불통의 결과물인지도 모른다.포항스틸러스가 이 지경까지 온 데는 구단 책임자들의 축구관이 문제라고 지역의 체육원로들은 지적한다. 포스코에서 간부로 잘 지내다가 보은으로 받은 스틸러스 대표, 단장이 문제라는 소리다. 이 자리를 폼 좀 잡고 거쳐가는 자리로 생각해선 안된다는 지적이다. 포항인의 자긍심을 고취해야 하는 막중한 자리인 것이다. 지금처럼 경제가 어려운 상황에서 스포츠를 통해 포항시민 화합을 이끌어 내고 활기를 불어넣으려면 낮은 자세로 헌신해야 한다.근원을 캐고 들어가면 포스코 부사장 출신 사장이 부임한 이후부터 스틸러스는 기업축구단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지역화합이라는 구호만 외쳤지 시민은 안중에 없는 포스코축구단이 되어버렸다. 결과는 구단의 전력 쇠퇴와 시민들의 외면이었다. 현 집행부를 두고 ‘평상시 조기축구도 해보지 않은 사람’이라고 축구인들이 수군대는 것도 이런 맥락이다.구단운영과 관련한 책임의 다른 한 축은 포항시에도 있다. 네임스폰서로 구단에 연 9억 원의 혈세를 퍼붓고 있다. 그러면 구단이 시민들을 위해 무엇인가를 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 시민들을 무시하는 팀에 거액의 예산만 지원하고 관중석 메운다고 인원 동원하고, 입장권을 배당하는 등의 어처구니 없는 모습만 보여주고 있다. 구단의 사장이나 단장 자리에는 시민들의 대표성이 있는 사람을 앉혀, 진정 시민을 위하고 포항을 사랑하는 시민구단으로 다시 태어나도록 해야 하는 것이 포항시의 역할로 보인다. 스틸러스에겐 성적도 지역화합도 모두가 중요하다. 포항스틸러스 구단의 환골탈태를 기대해본다.

2019-03-07

나는 숲(林)으로 간다

김순희수필가영양군은 선비들이 숨어살던 곳이다. 태백산맥에 둘러싸여 해발 고도가 경상북도에서 가장 높은 분지이며 일월산을 품고 있어 산이 높고 물이 맑다. 감천, 석보 등 고인돌과 고분들이 있는 것으로 보아 선사시대부터 사람이 살았던 것은 분명하다. 신라에 흡수된 뒤에는 읍호를 고은(古隱)이라 하였다가 말기에 영양(英陽)이라 하였다.일월산 자락 한쪽 끝에 자리한 두들마을을 찾아가는 길은 굽은 길이다. 들고나기 힘든 곳이라 육지의 섬이라고도 부른다. 굽은 길을 조금 펴기 위해 뚫은 청기터널을 지나자 골뱅이골이라는 이정표가 보였다. 골뱅이처럼 구불거려서일까 골뱅이가 많이 나서일까 마음으로 짚다보니 두둘길에 접어들었다.두들이란 언덕 위라는 뜻으로 대부분이 산으로 이루어진 영양의 마을 이름답다. 가로등마다 붉은 고추와 귀여운 벌이 심벌로 매달려 여기가 그 유명한 ‘영양고추’의 고장이라고 외치고 있다.겨울 매서운 바람 때문인지 동네에 인적이 드물었다. 우편집배원이 작은 차에 택배상자를 싣고 고택의 주인을 부른다. 두런거리는 소리를 따라 근처 비닐하우스로 오른다. 우리도 따라 가니 배달을 끝내고 내려오며 비닐하우스에 마을의 젊은 사람들이 있으니 가보라 했다. 그 곳에는 대여섯 명의 어르신들이 고추 꼭지를 따고 있었다. 연세가 어떻게 되냐는 물음에 모두 낼모레 80이라며 웃는다. 이 마을에서 젊은 축이라며 아직 일을 해서 용돈 버는 것을 자랑하셨다. 혼자 나이 드는 것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것이 장수의 비결이라고 했다.林(숲)이란 글자 속에는 나무 두 그루가 손을 잡고 서 있다. 어깨도 서로 맞대고 있어서 바람이 불면 한 방향으로 몸을 뉘었다 일어서길 반복한다. 흔들릴 줄도 모르는 빌딩숲에서 넘어지기만 하던 나는 푸른 기운을 받으러 영양의 林으로 갔다.장계향이 이시명과 함께 영양에 터를 잡으면서 제일 먼저 한 일도 마을 둘레에 도토리나무를 심은 일이었다. 영양은 깊은 골짜기라 논보다는 두들이 대부분이다. 도토리나무는 영험한 기운이 있어 두들에서 들을 내려다보며 풍년이면 열매를 적게 열고 흉년이 들면 많이 열린다고 한다. 아마도 곤궁한 이들의 생계를 걱정하여 그 부족한 것을 채워주려는 배려였을 것이다. 장계향은 흉년이 들어 먹을 것이 부족한 해에는 마을 앞에 큰 솥을 걸어두고 도토리 죽을 쒀서 굶는 사람들을 살렸다고 한다.오늘날에도 영양이라는 숲의 중심에는 장계향이라는 큰 나무가 중심을 잡고 있다. 그는 83세까지 장수하며 73세에 ‘음식디미방’이라는 최초 한글 조리서를 완성했다. 그가 심은 나무는 300여년이 지난 지금도 살아서 그곳을 지나간 사람들의 발자취를 다 기억하고 있다. 도토리가 익어서 떨어지는 가을이면 동네 노인들에게 도토리 수확을 맡겨 수매를 해 음식디미방 프로그램에 사용한다. 다른 곳의 음식 차림과 큰 차이점이 소부상과 정부인상의 전채 요리로 도토리죽이 먼저 나온다는 점이다. 장계향의 뜻과 향기가 그대로 이어지고 있어 보기 좋았다.소소음(蕭蕭吟)- 창 밖에서 소록소록 비내리는 소리(窓外雨蕭蕭), 소록소록 그 소리는 자연의 소리러라(蕭蕭聲自然,) 내 지금 자연의 소리 듣고 있으니(我聞自然聲), 내 마음도 또한 자연으로 가는구나(我心亦自然). 장계향이 13살에 썼다는 시처럼 영양을 찾아간 날에도 소록소록 비가 내렸다.비를 머금은 도토리나무 아래에 섰다. 나무 아래에 드는 것이 쉴 휴(休)이다. 천상병 시인은 삶을 소풍이라 했다. 김밥과 킨 사이다 한 병만 들고 큰 나무 아래로 간 소풍날은 어찌나 즐거운지 날이 빨리 저물었다. 골 깊은 두들마을의 저녁도 빨리 찾아왔다.아름다운 삶을 사는 방법은 이웃과 함께 가는 소풍이라는 것을 영양의 숲이 알려주었다.

