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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웅크리고 있는 이들에게 희망을”

`아프니까 청춘이다``천 번을 흔들려야 어른이 된다`로 한국을 넘어 전 세계 독자들과 함께 삶의 기쁨과 슬픔을 나누며 소통해온 김난도 서울대 소비자학과 교수가 3년 만에 신작 에세이집을 출간했다.`웅크린 시간도 내 삶이니까-다시 일어서려는 그대에게(오우아)`는 저자 자신이 실망과 절망을 품고 웅크렸던 시간 동안 마음과 일상의 구석구석을 되돌아보면서 써내려간 기록들이다. 이 책에는 어떤 이유로든 지금 웅크리고 있는 이들이 희망의 상자를 열어볼 용기를 낼 수 있는 소중한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저자가 용기를 내 새 책을 선보일 수 있게 해준 것은 헬스장에서 만난 희소병 모야모야병 환자였다. 포기하고 싶은 순간에 저자의 책을 보고 용기를 얻었다는 이 환자의 말에서 저자는 도리어 자기가 희망을 봤다. 그리고 다시 용기를 내 말한다. “웅크린 시간도 내 삶”이며, 모두가 “지금은 웅크리고 있지만 다시 일어설 것”이라고.저자는 매일 자신의 메일함을 찾아오는 학생들의 인생 이야기, 일상에서 겪은 소소한 일화에 각국의 속담과 명언을 곁들여 절망의 순간에도 포기하지 않고 자기 삶을 다독이는 법을 제안한다.“실패란 결국 인생이라는 체육관에서 희망의 근육을 키워주는 덤벨 같은 것일 뿐이다. 실패할수록 손을 꽉 쥐고, 절망의 심연에서 나뒹굴수록 정면을 똑바로 응시하라. 그리고 희망의 근력을 키워나가라. 희망만이 절망을 다루는 약이다.”(43쪽)저자는 고민을 털어놓으러 자신을 찾아온 학생에게 따뜻한 밥 한끼 대접하듯 청년들에게는 격려와 당부의 말을 전하는 동시에, 기성세대에게는 나이든 자의 책임과 미덕을 상기시킨다. 이 책에는 사회와 일상에서 벌어지는 세대 갈등을 논하는 글들을 비롯해 “당신은 승리자가 아닙니다. 채무자입니다.” `정치인의 정파놀이` `교수들의 논문놀이` 등의 발언으로 주목을 받았던 2015년 서울대 입학식 축사 `선해지십시오 성장하십시오 당신이 희망입니다`, 새내기 유권자들에게 주권자의 책무를 당부한 `꽃보다 한 표` 등이 실렸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5-11-13

타성에 젖은 일상 비추는 거울

미 월가의 시각장애인 애널리스트 신순규가 바쁜 현대인들에게 일상적인 것들의 소중함을 전하는 에세이 `눈 감으면 보이는 것들`(판미동)이 출간됐다.하버드와 MIT에서 공부한 명문대 졸업생, JP모건과 브라운 브라더스 해리먼에서 20년 넘게 일해 온 베테랑 애널리스트, 세계 최초의 시각장애인 공인재무분석사(CFA)…. 이런 거창한 타이틀보다는 누군가의 남편이자 아빠, 친구, 동료로서의 역할에 충실하며 평범하게 살아가기 위해 부단히도 애쓰는 저자가 눈이 보이지 않아서 얻을 수 있었던 삶의 단순한 지혜와 일상에서 느끼는 감동의 순간들을 전한다. 이 놀라운 `일상의 기적`들을 세상과 나누고 싶어서 지난 3년간 점자 컴퓨터로 써 내려간 뜨거운 진심이 이 책의 페이지 곳곳에 숨 쉬고 있다. 수많은 정보가 쏟아지는 요즘, 인간의 눈은 정보를 얻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20년 넘게 애널리스트로서 일해 온 저자의 주요 업무는 쏟아지는 정보를 가려 증권의 가치를 분석하는 것. 하지만 시각 장애라는 근본적인 한계로 인해 꼭 필요한 정보나 `프라이머리 소스(primary source, 일차적 자료)`를 가려서 취하는 능력을 길러야 했고, 이는 홍수처럼 매일 쏟아져 나오는 뉴스나 루머, 시장을 흔들 만한 지위에 있는 사람들의 주장이나 권고 등에 휘둘리지 않고 중심을 잡는 원동력이 됐다.저자는 “증권의 본래 가치나 장기 가치가 눈에 보이지 않고, 또 의외로 간단한 것들로 결정되는 것처럼 삶에서 중요한 것들 역시 눈에 보이지 않고, 몇 가지 간단한 것들로 결정되고 유지된다”고 말한다.즉 화려하고 자극적이고 보기 좋은 것들로 에워싸인 요즘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삶의 단순한 근본 원리들을 잊기 쉽고, 당장 눈앞의 힘든 현실 탓에 소중한 것을 보지 못한 채 살아가게 된다는 얘기다.결국 이러한 현실의 환영에 현혹되지 않기 위해서는 삶에서 소중한 것들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 이 책에 담긴 중심 메시지다. 실제로 저자가 자신에게 닥쳐온 삶의 수많은 도전을 이겨 낼 수 있었던 것도 그 소중한 것들을 잊지 않았기 때문이었다.그가 이 책에서 꼽은 다섯 가지 소중한 것들(본다는 것, 꿈, 가족, 일, 나눔)은 누군가에게는 진부하고 당연하게 느껴질지도 모르지만, 그에겐 모두 힘겹게 싸워서 얻어야 했던 것들이었고, 하버드나 MIT에서 배웠던 공부보다, 월스트리트 회사에서 쌓았던 경력보다 더 굳건하게 삶을 지탱해 온 것들이었기에 더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저자가 이 책에서 차례로 제시하는 다섯 가지 가치는 그대로 그의 인생의 이력이 된다. 그가 겪은 좌절의 목록이며, 동시에 너무나 절실히 원했던 기적과도 다름없는 일들이다. 그밖에도 월스트리트에서 일하며 겪은 9·11테러 당시의 현장감 넘치는 이야기와 시각장애인으로서는 세계 최초로 공인재무분석사(CFA) 시험을 통과하기 위해 비장애인을 기준으로 한 시험 제도를 바꿔 나가야 했던 이야기도 빼놓을 수는 없는 에피소드다.이 책은 `역경을 뛰어넘는 감동적인 성공담`에서 한 발 더 나아가, 타성에 젖어 무미건조하게 흘러가는 우리의 일상을 비춰 주는 거울이 돼 줄 것이며, 또 어떤 열악한 환경에서도 행복을 추구할 수 있다는 따뜻한 위로와 용기, 진정성 있는 인물만이 전해 줄 수 있는 인생의 깊은 지혜와 울림을 선사할 것이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5-11-13

사주·풍수·주역, 인문학으로 만나다

“인간에게 있어 미덕은 완성이 아니라, 미완성입니다. 미완성을 끌어안는 삶이야말로 진정으로 완성된 삶이라고 주역은 역설합니다” 명리연구가 이지형씨의 `강호인문학`(청어람미디어)은 중국을 비롯한 동아시아에서 오랫동안 삶을 위로해 온 사주와 풍수와 주역을 힘겹게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삶의 가르침을 주는 지혜의 학문이 될 것을 권하는 책이다.저자는 사주학과 풍수지리학 등의 운명학은 천체의 자전과 공전의 법칙을 바탕으로 사람의 미래를 예측하는 자연철학이라는 `시중에 나도는` 운명학 상식들의 진위를 밝히고 자연철학을 중심으로 하고 있는 운명학의 핵심원리를 일반인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하고 있다.1부는 동아시아 관련 도서 140만 권을 보유하고 있는 하버드대학교 옌칭 도서관의 사례를 들면서 과연 서양이 `동양`과 `동양학`을 규정할 수 있는지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동양을 서양의 시각에서 재단하지 말자고, 서구화 과정에서 밀려난 동양적인 것들에 대해 다시 주목해야 한다고 역설한다.2부부터는 1부에서 설명한 기본 개념을 바탕으로 해 각론으로 진행한다. 사주를 처음 대하는 사람이 직접 자신의 사주를 볼 수 있을 정도를 목표로 한다.3부는 현대 사회에서 풍수는 인테리어나 묏자리와 관련해서 언급될 뿐이어서 현대인의 합리적인 시각에서 보면 사소한 잡술 정도로 인식되고 있는 실정이다.하지만 풍수의 시작은 그렇지 않았다는 점을 신라 말의 도선을 위시한 선승 집단, 고려 왕건의 훈요십조, 묘청의 난 등을 사례로 들어 설명한다.원래 풍수는 혁명을 꿈꾸던 진보적 지식인 집단에 의해 그들의 주요한 이데올로기로 내세워졌으며, 정치 전략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고 강조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강호인문학을 지난 시대의 미신과 잡술로만 몰아붙이려는 세태에 대해 지적하며 그 속에 담긴 삶의 지혜를 제대로 보려는 노력이 있기를 당부한다.4부는 주역이 역사적으로 어떻게 형성됐는지에 관해 일반적인 이론을 소개하고, 여기에 대해 저자 나름의 추론을 내놓고 있다.사주는 부침과 곡절 속에서도 굳건한 운항을 계속하는 오행(五行)의 원리로 삶의 흐름을 파악하고 선불교의 화두처럼 마음공부의 단초가 될 만한 메시지를 잔뜩 품고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주역으로 점치는 법을 전통적인 방식과 일상에서 간단하게 동전으로 점치는 방법을 소개하면서 주역이 미래의 상황을 대비하며 마음을 다스리는 데 오늘날에도 유효한 수단임을 보여준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5-11-13

