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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대구시장과 의협회장의 난타전

홍성식 (기획특집부장) 광역시장이나 도지사는 ‘도백(道伯)’으로 불린다. 대구광역시의 인구는 대략 237만 명. 홍준표는 그 도시의 도백이다. 또 다른 명칭으로 부르자면 ‘오십만호장(4명을 1개 가구로 환산한 수치·50만 가구를 통치하는 수장)’쯤. 칙령(勅令)이 아닌 시민의 선택으로 오른 자리이니 역할은 더 크고, 책임은 보다 무겁다.임현택은 이 나라 의사협회장. 수십 억 자산을 가진 강남의 부모들을 포함한 한국 아버지·엄마 다수가 제 자식을 그 자리에 앉히기 위해 아등바등하는 의사들의 상징적 우두머리다. 자신의 말이 가지는 무게를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될 입장.최근 이 둘이 인터넷상에서 주고받은 설전을 본다. “한 나라의 흥망은 그 나라 언어의 흥망과 떼놓고 생각할 수 없다”는 그리스 철학자의 말을 가져다놓을 것도 없다. 둘 모두 정제되지 못한 거친 단어와 문장을 사용한다.임 회장이 “돼지 발정제로 성범죄에 가담한 사람이 대통령 후보로 나오고 시장을 하는 것도 기가 찰 노릇… 그러니 정치를 수십 년 하고도 주변에 따르는 사람이 없는 것”이라 하니, 홍 시장은 “더 이상 의사 못하게 그냥 팍 고소해서 집어넣어 버릴까보다.… 세상이 어지러워지니 별 X이 다 나와서 설친다”고 받았다.국가의 수준은 그 국가를 이끄는 자들의 어법과 무관치 않다. 여론을 선도한다는 세칭 ‘오피니언 리더들’은 ‘국격(國格)’을 입버릇처럼 말한다.묻고 싶다. 위에 인용한 막말이 국격을 높이고 있나? 자신들의 인격을 의심하게 하는 언사는 아닌가? “언어는 존재의 집이다”. 독일 사람 마르틴 하이데거가 쓴 문장이다. 대구시장과 의사협회장, 두 사람에게 던지는 질책 같다./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4-05-13

‘혼(混)’ 자, ‘혼(昏)’ 자 한자어 공부

방민호 서울대 교수·국문과 이 시대를 잘 살아 가려면 한자 공부를 좀더 해야겠다. 그중에서도 이 두 글자 ‘혼’을 잘 알아야 하겠다.‘혼돈(混沌)’은 마구 뒤섞여 있어 갈피를 잡을 수 없음이다. 또는 그런 상태를 가리킨다. ‘어목혼주(魚目混珠)’란 물고기의 눈알과 구슬이 뒤섞인다는 뜻으로 가짜와 진짜가 마구 뒤섞임을 가리킨다.‘일어혼전천(一魚混全川)’은 한 마리 물고기가 온 냇물을 흐려놓음이다. ‘혼탁(混濁)’은 불순물이 섞이어 깨끗하지 못하고 흐림이다. ‘혼돈씨(混沌氏)’는 하는짓이 모호하거나 정신이 흐리멍텅한 사람을 농담으로 일컫는 말이다. ‘혼돈주(混沌酒)’는 여러 가지 술을 한데 뒤섞은 술을 가리킨다. 요즘말로 ‘폭탄주’를 말하는가 보다.‘혼돈탕(混沌湯)’은 여러 가지 음식을 뒤섞어서 끓인 국이란다. 요즘으로 따지면 부대찌개인가 보다. ‘혼선(混線)’은 말이나 일 따위가 갈래가 얽혀 종잡을 수 없음이다. ‘혼란기(混亂期)’는 갈피를 잡을 수 없어 어지러운 시기다. 요즘 같은 때를 가리킨다고 봐야 한다.‘혼신결혼(混信結婚)’은 종교가 다른 사람끼리 결혼함이다. ‘혼돈개벽(混沌開闢)’은 혼돈한 시대를 버리고 새로운 시대를 연다는 뜻이라고 한다. ‘옥석상혼(玉石相混)’은 옥과 돌이 섞여 있다는 것으로, 좋은 것과 나쁜 것이 한데 섞여 있음을 가리킨다.‘혼명(昏冥)’은 어둡고 캄캄함이다. ‘혼혼(昏昏)’은 정신이 아뜩하여 희미함을 말함이다. ‘혼혼맹맹(昏昏儚儚)’은 매우 흐릿하고 가물가물한 모양이다. ‘혼미(昏迷)’는 정신이 흐리고 멍하게 됨을 가리킨다. ‘혼암(昏暗)’은 불빛 따위가 없어 밝지 아니함을 가리킨다.‘혼란(昏亂)’은 마음이 어둡고 어지러움이다. ‘혼탕(昏蕩)’은 정신이 어둡고 어리둥절함이다. ‘혼왕(昏王)’은 어리석고 둔한 임금을 말한다. 옛날에 그런 대통령도 있었다.‘혼계(昏季)’는 나이가 젊고 세상 물정에 어두움을 말한다. ‘혼매(昏昧)’란 어둡고 어리석어서 아무 것도 모름이다. ‘혼한(昏漢)’은 어리석어 사리에 어두운 남자를 말한다.나 같은 사람을 가리키는 말인 모양이다. ‘병혼(病昏)’은 병이 들어 정신이 혼미함이다. 아버지 돌아가시기 전에 자주 그러셔서 안타깝고 괴로웠다.‘혼타(昏惰)’는 어리석고 게으름이다. ‘혼포(昏暴)’는 사리에 어둡고 사나움을 가리킴이다. 이런 사람은 정말 위험하다. ‘혼태(昏怠)’도 어리석고 게으름이다.‘기혼(氣昏)’은 정신이 아득하고 기력이 흐리멍텅함을 말한다.‘노혼(老昏)’은 늙어서 정신이 흐림이다. 나이가 들어도 이렇게 되는 것은 무서운 일이다. 그러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혼침(昏沈)’은 정신이 푹 까무라침이다. ‘혼혹(昏惑)’은 사리에 어두워 미혹함을 말한다. 젊은 사람도 이렇게 되는 사람들이 많다. ‘혼야(昏夜)’는 어둡고 깊은 밤을 말한다.‘혼암(昏闇)’은 어리석고 못나서 일에 어두움이다. 또는 사회가 혼란스럽고 정치가 부패되어 있음이다. 지금 이 나라의 상태를 설명하기에 정확하다. ‘혼폐(昏閉)’는 어둡고 꼭 막힘이다.더 이상 무슨 말을 덧붙일 수 있으랴. 4·10 총선 전후의 우리 사회, 정말 어디로 가는 것일까?

2024-05-13

덮어둔 것을 열어야 할 때

양꼬치를 먹다가 어금니가 깨졌다. 탕후루도 아니고 양꼬치에 이가 망가지다니. 고량주를 곁들이던 것이 불행 중 다행이었다. 취기 덕분에 와하하 웃으며 대수롭지 않은 척 넘길 수 있었으니까. 세상의 많은 일이 실없는 웃음처럼 지나가면 얼마나 좋을까. 취기가 가시고 입속의 빈자리가 선명해질수록 두려움이 엄습해 왔다. 오랫동안 덮어왔던 일을 열어야 했다.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치과에 가야 했다.단언컨대 치과야말로 지구상에서 가장 잔혹한 공간임이 분명하다. 단단한 것을 부수고 다시 세우는 과정이 이토록 조그만 입속에서 벌어진다니. 병원에선 공사장에서나 들릴 법한 요란한 소리가 울려 퍼지고 특유의 소독약 냄새에 머리가 아득하다. 진료용 의자에 앉아 의사를 기다리고 있노라면 불안이 점점 커진다. 의자가 뒤로 젖혀지고 천이 얼굴 위로 올라오면 본격적인 고통의 시작. 날카로운 기계가 치아에 맞닿는 감각은 몇 번을 경험해도 익숙해지지 않는다. 시리고 아프다. 눈물이 찔끔 날 만큼.어린 시절부터 이가 약했던 나는 치과에 자주 드나들었다. 사춘기가 되어선 교정 치료 때문에 한 달에 한 번씩 병원에 방문했다. 진료 날짜가 다가오는 게 싫어 억지로 급한 일을 만든 적도 있다. 대기실부터 병원 밖을 나설 때까지 몸도 마음도 편안하지 않았다. 아프면 손을 들라던 의사 선생님은 엄살을 받아주지 않고 간호사 선생님은 치아 관리 잘하라며 무서운 얼굴로 혼냈으니. 내 괴로움을 알아주는 사람은 누구도 없는 것만 같았다.어른이 되면 치과가 무섭지 않을 줄 알았다. 그러나 여전히 치과는 내게 공포의 대상이다. 달라진 게 있다면 두려움의 방향이 조금 틀어졌다는 것. 어금니가 깨진 것 같아요, 하고 접수처에 말하면서도 머릿속에선 단 한 가지 생각만 맴돌았다. 의사의 진단이 끝나고 상담실에 앉아 설명을 들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치아의 상태와 치료를 받아야 하는 이유보다 더욱 중요한 것. 대체 얼마일까? 금액을 받아 들자 머릿속에서 무수한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많은 말들이 떠올랐지만 꺼낼 수 있는 말은 단 하나였다. 그러니까, 무이자 할부 몇 개월 가능할까요.누구도 탓할 수 없다. 이것은 명백한 내 잘못이다. 치과의 권유대로 주기적으로 방문해 치아 상태를 확인하고 스케일링을 받으며 꼼꼼하게 관리했어야 옳다. 아니, 이전에 문제가 생겼을지도 모른다는 예감이 들던 많은 순간이 있었다. 그때 미루지 말고 병원에 방문해야 했다. 비단 치아의 문제만은 아니다. 돌이켜보면 덮어놓고 열어보지 않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방문을 열면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옷가지가 눈에 들어온다. 이번 달이 가기 전에 반드시 고치겠다던 주방 조명도 있다. 흩어져 있는 보험의 약관도 꼼꼼하게 따져보고 정리해야 한다. 자동차 트렁크에 아무렇게나 놓인 물건부터 처리하는 게 먼저일지도 모른다. 이 모든 일을 해결할 가장 쉬운 방법은 필사적으로 모르는 척하는 것이다. 나름대로 타당한 핑계를 대본다. 강의가 있는 날은 몸이 너무 피곤하다. 하루에 두 번 강아지 산책도 시켜야 한다. 부쩍 좋아진 날씨에 반가운 친구들과의 약속은 늘어가고 챙겨야 하는 경조사도 끊이질 않는다. 덮어놓은 일이 머릿속에 불쑥 떠오르면 희미한 죄책감이 함께 따라붙는다. 정말이지 너무나 싫은 기분이다. 문은강 ‘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로 주목받은 소설가. 201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작가로 등단했다. 언제까지 덮어놓을 수만은 없다. 자의든 타의든 반드시 직면해야 할 때가 온다. 그 상황이 유쾌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알고 있다. 자책보다는 책임이 먼저 해야 한다는 것을. 미뤄둔 일을 하나씩 처리하다 보면 사실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는 것을 체감하게 된다. 힘들 줄만 알았는데 도리어 개운한 기분도 든다. 앞으로 나아간다는 건 대단한 이벤트가 벌어지는 게 아니라 이런 사소한 일에서 시작되는 것일지도 모른다.일 년에 두 번씩 치과에 방문하기로 약속하며 선물로 칫솔을 받았다. 사탕 대신 칫솔이라니. 이래서 치과가 무섭다니까. 연두색 칫솔을 가방에 넣으면서 피식 웃었다. 치아와 잇몸은 자가 회복 능력이 없어요. 간호사가 말했다.그러니까 더 신경 써야 해요. 아직 젊잖아요. 맛있는 것 실컷 먹고 건강하게 지내야죠. 그 진부하고도 다정한 말이 사탕보다 더 달게 느껴지는 이유는 뭘까. 병원에서 나오며 그간 덮어놓은 일들에 관해 생각했다. 조급해 말고 천천히 시작하면 되는 것이다. 우선 양치부터 꼼꼼히.

2024-05-13

회전초밥 같은 사람들

나는 마마보이였다. 그래서 19살에 겪었던 어머니와의 이별은 커다란 후유증을 남겼다. 스무 살이 되고 대학에 가며 나는 이전에 만났던 것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고 그들 중 아주 많은 수의 사람들과 유대감을 쌓아갔다. 어머니가 떠난 빈자리를 수많은 사람들로 어떻게든 채워보려 했던 것이다. 대인관계가 양적으로 늘어나는 것은 나로서는 뿌듯하고도 자랑스런 일이었다. 대학 시절 내내 이 건물에서 수업을 마치고 다른 건물로 수업을 들으러 가는 동안 수많은 친구, 선후배들과 인사를 나누며 요즘 말로 ‘핵인싸’임을 과시하는 것이 나의 커다란 기쁨이었다.그러나 머지않아 나는 그 모든 사람들을 내 품안에 두는 것이 무리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다. 원하는 모든 사람들을 곁에 두기엔 나라는 사람의 그릇이 작기만 했다. 가만히 둬도 내 곁에 있어주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애써 지켜내야 하는 관계들도 있었다. 어쩔 수없이 소홀해지는 관계들이 생겨나면 그들은 여지없이 내 곁을 떠나곤 했다. 그 사실들을 뒤늦게 알아채고 나는 아쉬워했고 때때로 괴로워했지만 인연이라 믿었던 사람들은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모래알갱이들처럼 흩어져버리고 말았다.붙잡아둘 수 없는 사람들이 생겨나는 것은, 그리고 그들이 나를 떠나거나 잊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받아들이기 시작한 것은 나이를 몇 살 더 먹은 뒤의 일이었다. 멀어지는 사람들에게 애쓰는 일을 멈추니 마음이 한결 후련해졌다. 그리고 매 시절마다 내게 찾아오는 새로운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떠날 사람을 붙잡는데 쓰던 마음을 내게 다가오는 새로운 인연에게 쏟는 것이 더 낫다고 결론지었다. 물론 그들도 언젠가 내 곁을 떠나갈 수 있겠지만 그때가 되면 또다시 내 곁을 찾아올 이들이 있을 테니 별 문제가 되지 않을 것 같았다.또 몇 살을 더 먹으며 새로이 발견하게 된 사실이 있다. 멀어졌다 생각한 어떤 사람들은 우연한 기회에, 또는 뜬금없는 타이밍에 내 곁으로 돌아오기도 한다는 것이다. 기훈이형이 내게는 그런 사람 중 하나다. 우리가 처음 만난 것은 지금으로부터 십 년은 더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 먼 과거의 일이다. 나는 대학로에서 열린 한 축제의 출연자였고, 형은 그 축제의 기획단과 출연자들에게 직접 디자인한 티셔츠를 납품하는 젊은 사업가였다. 우리는 모두 이십대였고 그 나이대의 많은 이들이 그랬듯 금세 친해져 같이 술을 먹기도 하고 그의 집에서 잠을 자기도 했다. 그러다 그 역시 다른 사람들처럼 자연스레 멀어져 내 기억에서 잊혀져갔다.서른이 넘은 어느 날, 몇 년 만에 기훈이형에게서 연락이 왔다. 작가로 활동하는 내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고 자신은 출판사를 차렸으니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어 보자는 것이었다. 우리는 만들어갈 책에 대해 대화를 나누었지만 별다른 결실을 보지는 못했다. 또다시 서로의 기억에서 지워져갔다. 그리고 다시 몇 년이 흘러 이번에는 내가 그를 찾았다. 야심차게 준비한 샘플 원고가 있었는데, 출판사를 물색하던 도중 문득 기훈이형이 떠오른 것이다. 어느새 그는 세 아이의 아버지가 되어 있었다. 최근에는 빈티지샵을 열었다고 거기로 놀러오라고 했다. 나는 단숨에 원고를 들고 그의 가게로 달려갔다. 결과적으로 우리는 함께 책을 만들기로 했고, 그의 빈티지샵에서 교양강좌를 열기도 했고, 음악 공연을 열기도 하는 등 함께 재미있는 일들을 해 나가고 있다. 두 번이나 끊어졌던 관계가 이제는 서로와 함께 또 무슨 재미난 일을 해 볼 수 있을까 궁리하는 관계가 되어 돌아온 것이다. 강백수세상을 깊이 있게 바라보는 싱어송라이터이자 시인. 원고지와 오선지를 넘나들며 우리 시대를 탐구 중이다. 몇 해 전 ‘회전 초밥’이라는 노래를 발표한 적이 있다. 내 곁에 머물기도 하고 떠나기도 하는 사람들이 꼭 빙글빙글 돌아가는 회전초밥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만든 노래다. 레일 위의 모든 초밥이 욕심나지만 내 테이블 공간은 한정되어 있어서 모두를 다 내 앞으로 끌어올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어떤 초밥들은 어쩔 수없이 내 곁을 떠나야만 한다. 그러다 보면 새로운 초밥이 내게 새로이 다가오기도 하고, 아까 떠나보낸 초밥이 돌아오기도 한다. 이 초밥들 하나하나가 나를 둘러싼 사람들이라고 생각해 보았다.외로워지는 것은 무서운 일이지만 떠날 사람을 떠나게 두고 다가올 사람을 다가오게 둔다고 해서 쉽사리 외로워질 것 같지는 않다. 내 곁에는 늘 소중한 누군가가 있기 마련이니까. 이 글을 쓰다 보니 생각나는 얼굴들이 있다. 어떤 얼굴들은 여전히 내 곁에 머물러 주어 고마운 마음이 들기도 하고, 또 어떤 얼굴은 이미 오래 전에 멀어져버려 그리운 마음이 들기도 한다. 그들 중 누군가와 또 어떤 날 어떤 방식으로 재회할 수 있을지 모른다. 이 글을 통해 안부를 전한다. 나는 잘 있고, 언젠가 만날 날을 고대하고 있다고. 설령 만나지 못하더라도 내내 건강하길 바란다고.

