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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닭똥집의 고장

우정구 논설위원 대구는 치킨산업으로 전국적 명성이 있다. 멕시카나, 교촌, 호식이두마리, 땅땅치킨 같은 전국 브랜드가 대구가 고향이다. 외지에서 대구를 ‘치킨 성지’로 부르는 까닭도 수많은 치킨 프랜차이즈가 대구에서 출발했기 때문이다.한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7월에 대구서는 치맥페스티벌이 열린다. 폭염도시 대구와 치킨이 잘 어울려 만들어진 축제다. 행사 기간 100만명이 다녀갈 정도로 인기도 좋다.닭의 모래주머니로 요리한 속칭 닭똥집 전문점이 대구에서만 유독 발달한 것도 대구 치킨산업과는 무관한 일이 아닐 것이다.대구 동구 평화시장 닭똥집 골목은 그 역사가 50년 된다. 다른 곳에서는 거들떠보지도 않는 닭똥집 요리를 대구서는 수십업소가 모여 시장을 이룬다.닭똥집은 막창과 납작만두, 따로국밥 등과 같이 대구를 대표하는 음식이다. 1970년대 평화시장 앞에 형성된 인력시장에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노동자들이 술로 아쉬움을 달랠 때, 어느 부부가 닭을 손질하고 난 뒤 남은 닭똥집을 바삭 튀겨 안주로 내놓은 게 시발이 됐다고 한다.노동자의 주머니 사정을 고려, 저렴하고 푸짐하게 내놓았으니 점차 인기가 높아졌다. 닭똥집은 닭의 모래주머니를 이르는 말. 닭은 이가 없어 섭취한 먹이 중 단단한 것은 모래주머니에서 소화시킨다. 모래주머니는 근육이 잘 발달돼 지방이 거의 없다. 좋은 단백질 공급원도 된다. 맛도 담백하고 쫄깃해 한번 맛을 본 사람은 다시 찾게 된다.대구 평화시장 닭똥집 골목이 농림부 주최의 외식업선도지구 경진대회에서 최고상인 최우수 외식거리로 선정되는 영광을 안았다. ‘치킨 성지’ 대구의 명성을 또한번 알린 쾌거다./우정구(논설위원)

2022-12-15

‘윗돌 빼 아랫돌 괴기’ 인구 대책

홍석봉 정치에디터 비관적인 인구 전망이 쏟아졌다. 골드만삭스는 2050년엔 한국이 인니와 나이지리아에 추월당하고 세계 15위권 밖으로 밀려날 것이라고 전망했다.CNN은 한국이 지난 16년 간 260조 원을 인구정책에 쏟아붓고도 실패했다고 보도했다. 저출산·고령화에 극심한 인구 유출로 지방은 인구소멸 위기다. 더 좋은 교육과 직장을 찾는 젊은 층이 수도권으로 빠져나가고 있다. 젊은 인구 유출은 지방 붕괴를 가속화시킨다. 아이는 놓지 않는데 빠져나가는 인구가 많다보니 지방은 노인 왕국이 됐다. 그냥 둘 수는 없고 마땅한 방법도 없다. 지자체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경북의 시군 인구가 50만 명, 10만 명의 벽이 붕괴되고 5만 선이 속절없이 무너진다. 저출산·고령화의 수렁에 빠진 한국의 현주소다. 지자체의 인구늘리기 운동이 거세다. 현 인구를 지키기 위한 인구 사수 운동이다.인구감소는 예산과 행정기구 축소로 이어진다. 지역경제와 주민들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 인구늘리기는 지자체의 숙명이다. 지자체는 눈물겨운 노력을 한다.봉화군이 인구 3만 명 사수를 위해 ‘봉화사랑 주소갖기 운동’을 추진하고 있다. 10만 명이 넘던 인구가 저출산·고령화로 3만200명까지 줄었다. 인구 3만 명 선도 간당간당한다. 봉화군은 공무원과 유관기관, 기업체 임직원들을 중심으로 인구늘리기 운동을 시작했다.지난해 50만 명 선이 무너진 포항시도 인구 늘리기에 나섰지만 별 효과가 없다. 주소 이전 지원금, 근로자 이주정착금 등을 내세웠지만, 터진 둑을 막기엔 역부족이다. 인구 50만 명 이상 대도시의 행정 특례도 제외될 처지다.행정권한이 축소되고 남·북구청은 폐지위기다. 경찰서와 소방서, 보건소도 1개로 준다. 기업 유치를 통한 일자리 창출 등 인구 늘리기 방안을 찾고 있지만 효과는 신통찮다.인구늘리기 운동이 경북 대부분 시군의 연례행사가 됐다. 없던 사람이 갑자기 불쑥 생길 리가 없다. 결국 옆집 인구를 빼온다. 그러다가 인근 지자체와 갈등을 빚기도 한다. 인근 도시로 출퇴근 인구가 많은 대구는 주 타깃이다. 하지만 그 때뿐이다. 지자체의 인구늘리기가 ‘윗돌 빼 아랫돌 괴기’ 식의 임시방편에 그치고 있다.온갖 묘안을 짜내고 있지만 백약이 무효다. 청송군은 기피시설인 교정시설 유치까지 내놓았다.지자체가 ‘생활인구’에 주목하고 있다. 생활인구란 특정 지역을 방문해 체류하는 사람까지 포함하는 개념이다. 도시와 농어촌 양쪽에 거점을 두고 생활하는 ‘5도2촌’같은 생활 방식을 인정하고 자주 방문하는 사람들을 같은 주민으로 보자는 것이다. 관련 특별법도 내년부터 시행된다.충북 옥천군은 타 지역 거주자에게 디지털 주민증을 발행하고 숙박과 관광지 이용 시 할인 혜택을 준다. 두 달 만에 온라인 주민 1만3천400여 명이 등록했다. 가능성이 엿보인다.내년 시행하는 ‘고향사랑기부제’도 기대한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격인 인구 대책, 해결책을 찾는 지자체의 도전은 끝이 없다.

2022-12-15

민노총의 정체

김병래수필가·시조시인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자는 자본가에게 자신의 노동력을 제공하고 그 대가로 임금을 받아 생활한다. 자본가는 생산원가의 절감을 통하여 이윤을 극대화하려 하고, 노동자는 여유롭고 품위 있는 생활을 위하여 보다 나은 근로 조건을 원한다. 그래서 노동자와 고용주 사이에는 임금수준, 노동시간, 노동강도, 노동조건 등과 같은 구체적인 사안을 두고 마찰과 대립이 발생하기 마련이다. 그럴 때 갑의 위치에 있는 고용주의 횡포를 막기 위해서는 노동자들이 단결하는 수밖에 없다. 그래서 결성된 것이 노동조합이고, 국가에서도 노동자의 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 같은 권리를 법제화 하고 있다.우리나라의 경우, 1945년 좌파계열 운동가들과 조선공산당 박헌영 등의 후원으로 결성된 조선노동조합전국평의회와 우파계열로는 이승만, 김구, 김규식을 명예총재로 하고 유진산, 전진한, 김두한 등을 중심으로 대한노동조합총연합회(대한노총)가 출범했다. 조선노동조합전국평의회는 좌파 불법화에 따라 1950년 강제해산 당했으나 대한노총은 1960년까지 존속했다. 5·16 이후 군사정권은 노동조합 모두를 불법으로 간주하여 대한노총 역시 강제해산 되었다가 산별노조 정책에 따라 한국노총이란 이름으로 재결성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민노총(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은 1995년 11월 11일에 창립했다. 창립 당시에는 비합법 조직이었으나 1997년 노동관계법 개정으로 합법적인 조직이 됐다. 그러나 민노총의 그간 행적은 순수한 노조활동으로 보기 어려운 점이 많다. ‘우리는 노동자의 정치세력화를 실현하고 제민주세력과 연대를 강화하며….’라고 강령에도 밝혔듯이 노동운동보다는 한미동맹 해체, 주한미군 철수, 국보법 폐지, 국정원 해산, 연방제 통일을 주장하는 등 정치세력으로서의 활동에 치중해왔다.민노총을 이끌고 있는 주체가 경기동부연합 출신이라는 점도 그들의 지향점이 어디인가를 말해준다. 경기동부연합은 1980년대 중반 형성된 NL(민족해방파)계열 중에서도 북한 주체사상을 가장 신봉하는 친북단체이다. 이 조직의 핵심 세력은 직접 북한의 지령을 받고 활동하다가 해체된 민혁당의 경기남부위원회 출신이고, 2013년 내란음모사건으로 징역 8년 형을 받고 복역한 전 통합진보당국회의원 이석기가 그 위원장이었다. 민노총 홈페이지에는 북한의 조선직업총동맹중앙위원회에서 보낸 문서가 버젓이 올라와 있다. 내용인즉, “미국과 남조선의 윤석열보수집권세력은 이 시각에도 하늘과 땅, 바다에서 각종 명목의 침략전쟁연습을 광란적으로 벌려놓고 있으며 이제 얼마 후에는 북침을 겨냥한 대규모합동군사연습을 강행하려 하고 있습니다. 온 겨레의 치솟는 분노를 자아내는 내외 반통일세력의 이러한 대결망동을 단호히 짓뭉개버려야 합니다.” 이 모든 정황들이 민노총의 정체를 드러내는 게 아니고 뭔가.바람직한 노동운동이란 기업의 발전과 융성을 기반으로 노동자들의 복리를 극대화하는 것일 터이다. 기업과 나라를 궁지로 몰아넣는 불법파업을 근절하는 것이 결국 노동자들을 위하는 일이다.

