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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내일배움카드

이정옥위덕대 명예교수 은퇴 후 버킷리스트는 여전히 유효하다. 은퇴 전에 작성된 목록엔 단연 여행 계획이 많았다. 퇴직 후 바로 감행할 것을 코로나19 때문에 기회를 놓쳤다. 손주들의 유치원 등하원 봉사에 묶여 또 미룰 수밖에 없었다. 작년 말 베트남여행으로 워밍업했으니 올해는 유럽 여행을 바로 감행할 참이다. 마음 바뀌지 않으려 얼리버드로 비행기를 예매했고, 계획도 꼼꼼히 짜 두었다. 수영, 요가, 자전거 타기, 하루 5천보 걷기 등의 체력 단련 리스트도 꽉 차게 버티고 있다. 그 중 몇 가지는 실천했고, 게으르고 끈기없는 탓에 접었다. 실패했을 땐 재도전이 필요하니 새해 새 다짐으로 다시 시작할 것. 손녀의 유치원 봉사가 끝나면 바로 차를 팔고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걷기를 생활화할 거다. 틈나면 자전거의 타이어도 점검해 둬야겠다. 이보다 더 많은 것은 학습목록이었다. 한국사능력시험이나 일본어 회화공부는 잠시 제쳐둔다. 대신 새해 새 계획으로 새로운 접근을 하자. 한글서예 공부는 계속할 것이고, 최근 한자공부에 눈떠 재미있어하는 손녀와 한자검정시험에 도전해 볼 요량으로 급수시험 대비용 한자책을 사 두었다.나의 버킷리스트는 유기체처럼 살아있어 새롭게 생성추가된 것도 있다. 자격증 도전하기. 격조했던 후배가 전화를 했다. 퇴직 후의 근황을 물었다. 나의 버킷리스트를 소개하면서 실패담을 얘기했다. 나보다 퇴직이 몇 년 더 남은 영문학 전공 후배의 계획은 나와는 달랐다. 평생 인문학을 했으니 퇴직 후엔 전혀 다른 계열의 공부를 해 보고 싶단다. 어떤 공부에 관심 있냐고 물으니 그녀의 답은 구체적이되 도전적이었다. 30년 넘어 영문학을 공부했다. 인문학은 인간 정신에 관한 학문이다. 퇴직 후엔 인간의 몸에 관한 공부를 하고 싶다. 간호학 같은 걸 공부해볼 생각이다. 인생의 절반은 또 다른 공부를 하고 싶다는 그녀의 계획은 참신했다. 동행이 있어야 실천하기 수월할 거라며 동참을 제안했고 난 흔쾌히 맞장구를 쳤다. 후배도 스승이요, 이 또한 후생가외였다. 집 가까이 간호학원을 검색하여 전화했다. 친절하게 상담을 해주던 학원에서는 혹시 내일배움카드를 갖고 있냐고 물었다.그래서 알게 되었다. 내일배움카드는 취업준비생, 이직을 준비하거나 업무역량을 키우고 싶은 재직자, 나 같은 은퇴자, 새로운 삶을 준비하는 경력단절여성의 역량개발에 필요한 훈련비를 국비로 지원하는 제도다. 생애에 걸쳐 직무능력습득과 향상을 위해 국민 스스로 직업능력개발을 할 수 있도록 1인당 500만원 한도 내에서 훈련비를 지원한다. 내친 김에 바로 카드 발급을 위한 서류를 준비, 대구고용복지플러스센터에 갔다. 인터넷으로도 된다지만 그 자리에서 신청했고, 은행에 가서 카드 발급을 받았다. 틈나는 대로 국비 지원 프로그램을 탐색하고 있다. 간호조무사자격증을 위해 간호학원을, 최신 매체를 공부하고 싶어 유튜브아카데미를 점찍어두었다. 나도 유튜버가 될 수 있을지 모를 일 아닌가. 오늘 길에서 지게차, 굴착기 국비무료교육 현수막을 보았다. 몸 쓰는 일이니 이것도 좋네. 당장 전화 걸어 자격증 취득을 알아봐야겠다.

2024-01-10

육식식단과 채식식단

박용호 포항참사랑송광한의원장 최근 유행하는 식단 중 카니보어 식단이라고 있다. 카니보어는 육식동물이란 뜻이며 이 식단은 말 그대로 육식만 하는 식단이다. 특히 그 중에서 완전 카니보어 식단은 풀을 먹은 소고기와 동물성 지방 그리고 버터 등으로만 식단을 꾸리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일체의 곡류와 당류 탄수화물을 배제하고 식물도 먹지 않는 것이다. 한때 이건희 회장이 해서 건강해졌다는 식이요법으로 황제다이어트라고도 불렸다. 한국 사회는 전통적으로 고기를 먹으면 살이 찌고 콜레스테롤이 높아져 혈관에 때가 낀다는 과학적 근거가 없는 얘기가 정설로 굳어져 있다. 그러나 실제는 고기 위주의 식단으로 식사를 했을 때 콜레스테롤이 높아진다는 소리는 근거가 없는 소리이고 오히려 단백질과 좋은 지방이 골고루 섭취되어 힘도 나고 콜레스테롤 수치도 떨어진다는 연구 결과가 많다.요즘은 콜레스테롤을 올리는 주범을 육류 쪽이 아닌 탄수화물 즉 밥과 빵으로 보는 추세이며 실제로 밥과 국만 먹는 식단, 빵과 음료수를 먹는 식단은 영양의 균형이 깨진 최악의 식단으로 본다. 일을 하지 않는 사람 몸에 탄수화물이 과잉으로 들어오면 중성지방으로 전환되고 살이 찐다. 왜 나는 고기도 안먹는데 살이 찌나 하는 사람들은 다 탄수화물 위주로 먹는 사람들이다.카니보어 식단처럼 완벽한 육식은 아니더라도 육식의 비중을 높이고 탄수화물의 비중을 지금보다 3분의 1 이상으로 줄인 다음 액상과당이 들어있는 음료수와 과일을 줄여보면 몸에 힘이 나고 서서히 살이 빠지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그렇다고 육식이 좋고 채식이 나쁘냐면 그렇지도 않다. 생쌀을 불려서 종이컵 반컵 정도에 방울 토마토 당근 오이 브로콜리 셀러리 등 자신이 좋아하는 다양한 채소들로 식단을 구성해서 먹어도 몸이 괜찮아지는 것이 느껴진다. 평소 식사를 하면 점심시간 혹은 저녁식사 시간쯤 당이 떨어져 손이 떨리고 어지러운 사람도 이렇게 간단한 식사를 해보면 오히려 그런 증상이 말끔히 사라지는 것을 경험 할 수 있다. 너무 채소와 생쌀만을 먹어 칼로리와 영양이 부족한게 아닌가 생각할 수 있지만 경험을 해보면 그동안 나를 괴롭혔던 피곤함과 두통, 머리의 묵직함, 식곤증 등이 싹 사라지고 대변도 아주 건강한 황금색 변을 보는 것을 체험할 수 있다. 단점은 이렇게 식단을 짜서 매번 먹는게 너무 힘들어서 오래하기 힘들다는 점이다. 이는 육식식단도 마찬가지로 탄수화물이 너무 적게 들어오거나 너무 채소만 먹게 되면 뇌에서 맛있는 것을 먹으라고 유혹한다. 이 시기를 어느 정도 넘기면 스스로가 육식과 채식 혹은 둘을 혼합한 식단을 짜서 관리를 할 수 있게 된다.평생 살 인생 한번쯤은 한 달 아니 일주일 정도만이라도 극단적인 식이 요법을 선택해 이 악물고 한번 해보면 건강관리에 도움이 된다. 나는 육식이 좀 더 맞구나, 나는 채식 위주의 식단이 맞구나 알 수 있다. 아니면 육식과 채식을 적절히 조절하면서 밥과 빵 등의 탄수화물을 제한하는 자신만의 식단을 구성할 수도 있다. 유튜브나 인터넷 검색으로 육식식단 채식식단을 검색한 다음 한번은 해보고 내 몸 상태를 스스로 파악해보는 것은 어떨까.

2024-01-10

국회의원 선택은 유권자들의 몫

정안진 경북부 제22대 국회의원 선거를 90여 일 앞두고 안동·예천선거구 관내 출마 예정자들이 의정보고회와 출판기념회, 기자간담회를 잇따라 갖는 등 선거 분위기가 후끈 달아오르고 있다.5일 김의승 전 서울시 행정부시장이 안동에서 출판기념회로 테이프를 끊었다. 6일 안동과 예천에서 김형동 현 국회의원의 의정보고회가 열렸다.여기에 일찌감치 후보 등록을 마친 김명호 전 도의원이 연일 예천지역 유권자들을 찾아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권용수 건국대학교 교수도 조심스럽게 지인들을 만나고 있어 안동·예천은 그야말로 폭풍전야의 긴장감이 감돈다.안동·예천선거구 출마 하마평에 오른 국민의힘 공천 희망 후보만 현재 7명에 이른다. 민주당에서도 4명의 쟁쟁한 후보들이 출마를 준비하고 있다. 이 선거구의 출마 후보자는 무려 11명에 이른다.출마 예비후보자간 치열한 경쟁만큼 지역의 현안 이슈도 유권자들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경북도청 신도시 주소가 안동·예천으로 갈라져 있어 누가 국회의원이 되느냐에 따라 신도시 발전에 탄력이 붙느냐 그렇지 않느냐 하는 문제가 걸려 있다.지역 선거구 획정이 아직 끝나지 않은 점도 유권자와 후보자들의 관심거리이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산하 선거구획정위원회는 지난해 12월 5일 선거구 수를 현행 253개로 하는 내용의 획정 안을 국회에 제출했지만 민주당은 여당 편향적이라며 재획정을 요구하고 있다.현재 군위군이 대구시로 편입되면서 선거구 변경이 불가피하지만 획정안에는 울진군을 군위군 자리로 옮기는 안이 제출되어 있다.하지만, 울진군 출신의 박형수 국회의원과 울진군민들이 강력히 반대하고 있어 1월 말쯤 최종 선거구획정이 결정될 때까지 유동적이다. 안동·예천선거구가 그대로 존속한다는 보장도 없다.국민의힘 공천룰도 변수다. 국민의힘은 정당지지도와 후보자의 지지도를 비교해 20% 이상 차이가 날 경우 공천을 배제할 방침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안동에 비해 인구 등 모든 것이 세가 약한 예천 출신 후보자들을 긴장시키고 있다.예천유권자들은 예천이 의성·청송·영덕 선거구로 통합해야만 한가닥 예천출신 국회의원 탄생을 바랄 수 있다며 여지를 남기고 있다./정안진기자 ajjung@kbmaeil.com

2024-01-10

출산율 골든타임 놓칠라

우정구 논설위원 합계출산율 0.6명대를 유지하는 나라는 한세대를 200명(100쌍)으로 가정했을 때 다음세대 인구는 60명으로 줄어든다는 뜻이다.연평균 출생아수가 85만명대인 1970년대 태어난 사람들이 성장해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았을 때 기록한 출산율은 1.15명(2000년대)이었다. 같은 계산법으로 연평균 출생아수가 70만명이던 1990년대 태어난 사람들이 성장해 결혼하고 아이를 낳은 지금은 출생율이 0.8명이다. 불과 20년 사이지만 출생아 감소가 빠른 속도로 낮아짐을 볼 수 있는 통계다.“출산율 골든타임을 놓쳤다”는 말은 가임인구가 절대적으로 줄어 결국은 아무리 출산율이 높아진다 해도 인구회복이 어렵다는 뜻이다.우리나라 합계출산율은 작년 기준 0.7명대. 올해는 0.6명대까지 전망한다. 작년 1년동안 태어난 출생아수는 23만5천명. 1970년대 85만명대와 비교하면 30여 년 만에 27% 수준까지 추락했다.전문가들은 우리의 인구위기를 극복할 골든타임을 길어야 앞으로 10년 정도라 한다. 10년 이내 획기적 인구 정책이 나오지 않으면 우리나라는 인구회복이 불가능한 나라로 전락하게 된다. 지구상 가장 먼저 사라질 나라라는 예측이 맞아 떨어질지 모른다.충북은 전국 17개 시·도 가운데 작년 유일하게 출생아가 증가한 곳으로 밝혀져 주목을 받았다. 작년부터 충북에서 출생한 아이에게는 5년에 걸쳐 현금 1천만원을 출산수당으로 주고, 전월세 이자 지원 등 각종 결혼장려 정책이 효과를 봤다는 것이다.이제는 결혼해 아이를 키우면 육아부터 학교를 마치는 데까지 거의 무상이라는 파격적 인식을 주지 않으면 출산율을 높이기 어렵게 됐다. 그야말로 특단 대책이 필요한 때다. /우정구(논설위원)

2024-01-09

한동훈 정치력, 공천과정에서 드러난다

심충택 논설위원 국민의힘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의 정치데뷔는 일단 합격점이다. 지난 연말 비대위원장에 취임한 후 당을 빠르게 장악했고, 여론의 주목도를 높이는데도 성공했다. 특히 비정치인·전문직 위주의 인재영입과 혁신적인 당직인사로 당의 ‘꼰대 이미지’를 상당부분 없앤 것은 평가를 받을 만하다. 돌발현안(민경우 전 비대위원의 노인 비하논란)에 대한 대응능력과 당직 인선 작업의 신속·보안성도 돋보였다.외연확장 과정에서 의외의 성과도 냈다. 민주당 출신 5선중진인 이상민 의원 영입은 앞으로 많은 순기능을 가져 올 것이다. 이 의원의 지역구는 국민의힘 불모지인 대전이다. 여당은 그의 입당으로 7개 의석을 가진 대전은 물론, 충청권과 세종시까지 교두보를 마련할 수 있게 됐다. 이 의원은 민주당의 ‘개딸 전체주의’를 공개적으로 비판해 온 정치인 중의 하나다.인재영입위원장을 겸직한 이후 첫 실시한 인사에서 정성국 전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회장과 박상수 변호사를 영입한 것도 성공적이다. 정 전 회장은 교총 역사상 첫 초등교사 출신 회장이며, 박 변호사는 학교폭력피해자가족협의회 법률 자문으로 학교 폭력 피해자들을 대변해 왔다.한 위원장은 이번 주에도 전국을 돌며 외연확장에 나선다. 지난주에는 민주당 텃밭인 광주를 찾아 5·18 정신의 헌법전문 수록에 적극 찬성 의사를 밝히며, 호남 민심에 손을 내밀었다. 10일부터는 1박 2일 일정으로 경남 창원과 부산을 찾는다. 부산에서는 비대위 첫 현지 회의도 개최한다. 심상찮은 부산 민심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한 위원장에 대한 지금까지의 평가는 그야말로 초반 성적표다. 앞으로 그의 정치력은 공천관리위원회 구성과 함께 총선 체제로 전환하면 본격적인 시험대에 오르게 된다. 한 위원장 스타일로는 여권 세대교체를 위해 대폭의 현역 물갈이를 단행할 가능성이 크다. 한 위원장이 공천 실무를 책임질 사무총장 자리에 계파색이 옅은 초선의 장동혁 의원을 선임한 것도 이에 대한 신호탄이라는 해석이 나온다.정치문화를 새롭게 바꿔야 하는 여당의 공천심사 과정이 순탄할 리 없다. 예를들어 비교적 젊은 세대인 대통령실 참모나 법조계 출신 후보를 ‘혁신’이라는 명분으로 공천할 경우 세찬 후폭풍이 몰아치게 돼 있다. ‘개혁신당’의 천하람 공동창당준비위원장이 “영남권 현역 중 합류할 분이 있다”고 한 말은, 국민의힘 공천탈락을 염두에 두고 벌써 개혁신당에 합류할 생각을 굳힌 현역이 있다는 얘기다.첨예한 공천갈등에 대한 처리해법은 한 위원장의 정치력을 키울 기회가 될 수 있다. 명심해야 할 부분은 공천관리위원회가 독립적으로 투명하게 업무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자칫 ‘용산입김’이 작용한다는 말이 나오면, 공천의 공정성은 물건너간다. 공천관리위원회로 일원화된 공천 기능 중 ‘후보자의 부적격 심사’ 권한을 분산해 그 기능을 윤리위원회에 넘기는 것도 리스크 분산의 한 방법이다. 여당이 이번 총선에서 국민에 깜짝 놀랄만한 혁신적인 공천을 해서 낡은 정치권에 새바람을 일으켜야 민심을 얻을 수 있다.

