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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세계적인 관광섬으로 도약하는 울릉군

남한권 울릉군수 ‘신비하다’라는 말이 있다. 일이나 현상 따위가 사람의 힘이나 지혜로는 이해할 수 없을 만큼 신기하고 묘하다는 뜻이다. 길이 2.6km의 행남해안산책로를 1시간 정도를 걸으면 ‘신비’라는 말이 저절로 떠오른다. 약 250만년 전 화산 폭발로 형성, 시간과 자연이 빚어낸 역작을 만끽할 울릉도 여행의 백미로 꼽힐만한 행남 해안산책로가 재개통 됐다. 행남 해안산책로는 독특한 지형과 아름다운 해안선, 그리고 청정 바다를 배경으로 환상적인 경관을 제공하는 울릉도의 대표적인 트레일 코스로 방문객에게 다채로운 볼거리를 선사해왔다. 방문객들에게 더욱 안전하고 쾌적한 환경을 제공하기 위해 낙석으로 인한 보수공사 및 안전점검 등 개선작업을 진행했다. 이번 재개통으로 울릉도를 찾는 관광객들에게 행남 산책로의 아름다운 비경을 제공하고 특히 가을을 맞아 트레킹을 목적으로 울릉도를 찾는 관광객들에게 걸으면 걸을수록 감탄사가 저절로 나오는 경험을 하게 된다. 울릉도는 지난 7월 27일부터 8월 25일까지 울릉도의 여름 해양 레저 체험을 활성화하고 울릉도의 특산물을 활용한 음식을 즐길 수 있는‘한여름날의 울캉스’행사를 개최했다. ‘한여름날의 울캉스’는 해양 레저 프로그램을 50% 할인된 금액으로 체험할 ‘울루랄라 해양레저 페스타’와 울릉도에서 자생하는 해산물을 음악과 함께 즐길 수 있는 ‘울루랄라 바다포차’ 프로그램이다. ‘한여름날의 울캉스’는 문화체육관광부 주관 K-관광섬 육성사업의 일환으로 공모를 통해 5개 섬을 선정, 4년동안 섬별로 100억원 상당을 투입했다. 세계인이 가고 싶은 관광명소, ‘K-관광섬’으로 육성, 휴양과 체험을 중시하는 여행추세에 맞춰 저밀도·청정 관광지인 섬에 관광과 K-컬쳐를 융합하고 지역 주민이 함께하여 매력적인 섬으로 특화하는 사업이다. 울릉도·흑산도 등 국토 외곽 먼섬 지원 특별법 제정에 따른 종합발전계획 수립 연구용역을 위한 업무협의를 했다. 특별법 제정에 따라 행정안전부에서 추진하는 이 용역은 2024년 5월부터 2025년 1월까지 진행되며 계획 수립을 위한 사업안 발굴과 재원조달 방안 등의 과제를 수행하고 있다. 용역 수행기관인 국토연구원과 한국 섬 진흥원은 울릉군을 방문해 울릉군 종합발전계획수립 TF팀을 만나 울릉군의 실정과 교통, 안전, 환경, 의료, 교육 등 다양한 분야의 주요 현안사항에 대해 청취하는 시간을 가졌다. 지역 해상여객운송사와의 간담회를 갖고 동절기 운행에 대한 애로사항과 여객선 입출항 항만 시설의 미비 등 고충사항을 들으며 먼섬 도서 지역에서 운항 중인 선사의 고질적인 문제에 대해 공감했다. 이에 울릉군은 실정에 맞는 분야별 사업 발굴을 위해 TF팀을 구성했다. 이를 통해 도출된 사업은 종합발전계획 안에 포함하고 예산 반영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노력한다는 입장이다. 제55회 울릉군민체육대회가 지난 5일 울릉공설운동장에서 개최됐다. 특히 이번 대회에서는 특별히 관외에 거주하는 5개 지역(서울, 대구, 포항, 울산, 구미) 향우회에서 연합팀을 구성하고 참가해 지역민들과 같이 교류하며 고향에 대한 애정을 보여줬다. 지난 9월 11일부터 이틀간 약 309㎜의 물폭탄이 쏟아졌지만, 민·관·군이 합심해 응급복구에 최선을 다했다. 이번 폭우는 시간당 최대 강수량 70mm가 넘는 폭우로써 46년 만에 처음으로 겪는 상황으로 산사태 및 사면 붕괴, 일주도로 토사유출, 도동시가지 구간 토사유출 등 많은 피해가 발생했다. 또한 울릉군은 추석을 앞두고 고향을 찾는 귀성객 및 황금연휴 울릉군을 찾는 관광객의 안전과 불편함을 최소화하기 위해 관내 가용한 장비를 최대한 투입 하고 12일부터 13일까지 각종단체 400여명을 투입하여 빠른 복구에 총력을 기울였다. 공직자 250여명은 휴일을 반납한 채 침수피해를 입은 숙박업소 및 상가복구에 구슬땀을 흘렸다. 특히 울릉군의 요청으로 경북 안전기동대가 1차 2차에 걸쳐 대원들을 급파하여 피해복구 지원에 힘을 보탰다. 추석연휴마저 반납하고 울릉군의 폭우 피해 복구를 지원하기 위해 구슬땀을 쏟았다. 민족의 섬 울릉도와 독도를 지키고자 하는 국민들의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다. 울릉도는 지금 천혜의 자연 관광자원을 보유한 해양관광지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정부와 각급 기관들도 울릉도 발전에 적극 나서주고 있다. 울릉도는 지금 울릉군민과 출향인들의 단합된 모습과 정부와 국민들의 사랑과 관심이 모아져 울릉도는 세계적인 관광섬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2024-09-29

노잣돈, 이만 원

이렇게 쓸쓸한 장례식은 처음이다. 그녀의 마지막 가는 길은 뼈만 남은 앙상한 몸만큼이나 초라했다. 구순의 친정아버지와 고등학생 아들, 그리고 우리 부부가 그녀를 배웅했다. 나는 그녀를 학부모로 만났다. 처음 아이를 학원에 데리고 오는 날, 그녀는 자신의 가정사를 이야기했다. 아이의 아버지가 다른 여인을 품으면서 그녀는 아이를 임신한 상태로 시댁에서 쫓겨나게 되었다. 가난한 친정으로 들어와서 팔삭둥이로 아이를 낳았다는 이야기를 깔깔대며 했다. 끄떡없이 잘 살 수 있다는 표현을 하는 것으로 나는 느꼈다. 한 달마다 닥쳐오는 아이의 학원비는 그녀에게 부담이었다. 그녀의 사정을 알았던 나는 반값으로 내려주었다. 그녀는 아이에 대해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거나 학교 선생님들에 대한 섭섭함이나 힘든 일이 있을 땐 늘 학원으로 찾아왔다. 나는 자연스럽게 그녀를 언니라고 부르며 많이 들어주려고 애를 썼다. 그런 그녀가 가슴에 멍울이 잡힌다고 덤덤하게 이야기했다. 그녀는 자신보다 아이와 연로한 부모님을 걱정했다. 힘겨운 치료 과정에서도 그녀는 스스로의 삶을 늘 응원했다. 그것도 잠시였다. 다시 찾은 병원에서 그녀는 재발이 되었다는 소리를 들었다. 뼈와 간, 폐까지 전이가 되었다고 했다. 손을 쓸 틈도 없이 그녀는 1년이라는 유효기간을 받아 들었다. 머릿속에 아는 단어가 모두 지워진 듯 아무런 말도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녀의 암덩어리는 피할 수 없는 연기처럼 순식간에 온 몸으로 퍼져갔다. 열이 나서 춥고 균형을 잡지 못해 넘어지면서 온 몸은 멍투성이가 되어 갔다. 그 시기에 나는 자궁 수술을 받다가 의료 사고로 대학 병원에 이송되었다. 30분의 골든타임을 살려 나는 위험에서 벗어났다. 못 볼 수도 있었다는 생각에 많은 사람들이 병원을 다녀갔다. 하지만 그녀의 방문은 의외였다. 나를 보며 그녀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며 더 크게 울어대기 시작했다. 그녀의 몸은 덜덜 떨리고 있었다. 꽃샘추위로 바깥 날씨가 예사롭지 않았을 텐데 그녀는 자신의 몸도 제대로 못 가누면서 버스로 한 시간이나 걸리는 이 곳을 찾아왔다. 살이라고는 없는 앙상한 그녀는 은사시 떨듯 하염없이 떨었다. 한 걸음 한 걸음 힘겹게 온 그녀를 보고 나도 울었다. 10분 후 그녀는 일어섰다. 태워 주겠다는 남편의 제의를 마다했다. 택시라도 태워 주겠다는 말에도 화를 냈다. 혼자서 갈 수 있다며 돌아서면서 무조건 받으라며 봉투를 하나 내밀었다. 손사래를 치는 우리에게 ‘내 마음이니 받아 주세요’ 하며 돌아섰다. 봉투를 열었다. 속에는 그녀의 지갑 속에서 얼마나 오랜 시간 접혀 있었던지 칼처럼 날카롭고 공기라곤 느낄 수 없이 납작하고 빳빳한 만 원짜리 두 개가 2번 접혀 있었다. 형편이 어려웠던 그녀가 아끼고 아끼며 차마 쓰지 못했던 돈이 아니었을까 생각하니 기꺼이 내어준 그녀의 마음이 뜨겁게 다가와 견딜 수가 없었다. 누구에게는 커피 두 잔으로 써 버릴 작은 금액일 수 있겠으나 그녀에게는 너무나 큰 금액이었다. 한 달 만에 나는 퇴원을 했고 조금씩 회복이 되었다. 하지만 그녀의 건강은 날로 악화되었다. 걱정이 되어 그녀의 현관문을 두드리려 하면 두려움이 먼저 다가왔다. 혹시나 하는 마음이 내 발걸음을 자꾸 밀어냈다. 그녀는 점점 나를 알아보지 못했다. 전화가 왔다. 그녀의 아버지였다. 떨리지도 않는 담담한 목소리였다. “가뿟심더” 김경아 작가 병원에는 아무도 없었다. 빈소도 없었다. 올 사람도 없다며 할아버지는 입관 후 다음 날 바로 발인을 했다. 절차와 행정적인 부분을 할 수 없었던 할아버지를 대신해 나는 분주했다. 입관에는 할아버지와 아들, 교회 목사님과 내가 함께 했다. 가족이라고는 한 명도 오지 않았다. 무슨 사연이 있는지 깊이 알 수는 없었지만 그녀의 마지막 길은 외로웠다. 수의를 입고 있는 그녀는 편안한 표정이었다. 말이 없던 아들은 어깨만 들썩일 뿐 제 엄마의 주검 앞에서 목 내어 울지도 못했다. 나는 그녀가 가는 길에 노잣돈으로 차마 쓸 수 없었던 이만 원을 함께 보냈다. 저 세상에서 그녀는 또 누군가에게 자신의 따뜻한 마음을 나눠주며 살 것이라 믿었다. 납골당에 그녀를 두고 돌아서는데 할아버지가 내 손을 잡았다. “선생님 덕분에 우리 애미가 행복했다 카대요. 유일하게 인간 대접 해 준 사람이라 카면서 고맙다고 꼭 전해주라 하대요. 고맙심더” 그녀의 환한 웃음이 떠올라 자꾸만 눈이 시려왔다. 하늘을 올려다보며 넓고 넓은 이만 원의 크기만큼 그녀의 가족들을 돌보겠노라 약속을 했다.

2024-09-29

마약범죄 급증… 사회전체가 감시자 돼야

지난해 대구경북(TK)에서 검거된 마약사범이 1467명으로 10년 전과 비교해 3배나 증가한 것으로 밝혀졌다. 경찰청이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대구는 2013년 246명에서 2023년 743명으로, 경북은 2013년 249명에서 2023년 723명으로 늘었다. 10년 동안 TK지역에서 검거된 마약사범은 대구 4364명, 경북 4478명으로 총 8842명이다. 전국적으로도 같은 기간 검거된 마약사범 수가 2013년 5459명에서 2023년 1만7817명으로 3.3배나 증가했다. 문제는 10대 마약사범 증가속도가 심상치 않다는 점이다. 지난해 전국에서 검거된 마약사범 중 10대는 1066명으로 2022년 294명보다 3.6배 많았다. 마약 재범률이 40%가 넘는 점을 감안하면 10대 마약범죄가 시간이 지나면 눈덩이처럼 커질 수 있다. 10대 마약사범이 급증하는 이유는 가벼운 처벌 탓이 크다. 국민의힘 김승수 의원(대구 북구을)은 “2023년 마약류 범죄를 분석했더니 미미한 처벌 수위와 수사 인력 부족이 10대 마약사범 증가의 주요 원인으로 꼽혔다”고 했다. 최근 3년간 마약류 사범 1심 판결 현황을 보면 벌금·집행유예·1년 미만 등 솜방망이 처벌에 그친 사례가 60%에 육박한다는 것이다. 마약유통망을 끊어내려면 공급책을 적발해 엄중 처벌하는 것이 우선돼야 하는데, 전국 경찰서 중 마약 대응 전담팀을 갖춘 곳이 23곳에 불과한 것도 큰 문제다. 검찰이 최근 청소년에게 마약을 공급하는 범죄자에 대해 최고 사형까지 구형하겠다고 했지만, 온라인을 통한 마약거래는 독버섯처럼 번지고 있다. SNS에 익숙한 청소년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쉽게 구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크웹이나 텔레그램 대화방을 통해 가상화폐로 구입한 뒤, 국제택배로 전달받으면 추적이 안된다. 마약은 중독성이 높아 한 번 접하면 끊기 어렵다. 전 연령층으로 급속하게 번져가는 마약범죄를 근절하려면 사회 구성원 모두가 내 가족을 보호한다는 마음으로 퇴치운동에 나서야 한다.

