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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대숲 바람

윤명희 수필가 장구채 끝에서 노랫가락이 춤을 춘다. 그 춤은 휘어졌다가 슬금슬금 바닥을 기다 요동치듯 솟구치기를 반복한다. 대숲 바람이 몰아치는 어두운 창밖에는 첫눈이 내리고 촌락의 따뜻한 작은 방은 흥으로 그득하다. 두레밥상 위에는 반쯤 남은 막걸리의 잔이 가늘게 떨리고 나는 숨죽여 손가락 장단을 맞추고 있다.퇴근 후, 차를 몰고 밤길을 달렸다. 산 중에 대숲으로 둘러쳐진 친구의 친정집은 우리의 놀이터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그 집은 늘 비어 있어, 이른 봄이면 막 연초록의 키를 키우기 시작하는 앞산을 보며 수다를 떨기에 그만이다.여름 낮에는 다슬기를 잡고, 밤이면 마당에 나와 별을 센다. 가을이면 뒷담을 기대선 늙은 감나무가 궁금하고 오늘 같은 겨울에는 따뜻한 방바닥이 그리워 찾아가는 곳이다. 출발할 때부터 눈발이 흩날리더니 저수지를 지날 무렵에는 안개까지 자욱해 한 치 앞이 보이지 않았다.당산나무를 지나 마을길로 들어서자 멀리서 대숲 바람이 먼저 맞이한다. 경로당 앞에 차를 세우고 언덕에 누워계시는 친구의 부모님께 눈으로 인사를 했다. 얼마 전까지 장구 장단에 어깨춤을 추시던 구순의 동네 할아버지도 그 옆에 자리를 잡았다. 한 친구가 미주구리가 제철이라고 하는 말에 급조된 만남이다. 오늘은 집주인인 친구가 소리 선생님을 모시고 왔다는 소식에 걸음이 바쁘다. 어떤 분이실까 궁금증이 먼저 마당을 들어섰다. 방문을 와락 열고 들어서자 매번 만났던 냥 전혀 낯설지가 않다.작은 두레밥상에는 미주구리 무침에, 익어가는 김장김치가 막걸리를 유혹하고 있다. 두어 잔이 오르내리자 우리는 소리가 담긴 술을 마시고 싶다는 말을 조심스레 건넸다. 선생님이 방 한 귀퉁이에 있는 장구를 끌어당겨 따 닥 장구를 두드렸다. 제자인 친구에게 노래를 부르라고 하자 우리는 매번 듣는 소리가 아닌 명창의 가락을 듣고 싶다며 졸라댔다. 따다닥 딱딱 쿵 딱. 소리가 장구를 껴안듯이 착 달라붙었다. 장구 장단에 맞춰 노래가 흘러나왔다.눈을 깔고 두레밥상에 손가락으로 박자를 맞추며 노래에 젖어들었다. 그녀의 손짓에 따라 노래가 친구에게로 넘어가고 노랫가락은 끝없이 이어졌다.매끄럽게 넘어가는 친구의 음률 따라 은근슬쩍 우리의 거친 목소리도 끼워 넣었다. 얼쑤! 선생님의 추임새에 신명이 올라 목소리는 점점 더 커져갔다.‘차르르’ 뒷곁에 대숲 바람이 분다. 바람은 집을 한 바퀴 돌아가고, 박자를 맞추듯이 그 사이로 ‘따그락따 딱딱’ 다른 소리가 들린다. 친구는 댓잎 바람의 마지막에 따라가는 것은 죽은 대나무가 내는 소리라고 했다. 그들도 따라 장단을 보태어 흥겨운 노래판이 되었다. 막걸리 몇 잔에 우리의 흥은 어깨까지 오르고, 장구 장단에 눈발은 허공에서 춤을 춘다. 산골의 동짓날 밤은 그렇게 깊어가고 있다.장구 장단을 멈춘 선생님이 우리를 다시 찬찬히 둘러보았다.“아이고 얄구재라, 가만히 보면 전혀 다른 사람들이구마는 어째, 하나 같이 똑 같을고. 앞으로 나도 이 모임에 끼워 줄거라?”우리는 손바닥을 쫙 펴고 독수리 오형제가 된 것을 선포했다.권주가를 부르며 다시 또 막걸리 잔을 부딪쳤다. 허공에 그려지는 장구채의 그림과 맺고 끊는 장구 장단에 따라 우리의 가락도 달라져 갔다. 역시 고수였다. 나는 장구 장단에 노래가 따라간다고 생각했는데 부르면 부를수록 그게 아니었다. 장구가 노래를 받쳐주고 있었다. 노래를 잘하는 친구와는 달리 우리의 노래는 원곡과는 상관없이 엿가락처럼 늘어졌다가 튕겨 올라붙었지만, ‘촤르르’ ‘따그락따 딱딱’ 댓숲 바람이 사이사이를 채워주었다.밤은 깊어가고 마을은 어둠에 잠긴다. 작은 방에 언니 동생 옹기종기 한 이불을 덮어쓰고 누웠던 어린 시절처럼 따끈한 바닥에 이불을 깔고 누웠다.내일 아침이면 잰걸음으로 출근을 해야 하지만, 만날 때마다 그랬듯이 누구 하나 쉬 잠들지 못한다. 흥얼흥얼 다하지 못한 노래가 나지막이 깔리더니 방안은 조용해지고, 대숲도 잠이 든다.

2023-01-11

경인(庚寅)

육십갑자 중 스물일곱 번째에 해당하는 경인(庚寅)이다. 천간(天干)의 경금(庚金)은 큰 바위나 산을 뜻한다. 지지(地支)의 인목(寅木)은 생동적인 양(陽)이며, 계절로는 음력 일월이다. 큰 산이나 다듬어지지 않은 커다란 바위 위에 노니는 호랑이 형상이다.경인일주의 천간 경금은 가을이다. 수확과 결실의 기운이 있어 과정보다는 결과를 더 중요하게 여긴다. 결단력과 추진력을 겸비하고 있으며 의리를 중요시하지만 혁명의 기운도 내포하고 있다.또한 숙살지기(肅殺之氣)가 있어 엄격하고 강한 기운이다. 불의에 참지 못하는 용맹함과 의협심이 강해 지도자 기질이 있다. 단점으로는 성질이 다소 급하고 민감하며, 마음에 들지 않으면 살벌해진다. 행동은 거칠고 사나운 성격의 소유자가 되기 때문에 외로운 신세가 된다.지지 인목(寅木)은 이른 봄기운이다. 차갑게 언 땅을 뚫고 치솟는 기상이 있어 추진력이 강하고 역동적이다.인(寅)은 동물로는 호랑이다. 사자는 무리 지어 사냥하지만, 호랑이는 홀로 다닌다. 고독하지만 영혼이 자유롭고 호기심이 많다. 용맹함과 권력을 쟁취하는 우두머리 기질이 있다. 명예욕이 많기 때문에 남 앞에 서기를 좋아하고, 밝고 명랑한 모습 이면에는 이기적이고 거칠고 사나운 성격이다.경인일주를 칼 맞은 호랑이의 형상으로 볼 수 있다. 한번 날뛰면 살벌한 기운이 사방으로 뻗친다. 활발하고 강직하나, 지기 싫어하는 성질로 변화가 많다. 집착하고 투쟁심이 있어 스스로 고생을 자초한다. 12운성의 절(絶)궁에 있어 불행을 딛고 일어나는 힘이 강하다. 전화위복의 횡재수가 있는 일주다.‘세설신어’ 자신편에 나오는 글이다. 중국 전국시대 진(晋)나라 때 의홍마을에 주자은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성격이 거칠고 사나워서 싸움을 좋아했다. 고을사람들이 그를 화근덩어리로 여겼다. 의홍마을 강 속에는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난폭한 교룡이 살고, 산속에는 사나운 호랑이가 있어서 마을사람을 괴롭혔다.의홍사람들이 이 같은 세 가지 골칫거리를 ‘의홍의 삼대 화근’이라 불렀다. 그 중에서 주자은이 가장 큰 골칫거리였다. 어떤 사람이 주자은에게 호랑이와 교룡을 없애 버리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권했다. 우선 두 가지만이라도 없어지기를 바랐기 때문이다.주자은은 이에 산에 가서 사나운 호랑이를 죽이고, 다시 강으로 가서 교룡을 올라타고서 칼로 찔렀다. 교룡은 물 위로 떠올랐다 물 밑으로 가라앉다 하면서 몇 십리를 떠내려갔다. 사흘이 지나자 사람들은 주자은도 이미 죽었을 거라고 생각하며 속 시원하다는 말을 주고받았다. 그러나 며칠 후 주자은이 교룡을 완전히 죽이고 물 위로 치솟아 올라왔다.오랜 싸움으로 기진맥진해진 주자은이 집으로 돌아가다가 우연히 사람들이 속 시원하게 잘 되었다고 주고받는 말을 듣게 되었다. 그때 자기가 교룡이나 호랑이처럼 이웃사람들로부터 골칫거리로 여겨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는 지난날의 허물을 고치고 새로운 사람이 되겠다는 다짐을 한 뒤 육손의 손자이며 유명한 문학가인 육기와 육운 형제를 찾아갔다.육기는 집에 없었고, 육운을 만나 마을사람들이 자기에게 나쁜 인상을 갖게 된 그간의 사정을 이야기했다. 지난날의 잘못을 고치려고 생각한다는 것과 이미 나이가 많이 먹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무엇 하나 이루어놓은 것이 없다는 사실도 말했다.육운은 “옛사람은 아침에 도를 깨달을 수만 있다면 저녁에 죽더라도 좋다고 생각했소. 당신은 얼마나 행복한 사람이오. 사람이 걱정해야 할 것은 아직도 나아갈 길을 정하지 못한 것이오. 일단 가야 할 길이 정해진다면 이름이 세상에 알려지든 말든 마음 쓸 필요가 뭐 있겠소”라고 말했다.그의 말을 듣고 난 뒤 주자은은 진심으로 지난 잘못을 고치고 훌륭한 사람이 되고자 노력했다. 그는 후에 진나라에 어사중승이라는 벼슬을 맡았고, 임금의 명을 받아 전쟁터에서 사력을 다해 싸우다가 전사하는 충신이 되었다.인간은 미완의 존재이기 때문에 완성을 향해 앞으로 나아갈 수 있고, 자기를 형성하면서 살아간다. 이때 완성을 향한 구체적 방향이나 내용은 자기가 스스로 결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경인일주는 한 곳에 정착하기 힘들어 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므로 이리저리 많이 옮겨 다니며 바쁘게 지내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대체적으로 고향을 떠나 객지에서 스스로 어려운 일을 맡아 고생하다가 결국 윗사람이나 귀인의 도움으로 성공을 거두는 운의 소유자다. 하지만 큰일을 추구하는 용기가 과하다 보면 실패를 자초할 수도 있다. 자칫 오만하기 쉬워 주위에 미움을 받기 때문에 언행에 조심해야 한다. 류대창 명리연구자 경인일주는 본디 그 외모가 화려하다. 피부색도 화려하며, 치장하는 모습이나 본 모습이 화려하다. 편인과 편관의 힘으로 남에게 돋보이기를 좋아하며 꾸미기를 좋아 한다. 남자는 단정하고 깔끔한 얼굴로 세련되게 꾸민다. 여자는 피부가 하얗고 매력적인 외모를 자랑한다.경인(庚寅)에는 편관(偏官)이 있어 무인처럼 엄격하고 칼을 쓰는데 있어 망설임이 없다. 전쟁에서 적과 마주했을 때 검을 휘두르지 못하면 자기가 죽는다. ‘일휘소탕(一揮掃蕩) 혈염산하(血染山下)’ ‘칼을 한 번 휘둘러 쓸어버리니 피가 강산에 물들이다’는 글이 이순신 장군의 칼에 새겨져 있다.1950년 경인년(庚寅年)에 한국전쟁이 일어났다. 이성 잃은 호랑이로 인해 우리는 많은 것을 잃었다. 전쟁은 참혹하고 냉정하다. 풍요로운 생활과 습관으로 전쟁의 상처를 잊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직도 북침이라고 주장하는 일부 사람들이 있어 혼란스럽다. 우크라이나 전쟁 소식을 들으면서 올 한 해도 냉정한 판단으로 어떤 재난에도 흔들림이 없어야 하겠다.

2023-01-11

불만을 사랑으로 승화시킨다면

심한식 경북부 경산시가 새해시작과 함께 정기 인사를 단행했다.시는 이례적으로 정기인사에 대한 보도자료를 배포하며 효율적인 행정 운영을 위해 조직개편과 지난해 12월 완료한 경산시 맞춤형 인사조직혁신 컨설팅 용역을 바탕으로 공정한 보상과 성과 중심의 인사를 했다고 인사 배경을 설명했다. 또 민선 8기 목표인 ‘시민 중심 행복 경산’을 위해 적재적소에 인력을 배치해 시민이 행복한 공직문화 실현을 본격 추진하겠다는 의지와 계획을 반영해 승진과 신규임용, 전보를 단행했다고 덧붙였다.특히 승진 인사에서 민선 8기 역점시책사업을 완성해 나갈 추진력과 능력, 시민을 위한 성과, 시민과의 소통 및 공감 능력 겸비, 시정 기여도와 관리자로서의 리더십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해 상당수의 발탁 승진을 단행한 의미 있는 인사였다고 자평했다.중앙무대와 자치단체를 연결하는 서울사무소장에 경력과 전문성을 갖춘 개방형 임기제를 도입해 경쟁력 있는 국책사업 유치와 대외협력을 강화할 발판을 마련했다는 설명도 했다.경산시는 시민과의 소통과 지역 알림이 역할의 홍보업무를 강화하고자 시민소통담당관을 신설하고 시민고충상담TF팀을 정식기구로 개편하기도 했다.조현일 경산시장도 “일 잘하는 공무원이 공정한 보상을 받는 조직문화를 조성해 우수직원에게 특별승진, 특별승급, 실적가산점 부여, 성과상여금 등 다양한 인센티브를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조 시장은 이어 팀장에게 고유업무를 부여하고 희망 보직 신청제도와 직원 공감 고충 심사제도 운용 등의 추진 의지를 밝혀 다음 정기인사에 대한 기대감도 높였다.경산시의 노력을 깎아내릴 생각은 없지만, 평가는 단기간이 아닌 시간을 두고 평가해야 한다. 한 발 앞이 아닌 멀리 내다보고 특히 인력 운용은 단기간 승부수를 예측해서는 안 된다.많은 사람이 시간이 흐른 후에 고개를 스스럼없이 끄덕일 때 그 결과가 존중받는다. 정기인사에 대한 불만을 느낀 공직자들도 있을 것이다. 이들도 내일을 바라보고 최선을 다한다면 자신이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불만을 공격용으로 삼지 말고 시민과 지역민을 위하는 사랑으로 변화시킨다면 자신이 맡은 일도 행복하고 다른 사람들도 자신을 인정하게 될 것이다. /shs1127@kbmaeil.com