2024-01-09

“외국인 근로자 고용 확대 더 필요하다”

올해 고용허가제로 국내에 들어올 외국인근로자가 역대 최대인 16만5천명에 이르나 중소업계는 여전히 인력 부족을 호소하고 있다. 중소기업중앙회가 1천200개 사업장을 대상으로 조사 발표한 ‘2023년 외국인력 고용관련 종합애로 실태조사’에 의하면 외국인노동자가 더 필요하다는 사업주가 전체의 29.7%에 달했다. 추가로 필요한 외국인근로자를 업체별로 나눴을 때 평균 4.9명의 수요가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올해 역대 가장 많은 16만5천명의 외국인근로자 도입에도 3만5천명이 더 필요하다는 것이다.산업체 현장에서 일하는 불법체류자 등을 감안하면 실제 외국인근로자 고용인원은 훨씬 더 많을 것으로 짐작되나 외국인근로자 인력난은 좀처럼 풀리지 않는 게 현실이다.이번 조사에서 내국인근로자를 고용하지 못하는 이유로 응답자의 89.8%가 내국인의 취업 기피를 꼽았는데 외국인근로자 수요에 대응할 일자리 미스매치에 대한 특단조치도 별도 마련돼야 한다. 대구와 경북에서도 내국인이 기피해 생긴 일자리가 무려 1만8천여 개나 된다. 산업현장의 근로환경개선 등 정밀한 연구가 필요하다. 또 이번 조사에서 외국인 근로자를 고용하고 있는 기업들은 외국인 근로자의 언어소통 능력 부족과 잦은 사업장 변경, 불성실 근로자에 대한 제재 방안, 성실한 근로자에 대한 인센티브 부여 등이 가장 큰 애로라 말했다. 현장 소리를 담은 맞춤형 대책도 검토돼야 한다.특히 언어소통 능력은 공동의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한국말을 익히도록 해 빠르게 기업현장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외국인근로자를 숙련공으로 양성하는 제도적 장치 마련도 검토해 볼만하다.외국인근로자 고용의 문제는 지금과 같은 우리의 노동고용 구조라면 앞으로도 우리가 지속적으로 풀어갈 숙제다. 고용의 양적 문제뿐 아니라 고용의 질적 문제까지 폭넓게 연구 검토해 중소기업에 맞는 정책들을 만들어 내야 한다. 필요하다면 외국인근로자 고용허용 한도를 획기적으로 조정하는 등 새로운 패러다임의 정책도 검토돼야 중기의 인력난을 해소할 수 있다.

2024-01-09

ESG경영과 지구촌 미래

정상철 미래혁신경영연구소 대표·경영학 박사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촌은 100년 후 어떤 모습으로 변화되어 있을까. 산업혁명이 시작되며 공장이 우후죽순으로 세워지면서 경제적으로 살기 좋은 세상이 되었으나 이산화탄소 다량 배출에 의한 오존층 파괴로 유럽은 40도 넘는 폭염과 지구 곳곳에 홍수로 물난리를 겪는 등 지구촌이 몸살을 앓고 있다. UN 기후변화 협약기구에서는 지구 환경을 살리기 위해 탄소세를 부과하고 가장 큰 영향을 주고 있는 온실가스 배출량과 에너지 사용량이 기준이 되고 있다.ESG경영은 무엇인가. 주로 기업에서 하고 있는 ESG경영은 환경(Environment), 사회(Social), 거버넌스(Governance)의 세 가지 요소로 구성된 기업의 지속가능한 경영을 나타낸다. 환경은 탄소배출을 줄이고 친환경적인 경영을 채택하는 것이다. 또한 에너지 사용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고 신재생 에너지를 적극적으로 도입해야 한다. 사회적 책임은 근로자에게 안전한 작업환경을 제공하고 조직 내에서 다양성을 인증하고 공정한 기회를 제공한다. 지역사회와 상호작용을 강화하고 사회적인 문제에 기여하는 일을 해야한다. 거버넌스는 이사회의 투명성과 윤리적 경영, 주주 권리 보장 등이다. 일반인의 생활 속의 지구환경살리기 활동은 플라스틱, 종이, 의류 등 재활용과 음식폐기물처리가 있다. 특히, 플라스틱은 버리면 썩는 데 100년의 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음식폐기물은 거름을 만들거나 생물가스로 에너지를 얻을 수 있다. 일반 시민들이 할 수 있는 일은 가정에서 쓰레기 분리 수거하는 것 등이 지구환경 살리기의 작은 시작인 것이다.P사의 본사에서 전략컨설턴트로 일할 때 ‘현장 개선활동은 안전과 환경중심으로 실시하라’는 CEO의 지시에 기업의 통합환경관리법을 학습하며 제철소에서 법적 환경기준과 Auditing 결과 및 조치방안을 살펴본 적이 있다. 기업에서 통합환경관리법에 적용되는 것은 대기·수질·유해물질·폐기물처리 등 4가지 영역에서 법적 기준보다 강화된 제철소 기준으로 관리하고 있다. 통합환경관리법은 매년 더 강화될 예정이고 지속적 개선으로 쾌적한 작업환경을 만들어 가야 한다. 지구환경 개선을 위해 기업에서는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는데, 2024년 기업 신년사를 살펴보면, 미래 경쟁력을 위해 친환경 생산체제 구축을 위한 다양한 기술을 적용, 계획하고 있다. 탄소중립은 미래세대를 위한 시대적 소명이며 제철소는 탄소중립 생산체제를 빠르게 안정화 시켜가야 하고 친환경 생산체제를 구축하지 못하면 미래시대에서는 생존 할 수 없다. 전기, 수소 등의 청정 에너지를 사용하는 연료 효율성이 뛰어난 전기차, 수소차로 자동차 문화의 큰 변화를 가져 오고 있다. 생활문화에서도 선진국에서는 자동차 대신 대중교통을 활용하거나 자전거나 도보 등으로 바뀌어 환경 오염 방지와 탄소 배출량을 줄여가고 있다. 기업의 ESG경영과 지구환경살리기 운동, 그린 수소, AI 등 과학기술 적용으로 지속가능 경영과 미래의 지구환경을 만들어 간다. 결국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생각, 사회적 행정제도, 실행의 산물이 지구촌의 미래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2024-01-09

마음먹기와 마음챙김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새해가 되면 으레 목표나 계획을 세우고 새로운 다짐이나 각오를 하게 된다.아직 오지 않은 미래는 선물 같은 나날이니, 새로운 날들에 대한 기대와 설렘으로 신년설계와 희망을 꿈꾸는 것은 의미있는 일이지 싶다. 이러한 새해 소망과 목표는 자신이 처한 환경이나 기준, 관점에 따라 제각기 다르게 나타난다. 건강과 행복, 합격이나 취업, 안전과 무사고, 장사나 사업, 복권이나 재물 등에 대한 행운이나 대박, 이득이나 성취를 간절히 바라며 기원하고 염원하기도 한다.이렇게 새해를 맞아 새롭게 마음먹으며 목표를 정하는 것은, 대부분 자신의 삶이 좀더 나아지고 좋아지려는 방향으로의 진전이나 성취, 달성을 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모든 일은 마음먹기에 달렸다지만, 마음먹은대로 잘 되지 않은 것이 세상사이다. 누구나 마음먹기는 쉬워도 마음먹 은대로 이룩하고 얻어내기가 결코 만만찮은 것은 현실적인 여건이 녹록찮기 때문이다.그럼에도 사람들은 해마다 아니, 날마다 새로운 마음을 먹으며 도전하고 추구하는 것은 새로운 날들에 대한 희망과 기대, 믿음을 저버리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그렇게 숱하게 마음을 먹고 다지며 노력하고 인내하며 나아가도 목표가 요원하고 실패와 좌절을 거듭하게 된다면, 어느 순간 실의와 허망감이 들어 급기야 어떤 일을 마음먹기조차 힘들어질 때가 있기도 할 것이다. 그로 인해 과도하고 복잡한 생각에 빠져 스트레스를 받거나 정서적 불안감으로 일에 대한 의욕상실과 포기로 이어져 허탈감에서 오는 마음의 상처를 받게 되는 경우라면 어떻게 될까? 마음이 지치고 허약해져 매사가 귀찮아지고 마음먹기가 잘 안돼 괴리감에 빠진다면 ‘마음챙김’을 권하고 싶다.마음의 근력을 키우는데 도움을 주는 ‘마음챙김’이란 생각과 욕구를 멈추고 철저하게 ‘나’를 내려놓는 훈련이다. 예컨대 나의 감정, 생각 그리고 몸의 감각에 집중하는 동안 의도적으로 현재 이 순간을 인식하게 되는 일종의 자기명상 수련법이라 할 수 있다. 즉, 마음챙김은 아무것도 개입시키지 않고 오로지 순수하게 깨어서 경험되는 의식경험을 바라보는 것으로 내 마음과 오롯이 만나는 시간이다. 이러한 마음챙김의 순수관찰을 통해 자기와 세계에 대한 통찰로 현재 순간을 있는 그대로 수용적인 태도로 자각할 수가 있으며, 어느 것에도 집착함 없이 조용하고 유연할 때 일어나는 심리적 자유의 상태를 느낄 수 있는 것이다.마음먹은대로 일이 잘 풀리지 않고 어려워질수록 내 마음을 잘 챙겨야 한다고 본다. 세상을 살다 보면 힘들 때도 있고 고난도 있기 마련이다. 마음이 힘들면 몸은 가눌 수조차 없게 되니 너무 현실에 급급하고 연연해하지 말고 성찰과 긍정의 자기암시를 통해 자신을 또렷하게 알아차리며 내 마음을 단단하게 만들어 나가는 마음챙김을 꾸준히 해나가면 어떨까? 평온한 마음을 온전히 잘 챙기고 지켜야 모든 일의 마음먹기가 쉽고 원활해질 것이다.

2024-01-09

자전거 탄 풍경

현재 지구 환경은 위기에 처해있다. 지구온난화를 넘어 지구가열화 상태에 접어든 지도 한참이다. 연초부터 세계 곳곳에서 들리는 이상 기후로 인한 재난 소식은 지구촌 식구들 모두가 마음 기울여야 할 지구 생태에 관한 문제다. 하나뿐인 지구를 위해 우리 주변에서 실천할 수 있는 소소한 일들은 어떤 것이 있을까. 수필가의 눈으로 들여다본다. /편집자 주자전거는 내게 동경의 대상이었다. 반짝이는 빨간 자전거를 타고 거랑둑을 산책하거나 꽃집을 향해 가는 장면을 떠올리면 가물거리던 행복의 실체가 손에 잡힐 것도 같았다. 자전거에 올라앉아 귀를 사로잡는 거랑물소리를 들으며 제라늄 화분을 사서 집으로 오는 길을 상상하는 일 만으로 겨드랑이가 간지러워지곤 했다. 하지만 지금껏 그럴만한 기회가 없었다. 겨우 반나절 연습하다 그만둬 버린 게 고작이다. 나에게 자전거는 지구별을 생각하는 마음보다 낭만을 위한 장치였다.아버지에게 자전거는 평생토록 발이 되어준 고마운 물건이었다. 아침마다 들로 나가 당신의 농지를 둘러보는 일은 언제나 자전거와 함께였다. 툭하면 병치레하는 막내딸을 등 뒤에 앉히고 읍내에 하나뿐인 병원을 향할 때에도, 농사철이 돌아와 엄마 대신 들밥을 싣고 나를 때에도 아버지의 자전거는 바쁘게 움직였다. 닷새장을 찾아 막걸리를 거나하게 걸친 아버지의 자전거 짐칸에는 누런 종이에 싸인 간갈치며 몇 톳의 김, 때론 항아리가 아슬아슬하게 매달려있기도 했다.첫 아이를 낳고 집을 옮길 돈이 모자라 끙끙거리고 있을 때 아버지는 털털거리는 낡은 자전거를 타고 딸네 집엘 오셨다. 언덕배기 이층집 한 귀퉁이에 세 들어 살던 딸을 위해 오르막을 힘겹게 올라온 아버지는 신문지에 싼 돈뭉치를 품에서 꺼내주곤 쌩하니 돌아서 가셨다. 버스를 마다하고 먼 길을 굳이 노를 젓듯 출렁이며 오신 노년의 아버지에게 자전거는 건재함의 표징이기도 했다.몇 해 전, 딸아이와 간사이 지방을 여행하느라 오사카 시내에 닷새가량 머물렀다. 벚꽃 시즌이어서 숙소 맞은편 건물 앞에 선 늙은 벚나무도 꽃등을 환히 밝히고 있었다. 날이 저물면 밤 벚꽃이 내뿜는 매력에 이끌려 따뜻한 사케 한 잔을 들고 창가를 서성였다. 그러다 자전거 탄 사람들의 무리를 보았다. 그들은 끝도 없이 밀려와 벚꽃 잎이 마중하는 건물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한참이 지나 밖으로 나온 그들은 자전거 방향을 돌려 타고 떠났다. 어느 단체의 모임이 있는 날이라고 했다. 그림 같은 풍경이었다.자전거 행렬은 여행 내내 거리 곳곳에서 마주쳤다. 그들은 치마나 정장을 입고도 자전거를 탔다. 출근을 하든, 공원을 가든 그들에게 자전거는 몸에 딱 맞는 옷을 입은 것처럼 자연스러웠다. 신 오사카 역에 주차된 수만 대의 자전거를 목격했을 땐 벌어진 입을 다물 수 없었다. 교토의 주택가 골목을 걸으며 보니 집집마다 각양각색의 자전거가 한 대씩은 놓여 있었다. 자전거는 일상을 함께하는 소박한 친구로 보였다. 그때까지도 나는 멀지 않은 마트에 갈 때조차 당연한 듯 차를 타고 다녔다. 화석연료를 생산하는 거대 석유기업의 배를 불리고 탄소 배출에 일조하고 있다는 생각까지는 한심하게도 하지 못했다.지난해엔 딸아이와 베트남을 여행할 기회가 있었다. 하노이에서 호찌민까지 느긋하게 둘러볼 계획이었다. 하노이에 도착한 첫날부터 도로를 가득 매운 오토바이로 인해 정신이 아찔했다. 오토바이 매연은 건강한 사람도 지치게 만들었다. 비행기에서 본 검은 구름 탓인지 파란 하늘은 사라지고 없었다. 사흘을 그 도시에 머물렀지만 하늘은 보이지 않았다. 그곳 사람들은 하늘 따위 안중에 없다는 듯 밀려드는 관광객을 상대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사라진 하늘은 언제든 다시 찾아올 수 있다고 믿는지도 몰랐다.외곽에 위치한 하롱베이에선 크루즈에서 내뿜는 지독한 매연으로 인해 매스꺼움과 어지럼증에 시달렸다. 크루즈 꽁무니에 매달린 통통배가 손님을 실어 나를 때마다 뭉텅뭉텅 뱉어내는 검은 매연은 푹푹 찌는 더위 속에서도 마스크를 찾게 만들었다. 카약도 섬 구경도 팽개치고 집으로 가고 싶은 맘이 솟구쳤다. 쏟아지는 매연과 지구는 별개라는 듯 아무렇지 않게 살아가는 현지인들이 이해되지 않았다. 소음과 매연이 범벅된 곳을 떠나 다낭으로 내려갔을 때 겨우 파란빛을 지닌 하늘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그곳 하늘도 모습을 감추는 날이 다가오고 있다는 신호가 여기저기서 감지되는 걸 슬프게 지켜봤다. 박월수 수필가 자동차를 타는 우리는 아름다운 지구별에 폭력을 일삼고 있는 사람들이다. 가열화로 치닫는 지구별에서 지금껏 해오던 그대로 살아가는 건 죄를 짓는 일이다. 열병에 걸린 지구를 위해 자동차 대신 자전거 타는 풍경을 그려본다. 밥을 주어야 움직이는 시계태엽처럼 발바닥의 힘으로 달리는 바퀴 위에서 고스란히 전해지는 땅의 기운을 느끼며 사는 이들은 여유롭다. 자전거 위에서는 처음 만나는 사람끼리도 정다운 인사를 주고받는다. 자전거 타는 풍경이 늘어날수록 기후위기를 겪는 지구는 그만큼 맑아지겠다.내가 처음 자전거에 올라본 건 여고 진학을 앞둔 어느 날이었다. 버려진 비상 활주로에서 내 자전거를 잡아주며 넘어지려는 쪽으로 핸들을 돌려야 한다고 일러주던 사람이 있었다. 옆마을 큰 기와집 아들이던 그는 서울서 대학을 다니는 중이었고 사춘기를 지나던 내게 대학생 오빠가 잡아주는 자전거는 몹시도 부담스러웠다. 그날 이후 내 자전거 타는 실력은 한 뼘도 나아지지 않았다. 하나뿐인 지구별이 넘어지기 전에 우선 자전거 타는 연습부터 해야겠다. ◇ 박월수 수필가 약력 ·2022년 대구수필가협회 문학상·2022년 경북문협 작가상 등 수상·수필집 ‘숨, 들이다’·청송문인협회장 /박월수 수필가

