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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언어폭력 ‘정도’라니요?

유영희 인문글쓰기 강사·작가 초등학교 때 장면 하나, 하늘은 파랗고, 길 양옆에는 벼가 넘실거리는 초가을, 경운기가 다닐 만한 흙길을 걸어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멀리서 꼬마 서너 명이 ‘돼지야’ 하고 소리쳤다. 나를 놀리는 말이다. 그날 나는 땅속으로 꺼지고 싶었다. 장면 둘, 마루 끝에 앉아 있는 나를 가리키며 방에서 엄마가 이웃집 아줌마에게 ‘덩치는 인왕산만 한 것이…’ 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날 나는 마루 밑으로 사라지고 싶었다.이 두 장면의 ‘맥락’을 보자면, 길에서 우연히 만난 그 꼬마들의 놀림은 위협과는 거리가 먼 단순한 장난이었고, 엄마의 인왕산 비유는 나의 심한 낯가림을 걱정하면서 나온 말이라 학대와는 아무 상관이 없었다. 그런데도 나는 ‘돼지’와 ‘인왕산’이라는 단어에 심하게 위축되고 이후 성격 형성에 영향을 받았는데, 그것은 나의 ‘기질’ 때문이다. 그래도 이런 말은 하지 않는 것이 좋지만, 언어폭력이라고 죄를 묻기는 어렵다.그러나 국가수사본부장으로 임명되었던 정순신 변호사의 아들 경우는 이와는 성격이 다르다. 정순신의 아들은, 내가 길에서 우연히 몇 번 만난 꼬마가 아니라, 기숙사에서 피해자와 같은 방을 쓰는 동급생이었고, 아버지의 권력을 자랑하며 피해자에게 ‘좌파 빨갱이’, ‘제주도에서 온 돼지’라고 했다. 8개월 이상 지속된 혐오 표현은, 피해자가 호소한 고통을 고려했을 때 명백한 언어폭력이다.그런데 그 부모는 학교의 전학 조치에 불복해서 무죄를 주장하며 대법원까지 소송을 이어가서 가해 학생은 1년 이상 학교에 더 있었다. 피해자가 자살 시도까지 하고 학업을 포기했는데도 변호인 측은 ‘맥락’을 봐야 한다거나, 피해자의 ‘기질’의 문제로 몰아갔다고 한다. 그들이 내세운 논리 중에 특히 내 눈에 들어온 부분은 ‘언어폭력 정도로 고등학교 남학생이 일반적으로 피해 학생과 같은 피해를 입는다고 보기 어렵다’는 내용이었다.리사 펠드먼 배럿은 ‘이토록 뜻밖의 뇌과학’에서 인간은 ‘말’로 서로를 조절한다고 말한다. 이 책에 소개된 한 실험을 보면, 실험 참가자들에게 교통사고가 나기 직전의 위험 상황을 단순히 말해주기만 했는데도 심박수, 호흡, 신진대사, 면역체계, 호르몬은 물론이고, 체내 여러 가지를 제어하는 뇌 시스템의 활동이 증가했다고 한다. 이렇게 사람은 혐오스러운 말을 들으면 뇌는 위험을 예측하여 다량의 호르몬을 혈류로 보내어 생존에 필요한 신체 예산을 탕진하게 된다.이렇게 ‘말’은 인체를 조절할 수 있어서 몇 달 이상 지속적이고 강력한 언어폭력은 만성 스트레스를 일으키고 뇌를 갉아먹는다고 한다. ‘언어폭력 정도로 고등학교 남학생이 이런 피해를 입을 수 없다’가 아니라 ‘언어폭력만으로도 누구나 피해 학생과 같은 피해를 충분히 입을 수 있다.’그러나 피곤할 때 한마디 격려의 말이 마음을 진정시키듯이, 배럿은 말로 망가진 뇌는 말로 회복될 수 있다고 한다. 가까운 이의 따듯한 말도 피해자를 도울 수 있지만, 무엇보다 가해자의 진심 어린 사과가 피해자의 회복에 제일 중요하다. 그날이 꼭 오기를 바란다.

2023-03-05

혁신의 바이블은 무엇인가

정상철 포스코인재창조원 교수·컨설턴트 책의 바이블(Bible)은 성경이라 한다. 그곳에 진리와 길이 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혁신의 바이블은 무엇인지 사뭇 궁금해진다. 정형화된 정답은 없는 것 같다. 혁신은 생물이기 때문에 대내외 변화에 맞게 진화하고 최적화 되어 간다.공룡은 지구 변화에 따라 몸을 작게 진화하지 못해 지구상에서 사라지는 역사가 되었다. 혁신은 생산수준을 높여서 경쟁력 확보와 일하는 사고, 일하는 방법을 진화 발전시켜 생존하는 길이다.세계 유수 기업들이 많지만 시대 변화에 먼저 변화하지 않아 부귀영화를 누렸던 대기업이 하루 아침에 사라지는 사례는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디지털 카메라 시대를 예감하면서도 타이밍에 맞게 변화를 선택하지 않아 쇠퇴의 길을 걸은 필름회사나 100년의 부귀영화를 누리다 사라진 베들레헴제철소도 그 중 하나다.이와는 반대로 일본전산은 1973년 사장을 포함한 단 네 명이 교토의 시골 창고에서 시작해 50년만에 직원 13만명, 매출 16조원의 막강한 기업으로 성장한 비결은 무엇일까. 일본전산은 초기 ‘모터의 크기를 반으로 줄여 납품해달라’는 대기업의 요청에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지만 ‘약점을 핑계로 변명하지 않는다’라는 비즈니스 콘셉트에 따라 긍정적 창조로 핸드폰, PC, 로봇 등 작은 모터 전문생산기업 세계 1위가 되는 계기가 되었다.‘즉시, 반드시, 될 때까지 한다’가 일본전산의 기업 모토로 영세한 시절, ‘밥 빨리 먹는 사람, 목소리 큰 사람, 화장실 청소 잘 하는 사람’ 등의 시험으로 삼류 인재들을 등용해 세계 초일류 기업과 경쟁에서 승리한 인재전략이 성공의 키가 되었다.그것은 기본이 튼튼한 인재를 바탕으로 경영자가 직원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고 지속적인 동기부여를 통하여 생각하는 직원, 성장하는 기업을 만든 비결이었다. 혁신활동은 여러 분야의 문제를 개선해서 생산 최적화하는 것이지만 현장 개선활동에는 문제를 푸는 기법이 있다. 현장의 작업장 환경개선과 공구, 비품 등 일의 편리성 확보를 위한 5S(정리, 정돈, 청소,청결, 습관)활동이 있고, 설비 열화를 예방관리하기 위해 닦고 조이고 기름치며 미결함을 중결함으로 못 가게 하는 원리인 마이머신 활동이 있다.고급 강종을 생산하기 위해 P사가 개발한 My MS 기법은 설비 구조와 작동원리를 이해하며 예지조업까지 가능하게 하는 기능이 있다. 성공의 길은 혁신기법의 수행원리와 기능을 이해하고 활용하는 데 있다.기업생리와 혁신의 원리로 반추해 보면, 혁신의 바이블은 ‘기업의 바른 방향설정과 경쟁력 확보를 향한 문제를 푸는 기법의 최적화 그리고 인재육성’으로 구성된다. 핵심은 문제를 푸는 것인데 기법을 적용할 때 안전과 설비관리, 생산, 품질 등 ‘균형있는 혁신활동’이 되어야 하며, 인사·조직·문화 등 기업전반에 걸쳐 변화를 추구해야 한다.일본전산의 성공사례에서도 경영자의 일관된 경영방침과 작은 모터 개발의 선택과 집중 그리고 인재육성이다. 결국 사람이 하는 일인데 생산하는 과정에서 문제를 풀어가는 직원들의 지속적인 동기부여와 인재운영능력이 성공의 키이고 혁신의 바이블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2023-03-05

서민술 소주

우정구 논설위원 주세와 주정 등 재료비 상승을 이유로 출고가 인상을 고려하던 소주업계가 소주값 인상은 없던 일로 백지화했다. 업계의 소주값 인상 움직임에 정부가 실태조사 카드를 꺼내면서 소주값 인상을 사실상 압박했기 때문이다.최근 정부가 은행 금리에 이어 통신비, 소주값까지 압박을 가하는 강공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고물가 흐름이 좀처럼 잡히지 않자 정부가 시장에 개입하려는 강수로 풀이된다. 시장경제에 맡겨야 할 가격을 정부가 개입하면서 거부감도 있지만 한편으로 정부 고민도 이해될 법도 하다.작년 경우 고물가로 실질소득이 마이너스로 넘어갔다. 연초 들어서는 난방비 폭탄까지 가세하면서 민심이 흉흉해 진퇴양난에 빠진 정부로서는 인위적인 통제 수단이 필요했을 것으로 짐작이 간다.특히 서민의 술 소주가 서민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대단하다. 소주값이 일반식당에서 한 병당 6천원까지 오를 것이란 관측 보도가 나오자 각종 매체에는 다양한 내용의 댓글이 달리기 시작했다.“이제 소주 한잔 사달라는 말도 쉽지 않겠네”, “집에서 마셔라”, “삼겹살에 냉수를 마셔야 하나” 등 소주값 인상에 대한 부정적 댓글이 주류를 이뤘다.서민이나 봉급자가 스트레스를 푸는 데 가장 친근한 소주값 인상에 정부가 민감 반응을 한 것도 이런 이유다. 그러나 외적 요인에 의한 가격 인상이 정부 개입으로 진정될 지는 알 수 없다. 서울에서는 소주 한 병 값이 6천원하는 곳이 등장하고 있다는 소식도 들린다.소주가 서민의 술로 불리는 이유는 맛이 있어서도 아니고 향이 좋아서도 아니다. 단지 저렴하기 때문이다. 생산자와 소비자 모두가 고통을 분담할 때 소주도 서민 술로 우리 곁에 머물게 된다./우정구(논설위원)

2023-03-02

사드가 남긴 것

홍석봉 대구지사장 #1. 국방부는 지난달 경북 성주 사드 기지 부지에 대한 환경영향평가서 초안을 발표했다. 2016년 사드 부지 선정 당시 인체 유해 논란이 인 사드 레이더 전자파의 인체보호기준을 만족했다는 내용이 들어있다. 향후 전자파 저감 방안과 주민 우려 해소 대책도 내놓았다. 성주 사드가 임시 배치 6년 만에 정상화의 길이 열렸다. 주민 대표가 반발하고 있지만 사드 사태는 마무리 국면에 접어들었다.2017년 사드 임시 배치 직후 민주당과 좌파 단체들이 전자파 괴담을 퍼뜨렸다. 주민들은 사드 장비와 물품 반입을 막으며 집단 시위를 벌였다. 반대 단체 등은 “사드 전자파가 참외까지 오염시킨다”며 ‘전자레인지 참외’라고 비아냥댔다. 선동의 끝판왕이었다. 주민과 반대단체들은 거의 매일 소성리 마을회관 앞에서 시위를 벌였다. 김천역 광장에도 주말마다 30여 명 이상 모여 시위를 했다. 시위는 6년 동안 꼬박 이어졌다. 시위는 멈추지 않을 것으로 보이지만 이젠 힘을 잃었다.일손을 놓은 채 시위에 나섰던 주민들과 각지에서 몰려든 반대 단체, 이를 막는 경찰과 충돌로 소성리는 전장터를 방불케 했다. 사드가 남긴 상처는 컸다. 행정낭비와 함께 엄청난 인적, 물적 손실을 초래했다. 공사가 늦어지면서 장병들은 천막과 컨테이너 생활을 해야 했다. 한·미동맹에도 조금씩 금이 갔다. 6년 동안의 간접 피해는 아예 추산이 어렵다. 주민과 반대단체 활동가들은 집시법 위반으로 벌금형을 받았다.#2. 2008년 5월 미국산 쇠고기가 한국인에게 광우병을 일으킬 가능성이 크다는 MBC ‘PD수첩’의 공포 방송에 여중생까지 촛불시위에 나서는 등 집단 시위로 번졌다. 3개월 동안 나라를 뒤흔들었다. 이후 대법원에서 MBC ‘PD수첩’ 일부 내용이 허위로 확인됐다. MBC가 사과 및 정정보도를 했다. 현재까지 전 세계에서 인간 광우병 사례는 단 1건도 발생하지 않았다. 거짓 선동에 넘어간 우리는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 국민들의 심리적 피해는 더욱 컸다. 하지만 아무도 책임지지 않았다.이 밖에도 ‘세월호 사고’, ‘이태원 참사’ 등 관련 가짜뉴스 사례는 수없이 많다. 지금도 계속 생겨나고 있다. 역사적으로는 백제 무왕이 지었다는 ‘서동요’가 있다. 신라 진평왕의 딸 선화공주와 결혼하기 위해 서동이 가짜 노래를 만들어 퍼뜨렸다. 우리나라 가짜뉴스의 원조격이다.1923년 관동대지진 때 일본인들은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넣었다’는 등의 낭설을 퍼뜨려 수 천 명의 조선인을 살해했다. 가짜뉴스가 참혹한 학살로 이어졌다.가짜뉴스(Fake News)는 터무니없는 거짓말을 꾸며낸다는 뜻의 ‘주작부언(做作浮言)’이라는 한자어와 통한다. 특정 세력이 개입되면 파급효과는 폭발적으로 커진다. 우리 사회는 가짜뉴스에 속수무책이다. 피해는 상상을 초월한다. 그런데도 터무니없는 거짓말에 번번이 당한다. 가짜뉴스는 2, 3차 가해로 이어진다. 국민 분열과 불신을 부추긴다. 많은 사회적 비용이 수반된다. 언제까지 가짜뉴스에 휘둘리며 고통받아야 하나.

2023-03-02

박정희가 금기어인가?