2024-05-13

안동시와 안동시의회의 소통과 협치

피현진경북부 서로 끝없이 싸우고 있다. 될 수 있으면 같은 공간에 머무르려고 하지 않는다. 화해를 위해 잠시 같은 공간에 앉았다가도 돌아서면 다시 으르렁거린다.그 사이 지역 현안이나 발전은 미뤄지고, 이는 다시 상대방을 탓하는 재물이 돼 또다시 싸운다. 그만 하라고 만류하던 사람들도 이젠 지쳤다. 소통과 협치를 외쳤지만, 어느 하나 양보할 생각이 없다. 안동시와 안동시의회가 이렇게 싸운 지 벌써 2년이다.지난 2022년 지방선거 이후 지속된 두 기관간 반목과 갈등을 보는 시민들의 시선은 따갑다. 항간에서는 이번 임기 내 이들이 화해하는 모습을 볼 수 없을 것이라고들 예상하기도 한다.다만, 이르면 이달 중 싸움이 이어질지 아니면 소통과 협치의 길로 새롭게 나아갈지 결정될 수도 있다. 17일부터 안동시의회가 임시회를 열어 안동시 집행부가 제출한 추가경정예산 심의에 들어가기 때문이다.안동시는 2천400억 원 규모의 올해 첫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해 지역의 각종 현안해소와 침체된 경기 활성화 등 두 마리 토끼 잡기에 나서겠다는 각오다. 여기에 남은 2년을 위한 대규모 조직개편도 의회의 승인을 기다리고 있다.안동시의회도 후반기 의회를 이끌 의장단과 원 구성 논의에 본격 나서고 있다. 이들은 2년밖에 남지 않은 시간이지만 지역발전을 위해 제대로 일하고, 2년을 밑거름 삼아 새로운 4년을 기대할 수 있도록 만들겠다는 각오들이다.이제 무대는 만들어 졌다. 먼저 이번 임시회에서 안동시의회가 집행부의 예산을 얼마나 원안대로 통과시켜 주는지가 관건이다. 옳고 그름을 따져 시의 예산을 심의하는 것은 의회의 고유 권한이다. 다만 분위기에 편승해 반대를 위한 반대를 외치면 안된다.안동시는 이번 추경에 안동경제를 견인할 굵직한 부지 매입과 저출생 극복, 전통시장 활성화, 가정용 상수도 반값 공급 등 시민의 삶과 밀접한 부분에 주안점을 뒀다고 밝히고 있다.시의회는 보다 면밀히 따지고 들여다보돼 문제가 없다면 관련 조례를 만들거나 개정해 사업 추진의 길을 열어주는 것도 방법이다. 이후 문제점이 발생한다면 이를 보완하는 대안을 제시하면서 집행부를 질타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안동시와 시의회 모두 시민들을 위해 일한다고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큰 부분에서 두 기관이 시민들을 위해 일한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다만 그 일하는 방식이 싸움이 아닌 소통과 협치가 된다면 시민들이 두 기관을 바라보는 시선도 좀 더 따듯해지지 않을까.이번 임시회에서 서로 양보하고 화해의 손을 내민다면 앞으로의 2년은 지금까지의 길과는 다른 길을 걸을 수 있을 것으로 시민들은 기대하고 있다./phj@kbmaeil.com

2024-05-13

모든 문제는 영부인으로 통한다

김진국 고문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전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이 꼬이기 시작한 건 ‘마리앙투아네트’ 때문이다. 한 전 위원장과 가까운 김경률 회계사가 ‘명품백’ 사건에 대한 대통령 내외의 사과를 요구하며 마리앙투아네트에 비유했다. 이 발언에 대통령이, 특히 영부인이 격노했다. 선거를 코앞에 두고 한 위원장에게 사퇴하라고 요구했을 정도다.마리앙투아네트는 정말 악녀였을까? “빵이 없으면 브리오슈를 먹이라”라고 말한 걸로 알려졌다. 브리오슈는 계란과 버터가 많이 들어간, 귀족들만 먹는 빵이다. 장 자크 루소의 ‘참회록’에 ‘고귀한 공주’가 했다는 이 말이 인용됐다.그 책이 나왔을 때 마리앙투아네트는 어린아이였다. 혁명 당시 파리의 팜플렛에는 온갖 악성 루머들이 담겨 있었다. 대부분 사실이 아니라고 밝혀졌다. 악성 루머는 진실보다 더 잘 퍼지고, 감정을 자극한다.모든 길이 영부인으로 통하고 있다. 선거 때부터 야당은 김건희 여사를 집중하여 공격했다. 윤 대통령의 약한 고리라고 판단한 것이다. 본인은 물론 윤 대통령도 얼마나 억울하고, 화가 날지 짐작이 간다. 김 여사 얘기만 꺼내면 윤 대통령이 화를 낸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니 참모들이 정작 해야 할 말도 못 하는 것 아닌가. 피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윤 대통령 내외가 오해하는 건 법이 모든 진실을 밝힌다는 믿음이다. 정치는 진실보다 국민의 믿음이 중요하다. 서울의 소리 이명수 기자와 통화한 내용이 공개됐다. 소송에서 이겨 1000만 원을 배상받았다. 그래서 해결됐나. 명품백 수수를 몰래 촬영한 최재영 목사를 사법적으로 처벌하면 국민이 “모든 오해가 다 풀렸다”라고 납득할까.국민은 이 기자·최 목사는 보지 않는다. 잘해서가 아니다. 관심이 없다. 김 여사만큼 중요한 공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 테이프에서 김 여사가 이해하기 힘든 말을 쏟아낸 데 대해 해명과 사과를 요구하고 있다. 명품 가방을 받았다는 실망이고, 검증되지 않은 사람을 마구 만난다는 불안이고, 국정에 개입하려는 언행에 걱정이다. ‘현명하지 못한 처신’이라는 윤 대통령의 사과는 국민 정서에 얼추 다가왔다. 그런데 너무 느리다.최근에 논란된 문제도 한둘이 아니다. 오해일 수도 있다. 국무총리 물망에 오른 박영선 전 장관의 영부인 인연설이 보도됐다. 같은 대통령실 내에서 공식라인은 부인하고, 담당이 아닌 사람은 다시 번복하는 혼선을 빚었다. 여기서도 영부인 라인 이야기가 나왔다. 대통령 관저와 윤 대통령 손바닥의 왕(王)자와 관련해 천공이니 무속이니 온갖 소문이 나돌았다. 천공이 최재영 목사와 만나 자기가 대통령실을 움직이는 듯이 말하는 유튜브가 공개됐다.이런 논란들이 재판으로 해결될 일인가. 왜 오해의 근거를 제거하지 못하나. 왜 이런 오해와 잡음에 아까운 시간과 국력을 낭비해야 하나. 사실이 아니라고 억울하다고 화만 낼 게 아니다. 과감한 조치로 국민이 공감하게 해야 한다. 그것이 윤 대통령은 물론 영부인에게도 결국 도움이 된다.김영삼 대통령은 아들을 외국에 보내라는 참모의 건의를 듣지 않았다가 결국 자기 임기 중 감옥에 보냈다. 이명박 대통령도 형님을 물리치지 못해 오히려 불행하게 만들었다. 김대중 대통령은 탄압받던 시절 고생한 아들들에게 매정하게 관리하지 못해 임기 중 모두 처벌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자기 손으로 정리한 것은 현명했다.국민이 감동해야 해결된다. 과감하게 던지면 국민도 감동하고, 오히려 동정한다. 노무현 대통령은 “이런 아내와 헤어져야 합니까”라는 감성적 접근으로 장인의 부역 논란을 뒤집었다. 김대중 대통령은 옷 로비 사건이 터지자 곧바로 사과하고, 특검을 도입했다.뒷북을 치면 하고도 욕을 먹는다. 이종섭 전 주 호주대사, 황상무 전 시민사회수석 문제는 결국 사퇴시켰지만, 그만한 효과가 없었다. 타이밍을 놓쳤기 때문이다. 국민이 기대하는 것보다 먼저 나가야 한다. 흥정하듯 한 걸음, 한 걸음 물러서는 건 최악이다. 특별감찰관이나 특검이나 사과를 끝내 피할 수 있겠나. 언제까지 이런 소모적 논란에 온 나라가 시끄러워야 하나. 순애보를 찍을 때가 아니다.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4-05-12

시간과 일 그리고 개선

엄주선 포스코 인재창조원 교수·컨설턴트 시간은 왜 흐른다고 할까? 시간은 사물의 변화를 인식하기 위한 개념으로 과거 현재 미래로 이어지는 명백히 불가역적인 연속 상에 있기 때문일 것이다. 물리학에서도 시간은 열역학 제2법칙에 따라 인위적인 에너지가 작용하지 않았을 때 자연적인 에너지 흐름의 방향성은 과거에서 미래로만 직선적으로 흘러가는 것으로 이해된다. 생산현장에서도 시간의 흐름으로 작업과 공정을 표현하고 누구나 쉽게 사용 할 수 있는 개선의 도구이다.생산현장의 시간은 원가 작업 부하 안전과 직결되며 고객이 주문한 제품을 원하는 시기에 신속하게 생산하여 제공하기 위한 단축의 수단으로 사용된다. 생산 시간을 줄이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제품이 공정 간 정체가 없이 동일한 사이클(Cycle)로 연속적인 흐름이 되어야 한다. 이상적인 흐름의 모습은 공정 또는 설비 간의 작업시간이 동일하여야 하며 생산 단위의 묶음인 로트(Lot)크기를 지속적으로 줄여 궁극적으로는 1개씩 흐르게 생산하는 것이다.생산Lot의 크기를 줄이기 위한 걸림돌은 다양한 고객의 주문에 대응하기 위한 설비의 준비교체 시간이며 교체에 소요되는 시간 만큼 Lot크기를 줄일 수 있다. 대부분의 기업에서 준비교체가 발생하는 대표적인 설비가 프레스이며 교체 시간이 적게는 1시간에서 많게는 8시간씩 소요된다. 즉 1시간에서 8시간 분량의 공정내 재공을 보유해야 연속 생산이 가능하므로 넓은 저장 공간과 큰 Lot로 인해 생산 대기시간이 길어지게 된다.도요타자동차의 경우 여러 모양의 차체의 부품을 찍어내는 과정의 준비교체 시간이 대부분 10분 이내로 이를 더 줄이기 위한 노력을 지속하였다. 오히려 생산을 중단하고 실시하는 준비교체 시간보다는 설비 가동 중에 교체할 금형을 준비하는 시간이 부족하기 때문에 생산 Lot 크기를 줄이는 데 한계가 있었다. 이렇게 준비교체 시간이 짧다 보니 Lot 크기도 작아서 공정내 재공을 많이 가지고 있지 않고 빠르게 흐르는 생산구조를 구축하고 있었다.또한 자동차 1대가 생산되는 주기인 평균 60초에 맞추어 각 작업자 별로 작업순서와 시간을 정해 표준작업으로 만들어 일정한 패턴으로 리드미컬한 움직임과 가치 있는 동작을 지속하도록 하고 있었다. 조립 라인의 작업중 문제가 발생하여 시간이 지연되면 백업 인원이 도움을 주거나 육상릴레이에서 바통 터치 구간과 같은 존을 설정하여 작업이 늦어지면 대응 할 수 있는 구간을 두었다.특히 현장의 직책자는 작업자가 가능한 부품의 선택부터 조립까지 시간 낭비없이 최대한 편한 동작으로 반복작업이 이루어지도록 조립품의 배치와 작업 동선 치 공구에 대한 개선을 통해 작업자의 어려움을 기술적으로 해결하는 고민이 일의 80%라고 하였다. 엔지니어가 이러한 기술적 문제를 해결하지 못함을 꾸짖는 말로 ‘기술의 부족을 직원이 몸으로 때운다’라고 하였던 말이 지금도 생생하다.조립과 장치 산업을 떠나 시간의 중요성은 동일하다. 생산 Lot의 크기를 줄여 공정 간의 재공과 대기시간을 최소화하고 설비의 사이클 타임(Cycle Time)을 줄여 지속적으로 빠른 흐름을 만드는 노력은 품질의 확보와 함께 기업 경쟁력의 원천이 된다.

2024-05-12

분노가 오해 때문이라고요?

