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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MZ세대의 파워

우정구 논설위원 MZ세대란 1980년대초∼2000년대초 출생한 밀레니얼 세대와 1990년대초∼2000년대 초반 출생한 Z세대를 통칭해 부르는 말이다. 학술적 배경에서 나온 말은 아니다. 대학생 상대의 한 잡지사가 처음 사용한 것이 유래다. 지금도 젊은 세대를 통칭할 때 이 표현을 잘 쓴다.그러나 엄밀히 말해 M세대와 Z세대는 다르다. 특히 시간이 흘러 초기 밀레니얼 세대의 나이가 40대로 접어들면서 신세대 젊은이의 상징처럼 MZ세대를 부르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다.한 리서치의 인식조사에서 대중들은 MZ세대를 16∼31세로 본다고 한 것은 MZ세대에 대한 국민적 인식을 잘 반영한 대목이다. “요즘 젊은이”로 보는 게 오히려 정확하다.Z세대는 스마트폰을 기준점으로 가른다. 국가의 스마트폰 보급률에 따라 Z세대를 구분하는 시기가 조금씩 다르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2000년대 이후 세대가 기준이다. 이들은 디지털 환경에 익숙하고 최신 트렌드와 남과 다른 자신만의 세계를 추구한다. 불확실한 미래보다 당장의 행복을 쫓는 세대다. 소비성향에서도 그들의 특징이 있다.서로 다른 M세대와 Z세대를 묶어 MZ세대로 부른 데는 언론의 무분별한 오남발이 큰 원인이다. MZ세대의 실제 정의는 10대에서 40대까지 폭넓으나 마치 20대를 대상으로 MZ세대를 표현할 때가 많았다는 것이다. 학계서는 잘못된 세대 구분을 강조하면 사회문제의 본질이 가릴 수 있다는 지적도 한다.주 52시간 근무 유연화를 시도하려는 정부 정책을 두고 MZ세대가 반발하자 대통령이 재검토를 지시했다. 젊은 세대의 생각을 충분히 반영하란 뜻이다. MZ세대가 우리 시대의 주역으로 등장했다는 의미기도 하다./우정구(논설위원)

2023-03-16

'무노동 무임금' 예외는 없다고?

홍석봉 대구지사장 ‘무노동 무임금’은 파업 기간 동안은 임금을 지불하지 않는다는 노동 원칙이다. 국제적으로 보편화된 기준이자 관행이다. 우리 사회에 폭넓게 적용된다. 정치인들에 대한 ‘무노동 무임금’ 적용에 세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시민단체 등이 줄기차게 주장해왔지만 정작 국회의원들은 자신들의 권리 침해로 여기고 외면해온 터이다. 구속된 지방의원에게 ‘무노동 무임금’ 원칙을 적용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논란의 중심에 선 국회의원의 ‘무노동 무임금’ 적용 법률 개정 요구와 함께 지방의원에게도 이를 적용하자는 것이다.대구의 한 시민단체가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구속돼 있으면서도 꼬박꼬박 월정수당을 받는 것은 파렴치한 행위”라며 “세금이 새고 있다”고 지적했다. 해당 시의원의 사퇴와 월정 수당 340만 원의 지급 중단을 촉구했다. 하지만 구속 4개월이 지났는데도 그대로다. 여론의 압박이 커지고 있다.대구시의회는 윤리특별위원회를 열고 조례 개정 의견을 듣는 등 제도개선 분위기가 일었지만 의장단은 함구하고 있다. 논의 필요성만 인정한 채 관련 조례 개정 움직임에는 소극적이다. 대구시의회가 관련 조례를 개정하면 다른 기초의회도 뒤따를 가능성이 높은 데 잔뜩 몸을 움츠리고 있다. 오히려 국회부터 먼저하는 것이 순리라며 책임을 떠넘기는 형국이다.국민권익위원회는 지난해 말 지방의원이 구속되면 월정수당을 주지 않거나 감액하도록 조례를 개정하라고 권고했다. 하지만 대구시의회 등 지방의회들이 서로 눈치만 보고 있는 실정이다. 현재 전국 243개 지방의회 중 월정수당을 제한하는 곳은 10곳 뿐이다. 지역에서는 수성구의회가 유일하다.국회의원에게도 무노동 무임금 원칙을 적용하자는 법안이 20대 국회에 이어 21대 국회에도 여러 건 발의됐다. 하지만 칼자루를 쥔 의원들은 눈길도 주지 않는다. 법안은 마냥 계류 중이다. 내년 4월이면 총선이다. 이렇게 또 넘어갈 모양이다.지금 국회는 가관이다. 기껏 방패 국회나 열고 상정된 법안은 잠재운 채 해외나들이엔 열심인 국회의원들이다. 국회의원 1인당 세비는 연 1억5천426만 원이다. 이와 별도로 업무추진비, 차량유지비, 사무실 소모품비 등 각종 명목으로 1인당 평균 1억150만 원이 지원된다. 의원마다 8명씩 둘 수 있는 보좌진 인건비로 5억 원 안팎이 나간다. 의원 1명 당 세금 7억5천여만 원이 지급된다. 해외시찰 명목의 해외여행 경비도 세금으로 지원한다. 각종 혜택이 어마무시하다. 총선 때마다 내놓던 ‘보수 삭감 공약’엔 아예 눈 감았다. 그런데도 2018년부터 5년 연속 세비를 올렸다. 매번 셀프 인상이다. 국민 눈총과 비판 여론은 아예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권익위도 국회의원에 대해선 권고 조차 않았다. 2019년 한 여론조사에서 국회의원 세비 반납 법안 제정에 찬성 80.8%, 반대 10.9%의 답변이 나왔었다. 국민 대부분이 국회의원도 ‘무노동 무임금’ 원칙을 적용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선출직 공무원들의 옥중 월정 수당 더 이상 방치해선 안 된다. 국민이 분노한다.

2023-03-16

산불예방, 우리의 실천으로부터

유문선 포항북부소방서장 해마다 봄철이면 안타까운 산불 소식을 뉴스를 통해 접하게 된다. 지난해 ‘가장 오래 지속된 산불’로 기록된 울진 산불의 아픔이 채 가시기도 전에 올해 역시 경북에서만 43건의 산불이 발생했다. 특히 계속되는 건조한 날씨로 강과 하천이 가물고 강하게 부는 바람에 한 번 산불이 발생하면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어 대형화재로 번지는 일도 잦아졌다.산불은 자연재해가 아니다. 산불 발생의 많은 비율은 자연적이지 않다. 소방청이 2022년 발간한 화재통계연감에 따르면 산불 발생원인은 입산자 부주의에 의한 실화가 대부분을 차지했고(79.7%) 그다음으로 원인 미상(11.6%)이 뒤를 이었다. 많은 재산피해를 발생시키고 자연을 파괴시키는 산불의 원인은 담뱃불과 논·밭두렁 태우기 등 부주의로 발생하는 게 대부분이다. 따라서 작은 주의만 기울이면 산불을 예방할 수 있다.그렇다면 산불 예방을 위해 우리가 실천해야 할 것들은 무엇이 있을까? 산불예방을 위한 첫걸음은 성냥이나 라이터 등 화기물 소지 금지에서 시작된다. 산림이나 산림인접지역에서 불을 피우는 취사와 흡연, 흡연 후 담배꽁초를 버리는 행위는 원칙적으로 금지돼 있으며, 적발 시에는 과태료가 부과될 수 있다. 일부 지역은 산림보호를 위해 화기물을 소지하는 것만으로도 입산 제한 대상이 되므로 사용 유무와 상관없이 집에서 나오기 전 소지 여부를 재차 확인해야 한다.또한 산림 인접지역에서는 논·밭두렁 소각행위를 금해야 한다. 예전부터 많은 농가에서는 병해충을 방지한다는 이유로 봄철 논과 밭을 소각하는 행위가 관행처럼 이어져 왔다. 하지만 이는 해충방제 효과가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미세먼지 발생 및 봄철 산불의 원인이 될 뿐이다. 영농 부산물 소각행위 역시 산림보호법에 따라 엄격히 금지된 행위이며 위반 시에는 100만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될 수 있다.마지막으로 산불을 발견했을 때에는 즉각 119에 신고해야 한다. 초기의 작은 불은 나뭇가지나 외투 등을 사용해 두드리거나 흙을 덮어 진화를 시도하는 것이 좋지만, 화세가 커지고 있다면 신속히 벗어나 119에 신고해야 한다. 신고 시에는 등산로에 설치된 산악 위치표지판의 고유번호를 알려주는 것이 신속한 출동에 도움이 되기 때문에 등산 중 위치표지판을 지나친다면 잘 기억해 두도록 하자.산불예방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산불이 대형화재로 번지면 화재진압이 장기화 되고, 그 과정에서 너무나 많은 장비와 인력이 소모된다. 한번 타버린 산은 회복하기까지 수십 년이 걸리기도 한다.축구장 1만7천300개 면적을 태우고 1천400억원 이상의 재산피해를 남긴 울진 산불이 발생한 지 불과 1년밖에 지나지 않은 지금, 우리 모두가 주인의식을 가지고 산불예방에 동참해 모두가 행복한 봄의 산을 누릴 수 있길 바란다.

2023-03-15

커피향기처럼

배문경 수필가 커피를 마신다. 봄볕아래서 후배와 점심 후의 나른함을 섞고 수다를 한 스푼 첨가해서 홀짝거린다. 한겨울의 매서운 추위도 더러 뜨거운 커피에 녹아내렸고 긴 장마에 우산을 털며 들어서는 커피숍의 커피향기는 눅눅함마저도 잊게 했다. 지금은 그저 편안한 휴식의 단맛을 느끼고 있다.오빠는 “인생도 쓴데 커피까지 쓰게 마시겠냐”라면서 두 스푼의 설탕을 넣어 휘휘 저어마셨다.그러고 보니 쓴맛, 단맛, 짠맛, 매운맛, 단맛까지 달달하거나 모든 맛이 커피 속에 있을지도 모른다. 223이라는 말이 한 때 유행했다. 커피 두 스푼에 프리마 두 스푼 설탕 세 스푼으로 탄 커피는 인기 짱이었다. 그래서 영화나 드라마에서 대사로 자주 인용되기도 했다.얼마 전 문인협회에서 큰 행사를 진행했다. 식사는 늘 제공했지만 커피를 제공한 경우는 없었다. 추가로 카페에서 커피 한 잔씩을 제공했다. 그 자리에서 백일장 작품을 심사하는 일까지 하게 되니 일석이조였다. 음식의 텁텁한 맛을 깨끗하게 정화시켜주는 커피에 모두 기분 좋아하셨다.커피를 한때는 검은 악마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깊게 빠져들 매력이 충분히 있기 때문이다.이 검은 악마가 인간에 의해 음료수가 되기까지는 한 목동의 조금은 충동적인 얘기가 밑받침된다. 염소를 치던 에디오피아의 칼디라는 소년으로부터 유래되었다. 소년은 어느 날 나무의 빨간 열매를 먹은 염소들이 날뛰는 것을 보고 자신도 먹었다. 그러자 기분이 상쾌해지고 활력이 솟구치는 기분을 느낀다. 이후 인근 수도원의 수도사들에게 알리게 되고 그들은 악마의 것이라며 두려움에 불속에 던졌지만 커피열매가 불에 타면서 향긋한 냄새를 내고 잠을 쫓는데 효과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커피음료를 만드는데 성공했다고 한다.어쨌든 우리는 깊게 들여다봐도 검기만 한 음료를 이제는 다양하게 만들어 즐거운 식감을 만들기에 이르렀다. 까페라떼, 바닐라라떼, 달고나라떼, 까페모카, 아인수페너라떼, 아이스아메리카노 등 다양한 메뉴를 앞에 두고 고르는 재미와 뭘 먹지하며 들여다보는 메뉴판엔 다양한 음료가 손짓한다.기분이 언짢다면 조금 달달한 메뉴인 아인슈페너라떼를 선택해 보면 어떨까. 아메리카노 위에 얹은 묵직한 크림은 탱탱하고 쫀쫀해서 크림이 아니라 아이스크림 같다. 부드럽고 달콤한 맛에 놀란다. 덥고 답답하다면 아아(아이스 아메리카노)가 최고다. 작은 즐거움으로 기분을 업(UP) 시킬 수 있다.펼쳐진 푸른 하늘과 바다 그리고 파란색 지붕이 신선했던 지중해를 배경으로 선전하던 음료가 있었다. 하지만 나의 눈에는 그곳에서 햇빛을 즐기는 사람들이 부러웠다. 노천카페에서 커피 한잔을 두고 두런두런 이야기꽃이 번져나가던 사람들의 모습이 보기 좋았다. 유럽여행을 가보고 싶다는 마음도 노천카페의 풍경 때문이었다.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후배 순희와 여행을 해보자고 의기투합한 상태다.커피는 인생의 맛 중에서도 다양한 맛을 느끼게 해주는 명약이다. 왜냐하면 슬프거나 화나거나 힘들 때 혹은 내 곁에 아무도 없어도 마실 수 있다. 그리고 위로를 받는다. 많은 사람들과 수다를 떨 때도 커피향기가 배어 나오는 카페가 있다. 그들과 세상이야기를 나누고 수다를 떨다 일어날 때도 먼지 같은 일상사가 살만한 세상으로 바꿔져 있기 일쑤다. ‘무엇으로부터 삶의 무게를 가볍게 만들 수 있을 것인가.’에 커피 한 잔의 여유가 있다는 것은 다소 위안이 된다.지금 나는 푸른 바다의 파도가 넘실대는 구룡포 바닷가에 앉아 커피 마실 생각을 한다. 까만 커피위에 부드러운 우유가 얹혀 진 채 커피 하트를 보며 여유를 부릴 생각만으로 즐겁다. 인생 뭐 별 것 있냐며. 그러고 보니 예전 싸이월드의 아이디가 ‘커피향기처럼’이었던가.그 사이 봄바람 나겠다며 마음은 길을 나서고 있다.

