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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저금리 시대 인프라 펀드 투자

김학주 한동대 교수최근 주가 하락을 둘러싸고 경기침체가 오는 것 아니냐는 공포감이 조성되고 있다. 장단기금리차가 다시 역전될 조짐을 보이자 그런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그러나 경기침체는 이미 도래했다고 판단된다. 과거와 형태만 다를 뿐이다. 과거 성장기 때 침체가 오는 경로는 성장을 낙관해서 설비투자가 지나치게 이뤄진데 따른 공급과잉이며, 그 설비가 부실화되면 거기에 돈을 빌려준 은행이 부실해진다. 은행은 경제 시스템의 신경이므로 이것이 마비되면 쇼크에 빠진다.그렇게 부작용이 화끈했던 과거와 달리 지금은 만성적 침체에 시달린다. 민간 소비 및 투자가 위축되므로 정부가 빚을 내서 대신 투자하는 국면이다. 즉 민간 부채가 미국을 비롯한 각국 정부 부채로 넘어가 부실이 터지지 않는 것이다. 그 결과 증시에 충격이 발생해도 오래가지 않고 ‘찻잔 속의 태풍’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 이런 만성적 침체가 근본적으로 사라지려면 노인계층이 줄어들고, 인구구조가 젊게 바뀌어야 한다. 관건은 그때까지 다음 세대에게 얼마나 많은 빚을 안기느냐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그 후에도 누적 부채로 인해 회복이 더딜 것이므로 저성장 저금리 시대는 매우 오래갈 것이고,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이렇게 참을 수 없이 낮은 수익률의 시대에 채권과 주식 사이의 중위험 중수익 상품으로 해외 인프라 펀드나 부동산 투자신탁회사(REIT)를 이용해 볼 필요가 있다.이들 상품의 장점은 첫째, 세계적으로 도시에 사는 사람들이 증가하므로 인프라 수요가 안정 성장한다는 것이다. 둘째, 인프라나 상업용 부동산의 경우 단일 프로젝트이므로 추가 투자가 필요 없는 바, 벌어들인 이익의 대부분이 배당된다. 즉 배당성향이 높다. 요즘에는 실물의 증권화로 인해 유동성이 좋은 인프라 펀드나 REIT 상품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심지어 다양한 인프라를 섞어 놓은 것도 있다.특히 인프라에 관심이 생기는 이유는 민간투자가 위축되어 정부가 빚을 내어 대신 투자하는 규모가 커질텐데 그 빚은 다음 세대가 갚아야 한다. 따라서 정부도 다음 세대에 유리한 분야에 투자를 할 수 밖에 없다. 즉 친환경이나 경제의 효율성 개선을 위한 인프라에 투자가 집중될 것이다.대표적인 예로 친환경을 위한 송전 인프라, 5G보급 관련 통신 인프라 등이 있다. 특히 미국같이 광활한 지역에는 기지국 역할을 하는 전파 송수신탑을 통신사에 임대하는 서비스 수요가 늘어날 것이다. 아메리칸 타워, 크라운 캐슬 등이 대표적 업체이며 장기적으로 3%대의 연간 배당수익률을 기대해 볼 수 있다.한편 셰일가스 생산량이 증가하고 있어 이를 실어 나르기 위한 파이프 수요도 증가할 것이고, 인구노령화로 인한 병원 및 의료시설에도 투자가 집중될 것이다. 결국 이런 인프라 사업이 확대되며 시중 자금이 관련 펀드로 몰릴 것으로 보인다.일각에서는 메트로폴리탄이 더 확대될 것으로 예측하여 도로나 공항 수요도 증가할 것으로 판단하지만 5G 기반의 원격화상통신 기술이 발달할수록 도시는 점점 더 작아질 것이다. 이것이 스마트한 것 아닌가?

2019-08-27

변화를 강요당한다는 것-푸레이의 죽음에 대해

푸레이(傅雷)는 1908년 상하이에서 태어났다.프랑스 유학 후 대학에서 미술사와 프랑스어를 강의했다. 이러한 푸레이는 부인과 함께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길지 않은 그의 유서에는 그가 자살한 이유와 함께 자잘한 당부가 담겨 있다.소위 반당죄의 물증(작은 거울과 퇴색한 옛 화보 한 장)이 우리 집에서 발견된 물증 때문에 입이 백 개라도 변명할 길이 없으나, 우리는 죽어도 우리 물건이란 걸 인정할 수 없네(정말 맡긴 상자 안에서 발견된 것이네). 우리에게 다른 죄가 있다면 몰라도 지금껏 반당적 사상이 없었네. 우리도 발견된 물증 때문에 입이 있어도 변명하기 어렵다는 것을 알지만, 영명한 공산당의 영도와 위대한 모(毛)주석의 영도 아래에 있는 중화인민공화국은 결코 그것 때문에 중형을 판결하지는 않을 거라 믿네. 다만 억울한 죄를 뒤집어쓰고 사는 시간은 감옥에 있는 것보다 더 힘드네. …략… 부탁하는 몇 가지 일은 아래에 적었네.1) 9월분 집세 55.29원을 대신 납부하여 주게(현금이 있네). …략…11) 현금 53.30원은 우리 화장 비용으로 써주게. …략…13) 기타 가구는 자네가 처리하게. 책과 글씨, 그림은 관련 부서의 결정에 따라 처리하게.자네에게 수고를 끼치게 되어 정말 마음이 편치 않지만 달리 부탁할 사람이 없으니 이해해 주기 바라네.1966년 9월 2일 밤공산주의 국가로 본격적으로 진입하기 직전 동양에서 가장 코스모폴리탄이었던 상하이, 그곳에서 주로 프랑스 문학을 번역했던 국제인 푸레이의 유서는 단호하지만, 어떤 비장함도 슬픔도 없다. 일상적이고 사무적인 일을 부탁하는 듯한 이 유서는 그래서 더욱 더 슬프다.1966년, 중국 내에 잔존하는 부르주아 세력을 타도한다는 명목 아래 실시된 문화대혁명의 열기로 뜨거웠다. 회의주의자이자 비판적 지식분자로 낙인 찍혔던 푸레이는 가택수색을 당하게 되고 ‘작은 거울과 퇴색한 옛 화보 한 장’이 문제가 된다. 왜냐하면 모택동과 대척점에 있었던 장개석과 관련된 물건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상자는 푸레이의 고모가 맡긴 상자였고, 그 상자에 원래부터 저러한 물건이 들어 있었는지 푸레이는 알 길이 없었다. 푸레이는 끝까지 그 상자의 주인을 말하지 않았고 대우파분자(大右派分子)로 몰려 사형은 아니더라도 감옥에 가야할 신세였다.그는 감옥에 가는 것보다 죄를 뒤집어쓰고 사는 시간이 더 힘들 것 같다고 했다. ‘죄를 뒤집어쓰고 사는 시간’이란 개인에 국한된 시간이 아니라 중국 전체에 대한 이야기로 들린다. 실제로 문화혁명 동안 중국의 비판적 지식인들은 모두 재갈이 물린 채 살아가게 된다. 말하는 것을 멈추게 하는 일, 당의 말에 무조건 복종해야 하는 사회, 이러한 사회에서 지식인은 죄가 있든 없든 죄인이 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한 삶을 푸레이는 단호히 거부했다.그랬다. 푸레이는 프랑스에서 4년 동안 미술사를 전공하였다. 서구의 자유로움, 민주주의와 자본주의 등을 깊이 체화하였을 것이다. 그가 살아온 삶은 중화인민공화국이 수립된 1950년 이후의 삶의 방식과는 너무도 격차가 컸을 것이다. 1957년 반우파 투쟁이 시작되었을 때에도 그는 사회주의 이데올로기보다 ‘인격’과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신념을 내려놓지 않았다. 1958년, 푸레이의 아들이자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부총이 영국으로 망명하게 되자 그는 부르주아 민주주의자 즉 우파분자로 낙인찍히게 된다.이후 재갈이 물린 비판적 지식인은 허무와 비관주의에 휩싸였다. 그가 죽은 것은 1966년이나 그가 그토록 사랑했던 아들이 영국으로 망명한 1958년부터 그의 죽음은 시작됐다. 그 죽음의 완성이 1966년일 뿐 그가 죽은 해는 큰 의미가 없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죽은 채로 살아온 자의 유서라고 해도 그의 유서에는 덧붙일 말이 있다.공강일 서울대 강사·국문학푸레이는 유서에 자신의 억울함을 적극적으로 호소하거나 해명하지 않았다. 다만 유서의 절반 이상을 할애하여 자신의 물건을 어떻게 처분할 것인지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그가 명시하고 있는 것은 예금, 현금가구, 시계 등 사소한 것들이다. 모르긴 몰라도 이것들은 이미 그의 일부가 되어버린 물건, 자신의 과거가 기입된 물건들이었을 것이다. 이에 대해 부르주아의 사적 소유에 대한 집착이라고 부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들은 중화인민공화국 수립이전에 이미 그의 일부가 되어 있었던 물건이다. 그런 점에서 이 유서를 하나의 알레고리로도 읽을 수 있다. 공산화되기 이전에 형성된 자신의 가치관, 민주주의와 자본주의, 그리고 자유에 대한 신념, 이것은 바꾸거나 버릴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그는 말하고 있는 듯하다.이미 자신의 몸이 되어버린 사유와 사상들, 영국으로 망명한 아들까지 버려야 하는 사회, 결코 버리려야 버릴 수 없는 것들마저 버리게 하는 사회에서 그는 더 이상 살아갈 수 없었을 것이다. “사회주의 이전 사회에서 흘러 들어온 찌꺼기”였고, 홍위병 입장에서 보면 그는 구제불능이었을 것이다. 변화하는 세계에 적응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죽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변화를 강요하는 변화란 잘못된 것이 틀림없다. 그러한 변화 앞이라면 목숨을 내어놓는 것이 더 좋은 선택일지도 모른다.

2019-08-27

개를 진정시키는 신호, 카밍시그널(上)

행동은 말보다 더 크게 말한다. 바디랭귀지라 불리는 비언어적인 커뮤니케이션은 표정, 몸짓, 신체접촉, 움직임, 자세, 신체장식(옷, 액세서리, 머리모양, 문신 등) 등을 통해 이뤄지는 정보전달 방법이다. 행동은 사람의 진정한 마음상태를 보여주기 때문에 비언어 커뮤니케이션은 꾸미지 않은 생각과 감정, 그리고 의도의 표출이다.개들이 다른 개들과 소통할 때 사용하는 몸짓 언어를 카밍시그널(calming signal)이라 하는데 상대를 온화하게 하고 진정시키며 조용하게 만드는 반려견들의 신호를 의미한다. 개들은 공포를 느끼거나 스트레스를 받거나 불안할 때 다양한 카밍시그널을 통해 자신과 주위의 동료들을 진정시킨다.대표적인 카밍시그널은 고개돌리기이다. 개가 고개를 돌리는 것은 상대에게 불안해하지 마라는 신호를 보내는 것인데, 적대감이 없다는 것을 표현하는 것이다.고개를 돌리는 시그널은 순식간에 사라질 수 있으며 아주 살짝 돌리는 것부터 고개를 돌리고 몇초간 가만히 있는 것까지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날 수 있다. 이것을 응용하여 사람이 개와 마주칠 때 가볍게 고개를 돌려주거나 눈을 감거나 다른 곳을 살짝 보고 다시 보는 행동을 해준다면 개들이 조금은 편하게 느낄 수 있다.개가 사람을 무서워해서 짖거나 으르렁거릴 때 그 자리에 멈추어 서서 얼굴을 돌려주면 좋고, 정면으로 시선을 마주치는 것을 개들은 싫어하므로 눈을 감거나 시선을 피해주면 “나는 너에게 적대감이 없어”라는 것을 표현하는 것이 된다.개들끼리 서로 쳐다볼 때 상대 개가 자신의 눈빛에서 위협을 느끼지 않게 하려고 눈을 작게 뜨거나 게슴츠레하게 떠서 위협적이지 않은 눈길로 부드럽게 쳐다보는 행동을 하는데 개들에게 사람보호자와 눈마주치기를 가르치고 싶을 때는 부드럽고 친근한 눈빛을 보여주는 것이 좋다.개가 등을 옆이나 뒤로 돌리는 경우가 있는데 이것은 상대의 흥분된 감정을 진정시키기 위함이다. 다른 개가 자신을 향해 으르렁 거리거나 너무 빨리 다가와 불안한 상태를 느끼거나 위협을 느끼면 개들은 등을 돌린다. 사람이 화난 표정을 짓거나 짜증을 낼 때, 신경질적으로 목줄을 당길때에도 개들은 등을 돌리곤 하는데 어린강아지들이 귀찮게 할 때에 나이많은 개들이 이를 진정시키기 위해 등을 돌리는 경우를 많이 볼수 있다. 개들이 뛰어오르거나 귀찮게 할 때 등을 돌리면 개들은 이것을 아주 강한 시그널로 받아들일 것이다.코를 핥는 개는 자신이 불편하다는 것을 표현하는 것인데, 가까운 곳에서 여러사람이 만지려한다거나 너무 직선적으로 접근하거나 손을 벌리는 행동 등은 개들을 불편하게 할 수 있고 이럴 때 개들은 코를 핥는다.이동훈카밍시그널과 일상의 보통 행동을 구분할 수 있어야 하는데, 이것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개의 행동을 그냥 보는 것이 아니라 관찰할 수 있어야 한다.사실 개의 행동을 관찰하여 카밍시그널을 구분하는 것은 꾸준한 연습과 훈련을 필요로 한다. 개의 몸짓 관찰을 통해 카밍시그널을 이해할 수 있다면, 반려견과 보다 친밀한 관계를 형성할 수 있고 행복한 삶을 함께 보낼 수 있을 것이다.개의 행동을 관찰하고 그 의미를 파악하는 것은 운전을 배우는 것과 비슷한데, 귀에 이어폰을 꽂고 상대방의 말을 듣는 것이 불가능한 것처럼, 단순히 개의 행동을 보는 것이 아니라 주의 깊은 관찰을 할 수 있을 때 개의 카밍시그널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서라벌대 반려동물연구소장·마사과 교수

2019-08-27

공간은 삶의 실체다

신희선 숙명여대 기초교양대학 교수·정치학 박사“학내 청소노동자도 엄연한 학교의 구성원이다.” 서울대 청소노동자가 휴게실에서 숨졌다는 안타까운 소식이 보도되었다. 지하 1층으로 내려가는 계단 옆 구석에 청소노동자들의 휴게실이 있었다. 숨이 턱턱 막히는 폭염에 창문도 없는 벽에 선풍기 한 대만 매달려 있었다. 청소노동자들은 손 선풍기를 목에 걸고 폭염을 견디는 상황이었다고 한다. 대학 청소노동자들의 열악한 휴게실 환경은 서울대학교만의 일은 아니다. 캠퍼스 곳곳에서 수고로운 노동을 하고 있음에도 청소노동자들의 처지는 크게 다르지 않다.공간은 사회경제적 지위를 보여준다. 로널드 아들러는 우리가 공간을 이용하는 방식은 힘과 계급을 반영한다고 말한다. “일터, 방, 집, 우리가 권리를 갖는 물리적 공간은 모두 우리의 영역이다. 영역은 고정되어 있다.” 권력이 클수록 공간은 넓어지고 성역화된다. 군대만 보더라도 일반 병사는 한 막사에서 자고, 장교는 개인 방을 갖고, 장군은 정부가 제공하는 집을 배정받는다. 이처럼 더 큰 영역과 사생활을 허용하는 공간은 위상에 비례한다. 공간을 통해 권력과 지위를 드러내고 구분짓는다.대학 캠퍼스도 예외가 아니다. 대학 내 위계구조에 따라 공간 격차는 당연시된다. 교수 연구실조차 정년과 비정년에 따라 다르다. 학생들을 더 많이 만나는 교육교수지만 비정년인 경우 공동연구실을 배정받는다. 학생들이 오면 장소를 찾아 이동해야 하고, 방학에는 상담실이 비어도 공동으로 비좁은 연구실을 감수해야 한다. 대학내 공간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구분 짓기’에 따라 공간이 있어도 제공하지 않는 것이다. 마치 쪽방 같았던 청소노동자들의 쉼터는 이러한 구조를 반영한 것이다.비정규직 청소노동자들은 대학에서 가장 낮은 위치에 있다. 학교 본부의 눈길이 미치지 않는 사각지대에서 투명인간처럼 존재한다. 어디에 이들의 휴게실이 있는지 대부분의 대학 구성원들은 알지 못한다. 문패도 없는 허접하고 불편한 공간에 잠시 몸을 내려놓을 뿐이다. “이분들은 태어날 때부터 이름이 있었지만, 그 이름으로 불리지 않습니다. 그냥 청소하는 미화원일 뿐입니다. 존재하되 그 존재를 우리가 느끼지 못하고 함께 살아가는 분들입니다.” 서울대 청소노동자의 안타까운 죽음을 보며 ‘6411번 버스라고 있습니다’로 시작되는 노회찬의 연설이 떠오르는 이유다.“무관심이야말로 최악의 태도다.” 스테판 에셀은 최상위와 극빈층 사이의 커져가는 격차와 인간의 존엄성을 위협하는 일들에 ‘분노하라’고 외친다. 이번 서울대 사태를 계기로 대학 사회는 모든 구성원이 사람답게 살도록 하는데 관심이 있었는지 돌아봐야 한다. 무엇보다 새벽부터 일터로 나와 고된 노동으로 지친 몸을 잠시나마 쉴 수 있게 제대로 된 휴게실부터 마련해 주어야 한다. 청소노동자를 지하 휴게실 폭염에 노출되도록 방치한 것은 우리의 무관심이 낳은 폭력이다. 미화노동자를 비롯해 대학 사회의 약자들에 대한 따스한 관심은, 공간 변화로부터 시작될 수 있다. 공간은 우리 삶의 실체이기 때문이다.

