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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완전한 치유에 이르는 새 패러다임

정신과 의사이자 세계적으로 추앙받는 영적 지도자인 데이비드 호킨스 박사의 `치유와 회복`(판미동)이 출간됐다.다양한 중독 및 질병 치유그룹과 임상의들의 요청으로 진행한 강연에 바탕을 둔 이 책은 `의식 연구의 과학화`라는 혁신적인 패러다임의 시작을 알린 `의식 혁명`과 평생 추구해 온 의식 이론의 정수를 담은 유작 `놓아 버림`을 잇는 중요한 지점에 있는 책이다.호킨스 박사는 이 책에서 지난 50년간 내과 의사로 활동하며 관찰한 질병의 신체적 측면, 정신과 의사로 일하며 이해한 고통의 정신적 요인, 그리고 의식과 영혼의 문제를 연구하며 경험한 영적인 차원의 깨달음 등을 집대성해 완전한 치유에 대한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한다. 더불어 현대인들이 흔히 겪는 스트레스, 우울, 불안, 암, 노화, 비만, 각종 중독 및 질병 등을 약이나 수술 혹은 상담에 의존하지 않고 해결하는 자기치유법을 쉽고 명쾌하게 전한다.호킨스 박사는 내면의 억압된 감정이 강화시킨 구체적인 믿음체계에 무의식적 죄책감이 더해져 정신적·육체적 고통이 생긴다고 말한다. 어린 시절 누군가에게 들은 가벼운 말이나 텔레비전 등 미디어를 통해 각인된 고정관념, 타인의 시선에 묶인 스스로에 대한 평가 등은 우리 자신을 무의식적으로 고통 속에 빠뜨린다.스트레스, 불안, 우울증 정신적인 고통은 물론 암, 노화, 비만, 각종 중독 및 질병 등 신체적인 문제도 여기에서 기인한다. 따라서 진정한 자기치유는 그 부정성을 받아들이는 일을 멈추고 의식 에너지 장을 긍정적으로 바꾸는 데에서부터 시작한다.먼저 이를 위해서는 각종 질병 및 인간의 모든 삶의 문제들은 몸(body), 마음(mental), 영혼(spiritual)과 관련돼 있음을 먼저 이해해야 한다.몸은 스스로 경험할 수 없으며, 오로지 마음속에 있는 것을 표현할 뿐이다. 그리고 마음 역시 의식이라는 더욱 큰 에너지 장을 통해 경험된다. 또한 우리 삶에서 생기는 고통은 개별적인 사건 자체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그 사건들을 받아들이는 우리의 관점과 태도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도 필요하다.실제적인 치유를 위해서는 병에 대한 믿음을 계속해서 지워 버리면서 병을 불러오는 태도를 내려놓는 습관을 기르고, 치유를 불러일으키는 긍정적인 에너지 장을 기꺼이 선택해야 한다.호킨스 박사는 평생을 연구해 온 의식 이론에 의거해 우리가 이성, 자발성, 사랑, 기쁨, 평화로 대표되는 긍정성을 따르느냐 무감정, 두려움, 욕망, 분노, 슬픔으로 표현되는 부정성을 따르느냐에 따라 우리 몸과 마음의 건강이 달라질 수 있다고 말한다. 부정성이 우리 삶을 휘두르도록 내버려두지 말고, 연민과 사랑의 눈으로 자기 마음을 돌보아야 한다는 것이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6-01-29

출구없는 세계에 사는 사람들 모습

2005년 등단 이후 독보적인 에너지와 문제의식으로 자신만의 독특한 위치를 구축해온 소설가 김사과의 산문집 `0 이하의 날들`(창비)이 출간됐다. 이번 산문집을 통해 작가는 그간 소설로써 이야기해온 출구 없는 세계의 전모,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면면을 더 가깝고도 내밀한 목소리로 펼쳐놓는다.2009년부터 2014년까지 약 6년간 여러 매체에 발표한 글들을 묶어낸 이 산문집은 이제는 30대가 된 작가가 20대에 주로 써온 글들로, 시대와 세대를 읽는 한 젊은 소설가의 생생한 고민과 날카로운 시선을 고스란히 보여준다.1부 `읽다`와 2부 `무엇을 쓸 것인가`가 작가 자신에게 집중한 글쓰기라면 3부 `망함에 대해`, 4부 `우리들`, 5부 `폐쇄된 풍경`은 좀더 적극적으로 세상을 향해 눈을 돌린 기록이다.1부 `읽다`에서 다루는 작가들의 면면(우엘벨, 제발트, 배수아, 플로베르 등)은 작가 김사과의 취향을 보여주는 동시에 작가가 생각하는 소설과 문학의 윤리를 “더 나쁜 날들이 펼쳐져 있는 우리가 사는 세계”와 연결하여 서술하는 매개가 된다 `읽다` 이후 이어지는 장은 자연스레 `무엇을 쓸 것인가`가 된다.작가는 이 장을 통해 자신에게 글쓰기가 무엇인지 밝히고, 더 나아가 글을 쓴다는 행위 자체를 재정의한다. 글쓰기 자체가 “잊지 않겠다”는 의지이며 “시간 속에서 멀어지는 모든 것들, 사라지는 목소리들, 부서지는 모든 것의 잠을 깨우기 위한 시도”라는 것이다.3부에 이르면 현재 우리 삶을 이루는 몇가지 키워드가 등장한다. SNS, 망함, 모멸감, 소비, 초국적 자본과 같은 것들이다.구글, 애플, 페이스북으로 상징되는 현재는 지난 인터넷시대와는 또 다르다. 페이스북은 실제 생활과는 상관없는 타자를 친구로 만들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가진 인터넷의 익명성과는 정반대에 놓여 있다. 페이스북은 내가 속한 세계, 나와 비슷한 계급적 위치에 속한 자들을 불러모으며 오프라인 세계의 나를 적나라하게 반영한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6-01-29

법륜스님의 따뜻·명쾌한 행복 안내서

“남을 돕는 마음을 내면 그보다 몇 배나 더 큰 행복이 나에게 돌아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의 행복관은 내가 도움을 받는 쪽에 치우쳐 있습니다.”(`행복` 256쪽)삶에 지치고, 관계에 상처받고, 부조리한 세상에 고통받는 이들에게 인생의 길잡이가 돼줄 한 권의 책이 출간됐다. 많은 사람들이 저자에게 연애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결혼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자식은 어떻게 키워야 하는지, 직장생활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사회적 갈등과 세상의 불평등을 해결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묻는다. 질문 하나하나가 다른 것 같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기본은 행복에 관한 것이다.쉽고 명쾌한 즉문즉설(卽問卽設)로 지혜를 전해 왔던 법륜 스님이 `행복`의 본질에 대해 묻고 답했다. 신간 `행복(나무의마음)`을 통해서다.`행복`은 그 간절한 물음에 대한 응답이자, 지난 30년 동안 우리나라 전국방방곡곡은 물론 세계 115개국의 강연장과 길 위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저자에게 던진 질문과 그 답변 중 가장 많은 공감과 뜨거운 호응을 얻었던 내용을 엄선한 법륜 스님의 행복 안내서로, 행복에 대해 우리가 알아야 할 총체이자 인생을 사는 데 필요한 지혜의 보물창고라고 할 수 있다.지금까지 법륜 스님이 세상에 내놓은 책들이 주로 즉문즉설을 통해 질문자들과 나눈 인생 상담 내용을 주제별로 정리한 것이었다면, 이 책은 온전한 행복은 어디에서 오는가에 대해 집중적으로 이야기하고 있다.또한 지금까지는 수행차원에서 개인이 가져야 할 마음가짐을 주로 강조했다면 이 책에서는 행복의 수레를 끄는 또다른 바퀴인 사회문제도 함께 다루고 있다. 결국 개인의 마음(씨앗)과 사회적 조건(밭)을 함께 가꿔야 온전하게 행복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이 책의 전반부에서는 무의식속에 잠재된 인간의 심리와 욕구, 관계 맺기에서 오는 갈등과 같은 개인적 문제를, 그리고 후반부에서는 사는 게 바쁘다거나 직면한 현실이 불편하다는 이유로 애써 외면해왔던 사회의 구조적 모순까지 우리의 행복을 방해하는 요소들을 전체적으로 분석하고 그에 대한 지혜로운 해법을 들려준다.`행복`은 현실생활과 동떨어진 공허하고 허황된 이야기는 모두 걷어내고 오직 삶의 현장에서 일어나는 구체적인 괴로움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에 초점을 두고 있다.스님은 일단 행복을 위한 전제조건으로 `내려놓음`이 필요하다고 말한다.“내려놓으면 된다는 것을 아는 사람의 괴로움은 오래가지 않습니다. 집착할 때만 잠시 괴로울 뿐 그 괴로움이 지속되지 않아요.”(43쪽)그러면서 사람의 마음과 느낌이 모두 다른 이유는 몸과 마음에 배어 있던 업식이 색깔, 냄새, 소리 등의 외부 자극을 받으면서 반응을 일으킨 결과라고 설명한다.법륜 스님은 사람들의 `다름`에 특히 주목한다. 다르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에 화를 내고, 상대에게 감정을 강요한다는 것이다. 분노가 치밀어 오를 때도 근본을 살피고 한번 더 생각해 보면 화를 돋우는 사람은 바로 자기 자신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고 조언한다.수많은 상담 사례와 법륜 스님의 경험담을 통해 이 책에서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다음과 같다.“어떤 삶을 살고 있더라도 당신은 행복해질 권리가 있다. 다만 남의 불행 위에 내 행복을 쌓아서는 안된다.”냉정하지만 따뜻하고 단순하지만 명쾌한 법륜 스님의 행복론을 읽다보면 내 안에 도사리고 있던 수많은 불합리한 신념과 고정관념이 깨지면서 나와 세상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된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6-01-22

동서양 철학에서 `義`를 캐묻다

2010년 한국사회에는 `정의란 무엇인가` 열풍이 불었다. 이 인문학 책은 200만 부 판매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남겼고, 그로부터 4년여 뒤에는 `의리`라는 단어를 내세운 배우가 큰 인기를 얻었다. 이 사회 현상에서 뽑아낼 수 있는 핵심어는 무엇일까? 바로 의(義)다. 정의와 의리는 모두 `의`에서 파생돼 나온 단어다. 오늘날의 한국사회는 의를 욕망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토록 많은 사람이 원하는 의, 그리고 의로운 사회란 정확히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의는 인간이 꿈꾸는 이상사회에 가장 가까운 개념이다. 그렇기에 한국사회뿐만 아니라 한자문화권에서 자주 사용되어왔다. 하지만 이런 의를 한마디로 정의하려면 막상 어려움을 느끼게 된다. 예상외로 의라는 단어 안에는 다양한 의미가 숨겨져 있기 때문이다.`무엇이 의로움인가`(글항아리)는 의를 정의하기 위해 초기 갑골문자의 형태를 뜯어보는 것을 비롯해 다양한 동양 고전을 원전으로 활용한다. 이를 통해 동양 문화권에서 의가 어떤 의미를 띠었으며 또 어떻게 변화돼 왔는지에 대해 상세히 다루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의는 실천적 개념”이라는 유학에서의 가르침을 이어받아, 저자는 실제 역사적 상황 속에서 의가 어떤 방식으로 이해되고 실천되어왔는가를 알아보기 위해 `사기`등 여러 역사서 속 사례를 살펴본다.그러나 이 책은 동양에서의 의의 뜻을 나열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저자 임종진씨는 서양철학에서 나타났던 의의 개념과 그것을 다루는 방식을 통해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다. 또한 조선시대 유학자들이 나누었던 의에 대한 논의와, 실제 역사에서 나타났던 의의 실천에 대해 말하며 의를 기대하는 현대사회의 분위기와 과거를 연결지어 `오래된 미래`를 이야기한다./윤희정기자

