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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최악 황사

우정구 논설위원 아랍의 사막이나 아프리카 사하라사막에서 불어닥치는 모래바람은 일반의 상상을 초월한다. 그곳에서는 이런 모래 바람을 ‘함신’이라 부르는데, 이는 아랍어로 ‘50’을 뜻한다고 한다. 일반 모래바람보다 50배가 강해서 붙여졌다고 한다. 아랍권 남성들이 입는 복장이나 모자 등은 모두 모래바람에 대비한 그들 생활 지혜의 한 부분이다.황사는 중국의 고비사막 등 사막지대에서 발생한 미세한 모래 먼지가 대기 중에 퍼져서 하늘을 덮었다가 서서히 떨어지는 현상이다. 우리나라는 편서풍을 타고 중국에서 넘어오는 황사의 피해가 많은 지역이다. 지난 22일 중국에서는 올 들어 3번째 최악의 황사가 발생했다. 베이징환경보호관측센터는 베이징 전역의 공기질지수(AQI)가 최악인 6급 ‘엄중오염’ 상태를 기록했다고 발표했다.500㎍/㎥는 수치로 표현할 수 있는 최고 수준인데, 이날 베이징의 평균 AQI가 500㎍/㎥이었다.짙은 황사로 베이징 도심은 앞이 잘 보이지 않을 정도고, 사람들은 마스크와 고글을 착용한 채 외출을 한다. 실외에서 눈을 뜨거나 숨을 쉬는 것조차가 힘들다니 황사의 폐해가 심각하다.황사는 인체뿐 아니라 반도체와 항공기 등 정밀기계 작동에도 문제를 일으킨다. 반도체 원료인 실리콘웨이퍼를 생산하는 공장에서는 황사가 일어나면 실내 공기정화기를 100% 가동해도 불량품이 증대한다고 한다.항공기는 안전에 영향을 미쳐 운항 편수가 대폭 줄어든다. 축산농가를 시름에 빠뜨리는 구제역도 황사 때문에 생긴다는 연구 보고도 있다.22일 발생한 중국의 최악 황사가 한반도에 상륙할 거란 관측이다. 모처럼 마스크를 벗고 해방감에 젖은 우리 국민에게 중국의 황사가 못된 방해꾼으로 등장했다./우정구(논설위원)

2023-03-23

잊혀진 민족교육자 홍주일

홍석봉 대구지사장 경북 청도 출신의 홍주일(洪宙一·1875~1927)은 개화기의 선각자다. 민족교육에 눈 뜬 그는 일본 유학 후 귀국, 교사로 일하며 학교 설립에 정성을 바쳤다.민족교육에 치중하는 한편 국권 회복을 위해 항일운동에 참여했다. 그는 대구·경북 교육의 사표(師表)이자 민족교육의 선각자로, 항일애국지사로 묵직한 이름을 남겼다.그는 31세(1906년) 때 일본에 유학한 후 돌아와 평북 옥천학교, 안동 예안학교, 구포 구명학교에서 교사로 근무했다. 1910년 한일강제합방 후 대구 협성학교 교사로 대구에 정착했다.협성학교는 1899년 달성학교에서 출발했다. 1909년 고등과가 협성학교로 바뀌었다. 협성학교는 홍주일이 구심점이 돼 민족교육이 이뤄졌다. 그러나 1916년 일제가 관립 대구고보를 신설하면서 폐교됐다. 1917년엔 명신학교(현재 복명초등) 교장을 잠시 맡았다.홍주일은 1913년 서상일 등과 함께 1908년 계몽운동을 위해 결성됐다가 활동 중단된 달성친목회를 재건했다. 달성친목회는 배일사상을 고취한다는 혐의로 일제에 의해 2년 만에 강제 해산됐다. 홍주일은 1916년 정운일·최병규·김진만·서상준 등과 독립운동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대구 부호 서우순의 집에 권총을 들고 침입, 현금을 탈취하려다가 실패했다. 이후 일제 경찰에게 체포돼 홍주일은 1917년 징역 5월형을 언도받고 옥고를 치렀다. 출소 후 홍주일은 서상일이 운영하는 대궁상회 점원으로 일하면서 대구 3·1운동 참여 준비를 한다. 하지만 일제 관헌의 예비검속에 걸려 격리 조치됐다.홍주일은 1921년 9월 정운기·김영서 등과 대구 북성로 우현서루를 가교사로 사용하는 교남학원(嶠南學院·대륜고 전신)을 설립했다. 당시 동아일보에 ‘대구 유지들이 끓는 피로서 설립한’ 학교라는 기사가 보도됐었다. 그만큼 대구시민들의 기대가 컸다. 홍주일은 6년 간 교남학교 교사로 일했다. 1927년 6월 교남학교 교장에 취임했다. 하지만 취임 한 달 여 만에 숨졌다. 당시 신간회 대구지회 설립 준비위원으로 선임돼 활동 중이었다. 홍주일의 장례식은 학교장으로 치러졌다. 언론은 대구교육계의 은인이 서거했다며 애도했다. 후일 국회의장을 지낸 이효상은 ‘스승 홍주일은 사상가였고 애국자·독립운동가였다’고 회상했다.홍주일은 1977년 건국포장,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2002년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됐다. 그의 교육 기여 뜻은 종손인 홍영기가 청도 운문에 설립, 경산으로 이전한 문명고등학교에 면면히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지역에서는 잊혀진 인물이다. 그에 대한 기록은 별로 없다. 독립운동자료집의 재판 기록과 경북중고등학교60년사 등에 기록이 남아 있어 겨우 그의 흔적을 짚어볼 수 있을 따름이다.홍주일은 20년 간 교육과 독립운동에 몸바쳤다. 민족교육의 선구자이자 항일애국지사인 그를 국민의 사표로 삼아야 한다는 주장이 지역 교육계 일각에서 나오고 있다. 늦었지만 관련 자료를 확보, 교육박물관 등에 전시하고 그의 헌신을 기릴 수 있길 바란다.

2023-03-23

계사(癸巳)

육십갑자 중 서른 번째에 해당하는 계사(癸巳)다. 천간(天干)의 계수(癸水)는 약한 음수(陰水)다. 깨끗한 물, 비, 연못을 의미한다. 지지(地支)의 사화(巳火)는 불꽃, 연기 등을 상징한다. 동물로는 검은 뱀이다.계사일주는 물과 불의 만남이니 새로운 무언가를 창조하는 기운이다. 12운성으로 ‘태(胎)’다. 태(胎)는 생명이 사라진 후 다시 시작하는 단계다. 모든 것이 정해지지 않은 시작의 단계이므로 모든 가능성이 열려 있는 상태다. 순수하고 낭만적이며, 보이지 않는 꿈을 먹고 사는 이상주의자다. 살아가면서 자신의 이상을 실현하려고 노력하는 형이다.계사일주는 물속에 사는 뱀의 모습이다. 또한 수화상전(水火相戰·물과 불이 서로 싸우는 모습)이니 성급한 성미와 함께 변덕스러운 성향을 보일 수가 있다. 음양이 극과 극을 오가니 그만큼 감정의 기복이 심하여 정신적인 질환을 겪을 수가 있고, 우울증이 올 수도 있다. 뱀은 이빨에 독이 있어 독한 말을 하며, 혀가 둘로 갈라져 있어 두 말을 잘한다. 상황이 불리해지면 말을 잘 바꾸는 단점이 있어 자기 성찰이 필요하다.그리스신화에 헤라클레스의 12가지 과업 가운데 두 번째는 레르나늪에 사는 머리 아홉 달린 거대한 물뱀 히드라를 죽이는 것이다. 헤라클레스는 물뱀을 처치할 방법을 조카 이올라오스에게 상세히 설명한다. “히드라의 머리는 하나를 자르면 두 개가 나온다고 한다. 내가 낫으로 히드라의 머리를 벨 터인즉 너는 불방망이로 그 벤 자국을 지져버려라. 불과 물뱀 히드라는 상극이 아니겠느냐. 우리는 히드라를 불로 잡아야 한다.”헤라클레스는 칼로 히드라의 대가리 하나를 잘랐다. 그때 이올라오스가 재빨리 불방망이로 잘린 곳을 지졌다. 불에 지져진 곳에서는 다시 대가리가 생겨나지 않았다. 헤라클레스와 이올라오스는 히드라의 대가리를 길가에 묻고 무거운 돌로 눌러 놓은 다음 뮈케나이로 돌아갔다. 제우스신이 히드라를 하늘로 불러 올려 별자리로 박아주었다. 우리가 ‘물뱀자리’라고 부르는 별자리이다.제우스의 아내 헤라의 미움 때문에 헤라클레스는 술에 취하여 아내와 자녀를 죽인다. 그는 죄책감에 스스로 벌을 받기 위해 고난의 길을 걷게 된다. 12가지 과업에서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 운명에 맞서 영웅으로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타고난 운명이라면 맞서 싸워나가야 한다. 결과보다는 과정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삶도 이와 같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일지 사화(巳火)가 배우자궁으로 좋은 배필을 만나 안정적인 결혼생활을 한다. 남자는 역마와 재물이 깔려 있어 좋은 집안의 여자를 맞이하고, 사회생활을 잘하는 배우자를 얻게 된다. 여자는 현실적인 감각이 있어 조건이나 배경을 잘보고 결혼상대를 결정하여 행복한 생활을 영위할 수 있다. 부부 금슬도 역시 좋다.계사일주는 천을귀인으로 공직 등 명예로운 직업을 갖고, 사회적 성공에 이르는 일주다. 물이 필요한 여름에 시원하게 내리는 비처럼 두루 쓸모 있는 사람으로 평가를 받으며, 역마 기운이 있어 일생을 바쁘게 살아가는 것을 암시한다.또한 일귀(日貴)격이라 순수하고 품행이 단정하고 성정이 자비롭고 용모도 준수하고 지혜로워 많은 사람들이 좋아한다. 원칙에 밝고 실리를 중시하니 개인사업으로 전면에 나서는 것보다는 조직 내에서 대표나 고위직을 보좌하는 참모형이 제격이다.중국 전국시대 조(趙)나라 말기에 인상여는 조나라의 내시였던 무현의 식객이었다. 무현이 우연히 시장에서 산 옥구슬은 보물 화씨의 벽이었다. 이 소식을 들은 조혜문왕은 무현에게 구슬을 보여줄 것을 요구했다. 보여주면 화씨의 벽을 빼앗길 게 뻔해 무현은 화씨의 벽을 도난당했다고 거짓말을 했다. 어느 날 무현이 출타한 사이 집을 뒤져 보물을 가져갔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안 무현은 연나라로 도망하려 했다.인상여가 말했다. “연나라는 조나라보다 약하므로 조나라가 공을 포박해 조나라로 돌려보낼 것입니다. 차라리 공께서 어깨를 드러내고 형틀에 엎드려 죄를 청하는 것이 나을 것인데, 그러면 요행으로 죄를 벗을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무현이 크게 깨닫고 조왕에게 사죄하자 조왕은 다행히도 무현을 용서했고, 무현은 인상여의 용기와 지모를 높게 평가하게 되었다.인간은 원하는 것을 갖지 못할 때 괴로워한다. 이미 보물을 취한 조혜문왕은 성취감에 취해 마음이 평온하고 행복했기 때문에 무현을 용서해준 것이다. 인상여는 인간의 심리를 파악하고 탁월한 판단으로 주인의 목숨을 구해준 것이다.우리가 자주 쓰는 ‘완벽하다’의 ‘완벽(完璧)’은 인상여가 천하의 보물인 화씨의 벽을 탐낸 진나라 왕으로부터 죽음을 무릅쓴 용기로 다시 가져온 데서 유래했다. 그 공으로 재상이 되었다. 그러한 용기가 가능할 수 있는 것은 전략가 염파장군이 있었기 때문이다. 일개 식객에서 재상이 되자, 염파장군이 시기하는 것을 알고 맞대면하는 것을 피했다. 식솔이 그 이유를 묻자 “내가 염파장군을 일부로 피하는 까닭은 나라의 위급함을 먼저 생각하고 사사로운 원망을 뒤로 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류대창 명리연구자 염파가 이 말을 듣고는 웃옷을 벗고 가시 채찍을 등에 짊어지고 빈객으로서 인상여의 문 앞에 이르러 사죄하며 말했다. “저는 상경께서 이토록 너그러우신 줄 몰랐습니다” 이리하여 두 사람은 서로 화해하고 죽음을 같이하기로 약속한 벗이 되었다. 부형청죄(負荊請罪)와 문경지교(刎頸之交 ) 고사가 여기에서 나왔다.조나라가 한때 최강국인 진나라와 맞설 수 있었던 것은 염파, 인상여와 같은 충성스런 장군과 신하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들이 죽거나 쫓겨나면서 조나라는 패망의 길로 접어들었다. 나라가 어려울수록 뱀 같이 냉철한 결단과 용기가 필요하다. 복잡다단한 현대사회에서는 더욱 그렇다. 스스로 적을 물리칠 능력이 양성될 때 외교력도 발휘되는 것이다.통 큰 사람은 남에게 호의와 친절을 베푸는 것을 기쁨으로 여긴다. 그리고 자기가 남에게 의지하고 호의를 받는 것은 수치스럽게 생각한다. 왜냐하면 호의와 친절을 베풂은 우월감의 상징이며, 그 반대는 열등감을 나타내는 것이라 여기기 때문이다.

