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오피니언

전향과 변절

김병 래수필가·시조시인 “젊어서 사회주의자가 아닌 사람은 심장이 없고, 늙어서도 여전히 사회주의자인 사람은 머리가 없다” 출처가 명확하진 않지만 프랑스와 영·미권에서 오랜 기간 다양한 형태로 유행한 말이다. 젊은 시절에는 이상과 정의에 대한 열정으로 사회주의와 같은 급진적이거나 진보적인 정치적 성향을 가지기 쉽지만, 나이가 들면서 경제적 안정, 현실적 제약, 사회적 경험 등을 통해 점점 더 현실적이고 보수적인 시각을 가지게 된다는 의미로 쓰인다. 나이가 들어서도 여전히 사회주의적 신념을 고수하는 것은 현실인식이 떨어지는 사람이라는 풍자적 의미를 담고 있다. 물론 사회주의자들이 인정할 리는 없지만, 아직도 좌우의 대립이 극심한 우리나라의 경우 젊어서 사회주의 운동을 하다가 전향한 사람들은 자신이 속해있던 진영으로부터 변절자, 배신자로 낙인이 찍히게 마련이다. 한때 운동권이었다가 전향을 한 사람들은 순수한 정의감과 사회개혁 의지로 치열하게 활동을 하다가 공산주의의 실상이나 좌익활동을 하는 사람들의 행태에 실망해서 과감하게 행로를 바꾼 경우가 대부분이다. 반대로 전향을 하지 않은 사람들 중에는 운동권 활동 중에 방화, 살인, 강도 등 범죄행위를 했거나 북한에 약점이 잡혀 있는 경우도 적지 않은 것 같다. 김대중, 노무현 정권을 거쳐 문재인 정권에 이르는 동안 소위 운동권 세력들이 기득권이 되어서 보이는 행태는 그들에게 민주화운동이란 과연 무엇을 위한 것이었는지 의구심을 갖게 한다. 그것이 자유민주주의를 위한 민주화였는지 아니면 사회주의·공산화를 위한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종북주사파들 중에는 북한으로부터 자금과 지령을 받은 상당수가 노동계, 교육계, 언론계, 법조계 등에 침투하여 사회를 혼란케 하고 국가 전복을 꾀한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얼마 전에 타계한 장기표 선생을 비롯해서 김지하 시인, 김문수 장관, 강철서신의 김영환 같은 분들은 전향을 한 후 열성적으로 좌파들의 불의와 비리를 폭로·비판하는 운동을 해왔다. ‘타는 목마름으로’나 ‘오적’같은 시를 써서 유신정권과 군사독재에 저항을 했던 김지하 시인은 운동권의 학생들의 연쇄분신 파동을 보고 “죽음의 굿판을 걷어치워라”며 질타를 했고, 민주화운동과 노동운동을 주도했던 김문수는 우파 정치인이 되어 좌파들과 싸우고 있다. ‘강철서신’이란 문건을 작성·배포해서 북한의 주체사상을 퍼뜨리고 ‘민족해방운동’에 앞장섰던 김영환은 북한에 가서 김일성을 만나보고 북한의 실상에 실망해서 전향을 했다. 지금은 오로지 북한 주민의 인권을 위해 투신하고 있다. 소위 민주화운동 세력들은 좌파정권의 요직을 차지하거나 국회의 다수의석을 차지했을 때 그들의 민낯을 여지없이 드러냈다. 그들이 한 때 젊은 혈기로 저항하고 투쟁했던 것은 자유민주주의를 위한 것도 아니었고 억압 받는 국민을 위해서도 아니었다. 오로지 진영논리와 정치적 야욕에 빠져 나라와 국민은 안중에도 없는 행태에서 그들의 정체가 드러난 것이다. 그들이야말로 국가와 국민을 배신한 자들이다.

2024-10-03

풍요로운 10월, 문화축제의 명암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선선한 바람 결에 산과 들의 푸른 기운이 결실과 단풍으로 이어지고 있다. 달갑지 않은 가을태풍의 북상 예보가 있긴 해도, 하늘은 점차 높푸르게 가을빛을 더해가고, 들판에서는 정갈한 햇살을 받아 오곡백과가 넘실넘실 익어가고 있다. 하늘 맑고 공기가 상쾌해(天朗氣淸) 덥지도 춥지도 않은 때라 실내외 활동하기에 편하고 좋은 계절, 사람사는 세상에는 요즘 온갖 축제나 체육대회·전시·공연·체험 등의 문화행사가 다채롭고 풍성하게 열리고 있다. 이른바 10월은 ‘문화의 달’ 답게 이런저런 문화축제가 즐비하다. 이미 9월 중·하순부터 크고 작은 행사가 시작돼 잔치 분위기가 나는가 싶더니, 10월 들어서는 본격적인 축제시즌이라 할 정도로 전국의 도처에 특색 있고 다양한 축제·문화제·대회 등의 행사가 동시다발로 열리고 있다. 유난히 무덥고 길게 이어진 여름날의 인내와 시달림을 축제로 풀기라고 하듯 축제 참가자들의 표정이 한결 밝고 즐거워 보인다. 축제는 이렇듯 격식을 차려 여러 사람이 함께 즐기는 큰 잔치이기에, 음악적 퍼포먼스나 상연, 음식, 의식, 테마, 전통, 자연 등과 결부되는 조직화된 일련의 사회적 활동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축제나 대회 등의 행사는 모두 일정 부분 정부의 예산지원으로 이뤄지게 된다. 민간 주도의 예산 지원의 경우도 있긴 하지만, 대부분의 지방자치단체나 각 지역별로 지역상권 활성화와 경기부양책을 내세워 행사를 급조한다거나 선심성(?) 예산지원으로 세금을 축내는 경우가 있어서 다소 문제가 되기도 한다. 그렇다 보니 전국적으로 전시성 축제의 난립과 국비·지방비의 세금을 지원받는 일종의 ‘정책카드’로 변질돼 축제 자체의 전통성과 상징성이 퇴색되고 문화적 교류라는 본래의 목적에서 벗어나는 경우가 허다하여 국민들의 빈축을 사는 사례도 있다. 또한 축제장의 장사꾼 난입과 바가지 요금, 무질서, 비위생적인 환경 등도 문제지만, 특히 축제운영 담당인력의 전문성과 경험 부족으로 옥의 티처럼 비춰지는 경우도 있다. 가령, 최근 포항지역에서 ‘제11회 대한민국 독서대전 포항’이 3일간 열리면서 다양한 프로그램이 진행되었었는데, ‘비블리오 배틀’이라는 독서 서평 대결이 당일 우천으로 인해 대회 시작 5분 전에 돌연 취소(연기)되는 해프닝이 벌어져 대회 출연진과 시민들의 볼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2~3개월 전부터 예선을 거쳐서 본선에 올라온 초등부·청소년·일반부의 각 팀에서는 의상과 소품, 장비 등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결선 시작만 기다리고 있었는데, 주최측에서 강우 대비를 사전에 했음에도 느닷없이 전국적인 대회를 시작 직전에 보류한다는 것은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은 졸속으로 여겨져 고소(苦笑)를 금치 못할 정도였다. 하지만 축제를 성공적으로 이끌기 위해서는 이러한 몇가지 문제와 미비점을 보완·개선하고 면밀한 검토와 신중한 결정으로 한치의 허술함 없이 효과적이며 효율적인 운영을 해나가야 할 것이다. 몇 개월 전부터 입안하고 기획·추진하는 축제가 준비와 운영의 부실이나 실책으로 파행된다면 사상누각에 불과할 것이다. 날씨 좋고 먹거리가 풍부해지는 10월의 문화축제가 성황리에 열리길 기대해 본다.

2024-10-01

경영과 성장

정상철 미래혁신경영연구소 대표·경영학 박사 경영자가 조직을 이끌어가는 과정에서 보여주는 고유한 품위, 도덕적 기준, 깊이 있는 경영철학을 경영의 격이라 한다. 단순한 경영 기술을 넘어 지적 깊이와 인간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조직을 운영하며, 추구하는 가치와 원칙, 인간 중심의 태도를 말한다. 경영자의 품성과 능력은 조직을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 가는 중요한 요소이며, 훌륭한 경영자는 판단과 결정의 고수이다. 생각 수준이 다르고 결단의 순간 현실과 미래를 동시에 통찰하며 개인과 조직을 위한 결단을 내린다. 경영자는 손에 책을 놓지 않으며, 책 속에 얻는 지식과 경험에서 나오는 지혜로 미래를 예측하고 통찰하며 지속 가능한 기업으로 이끌어 간다. 훌륭한 경영자의 6가지 역량은 첫째, 조직을 책임진 리더로서 자신의 존재 의의와 정체성을 파악하고 결단하는 사람임을 인지한다. 최고의 결정과 최악의 결정의 경계선에 서 있음을 인식하고 올바른 결단력을 위해 애쓴다. 둘째, 현실을 분석하고 인지한다. 높은 곳에 눈을 두고 있더라도 현재의 자리에 발을 떼지 않는다.도전할 때인지, 안정을 유지할 때인지를 명확히 판단한다. 조직의 상태를 세밀히 분석하고 전략적으로 사고하고 나아갈 기회를 놓치지 않고 올바른 판단으로 조직을 이끌어 간다. 셋째, 창의적 발상을 꾀한다. 일반적인 생각과 다수의 판단에 휘둘리지 않고 상식을 넘어서는 발상도 한다. 경영자의 의사 결정은 다수결이 아닌 경우가 많고 드러나지 않은 가치의 원천을 발굴하여 변화를 시도한다. 넷째, 미래의 방점을 찍는다. 위대한 경영자의 시야는 좁은 울타리의 당면 과제에 머무르지 않고 시공간을 넘어 확정한다. 대내외 변화의 흐름을 인지하고 조직이 나아갈 비전을 제시한다. 다섯째, 사람을 최우선에 둔다. 조직의 핵심과 목적이 사람에 있음을 인지하고 사람을 수단이 아닌 목표로 지향한다. 인간적 가치와 도덕성을 지향하며 깊고 넓게 소통한다. 여섯째, 경영자로서 역량과 품격을 기른다. 내면의 역량을 강화하고 늘 성장하는 사람인 것이다. 필자는 동반성장이 사회 이슈가 될 때 경인지역 여러 중소기업의 혁신과 경영 지원을 한 적이 있다. 전문 경영인도 있지만 창업주, 2세 경영자인 경우도 많았다. 경영수업의 기회가 적은 경영자는 성품에 따라 기업 문화와 생산, 수익성에도 영향이 간다. 경영자의 선입견과 가치관, 인식변화에 따라 기업문화가 바뀌기도 하고 직원들이 회사를 대하는 생각도 변한다. 구성원의 마인드와 긍정적 움직임이 기업성장의 근간이 되기도 한다. 경영의 격은 단순한 능력이나 성과로 평가되지 않고 경영자가 어떤 철학과 태도를 가지고 조직을 이끌어 가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보이지 않은 상황과 들리지 않은 흐름을 읽어 낼 수 있어야 한다. 훌륭한 경영자는 조직과 구성원 마음까지 선한 영향력이 미치며, 지속 성장하는 기업으로 이끌어 간다. 기업이 처한 여건을 바르게 보고 변화의 물결을 놓치지 않고 빠르고 유연하게 판단하며 미래를 향한 길을 열어간다.

2024-10-01

자주국방

우정구 논설위원 우리 군이 개발한 현무-5 미사일의 별명은 괴물 미사일이다. 북한의 지하 벙커를 단숨에 파괴할 수 있는 엄청난 위력의 미사일로 알려지면서 붙여진 이름이다. 2단 고체 추진 로켓에 탄두 중량이 세계 최대 규모인 8t이다. 폭발력은 11t에 이른다. 일본 히로시마에 투하된 원자력의 위력이 15t인 것과 비교하면 현무-5의 위력을 짐작할 수 있다. 우리 군은 유사시 북한의 핵무기에 버금가는 전략 자산으로 삼고 있는 무기다. 지난달 27일 이스라엘이 레바논의 친이란 무장단체 헤즈볼라의 최고 지도자 하산 나스랄라를 암살한 것으로 알려진 벙커버스터와 현무-5는 동종의 무기이다. 하지만 이보다 위력이 훨씬 센 것으로 전해진다. 이스라엘 전투기에 탑재된 벙커버스터는 18m 지하에 있던 나스랄라를 피할 틈도 없이 암살했다. 현무-5는 지하 100m 이상도 파괴할 수 있는 위력이 있으며 전문가들은 북한의 핵무기에 견줄만 하다는 평가까지 한다. 작년 12월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에 극초음속 미사일 ‘킨잘’을 발사한 바 있다. 핵탄두와 재래식 탄두를 모두 장착할 수 있으며 최대 비행속도는 마하10 이상이다. 기존 미사일 체계로는 요격이 불가능하다고 한다. 미·중·소 등 세계 각국은 자국의 안보 보전을 위해 신무기 개발에 여념이 없다. 이스라엘과 범 이란 세력간에 벌이는 전쟁은 5차 중동전쟁으로 비화할 우려도 높다. 국가 안위는 힘이 있을 때 지킬 수 있다는 말이 설득력 있게 들리는 시대다. 국군의 날을 맞아 우리 군이 선보이는 국방력에 국민의 눈이 쏠리는 것은 자주국방에 대한 믿음이 필요해서다. /우정구(논설위원)