2016-01-22

일상 깊이 우러난 여유·관조 돋보여

시력 40년을 맞이한 김광규 시인의 열한번째 시집 `오른손이 아픈 날`(문학과지성사)이 출간됐다. 김 시인은 1975년 계간 `문학과지성`으로 등단한 이래, 맑은 눈으로 현실을 관찰해 성찰하고 명료하게 다듬어내 시에 투영해왔다. 많은 이들을 공감하게 하는 진리가 담긴 시들로 그간 녹원문학상, 김수영문학상, 편운문학상, 대산문학상, 이산문학상, 독일 예술원의 프리드리히 군돌프 상과 한독협회의 이미륵상 등을 수상한 바 있다. 2011년 여름 종심(從心, 일흔 살)을 맞이한 시인이 지난해 가을까지 4년 동안 바라본 세상과 기억들, 앞서 보낸 동료들에 대한 애도와 담담한 내일 맞이가 담긴 66편의 작품들을 총 4부로 나눠 묶은 이번 시집에서는 특히 일상에서 진리를 추출해내 읽으면 읽을수록 깊이가 우러나는 시인 특유의 관조가 돋보인다.이숭원 문학평론가는“김광규의 시는 일상성 속에 도사린 삶의 허망함과 인간의 왜소함을 변형 없이 그대로 보여주면서, 평범한 것을 통해 심오한 의미를 드러내고 비범한 진술을 통해 일상의 진실을 드러내는 교묘한 전위의 구조를 형성한다.시인은 여유 있는 시선으로 대상을 섬세하게 관찰해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이 융합된 유기적 공감을 이끌어냄으로써 죽음이라는 미지의 세계조차 두려움 없이 맞이하고 있다”고 평했다.시인은 자신에게 주어진 `오늘`에 충실하다. 하루 또 하루, 각별할 것 없는 일상의 장면들은 시인의 눈에 들어 마음에 오래 머물다 긴 사색의 끝에 시 한 줄이 된다. 오늘이 마음에 머무는 동안 시공간은 유연하게 교차한다. 시인은 오늘 관찰한 무언가에서 어린 시절의 기억을 떠올리기도 하고, 먼 훗날의 모습을 그려보기도 한다. 시인의 눈에 150년 전 그려진 “두 손 모아 기도하는 소녀의 모습”은 “마치 카카오톡에 열중하”는 오늘날의 소녀 같다. 그러나 동시에 “늙지 않는 어머니의 어머니의 어머니의…. /앞으로 태어날 딸의 딸의…. /변함없는 모습”(`가을 소녀`)이 된다. 그런가 하면 난초를 손질하다 “마루에서 동화책 읽고 있던 나를” 불러 난초의 “하얀 줄기에 샛노란 꽃잎”을 “무슨 비밀이라도 알려주듯” 보여줬던 할아버지를 떠올리고, 이제 할아버지가 돼 버린 옛날의 손자는 할아버지가 그랬듯 자신의 손자에게 난초를 보여주려 하지만, 손자의 손자는 난초꽃을 “시큰둥하게/힐끗 쳐다보고”는 게임만 계속한다. 종심이란 나이는 세월이 너무나 빠르게 흐른다는 놀라움조차 뒤로 보낼 때가 아닌가. 아름다움을 알기 위해선 “나이 들 때까지/기다리는 수밖에 없다”(`난초꽃 향기`). “그대로 두고 보기로 했다/천천히 눈이 녹은 그 자리에서/연녹색 새싹들이 돋아날 때까지/그냥 기다리기로 했다”(`설날 내린 눈`).“소멸을 둘러싼 여러 겹의 공감들오랫동안 앓아온 병명을 대고그 약을 살 때까지 나는 그저길을 지나가는 수많은 행인들가운데 하나일 뿐이다문밖에서 그냥 행인으로 머물까안으로 들어가 병자가 될까”― 김광규 `유리약국` 부분/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6-01-22

20대 방황·40대 현실, 동시에 마주

번역가 김석희(63)가 17년 만에 소설 창작 재개를 선언하면서 내놓은 두 번째 소설집 `하루나기`(열림원)는 등단작인 `이상의 날개`와 미출간된 아홉 편의 중단편 소설을 모았다.김석희는 1988년 데뷔작 `이상의 날개`를 발표한 뒤 지성과 유머가 잘 섞인 소설 세계로 평론가들의 주목을 받았지만 장편소설 `섬에는 옹달샘`을 펴내고 1998년 절필을 선언했다. 자신이 번역한 `로마인 이야기` 나 존 파울즈의 `프랑스 중위의 여자` 같은 책을 써낼 능력이 없을 바에야 글쓰기를 아예 그만두는 것이 낫지 않겠느냐는 결론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또 번역만으로 글쓰기의 욕망과 창작의 갈증을 대리만족할 수 있다는 생각도 한몫했다.작품들에선 20대 청춘의 방황과 40대 중년의 현실이 하나의 사건을 계기로 동시에 그려진다. 평범한 일상을 살던 주인공들은 문득 찾아온 소식을 통해 과거와 마주하게 된다.`괄호 열고 닫기` 주인공 `나`는 대학생 시절에 미대 졸업전시회에서 만난 어떤 그림에 기묘한 인상을 받아 충동적으로 그것을 훔친다. 그 후 `나`는 군 입대와 이사, 결혼 등을 거치면서도 소중하게 그림을 보관해왔다. 십수 년이 훌쩍 지나 소설가가 된 중년의 `나`는 어느 잡지에 그 그림을 훔쳤던 사건을 비틀어 살을 붙여 다른 이야기로 꾸며서 글 한 편을 기고한다. 그런데 그 글이 발표되고 난 후 어떤 낯선 이로부터 편지가 한 통 도착하는데…./윤희정기자

2016-01-22

문학작품 속 `진짜 사랑` 이야기

휴대전화 액정 뒤에 숨어서 사랑을 고백하고, 또 이별을 고하기도 하는 시대. 오래 인내하며 깊게 배려하고 진정으로 서로의 단점마저 보듬는 참다운 사랑은 이제 사라져버린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요즘의 사랑은 성급하고 진득하지 못하다. 진짜 사랑인지 의도적 접근인지 의심하기도 하고, 나와 상대의 마음을 견주며 손해보지 않으려 계산기를 두드리기도 한다.`썸` 이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하며, 사랑인 듯 사랑 아닌 새로운 관계가 설정되기도 했다. 과장을 조금 보태자면 사랑을 믿지 못하는 시대가 도래했다.송정림 작가의 신간 `사랑이 아니면 아무것도 아닌것`은 그동안 다양한 저작을 통해 생활 속 따뜻한 이야기를 발견해 들려주고 한줄기 희망을 놓지 않게 해줬던 작가가 문학작품 속에서 사랑과 삶의 면면을 포착한 산문집이다.작가가 이 책에서 선정한 문학작품은 동서고금을 막론했고, 많은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진 명작은 물론이고 대중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았던 작가의 작품들도 다루고 있다.저자는 쉽게 변덕과 싫증을 부리게 되는 팍팍한 세상에 `사랑이 변질됐다 해도 궁극적으로 사랑은 있다`는 메시지를 전한다.책은 지난 2014년 7월부터 2015년 3월까지, 문학동네 출판그룹 공식 카페에서 주1회 연재됐던 내용을 바탕으로 꾸려졌다. 제목 `사랑이 아니면 아무것도 아닌 것`도 당시의 연재명을 그대로 가져온 것이다.단행본으로 엮는 과정에서 연재 분량 가운데 1/3 정도는 덜어내고, 새로운 작품을 채워넣는 작업이 진행됐다.유부남과 사랑에 빠져 그가 와주기만을 기다리는 한 여자의 일기 같은 소설 `단순한 열정`(아니 에르노)을 통해 도덕적 관념도 내다버릴 만큼 뜨겁고 아프지만 열정적인 사랑에 대해 생각하게 하고, 사랑하는 여자를 무려 51년 9개월 동안 한결같이 기다려온 남자의 순애보를 그린 `콜레라 시대의 사랑`(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을 통해 사랑의 유효기간이 점점 짧아지는 요즘 시대에 잔잔한 감동의 파문을 던진다.남자의 시선과 여자의 시선으로 각각 쓰인 `냉정과 열정 사이`(에쿠니 가오리·츠지 히토나리)를 다시 읽으면서는 헤어졌지만 끝내 다시 만날 수밖에 없는 애잔한 사랑에 가슴이 뜨거워지고, `러브 스토리`(에릭 시걸)에서는 현실적인 장벽을 모두 뛰어넘어 진정한 사랑으로 결혼까지 이뤄낸 주인공을 통해 진정한 사랑의 조건이 무엇인지를 다시금 깨닫게 된다.암에 걸린 남편의 마지막을 보살피는 아내의 이야기를 담은 `여덟 개의 모자로 남은 당신`(박완서)에서는 우리들 어머니의 모습이 겹쳐져 눈시울이 붉어지기도 하고, 권태기가 찾아온 부부가 그것을 벗어나 보려다가 오히려 작은 오해로 위기를 맞는 소설 `낭만파 남편의 편지`(안정효)를 통해 사랑도 화초를 가꾸듯 꾸준히 돌보아 지켜내야 한다는 당연한 사실을 새삼 되새긴다./윤희정기자hjyun@kbmaeil.com