2019-03-07

제주의 밤하늘과 고흐와 너와 나

△제주의 밤하늘제주의 밤하늘은 장막과도 같아서 바람이 불면 별빛과 함께 흔들린다. 바람이 셀 때는 별빛이 한 뼘씩 흔들려 밤하늘이 검은 장막이라는 것을 더욱 분명하게 확신하게 된다. 나는 둥근 의자에 누워 오래도록 하늘을 올려다본다. 별은 바람에 쓸리듯 조금씩 조금씩 오른쪽으로 흐른다. 나는 간만에 찾아온 느긋한 휴가를 이 의자에서 모두 탕진해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한용운은 어떤 시에서 밤을 ‘올 없는 검은 비단’이라고 했는데(“이별은 미의 창조”), 그의 이런 시를 읽으며 질투를 할 때도 있었다. 그는 을사늑약 이후의 조선을 어둠이라고 인식했던 사람이고, 그 어둠에 대항할 수 있었던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나였다. 그런 그가 밤을 ‘올 없는 검은 비단’이라고 했을 때 이것은 단순히 밤에 대한 수사만은 아니었을 것이다.‘올’이란 비단의 끝을 이르는 말일 것인데, 검은 비단에 끝이 없다면 검은 비단을 걷어낼 방법은 없다. 그런 밤에 항거할 수 있는 그는 어떤 사람이었을까.△고흐와 사이프러스 나무고흐가 그린 ‘별이 빛나는 밤에’(1889.7)에는 바람과 별 사이로 바람이 흐른다. 별은 바람보다 더 깊은 곳에서도, 바람보다 더 얕은 곳에서도 빛나지만, 그 사이를 떠도는 바람은 별이 빛나는 것을 방해하지 못한다. 바람이 별에게 영향을 미칠 수 없다는 것은 이해가 가지만, 왼쪽에서 저렇게 크게 불어온 바람인 데도 어쩐지 사이프러스를 흔들지 못하는데 그 이유는 도무지 모르겠다.고흐는 말년에 사이프러스를 자주 그렸다. 1888년 고갱과의 공동생활을 하던 고흐는 돌연 귀를 자르는 발작을 일으킨다. 이후 정신병 발작으로 입원과 퇴원을 번갈아 하던 고흐는 1889년 동생 테오에게 “나는 사이프러스의 매력에 푹 빠졌다. 나의 해바라기 그림처럼 지금까지 시도해 본 적 없는 새로운 방식의 그림을 창조해 낼 것 같기도 하구나.”라고 썼다. 고흐는 실제로 “별이 빛나는 밤에”를 비롯하여 “사이프러스 나무가 있는 밀밭”, “두 여인과 사이프러스”, “사이프러스와 별이 있는 길” 등과 같은 제목의 작품을 수 점 그렸다.사이프러스는 우리나라에서는 찾을 수 없는데 굳이 비슷한 나무를 찾자면, 식물학적으로는 측백나무에 가까우며, 잎은 향나무에, 전체적인 모양은 노간주나무를 닮았다고 한다. 사이프러스는 지중해와 같이 따뜻한 지역에서 자라는데, 사이프러스라는 이름을 가진 나무로는 미국의 낙우송, 일본의 편백나무와 삼나무가 있다. 하지만 고흐의 사이프러스는 가지가 옆으로 퍼지지 않고 위로 솟구치는 나무다.고흐는 이 나무를 ‘뾰족탑’이라고 불렀다. 그래서 그런지 고흐의 그림에서 이 나무는 교회의 첨탑보다 높고, 하늘보다 높다. 고흐의 사이프러스는 그가 그린 거의 모든 그림에서 화폭을 뚫고 자란다.고흐가 이 나무에 집착한 이유는 어쩌면 해바라기처럼 하늘을 향해 자라나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하늘을 향해 정열을 불태우는 해바라기처럼 사이프러스 역시 하늘을 향해 불타듯 솟구쳐 오르는 것처럼 보였던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고흐에게 하늘은 무엇이었을까. 해도, 달도, 별도 저렇게 둥근 빛을 회오리처럼 뿜어대는 저 하늘은 고흐에게 무엇이었을까.△나무들그러고 보니 하늘은 어디에든 있고, 하늘 아래 어디에서든 나무는 자란다. 사계리에서 서귀포의 유명한 빵집을 찾아가는 동안 빨간 열매를 단 저 나무도 자라고 있었다. 그런데 저 나무는 무슨 나무지? 응, 먼나무! 저 나무는 뭔 나문데 저렇게 예뻐? 그래서 먼나무가 되었다는 설이 있긴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썰’이고. 나무껍질이나 가지가 먹처럼 검다고 해서 ‘먹낭’이라 불리다가 ‘먼나무’가 되었다는 것이 그나마 들을 만한 유래긴 하지만 글쎄?‘낭’이야 나무라는 뜻의 제주도의 방언이니 ‘먹나무’가 ‘먼나무’로 바뀌었다는 것인데, ‘먹’이 ‘먼’으로 바뀐다는 것은 듣도 보도 못한 이야기니 고개를 갸우뚱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감탕나무과인 이 나무의 껍질이나 잎을 보고 검다라고 말한다는 것은 더더욱 이해가 가지 않는다. 먼나무가 무슨 일로 먼나무가 되었는지는 모르나 이 나무는 제주도 곳곳에서 자라며 꽃은 5~6월에 피고, 가을부터 겨울까지 붉은 열매가 맺힌다.지난 주엔 학생들과 함께 공원에서 숲 학교를 열었다. 전문가를 초빙해서 공원에 있는 나무들에 관한 설명을 들었다. 1시간 가량 수업을 진행하면서 우리가 본 나무의 종류는 스무 가지가 넘는다. 참누릅나무, 자귀나무, 은행나무, 자작나무, 계수나무, 스트로브 잣나무, 소나무, 칠엽수(마로니에), 신나무, 산딸나무, 물푸레, 능수버들, 감나무, 잣나무, 양버즘나무, 아카시아, 박태귀나무, 백당나무, 화살나무, 회양목, 측백나무 등등.이렇게나 많은 나무들이 있다. 이름을 알기 전까지 나무는 그저 나무였으나 그 개별적 이름을 알고부터 나무는 통칭되지 않고 개별화된다. 그리하여 자작나무의 검은 수피나 화살나무의 날개와도 같은 수피를 보고 나무의 상태를 짐작할 수 있게 된다. 하나의 눈에서 소나무 잎의 개수가 두 개인지 세 개인지에 따라 토종인지 아닌지를 구분할 수 있으며, 계수나무의 열매 껍질을 보고 암나무라는 것을 알게 된다.그렇게 나무를 감각하게 된다.이러한 것 역시 랑시에르가 말하는 ‘감성의 분할’이라고 부르는 정치의 일종일 것이다. 이름을 알기 전엔 그냥 ‘몸짓’이었다고, 이름을 안 이후에는 ‘나에게로 와서’ 나의 ‘꽃’이 되는 것처럼(김춘수, “꽃”), 정치란 대단한 무엇이 아니라 그저 그러한 알아챔과 알아채임이며, 이를 우리의 몸으로 감각하는 일에 다름 아니다.정치인이 여론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이유, 혹은 여론도 미치지 못한 것에까지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 이런 것들이 모두 ‘감성의 분할’과 궤를 같이한다.△그녀와 나와 열무이렇게 한가로운 여행은 처음이다. 여행을 할 때면 갈 곳이 많았다. 여기도 저기도 가야 했는데 이번 여행은 모든 것이 느긋했다. 렌터카 빌려 밥을 먹은 것이 오후 네 시께다. 어디로 가야할지를 망설이다 애월 해안 도로를 따라 달렸고, 숙소로 가기 전 ‘최마담네 빵다방’이라는 곳에서 커피를 마셨다. 커피보다도 빵보다도 좋았던 건 그곳에서 기르는 시베리안 허스키와 진돗개였다. 그리고 숙소로 돌아와 가방을 풀고 근처 ‘춘미향’이라는 곳에서 식사를 했다. 돌아와서는 “바흐 이전의 침묵”이라는 영화를 보고 잠들었다.다음 날에는 늦게 일어나 숙소 카페에서 브런치를 먹고, 올라와서 쉬었다가 오후에는 송악산엘 들렀다가 국수로 늦은 점심을 때우고 서귀포시에 있는 ‘시스터즈’라는 빵집에서 크로와상을 몇 종류 샀다. 다섯 시에 숙소로 돌아와서 음악을 듣고, 늦은 저녁을 먹고, ‘이터널 선샤인’이라는 영화를 봤다.공강일서울대 강사·국문학솔닛의 ‘길 잃기 안내서’라는 책을 읽었다. 말 그대로 길을 잃는 방법에 대한 것이었고, 길을 잃은 사람들이 길을 잃은 것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문제가 생긴다는 이야기를 하는 부분까지 읽었다. 이런 책은 내가 쓰고 싶은 책이었는데, 라는 생각을 했다.책을 읽으며 사온 빵과 귤을 먹었다. 빵과 귤은 그녀가 키우는 열무가 좋아하는 것들이다. 내가 열무가 좋아하는 것들이 다 있는데 열무만 없다고 하자, 그녀가 웃다가 말고, 올해로 열여섯 살인 열무가 죽어 정말 그런 상황이 오면 얼마나 슬플까라고 했다. 나는 그냥 담담히 받아들이자, 라고 했고, 그녀는 그래야지, 라고 말하며 나도 죽을 텐데. 라고 덤덤하게 덧붙였다.죽음과 가까운 그녀의 말이 뼈를 때렸다. 정말 그녀가 죽는다면 나는 어떻게 될까. 나는 길을 잃은 것처럼 살겠지. 여행의 끝자락에서 슬펐다. 그녀가 오래도록 살아 나와 함께 이 삶을 헤쳐나가길 바랐다.

2019-03-07

하노이의 밤

하노이의 마지막 날, 며칠째 계속되던 흐린 날씨도 가셨다. 하루는 겨울인데도 꽤나 무덥더니 다시 한국의 초가을 날씨로 돌아왔다.길가의 베트남 음식을 파는 곳에 우리가 들른 것은 밤, 아홉시 반은 되었다. 피곤은 한데, 내일 아침이면 일행들은 하롱베이로 떠나고 나는 이 나라로 돌아와야 했다. 벌써 일주일 넘게 체류하고 있어 적당히 지쳤지만 타향에서 만난 친구들을 이 좋은 밤에 그냥 외면할 수 없다.플라스틱 탁자를 가운데 놓고 서로들 둘러앉았다. 나는 그중 작디작은 의자를 골라 납작하게 엉덩이를 붙이고 앉았다.쌀국수 국물 같은 데다 쇠고기에 야채를 삶은 것은 아마도 깐(Canh). 전통 음식이었다. 낮에 찾던 하노이 보드카 대신 엘리게이터라는 술도 맛이 그럴듯했다. 고풍스러운 문묘의 전각들을 담장 너머로 바라보며 서로들 독주를 담은 작은 술잔을 기울였다. 깐은 내 입맛에 딱 맞았다. 베트남 향초를 무서워하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이십 년 사이에 내 혀는 이제 넉살이 붙었다.ㅡ여기 앉으니 정말 하노이에 온 것 같군.ㅡ그러게요.우리는 이구동성으로 입을 맞추었다.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졌다. 후둑후둑 빗방울이 듣는가 했는데 어느새 퍼붓는다. 장사하는 사람들이 우리쪽 탁자에는 서둘러 사각 파라솔을 쳐 준다. 잠깐 사이에 베트남 손님들은 어디론가 다들 사라져 버렸다. 나중에 알고 보니 건물 안에도 탁자들이 있었다.내 등으로는 파라솔에서 떨어져 내린 빗방울이 똑똑 떨어졌다. 앏은 남방 속으로 물이 스며들었다.ㅡ하노이 술도 나쁘쟎네요.ㅡ맞아요.먼저 집에 벌써 일본 소주에 맥주까지 마셔 취기가 꽤나 오른 상태. 그런데 이상하다. 마실수록 술이 깬다.ㅡ다들 어디로 사라졌지?ㅡ집에들 가버렸나 봐요.ㅡ빠르네.빠르다. 비가 마구 퍼붓더니 어느새 딱 그치고 보름달까지 떴다. 그러고 보니 정월 대보름이 바싹 다가온 때다.달이 크기도 하다. 베트남은 깊은 겨울밤도 선선한 정도다. 이렇게 좁다랗게 모여 앉으니 더 친한 사람들 같은 기분도 난다.평소에 김소월 시인의 ‘산’을 즐겨 부르는 선배가 취중에도 목청을 가다듬고 노래를 불렀다.소월은 어쩌자고 이렇게 처연한 시를 썼단 말인가. 목숨은 왜 스스로 끊었단 말이냐.내일이면 서울로 돌아가야 하건만 차마 돌아가고 싶지 않다.인터넷으로 들려오는 ‘고국’의 소식들은 소란스럽다 못해 어지럽기 그지없다. 재작년인가부터는 어느 곳 하나 기댈 곳, 마음 둘 곳이 없다.정든 생각도, 사람도 무서울 지경이면 삶은 막바지에 다다른 것. 타향을 떠도는 것도 나쁘지 않건만.이제 문 닫아야 한다고, 장사하는 사람들이 탁자며 의자를 걷어낸다. 빈 그릇을 잔뜩 쌓아놓고 설겆이를 하고 남정네는 대비로 바닥을 싹싹 비질을 해댄다.일어나야 한다. 그리고 돌아가야 한다. 어지럽고 무섭더라도 고국이니까. 거기 나를 끌고 가는 도구들이 있으니까. 나는 결국 한반도 사람이니까./방민호서울대 국문과 교수 /삽화 = 이철진한국화가

2019-03-07

억만장자

조선시대 영남지방에 내로라하는 부자 집안을 손꼽으면 경주 최씨 집안과 청송 심씨 집안을 들 수 있다. 모두 만석꾼으로 통하던 집안이다. 만석꾼이라 하면 곡식을 만섬 가량 거둘 논밭을 가진 부자라는 뜻이다.경주 최씨 집안은 300년간 12대를 이어간 부자로 알려져 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집안으로도 유명하다. 최씨 집안은 만석 이상의 재산은 사회에 환원하고 주변 100리 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도록 한다는 부자의 윤리를 실천한 집안이다.청송 심씨 집안은 부와 권세가 얼마나 컸던지 조선시대에 정승 13명과 왕비 3명, 부마 4명을 배출했다. 조선 8도 어딜 가도 심부자네 집 땅이 없는 데가 없었다 하여 조선판 ‘해가 지지 않는 집안’이라고 했다.그들 조상이 대대로 살아왔던 99칸의 송소고택에는 지금도 많은 관광객이 찾아오고 있다.우리의 속담에 “물질 가는데 마음도 간다”는 말이 있다. 사람은 누구나 물질이 풍족한 삶을 추구하고자 하는 본능이 있게 마련이다. 돈을 벌기 위한 인류의 노력과 투쟁은 역사 속에서 파란만장한 이야기를 만들어 냈다.지금도 재테크라는 이름으로 불철주야 돈 벌기에 골몰하는 사람이 수두룩하다. 돈 버는 방법을 제시한 책이 베스트 셀러가 되고 대학에서는 부자학 개론이 인기를 모으기도 한다.미국의 경제 전문지 포브스가 2019년 세계 억만장자 명단을 발표했다.미국의 제프 베조스 아마존 CEO가 작년에 이어 1위(1천31억 달러)를 했고,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회장(965억 달러)이 2위로 밝혀졌다. 우리나라에서는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169억 달러)이 65위, 서정진 셀트리온 회장(81억 달러)이 181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215위 등으로 랭크됐다.포브스는 매년 전 세계 10억 달러(약 1조1천295억 원)이상 재산을 보유한 억만장자를 선정, 순위를 매겨 발표하고 있다. 포보스 기준 억만장자는 올해 2천153명이다.한국도 40명이 포함돼 있다. 1조원이 넘는 억만장자 그들은 서민에게는 그야말로 그림의 떡이다./우정구(논설위원)