2024-01-09

르네상스 회화 마사초의 ‘성 삼위일체’

마사초의 프레스코화 ‘성 삼위일체’. 피렌체 산타 마리아 노벨라 성당의 북쪽 벽면에는 ‘성 삼위일체(The Holy Trinity)’를 주제로 하는 프레스코화가 그려져 있다. 벽화를 그린 화가는 15세기 초 피렌체에서 활동했던 마사초(Masaccio)라는 사람인데 스물 여섯의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많은 작품을 남기진 못했지만 실력은 상당했던 모양이다. 마사초가 ‘성 삼위일체’를 그린 것은 대략 1426년에서 1428년 사이로 피렌체의 노련하고 쟁쟁한 미술가들과의 경쟁에서 조금도 밀리지 않았던 것 같다.‘성 삼위일체’는 기독교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기본교리이다. 성부 하나님, 성자 예수 그리스도 그리고 거룩한 영 성령은 삼위(三位), 세 개의 다른 위격으로 존재하지만 본질적으로는 동일한 ‘하나의 하나님’이라는 종교적 가르침이다. 마사초의 벽화에는 십자가에 못 박힌 성자 그리스도가 중앙에 그려져 있고, 그 뒤에서 십자가를 들고 있는 성부 하나님 그리고 이들 사이에 성령을 상징하는 흰색 비둘기가 나타난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아래로 성모 마리아와 예수의 제자 요한이 나타난다.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는 시선을 그림 밖 감상자에게 던지며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에 동참할 것을 호소하고 있다. 맞은 편 붉은 망토를 두른 사도 요한은 잠잠히 두 손을 모은 채 그리스도의 죽음 앞에서 기도를 드리고 있다.마사초의 벽화 가장 아래 부분에는 성 삼위일체와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어 보이는 두 인물이 무릎을 꿇은 모습으로 등장한다. 두 사람이 정확하게 누구인지 알려지지 않고 있지만 당시의 회화적 관례상 마사초가 이 벽화를 그릴 수 있도록 경제적인 지원을 했던 기증자 부부였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림에 묘사된 이런 내용들을 종합하면 마사초의 벽화에는 세 가지 다른 층위의 시공간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유추해 낼 수 있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사건의 시간과 공간, 성 삼위일체의 시공간적 초월성 그리고 마사초가 그림을 그리던 당시의 시간과 공간이 하나의 벽화에 공존하고 있다.서양미술사에서 마사초의 ‘성 삼위일체’는 최초로 수학적으로 계산된 ‘선 원근법(linear pespective)이 적용된 작품이라는 기념비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 원근법은 2차원의 평면에 공간감을 불러 일으키기 위한 미술기법이다. 중세까지만 하더라도 그림들은 거의 대부분 평면적이었다. 중세미술의 주류는 기독교미술이었고 종교적 기능과 목적을 위해 제작되었다. 중세미술은 종교적 가르침을 위한 목적으로 제작되었거나 기도와 묵상으로 이끌어 주는 역할을 했다. 그래서 인물이나 대상 혹은 자연을 눈에 보이는 그대로 그릴 필요가 없었다. 오히려 자연의 시공간을 넘어선 신적인 세계를 상징하기 위해서 찬란한 금빛을 배경으로 사용한 경우가 많았다. 혹은 종교적으로 중요한 인물을 강조하기 위해 화면 가운데 위치시키고 주변 인물들 보다 크게 그려 넣었다. 논리적이지는 않지만 이런 표현법도 공간감을 불러 일으키기 때문에 원근법이라고 할 수 있다. 인물이 지닌 종교적 중요도에 따라 위치와 크기가 달리 표현되면서 발생되는 이런 공간감을 ‘의미적 원근법(Hierarchical proportion)’이라고 부른다.르네상스의 여명이 밝아오면서 미술가들은 눈에 보이는 자연을 그대로 옮겨 놓으려는 시도를 했고 이 때 처음으로 부딪혔던 문제가 공간표현이었다. 화면 위에 가상의 소실점을 찍고 이 점으로 수렴되는 선들을 긋는다. 그리고 그 위에 그리려는 대상의 크기를 일정한 비율로 축소시키면 2차원의 평면에 공간감이 만들어진다. 르네상스가 발명한 선 원근법은 19세기 중반 현대미술이 태동하기 이전까지 수 백년 동안 서양미술의 화면구성을 지배했다. /김석모 미술사학자

2024-01-09

방언이라는 다양성의 질서

이상규 경북대 명예교수 갑진년 새해다. 우리가 알아야 할 매우 중요한 시대의 변화를 요약하면 인간의 인지능력에 기대어 살던 시대가 저물어가는 대신에 기계가 우리의 인지를 결정적으로 도와주는 시대로 바뀌고 있다. 인류 문명의 변화의 단층을 이루고 있는 중요한 매개물이 시공간을 뛰어넘는 지식정보의 전달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문자의 발견은 고대에서 중세라는 시대로 이행하는 촉매역할을 하였고 이 문자를 통한 지식 정보가 소리, 그림, 사진 이미지로 전달되면서 르네상스라는 인간 중심 사회로 이행되었다. 이때까지는 인간의 인지 폭 안에서 모든 사물을 인식해야 하기 때문에 다양한 변종들을 단순화시켜 표준화하는 일에 몰두하였다.예를 들면 ‘잠자리’라는 표준어에 대응되는 변이형은 엄청나게 많이 나타난다. 특히 지리적인 차이에 따라 잠자리의 음성적 변이형으로 ‘잠바리’, ‘잔자리’, ‘짠자리’ 등 이루 셀 수 없을 정도이다. 한편 형태적인 변이형으로 ‘철겡이’, ‘철벵이’, ‘철기’, ‘처리’ 등 단일한 의미를 담은 언어의 변종이 많이 나타나므로 이를 표준화하여 모두 ‘잠자리’로 표준화하였다. 그리고 학교 교육에서나 모든 국가적 제도의 틀 속에서 표준어만을 존중하는 시대를 거쳐 왔다. 이러한 시대에서는 지역의 정보가 표준어인 서울에 비해 열등한 것처럼 없애버리는 혹은 잊혀지는, 잊혀야 하는 시대를 거쳐왔으나 여러 가지 문제점이 차츰 드러나기 시작하였다.필자가 왜 평생 방언 연구를 위해 정성을 쏟았는지 그 내력을 조금 소개해 드릴까 한다. 1979년 무렵 우리나라 국가적인 방언조사 계획에 참여하여 경상북도 전역의 방언조사를 수행하였다. 엄청난 방언 데이터를 어떻게 처리를 해야 할까?엑셀이나 메모장을 기반으로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한 다음 이를 어떻게 판독할 것인지 큰 과제였다. ‘잠자리’라는 방언 어휘의 예를 들어 ‘잠자리’형과 ‘철기’형으로 구분하여 하나의 얼개를 만들면 음성적 변이형과 형태적 변이형들의 갈래가 지워진다. 그러한 방언 분화가 왜 생겨났는지 언어학적인 설명이 더욱 용이해진다. 그러나 수천 항목을 이처럼 하나하나 해석하기란 너무나 벅찬 일이 아닐 수가 없다. 이것을 어떻게 하면 기계적 처리가 가능할까?이러한 기술이 일본에서는 상당한 진전을 이루고 있었다. 2003년 일본 동경대학교에 컴퓨터를 활용한 언어지도 작성에 대한 연구를 위해 떠났다. 언어지도 제작 시스템 SIL을 개발한 니가타대학에 후쿠시마 교수와 동경에서 그리고 니가타대학 연구실로 옮겨 가면서 SIL시스템을 한국방언자료에 적용하여 데이터베이스 구축과 자동으로 한반도 지도상에 채록된 방언형을 해당 지도 위에 멋진 상징부호로 전환하여 채색 상징부호 언어지도를 완성할 수 있게 되었다. 일본 문부성 국어연구원에서와 동경대학교 대학원생들 대상으로 한 한·중·일 언어지도 제작에 대한 특강 등을 통해 방언 자료의 기계적 처리에 대한 논의를 활발하게 불러 일으켰다.유학을 하고 돌아온 후 우리 독자적인 방언지도제작시스템 구축을 위해 경북대학교 컴퓨터공학과 교수와 대학원생들의 협조를 받아 드디어 K-Map이라는 한국언어지도 제작시스템을 완성하였다.한국방언학회지에 방언자료 처리와 언어지도 제작에 관한 논문을 계속 발표하였다. 정년퇴임을 할 무렵 내 연구실 제자들과 함께 ‘방언을 지도에 입히다’(민속원, 2019)를 연구의 총체적인 결실물로 간행하였다. 마침 20세기를 넘기면서 점점 소멸하는 변두리의 생태와 붕괴되는 지식체계의 복원을 주장하는 다양성과 다원성을 보존하자는 논의들이 활발했던 시기였다.그와 함께 컴퓨터의 기술이 놀랍게 발전하면서 웹에서 앱으로 휴대전화 속에서 모든 정보를 교환하고 검색하여 공유할 수 있는 시대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지금까지 중요하지 않았다고 생각하던 텍스트, 음성, 이미지 정보들을 대량으로 모아서 빅-데이터를 구축함으로서 인간의 인지적 한계를 훨씬 뛰어넘어 기계가 필요한 정보들을 신속하게 검색하여 정화한 정보를 알려주는 시대로 접어들었다. 앞에서 말한 방언, 사투리, 지역말씨가 이젠 버려야 할 것이 아니라 황금의 알이 되었다.앞으로 어떤 황금알을 만들 것인지 풀어나갈 것이다.