2023-01-11

방탄국회 속앓이

홍석봉 대구지사장 ‘방탄국회’ 논란이 계묘년 첫 임시국회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지난 9일 야당 단독으로 임시국회 문을 열었지만 ‘방탄국회’ 공방으로 여야가 곳곳에서 충돌하고 있다.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10일 오전 ‘성남FC 불법 후원금 사건’ 피의자로 수원지검 성남지청에 출석했다. 민주당 지도부 등 당 소속 의원 20여 명이 동행했다. 개선장군을 보는 듯 보무당당했다. 보수와 진보측 지지자 수 백 명이 현장에서 서로 구호를 외치며 맞섰다. 1월 임시국회는 방탄 논란만 벌이다가 끝날 가능성이 높다.국회는 지난 연말 뇌물수수 등 혐의를 받는 민주당 노웅래 의원의 체포동의안을 부결시킨바 있다. 이를 두고 국민의힘은 ‘이재명 방탄을 위한 예행연습’이라고 맹비난했었다. 결국 연달아 방탄국회가 열리고 체포동의안은 무산될 가능성이 높아졌다.하지만 검찰의 성남FC 후원금 사건 관련 체포동의안이 부결되더라도 2탄이 기다리고 있다. 서울중앙지검에서 수사하는 김용·정진상 두 최측근의 불법 정치자금 및 뇌물 사건 수사로 이 대표에 대한 출석 조사 요구와 구속영장 청구를 또 할 수 있는 것이다. ‘방탄 국회’가 거듭될 경우 민주당의 부담도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유례없는 연속 방탄국회에 국민들은 속만 부글부글 끓이고 있다.방탄국회는 국회의원의 ‘회기중 불체포 특권’을 이용한 것이다. 검찰 수사가 진행 중인 국회의원의 체포를 막기 위해 소속당에서 임시국회를 여는 것을 말한다. 사법당국의 불법적인 억압으로부터 국회의원의 활동을 보장하기 위한 제도가 불체포 특권이다. 또 이를 이용한 것이 ‘방탄국회’다. 그런데 우리 국회는 범죄자를 보호하기 위해 방탄국회를 조자룡 헌칼 휘두르듯이 쓰고 있다./홍석봉(대구지사장)

2023-01-11

대학에게, 위기는 기회일까

장규열 한동대 교수 대학이 많다. 일반대학, 전문대학, 교육대학, 전문대학, 사이버대학, 기술대학 등 모두 합치면 400개도 넘는다. OECD 회원국들의 평균 대학진학율이 42%인데 비하여 우리나라는 69%로 단연 일등이다. 미국이 47%이며 유럽국가들도 40% 초반에 머문다. 독특한 교육열이 배경이 되고 정책이 뒤를 밀어 대학들이 많아졌지만, 저출산, 고령화와 함께 다가온 인구감소현상은 급기야 대학교육의 지평에 위기를 불러왔다. 패러다임의 대전환을 도모해도 시원치 않을 터에, 우리 대학들은 과감한 변화와 혁신에 나서지 않는다.우선 지방대학. 인구의 절반이 수도권에 거주하는 현실에서 이전에도 지역의 대학들은 쉽지 않았다. 지역소멸까지 예상되는 형국에 지방대는 가히 존폐의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위기가 기회라지만, 그간에도 교육부의 재정지원에 기대어 근근히 버텨오던 대학들이 지역에서 활력을 되찾을 방법이 있을까. 지역대학들이 시들해지면 지역에 젊은이들이 사라져 역동적인 기운마저 없어지면서 지역은 소멸의 동력을 부추길 뿐이다. 대학들이 지역에서 상생과 협력의 정신을 회복하여 지역과 함께 일어설 방도를 찾아야 한다.먼저, 평생교육. 20대 초반까지 교육을 마치고 평생을 그에 의존하여 살았던 교육패러다임은 수명을 다하였다. 기술과 트렌드의 변화에 따라 새로운 지식과 기능을 배우고 다시 배울 필요는 점증해 간다. 인공지능과 코딩역량, 온라인과 디지털은 이전에는 없었던 교육수단과 전달방법으로 습득해야 할 덕목이 되었다. 20대 초반 학생들만 상대했던 대학교육 대상모델을 다시 디자인해야 한다.백세시대에 걸맞게 대학의 문을 더욱 넓게 열어야 하며 학기제, 학과제, 학위제로 제한된 교육과정패러다임도 다시 생각해야 한다. 유연하고 융통성 있는 교육상품이 변화된 소비자 트렌드에 맞게 제공되어야 한다. 디지털문명과 함께 의미가 없어야 할 지역격차를 활용하여 지역과 대학은 분명하게 특화된 교육모델을 제시하면서 돌파해 나가야 한다. 진정한 상상과 창의는 21세기 지역에서 대학이 쏘아올릴 신호탄이어야 한다.수능을 기반으로 하는 대입제도를 이제는 손을 보아야 한다. 시험결과에 의존하여 학생을 선발하는 시스템의 경직성도 극복해야 한다. 재기발랄한 MZ세대의 고등교육이 30년도 넘은 제도에 묶여 휘둘리는 게 말이 되는가. 전국이 학생들에게 동일한 시험을 통과하도록 설계된 구조적 획일성도 문제다. 지역대학의 특성에 따라 독자적인 방식으로 학생을 선발하여 지역에서 비전을 가지고 꿈을 키워갈 기회를 다양하게 만들어가야 한다. 객관식으로만 디자인된 시험방식도 이제는 그만해야 한다. 학생이 자유롭게 상상력을 발휘하여 생각하고 분석하면서 문제를 풀어가는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지역과 대학에게 닥친 위기는 기회가 될 수 있을까. 20대 청년층만 상대하던 대상마켓을 성인 전 연령층으로 넓혀 바라보고 개인과 지역에 필요한 교과과정을 융통성 있게 기획하여 대학이 살아날 뿐 아니라 지역도 함께 일으키는 계기로 만들었으면 한다. 대학이 살아야 지역이 산다.

2023-01-11

청년이 한해 200명이나 孤獨死한다니…

심충택 논설위원 나는 우리 사회의 가장 심각한 병리현상 중 하나가 고독사라고 생각한다. 얼마 전 고독사에 대한 공식 통계가 처음으로 나왔다. ‘가족, 친척, 지인과 단절된 채 사는 사람이 자살·병사 등으로 혼자 임종을 맞고 일정한 시간이 흐른 뒤 시신이 발견되는 죽음’을 정부가 처음 집계한 것이다. 얼마나 고통스럽고 쓸쓸한 죽음인가.보건복지부가 지난 연말 발표한 ‘2022년 고독사 실태조사’에 의하면, 2017∼2021년 5년간 국내 전체 고독사 수는 2천412명→3천48명→2천949명→3천279명→3천378명으로 증가하는 추세다. 한해 전체 사망자 30만∼32만 명의 1%가 넘는 수준이다. 50·60대 중장년 세대가 58.6%를 차지했다. 대구·경북지역도 고독사 연평균 증가율이 10%대에 이를 정도로 위험수준이다.놀라운 것은 5년간의 전체 고독사 중 2030세대가 1천여 명이 넘는다는 점이다. 매년 200여 명의 청년이 어느 누구의 임종도 없이 홀로 세상을 떠났다는 비참한 통계다. 특히 청년 고독사는 극단적 선택 비율이 다른 연령대와 비교하면 2배 이상 높은 50% 가까이 됐다.한국의 고독사 문제는 지난 연말 미국 CNN방송도 다뤘다. CNN은 “한국에 문제가 있다. 해마다 중년의 고독한 남성 수천 명이 홀로 사망하고 있다. 며칠, 몇 주씩 사망 사실조차 알려지지 않은 경우가 많다”고 보도했다.이 방송은 고독사라는 단어를 ‘godoksa’로 표기하면서, 이 연구의 사례분석 대상자 대다수가 쪽방이나 반지하에 살았다고 했다. CNN은 쪽방을 ‘jjokbang’으로, 반지하를 ‘banjiha’로 표기하면서 한국사회만의 특유한 병리현상인 것처럼 설명했다.고독사한 청년의 유품정리를 하는 업체직원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청년이 마지막까지 혼자 있었던 공간에는 공통적으로 복용하던 우울증 약들과 배달음식, 널브러진 옷가지, 술병이 나뒹굴고 있어 마치 도시 속 외딴섬과도 같았다”고 한다. 특히 휴대전화를 보면, 통화기록이나 메모장에서 사회로부터 단절된 채 겪었을 정서적 고립감이 너무나 가슴아프게 드러난다고 했다.청년 고독사는 학업·취업 스트레스와 실직으로 인한 사회적 고립이 주요 원인으로 분석된다. 전문가들은 특히 경제활동을 하지 않고 이혼한 청년 남성의 경우 자살위험이 엄청 높다고 한다. 고독사는 결국 사회적 고립이 불러오는 병리현상이어서 분명히 사전징후가 있을 것이다. 자칫 하나하나의 죽음을 경제적 어려움, 우울증 등으로 일반화해버릴 경우 개별적인 원인들을 간과해 버릴 가능성이 크다. 청년고독사에 대한 사회적 처방을 하려면 죽음에 이르게 된 배경과 징후를 다양하게 연구할 필요가 있겠다.고독사는 사회병리현상이니만큼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나서서 현실적인 예방책을 만들어 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1인가구를 잘 파악해서 지역사회와 연결 고리를 다양하게 구축해야 한다. 안부확인이나 이웃에 우편물·배달물건이 계속 쌓이면 주민자치센터에 연락하는 사회캠페인을 벌이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이다.

2023-01-10

깡통전세

우정구 논설위원 한국형 주택 임대차 방식인 전세제도는 전 세계적으로 드물다고 한다. 외국에서는 주로 월세로 집을 빌려 사용하나 우리나라처럼 월세없이 목돈의 전세금을 주고 계약기간이 끝나면 100% 전세금을 돌려받는 방식은 잘 없다고 말이다.조선총독부 관습조사 보고서에 의하면 우리나라는 일제 강점기부터 전세제도가 있었던 것으로 기록에 남아 있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전세가 활성화된 것은 산업화가 극도로 빠르게 진행되던 1970년 이후부터라고 한다. 산업화 과정에서 일자리를 찾아서 농촌인구들이 대거 도시로 몰려오면서 주택공급이 수요를 뒷받침하지 못하자 민간차원에서 자연적으로 생겨난 제도라는 것이다.집주인은 전세자금을 무이자로 활용할 수 있어 좋고, 세입자는 매매보다 적은 돈으로 거주하면서 월세가 없어 부담이 적은 이점이 있다. 그러나 정부 개입 없이 민간차원에서 이뤄진 계약이라 전세금을 떼이는 등 부작용도 적지 않아 그동안 여러 가지 사회문제를 야기하기도 했다.최근 부동산 경기 침체로 집값이 폭락하자 깡통전세가 핫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한국주택금융공사가 발표한 ‘보증금 미반환 위험의 추정’보고서에 의하면 “올해 하반기 전세 계약만기가 도래하는 주택의 12.5%가 깡통전세가 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깡통전세는 매매가격이 전세 보증금보다 낮아 주택을 매매하더라도 전세금을 온전히 돌려받지 못하는 경우를 말한다.특히 대구와 경북의 깡통전세 확률이 전국 최고라고 한다. 대구 33.6%, 경북 32.1%다. 10채 중 3채가 깡통전세로 전락할 위기에 처해 있다는 분석인데, 당국의 발빠른 대응이 필요하다. 깡통전세로 눈물을 흘릴 서민들의 피해, 정부가 미리 막아주어야 한다./우정구(논설위원)

2023-01-10

AI 시대의 평등

김경외 한동대 교수·AI융합교육원 4차 산업혁명 시대에서 디지털 전환은 선택이 아닌 필수 조건으로 자리매김하였다. 디지털 전환이라는 용어가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그리 낯설지 않게 들리는 것처럼 이미 글로벌 시장에서 디지털 전환은 국가의 경제적 수준과 상관없이 빠른 속도로 일어나고 있다. ICT 기술을 중심으로 벌어지고 있는 이 변화의 흐름 속에서 우리 사회와 개인의 삶은 인공지능을 중심으로 하는 AI 시대에 적응해 가고 있다.AI 시대의 대표적인 특징 중 하나는 바로 데이터의 접근성과 기회의 측면에서 모두가 평등해진다는 것이다. AI 시대의 핵심인 ICT 기술의 발전은 지식의 비대칭성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넘어서 지식 공유를 통해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다. 이전에는 돈을 지불해야만 얻을 수 있었던 지식을 이제는 구글이나 유튜브와 같은 다양한 웹 서비스를 통해 무료로 빠르고 쉽게 얻을 수 있다. 또한 AI 시대에서는 가치 창출의 수단이 더욱 다양해졌다. 데이터는 더 이상 지켜야하는 대상이 아닌 공유의 대상이며, 데이터와 유휴 자원의 공유 활동을 통해 창출되는 경제적 파급력은 이미 우버나 에어비앤비와 같은 서비스들을 통해 입증되었다.이처럼 AI 시대에서는 이전보다 더 차별 없이 모두에게 공평한 기회가 주어지는 평등한 사회적 구조를 기대해 볼 법하다. 뉴욕타임즈의 칼럼니스트인 토머스 프리드먼이 그의 저서 ‘세계는 평평하다(The world is flat)’에서 설명한 것처럼 개발도상국가들의 비약적인 경제 성장과 이로 인한 세계 부의 평준화가 곧 이루어질 것으로 보인다. 온라인 서비스를 통해 국가와 지역간에 존재하던 교육과 정보의 불평등 문제는 이미 상당 부분 해소되어가고 있다.하지만 우리 사회의 불평등은 조금도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고 오히려 심화되는 모습이다. 원격 교육이나 원격 근무가 기술적으로 활용 가능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청년들은 해외 선진국이나 대도시로 떠나려고 한다. 아직 완전한 AI 시대가 도래한 것이 아니라고는 하지만, 우리 사회의 상당 부분이 디지털화되어 있다는 사실을 미루어 보면 이는 우리가 낙관하는 AI 시대의 모습이 아니다. 이는 현 시점의 우리 사회가 AI 시대의 기술적인 장점만 있을 뿐, 이외의 가치를 구현할 수 있는 환경 또는 문화에 대한 변화나 정책적 개선은 미비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2023년의 AI 시대를 준비하는 우리 기성세대들은 앞으로 우리 자녀들에게 AI 시대의 참 가치, 즉 보다 평등하고 차별 없이 기회를 부여받을 수 있는 환경과 문화를 만들어 주어야 한다. 오히려 지금 우리 사회에 시급한 것은 AI 중심의 산업 또는 RD 정책이 아니라 젊은 세대들에 초점을 맞춘 정책 또는 시스템 개선이 아닐지 모르겠다. AI 시대의 평등은 결코 당연하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우리의 젊은 세대들이 보다 차별 없이 자유롭게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세상이 도래하길 기대한다.