2024-10-01

LA사무소 연 대구, 글로벌 도시 위상 높여라

지금 세계는 나라간 경쟁이 아닌 도시간 경쟁의 시대를 맞고 있다. 도시가 각자의 경쟁력을 키워 국가 발전을 이끄는 도시의 글로벌화가 대세이다. 대구시와 경북도의 행정통합 논의가 수도권에 대응하는 지방단위의 메가시티 조성을 목표로 한다지만 내용적으로 보면 글로벌화 되어가는 국제적 흐름에 따라가기 위한 몸부림이다. 특히 인구소멸의 위기에 처한 지방의 도시들은 국제통상의 확대와 해외 우량기업의 역내 유치, 글로벌 인력 확보 등 도시의 경쟁력 확장을 위해 해외 사무소는 필요불가결한 요소가 되고 있다. 대구시가 지난달 27일 LA 한인축제가 열리던 날, LA 코트라 무역관서 홍준표 대구시장, 박윤경 대구상의회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대구시 LA 사무소 개소식을 가졌다. 대구시가 미국시장 진출을 위한 교두보로서 마련한 LA사무소는 앞으로 지역기업의 미국 진출과 통상업무 등을 돕는 역할을 하게 된다. 대구시의 해외사무소는 중국 상하이와 베트남 호치민시에 이어 이번이 세 번째다. 올 연말 중국 청두에도 대구사무소를 개소할 예정이어서 글로벌 시대에 대응하는 대구시의 바람직한 조치로 보여진다. 특히 미국은 매년 수출이 늘고 있는 데다 대구 전체 수출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은 곳이다. LA에는 경북, 경남, 전북, 전남 등 7개 시·도가 이미 해외사무소를 두고 있어 지방도시 간 경쟁이 치열하다. 늦었지만 대구시의 분발이 필요하다. 시는 사무소 개소의 첫 행사로 LA한인상공회의소와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대구식품(D-푸드)의 미국시장 진출에 힘을 보태기로 했다. 특히 홍 시장은 “빅테크 기업과 대구 5대 신산업을 연결하는데 중점을 두겠다”고 밝혀 농산물 중심으로 활약하는 타 지자체와 차별성을 강조했다. 지방자치단체의 해외 사무소 개설은 글로벌 시대 도시 경쟁력 확대에 필수다. 지방정부의 외교력이 평가받는 시험대도 된다. 대구시의 해외사무소가 속속 개소되는 것을 시발점으로 대구시의 외교 및 교역 역량이 커져야 한다. 동시에 글로벌 시대에 걸맞는 대구의 국제적 위상도 정립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2024-10-01

윤 대통령과 그 측근부터 변해야 한다

심충택 논설위원 여권이 공멸 위기다.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 간의 ‘독대신경전’이 진행 중인데다, 당내 친윤·친한계 내분은 그야말로 점입가경이다. 이 상태로 가면 당장 10·16 보궐선거가 위험하다. 전남 영광·곡성군수 선거는 둘째 치고라도, 보수 강세지역인 강화군수와 부산 금정구청장 선거까지 위험한 모양이다. 보수세력이 여권에 등을 돌리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의료사태와 김건희 여사 문제 때문이다. 이는 각종 여론조사에서도 드러나고 있다. 두 사안은 마치 블랙홀처럼 정부의 국정동력을 무력화시키고 있다. 여권은 이에 대한 탈출구를 찾지 못한 채 갈팡질팡하는 모습이다. 윤 대통령과 한 대표 간의 시각차가 큰 게 주요 원인이다. 한 대표는 윤 대통령이 직접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다고 판단하지만, 윤 대통령은 물러설 수 없다는 자세를 견지하고 있다. 윤 대통령은 의대증원을 자신의 의료개혁 업적으로 여기고 있고, 김 여사 관련 문제에 대해서도 여당의 소극적 자세에 불만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지금 민주당과 좌파세력은 김 여사에 대해 총공세를 펴고 있다. 민주당은 지난주 ‘김건희 국정농단 TF’까지 꾸렸다. 민주당은 윤 대통령이 ‘김건희 특검법’ 재의를 요구할 경우, 토요일인 5일에라도 재표결을 위한 본회의를 연다는 방침이다. 민주당은 다음주부터 시작되는 국정감사에서도 김 여사 문제를 집중 파헤칠 움직임이다. 민주당이 다수인 상임위(법사위·교육위·국토교통위·외교통일위 등)에서는 김 여사 의혹 관련 인사들을 줄줄이 증인으로 채택했다. 특히 법사위는 김 여사와 김 여사 모친 최은순씨도 증인·참고인으로 신청했다. 민주당 강득구 의원 등 일부는 ‘탄핵준비의원’ 모임까지 결성한 상태다. 지난 2016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국면을 주도했던 사회단체들과 민주노총도 지난 주말부터 김 여사 관련 이슈를 거론하며 윤 대통령 탄핵공세를 본격화하기 시작했다. 국가 미래를 어둡게 하는 김 여사 문제와 의료사태를 해결하려면 윤 대통령이 전면에 나서야 한다. 윤 대통령은 과거 대선후보 시절, 특유의 친화력으로 민심을 사로잡았다. 특히 대구·경북 시도민은 그의 대중성에 열광했다. 윤 대통령은 그 당시의 모습을 되찾아야 한다. 야당의 외면을 받더라도 끊임없이 설득하면서 꼬일 대로 꼬인 정국을 풀어나가야 한다. 싫든 좋든 야당은 대통령 국정운영의 중요한 파트너다. 한 대표와의 관계도 개선해야 한다. 대통령은 여당 위에서 군림하는 자리가 아니다. 당·정은 수평적 관계가 돼야 한다. 특히 한 대표는 윤 대통령 본인이 키운 사람 아닌가. 이른 시일 내에 윤 대통령은 한 대표를 만나 두 쟁점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논의하면서 여론의 악순환을 끊을 해법을 찾아야 한다. 윤 대통령을 측근에서 보좌하며 권력을 누리는 대통령실과 친윤계 인사들도 바뀔 때가 됐다. 호가호위할 때가 아니다. 당·정이 더이상 내분에 빠지면 국정운영이 어렵다. 곧바로 레임덕이 온다. 국민은 지금 대통령 측근들이 한 대표 패싱 분위기를 유도하면서 대통령 ‘불통’을 강화한다고 의심한다.

2024-10-01

자영업자들 한계상황 내몰린다

고금리·고물가에 내수부진이 겹치면서 자영업자들이 너나없이 위기에 처했다. 경북 동해안 최대수산물 시장인 죽도시장은 최근 내수절벽으로 손님들의 발길이 끊겨 하루하루를 간신히 버티고 있다. 죽도시장 상인들은 지난 추석에도 폭염때문에 대목경기를 누리지 못했다. 한 상인은 “하루 매출이 40만~70만원 정도인데 남는 건 10% 뿐”이라고 했다. 한 개 팔아야 1000원 남는다는 쥐포 판매상인은 “마진 10%로 임대료를 내면 남는 게 없다”고 했다. 포항 도심상권의 불황도 심각하다. 지난해까지 중앙상가 점포는 870여 곳이었지만 최근 360곳이 문을 닫았다. 포항지역 자영업자 폐업률은 지난해 20%를 넘어선 이후 올들어 급증하는 추세다. 전국적으로도 자영업 붕괴현상은 심각하다. 국세청이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자영업자 4명 중 3명꼴로 한 달 소득(종합소득세 신고분)이 100만원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2022년 개인사업자 종합소득세 신고분 1146만4368건 가운데 860만918건(75.1%)이 월소득 100만원 미만이었다. 소득이 전혀 없다는 ‘소득 0원’ 신고분도 100만건에 육박했다. 전국 570만 자영업자의 위기는 곧 서민경제의 위기로 인식해야 한다. 정부가 정책자금 상환을 연장해 주거나 임대료 지원 등의 대책을 내놓았지만, 현장반응은 냉담하다. 지원 자격과 조건이 까다로워 실제 도움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드물다는 것이다. 앞으로 2차 베이비부머(1965∼1974년생) 세대들의 은퇴가 본격화하면 자영업의 위기는 더 심해질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통계를 보면, 자영업자 3명 중 2명은 50대 이상 장·노년층이다. 너도나도 직장에서 나온 후 생계형 창업에 뛰어들다 보니 출혈경쟁이 벌어지는 것이다. 자영업 위기를 막으려면 우선 내수 부양책이 선행돼야 하지만, 한계상황에 내몰린 생계형 창업자를 위해서는 정부의 선제 지원이 필요하다. 벼랑 끝으로 내몰린 자영업자들을 외면하면, 국가경제 전체의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