2019-08-26

인싸문화

인사이더의 줄임말인 ‘인싸’는 유행을 이끌고 친구가 많은 사람을 뜻하는 말로, 유행에 민감한 세대로 꼽히는 초등학생들이 학교 울타리를 넘어 유튜브를 통해 ‘인싸춤’, ‘인싸템’ 같은 유행을 확산시킨다는 점에서 이들의 문화를 이른바 ‘인싸문화’라고 한다. 인싸문화의 대표적인 실례는 눈알젤리, 먹는 색종이같이 이름조차 난감한 군것질거리들이 초등학생들의 ‘인싸 간식’으로 떠오른 것이나, 15초짜리 동영상 편집 앱이 10대들 사이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것 등이다.실제로 여자 아이돌이 착용해 유행하기 시작한 ‘반짝이 붙임 머리’를 해 달라고 조르는 여학생이나 ‘인스’(인쇄소 스티커·가위로 하나씩 오려 사용하는 스티커)가 유행하자 예쁜 스티커들을 한가득 사다 친구들에게 하나씩 나눠주는 학생들이 많아졌다. 초등학교 여학생들 사이에 궁극의 ‘인싸템’(유행 아이템)으로 꼽히는 건 ‘구관(구체관절) 인형’이다. 관절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으며, 머리와 옷, 신발, 화장까지 원하는 대로 꾸밀 수 있는 구관 인형은 키즈 유튜버들의 체험 영상 조회수가 100만건을 넘어선다. 특히 요즘 초등학생의 ‘인싸 문화’는 학교 울타리를 넘어 유튜브를 통해 급속도로 퍼져 파급력이 훨씬 크다. 대중문화계가 인싸문화에 반응해 마케팅에 활용하게 된 것도 전파속도가 빨라지는 이유다.또래와 부대낄 기회조차 없는 어린이들이 서로 짧은 말과 영상으로 자극하는 문화에 갇히다보니 자연스레 유튜브에 몰입하고, 유행에 집착하게 되는 것이라는 분석이다. 부모들이 있는 그대로의 자기 모습을 소중히 여길 수 있도록 대화로써 아이의 자존감을 키워 줘야 한다는 게 전문가의 조언이다. 자녀교육만큼 어려운 일이 어디에 있을까./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19-08-26

양초와 다이아몬드(1)

지금 시각 새벽 4시 7분. 책을 읽으러 나오는 분들이 있습니다. 밤새 책을 읽는 학생들도 많습니다. 저도 새벽 일찍 필사와 쓰기를 끝내고 랩톱을 켜고 칼럼 쓸 준비를 합니다. 클북 새벽 천장과 책상 스탠드에 달린 수많은 LED 전구들. 노트북의 전원, 이 모든 것이 전기라는 에너지를 우리가 자유롭게 쓸 수 있기 때문에 비로소 가능한 일입니다.전기를 발명한 고마운 과학자를 아시지요. 마이클 패러데이(Michael Faraday)입니다.런던 근교 뉴잉턴에서 대장장이의 아들로 태어난 패러데이는 흙수저 출신입니다. 끔찍하게 가난한 유년 시절을 보냅니다. 학교 따위 꿈도 꿀 수 없습니다. 친구들이 초등학교를 마칠 무렵인 열두 살에 가난을 피해 런던으로 이사합니다. 이때부터 패러데이는 알바를 시작하지요. 조지 리보가 운영하는 서점에서 사환으로 첫 일을 맡습니다. 신문을 배달하고 사람들이 읽고 버린 신문을 수집하는 보잘것없는 일들입니다.서점 주인 리보의 마음에 쏙 들지요. 성실하고 총명한데다 맡긴 일은 완벽하게 해 내는 책임감까지 갖추고 있는 아이를, 서점에서 직영하는 책 제본소에 투입합니다. 제본공이 되는 도제 과정을 수업료까지 면제해 주면서 7년을 가르칩니다. 패러데이는 프로 제본가로 성장하며 다락방에서 생활합니다.패러데이가 서점과 제본소에서 생활한 것은 커다란 축복이었습니다. 주위에 책이 가득했으니까요. 주인 허락으로 제본한 책들을 마음껏 읽을 수 있었습니다. 낮에는 책을 정성스레 만들고 밤에는 책 내용에 푹 빠져듭니다. 닥치는 대로 읽었던 수많은 책이 무학자 패러데이를 세계 최고 지성인으로 성장하게 만듭니다. 패러데이는 1809년 아이작 와츠가 쓴 ‘정신의 개선-The Improvement of the Mind’ 책을 우연히 만납니다. (내일 편지에 계속)/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대표

2019-08-26

법무부장관 후보자의 변명

강희룡 서예가조선 후기의 실학자였던 최한기 선생은 ‘인정, 측인문(人政, 測人門)’에서 공직으로 나아가는 인재감별의 다섯 가지 대원칙을 언급했다. 이 덕목들의 출처는 사기(史記) ‘위세가(魏世家)’로 본래는 나라의 재상을 뽑는 덕목이었는데, 최한기는 모든 인사에 적용할 수 있는 광범위한 덕목으로 보았던 것이다. 이 다섯 가지 덕목은 ‘첫째, 평소에 그가 어떤 사람과 친했는지 살펴보고, 둘째, 가난할 때에 그가 어떤 것을 취하지 않았는지 살펴보며, 셋째, 처지가 궁할 때에 그가 어떤 일을 하지 않는지 살펴보고, 넷째, 현달(賢達)할 때에 그가 어떤 사람을 추천하는지 살펴보며, 끝으로 부유할 때에 얼마나 남에게 베푸는지 살펴보는 것이 실로 사람을 감별하는 대원칙이다’라고 하였다.전국시대 위(魏)나라의 기틀을 잡은 명군 문후(文侯)는 위성자와 적황 중 누구를 재상으로 삼을지 고민하다가 이극에게 자문을 구하였다. 이때 이극이 재상을 감별하는 기준으로 제시한 것이 바로 위 5가지 덕목이었다. 결과는 위성자가 재상이 되자 적황은 이극에게 따졌다. 그러자 이극이 ‘위성자는 자신의 봉록 중 9할을 남에게 베풀어서 복자하, 전자방, 단간목의 세 현인을 초빙하여 임금께서 이 세 사람을 모두 스승으로 삼았다. 반면 그대가 추천한 사람들은 모두 신하로 삼았다. 그러니 그대가 어찌 위성자와 비교될 수 있겠는가!’라고 하니 적황도 승복하고 말았다. 사람이 지닌 인의예지의 덕성에 대한 신뢰는 공자와 맹자를 정점으로 지속적으로 내려온 유학(儒學)의 불문율이다. 이번 정부의 증폭 개각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건 조국 전 민정수석이 서울대에 복직 후 한 달 만에 다시 법무부 장관으로 발탁됐기에 ‘조국개각’이라고도 볼 수 있다. 하지만 후보자는 인사청문회의 검증과정에서 드러난 ‘사노맹’활동으로부터 대학복직의 ‘폴리페서’로 지탄을 받더니 강의 없는 방학기간인 8월 교수월급으로 수백 만원을 받아 챙김으로써 ‘무노동 유임금’ 논란에 휩싸였다. 후보자의 국회 재산 신고액은 무려 56억원으로 이 중 예금만 16억원이 넘는다. 더 큰 의혹은 후보자 가족이 운영하는 웅동학원을 둘러싼 채권채무의 소송관계, 사모펀드의 75억원 투자 경위, 증여세 미납부, 동생가족의 위장이혼, 후보자의 낙제한 딸이 받은 황제 장학금 논란과 논문 1저자 파문 등 수많은 의혹이 일고 있다. 이를 두고 ‘역시 가진 자들의 대입 준비는 다르다’라며 범죄형 특혜논란을 국민은 비웃고 있다.국민의 분노를 자아냈던 정유라 사건이나 숙명여고 쌍둥이 사건은 차라리 그 반칙 정도가 이 사건에 비해 약해 보인다. 청와대 공직인사 배제원칙인 5대 비리 이외에도 매일 새로운 의혹이 추가되고 일부 의혹에 대해서는 고발로 검찰의 수사가 시작되었다. 청와대의 이번 인사 기준은 도덕성을 기본으로 하고, 해당 분야 전문성을 우선 고려했다고 밝혔다. 만약에 인사청문회 결과를 무시하고 물욕과 권력의 탐욕에 찌든 이런 부적격자가 그것도 법무장관에 임명이 강행된다면 검찰 수사를 받는 현직 법무부 장관이라는 희대(稀代)의 기록이 불가피해진다. 결자해지의 정신으로 청와대가 지명을 거둬들임으로써 국민 앞에 스스로 밝힌 최소한의 인사원칙이라도 지키는 게 민주주의의 기본이다.

2019-08-26

포항의 광복축구

이순영수필가올해는 광복이 된 지 74년이 되는 해이다. 나라 잃은 서러움과 그로 인한 숱한 고통들에서 해방이 된 날이다. 삼십여 년 동안 참고 참았던 함성을 마음껏 터뜨렸던 바로 그날이다. 빼앗긴 나라를 되찾았으니 바닷물도 춤을 추고 산천초목도 춤을 추었으리라. 내 나라 내 땅에서 내 뜻대로 살 수 있는 자유를 찾았으니 그 감격을 어떻게 말로 할 수 있었으랴.70여 년 전, 포항 신광에 살았던 사람들은 그 울분을 토한 날을 잊지 않기 위하여, 또 다시 그런 억압의 시대를 당하지 않기 위하여 무엇보다도 단결이 필요함을 절실히 느꼈던 것이다. 1947년 8월 15일, 영일군(포항시 통합 전)을 대표하는 신광의 축구선수들이 중심이 되어 광복절을 기념하는 축구를 했다. 짚으로 새끼를 꼬아 공을 만들고 골네트도 새끼줄을 엮어서 만들었다. 선수들은 흰색바지·저고리를 입고 머리에는 흰 띠를 두르고 땀을 쏟아내며 공을 차기 시작했다.그러나 한국전쟁으로 축구를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전쟁이 끝난 후, 1954년 8월15일 축구는 다시 시작되었다. 어려운 여건임에도 불구하고 축구를 중심으로 지역민들은 한마음으로 뭉쳤던 것이다. 이후 25년 동안 그 맥을 이어왔으나 1980년과 1981년에 극심한 가뭄과 냉해로 축구를 개최하지 못했다. 이후 1982년부터 오늘날까지 해마다 광복절이면 운동장에 모여서 축구를 한다. 2019년, 광복 제74주년·신광면민 친선축구 제68주년을 기념하는 ‘광복 축구’가 성황리에 열렸다.8월13일 개막식을 시작으로 3일 동안 22개 마을에서 출전한 선수들이 경기를 거쳐 8월15일 결승전을 했다. 개막식을 한 날은 30도가 넘는 무더위에 내리쬐는 햇볕을 온몸으로 받으며 뜨거운 운동장에서 공을 찼다. 결승전을 한 날은 태풍 크로사의 영향으로 강풍을 동반한 비가 내렸지만 선수들은 비를 흠뻑 맞으며 빗물이 흥건한 운동장에서 공을 쫓아 힘껏 뛰었다. 더 놀라운 일은 각 마을마다 응원을 하러 나온 연로하신 분들이 운동장에 마련된 천막 아래에 가득히 앉아서 자리를 떠나지 않는 모습이었다.타지에서 고향을 찾아온 사람들은 마을사람들의 손을 잡고 안부를 물으며 정을 나누었다. 축구경기에서 승패는 문제 삼지 않았다. 져도 좋았다. 잘 했다고 마을사람들은 칭찬이 자자했다. 축구를 중심으로 팔씨름과 윷놀이를 하여 순위에 따라 상장과 트로피 및 부상이 수여되었다. 부상은 돼지고기다. 해마다 이 행사를 할 때 돼지 서른 마리 쯤을 잡는단다. 수상을 못한 동네는 상을 받은 마을에서 고기를 나누어 주기도 하여 신광면민 모두가 잔치를 연다.시상식이 끝난 운동장에서는 신명난 축제가 열렸다. 신광면에서 태어난 가수나 개그맨들이 고향에서 한바탕 신나는 마당을 펼쳤다. 풍물단을 앞세우고 난타·색소폰 공연에 이어 초대가수와 마을사람들의 노래자랑으로 운동장은 아주 흥겨웠다. 행운권을 추첨하여 자전거와 다양한 전자제품들이 선물로 그득했다. 남녀노소 모두 빗물에 젖고 땀에 젖어도 함께 즐거웠다.폭염주의보가 발표된 날에도, 태풍이 지나가는 날에도 음식을 장만하고 행사진행을 위해 동분서주하는 관계자들의 표정은 마치 어린아이 같았다. 포항시 북구 신광면에서 개최하는 대한민국 ‘광복축구’. 면면히 이어왔으며 또한 대대로 이어갈 것을 응원한다.