2023-01-10

아름다운 도전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새로운 희망과 기대 속에 또 한 해를 맞았다. 오고 가는 무수한 세월 속에 맞이하는 새해는 늘 그렇듯이 담담하고 차분하게 열리는 것 같다. 새날이나 새해가 열린다는 것은 가슴 설레는 일이다. 하루나 일년이라는 새로운 무대에 새로운 배역으로 삶의 새로운 사연이나 작품을 써 내려가기 때문이다. 그것은 곧 하얀 도화지에 새로운 그림을 그린다거나 눈 덮힌 광활한 벌판에 자신의 발자국을 새롭게 남기며 걸어가는 것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예부터 현인(賢人)은 ‘눈밭을 걸을 때는 함부로 어지러이 걷지 말라(踏雪野中去 不須胡亂行)’고 했던가. 처음의 시작과 꾸준히 내딛는 발걸음의 자취가 그만큼 중요함을 설파한 것이라 할 수 있다.그렇기에 사람들은 새해가 바뀌는 시점에 새로운 일년을 설계하고 목표와 희망을 다짐하며 보다 밝은 내일을 추구하는지도 모른다. 누구나가 새롭고 진보된 모습으로 더 알차고 나은 삶을 희원함은 당연지사이다. 누구에게나 똑같이 주어지는 시간의 반복 속에 버물려 살아가지만, 사람이나 지역, 이념이나 시대마다 각양각색 삶의 단면은 그야말로 천태만상이다. 그 가운데 분명한 것은 문명의 발달과 함께 삶의 질이나 방향이 편리하고 윤택한 각도로 꾸준하게 변화, 발전되었다는 것이다. 세월의 연륜에 지식과 지혜의 깊이가 더해지고, 숱한 시행착오 속에 세상은 해마다 조금씩 유토피아적인 이상세계(理想世界)로 나아가고 있다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어쩌면 그러한 대의나 흐름 속에서 사람들은 저마다의 삶을 풍부하고 가치롭게 가꾸기 위해 노력하고 정진하는 것이리라. 어제보다 더 낫고 오늘보다 더 밝은 내일을 기약하면서 준비하고 계획하며 행복을 가꿔가는 것이리라. 그래서 소박한 꿈이나 원대한 목표를 이루기 위한 발걸음을 잠시라도 멈추지 않는 것이리라. 그러나 아무리 사소하고 미약한 일이라도 시작하지 않으면 이룰 수 없듯이(事雖小 不作不成), 몸을 움직여 길을 나서고 생각이 향하는 곳으로 마음을 쏟아야 최소한 무엇인가를 시도하고 성취할 수 있다. 노력하고 인내하며 위험을 범하고 모험을 시도하면서 미지의 길을 걷듯이, 새로움을 위한 탐험과 호기심으로 내딛는 첫발은 아름답기만 하다. 열정으로 도전하는 삶이 아름답듯이, 나이와 형편을 떠나 작심하고 입문해서 시도한다는 것은 갈채를 받을 만한 일이다.작년 취임 후 첫 새해를 맞은 윤 대통령 부부의 연하장에 사용된 칠곡할매글꼴은, 평생 한글을 모르고 살았던 70세 이상의 할머니들이 한글을 깨우치고 애환의 삶과 마음을 고스란히 담아낸 아름다운 도전의 결실로 여겨진다. 이렇듯이 새로운 도전은 작고 별 것 아닌 것 같아도 큰 감동과 울림을 줄 수 있다. 세상의 모든 어렵거나 큰일도 쉽거나 작은 일에서 비롯된다(天下難事 必作於易 天下大事 必作於細)고 했으니, 작은 목표라도 토끼 같이 귀를 쫑긋 세워 주변에 귀기울이며 영민한 걸음으로 도전하고 꾸준히 실천해보자.

2023-01-10

지구의 눈물, 팜유

팜유 채취로 서식지가 사라지고 있는 오랑우탄. /언스플래쉬 얼마 전 MBC 인기 예능 프로그램 ‘나 혼자 산다’에서는 전현무, 박나래, 이장우의 베트남 여행기가 그려졌다. 세 사람은 평소 먹는 것을 좋아해 얼굴이 자주 붓고 기름기가 번들번들한데, 이 공통점을 가지고 그룹 이름을 ‘팜유 라인’으로 지었다. 팜유 라인은 베트남 달랏의 온갖 맛있는 음식들을 닥치는 대로 먹어치웠다. 레스토랑부터 길거리 음식까지 장장 스무 시간에 달하는 식사를 했다. 다음날 아침 퉁퉁 부은 얼굴로 모인 세 사람의 모습은 시청자들의 웃음을 자아냈다.방송에서는 팜유라는 단어가 수백 번 등장했다. ‘팜유즈’, ‘팜유 라인’, ‘팜유 원정대’, ‘팜유 세미나’ 등등 다양하게 변주되었다. 방송이 나간 후 인터넷 검색창과 연예 기사란은 온통 팜유로 도배됐다. 사람들은 급격히 팜유에 관심을 갖게 됐다. 건강에 좋지 않다는 부정적 인식을 가졌던 사람들이 팜유에 친근감을 느끼게 됐다. 팜유는 정감 있고, 유쾌하며, 무해한 것이 됐다. 출연진들과 작가, 피디가 신중했어야 하는 지점이다. 가벼운 웃음의 소재로 쓰였지만, 팜유의 진실은 결코 가볍지 않기 때문이다.지난 70여 년 동안 오랑우탄 개체수는 지구상에서 전체 80퍼센트 감소했다. 그 결과 보르네오 오랑우탄은 멸종 위기종으로 지정됐다. 서식지가 파괴됐기 때문이다. 1960년대부터 90년대까지 30년 동안 인도네시아의 숲 4천 만 헥타르가 사라졌다. 우리나라 면적의 네 배다. 가구, 종이, 선박 제조 등에 쓰이는 목재를 얻기 위해 대규모 벌목이 자행됐다. 벌목보다 더 심각한 건 야자유, 바로 ‘팜유’ 채취다. 식용유뿐만 아니라 우리가 쓰는 공산품들 중 식품, 샴푸, 치약, 비누, 화장품 등의 원료명에 팜핵유, 팜올레인유, 팜스테아린이 적혀 있으면 야자유가 함유된 것이다. 여담이지만 보르네오섬에서는 인간이 암컷 오랑우탄을 포획해 화장을 시키고 란제리를 입힌 후 인간 남성들을 고객으로 하는 매춘 학대를 저지르기도 했다.‘나 혼자 산다’는 장수 예능 프로그램이다. 1인 가구 시대에 혼자 사는 연예인들의 소박한 일상을 보여주며 공감을 얻던 초기의 취지는 이제 사라지고, 유명인들의 럭셔리 라이프가 전시되거나 친한 연예인들끼리 어울려 노는 친목 과시만 남았다. 그래도 전에는 환경 문제나 사회적 약자의 소외 양상 등 시의성 있는 문제의식을 보여주기도 했는데, 이제는 자극적이고 말초적인 흥미만 남았다. 시청자들은 ‘나 혼자 잘산다’라든가 ‘너희들끼리 산다’라고 비꼬는 중이다.이번 ‘팜유’ 에피소드는 ‘나 혼자 산다’의 문제와 한계를 명확히 드러냈다. 바로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한나 아렌트는 ‘생각 없음’이야말로 ‘악’이 될 수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수십만 명 환경운동가들의 간절함보다, 일상에서 환경보호를 실천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노력보다 인기 예능 프로그램이 만들어낸 이미지 하나가 훨씬 더 파급력이 크다. 팜유는 ‘지구의 눈물’이다. 이병철 문학평론가이자 시인. 낚시와 야구 등 활동적인 스포츠도 좋아하며,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방금 배달된 장미 한 다발/ 장미는 얼마나 멀리서 왔는지/ 설마 이 꽃들이 케냐에서부터 온 것은 아니겠지/ 장미 한 다발은/ 기나긴 탄소 발자국을 남겼다, 주로 고속도로에/ (…) 도시의 사람들은/ 장미 향기에 섞인 휘발유 냄새를 눈치채지 못한다/ 한 송이 장미꽃을 피우기 위해서는/ 봄부터 소쩍새가 아니라/ 칠에서 십삼 리터의 물이 필요하단다/ 그리고 그보다 훨씬 많은 휘발유가 필요하겠지/ (…) 오늘은 보이지 않는 탄소 발자국을 따라가 보자/ 한 다발의 장미가 피고 질 때까지”(나희덕, ‘장미는 얼마나 멀리서 왔는지’ 부분) 꽃의 아름다움을 잠시 소유하기 위해 인간의 탐욕은 자연을 착취하고, 자원을 낭비하고, 결국 세계를 황폐하게 한다. 시인은 “오늘은 보이지 않는 탄소 발자국을 따라가 보자”고 제안한다. “한 다발의 장미가 피고 질 때까지” 희생되고 버려지는 것들을 생각해보자고 설득한다. 탄소 발자국을 추적하다 보면 우리가 쓰는 물건들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그것이 인간과 자연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알게 된다. 또 눈에 보이지 않을 뿐 우리 삶이 자연과의 촘촘한 상호작용을 통해 구성된다는 것도 깨닫게 된다. 그때 비로소 ‘함께 잘산다’가 될 수 있다. ‘팜유 라인’ 멤버들은 생각해야 한다. 팜유는 얼마나 멀리서 왔는지를. 물론 우리도 알아야 한다.

2023-01-10

편지를 쓰는 일

2023년의 새해가 밝았다. 1월 1일 아침에는 떡만둣국을 끓여 먹었고, 한가로운 오후엔 집에만 누워 있기 심심해서 동네 대형 서점에 갔다. 그곳에서 새로 나온 여러 책을 뒤적이다가 우연히 편지지가 놓인 작은 매대를 발견했다. 딱히 편지 보낼 일이 없지만 무언가 편지지를 꼭 사야만 할 것 같았고, 왜인지 무엇이든 써야만 할 것 같아 가장 화려한 색의 편지지를 골라 샀다.편지에는 다양한 말들이 적히지만 주로 안부나 소식, 간단한 용무 따위를 적어 상대에게 보낸다. 문자가 발명된 이후 인류 최초의 원거리 통신 방식이었으며 고대에서부터 근대까지는 직접 종이에 글을 써서 상대방한테 전하는 중요 통신 수단이었다.인류의 오랜 역사에서 편지는 중요한 일을 하기도 하였지만 현재는 이메일이나 문자 등으로 간단한 소식과 안부를 주고받고, 중요한 업무 내용을 전달하면서 손으로 적는 편지는 거의 쓰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소중한 이와 다툼이 있거나 중요한 회의를 나눌 때에는 문자보다는 반드시 만나 얼굴을 보며 대화를 한다. 실시간으로 대화가 불가능한 단순한 텍스트는 오해를 낳기 쉽고 정확한 소통을 나누기엔 어려움이 있기 때문이다.하지만 손으로 적어내는 편지는 낭만적인 부분이 있다. 특히나 수신인이 정해져 있는 편지에는 상대에게 전하고 싶은 말을 고르고 골라 일정하게 적어낸다. 그간 말로는 전하기 힘든 사랑의 말을 정돈하여 적어내기도 하고 응원과 희망 같은 밝고 환한 언어들을 잔뜩 힘주어 눌러 담기도 한다. 그렇게 담아낸 마음은 시간 간격을 두고 수신인에게 전달된다. 답장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편지를 쓴다기 보단 그간 하지 못했던 말을 우회하여 전달하고 싶을 때에 주로 편지를 택해 쓴다.가만 보면 편지를 담는 편지 봉투의 생김새는 조용하고 평온해 보이면서도 믿음직한 형태를 띠고 있다. 어떤 편지 종이든 크기에 맞는 편지지가 짝꿍처럼 같이 구성되어 있는데, 대부분의 편지지는 빈 틈 없이 봉투에 꼭 맞아 들어간다. 편지 봉투는 편지지를 보호하기 위해 편지지보다 긴밀하게 두꺼우면서 사방이 막힌 네모반듯한 정직한 형태를 지녔다. 값비싼 물건을 감싸는 천 덮개나 보자기처럼 어딘가 믿음직스러워서 애정 어리게 보게 되는 구석이 있다.수신인이 없는 편지도 있다. 미처 보내지 못하는 편지나 나에게 쓰는 편지는 꼭 일기와도 같다. 김광석의 ‘편지’라는 곡은 이미 나의 곁을 떠나버린 수신인을 향하여 가닿지 못할 말을 노랫말로 적었다. 더는 인연으로 이어지지 않는 너에게 담담하게 이별을 읊조리며 체념하며 너의 행복과 안녕을 빈다. 격정과 분노를 뺀 정제된 언어는 편지 속의 글과 닮았고, 덜어내었기에 감미롭고 담담하기에 슬프다.미국의 천재 시인이라 불리는 에밀리 디킨슨은 미국 매사추세츠 주의 작은 마을인 애머스트에서 태어나 평생을 자랐다. 그녀는 결혼하지 않고 평생을 독신으로 살았으며 생의 말년엔 집밖에 나가지 않고 은둔자로 보냈다. 에밀리 디킨슨은 일생 동안 1천775편의 시, 1천49통의 편지, 124편의 산문을 썼으나 단 7편의 시만 발표했다.말년엔 모든 소통을 편지로 하였는데, 특히 자신의 오랜 친구이자 친오빠의 아내였던 수잔 길버트 디킨슨과는 약 300여 편의 편지를 주고받으며 보냈다고 한다. 은둔 생활 중 유일한 소통의 수단은 편지였을 정도로 그녀는 주로 고독을 말하며 썼다. 윤여진 2018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현재보다 미래가 기대되는 젊은 작가. 특히나 편지와 관련된 ‘그에게 가는구나! 행복한 편지여!’ 시에선 ‘그’라는 대상에게 가기 위해 얼마나 ‘내 손가락들이 허둥대는지’,‘얼마나 조심스럽게 움직이는지’,‘문장이 얼마나 힘겹게 쓰이는지’에 대해 그에게 전하고 싶은 마음을 문장으로 적어 편지에 봉인한다. ‘그에게 가는구나! 행복한 편지여!’는 누군가를 열렬히 사랑하는 감정과 부끄럽고 서툰 마음을 편지를 쓰듯 간결하면서도 자유로운 언어로 표현하고 있으며 애정이 담긴 위트와 애달픈 긴장을 느낄 수 있어 더욱 느릿느릿 읽어 내려갔던 시다.결국 나는 나에게 편지를 썼다. 무언가 쓰고 싶었던 이유에는 까닭 없는 명랑함을 마주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신기하게도 편지는 첫 문장이 어색하고 다소 어두울 지라도, 내용의 끝에 다다를수록 아주 간단히 명쾌한 문장을 마주하게 된다. 한 해의 시작 앞에서 무언가 두렵다거나 또는 지나친 걱정을 앞세우더라도 끝내 편지의 마지막 문장은 나를 위한 건강한 사랑을 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올해도 무엇이든 명랑하게, 무사한 안녕을 빌어본다.