2023-03-22

버려진 사진

윤명희 수필가 친구가 운영하는 고물상에 들렀다. 부탁해 둔 주물난로가 들어왔다는 연락을 받은 그 날은 겨울 추위가 막 들어서고 있었다. 친구는 화물차에서 묵은 짐들을 내렸다. 요양원에 간 이웃 할머니의 살림을 정리 중이라 했다. 냉장고에서 나온 계란 몇 알이 소쿠리에 담겨 있고 그 옆에는 미숫가루가 반쯤 담긴 통과 고춧가루 통이 발치에 차였다. 냉동실에서 나온 고등어와 얼어붙은 시루떡 몇 뭉치에 지난 가을에 넣어 둔 홍시까지 혼자 살아 온 할머니의 생활이 다 보이는 듯했다.바닥에 떨어진 수주(數珠)를 줍는데 발밑에 사진이 있었다. 남의 얼굴을 밟고 있는 것 같아 발이 화들짝 놀라 뛰었다. 고물상의 흙먼지를 덮어쓴 여러 장의 사진을 집어 들었다. 사진에는 할머니와 단발머리의 소녀가 있었고 친구인지 형제인지 모를 동년배의 모습도 있었다.짐을 내리던 고물상 친구는 할머니의 자식들이 이런 걸 왜 챙기지 않았는지 모르겠다며 넘어진 박스를 세웠다. 박스에는 효자손을 비롯한 잡동사니와 많은 사진이 들어있었다. 여러 짐들이 분류되어 고철더미 위로 던져지고 잡동사니들은 대형 쓰레기봉투로 들어갔다. 친구는 안이 훤히 보이는 쓰레기봉투에 사진을 넣기가 뭣한지 한쪽으로 모았다. 할머니는 자기 얼굴이 고물상 바닥에서 남의 발에 밟히고 있다는 것을 상상이나 해 봤을까.엄마가 돌아가셨을 때의 일이다. 손때 묻은 살림들을 정리하고 남은 것이 앨범이었다. 동생들과 둘러앉아 앨범을 펼쳤다. 엄마가 살아 온 흔적들이 고스란히 모여 있었다. 대청마루에 앉은 외할머니 흑백사진부터 자식들의 결혼사진, 손자의 돌 사진까지 찰나의 순간들이 영원으로 남았다. 사모관대를 한 아버지와 족두리를 쓴 엄마의 흑백사진은 손이 빠른 첫째 동생이 챙겼다. 자기가 주인공이었던 결혼사진은 제 각각 가방에 넣었다. 손자들과 함께 웃는 사진을 보며 그때의 이야기로 눈물을 찍어냈다.마지막까지 남은 것은 엄마만의 사람들이었다. 연분홍 저고리가 진달래 꽃밭에 숨어있는 친구들은 내 나이보다 더 젊었다. 장구 장단이 흥에 겨운 동네 분들의 사진에서는 내 어릴 적 친구들의 부모들도 있었다. 동시대를 살아온 그들의 행적은 아무도 챙기지 않았다. 그 인연들은 우리에게 그리 소중하지 않았다. 더군다나 기억하고 싶어 찍어 둔 관광지의 사진들은 길바닥에 버려지는 광고 전단지나 별다르지 않았다. 남은 사진들을 모으니 앨범 한 권이 되었다. 맏이인 내가 보자기에 싸서 집에 가져왔다. 그 후로 나는 카메라 앵글에서 멀어져갔다.기회만 되면 태우겠다는 약속은 빈말이 되어갔다. 그 앨범은 이사할 때마다 창고에서 창고로 옮겨졌고, 이삿짐 속에 묻혀 있는 것조차 알지 못할 때도 있었다. 마지막으로 본 게 언제인지 기억도 아스라한데, 한 번도 뵌 적 없는 동네할머니의 사진 앞에서 뒤늦게 그 앨범을 떠올리고 있다.고물상 마당에 있는 주물난로에 불을 붙였다. 할머니의 자식들을 대신 해 사진을 한 장 한 장 집어넣었다. 삶의 조각들이 타들어가는 소리를 멍청히 듣고 있다. 할머니의 모습이 불꽃 속으로 사라졌다.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창고를 뒤졌다. 먼지 앉은 보자기를 푸는 손이 바빠졌다. 앨범은 서로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힘을 주자 오랫동안 잠을 잤던 사진의 한 귀퉁이가 찢겨나갔다. 한 장 한 장 빼며 사람들 속에 묻힌 엄마와 마주했다. 지금의 나와 별반 다르지 않은 당신의 지난 시간들이 누구도 보지 않는 사진으로 남았다.당신의 소중했던 순간들을 가져가시라고 불을 붙였다. 사라지는 불꽃을 보며 휴대폰에 저장된 내 사진들을 넘겨보았다.메모처럼 넣어둔 오래된 것부터 하나하나 삭제했다. 폰을 접어 주머니에 넣고 일어서는데 sns에 올려놓은 흔적들이 딴죽을 걸었다. 만인이 보는 앨범에 내 생활을 펼쳐 놓고는 열쇠마저 감춘 나도 그 길을 걷고 있었다. 나는 딸에게 문자를 보냈다. 내 인터넷 계정의 비밀번호는 oooo이라고.

2023-03-22

우리집 강아지 베리

이정옥 위덕대 명예교수 지난 겨울 베리가 많이 아팠다. 남편이 데리고 병원 다녀오더니 방광암이 의심된다는 거였다. 약물로 치료하되 나을 기약을 할 수 없단다. 힘겨워하는 베리를 안고 며칠 밤을 같이 지샜다. 얼마 못갈 것같아 울며 장례식장을 알아보고 영정사진도 찍어야 하나 아득해하며 또 울었다. 힘든 약물치료보단 좋아하는 것 실컷 먹이며 여생을 보내게 하자 결정했다. 사람 나이로 치면 90 아닌가. 노령견에게 좋다는 저지방 사료에, 황태와 닭을 푹 고아 갈아 먹였다. 사골국물에 사료를 말아 먹이기도 했다. 마룻바닥엔 매트를 깔았다. 기저귀도 채웠다. 그렇게 정성을 쏟으며 겨울을 났더니 많이 나아졌다. 아직도 기저귀를 차고 있고 기저귀가 벗겨지면 집안 곳곳에 오줌스팟을 만들긴 하지만 이보다 더 고마울 수가 없다. 코끝이 반들거리는 걸 보고는 건강해진 것 같아 안도해한다.11년전, 4살의 베리가 왔을 때는 그야말로 까도녀였다. 까칠하고 도도하고 세련된 미니핀. 눈썹 위, 발목 부분의 노란 색을 제외하곤 온몸이 윤기나는 짧고 검은 털의 베리는 매력적인 도시여자같이 예뻤다. 유기견인 강아지를 보호하던 아들이 동물보호센터에 보낼 수 없다며 데려왔다. 똑똑하고 깔끔하여 배변 문제로 속 한 번 썩이지 않았다. 뭐든 너무 잘 먹는 게 단 하나 흠이었다. 처음 올 때 날씬하던 몸매는 2년만에 마치 까만 베개같았다. 산책 때 사람들이 뚱뚱하다고 입대면 미니핀 아니고 미니픽이에요 할 정도였다. 다이어트하면서 체중계를 내오면서 “몸무게”라면 달랑 올라앉았다.그 식탐이 문제가 되었다. 아무거나 먹고는 탈이 낫고, 어김없이 응급실행. 병력도 화려하다. 입원 4번, 수술은 두 차례나 했다.첫 기억은 지금도 아찔하다. 비 오는 밤, 학교에서 늦게 돌아온 내가 집에 들어서자마자 베리가 토하고 비틀댄다며 남편이 걱정했다. 119로 전화했더니 강아지는 안된단다. 남편이 아는 수의과 교수에게 전화해서 큰 병원으로 갔다. 병원 가는 차 안에서 내내 울었다. 장장 4시간의 검사에 치료를 한 후, 위기를 넘겼다고 해서 한시름 놓았다.그 후에도 몇 차례 응급실을 찾았고 비용도 만만찮았다. 우린 종종 천만 베리라고 한다. 병원비가 천만 원 이상 든 때문이었다.작년 여름, 또 한밤중에 병원을 찾았다. 췌장염으로 열흘이나 입원하였다. 코로나 시국이라 면회도 못해 전화로 상태를 전해 듣곤 하던 때였다. 우리집엔 베리말고 아키라는 갈색 푸들이 한 마리 더 있다. 5년전 베리 친구 삼는다고 아들이 키우던 애를 데려와 같이 놀던 베프다. 베리가 없자 아키가 식음을 전폐하고 시름겨워했다. 아무것도 먹질 않고 베리의 담요에 엎드려 꼼짝 않는다. 베리가 그리워 그러는 것 같았다. 병원에 전화하여 상황을 얘기하고 면회를 간청했다. 병원 측의 배려로 입원실 대신, 병원 뜰에서 둘은 상봉했다. 어쩜 그리도 애틋할까. 서로 몸을 부비며 즐거워하는 걸 지켜보는 우리 부부가 더 감격해했다. 집에 온 아키는 사료를 폭풍흡입했다. 90 노인 수발들 듯하는 요즘이지만 베리가 잘 먹고 신나게 살았으면 하는 바람뿐, 닥치지 않은 일은 미리 생각하지 않으려한다.

2023-03-22

나잇살은 안 빠진다구요?

나선택 포항 행복한의원장 50대 환자분들과 상담하다 보면, 젊었을 때는 체중 조절이 어렵지 않았는데 나이 들면서 노력해도 살이 빠지지 않아서 고민이라는 얘기를 자주 듣는다. 나이가 들면서 근육량이 줄어들고 신진대사가 느려지고 호르몬의 불균형이 생겨 내장지방 등의 축적이 빨라지는 것을 나잇살이라고 한다. 이 나잇살은 못 빼는 걸까 안 빼는 걸까?중년이 되면서 콜레스테롤 약을 먹는 분이 많다. 콜레스테롤에는 나쁜 콜레스테롤(LDL)과 좋은 콜레스테롤(HDL)이 있다는 것은 대부분 알고 있다. 그러나 비만의 주범인 지방에도 나쁜 지방(백색 지방)과 좋은 지방(갈색 지방)이 있다는 사실은 잘 모른다.갈색 지방은 백색 지방이 공급해주는 연료(포도당)를 사용해 열을 발생시켜 체온을 유지하는 역할을 한다. 동물이나 어린 아이에게 많고, 어른에게는 거의 없다. 사람은 신생아시기에 가장 많은 갈색 지방세포를 가지고 있어서 운동량이 적어도 체온 유지를 잘 할 수 있다. 나이가 들수록 갈색 지방 세포는 줄어들다가 없어지니까 나잇살은 못 빼는 걸까?하버드 의대 연구진의 최근 연구에 따르면, 운동할 때 우리 몸에서 ‘아이리신’이라는 호르몬이 분비되는데, 이 호르몬이 백색 지방세포에 작용하면 백색 지방세포가 갈색 지방세포처럼 변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백색 지방세포가 갈색 지방세포처럼 변한 것을 ‘베이지색 지방세포’라고 한다. 이 베이지색 지방세포 60g은 1년에 4kg 정도의 지방을 태운다고 한다. 즉, 우리가 운동 등을 통해서 백색지방 세포 60그램을 베이지색 지방세포로 바꾸기만 하면 1년에 4kg은 그냥 빠진다는 말이다. 아이리신 호르몬은 운동할 때 나온다. 저강도의 지속적인 운동이나 고강도의 짧은 운동에 상관없이 나온다. 다만 저강도의 지속적인 운동에서 좀 더 많이 나온다고 한다. 그러니 걷기 달리기 등산 수영 등 어떤 운동이든지 꾸준히 하는 것이 나잇살을 없애는 최고의 방법이라는 것을 꼭 기억하자.또 다른 실험에 의하면 베이지색 지방세포가 증가하는 또 하나의 조건은 조금 추운 상태에서라고 한다. 16도 이하에서 베이지색 지방세포의 활성도가 많이 증가하고 27도 이상에서는 활성도가 급격히 떨어진다고 한다.음식 중에서는 녹차에 많이 함유된 카테킨을 12주 이상 꾸준히 복용한 경우에 베이지색 지방의 밀도가 증가하고 근육 세포의 지방 함량이 줄었다고 한다. 고추의 매운 맛을 내는 캡사이신이나 파프리카에 많은 캡시노이드 성분을 6주 이상 먹었을 때도 베이지색 지방의 활성도가 증가한다고 한다. 탄수화물의 섭취량을 줄이고, 신선한 야채를 곁들인 식사를 하는 것이 나잇살을 없애는 식단이라는 뜻이다.한방에서는 비만 치료에 효과가 있다고 하는 방풍통성산 같은 처방들로 연구한 결과 백색 지방세포의 크기가 줄고 베이지색 지방세포의 활성도가 증가하는 것이 확인되었다. 족삼리 천추 등의 혈자리에 맞는 전침 역시 백색 지방세포가 베이지색 지방세포로 변하는데 도움이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중년의 다이어트, 나잇살 빼기 방법은 하나도 어렵지 않다. 생활습관을 바꾼다는 생각으로 꾸준하게만 하면 1년 뒤에는 날씬하고 건강해진 나를 만나게 될 것이다.

2023-03-22

개구리소년과 와룡산의 진실

홍석봉 대구지사장 다시 봄이다. 봄만 되면 비통한 기억에 가슴앓이를 한다. 개구리소년 유족들이다. 오는 26일은 개구리소년 실종사망사건 32주년을 맞는 날이다. 관내에서 발생한 사건으로 대구 달서구도 유가족 못잖게 몸살을 앓았다. 달서구는 32주년을 맞아 아동권리와 안전의식을 높이는 각종 행사를 한다. 기념식과 추모식, 캠페인 등 행사를 갖는다.지역아동센터는 아동 등을 대상으로 성폭력 등 위험상황에 대처하는 교육을 할 예정이다. 네거리와 지하철역에서 아동학대 예방 캠페인이 펼쳐진다.달서구 용산동 선원공원 개구리소년추모비 앞에서 5개 지역아동센터 아동 30여 명이 개구리소년을 추모한다. 유가족들도 26일 추모행사를 갖는다.지난 1991년 3월 26일 도롱뇽 알을 주우러 와룡산에 갔다가 실종, 11년 만에 유골로 발견된 초등학생 5명을 기리기 위한 행사다. 타살로 결론나고 미제사건으로 남았으나 아직도 진실은 드러나지 않았다.경찰은 사건 초기 단순 가출로 판단했다가 단서를 찾을 기회를 놓쳤다. 국내 단일 실종 사건으로는 최대인 연인원 35만 명의 수색 인력이 투입되고 전국에 1천만 장의 전단지가 뿌려졌지만, 아이들의 행방은 묘연했다. 개구리 소년 찾기 캠페인이 전국적으로 펼쳐졌다. 안타까운 사연은 노래와 영화로도 만들어졌다.범인은 물론 범행 도구도 밝히지 못했다. 결국 2006년 공소시효가 끝나 장기 미제 사건으로 남았다. 그 후 한 차례 경찰이 재수사했지만 별다른 실마리를 찾지 못했다.사건은 모두의 가슴 속에 묻었다. 우리 사회는 재발방지와 아동들의 안전과 꿈을 위해 각별히 노력해야 한다. 다시는 아이들의 억울한 주검이 있어서는 안 된다. 3월의 다짐이다./홍석봉(대구지사장)