엽서에 담은 풍경·주변 사람이야기

`거미``가뜬한 잠``자두나무 정류장` 등의 시집으로 한국 서정시의 맥을 이어가고 있는 박성우 시인은 삶이 묻어나는 따뜻하고 진솔한 시편들로 많은 사랑을 받아왔다. 또한 불모지나 다름없던 `청소년시`에 눈 돌려 청소년들을 만나 고민과 갈등을 함께 나눴고, 그 결실로 첫번째 청소년시집 `난 빨강`을 선보인 바 있다.박성우 시의 바탕에는 이렇듯 직접 만나고 교감하는 `사람들`과 그들의 소박한 삶이 깃들어 있다.이번 산문집 `박성우 시인의 창문 엽서`(창비)에서도 시인은 삶에 힘이 돼주는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와 풍경을 오롯이 기록해 일상에 지친 우리에게 각별한 마음을 보낸다.엽서에는 작업실이 있는 전북 정읍시 산내면 수침동(종암)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가 시인이 직접 찍은 사진과 함께 생생하게 담겨 있다.시인은 순박한 사람들이 어떻게 만나 사랑을 하고 가정을 일궈 살아가는지, 그 안에 쿡쿡 웃음이 나고 가슴이 저릿한 사연들이 얼마나 많고 또 소중한지를 과장되지 않은 진솔한 언어들로 꾹꾹 눌러 썼다.그사이 시인은 대학교수 일을 스스로 그만두고 더 열심히 동네 마실을 다니며 아랫녘의 아름다운 사계와 숨어 있는 들꽃, 사람들의 꾸밈없는 표정과 주름진 할매들의 손길을 소중하게 담아냈다.백중날 같이 일하고 같이 모시개떡을 쪄 먹고 같이 쉬는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를 시작으로 화투판에서 팔천원을 잃고 울었던 블루베리 농사꾼 갑선이, 한때 넓은 집에서 편히 살았지만 지금은 `냉장고 없이` 살아도 불편함이 없는 온겸이네, 서울처녀 김유리 과장을 듬직한 `굳은살 박인 손`으로 꼬신 지고지순한 시골총각 순기 형님, 오락실에서 만나 첫눈에 반해 바로 살림을 차린 승용이, 전교생이 다섯명 중에 `거의` 일등만 한다는 똑똑한 열살 소년 가윤이, 동네 벚꽃 구경하러 왔다가 삼개월 만에 결혼한 성준이네 부부, 세월호 진상규명을 위해 마을에서 `세월호 자전거`를 모는 팽나무집 진섭이 형님, 상례마을 할매 집 수리를 위해 대설 아침에 다 같이 모인 산내면 청년들, 시인의 `엄니` `큰어매` `딸애`의 이야기를 읽다보면 어느 순간 먹먹해지다가도 시인이 직접 찍은 물기를 머금은 풀잎들, 꽃이 흐드러지고 눈이 덮인 사계절 풍경을 바라볼 때면 답답한 방 안에서 창문을 활짝 연 것 같은 상쾌한 기분을 맛보게 된다.박성우 시인은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그야말로 `나답게` 살아가는” 곁에 있는 사람들의 삶을 눈여겨보면서 “번지르르한 겉보다는 늘어가는 굳은살로 세상 사는 이치를 알아가는 사람들의 삶이 새삼 크고 귀하고 소중하다”(12면)고 말한다.시인이 귀 기울인 수침동 마을과 이웃 동네 사람들의 이 구구한 사연들은 어쩌면 지금의 우리를 있게 한 바탕이고, 앞으로의 우리를 `우리답게` 살아가게 할 원동력인지도 모른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5-11-13

`父性` 특집 눈길… 옛 포항역 추억하는 사진에세이도

포항문인협회(회장 하재영) 는 최근 기관지 `포항문학(도서출판 아르코)`통권 제42호를 발간했다. `포항문학`은 포항문인협회 회원들의 작품을 모아 매년 발간하는 책으로 2014년 세월호 사고에 따른 특집으로 `치유의 문학을 읽다. 쓰다`로 문단의 관심을 모았다.이번 호에는 특집 `부성(父性), 잃어버릴 수 없는 뿌리`와 사진에세이가 눈길을 끈다.우선 유성호 문학평론가(한양대 교수)의 `현대시에 나타난 아버지 형상과 그 복합적 문양들`은 우리 시에 아버지가 어떻게 수용됐는지 잘 보여준다.2000년 이후 포항지역 아버지 관련 시를 대상으로 쓴 조현명 시인의 `다시 줍는 부성`도 알찬 내용이다. 특히 소설가 이유의 소설 `가방의 목적`은 독특한 소재로 인간 삶의 나태함과 인간은 그저 가방을 실어 나르는 존재란 역발상을 통해 우리 소설의 해학과 발랄함, 현주소를 엿보게 한다.두 번째 특집 사진에세이 `포항역, 추억의 저편으로`는 포항역과 철길을 사진과 짧은글로 꾸며 향토성을 되돌아보게 한다. 옛 포항역을 이용했던 사람들에게 잔잔한 감동과 연민을 갖게 한다.이 외에도 성홍근, 김만수, 차영호, 박창원, 손창기, 윤석홍, 조혜전, 홍인자, 김성찬, 김희준, 김영, 서영칠, 김용락 등의 신작 시와 수필, 소설, 희곡, 서평 등도 실었다.하재영 회장은 “예술은 전위적이면서도 사라지는 것에 대한 그리움을 갖게 하는 일이다. 그렇기에 기존의 방식을 뛰어 넘는 미래지향적 새로움이 있을 때 한 발 앞으로 발전하게 된다. 돋보이는 지역무크는 독특한 창의성과 더불어 향토성을 전제로 한다고 생각하기에 이번 호를 더욱 알차게 꾸미게 됐다”고 설명했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5-11-06

앞으로 10년, 한국사회는 어디로 가는가?

“앞으로 10년, 한국사회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박태준미래전략연구소(소장 최광웅)가 최근 펴낸 책 `10년 후 한국사회`(아시아)는 송복 연세대 명예교수(사회학), 방민호 서울대 국문학과 교수, 송호근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안병영 전 교육부총리 등 인문, 사회, 과학, 공학을 망라한 한국의 전문가 36명이 한국사회의 10년 뒤를 상상하며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문제를 진단하고 있다.책은 `10년 내 한국사회가 당면할 가장 중요한 이슈는 무엇이며,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라는 주제에 대한 에세이를 모았는데 일반인과 포스텍 대학(원)생들에게 같은 질문을 던져 얻은 여론조사, 공모를 통과한 대학생 두 명의 미래사회 진단 논문도 포함됐다.이 책을 기획한 이대환 박태준미래전략연구소 연구위원(작가)은 “박태준미래전략연구소의 가장 중요한 미션은 인류와 국가의 더 나은 내일을 위해 미래사회를 조망하고 대응방안을 연구해 사회적으로 널리 전파하고 공유하겠다는 것인만큼 이번 책은 좌우, 진보와 보수를 떠나 합리적인 고민을 통해 10년 후 한국사회를 조망하고자 했다”고 밝혔다.책은 `평화 그리고 통일` `시민 그리고 개인` `교육개혁 그리고 다문화사회` `고령화사회와 유전자 의료산업` `의식 그리고 리더``새로운 외교 그리고 정치개혁`등 6개의 영역으로 나뉘어져 있다.송복(사회학) 연세대 명예교수는 권두에세이에서 “10년까지 갈 것도 없다. 지금 당장 코앞에 닥친 문제, 발등에 떨어진 불이 `관료치국(官僚治國)``관료망국(官僚亡國)`”이라며 우리나라 공무원 사회에 과감히 메스를 들이댄 뒤 “이번 공무원연금 개혁안은 개악 중의 개악이다. 차라리 가능한 빠른 시일 내에 모두가 밑바닥까지 내려가서 비로소 도약할 수 있는 편이 낫다”고 강조한다. 방민호(국문학) 서울대 교수는 `통일을 생각하는 상상력을 키울 때`라는 제목의 글에서 “정치경제학적 관점에서 북한을 새로운 통치와 지배의 대상으로 생각하는 건 위험한 발상”이라며 “통일에도 인문학적 시각이 필요하고, 이상적인 조건 위에서 살 수 있는 과정을 만들기 위해서 통일을 준비하는 새로운 상상력을 발휘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시민성의 배양`을 강조한 송호근(사회학) 서울대 교수는 “10년 한국사회에서 가장 절실한 과제는 국가와 개인의 수직적 관계를 의미하는 국민이 아닌 다른 사람과의 수평적 관계를 뜻하는 시민성의 배양”이라며 “시민성의 취약을 그대로 드러낸 것이 바로 `세월호 사건`”이라고 진단했다. 송 교수는 유럽에서 시민의식은 귀족층과의 경쟁에서 생겨난 것인데 반해, 우리는 1960, 70년대 시민층이 확대될 당시 긴장해야할 대항 세력이 없어 상층을 차지하려는 무한 경쟁만 촉발됐다고 설명한다. 시민성은 결국 선진국과 중진국의 진입을 가르는 중요한 잣대라는 것이다.한편 박태준미래전략 연구소는 포스코 창립자 청암 박태준의 실사구시와 애국주의적 정신을 기리고 미래사회를 조망 및 대응전략을 준비하기 위해 2013년 설립됐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5-11-06

`프랑스 스릴러 황제` 신작 스릴러

`프랑스 스릴러 황제` 장 크리스토프 그랑제의 장편 소설 `악의 숲(La Foret des Manes·포레)`은 그의 신작 스릴러다. 파리에서 일어난 극악한 연쇄 살인사건의 범인을 추적하면서 인간의 악과 그 악이 이끄는 욕망이 촉발한 연쇄반응을 악마의 기계장치 같은 섬세한 플롯과 방대한 스케일에 풀어놓았다. 고인류학, 심리학, 유전학, 정신의학 이론을 아우르고 중남미 역사의 아픈 이면까지 거침없이 파고든 이 소설은 “순수한 야만을 품은 보석 같은 작품”, “지옥 같은 리듬과 다단하고 정교한 플롯”의 작품이라는 찬사를 얻었다.파리에서 원시의 식인 풍습을 모방한 엽기적인 연쇄 살인사건이 발생한다.범인은 여자들을 잔인하게 죽이고, 시체를 농완하고, 벽에 선사시대의 동굴벽화 같은 알 수 없는 기호를 그려놓았다.접점을 찾기 어려운 난해한 몇 가지 단서만 남은 이 사건의 수사는 곧바로 미궁에 봉착한다. 낭테르 지법 수사판사 잔 코로바는 앙투안 페로라는 정신과 의사의 진료 녹음파일을 입수하는데, 밤의 자장가처럼 이를 흘려듣던 중 살인을 예고하는 노인의 불길한 목소리를 듣게 된다. 노인의 아들은 다중인격 혹은 자폐증을 앓고 있는 젊은 변호사 요아킴이고, 그 아들이 누군가를 죽이기 위해 파리 10구를 어슬렁거린다는 것이다. 잇따른 사건과의 연계를 의심한 잔 코로바는 다음날 노인의 예고대로 또다시 같은 수법의 살인사건이 벌어진 사실을 확인하고, 요아킴을 범인이라고 확신한다.소설은 파리에서 벌어진 살인사건을 집중적으로 다룬 1부와 잔이 요아킴 부자를 추적하면서 자폐와 유전, 원시의 연결고리를 찾는 2부, 앙투안 페로와 함께 사제와 소년의 비밀이 숨어 있는 숲으로 가는 3부로 구성되고, 그 무대는 파리에서 니카라과, 과테말라와 아르헨티나로 숨가쁘게 옮겨간다. `악의 숲`은 자폐와 유전, 원시에 관한 정보와 `아버지의 메커니즘`에 대한 프로이트적 관점을 비중 있게 풀어낼 뿐 아니라, 과거 남미의 군사정권과 일부 정치가의 만행을 폭로하고 시대의 격류에 휩쓸린 사람들의 고난을 사실적으로 담아낸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5-11-06