유영희 작가 포털에서 갑자기 ‘라인’ 매각 문제가 언급되기 시작했다. 한국의 카카오톡처럼, 네이버에서 개발한 라인은 일본의 국민 메신저이다. 라인은 오래전 몇 번 써본 경험이 있어, 무슨 일인가 궁금증 반 걱정 반의 마음으로 살펴보았다. 잘 알지 못하던 사건이라도 인터넷을 검색하여 기사나 뉴스를 최소 10개 정도라도 찾아보면, 어느 정도 윤곽을 알게 된다.이번 라인 사태는 일본 총무성이 라인야후에게 네이버와 지분 관계를 개선하라고 요구한 데서 비롯되었다. 지분 관계 개선이란, 네이버의 지분을 일본의 라인야후에게 매각하라는 뜻이다. 이미 2021년부터 일본 정부는 네이버의 보안 소홀 문제를 트집 잡고 있던 터였는데, 작년 8월과 11월에 대규모 개인 정보 유출 사건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후 유일한 한국인 이사였던 신중호 CPO를 이사에서 사퇴시켰는데, 문책이라는 의혹이 많다고 한다. 4월 29일 한국의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역시 총무성의 조치는 개인정보 유출 사고에 대한 행정지도일 뿐이라며 정부가 관여할 사안이 아닌 것처럼 선을 그었다.그러나 이 문제는 ‘라인 사태’라고 불릴 정도로 심각하여 국민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지분 뺏기로 보안 문제를 해결한 사례는 세계 어디에도 없는 데다, 일본에서 선례를 남기면 다른 나라에서도 요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나 역시 지난 9일 조국혁신당의 이해민 홍보위원장이 급하게 했다는 기자 회견을 보니, 절반의 궁금증은 모두 걱정으로 변했다. 한국 외교부가 일본 총무성에 요청하기를, 라인야후가 네이버에 지분 매각을 요구하는 문제에 대해 우리 국민이 분노하고 있는데, 그것은 오해라고 한국 언론에 전화라도 해달라고 했다는 것이다. 오해라는 말을 들으니, 언젠가 정부는 잘하고 있는데 국민이 오해하고 있다던 기사가 생각나면서 정신 똑바로 차려야겠다는 생각이 든다.이번 사태의 대응책을 찾기 위해서는 두 가지를 따져보아야 한다. 하나는 일본 총무성이 3월과 4월 연달아 행정지도를 했는데, 정부는 왜 5월 10일에서야 유감 입장을 내놓았는가 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라인 사태는 정말 민간 기업 간의 문제이고, 그래서 네이버가 요청해야만 지원할 사안인가 하는 것이다.그동안 네이버는 일본에서 라인을 성공시키는 과정에서 한국에 대한 일본인들의 감정에 상당히 신경 썼다고 한다. 일본 사람들이 라인을 한국 기업 소유라고 생각하지 않기 위해서 애매하게 지분을 50 대 50으로 균형을 맞췄다는 것이다. 지난 10일 발표한 네이버 입장문을 읽자니, 글자 하나하나 얼마나 신중한지 한눈에 보였다. 이런 상황에서 네이버의 요청을 기다린다는 것은 얄팍한 핑계이다.더 중요한 문제는, 라인 사태가 민간 기업 간의 문제인가 하는 것이다. 이미 총무성에서 라인야후에 지분 관계 시정을 요구했다는 것 자체가 민간 차원이 아니라는 증거이다. 그러니 정부가 이것을 민간 기업 문제라고 나서지 않는 것은 책임 회피일 뿐이다. 술 나눠 마셨다고 친구라고 착각하면 안 된다. 정부는 현실을 직시하고 똑바로 대응하기 바란다.

2024-05-12

아기곰은 너무 귀여워

이희정 시인 “곰 세 마리가 한집에 있어,아빠 곰, 엄마 곰, 애기 곰….”노래를 부르며으쓱으쓱 춤을 추는 친구들우리는 엄마랑 아빠랑 따로 사는데….울먹이는 준이너 그거 알아?사실, 곰들은 따로 산대아빠 곰은 수컷끼리애기 곰은 엄마랑 잠깐만 산대엄마 곰은 혼자서 살아간대자연에서는 따로 사는 동물들이 더 많아코끼리도 호랑이도 다 그렇게 살아가거든같이 살아도, 따로 살아도 괜찮아우리도 하루의 반을어린이집에서 같이 살고 있잖아―정지윤,‘곰 세 마리의 비밀’전문 (‘전달의 기술’, 상상동시집)정지윤 시인의 동시 ‘곰 세 마리의 비밀’의 첫 행은 우리 모두 널리 알고 있는 동요로부터 시작된다. 이 시는 앙증맞은 어린이 세상 속에서 상처 입은 어린 마음의 현실을 동요와 포개어 피할 수 없는 육아 현장 속에 짠하게 담아놓았다.시인은 곰의 생활 방식을 빗대어 다양한 가족의 모습을 재현해 보인다.사실상 여러 이유로 부모가 아이를 돌볼 수 없는 현대 가족의 구조와 육아의 형태를 반영하고 있다.공간적으로는 어린이집이 주요 배경이 된다. 곰의 공간이 꿈이라면 어린 아가들의 공간은 현실이다. 곰 세 마리 동요 속에는 엄마, 아빠, 아기가 한집에 산다. 동요의 이 대목에서 엄마와 아빠가 따로 사는 이혼 가정의 준이의 처지가 노출된다.하지만 마음 착한 친구들은 울먹이는 준이에게 곰들의 비밀을 들려준다.사실은, “곰은 수컷끼리 애기 곰은 엄마랑 잠깐만 산다.” 그리고 “엄마 곰은 혼자서 살아가기도 한다”며 곰이라는 동심 공간에 준이의 현실 공간을 이입해 달래 주고 있다.그런데 내부적으로는 이질적이던 친구와 준이의 가족 공간은 마지막 구절에서 동질감을 불러오는 묘한 기류가 감지된다.결국 아기곰 모두 하루의 반을 엄마나 아빠와 떨어져 사회기관인 어린이집에서 맡겨져 있다는 현실을 보인다. 주제 의식이 명확한 동시다. 동심을 소재로 한 작품임에도 그 정서가 마냥 밝지만은 않은 이유다.그나마 다행이랄까. 이 동요적 공간에서는 이렇다 할 사건이 일어나지 않는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이 동시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들은 율동이나 행간 바깥에 있을지도 모른다.오래 되었어도 쉬이 떠나지 않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가족 영화 ‘아무도 모른다’를 떠올려 보자.1988년 도쿄에서 일어난 ‘스가모 아동방치 사건’을 모티브로 한 이 영화에는 출생 신고도 안 된 네 명의 아이들이 오랫동안 굶주림에 방치되어 있다가 집주인에게 알려진 이야기다. 게다가 버려진 네 아이들의 아빠가 모두 달랐다는 사실과 의자에서 떨어져 죽은 막내 아이는 인근 숲속에 매장되었다는 사실은 당시 일본 도시 사회의 무관심과 인간소외로 인한 사회문제의 비극을 드러낸 참담한 사건이었다는 점이다.출생 직후 베이비박스에 유기된 아동의 사례가 공공연한 현실인 우리나라 또한 다르지 않을 것 같다.여러 가지 장벽으로 비혼주의나 맞벌이 무자녀 가족을 일컫는 딩크족이 늘어나는‘씨 없는 사회’로 다가가고 있음은 주목해 볼 대목이다.오월의 거리는 감사의 인사로 넘실거린다. 반갑고 미안한 것들 사이 어린이집에서나 가정에서나 으쓱으쓱 자라나는 “아기곰은 너무 귀엽지” 않은가.

2024-05-12

2025 APEC 정상회의 감동의 드라마는 경주에서

주낙영 경주시장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경주의 불국사·대릉원에서 세계 각국 정상들이 한복을 입고 나란히 걸으며 현안을 나눈다면 상상만 해도 정말 멋진 풍경이 아닙니까?”2025년 11월 우리나라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는 국격은 물론 외교·경제·문화적 영향력을 전 세계에 선보이는 절호의 기회다. 우리나라의 정체성이 가장 잘 나타나는 도시가 경북도와 경주시다.경북도는 신라·가야 유고문화 등 민족문화의 본산이고 호국충절의 고장지여 새마을·자연보호운동 등 국민정신 운동의 발상지다.신라 천년의 고도로서 찬란한 역사와 전통이 살아 숨 쉬는 경주는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유산도시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가장 한국적인 도시다. 현재 유치 공모를 신청한 경주, 인천, 제주 중 경주는 유일한 기초지자체로 APEC이 지향하는 포용적 성장과 정부의 국정철학인 지방균형발전 가치 실현을 극대화할 수 있는 최적 모델이다. 그간 개최된 도시 중 소규모 지방도시인 멕시코 로스카보스(2002), 러시아 블라디보스톡(2012), 인도네시아 발리(2013), 베트남 다낭(2017) 등에서 성공 개최한 사례를 보면 경주 유치의 당위성은 더욱 설득력이 있다.특히 정상회의 당시 인구 7만에 불과한 관광도시인 멕시코 로스카보스는 정상회의를 계기로 관광인프라 개발에 대규모 투자가 이뤄지면서 인구 34만(2020년 기준)의 국제적 관광도시로 거듭났다.경주는 2014년 국제회의 도시로 지정됐다.경주는 국제회의 도시 지정 이전부터 세계 최초 도시 간 국제문화박람회인 경주세계문화엑스포를 열어 국제문화 교류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었고, 2015년 경주화백컨벤션센터(경주 하이코) 개관 이후 국제회의 도시로 꾸준히 마이스 산업 활성화 전략을 펼쳐왔다. 또한 수년간 APEC 교육장관회의, 세계 물포럼, 세계유산도시기구 총회의 다양한 분야의 대형 국제행사를 성공적으로 치른 풍부한 노하우와 역량도 갖췄다. 특히 2022년 보문관광단지 일원 178만㎡가 비즈니스 국제회의 복합지구로 선정돼 정부 차원에서도 공식적인 인정을 받았다. 또한 주 회의장인 하이코를 중심으로 보문관광단지 전체를 APEC 정상회의 독립공간으로 활용한다.보문관광단지는 숙박, 회의, 사무공간과 전시, 미디어센터 등 모든 시설을 가까운 거리에 배치할 수 있어 정상회의의 안전성과 편의성 측면에서 최고의 환경을 제공할 수 있다.국제 정상회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경호와 안전이다. 수도권이나 대도시에서 회의개최 시 경호와 안전에 대한 요구사항이 매우 높아지게 된다. 이로 인해 교통통제와 각종 보안 요구는 시민들의 일상에 큰 불편을 초래할 것이다.그런 반면 경주는 각국 정상의 경호와 안전을 위한 입지적 조건이 최상이다.보문관광단지는 회의장과 숙박시설 등 모든 시설이 3분 거리 이내에 위치해 이동이 매우 짧으며 다른 경쟁도시와 달리 바다에 접해있지 않아 해상을 봉쇄할 필요도 없다. 또한 사면이 산으로 둘러싸여 경호 경비에 최적지다.2005년 APEC이 부산에서 개최됐을 때 한·미 정상회담은 경주 보문단지에서 열린 만큼 경호의 최적임이 입증됐다.경주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역사문화관광 도시이자 첨단과학산업 도시다.한수원, 월성원전, SMR RD 전초기지인 문무대왕과학연구소와 SMR 생산, 수출, 상용화기지인 SMR국가산단, 중수로해체연구원, 양성자가속기센터, 미래차 e-모빌리티 연구단지 등이 있다. 특히 경주는 영남권 산업벨트의 중심허브 도시로 인접한 울산의 완성차·조선, 포항 철강·이차전지·포스텍, 구미 전자·반도체, 안동의 바이오산업 등과 연계한 다양한 산업시찰을 통해 우리의 경제발전 경험을 공유할 수 있는 최적지다. 지난해 9월 APEC 정상회의 경주유치 100만 서명운동을 전개한 결과 불과 85일 만에 25만 경주인구보다 약 6배 많은 146만 3874명이라는 국민들의 지지를 받았다.이제 주사위는 던져졌다. 경주가 APEC 유치 도시 선정은 숙명이자 필연이다. 오는 6월 도시 결정을 앞두고 타 도시와의 차별화된 전략과 준비로 정상회의 최적 도시임을 충분히 설명하고 현장실사, 시도별 유치계획 설명회의 준비만전 등 경주의 강점과 잠재력을 최대한 어필하여 반드시 유치하여 경북도와 경주시를 전 세계에 알리고 APEC 역사에 길이 남을 성공 메가 이벤트가 될 수 있도록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2024-05-12

짧은 여행을 마치고

김규종 경북대 명예교수 지난달 중순 몇몇 교수가 우리 집을 찾아 차를 마시며 한가로이 봄날 하오를 보냈다. 일행은 여기 머물지 아니하고 장소를 ‘각북’으로 옮긴다. 그곳은 작년 가을 대구에서 옮겨온 동료 교수가 새로이 터전을 마련한 멋진 장소였다. 바깥 공간은 입체적으로 꾸며져 아기자기하고 오밀조밀했으며, 흙벽돌로 가꾸어진 내부공간은 소담하고 단아했다.저녁놀이 질 무렵 기타 반주에 노래 몇 곡 하고 인근 식당으로 이동한다. 그 자리에서 누군가 다음 달, 그러니까 신록과 녹음의 5월 구룡포 1박을 말하는 것이다. 누구 하나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고, 구룡포에서 멀지 않은 포항 남구에 아담한 집을 가진 친구가 저녁 식사를 제공하겠다고 한다. 이렇게 1박 2일의 짧은 여행 계획이 속성으로 만들어졌다.요즘 주말이면 찾아오곤 하는 비바람이 걱정되기는 했지만, 지난 금요일 하늘은 참으로 맑고 투명했다. 멀리 수평선 너머 포항제철의 굴뚝과 거대 콘크리트 건물이 붉은 저녁놀 속으로 하나둘씩 사라지고, 옥상에는 은성(殷盛)한 식탁과 환한 얼굴들과 약간의 열기로 달궈진 목소리가 허공을 날아다닌다. 그렇게 포항의 일몰과 초승달과 웃음이 엇갈린다.나는 기타 연주와 노래로 좌중의 흥을 돋운다. 이번에는 각자가 부를 노래를 미리 신청받았기로, 한 곡씩 순서대로 반주를 시작한다. 누군가는 소월의 시를 노래로 만든 ‘실버들’을 부르고, 또 다른 이는 최진희의 진한 음색으로 넘쳐나는 ‘우린 너무 쉽게 헤어졌어요’를 열창한다. 그렇게 ‘베사메 무초’와 ‘봄날은 간다’, ‘그때 그 사람’이 차례로 불려 나온다.여러 생선이 어우러진 회와 삼겹살이 소맥과 뒤섞인다. 그렇게 초저녁이 야음으로 질주하고, 웃음판도 커간다. 초면인 사람들도 허심탄회하게 어우러지는 열린 유희의 마당은 얼마나 우리의 팍팍한 삶을 풍요롭게 하는가?! 크고 작은 일상사와 잔잔한 걱정거리와 나지막한 한숨 소리가 일순(一瞬) 밤의 대기 속으로 흩어져버린다.인생이란 항해 과정에서 우리는 지나치게 가슴 졸이고, 넘치도록 근심 걱정에 시달리고 있지 않은가. 영원히 사라져버린 과거의 아픈 기억에 매달려 자학하고, 아직 오지 않은 미래의 걱정거리를 느닷없이 소환하며 살지 않는가 말이다. 그러다 거울을 보다가 화들짝 놀라 뒷걸음치는 것이다. 저 얼굴이 분명 내 얼굴인가, 하는 장탄식의 순간!짧은 여행이 우리에게 필요한 까닭은 이것이다. 좀처럼 우리를 놓아주지 않는, 그래서 한사코 떨어지지 않는 소소한 생활상의 문제와 작별하고 상실의 감정을 생생하게 되살리려는 것이다. 격의 없는 대화와 환한 웃음과 열렬한 가창과 자연스러운 앙천(仰天)이 선사하는 가벼운 일탈의 환희가 우리를 축복하고 격려하며 다시 나아가라고 귓속말한다.다시 밝아온 구룡포 앞바다에 붉은 해가 장쾌하게 얼굴을 내밀고, 우리는 다시 바다와 작별한 채 도회로 귀환한다. 다소 지친 몸과 마음을 동반하되, 뭔가 많은 것을 비우고 버렸다는 홀가분함을 벗으로 삼고 단단한 일상과 재회한다. 짧은 여행의 선물에 감사하면서….