2024-10-01

‘짧지만 긴 여운 …’ 소설가 김강의 엽편소설 가로등이 깜빡거릴 때

빈소는 2층에 있었다. 민성이 계단과 승강기 사이에서 머뭇하는 사이 아버지는 계단을 올랐다. 아버지는 접객실을 힐끗 본 뒤 빈소로 들어갔다. 민성은 빈소 입구에 세워진 화환 두 개를 살피다 빠른 걸음으로 아버지를 쫓아갔다. 아버지와 민성은 욱이 삼촌의 영정과 마주했다. 웃고 있었다. 민성에게 코트를 사주던 시절 욱이 삼촌의 얼굴이었다. 욱이 삼촌, 저 왔습니다. 욱이 삼촌의 얼굴을 보던 민성이 혼잣말을 했다. 아버지가 민성의 소매 끝을 잡아당겼고 아버지와 민성은 엎드려 절을 했다. 아버지는 한동안 그대로 있었다. 언제 일어나시려나? 아버지를 살피다 정작 욱이 삼촌에게 한마디 말을 하지 못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후우, 숨을 내쉬는 소리와 함께 아버지가 일어났다. 민성과 민성의 아버지는 빈소에서 나와 접객실 한쪽 모서리 테이블에 앉았다. -아주버님, 멀리서 오시느라 고생하셨지예. 민성이 니도 오느라 수고 많았제? 니가 아버지 모시고 왔나? -네. 숙모님하고 동생이 힘든 일 감당하시는 것에 비하겠습니까? 아이고. 고개를 숙이며 혼잣말을 내뱉는 숙모의 손등을 사촌이 쓰다듬었다. -멀리서 이렇게 와 준 것만 해도 고맙다. 뭣 하나 제대로 준 것 없는 삼촌 아이가. 하긴, 그래도 조카 중에는 니하고 젤로 가깝지 않았나? 민성이 어릴 적 욱이 삼촌은 명절이나 제사, 때로는 특별한 일이 없을 때에도 간간이 민성의 집을 찾아와 한참을 앉아 있다 가고는 했다. 약간은 낯선 듯 혹은 약간은 겁먹은 듯 두리번거리다 아버지나 어머니, 형제 중 한 명이 요즘은 어찌 지내는지 물으면 그제야 반색을 하며 입을 열었지만 욱이 삼촌이 말을 잇는 사이 어머니는 주방으로 아버지는 화장실로 갔다. 그러면 욱이 삼촌은 민성을 앞에 두고 비밀인 듯 낮은 목소리로 말을 했다. 민성은 알아듣지 못하면서도 고개를 끄덕이곤 했다. 그런 밤들 끝에 욱이 삼촌은 항상 현관에 서 있었다. 민성의 아버지나 어머니가 내민 돈을 머뭇거리지 않고 받았다. 바지주머니에 넣고 고맙습니다, 큰 목소리로 인사를 했다. 민성의 머리를 쓰다듬은 후 현관을 나서는 욱이 삼촌을 보며 민성은 아버지나, 어머니가 왜 욱이 삼촌에게 자고 가라는 말 한마디 하지 않는지 가끔 궁금했다. 어떤 날은 아버지나 어머니 누구도 욱이 삼촌에게 돈을 주지 않기도 했는데 그런 날 욱이 삼촌은 제사음식이 든 종이 가방을 든 채 말없이 현관을 나섰다. -제수씨가 고생이 많습니다. 오늘만이 아니고 시집와서 지금까지. -제가 뭘요. 한 게 뭐 있습니까. 하긴, 솔직히 말해서 아주버님 앞에서 할 말은 아니지만 한편으로는 속이 시원합니다, 아주. 이제야 끝났나 싶기도 하고요. 숙모는 쟁반에 있는 음식을 상 위로 옮기며 아주버니는 한잔 하셔도 되는 것 아니냐 물었고 민성의 아버지는 잔을 내밀었다. -술 때문이지예. 뭐, 다른 이유가 있겠습니꺼? 욱이 삼촌이 죽던 날 숙모는 다른 곳에 있었다. 벌여 놓은 일이 많아 일주일에 사오일은 다른 곳에서 지냈다고 했다. -일이 벌어지기 이틀 전 얼굴을 본 것이 마지막이 되었습니더. 그날 좀 심하게 다퉜어예. 술 때문이었다. 욱이 삼촌이 만성 췌장염과 알코올 중독으로 여러 번 입원과 퇴원을 반복한 뒤로 숙모는 집안에 술병이 보이면 개수대에 모두 비웠다. 그날도 그랬다. -처음에는 고마 술을 마시게 두는 게 제가 편하더라고요. 술버릇이 나쁜 사람은 아니었으니까. 마시고 마시고 또 마시고 그카다가 조용히 잠을 자니까. 근데 이게 병이 되고 병원을 왔다갔다해야 되고, 또 병원에 가만히 있으모 되는데 퇴원하겠다고 난리를 부리고, 그러니까. 온전히 제 몫이 된 거지예. 집안을 구석구석 뒤지는 것, 집을 비웠다 돌아온 숙모가 제일 먼저 하는 일이었다. 소주 병뚜껑이나 술이 포함된 마트 영수증을 찾아내는 날이면 삼촌과 심하게 다퉜다. -울고불고 그러지는 않았으예. 니 죽고 나도 죽자, 이렇게는 못 살겠다, 그게 제가 할 수 있는 젤로 심한 말이었지예. 최근 한동안은 잠잠했다. 숙모가 동네 마트와 편의점을 찾아가 삼촌에게 술을 팔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하고, 가까이 있는 몇몇 삼촌의 친구들을 불러 부탁을 한 뒤였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던 거라예. 삼촌 밥을 챙겨주고 반찬이라도 몇 가지 만들어 두려고 집에 들른 숙모가 쓰레기봉투에서 찢어진 마트 영수증을 찾아냈다. 걸어서 한 시간은 떨어진 다른 동네의 마트였다. 숙모는 신발장 낡은 구두와 장화 안에서 소주를 찾아냈다. -다퉜다기보다는 제가 일방적으로 화를 낸 거지예. 대꾸를 하기도 했지만 아주버니도 알다시피 그 사람 성질은 순하다 아입니꺼. 그렇게 집을 나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숙모는 괜한 마음에 전화를 했지만 삼촌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또 어디선가 술을 사와서 마시나, 싶었지만 될 대로 되라 하는 마음에 몇 번 더 전화를 하다 말았다. 오륙 년 전 민성은 욱이 삼촌의 전화를 받았다. 소식을 듣지 못한 지 꽤 많은 해가 지난 뒤였다. 민성에게 뭔가를 기대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저 네. 네. 아, 네. 하다 통화가 끝났다. 이후 이삼 개월 간격으로 욱이 삼촌이 전화를 했다. 췌장이 안 좋아 입원을 했다는, 대상포진에 걸려 고생을 했다는, 술을 끊으려 입원을 했었는데 잘 안되었다는 전화가 이어졌다. 술에 취한 듯 어눌하고 정확하지 않은 발음으로 아프고 외롭다는 전화가 왔을 때 민성의 머릿속 기억들이 밖으로 쏟아져 나왔다. 시도 때도 없이 찾아와 돈을 달라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행패를 부리던 삼촌의 눈빛, 아버지께 듣기 싫은 말 한마디를 들은 날이면 민성을 매몰차게 내던졌던 레슬링, 할머니가 남긴 얼마 안 되는 유산을 누가 가져갔느냐며 어머니를 몰아세우던 저녁, 자기는 받은 것도 없고 배우지도 못했으니 형들이 누나들이 책임지라며 엎었던 제사상이 앞, 뒤 구별 없이 부딪히고 섞였다. 할부금을 내지 않고 사라져 아버지가 대금을 지불했던, 집 담벼락 아래 서 있기만 하다 어디론가 팔려간 검정 세단 자동차. 그 자동차를 두고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에 오갔던 고성이 귓가를 스쳤다. 민성은 아버지에게 욱이 삼촌의 전화 이야기를 했다. 네게도 전화를 했더냐? 아버지는 한숨을 쉬었다. 내가 네게는 전화하지 말라고 했는데. 다시 한 번 이야기해야겠다. 너한테는 전화하지 말라고 일러둘 테니 혹시 다음에 다시 전화가 오거든 받지 마라. 아버지는 미안하다는 말을 덧붙였다. 이후로도 몇 번 욱이 삼촌으로부터 전화가 왔었지만 민성은 아버지의 말을 잘 따랐다. -다음 날 저녁에 삼촌이 전화를 했더라. 숙모의 말을 듣던 아버지가 화장실에 다녀오겠다며 일어서자 숙모는 민성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그날 내가 많이 바빴다. 삼촌이 벌이를 못하니 내가 해야 안 되겠나. 이곳저곳에 열어놓은 가게들도 챙겨봐야 하고. 가게라고 해봤자 내 가게도 아니지만. 숙모가 다른 사람한테 월급 받고 관리하는 가게가 몇 개 있거든. 근처 촌에. 뭐, 자세한 것은 민성이 니가 알 필요는 없고. 무슨 일 있으면 또 전화를 하겠지 싶었다. 그런데 다음 날 아침까지 전화가 없는 거라. 받지도 않고. 숙모는 타지에서 살고 있는 아들에게 연락을 하려다 말았다. -바쁜 아를 성가시게 하고 싶지 않았거든. 그런데 뒤에 들어보니까 자한테도 여러 번 전화가 왔었단다. 하필이면 자도 그날 회사 회식이 있어서 정신이 없었다네. 전화도 못 받았고. 그때 이 사단이 난 거라. 가로등이 휙휙 지나갔다. 다가오는 가로등 하나가 깜빡거렸다. 저렇게 깜빡거리다가 언젠가는 빛을 잃을 터였다. 지금 뭘 할 수 있겠어. 결국 누군가 알게 되겠지만 역시 뭘 하지는 않겠지. 세상도 그대로일 것이고. 민성은 네비게이션 화면의 도착 예정시간을 확인한 뒤 힐끗 옆자리의 아버지를 보았다. 아버지는 두 손을 가지런히 모아 벨트 위에 올려놓고 눈을 감고 있었다. 민성은 스피커의 볼륨을 낮췄다. -무슨 일이냐? 비스듬히 누워있던 아버지가 자리를 고쳐 앉았다. -주무시는 줄 알고. -잠이 오면 자려 했는데 잠이 안 오네. 민성은 아버지의 말에 대꾸를 하려다 말았다. 깜빡이를 켜지 않고 들어온 컨테이너 트럭 때문에 브레이크를 살짝 밟아야 했다. -그날 욱이가 전화를 했더라. 두 번. 벨이 울렸는데 안 받았다. 조금 피곤했거든. 그저 똑같은 전화거니 했다. 아무 생각 없이 말이다. 정말 아무 생각 없이. 아침에 일어나보니 부재중 전화가 세 통 더 와 있더라. 눈을 감은 채 민성의 아버지가 말했다. -그게 마음에 걸린다. 전조등 불빛을 보고 달려드는 날벌레들이 앞 유리창에 부딪혔다. 툭툭 터지는 소리가 났고 앞 유리창이 흐려졌다. 민성은 와이퍼를 움직여 유리창을 닦아냈지만 닦이지 않았다. 눈을 한 번 세게 깜빡이고 나서야 시야가 맑아졌다. -전화를 받으셨어도 할 수 있으신 게 없었을 겁니다. 그 전화가 그게 아니었을 수도 있고. 그저 항상 그랬듯 한 잔 마시고 횡설수설 늘어놓으려 했을 겁니다. 너무 마음에 두지 마십시오. -그래도, 후우. 너는? -예? -너한테는 전화 안 했더냐? 민성이 급하게 핸들을 꺾었다. 민성의 차가 흔들리며 2차선으로 들어섰다. -죄송합니다. 갑자기 앞이 안 보여서요. 방금 마주 오던 트럭이 상향등을 켰더라고요. 아버지, 방금 뭐라고 하셨습니까? 제가 잘 못 들었습니다. 끝 김강 소설가·내과의 김강(52)은 소설가인 동시에 내과의사고, 포항에서 ‘도서출판 득수’를 운영하는 출판사 대표이기도 하다. 2017년 단편 ‘우리 아빠’로 심훈문학대상을 받으며 등단했고, 단편집 ‘우리 언젠가 화성에 가겠지만’ ‘소비노동조합’을 썼다. 지난해엔 장편 ‘그래스프 리플렉스’를 펴내 문단과 독자들의 주목을 받았다.

2024-10-01

‘독도, 그리다’ (가제) ‘우리의 땅, 우리의 마음’

최홍배 국립한국해양대학교 국제관계학과 교수 독도를 둘러싼 한일 간의 마찰은 오래된 현안이다. 한편에서는 “이 작은 섬의 지위를 지우려 한다”고 말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더욱 뚜렷하게 그리려 한다”고 반박한다. 이 소모적 논쟁을 어떻게 끝낼 것인가? 전 국민이 함께하는 ‘독도 그리기‘ 캠페인이다..  특히 1900년 대한제국의 칙령 제41호에 기반 한 ’독도 칙령의 날’ 지정은 이 캠페인의 핵심 요소이다. 역사적으로 1900년 칙령(勅令) 41호는 독도를 명확히 우리 영토로 선언했다. 일본이 1905년 시마네현에 독도를 불법적으로 영토 편입한 것에 대한 명확한 반박이다.  ‘독도 그리기’ 캠페인은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독도가 한국의 고유영토임을 강조하며, 세계에 우리의 목소리를 전달한다. 고종황제가 1900년 10월 25일 칙령 41호를 재가한 이날을 국가기념일로 지정하는 것이다.  이는 우리 민족의 역사를 기리고, 일본의 잘못된 주장에 단호히 맞서는 행동이다. 이는 단순히 한 시대의 기념을 넘어서 한국의 독립과 주권을 상징하는 날로, 국민에게 독도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일깨우고 국제적으로도 한국의 입장을 분명히 밝히는 기회를 제공한다.  그러나 넘어야 할 산이 있다. ‘독도 그리기와 기념일’로 이 문제가 종국적으로 해결되는가? 아니다. 그럼에도 “왜 쓸데없이 긁어 부스럼을 일으키는 일”을 자초하는가? 일본의 국제 분쟁 화 술책에 빌미를 주는 하책이다.  따라서 ‘조용하면서 강력한 외교가 최선’이다. 북한 러시아에 맞서 한일 간에 안보협력을 해야 한다. 거시적 차원에서 국익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발상이라며 기념일 지정에 반대가 예상된다.  그렇다면 ‘독도 그리기’는 포기해야 하는가? 아니다. 독도가 한일 간의 정치 외교적 다툼을 넘어 자라나는 차세대들에 대한 교육 논쟁으로 비화한 지도 이미 오래되었다.  일본 문부성이 자국 청소년들에게 교과서를 통해 ‘독도는 일본 고유영토’라는 교육을 포기한다면 우리도 ‘독도 그리기’ 캠페인을 그만둘 수 있다. 이 캠페인을 통해 내부적으로 국민적 단합과 자긍심을 고취시킨다.  특히 젊은 세대에게 독도의 중요성을 교육함으로써 장기적인 인식 개선을 도모한다. 국제 사회에서 ‘독도 그리기’ 캠페인은 독도에 대한 일본의 역사적 왜곡과 영토 주장에 대한 명확한 반박으로 기능 하다.  그 이유는 첫째, 1900년 독도 칙령의 역사를 직접 거명함으로써, 2005년 일본 시마네현이 조례로 제정한 소위 ‘다케시마(독도)의 날’보다 100여 년 이상 훨씬 더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음을 알리는 직접적인 효과가 있다.  둘째, 1904년 러일전쟁 승리를 위한 한반도 침탈의 첫 희생물인 독도를 새로운 국제해양질서에 따른 일본의 해양국익을 위해 국제 영토분쟁 화를 도모하는 부당성을 알리는 효과가 있다.  우리가 국제적 지지를 얻으려면 국제회의와 외교 무대에서 독도에 관한 한국의 입장을 지속적으로 밝히고, 역사적 근거와 국제법을 기반으로 한 주장을 펼쳐야 한다.  ‘독도그리기’ 캠페인과 기념일 지정은 한국의 역사적 정체성을 확립하고, 국내외적으로 독도에 대한 정당한 주장을 강화하는 전략적 도구로 작용할 것이다.  이를 통해 한국은 국제적인 무대에서 더욱 강력하고 설득력 있는 목소리를 낼 수 있을 것이다. 역사적 진실에 중도는 없다. 일본의 신임 이시바 시게루(石破茂) 총리 체제에서 독도를 둘러싼 갈등을 평화적으로 해결되기를 바란다.  /최홍배 국립한국해양대학교 국제관계학과 교수