2016-01-15

애써 외면해 온 세상의 슬픔 엿보다

한국문단의 가장 공신력 있는 장편소설의 산실`문학동네소설상`의 제21회 수상작`소각의 여왕`(문학동네)이 출간됐다. 삼 년 만의 수상작이다.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까지 날카로운 통찰력과 섬세한 문장으로 사랑받는 은희경의 `새의 선물`, 에너지 넘치는 서사를 통해 “이야기란 무엇인가”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내보인 천명관의`고래`, 신선하고도 불온한 상상력을 뿜어냈던 김언수의 `캐비닛`, 그리고 “특촬물”이라는 생소한 제재를 통해 현 젊은 세대의 내면 풍경을 탁월하게 그려낸 이영훈의`체인지킹의 후예`까지, 언제나 문학의 최전선에서 세계와 인간을 향한 날카롭고도 깊이 있는 시선을 보여주었던 전통이 올해에도 어김없이 이어진다.이유의 `소각의 여왕`은 고물상을 운영하는 지창씨와 유품정리사인 그의 딸 해미, 두 부녀의 이야기다. 누군가 쓸모없어 함부로 버린 것들이, 누군가에게는 생계를 잇는 소중한 수단이 되고 또 그렇게 모여진 것들은 분류작업을 거쳐 쓸모 있는 것들로 새롭게 태어난다. 이 순환과정 안에는 비참한 세계에 기거하는 부녀의 일상, 그들이 꾸는 꿈의 다소 허황된 속성,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텅 빈 꿈에 의지해 하루하루를 버텨갈 수밖에 없는 산다는 일의 슬픔이 비친다.재수생인 해미는 대학에 진학하는 대신, 1t 포터를 몰고 다니며 고물상을 운영하는 아버지 지창씨의 일손을 돕는다. 지창씨의 고물상은 할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것으로, 두 부자는 대를 이어서 반짝이는 보물이라도 되는 양 낡고 쓸모없는 고물을 소중히 다룬다. 해미는 골목마다 자신을 마중하는 듯한 모습으로 나와 있는 폐지와 고물들을 수거하고, 그것들을 동일한 속성을 가진 재료로 분해하는 작업을 통과하면서 “뭉치면 죽고 흩어지면 산다”는 고물상 일의 진리를 터득하게 된다.해미는 지창씨가 언제부턴가 자신 몰래 출장을 다니고 있음을 알게 된다. 고물상과 관련된 일이라면 도대체 그녀에게 숨길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 해미는 지창씨가 두고 간 휴대폰 속에서 그 비밀을 찾아낸다. 휴대폰 문자함에는 지창씨에게 유품정리 일을 부탁하는 누군가의 문자가 들어 있었다. 그제야 해미는 지창씨가 왜 그토록 수상하게 행동했는지 알게 된다. 죽은 이들이 머문 공간을 새것처럼 정리해야 하는 자신의 일을 딸에게 들키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이제 지창씨 대신 유품정리 일에 뛰어드는 그녀. 해미는 유품정리가 마치 오랫동안 해온 일인 것처럼, 혈흔과 시취가 짙게 밴 공간을 깨끗이 지워내고, 망자의 물건들을 거침없이 분류하고 소각한다.그사이 지창씨는 초등학교 동창인 정우성이 주고 간 설계도면을 받아들고 새로운 꿈을 꾼다. 고물들로부터 그 어떤 것들보다 값이 비싸게 나가는 희귀 금속 이트륨을 분리해내어 지옥 같은 삶에서 벗어나는 꿈 말이다. 그는 설계도면에 따라 기계를 하나 제작해내고, 그 기계를 가동해 고물들로부터 순수한 이트륨을 뽑아내고자 한다.하지만 번번이 그의 손에 쥐여지는 것은 빛나는 이트륨이 아니라 불순물이 섞인 검은 돌덩어리일 뿐이다.담담하면서도 날카로운 문장들로 이뤄진 이 세계를 들여다보는 우리의 눈에는, 어쩔 수 없이 우리가 숨쉬고 있는 현실세계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한쪽밖에는 보이지가 않아서 한쪽으로밖에 갈 수 없는 사람들. 죽음이 아니면 달리 편안해지는 방법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란 바로 우리, 만약 지금 그렇지 않다면 곧 그렇게 되고야 말 우리의 비극을 가리키는 것이 아닐까. 그런 이들의 곁에 머무르고자 한 소설가 이유의 시선을 통해 우리는 애써 외면해온 세계의 슬픔을 들여다볼 수 있게 됐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6-01-15

15대 자동차로 보는 현대문명의 비밀

엔진의 시대 100년의 역사를 15대 자동차로 추적하는 폴 인그래시아의 `엔진의 시대: 15대의 자동차로 보는 현대 문명의 비밀(Engines of Change: A History of the American Dream in Fifteen Cars)`은 자동차의 과거, 현재, 미래를 모두 담고 있다. 25년 이상 자동차 산업을 전문적으로 취재한 저널리스트로서`월 스트리트 저널`, 다우 존스 뉴스와이어 등을 거쳐 로이터 편집부국장으로 있는 저자는 제너럴 모터스의 경영 위기에 대한 심층 르포로 1993년에 조지프 화이트와 퓰리처상을 공동 수상한 바 있다.폴 인그래시아는 2007년`엔진의 시대`집필 조사에 착수한다.그는 잭 케루악의 `길 위에서`를 다시 읽고 1960년대 방영된 TV쇼 `66번 도로`를 찾아보는 한편 모델 T 100주년 기념 행사에 따라가며 관계자 인터뷰를 위해 미국 전역을 돌아다니는 자동차 여행을 감행한다.저자는 가장 상징적인 차 15대(포드 모델 T, 라살 모델 303, 쉐보레 콜벳, 캐딜락 엘도라도, 폭스바겐 비틀, 폭스바겐 마이크로버스, 쉐보레 콜베어, 포드 머스탱, 폰티액 GTO, 혼다 어코드, 크라이슬러 미니밴, BMW 3 시리즈, 지프, 포드 F-시리즈, 토요타 프리우스)를 선택했다.미국을 무대로 활약한 차들과 자동차 회사들이 중심이지만 자동차와 영향을 주고받아 온 것이 비단 미국 사회와 문화만이 아님은 너무도 분명하다.`엔진의 시대`는 인류를 사로잡은 차 15대를 통해 현대 문명의 변화상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책이다.“이 책을 읽고 나면 자동차가 우리가 살아가는 지금의 세상이 만들어지는 데 얼마나 큰 역할을 했는지 깨닫고 놀라게 될 것이다. 앞으로 자동차가 바꿀 세상의 모습에 대한 영감을 얻기에 충분한 책이다.”-류청희(자동차 평론가)/윤희정기자hjyun@kbmaeil.com

2016-01-15

자연을 통해 세상 이해하는 삶의 지혜

`인문학자와 자연과학자의 꽃으로 세상을 보는 법`(열림원)은 매화·동백·목련·벚꽃·산수유·소나무 등 우리 가까이 사는 식물들의 생활사를 인문학과 자연과학이라는 두 가지 스토리텔링으로 풀어내는 에세이다. 건국대에서 글쓰기를 가르치는 이명희 교수, 산림교육전문가인 정영란이 함께한 이 책은 자연을 통해 세상을 이해하고 삶의 지혜를 실천하게 하는 인생수업을 담고 있다. 저자 이명희와 정영란은 십 대 시절부터 함께해온 단짝 친구다. 서로의 길을 지켜봐주고 지지해준 두 친구가 사십 대 후반이 돼 한 권의 책을 함께 썼다. 시 쓰는 인문학자와 숲 읽는 자연과학자가 각기 다른 시각으로 바라본 열두 가지 식물 이야기가 담겨 있다. 직접 돌아다니며 찍은 80여 컷의 꽃 사진들은 마치 독자들에게 삶을 주제로 말을 거는 듯 다채로운 표정을 지니고 있다. 다른 분야의 공부를 하면서 살아온 두 사람이 가진 것을 공유하면서 누린 배움의 시간을 사람들과 나누고 싶었다고 이들은 전한다.꽃은 한 생애를 어떻게 살아내는가? 꽃도 나무도 알고 있는 삶의 지혜와 비밀을 사람만 모르는 것이 아닐까?`인문학자와 자연과학자의 꽃으로 세상을 보는 법`은 식물들의 생활사를 읽기 쉽게 이야기로 풀어내는 가운데 작가들 자신의 생의 경험을 녹여낸 책이다.삶의 다사다난한 길에서 만난 꽃들과의 직접적인 관계 맺음이 진정성 있게 드러난, 자연 공부와 마음공부가 함께하는 책이다.책은 개인의 삶에 배움이 될 지혜를 전하며 나아가 사회 전체의 행복과 지속발전 가능성의 희망을 전한다. 남들과 나누는 과정을 통해, 익숙한 것들과 결별하고 이제까지 미처 보지 못한 세상을 새롭게 만나고, 다른 한편으로는 익숙한 것들과 재회해 그들에게서 귀중함을 발견하는 첫 출발을 마련해주는 책이다.책은 식물의 약효나 쓰임새보다는 식물의 살아가는 모습에 초점을 뒀다고 한다.저자들은 “힘들었던 시간을 버틸 수 있었던 건 이름 모를 꽃들에게 건넨 독백 때문”이었고, 꽃 중의 꽃은 다름 아닌 `사람`이라고 말한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6-01-15

삶과 연결된 사계절의 신비

지난 5일 열림원에서 낸 `영혼의 정원`은 아일랜드에서 영향력 있는 인물로 존경받는 스태니슬라우스 케네디 수녀가 가려 뽑은 짧은 명언에 그가 자신의 생각이나 소감을 주석처럼 달아놓은 책이다. 1월부터 12월까지 매일 날짜별로 하루 한편의 어록을 소개해 마치 일기 같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자연의 4계절과 정원의 신비를 우리의 삶과 연결시킨 명상록이랄 수 있다. 책은 자연과 함께하는 생활이 현대인의 지친 몸과 마음에 처방이 될 수 있음을 일깨워준다. 아일랜드의 전원 마을에서 자연의 고요함과 에너지, 아름다움과 너그러움을 느끼며 자란 스탠 수녀의 일기에는 다채로운 자연의 모습이 담겨 있다.1월의 정원에는 고요한 영혼이, 3월의 정원에는 새로운 생명력이, 8월의 정원에는 풍요로운 충만함이, 10월의 정원에는 열매를 가꾼 우주의 조화로움이 깃들어 있다. 자연 안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세심하고 따뜻한 눈길로 살펴본다면 우리는 삶의 시련을 헤쳐나갈 용기를 얻을 수 있다.케네디 수녀에게 영감을 준 글은 성서, 시편, 성인의 어록부터 동서고금의 작가, 사상가, 정치가의 글까지 다양하다. 베트남 승려인 틱낫한의 글을 여러 차례 소개하는 등 다른 종교를 가진 종교인의 글을 소개하는 데도 주저함이 없다.어록의 주인공은 각기 다르지만 1월의 글에선 고요한 영혼이, 3월은 새로운 생명력이, 8월은 풍요로운 충만함이, 10월은 열매를 가꾼 우주의 조화로움이 깃들어 있다.케네디 수녀가 어록 밑에 단 소감문은 그 길이는 짧지만 긴 여운을 남긴다.`꽃은 열매를 위해 만개하지만, 열매가 열리면 꽃은 시든다`(10월 20일)는 철학자 카비르의 글을 소개한 뒤 `꿈을 내일로 미루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우리는 아이들이 자라고 학교를 졸업한 뒤에, 대출금을 다 갚고 난 뒤에, 은퇴한 뒤에 진짜 인생을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삶을 즐기기에 적절한 때란 따로 존재하지 않으며 지금 이 순간이 바로 그때입니다`라고 설명을 더하는 식이다.`영혼의 정원`은 케네디 수녀처럼 국내에서 종교인이자 시인으로 유명한 이해인 수녀가 전문번역가로 활동하는 친조카와 함께 번역해 눈길을 끈다.아일랜드에서 `스탠`이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스태니슬라우스 케네디 수녀는 1958년 아일랜드 자선수녀회에 입회한 이래 포커스 아일랜드`(Focus Ireland)라는 프로젝트를 운영해 집없는 이들이`진정한 집이라고 부를 수 있는 곳`에서 살 수 있도록 헌신하고 있다.또한 2000년부터는 더블린 중심가에 `몸과 마음이 지친 이들을 위한 쉼터`를 열어 많은 이들에게 안식처를 마련해주고 있다. 이 밖에도 아일랜드와 유럽 등지에서 사회문제와 정책에 관한 강연과 연설을 하고 있으며 다수의 책과 기사를 쓰고 있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6-01-08