2023-03-15

<5>부동산 투자 ABC 비방을 듣다

당나무는 김 사장과 어린 시절 재미있는 일도 많았다. 고향의 어린 시절에는 여름철이면 더욱 아쉽기도 한 아련한 추억들이 샘솟는다. 아이스께끼! 아이스께끼! 여름이면 어김없이 아이스께끼 장사가 자전거 뒤 나무통에 그 잊지 못할 아이스께끼를 싣고 소리를 냅다 지르며 나타난다. 아이들은 미리 천초를 바다에서 채취해서 모아 놓았다가 아이스께끼로 바꾸어 먹기도 했다. 그 차고 달콤한 맛은 평생의 입맛의 기준을 정해 버렸다. 강냉이 엿장수의 가위소리도 그렇고 심지어 벌꿀을 가져 와서 미역과 교환하기도 했다. 돌미역은 만물을 향한 요술쟁이였다.그 달콤한 콩가루를 덮어쓴 쑥떡을 머리에 이고 온 할머니도 있었다. 마을 앞 바위틈에는 군침 도는 먹거리들이 지천으로 깔려 있었다. 철철이 새로운 해산물들이 기나긴 세월을 이어오면서 마을을 속인 일이 없었다. 주민들은 자연이 주는, 그것을 믿고 신뢰하고 힘들어도 기다렸다. 바다가 곧 집 앞 놀이터이고, 생명의 먹거리로 이어진다. 마을 앞바다의 수 만평에 이르는 넓은 돌바닥에는 돌김, 파래, 참고동, 갯고동, 따개비, 안장구, 참게, 말치, 토씨, 군소, 멍데이, 다시마, 말치 등 이루 헤아릴 수 없는 해산물이 서로 앞다투어 생존 경쟁을 하고 있었다.돌김은 옛날 임금님에게 진상할 정도로 유명했다. 그 고소한 맛은 천하의 일품이다. 김에 밥을 싸서 입에 넣으면 입안의 침이 참기름보다 더 고소함으로 가득 찬다. 지금도 자연산 돌김은 미식가들에게는 바다가 주는 최고의 선물이다. 김 채취는 겨울철에 하는데 다소 따뜻한 날을 선택해서 마을 주민들이 모두 모여 한꺼번에 동일한 시간대에 출발하여 돌김이 자란 바위로 향한다.가히 동네 주민들이 모두 모여 들어가는 모습은 한판의 전쟁터를 향한 군사들을 방불케 한다. 먼저 들어가서 돌김이 많이 자란 위치를 차지하기 위해서 이웃사촌 같은 염치는 치장에 불과하다. 채취한 돌김은 볏짚으로 만들어진 자그마한 발에 물과 함께 김을 풀어 놓고 얇게 널어 건져서 발위에서 햇빛에 말리면 된다.돌김보다 좀 다른 파래는 다소 물이 더 깊은데서 자라는데, 건조 방법은 김과 같으나 불에 구우면 쓴 맛으로 변한다. 마을 앞 얕은 물에서 자라는 고동은 두 종류가 있는데 참고동과 갯고동이 있다. 참고동은 가장 흔하게 자라고, 삶아서도 먹고, 생것으로도 먹을 수 있다. 갯고동은 생것으로는 먹을 수 없고, 주로 놀래기 등 고기 낚시 미끼로 쓰인다. 안장구라는 말똥성게는 알이 붉은 색인데 깊은 물에서 자라는 보라성게에 비해서 맛이 달아서 밥에 넣어 비벼먹으면 그 맛이 일품이었다.당나무와 김 사장은 또래 친구들이 불렀던 노래도 불러 본다.“바리(파도) 궂는다 배 올려라, 바리 잔다 배 내려라. 니(너) 배 네 배 돛 달아 놓고 시월 벌판에 돈 벌려가세, 빨간 보따리 돈 보따리, 처갓집 담 위에 올려놓고, 나는 좋아 나는 좋아 장모님 고무신도 나는 좋아!”부동산 비방을 이어간다. 전혀 그런 온천공의 권리가 독립된 물권으로서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몰랐다. 전 소유자는 이미 부도를 예상하고, 전국에 온천을 이용 할 수 있는 이용권을 수만 장 팔아버려 김 사장과 다툼이 생겼고, 부도로 전 소유자를 만날 수조차도 없었다. 온천공 없는 온천은 앙코 없는 찐빵보다 못 했다. 온천 목욕탕을 운영 할 수 없었다. 결국 토지구획정리사업으로 보상 받은 돈을 모두 날려 버렸다. 김 사장은 부동산에 대한 자격도 있고 해서 어느 정도 전문지식이 있다고 생각 했는데 현실적으로는 어쩌면 부동산 ABC도 몰랐다고 할 수 있었다. 반풍수 집안 망친다는 말이 있다.그래서 신목이 된 당나무에게 부동산 ABC에 대한 비방을 듣는다. 일반적으로 부동산은 토지와 건물이 있는데, 이 중에서도 가장 요지의 토지를 찾는 것이 최상이다. 토지는 언제든지 건축이 가능한 토지와 그렇지 못한 땅이 있다. 서진국 작가 소위 도시계획법상 주거지역, 상업지역 등의 토지는 소유자가 필요할 경우 언제든지 건축허가를 받을 수 있고 자연녹지, 공원 등의 토지는 특정한 조건이 맞을 때에 한하여 건축 허가가 난다. 투자와 투기를 구별하는 기준도 건축허가를 기준으로 하는 것이 합리적이다.부동산의 권리는 소유권이 가장 큰 권리이고, 전세권, 임차권, 유치권, 담보권 그리고 관습법상 지상권, 분묘기지권 등 여러 권리가 있다. 이론적으로는 토지도 사람의 일생과 같이 돌고 돈다는 것이다. 키친이라는 학자가 부동산의 변화를 연구한 논문, 소위 키친 사이클에서 부동산도 사람과 같이 일생이 있다는 것이다. 유아기가 있고, 성장기, 장년기, 노년기가 있다는 것이다. 어느 한 지역을 염두에 두고 자세히 긴 기간을 통하여 부동산의 변화를 보면 초기에는 새로운 토지가 조성된다.그 토지에 사람들이 모여 활발한 사회 경제 활동이 이루어지다가 또 다른 지역이 새로이 발전하여 개발되면서 먼저 발전된 지역은 쇠퇴된다는 것이다. 과거 서울 강북권에는 최고의 주택지역과 상업지가 조성되었다가 일정기간이 지난 후 최고의 주택지가 강남으로 옮겨가면서 상당한 상권도 강남에 형성되었다. 부동산이나 인생도 결국 돌고 돌아 제자리로 환생 될 수 있다고 생각된다.

2023-03-15

결국 미디어가 한다

장규열 전 한동대 교수 학교폭력은 무섭다. 폭력은 범죄라는 상식이 있지만, 폭력이 학교에서 벌어지면 이를 어찌해야 하는지 누구에게나 어렵다. 피해당사자 본인은 물론 가족과 학교, 교육청과 정부 등 모두 이를 대처하는 방식에 혼돈스럽고 당혹해한다. 사건이 붉어지면 언론이 뜨겁게 보도하고 정치가 담론으로 삼기도 하지만, 오래 가지않아 불씨는 시들고 기억에서 다시 멀어진다. 그런가하면, 종교를 허울삼아 못된 짓들이 발생해도 우리는 마찬가지였다. 교회나 사찰 등지에서 성폭력이 간간이 발생하지만 이를 바라보는 시선과 대처방식은 늘 같은 모습이었다. 정치와 언론이 근본적인 대안들을 만들어주었으면 하지만, 기대가 있었을 뿐 우리 사회는 같은 문제를 너무 오랫동안 품고만 있는 셈이다.미디어의 역할이 신선하다. 드라마 ‘더 글로리’는 학교폭력의 실체를 극적으로 부각하여 날카로운 시선을 던진다.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보복을 행사하는 극적진행을 통해 학교폭력이 처음부터 없어야 했다는 당위명제를 던진다. 다큐멘터리 ‘나는 신이다’는 실제피해자들을 가감없이 등장시켜 피해자가 겪는 고통의 깊이와 범죄상황의 적나라한 모습을 있었던 그대로 전달한다. 언론에 기대했던 사실의 전달과 정치에 기대했던 해결의 실마리를 미디어의 이야기가 새로운 방식으로 제공하고 있다. 학교폭력과 사이비종교의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노력에 얼마나 실질적인 도움이 되려는지는 두고 볼 일이지만, 보다 강도 높은 전달효과가 있었던 것은 분명해 보인다.언론과 정치는 각성해야 한다. 사실전달이 언론의 본령인 가운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사회적 노력도 함께 전달하고 제시하는 시도도 있어야 한다. 해외에서 번져가는 솔루션저널리즘(Solutions Journalism)은 사회적 이슈에 대하여 대중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탐색한다. 정치는 중첩한 사회문제를 논하며 정치적 수사와 탁상공론으로 허비할 게 아니라,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담론을 설정하고 토론을 진행하여 실천적 대안을 도출해야 한다. 언론이 겉모습만 겨우 보도하고 정치가 허망한 수사만 반복하기를 그치지 않는다면, 시민들은 기대와 희망을 더 이상 당신들에게 걸지 않을지도 모른다. 정치와 언론에서 실질적인 담론과 실천적인 대안을 구하기보다, 드라마와 다큐멘터리에서 영감을 얻은 다음 시민들이 다른 방법을 찾아내지 않을까. 실제로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언론과 정치가 사회적으로 소외되는 결과를 빚을지도 모른다.디지털세상이 그래서 무섭다. 특히, 정치와 언론에 가혹한 현실을 드리울 것으로 보인다. 이전에는 사회문화적 현상에서 멀찌감치 떨어져 있었던 대중에게 정치와 언론이 가교역할을 해 주었다면, 디지털은 그 거리를 현저하게 좁혀놓았다. 모든 뉴스와 사건의 현장이 시민들에게 그리 멀지 않게 되었다. 언론의 보도기능과 정치의 담론진행조차 누구나 온라인에서 가능하게 되었다. 언론과 정치가 보통사람들의 일상에 가 닿는 저널리즘과 정치행위를 실천해야 한다. 언론과 정치가 본질을 회복해야 사회가 살고 나라가 선다.

2023-03-15

‘명품’ 안동소주

홍석봉 대구지사장 영국 스코틀랜드의 스카치위스키와 프랑스 꼬냑 지방의 꼬냑 및 까뮤트레이션, 중국의 마오타이주가 세계 3대 명주로 꼽힌다.스카치위스키는 지난해 사상 처음 매출 10조 원을 기록했다. 고급 위스키의 가장 큰 소비처가 한국이다. 스코틀랜드는 위스키 제조 과정을 볼 수 있는 증류장과 지역 명소와 연계하는 체험 상품을 개발해 한 해 200만 명의 관광객을 불러들인다.중국 마오타이도 고급 브랜드로 국제화에 힘써 주가 총액이 삼성전자 보다 높은 420조 원에 달한다. 연간 매출액 20조 원의 세계적인 주류 기업이 됐다.일본도 세계 5대 위스키 생산국가에 든다.우리나라에도 안동소주 등 위스키 못지않은 좋은 술이 많지만 외국인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다.이철우 경북도지사가 “안동소주가 너무 저평가돼 있다”며 세계 명품을 만들겠다고 나섰다. 스코틀랜드 현지를 둘러보고 시장성을 살펴본 후 내놓은 진단이다. 경북도는 안동시와 전통주 업체, 대학이 참여하는 태스크포스 팀을 구성, 대표 상품을 만들기로 했다. 안동 주요 관광지에 홍보관을 건립, 안동소주를 알리고 술 품평회와 양조장 체험 등 지원 사업도 편다. 술 원료, 도수, 숙성도 등을 규격화해 품질기준을 만들고 유명 아이돌 그룹 등을 내세워 홍보를 강화하기로 했다.안동 맹개마을의 ‘밀과노닐다’는 미국과 영국의 펍을 중심으로 수출을 확대하고 양조장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 인기를 끌고 있다. 잘만 육성하면 세계적 명품이 될 수 있다.전통주에 대한 국민 관심이 높아진 지금 한류를 활용, 안동소주 명인들과 현대 기술을 버무려 세계 명품주로 만들어야 한다. 타이밍이 딱 맞다. 명품 안동소주의 탄생을 기대한다./홍석봉(대구지사장)

2023-03-15

포스트 코로나 시대

최병구 경상국립대 교수 4년 만에 마스크 없이 맞이한 3월 초의 캠퍼스는 아름다웠다. 마스크 없이 캠퍼스를 활보하는 학생들의 웃음소리는 기분 좋게 느껴졌고, 3월 첫 수업을 앞두고는 설레기까지 했다. 마스크 없이 진행하는 수업에서 느껴지는 시원함은 마스크와 동거했던 지난 시간을 아득하게 만들었다.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잔뜩 움츠렸던 몸과 마음이 이제야 기지개를 켜는 기분이었다.하지만 이런 마음은 연구실로 걸려 온 전화 한 통에, 개강 후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서 무너지고 말았다. 2023학번 신입생이 퉁명한 목소리로 자퇴하고 싶다며 전화를 한 것이었다. 대학에 온 지 한 주, 두려움과 설렘 속에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바쁠 신입생과 자퇴, 어울리지 않는 두 단어가 어떻게 조합될지를 상상하며 면담 날짜를 잡았다.학생은 한눈에 봐도 마음이 아픈 학생이었다. 서울에서 진주로 왔지만, 여전히 일상을 마주할 자신이 없다고 했다. 중학교부터 정신과 치료를 받았으며 입원도 한 적이 있다고 했다. 집으로 돌아가도 진주에 있는 것과 큰 차이는 없지만, 그래도 돌아가고 싶다고 했다. 어느 곳에 있으나 마찬가지라면, 자퇴는 언제라도 할 수 있으니 대학에 조금 더 머무르길 권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나는 상담 내내 불안한 눈동자로 울고 있던 학생을 진주에 남겨뒀을 때, 생겨날 수 있는 일들에 대한 두려움에 학생의 자퇴 원서에 서명했다.나는 아직도 그 학생이 어떤 생각으로 대학에 진학했는지, 또 어떤 이유로 자퇴를 선택했는지 정확히 알지 못한다. 그 학생은 대학에 온 지 불과 일주일 만에 내린 자퇴라는 선택과 학교와 집 어느 곳도 편하지 않다는 자신의 발언이 모순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나도 다른 친구들처럼 감당할 수 있는 고통을 느낄 수 있으면 좋겠다’는 학생의 발언이 여전히 선명한 이유는, 선생으로서 나의 시각은 그 학생의 상황을 조금도 이해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명료히 알려주기 때문이다.나는 상담을 하는 동안 그 학생에게 함께 이겨내자는 말을 몇 차례 했다. 좋은 의도를 가진 것이었지만, 그 학생에게는 별 의미가 없는 말이다. 어떤 목적을 전제로 나름 합리적 선택이라고 제안한 나의 말은 이미 ‘이해 가능한’ 수준을 넘어선 학생의 상황에는 전혀 들어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해할 수 없는 고통을 가지고 있는 학생에게 합리적 판단을 해야 하는 대학 선생은 무엇을 해줄 수 있을까? 여전히 무기력하다.마음이 아픈 학생들이 많아지고 있다. 대학도 이를 인지해서 상담프로그램을 갖추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학생이 상담프로그램을 직접 찾기는 어려우며 이미 그 단계를 넘어선 학생도 존재한다. 상담프로그램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다. 급격한 출산율 저하로 지방 소멸론이 일상이 된 시대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최근 몇 년 정신이 병든 대학생들이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 당연히 그 병은 어린 시절부터 누적된 고통이 성인이 되어 터진 것이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 우리 사회는 사회적 고통을 겪고 있는 학생들에게 공감할 역량을 가지고 있을까.

2023-03-15

꽃 피는 봄이 오면 찾아오는 불청객?