책에 미치고, 기록에 빠진 옛사람들

정민의 산문집 `책벌레와 메모광`(문학동네)은 책과 메모를 둘러싼 옛사람들의 이야기를 모은 것이다. 책에 미친 책벌레들과 기록에 홀린 메모광들이 주인공이다. 이 책은 저자가 그들과 나눈 대화의 기록이기도 하다. 그들에게 책을 읽고 글을 쓴다는 것은 어떤 의미였을까? 그들을 책벌레와 메모광으로 만든 것은 무엇이었을까? 책과 메모는 도대체 무슨 마력을 갖고 있는 것일까? 이 책은 이런 질문들에 옛사람들이 들려주는 대답과도 같다. 1부에는 옛 책을 둘러싼 흥미로운 이야기를 묶었다. 먼저 장서인을 다룬 글이 눈에 띈다. 한국과 중국과 일본의 장서인 찍는 태도가 사뭇 달랐다. 한국의 옛 책은 장서인이 지워진 경우가 많다. 혹시라도 책에 남은 장서인이 훗날 가문에 누가 될까봐 살림이 궁해 책을 내다 팔 때면 책을 훼손하면서까지 장서인의 흔적을 지웠다. 조상의 책을 잘 간수하지 못하고 팔아먹었다는 소리를 듣고 싶지 않아서였다. 돈을 받고 남 대신 책을 베껴 써주는 일을 `용서(傭書)`라고 한다. 이 일을 생계의 수단으로 삼았던 용서인들의 이야기는 애처롭다. 출판문화가 발달한 중국과 달리 우리나라에서는 조선 후기까지도 용서로 생계를 꾸린 선비들이 적지 않았다.조선 제일의 책벌레 이덕무도 그중 한 명이었던 듯 그의 편지에는 책을 베껴 쓰는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다산이 제자들에게 필수로 교육했다는 초서, 즉 베껴 쓰기에 대한 글과 책과 관련된 아홉 가지 활동이 이뤄지는 집이라는 뜻을 가진 이덕무의 구서재 이야기에서는 옛사람들이 어떤 체계로 책을 읽었는지 자세히 알 수 있다.2부에는 옛사람의 기록과 관련된 이야기를 모았다. 일기, 편지, 비망록, 책의 여백에 써놓은 단상 같은 것들이다. 밭일을 하다가도 항아리 속에 넣어둔 감잎에 그때그때 떠오른 생각을 적어뒀다는 중국 선비의 고사를 본떠 이덕무는 자신의 메모집에 `앙엽기`라는 제목을 붙였다고 한다. 박지원의 `열하일기`에도 `앙엽기`가 실려 있다.그 바쁜 연행 길에서도 나비 날개만한 종이쪽에 파리 대가리만한 글자로 보고 들은 것을 정신없이 메모해둔 글이다. 박지원의`앙엽기`는 당연히 이덕무의 `앙엽기`를 벤치마킹한 것이다.메모의 왕은 역시 다산이다. 오늘날 남아 있는 다산의 메모는 하나하나가 소논문이라 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 학문적 깊이를 갖추고 있으며 그 필치는 예술작품에 가깝다. 다산의 드넓은 학문 세계는 모두 치열한 독서와 끊임없는 메모를 통해 이루어진 것이다. 오동잎을 둘러싼 옛사람들의 시와 그림과 인장 이야기는 퍽 낭만적이다.그 밖에 책의 출전을 메모하는 법, 자투리 시간을 이용해 여러 책을 동시에 읽는 법, 떠오른 생각을 붙잡아 재빨리 적어두는 질서법 등 선인들의 기록 방법에 대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옛 선비들이 일 없는 여가에 문을 닫아걸고 낡은 책을 수선했다는 일화도 흥미롭다. 저자도 자신의 오래된 취미 생활인 `풀칠 제본` 이야기를 실제 사진을 곁들여 상세히 들려준다. 지금까지 수많은 책을 집필한 저자의 독서와 메모 노하우가 이 풀칠 제본 이야기에 다 들어 있는 듯 느껴진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5-10-30

한국 현대사 중요순간의 숨겨진 진실

한국에서 르포문학은 시, 소설, 희곡 등 여타 문학 장르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낯설고 불안하며 논쟁적인 장르다. 그러다보니 한국 현대사의 중요 순간들마다 시도된 중요한 르포 작업들마저 시간의 흐름과 함께 세인의 뇌리에서 쉽게 사라져버렸던 게 일반적인 현상이었다. `민중을 기록하라`(실천문학)는 그렇게 잊혀진 우리 시대 르포들에 관한 선집이다. 박태순, 황석영, 공지영 등 역사가 외면한 민중들의 삶 속으로 뛰어든 작가들은 르포문학을 두고 픽션이냐 논픽션이냐 같은 형식의 경계를 넘어, 독자에게 `진실`에 다가서는 가능성으로서의 문학을 이야기한다.책은 `작가들이 발로 쓴 한국 현대사`라는 부제에 걸맞게 각 사건이 일어난 당시에 작가가 직접 잡지, 신문 등에 쓴 글들을 엮었다.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의 마천루에 우리 모두가 혼을 빼앗긴 동안, 저 아래 가장 낮은 곳, 가장 어두운 곳에서 침묵을 강요당한 이들 속으로 뛰어든 작가들. 박태순, 황석영, 공지영, 윤정모, 오수연 등 한국을 대표하는 작가 22명이 197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한국 현대사를 관통하는 21개의 사건들에 직접 뛰어 들어가 역사 한 줄 기록되지 않는 자들의 침묵을 깨뜨리고 우리가 외면한 진실이 무엇인지 쫓는다./윤희정기자

2015-10-30

외면할 수 없는 북한 인권문제

“아픔이 있는 곳에 작가는 함께 할 수 있어야 한다는 믿음으로 이 공동 소설집을 펴냅니다.”탈북 문인과 국내 문인이 함께 북한 인권 문제를 소재로 한 단편소설을 담은 소설집이 출간됐다.서울대 통일기반구축사업으로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이 주관해 펴낸 소설집 `국경을 넘는 그림자`(예옥)에는 탈북 작가인 윤양길·이지명·도명학·설송아·김정애·이은철, 국내 작가 윤후명·방민호·이청해·이평재·이성아·정길연·신주희 등 작가 13명의 신작 단편이 한 편씩 실렸다.소설집 출간을 주도한 방민호 작가(서울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기획의 말에서 “남북한 작가가 같은 자리에서 북한에서와 그 이후의 삶을 이야기하고자 한 것이다. 이런 일은 시도되지 않았었고, 한국의 문학사를 위해서 뜻 깊은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방 작가는 이어 “같은 민족이라는 이유에서나, 정치, 경제, 문화적으로나, 우리는 북한이라는 문제를 외면할 수 없다. 작은 정치적 동기에 좌우되지 않고, 분단된 나라의 통일과 평화라는 넓은 견지에서, 또 인간적, 인류적 삶의 척도와 미래에 비추어, 이 문제는 사유되어야 한다”고 밝혔다.소설집에 실린 탈북 문인들의 작품은 대부분 북한의 인권 현실, 탈북자들의 이주 정착 과정에서의 불안과 절망 등을 담았다. 윤양길 소설가는 `꽃망울`에서 국경도시의 꽃제비 소년이 친누이 같은 소녀와 바다에 가는 꿈을 꾸는 꽃제비 아이들의 생활 이야기를 썼고 설송아 작가의 `진옥이`는 애정에 대해 알기도 전에 제 몸을 기꺼운 생존의 수단으로 쓰는 어린 여자 아이가 죄책감 없이 아이를 지운다. 이지명 소설가는 연모하는 사내와 그의 가족을 국경 너머로 보낸 곱사둥이 여인 이야기를(`불륜의 향기`), 이은철 작가의 `아버지의 다이어리`는 탈북자 아버지가 두고온 가족을 영면 전 까지도 그리워 하는 이야기다.한국문인들의 소설도 북한의 실존적 고민을 깊이 사유하고 있다.조선말 하는 사람을 초조하게 기다리는 소녀, 그리고 그 곁의 사내는 도망자다. 그들이 어떤 미래를 그리고 있을 지 알 수 없으나 실은 내일조차 아득하다. 있을 리 없는 신분 증명 대신 서로를 삶의 증명 삼아 둘은 그렇게 보이지 않는 시간 속으로 나아가는 중이다.(윤후명 `핀란드 역의 소녀`). 탈북 후유증을 겪는 소녀의 사연에도 덜함이 없다.육체는 이미 국경을 넘었는데 소녀는 영혼으로 매일 밤 월경해야만 한다. 보위부 조사실, 북송, 안전원, 단련대의 악몽은 매일 옷이 벗겨지는 몽유병으로 남아 소녀에게 수치의 기억을 거듭 재생하고 있다.(이평재 `나는, 미안합니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5-10-30

언론인이 본 우리 역사의 문제점

“고교 한국사 교과서는 불량품이다. 국가 대표 서적으로서의 자격을 상실했다. 나라의 지향과 보편적 역사인식을 드러내지 못하고 있다. 분석한 11종 가운데 교과서로 추천할 만한 책은 1종에 그쳤다. 비색사관, 부정사관을 청산하고 21세기에 걸맞은 국가지대본(國家之大本)으로 거듭나야 한다.” 언론인 박진용(63)씨가 `역사 義兵, 한국사를 말한다`(매일 PI)를 펴냈다.저자는 최근 한국사교과서 국정화를 둘러싼 찬반 논란이 확대되고 있는 가운데 고교 한국사 교과서 11종을 언론학의 시각과 방법론으로 접근하고 있다.박씨는 책 서문을 통해 “기자가 역사 전문가가 아닌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래서 역사 의병을 자처하게 된 것”이라고 설명하고 “역사학을 직업적 전문성으로 하는 관학(官學)이 스스로의 힘으로 역사를 정립하게 못하게 된 마당이니 역사 의병이 나서도 큰 흠이 되지 않을 것 같다”고 밝혔다.책은 1장 옹졸한 역사 인식, 2장 역사 서술의 윤리와 시시비비, 3장 한국사 서술의 12가지 과제, 4장 한국사 교과서 세부 분석 및 평가, 5장 교과서 분석 원문(국정/9장 체제 검인정), 6장 교과서 분석 원문(6장 체제 검인정) 등으로 구성됐다.1장은 어떤 시각으로 역사를 바라볼 것인가를 주제로 현행 교과서들의 취약점인 비색사관, 부정사관의 맥락을 짚고, 역사의 현실문제 기여를 몇 가지 제안으로 정리했다.2장은 역사를 어떻게 써야 할 것인가에 대한 교과서의 문제점들을 묶었다.역사 기술의 중심 가치와 역사기술의 윤리, 바람직한 사관 등 역사 서술의 방법론을 제시하고 있다.3장은 한국사 서술의 12가지 중요 과제들에 대한 해결 방안을 담았다. 역사 용어, 상무정신, 사대주의, 식민사관, 이승만과 박정희, 동북공정 등의 주제들을 살펴보고 있다.4장은 고교 한국사 교과서의 형식, 체제, 사료 채택 및 누락 불완전 서술, 내용 불일치, 용어 혼란, 오탈자 및 표기법, 외래어 표기, 지도 불일치 등 각종 문제점 분석과 개선방안들을 제시했다.5장과 6장은 11종 교과서 분석 내용을 보고서 형식으로 정리했다.전체 분석 원문 중 총평과 현대사 분석만 실었다. 현재의 역사 논쟁은 좌우가 아닌 정상-비정상 구도로 접근해야 한다는 점을 보여준다.박씨는 30여 년간 언론계에서 일하고 대학으로 자리를 옮겨 후학을 양성하고 있다. 그는 그동안의 경력과 연구를 바탕으로 누적된 PR 비법을 모아 책으로 펴낸 `PR이론과 실무`를 비롯해 다수의 저서를 펴낸 바 있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5-10-30