2024-05-12

추경호의 사즉생

우정구 논설위원 대구 달성에서 3선을 한 추경호 의원이 집권 여당 국민의힘 원내대표로 새로 선출됐다. 그는 선출 소감으로 “사즉생 각오로 독배의 잔을 들었다”고 말했다. 22대 국회가 마치 전쟁터 같음을 예상한 발언이다.또 그는 영남당이란 이유로 “TK출신이 맡아선 안 된다”는 당내 비판에도 출마함으로써 당내에서의 정치적 부담도 적지 않다. 원내대표로서 역할을 잘하지 않으면 영남권에 부담이 된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다. 그가 사즉생을 꺼낸 것도 당내외의 이런 분위기 때문이다.사즉생은 중국 춘추전국시대 저술된 것으로 전해지는 ‘오자병법’에 나오는 말이다. 원전에는 “필사즉생 행생즉사(必死則生 幸生則死)”로 돼 있다. “반드시 죽으려 하는 자는 살고 요행히 살고자 하는 자는 죽을 것이다”라는 뜻이다.우리한테는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명랑대전을 앞두고 병사들에게 일갈한 내용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오자병법’에 기록된 이 말이 수천년 전해져오면서 시대를 넘어 널리 사용된 것은 말의 무게감이 그만큼 큰 탓이다. 조선시대 무사들 사이에서도 널리 쓰였다고 전해지니 장수가 지녀야 할 덕목으로 적합했던 모양이다.영화 명랑대전에서 이순신은 비장한 각오로 이렇게 말했다. “아직도 살고자 하는 자가 있다니 통탄을 금치 못할 일이다. 우리는 죽음을 피할 수 없다…. 나는 바다에서 죽고자 이곳을 불태웠다. 더이상 살 곳도 물러설 곳도 없다. 목숨에 기대지 마라.”22대 국회가 열리기도 전 천막농성을 벌이는 등 거대 야당의 독주가 예사롭지 않다. 추 대표의 사즉생은 더이상 물러설 곳 없는 전쟁터의 장수와 심정이 같다는 뜻이다. 추 대표의 비장함을 느끼게 한 대목이 아닐 수 없다./우정구(논설위원)

2024-05-12

한국과 대만의 실력 차이

홍석봉 언론인 한국과 대만은 공통점이 많다. 빠른 경제 성장으로 싱가포르, 홍콩과 함께 아시아의 네 마리 용이라 불렸다. 시장경제의 우등생이 됐다.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국가로 분단돼 있다. 1980년대 민주화를 이뤘다. 경제적으로는 서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선의의 경쟁을 벌여왔다.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2004년 이후 한국이 줄곧 앞섰다. 2013년 대만은 2만2522달러로 2만7178달러였던 한국에 큰 차이로 뒤졌다. 격차가 점점 줄어 2022년 대만은 3만2756달러, 한국은 3만2409달러로 18년 만에 역전됐다. 대만 정부는 2022년 1인당 GDP가 대한민국을 추월했다고 선언했다. 한국에 뒤졌다는 열등감에 빠져 있던 터였다. 절치부심했다. 마침내 한국을 따라잡고 이젠 앞서가고 있다.그 중심에는 세계 1위 파운드리 기업인 TSMC가 있다. TSMC는 국가차원의 지원에 힘입어 급성장했다. 대만은 생산설비 없는 반도체 회사들을 타깃 삼아 파운드리 산업을 발전시켰고 미국 주도 반도체 동맹의 주축이 됐다. 미·중간 반도체 전쟁에서도 키를 쥐었다. 미국과 일본이 천문학적인 보조금을 주며 투자 유치에 나설 정도다. 지난해 4분기 TSMC의 세계시장 점유율은 61.2%로 압도적 1위다. 2위인 삼성전자는 11.3%로 쪼그라들었다. ‘만약 중국이 대만을 침공한다면 미국은 가장 먼저 TSMC를 구할 것’이라는 우스개가 나올 정도다. 기업 하나가 나라의 생존을 좌우할 만큼 위상을 갖췄다.대만의 놀라운 성장은 2016년 취임한 차이잉원 총통의 산업 전략 영향이 컸다. 정부의 혁신적인 인프라 구축과 고부가가치 산업에 집중한 것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양국의 경제 현주소는 정부의 실력 차이를 잘 보여준다. 대만이 반도체 생태계를 구축, 세계 시장을 쥐락펴락하는 동안 우리는 용인반도체 클러스터 조성이 삐걱대고 SK 하이닉스 공장 건설은 용수난과 주민 이주문제로 질질 끌고 있다. 지난해 삼성전자는 세계 반도체 1위 기업 타이틀을 TSMC에 내주고 인텔에 이어 3위가 됐다. 문재인 정부는 잘 나가던 원전 산업을 내팽개쳤다. 소득주도성장이라는 정책으로 경제 추락을 자초했다.경제계 일각에서 대만을 배우자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한국 경제는 수출이 차츰 살아나고 있지만, 고물가, 고환율, 고금리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한국은 끝났다’고 진단하는 외국 언론의 시각이 적지 않다. 저출산·고령화의 여파로 저성장 기조에 빠진 한국이 헤어나질 못하고 있다. 제조업의 침체가 뼈아프다. 경제성장률 하락과 일자리 창출 부진, 세수감소에 따른 재정여건 악화 등 사면초가다. 정부를 채찍질해 난국을 헤쳐나가도록 해야 할 정치권마저 정쟁에 골몰한 채 오불관언이다.정부는 총선 패배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하루빨리 분위기를 일신하고 위기 국면에서 벗어나야 한다. 한 수 아래로 여겼던 대만의 눈부신 변신을 타산지석 삼아야 한다. 정치권과 경제계가 분발, 이재용 삼성회장이 언급한 실력을 보여줘야 할 때다.

2024-05-09

경주 월정교(月精橋)

우정구 논설위원 남천이 흐르는 경주의 월정교는 원효대사와 요석공주의 사랑 이야기가 얽힌 설화 속의 장소다.원효대사가 파계를 각오하고 요석공주와 연을 맺으러 일부러 강물에 뛰어든 곳이 바로 남천(당시는 문천)이다. 요석공주의 아버지 태종무열왕은 원효의 기이한 행동을 알아채고 두 사람을 연결시켜 주게 된다. 두 사람 사이에 태어난 인물이 신라 문자인 이두를 고안하고 신라 10현의 하나로 꼽히는 설총이다.월정교는 1984년부터 복원을 위한 자료수집과 고증작업을 벌였으나 2018년에야 복원사업이 완료된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통일신라시대 35대 경덕왕 18년에 지어진 것으로 기록돼 있다. 신라 왕궁이 있는 월성과 건너편 남산을 연결하는 다리다. 조선시대 들어와 유실된 것을 고증을 거쳐 지금의 모습으로 완공했다.길이 66m, 폭 13m, 높이 6m로 양끝에 문루(門樓) 두개 동이 세워져 있다. 워낙 오래된 다리인 데다 고증자료만으로 원래의 모습을 복원하기가 쉽지 않아 현재의 모습이 당시와 얼마나 닮았는지는 알 수가 없다고 한다. 다만 신라 천년의 도시 경주시의 역사성을 재현하고 관광상품을 늘린다는 취지가 복원의 학술적 목적보다 앞섰다는 평가다.경주에는 역사성을 배경으로 야경 명소로 꼽히는 곳이 여럿 있다. 동궁과 월지, 금장대, 첨성대, 월성 등이 있으며 월정교도 그 중 하나다. 고풍스럽고 예쁘게 단장한 월정교에서 바라본 경주의 모습에서 신라의 정취를 느껴보는 것도 멋진 일이다.경주시가 2025 APEC 정상회의 국빈공식 만찬장으로 월정교를 추천했다고 한다. 월정교의 역사성과 아름다움, 스토리 등으로 볼 때 손색이 없는 장소다./우정구(논설위원)

2024-05-09

윤석열 대통령이 해야 할 ‘정치’

김병래수필가·시조시인 지난 총선에 여당이 패배한 후 윤석열 대통령은 참모들에게 “이제 정치하는 대통령이 되겠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나라와 국민을 다스리는 일이 정치이고, 대통령이 공적으로 하는 모든 행위가 정치인데 새삼스러운 언급이 아닐 수 없다.사실 윤 대통령은 취임 후 2년 동안 열심히 정치를 해왔다. 무엇보다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공고히 해서 기울어진 나라를 바로잡으려는 노력을 꼽을 수 있고, 한·미·일 안보협력 강화 등 외교·안보의 정상화, 쇠퇴한 원전사업을 복원한 것과 노동개혁 등 경제회복을 위한 정책은 분명 상당한 공적이었다.그러나 정권을 빼앗긴 좌파 세력은 갖은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 대통령의 발목을 잡고 깎아내리기에 혈안이었다. 저들의 안위와 정치생명을 위해서는 나라의 장래나 민생 따위는 안중에 없고, 오로지 윤석열 정권을 무너뜨리기 위해서 음모든 협잡이든 못할 짓이 없었다. 그 결과 대통령의 지지율은 하락하고 여당은 총선 참패를 면치 못했다.총선 승리로 국회를 장악한 좌파 세력은 기고만장 행정부와 사법부까지 틀어잡으려고 입법독재를 자행하고 있다. 그들에게 가장 절실한 것은 사법리스크다. 대표를 비롯한 상당수 국회의원들이 줄줄이 검찰의 조사나 재판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사법적 처리에 따라 당사자들의 정치생명은 물론 당의 입지도 상당한 타격을 받을 것이다.이제는 윤 대통령도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바를 고지식하게 밀고 나간다고 국민이 알아주고 성과를 낼 수 있는 게 아니란 걸 절감했을 것이다. 특히나 우리나라처럼 좌·우의 세력이 극명하게 엇갈려 대결하는 상황에선 민심을 얻지 못하면 살아남기 어렵게 된다. 그런데 그 민심이란 것이 터무니없는 거짓선동이나 포퓰리즘에도 쉽사리 부화뇌동하는 한다는 것이다. 그렇더라도 정치의 성패는 결국 민심에 달렸다. 성실하고 정직하면 알아주겠지, 하는 순진한 생각으로는 정치를 잘 할 수가 없는 것이다.민심을 얻기 위해서는 좌경화된 언론매체부터 바로잡아야 한다. 그리고 최상의 홍보팀을 꾸려서 내전이나 다름없는 좌·우 대결의 구도에서 여론전에 밀리지 않는 것이 최우선 과제이다. 아무리 좋은 정책, 훌륭한 성과도 여론을 선점하지 못 하면 소용이 없다. 거짓 선동이나 모함에 대해서는 즉각 대응하고, 국민들이 납득하고 인정할 때까지 몇 번이고 거듭해서 설명하고 홍보하고 설득해야 한다. 대통령 자신도 월 2회는 정례적으로 기자회견을 해서 불통의 굴레를 벗고, 국정 현안에 대해서 명확하고 투명하게 정책과 의사를 밝혀야 한다. 물가안정과 취업확대 정책 등 피부에 와 닿는 민생정책에 진력하고 무너진 법치를 확립하는 일도 미루지 말아야 한다.범죄 집단을 선택한 병든 민심에 휘둘릴 것이 아니라 자유민주주의를 갈망하는 45% 민심을 위한 정치를 하기 바란다. 범죄자들과는 타협하지 않는 것, 그것이 이탈한 5%의 민심도 돌려놓고 과반의 지지기반을 확보해서 성공한 대통령이 되는 길이다.

2024-05-09

부모 사랑과 자식 효도

윤영대전 포항대 교수 5월의 맑은 날, 어버이날에 유튜브를 훑어가다가 ‘어머님 은혜’ 노래를 들었다. 하늘보다 높고 바다보다 넓은 것, 그것이 어머니의 은혜라는 것이다.어버이날 자식들의 안부 전화를 받으면 기쁜 마음이 된다. 시인 김소월도 ‘내가 부모 되어서 알아보리라’ 했듯이 ‘낳으실 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 기를 제 밤낮으로 애를 쓰신’ 어머니의 가이없는 희생과 지극하신 정성으로 길러주신 덕분에 어른이 되어서야 부모라는 존재의 책임을 알았다. 그 은혜를 생각하며 자식들에게 더 큰 사랑을 베풀고 효도를 기다려 보아야겠다.어버이날은 1956년 5월 8일 ‘어머니날’로 제정되었다가 효(孝)와 경로에도 뜻을 두어 1973년 어버이날로 되었고 이날 자식들은 빨간 카네이션을 달아드리며 부모님 은혜에 감사드리고 있다. 카네이션 꽃말은 ‘사랑과 존경’이다. 떨어져 사는 자식들에게 꽃 한 송이를 받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지만 전화로 안부를 물어올 때면 가족의 행복을 느끼기도 한다.마음속으로 부모님을 불러본다. 어머니, 우리 엄마를 부르면 뭔가 모르게 애처로움이 앞서고 아버지, 아빠라 불러보면 ‘아버지 술잔에는 눈물이 반(半)’이라는 정호승 시인의 ‘아버지 마음’을 느끼게 된다. 늙고 병들어 세월의 무게가 새겨진 아버지의 어깨와 따뜻한 가슴을 내어주며 착한 아이로 길러주시다가도 엄한 회초리를 들던 어머니의 손은 모두가 자식 잘되라고 가르쳐주신 부모님 은혜이다.시골집 아궁이에 불 땔 때면 어머니의 모습이 아른댄다. 6남매 키우시느라 참 고생하셨다. 50여 년 전 자식들이 많아 먹고살기 힘들 때 나라에서는 ‘둘만 낳아 잘 기르자’고 외쳤었지. 이제는 출산율 0.7이라는 인구절벽에 서서 자식의 교육 방향을 왜곡(歪曲)해 버려 효도라는 가치 추구는 어렵게 돼가고 있다. 물질의 풍요로움으로 인해 삼강오륜은 희미해져 버렸고, 도덕과 예절은 찾기 어려울 듯 사회가 어지럽고 각종 범죄가 활개 치는 시대, 효의 부재가 눈앞에 보이는 듯하다. 저출산 시대의 자식 사랑은 물질과 권력 우선의 사회행태로 인해 일신의 평안함만 생각한 인성교육 부족이 문제다.자신의 내면을 가꾸고 더불어 살아가는 데 필요한 인간다운 성품과 역량을 기르는 교육 즉, 사람이 되기 위해 배워야 하는 교육을 지양하며 정부에서는 인성교육 종합계획을 5년마다 수립해 왔다. 그 내용을 보면 초등 1,2년은 효와 정직을 가르쳐 떡잎부터 바르게 키우고 3,4년은 예와 협동, 책임을, 5,6년은 존중과 배려, 소통을 가르치도록 하고 있으며 중등은 자유학기제를 도입하여 예체능에도 힘을 쏟고 있다.우렁이는 알을 낳고 부화하면 자신의 살을 내어주는 자애심이 있고 가물치는 알을 낳는 고통에 눈이 멀게 되면 부화한 새끼들이 차례로 먹이가 되어 주는 효를 실천한다는 얘기도 있다. 감사할 줄 아는 삶을 가르쳐야 한다. 학문중심 교육으로 인성교육은 살아가는데 별거 아닌 것으로 인식된 지금, 부모님 사랑과 은혜를 가슴에 품을 줄 모르는 세대를 키우고 있는 느낌이다.부모의 자식 사랑과 그에 보답하는 효도는 이 사회가 밝고 평화롭게 살아가는 요람이 되게 할 것이다.