김영준 포항 약전부부한의원장 새싹이 돋고 봄꽃들이 만개하며 자연이 녹색으로 물들어 푸르름과 활력이 넘치는 계절 봄이 오고 있다. 해마다 맞이하는 봄이지만 봄은 갑자기 왔다가 갑자기 지나가는 것 같다. 너무 짧게 느껴지는 봄이지만 이 동안 너무도 뚜렷한 존재감을 드러내는 것이 알레르기성 비염이다.알레르기 비염의 증상은 맑은 콧물이 많이 나는 것, 재채기, 비색(코막힘) 등이며 이로 인해 후비루(콧물이 목으로 넘어가는 것) 등으로 인한 인후부 염증이 동반되기도 하고 눈과 코 주위가 가렵고 피부염이 생기는 등의 증상이 생길 수 있다.알레르기 비염은 알레르기 물질(항원)에 반응하여 코와 호흡기 등의 염증을 유발하는 질환이다. 대부분 야외에서 발생하는 꽃가루, 미세먼지나 실내의 집먼지진드기, 동물의 털 등에 의한 경우가 많다.알레르기 비염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먼저 유발된 알레르기 물질을 찾아내고 그것을 피하거나 최소화해야 한다. 알레르기 검사상에 뚜렷한 유발 원인이 확인된다면 이를 피하는 것이 중요하다. 예를 들어 고양이 털이 뚜렷한 유발 원인으로 확인된다면 반려동물로 고양이를 키우면 알레르기 비염을 치료하기는 어렵다는 사실을 인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꽃가루 등에 의한 자극이 심하다면 외출 시에 마스크를 착용하거나 코 세척을 자주 하는 것도 도움이 될 수 있다.하지만 뚜렷한 항원이 확인되지 않는 경우나 오랜 기간 생활 환경이 바뀌지 않았음에도 알레르기 비염 증상이 발생한 경우에는 인체 내부 환경을 생각해 보아야 한다.한의학에서는 비염을 인체 상황에 따라 몇 가지로 분류하여 치료하고 있다. 예전보다 추위를 크게 느끼고 찬바람을 견디기 힘들어하면서 날씨가 추워질 때 비염 증상이 더 심해진다면 한성 비염의 상태로 보고 몸을 데워주는 약을 쓰기도 하고 맑은 양상의 콧물, 가래 등이 특별히 심하면서 어지럼증 등을 동반하는 경우에는 담음증의 양상으로 보고 체내 수액 대사를 개선시켜 불필요한 담음을 치료하는 데 집중하기도 한다. 스트레스나 심한 노동 등으로 인해 히스타민 과민성이 증가하여 알레르기 비염 증상이 나타나는 경우에는 몸을 보해주는 치료를 하기도 한다. 알레르기 비염 증상이 오래 지속된 경우 부비동염이 생기거나 콧물이 심하게 넘어가서 인후염, 소화 장애를 일으키는 경우도 있으므로 이를 고려해서 치료해야 한다.알레르기 비염 환자들은 코막힘, 재채기 등으로 삶의 질이 크게 떨어질 수 있다. 수면 장애가 생겨 피로감도 심해지고 어린 아이들의 경우에는 성장에도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수험생의 경우 집중력이 크게 저하되어 학업에 영향을 주기도 하며 오랜 기간 비염 증상이 지속되면 우울감도 생긴다.따뜻한 봄날에는 피어나는 꽃들과 새싹들을 바라보며 산책만 해도 새로운 에너지를 얻는 기분이 든다. 알레르기 비염 증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도 잘 치료가 되어서 콧물 걱정 없는 따뜻한 봄날을 마음껏 즐길 수 있었으면 좋겠다.

2023-03-15

글을 쓰지 않는다는 건

아직까지도 글은 솔직함이고, 폭죽처럼 진실이 절정을 향해 터뜨려질 때에 좋은 글을 쓸 수 있다고 믿는다. 시는 더욱 그렇고 에세이나 칼럼 같은 산문도 마찬가지다.하지만 난 이 모든 걸 가질 수 없고, 가질 수 있다는 의지조차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자 모든 글쓰기가 어려워졌다. 특히 시 쓰기가 그랬고, 모든 사물과 대상과 사람에 대한 본질을 꿰뚫을 수 없다면, 나아가 이야기 속 진실을 모른 채 쓰는 글쓰기라면, 그것은 어리석고도 우스운 객기라 생각하며 지금도 그 생각은 변함이 없다.그래서 나는 기록을 멈췄다. 읽기를 멈추고 사유를 멈추고 시 쓰기를 멈췄다. 단 몇 줄짜리 시에 이토록 거짓과 위선이 가득하다니 환멸이 났다. 진실이 빠진 글은 누군가의 생각과 글을 그저 흉내 내는 것에 불과하며, 더 나아가 글쓰기는 당장의 나의 월세가, 밥이, 옷이 되어주지 못했기 때문이다.대학 졸업 이후에는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활을 유지했다. 화장품을 팔거나 음식을 나르거나 설거지를 하거나 청소를 했다. 필요하다면 2개 이상의 아르바이트를 하며 하루를 쪼개어 바삐 움직였다. 글 쓰는 것 외에도 내가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게 뿌듯했고 지금도 좋은 경험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당시 후회되는 점은 그 일을 하기에는 너의 재능이 아깝다는 무례한 말을 받아치지 못하고 오히려 거듭 무기력해졌다는 점이다. 동시에 무엇을 쓰고 싶은지도, 타인에 대한 눈맞춤도, 정작 나의 마음도 모르면서 써야 한다는 강박에 휩싸인 채 더듬더듬 햇빛이 드는 자리에 앉으려 애쓴, 당시의 혼란과 오기에 너무 집착했다는 점이 안타까울 뿐이다.일을 하다 간혹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올 때엔 가슴이 두근거렸다. 일 년에 세 네 번, 문예지에서 청탁 전화가 걸려 왔기 때문이다. 나를 시인이라 칭하며 작품을 청탁할 때의 민망함, 잊히지 않았다는 안도감, 어떤 작품을 써야 할지에 대한 두려움, 마감일이 다 되어서야 급히 써내려가는 초조함, 그렇게 마주했을 때 내 것 같지 않은 문장들, 모든 것이 잘못되어가고 있다고 확신했지만 어디서부터 잘못되고 있는지 되짚을 여유와 용기가 없다는 진실을 마주하며, 불현듯 이 모든 게 쓸모없다고 여겨졌다.좋아하는 책을 모아둔 책장도, 서점 베스트셀러 칸에 자리 잡은 책을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올려다볼 때에도, 안면만 튼 작가들의 신작이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쏟아지는 광경에 느끼는 소외감도.하지만 이런 나를 더욱 부끄럽게 만드는 건 아직까지도 글을 쓰는 일을 계속해서 하고 있다는 점이다. 계속해서 나를 찾아주는 사람이 있고 나는 어떻게든 쓰고 있으며, 글을 쓰고 다루는 모든 이들이 묵묵히 빛나고 있다고 있는 점에서 나를 더욱 부끄럽게 한다.나는 현재 그 빛남에 출발조차 못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돌고 돌아 내가 책장 앞에서 책을 만지고 있다는 점에서, 나는 이제 미련한 유난스러움을 멈추고 묵묵한 글쓰기를 하겠다는 머쓱한 결론에 도착한다. 윤여진 2018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현재보다 미래가 기대되는 젊은 작가. 유튜브나 인스타그램 속 같은 짧은 시간 안에 즐거움을 주는 인스턴트식 만족감이 나를 기쁘게 하는 건 맞지만, 영상이 끝나고 검은 화면에 내가 잠깐 비출 때의 스스로를 못나다고 생각하는 것, 방구석에 앉아 혼자 너무 편하게 생각 없이 살아 있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일말의 죄책감은 계속 풀어나가야 할 숙제라는 생각을 한다. 나는 분명히 할 말이 있는 사람이고, 그 말을 정확히 세상에 던지고 싶은 사람이기 때문이다.하지만 요즘은 내가 쓰고 싶은 글보다 생활 유지를 위해 써야만 하는 글을 더 많이 쓰고 있다. 기업의 홍보성 글이나 광고 카피 등의 업무적인 글쓰기는 광고에 따른 타겟층이 정해져 있기에 사용자에게 기대하는 의도나 목적, 그로 인해 얻어지는 예측성과를 정확하게 설정한다. 문구 또한 소비자가 카피를 읽는 즉시 반응을 이끌어 낼 수 있도록 최대한 짧고 간결하게 작성한다. 호기심을 자극하여 즉각적인 참여나 구매 등의 행동으로 이어져야 하기 때문이다.다행히 일은 꽤나 적성에 맞다. 치밀하고 정확한 글쓰기와 내가 쓰고 싶은 글쓰기 사이에서 공통점과 적절한 균형을 찾아 애쓰고 있고, 모든 글쓰기가 꽤나 내게 도움이 되고 있단 점에서 요즘의 나는 글과 함께 잘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2023-03-14

2층 아저씨의 참기름

시각, 청각 장애인인 할머니에게 제공된 국민임대주택에서 엄마가 산다. 할머니 부양하는 동거인이라 입주 자격이 된다. 옥상에 빨랫줄 당기고, 스티로폼박스 화분을 놓아 상추, 고추 심을 수 있는 그 집에서 14년째 사는 중이다.영어유치원 급식 일하러 갔더니 같이 일하는 아주머니가 “할머니가 언니 돈 모으라고 안 돌아가고 버티시는 거”라 했단다. 하긴 최소한의 월세와 공과금만 내면 되니 주거비용을 많이 아끼긴 했다. 할머니가 요양병원 들어간 후 엄마는 반려견 순돌이랑 둘이서만 지냈는데, 순돌이는 3년 전 봄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시어머니 병구완하면서, 아침저녁으로 밖에 나가 일하는 엄마를 볼 때마다 아직 변변히 자리 잡지 못한 내 자신이 원망스럽다.3층짜리 낡은 연립주택 1층에는 1년에 몇 천 건씩 민원을 넣어 ‘민원왕’으로 티브이에도 나온 악성 민원인 아주머니가 살고, 2층에는 80대 중반 어르신이 산다. 3층에 사는 엄마는 ‘2층 아저씨’와 살갑게 지냈다. 그분은 젊어 재혼 후 자식들에게 버림 받았다. 아내 되신 분이 금방 돌아가셔서 쓸쓸히 혼자 늙었다. 옥상 오르내리며 이불빨래 널 만큼 정정하셨는데 암 수술 받고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면서 몸피가 반으로 홀쭉해졌다.엄마는 영어유치원 급식 반찬 남은 게 있으면 비닐에 싸서 아저씨 갖다 드리고, 할머니 면회 갔다가 병원 1층 죽 가게에서 소고기죽 사서 갖다 드리고, 행정복지센터에서 김 두 상자 받으면 한 상자 드리고, 내가 낚시로 잡은 생선 갖다 주면 그것도 나눠 드리고, 명절 음식 해다 드리고, 내 생일날 일부러 잡채 더 해서 갖다 드리고 했다. 좋았다 나빴다 하다가 또 요양병원에 입원했는데 퇴원을 안 하신다. 며칠 전 집 앞으로 이삿짐 차가 오고, 수십 년 연락 끊고 지낸 딸이 와선 엄마에게 고맙다고… 병원에서 혼자 돌아가셨단다.얼마 전, 서울의 한 오피스텔에 살던 80대 여성이 분신을 시도했다. 기초생활수급자 신청을 미처 하지 못해 복지의 사각지대에서 오랜 기간 생활고에 시달렸다. 관리비가 7개월이나 연체된 상황에서 방을 비워줘야 하는 날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한 것이다.지난 1월엔 생활고를 겪던 70대 어머니와 40대 딸이 함께 극단 선택을 한 안타까운 일이 있었다. 장사를 할수록 빛만 늘어나고, 월세는 밀려가고, 기초생활수급자 차상위 계층임에도 전기요금 등을 성실하게 납부해 복지 사각지대 발굴 시스템이 오히려 찾아내지 못했다. 유서에는 “장사하면서 빚이 늘었다”, “보증금 500만원으로 밀린 월세를 대신해달라”고 적혀 있었는데, 더 가슴 아픈 건 “폐를 끼쳐 미안하고 미안합니다”라는 문장이다.“어두운 비 내려오면 처마 밑에 한 아이 울고 서 있네. 그 맑은 두 눈에 빗물 고이면 아름다운 그 이는 사람이어라/ 세찬 바람 불어오면 벌판에 한 아이 달려가네. 그 더운 가슴에 바람 안으면 아름다운 그이는 사람이어라/ 새하얀 눈 내려오면 산 위에 한 아이 우뚝 서 있네. 그 고운 마음에 노래 울리면 아름다운 그 이는 사람이어라. 그 이는 아름다운 사람이어라”(김민기, ‘아름다운 사람’) 이병철 문학평론가이자 시인. 낚시와 야구 등 활동적인 스포츠도 좋아하며,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윤동주는 ‘팔복’의 마지막 문장을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영원히 슬플 것이요”라고 썼다. 멀찌감치 관망하는 자의 손쉬운 위로가 아니라 슬퍼하는 자들 속으로 들어가 그 슬픔에 영원히 참여하겠다는 것이다. 이웃의 고통을 보며 맑은 두 눈에 빗물 고이는 사람, 더운 가슴에 바람이 이는 사람, 고운 마음에 아픈 노래 울리는 사람, 그 아름다운 사람을 나는 엄마에게서 본다.아픈 사람이 아픈 사람을 돌보고, 가난한 사람이 가난한 사람을 돕는다. 늙은 사람이 더 늙은 사람을 보살피고, 외로운 사람이 외로운 사람 곁에 있다.2층 아저씨 냉장고를 열어 보니 파 썰어놓은 것, 참기름, 된장 따위가 있어서, 아까워 챙겨오셨단다. “모르는 사람이면 그냥 버렸을 텐데 가족처럼 지낸 분이니까 챙겨왔다”고. 엄마는 오랜 이웃을 잃었고, 이웃이 남긴 참기름, 된장, 대파로 저녁을 지을 것이다. 누군가 살려고 가꾼 것들이 다른 이의 삶을 마저 가꾼다. 삶이 없어도 삶이 이어진다.“봄에 옥상에다 뭐 안 심어?”라는 내 물음에 엄마는 “2층 아저씨가 화분이랑 다 해놨으니까 엄마가 상추 고추 심고 호박도 심어야지” 했다.

