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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국회의원은 존재 이유를 증명해야

김규인 수필가 정부와 의료계의 강경 대치, 말끝마다 가시가 돋친 여야의 발언, 총선에서 패배한 여당 대선 유력 주자의 발언으로 선거가 끝났는데도 마음이 불편하다. 점령군처럼 행동하는 총선 승리자들과 국회의장 후보자들의 발언도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여기에 하이브와 어도어의 대치까지 국민은 마음 둘 곳을 찾지 못한다.국제정세의 불안으로 고환율, 고물가, 고금리는 오늘도 계속된다. 이를 부추기는 미국과 중국의 패권 다툼,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전쟁,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은 경제적, 사회적 불안을 부채질한다.국내외 정세를 곰곰이 생각하면 모두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 한다. 자기 집단의 이익만을 대변하는 정치인, 나아가 집단보다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정치인들, 환자의 아픔보다 자신들의 이익이 우선인 의료인, 사람들을 위로해야 할 노래도 이권 앞에서는 멈춘다. 그들 눈에는 아무 말 없이 지켜보는 국민은 보이지 않는다.모두가 국민을 위해 일하는 사람들이 국민을 보지 않는다. 말끝마다 국민을 위한다는 정치인들, 국민의 건강을 책임져야 할 의료인들, 마음의 위로와 양식을 들려줄 예술인도 약속이나 한 듯이 국민은 뒷전이다. 그들의 볼썽사나운 이익 추구 싸움을 지켜보아야 하는 국민은 피곤하다. 국민은 단지 그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방패막이에 불과하다.총선에서 대파를 들고나온 국회의원 당선자가 대파 가격을 걱정하는 걸 볼 수가 없다. 단지 총선용으로만 활용할 뿐이다. 사과값이 안정되니 다른 식재료값이 오르고, 직장인 평균 점심값이 일만 원을 넘는다. 텔레비전은 국내외 경제가 어렵다고 말한다. 매일 고물가에 시달리며 방송에 귀를 기울이는 것은 서민의 삶이 팍팍하다는 방증이 아닐까.세계 경제는 불경기에 자국의 경제를 보호하기 위해 각종 정책을 내세우는데 정치권은 남의 집 불구경하듯 한다. 심지어 수백조 원의 국가 채무와 집값을 크게 올려놓은 당에서 다시 모든 국민에게 25만 원을 주라고 정부를 압박한다. 국회에서 우리 경제를 살리기 위해 머리를 맞대며 법을 만드는 모습을 언제나 볼 수 있으려는지.선장도 없는 배에서 배신자 타령만 하는 여당과 승리에 취해 변절자라 손가락질하는 야당이 자신들의 권력만 추구하는 한 우리나라의 정치는 후진성을 면치 못할 것이다. 정치가 4류라는 이건희 회장의 말씀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배신자와 변절자 타령보다 시급한 국가의 현안들이 쌓여있는데 말이다.나날이 줄어드는 출생률은 나라의 존립을 위협하고 언제 좋아질지 모르는 경제는 국민을 고통 속에 빠뜨린다. 백년대계의 교육은 학폭과 학생 인권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교사들은 지쳐간다. 치료받지 못하는 환자들은 늘어만 가는데 의사들은 병원을 떠난다. 나라를 위해 일하지 않는 국회의원이 왜 필요한가.나라 위해 일할 때는 서로 손을 내밀어야 한다. 사라진 협치를 이번에는 다시 살려내어야 한다. 국민에게 존중받는 국회의원이 되어야 한다. 국민이 국회의원에게 주는 돈이 아깝지 않다고 생각하도록 해야 한다. 국회의원은 자신들의 존재 이유를 증명해야 한다.

2024-05-06

홍경나, 기억으로 호명하는 고령 방언

이상규 경북대 명예교수 전 국립국어원장 우리의 모국어가 단일하고 균질한 소리로만 전달되는 게 아니라 다성적인 방언으로 엮어져 있다는 것은 그리 놀라울 일이 아니다. 홍경나 시인이 시의 언어로 발성하는 모어는 소통되는 장소를 확대하려는, 시로 된 씨앗을 푸른 하늘에 날린다. 시집 ‘초승밥’(현대시학, 2022)에 담아낸 모어의 우주 속으로 들어가 보자. “하릅강생이 복실일 후치다가/욜로졸로 서리병아릴 후치다가/개구멍바지 꿰찬 용남이는 가을볕 따신 마당귀/아물 따다 무더기 똥 내깔기고/똥 묻은 똥구녁을 하늘로 치켜든다.”(‘눈썹담’) 이 시에서 방언을 사용하지 않았다면 하룻강아지가 천방지축 까불며 마당을 뛰어다니는 꼴이나 어린 용남이가 푸짐하게 똥을 싸고 그것도 모자라 궁둥이를 하늘로 치켜드는 해맑은 모습을 실감나게 살려내기는 어려웠으리라. ‘후치다(내쫓다)’, ‘욜로졸로(요리조리)’, ‘아물따나(아무데나)’처럼 토속적인 경상도 방언 낱말에 묻어있는 풍경화가 다정하다. 방언이 가진 시간성의 이중성이라고 할까 과거로 되돌려 주는 기억의 환기장치로서도 멋진 구실을 해내고 있다.시인은 자신의 모어를 최대한의 시속으로 투입한다. 기억의 언어와 현재의 언어 간의 호응을 통해 과거로의 기억력을 되살려내는 시적 확장을 매우 성공적으로 이루어 내주고 있다. 과거로의 회귀는 눈에 보이지 않는 시간성의 회귀인 동시에 장소에 대한 기억과 마주치며 완성된다. 방언이 호명해 주는 장소, 혹은 대상이나 사건과 관련된 모든 기억들을 품고 있다. “사창댁 우리 할매/콩지럼 내릴 오리알콩/소반다듬이 하시네/얽은 콩 쪼가리 콩 벌게이 슨 콩/밤결 내 고르시네//사창댁 우리 할매/콩지럼시루 쪼록쪼록 바가치물 치며/한 치 두 치 콩지럼 내리는 소리 들어라시네/오구구 오구구 뿌리 트는/긴 짓소리”(‘콩지럼’)이라는 시는 유년의 기억들을 불러온다. 할머니가 콩나물을 기르기 위해 콩을 고르는 일부터 시루에 물을 주며 애지중지 키워내는 기억 속의 풍경화에서는 그 풍경 속에서 들려오는 소리까지 방언의 악센트와 리듬을 타고 있다. 시는 노래여야 한다. 리듬을 타며 흥얼거리며 화를 참아내는 할머니의 ‘몸짓소리’가 들리지 않는가? ‘콩지럼’(콩나물)이나 ‘오리알콩’(토종 콩나물콩), ‘소반다듬이’(소반에 곡식을 놓고 고르는 일)라는 독특한 방언들이 배치되지 않고서는 도무지 그 풍경을 제대로 그려낼 수 없다. 초가집 부엌에서 올라온 검은 검정이 천장에 스며들어 가무스럼한 방안에는 할머니의 냄새까지 배어있다.홍경나 시인의 경북 방언은 현재의 경상도의 모습이나 풍경화만 그리는 것이 아니다. 지나간 과거로 되돌아가기 위한 회생 장치로서 방언을 이용하고 있다. 그 속에는 옛날 소리와 삶의 풍경들이 서사적인 구성을 가지며 때로는 함께 사는 사람들의 삶의 풍경들을 조명해 주기도 한다. ‘개보름쇠기’는 우리 고유의 풍습 가운데 하나인 ‘개보름’에 얽힌 이야기다. “사대부 팔대부 하동 포수 앞세운 농악대 아제들이 대청지신 큰방성주 조왕지신 철용지신 우리 집 지신풀이 돌 땐 목줄을 닿는 데까지 끌고 나와 덧배기 반덧배기 별달거리 다드래기로 뜀질해쌓다가 싱둥겅둥 윷가치 노는 백구마당 모닥불 불똥 구경하다 백지로 불똥재 앉은 빈 밥그륵을 복실이캉 지캉 서리 연분홍 똥꼬녁을 핥는 거맹키 밝게 달강달강 딧설거지하는 거맹키 밝게 핥아쌓다가 둥두렷이 장뚝산을 돌아 중문 지붕만댕이께 넘쳐 오는 정월 보름달을 짖었다.”(‘개보름쇠기’) 경상도에서는 개가 너무 잘 자라서 살이 찌거나 파리가 꾀지 않게 하기 위해서 대보름이 뜨기 전까지 하루 종일 굶긴다. 시인은 이 서사 구조에 공동체적 무의식에서 소환한 농악놀이의 풍경과 풍물소리도 섞어 넣었다. 너무나 리얼하다.시인의 무의식에는 온갖 오래 묵은 기억들이 잠재해 있다. 방언의 음성으로 호명하는 순간 큰물 밀려들듯이 폭포처럼 쏟아져 내린다. 시인을 과거로 호명해낸 방언의 미학이 여기에서 발화하기 시작한다. “불 간 자리엔/얼마나 두들겨 댔는지/생목 꺾인/새까맣게 그슨 청솔가지만 남았다//집집마다 오줌 싸는 꿈을 꾸었다”(‘쥐불’)에서 유년 시절의 풍경이 생생할 뿐이다. 시의 미학적 본질인 ‘낯설게 하기’는 과거의 기억을 방언으로 호명하면서 시작된다. 그는 경북 언어의 보고라고 부를 수 있을 만큼의 살아있는 ‘말’들을 ‘시’로 재생했다.

2024-05-06

지중해 새로운 패자, 오스만튀르크 세계사 등장

영어의 표현은 오토만, 이슬람 언어인 아랍어로 오스만이다. 우마이야 왕조 이후 750년부터 1258년에 걸쳐 이슬람을 지배한 압바시야 제국이 막을 내리고 이슬람 주도권은 튀르크인 중심의 오스만제국으로 이동된다.13세기 말, 소아시아와 그 주변은 튀르크족의 소부족 군웅할거 시대를 맞는다. 셀주크 튀르크는 당시 이즈니크(니케아)에서 남쪽 소아시아 작은 도시 수구트 등 하나의 공국을 거느리고 있던 오스만 베이(Osman Bey)로부터 시작된다. 1299년부터 비잔틴 영토 잠식으로 시작된 정복 사업은 아들 오르한 시대에 와서 유럽의 발칸반도까지 진출했다. 1361년 발칸의 아드리아노플의 정복, 1389년 코소보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면서 발칸반도의 공략이 마무리된다.이들은 지리적 여건상 아나톨리아 부르사와 마르마라해로 진출할 수 있었고, 과거 유목민 피를 이어받은 튀르크 전사들은 강력한 군사력을 자랑했다. 셀주크 시대 술탄의 기병으로 활약할 만큼 강한 기동력을 보유했던 이들이다. 정확하게 623년이란 역사를 자랑할 수 있었던 오스만제국은 우연이 아니다. 튀르크족이 몽골군의 침탈을 피해 아나톨리아로 밀려들던 때다. 이때 오스만은 피난민을 성심으로 품어 튀르크족을 규합해 세력을 불리기 시작하면서 영토를 서쪽으로 넓히는 데 성공하자, 응당 유럽의 관문 비잔티움과의 한판 대결을 가져왔다.그러나 비잔티움 제국은 제4차 십자군에 의해 풍비박산 나 종이호랑이로 전락한 채였다. 더구나 제국의 말기적 현상인 민심 이반이 심각했다. 허리를 졸라야 맞출 수 있는 세금과 부역은 늘 하층민을 괴롭혔다. 이때 오스만이 나타나 세금을 대폭 줄여주었고, 점령지 주민에게도 이슬람의 형제로 취급해 똑같이 대접했다. 이슬람을 강요하지 않았으며 종교의 자유는 물론, 사유재산을 인정했고, 언어와 문화 역시 관대했다. 오스만을 지지하는 소리가 하늘에 퍼졌고 백성의 찬사가 이어지며 더 광대한 영토가 흡수되기 시작했다.다양한 민족이 혼재된 상태에서 무리한 포교와 강요는 역효과를 낼 수 있었다. 믿음을 인정함으로써 세수 확보와 징병 등 제국의 안정을 꾀했다. 즉 파괴와 살육보다 회유와 평화 정책을 펼치면서 민심을 얻었다.물론 타 종교에 관대했다곤 하나 세금은 더 내야 했고, 교회도 화려하게 짓지 못하게 했다. 출입구도 지상에서 1m를 넘지 못했다. 개처럼 기어서 드나들게 한 것은 이들 최소한 폭력의 도출이었다. 그리스 아테네의 초라한 정교회 건물이 지면에서 1m 아래에 서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기어서 드나들 수 없어서 땅을 아래로 낮춰 교회를 올렸던 까닭이다. 오스만제국을 본 주변 토후국들은 스스로 오스만 깃발 아래 몰려들었다. 여기에 죽음을 두려워 않는 튀르크 전사들의 집결도 이어졌다. 급작스레 소아시아 세력균형이 무너지면서 튀르크족은 자신들의 이상인 무슬림의 의무 ‘지하드’를 성취할 조건을 갖춘 나라를 선호했다. 물질적 보상은 덤이었다. 강력한 중앙집권적 제국은 1인 지배체제보다 가족 지배체제에 의존했다. 남을 믿기보다 형제간의 믿음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고래로 이어온 체제 방식이다. 단점도 있었다. 왕이 죽으면 아들들에게 똑같은 영토를 분배했는데, 이는 가족 간 내분으로 이어져 형제간 피 흘리는 싸움이 벌어지곤 했다. 그러나 오스만 1세는 유언으로 장자상속을 정해버렸고, 남은 아들들은 죽거나 혹은 감금 상태로 살아야 했으며, 일체 정치에 관여할 수 없었다. 태생적 불행은 어린 시절부터 포기라는 절망의 멍에를 짊어진 채 살아야 했다. 이나마도 대부분 죽음을 면치 못했다. 비정한 선택, 이슬람의 교리 뒤에 감추어진 번영을 위한 살기(殺氣)를 보는 듯하다.오스만 1세는 장자상속과 함께 미래를 위한 나름 지혜로운 유언을 남겼다.“종교를 가장 중심에 두고 조심해 다루라. 지혜롭지 못한 자에게 권력을 나누지 말라. 학자와 기술자, 예술가, 문필가들이 힘의 원천이니 명예롭게 대하라!” 박필우 작가 20대 초반의 나이에 부족장이 된 이래 30여 년을 정복 전쟁으로 날밤을 지새웠던 인물다운 유언이다. 학자와 기술자, 예술가들이 힘의 원천임을 이미 알고 있었다. 이것이 제국을 존재케 하는 에너지원이었다.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가지스(Ghazis)’, 즉 튀르크 말로 전사의 원정대이자 약탈원정대가 발전해 주군을 모시는 구성원으로 탄탄한 결속력을 자랑했다. 전쟁이 곧 생업인 이들에게 종교적 동기가 작용하면서 더 무서운 힘을 발휘했다. 가지스는 비잔티움 제국은 물론 발칸반도와 지중해 기독교도와 곳곳에서 전투를 벌였다. 종교적 의무를 다한다는 초기 정신으로 무장해 흔들림이 없이 전쟁을 수행했다. ‘성전’을 수행하는 데 있어 생계와 생활공간이 따로 없었다. 밥 먹다가 싸우고, 싸우다가 잠들곤 했던 당시의 청춘들을 상상조차 할 수 없다.2대 오르한(Orhan) 1세(1281~1362)에 이르러 아나톨리아 대부분을 그의 발아래 두고, 발칸반도를 침략해 유럽으로 제국의 영토를 넓히는 세력을 완성한다. /스토리텔링 작가 박필우

2024-05-06

자본의 영화화, ‘범죄도시 4’