2024-05-09

‘아침이슬’ 그리고, 김민기

홍성식 (기획특집부장) ‘아침’과 ‘이슬’이란 2개의 보통명사로 ‘아침이슬’이란 고유명사를 만든 사람이 있다. 청바지, 통기타, 생맥주로 요약되는 1970년대를 살아온 사람이라면 누구나 기억하는 이름 김민기(73).작곡가이자 가수, 공연연출가이자 시인에 필적하는 수준의 노랫말을 쓴 작사가인 김민기의 아우라(aura)는 반세기의 세월을 뛰어넘어 여전히 빛난다.“긴 밤 지새우고 풀잎마다 맺힌 진주보다 더 고운 아침이슬처럼”으로 시작해 “나 이제 가노라 저 거친 광야에 서러움 모두 버리고 나 이제 가노라”로 끝을 맺는 ‘아침이슬’. 삶의 무게가 힘겨워 울고 있는 젊은이들에겐 성가(聖歌)와 같은 숭엄함으로 위로를 전했고, 자신과 더불어 공동체를 아끼며 살고자 결의했던 이들에겐 총알보다 더 강위력한 변혁의 무기가 돼주었던 노래다.‘아침이슬’의 작사·작곡자인 김민기가 아픈 모양이다. ‘위암 투병 중’이라는 기사가 경향 각처의 신문에 오르내린 게 올해 이른 봄. 미디어와의 접촉을 꺼리는 김민기의 성향 탓에 병세가 어떠한지는 소수의 사람들만 안다고. 최근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 등 SNS엔 김민기와의 추억담을 털어놓는 이들이 부쩍 늘었다. 마치 곧 이별할 사람과의 기억을 반추하듯.2018년 거의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TV 화면에 등장해 아나운서 손석희와 인터뷰를 한 김민기는 이런 말을 했다. “노래의 주인은 그걸 부르는 사람들이지요.” 1987년 6월. 항쟁의 거리에서 ‘아침이슬’을 합창하는 사람들을 보며 그런 생각을 했단다. 과연 김민기다웠다.그가 병마를 이겨 훌훌 털고 일어나기를 기대한다. 면식은 없지만 이 나라 중년 모두는 청춘의 어느 한 부분을 김민기에게 빚지고 있으므로./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4-05-08

스승의날을 생각한다

장규열 고문 불가능했을 일이 벌어졌었다. 직장생활 끝에 뜻을 정해 떠나기는 했지만, 모든 게 서툴렀다. 그가 아니었으면 오늘 내가 있을 수 있었을까. 지도교수 미라클(Gordon E. Miracle) 선생은 낯설었을 한국 유학생에게 수많은 도움을 주었다. 직장을 잡아 학교를 떠나기 전날, 교수님과 마지막으로 마주 앉았다. ‘교수님께 받은 은혜가 너무나 깊으므로, 오늘은 제가 무엇이라도 갚아드리고 싶습니다.’ 뜻밖의 제안이었을까. 그는 잠시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다. 그는 ‘내가 자네를 위해 선생으로 뭘 특별히 했는지 기억나는 게 별로 없다. 그래도 자네가 굳이 그렇게 생각한다면, 이제부터 만나는 학생들에게 그렇게만 하게나.’라고 했다.참으로 충격이었다. 받은 생각을 마음에 새기고 돌아서 살아온 수십 년이지만, 그 말씀을 실천했는지 창피하기 짝이 없다. 스승과 제자. 그는 선생이라는 내색을 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일상과 일과 가운데 선생이자 동료였다. 온 힘을 다해 함께 하였고 모든 도움을 아끼지 않았다. 내가 만났던 학생들에게 그리 했을까. 어느 한 순간 받은 큰 도움이 아니라 유학생활 칠 년을 건너며 날마다 받았던 스승의 은혜는 갚을 길이 없다. 나를 기억하는 제자들에게 나는 흉내라도 내어보았는가. 제자가 퇴직한다니까, 구순을 훌쩍 넘기신 선생께서 축하 메시지를 보내오셨다. 선생이 학생을 생각하는 마음은 끝나지 않는다. 오늘 우리가 만나는 선생님과 아이들의 관계는 어떠한가. 배려와 진심으로 만났던 선생님이 그리워진다.다시 스승의 날. 박제된 구호처럼 글자만 그럴싸하다. 마음에 짐만 쌓으며 슬그머니 지나가는 날이 아닌가. 어느 하루를 잡아 어색하게 챙길 일이 아니다. 교육의 마당에서 날마다 만나는 ‘선생과 학생’이 되어야 하는 게 아닐까. 삶을 나누고 믿음을 쌓으며 가르치고 배우는 사이에 끈끈해지는 게 스승과 제자의 관계다. 학생이 인권을 외치고 선생이 교권을 주장하는 곳은 이미 학교가 아니다. 교육과 성장이 일어나는 곳일 수가 없다. 교육이 본질로 돌아가야 한다. 학교가 그 가치를 다시 생각해야 한다. 가르침의 의미를 새롭게 살려야 하며 배움의 큰 뜻을 들어올려야 한다. 받을 것을 따지기보다 나눌 것을 헤아려야 한다. 학생들은 내일을 품었을 터이다. 선생은, ‘내가 가르쳐 내일이 열린다’는 흥분으로 살아야 한다.진심은 통한다. 학생과 부모들이 인정하고 따라와 주는 일도 선생에게 달리지 않았을까. 정성을 쏟으면 식물도 반응한다는데, 온 마음을 쏟아 만나는 아이들이 바뀌지 않을 수가 없다. 어느 선생님은 그래서 ‘가르치는 일이 정신적 업무인 줄 알았더니 사실은 육체적 노동이었다’고 하였다. 마음과 몸을 던져 세상을 바꾸시는 선생님들이 아직도 많다. 대학입시에서 교대가 어려움을 겪는다고 한다. 학생 숫자가 줄어 걱정이라지만, 학교에는 똘망똘망한 아이들이 선생님을 기다리고 있다. 기억도 다 못하는 선생님들 덕분에 오늘 내가 여기에 있다. 고맙습니다, 선생님. 당신은 기적입니다.

2024-05-08

어버이날, 엄마를 부르다

이정옥위덕대 명예교수 5월 8일이 예전엔 어머니날이었다. 그날이 되면 아침 일찍 학교 가기 전, 엄마에게 카네이션을 달아주었다. 언감생심 생화는 꿈도 못 꿀 시절이었다. 빨간 색종이로 접어 만든 보잘 것 없는 카네이션을 엄마는 하루 종일 왼쪽 가슴에 달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시며 아버지는 왜 아버지날은 없나 하셨다. 전국의 많은 아버지들이 그런 불평을 하셨나, 그 원성이 통했나, 내가 고등학생이었던 1973년부터는 어머니날이 어버이날이 되었다. 한 송이의 카네이션을 더 만들어 아버지께도 달아드렸으니, 아버지는 소원을 푸셨을까. 아버지의 가슴 꽃도 그날 종일 왼쪽 가슴에 달려 있었을 것이다. 아무리 어버이날이지만 그래도 아버지보다는 엄마가 더 사무침은 나 혼자만의 마음인지 모르겠다.귀가 어두운 엄마였다. 엄마가 꽤나 젊었을 때부터 귀가 어두워졌다는데, 그 연유에는 다양한 설이 있었다. 외가댁의 유전이라는 설도 있고, 나를 낳은 후 산후조리를 잘못해서라는 설도 있고, 사업 실패해 경제력이 없어진 아버지 대신으로 30대부터 고생을 많이 해서라는 설도 있었다. 세 가지 설 중 한 가지가 나와 관계된 거라, 왠지 귀 어두운 엄마에게 일말의 잘못을 했다는 미안함을 늘 가지고 있었던 나의 유년이었다. 커서는 돈 벌어서 엄마의 귀를 반드시 내가 고쳐주리라는 결심이자 소망을 가지고 있었다. 실제로 대학 졸업 후 엄마를 이비인후과에 모시고 갔고, 당시의 의학으로는 절대 고칠 수 없음을 알게 되었다. 수술 대신 보청기를 맞춰드렸다. 그 후 보청기를 바꾸고 수리하고 배터리를 공급하는 것으로 미안함을 덜려 애썼다. 보청기를 했음에도 소리를 크게 내지 않으면 잘 듣지 못한 엄마였다. 대신 엄마와 말하려면 손으로 엄마의 손목이나 팔을 툭툭 쳐서 내게 눈길을 돌리게 한 후 소리 없는 입모양으로 말을 전한다. 그리고 손짓과 과장된 표정으로 얘기하는 것이 큰소리를 내는 것보다 더 통하기가 쉬웠다. 모녀지간에 긴한 속엣말을 할 수 없으니 엄마도 나도 서로 많이 답답해했다. 그래서 택한 것이 편지였다. 엄마가 내게 더 많은 편지를 썼고, 나의 편지와 답장은 아주 이따끔이었다. 게을러서이기도 했지만 편지를 쓰려 종이 위에 ‘엄마’를 쓰면 먼저 눈물이 났기 때문에 접었던 기억이 많다. 대학 4학년 11월, 전국적으로 큰 규모의 학생운동으로 학교에 휴교령이 내렸다. 학교를 가지 못했으나 학생들을 가르치는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자취 중이었기 때문에 집에도 가지 못했다. 그 무렵 라디오에서 편지를 공모하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평상시 잘 쓰지 않던 엄마에게 보내는 편지를 썼다. 제목이 ‘엄마가 듣지 못할 편지’였지 싶다. 몇 달 후 당선되었다는 연락과 함께 부상으로 보내준 법랑냄비세트를 받았다. 라디오로 들은 나의 편지는 꽤나 눈물샘을 자극했던 것 같은데, 편지를 쓴 나는 들으며 울었으나 정작 엄마는 끝내 듣지 못한 편지였다.엄마를 소리내어 부른 지 벌써 10년이 넘었다. 지금도 자그맣게 입을 오므리고 입모양을 만들어 엄마…. 라고 소리낼라치면 눈이 먼저 답한다. 눈가가 스멀거리고 촉촉해지려 한다.

2024-05-08

어지럼증과 치료

박용호 포항참사랑송광한의원장 단어가 어지럼 하나밖에 없어서 표현을 어지럼이라고 하지만 어지럼에도 차이가 존재한다. 세상이 빙글빙글 도는 듯한 느낌의 강한 어지럼증은 한방에선 현훈이라고 한다. 이러한 어지럼증의 특징은 불안정한 자세나 자세변동에 의해서 증상이 심해지고 구역감과 구토를 동반하기도 한다. 대부분은 말초성인 경우가 많다.전정기관의 원인인 경우가 많으나 이석증을 제외하고 원인을 정확하게 파악하기 힘들어 대증치료를 하는 경우가 많다. 한방에선 어지럼증에 효과적인 약들이 많아 원인을 알 수 없는 경우는 한방 치료를 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한약으로 치료를 하며 상부의 체액을 소통시켜 제거하는 방법으로 치료를 한다. 전정기관에 염증이 생기면 붓게 되고 어지럼증을 일으킨다. 몸이 약한 사람들은 회복이 되지 않으면 만성으로 어지럼증이 지속되는데 이런 경우 특히 효과적이다. 택사나 백출 같은 몸의 물을 제거하는 약재로 처방을 하며 현재 몸 상태에 따라 약재를 가감한다. 효과가 빠른 경우는 몇 달 고생한 경우라도 한 두달 안에 호전을 본다.눈이 어지러운 독특한 경우가 있는데 차를 탔을 때 어지럼을 많이 느끼거나 눈앞에 눈발이 날리는 것과 비슷하게 눈앞에 뭔가가 지나갈 때 어지러움이 느껴지는 경우는 시호나 반하 같은 몸의 면역을 높이고 간의 열을 내리는 약재를 베이스로 한 약들을 처방하면 좋아진다. 눈이 어지럽다고 표현을 하는 경우는 상부의 체액을 소통시키는 방법이 아닌 몸의 면역을 높이고 눈으로 올라가는 열을 내리는 약들을 조합해서 쓴다.장시간 앉아 있다가 일어날 때 앞이 캄캄해지거나 오랜 시간 서있을 때 발생하는 것은 기립성 저혈압인 경우가 많다. 여자들에게 많고 마르고 약한 사람 혹은 노인들에게 많이 발생한다. 심한 경우 정신을 잃고 쓰러지는 경우도 있다. 노인들 실신 원인의 3분의 1가량이 이런 경우라 몸을 움직일 때 조심하고 평소 체력관리나 음식관리로 몸 상태를 건강한 상태로 유지하는 것이 좋다.몸이 약하고 혈액순환이 약해서 생기는 어지럼증이라 몸에 맞춘 보약을 먹으면 좋아지는 경우가 많다. 심장을 강화하고 몸을 따듯하게 혈액 순환을 시켜주는 육계와 당귀 등이 들어간 약으로 처방을 한다. 몸이 약한 사람들이 대부분 겪는 증상이라 소화기가 약한 경우는 소화기를 강화 할 수 있는 한약재를 처방하면 더욱 좋다.한방 시술로는 상부경추를 풀어주는 추나와 함께 뒷목에 습부를 하고 침과 약침을 놓아 머리로 가는 혈액 순환을 도와주는 방법을 쓴다. 상부경추가 눌리면 척수액 흐름이 좋지 않아 어지럼증과 두통이 발생할 수 있다. 직접적으로 상부 경추를 풀어주는 시술을 한다.초음파로 직접 보면서 성상신경절에 약침을 주입하는 방법도 있다. 성상신경절은 교감신경의 관문으로 이 부분을 풀어 주면 불면과 가슴두근거림 뿐만 아니라 인체의 많은 부분이 개선된다. 몸에 맞는 보약이라고 보면 되고 꼭 초음파로 보면서 시술을 해야 안전하게 할 수 있다.