평범한 기억서 빚은 아름다운 순간들

슬픔과 외로움에 지친 사람에게는 요란스러운 응원보다는 작지만 진심 어린 친절이, 많은 말보다 작은 미소가 더 큰 위로를 주는 때가 있다. 우리는 기대하지 않았던 작은 관심에서, 뜻밖에 찾아온 우연한 만남에서, 스치듯 지나갔지만 오래도록 마음에 남는 기억에서, 그러한 순간들을 만난다. 신간 `뜻밖의 위로`(이봄)는 아련하고 감성적인 일러스트로 많은 사랑을 받는 작가 박정은이 그 순간의 기억들을 다양한 그림과 감각적인 글로 포착한 책이다. 일상에서 누구나 한번쯤은 겪어봤을법한, 하지만 남들은 흔히 지나쳐버리기 쉬운 평범한 기억들에서 빛나도록 아름다운 순간들을 길어냈다.이 책은 한 장의 그림과 짧은 글로 이뤄진 다른 책들과는 달리 여러 장의 그림들이 모여 하나의 스토리를 이루고 있는 독특한 구성을 선보인다. 그림과 그림을 순서대로 따라가면 그 사이에 시간이 생겨나고, 그 시간이 또 이야기를 만들면서, 그림 자체가 우리에게 말을 걸어오는 듯한 경험을 하게 한다. 창작자들의 놀이터인 네이버 그라폴리오에서 인기리에 연재중인 작품들에 글을 입히고 새로운 그림들을 추가해서 단행본으로 출간됐다.“사람들은 어떻게 버텨내고 있는 걸까?” 사람들은 모두 혼자이고 결국 혼자이고 그래서 언제나 외롭다고 말하는 저자는 스스로를 직시하는 일로부터 자신과의 화해를 시도한다. 혼자 있는 시간은 어디에서 외로움이 비롯되고, 우리가 무엇을 두려워하고, 결국 무엇이 우리를 지탱하게 해주는지를 오롯이 확인할 수 있게 해준다.무언가를 상실한 사람에게 누군가의 작은 다가섬은 생각보다 큰 파장을 일으키며 번져가고, 작지만 빛나는 그 위로의 순간들이 애틋하게 그려진다. 때로는 빈 커피잔을 남몰래 채워주는 카페 직원의 작은 친절에서, 때로는 함께 비를 맞아주는 상대의 배려에서, 때로는 작은 몸을 기대어오는 동물의 온기에서 우리는 마음의 벽이 허물어짐을 경험한다. 관계에서 받은 상처는 관계를 통해 치유되어야 하고, 그것은 꼭 사람이 아니어도 좋다는 것을 이 책은 보여주고 있다.자신과 타인, 가족과 연인, 동물과 사물, 공간과 자연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관계와 감정의 편린들을 기록한 이 책은, 사랑이야말로 모든 아픔과 상처를 치유하는 힘을 지녔음을 다시금 증언한다.눈물이 멈추는 이유들, 마음을 여는 국면들, 사랑이 전해지는 순간들, 다시 시작하는 관계들 등 절망의 시기에 한줄기 희망을 선사하는 그 복잡하고 미묘한 떨림의 순간들을 묘사한다. 정답이 없어서 두려운 건 당신만이 아니다. 모두가 그러하다. 혼자라는 것은 두렵고 막막하며, 여전히 이별이라는 것에는 면역력이 생기지 않는다.하지만 우리의 기억 속 깊숙한 곳에 숨겨져 있던 기억들은, 일상 속에서 만나는 어떤 음악, 냄새, 장소 등 사소하지만 결정적인 계기들로 인해 지금으로 소환되고 우리에게 살아갈 힘을 준다. 언제나 사람들의 마음에 닿아 울림을 주고 위로가 되는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저자는 말한다./윤희정기자

2016-01-08

소수자 삶의 문제 정면으로 마주하다

`젠더 트러블`로 철학과 페미니즘 학계에 커다란 논란을 불러일으키며 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린 주디스 버틀러 미국 캘리포니아대 버클리캠퍼스(UC버클리) 교수가 이번에는 `젠더 허물기(Undoing Gender)`로 국내 독자들을 찾아왔다. 버틀러는 이 시대 가장 중요한 페미니스트이자 철학자, 정치 이론가 중 한 사람으로 퀴어 이론을 창시했다고 이야기되며, 2015년 파리 테러를 비롯해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 등 다양한 현실 영역에 목소리를 내면서 행동하는 진보적 지식인으로도 자리매김했다.버틀러는 이 책에서 자신의 대표작이자 페미니즘 이론의 고전인 `젠더 트러블`을 통해 보여준 `젠더 수행성`이론을 한 단계 더 발전시키면서 정체성과 보편성, 사회 소수자들의 공동체 등에 관한 정치윤리적 사유를 보여준다. `젠더`가 어떻게 구성되고 수행되는지 이론적으로 고찰하던 버틀러는 이제 남자와 여자라는 규범적 젠더 개념을 허물고, 개별적이고 단독적 주체인 `나` 대신 `우리`라는 주체를 호명해낸다. 무엇보다 `젠더 허물기`는 이론적 정교함에서 현실적 정치성으로 선회해 `인간`이란 무엇이며 `살 만한 삶`이란 누구에게 가능한지와 같은 삶의 문제에 관한 성찰을 풀어낸다.또한 차이를 수용하는 올바른 방식으로서 끊임없이 `문화 번역`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트랜스젠더, 인터섹스 등 눈에 보이지 않는 소수자들의 삶의 문제를 정면으로 마주하면서 슬픔, 애도의 정치학 을 구사하는 버틀러의 날카롭고 급진적인 논제들은 많은 독자들에게 공감과 대화, 비평과 생각의 전환을 불러일으킬 것이다.`젠더 허물기`에서 주디스 버틀러는 스스로를 유대인, 여성, 비학제적 교육을 받은 철학자, 젠더 동일시의 문제를 겪는 퀴어로 정체화하고 개인적 삶의 역사를 드러낸다.청소년기에는 지하실에 처박히거나 술집을 전전하던 문제아였고, 대학 시절에는 니체와 셸러를 경멸하며 완벽한 철학이라는 것에 환상을 품었다가 깨져버리기도 했으며, 페미니즘 철학 강의를 시작할 때 있었던 일화 등을 언급하면서 제도 철학 학계에서 자신이 어떻게 배제됐는지 이야기하기도 한다.버틀러는 이 책에서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다. 무엇이 좋은 삶인가? 어떻게 해서 좋은 삶은 여성을 포함하지 않는 것으로 개념화되었는가? 여성에게 좋은 삶은 무엇인가? 또한 이런 페미니즘적 사유는 일련의 다른 질문으로 연결된다.`올바른` 것과 `좋은` 것은 가장 근본적인 범주를 괴롭히는 긴장에 대해 열려 있는 데서 찾을 수 있다. 이것이 바로 버틀러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일 것이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6-01-08

형형한 눈으로 바라보는 사람이야기

인간 존재에 대한 치열한 탐구와 유쾌하면서도 탄탄한 서사로 자신만의 독특한 영역을 개척해온 작가 손홍규의 네번 째 소설집`그 남자의 가출`(창비)이 출간됐다. 이번 소설집에 수록된 아홉편의 작품들은 `사람`이라는 공동의 목적지를 향해간다는 점에서 여럿인 채로 하나다. 이번 손홍규의 소설집만큼 `사람`에 천착하는 소설은 흔치 않아 보인다. 작가는 `사람`에 배수진을 치고 깊은 응시와 모색을 통해 주제가 주는 진부함과 일상성을 넘어선다. 아울러 사람다운 삶의 기율에 대해 묻고 그것을 방해하는 현실의 부정함을 드러낸다. 결국 작가는 날로 가팔라지고 있는 세계의 경사진 현실을 형형한 눈으로 바라보며 `사람`에 대한 애정으로 소설과 소설을 둘러싼 현실에 따듯한 온기를 돌게 한다.`그 남자의 가출`에 수록된 작품들은 주로 우리의 평범한 일상에 숨어 있는 비일상적인 것들이 한순간 드러나면서 생기는 생경함과 비의를 통해 서사를 이끌어나간다. 일별하자면 `파킨슨 병`이나 `가출`, `가족의 죽음`처럼 현실적 삶에 기반한 사건, 혹은 `웜홀`이나 `혼인 신고서를 작성한 여자들에게만 발생하는 질병`, `도시의 기억상실증` 같은 소설적 상상 등이 그것이다.`정읍에서 울다`와 `그 남자의 가출기`는 노년에 접어든 평범한 사내와 아내의 이야기다. 사내들은 젊은 날의 꿈과 사뭇 비장하게 헤어졌음에도 결국 남루하게 늙은 보통의 가장이며 또한 그 남루를 아내 탓으로 돌리고 원망하는 보통의 남편이기도 하다. 남편들은 미운 아내들 때문에 각각 `정읍댁 찾기`에 나서거나 `가출`을 감행한다. 그들은 자신의 이력을 되감아 과거의 사람들과 해후하고 지난날을 조감하며 제 삶의 본질과 의미를 찾아보려고도 한다.하지만 거꾸로 넘겨본 삶의 페이지엔 성공보다 실패의 흔적이 많고 놓쳐버린 것의 목록이 손에 넣은 것의 목록을 훨씬 웃돈다. 작가는 이를 통해 주인공들을 앙상하게 하고 비루하게 만들며 인간관계를 지치게 한 시스템의 음험함과 세계의 부조리를 드러낸다.`발라드`연작(`아내의 발라드``아내를 위한 발라드``발라드의 기원`)은 평범한 일상에 급작스레 닥친 질병에 관한 이야기다. 혼인신고를 한 아내만 감염시켜 비(非)인간으로 변하게 하는 것이다.이 연작이 참담하게 다가오는 것은 낯선 질병에 걸린 여인이 신음하며 괴물같이 변하는 과정이 섬뜩하다거나 병의 알레고리가 아내, 남편, 혼인이라는 이름의 배후에 놓인 불행들을 상기시켜서만은 아니다. 무엇보다 무겁게 다가오는 것은 형언 불가능한 이 현상을 `언젠가 도래했을 미래`라 명명하는 남편들의 태도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6-01-08