2023-03-22

복수가 해결책일까

장규열 전 한동대 교수 넷플릭스 드라마 ‘더 글로리’를 보며 우리는 학교폭력 피해자의 복수에 열광하였다. 폭력에 대한 징악과 보복을 탓할 수는 없다. 감정적으로 시원하고 최후 승리를 거둔 느낌마저 든다. 하지만, ‘학교폭력’에 대한 궁극적인 해결 방법으로 보복과 복수만을 생각할 수는 없다. 학교, 교육청과 정부는 특단의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학교폭력이 사회적 담론의 이슈가 되는 경로가 있다. 미디어가 전하는 뉴스나 드라마를 통하여 학교폭력의 실상이 전달되면, 대중적 분노를 바탕으로 국민들에게 일시적으로 생성된 피해의식과 응보감정을 정책마련의 근거로 삼는다. 분노를 기반으로 하는 대중적 관심은 자연스럽게 가해자를 색출하여 처벌하는 일에 방점을 둔다. 가해자는 처벌을 피하려 온갖 노력을 기울인다. 학교폭력의 처리과정에서 피해자를 보호하고 입은 피해로부터 회복하는 일은 대중의 관심 밖으로 밀려나고 만다. 한국청소년학회의 보고에 따르면, 20대 성인들의 34% 정도가 어린 시절에 학교폭력을 경험했다고 하며 그들 가운데 절반 정도는 자살을 생각했었다고 한다. 학교폭력은 피해자들에게 씻어내기 어려운 온갖 피해를 안긴다.학교폭력은 피해자에게 만성적이며 장기적인 외상을 안긴다. 발생했던 학교폭력을 가해자들이 기억조차 하지 못하는 상황에 대해서 피해자들은 방금 벌어진 듯 생생하게 되뇌이며 마음에 입은 상흔을 털어놓곤 한다. 피해학생과 가족들이 바라보는 우리 사회는 언론과 미디어의 충격적인 보도에 대한 관심의 강도는 약간 증가했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에는 아직도 한참 미치지 못하고 있다. 학교폭력 가해자를 다루는 사회적 기관들은 넘쳐나는 가운데, 피해자와 가족들의 상처와 회복에 관심을 두는 공적 기관은 드문 형편이다.학교폭력을 바라보는 학교의 시선도 문제다. 학생들의 바른 인성을 길러내기 위해서도 ‘폭력’을 예방하고 퇴치하는 노력을 교실에서부터 기울여야 한다. 학교폭력을 교사가 성가시고 귀찮은 현상으로만 치부한다면, 폭력없는 학교가 온전히 회복되기는 어려울지도 모른다. 학교폭력피해자가족협의회가 운영하는 대안학교 ‘해맑음센터’가 피해학생들을 맡아 돌보며 지도하지만, 정작 그들이 떠나온 학교는 교실 분위기에 어떤 변화를 시도하는지 의문이라고 한다. 학생을 기르는 일이 학교의 일이라면, 폭력없는 즐거운 교실을 확보하는 일은 교사의 당연한 책임이 아닌가.최근 증폭된 관심에 따라 교육부는 학교폭력근절대책을 준비한다고 알려졌다. 학교폭력 경력을 생활기록부에 적극적으로 기재하고 대학입시에 불이익을 가중한다는 방침은 학교폭력의 뿌리를 다루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학교폭력이 발생했을 때, 가해자 처벌에 더하여 진정한 화해와 조정, 사후처벌보다 사전예방에 관심을 기울여야 하며, 피해복구와 관계회복에 초점을 두는 피해학생 보호와 회복에 우선순위를 두어야 한다. 폭력은 범죄다. 교육현장에서 벌어지는 폭력에 가해자를 벌하는 엄정한 접근과 함께 피해자와 가족을 따뜻하게 보살피는 배려가 있어야 한다. 폭력이 사라져야 교육이 산다.

2023-03-22

기고 신종금융사기 범죄 수법을 알면 예방도 가능해요

김중환 경위 영천경찰서 남부지구대 경찰관은 금융사기로 인해 몇백만 원에서 몇천만 원을 송금하여 피해를 당한 피해자의 112신고를 접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경찰관으로서 사전에 피해를 예방하지 못한 자책감을 느끼게 되는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는 112신고이다.피해자는 금융사기 범죄조직에 기망을 당하여 피해금을 송금하는 과정에서 경찰관에게 절대 알리지 말 것을 요구받고, ‘금융기관의 고액인출 고객이 있다’라는 112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관에게 기망을 당한 사실을 숨기기 위해 경찰관의 설득을 외면한다.금융사기 피해는 피해자가 땀 흘려 아끼고 아껴 모은 소중한 재산이기에 피해자의 마음을 더욱 아프게 한다.이렇게 피해를 예방하지 못한 사건이 발생하면 경찰관으로서 피해자를 설득하지 못해 국민의 재산을 지키지 못하였다는 공무적 책임이 마음속에 남게 된다.우리나라는 ‘06년 5월경 보이스피싱 범죄가 최초로 발생한 후로 금융사기 범죄 수법이 날로 발전하여 ’08년부터 스마트 폰이 보급되면서 신종금융사기 범죄가 해마다 증가할 뿐만 아니라 피해액도 많아지고 있다.신종금융사기 범죄에는 스미싱, 파밍, 메신저 피싱 등이 있다.“스미싱”은 문자(SMS)와 피싱(Phishing)의 합성어인데, 인터넷 주소가 포함된 문자를 피해자의 휴대폰 등 모바일 기기로 보내 악성코드를 설치하도록 유도한 후 개인정보를 빼내 가는 범죄 수법이다.“스미싱” 피해 예방은 휴대폰 등 모바일 기기로 수신한 출처가 분명하지 않은 문자 메시지의 〈인터넷 주소〉 클릭을 절대로 하지 말고 바로 삭제하면 피해를 예방 할 수 있다“파밍”은 악성 프로그램을 통해 피해자가 가짜 금융 사이트에 접속하도록 유도한 후 금융정보를 조작하여 피해자의 금융계좌에서 돈을 인출하는 범죄 수법이다.“파밍” 피해 예방은 컴퓨터 또는 휴대폰 등 모바일 기기로 수신한 출처가 분명하지 않은 파일이나 E-mail은 즉시 삭제하고 또한 무료 다운로드 사이트 이용을 자제해야 하며, 컴퓨터와 E-mail 등에 공인인증서나 보안 카드 사진, 비밀번호 저장을 절대로 하지 않는다면 피해를 예방 할 수 있다.“메신저 피싱”은 메신저에서 지인이나 금융기관 또는 공공기관을 사칭하여 개인정보나 금융정보를 빼내어 가는 범죄 수법이다.“메신저 피싱” 피해 예방은 휴대폰 등 모바일 기기로 개인정보나 금융정보를 요구하는 메신저 또는 문자를 가족이나 친구로부터 받은 경우, 우선 의심부터 하고 절대 클릭하지 말아야 하며 먼저 전화로 그 상대방에게 확인하는 것이 필요하고 또한 휴대폰 등 모바일 기기에 ‘시티즈코난’이나 ‘피싱아이즈’ 앱을 설치하여 악성 앱 설치 여부를 반드시 검사하고 악성 앱이 설치되어 있다면 바로 삭제함으로써 예방 할 수 있다.『지피지기(知彼知己)이면 백전백승(百戰百勝)』이란 《손자병법》에 나오는 말처럼, 이제 신종금융사기의 범죄 수법이 무엇인지 알고 예방법을 통하여 국민과 금융기관, 경찰이 합심하여 신종금융사기 범죄 피해를 예방해야 할 것이다.

2023-03-22

與圈은 ‘이너서클’로 총선 치르려 하나

심충택 논설위원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최근 일본에서 “반도체시장 한·일협력이 가능하냐”는 기자 질문에 “살아보니까 친구는 많을수록 좋고 적은 적을수록 좋다”고 한 말이 여운을 남긴다. 세계반도체 전쟁에서 일본이 경쟁상대이긴 하지만, 서로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면 공생의 길이 열릴 것이라는 말이다. 공감이 간다. 이 말을 총선을 1년여 앞둔 윤석열 대통령과 그 측근세력이 명심했으면 한다.집권당의 내년 총선전망은 어둡다. 승패의 최대변수가 될 ‘윤 대통령에 대한 민심’이 지극히 나쁘다. 한국갤럽이 지난주(14∼16일) 발표(조사대상 1천3명)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윤 대통령 지지율이 33%에 그쳤다. 더 큰 문제는 20대 지지율이 17%에 그쳤다는 점이다. 당의 기반인 TK(대구경북) 지지율(49%)만 40%를 넘어섰다. ‘TK 꼰대당’이라는 소리를 들어도 할 말이 없게 됐다. PK(부산울산경남 지지율 34%)를 비롯해 전국적으로 부정평가가 압도적이었다. 내년 총선은 윤 대통령 출범 2년의 중간평가 성격을 지녀, 대통령 지지율은 총선 성적표와 직결된다.더 비관적인 것은 민심이반을 막을만한 대책이 없다는 점이다. 윤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연금·노동개혁은 야당의 협조가 필수적인데 지금 민주당 태도를 보면, 실현이 불가능에 가깝다. 하루빨리 민심을 얻을 묘수를 찾지 못하면 걷잡을 수 없는 레임덕이 올 수도 있다.윤 대통령에게 가장 큰 적은 이너서클(Inner circle)이다. 이너서클은 생리상 폐쇄적일 수밖에 없다. 대통령뿐만 아니라 어떤 조직의 리더도 이너서클에 포위되면 외부 비판여론을 제대로 해석하지 못하게 된다. 국민의힘이 최근 당직자 인사에서 사무총장, 사무부총장 등 총선공천위원들을 이너서클 멤버로 채운 것은 아주 위험한 신호다.여당이 지금 서둘러야 할 일은 이준석 전 대표가 쫓겨나기 전 출범시켰던 ‘최재형 혁신위’를 부활시키는 것이다. 국민의힘 혁신위는 지난해 8월 당 공천관리위원회 권한이었던 ‘후보자의 부적격 심사권한’을 당 윤리위에 넘기는 안을 ‘1호 혁신안’으로 발표한 후 곧바로 해체됐다. 당시 이준석이 윤 대통령 측근들의 수도권 험지출마를 요구한 게 발단이 됐을 거라는 추측이 나돌았다.국민의힘이 3·8 전대 이후, ‘안철수·유승민은 되지만 이준석은 안 된다’고 정리를 했지만, 나는 이것이 최악의 수(手)라고 생각한다. 이준석은 박지현 전 민주당 비대위원장과 함께 우리나라 정계의 건강성 회복을 위해 다양한 과제를 던진 청년이다. 진영논리보다는 실용지향적인 청년들을 정치권에 흡수시킴으로써 권위적이고 폐쇄적인 우리 정계를 한 단계 성숙시킨 인물이다.내년 총선은 TK와 호남 등 강한 진영논리를 가진 지역을 제외하고는, 젊은 유권자들의 의중에 따라 승부가 결정되는 곳이 다수일 것이다. 이들을 흡수하려면 민심을 감동시킬만한 공천개혁이 선행돼야 한다. 친윤계로 공천리스트를 짰다간 TK에서도 의석을 잃게된다. 윤 대통령과 여당은 하루빨리 이너서클 울타리를 벗어나 열린광장으로 나와야 한다.

2023-03-21

일하는 노인이 많은 나라

우정구 논설위원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파이어족이란 말이 유행했다. 30대말∼40대초까지 조기 은퇴를 목표로 회사 생활을 하는 젊은이를 두고 한 유행어다.이들은 수입의 70∼80% 이상을 저축하는 등 극단적인 절약을 생활화하며 산다. 일반적인 은퇴 연령인 50∼60대보다 빨리 은퇴생활을 시작해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사는 것이 목표다. 부자가 되는 것이 목표가 아니고 조금 덜먹고 덜 쓰더라도 외식이나 여행을 즐기는 삶을 찾아 나서겠다는 것이다.글로벌 경제위기 이후 사회생활을 시작한 밀레니얼 세대를 중심으로 확산된 현상이다. 미국에서 시작해 영국, 호주 등 전 세계에서 이런 흐름이 나타났다. 학자들은 일에 대한 불만족, 높은 실업률, 경제적 불확실성 등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했다.우리나라는 OECD가 공식 인정하는 일하는 노인이 많은 나라다. 65세 이상 일하는 노인 인구 비중이 40%다. 일본 25%, 미국 18%, 홍콩 13%에 비해 월등히 높다.지난달 통계청 조사에서 우리나라 60세 이상 일하는 노인의 수는 577만여 명으로 집계됐다. 10년 전보다 2.1배가 늘었고, 1996년 통계작성 이후 최대 규모다.통계청이 조사한 고령층의 취업실태에서 장래 취업 의사가 있는 인구 비율이 68%다. 그들이 밝힌 취업 의사 이유로는 “생활비의 보탬”이 57%로 가장 높았다. 이는 우리나라 노령층의 상당수가 생활고에 시달려 일을 한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다.“우리 출산율과 고령화 추이를 보면 국민연금은 없는 돈으로 생각하고 각자 알아서 노후를 준비해야 한다”는 누군가의 말이 실감난다. 늙어서 일한다는 게 즐거운 일은 아닐 것이다./우정구(논설위원)

2023-03-21

기계다워지는 인간

전재영 한동대 교수·AI융합교육원 “구글이 우리를 바보로 만들고 있는가?” 애틀랜틱 잡지에 기고한 니콜라스 카의 글은 깊이 생각하지 않는 인간과 기억하려 하지 않는 인간을 적나라하게 고발했다. 많은 사람들이 검색엔진에서 찾은 정보를 일회용 플라스틱처럼 사용하고는 그냥 버려 버린다. 필요시 언제나 다시 검색 할 수 있는데, 굳이 칼로리를 소비하면서까지 자신의 뇌에 그 정보를 기억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창조의 신비인 우리의 뇌는 그렇게 버림받는 중이고, 우리가 버린 플라스틱은 이제 비와 함께 내린다고 과학저널 사이언스는 보도했다.ChatGPT는 45 TB가 넘는 양의 웹 페이지, 책, 기사 등의 글을 가지고 학습되었다. 사람 한 명이 이만큼의 글을 읽으려면 최소 약 4천 번 정도 인생을 반복해야 한다고 한다. 이렇게 방대한 양을 가지고 학습되었기에 놀라운 성능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우리에게 여전히 매우 중요한 것은 아날로그 방식이든 디지털 방식이든 글을 써야 한다는 것이다. AI를 가능케 하는 핵심 동력 중의 하나는 글, 즉 데이터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글쓰기가 없었다면 지금의 ChatGPT는 없다. 문제는 인간의 글쓰기 능력은 이미 쇠퇴의 길을 걷고 있다는 것이다. 한 사례로 서울대 자연과학대 입학생 25%는 정규 글쓰기 과목을 수강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글쓰기 능력이 부족했다. 미국과 호주 등 다른 나라도 비슷한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ChatGPT의 출현은 사실 문제를 더 복잡하게 만든다. 촘스키 같은 언어학자들은 어떤 형태이든 문법이 어느 정도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반면, ChatGPT는 웹에 있는 인간의 글들, 즉 데이터만을 가지고 인간 언어를 학습했다. 그리고 그것을 바탕으로 글들을 ‘생성’한다 (‘창작’이 아닌 ‘생성’이라는 단어를 사용했음에 유의하자). 이렇게 생성된 글들은 인간들이 자신의 목적에 맞게 다시 웹에 게시할 것이고, 이렇게 웹에 게시된 글들은 다시 ChatGPT의 학습 데이터로 사용되어지는 반복을 거듭하게 될 것이다. 좀 과한 비유를 하자면, 먹었던 음식(데이터)을 소화하고 배설한 후(생성), 그 배설물을 다시 먹는 격이다. 이런 악순환을 피하려면, 기계가 생성한 글은 학습데이터에서 제외하고 인간의 창작 글을 학습 데이터로 사용해야한다. 문제는 주어진 글이 생성인지 창작인지 구분도 안 될 뿐더러, ChatGPT에 열광하는 우리는 순수 창작 글쓰기를 더 멀리 할 것이라는 점이다.존 컬킨은 “우리는 도구를 만들고, 그 후에는 도구가 우리를 만든다”고 말했다. ChatGPT가 높은 품질의 답을 생성할 수 있도록 좋은 질문을 만드는 인간의 작업을 Prompt Engineering이라고 한다. 도구를 인간에 맞추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도구에 맞춰지고 있는 격이다. 그리고 심지어 그것을 엔지니어링이라고 명명했다. 이는 몇 십 년 전에 검색엔진최적화(SEO)에서도 나타난 현상이다. 우리가 기계를 인간답게 만드는 동안, 인간은 점점 기계다워지고 있는 것이다. 배설물을 가지고 다시 학습한다면 ChatGPT의 성장도 언젠가는 멈출 것이다. 인간이 계속 기계다워진다면 말이다.