2022-12-15

한파가 밀려오면

윤영대수필가 이번 주, 갑자기 기온이 영하로 뚝 떨어져 우리의 일상이 조심스러워진다. 기상청에서는 제주도를 제외한 전국 대부분에 한파 특보를 발령하여 ‘관심’에서 ‘주의’로 격상했다. 이번 주말 서울이 영하10도 가까이 되는 등 올겨울 ‘최강 추위’가 찾아올 것이라는 예보다. 다음 주 초에는 더 기온이 낮아지고 서해안과 제주에서는 대설특보가 내려지고 있다. 대설주의보는 24시간 내에 눈이 5cm 이상 쌓일 것으로 예측될 때 내려지고, 대설경보는 20cm 이상일 때이다. 이보다 앞서 최악의 ‘겨울 황사’가 찾아왔었다. 이 ‘봄의 불청객’이 한겨울에 찾아온 것은 내몽골 고원의 건조한 날씨 탓이라고 하니 눈이 내려 말끔히 씻어주면 좋겠다.한파가 닥치면 심뇌혈관, 심근경색 등 고혈압, 고지열증에 근거한 환자들이 많이 발생할 수 있으니 체온 유지를 위한 운동을 꾸준히 하여야 한다. 코로나19가 우리나라에 들어온 지 3년, 아직도 그 위험이 사라지지 않고 또다시 전염이 확대될 수 있다는 우려가 있는 만큼 이번 한파를 잘 견디어나가 사회의 안정을 찾아야 할 것이다. 한파가 몰려오면 흔히 동상이나 저체온증이 우려되며 추위에 얼어서 피부 손상이 생기는 동창(凍瘡) 등의 한랭 질환도 염려해야 한다. 산업현장에서도 고위험 상태의 사고가 발생하기 쉬우므로 야외작업 시에는 더욱 주의가 필요하게 된다. 겨울이면 걱정되는 것은 수도관 동파이다. 시골집 수도계량기도 잘 덮어주어야겠다.한파가 밀려오면 사회·경제적 취약계층에게 이런저런 피해가 발생할 우려가 있으므로 이들에 대한 한파 대응책이 필요하다. 먼저 난방비의 부족으로 인한 연탄수급이 문제가 되는 등 안타까움이 있는 만큼 각 지방자치단체와 봉사단체는 취약가구의 따뜻한 겨울나기를 위한 한파 대응 물품 지원사업을 마련하고 있다.또 요즈음 경제적 한파도 문제다. 코로나의 장기화 등에 따른 고용 한파로 인해 일자리 부족과 얼어붙은 노동시장으로 청년들이 느끼는 경제적 고통이 최고치를 기록하며 취업률 감소로 악화되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도 메모리 반도체 가격이 하락하는 등 경제적 한파를 맞고 있다고 하니 이를 온몸으로 견뎌야 하는 MZ 세대는 삶이 고되더라도 비관하지 말고 생명이 움트는 봄을 기다려 보자.우리나라 겨울 날씨의 특징 중 하나가 삼한사온이다. 사흘 춥고 나흘 따뜻해지며 반복되는 시베리아 기단의 계절 특성도 이번 한파에는 ‘삼한’이 조금 길어질 것이라는 예보다. 북극에서 발생한 이동성 고기압의 차가운 기운이 남하하면 ‘삼한’이 되었다가 동쪽으로 이동해서 우리나라를 덮게 되면 바람도 약해지고 따뜻해지는 ‘사온’이 되는데 최근 경향으로는 이러한 현상이 불규칙해진다는 관측도 있다.한 해를 마감하는 12월, 추위가 심한 계절에 한파가 몰려오는 것은 당연한 계절의 섭리이니 가벼운 마음으로 딛고 일어서서 조용한 일상을 즐기고 국민 모두가 하나 된 긍정적 생각으로 경제적 한파도 이겨내리라 믿는다.

2022-12-15

문재인케어의 종말

홍석봉정치에디터 윤석열 대통령이 ‘문재인케어’ 폐지를 공식화했다. 지난 5년간 20조원 넘게 쏟아부었지만 국민 부담만 늘었다. 문재인케어가 건강보험제도의 근간을 해치고 국민 희생을 강요했다고 평가했다. 건강보험의 대수술을 예고했다.문재인 정부는 2018년부터 문재인케어로 불리는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대책을 본격적으로 시행했다. 60% 초반의 건강보험 보장률을 임기 내에 70%로 끌어올리겠다고 했다. ‘병원비 걱정 없는 나라’가 목표였다.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환자가 비용 전액을 부담해야 했던 비급여 진료 3천800여개를 급여화했다. 노인·아동·여성·저소득층 등의 의료비를 대폭 낮췄다. 2022년까지 30조6천억원을 투입한다는 계획이었다.2018년 10월 뇌·뇌혈관 MRI를 시작으로 2019년 두경부·복부·흉부·전신·특수 질환 MRI와 복부·생식기 초음파 등이 순차적으로 건보 급여화됐다.하지만 바로 부작용이 나타났다. 초음파와 MRI검사가 10배 늘었다. 의료현장에서는 새로운 비급여 항목이 생겨났다. 급여 확대로 건보 재정이 과도하게 지출됐다.일부 과잉 이용 항목은 보장 축소나 시행 시기를 연기했지만 늦었다. 과도한 의료쇼핑도 문제였다. 2021년 한해 150회 이상 외래진료를 받은 환자만 19만명에 달했다. 한 40대 여성은 2천50회나 병원을 찾았다. 재정지출이 폭증했다. 오는 2028년이면 건강보험 재정이 고갈된다는 경고등이 켜졌다. 의도는 좋았으나 전형적인 포퓰리즘 정책이었다. 국민 혈세를 낭비하고 재정 파탄을 앞당겼다. 문재인 정권의 ‘퍼주기’ 정책의 말로다.부담은 고스란히 국민 몫이 됐다. 공짜 좋아하다 곳간이 거덜났다. /홍석봉(정치에디터)

2022-12-14

문화강국을 겨눈다

장규열 한동대 교수 김구 선생은 그의 ‘백범일지’에 이렇게 적었다. “인류에게 부족한 것은 무력도 아니오, 경제력도 아니다. 인류가 불행한 근본 이유는 인의가 부족하고 사랑이 부족한 때문이다. 이 정신을 배양하는 것은 오직 문화이다. 나는 우리나라가…. 이러한 높고 새로운 문화의 근원이 되고 모범이 되기를 원한다. 진정한 세계평화가 우리나라로 말미암아 실현되기를 원한다.”세상이 하도 어지럽다 보니 문화를 생각할 겨를이 없다. 인류문명의 역사를 돌이켜 보면,‘문화’가 강한 민족이 끝내 융성하였다. 인의와 사랑이 문화에서 비롯한다는 백범의 통찰도 놀랍다. 정서와 느낌을 문화로 녹여내어 표현하고 발산할 때, 문화의 힘은 무력과 금력을 너끈히 능가할 터이다. 여유롭고 풍성한 문화적 공동체를 만들게 하여, 민족적 자신감과 사회적 연대감이 든든해질 것이다.하버드대 조셉나이(Joseph Nye) 교수는 군사력·경제력 같은 하드파워(hard power)와 대비되는 개념으로 소프트파워(soft power)가 치명적으로 중요해졌으며, 문화적 매력을 통해 상대를 설득하는 힘이야말로 현대 국가가 우선적으로 추구해야 할 필수불가결한 요소라 하였다.문화를 다시 발견해야 한다. 다양한 문화의 가능성을 배워야 하며, 문화의 힘이 발휘하는 영향력을 일깨워야 하고, 누구든 문화 에너지를 적용하여 상상과 창의를 발휘하도록 이끌어야 한다.문화적 소양은 개인적인 능력이면서 집단활동으로서 공동체적 산물이기도 하다. 지역마다 고유한 문화적 전통이 피어나며 나라마다 독특한 문화기반이 생겨난다. 문화적 감수성이 뛰어난 사람이 많아질 때, 지역 공동체는 협력과 상생의 정신이 살아나고 함께 살아가는 묘미에 빠져들게 된다. 문화적 토양이 척박하고 메마르면, 사람들을 모으기 어렵고 지역의 공동체성도 고갈되기 마련이다. 음악과 미술, 연극과 영화, 춤과 뮤지컬, 전시와 공연이 마을과 지역에 넘실대면, 사람들이 모여들고 함께 사는 재미로 출렁거린다.학교에서 문화를 가르쳐야 한다. 잃어버린 음악시간과 미술시간이 여느 교과만큼 다시 주목받아야 한다. 문화적 감수성을 심어야 하고 교차문화적 식견도 길러야 한다. 나의 문화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만큼, 남의 문화를 아끼고 존중하도록 배워야 한다. 문화소양과 함께 상대적으로 소외된 영역이 운동역량이다. 문화와 스포츠가 나라와 국민의 마음을 하나로 묶는다. 학교는 음악, 미술과 함께 체육시간도 늘여야 한다. 말로는 건강한 몸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면서 대학입시를 위해 달리느라 찌든 몸은 도외시하지 않았던가.우리가 겨냥하는 문화강국은 어떤 모습일까. K-POP과 한국영화, 드라마, 웹툰과 게임 등에서 이미 앞자리에서 겨룬다. 멋진 콘텐츠를 만들어 문화상품으로 겨루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모두의 문화감수성이 뛰어나서 대한민국의 문화역량이 세계문화 속에서 넉넉히 견주어져야 한다. 문화적 영향력이 세계시민들의 호기심과 관심에 불을 당겨 대한민국을 찾고 배우게 하여, 평화와 안녕에 기여하기까지 밀어 보았으면 싶다. 문화가 살아야 나라가 산다.

2022-12-14

목수

윤명희 수필가 조카뻘 나이의 그는 가끔 우리 사무실에 와서 얘기를 나누는 이들 중 한 사람이다. 말이 별로 없고 덩치도 크지 않아 그리 눈에 띄지 않았다. 대화 분위기에 맞춰 가끔 옅은 미소를 짓는 그가 내 눈을 끈 이유는 닉네임이 목수기 때문이다.목수라면 어릴 적 동네 아저씨를 떠올리게 되어 젊은 그와 연결이 되지 않았다. 단지 그의 취미가 목공예일 거라 여기며 요즘 만들고 있을 소품들이 어떤 게 있는지 궁금했을 뿐이다.얼마 전, 친구가 오래된 작은 아파트를 샀다. 팔순이 넘은 할머니가 살다 간 그 집은 누렇게 뜬 꽃무늬 벽지에 창문이 아귀가 맞지 않아 삐걱거렸고, 보일러는 녹물에 얼룩져 있었다. 친구는 타일이 깨진 욕실을 보자 어디부터 손을 대야 할지 막막해했다.계단을 내려가다 1층에 리모델링하는 집이 눈에 띄었다. 저 집은 어떻게 수리하고 있는지 구경이나 하자며 가는데 아는 얼굴이 보였다. 목수? 내가 아는 그 목수? 그가 손을 흔들었다. 복도를 따라 공사 현장으로 갔다.그의 먼지 묻은 작업복이 먼저 눈에 들었다. 자초지종 내 얘기를 들은 그는 들어와 보라고 했다. 싱크대는 물론 문짝에 문틀까지 떼어낸 집 안은 살점이 뜯어져 나간 생선 가시처럼 앙상했다. 머릿속으로 그려보아도 이 집이 어떤 집으로 되살아날지 감이 오지 않았다.3층 친구의 집으로 다시 올라갔다. 우리를 따라온 그는 바깥으로 된 욕실 문을 여닫으며, 욕실 문은 안으로 달아야 물방울이 바깥에 떨어지지 않는다고 했다.단순한 이치를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던 나는 우리 집 문을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여기저기 돌아보며 신경 써서 챙겨야 할 부분들을 체크해 주었다. 눈에 띄지 않은 부분까지 신경 써야 할 부분이 많다는 사실에 친구는 머리가 아프다고 했다.그가 해 준다면 아무런 걱정이 되지 않을 것 같았다. 헌집을 주고 새집을 받고 싶은 두꺼비처럼 나는 맡아서 해 줄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그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약속해 놓은 일만도 줄을 서, 도저히 날짜 맞춰서 해낼 여력이 없다는 것이다. 많은 이들이 일거리가 없어서 힘들어하는 이 시기에 일을 마다할 수 있다는 게 의아했다. 맵짠 그의 손재주가 젊음과 어우러져 공사 현장을 잡고 있었다. 그는 취미로 하는 목수가 아니라 젊은 나이에 이미 선수가 되어 있었다.몇 번의 들락거림과 우여곡절 끝에 공사가 끝났다. 새로 칠해진 현관문을 열고 스위치를 올리자, 은은한 조명 아래 신혼집 같은 분위기가 펼쳐졌다.집 안을 구석구석 돌아보며 스치고 지나간 손길의 위대함을 느꼈다. 목수가 수리한 1층 집이 그려졌다. 그 집은 새로 도배한 벽의 풀냄새와 새로 칠한 하얀 페인트 냄새에 분명 목수의 나무 향이 날 것 같았다.요즘 들어 가끔 그가 사는 집 창을 올려다볼 때가 있다. 창에 그의 아내와 어린 딸의 웃음이 담긴 불빛이 비친다.그 불빛을 만들어 낸 작업복과 눌러쓴 모자의 힘을 바라본다. 새집을 그려 낼 몽당연필을 오늘도 귀에 꽂고 다니는 그에게 지긋한 마음의 눈길이 가는 것은, 어젯밤에 받은 전화로 더 한 것인지 모른다.친구는 몇 해 동안 취직 시험을 준비하던 아들이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다)이라며 책을 집어 던져 속상하다고 했다.두어 해 전에, 공부를 그만두고 다른 일을 해보겠다는 아들에게 지금까지 한 게 아까우니 한 번만 더 해보자고 사정했던 그녀다.아들이 번듯한 곳에 취직만 되면 장가부터 보낼 생각에 아파트까지 장만해 뒀는데 왜 이리 힘이 드는지 모르겠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엄마의 의지로 책상 앞에 앉아있을 친구의 아들이 떠올랐다. 그녀가 움켜잡은 손만 놓아준다면 아들은 목수처럼 자기만의 집을 스스로 짓지 않을까 하는 말이 목구멍까지 치고 올라오는데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전화를 끊었다.