영화 ‘범죄도시 4’의 포스터. /영화 홈페이지 ‘범죄도시4’가 개봉 일주일만에 600만 관객을 모았다. 한국영화는 곧 상반기에만 두 편의 천만 영화를 보유하게 된다. 인구 5000만 나라에서 천만 영화가 몇 편씩 나오는 건 기현상이다.‘파묘’는 최소한 상도의라도 있었다. 전국 상영관 점유율이 50퍼센트였다. ‘범죄도시4’는 해도 너무하다. 개봉일부터 일주일 동안 하루 평균 약 2861개 스크린에서 1만 5851회 상영하며 상영점유율 82퍼센트, 좌석점유율 85.9퍼센트를 찍었다. 관객들은 선택권을 잃었다. 비슷한 시기 개봉한 ‘정순’은 전국 3개 스크린에서 총 관객 3438명, ‘땅에 쓰는 시’는 7개 스크린에서 8549명, ‘여행자의 편지’는 13개 스크린에서 5260명이 봤다.한국에선 영화가 자본주의의 꽃이다. 시장의 영업 행위일 뿐이다. 하지만 다양성 없는 독과점은 전체주의다. ‘범죄도시4’는 재밌는 영화일지언정 좋은 영화는 아니다. 한 편의 재밌는 영화를 띄우려고 여러 편의 좋은 영화를 가라앉히는 것은 폭력이다.‘범죄도시’의 알파와 오메가인 마동석은 한국에 ‘리썰 웨폰’이나 ‘다이하드’ 같은 액션 프랜차이즈를 정착시키고 싶다고 했다. 그 영화들도 황소개구리처럼 닥치는 대로 먹어치워 영화 생태계를 말살시켰을까? ‘리썰 웨폰2’와 ‘다이하드2’가 개봉한 1989년과 1990년엔 ‘레인맨’, ‘나의 왼발’, ‘드라이빙 미스 데이지’, ‘죽은 시인의 사회’, ‘7월 4일생’이, ‘리썰 웨폰3’가 나온 1992년엔 ‘용서받지 못한 자’, ‘여인의 향기’, ‘라스트 모히칸’, ‘흐르는 강물처럼’이, ‘다이하드3’가 개봉한 1995년엔 ‘데드 맨 워킹’, ‘가을의 전설’, ‘브레이브 하트’, ‘유주얼 서스펙트’가 있었다. 영화 산업의 중심인 할리우드에서도 작품 다양성과 관객들의 선택권은 지켜진다. 소수의 대형 영화사와 다수의 독립 영화사들이 협업관계를 이루며 분리와 평형을 유지하는 게 할리우드의 힘이다.마동석의, 마동석에 의한, 마동석을 위한 시리즈다. “자기 복제를 안 하려고 한다. 재미있다고 계속 하는 건 지양한다”고 했지만 그의 액션 연기와 스토리라인은 진부한 클리셰가 돼 버렸다. 1편은 꽤 신선했고, 2편은 손석구와 박지환의 연기라도 보는 맛이 있었다. 3편부터는 조악한 스토리와 방방 뛰는 활극만 남았다. 4편은 안 봐도 뻔하다. 이 시리즈는 현재 5, 6, 7, 8편의 대본을 한꺼번에 집필 중이라고 한다. 영화라는 예술에 대한 모독처럼 느껴진다. 막장드라마 쪽대본도, 다작과 속작으로 B급 무비를 마구 찍어댄 70~80년대 남기남, 고영남 감독도 그렇게는 안했다. 돈에 혈안이 된 제작사와 배급사, 감독과 배우, 그리고 군중심리가 결합해 ‘범죄도시 8부작’이라는 괴물을 낳았다.‘심야의 FM’이나 ‘범죄와의 전쟁’, ‘부당거래’ 때까지만 해도 마동석은 제법 진지한 배우로 보였지만 이젠 배우라고 하기 민망할 정도다. 스스로를 공장에서 천만 개 찍어낸 근육인형으로 팔고 있다. 출연하는 영화, 드라마, 광고가 다 똑같은 주먹 자랑이다. ‘대중이 원하지 않느냐’는 반문은 너무 쉬운 출구전략이다. 이병철 문학평론가이자 시인. 낚시와 야구 등 활동적인 스포츠도 좋아하며,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범죄도시4’의 독과점을 비판한 기사에 달린 댓글들이다. “재미만 있으면 늘리지 말라고 해도 극장에서 알아서 늘린다. 억지로 규제 좀 하지마라”, “맛집이라 줄 서 있는 가게 있고 맛없어서 텅텅 비어 있는 가게 있다. 보고 싶은데 스크린 몇 개 없어서 빡빡하게 앉아 봐야 하나?”, “언제까지 이런 구닥다리 기사를 쓸 건지. 다 계산기 두드리고 하는 일인데. 창의적인 기사 좀 보고 싶다”… 지금 박스오피스에서 자본을 앞세워 다른 영화들을 규제하는 것도, 보고 싶은데 스크린 없어 못 보게 하는 것도, 창의적인 영화 안 나오게 하는 것도 다 “재미만 있”고 예술은 없는, 오직 저속한 상품성만 남은 ‘구닥다리 액션 맛집’ 그 시리즈다.김수영은 참여 문학을 내세우면서 민중의 참여가 불가능할 만큼 난해한 시를 쓴다는 비판에 “읽기 쉬운 글만 읽으면 민중은 성장할 수 없다”고 일갈했다. 발터 벤야민은 나치의 파시즘이 예술을 정치 선전의 도구로 악용하는 ‘정치의 예술화’에 맞서 ‘예술의 정치화’를 실현할 장르로 영화를 제시했다. 김수영도 벤야민도 사유하는 주체로서의 대중을 믿었다. ‘범죄도시’ 시리즈는 자본의 영화화다. 나는 자본의 영화화를 부끄럽게 만드는 개성, 예술, 양심, 자유, 사랑의 영화화를 기다린다. 그것은 분별력 있는 대중과 함께 나타난다.

2024-05-06

5월의 토마토

집 냉장고엔 토마토가 가득 쌓여 있다. 후덥지근한 한낮, 창문을 열어두고 커튼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토마토를 먹는 건, 내게 초여름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다.토마토는 그냥 먹어도 맛있지만, 설탕과 물을 넣어 간 토마토 주스도 좋고, 알룰로스 시럽과 설탕을 토마토 위에 솔솔 뿌린 토마토 무침, 또는 사이다에 토마토와 바질을 넣어 숙성 시켜 마시는 토마토바질 에이드를 만들어 먹어도 좋다. 간식은 물론 계란과 토마토, 약간의 소금 후추를 넣어 금세 만들어 내는 토마토 계란 볶음, 발사믹 소스로 절여 만드는 토마토 마리네이드까지 근사한 식사로도 활용해 먹을 수 있으니 이맘때의 토마토는 냉장고에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초여름이 되면 어쩐지 어린 이파리가 몸속에 자라는 듯 파릇한 기운이 돈다. 연두빛을 띄던 식물들이 점점 초록색으로 변해가는 모습을 보며 왠지 나도 따라 마음이 짙어 진달까. 마음의 여린 부분을 쥐고 하늘하늘 흔들리다 외부 충격에 휘청일 때면 달콤한 토마토로 기분을 달랜다.초여름의 토마토의 맛은 달콤하기보단 새콤함에 가깝다. 토마토를 반달 모양으로 조각내어 한 입에 넣고, 단단한 과육이 물러질 때까지 꼭꼭 씹으면 토마토의 새콤한 향이 입 안에 퍼진다. 달콤함과 약간의 짠 맛이 혀에 감도며 감칠맛을 이끌어 낸다. 연한 속살은 씹을수록 시큼함과 함께 풀내음이 난다. 연하게 맴도는 풀내음 덕에 더욱 초여름과 어울린달까.토마토를 더 맛있게 먹기 위한 방법으로는 하루 1시간씩은 달리기를 꼭 하는 것이다. 사실 겨울 내내 추위를 핑계로 운동을 미뤄왔지만 근래 들어선 주에 4번씩은 기본으로 하고 있다. 운동이라 하기에 민망할 정도로 무작정 런닝 머신에 올라가 뛰는 게 전부지만, 외투가 젖을 정도로 빠른 속도로 뜀박질을 하고 나면 토마토가 맛은 더욱 배가 된다.한 시간 내내 쉬지 않고 달릴 수 있는 동력 또한 토마토에서 나온다. 미운 사람의 얼굴을 떠올리며 분노의 질주를 택하기보단, 십오분 뒤 차가운 토마토 먹는 것을 떠올리며 얼굴이 붉어질 때까지 달리는 편이 효과가 좋다. 화끈화끈해진 얼굴을 감싸 안으며 집에 돌아와 찬물로 씻고 먹는 토마토의 맛이란! 이제 막 냉장고에서 꺼낸 달콤한 토마토의 맛은 다시금 세상을 너그럽게 살아갈 수 있는 동글동글한 마음가짐을 갖게 한다.요즘 루틴 중 하나는 자기 전, 감사 일기로 하루를 마무리하는 것이다. 하루를 돌아보면 작고 소소한 감사한 것들이 많은데, 자꾸만 부정적인 몇몇 가지의 이유에 치여 감사함을 잊고 지낸다. 부정적인 이유를 커다랗게 생각하여 하루의 끝에 침울해 있기 보다는, 전력 질주 후 토마토를 먹는 것과 같이 소소하게 이루어 내는 작은 행복들에 집중하며 일기를 쓴다.일기를 쓰면서 견디기 힘들다고 생각했던 시간들이 잘 흘러가고 있고, 무례한 사람에게는 무례함을 똑같이 되갚아 주지 않아도 되는 마음의 여유가 생기고 있다. 의외로 생각 정리가 잘 되어서 요즘 기록하는 습관의 힘에 대해 다시금 놀라고 있다.지금은 해가 들어오는 시간, 식물을 황급히 창문 앞에 두어 빛을 받게 하면서 바람에 흔들리는 잎을 슬쩍 본다. 지금 집 안엔 그리 시끄럽지 않은 음악이 떠다니고, 바깥은 간간이 들려오는 차 소리 이외에 큰 소음이 없어 적적한 기분이 든다. 이 시간 불쑥 찾아오는 외로움은 늘 반갑지 않은 손님이지만 그래도 그 외로움 끝에 단단한 힘이 있음을 안다. 윤여진 2018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현재보다 미래가 기대되는 젊은 작가. 불현듯 성경책의 등을 쓰다듬다 윤동주 시인의 ‘팔복’을 떠올린다.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라는 문장의 행이 8번 반복되고, 저희가 영원히 슬플 것이오 라는 문장으로 마무리 되는 시. 외로움은 슬픔을 동반하고 슬픔을 멀리 하려 할수록 그림자와 같이 더는 도망갈 수 없다. 피부 깊이 새겨진 외로움을 속옷처럼 입혀진 상태로, 더 내밀해진 영원의 슬픔으로 향한다. 영원의 슬픔 끝엔 정말 복이 있을까? 이런 고민을 하는 내게 누군가는 기도를 해보라고, 또다른 누군가는 나를 측연하게 여기며 위로를 건네기도 하고, 또 누군가는 나를 알 수 없는 허공의 눈동자로 물끄러미 보기도 한다. 그 누구도 쉽게 답을 내리지 못하지만, 생과 외로움이라는 거대함에 대해 더 생각하기보단 지금 당장 일어서서 생생한 감각으로 달리고, 기록하고, 토마토를 먹으며 순간의 즐거움에 집중하는 것이 지금 내게 큰 도움이 되는 일임을 안다.짙은 초록과 열기로 들끓는 계절, 여름이 와도 붉게 익은 한 알의 토마토처럼 단단해지는 일은 어렵지 않다. 하얗고 깨끗한 집, 커튼 사이로 새어 들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먹는 토마토의 맛, 식물과 함께 나란히 광합성을 하며 오월의 시간을 느리게 느리게 되감고 있다.

2024-05-06

로마의 교훈

홍석봉 언론인 지난 4·10총선 때 대구시 신청사 건립 문제가 달서구병 공천 과정에서 뜨거운 이슈가 됐었다. 현역 의원과 전 대구시장이 신청사 건립 책임 공방을 벌였다.이에 대구시 경제부시장이 2022년 말까지 청사건립기금으로 조성한 1850억원 중 1368억원을 기금 목적과 전혀 상관없는 사업에 전용했다고 밝혔다. 코로나 팬데믹 상황에서 대구시가 독자적으로 1인당 10만원씩 지급한 대구희망지원금 때문에 2020년 말 사실상 청사건립기금이 고갈 상황에 이르렀다고 해명했다. 코로나 재난지원금으로 청사 건립 기금을 유용한 탓에 돈이 없어 신청사 건립이 지연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구시가 성서 및 칠곡행정타운 등 공유재산을 매각, 신청사 건립 재원을 마련하고자 했다. 그러나 대구시의회가 공유재산 매각을 반대하는 등 제동을 걸고 나섰다. 결국, 신청사 건립은 다시 재원 암초에 부딪혀 표류하고 있다. 코로나 지원금만 아니었더라면 벌써 착공할 수 있었던 것이 이젠 언제 건립할지도 모르는 상황이 됐다. 개인에게 10만원은 있으나 없으나 큰 의미가 없다. 그러나 250만 명, 1368억원은 큰돈이다. 결국, 잠시 고난을 면해보자고 한 것이 대구시민에게는 다시 세금 부담으로 돌아오게 됐다.더불어민주당이 4·10총선 때 전 국민에게 1인당 25만원씩 풀어 민생을 지원하겠다고 공약했다. 무려 13조원이 필요하다. 선거 과정에서도 논란이 뜨거웠다. 윤석열 대통령과 이재명 민주당 대표 간의 첫 회동에서도 25만원 지원이 다시 의제에 올랐다. 이 대표는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지원금은 꼭 수용해달라”고 했다. 윤 대통령은 국가재정에 부담되고 인플레이션이 우려되기 때문에 거부한 것으로 전해졌다.25만원 지원은 현금 살포로 명백한 포퓰리즘이다. 선거 공약은 매표행위나 다름없다는 지적을 받는다.코로나19로 인해 전 세계적으로 유행병처럼 번진 현금 살포가 민생 어려움을 이유로 다시 등장했다. 미국 등은 현금 살포 후유증을 앓고 있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고물가와 고금리로 경제가 홍역을 치르고 있다. 민생을 외치는 민주당의 구호는 거창하지만 1인당 25만원을 받는다고 해서 살이 되고 생활에 큰 보탬이 되지는 않는다. 민생은 항상 고달프고 어려웠다. 국가부채가 1100조원을 넘어섰다. 나와 자식들이 갚아야 한다. 인구소멸위기의 나라에서 미래세대에 부담을 떠넘기는 것이다.코로나19 당시 재난지원금의 효과를 분석한 결과 정작 소비 진작 효과는 약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결과적으로 헛돈을 쓴 셈이 됐다.집단의 이익이 국익보다 우선시 되고 우선 먹기에 달콤한 눈앞의 이익에 목을 매고 달려드는 현실이 안타깝다. 돌아서면 날아들 청구서는 생각지도 않는다. ‘월 300만원을 무상지급하겠다’는 정부안을 거부한 스위스 국민에게서 배워야 한다. 공짜 빵과 서커스에 빠져 나라를 망친 로마의 교훈을 잊어선 안 된다. 국민이 작은 이익만 좇고 지배 계층이 대중과 영합할 때 국가는 쇠망한다는 준열한 가르침이다.