김락현 경북부 어느 순간부터 박정희라는 말이 금기어가 된 듯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박정희 전 대통령과 관련된 내용이라면 일단 ‘반대’부터 하고 보는 식의 분위기가 그것도 박 전 대통령의 고향인 구미에서 더욱 강한 것 같아 안타깝다.최근 구미시가 1천억원이라는 돈을 들여 추모관(숭모관)을 짓겠다고 나서 논란이다. 1천억원은 실행예산이 아니라 의지의 표현이라고 뒤늦게 밝혔지만, 논란은 좀처럼 숙지지 않고 있다.시민사회단체와 더불어민주당 경북도당은 구미시가 이미 추모관과 새마을운동테마공원, 역사자료관, 민족중흥관 등 현재까지 박정희 기념사업에 들어간 돈만 1천300억원에 달하는 상황에서 또다시 1천억원이라는 혈세를 들여 숭모관을 짓는다고 비판한다.이들의 말처럼 정말 박정희 기념사업이 이렇게도 많은지 하나씩 따져볼 필요가 있다.우선, 새마을운동테마공원은 2009년 9월 구미에서 열린 대한민국 새마을박람회 당시 외국에서 온 대사들이 새마을운동을 실제로 눈으로 볼 수 있는 곳이 없다고 지적함에 따라 정부가 새마을운동 재현을 위해 추진한 사업이다.특히, 새마을운동은 유네스코세계 문화유산으로 등재된 한국의 문화유산임에도 박정희 우상화 사업으로 치부하는 것은 옳지 않다. 구미가 새마을운동의 종주도시이기 때문에 새마을운동테마공원이 위치해 있을 뿐이다.또 박정희 역사자료관은 영호남 화합사업 일환으로 2014년 3월 동서화합포럼에서 결정된 사안이다. 구미에는 159억원을 들여 박정희 역사자료관을, 김대중 전 대통령 생가가 있는 전남 신안 하의도에는 719억원을 들여 삼도대교를 건설한 것이다.동서화합으로 진영의 논리를 극복한 역사적 사업인 박정희 역사자료관 마저 더불어민주당에서 문제를 삼는다면, 삼도대교 건설에 대한 입장도 함께 밝혀야 한다.구미시도 문제는 있다. 실시설계 등 아무것도 진행되지 않은 추모관 건립사업에 1천억원이라는 예산부터 거론해 논란을 불러일으킨 것은 비난받아야 마땅하다. 그 1천억원이라는 숫자로 인해 문제의 본질이 흐려지고 있기 때문이다.박정희 전 대통령 추모관 건립은 우상화 사업이 아니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객관적이고도 합리적인 재해석의 시작점이 되어야 한다.이제는 소모적인 논쟁보다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고향인 구미에서부터 박 전 대통령의 공과(功過)를 어떻게 계승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할 것이다.구미/ kimrh@kbmaeil.com

2023-03-02

점프 스타팅

강길수 수필가 갑자기 차의 시동이 걸리지 않았다. 구랍(舊臘) 하순의 일이다. 차량 보험사의 긴급출동 서비스를 불러 시동을 걸었다.서비스맨의 말에 따라 반 시간 이상 차를 운행, 배터리를 충전하였다. 일주일 후, 또 시동이 걸리지 않아 다시 긴급출동을 불렀다. 그는 또다시 시동이 걸리지 않으면, 배터리를 새것으로 바꾸는 게 좋겠다고 말하고 돌아갔다. 엔진을 공회전시켜 충전했으나 삼사일 뒤부터 시동이 안 걸렸다. 예전에도 이런 경우들이 있었다. 그때마다 새 배터리로 바꾸었었다.보험 긴급출동 서비스를 더 부를 수 있지만, 미안한 생각이 들어 그만두었다. 마침 집에 다니러 온 둘째의 차에다 시동용 케이블을 연결, 시동을 걸고 또 충전시켰다. 이후부터는 매일 얼마간씩 시동을 걸어 배터리 충전을 시키기로 했다. 나아가, 이참에 자동차 배터리 관리에 대해 인터넷으로 알아 공부해보기로 하였다.배터리 방전 관련 유튜버 영상 시청, 온라인 쇼핑몰 검색 등을 통해 우선 포켓용 전기 테스트기를 하나 샀다. 매일 시동을 걸어 충전하며 배터리 전압변화를 점검하기 위해서다. 다음 긴급출동 서비스맨이 들고 왔던 휴대형 자동차 점프 스타터가 좋아 보여 온라인 쇼핑몰에서 비슷한 것들을 찾아보았다. 종류는 다양했다.결국, 가격이 국산의 반도 안 되는 해외 직구 상품을 사기로 하였다. 품질이 다소 의심되기는 했지만, 감수하고 난생처음 해외 직구 상품을 발주하였다. 문제는 구매 기간이었다. 쇼핑몰의 광고 내용의 배 정도의 기간인 한 달을 기다린 끝에 상품을 받았다. 생각보다 작고 외관도 덜 깔끔했다.그동안 매일 시동을 걸어 충전하며 그 전후의 배터리 전압변화, 충전 시간 등의 데이터를 모았다. 직장에서 했던 품질관리 경험은 배터리의 현 상태를 가늠케 하였다. ‘제대로 될까’하고 찜찜한 가운데 기대를 걸고, 외국산 점프 스타터의 첫 점프 스타팅(jump starting) 실험을 했다. 성공이었다. 배터리 전압이 어느 선 이하로 떨어지지 않는 한, 사용할 수 있겠다는 믿음이 섰다. 차 배터리 걱정은 사라졌다.현대 한국사회의 대표적 점프 스타터는 무엇일까. 저절로 ‘새마을 운동’이라는 생각이 든다. 시동이 차를 달리게 하는 마중물이듯, 새마을 운동은 우리나라 발전의 마중물이었음이 분명하다. 6·25 전쟁 이후, ‘보릿고개’로 표현되던 세계 최빈국 수준의 암울한 나라 상황. 그 황무지에서 ‘근면·자조·협동의 새마을정신’으로 ‘우리도 한번 잘살아 보세!’하고, 국민을 분연히 깨어 일어나 일하게 했던 새마을 운동….정부 주도 새마을 운동에 따른 국민의 자각과 협조, 희생과 노력 덕에 나라가 세계 10위권의 경제적 번영을 이루어냈을 터다.하지만 지금, 한국 사회는 다시 점프 스타팅이 필요한 상황이다. 지난 정부 5년간 늘어난 나랏빚 약 400조만 보아도 그렇다. 어떻게 단 5년 만에, 그전 69년간 쌓인 나랏빚의 60% 가 넘을 수가 있단 말인가.명맥만 이어지는 듯 보이는 새마을 운동을 ‘제2의 새마을 운동’으로 승화시켜, 시들어가는 우리나라 사회에 새로운 점프 스타팅을 하면 좋겠다.

2023-03-02

화사한 봄의 시작, 3월

윤영대 전 포항대 교수 2월 말경이 되자 기온이 들쭉날쭉하고 바람도 강하게 불어 환절기임을 느끼게 한다. 이때쯤 되면 어릴 때 할머니가 ‘영등 할매 내려온데이’ 하시며 장독대에 물 한 그릇 떠놓고 고사를 지내셨던 기억이 있다. 영하의 반짝 추위도 뒷걸음질하며 물러가고 평균온도가 높아질 것이라고 예보하니 이제 곧 초봄의 3월, 만물이 새롭게 생동하는 환희의 계절이 펼쳐질 것이다. 가슴을 열어 생명의 기운을 받아들이고 우리의 일상에도 희망을 불어 넣어보자.3월 첫날은 삼일절, 104년 전 일제로부터의 독립을 위하여 태극기를 흔들며 외쳤던 ‘대한독립 만세’를 입속에서 부르며 태극기를 베란다 밖으로 걸고는 옆 아파트를 둘러보니 태극기의 물결은 거의 없다. 국민의식도 희미해가는 것 같아 마음 아프다.봄이 오는 길목을 찾아 마장지로 갔더니 아직 쌀쌀한 날씨 탓인지 조용한 연못가에 물오리들이 날개를 접고 앉아 봄을 기다리고 있었고, 입학식을 앞둔 각급 학교 교문에는 ‘입학을 축하합니다’ ‘우리 학교에 온 것을 환영합니다’라는 현수막이 걸려있다. 경북교육청 발표를 보면 신입생 없는 초등학교가 32개 교, 1명뿐인 곳이 30개 교이며 전국적으로 147개 교라 하니 저출산으로 인한 학령인구 절벽이 봄에 느끼는 또 다른 겨울이다. 마스크 벗고 입학식을 한다니 아이들은 불안해하고 부모들은 마스크 벗는 연습을 시키고 있다고 하니 코로나의 어둠이 크다.3월이면 꼭 맛보고 싶은 것이 있다. 죽장 산골에서 채취하는 고로쇠 물이다. 올해는 겨울 날씨도 좋았고 비와 눈이 적당히 내려주어 당도가 높고 품질이 우수하다고 한다. 뼈에 이롭다고 골리수(骨利水)라 하니 다음 주말에 4년 만에 열린다는 고로쇠 축제에 가서 고로쇠 한 그루에 한 번만 채취한 첫물을 찾아서 마셔봐야겠다. 봄나물도 나왔다. 어제 식탁에 냉이나물 무침이 올라왔기에 ‘아! 벌써 봄이구나’하면서 그 연초록 잎사귀와 하얀 뿌리의 상큼한 맛을 음미했다. 옛날 달래 냉이 캐러 밭둑을 뛰어다녔던 어린 시절의 추억이 마음의 약이 되고 시골집 화단 틈에 파릇하게 돋아나는 통통한 돌나물 한 줌 뜯어 무쳐 먹으며 술 한잔하려니 요즘 소줏값 인상이 말썽이지만 어쩌랴! 그런데 내가 좋아하는 막걸리값 다툼은 없으니 다행이다.이제 봄이 오는가 보다. 웃자란 나뭇가지들이 눈에 걸리고 낙엽 밑 새싹들의 숨소리가 귀에 들리는 듯하니 화단도 가꾸어줘야겠다. 날이 좀 풀리면 배롱나무의 쭉 뻗어 나간 가지들을 자르고 담장을 넘어가는 뽕나무 가지도 쳐서 모양을 잡아주면 좋겠지. 베란다에서 숨죽여온 난들도 분갈이를 해주어 예쁜 난꽃이 피어나면 난향만당(蘭香滿堂) 그윽한 향기를 맡고 싶다.이제 두꺼운 겨울옷은 빨아서 정리해 넣고 가볍고 밝은 옷차림으로 산뜻한 봄을 맞자. 어느덧 1년이 지난 우크라이나의 전운(戰雲)은 아직도 걷히지 않고, 튀르키예 지진은 계속 땅을 흔들며, 여의도에서는 불협화음이 잦아지는 듯하더니 또 티격태격 싸우고 있다.시골집 처마 밑을 떠난 후 벌써 몇 년째 소식이 없는 제비가 언제 다시 찾아오려나…. 이제 화사한 봄의 계절, 춘3월을 맞이하고 싶다.

2023-03-02

평등만으로 부족하다

장규열 한동대 교수 최근 방영됐던 예능 프로그램 ‘피지컬:100’에 등장한 출연자들은 출신, 성별, 국적, 직업에 상관없이 똑같은 조건에서 겨뤘다. 같은 무게 돌덩이를 들고 버텼으며 같은 밧줄에 매달려 견디었다.누가 봐도 차별없는 동일한 룰을 적용받으며 기량을 다투었다. 완전한 평등을 보장받으며 기량껏 겨루어 결과를 받아들였다. 진 사람은 불평없이 탈락했으며 이긴 사람은 힘차게 다음 승부에 도전했다.평등했으니 괜찮은 것일까. 누구도 차별받지 않고 똑같은 조건만 주어지면 세상은 좋아지는 것일까. 투명하고 평등했으므로 결과는 이제 공정했을까. 몸으로 겨루는 경쟁을 붙이면서 평등한 조건만 내걸면 모두가 결과에 행복할 수 있을까. 모두에게 평등해야 하지만, 공정하기 위해서 더 생각할 필요는 없었을까.경제협력개발기구 OECD는 회원국들에서 ‘성별 간 임금격차’가 어떻게 나타나는지 들여다본다. 남성노동자가 받는 평균임금에 비하여 여성노동자가 어느 정도 받는지 비교한다. 우리나라는 이 통계에서 수년째 최하위를 기록하고 있다. 여성이 남성에 비해 31% 적게 받는다. 세계평균 12%에 견주어 부끄러운 수준이 아닌가. 사회문화적인 다른 까닭을 떠올려도 보지만, 여성이 남성에 비해 평균적으로 여전히 낮은 대우를 받고있음을 시인할 수 밖에 없다. 다 자란 두 딸이 사회생활을 늠름하게 하길 바라지만, 여성이라는 까닭에 공정하지 못한 자리에 서지 않을까 부모는 걱정스럽다.사회가 ‘공정’하려면 개인의 차이를 존중하면서 각자에게 맞는 자원과 기회를 할당해야 한다. 평등을 넘어 공정한 세상으로 나아가야 한다.오는 3월 8일은 ‘세계여성의 날(International Women’s Day)’이다. 여성의 권익향상과 차별철폐를 위해 유엔이 정한 기념일이며 우리나라도 2018년부터 법정기념일로 삼는다.올해 캠페인주제는 ‘공정포용(Embrace Eguity)’이다. 평등한 기회제공만으로는 더이상 충분하지 않으며, 공정한 세상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선언이다.성경은 2000년 전에 이미 ‘남자와 여자가 같다(갈라디아서 3:28)’고 했다. 기나긴 세월을 두고도 아직 우리는 남녀 간에 평등한 세상도 만들지 못했다.그럼에도, 공정한 세상으로 나아가려면 서로가 가진 처지와 배경에 대한 배려와 이해를 새롭게 해야한다. 똑같은 조건만 제공했으니 공정을 이뤘다고 생각한다면, 대단한 오해가 생기고 또다른 불균형에 이르게 된다.평등하고 공정한 세상. 쉽지않은 과제다. 기계적인 평등은 객관적인 조건을 같게해 이룰 수 있겠지만, 보다 공정한 세상에는 더 많은 고민과 배려를 필요로 한다.공감과 이해를 바탕으로 새로운 세상을 지향하는 모두의 다짐이 있어야 비로소 공정한 세상이 오지 않을까. 그나마 평등한 조건을 확보했으니, 공정을 향한 발걸음을 재촉해야 한다. 외부적인 조건이 차별받지 않을뿐 아니라 처지와 배경이 인정되고 능력과 경륜에 따라 공감있는 배려가 제공되는 공정한 세상을 당겨야 한다. 평등을 넘어 공정으로 나아가야 한다.