2022-12-14

정해(丁亥)

육십갑자 중 스물네 번째에 해당하는 정해(丁亥)다. 천간(天干)은 정화(丁火)이고, 지지(地支)는 해수(亥水)다. 정화와 해수는 모두 음의 기운으로 정적(靜的)이다.정해일주(丁亥日柱)는 정관(正官)의 바른 기운을 받아 기본적으로 착실하고 침착하다. 일처리도 정도로 잘하며, 주변에서 칭찬을 받는 타입이다. 단점으로는 추진력과 저돌성이 부족한 편이다. 간혹 변덕을 부려 주변 사람들을 힘들게도 한다. 정관이 있어 남녀 모두 이성과 배우자 덕이 있다. 결혼운수가 적당하고 좋으며, 배우자를 잘 선택하는 경향이 있다. 정화(丁火)는 물상으로 달, 촛불, 별이다. 해수(亥水)는 시간적으로 밤 9시30분에서 11시30분이다. 계절적으로 초겨울에 해당한다. 마치 달이 강가에 떠있고, 찬바람이 불어 쓸쓸한 풍경을 연상한다. 중국 송나라의 시인인 소동파(蘇軾·1036년~1101년)가 신종5년(1082년) 귀양을 가서 10월에 쓴 ‘후적벽부(後赤壁賦)’는 적벽에서 뱃놀이를 하면서 지은 것이다. “객이 있는데 술이 없구나, 술이 있어도 안주 없네, 달은 밝고 바람 시원하니 이처럼 좋은 밤이 있겠소” 라고 했다. 그가 당한 파직에도 불구하고 운명과 사람을 원망하지 않고 유배지에서 펼쳐진 자연을 만끽하는 마음가짐을 볼 수 있다.우리나라 시인 박영희(1901~?)는 일제 치하에서 아무런 희망이나 기쁨의 일면도 찾아 볼 수 없는 칠흑 같은 어둠을 배경으로 한 시 ‘월광(月光)으로 짠 병실(病室)’을 발표했다. 그 시의 한 구절이다. “달빛이 가장, 거리낌 없이 흐르는/ 넓은 바닷가, 모래 우에다/ 나는, 내 아픈, 마음을, 쉬게 하려고/ 조그만, 병실(病室)을 만들려 하야/ 달빛으로, 쉬지 않고, 짜고 있도다.// 가장 어린애같이, 비인 나의 마음은/ 이때에 처음으로, 무서움을 알았다.”암울했던 당시 시인은 어둠을 밝혀 주고, 우리가 아름답게 보았던 ‘달’조차도 출구가 없는 방에 스며드는 달빛으로 병든 마음을 표현하고 있다, 동일한 사물과 대상이라도 그것을 받아들이는 형식은 시대 상황과 인물의 성격에 따라 서로 다른 환경 속에서 표현된다.정화(丁火)는 따뜻한 불에 해당하며, 은근하고 기분 좋은 명랑함을 전하며, 해수(亥水)는 물상으로 돼지를 의미하며, 온순하고 무엇이든 잘 모아둔다. 물의 총명함과 에로스 성향도 있으나, 평소에 잠잠하다가 어느 순간에 폭발적으로 분출하는 경향이 있다. 정해일주 여자는 자태가 아름답고 명예를 중시한다. 남자는 신사의 풍모에 매력 있는 얼굴을 지닌다.정해일주(丁亥日柱)는 천을귀인(天乙貴人·하늘의 은덕을 받는 길신)이 있다. 그 영향으로 최악의 상황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다. 살아가는데 큰 고초를 겪지 않고 무난하고 평탄한 삶을 이룬다. 또한 매우 곧은 성품으로 선비와 같이 사유의 깊이가 있고, 사특함이 없어 관직에 어울리는 기운이다. 성품이 맑고 고결하게 태어난다고 해서 ‘일귀(日貴)’라고도 부른다.우리는 살아가면서 천을귀인의 은덕을 받으면서 모르고 지내는 경우가 있다.20세기 모더니즘 작가인 버지니아 울프(1882∼1941)는 어릴 때 의붓오빠의 성추행으로 만성적인 정신질환을 겪으면서 영국 빅토리아 관습과 인습을 타파하는 글을 썼다. 여성으로서 ‘의식의 흐름’이라는 소설기법을 개척하고 완성한 작가 중 한 사람이다. 대표작으로 ‘델러웨이 부인’ ‘등대로’ ‘자기만의 방’ 등이 있다.버지니아 울프는 ‘우리가 모두 일 년에 500파운드를 벌고 자기 방을 갖는다면’이라는 말로 여성의 경제적 자립과 정신적 자유를 표현했다. 이 같은 표현은 오늘날까지도 많은 여성들의 꿈이 되고 있다. 1960년대 말부터는 페미니즘 비평의 선구자로 재발견되면서 새로운 해석의 대상이 되었다.버지니아 울프의 성공 뒤에는 그녀를 물심양면으로 도와준 천을귀인 같은 레너드 울프가 있었다. 케임브리지 대학을 다니던 오빠 토비의 친구들 가운데 레너드 울프를 22살에 처음 만났다. 30살 때 그녀는 결혼조건으로 레너드 울프에게 두 가지를 요구했다. 부부생활에서 성관계를 하지 않는 것과 나를 위해 공직생활을 포기해 달라는 것이었다.레너드 울프는 버지니아의 아름다움에 반했지만, 그녀의 지성에 반한 바가 더 컸다. 마침내 그녀의 모든 요구를 받아들인다. 그녀도 청혼을 받아들여 결혼하게 된다. 실제로 버지니아 울프는 남편의 헌신적인 보살핌을 받으면서부터 창작의 공간과 시간을 가지게 된다. 그가 전적으로 정신질환이 있는 아내의 간호를 맡은 후 25년간 이전과 같은 극심한 신경증의 발작은 없었다.그 시절, 그들의 결혼은 남자가 여자와의 결혼을 위해 직업적 기반을 포기한 흔치 않은 경우다. 레너드 울프가 아내의 신경쇠약에 기분전환을 위하여 인쇄기를 사서 호가스 출판사를 만들었다. 그녀는 누구의 간섭 없이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쓸 수 있었다. 1925년 5월에 ‘델러웨이 부인’ 초판본이 나왔으며, 책의 표지는 언니 바네사 벨이 디자인했다.결국 정신질환이 악화되자 1941년 3월 28일 버지니아 울프는 우즈강으로 갔다. 주머니에 돌멩이를 가득 집어넣고 강물로 들어간다. “나는 당신의 인생을 더 이상 망치고 싶지 않습니다”라며 남편에게 밝히지 못한 과거의 이야기를 유서로 남기고 자살을 선택했다. 그녀는 결혼 후 30년 동안 진정으로 사랑했다고 말했지만, 홀로 남겨진 레너드 울프의 심정을 이해했을까 궁금하다.남편 레너드 울프는 버지니아 울프의 명성에 가려져 잊혀간 인물이 되었다. 나머지 생에 대해서는 자세한 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 자식도 없이 홀아비가 된 그 후의 삶과 죽음은 과연 어떠했을까? ‘사람은 한 번 죽지만 태산보다 무거운 죽음이 있고, 터럭만큼이나 가벼운 죽음이 있다. 그것은 사용하는 방법이 다른 까닭이다’ 라고 사마천은 말한다.

2022-12-14

석곡 이규준이 말한 세 가지 다행

노승욱 포스텍 교수·인문사회학부 지난달 18일에 포항시립동해석곡도서관에서는 ‘석곡 이규준 역사인물 해설사 양성과정 기초반’ 수료식이 열렸다. 기초반과 심화반으로 구성된 이 과정은 총 2년 동안 운영된다. 포항 출신 대학자인 석곡 선생에 대한 전문 해설사 양성 과정이 개설된 것은 매우 뜻깊은 일이다.“북쪽에 이제마가 있다면, 남쪽에는 이규준이 있다.” 이제마와 함께 근대 한의학계의 양대 산맥으로 평가받고 있는 이규준의 위상을 알 수 있는 말이다. 그런데 함흥 출신 이제마는 전국적으로 알려져 있지만, 포항 출신 이규준은 모르는 사람이 많다. 석곡 이규준 역사인물 해설사 양성은 그래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석곡은 유학, 한의학, 천문학 등 폭넓게 학문을 연구했다. 지금의 관점에서 보면 그는 융합형 학자였다. 시대를 앞서간 석곡은 포항시 동해면 임곡리에서 태어났다. 유년기에는 출생지와 인접한 마을인 석리에서 살았다. ‘석리(石里)’란 지명을 본떠서 만든 호인 ‘석곡(石谷)’은 고향에 대한 이규준의 애정을 느끼게 해 준다.유학의 이치를 연구하고 환자를 진료한 의사를 ‘유의(儒醫)’라고 부른다. 석곡은 조선 시대의 마지막 유의였다고 할 수 있다. 김일광 작가가 쓴 역사소설 ‘석곡 이규준’에서는 그가 어떠한 유의였는지 잘 묘사되고 있다. 포항 장기에서 일어난 의병들을 치료하기 위해 산막을 치고 진료를 했던 석곡의 모습에서는 숭고함마저 느껴진다.석곡의 한의학 이론을 대표하는 것은 ‘부양론(扶陽論)’이다. 그는 생명의 근원은 양기이지만 늘 부족하고, 반대로 음기는 항상 넘친다고 보았다. 따라서 양기 부족을 병의 원인으로 보고 이를 보완하는 연구에 주력했다. 이러한 이유로 그는 온열 약제인 부자를 많이 처방했다. 그에게 ‘이부자(李附子)’라는 별명이 붙은 이유이다.필자는 부양론과 함께 다행론을 새롭게 강조하고 싶다. ‘다행론(多幸論)’은 석곡이 이야기했던 ‘세 가지 다행한 것’에서 착안하여 필자가 이름을 붙여 본 것이다. 석곡은 자신이 가난했던 것, 집안이 변변치 못해 스승을 얻을 수 없었던 것, 혼란스러운 조선의 끝자락에 태어난 것이 다행이라고 말했다.석곡이 들려주고 있는 세 가지 다행한 이야기는 역설적이지만 공감을 자아낸다. 가난을 겪었기에 가난한 백성을 사랑할 수 있었고, 스승을 구할 형편이 못 되었기에 어떤 학파에도 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학문을 펼칠 수 있었으며, 조선 후기에 태어났기에 사문난적으로 몰려 죽지 않을 수 있었다는 그의 다행론은 개인적·시대적인 어려움을 극복하는 혜안을 전해 준다.내년 3월에는 포항시 동해면 도구리에 ‘석곡기념관’이 건립된다고 한다. 석곡기념관에 ‘삼다행실(三多幸室)’을 만들어 보는 것은 어떨까. 힘든 시기를 보내는 사람들에게 위로와 용기를 줄 수 있을 것이다. 석곡기념관부터 석곡도서관에 이르는 길을 ‘석곡 이규준의 길’로 명명해서 그의 학문 세계와 인문 정신을 선양하는 것도 추천하는 바이다.