2024-05-02

선관위 채용비리

우정구 논설위원 동양에 복마전(伏魔殿)이라는 고사가 있다면 서양에는 ‘판도라의 상자’라는 전설의 이야기가 있다. 출처는 다르지만 악(惡)을 담아놓은 전각이나 상자의 문을 열면서 인류의 비극이 시작됐다는 내용은 비슷하다.수호지에 등장하는 복마전은 마귀가 숨어 있는 전각이다. 열지 말아야 할 전각의 문을 열면서 마귀들이 세상 밖으로 나와 세상에는 불길한 일들이 벌어지게 된다.나쁜 일이나 음모가 끊임없이 행해지는 악의 근거지라는 뜻으로 부정부패, 비리의 온상을 부를 때 보통 복마전이라 한다.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판도라 상자는 인류의 모든 악과 재앙을 담은 상자다. 그 상징성 때문에 비리나 부정, 음모가 있는 곳을 가리킬 때 보통 판도라 상자라고 부른다. 복마전과 비슷하게 부정부패가 상징되는 곳에 사용되는 말이다.중앙선관위와 전국선관위의 채용비리를 보면서 많은 국민이 공분을 하고 있다. 10년 동안 1200건이나 되는 채용비리가 저질러졌음에도 단 한차례 문제도 삼지 않았다는 사실이 더 놀랍다. 특히 선관위 고위직 자녀를 세자로 호칭하는 등 특혜채용 사실이 내부적으로 공공연한 비밀이었을텐데도 묵과돼온 사실은 이해할 수가 없다.전문가들은 부정부패 원인을 몇 가지 차원에서 접근한다. 도덕적 접근법, 사회적 관습의 결과, 또는 제도적 결함 등으로 분석한다. 여기서 선관위의 채용비리는 도덕적 규범의 붕괴에 가깝다. 공무원이 국민의 봉사자라는 사실을 잊고 권한이 자신의 것인양 착각하고 남용하는 윤리적 가치관의 몰락을 뜻한다. 부정부패의 분위기가 조직 내에 스며들면서 끝내는 본인 스스로도 물들어 가는 과정이다. 복마전의 선관위 비리에는 일벌백계가 답이다./우정구(논설위원)

2024-05-02

어린이날 즈음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어린이를 보면 미래가 보인다. 어린이들이 밝고 건강하면 그들이 만들어갈 세상도 그러할 것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우리나라의 어린이들은 그다지 건강하고 행복하지 못한 것 같다. 그것은 곧 나라의 미래를 낙관할 수 없는 우울한 현상이 아닐 수 없다.2023년에 조사한 우리나라 아동행복지수는 4점 만점에 1.66점으로 조사 대상인 OECD 22개국 중 꼴찌를 기록했다. 해당 조사에서 ‘행복을 위해 필요한 것’으로 돈·성적 향상·자격증 등의 ‘물질적 가치’를 언급한 아이들이 38.6%로 가장 많았다. 가족·친구 등의 ‘관계적 가치’는 33.5%, 건강·자유·종교 등의 ‘개인적 가치’는 27.9%에 그쳤다. 관계적 가치를 꼽은 학생들이 상대적으로 행복점수가 높게 나타났는데, 2009년 대비 관계적 가치를 꼽은 비율이 10.8%포인트 줄어든 반면 물질적 가치는 9.5%포인트 증가했다.어려서부터 가족이나 친구들과 어울리기보다 사교육 등으로 내몰리는 학업 스트레스가 가장 큰 원인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더구나 건강보험 심사평가원에 따르면 2020년 국내 5~14세 우울증 환자는 9621명에 달했다. 2017년에는 6421명이었는데 불과 3년 만에 49.8% 급증한 셈이다. 같은 기간 전 연령대의 우울증 환자가 68만169명에서 83만7808명으로 23.2%가량 늘어난 것과 비교하면 어린이·청소년의 정신건강 문제가 훨씬 빠르게 악화되는 양상이다.어린이를 상대로 하는 범죄도 계속해서 증가하고 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아동학대 사례는 2016년 1만8700건에서 2020년 3만905건으로 대폭 증가했다. 아동 성착취물 유포 등의 범죄 피의자 역시 2018년 1143명에서 2020년 2851명으로 2배 이상 늘어나기도 했다. 국제아동권리기구 세이브더칠드런과 서울대 사회복지연구소가 수행한 ‘국제 아동 삶의 질 조사’에서도 한국 어린이들은 35개국 중 최하위권이었다.어린이들의 교육환경에 대한 문제점으로는 우선 공교육의 위기적 징후가 갈수록 심각한 양상을 띠고 있다는 것이다. 학교교육의 만족도와 교사에 대한 신뢰도가 낮은 가운데 공교육이 본연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이다. 경제적 양극화로 인한 교육격차의 문제도 심각하고, 교육현장에서 아이들과 선생님이 행복감을 느끼지 못하는 교육환경도 간과할 수 없는 문제다. 이는 경쟁을 부추기는 성적위주의 교육, 지식의 도구화에서 오는 폐해이다. 다음으로 꼽을 수 있는 것은 교육환경의 기술적 변화에 대한 대책마련이다. 학교교육의 디지털화로 ‘신기술들이 간편함과 효용성을 제공하지만 교육내용과 운영 시스템 자체를 기술과 그 시장에 점점 더 의존케 한다는 문제를 갖고 있으며, 직접 경험이 최소화된 학습활동이 증가하고 교사와 학생 사이의 전인적 상호작용도 제한되는 단점이 나타날 우려가 높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물질적으로는 풍족해졌음에도 어린이들이 행복하지 않은 나라가 되었다는 것은 분명 반성과 성찰이 필요한 일이다. 나라의 장래를 위한 무엇보다 우선의 과제가 바로 어린이들의 행복이다.

2024-05-02

이번 5월에는

윤영대 전 포항대 교수 5월이 왔다. 생동감이 넘치고 산뜻한 바람 속에 살아 숨 쉬는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는 계절이다. 이해인 수녀는 -찔레꽃 아카시아꽃 탱자꽃 안개꽃이/ 모두 흰빛으로 향기로운 5월-이라 노래했다. 여기에 하나 더, 늦봄에 하얀 눈이 소복이 내린 듯한 이팝나무도 5월의 신부 모습이다. 포항의 거리에 언제부턴가 심어졌던 이팝나무는 이제는 봄의 도심을 하얀 띠로 두르고 있다. 또한 장미의 계절이기도 하여 그 화사함으로 시인과 수필가 등 문학인들에게는 좋은 글쓰기 감이다.4월의 끄트머리에서 송도와 영일대 해안 길 따라 해변 마라톤대회가 열렸고 오천 해병부대에서는 해병문화축제가 시민의 열렬한 호응을 받았다.우창동 마장지에서 생태환경 바꾸기 문화행사인 마장지 축제가, 산림조합 잔디밭에서는 임산물 축제가 있었다. 5월은 전국적으로 많고 다양한 봄꽃 축제와 문화축제가 준비되어있는 달이다.5월은 ‘가정의 달’이기도 하다. 달력을 넘겨 보니 행사일이 무척 많다. 어린이날, 어버이날, 부부의 날이 있고 스승의 날, 성년의 날, 부처님 오신 날도 있고 입양자의 날, 세계인의 날이 있는 5월은 인간관계의 따스함을 느끼게 하는 달이다. 그런데 ‘공포의 달’이라는 걱정도 있다. ‘어린이날과 어버이날에 선물은 무엇을 하면 좋을까?’라는 설문에 ‘용돈’이 가장 많은 대답을 얻었으며, 또 가족끼리 식사를 하려면 요즈음 물가가 올라서 주머니 사정이 녹록하지 않다는 반응이다. 그래도 어버이날에는 어버이 은혜에 감사드리며 어른과 노인을 공경하는 경로효친 마음을 가져야 하며, 스승의 날 또한 요즈음 사회적 기류를 보아 오해받기 쉬울지 모르지만 자기를 가르쳐준 선생님께 카네이션 한 송이를 달아드리며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것도 삭막해져가는 우리 사회를 따뜻하게 해 줄 수 있을 텐데 아쉽다.1일은 ‘근로자의 날’인데 달력에 빨간 글씨가 아니기에 은행에 갔다가 문이 잠겨있는 것을 보고 ‘아! 오늘이 노는 날이구나’하고 돌아섰는데 관청과 학교는 정상 근무였다. 5일은 입하(立夏), 여름에 접어드는 날. 그래도 아침저녁으로는 쌀쌀함이 느껴지기도 하니 야외활동하려면 가벼운 윗옷이나 긴팔 셔츠도 준비하는 것이 좋겠다.아침마다 차 유리창에 내려앉은 꽃가루를 털어내며 봄철의 성가심도 느낀다. 시골집 마루에도 송홧가루가 노랗게 쌓여있어 소나무 순을 따야 한다. 노랗게 솟아나는 것 중에서 2~3개를 남기고 따버리고 한 달 후쯤에 3~4㎝ 길이로 잘라주라고 한다. 작은 텃밭에는 상추와 고추 모종도 심었다. 잘 가꾸면 여름 한 철은 상추쌈에 풋고추 된장 찍어 맛있게 먹을 수 있겠지….최근 대통령과 야당 대표의 소위 ‘영수 회담’이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이루어졌다. 영수(領袖)란 옷깃과 소매라는 뜻인데 남의 눈에 잘 띈다는 데서 비롯된 표현으로 특출한 사람 즉, 우두머리라는 뜻이다. 윤 대통령 취임 2년 만의 첫 대면으로 여러 현안에서 양측은 이견을 보였지만 5월의 끝에는 22대 국회가 시작되니만큼 새 국회가 나라를 위하는 협치의 정치를 보여주어 국민이 안심할 수 있는 따뜻한 5월의 바람을 날려주었으면 한다.

2024-05-02

이모

윤명희 수필가 점심시간의 국숫집이 분주하다. 나지막한 기와지붕의 식당은 벗어놓은 신발들이 제 짝을 찾을 수 있을까 싶을 정도였다. 겨우 빈자리를 차지한 우리는 식당아주머니를 대신해 컵과 물병을 가져왔다. ‘이모!’ 걸쭉한 중년 남자의 목소리다. 머리 희끗한 남자는 자기보다 나이가 적어보이는 아주머니를 이모라 부른다. 친구는 그를 힐끗 쳐다보았다.그녀는 젓가락으로 뜨거운 국수 가락을 휘휘 저으며 한마디 했다.“왜 이모를 식당에서 찾는대?”나는 혹시나 누가 들었을까봐 곁눈질로 돌아보았다. 다행히 입으로 들어가는 국수의 뜨거운 열기로 친구의 목소리는 멀리가지 않았다. 여전히 이모를 찾는 다른 사람의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렸다. 식당종업원을 이모라는 호칭으로 불러 기분 나쁘다는 친구에게 나는 얼마 전에 아들이 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모처럼 집에 온 아들이 대학동기 모임에 다녀왔다고 했다. 일찍 결혼한 친구가 아기를 안고 왔다. 여자 친구들이 목련꽃 봉우리 같은 아기의 볼을 부비며 서로 안으려 했다. 겨우 옹알이 하는 아기에게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이모’라 불러보라고 야단이었다. 옆에 있었던 아들이 ‘고모’라 불러야 한다고 거들었다. 우리는 아기아빠의 친구니까 고모가 맞지 않으냐는 말에 그래도 이모가 좋다고 했다.타오르는 모닥불 앞에서 불멍을 하던 친구들이 낮에 했던 이야기를 꺼냈다. 이모는 편한데 고모는 왠지 마음이 불편하다는 것이다. 그러자 여기저기서 자기도 그런 느낌이라면서 ‘왜 그렇지?’ 라는 주제로 이야기가 이어졌다. 친한 건 고모인데 편한 건 이모라는 말에 모두 동의를 했다. 이해가 안 된다고 하자, 평소 별로 말이 없던 한 친구가 캔 맥주를 하나씩 던져주며 말했다.“왜긴 왜야, 내 엄마가 고모보다 이모가 편하니까 그렇지.”잠시, 자기 집안을 돌아보는지 조용했다. 자식들은 엄마의 지나온 길을 기억한다. 자기한테 잘 해 줘도 내 엄마를 힘들게 하는 사람은 좋아하지 않는다는 말에 아무도 반기를 내지 않더란다. 맥주를 단숨에 마신 그는 아빠와 엄마 사이가 좋지 않을 때도 아빠가 싫지 않더냐고 되물었다. 여기저기서 고개를 주억거리며 동의했다. 아이들이 엄마가 편해하는 사람을 좋아한다고? 살아온 세월의 깊은 내면에 쌓인 감정이다.나의 지난 시간, 할아버지 할머니 제삿날이면 고모가 왔다. 제사음식 준비만으로도 바쁜 엄마는 평소에는 보기 힘든 생선구이를 밥상에 올렸고, 새로운 나물반찬 하나라도 더 준비했다. 행여 우리가 예의에 어긋나는 행동이라도 할까봐 주의를 준 터에 우리는 고모가 반가우면서도 조심스러웠다. 우리 형제들의 손에 용돈을 쥐어주었던 고모는 엄마가 모셔야 하는 형님이었다.이모가 오는 날도 먹을 게 많았다. 엄마는 당신이 동생이라는 위치를 한껏 이용하는 것 같았다. 이모가 오는 날은 김칫거리가 준비되어 있었고, 다듬지 않은 푸성귀가 있었다. 우리는 제비새끼마냥 엄마 곁에 앉아, 이모 손에서 김치쪼가리를 받아먹곤 했다. 남은 양념에 밥을 비벼 입을 호호 불어가며 퍼 먹었던 기억은 푸근함이었다. 엄마는 자식들이 나이만 먹었지 할 줄 아는 게 없다는 둥 흉을 보고, 이모는 자기 집 딸년들도 마찬가지라며 받아주었다.엄마가 아픈 날이었다. 이모의 손에는 검은 비닐봉지가 들려있었다. 비닐봉지 속의 장어가 작은 체구의 이모를 휘청거리게 했다. 가스 불에 들통을 얹고, 참기름을 두른 이모는 장어를 집어넣었다. 이모와 내가 누르고 있던 뚜껑을 젖히고 튀어나온 장어가 온 주방을 휘저었던 그날, 우리는 숨이 넘어가도록 웃었다.국숫집을 나오며 나는 친구에게 저 남자들도 고모보다 이모가 편한가보다라고 했다. 그러자 친구는 요즘은 이모, 고모 없는 애들이 많은데, 이모가 식당아줌마인 줄 알게 될까봐 겁난다고 했다. 나는 말없이 그녀를 쳐다보았다. 돌아가신 이모가 보고 싶은 날이다.