2019-08-26

솥이 점점 뜨거워지면 미꾸라지들이 두부 속으로 파고 든다

식자우환(識字憂患)이다. 어설프게 아는 게 차라리 모르니만 못하다. “추어탕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어?”라고 말한다. 정작 마지막에는 ‘나만의 추어탕’을 설명한다. ‘서울식 추어탕’ ‘호남식 추어탕’에 느닷없는 ‘원주 추어탕’도 나온다. 추어탕(鰌魚湯)과 추탕(鰍湯), 미꾸라지 튀김과 숙회(熟鱠)가 나오고, ‘통추’ ‘갈추’ ‘산초’ ‘초피’ ‘제피’가 등장하다가 마지막에는 “국산이 어딨어? 전부 중국산 양식이잖아!”로 허망하게 끝난다.추어탕은 두 종류다. ‘한양, 서울식’이 있고, ‘농촌형 지방 추어탕’이 있다. 한양식은 붉고 화려하다. 원래는 ‘통추’였다. 농촌형은 소박하다. 붉지 않고 맑다. ‘갈추’가 원칙이다. ‘통추’는 통미꾸라지, ‘갈추’는 갈아서 쓴 것이다.‘미꾸라지로 만든 음식’에 대한 가장 정확한 자료는 오주 이규경(1788~1856년)의 ‘오주연문장전산고’다. ‘인사편_복식류_제선(諸膳)’의 내용이다.추두부탕(鰍豆腐湯). 계곡의 진흙, 모래가 있는 물에서 미꾸라지를 잡는다. 많이 잡으면, 물을 담은 항아리에 넣어둔다. 하루 세 번 정도 물을 갈아준다. 5~6일 정도, 미꾸라지는 진흙을 토해낸다. 토해내는 진흙이 없어진 것을 확인한 후, 솥에 물을 붓고 크게 썬 두부 몇 덩어리를 넣는다. 솥의 물속에 미꾸라지 50~60마리를 넣는다. 솥 아래에 불을 때면 솥은 점점 뜨거워진다. 미꾸라지 무리는 열을 피해 두부 속으로 들어간다. 계속 불을 때면 솥이 끓으면서 미꾸라지도 익는다. 끄집어내서 썬다. 미꾸라지는 개개의 두부 속에 콕 박혀 있다. 참기름으로 지진다. 두부 전을 먼저 끓이고 메밀가루를 섞는다. 달걀 전(지단)을 얹는다. 이렇게 탕을 끓인다. 기름기가 넉넉하고 맛이 좋다. 이 탕을 요즘 한양의 반인(泮人)들이 즐겨 먹는다.흔히 이 내용을 추어탕에 대한 가장 상세한 자료로 이야기한다. 상세하다는 표현은 맞다. 오주가 기록한 ‘추두부탕’은 추어탕과 다르다. 추어탕은 오주의 시대에 처음 나타난 음식일까? 그렇지도 않다. 추어탕, 미꾸라지의 역사는 이보다 훨씬 길다.송나라 사신 서긍이 쓴 ‘선화봉사고려도경(고려도경)_제23권_잡속2’에 이미 미꾸라지가 등장한다.고려 풍속에 (중략) 가난한 백성은 해산물을 많이 먹는다. 미꾸라지[鰌], 전복[鰒], 조개[蚌], 진주조개[珠母], 왕새우[蝦王], 문합(文蛤), 붉은게[紫蟹], 굴[蠣房], 거북이다리[龜脚], 해조(海藻), 다시마[昆布]는 귀천 없이 잘 먹는데, 구미는 돋구어 주나 냄새가 나고 비리고 맛이 짜 오래 먹으면 싫어진다.‘고려도경’은 1123년에 편찬한 책이다. 오주의 시대보다 700년 이상 앞선다. 위 내용에 나오는 식재료들은 대부분이 해산물이다. 바다에서 나오는 것들은 채취가 힘들다. 굴이나 다시마, 작은 게 등을 많이 먹은 것은 이런 식재료를 좋아했기 때문이 아니다. 구하기 쉬웠기 때문이다. 미꾸라지도 마찬가지다. 바다 생선, 해조류보다 더 구하기 쉬운 것은 미꾸라지 같은 민물 생선이다. 가난한 백성들은 강, 하천에서 비교적 쉽게 구할 수 있는 민물 생선을 오래전부터 먹었다.우리는 미꾸라지를 오래전부터 먹었다. 음식으로, 구체적으로 기록하지 않았을 뿐이다.다산 정약용의 ‘목민심서_율기6조_칙궁’ 편에 나오는 내용이다.“(전략) 유관현(柳觀鉉)은 성품이 검약(儉約)하였다. 그는 벼슬살이할 때 성대한 음식상을 받고는, “시골의 미꾸라지찜만 못하다” 하였고, 기생의 노래를 듣고는, “논두렁의 농부 노래만도 못하다” 하였다.양파 유관현(1692~1764년)은 경북 안동 출신이다. 양파가 지은 ‘정재종택’이 안동시 임동면에 남아 있다. 양파가 비유로 든 것이 바로 ‘성대한 음식상’과 ‘시골 미꾸라지찜’이다. ‘시골 미꾸라지찜’은 가장 소박한 음식이었다. 양파의 미꾸라지찜은 경북 안동 산일 가능성이 크다. 미꾸라지 음식은 한반도에 흔하게 있었다.양파 유관현 뒤 시대 사람인 풍석 서유구(1764∼1845년)는 ‘난호어목지’에서 “(미꾸라지)살은 기름이 많고 살찌고 맛이 있으며 시골 사람은 이를 잡아 맑은 물에 넣어두고 진흙을 다 토하기를 기다려 죽을 끓이는데 별미”라고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풍석은 미꾸라지를 이추(泥鰍)라고 표기했고 한글로는 ‘밋구리’라 한다고 적었다.오주 이규경은 ‘추두부탕’을 그렸지만, 풍석은 농촌의 미꾸라지탕 혹은 미꾸라지 죽을 언급한다. 오주와 풍석은 같은 시대 사람이다. 풍석 서유구가 약 20여 년 앞선다. 두 사람 모두 실학자였고, 서민들의 풍습을 구체적으로 기술했다.오주가 설명한 ‘추두부탕’은 오늘날 서울식 추탕으로 진화한다. 풍석이 설명한 ‘밋구리 죽’은 오늘날 지방의 추어탕과 비슷하다. 오주는 당시 한양의 풍습을, 풍석은 시골 농촌의 추어탕을 그렸다.오주 이규경의 ‘추두부탕’은 상당히 화려하다. 이른바 ‘서울식 추어탕’의 모습이다.‘반인’들이 즐겨 먹는다고 했다. 반인(伴人)은, 성균관에서 일하는 천민 노비다. 신분은 노비지만 조선 말기 쇠고기 독점권 등을 확보하여 막대한 부를 손에 쥔다. 반인들은 성균관 부근의 폐쇄적인 ‘반촌(泮村)’에 살며, 자신들만의 폐쇄적인 커뮤니티를 만든다.성균관의 주요 기능은 교육과 공자 제사다. 공자 제사에는 반드시 귀한 쇠고기를 사용한다. 성균관 유생들에게도 일정량의 쇠고기를 공급했다. 과거를 통하여 언젠가는 국가를 경영할 귀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반인 중에는 천민 백정도 있다. 이들은 대성전 제사와 성균관 유생을 위한 쇠고기 준비 등을 도맡는다. 조선 후기, 이들은 한양의 쇠고기 유통에 참여한다. 반인들은 재물을 모았다. 재료가 넉넉한 ‘추두부탕’을 즐겨 먹었던 이유다. 두부, 메밀가루, 달걀 전 등은 귀한 식재료다. 오늘날 서울의 추어탕 그중에서도 ‘통추 추어탕’이 남은 이유다. 뿌리는 역시 오주의 기록에 나오는 ‘반인들의 추두부탕’이다.‘오주연문장전산고’가 발간된 100년 후. 일제강점기 경성에는 몇몇 추어탕 집이 문을 연다. ‘용금옥’ ‘형제추탕’ ‘곰보추탕’ ‘희망의집’ 등이다. ‘희망의집’은 오래전에 문을 닫았고, ‘곰보추탕’도 서너 해 전, 문을 닫았다. 1920년대 문을 연 ‘형제추탕’은 장소를 옮겨 운영 중이다. ‘용금옥’은 한 번 이사한 후, 꾸준히 영업 중이다. 1930년대 문을 연 서울의 추어탕 집들은 이제 80년의 업력을 넘겼다.서울 추어탕은 고명이 화려하다. 문을 닫은 ‘곰보추탕’의 조명숙 대표를 만난 적이 있다. “추어탕에 뭐를 넣느냐?”는 질문에 조 대표는 열여섯 가지의 고명, 재료 목록을 보여줬다. 쇠고기 양지로 국물을 내고, 두부, 유부 등을 사용한다. 나물 종류도 다양했다. 달걀과 버섯 등 귀한 식재료도 넉넉하게 넣는다. 두부나 유부 등을 사용하는 것은 ‘오주연문장전산고’의 ‘추두부탕’과 비슷하다.농촌 지역인 영, 호남의 추어탕은 서울식과 전혀 다르다.대구 ‘상주식당’의 추어탕은 단순하다. 얼갈이배추 등이 고명의 전부다. 간장으로 간을 잡는다. 대부분의 농촌형 추어탕은 된장을 풀어서 사용한다. 고춧가루를 쓰는 경우도 드물다. 서울식 추어탕이 고춧가루를 넣은 붉은색의 국물이라면 농촌형 추어탕은 우거지 등 채소잎 위주의 비교적 맑은 국물이다. 반드시 초피(산초, 제피)가루를 사용하는 것도 이유가 있다. 비린내를 잡지 못하기 때문이다. 서울식 추어탕은 국을 끓일 때 산초 혹은 생강 등을 사용한다. 더하여 고추의 매운맛으로 비린내를 잡는다.서울식 추어탕, ‘프리미엄 급 추어탕’은 한양의 반인들이 즐겨 먹었다. 농촌에서 미꾸라지 죽을 끓이면서 두부, 메밀가루, 달걀 등 여러 가지 재료를 준비하기는 힘들다. 육수를 내는 것도 힘들다. 논배미에서 간단하게 먹는 것은 역시 ‘미꾸라지+간단한 채소+된장’ 정도다. ‘통추’가 아니라 ‘갈추’를 선택한 것도 이유가 있다. 고명, 재료가 빈약한데 미꾸라지를 통째로 넣고 음식을 만들 수는 없다. 미꾸라지를 한번 삶은 다음, 부수면 살이 뼈에서 떨어진다. 곱게 부순 살을 모아서 국물에 넣는다. 대구 ‘상주식당’의 추어탕을 처음 보는 사람들이 “이게 추어탕이야? 추어탕에 미꾸라지가 없네”라고 하는 이유다.경북 예천의 ‘유정식당’은 변형된 농촌 추어탕이다. 색깔이 붉다. 추어탕이 아니라 미꾸라지 전골이다. 자연산 미꾸라지, 깻잎 등 채소를 넣고 푹 끓인다. ‘통추 전골’이다. ‘농촌형 추어탕’이 얼마간의 재료를 더한 ‘변형 미꾸라지 전골’로 진화했다. /맛칼럼니스트

2019-08-26

아름다운 세상을 바라본 순수의 음악 - 펠릭스 멘델스존

대문호 괴테(1749∼1832)는 “음악은 모든 예술 장르 중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다”라고 했다.하지만 음악가들에게는 음악이라는 예술의 형태에 늘 아쉬운 부분이 있었다. 그것은 음악에는 구체적인 형태가 없는 것이다. 지금은 음향을 저장하는 매체가 있어 음악을 재생하는데 문제가 없지만 과거에는 그렇지 않았다.음악은 연주가 끝나면 실체 없이 증발하는 존재였다. 지금은 주로 생략되어 연주되지만 소나타형식의 제시부가 반복되어 연주되는 것도 1주제와 2주제를 기억해 달라는 작곡가의 소망이었다. 생텍쥐페리(1900∼1944)의 소설 ‘어린 왕자’에서 “꽃이 아름다운 것은 지기 때문이다” 라고 했듯이 음악은 화려하게 피었다가 청중들의 마음속에만 남아있는 꽃과 같았다.음악에 구체적인 이미지를 도입하고 싶어 하는 소망은 ‘표제음악’에서 구체적으로 나타났지만 그 이전 ‘무지카 레세르바타’, ‘뮤직 페인팅’, ‘라이트 모티브’ 등 다양한 시도로 나타났으며 19세기 말에 와서는 ‘인상파 음악’으로 그 정점을 찍는다. 인상파 음악이란 쉽게 말해서 순간적인 영상을 음악으로 표현하려는 시도인데 19세기 말 영화가 발명되고 20세기에 유성영화로 발전하며, 구체적인 영상을 위해 음악을 작곡하게 되면서부터 음악의 형상화를 위한 노력들은 종지부를 찍게 된다.오늘 소개하고자 하는 작곡자는 펠릭스 멘델스존(J.L.F.Mendelsshon·1809∼1947)이다. 필자가 유년 시절 처음 접했던 멘델스존의 음악은 서곡‘헤브리데스(Die Hebridenop.26)’였다. 이 곡은 ‘핑갈의 동굴’이라고도 불리는데 이 음악은 구체적인 이미지가 느껴지는 곡이다. 거친 바람이 부는 푸른 바닷가에 물새가 날고 있으며, 안개 낀 해안으로 외로운 배를 타고 황량한 섬으로 다가서는 모습이 구체적으로 형상화되어 나타난다. 멘델스존은 실제 그림 실력이 뛰어나 훌륭한 풍경 수채화 작품들을 남기고 있으며 그 그림은 풍경의 어떤 특징을 나타내기 보다는 자연스럽게 선과 색의 조화를 추구한 작품들이다.그의 교향곡 제3번 ‘스코틀랜드(Scottish) op.56’도 이러한 회화적인 기법이 잘 표현된 곡인데 그의 나이 20세 때인 1829년 스코틀랜드를 여행하며 에딘 버러를 방문하게 되었는데 오래된 예배당에 들러 “나는 믿는다. 내 스코틀랜드 교향곡의 시작 부분을 발견했다….”라고 했다. 이 부분을 보면 멘델스존은 시각적인 느낌으로 악상의 영감을 받은 듯 하며 이 곡의 첫 부분을 들어 보면 그 예배당이 어떤 모습을 하였을지 구체적인 이미지를 떠올리는데 무리가 없다.멘델스존의 음악은 고정적인 음형이나 화음으로 이미지를 표현하려는 시도의 수준을 뛰어넘는 것이었으며 관현악에서 여러 악기의 조화로운 음색으로 자연스럽게 나타나기에 더욱 가치가 있다.멘델스존의 어린 시절은 모차르트나 베토벤처럼 고달프지 않았다. 전 유럽을 상대하는 은행가 집안에서 태어났으며, 그의 집안은 오케스트라를 운영할 정도로 부유하였고 가정에서 열리는 음악회에 참석하기 위해 철학가 헤겔, 시인 하이네, 작곡가 시포어, 훔멜 등 당대 예술의 거장들이 집에 자주 왕래하여 그들과 교류하며 당대 최고의 학문과 교양을 쌓았으며, 10살 무렵에 이미 정치가 케이사르나 시인 오비디우스의 책을 원어로 읽었으며 인문학뿐만 아니라 기하학, 수학, 지리학 등에서도 뛰어났다고 전해진다.멘델스존은 좋은 환경 뿐만 아니라 다양한 천재적인 지능과 재능을 타고 났으며, 모차르트의 어린 시절과 멘델스존의 어린 시절을 모두 겪은 괴테는 그 둘을 비교하며 “멘델스존에 비하면 모차르트는 혀 짧은 어린애에 불과하다”라며 그의 천재성을 극찬했으며 이러한 특징은 그의 극음악 ‘한여름밤의 꿈(Sommernachtstraum op.21,61-5)’에도 나타난다. 멘델스존은 17세에 셰익스피어의 ‘한여름밤의 꿈’을 읽고 깊게 감명을 받아 관현악 서곡을 작곡하는데 지금도 결혼식의 마지막 행진에 쓰이는 ‘결혼 행진곡(Wedding march)’이 포함된 전곡을 완성한 것은 17년 후인 그의 나이 34세 때이다.특이한 점은 극음악 ‘한여름밤의 꿈’ 전곡을 감상해 보면 다른 곡들과 서곡의 작곡 연차가 17년의 차이가 난다는 것이 느껴지지 않는다. 이 부분은 모차르트와 비교해 보면 매우 특이하다. 모차르트는 그의 17세 때의 음악과 30세 이후의 음악을 비교해보면 음악적인 내용이 매우 큰 차이가 난다. 음악사에서 가장 대표적인 천재 작곡가로 모차르트와 멘델스존을 꼽는다. 모차르트는 ‘음악의 신동’이란 별명을 가지고 있지만 멘델스존도 ‘19세기의 모차르트’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두 사람이 청소년기 이후 경험했던 세월의 격랑이 달랐다. 모차르트는 자신의 신분을 상승시키기 위해 끊임없는 노력과 좌절을 되풀이했으나 멘델스존은 이미 태생적으로만 귀족이 아닐 뿐 최고의 신분에 있었기 때문에 둘의 음악은 확연히 다른 것이다.멘델스존이 겪은 최고의 고난은 자기가 그토록 사랑했던 4살 위 누이인 파니 멘델스존을 잃은 것이었다. 둘은 수려한 외모도 닮았을 뿐만 아니라 음악적인 재능도 나눠 가졌다. 아니 오히려 누이인 파니 멘델스존이 더 나은 음악적 재능을 가졌다고 전해진다. 훗날 펠릭스 멘델스존은 “누이가 자신보다 더 훌륭한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였다”고 고백했으며, 나의 ‘칸토르(음악선생님)’라 부르며 따랐다고 한다. 파니는 평생 400곡에 이르는 작품을 썼다고 전해지는데, 당시의 사회 풍조는 여성은 음악을 취미로만 즐길 뿐 전문적인 작곡가가 될 수 없는 풍토였다. 멘델스존의 아버지는 “여자가 있을 자리는 살롱”이라며 음악의 길을 결코 허락하지 않았다. 결국 파니는 작곡가의 길을 포기해야 했으며 그녀가 썼던 6개의 가곡들은 동생의 이름으로 출판되기도 하였다. 이 가곡집에 실린 작품 중 동생의 작품보다 누이의 작품이 더 인기를 얻었다고 한다.멘델스존 남매는 음악의 동지이자 서로를 가장 잘 이해 해주는 친구이기도 하였다. 하지만 파니 멘델스존은 1847년 5월 피아노를 연습하다가 손에 감각이 사라지는 걸 느꼈고 그 날 저녁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누나가 죽은 6일 뒤 소식을 들은 멘델스존은 실신했으며 장례식과 추도식에도 참가하지 못하였다. 순탄하기만 했던 멘델스존에게는 큰 고통을 이겨낼 수 있는 내성이 없었는지, 이후 얼굴이 검게 변하는 등 늙고 등이 굽은 구부정한 모습으로 그의 모습이 추하게 변해 버렸다고 한다.사랑하던 누이가 죽은 6개월 후 그의 동생 펠릭스 멘델스존도 세상을 떠난다. 그의 나이 38세였다.멘델스존의 요절은 많은 안타까움을 준다. 작품도 뛰어났지만 음악사의 발전에 남긴 업적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그는 바흐(1685∼1750)의 ‘마태 수난곡’을 이름 모를 푸줏간에서 누렇게 변색된 채로 발견해 많은 준비를 거쳐 완성된 연주를 함으로써 잊혀졌던 바흐의 음악을 소환하였을 뿐만 아니라 20세의 이른 나이에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의 지휘자가 되면서 그 특유의 호기심과 도전정신으로 베토벤과 슈베르트 등의 숨겨진 작품들을 찾아내어 연주하였다.그리고 다른 작곡가와는 달리 그만이 물려받은 경제적인 능력으로 독일에서 가장 오래된 음악학교인 라이프치히 음악원을 설립한 음악 교육자이기도 한데 이곳은 쿠르트 마주어(1927∼2015), 레오시 야냐첵(1854∼1928) 등의 뛰어난 졸업생들을 배출해 낸 명문 학교이다. 또 환경이 좋지 않은 많은 음악가들에게 경제적으로 도움을 주었다고 한다. 모차르트가 35세에 일찍 죽지 않고 더 오래 살았더라면 더 많은 걸작을 남겼으리라 아쉬워하지만, 멘델스존의 죽음은 개인을 넘어서 음악계 전체에 큰 손실이었으며 그가 더 오래 살았더라면 잊혀졌던 더 많은 곡들을 발굴하고 외면당했을 음악가들이 빛을 보았을 것이다.멘델스존은 어렸을 때부터 “시간을 헛되이 쓰지 말아야 한다”는 가문의 율법을 몸에 익혔으며 평생토록 습관처럼 그렇게 살아간 사람이다. 그의 인생은 여러 가지 풍요로 가득 했지만 자만하지 않았으며 자신이 가장 사랑했던 음악을 위하여 무엇인가 가치 있는 일을 하고자 짧은 생이었지만 평생 동안 노력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의 음악에는 순수한 시선으로 신이 창조한 위대한 세상을 아름답게 바라보는 경외의 정신이 있다. /문양일 포항예술고 음악교사