2023-03-14

소나무 재선충병

우정구 논설위원 소나무는 우리나라 수목 가운데 가장 많은 분포면적을 가지고 있고 개체수도 가장 많다. 대표적인 침엽수다.소나무는 건조하거나 지력이 낮은 곳에서도 견디는 힘이 강하고, 화강암지대의 고산에서도 잘 자란다. 건축재나 가구, 선박용 등 다양한 용도로 쓰여 우리 민족에겐 가장 친근한 수목이다. 거대하게 자란 노목(老木)은 장엄한 모습을 보이기도 하고 사철 푸른 빛은 곧은 절개와 굳은 의지를 상징한다.봉화, 울진, 삼척 등지에서 자라는 금강송도 결국 소나무다. 겉 껍질이 붉어 적송이라 부르기도 한다. 줄기가 밋밋하고 곧게 자라서 소나무 중에서 최상급 목재로 사용된다. 예로부터 궁궐을 짓는 목재로 쓰였으며 화재로 소실된 국보인 숭례문 복원에도 금강송이 동원됐다.경북 북부지역에 있는 금강송 군락지에는 수령 200년 이상 된 금강송 8만여 그루가 자생하고 있어 국가에서 보호림으로 관리한다. 속리산 정이품소나무나 운문사의 처진소나무, 경북 예천의 석송령 등 많은 희귀한 소나무들은 나무 자체의 스토리와 함께 천연기념물로 지정돼 있다. 소나무만큼 우리민족 문화에 영향을 끼친 나무는 아마 찾아보기 어려울 것 같다.소나무 에이즈로 불리는 소나무 재선충병이 대유행 조짐이라 한다. 작년 대구경북에서는 12만여 그루가 재선충병에 감염됐다고 한다. 산림청은 올해는 이보다 3배 이상 많은 소나무가 감염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1988년 부산에서 처음 시작한 소나무 재선충병은 지금은 전국 대부분 지역으로 번져 재선충 방제가 사실상 힘든 지경에 이르렀다. 재선충병에 걸린 소나무는 한 달 안에 완전 고사한다. 안타깝게도 현재로선 뾰쪽한 대책도 없다. 재선충병 방제에 대한 범국가적 관심이 필요하다. /우정구(논설위원)

2023-03-14

‘우수인력’ 탓하며 수도권집중 계속할텐가

심충택 논설위원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의 서울 이전설에 전주시민들이 떠들썩한 것을 보면서 남의 일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지난해 국민연금이 -8.22%라는 사상 최악의 수익률을 기록하자, 기금운용본부가 전주시에 있는 것이 주요원인으로 꼽히면서 서울이전설이 나왔다. 지방에는 ‘초일류인력’이 없어 연금재정운용을 형편없이 했다는 논리다.지난해의 경우, ‘주식투자 고수’들이 몰려 있는 서울의 유력 투자기관들도 최악의 손실을 기록한 것을 감안하면, 이 논리는 맞지 않다. 언론 보도를 보면, 날고 긴다는 주식전문가들이 몰려있는 한국투자공사(서울 중구)는 지난해 -14.36%의 수익률을 기록했다. 국민연금보다는 성적이 다소 양호하지만 사학연금(-7.7%) 실적도 그다지 좋은 편은 아니다.올 상반기 중에 결정될 국가첨단전략산업(반도체·이차전지·디스플레이) 특화단지 지정을 두고도 ‘지방=초일류인력 부재’라는 논리가 적용되지 않을까 우려된다. 특화단지로 지정되면 고용창출을 포함해 수조원대 경제효과를 거둘 수 있기 때문에 수도권과 비수도권 할 것 없이 20여곳의 지자체가 유치전을 벌이고 있다. 대구·경북에서는 포항(이차전지)과 구미(반도체)가 지난달 말 마감한 정부공모에 지원서를 제출했다.이차전지 분야에는 충북 오창과 울산, 전북 군산도 지원했다. 4년전 ‘배터리 리사이클링 규제자유특구’로 지정된 포항은 이미 이차전지 원료, 소재, 리사이클링 분야에 대규모 투자가 진행되고 있고, 포스코케미칼, 에코프로 등 이차전지 대기업들도 집적돼 있어 초격차기술 확보에는 어느 곳보다 경쟁력이 높다. 그러나 경쟁 지자체 중에 수도권이나 다름없는 오창이 포함돼 있어 꺼림칙하다. 오창에는 이차전지 완제품 생산 업체인 LG에너지솔루션과 에코프로비엠이 있다.반도체 특화단지 공모를 신청한 구미시도 이미 반도체 소재·부품을 공급하는 생태계가 완성돼 있지만, 수도권에서만 8곳(인천·용인·화성·이천·평택·안성·고양·남양주)이 유치전에 뛰어들어 불안한 상태다. 지난해 2월 제정된 국가첨단전략산업법은 당초 비수도권 균형발전을 위한 장치가 마련돼 있었으나, 국회의원들이 너도나도 개정안을 내 놓으면서 지금은 누더기로 변했다. 법제정 당시에는 16조 3항에 “수도권 외 지역을 우선적으로 고려한다”는 내용이 분명히 명시됐지만, 지금은 ‘수도권 비수도권 구분없이 관련 기업이 집단적으로 입주해 있거나 입주하려는 지역도 우선순위에 포함한다’는 새 조항이 들어가 있다. 수도권이라도 관련 생산시설을 많이 보유하고 있으면 유리하도록 변경된 것이다. ‘국가균형발전 정신’이 법 개정작업을 거치는 과정에서 희미해져 버렸다.아직 게임의 룰인 채점표가 나오지 않았지만, 심사위원(국무총리 주재 첨단전략산업위원회)들이 국가균형발전이냐, 아니면 우수인력 확보와 연계된 첨단산업 집적을 우선시하느냐에 따라 유·불리가 갈리게 됐다. 비수도권 지자체는 첨단전략기업이 집중된 수도권과 경쟁해야 하는 한편, 지방끼리도 싸워야 하는 이중난관에 봉착한 상황이다.

2023-03-14

데이터로 바라본 사회

김경외 한동대 교수·AI융합교육원 우리 사회의 대다수 데이터들은 주로 중앙집중형 또는 탈집중형 방식으로 관리되고 있다. 그 중에서도 중앙집중형 데이터 관리 구조의 요지는 권한을 부여받은 핵심 소수 또는 허브(hub)가 대다수 데이터의 저장과 처리를 전담하는 것이다. 관리의 대상이 적기 때문에 효율성이 높고 관리 자체도 용이해 생산 최적화된 방식의 구조라고 볼 수 있다.따져 보면 우리 사회도 데이터와 마찬가지로 많은 부분에서 중앙집중형 구조를 띠고 있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하는 대다수의 조직 활동만 보더라도 여러 명이 동등한 의사결정을 갖는 것보다 한 명이 최종 의사결정을 갖고 일을 추진하는 것이 훨씬 덜 소모적이다. 직장인들의 최대 고민이라고 하는 그 흔한 점심 메뉴 고르는 것조차 개개인이 의사결정을 갖는 것보다 담당자 한 명이 결정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다. 생산성이 최우선시되는 산업시대에서 중앙집중형 방식은 효율성을 최대화할 수 있는 최적의 방식이었다. 이러한 이유로 우리 사회의 상당 부분이 과거부터 지금까지 중앙집중형 구조로 구성되어 왔던 것이다.그러나 중앙집중형 구조는 정보의 비대칭성과 종속성이라는 아주 치명적인 구조적 문제를 안고 있다. 중앙집중형 구조에서 허브는 모든 정보를 관리하고 통제할 수 있는 큰 권한을 부여받는다. 모든 사람들은 오직 허브를 통해서만 정보를 얻을 수 있고, 이는 곧 허브와 허브에 연결된 이용자 간에 큰 불평등을 야기한다. 또한 중앙집중형 구조에서 구성원들은 지나치게 허브를 의지하게 된다. 허브로의 종속은 허브 없이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개인의 주권과 정체성의 상실을 뜻한다. 생각해보면 이는 애석하지만 낯설지 않은 우리 사회의 한 단면이기도 하다.이러한 구조적 문제를 데이터는 분산형 구조를 통해 해결하려고 한다. 분산형 구조는 별도의 허브를 두지 않고 모든 객체가 다 연결되어 데이터에 서로 접근하도록 만드는 방식이다. 분산형 구조에서는 다 연결되어 있어서 이를 적용하려면 모두를 관리해야 하는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다. 그러나 비트코인과 같은 암호화폐의 등장으로 널리 알려진 블록체인 기술이 분산형 구조 내의 투명성과 안정성을 보장해주게 되면서, 분산형 구조는 실제로 활용 가능한 것이 되었다. 실제로 에스토니아는 블록체인 기반으로 전자 정부를 도입하여 성공적으로 운영하고 있으며, 이러한 시도들은 앞으로 더 다양한 분야에서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중앙집중형에서 분산형 구조로의 변환은 단순히 데이터를 관리하는 방식이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데이터의 거버넌스 문제가 바뀌는 것을 의미한다. 분산형 구조의 핵심은 단순한 연결성의 확장이 아니라 정보의 개방성과 평등이다. 분산형 구조 하에서 모든 사람들은 평등한 권리를 갖는다. 정보의 투명성이 보장될 때, 소위 말하는 동등한 권리와 공정한 기회가 생길 수 있는 것이다. 필자는 생각해본다. 데이터가 그러하였듯이, 우리 사회도 지금보다 더 연결되어 정보를 투명하게 공유한다면 개인에게 동등한 권리와 공정한 기회가 지금보다는 더 보장될 수 있지 않을까? 결국 이것이 우리 모두가 꿈꾸는 공정과 상식이 통하는 사회로의 첫걸음이 되지 않을까?

2023-03-14

의미 있는 삶의 방향, 종오소호(從吾所好)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가지마다 망울이 맺히고 조금씩 봄꽃이 피어나고 있다. 화창해진 날씨에 차츰 개화의 몸짓을 보이며 봄날이 성큼 다가온 듯하지만, 느닷없이 휘몰아친 비바람과 추위에 서둘러 핀 꽃들이 화들짝 놀라지는 않았을까 싶다. 궁핍의 대지를 보듬으며 돋아나는 새싹과 피어나는 꽃들을 시샘하는 추위가 일진광풍처럼 부산을 떨어도, 이미 봄빛의 움직임은 비단 안개를 두른 듯 아장아장 생동의 걸음마가 한창이다. 그렇게 다시 또 봄날이 시작되고 산과 들은 부풀어가고 있다.해마다 봄이면 그 자리에 새순을 틔우고 꽃을 피우는 것이 저절로 이뤄지는 일은 아닐 것이다. 혹독한 겨울의 추위를 이기고 메마른 땅 속에서 자양분을 찾으며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창조의 일손을 멈추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해마다 꽃들은 서로 비슷하게 핀다(年年歲歲花相似)지만, 기실은 비슷하면서도 다르고, 다르면서도 비슷하게 꽃과 잎새를 드리우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꽃자리나 잎차례를 벌이는 것은 화초나 수목에게 있어선 생장의 본질이고 절정의 산물이 아닐까 싶다.매년 같은 꽃이 피는 것에 비해 해마다 사람들은 같지 않다(歲歲年年人不同)는 대구(對句)로 인생의 무상함을 읊었지만, 필자의 관점에서는 인연 따라 시류 따라 사람은 변화하며 상황에 대처해야 한다고 본다. 변화하지 않으면 도태되듯이 새롭게 거듭나지 않으면 지속적인 발전을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새로운 문화와 환경에 적응하며 변화하게 만드는 것은, 결국 자신의 특장을 꽃피우게 하고 삶의 기반을 더욱 튼실히 일궈 나가는 계기가 될 것이다.이렇듯이 화초가 꽃을 피우는 현상이나 사람이 변화, 혁신하는 것은 자신의 본질과 궁극적인 가치를 인식하고 보다 의미 있는 방향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믿음과 노력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사람은 거개가 자신의 적성이나 취향에 따라 생각하고 행동하기 마련이다. 자신이 좋아하고 즐기는 바대로 움직이고 일을 해야 편하고 보람되기 때문이다. 내가 좋아하고 잘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그 일을 결코 그만두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그러한 일을 하면서 삶의 진정한 의미와 가치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내가 좋아하는 바를 쫓아간다(從吾所好)’고 공자는 2천500여 년 전에 설파했던 것일까?그러고 보니 15년 전 필자의 첫 개인전 도록의 첫 장에 수록된 작품이 예서로 쓴 종오소호였다. 아마도 당시의 야무진(?) 마음에서 내가 좋아하고 하고싶은 바를 꾸준히 느끼고 즐기면서 몰입과 천착하리라는 다짐에서 쓰고 배치했던 것 같은데, 과연 어느 정도로 좋아하는 바를 쫓고 누리며 의미를 다져왔는지는 미지수이다. 다기(多岐)한 삶을 살면서 어찌 좋아하는 것만 쫓고 추구할 수 있으랴만, 생각과 마음이 이르고 몸이 흔쾌히 따르는 일과 활동을 하는 것은 분명 긴요하고 가치로운 시도이다.

2023-03-14

‘더 글로리’와 학교폭력의 계급화

홍덕구 포스텍 소통과공론연구소 연구원 지난 3월 10일, 넷플릭스 드라마 ‘더 글로리’ 2부가 공개되었다. 주로 로맨스물의 주연을 맡아 왔던 송혜교의 파격적 이미지 변신과 개성 넘치는 악역·조연들의 열연이 빛을 발하는 작품이다. 한번 시청을 시작하면 끝을 보기 전에는 멈추기 어려울 정도로 중독성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복수를 테마로 삼는 이야기를 복수극이라고 한다.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복수극은 멜빌의 소설 ‘백경(모비 딕)’일 것이다. 작중에서 에이허브 선장은 과거 자신의 다리를 앗아간 흰 고래 모비 딕에 대한 복수심으로 살아간다. 결말에서 그의 배는 모비 딕에 의해 박살나고 복수는 결국 실패로 끝난다. 이 소설에 대해서는 다양한 해석이 존재하지만, 복수의 덧없음을 말하고 있다고도 볼 수 있다.그런데 요즘의 복수극은 마치 ‘사이다’처럼 시원하고 개운한 복수의 과정 그 자체를 즐기는 장르가 되었다.‘더 글로리’ 1부가 주인공 문동은(송혜교 분)이 복수를 결심하게 된 계기와 조력자들을 만나는 과정을 그렸다면, 2부에서는 본격적인 복수극이 펼쳐지며 악역들이 하나씩 몰락해 간다. 그리고 시청자들은 문동은의 복수가 성공할 것인지를 궁금해 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방식의 복수가 얼마나 통쾌하게 이뤄질 것인지를 기대하며 스토리를 따라간다. 즉, ‘더 글로리’의 시청자들에게 복수의 실패는 곧 ‘고구마’같은 답답함인 것이다. 왜 그럴까?이 문제는 복수의 대상이 누구(무엇)인지와 관련이 깊다. ‘백경’의 복수 대상인 흰 고래는 자연에 속한 존재다. 자연은 인간의 감정이 통하는 대상이 아니므로 선장의 복수심은 결국 자신을 파멸로 이끈다.반면 ‘더 글로리’에서 복수의 이유가 되는 학교폭력은 인간이 만들어 낸 사회구조의 모순으로 발생한다. 작중에서 박연진(임지연 분)은 문동은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 “아, 왜 없는 것들은 인생에 권선징악 인과응보만 있는 줄 알까?”즉, 박연진이나 전재준(박성훈 분), 이사라(김히어라 분)처럼 경제력과 문화자본을 모두 갖춘 상류층들에게 권선징악이나 인과응보는 허상에 불과하다. 따라서 그들은 문동은이나 윤소희(이소이 분)처럼 가정 형편이 좋지 않은 아이들을 괴롭혀도 괜찮다고 믿는다. 설령 들키더라도 돈과 권력의 힘으로 무마할 수 있다고.현실에서도 학교폭력은 힘센 아이가 아니라 계급적 우위에 있는 아이가 저지르는 일이 되었다.실제로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오는 ‘학폭 썰(사연)’들을 보면 가정형편이 어려워 옷차림이나 꾸밈새가 남루한 아이들이 괴롭힘의 대상이 되는 경우가 많다.아이들은 교실에서부터 자신의 계급을 자각하고, 상위 계급에 굴종하는 법을 학습한다. 어른들의 세계를, 이 사회의 근본 구조를 좀 더 날것의 방식으로 답습하는 것이다. 이렇게 성장한 아이들이 집착하는 가치가 ‘능력주의’인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하다.‘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은 이제 옛말이 되었다. 학교폭력을 단지 개개인의 일탈로 볼 것이 아니라, 부의 편중과 교육의 계급화라는 관점에서 분석하고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2023-03-13