2019-03-07

전(前) 대통령의 보석

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뇌물·횡령 혐의로 1심에서 징역 15년, 벌금 130억 원, 추징금 82억 원 등의 중형을 선고받은 이명박 전 대통령이 6일 보석으로 풀려나자 이런저런 말들이 많다. 아마 구속된 전직 대통령이 보석을 통해 풀려난 사례가 처음인 데다 15년형이란 중형을 선고받은 피의자에게 보석결정이 내려진 것 자체도 이례적이기 때문일게다.전직 대통령에게 특혜를 주는 것 아니냐는 오해를 의식한 듯 재판부는 보석에 엄격한 조건을 붙여 허가했다. 주거지를 자택으로 제한하고, 접견은 변호인과 배우자, 직계 혈족들에게만 허용하고, 통신도 엄격히 제한했다. 사실상 ‘자택구금’상태에 해당한다. 재판부는 “불구속 재판 원칙에 부합하는 보석 제도가 국민의 눈에는 불공정하게 운영된다는 비판이 있다. 이에 자택 구금에 상당하는 엄격한 조건을 붙인 것”이라면서 “구속 만기가 다가오는 점에서 보석을 할 타당성이 있다”고 봤다. 재판부는 “구속 만기일에 선고한다고 가정해도 고작 43일밖에 주어지지 않았다”며 “심리하지 못한 증인 수를 감안하면 만기일까지 충실한 심리를 끝내고 선고하기는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즉, 구속 만료 후 석방되면 자유로운 불구속 상태에서 주거 제한이나 접촉 제한을 고려할 수 없어 오히려 증거 인멸의 염려가 높다는 이유를 들었다. 지금 보석을 허가하면 조건부로 임시 석방해 구속영장의 효력이 유지되고, 조건을 어기면 언제든 다시 구치소에 구금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에 따라 항소심 판결 선고가 나올 때까지 이 전 대통령은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게 된다.어쨌든 이 전 대통령의 보석이 허용되자 구속수감중인 박 전 대통령도 MB처럼 풀려날 수 없을까라고 궁금해하는 사람이 많다. 결론은 불가능하다. 왜냐 하면 현행법상 보석은 형이 확정되지 않은 미결수에 대한 구속집행정지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박 전 대통령은 이미 불법 공천 개입 사건으로 지난해 11월 항소심에서 징역 2년형이 확정돼 이 전 대통령처럼 보석 석방이 될 가능성은 없다. 박 전 대통령은 현재 국정농단 사건으로 징역 25년을 선고받고 대법원 심리가 진행 중이다. 또 국가정보원 특수활동비 사건으로 1심에서 징역 6년을 선고받고 아직 항소심 판단을 받지 않았다. 더구나 검찰은 지난 2018년 9월 박 전 대통령의 1심 구속기간 만료(10월 16일)를 앞두고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에게 받은 70억 원과 최태원 SK 회장에게 89억 원을 요구한 혐의에 대해 수사하기 위해 추가 구속 영장을 요청했고, 법원이 이를 받아들였다. 이로써 박 전 대통령의 구속기간은 오는 2019년 4월 16일이면 끝나지만 구속기간이 만료돼도 풀려날 수 없다. 박 전 대통령은 구속기간이 끝나면 곧바로 징역 형이 집행된다. 박 전 대통령이 석방되려면 형집행정지나 사면이 확정돼야 한다. 다만 사면이나 형집행정지의 경우도 형이 확정된 피의자를 대상으로 한다. 따라서 현재 재판이 진행중인 박 전 대통령은 재판에서 형이 확정될 때까지는 사면이나 형집행정지 대상에도 들지 않는다.이 전 대통령 이외에 구속된 전직 대통령은 세 명이다. 군사 쿠데타와 비자금 조성 혐의 등으로 1997년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전두환 씨와, 같은 혐의로 17년형이 확정된 노태우 전 대통령은 같은 해 12월 특별사면으로 석방됐다. 국정농단 사건으로 구속 기소된 박근혜 전 대통령은 2017년 3월 구속된 이후 수감된 상태에서 재판을 받고 있다.전직 대통령 얘기를 하다보면 이 나라의 정치풍토가 부끄럽다. 생존해 있는 전직 대통령 4명 모두 쿠데타나 권력형 비리, 국정농단 등의 이유로 감방생활을 했거나 하고 있다는 사실을 문득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행정부 수장인 대통령은 국가를 대표하는 수반이다. 그런 대통령들이 재임후 모두 감방으로 끌려가는 비극을 매번 겪어야 했던 국민들의 심경은 마냥 참담하다.

2019-03-07

IST(과기대) 형제의 통합

서의호포스텍 명예교수·DGIST 총장특보인도 델리에 있는 인도공대(IIT) 델리 캠퍼스를 가본적이 있다. 시설은 한국대학에 못미치지만 엘리트 의식이 가득한 캠퍼스였다. 조금 과장된 이야기이지만 인도 학생들 사이에는 “MIT 붙고 IIT 떨어졌다”는 말이 공공연하다고 한다. 미국의 실리콘밸리 창업자의 15%, IBM 엔지니어의 28%, NASA 직원의 35%, 미국의 의사 15%를 IIT 출신이 차지한다는 통계도 있다.IIT는 인도의 독립 직후, 인도의 과학 발전을 위해 설립한 명문 국립 공과대학이다. 인도 독립운동에 중요한 역할을 맡았던 네루 수상이 설립을 주도했다. 지금은 카라푸르, 뭄바이, 델리, 하이데라바드 등 16개 캠퍼스가 있는데 10개는 2004년 이후에 세워질 정도로 IIT의 인기는 급상승하고 있다. 인도 전체에서 30만명이 시험을 봐서 5천명 정도 선발한다고 하니 그 치열한 경쟁을 알만하다. 인도 대학 순위를 보면 어디서 조사하든 1위에서 20위 사이에 16개의 캠퍼스가 전부 들어간다. 전통적인 명문 델리 대학, 네루 대학, 그리고 인도과학연구원을 제외하고는 IIT 가 모두 장악하고 있다. IIT에 대한 인도의 자부심은 대단하다. IIT출신자들의 졸업 후 행보를 보면 세계 유수의 IT기업에서 IIT 졸업생을 바로 채용하는 경우가 빈번하다.IIT의 힘은 “1+1 은 2보다 더 크다”는 시너지 효과에 기인한다. 각 캠퍼스의 우열의 차이는 있지만 정부의 통합관리로 자원의 효율적 사용이 가능하고 캠퍼스별 차별화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각 캠퍼스는 특성화를 앞세우지만 인재 유치를 위해 경쟁력에 힘을 기울인다. 한국에도 IIT 같은 정부의 특성화 공대가 여러개 있다. 최근 국공립 4개 과기원인 카이스트(대전)·지스트(광주)·유니스트(울산)·디지스트(대구)를 통합 운영하는 방안을 정부가 추진한다고 한다. 우선은 ‘공동 사무국’을 만들어 운영하지만 이후 이사회를 통합해 ‘하나의 대학’으로 만드는 방안을 정부가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에 따르면, “4개 과기원을 운영하는 ‘공동 사무국’을 카이스트 캠퍼스에 세울 계획”이라며 “이르면 3월, 늦어도 올 상반기 사무국 문을 연다”고 했다.늦은감이 있지만 잘 한 결정이라고 본다. 그동안 4개 과기원은 연구시설 공유, 중복 연구 조정, 과기원별 중점 연구 분야 결정 등에 있어서 충분한 조율이 되지 못하였다. 비슷한 목적으로 세워진 과기원들이 여러 곳 생기면서 예산을 효율적으로 쓰지 못하고 비슷한 연구가 중복되는 등의 문제는 그동안 지속적으로 문제점으로 지적되어 왔다. 과기원의 역할을 원점에서 재검토하고 인도의 IIT 같은 형태로 전환하여 자원의 효율적 활용과 캠퍼스별 특화를 꾀하면서도 캠퍼스간 경쟁은 지속되는 형태를 띠는 것이 바람직하다. 국내 과기원은 카이스트(1971). 지스트(1995), 디지스트(2004, 학사는 2014), 유니스트(2009) 등이 차례로 문을 열었다. 이들은 통칭 ‘IST (과기원) 형제’라고 부른다. 모두 ‘한국의 MIT’를 표방하며 개원했지만 학교별로 이사회가 다르고 정부 예산도 별도로 받아 비효율적이라는 지적이 있었다.현재 검토 중인 방안은 4개 과학원을 통합해 ‘하나의 대학’을 만드는 것이라고 한다. 예를 들어 디지스트는 ‘카이스트 대구경북캠퍼스’가 되는 식이다. 이렇게 되면 세계대학 평가에서도 캠퍼스 별로 랭크가 되겠지만 통합적인 개념 때문에 4개 캠퍼스 모두 경쟁력 향상에 도움이 될 것이다.4개 캠퍼스가 통합된 KAIST와 사립 특성화 이공계 대학인 포스텍은 상호 협력과 선의의 경쟁을 통해 세계적 경쟁력을 더 얻게 될 것으로 생각된다. 이는 IIT 계열이 아닌 인도과학연구원(IIS)이 IIT와의 치열한 경쟁을 통해 1,2위를 다투는 것과 비슷한 형태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2019-03-07