2023-01-10

‘어느 편이냐’ 묻는 당신에게

변창구대구가톨릭대 교수·국제정치학 진보정권에서는 진보를 비판하고, 보수정권에서는 보수를 비판하는 당신은 도대체 ‘어느 편이냐’고 묻는다. 편 가르기 좋아하는 사람들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모양이다. 그들이 알아야 할 것은 “언론이나 지식인은 정권·이념·권력의 편이 아니라, 정의·진실·국민의 편에 서야 한다”는 사실이다.자유·정의·진리를 사랑하는 사람은 ‘이념적 프레임’에 갇히는 ‘편 가르기’를 단호히 거부한다. 보수 또는 진보라는 프레임은 정치이념이 반영된 ‘선택과 배제’의 결과물이다.정치프레임에 갇히는 순간, 자유인의 사고는 유연성을 잃고 정신적 노예로 전락한다. 옳고 그름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느 편이냐가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진영논리에 빠졌다는 것은 주체성과 객관성을 상실했다는 뜻이다. 자유와 진리를 사랑한다면 ‘진영과 진영 사의의 경계’에 서야 한다. ‘경계인’의 삶이야말로 자유인의 지성적인 삶이다.‘정의’라는 담론 역시 진영논리로 정치화되면 ‘선택적 정의’가 ‘보편적 정의’를 대신하게 된다. 편향적인 ‘보수의 정의’나 ‘진보의 정의’가 ‘보편적 정의’로 인정받지 못하는 까닭이다.정권이 바뀔 때마다 ‘공정·정의·상식’의 역설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공정하지도 상식적이지도 못한 이유는 대통령들의 정치성향에 따라 선택적으로 적용되었기 때문이다. 공정은 정의로워야 하고 정의는 공존을 지향할 때 비로소 보편적 정의가 될 수 있다.‘확증편향이 지배하는 흑백사회’에서는 어느 편에도 들지 않는 사람을 흔히 ‘회색분자’ 또는 ‘기회주의자’로 매도한다. 보수를 비판하면 진보이고, 진보를 비판하면 보수라는 단세포적 발상은 반민주적 흑백론이다.파스칼(B. Pascal)이 갈파했듯이 인간은 본질적으로 “천사(백색)도 악마(흑색)도 아닌 중간적 존재(회색)”이다. 완벽한 백색 또는 흑색은 존재할 수 없으며, 오직 수많은 회색들의 농도 차이가 있을 뿐이다. 게다가 정치적으로는 중도층이 보수와 진보의 극단화를 막아주고, 경제적으로는 중산층이 빈부갈등을 완화시켜주니 ‘회색지대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우리가 지금 앓고 있는 ‘확증편향이라는 병’은 망국병이다. 조선시대의 동인과 서인, 해방정국에서 좌파와 우파의 극단적 대립은 결국 비극으로 끝났다.독선과 오만에 빠진 ‘편 가르기의 끝은 공멸’이다. 정치이념이 종교화되면 권력투쟁은 종교전쟁처럼 극단화되기 때문이다. 독선주의자들에게 중요한 것은 ‘합리성’이 아니라 ‘신념’이며, ‘외골수의 신념’은 이성적 토론을 어렵게 함으로써 마침내 민주주의는 사망하게 된다.이제 우리는 더 이상 ‘당신은 어느 편이냐’고 묻지 말자. 그 대신 우리의 인식과 행태가 불편부당(不偏不黨)하도록 스스로를 깊이 성찰하자.철학자 호르크하이머(M. Hork heimer)는 “인간의 이성이 성찰적이고 비판적인 입장을 포기할 때 비극이 초래된다”고 했다. ‘확증편향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위한 ‘자기성찰’과 ‘통합적 인식의 시선’이 절실한 이유다.

2023-01-09

‘산분장(散粉葬)’에 ‘퇴비장’까지

홍석봉 대구지사장 죽은 사람을 땅에 묻거나 화장하는 장사(葬事) 방법도 새로운 것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전통적인 매장에 화장을 한 후 ‘수목장’을 하는 것이 그동안 가장 앞선 방법이었다. 여기에 이제 ‘산분장’까지 추가된다. 한 발 더 나아가 미국에서는 주검을 거름용 흙으로 활용하는 ‘퇴비장’까지 등장했다. 아직 우리네 국민 감정과는 거리가 있지만 퇴비장도 언젠가는 도입될 것으로 보인다.보건복지부는 최근 화장 후 산이나 바다 등에 유골을 뿌리는 산분장의 법적 근거를 마련, 발표했다. 방식을 산분, 수목장림, 해양장 등으로 확대해서 2023년까지 구체화하고, 2024년에 법제화한 후, 2027년까지 산분장 이용 비중을 화장 건수의 30%까지 높이겠다는 것이 골자다.한국장례문화진흥원의 조사 결과 희망하는 장사방법으로 화장이 89.1%로 가장 높고 매장은 10.9%로 나타났다. 희망하는 안치방법은 자연장 41.6%, 봉안 35.3%에 이어 산분장이 23%로 세 번째로 높았다. 산분장은 법규 보완이 필요하다. 산이나 강 등 육지는 산분장이 가능한 구역을 특정하고, 바다는 금지 구역을 지정하는 등의 제한을 두어야 한다. 국립공원, 상수원보호구역 등 법률로 금지된 지역이 아닌 개인의 토지, 선산은 현재 화장한 유골을 뿌리거나 매장해도 괜찮다. 집 화단에 수목장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마침내 ‘퇴비장’까지 등장했다. 미국에서는 얼마 전 시신을 자연분해한 뒤 퇴비용 흙으로 만드는 방식의 퇴비장을 허가했다. 친환경 논란과 함께 종교계의 반발이 적잖은 모양이다.죽으면 한줌 흙으로 돌아간다. 흙이 되기까지 과정은 유족의 선택에 달렸다. 주검이후에도 장사방법을 고민해야 할 판이다./홍석봉(대구지사장)

2023-01-09

사랑하다의 다른 표현 ‘붕괴되다’

영화 ‘헤어질 결심’ 포스터. 한 남자가 산에서 떨어져 죽는다. 형사(해준)는 살인인가 자살인가의 의문에서 출발해 증거를 수집한다. 죽은 남자의 부인인 서래는 용의자와 피의자 사이를 오가며 의심과 신문(訊問)의 과정 속에서 스스로의 알리바이를 증명해 나간다. 형사와 용의자는 신문(訊問)과 증명(알리바이)을 주고 받으며 혐의를 입증할 것인가 벗어날 것인가의 추리 수사물의 전형적인 구조를 가진다.남여가 만난다. 호감을 가지고 상대의 마음을 확인하기 위해 애쓴다. 대화하고 관찰하고 모든 행동과 대화를 되새기면서 어떤 의도로 그렇게 말했는가를 파악하기 위해 각자의 위치에서 조심스럽게 타진해 나간다. 사소한 행동, 사소한 말 한마디조차 의미를 부여하며 내 마음을 들키지 않고서 상대방의 마음을 확인하기 위해 분주히, 그 과정이 애틋하다. 로맨스 영화의 전형적인 구조를 가진다.서로 다를 것 같은 장르가 한 편의 영화에서 유사한 구조를 가지고 어우러지고 있다. 저 사람은 ‘범인인가 아닌가’가 저 사람은 ‘나를 사랑하고 있는가 아닌가’가 같은 선상에 놓인다. 수사는 상대방을 알아가는 과정이 되고, 신문의 과정은 타인과 나를 동일한 감정 선상에 놓이게 한다. 혐의를 입증해야하는 과정은 상대의 마음을 확인하는 것이 된다.수사가 끊임없는 의심과 증명의 과정을 밟을 때, 사랑은 관심과 마음의 표현이라는 과정을 따른다. 그래서 ‘저사람은 살인을 저지른 범인인가?’는 ‘저 사람은 나를 사랑하는가?’와 같은 원리로 작동한다. 영화 ‘헤어질 결심’은 범죄와 사랑의 증명을 위해 증거(관심)를 수집하고 확인해 과정이 동시에 이루어진다. 수사극으로 시작한 영화는 멜로영화가 되고, 멜로가 시작될 때 다시 수사극으로 중첩되어 전환된다.수사가 유죄와 무죄의 두 가지 결말에 따라 자유와 구속을 길을 걸을 때, 멜로가 만남과 이별이라는 결이 다른 자유와 구속(?)의 길을 걷는다. 등치되고 상반된다. 설렘과 의심 사이 ‘자부심’과 ‘붕괴’가 교차된다. 범인인가 아닌가와 사랑했는가 아닌가가 교차되며 오간다. “당신이 사랑한다고 말할 때 당신의 사랑이 끝났고, 당신의 사랑이 끝났을 때 내 사랑이 시작됐다”는 서래의 대사처럼 용의자와 형사로 만난 두 사람은 모호함을 오간다.산에서 시작된 영화는 바다에서 끝난다. 만남과 이별이 이어지듯이 용의자와 피의자의 관계가 시소를 탄다. 명확해지던 정황은 다시 안개 속으로 사라지고, ‘자부심’과 ‘붕괴’를 오간다. 안개 속 같은 모호함 속에서 점점 더 또렷해지는 것이 있다. 영화 제목인 ‘헤어질 결심’이 누구와 헤어질 것이며, 어디로 향해 갈 것인가다. 헤어진다는 것, 이별을 한다는 것은 대상과 지향점을 동시에 내포하고 있다. 산에서 시작된 영화 전반부의 ‘헤어질 결심’이 형사 해준에게로 향하는 마음의 결심이었을 때 바다에서 이어지는 후반부는 의심하는 사랑에 대한 단호한 응징과도 같은 확신을 보여준다. 이것이 서래의 ‘헤어질 결심’이다. 반면에 해준은 ‘자부심’과 ‘붕괴’ 사이에서 의심과 그것을 증명할 무엇인가를 안개 속에서 끊임없이 찾아 헤매는 존재로 남는다.의심하고, 미행하고, 감시하고, 구속하는 것의 구조는 수사와 사랑이 유사하다. 그러나 미결된 사건처럼 확인되지 않고 결말에 다다르지 못한 사랑은 역설적이게도 영원히 사랑으로 남는 것을 보여준다. 상대방의 ‘붕괴’를 막고 ‘자부심’을 지켜주기 위한 최선의 방법, 사랑하는 마음에 대한 최선의 선택이 희생이라는 역설에 있다.“나는요. 완전히 붕괴됐어요”라는 해준의 말은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라는 말과 똑같다. 사랑과 붕괴가 동의어가 된다. 사랑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아도 사랑이 되고, 평생 잊혀지지 않을 미결사건이 되어 영원히 사랑하는 사람으로 남는다.엔딩에 이르러 ‘붕괴’된 남자와 ‘헤어질 결심’을 한 여자가 ‘마침내’ 사랑을 증명하고 확인하는 순간. “슬픔이 파도처럼 밀려오”고 여운이 “물에 잉크가 퍼지듯이 서서히” 번져옴을 느낀다. 오래 갈 것 같다. /(주)Engine42 대표 김규형

2023-01-09

‘선녀와 나무꾼’ 그리고 소통

‘선녀와 나무꾼’은 전 세계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모티프 중 하나이다. 하늘의 존재가 어떤 이유이건 땅으로 내려오고, 땅의 존재와 이어지면서 하나의 연결고리를 형성한다. 하늘과 땅을 잇는 이야기는 자연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 없는 과거의 농경사회에서는 매우 중요하게 여겨졌다. 우리에게 많이 알려진 ‘선녀와 나무꾼’ 또한 하늘과 땅의 연결고리를 맺기 위한 과정 위에서 해석할 수 있다. 사슴을 구해준 나무꾼이 선녀와 결혼하여 아이를 낳았으나 금기를 지키지 못해 하늘로 돌아가는 것을 막지 못한다. 하늘로 따라 올라간 나무꾼은 지상의 노모를 방문하다 또 금기를 어겨 천상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닭이 되어 하늘만 쳐다본다.‘선녀와 나무꾼’은 지역마다 조금씩 변형되고 때로는 일부 빠지거나 추가되어 전승되어왔다. 선녀 또는 나무꾼 한쪽만 이야기에 등장하기도 하고, 옥황상제의 벌을 받아 연인과 강제로 헤어지거나 이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이야기에서 선녀와 나무꾼은 평행선을 달리는 불통의 관계다. 나무꾼은 훌륭한 여인과의 결혼을 통해 신분 상승을 희망하는 자로서 계획적으로 약탈혼을 추진하며, 선녀는 이성에 대한 호기심과 구속에 대한 해방을 꿈꾸다 나무꾼과 결혼한다. 특히 우리나라 ‘선녀와 나무꾼’은 우리가 상상하던 절절한 사랑 이야기보다는 효를 강조하다 연인이나 부부를 이별시키는 비극에 가깝다. 결혼으로 끝이 나거나 홀로 하늘로 떠나버리는 다른 나라와 달리 우리나라 선녀는 아이들을 꼭 데리고 하늘로 올라간다. 또 다른 이야기에서는 하늘에 올라 함께 살던 나무꾼이 노모를 걱정하다가 지상에 내려가고, 금기로 인해 돌아오지 못하게 된다. 아이와 선녀, 노모와 나무꾼은 ‘엄마와 아이’라는 관점에서 떨어뜨릴 수 없는 관계였던 모양이다. 돌봄과 돌봄을 당하는 생의 역전 관계에서 사랑은 뒷전이 되고 ‘선녀와 나무꾼’은 비극으로 끝나고 만다.대구에도 ‘선녀와 나무꾼’에 관련된 설화나 민담이 전승되고 있다. 신분 상승, 장가가기, 약탈혼, 이성에 대한 호기심, 구속에 대한 해방, 가정 지키기 등 욕망과 갈등 그리고 그 결과가 부분적으로 전해져 내려온다. 대구의 ‘선녀와 나무꾼’의 옛이야기에서도 역시 소통 부재로 인한 문제들을 엿볼 수 있다. 달성군과 동구를 살펴보면, 달성군 하빈면에는 선녀와 정을 나누고 도망가는 죄를 지어 지상으로 귀양 온 용이 좋은 일 10가지를 하고 승천하는 이야기(‘용재산 용의 승천’)가 있다. 달성군 옥포읍에는 선녀곡, 선녀지, 선녀마을, 선녀약천, 장부타령에서 선녀 이야기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물이 너무 맑아 일곱 선녀가 여름이면 목욕하러 하늘에서 내려오고(삼탕 이천의 유래), 선녀에게 반한 머슴이 선녀곡 옹달샘에 들었다가 하늘의 노여움을 받아 장대비를 맞는다(‘장부타령’). 달성군 가창면에서는 하늘에서 베를 짜러 내려온 옥랑각시에게 노총각이 반하여 욕심을 내었으나 놀란 선녀가 벽에 구멍을 뚫고 하늘로 올라갔다는 이야기(‘옥랑각시굴’)가 전해진다. 동구 불로동에서는 옥황상제에게 벌을 받고 운명이 얽힌 양씨와 그의 아내가 된 다섯 선녀의 이야기(‘하늘 선관과 다섯 선녀’)를 찾아볼 수 있다. 동구 팔공산 자락의 환상산의 한 봉우리 초례봉에는 약 1천500년 전 어씨라는 나무꾼이 하늘의 선녀를 만나 초례를 올렸다는 이야기(초례봉의 유래)가 전해진다.또 달성군과 동구, 두 지역 모두 전승되는 노동요에서도 ‘선녀와 나무꾼’의 모티프를 찾아볼 수 있다. 동구 공산동의 민요 ‘베틀소리’에서는 선녀가 내려와 베를 짠다는 내용과 베틀의 부위별 비유적 표현이 들어있다. 동구 평광동의 민요 ‘어사용’과 달성군 현풍읍의 민요 ‘땔나무 노래’에서는 나무꾼의 신세 한탄이 주를 이룬다. 베를 짜서 옷감을 짓고 나무로 땔감을 삼았던 시대상을 엿볼 수 있다. 금기를 어기고 이어진 인연이나 정서상 떨어뜨릴 수 없는 ‘엄마와 아이’의 관계는 선녀와 나무꾼이 인연을 이어가는 데 분명한 한계점을 제공한다. 그러나 주어진 환경을 감안하더라도 서로에 대한 이해와 배려가 부족해 보이는 것 또한 사실이다. 마냥 순수하게 인연을 맺지 못하는 현대인처럼 그 옛날 선녀와 나무꾼의 시선은 애석하게도 매번 엇나가기만 한다. 이러한 ‘선녀와 나무꾼’의 옛이야기는 대구에서 정기공연을 이어오고 있는 ‘나무꾼의 옷을 훔친 선녀’라는 지역 연극 작품에서도 그 모티프를 찾아볼 수 있다. 사랑은 현실일까 아니면 마술일까. 결혼과 돈 그리고 사랑. 현대연극 속 선녀와 나무꾼이 어떤 선택을 할지 함께 고민해보고, 옛이야기의 그들과 달리 소통과 배려로 진정한 사랑을 찾을 수 있을지 상상해봐도 좋을 것이다.지역에 전해져오는 옛이야기는 직접 발을 디딘 땅의 기억에도, 이야기로 재구성된 문화 예술에도 녹아있다. 지역마다 문화콘텐츠 사업에서 테마파크, 출판, 공연, 영상, 음반, 전시 등 다양한 장르로 발굴되고 활용되고 있다. 그러나 대구의 ‘선녀와 나무꾼’의 옛이야기는 서서히 그 가치를 잃어가고 있다. 풍부히 향유되지 못하는 문화가 세월에 먹히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지만 안타깝기만 하다. 문화 발전을 위한 정기적인 스토리 콘텐츠 개발이 무엇보다 필요해 보인다. 옛이야기가 과거뿐만 아니라 현재를 살아가는 대구의 지역민에게도 살아 숨쉬는 문화로서 소통의 장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최정화 스토리텔러 약력 ·2020 고양시 관광스토리텔링 대상 ·2020 낙동강 어울림스토리텔링 대상 등 수상/최정화 스토리텔러