냄비·프라이팬으로 시작하는 프렌치 요리

세련되고 아름답지만 직접 만들기에는 까다로울 것 같은 프랑스 요리. 하지만 이것이 프렌치의 전부는 아니다. 냉장고에 남은 재료에 대형 마트에서 쉽게 구하는 재료를 더해 심플하면서도 우아한 프렌치 요리를 만들 수 있도록 하는 `1인분 프렌치 요리`(민음인)가 출간됐다.이 책은 냄비와 프라이팬만으로도 평균 20분 이내의 짧은 시간에 프랑스 요리를 근사하게 완성하도록 하는 레시피 44가지를 소개한다. 일본의 인기 요리책 `르쿠르제 시리즈`의 저자 히라노 유키코는 프랑스 요리 연구가인 동시에 일본 소믈리에 협회의 인증을 받은 와인 전문가로서, 20년간의 노하우를 바탕으로 독자들을 프랑스 요리의 매력적인 세계로 안내한다.이 책은 조리 과정 평균 4단계, 10~30분 이내에 만들 수 있는 간단한 레시피로 구성돼 있다. 대형마트에 가면 쉽게 구할 수 있는 채소와 해산물, 돼지고기 같은 친숙한 재료를 기본으로 하되, 프랑스 요리에만 쓰이는 허브와 향신료 등의 재료에는 상세한 설명과 함께 구입처를 소개한다. 또한 300여 컷의 이미지로 감각적인 플레이팅의 예시를 보여 주는 한편, 새로운 요리 용어가 나올 때마다 각 페이지에 정리해 둬 초보자들도 쉽고 재미있게 따라 할 수 있도록 안내한다. 저자는 이 책에서 생존을 위한 수동적인 행위로서의 요리가 아니라, 오늘 하루도 수고한 나 자신에게 주는 적극적인 보상의 의미로 프랑스 요리를 시작해 보자고 제안한다. 그러한 관점 아래 각각의 단계와 상황에 맞춰 44가지의 레시피가 구성돼 있다.첫 번째 파트에는 평일 저녁에도 가볍게 만들어서 먹을 수 있는 그라탱, 오믈렛, 채소 위주의 간단한 한 끼 식사, 두 번째 파트에는 여유로운 주말에 천천히 제대로 차려 먹는 생선과 육류 위주의 만찬이 실려 있다.그리고 마지막 파트에는 와인과 차에 곁들이기 좋은 일품요리가 담겨 있다. 여기에 각각의 요리에 곁들이기 좋은 와인 리스트를 수록하는 것도 빼놓지 않는다.일본 소믈리에 협회에서 인증받은 와인 어드바이저이자 현재 와인바를 운영 중인 저자는 각각의 요리 풍미를 살려주는 와인을 추천하는 것은 물론, 와인과 음식의 기본 원리를 친절하게 알려준다./윤희정기자

2015-10-23

삶을 가볍게 하는 지혜 여기에

우리가 살면서 하는 생각 가운데에는 사는 데 필요한 것보다 불필요한 것이 대부분일 것이다. 지나치게 생각해 흔치 않은 기회를 놓치기도 하고, 소중한 사람을 잃기도 하고, 엉뚱한 집착에 사로잡혀 일상을 허비하기도 한다. 한 생각에 갇혀 길지 않은 삶과 기운을 낭비하지 않고, 인생에서 소중한 것에 집중할 수 있다면 삶은 얼마나 가볍고 풍요로워질까. 밀리언셀러 `생각 버리기 연습`으로 일본은 물론 우리나라 독자들에게 삶을 가볍게 만드는 지혜를 전한 코이케 류노스케는 에세이집 `생각으로부터 깨어나기`(토네이도)에서 우리가 살면서 무심코 갇히는 다양한 생각을 여러 면에서 살펴본다. 그동안 많은 사람을 상담하고 지도하며 목격한 사례는 물론 자신이 겪은 일도 다수 수록해 생각이 얼마나 사람을 가두고 자유를 빼앗는지 보여준다.책은 저자가 지난 2년 동안 써온 원고를 모은 책으로, `얽매이지 않는 나를 만드는 마음 연습 18가지`라는 부제가 붙었다.책을 쓰기 시작한 시기 저자는 죽을 고비를 넘기며 몸과 마음이 쇠약해졌다. 그러자 이미 예전에 버렸다고 여긴 여러 집착이 드러났고 그것을 소재로 삼아 폐해를 하나하나 새기듯 써내려갔다.누구나 크든 작든 갇혀 있는 생각이 몇 개쯤 있다. 인간관계를 어떻게 관리해야 한다거나, 건강하기 위해 어떤 음식은 피해야 한다거나, 무슨 일이 있어도 직장을 제일 우선해야 한다는 생각 등이다.하지만 이 생각들은 그대로 이뤄지지 않을 때가 더 많다. 자기 생각에 맞지 않은 일을 접하면 적대시하게 되고, 이는 스트레스로 작용해 몸과 마음의 병이 된다.저자는 그동안 여러 사람을 상담하며 본 사례와 자신이 직접 겪은 일들을 통해 이런 생각들이 얼마나 사람을 가두고 자유를 빼앗는지 보여준다. 그리고 이 생각과 집착을 버리고`아무렴 어때`하며 넘기는 방법을 제시한다. `마음은 끊임없이 변화한다``자아를 잊으면 평온해 진다``불평등은 자연의 법칙``자신을 완전히 없애는 것은 무리다``다른 사람 시선을 뛰어넘는 것은 자신의 욕망이다`등 3장에 걸쳐 70여편의 에세이를 수록하고 있다. 불필요한 생각에서 벗어나려고 이 책 내용을 수단으로 삼기 전에 할 일이 있다. 우선 `나는 무엇에 집착하는가` 라고 질문해야 한다. 이렇게 사고를 전환하는 것만으로 생각에서 벗어나는 경우도 있다.버릴 수 있는 생각은 버리는 것이 좋지만 도저히 버릴 수 없다면 무리하지 않아도 된다. 마음에 깊이 스민 생각은 버리려고 해도 버릴 수 없기 때문이다.오랫동안 갇혀온 생각을 버리려면 단순히 사고를 전환할 것이 아니라 마음을 다스려야 한다. 앉거나 걸으며 명상하다보면 `이렇게 해야 한다``저렇게 하고 싶다`라고 생각하는 게 아니라 그저 현재 순간에 존재하는 자기 실존을 만나게 된다.`그저 이렇게 존재한다`는 한순간 실존감 속에서 미추도 우열도 없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된다.생각에 갇힐 필요도 사라진다. 이렇게 아무것도 아닌 존재처럼 투명한 마음으로 자신이 사로잡힌 생각을 선명하게 바라보면 갇힌 생각에서 자연스럽게 풀려난다.일상 곳곳에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얽매여버린 불필요한 생각에서 자유로워지는 사고법을 안내해 갈수록 의무와 당위로 무거워져만 가는 현대인의 정신과 생활을 가볍게 하는 책이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5-10-23

한국사회 `갑을`관계의 씁쓸한 현실 묘사

88만원 세대의 씁쓸한 현실을 그려온 소설가 장강명이 이번엔 `갑을`관계에 대한 일반적인 기대지평을 뒤집어놓았다. `알바생 자르기`(아시아)는 여러 `갑질`논란과 비정규직의 설움을 담았던 드라마 `미생`의 열풍, 그리고 최근 노동법 개정을 둘러싼 공방에 이르기까지 평범한 근로자로 살아가기 참 고달픈 한국 사회. 그 단면을 기자 출신다운 예리한 눈초리로 간파한 작품이다.독일에 본사를 둔 한국의 작은 지사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다.새로 부임한 사장과 과장 은영을 비롯해 함께 일하고 있는 직원들은 아르바이트생 혜미를 영 못마땅해 한다. 혜미가 종종 지각과 딴 짓을 하고, 무엇보다 싹싹하지 못한 태도를 보이고 있어서다.어느 날, 사장과 은영은 혜미를 해고하기로 결정한다. 그러나 그 과정은 혜미보다 그 둘에게 험난했다.장강명 특유의 객관적이고 건조한 문장들이 갑에게도 만만하지 않은 `알바생 자르기`를 더욱 현실적으로 독자의 눈앞에 펼쳐놓는다.작가가 집필 과정에서 느낀 것들을 진솔하게 전달하는 `창작노트`에서 장강명은 외국인 독자들까지 고려해 한국 사회에 만연한 다양한 갈등, 그리고 이를 구성하는 여러 세대와 관계들을 해설한다.작가의 문제의식을 선명하게 엿볼 수 있다.박민규의 `버핏과의 저녁 식사`로 문을 연`K-픽션`은 최근에 발표된 가장 우수하고 흥미로운 작품을 엄선해 한영대역으로 소개하는 시리즈로, 한국문학의 생생한 현장을 국내외 독자들과 실시간으로 공유하고자 기획됐다.매 계절마다 새로운 작품을 선보이고 있으며 현재 총 13권이 출간됐다.하버드대학교 한국학 연구원, 코리아타임즈 현대문학번역상 수상 번역가 등 `바이링궐 에디션 한국 대표 소설`시리즈에 참여한 바 있는 여러 명의 한국문학 번역 전문가들이 이 프로젝트에 참여해 번역의 질적 차원을 더욱 높이고자 심혈을 기울였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5-10-23