2024-05-08

동요와 윤극영 + 박목월

배문경 수필가 ‘푸른 하늘 은하수 하얀 쪽배에/ 계수나무 한 나무 토끼 한 마리/ 돛대도 아니 달고 삿대도 없이/ 가기도 잘도 간다 서쪽 나라로’첫 창작 동요가 100살이 되었다. 이 노래는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지만 의외로 제목을 맞히기 어렵다. 정답은 내용에 없는 ‘반달’이다.올해는 한국 첫 동요로 인정받는 ‘반달’이 탄생한지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1924년 경성(지금의 서울)에 아동 문학가이자 작곡가인 윤극영은 관동대지진에서 탈출하고 돌아왔다. 하지만 고통 받다 숨진 누이의 죽음으로 복받친 설움을 안은 그의 눈에 보인 한 장면은 바로 ‘반달’의 가사가 된다.그가 평생 지은 수많은 동요는 어린이거나 한때 어린이였던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노래였다. ‘까치까치 설날’ ‘고기를 잡으러 바다로 갈까나’ ‘고드름’ ‘따오기’ ‘기찻길 옆’ ‘어린이날 노래’ ‘나란히 나란히’ 등 그가 작곡한 주옥같은 동요다. ‘반달 할아버지’라는 별명으로 불린 그는 600여 곡의 동요를 남겼다.동요가 된 목월의 ‘얼룩 송아지’ 노래비가 경주 황성공원에 있다. 1968년에는 우리나라 여러 곳에 노래비가 세워졌는데, 그중 하나가 목월의 ‘얼룩송아지’ 노래비다. 박목월이 짓고 서울대 음대 출신의 손대업이 작곡해서 널리 알려진 동요다. 이 노래는 1960년대 문교부 제정 음악 교과서에 실렸고, 어린이들은 물론 국민들이 함께 부르는 노래가 되었다.소는 우직하고 주인에 대한 충성심이 강한 동물이다. 농부인 아버지의 곁에서 논과 밭을 갈고 짐을 운반하며 팔려서는 자식들의 학자금이 되었던 든든한 자산으로 우리와 뗄 수 없는 동물이기도 하다.가장 쉽고 많이 부르는 동요 ‘송아지’의 주인공은 이 땅에서 나고 자란 우리 토종 한우인 얼룩배기 ‘칡소’를 보고 동시를 썼다고 한다.동시가 동요가 된다. 대한민국 최고의 동요축제 ‘KBS창작동요대회’가 33회를 거치는 동안 400여 편의 새 동요를 발표하였다. 1989년 ‘그림 그리고 싶은 날’을 시작으로 ‘수수꽃다리’ ‘넌 할 수 있어라고 말해주세요’ ‘꼭 안아줄래요’ ‘내 손은 바람을 그려요’ 그리고 작년 대상곡 ‘뻥뻥 뻥튀기’까지 이 시대 어린이들의 감성을 표현하는 동요들이 발표되고 어린이들의 사랑을 받아왔다.올해 제34회 KBS창작동요대회에서는 창원문협 도희주가 쓴 노랫말 동요가 대상을 수상했다.‘멍멍 기분이 좋아/ 헥헥 강아지가 / 내 품으로 달려온다/ 졸랑졸랑 우리는 좋은 친구/ 꿈속에서 우리는 좋은 친구’-‘강아지’부분경주문인협회 주관 2024년 제57회 목월 백일장 초등저학년 장원작품이다. 시제는 초등저학년은 강아지 또는 우산, 고학년은 엄마 손과 봄비 중에 선택한다. 중학생은 달력과 사춘기, 고등학생은 보름달과 돌다리, 대학 일반부는 계단과 회오리였다. 어린아이들의 감정이나 생각을 담아서 표현한 문학 장르의 하나인 동요가 인구감소와 더불어 아쉽고 안타까운 상황에 놓였다. 하지만 이번 목월 백일장을 통해 가족의 연대를 보았다.원고지를 받아 든 참가자들이 숲의 여기저기에 자리를 잡았다. 글을 쓰기 위해 텐트와 앉은뱅이 탁자를 들고 오기도 하고, 돗자리를 깔고 두런두런 시제에 대해 가족이 머리를 맞대고 애를 쓰기 시작했다. 소풍 나온 것처럼 보이던 그들이 낮 12시까지 본부석에 제출해야 하는 상황이라 모두 마음이 바빠 보였다.아이가 없는 세상을 생각할 수 없듯이 동요가 사라지는 날을 생각할 수 없다. 유치원과 초등 저학년부터 아이돌의 노래와 춤을 따라한다, 아이들의 순수한 시기를 어른들의 모습을 그냥 모방함으로써 동요를 잃어버리고 있다. 지금 목월의 시(詩)가 세상 사람들에게 향수(鄕愁)를 느끼게 하고, 그리움은 수채화처럼 번져 과거와 현재가 어울림으로써 세상이 살만한 가치로 이어지길 바라는 마음이다.목월의 목소리 들리는 듯하다.

2024-05-08

소만(小滿)과 명리 이야기

24절기 가운데 여덟 번째가 소만(小滿)이다. 태양의 황경이 60도에 위치하며, 2024년에는 5월 20일(음력 4월 13일)이다. 음력으로는 4월의 절기다. 소만은 입하와 망종(芒種) 사이다.소만(小滿)은 한자로 ‘작은 것이 가득찬다’라는 뜻이다. 글자 그대로 조금씩 여름 기운이 차올라온다는 뜻으로 지난 겨울에 심었던 밀, 보리, 마늘, 양파 등의 열매가 영그는 때다. 햇볕이 풍부하고 만물이 점차 성장하여 가득찬다는 의미가 있다. 지난번에 뿌려놓은 싹이 이제 나기 시작함과 동시에 벼농사를 위한 모내기를 시작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소만이라는 말은 모든 만물이 자라나서 세상을 가득 채운다라는 의미인데, 소만은 식물이 잘 자라는 시기다. 햇볕이 가득하고 모든 식물의 색깔이 연초록으로 변한다. 가을에 심어놓은 보리를 베고 잡초를 제거하는 등 농사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기에 앞서 준비를 하는 때다. 따라서 이 무렵에는 모내기 준비에 바빠진다. 밭농사는 김매기를 하고, 벼농사는 모판을 만드는 등 여러 가지 농사 준비에 분주한 시간을 보낸다.예전에는 이 시기가 가장 불행했던 때다. 바로 보릿고개의 아픈 추억이 있었다. 작년에 수확한 밭작물도 다 먹었고, 들나물과 산나물도 씨앗을 맺으니 먹을 것 없고, 보리 수확은 아직 더 기다려야 했으니 모진 생명을 이어가야 하는 고통스러운 시기였다. 지금은 먹을 것이 차고 넘친다. 추수한 보리, 밀, 죽순, 봄나물인 씀바귀, 냉이, 시금치가 건강식품으로 각광을 받는 시대로 바뀌었다.이 시기에 봉선화가 피면 잎과 꽃을 찧어내고 백반을 넣어 손톱에 물을 들였다. 첫눈이 내릴 때까지 손톱에 봉숭아물이 남아있으면 첫사랑과 이루어진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원래 이 풍속은 오행설에 붉은색(赤)이 사귀(邪鬼)를 물리친다는 것에서 유래하였다. 또 풋보리를 몰래 베어 그슬리고 밤이슬을 맞힌 다음 먹으면 병이 없어진다는 속설도 있다.속담으로는 ‘소만(小滿) 바람에 설늙은이 얼어 죽는다’가 있다. 계절상으로 봤을 때 여름이라 따뜻한 시기이지만, 이따금씩 차고 쌀쌀한 바람이 불어 노쇠한 사람이 감기에 걸려 고생하는 경우가 있기에 경고의 의미가 있다.소만은 사월(巳月)의 중앙에 해당하는 절기이다. 사월은 양기가 힘차게 활동하는 시기로 만물이 힘찬 에너지를 뿜어내며 정열적으로 성장하고, 자기 자신을 표출하는 시기다. 사월은 모내기철이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모여서 같이 일을 해야 했다. 그래서 집 나간 사람도 사월에는 들어온다는 말도 있다.동물로는 뱀이다. 뱀은 징그러우면서도 끌리는 신비한 힘을 갖고 있다. 꺼림과 끌림의 이중성으로 묘하게 사람을 끌어당기는 매력은 사화(巳火)의 특성이다. 그 매력에 가까이 가서 친하게 지내려고 하고 마음을 놓고 지내다가 갑자기 변덕으로 상대를 곤경에 빠지게 하는 성질이 있다.하지만 단정하고 잘 다듬어진 용모를 갖고 있다. 겉으로는 화끈해 보일 수 있지만, 일을 추진할 때는 세밀하고 침착하고 논리적이고 예의가 바르다. 주어진 환경 변화에 따라 업무를 파악하고 전체를 장악하며, 업무환경을 자기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바꿔 놓는 능력의 소유자들이다. 장애물을 거침없이 통과하는 유연성을 보이기도 한다. 뱀은 앞으로만 가지 뒤로 물러서는 점이 없는 것처럼 이런 기운이 넘치는 달이 사월이다.사월의 뱀은 양기의 상징이다. 성질이 급하고 화(火)의 기운이 강한 사람들은 분노를 잘 다스려야 한다. 한자리에 가만히 앉아 있지 못하니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활동적인 일을 하는 것이 성향에 어울린다. 주역으로 보면 중천건(重天乾)괘에 해당한다. 여섯 효(爻)가 모두 양(陽)으로 64괘 가운데 가장 강하고 튼튼한 괘다. 주역을 대표하는 괘다. 초구(初九)는 물에 잠긴 잠룡(潛龍)에서 시작하여 상구(上九)는 항룡유회(亢龍有悔)다.‘문언전’에서는 항(亢)자를 ‘나아가는 것만 알고 물러서는 것을 모르며, 존속하는 것만 알고 멸망하는 것을 모르며, 얻는 것만 알고 잃는 것을 모르는 것이다’라고 해석한다. 사실 나아감과 물러섬을 항상 잊지 않고 동시에 살필 수 있다면, 분명 보통사람이 아니다. 더욱이 한창 잘나갈 때 앞으로 닥칠 어려움을 미리 읽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뛰어난 인물이라 아니할 수 없다. 류대창 명리연구자 ‘문언전’은 ‘사람이라면 아마도 성인만이 가능하지 않을까? 진퇴와 존망을 알고서 그 바름을 잃지 않을 사람이라면 아마도 성인이 아닐까’라고 말한다. 그래서 신분은 귀하나 지위가 없고, 높이 있어도 다스릴 백성이 없으며, 어진 이가 아래에 있어도 도움이 되지 않으니 이 때문에 움직이면 후회가 뒤따른다. 다시 말해 ‘지극히 융성할 때 그 지나침을 살핀다’라는 말이 주역의 큰 뜻이다.초구 잠용은 물에 잠긴 용은 배우면서 때가 오기를 기다리는 상태다. 상구 항룡은 존귀한 지위에 올라간 자가 겸손히 은퇴할 줄 모르면 반드시 패가망신(敗家亡身)하게 된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구부득고(求不得苦)는 원해도 얻지 못하는 고통이다. 부족한 것이 충족되면 얼마 있지 않아서 권태에 빠진다. 권태를 벗어나고자 다른 무엇을 욕망하면서 다시 고통에 빠지게 되니, 인간의 삶이란 고통과 권태를 오가는 시계추와 같다. 인간은 맹목적인 애욕이 있어 부족한 것을 취하려는 욕망을 가지고 있다. 그러한 욕망은 끊임없이 솟아나는 샘물같이 마르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살아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2024-05-08

효도문화가 왜 ‘올드한 가치’로 취급받나

심충택 논설위원 1970년대 한국의 효도문화에 대해 아놀드 토인비는 “인류에게 가장 훌륭한 사상”이라고 했다. 토인비는 1973년 런던을 방문한 한국 정치인에게 “만약 인류가 새로운 별로 이주해야 한다면 꼭 가져가야 할 제1의 문화가 한국의 효 문화”라며, 우리나라 가족제도를 극찬했다. 당시 서구사회는 보수주의에 대한 청년들의 급진적인 저항으로 히피문화와 무정부주의가 활개를 치던 시기였다. 서구 지식인의 눈으로 봤을 때, 자식이 늙은 부모를 봉양하고, 콩 한 쪽도 이웃끼리 나눠 먹은 한국문화가 신기하고 부럽게 느껴졌을 것이다.극심한 불경기로 인해 이번 어버이날(8일)에는 꽃시장에도 찬바람이 분다고 한다. 가정의 달 성수기 임에도 ‘카네이션 특수’가 사라지면서 화훼농가와 꽃집들이 어려움을 겪는 모양이다. 부모에게 꽃 한 송이를 선물하는 어버이날 문화를 ‘낡은 유교가치’로 여기는 경향이 보편화되는 추세가 아닌지 우려된다.부모세대를 경시하는 풍조는 우리나라 정치권이 주도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해 7월말 민주당 혁신위를 이끌었던 김은경 위원장은 “자기 나이로부터 여명(남은 생명)까지 비례적으로 투표해야 한다. 왜 미래가 짧은 분들이 1대1로 표결해야 하느냐”는 기막힌 말을 했다. 20세 유권자 표는 60세 유권자의 세 배에 해당하는 표를 비례 행사해야 한다는 기상천외한 사고방식이다. 지난 2004년 총선 당시 정동영 열린우리당 의장은 “60세 이상은 투표하지 말고 집에서 쉬시라”고 했고, 열린우리당 유시민 의원은 “50대에 접어들면 뇌세포가 변해 사람이 멍청해진다”는 발언을 해 비난을 받았다.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는 이번 총선에서 65세 이상 노인의 도시철도 무임승차 제도 폐지 공약을 내놨다.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3일 어버이날 기념행사에 참석해 “부모님들께 효도하는 정부가 되겠다”고 했지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 사이에서 우리나라 노인들의 빈곤율과 자살률이 가장 높다는 통계는 수년째 변하질 않는다. 간병과 가난에 대한 고통으로 아들이 아버지를, 아버지가 아들을 살해하는 비극이 줄이어 발생하는 나라는 아마 한국뿐일 것이다. 우리나라의 65세 이상 인구는 올해 약 950만명으로, 내년에는 1천만명을 넘어선다고 한다. 100세를 넘기는 노인들 역시 해마다 늘어 올해는 10년 만에 2배 이상 증가해 노인문제가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인터넷을 보니, 요즘에는 여러가지 ‘효도대행’ 상품도 나온다. 부모에게 단순하게 주기적인 문자를 보내주는 것부터 손 편지 쓰기, 함께 술 마시기, 같이 산책하기 등 상품내용이 다양하다. 1주일에 2~3번 안부문자 보내는 데는 5만 원, 선물 대리발송 옵션이 붙는 경우에는 5만 원이 추가되는 식이다. 토인비가 부러워했던 우리나라 효도문화가 점점 퇴색돼 가는 세태를 겪으면서 마음이 씁쓸해진다. 아무런 부존자원이 없는 우리나라가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지금 부모세대들의 희생과 가족문화가 바탕이 됐다는 것을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

2024-05-07

행복한 어린이

우정구 논설위원 어린이날을 맞아 각 교육기관 등이 어린이와 관련한 설문을 조사해 보면 그 내용에 공통점이 있다. ‘가족과 사랑’이 공통의 단어로 등장한다는 점이다.예컨대 ‘가장 행복하다고 느끼는 순간’에 대해 질문했을 때 어린이들은 ‘가족과 함께 있을 때’를 가장 많이 대답한다.또 ‘어린이날 가장 하고 싶은 일’에 대한 질문에는 ‘가족과 함께 나들이 가기’. 부모로부터 가장 듣고 싶은 말은 ‘사랑’이란 단어가 제일 많다.어린이들은 각종 설문조사에서 행복의 조건을 손꼽으라 하면 ‘화목한 가정’을 가장 먼저 말한다. 영국의 낭만파 시인 윌리엄 워즈워스는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라 했다. 천진난만하고 깨끗한 동심에서 어른들은 배울 게 많다는 뜻이다. 그러면서 아이들은 어른을 닮아가니 어른들이 솔선해 모범적 생활을 하라는 의미로도 풀이한다.최근 교직원노동조합이 어린이날을 맞아 초등학생 2000명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했더니 초등생 10명 중 6명이 거의 놀지 않거나 일주일에 하루 이틀 정도 논다고 대답했다. 그 외 시간은 학원과 학습지, 온라인 학습으로 시간을 보낸다고 했다.우리나라는 사교육비 지출은 GDP 대비 압도적 세계 1위다.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우리나라 학생의 사교육 참여율은 78.3%다. 주당 사교육 참여시간은 7.2시간, 특히 초등생의 경우 사교육 참여율은 85.2%로 10명 중 약 9명이 사교육을 받는 것으로 나타나 있다. OECD 국가 중 우리 어린이의 행복지수가 최하위권에 머물고 있다는 사실과 무관치 않는 수치다. 1년 365일을 어린이날처럼 보낼 수 있는 우리사회의 더 많은 관심이 필요하다./우정구(논설위원)