2023-03-21

결핍의 시간을 지나며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춘분에 즈음해서 봄이 절정으로 치닫는다. 온갖 꽃들이 앞서거니뒤서거니 울긋불긋 피어나고 새들은 나무를 새장 삼아 정답게 지저귀는가 하면, 부드러운 바람 결에 실버들은 연둣빛 머리채를 하늘하늘 풀어헤치고 있다. 메마른 땅에 어김없이 생동의 기운이 스며들어 그야말로 만화방창(萬化方暢)한 나날이 펼쳐지고 있다. 이렇게 화창한 봄날의 정취와 향기를 이제는 마스크 없이도 느낄 수 있다니, 실로 얼마만에 누려보는 봄날의 환희이던가.불과 4년 전의 겨울에 들이닥친 코로나19는 얼마나 위협적으로 지구촌을 옥죄여 왔던가. 조마조마한 가운데 초기의 확진자는 무슨 죄인(?)이라도 된 양 멸시와 냉대 속에 적개심마저 불러 일으키게 했고, 언제 걷힐지 모를 암울의 장막같은 불안과 침체의 늪에 허우적거리며 공포와 조바심의 나날을 보내기도 했었다.그러나 언 땅에도 봄이 찾아들듯이, 끝이 보이지 않던 괴질의 아귀도 이제는 한 때의 고질(痼疾)로 여길 수밖에 없을 듯하다.올해 들어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율의 확연한 감소세로 팬데믹의 긴 터널을 벗어난 듯해 사뭇 서로가 따뜻한 위로와 공감으로 다독이고 챙기며, 병은 미워하되 사람을 미워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재삼 되새기게 된다.어쨌든 코로나 이후 세번째의 봄날이 왔고, 좀 늦긴 했지만 감염병의 소멸추세에 사람들은 조금씩 안도와 평온의 일상을 되찾아가는 듯하다. 지나고 나면 모든 것이 꿈결 같고 한 순간 같다지만, 희대의 코로나19는 혹독한 시련과 패러다임의 전환을 가져온 것만은 확실해 보인다. 팬데믹과 네트워크상의 소통, 공유 증가로 우리는 점점 직접 마주하는 기회가 줄어드는 비대면 문화와 일방적인 대화, 표현에 익숙해지는 듯하다. 그것은 어쩌면 건조한 듯 단순해 보이고, 당연한 듯 무관심에 주눅들어가는 개인화와 비정(非情)의 사회를 연상시키는 모종의 딜레마에 감염된 것이 아닐까 싶다.‘春日短/幷且去/吾君邪/頻相處(봄날은 짧다/그리고 간다/우리 그대여/자주 만나자)’- 강성위 한시 단가(短歌) 致君(그대에게) 전문모든 것은 한 순간에 지난다. 광대무변한 우주에 지구는 한 개의 점이나 티끌에 지나지 않고, 한철이나 한 시대는 유구한 세월 속의 창해일속이나 다름없을 것이다. 그만큼 길거나 크게 보면 현재와 맞닥뜨리는 일련의 현상은 한때의 미약한 움직임이고 아주 소소한 변화나 진배없을 것이다. 그에 비춰 보면 지겹기만 했었던 악몽 같은 코로나의 엄습도 ‘한때의 신음’ 정도가 되지 않을 듯싶다.3년만에 봄다운 봄을 푸근하게 맞이할 수 있음은 그만큼 억눌리고 발목 잡힌 누림의 결핍이 컸었기 때문일 것이다. 묵묵히 참으며 오랜 기다림이 있었기에 새롭게 맞이하는 봄날이 한결 따사로운지도 모른다. 짧기만한 봄날이지만 마음껏 즐기고 누리면서 분출되는 욕구를 구가하는 것도 괜찮을 일이다. 뜸해졌던 만남의 물꼬를 흔쾌히 트며 피어나는 봄꽃 마냥 환한 웃음꽃을 피워보자.

2023-03-21

‘덕질’은 구원입니다

‘덕질’이라는 말이 있다. ‘수집가’의 뜻을 가진 신조어인데, 자신이 좋아하는 대상에 대해 깊게 파고드는 행위를 뜻한다.쉽게 말하자면 그냥 좋아하는 일에 몰입하는 것이기도 하고, 조금 더 깊게 이야기하자면 뭔가에 미쳐하는 행동을 ‘덕질’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러니까 이런 것이다. 미친 듯이 포켓몬 스티커를 모으는 건 포켓몬 스티커 덕질이고, 미친 듯이 아이돌 관련 굿즈를 사 모으는 건 아이돌 덕질인 셈. 어떤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는 자기만의 취향에 미친 듯이 몰입하는 것, 그걸 위해 얼마든 돈과 시간을 투자하는 것. 그게 덕질인 셈.최근엔 ‘진격의 거인’에 미쳐 하루 종일 그것만 보고 지냈다. 집에 콕 박혀서 식음을 전폐하면서까지, 그 세계에 대해 상상하고 가슴 졸이면서. 그렇게 한 일주일을 살고 나면, 일상의 스트레스를 모두 잊어버리고 만다. 그게 중요해? 지금 엘런이 거인이 됐는데? 아르민이 불타 죽게 생겼는데? 말이 좀 그렇긴 하지만, 나한테는 나름 현실의 시름을 잊게 해주는 힐링인 셈이다. 하지만 그마저도 일이 바쁜 시즌이 되면 흐름이 뚝 끊어지게 돼서, 강제로 ‘탈덕’ 당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그런 의미에서 나에게 3월은 바야흐로 ‘탈덕’의 계절이다. 강의가 시작되고, 계간지의 새 시즌이 시작되는 시기니까. 프리랜서는 일 할 수 있을 때 일해 둬야 비시즌에 먹고 살 수 있으니까. 취미나 취향이나 애정보다 일이 앞서는 시기인 셈이다. (물론 이런 말을 했더니 출판사 팀장님은 나에게 “방학이 있는 삶에 감사하라”고 잔소리를 하시긴 했지만...) 좋아했던 모든 일로부터 멀어져 강의를 준비하고, 특집 원고를 준비하고, 새로 시작할 연구를 준비하고. 그나마 좋아하는 일로 먹고 사는 입장이다 보니 이런 삶이 싫진 않지만, 바쁘게 일만 하면서 살다 보니 사는 낙이 없다는 기분이 들곤 한다. 이런 때엔 술마저 맛이 없다. 마치, 일찍 잠들기 위해 수면제를 먹는 것처럼 술을 마시는 기분이 든다.최근엔 1학년 대상의 글쓰기 수업을 위주로 강의를 하고 있다. 막 대학에 입학한 새내기들에게 하는 수업이다 보니 왠지 재밌게 해줘야 할 것 같은 의무감이 들어 생글생글 웃기도 하고 재밌는 이야기도 나름 많이 준비해 가곤 한다. 그렇다보니 아이들 앞에서 수업을 할 때에는 아이들의 즐거워하는 모습에 나도 덩달아 즐거워지곤 하지만, 막상 수업이 끝나고 집에 돌아와 혼자 있을 때면 모든 에너지가 방전되어버린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어떻게든 내일 수업을 또 준비하고, 다른 할 일들도 해야 하는데, 정작 집에 돌아오면 마음이 지친 것인지 침대에 몸져눕듯 쓰러져 한 시간쯤 잠들어버린다. 아무것도 하기 싫고, 아무것도 먹기 싫은, 어른의 투정인 셈.그런 하루 중에 유튜브 알림이 울린다. 좋아하는 인디 밴드의 뮤직 비디오가 유튜브에 공개되었다는 알림. 겨우 손가락 움직일 힘만 남아, 가까스로 알림을 클릭한다. 검은 창에 유튜브의 마크가 뜨고, 좋아하는 밴드의 노래와 영상이 나오기 시작한다. 와, 음악 진짜 좋다. 영상 진짜 멋있게 찍었네. 대박. 대박. 보컬 엄청 잘생기게 나왔어. 얘들 왜이래. 진짜 대박 나겠다. 이제 나만 아는 밴드 아니겠다. 속상한데 더 성공했음 좋겠다. 너네라도 성공해라. 난 이번 생은 글렀다. 와 근데 노래 진짜 좋네. 영상 대박 멋있어. 완전 대박. 어, 이거 만화 오마쥬인가? 소년 만화 주인공 같네. 멋있다. 임지훈 2020년 문화일보, 서울신문 신춘문예 평론 부문에 당선된 문학평론가. 한양대 국문과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실리카겔’이라는 밴드의 ‘Mercurial’을 그렇게 하루 종일 보고 들었다. 가사의 의미와 뮤비에 나온 오브제들을 보며 어떤 의미일까 생각하면서 이상하리만치 흡족한 기분이 들었다. 오늘 하루 버티길 잘했다 싶은 기분일까? 아니면 아름다운 것을 보았을 때 느끼는 심미적인 만족감 같은 걸까? 사실 잘은 모르겠다. 그냥 기분이 들뜨고 내일도 또 들어야지 싶고.내일도 또 들어야지, 지하철에서 뮤비 봐야지, 영상도 더 찾아봐야지. 어디 인터뷰나 코멘트 한 거 없는지 찾아봐야지, 그런 소소한 생각을 하다 잠들었다. 그런 때면 왠지 어릴 때 생각이 난다.좋아하는 게임 하나에 몰입해, 혼자 게임 세계에 대해 상상하고 이런 저런 살을 붙이고, 내일은 뭘 해야지 하고 계획하며 두근거리던 기분. 분명히 별 것 아니지만, 나의 가슴을 뛰게 만드는 1인용 위안 같은 것들. 참 별 것 아니긴 한데, 그 사소하고 작은 ‘덕질’ 하나에 하루의 의미가 바뀐다. 버티고 버틸 뿐인 삶에서, 내일을 두근거릴 수 있는 삶으로. 그렇게, 오늘 나의 하루는 구원받는다. 사소한 애정이 나의 하루를 이토록 두근거리게 해줄 수 있다니 스스로에게 감탄하면서.

2023-03-21

나는 안다, 내가 모른다는 사실을

서점의 베스트셀러를 보면 동시대 사람들의 모습이 보인다고들 한다. 시대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물론이고 대중의 내밀한 욕망까지도 엿볼 수 있다는 것이다.인터넷 서점 사이트만 들어가 봐도 그렇다. 읽으면 부를 거머쥐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책과 욕심을 내려놓고 흘러가는 바람처럼 살아가자는 책이 나란히 놓여있다. 이러한 양극의 발화야말로 우리 시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지점이다.‘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외침과 ‘이번 생은 망했다’며 자조하는 목소리 사이에서 우리는 방향을 잃고 헤매기 쉽다. 세상을 향해 힘차게 주먹을 휘둘렀으나 보이지 않는 손에 어퍼컷을 맞고 KO패 당한 사람이라면 더욱 그렇다. 살면서 누구나 냉소와 허무를 맞닥뜨리기 마련이고 그날그날 편하게 사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처럼 여겨진다. 그러다가도 문득 이렇게 나태하게 살 순 없다고, 더욱 치열하게 살아가야 한다는 압박이 밀려오기도 한다. 이처럼 복잡한 세상에서 혼란한 자신을 이끌어줄 수 있는 명백한 답을 찾는 것은 결코 이상한 일이 아니다.그런 면에서 최근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나는 신이다’라는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이 조금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피해자들의 증언을 토대로 대한민국의 사이비 종교를 고발하고 집단적인 폭력에 관해 파헤치는 내용의 프로그램은 공개와 더불어 많은 사람을 분노하게 했다.그 어떤 이유라도 절대 있어서는 안 되는 일들이 있다. 인간의 존엄을 완전히 말살시키는 행위들. 어떠한 가치를 향한 의지가 크면 클수록 자기 존엄성보다 희생이 앞설 수밖에 없다. 사이비 종교 집단은 그러한 사람들의 마음을 집요하게 파고들면서 행해서는 안 되는 일들을 가감 없이 벌인다.다큐멘터리에서는 눈이 찌푸려질 만큼 자극적이고 적나라하게 피해 상황을 보여준다. 피해자가 가해자로 바뀌는 상황이나 권위를 내세우던 사람이 몰락하는 과정, 한 인간을 무분별하게 신격화하는 것의 위험성과 사람들을 착취하는 시스템을 만들어 이득을 취하는 모습까지. 모두 인간이 행한 일이며 종결되지 않은 끔찍한 사건이 우리 주변에서 아직도 벌어지고 있다.진리를 알고 그를 통해 구원받으며 다른 사람들은 모르는 정답을 나 혼자 알고 있다는 사실만큼 달콤한 것이 또 있을까. 당장의 현실은 고달플지 몰라도 믿고 따르면 영원한 행복을 얻을 수 있다는 말은 또 얼마나 위로가 되는가.책을 덮고 당장 일어나 밖으로 나가라는 자기계발서의 조언을 따르는 것은 어렵지 않다. 단지 나가서 어느 쪽으로 가야 하는지 알려주기만 하면 된다. 그곳에 정답이 있다고 보장되어있는 한, 누구나 자신만만하게 발을 내디딜 수 있다.사이비 종교의 지도자들은 자신들이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말한다.그러나 적극적인 자기 확신과 맹목적인 자기 믿음은 다르다. 한 사이비 교주를 체포하기 위해 오랜 시간 동안 애써왔던 사람은 그의 실체를 마주하고 이렇게 보잘것없고 겁 많은 사람을 쫓던 것이 허무했노라고 고백한다. 어떤 인간도 완전할 수 없으므로 우리는 신이라는 절대자를 붙잡는다. 인간은 완전해질 수 없다. 인간은 신이 될 수 없다. 그러므로 세상의 이치를 깨달았다고 말하는 사람이야말로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자에 가깝다. 문은강 ‘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로 주목받은 소설가. 201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작가로 등단했다. 소크라테스가 아테네 법정에서 했던 그 유명한 변론을 떠올려 보라. 그가 유일하게 안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던 것은 자신이 모른다는 사실이었다. 의문하고 의심하고 전복하면서 철학과 과학과 종교는 발전되어 왔다. 사랑과 행복 같은 관념은 늘 선행적으로 존재한다. 결국 답을 찾아가는 과정 자체가 삶의 본질이다.언젠가 외부 강의에서 이런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어떤 소설을 써야 소설가로 데뷔할 수 있습니까?” 질문 자체보다 거기에 무언가를 대답하려고 했던 나 자신에게 당황했다. 그러니까 나는 나의 경험을 일반화하여 그것을 정답이라고 내어놓을 수도 있던 것이다. 나는 모르겠다고 대답했고 질문자의 얼굴에서 실망의 기색이 떠오르는 것을 목격했다. 이따금 생각한다. 나는 그때 어떤 답을 주려고 했던 걸까. 어쩌면 이제껏 그것을 답이라고 믿고 살아왔던 것은 아닐까.모르겠다고 말하기는 쉽다. 어떤 상황에선 모르겠다는 발화가 명쾌하고 산뜻해 보이기까지 한다. 끝끝내 어려운 것은 내가 무엇을 모르는지 아는 것이다. 그것은 무지의 영역보다는 앎의 영역에 가깝다. 자기 의심과 자기 확신 사이에서 길을 잃고 헤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어떤 방향으로든 나아가는 그 걸음 자체가 중요한 것이다.