스타들의 몰락이 주는 교훈

김학주한동대 교수‘채권왕’으로 불리던 빌 그로스가 은퇴하는 모습이다. 사실 5년 전부터 그의 성과는 빛을 잃고 있었는데 더 이상 그에게 돈을 맡기는 투자자를 찾기 어렵다. 무엇이 그를 힘들게 했을까? 그의 수익률을 보면 변동폭이 매우 심하다. 즉 그는 직관(insight)에 의존하며 확실한 베팅(betting)을 한다. 지난 30년간 채권가격이 상승세였으므로 잃을 때보다 얻을 때가 많았고, 그런 방향성 덕분에 수익률이 높았다.그런데 최근 10년간 채권가격은 올랐지만 사람이 예측할 수 있는 시장이 아니었다. 금리를 포함한 거시경제 변수들이 정치인들의 의도에 의해 상식 밖으로 움직였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전문가들이 실패했고 빌 그로스도 예외가 될 수 없었다. 그가 2014년 핌코에서 야누스 캐피탈로 자리를 옮긴 후 투자수익률이 연 0.38%에 불과했다. 이렇게 정책이 시장을 지배하는 상황에서 투자자들의 시장평균을 지향하는 인덱스에 만족하거나 기계를 동원해 단기 추세를 찾는데 열중했다.여기서 개인투자자들이 얻을 수 있는 교훈은 첫째, 정치에 의해 좌우되는 시장상황 또는 거시경제를 예측하려 들지 말라는 것이다. 사람이 할 수 없는 것을 고집스럽게 하는 것은 어리석다. 투자대상 분석에 더욱 집중하라. 성장하는 기업에 투자하는 것 자체가 자신을 보호하는 안전마진이 될 수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모방이 불가능한 핵심경쟁력을 가진 기업을 찾는 일이다. 그런 기업은 끝까지 생존하여 큰 시장을 누릴 수 있기 때문에 좀 비싸게 사더라도 용서가 된다.둘째, 자신의 판단을 끝까지 의심해보는 습관을 길러라. 어떤 아이디어가 떠오를 때 스스로가 대견스러워진다. 이런 경우 주위에서 말릴 수 없고, 큰 실수로 이어지곤 한다. 빌 그로스도 다혈질이었고, 독선적이었다. 핌코 안에도 그의 생각을 견제할 수 있는 시스템이 있었지만 무시하여 위험에 노출됐다. 개인 투자자들도 자신의 판단을 더 이상 의심할 수 없을 때까지 의심해 보는 습관, 그리고 그 판단을 시장에서 자신이 몇 번째로 하게 되었는지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한편 가치투자의 아버지라고 불렸던 워렌 버핏도 체면을 구겼다. 2015년 케챱으로 유명한 크래프트(Kraft) 지분을 26.7% 인수했다가 최근 주가 급락으로 고전하고 있다. 당시 크레프트 지분을 비싸게 샀고, 또 경영권 프레미엄까지 지불하여 투자수익률이 연 2%도 안되었다. 비싼 것을 싫어하는 그가 이런 조건을 참았던 이유는 경영권을 발휘하여 비용절감을 노렸기 때문이다. 즉 크래프트의 높은 브랜드 덕분에 수요와 가격은 안정되어 있으니 효율성만 개선시키면 안정 성장시킬 수 있다는 계산이었다.그러나 이런 판단의 결과는 실망스러웠고, 여기서도 시사점을 얻을 수 있다. 첫째, 아마존 같은 온라인 유통업체들이 자체 브랜드(PB)를 만들되 지역 맞춤형 제품으로 개발했고, 이런 맞춤형 상품이 크래프트 같은 기존 브랜드에 대해 얼마나 가치가 있는지 소비자를 설득하면서 기존 브랜드가 훼손됐다. 결국 협상력이 구조적으로 제조업에서 고객을 모을 수 있는 온라인 서비스로 넘어감을 이해해야 한다.둘째, 시중자금이 넘치는 환경에서는 가치주보다 성장주가 유리하다. 그 동안 돈이 많이 풀리며 성장주뿐 아니라 가치주에도 가격 거품을 만들었다. 즉 워렌 버펫도 그가 좋아하는 가치주를 비싸게 살 수 밖에 없었다. 성장주는 비싸 보여도 장래 희망이라는 핑계가 있지만 가치주는 아무리 쉽게 이해되고 불확실성이 없다 해도 비싼 것은 어색하다.셋째, 워렌 버핏처럼 나이가 들수록 고정관념에 사로 잡히게 된다. 오랜 기간 살면서 옳고 그른 것에 대한 판단의 패턴이 생겼기 때문이다. 그래서 말도 많아진다. 그러나 지금처럼 패턴에 변화가 생기는 시기에는 적응하기 어렵다. 따라서 말을 앞세우기 보다 자신의 판단을 계속 의심해 보는 연습이 필요하다.

2019-03-07

단 하나의 창문으로도

한자 들을 청(聽)을 곰곰히 살펴보면 듣기의 중요한 원칙 몇 가지를 알 수 있습니다. 왼쪽에 귀이(耳) 밑에 임금 왕(王)자가 있습니다. 오른쪽에는 열십(十)자와 눈 목(目)자, 그 아래 한 일(一) 마음 심(心)이 결합한 형태로 배치되어 있지요. 잘 듣는다는 것은 임금의 말을 듣는 귀, 집중해서 귀 기울이는 완벽한 태도가 필요한 것이라고 1차적인 의미를 파악할 수 있습니다. 오른편 아래의 一과 心은 듣기의 궁극적 목적을 상기시켜줍니다. 대화의 목적은 상대에 대한 진정한 이해(understand) 곧 한 마음(一心)을 갖는 것이기 때문입니다.그렇다면 열 개의 눈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요?우리가 어떤 메시지를 전달할 때, 텍스트 그 자체로 전하는 것이 7%에 불과하다고 심리학자 메라비안은 말합니다. 38%는 말의 느낌(para language)입니다. “여보세요~”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소리로 상대의 기분을 우리는 금방 파악합니다. 여/보/세/요/ 이 네 글자의 느낌이 38%의 의미를 전한다는 것이지요. 피곤하고 냉담한 ‘여보세요’도 있고, 밝고 환한 하이톤의 ‘여보세요’도 있는 법이니까요.나머지 55%는 비 언어적인 메시지입니다. 눈빛과 표정, 몸짓 등의 바디 랭귀지입니다. 열 개의 눈으로 확인해야 하는 것은 바로 이 55%의 비 언어적 메시지입니다. 얼굴에는 80개의 근육이 있습니다. 크게 소리내 웃을 때 50개 근육이 움직입니다. 심리학자 폴 애크먼은 얼굴 근육 2개를 움직이면 300개 표정을 만들 수 있다고 말합니다. 3개 근육으로는 4천 개, 5개 근육을 조합하면 1만 개 이상의 표정을 만드는 것이 우리 얼굴입니다. 대화 중 메시지의 진짜 내용은 상대방 눈빛과 표정에 들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경청은 눈으로 하는 것이지요.오늘 누구와 만날 예정인가요? 가까운 사람들의 ‘눈’을 봐주세요. 그 눈빛이 말하는 진심을 제대로 보아주세요. 그 말투에 묻어나는 외로움과 슬픔에 공감해 주세요. 아무 말 하지 않아도 그대가 곁에 있어 주는 것만으로도, 눈빛과 표정과 미세한 떨림을 이해하려 애쓰는 그 노력만으로도 상대는 큰 위로를 받을 수 있습니다. 겉으로 표시를 하지 않아도 마음 깊은 곳에서는 근래에 경험해 보지 못한 기쁨이 우러날지 모릅니다.신선한 공기와 따스한 햇빛이 드나드는 데는 창문 하나면 충분하다고 로망 로랭은 말했지요. 그대의 따스한 귀 기울임이 누군가에 단 하나의 창문이 될 수도 있으니까요. /조신영 인문학365 대표

2019-03-07

생체인식기술

생체인식 기술(biometrics)은 개별적인 생체의 특성을 인식해서 보안시스템에 활용하는 기술을 말하며, 망막, 지문, 음성, 얼굴 등 개인의 신체적 특성을 이용해 신원을 확인하거나 범죄자를 가려내는 생체측정(인식)기술을 말한다. 현재 미국에서는 매우 잠재력이 큰 시장으로 떠오르고 있으며, 특히 금융서비스, 네트워크 보안, 헬스케어 등의 분야에서 많은 회사들이 이미 이 기술을 채택하고 있는 곳이 많다.생체인식시스템에는 지문인식, 홍채인식, 안면인식, 음성인식, 전자서명, 손등의 정맥인식 등의 여러 가지 방식이 있다. 그중 홍채인식은 인간의 홍채가 사람마다 다른 점을 이용하는 보안시스템으로, 공항 등에서의 범죄자 검거를 홍채데이터베이스와 매치해 활용하는 시스템과 사무실출입관리 등에 이용되는 보안용 홍채인식 시스템으로 나뉜다. 홍채인식은 지문인식에 비해 기술적으로 구현이 어렵고 개발비용이 높을 뿐 아니라 사용자가 불편해한다는 단점으로 인해 아직 대중화가 되지 못하고 있다. 가장 널리 쓰이는 생체인식기술은 지문인식기술이다. 각 개인마다 특징적으로 갖고 있는 지문을 통해 사용자를 인식하는 방법이다. 지문인식기술을 사용하기 위해서 사용자는 먼저 자신의 지문을 시스템에 등록해야 한다. 등록된 지문은 등록한 사람의 이름 혹은 다른 개인정보와 함께 저장된다. 이후 사용자가 자신의 지문을 입력하면 전에 등록되어 있던 사용자의 지문과 비교를 함으로써 시스템이 인지해 그 사람을 인식한다. 지문인식기술이 적용된 기기는 가격이 저렴하며, 인식하는 속도가 빨라 많이 사용되고 있는 추세다. 특히 국제공항 출입국관리사무소에서 본인 확인을 위해 널리 쓰인다. 생체인식 기술이 가장 각광받는 곳은 바로 스마트폰 시장이다. 소유자 본인만이 전화기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해주는 다양한 생체인식 기술이 접목되고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달 20일 공개한 갤럭시S10 제품군에 초음파(Ultrasonic) 기반 지문인식을 도입했다. 갤럭시노트7에서 홍채인식을 스마트폰에 적용하기 시작했으나 갤럭시S10에서는 지문인식으로 다시 돌아왔다. 생체인식 기술이 스마트폰과 IT에 도입되면서 새로운 시장을 창출해 나간다. /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19-03-06