2024-09-29

대구경북 철도 르네상스, 상생 발전 돌파구로

올 연말까지 대구경북지역에는 동해중부선 등 5개 철도노선이 새롭게 개통되면서 철도 교통망의 지각 대변동이 시작된다고 한다. 대구와 경북을 통과하는 5개의 신설 철도노선은 중부내륙선(문경-경기 이천), 중앙선(충북 단양 도담-영천), 동해중부선(포항-강원 삼척) 등 일반철도 3개 노선과 대구권광역철도(구미-대구-경산), 대구도시철도 1호선 연장(안심-하양) 등 광역철도 2개 노선이다. 이번 철도가 개통되면 오지지역으로 여겨졌던 경북 내륙지역의 교통에 혁명이 일어나게 되고 대구와 인접한 구미 등 8개 지역이 1시간대 생활권에 놓이게 된다. 특히 대구권은 출퇴근 인구의 증가와 경제적 교류 활성화 등으로 대구와 경북은 실질적인 하나의 생활권을 형성하고, 그에 따른 시도민의 생활에도 큰 변화가 일 것으로 예상이 된다. KTX 소외지역이었던 의성, 군위 등 경북 내륙지역은 KTX 수혜지역으로 바뀌게 되고 문경에서 1시간 30분이면 수도권 진입도 가능하게 된다. 또 철도망 연계를 통해 안동에서 울산. 부산 등 동남권으로 접근성도 크게 개선된다. 철도는 경제성장을 이끄는 산업화의 역군이자 국토균형발전을 이루는 대동맥 역할을 한다. 경제, 사회, 문화 등 생활 전반에 영향을 끼쳐 인구유입과 관광 활성화, 산업경쟁력 제고, 일자리 창출 등의 효과를 생산하게 된다. 이런 점을 감안할 때 이번에 개통되는 대구경북 철도망도 상당한 사회경제적 효과를 안겨줄 것으로 짐작이 된다. 이를 어떻게 효과적으로 수용하느냐 하는 것은 대구경북의 몫이다. 시도는 광역철도의 효율적 운영을 위한 정책개발에 나서야 한다. 철도망의 개통이 지역경제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노선별이나 차별화된 역세권 개발 계획도 미리 준비해야 한다. 대구시와 경북도의 행정통합 논의가 아직 진척을 보지못했으나 대구와 경북을 잇는 교통망이 지금보다 더 발전한다면 행정통합의 필요성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철도노선의 지각변동을 계기로 행정통합을 포함해 대구와 경북이 상생 발전하는 논의에 더 집중해야 한다.

2024-09-29

포퓰리즘에 갇힌 군수 선거

우정구 논설위원 정치가 경제를 망친 사례는 얼마든지 있다. 특히 선거를 통해 공약한 선심성 정책이 경제의 발목을 잡는 경우는 허다하다. 유권자의 선택에 국가의 흥망이 갈릴 수 있다는 말이 그냥 나온 게 아니다. 우리가 유능한 정치인을 뽑아야 할 이유도 이런 데 있다. “바보야 경제가 문제야”라고 말한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은 이 구호 덕분에 대통령에 당선됐다는 얘기가 있다. 공교롭게도 미국 현대사에 등장한 대통령 가운데 재선에 성공하지 못한 대통령의 공통점이 경제 침체기와 재임 기간이 일치한다는 사실이다. 세상은 경제를 중심으로 돌아가고 경제가 잘 돌아가면 정치도 문제가 될게 별로 없다. 대중영합주의로 통하는 포퓰리즘도 따져보면 유권자를 경제적으로 윤택하게 하겠다는 생각에서 출발한 정치다. 그것이 경제적 순리에 부응하지 않고 빚을 내거나 무리한 재정을 동원함으로써 경제를 파탄에 이르게 한 것이 문제다. 다음 달 실시될 전남 영광군과 곡성군의 기초단체장 재선거를 앞두고 민주당과 조국혁신당이 후보간 경쟁을 벌이면서 현금성 공약을 남발하고 있다. 두 당은 자당 후보가 군수로 당선되면 군민 모두에게 100만원이 넘는 기본소득 지급을 약속했다. 두 지역은 알다시피 전국 229개 기초자치단체 중 재정자립도가 하위권에 속하는 곳이다. 중앙정부의 지원 없이는 자체 공무원 월급도 제대로 못줄 형편이다. 19세기 초 태동한 포퓰리즘으로 남미와 남유럽 국가들이 경제적으로 몰락하는 과정을 역사가 입증한다. 포퓰리즘 경쟁의 끝은 국가경제 몰락으로 귀결된다는 것을 정치는 반면교사할 필요가 있다. /우정구(논설위원)

2024-09-29

노인과 인문학

김규종 경북대 명예교수 지난주 화요일 오전에 대구 수성구에 있는 ‘대한 노인회’에서 ‘노자의 도덕경에서 배우는 인생의 지혜’를 주제로 강연했다. 대략 70명 정도의 노인들이 강의실에 모여서 선행 프로그램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추석이 지났건만 아침 햇살은 매우 강렬하여 에어컨이 쌩쌩 돌아가고 있었고, 들고나는 노인들 때문에 분위기는 적잖게 산만했다. 강사 소개가 끝나고 그들과 정면으로 대면하면서 준비해간 강연 자료가 유용하지 않을 것이란 생각에 잠긴다. ‘가능하면 최대한 쉽고 재미있게’ 해달라는 요청을 받고 갔지만, 실제로 면대면을 해보니 훨씬 실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16년 이상의 대중강연 경력 덕분에 예정된 강연 자료를 즉각 폐기하고 현장 분위기에 적절한 강연을 하는 것은 내겐 문제가 아니다. 가능하면 그들 하나하나 들여다보면서 강연에 대한 교감을 확인하면서 천천히 열기를 끌어올리기로 한다. 그런데 어디서든 예기치 않은 사건은 일어나기 마련. 맨 뒷자리에 앉은 할머니 두 분이 끝없이 떠드는 바람에 집중력이 자꾸 떨어지고, 인내력은 바닥으로 내려간다. 청중 몇 분이 그들에게 대놓고 눈치를 해도 그들은 오불관언(吾不關焉)이다. 나는 최대한 참기로 하고 한 가지 질문을 한다. “여러분 가운데 나는 행복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분은 손을 드세요.” 강연 중간에 예닐곱 사람이 나갔기 때문에 60여 청중이 자리에 남아 있었다. 그런데 내 눈을 의심하게 만드는 일이 벌어진다. 딱 한 사람만 손을 들었기 때문이다. 아니, 이럴 수가 있단 말인가?! 잘산다는 사람들이 많이 산다는 대구의 강남(江南)인데?…. 그래서 행복하지 않은 까닭을 묻는다. 그랬더니 자신을 용서할 수 없다는 분도 있고, 산다는 것이 고통으로만 생각된다는 사람도 있다. 대한민국 노인들의 행복 지수가 세계 최저 수준이란 통계는 있지만, 이토록 처절할 줄은 정말 몰랐다. 더욱이 다른 지역에서 무척이나 부러워하는 동네에 사는 노인들의 분노와 슬픔과 절망이 이렇게 깊을 줄이야!…. 만족할 줄 알면 욕됨이 없고, 그칠 줄 알면 위태롭지 않아서 오래갈 수 있다고 노자는 갈파했다. 도덕경 44장에 나오는 “지족불욕(知足不辱) 지지불태(知止不殆) 가이장구(可以長久)”라는 구절이 위 문장의 출처(出處)다. 만족할 줄 안다는 것은 성숙한 인간의 기본적인 표지(標識)다. 적정 수준에서 자신의 욕망을 제어할 수 있다는 것은 어른의 징표이기 때문이다. 나이 오십이 넘어지면, 인간은 과거의 어두운 기억과 부모의 억압 기제에서 자신을 해방해야 할 의무가 있다. 부모가 강제하고 요구한 덕목과 인생 목표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얘기다. 하지만 상당수 중장년은 물론 노인들마저 여전히 그들 부모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게다. 그것이 그들 자신에 관한 부정적인 평가와 모멸감의 첫 번째 원인으로 작용한다. 나는 노인들을 위로하고, 가능성을 설명하고, 최대한의 긍정과 자기 확신을 설득한다. 하지만 두 노파는 여전히 웃고 떠들고 있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말은 명언이다. 나이만 많은 부끄러운 노인들이다. 하되 인문학과 담을 쌓고 살아가는 그들에게도 축복이 있기를!….

2024-09-29

정치인의 토론에서 무엇을 배울까

유영희 작가 지난 24일 1069회차 ‘100분 토론’ 주제는 “‘영부인 리스크’… 그 끝은?”이었다. 이번 방송에는 강승규, 홍석준 국민의힘 의원 두 명과 박균택 더불어민주당 의원, 신장식 조국혁신당 의원이 패널로 나왔다. 토론은 김건희 여사의 공천 개입의 진실, 명태균 수사 필요성, 김건희 여사 주가 조작 기소, 특검법 통과, 마지막이 영부인 리스크 대처 방안이다. 사실 토론 방송을 보려면 상당한 인내심이 필요하다. 패널들의 비신사적인 토론 태도를 보면 분노 게이지가 올라가기 때문이다. 이번 토론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처음에는 각자의 입장을 밝히는 시간이라 그런지 차분하게 발언하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난투 상황이 벌어졌다. 김건희 여사와 명태균 씨의 텔레그램 소통이 공천 개입의 증거냐 아니냐 하는 대목에서 갑론을박이라고 할 수 없는 어지러운 입씨름이 벌어진 것이다. 김건희 여사의 주가 조작 기소 문제에서는 토론의 질이 더욱 떨어졌다. 특히 강승규 의원은 사실관계 확인을 제대로 하지 않은 발언은 물론, 상식에 맞지 않는 논리도 폈다. 예를 들면, 김건희 여사의 주가 조작 사건 관련은 결혼 전이었다고 한다든지, 주가 조작 사건에서 이익을 보았다고 해서 주가 조작을 직접 했다는 증거는 안 된다고 하는 식이다. 게다가 지난 추석에 직무 관련이 없으면 김건희 여사에게 300만 원까지 선물해도 된다고 국민권익위원회가 답변한 것을 두고 신장식 의원이 비판할 때 강승규 의원이 갑자기 중간에 끼어들어 엉뚱하게 공작이라고 소리 지르며 흐름을 깬 것은 정말 큰 실수였다. 결국 사회자한테 발언권을 박탈하겠다는 경고를 받고서야 말을 줄였다. 이제 토론 막바지에 이르러 ‘영부인 리스크, 어떻게 대처할까?’에서 강승규, 홍석준 두 의원은 영부인 리스크 자체가 없다만 반복하고, 박태균 의원은 사죄하고 민생에 집중하라, 신장식 의원은 사람 가려서 등용하라고 한다. 국민의힘 두 의원의 불통도 답답하지만, 두 야당 의원은 왜 실현 가능성이 전혀 없는 대안을 제시하는지 당황스러웠다. 대학생 토론을 지도하기도 했고, 청소년부터 대학생까지 토론대회 심사도 여러 번 했기 때문에 토론의 룰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아는 편이다. 그런 경력이 없더라도 토론할 때는 상대방의 말을 잘 경청해야 하고, 중간에 말을 끊거나 개입하면 안 된다는 것은 보통의 상식을 가진 시민이라면 누구라도 아는 것이다. 이런 상황이 벌어진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토론 주제가 잘못 정해졌기 때문이다. 토론은 본래 찬반으로 나눠질 수 있는 형식으로 제시해야 한다. 그런데 ‘그 끝은?’이라는 말은 의미도 분명하지 않고 부정적 뉘앙스를 풍긴다. 무엇보다 찬반으로 나눌 수 없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이다. 처음부터 ‘영부인 리스크, 어떻게 대처할까?’로 했다면, 국민의힘 두 의원이 끝까지 리스크는 없다를 외치지 못했을 것이다. 더 근본적으로 ‘영부인의 행보는 리스크인가’로 하는 것도 좋다. 이렇게 해도 충분히 의미 있는 결과가 나올 수 있을 것이다. 성숙한 정치 토론을 보고 싶다.