2019-08-26

찬란하게 빛나는 분천역 산타마을

엄태항 봉화군수산타클로스는 아이에서 어른까지 전 세계인들이 사랑하는 전설의 대상이자 동경의 대상이다. 산타클로스는 남에게 베풀기를 좋아한 성 니콜라스의 미담을 17세기 아메리카 신대륙에 이주한 네덜란드인들이 산테 클라스라 불러 자선을 베푸는 전형으로 삼았다. 이 발음이 그대로 미국어화했고, 19세기 크리스마스가 전 세계에 알려지면서 착한 어린이들에게 선물하는 상상의 인물인 산타클로스로 변하게 된 것이다.산타클로스가 사는 마을은 노르웨이 오슬로를 비롯해서 전세계 여러 곳에 있으나 핀란드 로바니에미의 산타마을이 가장 인정받고 있다. 여기는 전 세계 어린이들이 보내온 편지를 12개 국어를 구사하는 비서들이 산타클로스를 도와 일일이 답장을 해주며 동심의 아이들에게 산타클로스를 기억하게 하는 서비스를 실시해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우리나라에도 매년 12월 25일 크리스마스가 되면 산타클로스를 떠올린다. 그러나 크리스마스 전후 며칠만 기억되고 다시 잊혀지고 있다. 봉화는 잊혀진 산타클로스를 되살려 지난 2014년 봉화군, 경북도, 코레일이 같이 동화 속에 나올 법한 산타마을 조성했다.분천 산타마을은 이름에 걸맞게 산타와 연상되는 다양한 인프라를 시설을 갖추고 있다. 눈썰매장, 산타레일바이크, 산타풍차방, 이글루터널 산타소원지, 루돌프 포토존, 산타 시네마 등의 특색 있는 시설과 2018년에는 산타우체국, 풍차놀이터를 새롭게 운영하면서 관광객들에게 동화 속 산타클로스 마을에 온 것 같은 신비스러운 광경을 선사한다. 산타마을 주변 향토음식점에는 곤드레밥, 산채비빔밥, 수수부꾸미, 메밀전, 봉화 전통막걸리 등 전통음식과 대추, 수수, 차조, 녹두, 호두, 산나물 등 지역주민이 직접 재배한 청정농산물을 저렴한 가격에 구입할 수 있다.지난 2015년부터는 한여름 산타마을도 운영해 무더위에 지친 관광객들에게 특색 있는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한여름 산타마을은 기존 산타마을에 싼타 슬라이드, 레일썰매, 안개분수 등 여름에 어울리는 각종 시설로 관광객들에게 한여름의 무더위를 날려버리는 색다른 기회를 제공했다. 봉화의 산타마을 시리즈는 총 414일간 78만5천명(1일 평균 1천896명)이 방문하며 수십억원의 파급효과를 거뒀다.관광봉화의 성공은 비단 산타마을에 국한되지 않는다. 먼저 한국관광 100선에 선정된 백두대간협곡열차가 있다. 2013년 4월 처음 개통한 백두대간협곡열차는 국내 최초 개방형 관광열차로 운행구간은 분천역을 시작으로 강원도 철암까지 오가고 있다.봄, 여름, 가을에는 백두대간협곡열차로 운행되지만 겨울에는 산타마을과 연계해 산타열차로 운행된다. 산타열차 내부에는 크리스마스와 겨울을 연상케 하는 각종 장신구들로 꾸며지고 승무원 역시 산타클로스 복장하고 손님을 맞이한다. 분천역∼승부역간 12km로 낙동강과 협곡, 철로를 따라 낙동강의 숨은 비경을 감상할 수 있는 최고의 힐링 트레킹 코스인 낙동강세평하늘길도 각광 받으며 매년 2만5천여명의 관광객이 찾고 있다. 이렇듯 예전에는 오지마을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던 봉화는 최근 들어 많은 관광객이 찾는 관광도시로 거듭나고 있다. 특히 분천 산타마을은 국내 겨울여행지 선호도 조사에서 매년 상위권을 유지했으며 지난 2016년 12월에는 한국관광 발전에 기여한 공을 인정받아 국내 최고 권위의 2016년 한국관광의 별에 선정되며 관광명소로 발돋움하고 있다.봉화지역 주민들은 이같은 성과를 관광객 여러분들의 큰 애정과 관심이 만들어낸 결과라 받아들이고 있으며 앞으로도 분천 산타마을의 대폭적인 인프라 확충과 특색 있는 체험 프로그램을 개발해 국제적인 겨울 관광지인 겨울왕국 체험랜드로 변모시켜 나가도록 힘을 모을 계획이다.아울러 봉화만의 특색 있는 관광자원을 잘 개발하고 발전시켜 제2, 제3의 한국관광의 별이 선정될 수 있도록 하고 이를 통해 전국을 넘어 전 세계가 인정하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관광도시로 거듭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

2019-08-25

멧돼지가 안긴 딜레마

강길수 수필가그놈만 아니었더라면, 오늘같이 무더운 날은 집에서 찬 수박이라도 나누며 티브이 보는 게 제격이다. 한데 사는 게 무엇인지 아내도, 나도 의기투합이라도 한 듯 주섬주섬 도구들을 챙긴다. 지난 주말, 텃밭에서 만난 처참한 광경이 눈앞에 아른거려 현관을 나설 수밖에 없다.차를 굴다리 밑에 세우고, 필요한 것들을 챙겨 텃밭으로 간다. 많이 궁금했던 고구마 이랑으로 먼저 가 본다. 지난번 왔을 때, 멧돼지가 다 파 해쳐 잎은 마르고 샅샅이 젖혀진 뿌리에는 새알 고구마 하나도 달린 게 없었다. 사람이 팠던 땅을 어찌 아는지, 고구마 줄기나 파뿌리를 심었던 자리는 모두 패여 있었다. 울며 겨자 먹기로 다시 심어 물까지 주었었다. 새로 심은 고구마를 또 옹골지게 모두 파 뒤집었다. 비록 늦을지라도, 줄기와 잎은 따 먹을 수 있을 거란 희망으로 심었던 고구마다.너무 무참히 유린당한 모습이, 보기 싫었던 아래쪽 옥수수 이랑으로 발길을 돌린다. 혹시 작은 옥수수 한통이라도 화를 면했나 싶어, 자세히 살펴봐도 깡그리 아무것도 없다. 옥수수 알 뿐 아니라, 이삭도 통째 몽땅 먹어 치웠다. 대는 다 부러지고, 찢어지고, 넘어지고, 뽑히고, 짓이겨져 폭삭 내려앉았다.먹이사슬의 잔인함이 여지없이 드러난 텃밭의 모습이 내 초심을 흔들었다. 재작년과 작년에는 고라니만 출몰했었다. 고라니는 어린 옥수수를 뜯어먹는 데 그쳤었다. 그때만 해도 ‘그래. 우리가 농사 전업도 아니고, 시간 소일거리로 작게 시작한 텃밭 가꾸기이니 노지재배를 고수하자. 삭막하고 각박하게 울타리 치지 말고, 자연에 맡기자. 명색이 환경 분야에 오래 일했지 않은가. 생태계 먹거리는 모든 생명이 나누어 먹으라고 주어지는 것이니까’라고 마음먹었다. 이런 뜻에 아내도 암묵적 동의를 했었다.가끔 고향에 가면 동생은 야생동물 특히, 멧돼지의 횡포로 농사짓기가 정말 어렵다고 토로한다. 고구마 같은 작물은 한해 농사를 폐농(廢農)하는 농가도 많단다. 피해 현장을 목격하지 못한 나는, 그 걱정을 피상적으로 듣곤 했다. 하여, 농민들이 자구책으로 공기총이나 올가미, 덫을 써야 한다는 주장에 동의하지 못하였다. 반면, 작은 우리 텃밭의 수난현장을 겪는 마음이 착잡하고 헷갈린다. 사람의 입장과 멧돼지의 상반된 입장이 가슴속에서 충돌하기 때문이다.사람들은 논밭에 울타리나 망을 치거나 과도한 농약을 쓰는 등, 자기들만 먹으려 섭리에 도전하고 있다. 때문에 동물들도 살기 위해, 인간에게 응전(應戰)이라도 하여 예전보다 더 깡그리 농작물을 해하는 걸까. 나무만 무성하여, 산야의 먹이 환경이 예전만 못해 야생 먹이가 부족해졌단 말인가. 아니면, 멧돼지를 포함한 야생동물들의 개체 수가 늘어났기 때문일까.야생 짐승들로 부터 농작물 피해를 보는 농민들은, 동물 보호론자나 환경운동 단체들의 행태나 당국의 탁상행정에 분개한다. 현장을 너무 모른다는 것이다. 농촌 출신으로 도회에 살며 환경 분야에서 오래 일한 나도, 뾰족한 수가 떠오르지 않는다. 그러지 않아도 기후변화로 지구촌 모든 생명의 지속성이 위협받는 상황에서, 인간과 다른 생명과의 먹을거리 쟁탈 갈등은 어떻게 수습해야 할 것인가. 딜레마다.웰빙 붐과 로하스 운동, 슬로시티 운동 같은 움직임들이 구미(歐美)를 중심으로 있지만, 아직 지구환경 전체의 개선을 이끌어 나가기에는 역부족으로 보인다. 인간은 역지사지(易地思之) 정신이 있기나 한 것일까. 그린란드의 빙하가 삼십 년 만에 거의 다 녹았다는 미국 나사(NASA)의 발표를 뉴스에서 보았다. 북극얼음이 곧 다 녹아, 선박의 북극항로도 열릴 것이란 보도도 있다. 열린 북극항로가 인간과 지구촌에 축복이 될지, 재앙으로 닥칠 것인지는 가히 짐작이 가는 문제다.인간과 함께 살아가야 할 생태계의 많은 생명이 하나, 둘 멸종의 길로 가고 있음도 이미 밝혀진 바다. 멧돼지와 야생생물들은 이 미증유의 사태를 본능으로 느끼고, 우리 인간에게 도전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생태계에 점철된 먹이 갈등 딜레마를 풀어낼, 솔로몬의 지혜는 정녕 없는 것인가.