2022-12-14

2022 카타르 월드컵을 보며

김규인 수필가 2022 카타르 월드컵에서 한국 축구팀의 도전은 암울한 경제 불안과 민노총의 파업, 이태원 참사와 지루한 정치권의 정쟁에 지친 국민들에게 삶의 쾌감을 안겨 주었다. 대표팀을 응원하는 붉은 악마와 국민들의 한결같은 응원은 마음의 앙금을 씻어내기에 충분했다. 우리에게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강한 인상을 심었다.빌드업. 지난 4년간 쌓아 올린 우리의 축구. 쌓아 올리기까지 여러 번의 고비는 넘는다. 그렇게 한 단씩 차곡차곡 쌓은 것이 2022 카타르 월드컵에서 보여준 한국 축구다, 세계의 어떤 강팀을 만나도 우리의 축구를 한다. 지나친 수비 위주의 축구가 아니라 자존심 가득한 축구를 한다.이번 월드컵을 통하여 가장 큰 성과가 우리 축구를 하는 것이 아닐까. 볼을 지키면서 점유율을 높이는 가운데 기회를 찾는다. 모든 일이 다 그런 것 같다. 기초를 다진 후에 건물을 짓는 것이 순서인데 우리는 그동안 너무 빨리 모든 것을 이루려고 하지는 않았는지 돌아보게 된다.우리 축구의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이 실점한 경우에도 우리의 경기력을 유지하는 것이다. 득점이 필요한 경우에는 공격력을 배가한다. 포르투갈전에서도 먼저 실점하고도 역전승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꾸준히 실력을 쌓아 우리의 축구를 한 덕분이 아닐까. 점수를 준 것은 준 것이고 득점하기 위해 한 걸음 더 뛰며 서로의 이름을 부르며 열심히 골문을 향해 달린 덕이다.어려움 속에서 빛난 것은 한국 축구의 정신력은 그대로 살아있다는 것이다. 골을 먹어 점수 차가 많이 나도 만회 골을 터뜨리기 위해 노력한다. 그래서 강팀을 만나도 주눅 들지 않고 우리의 경기를 하는지도 모른다. 뭔가 노력한 흔적이 나타나고 잘 이루어지고 있다는 느낌이 들 때 응원하는 우리는 행복하다. 그래서 월드컵 기간 내내 입이 귀밑에 걸린다.이번 월드컵의 압권은 포르투갈전의 역전 골이다. 왜 많은 돈을 받는 손흥민인지를 보여주고 황희찬과의 유기적인 플레이는 예술이다. 두 사람 모두 다쳤음에도 열심히 뛴 경기일 뿐만 아니라 손흥민의 빠른 발에 맞추어 오프사이드를 피해 황희찬이 달리고, 그에게 맞추어 손흥민이 완벽한 패스를 한 것이다. 일곱 명이 에워싼 수비를 뚫은 패스로 우리는 16강에 오를 수 있었다. 상대 선수도 인정한 플레이에 저절로 어깨가 으쓱해지고 나의 엄지도 함께 올라간다.선수들 입장에서 월드컵은 축구 클럽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자신을 증명해 보일 기회이다. 국가대표로 뽑히는 것이 기본이지만 월드컵을 대비해 몸을 만들고 기술을 닦아 모든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 이번 대회를 통하여 조규성, 이강인 같은 우수한 젊은 선수들은 자신의 모든 것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차세대 대한민국의 주전들이다. 2022년 카타르에서 쌓은 소중한 경험으로 2026년에는 보다 달라진 모습을 보여줄 것이다.2026년이 기다려진다. 우리 축구라는 새로운 유전자를 가진 대한민국이 우리를 에워싼 어려움을 뚫고 헤쳐나가 새로운 역사를 쓰기를 기도한다. 역사는 의지를 가진 누군가에 의해 달라진다는 것을 이번 월드컵을 통해 깨닫는다.

2022-12-14

결코 쉽게 씌어질 수 없는 다짐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왠지 이 글귀를 들으면 대다수 우리 국민의 머릿속에는,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라는 뒤이어질 내용이 구구단처럼 자동으로 떠오를 것만 같다. 그만큼 우리에게 친숙한 이 ‘서시’는 민족 저항시인 윤동주의 대표작이다.누구나 삶의 고달픈 순간은 뜬금없이 혹은 간헐적으로 찾아오게 마련이다. 그 고통은 여태껏 쌓아 올린 자신의 삶을 송두리째 흔들 만큼 고통스러울 수도 있다. 하지만 인간은 그 고통을 극복할 방법을 스스로 터득하며 고비를 넘기며 한 단계 성숙한 삶으로 발돋움한다.바로 그거다. 신은 인간이 견딜 수 있을 만큼의 고통을 내린다고 하지만, 필자의 생각은 인간 스스로 극복해내는 길을 찾아간다는 것이다. 그 길이 누군가에게는 등산처럼 활동적인 일이 될 수도 있고 혹자에게는 산책이나 독서처럼 사색의 영역이 될지도 모를 일이다.이따금 서재에 들어가면 손이 잘 닿지 않는 책장의 맨 아래쪽을 향해 손을 뻗을 때가 있다. 그곳에는 아주 오래전부터 그 자리를 지켰던, 색 바랜 시집 한 권이 꽂혀 있다. 윤동주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다.윤동주는 일제시대, 시로써 온몸으로 저항했던 시인이다. 1917년에 태어나 29세의 나이로 옥사한 그의 짧은 생에,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서시의 한 구절처럼 그에 대한 존경과 애도를 무의식적으로 각인시켜 두지 않았을까.시집 속의 주옥같은 시들 중 필자가 가장 좋아하는 시는 ‘쉽게 씌어진 시’다. 돌이켜 보면 학창시절 국어 시험에 종종 등장하던 작품이었는데, 그때는 운율과 은유법 같은 문제 풀이 답에만 혈안이 되어 있었던 터라 시의 감흥 따위는 알려고도 하지 않았던 것 같다.그런데 필자가 지천명, 이순의 나이를 거치며 한 기업의 대표와 기초자치단체장에 이르기까지, 삶이 순탄치 않다고 뼈저리게 느끼는 순간마다 이 시가 떠오르는 것이었다. 사실 이 시는 힘없고 무능력한 조국에 비통해하며 창씨개명한 시인이 일본 유학에 가서 쓴 시이다. 당시 일제의 민족말살정책에 소멸되어 가는 민족의식에 애끓는 심정으로 죽기 전 쓴 다섯 편의 시가 있는데 그 중 하나인 것이다.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시가 이렇게 쉽게 씌어지는 것은/부끄러운 일이다육첩방은 남의 나라/창밖에 밤비가 속살거리는데등불을 밝혀 어둠을 조금 내몰고/시대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는 최후의 나나는 나에게 작은 손을 내밀어/눈물과 위안으로 잡는 최초의 악수윤동주, ‘쉽게 씌어진 시’ 중 발췌 시인은 남의 나라에서, 조국의 무너짐 앞에서 이렇게 쉽게 시를 쓰고 있는 자신을 반성한다. 하지만 그저 암담하다고 좌절하지만은 않겠다고 한다. 등불을 밝히고 시대처럼 반드시 올 광복의 아침을 기다리겠다는 의지가 굳건하다. 절망의 시대에 슬픔과 부끄러움을 노래했지만 그 저변에는 끝까지 저항하며 자신에게 손을 내밀어 악수하며 새 시대에 대한 희망을 밝힌다.시 속의 화자가 추구하는 이상적 세계가 광복이었다면 필자가 바라마지 않았던 희망은 가시적으로 포장된 업적이 아니었다. 필자가 한 지역을 이끄는 단체장이 되기까지 수많은 실패와 좌절이 있었지만 용기를 잃지 않았다. 어떤 난관에서라도 도덕적 순결과 양심을 지키고 싶었다. 허울 좋은 평판보다 우리 지역, 소중한 우리 군민들에게 단돈 10원이라도 실질적인 도움을 주고 싶은 의지가 다였다.이렇게 겉으로는 쉽게 읊조리는 말일지언정 윤동주처럼 속으로는 기필코 쉽게 씌어질 수 없는 다짐이었다고 외치고 싶다. 다가올 내일에도 결코 쉽게 내딛지 않는 발걸음으로 “하나 되는 우리 청송에, 그 이상의 도약으로” 주민들 곁에 머물 거라고 약속한다.그 약속은 광복된 조국처럼 바로 이 자리에서 역사로 실현될 것이다.