정확한 방향 설정과 과감한 실행만이

김규인 수필가 우리나라의 저출산과 고령화 문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들어서는 정권마다 정책을 펴고 돈을 퍼부어도 문제는 여전하다. 매년 수십조 원을 퍼부어도 출생률은 점점 더 줄어들고 고령화는 빠르게 진행한다. 지금 무엇보다도 시급한 것은 출생률이다. 세계에서 가장 낮은 출생률을 생각하면 마음이 답답하다. 이러한 추세라면 멀지 않은 장래에 대한민국은 지구상에서 사라질지도 모른다.낮은 출생률은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니다. 세계 각국도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정책을 쏟아내었다. 프랑스는 GDP 5%에 이르는 가족수당과 대학까지 학비가 무료이고 볼리비아는 12개월, 에스토니아는 85주의 100% 유급 휴가를 준다. 우리나라는 올해부터 0세의 아이를 둔 가정에는 매달 70만 원의 현금을, 1세가 되면 35만 원을 준다. 프랑스는 획기적인 정책의 성공으로 감소하던 출산율을 되돌린 성공적인 사례이다.저출산 문제는 지금까지 단편적인 문제 해결에 치우친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한다. 정책의 과다로 더욱 치솟은 아파트 가격, 여성의 경력 단절과 보육 시설의 부족, 사교육비의 지속적인 증가와 청년 실업 문제는 해결의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다. 사회로 진출하지 못한 청년은 움츠러들고 취업 후에도 높은 집값에 절망한다.저출산의 근본 원인은 청년이 결혼하여 살아갈 주거문제, 아이를 낳아 기르는 출산과 육아를 위한 환경의 미비, 아이를 돌보는 여성의 경력 단절, 낳은 아이를 가르치는 사교육비, 비정규직이 득실거리는 청년 일자리 문제를 꼽을 수 있다. 월급을 모아서는 집을 살 수 없는 아파트값, 상대적인 빈곤만을 느끼게 하는 사교육비, 마음 편하게 낼 수 없는 육아 휴직, 이에 따라 가까스로 얻은 직장을 포기해야 하는 여성의 경력 단절, 언제나 비정규직을 헤매는 청춘들은 혼자 살기도 힘들어한다. 그들에게 누구나 원하는 평범한 일상은 꿈으로만 머문다.아파트 분양 원가를 낮추어 거품으로 가득한 아파트 가격을 정상화해야 한다. 임대 주택을 늘리고 장기 공공임대주택을 확대하여 주택이 투기의 대상이 아니라 주거의 수단이 되어야 한다. 사교육비 문제는 장기적으로 유치원에서 대학교까지 무상교육 도입으로 풀어야 한다. 산업체가 일하기 좋은 여건 조성을 위해 정부는 유인책을 마련하고 산업체는 좋은 일자리를 제공하여야 한다. 정부의 각 부처가 개별적으로 정책을 쏟아내어서는 안 된다. 저출산 관련 문제를 하나의 큰 덩어리로 보고 장기적인 안목에서 정책을 펼칠 필요가 있다. 흩어진 저출산 관련 정책을 모아 모든 부서가 문제 해결에 나서야 한다. 우리보다 먼저 저출산과 고령화 문제를 극복한 프랑스는 우리의 좋은 모델이 된다. 지금 이대로 주저앉을 수는 없지 않은가.국가적으로 중요한 선택의 순간이다. 주어진 문제를 해결하고 앞으로 나아가느냐 주저앉느냐는 우리 손에 달렸다. 나라의 미래를 위한 투자는 돈이 문제가 아니다. 정확한 방향의 설정과 과감한 실행이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프랑스가 해결한 문제를 우리가 못 할 것은 없지 않은가. 가정마다 아이들의 환한 웃음소리를 듣고 싶다.

2023-03-13

경산 갓바위, 그 후덕하고 영험함

팔공산 관봉에는 머리에 보개(寶蓋)를 쓴 불상이 치맛자락처럼 펼쳐진 산새를 내려다보고 있다. 커다란 화강암 바위들 사이로 크고 웅장한 몸체가 앉아있는데, 얼굴은 무뚝뚝하지만 손은 부처님의 깨달음을 상징하는 항마촉지인을 그린다. 머리 위에 넓적한 바위로 만든 보개를 이고 있어 마치 갓을 쓴 것만 같다. 과거의 모양을 잃어버리고 부서져 내린 보개에서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이 석가여래좌상은 흔히 ‘팔공산 갓바위’라 불린다.팔공산 갓바위 불상은 투박한 생김새에 비해 여느 불상보다 마음만은 후덕하다. 절실하게 빌면 한 가지의 소원은 반드시 이뤄준다고 전해져 옛날부터 사람들이 곧 잘 찾아오곤 했다.농사가 중심이었던 농경사회에서는 비가 오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기우제를 지내 왔고, 전국적으로 유명해진 1960년대 이후에는 수능시험을 잘 보기를 바라는 부모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았다.지금도 부처님 오시는 날이나 입시철이 되면 산 아래까지 사람들로 북적여 장사진을 이룬다. 그만큼 영험함을 믿는 사람들이 많은 것이다.‘너무 쉽게 소원을 이뤄주시면 신도들이 버릇 없어진다’고 농담을 던지기도 하니 얼마나 영험한 불상으로 알려져 있는지 짐작해볼 수 있겠다.팔공산 갓바위 불상은 약사여래불로 알려져 있다. 통일신라 9세기쯤 몸체가 만들어지고 고려쯤에 팔각형의 보개를 따로 올렸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사실 미륵불인지 약사여래불인지 아미타불인지는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9세기는 약사여래불이 유행하고 많이 만들어진 시기이기는 하다. 그러나 팔공산 갓바위 불상은 약합을 지니지 않았으니 약사여래불로 보기는 힘들다.또 1821년 ‘선본사사적기(禪本寺事蹟記)’에서는 선덕여왕 7년(638년)에 의현대사가 돌아가신 어머니를 위해 미륵보살을 조성했다고 하며, 1960년까지만 해도 ‘갓바위 미륵님’·‘영험한 미륵님’으로 불렸다고 한다.하지만 항마촉지인과 불리던 이름만으로는 미륵불이라고 확정하기도 힘들다. 학자들은 통일신라 때 아미타불로 만들어졌다가 고려 때 미륵불로 불리다가 현재는 약사여래불로 개칭된 것이라 설명한다. 어떤 불상이 되었든 과거에도 현재에도 후덕한 불상이란 이미지는 확실한 것 같다.남아있는 기록에 의하면 팔공산 갓바위는 불에 구워져도 소원을 들어주는 불상으로도 알려져 있다.지금은 뽀얀 화강암이지만 1970년대만 해도 인근 주민들에게 새까맣게 타버린 불상의 기억이 남아있다. 이것은 경산의 진취적·역사적 성격이 가미된 독특한 기우제에서 비롯된다.팔공산 갓바위에서는 기우제를 지내고 일주일이 지나도 효험이 없으면 불단에다 생돼지 피를 바르고, 인근의 솔가지·장작 등을 불상 주변에 모아놓고 불을 질렀다고 한다. 5m나 되는 석가여래좌상을 검게 태우는 큰불은 머리 위의 보개, 팔각의 판석을 부스러트렸다. 사람들은 용신이 부처의 몸을 깨끗하게 씻어내기 위해서라도 비를 내린다고 굳게 믿어왔었다. 비를 내리게 하려고 불상에 불을 놓는 이러한 호전적인 성격은 경산의 역사와 설화에서도 그 면면을 찾아볼 수 있다.경산에는 특히 용 설화가 많이 남아있다. ‘동해 용왕의 셋째 딸이 계모의 구박을 받아 집을 떠나게 되고 금강산이 아닌 경산의 용성면 배남산에 터를 잡는다. 이곳에서 10명의 자식을 낳아 키우는데 9명을 승천시키고 1명은 죽는다. 딸은 동해 용궁으로 돌아가고, 아홉용은 봄에 승천하고 가을에 하강하여 지역의 물을 다스린다.’ 김종국 박사는 당시 경산지역의 역사와 설화를 비교 연구하면서, 동해 용왕의 셋째 딸은 경산에 파견나온 김유신 군수로, 계모의 구박은 백성의 요구로, 경산의 용성면은 신라의 최전방으로, 10명 중 9명은 살고 1명은 죽은 것은 전쟁 중에 전부 살 수는 없던 현실을 상징한다고 해석했다.본래 불교의 발원지인 인도에서도 용은 부처를 수호하는 존재였으며, 중국에 전파되면서는 중국 전통 용의 형태를 취하게 되었고, 우리나라에 들어와서는 약간의 변형을 거쳐 수용되었다.물이 많은 해안지역을 중심으로 믿어왔던 전통적인 용 신앙은 불교에 수용되면서 더욱 영험함을 획득하게 되고 농사와 관련된 비를 다스리는 신으로서 추앙받게 된다. 팔공산 갓바위 기우제는 하늘과 부처와 용신 모두에게 기원하는 경산의 독특한 제라 볼 수 있다.현재 큰불을 놓던 지역만의 기우제는 사라져 팔공산 갓바위 불상이 검게 물들 일은 없다. 그러나 전국에서 찾아온 이들로 북적이고 그들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지금도 여념이 없는 불상은 산 정상에서 무뚝뚝함을 가장한 채 앉아있다.이만하면 여느 불상 중에서도 으뜸가는 영험함과 후덕함을 지녔다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팔공산 갓바위는 지금도 사람들의 소원으로 넘쳐난다.◇ 최정화 스토리텔러 약력 ·2020 고양시 관광스토리텔링 대상·2020 낙동강 어울림스토리텔링 대상 등 수상/최정화 스토리텔러

2023-03-13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를 예민하게 읽어내는 작가의 눈

원고지에 쓴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을 형상화한 해당 단행본의 표지. 우리에게는 한 명의 인간으로서 세상을 바라보는 눈 외에는 허용되지 않는다. 인간의 얼굴 앞에 붙어 있는 두 개의 눈은 인간이 향하는 앞의 길만을 보도록 제약한다. 우리 인간은 어딘가 거리를 걷고 있으면서 동시에 걷고 있는 우리를 볼 수 없는 숙명적 제약을 가진 존재인 것이다.지금 자기 앞에 앉아 있는 사람의 마음조차 가늠할 수 없는 인간이 어떻게 그가 속해 있는 시대나 사회가 흘러가고 있는가 하는 것을 알 수 있겠는가. 애초에 역사나 통계처럼, 내가 속해 흘러가고 있는 시대의 변화를 가늠하거나, 내가 속해 있는 사회의 불투명한 군집들의 생각을 파악하기 위한 인류의 노력이 발달해왔던 것은 ‘자기’를 벗어난 외부 세계를 파악하기 어려운 인간의 모순을 역설적으로 증명한다.물론, 우리가 우리를 둘러싼 사회가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가 하는 것을 내 속처럼 명확하게 알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 적어도 가늠하고 짐작할 방법들은 존재한다. 인간이 모여서 서로 이야기하거나, 누군가 쓴 글을 읽는 것이다. 각자의 입장이 담긴 각자의 말과 글을 듣고 읽다 보면 우리는 ‘자기’를 벗어나 어떤 타인들의 집합이 그곳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어렴풋하게나마 이해하게 된다. 그러면 우리 각각을 둘러싸고 있는 외로움도 조금은 해소된다. 과거의 작가들의 가장 중요한 역할 중 하나는 바로 자신이 살아가면서 세상을 통해 받았던 인상들을 글을 통해 전달하는 것이었다. 비록 SNS시대에 작가의 그런 역할은 점차 사라져가고 있지만, 자기를 둘러싼 사회를 독특하게 해석하는 ‘작가’의 자리는 다소 변형되더라도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인간은 여전히 ‘자기’를 벗어난 타인의 집합으로서의 사회에 대해서는 알 수 없고, 알고 싶어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작가 박태원이 탄생시킨 ‘구보씨’는 고작해야 대학노트를 끼고 식민지 시대 경성을 활보하는 작가의 페르소나였지만, 그것이 이후 최인훈, 주인석 등에 의해 새롭게 재해석되면서 ‘작가’라는 존재의 대명사가 되었던 것은, 구보씨가 전하는 별것 아닌 세상이 모두 외로운 섬처럼 놓인 우리에게 위로를 주었기 때문이다. 작가는 응당 그렇게 외따로 떨어진 그 섬들로 편지를 발신해야 한다. 그것이 별것 아닌 메시지라고 하더라도.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조금 더 주목해볼 작가는 바로 빙허 현진건이다. 대구 계산동에서 태어난 빙허는 그 당시 많은 지식인이 그러했듯 일본에 유학했다가 돌아와 문학 창작을 시작했다. 우리에게는 비록 ‘운수 좋은 날’의 작가 정도로만 기억되고 있지만, 그는 식민지 초기 한국에서 가장 예민한 눈을 가지고 사회의 변화를 관찰했던 작가였다. 그가 처음 썼던 ‘희생화’라는 짧은 단편은 비록 당시 문단의 중진이었던 황석우에게 혹평을 받긴 했지만, 근대적인 연애에 눈뜬 누님을 바라보는 동생의 모습을 통해 변화하는 사회적 습속을 예리하게 잡아낸 작품이었다. 이어 계속 발표했던 ‘술 권하는 사회’나 ‘타락자’ 등과 같은 작품도 급격하게 변모하고 있는 당시의 사회적 변화를 바라보는 시선을 담고 있는 것이었다. 그의 작품은 단편이라는 완결된 형식으로 사회를 바라보는 작가의 독특한 눈을 보여주는 한국 최초의 사례였다고 해도 그리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현진건이 보여주는 사회의 ‘단편’들은 우리에게는 100년이 지난 옛 사회의 모습이지만, 또 그것이 그렇게 지금의 사회에서 멀기만 한 것은 아니다. 가만히 읽고 있다 보면, 우리 사회가 갖고 있는 삶의 고단함과 모순, 그리고 새로운 세상에 눈뜸과 허위의식 등이 새겨지듯 들어온다. 가끔 스마트폰 속 ‘사회’로부터 ‘자기’가 조금 멀어지고 있다고 느껴질 때, 그럴 땐 사회에 대한 작가의 눈이 담긴 소설을 권한다. 조금은 위로가 된다./송민호 홍익대 교수