2024-10-01

윤석열과 이재명의 적대적 공생

김진국 고문 김건희 여사는 민주당 최고위원 회의 단골메뉴다. 27일 전현희 최고위원은 “윤석열 대통령이 후보 시절 손바닥에 ‘왕(王)’자를 써 무속 논란에 휩싸이자, 배우자가 구약성경을 다 외운다고 거짓말했다”라는 말을 꺼냈다. 이어서 그는 “당선 목적의 허위 사실 유포가 아니라고 주장하려면, 김 여사가 39권 929장, 2만3천145절 방대한 양의 구약성경을 외우는지 수사하라”고 요구했다. 그러자 이재명 대표는 “이런 거짓말은 죄가 안 되는 것”이라며 “제가 이런 얘기를 했다면 징역 5년쯤 구형받았을 것”이라고 빈정댔다. 이 대표는 지난 20일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1심 공판에서 검찰로부터 징역 2년을 구형받았다. 11월 15일 선고 예정이다. 이 대표가 재판받고 있는 7개 사건 4개 재판 가운데 가장 먼저 선고가 나온다. 이 대표뿐 아니라 민주당이 전전긍긍이다. 대법원에서 벌금 100만 원 이상형이 확정되면 이 대표는 의원직을 잃고, 피선거권이 박탈된다. 민주당은 지난 대선에서 보전받은 선거비용 434억 원을 토해내야 한다. 민주당은 사생결단이다. 이 대표 관련 사건을 수사한 검사들의 탄핵을 추진했다. 헌법재판소가 기각할 거라는 걸 민주당도 잘 안다. 그렇지만 그동안 검사는 직무가 정지되고, 수사도, 재판도 지연된다. 국회에 검사들을 불러 호통치고, 모욕한다. 검사도 사람이다. 흔들리지 않을 수 없다. 민주당은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했다. 그것도 모자라 ‘법 왜곡죄’ 입법을 추진한다. “검사 등이 피의자·피고인을 처벌하거나, 처벌받지 않도록 하기 위해, 증거 해석·법률 적용 등을 왜곡할 경우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라는 내용이다. 이 대표를 수사한 검사를 법 왜곡 혐의로 쫓아내고, 처벌하겠다는 위협이다. 법사위에 관련 증인들을 불러 추궁한다. 법원 역할까지 하겠다는 발상이다. 이 대표를 방탄하는 이런 피나는 노력에서 빠지지 않는 게 ‘김건희 여사’다. 27일 최고위원회의도 그 중 하나다. 여론에 잘 먹히기 때문이다. 김 여사 관련 의혹은 끝도 없다. 명품백 사건은 가장 비난받는다. 고위공직자가 부인을 통해 뇌물을 받으면 문제가 없느냐는 비아냥이 나온다.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도 있다. 2020년 수사가 시작될 때 이종호 전 블랙펄인베스트먼트 대표와 40여 차례 전화와 문자를 주고받은 기록이 나왔다. ‘선수’였던 김 모씨가 쓴 편지에 “김건희만 빠지고 우리만 달리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는 내용이 나왔다. 이종호 전 대표는 해병대 채 상병 사건에서 임성근 전 사단장 구명 로비를 했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김 여사가 개입해 사건이 꼬였다는 주장이다. 공천 개입 의혹도 있다. 김영선 전 의원과 브로커 역할을 한 명태균 씨의 통화에 김 여사가 나온다. 2022년 경남 창원 의창 보궐선거에 김 전 의원을 공천한 것도 김 여사라고 주장한다. 한동훈 대표와의 문자, 서울의 소리 기자와의 장시간 통화, 최재영 목사와의 문자 등을 생각하면 이런 문자나 통화가 언제 어디서 얼마나 터져 나올지 위태위태하다. 명품백처럼 명백히 드러난 사건에도 김 여사는 사과를 거부한다. 공개 활동을 재개했다. 괘씸죄까지 얹혔다. 민주당은 김 여사 관련 8가지 의혹을 특검 수사 대상에 올렸다. 당내에 TF·조사단을 꾸린다. 민주노총 등은 28일 전국 주요도시에서 ‘윤석열 정권 퇴진 시국대회’를 열었다. 이 대표에게 피선거권 박탈은 사형과도 같다. 최고의 방어막은 김 여사다. 마지막 카드는 ‘탄핵’이다. 어이없는 ‘계엄설’을 계속 주장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 대표가 윤 대통령 덕에 연명하듯, 윤 대통령도 이 대표 덕에 버틴다. 지난 주말 한국갤럽 여론조사에서 윤 대통령이 직무수행을 ‘잘하고 있다’는 응답은 23%에 불과하다. ‘잘못하고 있다’는 응답은 68%다. 보름 전 20%를 찍은 뒤 10%대로 떨어질 것을 우려했다. 그런데도 버틴다. 이 대표 덕이다. 적대적 공생이다. 발 벗고 뛰어도 모자랄 판에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범죄 혐의로 적대적 공생이라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4-09-29

세계적인 관광섬으로 도약하는 울릉군

남한권 울릉군수 ‘신비하다’라는 말이 있다. 일이나 현상 따위가 사람의 힘이나 지혜로는 이해할 수 없을 만큼 신기하고 묘하다는 뜻이다. 길이 2.6km의 행남해안산책로를 1시간 정도를 걸으면 ‘신비’라는 말이 저절로 떠오른다. 약 250만년 전 화산 폭발로 형성, 시간과 자연이 빚어낸 역작을 만끽할 울릉도 여행의 백미로 꼽힐만한 행남 해안산책로가 재개통 됐다. 행남 해안산책로는 독특한 지형과 아름다운 해안선, 그리고 청정 바다를 배경으로 환상적인 경관을 제공하는 울릉도의 대표적인 트레일 코스로 방문객에게 다채로운 볼거리를 선사해왔다. 방문객들에게 더욱 안전하고 쾌적한 환경을 제공하기 위해 낙석으로 인한 보수공사 및 안전점검 등 개선작업을 진행했다. 이번 재개통으로 울릉도를 찾는 관광객들에게 행남 산책로의 아름다운 비경을 제공하고 특히 가을을 맞아 트레킹을 목적으로 울릉도를 찾는 관광객들에게 걸으면 걸을수록 감탄사가 저절로 나오는 경험을 하게 된다. 울릉도는 지난 7월 27일부터 8월 25일까지 울릉도의 여름 해양 레저 체험을 활성화하고 울릉도의 특산물을 활용한 음식을 즐길 수 있는‘한여름날의 울캉스’행사를 개최했다. ‘한여름날의 울캉스’는 해양 레저 프로그램을 50% 할인된 금액으로 체험할 ‘울루랄라 해양레저 페스타’와 울릉도에서 자생하는 해산물을 음악과 함께 즐길 수 있는 ‘울루랄라 바다포차’ 프로그램이다. ‘한여름날의 울캉스’는 문화체육관광부 주관 K-관광섬 육성사업의 일환으로 공모를 통해 5개 섬을 선정, 4년동안 섬별로 100억원 상당을 투입했다. 세계인이 가고 싶은 관광명소, ‘K-관광섬’으로 육성, 휴양과 체험을 중시하는 여행추세에 맞춰 저밀도·청정 관광지인 섬에 관광과 K-컬쳐를 융합하고 지역 주민이 함께하여 매력적인 섬으로 특화하는 사업이다. 울릉도·흑산도 등 국토 외곽 먼섬 지원 특별법 제정에 따른 종합발전계획 수립 연구용역을 위한 업무협의를 했다. 특별법 제정에 따라 행정안전부에서 추진하는 이 용역은 2024년 5월부터 2025년 1월까지 진행되며 계획 수립을 위한 사업안 발굴과 재원조달 방안 등의 과제를 수행하고 있다. 용역 수행기관인 국토연구원과 한국 섬 진흥원은 울릉군을 방문해 울릉군 종합발전계획수립 TF팀을 만나 울릉군의 실정과 교통, 안전, 환경, 의료, 교육 등 다양한 분야의 주요 현안사항에 대해 청취하는 시간을 가졌다. 지역 해상여객운송사와의 간담회를 갖고 동절기 운행에 대한 애로사항과 여객선 입출항 항만 시설의 미비 등 고충사항을 들으며 먼섬 도서 지역에서 운항 중인 선사의 고질적인 문제에 대해 공감했다. 이에 울릉군은 실정에 맞는 분야별 사업 발굴을 위해 TF팀을 구성했다. 이를 통해 도출된 사업은 종합발전계획 안에 포함하고 예산 반영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노력한다는 입장이다. 제55회 울릉군민체육대회가 지난 5일 울릉공설운동장에서 개최됐다. 특히 이번 대회에서는 특별히 관외에 거주하는 5개 지역(서울, 대구, 포항, 울산, 구미) 향우회에서 연합팀을 구성하고 참가해 지역민들과 같이 교류하며 고향에 대한 애정을 보여줬다. 지난 9월 11일부터 이틀간 약 309㎜의 물폭탄이 쏟아졌지만, 민·관·군이 합심해 응급복구에 최선을 다했다. 이번 폭우는 시간당 최대 강수량 70mm가 넘는 폭우로써 46년 만에 처음으로 겪는 상황으로 산사태 및 사면 붕괴, 일주도로 토사유출, 도동시가지 구간 토사유출 등 많은 피해가 발생했다. 또한 울릉군은 추석을 앞두고 고향을 찾는 귀성객 및 황금연휴 울릉군을 찾는 관광객의 안전과 불편함을 최소화하기 위해 관내 가용한 장비를 최대한 투입 하고 12일부터 13일까지 각종단체 400여명을 투입하여 빠른 복구에 총력을 기울였다. 공직자 250여명은 휴일을 반납한 채 침수피해를 입은 숙박업소 및 상가복구에 구슬땀을 흘렸다. 특히 울릉군의 요청으로 경북 안전기동대가 1차 2차에 걸쳐 대원들을 급파하여 피해복구 지원에 힘을 보탰다. 추석연휴마저 반납하고 울릉군의 폭우 피해 복구를 지원하기 위해 구슬땀을 쏟았다. 민족의 섬 울릉도와 독도를 지키고자 하는 국민들의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다. 울릉도는 지금 천혜의 자연 관광자원을 보유한 해양관광지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정부와 각급 기관들도 울릉도 발전에 적극 나서주고 있다. 울릉도는 지금 울릉군민과 출향인들의 단합된 모습과 정부와 국민들의 사랑과 관심이 모아져 울릉도는 세계적인 관광섬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2024-09-29

노잣돈, 이만 원

이렇게 쓸쓸한 장례식은 처음이다. 그녀의 마지막 가는 길은 뼈만 남은 앙상한 몸만큼이나 초라했다. 구순의 친정아버지와 고등학생 아들, 그리고 우리 부부가 그녀를 배웅했다. 나는 그녀를 학부모로 만났다. 처음 아이를 학원에 데리고 오는 날, 그녀는 자신의 가정사를 이야기했다. 아이의 아버지가 다른 여인을 품으면서 그녀는 아이를 임신한 상태로 시댁에서 쫓겨나게 되었다. 가난한 친정으로 들어와서 팔삭둥이로 아이를 낳았다는 이야기를 깔깔대며 했다. 끄떡없이 잘 살 수 있다는 표현을 하는 것으로 나는 느꼈다. 한 달마다 닥쳐오는 아이의 학원비는 그녀에게 부담이었다. 그녀의 사정을 알았던 나는 반값으로 내려주었다. 그녀는 아이에 대해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거나 학교 선생님들에 대한 섭섭함이나 힘든 일이 있을 땐 늘 학원으로 찾아왔다. 나는 자연스럽게 그녀를 언니라고 부르며 많이 들어주려고 애를 썼다. 그런 그녀가 가슴에 멍울이 잡힌다고 덤덤하게 이야기했다. 그녀는 자신보다 아이와 연로한 부모님을 걱정했다. 힘겨운 치료 과정에서도 그녀는 스스로의 삶을 늘 응원했다. 그것도 잠시였다. 다시 찾은 병원에서 그녀는 재발이 되었다는 소리를 들었다. 뼈와 간, 폐까지 전이가 되었다고 했다. 손을 쓸 틈도 없이 그녀는 1년이라는 유효기간을 받아 들었다. 머릿속에 아는 단어가 모두 지워진 듯 아무런 말도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녀의 암덩어리는 피할 수 없는 연기처럼 순식간에 온 몸으로 퍼져갔다. 열이 나서 춥고 균형을 잡지 못해 넘어지면서 온 몸은 멍투성이가 되어 갔다. 그 시기에 나는 자궁 수술을 받다가 의료 사고로 대학 병원에 이송되었다. 30분의 골든타임을 살려 나는 위험에서 벗어났다. 못 볼 수도 있었다는 생각에 많은 사람들이 병원을 다녀갔다. 하지만 그녀의 방문은 의외였다. 나를 보며 그녀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며 더 크게 울어대기 시작했다. 그녀의 몸은 덜덜 떨리고 있었다. 꽃샘추위로 바깥 날씨가 예사롭지 않았을 텐데 그녀는 자신의 몸도 제대로 못 가누면서 버스로 한 시간이나 걸리는 이 곳을 찾아왔다. 살이라고는 없는 앙상한 그녀는 은사시 떨듯 하염없이 떨었다. 한 걸음 한 걸음 힘겹게 온 그녀를 보고 나도 울었다. 10분 후 그녀는 일어섰다. 태워 주겠다는 남편의 제의를 마다했다. 택시라도 태워 주겠다는 말에도 화를 냈다. 혼자서 갈 수 있다며 돌아서면서 무조건 받으라며 봉투를 하나 내밀었다. 손사래를 치는 우리에게 ‘내 마음이니 받아 주세요’ 하며 돌아섰다. 봉투를 열었다. 속에는 그녀의 지갑 속에서 얼마나 오랜 시간 접혀 있었던지 칼처럼 날카롭고 공기라곤 느낄 수 없이 납작하고 빳빳한 만 원짜리 두 개가 2번 접혀 있었다. 형편이 어려웠던 그녀가 아끼고 아끼며 차마 쓰지 못했던 돈이 아니었을까 생각하니 기꺼이 내어준 그녀의 마음이 뜨겁게 다가와 견딜 수가 없었다. 누구에게는 커피 두 잔으로 써 버릴 작은 금액일 수 있겠으나 그녀에게는 너무나 큰 금액이었다. 한 달 만에 나는 퇴원을 했고 조금씩 회복이 되었다. 하지만 그녀의 건강은 날로 악화되었다. 걱정이 되어 그녀의 현관문을 두드리려 하면 두려움이 먼저 다가왔다. 혹시나 하는 마음이 내 발걸음을 자꾸 밀어냈다. 그녀는 점점 나를 알아보지 못했다. 전화가 왔다. 그녀의 아버지였다. 떨리지도 않는 담담한 목소리였다. “가뿟심더” 김경아 작가 병원에는 아무도 없었다. 빈소도 없었다. 올 사람도 없다며 할아버지는 입관 후 다음 날 바로 발인을 했다. 절차와 행정적인 부분을 할 수 없었던 할아버지를 대신해 나는 분주했다. 입관에는 할아버지와 아들, 교회 목사님과 내가 함께 했다. 가족이라고는 한 명도 오지 않았다. 무슨 사연이 있는지 깊이 알 수는 없었지만 그녀의 마지막 길은 외로웠다. 수의를 입고 있는 그녀는 편안한 표정이었다. 말이 없던 아들은 어깨만 들썩일 뿐 제 엄마의 주검 앞에서 목 내어 울지도 못했다. 나는 그녀가 가는 길에 노잣돈으로 차마 쓸 수 없었던 이만 원을 함께 보냈다. 저 세상에서 그녀는 또 누군가에게 자신의 따뜻한 마음을 나눠주며 살 것이라 믿었다. 납골당에 그녀를 두고 돌아서는데 할아버지가 내 손을 잡았다. “선생님 덕분에 우리 애미가 행복했다 카대요. 유일하게 인간 대접 해 준 사람이라 카면서 고맙다고 꼭 전해주라 하대요. 고맙심더” 그녀의 환한 웃음이 떠올라 자꾸만 눈이 시려왔다. 하늘을 올려다보며 넓고 넓은 이만 원의 크기만큼 그녀의 가족들을 돌보겠노라 약속을 했다.