2024-05-07

‘짧지만 긴 여운 …’ 소설가 김강의 엽편소설 ① 영양제와 매미 애벌레

◆연재를 시작하며=스토리가 아닌 이미지가 중심이 되는 단편영화를 만드는 감독들은 말한다. “한정된 짤막한 시간 안에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선 거짓말을 할 수 없다”고. 소설이란 문학 장르 중 가장 짧은 형식인 ‘엽편소설’ 역시 그렇다. 원고지 25매 안팎의 문장으로 세상과 사람, 삶과 죽음, 희망과 절망, 꿈과 환멸을 드러내기 위해선 본질을 보여주기 위한 ‘긴장’과 ‘에너지’가 필수. 문학을 통한 세계 해석과 심미적 위안이 사라진 21세기. 경북 포항에서 내과의사로 일하며 괜찮은 소설을 쓰기 위해 악전고투 중인 작가 김강(52)이 ‘엽편소설 연재’라는 간단찮은 도전을 본지를 베이스캠프 삼아 진행하겠다는 뜻을 전해왔다. 향후 격주로 게재될 김강의 엽편소설이 세계와 인간의 본질을 진지하게 탐구하겠다는 초심을 잃지 않을 것인지 궁금하다. 아직 문학과 소설이 가진 사회적 힘을 신뢰하는 독자들의 관심과 질책을 더불어 기대한다. - 편집자 주 맥주캔 꺼내 한 모금 마신 그녀가 이번에는 찻장을 열었다.“자. 이거.”영양제다. 25가지 비타민과 미네랄의 과학적 처방이라는 문구가 새겨진, ‘어드밴스’라는 단어가 덧붙여진 영양제. 살색 영양제 한 알은 25가지의 비타민과 미네랄의 단순한 복합체가 아니다. 이것은 격려와 칭찬이다. 그녀가 순신에게 영양제를 챙겨주는 날은 순신이 하는 짓이 그녀의 마음에 든 날이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영양제는 없다. 처음에는 그녀가 영양제를 주지 않으면 오늘은 왜 안 주느냐고 물어보기도 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그녀에게서 영양제를 받지 못한 날이면 순신은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해야 할 일을 안 한 것이 있는지 먼저 생각하고 반성하기 시작했다. 영양제는 순신에게 평화와 안도의 상징이다. 긍정과 부정의 되먹임 기전의 매개다. 예외적으로 영양제를 주는 경우가 있다. 그녀가 순신에게 최후의 부탁을 하는 경우다. 이번에도 하지 않는다면 내일은 없다.순신의 손바닥에 영양제를 올려놓으며 그녀가 말했다.“내일 별일 없으면 아이들 데리고 가서 매미를 잡아줘. 아니면 잡는 시늉이라도 해. 애들이 매미 잡고 싶다고 말한 게 언제야? 저번 주부터 매미, 매미 노래를 부르고 다니는데 어째 그렇게 꼼짝을 안 해? 부탁이야.”그를 처음 만났을 때, 미경은 이미 몇 번의 선과 연애를 해 본 뒤였다. 학창 시절 몇몇의 연애를 제외한다면 그녀가 만났던 남자들은 제법 그럴싸한 남자들이었다. 그들은 번듯한 직장이 있거나, 집안의 재산이 대단하거나, 둘 다였다. 그럼에도 미경이 그들 중 하나와 결혼 하지 않은 것은 굳이 그들에게 기댈 이유가 없어서였다. 이미 많은 것을 갖춘 그들에게 미경은 갖추어야 할 또 하나의 무언가에 불과할 것이라 생각했다. ‘부인은?’ 이라는 질문에 ‘네, 약사인데, 집에서 쉬고 있어요. 굳이 와이프까지 밖에서 일하는 것 원치 않거든요.’라고 대답하며, ‘멋져요.’라는 반응을 기다리는 그들의 허영에 보탬이 되고 싶지는 않았다.그는 달랐다. 어렴풋이 속이 비치는 번데기 같았다. 껍데기 속에서는 뭔가 계속해서 움직였다. 미경은 그를 만날 때마다 껍데기 속에 있는 것이 무엇인지 궁금했다. 어떤 때는 찰랑거리는 동전 소리가 들리는 것 같기도 했고, 어떤 날은 호령하듯, 가다듬듯 ‘아, 아’하고 마이크 테스트를 하는 소리가 들리기도 했다. 그와 일곱 번째 만나던 날 미경은 카페의 조명에 비친 껍데기 속에서 날개 같은 것을 보았다. 형광의 푸른색, 곧 껍질을 찢고 튀어나와 하늘로 날아 오늘 것 같은. 어릴 적 보았던 청띠제비나비의 날개.“미경 씨, 나는 말이지요. 하고 싶은 일이 너무 많아요. 글도 쓰고 싶고요, 기회가 된다면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도 좋을 것 같아요. 나무와 꽃을 기르는 일도 해야겠어요. 물론 돈도 많이 벌어야겠지요. 어떤 일이든 열심히 하다 보면 돈을 벌 수 있는 기회가 오지 않겠어요? 인생이 길지 않으니 그 중 어느 하나만 정해서 깊이 파고 들어가라고 다들 이야기하는데, 내 생각은 달라요. 길지 않은 인생에 할 수 있는 한 많은 것들을 해보고 싶어요. 능력만 된다면. 함께.”‘능력만 된다면’ 이라는 전제에 신경을 썼어야 했는데. ‘미경 씨랑 함께.’라는 말에 가슴이 흔들렸다. 청띠제비나비의 날개를 붙잡아 곁에 두고 싶었다.번데기에서 나오면 나비가 될 줄 알았는데, 매미였던 건가. 아니면 아직 번데기 속에 있는 걸까. 영양제를 받아먹고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식기를 정리하는 그를 보며 미경은 생각했다.영양제는 정확히 오 년 전 등장했다. 그 해 순신은 회사를 그만뒀다. 순신은 작은 책방을 열고 싶었다.“정치와 철학, 예술에 관한 책들만 취급하는 책방. 아이들 문제집이나 입시 혹은 수험서들, 처세에 관한 책, 사전 등은 취급하지 않는 ‘말 그대로’ 책방을 가지고 싶어. 한편에는 작은 강의실을 두고 매주 작은 강의를 열거야. 벽에는 스크린을 달아놓고 매일 저녁 혹은 정해진 시간마다 영화나 다큐멘터리를 상영하는 거야. 언제부터 언제까지는 찰리 채플린 주간입니다. 이렇게 미리 공지하는 거지. EBS 다큐 프라임 중에서 좋은 것들을 다시 틀어줄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러면 사람들이 그 시간에 맞춰서, 비슷한 성향을 가진 사람들끼리 모여드는 거지.”순신이 미경에게 말했을 때, 사업자금은 충분한지, 퇴직금으로 가능한 것인지, 운영비는 어떻게 할 것인지 미경이 물었고 순신은 대답하지 못했다.“자기 보고 다시 직장으로 돌아가라고 하지 않을게. 이유가 있겠지. 이미 벌어진 일이기도 하고. 돈 벌어오라고 말하지도 않을게. 내가 벌고 있으니 그 정도면 우리 가족이 사는데, 풍족하지는 않아도 큰 문제는 없을 거야. 대신 앞으로 무엇을 할지에 대해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계획을 세웠으면 좋겠어. 빠른 시간 내에 말해줘. 가능하면 문서로.”다음 날 저녁, 자기 전 미경은 순신에게 영양제 한 알을 건넸다.“뭐야?”“영양제.”“무슨 뜻이냐고?”“뜻은 무슨 뜻. 이제 우리도 몸을 챙기면서 살아야 할 것 같아서 퇴근할 때 하나 가지고 나왔어. 사람들은 열심히 사 먹는데, 정작 약사인 나는 영양제 한 알도 못 먹고 있네 싶어서 들고 나왔지. 하루 한 알씩 챙겨 먹자.”이후로 오 년이 지났고, 순신은 아직 계획서를 제출하지 못했다. 미경은 재촉하지 않았고, 순신은 전업주부 역할을 맡았다. 순신은 어쩌면 가사노동이 자신의 찾던 직업일 수 있다 여기기 시작했고 미경 또한 순신이 많지 않은 월급을 벌기 위해 직장에 다니는 것 대신 집에서 아이들을 보살피며 집안일을 해주는 것이 나쁘지 않았다. 모르는 사람을 쓰는 것보다 훨씬 낫지 않나? 하는 생각도 했다.오전 10시 아이 둘을 데리고 순신은 아파트 뒤 소운동장으로 향했다. 더 더워지기 전에 빨리 잡고 돌아와야 했다. 느티나무, 감나무, 벚나무들에 둘러싸인 소운동장 사방에서 ‘메엠맴’ 소리가 들려왔다. 아이들과 실눈을 하고 소리가 나는 곳을 올려보며 매미를 찾았다.“저기요, 저쪽 매미 소리가 제일 커요.”제법 밑동이 굵은 감나무를 가리키며 아이들이 달려갔다. 순신은 느린 걸음으로 따라가 나무 아래에 섰다. 아이들은 감나무 잎 사이로 내리는 햇빛에 눈부셔하면서도 매미를 찾아 감나무를 빙빙 돌았다. 순신은 아이들을 따라 나무를 올려보다 눈이 부셔 아래로 고개를 돌렸다.땅이다. 저 흙 아래에서 매미 애벌레는 7년을 기다렸을 것이다. 긴 세월을 기다리다 땅속에서 나왔겠지. 망설임 없이 나무를 타고 올라갔겠지. 드디어 짝을 만나고, 길어야 2주 남짓한 생의 황금기를 보내고 있을 텐데.“아빠. 찾았어요. 저기. 저기 있어요.”잠시 아래를 보고 있는 사이에 큰 아이가 매미를 찾아냈다. 아래에서 2.5m정도 높이에 감나무에 바짝 붙어있었다.“빨리요. 아빠. 날아가기 전에 빨리 잡아요.”그러고 보니 매미가 나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저 녀석들은 날 수 있기는 하는 걸까. 날개는 멋으로 혹은 날 수 있다는 착각을 하게 해놓고, 사실은 나무에 기어올라 바짝 붙은 채 그저 소리만, 소리만 우렁차게 울어대는 것은 아닐까.감나무는 두 팔로 감싸 안을 수 있을 정도였다. 두 팔과 두 다리로 나무를 감싸 안았다. 아기가 배밀이를 하듯 팔로 한 번 당겨 오르고 다리로 한 번 밀어서 오르고, 반복하면서 나무를 올랐다. 쉽지 않았다. 해 본 적 없었으니. 아이들은 ‘아빠, 빨리요.’를 재촉했지만 좀처럼 속도가 나지 않았다. 많이 올라가지도 못했다. 내가 무슨 매미도 아니고 이게 뭐람. 이럴 줄 알았으면 긴소매 옷을 입고 오는 건데, 바지마저 반바지에 이게, 이게 뭐야. 팔과 다리에 묻은 땀이 더 힘들게 만들었고 아팠다. 지면에서 2m 정도 올라갔을까. 나무 아래에서 소리가 들려왔다.“뭐하는 겁니까?”경비 아저씨였다.“매미 잡으려고요.”작은 아이가 대답했다.“매미를 잡는다고?”“네.”“그 불쌍한 것을 잡아서 뭐하려고. 이 동네 매미는 다 똑같아. 참매미야. 참매미. 잘 들어봐. ‘매엠 매엠 매엠 매에에에에’ 이렇게 울잖아. 이렇게 우는 것은 백 프로 참매미야. 확인할 것도 없어,”순신은 난감했다. 거의 다 왔는데, 조금만 더 오르면 잡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아이들이 쳐다보고 있다. 이대로 내려간다면 실망할 텐데. 오늘 저녁, 아니 내일까지 영양제를 못 얻어먹을지도 모르는 일이 아닌가.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올라가는 거다. 순신은 경비 아저씨의 말을 못들은 채 하며 두 다리로 몸을 밀어 올렸다. 눈앞에 매미가 있다. 이제 손만. 손만 뻗으면 된다. 그때 경비 아저씨가 소리를 쳤다.“거기 아저씨 내려오소. 불쌍한 아이들 괴롭히지 말고 내려오소. 빨리.” 매미가 울음을 멈췄다. 왼손의 힘이 빠졌고, 하필이면 불어온 바람에 잎이 흔들려 햇살이 눈으로 들어왔다.이 모든 것들이 동시에 일어났다. 매미의 울음이 멈춘 것과 바람이 불어온 것과 눈부신 햇살과 이리 내려오라는 주문 같은 경비 아저씨의 말이. 본지에 엽편소설을 격주 연재할 김강(52)은 소설가인 동시에 내과의사고, 포항에서 ‘도서출판 득수’를 운영하는 출판사 대표이기도 하다. 2017년 단편 ‘우리 아빠’로 심훈문학대상을 받으며 등단했고, 단편집 ‘우리 언젠가 화성에 가겠지만’ ‘소비노동조합’을 썼다. 지난해엔 장편 ‘그래스프 리플렉스’를 펴내 문단과 독자들의 주목을 받았다.끝

2024-05-07

혁신으로 단단해지는 중국

정상철 미래혁신경영연구소 대표·경영학 박사 1990년대 중국은 ‘마차 타고 로켓 쏘는 나라’라는 말이 있었다. 한국과 국교 수립이 얼마 되지 않은 1996년 북경을 갔을 때 첫 인상은 후진국 사회주의 국가 정도의 이미지였다. 북경 시내를 벗어나 골목길로 들어서면 주거 환경이 열악하고 사람들의 살아가는 모습이 동남아 수준의 거리였다.북경 올림픽을 전후로 대내외 투자가 크게 일어나고 경제 발전과 함께 유명 기업도 탄생했다. 한국 기업 진출이 본격화 되고 무역 규모도 커지면서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중국인의 마인드와 사회주의 사상은 우리가 이해 못하는 것이 많았다. 공산 정부의 방침 아래 움직이는 수동적인 국민성이 혁신이 들어가면서 변화가 일어났다.필자가 2008년 1월, 한국 기업이 가장 많이 진출한 청도의 포스코 법인을 갔을 때 일이다. 혁신 전문가 주재원이 투입되면서 중국 현지인의 마인드와 조직 분위기가 달라지고 있었다.스스로 문제를 찾고 개선하는 문화가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혁신 담당 주재원에게 ‘많이 가르쳐 주지 마시오’했던 기억이 난다. 시키면 하는 수동적 사회주의 사상으로 매월 급여에 직접 연계해서 인사 평가하지 않으면 근태 관리가 안 될 정도의 수준이었는데 포스코 혁신이 도입되면서 스스로 개선하고 자랑하는 모습을 보고 이곳 공산주의 국가에도 혁신이 들어가면 변화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포스코가 베트남에 제철소를 지을 때 현지 채용인을 어떻게 교육할까 고민이 된다는 CEO의 말씀에 중국에 답이 있다고 대답한 적이 있다. 이후 3개월 뒤에 청도 법인은 관둥성 혁신 대상을 받고 중국 신문에 게재되면서 포스코 혁신이 부각되었고 전국에서 벤치마킹 러시가 일어났다. 3년 뒤에 중앙 공산당 혁신우수상을 수상하며 새로운 시각의 변화가 시작된 것이다.필자가 2009년 상해의 소주시에 위치한 포스코아 법인을 컨설팅 할 때 중국인의 마인드 변화는 쉽지 않았다.현채인과 주재원의 관점이 달라 이를 해결하는 데 밤 늦게 술 한 잔을 나누며 경청하고 해결책을 찾아가기도 하고, 중국 직원의 사고 변화와 스스로 움직이는 조직 분위기 형성에 시간이 걸렸다. 오늘날 중국의 발전 된 모습을 보면 14억 인구의 1인당 GNP가 만 불을 넘어서는 경제성장국이 되었고 여기에 사회주의 사고를 변화시키는 데 혁신이 역할을 하지 않았나 사료된다.혁신은 종교, 사회문화, 국민성을 넘어서는 힘이 있다. 어떤 교육을 통해도 다른 나라의 국민성을 바꾸기는 어렵다. 혁신을 통해서 마인드의 변화와 관점을 바꾸는 계기가 되고 개인의 성장과 기업의 발전은 물론 부강한 나라로 가는 계기가 되는 것이다. 우수한 민족성을 갖추었다고 자부하는 유태인들도 개선해야 할 맹점이 있기 마련인 데 종교 마인드에 변화가 오면 평화로운 세상이 오지 않을까 한다. 사람은 교육만으로 변화시키는 것은 한계가 있다고 한다. 교육과 실행을 통해서 변화된 내 주변의 모습을 보고 스스로 변한다고 한다. 사회주의 국가 중국에도 가치를 창조하는 혁신이 들어가니 건강한 조직, 경쟁력 있는 기업과 부강한 나라로 변화 발전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2024-05-07