2023-03-13

초저출산,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변창구대구가톨릭대 교수·국제정치학 세계 최악의 출산율 0.78명, 이것은 청년들의 ‘고통’과 ‘가치관’을 반증한다. 취업·결혼·출산·육아는 그들만의 책임이 아니다. 정부는 출산율 제고에 16년간(2005∼2021) 280조를 투입했지만 완전히 실패했다. 돌팔이 의사가 중환자의 병을 진단·치료했기 때문이다.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기성세대가 아니라 ‘청년세대의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결혼과 출산은 당사자의 생각이 중요하다. 취업난과 무주택 상황에서 결혼은 언감생심(焉敢生心)이다. 결혼을 해도 출산과 양육에는 엄청난 돈·시간·희생이 요구된다. 출산의 주체인 여성의 일·가정 양립은 어렵고, 이를 해결하려는 정부의 의지는 보이지 않는다. 그러니 ‘돈 몇 푼 주고 아이 낳으라’고 하는 정책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청년세대의 가치관도 변했다. MZ세대는 인간 실존에 대한 근본적 물음을 제기하고 있다. 그들은 자아실현을 위한 자유로운 삶을 추구하며, 결혼과 출산은 방해물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기성세대의 가족주의·가부장주의와는 달리 개인주의·양성평등주의 성향이 강하다. 그들은 자녀가 노후를 보장할 수는 없다고 생각하며, 내생(來生)보다 현생(現生)을 중시하는 현실주의자들이다.이제 우리사회가 가야할 길은 분명하다. 청년세대의 관점에서, 그들의 고통과 가치관을 반영한 정책을 추진하는 것이다. 일회성이 아니라 지속성 있는 중·장기정책으로 삶의 환경을 근본적으로 개선해야 한다. 결혼과 출산이 ‘고통이 아니라 행복’이라는 확신이 설 때 비로소 그들의 선택은 달라질 수 있다.이를 위해 정부는 ‘매우 어렵고 힘든 개혁정책’을 추진하지 않으면 안 된다. 청년들의 취업·주거·육아·교육 등 생애 전반에 대한 정부의 법적·제도적 책임이 크게 강화되어야 한다. 국가소멸위기의 극복은 ‘허울뿐인 위원회’ 수준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유명무실한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를 정부의 공식 부처로 승격하는 동시에 행·재정적 권한을 부여하고 범정부적 협력이 수반되어야 한다.‘국가균형발전위원회’ 역시 마찬가지다. 청년들은 일자리를 찾아 서울로 떠나지만 인구집중에 따른 과잉경쟁과 주거불안으로 고통은 가중된다. 전국 최저의 출산율 0.59명은 서울 청년들의 고단한 삶을 말해준다. 하지만 수도권 집중화는 수도권 유권자들의 발언권을 강화시킴으로써 점점 더 집중화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정치적 장식품에 지나지 않는 ‘허울뿐인 위원회’로서는 국가균형발전도 어렵고 저출산문제도 해결할 수가 없다.양성평등문화의 정착도 시급하다. 출산과 육아는 육체적·정신적 부담이며, 현대여성들은 ‘독박 육아, 독박 가사’를 단호히 거부한다. 양성평등의식이 절실함은 물론, 이를 위한 법적·제도적 뒷받침이 필수적이다. 일·가정 양립을 성공시킨 영국·프랑스·스웨덴의 사례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기성세대의 낡은 의식이나 정치권의 권력 논리를 버리고 청년세대, 특히 여성의 입장에서 생각할 때 비로소 문제해결의 실마리를 찾게 될 것이다.

2023-03-13

가창면의 선택은

홍석봉 대구지사장 가창면은 면적이 111.33㎢로 달성군의 읍, 면 중 가장 넓다. 동쪽은 경북 경산시, 서쪽은 달성군 화원·논공·옥포읍, 남쪽은 청도군 각북면 및 이서면과, 북쪽은 수성구 파동과 접해 있다.지도상으로는 달성군의 다른 읍, 면과 붙어 있지만 중간에 비슬산(1천84m)과 최정산(915m) 등 큰 산이 가로막아 달성군 내에서 섬처럼 돼 있다.하지만 가창면은 달성군내에서 대구시청, 동대구역 등 대구 중심과 접근성이 가장 뛰어나는 등 교통 환경이 최고다.가창면은 신천을 끼고 수성구 파동과 붙어 있다. 7천600명의 주민들은 수성구가 생활권이다. 전화도 국 번호가 같고 우편도 수성우체국 관할이다. 학군도 대구 중·동·북·수성구와 함께 1학군에 편성돼 있다. 1957년 달성군에서 대구시로 편입돼 동 지역이 되기도 했다. 그러다가 1963년 달성군으로 환원돼 현재에 이른다.가창면의 수성구 편입은 선거 때 마다 단골 메뉴로 등장, 편입 공방이 벌어지곤 했다. 하지만 주민 의견수렴 과정과 복잡한 행정 절차 때문에 공론화되지 못했다.가창면은 홍준표 대구시장이 수성구 편입 추진 의사를 밝히며 가장 핫한 곳이 됐다. 불합리한 행정구역 조정의 일환이다. 대구시와 달성군이 합의만 하면 된다. 행안부 승인과 대구시의회 의결 등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가창면 주민들의 의견이다. 찬성 의견이 높지만 반대도 적잖다. 정부의 농촌지역 지원 대상에서 제외되고 부동산 투기규제가 가장 심한 수성구에 편입, 토지거래 제한을 받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행정구역 조정은 비정상의 정상화 과정이다. 주민 의견 수렴 절차를 거쳐 조속히 결정 짓길 바란다./홍석봉(대구지사장)

2023-03-13

다섯 명의 죽음, 피하기만 할 건가

김진국 고문 “앞이 깜깜했다. 땅이 꺼지는 것 같았다.” 2009년 4월 노무현 대통령은 정상문 비서관으로부터 부인 권양숙 여사가 돈을 받아 수사받게 됐다는 말을 들었을 때의 심정을 자서전 ‘운명이다’에 이렇게 기록해놨다.그는 곧바로 홈페이지에 글을 올렸다. “혹시 정 비서관이 자신이 한 일로 진술하지 않았는지 걱정입니다. 그 혐의는 정 비서관의 것이 아니고 저희들의 것입니다. 저희 집(권 여사)에서 부탁하고 그 돈을 받아서 사용한 것입니다.” 자서전에서 그는 “의혹 제기 차원을 넘어 실제 수사가 시작된 만큼 이제 사실을 밝히고 국민들에게 사과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홈페이지에 글을 올렸다”고 밝혔다.그 뒤에 특수활동비 횡령 혐의 수사도 진행됐다. 노 전 대통령은 다시 홈페이지에 글을 올렸다. “저는 이미 헤어날 수 없는 수렁에 빠져 있습니다. 여러분은 이 수렁에 함께 빠져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은 저를 버리셔야 합니다.” 노 전 대통령은 자신이 죽어, 자기 부하와 진보 진영을 살리려 했다.김대중 전 대통령도 사실인정으로 위기를 넘겼다. 정계 은퇴를 번복하고, 새정치국민회의를 창당한 지 한 달째였다. 중국을 방문 중이던 김대중 총재에게 노태우 전임 대통령으로부터 받은 정치자금을 수사한다는 보고가 날아왔다. 김총재는 몹시 당황했다. 그렇지만 그는 사실을 시인하기로 결심했다. 공식회견을 통해 20억 원을 받았다고 공개했다. 결국 그는 다음 선거에서 대통령에 당선됐다.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길은 전혀 다르다. 그의 혐의에 연루된 사람 다섯 명이 스스로 죽음을 택했다. 지난 9일에도 이 대표가 경기도 지사 시절 비서실장이었던 전형수씨(64)가 또 극단적 선택을 했다.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본부장은 “(이 대표) 본인이 책임질 건 책임져야 하는데 항상 뒤로 물러나 있어 그렇다”라며 “그분도 책임질 건 책임져서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노 전 대통령은 자신이 모두 떠안았지만, 이 대표는 혼자 빠져나간다.전 씨는 이 대표가 성남 시장일 때부터 측근이었다. 그러나 그의 혐의는 이 대표의 지시를 이행한 게 전부다. 그는 성남시 행정기획국장 시절 네이버 관계자들로부터 성남FC 후원금 40억 원을 받아낸 혐의를 받았다. 경기도지사 비서실장으로 쌍방울그룹의 대북 송금에 관여했고, 경기도주택도시공사 경영기획본부장 시절에는 이 대표 바로 옆집을 위장 합숙소로 임차한 혐의를 받고 있다.이재명 대표는 “검찰의 미친 칼질을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라고 분개했다. 그러나 그가 받는 혐의는 유죄를 인정하더라도 극단적 선택을 할 정도로 보기는 어렵다. 주변 사람이 극단적 선택을 할 때마다 이 대표는 “고인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 “하위직이라 몰랐다”라고 선을 그었다. 유동규 씨는 자신에게 모두 떠넘긴다는 배신감에 이 대표와 결별을 선언했다. 적어도 극단 선택을 한측근들은 이 대표의 혐의를 없는 사실이라고 방어하기 어렵다고 인정한 것 아닌가. 그렇다면 부하 직원의 잘못까지 떠안지는 못하더라도 본인의 혐의를 해명하고, 잘못이 있다면 국민에게 사과하는 것이 정치지도자의 도리다.이 문제는 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 과정에 불거졌다. 지난달 말 이 대표 체포동의안 표결도 체포 찬성(139표)이 반대(138표)보다 더 많았다. 기권 9표와 무효 11표도 찬성에 가까운 의사 표시라고 봐야 한다. 전체 의원 299명 가운데 민주당 소속이 169명이고, 무소속 의원 7명도 모두 민주당 색이다. 이 대표의 결백을 민주당 의원들조차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의미다. 이 대표는 법원의 구속영장 실질심사를 받는 방법도 거부하고 있다. 그런데 국민이 무엇을 어떻게 믿으라는 건가.전형수 씨는 유서에서 이 대표에게 “이제 정치를 내려놓으라”라고 말했다고한다. 또 “현재 진행되는 검찰 수사 관련 본인 책임을 다 알고 있지 않습니까”라는 말도 남겼다고 한다. 정치지도자는 법적으로 유죄만 피하면 되는 게 아니다. O.J. 심슨이 아니다. 더구나 그는 대통령이 되려던 사람 아닌가.김진국△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3-03-12

여야의 당내 민주주의 실종 위기

배한동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 정당은 민주 정치의 다원주의 이념과 가치를 실현하는 조직이다.전체주의나 공산주의 일당 독재국가에서는 이념이나 색깔이 다른 정당은 찾아 볼 수 없다. 현대 민주주의 국가 정당은 비슷한 정치 이념을 가진 사람들의 정치 결사체여서 복수 정당제를 원칙으로 한다. 정당은 국민들의 다양한 정치적 욕구를 반영하여 정강정책을 만들고 정권 쟁취를 위해 치열한 경쟁을 치른다. 여기에서 당내 민주주의 혹은 정당민주주의는 당원들의 집단지혜를 모으는 핵심적이고 주요한 수단이다. 당내 민주주의의 보장 없이는 정당의 정책 개발의 역동성은 보장할 수 없다.지난 대선 이후 우리나라 여야는 모두 당 운영에서 당내 민주주의 실종 위기를 맞고 있다. 정당 민주주의가 추락된 구도 하에서 정상적인 정책정당은 기대하기 어렵다. 당내 민주적 의사 결정 구도도 갖추지 못하고 어찌 정당간의 협치를 기대할 수 있겠는가.지난주 새 당대표를 선출한 집권 여당의 사정부터 알아보자. 이준석 전 당 대표의 징계 사태 이후 당 운영 방식은 점차 민주적 절차와는 거리가 멀어져 갔다.윤핵관이나 윤심이 지배했던 비대위 하의 집권여당은 여러 행태의 파행을 겪었다. 이번 당 대표 선출과정은 윤심의 경쟁에 지나지 않았다.비윤 진영의 유력한 경쟁자 유승민은 당헌 개정으로 선거 초반 출마를 포기했다. 당내 여론 1위였던 나경원도 윤심의 직격탄을 맞아 출마를 포기했다. 지난 3월 8일 당대표 경선 결과는 윤심의 절대적 지지를 받은 김기현 당 대표가 당선되고 당 최고 위원도 완전 친윤 일색으로 선출됐다. 대통령실의 노골적인 선거 개입 의혹 사건까지 불거져 있다. 집권 여당이 대통령의 국정운영의 성공을 위해 지원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대통령과 여당이 상명하복의 관계가 성립된다면 국정은 그 부메랑으로 위기를 맞을 수 있다. 당내의 비주류인 이준석과 안철수가 배제된 구도에서 정당민주주의는 제대로 작동될 수 없을 것이다.야당인 더불어 민주당 역시 당내 민주주의는 위축되고 당의 지지율도 추락하고 있다. 진보와 개방을 표방하던 민주당은 대선 패배와 이재명 체제 출범 이후 정체성의 위기를 맞고 있다.이재명 당 대표에 대한 사법 리스크와 방탄 국회가 민주당을 옥죄고 있기 때문이다. 민주당 원내 대책회의는 이재명의 체포 동의안을 ‘일치단결하여 막자’고 했으나 그 결과는 의원 상당수가 이탈해 당은 심각한 내홍을 겪고 있다. 민주당 의원 169명 중 138명만이 부결에 동의하고 최소 31표에서 최고 38표까지 동의안에 찬성했기 때문이다. 민주당의 친명 당권파들은 조직적인 반대 세력 색출, 수박 찾기, 이낙연 영구 제명론 등 듣기에도 민망한 대책을 제기했다. 당 대표의 사법 리스크와 그 대응책은 당내의 허심탄회한 토론을 통해 당론을 모아야 한다. 민주당은 여전히 당내의 민주주의의 실종이라는 비극에 빠져들고 있다.이처럼 윤심 지배의 여당과 친명 지배의 야당은 공통적으로 정당민주주의 위기를 자초하고 있다. 대통령이나 당 대표의 의사에 의존한 독점적인 정당 운영은 현대 민주주의 정당제의 운영 방식이 아니다. 모두가 과거 권위주의 통치 시절의 퇴행적인 당 운영일 뿐이다. 위로부터 명령하달 식 정당 운영 방식은 당원들의 의사를 총체적으로 집약할 수 없다.여야 모두 100만 당원 시대를 맞고 있는데 당 운영은 과거의 보스 중심의 운영방식에서 탈피하지 못하고 있다. 소수가 단상을 점령하고 물리적으로 대결하던 정당 대결시대는 끝난 지 오래다.이러한 당 운영방식은 팬덤정치를 강화시키고 내부의 갈증만 증폭시킬 뿐이다. 이러다가 내년 총선 전야 여야는 공히 분당의 위기를 맞이할 지도 모른다. 이런 퇴행적 당 운영 방식 하에서는 정당간의 협치는 더욱 기대하기 어렵다. 국민의 힘에서 ‘국민’이 도외시 되고, 민주당에서 ‘민주’가 배제되면 이 나라의 정당 민주주의는 더욱 요원할 것이다.여야 공히 정당 민주의의 본질인 당내 민주주의부터 정착시켜야 한다. 정당 개혁 없는 정치 개혁은 공염불에 불과하다. 여야 공히 당내의 비주류 의견도 반드시 민주적으로 수렴해야 한다. 보스 중심으로 재편된 당의 당내의 곪아 터지는 갈등은 분당으로 갈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현대 대중 정당의 구조 내에서 온건부터 과격에 이르는 다양한 당내 스펙트럼은 공존돼야 한다. 당의 의사 결정 방식은 탑 다운이 아닌 바텀 업 방식이 되어야 당의 역동성을 살릴 수 있다. 우리 정당도 이권에 따라 이합집산하는 구태를 탈피하려면 먼저 정당의 민주적 운영 방식부터 정착시켜야 한다. 우리도 독일처럼 정당의 재단이나 펀드를 마련해 재정적인 자립 정당으로 만들어 가야 한다. 대통령과 국회의원 공천만을 위한 정당이 아니라 정책 개발 정당으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 그 출발과 종착점은 정당 민주주의의 안착이다.