2023-01-09

포항을 녹색교통 도시로

홍덕구 포스텍 소통과공론연구소 연구원 전 세계가 기후위기로 신음하는 가운데 2023년 새해가 밝았다. 대규모 공업지대가 주거·상업지역과 인접해 있는 포항의 공간적 특성상 대기오염, 수질오염, 토양오염과 같은 문제에 대해 더욱 민감할 수밖에 없다. 이강덕 포항시장도 신년사에서 “사람 중심의 친환경 도시”를 만들어 나가겠다고 포부를 밝힌 바 있다.녹색교통은 에너지 소비량과 온실가스 배출량을 최소화하는 저탄소 교통체계이다. 보통 녹색교통이라고 하면 지하철이나 경전철 같은 대중교통수단, 그리고 최근 자동차 산업의 트렌드인 전기차를 떠올리기 쉽지만, 녹색교통의 ‘근본’ 격인 교통수단은 바로 자전거다.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이나 덴마크의 코펜하겐 같은 유럽의 도시에서는 지금도 자전거가 교통량의 상당 부분을 담당하고 있다. 덴마크의 경우 ‘자전거 고속도로’ 시스템을 도입하여, 코펜하겐을 중심으로 인근 20개 소도시를 지나는 총 길이 200km 이상의 자전거 전용도로를 구축하였다. 그 결과 지하철로 30분 가까이 걸리는 구간을 자전거로는 11분 만에 주파할 수 있게 되어 시민들이 실용적인 교통수단으로서 자전거를 애용하고 있다.반면 한국의 자전거 문화는 교통수단보단 레포츠용에 가깝게 발전해 왔다. 연배가 어느 정도 있는 독자라면 ‘쌀집 자전거’를 기억할 것이다. 무거운 쌀 포대를 몇 개씩 올리고도 끄떡 없이 골목길을 내달리던, 투박하지만 튼튼한 쌀집 자전거. 오토바이와 트럭이 그 역할을 대신하게 되면서 교통수단으로서의 자전거는 거의 사라져 버렸다. 서울의 한강 자전거 도로가 잘 정비되어 있다고는 하지만, 그곳을 통해 자전거로 출퇴근하는 시민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한강 자전거도로에서 집과 직장이 있는 지역으로 진입하는 길은 자전거로 달리기 위험한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산과 언덕이 많은 지형도 자전거 교통이 대중화되는 데에 큰 걸림돌이다.필자가 생활하며 느낀 포항은 녹색교통을 일상화하기에 최적의 환경을 갖춘 도시이다. 도시공간의 대부분이 평지로 이루어져 있어 자전거 이동이 용이하며, 도심을 가로지르는 형산강 자전거도로와 철길숲 자전거도로가 잘 마련되어 있기도 하다. 형산강과 철길숲을 잇는 간선도로를 정비하고, 냉천과 칠성천, 포항운하 등 기존 하천과 수로를 따라 자전거도로를 조성하면 거의 모든 지역을 자전거로 편리하게 이동할 수 있는 녹색교통 시스템이 완비된다. 차도 가장자리를 분리시켜 자전거 전용도로로 만든 서울시의 청계천 자전거도로를 벤치마킹해도 좋겠다. 이렇게 만들어진 자전거 도로는 이용하기에 따라 전동 킥보드나 전동 휠 같은 ‘라스트 마일 모빌리티’(대중교통에서 내린 뒤 최종 목적지까지의 교통 공백을 메꿔주는 이동수단)와도 공유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은 녹색교통 인프라 정비의 필요성과 더불어, 강조하고 싶은 것은 의식 변화의 중요성이다. 도로는 자동차의 전유물이 아니며, 기후위기 시대를 맞아 ‘빠르고 편안하게’ 보다 ‘조금 느리지만 저탄소로’ 이동하는 방법을 함께 고민할 때다.

2023-01-09

귀가 두 개인 이유

김규인 수필가 2023년 계묘년 새해가 밝았다. 새해가 되어도 서민들의 살림살이는 여전히 팍팍하다. 코로나는 여전히 사람 속을 헤집고 다니고 높은 물가와 금리는 삶을 옥죈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은 언제 끝이 날지 기약이 없다.서민들은 고물가, 고환율, 고금리로 힘겨운 삶을 산다. 내일을 알 수 없는 경제 상황으로 기업은 투자하지 않고 상황을 지켜만 본다. 심지어 국가공무원도 정부의 감원 계획에 앞날을 걱정하며 새해를 맞는다. 취업 자리가 줄어 취업을 앞둔 청년들의 시름도 깊어져 간다. 그나마 정부가 2023년도 예산을 조기 집행하여 경제의 불씨를 지피는 노력을 하니 그나마 다행이다.이런 와중에도 정치인들은 정파적 이념에 사로잡혀 경제를 살리려는 노력은 뒷전이다. 자신들의 잇속을 차리면서 말끝마다 내뱉는 국민 타령은 이제 그만했으면 한다. 입으로는 맨날 국민을 앞세우면서 실상은 자신의 입지와 정파의 이권을 챙기기에 바쁘다. 올해는 국회의원이 가진 수백 가지의 혜택 중에 하나라도 내려놓는 한 해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오일 쇼크가 벌어질수록 정유회사가 돈을 벌고, 금리가 오를수록 금융권의 성과급 잔치는 늘어난다. 자본주의의 폐해라고 말하기에는 뭔가 뒷맛이 씁쓸하다. 꼬박꼬박 빌린 돈의 이자를 내며 말없이 이를 지켜보는 서민들은 답답하다. 말이 없음이 모두 동의가 아님을 알지 못하는지.사람의 귀가 두 개요 입이 하나인 이유를 알지 못하는지. 더 많이 듣고 적게 말하라는 말이다. 귀가 양쪽에 있는 것은 서로 다른 이야기를 균형 있게 들으라는 말이다. 지금은 균형과 조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그2023년은 계묘년, 토끼의 해다. 신이 두 귀가 유난히 큰 토끼를 내려보내 주심은 뜻이 있다. 다른 이야기를 큰 귀로 더 많이 들으라는 말이다. 작은 소리에도 민감한 토끼의 생존 전략은 간단하다. 항상 두 귀를 쫑긋 세우고 주위를 살핀다. 지금 우리에게는 세상의 흐름을 균형 있게 듣고 살피는 태도가 필요하다.경제도 정치도 사회도 어디로 튈지 모르는 불확실성의 시대에 산다. 지금은 큰 입으로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보다는 많이 듣자. 서로의 목소리를 낮추고 남의 말을 들어보자. 한 사람에 다른 사람의 뜻을 모아보자. 그러면 위기의 시대에 살아남을 솔로몬의 지혜가 나오리니. 나 혼자만을 앞세우기보다 주위를 돌아보는 마음을 가지자.우리는 살아오면서 숱하게 경험하지 않았는가. 지금은 어려움이 있더라도 이겨내면 또 다른 기회가 주어지는 것이 인간사다. 살아야만 하기에 경제적인 불확실성에 반드시 해답을 찾으리라 믿는다. 우리는 지구의 문화를 선도하는 문화민족이기 때문이다.세상일이라는 것이 지나고 보면 별것 아니다. 모두 우리가 감당할 만큼만 신은 어려움을 준다. 인간이 너무 나약하지 말라고. 전에도 이 정도는 하지 않았느냐고 반문하면서 말이다. 그러니 새해는 서로를 보듬으며 가슴에 희망 하나쯤은 품고 살 일이다. 내일은 밝게 웃을 테니 말이다.

2023-01-09

세계 6위와 세계 21위

김규종 경북대 교수 연초에 엇갈리는 소식이 날아들었다. 미국의 시사 주간지 ‘US 뉴스 앤드 월드 리포트’가 발표한 ‘2022년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국가’에서 한국은 6위에 이름을 올렸다. 주간지에 따르면, 한국은 1960년대 이후 꾸준히 성장해 세계 최대의 경제 대국 가운데 하나가 됐고, 세계 최대 규모의 저축량과 외국인 투자액을 기록한 국가다.‘US 뉴스 앤드 월드 리포트’는 해마다 세계 85개국 1만7천명을 대상으로 정치, 경제, 군사력을 포함한 국가 영향력을 설문 조사해 순위를 발표하고 있다. 우리나라보다 앞선 순위에 있는 국가를 보면, 미국과 중국, 러시아, 도이칠란트, 영국이며, 프랑스가 7위, 일본이 8위를 기록했다. 미국은 압도적인 경제력과 군사력과 함께 음악과 영화, 텔레비전 같은 대중문화를 선도함으로써 최강 1위를 지키고 있다.일본의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세계 공정성 지수’를 발표했다. 신문은 인권 존중과 법 준수, 무역의 자유, 환경에 대한 배려 등 10개 지표로 세계 84개국을 평가했다. 신문은 이것을 ‘정치와 법의 안정성 (30점)’, ‘인권과 환경 (30점)’, ‘경제 자유도 (40점)’ 등 3개 영역으로 계량화하여 순위를 매겼다고 한다. 한국은 정치와 경제 자유도 28점, 법의 안정성 25점으로 좋은 점수를 받았지만, 인권과 환경 16점으로 중하위권에 머물러 종합 68점으로 21위를 기록했다.‘니혼게이자이’에 따르면, 세계에서 가장 신뢰할 수 있는 나라는 86점의 아일랜드였다. 일본은 77점으로 11위, 미국은 74점으로 17위였다. 34점의 중국과 33점의 러시아는 최하위권을 맴돌았다. 이번 조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신문이 내린 결론은 주목할 만하다. “지금까지 세계화가 효율성을 우선했다면, 이제는 효율성과 공정성의 균형을 찾아야 하는 시대”라는 것이다. 벼락부자의 시대가 아니라, 인간적인 교양과 품위의 시대로 전환해야 한다는 얘기다.두 가지 조사를 보면 우리가 나갈 방향 표지판이 보인다. ‘잘살아보세’라는 한 많은 표어를 들고 일로매진한 끝에 우리는 마침내 ‘넘사벽’으로 여겨지던 경제 강국 일본을 능가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기성세대인 50대 이상의 한국인들에게 ‘은산철벽(銀山鐵壁)’으로 보였던 일본을 돌파한 한국인들의 저력이 새삼 가슴 뿌듯한 것이다.그러나 뿌듯한 가슴을 진정하고 주변을 살피면 상황은 급변한다. 부익부 빈익빈 현상은 갈수록 강고해지고, 승자독식의 아수라판이 날마다 펼쳐지는 나라가 한국이다. 지방과 지방대의 소멸과 서울·경기도의 승승장구, 재벌과 대기업의 압승과 하청(下請) 중소기업의 몰락, 도시와 농어촌의 커져만 가는 격차, 노동자와 도시빈민의 아우성이 나날이 높아만 간다. 경제 격차는 필연적으로 정치와 문화·사회격차를 잉태하고, 그것은 대물림으로 이어진다.‘니혼게이자이’의 평가지표인 인권과 환경에서 낙제점인 16점을 받았다는 사실이 그것을 웅변한다. 앞만 보고 달리는 폭주 기관차가 아니라, 좌고우면(左顧右眄)하면서 넉넉하고 여유롭게 ‘호시우행(虎視牛行)’하는 자세가 절실한 계묘년 2023년이 바야흐로 시작되고 있다.

2023-01-08

대북 심리전

우정구 논설위원 북한의 무력도발에 맞서 한국군이 대북확성기 방송 등의 대북 심리전을 다시 펼칠 것인지에 대해 관심이 많다. 대북확성기 방송과 대북전단 살포 행위는 사용에 따라 자칫 군사충돌로 번질 민감한 사항이기 때문에 정부 판단에 많은 이가 주목을 한다는 것이다.정부는 남한 영공침범 등 북한이 추가 도발할 경우 2018년 체결한 9·19 남북 군사합의의 효력을 정지하는 것을 검토 중이라 밝혔다. 이는 대북 심리전 활동을 부활하는 것을 전제로 한 검토란 점에서 대북방송이나 전단 살포가 재개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무력없이 북한 군인 등에게 심리적 압박을 가해 사상을 동요시키는 대북확성기 방송이나 대북전단 살포는 북한이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비무력적 선전 수단이다. 이는 9·19 군사합의 이전에도 중단과 재개가 반복됐지만 전문가들은 최근 북한의 무력도발에 가장 효과적 대응 방법으로 이를 손꼽고 있다.“심리전의 목표물은 적의 육체가 아니라 정신이다”라는 말이 있다. 전단을 “들리지 않는 총성”, “종이 폭탄”, “심리전의 보병”으로 부르는 것은 전단 효과를 잘 말해주는 표현이다.6·25전쟁이 발발하자 미군은 전쟁 개시 4일째 무려 1천176만장의 전단을 살포했고, 전쟁이 끝날 때까지 25억장의 전단을 뿌린 것으로 알려졌다.대북 심리전이 비무력적이면서 상대 군인의 감성을 자극하고 심리적 압박을 가하는 수단으로써 전술적 효과가 크다면 지금은 이를 활용할 운용의 묘가 필요한 때다. 한 여론조사에서 국민의 70%가 북한의 연쇄 무력도발이 한반도 평화를 위협한다고 답했다. 국민안전을 보호할 장치로서 대북 심리전을 활용 대상으로 삼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우정구(논설위원)