2024-05-01

정견모주와 가야산

촛대처럼 하늘을 향해 솟은 바위들 사이로 넓적한 바위가 아슬하게 걸쳐져 있다. 곧 떨어져 내릴 듯 비스듬히 걸쳐져 있는 이 바위는 가야산에서 꼭 둘러봐야 할 장소로 알려진 ‘상아덤(서장대)’이다. 이곳은 성주 백운동에서 칠불봉으로 향할 때, 끝없는 계단과 사투를 벌이다 잠시 쉴 수 있는 서성재에서 남쪽으로 조금만 가면 만나볼 수 있다.상아덤은 성주 방면의 가야산 전경을 한 폭에 담을 수 있는 장소다. 동북쪽으로는 갖가지 모양의 바위들이 즐비한 만물상이 눈길 아래로 시원하게 펼쳐지고, 북쪽으로는 등산의 목적지인 칠불봉이 손에 잡힐 듯 가깝게 느껴진다. 남서쪽으로는 출발할 때 확인했던 심원사가 있는 심원골과 길게 이어진 능선이 늘어져 있다. 해인사가 있는 합천 방향의 전경을 눈에 담지 못하는 것이 조금 아쉽게 느껴진다.상아덤은 가야의 ‘정견모주’의 신화가 깃든 장소이기도 하다. 상아덤의 ‘상아’는 여신을 뜻하는 말이고, ‘덤’은 바위라는 뜻으로, 직역하면 ‘여신 바위’라는 말이 된다. ‘가야산의 산신인 정견모주가 백성을 위해 하늘에 치성을 드렸고, 그에 감복한 천신 이비가지가 오색 꽃구름 가마를 타고 내려와 감응을 맺은 신성한 장소’로 알려져 있다. 높이 솟은 바위 위로 비스듬히 누운 상아덤은 혼례를 상징하는 가마를 따 ‘가마바위’라고도 부른다.이후 산신 정견모주는 알을 두 개 낳는다. 하나는 고령 양전동에서 알을 깨고 태어나고, 나머지 하나는 회천을 타고 낙동강으로 흘러 김해에 이르러 깨어난다. 첫째 아들 ‘뇌질주일’은 머리가 해와 같이 빛난다고 붙여진 이름으로, 대가야의 이진아시왕이 된다. 그의 이름은 또한 세상을 다스리는 귀한 사람이란 뜻이다. 둘째 아들 ‘뇌질청예’는 어머니를 닮아 얼굴이 하늘색과 같이 푸르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김해 금관가야의 수로왕이 된다. 이러한 정견모주 신화의 내용에 의하면, 대가야와 금관가야는 형제지간이며 대가야가 형의 위치에 있다고 여겨진다.그러나 지금껏 발굴된 유적이나 유물을 보면, 금관가야가 대가야보다 한 세기 앞선다는 걸 알 수 있다. 4세기 이전에 발굴된 가야 유적은 김해 쪽이 크고 부장품도 화려한 반면에 고령 쪽은 거의 발굴되지 않았다. 5세기 이후의 가야 유적은 고령 쪽이 크고 김해 쪽은 작은 규모만 발굴된다. 금관가야가 4세기 말까지 김해를 중심으로 번성하다가 왜와 손을 잡고 신라를 공격했으며, 고구려가 신라를 도와 금관가야를 토벌하면서 쇠퇴하였다. 그 후 대가야가 5세기 중엽부터 6세기 초까지 고령을 중심으로 세력을 확장하다 가야를 통일하지 못하고 562년 신라에 병합된다. 대가야를 형의 위치에 놓았던 정견모주 신화는 적어도 5세기 이후가 되어서야 산신 설화에 불교식 명칭과 개념이 덧붙여진 것으로 추정된다. 정견은 불교에서 깨달음을 얻기 위한 8가지 자세 중 하나인 ‘바로 본다’는 뜻이고, ‘주일’이나 ‘청예’도 중국의 옛 전설에서 윤색된 흔적이기 때문이다. 대가야와 금관가야를 형제로 묶은 내용도 대가야의 세력이 구축되던 5세기 중엽 이후로 추측한다. 이는 대가야만의 정당성을 확보하려는 노력이기도 했다. 또한 대가야의 마지막 왕자 월광태자가 자신을 ‘정견의 10세손’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으로 보아 산신을 믿던 토착세력의 위상도 높았던 것으로 파악된다. 그러나 대가야가 신라에 병합되면서 체계적인 신화의 정립은 요원해진다. 이후 9세기쯤 신라의 중앙 정치에서 가야계 인물들이 몰락하는데, 그들에 의해 신화가 윤색된 것으로 보인다. 해인사를 창건한 승려 석순응과 석이정은 대가야 왕족의 후손으로 알려져 있으며, 최치원이 기록한 두 사람의 전기에는 정견모주 신화가 담겨 있다.가야산에 내려오는 산신 신화는 아마도 청동기시대의 샤머니즘적 성격에서 시작되었을 것이다. 대가야가 성장하면서 불교를 받아들여도 가야산은 건국의 성소로서 신성시되었고, 정견모주는 신라에 병합된 이후에도 국가 제의나 기우제의 주체가 되었으며, 불교 성소 안에서도 따로 모셔졌다. 본래 해인사 경내에는 정견모주를 모시던 정견천왕사가 있었다고 전해진다. 지금은 국사단(산신각)에 그 흔적이 조금 남아있을 뿐이다. 하지만 정견모주에게 평안을 비는 산신제는 제법 현대까지 지냈다고 한다. 성주군 수륜면 백운리 뒷산에 잣나무 두 그루와 커다란 바위가 있는 장소가 산신제를 지내던 제단이었다. 지금은 가야산 입구에 마련된 가야산역사신화테마관 안에 소원을 비는 종이를 달 수 있는 장소가 체험 형태로 마련되어 있다.오랫동안 신성한 산으로 여겨졌던 가야산, 그중에서도 빼어난 상아덤은 가야산 전경을 내려다볼 수 있는 장소다. 또한 대가야의 고분들이 산등성이를 따라 만들어지며 하늘에 닿기를 기원했던 것처럼 하늘에 가깝기도 하다. 촛대처럼 높게 솟은 바위 위로 아슬하게 걸쳐진 상아덤을 보며, 꽃구름 가마를 타고 혼례를 치르던 산신 정견모주를 떠올려본다.◇ 최정화 스토리텔러 약력 ·2020 고양시 관광스토리텔링 대상 ·2020 낙동강 어울림스토리텔링 대상 등 수상/최정화 스토리텔러

2024-05-01

경북도민행복대학

이정옥 위덕대 명예교수 경북도민행복대학은 경북인재평생교육진흥원의 사업 중 하나다. 나이, 학력, 직업에 상관없이 경북도민이면 누구나 사는 지역 가까운 캠퍼스에서 평생학습을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2021년, 경북인재평생교육원이 출발하던 해부터 지속적으로 운영하고 있는 걸로 알고 있다. 경북도민의 학습력을 높이고 행복한 학습공동체 문화 조성을 위한 취지의 프로그램이다. 명예도민학사, 명예도민석사 및 명예도민박사과정까지 있는데, 그 중 명예도민학사는 경북도내 19개 시·군의 대학이나 평생학습원 등에서 운영되고 있다.교육내용도 매우 다채롭다. 지역학으로서의 경북학을 중심으로 한 공통영역과 인문학, 사회·경제, 생활·환경, 문화·예술의 4대 특화영역으로 구성되어 있다. 매주 1회 2시간, 30주를 수업하며 출석 70% 이상에 사회참여활동 5시간을 수료하면 명예도민학사 학위를 취득하고 명예도민석사과정 입학 자격을 얻는 시스템이다.4년 전, 은퇴하던 해, 경북인재평생교육진흥원으로부터 강사풀 등록지원 요청을 받았고, 그 후 여러 시·군의 캠퍼스에서 강의 요청이 있었다. 내게 성인학습자 대상 강의는 낯설지 않다. 위덕대는 학령기 학생의 입학생 부족 상황을 대비해 2014년부터 성인학습자 학생을 대대적으로 모집했다. 내가 은퇴한 이후 현재도 활발하게 평생학습사업을 하고 있다. 위덕대는 일찍이 성인학습자를 위한 기본 제도를 마련, 평생학습처를 만들었고 국가지원사업인 평생학습사업단에 선정되어 3년간 추진하기도 했다. 당시 나는 평생교육원장, 평생학습처장과 평생학습사업단장을 수행하기도 했다. 평생학습에 대한 나의 관심과 열정은 재직 중 한국복지사이버대에서 평생교육사 자격증을 취득할 정도였다.성인학습자들은 학령기 학생과 똑같은 학사일정을 소화하고 법정 학점을 이수해야 졸업이 가능한 만큼 처음 14명 정도의 입학생 중 4년 후 학사모를 쓴 분들은 그 절반도 안 될 정도였다. 입학 당시 60세가 훨씬 넘은 분들이 햇수로 4년 총 8학기를 무사히 마쳐 졸업식날 학사모를 쓸 때의 광경은 지금도 눈물날 정도로 벅찬 감격이었다. 그들 중 학교생활을 정말 보람있게 하셨던 세 분은 졸업 후에도 해마다 스승의 날 즈음 연락하시고 함께 식사자리를 만드신다.며칠 전 김천의 경북보건대학교의 도민행복대학에 출강했다. 이 대학엔 4년째 출강 중이다. 해마다 다른 얼굴들을 만나지만 강의에 대한 열의나 태도는 다르지 않다. 30여 명 되는 수강생들은 한결같이 진지하고 꼿꼿한 자세로 경청하신다. 2시간의 강의에 조는 분이 한 분도 없을 정도다. 남성 수강생도 더러 계시지만 여성분들이 압도적으로 많기에 ‘경북 내방가사’ 강의는 특히 보람있다. 강의 도중 잠시 쉬는 시간에는 반장이 이런저런 공지사항을 전달하고 토론을 하는 모습이 여느 대학의 강의실과 다를 바 없다. 동아리 활동도 하고 봉사일정도 공유하는 것 같았다. 만학의 즐거움을 누리는 어르신들이 보기에 좋고, 나는 그들에게 강의하는 것이 즐겁다. 무엇보다 도민들에게 이런 기회를 펼쳐 준 기관과 대학에 고맙다는 생각이 든다.

2024-05-01

손과 팔의 문제는 전부 디스크인가?

박용호 포항참사랑송광한의원장 팔이 저리거나 아픈 경우나 팔이나 손목에 힘이 없거나 들기가 힘들어 내원 하는 환자들이 하는 말의 공통점이 있다. 전부 다 디스크 진단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자세히 문진을 하면 디스크 끼가 조금 있다 혹은 일자목이라 목에서 신경이 눌리는 것 같다는 애매한 답을 하는 경우가 있다. 병원 검사에서도 정확하게 디스크가 눌리는 것이 아닌 경우인데 실제 목과 어깨 치료를 많이 받아도 크게 호전이 없어서 내원을 한다.요골신경이 윗팔 즉 상완골에서 눌리면 손목을 들 수가 없고 팔이 저린 증상이 나타난다.미국에선 토요일 밤에 술을 먹은 후 팔이 눌린 형태로 잠을 자서 생겼다고 ‘토요일 밤의 마비(Saturday night palsy)’라고도 한다. 팔을 과사용 하거나 팔이 오랫동안 눌린 경우 또 상완골 골절에서도 나타난다. 요골신경은 윗팔뼈에 붙어서 주행하는 구간이 있는데 이곳의 근육이 붓거나 눌리면 증상이 생긴다.증상은 손목을 위로 들어올릴 수가 없고 감각이상으로 나타난다. 특히 1·2·3지 쪽으로 증상이 나타난다. 대부분은 2~4주가 지나면 자연 회복 된다고 알려져 있으나 제때 치료를 받지 않으면 오래 고생하는 경우가 있다. 만성으로 진행되면 근육 위축으로 지방이 끼게 되고 시간이 지날수록 근육이 약해진다. 당연히 빨리 치료를 받는 것이 좋으며 제대로 치료를 받아야 한다.요골신경이 아래팔 부근에서 눌리는 경우도 있다. 요골 신경은 팔꿈치 아래로 주행을 하는데 팔꿈치에서 신경이 두 갈래로 분지 되어 운동신경인 하나는 회외근 깊이 들어가는데 여기서 신경이 눌리는 경우가 있다. 여기서 신경이 눌려도 윗팔에서 신경이 눌리는 것과 비슷한 증상이 나타나는데 특이점은 감각의 이상은 나타나지 않는다는 점이다.팔에 힘이 빠지고 손목이 들리지 않는 경우 목이 불편하더라도 디스크에서만 원인을 찾아선 안 된다. 하나하나 따져서 진료를 해야 한다.만약 요골신경 포착 증상이 보인다면 정확한 지점을 찾아서 그 눌리는 부분을 해결 해주는 것이 빠른 치료 방법이다. 신경이 눌리는 주변은 압진 시 반대편보다 통증이 심하고 독특한 통증 양상을 보인다.이 부분을 찾아서 부항으로 피를 뽑아 압력을 줄여 주고 침과 약침 등으로 치료를 한다면 더 빠른 회복을 기대할 수 있다.초음파로 직접 신경을 보면서 대용량 약침으로 신경 주변을 누르는 부분을 분리 해준다면 더욱더 빠른 효과를 볼 수 있다. 첫째는 윗팔 뼈에 붙어 주행하는 요골 신경을 직접 보면서 뼈와 근육 사이에 있는 요골신경에 약침을 주입하면 눌린 신경이 분리되는 것을 확인 할 수 있다. 둘째, 아래팔도 같은 방법으로 치료가 가능하다. 만약 그 부분이 원인이라면 일반적인 치료보다 빠른 속도로 회복이 되는 것을 볼 수 있다. 병은 오래 될수록 치료가 어렵고 특히 신경의 압박이 오래되면 신경 주행경로의 근육에 위축이 오고 지방이 끼게 된다. 오래 될수록 치료가 더뎌지니 빨리 치료를 하는 것이 좋다.

2024-05-01

어린이날을 생각한다

장규열 고문 그런 생각을 어떻게 떠올렸을까. 나라를 잃었던 시절에 소파 방정환은 ‘우리의 미래는 어린 꼬맹이들에게 있다’고 생각했다. 작고 어린 아이들을 부르는 이름이 따로 없다고 생각해 ‘어린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그와 생각을 같이 했던 어른들이 모여 어린이를 위한 활동을 한 끝에 우리 정부는 1957년에 ‘어린이헌장’을 제정했다. 7개 조로 만들어진 헌장은 전문에 ‘모든 어린이가 차별없이 인간성을 지니고, 나라의 앞날을 이어나갈 새 사람으로 존중되며 바르고 아름답고 씩씩하게 자라도록 함을 길잡이’로 삼겠다고 했다. 1922년에 처음 생겼던 5월 5일 어린이날이 다가온다. 정치가 혼탁하고 환경이 무너지며 사회가 어지러운 오늘, 우리는 어린이날을 어떻게 맞고 있는가. 세상만사에 묻힌 나머지, 어린이가 우리의 내일임을 잊은 건 아닌지 걱정이 앞선다.필자는 한때, 우리에게 ‘어린이날’이 따로 있음을 자랑스럽게 여겼었다. 하지만 그 생각은 한 미국인 친구의 한 마디에 무참히 무너져 내렸다. ‘어떻게 한국은 일 년에 단 하루를 정해 어린이날로 삼는가, 우리는 날마다 어린이날인데….’ 우리에게 어린이는 정말로 ‘나라와 겨레의 앞날을 이어나갈 새사람’인가. 어린이헌장은 ‘어린이는 어떠한 경우에라도 악용의 대상이 되어서는 아니된다’고 하였는데, 우리는 그들의 안전을 놓고 흥정하는 꼴을 보지 않았는가. 어린이가 안심하고 즐겁게 자라나는 나라가 되어야 한다. 잃었던 나라를 찾기 위해서도, ‘어린이가 잘 자라야 한다’고 했던 그 어른들의 간절한 마음을 다시 생각해야 한다.사회가 달라지고 문화도 달라졌다. 어린이날을 맞으며 드는 아쉬움은 ‘동요’가 사라진 안타까움에 있다. 어린이는 어린이답게 밝고 맑고 깨끗하고 아름답게 배우면서 자라야 한다. 그 많던 어린이들만의 노래들은 어디로 사라지고 아이들은 어른들의 음악을 함께 들으며 지낸다. 올해는 한국의 첫 동요로 인정받는 윤극영의 ‘반달’이 탄생한지 100년 되는 해라고 한다.‘푸른하늘 은하수 하얀 쪽배에/계수나무 한나무 토끼 한 마리/돛대도 아니 달고 삿대도 없이/가기도 잘도 간다 서쪽 나라로’쓰인 낱말들과 표현방식이 옛스럽기는 해도 아이들만 가지는 상상의 날개를 한껏 달아주었던 동요가 아닌가. 2절 가사는 ‘샛별이 등대란다 길을 찾아라’고 불러 어린이들이 가슴에 희망을 품고 자라나기를 기대하고 있다.어른의 삶이 팍팍할수록 어린이의 내일을 기억하는 일상이었으면 한다. 어린이들의 처지와 나날을 배려깊게 살피면서 나라의 미래를 설계해야 한다. 어린이들이 ‘마음껏 뛰놀며 공부할 수 있는 시설과 환경을 충분히 마련해 주어야’ 하고 어린이는 ‘위협으로부터 먼저 보호되어야 하고 안전을 지켜주어야’한다. 미래를 향한 확실한 투자로서 어린이들을 잘 가르쳐야 하며, 경쟁과 다툼보다 상생과 협력의 묘미를 일깨워 내일의 대한민국이 진정한 선진국이 되도록 만들어야 한다. 어린이헌장은 놀랍게도 어린이를 ‘세계인’으로 키워야 한다고 적고 있다.