2024-09-29

마약범죄 급증… 사회전체가 감시자 돼야

지난해 대구경북(TK)에서 검거된 마약사범이 1467명으로 10년 전과 비교해 3배나 증가한 것으로 밝혀졌다. 경찰청이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대구는 2013년 246명에서 2023년 743명으로, 경북은 2013년 249명에서 2023년 723명으로 늘었다. 10년 동안 TK지역에서 검거된 마약사범은 대구 4364명, 경북 4478명으로 총 8842명이다. 전국적으로도 같은 기간 검거된 마약사범 수가 2013년 5459명에서 2023년 1만7817명으로 3.3배나 증가했다. 문제는 10대 마약사범 증가속도가 심상치 않다는 점이다. 지난해 전국에서 검거된 마약사범 중 10대는 1066명으로 2022년 294명보다 3.6배 많았다. 마약 재범률이 40%가 넘는 점을 감안하면 10대 마약범죄가 시간이 지나면 눈덩이처럼 커질 수 있다. 10대 마약사범이 급증하는 이유는 가벼운 처벌 탓이 크다. 국민의힘 김승수 의원(대구 북구을)은 “2023년 마약류 범죄를 분석했더니 미미한 처벌 수위와 수사 인력 부족이 10대 마약사범 증가의 주요 원인으로 꼽혔다”고 했다. 최근 3년간 마약류 사범 1심 판결 현황을 보면 벌금·집행유예·1년 미만 등 솜방망이 처벌에 그친 사례가 60%에 육박한다는 것이다. 마약유통망을 끊어내려면 공급책을 적발해 엄중 처벌하는 것이 우선돼야 하는데, 전국 경찰서 중 마약 대응 전담팀을 갖춘 곳이 23곳에 불과한 것도 큰 문제다. 검찰이 최근 청소년에게 마약을 공급하는 범죄자에 대해 최고 사형까지 구형하겠다고 했지만, 온라인을 통한 마약거래는 독버섯처럼 번지고 있다. SNS에 익숙한 청소년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쉽게 구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크웹이나 텔레그램 대화방을 통해 가상화폐로 구입한 뒤, 국제택배로 전달받으면 추적이 안된다. 마약은 중독성이 높아 한 번 접하면 끊기 어렵다. 전 연령층으로 급속하게 번져가는 마약범죄를 근절하려면 사회 구성원 모두가 내 가족을 보호한다는 마음으로 퇴치운동에 나서야 한다.

2024-09-29

대구경북 철도 르네상스, 상생 발전 돌파구로

올 연말까지 대구경북지역에는 동해중부선 등 5개 철도노선이 새롭게 개통되면서 철도 교통망의 지각 대변동이 시작된다고 한다. 대구와 경북을 통과하는 5개의 신설 철도노선은 중부내륙선(문경-경기 이천), 중앙선(충북 단양 도담-영천), 동해중부선(포항-강원 삼척) 등 일반철도 3개 노선과 대구권광역철도(구미-대구-경산), 대구도시철도 1호선 연장(안심-하양) 등 광역철도 2개 노선이다. 이번 철도가 개통되면 오지지역으로 여겨졌던 경북 내륙지역의 교통에 혁명이 일어나게 되고 대구와 인접한 구미 등 8개 지역이 1시간대 생활권에 놓이게 된다. 특히 대구권은 출퇴근 인구의 증가와 경제적 교류 활성화 등으로 대구와 경북은 실질적인 하나의 생활권을 형성하고, 그에 따른 시도민의 생활에도 큰 변화가 일 것으로 예상이 된다. KTX 소외지역이었던 의성, 군위 등 경북 내륙지역은 KTX 수혜지역으로 바뀌게 되고 문경에서 1시간 30분이면 수도권 진입도 가능하게 된다. 또 철도망 연계를 통해 안동에서 울산. 부산 등 동남권으로 접근성도 크게 개선된다. 철도는 경제성장을 이끄는 산업화의 역군이자 국토균형발전을 이루는 대동맥 역할을 한다. 경제, 사회, 문화 등 생활 전반에 영향을 끼쳐 인구유입과 관광 활성화, 산업경쟁력 제고, 일자리 창출 등의 효과를 생산하게 된다. 이런 점을 감안할 때 이번에 개통되는 대구경북 철도망도 상당한 사회경제적 효과를 안겨줄 것으로 짐작이 된다. 이를 어떻게 효과적으로 수용하느냐 하는 것은 대구경북의 몫이다. 시도는 광역철도의 효율적 운영을 위한 정책개발에 나서야 한다. 철도망의 개통이 지역경제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노선별이나 차별화된 역세권 개발 계획도 미리 준비해야 한다. 대구시와 경북도의 행정통합 논의가 아직 진척을 보지못했으나 대구와 경북을 잇는 교통망이 지금보다 더 발전한다면 행정통합의 필요성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철도노선의 지각변동을 계기로 행정통합을 포함해 대구와 경북이 상생 발전하는 논의에 더 집중해야 한다.

2024-09-29

포퓰리즘에 갇힌 군수 선거

우정구 논설위원 정치가 경제를 망친 사례는 얼마든지 있다. 특히 선거를 통해 공약한 선심성 정책이 경제의 발목을 잡는 경우는 허다하다. 유권자의 선택에 국가의 흥망이 갈릴 수 있다는 말이 그냥 나온 게 아니다. 우리가 유능한 정치인을 뽑아야 할 이유도 이런 데 있다. “바보야 경제가 문제야”라고 말한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은 이 구호 덕분에 대통령에 당선됐다는 얘기가 있다. 공교롭게도 미국 현대사에 등장한 대통령 가운데 재선에 성공하지 못한 대통령의 공통점이 경제 침체기와 재임 기간이 일치한다는 사실이다. 세상은 경제를 중심으로 돌아가고 경제가 잘 돌아가면 정치도 문제가 될게 별로 없다. 대중영합주의로 통하는 포퓰리즘도 따져보면 유권자를 경제적으로 윤택하게 하겠다는 생각에서 출발한 정치다. 그것이 경제적 순리에 부응하지 않고 빚을 내거나 무리한 재정을 동원함으로써 경제를 파탄에 이르게 한 것이 문제다. 다음 달 실시될 전남 영광군과 곡성군의 기초단체장 재선거를 앞두고 민주당과 조국혁신당이 후보간 경쟁을 벌이면서 현금성 공약을 남발하고 있다. 두 당은 자당 후보가 군수로 당선되면 군민 모두에게 100만원이 넘는 기본소득 지급을 약속했다. 두 지역은 알다시피 전국 229개 기초자치단체 중 재정자립도가 하위권에 속하는 곳이다. 중앙정부의 지원 없이는 자체 공무원 월급도 제대로 못줄 형편이다. 19세기 초 태동한 포퓰리즘으로 남미와 남유럽 국가들이 경제적으로 몰락하는 과정을 역사가 입증한다. 포퓰리즘 경쟁의 끝은 국가경제 몰락으로 귀결된다는 것을 정치는 반면교사할 필요가 있다. /우정구(논설위원)

2024-09-29

노인과 인문학

김규종 경북대 명예교수 지난주 화요일 오전에 대구 수성구에 있는 ‘대한 노인회’에서 ‘노자의 도덕경에서 배우는 인생의 지혜’를 주제로 강연했다. 대략 70명 정도의 노인들이 강의실에 모여서 선행 프로그램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추석이 지났건만 아침 햇살은 매우 강렬하여 에어컨이 쌩쌩 돌아가고 있었고, 들고나는 노인들 때문에 분위기는 적잖게 산만했다. 강사 소개가 끝나고 그들과 정면으로 대면하면서 준비해간 강연 자료가 유용하지 않을 것이란 생각에 잠긴다. ‘가능하면 최대한 쉽고 재미있게’ 해달라는 요청을 받고 갔지만, 실제로 면대면을 해보니 훨씬 실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16년 이상의 대중강연 경력 덕분에 예정된 강연 자료를 즉각 폐기하고 현장 분위기에 적절한 강연을 하는 것은 내겐 문제가 아니다. 가능하면 그들 하나하나 들여다보면서 강연에 대한 교감을 확인하면서 천천히 열기를 끌어올리기로 한다. 그런데 어디서든 예기치 않은 사건은 일어나기 마련. 맨 뒷자리에 앉은 할머니 두 분이 끝없이 떠드는 바람에 집중력이 자꾸 떨어지고, 인내력은 바닥으로 내려간다. 청중 몇 분이 그들에게 대놓고 눈치를 해도 그들은 오불관언(吾不關焉)이다. 나는 최대한 참기로 하고 한 가지 질문을 한다. “여러분 가운데 나는 행복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분은 손을 드세요.” 강연 중간에 예닐곱 사람이 나갔기 때문에 60여 청중이 자리에 남아 있었다. 그런데 내 눈을 의심하게 만드는 일이 벌어진다. 딱 한 사람만 손을 들었기 때문이다. 아니, 이럴 수가 있단 말인가?! 잘산다는 사람들이 많이 산다는 대구의 강남(江南)인데?…. 그래서 행복하지 않은 까닭을 묻는다. 그랬더니 자신을 용서할 수 없다는 분도 있고, 산다는 것이 고통으로만 생각된다는 사람도 있다. 대한민국 노인들의 행복 지수가 세계 최저 수준이란 통계는 있지만, 이토록 처절할 줄은 정말 몰랐다. 더욱이 다른 지역에서 무척이나 부러워하는 동네에 사는 노인들의 분노와 슬픔과 절망이 이렇게 깊을 줄이야!…. 만족할 줄 알면 욕됨이 없고, 그칠 줄 알면 위태롭지 않아서 오래갈 수 있다고 노자는 갈파했다. 도덕경 44장에 나오는 “지족불욕(知足不辱) 지지불태(知止不殆) 가이장구(可以長久)”라는 구절이 위 문장의 출처(出處)다. 만족할 줄 안다는 것은 성숙한 인간의 기본적인 표지(標識)다. 적정 수준에서 자신의 욕망을 제어할 수 있다는 것은 어른의 징표이기 때문이다. 나이 오십이 넘어지면, 인간은 과거의 어두운 기억과 부모의 억압 기제에서 자신을 해방해야 할 의무가 있다. 부모가 강제하고 요구한 덕목과 인생 목표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얘기다. 하지만 상당수 중장년은 물론 노인들마저 여전히 그들 부모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게다. 그것이 그들 자신에 관한 부정적인 평가와 모멸감의 첫 번째 원인으로 작용한다. 나는 노인들을 위로하고, 가능성을 설명하고, 최대한의 긍정과 자기 확신을 설득한다. 하지만 두 노파는 여전히 웃고 떠들고 있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말은 명언이다. 나이만 많은 부끄러운 노인들이다. 하되 인문학과 담을 쌓고 살아가는 그들에게도 축복이 있기를!….

2024-09-29

정치인의 토론에서 무엇을 배울까

유영희 작가 지난 24일 1069회차 ‘100분 토론’ 주제는 “‘영부인 리스크’… 그 끝은?”이었다. 이번 방송에는 강승규, 홍석준 국민의힘 의원 두 명과 박균택 더불어민주당 의원, 신장식 조국혁신당 의원이 패널로 나왔다. 토론은 김건희 여사의 공천 개입의 진실, 명태균 수사 필요성, 김건희 여사 주가 조작 기소, 특검법 통과, 마지막이 영부인 리스크 대처 방안이다. 사실 토론 방송을 보려면 상당한 인내심이 필요하다. 패널들의 비신사적인 토론 태도를 보면 분노 게이지가 올라가기 때문이다. 이번 토론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처음에는 각자의 입장을 밝히는 시간이라 그런지 차분하게 발언하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난투 상황이 벌어졌다. 김건희 여사와 명태균 씨의 텔레그램 소통이 공천 개입의 증거냐 아니냐 하는 대목에서 갑론을박이라고 할 수 없는 어지러운 입씨름이 벌어진 것이다. 김건희 여사의 주가 조작 기소 문제에서는 토론의 질이 더욱 떨어졌다. 특히 강승규 의원은 사실관계 확인을 제대로 하지 않은 발언은 물론, 상식에 맞지 않는 논리도 폈다. 예를 들면, 김건희 여사의 주가 조작 사건 관련은 결혼 전이었다고 한다든지, 주가 조작 사건에서 이익을 보았다고 해서 주가 조작을 직접 했다는 증거는 안 된다고 하는 식이다. 게다가 지난 추석에 직무 관련이 없으면 김건희 여사에게 300만 원까지 선물해도 된다고 국민권익위원회가 답변한 것을 두고 신장식 의원이 비판할 때 강승규 의원이 갑자기 중간에 끼어들어 엉뚱하게 공작이라고 소리 지르며 흐름을 깬 것은 정말 큰 실수였다. 결국 사회자한테 발언권을 박탈하겠다는 경고를 받고서야 말을 줄였다. 이제 토론 막바지에 이르러 ‘영부인 리스크, 어떻게 대처할까?’에서 강승규, 홍석준 두 의원은 영부인 리스크 자체가 없다만 반복하고, 박태균 의원은 사죄하고 민생에 집중하라, 신장식 의원은 사람 가려서 등용하라고 한다. 국민의힘 두 의원의 불통도 답답하지만, 두 야당 의원은 왜 실현 가능성이 전혀 없는 대안을 제시하는지 당황스러웠다. 대학생 토론을 지도하기도 했고, 청소년부터 대학생까지 토론대회 심사도 여러 번 했기 때문에 토론의 룰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아는 편이다. 그런 경력이 없더라도 토론할 때는 상대방의 말을 잘 경청해야 하고, 중간에 말을 끊거나 개입하면 안 된다는 것은 보통의 상식을 가진 시민이라면 누구라도 아는 것이다. 이런 상황이 벌어진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토론 주제가 잘못 정해졌기 때문이다. 토론은 본래 찬반으로 나눠질 수 있는 형식으로 제시해야 한다. 그런데 ‘그 끝은?’이라는 말은 의미도 분명하지 않고 부정적 뉘앙스를 풍긴다. 무엇보다 찬반으로 나눌 수 없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이다. 처음부터 ‘영부인 리스크, 어떻게 대처할까?’로 했다면, 국민의힘 두 의원이 끝까지 리스크는 없다를 외치지 못했을 것이다. 더 근본적으로 ‘영부인의 행보는 리스크인가’로 하는 것도 좋다. 이렇게 해도 충분히 의미 있는 결과가 나올 수 있을 것이다. 성숙한 정치 토론을 보고 싶다.