2024-01-08

낭만과 현실의 무대 홋카이도 <1>

일제강점기라는 지난 세기 어두운 터널을 벗어나 경제·사회·문화의 우호적 파트너로 변화한 21세기 한·일 관계. 이경재 숭실대 교수는 학술연구를 목적으로 일본을 30차례 이상 다녀온 학자다. 올봄엔 도쿄대학에 교환교수로 간다. 그간 이 교수가 면밀하게 살펴온 일본 문화·예술의 어제와 오늘을 독자들에게 들려줄 ‘이경재의 일본을 읽다’는 2024년 본지가 준비한 주요한 기획연재 중 하나다. 독자들의 관심을 기대한다. /편집자주홋카이도(北海道)가 떠오른 것은 연일 영하 15도를 넘나드는 오랜만의 강추위가 계속되어서일까요? 어린 애들도 알다시피 일본은 네 개의 큰 섬으로 이루어진 나라인데요. 가장 북쪽에 위치한 홋카이도는 남한 면적의 80%에 이르는 아주 큰 섬입니다. 특히 우리에게는 설원의 롱테이크 영상으로 유명한 영화 ‘러브레터’의 배경으로 널리 알려져 있지요. 생사를 뛰어넘는 순백의 사랑 이야기가 펼쳐지는 주무대가 바로 홋카이도였던 것입니다. 지금이라도 여주인공 나카야마 미호의 “오겡끼데스까”라는 외침이 울려퍼질 듯한, 홋카이도는 눈과 벌판과 추위와 이국적인 정서로 가득한 낭만과 꿈의 무대임에 분명합니다.홋카이도는 근대 일본의 역사적 상흔이 그 어느 곳보다 강렬하게 남겨진 곳이기도 합니다. 전국시대를 통일하고 에도 막부를 연 도쿠가와 이에야스(1542∼1616)가 즐겨 보던 세계지도에는 아메리카나 아프리카 대륙까지 표시돼 있지만, 오늘날의 홋카이도는 표시되어 있지 않다고 합니다. 그 정도로 메이지 이전까지 홋카이도는 일본과는 무관한 아이누의 땅이었던 것인데요. 메이지 유신을 기점으로 근대 국민국가의 길을 걷기 시작한 일본은, 홋카이도를 일본의 지방으로 편입시켜 버립니다. 이후 제국 일본은 오키나와를, 타이완을, 조선을, 만주를 자신의 일부로 먹어치우는 침략적 야욕을 유감없이 발휘했는데요. 그렇기에 홋카이도는 근대 일본제국주의가 시작된 곳이라는 역사적 의미를 지닌다고도 볼 수 있겠네요.또한 홋카이도는 자본주의 사회의 가혹한 노동 착취의 현장이기도 했습니다. 그것은 일본 프롤레타리아문학의 대표작인 고바야시 다키지(1903∼1933)의 ‘게공선’(1929)의 배경이 홋카이도인 것에서도 잘 드러나는 사실이지요. 고바야시 다키지는 홋카이도에서 성장하였으며, 그가 사회생활을 시작한 것도 다쿠쇼쿠은행 오타루 지점에서입니다. 그가 노동운동과 프롤레타리아문학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것도 홋카이도에서였고, 이런 상황에서 탄생한 것이 그 유명한 ‘게공선’인 것입니다.게공선 하쿠코마루호는 홋카이도 북쪽의 거친 바다에서 게를 잡아 통조림으로 가공하는 일종의 공장선입니다. 게공선에 승선한 이들은 가난과 자본의 핍박에 몰리고 몰려 마지막 선택지로 일종의 감옥이나 마찬가지인 배에 오른 처지입니다. 이 게공선은 당시 자본주의 일본의 온갖 문제를 통조림처럼 꽉꽉 눌러 담은 공간이기도 하네요. 게공선은 일반 선박이 아닌 공장선이기에 항해법의 적용도 받지 않고, 순수한 공장이 아니기 때문에 공장법의 적용도 받지 않습니다. 일종의 무법지대인 이곳에서는 오직 성과만을 절대시하는 자본의 논리만이 힘을 발휘하는군요. 감독인 아사카와는 자본가를 대리하며 온갖 폭력을 행사합니다. 폭언이나 폭행은 애교에 가깝고, 생산량을 늘리기 위해서라면 고문도 서슴지 않을 정도입니다. 아사카와는 근처에 있는 게공선 자치부마루호가 침몰하는 상황에서도, 이익을 위해 400여 명의 생명을 외면하는 모습까지 보입니다. 젊은이 야마다가 죽었을 때는 돈을 절약하기 위해 바다에 던져질 야마다를 새 마대 자루가 아닌 헌 마대 자루에 싸서 버리게 지시할 정도입니다.흥미로운 것은 이러한 자본의 폭력은 일본이라는 국가의 도움이 있기에 가능하다는 점입니다. 자본가를 대리하여 게공선에서 노동자들을 쥐어짜는 아사카와 감독은 게를 잡아 통조림을 만드는 일이 “국가적인 일”이라 강조합니다. “대일본제국의 대장부”가 되기를 강요받는 노동자들도 처음에는 일본군 구축함을 볼 때마다 눈물을 흘릴 정도로 감격하며, “일본제국을 위해서 일한다”는 자부심을 느끼기도 합니다. 그러나 게공선 노동자들이 처음으로 파업에 나섰을 때, 게공선에 오른 일본군들은 노동자들을 도와주기는커녕 그들을 폭행하고 파업의 지도부를 끌고 갈 뿐입니다. 이를 통해 게공선의 노동자들은 ‘일본제국의 해군도 결국 자본가들과 한통속’이었음을 깨닫습니다. 본래 자본주의와 국민국가는 동전의 앞뒷면처럼 분리 불가능한 근대의 핵심적인 두 기둥이기도 합니다. 이경재 숭실대 교수 ‘게공선’은 프로소설의 일반적인 문법에 걸맞게 낙관적인 전망으로 끝납니다. 한번 실패를 맛본 게공선의 노동자들은 더욱 강한 단결력과 투쟁력으로 기어이 파업에 성공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낙관적 전망은 특별고등경찰의 고문에도 굴하지 않고 자신의 신념을 지키다 요절한 고바야시 다키지의 강렬한 사회의식이 반영된 결과겠지요. 지금도 시립 오타루문학관에 가면 이념과 문학을 위해 자신의 생명을 바친 고바야시 다키지의 삶과 문학의 향훈을 느낄 수 있습니다. 놀라운 사실은 2008년 신초사에서 문고본으로 재발행한 ‘게공선’이 무려 50만 부 이상 팔리고 2009년에는 영화로까지 만들어지는 등 21세기 일본 사회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는 점입니다.이것은 아마도 현재의 일본이 100여 년 전의 홋카이도 바다를 다시 떠올리게 할 만큼 만만치 않은 것과 관련된 것이겠지요. 일본인조차 최고의 관광지로 꼽는 눈과 낭만의 홋카이도에서 한번쯤 근대 일본의 역사적 상흔을 떠올리는 것도 분명 의미 있는 일본체험이 될 것입니다.

2024-01-08

내 몸에 흐르는 여러 차원의 시간

방민호 서울대 교수·국문학과 사람은 살면서 신비체험을 할 때가 있다. 마음이 환하고 깨끗한 사람은 세상을 상세히 알지 않고도 꿰뚫어 보고, 이 세상을 하나로 삼고 그 하나 너머의 빛을 맞아들일 수 있다. 세속 잡사에 휘둘리기 쉬운 체질을 가진 사람은 이 세상의 이런저런 일들에 마음을 빼앗긴 채 짧은 인생을 덧없이 보낸다.나는 후자 쪽의 유형에 가까운 사람이다. 옛날부터 지금까지 한 번도 정치적인 사건들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대학생 시절은 제5공화국 시절이었다. 신문마다 목소리가 하나로 다르지 않은 것을 가판대에서 이 신문도 사보고 저 신문도 사보며 같은 기사를 혹시 조금이라도 다른 어조가 있을세라 반복해서 읽곤 했다. 세월이 이렇게 많이 흘렀는데도 나는 여전히 뉴스에 목말라 있다. 정치적 진실이 언론들이 전달하는 것에서 늘 멀리 있음을 알기에 홍수같이 밀려드는 뉴스의 숲속을 헤매며 진실의 한 조각이라도 제대로 전하는 곳을 찾아 헤맨다.그런데 최근 어느 날이다. 늘 늦게 자는 버릇에, 몇 번씩 깨는 습벽으로 나의 잠은 아주 저질스럽다 하겠는데, 그날 새벽 문득 깨어나니 머릿속이 한없이 깨끗한 것이었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언제라도 죽을 수 있을 것 같았고, 지금 당장 죽는다 해도 아무런 무서울 것이 없을 것 같았다.좀 더 시간이 흘러 정신이 돌아오면서, 이제는 어제까지와는 다른 삶을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흘러들었다. 일간신문의 정치면에 거리를 두고 내 몸속에 흐르는 삼십 년 단위, 백 년 단위, 천 년 단위, 만년 단위의 시간의 흐름에 귀를 기울여야겠었다.그러고 보면 ‘나’라는 존재는 세속적인 차원의, 인간학적인 차원의, 생물학적인 차원의, 그리고 우주적인 차원의 삶, 생명이 흘러가는 전도체와도 같은 것을, 저 칼 융의 ‘원형 상징’에 관한 책을 읽고 그토록 깊은 감화를 받고도 나는 여전히 풍진 속을 헤매며 살아가고 있다.젊은 날 칼 융의 ‘무의식’에 관한 책을 읽고 나서 국문과 대학원생 연구실을 내려와 저녁 어스름 빛을 받으며 학교를 내려가는데, 갑자기 세상이 ‘블루’하게 보였다. 마음속의 무의식이 세상에 마치 블루한 필터를 끼워 놓은 것처럼 내 눈에 보이는 세상은 신비스러운 푸른 빛을 발산하는 것이었다.그 융은 그때 책에서 말했다. 무의식은 어둠만 아니라 빛으로도 이루어져 있다고. 우리들 무의식에는 저 인류의 시원으로부터 쌓여 온 삶의 온갖 기억과 자혜가 저장되어 있다고. 이제는 정말 그 모든 시간들을 함께, 아울러 의식해야겠다고 생각한다.새해를 앞뒤로 하여 이 나라에는 사람들 마음을 흔드는 큰 사건들이 많았다. 너무나 잘 알려진 스님의 돌연한 입적, ‘기생충’과 ‘나의 아저씨’로 사람들 심중에 깊이 들어온 연기인의 죽음, 또 갑작스러운 정치인 피습 사건. 모두 삶의 덧없음을 입증하는 것이기도 하다.삶의 더 깊은 차원들에 관심을 기울이고, 차원 다른 여러 시간들이 내 몸에 흐르고 있음에 주의를 기울이며, 더 여유 있게, 더 정갈하게, 더 고요하게 살아가고 싶다. 사람의 삶은 찰나의 빛과 같으니 말이다.

2024-01-08

대학등록금 인상

홍석봉 대구지사장 대학들이 올해 등록금을 지난해보다 최대 5.64% 올릴 전망이다. 지난해보다 1.79%p 올랐다.대학 등록금 인상한도가 5%대가 된 것은 2012학년도(5.0%) 이후 12년 만이다. 또 정부가 등록금 인상 상한을 공고한 2011학년도의 5.1% 이후 13년 만에 최고치다. 그러면서 정부는 대학에 “어려운 경제 상황을 고려해 등록금을 동결해달라”고 요청했다. 국가 장학금 지원 등 당근책까지 제시했다.대학은 죽을 맛이다. 등록금 동결은 대학 교육의 질을 떨어뜨린다. 15년째 계속된 등록금 동결과 입학정원 감소로 대학의 수입이 줄었다. 대학은 인건비와 관리비 충당에 급급하다. 첨단 설비 도입은 아예 엄두를 못낸다. 노후 건물의 개·보수 조차 힘들다. 그렇다고 정부의 재정 지원이 크게 는 것도 아니다. 국가장학금을 제외하면 되레 줄었다.한국의 대학 경쟁력은 세계 수준에 못 미친다. 2022년 스위스 국제경영개발대학원이 발표한 대학 경쟁력 순위에서 한국은 63개국 중 46위다. 선진국들이 산업 고도화를 위한 고등교육 투자를 늘리는 동안 우리는 거꾸로 갔다.지난해 일부 대학은 정부 제재에도 불구, 등록금을 인상했다. 올해는 등록금 인상에 가세하는 대학이 더욱 늘 전망이다.교육 개혁은 윤석열 정부의 3대 개혁 과제 중 하나다. 대학 자체적으로 개혁할 수 있도록 해 줘야 한다. 등록금의 완전 자율화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수준으로 조정할 필요성이 높다. 대신에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에겐 장학금을 대폭 늘려 주는 것이 맞다. 국회 입법조사처도 최근 대학의 등록금 동결·인하 유도는 법적 근거가 없다며 개선을 요구했다.언제까지 교육부가 대학의 목을 틀어쥐고 있을 것인가./홍석봉(대구지사장)

2024-01-08

한동훈의 ‘비정치인’ 영입, TK현역들 긴장

국민의힘 한동훈 비대위원장이 판사출신 정영환 고려대 교수를 공천관리위원장에 영입하면서 TK(대구·경북) 현역의원들이 긴장하고 있다. 주요당직에 대부분 비정치인, 비영남권 출신을 포진시키는 이유가 ‘영남권 정치인’에 대한 대대적인 물갈이를 염두에 둔 게 아니냐는 해석 때문이다. 여권에서는 “한 위원장이나 정 공관위원장의 경우, 정치권에 빚이 없어 눈치 보지 않고 공천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현역교체 비율이 70~80%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한 위원장은 취임 후 초선 사무총장, 원외 여의도연구원장 등 신임 지도부 파격인선을 통해 국민의힘이 ‘올드한 영남당’이라는 그간의 인식을 벗어나기 위해 애쓰고 있다. 그는 취임사에서 총선 불출마를 전격 선언하면서, 정치권 세대교체를 위해 현역의원들의 헌신을 간접적으로 요구했었다. 곧 공천관리위원회가 공식 출범하면 현역물갈이에 압박은 갈수록 거세질 것이다.TK 현역들은 현재 중진·초선할 것 없이 신년 의정보고회를 앞다퉈 열면서 세력 과시를 하고 있다. 당내 최다선(5선)인 주호영(대구 수성갑) 의원은 “정치인과 나무는 오래 키워야 재목이 된다”며 6선 의지를 강하게 드러냈고, 윤재옥(3선·대구 달서을) 원내대표는 지난 7일 지역구에서 대규모 의정보고회를 열었다. 지난 주말을 전후해 대구·경북 지역구 의원 대부분이 의정보고회를 명분으로 재출마 의지를 표명했다.TK지역에선 새해들어 대통령실·정부출신 공직자와 친박(박근혜)계 인사, 정치신인들이 예비후보로 등록해 필드에서 뛰면서 치열한 공천경쟁을 벌이고 있다. 여기에다 ‘이준석 신당’이 대구를 기반으로 세 확장에 나서면서 이미 총선전초전은 과열양상을 보이고 있다. 한동훈 위원장은 모레(11일)부터 4선이상 중진들을 시작으로 선수(選數), 또는 권역별로 현역의원들과 상견례를 하는 자리를 가진다. 정치권에서는 한 위원장이 이 자리에서 공천물갈이의 불가피성을 설명하며, 당에 대한 현역의원들의 헌신을 당부할 것으로 보고 있다.

2024-01-08

벼랑끝 달빛철도 특별법, 정부 설득에 총력을

여야 261명의 국회의원들이 공동 발의한 달빛철도 특별법이 폐기될 위기에 처했다. 역대 가장 많은 의원이 공동 서명을 했음에도 법안이 법사위에조차 상정되지 되지 못하는 어처구니 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SOC 사업의 예비타당성 면제가 좋지 않은 선례가 될 수 있다는 정부 논리에 밀렸기 때문이다. 이제 총선을 앞둔 2월 임시국회에 특별법 통과를 기대해야 하나 기재부와 일부 의원이 반대하면 이 법안은 21대 국회에서 폐기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달빛철도 특별법은 2038년 아시안게임 공동유치와 영호남 교류확대, 동서화합 등을 명분으로 대구시와 광주시가 공동 추진한 법안이다. 지난 8월 특별법은 유례없이 많은 여야의원이 동의한 가운데 발의됐다. 특별법에는 예비타당성조사 면제와 국가의 행·재정적 지원을 주요 내용으로 담고 있다. 당초 고속철도로 건설키로 한 내용은 예산이 많다는 정부 주장을 받아들여 일반철도로 바꾸었다.달빛철도가 건설되면 대구와 광주는 물론 포항, 울산, 목포, 여수 등 영호남 주요 도시들이 1시간대 거리로 좁혀진다. 특히 8개 통과지역을 중심으로 남부권 광역경제권이 형성돼 국토균형발전을 촉진할 것이란 연구결과도 있다.정부는 예타면제가 남발되는 등 좋지 않은 선례를 우려하고 있으나 경제성을 최우선으로 삼는 예타제도가 유지되는 한 지방선 큰 사업비가 들어가는 SOC사업은 유치할 수가 없다. 정부가 국정과제로 추진하는 국토균형발전은 더 멀어지고 수도권 집중만 커질 뿐이다. 사업의 효율성과 시급성을 판단하기 위해 경제성을 따지는 것은 타당하나 인구소멸을 걱정하는 지방은 불리할 수밖에 없는 제도다.지난 3일 영호남 14개 지방자치단체장들은 달빛철도 특별법의 국회 통과를 촉구하는 건의문을 국회의장 등에 전달했다. 이들은 “30년 영호남 숙원사업이 경제성을 앞세운 예타제도에 막혔다”며 지방소멸 위기극복과 국토균형발전 등을 위해 법안 통과를 요구했다. 지역 정치권은 총선을 앞두고 예상되는 2월 임시국회에서는 반드시 이 법안이 통과되도록 모든 역량을 동원해야 할 것이다.