2019-08-25

‘후흑학’

청나라 말 이종오가 쓴 ‘후흑학(厚黑學)’은 지금도 중국에서는 잘 팔리는 책 중 하나다. 후흑은 면후심흑(面厚心黑)의 줄인 말이다. 얼굴은 철면피처럼 두껍게, 마음은 음흉하게 하여 철저히 자신을 숨겨야만 성공할 수 있다는 뜻이다. 계산되지 않은 감정 노출은 하수의 짓이다.후흑은 난세를 극복하는 일종의 처세술이다. 법치나 순리를 숭상한 중국의 전통 사상과는 배치되는 생각이지만 실용적 측면에서 공감대가 적지 않다. 자신의 출세를 위해서는 조직이나 사람을 바꿔도 배신이 아니고 부끄러운 일도 아니라고 한다. 승자의 역사를 만드는 것은 뻔뻔함과 음흉함에 있다고 가르친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선 비굴해도 상관이 없고, 욕을 먹어도 상관이 없다. 대의명분을 쫓다 패가망신하는 것보다 살아남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사상이다. 삼국지의 조조와 유비가 대표적으로 후흑한 인물이며 손권과 사마의, 모택동도 그러하다고 했다. 중국 역사 속의 영웅호걸 치고 후흑하지 않은 사람은 없다는 설명이다.날로 치열해지는 경쟁 사회 속에서 ‘후흑학’은 현실적 실천 방법으로 많은 사람의 공감을 얻는다. “천하를 알려면 ‘삼국지’를 읽고 천하를 얻으려면 ‘후흑학’을 읽으라”는 말이 나올 정도라 한다.그러나 난세를 극복하는 방법으로 후흑의 기술만 잘 익힌다고 성공의 열쇠를 거머쥐는 것은 아니다. 세상에는 순리라는 자연의 이치가 있기 때문이다. 좋은 수단이 된다고 선과 악을 구분하지 못하면 결과는 불행해진다.각종 의혹 제기로 조국 법무부장관 후보자에 대한 국민의 비난 여론이 비등하다. ‘후흑학’에서는 역사의 승자는 사리사욕이 없어야 선한 결과를 얻는다고 했다. 청문회를 떠나 조 후보자의 정의롭지 못한 삶이 논란의 핵심이다. 덩달아 그의 정치 생명이 달렸기에 더 관심이 간다. /우정구(논설위원)

2019-08-25

‘가짜뉴스’의 두 얼굴

안재휘 논설위원‘뇌송송 구멍탁’이라는 조어(造語)는 2005년 제작된 ‘파송송 계란탁’이라는 오상훈 감독의 코미디영화의 제목에서 따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조어는 지난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 타결 이후 퍼진 핵폭탄급 선동 구호였다. MBC ‘피디수첩’의 잇따른 보도로 촉발된 논란과 이 선동 구호에 현혹된 뭇 시민들이 ‘100만 촛불대행진’ 등 반정부 시위에 동원됐었다.대법원은 ‘언론자유’ 영역을 침범하는 과도한 기소를 일축하면서도 MBC로 하여금 지나친 ‘가짜뉴스’에 대해서는 공개사과하도록 징벌을 내렸다. ‘가짜뉴스’에 휘둘린 당시 이명박 대통령의 무력함에 대한 비판도 있다. 무엇보다도 의아한 것은 지금껏 광우병 발병이 없다는 사실이다. 세월호 침몰 사건 이후 박근혜 대통령에 대해서는 또 어땠는가. 무자비하게 양산됐다가 확인이 여전히 안 된 채 묻혀가고 있는 ‘가짜뉴스’들은 가늠조차 어렵다.두말할 필요도 없이 ‘가짜뉴스’는 결코 용납돼서는 안 될 병폐다. 단 한 번의 그 음흉한 장난질로 누군가 일생을 망치기 일쑤요, 때로는 한 나라가 치명적인 혼돈에 빠지거나 퇴행할 수도 있다. 세계 각국은 ‘가짜뉴스’에 대응하기 위해 골머리를 앓는다. 싱가포르는 ‘가짜뉴스 대책위원회’를 만들어 운용한다. 독일에서는 ‘가짜뉴스’방치 소셜 미디어 기업에 최고 5천만 유로(669억여 원)의 벌금을 물리는 법안이 시행 중이다.그런데 ‘가짜뉴스’라는 말을 전혀 다른 개념으로 써먹는 지도자들이 등장하고 있다. 그 대표주자는 바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다. 그는 자신에게 불리한 뉴스를 모조리 ‘가짜뉴스(Fake news)’라고 몰아친다. 미국의 정치학자 조셉 나이는 최근 자신의 칼럼에서 올들어 6월 1일까지 트럼프 대통령은 3천259건의 거짓을 말했다고 썼다. 참으로 흥미로운 기록이다. 그의 인식체계에 있어서 ‘가짜뉴스’의 정의는 ‘마음에 안 드는 비판’ 정도로 변질된 게 아닐까 싶다.우리나라에도 유사한 사례가 있다. 노무현 대통령은 보수 언론들의 공격에 맞서 언론을 ‘불량상품’으로 규정하고, 불매운동 등 정부 부처의 적극 대응을 독려했다. 스스로 언론을 고소하는 일도 주저하지 않았다. 작금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에 대한 논란이 가히 쓰나미 수준이다. 그와 그 가족에 대한 의혹이 보편적인 국민 정서와 정면충돌하는 양상이다. 그러나 조 후보는 물론, 청와대와 민주당은 모든 의혹 제기를 ‘가짜뉴스’로 몰아 때린다.법무부는 ‘가짜뉴스’ 제작 및 유통 행위를 강력 단속할 방침을 거듭 밝히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할 대목은 이 정부에 과연 순정한 의미의 ‘가짜뉴스’를 정의롭게 가려낼 신뢰성이 있느냐 하는 부분이다. 정부 정책에 대한 반대를 매국행위로 매도하는 한 또 다른 통제 시도는 위험하다. 느리고 힘들더라도 제대로 된 ‘진짜 뉴스’로 ‘가짜뉴스’를 밀어내는 게 맞다. 불편한 뉴스를 ‘가짜뉴스’라고 모함하는 ‘가짜뉴스’가 더 사악한 범죄다.

2019-08-25

다산(茶山)의 독서법, 초서(抄書)

김현욱 시인여름휴가 동안 정독(精讀)하고, 초서(抄書)한 책 목록은 다음과 같다. 염은열 교수의 유배, 그 무섭고도 특별한 여행, 정민 교수의 한밤중에 잠이 깨어, 김윤규 교수의 다산, 장기 유배 문학 산책, 이상준 향토사학자의 영일 유배 문학 산책, 김옥애 작가의 봉놋방 손님의 선물, 정찬주 작가의 다산의 사랑, 박석무 교수의 다산 정약용, 유배지에서 만나다, 이소정 작가의 우리 조상의 유배 이야기 등이다.염은열 교수의 유배, 그 무섭고도 특별한 여행에 나오는 조선판 오렌지족, 대전별감 안도환의 유배 이야기가 흥미진진했다. 한양의 밤(?)을 주무르던 안도환이 조선의 3대 유배 섬 중 한 곳인 추자도로 유배되어 온갖 고초를 겪는 모습에 몇 번이나 웃음을 터뜨렸는지 모른다. 안도환이 지은 유배가사 만언사는 요즘으로 치면 베스트셀러였다. 안도환의 유배 이야기가 드라마나 영화로 만들어진다면 제법 인기가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김옥애 작가의 봉놋방 손님의 선물은 다산이 강진 주막 봉놋방에서 중국 주흥사가 지은 천자문 대신에 아학편이라는 교재를 손수 만들어 제자들을 가르친 이야기다.책을 읽다가 모르는 것이 나오면 밑바닥까지 다 캐내는 독서법이 정독이라면, 필요한 것을 가려 뽑아 따로 정리하는 독서법을 초서라고 한다. 다산은, “책을 초록(抄錄: 글이나 문장 따위에서, 필요한 대목만을 가려 뽑아 적음. 또는 그 기록)해 적는 것은 한 모서리를 들어 세 귀퉁이를 뒤집는 방법”이라면서, 아들 학유에게, “기왕 닭을 기른다면 모름지기 백가(百家)의 책 속에서 닭에 관한 글들을 베껴 모아 차례를 매겨 계경(鷄經)을 만들어보는 것도 좋겠다”라고 당부했다.여름휴가 동안 읽은 책들의 공통점은 ‘다산’과 ‘유배’, ‘경상도 장기’였다. 다산이 경상도 장기에 220일 동안 유배되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1801년 3월 9일, 다산은 경상도 장기에 도착한다. 장기에 머물던 220일 동안 다산은 130수의 시와 이아술, 기해방례변, 촌병혹치 등의 책을 남긴다. 특히, 인간 정약용의 면모를 엿볼 수 있는 130수의 시는 경상도 장기만의 소중한 자산이다.다산이 아들 학유에게 시켰던 것처럼, ‘다산’과 ‘유배’, ‘경상도 장기’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여러 책에서 필요한 문장과 구절, 낱말, 유배 정보 등을 220일이라는 공책을 만들어 따로 정리했다. 시간과 공간으로 목차를 만들어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고 보니 “한 모서리를 들어 세 귀퉁이를 뒤집는 방법”이라는 다산의 말이 무슨 뜻인지 알 것 같았다.사람은 누구나 ‘첫-’을 잊지 못한다. 다산에게 경상도 장기는 첫 유배지였다. 요즘으로 치면 청와대 비서실에서 근무하다가 하루아침에 죄인이 되어 유배를 온 신세였다. 다산의 인간적인 모습을 경상도 장기에서 만날 수 있다. 그 옆에 한 소년이 있었을 것이다. 다산의 경상도 장기 유배 동화 220일은 다산의 독서법, 초서 덕분에 그 뼈대를 점차 잡아가고 있다.

2019-08-25

와다 하루키의 한일 문제의 참된 해법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와다 하루키(和田春樹)는 1938년 오사카에서 태어나 1960년 도쿄(東京)대학 서양사학과를 졸업했다. 1966년부터 도쿄대학 교수로 재직했으며 1998년에 정년퇴임했다. 러시아사와 북한 현대사 연구에 뛰어난 업적을 남겼으며 학자로서의 활동뿐 아니라 베트남전 반대 운동, 한국 민주화운동과의 연대 등 행동하는 진보 지식인이다. 2010년 제4회 후광 김대중 학술상, 2012년 DMZ 평화상을, 이번에는 만해평화상을 수상했다. 저서로는 ‘김일성과 만주항일전쟁’ ‘북조선: 유격대국가에서 정규군국가로’‘러일전쟁과 대한제국’등이 있다.그는 지난주 ‘한국은 일본의 적인가?’라는 화두를 통해 일본 아베 정권의 한국에 대한 무역 보복 조치를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 그는 벌써 일본인 8천명 이상이나 서명을 받았는데 그중 3천500명이 그 사유까지 밝히면서 서명을 했다고 한다. 그는 ‘일본 정부가 한국에 대하여 사과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우리로서는 반길만한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우리가 아베의 횡포에 대해 노 재팬(No Japan)이 아닌 노 아베(No Abe)를 외쳐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일본에는 우리와 뜻을 같이 하는 양식 있는 국민이 상당히 많다. 아베 정권이 극우 정치와 헌법 개정을 통한 패권 국가 지향을 반대하는 국민이 많다는 뜻이다.이런 상황에서 하루키 교수의 주장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상당히 크다. 그는 1965년 한일 협정은 정치적 타협의 산물로 그 정당성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협정 체결 시 일본 정부는 1910년 한일 병합을 정상적 합의로 보았지만 우리 한국은 부당한 강제 병합이라는 입장이었다. 그러므로 그는 일본이나 한국 학자들의 ‘식민지 근대화론’에는 매우 비판적인 입장을 견지한다. 일제 시 일본의 교육이나 산업 투자는 조선 근대화의 촉진제가 아니라는 입장이다. 그는 일제의 식민지 교육은 조선의 동화, 말살 정책이며 한국인들에게 큰 문화적 정신적 상처를 남겼다는 것이다.그는 1993년 위안부 문제에 관한 고노(河野)담화나 1995년 식민지 지배를 사과한 전 총리 무라야마 도미이치(村山富市) 담화를 적극 지지하는 입장이다. 최근 일본의 경제 제재의 빌미가 된 강제 징용의 개인의 청구권 요구도 정당하다는 것이다. 그는 종군 위안부가 1명도 없었다는 일본의 주장은 일본 보수층에서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당시 전시 종군위안부는 다양한 경로로 모집되었으며 일본군의 강제성은 인정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당시 군 위안소는 강간 센터의 역할을 했으며 군의 강제성 인정은 상식이라는 것이다.그는 경색된 한일 관계의 해결책으로 아베의 대한(對韓)정책부터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양식 있는 양국 국민 사이의 유대가 강화되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양식 있는 양국의 시민단체의 연대와 협력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것이다. 사실 한국인 강제 징용자 보상 문제도 일본의 양식 있는 변호사들이 동참하여 한국 대법원의 승소를 이끌었다. 와다 하루키 교수는 ‘정권은 일시적이지만 국민관계는 영원하다’는 말을 남겼다. 우리도 한일관계의 경색된 국면을 풀기 위한 양국 시민 연대가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다.

2019-08-25

종(Bell)을 울리는 종(Servant)의 삶

이문재 시인은 말합니다. “우리가 무심코 땅바닥이라고 말하는 곳은 사실 하늘의 바닥이다. 땅바닥은 없다. 땅바닥은 땅의 머리다. 거의 무의식에 가까운 인간 중심주의가 땅의 정수리를 땅의 바닥이라고 명명한 것이다. 우리는 땅바닥이 아니라 땅의 정수리를 함부로 밟고 있다.”그의 대표작 ‘농담’을 아시지요? 문득 아름다운 것과 마주쳤을 때 / 지금 곁에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 떠오르는 얼굴이 있다면 그대는 / 사랑하고 있는 것이다. 그윽한 풍경이나 / 제대로 맛을 낸 음식 앞에서 / 아무도 생각나지 않는 사람 / 그 사람은 정말 강하거나 / 아니면 진짜 외로운 사람이다. 종소리를 더 멀리 보내기 위해서 / 종은 더 아파야 한다.강하거나 외로운 사람은 많은 것을 움켜쥐기 위해 더 높은 곳에 오르기 위해 나다움을 포기하고 세상의 각본에 휘둘려 앞만 보고 달리는 사람인 것이지요. 3연은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듭니다. 왜 갑자기 종이 나오는 것일까? 산뜻한 내용 전개에 감탄하며 고개 끄덕이다가 눈동자를 커지게 만드는 것이 3연입니다. 속도 지상주의에서 벗어나 사랑으로 충만한 삶으로 회복을 위해서는 아픔을 이겨내야 한다는 것을 시인은 일깨웁니다.몸을 붓 삼아 언어를 남기는 사람들은 땅바닥이라 부르지 않고 지구의 정수리라 여기며 생태계를 지켜내려 안간힘 쓰는 반항아들입니다. 종메가 자신을 힘껏 내리쳐 아름다운 울림을 만들어 낼 때, 그 아픔을 견디는 이들입니다.시인 정현종은 종메를 생각합니다. 종의 아픔보다 더 진한 종메의 아픔을 매일 같이 견대내며 삿된 생각들을 아침마다 잘라내고 밀어낼 때 비로소 우리 몸은 붓이 되는 모양입니다.종이 되어 아름다운 울림을 세상에 보내기 위해, 더 깊고 충만한 소리를 내기 위해 하늘 바닥 저 아래 종(servant)의 자리까지 낮아져야 함을 깨닫습니다./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대표

2019-08-25

‘조국 지키기’ 어려운 이유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국회가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야단법석이다.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는 문재인 정부 초대 민정수석으로서 검사출신이 아닌 학계인사로서 민정수석을 맡아 문 정부의 사법개혁을 이끌어온 주역이다. 그런 조국 전 수석이 사법개혁을 마무리할 법무부 장관 후보자로 국회 인사청문회 무대에 올려지자 야당인 자유한국당의 집중포화 공세가 이어지고 있다.여의도 정치권 인사들은 최근 만나기만 하면 ‘정부여당의 조국 지키기가 과연 성공할까’에 대해 궁금해한다. 문 대통령이 조국 후보자에 대한 신임이 아직도 두터운 데다 이 정부의 근간을 이루는 세력들과 공동보조를 맞춰온 조국 후보자를 법무장관에 안착시키는 일이 사법개혁을 완성하는 지름길이란 점에서 임명강행할 것이란 전망이 많았다.하지만 조국 후보자의 딸 입시부정에 대한 의혹이 터져나오면서 정부여당의 조국 지키기가 성공하기 어려워졌다고 본다. 세가지 이유를 들 수 있다. 그 이유의 첫째는 본인이 ‘정의’‘공정’으로 대변되는 가치를 주장해놓고 정작 자신의 주변에 대해서는 그렇게 행동하지 못했다는 게 여실히 드러났기 때문이다. 둘째는 최순실의 국정농단사태에서 보듯이 최순실의 딸 최유라의 부정입학이 문제가 되자 결국 최유라의 이화여대 학위가 취소된 전례에서 보듯 자녀들에 대한 입시부정에 대해서는 국민정서가 용납하지 않는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미 항간에는 ‘조유라’나 ‘조로남불’이란 말이 떠돌만큼 조 후보자 딸의 부정입학 의혹에 대한 국민적 공분이 일어나고 있다. 셋째로는 촛불집회로 정권을 잡은 문재인 정부가 자칫 촛불집회에서 퇴진압력을 받을 수 있는 단초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고려대 학생들은 23일 학교 측에 조씨의 학위 취소를 촉구하는 촛불집회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한다. 현재까지 집회에 동참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학생만 2천명에 이른다. 정치권에서 동원한 사람들이 아닌 순수한 대학생들의 촛불집회에서 정부가 지탄을 받는다고 생각하면 그런 압박을 버티고 입각했다해도 법무장관으로 제 역할을 해낼 수 있을까 의문이다.문재인 정부는 이미 16명의 장관급 인사들을 야당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임명강행한 바 있다. 그렇다해도 현 정부가 여론이 어떻든 정권이 바라는 인사를 임명강행할 것이란 선입견을 갖게하는 것 역시 좋지 않다. 정부가 국민의 뜻이나 여론을 깡그리 무시한다는 인상을 줘서 좋을 게 없기 때문이다. 아울러 조국 후보자가 문재인 정부에 어떤 공적을 세워 문 대통령이 그리 신임하는 지는 모르겠으나 조 전 수석이 민정수석으로 있을 당시 여러 차례 “인사검증에 실패했다”는 이유로 야당의 사퇴압박을 받았던 것 역시 간과할 일이 아니다. 또한 사법개혁의 틀을 그린 공은 있을지 모르되 이번 사태로 정작 사법개혁을 제대로 실행할 동력을 잃어버렸다고 봐야한다는 분석도 있다.돌직구 발언으로 명성(?)이 높은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는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를 둘러싼 논란에 대해 “조국 딸이 시험 한번 안 보고 외고, 고대, 부산대 의전원 간 것에 분노하는 민심을 보면서, 한국 사회를 이렇게 만든 정치인들에게는 분노하지 않는 민심을 보고 한편으로 놀랍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홍 전 대표는 “한국 사회 기득권층, 특권층 자제들의 신분 세습 수단을 어디 조국 딸만 이용했겠느냐”며 “잘못된 제도를 이용하여 병역회피를 하는 사람이 어디 조국 아들만 있겠느냐”고 사회지도층을 싸잡아 질타했다. 그러나 필자로서는 한 대학생이 “누군가는 말 위에 올라탔고 누군가는 페이퍼 위에 올라탔지만 내가 올라탔던 건 부모님의 등이 아니었나 싶어 잠을 설쳤다”고 내쉰 탄식이 더욱 가슴아프게 느껴졌다. 평범한 서민들의 자녀들과 부모들 가슴에 못을 박은 ‘조국 지키기’는 더 이상 안 된다.