2023-03-21

‘정책시뮬레이션’

남광현 대구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어린이집, 노인복지관, 응급의료병원, 보건소, 도서관, 체육시설, 공원, 박물관, 주민센터, 공공주차장 등을 일컬어 우리는 생활SOC(Social Overhead Capital·사회간접자본)라 한다. 이것들은 사람들이 먹고, 자고, 자녀를 키우고, 노인을 부양하고, 일하고 쉬는 등 일상생활에 꼭 필요한 인프라와 삶의 기본 전제가 되는 시설들이다. 이 시설들은 국민 누구나 어디에서나 품격있는 삶을 살 수 있도록 국가 최소수준 이상 공급되어야 한다. 따라서 국가는 관할 부서간의 칸막이식 공급체계의 단점을 해소하고 공급된 시설의 질적 제고와 국민의 체감성과를 향상시켜야 한다.지난 2018년 국토연구원에서 인구와 생활SOC 접근성 데이터를 이용하여 거주지로부터 10가지 기초생활SOC까지 10분 이내에 이용할 수 있는지를 접근성 지표를 분석해보았다. 시급 도시는 3㎞, 군지역 5㎞ 거리 기준을 차량 이동 10분 거리로 설정하여 분석하였다. 그 결과 전국 거주지의 20.9% 지역은 10분 내에 접근 가능한 기초생활SOC가 하나도 없는 취약지역으로 나타났으며, 도시 근교와 농어촌지역으로 갈수록 생활SOC 혜택을 누리기 어려운 것으로 나타났다.모든 국민이 인간다운 생활을 영위하는데 필요한 소득, 고용, 교육, 주거, 건강, 생활환경, 안전 등 필수 7대 영역에 대한 결핍 정도를 종합적으로 진단하여 지역 여건의 차이를 상대적으로 측정한 지수를 ‘복합결핍지수’라 한다. 이 ‘복합결핍지수’를 10등급으로 구분하여 도시와 농촌지역에 적용하여 분석하였다. 그 결과, 도시는 1, 2, 3 등급의 비율이 높고, 농촌은 8. 9, 10 등급의 비율이 높았다. 상위 10%의 가장 양호한 지역은 서초, 의왕, 세종 등 도시지역이었고, 하위 10%의 가장 결핍된 지역은 강원, 경북, 충남 등 농촌지역과 일부 광역시 원도심 지역이었다.이렇게 생활SOC 접근성이나, 국민생활 7대 영역 결핍도는 급속하게 발달한 빅데이터와 정보기술 등 을 활용하여 지리정보시스템의 전국 지도에 읍면동 단위로 상세하게 분석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접근성이나 결핍도 등을 산정하는 수식에 임의로 생활SOC의 신규 설치나 폐지, 7대 영역 세부지표값을 가정하여 높이거나 낮추어 보는 행위 즉, ‘시뮬레이션’이 가능하게 되었다. 이제 국가나 지방정부는 한정된 재원과 복잡한 규제, 이해관계, 시급성 등을 고려하여 주요 정책의 추진에 앞서 ‘정책시뮬레이션’을 통해 효과성 검토를 해야 한다.지난 2월 1일 개원한 대구정책연구원은 신산업육성전략, 신공항경제권 클러스터화, 군위군 편입 및 후적지 개발을 위한 메가대구 공간디자인, 청년정착형 職·住·文 기반구축, 스마트동네생활권, 기후환경선도도시 등 시민 삶의 질 혁신을 위한 주요 정책연구를 수행한다. 이를 위해 크로스코칭, 전문가 라운드 테이블, 시민소통(리빙랩)에 이어 ‘정책시뮬레이션’을 반드시 수행하여 핵심정책을 제안하는 단계적 연구관리 프로세스를 생활화 하고자 한다.

2023-03-20

‘농촌유학’, 희망을 본다

홍석봉 대구지사장 도시를 떠나 농촌에서 생활하며 다양한 체험 활동을 할 수 있는 ‘농촌유학’이 인기다. 폐교 직전의 농촌 학교를 살리는 효자가 됐다. 아이들이 뛰어노는 마을은 활기를 찾았다. 농촌 마을에 생기가 돌고 있다.농촌유학은 농림축산식품부가 지방자치단체와 함께 2010년부터 농촌유학시설에 운영비를 지원하는 사업으로 시작됐다. 현재 전국 28개 농촌유학센터가 운영 중이다. 정부는 종사자 인건비, 컨설팅·홍보비, 기자재 구입비 등 연간 15억 원 가량을 지원한다.해마다 참여 학생 수가 느는 등 농촌유학에 대한 관심도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만족도도 높다. 유학생, 학부모 등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농촌유학생은 정서적 안정과 인성 함양에 도움됐다는 평가가 많다.서울시 교육청 조사결과 10명 중 6명 이상이 농촌유학 프로그램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건강 식생활’, ‘자립심 향상’ 등이 이유다. 학부모 10명 중 4명이 농촌유학을 보낼 의향이 있다고 했다.2013년 대구은행에서 퇴직한 부부가 설립한 경북 봉화의 ‘청량산풍경원’ 농촌유학센터는 대표적인 성공사례다. 올해 농축산부(11억 원)와 경북도(4억 원)로 부터 15억 원의 사업비를 확보, 각종 프로그램을 계획 중이다.현재 서울·부산·대구 등에서 온 20명의 유학생이 생활하고 있다. 학생들은 농장에서 과일과 채소를 수확하고 개울에서 물놀이하면서 다양한 농촌·생태 체험을 한다. 마을 인구의 절반이 이곳 학생이다. 폐교 위기의 명호초교와 청량중학교도 활력을 찾았다. 봉화의 상급학교로 진학생도 꽤 있다.농촌유학센터가 도농 교육 교류 활성화 기여 등 농촌살리기의 모범 사례가 됐다. 농촌에서 희망을 본다. /홍석봉(대구지사장)

2023-03-20

불법만 아니면 다 괜찮은가

홍덕구 포스텍 소통과공론연구소 연구원 지난 삼일절, 한 아파트 베란다에 일장기가 내걸렸다. 이를 본 주민들은 해당 가구를 찾아가 강력하게 항의했고, 세대주 부부는 ‘일장기 거는 게 불법이냐’라고 응대했다고 한다. 이 사건을 ‘토착왜구’라는 신조어로 대표되는 ‘완전히 청산되지 못한 식민주의’의 문제로 보는 관점에도 일리가 있다. 하지만 동시에 이 사건은 우리 사회의 많은 영역들에 ‘법’ 외에는 아무런 판단의 기준이 존재하지 않음을 보여주기도 한다.‘법은 도덕의 최소한’이라는 법언(法諺)이 있다. 인간 사회에는 도덕, 관습, 윤리 등과 같이 법보다 더 넓은 차원의 규범들이 존재한다는 뜻이다. 즉, 어떤 행위의 위법성이 성립되지 않는다고 해서 그 행위가 사회적으로 다 용인되지는 않는다. 우리가 국가나 사회라는 공동체를 이루고 살아가는 것은 법이 강제했기 때문이 아니다. 인간은 혼자서 살아갈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에 공동체를 이루고, 공동체의 유지와 구성원의 존엄을 위해 규범을 만들어 낸다. 현대 민주주의 국가는 개인의 자유를 최대한도로 보장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타인의 존엄을 해치지 않는 범위 안에서다. 종군위안부 피해자들이나 강제 징용 피해자들과 같이 일본의 식민 지배로 되돌릴 수 없는 피해를 입은 당사자들이 존재하고 식민지 경험이 집단적 트라우마로 남아있는 한, 일본이 식민 지배의 책임을 인정하고 진심으로 사죄와 보상을 실현하지 않는 한 삼일절에 일장기를 내거는 행위는 강력한 비판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법을 어긴 것이 아니니 처벌할 수는 없지만, 도덕적 비난까지 피할 수는 없는 것이다.김수영 시인은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국가보안법을 비판하기 위해 ‘김일성 만세’라는 시를 썼다. ‘김일성 만세’와 같은 극단적 의견도 표현할 수 있어야 진정한 언론자유가 성립된다는 뜻이다. 표현의 자유 역시 법으로 강제해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민주주의가 진정으로 성숙한 사회라면 ‘김일성 만세’를 법으로 처벌하는 대신, 공론장에서의 논쟁과 합의, 그리고 교육을 통해 독재자를 찬양하는 행위를 사회적 금기로 만들어 낼 것이다. 금기를 위반하는 자는 시민적 상호부조 시스템에서 추방함으로써 응징하면 된다.독일의 옛 동독 지역에 오래 거주한 지인에게 들은 이야기다. 그 지역에서는 네오나치 집회가 종종 일어나는데, 파시즘과 신고립주의에 반대하는 시민들이 그 몇 배로 모여들어 네오나치 시위대를 감싸고 구호를 외쳐 그들의 모습과 메시지가 외부로 전달되는 것을 막는다는 것이다. 이것이 가능하려면 역사에 대한 철저한 반성과 성찰, 그리고 무엇보다도 상식과 양심, 역사의식을 갖춘 시민들로 구성된 시민사회의 존재가 필수적이다.‘불법이냐 합법이냐’가 모든 판단의 기준이 되어 버린 사회를 상상해 보자. 그런 사회를 반길 사람은 재력과 권력으로 법의 허점을 파고들 줄 아는 자밖에 없을 것이다. 양심과 상식이라는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일 줄 아는 시민을 양성하는 교육이 중요한 이유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는 이런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는가.

2023-03-20

왜 고독사는 계속되는지

김규인수필가 우리 사회는 빠르게 고령화, 핵가족화를 향해 간다. 그런 가운데 사람들이 부대끼며 살아가는 후진 개발국가에선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난다. 지켜보는 이 하나 없는 캄캄한 방안에서 사람들이 홀로 죽고 한참 뒤에야 발견된다. 25%를 넘는 1인 가구 사회에서 만나는 우리의 슬픈 자화상이다.전 세계에 불어닥친 코로나는 이러한 경향을 부채질하고 자본주의는 홀로 사는 사람들을 위한 제품을 만들어 외로운 삶을 부추긴다. 사회적 동물이라는 호모 사피엔스, 우리 인간은 그 사회성을 잃어간다. 홀로 사는 삶에 익숙한 사람들이 막대 두 개를 잇댄 사람 인(人)의 의미를 이해나 할 수 있을까.국민소득이 높아져도 그것은 남의 일이다. 소득이 높아질수록 부의 불평등은 심해지고 경제적으로 실패한 사람은 일어서기조차 힘겨운 현실이다. 돈이 없는 사람은 사회로부터도 너무나 쉽게 고립되고 외로움은 가까이 찾아든다. 그래서 사회와 사람과 정보와 공간에서 고립된다. 찾아갈 곳도 찾는 이도 모임도 사라진다. 투명 인간으로 남는다.고립은 나이를 가라지 않는다. 피가 끓는 젊은 사람에게도 다가간다. 햇빛조차 들지 않는 좁은 방에서 취업을 꿈꾸는 핼쑥한 청춘에게 거듭되는 실패와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혼자만의 시간만 늘어난다. 이제는 웃음을 잃고 하나뿐인 목숨을 지키는 것도 힘이 든다.빨리 변하는 세상의 흐름에 발맞추어 사느라 날마다 겪는 혼밥, 언제나 나를 피해 가는 취업 합격의 소식, 갑자기 삶을 산산조각 낸 사고, 사업의 실패로 인한 가족의 해체, 나이 들어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이나 죽음 앞에서 우리 인간은 얼마나 나약한지. 날마다 올리는 기도에 응답 없는 신을 원망하는 날이 늘어난다.우리가 자랑하던 3대가 모여 살던 삶의 공동체는 각자의 일을 찾아 떠난 현실 앞에 너무나 맥없이 무너진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사람도 마음 한구석은 늘 허전하고 돈마저 없는 사람은 존재감마저 사라진다. 사람 사이의 관계가 끊어진 사회에서 어김없이 나타나는 고독사는 너무 흔하다. 그들은 쉽게 잊힌 사람이 된다.몇 번의 클릭만으로 지구 반대편의 사정을 알 수 있는 현실에서 정작 내 옆의 이웃이 죽어가도 모르는 이 현실이 맞는 것인지. 죽어가는 사람이 얼마인지 통계조차 없는 현실이 부끄럽다. 늦게나마 ‘고독사 예방법’이 제정되고 보건복지부는 ‘고독사 예방 및 관리’ 시범사업을 시작하고 각 지자체는 고독사를 줄이는 정책을 내어놓는다. 그들의 생존 신호를 이제 사회에서 감지하기 시작한다.사람과 사람을 잇자. 사람이 만날 수밖에 없는 시스템을 만들자. 외로운 사람들이 한곳에 모을 수 있는 틀을 만들자. 사회적인 동물이라는 사람이 본성을 잃어버리지 않게 현대사회에 길들어버린 인간의 야성을 되찾자. 마주 잡은 손에서 온기를 느끼고 응어리진 가슴을 열게 하자.고립된 사람들의 생존 신호를 우리 사회는 찾고 그들의 삶을 응원해야 한다. 살아있을 때는 삶의 희망을 이야기하고 아플 때는 위로하고 삶이 다 할 때는 사람들의 빈 자리를 채워주자. 더불어 사는 삶의 틀을 만들자.