2023-03-01

학교도서관의 ‘편식’

홍석봉 대구지사장 신학기를 맞아 학교마다 도서관운영위원회 구성에 나서고 있다. 학교 도서관의 도서 선정은 ‘학교도서관운영위원회’에서 결정한다. 이 위원회는 교사위원, 학부모위원, 외부위원(독서교육 전문가) 등 10명 이내로 구성된다. 각 위원 유형별 비율은 학교에서 정한다.자녀가 재학 중일 경우 학부모위원으로, 아닐 경우 외부위원으로 참여가 가능하다. 외부 위원은 관련 자격증이 있고 일정 기간 활동한 경력이 있어야 한다.대체로 학부모위원은 업무 담당 교사가 학교 활동에 적극적인 학부모에게 연락, 위원 참여를 부탁하는 경우가 많다. 또 학교운영위원회와 함께 운영하기도 한다. 때문에 공모하는 경우는 드물다.그런데 도서관운영위원들을 특정 집단이 독식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학교에서 위원 선정에 고심하고 있다고 한다. 한 교사는 우리가 교과서 선정에만 주목하는데 학교 도서관의 도서 구성 내용을 알면 입이 벌어질 정도라고 지적했다. 매년 전교조가 선호하는 좌편향 일색의 도서 위주로 구입하기 일쑤라는 것이다. 이는 전교조 자매 단체인 ‘참교육을 위한 전국학부모회’, ‘평등교육 실현을 위한 전국학부모회’ 등 단체들이 학교운영위, 도서관위원회를 장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 단체들은 학교 위원회를 장악하기 위해 기를 쓴다고 한다. 보수 쪽에서는 별다른 관심이 없다보니 학교마다 대부분 전교조 자매단체가 입김을 발휘하고 있는 실정이라는 것이다.이런 현상이 지속되면 학생들의 독서가 편식이 될 수밖에 없다.독서의 필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하지만 편향된 독서는 독이 된다. 의식 있는 학부모들은 도서관 운영위원회에 관심을 가져야 할 것 같다./홍석봉(대구지사장)

2023-03-01

우리 아이 키 크는 봄이 왔어요

나선택 포항 행복한의원장 봄이다. 겨우내 땅 속에 잠들어 있던 생명들이 기지개를 켜고 성장을 시작하는 봄이다. 사람의 인생을 놓고 보면 아기 때부터 사춘기까지의 삶이라 할 수 있다.의학에서 보는 성장은 신체가 양적으로 증가해가는 과정을 말한다. 정확하게는 측정 가능한 키, 몸무게, 장기의 무게 등이 증가하는 것을 말한다. 성장에서 가장 중요한 요인은 유전이다. 엄마 아빠의 키 유전자를 따르는 것이므로 우리가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환경 요인 또한 중요한데, 영양 상태와 질병 유무, 사회 경제적 요인, 계절(키는 봄에 많이 크고 몸무게는 겨울에 증가한다), 심리적 요인 등이 중요하다. 성장을 집 짓는 것에 비유한다면, 벽돌 시멘트 같은 건축 재료(단백질, 칼슘 등의 영양소)와 이것을 사용해서 집을 짓는 기술자들(호르몬, 연골세포, 골아세포 등), 기술자들에게 지급할 돈(에너지)이 있어야 하고, 공사를 방해하는 요소(각종 질병)가 없어야 튼튼한 집을 지을 수 있다.몸이 아무리 자라고 싶어도 재료가 공급되지 않고 재료를 활용할 수단과 에너지가 없다면 자랄 수가 없다. 병이 있어서 제대로 못 먹고 흡수를 못 하고 병을 치료하는데 에너지를 다 소모하면 제대로 자랄 수가 없다.아이들에게 많이 있는 아토피 천식 건선 등의 질환은 치료약으로 스테로이드를 많이 쓴다. 과도한 스테로이드의 사용은 뼈 생성활동을 저해하고 뼈 기질 생산을 감소시켜서 어린이에게는 성장지연을 일으키고, 성인에게는 골다공증을 생기게 한다. 스테로이드를 사용해야 하는 질병에 걸린 아이들은 반드시 한방 치료를 병행해서 스테로이드 사용량을 줄이고, 결국에는 양약을 끊는 쪽으로 가야 정상적인 성장을 할 수 있다. 한방에서는 스테로이드 성분의 사용 없이 아이의 체질과 약점을 파악하고 체질에 맞는 적절한 처방을 사용하여 질병에 대한 저항력을 높이는 쪽으로 치료를 한다.한방소아과 학회지의 ‘한약투여가 소아의 성장에 미치는 영향’이라는 논문에서 성장치료가 아니라 질병의 치료를 위해 내원한 187명의 환아를 조사했다. 이 환아들은 한약 투여로 호흡기, 소화기, 비뇨기, 피부 등의 질환을 치료했는데, 전체 대상자들이 400일의 진료 기간 동안 평균적으로 4.04의 신장 백분위 상승을 보였다. 1년이 조금 넘는 기간 동안 자기보다 큰 아이들 4명을 추월했다는 뜻이다. 키 크는 한약을 쓴 것이 아니라 각종 질병과 전반적인 건강관리를 위한 한약 투여가 성장에 긍정적인 효과를 나타낸 것을 확인할 수 있다.인체는 매우 복잡하고 최대 성장기가 사람마다 다르다. 호르몬들의 작용 또한 매우 복잡하고 섬세하게 조절된다. 이를 무시하고 성장호르몬만 투여하는 것은 자칫 건강에 큰 해를 끼칠 수도 있다. 성장호르몬은 뇌 속에서 분비된다. 사춘기 이전에는 주로 자는 동안 분비되고, 사춘기 때는 깨어 있는 동안에도 나온다. 자칫 위험 할 수 있는 성장호르몬의 투여 보다는 아이의 몸과 정신이 건강하도록 도와주고, 밤늦게까지 깨어 있지 않도록 지도해 주는 것이 아이를 위해서는 더 좋은 길이 아닐까 싶다.

2023-03-01

졸업 시즌의 교훈

최병구 경상국립대 교수 매년 2월은 졸업 시즌이다. 올해는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인해 비대면으로 개최되었던 졸업식이 3년 만에 대면으로 열리게 되었다. 우리 대학에서는 본부 졸업식에 이어서 각 단과대학 졸업식이 개최되었다. 학과장 보직을 맡은 나는, 단과대학 졸업식에서 우리 학과 졸업생 학사모의 수술을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넘겨주는 역할을 맡았다.그런데 막상 졸업식에 참석한 우리 학과 학생을 대면하니 어색했다. 학과에 부임하고 곧바로 코로나 국면에 접어들면서 많은 학생을 만나지 못한 까닭이다. 게다가 나는 학사모의 수술을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넘기는 것의 의미를 미처 알지 못해서, 혼란스러운 분위기에서 학생들과 눈도 제대로 마주치지 않고 주어진 임무를 끝냈다. 다른 학과장들이 활짝 웃으며 학사모의 수술을 넘기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막연하게 알 수 있었다.저녁에는 지도하는 학부생 세미나 모임의 졸업생 축하 파티를 했다. 며칠 전 세미나 반장으로부터 전해 들은 이야기는 이랬다. 졸업식에 맞추어 세미나 날짜를 잡았다는 것. 2학년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돈을 모아서 졸업하는 선배를 위한 꽃다발을 준비하고, 일부 학생은 축하 케이크를 샀다는 것. 이해가 되지 않았다. 졸업생 중 한 명은 세미나를 오랫동안 했지만, 성실히 참석하지 않는 학생이었고, 다른 한 명은 지난 학기에 처음 들어와서 함께 활동한 기간 자체가 짧았다. 내 기준으로는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축하 파티를 준비할 만큼의 교감이 있지 않았다.모임 시작 전 연구실로 찾아온 졸업생과 이야기를 나누며 그간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평소 크고 작은 대외활동을 많이 한 학생으로 우리 모임에 충실하지 못했던 이유도 워낙 다양한 활동을 해왔기 때문이었다. 그 학생은 우리 세미나에 성실하게 참석하지는 못했지만, 취업을 위한 모임에서는 말하기 어려운 자신의 고민을 진솔하게 나눌 수 있어서 좋았다고 했다. 그제야 나의 고정된 시선으로 학생들을 바라보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우리 세미나는 정해진 책을 읽고 토론을 한다. 어쩌면 학생들에게 필요한 것은, 전문 비평가가 될 것이 아니라면 이론을 엄밀하게 읽는 것이 아닐 수 있다. ‘성적’이라는 울타리를 벗어나서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책을 읽고 토론하며, 세미나를 마친 후에는 술 한 잔을 나누며 속내를 이야기하는 것이 학생들의 일상에 도움이 되고 있었다. 비록 누군가와 보낸 시간이 길지는 않았지만, 자신의 고민을 공유했다는 사실만으로 학생들은 동질감을 느끼고 있었다.대학을 졸업한 대부분 학생이 설렘보다는 두려움을 더 많이 느끼는 시대가 되었다. 어딘가에 취업하지 못하고 졸업을 마주한 학생들의 두려움을 얼마만큼이나 짐작할 수 있을까. 끝나지 않는 경쟁의 수레바퀴를 몸으로 체감한 학생들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이제부터라도 책을 매개로 술 한 잔 나누며 누구나 자기 이야기를 편하게 할 수 있는 세미나를 만들어야겠다. 아니 정확히 말해 나만 생각을 바꾸면 된다.

2023-03-01

버려진 사진

윤명희 수필가 친구가 운영하는 고물상에 들렀다. 부탁해 둔 주물난로가 들어왔다는 연락을 받은 그 날은 겨울 추위가 막 들어서고 있었다. 친구는 화물차에서 묵은 짐들을 내렸다. 요양원에 간 이웃 할머니의 살림을 정리 중이라 했다. 냉장고에서 나온 계란 몇 알이 소쿠리에 담겨 있고 그 옆에는 미숫가루가 반쯤 담긴 통과 고춧가루 통이 발치에 차였다. 냉동실에서 나온 고등어와 얼어붙은 시루떡 몇 뭉치에 지난 가을에 넣어 둔 홍시까지 혼자 살아 온 할머니의 생활이 다 보이는 듯했다.바닥에 떨어진 수주(數珠)를 줍는데 발밑에 사진이 있었다. 남의 얼굴을 밟고 있는 것 같아 발이 화들짝 놀라 뛰었다. 고물상의 흙먼지를 덮어쓴 여러 장의 사진을 집어 들었다. 사진에는 할머니와 단발머리의 소녀가 있었고 친구인지 형제인지 모를 동년배의 모습도 있었다.짐을 내리던 고물상 친구는 할머니의 자식들이 이런 걸 왜 챙기지 않았는지 모르겠다며 넘어진 박스를 세웠다. 박스에는 효자손을 비롯한 잡동사니와 많은 사진이 들어있었다. 여러 짐들이 분류되어 고철더미 위로 던져지고 잡동사니들은 대형 쓰레기봉투로 들어갔다. 친구는 안이 훤히 보이는 쓰레기봉투에 사진을 넣기가 뭣한지 한쪽으로 모았다. 할머니는 자기 얼굴이 고물상 바닥에서 남의 발에 밟히고 있다는 것을 상상이나 해 봤을까.엄마가 돌아가셨을 때의 일이다. 손때 묻은 살림들을 정리하고 남은 것이 앨범이었다. 동생들과 둘러앉아 앨범을 펼쳤다. 엄마가 살아 온 흔적들이 고스란히 모여 있었다. 대청마루에 앉은 외할머니 흑백사진부터 자식들의 결혼사진, 손자의 돌 사진까지 찰나의 순간들이 영원으로 남았다. 사모관대를 한 아버지와 족두리를 쓴 엄마의 흑백사진은 손이 빠른 첫째 동생이 챙겼다. 자기가 주인공이었던 결혼사진은 제 각각 가방에 넣었다. 손자들과 함께 웃는 사진을 보며 그때의 이야기로 눈물을 찍어냈다.마지막까지 남은 것은 엄마만의 사람들이었다. 연분홍 저고리가 진달래 꽃밭에 숨어있는 친구들은 내 나이보다 더 젊었다. 장구 장단이 흥에 겨운 동네 분들의 사진에서는 내 어릴 적 친구들의 부모들도 있었다.동시대를 살아온 그들의 행적은 아무도 챙기지 않았다. 그 인연들은 우리에게 그리 소중하지 않았다. 더군다나 기억하고 싶어 찍어 둔 관광지의 사진들은 길바닥에 버려지는 광고 전단지나 별다르지 않았다. 남은 사진들을 모으니 앨범 한 권이 되었다. 맏이인 내가 보자기에 싸서 집에 가져왔다. 그 후로 나는 카메라 앵글에서 멀어져갔다.기회만 되면 태우겠다는 약속은 빈말이 되어갔다. 그 앨범은 이사할 때마다 창고에서 창고로 옮겨졌고, 이삿짐 속에 묻혀 있는 것조차 알지 못할 때도 있었다. 마지막으로 본 게 언제인지 기억도 아스라한데, 한 번도 뵌 적 없는 동네할머니의 사진 앞에서 뒤늦게 그 앨범을 떠올리고 있다.고물상 마당에 있는 주물난로에 불을 붙였다. 할머니의 자식들을 대신 해 사진을 한 장 한 장 집어넣었다. 삶의 조각들이 타들어가는 소리를 멍청히 듣고 있다. 할머니의 모습이 불꽃 속으로 사라졌다.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창고를 뒤졌다. 먼지 앉은 보자기를 푸는 손이 바빠졌다. 앨범은 서로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힘을 주자 오랫동안 잠을 잤던 사진의 한 귀퉁이가 찢겨나갔다. 한 장 한 장 빼며 사람들 속에 묻힌 엄마와 마주했다. 지금의 나와 별반 다르지 않은 당신의 지난 시간들이 누구도 보지 않는 사진으로 남았다.당신의 소중했던 순간들을 가져가시라고 불을 붙였다. 사라지는 불꽃을 보며 휴대폰에 저장된 내 사진들을 넘겨보았다.메모처럼 넣어둔 오래된 것부터 하나하나 삭제했다. 폰을 접어 주머니에 넣고 일어서는데 SNS에 올려놓은 흔적들이 딴죽을 걸었다. 만인이 보는 앨범에 내 생활을 펼쳐 놓고는 열쇠마저 감춘 나도 그 길을 걷고 있었다. 나는 딸에게 문자를 보냈다. 내 인터넷 계정의 비밀번호는 oooo이라고.