2024-05-01

누가 하마스(Hamas)가 되나

홍성식 기획특집부장 지난해 10월 팔레스타인 무장정치조직 하마스의 이스라엘 영토 습격으로 촉발된 ‘팔레스타인-이스라엘 전쟁’의 비극이 지속되고 있다. 휴전과 개전(開戰)의 지루한 반복은 전쟁의 직접 당사자인 이스라엘 군인과 팔레스타인 무장세력이 아닌 어린이와 여성 등 무고한 희생자를 낳고 있는 형국. 미국 등이 종전을 위한 협상을 종용하고 있으나, 이미 100년 가까이 불구대천(不俱戴天)의 원수로 다퉈온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간 화해가 쉽사리 이뤄질 가능성은 높지 않다.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이스라엘인을 자신들의 영토를 강제 점령해 냉혹한 감시와 폭력을 휘두르는 상종하지 못할 이민족으로 인식한다.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에 대한 감정도 최악이다. 농장을 침탈해 이스라엘 사람들을 죽인 하마스를 ‘세상에서 반드시 사라져야 할 악마’로 보고 있는 것.‘신을 위해 헌신을 다하는 군대’로 해석될 수 있는 하마스는 1987년 팔레스타인이 이스라엘의 압제에 반대하는 봉기를 일으키며 태동한 무장단체. 설립자인 아흐마드 야신(1936~2004)은 이스라엘로부터는 “군인과 민간인 가리지 않고 테러를 지시한 악마의 우두머리”로 비난받지만, 팔레스타인은 그를 “우리 민족의 해방을 주도한 지도자”로 추켜세운다. 안중근이 한국인들에겐 의사(義士)지만, 일본 군국주의자에겐 테러리스트로 인식되는 것과 마찬가지.그렇다면 대체 누가 하마스가 되는 걸까? 7개월의 전쟁에서 수천 명의 팔레스타인 아이들이 이스라엘군의 폭격에 사망했다. 목이 부러져 죽은 일곱 살 여동생의 시체 앞에서 열두 살 오빠가 절규한다. “빨리 커서 이스라엘과 싸우는 하마스가 될 겁니다.” 이 아이를 ‘악마’라고 함부로 부를 수 있나? 종교와 인종이 야기한 반목이 서글프다./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4-05-01

그 많던 헌책방들은 어디로 가버렸을까

모리스 쿠랑은 ‘한국서지’에서 3821종의 한국 도서를 총 9부로 나누어 정리하면서 책에 담긴 의미나 내용을 상세하게 알려 한국의 책과 문화를 세계에 알리는 데 크게 기여했다. 그야말로 한국의 서책 문화가 빛나고 있던 한 시대의 중요한 기록이다. 1890년 주한프랑스공사관에 통역관으로 근무했던 모리스 쿠랑(Maurice Courant·1865~1935)은 한국에서 나온 고서들의 방대한 목록을 모은 ‘한국서지(韓國書誌)’를 1894년부터 발간하기 시작해 1901년까지 총 4권의 책으로 완성했다. 한국에 처음 왔을 때 불과 20대 중반의 나이였던 젊은 외국인의 눈에 비친 조선은 다른 어떤 나라보다 책을 사랑하는 나라였다. 그는 자신이 모은 한국의 책에 대한 자료들을 바탕으로 이 한국 책에 대한 애정 깊은 목록을 완성했다.쿠랑은 이 책의 서문에서 자신이 보고 들었던 한국의 문화에 대한 자신의 인상을 남기고 있는데, 그는 여기에서 19세기 말 한국 한성에 있던 서점의 풍경에 대해 귀중한 기록을 남겨두었다. 당시 한성의 서점들은 종각과 남대문 사이에 모여 있었는데, 쿠랑은 아마도 고제홍이라는 사람이 열고 있던 고제홍서사라는 서점에 방문해서 그가 책을 전시하고, 책을 파는 모습에 대해 꽤 상세한 인상을 남기고 있었다. 이 고제홍의 뒤를 이은 아들 고유상은 이 서점을 ‘회동서관’이라는 이름으로 바꾸고, 단순히 책을 파는 서점만이 아니라 출판까지 겸하면서 이른바 개화기 서적과 출판문화를 이끌었다. 온갖 새로운 지식이 책으로 엮여 소개되는 한 시대를 풍미했던 이 기념비적인 출판사도 시작은 양반집에서 흘러나온 경서의 신판이나 고서를 다루던 서점이었던 것이다.서울의 청계천에, 동대문 평화시장에, 부산 보수동 골목에 모여 있던 고서점들을 물론이고, 거리마다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던 헌책방들은 이제는 점점 사라져 간다. 이는 서적과 출판이라는 매체를 통해 꽃피웠던 한 시대의 문화가 사라져 가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지식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가 본질적으로 변화하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굳이 헌책방에 들르는 것은 내가 정확하게 찾는 책을 찾으려는 목적이 아니다. 헌책방에는 내가 원하는 책이 있는 경우가 드물다. 그곳에는 언제나 새로운 발견이 있다. 존재하는지조차 몰랐던 책의 존재를 깨닫고 새로운 자극을 받고 오는 곳. 그곳이 바로 고서점이다. 마치 몰랐던 사람의 몰랐던 면모를 알게 되는 것처럼, 새로운 책의 존재를 알게 되어, 도움이 될지도 안 될지도 모르는 책을 잔뜩 사 가지고 돌아오게 되는 것이 헌책방을 방문하는 의미이다.하지만, 이제 우리는 더 이상 지식에 있어서 새로운 발견이라는 측면을 달갑게 여기지는 않는 듯하다. 내가 원하는 지식의 내용을 원하는 만큼의 크기와 분량으로 적절한 시기에 제공받기를 바란다. 마치 우리 모두가 지금 나에게 필요한 지식이 무엇인지 다 알고 있다는 것처럼. 그렇게 필요한 지식 외의 새로운 변수가 될 무엇인가와의 우발적인 만남을 꺼린다. 확실히 먼지가 가득 쌓여 있는 헌책방의 서가를 하나하나 뒤져 내가 원하는 것을 찾아내기는 어렵다. 헌책방에서 책을 찾는 것은 내가 원하는 지식을 찾는 과정이 아니라 존재하는지조차 몰랐던 책을 찾아 나의 세계를 확장하는 일이다.책의 시대가 저물고 있는 것처럼 가게 바깥으로 채 정리되지 못한 책들이 빠져 나와 있기 일쑤였던 헌책방들도 거리에서 점차 사라지고 있다. 그 많았던 헌책방들의 책들은 어디로 가고 있을까. 하나의 문화가 끝나고 또 다른 문화가 시작되는 것이야 당연한 일이지만, 그래도 일요일 오후에 산책을 나갔다가 우연히 헌책방에 들러 우연히 예상에도 없던 책들을 만나 잔뜩 사 들고 와서 뿌듯함만큼은 그냥 내버리기는 아쉬운 것이다. 오늘은 큰 마음을 먹고 동네에 아직 남아 있는 헌책방을 좀 둘러보고 싶다. 마음을 내려놓고, 지금까지 존재하는지조차 몰랐던 새로운 세계를 만나고 싶다./홍익대 교수 송민호

2024-04-30

습지의 봄

습지의 봄은 버드나무 우듬지에서부터 온다. 연둣빛 새순이 와글와글 피어오르면 가부좌를 하고 묵언수행에 들었던 이도 자리를 털고 일어날 것만 같다. 송강 습지의 봄은 내가 가장 편애하는 풍경 중에 하나다. 봄물 든 습지 아래 잠자던 생명들 기지개 켜는 소리 들릴 것만 같다. 가까이 가 보고 싶은 마음을 꾹꾹 눌러둔다. 좋아하는 것들은 늘 아껴가며 보고 싶은 때문이다. 어천교를 지나 임하댐 초입까지 습지의 버드나무는 끝도 없이 펼쳐진다. 연두의 향연은 때로 꽃보다 아름답다.습지를 끼고 있는 반변천은 일월산에서 발원해 임하로 흘러든다. 일월산을 출발해 협곡을 따라 흐르는 물을 버드나무는 날마다 보고 자란다. 내가 보는 연두는 해와 달을 품은 일월산 산 빛을 닮았다. 이른 봄에만 볼 수 있는 눈 시린 빛깔이다. 아련한 연둣빛 시들해지면 어느새 먼 산에 등불을 켠 듯 산 벚은 핀다. 반변천이 키우는 것들 중엔 토종 민물고기인 잉어며 참붕어, 누치, 쉬리며 처음 들어보는 귀한 이름 백조어, 드렁허리 각시붕어도 있단다. 낯선 이름 앞에서 만나보고 싶은 마음이 화르르 인다. 어릴 땐 영국 신사라 이름 붙은 누치를 좋아했다. 날렵하게 잘 생긴 녀석을 ‘눈치’도 없이 ‘눈치’라 불렀었다.송강 습지는 임하댐 상류에 자리해 있다. 자연 생태 환경이 뛰어나다고 소문난 곳이다. 생태 자연 일 등급 권역에 든다고 하니 그 가치는 이루 말할 것도 없다. 건강한 습지에는 생물의 종이 다양하게 서식하기 마련이다. 지역 주민은 이곳에서 멸종위기 야생생물 1급으로 분류되는 얼룩새코미꾸리를 발견했다는 얘길 들려주었다. 어떤 녀석일까 궁금하다. 사진에서 보는 것 말고 늪에서 헤엄치는 광경을 볼 수 있다면 하는 상상을 한다. 멸종 위기종인 노란잔산잠자리와 흰목물떼새와 물방개도 서식한다니 생태의 보고인 셈이다. 희귀한 생물들을 품은 습지가 곁에 있다는 사실이 축복처럼 느껴진다. 날마다 찾아가 보듬어 주고 싶다.습지의 규모는 축구장 열아홉 개를 합친 정도다. 일 년 중, 많은 비로 인해 물에 잠기는 기간은 한 주에 그친다니 버드나무에겐 다행한 일이다. 뿌리에 숨구멍이 있어 물속에선 오래 살 수 없는 식물인 탓이다. 버드나무는 물을 좋아하고 물을 정화하는 능력이 뛰어나서 예부터 우물가에 주로 심었다. 이곳 습지에 무더기로 자라는 버드나무는 수질 정화는 물론 생태이동 통로로 이용된다. 야생 동물들이 안심하고 살 수 있는 보금자리를 마련해 주고 때로 몸을 숨길 수 있는 비밀의 장소로도 쓰인다. 버드나무가 사라지면 동물들은 노숙자와 다름없는 상태에 놓이게 될 것이다. 스트레스에 시달린 새들은 더 이상 알을 품지 않고 덩치 큰 동물들은 살 곳을 찾아 떠날 것이다. 버드나무는 습지를 살아 숨 쉬게 한다.습지는 다양한 생명을 품는 일 외에 탄소를 흡수하는 역할을 한다. 온실 가스로 인한 환경오염이 심각한 이때 댐 생태공간의 복원은 무엇보다 시급하다. 자연 생태를 기반으로 한 탄소중립을 이루는 일은 인류의 미래와도 맞닿아있다. 온갖 생명이 살아 숨 쉬는 습지를 원래대로 돌려주는 것은 그래서 당연한 일이다. 습지 내에서의 농작물 경작은 소중한 자연 생태 환경에 위협을 가하는 행위다. 서둘러 개선되어야 하지만 농가와 수자원공사의 입장 차이가 쉬이 좁혀지지 않는 모양이었다. 군데군데 농지로 쓰이는 땅이 보이고 내가 아닌 우리를 위해 조금 더 멀리 바라보는 혜안이 필요하다 싶더니 요즘 들어 적당한 타협안이 나온 것 같아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습지가 원래의 제 모습을 온전하게 찾을 날을 기대한다. 박월수 수필가 습지를 가까이 보기 위해 찰랑이는 연둣빛 속으로 발길을 옮겨놓는다. 버드나무 얇은 그늘에 앉아 망중한을 즐기던 장끼 한 마리 사람 발자국 소리에 슬금슬금 꽁무니를 뺀다. 멀리 도망가지 않는 걸 보니 근처에 까투리라도 숨겨놓은 모양이다. 어쩌면 이곳보다 안전한 피신처는 없다고 여기는지 모른다. 자그마한 웅덩이에 정강이까지 잠긴 버드나무 몇 그루 고사한 채로 서 있다. 잘못 뿌리내린 나무로 인해 습지의 물이 오염될까 불안하고 안타깝다. 하지만 두덩에 자리해 살아남은 나무는 먼저 간 나무의 몫까지 함께 살아낼 걸 안다. 웅덩이를 말갛게 만들고 그 이름처럼 멀리까지 뻗어나갈 것이다. 자연과 사람을 이롭게 하는 식물이 언제까지나 우리 곁에 머물러주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습지가 보이는 언덕에서 일몰을 맞는다. 풀냄새 머금은 나무들이 물드는 석양을 베고 꿈꿀 채비에 든다. 아직 할 일이 남았는지 섶 비빔질 소리 나른한 풀숲에 새들의 지저귐 끊일 줄 모른다. 귀 기울여 듣고 있자니 몸 어딘가가 간질간질하다. 내 속에 든 노래 주머니가 공명하듯 퉁겨 나온다. 물옷을 입은 촌부가 해거름을 기다려 거랑 속에 발을 담근다. 유리 투망을 옆에 낀 걸 보니 다슬기를 잡을 모양이다. 반딧불이 유충의 먹이가 되는 다슬기를 싹쓸이하지는 마시라고 나는 속으로 읊조린다. 멧비둘기 한 마리 내 맘 알았다는 듯 꾸욱꾸욱꾸꾸욱 거리며 날아간다. 아름다운 시기를 지나는 습지를 등지고 나도 봄꿈을 꾸러 간다.◇ 박월수 수필가 약력 ·2022년 대구수필가협회 문학상·2022년 경북문협 작가상 등 수상·수필집 ‘숨, 들이다’·청송문인협회장/수필가

2024-04-30

대학 선생의 역할

최병구 경상국립대 교수 최근 2년 사이 우리 학과의 자퇴생이 급격하게 늘어났다. 주변의 교수들과 이야기하며 대다수 학과의 자퇴생이 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인문·사회계열 학과의 자퇴생이 전반적으로 증가한 것이다. 예전부터 1학년 1학기를 다니고 2학기를 휴학하며 입시를 준비해서 타 대학으로 이동하는 학생은 있었다. 우리 학과를 떠난다는 아쉬움이 있지만, 목표를 이룬 이런 학생은 힘껏 축하하며 보내주었다. 그렇지만 지금의 상황은 1학년 1학기 중도에 자퇴하는 학생이 증가했다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다르다. 대체 무슨 일이 생긴 것일까?이번 학기에 겪은 두 가지 사례는 이랬다. 첫 번째 학생은 상담을 위해 연구실 문을 열고 들어올 때 직감적으로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불안한 눈빛이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음을 알려주었기 때문이다. 이미 비슷한 사례를 몇 번 겪은 나는, 침착하게 학생에게 현재 상태를 질문하고 자퇴가 아니라 휴학을 권유하였다. 하지만 학생의 의지는 강했고 부모도 동의했다는 말에 더 이상 할 수 있는 말은 별로 없었다.두 번째 사례는 신용불량자가 되지 않기 위해 일을 해야 한다는 학생이었다. 가정불화가 있고 자신이 집안을 책임지기 위해 경제활동을 하다가 7년이나 늦게 대학에 왔지만, 한 달여 만에 다시 돈을 벌어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앞의 사례와 마찬가지로 격려와 함께 힘내라는 말 밖에는 특별히 할 수 있는 조언이 없었다.위 두 사례가 극단적인 경우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재학생 중에도 정신적 아픔과 경제적 아픔을 가지고 있는 학생이 많다. 자신이 정한 목표를 위해 열의를 가지고 노력하며 필요한 경험을 쌓기 위해 휴학을 신청하는 학생을 만나면 행복하다. 많은 학생이 크고 작은 아픔을 가지고 뚜렷한 목적 없이 휴학한다. 과연 대학의 선생으로서 나는 이런 학생들에게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 걸까.시대가 바뀌어서 분과학문의 지식으로는 미래를 살기 어렵다고 한다. 그래서 모집 단위 광역화를 시행하여 학생들이 다양한 지식을 학습하고 연결하는 훈련을 해야 한다고 한다. 사회 흐름을 반영한 멋진 말이다. 그렇지만 동시에 현장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하는 말이다. 아픔을 가진 학생이 왜 시간이 갈수록 가파르게 증가하는지, 또 대학은 이런 학생을 위해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는지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가 필요하다. 단순히 대학에 상담센터를 설치한다고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이제 대학의 선생은 과거처럼 학생들에게 자신이 공부한 지식을 전달하고 평가하는 일만 하는 존재가 아니라, 학생의 아픔에 공감하며 함께 고민하는 역할까지 수행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지역의 대학은 학령인구 감소와 맞물려 생존을 위해 더욱 학생과 교감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쉬운 일이 아니지만 학생을 위해서 변화된 환경에 적응해야 한다. 최근 들어 교육부는 몇 가지 정책을 추진하며 대학의 변화를 이끌려 하고 있다. 눈앞의 성과를 낼 수 있는 정책이 아니라 크고 작은 아픔을 가진 학생과 함께 나아갈 수 있는 제도 마련이 절실하다.