2023-03-20

1919년 3월, 잊어서는 안 되는 참혹했던 시간들

삼일절은 1919년 3월 1일에 있었던 3·1 운동을 기념하는 국경일이다.해마다 삼일절로 시작하는 3월과 광복절이 있는 8월이 돌아오면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일제강점기의 역사를 되짚으며 항일독립에 헌신한 선열들을 추모한다.지나간 역사를 잊지 않으려는 노력으로 이러한 시간을 만들어 기념하는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쌓이면서 그 의미가 점점 옅어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해마다 돌아오기 때문에 그저 반복적인 습관처럼 잠시 생각하고 지나가는 것은 아닐까.지금 3월, 그때 그 시절 만세를 부르며 독립을 위해 힘겹게 저항했던 선조들의 시간이 흘러가고 있다.장석영(張錫英·1851~1926)은 1919년 2월 4일부터 11월 1일까지 기록한 ‘흑산기사(黑山記事)’에서 성주 지역의 만세 운동을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3월 2일은 성주의 장날이었고, 이날을 맞이해 유생이고 상인이고 가릴 것 없이 사람들이 대거 모여 만세를 부를 것이라는 소문이 이전부터 파다했다.무성한 소문은 태풍 전 고요처럼 불안을 야기했고, 곧 일어날 만세 운동이 염려스러웠던 일본은 순검을 보내 장석영을 불러들였다.유림의 존장인 장석영이라면 만세 운동을 저지시켜 줄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기 때문이다. 물론 기대처럼 되지는 않았다.“3월 2일, 본 고을(성주)의 장날이다. 본 고을의 유생(儒生)과 교도(敎徒) 그리고 상인들이 이날에 크게 만세를 부를 것이라는 풍문이 심하게 돌았다. 이날 식후에 고을의 순검(巡檢) 두 사람이 와서 만나보기를 청했다. (생략) 얼마 후 공문을 가지고 왔기에 부득이 수레를 타고 가는데 고을 가까이에 이르자 만세 소리가 산악을 뒤흔들었다. (생략) 가마꾼을 재촉해 출발했는데 고을 밖으로 나가자마자 만세 소리가 또 한바탕 크게 일어났고 잠시 후 대포 소리가 크게 들리더니 상인들이 풍비박산되었다. 대개 수 천 명의 상인들이 날이 저물어도 흩어지지 않고 깜깜한 밤에도 곳곳에서 만세를 계속해서 불렀으므로, 일본인이 변괴가 있을까 염려해 발포했던 것이다. 대포에 죽은 자가 6명, 중상을 입은 자가 10여 명이라고 했다.” -장석영의 ‘흑산기사’ 1919년 3월 2일의 기록 중에서성주의 순검은 대구 경무청의 요청으로 장석영을 찾아왔다. 장석영이 공문이 없다면 응하지 않겠다고 대답하자 순검이 곧장 자전거를 타고 달려가 공문을 가져왔다.결국 가마를 타고 성주 경찰서로 들어가는데, 읍내 근처에 다다랐을 때 큰 함성의 만세 소리가 터져 나왔다. 소문이 사실이 되는 순간이었다. 경찰서에 도착한 장석영에게 경무청의 사람은 군민의 만세를 제지시켜 달라고 정중하게 요청했다.이에 장석영은 “내가 부르라 시킨 적도 없지만 찬성한 적도 없다. 오늘 만세를 부르는 것은 하늘의 뜻이니 사람의 힘이 아니다. 저렇게 많은 사람들이 만세를 외치는 것이 어찌 나의 찬성을 기다린 것이겠는가.”라고 대답하며 거절했다. 덧붙여 경무청에 속했지만 당신도 한국 사람이니 비록 함께 만세를 외치지 않아도 마음이 다르지는 않을 것이라며 되물었다.면담을 마치고 경찰서를 나섰을 때 다시 만세 소리가 진동했다.뒤이어 대포 소리가 크게 들리면서 만세를 외치던 수 천 명의 상인들이 풍비박산 나듯이 날아가고 흩어졌다. 해가 져도 흩어지지 않고 깜깜한 밤이 될 때까지 곳곳에서 만세를 계속 불렀기 때문이었다. 더 크게 확산될까 두려웠던 일본인은 만세를 외치는 사람들을 향해 대포를 쏘았고, 이 대포에 사람들은 목숨을 잃거나 중상을 입었다.장석영은 그 모습을 침통하게 지켜봤다. 그가 만세 운동에 찬성하지 않았던 이유였다. 이날은 이렇게 지나갔다. 최은주 한국국학진흥원책임연구위원 그러나 장석영은 곧 체포되었다. ‘파리장서’와 ‘통고도내문’ 등을 쓰며 독립운동에 앞장섰기 때문이었다. 옥중 생활은 그야말로 혹독했다.순사들은 잡혀 온 조선인들을 삼엄하게 감시하며 짐승처럼 다루었다. 감시 기준을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뺨을 때리고 허리를 차는 등 못 견딜 정도로 능욕을 가했다.장석영은 이러한 능욕과 수모 속에서 죽을 결심을 하고, 굶어 죽기 위해 곡기를 끊었으나 쉽게 이루지 못할 것을 깨닫고 자결을 포기한 채 옥중 생활을 견뎌냈다.장석영을 체포한 후 일본인 검사가 “국법을 위반하고 인심을 선동하는 것은 국가의 적이 아닌가”라고 심문하자, 장석영은 매섭게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지금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의 토지를 빼앗았다고 칠 때, 빼앗긴 사람이 토지를 찾고자 하는데 빼앗은 자가 도적인가 찾고자 하는 자가 도적인가? 찾으려는 자와 빼앗은 자가 재판소로 와서 송사를 벌인다면 재판관은 누구더러 도적이라 할 것인가”라고.지금 우리가 누리는 소중한 시간들은 그 시절 독립운동에 앞장섰던 선열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다. 과거에 얽매여 발전적인 미래로 나아가지 못해서는 안 되지만, 지나간 역사를 쉽게 잊어서도 안 될 것이다.

2023-03-20

수도원의 출현과 중세미술의 발달

중세미술을 보다 잘 이해하려면 수도원이라는 공간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수도원은 오로지 종교적 삶에 헌신하기 위해 속세와 거리를 두고 세워진 신앙 공동체이다. 중세시대의 수도원은 근본적으로 종교적 목적을 위해 지어졌지만 실제로는 그 이상의 기능을 수행했다.중세시대에는 보편 교육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문맹이었다. 글을 읽고 쓸 줄 안다는 것은 고위 계층에 제한된 일종의 특권이었다. 평범한 사람들이 가진 지식이라는 것은 일상이 이루어지는 좁은 영역 안에서 경험적으로 얻어진 것에 불과했다.이러한 중세시대의 상황 속에서 수도원은 교육이 이루어지고 지식이 생산되고 그리고 그것이 보존되고 전수된 곳이었다.수도사들은 신의 뜻을 이해하고 해석하기 위해서 성서를 읽을 수 있어야 했고 수도원에서는 성서의 내용을 보존하고 보전하기 위해 필사작업이 이루어졌다.수도원은 고행수덕을 삶으로 실천한 종교적 은둔자들에게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다. 성인 안토니우스(251∼346)는 일찍이 이집트 광야에서 홀로 은둔 수도자 생활을 시작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어 수도자들의 아버지로 여겨진다.홀로 은둔생활을 하던 수도자들이 서서히 공동체를 이루어 함께 생활하기 시작했고 이것이 수도원의 기원이 된다. 최초의 수도원은 터키의 카파토키아에 세워진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서방의 교회들이 이를 받아들여 수도원이라는 종교적 시스템이 만들어졌다.서유럽지역에서 가장 먼저 수도원이 세워진 곳은 프랑스의 시골마을 리귀제(Ligug00E9)이며 316년 뚜르(Tour)의 주교 마르티노가 설립했다. 372년에는 리귀제 인근 마을인 마르무티에르(Marmoutier)에도 수도원이 세워졌다. 지금의 프랑스에 해당하는 당시 갈리아 지역에 특히나 많은 수도원들이 지어졌으며 5세기 무렵에는 무려 230여 개의 수도원이 존재했던 것으로 전해진다.개별 수도원들은 각자 나름의 규율에 따라 독립적으로 운영이 되었다. 짧은 시간 동안 많은 수도원들이 우후죽순 생겨나면서 종교적으로 거룩한 삶을 실천한다는 본래의 취지에서 벗어난 여러 부작용들이 나타났다. 문제가 점점 심각해지자 수도원들은 일정한 규칙과 규율의 필요성을 느끼게 된다.이런 배경에서 세워진 곳이 엄격한 규율로 잘 알려져 있는 베네딕트 수도원이다. 529년 누르시아의 성인 베네딕토(480∼547)는 몬테 카시노에 수도원을 설립하면서 종교적 이상에만 치우친 것이 아니라 현실적이면서 실질적으로 지켜야할 수도원 규칙서(Regula Sancti Benedicti)를 만들었다.베네딕트 수도회의 규칙서의 핵심 내용은 경건한 기도생활과 지혜로운 실천이다. 그리고 이것을 가장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라틴어 문구가 ‘Ora et Labora’이며 우리말로는 ‘기도하고 일하라’는 뜻으로 번역된다. 강한 어조의 이 규율은 수도사들에게 성서를 읽고 기도와 묵상에 전념함과 동시에 육체적인 나태함을 철저히 금하면서 동시에 육체노동의 중요성을 일깨워준다. 베네딕트회의 규칙서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쓰여 있다. “나태함은 영적인 것이다.따라서 수도사들은 정해진 시간에 일 해야 하고 성서를 읽어야 한다. 매일 아침 6시부터 오후 4시까지는 육체적인 노동을 그 이후 저녁 6시까지는 성서를 읽어야하고 저녁 기도시간 까지는 계속 일을 해야만 한다” 수도회의 이 같은 규율은 육체노동이 종교적 영성활동과 밀접하게 닿아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베네딕트 수도회에서는 수도사들이 잠시라도 나태에 빠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 기도와 거룩한 독서 그리고 육체노동이 조화되도록 공동체의 일과를 구성했다.베네딕트 수도회의 엄격한 규율은 큰 반향을 일으켰고 삽시간에 다른 지역으로 전파되었다. /김석모 미술사학자

2023-03-20

사이비 세상을 만드는 사람들

김진국 고문 다큐멘터리 ‘나는 신이다’는 충격이다. 사이비 종교를 폭로하는 뉴스가 과거에도 없었던 건 아니다. 그런데도 이번에 넷플릭스에 폭로된 내용을 보고는 숨이 막혔다.교주들이 메시아 행세를 하며 젊고 예쁜 여신도를 끊임없이 성폭행한다. 그러면서 마치 하나님이 은총을 내려주는 것처럼 감사하도록 세뇌한다. 여자 교주는 젊은 남자 신도를 침대로 불러들인다.그 울타리를 벗어나서야 명백한 사기였다고 깨닫는다. 그러나 이미 늦었다. 교주는 신도들에게 물욕과 성욕을 철저히 멀리하도록 요구하고, 어기면 폭행한다. 그러면서 교주 자신은 ‘메시아’라는 이름으로 구역질이 날 정도로 그 욕심을 채우고, 또 채운다. 노예처럼 일을 시킨다. 심지어 어린아이를 돼지우리에 가두고, 신도들이 아이가 죽을 때까지 매질하는 장면이 나온다. 아이의 이모도 폭행에 가담했다. 아이의 어머니는 아무 항변도 못 했다.다큐멘터리를 찍을 때는 자기 뺨을 수없이 후려치고, 자책하며 울부짖었다. 그런데 아이가 죽을 때는 왜 몰랐을까. 다큐멘터리가 나온 뒤 증언이 이어졌다. 한 탈퇴자는 “보통 어린 나이에 입교해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추잡한 성행위를 해도 ‘메시아가 하는 거니까 당연하다’라고 받아들인다”라고 말했다. 그는 또 “학벌 좋고 멋있는 사람도 믿고 따르는데 ‘이 사람이 메시아일 수도 있겠다’ 하고 생각했다”라고 말했다. “정명석은 신도들에게 ‘미디어 절대 보지 마라’라는 공지를 내린다”, “신도들은 그의 말을 법이라고 생각하고 따른다”라는 증언도 나왔다. 폭로가 이어지자 JMS는 외부 사람의 교회 출입을 막고, 신자들의 외부 접촉도 단속했다.한 사기꾼의 힘으로,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추악한 범죄를 어떻게 믿고 따르게 했을까. 현란한 사기꾼의 혀에 가장 큰 책임이 있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하지만 그의 힘만으로 이런 범죄가 가능했을까.초등학교만 나온 정명석은 서울에 올라와 명문대 학생부터 전도했다. 명문대에서 명문대로 전파하고, 서울 시내 수십 개 대학에 종교 동아리를 만들었다. 기존 교단에 대한 젊은이의 불만을 건드리며 빠르게 확산했다. 초등학교만 나온 사람이 현란하게 설교하는 모습이 ‘성령’의 힘으로 비쳤다. 배우지도 못한 사람을 잘생긴 명문대생들이 따르자 다른 사람들은 더 이상 따지지 않고 믿게 됐다고 한다.교세를 확장할 수 있도록 그의 후광이 되어준 많은 신자가 있었다. 정부 관리, 법조인, 의사, 언론인, 장교 등 사회 엘리트층이 사실상 그의 보증인이 됐다. 일반인이 알기 어려운 정보, 상식에 어긋나는 사법 농단이 그의 아우라가 됐다. 특히 교주의 범죄 행위를 법 기술로 빠져나가게 만들어 무법천지를 만들었다. 그들이 모두 사이비 교주의 공범이다.정치는 어떤가. 언젠가부터 진실이 보이지 않는다. 상식이 사라졌다. 진실은 목소리를 잃고, 가짜 뉴스는 번개처럼 퍼져나간다. 통신 기술의 발달로 아무 책임도 없는 1인 방송이 전통 언론을 압도한다. 사람들을 속이는 선전·선동술은 점점 더 교묘해진다. 방송 채널마다 진실을 호도하는 기술자들이 설친다. 그 기술을 이용해 그들은 정치권으로 발탁되고, 더 큰 힘을 발휘한다. 사이비 교주의 지시를 받은 것처럼 자기 진영의 선동 외에는 귀를 닫는다. 자기 진영에 불리한 이야기는 사탄의 유혹이라고 여긴다. 조금만 다른 얘기를 하면 문자폭탄을 날리고, 협박한다. 사이비 종교가 따로 없다.정치에서 이미 진실은 사라졌다. 무엇이 진실이냐를 찾지 않는다. 우리 편에 이익이 되려면 무엇이 진실이어야 하느냐를 먼저 생각한다. 조국 사태는 중요한 분기점이었다. 범죄 행위가 사실인지는 관심 밖이다. ‘교주’가 원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 사건에서도 진실은 외면된다.범죄자는 법 기술로 무죄를 만든다. 수사기관을 악마로 만들고, 수사를 못하게 막는 것을 개혁이라고 세뇌한다. 법이 있어도 집행할 수 없으니 무법천지다.국민은 가짜 주장에 휘둘려 분열한다. 가짜에 속은 국민의 무지를 탓할 것인가. 가짜를 선동한 정치인의 책임이 더 큰 것 아닌가. 사이비 정치의 범죄자들이 역사의 죄인이다.김진국△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3-03-19

흔들리는 수도권 공장총량제

우정구 논설위원 서울, 인천, 경기 등 이른바 수도권은 국토 전체 면적의 11.8%에 불과하다. 그러나 인구는 국내 인구의 절반이 넘는다. 1970년대 전체 인구의 28% 정도가 수도권에 거주했으나 지금은 비수도권보다 더 많은 인구가 살고 있다.100대 기업의 91%가 수도권에 본사를 두고 있고, 상위권 대학의 80%가 수도권에 몰려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분야의 역량이 수도권에 집중돼 있는 것이다.일자리나 돈, 출세, 문화적 욕구까지 수도권으로 올라가야 얻을 수 있어 수도권에 사람이 몰리는 것은 당연하다. 서울공화국이라는 말이 그저 나온 게 아니다.수도권과 비수도권의 격차가 이처럼 벌어진 나라는 세계적으로도 드물다. 지금 비수도권 지방의 도시들은 노령화와 도시소멸의 문제로 그야말로 전전긍긍이다. 초라해진 도시의 모습에 허탈해하고 있는 것이다.1994년 수도권정비계획법에 의한 수도권 공장총량제는 이런 문제를 해결코자 만들어졌다. 수도권의 공장 신증설을 억제함으로써 지역간 균형발전을 도모하겠다는 취지다. 정부가 국토균형발전을 국정 목표로 삼은지 오래됐다. 윤석열 정부도 “대한민국 어디서나 살기 좋은 지방시대를 열겠다”고 여러 번 외쳤다.최근 정부가 첨단산업 육성을 명분으로 경기 용인에 세계 최대 규모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을 발표했다. 삼성전자가 향후 300조원을 투자하는 등 6대 첨단산업 분야에서 550조규모 민간투자를 유도하겠다는 것이다. 국가의 경쟁력을 강화하자는데 이론이 있을 수 없다.하지만 수도권에 천문학적인 투자를 벌이면 지방은 어떻게 될지 걱정이 아닐 수 없다. 국가균형발전이란 대의를 저버리는 정책이 아니길 바란다./우정구(논설위원)

2023-03-19

나의 몸과 마음은 누구 것인가?!