2023-03-12

건강과 운동에 유익한 호흡법

박성률트레이닝과학연구소장동국대 의과대학 연구초빙교수 우리 몸은 스스로 숨을 쉴 수 있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호흡이 별 것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호흡은 우리 몸을 건강하게 유지하는 가장 기본적인 역할을 한다. 호흡방식도 사람의 몸에 꽤 많은 영향을 미친다. 특히 운동할 때 호흡은 에너지 공급과 근육 재생, 지방분해 및 피로회복 등에 효율적으로 산소를 공급할 수 있는 적절한 호흡법이 병행돼야 운동 효과를 더 높일 수 있다.일반적으로 호흡법에는 흉식과 복식이 있다. 성인의 경우 대부분이 복식보다는 흉식호흡을 하는 편이다. 흉식호흡은 숨 쉴 때마다 가슴이 부풀어 올랐다가 가라앉고, 쇄골부위는 움푹 들어가면서 어깨가 올라가는 것이 특징이다. 복식호흡은 숨 쉴 때마다 배가 외형상 부풀다가 가라앉는 것처럼 보이고, 폐 밑에 횡격막을 아래로 밀어내 상복부만 부풀어 오르는 호흡법이다. 전문가들이 추천하고 여러 연구에서 좋다고 알려진 호흡법은 복식호흡이다. 복식호흡의 장점은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 내쉬게 해 몸 곳곳에 산소가 잘 가게하고, 신체를 이완시켜 고혈압 감소, 체지방 감소, 스트레스 완화, 면역력 강화 등에 효과적이다.그런데 최근 10년간의 연구를 관찰할 경우 운동을 할 때에는 복압호흡(IAP)이 더 효과적이다는 결과가 많다. 복식호흡과 복압호흡의 차이는 호흡을 내뱉을 때 배를 부풀리는가 마는가에 있다. 복식호흡은 횡격막을 사용하여 호흡을 지속하는 방법으로 코어의 활성화에 도움을 준다. 한편 복압호흡은 복강의 압력을 높여 코어 근육과 주변 근육을 강하게 조여 척추의 안정성을 확보하는데 용이한 호흡법이다 할 수 있다.게다가 복압호흡은 복식호흡에 비해 몸의 전반적인 강도와 안정성을 높여주는 호흡법이기에 피로회복과 고강도의 운동에서 몸자세가 흐트러짐 없이 소화할 수 있게 해 주는 게 장점이다. 그러므로 복압호흡은 허리가 아프거나 매일 반복적인 훈련으로 피로가 쌓인 운동선수들에게 큰 효과를 보는 호흡법이다.물론 복식호흡도 흉식호흡에 비해 좋은 호흡법이다. 운동 시 복식호흡을 권장하는 이유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의식하지 않으면 흉식호흡으로 가벼운 호흡만을 하기에, 우선 복식호흡으로 횡격막을 최대한 활용해 호흡하고 복부를 단련시키기 위해서다. 그래서 스포츠의과학자들은 복식호흡을 제대로 익히지 않은 상태에서 복압호흡을 하기에는 조금 어려움이 있을 수 있어 복식호흡 운동 후 복압호흡을 권장한다.이같이 운동할 때 제대로 폐의 전체 용적을 사용하고 몸자세의 안정성을 확보하려면 적절한 호흡이 중요하다. 하지만 특정한 운동의 형태와 강도에 따라 호흡방식에는 유의할 점이 있다.근력 운동 중에는 닫힌 입과 코에 공기를 밀어 넣는 강제 호흡과 힘을 내는 순간 숨을 참는 것 모두를 피해야 한다. 근육이 수축할 때 숨을 내쉬고 이완할 때 숨을 들이쉰다. 예를 들어 아령이나 바벨 운동 중에는 들어 올릴 때 힘이 들어가기 때문에 숨을 내뱉고, 제자리로 돌아올 때 들이마셔야 한다. 이러한 패턴은 호흡과 움직임의 리듬을 만들어 더 오래 버틸 수 있게 하고, 원활한 혈액순환을 도와 몸 곳곳에 효율적으로 영양과 산소를 전달하여 손상된 근육세포 회복이 빨라져 근육 재생에도 도움을 준다.달리기와 같은 유산소운동의 경우 최대 산소 섭취가 필요하므로 중강도 운동에서 두 걸음 동안 숨을 들이쉬고 두 걸음 동안 숨을 내쉬는 방법이 권장된다. 이 같은 호흡 패턴은 깊고 고른 호흡이 가능하며, 옆구리통증을 완화하는 데도 도움이 될 수 있다. 특히 빠른 동작으로 힘을 내는 투기종목에서도 호흡을 내쉬는 것이 효과적이다. 힘을 내기 위해 근육이 긴장하고 수축할 때 숨을 내쉬면 부상 방지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최근 들어 미세먼지의 잦은 발생과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의 창궐 및 장기화 등으로 인한 폐 기능 저하가 문제시되고 있다. 코로 숨 쉬는 들숨근 강화 운동은 심장과 폐의 능력 및 지구력의 증가와 기능적인 일상생활 활동으로 삶의 질 향상에도 효과적인 방법으로 알려져 있다.요즘과 같이 날씨가 쌀쌀할 때는 코로 숨 쉬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차가운 공기는 기관지를 수축시켜 효율성을 떨어뜨리기 때문이다. 입으로 숨을 쉬면 더 많은 세균이 목으로 들어가고 점막이 건조해진다. 잠자는 동안 입을 벌리고 호흡하는 것도 건강에 좋지 않다. 코골이의 위험이 증가하고 산소 공급이 불규칙해지며 타액이 치아를 씻을 수 없어 충치의 위험 또한 높아지기 때문이다.특히나 지속적인 고강도 운동 중에는 산소요구량을 충당하기 위해 입으로 숨을 쉬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에 대해 독일체육대학교(DSHS) 스포츠의학연구소는 코로 흡입하는 산소량이 적을수록 운동능력도 떨어지므로 평소에 코로 숨 쉬는 호흡훈련을 권장한다.사람마다 호흡법은 제각각이다. 무의식적으로 아무렇게나 호흡하는 게 아니라, 운동의 형태와 강도에 따라 적절한 호흡법으로 호흡을 해야 건강을 챙기는 것은 기본이고 운동 효과도 더 좋다.

2023-03-12

문화가 함께 숨 쉴때 진정한 발전 도시

조현일 경산시장 지역민의 삶의 질을 향상하려면 도시적인 개발도 중요하지만, 문화적인 욕구를 충족시켜 주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 지자체 대부분이 문화행사와 축제, 유적과 스토리텔링으로 지역문화 알리기에 나서고 문화회관을 건설하거나 설립을 서두르고 있다.경산은 고대국가 압독국이 찬란한 문화를 꽃피운 곳이다.1천700여 기의 달하는 무덤과 2만8천여 점에 달하는 방대한 유물이 출토되었고 지배자의 무덤에서는 금동관과 금동관식, 은제 허리띠, 고리자루칼 등이 출토되는 등 독자적인 문화를 형성하였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문화적인 요소에도 경산은 현대에 와서 대구광역시에 귀속된 문화권이라는 인식이 강하다.경상북도에 속하였던 대구시가 대구직할시로 승격되며 경산지역의 일부 지역이 편입되고 대구시의 발전에 가려 경산이라는 지역명이 빛을 잃었다. 불교의 4대 기도 도량의 중의 하나인 팔공산 관봉 갓바위가 분명히 경산시 와촌면 대한리 산44(갓바위로 681-55)에 위하고 있어도 국민 대부분이 팔공산을 대구시의 명소로 기억하고 있다.한때 유명했던 대구 사과도 정확히는 경산 사과였다. 경산지역에서 공부하는 대학생이 10만여 명에 이르지만, 이들이 문화 욕구를 해결한 곳은 대구시였다.경산시민회관 대강당을 이용하는 문화행사가 열렸지만, 오페라나 뮤지컬은 꿈도 꾸지 못하고 영남대가 개관한 천마아트센터도 젊은 층의 문화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했다. 특히, 지역문화를 널리 홍보할 수 있는 지역문화 행사나 축제도 관광객 유치에도 실패해 ‘경산’이라는 도시는 대구와 경북을 벗어나서는 ‘대구광역시 인근 도시’라 설명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하지만, 이제 경산은 문화가 살아 있고 누구나 인정하는 도시로 발전을 위한 준비를 착실하게 하고 있다.먼저 문화적인 욕구를 해결할 문화예술회관의 건립이다. 전액 민자로 상방근린공원 내에 2026년(예정)까지 조성될 문화예술회관은 지상 2층, 지하 1층 총넓이 9천400여㎡의 건축물로 가변무대인 978석의 대공연장과 소공연장, 야외공연장을 갖추고 어떤 무대든 소화할 수 있어 시민의 자긍심을 높이게 된다.또 지역에서 찬란한 문화를 꽃피웠던 압독국을 조명할 수 있는 임당유적전시관은 체험과 볼거리를 넘어 지역 알림이 역할도 담당하게 된다. 임당유적전시관은 2025년 준공돼 압독국의 문화유산 자원을 체계적이고 효율적으로 연구·전시·관리하며 교육·관광자원으로 활용된다.압독국은 고대국가임에도 지배계급이 금동관과 은제 허리띠, 말갖춤 등을 사용한 유력 국가였으며 출토된 유물과 인골, 동물 뼈와 생선 뼈 등을 통해 한국 고대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임당유적에서 발굴돼 보존된 250여 개의 인골자료는 임당유적전시관의 가장 특화된 분야로 고분의 주인공과 순장자를 상상이 아닌 DNA 분석으로 성별을 구별하고 매장 당시의 나이를 추정해 복원한 인물을 통해 얼굴 생김새와 피부, 모발상태, 치아 상태, 질병의 유무도 밝힌 성과가 전시될 것이다.지역의 축제도 분석하고 때가 되면 행해지는 문화행사와 지역축제에 그치지 않고 지역의 특색을 살린 경쟁력 있는 축제로 거듭나고자 용역을 추진하고 축제 콘텐츠 개발과 성공전략을 수립해 지역문화 알림이 역할을 담당하게 할 것이다. 이를 위해 중구난방식으로 계획되고 진행되는 모든 문화행사를 체계적으로 추진하는 경산시 문화관광 재단도 설립할 것이다.경산자인단오제의 경우 개·폐회식은 전통의 의미를 살리려고 계정 숲 일원에서 거행하겠지만 하나인 볼거리인 호장군행렬은 경산 시가지에서 시연해 시민의 관심이 집중되도록 할 생각이다. 특히 지역(하양) 출신으로 한국의 첫 여성 영화감독이었던 박남옥(1923~2017) 감독이 혹독한 시대 속에서도 보여준 여성의 주체성을 살린 시대정신과 21세기를 주도한 영상 등을 조명하고 지역 콘텐츠와 스토리 발굴로 지역의 자긍심을 높이고 로컬문화예술의 중요성을 강조할 것이다. 이처럼 지역이 가진 문화유산을 활용하고 부족한 부분은 채워 경산이 진정한 발전한 도시임을 보여 줄 것이다.

2023-03-12

파락호 숨은 뜻은

고택의 문턱이 낮아 선뜻 들어서는 걸음이 가볍다. 어디론가 가려는 듯 어머니와 아들 형상의 모자석이 길손을 맞는다. 그뿐인가. 하늘의 구름이 내려와 앉은 천운석, 마당에 떡하니 앉아 복을 부르는 복두꺼비, 장수를 기원하는 거북바위, 학봉선생구택(鶴峯先生舊宅)에는 형상들이 주인이다.참봉 김용환 선생은 희대의 기인이었다. 안동의 양반 부호들에게 은밀하게 자금을 받고 강제로 모금도 하였다. 대대로 내려오던 땅 13만 평을 팔아 보태고 300년을 내려오던 학봉종가를 팔았다. 그러면 문중에서 다시 사들이고 팔기를 3번이나 반복했다. 이를 매서운 눈으로 노려본 일제는 요시찰 인물로 지정하고 선생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했다. 그런 참봉이 별시(別市)가 열리면 어김없이 노름판에 나타났다. 노름판에는 전국의 한량과 노름꾼들이 모여들었다. 새벽녘까지 판돈이 부풀면 참봉은 엉뚱한 행동을 벌였다. 화가 난 듯 첫닭이 운 뒤의 갑오(9끗)만도 못하다며 판돈을 몽땅 머흐럽게 생긴 상대에게 침 한 번 뱉고 줘 버렸다. 또 새벽 몽둥이야! 라고 소리치면 누군가 달려들어 몽둥이를 휘두르며 판돈을 빼앗아 가 버렸다.참봉은 매사에 철두철미했다. 일부러 노름판에서 낯선 한량이나 투전판에서 거금을 날렸다는 소문을 냈다. 명분을 만든 셈이다. 여름에도 참봉의 사랑방에는 화롯불이 꺼지지 않았다. 독립군에게 지원한 자금을 적바림한 종이 쪼가리, 사진 한 장 남기지 않고 철저히 태워 없앴다. 내막을 모르는 사람들은 그를 천하의 노름꾼, 파락호(破落戶)라 불렀다. 김 참봉은 스스로 손가락질받는 사람이 되었다. 세간의 불명예스러웠던 온갖 소문들을 뒤로한 그는 마지막까지 입을 열지 않았다. 독립을 위해 피를 나눈 동지가 아들에게는 말해야 하지 않느냐고 했을 때도 그는 입을 다물었다.의로운 일은 숨겨도 드러나기 마련이다. 나라를 위해서는 수치스러움을 감당하고 독립을 위해서는 가진 재산을 아낌없이 퍼주었던 참봉, 나라 사랑하는 일에 한 사람의 선 굵은 행동으로 우리는 백 년이 지나 그의 이름을 부르고 기억한다.살아 천년, 죽어 천년 간다는 주목(朱木)이 고택 곳곳에 있다. 별다른 주목(注目)을 받지 못하다가 어느 순간 관심을 받은 나무가 주목이다. 선생도 살아서는 노름꾼, 한량, 파락호로 기억되다 지금에서야 사철 푸른 성품이 알려졌다. 선생은 살아 백 년도 못 살았지만, 그 정신은 죽어 만 년이 갈 것 같다.내 아버지도 별시가 열리는 곳에 어김없이 나타났다. 돈을 따기 위해 눈동자가 번뜩이는 날이었다. 노름꾼들이 깔아 놓은 멍석에서 아버지의 목소리는 힘이 넘쳐났다. 종지 안에 윷을 넣고 아버지는 주문을 외웠다. 그러고는 종지를 흔들며 멍석 가운데로 던졌다. 아버지는 놀이로 가산은 탕진했고, 꾼들에게는 만만한 허릅숭이였다. 이순혜 수필가 오일장, 대폿집 모퉁이에 노름판이 생겼다. 화투 몇 장을 손가락에 끼우고 콧김을 불어 기를 모았다. 그러나 돈 놓고 돈 먹는 눈치 싸움에 배포를 부려보지 못하고 화투장을 일찍 내려놓았다. 마지막에 다 털리면 개평 몇 푼 얻어 독주를 마셨다. 아버지가 말하는 세상은 쉽게 오지 않았다. 아버지와 김 참봉이 교차한다. 아버지는 내일을 속절없이 기다렸지만 김 참봉은 내일을 열기 위해 돈과 명예를 다 던졌다. 아버지는 입으로 세상을 탓했지만 김 참봉은 몸으로 세상을 바꾸었다.종택을 한 바퀴 돌아 사랑채 마루에 앉는다. 마루 구석에 빛바래고 먼지 쌓인 방명록이 펼쳐져 있다. 한 장 한 장 넘겨본다. 누군가 “사랑채 제비처럼 처마 밑에라도 깃들고 싶다.”라는 글을 남겼다. 나 또한 잠시 눈을 감고 파락호, 그 숨은 뜻에 깃들어본다. 바람 소리에 눈을 뜨고 하늘을 바라본다. 먼 봉우리 위에 구름 몇 점 하얗게 내려다보신다. 나는 여기서 살아서 주목받지 못했던 아버지와 참봉을 기억한다. 이제 죽어 천년 간다는 나무 아래 참봉이 품었던 때를 넘어 더 이어지길 바란다.