2024-09-29

혁신 현장을 가다, 폴란드 PWPC

장광일 포스코 인재창조원 교수·컨설턴트 PWPC 법인은 고급 철강재 가공센터로 2007년에 동유럽 심장부인 폴란드 브로츠와프 인근에 준공해 LG전자, 삼성전자 등 한국 기업에 LCD 모듈을 핵심으로 공급하고 있다. 필자는 이 법인을 2010년에 매달 1주일씩 혁신 활동을 전파했다. 폴란드 수도 바르샤바에서 300Km 서쪽으로 떨어져 있는 폴란드 제4의 도시인 브로츠와프는 유럽 특유의 오래된 아름다운 건축물과 막달라마리아 대성당 등 역사와 전통이 있는 도시이다. 또한, 한국 가전 기업이 들어와 대규모 산업 클러스터(Cluster)를 만들어 가동하고 있다. 이 법인에 유럽의 혁신 벤치마킹 명소인 ‘혁신메카’를 만들고자 힘을 쏟았고, 우선 혁신을 이끌 개선리더를 선발하였다. 초기부터 입사해 경력을 쌓아온 베테랑 직원을 중심으로 8명의 1기 개선리더를 선발했고, 변화관리 교육부터 시작하였다. 그런데 처음부터 추진 발목이 잡히고 말았다. 낯선 혁신구호 연습을 시키자니 직원의 거부감이 대단했다. 일단 제스처가 우스꽝스러운 것도 부담스러운데 구호를 외칠 때 손을 들어 파이팅을 외치는 모습에서 히틀러 시절 전쟁의 아픔이 연상된다는 것이었다. 강의가 한참 무르익은 오후 4시에 모두 일어나 퇴근을 하는 것이 아닌가. 퇴근 시간이 4시인 걸 모른 것은 강사의 잘못이지만, 말도 없이 일어나 집으로 가는 광경에서 어안이 벙벙하였다. 또한, 다음 날 소통을 위해서 저녁 회식을 잡았는데 모두 가족에게 전화를 걸어 허락을 구했고, 그중 반은 허락이 안 되어 회식에 참여하지 못했다. 그 순간 “잘 안되면 어떻게 하지?”라는 불안함이 앞섰고, 이는 몇 달간 현실로 다가왔다. 결국에는 그곳에 직원들의 존경을 받는 송 공장장의 도움으로 명소 만들기에 성공할 수 있었다. 그곳 공장장에게는 가르치고, 지시하는 컨설턴트와는 다르게 직원 한 명을 케어하고, 소통하는 남다른 능력이 있었다. “혁신 컨설턴트 고생하는 거 안보입니까. 그까짓 거 한번 제대로 해 봅시다. 리더가 솔선수범하지 않는데 뭐가 되겠습니까. 나부터 할 테니 따라와 주세요”라고 열정적으로 말씀하시는 모습에서 필자는 느끼는 게 많았다. 한국인 공장장이 유럽 직원과 일과 혁신을 잘하는 것에 대해 정리해 본 바 첫째 그 역사와 문화를 존중해 주었다. 그 나라의 문화를 미리 학습하고 이해한 다음, 그들에게 자부심과 긍지를 심어주는 것이 남달랐다. 둘째 상호 협력하며 직원들과 신뢰가 두터웠다. “협력은 신뢰를 바탕으로 이루어지며, 신뢰는 시간과 일관된 행동을 통해서만 자라난다”라는스티븐 고비의 말처럼 신뢰를 쌓아온 시간이 길었고, 신뢰는 상호 협력의 바탕이 됐다는 걸 알았다. 셋째 시작과 끝을 명확히 하였다. 일을 시작할 때는 무엇을 해야 할지 목표가 선명했고, 완료 후에는 성과공유회를 통해 팀원 누구나 알 수 있도록 했다. 강압적인 지시보다는 그 문화를 존중하고 이해하며, 함께 협력하는 리더십으로 성공 모델을 만든 송 공장장과 같은 인재가 세계적으로 퍼져 나가길 기대해 본다.

2024-09-29

가을의 서가(書架)

김병래수필가·시조시인 늦도록 기승을 부리던 더위는 세찬 비바람에 쫓겨 가고 이제는 쾌청하고 삽상한 가을 날씨다. 창을 열고 멀리 내다보다가 문득 등화가친이란 말이 떠올라 서가에 꽂힌 책들을 훑어본다.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운 서가의 중앙 하단에는 동아출판사에서 발행한 세계대백과사전이 무게중심을 잡고 있다. 휴대전화기로 거의 모든 지식과 정보의 검색이 가능한 지금은 별로 쓸모가 없어졌지만, 당시에는 세상의 온갖 지식을 망라한 엄청난 보고(寶庫)였다. 그 밖에도 월부로 산 전집으로는 세계고전문학, 세계현대문학, 한국현대문학, 한국고전문학, 세계사상전집, 한국사상전집, 세계역사, 한국사대계 등이고 문학·종교·과학·예술 관련 단행본들은 수시로 서점에 가서 구입한 것들이다. 내가 산 책들은 버리지를 못한다. 쪼들리는 살림에 그야말로 안 먹고 안 입고 구입한 것들이라 살과 피를 나눈 분신과 같기 때문이다. 아파트로 이사를 할 때 책 짐이 너무 많아 큰 맘 먹고 몇 십 년 쌓인 문예지들은 버리기로 했다. 따로 내놓다가 무심코 그 중 한 권을 펼쳐보는데 울컥 뜨거운 것이 치밀었다. 오십 년도 넘은 세월에 누렇게 변색이 된 책장의 군데군데 그어진 밑줄을 보노라니 마치 내가 걸어온 발자취를 보는 것 같은 감회가 밀려온 것이다. 한 달에 한 번은 문예지를 사러 버스를 타고 시내 서점으로 가곤 했다. 물론 간 김에 두어 시간 서점 곳곳을 둘러보는 것도 빼놓지 않았다.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아 사고 싶어도 살 수 없는 책은 선 채로 대충이라도 훑어보았다. ‘현대문학’과 ‘문학사상’ 같은 문예지는 거르지 않고 구입을 했지만, 시전문지와 계간지들은 내용과 형편에 따라 선택을 했다. 결국 나는 그 문예지들을 차마 버리지 못하고 아파트로 가져와서 베란다에 쌓아 두었다. 먼지를 뒤집어쓰고 서가에 꽂혀 있는 책들은 내 인생 여정의 길라잡이였다. 몸은 비록 고향을 떠나지 못한 붙박이지만, 동서고금을 두루 누비고 다닐 수 있었던 마음의 행로는 그 책들을 통해서였다. 하지만 그래서 내가 얻은 것이 무엇이고 도달한 곳이 어디냐고 묻는다면 나는 그저 빈손을 내 보일 수밖에 없다. 흔히들 책을 많이 읽으면 지식으로 가득 채워져서 모르는 것이 없을 거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은 그 반대다. 공자도 소크라테스도 자신이 무얼 모르는지를 아는 것이 참으로 아는 것이라고 했듯이 독서는 할수록 자신이 모르는 게 너무 많다는 걸 깨닫게 될 뿐이다. 동서고금의 모든 지식과 사상의 체계를 한 번 섭렵해보자는 것이 독서의 목표였지만, 그것이 얼마나 무모한 생각이었는지를 깨닫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 무수한 문호·철학자·예술인 중 단 한사람의 연구에 평생을 보내는 학자들도 허다한데 내가 무슨 재주로 그 모두를 섭렵한단 말인가. 주마간산으로 일별하는 것만도 사뭇 벅찬 일이었다. 그나마 독서로 얻은 것이 있다면 섣불리 편견이나 독단에 치우치지 않고, 세상이 기울어졌을 때 그것을 알아차리는 균형감각을 갖게 된 것이랄까. 남은 여정도 이 서가의 책들이 길동무가 되어 줄 것이다.

2024-09-26

바다환경 지킴이가 되자

윤영대 전 포항대 교수 태풍이 열대성 저기압으로 되어 우리나라 남부를 휩쓸고 지나간 후, 바닷가를 걷다 보면 많은 해양 쓰레기들이 쌓여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어저께 밤에도 선선해진 바람을 맞으며 영일대 해수욕장을 걸었는데, 파도가 모래밭 끝까지 갈 듯이 밀려오면서 까만 해조류 뭉치들을 흩어놓고 있었다. 그것들을 피하고 걸으면서 ‘저걸 누가 어떻게 치우지?’하고 걱정했는데 다음 날 보면 해변은 말끔히 치워져 깨끗했다. 밤에는 해양쓰레기를 일일이 살펴볼 수 없지만 주로 해조류(海藻類) 무더기이고, 다음 날은 또 색깔이 다르다. 플라스틱 병과 어구 그물도 섞여 있고 나무토막도 보인다. 해조류들을 뒤적이며 줍고 있는 아주머니에게 물어보니 초록색은 파래이고 까만 것은 미역이나 모자반이며 누른 것은 꼬시래기라고 하며, 자기는 주로 청각을 고르고 있는데 살짝 데쳐서 초고추장에 찍어먹으면 맛있다고 일러주기도 한다. 다음 날 아침 일찍 걷기운동 준비를 하여 바닷가로 나갔다. 얕게 깔린 구름 사이로 9월의 맑은 햇살이 뚫고 나오는데 예상외로 많은 사람들이 모래밭을 걷고 있었고, 하얀 모래밭에는 검은 무더기들이 길게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먼저 눈에 띄는 곳으로 갔더니 고둥과 조개 껍질이 무더기로 깔려있어 쓰레기라기보다는 예쁜 장난감처럼 보여서 몇 개 주웠다. 굴 껍데기가 몇 개씩 붙어있어 인공 작품 같은 것도 보이고 동글동글한 연한 갈색 고둥도 예쁘고 까만 키조개는 내 손바닥보다 크다. 죽어서 바다 밑에 있다가 조류에 쓸려온 것이다. 지나가며 ‘살아있습니까’라고 묻는 사람도 있다. 무더기가 큰 곳에는 수십 명의 사람들이 단복을 입고 쇠스랑 갈퀴 등을 가지고 쌓여있는 쓰레기들을 긁어모으고 있었고 트랙터가 다시 그것들을 한곳으로 옮기고 있었다. 참 고마운 분들이 봉사활동 하시는구나 하고 물어보니 두호동과 중앙동에서 일하러 나왔다고 한다. 아마 해양 환경미화원인 ‘바다 환경 지킴이’인 것 같다. 2팀 20여 명이 열심히 모래밭을 청소하고 있었다. 30여 년 전 대학에 있을 때, 당시 북부 해수욕장을 자주 지나면서 보니 쓰레기가 많이 보였던 터라 매주 한 번 정도 학생들을 동원해서 쓰레기를 줍게 했던 기억이 난다. 요즈음은 플러깅(plugging)이라 해서 운동 삼아 쓰레기를 줍는 활동을 하곤 하는데, 몸을 구부렸다 펴거나 쪼그리고 앉았다 일어나는 작업이라 일석이조의 효과이니 홍보가 많이 되었으면 한다. ‘반려해변’ 활동도 점차 늘어나고 있다는데 기업, 단체, 학교 등이 특정 해변을 맡아서 반려동물처럼 키우고 돌보는 ‘해양 입양’ 프로그램으로 1986년 미국 텍사스주에서 처음 시행하여 세계적으로 번지고 있다.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약 1만5000km 해변을 가진 우리나라에는 꼭 필요한 일일 것 같고 2년 전부터 80여 개 기관이 60여 개 해변을 맡아 자연보호운동을 하고 있다고 한다. 해양 쓰레기도 연간 14.5만 톤 이상이고 83%가 플라스틱이며 이로 인한 해양 사고도 매년 5백 건 이상이라 하니 각 지자체에서도 적극 추진해야 일이지만 민간 활동으로 해안을 지키자는 바다 환경 지킴이의 의식도 확대되었으면 한다.