2024-09-29

혁신 현장을 가다, 폴란드 PWPC

장광일 포스코 인재창조원 교수·컨설턴트 PWPC 법인은 고급 철강재 가공센터로 2007년에 동유럽 심장부인 폴란드 브로츠와프 인근에 준공해 LG전자, 삼성전자 등 한국 기업에 LCD 모듈을 핵심으로 공급하고 있다. 필자는 이 법인을 2010년에 매달 1주일씩 혁신 활동을 전파했다. 폴란드 수도 바르샤바에서 300Km 서쪽으로 떨어져 있는 폴란드 제4의 도시인 브로츠와프는 유럽 특유의 오래된 아름다운 건축물과 막달라마리아 대성당 등 역사와 전통이 있는 도시이다. 또한, 한국 가전 기업이 들어와 대규모 산업 클러스터(Cluster)를 만들어 가동하고 있다. 이 법인에 유럽의 혁신 벤치마킹 명소인 ‘혁신메카’를 만들고자 힘을 쏟았고, 우선 혁신을 이끌 개선리더를 선발하였다. 초기부터 입사해 경력을 쌓아온 베테랑 직원을 중심으로 8명의 1기 개선리더를 선발했고, 변화관리 교육부터 시작하였다. 그런데 처음부터 추진 발목이 잡히고 말았다. 낯선 혁신구호 연습을 시키자니 직원의 거부감이 대단했다. 일단 제스처가 우스꽝스러운 것도 부담스러운데 구호를 외칠 때 손을 들어 파이팅을 외치는 모습에서 히틀러 시절 전쟁의 아픔이 연상된다는 것이었다. 강의가 한참 무르익은 오후 4시에 모두 일어나 퇴근을 하는 것이 아닌가. 퇴근 시간이 4시인 걸 모른 것은 강사의 잘못이지만, 말도 없이 일어나 집으로 가는 광경에서 어안이 벙벙하였다. 또한, 다음 날 소통을 위해서 저녁 회식을 잡았는데 모두 가족에게 전화를 걸어 허락을 구했고, 그중 반은 허락이 안 되어 회식에 참여하지 못했다. 그 순간 “잘 안되면 어떻게 하지?”라는 불안함이 앞섰고, 이는 몇 달간 현실로 다가왔다. 결국에는 그곳에 직원들의 존경을 받는 송 공장장의 도움으로 명소 만들기에 성공할 수 있었다. 그곳 공장장에게는 가르치고, 지시하는 컨설턴트와는 다르게 직원 한 명을 케어하고, 소통하는 남다른 능력이 있었다. “혁신 컨설턴트 고생하는 거 안보입니까. 그까짓 거 한번 제대로 해 봅시다. 리더가 솔선수범하지 않는데 뭐가 되겠습니까. 나부터 할 테니 따라와 주세요”라고 열정적으로 말씀하시는 모습에서 필자는 느끼는 게 많았다. 한국인 공장장이 유럽 직원과 일과 혁신을 잘하는 것에 대해 정리해 본 바 첫째 그 역사와 문화를 존중해 주었다. 그 나라의 문화를 미리 학습하고 이해한 다음, 그들에게 자부심과 긍지를 심어주는 것이 남달랐다. 둘째 상호 협력하며 직원들과 신뢰가 두터웠다. “협력은 신뢰를 바탕으로 이루어지며, 신뢰는 시간과 일관된 행동을 통해서만 자라난다”라는스티븐 고비의 말처럼 신뢰를 쌓아온 시간이 길었고, 신뢰는 상호 협력의 바탕이 됐다는 걸 알았다. 셋째 시작과 끝을 명확히 하였다. 일을 시작할 때는 무엇을 해야 할지 목표가 선명했고, 완료 후에는 성과공유회를 통해 팀원 누구나 알 수 있도록 했다. 강압적인 지시보다는 그 문화를 존중하고 이해하며, 함께 협력하는 리더십으로 성공 모델을 만든 송 공장장과 같은 인재가 세계적으로 퍼져 나가길 기대해 본다.

2024-09-29

가을의 서가(書架)

김병래수필가·시조시인 늦도록 기승을 부리던 더위는 세찬 비바람에 쫓겨 가고 이제는 쾌청하고 삽상한 가을 날씨다. 창을 열고 멀리 내다보다가 문득 등화가친이란 말이 떠올라 서가에 꽂힌 책들을 훑어본다.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운 서가의 중앙 하단에는 동아출판사에서 발행한 세계대백과사전이 무게중심을 잡고 있다. 휴대전화기로 거의 모든 지식과 정보의 검색이 가능한 지금은 별로 쓸모가 없어졌지만, 당시에는 세상의 온갖 지식을 망라한 엄청난 보고(寶庫)였다. 그 밖에도 월부로 산 전집으로는 세계고전문학, 세계현대문학, 한국현대문학, 한국고전문학, 세계사상전집, 한국사상전집, 세계역사, 한국사대계 등이고 문학·종교·과학·예술 관련 단행본들은 수시로 서점에 가서 구입한 것들이다. 내가 산 책들은 버리지를 못한다. 쪼들리는 살림에 그야말로 안 먹고 안 입고 구입한 것들이라 살과 피를 나눈 분신과 같기 때문이다. 아파트로 이사를 할 때 책 짐이 너무 많아 큰 맘 먹고 몇 십 년 쌓인 문예지들은 버리기로 했다. 따로 내놓다가 무심코 그 중 한 권을 펼쳐보는데 울컥 뜨거운 것이 치밀었다. 오십 년도 넘은 세월에 누렇게 변색이 된 책장의 군데군데 그어진 밑줄을 보노라니 마치 내가 걸어온 발자취를 보는 것 같은 감회가 밀려온 것이다. 한 달에 한 번은 문예지를 사러 버스를 타고 시내 서점으로 가곤 했다. 물론 간 김에 두어 시간 서점 곳곳을 둘러보는 것도 빼놓지 않았다.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아 사고 싶어도 살 수 없는 책은 선 채로 대충이라도 훑어보았다. ‘현대문학’과 ‘문학사상’ 같은 문예지는 거르지 않고 구입을 했지만, 시전문지와 계간지들은 내용과 형편에 따라 선택을 했다. 결국 나는 그 문예지들을 차마 버리지 못하고 아파트로 가져와서 베란다에 쌓아 두었다. 먼지를 뒤집어쓰고 서가에 꽂혀 있는 책들은 내 인생 여정의 길라잡이였다. 몸은 비록 고향을 떠나지 못한 붙박이지만, 동서고금을 두루 누비고 다닐 수 있었던 마음의 행로는 그 책들을 통해서였다. 하지만 그래서 내가 얻은 것이 무엇이고 도달한 곳이 어디냐고 묻는다면 나는 그저 빈손을 내 보일 수밖에 없다. 흔히들 책을 많이 읽으면 지식으로 가득 채워져서 모르는 것이 없을 거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은 그 반대다. 공자도 소크라테스도 자신이 무얼 모르는지를 아는 것이 참으로 아는 것이라고 했듯이 독서는 할수록 자신이 모르는 게 너무 많다는 걸 깨닫게 될 뿐이다. 동서고금의 모든 지식과 사상의 체계를 한 번 섭렵해보자는 것이 독서의 목표였지만, 그것이 얼마나 무모한 생각이었는지를 깨닫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 무수한 문호·철학자·예술인 중 단 한사람의 연구에 평생을 보내는 학자들도 허다한데 내가 무슨 재주로 그 모두를 섭렵한단 말인가. 주마간산으로 일별하는 것만도 사뭇 벅찬 일이었다. 그나마 독서로 얻은 것이 있다면 섣불리 편견이나 독단에 치우치지 않고, 세상이 기울어졌을 때 그것을 알아차리는 균형감각을 갖게 된 것이랄까. 남은 여정도 이 서가의 책들이 길동무가 되어 줄 것이다.

2024-09-26

바다환경 지킴이가 되자

윤영대 전 포항대 교수 태풍이 열대성 저기압으로 되어 우리나라 남부를 휩쓸고 지나간 후, 바닷가를 걷다 보면 많은 해양 쓰레기들이 쌓여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어저께 밤에도 선선해진 바람을 맞으며 영일대 해수욕장을 걸었는데, 파도가 모래밭 끝까지 갈 듯이 밀려오면서 까만 해조류 뭉치들을 흩어놓고 있었다. 그것들을 피하고 걸으면서 ‘저걸 누가 어떻게 치우지?’하고 걱정했는데 다음 날 보면 해변은 말끔히 치워져 깨끗했다. 밤에는 해양쓰레기를 일일이 살펴볼 수 없지만 주로 해조류(海藻類) 무더기이고, 다음 날은 또 색깔이 다르다. 플라스틱 병과 어구 그물도 섞여 있고 나무토막도 보인다. 해조류들을 뒤적이며 줍고 있는 아주머니에게 물어보니 초록색은 파래이고 까만 것은 미역이나 모자반이며 누른 것은 꼬시래기라고 하며, 자기는 주로 청각을 고르고 있는데 살짝 데쳐서 초고추장에 찍어먹으면 맛있다고 일러주기도 한다. 다음 날 아침 일찍 걷기운동 준비를 하여 바닷가로 나갔다. 얕게 깔린 구름 사이로 9월의 맑은 햇살이 뚫고 나오는데 예상외로 많은 사람들이 모래밭을 걷고 있었고, 하얀 모래밭에는 검은 무더기들이 길게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먼저 눈에 띄는 곳으로 갔더니 고둥과 조개 껍질이 무더기로 깔려있어 쓰레기라기보다는 예쁜 장난감처럼 보여서 몇 개 주웠다. 굴 껍데기가 몇 개씩 붙어있어 인공 작품 같은 것도 보이고 동글동글한 연한 갈색 고둥도 예쁘고 까만 키조개는 내 손바닥보다 크다. 죽어서 바다 밑에 있다가 조류에 쓸려온 것이다. 지나가며 ‘살아있습니까’라고 묻는 사람도 있다. 무더기가 큰 곳에는 수십 명의 사람들이 단복을 입고 쇠스랑 갈퀴 등을 가지고 쌓여있는 쓰레기들을 긁어모으고 있었고 트랙터가 다시 그것들을 한곳으로 옮기고 있었다. 참 고마운 분들이 봉사활동 하시는구나 하고 물어보니 두호동과 중앙동에서 일하러 나왔다고 한다. 아마 해양 환경미화원인 ‘바다 환경 지킴이’인 것 같다. 2팀 20여 명이 열심히 모래밭을 청소하고 있었다. 30여 년 전 대학에 있을 때, 당시 북부 해수욕장을 자주 지나면서 보니 쓰레기가 많이 보였던 터라 매주 한 번 정도 학생들을 동원해서 쓰레기를 줍게 했던 기억이 난다. 요즈음은 플러깅(plugging)이라 해서 운동 삼아 쓰레기를 줍는 활동을 하곤 하는데, 몸을 구부렸다 펴거나 쪼그리고 앉았다 일어나는 작업이라 일석이조의 효과이니 홍보가 많이 되었으면 한다. ‘반려해변’ 활동도 점차 늘어나고 있다는데 기업, 단체, 학교 등이 특정 해변을 맡아서 반려동물처럼 키우고 돌보는 ‘해양 입양’ 프로그램으로 1986년 미국 텍사스주에서 처음 시행하여 세계적으로 번지고 있다.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약 1만5000km 해변을 가진 우리나라에는 꼭 필요한 일일 것 같고 2년 전부터 80여 개 기관이 60여 개 해변을 맡아 자연보호운동을 하고 있다고 한다. 해양 쓰레기도 연간 14.5만 톤 이상이고 83%가 플라스틱이며 이로 인한 해양 사고도 매년 5백 건 이상이라 하니 각 지자체에서도 적극 추진해야 일이지만 민간 활동으로 해안을 지키자는 바다 환경 지킴이의 의식도 확대되었으면 한다.