2023-03-01

<4>부동산 투자의 실패와 성공을 거듭하다

당나무가 어촌 마을 잠수부의 애환을 계속 이어간다. 굿을 하는 무당이 용마람 태수에게 “태수 태수 비개 태수 용마람에 대장, 대장이 오거 덜랑”이라는 주술로 죽은 머구리 아재의 영혼을 용왕전에 이르게 하는데, 문어귀신으로 보이는 흰 수염을 한 여덟 다리 대문어가 나타났다. 문어가 영리해서 각종 경기 결과를 예측하는 등의 영물로 여기기도 하지만 얼마 전 죽은 아재 머구리가 문어 용왕으로 변하여 새파랗게 젊은 부인에게 빙의가 되어 말을 한다.울음 섞인 부인의 목소리를 빌려, 왜 그동안 나를 그렇게 못 잡아 먹어서, 안달이 났느냐고? 그렇게 날카로운 작살로 수차례에 걸쳐 나를 찌르고 죽이고 했지 않느냐고? 이제 젊은 여자의 목소리로 변한다. 더 큰 목소리로 울면서 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했겠느냐고? 목구멍이 포도청이라서 그냥 굶어 죽느니 용왕이든 문어든 살기 위해서 그랬다고, 죽은 머구리를 살려 달라고 간절히 애원한다. 애원이 먹혀든 것처럼 굿청의 제단에 담아 둔 쌀이 조금씩 움직인다. 무당은 더욱 신명을 울려, 보란 듯이 원혼을 달랜다.1997년 11월 IMF가 닥쳤다. 노원구에서 주유소를 하던 김 사장은 주유소 토지는 그동안 번 돈으로 매입 했지만 건축물을 짓기 위한 자금은 모두 은행 융자로 활용했던 것인데, IMF로 인하여 은행의 금리가 한꺼번에 3%에서 7%까지 올랐고 매번 2년 단위로 연장 해주던 기간도 끝이나 버렸다. 그리고 그 동안 외상으로 기름을 가져 와서 팔아서 그 돈을 갚았는데 이제는 정유사에서도 외상으로 기름을 주지 않았다. 한꺼번에 큰돈이 필요했다. 다른 목 좋은 곳에 있는 다른 부동산을 내 놓아도 팔리지 않았다.결국 부도가 났다. 현실은 너무나 비참했다. 1997년 11월 22일 김영삼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를 계기로 대한민국 경제는 하루아침에 IMF관리 하에 운영되었다. 2001년 8월 23일까지 3년 8개월에 걸친 외환위기 사태,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던 대우그룹도 넘어갔다. 그동안 신경제를 내세우면서 세계부자대열에 끼었다고 자랑하던 게 엊그제인데 하루아침에 빚더미 삼류 국가로 전략되면서 수많은 기업들이 도산하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망하고 말았던가? 지하도에는 걸인이 속출하고 부도를 못 이겨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도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증권에 투자 할 때 닭 계란을 한소쿠리에 담지 말라는 격언이 있다. 김 사장은 돈을 투자함에 있어 분산해서 투자해야 한다는 생각에 골몰 하였으나 적은 돈으로 쪼개어 투자한다는 것은 이론에 불과 했다.그 때 공기업에서 일 할 때 같은 부서에서 근무한 동료였던 강 선배가 S시가 고향인데 거기가 개발되고 있다면서 김 사장 보고 자기 고향동네에 와서 한번 토지개발 사업에 참여 해보라는 것이었다. 마침 그 때 강 선배와 같이 매입한 임야도 있었다. 그 동료 선배의 고향 마을이 S시의 외곽지 이긴 하지만 서울과 가까운 쪽이라서 장래가 있는 곳이었다. 그곳은 아직 주민들이 부동산에 대한 인식이 낮았고 부동산 투기 바람도 불지 않는 곳이었다.토지구획정리사업을 새로 시작하기 위해 조합원을 찾아다니며 참여 동의권을 확보하는데 밤낮이 없었다. 강 선배와 함께 T공기업에 있을 때 잘 알던 A건설회사가 토지구획조합을 구성하여 택지를 개발하는 사업에 참여 했던 것이다. 토지구획정리 사업은 민간조합이 일단의 지역의 토지를 택지로 개발하는 사업인데, 우선 이 사업을 하기 위해서는 토지소유자인 조합원들의 동의서를 확보하는 것이 가장 급선무이었다. 벌써 다른 팀들이 회사를 끼고 설치고 있었다.다행히 이 지역은 강 선배의 집성촌이었다. 우선 강 선배는 집안 문중의 토지소유자를 맡고, 김 사장은 건설회사의 부사장과 함께 그 외 토지소유자를 일일이 찾아다니면서 설득하였다. 강 선배의 가까운 친척이 가장 많은 토지를 갖고 있고, 문중의 임야가 수만 평이나 편입되는 지역으로 자연녹지에서 주거지역으로 풀려 있었다. 서진국 작가 우리가 과반수 이상 동의서를 확보하여 강 선배의 친척을 조합장으로 추대하여 토지구획정리조합을 구성할 수 있었다. 그리고 A건설회사가 시공사로 계약이 이루어졌다. 이 일로 강 선배와 김 사장은 당초 약속한대로 상당한 금액을 보상금으로 받을 수 있었다. IMF로 서울에서 잘 운영 되던 주유소 부도가 나 그동안 엄청난 고난과 시련을 겪어 왔는데, 토지구획정리사업 성사로 어느 정도 회복하는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그 당시 전국적으로 온천관광이 유행했다. 대전 유성에 있는 온천 목욕탕을 경매로 낙찰 봤다. 그 당시만 해도 대전이 한참 발전 해 가고 있었다. 대전 과학엑스포 대회는 전국에서 관광객이 몰려왔는데, 이를 통해 우리나라가 과학 선진국으로 가는 토대를 만들고 있었다.그런데 낙찰 본 온천을 수리하려고 하니 너무나 큰 문제가 발생했다. 법원에서 온천 목욕탕을 낙찰 봤는데 부동산 소유권만 취득하고 지하에 매설되어 온천물을 끌어 올리고 있는 온천공을 매입하지 못 한 것이었다. 온천공에 대한 권리는 소유권과는 별개의 권리로 독립된 법적 권리이었다.

2023-03-01

공정과 상식, 그 표리부동에 대하여

변창구 대구가톨릭대 교수·국제정치학 권력은 비정하다. 어제의 동지가 오늘은 적이 된다. 권력은 위선적이다. 말과 행동이 전혀 다르다. 권력이 약속한 평등·정의·공정 등은 집권을 위한 정치적 수사에 불과하다. 때문에 우리는 권력의 이중성, 즉 그 표리부동(表裏不同)의 실체를 정확히 인식해야 한다.윤석열 정부의 핵심가치는 ‘공정’과 ‘상식’이다. 대선후보 때는 물론이고 대통령 취임식에서도 “공정과 상식이 회복된 반듯한 나라를 세우겠다”고 약속했다. 그런데 지금 국민은 “공정과 상식은 어디에 있느냐?”고 대통령에게 묻고 있다. 도대체 정치를 어떻게 하였기에 집권초반에 벌써 ‘불공정하고 몰상식한 정권’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는가?공정의 전제는 ‘균형’이다. 정의의 여신, ‘유스티티아(Justitia)’가 들고 있는 ‘저울’은 공정성의 상징이다. 판사가 선악을 판단할 때 ‘주관과 편견에 치우치지 말고 공평하게 판단하라’는 것이다. 불공정은 편향에서 비롯되며, 편견과 독선은 ‘권력의 자기중심성’에서 나온다. 공정과 상식의 아이콘(icon)인 윤석열 대통령이 선택적으로 권력을 행사함으로써 스스로 공정과 상식을 무너뜨리고 있다.구체적 사례들은 차고 넘친다. 공적 업무를 수행하는 고위공직자들을 사적 인연에 의해 ‘아·가·패’(아는 사람, 가까운 사람, 패밀리)인사를 했으니 공정할 수가 없다. 또한 검찰·경찰·감사원 등 사정기관의 정치적 중립성과 공정성이 흔들리는 것은 공권력 행사가 ‘내 편, 네 편’ 나누어서 차별적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여당의 홍준표 대구시장이 “요즘 판·검사는 정의의 수호자가 아니라 샐러리맨”이라고 비판했겠는가.‘선택적 언론관’ 역시 불공정의 증표다. 윤 대통령의 외교무대 비속어 발언을 최초로 보도한 MBC 기자들은 전용기 탑승이 배제된 반면, 채널A와 CBS 기자는 기내에서 개별 면담까지 했다. 비판언론에는 법적 대응으로 재갈을 물리고, 친여언론은 특별대우를 하는 것이 공정인가? ‘선한 우리’와 ‘악한 그들’로 갈라치기해서 내편만 챙기니 공정할 수가 없다. 언론의 사명은 감시와 견제인데, 이를 무력화시키려는 것은 몰상식한 권력의 남용이다.불공정의 압권은 대통령과 대통령실의 여당대표 선거 개입이다. 윤심1위 김기현을 당선시키기 위해 선거규정을 변경해서 민심1위 유승민의 출마를 막았고, 당심1위 나경원의 사표를 수리하는 대신 파면함으로써 윤심을 드러냈으며, 윤·안 연대를 말한 안철수에게는 “무례의 극치”이자 “국정운영의 적”이라고 공격했다. 공정하지도 상식적이지도 못한 당무개입이다. 이럴 바엔 차라리 대통령이 당대표를 임명할 것이지 무엇 때문에 선거하느냐는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다.윤석열 정부는 문재인 정부를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삼아야 한다. 평등·공정·정의를 약속했던 문대통령의 표리부동한 행태는 결국 국민의 심판을 받았다. 공정과 상식을 약속한 윤 대통령 역시 명심해야 할 점이다. 대통령이 초심을 잃으면 민심을 잃고, 민심을 잃으면 권력을 잃는다.

2023-02-27

대구 교남YMCA회관

홍석봉 대구지사장 대구 교남YMCA회관은 대구 중구 남성로 약령시에 있는 적산 건물이다. 1914년 건립된 2층의 붉은 벽돌 건물로 외관은 원형을 유지하고 있으나, 내부는 원 모습을 알 수 없을 정도로 많이 바뀌었다. 2012년 대구YMCA유지재단에서 매입, 관리 중이다. 2013년 국가등록문화재로 지정됐다. 현재는 지역 3·1운동의 역사를 소개하는 기념관으로 사용되고 있다.이곳은 일제 강점기 3·1독립만세운동 당시 대구의 지도자들이 회합한 공간이었다. 이후 물산장려운동, 기독교농촌운동, 신간회운동 등 민족운동의 거점공간으로 사용됐다. 1927년 설립한 대구의 대표적인 항일단체 신간회의 주활동 무대이기도 하다. 청년 독립운동을 지원하고 청년들을 계몽하며 독려하기 위한 웅변대회, 법률 강습회, 강연회, 각종 토론회 등을 개최했다. 근대사적으로도 중요한 장소다. 훗날 교남YMCA의 주요 임원과 회원 17명은 건국훈장 애국장 및 독립유공자 훈장을 받았다.이런 교남YMCA에서 3·1만세운동 기념 전야행사가 처음으로 열린다.대구시가 28일 비폭력 평화운동이었던 3·1운동을 기억하고, 대구 3·8만세운동의 거점이 됐던 교남YMCA에서 역사적 의미를 되새기는 행사를 갖는다.‘교남YMCA 독립운동의 길, Peace Dream’이라는 이름으로 열리는 이날 행사는 동아시아 평화포럼, 미디어아트 공연·전시, 체험 프로그램 순으로 진행된다.‘동아시아 평화포럼’에는 한국·일본·중국·태국·우즈베키스탄 5개국 청년들이 패널로 참여, 3·1운동의 정신을 재해석하고 동아시아 지역의 평화공존과 상생을 모색한다.대구 3·8만세운동을 되새기고 평화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홍석봉(대구지사장)

2023-02-27

공감 결핍, 혹은 공감 과잉의 시대

미국의 영장류학자이자 행동심리학자인 에밀 멘젤(Emil Menzel·1929~2012)은 침팬지들에 대한 실험에서 침팬지들도 다른 침팬지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가 하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밝힌 바 있다.즉 다른 침팬지의 마음속에 실제로 어떤 생각이 떠오르고 있는가 하는 것을 명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자신이 대상을 관찰해서 획득한 정보를 바탕으로 대상의 입장이 되어서 생각하는 것이 가능했다는 것이다.이는 인간도 마찬가지이다. 아무리 어릴 때라고 하더라도 인간은 타인의 입장이 되어서 생각할 수 있다. 당연히 그 타인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가 하는 것까지는 완전히 파악하지는 못하더라도, 아빠나 엄마라면 어떻게 했을까 하는 것을 생각하며 그의 입장이 되어 숨겨둔 과자 같은 것들을 찾아낼 수도 있다. 이렇게 우리가 관찰을 통해 얻은 외부의 정보들을 통해 이를 종합하여 타인의 마음을 재구성하는 것은, 그것을 공감(empathy)이라고 부르든 동정(sympathy)이라고 부르든, 우리가 전혀 알 수 없는 타인의 입장이 되는 과정이다.자신의 눈앞에서 눈물을 흘리며 고통스러워하는 사람을 보면서 그와 똑같은 고통을 느끼거나, 세상 모든 것을 얻은 듯한 기쁨을 느끼는 누군가를 보며 덩달아 흡족해진다.그것은 어쩌면 신경생리학자들이 ‘거울 뉴런’이라고 불렀던 감정의 모방이나 전이라는 신체의 기능일 수도 있고, 인간이라는 종의 본능의 영역일지도 모른다. 인간은 그렇게 자신이 한 번도 보지 못한 대상에 대해서도, 심지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몇 줄 글 속에만 존재하는 대상에 대해서도 그의 입장이 되어 공감할 수 있는 존재이다.물론, 우리가 소설이나 영화를 보며 내러티브 속에 등장하는 대상의 입장이 되어 판단하고 감정을 일으키는 것은 이와는 조금 다른 과정일지도 모르겠다. 세계 속에서 우리에게 들어오는 정보들은 동시다발적이고 맥락화되어 있지 않지만, 문학작품이나 영상작품은 그것을 구성하는 정보들이 단단하게 엮여 의미를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작가는 언어 정보나 시각 정보의 전달 순서를 통해 독자나 관객을, 그 속에 들어 있는 상황에 몰입하도록 만들고, 그 속의 생판 타인에게 감정이입하도록 만든다. 문학작품을 읽는 경험 중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은 바로 그렇게 고유한 ‘나’로부터 벗어나 타인의 입장이 되어 생각해보는 공감의 영역일 것이다.그런데, 최근 사회에 타인에 대한 공감의 영역은 과잉되어 넘쳐흐르기도 하고, 결핍되어 사라져 버린 것 같기도 하다. 타인이 겪은 어떤 일에 대해 마치 자신이 상처받기라도 한 듯 맥락화되지 않는 분노를 쏟아내는가 하면, 타인의 어떤 당연한 아픔에 대해서는 아무런 고통도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흔하다. 뿌리를 알 수 없는 복수심리를 다룬 영상 작품들이 넘쳐나는가 하면, 조금이라도 진지한 의미를 담고 있는 소설의 서사에는 전혀 공감하지 못한다. 공감의 결핍과 과잉이 공존하는 모순된 시대이다.문득, 우리가 타인과의 거리를 잃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해본다. 우리가 누군가의 마음을 다룬 소설을 읽고, 영화를 본다고 해서, 타인을 알게 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타인의 입장을 이해하고 공감했다고 생각하는 때 타인의 존재는 미궁으로 빠져든다.까뮈가 ‘이방인’에서 보여준 뫼르소의 부조리가, 올더스 헉슬리가 풍자했던 ‘멋진 신세계’의 소마의 ‘행복’이 그것을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타인의 입장을 짐작하는 것과 안다고 생각하는 것 사이에서 우리는 감정을 단순화시켜 타인에게 더 이상 아무 것도 없다고 생각해 버리는 것이다.이는 공감의 결핍인가, 아니면 공감의 과잉인가. 우리는 어떤 시대로 가고 있는가./홍익대 교수 송민호