2022-12-13

공 차는 소년들이 돌아온다

중학교 때 매년마다 ‘교내 구기대회’라는 학급대항 축구대회가 열렸다. 한 2주간 치러지는데 각 학년 결승전은 전교생이 다 나와서 관람하는 대형 이벤트였다. 구기대회 시즌이 되면 축구공의 PVC 냄새가 대기 중에 떠다녔다. 새벽에 저절로 눈이 떠져 텅 빈 운동장에 가 혼자 연습하고 등교했다. 아직도 코끝에 희미하게 남은 축구공 냄새를 감각하면 가슴이 뛴다.1997년, 1학년11반 대표로 첫 출전한 구기대회 1라운드 경기에서 나는 승부차기 실축이라는 대굴욕을 맛봐야 했다. 나 때문에 우리 반 탈락했다. 이를 갈고 칼을 갈고 발을 갈며 와신상담, 겨울방학 내내 볼만 찼다.이듬해 우리 2학년3반은 플레이메이커 정찬범, 포워드 오조원, 라이트윙어 박찬영, 풀백 윤상호, 그리고 중원과 사이드를 오가며 중앙 침투도 하는 윙어 겸 새도우 스트라이커 이병철까지, 전력이 꽤 탄탄했다.12강 1라운드, 5반과 붙었다. 수비 후 속공 상황에서 오조원이 중앙선 위로 치고 나가는데, 정찬범이 “병철아 같이 올라가줘” 외쳤다. 질풍처럼 달려 어느새 나란히 침투하는 중에 오조원이 내게 패스했고, 그걸 받아서는 페널티 에어리어 안쪽으로 드리블해 골키퍼 키를 살짝 넘기는 아웃사이드 칩킥으로 골을 넣었다. 구기대회 첫 골이었고, 2002년 안정환이 스코틀랜드와의 평가전에서 한 것보다 4년 앞선 감각적 플레이였다.다음 6강 라운드에서는 1반의 내 친구 박진형과 공격수와 골키퍼로 마주하는 운명의 장난에 괴로웠으나 승부 앞에 우정 따위는 없었다. 문전 혼전 중 수비 맞고 굴러 나온 세컨드 볼을 박진형 가랑이 사이로 넣으며 친구에게는 굴욕을, 우리 반에는 승리를 안기는 결승골을 기록했다.4강전, 아침부터 설사를 심하게 해 컨디션이 말이 아니었다. 연장전 끝에 0대 0으로 비겼고, ‘신이 만든 단두대’ 승부차기에 돌입했다. 1년 전 실축의 대굴욕이 PTSD가 될 법도 한데, 자신 있었다. 겨울방학 동안 수없이 연습한 그 슛을 내가 너희에게 보이리라. 1번 키커로 나서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오른발 인사이드킥으로 오른쪽 골망을 갈랐다.대망의 결승전. 8반의 이홍규는 별명이 ‘야신’이었다. 인류가 축구를 시작한 이래 최고의 골키퍼라는 러시아의 전설 레프 야신을 방불케 했다. 오직 골키퍼 덕분에 결승까지 올라온 8반이었다.전반전에 우리 반이 선제골을 넣었다. 아슬아슬한 살얼음 리드를 지키던 후반전 중반, 상대진영 오른쪽 코너에서 박찬영이 땅볼 패스를 했다. 페널티 에어리어 외곽 20미터 지점, 굴러온 공을 힘차게 찬 내 오른발이 불을 뿜었다.로켓처럼 날아간 공은 몸을 날린 야신의 장갑 위로 솟아 크로스바 밑동을 때리고는 그대로 골망을 흔들었다. 구기대회에 푸스카스상이 있다면 무조건 수상했을 골이었다.그해 가을, 전교생이 보는 앞에서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대표로 내가 상장을 받았는데 상장에 내 이름이 적힌 걸로 보아 아마도 내가 대회 MVP인 게 분명했다. 이듬해 3학년 대회에서도 두 골을 넣었는데, 한 골은 중앙선 부근에서 상대 골키퍼가 나온 걸 보고 롱슛을 한 게 들어갔고, 또 한 골은 후방에서부터 페널티 에어리어까지 폭풍 드리블을 해 강력한 땅볼슛으로 왼쪽 골망을 갈랐다. 이병철 문학평론가이자 시인. 낚시와 야구 등 활동적인 스포츠도 좋아하며,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요즘 손흥민이 그걸 좀 비슷하게 찬다. 그때 인근의 봉천여중 애들이 내가 축구하는 걸 보러 왔다. 남녀공학을 다녔라면 90년대 농구대잔치 연세대 우지원 인기는 그냥 능가했을 것이다.그 시절 축구는 우리들의 ‘세계’였고, 구기대회는 월드컵이었다. 나는 봉천중학교 구기대회에 통산 3회 출전해 7경기에서 5골을 기록하며 한 시대를 풍미한 스트라이커였다. 그 모든 골 장면들이 24년이 지난 지금도 머릿속에 생생하다. 우리나라가 1998 월드컵 네덜란드에게 5대0으로 진 새벽, 운동장에 가 울면서 공을 찼다. IMF의 설움과 겹쳐 더 서러웠다. 2002 월드컵에서 그 눈물은 환희로 바뀌었다.지난 한 10년은 동네 학교 운동장이 썰렁했다. 그 많던 공 차는 소년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궁금했다. 카타르 월드컵에서 대한민국 대표팀은 우리에게 짜릿한 감동과 환희를 줬다. 이제 공 차는 소년들 다시 돌아올 것이다. 손흥민과 황희찬, 이강인을 흉내 내느라 밥도 거르고 운동장을 뛰어다닐 것이다. 모두들 먼 훗날 추억할 골 하나씩 넣었으면 한다.

2022-12-13

후회를 포기하지 않는 방법

요즘 아주 작은 문제에도 많은 고민을 하는 편이다. 후회하기 싫어 평소 심사숙고 선택을 하는 편이지만 늘 옳은 선택을 할 순 없는 법이다. 가끔 잘못된 선택을 하는 바람에 후회가 크게 남을 때가 있다. 결국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기 위해 필요 이상으로 몰입하며 너무 많은 시간을 고민만 하며 살고 있는 나를 마주하게 된다.최근 아주 사소한 선택을 하는 과정에서 무수히 많은 어려움을 마주했다.오늘 점심은 가볍게 샐러드를 먹을 것인지, 냉장고에 남은 채소들을 꺼내어 된장찌개를 요리해 먹을 건지 냉장고 앞에 서서 점심시간이 지날 정도로 메뉴 고민을 한다. 또는 깔끔한 흰색 운동화를 살 건지 아님 겨울에 어울리는 블랙 색상 신발을 고를 것인지 쇼핑몰 상세페이지 화면에서 한 시간이 넘도록 오래 고민한다. 붕어빵 트럭 앞에서 슈크림을 먹을 것인지 팥을 먹을 것인지 필요 이상의 시간을 쏟으며 서성이는 등 아주 사소하고 단순한 선택에도 쉽게 결정하지 못하고 전전긍긍하는 나의 모습을 발견할 때마다 무언가 잘못을 저지른 것처럼 마음이 불편하다.두 가지 중 하나를 택하는 것도 어렵지만, 무언가를 택하기도 전에 혹시 후회가 남으면 어쩌지 하는 초조함은 결국 나의 마음을 좁고 초라하게 만든다.어느 때엔 인생에서 한두 번 있을까 말까한 중대한 선택지가 다가온다. 동시에 무엇을 선택하든 후회가 남을 것이라는, 지레 겁먹은 아이가 내 안에서 스멀스멀 일어나는 걸 직감으로 느낄 수 있다. 또는 어느 한 쪽을 선택하면 또 다른 한쪽을 잃게 된다는 두려움과 욕심 때문에 더욱이 선택의 기로에 서면 과도한 스트레스를 받고 만다. 그렇게 끝내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고, 가장 쉬운 포기라는 방법으로 도망을 친 적도 무수히 많다.햄릿 증후군이란 말이 있다. 햄릿 증후군이란 셰익스피어의 작품 ‘햄릿’에서 주인공 햄릿이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라며 선택을 결정하지 못하고 갈등하는 대사에서 나온 신조어다. 쉽게 말하면 선택 장애 또는 결정 장애라 보면 된다. 햄릿 증후군의 원인으로 많은 심리학자들은 부모의 선택과 결정에 의존하는 수동적인 유년기를 보낸 경우나 과도한 정보 속에서 결정을 미루는 습관이 버릇이 된 것으로 보기도 한다.우연히 유튜브 속에서 뇌를 연구하는 물리학자인 정재승 박사님의 영상을 보게 되었는데, 그곳에서 정재승 박사님은 후회를 두려워하는 이들은 선택을 하는 과정을 통해 만족이나 실패감을 많이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라며 이어 후회를 지나치게 두려워하지 않아야 한다고 말한다. 후회는 고등한 생물이 가지는 능력으로 뇌의 전전두엽에서 일어나는 일이므로, 때문에 인간이 후회하는 이유에는 다음에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게끔 뇌가 설계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한다.왠지 영상을 보며 안심이 됐다. 그러니 후회는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게끔 도와주는 뇌의 긍정적인 신호라고 생각해 보려 한다. 뇌의 신호를 거부하지 않고 오히려 받아들이다 보면 결국 후회를 수용하고 받아들여 더 나은 삶과 목표를 영유하는 성숙한 자세를 지닐 수 있을 것이다. 윤여진 2018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현재보다 미래가 기대되는 젊은 작가. 게임 슈퍼마리오에는 콧수염에 멜빵바지를 입은 배관공 마리오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악당인 쿠파에게서 납치된 피치공주를 구하기 위해 낯선 땅으로 모험을 떠나는 이야기다. 높은 스테이지로 갈수록 더욱 어려운 난이도의 맵이 존재하고, 마리오가 가진 목숨 또한 한정되어 있어 늘 스테이지 초반엔 자주 배드 엔딩을 맞이하게 된다. 마리오 앞에는 어떠한 장애물이 있는지 캐릭터가 나아가기 전까진 알 수 없지만 단순히 몇 번의 시도와 실패의 과정을 겪는다면 캐릭터가 어느 곳으로 건너가야 하는지 금방 알 수 있게 된다. 실패의 과정에서 후회는 자연스러운 것이고 오히려 후회로부터 파생된 경험의 노하우를 통해 결국 최종 목표인 공주에 이르게 된다. 그렇게 수많은 시도와 실패로 거듭된 경험으로 얻어낸 해피 엔딩은 무척 값지고 벅차다. 게임을 하는 것처럼 가볍고 흥미롭게, 가끔은 대범하게 나아갈 줄 아는 지혜와 힘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그러니 또다시 하나를 선택함으로써 다른 하나의 선택지를 잃어버린다고 해도, 내겐 시행착오로 인한 경험이 있고 후회를 딛고 나아가려는 발돋움이 있음을 안다. 후회로 인해 계속 과거를 향해 마음이 기운다면 유쾌하면서도 씩씩한 슈퍼마리오를 떠올려 본다.