2024-09-26

청소년에게 핫한 전자담배, 강력한 규제 필요

포항시내 한 슈퍼마켓에서 본지 기자가 고등학교 교복을 입고 전자담배를 샀더니 가게주인이 신분증 요구없이 담배를 건넸다는 기사를 보면서 충격을 받았다. 우리사회가 10대 청소년이 거리낌없이 담배를 살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 것이다. 기자가 24시 무인매장에도 들러 자판기에서 전자담배를 구매했더니, 본인 대조 절차 없이 타인 신분증으로도 충분히 살 수 있었다고 한다. 전자담배 구입이 이처럼 쉬워지니 청소년 흡연인구가 늘 수밖에 없다. 질병관리청 자료를 보면, 청소년(중1∼고3)들의 액상형 전자담배 흡연율이 2020년 1.9%에서 지난해 3.1%로 증가했다. 액상형 전자담배로 흡연을 시작한 청소년의 60%정도는 현재 궐련담배(일반담배)를 피운다는 통계가 있다. 액상형 전자담배는 과일 향을 첨가해 담배 특유의 냄새가 나지 않고, 다양한 디자인으로 만들어지기 때문에 부모들도 적발하기가 쉽지 않다. 담배사업법상 연초 잎이 들어간 담배는 온·오프라인 판매가 금지되지만, 액상형 전자담배는 ‘공산품’으로 분류돼 어디서든 판매할 수 있다. 해외에서는 최근 청소년에게 액상형 전자담배를 판매하는 것을 강력하게 단속하는 추세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온·오프라인에서 광고판촉을 해도 아무 제약을 받지 않기 때문에 청소년에게 무방비로 노출되고 있다. 이성규 한국담배규제연구교육센터장이 최근 조선일보 금연정책 콘퍼런스에서 “담배사업법상 담배정의를 모든 종류의 니코틴 포함 제품으로 개정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한 말에 공감이 간다. 액상형 전자담배 판매를 법적으로 규제하지 않고 현 상태로 두면 청소년 흡연인구는 급증할 수밖에 없다. 일반 담배처럼 액상형 전자담배도 상습 흡연하면 중독위험이 크고, 폐암을 비롯한 다양한 암의 발병 원인이 된다. 지난 6월에는 일주일에 액상 전자담배 4000개를 피워 폐절제술을 받은 영국 10대 소녀가 얼굴이 파랗게 변하고 심장마비 직전까지 갔다는 사연이 보도된 적도 있었다. 액상형 전자담배에 대한 사회적 경계심이 필요한 때다.

2024-09-26

저출산 문제 해결 앞장서는 기업문화 조성을

윤석열 대통령은 제4차 인구비상대책회의에 참석해 “일·가정 양립에 앞장서는 우수 중소기업에 대해 세제 혜택을 검토하고 국세 세무조사 유예와 같은 방안도 강구하겠다”고 밝혔다. “정책자금과 입찰사업 우대 등 기업이 체감할 수 있는 인센티브를 마련하겠다”고도 했다. 국가적 과제가 된 저출산 문제 해결에는 기업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그동안 정부가 엄청난 예산을 들여 저출산 대책을 펼쳤으나 실효적 성과를 못낸 이유 중 하나는 기업의 동참이 부족한 탓도 있다. 맞벌이 부부가 대세인 시대에 가임부부 대부분이 직장에서 일하고 있어 그들에 맞는 정책개발은 필수다. 물론 출산휴가나 남편이 아내의 출산과 육아를 돕는 배우자 출산휴가 등이 실시되나 기업이 앞장서는 출산문화 조성은 아직 미흡한 데가 많다. 특히 인력이 부족한 중소기업에서는 출산에 따른 휴가조차도 직장의 눈치를 보는 경우가 허다하다. 대기업과는 분위기가 다르다. 대통령이 밝힌 세제지원 대책이 기업에게 얼마나 먹혀들지 알 수 없으나 출산기피 현상에 대한 원인을 제대로 파악해 처방하는 노력은 지속돼야 한다. 출산의 문제는 경제, 사회, 복지 등 국가 모든 정책의 중심에서 출발해 사회 전체를 가족친화적 문화로 승화 발전시켜야 한다. 윤 대통령의 말대로 출산과 육아가 행복한 경험이 되도록 사회 분위기를 조성해 나가야 하는 것이다. 지난 7월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우리나라 혼인과 출생아 수가 깜짝 증가했다. 저출산 고민에 빠져있던 우리에게 매우 고무적 변화란 점에서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코로나19 이후 미뤄졌던 결혼이 증가한 것 등이 반영된 결과여서 섣불리 판단할 일은 아니다. 통계청 장래인구 추계에 의하면 2072년에는 국내 인구의 47.7%가 65세 이상 고령인구로 추정된다고 한다. 암울한 예측이지만 지금부터라도 적극적으로 대응해 나가야 한다. 기업이 저출산 문제 해결에 앞장서는 문화 조성은 효과 측면에서 기대해 볼만하다. 중소기업에 근무하는 직장인이 일과 가정이 양립하는 워라밸 문화에 만족할 수 있도록 정부의 정책 개발 노력이 지속돼야 한다.

2024-09-26

기후 위기와 지각 단풍

우정구 논설위원 가을에 접어들어 기온이 낮아지면 나무는 녹색 색소인 엽록소를 분해해 체내에 보관한다. 물과 영양소를 체내로 흡수하면서 다가올 월동준비를 하는 과정이다. 대신에 물이 공급되지 않는 잎에는 남아 있던 안토시아닌과 같은 색소가 바깥으로 모습을 드러내게 되는데, 이때 붉게 혹은 노란색으로 보이는 것이 단풍이다. 추석 연휴까지 이어지던 무더위로 올해는 단풍이 물드는 시기도 작년보다 조금 더 늦어질 것 같다는 소식이다. 산림청은 올가을 단풍은 10월 말이 절정기가 될 것으로 내다봤다. 지역별로 차이는 있으나 설악산 10월 22일, 지리산과 팔공산 10월 25일, 내장산 10월 27일, 한라산 11월 6일 등이 절정기다. 산 전체를 기준으로 나뭇잎의 20% 가량이 단풍으로 물들면 단풍의 시작 시기로 본다. 80% 이상이 물들면 절정기라 부른다. 단풍은 기온변화에 민감해 통상 기온이 1도 오르면 단풍나무는 4일, 은행나무는 5.7일씩 물드는 속도가 늦어진다고 한다. 지구 온난화로 지구의 평균 기온이 올라가면서 우리나라도 단풍이 물드는 시기가 조금씩 늦어지고 있다. 1990년대와 비교하면 지리산은 5일, 월악산은 2일 정도가 늦어졌다고 한다. 특히 폭우와 같은 극한기후 변화가 잦으면 단풍은 제 색깔을 가지기 힘들어진다. 급변하는 날씨로 단풍이 곱게 물들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기후변화에 영향을 받은 일종의 생태계 파괴 현상이다. 가을철 불타는 산을 만산홍엽(滿山紅葉)이라 부른다. 지구촌의 기후변화가 시시각각 인류를 위협하는 속에서 지각 단풍에서도 기후 위기를 새삼 느끼게 된다. /우정구(논설위원)

2024-09-26

기후 위기 대응이 곧 민생이다

조지연 국회의원(국민의힘·경산시)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기후 위기는 당장 체감하기 어려운 인류의 거시적인 과제나 담론처럼 여겨졌다. 지금은 농가에도, 시장 상인들에게도, 궁극적으로 민생 물가에도 큰 영향을 미치는 현안이 되었다. 필자는 이번 추석 명절에 이를 확연히 체감했다. 장을 보기 위해 지역 전통시장을 찾았더니 평소와 달리 이번엔 예상보다 지갑이 빨리 가벼워졌다. 시금치 등 각종 채소 가격이 오른 것은 여러 요인들이 작용했겠지만, 기후 위기를 빼놓을 수 없다. 시장에서 만난 상인과 농민들은 이구동성으로 폭염으로 인한 농산물 생산 차질에 우려를 표했다. 지역구인 경산시는 복숭아, 자두, 포도, 대추 등으로 유명하다. 그런데 몇 년 전부터 작황을 우려하는 농민들의 시름이 깊어졌다. 유난히 덥고 습했던 날씨 탓에 과일의 당도를 걱정하거나 심지어 겉은 멀쩡한데 열어보면 속이 덜 익었다고 했다. 더운 날씨에 과일의 겉만 익어버린 것이다. 이는 고스란히 서민의 생활 물가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세계 유수 연구기관들이 기후변화가 물가 안정을 위협하는 핵심 요인이 될 수 있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 한국은행도 최근 월평균 기온이 1℃ 오르면 농산물가격과 전체 소비자물가지수 상승률이 각각 최대 0.44%P와 0.07%P에 이른다고 밝혔다. 이미 ‘기후플레이션’이라는 신조어도 생겼다. 기후 위기는 우리나라와 같이 곡물자급률이 낮고 무역의존도가 높은 국가에는 식량안보에 심각한 위협을 줄 수 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최근 3개년(2021~ 2023) 평균 곡물자급률은 19.5%로 나타났다. 모자라는 곡물은 수입할 수밖에 없다. 그 결과, 농축산물 무역수지 적자는 눈덩이처럼 커져 5년 전인 2017년에는 181억300만 달러 규모였으나 2022년에는 311억7800만 달러로 치솟았다. 현재 흐름이라면 농축산물로 인한 무역수지 적자는 향후 훨씬 더 커질 것이다. 세계 주요국들은 기후 위기에 따른 식량안보 대비책을 앞다투어 마련하고 있다. 중국은 지난 6월부터 ‘식량안보보장법’ 시행에 들어갔다. 일본은 지난 5월 ‘식료·농업·농촌 기본법’을 개정해 ‘식량안보 확보’를 추가했고, 관련 평가지표도 새로 도입할 예정이다. 인도는 기후 영향으로 자국 곡물 생산의 어려움을 겪은 뒤 옥수수와 쌀, 밀 등 곡물 수출량을 대폭 줄였다. 이제 국회가 나서야 할 때다. 기후 위기가 민생과 직결된다는 것을 직시하고, 제도적 대책 마련에 앞장서야 한다. 정부도 기후 위기 문제에 대해 다각도로 접근하고 보다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할 것이다. 특히 정부가 발간하는 환경백서에 기후 위기와 물가, 그리고 식량 안보 문제를 면밀히 다루어야 하며 ‘기후변화 상황지도’에도 기후 위기에 농수산업을 비롯한 산업계가 구체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실효성 있는 ‘맞춤형 기후지도 체계’를 마련하는 것도 논의해 볼 만하다. 추석 민심이 안겨준 과제가 한아름인데 국회는 계속해서 정쟁에 발목 잡혀 있다. 이래서는 안 된다. 농민들과 상인들의 한숨에 담긴 기후 위기 문제를 제대로 인식하고 실질적인 민생 대책 마련에 머리를 맞대야 한다. 첫 정기국회에 임하는 국회 환경노동위원으로서 필자에게 주어진 책무가 묵직하게 다가온다.

2024-09-26

밥 딜런을 떠올리는 가을

홍성식 (기획특집부장) 끝이 보이지 않던 지긋지긋한 폭염이 마침내 꼬리를 감추며 사라졌다. 아침저녁으론 서늘한 공기가 창밖을 서성인다. 이불을 끌어당겨 덮게 되는 새벽이 오고 있다. 누구도 시간의 흐름을 막을 수 없다는 명명백백한 사실이 새삼스럽다. 여름은 가고, 가을이 목전에서 서성인다. 등화가친(燈火可親)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책 읽기 좋은 계절이다. 지난 2016년. 미국의 포크송 가수 밥 딜런이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결정됐다. 스웨덴학술원이 “밥 딜런은 밀턴과 블레이크로 이어지는 영어권 문학 전통 속에 우뚝 자리한 위대한 시인”이라고 상찬하자 당장 반발이 일었다. “인류 보편이 인정할 수 있는 미학적 성취를 이룬 시인과 소설가가 적지 않은데, 무슨 딴따라 가수에게 노벨문학상을 준단 말이냐”가 반발하고 비난하는 이들의 주장이었다. 그러나, 천만에. 밥 딜런의 노래 ‘블로잉 인 더 윈드’(Blowin’ in the Wind)의 가사를 음미해보자. ‘얼마나 자주 올려다봐야/진정한 하늘을 볼 수 있을까/얼마나 많은 귀를 가져야/이웃의 울음을 제대로 들을 수 있을까/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어야/비극의 끝이 모습을 드러낼까…’ 선명한 메시지와 명쾌한 은유를 보자면 밥 딜런이 만든 노랫말은 이미 시원찮은 시(詩)를 훌쩍 뛰어넘고 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시는 시인들만의 독점물이 아니다. 그렇다면 밥 딜런은 어떻게 ‘시인의 마음’과 ‘시인의 태도’로 살아갈 수 있었을까? 직접 묻지 않아도 돌아올 답변은 불을 보듯 뻔하다. 많은 책을 읽었다는 것. 다독(多讀)은 그게 시건 가사건 좋은 글을 쓰는 유일한 방법이다. 우리도 밥 딜런처럼 독서하는 가을을 살아보자. /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4-09-25