어린이교육, 내일을 연다

장규열한동대 교수3·1운동의 뜨거운 물결이 한차례 지난 후, 1920년대 초반 민족과 나라의 미래를 오히려 긴 안목에서 바르게 세워갈 길은 어린이를 바르게 기르는 데 있다는 생각을 한 사람들이 있었다. 소파(小波) 방정환. ‘어린이’라는 표현을 처음 쓴 것으로 알려진 그는 어린이의 윤리적, 경제적, 민족적 독립(해방)을 주창하였으며 어린이들을 위해 그들의 인격을 존중하여야 하고 민족의 미래와 희망을 살리기 위해서는 어린이를 잘 키워야 한다고 하였다. 그가 적은 ‘어른들에게 드리는 글’에는 “어린이들을 내려다보지 마시고 쳐다보아 주시오”라고 권하며 어린이를 바르게 기르는 일이 무엇보다 소중함을 강조하고 있다. 그는 “나라와 민족의 장래를 위해 어린이에게 10년을 투자하라”고 했다는 것이다.나이지리아 속담에 ‘아이를 기르는 일에는 온 마을이 필요하다(It takes a whole village to raise a child.)’고 하였다. 온 가족과 이웃, 학교와 동네가 한결같은 성심과 정성을 기울여야 비로소 바른 인격체 하나가 만들어 질 수 있음을 아프리카 사람들은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다. 사람을 길러내는 일을 교육이라 할 때에, 교육은 그 대상이 어릴수록 더욱 힘들고 그 뜻이 훨씬 무겁다. 어린이교육 가운데에도 유치원교육과 영유아교육에 관심이 가는 까닭도 바로 그래서일 터이다. 로버트 풀검의 베스트셀러 어린이 교육 관련 책은 제목을 아예 ‘내가 알아야 할 모든 것을 유치원에서 배웠다(All I Really Need To Know I Learned in Kindergarten)’고 붙였다.사람은 태어난 직후부터 정신과 정서의 발달이 시작되어 첫 3년 이내에 기초적인 뇌와 신경의 발달이 역동적으로 진행되며, 생애 첫 8년 안에 자의식과 자존감, 학습태도와 정서감각, 관계형성능력과 개인적 태도형성이 모두 완성된다고 한다. 유치원교육을 통하여 이후의 학습과 성장에 필요한 준비가 거의 다 이루어지며 사람에게 필요한 기본적인 태도와 소양이 모두 길러진다는 것이다. 향후 초중고등 교육에 임하기 전에 배움과 성장을 향한 열정의 강도가 바로 이 시기에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이토록 중요한 영유아교육과 어린이교육에 관하여 우리는 어떠한가. 어린이들을 길러내는 일에 저 만큼의 신중함과 한결같음이 우리에게 존재하는지 돌아보아야 한다.최근 한국유치원총연합회가 영문도 모르는 어린이들을 볼모로 어른들의 주장을 관철하려 했던 일은 사안의 내용과 그 시급함을 차치하고라도 좋지 않은 여론을 스스로 불러온 꼴이 되고 말았다. 단 하루의 혼란으로 막을 내리긴 했지만, 긴긴 방학이 끝나기만을 손꼽아 기다렸을 어린이들과 학부모들에게 심대한 혼란과 불안감을 안겼을 터이다. 아이들을 앞세우기만 하면 현실에 쫓기는 어른들의 심사를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면, 잘못 짚어도 한참 잘못 짚은 것이었다. 그런 태도야말로 어린이들과 학부모들을 쳐다보지 못하고 내려다 보는 구습에서 기인한 것이 아니었을까. 이제라도 어린이들의 내일과 나라의 백년 앞을 내다보는 교육의 첫 마음을 되새겨 어린이교육의 소중함을 다시 세워주기를 요청하고 싶다.철학자 칸트(I. Kant)는 ‘인간은 오직 교육에 의해서만 인간이 될 수 있다’고 하였다. 여러 단계의 교육 가운데 가장 무거운 소명과 책임을 느껴야 할 영유아교육과 유치원교육에 관하여 우리 사회 모든 분야에서 보다 적극적인 관심과 배려가 있어야 한다. 어린 사람들을 상대로 하므로 보다 높은 기대를 걸어야 하고, 순결한 마음 밭에 그림을 그리는 일이므로 더욱 무거운 책임을 느껴야 한다. 교육이 ‘백년대계’를 바르게 수행하기 위해서 첫 걸음이 될 어린이교육이 바로서야 한다. 소명에 따라 헌신하시는 모든 선생님들이 오늘 힘내시기를 응원해 드린다. 어린이교육이 미래를 연다.

2019-03-06

경북매일과 시민기자제

김규종경북대 교수·노문학경북매일이 흥미로운 알림장을 게재했다. 신문사가 ‘시민기자제’를 도입하겠다는 내용이다. 문자 그대로 신문의 독자가 신문기자가 되어달라는 취지다. 전통적인 종이신문은 신문제작자와 구독자를 엄밀하게 구별한다. 기자와 독자 사이에 기사 생산자와 수요자라는 넘을 수 없는 4차원의 벽, ‘넘사벽’이 존재했다. 그런 강고하고 유구한 은산철벽(銀山鐵壁)을 무너뜨림으로써 언론의 새로운 지평을 열겠다는 것이 경북매일의 의지다.알림장에 따르면, 경북매일은 ‘시민참여 저널리즘’을 추구해왔다고 한다. 어느 일방의 주장이나 입장이 아니라, 독자의 견해를 적극 수용해왔다는 얘기다. 여기 더해 경북매일은 급변하는 언론지형을 직시하고 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활용한 다양한 매체가 등장했고, 1인 미디어도 성장하고 있음을 지적한 것이다. 맞는 말이다. 지난 2000년 2월에 인터넷신문 ‘오마이뉴스’가 창간했고, 그 뒤를 이어 수많은 인터넷매체가 출현했다.요즘에는 ‘유투브’가 대세를 장악하면서 1인 ‘유투브’를 포함한 1인 미디어가 극성(極盛)하다. 대량생산과 대량소비를 전제한 언론지형이 부지불식간에 바뀌고 있는 것이다. 상황변화의 중핵에는 똑똑한 전화기 ‘스마트폰’이 자리한다. 현대인이 필요로 하는 각종지식과 정보를 손바닥 안에서 가능하도록 인도한 스마트폰. 게다가 사진과 동영상을 실시간 탑재할 수 있는 능력까지 제공하는 기술문명의 총아 스마트폰.인간의 대표적인 욕망에는 물욕, 권력욕, 명예욕이 있을 터. 전자의 두 가지 욕망은 충족하기 어려운 것이지만, 문화 권력으로 표상되는 글쓰기를 통한 명예확보는 어렵지 않다고들 생각한다. 한국인은 대단히 역동적이며 강렬한 참여욕망의 소유자다. 구경꾼도 좋지만, 대상의 평가와 기준에서 단호한 일면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다. 1인 미디어나 참여 저널리즘이 한국에서 성공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거기 있다.시민이 독자이자 동시에 기자가 된다면, 거기서 생겨나는 긍정적인 효과는 가늠하기 어려울 만큼 크다. 나의 짧은 소견으로 보면, 우선 그것은 기사의 공정성과 객관성 제고(提高)로 나타나리라 믿는다. ~카더라, 하는 유언비어와 가짜뉴스가 사라질 것이라 확신한다. 기사의 기본 가운데 하나가 ‘육하원칙’이다. 기사에 반드시 들어가는 시공간과 사건주체, 인과율(因果律)이 글의 객관성과 신뢰도를 고양(高揚)하지 않을 수 없다.글을 쓰면서 시민기자는 모자라고 넘치는 능력과 덕성을 확인하게 된다. 넘치는 것은 버리고, 모자라는 점은 보충함으로써 개인능력 신장과 명징한 자의식 및 세계인식을 얻게 될 것이다. 남들이 써왔던 기사를 비판적으로 독서함으로써 일방적인 수신자이자 소비자의 영역과 본분을 내던져 버림으로써 새로운 세계와 대면할 것이다. 지역과 사회를 넘어서 국가와 동아시아, 세계를 감촉하는 새로운 인식능력 확보! 이 얼마나 장쾌(壯快)한 변화인가?!경북매일은 시민들이 보내는 정치-사회-문화영역의 원고를 검증하여 채택된 글에는 원고료를 지불하고, 신문에 게재할 예정이라 한다. 이것이야말로 일석이조, 꿩 먹고 알 먹기다. 글로써 문명(文名)을 날리고, 고료도 챙기고! 신문사도 마찬가지 이익을 얻는다. 시민의 참여도를 높임으로써 기사가 다양해지고, 질적인 수준도 높아질 것은 자명한 이치다. 자연과학과 공학, 의학 같은 전문기사는 신문사의 전문성을 강화하여 언론의 전문화에 일조할 것이다.경북매일이 희망하는 시민기자제가 정착하게 된다면 21세기 한국사회에 만연한 가짜뉴스와 편 가르기, 지역감정과 불신풍조같은 전근대의 소산이 현저히 감소할 것이다. 시민기자제의 성공적인 안착에 기초한 경북매일의 욱일승천(旭日昇天)과 건승을 기원한다.

2019-03-06

고전 읽고 토론하는 아이들

아이들의 고전 토론 모습을 보면 놀랄 때가 많습니다. 굳어 있는 두뇌를 어렵게 도끼질을 해 가며 고전을 읽는 어른과는 사뭇 다른 천재적인 발상들을 척척 내 놓습니다. 이런 아이들이 중2 정도 되면 더 이상 모임에 나오지 않습니다. 학원 순례길에 나서는 거죠. 슬픈 작별을 경험합니다.미국 매릴랜드주에는 1696년 세워진 아담하지만 유서 깊은 세인트 존스 대학이 있습니다. 학생 수 600명 밖에 되지 않는 전형적인 리버럴 아츠 칼리지입니다. 대공황을 겪으며 존폐 위기에 놓일 때 혁신적인 고전 교육 프로그램을 도입합니다. “고전 수업은 강의도 없고 시험도 없어요. 호메로스의 일리아스, 오뒷세이아로 시작해서 루소, 로크, 헤겔, 마르크스 저작까지 4년 간 100권을 읽고 토론합니다. 수업 시간에 말하지 않는 학생들은 배울 의지가 없는 것으로 간주해 학교를 떠나야 합니다.”세인트 존스를 졸업한 조한별 씨 이야기입니다. 이 학교 출신은 예일, 하버드, 프린스턴, 콜럼비아 등 아이비리그 대학 졸업생보다 뛰어난 성적으로 주류 대학원에 진출합니다. 어린 시절 경험하는 고전 토론이 얼마나 위대한 힘을 길러주는지 알 수 있지요.외교부 산하 국제교육교류협회(IEEA)는 외교관 출신 이사장이 세운 단체입니다. 그는 2000년대 초 캘리포니아 주립대를 시작으로 탁월한 외교력을 발휘합니다. 협회가 선발한 청소년들이 소정의 과정을 이수하면 명문 주립대에서 조건없이 입학을 허가한다는 협약을 맺습니다. 토플로 선발한 학생들보다 훨씬 정착률이 높고 인성이 뛰어나다는 것을 입증합니다. 순식간에 22개 명문 주립대로 이 제도가 확대되지요. 뉴욕주립대, 메인주립대, 유타주립대, 필라델피아에 있는 명문 템플대학 등이 포함되어 있지요.지방은 유일하게 포항에서 참여할 수 있는 길이 열렸습니다. 세인트존스 대학처럼 고전 읽고 토론하며 글쓰는 배움의 방식을 경험한 학생들에게 미 명문 주립대가 입학의 문을 열기 시작한 겁니다. 고전으로 가득한 클래식북스에 다시금 아이들의 토론 소리가 낭랑하게 울려 퍼지기를 기대합니다.어제 소개한 레이 커즈와일은 시각 장애인을 위해 독서 기계를 만들었습니다. 용기있는 한 외교관은 아이들이 입시에서 벗어나 마음껏 책읽고 토론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려 상식을 깨는 협상력을 발휘했습니다. 지옥을 받아들이지 않고 벗어나려는 의지를 가진 사람들과 공간을 함께 만들어 가려 애쓰는 그대와 더불어 용기를 내는 새벽입니다. /조신영 인문학365 대표