2024-04-30

5월을 맞으며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5월의 첫날, 푸른달의 시작이다. 연록의 새순들이 일제히 돋아나며 잎새들의 잔치를 벌이다가 급기야 산야가 온통 신록으로 넘실대며 푸르름의 향연을 펼치고 있다. 봄 향기 그윽한 꽃이 진 자리마다 잎사귀를 드리우며 차츰 신록이 짙어지니, 벌써 여름날로 향하는 춘하의 경계인 셈이다. 알록달록 봄꽃들이 피어나며 색깔로 오던 봄날이 온갖 새들의 지저귐과 개구리의 울음이 지천에서 들리며 소리로 오는 여름날을 맞이하고 있다.소리로 다가오는 오월은 정겹기만 하다. 자명종마냥 새벽을 깨워주던 새소리가 정겹고, 잦아지는 비가 처마 끝에서 낙숫물로 떨어지는 소리가 리듬으로 다가온다. 청보리 물결로 일렁이는 이랑에서는 이삭피는 소리가 반갑게 들리는가 하면, 논배미 무논의 군데군데서 왕왕거리는 개구리들의 혼성 합창이 싫증나지 않게 들린다. 바람과 함께 춤추는 잎새들이 초록의 외침으로 나부끼는 나뭇잎 스치는 소리가 갑갑한 가슴 속을 밝히는데, 댓잎을 스치는 바람소리가 풍경(風磬)의 여운으로 남기는 고운 소리가 맑고 투명하기만 하다. 이렇듯 도처에서 들리고 울리는 소리들로 오월이 열리고 있다. 어찌보면 소리에서 소리로 이어지는 일상이듯이, 5월에는 유난히 생각하고 챙겨야 할 일들이 많아선지 기념일에서 시작하여 기념일로 매듭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근로자의날을 시작으로 어린이날, 어버이날, 유권자의날, 스승의날, 부처님오신날, 5·18 민주화운동 기념일, 발명의날, 성년의날, 부부의날 등을 지나 바다의날, 세계 금연의 날로 마무리되니, 과연 푸르름으로 빛나는 계절에 각각의 의미를 부여해 기념일 정하고 부각시키는 것은 뜻있는 일이 아닐까 싶다.그러한 기념일에 으레 빠지지 않는 것이 어떤 소리나 노래, 외침 또는 함성일 것이다. 이를테면 근로자들의 연대와 단결된 힘을 보이는 노동현장의 외침이나 미래의 주역이 될 새싹들을 위한 밝고 맑은 기상의 동요, 은혜를 생각하고 기리는 차분하고 평온한 곡조, 세상의 자비와 광명을 위한 지혜로운 말씀, 그리고 민주화를 부르짖은 절규의 함성 등이 기념일의 곳곳에 잠잠히 배여있거나 묻어나고 있다. 그만큼 소리나 노래, 말씀과 울림의 힘이 크기 때문이다.이처럼 소리나 울림이 잦아드는 때, 최근 포항지역의 가인(歌人)들이 시조창의 울림으로 맹활약을 펼쳐서 고무적으로 여겨진다. (사)대한시조협회 칠곡군지회가 주최·주관한 ‘구상선생 추모 제8회 칠곡전국시조창경연대회’에서 포항의 시조인들이 2개 부문 장원을 차지하는 등 두드러진 성과를 거뒀다. 시조창은 우리의 전통 아악(雅樂)인 12율려(律呂)를 바탕으로 특유의 창법과 목소리를 구르고 감거나 흔드는 동법(動法)을 더해, 마치 물이 흘러가듯이 소리의 고저장단이 매끄러우면서도 멋스럽게 울림과 떨림 속에 끊어질 듯 이어지며 구성지게 부르는 우리 고유의 전통 대중음악이다.저마다의 존재감으로 제 목소리를 크게 내며 살아가는 시대에, 자신만의 고유한 음색과 화법을 가다듬으며 바르면서 방자하지 않고(直而不肆) 빛나지만 눈부시지 않는(光而不耀) 삶을 가꿔가면 어떨까?

2024-04-30

파국으로 가는 의료대란… 정치권이 나서라

심충택 논설위원 의료대란 사태가 파국으로 치달으면서 여권 내에서도 “정부가 이제 고집을 내려놓으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은 최근 “정부가 필요한 의사 규모를 못박으면서 의료개혁을 다 망쳐놨다”고 비판했다. 안 의원 지적처럼, 윤석열 정부는 의대증원 숫자에 연연해하면서 의정(醫政)갈등은 좀처럼 해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 수련병원 전공의들이 병원을 떠난 지 벌써 두 달이 넘었다.현재 생사를 넘나드는 환자를 둔 가족들은 불안감 때문에 좌불안석이다. 상태가 언제 심해질지 알 수 없는 중환자들은 제때 치료를 받을 수 있을지 두려움에 떨고 있다. 암 진단을 받은 환자들은 수술 날짜가 잡히지 않아 무작정 기다릴 수밖에 없어 기가 막힐 노릇이다. 암환자권익협의회는 최근 성명을 내고 “정부는 무용지물인 의료개혁특위 대신 환자 보호를 위한 정책을 마련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고 호소했다.의료공백 속에서 그나마 버팀목이 돼온 대학병원 교수들도 지금까지는 장시간 중증 환자를 돌보며 정신적으로 버티고 있는 중인데, 이젠 체력적인 한계에 이르고 있다고 한다. 최근에는 수술실 상황이 여의치 않아 암 환자에게도 수술 날짜를 못 잡아주는 상황이 된 병원이 많은 모양이다. 수도권 빅5 병원 교수들은 피로감에 지쳐 어제(30일)부터 급한 환자가 치료되는 대로 사직하겠다고 밝혔다. 사직하기 전까지는 주 1회 휴진한다고 한다. 서울대병원과 세브란스병원 교수들은 어제부터, 서울아산병원과 서울성모병원은 오는 3일을 휴진일로 잡았다. 전국 19개 의대가 참여하는 의대교수비대위도 당직 후 24시간 휴식 보장을 위해 주 1회 휴진하겠다고 결의했다.의료공백이 재난수준인데도 불구하고 정부 입장은 여전히 강경하다. 정부는 대입 전형 일정상 내년도 의대 정원 문제를 다시 논의할 수 없다고 못박았다. 그러면서 “전공의가 이탈한 후에도 비상진료체계를 보강하고 있고, 상급종합병원 입원환자 추이와 중환자실의 변화, 수술·외래 현황 등을 봤을 때 기존의 추이와 별 차이가 없다”고 말했다. 심각한 의료공백 사태가 없다는 진단이다. 전공의 집단 이탈과 의대교수 휴진에도 불구하고 상급종합병원 의료공백 현상이 아직까진 심각하지 않다니 놀랍다. 정부가 시급성을 강조하는 ‘의대 2천명 증원정책’과도 모순되는 말이다.의료시스템의 파국을 막을 시간이 이젠 별로 없다. 전국 각 대학은 이달 말까지 학과별 정원 등 모집 요강을 발표해야 한다. 늦어도 이달 중순엔 의대 증원 규모를 확정해야 한다. 수업을 거부하고 있는 의대생들의 집단 유급 사태도 코앞에 다가왔다. 이달에도 수업이 정상화되지 않으면 한 해 수업 일수를 채울 수 없어 자동 유급된다.그저께 열린 윤석열 대통령과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영수회담에서 이 대표는 여야, 정부, 의료계가 참여하는 국회 공론화 특위에서 함께 논의한다면 좋은 해법이 마련될 것 같다고 했다. 여야 정치권이 의대 증원에 대한 큰 틀의 합의를 할 수 있다면 의료대란을 해결할 수 있는 첫 단추가 될 수 있다.

2024-04-30

책 안 읽는 사회

우정구 논설위원 세계의 최고 부자들은 독서광이다. 주식 투자의 대가 워런 버핏과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빌 게이츠, 록펠러, 카네기, 일론 머스크 등 엄청난 부를 이뤄 세계인의 부러움을 사는 이들은 모두 책벌레라 불릴만큼 독서광이다.워런 버핏은 “당신은 독서보다 더 좋은 방법을 찾을 수 없다”는 명언을 던지면서 책읽기를 권한다. 그는 그의 스승으로 통하는 벤저민 그레이엄의 ‘현명한 투자자’라는 책을 19세 때 독파하고 인생이 바뀌었다고 했다.책 읽기를 좋아한 세종대왕의 일화도 있다. 세종이 왕자 시절 책에 병적으로 빠져 있는 것을 보고 이를 걱정한 아버지 태종이 세종 처소에 있던 모든 책을 치우기까지 했다고 한다.조선시대 22대 정조대왕은 독서대왕이라는 별명이 있다. 책을 완전히 외울 때까지 읽고 또 읽어 책 구석구석에 어떤 구절이 있는지를 줄줄 외웠다고 한다.소크라테스는 “남의 책을 많이 읽어라. 남이 고생하여 얻은 지식을 쉽게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다”고 했다. 또 어떤 이는 “독서가 정신에 미치는 영향은 운동이 신체에 미치는 영향과 같다”고도 했다.동서고금을 통해 책은 모든 이의 스승이다. 인공지능 시대가 아무리 발달을 해도 독서를 하지 않으면 더 이상의 사회 진전은 어렵다. 책에서 얻는 다양한 지식과 경험, 창의력, 문제 해결 능력, 인간관계 해결 능력 등은 기계가 인간만큼 할 수 없다는 것이다.지난해 우리나라 성인 10명 가운데 6명은 1년간 책을 한 권도 읽지 않았다. 지난해 국내 종합독서율은 43%로 1994년 이래 역대 최저다. 유튜브 등 새로운 미디어의 등장이 독서 분위기를 저해하기 때문이라 한다. ‘책 읽는 사회’를 만드는 분위기 조성이 절실하다./우정구(논설위원)

2024-04-30

펠리컨

방민호 서울대 교수 펠리컨 이야기를 한다 해놓고 하이에나 이야기부터 시작하게 된다. 하이에나는 오해를 많이 산다. 남이 일껏 잡아놓은 먹이를 가로챈다거나 썩은 고기를 즐긴다는 등 말이다.주로 야간에 사냥하는 탓에, 사람들이 낮에 남의 먹잇감 뺏는 그들에게 나쁜 이미지를 들씌워 놓았다던가, 심지어 오히려 사자들이 하이에나 것을 빼앗는 경우가 많다던가.펠리컨은 우리 말로 사다새다. 우리나라에서도 산 적 있다고 한다. 주머니처럼 생긴 큰 부리를 가졌다. 이 부리 아래쪽이 피부로 되어 있어 주머니처럼 부풀어 오른다. 여기에 먹잇감을 저장하기도 하고, 새끼들 먹이는 그릇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뜨거워진 체온을 식히는데 이 주머니의 넓은 표면적이 좋은 역할을 한단다.오래전 어떤 작가가 이 펠리컨을 소재 삼아 알레고리 소설을 썼다. 알레고리는 텍스트 내의 기호가 그 바깥의 어떤 의미를 가리키게 되어 있다. ‘개미와 베짱이’ 같은 우화에서. 개미는 부지런한 자를, 베짱이는 게으른 자를 가리킨다. 베짱이도 자기 할 일은 하고 살 텐데, 이솝은 자기의 우화에서 베짱이를 게으른 짐승으로 ‘불쌍하게’ 만들었다.우리의 작가도 펠리컨을 좀 불쌍하게 만들었다. 작중에서 펠리컨은 입이 큰 ‘놈’이다. 우리는 목소리가 크고 말이 많은 사람을 ‘라우드 스피커’(loud speaker)라고 한다. 비유적으로 시끄러운 사람, 제 주장이 센 사람을 가리킨다. 작중에서 펠리컨은 목소리가 큰 자, 나아가 목소리만 큰 자 같은 의미를 띈다. 이 소설에서 이 목소리만 큰 자는 민중주의자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작중에 출현하는 펠리컨은 민중을 위한다고 큰 소리를 치는 사람들을 의미했다. 작가는 이런 사람들을 힐난하는 뜻으로 이 소설의 펠리컨을 기호화했다. 나는 이 작가를 아주 능력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가 자신의 솜씨를 이렇게 가난한 이들을 위하는 사람들을 비난하는데 쓴 것을 안타깝게 여겼다.그로부터, 한정된 사람의 삶의 감각으로 보면 아주 오랜 시간이 흘렀다. 사람은 옛날 생각을 그대로 유지하기가 힘들다. 특히 정치적 견해 같은 것은 다른 어떤 것보다도 변하기가 쉽다.이렇게 말하면 애꿎은 펠리컨이 화를 낼 것 같다. 요즘 왜 이렇게 펠리컨들이 많은가? 바야흐로 펠리컨들 시대가 아니냐 말이다. 펠리컨들은 자신들이 정의를 위하고 정치적으로 옳으며 가난한 사람들의 편이라고 한다. 이 펠리컨 무리를 들여다보면 그네들 발갈퀴 밑에 정말 고립되어 있고 약하고 상처 입은 물고기들이 짓밟혀 있는 경우가 많다. 이 무서운 펠리컨들은 부지런히 제 먹잇감을, 그러니까 자신들의 정의를 위한 희생양을 찾아 그 큰 부리로 우악스럽게 물고 찍는다. 이 펠리컨들의 정의는 저보다 약해 보이는 자들을 사납게 물어뜯는 정의다. 페이스북이나 유튜브는 이 무서운 펠리컨들이 즐겨 사는 곳이다.부디 힘 약한 사람들, 모질지 못한 사람들은 그곳들 출입을 조심하기 바란다. 자기 귀가 얇다고, 그래서 감언이설에 속아넘어가는 수가 많다고 늘 불안해 하는 분들도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나는 이 펠리컨들이 정치적 파당의 어느 쪽에만 있다고 말하고 싶지 않다. 펠리컨은 지구상에 아시아부터 아프리카까지 아주 넓은 곳에 분포한다.

2024-04-29

패륜과 유류분(遺留分)

홍석봉 대구지사장 지난 2019년 가수 구하라 씨가 숨지자 10년 넘게 연락을 끊고 살던 어머니가, 돌연 유산을 나눠달라며 나타났다. 구하라의 오빠와 가족은 키워 준 것도 아니고 고인에게 해 준 것도 없는데 유산을 줄 수 없다며 반발했다. 소송 끝에 어머니는 유산 일부를 받았다. 당시 민법상의 유류분 제도에 대한 논란이 일었다. 20대 국회에서 ‘구하라법’이 발의됐다.‘유류분(遺留分)’ 제도는 국내 민법이 처음 제정됐던 1955년에는 없었다. 1977년 도입됐다. 장남이 유산을 독점하지 못하도록 했다. 배우자와 자녀, 형제자매까지 유산을 나누는 비율을 법으로 정했다.헌법재판소가 47년 만에 유류분 제도의 일부 조항은 헌법에 어긋나 폐지하고, 일부는 법을 고쳐야 한다고 결정했다.패륜 행위를 한 사람에게 유류분 권리를 상실시키고 반대로 ‘독박간병’과 같이 돌아가신 분을 특별히 부양한 상속인에게는 기여분을 인정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패륜아까지 유산을 나누는 건, 지나친 재산권 침해라고 판단했다. 국회의 후속 입법이 필요하다. 유류분권 상실 사유를 빨리 법제화 해야 한다.유류분은 독일, 일본, 프랑스, 영국 등에도 비슷한 제도가 있다. 유언의 자유가 기본적으로 보장되는 미국도 대부분의 주에서 유류분과 유사한 ‘유족부양청구권’을 인정한다.평균 수명과 1인 가구의 증가 등이 유류분의 의미를 퇴색시켰다. 반면 피상속인의 재산 처분의 자유는 보장받게 됐다. 시대 흐름이다.유류분 소송은 지난해에만 2000건을 넘었다. 상속 다툼을 벌이다 소송까지 가고 결국은 가족의 연을 끊는 경우가 허다하다. 패륜의 끝은 소송과 절연인 셈이다. 일생에 한번 이상은 겪는 상속, 잘 풀어야 한다. /홍석봉(대구지사장)