관광과 평화

장규열 고문 세상은 넓다. 나라마다 독특한 분위기와 느낌이 있고, 민족마다 고유한 품성과 자태가 있다. 먹거리와 볼거리로 채워진 세상을 낱낱이 가 살필 수 있을까. 문명이 만들어낸 산업들 가운데 관광만큼 이곳저곳을 다차원적으로 넘나드는 가닥도 흔하지 않다. 경제와 사회, 문화와 산업을 가로지르며 관광이 만들어내는 유익이 상상을 넘는다. 매년 9월 27일은 유엔세계관광기구(UNWTO)가 지정한 ‘세계 관광의 날(World Tourism Day)’이다. 관광은 우선 도시 및 국가의 경제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산업이다. 전 세계적으로 관광은 모든 일자리의 약 10퍼센트를 만들면서 각국 총생산량(GDP)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특정 도시와 국가의 경제성장에 지대한 역할을 하며, 관광지로 유명한 지역은 관광 자체가 브랜드가 되어 관광객을 유치한다. 관광은 숙박과 유흥, 음식점, 가이드, 교통, 기념품 판매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일자리를 제공한다. 다른 산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숙련되지 않은 노동력도 쉽게 고용할 수 있어 사회 전반의 일반 고용률을 높이는 데에도 크게 기여한다. 관광산업은 지역경제를 활성화하는데 필수적인 역할을 한다. 관광은 경제적 수익뿐 아니라, 사회문화적 교류를 통해 사회 전반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다양한 국적, 인종, 문화의 관광객들이 특정 도시나 국가를 방문하면서, 자연스럽게 그 지역의 문화와 전통을 배우고, 또 그들 자신만의 문화를 전파하게 한다. 관광이 빚어내는 문화적 교류는 지역 주민과 관광객 간의 상호 이해를 증진시키고, 글로벌 공동체 의식을 함양하는 데 한 몫을 한다. 관광으로 지역의 전통문화가 활성화된다. 전통 공예품이나 지역축제, 문화유산 등은 관광객의 관심을 받으면서 더욱 자라나고 발전한다. 문화적 자산이 보존되는 동시에 새로운 경제적 기회를 만들어낸다.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해 예술, 공연, 음식 등 문화개발 프로그램을 육성한다. 관광이 장기적으로 지속가능하려면 경제성장과 더불어 환경보호를 동시에 달성해야 한다. 에코투어리즘을 통해 자연을 보존하면서 수익을 일으키거나 저탄소 교통수단을 장려하는 등의 방법으로 환경보호에 기여할 수 있다. 지속가능한 관광이 주민들의 삶의 질을 보호하고 관광객이 환경을 존중하며 여행할 수 있도록 하는 다양한 정책을 도입한다. 관광이 환경적 지속가능성을 고려할 때, 도시와 국가 경제는 장기적으로 더욱 견고해질 수 있다. 관광은 글로벌 경제 협력을 촉진하는 중요한 역할도 한다. 여러 나라와 도시들이 관광을 통해 서로 연결되고, 경제적, 문화적 교류가 이루어진다. 유럽의 국가들은 관광으로 협력하며, 상호 간의 교류와 협업을 통해 지역경제를 활성화한다. 국가나 지역의 성장 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경제적인 상생과 외교적 협력을 도모하게 할 터이다. 관광은 나라들 사이의 갈등과 불화를 치유하고 상생과 협력을 가져오기도 한다. 2024년 ‘세계 관광의 날’ 테마는 ‘관광과 평화’라고 한다. 긴장을 넘어 평화에 이르는 길을 관광으로 열어 가자는 다짐이자 권고가 아닐까. 관광은 세상을 향해 우리가 만드는 창틀이 아닌가.

2024-09-25

대구시내버스 노선 개편, 시민의견 경청하길

대구시가 10년 만에 시내버스 노선을 대대적으로 개편한다. 연말 대구권 광역철도와 도시철도 1호선 하양구간 개통, 그리고 군위군 대구편입, 서대구역 개통으로 시내버스 노선을 손봐야 할 필요성이 생긴 것이다. 노선 개편은 주민설명회를 거친 후 내년 2월 말부터 시행된다. 대구시가 어제(25일) 발표한 시내버스 노선체계 개편안에 의하면, 전체 노선 중 절반이 넘는 58.2%가 폐지되거나 대폭조정, 또는 일부조정된다. 개편되면 급행 11개, 간선 61개, 지선 50개 등 122개 노선에서 직행 2개, 급행 11개, 간선 59개, 지선 51개, 총 123개 노선으로 바뀐다. 운행 버스 대수는 1566대 그대로다. 직행 및 장거리 급행노선 신설, 중복노선 통폐합, 경산·하양방면 노선 조정, 서대구역·도심 재개발 지역 접근성 강화 등이 이번 노선조정의 특징이다. 대구에서 첫선을 보이게 될 직행노선은 칠곡~영남대, 동대구역~테크노폴리스 국가산단 구간에 운행된다. 직행노선은 급행노선보다 경유지가 적다. 대곡∼가창∼범물∼반야월, 군위∼칠곡간 2개 급행 노선도 새로 만들어진다. 대신 도시철도 1·2호선과 중복되는 5개 노선은 폐지된다. 도시철도 노선과 겹치는 경산·하양간 노선도 대폭 조정된다. 도시철도 2호선(문양역~영남대역)의 경우, 많은 시내버스 노선과 중첩됨에 따라 대구시는 최근 경산시에 경산까지 운행되는 시내버스 대수를 줄이겠다는 뜻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시내버스 승객들이 갈수록 줄고 있음에도, 대구시가 시내버스 회사에 지급하는 재정지원금은 한 해 2000억원에 육박한다. 재정적으로나 효율성 측면에서 시내버스 노선개편은 불가피한 것으로 판단된다. 그러나 노선 조정은 시민들의 이해관계가 얽혀 있기 때문에 많은 민원을 야기하게 돼 있다. 지난 2015년 대구시가 80개 노선을 개편할 때도 대구와 인접 시·군 주민들의 민원이 쇄도했었다. 앞으로 주민설명회 절차 등이 남아있는 만큼 주민들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해서 노선개편을 확정하길 바란다.

2024-09-25

이번엔 금배추, 농산물 기후위기 대책 급하다

배추값이 금값이다. 추석까지 이어진 늦더위와 가뭄 등의 영향으로 공급량이 줄면서 재래시장 등 일부 소매점에선 최근 포기당 2만2000원짜리 배추가 등장했다고 한다. 한우 1등급 200g 시세 1만7000원과 비교하면 배추값이 더 비싼 기현상이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배추값이 미쳤다”며 “올 김장은 포기해야겠다”는 글들이 줄줄이 올라왔다. 배추값이 폭등하자 일부 식당에서는 김치 대신 오이김치로 대체하거나 셀프코너에 김치를 아예 빼버리는 일도 벌어진다고 한다. 배추값이 폭등한 것은 폭염과 가뭄에 따른 생육 부진과 재배면적이 줄어든 탓이다. 추석까지 이어진 늦더위로 강원도지역의 고냉지 배추의 작황이 타격을 입었고, 지난주 폭우로 전국 배추 재배지가 침수 피해를 입었던 것이 원인이다. 이번주 들어 기온이 떨어져 배추의 생육이 회복돼 수급 상황이 개선되면 가격도 하락할 것으로 보이나 10월 중순까지는 높은 가격대를 유지할 것이란 전망이다. 정부가 중국산 배추 수입에 나섰으나 배추값이 진정될지는 두고 볼 일이다. 최근 로이터 통신은 “한국의 기후 변화로 배추의 품질과 생산량이 타격을 받고 있다”는 보도를 했다. 통신은 “고온현상이 이대로 지속되면 서늘한 기후에 자라는 배추는 한국에서 더이상 생산할 수 없을 것”이라는 경고도 했다. 기후 변화가 우리의 일상에 미치는 일들이 잦아지고 있다. 역대급 폭염이나 가뭄 등이 새로운 질병의 원인으로 등장하는가 하면 농산물 생산에도 심각한 타격을 준다. 지난해 사과값이 폭등한 것도 이상기후 탓이다. 사과값이 금값이 되면서 소비자 물가를 불안하게 흔든 것처럼 배추값 또한 소비자 물가에 나쁜 영향을 미칠 게 뻔하다. 특히 11월 김장철을 앞두고 있어 배추값 폭등을 걱정하는 주부들이 많다. 배추값 안정을 위해 정부가 수입물량 확보에 나서고 있지만 그것은 단기 처방에 불과하다. 사과와 달리 배추는 마침 중국산 수입으로 대체할 수는 있으나 근본적 해결책은 아니다. 임기응변식 방법보다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농업기술의 개발에 속도를 내야 한다.

2024-09-25

무릎을 꿇다

피귀자 수필가 우윳빛 융단 위의 솜이불처럼 포근하고, 금방 낳은 달걀처럼 따스하다. 한 쪽 무릎을 꿇고 앉아 사랑하는 이의 신발 끈을 묶어주는 모습은. 빛을 향해 뻗어가는 새순처럼 풋풋한 두 사람 사이는 종달새의 밀어로 흐르는 시냇물 같다. 타닥! 순간, 눈앞에서 불꽃이 일었고 사정없이 패대기쳐지는 사지를 수습할 여가가 없었다. 쫙 미끄러지면서 얼굴이라도 들어 올려야겠다는 생각을 한 것이 고작이었다. 운동화 끈이 풀어진 줄 모르고, 앞서 가던 친구들을 급히 뒤따르다가 반대쪽 발이 늘어진 다른 쪽 끈을 밟고 말았던 것이다. 스텝이 꼬인 발의 순간적인 위력은 엄청났다. 고속도로 휴게소 아스팔트를 찧은 턱의 쓰라림과 놀람에 일어설 수가 없었다. 피가 나는 턱 주변과 터진 입술이 금방 부풀어 엉망이 된 모습을 본 친구들의 걱정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두 팔을 뻗으며 엎어지는 순간을 본 친구의 이야기로는 사람이 그렇게 순간적으로, 그렇게 위력적으로 엎어질 수가 있는지, 마치 땅바닥이 끌어 당기기라도한 듯, 처음 본 모습이라고 했다. 흉해진 얼굴과 무릎이 까진 아픔에 이은 창피함과 자괴감에, 마른 나뭇잎 버석거리는 소리가 가슴을 훑고 지나갔다. 다행히 뼈는 다치지 않았지만 잠에서 깨어난 아침은 부스스했다. 집안에 갇혀 일상은 물기를 잃어갔고 안착한 것 같으면서 겉돌기 일쑤였다. 한자리에 눌러앉은 마음을 달래려 애썼지만 자꾸 발을 거는 머릿속도 쉼표가 필요했다. 잠시 나를 내려놓으면 여유가 생길 텐데. 별은 이미 늘 그 자리에 떠 있고 내 몸의 움직임과 환경, 내 시선에 따라 보였다 말았다 하는 것임에도 조급증이 마음 안에 바람을 부추겼다. 하루에도 수차례 수선한 마음이 구름처럼 모였다 흩어지기를 반복했다. 그 후 속으로 핀 꽃이 켜가 되어 신발 끈이 풀린 사람을 보면 그냥 지나칠 수가 없어 알려주게 된다. 반응은 천차만별이다. 웬 오지랖이냐는 듯 시큰둥해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감사인사를 하는 경우도 많다. 그 중 기억에 남는 일은, 알려주는 말을 들은 옆에 있던 앳된 소녀가 친구 앞에 말없이 살폿 앉으며 운동화 끈을 얌전히 묶어주던 모습이다. 말간 모습처럼 다소곳하게 앉던 소녀는 한쪽 무릎을 꿇었다. 그 동작은 누가 해도 하나 같이 해맑고 순한 모습일 것이다. 두 친구의 마음도 꼬투리 속의 콩알처럼 탱탱하게 익고 있었으리라. 지인의 아들은 남미의 여행지 순례 길에서 평생의 동반자를 얻었다. 아가씨의 풀린 운동화 끈을 묶어준 것이 계기가 되어서. 남들이 부러워하는 직업을 가진 건실한 청년이 결혼을 하지 않아 부모 속을 무던히 끓이게 하던 중의 일이었다. 무릎을 꿇고 앉아 풀어진 운동화 끈을 묶어주는 남자에게 마음이 움직이지 않을 아가씨가 있으랴. 퍼져나가는 순금 햇살 같은 마법의 시간 속, 한국 사람이라곤 단 둘 밖에 없었던 머나먼 남미의 여행지에서 그렇게 아름다운 마음이 싹텄던 것이다. 아름다운 풍경은 여행자의 가슴에 쉼표 하나 던져주어 너그럽고 빛나는 봄의 눈짓, 봄이 눈처럼 하얗게 내렸던 것이다. 신발 끈을 조이듯 나이 따라 느슨해진 순발력과 이해력, 해이해진 마음을 조일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심리학에는 ‘15’초의 법칙‘이 있다고 한다. 하나의 감정이 치솟아 정점을 찍는 데 15초가 걸린다는 것이다. 화가 나면 화의 갈래로, 기쁨이 일면 기쁨의 갈래로 접어드는 데 3초가 걸리고, 그 감정의 정점은 15초면 도달한다나. 그러고 나면 이내 다른 감정으로 변한다고 한다. 고작해야 15초에 감정을 다스릴 수 있다고 하지만, 그것이 쉽지 않음에랴. 오늘도 반성문 한 장 쓴다. 문제를 해학적으로 바라볼 수 없을 때, 어쩔 수 없이 매너리즘에 빠졌을 땐, 해이해진 감정의 끈을 다시 조이기 위하여, 토라진 감정에게 신발 끈을 묶어주듯 그때마다 순하게 무릎을 꿇어야 하리.