2022-12-13

다중밀집 공간에서 압사사고 예방하려면

양성빈포항남부소방서 119구조구급센터 구조대원 소방장 코로나 거리두기 예방수칙이 완화됨에 따라서 다수 군중이 몰리는 행사와 모임이 늘어나고 있다. 2022년 10월 29일 이태원에서 일어난 참사는 핼러윈 데이를 즐기기 위해 다수의 인파가 몰리면서 300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참혹한 사건이다. 희생자와 유가족들에게 깊은 애도를 표하고 다시는 이러한 사건이 재발하지 않기를 바라며 군중밀집 ‘압사 사고’가 일어나는 원인과 예방대책에 관해서 얘기하고자 한다.먼저 군중밀집 ‘압사 사고’는 건물 붕괴 압사 사고와는 다르게 대개 공연이나 축제 행사 등에서 수많은 군중이 밀집해 있을 때, 여러 원인에 의해 넘어지고 깔리면서 압력에 눌려 사망하게 되는 사고이다. 국내에서도 여러 차례 압사 사고가 있었으며 대표적으로는 1960년 서울역에서 발생한 귀성객 압사 사고(사망자 31명, 부상자 40여명)와 2005년에 경북 상주시민운동장에서 발생한 콘서트 공연장 관중 압사 사고(사망자 11명, 부상자 162명)를 들 수 있다. 이 사고들도 특정한 장소에 인파가 집중적으로 몰리면서 대형 인명피해가 발생했다.이러한 군중밀집 ‘압사 사고’가 일어나는 것은 사람의 밀집도와 가장 관계가 깊다. 1㎡ 넓이 이내의 공간에서 3명 이하 있을 때는 걷는 데 지장이 없는 상태이고, 군중밀집이란 1㎡ 넓이 이내의 공간에 5명 이상이 들어있는 위험 임계밀도를 의미한다. 무엇보다도 인파가 밀집될 것으로 예상되는 곳에는 방문을 자제하는 것이 좋고, 압사 사고에 대한 위험을 사전에 생각하고, 항상 안전거리 확보에 유념해야 한다. 만약 예상치 못한 상황에 군중밀집 속에 있는 상태라면 스스로 보호하기 위해서 다음과 같은 예방법을 숙지해야 한다.우선, 주변 인파가 몰리는 느낌이 들면, 즉시 그 현장에서 빠져나와야 한다. 하지만 현장에서 빠져나오지 못했을 경우에는 자신의 양팔을 끼며 ‘ㄷ’자 형태를 만들어 가슴 앞 공간을 포함하여 15㎝ 이상 공간을 확보하여 최소한의 숨 쉴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좋다.그리고 등을 벽 또는 타인으로부터 압박받지 않는 고정된 공간에 기대어 최소한의 공간을 확보하는 행동으로 질식사 및 장기 손상의 위험에서 벗어나야 한다. 또한 불가피하게 넘어졌을 경우는 복부 쪽에 있는 장기를 보호하기 위해 태아가 배 속에 있을 때의 자세를 최대한 유지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또한 인파 속에서 빠져나가기 위해 절대 밀어선 안 된다. 많은 군중 속에서 한 사람이 넘어지면 도미노처럼 걷잡을 수 없이 쓰러지게 된다. 한번 넘어지게 되면 자신뿐만 아니라 주변인들도 위험에 빠질 수 있기 때문에 절대밀지 않고 천천히 이동하기를 기다려야 한다.그 누구도 이러한 참사를 예상하거나 발생하리라고는 상상조차 못 했을 것이다. 다시 한번 10.29 참사로 인해 희생된 이들의 넋을 위로하며 두 번 다시는 이런 안타까운 참사가 발생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2022-12-13

쟁취와 탈취

조현태 수필가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다지만 나는 아니라고 주장하는 사람 중에 필자도 속한 줄 알았다. 그런데 한국 대 브라질 월드컵 축구 중계방송을 보면서 느낀 감정이 묘했다. 한국 축구가 월드컵 16강에 들었다는 사실만으로도 대단한 감동인데 브라질 팀과의 경기에서 승리하기를 간절하게 바라고 있었으니 말이다.FIFA 랭킹 28위가 1위를 이길 수 있느냐고 묻는다면 아니라고 했을 터이다. 그런데, 막상 경기장에서 뛰는 선수들을 향해 응원하는 마음은 ‘이길 수 있다’를 전제로 하고 있었다. 붉은악마 응원단이 카타르까지 출장응원을 왜 했겠는가. 아마도 월드컵 축구경기 중계방송을 보는 한국 사람이면 거의가 붉은악마와 같은 생각으로 응원했지 않을까 싶다. 필자는 손흥민 선수가 얼굴을 다쳐서 마스크로 가리고 출전한 모습을 보고 그 투지력을 매우 듬직하게 여겼다. 또한 벤투 감독이 레드카드를 받아 선수들을 지휘하지 못하는 상황까지 극복하고 포르투갈 팀을 이겼으니 얼마나 자랑스러운가. 그때 혼자 중얼거렸다. 역시 대한민국은 극한상황을 참아내며 잘 극복하는 특질이 있는 나라라고 말이다. 경기 시작 5분경에 한 골을 내주면서 대단히 어려운 경기라고 생각하게 되지만 그 높은 벽을 무너뜨렸을 때 저절로 벌떡 일어나 박수를 치게 된다. 따라서 브라질과의 경기도 이러한 성적을 기대하면서 힘겨운 도전을 응원하게 된다. 무려 4골을 허용하고도 기어이 한 골을 만회하는 한국 축구선수들이 장하게만 보였다. 여러 측면에서 브라질 팀에 밀리는 것이 사실인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모습. 그 노력이 지금의 대한민국을 이끌어온 추진력이 아닐까 한다. ‘쟁취’라는 어휘가 딱 어울리는 경기였다.어찌 한국 축구가 하루아침에 16강에 진출했으랴. 눈물겨운 노력과 훈련이, 그리고 할 수 있다는 긍정과 투지력이 있어야 가능했으리라. 거기다가 온 국민이 한 마음으로 응원하는 그 저력도 무시할 수 없다.지금까지 대한민국이 세계 속에서 키워온 경제력, 문화력, 첨단기술력은 참으로 대단한 자본이 아닐 수 없다. 물론 정치력도 엄청난 성장을 했다. 갑자기 브라질을 이길 수 없듯이 영국이나 미국의 정치력을 능가하지는 못해도 좋다. 축구가 브라질에 도전하는 그 정신으로 정치선진국을 따라잡으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서두에서 언급한 ‘인간의 욕심’이란 돈이나 권력을 끝없이 탐하는 욕심을 뜻한다. 이 욕심은 상대를 긁어내리고 그 자리를 대신 차지하는 형식이다. 탈취에 불과하다. 그러나 월드컵은 상대보다 더 잘 해서 승리하는 것이다. 이름하여 쟁취가 아니겠는가.이제는 명예나 자존심에 욕심을 부려야 할 때다. 특별히 이쪽은 탈취에 빠지기 쉽다. 적어도 한국 역사에는 약탈도 당해봤고 서러움도, 업신여김도 당해봤다. 빈약한 자원에 허덕이며 역수출까지 했다. 이 모든 역경을 딛고 일어서게 된 과정이 쟁취이고 승리다. 바라건대 정치 분야도 노동 분야도 탈취보다는 온 국민이 응원하는 가운데 쟁취하기를 바란다.

2022-12-13

모두에게 안전한 겨울이 되기를

홍덕구 포스텍 소통과공론연구소 연구원 한해가 저물어가고 있다. 2022년은 유난히도 대형 사건사고가 많았던 해로 기억된다. 1월에는 광주 화정 아파트 건설현장 붕괴 사고로 여섯 명이 희생됐고, 평택 냉동창고 신축공사현장 화재로 세 명이 사망했다. 5월에는 울산 온산공단에 위치한 에쓰오일 공장 화재로 열 명이 희생됐으며, 7~8월에는 중부권 폭우로 열두 명이 사망하고, 세 명은 아직 시신조차 찾지 못했다. 9월에는 남부지방을 직격한 태풍 힌남노로 인해 포항에서만 여덟 명이 사망했고, 대전 아울렛 화재사고에서는 일곱 명이 희생되었다. 10월에는 SPL 제빵공장에서 기계끼임 사망사고가 발생하였고, 10월 29일에 발생한 이태원 참사에서는 무려 158명이 사망하고 197명의 부상자가 나왔다. 동해안 지역에서는 3월부터 산불이 자주 발생해 막대한 삼림피해와 재산피해를 냈으며, 11월에는 산불 취약지 예방 활동을 벌이던 소방헬기가 추락하여 탑승자 다섯 명이 모두 사망하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10월 말에 발생한 봉화 광산 붕괴사건의 매몰자 두 명이 극적으로 구조된 것이 그나마 작은 위안이었다.미국의 재난사회학자 레베카 솔닛은 ‘이 폐허를 응시하라’(펜타그램, 2012)라는 책에서 ‘재난 유토피아’라는 개념을 제시한다. 이는 자연 상태를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으로 본 홉스 이후의 대중관을 완전히 뒤엎은 것이다. 홉스 이후, 지배자들은 통제에서 벗어난 대중이 폭도로 변모할 것이라는 공포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러나 솔닛이 관찰한 바에 따르면, 재난 상황은 오히려 사람들에게 이타적으로 행동할 기회를 제공한다. 2005년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미국 남동부를 강타했을 때, 뉴올리언스는 일시적으로 무정부 상태가 되었다. 피해가 너무 커서 해당 지역의 모든 공공시스템이 마비된 것이다. 이 상황에서 살아남은 주민들은 서로를 돕기 시작했다. 아무도 지시하지 않았지만 자발적으로 나서서 위험에 처한 사람들을 구조하고, 남는 물자를 나눠주고, 집을 잃은 사람들을 돌봤다. 솔닛은 이러한 상황을 가리켜 ‘재난 유토피아’라고 명명하였다.우리에게도 재난 유토피아를 만들어낼 힘이 있다. 포항 시민들은 태풍 힌남노로 인해 발생한 고통을 함께 나누고 피해 복구에 힘을 모았다. 제빵공장에서 일어난 사망사고에 분노한 사람들은 특정 브랜드를 불매함으로써 피해자에게 공감을 표하고 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태원 참사의 아픔을 공유하고, 더 안전한 사회를 만들 것을 촉구하였다. 봉화 광산 붕괴사고의 생존자가 구조되기까지 온 국민이 마음을 모아 생환을 염원하였다. 재난 유토피아는 결국 개개인의 공감과 연대의 능력이 모여서 만들어진다. 안이 아니라 밖을 향하는 마음, 타인에 대한 선의, 함께 살아가는 동료 시민에 대한 존중,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의 마음이 넘치는 연말이 되기를 바란다. 내년에는 우리 사회가 더 안전해지기를, 더 따뜻해지기를 소망한다.