아로마세라피, 순수 섬유질 향기 담아

수필가 임수진사진이 두 번째 수필집 `향기도둑(해드림)`을 출간했다. 2010년 첫 수필집 `나는 당신이 고프다`를 발표한 후 5년 만이다. 첫 수필집 발간 때만 해도 의욕만큼 글이 깊지 못해 그녀는 글이 고팠던 모양이다. 글을 의인화해서 제목을 `당신이 고프다`로 한 것에서 그 마음이 잘 나타나고 있다. 홀로 앓으며 견뎌온 시간이 깊어서인지 `향기도둑`은 한결 완숙해진 모습이다.끊임없이 발상의 전환을 시도하며 계산된 문학적 장치를 통해 새로운 기법으로 작품을 빚어냈다. 사람은 누구나 가끔은 낯선 곳에 불시착해 있는 듯한 불안감을 느껴 우울해질 때가 있다. 이런 일상에서 임수진은 붓끝을 창밖으로 내보낸다. 거기에서 햇빛이 만져지고, 바람이 만져진다는 것을 안다.지난날 기억 속 삽화를 잔잔하게 끼워 둔 듯한`향기도둑`에서 `향기`는 `그녀의 순수하고 자연적인 섬유질`이다. 대부분 여류수필가들의 내성이 `섬세`한 것이긴 하지만 그것을 뛰어넘었기 때문에 임수진의 수필을 `아로마세라피`에 비유할 수 있다.임수진의 글은 그림이 선명하다. 한 편 한 편이 수필이 아닌 짧은 소설이다. 아니나 다를까 그녀는 첫 수필집 발간 후 소설을 썼다. 현진건문학상과 경북문학대전에서 단편소설 대상을 받았다. 그래선지`향기도둑`에는 향기로운 지난 시간들이 고스란하다. 여러 편의 단편을 읽은 느낌이 드는 건 그 때문이다.“사람 대부분은 뒤편에 슬픔이 많다고 합니다. 어쩌면 제 부모도 뒤에 슬픔을 감추신 분이었을 겁니다. 오늘 밤 꿈속에서라도 두 분을 만나게 되면 가만히 뒤로 돌아가 등을 안아드리고 싶습니다.” (`당신의 뒤편`)“사랑에 빠지면 햇빛이 들어올 공간조차 아까울지 모른다. 종일 마음이 붙잡혀 있다. 지하철에서도 컴퓨터에서도 느닷없이 튀어나온다. 이유가 없다. 그냥 좋다. 그냥 보고 싶다. 막을 수 없다. 막히지도 않는다.”(`사랑이 무엇이냐고`)“언니친구가 동그랗게 튀어나온 부분을 옆으로 돌렸다. 그러자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시커멓게 생긴 상자에서 갑자기 남자목소리가 튀어나왔다. 놀란 나는 몸을 벌떡 일으켰다. 언니도 움찔 놀란 것 같았지만 일어나 앉지는 않았다. 목소리와 함께 쿵쾅거리는 소리도 들렸다. 무서웠다. 얼굴은 붉어졌고 심장은 미친 듯 뛰었다. 금방이라도 목소리가 상자를 뚫고 나올 듯했다. 나는 엉덩이를 비비적대며 뒤로 물러났다. 목소리에 잡히기 전에 도망치고 싶었다. 집까지 어떻게 왔는지 모르겠다. 헐레벌떡 튀어 온 나는 문고리를 꼭 붙들었다. 목소리가 쫓아오지 않았는지 두리번댔다. 아무도 없는 걸 확인하고 나서야 두고 온 언니가 생각났다. 언니가 무사할지 걱정이 되었다.” (`추억은 추억할수록 새로워지고`)다섯 살 때 처음으로 문명을 수혈하는 과정을 임수진은 `추억은 추억할수록 새로워지고`에서 재밌게 풀어냈다. 저자에게 고향은 오래된 우물이었다. 언젠가 한 번은 제대로 들여다보고 싶다고 썼다. 지은이의 마음속에는 어린아이와 순수함을 간직한 소녀가 살고 있다.어린 감성은 아직 정제되지 않았기에 너무나 섬세하다. 언뜻 일상의 평범함을 얘기한 듯하지만 그 속에는 특별한 묘사가 숨어있다. 일상도 충분히 아름답고 향기로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수필집이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5-10-23

결합·연결로 시대 흐름 바꾼 혁신가들

`혁신가 경제학: 시대의 흐름을 바꾼 혁신가 열전`(이하 `혁신가 경제학`·창비)은 우리 사회의 대안적 경제모델을 연구해온 이일영 교수(한신대 글로벌비즈니스학부)가 학교와 생활현장을 넘나들며 `혁신`을 주제로 한 강의 내용에 토대를 둔 책이다. 여기서 저자는 `개인기`가 아닌 `조직력`으로 이 불확실성의 시대를 돌파할 것을 제안한다. 조직력은 집단주의적 단합 따위를 의미하지 않는다.정확하게는 조직할 줄 아는 능력, 즉 흩어져 있는 아이디어나 사람들을 결합하고 연결할 수 있는 능력을 가리킨다. 저자는 주류경제학과 맑스주의를 넘어서는 이론들과 이를 뒷받침하는 사례들을 끌어와, 새로운 결합과 연결로서 `혁신` 그리고 이를 실행에 옮기는 주체로서 `혁신가`를 제시한다.최근 연애·결혼·출산을 포기한 청년층을 일컫는 3포세대라는 신조어가 5포세대, 7포세대로 진화하다 급기야 N포세대라는 말까지 등장했다.청년들은 비정규직을 전전하며 대출금을 갚아나가는 생활이 앞으로도 크게 나아지지 않을 것으로 여긴다.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는 데 모두가 공감하지만, 그게 무엇인지 아무도 딱 부러지게 말할 수 없다.도대체 뭘, 어떻게 바꿔야 하는 것일까? 이 책에서 저자는 한 시대의 흐름을 바꾼 6가지 흥미로운 열전(列傳)을 들려주며 지금 이 자리에서 혁신이 어떻게 가능할지 타진한다. 개인은 힘이 없고, 정부는 우왕좌왕하는 오늘에도 혁신을 통해 함께 살 길을 모색할 수 있음을 역사는 말해주고 있다.`혁신가 경제학`은 혁신에 관한 이론적 논의를 다룬 제2부, 그리고 혁신을 이룬 대표적 혁신가 사례를 다룬 제3·4부를 중심으로 전개된다.혁신의 이론은 슘페터부터 피터 드러커, 칼 폴라니, 로널드 코즈, 네트워크 사회학까지 다양하게 참조하는데, 그렇게 해서 도달하는 지점은 제도와 조직의 혁신, 즉 씨스템의 혁신이다.저자는 자신의 수업을 듣는 학생들, 사회적 기업가 MBA 과정 수강생들, 활동가들, 그리고 집에 있는 둘째 아이에게 “어떤 사람이 혁신가인지” 끊임없이 묻는다.각자 관심 분야나 배경지식에 따라 다른 답변을 들려주는데, 슘페터식으로 `기업가` 내지는 `창업자`의 테두리 안에서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혁신은 기업혁신, 기술혁신, 사회혁신 등으로 세분화되기도 하며, 특히 유럽 전통에서 기업혁신이나 기술혁신을 사회혁신과 구분하는 경향이 있다. 사람들에게는 아무래도 스티브 잡스 같은 기업·기술혁신가의 이미지, 그것도 탁월한 어느 개인으로서의 이미지가 강하다.저자의 생각은 조금 다르다. 19세기 산업혁명은 흔히 제임스 와트라는 비범한 인물이 증기기관을 발명해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증기기관은 와트 한 사람의 아이디어로 탄생한 것이 아니라 여러 요소가 결합된 집합적 발명의 산물이라는 관점이 힘을 얻고 있다.또한 증기기관 발명이라는 기술혁신은 발명 아이디어를 재산권으로 보장하는 제도혁신이 있었기에, 이후 발명품과 발명가가 줄을 이어 산업혁명을 추동하고 근대사회로 나아가는 문을 열었다고 볼 수 있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5-10-16

소리없는 사건들에 시적 목소리 부여

2011년 문학과사회 신인문학상으로 등단한 시인 임승유의 첫번째 시집 `아이를 낳았지 나 갖고는 부족할까 봐`(문학과지성사)가 출간됐다.“고통을 고통스럽지 않게, 슬픔을 슬프지 않게 그려내는 여유”와 “날카롭게 번뜩이는 이지(理智)가 과하지 않게” 녹아 있다는 평을 받으며 등단한 임승유의 시 51편이 담겨 있다.시집의 독특한 제목은 “다음엔 내가 너의 아이로 태어날게”라는 책 첫 페이지 시인의 말로, 그리고 “매번 처음 겪는 것처럼 두리번거림은 반복”된다는 책 뒤표지의 산문으로 이어진다. 어떤 사건과 고통도 모두 순환한다는 것을 암시한다.“사라져버리지 않기 위해 웅얼거리는 모든 존재들을 한꺼번에 이해했”고, “그 웅얼거림을 받아 적기 시작했을 때 시적인 것들이 만들어졌다”는 그의 다짐처럼 이번 시집은 명확한 소리가 없는 사건들에 시적 목소리를 부여하는 시들로 채워졌다.시인은 문답 형식의 시, 서사가 담긴 시,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의 말과 이성복의 시 등이 곳곳에 등장하는 다채로운 구성으로 삶의 문제와 고통을 이야기한다“친척 집에 다녀와라”(`모자의 효과`)라는 시구로 시집의 문이 열린다. 가족 중 한 사람이 여자아이에게 친척 집에 가보라 말하고, 여자아이는 조심스레 문 밖으로, 그리고 임승유의 시 속으로 빨려든다. 새로운 곳으로 향하는 화자의 첫 발걸음은 임승유 시 전반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약국 가자고 말하는 이를 따라 소풍가듯 따라나서는 이(`우리 약국 갈까`), 잠 속으로 들어간 소년(`밖에다 화초를 내놓고 기르는 여자들은 안에선 무얼 기르는 걸까`), 그곳으로 가자고 말하는 너(`하고 난 뒤의 산책`) 등 사건이 일어나는 순간이 곧 시가 낯선 세계로 빠져드는 순간과 곧잘 일치하기 때문이다.시집의 화자가 발을 들여놓는 세계는 어떤 곳일까. 문학평론가 박상수는 임승유 시집을 읽으면 “각설탕”이 떠오른다고 말한다. “생각만으로도 혀가 녹는” 각설탕, “금세 기분이 달콤해진다는” 각설탕. 즉, 임승유 시집 전반에 자리잡고 있는 세계의 핵심은`각설탕 같은 달콤함`인 셈이다. 이 세계는 `사탕, 케이크, 망고, 만다린주스, 포도, 앵두` 등 끈적하면서도 새콤달콤한 시어들로 다양하게 변모하며 등장한다.끊임없이 빠져들 것만 같던 감정들은 임승유 특유의 감각으로 제어된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5-10-16