인생에서 `읽기`가 주는 의미는

`보다` - `말하다` - `읽다` 김영하 산문 삼부작의 완결,`읽다`(문학동네)는 그가 오랫동안 읽어온 작품들에 대한 이야기와 함께, 문학이라는 `제2의 자연`을 맹렬히 탐험해온 작가 김영하의 독서 경험을 담은 책이다. 우리 시대의 작가로서 그리고 한 명의 열렬한 독자로서, 독서라는 가장 인간다운 행위의 의미에 대해 사유하고자 하는 그는, 이 책을 통해 다시 한번 우리를 깊은 책의 세계로 끌어들여 정신의 미로 속을 때로는 즐겁게 때로는 고통스럽게 헤매는 독서의 쾌락을 선사한다.`읽다`는 우리는 왜 책을 읽는가, 문학작품을 읽을 때 우리에겐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위대한 작품들을 위대하게 만드는 특질은 무엇인가 등에 대해 김영하만의 유려한 스타일로 풀어낸 산문이다. 이를 바탕으로 올여름, 독자들의 뜨거운 호응 속에 6회에 걸친 문학 강연이 열리기도 했다.책과 독서에 관한 가장 치열하고도 매혹적인 사유, 고대 그리스로부터 현대의 문학작품과 `미드`에 이르기까지 거침없이 종횡하는 문학 탐사, 문학적인 것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풍요로운 질문과 대답, 그리고 김영하만의 깊고 방대한 읽기의 역사. 읽기에 관한 이 강렬한 산문은 `책의 우주`에 접속하도록 연결해주는 독특하고도 아름다운 길이 될 것임에 분명하다.김영하는 이 책에서 우리의 내면을 크레페케이크에 비유한다. “일상이라는 무미건조한 세계 위에 독서와 같은 정신적 경험들이 차곡차곡 겹을 이루며 쌓이면서”(104쪽) 정신적 세계가 형성되어간다는 것이다. 그렇게 읽은 책이, 이야기가 결국 한 사람의 사고와 행동을 결정한다고 한다면 `인간이 바로 이야기`(69쪽)다. 그는 `작가의 말`에서 “내가 읽은 것들이 작가로서 내가 쓸 수 있는 것을 결정했다”고 고백한다.마치 보르헤스가 그랬듯, 작가이자 무한한 `책의 우주`를 탐사하는 독자로서의 김영하는 이 책에서 `끝없이 두 갈래로 갈라지는 길`로 이어지는 책의 세계를 기분좋게 헤매보자고 우리를 다정하게 끌어들인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5-12-18

세 여자의 자존심을 건 바느질 인생

3㎝의 누비 바늘로 0.3㎝ 길이 바늘땀을 손가락이 뒤틀리도록 수놓는 수덕에게는 두 딸, 금택과 화순이 있다.세 모녀는 바느질하는 여자로 살려고 결혼도 명예도, 다른 삶도 포기했다. 이들에게 바느질은 기술이 아니라 인생이며, 자존심이다.어려서부터 어머니의 바느질을 곁에서 봐온 금택은 자신이 엄마의 솜씨를 이어받지 못했다는 생각에 늘 불안하고, 자신이 친딸이 아니라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다.동생 화순은 바늘이 자신에게서 어머니를 빼앗아갔다는 피해 의식을 갖고 자한다. 하지만 그도 커서는 결국 대학 공부를 포기하고 바느질을 하겠다고 나선다.2013년 대산문학상에 이어, 올해 이상문학상의 영예를 안은 작가 김숨(41)의 일곱번째 장편소설 `바느질하는 여자`(문학과지성사)가 출간됐다. 3cm의 누비 바늘로 0.3cm의 바늘땀을 손가락이 뒤틀리고 몸이 삭도록 끊임없이 놓는 수덕과 그녀의 딸들이`우물집`에서 살아가는 이야기를 한 자 한 자 새겨 2천200매의 장편소설로 완성했다.“누비는 똑같은 바늘땀들의 반복을 통해 아름다움에 도달하지. 자기 수양과 인내, 극기에 가까운 절제를 통해 최상의 아름다움에 도달하는 게 우리 전통 누비야. 다른 어느 나라에도 없는, 우리나라에만 있는 고유한 침선법이지”라고 되뇌는 소설 속 인물의 말처럼, 가도 가도 끝이 보이지 않는 지리한 인생에서 아름다움에 이르는 길이 이 소설 안에 펼쳐져 있다.바느질하는 여자와 소설 쓰는 여자 김숨.`명장`을 증명하지 못할지라도 삶을 견디고 살아내는 자신만의 형식을 가진 사람들의 모습이 아름다운 소설이다.`바느질하는 여자`로 살기 위해 결혼도 명예도, 또 다른 삶도 포기한 여자들이 여기 있다. 그녀들이 무엇을 포기했는지는 분명하지 않으나 아마도 바느질을 제외한 모든 것일 것임을 우리는 짐작할 수 있다.집요하게 한 가지 일에 매진하는 모습, 그것을 통해 궁극에 달하는 모습, 주인공 수덕은 수십 년간 옷을 짓지만 어떠한 과정도 허투루 건너뛰지 않으며 더 속도를 내지도 더 욕심을 부리지도 않는 정도(程度)에 이른 모습을 보여준다. 이 소설은 다른 무엇도 아닌 자신만의 형식으로 `아름다움`을 일군 한 삶의 탐구이며, 이것 자체가 예술의 경지에 이른 것이라 할 만하다. 하지만 이것은 예술을 넘어 자기만의 삶을 살아낸 아주 평범한, 어떤 방식으로 증명되지는 않더라도 누군가는 감탄하고 존경해 마지않는 내 아버지, 어머니의 모습이기도 할 것이다.“옛 사람들은 옷을 지을 때 한 땀 한 땀마다 입을 사람의 복을 기원했다지. 건강과 장수를 빌면서 정성을 다했다지.”“복이란 게 돌고 도는 거야. 돌고 돌아 자손에게라도 되돌아가는 게 복이야.”누비 바느질만으로 자신의 긴 인생을 살아내고 두 딸을 먹이고 입힌 수덕은 손가락이 비틀어지고 몸이 굳고 눈이 멀고 정신이 혼돈하는 생의 마지막에 이르게 된다. 그 과정에서 소설은 `기도`에 관한 두 가지 이야기를 들려준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5-12-18

시인이 만났던 아이들의 진솔한 삶

“온종일어시장 좌판에서생선 장사하시는울 엄마 향수는 멘소래담입니다.생선 비린내도퉁퉁 부어오른 종아리도멘소래담이면쏴아아 가라앉습니다.”(김현욱 동시 `엄마의 향수` 부분)포항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김현욱사진 시인이 최근 동시집 `지각 중계석`(문학동네)을 펴냈다.김 시인은 진주신문 가을문예에 시가 당선되고 2013년 시집 `보이저 씨`를 내며 시인으로 먼저 이름을 알렸다.2007년 `구룡포 아이들`이라는 동시 연작으로 해양문학상을 받고 이어 매일신문 신춘문예에 동시 당선, 월간 `어린이와 문학`에 동시 추천을 받는 등 탄탄히 동시인으로서 기반을 다져왔다.그가 동시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15년 동안 초등학교 현장에서 교사로 일하며 만나온 아이들 덕분이다. 교실에서, 바닷가에서, 놀이터에서 아이들은 말로 글로 몸으로 그들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뿐만 아니라 함께 아침마다 짧은 일기 형식의 `글기지개`를 쓰고, 자신의 삶을 솔직하게 쓰는 살아 있는 시 쓰기를 통해, 다양한 환경에 있는 아이들의 마음에 가까워질 수 있었다.김현욱 시인은 “동시는 아이들과 통하는 가장 좋은 수단”이라고 말한다.아이들의 삶에 스며들어 동시를 써 온 지 10년. `지각 중계석`은 그 10년을 아우르는 김현욱의 첫 동시집으로, 시인이 아끼는 시들을 한 편 한 편 가려 모았다.시인이 만났던 아이들의 삶이 깃든 시들이기 때문이다.김 시인은 “`지각 중계석`은 동시인 김현욱의 첫 기착지이며, 시인이 가고자 하는 최종 목적지”라고 했다.어부인 아빠를 태풍에 잃은 아이는 어부들이 행복하게 모여 산다는 바닷속 마을로 카네이션을 띄워 보낸다.어시장 좌판에서 생선 장사로 일하는 엄마를 시원하게 해주는 멘소래담은 그 어떤 향수보다 향기롭고, 어미를 사람들에게 무참히 도륙당하고 포구까지 올라와 우는 새끼 고래의 울음소리는 구슬프다.이 모두 김현욱 시인이 구룡포초등학교에 근무하면서 쓴 작품들이다.김현욱은 어시장으로 아이의 부모님을 찾아다니고, 바닷가에서 아이와 함께 카네이션을 띄워 보내고, 또 마을 사람들의 오래된 이야기를 들으면서 진솔한 삶의 고백을 기록했다.구룡포에서 살아가는 아이들과 뭇 짐승들의 이야기는, 민낯이어서 더 절절하고 따듯하다.`지각 중계석`에는 진솔한 삶을 담은 동시와 더불어 시대의 숙제들이 투영된 작품들이 또 한 축을 이룬다.`고치`에서는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쓰라린 과거와 소망을, `대단한 아줌마`는 기본조차 지켜지지 않는 노동자들의 노동권과 처우 개선을, `순덕이`는 공장식 축산으로 인한 구제역을 죄 없는 짐승들의 살처분으로 해결하려는 인간들의 잔인함을, `원래`는 무분별한 자연개발과 인간의 이기를, `1등성`에선 시험제일주의를 짚고 있다. 또 `100원`은 돈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물질만능주의를 꼬집는다.아이들에게 현실을 미화된 판타지로 눈속임하는 것이 아니라, 어둡고 그늘진 그래서 꼭 풀어야 할 문제들을 직시하게 하고, 지금 살고 있는 현재와 살아갈 미래에 대해 고민하게 하는 것이다.김현욱 시인은 1977년 포항에서 태어나 대구교대를 졸업했다. 2007년 진주신문 가을문예에 시가, 2010년 매일신문 신춘문예에 동시가 당선돼 등단했다.해양문학상, MBC창작동화대상, 서울문화재단 문학창작지원금을 받았으며, 동시집 `지각 중계석`외에 시집 `보이저 씨`, 동화집 `도서관 길고양이`(공저) 등을 냈다.현재 `시와 노는 교실`네이버 카페를 운영하고 있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5-12-18