2022-12-13

테슬라 유치 장애물은 ‘강성노조와 법인세’

심충택 논설위원 최근 항만을 낀 국내 주요도시들이 아시아권 제2부지를 물색중인 테슬라 전기차 공장 유치를 위해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 이 중 영일만에 테슬라 전용공단을 조성하겠다는 계획을 제안한 포항시가 최강의 경쟁력을 갖춘 도시로 평가받고 있다. 포항은 영일만항 물류 인프라와 원활한 교통망에다 안정적인 철판 공급망을 갖춘 포스코, 전기차의 핵심부품인 2차전지(배터리) 클러스터, 포스텍의 연구기반까지 구축되어 있어 누가봐도 테슬라 공장입지로는 최적지다.포항시가 북구 흥해읍 용한리(영일만3·4일반산단지 우측)에 추진하는 테슬라 전용공단은 자동차를 선적할 항만과 바로 접해 있어 물류비 절감 측면에서 타도시를 압도하고 있다. 포항에는 이미 세계 기업가치 1위인 애플도 소프트웨어산업 인재와 스타트업 양성을 위해 국내 처음으로 들어와 있어 테슬라 CEO인 일론 머스크도 눈여겨볼 것이다.문제는 테슬라 유치를 위한 국가경쟁력이다. 국내기업들은 지난 5년간 문재인 정부를 거치면서 기회만 되면 서둘러 한국탈출에 나섰다. 최악의 노사분규와 높은 조세부담 때문이다. 지금 고용시장이 얼어붙고 실업자가 넘쳐나는 것도 기업의 해외이탈 탓이 크다. 민노총으로 대표되는 우리나라 노조는 지금 세계 최악이라는 소리를 듣고 있다.최근 16일간 민노총과 화물연대가 벌인 끔찍한 파업·폭력사태가 이를 여실히 대변하고 있다. 특히 현대자동차를 중심으로 한 우리나라 자동차노조는 연례행사처럼 파업을 벌이고 있어 테슬라도 이를 주목하고 있을 것이다. 홍준표 대구시장이 언급했듯이, 테슬라가 화물연대 파업을 보고도 한국에 올 엄두를 낼 수 있을지 우려된다. 테슬라는 노조와의 단체협약에 민감하기로 유명한 회사다.우리나라의 높은 법인세율도 기업의 조세경쟁률을 추락시킨다. 한국 법인세 최고세율(25%, 지방세를 합치면 27.5%)은 OECD 37개국의 평균(21.5%)을 훨씬 웃돈다. 최근 10년간 미국, 영국, 일본 등 20개국이 법인세를 내린 반면 문재인 정부만 거꾸로 세 부담을 늘린 결과다. 현재 여야가 법인세율 인하를 두고 협상을 벌이고 있지만, 민주당이 ‘초부자감세’라며 반대하고 있어 타결되기가 어렵다.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한국 법인세율이 대만과 무려 7.5%포인트나 차이가 나는데, 누가 대만에 가지 않고 우리나라로 오겠나”라고 한 말이 가슴에 박힌다.테슬라 공장의 한국유치는 국민이 모두 염원하는 일이다. 민주당과 민노총도 일반국민과 마찬가지일 것으로 생각하고 싶다. 높은 법인세율과 산업현장에서의 불법행위는 국가나 지자체의 기업유치 경쟁력을 크게 약화시킨다.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노사현장에서 갈등과 분쟁을 피할 순 없지만, 노조활동도 법과 원칙을 지키면서 해야 한다.그리고 법인세율 인하를 ‘재벌특혜’라는 시각으로 봐선 안 된다. 법인세는 법인을 구성하는 근로자와 주주, 자본가가 내는 세금이다. 한 개의 일자리라도 더 마련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지자체에 정치권과 강성노조가 찬물을 끼얹어서야 되겠나.

2022-12-13

동장군

우정구 논설위원 음력을 쓰는 동양에서는 입동(立冬)에서 대한(大寒)까지를 겨울로 본다. 소설(小雪)과 동지(冬至) 사이에 있는 대설(大雪)은 눈이 가장 많이 내린다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24절기 중 스물한번째 해당하는 대설 때부터 본격적인 추위가 시작된다. 올해는 지난주에 대설이 지났다.원래 역법(曆法)의 발상지며 기준 지점인 중국 화북지방의 계절적 특징을 따서 만든 것이 절기여서 우리나라 경우와 맞지 않은 때가 많다. 그러나 지금 이 시기가 겨울의 한가운데로 접어든 것임에는 틀림이 없다.11월까지만 해도 따뜻한 날씨가 이어져 오던 것이 이번 주 중반부터는 동장군(冬將軍)이 찾아 올 것이란 소식이다. 동장군은 겨울 장군이란 뜻으로 혹독한 겨울 추위를 의인화한 표현이다.이 말은 본래 1812년 나폴레옹의 러시아 원정이 실패하면서 유래된 것으로 전해져 있다. 영국의 언론이 나폴레옹이 러시아와의 전투에서 이기고 추위 때문에 후퇴한 것을 두고 “제너럴 프로스트(General Frost)”라 표현했다. 이를 일본이 동장군으로 번역을 했고, 우리가 그를 그대로 따온 것이 유래라 한다.러시아는 많은 나라로부터 군사적 공격을 받았으나 나폴레옹 전쟁처럼 러시아 지방의 혹독한 겨울 추위 때문에 외국군대를 물리친 역사가 여러번 있다. 동장군의 후덕을 단단히 본 것이다.지구 온난화의 영향으로 한국의 연평균 기온이 30년 전보다 1.6도가 상승했다고 한다. 인류가 탄소 배출량을 획기적으로 줄이지 못하면 80년 후에는 한반도에서 겨울이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경고까지 나와 우리를 걱정케 한다. 겨울을 겨울답게 하는 동장군의 출현은 아직은 지구촌이 건강함을 보여주는 징후라 생각하면 밉상스럽지만은 않다. /우정구(논설위원)

2022-12-13

동물원수족관법 개정의 의미

한 때 돌고래 태교 체험이 인기를 끈 적이 있었다. 돌고래가 내는 고주파 소리가 태아의 정서적 안정과 두뇌발달에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는 연구결과가 알려지면서 전국적인 붐이 일었다.제주도와 거제도 등 전국에 위치한 수족관(아쿠아리움)에서는 대대적인 돌고래 태교체험을 홍보했고, 영유아 등을 포함한 가족단위 이벤트도 연일 성황이었다. 산모 주변을 빙글빙글 돌며 재롱을 부리는 돌고래의 모습뿐만 아니라 태동의 신기한 반응을 확인한 산모들의 증언까지 겹치면서 돌고래는 그 후 태교의 아이콘으로 자리 잡았다.2010년 중반부터 생겨난 야생동물체험카페도 비슷한 흥행을 일으켰다. 미어캣과 너구리 등 귀여운 외모를 가진, 더욱이 한국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야생동물을 보고 만질 수 있는 체험카페는 이용자들의 인기에 힘입어 우후죽순 생겨나기 시작했다.당시 야생동물카페는 식품위생법상 ‘식품 접객 업소’로 분류돼 있어 일반음식점으로 신고하면 누구나 영업이 가능했다.야생동물에 대한 검역과정 뿐만 아니라 카페 위생규정 조차 없는 상황이었지만 이에 대한 인식은 희박했다.우리와 달리, OECD 소속 국가들은 돌고래와 야생동물을 보고 만지는 등 체험활동을 하지 못한다. 유럽연합과 영국, 미국, 독일 등은 동물을 전시·사육하는 공간에서의 동물보호와 복지에 관해 오랜 시간 고민해왔다. 동물원과 수족관을 단순히 즐기는 오락거리가 아닌, 생물다양성을 보전하고 연구·교육의 기능을 갖춘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다.영국의 경우, 1981년 동물원허가법(Zoo Licensing Act)을 제정해 정부 허가와 면허를 기반으로 동물원을 관리하고 있다.면허 역시 4년간만 유효하며 갱신을 위해서는 허가를 위한 일정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동시에 동물원 검사관 제도를 통해서 동물보호와 복지에 나서고 있다.장관이 지명, 또는 임명하는 검사관은 수의사나 교수 출신으로 환경식품농무부의 ‘현대 동물원 실무표준’ 등 동물복지 관련 기준의 엄격한 적용 여부를 확인한다.이들 대부분 국가들은 동물원과 수족관의 시설 및 최소사양기준은 법적으로 엄격하게 정하는 대신 동물 종별 관리기준은 협회가 제시하는 가이드라인을 따르고 있다. 대신 법과 가이드라인은 동물복지 5원칙을 기준으로 삼는다.배고픔과 목마름, 고통·질병·상해, 정상적 습성 표현, 두려움·스트레스, 환경·신체적 불편함. 즉, 전시·사육되는 동물들은 이 5가지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선언적인 의미라고 보이지만 동물복지 개념이 희박한 우리나라에서는 실제 사육 현장에서 잘 지켜지지 않는다.다행히 최근 기쁜 소식이 전해졌다. 지난 달 동물원 및 수족관의 관리에 관한 법률(이하, 동물원수족관법) 일부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는 것. 개정안은 2017년 이 법이 제정된 이후 가장 진보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먼저 누구나 등록만 하면 운영할 수 있는 동물원 또는 야생동물카페가 허가제로 바뀐다. 또 영국과 같이 전문검사관 제도가 도입된다. 논란이 됐던 수족관 내 고래의 보유도 금지된다.현재 운영되고 있는 수족관 외에 다른 곳에서는 새롭게 고래를 들여올 수 없다. 만지기와 먹이주기 등의 체험도 금지된다. 상세한 시행규칙은 조만간 제정돼 가이드라인으로 현실에 적용될 예정이라고 한다.그동안 숱한 동물들은 좁은 철창에서 정형행동(한 자리에서 같은 행동을 반복하거나 머리를 흔드는 이상행동)을 반복하거나 야생과 달리 이른 죽음을 맞았다. 동물원이란 공간이 태생부터 전시를 목적으로 설립됐기에, 동물복지가 법적 테두리로 들어오는 데 이렇게 오래 걸린 것은 아닐까. 정현미 작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물원수족관법이 이렇게 환영받는 데에는 야생동물의 참혹한 실태가 연일 보도되면서 많은 이들에게 각인된 인식 때문일 것이다. 하나의 생명체를 다루는 데에 최소한의 기준 은 마련되어야 한다는 공감대 말이다.인권의식이 높아지는 것과 동시에 동물보호와 복지에 관한 의식이 높아지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동시에 지속가능한 운영과 관리에 관한 요구도 높아질 것이다. 어린 시절 동물원의 추억이 다음 세대에도 그대로 이어질 것이라 보장은 이제 누구도 할 수 없게 됐다.기후변화 속에서 멸종 위기 동물들은 더욱 많아지고 있고, 자연의 위기를 인간의 위기로 받아들이는 인식도 높아졌다. 이제부터 현실 적용의 단계가 남아있다. 법 적용과정에서 좀 더 면밀하고 체계적인 과정을 거쳐 동물원과 수족관의 동물들이 최소한의 복지를 보장받기를 희망해본다.