2024-04-29

허영선의 제주 해녀들의 노래

이상규 경북대 명예교수 전 국립국어원장 허영선 시인의 시집 ‘해녀들’(문학동네 시인선 95)은 21명의 제주해녀들을 주인공으로 하고 있다. “사랑을 품지 않고 어찌 저 바다에 들겠는가”라는 주제시 21편과 산문 한 편으로 엮었다. 제주의 바다는 단 한 번도 누워있질 못한다. 늘 물거품을 일으키며 세로로 일어서려고 몸부림친다. 물의 깊이에 따라 흰색에서 푸른색, 검푸른 색으로 끝없이 펼쳐진 제주의 바다를 일터로 삼은 해녀들의 노래이다.허영선 시인은 “내 안에 오래도록 꽉 차 있던 소리/숨이 팍 그차질 때 터지는 그 소리/숨비소리/그 소리를 따라 여기까지 왔다.”며 해녀들이 깊은 바다 속에서 참을 대로 참다가 내뱉는 가쁜 숨소리인 숨비소리에서 가슴에만 담아오며 단 한 번도 내뱉지 못한 제주의 한 많은 역사의 소회를 드러내고 있다. 그래서 허영선 시인의 눈에는 제주바다가 푸르지 않고 붉다. 심장을 드러낸 칸나같은 붉은 빛이다. 4·3항쟁의 아픈 희생을 입 밖으로조차 표현하지 못한 제주토박이들의 한을 해녀의 숨비소리로 형상화하고 있다. 자연스럽게 제주방언, 제주의 소리, 제주의 토박이 언어로 자신들의 삶을 노래한다. 그러나 그들의 언어는 어느 한 군데도 원한에 찬 언어는 없다. 오히려 죽음이라는 위험과 맞바꾸어온 벅찬 생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해저 깊이 납덩어리를 차고 잠영하는 제주의 여성들, 둥그런 태왁을 안고 풍덩 거꾸로 내려잠수하는 해녀와 그들이 채취해온 ‘ㅁ·ㅁ’의 동그란 모양의 이미지가 겹쳐진다. 제주의 아픈 역사가 불그레 물든 제주의 바다에서 숨이 찰 때까지 물질로 걷어낸 아픔과 슬픔으로 끓인 ‘ㅁ·ㅁ국’ 한 사발로 추위와 고통을 풀어낸다. 4·3항쟁 당시 450여 명의 민간인들이 희생당한 북촌 마을을 배경으로 한 ‘북촌 해녀사’를 읽어본다. “남자들이 모두 핏빛 바다로 떠난 그날 이후/북촌 여자들은 물질할 수 없으면/바다를 떠나야 했다//그날 이후/북촌 여자들은 온통 바위섬을 건너야 했다//(중략)모두가 대군/물질 끝나 돌아가던 통통배/순간 한 치 눈치챌 수 없이 매복하던/강골의 바람살이/물귀 물 아래 위태위태하더니/엎어지고 까무라치고 부서지더니//북촌 해년 너도 나도 혼 줄 모아/기댔다 두렁박 하나에/등대처럼 기다리는 힘 하나/파도 건너 또랑또랑/어린 입, 입들.” 파도에 휩쓸려 죽음을 이겨야 하는 해녀, 그녀들은 왜 물질하는 해녀가 되었으며 집에 남겨둔 아이들, 아이들에 대한 사랑을 품지 않고는 어이 저 컴컴한 죽음과 같은 바다 속으로 들어갔겠는가?“우린 몸을 산처럼했네”에서는 물질을 하여 ‘ㅁ·ㅁ’을 산처럼 채취만 한 것이 아니라 이것을 다시 팔러 나선 해녀들의 가슴 아픈 사연을 얘기한다. “깊은 바다 그것이 미욱거릴 적/물결 따라 스러져 너울거릴 적/우린 맹렬하게 구애를 했지/몸이 베이는지/몸이 베이는지/ㅁ·ㅁ 삽서/ㅁ·ㅁ 삽서/밀어닥친 흉년에도 우리 몸으로 ㅁ·ㅁ을 했네”에서처럼 제주어에 남아 있는 고어 ‘아래아’를 현대어로 옮기면 ‘ㅁ·ㅁ’이 ‘몸’이 되어 ‘모자반’을 채취한 것인지, 아니며 물질하는 해녀 자신의 신체, 즉 몸을 벤 것인지 모를 정도다. 열심히 모자반을 채취하여 이것을 “ㅁ·ㅁ 삽서, ㅁ·ㅁ 삽서” 외치며 팔러 다닌다. 밀어닥친 흉년에도 굶을 수는 없어 깊은 바다 속으로 몸을 던져 ‘ㅁ·ㅁ’을 건져 올리는 제주 여성들의 고달픈 삶이 선연하다.삶이라는 사랑을 가슴에 품지 않고서야 우주의 분홍 젖꼭지를 드러내며 너울거리는 심연의 바다 속으로 뛰어 들 수 있을까? 빈 몸통으로 깊은 숨을 쉬었다가 깊은 고통이 가득 차오르면 겨우 숨통을 틔우는 해녀들. “어디서 징징징 쇠북소리 울리거든/붉은 칸나가 심장을 드러낸 채 바다로 가거든/한번 돌아보셔요/먼 바다 바람타고 떠나가는 내가 보일 거예요.”“우리 애기 울면 젖 호끔 멕여줍서”에서는 거친 물결에 휩쓸려 죽기 직전 “저 차귀섬 위 큰 마당까지 헤쳐갔다지/물 터지면 올라오지 못해/몸은 자꾸 아래로 허우적허우적/금릉인가 어디까지 막 밀려갔다지 순간,//그 여자 막숨 하나 부여잡고 소리쳤다지/“우리 애기 울면 젖 호끔 멕여줍서”/라고 외치며 죽어간 김녕 해녀의 눈물 쏟는 이야기를 전한다. 허영선 시인의 제주 해녀들의 힘들고 벅찬 삶의 순간순간을 제주의 생생한 목소리와 눈물로 써서 우리에게 전한다. 허영선은 늘 세로로 일어서려는 붉은 제주 바다를 거닐고 있다.

2024-04-29

시코쿠헨로를 아시나요?

1월 28일부터 1월 31일까지 이루어진 이번 마쓰야마 학술기행은, 일본고전문학을 전공한 Y교수가 자신의 전공과 밀접하게 관련된 시코쿠헨로(四国遍路) 학술답사를 계획했기에 가능했던 일입니다. 흔히 오헨로(お遍路)라 불리기도 하는 시코쿠헨로는 시코쿠섬에 위치한 88개 사찰을 참배하는 순례길을 말하는데요. 전체 거리는 1450㎞에 이르며, 보통 걸어서는 40일 정도가 걸리는 그야말로 길고 긴 순례길입니다.88개의 사찰은 모두 일본의 고승인 고보다이시(弘法大師, 774-835년)와 관련돼 있는데요. 고보다이시는 시코쿠에 있는 지금의 가가와현에서 태어나 장래가 보장된 엘리트 코스를 밟아 나가다가, 어느 날 깨달은 바가 있어 출가합니다. 그는 이후 당나라에 유학하여 2년간 불교를 더욱 깊이 있게 공부하고 돌아와 전설적인 고승이 되는데요. 진언종을 창시한 고보다이시는 수많은 사람들을 제도하다 고야산에서 입적합니다.저와 C교수는 미리 시코쿠에 도착하여 88개 사찰을 답사하던 Y교수와 1월 28일에 마쓰야마 공항에서 만난 것입니다. 우리 일행은 마쓰야마의 여러 곳을 돌아보던 중, 시코쿠헨로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의미를 지닌 이시테지(石水寺)를 함께 방문하기로 했습니다. 이시테지는 728년에 쇼무 천황의 요청에 따라 창건되었으며, 오랜 역사를 가진 진언종의 대표 사찰입니다. 1318년에 지어진 니오몬(仁王門)은 국보로 지정되었으며, 이외에도 본당, 삼층탑, 종루 등의 국가중요문화재가 산재한 명찰인데요. 시코쿠 88개 사찰 중에서는 51번째에 해당하는 사찰이기도 합니다.시코쿠헨로의 기원과 관련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는데요, 그 중의 하나는 헤이안 시대 오늘날 에히메현의 호족이었던 에몬 사부로가 순례길을 떠난 것에서 시작했다는 설도 있습니다. 이 전설은 저희 일행이 방문했던 이시테지(石水寺)와 직접적으로 관련된 것이기도 합니다. 에몬 사부로는 부자이며 권세도 있었지만, 탐욕스럽고 포악했다고 하는데요. 어느 날 자신의 집을 찾아온 승려에게 자선을 베풀기는커녕, 그만 대나무 빗자루로 승려의 발우를 여덟 조각으로 부숴 버렸다고 하는데요. 그날 이후로 사부로가 애지중지하던 여덟 명의 자식들은 차례로 죽어나갔고, 뒤늦게 사부로는 자신이 박대했던 승려가 바로 고보다이시였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큰 충격을 받은 사부로는 대사에게 사죄하고자 시코쿠헨로를 시작합니다. 다행히도 사부로는 순례길에서 대사를 만나지만, 이미 중병에 걸린 사부로는 “다음 생애에는 고노 가문에 태어나 사람들을 돕고 싶다”는 뜻을 대사에게 밝히고 죽습니다. 이에 대사는 돌을 주워 거기에 ‘에몬 사부로’라 새겨 사부로의 손에 쥐어주었다고 하는데요. 이듬해 그 지역의 부유한 집안인 고노 가문에 한 남자아이가 태어나고, 신기하게도 그 아이는 꽉 쥔 오른손을 펴지 않습니다. 당황한 아이의 부모는 안요지(安養寺)를 찾아가 기도를 올린 후에야 아이의 손을 펼 수 있었는데요. 거기에는 ‘에몬 사부로’가 선명하게 새겨진 돌이 있었다고 합니다. 이후 인요지라는 절은 에몬 사부로 이야기에 따라 ‘돌의 손’이라는 뜻을 가진 이시테지로 이름이 바뀌었다고 하는데요. 이시테지에는 이 전설을 증명이라도 하겠다는 듯이, 절 입구에서부터 에몬 사부로의 석상이 세워져 있고, 절의 박물관에는 설화 속의 돌이 전시돼 있습니다. 시코쿠헨로를 대표하는 슬로건은 ‘동행이인(同行二人)’입니다. 1450㎞의 길을 누군가와 함께 걷는다는 의미인데요. 이 때 누군가는 말할 것도 없이 고보다이시입니다. 이와 관련해 이시테지에서는 멀리서부터 사람들의 눈을 한눈에 사로잡는 거대한 조형물이 하나 있었는데요. 이경재 숭실대 교수 절이 자리한 뒷산 정상에 있는 고보다이시의 석상이 바로 그 주인공입니다. 놀랍게도 이 조형물은 전체 높이가 16m이며, 얼굴 길이만 2.4m, 붓 길이는 3m에 이릅니다. 더군다나 이것은 산의 정상에 있기에 더욱 웅장하게 보이는데요. 고보다이시의 몸은 그가 유학했던 중국의 시안(西安)을, 얼굴은 불교의 발상지인 인도를 향해 있다고 합니다. 이 거대한 고보다이시 석상은 이시테지로부터 3㎞ 떨어진 마쓰야마성에서도 선명하게 보였습니다.요즘 전세계적으로 순례가 유행이라고 합니다. 오늘 소개한 시코쿠헨로 이외에도 일본의 구마노고도, 포르투갈의 파티마, 스페인의 산티아고, 미국의 세도나 등에 순례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고 합니다. 이러한 현상은 아마도 사람들이 영혼의 갈증에 시달린다는 증거겠지요. 본래 여행이란 익숙한 곳을 떠나 낯선 곳으로 갔다가, 그 곳에서 새로운 힘을 얻어 다시 익숙한 곳으로 돌아오는 인간의 오래된 행위입니다. 그렇다면 일상의 질서와는 확연히 다른 신성과 신비로 가득한 성지를 다녀오는 것이야말로 인간에게는 궁극의 여행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2024-04-29

불화하는 아름다움

화가 르네 마그리트 작품 ‘사람의 아들’. 이따금 내 존재가 잘못 놓인 바둑돌 같다. 모든 것이 제자리에서 기능하는 와중 나 홀로 삐걱대는 것 같을 때 특히 그렇다. 이런 기분은 예기치 않게 찾아온다. 대중적으로 인기를 끄는 드라마가 왠지 모르게 따분하고 유명 평론가가 극찬한 작품에서 어떠한 감흥도 느껴지지 않을 때. 누군가에겐 당연한 것들이 내겐 너무 커다란 이벤트처럼 다가오거나 인생에 있어 중요한 것을 건너뛰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도 마찬가지다. 나 자신이 지구라는 배경에 어울리지 않는 인물처럼 여겨지면, 현실을 추동하는 모종의 질서에 관해 생각하게 된다.대부분의 하루는 비슷하게 흘러갈 것이다.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꿈꾸지만 어쩐지 불안은 떠나질 않고,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것과 별 탈 없이 하루를 끝마친 것에 감사하려 노력하다가도 문득 어떤 의심이 찾아오기도 한다. 이렇게 사는 거, 조금 이상하지 않나? 당연하다고 믿었던 것에 질문을 던지면 나를 둘러싼 세계가 낯설게 보이기 시작한다. 물론 이러한 과정을 쓸데없는 것으로 치부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기분은 찰나에 그치는 것이며 당장 몇 시간 뒤의 현실이 등을 떠미는 중이니까.그런데 만약 눈앞의 현실을 거부하고 일상의 걸음을 멈추면 어떻게 될까? 원활한 도로에서 급정거한 자동차처럼 큰 사고로 이어지게 될 것이다. 아니, 어쩌면 흰 토끼를 따라간 앨리스처럼 미지의 세상과 조우할지도 모를 일이다. 하트 여왕이나 모자 장수를 만나 나 자신보다 훨씬 더 이상한 존재가 있다는 것을 확인하게 될 수도 있다. 어떤 결과를 낳듯, 외부 세계로 간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렇다면 이처럼 낯설고 불쾌한 기분은 그저 외면할 수밖에 없는 것일까?마크 피셔는 본인의 저서 ‘기이한 것과 으스스한 것’에서 ‘기이한 것’과 ‘으스스한 것’을 문화적 사례를 토대로 설명한다. 특히 H. P. 러브크래프트는 ‘기이한 것’을 설명하기에 탁월한 작가다. ‘기이한 것’이란 “함께 어울릴 수 없는 것이 공존”하면서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감각”을 포함한다. 어떤 공간에 있어서는 안 되는 것을 떠올려보자. 이를테면 바다 위를 부유하는 거대한 야자수나 공중을 떠다니는 낙타 같은. 가능해선 안 되는 것이 가능한 존재도 이에 해당한다. 르네 마그리트 같은 초현실주의 화가의 그림을 예로 들 수 있겠다.‘기이한 것’은 단지 환상적인 영역이 아니다. 뱀파이어나 늑대인간을 보자. 그것들은 워낙 널리 알려져 있으며 이미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요소를 재결합한 것에 불과하기에 어떤 기이한 감각도 불러일으키지 못한다. ‘기이한 것’이 되려면 완전히 낯설면서도 현실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어야 한다. 평범한 회사원이 어느 날 갑자기 중세 시대의 기사가 되는 것보다 게으른 상사의 정수리에 해바라기가 피어나는 것이 훨씬 더 ‘기이한 것’으로 다가온다. 우리 주변의 세계를 전혀 언급하지 않은 채로 “무한하고 무시무시한 미지의 것”을 보려고 하면 오히려 따분해질 우려가 있다. 문은강 ‘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로 주목받은 소설가. 201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작가로 등단했다. 러브크래프트는 공포 소설가로 분류되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작품은 공포감을 불러일으키는 대신 매혹적이다. 소설의 주된 배경인 뉴잉글랜드는 완전히 불가능한 외부 세계가 아니며 친숙한 현장이다. 거기에 난입한 기이한 존재는 허구의 것이나 현실 안으로 들어와 더욱 새로워지고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불쾌한 것을 향해 끌리는 충동, 이례적인 사건을 바라보는 즐거움, 일상적인 현실 속에 작은 균열이 생기는 순간 느껴지는 묘한 해방감까지. 이 모든 것은 우리가 예술을 사랑하는 이유기도 하다.이렇듯 서로 어울리지 않는 것을 나란히 놓았을 때, 우리는 기이한 감각과 동시에 낯선 끌림을 느낀다. 그런 면에서 나와 세계가 불화할수록 빚어지는 오묘한 아름다움이 있을지도 모른다. 책상 위 반듯하게 펼쳐진 책보다 모래사장에 파묻힌 텍스트가 더욱 궁금하지 않은가. 왜 거기에 놓였는지 이해하기 어렵지만 오히려 깊이 탐구하고 싶어지는 충동. 재미있는 사건은 그런 것에서부터 시작된다.결국 일반적인 인식과는 다른 어딘지 모르게 뒤틀리고 엉뚱한 생각이 튀어 오를 때야말로 삶이 가장 강렬해지는 순간이 된다. 낯선 기분과의 조우가 항상 유쾌할 순 없지만, 그것이 가진 특이성을 충분히 즐기는 것이 현실을 살아가는 힘이 된다. 양립할 수 없는 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야말로 인생이 예술이 되는 순간이 아니겠는가.