2023-02-27

봉화 만산고택, 그 공간 속 자취

한옥에는 켜켜이 쌓여온 삶이 있다. 오랜 세월이 묻어나는 역사적 자취가 현재 삶을 이어가는 생활 공간과 어우러져 은은하게 피어난다. 여느 고택이든 그러하겠지만 봉화의 만산고택은 특히나 목련꽃처럼 숭고한 정신과 자연 공간에 대한 사랑을 엿볼 수 있다. 고택의 은은한 아름다움은 한옥 구조를 이루는 나무 자재의 유려한 곡선과 다양한 지붕 모양에서도, 퍼즐처럼 맞물린 이음새에서도, 담장을 기준으로 나눠진 독립 공간에서도, 건물마다 걸린 오래된 현판에서도, 마당 곳곳에 피어있는 야생화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그리고 만산 선생과 그 후손들의 삶에서도 고택 특유의 분위기와 어우러진 면을 발견할 수 있다.만산고택은 구불구불한 도로를 따라 산세가 깊은 경북 봉화군 춘양면 서동길에 들어서면 고풍스러운 자태를 만날 수 있다. 집은 주인의 성품이 녹아난다고 했던가. 만산고택은 크지도 화려하지도 않지만 은은한 목련꽃 향기처럼 선비정신이 음전하게 배어난다. 이 고택은 만산 강용(晩山 姜鎔·1846~1934) 선생이 1878년에 지었다. 그는 을사늑약(1905) 당시 관직을 버리고 낙향하면서 이 고택에서 여생을 마무리했는데, ‘언제 다시 태양을 볼꼬?/죽음에 당하여 눈물이 턱을 타고 흐른다./하찮은 신하라서 갚을 길이 없으니/이 사무친 한을 뉘라서 알리요?’에서 알 수 있듯이 운명을 앞둔 순간에도 나라에 대한 걱정과 망국의 원통함을 내려놓지 못했다. 이후 그의 후손들 또한 나라의 독립을 염원하고 투쟁하면서 이 고택에서 삶을 온전히 이어왔다.고택의 공간은 크게 사랑채, 안채, 별당으로 나눌 수 있다. 각각의 공간들은 까치발 높이의 토담으로 분리되어 독립성을 유지한다. 사랑채 공간은 예로부터 외부에서 찾아온 빈객을 위한 화합의 공간이다. 11칸 대문채를 포함한 솟을대문을 들어서면 왼쪽 마당에 2칸 규모의 아담한 서실이, 정면 기단 위에 5칸 규모의 사랑채가 보인다. 고풍스러운 자태로 빈객을 맞이하는 만산고택의 사랑채는 역사를 되돌아보기에도 꽤 괜찮은 장소다. 네 면에 모두 기와가 얹어진 우진각 지붕의 서실에는 영친왕 이은이 8세에 쓴 ‘한묵청연’(翰墨淸緣, 종이나 책은 먹과 깨끗한 연분이 있다) 현판이 걸려 있고, 팔작지붕의 사랑채에는 흥선대원군 이하응이 쓴 ‘만산(晩山)’ 현판 사본이 걸려 있다. 두 현판을 통해 당시 만산 선생과 왕실의 돈독함을 짐작해 볼 수 있다.만산고택은 사랑채와 안채가 합쳐져 ‘口’자형을 이루고 있다. 사랑채는 사랑방과 대청, 그 뒤로 작은 마루방과 중방·골방이 ‘―’자형으로 대문에서 바로 보이는 위치에 있으며, 그 뒤편으로 ‘ ’자형 안채와 연결되어 정면 5칸 측면 8칸의 실질적인 생활 공간을 완성한다. 안채 공간은 사랑채 좌우로 완연한 담장을 두어 독립된 공간임을 명확하게 규정한다. 한옥 특유의 반개방형 구조상 안채로 통하는 문은 여러 곳이 있지만 정해진 대문은 측면에 있어 대문에서 바로 노출되지 않는다. 안채 대문은 곧장 4칸 규모의 안채 마당으로 이어져 있으며, 사랑채와 마찬가지로 큰 방과 작은 방들·대청으로 구성된 공간으로 둘러싸여 있다. 다만 안채 마당은 사랑채 지붕이 높아 햇볕이 제한적으로 들어 좀 더 폐쇄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하지만 뒷마당이 안채의 양쪽과 후면에 넓게 형성되어 있어 답답하게 느껴지지는 않는다.별당은 사랑채의 오른편 담장 너머에 넓고 독립된 공간을 독차지하고 있다. 담장의 작은 문을 통과하여 별당 공간에 발을 디디면 5칸 규모의 팔작지붕이 홀로 고고하게 서 있다. 별당은 대청과 온돌방·골방이 있고 무엇보다 넓은 마당이 건물을 휘둘러 감싸고 있어 자연 공간에 융화된 것처럼 보인다. 세월을 머금은 아름드리 춘양목 기둥과 손때 묻은 대청마루 그리고 듬직한 대들보가 조용하고 온화하게 ‘칠류헌(七柳軒)’이라 적힌 현판을 품고 있다. 빛바랜 세월을 머금은 이 현판은 구한말 위창 오세창(韋滄 吳世昌·1864~1953) 선생의 친필 편액으로 당시 국운을 걱정하던 만산 선생과 접빈객으로 드나들던 문사들의 교류를 짐작하게 한다.다만 별당 칠류헌의 지붕은 완벽함이 주는 어색함에서 조금 벗어나 있다. 본래 한옥의 지붕은 착시현상을 배려하여 안허리곡과 앙곡이라는 곡선 기법을 적용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지붕은 유려한 곡선과 두드러진 꼭지점이 특징이다. 하지만 칠류헌의 지붕은 앙곡 기법만 적용되어 처마선이 시각적으로 잘못되어 보인다. 마치 고고한 선비의 기질과 인간다운 성품이 함께 피어오르는 것 같지 않은가. 숭고한 역사적 자취와 삶을 이어온 생활이 함께 공존하는 것처럼 지붕 하나에서도 바라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미소를 짓게 만든다.만산고택은 겨우내 침묵하다 봄에 피어나는 은은한 목련꽃과 같다. 알면 보이는 한옥의 구조가 그러하고, 망국의 서러움을 품은 채 운명한 만산 선생의 남겨진 마음이 그러하다. 지금은 마당 곳곳에 아담하게 가꾸어진 야생화들과 나무들, 햇볕에 따끈하게 달아오르는 장독대에서 현재 고택을 살아가는 4대손 부부의 생활을 엿볼 수 있다. 그들이 ‘전통문화 체험’이란 주제로 맞이하는 여러 빈객 또한 고택의 은은하게 이어지는 삶에 자취를 남긴다. 145년의 만산고택에는 역사도 생활도 함께 어우러져 있다./최정화 스토리텔러

2023-02-27

조합의 주인은 조합원이다

심한 가뭄으로 재배하고 있던 작물이 말라 죽게 됐을 때, 농부는 어둑어둑한 이른 새벽부터 이 생명에 물을 주고 온갖 정성을 다한다. 시장에 나가서 제값을 받을 수 있을지는 나중 문제이고 우선 이 식물을 살려야겠다는 마음만 있을 뿐, 다른 계산을 하지 않는다.농어촌 지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우리 이웃의 모습이다.오는 3월 8일은 이들의 대표자를 선출하는 날이다.농·수·축협 및 산림조합의 조합장을 선출하는 전국동시조합장선거는 지난 2015년 1회를 기점으로 이번이 세 번째 선거다.대구시선거관리위원회는 전국 최초로 금품 제공 혐의가 있는 입후보예정자를 고발했고 준법선거 릴레이 캠페인, 정월대보름 부럼깨기 행사 등을 통해서 돈선거 척결과 정책선거 실현에 중점을 두고 관리해오고 있다.선거관리위원회가 조합장선거를 위탁받은 이후로 기부행위에 대한 조치 건수가 점점 줄어들고는 있으나, 아직도 금품·향응 제공이 근절되지 않고 있다.공직선거에 비해 적은 조합원 수, 혈연·지연·학연으로 깊게 형성된 유대관계, 금품제공에 대한 무감각 관행 등은 우리가 익히 아는 답변들이다.이유를 알고 있고 치유의 노력을 하고 있는데도 해결되지 않는 데는 어떤 다른 원인이 있지 않을까?3월 8일 선거를 앞두고 후보자, 유권자, 조합 측면에서 다시 생각해 봐야 할 것은 없는지 고민해 봐야 하는 시점이다.먼저, 후보자는 내다 팔 정책이 있는가를 자문해 봐야겠다.자그마한 국숫집도 추구하는 맛이 있어야 하고 재료 값이 올랐다고 해서 이 맛을 포기하면 안되며 손해를 보더라도 추구하는 맛을 고집할 때 진정한 맛집이 된다.후보자는 조합에 대한 확고한 비전을 갖고 조합원을 설득하는 비전이 없을 때, 후보자는 다른 흥행 요소인 상대방 비방, 허위사실 공표, 금전유포의 유혹을 받게 된다.둘째, 유권자인 조합원은 주인의식이 있어야 한다.독일의 한 시민이 지하철 무임승차에 대해 “내가 낸 지하철요금이 정부로 들어간 뒤 결국 나와 내 가족을 위해 쓰입니다. 지하철이 국가의 것이 아니라 우리 것으로 생각하는데 누가 요금을 내지 않겠어요”라고 시민의 조건은 주인의식을 갖는 것이라고 언급했다.협동조합은 자주와 연대, 공개와 배려를 기치로 하는 자율적 조직이고 당연히 조합의 주인은 조합원이다.하지만, 조합원 스스로 자신이 주인이라기보다 손님이라고 생각을 한다면 금품을 살포하는 후보자에게 표를 줄 수밖에 없다.주인이라면 돈선거로 내 집을 어지럽히는 사람을 당연히 내쫓을 것이다.마지막으로 조합은 이른 새벽에 아무 조건 없이 생명을 살리려는 조합원의 마음을 헤아려야 한다.농·수·축협의 설치 근거법을 보면 이들 조합은 각 조합원의 자주적인 협동조직을 바탕으로 경제적ㆍ사회적ㆍ문화적 지위를 향상시키고 해당 산업의 경쟁력 강화를 통해 각 조합원의 삶의 질을 높이며, 국민경제의 균형 있는 발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즉, 사업체적 성격과 공동체적 성격을 모두 가지고 있다.자본주의가 발전할수록 조합의 사업체적 성격이 부각되고 있는 현실이지만, 조합원은 여전히 위로받고 싶고 경제외적 행복을 추구하고 있다.조합이 살림살이뿐만 아니라 조합원들의 행복을 진심으로 추구하고 이 분위기가 확산할 때 비로소 조합원은 내가 속한 사회가 경제적 이득 외에 ‘삶의 질을 추구하고 있구나’라고 느끼게 된다.이런 안정감은 돈선거가 끼어들 여지를 주지 않는다.돈선거의 반대말은 무엇일까? 정책선거이다.3월 8일 유권자는 후보자의 공약을 꼼꼼히 살펴보고 조합의 비전을 이끌고 실천할 지도자를 선출해야 한다. 조합의 발전은 국가의 발전과 직결되기 때문이다.이번 선거가 조합원뿐만 아니라 국민에게도 정책으로 경쟁한 아름다운 선거로 기억되고 4년 뒤에 있을 차기 전국동시조합장선거에 좋은 선례를 남겨줄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2023-02-27