김규종 경북대 교수 ‘명저 읽기와 토론’ 수업 시간에 학생들에게 묻는다. “그대들의 몸과 마음은 그대들의 것인가?!” 학생들 얼굴이 뜨악하다. 별 이상한 소리를 다 듣는다는 표정이 역력하다. 몸과 마음은 모두 나의 것이란 자명한 사실을 왜 물어보느냐, 그런 눈짓이다. 문제는 이것이 간단치 않다는 데 있다. 과연 우리 몸과 마음이 우리 것인지, 하는 문제가 단순명쾌하게 결론 내릴 수 있는 것인지 자명하지 않기 때문이다.내 몸이 내 소유라면 몸은 언제나 나의 희망과 요구에 따라야 한다. ‘멘사 클럽’에 들어갈 만큼 머리는 명민해야 하고, 걸출한 운동선수의 체격과 체력이 있어야 한다. 코로나19로 3년 넘게 고생한 우리로서는 예방주사를 맞지 않아도 전염병에 걸리지 않아야 한다. 실상은 어떤가?! 툭하면 여기저기 문제를 일으키는 육신이 일반적인 현상인 걸 보면 내 몸은 내 바람과 무관한 듯하다.그렇다면 나는 마음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가?! 변덕스럽지 않고 관대하면서 언제나 넉넉하고 여유로운 마음을 유지하고 있는가?! 나는 초조하고 불안하며 마음에 차지 않고, 툭하면 짜증을 내고, 토라지는 일이 다반사에 옹졸하고 쩨쩨하며 이기적이다. 주변 사람들과 원만하게 아우러져 살아가는 일도 종종 있지만, 속으로는 앵돌아져 있으니 불편하기가 유만부동(類萬不同)이다.무언가의 주인이라고 규정할 수 있는 조건은 항상성(恒常性)과 주재성(主宰性)이다. 언제나 그러하다는 것이 항상성이다. 들쭉날쭉 넘나듦이 없이 똑 고르게 그 본성을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 아울러 내가 원하는 시공간과 상황에서 내가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주재성’이다. 아무리 곤고(困苦)하고 난처한 상황이라도 내가 바라는 수준을 지켜내고 오히려 전진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정녕 그러한가?!이런 설명을 듣고 난 학생들의 얼굴이 어두워진다. 지금까지 생각해본 적도, 고민해본 적도 없는 자명한 명제 앞에서 흔들리고 있는 기색이 역력하다. 나이 먹은 세대의 사유와 인식은 변화하기 어렵다. 근본적인 성찰과 회개(悔改)가 전제되지 않는다면, 새로운 인식의 성립과 성장은 쉽지 않다. 반면에 20대 청춘의 영혼은 상대적으로 유연하다. 이런 까닭에 그들이 더 나이 먹기 전에 최소한의 지적·정신적인 문제 제기가 절실한 것이다.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지식의 전파는 여전히 주입식 교육과 집중적인 암기에 편중되어 있다. 학문과 종교의 차이는 ‘도그마’의 유무에 있다. 언제든 더 올바르고 새로운 진리를 향해 열려 있는 분야가 학문 혹은 과학이다. 반면에 특정한 방향으로 완전하게 닫힌 세계로 돌진하는 것이 기독교, 유대교, 이슬람 같은 유일신에 기초한 종교다. 오늘날 한국 대학에서 지식과 정보의 전파과정은 나날이 선교와 비슷해져 간다는 혐의가 짙다.유연한 자세로 학문에 임하려면 결론을 열어놓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명하다고 여겨지는 명제와 지식과 정보에 물음표를 부여해야 한다. 미래로 열려진 지성의 시대를 기원한다.

2023-03-19

지속가능한 관광산업의 미래를 위해

박남서 영주시장 지난 2월 27일 환경부에서 설악산국립공원 케이블카 설치사업에 대해 조건부 승인을 발표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40년 동안 답보상태를 이어오던 설악산 케이블카 설치 허용은 2009년부터 소백산 케이블카 설치를 추진해왔던 영주시에도 희소식이 아닐 수 없다.“울긋불긋한 것이 꼭 비단 장막 속을 거니는 것 같고 호사스러운 잔치 자리에 왕림한 기분”같다며 퇴계가 칭찬을 아끼지 않았던 소백산은 1987년 우리나라 18번째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곳으로 지리산, 설악산, 오대산에 이어 산악형 국립공원 가운데 네 번째로 넓은 규모를 가지고 있다.특히 능선이 아름다워 철마다 수많은 등산객이 찾고 있지만 직접 등산이 어려운 사람들은 소백산의 절경을 감상할 기회를 가질 수 없었다.이 때문에 영주시에서는 앞서 두 차례에 걸쳐 케이블카 설치사업을 추진해왔지만, 환경문제와 경제적 타당성 등의 이유로 번번이 무산됐다.소백산의 훼손에 대한 우려는 어쩌면 당연한 것이겠지만, 케이블카 설치가 어쩌면 더 이상의 훼손을 막는 최소한의 장치가 될 수도 있다.수많은 발길이 닿으면서 망가지고 상처 난 탐방로의 지켜야 할 곳과 개방해야 할 곳을 철저하게 구분해 식생의 회복이 필요한 곳을 쉬게 하는 등 환경도 지키면서 관광의 편의와 지역경제 활성화를 함께 달성하는 방법을 얼마든지 강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소백산 케이블카는 경제성에만 초점을 맞춘 것이 아니라, 정복형의 탐방문화를 조망형으로 바꾸어 국립공원을 보호하는 데 더 큰 의미를 두고 추진되고 있다.영주시는 소백산 케이블카 설치를 통해 망가진 탐방로를 복구시켜 환경을 회복하고, 관광 편의를 높여 지역 관광객을 유입하는 두 가지 시너지 효과를 이루고자 한다.눈앞의 작은 경제적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제대로 보존하기 위한 결정이다.두 번째 이유는 접근성을 높이기 위함이다.케이블카 설치와 같은 문제는 생태환경의 측면과 함께 장애인 등의 접근성의 측면, 관광 활성화의 측면 등 다양한 방향으로 검토돼야 한다.초고령화 사회를 앞둔 대한민국은 관광의 편의를 높이는 노력을 점차 기울여야 하는 상황이지만 전국 22개의 육상 국립공원 가운데 케이블카가 설치된 곳은 단 3곳에 불과한 실정이다.보행이 어려운 휠체어 사용자들에게 케이블카는 높은 산에 올라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고령화 사회 진입을 목전에 둔 만큼 접근성이 어려운 고령자와 장애인들의 산악 관광을 위해 더는 미룰 수 없는 인프라다.그리고 마지막 이유가 지역 관광산업의 활성화다. 영주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부석사와 소수서원을 비롯해 우리나라 유일의 K-문화테마파크인 선비세상 등 전통 문화유산을 보유한 전통문화의 도시다.그러나 스쳐 지나가는 관광지라는 한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소백산 케이블카는 영주 관광산업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 지역의 관광산업을 체류형으로 변모시키는 마중물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실제로 목포의 경우 해상케이블카 설치 전 연간 380만명 수준이었던 관광객이 케이블카 설치 이후 700만명을 훌쩍 뛰어넘었다.이에 지자체에서는 케이블카와 연계한 다양한 관광상품을 지속적으로 선보이며 앞으로 관광객 2천만명 시대를 열겠다는 포부를 밝히고 있다.영주 지역 관광에도 이제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하다. 영주시는 올해 소백산 케이블카 추진 위원회 구성을 추진해 공청회와 토론회, 주민설명회 등 의견수렴의 절차를 거쳐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자연환경영향평가 용역실시 등 관련 절차를 추진해 나갈 계획이다.조선시대 풍수학의 대가 격암 남사고 선생이 지금으로부터 400여년 전 죽령고개를 넘어오다 소백산을 바라보며 절을 하고 “이 산은 사람을 살리는 산”이라며 감탄했다는 이야기가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다.소백산이 그동안 우수한 자연경관으로 환경을 살리고, 사람을 살려 왔다면 이제는 지역을 살리는 산이 되어줄 것이라 기대한다.

2023-03-19

봄을 소묘하는 소녀의 시간

이희정시인 촘촘한 체 같은 어스름이 번져 오고사랑니 뽑혀 나간 동그란 아픔 위에봄 저녁 물 끓는 소리 무심하게 고이는데만지면 부서질까 당신의 마음가닥가늘고 빳빳한 쓸쓸의 올올들이뜨겁게 곤두박질치며 물속에서 몸을 푼다참았던 시간들을 찬물로 헹궈 내면어쩜 몇 가닥쯤은 당신에게 가닿아반음쯤 낮은 자리에서 흰 음계로 울어줄까-서숙희, ‘국수를 삶는 저녁’ (‘가히’ 창간 특집- 2023년 봄호)우리에게 ‘국수’라는 식재료는 음식으로도 심상으로도 별미다. 주식인 밥과는 달리 소박하지만 특별한 친밀감을 자아내기에 이만한 서정도 없을 것이다. 작품 제목 ‘국수’를 뽑아내기 위한 오브제로 시어 ‘촘촘한 체’는 맞춤이다. 시적 화자는 색보다는 선과 면으로만 소녀의 무채색 봄을 소묘하고 있다.“시는 그림과 같이(ut pictura poesis)” 라는 고대 로마의 시인 호라티우스의 구호는 여전히 주효하다. 말하는 것이 아니라 보여주는 것이 시의 미덕이라면 더욱 이 시는 서사보다는 묘사가 승하다. 흔히 묘사는 창작 기법에서 인물의 마음속 풍경을 배경으로 드러내는 장치로 쓰인다. “촘촘한 체 같은 어스름이 번져 오고”의 첫 행에서부터 심상을 거느린 묘사가 이미지를 믿음직하게 견인하고 있음을 어렵지 않게 눈치챌 수 있다. 시를 그림 대하듯 읊노라면 어느새 고요를 거느린 섬세한 풍경에 눈이 순해지고 마음결마저 연해지고 마는 것이니.“현실풍경이건 심상풍경이건 글은 해석의 산물”이라고 했다. 서숙희 시인(64)이 그리는 ‘국수를 삶는 저녁’의 풍경은 채색되지 않은 연한 봄이다. 시인이 시어를 길어내는 시간은 가는 국수를 체에 걸러내듯 촘촘하고 예민한 순간이기에 “물 끓는 소리마저 무심하게 고”인다. 이어 봄 저녁의 현실풍경은 “만지면 부서질까 당신의 마음가닥”의 심상 풍경과 절묘하게 포개지며 자연스레 운율의 음계를 놓는 것에도 일조하고 있다. 화자가 그리는 풍경은 반음 낮은 자리에서 단아한 서정의 여린 직선으로 흐르고 있다.어떤 글이든 고명에 한눈을 팔면 노상에서 객사하기 십상이라고 했다. 시력 30여 년의 시인이 화려한 수사보다 시의 본령인 국수가락에 전심을 다하고 있음을 주목해 보자. 시적 화자는 “가늘고 빳빳한 쓸쓸의 올올들”로 마치 시를 처음 대하는 소녀처럼 공손하게 맞는 것이다. 타협이나 굴종을 모르는 타고난 국수가락의 성정은 돌연 시의 허리쯤에서 “뜨겁게 곤두박질치며 물속에서 몸을 푼다.” 이는 제목이 상징하는 ‘국수를 삶는 저녁’의 창작(조리)과정을 풀어내는 동시에 화자의 내적 열망을 교묘하게 비등하며 카타르시스를 준다. 마치 영화 마블시리즈 앤트맨의 슈퍼히어로를 연상시키듯 줌인과 줌아웃을 자유자재로 오가며 온탕과 냉탕을 벼리는 것이다.이처럼 화자는 대상에 대한 격정 어린 내성을 “찬물로 헹궈 내” 봄 저녁의 풍경 한 올 한 올을 체에 내리듯 소담스레 ‘국수’라는 가락에 풀어내고 있다. 오래 기다리고 감추었던 빳빳한 국수의 외형은 어느새 물의 방식에 순응하며 쓸쓸하고도 부드러운 봄 저녁으로 치환된다. 선에도 감정이 있다. 기다림의 애틋함이 높은 감정의 선이라면 쓸쓸과 울음은 낮은 무채색 감정이다. 울음은 감정의 바닥까지 다 긁어내야 도달할 수 있다. 시를 기다리며 한생을 살아가는 시인의 담백한 저녁, 그 애정의 발화를 본다. “어쩜 몇 가닥쯤은 당신에게 가닿아 반음쯤 낮은 자리에서 흰 음계로 울어줄까”마침내, 소녀의 국수 가락은 희디흰 음계로 저 먼 곳까지 공명할 것이다.