2024-01-08

마중물 소명

강길수 수필가 ‘마중물’이란 말을 가슴에 품고, 2024년 새해를 맞았다. 구랍 27일 오후였다. ‘만시지탄이지만, 천만다행이다!’는 생각이 번개처럼 뇌리를 쳤다. 이어, ‘마중물이 부어졌으니 맑은 물을 퍼내야 할 텐데….’ 하는 바람이 마음 가득 차올랐다. 대한민국의 공영방송 KBS가 드디어, 부정선거 문제를 26일 밤 9시 톱뉴스로 방송했단다. 그것도, 4꼭지나 할애하였다는 낭보였다. 당장 인터넷에서 그 톱뉴스를 찾아 시청했다. 비록 완곡했지만, 우리나라 부정선거의 전반적인 문제를 다루어, 보는 가슴이 뜨거워졌다.마음에서 시청료에 대한 거부감이 눈 녹듯 사그라들었다. 시청료 자동 납부를 박절하게 끊지 못하고 놔두길 잘했다는 생각도 들었다. 지난 20대 4·15 총선 후, 많은 이들이 부정선거 의혹을 제기했을 때 이런 방송이 곧바로 나왔어야 했다. 126건이나 되는 선거 소송이 제기된 선거였으니 말이다. 그때 주류언론이 본연의 역할을 다했더라면, 부정선거 문제는 진즉 다루어졌을 것이다.선거 소송은 대법원 단심제로, 법정 기간이 180일로 짧다. 사회 영향 최소화를 위함이다. 이번 KBS 보도에 따르면, 대법원은 126건 소송 중에서 5건만 재판 과정을 거쳤고 나머지는 작년 9월에 일괄 기각하였다. 법정 소송 기간을 4~6배 미루어 기각, 종결했다. 국회의원 임기 4년 중 2~3년 반을 지난 때였다. 대법원이 법정기일을 대놓고 깔아뭉개는 기막힌 현실을, 국민은 눈뜬장님처럼 쳐다봐야만 했다.지난 4년간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부정선거 척결을 외치며, 대한민국의 선거 공정성 회복을 위해 밤낮없이 애썼던 선지자적 애국시민들이 많다. 그들의 진실과 정의에 대한 갈망과 나라에 대한 사랑이 마중물로 되어, 대한민국호란 펌프에 부어지기를 열망했었다. 그런데 웬일인지 우리 사회의 주류언론들은 이 국가적 거악, 나라 내부침략 행위를 그냥 강 건너 불 보듯 했다.선거가 어떤 세력에게 불법으로 장악당한다는 것은, 그 거짓세력이 나라의 지배층이 된다는 뜻이다. 즉, 국민을 수탈대상으로 삼는 전체주의 체제로 변하는 것이다. 선거를 장악당한 다른 나라들의 예에서 보듯, 부정선거는 나라에 돌이킬 수 없는 화를 미칠 것이다. 전체주의가 된 후, 땅을 치고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만시지탄이지만 천만다행으로, 공영방송 KBS가 부정선거 공론화의 마중물을 부었다. 다른 언론들도 잇달아 심층 보도 등으로 마중물을 더 부어야 한다. 그래야 정부, 법조계, 학계, 정치권, 국민이 함께 펌프질하여 맑은 물을 퍼올릴 것이다. 마중물은 대한민국언론에 하늘이 내리는 소명(召命)이라 본다. 이 ‘마중물 소명’ 수행이 나라의 자유민주주의를 지켜내는 길일 것이기 때문이다.올 4·10총선이 100일도 못 남았다. 사람이 짐승과 다른 점은 천부의 지성으로 계획, 실천, 점검, 조치하는 데 있을 터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나라는 부정선거를 막는 특단의 대책을 짜, 나라의 전 기관과 온 국민이 함께 실천해 마중물 소명의 목표, 맑은 물을 퍼내야만 한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우’는 피해야 하므로….

2024-01-08

새해에는 ‘시각’을 전환하자!

최병구 경상국립대 교수 2024년 갑진년 새해가 밝았다. 새해를 앞두고 다이어리를 구매해서 새해 목표를 꾹꾹 눌러쓰던 시기가 있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특별한 목표를 정하지 않았다. 새해가 되고 한 살을 더 먹는 행위가 그다지 특별하지 않게 느껴진 까닭이다. 달력이 바뀌는 차이보다는 어제와 내일의 연속성이 조금 더 현실적으로 느껴지기도 했다.하지만 5년 전, 지역에서의 삶을 시작하고부터는 자연스럽게 수도권·지역의 격차를 느끼게 되었다. 지역에서 아이를 키우고 지역 대학에서 일을 하는 나에게 지역은 삶의 터전이다. 거의 모든 학술대회가 서울에서 개최되기에 왕복 8시간을 들여서 힘겹게 다녀오는 기간이 5년을 넘었다. 그동안 가장 크게 변한 것은 이제는 서울의 높은 건물과 복잡함에 머리가 아파서 학술대회가 끝나고 집에 가기를 원한다는 점이다. 여기에는 나의 힘겨운 상경을 알지 못하는 수도권 연구자의 말에서 받은 상처도 포함된다. 도시의 마천루를 벗어난 공간에서 살아가며 공간의 위계성을 어떻게 상대할 것인지가 최근 몇 년 새해 목표가 된 것도 이런 맥락에 놓인다.새해에 지역 사회에 큰 영향을 미칠 정부 정책이 ‘글로컬 대학 30’이다. 이 사업은 ‘선택과 집중’을 내세우며 혁신 의지가 있는 지역 대학 30개 학교를 지원한다. 지방 정부와 지역 대학이 함께 지역의 문제를 고민하라는 방향성을 담고 있기도 하다. 혁신과 자율, 지역 중심이라는 멋진 말에 지역 대학 소멸론, 출생률 감소까지 더해지면서 지역의 모든 대학이 사활을 걸었고 1차로 10개 대학이 선정되었다. 이 대학들은 2024년부터 본격적으로 변화를 위한 구체적 움직임을 보일 것이다.지역의 미래에 ‘글로컬 대학 30’ 사업이 어떤 영향을 줄까? 최근 내가 편집위원장으로 있는 웹진의 글로컬 대학 특집을 기획하고 원고를 받았다. 그중 지역에서 나고 자라 이제 막 박사학위를 받은 연구자의 글에 감탄했다. 글의 요지는 이랬다. 1980년대 거제는 조선소가 본격적인 가동을 하며 지-산-학이 일치되는 도시가 되었지만, 조선업의 몰락이 곧 도시의 황폐화로 이어졌다. 1980년대에 거제에서 산업은 발전했지만, 문화는 삭제되었고 이것은 청년들이 지역을 떠나는 결정적 이유가 되었다. 지-산-학을 내세우며 시작한 ‘글로컬 대학 30’의 미래는 과거와 얼마나 다를까? 그래서 저자는 진정한 ‘글로컬 대학’을 위해서 ‘인서울’의 ‘학벌순’으로 정원을 줄이거나, 서울에 있는 대학이 지역으로 옮겨야 지원금을 주는 정책을 제안한다. 지금으로서는 불가능한 그저 상상에 불과한 일이지만, 대한민국의 학벌주의와 지역 대학의 위기를 단번에 해결할 수 있는 정책인 것은 분명하다.뭐 하나 특별한 것 없는 새해지만, 특별함이란 반복되는 일상을 자명한 것으로 여기지 않고 뒤집어 볼 때 생긴다. 자조나 냉소가 아니라 불가능성의 가능성을 공유하고 함께 협력할 때 특별한 한 해가 될 수 있다. 지역에서 나고 자란 어느 연구자의 상상력이 널리 공유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런 새해가 되기를 기원한다.

2024-01-08

갈치를 주니까 중매가 온다

중매라는 선물을 받게 해줄지도 모를 갈치. 층간소음 갈등이 심각한 사회문제다. 바닥과 천장이, 벽과 벽이 맞붙은 아파트나 연립주택에서는 이웃이라는 개념이 사라지고 사르트르가 말한대로 ‘지옥’으로서의 타인만 남는다. 소음은 보복소음을 불러오고, 소음의 나비효과는 주먹과 발길질, 흉기가 되어 피를 보게까지 한다. 인터넷에 층간소음 복수법을 검색하면 온갖 방법들이 나온다. 천장에 설치하는 층간소음 보복 스피커가 품절 현상을 빚을 만큼 잘 팔린다. 스피커로 귀신 흐느끼는 소리, 불경, 찬송가, 아기 울음소리, 심지어 음란물 소리를 틀어두라는 조언이 넘쳐난다. 천장이나 벽을 두드리는 고무망치도 인기 상품이다. 이웃들을 마주칠 때마다 조현병 환자인 척했더니 층간소음이 사라졌다는 경험담까지 있다.나는 연립주택 4층에 사는데 5층의 생활소음이 잘 들린다. 샤워할 때마다 음정 박자가 엉망인 노래를 고래고래 부르는 윗집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았지만 새 거주자가 이사 온 뒤론 그쪽은 평화롭다. 최근엔 층간소음보다 벽간소음이 문제다. 옆집 402호에 새로 이사 온 아주머니 아저씨께서 현관문을 너무 세게 닫는다. 문돌쩌귀가 잘 안 맞는 데가 있는지 여러 번 열었다가 닫았다가 한다. 하루에도 열댓 번, 늦은 밤에도 그 소리가 들리면 짜증이 나고 욕설이 뱉어진다. 가서 따져야지 하고 단단히 벼르는 와중에 복도에서 아주머니를 마주쳤다. “안녕하세요” 인사하자 “저거 저렇게 두면 누가 안 가져가요?” 문 앞에 쌓여 있는 소포꾸러미를 걱정하신다. 집으로 책이 너무 많이 와 둘 곳이 없어 현관문 앞 구석에다 놓은 것들이다. 그러고 보니 아주머니와는 서로 한 번씩 도운 일이 있다.하루는 거실서 음악 들으며 쉬는데 창밖에서 누가 큰소리로 “401호 아저씨! 도와줘요!” 외쳤다. 창을 열어보니 옆집 베란다에서 아주머니가 자동방범창이 잠기는 바람에 안으로 못 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알려준 현관 비밀번호를 누르고 402호에 들어가 방범창을 열어 아주머니를 구출했다. 옆집이 이사 온 지 며칠 안됐을 때다.지난 가을엔 제주 바다 위에서 열심히 낚시하는데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안양동 지구대 경찰이었다. 집 문은 열려 있고, 택배는 잔뜩 쌓여 있고, 혹시 무슨 변고가 생긴 건 아닌지 싶어 옆집에서 신고했단다. 낚시 가는 길이 얼마나 설렜으면 칠칠맞게 문단속도 안하고 헤벌레 나섰을까. 다행히 사라진 물건도 없고, 누가 들어온 흔적도 없다. 옆집서 대신 문단속을 해준 게 참 고마웠다.도움을 주고받으며 피어난 작은 따스함 따위는 쿵쿵거리는 소음에 묻혀 기억도 나지 않았나보다. 복도에서 마주친 아주머니는 “총각이 잘생겼네. 장가 안 갔어요?” 살갑게 말을 걸었다. 두세 마디 대화 나누자 문 닫는 소리 시끄럽다고 따지려던 마음이 사그라졌다. 널찍한 테라스가 있는 우리 집 내부 구조가 궁금하다기에 들어와 구경하시라 했다. 그리고 지난번 문단속해준 보답으로 그때 제주에서 잡아온 갈치를 몇 토막 드렸다. 이병철 문학평론가이자 시인. 낚시와 야구 등 활동적인 스포츠도 좋아하며,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지그문트 바우만은 말한다. “이방인에게 말 걸지 말라는 말은 정상적 삶을 사는 성인들의 전략적 교훈이 되어버렸다. 이 교훈은 이방인이 말 걸기의 거부 대상이 되는 삶의 현실을 하나의 신중한 규칙으로 만든다”라고. 말을 거는 순간 관계가 시작되고, 관계는 성가시고 불필요한 것이다. “타인은 지옥”이므로 지옥의 문을 굳이 열 이유는 없다. 혼밥과 혼술이 편하고, 타인의 곤경을 봐도 섣불리 도와선 안 된다. 코로나 시절 타인은 병균 덩어리였고, 전염병이 종식된 지금은 경쟁자, 귀찮은 오지랖쟁이, 또는 아무런 감정도 들지 않는 사물일 뿐이다. 그렇게 우리는 ‘이웃’이라는 이름을 잃어간다. 언젠가는 사전에서 단어가 사라질 것이다.“이렇게 잘생기고 훤칠한 총각이 왜 혼자 살아. 내가 주변에 좋은 아가씨 있으면 중매 서줄까?” 갈치를 주니까 중매가 온다. 이건 꽤나 남는 장사가 아닌가. 중매보다 더 값진 건 이웃의 탄생이다.이제 지옥으로서의 타인은 없다. 갈등을 갈치로 바꾸고 적대감을 눈 녹듯 사라지게 한 건 그저 “안녕하세요” 한마디로 시작된 소소한 대화다. 갈등과 혐오가 넘쳐나는 우리 사회에 지금 절실한 건 안녕을 묻는 형식적이고 상투적인 이 한마디인지도 모른다. 그날 저녁 옆집서 갈치 굽는 냄새가 스멀스멀 흘러들어왔다. 이웃이 저녁밥을 짓는구나, 생각하니 마음이 부풀어 올랐다.