2024-09-26

청소년에게 핫한 전자담배, 강력한 규제 필요

포항시내 한 슈퍼마켓에서 본지 기자가 고등학교 교복을 입고 전자담배를 샀더니 가게주인이 신분증 요구없이 담배를 건넸다는 기사를 보면서 충격을 받았다. 우리사회가 10대 청소년이 거리낌없이 담배를 살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 것이다. 기자가 24시 무인매장에도 들러 자판기에서 전자담배를 구매했더니, 본인 대조 절차 없이 타인 신분증으로도 충분히 살 수 있었다고 한다. 전자담배 구입이 이처럼 쉬워지니 청소년 흡연인구가 늘 수밖에 없다. 질병관리청 자료를 보면, 청소년(중1∼고3)들의 액상형 전자담배 흡연율이 2020년 1.9%에서 지난해 3.1%로 증가했다. 액상형 전자담배로 흡연을 시작한 청소년의 60%정도는 현재 궐련담배(일반담배)를 피운다는 통계가 있다. 액상형 전자담배는 과일 향을 첨가해 담배 특유의 냄새가 나지 않고, 다양한 디자인으로 만들어지기 때문에 부모들도 적발하기가 쉽지 않다. 담배사업법상 연초 잎이 들어간 담배는 온·오프라인 판매가 금지되지만, 액상형 전자담배는 ‘공산품’으로 분류돼 어디서든 판매할 수 있다. 해외에서는 최근 청소년에게 액상형 전자담배를 판매하는 것을 강력하게 단속하는 추세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온·오프라인에서 광고판촉을 해도 아무 제약을 받지 않기 때문에 청소년에게 무방비로 노출되고 있다. 이성규 한국담배규제연구교육센터장이 최근 조선일보 금연정책 콘퍼런스에서 “담배사업법상 담배정의를 모든 종류의 니코틴 포함 제품으로 개정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한 말에 공감이 간다. 액상형 전자담배 판매를 법적으로 규제하지 않고 현 상태로 두면 청소년 흡연인구는 급증할 수밖에 없다. 일반 담배처럼 액상형 전자담배도 상습 흡연하면 중독위험이 크고, 폐암을 비롯한 다양한 암의 발병 원인이 된다. 지난 6월에는 일주일에 액상 전자담배 4000개를 피워 폐절제술을 받은 영국 10대 소녀가 얼굴이 파랗게 변하고 심장마비 직전까지 갔다는 사연이 보도된 적도 있었다. 액상형 전자담배에 대한 사회적 경계심이 필요한 때다.

2024-09-26

저출산 문제 해결 앞장서는 기업문화 조성을

윤석열 대통령은 제4차 인구비상대책회의에 참석해 “일·가정 양립에 앞장서는 우수 중소기업에 대해 세제 혜택을 검토하고 국세 세무조사 유예와 같은 방안도 강구하겠다”고 밝혔다. “정책자금과 입찰사업 우대 등 기업이 체감할 수 있는 인센티브를 마련하겠다”고도 했다. 국가적 과제가 된 저출산 문제 해결에는 기업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그동안 정부가 엄청난 예산을 들여 저출산 대책을 펼쳤으나 실효적 성과를 못낸 이유 중 하나는 기업의 동참이 부족한 탓도 있다. 맞벌이 부부가 대세인 시대에 가임부부 대부분이 직장에서 일하고 있어 그들에 맞는 정책개발은 필수다. 물론 출산휴가나 남편이 아내의 출산과 육아를 돕는 배우자 출산휴가 등이 실시되나 기업이 앞장서는 출산문화 조성은 아직 미흡한 데가 많다. 특히 인력이 부족한 중소기업에서는 출산에 따른 휴가조차도 직장의 눈치를 보는 경우가 허다하다. 대기업과는 분위기가 다르다. 대통령이 밝힌 세제지원 대책이 기업에게 얼마나 먹혀들지 알 수 없으나 출산기피 현상에 대한 원인을 제대로 파악해 처방하는 노력은 지속돼야 한다. 출산의 문제는 경제, 사회, 복지 등 국가 모든 정책의 중심에서 출발해 사회 전체를 가족친화적 문화로 승화 발전시켜야 한다. 윤 대통령의 말대로 출산과 육아가 행복한 경험이 되도록 사회 분위기를 조성해 나가야 하는 것이다. 지난 7월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우리나라 혼인과 출생아 수가 깜짝 증가했다. 저출산 고민에 빠져있던 우리에게 매우 고무적 변화란 점에서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코로나19 이후 미뤄졌던 결혼이 증가한 것 등이 반영된 결과여서 섣불리 판단할 일은 아니다. 통계청 장래인구 추계에 의하면 2072년에는 국내 인구의 47.7%가 65세 이상 고령인구로 추정된다고 한다. 암울한 예측이지만 지금부터라도 적극적으로 대응해 나가야 한다. 기업이 저출산 문제 해결에 앞장서는 문화 조성은 효과 측면에서 기대해 볼만하다. 중소기업에 근무하는 직장인이 일과 가정이 양립하는 워라밸 문화에 만족할 수 있도록 정부의 정책 개발 노력이 지속돼야 한다.

2024-09-26

기후 위기와 지각 단풍

우정구 논설위원 가을에 접어들어 기온이 낮아지면 나무는 녹색 색소인 엽록소를 분해해 체내에 보관한다. 물과 영양소를 체내로 흡수하면서 다가올 월동준비를 하는 과정이다. 대신에 물이 공급되지 않는 잎에는 남아 있던 안토시아닌과 같은 색소가 바깥으로 모습을 드러내게 되는데, 이때 붉게 혹은 노란색으로 보이는 것이 단풍이다. 추석 연휴까지 이어지던 무더위로 올해는 단풍이 물드는 시기도 작년보다 조금 더 늦어질 것 같다는 소식이다. 산림청은 올가을 단풍은 10월 말이 절정기가 될 것으로 내다봤다. 지역별로 차이는 있으나 설악산 10월 22일, 지리산과 팔공산 10월 25일, 내장산 10월 27일, 한라산 11월 6일 등이 절정기다. 산 전체를 기준으로 나뭇잎의 20% 가량이 단풍으로 물들면 단풍의 시작 시기로 본다. 80% 이상이 물들면 절정기라 부른다. 단풍은 기온변화에 민감해 통상 기온이 1도 오르면 단풍나무는 4일, 은행나무는 5.7일씩 물드는 속도가 늦어진다고 한다. 지구 온난화로 지구의 평균 기온이 올라가면서 우리나라도 단풍이 물드는 시기가 조금씩 늦어지고 있다. 1990년대와 비교하면 지리산은 5일, 월악산은 2일 정도가 늦어졌다고 한다. 특히 폭우와 같은 극한기후 변화가 잦으면 단풍은 제 색깔을 가지기 힘들어진다. 급변하는 날씨로 단풍이 곱게 물들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기후변화에 영향을 받은 일종의 생태계 파괴 현상이다. 가을철 불타는 산을 만산홍엽(滿山紅葉)이라 부른다. 지구촌의 기후변화가 시시각각 인류를 위협하는 속에서 지각 단풍에서도 기후 위기를 새삼 느끼게 된다. /우정구(논설위원)

2024-09-26

기후 위기 대응이 곧 민생이다

조지연 국회의원(국민의힘·경산시)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기후 위기는 당장 체감하기 어려운 인류의 거시적인 과제나 담론처럼 여겨졌다. 지금은 농가에도, 시장 상인들에게도, 궁극적으로 민생 물가에도 큰 영향을 미치는 현안이 되었다. 필자는 이번 추석 명절에 이를 확연히 체감했다. 장을 보기 위해 지역 전통시장을 찾았더니 평소와 달리 이번엔 예상보다 지갑이 빨리 가벼워졌다. 시금치 등 각종 채소 가격이 오른 것은 여러 요인들이 작용했겠지만, 기후 위기를 빼놓을 수 없다. 시장에서 만난 상인과 농민들은 이구동성으로 폭염으로 인한 농산물 생산 차질에 우려를 표했다. 지역구인 경산시는 복숭아, 자두, 포도, 대추 등으로 유명하다. 그런데 몇 년 전부터 작황을 우려하는 농민들의 시름이 깊어졌다. 유난히 덥고 습했던 날씨 탓에 과일의 당도를 걱정하거나 심지어 겉은 멀쩡한데 열어보면 속이 덜 익었다고 했다. 더운 날씨에 과일의 겉만 익어버린 것이다. 이는 고스란히 서민의 생활 물가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세계 유수 연구기관들이 기후변화가 물가 안정을 위협하는 핵심 요인이 될 수 있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 한국은행도 최근 월평균 기온이 1℃ 오르면 농산물가격과 전체 소비자물가지수 상승률이 각각 최대 0.44%P와 0.07%P에 이른다고 밝혔다. 이미 ‘기후플레이션’이라는 신조어도 생겼다. 기후 위기는 우리나라와 같이 곡물자급률이 낮고 무역의존도가 높은 국가에는 식량안보에 심각한 위협을 줄 수 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최근 3개년(2021~ 2023) 평균 곡물자급률은 19.5%로 나타났다. 모자라는 곡물은 수입할 수밖에 없다. 그 결과, 농축산물 무역수지 적자는 눈덩이처럼 커져 5년 전인 2017년에는 181억300만 달러 규모였으나 2022년에는 311억7800만 달러로 치솟았다. 현재 흐름이라면 농축산물로 인한 무역수지 적자는 향후 훨씬 더 커질 것이다. 세계 주요국들은 기후 위기에 따른 식량안보 대비책을 앞다투어 마련하고 있다. 중국은 지난 6월부터 ‘식량안보보장법’ 시행에 들어갔다. 일본은 지난 5월 ‘식료·농업·농촌 기본법’을 개정해 ‘식량안보 확보’를 추가했고, 관련 평가지표도 새로 도입할 예정이다. 인도는 기후 영향으로 자국 곡물 생산의 어려움을 겪은 뒤 옥수수와 쌀, 밀 등 곡물 수출량을 대폭 줄였다. 이제 국회가 나서야 할 때다. 기후 위기가 민생과 직결된다는 것을 직시하고, 제도적 대책 마련에 앞장서야 한다. 정부도 기후 위기 문제에 대해 다각도로 접근하고 보다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할 것이다. 특히 정부가 발간하는 환경백서에 기후 위기와 물가, 그리고 식량 안보 문제를 면밀히 다루어야 하며 ‘기후변화 상황지도’에도 기후 위기에 농수산업을 비롯한 산업계가 구체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실효성 있는 ‘맞춤형 기후지도 체계’를 마련하는 것도 논의해 볼 만하다. 추석 민심이 안겨준 과제가 한아름인데 국회는 계속해서 정쟁에 발목 잡혀 있다. 이래서는 안 된다. 농민들과 상인들의 한숨에 담긴 기후 위기 문제를 제대로 인식하고 실질적인 민생 대책 마련에 머리를 맞대야 한다. 첫 정기국회에 임하는 국회 환경노동위원으로서 필자에게 주어진 책무가 묵직하게 다가온다.

2024-09-26

밥 딜런을 떠올리는 가을

홍성식 (기획특집부장) 끝이 보이지 않던 지긋지긋한 폭염이 마침내 꼬리를 감추며 사라졌다. 아침저녁으론 서늘한 공기가 창밖을 서성인다. 이불을 끌어당겨 덮게 되는 새벽이 오고 있다. 누구도 시간의 흐름을 막을 수 없다는 명명백백한 사실이 새삼스럽다. 여름은 가고, 가을이 목전에서 서성인다. 등화가친(燈火可親)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책 읽기 좋은 계절이다. 지난 2016년. 미국의 포크송 가수 밥 딜런이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결정됐다. 스웨덴학술원이 “밥 딜런은 밀턴과 블레이크로 이어지는 영어권 문학 전통 속에 우뚝 자리한 위대한 시인”이라고 상찬하자 당장 반발이 일었다. “인류 보편이 인정할 수 있는 미학적 성취를 이룬 시인과 소설가가 적지 않은데, 무슨 딴따라 가수에게 노벨문학상을 준단 말이냐”가 반발하고 비난하는 이들의 주장이었다. 그러나, 천만에. 밥 딜런의 노래 ‘블로잉 인 더 윈드’(Blowin’ in the Wind)의 가사를 음미해보자. ‘얼마나 자주 올려다봐야/진정한 하늘을 볼 수 있을까/얼마나 많은 귀를 가져야/이웃의 울음을 제대로 들을 수 있을까/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어야/비극의 끝이 모습을 드러낼까…’ 선명한 메시지와 명쾌한 은유를 보자면 밥 딜런이 만든 노랫말은 이미 시원찮은 시(詩)를 훌쩍 뛰어넘고 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시는 시인들만의 독점물이 아니다. 그렇다면 밥 딜런은 어떻게 ‘시인의 마음’과 ‘시인의 태도’로 살아갈 수 있었을까? 직접 묻지 않아도 돌아올 답변은 불을 보듯 뻔하다. 많은 책을 읽었다는 것. 다독(多讀)은 그게 시건 가사건 좋은 글을 쓰는 유일한 방법이다. 우리도 밥 딜런처럼 독서하는 가을을 살아보자. /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4-09-25