2023-03-12

붓다와 니체

김규종 경북대 교수 봄학기가 시작되면 어김없이 ‘명저 읽기와 토론’ 수업을 진행한다. 대학생들에게 책을 읽히고, 발표하게 하고, 운이 좋다면 토론까지 시키는 수업이다. 요즘 학생들은 책과 담을 쌓고 지내기 일쑤다. 살인적인 입시 공부로 피폐해진 몸과 마음, 어린 시절부터 엄마들이 강제한 지긋지긋한 독서, 널려있는 숱한 놀거리. 그것이 학생들에게 책과 거리를 두게 하는 요인이리라.이번 학기에 나는 세 권의 책을 학생들과 읽기로 한다. ‘사는 게 힘드냐고 니체가 물었다’, ‘2030 축의 전환’, ‘대중의 반역’이 순서에 따른 독서 목록이다. 신입생들이 마주하는 급변한 환경에 도움을 주리라 생각하여 프리드리히 니체에게 질문하는 형식의 책을 고른다. 니체 하면 누구나 아는 것 같지만, 그가 남긴 저작 가운데 한 권이라도 통독한 이를 찾기가 쉽지 않다. 고전의 범주에 들어선 책의 운명이 필시 모두 그러할 것이지만.약관 25세에 바젤 대학교 고전 문헌학 교수가 된 니체는 28세인 1872년 ‘비극의 탄생’을 출간한다. 고전 그리스 비극의 본질과 비극의 쇠퇴 원인 그리고 비극의 부활을 리하르트 바그너의 ‘악극’에서 통찰한 명저다. 니체가 제기하는 철학적-정치적-사회학적 논지는 이분법에 기초하는데, 그 출발을 알린 서책이 ‘비극의 탄생’이다. 하지만 10년 만에 니체는 극심한 편두통으로 교수직을 사임한다.소액의 연금으로 죽을 때까지 살아야 했던 니체는 편두통과 가슴 통증, 극도의 근시, 마침내는 정신질환까지 견뎌야 하는 고난의 삶을 영위한다. 그러나 그가 만든 용어 ‘아모르 파티(Amor fati)’는 오늘날까지 이어진다. 나를 죽이지 못하는 고통은 오히려 나를 강하게 한다는 니체의 일갈은 나약한 인간들이 득시글거리는 21세기 20년대에 아주 유효하다. 니체는 이 세상을 괴로움으로 가득찬 곳으로 보았다.생로병사 외에도 애별리고(愛別離苦), 원증회고(怨憎會苦), 구부득고(求不得苦), 오온성고(五蘊盛苦)의 인생 팔고(八苦)를 주장한 붓다는 세상을 고통의 바다, 고해(苦海)라 불렀다. 고통에서 벗어나는 방편으로 붓다가 내세운 ‘팔정도(八正道)’는 의미심장하지만, 평범한 사람이 추구하기에는 너무 어렵고 먼 길이다. 위대한 수행자나 깨달음을 찾아 나선 ‘납자(衲子)’들에게는 맞춤한 것일지 모르지만. 여하튼 붓다와 니체는 모두 세상을 고통의 도가니로 보았다.대상을 보는 같은 눈을 가진 그들이지만, 그것을 해결하는 방식은 다르다. 붓다는 끈기 있는 수행과 정진을 통해서 인간을 옥죄고 있는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가르친다. 우리의 삿된 마음을 가지런하게 정돈하고 호수의 물처럼 평정한 삶을 살아가라는 가르침은 위대하고 깊다. 붓다의 마지막 말씀은 이렇다. ‘세상의 모든 것은 변한다. 방일(放逸)하지 말고 정진하라!’니체는 고통의 한가운데로 곧바로 짓치고 들어가라고 가르친다. 나약하고 섬약한 영혼과 육신으로 일신의 안락과 장수만을 추구하는 삶은 무가치와 무의미로 귀결된다고 역설한다. 힘들고 괴로운 세계와 정면 대결함으로써 그것을 극복해나가는 인간이 초인이라고 니체는 말한다. 장수와 행복을 아침저녁으로 탐하는 우리 시대의 인간들을 보면 니체는 뭐라고 할 것인가?!

2023-03-12

자살률 1위 나라

우정구 논설위원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20년 가까이 자살률 1위를 기록하고 있는 나라다.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가 한국을 개도국에서 선진국으로 공식 인정했지만 자살률로만 보면 아직은 우리는 후진국 수준이다.2021년 기준 인구 10만명 당 우리나라 자살자 수는 26명에 이른다. OECD 평균 11.1명의 두 배가 넘는다.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한해 1만3천여 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으로 집계돼 있다. 10∼30대 등 젊은 층의 사망 원인 1위가 자살이라는 사실도 충격이다.세계적으로 자살자가 많은 나라로 꼽히는 국가 가운데 경제적으로 선진국으로 인정받는 나라는 한국뿐이다. 한국은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이면서도 자살률이 높은 모순적 상황에 처해 있는 나라다.전문가들은 양극화에 따른 상대적 빈곤 등을 자살의 주요 원인으로 분석하고 있다. 하지만 지나친 경쟁을 유발하는 우리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점 등에 대한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는 지적도 많다.보건복지부는 최근 한국 사회에서 발생하는 자살률을 2027년까지 30%이상 낮추기로 하고 자살위험 요소감소 대책 등을 발표했다. 특히 자살위험 요인감소 대책으로 산화형 착화제인 번개탄 생산 금지안을 두고는 논란도 벌어졌다. 인터넷에서는 “번개탄을 금지한다고 자살이 예방된다고 믿는 것은 어리석다”는 등의 비난이 나왔기 때문이다. 자살 원인에 대한 대처보다 수단에 초점을 맞춘 편협한 발상이란 비판이다.최근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측근 인사가 자택에서 숨진 사건이 발생하면서 한국사회의 자살률이 또한번 주목받고 있다. 한국사회의 민낯처럼 돼 버린 자살에 대한 예방대책이 시급하다./우정구(논설위원)

2023-03-12

일류기업으로 가는 길

김종찬포스코인재창조원 교수·컨설턴트 철강 전문 분석기관 ‘월드 스틸 다이내믹스’(WSD)가 2022년 ‘세계에서 가장 경쟁력 있는 철강사’로 포스코를 13년 연속 1위로 선정하였다. 35개 글로벌 철강사를 대상으로 23개 항목을 평가하여 이를 종합한 경쟁력 순위를 매년 발표하고 있는데, 포스코는 친환경 기술혁신, 고부가가치 제품, 인적 역량 등 7개 항목에서 만점을 받았으며 평균 8.5점으로 종합 1위에 선정됐다.한 기업이 13년 동안 1위 자리를 수성하고 있는 사례는 세계 철강사에서 찾아볼 수 없는 전무후무한 기록이라고 한다. 평가받은 경쟁력의 결과는 2022년 9월 한반도에 상륙한 제11호 태풍 힌남노 영향으로 냉천이 범람하여 포항제철소 압연지역 대부분이 수해를 입었을 때 여지없이 증명되었다. 정비부서의 이상 조치 능력, 조업 부서의 내재화된 프로세스 지식, 그리고 그룹사를 포함한 광양제철소 직원들도 휴일을 반납하고 자발적으로 참여하여 수해를 조기 복구한 위기관리 능력은 그 어떤 위기도 포스코를 이긴 적이 없다는 사실을 증명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그렇다면 포스코를 포함한 일류기업의 경쟁력은 어디에서 오는가? 먼저 ‘창의적인 기술력’을 들 수 있겠다. 포스코 포항제철소 정문에는 ‘자원은 유한, 창의는 무한’이라는 문구를 창업 초기부터 게시하고 있다. 70년대 1차 석유 파동 때 석유자원이 20년 정도 지나면 고갈된다는 전문가들의 주장이 있었지만 산업 혁명 전 6억 명의 인구에서 현재 80억이 넘었지만 석유자원 고갈 이야기는 어디에서도 나오지 않는다. 그 이유는 기술의 발전에서 찾을 수 있다. 70년대는 탐사도 시추도 초보적 기술이었고, 대륙붕 연안에서만 석유 생산이 가능했는데 지금은 심해에서도 캐내고 셰일가스는 바위 틈 사이에 있던 가스와 석유를 녹여서 캐어내니 유한한 자원이 창의적 기술에 의해 무한해지고 기술은 자원이 된다.다음으로 ‘임계점’을 넘어서야 된다는 것이다. 비행기가 달리기만 한다고 뜨는 것이 아니다. 활주로를 벗어나기 전 시속 300km에 이르러야 이륙할 수 있다. 배가 부르기 위해서는 마흔아홉 번의 숟가락의 밥이 들어가서 마지막 한 숟가락에 배가 부르는 것처럼 임계점을 넘어야 비로소 성과로 나타나는 것이다. 어찌 보면 입장의 순서가 오기 직전에 자리를 뜨고, 대어가 미끼를 물기 직전에 낚싯대를 걷어 버리고, 땅의 제 임자가 나타나기 직전에 급매물로 처분해 버리니 더 큰 성과와 이익으로 치환되지 않는다. 임계점을 넘어설 수 있는 힘을 실패에서 얻어야 한다.다음은 현장 관리를 위한 ‘생각의 중요성’이다. 부분적인 것만 보면 퍼포먼스가 나오지 않는다. 작은 것에서부터 전체의 성능이 복원되고 유지돼야 한다. 현장의 소음이나 진동에 익숙해지면 불합리점이 보이지 않는다. 그 익숙함이 쌓이면 당연시되고 누구도 의문점을 가지지 않게 되어, 불합리란 싹이 트고 자라 설비는 결함에 의해 고장으로 이어진다. 제품은 고객의 외면을 받아 시장에서 사라지며 기업도 운명을 같이하게 될 것이다.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은 산은 기도로 옮길 수 없고 반드시 삽과 곡괭이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2023-03-12

박사님, 박사님

유영희 작가 최근 종영한 드라마 ‘대행사’의 주인공 고아인은 지방대 출신이라는 차별에 굽히지 않고 불굴의 도전으로 대표가 되었고, 그에 만족하지 않고 머슴으로 살기 싫다며 직원이 주주인 독립 대행사를 차렸다. 드라마의 완성도도 높았지만, 특히 자기 능력을 믿지 못하고 주저앉고 싶은 여성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주었다. 물론 거기에 나도 포함된다.몇 년 전, 자원 활동으로 참여하던 H 생협에 박사 학위가 있는 남자 실무자가 들어왔는데 모두 그를 ‘박사님’이라고 불렀다. 보다 못해, 나도 박사인데 왜 내게는 ‘박사님’이라고 하지 않느냐고 따지듯이 물었지만, 약간 난처해하면서도 별다른 설명 없이 그 관행은 계속되었다.그런데 문제는 나의 속마음이었다. 그렇게 항의한 것은, 다른 실무자들과 구별되게 그에게만 굳이 ‘박사님’이라고 부르는 것이 부당해서 한 말일 뿐, 나를 박사님이라고 불러주기를 바란 것은 아니었다. 속으로는, 그 실무자는 그의 연구 분야와 연관 있는 업무를 하고, 나는 전공과는 별 상관없는 자원 활동을 하고 있었으니 굳이 ‘박사님’이라고 부를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그러던 중 며칠 전, SNS에서 밸러리 영의 ‘여자는 왜 자신의 성공을 우연이라 말할까’라는 책을 보고 생각이 많아졌다. 두어 달 전, S여대 교수가 내게 능력에 비해 성취가 적다며 몇 가지 제안해준 것을 잊지 못하고 있던 터였다. 이 책은 ‘가면 증후군’을 다룬 것인데, 가면 증후군이라는 이름은 1978년 미국의 심리학자 폴린 클랜스와 수잔 임스가 처음 붙였다고 한다.가면 증후군은 남녀를 가리지 않고 모두 경험할 수 있지만, 이 책에서는 여자에 집중해서 설명하고 있다. 여자들이 남자에 비해 자신의 재능과 성취를 행운이라고 생각하거나, 실제 자기는 형편없는데 남을 속이는 사기꾼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많다고 한다. 재능 있고 어느 정도 성취도 한 사람들이 증후군에 빠지는 이유는 실패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자기가 실패하면 ‘거봐, 남들이 알고 있는 나는 가짜거든. 나는 실패할 만해.’ 하면서 자기합리화를 위해 가면 증후군에 빠진다는 것이다. 미국의 유명 여배우 르네 젤위거도 밤에 일어나 ‘그 사람들은 왜 나한테 이 역할을 준 거지? 내가 자기들을 속이고 있다는 걸 모르는 것일까?’같은 생각을 했다고 한다.이것을 극복하기 위해서 밸러리 영은 먼저 ‘가면 증후군’이 내 삶에 어떻게 작동하는지 잘 인식하라고 한다. 예를 들어, 내게 ‘박사님’이라는 호칭에 걸맞지 않다는 의심하는 것이나 낙제 한번 없이 학위를 받은 것, 유명한 대학에서 오래 강의한 것 모두 순전히 운이 좋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바로 ‘가면 증후군’의 작동 방식이다.더불어 실패를 정직하게 받아들이는 힘도 필요하다. 내게 능력이 있는지 자신을 의심할 시간에, 그동안 내가 성취한 일이 무엇인지 목록을 만들어서 균형 감각을 만들고, 하고 싶은 일을 하다가 실패하면 다시 도전해보자. 그러니, 가면 증후군에 시달리는 여자들이여, 자신의 재능과 성취에 대한 의심은 이제 그만 거두자.

2023-03-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