말이 달라지면 세상 달라진다

내면의 대화로 어려움을 극복하고 삶의 진정한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법을 담은 `자기 대화의 기술`(판미동)이 출간됐다. 영국의 유명 카피라이터인 안드레아 가드너가 이혼과 파산 후 건강을 잃고 터득한 자기 내면과의 대화법을 담은 책이다. 이 책의 중심 내용인 `말이 달라지면 세상이 달라진다`는 주제로 저자가 직접 제작한 `말의 힘`영상은 유튜브에서 2천400만 뷰를 기록하며 전 세계적으로 화제가 되기도 했다.자기 대화는 외부로만 향하던 말의 방향을 내면으로 돌려, 자신의 마음을 진정으로 들여다보고 소통하는 방법이다.저자는 이 책에서 현대인들이 자기 내면의 말은 듣지 않고 말을 타인을 설득하는 수단쯤으로 여기고 있을 뿐만 아니라, 자기를 부정하고 회의하는 내면의 말과 생각이 우리의 능력을 얼마나 저해하는지 의식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한다.걱정, 두려움, 불만, 의심, 질투, 분노와 같은 부정적인 감정은 은연중에 자신감을 떨어뜨리는 말을 하게 만들고, 해소하지 못한 부정적인 에너지가 우리의 몸에 쌓이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긍정적인 말을 자신에게 끊임없이 건네며 부정적인 사고 과정에 개입해 뇌가 긍정적인 행동을 취할 수 있도록 바꿔줘야 한다고 역설한다.이를 위해 에모토 마사루, 디팩 초프라, 허버트 벤슨 등의 풍부한 연구 사례들을 토대로 긍정의 힘, 확신의 힘, 용서의 힘을 고찰하고, 지속적으로 긍정적인 자기 대화를 이끌어 갈 수 있는 심상화, 호오포노포노, 명상, 관계 일기 쓰기 등 쉽게 실천 가능한 훈련법들을 제시한다.저자는 건강, 인간관계, 경제 사정 등 각종 문제들이 `몸, 마음, 영혼`으로 이루어진 우리의 삶에 발생하는 불균형과 부조화를 알려주는 신호라고 말한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5-12-11

사람이 사람으로 사람답게 사는 풍경

“상주에서 태어나 머물렀던 시간은 15년도 되지 않지만 내가 쓴 소설의 절반 가까이가 상주를 무대로 상정한 것들이다. 자연, 마을, 사람, 사물, 관계마다 이야기가 없는 곳이 없었다. 그런 면에서 나는 복 받은 사람이다. 소설 쓰는 사람으로서 내 관심사의 가장 앞쪽에 있는 것이 바로 사람이 사람으로 사람답게 사는 풍경이고 앞으로도 그럴 것인데 거기에는 삼라만상 중에 사람이 귀하고 높고 소중하다는 것을 알게 해준 상주가 있었기 때문이다.”- (성석제 에세이 `고향의 황홀한 맛`중에서)소설가이자 산문작가인 성석제가 일곱 번째 산문집 `꾸들꾸들 물고기 씨, 어딜 가시나`(한겨레출판)를 들고 돌아왔다.산문으로는 2011년 `칼과 황홀`이 나온 뒤 4년 만이다. “글쓰기는 살았던 시간을 남기는 방법이다.” 작가의 말처럼 누에를 키워 실을 잣던 고향 집의 어린 시절 풍경부터 이십 대 대학 시절 어쩌면 작가로서의 길을 들어서는 중요한 사건이 됐을 기형도 시인과의 에피소드, 세상의 끝처럼 아무런 꾸밈없고 가차없고 무정한 느낌이 들었던 남반구 칠레의 토레스델파이네 계곡에서의 느낌까지 자신의 존재를 이뤘던 특별한 시간들을 정밀하게 묘사한다.전작 `칼과 황홀`에서 볼 수 있듯이 작가의 음식에 대한 관심과 애정은 남다르다. 이번 산문에서도 음식에 얽힌 소재가 적지 않다. 서울 출신 사람들만 알음알음으로 살며시 다닌다는 음식점들, 천국의 다른 이름이라고 부를 정도인 단골집, 음식점 이름에 왜 어머니 할머니 등 여성의 이름을 많이 쓰는지에 대한 고찰, 바닷가 모래알처럼 원조가 많은 시절 진짜 원조의 맛의 비밀은 무엇인지, 그리고 고향의 황홀한 맛까지 누구도 흉내 내기 어려운 작가만의 음식 다큐멘터리를 만날 수 있다.`꾸들꾸들 물고기 씨, 어딜 가시나`는 `성석제의 사이 이야기`라는 제목으로`한겨레 ESC`에 연재한 글과 작가가 틈틈이 써놓았던 에세이들을 한 데 묶어 보강했다. `아주 가벼운 깃털 하나`(공지영 지음)에 그림으로 슬며시 웃음 짓게 하는 독특한 화풍을 선보인 적이 있는 일러스트레이터 이민혜씨의 그림으로 책의 깊이와 재미를 더했다.1부 `세상에 이런 맛이`, 2부 `오 육체는 기뻐라`, 에필로그 `죽기 전에 다시 가보고 싶은 곳`으로 구성돼 있으며 모두 44편의 에세이가 담아져 있다.작가는 고향인 상주에 머물렀던 시간이 15년밖에 안 되지만 소설의 절반 가까이 상주를 무대로 한다고 말한다. 이번 산문에서도 고향을 소재로 한 것이 특히 눈에 띈다. 고향의 황홀한 맛이라고 표현한 골곰짠지 찬사, 오래된 흑백사진 한 장에서 떠올리는 아련한 어린 시절의 한때, 고단했으나 신비로웠던 고향의 누에치기 풍경, 오디 이야기는 물론이고 저 멀리 우즈베키스탄에 가서도 길가의 뽕나무에서 오디를 홀린 듯 따 먹다가도 고향의 검은 오디를 떠올리는 식이다.경북 상주의 시간과 공간, 청춘 시절, 아메리카의 미국 캐나다 칠레, 중앙아시아 투르키스탄과 우즈베키스탄, 라오스와 터키까지 걷거나 자전거를 타고 작가의 마음을 예민하게 끌었던 사람, 사건, 그리고 풍경들 속을 함께 걷다가 맛도 보고 슬며시 웃음 짓기도 하며 생에 대한 약간의 위로와 내 인생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꾸들꾸들 물고기 씨, 어딜 가시나`를 통해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여전히 사람이 사람으로 사람답게 사는 풍경을 그리겠다고./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5-12-11

신화와 종교의 세계 현대적 재해석

“세상은 경이로움으로 가득차 있고, 인생은 매순간 그 경이로움을 만나는 모험여행이다.” 우리 시대 가장 널리 읽히는 작가,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해외작가로 손꼽히는 파울로 코엘료(68)의 대표작 세 권 `연금술사``브리다``흐르는 강물처럼`이 포켓 사이즈의 문고판 세트로 출간됐다. `파울로 코엘료 베스트 컬렉션`(문학동네)은 삶에 대한 깊은 통찰과 충만한 영감을 선사하며 신화와 종교의 세계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해내는 작가의 정수를 맛볼 수 있는 구성으로, 코엘료 입문자에게는 충실한 가이드가, 오랜 독자에게는 특별한 소장품이 될 것이다.△`연금술사`“자네가 무언가를 간절히 원할 때 온 우주는 자네의 소망이 실현되도록 도와준다네.”`연금술사`는 전 세계 3천만 부 판매라는 신화적 기록과 함께 국내에 `코엘료 신드롬`을 불러일으키고, 이제는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 칼릴 지브란의 `예언자`와 함께 모던클래식으로 자리잡은 명실상부한 파울로 코엘료의 대표작이다.평범한 양치기 청년 산티아고는 마음의 속삭임에 귀를 열고 자신의 보물을 찾아 길을 떠난다.집시여인, 늙은 왕, 도둑, 화학자, 낙타몰이꾼, 아름다운 연인 파티마, 절대적인 사막의 침묵과 죽음의 위협, 그리고 마침내 연금술사를 만나 자신의 보물을 찾기까지, 삶이 거쳐가는 순례 여행에 관한 지혜롭고 감동적인 이야기가 펼쳐진다.△`브리다`“살아가다보면 어느 순간 우리 모두는 자신의 소울메이트를 만나고 그를 알아보지.” `브리다` 는 파울로 코엘료가`연금술사`직후 본격적인 소설 형식으로 쓴 첫 책이자 이후 그가 발표한 작품들에서 개별적으로 다뤘던 주제들이 집약돼 있는, 코엘료 작품세계의 원류이며 가장 코엘료다운 작품이다. 운명을 찾아나선 스무 살 여자 브리다가 사랑을 찾고 더 나아가 자아를 발견하면서 변모해가는 감동적인 여정의 기록을 담았다. 우리 모두가 인생이라는 짧고도 긴 여행을 통해 각자의 운명을 찾는 과정과, 그 여정에서 필연적으로 만나게 될 우리 안의 잃어버린 한 부분, 즉 소울메이트와의 사랑 이야기를 하나로 엮었다.△`흐르는 강물처럼` “우리 모두는 가슴속에 하나의 우주를 품고 있습니다.”`흐르는 강물처럼`은 파울로 코엘료의 첫 산문집이다. 세계 각국의 신화와 종교를 두루 섭렵한 작가가 인간 영혼의 깊은 곳에서 건져올린 아름다운 우화, 작가 자신의 일상과 코엘료 문학의 비밀을 엿볼 수 있는 열쇠 같은 글들, 그리고 길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감동적인 일화들이 담겨 있다.일상에서 건져올린 지혜와 예술의 경지로서의 삶을 살아가는 방법, 어떻게 이 세상에서 연대해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따뜻하고 가슴 뭉클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읽는 이를 빛나는 삶으로 이끄는, 101가지 지혜의 샘과도 같은 책이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5-12-11

사회에서 유리된 `사회학` 비판

`당연의 세계`에 끊임없이 비판의 눈길을 던지며, 인문학과 사회과학, 예술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글쓰기를 해온 사회학자이자 작가 정수복의 신작`응답하는 사회학: 인문학적 사회학의 귀환`(문학과지성사)이 출간됐다. 이 책은 사회학이 과학적 방법론에 의지해 전공자들끼리만 이해할 수 있는 난해한 이론과 각종 통계 수치로 가득 채워진 논문만 양산해내면서, 정작 `사회`에서 유리돼 가고 있다고 비판한다.사회학이란 삶의 궁극적 의미와 세상의 작동 방식을 설명해 사회 구성원들이 더 나은 방향으로 삶을 바꿔나갈 수 있는 가능성을 스스로 찾아내도록 도움을 줘야 하는데, 오늘날의 사회학은 사회와 소통하려는 노력을 포기한 채 연구비를 주는 국가와 기업, 논문심사 기관의 요구에 답하는 데만 정신이 팔려 있다는 것이다.대학이나 조직에 소속되지 않은 독립 연구자로서 `대학 사회`와 비판적 거리를 유지해온 저자는 우리 학계의 풍토를 강하게 비판하며 사회적 사실을 마치 사물처럼 다루며 세계를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것에 집중하는 `과학으로서의 사회학` 대신 잃어버린 인간적 차원을 다시 불러들여 `인문학적 사회학`, 인문학과 문학예술과 적극적으로 대화하는 `말 건네고 응답하는`사회학을 요청한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5-12-11