2019-03-06

3월 학교 반성문

이주형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학교가 생동감을 찾았다. 겨우내 주인을 기다려 온 책걸상은 물론 교실이 주인을 만나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긴 기다림 뒤의 재회는 늘 감동이라는 이야기를 생산한다. 그곳이 학교, 특히 기숙사 학교라면 그 감동의 깊이는 사뭇 다르다. 활짝 열린 교문마냥 활짝 열린 대지와 더 활짝 열린 자연의 싱그러움을 닮은 3월 학교 이야기는 그대로가 3월 수채화다.새로운 것을 찾는 사람들의 마음, 그 마음을 그림으로 그린다면 딱 3월 첫째 주 지금 학교 모습이 아닐까. 운동장 가득 샘솟기 시작한 야생화를 닮은 학생들의 모습, 겨울을 저 멀리 밀어 내고 만개한 산수유, 가지마다 꽃봉오리를 매단 나뭇가지들! 이들의 모습을 인간 언어로 표현한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 언어가 짧은 필자는 “푸릇푸릇”밖에 떠오르지 않는다!올해도 자연을 닮은 푸릇푸릇한 학생들이 저마다의 교문을 열고 학교라는 큰 도화지에 들어섰다. 아무도 밟지 않은 새벽의 눈밭 같은 새 하얀 학교 도화지! 선입견과 고정관념, 어른들의 이기심 같은 모든 부정(不淨)들이 말끔히 사라진 그런 도화지! 저마다 큰 꿈을 가진 우리 학생들이 그 도화지에서 틀릴까봐 마음 졸이지 않고, 다른 아이들보다 못 할까 주눅들지도 않고 자신의 꿈과 희망과 행복을 마음껏 그릴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하지만 우리는 안다, 이것이 영화 속에서나 가능하다는 것을! 아니 이런 영화는 만들어지지도 않을 뿐더러 설령 만들어진다고 해도 흥행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그 이유는 아직 어른 말을 배우지 않은 아이들을 제외한 우리가, 이 사회가, 이 정부가 너무도 타락했기 때문이다. 자기 말만 난무한 시대에 대통령을 비롯한 모두가 자기 말 홍수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다.3월 교문을 들어서는 학생들을 보고 있으면, 미안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과연 자기밖에 모르는 이 사회 어른들이 학생들에게 입학을 축하한다는 말을 할 자격이나 있을까?그래서 이 나라 교사에게 묻는다! “선생님께서는 선생님의 학창시절 선생님과 얼마나 다르십니까? 선생님의 작년 수업과 올해 수업에는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선생님은 왜 선생님이 되셨습니까?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어떤 꿈을 꾸라고 말 해 주실 수 있습니까?”그리고 이 나라 부모에게 묻는다! “부모님께서는 자녀가 어떤 사람으로 자라기를 바라십니까? 부모님께서는 자녀에게 희생과 배려와 양보를 말씀하실 수 있습니까? 부모님께서는 자녀의 꿈에 대해 얼마나 자유로우십니까? 부모님께서는 점수와 숫자에 대해 또 얼마나 너그러우십니까? 부모님께서는 혹시 자녀의 생각과는 상관없이 SKY 꿈을 꾸고 있지는 않으십니까?”이 질문들은 십년 이상 매년 필자가 필자에게 던지는 질문들이다. 그런데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된 답을 할 수가 없다. 그렇게 시간은 가고, 매년 새 학기가 시작된다. 분명 봄은 새 봄이다. 그런데 왜 필자는, 학교는, 사회는 달라진 것이 하나도 없는지 답답할 따름이다. 새 정부가 들어섰고, 새 교육감이 자리를 했는데, 과연 우리 사회는, 우리 교육은 무엇이 달라졌는가?자유학기(년)제, 고교학점제, 과연 그 다음은 무엇인가? 시험을 위한 똑같은 수업, 줄 세우기식 시험, 맹목적인 명문대 진학! 이것 말고 이 나라 교육에서 이야기할 것이 무엇이 있는가? 1979년 3월 학교와 너무도 똑같은 2019년 3월 학교! 정말 우리는 무엇을 위해 교육을 하는가? 정말 학교는 왜 존재하는가? 필자는 오늘도 참회의 글을 쓸 수밖에 없다.“(전략) 제 눈높이로 학생들을 평가하지 않게 하소서/제 생각이 절대 진리라고 생각하는 오만에 사로잡히지 않게 하소서/제가 앞장서 할 수 없는 일들을 학생들에게 강요하는 뻔뻔함의 죄를 짓지 않게 하소서 (후략)” (졸시 “교사의 기도” 중에서)

2019-03-06

세조 “미나리 관리 소홀은 곧 윗사람 업신여김”… ‘충성의 상징’ 미나리

오래 전, 미나리는 ‘각별’했다.2019년 봄, 청도 한재의 미나리는 어수선하다.조선왕조실록 세조 11년(1465년) 5월10일의 기사다. 제목은 ‘침장고(沈藏庫)와 사옹방(司饔房)의 관리를 추국케 하다’다. 미나리 때문에 왕의 부마와 친족, 고위 관리 여러 명이 벌을 받는다. 큰 사단이다. 550년 전, 각별했던 미나리 이야기다.“의금부에 전지하기를, ‘침장고의 관리가 바친 채소는 지극히 거칠고 나쁜데다 또 몸소 친히 바치지 않았으며, 사옹방의 관리와 환관들도 또한 검거하지 아니하여 모두 마땅하지 못하니, 추국하여 아뢰라’ 했다. 세자궁 앞에 미나리[芹]가 아름다워서 바치게 했는데, (나중엔) 억세고 나쁜 것이었다. (중략) ‘근래 침장고의 관리가 서리(胥吏)만 보내고 스스로 감독해 올리지 않아서 특히 사체(事體)를 잃었다’면서 (중략) 그 윗사람을 업신여기는 마음이 조짐이 있는 것이니, 그들을 국문해 아뢰어라.’(후략)”사단의 실마리는 세자궁에 심었던 미나리. 이게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 처음엔 세자궁의 미나리가 좋았다. 중간에 관리가 잘못되었다. 침장고는 채소, 곡물 등을 보관·관리한다.사옹방(사옹원)은 궁궐, 왕실의 식재료, 음식을 관리한다. 고위 관리가 미나리를 직접 챙기지 않고 하급 서리만 보냈다. ‘관리 소홀’이다. 결론이 엉뚱하다. 미나리로 시작해 “윗사람을 업신여기는 마음”이라는 식으로 이야기가 튄다. 억지다.처벌도 대단했다. 사옹제조 청성위 심안의, 영가군 권경, 침장고 제조 이서 등이 승정원의 ‘책문’을 받았다. 승정원은 오늘날의 대통령 비서실. 제조는, 궁궐의 기술직 부서를 관리하는 고문으로 고위직 문관들이 맡았다. 청성위는 세종대왕의 차녀 정안옹주의 남편이다. 세조와는 처남, 매부 사이. 영가군 권경도 명문세가 출신의 고위직이었다. 이서는 효령대군의 사위다. 세조와는 사촌지간 처남, 매부 관계다. 이 세 사람이 모두 ‘책문’을 받았다. 명예에 흠이 가는 일이다.그 아래 실무자들은 엄하게 당한다. 침장고 별좌(別坐) 오형, 권선은 장 70대, 김종직은 장 100대, 침장고 별좌 김회보, 사옹별좌 이중련, 조금 등은 파직, 환관 김눌은 군대에 끌려갔다. ‘별좌(別坐)’는 정, 종5품직이다. 낮은 벼슬이 아니다. 부서 실무책임자 급. 이들이 장을 맞거나 파직당했다. 환관(내시)은 바로 군대로 끌려갔다. 미나리 관리 소홀은 이토록 대단한 죄였다.◇ ‘미나리 궁전’ 근궁(芹宮)과 헌근록(獻芹錄)‘근훤(芹暄)’은 ‘미나리’(芹, 근)와 ‘따뜻한 햇볕’(暄, 훤)이다. 중국 고대 이야기다. “가난한 농부가 미나리 맛이 일품이라 생각해 토호에게 먹어보라고 권한 일과 춘추시대 송나라의 한 농부가 이른 봄 햇볕을 쬐면서 ‘이 좋은 햇빛을 임금께 드렸으면 한다’는 말에서 시작됐다(列子 楊朱, 열자 양주). 미나리는, 보잘 것 없는 물건을 윗사람에게 정성으로 올린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헌근(獻芹)’ 혹은 ‘헌근지성(獻芹至誠)’이다. ‘열자’는 전한(前漢)시대에 편집됐다. 기원전부터 중국엔 ‘헌근’ 이야기가 있었다.우리도 미나리를 오래 전부터 먹었다. 통일신라시대 최치원의 ‘계원필경’에도 등장하고 고려시대 ‘헌근지성’의 고사는 자주 등장한다. 조선시대 기록에는 ‘국왕에 대한 충성’을 설명할 때 ‘헌근’의 고사가 사용된다. 세조 시절 ‘미나리 사단’ 이유도 미뤄 짐작할 수 있다.세조는 어렵게(?) 왕이 됐다. ‘아버지(세종)-형(문종)-조카(단종)-세조’로 이어진 왕통이다. 조카를 귀양 보내고 왕권을 차지했다. 세자를 보호하고 싶었을 것이다. 세자궁 연못에서 자라고 있던 미나리다. 채소에 불과한 미나리지만 의미가 깊다. 미나리 관리 소홀이 곧 “윗사람을 업신여기는 마음”이라고 강변한 것은 바로 ‘미나리=충성’이기 때문.미나리의 역사는 길고도 깊다. 대학 혹은 태학(太學)은 중국 최고의 교육기관. 대학, 태학의 학생들은 관리가 된다. 이들의 충성심으로 나라는 유지된다. 주(周)나라 때는 대학 담장을 따라 물길을 만들었다.반수(泮水)다. 대학은 ‘반궁(泮宮)’이라 불렀다. 반수엔 미나리를 심었다. 이런 대학 건물은 근궁(芹宮), 즉, ‘미나리를 심은 궁전’이다. 기원 전 479년에 편찬된 ‘시경’에는 “즐거워라. 반궁의 물가에서 미나리를 캐노라”는 문장이 있다. 우리도 ‘성균관에서 공부하던 시절’을 ‘반궁에서 미나리 캐던 시절’이라고 표현했다.‘헌근록(獻芹錄)’은 임금에게 올리는 글. 별 볼 것 없이 글이지만 올바른 국가 경영을 위해 임금에게 올린다는 의미다. 미암 유희춘은 ‘미암집’ 1576년(선조 9년) 1월의 내용에서 “다시 살펴보니, 임금께서 내린 것은 내가 경오년(1570년, 선조 3년)에 올렸던 ‘헌근록(獻芹錄)’이요, ‘유합’이 아니었다”고 했다.‘헌근록’과 ‘유합’은 모두 미암이 저술한 책 이름. ‘헌근록’은 국왕께 올린 “사소하고 미미한 글, 읽을 필요가 없는 중요치 않은 글”이라는 겸양의 의미를 담았다. 내용은 국왕 선조가 정사를 펼칠 때 필요한 것을 담은 것이었다. 선조의 경연(經筵) 스승이기도 했던 미암은 국가 경영 참고서인 ‘헌근록’을 선조에게 바쳤다.◇ 국가와 국가 사이 ‘미나리를 바치는 정성’‘헌근’은 나라와 나라 사이 문서에서도 나타난다. ‘조선왕조실록’ 성종 10년(1479년) 6월 22일의 기록이다. 제목은 ‘유구 국왕(琉球 國王) 상덕(尙德)이 사신을 보내 서계를 올리다’다. 유구는 오늘날의 오키나와. 오키나와 국왕이 조선 조정에 편지와 함께 물건을 올렸다.“(전략) 삼가 드리는 토산물은 별폭(別幅)에 갖춥니다. (중략) 호초(胡椒) 1백근, 납자 50근, 울금(鬱金) 1백근, 백단향(白檀香) 50근, 향(香) 50근을 진정(進呈)하니, 삼가 바라건대 헌근(獻芹)의 정성으로 받아주시고 수납(收納)하여 주시면 다행스럽겠습니다.”이때 조선사람 9명이 표류하다가, 일부가 오키나와의 도움으로 귀국길에 올랐다. 오키나와 측에서는 후추 등 선물을 마련해 조선 조정을 방문, 조선 출신 표류인의 동정을 전하고 대가로 대장경 등을 요구한다. 편지 중에 ‘헌근지성’이 나타난다. ‘일본(규슈, 오키나와)-조선-중국 명나라’를 잇는 ‘조공’ 혹은 ‘조공무역’은 상업적인 거래였다. 국가 간의 무역이었지만 ‘헌근’ ‘헌근지성’이라는 글귀는 사용했다.세종 29년(1447년) 6월 20일의 기록에도 ‘헌근지성’이 나타난다. 한해 전인 1446년에 세종의 왕비 소헌왕후가 세상을 떠났다. 일본 일기주(一岐州, 이키시마)의 병부소보 원영(兵部少輔 源永)이 편지와 토산물을 전한다. 내용 중에, 원영 역시 한해 전에 상사(喪事)를 당해서 예의를 올리지 못했고, 지금에야 ‘경박한 물건을 올린다(헌근지성)’고 말한다.우리도 중국에 사신을 파견할 때 늘 ‘헌근’ ‘헌근지성’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상거래지만 편지에는 ‘미미하고 볼품없는 물건을 바친다’는 겸양의 단어를 넣었다.◇ “미나리는 사철이요, 장다리는 한철이라”미나리는 궁중, 민간을 가리지 않고 먹었다. 종묘 제사에도 생 미나리[水芹生菜, 수근생채]를 사용했다. 생 미나리와 더불어 ‘근저(芹菹)’도 올렸다. 근저는 미나리 김치인데 미나리 초절임인지 미나리를 삭힌 김치인지는 정확치 않다. 드라마 ‘장희빈’으로 널리 알려진 숙종 조 인현왕후의 폐위를 두고 “미나리는 사철이요, 장다리는 한철이라”는 노래가 유행했다. 미나리는 ‘불쌍하게 쫓겨난’ 인현왕후를 가리키고 장다리는 성 씨가 장 씨인 장희빈을 가리킨다. 성종 19년(1488년) 중국 명나라 사신으로 조선을 찾았던 동월(董越)은 ‘조선부’에서 “조선인은 왕도(한양)와 개성 민가 작은 연못에 미나리를 심었다”고 했다. 우리는 오랫동안, 널리 미나리를 심고 먹었다.조선 중·후기에는 환금작물로 길렀다. 다산 정약용은 ‘다산시문집_제5권_다산화사(茶山花史)’에서 “금년에야 처음으로 미나리 심는 법을 배워/성 안에 가 채소 사는 돈이 들지 않는다네”라고 했다. ‘다산화사’는 다산이 전남 강진에서 유배생활을 할 때 지은 시. 이때 ‘성 안’은 한양이 아니라 강진 언저리다. 다산이 유배생활을 하던 19세기 초에는 시골에서도 미나리를 환금작물로 길렀다.사족. 최근 한재 미나리로 유명한 경북 청도 각남면에 다녀왔다. 분위기는 죄다 “싸고, 맛있고, 양이 많은 삼겹살을 미나리와 함께”였다. 손님들이 돌아가고 난 후의 식탁에 삼겹살은 없어졌지만 군데군데 미나리는 남았다. 종묘의 제사에 사용하고, 성균관, 근궁에서 충성을 뽐내던 미나리다. 미나리 김치, 미나리강회, 초봄의 향을 전하던 미나리 솥밥도 보기 힘들다. ‘삼겹살과 미나리 구이 통일’이다. 상상력의 한계다. 우리는 맛, 양, 싼값의 시대를 살고 있다. 은유, 직유는 사라지고 ‘돌직구’만 남았다. 미나리는 풍년인데 미나리 음식 문화는 없다. 씁쓸하다./맛칼럼니스트 황광해