2024-01-08

가장 바깥쪽에 놓인 서점의 책처럼

근사한 삶은 주체적이고 독립적이어야 하지 않을까. /언스플래쉬 지난 12월 31일엔 광화문 교보문고에 다녀왔다. 서울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소를 꼽으라 한다면 주저 없이 광화문과 덕수궁 그리고 서촌을 말할 수 있다. 그곳의 주변엔 취향을 가득 담은 카페와 음식점, 동네 서점, 각 종 소품을 파는 가게 그리고 특정 장소들이 있다. 세 곳 모두 많은 이야기와 사람과 감정이 얽혀 있다. 어느 계절에 누구와 가도 좋은, 애정이 가득 담긴 곳이다.2024년을 정말 잘 보내고 싶은 욕심이 생겨서 지난해의 마지막엔 아침이 되자마자 광화문 교보문고로 향했다. 공들여 책을 골랐고 읽는 사람들을 자세히 보다 타인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보기도 했다.그리고 베스트셀러 매대 앞에 서서 그곳에 반듯하게 세워져 있는 책의 모습을 바라봤다.매대위 같은 책일지라도 제일 바깥쪽에 있는 책과 가장 안쪽에 책은 컨디션 차이가 꽤 난다. 제일 바깥에 있는 책은 많은 사람들에게 읽힌 탓인지 책 표지가 더 물렁물렁하고 모서리가 약간 닳아 있다. 종이를 넘길 때의 질감과 촉감도 다르다. 새 종이책 특유의 빳빳함을 잃고 훌렁훌렁 가볍게 넘어가며, 종이를 넘기며 생기는 미세한 자국이 새겨져 있다.반대로 가장 안쪽인 끝에 위치한 책은 진열된 지 얼마 안 된 듯 상처 없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준다. 가장 새 책의 모습을 띠고 있지만 어딘가 모서리는 더 날카로워 보이고 빳빳하며 유연해 보이지 못한다. 읽는 이의 손아귀에 잡혀 꼿꼿하게 서있는 모습이 왠지 근래의 안절부절 못하는 내 모습과 겹쳐 보였달까.나는 사람이 어렵다. 특히나 많은 사람들 사이에선 그들이 말을 모두 경청해야 한다는 의무감에 사로잡힌다. 내가 느끼고 하고 싶은 말을 하는 것보단 상대의 기분을 살피고 그들의 말을 경청하는 것이 상대를 존중한다고 여기기 때문이다.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이 말이 무례하진 않은지 조금은 생각해보고 단어와 문장을 골라 말을 건네는 편이다. 그러니 대화의 흐름은 무언가 매끄럽지 못하고 어색하다. 만약 누군가 나와의 대화가 어색하지 않았다면 나는 그 날 유독 더 공을 들였기 때문이고 아마 집에 가자마자 타이레놀을 입에 털어 놓고 잠에 들기 바빴을 것이다.처음 보거나 그리 친하지 않은 사이어도 자신의 아픈 과거를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사람이 있다. 나는 그가 겪은 상처나 아픔을 들여다보며 나도 모르게 감정이 동요되고 전이되어 마음이 불편하고 괴롭다.하지만 의무적으로 그의 말을 잘 듣고 있다는 제스처와 뉘앙스를 충분히 드러낸다. 너무 반응을 하지 않으면 상대가 무안해질테고, 또 너무 지나치게 반응하면 그에게 가식이라는 무례를 범할 수 있으니까. 너무 과하지 않고 지나치지도 않도록, 나보다는 상대를 위한 너무 많은 고려와 생각에 빠진다.더 큰 문제인 건, 타인의 아픔을 헤아리는 행동을 미덕으로 여기며 경청과 조언을 할 때 내가 더 나은 사람이 되었다는 착각에 사로잡혔다는 것이다. 윤여진 2018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현재보다 미래가 기대되는 젊은 작가. 내 스스로 좋은 사람이라 생각하는 것이 아닌, 상대에게 좋은 사람임을 인정받기 위해 타인의 의사를 의존했고 지나치게 수용했다. 상대가 평상시 자주 쓰는 말과 표현, 관심사를 익히 파악하여 주로 상대에 맞춰 주기 바빴을 정도였으니까.독일의 철학자 쇼펜하우어는 인간의 정신이 도달할 수 있는 정점은 판단이며, 판단을 타인에게 의존하지 않고 타인의 의사를 수용하지 않는 것이 인간 정신의 정점이라 말했다.또한 인간의 나약한 정신은 자신의 이해와 통찰을 동원하기보단 타인이 떨어트린 몇 마디 말을 빠르게 주워 담아 아무도 없는 곳에서 몰래 삼킨 후 배설하길 즐겨한다고도 했다. 스스로 통찰을 통해 독립적으로 판단을 내리는 것이 아닌, 손쉽게 타인의 그럴듯한 판단을 마치 제 것인양 행한다는 것이다.그간 내가 생각했던 ‘좋은 사람’은 애매했다. 그래서 올해엔 서점 매대의 가장 바깥에 놓인 책처럼 자유롭고 유연한 형태로,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여 보려 한다. 타인의 인정과 판단보단 주체적이고 독립적이고 인간성을 지닌 사람이 더 근사한 삶을 살아가는 것으로 보이니까.

2024-01-08

주가 조작이 아니라 명품백이 문제다

김진국 고문 ‘김건희 특검법’이 총선 쟁점으로 등장했다.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는 윤석열 대통령이 후보이던 시절부터 상대 당의 표적이었다. 정치판에서 가족은 좋은 공격 소재다. 역대 대통령들도 가족이 공격받지 않은 사람이 거의 없다. 문재인 전 대통령 부인, 김정숙 여사는 ‘버킷 리스트’ 의혹으로 비난받았다. 옷과 장신구도 구설에 올랐다. 노무현 전 대통령 부인, 권양숙 여사와 아들에 대한 수사는 참담한 비극으로 끝났다.부인이 근신해도 다른 가족이 표적이 됐다. 김영삼 전 대통령 차남은 ‘소통령’으로 불렸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임기 중 세 아들이 모두 구속되는 아픔을 겪었다. 권력자 가족의 사생활은 호기심의 대상이다. 가끔 드러난 단편적인 언행이 갖은 추측과 왜곡으로 부풀려져 전파된다. 그렇다고 국민을 탓할 수는 없다. 권력자 가족의 멍에다. 더구나 그들의 언행은 자칫 국가안보에 위협이 될 수도 있다.‘김건희 특검법’의 첫 번째 쟁점은 ‘선거용’이냐, 아니냐다. 민주당은 국민의힘이 반대해 늦어졌을 뿐이라고 주장한다. 그런데도 특검 기간은 4·10 총선 선거운동 기간과 정확하게 겹친다. 법안대로 야당이 추천한 특검이 수사하고, 공개 브리핑을 계속하면, 특검이 선거판을 압도할 게 뻔하다.과거 김영삼 전 대통령은 1997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김대중 야당 후보 정치자금 수사를 중단시켰다. 공권력의 개입이 국민 선택을 왜곡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민감한 수사 내용을 연일 발표하면 후보는 보이지 않고, 피의자만 보이게 된다. 정책은 뒷전이고, 수사에서 드러난 가십이 술안주가 될 게 뻔하다. 공정한 선거라 말하기 어렵다.더구나 민주당은 재표결을 2월 이후에 하자고 한다. 공천에서 탈락한 국민의힘 소속 의원의 동조를 기대하기 때문이다. 결국 국민의힘이 물갈이 공천을 방해하는 것이고, 선거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그러면 특검 수사를 받을 만한 일인가.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은 윤 대통령이 결혼(2012년 3월)하기 전에 일어났다. 문 정부에서 2년간 수사했다. 윤 대통령이 ‘식물 검찰총장’으로 손발이 묶인 상태라 일방적으로 봐줬다고 하기도 어렵다. 그래도 조금의 의심마저 털어내려면 특검을 할 수 있다. 하지만 굳이 선거 직전이어야 하는가는 의문이다.특검 찬성 여론이 높은 건 김 여사의 자업자득(自業自得)이다. 그렇지만 주가조작에 큰 관심이 없다. 문제는 김 여사에 대한 불신이다. 언행이 너무 가볍다. 김 여사는 대선을 앞두고 2021년 9월 서울의 소리 기자와 전화로 온갖 이야기를 다 했다. 대통령 선거 직전인 22년 1월 그 녹취록이 보도돼 윤 후보와 선거캠프를 당혹하게 했다. 21년 12월 김 여사의 대국민 사과마저 무색해졌다.김 여사는 “남편이 대통령이 돼도 아내 역할에만 충실하겠다”라고 약속했다. 그런데 윤 대통령이 취임한 지 4개월만인 22년 9월 또다시 서울의 소리가 쳐놓은 덫에 걸려들었다. 비열한 함정 취재다. 그렇다고 김 여사의 언행이 용서되는 건 아니다. 조작이건 아니건, 왜 명품 가방을 받았나. 더 기가 막힌 건 그자리에서 한 이야기다. “통일사업을 같이 하자”니. 영부인이 관여할 영역이 아니다. 더구나 정체도 의심스러운 사람과 사담(私談)으로 할 이야기인가.‘쥴리’라는 모욕적인 공격까지 받은 김 여사는 억울한 점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김 여사의 언행은 국민에게 더 큰 실망을 안겼다. 앞으로 어떤 언행이 갑자기 튀어나올지 불안하다. 김 여사는 이미 사인이 아니다. 잘못하면 개인이나 집권당뿐만 아니라 국가에 부담을 준다. 제2부속실을 당장 만들어, 김 여사가 공적 영역에서 투명하게 움직이게 도와야 한다.특검이 선거용이라고 의심하면, 선거 뒤에 하면 된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언급했다 거둬들였지만 하나의 대안이다. 그래야 거부권 행사를 변명할 수 있다. 특별감찰관 임명도 미룰 이유가 없다. 대통령 가족을 통제하지 못하면 심각한 재난이 된다. 특히 김 여사가 스스로 자신을 던져야 길이 생긴다. 진심을 담아 사과부터 해야 한다.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4-01-07

영주, 새로운 도약을 위한 출발선에 서다

박남서영주시장 2024년 청룡의 해를 맞아 굳은 의지와 물러서지 않는 용기를 갖고 영주의 빛나는 내일을 향해 힘차게 나가자는 뜻으로 신년 화두를 금석위개(金石爲開)로 정하고 시민과의 소통과 화합을 바탕으로 한단계 도약하는 해로 성장시키는데 모든 힘을 쏟아 부을 계획이다.우리 시는 멈춤 없는 성장을 도모하기 위한 7가지 중점 전략으로 세계로 도약하는 첨단 미래산업도시, 소비자 중심, 기술 중심, 환경 중심의 혁신농업도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특색있는 문화관광도시, 삶의 질이 높은 행복도시, 품격 있는 복지 도시, 더 안전하고, 더 행복한 삶을 약속하는 도시, 시민 중심의 열린 도시 건설을 선정했다.2023년은 무수한 어려움을 극복해 낸 영주시에는 또 하나의 선명한 나이테가 새겨졌다.지역 최대의 관심사였던 영주 첨단베어링 국가산업단지 지정 승인, 영주댐 준공, SK스페셜티의 대규모 투자 양해각서 체결에 이어 KTX-이음 서울역 운행이 확정돼 올 연말부터 운행을 시작하는 등 지역을 획기적으로 바꾸어 놓을 커다란 사업들이 성과를 나타내기 시작했다.그동안 영주에서 서울을 가기 위해서는 청량리 역에서 하차해 도보와 지하철로 이동해야 했지만, 서원주역에서 강릉선 KTX 와 결합해 서울역까지 연장 운행하게돼 소요 시간이 20분 이상 줄어드는 것은 물론, 갈아타지 않고 직행하는 편리함을 누릴 수 있게 됐다.현재 하루 16회(주중 14회, 주말 16회) 운행중이지만, 18회(주중 16회, 주말 18회)로 2회 증편으로 출퇴근이 가능한 시간대로 편성될 예정이다.중앙선 KTX-이음 서울역 운행으로 영주를 비롯한 경북북부지역의 서울 중심부 접근성이 개선되는 것은 물론, 서울역과 인천국제공항을 연결하는 공항철도에도 바로 접근할 수 있어 인천국제공항 이용도 한결 용이해 질 것으로 보인다.이번에 연장 운행된 중앙선과 더불어 현재 추진 중인 동서 횡단철도가 건설되면 영주에서 서울까지 1시간대, 서해안과 동해안까지 2시간대 교통망을 구축할 수 있게 되어 지역 산업 성장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는 것은 물론,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부석사와 소수서원, K-문화를 체험하는 테마파크 선비세상, 무섬마을 등 전통 문화관광 도시로서의 역할도 더욱 커져 철도 도시로서의 옛 명성을 회복하게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철도뿐만 아니라 올해는 그 어느 해보다 영주지역에 커다란 변화가 있었다.영주 첨단베어링 국가산업단지 조성사업이 올해 8월 25일 국토교통부로부터 최종 지정·승인을 얻어냈다. 경북 북부권 최초의 국가산업단지가 탄생한 순간이다.2024년 상반기 착공, 2027년 준공 계획인 영주 첨단베어링국가산업단지가 조성되면 연간 경제 유발 효과 760억 원, 직·간접 고용 4천700여명 등 1만 300여 명의 인구 증가 효과를 얻게 돼 인구 소멸지역 위기 극복은 물론 지역경제 활성화에도 크게 도움이 될 전망이다.올해 7월 28일에는 SK스페셜티(주)와 경상북도, 영주시가 반도체 디스플레이용 신소재 제조 공장 신·증설 투자에 대한 5천억 규모의 투자양해각서를 체결했다.투자가 완료되면 200명의 신규 채용과 총 57만㎡에 달하는 반도체 디스플레이용 특수 소재 생산 기반을 확보해 단일기업으로 산업 클러스터에 준하는 경제 효과를 창출할 것으로 전망된다.영주시의 관광지도 또한 변신을 시작했다.2016년 본댐이 완공된 후 준공 승인이 나지 않아 지역의 최대 현안 가운데 하나로 손꼽혀 온 댐 준공도 드디어 해법을 찾은 것이다.지난 1년간 그 어떤 현안보다 우선해 영주댐 문제를 해결하고자 노력한 결과, 준공의 걸림돌이 되어온 문화재 이전 문제가 해결되며 9월 최종 준공됐다.영주댐은 앞으로 치수시설 외에 대규모 관광단지로 개발해 건강과 관광, 스포츠를 아우르는 명품 관광지로 거듭나게 된다.어려운 현실 앞에서도 굴하지 않았던 영주시의 모든 도전이 선명하고 확실한 성과가 되어 돌아오고 있다.다가오는 새해, 푸르고 넉넉한 영주라는 나무 아래에서 모든 시민들이 활짝 웃는 모습을 그려본다.