생명·평화 추구한 日 지식인의 고백

전후 일본의 대표적 지식인 가토 슈이치(加藤周一·1919~2008)의 자서전 `양의 노래`(글항아리)가 출간됐다. 도쿄대 의학부를 졸업한 가토 슈이치는 의사로서 생활하면서도 문학회를 꾸리고 당대 여러 문인과 교류했다.그 사이 태평양 전쟁을 겪었고 패전 후에는 미국·일본 원자폭탄의학조사단의 일원으로 히로시마(廣島)에 가서 피해 실태 조사를 벌였다.가토는 1951년 프랑스로 건너가 스스로 `제2의 출발`이라고 부르는 유학기를 거친다. 그곳에서 혈액학 연구를 하는 동시에 일본 잡지와 신문에 문예평론을 발표했고 귀국 후 1956년 `일본 문화의 잡종성`을 꼬집는 `잡종문화`라는 책을 발간해 큰 반향을 일으켰다.2년 뒤 가토는 아시아·아프리카 작가회의 참가를 계기로 본업을 접고 문학평론가로 활동하며 반전운동을 하는 등 본격적인 사회참여형 지식인의 길을 걷는다.책에는 전쟁과 이념에 옥좨 있던 20세기를 이해하기 위한 저자의 끊임없는 고민과 사유, 그리고 그곳에서 찾아낸 생명과 평화의 가치를 담고 있다.제목에서 `양`은 양띠 해에 태어난 저자 자신을 의미한다.이 책은 1966년 10월~1967년 3월 저자가 `아사히저널`에 연재한 `양의 노래`와 1967년 7~12월 연재한 `(속)양의 노래`를 엮은 것이다.한국어판에는 이후 30년을 회고한 `양의 노래 그 후`가 포함됐다.1968년 일본에서 단행본이 간행됐을 당시 40여쇄 이상 찍을 정도로 큰 주목을 받았고 영미권과 유럽에서도 번역·출간된 바 있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5-10-16

2차 대전 여성들 생생한 육성

2015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벨라루스의 저널리스트이자 작가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의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문학동네)가 출간됐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 1백만 명이 넘는 여성이 전쟁에 가담해 싸웠다. 하지만 그들 중 그 누구의 이름과 얼굴도 기억되지 못한다. 이 책은 전쟁에 참전했던 200여 명의 여성들의 이야기를 모은 책이다.여성들은 참전해 저격수가 되거나 탱크를 몰기도 했고, 병원에서 일을 했지만 그들의 이야기는 전쟁의 일부가 되지 못한다. 전쟁을 겪은 여성들에겐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그들은 전쟁 이후 어떻게 변했으며, 사람을 죽이는 법을 배우는 건 어떤 체험이었나? 이 책에서 입을 연 여성들은 거의 대부분 생애 처음으로 자신의 전쟁 가담 경험을 털어놓는다. 여성이 털어놓는 전쟁 회고담은 전쟁 베테랑 군인이나 남성이 털어놓는 전쟁 회고담에서는 철저히 배제돼온 이야기이다. 여성은 말한다, 전쟁의 추하고 냉혹한 얼굴, 배고픔, 성폭력, 그들의 분노와 지금까지도 드리워진 죽음의 그림자….이 책은 1985년 첫 출간됐고, 2002년 저자는 검열에 걸려 내지 못했던 부분까지 추가해 다시 책을 출간했다.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는 벨라루스의 저널리스트이자 작가. 1948년, 우크라이나에서 태어났다. 그는 소설가도, 시인도 아니다. 그러나 자기만의 독특한 문학 장르를 창시했다. 일명 `목소리 소설(Novels of Voices)`, 작가 자신은 `소설-코러스`라고 부르는 장르다. 다년간 수백 명의 사람들을 인터뷰해 모은 이야기를 QA가 아니라 일반 논픽션의 형식으로 쓰지만, 마치 소설처럼 읽히는 강렬한 매력이 있는 다큐멘터리 산문, 영혼이 느껴지는 산문으로 평가된다. 이 책은 여자들의 전쟁에 대해 이야기한다. 남자들이 우리에게 하지 않은 전쟁 이야기, 전쟁의 민낯. 그런 전쟁을 우리는 알지 못했다. 남자들은 전쟁에서 거둔 승리와 공훈과 전적을 이야기하고 전선에서의 전투와 사령관이니 병사들 이야기를 하지만, 여자들은 전혀 다른 것을 이야기한다. 여자들은 전장에서도 사람을 보고, 일상을 느끼고, 평범한 것에 주목한다. 처음 사람을 죽였을 때의 공포와 절망감이라든지, 전투가 끝나고 시체가 사방에 널브러진 들판을 걸어갈 때의 끔찍함과 처절함을 말한다. 전장에서 첫 생리혈이 터져나온 경험, 전선에서 싹튼 사랑 이야기도 있다. 그녀들의 눈에 비친 전사자들은 모두 젊거나 어린 병사들이다. 적군인 독일 병사도 아군인 러시아 병사도 모두 가엾기만 하다.전쟁이 끝나고도 여자들에겐 또다른 전쟁이 기다리고 있다. 여자들은 전쟁을 기록한 책이나 부상자들에 대한 서류를 숨겨야 했다. 왜냐하면 다시 예쁘게 미소짓고, 높은 구두를 신고, 결혼 준비를 해야 하는 여자로 돌아가야 했기 때문이다. 남자들은 자신들의 전우였던 여자들을 잊어버렸고 또 배신했다. 여자 전우들과 함께 거둔 승리를 빼앗고 독차지했다. 그렇게, 여자들의 전쟁은 잊혀버렸다.아이를 낳고 가족을 돌보는 가정이 여자들이 있어야 할 자리이지만, 인류 역사상 가장 참혹했던 전쟁 제2차세계대전은 여자들을, 심지어 어린 소녀들까지 전장으로 내몰았다. 조국과 가족의 이름으로 여자들은 총칼을 들고 전선에서 남자들과 똑같이 싸워야 했다.작가는 이처럼 전쟁에 직접 참전했거나 목격한 여자들 200여 명의 이야기를 정리해 이 한 권의 책에 담아냈다. 그들의 처절하고 가슴 아픈, 다양한 사연들을 그들의 생생한 목소리로 가감 없이 들려준다. 그녀들 각각의 이야기는 200권의 소설과도 맞먹는 강렬한 충격을 준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5-10-16

사물을 골똘하게 바라보는 날카롭고 지적인 통찰

생동하는 우리의 몸을 소재로 해서 다채롭고 흥미로운 이미지의 시 세계를 펼쳐온 이현승 시인의 세번째 시집 `생활이라는 생각`(창비)이 출간됐다. `친애하는 사물들`(2012) 이후 3년 만에 새롭게 펴내는 이번 시집은 “몸을 위한, 몸에 의한, 몸의 것일 수밖에 없을 나날의 삶의 육체성이 어떻게 조직되고 통제되는가를 바닥까지 들여다보려는 몸의 헌정서”(이찬, 해설)이다.사물을 골똘하게 바라보는 날카롭고 지적인 통찰과 예민한 감성이 어우러진 가운데 논리정연하면서도 단정한 시편들이 신선한 공감을 일으키며, 새로운 각도로 일상을 들여다보며 세상의 양면적 속성과 존재의 본질을 파고드는 철학적 사유가 빛나는 위트와 유머 속에 슬픔이 깃든 삶의 아이러니가 돋보인다.“꿈이 현실이 되려면 상상은 얼마나 아파야 하는가./상상이 현실이 되려면 절망은 얼마나 깊어야 하는가.//참으로 이기지 못할 것은 생활이라는 생각이다./그럭저럭 살아지고 그럭저럭 살아가면서/우리는 도피 중이고, 유배 중이고, 망명 중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뭘 해야 한다면//(…)//고독이 수면유도제밖에 안되는 이 삶에서/정말 필요한 건 잠이겠지만/술도 안 마셨는데 해장국이 필요한 아침처럼 다들/그래서 버스에서 전철에서 방에서 의자에서 자고 있지만/참으로 모자란 것은 생활이다”(`생활이라는 생각” 부분)구체적인 삶의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이현승의 시에는 말 그대로 생활이 고스란히 살아 있다.시인에게 삶이란 “언제나 선택의 편에서 포기를 합리화하는 일”(`허수아비 디자이너`)이기도 하지만 “구할 수 없는 것만을 기도하”(`빗방울의 입장에서 생각하기`)는 영혼들이 “서로 권하고 축이고/또 이렇게 밥 한끼 얻어먹고 다음을 기약하는 일”(`다단계`)이다. “불행이 아가리를 벌리고 있는 “수수께끼 같은 삶”(`씽크홀`)의 비애 속에서 시인은 “기다리는 일이 일상이 되어버리고 늘 각성과 졸음이 동시에 육박해 오는 “절박한 삶”(`봉급생활자`)을 살아가는 위태롭고 아슬아슬한 생활인의 애환에 연민의 눈길과 “차가움에서 시작해 뜨거움으로 가는 악수”(`저글링`)를 건넨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5-10-09

이 시대 사랑은 없다

`피로사회` `심리정치`의 저자 한병철 교수(베를린 예술대학)의 신작`에로스의 종말`(문학과지성사, 김태환 옮김)이 출간됐다. 전작 `피로사회`가 `할 수 있다`라는 성과사회의 명령 아래 소진돼 가는 현대인의 모습을 비판적으로 관찰하고,`심리정치`가 자유와 욕망까지 착취하는 신자유주의 시스템의 은밀한 통치술을 파헤쳤다면, 이번 책에서는 오늘날의 세계에서 진정한 사랑이 왜 위기에 처하게 됐는가에 대한 흥미로운 분석을 펼쳐나간다. 저자는 에로스가 “완전히 다른 삶의 형식, 완전히 다른 사회를 향한 혁명적 욕망”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이야기하며, 우리에게 오늘날 가장 절실하게 필요한 투쟁 가운데 하나인 `사랑의 재발명을 위한 투쟁`에 참여할 것을 제안한다.2013년 독일에서 출간된 `Agonie des Eros`를 번역한 것으로, 프랑스의 철학자 알랭 바디우가 이 책의 불어판(Le Desir: Ou l`enfer de l`identique, 2015)에 쓴 서문`사랑의 재발명`이 함께 수록돼 있다. 한국에 소개되는 한병철의 여섯번째 책.`에로스의 종말`은 “최근 사랑의 종말을 고하는 목소리가 자주 들려온다”라는 문장으로 시작된다. 역사의 오랜 전통 속에서 사랑에 강렬한 의미가 부여돼 왔다면, 오늘날에는 바로 그러한 의미의 사랑이 위협받고 있다는 것이다.그렇다면 오늘날 사랑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적은 과연 누구일까? 한병철은 에로스란 “강한 의미의 타자, 즉 나의 지배 영역에 포섭되지 않는 타자를 향한 것”인데, 환상이 사라지고 경제적인 법칙만이 지배하는 세계, 점점 더 “동일자의 지옥”을 닮아가는 오늘날의 사회에서는 에로스적 경험도 있을 수 없다고 말한다.저자에 따르면, 사랑은 위험을 감수하지 않고 과잉이나 광기에 빠지지 않은 채 즐길 수 있는, 두 개인 사이의 가벼운 계약 관계가 아니라, 타자의 실존에 대한 근원적인 경험이다. 이는 필연적으로 자아의 파괴를 동반할 수밖에 없다. 그는 라스 폰 트리에의 영화 `멜랑콜리아`와 피터르 브뤼헐의 그림 `눈 속의 사냥꾼들`, 바그너의 악극 `트리스탄과 이졸데` 등을 예로 하여, 절대적 타자성의 경험으로서의 사랑, 완전한 타자의 파국적 침입에 의해 주체의 정상적인 균형 상태를 깨뜨리는 재난으로서의 사랑에 대해 이야기한다.한편으로, 안락함과 나르시시즘적 만족 외에는 관심이 없는 오늘의 세계에서 에로스의 가능성을 짓누르고 있는 실제적인 힘들을 집중적으로 파헤친다. 한병철에 따르면, 에로스는 성과와 `할 수 있음`의 피안에서 성립하는 타자와의 관계다. 즉, “다르다는 것의 부정성, 즉 할 수 있음의 영역을 완전히 벗어나 있는 타자의 아토피아(atopia)가 에로스적 경험의 본질적 성분을 이룬다.” 사랑의 경험은 불능에 의해 만들어지며, 불능은 타자의 완전한 현현을 위해 지불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성과 원리가 삶의 전 영역을 지배하고 있는 현대의 세속화된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사랑은 긍정화되고 아무런 부정성을 알지 못하는 단순한 `성애`로 변질된다.이 책은 진정한 사랑의 최소 조건, 즉 사랑을 위해서는 타자의 발견을 위해 자아를 파괴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는 데 대한 철두철미한 논증인 동시에, 전적으로 안락함과 나르시시즘적 만족 외에는 관심이 없는 오늘의 세계에서 에로스의 싹을 짓누르고 있는 온갖 함정과 위협들을 깨닫게 해준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5-10-09