2023-03-19

품질과 설비 그리고 역량 향상

엄주선 포스코 인재창조원 교수·컨설턴트 우리가 음식점을 찾을 때 가장 중요시 하는 것은 무엇일까? 좋은 서비스도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첫 째로 맛을 선택할 것이다. 가격이 싸도 맛이 없으면 다시 찾지 않는 경우가 왕왕 있는가 하면 맛이 있다고 소문이 나면 천리 길도 마다하지 않고 찾아가 줄을 서고 기다리는 식당이 있다. 그래서 문구 중에 ‘안 먹어본 사람은 있어도 한번만 먹은 사람은 없다’라는 말로 음식의 맛을 위트 있게 표현하면서 품질을 은근히 자랑하고 있는 것이다.식당에서의 품질인 맛과 같이 생산 현장에서의 품질은 만들어지는 제품이 사용 목적 혹은 사용자의 요구를 얼마나 만족시키고 있는가이다. 그렇기에 오래전부터 전세계 모든 기업들이 생산하는 제품의 품질수준을 높여 고객을 만족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러한 노력들은 1910년대 프레드릭 테일러의 과학적 관리를 시작으로 신뢰성과 품질보증을 거쳐 전사적 품질관리로 발전해 왔고 최근 4차 산업혁명과 맞물려 작업을 로봇화 지능화 하여 품질 변동이 적은 좋은 제품을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다.식당이든 생산 현장이든 제품의 품질은 설비, 사람 그리고 재료와 이를 가공하기 위한 물, 가스 등의 가공체계의 조건에 의해 결정된다. 그러므로 재료가 제품이 되는 과정인 가공이 이루어지는 원리를 이해하고 가공을 정상적으로 하기 위한 기본 항목을 도출하여 잘 관리하면 생산하는 제품이 동일한 품질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특히 설비 중심의 생산라인에서 가공은 재료가 설비와 만나 변형, 변질, 분리, 결합되면서 가치를 창출하는 과정을 말하며 재료와 설비가 만나는 점을 가공점이라고 한다.품질이 좋은 제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이 가공점을 형성하고 유지하기 위하여 설비에 서로 유기적으로 작용하는 본체체결 구동전달운동 유압 공압 윤활 전기제어로 구성된 6계통의 조건 설정과 정상적인 관리가 매우 중요하다. 또한 재료의 온도, 폭, 두께 등과 같은 가공 조건과 재료의 가공을 원할 하게 하기 위해 부수적으로 들어가는 물, 가스, 세정유 등과 같은 가공제계의 조건관리 항목의 도출과 관리 또한 잘되어야 한다.많은 회사들이 공장내 자재를 정리 정돈하고 설비를 닦고 조이고 기름치는 활동까지는 시간과 노력이 많이 들기는 하지만 일정 수준 이상으로 도달하는데 성공한다. 하지만 한 단계 더 발전하여 설비가 제품을 생산하기 위한 가공 원리를 이해하고 가공되는 제품의 품질을 높이기 위한 설비와 재료의 관리항목을 도출하여 항시 정상적으로 관리하는 체계를 구축하는 수준까지는 도달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공장의 자동화 지능화가 빠르게 진행된다고 하여 현장 직원의 설비와 품질관리 역량이 높아진 것은 아니다. 설비의 가공 원리와 품질관리 항목을 도출하여 관리 기준을 만들고 이상 발생시 신속하게 조치하고 다시 유지하기 위한 조건을 설정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역량이 향상되는 것임을 우리 모두가 인식하고 실행하는 노력이 필요한 때이다.

2023-03-19

춤을 춘다는 것

유영희 작가 어느 유투버가 4, 50대가 되면서 가장 어려운 문제 세 가지는 외로움, 돈, 건강이라고 한다. 이 말에 공감하는 사람은 많을 것이다. 김민식 전 MBC PD도 50 중반에 사표를 내고 나서 외로움 문제가 심각했나 보다. 그가 퇴사하고 2년 만에 올해 초 ‘외로움 수업’이라는 책을 냈으니 말이다. 자신이 쓴 칼럼 일부 내용이 사회적 비난을 받게 되자 스스로 벌주기 위해서 퇴사했다고 하니, 그렇게 혼자 있게 된 시간은 많이 외롭고 고통스러웠을 것이다.책을 소개하는 영상을 보니 외로움은 치매의 원인이 된다면서 자신이 외로움을 극복하기 위해 했던 노력 몇 가지를 소개해준다. 그런데 뜻밖에도 그가 가장 먼저 춤을 꼽은 것을 보고 반가웠다. 사실은 나도 한 달 전부터 춤을 배우고 있기 때문이다. 김민식은 줌바를 춘다는데, 내가 배우는 것은 현대 무용이다.발목이 안 좋아서 60분 걷는 것도 부담스러운데, 춤이라니 정말 할 수 있을까 처음에는 걱정도 많았고, 일반인 대상 수업이라 더 편하게 진행할 텐데도 남들과 어울려 춤을 추는 것이 아직도 쑥스럽고 어색한 상태다. 그러나 90분 동안 쉬지 않고 움직이고 있는 내 모습을 보면, 신기하기도 하고 배우는 것도 많다. 줌바나 에어로빅 같은 운동은 정해진 동작을 따라 하지만, 현대 무용은 자유롭게 움직인다. 그렇다고 아무렇게나 흐느적거리는 것은 아니다. 기본 동작을 알려주면 음악에 따라 자기가 동작을 만드는데, 코어의 중심을 잘 잡아야 한다. 외유내강이라는 말처럼, 속은 강건하지만 겉은 부드럽게 움직이는 것이다. 이렇게 계속 움직이다 보면, 내가 주로 하는 동작의 패턴을 알게 된다. 게다가 줌바는 웬만한 체력이 아니고서는 시도하기 힘든 격렬한 운동이지만, 지금 배우는 현대 무용은 자기 몸 상태를 돌보면서 한다.더 중요한 순간은 가끔 음악을 틀지 않고 움직일 때이다. 음악이 있으면 음악의 분위기에 따라가기 쉬운데, 음악이 꺼지면 그야말로 몸 안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나만의 동작을 알게 된다. 그렇게 나오는 내 몸의 움직임은 또 다른 나의 언어라는 생각이 든다. 몇 주가 지나자 선생님은 내 동작이 많이 커졌다며 보기 좋다고 하신다.무엇보다 말을 하거나 글을 쓸 때는 목적이 있고 의식적으로 하지만 몸 언어의 특별한 점은 나의 의도가 많이 개입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어디로 가야지 방향은 있지만, 구체적으로 이런 동작을 해야겠다고 의도한 것도 아닌데 나도 모르게 그 동작이 나온다. 현대 무용의 이런 춤 방식은 노자가 말한 ‘일부러 하지 않는 함’인 것 같다. 그래서 90분을 쉬지 않고 움직일 수 있는지도 모른다.외로움을 극복하기 위해 50대 중반의 남자에게는 줌바가 적당할 수도 있지만 60이 넘은 여자에게는 이런 현대 무용이 알맞다는 생각이 든다. 게다가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몸의 언어를 들을 수 있으니 일석이조다. 줌바든 현대 무용이든 노년의 자신에게 춤을 허하자. 외로움도 극복하고 건강도 만들 수 있으니 그것 또한 일석이조 아닌가.

2023-03-19

새마을 깃발

강길수 수필가 언제부턴가 이 집 앞을 지날 땐, 반갑고도 찜찜하다. 출퇴근 때 오가는 이면도로의 한 집 앞이다. 가정주택을 조금 개조하여 경로당으로 쓰고 있다.본채 외관은 그대로이고, 대문 부분과 길 쪽 담장을 헐고 출입을 편케 한 구조다. 특이한 점은, 대문 헌 좁은 공간에 세운 깃대 셋에 언제나 깃발을 걸어둔다는 것이다. 그래선지, 본채 벽에는 ‘모범경로당’이란 팻말이 붙었다. 깃발은 중앙 깃대에 태극기, 앞에서 볼 때 오른편에 새마을기, 왼편에 단체기가 걸려있다.출퇴근길에 초등학교 앞 두 곳, 중학교 앞 한곳을 지난다. 세 학교 모두 현관 입구 위에 세 개씩의 깃봉이 있다. 오늘 퇴근길에 세 학교가 내 건 깃발을 살폈다. 세 학교 모두 중앙 깃대에 태극기, 마주 볼 때 오른쪽 깃대는 비어있고, 왼쪽 깃대엔 학교기로 보이는 기가 걸려있다. 우리 초, 중등 교육의 현주소란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 초, 중등 교육의 목표는 무엇일까.경로당 앞에서 더 마음 가는 깃발은 ‘새마을기’다. 펄럭이면 펄럭이는 대로, 늘어져 있으면 늘어진 대로 반갑고도 찜찜하다. 새마을기는 오천 년 민족의 숙원인 가난을 물리친 우리 시대의 찬란한 발전상징이 아닌가. 한데, 우리 지역 초, 중등 교육의 현장에는 새마을기가 안 보인다. 몇 해 전, 이웃 지역의 한 초등학교에 일하러 갔다가 푸른 하늘에 펄럭이는 새마을기를 만나 얼마나 반가웠던지!…. 늘 깨어있는 학교라는 마음이 들었었다.‘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이란 공자의 말씀은 우리 사회에서 이미 죽은 걸까. 지난 수년간 온 사회가 정치 모리배들에 의해 날조되고 유린당해도, 우리의 자유 민주주의 자정(自淨) 시스템은 작동하지 못했다. 국가사회의 공익보다 제 편의 사욕만 채우며 가르기만 일삼던 내로남불 비양심 정치꾼들…. 양의 탈을 쓴 가짜 우파, 가짜 좌파들이 판을 치고 나랏돈을 쌈짓돈 삼아 쓰며, 사회를 병들게 해 왔다.과거가 없는 현재란 없다. 또, 현재가 없는 미래도 없다. 과거를 단절하는 것은 곧, 현재가 부정당한다는 진실을 우리 사회는 잊고 산다 싶다. 현재가 과거의 결과일 진데, 그 원인을 배척하는 사회가 온전할 수 있을까. 경로당의 새마을기 앞을 지날 때 느끼는 반갑고도 찜찜한 마음은 바로, 우리 사회가 온고이지신을 외면하고 있다는 결론에 이른다.지난해 기적처럼 국민의힘이 집권했다. 이는 직전과는 달리, 과거를 품어 나가라는 하늘의 도움과 계시라고 확신한다. 우리나라가 꼭 이어가야 할 자산은 무엇일까. 보릿고개 때부터 지금까지 온몸으로 살아낸 증인 세대로써, 단연코 ‘새마을 운동’이라 본다. 70년대 이래 나라 근대화의 근간이었던 새마을 운동을, 현실을 반영(modify)해가며 ‘제2의 새마을 운동’을 벌여야 한다. 그 길만이, 병든 우리 사회를 치유할 수 있는 길로 보이니까 말이다.우리가 ‘근면·자조·협동의 새마을 정신’으로 새로 일어선다면, 기후변화와 코로나 후유증과 지구촌 전쟁으로 인한 경제적 난관도 능히 헤쳐 나아갈 수 있다고 믿는다. 그리하여, 다시 새마을 깃발이 온 나라에 펄럭이도록….

2023-03-16

굿바이 코로나 마스크

윤영대 전 포항대 교수 코로나19의 확산을 막기 위해 마스크 착용을 의무화한 지 2년 5개월 만에 자율화를 한다는 반가운 소식이 전해졌다. 이번 3월 20일부터이다. 그동안 우리 국민이 방역수칙을 성실하게 준수해온 덕분에 지난 1월 말 착용 의무 조정 후 일평균 확진자 38%, 신규 위중증 환자 55% 감소 등 방역상황이 안정적이라는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의 판단에 의한 것이다. 지하철, 버스, 택시 등 대중교통과 대형시설 내의 개방형 약국은 마스크 착용 의무를 해제한 것이다. 학교의 통학 차량도 포함된다. 그러나 의료기관과 약국, 요양병원 등의 감염 취약 시설에서는 계속 유지한다고 한다. 다만 혼잡시간대의 대중교통 이용자, 고위험군, 유증상자에게는 마스크 착용을 권고하고 있다.현재까지의 누적확진자는 전 국민의 60%인 약 3천만 명이며 항체 양성률도 70%이고 일일 확진자가 약 9천 명으로 10주 연속 하락세를 유지하는 안정권에 들어섰다고 보는 것이다. 이제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가까워졌으니 일상회복에 한 걸음 더 나아가는 마음으로 ‘마스크 착용해제’ 선언을 가슴 열고 기쁘게 받아들이자.2019년 연말에 갑자기 들려온 ‘우한 폐렴’ 소식이 다음 해 1월 20일 국내 코로나19의 첫 확진자가 확인되면서 놀랐는데 세계보건기구 WHO는 팬데믹을 선언하였고 10월에는 마스크 착용 의무화 실시로 위반 시에 과태료 10만 원까지 부과했다.2021년 남아공화국 변이의 국내발견 후 4월 12일 실내·외마스크 착용 전면 의무화를 실시했으며 델타 변이와 오미크론 변이 발생으로 2022년 3월 17일 역대 최다 확진자 62만1천124명 기록을 세웠고 4월과 5월에 거리두기 종료, 실외 마스크 착용 의무해제를 했다가 9월에 전면해제를 발표했었다. 그리고 지난 1월 30일 ‘착용 의무’를 ‘권고’로 1단계 해제를 하여 신학기를 앞둔 학교와 학원, 어린이집 등에도 밝은 기운이 비치었고 드디어 3월 20일 전면해제의 기쁜 소식이 들려왔다. 그러나 한편으로 일시적 증가가 있을 수 있다는 우려도 있지만 일률적인 방역은 사실상 끝이 난 것이다. 일본도 ‘노 마스크(No-mask)’를 선언했고 세계적으로 마스크 착용해제 국가가 증가하고 있는 추세이다.마스크 착용은 사회성 발달을 저해한다고 하지만 여론 조사에서 해제 후에도 ‘계속 쓰겠다’는 사람이 70%인 것을 보면 그동안 습관화되어버린 일면이 없지도 않다. 그 환경적 요인으로, 벗었다 썼다 하는 번거로움, 미세먼지, 차가운 날씨, 알레르기 등이 있고 심리적 요인으로는 ‘익명성’을 들기도 한다. 그러나 이제부터 개인의 선택에 달렸으니 스스로 준비하고 챙겨서 가벼운 봄나들이를 할 수도 있겠다.이제 의료기관 착용해제와 확진자 7일 격리 의무만 남겨두고 코로나 팬데믹은 힘을 잃고 있다. 3년 전 마스크 사려고 약국 앞에 길게 늘어섰던 기억들…. 품귀현상, 사재기, 가격 폭등, 마스크 5부제까지 경험했던 마스크 KF94는 888일간의 쉼 없는 사투를 끝내고 우리의 일상에서 사라져 갈 것이다. 턱스크, 마스크 미인 등 숱한 신조어를 만든 마스크가 새로운 생활용품으로 탈바꿈하는 꿈도 꾸어 본다.

2023-03-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