2024-01-07

고요를 마법처럼

이희정시인 노래하지 않고노래할 것을더 생각하는 빛.눈을 뜨지 않고눈을 고요히 감고 있는빛.사랑하기보다사랑을 간직하며,허물을 묻지 않고허물을 가리워 주는 빛.모든 빛과 빛들이반짝이다 지치면,숨기어 편히 쉬게 하는 빛,그러나 붉음보다도 더 붉고아픔보다도 더 아픈,빛을 넘어빛을 닿은단 하나의 빛.―김현승, ‘검은빛’ 전문 (김현승 시전집, 2005.)검정이 색이 아니라고요? 인상주의 선구자였던 르누아르는 검정은 색의 여왕이라고 반격했다. 검정은 모든 색의 부재, 그래서 색이 아니라는 판정을 받았던 때가 있었기에.겨울의 감성은 무채색에 가깝다. 한 해를 마치는 것도, 새해가 시작되는 것도 겨울이 하는 일이다. 겨울 속에는 마침과 시작, 어둠과 환희의 빛이 모두 있으므로. 모든 시가 신과 사랑, 혹은 우울을 다루듯이 검은색 또한 혼돈, 신비, 미지, 죽음, 무의식을 품고 있다.밝음을 나타내기에 검정만큼 역설적인 색이 있을까. 우리의 겨울은 보이지 않는 미지의 색으로 캄캄해서 외려 환하다.빛의 색인 무지개의 색을 모두 합하면 흰색이 나온다. 검정에는 빛이 전혀 없으며 모든 것은 검정으로 끝난다. 부패한 고기가 검게 변하고 식물이나 치아가 썩어 검게 되는 것처럼. 아무것도 기억할 수 없을 때가 ‘블랙아웃(blackout)’이라면, 김현승 시인(1913~1975)의 검은빛은 “모든 빛깔에 지친 통일의 빛”이다.시에서 검은빛은 부정적인 이미지가 아니라 재생과 자성의 생명력을 내포하는 긍정적 이미지로 미지의 색이다. 시 ‘검은빛’은 시인의 세계관을 잘 나타내고 있다.“노래하지 않고,/노래할 것을/더 생각하는 빛”, “눈을 뜨지 않고/ 눈을 고요히 감고 있는/빛”으로 묵상함으로써 고도의 정신적 가치를 지닌 세계를 형상화하고 있다. 도는 언제나 ‘무위’하면서도 하지 않는 일도 없다. 김현승은 꽃마다 색깔을 말할 수도 있고 이름을 물을 수도 있지만 하나로 수렴하여 근원적인 의미를 찾고자 한다. 빛을 넘어 빛에 닿은 단 하나의 빛으로.김현승은 일제강점기의 암울한 상황을 지나며 시대적 현실을 긍정적으로 변환시킨시인이다. 검은빛은 희망으로 찬란하고 넘치도록 낡은 그림자를 밀어 올리는 역할을 한다. 이때 검정은 검은빛으로 치환된다. 무표정한 검은빛에는 마음속에서 활동하지 못하거나 인간의 감정 중에서 가치가 절하된 것들을 일으키려는 시인의 선한 의지가 잠잠히 괴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사랑하기 보다/사랑을 간직하며,/허물을 묻지 않고/허물을 가리워 주는 빛”으로.지치고 상처 입은 영혼들아 모두 내게 오라는 위안의 주문처럼 시인의 검은빛이 감싸는 그늘이 평온하다. 세상을 움직이는 건 보이지 않는 한 사람, 한 사람의 깊은 내면이 모인 힘이라고, 그림자처럼 말하고 있다. 우리가 아직 모르는 매우 넓고 깊은 무의식 속에 숨어 있는 무채색 마법은 힘이 세다. 꿈틀거리는 새해가 빛을 물고 오고 있다.“붉음보다도 더 붉고 아픔보다도 더 아픈, 빛을 넘어 빛을 닿은 단 하나의 빛”

2024-01-07

공공도서관의 독서동아리를 위하여

유영희 작가 새해가 되니 새로 시작하는 것이 많다. 동네 도서관에서도 독서동아리를 새로 신청받는다고 한다. 그동안 H 생협에서 꾸준히 독서 모임을 하다가 작년에는 동네 도서관에 ‘감정과 뇌과학’이라는 주제로 독서동아리를 신청하여 운영했다. 올해도 ‘감각과 장과 뇌’라는 주제로 동아리를 만들어 인간의 감각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장이 뇌와 어떤 관계가 있는지 공부할 예정이다. 작년처럼 전문가 초청까지 계획하고 있다. 동아리 초청이라 강사비가 너무 적었지만 모두 기꺼이 달려와 주셨는데, 올해 초청한 분도 흔쾌히 수락하셨다. 며칠 전 사서에게서 들으니, 올해 동아리 신청이 작년보다 두 개 더 많아질 것 같다고 한다. 이웃 어느 도서관은 동아리가 너무 많아 공간이 부족하여 기준을 정해 선별해야 할 정도라고 한다.이런 소식에 독서동아리 증가가 당연히 전국적인 현상일 것이라 생각하고 실증 자료를 찾기 위해 통계를 찾아보니, 아쉽게도 우리 지역의 특수한 상황일 뿐, 전국적인 추세는 아닌 것 같다. 인구 많은 서울시가 독서동아리 숫자는 가장 많지만, 최근 3년간 독서동아리와 참여 인원은 오히려 감소 추세이고, 전국 독서동아리 상황 역시 큰 차이가 없었다. 게다가 2013년에 나온 독서동아리 실태 조사에서 언급된 문학 편중 현상이 최근 조사에서도 여전히 지속되고 있었다.2020년 이은주, 정하영, 윤유라의 연구 ‘독서동아리 운영 현황과 과제’와 2023년 심효정의 ‘공공도서관 독서프로그램 운영 현황 및 정책 제안’을 보면, 독서동아리에서 읽는 도서가 문학 등 4개 분야로 한정되어 있고 다른 분야는 미미하다고 한다. 무엇보다 많은 예산을 쓰는 지방자치단체들의 ‘독서 대전’이 지속적인 독서 문화를 만드는 데는 거의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있다는 분석이 눈여겨볼 만했다. 연구자들이 지적한 것처럼, 공공도서관의 독서프로그램에 1회성 행사가 5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현황도 아쉬운 부분이다.이런 상황이 일어난 것이 도서관 탓은 아니다. 실제로 유명 작가나 와야 겨우 도서관에 발걸음하는 주민이 많고, 소설 같은 문학 분야가 접근성이 좋기 때문이다. 전국적으로 비슷한 책을 읽는 것도 우리 사회의 베스트셀러 중심의 독서 편식의 반영이기도 하다.그럼에도 일부 지역만이라도 독서동아리가 증가하고 있고, 독서동아리 내용도 다양해지고 있는 상황은 고무적인 일이다. 어느 도서관에서는 인지력이 떨어진 고령층을 위해 책놀이 활동 동아리가 올해 출범했다고 하고, 책을 수선하는 책구조대라는 동아리도 오랫동안 운영되고 있다고 한다.작년에 EBS에서 ‘당신의 문해력’이나 ‘책맹인류’를 통해 진단했다시피, 독서 재난 시대를 헤쳐갈 방법은 행사나 이벤트가 아니라 독서동아리뿐이다. 새해 공공도서관 정책을 입안하는 관계자들은 다양한 독서동아리가 내실 있게 운영되기 위해서 도서관이 주민들에게 어떻게 다가가야 할지 고민해 주면 좋겠다. 이와 함께 독서동아리 실태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도록 국가도서관통계시스템도 하루빨리 정비되기를 바란다.

2024-01-07

사람 마음을 얻는 혁신

엄주선 포스코 인재창조원 교수·컨설턴트 ‘역린’은 1776년 만 24세의 나이로 임금 자리에 오른 조선 22대 왕 정조의 암살을 다룬 영화이다. 자신의 아버지 사도세자를 뒤주에 가두어 죽게 한 노론과 정순왕후 세력에 홀로 맞서 싸우는 정조의 인간적인 면과 군주로서의 면모를 다루고 있다. 영화에서 왕의 시중을 드는 상책 갑수는 어려서부터 암살을 목적으로 길러져 정조 곁에 있으면서 암살을 시도하다가 정조의 인간적인 모습에 마음을 바꿔 오히려 양 아버지인 상선을 죽이고 정조를 구한다.정조는 경연장에서 왕을 허수아비처럼 대하고 사서오경만을 반복하는 신하들에게 문자를 넘어 실제를 논하고 그 근거와 대안을 논해야 진정한 경연이고 학습이라는 것을 일깨워 주고자 중용 23장을 인용하여 대신들을 나무란다. 개인적으로 이 대목이 정조라는 군주가 역경을 극복하기 위해 어떻게 살고자 하는지를 가장 잘 나타내 주는 영화의 주제라고 생각했다.필자 역시 혁신활동을 국내는 물론 해외 다수의 국가에 전파하면서 느낀 것은 ‘작은 것에도 정성을 다하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중용 23장의 교훈이야 말로 사람의 마음을 얻는 방법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혁신활동을 전파하는 역할을 하면서 가장 어려운 부분이 직원들의 마음을 얻는 것이다. P사의 현장 혁신 활동은 4개월간 현업에서 Off되어 공장에서 필요로 하는 문제를 해결하는 개선리더 과정과 일상업무 중에 발생하는 불합리한 부분을 해결하는 일상개선활동이 있다. 이 모두를 경험한 직원들 중 역량이 뛰어난 사람을 선발하여 인재창조원 6개월 간의 교육을 이수하고 인증을 통해 현장 활동을 지도하는 QSS FT(퍼실리테이터)자격을 부여한다.QSS FT로 임명된 후 2년간 활동을 하는데 초기에 현장 직원들을 찾아가면 냉대하거나 가끔 전화를 통해 ‘이런걸 뭐 하러 하느냐!’하면서 언성을 높이는 직원이 있어 너무 힘들다고 하소연한다. 그럴 때마다 필자는 현장에 자주 찾아가서 진정으로 위하는 마음으로 활동을 도와주라고 조언한다. 진정으로 위하는 마음으로 도와주다 보면 은연중에 본인의 말이나 태도에 묻어 나오게 되며 직원들은 실제 그렇게 해서 1년 정도가 지나면 ‘조언해준 대로 하니 직원들이 고마워하고 찾는 사람이 많아 졌습니다’라고 하는 QSS FT가 많다. 심지어 2년간 활동 후 현업에 복귀하여 협의회 대표가 된 경우도 있고 부서장에게 인정 받아 복귀하면서 바로 직책을 맡아 가기도 한다. 영화 ‘역린’의 중용 23장 말 그대로이다.‘작은 일도 무시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 작은 일에도 최선을 다하면 정성스럽게 되고 정성스럽게 되면 겉으로 드러나게 되고 겉으로 드러나면 이내 밝아지게 된다. 밝아지게 되면 남을 감동시키고 남을 감동시키면 변하게 되고 변하면 생육된다. 그러니 오직 세상에 지극히 정성을 다하는 사람만이 나와 세상을 변하게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는 공간적으로는 나와 동료, 시간적으로 지금과 나중 모두가 좋아지는 진리와도 같은 것이다.

2024-01-07

22대 총선 관전을 위한 기본 변수

배한동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 총선 90여 일을 앞둔 이 시점에서 총선결과를 예측하기는 무척 어렵다. 아직 여야는 선거구도 확정하지 않았고 비례대표 선거 방식도 합의되지 못했다. 한치 앞을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극한 대결의 정치는 계속되고 있다. 지난 강서 보권선거의 집권 여당의 참패는 집권 여당의 당대표 교체로 이어졌다. 야당의 어느 원로는 민주당이 총선에서 200석을 얻을 것으로 낙관했지만 그 가능성은 희박하다.오는 4월 10일 치러지는 22대 총선은 누가 승리할까. 일반적으로 총선 결과를 예측하는데는 선거의 구도, 인물, 정책이라는 3개 변수를 활용한다. 그중 선거의 대결구도는 우선적으로 고려해야할 변수이다. 여기에 더하여 후보자의 자질과 능력이라는 인물 변수, 나아가 정치적 이슈나 공약 등 정책 변수도 빼놓을 수 없는 변수이다. 이런 3개의 변수는 상호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표심을 유도하고 그것이 후보의 당락으로 연결된다.이번 4월 총선의 선거 구도부터 살펴보자. 현재의 소선거구제하에서 양자구도와 다자 대결 구도는 우선 검토해야 할 상항이다. 선거구별 1명을 뽑는 소선거구제하에서는 1등만 당선되고 많은 사표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현행 비례대표 47석은 이를 보충 보완하기 위한 장치이다. 그러나 지난 총선의 준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원래의 목표와 달리 수많은 위성 정당을 출현시켰다. 그 결과 거대 양당의 갈라 먹기 식 독점체제는 더욱 굳어져 버렸다. 위성 정당의 출현은 제3당의 의회 진출은 원천적으로 제약하는 요인이 되었다.대통령제와 소선거구 제하에서 신당의 약진에는 한계가 따른다. 여권의 금태섭·이준석, 야권의 이낙연 대표 등은 신당 창당을 선언하였다. 이들 제3 신당이 빅 텐트와 스몰 텐트를 통해 어느 정도 지지를 획득할지도 관심사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의당이나 사회당 등 진보 정당의 위상은 더욱 흔들릴 수밖에 없다. 제3당의 세력 규합 여부가 이번 총선 구도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어느 선거에서나 유능한 후보의 공천은 선거 승패를 좌우할 변수다. 그러나 지역적 정서가 선거판을 좌우하는 TK나 호남에서는 정당의 공천여부가 후보의 당락을 결정한다. 그렇지만 수도권과 충청권 선거에서는 아직 후보의 인물 변수가 선거 결과에 크게 작용하고 있다. 집권 여당은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이 선거전을 진두지휘하고, 야당은 이재명 대표 체제로 선거를 치를 전망이 우세하다. 한동훈 비대위원장은 참신성을 내세워 당 조직을 정비하고, 민주당은 친명 중심의 선거 체제를 강화하고 있다. 여야는 공히 공천관리 위원장을 임명하고 후보 공천 작업을 서두르고 있다.이번 총선에서 여야는 참신하고 유능한 후보의 공천을 통해 선거의 승리를 다짐하고 있다. 여야의 경쟁적인 인재의 영입은 기득권 세력의 물갈이와 연관되어 있다.여당에서는 검찰 출신인사나 용산 대통령실이나 행정부출신 인사의 공천 여부, 야당에서는 비리 연루 의원이나 기득권 세력의 교체 문제가 유권자의 관심사항이 되고 있다. 선거의 공약이나 정치적 이슈 등 정책변수도 선거의 중요 변수이다. 윤석열 정부 출범 3년째 총선에서 야당은 ‘정권 심판론’을, 집권 여당은 ‘국정안정론’을 기본 쟁점으로 부각할 것이다. 대통령 부인 김건희의 주가조작 특검법과 이재명의 사법 리스크는 그 연장선상에서 제기된 선거 쟁점이다.대통령의 30%대의 낮은 지지율이나 야당 대표의 사법 리스크는 여야 공히 선거 시의 불리한 쟁점이다. 이재명 당대표의 피격 사건은 극단적 대결정치가 초래한 비극이다. 한국사회의 인구 절벽, 기후위기, 에너지 문제는 그 심각성에도 불구하고 이번 선거의 쟁점으로 부각되기는 어렵다. 절박한 민생문제와 정치개혁 과제도 선거과정에서 여야의 공방으로 끝날 가능성이 높다. 이번 선거에서도 집권 여당은 포퓰리즘적 공약을 남발할 것이고, 야권의 대정부 비판 강도는 더욱 높아질 것이다. 유권자들은 어느 장단에 춤을 출 것인가.여야의 공천 일정은 가까이 다가오고 있다. 국회에서는 특검 거부 재의결 문제로 또다시 격돌할 조짐이다. 선거판이 과열될수록 여야의 마타도어나 네거티브 공세는 더욱 커질 것이다.이 와중에 예상치 못한 돌발변수가 선거판을 크게 흔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선거 승리를 위한 한동훈 비대위원장의 독자 노선 선언, 민주당 이재명 당대표의 전격사임, 선거 전야의 음모론적 마타도어, 제 3 신당의 선거 연대의 합의, 휴전선 상의 남북 무력 충돌 등 돌발변수는 선거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지도 모른다. 이러한 돌발사건은 수습할 겨를도 없이 끝나 버리는 경우가 많다.현재로서는 이번 총선에서 어느 일방의 압도적 승리는 예상되지 않는다. 윤석열 정부는 이번 선거에 압승하여 국정운영의 동력을 확보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야당 역시 압도적 다수 의석을 확보하여 검찰 독재국가를 견제하겠다는 입장이다. 총선 결과는 어떻게 될 것인가. 현재로서는 그 진행 과정을 주시할 수밖에 없다.