2024-09-25

AI로 여는 미래 혁신

정상철 미래혁신경영연구소 대표·경영학 박사 인류사회는 역사적으로 끊임없이 변화 발전해 왔다. 현대 문명은 4차 산업혁명을 통해 급속히 발전해 왔고, 다가올 미래 AI시대 세상은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예측하기 어렵다. 챗 GPT는 시작에 불과하다. 정치, 사회, 환경, 기업, 생활 문화 등 AI가 가져올 사회적 변화가 사뭇 기대가 된다. AI (Artificial intelligence·인공지능)는 컴퓨터가 인간의 지능을 모방하거나 이를 뛰어넘어 다양한 작업을 수행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의미한다. AI 혁신 기술은 인공지능을 발전시키고 다양한 산업과 생활에 변화를 가져오는 핵심 기술을 의미한다. 이러한 기술들은 AI가 더욱 정교하게 학습하고 인간과 상호작용하며,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 만드는 기반을 제공한다. 대표적인 AI 혁신 기술은 첫째, 머신 러닝(Machine Learning)이다. 머신 러닝은 컴퓨터가 명시적인 프로그래밍 없이 데이터를 분석해 학습하는 기술이다. 특히, 딥 러닝(Deep Learning)은 여러 층의 인공 신경망을 통해 대량의 데이터를 처리하고 복잡한 패턴을 인식하는 고급 형태의 머신 러닝이다. 둘째, 자연어 처리(Natural Language Processing)는 컴퓨터가 인간의 언어를 이해하고 생성하는 기술이다. 이를 통해 기계는 텍스트와 음성을 분석하고, 번역, 요약, 질의응답 등의 작업을 수행할 수 있다. 셋째, 컴퓨터 비전(Computer Vision)이다. 컴퓨터 비전은 AI가 이미지나 비디오를 분석하여 객체를 인식하고 상황을 이해하는 기술이다. 자율주행자동차, 의료 영상 분석 등 다양한 분야에서 핵심 역할을 한다. AI가 여는 미래 세상은 자동화 되고 효율적이며 개인화된 세상이 될 것이다. 주요 변화되는 세상은 제조업, 물류, 서비스 산업 등에서 단순 반복적인 작업을 자동화하고 인간은 창의적이거나 복잡한 문제 해결에 집중할 수 있게 한다. AI는 소비자의 행동 패턴을 분석해 개별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추천 알고리즘을 통해 개인 취향에 맞춘 콘텐츠나 상품을 추천하거나 맞춤형 의료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교통, 에너지, 환경관리를 더욱 효율적으로 만들고 자율주행자동차는 교통 사고를 줄이고 스마트 시티는 자원 관리와 공정 안전을 향상시킬 수 있다. 또한 질병 예측, 진단, 치료에 활용되어 의료의 정확성, 맞춤형 치료를 가능하게 한다. 이러한 AI 혁신 기술은 다양한 산업에서 적용되고 있으며, 향후 더 많은 분야에서 혁신을 이끌어 낼 것이다. 지금 일어나는 혁신은 인공지능이 이룰 성취의 첫걸음에 불과하다. AI는 우리가 미처 알아차리기도 전에 오늘날 문제가 되는 모든 한계를 돌파해버릴 것이다. 인공지능은 거의 모든 직업에서 인간을 밀어낼 것이다. 우리는 지금 과학혁명의 중심에 있다. 인류의 진보는 가속을 얻고 전 분야에서 새로운 가치가 창출 될 것이다. 특히, 인간의 지능을 보조하거나 대체할 수 있는 기술들이 점점 더 발전함에 따라 AI는 산업 전반에서 효율성, 생산성, 창의성을 극대화 할 것이다.

2024-09-24

세계유산 활용사업 ‘소수서원 필리아’의 매력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길고도 지루하던 더위를 깡그리 밀어내기라도 하듯 가을을 재촉하는 비가 줄기차게 내렸다. 간간이 산허리까지 안개가 내려와 비 오는 날의 운치를 더하고, 흠뻑 젖은 솔숲에서는 빗줄기와 어우러진 솔내음이 차분하게 깔리는 듯했다. 송림에 둘러싸인 고풍스러운 서원(書院) 기와의 처마 끝에서 떨어지는 낙숫물 소리 마냥 또렷하고 정겨운 해설사의 설명을 툇마루에 걸터앉아 듣고 끄덕이는 사람들의 모습이 진지하게만 보였다. 이와 같은 장면은 국가유산청의 2024년 세계유산 활용사업의 일환으로 열리는 ‘소수서원 필리아’의 한 부분이다. ‘세계유산 활용사업’은 국가대표 브랜드로서의 세계유산 가치의 보존 및 전승, 융복합적 활용을 통한 부가가치 창출을 위해 기획된 사업으로, 영주시에서는 국가유산청의 2024년 공모사업에 ‘소수서원 필리아’ 등 2건이 선정됐다. 동양대학교 한국선비연구원에서 주관하는 ‘소수서원 필리아’는 일상생활에 지친 도시인들의 심신을 힐링하면서 선조들의 지혜를 느끼도록 하는 프로그램으로, 지난 4월부터 10월까지 총 10회에 걸쳐 소수서원과 선비촌 일원에서 개최되고 있다. 해설사와 함께하는 소수서원 탐방을 시작으로 내 몸을 행복하게 하는 치유음식 특강과 청국장 영양식단이 나오고, 꿈결같이 달빛과 별빛이 쏟아지는 소수서원의 솔숲에서 해금과 거문고의 그윽한 선율이 흐르면 지나가던 바람조차 멈추고 풀벌레들의 청아한 합창이 추임새를 더하며 여흥을 돋우기도 한다. 그리고 여명 속에서 서광을 맞이하는 생명들이 기지개를 켜는 아침에 다향을 맡으며 차훈(茶熏)명상을 하고 나면, 그야말로 심신의 평온함과 안정감이 얼굴에 쓰여 질 정도로 개운하고 여유로움을 느끼기에 충분할 것이다. 필리아(Philia)는 ‘무언가를 열렬히 사랑하는 행위나 증세’ 등을 뜻하는 영어 접미어로 우애 또는 형제애로 옮겨진다. 즉 ‘상대방이 잘 되기를 바라는 순수한 마음으로 그러한 바람이 쌍방적으로 상호 간에 인지하고 있는 품성상태’를 말한다. 예부터 강학과 제향기능이 있었던 서원이 현대교육의 도입으로 대중과 멀어지고 향사기능 위주로 축소되자, 정부에서는 2013년부터 ‘서원향교활용사업’을 기획, 지원하여 지역민들과 함께하는 서원문화행사를 열어 왔다. 소수서원은 동양대 한국선비연구원의 협력으로 서원스테이, 사마(司馬)선비과정, 소수서원 필리아 등의 다양한 사업으로 서원문화를 현대적으로 계승해왔다. 세계유산 한국의 서원 중에서도 우리나라 최초로 설립된 소수서원에서 옛 숨결을 느끼며 자연과 인문학으로 서원의 학맥을 계승하는 문화사업을 펼친다는 자체가 의미 있고 법고창신의 새로운 전기가 되지 않을까 싶다. 이를 통해 전국에 소재한 문화·자연·무형유산의 역사적 의미와 가치를 되새기며 다양한 아이템과 연계사업 추진으로 지역문화유산의 활용도를 높이고 고유한 문화전통으로 존속해 나가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리라고 본다. 세계문화유산과 함께 지역문화유산의 가치를 인적·물적 자원과 결합해 지역민들의 문화향유 기회를 늘리고, 지역경제를 활성화하고자 기획, 추진되는 문화사업이 지속되기를 기대해본다.

2024-09-24

낯선 곳에서 익숙함을 느끼는 이유는

아침저녁으로 제법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하면, 그제서야 계절의 변화를 느끼게 된다. 무심히 있을 때는 흘러가는 것을 전혀 느끼지 못하던 시간도, 시계를 보고, 시간을 확인하고, 무언가 해야할 일을 의식하기 시작하면, 그제서야 실제로 흘러가는 것을 느낀다. 여름이 한창일 때 영원히 지속될 것만 같은 그 계절도 뺨에 스치는 바람 한 줄기, 길가의 나무들의 색이 바뀌는 것을 보고나서야 다음의 계절로 흐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본래 시간이란 나와 관계 없이 규칙적으로 흘러가는 것 같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그것을 느끼는 나의 감각이나 감정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우리가 늘 다니고 있는 이곳의 거리도 마찬가지다. 공간이란 늘 그곳에 그렇게 나와 상관 없이 존재하는 것 같지만, 그것은 결코 그렇지 않다. 내가 인지하지 못하는 공간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다고 할 수는 없지만, 내가 그 공간을 어떻게 인지하고,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있는가에 따라 그 공간은 나에게 전혀 다른 대상으로 받아들여진다. 그 공간의 형태, 그 공간을 채우고 있는 구조물도 그렇지만, 그 안에서 일어난 삶에 있어서의 사건들은 우리를 그 공간을 하나의 의미 있는 장소로 받아들이는 데 주요하게 작용한다. 우리가 처음 가본 장소와, 추운 겨울날 친구와 거리를 걷다가 꽈당 넘어진 장소의 의미가 같을 수 없는 것처럼, 어린 시절부터 계속 다녔던 그 거리 곳곳에는 그 공간을 영위하는 사람들의 기억들이 켜켜히 쌓여 무언가 특별한 어떤 것이 된다. 우리가 옛날부터 살았던 동네에, 한참 어른이 되어 다시 갔을 때 느끼는 어떤 종류의 느낌은 바로 그 공간이 아직 나에게 특별한 장소로 각인되어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이처럼 시간도 공간도, 단지 무심하게 그곳에 놓여 천천히 풀리고 있는 태엽 같은 것이 아니라, 그것을 영위하고 있는 사람들의 경험과 기억과 만나게 되면, 좀 더 특별한 무언가가 된다. 타인이 보기에 별 것 없는 오후 4시의, 어디에나 있을 법한 공원이라도 그곳에서 특별한 경험을 했던 사람들의 기억은 쌓여 있게 마련이다. 누군가는 그 공간을 장소로서 기억하고, 누군가는 그 장소를 사진으로 남기고, 또 어떤 사람들은 무언가의 이야기를 담아 때로는 소설로, 때로는 영화로 타인에게 전한다. 그렇게 어떤 공간에 담겨 있는 누군가의 특별한 기억은 단지 그 사람만의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기억으로 공유된다. 한국에서 이처럼 특별한 장소에 대한 기억을 특히 소설로 잘 구현했던 작가는 아마도 작가 이효석이 아니었을까. 그가 쓴 ‘메밀꽃 필 무렵’이라는 짧디 짧은 단편은 장소 속에 담긴 인간의 특별한 기억을 타인에게 공감의 형태로 전했던 가장 특별한 사례가 아닐 수 없을 것이다. 메밀꽃밭이야 단지 이효석의 고향이었던 평창 봉평에만 있는 것이 아니지만, 칠흙 같은 밤 메밀꽃밭을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그가 남긴 몇 줄의 글에서 시작된 것이다. 그 몇 줄의 글에 담긴 조선달과 동이의 미묘한 이야기와 메밀꽃밭을 비추는 달빛이 없었다면, 애초에 메밀꽃밭이라는 것이 특별할 까닭은 없는 것이다. 당연히 작가 이효석이 달밤과 메밀꽃밭에 대한 기억도 전혀 없이 이 작품을 쓸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는 소학교를 평창에서 다닌 이후 계속 서울에서 학교를 다녔지만, 그의 어린 시절 어딘가에는 분명 “부드러운 빛을 흐뭇히 흘리고” 있던 달빛과 흐드러진 메밀꽃에 대한 특별한 기억이 존재했던 것이다. 우리는 그가 남긴 짧은 글을 통해 그의 극히 내밀한 기억을 훔쳐보고 있을 뿐이다. 낯설기 짝이 없는 그 시간과 장소를, 마치 내가 언젠가 경험했던 것 같은 익숙한 기억을 가지고. /송민호 홍익대 교수