2019-03-06

3·13 조합장 선거 혼탁·부정은 결국 조합 손실로

정안진경북부오는 13일 제2회 전국동시조합장선거가 실시된다. 지난달 26일, 27일 후보자 등록을 시작으로 공식 선거운동에 돌입했다.예천군에는 예천 농업조합 3명, 지보 농업조합 2명, 축산조합 2명, 산림조합 4명 등 총 11명의 후보자가 등록했다. 산림조합장 선거를 제외하고는 예천조합, 지보조합, 예천축협은 현직과 도전자들이 매번 동일 인물들로 타이틀 탈환을 위한 치열한 승부가 예상된다.그러나 ‘조합장선거’하면 으레 ‘탈법·부정선거’를 떠올릴 정도로 불길하다.이번 선거의 정황도 심상치 않다. 선거일이 다가오면서 과열경쟁 분위기다. 후보자 간 갈등이 증폭되면서 유언비어도 난무하고 있다.지역 모 후보자는 자기 집에 유권자들을 불러들여 선거운동을 한다. 또 모 후보자는 선거 운동기간에 사용할 돈 수 억원을 준비해 두었다는 등 근거도 없는 말들이 무성하다. 더욱이 인근 상주축협 조합장 출마예정자가 구속되고 조합원 100여명이 수사기관의 조사를 받고 있어 유인비어는 더욱 힘이 실려 떠다닌다.‘돈 선거 망령이 되살아났다’는 말까지 들린다. ‘우선은 당선되고 보자’는 그릇된 인식이 여전한 탓이다.경북지방경찰청에 따르면 지난달말 현재 경북도내에서 각종 불법선거 혐의로 19건을 적발하고 136명이 수사를 받고 있다. 이 가운데 상주, 봉화 등에서 금품을 제공한 3명은 구속 수사 중이다.선거는 일정한 조직이나 집단의 구성원이 그 대표자나 임원 등을 투표 등의 방법으로 가려 뽑는 행위로 민주정치를 실현하는 가장 기본적인 절차다. 그렇기 때문에 선거는 공정한 규칙과 절차속에서 공명정대하게 치러져야 한다.조합장의 리더십, 경영능력에 조합의 운명이 걸려 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유권자들은 참신하고 유능한 일꾼, 혜안을 갖춘 현명한 조합장이 선출되어야 한다.하지만 우리의 선거판은 이기기 위해 금품 살포 등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부당경쟁이 좀처럼 근절되지 않고 있다. 오히려 더욱 교모하고 조직적으로 자행되며 민주주의 근간을 흔들고 있다.올바른 일군을 가리는 일에 금품·향응 제공 등의 반칙은 절대 용납되어서는 안 된다. 이제부터라도 깨끗하고 공정한 선거문화가 정착될 수 있도록 제도를 고치고 국민들 스스로 금품과 향응을 과감하게 거절하는 올바른 선거문화를 만드는데 함께 노력해야 한다. 공정한 경쟁을 통한 정의로운 사회가 우리의 핵심적 가치로 정립되기를 기대한다. 예천/ajjung@kbmaeil.com