2023-01-08

선거법 개정, 국민의 소리 들어라

김진국 고문 윤석열 대통령이 선거법 개정을 제기했다. 연초 조선일보 인터뷰에서 “중대선거구제를 통해 대표성을 좀 더 강화하는 방안을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선거법은 헌법보다 개정하기가 어렵다고 한다. 선거법을 개정할 국회의원들의 당락에 바로 연결되기 때문이다.2020년 4·15총선에 적용된 준연동형비례대표제의 실패도 의원들의 기득권 탓이다.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은 처음부터 반대했다. 연동형이 불리하다고 생각했다. 위성정당을 만들어 기득권을 지키려 했다. 그렇지만 민주당의 압승만 거들었다.선거법을 개정할 때 의원들은 정당보다 자기 이해부터 생각한다. 의원직을 걸고 당의 이익을 챙기려는 의원은 없다. 연동형은 지역구 의석을 줄여 비례대표 의원을 늘려야 제대로 작동한다. 다수인 지역구 의원들이 반대다.민주당은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처리에 정의당을 이용했다. 선거법을 미끼로 이용했다. 그런 뒤에 자기들도 위성정당을 만들어 정의당의 뒤통수를 쳤다. 미래통합당을 핑계로 삼았지만, 욕심이 지나쳤다. 배신의 정치로 정치적 신뢰를 팽개쳤다.현행 제도는 실패했다. 연동형이 잘못이 아니다. 의원들 욕심 때문이다. 위성정당을 막지 못했다. 어설픈 반쪽 연동형을 했다. 이대로 다음 선거를 치를 수는 없다. 다음 총선은 내년 4월 10일이다.소선거구제의 문제점은 분명히 드러났다. 21대 총선을 보자. 서울에서 민주당은 유효투표의 53.5%를 얻었다. 그런데 의석은 83.7%인 41석을 가져갔다. 미래통합당은 41.9%를 얻었지만, 의석은 16.3%인 8석에 불과했다. 경기도에서도 53.9%를 얻은 민주당이 51석(86.4%)을, 41.1%를 얻은 미래통합당이 7석(13.7%)을 가져갔다. 그런데도 비례성을 보완하기는커녕 ‘부익부’(富益富)로 법 취지와 거꾸로 갔다.20대 총선 서울에서 새누리당, 더불어민주당, 국민의당이 각각 12석, 35석, 2석을 얻었다. 정당 투표 비율대로라면 16석, 14석, 15석에 정의당 4석으로 바뀐다. 민주당 40석, 국민의당 0석이었던 경기도도 득표 비율대로라면 두 당이 각각 17석을 얻었어야 했다. 수도권만 보면 비례성을 강화하는 것이 국민의힘에 절대 유리하다.그런데도 국민의힘이 선거법 개정에 더 부정적이었다. 정권을 민주당에 넘기고, 대통령 선거에 이기고도 민주당의 절대다수 의석에 발목이 잡혀 맥을 못 추면서 개별 의원의 당선만 생각한다.윤 대통령이 말한 중대선거구제도 해결해야 할 약점이 있다. 2인 선거구에서는 양대 정당 후보자가 나눠 먹을 가능성이 크다. 유권자보다 정당이 당선을 결정한다. 유신 체제에서 경험해봤다. 몇 인(3~5)선거구로, 어떻게 획정하느냐가 의석수를 좌우한다. 정치적 구획이 될 소지가 크다. 지역별 차이도 있다. 지난해 6월 지방선거에서 3~5인을 뽑는 중대선거구제를 시험 시행했다. 9명을 뽑는 광주 시범지역에서 민주당 6명, 진보당 2명, 정의당 1명이 당선됐다. 대구에서는 국민의힘 7명, 민주당 2명이 당선됐다. 민주당은 영남지역에 진출했지만, 국민의힘은 호남으로 가지 못했다.유인태 전 민주당 의원은 과거 농촌지역은 소선거구제, 도시 지역은 중대선거구제로 하는 도농복합형을 주장했다. 한나라당(국민의힘)을 설득하고, 지역 대표성도 살리기 위해서였다. 이렇게 하면 영호남 지역 갈등 해소에는 한계가 있다.기존 선거 제도에 대한 문제 인식은 분명하다. 승자독식에 따른 사표(死票)와 의석 분포의 극단적인 널뛰기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 지역주의를 완화하고, 중간층과 소수 목소리도 정당하게 반영돼야 한다. 위성정당을 막고, 유권자가 당선 순서를 정하는 개방형으로 하면 연동형비례대표제가 가장 적합하다.그렇지만 정파적 이해가 얽힌 현실을 무시할 수 없다. 중대선거구제도 좋은 대안이다. 표의 등가성을 높이고, 유권자의 뜻에 맞춰 국회를 구성한다는 원칙만 지킨다면 어느 쪽이든 진전이다. 문제는 현행 제도에서 당선된 의원들 손에 결정권이 있다. 정치적 담합이 아니라 국회 밖 국민의 목소리에 귀를 더 기울여야 한다.김진국△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본사고문

2023-01-08

윤심에만 의존한 유치한 당대표 선거전

배한동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 국민의힘 3·8 당대 표 선거일이 두 달 앞으로 성큼 다가왔다. 집권 여당이 어정쩡한 현재의 비대위를 청산하고 당대표를 선출함으로써 당의 정상화에 기여할 기회가 되었다.지난 대선 승리 후 집권당은 당의 심각한 내홍으로 지지자들로부터도 외면받았다. 집권 여당이 초반부터 이렇게 분란이 심각했던 적은 일찍이 없었으며 대통령 지지율은 20%대로 추락되었다.3월 당대표 선출은 윤석열 정부로서는 국정의 탄력을 회복할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새로운 당대표 선출과 당의 정비는 내년 4월 총선의 시금석이 될 수도 있다.지난해 말부터 거론되던 7∼8명의 당대표 후보 난립이 지난주 4∼5명으로 좁혀졌다. 문제는 그 선거판이 아직도 ‘윤심’에만 의존한 유치한 데 문제가 있다. 5일 윤핵관을 자처하는 권성동 의원이 전격 불출마를 선언하였다. 그러나 선거전은 ‘김장연대’ 등 윤심에만 의존하는 양상이 가열되고 있다. 결코 바람직한 방향은 아니다.시중에는 당대표 선출과정에는 별 관심이 없는 듯하다. 무엇보다도 후보들이 민심이나 당심보다는 오직 윤심에만 의존하기 때문이다. 후보들이 집권당 대통령의 의중을 보지 않을 수 없겠으나 이처럼 윤심에만 의존하는 선거는 결코 옳지 않다. 현대 민주 정당의 위상에도 부합되지 않는다. 당대표 선출을 아직도 윤심 경쟁에만 치중하는 양태는 보기에도 민망하다.김기현 후보는 지난번 대통령 관저 초대를 자신이 윤심의 적자임을 선전하고 활용하고 있다. 이도 모자라 ‘김장연대’를 결성하여 표심을 모으려 한다.안철수 후보 역시 대통령 관저초대를 은근히 자랑하고, 윤상현 등 다른 후보 역시 기회가 있으면 자신이 친윤임을 내세운다. 지나친 비유겠지만 초등 반장 선거 시 후보자가 학생들보다 담임선생 눈치만 보는 형국이다.선거전이 이렇게 된 데에는 후보들 못지않게 대통령의 책임도 배제할 수 없다. 대통령은 공식적으로는 ‘당내문제에 관여할 겨를이 없다’고 했다. 그러나 전 이준석 당대표 징계, 100% 당원 투표제 이태원 참사 책임문제 등 윤심이 작동하지 않았다고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그러나 당대표 선거에서 윤심 경쟁은 여러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당내 민주주의를 왜곡할 가능성이 크다. 물론 집권 여당 대부분의 당원들은 대통령의 국정 수행의 성공을 바라고 있다.그러나 윤심이 언제나 당심이 될 수 없으며, 그렇게 되어서도 옳지 않다. 그러기에 현명한 당원이라면 대통령의 눈치만 보는 당 대표 후보의 선출을 원치 않을 것이다. 특히 대선 후 갑자기 불어난 중도 보수층과 MZ세대 당원들은 당의 발전을 위해서라도 윤심과 당심의 분리를 원할 것이다.과거 박근혜 대통령 시절 당대표 경선에서 박심을 앞세운 친박 서청원 후보가 패배하고 비박 김무성 후보가 당선된 적이 있다. 그것이 공천파동으로 이어지고 당의 분당과 탄핵으로 연결되었다.역사는 대통령을 맹목적으로 감쌌던 집권 보수당이 정치적 위기로 연결된 선례를 잊지 않기 바란다. 현대 정당제에서 집권 여당은 대통령의 국정 방향의 뒷받침 못지않게 당내 민주화와 당 개혁 등 자생력을 키우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3월 8일 선거는 아직 두 달 남아 있다. 당대표 후보들은 윤심만 자랑할 것이 아니라 보수 정당 발전의 정책적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당대표 후보가 당 정책과 운영 비전보다는 윤심에 골몰하는 모습은 유치하고도 후진적인 모습이다. 당 대표 후보들의 수도권 출마선언이 무슨 당의 비전이 될 수 있는가. 차라리 내선 총선 수도권 승리의 계획이이라도 보여야 한다. 윤석열 정부의 성공을 위한 노동, 교육, 연금 3개 개혁 과제에 대한 실천적인 방안은 있는가. 여소야대 정국에서 협치를 위한 협상 전략은 무엇인가. 대통령이 제시한 중대 선거구 개혁의 입장은 어떠한가. 이태원 사태에 대한 책임소재는 어디까지 인가.출마 여부가 아직도 불확실한 유승민 후보만이 윤 정부에 대한 거침없는 제안과 비판만 쏟아 붓고 있다. 시대는 저만큼 앞서가는데 당대표 후보는 아직도 아무런 대답 없이 윤심에만 기대고 있으니 하는 말이다.3월 당 대표로 누가 당선될 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현재 당심에서는 나경원 후보, 민심에서는 유승민 후보가 앞선다. 이들의 출마 선언이 선거판을 흔드는 변수가 될 수 있다.대부분의 민심은 이러한 역동적인 선거를 바라는데 후보들은 윤심 의존에만 골몰하고 하고 있다. 윤심에 의존한 당대표 선출이 내년 총선의 승리는 보장되지 않는다.3월의 당대표 선출이 집권당의 구조 개혁과 새로운 정책 비전이라는 역동적인 경쟁 대회가 되기를 바란다. 아직도 코로나는 기승을 부리고 산에는 눈이 녹지 않고 있다. 국내외의 도전도 만만치 않다. 꽃피는 봄은 멀지 않은데 민의를 반영한 참된 정치 계절을 기다리는 시점이다.

2023-01-08

돈맥경화 주범 DSR, 시장 경제 경직시키다

서진국 전 포항시 북구청장 시중에 이용할 수 있는 돈이 말라가고 있다. 고금리로 빨려 들어 간 돈이 DSR 규제로 은행의 문턱에 걸려 있다. 코로나로 인해 저금리시대는 이제 막을 내리고 고금리에 시장은 몸살을 앓고 있다.총부채 원리금 상환 비율 이른바 DSR(Debt Service Ratio)이라는 정책이 돈줄의 흐름을 강하게 죄고 있다. 고금리로 인해 자금시장은 급격히 경색되고 있지만 금융당국에서도 늘어난 가계 대출과 갭 투자 등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A씨는 자그마한 가게를 운영한다. 그동안 코로나로 인해 거의 수입이 없었다. 부족한 돈은 보험과 연금을 해약하고 지인과 친척들로부터 조금씩 빌린 돈으로 버텨 왔다.이제 주변에서도 어렵다면서 빌린 돈을 돌려 달라고 한다. 그래도 그동안 번 돈을 모아 매입한 조그만 상가가 있어 상가를 담보로 돈을 빌리려고 한다. 은행에서 DSR을 설명하면서 부채를 상환 할 수 있는 소득이 없으면 대출이 되지 않는다고 한다. 부동산중개소를 찾았는데 지금은 부동산을 찾는 사람이 거의 없다고 한다,DSR은 총 대출 상환액이 연간 소득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으로, 신용대출 등 모든 대출의 원금과 이자를 더한 원리금 상환 비율을 말하는 지표이다. DSR은 DTI 규제가 없는 수도권 이외 지역에도 적용된다. 따라서 모든 대출의 적용 대상으로 수입에 따라 대출의 한도가 대폭 축소된다.지난해 하반기부터 돈줄은 급속히 고금리 시장으로 변경되고 있다. 4~5%대 예금의 유혹은 시중에 돈을 더욱 경직시키고 있다. 소득이 있어도 대출금리가 늘어나면 DSR로 인하여 금리인상 비율만큼 대출 금액도 줄어든다.설상가상으로 은행으로 들어간 돈은 DSR로 강원도 포수가 되어 돌아 나오기가 어렵다. 강원도 레고랜드로 놀란 시장은 대기업은 물론 금융권조차도 자기 자본 비율을 유지하기에 급급한 것 같다. 이제 저신용자는 카드론조차도 받기 어려워졌다 한다.고금리의 여파와 돈줄의 규제로 시장이 경색되고 미분양 아파트가 속출하고 있다. 일부 견실하지 못한 건설 업체와 프로젝트 파이넨싱(PF)을 주로 취급했던 기관들도 어렵다는 얘기가 기사를 타고 있다.최근 발표된 임대 업자에 대한 종소세, 취득세 완화와 규제지역 해제로는 지금 꺼져 가는 시장을 살릴 수 없다. 주택담보대출에 소득을 적용하지 않겠다는 특례보금자리론도 국민의 정서를 헤아리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지금은 부동산 처방만이 아닌 시장 전반적인 자금 경색에 대한 근본적 대책이 필요하다 할 것이다.행정은 타이밍이다.시기를 일실하고 국민의 정서를 헤아리지 못한 정책은 성공할 수 없다. 때를 놓친 땜질식 규제 일변도의 부동산 정책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지난 정부의 교훈을 되새겨야 할 것이다.그동안 저금리 환경에서 부동산 급등을 막기 위해 시행한 DSR이 고금리시장에서 급격히 자금의 흐름을 경색시키고 있다는 것이다.늘어난 가계 대출 자금 등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지만 지금 시장에서 일어나고 있는 자금의 경색은 시기를 일실 하지 않도록 적극 대처해야 할 것이다.국민들은 그동안 열심히 노력해서 돈이 모이면 대부분이 그냥 그저 남이 하는 대로 부동산에 묻어 둔다. 부동산을 팔지 않아도 은행에 잡히면 어느 정도 돈이 나온다고 그렇게 믿고 있었다. 그동안 이러한 생각이 시장의 돈의 질서이고 흐름 이었다.그런데 이러한 기본적 시장의 질서를 DSR이 고금리와 맞물려 국민의 정서를 외면하고 시장 경제를 마비시키고 있다는 것이다.DSR을 풀지 않고 급한 대로 부동산 규제를 푸는 것은 부분의 방책에 불과 하다.지금 문제는 시장에 돈이 돌지 않는 다는 것이다. 피가 모자라 목숨이 넘어 가는데 피를 수혈하지 않고, 장기 일부를 수술하겠다는 것에 불과할 수 있다.아담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어려울수록 시장경제의 원칙이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고금리로 변한 환경에서의 DSR은 돈맥경화의 주범 일 수 있다.한시적으로라도 돈줄을 죄고 있는 규제들을 풀어야 부동산 연착륙은 물론 시장경제가 되 살아 날 수 있다고 본다.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는 말이 있다. 가계 부채와 부동산 문제에 치우쳐 초가삼간을 태워서야 되겠는가?현재 우선 1억에 묶여 있는 규제를 풀어 한시적으로 라도 DSR 적용 기준을 어느 정도 상향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수도권을 제외한 지방은 아예 DSR을 적용하지 않는 것도 급격히 경색되고 있는 부동산은 물론 자금 시장을 살리는 하나의 방법 일 수 있다.