2019-08-22

감나무 예찬

예로부터 감나무를 문무충효절(文武忠孝節)의 나무라 예찬했다. 잎이 넓어 글씨 연습하기에 좋아 문(文)이 있고 나무가 단단하여 화살촉 재료가 되기에 무(武)가 있다고 했다. 열매의 붉은색이 겉과 속이 다르지 않아 표리가 부동치 않아 충(忠)이 있으며, 노인이 치아가 없어도 홍시를 먹을 수 있으나 효(孝)가 있다고 했다. 서리가 내리는 날까지 열매를 맺으니 이것이 절(節)이다.중국의 한 문헌에서는 감나무의 일곱 가지 좋은 점을 기술했다. 첫째 수명이 길다. 둘째는 좋은 그늘을 만든다. 셋째 새가 둥지를 틀지 않고 넷째는 나무를 파먹는 벌레가 생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다섯 번째는 가을 단풍이 아름답고 여섯 번째 열매가 맛있다고 했다. 마지막 일곱 번째는 낙엽이 훌륭한 밑거름이 된다고 했다. 감나무는 여러모로 쓸모가 많다는 뜻이다.경북 상주시는 삼백(三白)의 고장이다. 쌀과 누에, 곶감이 유명해 붙여진 이름이다. 그 중 가장 유명한 것은 단연 곶감이다. 전국 생산량의 약 65%를 차지한다. 연간 7천t의 곶감을 생산하며 경제적 효과가 2천억원에 달한다고 한다. 상주가 곶감으로 유명해진 배경에는 상주에서 재배되는 감나무의 재질이 곶감하기에 적합하기 때문이다. 타닌 함량이 많은 대신 물기가 적어 곶감 재료로 매우 훌륭하다. 조선시대 예종 때는 임금에게 진상할 만큼 최고의 품질로 손꼽혔다.곶감은 감의 껍질을 벗겨 건조시킨 것으로 쫄깃한 식감에 달콤한 맛이 특징이다. 겨울철이 제철이다. 추운 겨울날 변변한 간식거리가 없었던 시절에 훌륭한 영양 간식으로 서민의 위안이 된 먹거리다.상주에는 수령 750년 된 감나무가 있다. ‘하늘아래 첫 감나무’로 명명된 보호수다. 상주시 외남면 소은리에 있는 이 나무는 긴 세월의 풍파에도 아직 가을철이 되면 감이 주렁주렁 열린다.상주시가 감 농업 분야의 유구한 역사성을 바탕으로 전통 감 농업을 ‘국가중요농업유산’으로 지정해 줄 것을 정부에 요청했다고 한다. 각 지역이 보유한 농업관련 자원 중 보존의 가치가 현격히 뛰어날 때 국가가 인정하는 제도다. 상주 감 농업의 우수성이 드디어 빛을 발할 때가 온 것 같다./우정구(논설위원)

2019-08-22

임팔 전투의 기억

일본군 최악의 전투 가운데 임팔 전투라는 것이 있다. 태평양 전쟁이 끝나가던 무렵 일본이 기울어가는 전세를 만회하고자 한 것이다.때는 1944년 3월부터 7월까지. 장소는 지금 미얀마에서 인도 쪽으로 넘어간 곳. 일본군은 태평양 전쟁 개전 초기에 싱가포르를 3개월만에 함락시키는 등 영국군을 손쉽게 밀어붙인 기억이 있었다. 태평양 일대에서 미군에게 밀리고 밀리던 끝에 생각해낸 전세 역전 방법이 미얀마 쪽에서 성공을 거두자는 것이었다. 그런 연장선에서 영국군이 주둔해 있던 임팔을 공략해서 인도 쪽으로 진격해 들어가자는 발상을 한 것이다. 하지만 이 전투는 일본군의 지옥이었을 뿐 아니라 전쟁이 얼마나 끔찍한가를 인류에게 깨우친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이 임팔 전투에 관해 NHK에서 만든 다큐멘터리가 있다. 중일 전쟁의 장본인으로 성공을 거둔 무다구치라는 일본 장군이 이 전투 계획을 적극적으로 밀어붙였다고 했다. 병참 부분을 고려한 어떤 보좌관이 극구 반대했지만 무다구치는 그를 전격 좌천시키면서 전투 작전을 감행했다.일본군이 주둔하던 곳에서 임팔까지는 줄잡아 470킬로미터 정도. 폭이 600미터에 달하는 친드윈 강을 넘어 야포 같은 것을 수레에 싣고 둘러메고 산맥을 넘어가야 하는 끔찍한 행군이 기다리고 있었다. 다큐멘터리에 대한 기억이 맞다면 말이다.보급에 신경 쓰지 않는다는 것은 먹을 것이 떨어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무슨 생각으로 그런 무지막지한 짓을 벌였는지 몰라도 무다구치의 병사들은 임팔에 다 가지도 못하고 식량 부족에 시달렸고 나중에는 무기들마저 짐스럽게 변해 버렸다. 내 기억에 따르면 공격을 시도하기는 했던 모양이지만 이미 영국군은 개전 초기의 영국군이 아니었다.다큐멘터리는 3만명의 절반 이상의 병사들이 어디서 어떻게 죽어갔는지에 대한 기록을 점으로 찍어 살폈다. 이 점들은 이 전투 기간에 죽음을 당한 병사들의 절반 이상이 전투에서가 아니라 후퇴하면서 변을 당했음으로 보여준다. 추격해 오는 영국군에 쫓기던 일본군은 먹을 것이 없어 나중에는 멀쩡한 자들이 부상병을 ‘잡아먹으면서’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것도 대부분의 죽어간 군인들은 일반 사병들이었고, 장교들은 그나마 식량 같은 것을 최후까지 차지한 덕택에 많이들 살아남았다고 하던가.요즘 왜 이 임팔 전투가 자꾸 생각나는지 모르겠다. 아베 같은 이들은 자기 신념에 정신 팔린 나머지 자신이 추종하는 그 군국주의 망령들이 일본 국민을 어떻게 죽음으로 몰아넣었는지, 아시아 각국의 사람들을 얼마나 끔찍한 고통에 시달리게 했는지 전혀 알지 못한다. 그가 벌이는 한국을 향한 ‘경제 전쟁’이라는 것을 보면서 생각한다. 그는 대일본의 재흥을 꿈꾸고 있는지 모르지만 과거를 겸허하게 성찰하지 못하고 교훈을 얻지 못한 채 성급히, 자신의 의지만으로 전세를 바꾸려 한다면, 그를 기다리는 것은 일본의 경제적 쇠락이자 일본인들의 고통뿐일 수도 있다.한국은 이제야말로 일본으로부터 새롭게 다시한번 벗어날 때가 되었다. 한일 국교가 정상화된 이후에도 일본은 이 나라에 얼마나 오래 ‘빨대’를 꽂았던가. 아베의 국가는 한국에 돈을 빌려주고도 자기 것 아니면 사지 못하게 하는, 그러면서도 시혜를 베푸는 양 ‘거들먹거린’ 것이다. 이번에는 이런 ‘구조’를 어떻게든 바꿀 수도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든다. 힘이 들더라도 지금은 버텨야 할 때, 몇 푼에 자긍심을 버리지 말아야 할 때다./방민호 서울대 국문과 교수 /삽화 = 이철진한국화가

2019-08-22

처서(處暑) 무렵, 들녘에서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여름이 가고 있다. 이 들녘에 주둔해 있던 염제(炎帝)의 군사들이 조금씩 철수하고 있다. 뜨거운 폭양과 이따금 내리는 비를 맞으며 무럭무럭 차오르던 초록의 벼들로 지난 여름의 들판은 참 무성했다. 일사불란하고 질서정연한 초록제복의 역군들이 생명의 양식을 생산하는 일에 일로매진해왔다. 들판은 굴뚝이 없는 거대한 공장이었다.기계화된 공장들 대부분이 그러하듯이 이 광합성 공장에도 이젠 사람이 거의 없다. 농부의 발자국 소리를 들으며 자라던 벼들이 이제는 가끔씩 물꼬를 보러 오는 오토바이 소리나 지하수를 퍼 올리는 양수기소리를 들으며 자란다. 겉보기엔 옛날의 들과 크게 다를 게 없는 것 같지만 그 내막을 들여다보면 천양지차다. 한 줌의 쌀이 되기까지 여든여덟 번이나 손이 간다는 말은 이제 전설이 되어버렸다. 못자리부터 추수까지 사람 손이 직접 닿는 일이 거의 없어진 게 요즘 농사다.벼가 팬다. 만삭의 배를 안고 있던 벼들이 일제히 이삭을 밀어 올린다. 벼들에게도 해산의 고통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처서 무렵의 들판은 온통 신생의 파동으로 술렁거린다. 아마도 지난 시절의 농부들은 이맘때쯤이면 자식이라도 보는 양 설레고 흐뭇한 마음이었을 것이다. 그런 감격조차 이제는 추억으로나 남아있을 뿐이다. 편리와 능률이라는 명분으로 우리 삶에서 생략되어진 수많은 과정들, 그 과정들에 배어 있던 삶의 애환들이 한갓 멍에와 노역에 불과한 것이었을까.들판의 초록물결 위로 제비들이 난다. 일부러 찾아도 잘 보이지 않던 제비들이 갑자기 수가 늘어난 걸 보니 그새 새끼를 친 모양이다. 먼 길 떠날 채비로 부지런히 비행연습을 하는 것이리라. 아직도 이 땅에 제비가 찾아와 준다는 것이 고맙고 반갑다. 행운의 박씨를 물어다 주어서가 아니라, 오랜 세월을 한 지붕 아래 산 정리(情理)가 그렇다. 가축이나 애완동물이 아닌 철새들과 수천 년을 한 지붕 아래 살아온 인연이 어찌 가벼울 것인가. 기와든 초가든 제비집이 없는 집이 없던 시절이 있었다. 여름내 서너 마리씩 새끼를 키우느라 분주하게 벌레를 잡아 들락거리던 제비 부모들, 노란 부리를 한껏 크게 벌리고 서로 달라고 졸라대던 새끼들, 그 광경은 같은 지붕 아래 살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과 다를 게 없었다. 제비야 반갑다. 그리고 미안하다. 제비들이 둥지를 틀 수 없도록 가옥의 구조를 바꾸고 들판에 농약의 살포해 먹이를 없애버린 인간들의 행위가 터무니없는 조건으로 세 들어 살던 사람을 내쫓은 고약한 집주인과 다를 게 없을 터이다.바람이 분다. 여름 내내 바람을 쐬러 이 들녘으로 나왔다. 들판 한가운데서는 어디선가 늘 바람이 불었다. 미풍에서 태풍에 이르기까지 바람은 참으로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졌다.‘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고 읊은 시인도 있지만, 피부에 와 닿는 바람의 감촉에는 참으로 무수한 느낌이 들어 있다. 그 모든 느낌을 관통하는 것은 생명감이다. 열풍이든 산들바람이든 바람은 끊임없이 살아있음을 환기시킨다.우리는 살아있음을 자각하지 못한 채 대부분의 시간을 살고 있다. 항상 바쁘고 무엇에 기 듯이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는 잊고 살기가 일쑤인 느낌이다. 잠시라도 그런 분주와 황망에서 벗어나려고 좌선이나 명상을 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고 하지만, 웃통을 벗고 들판 한가운데서 발람을 쇠는 것보다 나은지 모르겠다. 사람이 불철주야 의지를 불태우고 노력을 해서 얻은 성취감이나 자존감이 맨살에 와 닿는 바람의 감촉이 주는 생명감보다 더 충일한 것인지 나는 모르겠다.여름이 조금씩 비운 자리에 가을이 스며들고 있다. 들판 가득 가을의 예감이 술렁거린다. 이 들판에 땅 한 평 가진 것 없고 지은 농사도 없지만, 이 가을의 예감 또한 소중하다. 누가 내 삶의 계절에서 또 여름 하나를 빼내간다는 이 느낌이 아쉽기도 해서 계절의 추이(推移)를 온 몸과 마음으로 받는다.

2019-08-22

4대강보 철거와 탈원전

서의호 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필자가 중고교를 다니던 1960년대 후반 서울의 종로거리는 일년내내 매일 공사가 진행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매일같이 거리가 파헤쳐지는 장면을 일년내내 목격했다. 걸어다니기 힘들 정도로 거리는 복잡했다. 일관성 없는 계획으로 매몰된 수도관이나 하수관, 전기설치 등을 뜯었다 고쳤다 다시 설치했다 하는 작업을 반복하면서 세금과 인력을 낭비했다.이러한 즉흥적인 계획과 집행의 폐해의 대표적 예를 우리는 반세기 후 또다시 목격하고 있다. 최근 조명래 환경부 장관이 4대강 보 처리와 관련해 이번 정권내에서 보 철거를 강행하지 않겠다는 뉘앙스의 이야기를 했다.“선계획, 후조치가 돼야 하는데 필요한 계획을 세우는 데 수년이 걸릴 수 있다”고 했다. 하위 계획까지 다 수립하려면 최소 4년이 걸린다는 것이다. 이제야 무리한 보해체 계획을 자인한 셈이다.그동안 줄기차게 4대강보를 비난하고 해체를 강행하려고 했던 정부가 이러한 신중한 자세로 돌아섰다면 쌍수를 들고 환영하고 싶다.문재인 정권 들어서 나오고 있는 4대강보 해체 주장은 정말로 이해하기 힘들다. 우리나라는 홍수기와 갈수기의 유량 차이가 최대 300(금강)~680배(영산강)나 된다고 한다. 이 때문에 제방을 쌓아 홍수를 막고 댐을 지어 가뭄에 대비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4대강 사업으로 강바닥을 깊게 파고 보를 쌓은 것도 그런 취약 조건을 극복하기 위한 것이었다. 거기에 따른 환경적 생물학적 부작용이 있다면 그걸 수정하는 정책을 마련해야지 보해체가 능사가 아니다.정치적 논리로 과거 보수정권의 정책은 모두 잘못되었기에 4대강 반대론자들은 감성적 주장만 갖고 보 해체를 주장해왔다. 막대한 국민 세금을 들여 만들어 놓은 국가 시설물을 전 정권 것이라고 또 세금을 들여 파괴한다면 다시 정권이 바뀌면 또다시 건설해야 하는 70년대 종로거리의 재판이 될 것이다.말이 나온김에 4대강 보 해체만 아니라 탈원전도 정치적 논리로 만든 정책이다. 최근 비판을 받고 있는 한전공대 설립과 함께 현정권의 선거공약이었으므로 실행해야 한다는 것 이외에 타당한 이유를 찾기 힘들다. 전기요금 인상, 전력수급의 안정성 등 국민적 걱정이 많지만 선거공약이라는 이유로 강행되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는 것이다.탈원전을 선언한 일부 나라들도 모두 수정정책으로 전환하는 추세이다. 혹독한 원전 폐해를 입었던 일본조차도 다시 원전을 가동시키기 시작하고 있다. 원자력 발전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이점 때문이다.정부가 내세우는 대체 에너지란 것이 쉬운 것이 아니다. 국내 환경에서 풍력, 수력, 원자력 등 신재생에너지를 채택하기는 열악하다. 미국의 셰일 가스 및 오일과 같은 새로운 에너지가 개발되지도 않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전력 수요는 매년 증가하고 있다. 기업들의 주요 젖줄인 해외 원전 수출도 큰 타격을 입고 있다.어쨌든 중요한 것은, 원전은 정치논리로 건설되어서도 안 되고 정치논리로 중단되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이다. 충분한 학문, 경제적 검토와 국민과 전문가의 의견 수렴을 해야 한다. 시간을 가지고 결정해도 늦지않다. 이 문제만은 포퓰리즘에 의지해서는 안 된다. 진보정부는 과거 보수정부의 사드배치와 관련해 절차적인 중요성을 강조해 왔다. 그러나 현 정부의 4대강보 해체와 탈원전문제에 있어서 국민적 의견수렴과 절차를 중요시하고 있지 않아 보인다.4대강보 해체와 탈원전은 정부의 포퓰리즘 정책의 대명사이다. 이 대형 과제는 앞으로 한국의 미래의 백년대계와 연관성을 갖는다. 만든걸 부수는 게 능사가 아니다. 이러한 대형 프로젝트들이 정치적 논리나 포퓰리즘에 의해 실행되어서는 안 된다. 두고 두고 후세에 후회할 정책을 즉각 멈춰야 한다.