김훈 산문의 정수 `라면을 끓이며`

`칼의 노래`를 쓴 소설가 김훈(67)이 새 산문집 `라면을 끓이며`(문학동네)를 펴냈다. `라면을 끓이며`는 작가의 절판된 산문집 `너는 어느 쪽이냐고 묻는 말들에 대하여`(2002)와 `밥벌이의 지겨움`(2003), `바다의 기별`(2008)에 실린 글 일부와 그 후에 새로 쓴 원고지 400장 분량 산문을 합쳐 엮은 책이다.말하자면 작가가 쓴 산문의 정수를 모은 것이다. 이 책을 엮는 과정에서 그는 많은 글들을 버리고, 새로이 문장을 벼렸다. 그가 축적해온 수많은 산문 가운데 꼭 남기고 싶은 일부만을 남기고, 소설보다 낮고 순한 말로 독자들에게 말을 걸고픈 그의 바람이 담긴 최근의 글들까지 빼곡하게 들어찬 이 책엔 독자를 단숨에 사로잡을 고압전류가 흐른다.김훈 문장의 힘은 버리고 벼리는 데서 온다. 이 책은 김훈이 축적해온 삶 위에, 가차없이 버리고 벼린 그의 문장의 힘이 더해져 `김훈 산문의 정수`를 읽는 희열과 감동을 온전히 느낄 수 있는 산문집이다.책은 작가의 지난날을 구성하는 다섯 가지 주제인 `밥`, `돈`, `몸`, `길`, `글` 등 5부로 나뉘어 있다.이전 산문집에서 내면의 생각과 가족 이야기, 한국 사회에 대한 통렬한 비판 등을 진솔하게 적어 온 작가는 새 산문집에도 사람 사는 풍경을 생생하게 담았다.문학동네. 412쪽. 1만5천원/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5-10-09

젊은 시인의 돋보이는 사유와 감각

`구관조 씻기기`로 제31회 김수영 문학상을 수상하며 화려하게 등장한 황인찬(27) 시인의 두 번째 시집`희지의 세계`(민음사)가 출간됐다. 이번 시집 `희지의 세계`를 통해 시인은 한국문학사와의 대결에 돌입한다.그것은 `매뉴얼화`된 전통과의 다툼이며, 전통에 편입하려는 본인과의 사투이기도 하다. 주체가 퇴조한 동시대 젊은 시인의 움직임 중에서 황인찬의 시는 돋보이는 사유와 감각을 보여준다. “그래도 우리는 걸을 거야 서울의 밤거리를 자꾸만 걸을 거야 아무래도 상관이 없어서 그냥 막 걸을 거야 우리 자주 걸을까요 너는 아직도 나에게 다정하게 말하고 나는 너에게 대답을 하지 않고 이것이 얼마나 오래 계속된 일인지 우리는 모른다”-`종로사가`에서대결은 종로에서 시작된다. 제목을 제외하면 장소를 변별할 수 없는 시를 두고서 시인은 여기가 종로이며, 그리하여 종로는 모든 곳이자 아무 곳도 아님을 역설한다.일상의 소음, 일상의 회화, 사소한 사건이 종로의 질료이다.일상을 지배하는 것은 `선생님`, `의사`, `오래된 거리` 같은 것이다. 일상의 특징은 그것이 우리를 지배한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할 정도로 평범하다는 점인데, 시인은 어디보다도 전통적인 평범함으로 가득 찬 종로 복판에 예민한 시선을 던진다.그의 시선에서 평범함의 이면이 벗겨진다. 그리고 우리는 “이것이 얼마나 오래 계속된 일인지” 모른다는 사실을 자각하고, 일상의 매뉴얼을 차가운 시선으로 다시 관찰할 수 있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5-10-02

삶·자연… 忍苦의 시간 고스란히

등단한 지 42년, 시인 장영수의 여섯번째 시집 `푸른빛의 비망록`(문학과지성사)이 출간됐다. 1973년 계간 `문학과지성`봄호에 시를 발표한 이래 `메이비`(1977),`그가 말했다`(2006) 등 다섯 권의 시집을 출간해온 시인이 9년 만에 신중을 기해 가려낸 50편의 숙성된 시들을 묶은 시집이다.`푸른빛의 비망록`에서 장영수는 끊어질 듯 이어지고 이어질 듯 끊어지며 독특한 리듬을 자아내는 특유의 언어적 파도를 타고, 평생 탐구해온 삶과 자연 사이를 시의 `범선들`로 `항해`하고 있다. 잠시 닻을 내리는 듯하지만 이 역시 “여전히 숱한 범선들”을 또다시 내보내고 받아들이려는 채비일 뿐이다. 장영수는 시와 삶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안팎의 싸움을 단 한 번도 묵과한 적이 없다. 그의 붓이 줄곧 바람을 그리기를 멈추지 않는 것은 그의 시간이 `조화로운 총체성`을 향한 항해의 과정 중에 있기 때문이다.달의 궤도가 생의 지향과 겹쳐질 때, 필연적으로 `푸른빛의 비망록` 과 같은 도수 높은 바다의 술이 숙성되어 나오고, 이는 시의 시간이 생의 바람을 견디는 인고의 시간이라는 사실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범선들`은 낡아도 장영수의 항해는 다시 이어질 것이다._장철환(문학평론가)첫 시집 `메이비`의 해설에서 문학평론가 오생근은 장영수의 자연이 “언제나 인간화되어 살아 있는데, 바로 그러한 점이 그의 시를 젊고 생기 있게 만드는 요인”이라고 평했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5-10-02

옛 사람 노래에 들켜버린 내안에 감춰진 감수성

한 번쯤 마음을 베인 것 같은 느낌을 받은 적 없는가? 생각지도 못한 경험을 했을 때 보통 그런다. 이때는 `아!`하는 감탄사가 저절로 나온다. 마음을 베이는 많은 경험 중에서 언어는 놀라운 마법사다. 비단 상투적 표현을 뛰어넘는 시인의 언어만을 일컫는 건 아니다.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도 나와 같은 감정을 공유하고 있구나 하는 공감의 언어에서 자기도 모르게 감탄사가 터진다.보통은 기쁨과 슬픔 같은 감정들이 튀어나오거나 깨달음이 왔을 때 그런다. 그 토대는 공감이다. 한시가 마음을 벤다면? 그건 옛사람이 지은 시에서 예나 지금이나 삶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김재욱의 `한시에 마음을 베이다`(왕의서재)에 나오는 한부터 지금까지 수많은 사람의 마음을 벤 한시가 있다.천 년 전이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은 삶에서 기쁨, 슬픔, 분노들을 느끼게 된다. 마음의 정화 작용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또 옛사람의 시구엔 당대 최고 지식인들의 사유와 역사인식도 녹아 있다. 오늘을 사는 지혜임이 틀림없다.“평생의 이별의 한, 병이 되어서 / 술로 고칠 수 없고 약으로도 다스릴 수 없네. / 이불 속 눈물은 마치 얼음 밑의 물과 같아서 / 밤낮으로 길게 흘러도 사람들은 모를 거야.”허난설헌과 같은 시기에 살았던 이옥봉(李玉峯)이라는 여류 시인이 지은`규방의 한(閨恨)`이라는 시다. 첩의 신분으로 평생 남편인 조원을 그리워하다 사그라진 여성의 심정이 잘 나타나 있다.첩의 소생이라는 이유만으로 첩이 됐고, 뛰어난 재주를 지녔음에도 그 재주를 맘껏 펼치지 못하고 억눌려 살았던 이옥봉의 처지, 나아가 동시대에 있을지도 모를 수많은 `이옥봉`들의 삶이 떠오른다.`한시에 마음을 베이다`에 소개된 한시 50수는 사랑, 사회, 역사, 영물, 자연, 죽음, 친구라는 7가지 주제로 나뉜다. 일곱 개 주제마다 여섯 수에서 여덟 수를 할애했다.문 앞의 흙 다하도록 기와를 구워도 / 그 집 지붕 위엔 기와 조각 없는데 / 열 손가락에 진흙도 묻혀보지 않은 사람이 / 비늘 같은 기와 얹은 큰 저택에 사는구나.(`기와 굽는 사람`)이 시를 지은 이는 매요신이다. 천 년도 더 된 옛날 일인데 마치 지금의 우리 사회를 이야기하는 것 같다. 시인은 노동하는 사람들은 죽도록 일을 해도 가난을 면치 못하는데 왜 너희만 부유하게 사느냐고 질책하고 있다. 부가 소수에게 집중되는 사회의 불합리한 현상을 말하고자 했다.이책에는 모두 마흔일곱 명의 작가가 등장한다. 이백, 두목, 김창협의 작품이 두 수씩 실려 있다.중국 작가로는 당나라의 이백, 왕유, 두목, 송나라 성리학의 집대성자 주희, 후대의 매화시 작가들에게 큰 영향을 준 임포, 강서시파를 대표하는 작가인 진사도 등이 있다.우리나라 작가로는 신라의 최치원, 고려의 대문호인 이규보, 이색을 비롯해 조선 후기 문장의 쌍벽을 이루는 박지원, 김창협, 사실적인 사회 시로 주목받은 권필, 경술국치 때 목숨을 끊은 황현 등이 있다.이 책에 수록된 작품은 기본적으로 당대 또는 후대 작가들에게 널리 읽혔다. 나아가 작품 창작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줬다.`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으로 유명한 동방규의`소군원(昭君怨)`, `권토중래(捲土重來)`가 나오는 두목의 `제오강정(題烏江亭)`, 작품의 내용 모두가 후대 작가들의 인용 대상이 됐던 임포의 `산원소매(山園小梅)`, 성리학자의 실생활에까지 영향을 준 주희의`관서유감(觀書有感)`, `춘향전`에 `행인임발우개봉(行人臨發又開封)` 한 구절이 소개된 장적의 `추사(秋思)`, 폭포의 장관을 표현할 때 빠지지 않는 이백의 `망여산폭포(望廬山瀑布)`, 고관대작들의 허위의식을 정면으로 질책한 권필의 `충주석(忠州石)`등이 대표적이다.그 밖의 작품 역시 이들에 비해 절대 뒤지지 않을 만큼 작품성이 있고 지명도가 높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5-10-02