예천군, 누구나 살고 싶은 활력 넘치는 농촌 조성

김학동 예천군수 예천군은 인구 감소와 고령화라는 해묵은 과제를 해결하고 농촌지역의 경쟁력 확보 및 삶의 질 개선을 위해 다양한 정책을 추진한다.먼저 2023년 전체 예산의 22.7%에 달하는 1천467억 원을 투입해 농가 소득 증대를 위한 다양한 시책을 펼친다. 자연재해와 불의의 사고로부터 안정적인 영농여건을 보장하기 위해 농업인 맞춤형 3대 보험(농작물재해, 농업인안전, 농기계) 가입을 지원하고 농민수당도 지급한다.지보면 매창리 일대에 200억 원 규모의 곤충양잠산업단지와 100억 원이 투입되는 임대형 수직농장 등 디지털 혁신농업타운을 조성하고, 한우특화센터 건립과 축산환경개선을 통한 한우브랜드화 사업도 적극 추진한다.농산물가공지원센터를 통한 시제품 개발과 가공 기술지원은 물론 시설원예 현대화로 지역 농산물의 부가가치를 높여 농축산물 명품화 및 유통 활성화에 힘쓰고, 미래농업을 이끌어 갈 청년 농부 육성을 위해서도 지속적인 노력을 해나갈 방침이다.2000년대 이후 농촌정책은 마을 단위 개발이 주를 이뤘는데, 장기적 안목과 지자체의 성장역량을 고려하지 않아 난개발이나 단발성 사업에 그치는 한계점이 드러나기 시작했다.이를 보완하고 지방분권시대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마련한 제도가 ‘농촌협약’이다. 이는 시·군이 주도해서 농촌생활권의 중장기 발전계획을 세우면 농림축산식품부와 해당 지자체가 협약을 맺고 상호 협력하여 농촌정책 목표를 달성하는 제도이다.지난해 예천군은 ‘농촌협약’ 공모사업에 선정돼 총 430억 원 사업비를 확보했으며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다.우선 예천읍 ‘농촌중심지 활성화사업’에 180억 원, 효자면·용문면·용궁면·풍양면 ‘기초생활거점 조성사업’에 155억 원의 사업비를 투입해 지역의 생활SOC 조성 및 경관개선, 생활 서비스 공급망 확충하고, 희망택시 및 농촌버스 지원, 귀농귀촌사업 등도 추진한다는 방침이다.농촌지역 주민들의 취약한 주거환경과 생활 기반 시설을 개선하기 위해 20억 원의 규모의 ‘취약지역 여건 개조사업’ 공모를 올해 초에 추가로 신청했다. 아울러 농촌지역 유해시설 정비 등 정주 환경을 개선하고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기 위한 최대 150억 원 사업비의 ‘농촌공간정비사업’ 계획 수립에도 착수했다.면 소재지 종합정비사업으로 사업비 160억 원이 투입되는 ‘기초생활거점조성사업’은 감천면·보문면·개포면이 올해 준공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유천면은 2024년 준공을 목표로 진행 중이다.생활 여건이 열악한 농촌 마을의 환경을 개선하는 ‘취약지역 생활여건 개조사업’은 66억 원을 들여 올해는 용문면 선2리, 개포면 금리를 2024년에는 예천읍 갈구2리, 2025년에는 지보면 마산리를 순차적으로 완료해 갈 계획이다.‘마을만들기 사업’은 10개 마을에 총사업비 50억 원 예산으로 추진되는데, 지난해 선정된 4개 마을을 대상으로 마을회관 리모델링, 주민쉼터 조성, 마을안길 정비 등을 추진할 계획이며, 올해 선정된 6개 마을은 주민 의견 수렴 절차를 거친 후 세부 추진계획을 수립할 예정이다.‘농업 생산기반 정비사업’은 58개 지구에 총사업비 91억 원의 예산을 투입하여 기계화 경작로 포장, 배수로 정비 등 영농편의 제공과 재해 예방에 주안점을 두고 추진된다.이외에도 농업용수 개발 및 용수로 정비를 통해 영농기 안정적인 농업용수 공급에 차질이 없도록 하여 농업 생산성 향상과 농가소득 증대에 도움을 줄 계획이다.특히 458억 원 전액 국비가 투입되는 ‘풍양지구 농촌용수이용체계 재편사업’은 주민들의 오랜 숙원사업으로 양수장 신설 및 기존 수리시설 연계 네트워크화를 통해 지역의 고질적인 가뭄 해결과 용수 이용체계 개선 효과가 클 것으로 기대된다.자치분권 강화라는 국정 기조 속에 변화하는 농촌정책의 핵심은 주민참여 확대를 통한 민관협치 강화이다. 예천군은 주민 생활과 가장 밀접한 읍·면에서 주도적으로 의제 선정 및 계획 수립을 하도록 하고, 추진과정에도 숙의 기반 주민참여를 적극적으로 보장한다는 방침이다.김학동 예천군수는 “농촌 정주여건 개선, 농업생산 기반시설 확충 및 공동체 활성화 사업으로 주민들이 지역에 애착과 자긍심을 가지고 편안하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도록 하고, 농촌지역을 누구나 살고 싶은 매력적인 공간으로 변모시켜 더 많은 귀농·귀촌인들이 예천을 찾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2023-02-26

철길, 그 아름다운 간격

철길 숲을 걷는다. 한때 사람이 떠나고 돌아오던 철길은 숱한 전설을 남기고 길게 누웠다. 오후의 햇살에 아지랑이가 피어오르고 나비 몇 한가히 날아다닌다. 철길 위를 걷는 사람들의 발걸음도 나비처럼 가벼워 보인다.이길 어디쯤에서 남편을 만났다. 이십 대의 남편과 나는 넓은 세상에서 이루고 싶은 것이 많았다. 홀로 가는 길보다 둘이 가면 외롭지 않을 것 같았다. 무슨 일이든 함께라면 이루어 내고 둘이라면 어떤 시련도 이겨낼 수 있으리라 여겼다. 우리는 삶의 종착역까지 동행하기로 약속했다. 손을 잡고 나란히 출발했다. 남편으로 아내로 충실히 가정을 이끌어갔다. 자신의 역할에서 마주쳐 티격태격 다투면서도 제 자리를 벗어나지 않았다. 하나가 토라지면 하나가 다가와 다독거렸다. 모든 것이 나란할 것 같았지만, 너무 가까이 있어 보잘것없는 티가 크게 보이기도 했다.이 낯설지 않은 차이는 일상생활에서도 나타났다. 나는 성격이 급해 매사에 부뚜막에서 숭늉을 찾는 격이었다. 외출할 때, 나는 필요한 물건을 후다닥 챙기고 현관에서 매번 남편을 기다렸다. 남편은 뒤에 따라오면서 가스레인지를 점검하고 화장실 문을 다시 열어 소등을 확인했다. 나는 빨리 가자고 볼멘소리를 내뱉었다. 돌아오는 엘리베이터 앞에서도 남편이 눈치를 채지 못하게 신발의 끈을 느슨하게 늘어놓거나 겨울 부츠의 지퍼를 열어놓고 기다렸다.아이 교육에서도 생각은 달랐다. 나는 공부 잘하는 아이들은 어떤 과외를 하는지 무슨 학원에서 공부하는지 안테나를 쭉 뽑아 레이더를 작동시킨다. 이곳저곳의 정보를 얻으려고 전화기를 붙들고 살았다. 그 덕에 상담을 예약하고 아이들에게 너희는 이제 열심히 공부만 하면 된다며 경쟁 속으로 내몰았다. 남편은 이런 나를 매번 나무라며 혼자서 할 수 있게 기다려 주라고 핀잔을 줬다. 과도한 경쟁이 아이들을 망친다고 혀를 찼다. 자꾸 부딪치다 보니 서로를 튕겨 마음도 조금씩 멀어졌다. 자주 늦게 귀가하는 남편을 남의 집 남편 대하듯 거리를 두었다.어느 날, 느지막이 일어난 남편은 집을 나갔다. 저녁 무렵에 들어오는 남편의 손에 약봉지가 가득하였다. 멀쩡한 사람이 난데없는 약봉지라니, 남편은 병원에서 받아 온 약봉지를 건넸다. 무심히 약봉지를 들여다보니 식후에 먹어야 하는 약이 수두룩하다.남편의 삶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남편은 가정을 이끌어가는 기관차였다. 혼자 숨 가빴을 남편의 폐, 울화를 감당했을 간, 노동에 짓눌렸을 척추, 생의 하중을 떠받쳤을 무릎, 이것들을 유지하기 위해 무리하게 펌프질했을 심장, 남편은 몸이 아파도 혼자 속앓이했고 아내와 아이들이 걱정할 것 같아 표현하지 않았다.오늘은 한 사람을 위한 저녁을 준비한다. 부엌에서 나는 도마와 칼의 장단도 오랜만에 정박이다. 남편의 숟가락에 반찬 하나를 올리며 당신을 위한 거라며 먹어 보라고 했다. 괜찮다며 손사래를 치지만 얼굴은 이미 해사하다. 이것저것 반찬을 권하자 전부를 받아먹는다. 몸에 좋은 건 같이 먹자며 남편이 내 숟가락에도 같은 반찬을 올려준다. 이순혜 수필가 부부의 길은 동행을 약속한 순간부터 소실점까지 가는 여정이다. 살다가 더러는 내려야 할 역을 지나쳐 헤매기도 하고 발을 헛디뎌 넘어지기도 한다. 그렇게 숨 가쁜 언덕을 넘고 세월의 다리를 건너고 긴 터널을 빠져나왔다. 때로는 삐걱거리기도 하고 어떤 길에서는 덜커덕거리기도 했지만 서로 밀고 당기며 오늘까지 동행했다.부부는 평행하지 않으면 앞으로 나아갈 수 없는 열차와 같다. 그 열차의 철로가 뙤약볕에 느슨하게 늘어지거나, 눈보라에 얼어붙어 다가가기 힘든 일이 생기기도 한다. 평행인 철로는 하나가 궤도에서 벗어나면 한쪽이 바투 당겨야 한다.어느덧 공원에 저녁이 내려앉고 있다. 뒤를 돌아보니 저만치에서 남편이 느릿하게 걸어온다. 잠시 기다렸다가 남편의 손을 꼭 잡는다. 맞잡은 손이 느슨하지도 팽팽하지도 않게 간격을 유지한다. 두 사람의 그림자가 길게 늘어진 철길을 나란히 걷는다.

2023-02-26

껍질을 벗어야 나비가 난다

김진국 고문 요정 정치가 한창이던 시절 잘 나가던 마담은 한눈에 손님의 신상을 꿰뚫어 봤다. 범죄자는 경찰을 알아봐야 단속을 피한다. 보통 사람도 첫인상으로 다른 사람의 직업을 짐작한다. “저 사람은 군인 같다”라거나 “교사 같다”라는 말을 한다.사람이 날 때부터 그 직업을 갖고 나오는 게 아니다. 그렇지만 오랜 직업적 연륜이 독특한 집단적 성향을 만든다고 믿는다. 물론 그렇지 않은 사람도 많다. 기자의 특성으로만 보면 다른 사람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기보다 의심하고, 확인하려 한다. 사실 확인이 직업적 의무다. 말하는 대로 받아쓰다가는 이용당하기에 십상이다. 혹은 구악(舊惡) 기자의 나쁜 추억을 직업적 특성으로 기억하는 사람도 있다.25일 윤석열 대통령이 임명한 지 하루 만에 정순신 국가수사본부장 임명을 취소했다. 윤 대통령이 24일 임명장을 줬지만, 정 본부장의 임기는 26일부터다. 임기도 시작하기 전에 임명을 취소한 것이다. 정 전 본부장은 아들의 ‘학폭’과 관련해 논란이 커져 직무를 수행하기 어렵다며 사표를 냈다고 밝혔다.정 전 본부장은 20년 이상 검사로 일했다. 특수분야에서 많이 근무했고, 중앙지검 형사부장도 역임했다. 경력상으로 보면 수사 능력이 충분해 보인다. 검찰의 수사권을 경찰로 대폭 이양한 뒤 두 조직 사이의 불편한 관계를 정상화하고, 경찰 수사에서 부족한 부분을 보완해주기를 기대했을 수도 있다.그러나 아들 문제와 관련한 그의 처신을 보면 ‘구악 기자’를 보는 듯한 당혹감을 느끼게 된다. 보도에 따르면 정 전 본부장은 아들의 ‘학폭’에 대해 피해자의 입장을 외면하고, 아들의 이익을 위해 법을 철저히 이용했다고 한다. 법전문가로서 온갖 제도를 동원했다고 한다. 학폭 문제를 드물게 대법원까지 끌고 가 패소할 때까지 해결을 미루었다. ‘법대로’가 모든 것을 정당화해주지는 않는다. 보통 아버지라면 할 수 있는 일이라 해도 공인의 자세는 아니다. 그는 당시 서울중앙지검의 인권감독관이었다.하루 만에 뒤집을 인사를 걸러내지 못한 인사 검증 시스템이 정말 걱정스럽다. 원인은 분명하다. 인사 검증 과정에 경찰이 가족의 학폭 관련 내용은 충분히 확인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경찰이 이런 이유로 부적격 의견을 제시했다면 조국 법무부 장관을 반대한 윤석열 검찰총장 꼴이 되지 않았을까. 그러지 않아도 윤 대통령의 주장이 강하고, 그 앞에서 반대 의견을 피력하기가 어렵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인사와 검증을 검사들이 장악하고 있는 것도 무관치 않아 보인다. 대통령실의 인사기획관, 인사비서관, 법률비서관, 공직기강비서관 등이 모두 검사 출신이다. 과거 청와대 민정수석실에서 맡아온 인사 검증도 지난해 6월부터 법무부에 신설한 인사정보관리단이 맡고 있다. 정 본부장 인사를 머뭇거리지 않고 바로 취소한 것은 잘한 일이다. 그렇지만 이런 실수가 발생한 원인을 바로 잡지 않으면 언제든 반복할 수 있다.윤 대통령의 인사를 보면 TV 드라마에 나온 강화도령 철종이 떠오른다. 강화도 유배 시절 알던 친구와 친형, 두 사람을 데리고 세도정치에 맞선다는 만화 같은 이야기다. 윤 대통령은 검사를 너무 많이 기용한다. 다른 자리에는 선거 때 도와준 사람들을 밀어 넣느라 무리한다는 인상을 준다. 윤 대통령은 강화도령과 다르다. 세도정치에 숨도 못 쉬는 허수아비 왕이 아니라 세상의 온갖 인재를 다 데려다 쓸 수 있는 대통령이다. 공이 있으면 상을 주고, 능력이 있으면 자리를 주라고 했다. 공신을 쓰더라도 그럴만하다는 공감은 얻어야 하지않나. 후보 시절 전두환 전 대통령의 예를 들면서까지 그렇게 약속했다.비슷한 사람끼리만 모이면 어이없는 착각과 정책 실패를 할 수 있다. ‘집단사고의 오류’다. 우리보다 나은 집단은 없다는 오만, 우리가 정의라는 과신, 다른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는 폐쇄성이 이런 오류로 이끈다. 검사는 인재들이다. 현 정부의 주요 과제 가운데 하나가 적폐 척결이고, 윤 대통령이 박수받는 부분도 그것이다. 그렇지만 과유불급이다. 나비도 과거의 껍질을 벗어야 날 수 있다.김진국△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3-02-26

청년들에게 삶을 허하라!