2023-01-08

변화하는 혁신의 구조

김종찬 포스코인재창조원 교수·컨설턴트 일하는 방식은 매우 다양하며 산업혁명을 거치면서 사회경제적 변화와 기술의 혁신이 인류 문명을 크게 변화시켜왔다. 1913년 미국 포드 자동차 공장에서 컨베이어 시스템을 이용한 자동차가 처음 생산되면서 수제 조립에 의존하던 생산방식이 역사에서 막을 내리고 있었다. 컨베이어를 따라 부품이 조립되는 순서대로 작업자를 배치하여 주어진 자리에서 컨베이어를 따라 흘러오는 자동차에 자신에게 주어진 하나의 동작만 행하면 자동차가 뚝딱 만들어졌으니 생산방식의 혁명이라고 할 수 있다.수제 조립 생산방식에서는 작업자의 숙련도가 절대적이었기에 작업자는 도제식으로 오랜 기간 훈련을 받아야 조립공이 될 수 있었지만 컨베이어 시스템에서는 부품의 이름도 작업 공구에 대한 지식도 필요 없이 정해진 자리에서 필요한 동작만 반복하니 대량생산이 가능하여 포드 자동차는 3천불 이상으로 판매하던 자동차를 650불에 생산해서 팔 수 있었다. 컨베이어 시스템은 자동차의 대량소비 시대를 열어 사회적 생산기반, 경제활동의 기반을 형성하는 인프라를 촉진시켰다.혁신을 하려면 기존의 사고에서 탈피해야 한다. 지금의 방식을 유지하기 위한 지식으로 미리 편견을 갖고 제한을 가한다면 상상력을 발휘할 수 없다. 현재를 부정하고 상상력을 발휘하는 공간에 ‘파괴적 혁신’이 자리한다. 파괴적 혁신은 경영학의 아인슈타인이라 불리는 하버드대 석좌교수를 역임한 클레이튼 크리스텐슨 교수에 의해 널리 알려졌다.‘파괴적 혁신’ 이론의 핵심은 위대한 기업이 큰 경쟁자에게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 작고 하찮아 보이는 신규 경쟁자로부터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이다. 신규 진입자들이 들고 있는 무기는 처음에는 부족해 보이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시장의 반응들이 더해지고 기술과 성능이 개선되면서 결국 시장의 대세로 자리 잡아 혁명에 성공하게 되는 것이다. 가장 극명한 예가 필름 산업이며 디지털카메라가 처음 등장했을 때 필름 업체는 “저런 싸구려 기술로 무슨?”하는 반응을 보이다가 모두 무너졌다.파괴적 기술은 과거에 통용됐던 것과 아주 다른 가치명제(value proposition)를 시장에 선보인다. 일반적으로 파괴적 기술은 기존 제품들 보다 성능이 현저히 떨어지지만 주변 고객들이나 신규 고객들이 가치를 두는 몇몇 특징들을 갖고 있다. 무슨 거창하고 최고의 수준이 아니어도 사용하는데 비용과 수고가 많이 들지 않으면 그 기술은 쉽사리 채택된다. 컴퓨터 비전 기술이 향상되니 주차장에 곧바로 채택되고, 음성인식이 되면서 스마트 스피커가 일반화된다. 그게 사람보다 더 잘 보고 알아들어서가 아니라 사람과 비슷한 수준에 비용이 안 들고 24시간 서비스를 제공하니까 쓰이는 것이다.파괴적 기술에 기초한 제품들의 특징은 일반적으로 더 싸고, 더 단순하고, 더 작고, 사용하기 편리하다. 전문가용의 대명사인 DSLR 카메라도 휴대하기 무거워 대중성이 점점 떨어지고 있어 소니, 캐논에 이어 니콘도 시장에서 철수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제 살아남기 위해서는 익숙한 것들과의 이별을 준비해야 할 때다.

2023-01-08

파레시아를 위하여

유영희 인문글쓰기 강사·작가 어느 날부터인가 임금님 귀가 점점 커져서 당나귀 귀만큼 길어졌다. 이 사실은 모자 만드는 장인만 알고 있었다. 임금이 비밀을 지키라고 요구했지만, 장인은 죽기 전 도림사 대나무 숲 가운데에 구멍을 뚫고 큰 소리로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외쳤고, 그 후로 바람이 불 때마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처럼 생겼다’는 소리가 들렸다. 임금이 대나무를 자르고 산수유를 심었지만, 산수유가 자라면 그 소리가 여전히 들렸다.‘삼국유사’ 경문왕 조에 나오는 이 이야기를 모르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 이야기는 그리스 신화가 원조다. 그리스 신화에서는 모자 장인이 아니라 이발사가 소문을 퍼트린다. 미다스 왕에게 불만을 품은 아폴론이 미다스 왕의 귀를 잡아당겨 귀가 길어졌는데, 이발사에게만은 감출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는 유럽과 페르시아 지역에 퍼지고 신라에까지 전해졌다고 하니, 진실을 말하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이 얼마나 큰지 짐작할 수 있다.새해가 되면서 ‘파레시아’라는 글쓰기 모임을 만들었다. ‘파레시아’는 ‘모든 것을 말하다’,‘진실을 말하다’라는 그리스어이다. 모자 장인이나 이발사처럼 진실을 말하지 못하면 탈이 난다. 그러나 진실을 말하는 것은 ‘위험을 무릅쓰고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 모자 장인이 대나무 숲에 가서 땅을 파고 외친 것은 처벌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학문의 세계에서조차도 기득권을 가진 집단과 다른 견해를 말하는 것은 큰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특히 사회적 소수자들이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기 위해 정체성을 밝히는 일은 엄청난 부담을 각오해야 한다. 이혼율이 높아졌다지만 아직도 공공연하게 말하기 힘든 분위기다. 혹시나 부당한 상황에 맞닥뜨릴까 자기 검열에 시달리는 예술가들도 많다. 스스로 선택하지 않은 질환이나 타고난 것까지 감추어야 하는 현실은 당사자에게 큰 고통을 준다. 치매 환자를 둔 가족이 방송에 나왔다가 동네에서 죄인 취급 당했다는 방송을 보았다. 이웃 중에는 자녀가 발달 장애가 있다는 것을 누가 알세라 쉬쉬하며 자녀를 가정에 꽁꽁 감추고 사는 이도 있다. 성 소수자 역시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기 어렵다.그럼에도 용기 있게 자기를 드러내는 일이 ‘파레시아’이다. 푸코는 파레시아를 자기 배려, 자기 돌봄이라고 한다. 어제 스피치 동호인 모임에 온 어느 참가자의 경험은 푸코의 말에 딱 맞는 사례라는 생각이 든다. 그는 47세라면서 아직 결혼을 못 했고 붕어빵을 팔며 원룸에 살고 있다면서 오랫동안 그런 상황을 감추느라 에너지를 다 썼다고 한다. 그러다 어느 순간 ‘이것도 내 삶인데’ 하는 생각이 들어 밝히고 나니 그제서야 다른 사람이 눈에 들어오고 유머도 늘었다고 한다.이렇게 ‘다 말하는 것’은 자신을 자기답게 존재하게 해주고 남과의 관계도 회복시켜 준다. ‘다 말하기’ 위해서는 47세 참가자처럼 안전하게 들어주는 모임에서부터 말하기 연습을 하는 것이 좋다. 쓰기든 말하기든 올해는 자신과 동료를 믿고 세상에 진실을 표현하는 모임이 더 많아지기를 바란다.

2023-01-08

우리 동네 詩香千里

꽃이나 나무, 향수 등에서 나는 좋은 냄새를 향기라 한다. 시(詩)의 향기란, 마음으로 시를 읽을 때 느끼는 다양한 감정을 시향(詩香)이라 할 수 있다. 시가 뿜어내는 향기는 천 리를 간다고 해서 시향 천리(詩香千里)라는 말이 있다. 시(詩)향이 천 리를 가는 동안 무엇을 마주하고 누구를 만나고 어떤 향기를 뿜어낼까. 시(詩)의 향기는 구체적으로 보이지 않는데 말이다. 그렇지만 분명히 존재해 시를 읽으면 가슴이 먹먹해지기도 하고 가슴 한곳에 쟁여두었던 그리움을 퍼 올리기도 한다. 이것뿐인가, 한 편의 시를 읽고 눈물을 닦아내는 이도 있으니 말이다. 시향(詩香)을 통해 인향(人香)이 만리(萬里)를 갈 수 있음이다.하늘이 높아지는 9월, 포항시 남구 효곡동 문화센터에서 시문학 수업을 개강했다. 시문학 수업은 깊은 산속 옹달샘 같은 시를 찾아 여럿이 나눠 읽고 느끼며 마음의 갈증을 해소했다. 옹달샘이 품은 시는 추억의 퍼즐 조각이 되었다. 누구는 그 조각 따라 깊은 산골 고향마을에 닿기도 하고, 누구는 도시의 작은 골목을 서성거리기도 했다. 그렇게 우리는 시가 뿜어내는 향기 따라 순수한 사랑의 감정을 표현하기도 했다. 그리고 시를 담은 마법의 양탄자를 타고 산으로 들로 바다로 떠나는 시향의 여행자가 되었다.금요일 아침, 시(詩)문이 열리고 우리의 마음은 들떴다. 한 줄의 시를 받아 적기도 하고 어설픈 시인이 되어 펜을 들기도 했다. 우리 곁에서 소중하지만 잊혀가는 것들을 찾아내 이름을 불러주고 그 이름에 의미를 부여했다. 숱한 의미가 함유된 메타포에 우리의 추억을 갈무리했다.시를 읽고 음악에 맞춰 낭독하는 시간이 제법 흘렀다. 어디선가 첫눈이 내렸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찬바람이 불어오니 옷깃을 여미고 이제 우리는 시문을 닫아야 할 때다. 지금까지 우리는 시문학이라는 이름으로 시의 향기를 맡았지만, 이제는 홀로 시를 찾아 각자의 방법대로 시향을 맡아야 한다. 곧 문화센터 시문학 교실이 동면에 들 시간이다.짧은 이별이 아쉬워 문집을 만들었다. 문집 이름을 공모해 시(詩)향으로 정했다. 이번 학기 중에 만났던 시중에 내가 뽑은 최고의 시를 소개하고, 나는 이 시를 이렇게 읽었다는 코너를 마련해 짧은 생각을 실었다. 물론 ‘나도 시인이야.’라는 코너를 빼놓지 않았다. 시인은 아니지만 몇 분이 시를 쓰는 용기를 내주었다. 참 감사한 일이다. 그리고 한 학기 동안 수업 중의 사진을 찍어 이모저모에 실었다. 이순혜 수필가 전문성이 있거나 화려하지는 않다. 그렇지만 우리 동네 시향을 맡을 수는 있다. 우리의 손길이 닿은 페이지, 페이지마다 시문학 교실의 수강생 모습이 오롯이 담겨 있다. 컴퓨터 자판의 글씨가 아닌 각자의 필체대로 써 내려간 시는 열 명의 모습이 그대로 보였다. 첫사랑의 아련함이 아직도 가슴에 남아 그가 살아가고 있을 어느 도시를 가고 싶다는 분, 수업 중의 이야기를 놓치지 않고 재미있게 한 편의 시를 완성한 분, 노동 시인의 시를 읽을 때면 괜히 두 주먹에 힘이 들어간다는 분, 그날 접한 시를 낭송으로 수업 분위기를 이끌어주시는 분, 그들의 모습이 그들만의 향기로 전해져 왔다.추위가 물러가면 머지않아 남쪽에서 꽃이 피었다는 소식이 들릴 것이다. 그때쯤 우리는 봉해 두었던 시향을 풀어 볼 것이다. 어떤 이는 시향에 마음이 더 촉촉해졌는가 하면, 어떤 이는 시인이 되어 까만 밤을 하얗게 지새웠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어쩌면 묶어둔 시향에서 먼지가 날릴 수도 있겠다. 그러면 어떠한가. 우리는 이미 시향을 펼치고 있을 텐데.우리 동네 시향 천리(詩香千里)가 오래도록 은은하게, 더 멀리 퍼지기를 바라며 두 손을 포갠다.

2023-01-08

내 삶이 달라지는 청송의 도약

윤경희 청송군수 윤경희 청송군수는 새해를 시작하면서 “그동안의 군정 운영 경험을 토대로 군민과 지혜를 모아 ‘변화하는 청송! 새롭게 도약하는 청송’의 미래를 열겠다”고 새해 각오를 다졌다.윤 군수는 ‘내 삶이 달라지는 청송의 도약’을 위한 ‘다르게! 바르게! 풍요롭게! 하나되는 청송, 그 이상의 도약!’의 군정 방향을 설정하고 이를 달성하기 위한 6대 전략과제를 제시했다.우선, 탄탄한 미래농업 기반조성으로 활기찬 농업환경을 조성하는 것을 첫번째 전략으로 꼽았다. 농업노동환경 개선을 위해 초밀식 다축 재배 시스템 구축과 보급, 청송 황금사과 연구단지 조성, 청송사과유통센터 시설확충 등을 통한 청송사과 브랜드의 경쟁력 을 확보하고 나아가 해외판로까지 확대해 나간다는 구상이다. 또한 안정된 영농환경개선을 위해 농어민수당 지원과 농작물 재해보험료, 농업인 안전보험료를 지원한다.다음으로, 꼭맞게 든든한 보편복지 실현을 약속했다. 어르신들의 비율이 높은 청송은 사소한 것이라도 행정에서 앞장 서 도움을 주기 위해 8282 민원처리팀을 설치해 군민의 생활 속 어려움을 해결하고, 청송군 농어촌버스 무료운행을 통한 이동권 보장과 보편적 교통복지를 실현해 나갈 계획이다.또한 거점 경로당과 이웃사촌 복지센터를 운영하며 지역공동체가 앞장서는 촘촘한 복지를 시행한다. 보건진료소와 보건의료원의 의료환경을 크게 개선해 수준 높은 의료서비스를 제공할 방침이다.더욱이 진보면 지역아동센터 신축과 인재양성원의 도시수준 명품교육 제공으로 미래를 이끌 청송형 인재육성에도 소홀함이 없도록 한다.생활이 나아지는 지역경제 활성화도 역점 과제로 강조했다. 내수소비 촉진을 위해 청송사랑화폐 유통규모를 700억 이상으로 크게 확대한다. 또 지난해 40만명의 관광객이 찾았던 청송사과축제를 대한민국 대표축제를 넘어 세계대표축제로 거듭나도록 체계적으로 준비할 방침이다.이와 함께 다양한 지역행사와 전국체육대회 유치를 통해 관광소득 창출과 함께 지역에 활기를 불어넣는다. 노인과 청년일자리 사업지원을 확대해 보다 넓은 계층의 근로환경을 보장해 인구소멸에도 대응해 나간다.일자리를 만드는 문화관광 조성 사업을 추진한다. 산소카페 청송정원과 함께 지역의 랜드마크가 되어줄 청송 산림레포츠 휴양단지 조성사업을 착공해 군민과 관광객 모두에게 환영받는 관광 1번지 청송으로 거듭날 계획이다. 이밖에 덕천마을 한옥스테이 활성화 사업, 주산지 관광지, 백석탄 관광자원화 사업을 추진해 국제슬로시티 청송에 걸맞은 지역명성을 이어 간다는 전략도 세웠다.또한 주산지 왕버들을 복원해 뛰어난 절경을 전국민에게 보여주는 등 관광지 곳곳을 재단장해 농업소득 외에 관광소득을 창출해 농사짓기 좋은 청송뿐만 아니라 일자리가 다양한 청송군으로 만들 예정이다.또한 여유롭고 쾌적한 도시환경을 위해서도 심혈을 기울인다. 부남면과 진보면의 도시계획 도로를 정비하고 청송읍과 진보면, 산남지역의 전선지중화 사업추진, 야간 경관조명을 설치해 청송의 도시경관을 크게 개선한다. 아울러 신재생에너지와 액화석유가스 공급시설 확대로 환경개선에 앞장서는 동시에 연료비 부담도 줄여 나갈 방침이다.특히 파천면의 아웃도어 골프장 조성과 진보면과 산남지역의 18홀 이상의 파크골프장 조성으로 군민의 문화생활을 보장하고 살기 편안한 환경을 만들어갈 계획도 가지고 있다.마지막으로 소통으로 하나 되는 청송행정을 운영해 나간다. 청송군 지역발전협의회와 군민배심원단을 운영해 양방향 소통의 풀뿌리 민주주의를 강화한다. 또 행정혁신 역량강화를 위한 제2기 ‘청송어람’을 운영해 젊은 공무원들의 자유로운 군정운영방향 제시와 획기적인 사업제안으로 지방행정에 신선한 바람을 불어 넣는다.윤경희 청송군수는 “민선8기의 본격적인 시작이 되는 2023년에는 군민의 단합된 힘과 공직자의 열정이 합쳐질 때 군민의 삶이 나아지는 결과가 나타날 수 있다”며 “모두의 지혜를 모아 변화하는 청송! 새롭게 도약하는 청송의 미래를 열어 가겠다”고 밝혔다.