2019-03-05

시승격 70주년, 과거와 미래의 김천

김충섭김천시장1949년 8월 14일, 김천읍이 김천부로 승격했고, 그 다음날 8월 15일 시제(市制) 시행에 따라 시로 개칭된 김천시가 올해로 시승격 70주년을 맞이했다.여기서 잠시 김천의 역사를 설명하자면 김천은 삼한시대 낙동강의 지류인 감천유역을 기반으로 감문국, 주조마국, 문무국, 배산국, 어모국 등의 소국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그 중 감문국은 고대국가로의 도약을 꾀했으나 서기 231년 신라의 전신인 사로국에 점령돼 신라의 역사 속으로 편입됐다. 그후 고려에 이르기까지 김천은 영남 내륙의 전략적 요충지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조선시대 감천 주변은 시장(市場)이 열리고 상업이 발달했다. 특히 낙동강을 통한 영남 내륙으로의 접근로인 감천(甘泉) 수로가 적극 활용되면서 감호동 감천 변에 전국 규모의 시장이 들어섰다. 또 김천은 경상도와 전라도, 충청도의 경계에 위치해 3도를 연결하는 교통의 요충지로서 도로(道路)와 역(驛), 시장(市場)이 발달할 수 밖에 없었다. 역참제도의 정비와 함께 고려 전기에 세워진 김천역은 조선 초기 경상도 최대 규모의 도찰방역(道察訪驛)으로 발전해 22개의 속 역을 거느린 큰 역으로 성장했다. 김천역은 전국의 문물 집산지가 됐고 이것은 주변의 시장 번성으로 이어져 조선 후기 김천장은 삼도장(三道場)으로 불리며 대구, 개성, 평양, 전주와 함께 전국 5대 시장의 하나로 번성했다.1905년 경부선, 1923년 경북선이 개통하면서 김천은 교통과 상업의 중심지로서 입지적 장점이 더욱 강화됐다. 해방 이후에도 교통요충지로 사람이 모여들었던 김천은 1949년 경북의 다른 도시들보다 빨리 시로 승격했지만, 이듬해 6·25전쟁으로 시가지의 90%가 파괴되는 아픔을 겪었다. 그러나 전쟁의 상흔을 이겨 내고 농업경제 기반사회에서 김천은 영남의 중추도시로 발전해 1960년대 중반 인구 21만3천명의 큰 도시로 발전했다. 하지만 김천은 1970년대 중반이후 산업화와 도시화에 뒤처져 수십년 동안 침체와 정체된 도시의 대명사가 되고 말았다.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도시발전의 침체의 굴레를 벗어나기 위해 김천 1차(1990)·2차(1993) 공단조성 등의 노력이 다방면으로 이뤄졌다. 1995년 김천시와 금릉군이 도농복합시로 통합되고, 민선자치시대가 개막하면서 김천은 지역발전의 신기원을 맞이했다. 그리고 미래 100년 발전을 향한 큰 발걸음을 내딛기 시작했다.투자기업 만족도 전국1위, 주민행복도 전국 5위로 평가받을 만큼 기업하기 좋은도시, 쾌적하고 살기좋은 도시로 변모했다. 조경대상을 3번이나 수상한 아름다운 경관을 간직하고 있으며, 도농복합도시로서 안락한 전원생활과 편리한 도시생활을 동시에 누리는 도시가 거듭났다.도민체육대회(2000), 전국체육대회(2006), 전국소년체육대회 및 전국장애인체육대회(2007)를 성공적으로 개최하면서, 전국 최고의 종합스포츠타운을 조성해 스포츠의 메카도시로 부상했다. 이러한 기반 위에 지난해에는 대규모 대회 63개 대회를 개최하면서, 연인원 32만명 방문, 320억원의 경제적 파급효과를 거두기도 했다.KTX 김천(구미)역 준공·개통, 일반산업단지-1단계·2단계, 부항댐, 혁신도시 등 지역발전을 이끌어갈 대형프로젝트 사업도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 여기에 수도산자연휴양림, 부항댐오토캠핑장, 전국최장의 출렁다리, 짚와이어와 스카이워크, 친환경생태공원, 무흘구곡 경관가도, 김천물소리생태숲 등 관광인프라를 확충해 1박2일 체류형 관광도시를 만들었다. 뿐만아니라 삼애원 계분공장 이전, 양로주택건립 등 삼애원 개발이 가시화되고 있고, 김천∼거제간 남부내륙철도 건설도 청신호가 켜졌다. 국도3호선(김천∼상주)과 국도4호선(김천∼칠곡) 확장, 양천∼농소∼율곡(혁신도시)∼어모 구간 국도대체우회도로 개통, 다수∼삼락간 도로개설 등 시가지 주요 간선도로망이 확충됐고, 시청삼거리∼혁신도시를 연결한는 신설도로도 추진중에 있다.시승격 70주년을 맞이한 김천시는 국가균형발전을 선도해 나가는 국토중심의 신성장 거점도시로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김천시는 시승격 70주년을 맞아 김천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을 담은 기념사업 추진으로 김천의 위상을 높이고, 시민과 함께 새로운 미래를 열어가기 위한 계기를 만들어가고 있다. 일회성에 그치는 거창한 기념사업들은 지양하고, 시민의 날, 시민체전 등 기존에 추진해 오던 행사를 70주년 기념에 맞게 새롭게 바꿔 추진할 계획이다. 시민 토크(talk), 학술 세미나, 정책 토론회 등을 개최해 시민과 화합을 도모하고, 드론축구대회 등 4차산업 혁명시대를 대비하는 미래지향적 사업도 추진한다. 청소년 공연페스티벌과 혁신도시 달빛기행, BOOK적 BOOK적 한마당 축제 등 작지만 내실 있는 문화예술 사업도 계획하고 있다.김천은 시승격 70주년과 민선7기 출범으로 그동안 지역발전을 가로막고 있던 행태들을 개선하기 위한 ‘Happy Together 김천’운동도 대대적으로 전개하고 있다. 시민의식 변화 프로젝트인 ‘Happy Together 김천’은 지역사회 전반에 걸친 친절·질서·청결 문화운동으로 과거 구시대적이고 권위주의적인 발상과 사고, 잘못된 관행을 타파하고 획일적이고 무사 안일한 행태와 잘못된 의식을 과감히 개선하는 것이다. 관주도의 단발성 행사가 아니라 체계적인 추진과정을 통해 전 시민이 동참하도록 하고 있다. 이제 김천은 시민들이 주인의식을 갖고 만들어가는 미래 지향적인 첨단도시로 거듭날 것이다.

2019-03-05

잃어버린 고구려 개

역사속의 유목 기마민족은 농경민들이 악의적으로 묘사해 놓은 것처럼 그렇게 단순한 성격을 가진 집단이 아니다. 유목 기마민족들은 거친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끊임없이 이동을 해야 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교역에 눈을 뜨게 되었고 농경민들이 한달 걸려서 걸어갈 거리를 며칠만에 후딱 다녀올 수 있을 정도로 기동성이 좋으니 다른 문명과 접촉하는 것도 쉬웠다. 또한 개방적인 삶의 태도로 농경민에 비해 다양한 문명의 혜택을 누릴 수 있었다. 속도와 정보를 지배한 것도 모자라 발달된 문명의 혜택까지 먼저 누렸으니 유목민이 농경민을 압도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교역을 하는 물건을 지키기 위해 완전무장을 하는 것도 유목민의 필수조건이 되어갔다. 이렇게 해서 군사력을 갖추고 속도와 정보를 장악하여 교역으로 부를 축적하는 넓은 의미의 유목민인 전사와 상인의 복합체가 탄생하게 되었는데, 중앙아시아와 중국 대륙에 있어 유목 기마민은 말과 함께 이동하며 초원의 패권을 두고 경쟁 또는 공생을 하는 일종의 정치 연합체이다. 유목 기마민족에게 속도와 정보를 의미하는 말이 차지하는 의미는 매우 크다. 속도와 정보를 지배하는 자가 세상도 지배할 수 밖에 없는데, 당시 세계를 지배하던 넓은 의미의 유목민은 초원의 귀족이자 왕족이었고, 신성하게 여기는 개를 데리고 다닌 이들은 역사의 중심이기도 했다.고구려 사람들은 말을 타고 사냥하는 수렵도를 남겼고, 신라에서는 말을 신령하게 표현한 천마도까지 남겼는데 왜 조선 사람들은 말탄 모습의 그림 하나를 남기지 않았을까? 말을 타던 기억은 왜 지워야 했으며, 장사는 언제부터 천박한 직업으로 인식하게 되었을까? 모든 유목 기마민족이 개를 신성시했는데 왜 개는 ‘사기(史記)’가 전해주는 전통인 개고기로 인식되게 되었을까? 그 이유는 조선시대 유학 때문이라는 주장이 있다. 조선시대 유학은 단순한 학문이 아니었는데 조선의 정치, 사회, 종교를 지배한 유학은 민족의 정체성을 파괴했고 사대 중화사상에 의해 한국인이 아닌 중국인이 되고 싶어 한 몸부림이었다는 주장이다.이동훈일본인들은 지금까지도 고구려의 개를 신사를 지키는 신령한 상징동물로 여기면서도 왜 우리나라를 강점할 때 공권력을 투입해 우리나라 개를 때려서 잡고, 개가죽을 벗겨가고 개고기를 돈을 받고 팔고, 먹게 만들었을까? 우생학이라는 학문은 단순하게 인종적으로 흑인에 비해 백인이 잘났다는 점을 강조하여 식민지를 정당화했고, 히틀러는 우등민족이 열등민족을 지배하는 것이 자연의 섭리라는 슬로건으로 죄책감을 가지지 않았다. 일제는 조선을 넘보면서 식민 지배를 위한 논리가 필요했다. 일제는 근대화에 성공한 자신들은 우수한 민족이고, 사회적으로 진화가 덜 된 조선은 미개하다고 주장했는데, 그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조선을 왜곡하는 작업을 추진했다. 더러움, 무지함, 비위생성, 복종성, 혐오스런 풍속 등의 이미지로 조선을 정의했고, 혐오스런 풍속에 일부 조선 백성들이 먹던 개고기가 포함된 것은 당연했다. 일제는 조선백성들 중 가난한 사람들이 숨어서 먹던 개고기에 주목했다. 그리고 재빨리 조선은 전통적으로 개고기를 먹은 나라라고 규정해 버렸다. 이때 조선 후기 사대부들이 발행한 개고기 식용에 관한 책들이 많은 도움이 되었다. 무라야마 지준 등이 조선의 풍속연구라는 이름으로 해놓은 것들이 지금까지도 아무런 비판없이 재생산되고 있다. 그 당시 일본학자들과 일부 친일학자들은 연구와 학문이라는 이름으로 우리나라 사람들이 자부심을 가지고 자주성을 고취할 수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조선총독부의 주도하에 철저하게 억압했다. 그것이 여의치 않을 때는 살짝 비틀어 왜곡하였다. 개고기를 우리의 전통으로 만들어버린 역사적 왜곡의 이유를 알게 되면 개고기 식용 논쟁들에 대해 숙연한 마음까지 들게 된다. 최근 우리나라 개 보존과 연구는 문화재청의 관리감독에 따라 각 견종을 보존하고 있는 지자체와 각 기관에서 독립적 노력들이 이루어지고 있긴 하지만 한반도 개들에 영향을 준 고구려개의 원형탐색과 복원을 위한 역사적 고증과 과학적 연구를 통해 우리 고유의 개에 대한 연구와 보존, 통섭적인 해석과 통합연구가 진행될 필요가 있다.※참고문헌:‘BOKA 늑대의 왕국’(주정은 저)/이동훈 서라벌대 반려동물연구소 소장·마사과 교수

2019-03-05

‘플라스틱 코리아’

중국의 플라스틱 문제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플라스틱 차이나’는 중국이 세계의 쓰레기통이 되는 것을 거부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중국내 수입된 재활용 플라스틱으로 살아가는 한 가정을 통해 플라스틱 공해를 고발한 영화다. 이 영화로 중국은 플라스틱 수입을 막았고 한국도 작년 재활용 플라스틱 처리문제로 곤욕을 치러야 했다.버린 쓰레기가 재활용될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에 거리낌 없이 소비한 우리 국민도 이 사건 후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플라스틱이 얼마나 심각한 공해인지도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알려지는 계기가 된 영화라 할 수 있다.그렇지만 우리나라는 여전히 세계 최대 플라스틱 소비국이다. 유럽 플라스틱제조자협회 조사에 따르면 2015년 기준으로 한국은 1인당 플라스틱 소비량이 132㎏이다. 조사대상 63개국 중 3위다. 벨기에가 1위(170㎏)며 대만이 2위(141㎏)다.플라스틱 제품은 내구성과 신축성이 좋은 데다 가볍다. 효용성이 높다는 이유로 여전히 우리 생활에는 땔 수없는 제품으로 애용되고 있다. 작년 8월부터 우리나라도 커피전문점이나 패스트 푸드점을 대상으로 일회용품 사용을 규제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 사용량을 줄이기에는 역부족이다.플라스틱은 화학구조 자체가 잘 분해되지 않는 특성을 갖고 있다. 게다가 소각할 때 발생하는 환경 호르몬과 유해물질은 인체에 치명적이다. 지구상에서 한해 동안 생산되는 플라스틱이 3억t에 이른다고 한다. 특히 상당수 플라스틱 폐기물이 바다로 버려져 바다생물의 생명을 위협한다고 한다. 바다 속에 들어간 플라스틱이 분해돼 바다 생물의 먹이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지난해 일본의 한 해안가에서 발견된 젖먹이 새끼 대왕고래의 위에서 다량의 플라스틱이 나왔던 것이 하나의 사례다. 플라스틱을 삼킨 바다고기를 사람이 다시 잡아먹는 먹이사슬의 구조를 읽게 하는 대목이다. 경북 의성군 단밀면에 무더기로 방치된 플라스틱 쓰레기 산이 미국 CNN 방송에 소개됐다. ‘플라스틱 코리아’의 어두운 민낯이 드러난 꼴이다./우정구(논설위원)

2019-03-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