詩로 녹여낸 영덕인의 심성·풍경

영덕에서 활동중인 여류 시인 김인수(50)씨가 두 번째 시집 `푸른 벼랑`(고요아침)을 펴냈다. 2009년 `아람문학`으로 등단한 김 시인은 현재 경북문인협회, 영덕문인협회원 등으로 활동하며 영덕에서 시를 쓰고 있다.새 시집에 실린 60편의 시는 시인이 관찰한 영덕의 풍경부터 영덕 사람들의 심성까지 그리고 있다. 서정적이고 쉬운 시어를 통해 독자들을 자연의 고요함으로 이끌어가는 것이 인상적이다. 삶속에서 무심코 스쳐가는 바다, 그리고 자연과 일상 속에서 삶의 진실을 발견하는 시인의 눈은 오늘 우리의 스산한 삶을 다독이고 위무한다.“활활 타오르는/새벽 강구항/하늘 한 쪽 열어젖히는/물안개 갈매기/어부들 통통배/짙붉은 빛 꺾어 쥐는/물 묻은 손길들/그대 그리고 나”(`블루로드 1- 새벽 강구항`부분)“물결소리/바람소리/달려와 흥을 돋우면/쥐락펴락 섞이는 소리/요곤조곤 들려오는 사람의 소리/푸르른 깃을 치며 날아오른다”(`블루로드 4-석리바다 벼랑`부분)손진은 시인은 “김인수 시인은 이번 시집에서 3부를`블루로드`라고 명명하면서 온통 자신의 터전인 영덕에 대한 헌사로 바치고 있는데, 이는 그만큼 그녀가 발딛고 있는 땅에 대한 사랑과 사무침이 크다는 반증일 것”이라고 평가했다.“산 흙냄새와 깨진 물결의 조각/차가운 강바람에 어우러지는/장바닥 삼월 강구/먹먹한 가슴 깊이 파며/말없이 밥을 지어내는 여자/사철 얼어붙은 몸으로/구겨진 어둠까지 말아서/눈빛으로 쟁여 넣고도/머뭇거리며 남겨 둔 시간에/살아있는 푸른 먼지까지/씻어 내리는 그녀”(`꽃`부분)김성춘 시인은 김인수의 시를 읽고 자연과 일상 속에서 삶의 진실을 발견하는 시인의 눈이 예사롭지 않다고 평가했다.이번 시집을 관통하는 세계는`자연과 삶에 대한 예찬`인 셈이다. 이 세계는`번지는 사월은 소리 타래``미룩미룩 날아가는 낮은 구름``찔레 넝쿨 하얀 꽃 벙울벙울 피어내며`등 감각이 증폭된 시어들로 다양하게 변모하며 등장한다. 고향을 지키며 고향의 산천과 사람들을 섬세한 관찰력으로 투시하면서 삶과 현실을 감각적이고 따뜻하게 노래하는 이 시인의 시집에서는 개성적이고 새로운 시의 가능성이 엿보인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5-12-04

장년이 말하는, 낯설지만 믿음직한 `희망`

“희망, 꿈, 내일 등의 푸른 단어는 언제 들었는지 귀에 아득한 세상이다. 오포세대, 칠포세대 따위의 절망의 언어만 난무하는 시대에 내일과 희망, 꿈은 좀 느닷없다 싶었다. 그것도 석양인가 싶은 장년이. 그러나 장년의 말은 진솔하고, 살아온 세월의 연륜이 담겨있기에 허황하지 않고, 믿을 수 있으니 가슴이 꿈틀거린다.”최근 에세이집 `내일은 희망이다`(한결미디어)를 펴낸 저자 김순견(한국전력기술 상임감사)씨의 생각대로 이제 장년은 장년이 아니라 살아온 만큼 더 살아야하는 100세 시대의 청년이다. `꿈을 놓지 않는 푸른 장년의 희망 읽기`라는 부제가 붙은 `내일은 희망이다` 그런 `장년의 청년`이 새로운 번뜩이는 시각으로 `푸른 청년`에게 희망의 길을 말하고, 함께 살아가는 지혜를 제시하며 희망과 감동을 주는 에세이를 담았다.책은 `오늘의 희망, 내일의 웃음``기적의 나라 대한민국, 다시 시작이다!``유라시아를 달려 아프리카까지``존경받는 나라, 사랑받는 나라 대한민국``희망이 있는 삶의 꿈들`등 5장으로 구성돼 있다.포항 출신인 저자가 해양수자원으로 미래 먹거리 산업을 말하고, 크루즈관광을 꿈꾸는 것은 `혹여 포스코에 의존하는 포항의 현재 모습에서 포스트 포스코를 생각해야 한다`는 의지일 것이다.저자는 `불멸의 포스코 신화`고 박태준과 오래도록 깊은 인연이 있다.박태준의 정신과 의지를 너무도 잘 알기에 박정희, 싱가포르의 리콴유, 중국 덩샤오핑을 함께 주목했다.각각 기적을 일군 그 지도자들의 정신과 철학을 공부하며 시대의 흐름에 따라 소홀하거나 잊히는 세태가 안타까웠다.“그래도 싱가포르국립대학에는 이미 그의 생존 시절부터 리콴유대학원이 설립돼 세계적 석학들과 함께 지속가능한 발전과 평화를 연구하며 싱가포르 국가브랜드 향상은 물론 국가 발전의 원동력이 되고 있다”고 말하는 저자는 긍정과 건전한 비판으로 박정희와 박태준의 정신이 우리 미래의 거울이 되기를 염원한다. 또 그는 독도 길목인 포항에 안중근기념관을 세워 독도수호와 평화의 상징이 되도록 하자는 바람으로 구 포항역사 부지 활용을 제안한다.“독도에 최소인원이 묵을 수 있는 컨벤션센터를 건립해 국제평화문제를 논의하는 토론의 장으로 활용하는 것도 검토할 만한 일이다. 영향력 있는 정치인, 은퇴한 전직 지도자, 저명한 석학, 국제관계나 환경문제를 전공하는 젊은 학자들이 청정 동해 동쪽 끝에 자리한 섬에서 태평양의 수평선을 박차고 떠오르는 붉은 태양을 바라보며 세계평화와 지구환경을 머리 맞대 고민하노라면, 독도는 세계적 평화의 상징으로 모두에게 각인되지 않겠는가. 그처럼 평화의 상징, 지구환경의 성지가 되는 독도라면 누구라서 감히 불경스러운 말을 지껄일 수 있겠는가” (175쪽)저자 김순견은 포항에서 태어나 포철공고와 동국대를 나와 연세대·영남대에서 각각 행정학 석사, 박사학위를 취득했고 경북도의회 2선 의원으로 활동했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5-12-04

조선선비들이 목숨걸고 지킨 `말할 자유`

조광조(1482~1519)는 조선시대 `개혁 아이콘`으로, 정도전 이후 최고의 개혁가로 손꼽힌다.조광조는 훈구세력의 잘못된 정치 관행과 권력형 비리를 문제시하는 사림세력을 영도하는 위치에 있는 인물이었다.특히 1506년 중종반정으로 연산군 시대의 잘못된 정치를 일신, 새로운 조선을 재창조하는 분위기가 성숙됐던 당시 유교적 이상정치, 즉 도학정치(道學政治, 요순시대의 정치)를 구현하려는 다양한 정치개혁을 시도하면서 조정 내 언로의 확충을 강하게 주장했던 문신이었다.권경률(44)씨가 최근 펴낸 `조선을 만든 위험한 말들`(앨피)은 시대를 앞서간 조광조의 개혁정책을 통해 오늘날 한국사회의 나아갈 방향을 비춰 보이고 있다.조광조가 꿈꿨던 이상사회가 이후 후학들에 의해 조선 사회에 구현됐듯 저자는 자신의 오랜 고민과 연구가 `관료망국(官僚亡國)`이라고 비유될 만치 윤리와 도덕의 진공상태에서 벌어지는 파국과 갈등이 이어지고 있는 한국사회에 새로운 경종을 울리는 계기가 되기를 희망하고 있다.이 책의 제목인 `조선을 만든 위험한 말들`이란, 500년 전 조광조가 목숨을 바쳐 열려고 한 `언로(言路)`를 뜻한다.거침없는 언로의 상징이던 조광조가 자신의 안위를 개의치 않고 자유롭게 의견을 내고 비판해 나라의 잘못을 바로잡고자 했지만 중종으로 부터 죽임을 당했던 비운의 운명을 함의하고 있다.역사와 드라마를 소재로 역사 칼럼을 써 온 저자가 이 책을 통해 대중 역사 독자들에게 던지는 첫 일성은 바로 조선을 만든 `말`, 더 구체적으로는 `말들의 투쟁`이다.저자는 “비록 온갖 불찰과 과오에도 불구하고, 조선은 그렇게 만만한 나라가 아니었다. 조선을 지탱한 성리학 역시 계급 차별이나 주장하는 근본 없는 철학 체계가 아니었다. 500년이라는 결코 짧지 않은 역사를 쌓아 올린 조선 왕조의 저력이 바로 `언로`였다”고 주장한다.그리고 이 `말할 자유`를 위해 역대 조선의 왕들과 선비 관료들이 얼마나 치열하게 싸웠는지, `도덕의 나라`라는 갑갑해 보이는 타이틀에 심오한 통치 철학이 담겨 있음을 보여준다.책은 23개의 꼭지로 구성돼 있다. 23개의 `언로(말)`가 이야기를 풀어 가는 실마리가 되는 형식이다.“석 자 칼로 사직을 편안케 한다” “장차 책을 읽혀 쓸모 있게 하려는 것” “나라의 병통이 이익의 근원에 있다” 등 그 말의 주인공은 다양하고 그 맥락은 심오하다. “이 군대로 무슨 일인들 못하겠습니까?” “유자광은 전국시대 협객과 같다” “대비는 한낱 궁중의 과부일 뿐”처럼 들으면 척 하고 말의 주인공이 떠오르는 유명한 말들도 있다. 저자는 우리가 익히 안다고 생각하는 역사적 인물과 사건을 `조선의 탄생`, `반칙과 특권`, `도덕의 나라`라는 3장의 큰 틀로 구성해 그 맥락을 소상히 풀되, 앞뒤 맥락을 연결해 우리가 미처 발견하지 못했거나 간과했던 통찰을 끌어낸다.저자 권경률은 포항 출신으로 서강대 사학과를 졸업했으며 현재 머니투데이에 `사극 속 역사인물`을 연재하고 있다.지은 책으로 `드라마 읽어주는 남자` 등이 있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5-12-04