2019-08-22

한 줄기 생각을 붙들고 있는 사람

레이저 광선처럼 몰입할 수 있는 한 가지 생각이 있다면, 그 생각을 바꿀 수 있다면 내가 달라집니다. 내가 달라지면 세상이 바뀌지요. 문제는 그 레이저 광선 같은 한 줄기 생각을 할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입니다. 편집자는 늘 책만 생각하는 사람, 기자는 늘 기사만 생각하는 사람, 시인이란 늘 시만 생각하는 사람입니다.작가란 오롯이 늘 어떤 글을 세상에 내 보낼까를 한 줄기 생각으로 붙들고 있는 사람입니다. 속도가 생명인 지금 이 시대에 그 한 줄기 생각을 붙들며 살기란 극도의 절제를 필요로 합니다. 자기 절제를 놓치는 순간 도도한 강물처럼 내 생각을 휩쓸어 가는 생각의 물살은 어느새 돈 걱정, 사람 걱정으로 밀려들기 마련이지요.문학 평론가 김종철이 일본 소설가 마루야마 겐지를 찾아가 인터뷰한 경험을 인상적으로 보았습니다. 마루야마 겐지는 한 줄기 생각이란 것이 어떠해야 하는 것인지를 온몸으로 보여줍니다. 그는 오로지 원고료 수입만으로 살아가는 일본 순문학의 대표주자입니다. 아이를 낳으면 생활비를 감당할 길이 없을 것 같아 부인과 단둘이 지냅니다. 문학을 위해 세속적인 안락을 포기하지요.하루 일과도 규칙적입니다. 오전에 글을 쓰고, 오후에는 체력을 관리합니다. 체중이 늘면 머리가 둔해지기 때문에 저녁은 먹지 않습니다. 물론 술과 담배 커피도 마시지 않습니다. 언론과 연락을 끊고 살지요. 그의 집은 논 한가운데 덩그러니 섬처럼 고립되어 있습니다.김종철은 마루야마 겐지에게 묻습니다. “늘 삭발을 하고 계신데요, 혹시 이유가 있으신지요?” “쉰 살 생일 아침에 문득 거울을 보니 문학에 대한 각오가 자꾸만 느슨해지고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그날 머리를 깎았어요. 그날부터 매일 아침 거울을 보고 면도칼로 머리카락을 밀며 흐트러진 마음을 잡습니다.”마루야마 겐지는 ‘소설은 몸으로 쓰는 것’이라 말합니다. 자신의 몸이 곧 붓이자 펜인 겁니다. 언제나 최상의 소설을 쓰기 위해 최상의 몸, 최상의 컨디션을 확보하기 위해 경계를 늦추지 않습니다. 그의 빼어난 문장과 상상력은 매일 아침 면도날로 자신의 머리를 밀며 구도자처럼 지켜내는 깨끗한 몸에서 나옵니다. 몸을 붓 삼아, 자신 전부를 펜 삼아 언어를 남기는 사람들은 광풍처럼 우리를 ‘돈’의 세계로 몰아가고 물질이 전부라 속삭이는 이 시대정신에 마취되지 않기 위해 몸부림치는 이들입니다. 이들이야말로 레이저 광선 같은 한 줄기 생각을 붙드는 이들입니다./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대표

2019-08-22

데스노트

‘데스노트’(DEATH NOTE)는 오오바 츠구미가 글을 쓰고 오바타 타케시가 그림을 그린 만화제목으로, 고등학생 야가미 라이토가 사람의 이름을 쓰면 그 사람은 죽는 사신의 공책 ‘데스노트’를 갖게 되면서 일어나는 이야기를 다뤘다.1부에서는 고교생 라이토와 L과의 치열한 싸움을 그리고, 2부에서는 ‘키라가 곧 법’인 세상과 동시에 N을 비롯한 미국수사관들과의 심리전 등을 그리고 결말을 맞게 된다. ‘주간 소년 점프’에서 2003년부터 2006년까지 총 108화로 완결됐으며, 일본의 슈에이샤 출판사에서 12권의 만화책으로 출판됐다. 대한민국에는 대원씨아이에 의해 12권 모두 번역 출판됐다. 2006년 10월에는‘DEATHNOTE-HOW TO READ-13’이 출시됐는데, 등장인물의 프로필, 사건, 트릭, 작가와의 인터뷰, 외전, L의 본명이 담긴 카드 등이 수록돼 있다. 일본 방송국 니혼TV와 미야기TV 등 각 NNN 계열국들에서 2006년 10월 3일 시작, 새벽 시간대임에도 불구하고, 시청률 2∼3%를 기록했으며, 최종회 방송 당시에는 4.7%의 기록을 세웠다. 우리나라에서는 ‘데스노트’의 수입 방영권을 위한 경쟁을 벌여 챔프TV에서 2007년 10월 8일부터 2008년 1월까지 방영됐다.정치권에서는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공직 후보자들의 도덕성과 자질, 국민 여론, 청문회 경과 등을 종합해 적격 여부를 판단한 뒤 부적격 후보자를 공개하는 걸 ‘데스노트’로 활용해 왔다. 이 가운데 정의당이 작성한 데스노트에 이름을 올린 정치인들은 대부분 낙마해 상당한 적중률을 보였다. 그러나 이번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를 앞둔 정의당 사정은 꽤 복잡해 보인다. 선거제 개혁을 위해 더불어민주당과 공조하고 있는 상황이다보니 조 후보자를 데스노트에 올리는 데 신중한 모습이다. 그러나 현 정부 들어 16명의 장관급 인사들이 한국당의 데스노트에 이름을 올렸지만 모두 문재인 대통령으로부터 임명을 받았다. 이번에 딸 부정입학 논란으로 국민정서를 거스른 조국 후보자 역시 데스노트에 이름을 올리고도 임명될 수 있을지 궁금해진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19-08-21

기대

장규열 한동대 교수계절이 건너간다. 이른 아침 바깥공기에 가을이 묻어있다. 연일 폭염 경보에 시달렸던 몸은 한여름을 아직 기억하지만 들뜬 마음은 이미 천고마비의 새 계절을 기다린다. 염천을 지나면서 겪고 쌓여온 생각거리들은 몸과 마음을 언제나 쉬게 할 것인지 그 끄트머리가 보이지 않는다. 바다 건너 일본이 힘들게 하지만 궂은 소리는 나라 안에서 더 많이 들린다. 겨레의 힘을 모아 전화위복을 꾀하려 했건만, 북한은 쓴소리 악다구니만 토해내고 있다. 한국과 일본이 문제인가 했더니 미국과 중국도 못지않은 씨름에 시달리는 중이다. 남북 팔천만의 소원인 통일이 관건인가 했더니, 고작 한 사람 장관 후보의 거취에 온 나라가 쩔쩔매고 있다. 무더위가 가시듯 벗어날 방법이 혹 어디 없을까.생각 밖으로 궂은일을 당할 때 늘 듣는 소리가 있다. 국민의 눈높이. 관련된 개인의 의도가 어디에 있든 국민의 시선은 늘 빈 마음을 바라는 낮은 자리에 머문다. 사사로운 처지에서 더 나은 열매를 위하여 수고로이 달려가는 일도 집단의 시선으로 바라보면 욕심만 커다랗게 떠오르곤 한다. 들켜버린 사욕이 모든 이들에게 전염되면 공동체는 필시 불건강한 길로 접어들지 않을까. 가족과 친지들 사이에서 이해되던 융통성이 집단과 사회의 눈에 탐욕으로 비칠 때 우리는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할까.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인 사회를 생각하였던 라인홀드 니버(Reinhold Niebuhr)가 이제는 비도덕적인 개인과 도덕적인 사회를 걱정해야 하는가. 개인의 우수함이 사회의 집단지성과 부딪힐 때, 우리는 어느 켠에서 지혜를 구할 것인가.나라의 국민은 위대하였다. 부조리와 비리에 휩싸인 권력을 국민의 힘으로 물러나게 했으며 기대를 한껏 실어 새로운 리더십을 출범시켰다. 그런 일을 해보지 못한 일본과 지금 막 진통을 겪고 있는 홍콩의 시민들은 우리를 부러워한다는 것이 아닌가. 국민의 힘과 지혜가 나라와 겨레가 가는 길을 찾아내는 것이 아닌가. 법치와 삼권분립이 제도의 틀이라면, 국민의 집단지성은 그 모든 민주역량의 기본임을 증명하고 있지 않은가. 혹 부족한 게 아직 있다면, 다른 생각을 거뜬히 수용하여 견주며 나아가는 일이 아닐까. 내가 옳은 만큼 남도 같은 무게의 선의를 가졌음을 인정하여야 한다. 비웃거나 경멸하여 패대기치는 만큼, 상대는 내 생각을 가벼이 여길 터이다. 이만큼 키워온 민주의 바탕 위에 더 높은 자리로 나아가야 한다.높이 걸었던 기대가 사뭇 아깝다. 많은 부분 그의 생각이 함께 하였음도 국민은 안다. 역량도 출중하고 의지가 충분함도 모르지 않는다. 하지만, 나라가 바라보아야 하는 지향점은 그보다 훨씬 높은 곳을 향하여야 한다. 발표한 정책이 매우 소중한 가치를 담았음에도 국민에게 감동을 주지 못한 까닭은 무엇이었을까. 국민은 혹 기대보다 깊은 상처를 겪고 있는 것은 아닐까. 지성의 힘과 인성의 덕으로 물러서는 용기와 비켜서는 지혜를 발휘하여 주시라. 실력과 혜안으로 막후에서 돕는 손길을 더욱 펼쳐 주시라. 팔천만의 소망이 걸린 일들이 수두룩한데, 한 건 인사로 혹 그르치면 안 되지 않겠나. 안 그래도 흔들리는 촛불을 불어 꺼버리면 누가 손해인가. 모두가 바라는 ‘나라다운 나라’는 당신의 결정에 달린 것으로 보인다.우리는 당신의 진심을 믿는다. 개인의 성공이 아니라 나라가 잘 되고 국민이 행복한 나라를 만들고 싶었음을. 나라는 나라대로, 한 사람에게 나라의 운명을 거는 일은 없어야 한다. 촛불이 걸었던 기대는 아직 꺼지지 않았다. 일본을 이겨야 하고 북한을 아울러야 한다. 외교가 버겁고 국방도 어렵다. 경제가 힘들고 민생이 흔들린다. 사람은 폭넓게 찾아 든든하게 세워야 한다. 아무도 흔들 수 없는 나라를 만들어 주시라. 높은 기대를 다시 건다.

2019-08-21

교육 제안 - 경북형 마을학교 1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인구절벽 문제가 도무지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인구절벽에 따른 많은 국가문제들이 야기되고 있는데, 그 중에서 가장 심각한 문제는 바로 학령인구 급감이다. 입학생이 0명인 학교 이야기는 이제 특별한 일도 아니다. 소규모 학교 통폐합 또한 마찬가지이다.인구절벽에서 시작된 도미노 게임은 학교통폐합을 지나 이제 지역 마을을 쓰러뜨리고 있다. 학교가 없는 마을에 젊은 사람들이 있을 리 만무하다. 이런 마을 주민들의 연령은 굳이 조사해보지 않아도 고령임은 자명한 사실이다. 심각한 연령 불균형 현상은 마을이 지니고 있는 다양한 기능들을 삭제하고 있다. 그리고 종국엔 마을마저 소멸시키고 말 것이다.마을은 문화 생산은 물론 공동체 교육까지 다양한 기능을 해왔다. 마을 문화가 풍성한 나라일수록 문화 강대국으로서 다양한 지위를 누리고 있다. 문화의 힘은 다른 산업들과 비할 바가 안 될 정도로 막강하다. 비교 불가의 막강한 힘을 지닌 문화의 출발지는 바로 마을이다.우리 교육이 한 때 경제 성장이라는 기적을 만들 때 우리 교육은 분명 마을과 함께 했다. 마을은 큰 학습장이었다. 학교에서 배운 내용을 실천하고 그것을 내면화해 지혜로 승화시키는 살아있는 배움터가 마을이었다.마을에서 학생들은 나만이 아닌 우리들을 위한 꿈을 키웠고, 마을 사람들은 그 꿈이 꼭 이루어질 수 있도록 격려와 응원을 해주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우리 교육은 학교에서 마을을 배제시켜 버렸다. 그러면서 학교 교육은 폐쇄적으로 변해가더니 결국 교육을 학교 안에만 고립시켰다. 고립된 교육은 기형적으로 변해갔다. 그 모습은 성적지상주의, 입시 공화국, 학교 폭력 등으로 나타났다. 최종 목표가 오로지 입시에 맞춰진 우리 교육은 급기야 인구절벽이라는 국가 재앙의 진원지가 되어 버렸다.공부를 하면 할수록 포기해야 할 것이 더 많아지는, 그래서 N포세대로 전락해 비극적인 삶을 살아야 하는 우리 학생들의 원성(怨聲)을 교육 관계자들은 듣지 못하는가?자신의 미래에 대해 뚜렷한 목표를 가지고 있던 고등학생 딸아이가 묻는다.“아빠, 앞으로 나 뭐할까?” 진지하게 자신의 진로에 대해서 묻는 아이에게 필자는 아무런 말도 해주지 못했다.우리 아이들이 미래에 대한 희망을 완전히 놓기 전에 우리 교육은 특단의 조치를 내려야 한다. 말로만 혁신을 외칠 것이 아니라 우리 학생들이 직접 느낄 수 있도록 학교 현장부터 바꾸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극단의 폐쇄주의에 빠져 있는 학교 교육 범위부터 넓혀야 한다. 그 방법은 다시 마을로 학교가 들어가는 것이다.전라도 완주, 강원도 등 학령인구 절벽에 따른 지역과 학교 소멸이라는 위기에 봉착한 지역에서는 이미 지자체와 교육청이 손을 잡고 지역교육 활성화 프로젝트를 시작했고, 또 의미 있는 성과를 내고 있다. 이 때의 의미 있는 성과는 바로 마을과 학교가 함께 하는 교육, 학생들의 교육 행복도 향상, 그리고 찾아오는 교육이다. 이들 지역에서 지역교육 활성화를 성공적으로 이끈 담당자들이 전국을 돌며 성공 사례에 대한 강연을 하고 있다. 지난 2019 교감 자격 연수에서도 이들의 강의를 있었다.필자는 강의를 들으면서 이들 지역이 성공할 수밖에 없는 공통점을 찾았다. 그것은 간절함이었다. 강의자들의 열정에서 그들의 간절함을 느낄 수 있었다. 강의실 분위기는 뜨거웠다. 그 이유는 경상북도도 인구절벽이라는 재앙의 가장 큰 피해지역이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강의자들과 연수생 간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었다. 그것은 바로 간절함의 차이였다.“간절함이 없는 꿈은 꿈이 아닌 희망사항이다.”(탈무드)라는 말이 있다. 희망사항만으로는 어떤 것도 이룰 수 없다. 그래서 간절한 마음으로 제안한다, 경북형 마을학교를 하루 빨리 시작하자고!