2024-04-29

거절을 딛고 일어나는 능력

농업 종사자들에게 농번기와 농한기가 있는 것처럼 공연 예술인들에게도 바쁜 시기와 그렇지 않은 시기가 있다. 우선 1월부터 3월까지 공연계는 꽁꽁 얼어붙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날씨가 춥기도 하거니와 지자체와 기업, 재단 등 공연을 기획하는 곳들의 예산이 확정나지 않은 시기이기 때문이다. 매년 새해가 밝으면 3개월간의 한가하고도 궁핍한 시기를 맞이하게 된다.그렇다면 1월부터 3월까지 공연 예술인들은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낼까? 봄과 여름을 겨냥하며 작품 활동에 매진하기도 하지만, 대개는 국가 지원 사업에 응모하기 위한 지원서와 각종 기획서, 제안서 등을 쓰며 시간을 보낸다. 이 시기를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서 한 해 동안 경제적 어려움 없는 나날을 보내기도 하고, 상대적으로 힘든 해를 보내기도 하는 것이다.문제는 이 지원사업의 응모나 제안들이 좋은 결과로 돌아오는 확률이 높지 않다는 것이다. 창작 자체를 직접적으로 지원하는 사업은 물론, 공연비를 지원하는 사업, 예술인의 다양한 활동을 주선하는 사업 등의 경쟁률은 매우 치열하다.그래서 공연 예술인들은 여러 곳에 응모와 제안을 해야 하고 이를 위해 상당히 많은 양의 서류들을 작성하며 비수기를 난다. 그리고 3월 중순부터 4월까지 그 결과를 통보받는데, 앞서 말한 것처럼 성공률이 높지 않기에 거절의 말들을 마주하기 일쑤이다. 그러다 보면 아쉬운 마음도 들고 때로는 상처를 받기도 하는 것은 사람인지라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연차가 쌓이면 쌓일수록 이런 것에 무뎌질 줄 알았는데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단지 빨리 털고 일어나 다시 창작이나 새로운 기획에 몰입하게 되는 속도가 빨라질 뿐.예술 활동은 거절의 연속이다. 앞서 말한 방식의 거절도 흔하지만 그 외에도 수많은 거절 속에서 우리는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작가가 책을 내기 위해서는 글을 쓰기 위한 인내심도 필요하지만 때로는 출판사로부터의 거절을 견뎌내는 인내심도 필요하다. 그렇게 책이 탄생해도 그 책이 대중들로부터 거절을 당하게 되는 경우가 수두룩하다.야구선수가 3할만 쳐도 준수한 선수라고 했듯이, 한 출판사 관계자는 내게 ‘작가는 2할만 쳐도 훌륭한 작가다.’라고 귀띔을 해 준 적이 있다. 나머지 8할은 숱한 거절 앞에 놓이게 되는 것이다. 가수들의 음반도 마찬가지의 과정을 거친다. 오디션에 붙는 배우들보다 떨어지는 배우들이 훨씬 많은 것은 당연한 일이고 극장에 걸린 영화 중 박스오피스의 정상을 차지하는 작품들이 그렇지 못한 작품들보다 적은 것도 당연한 일이다. 강백수 세상을 깊이 있게 바라보는 싱어송라이터이자 시인. 원고지와 오선지를 넘나들며 우리 시대를 탐구 중이다. 어쩌면 예술인들은 이러한 거절에 맞서는 사람들인지도 모르겠다. 처음부터 잘 된 사람들도 없지는 않으나, 거절을 당하더라도 다시 굳세게 일어서서 예술 활동을 이어나가며 결국 살아남아 걸작을 만들어내는 이들도 존재한다. 지금은 대중가요계의 정점에 올라 있는 BTS와 아이유 같은 가수들에게도 당시에는 대중들에게 거절을 당하고 만 초창기 작품들이 있다. 봉준호 감독의 첫 작품도, 박찬욱 감독의 첫 작품도 마찬가지다. 예술인의 성공이란 무엇일까. 마스터피스를 남기는 것도 성공이겠지만 대부분의 예술가에게는 생존 그 자체가 현실적인 꿈이다. 오래 생존한다면 마스터피스를 만들어낼 수 있는 확률도 올라간다는 점에서 그 생존이라는 것이야말로 예술가가 추구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가치일 수 있다.그것을 위해 갖추어야 하는 자질 중에는 남다른 예술적 재능도 있고 기회를 포착하는 능력도 있고 영민한 비즈니스 능력도 있겠다. 그러나 나는 그보다 더 중요한 것으로 거절을 견뎌내는 능력을 이야기하고 싶다.혹시 이 글을 읽는 이들 중에 예술인을 꿈꾸는 이들이 있다면 그들에게도 이야기해주고 싶다. 당신 앞에는 무수히 많은 거절과 거절들이 존재할 것이고, 그것에 걸려 고꾸라지는 일은 일상다반사가 될 것이라고. 중요한 것은 거절당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그 거절을 뒤로하고 다시 일어나 걷는 것이라고.

2024-04-29

보수 정당은 어떻게 정권 재창출할까

김진국 고문 국민의힘 홈페이지를 열면 “국민의 회초리 겸허히 받겠습니다”라는 큰 글자가 뜬다. 총선에서 드러난 민심을 받들겠다는 뜻이다. 총선에서 드러난 민심은 무엇일까. 국민은 무엇을 나무라며 회초리를 든 것일까.선거는 유권자가 갖고 있는 개인 성향과 각 정당의 활동, 시대 상황이 복잡하게 얽힌 결과물이다. 더구나 수도권에 인구 절반이 집중돼 있고, 아주 적은 표 차로 당락이 결정되는 소선거구제라 조금만 민심이 흔들려도 결과는 천양지차가 된다. 그러니 표를 찍었건 아니건, 국민 전체가 회초리를 들었다고 해도 틀리지 않는다.그러면 무엇에 회초리를 들었나. 선거운동을 시작할 무렵 국민의힘이 우세하다는 여론조사도 있었다. ‘비명횡사’ 공천으로 민주당이 혼란스러웠다. 이낙연 전 대표와 비주류 의원들이 나가고, 박용진 의원과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 파문으로 절정에 달했다. 연합공천과정에 진보당, 시민단체가 공천한 인물들이 파문을 일으켰다.민주당이 공천 파문을 수습할 무렵 국민의힘에서 계속 사고가 터졌다. 영부인 김건희 여사의 명품백 동영상이 폭로됐다. 사과하지 않았다. 사과하자는 의견을 야당 프레임에 말렸다고 생각했다. 한동훈 비대위원장 사퇴 요구로까지 번졌다.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을 호주 대사로 임명했다. 한 달만 기다리면 될 것을 굳이 선거기간에 출국금지까지 풀고 내보냈다. 황상무 대통령실 시민사회수석이 기자들 앞에서 “MBC 잘들어”라며 1988년 정보사 군인들의 언론인 회칼 테러를 들먹였다. 누가 봐도 협박이다. 그런데 뭉개다 뒤늦게 경질했다. 이 과정에도 윤-한 갈등이 있었다.의정 갈등이 길어지자, 대통령 담화를 준비했다. 그런데 대통령이 말한 내용은 비서실이 준비한 것과 달랐다. 강경했다. 여론이 들끓었다. 정책실장이 급하게 TV에 출연해 “그게 아니고요”라며 ‘번역기’를 돌렸지만, 안 하느니만 못한 담화가 됐다.윤 대통령이 농협 하나로 마트에 갔다. 대파를 들고, 가격표를 보며 “875원이면 합리적 가격이라고 생각된다”라고 말하는 장면이 선거의 상징이 됐다. 권장 소비자가격은 4250원. 정부 지원금 두 가지와 자체 지원금까지 붙어 할인됐다. 가뜩이나 고물가에 지친 국민이 분개했다.한동훈 전 비대위원장이 야당의 프레임에 말려든 결과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많다. 한 전 위원장이 ‘대통령이 잘못했다’라고 인정하고, 사과를 요구하는 바람에 여론이 나빠졌다는 것이다. 차기를 노린 이미지 전략이라고 비난한다. 눈만 감으면 이미 벌어진 일이 사라질까. 그나마 선거 막판 민주당의 양문석·김준혁 후보의 몰염치한 전력이 드러나 국민의힘이 개헌선은 지켜냈다.홍준표 대구 시장 인식도 비슷하다. 지난 16일 윤석열 대통령과 만찬 뒤 한 전 위원장을 저격했다. 그는 “우리에게 (총선 참패의) 지옥을 맛보게 했던 정치검사였고, 윤 대통령도 배신한 사람”이라며 “더 이상 우리 당에 얼씬거리면 안 된다”라고 비판하는 글을 올렸다. 윤 대통령과 홍 시장의 4시간 술자리에 한 전 위원장이 안주였다는 말이 나온다. 개 목걸이 소문도 나돈다. 윤 대통령과 한 전 위원장의 냉랭한 관계가 이어진다.윤 대통령은 많은 사람을 버렸다. 대통령 선거 직후 이준석 전 대표를 몰아냈고, 대표 경선 과정에는 초선의원들의 연판장까지 돌려 나경원 의원을 궁지에 몰았다. 안철수 의원에게 ‘이념 정체성이 없다’ ‘국정 운영의 방해꾼’이라고 비난했다. 김기현 전 대표도 ‘격노’해 강제로 끌어내리고, 한동훈 비대위원장을 세웠다. 양파처럼 계속 갈라내 무엇을 남기려는 걸까.윤 대통령은 무엇을 지키려 할까. 보수 이념에 충성하는 걸까. 검사로서 그는 이념을 가리지 않는 전문 칼잡이였다. 그는 여주 지청장 시절 “나는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박영선 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양정철 전 민주연구원장 기용설은 중도 확장을 노린 걸까. 아니면 이념과 상관없는 지인 챙기기일까. 보수정권 재창출을 고민하는 걸까. 총선 참패로 식물 정권이 됐다. 보수 유권자들마저 편을 갈라 책임론 공방을 벌이는 동안 집권당은 회복될 수 없게 무너져 간다.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4-04-28

맹견 사육허가제

우정구 논설위원 이달 24일 이탈리아 남부 살레르노 인근의 작은 마을에서 생후 15개월 된 남자아이가 맹견 핏불테리어 2마리에 물려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이 사고는 마을 외딴 이층집 마당에서 일어났는데, 아기의 어머니가 현관문을 나서는 순간 순식간에 벌어졌다. 아기의 어머니는 정신적 충격으로 병원으로 이송됐고, 해당 맹견은 동물보호소로 옮겨져 안락사 여부를 결정받는다고 한다.일반적으로 맹견이라함은 공격적인 성향을 가진 개를 말한다. 특정한 상황이나 자극에 과도하게 반응하여 사람이나 동물에게 심각한 위협을 주는 개다.도사견, 아메리칸 핏불테리어, 아메리칸 스탠퍼드셔불테리어, 로트와일러 등이 해당되며 우리나라에선 동물보호법에 따라 해당 맹견이 외출시에는 반드시 입마개를 해야 한다.4년 전 서울 은평구 한 골목길에서 입마개를 하지 않은 맹견 로트와일러가 산책 나온 소형 스피츠를 물어 죽인 사고가 발생했다. 스피츠는 로트와일러의 공격을 피해 견주 뒤로 숨었으나 끝내 물려 숨졌다. 이 사실이 알려지면서 입마개를 하지 않은 견주에 대한 처벌 수위를 높여야 한다는 국민청원이 줄을 이었다.농림축산식품부는 이달 27일부터 맹견을 기르는 사람은 시도지사의 허가를 받도록 했다. 또 맹견에 대해서는 책임보험 가입, 동물 등록, 중성화 수술의 요건을 갖추도록 법을 강화했다.미국서는 개에 물려죽는 사람이 매년 500명 정도 발생한다고 한다. 우리나라서도 매년 2000건 이상 개물림 사고가 벌어진다. 맹견이 아니더라도 개는 일반적으로 공격성을 갖고 있다. 맹견관리를 강화한 조치는 잘한 일이다./우정구(논설위원)

2024-04-28

인문학 강연 소회

김규종 경북대 명예교수 언제부턴가 불어닥친 인문학 열풍이 요즘도 상당하여 곳곳에서 다채로운 강연이 펼쳐지고 있다. 수많은 사립대학이 앞장서서 인문대학을 폐하고, 인문학 전공 교수들을 저잣거리로 내몰고 있는 상황과 현저히 모순되는 장면이 아닐 수 없다. 인문학의 뿌리이자 근본인 인문대학이 사라지는 형국이니, 인문학 열풍도 머지않아 스러질 것이 자명하다.세계 곳곳에 이른바 ‘한류열풍’이 분다고들 입에 게거품을 물지만, 그것은 상업주의와 결탁한 부분적인 성공에 지나지 않는다. 지난 세기 90년대 중반에 몰아닥친 세계화 광풍이 신자유주의 바람을 후폭풍으로 동반한 결과가 물신-배금주의 풍조다. 물적(物的)으로 풍족하지 못한 시절에도 잊지 않았던 정신과 영적인 가치와 의미가 급속도로 퇴락의 길을 걷고 있다.그 무렵 전국 인문대학장들이 시대를 통탄하고, 인문학의 가치를 고양해야 한다는 선언문까지 작성하여 배포하지만, 상황은 악화일로(惡化一路)를 걸어왔다. “문송합니다”라는 말이 유행하고, 전국의 철학과와 국문과가 간판을 내리는 지경까지 이른다. 그런 풍경이 요즘엔 일상사가 된 것이니, 새삼 돌이켜보면 가슴에 생채기만 깊어질 따름이다.그런 와중에도 전국적으로 시작된 인문학 열풍은 도회와 농어촌을 가리지 않고 불어와 곳곳에 강연회가 성행한다. 나 역시 2008년부터 지금까지 멀리는 경기도 오산부터 가까이는 창녕과 부산까지 강연하러 다니고 있다. 거기서 만나는 청중은 크게 두 부류로 갈린다. 호기심으로 들른 사람들과 알고자 하는 열망으로 참가하는 사람들이 그들이다.전자는 한두 번 강연회에 왔다가 ‘핫바지 방귀 새듯’ 사라진다. 삶과 일상에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인문학의 고담준론(高談峻論)에 아까운 시간과 정열을 낭비할 이유가 없어서다. “삶을 돌이키지 않는 인생은 살만한 가치가 없다”고 설파한 소크라테스의 2400년 전 가르침이 여전히 유효하구나, 하는 깨달음을 불러오는 사람들이 그들이다.후자는 계 모임 하는 사람들처럼 무리 지어서 이곳저곳으로 사냥감을 찾듯 배회한다. 그들은 인문학 강연에 빠짐없이 출근한다. 그런 성실성과 근면함에 경의를 표하고 싶다. 다만, 한 가지 덧붙이고자 한다. 그것은 귀만 가지고 강연회에 오면 별로 남는 게 없다는 사실이다. 오직 듣기만 하여 그 자리와 작별하면 피와 살이 될 자양분이 남지 않기 때문이다.만일 고전 그리스의 서사시와 비극이 강연 주제라면, ‘일리아드’와 ‘오디세이야’, 그리고 아이스킬로스와 소포클레스, 에우리피데스의 비극은 미리 읽어봐야 한다는 얘기다. 강연자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의 전제를 소화한 청중과 그냥 참여한 청중 사이의 거리는 측량 불가다. 특히 강연이 끝난 뒤 가슴이나 의식에 남은 기억은 현저히 다를 수밖에 없다.낯익은 청중과 만날 때면 그들에게 조용히 말한다. “강연을 듣는 것도 좋지만, 책을 꾸준히 읽고 기록하는 습관을 갖는 것이 훨씬 쓸모가 있습니다.” 강연을 듣는 일은 쉽지만, 책을 읽는 것은 굳은 의지의 소산이다. 독서와 청강의 양립이 인문학 소양 습득의 지름길이다.

2024-04-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