2024-01-07

나라와 기업이 살길 ‘농지 태양광 농사’가 답이다

위현복(사)한국혁신연구원 이사장 우리나라에서 전통적인 마을을 그려보라고 하면 북향에 야트막한 산과 중간에 햇볕이 가득한 마을과 남향에 개천과 들판이 있는 남향받이 마을이 그려질 것이다.우리는 배산임수(背山臨水)를 사람 사는 마을의 최적의 조건이라고 생각한다. 옛날부터 사람 사는 곳과 농사 잘 되는 곳은 산과 강과 들이 잘 어우러지고 햇빛과 바람이 풍부한 곳이다. 이런 곳은 사람 살기도 좋고 농사짓기도 좋아서 작게는 마을이 들어서고 크게는 도읍이 들어섰던 것이다. 현재 대부분의 도시도 규모만 다를 뿐 모양은 대동소이하다.기후 위기를 맞아 탄소중립을 달성하고자 태양광과 풍력 등 무한 재생이 가능한 에너지원을 찾아 재생에너지 사업을 활발하게 추진하고 있으나 우리나라에서는 여러 가지 이유로 농지를 제외하고 태양광 발전 부지를 찾고 있다. 농지를 제외하니 주택, 공장, 축사의 지붕, 주차장 옥상 등을 빼고는 태양광을 설치할 곳이 없어서 태양광 발전이 한계에 부딪혀 우리나라는 태양광 하기에 땅이 좁다는 말까지 나온다.하지만 햇빛이 가장 풍부한 농지를 제외하고 태양광 설치할 땅을 구하기는 힘들다. 유럽, 미국, 일본, 중국 등 태양광 선진국에서도 태양광 발전은 주로 도시 주변 농지에서 한다. 그리고 아무리 햇볕이 좋아도 재생에너지가 쓰이는 곳과 멀리 떨어져 있으면 송전선로 문제로 인해 득보다 실이 많다.우리나라는 국토의 67%가 산지이고 농지는 15%이며 나머지는 도시, 마을, 도로 기타 산업시설이 차지한다. 따라서 농지를 빼고는 태양광을 설치하기에 적당한 대규모 땅을 찾기가 불가능하다. 그리고 태양광이 필요한 곳은 대도시와 대규모 산업단지인데, 이런 곳들은 대부분 넓은 평야지대에서 농지에 둘러싸여 있다.그렇기 때문에 재생에너지 즉 태양광 발전으로 생산된 전기가 필요한 도시와 산업단지에 전기를 공급하기 위해서는 도시와 산업단지를 둘러싸고 있는 농지(대부분 절대농지)에서 태양광 발전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절대농지에 건축시설물을 설치할 경우 8년 만에 원상복구 시켜야 하는 농지법 규정으로 인하여 수명이 최소한 25년에서 거의 무한대에 가깝고, 원가 회수에 5·6년 정도 걸리는 태양광발전 시설을 할 수가 없다.도시와 산업단지에 인접한 농지에서 태양광 발전을 해서 바로 전기를 공급한다면 부족한 송전선로 문제도 해결될뿐더러 버려지고 방치된 농지가 재생에너지 생산의 주역으로써 에너지 안보를 책임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각종 명목으로 농촌, 농민에게 뿌려지는 연간 10조를 넘어서는 지원예산도 절감될 수 있을 것이다.현재 우리나라 농지는 150만ha로 농가 한 가구당 1ha 약간 상회하고 있다. 이 농지 중 24% 즉 36만 ha에 해당하는 농지에 태양광을 설치한다면 1억 2천만kWh 이상의 재생에너지를 생산할 수 있어서 원자력 발전을 기저전력으로 30% 가량 사용할 경우 우리나라의 탄소중립은 달성될 수 있다. 그리고 이렇게 생산되는 태양광은 15년쯤 지나면 효율이 두 배로 높아져서 앞으로 전기 사용량이 늘어나도 충분히 감당할 수 있을 것이다.농지 태양광과 함께 소형 풍력발전을 농지 주변에 적극적으로 활성화시킨다면 혹여나 부족한 재생에너지 조달 또한 가능할 것이다.소형 풍력발전은 아침, 저녁이나 날씨가 흐린 날 산바람, 골바람, 비바람으로 태양광 발전을 보완할 수 있다. 하루 동안 발전량도 태양광의 2·3배에 달하며 소요 부지도 태양광의 10%면 된다. 우리나라는 지역에 따라 하루 8시간 이상 15시간 정도 바람이 분다.인건비 건지기도 힘든 농업을 바탕으로 매년 정부 보조금 10조 원 정도에 매달려 살아가는 농민들에게 매년 20조 원 이상(첨단 스마트팜 융복합산업인 경우 60조 원 내외 소득 창출)의 태양광 발전 소득을 통해 농촌이 살아나고 소멸해 가는 지방이 소생하게 될 것이다. 또한 산업단지는 농지 태양광 발전으로 재생에너지를 충분히 공급받아 RE100을 달성하고, 우리나라는 ‘에너지 자립’을 달성함으로써 새로운 미래가 열리게 될 것이다.2022년 우리나라의 무역수지 적자는 472억 달러인데, 한 해 동안 에너지 수입액은 1천908억 달러로 총 수입액 7천312달러 중 26%에 달한다. 농지 태양광 발전을 통해 에너지 수입의 50%만 줄여도 우리나라는 무역흑자 국가로 돌아선다. 농지 태양광으로 에너지 자립도 이루고 무역흑자 국가로 돌아설 수 있다. 농지 태양광이 무역적자 해결책이며 미래 우리나라 발전의 신성장 동력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새해에는 우리 민족의 삶의 터전이었던 농지가 나라를 살리고 지방도 되살리고 농촌과 농민에게 새로운 희망을 주도록 ‘농지 태양광 농사’를 적극 살려나가야 하겠다. 농지 태양광 발전을 통해서 농촌과 농지가 RE100이 시급한 수출 기업들에게 필요한 재생에너지를 충분히 공급해 주고 기업들이 RE100 경쟁력을 바탕으로 쑥쑥 커나갈 수 있도록 뒷받침하는 원년이 되었으면 좋겠다.

2024-01-07

도시철 영천 연장, 대구메가시티 호기 삼아야

대구도시철도 1호선의 영천 연장사업이 기획재정부의 예비타당성 조사를 통과함으로써 건설사업에 탄력이 붙을 전망이다.대구∼영천간 도시철도 건설사업은 영천시민의 오랜 숙원이다. 대구와의 접근성을 앞당겨 출퇴근 시간대 혼잡한 교통 문제를 해결하고 경제적 파급력까지 키워 인구소멸의 문제에도 대응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래서 예타통과 소식에 가장 기뻐하고 있다.최기문 영천시장은 “도시철도 연장을 새로운 추진 동력으로 삼겠다”고 밝히고 “이로 인해 영천시민들은 문화, 교육, 의료 등 각 분야에서 정주여건이 크게 개선되는 효과를 누리게 된다”고도 말했다.교통여건의 개선은 도시발전의 핵심 요소다. 영천의 경우 이번 도시철 연결로 2026년 완공 예정인 영천경마공원의 활성화를 통해 관광산업 진작 효과도 누리게 될 것으로 보인다. 또 영천 하이테크파크지구, 군사시설 해제가 예상되는 남부동 일원의 첨단복합도시 개발 사업 등 지역경제도 큰 도움이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예타를 통과한 대구∼영천간 도시철 건설에는 총 2천여 억원의 예산이 투입된다. 영천시 금호읍까지 약 5.6km 구간에 2개 정류장이 건설되며 빠르면 올해 실시설계 용역에 착수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완공은 2030년이다.영천과 도시철도가 연결되면 대구는 서부쪽의 구미 생활권과 대구 동부쪽의 경산·영천 생활권이 연결되면서 두 지역을 오가는데 1시간 이내의 생활권이 형성된다. 동일 생활권에서 오는 생활문화의 변화와 경제적 파급력이 주는 긍정적 효과는 적지 않을 것이다.아직은 공론화 수준에 머물고 있지만 대구∼영천∼포항을 잇는 도시철도 연장사업이 가시화할 경우 이를 기반으로 대구를 중심으로 한 메가시티 형성도 가능하다. 인구소멸 위기에 빠진 지방도시가 탈출할 대안으로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이다.영천 연결 도시철을 계기로 대구권 메가시티 구상을 지금부터 준비하면 좋겠다. 신공항과 항만을 가진 포항까지 연계된 메가시티 정도면 글로벌 경쟁력도 있다. 대구와 경북이 상생하는 호기가 마련된 셈이다.

2024-01-07

‘기초의회 무용론’ 그만 나올때도 안됐나

국민권익위원회가 지난주 발표한 2023년도 지방의회 종합청렴도 평가 결과, 대구·경북 시단위 의회들의 모럴해저드가 심각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번 청렴도 평가는 전국 광역의회 17곳과 기초의회 75곳을 대상으로 했다. 대구·경북에서는 시·도의회를 비롯해 경북도내 시의회(군·구의회는 제외) 10곳이 포함됐다. 평가방식은 해당 자치단체에 근무하는 공직자(공무원, 산하기관 임직원, 지방의회 사무처직원)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다.경북도의회는 이번 평가에서 광역의회 중 유일하게 1등급을 받았으며, 대구시의회는 3등급을 받았다. 포항·안동시의회는 최하등급인 5등급, 영주·문경·상주·김천·영천시의회는 4등급, 구미·경산·경주시의회는 3등급을 받았다. 3등급 이하는 부패정도가 심한 것으로 분류된다.전국 기초의원들의 모럴해저드는 15.51%의 응답자가 ‘지난 1년간 지방의원과 업무를 하면서 부패를 경험했다’고 답한데서 여실히 드러났다. 응답자 16.33%는 지방의원에게 의정활동 범위를 벗어난 부당한 업무처리를 요구받는 등 갑질을 당했다고 밝혔다. ‘공공사업 업체 선정시 지방의원이 개입하거나 특정업체에 유리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고 답한 응답자도 9.96%에 달했다.대구·경북 기초의원들의 모럴해저드도 심각하다. 집행부를 상대로 유령업체를 만들어 수의계약을 맺고 폭리를 취한 의원이 있는가 하면, 해외연수 보고서를 베껴서 써냈다가 표절논란을 일으킨 기초의회도 있다. 이번에 4등급을 받은 한 기초의회 의장은 집행부 공무원에게 갑질을 한 혐의로 노조로부터 사퇴압력을 받기도 했다.기초의원들이 이처럼 반복적인 부정·부패행위를 저지르니까 ‘기초의회 무용론’이 끊이지 않고 나오는 것이다. 최근 국민권익위가 비리행위를 저지른 지방의원에 대해 급여지급을 중단하거나 환수조치를 하는 장치를 마련하기로 한 것은 잘한 일이다. 우선 각 정당에서 도덕성과 실력 등을 감안해서 공천을 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부패한 지방의원에 대해서는 엄격한 사법적 책임을 물어야 한다.

2024-01-07

꿈의 도돌이표?!

김규종 경북대 교수 연말연시를 맞으면 찾아오는 생각이 있다. 지나간 시간과 다가올 시간에 관한 상념이다. 연초에는 누구나 야심 있게 몇 가지 기획을 구상한다. 건강과 부 혹은 명예를 향한 갈망을 실현하려는 의지를 불태우는 것이다.‘작심삼일(作心三日)’로 끝나는 허망한 생각이지만, 기획안을 구상할 때 우리는 웅대한 기획자로 거듭나는 순간을 경험한다.사정이 이렇다 보니 혹자는 신년 기획을 아예 일정표에서 제외해버린다. 훗날 찾아드는 허망함과 무기력증을 원천봉쇄하려는 것이다. 이런 마음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지만, 아쉬운 점이 많다는 게 나의 소감이다. 인생사에서 우리가 충분히 실천하여 본래의 기획을 만족시킬 정도의 결과를 가져오는 경우는 드물기 때문이다.얼마 전 본 서책의 제목이 인상적이다. ‘사람은 생각하는 대로 된다(We become what we think about)’. 이런 부류의 서책은 다채롭게 출시돼 있는데, 이른바 ‘끌어당김의 법칙’에 속하는 책자들이 그것이다. 비슷한 내용이지만, 지은이들의 경험과 주장이 이채롭게 기술되어 있기에 숱한 독자를 거느린 것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독일 출신의 정치학자이자 철학자인 한나 아렌트는 ‘예루살렘의 아이히만’(1963)에서 세 가지 무능(無能)에 관해 설파한다. 그런 생각을 하도록 그녀를 인도한 전범(戰犯)이 아돌프 아이히만(1906∼1962)이었다. 자신이 서명함으로써 얼마나 많은 유대인이 죽음으로 직행할 것을 알고 있었지만, 아이히만은 맡은 직무에 기계적으로 충실한다. 깊은 사유와 인식이 결여(缺如)된 국가 공무원 아이히만을 질책하면서 아렌트는 세 가지 무능을 지적한다.‘생각의 무능(inability of thinking)’과 ‘언어의 무능(inability of speaking)’ 그리고 ‘행동의 무능(inability of acting)’. 참으로 통렬한 지적이다. 아렌트는 생각의 무능이 언어의 무능을 낳고, 언어의 무능이 행동의 무능을 낳는다고 주장한다. 아렌트의 명제에서 우리는 인간 행동의 바탕에 생각이 자리한다는 결론을 도출할 수 있다.말이 씨가 된다는 표현이 있는데, 말의 근원을 파고들면 거기 생각이 있다. 우리는 그것을 잠재의식이라 부른다. 누구나 자신도 모르게 혼잣말을 하는 수가 있는데, 그것이 잠재의식에 각인되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말이 되어 나온다. 그 말은 다시 타자와 대화하는 과정에도 부지불식간에 흘러나오고, 그것이 다시 우리의 행동과 직결되는 것이다.일상적으로 우리가 알게 모르게 하는 생각이 오늘의 우리를 만든 주재자이며, 앞으로도 우리는 만들어갈 근저에 자리하는 것이 무엇보다 생각이다. 그런 생각을 연말연시에 깊이 있게 돌아보면서 새로운 결심과 단호한 결기를 가지고 실천할 방도를 구한다면, 우리 인생은 풍요롭게 인도될 것이다. 실패할 것이 두려워서 기획조차 시도하지 않음은 비겁한 일이다.게으르고 무능하며 타협하기 좋아하는 생각에 대못을 박고, 강력하게 경고함으로써 전혀 새로운 인생 항로를 기획하고 실천해보는 용감하고 웅혼한 새해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2024-01-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