2023-01-08

그린벨트 해제

우정구 논설위원 그린벨트 설정의 목적은 도시경관 정비와 자연환경 보존, 도시민의 쾌적한 생활공간 확보 등에 있다. 이에 따라 이곳은 건축물의 신증설, 용도변경, 토지 형질변경 등의 행위가 제한된다.특히 우리나라 그린벨트 지역은 신성불가침 지역으로 인식될 만큼 엄격히 관리돼 왔다. 비록 개인 소유지만 허물어진 집조차 수리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개발제한구역 개념이 처음 도입된 나라는 영국이다. 영국은 1938년 세계 처음으로 런던지역 일대를 개발제한구역으로 설정했다. 토지를 국가 관리대상으로 삼겠다는 개념이다. 이후 도시화 과정에서 세계 각국이 이 개념을 많이 도입한다. 우리나라는 1971년 7월 서울지역에 처음으로 개발제한구역을 설정했다.경제개발과 환경보전은 도시화 과정에서 생기는 필연적 갈등 요소다. 경제성장과 국민복지를 위해 개발은 불가피하다. 그러나 무분별한 개발이 빚은 자연과 문화에 대한 훼손은 보존의 가치를 다시 떠올리게 한다. 대표적인 것이 지구온난화로 인한 기후위기 문제다. 자연환경 파괴가 급기야는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것이다.정부가 비수도권의 개발제한구역 해제 권한을 지방자치단체에 대폭 넘기기로 결정했다, 지자체는 이번 조치가 지자체 숙원사업을 풀 절호의 기회라며 반색하는 분위기다. 그동안 지자체는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국토불균형 발전의 해소방안으로 지역차원의 그린벨트 해제를 지속 주장한 바 있다.정부 조치로 비수도권의 도시개발은 지금보다 한층 더 탄력을 받을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보존문제가 또다시 논란을 일으킬 가능성도 높아졌다. 개발과 보존에 대한 균형있는 정책 조화가 숙제다. /우정구(논설위원)

2023-01-05

이젠 병폐 청산이다

홍석봉 대구지사장 새해 기쁜 소식이 날아들었다. 미국의 시사주간지 유에스뉴스앤월드리포트(USNWR)가 한국을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국가’ 순위 6위에 올려놓았다. 한국 앞에 선 나라는 미국, 중국, 러시아, 독일, 영국뿐이다. 프랑스와 일본이 우리나라 뒤에 자리했다. 한국이 세계 강대국의 반열에 오른 것이다.우리나라는 세계 10위권 경제 대국이다. 1인당 국민소득은 일본을 뛰어넘었다. 반도체와 조선, 배터리 등 분야는 세계 최고다. BTS와 영화 등 K컬처는 세계를 호령한다. 체육 부문에서도 손흥민 등 세계적인 선수들을 배출했다. 우리만 몰랐지 대한민국은 이미 세계 강대국으로 우뚝 섰다.이처럼 대단한 나라지만 내부적으로는 4류 정치에 발목을 잡혀 허우적댄다. 김정은은 사흘이 멀다하고 미사일을 쏘아대며 국가안보를 위협한다. 사회 곳곳이 종북 좌파세력에 좀 먹고 있다. 정치에서 파생된 증오와 분노를 자양분 삼아 몸체를 불린 이념과 지역, 세대 갈등의 고질병이 우리를 옥죈다.지난 연말 우리는 막장 정치의 현장을 생생하게 목도했다. 무리의 이익을 위해서는 정의와 원칙도 내팽개쳤다.여도 야도 모두 한통속이었다. 여당은 전당대회를 앞두고 경선룰까지 바꿔버리는 횡포를 자행했다. 국민과 당을 위한 여론 반영 규정을 변경했다. 169석 머릿수를 앞세운 야당은 전횡을 일삼았다. 주요 입법을 미루는 직무유기도 마다않았다. 죄를 범한 동료 국회의원의 체포를 막았다. 당 대표가 개발비리의 몸통으로 드러나 수사망이 좁혀들자 이를 방해했다. 여야가 서로 이해만 앞세우고 상대방을 공격한다. 서로 헐뜯다가 공멸할 것이라는 경고가 나온다.정치판의 대결은 곧바로 진보와 보수의 이념 대결로 이어졌다. 광화문 광장은 주말마다 좌우로 나눠 총칼없는 전쟁터가 됐다. 진영 대결로 날을 새운다. “정치성향이 다르면 밥도 같이 먹기 싫다”고 할 정도다. 정치 양극화가 국민을 반으로 갈라놓았다.정치권에서 선거제도 개혁이 이슈다. 이념과 지역 갈등의 뿌리가 된 소선거구제를 폐기하고 중대선거구제로 가자는 것이다. 중대선거구제는 총선때마다 이슈였지만 ‘구호’에 그쳤다. 반대가 만만찮지만 바꿔야 한다. 망국병의 원인이 된 선거구제 개편을 외면한다면 국회는 아예 문 닫아야 한다.일부 노동 및 시민단체들의 불법행위와 일탈은 국민 눈 밖에 났다. 약자를 위한 권리 주장과 행동이 코스프레가 되고 사회의 암덩어리가 됐다. 정부는 법과 원칙에 따라 대응하겠다고 했다. 민주노총과 화물노조가 뭇매를 맞았다. 장애인연대의 지하철 시위에도 가차 없다. 윤석열 대통령은 올 첫 국무회의에서 우리 사회의 각종 병폐를 바로잡겠다고 선언했다. 출발점으로 삼아야 한다. 각분야의 곪은 곳을 도려내야 한다. 정부가 강제할 수는 없는 부문이 많다. 각각의 영역에서 서로의 잘못을 바뤄 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계묘년 토끼해다. 한국의 빛나는 성취를 갉아먹는 사회 병폐를 하나씩 없애 나가야 한다. 유지경성(有志竟成)이라고 했다. 이루고자 하면 반드시 성공한다는 말이다. 뜻이 있으면 길이 있다.

2023-01-05

교육과 사회의 불일치 해법 제시

우리 아이들은 초등학교에서 고등학교 졸업까지 12년 동안 학교에서 나를 알아가고, 타인과 관계를 맺으며, 지식을 쌓아 사회에 나갈 준비를 한다. 그렇다면 지금의 학교교육은 우리 아이들에게 미래사회를 살아갈 힘을 제대로 길러주고 있는가라는 중요한 질문이 생긴다.교육전문가들은 교육에 대한 저마다의 생각을 끊임없이 제안하고 있다.그러나 대부분 철학적으로 거대한 담론 수준의 주장이거나 문제 제기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구체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바꿔야 하는가라는 알맹이가 빠져 있다.그래서일까 이혜정 소장의 ‘대한민국의 교육을 바꾸려면 시험을 바꾸어야 한다’는 주장이 더욱 선명하고 명확하게 다가온다.이혜정 소장은 우리나라는 압축 성장기를 거치면서 학생 각자의 비판적·창의적 사고를 기르기보다 선진 지식을 무비판적으로 흡수하는 공부에 길들여졌다고 현재의 교육을 평가했다.이러한 교육으로는 자동화와 인공지능(AI) 시대를 대비한 생존 역량을 기르기엔 한계가 있다고 주장한다.또한, 우리 교육은 아직 학생들이 ‘얼마나 알고 있는지’를 주로 평가하고 있는데 반해 사회는 ‘알고 있는 지식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중시한다.학생 각자의 비판적·창의적 사고력을 기르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정답 맞히기와 반복적인 문제 풀이 속도전이 펼쳐지고 있다고 진단하며 이로 인해‘교육과 사회의 심각한 불일치를 초래한다고 주장한다. 이혜정 소장은 교육을 바꾸는 근본적인 해결책을 평가의 변화에서 찾는다. 그리고 그 롤모델로 IB(International Baccalaureate)를 소개한다. IB는 국제 인증 학교 교육 프로그램으로, 150여개국 5천500여개 이상의 학교에서 운영하고 있다. 역량 중심 교육과정을 기반으로 개념 이해 및 탐구학습 활동을 통한 학습자의 자기주도적 성장을 추구하는 학교 교육 체제이다. 우리나라도 2015 개정교육과정에서 역량 중심의 교육을 도입했다.이는 미래사회를 준비하는 세계 각국의 교육 방향과 일치하며 IB가 추구하는 교육 비전과도 일치한다. 그런데 교육과정이 실제로 구현되는 학교 교육현장에서는 역량 중심 교육이 제대로 실현되지 못하고 있다.가장 큰 이유는 수업과 평가의 불일치 때문이다. 즉, 수업은 개념 중심, 이해 중심으로 바뀌었는데 평가는 바뀌지 않았기 때문이다.평가 변화의 가장 큰 걸림돌은 평가의 공정성과 신뢰성에 대한 의구심 때문일 것이다. 그 해답은 IB에서 찾을 수 있다. IB가 50여년간 수많은 국가에서 도입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평가의 공정성과 신뢰성이다.수업과 평가가 일치하고 피드백이 일상이 되고 수업에서 학생들의 성장을 바로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 강력한 힘이다. 수많은 국가에서 다양한 언어로 운영되는 IB가 유수 대학의 입학자료로 공신력있게 활용되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대구교육청은 공교육 혁신의 모델로 2019년부터 IB프로그램을 도입하여 IB 월드스쿨 14교, 후보학교 13교, 기초학교 61교로 해를 거듭할수록 IB 교육의 저변이 확대되고 있다.‘결과’보다는 ‘과정’을 가르치는 교육으로, ‘집어넣는’교육이 아니라 ‘꺼내는’교육으로, 그리하여 ‘지식 소비자’가 아닌 ‘지식 생산자’를 기르는 교육으로 대구교육은 미래로 한 발 더 다가가고 있다.

2023-01-05

첫 1박 가족 나들이

강길수 수필가 첫 1박 가족 나들이를 하였다. 우리 포항 식구의 1박 2일 모임이다. 당일 모임은 많이 했지만, 바닷가 펜션에서 하룻밤 자면서 가진 나들이는 처음이다.두 아들이 비교적 늦은 입지(立志)의 중, 후반기에 결혼했었다. 이에, 손주 둘도 늦게 보게 되었다. 올해 큰손주가 다섯 살, 작은 손주가 세 살이다. 재작년 초부터 불어닥친 코로나19 사태는, 가족 전체가 한자리에 못 모이게 했다. 명절도 각 집으로 나누어 보냈고, 각종 모임도 중단되어 현재까지 지속되는 것도 있다.여행을 좋아하는 내가, 코로나만 아니었다면 가까운 해외라도 온 가족여행을 다녀오게 했을 터다. 저 지난주 내 생일 축하 식사 모임에서, 가까운 야외에 펜션을 빌려 우리 가족 1박 2일 나들이를 하자고 갑자기 의견을 모았다. 일이 일사천리로 진행되어, 지난 주말 온 가족이 바닷가 펜션에 모이게 되었다.우선, 아내와 두 며느리가 모임을 더 좋아하는 분위기였다. 식사 일체는 펜션에 맡기고, 약간의 간식과 큰아들 생일 축하 케이크 정도만 큰 며느리가 준비했다. 비록 짧은 이틀일망정 ‘무얼 장만해 먹어야 하나’하는 고민에서 해방되어 행복해 보였다. ‘어머님은 준비에 전혀 신경 쓰지 마시라’는 며느리들의 주문도 있었다. 그래도 아내는, 나름 윷 등 이것저것 준비하는 눈치였다.이 기회에, 우리 신앙의 4대 교리를 가족이 되짚게 하자는 생각이 들었다. 인터넷을 참조하여 A4 한 장짜리 교재를 만들었다. 저녁 식사 후 손주 둘은 저들끼리 신나게 노는 시간에, 대화식 4대 교리를 주고받았다. 또, 인생관과 사람 사는 이야기,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 가정과 친족 이야기, 부모님 유산 이야기 등 생각나는 대로 자유롭게 가족 담소를 나누었다.명절 때 고향에서 아들, 며느리, 손주들과 한집에서 하루 묵은 적은 있다. 그러나, 놀고 쉬기 위해 숙소를 빌려 1박을 한 것은 처음이다. 조상께 제사를 올리기 위한 모임과 쉬고 놀기 위한 모임의 차이가 엿보였다. 며느리들과 아내의 표정과 언행에서 어떤 해방감(解放感)도 느껴졌다. 하긴, 지나면 바로 돌아오는 끼니 고민에서 두 끼만이라도 해방되었으니 홀가분할 거다.잠시, 우리 가정 식구의 구성을 따져 본다. 우리 부부, 두 아들 부부와 손자 둘이다. 합하면 어른 6명, 아이 2명이다. 우리 집 출산율은 1.0이다. 하지만 두 아들 부부 네 명이 아이 둘을 두었으니, 식구는 반이 줄었다. 아내가 두 며느리에게, 둘째를 가지는 게 어떠냐고 권한 적이 몇 번 있다. 며느리들은 경제사회환경이 하나 키우기도 벅차단다. 나라의 현실과 우리 집도 같다. 나는 앞날을 볼 때, 4 촌간인 두 손주가 친형제처럼 살도록 키워야 한다고 아들 며느리들에게 가끔 말한다.기후변화에다 해수면상승, 국제적 정치, 경제 사정 악화, 자국 우선주의 등 산적한 지구촌 난제들이 떠오른다. 난제들이 우리 미래 특히, 손주들의 앞날을 불안케 한다는 상념을 떨칠 수 없다.첫 1박 가족 나들이는, 우리의 현주소를 또 바라보게 하였다.

2023-01-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