2019-08-21

프랑켄슈타인

김규종 경북대 교수·노문학상사화(相思花)가 피어난 걸 보고 여름이 가고 있음을 알겠더라. 따사로운 4월에 이파리가 앞 다투어 무리지어 솟아오르다 어느 사품엔가 시나브로 자취를 감춘다. 그러다 8월이 지나 여름도 절정을 넘어설 무렵 홀연히 상사화는 연분홍색 화사하고 처연한 꽃을 피운다. 이파리와 꽃이 나뉘어서 피고 지는 까닭에 상사화 이름 얻었다 한다. 상사화 보다가 200년 전에 메리 셸리가 쓴 소설 ‘프랑켄슈타인’(1818)을 생각한다.소설 제목이기도 하고 주인공이기도 한 프랑켄슈타인. 그는 불과 열세 살에 의사이자 연금술사인 코르넬리우스 아그리파의 선집을 발견하고 완전히 매료된다. 거기 더해 파라셀수스와 알베르투스 마그누스의 저작에도 경도(傾倒)된다. 그가 18세기 계몽과 과학의 시간대에 이전시대의 연금술사에게 마음을 뺏긴 까닭은 그들이 불멸과 권력을 꿈꾸었던 대가였기 때문이다. 불가능에 도전하면서 거대한 영화를 실현하려던 과학의 이단아들을 향한 낭만적 존숭.열일곱 살에 입학한 잉골슈타트 대학의 발트만 교수가 프랑켄슈타인의 운명을 결정한다. “고대과학의 스승들은 불가능한 일을 약속하고 아무것도 실현하지 못했다. 하지만 천재들의 노고는 아무리 오도(誤導)된 것이라도 인류의 선을 공고(鞏固)히 하는데 쓰인다.” 그로부터 2년 뒤 우리의 주인공 프랑켄슈타인은 자타가 공인하는 잉골슈타트 최고의 자연철학자가 된다.열아홉 살 청년은 창조주(創造主)의 반열에 오르고자 한다. 한낱 인간으로서 야훼나 프로메테우스가 되려는 것이다. 하기야 소설의 원제가 ‘프랑켄슈타인, 혹은 현대의 프로메테우스’인 만큼 이해 가능한 대목이다. 2년 동안의 불철주야 용맹정진 각고의 노력 끝에 프랑켄슈타인은 마침내 무생물에게 생명을 불어넣는데 성공한다. 그의 손에서 피조물이 탄생한 것이다. 하지만 그는 창조물을 제대로 바라볼 수조차 없다. 너무나 참혹한 형상의 괴물이었기에.실험결과를 사유하지 않은 채 설익은 젊음의 광기서린 욕망과 의지, 영생과 불사를 향한 미성숙한 과학자의 치기어린 신성(神性)의 갈망이 예기치 않게 괴물을 탄생시킨 것이다. 진선미에 친숙하고 마음 약한 주인공은 도주한다, 추악한 괴물에게서. 도주하고 다시 도망치지만 그는 괴물의 손아귀에서 맴돌고 있을 뿐. 그를 사랑하고 그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하나둘씩 괴물의 손에 스러져간다. 종당에는 괴물의 창조주 프랑켄슈타인마저 하릴없이 숨을 거둔다.그가 남긴 유언의 고갱이는 간명하다. 과학과 발견에서 명성을 얻고자 하는 야심을 버리고 평온함에서 행복을 찾으라는 것이다.사랑하는 친구와 가족, 자연의 변화와 오고가는 사계절, 가정과 고향의 따사로움을 완전히 망각한 채 생명창조에 몰두하다가 참혹한 결과를 도출하고, 그로 인해 모든 것을 잃고 자신마저 불귀의 객이 되고 마는 프랑켄슈타인. 필연적인 인과관계 전체를 오롯이 홀로 감당해야 하는 불행한 자연철학자 프랑켄슈타인. 세월이 흐른 다음에야 프랑켄슈타인은 깨닫는다. 지식획득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고향을 세상의 전부로 알고 살아가는 사람이 얼마나 행복한지, 지식추구가 소박한 즐거움과 취향을 파괴한다면 그것은 불법적이고 인간정신과 부합하지 않는다는 것을! 누구라 할 것 없이 자연과학 실험과 탐사여행에 몰두했던 18세기 유럽의 광기에 가까운 과학을 향한 집착과 그것이 야기할지도 모를 파괴적인 양상을 빼어난 상상력으로 예견했던 메리 셸리. 21세기 자연과학과 공학과 기술은 ‘길가메시 프로젝트’를 수행하면서 영생 불사하는 인간을 꿈꾼다.유발 하라리는 호모사피엔스가 종말을 고하고 인간은 호모 ‘데우스 Deus’가 되리라고 예견한다. 프랑켄슈타인이 만들고자 했던 피조물을 넘어서 인간 스스로가 신의 반열에 오르려고 열망하는 21세기 지구촌. 혼란의 한 모퉁이에서 수줍게 얼굴 내민 상사화가 속삭인다. “헛되고 헛되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Vanitas vanitatum omnia vanitas.”

2019-08-21

맨발 대학(Barefoot College)

인도에는 맨발 대학(Barefoot College)이 있습니다. 한국 맨발 학교가 맨발로 걷는 행위를 통한 배움이라면, 인도 맨발 대학에서 말하는 ‘맨발’은 하나의 상징입니다.1967년 기근에 시달리던 인도 비하르 주를 방문했던 벙커 로이는 굶주리고 교육받지 못하고 천대받는 하층민들의 비참한 삶을 목격합니다. 커다란 충격에 휩싸인 그는 인생의 방향을 완전히 바꾸어 황무지와 다름없는 시골에 내려와 맨발 대학을 설립합니다. 이름은 대학이지만, 맨발 대학은 여타 교육기관으로서의 대학과는 다른 의미를 갖습니다. 학위를 주는 곳이 아니라 ‘인간다운 삶’을 주는 곳이지요. 사회에서 필요한 사람을 키우는 게 아니라 사회를 살기 좋게 만드는 사람을 길러내는 곳입니다.맨발 대학에는 교과 과정이 없고 교수도 없습니다. 인도 사회에서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 가난한 농민들, 임금 노동자들, 소외받는 불가촉천민과 여성들, 장애인들이 학생이자 선생이 되어 자유롭게 서로를 가르치고 배웁니다. 먼저 온 사람이 나중에 온 사람을 이끌어 주는 방식의 교육 시스템입니다. 예를 들면, 식수가 부족해 사람들이 죽어가는 마을에서 온 학생은 직접 수동 펌프 기술을 익힙니다.생전 처음 마을 밖으로 나온 여성들은 말도 안 통하고 문자도 읽을 수 없지만 오로지 모방, 반복, 따라 하기 같은 원초적인 학습을 통해 6개월 만에 수동 펌프 기술의 달인으로 변신하는 거지요. 태양열 조리기 기술을 이곳에서 배운 세나즈씨는 말합니다.“매일 400명이 넘는 주민들이 이 조리기로 만든 음식으로 식사를 해요. 100명이 이 조리기를 사용하면 한 달에 84㎏의 가스연료를 절감하는 효과를 가져옵니다.” 세나즈씨는 이 기술을 배운 덕분에 한 달에 2천190루피, 미화 약 56달러를 법니다. 인도에서는 여성이 이렇게 큰돈을 번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지요. 돈을 벌 수 있게 되자 집안에서 발언권도 덩달아 강해졌습니다.가난에 찌들고 계급 사회의 차별과 억압에 눌려 비참하게 살아가는 이들을 위해 기득권을 포기하고 헌신한 벙커 로이의 삶이 허덕이며 살아가던 수천, 수만 인도인들에게 한 줄기 빛을 선물합니다. 그들은 맨발 대학에서 인간의 존엄성과 자신감을 회복합니다. 대학 졸업장이 줄 수 없는 진정한 배움의 기쁨 가득한 곳입니다.맨 얼굴과 맨손과 맨발로. 자연 그대로 세상 그대로를 온몸으로 느끼고 품고 동행할 수 있는 사람들이 하나씩 둘씩 늘어나는 아름다운 날을 꿈꿉니다./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대표

2019-08-21

처서와 추어탕

24절기 중 처서(處暑)는 14번째 해당한다. 입추(立秋)와 백로(白露) 사이에 들며, 양력으로 8월 23일(음력 7월 15일) 무렵 이후에 든다. 올해 처서는 이달 23일이다.“가을에 들어선다”는 입추보다 진짜 가을을 느끼게 하는 절기가 처서라 한다. 말 그대로 더위가 멈춰선다는 뜻이다. 이때부터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서 아침저녁으로 제법 신선한 기운을 느끼게 된다. 따갑던 햇볕도 누그러져 풀이 더 이상 자라지 않는다. 농부들은 논두렁의 풀을 깎거나 산소를 찾아 벌초도 한다. 아침저녁으로 신선한 바람이 불어와 극성을 부리던 파리와 모기떼도 사라진다. 속담에 “처서가 지나면 모기도 입이 삐뚤어진다”는 말이 여기서 생겨났다.농부들은 처서 이후 날씨에 관심이 대단히 많다. 한해 농사의 풍흉을 이때의 날씨가 좌우하기 때문이다. 가을이 찾아왔다고는 하지만 아직은 왕성한 햇볕이 있어야 벼가 완전히 성숙할 수 있다. “처서에 비가 오면 독의 곡식도 줄어든다”는 말처럼 농부들에게는 한해 농사의 마무리가 이때부터 고비다. 여름 내내 우리를 지치게 했던 한여름 무더위는 처서로 한풀 꺾이고 지금부터 여름철 내내 지친 심신을 위로할 음식이 필요하다. 우리의 조상은 예로부터 가을철 원기회복 음식으로 추어탕을 즐겨 먹었다고 한다. 문헌에 의하면 고려말 송나라 사신인 서긍의 ‘고려도경’에 추어탕이란 말이 처음 등장한다. 그러나 미꾸라지가 강이나 논에서 흔하게 잡히는 것이어서 실제로는 그 이전부터 즐겨왔던 음식으로 짐작이 된다. 미꾸라지는 7월말에서 11월초까지가 제철이다. 몸에 좋은 음식은 제철에 해먹어야 효과가 높은 법이다. 추어탕은 미꾸라지를 푹 고아 여러 가지 채소를 넣고 양념하여 끓인 우리의 토속 음식으로 원기를 북돋워주는 가을 음식으로는 최고다. 특히 여름철에 더위에 지친 서민들에게는 단백질을 공급하는 매우 요긴한 음식이다. 본초강목에도 “양기에 좋고 백발을 흑발로 변하게 하는 음식”으로 소개하고 있다.가을의 길목에 들어섰다. 우리 민족의 토속음식인 추어탕 한 그릇으로 몸보신도 하고 신선한 가을바람에 갑갑한 기분을 풀어보는 것도 좋겠다./우정구(논설위원)

2019-08-20

분양가 상한제의 명암

김영태 대구취재본부 부장국토교통부가 최근 민간아파트 분양가 상한제라는 강력한 부동산 대책을 발표했다. 치솟는 서울 강남을 비롯한 전국의 재개발 재건축 부동산 가격을 잡기 위한 자구책이라고 하지만, 지난 2005년 노무현 정부 때 쏟아진 부동산 대책 모두가 이번에도 재현됐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분양가 상한제를 완성하는 주거정책위원회다. 그러나 주거정책위의 정부 측 참석 인사가 거수기가 될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 제기될 정도로 의문부호를 달고 있다. 또 전매제한 주택을 LH가 매입한다는 내용도 지난 2005년 이후 단 한 건의 실적이 없어 실효성에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만든다. 시세의 반값에 부동산을 매각할 리 없고 경매나 공매로 위장해 시세대로 팔수 있는 방법이 무수히 많아서 거래 실적이 없을 수밖에 없다.국토부의 부동산 대책이 발표된 이후 확인된 주택청약통장 가입자는 모두 2천500만여 명으로 전국민 두사람 중 한 사람이 청약통장을 가진 셈이 됐다. 지난해부터 정부가 무주택자 위주로 개편된 청약제도를 시행하자 이를 활용하려는 무주택자가 증가했기 때문으로 정부 측은 분석하고 있다.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정부의 분양가 상한제 실시를 겨냥한 역풍이라는 사실이 곳곳에서 관찰되고 있다. 특히 오는 10월 분양가 상한제가 실시된다면 주택도시보증공사(HUG)발 ‘로또 청약’을 노린 청약통장 증가가 나타날 것이란 말까지 나온다. 분양가 상한제가 실시되면 10월 이전까지는 HUG의 강화된 분양 보증심사에 따라 분양가를 규제받은 단지를 중심으로 분양이 본격화된다. 상한제가 실시되면 사업자는 시간에 쫓기는 상황에서 HUG와의 분양가 협상력이 약해져 당초 분양가보다 낮아질 가능성이 크다. 결국, 청약에 당첨만 되면 나중에 인근의 집값 시세로 상승하는 프리미엄을 누릴 수 있어 부동산판 로또가 될 수 있는 점을 감안했다는 부분이다.또 다른 악재는 건설사를 겨냥하고 있다. 수주환경 변화에 어려움을 겪는 국내 건설업체가 늘어나면서 자산이 많은 건설사를 흔들 수 있는 행동주의 펀드가 서서히 고개를 들수 있다는 점이다. 전국 상위 순위 건설사의 경우 한 자산운용사가 지분율을 12.12%에서 15.22%로 증가시켜 당초 보유 목적이 단순투자에서 경영참가로 변경 공시됐다. 이 자산운용사는 중견 건설사 2곳에 대해서도 지분을 보유하고 있을 정도다. 자산운용사는 결국 주주로서 고배당을 요구하게 될 것이고 이는 건설사의 경영에 상당한 지장을 초래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 뻔하다는 우려다. 이같은 우려는 중견 건설사 2곳의 지분을 보유한 또 다른 자산운용사가 주주총회에서 배당안건에 대해 자신의 요구에 맞지 않다며 반대표를 던진데도 잘 나타난다. 현재 분양시장은 공급량이 현저히 줄어 전국적으로 2천37가구 청약에 그치는 현상을 불러왔고 주택담보대출 고정금리도 1%대로 하락할 시점을 눈앞에 두고 있으며 신규아파트값이 강세를 보이는 역풍을 맞고 있다. 이러다 보니 최근 투자자들이 해외펀드에 넣은 돈이 무려 170조원에 육박할 정도로 국내에서 점차 멀어지고 있다.전세계 경제는 그레이 스완(Gray Swan)이라는 다양한 악재에 노출돼 있다. 그레이 스완은 이미 알려져 있는 악재이지만, 마땅한 해결책이 없어 위험요인이 계속 존재하는 상태를 일컫는 것으로 블랙 스완(Black Swan)이란 용어에 빗대 생겼다. 현재 한국과 일본, 미국과 중국, 미국과 인도 간 무역분쟁을 비롯해 홍콩시위, 이란 경제 제재 등이 바로 그것이다. 어려워지는 경제 사정에다 내년 총선이 다가오기 때문에 정부는 추가 대책 발표에 대한 부담도 있겠지만, 위에 열거한 역풍으로 인해 다시 대책을 꺼내야 한다. 노무현 정권때처럼 실효성 없는 대책이 다시 반복된다면 악재와 후폭풍은 꼬리에 꼬리를 물게 될 것이다. 부동산이 우리 경제에 차지하는 비중을 생각하면 마음이 무겁다.

2019-08-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