“인권이란 약할 권리를 옹호하는 것”

“내 삶에 대해 얘기를 좀 해보라고 하시는데, 난 내가 삶을 산 거라는 확신이 그다지 서지 않는군요. 오히려 삶이 우리를 갖고 소유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살았다는 느낌이 들면 우리는 마치 스스로 삶을 선택이라도 한 것처럼 자기 삶인 양 기억하곤 하지요. 개인적으로 나는 살면서 선택권을 거의 갖지 못했습니다. 지극히 일반적이고 사적이며 일상적인 의미의 역사가 나를 이끌었고, 어떤 면에서는 나를 속여 넘겼지요.” (`내 삶의 의미`11쪽)`자기 앞의 생`으로 국내에도 잘 알려진 프랑스 현대문학의 거장 로맹 가리의 회고록 `내 삶의 의미`(문학과지성사)가 번역 출간됐다.로맹 가리(1914~1980)는 한 작가의 생에 한 번 밖에 주어지지 않는 프랑스 최고 권위의 소설상인 공쿠르상을 두 차례 수상한 것으로 유명하다. `에밀 아자르`라는 필명을 사용한 것으로도 유명한 로맹 가리는 첫 소설 `유럽의 교육`으로 1945년 비평가상을 받으며 유럽 문단에 화려하게 등장한 뒤 `하늘의 뿌리`로 1956년 공쿠르상을 받았다. 그리고 19년 뒤인 1975년, 그는 한 번도 받기 어렵다는 공쿠르상을 또다시 거머쥔다. 자신의 정체를 숨긴 채 `에밀 아자르`라는 필명으로 발표한 `자기 앞의 생`으로 두 번째 수상의 영예를 안은 것이다.`자기 앞의 생`에서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 노인, 성전환자, 창녀 등 그늘진 곳의 소외된 이들을 따뜻하게 감싸 안았던 그는 “인간적으로 산다는 것이 가끔 숨 막히는 의무처럼 보이기도 한다”고 고백하면서도 인간의 존엄성, 희망, 아름다움, 순수, 정의 등을 포기하지 않았다.`내 삶의 의미`에 소개된 글들은 그가 스스로 목숨을 끊기 몇 달 전 라디오방송에서 자신의 삶을 회고했던 것을 녹취한 것들이다.이 글에서 그는 삶의 궤적을 찬찬히 좇으며 자신의 모든 작품을 되짚어보고, 자신이 삶에서 추구해온 것들과 소설가로서 작품 속에 담으려 했던 의미를 정리한다.로맹 가리는 자신의 삶과 문학을 돌아보며, 여성을 향한 사랑이야말로 자기 삶의 큰 동기이자 기쁨이었다며, “내 책들이 무엇보다 사랑에 관한 책이라는 사실, 거의 언제나 여성성을 향한 사랑을 얘기했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내 작품을 이해하지 못한”거라고 말한다.스스로를 타고난 소수자로 칭하며 자신은 좌파든 우파든 다수의 강한 자들에게 반대한다고 할 만큼 언제나 약자의 편이었던 로맹 가리의 `여성성에 대한 예찬`은 “약함에 대한 예찬과 옹호”로 인권과 연결된다. 그에게 “인권이란 바로 약할 권리를 옹호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에게 공쿠르 상을 안긴 `하늘의 뿌리` 역시 생태학적인 시각을 넘어 인권에 대한 인식이 담겨 있다. 그는 “코끼리는 곧 인권”이라고, “서툴고 거추장스럽고 성가셔서 어떻게 처리할지 모르는 존재, 진보에 방해가 되는 존재, 하지만 무슨 수를 써서라도 보호해야 하는 그런 존재”로 코끼리는 인권을 상징한다고 말한다.로맹 가리 특유의 유머 역시 그에겐 사상의 표현이었다. 그에게 “유머는 무기 없는 사람들의 순결한 무기”였다. 그는 “유머는 우리에게 닥친 고통스런 현실을 누그러뜨릴 때 우리가 행하는 일종의 평화적이고 수동적인 혁명”이라고 말한다이 회고록은 몇 달 후 자살할 사람이 삶을 돌아본 것이기에 매우 진지하지만, 소설보다 더 극적이고 생동감 넘치기에 어둡지 않다. 또한 로맹 가리 특유의 재치와 유머로 이야기는 재미있고 밝지만, 그의 삶과 문학에 대한 철학이 담겨 있기에 깊이 있을 수밖에 없다. 로맹 가리가 작품을 통해, 삶을 통해 실현하고자 했던 그의 뜻, 삶과 문학에 대한 철학이 총망라 돼 있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5-11-27

다시 여자가 알아야 할 남자 이야기

에세이스트로 활발하게 활동하는 소설가 김형경이 남자에 관한 심리 에세이 `오늘의 남자`(창비)를 펴냈다.재작년 출간한 `남자를 위하여` 이후 2년 만에 내놓은 남자 이야기다. `다시 여자가 알아야 할 남자 이야기`라는 부제가 붙었다.작가는 여자들이 도저히 이해하지 못하는 남자들의 행동과 속내를 파헤친다.언제 어디서나 서열을 정리하고, 경쟁에서 에너지를 얻고, 권력자 앞에선 약해지는 남자들은 본심은 무엇일까. 작가는 문학작품 속의 인물과 작가의 생애, 심리학자들의 연구 등을 적절히 배치하며 이 같은 질문에 답을 구한다. 직접 겪은 주변의 사례들이 독자들에게 공감대를 선사한다.1장 `아픈 남자, 슬픈 남자`에서는 여자와는 확연히 다른 방법으로 감정을 표현하는 남자의 심리를 들여다본다. 안부를 묻는 대신 술잔을 채워주고, 수다로 스트레스를 푸는 대신 무행동·무반응으로 감정을 표현하는 남자, 야근에 시달리면서도 새벽 외국어학원을 찾는 남자들의 불안감 등을 살펴본다. 2장 `가장과 아버지의 이름으로`에서는 다루는 결혼을 앞둔 남자, 딸에게 과한 애착을 보이거나 자녀를 너무 돌보지 않는 아버지, 가정에서 폭력을 휘두르는 남자의 심리를 통해 가장으로서 우리의 아버지가 겪은 마음의 짐을 헤아려본다.3장 `남자의 성과 사랑`은 남녀 간의 관계 맺기에 중요한 가이드가 된다. 사랑을 거절당한 남자의 찌질하거나 폭력적인 행동, 결혼 전후에 달라지는 남자의 태도, 끊임없이 여자를 유혹하려는 바람둥이 남자 등의 사례들은 서로에게 가지고 있는 `낭만적 사랑의 환상`을 깨뜨리기도 하지만 건강한 남녀관계를 위한 애정 어린 조언이다.4장 `남자 속의 영웅들`에서는 경쟁심과 권력욕을 가진 남자들의 행동을 살펴본다. 남자들이 영웅담처럼 늘어놓는 군대 이야기, `미안하다`고 말하기 어려워하는 남자들의 속사정, `책임을 지고 물러난다`는 남자의 무책임한 대처법 등의 사례를 통해 남성 중심 사회에서 체화된 남자들의 영웅심리를 설명한다. /윤희정기자

2015-11-27

과거·현재 두루 아우르는 웅숭깊은 이야기

소설가 황석영(72)이 3년 만에 새 장편소설 `해질 무렵`(문학동네)을 발표했다.이번 작품은 황석영 장편 소설 중 가장 짧은 560매 경장편으로 완성됐다.소설은 성공한 60대 건축가 박민우와 아르바이트로 삶을 영위하는 20대 정우희의 이야기가 교차하며 전개된다.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인물의 이야기는 당시 사회상과 궤를 같이하며 묘하게 맞물려간다.산동네 달골의 어묵장사 아들인 박민우는 일류대학을 나와 외교관의 딸과 결혼한다. 이후 건축가로 승승장구하던 그는 인생의 해질 무렵에서 문득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보게 된다. 반면 정우희는 연극 연출이라는 꿈을 좇으며 아르바이트로 간신히 삶을 버텨내고 있다.각각 과거와 현재 세대를 대변하는 두 주인공은 박민우의 첫사랑 차순아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얽혀간다. 차순아는 정우희가 만나던 남자의 엄마이기도 하다.작가는 이번 소설을 `인생파 소설`이라 부르며 우리의 과거와 현재를 아우른다. 그는 두 주인공의 교차하는 내레이션 속에서 인생은 그 안에서 함께 살아갈 이들을 소중히 여기고 보듬었어야 하는 과정임을 강조한다. 그는 작가의 말에서 “개인의 회한과 사회의 회한은 함께 흔적을 남기지만 겪을 때에는 그것이 원래 한몸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며 “지난 세대의 과거는 업보가 되어 젊은 세대의 현재를 이루었다”고 의미심장한 말을 남긴다.성공한 건축가 박민우는 인생의 해질 무렵에 서서 길 위에 드리워진 긴 그림자를 돌아보며 자신이 살아온 날들을 되짚어본다. 더는 변화할 무엇도, 꿈꿀 무엇도 없을 것 같은 그의 일상에 강아지풀 솜털 하나가 날아든다. 그 작은 씨앗은 그가 소년 시절를 보냈던 산동네 달골, 아스라한 그 시절 가슴 설레게 했던 소녀를 불러오고 달골에서 함께 부대끼던 재명이 형, 째깐이, 토막이, 섭섭이 형 같은 사람들을 불러내어 견고하게만 보이던 그의 세계에 균열을 일으킨다. 이제 서른을 바라보는 젊은 연극연출가 정우희는 반지하 단칸방에서 산다. 그녀는 음식점 알바와 편의점 알바를 뛰면서, 꿈을 이루기 위해 연극무대에 매달린다. 암담한 현실에서 벗어나고자 사랑을 꿈꾸기도 하지만 세상은 그녀에게 그럴 여유를 허용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런 척박한 세상에 지쳐 젊은 날에 스스로 목숨을 버리는 “검은 셔츠”….황석영은 육십대의 건축가 박민우의 목소리와 젊은 연극연출가 정우희의 목소리를 교차 서술해나가면서, 우리의 지난날과 오늘날을 세밀하게 그려낸다. 추억이 서린 골목들을 밀어내고 삭막한 구조물들을 올려온 지난 역사, 그리고 누추하고 서글픈 반지하방 세대의 삶이 쓸쓸하고도 먹먹하게 얽혀들며 우리의 마음속에 울려퍼진다.언제나 시대를 직시해왔던 작가는 우리의 과거와 현재를 두루 아우르며 짧지만 웅숭깊은 이야기를 나직하게 들려준다. 그 역시 해질 무렵 길 위에 선 채, 우리의 삶과 역사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는 듯하다. 인간의 삶이 집과 터를 넓히는 과정인 줄 알고 모두 그렇게들 달려왔으나, 실은 그 안에서 함께 살아갈 이들을 소중히 여기고 보듬었어야 하는 과정임을 깨닫게 되었노라고./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5-11-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