“모든 보편성은 어디선가의 특수성”

한·영대역 문예지 계간 `아시아`(발행인 이대환) 2015 가을호가 출간됐다.이번 호에는 심훈 문학상을 수상한 고은사진 시인의 인상적인 수상소감문이 실렸다.고은은 모든 보편성이 실제 모든 시공간에서 보편타당한 것이 아닐 수 있다고 말한다. 특히 자유, 정의, 미 같은 것에 대한 오늘날의 보편적 인식은 서구근대의 보편성에 대한 맹목이기 쉽다고 지적하면서 새로운 보편성을 촉구하고 있다. 새로운 보편성에서 중요한 것은 “모든 보편성은 어디선가의 특수성의 심화확대”임을 잊지 않는 것이라는 당부와 함께.특히 이번 호에는 단단하고 구체적인 이야기들이 많이 실렸다. 박영희의 `하얼빈`에 관한 두 번째 이야기에는 하얼빈 곳곳에 깃든 사연과 거기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풍부한 표정이 담겨 있다.`아시아의 작가`에서 최윤은 글쓰기에 관한 내밀한 고백을 통해 글쓰기가 소음과 싸워야 하는 고통이기도 하지만, 다시 어떤 일을 체험하면서 상대를 이해하고 사랑할 수 밖에 없게 되는 축복의 과정일 수 있다는, 깊은 통찰력을 보여준다.이번 호 `K-픽션`에는 최근 가장 주목받고 있는 작가 장강명의 신작 `알바생 자르기`가 선정됐다.기자 경력이 돋보이는, 작가의 한국 사회현실에 대한 쉽고 친절한 설명은 작품 이해뿐 아니라 동시대 한국을 이해하는 데 유용한 지침이 될 것이다. 이번 호에는 이경림, 황인찬 시인과 더불어 인도의 시인 돔 모라에스의 시편을 소개한다. 영국에서 인정받았고 인도인이라기보다는 영국인에 가까운 정신세계를 지닌 돔 모라에스의 현대적 정서와 운명의 아이러니는 탈식민 시대에도 여전히 중요한 딜레마라고 생각한다.`아시아의 소설`에 실린 세 편의 소설은 `그들의 특수성`이 우리의 심금을 울리는, 보편성을 지닌 작품들이다.몽골작가 울찌툭스의 `새를 한 번도 못 본사람`의 시적문체와 우화적 분위기, 파키스탄 작가 카밀라 샴지의 `사막의 흉상`의 불상이 전해주는 따뜻한 온기 등은 찬찬히 읽어야 하는 경전처럼 신비롭다.베트남 작가 응웬옥뜨의 `뜻대로의 삶`은 뛰어난 번역을 통해 원작의 감동이 그대로 전달된, 보기 드문 수작이다. 톨스토이적 인류애와 솜씨로 빚어내는 작가의 맹인 가족의 이야기는 분명 독자에게 깊은 페이소스로, 가슴에 박힐 것이다.믿을 수 없는 이야기를 실감 나게, 해박하게 풀어낸 김응교의 `백 개의 일본`의 이번 주제는 일본 요괴이다. `사연`있는 짐을 얻어, 요괴와 동거한 작가의 엑소시스트 일화는 소설보다 더 무섭고 재미있다.상하이의 걸출한 작가 왕안이의 소설 `푸핑`에 대한 박혜지의 서평과 황정은의`양의 미래`에 대한 티모시 홈의 서평도 실었다. 작가의 눈으로 포착해낸 작가 왕안이의 도통한 도량과 이국인의 눈에 비친 한국 청년의 초상화가 자못 신선하다. 이번호 `아시아 통신`은 중앙아시아의 고려인 문학의 역사에 대한 소개와 베트남 현장 이야기를 담았다.아시아 편집위원 이경재가 지난 7월 다녀온 베트남의 모습을 꼼꼼히, 흥미진진하게 기록했다.세월호 희생자 유가족부터 남부 수상가옥의 자유로운 영혼의 형님들, 베트남 처녀, 반 레와 응웬옥뜨, 구찌 터널만큼 위대한 베트남인들의 자부심과 품행 등등 베트남 남부의 매혹과 현실을 실감나게 펼쳐준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5-10-02

가치있는 삶, 마지막에 빛나리

최근 웰다잉이 웰빙 못지 않게 중요시 되고 있다. 죽음이야말로 누구도 예외가 될 수 없는 `당연한 나의 문제`이기에 더욱 그런듯 하다. 어쨋든 죽음의 공포는 우리를 찾아오게 마련이다. 죽음학 전문가들은 요즘의 심각한 자살 문제 역시 죽으면 다 끝난다는 오해가 사회에 만연해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그렇기 때문에 죽음을 바르게 가르치고 이해하려는 사회적 모색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죽음을 어떻게 준비하면 좋은가?최근 출간된 `죽음을 마주하는 시간(페이퍼로드)`은 후회 없는 죽음의 순간을 위한 인생 처방전 같은 책이다.의학박사이자 수필가인 저자 이원락(71·사진)씨는 정형외과와 가정의학과를 거쳐 10여년 간 요양병원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환자들을 가깝게 보면서 인생에서 만날 수 있는 다양한 죽음들에 대한 성찰을 담담하게 담았다.저자는 “평균적으로 주 1회 사망진단서를 작성한다”고 하면서 “우리가 갖고 있는 공포 대신 죽음을 마지막 남은 신비와 외경으로 여기고 죽음 이후의 문제를 내 정서 속에 담을 수 있도록 가치 있는 죽음관을 가질 것”을 제안한다.죽음의 공포는 임종 시에 따르는 고통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라, 자기가 사회와 맺었던 관계 및 의사소통이 궁극적으로 단절되는 데에 대한 두려움이라고 말한다.또 늙어감에 따른 정신적·육체적 분야의 제반 문제에 대한 성찰을 통해 올바른 죽음관을 가지고 하루하루의 삶에 최선을 다하면, 그만큼 인생에서 보답이 온다고 말한다.저자는 의료기술의 발달과 복지수준의 향상으로 평균 수명이 늘어난 오늘날 죽음에 대한 논의를 노인들의 삶으로 주제를 옮겨가고 있다.저자 스스로도 70세의 완연한 노년기에 접어든 입장에서 노년층에 대한 방어적이고도 보수적인 입장을 취할 법도 한데 오히려 적극적으로 노년층의 각성을 촉구한다.저자가 노년층에 대해 경계하는 것은 자녀에게 의존하는 태도, 퇴직 후에 가족 중심적으로 변해 집안의 무료한 일상 뒤에 숨는 태도, 존경과 권위에 집착해 젊은 시절의 영광에만 사로잡힌 태도 등이다.저자가 이런 자성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것은 그 자신이 대구시수돗물수질평가위원회 회장 등을 맡아 10년이 넘도록 환경 운동에 매달린 경험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저자는 올바른 죽음관을 가지고 하루 하루의 삶에 최선을 다하면 그만큼 인생에서 보답이 온다는 것을 이 책의 마지막 장에서 밝히고 있다. “마라톤, 봉사활동 등으로 바쁜 나의 삶은 죽음과 거리가 멀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누구보다도 죽음과 가까이 있기 때문에 삶이 더욱 빛난다는 것을 이 책을 덮는 순간 깨닫게 될 것입니다.”이원락씨는 “지난 5년간 경북매일에 `마음산책`이라는 지면을 통해 소개됐던 칼럼들과 평소 노인과 죽음에 대한 생각들을 한 권의 책으로 묶었다”면서 “매일 매일 선을 향해 조급증을 내지 말고 열심히 살아가면 혼자서도 빙긋이 웃음을 띠면서 죽을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5-09-18

`오후의 새` 이문희 대건인쇄출판사 펴냄, 212쪽

이문희 대주교(전 천주교대구대교구 교구장)가 사제 서품 50주년(금경축)을 맞아 20대의 젊은 시절부터 팔순에 이른 지금까지의 시 99편을 실은 시선집 `오후의 새`(대건인쇄출판사)를 발간했다. 오랜 세월 겸허하면서도 높고 깊은 정신적 순례의 길 떠나기를 거듭해온 이문희 대주교의 시는 맑고 그윽한 연민의 시선과 결 고운 서정적 언어로 어떤 대상이든 낮고 부드럽게 감싸 안는 사랑의 세계를 열어 보인다. “새소리가 난다// 일어서서 창 너머로/ 새를 찾았다// 손에 잡고 쓰다듬고 싶은/ 참한 새이다// 문을 열면 날아갈 것 같아/ 보고만 있었는데/ 훌쩍/ 새는 날아가버렸다// 날아갔기 때문에/ 따라갈 수 없고// 다시/ 의자에 돌아온다// 그런데 또 새/ 소리가 난다”(시 `오후의 새` 전문)지극히 인간적인 목소리로 그리움과 외로움까지 속삭이듯 들려주기도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일관되게 하느님의 그지없는 사랑,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한 삶과 일치를 이루려는 구도에의 여정이 깊숙하게 자리매김하고 있다.제1부에는 앞에 인용한 표제시를 비롯해`봄의 풍경 앞에서`, `산타`, `울지 마 톤즈` 등 근작 열여덟 편을, 제2부에는 2009년 발간한 시집`아득한 여로`에서 뽑은 `자화상`, `햇빛`등 50편을, 제3부에는 1990년에 발간한 시집 `일기`에서 뽑은 `역에서`, `몽빠르나스`, `어머니 9` 등 31편을 실었다.제4부에는 시집 `일기`의 해설 `시적 모혐, 그 정신적 순례`(시림환)와 `아득한 여로`의 해설 `그지없는 사랑의 시학`(이태수)을 담고, 맨 뒤에 서문을 대신한 이문희 대주교의 글 `선물인 나`를 수록했다.`선물인 나`를 통해 이문희 대주교는 “이 글들은 스물세 살 때부터 여든이 다될 때까지 적어든 것이다, 나도 변하는 모양이 조금씩 보인다, 그래서 나를 다 모은 것이다”라고 썼다./윤희정기자

2015-09-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