관광과 평화

장규열 고문 세상은 넓다. 나라마다 독특한 분위기와 느낌이 있고, 민족마다 고유한 품성과 자태가 있다. 먹거리와 볼거리로 채워진 세상을 낱낱이 가 살필 수 있을까. 문명이 만들어낸 산업들 가운데 관광만큼 이곳저곳을 다차원적으로 넘나드는 가닥도 흔하지 않다. 경제와 사회, 문화와 산업을 가로지르며 관광이 만들어내는 유익이 상상을 넘는다. 매년 9월 27일은 유엔세계관광기구(UNWTO)가 지정한 ‘세계 관광의 날(World Tourism Day)’이다. 관광은 우선 도시 및 국가의 경제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산업이다. 전 세계적으로 관광은 모든 일자리의 약 10퍼센트를 만들면서 각국 총생산량(GDP)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특정 도시와 국가의 경제성장에 지대한 역할을 하며, 관광지로 유명한 지역은 관광 자체가 브랜드가 되어 관광객을 유치한다. 관광은 숙박과 유흥, 음식점, 가이드, 교통, 기념품 판매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일자리를 제공한다. 다른 산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숙련되지 않은 노동력도 쉽게 고용할 수 있어 사회 전반의 일반 고용률을 높이는 데에도 크게 기여한다. 관광산업은 지역경제를 활성화하는데 필수적인 역할을 한다. 관광은 경제적 수익뿐 아니라, 사회문화적 교류를 통해 사회 전반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다양한 국적, 인종, 문화의 관광객들이 특정 도시나 국가를 방문하면서, 자연스럽게 그 지역의 문화와 전통을 배우고, 또 그들 자신만의 문화를 전파하게 한다. 관광이 빚어내는 문화적 교류는 지역 주민과 관광객 간의 상호 이해를 증진시키고, 글로벌 공동체 의식을 함양하는 데 한 몫을 한다. 관광으로 지역의 전통문화가 활성화된다. 전통 공예품이나 지역축제, 문화유산 등은 관광객의 관심을 받으면서 더욱 자라나고 발전한다. 문화적 자산이 보존되는 동시에 새로운 경제적 기회를 만들어낸다.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해 예술, 공연, 음식 등 문화개발 프로그램을 육성한다. 관광이 장기적으로 지속가능하려면 경제성장과 더불어 환경보호를 동시에 달성해야 한다. 에코투어리즘을 통해 자연을 보존하면서 수익을 일으키거나 저탄소 교통수단을 장려하는 등의 방법으로 환경보호에 기여할 수 있다. 지속가능한 관광이 주민들의 삶의 질을 보호하고 관광객이 환경을 존중하며 여행할 수 있도록 하는 다양한 정책을 도입한다. 관광이 환경적 지속가능성을 고려할 때, 도시와 국가 경제는 장기적으로 더욱 견고해질 수 있다. 관광은 글로벌 경제 협력을 촉진하는 중요한 역할도 한다. 여러 나라와 도시들이 관광을 통해 서로 연결되고, 경제적, 문화적 교류가 이루어진다. 유럽의 국가들은 관광으로 협력하며, 상호 간의 교류와 협업을 통해 지역경제를 활성화한다. 국가나 지역의 성장 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경제적인 상생과 외교적 협력을 도모하게 할 터이다. 관광은 나라들 사이의 갈등과 불화를 치유하고 상생과 협력을 가져오기도 한다. 2024년 ‘세계 관광의 날’ 테마는 ‘관광과 평화’라고 한다. 긴장을 넘어 평화에 이르는 길을 관광으로 열어 가자는 다짐이자 권고가 아닐까. 관광은 세상을 향해 우리가 만드는 창틀이 아닌가.

2024-09-25

대구시내버스 노선 개편, 시민의견 경청하길

대구시가 10년 만에 시내버스 노선을 대대적으로 개편한다. 연말 대구권 광역철도와 도시철도 1호선 하양구간 개통, 그리고 군위군 대구편입, 서대구역 개통으로 시내버스 노선을 손봐야 할 필요성이 생긴 것이다. 노선 개편은 주민설명회를 거친 후 내년 2월 말부터 시행된다. 대구시가 어제(25일) 발표한 시내버스 노선체계 개편안에 의하면, 전체 노선 중 절반이 넘는 58.2%가 폐지되거나 대폭조정, 또는 일부조정된다. 개편되면 급행 11개, 간선 61개, 지선 50개 등 122개 노선에서 직행 2개, 급행 11개, 간선 59개, 지선 51개, 총 123개 노선으로 바뀐다. 운행 버스 대수는 1566대 그대로다. 직행 및 장거리 급행노선 신설, 중복노선 통폐합, 경산·하양방면 노선 조정, 서대구역·도심 재개발 지역 접근성 강화 등이 이번 노선조정의 특징이다. 대구에서 첫선을 보이게 될 직행노선은 칠곡~영남대, 동대구역~테크노폴리스 국가산단 구간에 운행된다. 직행노선은 급행노선보다 경유지가 적다. 대곡∼가창∼범물∼반야월, 군위∼칠곡간 2개 급행 노선도 새로 만들어진다. 대신 도시철도 1·2호선과 중복되는 5개 노선은 폐지된다. 도시철도 노선과 겹치는 경산·하양간 노선도 대폭 조정된다. 도시철도 2호선(문양역~영남대역)의 경우, 많은 시내버스 노선과 중첩됨에 따라 대구시는 최근 경산시에 경산까지 운행되는 시내버스 대수를 줄이겠다는 뜻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시내버스 승객들이 갈수록 줄고 있음에도, 대구시가 시내버스 회사에 지급하는 재정지원금은 한 해 2000억원에 육박한다. 재정적으로나 효율성 측면에서 시내버스 노선개편은 불가피한 것으로 판단된다. 그러나 노선 조정은 시민들의 이해관계가 얽혀 있기 때문에 많은 민원을 야기하게 돼 있다. 지난 2015년 대구시가 80개 노선을 개편할 때도 대구와 인접 시·군 주민들의 민원이 쇄도했었다. 앞으로 주민설명회 절차 등이 남아있는 만큼 주민들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해서 노선개편을 확정하길 바란다.

2024-09-25

이번엔 금배추, 농산물 기후위기 대책 급하다

배추값이 금값이다. 추석까지 이어진 늦더위와 가뭄 등의 영향으로 공급량이 줄면서 재래시장 등 일부 소매점에선 최근 포기당 2만2000원짜리 배추가 등장했다고 한다. 한우 1등급 200g 시세 1만7000원과 비교하면 배추값이 더 비싼 기현상이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배추값이 미쳤다”며 “올 김장은 포기해야겠다”는 글들이 줄줄이 올라왔다. 배추값이 폭등하자 일부 식당에서는 김치 대신 오이김치로 대체하거나 셀프코너에 김치를 아예 빼버리는 일도 벌어진다고 한다. 배추값이 폭등한 것은 폭염과 가뭄에 따른 생육 부진과 재배면적이 줄어든 탓이다. 추석까지 이어진 늦더위로 강원도지역의 고냉지 배추의 작황이 타격을 입었고, 지난주 폭우로 전국 배추 재배지가 침수 피해를 입었던 것이 원인이다. 이번주 들어 기온이 떨어져 배추의 생육이 회복돼 수급 상황이 개선되면 가격도 하락할 것으로 보이나 10월 중순까지는 높은 가격대를 유지할 것이란 전망이다. 정부가 중국산 배추 수입에 나섰으나 배추값이 진정될지는 두고 볼 일이다. 최근 로이터 통신은 “한국의 기후 변화로 배추의 품질과 생산량이 타격을 받고 있다”는 보도를 했다. 통신은 “고온현상이 이대로 지속되면 서늘한 기후에 자라는 배추는 한국에서 더이상 생산할 수 없을 것”이라는 경고도 했다. 기후 변화가 우리의 일상에 미치는 일들이 잦아지고 있다. 역대급 폭염이나 가뭄 등이 새로운 질병의 원인으로 등장하는가 하면 농산물 생산에도 심각한 타격을 준다. 지난해 사과값이 폭등한 것도 이상기후 탓이다. 사과값이 금값이 되면서 소비자 물가를 불안하게 흔든 것처럼 배추값 또한 소비자 물가에 나쁜 영향을 미칠 게 뻔하다. 특히 11월 김장철을 앞두고 있어 배추값 폭등을 걱정하는 주부들이 많다. 배추값 안정을 위해 정부가 수입물량 확보에 나서고 있지만 그것은 단기 처방에 불과하다. 사과와 달리 배추는 마침 중국산 수입으로 대체할 수는 있으나 근본적 해결책은 아니다. 임기응변식 방법보다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농업기술의 개발에 속도를 내야 한다.

2024-09-25

무릎을 꿇다

피귀자 수필가 우윳빛 융단 위의 솜이불처럼 포근하고, 금방 낳은 달걀처럼 따스하다. 한 쪽 무릎을 꿇고 앉아 사랑하는 이의 신발 끈을 묶어주는 모습은. 빛을 향해 뻗어가는 새순처럼 풋풋한 두 사람 사이는 종달새의 밀어로 흐르는 시냇물 같다. 타닥! 순간, 눈앞에서 불꽃이 일었고 사정없이 패대기쳐지는 사지를 수습할 여가가 없었다. 쫙 미끄러지면서 얼굴이라도 들어 올려야겠다는 생각을 한 것이 고작이었다. 운동화 끈이 풀어진 줄 모르고, 앞서 가던 친구들을 급히 뒤따르다가 반대쪽 발이 늘어진 다른 쪽 끈을 밟고 말았던 것이다. 스텝이 꼬인 발의 순간적인 위력은 엄청났다. 고속도로 휴게소 아스팔트를 찧은 턱의 쓰라림과 놀람에 일어설 수가 없었다. 피가 나는 턱 주변과 터진 입술이 금방 부풀어 엉망이 된 모습을 본 친구들의 걱정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두 팔을 뻗으며 엎어지는 순간을 본 친구의 이야기로는 사람이 그렇게 순간적으로, 그렇게 위력적으로 엎어질 수가 있는지, 마치 땅바닥이 끌어 당기기라도한 듯, 처음 본 모습이라고 했다. 흉해진 얼굴과 무릎이 까진 아픔에 이은 창피함과 자괴감에, 마른 나뭇잎 버석거리는 소리가 가슴을 훑고 지나갔다. 다행히 뼈는 다치지 않았지만 잠에서 깨어난 아침은 부스스했다. 집안에 갇혀 일상은 물기를 잃어갔고 안착한 것 같으면서 겉돌기 일쑤였다. 한자리에 눌러앉은 마음을 달래려 애썼지만 자꾸 발을 거는 머릿속도 쉼표가 필요했다. 잠시 나를 내려놓으면 여유가 생길 텐데. 별은 이미 늘 그 자리에 떠 있고 내 몸의 움직임과 환경, 내 시선에 따라 보였다 말았다 하는 것임에도 조급증이 마음 안에 바람을 부추겼다. 하루에도 수차례 수선한 마음이 구름처럼 모였다 흩어지기를 반복했다. 그 후 속으로 핀 꽃이 켜가 되어 신발 끈이 풀린 사람을 보면 그냥 지나칠 수가 없어 알려주게 된다. 반응은 천차만별이다. 웬 오지랖이냐는 듯 시큰둥해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감사인사를 하는 경우도 많다. 그 중 기억에 남는 일은, 알려주는 말을 들은 옆에 있던 앳된 소녀가 친구 앞에 말없이 살폿 앉으며 운동화 끈을 얌전히 묶어주던 모습이다. 말간 모습처럼 다소곳하게 앉던 소녀는 한쪽 무릎을 꿇었다. 그 동작은 누가 해도 하나 같이 해맑고 순한 모습일 것이다. 두 친구의 마음도 꼬투리 속의 콩알처럼 탱탱하게 익고 있었으리라. 지인의 아들은 남미의 여행지 순례 길에서 평생의 동반자를 얻었다. 아가씨의 풀린 운동화 끈을 묶어준 것이 계기가 되어서. 남들이 부러워하는 직업을 가진 건실한 청년이 결혼을 하지 않아 부모 속을 무던히 끓이게 하던 중의 일이었다. 무릎을 꿇고 앉아 풀어진 운동화 끈을 묶어주는 남자에게 마음이 움직이지 않을 아가씨가 있으랴. 퍼져나가는 순금 햇살 같은 마법의 시간 속, 한국 사람이라곤 단 둘 밖에 없었던 머나먼 남미의 여행지에서 그렇게 아름다운 마음이 싹텄던 것이다. 아름다운 풍경은 여행자의 가슴에 쉼표 하나 던져주어 너그럽고 빛나는 봄의 눈짓, 봄이 눈처럼 하얗게 내렸던 것이다. 신발 끈을 조이듯 나이 따라 느슨해진 순발력과 이해력, 해이해진 마음을 조일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심리학에는 ‘15’초의 법칙‘이 있다고 한다. 하나의 감정이 치솟아 정점을 찍는 데 15초가 걸린다는 것이다. 화가 나면 화의 갈래로, 기쁨이 일면 기쁨의 갈래로 접어드는 데 3초가 걸리고, 그 감정의 정점은 15초면 도달한다나. 그러고 나면 이내 다른 감정으로 변한다고 한다. 고작해야 15초에 감정을 다스릴 수 있다고 하지만, 그것이 쉽지 않음에랴. 오늘도 반성문 한 장 쓴다. 문제를 해학적으로 바라볼 수 없을 때, 어쩔 수 없이 매너리즘에 빠졌을 땐, 해이해진 감정의 끈을 다시 조이기 위하여, 토라진 감정에게 신발 끈을 묶어주듯 그때마다 순하게 무릎을 꿇어야 하리.

2024-09-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