김규종 경북대 교수 실업계 10대 여고생 소희의 자살을 조명한 영화 ‘다음, 소희’를 보면서 절망한다. 고교생 신분으로 콜센터에 현장 실습하러 간 소희가 마주한 현실은 은산철벽(銀山鐵壁) 같은 것이었다. 악의적인 고객들의 악담과 폭언, 희롱과 협박을 끝까지 참으면서 할당량을 채워야 하는 소희. 실적을 초과하는 성과를 내면 인센티브를 주겠다는 팀장의 약속은 허언이 되는데, 그것은 학교가 회사와 실습생을 상대로 체결한 이중 계약서가 원인이다.한국 사회에서 일어나는 실업계 고교생들의 자살과 사고사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게다가 20∼30대 청년들도 마주해야 하는 죽음 역시 익숙한 현실이 되었다. 그래서 2022년 1월부터 실행된 법이 ‘중대재해처벌법’이다. 기업들과 전경련이 극구 반대한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지 1년이 지난 2023년 1월 26일 기준 229건에 이르는 처벌법 적용 사건 가운데 검찰이 기소한 사건은 11건에 불과했다.죽음을 가볍게 여기는 풍조가 언제부터 생겨났는지 모르지만, 우리는 지금 전대미문의 죽음 공화국에 거주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경제협력기구(OECD) 인구 10만 명당 자살로 인한 사망자 수에서 한국은 23.6명을 기록해 OECD 회원국 가운데 가장 높았다. 이 수치는 OECD 평균 11.1명의 두 배가 넘는 수치다.통계에서 주목할 점은 한국인의 10대, 20대, 30대 사망원인 가운데 1위가 자살이라는 사실이다. 10대 사망의 43.7%, 20대 사망의 56.8%, 30대 사망의 40.6%가 자살에 기인한 것으로 나타났다. 창창한 젊음과 화사한 미래기획으로 찬란한 빛을 발하는 10대부터 20∼30대 청년들이 무슨 까닭으로 스스로 삶을 접고 있는지 한숨이 절로 나온다. 젊은이들이 행복하지 않은 사회의 미래가 암울할 수밖에 없음은 자명하다.이른바 ‘전문가’들은 경제적인 문제, 우울감, 사회적인 소외와 고독 같은 빤한 원인만 들먹일 뿐 묘안은 없다. 더욱이 자살을 대비하는 예산은 연간 417억 수준으로 일본의 6조7천억에 비해 조족지혈(鳥足之血)이다. 하기야 홀로 죽고 난 연후에 발견되는 연간 고독사 전국 통계조차 온전히 잡지 못하는 죽음의 후진국이 무슨 말을 보태겠는가?! 죽음을 가벼이 여기는 나라에서 삶의 의미가 얼마나 진지하게 수용될 것인지는 두말할 나위도 없다.사정이 이럴진대 정부와 언론이 날마다 세계 최저수준의 출산율을 합창하는 까닭은 무엇인가?! 극도로 낮은 출산율 때문에 나라의 미래가 암울하다며 하루가 멀다 않고 떠들어대는 인구문제가 더는 새롭지도 않다. 세상에 태어나 성장하여 사회의 일원이 된 10대부터 30대에 이르는 청년 세대가 자살과 사고로 줄지어 죽어 나가는데, 무슨 출산율 타령인가?! 주객전도(主客顚倒)도 유만부동(類萬不同)이지 그야말로 어불성설(語不成說) 아닌가?!우리 곁에 있는 생명은 뒷전이고, 아직 오지 않은 생명만을 간절히 희구하는 희화적(戱畵的)인 장타령(場打令)을 되풀이하는 희한한 나라의 청년들에게 미안한 마음 그지없다. 대한민국의 청년들에게 삶을 허하라!

2023-02-26

삼겹살데이

우정구 논설위원 특정 날짜에 맞춰 의미를 부여하는 ‘데이 마케팅’은 소비자가 특정 제품을 구매하도록 유도하는 마케팅 기법의 하나다. 국내서는 1990년 빼빼로데이(11월 11일)가 처음 등장한 이후 밸런타인데이(2월14일), 화이트데이(3월 14일), 블랙데이(4월 14일) 등 수 많은 날이 마케팅용으로 쏟아져 나왔다.3자가 겹치는 3월 3일이 삼겹살데이로 불리는 것도 그 중 하나다. 2002년 경기도 모 축협에서 구제역으로 힘든 축산농가를 위해 돼지고기 소비 촉진과 양돈산업 진작을 위해 낸 아이디어가 전국으로 확산된 것이다.이런 데이 마케팅은 처음에는 상술의 한 단면으로 비판도 있었으나 행사에 의미가 가미되고 사회 전반에 확산되면서 문화로 정착한 측면도 있다. 또 삼겹살데이처럼 국내 양돈산업에 힘을 실어주어야 한다는 착한 의도가 있는 행사는 행사에 대한 반응도 긍정적이다. 삼겹살데이를 시작한 지도 벌써 20년이 됐다.돼지고기 삼겹살은 갈비뼈를 떼어낸 부분에서 복부까지의 넓고 납작한 모양의 부위다. 살과 지방이 3번 겹쳐 있어 삼겹살이란 이름을 붙였다. 우리나라선 외식, 회식자리의 선호도 1순위 음식이다.지방이 많다는 이유로 일부 기피도 하나 소고기보다 불포화지방산이 많아 권장하는 이도 많다. 2018년 영국 BBC는 돼지비계가 과학자가 선정한 세계 100대 수퍼푸드 중 8위를 차지했다고 보도했다. 돼지고기 비계에는 올리브유에 함유된 비타민B와 오메가3가 풍부하게 들어있다고 했다.때마침 추운 겨울을 이겨낸 봄 미나리가 청도와 경산, 팔공산 등지에서 본격 출시되고 있다. 비타민과 무기질 등이 풍부해 혈액순환에 좋다는 미나리와 삼겹살로 건강을 챙겨보는 것도 좋은 일이다./우정구(논설위원)

2023-02-26

독서율 높이는 법

유영희 인문글쓰기 강사·작가 올해 EBS에서는 우리나라가 문해력 등 사회적 소통 능력이 부족한 이유가 독서율이 낮기 때문이라고 진단하고 독서율을 높이기 위해 ‘역사를 바꾼 책’을 선정했다는 뉴스를 보았다. 독서율이란, 15세 이상 중에서 일반도서를 일 년간 한 권 이상 읽거나 들은 사람의 비율이다. 교과서, 학습 참고서, 수험서나 잡지와 만화는 제외되지만, 단행본으로 발행된 것이라면 그림책이든 동화든 소설이든 상관없다. 웹소설도 도서에 포함된다.그러고 보니, 독서와 관련된 에피소드 두 개가 생각난다. 하나는, 동네에서 20여 년째 독서 모임을 꾸준히 하고 있는데, 초창기 독서 모임에 참여하던 한 지인이 서울대 나온 자기 이웃에게 권했더니 책이라면 지긋지긋하다며 손사래를 치더라는 일화이다. 지금 생각하니 거절하는 핑계였나 싶기도 한데, 그때는 명문대 졸업생이 얼마나 책에 질렸으면 그런 말을 했을까 놀랐다.다른 하나는 작은애 이야기다. 작은애가 초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읽은 책은, 절반은 그림으로 된 ‘구렁덩덩 신선비’와 ‘나무꾼과 선녀’ 딱 두 권이었다. 그런데 중학교에 가면서 폭발적으로 독서량이 늘더니 지금도 직장에서 독서 동아리에 들어 책을 읽고 있다. 학년에 맞는 책 읽어야 한다고 강요받지도 않고, 자기가 선택한 책을 책장이 떨어질 정도로 읽은 것이 즐거운 기억으로 쌓였기 때문일 것이다.‘2021년 국민독서실태’조사에 따르면, 19세부터 종이책 독서율은 40%이고, 전자책, 오디오북을 포함한 종합 독서율은 47.5%라고 한다. 성인의 절반 이상이 어떤 형태의 책이든 1년에 단 한 권도 안 읽은 셈이다. 독서율 기준이 이렇게 낮은 것을 보면, 독서율이 낮다는 것은 문해력 문제라기보다는 그냥 책에 대한 관심 자체가 없기 때문이라고 봐야 한다.실제로 2018 책의 해 기념으로 진행된 ‘독자 개발 연구’에 따르면, 책을 읽지 않는 사람은 독서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하면서 강압적인 독서로 인한 독서 혐오도 중요한 원인이라고 한다. 각종 기관에서 정해주는 추천 도서로 학습용 독서를 하다 보니 독서가 즐거운 활동이라는 경험이 부족하고, 그래서 성인이 되면 독서에 고개를 돌리게 되는 것이다.즐거운 독서 체험은 독서율을 높이는 가장 중요한 요인이다. 핀란드가 세계에서 독서율이 가장 높은 이유도 어렸을 때부터 즐거운 독서 체험을 많이 하기 때문이다. 2018년 국제독서콘퍼런스 영상을 보니, 핀란드에서는 책 읽어주는 할머니 전통은 아주 오래되었고, 최근에는 독서 도우미 개를 이용하여 어린이들에게 책에 대한 관심을 유도하고 있단다. 유치원과 학교는 도서관과 연계하여 독서를 촉진하며, 도서관은 지하철 역 근처에 있어 이용 편의성도 높다. 이런 제도 속에서 즐거운 독서가 생활화되다 보니, 자기가 원하는 책을 스스로 발견해나가게 되고 나이가 들어도 책을 찾는 비율이 높다는 것이다. 그러니 19세 이상의 독서율을 높이려면 장기적인 안목으로 접근해야 한다. 즐거운 독서 경험을 많이 하게 하는 것, 그것보다 좋은 방법은 없다.

2023-02-26

새마을운동 발상지 신도마을, 벤치마킹

장광일포스코 인재창조원 교수·컨설턴트 벤치마킹이란 어느 특정 분야에서 우수한 상대를 기준, 목표로 삼아 자기 기업과의 성과 차이를 비교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그들의 뛰어난 운영 프로세스를 배우면서 부단히 자기혁신을 추구하는 경영기법이다.필자는 기업에서 강의할 때 ‘혁신활동의 왕(King)이 누구일까요’라는 질문을 하고 답은 바로 벤치마킹(Bench marking)이라고 한다. 그만큼 벤치마킹은 혁신의 지름길이다.필자는 주말에 지인들과 함께 가까운 청도 여행을 갔다. 청도는 다양한 볼거리가 있었고, 먹거리도 있었다. 청도 읍성에서의 성벽 거닐기, 곤장 맞는 풍경보기, 한재 미나리와 삼겹살 먹기 등 그동안 쌓였던 스트레스와 피로를 풀기에 참 좋은 날이었다.그러나 뜻하지 않게 감동을 받은 것은 청도 신도리 마을의 새마을 운동 발상지 기념관이었다. 기념관을 관람하고 느낀 점은 기업에서 전원 참여 혁신활동을 하는 모습과 새마을 운동이 참 많이 닮았다는 점이다.‘세상을 바꾼 43일-새마을운동 발상지 신도마을 이야기’ 책을 펴면 “1957년 여름, 43일 동안 1천810명이 품을 보태 폭4m, 총 길이 2.5km 농로 확장공사를 맨주먹으로 끝마쳤다. 길하나 뚫었을 뿐인데 동네가 달라 보였다” 라는 글귀가 나온다. 이 마을을 벤치마킹하여 1970년 대한민국 새마을 운동의 서막이 열리게 된다.새마을 운동과 혁신활동으로 성공한 기업에는 공통점이 많은데 그 중 2가지를 이야기하고자 한다.첫째, 전원참여의 협동정신이다.새마을 운동에서 강조하는 부분은 1+1=2가 아니라 1+1=2+ a라는 것이다. 여럿이 힘을 합치면 능률이 오르고, 자신감도 생기고, 단결심도 강해져 진정한 협력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매헌 박승직 선생은 “잘사는 비결은 모두가 합심하여 한마음으로 고민하고 움직일 때 비로 이룰 수 있다”라고 한 것처럼 기업은 직원이 한마음으로 고민하고 움직이도록 면밀히 살펴야 한다.둘째, 살아 숨쉬는 전략이다.새마을 운동으로 한번에 Jump Up한 것이 아니라 계단식으로 마을을 발전시켰다.진행은 기반조성단계(1970~73), 사업확산단계(1974~76), 효과심화단계(1977~79), 체제정비단계(1980~89), 자율확대단계(1990~99)의 5단계로 나누어 체계적으로 진행하였고, 마을 수준에 따라 기초 마을, 자조 마을, 자립 마을, 자영 마을, 복지 마을인 5개 마을로 분류하고 단계별 인증을 해 주었다.기업도 혁신활동을 스텝(Step)활동을 추진하여야 한다. 학교를 다닐 때 1학년을 잘 보내야 2학년을 제대로 소화할 수 있는 것처럼 건너뛰지 말고 단계별로 제대로 추진하여야 한다.한강의 기적을 이끈 새마을 운동, 한국 경제력 발전에 시초가 된 새마을 운동, 개발도상국 벤치마킹 대상 ‘No1’인 새마을 운동을 기업이 제대로 벤치마킹 하길 기대해 본다.