비 내리는 고향집 마당에서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신록의 초목 위에 비가 내리니 푸르름이 더욱 짙어지고 있다. 봄비 치고는 제법 많은 양의 비가 대지를 촉촉히 적시면서 생동의 기운이 한껏 왕성해지는 듯하다. 파릇한 잎사귀에 은구슬 같은 빗방울이 자분자분 내려앉으며 은밀한 밀어를 속삭이는 듯한데, 연두와 초록의 물결 위에 빗금 치며 내리는 비는 싱그럽고 산뜻한 오월의 수채화를 그리는 듯 온종일 쉼없이 녹파(綠波)를 더하고 있다.모처럼 고향에서 비를 맞으니 차분한 감회가 산허리에 걸린 실안개마냥 몽실몽실 피어난다. 아카시아 흰꽃을 적신 비에서는 상큼한 향기가 전해지는 것 같고, 연록의 숲에서 내리는 빗줄기에서는 초록물이 뚝뚝 떨어지는 듯하다. 이십 수년째 빈집으로 남아있는 폐허 같은 고향집의 처마에서 떨어지는 낙숫물이 넓직한 풀잎에 닿으면서 내는 소리가 맑고 정겹지만 더없이 애잔하게 들린다. 불현듯 빗소리가 들려주는 맴돌이 소리에 유년의 울림 같은 회억이 아스라해진 가슴을 적셔주는 듯하다.상수도시설이 미비했던 시절, 오늘같이 이렇게 비가 오는 날이면 으레 처마끝의 물받이에서 떨어지는 지점에 양동이나 큰 단지를 옮겨와 빗물을 받곤 했는데, 초반에 떨어지는 물소리가 가관이었다. 양동이나 알루미늄 세숫대야 떨어지는 낙수소리는 ‘타다다닥~’ 하며 자지러질 듯 요란하게 들리다가 이내 줄어들고, 단지나 옹기 같은 곳에 떨어지는 낙숫물은 마치 마이크 소리를 내는 듯 깊고 굵직한 울림으로 다가왔었다. 그렇게 몇 개의 용기에 빗물을 받으면서 내는 소리는 음계도 없고 음정도 제각각이었지만, 산만한 듯 정겹고 또렷하게 들리는 빗물의 이색적인(?) 연주가 아닐 수 없었다.또한 어떤 때는 또래들과 어울려 빗 속을 헤치며 호박순을 잘라서 만든 대롱을 몇 개 이어 빗물의 흐름을 유도하면서 낙수소리를 듣는 재미에(?) 빠지곤 했었다. 그러다 보면 옷이며 양말까지 담방 비에 젖게 되는 일명 ‘노배기’가 돼서 집엘 오게 되는데, 그럴 때면 어머니께선 부엌 아궁이 앞에서 불을 쬐게 하시며 벙드레죽(수제비)을 쑤어 주시거나 배추전을 부쳐 주시곤 했었다. 요즘도 비 오는 날의 날궂이 음식으로 파전이나 부추전 따위가 단연 구미를 당기게 하지만, 아주 오래 전에 들었었던 낙숫물의 리듬에 맞춰 전 부치는 소리가 그렇게 맛있게 피어나던 기억이 갈수록 생생해지며 차마 잊을 수 없을 것 같다.그렇게 빗물을 받아 머리를 감으면 머릿결이 좋아진다고 하시면서 비 내리는 날에 수제비나 부침개를 해주시던 어머니께선 초록이 우거진 북망산천에서 땅으로 스미는 빗물을 맞고 계시니 애절하기만 하다. 아카시아나무가 고향집 마당까지 침범하고 담쟁이 넝쿨이 옛집을 에워싸며 스산함과 황폐화를 더해도, 문득 기억 속에 낯익은 낙숫물소리와 정재(부엌) 칸에서 들리던 전 부치는 소리가 엷은 감미로움으로 다가오니 어찌할까나?엷은 안개 속에 하염없이 내리는 초록비가 음률인 듯 리듬인 듯 귓전을 스치는 고향집 마당 한 켠에는 그나마 활짝 핀 불두화가 위무인 듯 환하게 반기고 있었다.

2024-05-07

술까지 끊게한 모정(母情)

홍성식 (기획특집부장) 최근 할리우드발 흥미로운 가십 하나가 영화팬들의 주목을 받았다.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신부들의 전쟁’ 등의 작품에서 호연을 펼쳐 한국 영화 관객에게도 잘 알려진 앤 해서웨이(42)가 5년째 금주 중이고, 여덟 살 아들이 성인이 될 때까지는 “술잔 들 일이 없을 것”이라 말했다고 한다.뉴욕타임스와 ABC 등 미국 유수 언론사와의 인터뷰를 통해 이미 고백한 바 있다. 과거 앤 해서웨이는 술 탓에 일상생활이 지장을 받을 정도의 주당(酒黨)이었다. 대학 때부터 본격적으로 마신 술. 배우 생활을 하면서 주량은 더 늘어났고, 그 음주 습관은 전도유망한 여배우의 건강을 심각하게 위협했다. 그랬던 앤 해서웨이가 “아직은 아들이 나를 필요로 하는 나이다. 아들이 대학에 가면 다시 술을 마시겠다”고 했다니 모정이 술을 이긴 것이다.‘모정’이란 단어가 나왔으니 떠오르는 또 다른 한 장면. 케이트 윈슬렛(49)은 영화 ‘타이타닉’을 통해 세계적 스타의 반열에 오른 영국 여배우. 수십 만 파운드짜리 드레스를 입고 화려한 시상식장을 드나들던 그녀가 아들을 등에 업은 꾀죄죄한 모습으로 파파라치의 카메라에 찍혔다. 화장도 하지 않은 맨얼굴에 낡고 헐렁한 면바지를 입었음에도 등에 업힌 아들 조 알피를 돌아보며 세상 누구보다 환하게 웃고 있었다. 엄마의 행복이 어디에서 출발하는지 보여주는 상징적 장면이다.“같은 무게의 황금을 준다 해도 아들을 금과 바꿀 어머니는 없다”. 중국 속담이다. 가정의 달로 불리는 5월. 가정의 일상이 행복하게 유지되는데 모정이 어떤 역할을 해왔는지 새삼 거론하는 건 바보짓이다. 부엌에서 아침 짓는 어머니의 손이라도 한 번 잡아주면 좋을 날이 내일이다./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4-05-06

누가 민주주의를 파괴하는가

변창구 대구가톨릭대 명예교수·정치학 한국 민주주의가 중병에 걸려 신음하고 있다. 병의 원인은 ‘제도’에도 있지만 ‘사람’이 더 큰 문제다. 확증편향과 선택적 정의에 갇힌 중환자들이 자신은 병이 없다고 하니 ‘웃픈’ 현실이다. 정치권은 물론이고 일반 국민들 사이에도 분노와 적대가 만연해서 독선과 편견, 오만과 아집이 온 나라를 흔들고 있다.하버드대 정치학과 교수인 레비츠키(S. Levitsky)와 지블랫(D. Ziblatt)은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에서 민주주의의 핵심규범은 ‘상호관용’과 ‘제도적 자제’인데, 이것이 무너지면 민주주의도 무너진다고 했다. 민주주의는 구성원들이 서로의 견해 차이를 존중하고 자기의 절대성을 고집하지 않아야 유지되기 때문이다.그럼에도 국회를 장악한 야당은 일방적으로 법안을 통과시키고, 집행권을 가진 대통령은 주저 없이 거부권을 행사한다. 외관상 각자의 권한을 행사한 것이니 문제가 없는 것 같지만, 사실은 민주주의에서 가장 중요한 대화·관용·타협이라는 절차규범을 어긴 것이다. 입법 권력과 집행 권력의 ‘힘의 대결은 정치가 아니라 전쟁’이다. 정치가 전쟁과 다른 점은 상대를 ‘제거해야 할 적’이 아니라 ‘협력해야 할 경쟁자’로 인식하는데 있다.민주주의는 이성주의와 합리주의를 토대로 한다. 하지만 견리망의(見利忘義)하는 정치인들의 적반하장(賊反荷杖)은 한국 민주주의가 얼마나 이기적이며 부족적인가를 말해준다. 부족주의 정치는 국가이익보다 당파이익을 중시한다. 철학의 빈곤과 이기심으로 확증편향에 갇힌 정치인들의 선동과 매도의 정치가 민주주의를 질식시키고 있는 것이다.민주주의를 지탱하는 두 기둥은 공정과 정의다. 롤즈(J. Rawls)가 말한 “공정으로서의 정의”는 ‘절차적 공정’을 통한 ‘결과적 정의’를 의미한다. ‘정의가 힘’이 되어야지 ‘힘이 정의’가 되는 정치로서는 정의사회를 만들 수 없다. 이재명과 조국의 경우처럼 힘으로 공당을 사당화하거나 범죄혐의를 정치적으로 덮으려는 것은 민주주의에 대한 중대한 도전이다. 법 앞에 만인이 평등하다는 ‘법의 지배’를 부정하고, 권력으로 ‘법에 의한 지배’를 기도하는 것은 정의에 대한 배신이다.언론자유는 민주주의의 처음이자 끝이다. 모든 권력은 필연적으로 부패하기 때문에 언론의 비판기능이 죽으면 민주주의도 죽는다. 스웨덴 민주주의다양성연구소는 ‘민주주의 리포트 2024’에서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언론통제와 사정기관을 통한 공포정치로 “한국 민주주의가 퇴행하고 있다”고 했다. 법을 적용하는 공권력의 남용이 민주주의를 위기로 내몰고 있는 것이다.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민주’는 시민의 주권을, 그리고 ‘공화’는 공공선을 말한다. 우리의 미래는 ‘너와 내가 만나서 우리’가 되는 ‘공화정(共和政) 정신’에 달려 있다. ‘우리’라는 공동체 속에서 너와 내가 함께하려면 관용·대화·타협의 정신이 필수다. 우리가 편견과 아집을 버리고 진정한 공화주의자로 거듭날 때 비로소 한국 민주주의는 회생될 수 있다.

2024-05-06

핵개인 시대에 가족의 의미

유영희 작가 5월은 가정의 달이다. 어린이날을 시작으로 어버이날을 거쳐, 21일에는 부부의 날로 마무리된다. 그 중간에는 스승의날까지 있다. 여기저기서 가족 모임을 한다고 분주하다. 자식이 결혼하면 아무리 같은 도시, 같은 동네에 살더라도 분가하는 경우가 많아서 이렇게 기념일이 있을 때면 모두 약속을 잡는다.그런데 이런 삶의 방식에 모두 잘 적응하는 것은 아니다. 얼마 전 배우 전원주 씨가 금쪽상담소에 나와서 돈은 있어도 외로워서 자식과 살고 싶은데 어느 자식도 자신과 살기를 원하지 않는다고 서운함을 토로했다. 전원주 씨처럼 나이도 많고 혼자 사는 사람이라면 이런 서운함에 많이 공감할 것이다. 그러나 앞으로 나이 든 부모가 결혼한 자녀와 함께 살 수 있는 가능성은 많지 않다. 2022년 통계만 보아도 3세대 가구는 3% 정도뿐이다. 반면, 1인 가구는 34%를 넘었고 점점 더 늘어날 것이다. 전원주 씨 사례 영상 댓글에도 혼자 사는 법을 배우라는 의견이 거의 전부다.이렇게 개인화되어 가는 세상에 대해 송길영은 ‘시대예보’에서 핵개인의 시대라고 표현하고 있다. 2세대 가구를 핵가족이라고 불렀다면, 1인으로 살아가는 시대는 핵개인 시대라면서, 사람들이 점점 똑똑해지고 오래 살게 되기 때문에 핵개인의 시대가 왔다고 한다. 인간의 적응력은 뛰어나니 이런 시대가 와도 걱정하지 말라는 위로 아닌 위로도 곁들인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핵개인의 시대에 잘 적응하는 것은 아니다. 경제활동을 할 수 있다고 해서 잘 적응한다고 하기도 어렵다. 며칠 전 기사를 보니, 직장을 다니는 젊은이도 1인 가구의 고립감에 고통을 호소하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연결 없이 살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가족 같은 강한 연결도 삶을 지탱해주는 든든한 버팀목이 되고, 인터넷에서 만나는 약한 연결도 사회적 소속감을 부여해주는 토대가 된다. 아즈마 히로키 역시 ‘약한 연결’이라는 책에서 전통 사회 가족 유대관계 같은 강한 연결도 필요하다고 한다. 다만, 세계화라는 세상의 변화 앞에서 강한 연결의 비중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대신, 약한 연결을 늘려야 한다고 조언한다. 그는 인터넷도 검색을 잘하면 충분히 주체적으로 활용할 수 있고, 현실 공간에서도 충분히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갈 수 있다고 한다.내 경우는, 어차피 5월에 생일이 있는 딸도 있어서 어버이날은 따로 신경 쓰지 말라고 진작에 다짐해두었다. 그 생일 기념도 일부는 온라인으로 한다. 유럽과 호주에 떨어져 사는 어떤 가족은 영상통화로 만난다고 한다. 불과 10여 년 전만 해도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지만, 상황이 변하니 새로운 방식을 찾게 된다. 핵개인 사회에 적응하기를 강조하다가 자칫 고립되는 위험이 생길 수 있다. 사람에게는 약한 연결은 물론이고, 가족 관계 같은 강한 연결도 여전히 필요하다. 다만 연결의 방식과 형태는 유연해질 필요가 있다. 핵개인화되는 시대에서도 삶을 행복하게 영위하려면, 자신의 정서적 욕구를 잘 인식하고 가족이라는 강한 연결을 상황에 맞게 조화롭게 이어가야 한다.

2024-05-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