2024-09-24

대마에 거는 기대

60년대까지 청송엔 대마 농사가 성행했다. 집집마다 씨앗을 뿌려 대마를 길렀다. 대마 채취가 끝나면 마을 사람 모두가 나서서 삼굿을 했다. 삼 껍질이 잘 벗겨지도록 하기 위해선 꼭 필요한 과정이었다. 구덩이를 파고 장작을 깔고 그 위에 돌을 얹어 삼을 재고 풀과 흙을 덮은 후 불을 지폈다. 삼굿은 힘이 많이 드는 일이어서 마을 공동 작업으로 이루어졌다. 삼굿이 끝나면 푹 삼긴 삼을 꺼내 차가운 계곡물에 식혔다가 건져내어 껍질을 벗겼다. 삼에서 뽑아낸 실을 꼬아 삼을 삼고 베를 매고 짜는 일은 대부분 섬세한 아녀자들 몫이었다. 삼베가 완성되면 잘 짜진 베는 팔아 살림에 보탰고 올이 굵은 베로는 가족들 옷을 지어 입혔다. 밤이고 낮이고 베틀에 올라앉아 베를 짜던 아낙들이 이제는 텃밭 농사도 힘에 부쳐서 경로당에 모여 시간을 보낸다. 주왕산 마을 여든을 훌쩍 넘긴 어르신들이 삼 농사지어 베 짜던 시절 얘기를 주절주절 풀어놓는다. 삼굿이 끝나고 차갑게 식힌 삼 껍질을 벗길 때 집집이 해 온 밥을 펼쳐놓고 거랑가에 둘러앉아 먹던 때가 어제 일처럼 선하단다. 어느 댁은 계추리(황저포)를 잘 짰고 어느 댁은 열세로 치는 계추리는 아니라도 일곱세는 짰다는 얘기도 흘러나온다. 그 시절을 지나오지 않은 내 귀에는 무슨 암호처럼 들린다. 눈치 빠른 어르신이 설명을 보탠다. 계추리는 삼의 겉껍질을 긁어버리고 만든 고운 실로 짜는데 부드러워서 삼베 중에 최고로 치고 올이 굵은 삼베는 다섯세, 여섯세도 있었단다. 어렴풋이 귀가 열린다. 한창 삼을 삼고 베를 짤 무렵 어르신들 손가락 끝이 얼마나 아렸을까 싶어 멀쩡한 내 손끝이 저려온다. 정작 직접 짠 고운 삼베를 오십 년이 훌쩍 지난 지금도 간직하고 있다는 어르신 얼굴엔 자부심만 한가득이다. 온몸으로 세월을 건너온 어르신들이 지구 생태에 건강한 영향을 끼쳤다는 걸 알고나 계실까. 어머니가 들려준 외조모 얘기도 주왕산 어르신들 못지않다. 외조모는 손이 매워서 삼베는 물론이고 무명이며 명주 짜는 솜씨가 유달리 좋았다고 한다. 마을의 부자로 통했던 외조부가 사기를 당해 전 재산을 다 날리게 되면서 외조모의 진가는 유감없이 발휘되었다. 집안이 망했다고 낙담할 사이도 없이 팔을 걷어붙이고 뽕나무를 심고 누에를 키웠다. 누에에서 실을 뽑아 몇 날 며칠 베를 짠 후 공인된 허가증을 목에 걸고 명주를 팔러 나섰다. 차만 타면 멀미를 하는 통에 아무리 먼 길도 걸어 다녔다. 가지고 간 베를 다 팔 때까지 남의 집 고방에서 묵는 일은 예사였고 끼니를 굶는 일도 숱했다. 무거운 명주를 이고 지고 발품을 팔아가며 번 돈으로 자식 공부를 시켰다. 쓰러졌던 외가는 억측이었던 외조모로 인해 다시 일어날 수 있었다. 외조모에게 뽕나무와 누에와 명주는 삶을 지탱해 준 고마운 것이었고 그분은 몰랐으나 그로 인해 지구 한 귀퉁이는 맑았다. 새마을 운동이 시작되면서 값싼 화학섬유로 만든 의류가 시장을 지배했다. 경제개발이란 미명하에 품이 많이 드는 삼베며 무명이며 명주는 우리 주변에서 밀려났다. 경지 정리된 논에는 대마와 목화와 뽕나무 대신 소출이 많다는 벼가 심겼다. 사람들은 더 이상 비싼 값을 들여 몸에 좋은 천연 섬유로 짠 옷을 입지 않았다. 베틀은 쓸모가 없어졌고 대마는 아편처럼 중독성이 있다는 불명예마저 안게 되었다. 시골 구석구석 흔하게 자라던 대마가 한순간에 자취를 감춰버렸다. 십여 년 전 청송으로 삶의 터전을 옮겼을 때 빈 집 울타리 안에 죽지 않고 살아남은 대마가 저절로 자라는 걸 본 적 있다. 이곳 토박이들의 오랜 역사를 만난 것 같아 반갑기 그지없었으나 얼마 안 가 사라지고 없었다. 한 뿌리라도 키우면 불법이라는 걸 마을 사람 누구나 모르는 이가 없게 된 까닭이었다. 안동은 안동포의 명맥을 꾸준히 이어오고 있는 곳이다. 요즘 들어 대마 농사를 짓는 농가도 늘고 있다고 한다. 환경의 변화에 따라 주 작목인 고추 농사는 갈수록 어려워지는 반면 대마 농사는 수월함과 수익성을 모두 갖춘 때문이란다. 대마는 밭을 갈고 씨만 흩뿌려서 흙을 덮어주면 3개월 동안에 2미터 이상 자랄 정도로 잡초보다 성장이 빠른 작물이다. 비료 없이도 잘 자라고 1년에 2 모작이 가능하다. 병해충에 강해 농약을 칠 필요도 거의 없다. 이러한 이점 덕분에 최근엔 대마 농사를 짓기 위해 멀리서 알고 찾아오는 경우도 있단다. 섬유용 대마는 옷부터 건축자재, 자동차 내장재까지 다양한 산업분야에 활용될 정도로 미래 산업가치도 뛰어나다. 몸에 좋은 대마종자유를 찾는 이들이 늘어나면서 외국에서는 새롭게 떠오르는 작물이기도 하다. 박월수 수필가 나무는 온실 가스를 흡수하는 역할을 한다. 성장이 빠른 대마를 심는 일은 뜨거워지는 지구별을 구할 수 있는 가장 값싼 방법이라고 생태환경 운동가들은 말한다. 자연분해가 가능하고 독성이 없는 대마를 이용해 플라스틱을 만들어 쓸 수도 있다니 석유화학물질에 대한 의존문제를 해결하는 좋은 방법일 수도 있겠다. 미국 등 여러 나라에서 대마가 합법적으로 재배되고 있다는 건 지구별의 입장에선 여간 다행한 일이 아니다. 지속가능한 지구의 내일을 위해 중독성 없는 대마를 재배하는 일이 어디에서나 가능해지기를 바라본다. ◇ 박월수 수필가 약력 ·2022년 대구수필가협회 문학상·2022년 경북문협 작가상 등 수상·수필집 ‘숨, 들이다’·청송문인협회장 /박월수 수필가

2024-09-24

정국현안 풀려면 尹·韓 자주 만나는 게 순리

윤석열 대통령이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가 요청한 독대를 거절함으로써 ‘윤·한 갈등’이 정점에 달한 모습이다. 의료위기가 심각한 시점에서 의·정 갈등을 주도적으로 풀어야 할 두 사람이 신경전을 벌이는 것 자체가 국민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한 대표는 대통령에게 독대를 요청한 이유에 대해 “공개적으로 말하기 어려운 중요한 현안이 있고 논의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밝혔다. 독대자리가 마련돼야 ‘여야의정 협의체’ 구성을 비롯한 정국현안에 대해 진솔한 논의가 이뤄질 수 있다고 판단한 것 같다. 그러나 대통령실은 한 대표의 독대 요청이 공식 라인의 사전 조율 없이 언론에 공개되면서 심한 불쾌감을 가졌다고 한다. 두사람간의 갈등은 한 대표 측과 친윤계의 대리전으로 이어져 국민의힘 내부분열도 심각하다. 한 대표 측은 “대통령이 여당 대표도 따로 안 만난다면 누구와 현안을 논의하겠다는 것인지 모르겠다”며 불만을 제기했고, 친윤계 의원들은 한 대표가 ‘자기 정치’를 한다며 비판하고 있다. 현재 윤 대통령 지지율은 20~30%대 사이에서 널뛰기하고 있다. 리얼미터가 지난 19~20일 조사한 윤 대통령 국정수행 평가를 보면, 전국적으로는 긍정적인 답변이 상승(30.3%)했지만 대구경북(TK)에서는 긍정평가 31.9%, 부정평가 61.8%로 직전조사에 비해 부정평가가 10% 포인트 정도 올라갔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 심의위 홈페이지 참조) 윤·한 갈등에 대한 TK지역 민심이반 현상이 여실히 드러난 여론조사다. 지금 우리나라 의료시스템은 의·정갈등으로 인해 망가져 가고 있다. 윤 대통령은 하루빨리 여야의정 협의체가 가동될 수 있도록 결단을 내려야 한다. 지금 야당은 현 정권에 대한 민심이반 기회를 이용해 대통령 탄핵까지 노리고 있다. 이런 위기상황에서 대통령이 둘도 없는 동반자여야 할 여당 대표와 만나는 것을 왜 꺼리는지 국민 대부분은 의아해하고 있다. 가능한 한 자주 만나서 산적한 국정 현안에 대해 해법을 찾는 게 순리 아닌가.

2024-09-24

특권폐지 운동의 선봉자

우정구 논설위원 우리 정치가 국민 기대에 한참 미치지 못하고 있다는 데 대해서 이론을 달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국민 눈에 비치는 국회의원이 하는 일이라고는 정쟁과 몸싸움, 방탄, 가짜뉴스 양산, 혈세낭비 등등 뿐이다. 그들에게 주어진 특권을 줄이자는 데 대해서도 많은 사람이 동의한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10명 중 6명은 국회의원 수를 줄이고 특권을 폐지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것으로 조사돼 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지난해 4월 16일 장기표 신문명정책연구원장 등 3명의 공동대표는 특권폐지 국민운동본부를 출범시켰다. 국회의원의 불체포특권과 고위공직자의 전관 예우 등 국회의원과 고위공직자에게 부여된 200가지의 특권 폐지를 목표로 1000만명 서명운동을 시작한다고 발표했다. 그들은 “한국의 정치는 특권집단화와 양극화의 심화로 국민 상호간의 대립과 갈등이 고조되고 있으며 이것이 국가발전의 발목을 잡고 있다”고 밝히고 “정치가 국민의 희망을 불러일으키기 위해선 특혜와 특권을 대폭 축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권 폐지의 방안으로 국회의원의 월급을 근로자 월평균 임금으로 줄이며 불체포특권과 면책특권 폐지 등 구체적 대안도 제시했다. 국민의 여론 지지만큼 특권폐지 운동이 활활 불붙진 않았으나 지금도 특권 폐지 정신을 지지하는 분위기는 여전하다. 특권이란 나만 누리라는 특별한 권리가 아니다. 국회의원으로서 주어진 역할을 효율적으로 수행하라고 준 권한이다. 그 권한 뒤에는 국민의 혈세와 희생이 있는 것이다. 재야 시민운동가이자 정치인인 장기표 대표가 별세했으나 그가 말년에 힘을 쏟아부은 특권폐지운동의 정신은 그의 사후에도 지속 이어져야 한다. /우정구(논설위원)