2023-02-26

일본 다케시마(독도)의 날은 억지 주장

김두한 기자 경북부 일본의 시마네현이 22일 다케시마(독도의 일본 명)의 날 기념식을 했다. 대한민국의 땅을 자기들 땅이라며 기념식을 하는 황당한 일을 벌이고 있다.지난 2005년 3월 16일 시마네현의회가 매년 2월 22일을 다케시마의 날로 정하고 2006년부터 지금까지 다케시마의 날 행사하고 있다.올해도 시마네현 현민회관에서 자민당의 나카노 히데유키내각부 정무관(차관급)과 국회의원 6명 등 235명이 참석한 가운데 기념식을 했다.이들이 다케시마의 날 행사를 개최하는 이유는 지난 1905년 2월 22일 시마네현이 소위 고시 제40호로 독도를 편입했다는 기록에 근거하고 있다.그렇다면 시마네현 고시 제40호의 독도편입이 과연 법적 효력이 있느냐가 논쟁 거리이다.시마네현 고시 제40호는 ‘북위 37도 9분 30초, 동경 131도 55분 오끼도와의 거리 서북 85리에 달하는 도서를 죽도(竹島)라 칭하고 본 현(시마네현) 소속 오끼도사(隱岐島司)의 소관으로 정한다’라는 내용이 전부다.그런데 편입 서류의 일본 소장(所藏)의 유일본인 이 자료는 고시용이 아니라 붉은 주인(朱印)이 뚜렷한 회람용에 불과해 일본의 주장과 실제 고시됐다는 구체적 증거가 없다. 일본의 통상적인 편입 고시와 전혀 다르다.또 지난 1905년에 발발한 러일전쟁 당시 해전 상황을 보도한 일본정부 관보에는 해전의 중심지역을 소개하면서 편입했다는 2월22일 이후에도 ‘편입한 다케시마’로 쓴 것이 아니라 ‘리앙고루도암’이라고 적었다.지난 1905년 6월 5일 일본관보 역시 러일전쟁의 주요 전투 지역이었던 독도를 ‘리앙고루도암’이라 했고, 그해 9월 18일 부산주재 일본영사 아리요가 일본정부에 보고한 관보에도 ‘리앙고루도암’이라고 적었다.당시 일본 영사는 소위 시마네현고시 제40호로 독도를 편입한 지 7개월이 지난 시점이다. 시마네현 고시 이후 관보에도 계속 ‘리앙고루도암’이라고 적고 있어 시마네현고시가 실제 고시되지 않았음을 입증하고 있다.일본 정부는 1905년 1월 독도가 일본 영토라고 각의 결정했다. 러일전쟁 당시 일본의 진지를 독도 구축하려는 의도였다. 이런 정황들을 볼 때 일본은 러일전쟁을 앞두고 유리한 진지(독도)를 선점하고자 벌인 사기 행각임이 명백하다.일본 시마네현은 2월 22일을 기념할 것이 아니라 독도가 시마네 현에 편입되지 않았음을 스스로 밝히고 전범국가로서 역사앞에 사죄하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kimdh@kbmaeil.com

2023-02-23

청년 나이, 노인 나이

홍석봉 대구지사장 통상 20대를 청년이라고 한다. 노인은 65세가 기준이다. 1981년 제정된 노인복지법에 규정돼 있다. 하지만 평균 수명이 늘고 인구 구성비가 변하면서 청년과 노인 연령 기준을 다시 조정해야 할 상황이 됐다.지자체마다 각종 청년 정책을 쏟아내고 있지만 청년 상한 기준이 제각각이다. 대상자인 청년들이 심한 혼란을 겪는다. 조선시대 성인 기준은 소위 ‘이팔청춘’16세였다. 청년기본법에는 19~34세를 청년이라고 한다. 청년고용촉진특별법은 15~29세, 지방공기업 채용시 34세까지를 청년으로 본다.전통시장법에는 39세까지 청년이다. 현재 우리나라에선 15~39세 까지가 청년인 셈이다. 이렇게 청년 나이가 들쭉날쭉하다보니 청년 정책자금 지원 등 여러 곳에서 혼선이 생긴다.국회에서 청년 연령을 39세로 통일하자는 청년기본법 등 개정안까지 발의된 상태다. 정당은 19~45세가 청년 당원이다. 지자체는 더 확대했다.인구 절벽과 마주한 경북 23개 시·군 중 13곳은 40대가 청년이다. 울진과 봉화군은 만 49세까지다. 청년 연령은 점점 확대추세다. 급속한 고령화에 따라 종전의 청년 개념을 일반적으로 적용할 수가 없는 상황이 됐다. 행정의 효율적 집행을 위해 청년 나이 기준을 통일할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UN이 1956년 65세부터 노인이라고 칭한 이래 세계적으로 65세가 노인 기준이다. 한국은 노인복지법에 ‘65세 이상’ 경로우대 등 조항에 따라 65세 이상을 보통 노인이라 부른다. 대구시가 도시철도 적자 보전 해결책으로 불씨를 당긴 노인 무임승차 논란이 서울 등 대도시로 확산되며 뜨거운 감자가 됐다.대구시는 도시철도 무료 이용 기준을 현행 65세에서 내년부터 2028년까지 해마다 한살씩 높이기로 했다. 대신 버스는 올해 75세를 시작으로 해마다 한살씩 낮춰 2028년 도시철도와 같이 70세 이상이 무료 이용할 수 있도록 조정했다. 이를 계기로 노인 연령 조정문제까지 불이 번졌다.최근 서울 노인들은 평균 72.6세를 노인으로 본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생활 습관 변화와 의료 환경 발달에 따라 예전 같으면 ‘상노인’이랄 수 있는 70세 노인이 50대의 건강을 자랑하는 것이 현실이다. 평균 수명도 세계 최고 수준이다. 노인 연령 상향 조정문제는 진작 제기돼 왔던 터다. 연령 조정이 불가피해졌다.하지만 노인 연령 조정은 정년 연장과 국민연금 및 노인 복지제도 개선 등 사회 시스템 문제와 맞닿아 있다. 제도 전반을 손봐야 할 형편이다.유엔은 2015년 인류의 평균 수명 등을 고려해 생애주기를 5단계로 나눈 연령기준을 제시했다. 0~17세는 미성년자, 18~65세 청년, 66~79세 중년, 80~99세 노년, 100세 이상은 장수노인으로 분류했다. 100세 시대의 기준인 셈이다. 이 기준에 따르면 만 65세까지는 청년이다. 곧 눈앞의 현실로 닥칠지도 모른다.청년과 노인 연령 기준을 합리적으로 조정하는 문제를 본격 논의할 때가 됐다. 폭넓은 논의를 통해 새로운 기준을 정해야 할 것이다.

2023-02-23

인구오너스 시대

우정구 논설위원 인구오너스(onus)는 인구보너스에 대칭되는 개념이다. 인구보너스는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생산연령 인구(15∼64세)의 비중이 증가하여 노동력과 소비가 늘면서 경제성장을 이끌어가는 현상을 말한다. 반면에 인구오너스는 생산가능 인구가 줄고 부양해야 하는 인구가 늘면서 경제성장이 둔화되는 현상을 일컫는다.우리나라는 저출산·고령화 늪에 빠져 인구오너스 시대가 이미 시작됐다고 보는 전문가 견해가 많다. 통계청이 최근 발표한 우리나라 출생·사망 통계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 합계 출산율은 0.78명이다. 1970년 통계 작성 이래 최저라고 한다.2018년 0.98명으로 처음 0대에 진입한 이후 매년 추락하는 추세다. OECD국가 중 합계 출산율이 한 명도 되지 않는 국가는 우리나라가 유일하다.작년 우리나라 인구의 자연감소는 12만명으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출생아는 25만명으로 가장 적었고 사망자는 37만명으로 가장 많았다. 정부는 16년동안 저출산 대책으로 280조원의 천문학적 비용을 투입했으나 출생아 수는 반 토막이 난 상태다. 백약이 무효했다는 뜻이다.지방소멸, 인구절벽이란 말을 뛰어넘어 그보다 파괴력이 강한 인구지진이 곧 닥칠 거란 얘기도 들린다. 영국 옥스퍼드대 데이빗 콜먼 교수는 일찍이 “한국이 지구상에서 소멸되는 최초의 국가가 될 것”이라고 예고한 바 있다. 특단의 대책이 없으면 합계 출산율 0.6대 진입도 시간 문제로 보인다.“밑빠진 독에 물붓기식”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지만 저출산의 문제는 정부만이 해결을 할 수 있는 과제다. 과거 정부가 모두 실패한 저출산 대책을 윤석열 정부는 과연 해낼 지 주목된다./우정구(논설위원)

2023-02-23

인간과 인공지능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지능(intelligence)에 대해서 한마디로 정의하는 건 쉽지가 않다고 한다. 학자들에 따라 논리와 견해가 다양하기 때문이다. 원래는 철학의 영역이었으나 지금은 심리학과 신경과학의 주요 연구 대상이 되고 있다. 일반적으로는 논리력, 이해력, 인과관계 파악 능력, 계획력, 창의력, 문제해결 능력 등 다양한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해서 지능을 구성한다고 본다. 신경과학이나 뇌과학에서의 지능에 대한 연구는 획기적으로 새로운 국면을 열어가고 있다. 인간의 뇌를 단백질로 이루어진 생물학적 컴퓨터로 가정한 연구가 그것이다. 의식이라는 소프트웨어를 활용하지 않고도 약물, 수술, 유전자조작 등으로 지능향상은 물론 사회적 기능이나 행복감의 증진까지도 가능해진다는 얘기다.인간의 지능을 인공적으로 구현한 컴퓨터 시스템을 인공지능(AI)이라 한다. 바야흐로 산업과 일상생활 모든 분야에 인공지능이 적용되는 시대가 되었다. 지난해 11월 말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본사를 둔 오픈AI가 출시한 챗GPT가 두 달 만에 사용자 1억 명을 돌파하면서 인공지능에 대한 담론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오픈AI사는 블로그 게시글을 통해 “챗GPT가 대화 형식으로 추가적인 질문에 답하고, 실수를 인정하며, 정확하지 않은 전제에 대해서는 이의를 제기하고, 부적절한 요청을 거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대화형 로봇을 챗봇(chatbot)이라 하는데, 지금까지 출시된 다른 AI챗봇에 비해 챗GPT가 주목 받는 이유는 기존의 챗봇과 기능적·기술적으로 상당한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인간과 챗봇이 대화를 할 때마다 전후 맥락의 파악이 가능하도록 설계되어서 훨씬 자연스럽고 효과적인 대화가 가능하다는 것이다.인터넷과 SNS의 상용화로 일대 개벽을 맞은 인간사회가 챗GPT 같은 인공지능의 등장으로 또 다른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고도화된 챗봇의 상용화는 무엇보다 인간 지능의 혁신을 가져올 것이란 예상을 할 수 있다. 지구상의 대다수 인간의 지능이 한 단계 업그레이드되면 어떤 현상이 벌어질 것인가에 대한 연구와 대책이 따라야 할 시점이다. 삶의 질이랄지 생활의 패턴이 새로운 양상으로 전개될 것을 예상할 수 있는 것이다. 가령 반려동물 대신 사람과 흡사한 반려챗봇이 등장하게 된다면 인간관계에도 상당한 변화가 오지 않겠는가.챗GPT에게 챗GPT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자, ‘양날의 칼’이라는 대답이 나왔다고 한다. 인공지능이 인간의 삶에 혁신적인 변화를 가져오는 중에는 분명 순기능과 역기능이 있을 것이다. 인공지능의 한계가 어디까지일지 예측할 수 없듯이 그것이 인간에게 끼칠 영향의 범위도 미지수이다. 인간의 통제를 벗어난 초인공지능의 출현이나 범죄에 악용될 우려, 인간성의 파괴 등으로 인류를 파멸시킬 흉기가 될 소지도 없지 않은 것이다.인공지능이 아무리 고도화 된다고 해도 우주 삼라만상은 그대로이고, 인간이 지구 생태계의 일부라는 생물학적인 조건까지 바꿀 수는 없는 일이다. 인간 생명의 본질적인 문제라든지 윤리의식에 대한 충분한 고려가 없는 인공지능의 발전은 득보다 실이 더 클 것 같다.

2023-02-23

큰 재난의 작은 신호

윤영대 전 포항대 교수 최근에 나는 생각하지도 못한 큰일을 당했다. 자동차의 엔진이 고장 나버린 것이다. 사소한 신호를 가볍게 생각했고 또 무관심했던 것 같다. 얼마 전 시골길을 가는데 엔진 부위에서 툴툴거리는 작은 소음이 들려서 바퀴에 뭐가 끼었는가 하고 부근의 정비소에 가보려다가 다시 조용해지기에 도착하여 엔진 덮개를 열어보고 별 이상이 발견되지 않아서 그러려니 했었다.저녁때 돌아오면서 속력을 좀 냈더니 소음이 심해졌다. 집 부근 카센터도 일찍 문이 내려져 있기에 아파트 주차장까지 끌고 와서 찬찬히 살피고 있는데 지나가던 이웃 분이 차의 소음을 들었는지 엔진이 못 쓰게 될지도 모른다면서 ‘절대 움직이지 말고 렉카를 불러 정비공장에 가세요’한다.다음날 견인차를 불러 정비공장에 가서 진단을 받으니 엔진 오일의 고갈로 내부 손상이 심해서 엔진 전체를 교체해야 하며 요즈음은 부품 구하기도 힘들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코로나 팬데믹으로 많이 다니지 않았고 차량에 별 신경을 쓰지 않았나 보다. 얼마 전 계기판에 노란 경고등이 왔을 때 엔진 오일이 부족하다고 생각하고는 주유할 때 엉뚱하게 엔진 세정제를 넣었고, 이후 빨간 불이 왔을 때도 냉각수만 채우고는 무심히 지났던 것 같다.일주일 후 찾으러 갔더니 수리비가 엄청나다. 엔진 오일 30년은 넣을 수 있는 비용이다. 10년이나 타던 나의 애마가 몇 번이나 아프다는 신호를 보냈는데도 알아채지 못한 탓이다. 사소한 초기 문제의 원인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방치하여 대형 사고를 자초한 것인데, 사람으로 말하면 가슴 아플 때 혈관주사라도 맞으면 될 것을 심장 이식수술까지 한 셈이다. 우리의 몸도 그렇다. 작은 통증을 느끼고도 ‘뭐 어때서? 설마….’ 하며 내버려 두면 심각한 중병으로 악화될 수도 있다. 사태 불감증으로 처리를 미루는 동안 치료의 골든 타임을 놓치게 되는 것이다.또 며칠 전 휴대폰의 사진을 노트북에 옮기려는데 한참 깜빡거리다가 그만 화면이 먹통이 되어버렸다. 다시 시도했더니 갑자기 화면이 바뀌며 저장해 두었던 것들이 몽땅 사라져버린 것이다. 그동안 찍어둔 사진과 써놓은 글, 나의 기록들이 모조리 사라진 것은 아닐까? 그간 데이터를 백업해두지 않았던 것을 후회하며 메모리를 뒤지다가 기억에도 없는 곳에 옮겨져 있는 자료를 다행히 찾아냈지만 다른 기능은 불능이었다. 몇 달 전부터 낌새가 있어도 대수롭잖게 생각했었는데 나의 귀중한 자료를 다 잃을 뻔했다. 모든 큰 사고에는 경미한 징후가 반드시 있다는 ‘하인리히 법칙’을 떠올려본다.지난 이태원 참사도 초기의 사태를 간과하지 않고 잘 대처했더라면 어땠을까 아쉬운 마음이다. 우리의 현 정치국면도 ‘나와 무슨 상관이랴….’는 ‘중도(中道)와 무관심’인 듯한 국민의 정치의식으로 인해 큰 혼란을 겪을지 모른다. 세계적 기후 위기도 지금부터 환경 변화에 대한 대책을 세우고 대처하지 않는다면 지구의 종말과 같은 대재앙이 닥쳐올 수도 있을 것이다.작은 관심이 큰 사고를 예방하며, 사소한 해결이 큰 업적을 남기게 된다는 것을 이번 엔진 사고를 당하고 난 후에 다시 가슴에 새겨본다.

2023-02-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