2024-09-24

의대생 집단유급되면 의료시스템 망가진다

심충택 논설위원 교육부가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의하면, 지난 2일 기준 전국 40개 의과대학에서 2학기 등록금을 낸 학생이 전체 1만9374명 중 653명(3.4%)에 불과하다. 의대생 대다수가 아예 등록 자체를 거부해 집단유급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재학생 중 일부는 다른 대학에 수시모집 원서를 내거나, 대학수학능력시험 준비를 하는 사람도 많다고 한다. 어렵게 자녀를 의대에 보낸 학부모들의 속이 어떨지는 짐작이 간다. 교육부는 지난 7월 의대생들의 유급 판단을 학기 말에서 학년 말로 미루고, F학점(낙제)을 주는 대신 추후 성적을 정정해주는 학점제도를 도입할 것을 대학에 권고했다. 통상의 학사운영 기준을 적용하면 대다수 의대생이 유급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정부라고 해서 등록도 안 하고 수업도 안 듣는 학생을 진급시킬 수 있는 마땅한 방법은 없다. 법령과 학칙에서 예외를 두는 것은 다른 학과 학생들과의 형평성에도 어긋나 불가능하다. 만약 2학기에도 의대생들이 수업을 거부하고 유급이 확정된다면, 2025학년도에는 현재 1학년·신규 입학생(7500명)이 함께 수업을 들어야 한다. 이들은 동시에 진급하기 때문에 6년 내내 제대로 된 교육을 받을 수 없다. 현 의대 교육여건상 수업이 가능할지도 의문이다. 이와함께 의대 본과 4학년들이 의사 국가시험 지원을 계속 거부하게 되면, 내년에는 신규의사도 배출되지 않는다. 진료와 교육, 임상연구 분야에서 세계적 수준을 자랑하고 있는 한국 의료시스템이 대학교육이라는 첫 단계에서부터 망가지는 것은 예삿일이 아니다. 지금은 대규모 의대증원을 둘러싼 의정갈등이 8개월째 지속되면서 환자와 수련병원, 의과대학 모두 패닉상태다. 중환자들은 수술일정을 잡지못해 생명을 위협받고, 병원과 학교를 떠난 전공의 1만2000명은 돌아올 기미가 없다. 지친 의대교수들도 병원을 떠나고 있다. 입원·외래환자가 반토막 난 수련병원들은 심각한 경영난에 처해 있다. 의료시스템 붕괴를 막을 수 있는 유일한 해법은 전공의들의 병원 복귀다. 의사는 전공의 시절이 가장 중요하다. 인턴은 레지던트 1년 차한테, 레지던트 1년 차는 2년 차한테 배운다. 한 해라도 레지던트 정원에 결원이 생기면 이런 ‘도제식 교육’에 후유증이 생길 수밖에 없다. 수련병원에서 전공의가 사라지면 전문의와 의대교수들도 배출될 수 없다. 내년에는 전문의 배출이 평소의 10분의 1 정도로 줄어들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지난 2000년부터 8년간 삼성서울병원에서 4·5·6대 병원장을 지낸 이종철 서울 강남구 보건소장은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우리 의료가 일주일에 100시간 이상 일하는 전공의들의 노력 덕분에 열악한 환경에서도 세계 최고 수준에 오를 수 있었다”고 했다. 정부는 어떤 방법을 동원하더라도 전공의들이 하루빨리 제자리에 복귀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의료대란으로 국가 의료시스템이 망가지고 국민이 생명을 잃으면, 의료개혁이 성공한다고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는 한 여당 국회의원의 말에 공감이 간다.

2024-09-24

석포제련소 대표 구속, 중대재해 경종되길

작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은 노동자 사망 등 중대재해가 발생할 경우 회사 경영책임자가 안전체계를 제대로 구축했는지를 따져 위반이 있으면 1년 이상 징역, 10억원 이하의 벌금으로 처벌할 수 있도록 한 법이다. 산업 현장에서 발생하는 산업재해를 줄이자는 목표로 처벌 수위를 높여 만든 법이다. 그러나 작년 한해 산재사고 사망자는 644명이나 됐다. 전년에 비해 크게 줄지 않은 수치다. 법 적용 대상인 50인 이상 사업장에선 256명이 사망해 오히려 8명이 늘었다. 법의 실효성 측면에서 보면 별로 효과가 없는 결과다. 그래서 기업들은 기업대로 중대재해법의 불명확한 의무와 과도한 처벌 수위로 혼란을 겪는다는 호소를 한다. 또 법을 집행하는 기관도 신중을 기하다 보니 처벌이 솜방망이에 그친다는 지적을 받는다. 대구지방검찰청 안동지청은 경북 봉화군 소재 석포제련소 대표이사를 중대재해처벌법 위반죄로 구속 기소했다. 원청업체 대표가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혐의로 구속 기소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검찰은 “대표가 관리대상 유해물질의 위험성을 잘 알고 있음에도 비소 누출 우려가 있는 탱크 교체작업과 관련한 위험성 평가를 충실히 하지 않았고, 또 하청업체 선정도 형식적으로 진행해 안전관리 체제 구축 의무를 이행하지 않았다”고 구속 사유를 설명했다. 석포제련소는 작년 12월 탱크 수리작업을 하던 근로자가 누출된 비소에 중독, 1명이 사망하고 3명이 상해를 입어 검찰이 수사에 나섰다. 석포제련소는 그 후에도 지난 3월 냉각탑 청소작업을 하던 하청업체 노동자 1명이 사망했고, 8월에는 하청업체 노동자 1명이 열사병으로 숨졌다. 석포제련소 대표이사 구속은 중대재해와 관련한 첫 구속이란 점에서 업계에 경종을 울렸다. 기업의 경각심을 일깨우는 계기도 됐다. 그러나 무엇보다 기업 현장에서 사고를 줄일 수 있는 실질적 노력이 수반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우리 사회도 이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갖고 지켜봐야 하며 기업의 주장대로 법에 문제가 있으면 이를 고쳐 법의 실효성을 높이는 노력도 병행할 필요가 있다.

2024-09-24

지구를 위해 손을 내밀자

김규인 수필가 민족의 큰 명절인 추석이 지났다. 상인들은 불경기로 힘들다고 하지만, 골목마다 내어놓는 쓰레기 더미는 만만치 않다. 버려진 건 빈 상자, 플라스틱 포장 재료, 음료수병, 비닐봉지 등 종류도 가지각색이다. 이렇게 많은 물건이 다 어디로 갈지 생각만 해도 가슴이 답답하다. 제대로 재활용하는 물건도 적거니와 버려진 상태도 제멋대로이다. 자세히 보면 음식물이 묻은 종이류, 먹다 남은 음식물이 담긴 플라스틱 용기, 양념이 묻은 종이와 비닐류가 무엇을 담고 있었는지 묻지 않아도 몸으로 말한다. 쓰레기의 분리수거는 어려운 것인가. 버려진 양심을 가득 담은 쓰레기들이 거리를 뒹구는데 사람들은 누구 하나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 추석인데도 한여름 날씨가 이어지니 사람들은 덥다고 난리를 친다. 상상을 초월하는 폭우가 내리는가 하면 비가 내리지 않아 마실 물을 걱정하는 곳도 늘어난다. 곳곳에서 이상기후로 인해 집을 잃은 사람들이 힘들어한다. 계속되는 태풍에 물난리를 만난 이재민은 늘어나지만 정작 근본적인 문제를 걱정하는 사람은 적다. 신문이나 방송에서 한 번씩 특집으로 환경문제를 다루지만, 구색을 갖추기 위한 행위처럼 느껴지는 건 무엇 때문일까. 환경문제는 밥을 먹듯이 매일 신문의 1면을 차지하거나 방송의 첫머리를 장식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런데도 실상은 환경오염의 실태조차 파악하지 않으려는 것 같아 마음 한구석이 답답하다. 얼마나 더 지구가 망가져야 사람들은 진정으로 환경을 걱정할까. 아니 지구가 아니라 자신이 살기 위해 매달릴까. 지구는 아프다고 앓는 소리를 내거나, 걸핏하면 자신을 태우며 고통을 호소하는데 사람들은 자기의 일이 아니라는 듯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다. 물건을 만드는 공장에서는 물건보다 포장재에 많은 신경을 쓰고, 사용하지 않아도 될 물건을 채워 넣는다. 보기에 좋게 비닐로 코팅하고 그것도 모자라서 화려한 장식을 더 한다. 물건보다 소비자의 관심을 받는 데만 신경 쓰는 모습이다. 어떻게 하든지 물건이 잘 팔리고 좋은 가격만 받으면 그만이라는 생각이 드는 건 왜일까. 인터넷 판매를 하는 업체에서는 조그만 물건을 부치는데 너무 큰 상자를 사용한다. 정작 택배 물건을 받아 상자를 뜯어보면 실제 물건은 외롭게 한쪽 구석에 쭈그리고 있다. 상자가 작으면 무슨 문제가 있는지 그렇게 보낸다. 운반비도 늘어날 텐데 원가관리 측면에서 보더라도 효율적인지 의문이 든다. 국가에서는 재활용을 권장하나 이마저도 잘 지켜지지 않는다. 분리수거가 제대로 되지 않고 공장에서는 물건을 팔기 위해 오늘도 포장에 공을 들인다. 차량은 더 무겁고 큰 상자를 싣고 힘들게 언덕을 오르느라 오염된 가스를 내뿜는다. 일회용품은 넘쳐나고 불어난 쓰레기는 산천을 뒤덮는다. 이대로 계속되어도 좋은 것인지 묻고 싶다. 이제라도 지구를 위해 무엇이든지 실천하자. 지금 당장 하지 않으면 쓰레기와 오염 물질이 가득 찬 별이 될 것이다. 지구가 아파하고 몸부림치는 고통에 사람들도 죽어갈 것이다. 이제라도 스스로 살기 위해 무엇이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 우리의 절박한 몸부림이 필요하다.

2024-09-23

각개전투의 시대

최병구 경상국립대 교수 곧 마무리될 것 같았던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좀처럼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의대 정원 증원을 둘러싸고 시작된 갈등이 어느 순간 자존심 싸움으로 치달으며 출구 없는 미로에 갇혀버렸다. 지난 추석을 앞두고는 응급실 진료를 받지 못해 안타까운 죽음을 맞은 사례가 연이어 언론에 보도 되며 긴장감을 높였다. 정부에서는 구급대원의 입을 단속하고 군의관을 현장에 파견하며 문제에 대응하고자 했으며, 의료계는 이런 정부의 태도에 비판적 입장을 표했다. 동시에 정부는 전공의의 현장 복귀와 의대생의 학교 복귀를 꾸준히 설득하고 있다. 특히 의대생의 학교 복귀를 돕기 위해, 두 개의 학기로 구성된 연 단위 학사 일정을 변경하는 학칙 개정까지 각 대학에 요구하고 나섰다. 의대생들의 휴학 신청을 승인하지 않은 상황에서 학생들이 학사경고를 받아서 유급되는 상황을 막으려는 대책이지만 현장에서는 교수도 학생도 모두 반대하는 정책이다. 의대생들의 학교 복귀가 요원한 현실에서, 이번 학사일정 변경은 의대생을 위한 특별 혜택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롭기 어렵다. 더 이상 이번 사태의 책임을 어느 한쪽으로 돌리는 것은 의미가 없다. 분명한 점은 이번 일로 아픈 국민이 피해를 보고 있다는 사실이다. 첫째 아이가 두 살 때 자정이 다된 시간에 대형병원 응급실에 급하게 간 적이 있었다. 줄자의 예리한 칼날에 베인 아이 손가락의 피가 한 시간이 넘도록 멈추지 않았기 때문이다. 응급실에서 의사의 도움으로 베인 손가락을 꿰매고 돌아올 수 있었다. 아이를 키우는 집에서 언제든 발생할 수 있는 일이고 늦은 시간에 이용할 수 있는 곳은 응급실 밖에는 없다. 중증 환자가 아닌 경우 응급실을 자제하라는 권고에 따르면 이런 환자는 새벽에 어디서 치료를 받아야 할까? 국민은 국가를 믿고 일상을 살아간다. 국민의 안전과 건강을 지키는 것은 국가의 책임이다. 국가에 세금을 내는 것은 바로 이러한 믿음 때문이다. 그렇지만 최근 추석을 앞두고 지인들과 나눈 인사는 추석 때 절대로 아프지 말자는 자조 섞인 말이었다. 의료 개혁이라는 명분은 눈앞의 불안과 고통을 감내하기에는 공감하기 어려운 말이다. 의사들의 이기주의를 모르는 바 아니지만 그렇다고 이런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에 얼마나 많은 국민이 공감할 수 있을까. 이런 상황이 반복되면 우리는 그 누구도 믿지 말고 각자 알아서 자기와 가족을 지키는 삶, 각개전투의 삶이 현명하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의 2023년 합계출산율은 0.72명으로 8년째 최저치를 경신하고 있다. 8년 동안 빠지지 않고 출산율을 높이기 위한 크고 작은 정책이 시행되었지만, 반등할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고 있다. 왜 그럴까? 그간 출산 장려금 등 부수적인 것에 정책이 집중되었으며, 그럴수록 근본적인 문제, 국가에 대한 믿음은 사라져 갔기 때문이다. 의료·교육·주거 문제를 떠올리며 한숨을 내쉬며 결국 나의 무능력을 탓하는 현실에서 누가 아이를 낳을 수 있을까. 각개전투의 시대를 해결할 수 있는 주체는 결국 국가 아닌가.

2024-09-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