2022-12-12

책에 대한 순수하고도 지독한 열망

지금, 우리는 책의 시대를 지나가고 있다. 한때 인류 지식 문명의 거의 전부였던 책은 이제는 더 이상 가장 유력한 지식 미디어가 아니다.석판에서 파피루스를 거쳐, 양피지, 종이로 옮겨온 무언가의 빈공간에 문자를 기록해온 인간의 활동들, 그리고 그것들을 겹쳐 한쪽을 묶은 책이라는 미디어가 인간에게 남겨준 문명적 수혜는 이제 전자문명이라는 다른 종류의 문명으로 전환되어 가고 있다.물론, 책의 시대가 저물어가고 있다고 해서, 책이 아예 소멸될 것이라는 진단은 맞지 않다. 책은 물성을 가지고 공간을 점유하며, 인간의 손에 뿌듯하게 들어오는 감각적 대상이면서, 또 그것이 담보하는 개념을 가리키는 대상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종이로 된 책을 아무도 보지 않는 시대가 온다고 하더라도 ‘책’은 사라지지 않는다.정보들이 무한히 연결되어 있는 하이퍼텍스트의 시대에도, 어떤 정보의 입구와 출구, 시작에서부터 한 없이 길게 늘어진 중간을 지나 끝에까지 이르는 개념으로서의 ‘책’은 여전히 우리에게 중요한 대상일 것이다.물론 이 생각이 인쇄 출판 기술 시대의 책과 함께 성장한 책-네이티브 인간의 전형적인 새로운 시대에 대한 두려움이나 감각 지체일 가능성은 남아 있지만, 그래도 인간이 인간이고, 태어나서 자라고 다 커서 소멸하는 선형적인 시간성 속에 놓여 있는 한, 인간은 시작과 끝이라는 감각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책의 감각이 주는 뿌듯함이란 바로 그 완결성의 감각과 밀접하게 관련되고, 아직 손가락 끝에 확실하게 걸리는 종이 뭉치의 감각과 관련되어 있다.그렇게 본다면, 인류 역사에 있어서 ‘책’이란 언제나 실제 대상으로서의 그것과는 다른 어떤 것으로서 존재해왔다. 특히 지금의 현대 사회에 바로 연결된 시민계급의 성장에 있어서 책, 그리고 책이 담보하는 지식과 문화는 귀족들의 ‘고귀한 몰취향’과 구분해 자기를 드러낼 수 있는 중요한 수단이었다. 필사된 귀중본들을 모으고 서재를 꾸미고 이를 전시해서 보여주는 책 수집가들이 등장해온 것이다.책은 분명 문자를 통해 표현된 지식을 담아내는 수단이지만, 그것과 별개로 자기의 고상한 취향을 증명해주는 것이자, 세상 어떤 보물보다도 귀중한 골동의 대상이기도 했다.‘보바리 부인’과 ‘감정 교육’ 등을 창작해 우리가 알고 있는 근대 문학 세계를 연 작가들 중 한 명인 귀스타브 플로베르는 문자와 책의 시대에 가장 어울리는 작가였다. 그는 10세 때부터 이미 소설을 쓰기 시작했으며, 15세 때는 책에 대한 수집가의 지독한 열망을 다룬 소설‘장서벽(Bibliomanie)’을 썼다.이 소설은 부르주아 계급의 책에 대한 사랑이 최고조에 이르렀던 시대를 풍자하는 정교한 풍자화다.소설 속에서 주인공인 쟈코모는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서점 주인인데, 그는 책을 파는 직업이면서, 책을 너무 사랑해서 팔지 못한다.박사학위를 받고 대주교가 되기 위해 그가 가장 아끼는 책을 사려는 수도사는 그에게 거액의 돈을 제시하며 그 책을 결국 사 간다. 쟈코모는 그로부터 그에 못지않게 귀한 책의 정보를 얻지만, 사러 가보니 그 책은 이미 팔려버렸고 경매에서 사고자 했던 라틴어 성경은 경쟁자에게 빼앗겼다.그 뒤, 그의 책을 뺏은 사람들은 하나씩 죽게 되고, 쟈코모는 경찰에 잡혀간다. 변호사는 그의 무죄를 증명하기 위해 쟈코모가 구하려고 했던 필사본 라틴어 성경을 한 권 더 구해오지만, 쟈코모는 자신이 그들을 죽이고 훔쳤다고 고백하고, 또 하나의 성경을 찢어버려 유일본으로 만든다. 쟈코모에게 책은 자신의 목숨이나 영혼보다도 더 중요한 것이었다. 바야흐로 책의 시대였던 것이다. /홍익대 교수 송민호

2022-12-12

적대적 공생의 정치

변창구 대구가톨릭대 교수·국제정치학 한국정치는 거대 양당의 ‘적대적 공생’이라는 점에서 이율배반(二律背反)적이다. 보수와 진보의 정치적 갈등이 심화될수록 양당 내부에서는 강경파가 득세함으로써 대결은 더욱 치열해진다. 겉으로는 서로의 증오가 폭발할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상호 이익을 지켜주는 ‘은폐된 공생관계’에 있다.‘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의 적대적 공생은 특수한 한국정치문화의 산물이다. 정치구조적 측면에서 볼 때 한국의 정당체제는 보수와 진보의 전통을 잇는 양대 정당의 독과점 정치구조이다. 한 때 유력한 정치지도자를 중심으로 제3당이 부상한 경우도 있었지만, 양당 중심의 정치구조를 근본적으로 해체시키지는 못했다. 양당의 많은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다른 대안이 없다는 현실이 유권자들의 정치혐오를 증대시키고 있다.양당의 적대적 공생은 이분법적 정치문화로 인해 더욱 공고해졌다. 한국정치는 냉전과 6·25, 남·북한 간의 끝없는 대치 속에서 선악을 나누는 ‘정치적 흑백론’이 지배하게 되었다.‘나는 천사, 당신은 악마’라는 독선적이고 비민주적인 정치의식이 우리의 정치를 갈등과 대결로 내몰았다. 그 결과 각 진영에서는 극단적 성향의 정치팬덤(fandom)들이 득세하게 되었는데, 이는 동시에 두 진영 간 적대적 대결을 더욱 심화시키는 요인이 되었다.적대적 공생관계는 여야 정당에게 정치적 이익을 제공해 준다. 야당은 국정을 책임진 여당의 무능과 실정을 공격할 수 있고, 여당은 그 책임을 국회를 장악하고 있는 야당 탓으로 돌릴 수 있다.야당은 이태원 참사에 대한 정부의 책임을 집중 공격함으로써 사법 리스크로 흔들리고 있는 이재명 대표를 지키려하고, 여당은 야당 대표를 대장동사건의 몸통으로 각인시킴으로써 윤석열 대통령의 낮은 지지율과 부인 및 처가 리스크에서 벗어나려고 한다. 두 정당은 ‘전쟁’을 통해서 서로의 ‘생존’을 지켜내고 있는 것이다.이처럼 적대적 공생의 최대 수혜자는 거대 양당의 정치인들이고, 최대 피해자는 국민이다. 적대적 공생의 정치는 증오를 먹고 살기 때문에 양당은 모든 역량과 자원을 소모적 정쟁에 투입한다. 이 때 수세에 몰린 야당은 자신을 지지하는 시민단체들과 연대하여 권력투쟁의 전선을 확대해나가는 반면, 권력을 장악한 정부여당은 야당과의 협치를 거부하고 야당 인사들에 대한 비리 수사에 박차를 가한다. 결국 정치가 실종됨으로써 국민의 고통만 커지게 된다.이제 우리 정치도 소모적이고 파괴적인 ‘적대적 공생’의 악순환을 끊고, 생산적이고 건설적인 ‘우호적 상생’의 길을 찾아야 한다. 이를 위해 장기적으로는 독과점 정치구조의 혁신을 모색해야하며, 단기적으로는 정치인과 국민의 정치의식개혁이 시급하다.양당의 주도세력이 교조주의자에서 합리주의자로 대체될 때 비로소 정치가 살아날 수 있다. 특히 정치팬덤들은 자신들의 과격한 행동 때문에 상대 진영 팬덤들의 입지가 더욱 강고해진다는 역설을 깨달아야 한다. 주권자인 국민의 이성 결핍은 민주정치의 반동화를 초래한다.

2022-12-12

‘過而不改’, 국민만 죽는다

홍석봉 정치에디터 한해의 끝이다. 매년 이맘때면 교수신문에서 올해의 사자성어를 발표한다. 한해의 의미를 한 단어로 정리해 많은 이들의 공감대를 형성한다. 대학교수들이 2022년엔 ‘잘못을 하고도 고치지 않는다’는 뜻의 ‘과이불개(過而不改)’를 올해의 사자성어로 꼽았다.과이불개는 논어 ‘위령공편’, ‘과이불개 시위과의(過而不改 是謂過矣)’에 나오는 말이다. “잘못하고도 고치지 않는 것, 이것을 잘못이라 한다”는 뜻이다.“여당이나 야당 할 것 없이 잘못이 드러나면 ‘이전 정부는 더 잘못했다’ 혹은 ‘야당 탄압’이라고 말하고 도무지 고칠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 과이불개를 꼽은 이유다.한국 정치의 후진성과 ‘네 탓 정치’를 비판한 말이다. 교수들은 “잘못하고 뉘우침과 개선이 없는 현실에 비통함마저 느낀다”고 했다. 진영 간 이념 갈등으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순간 패배자가 될 것 같은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일단 우기고 보는 풍조가 만연하다는 지적도 나왔다.1992년 창간한 교수신문은 2001년부터 매년 연말 ‘올해의 사자성어’를 뽑아 발표했다. 2001년 ‘오리무중(五里霧中)’을 시작으로 2021년 ‘묘서동처(猫鼠同處)’까지 나왔다. 과이불개는 22번째 선정된 사자성어다. 오늘의 사자성어로 선정된 단어들은 그해를 상징하고, 그해를 대표하는 축약된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우리 사회의 현실을 풍자하고 교훈적 의미도 강하다.연말 정국이 막장으로 치닫고 있다. 야당이 행안부 장관 해임건의안을 강행 처리한 때문이다. 야당은 탄핵소추까지 밀어붙일 태세다. 여당도 양보는 없다. 여야가 민생은 뒷전인채 정파싸움으로 날을 새운다. 서로 네 탓만 한다. ‘과이불개’하면 국민만 죽어난다./홍석봉(정치에디터)

2022-12-12

변화하는 생산방식과 품질관리

김종찬 포스코인재창조원 교수·컨설턴트 모래톱 켜켜이 하얀 포말을 그리며 파도가 부서지던 해변엔 하얀 증기가 하늘에 닿을듯 피어오르는 제철소가 들어서고, 운치 있고 고즈넉한 오솔길이 신작로로 변하고, 무엇보다 술만 마시면 골목길 들어서며 유행가를 부르던 꿈이 없던 청년들이 공장으로 들어간 사건은 엄청난 변화의 시작이었다. 그 시절에는 기계가 쇠를 가공할 때 일어나는 불꽃이 애국가 장면에 클로즈업 돼 가슴 벅찬 감동을 주었고, 숙련된 작업자의 손끝에서 품질이 만들어지고, 부지런함은 생산성 보증의 바로미터였다. 그 시절로부터 반세기를 지나온 이제는 생산방식과 품질관리가 변해야 하는 변곡점에 다다랐다.사람이 도구를 사용한다든지 손으로 기계를 조작하면서 가공, 조립을 하던 시대에는 IE적 접근인 동작 연구나 표준작업시간의 설정 등으로 생산성을 개선하는 기법이 크게 효과를 발휘했다. 그리고 사람에 의한 수작업은 시간의 흐름을 변수로 놓고 분석하면 통제되지 않는 결과를 알 수 있어 통계 이론에 근거한 품질관리(SQC)가 상당히 도움이 되었다.그런데 반도체 같은 첨단산업을 넘어 가공, 조립산업에서도 자동화에 의한 효율이 진행되어 설비에 대한 의존이 높아짐에 따라 수작업을 전제로 한 전통적인 생산 품질관리의 사고방식만으로는 현상에 대응해 나갈 수 없게 되었다. 기계의 수동 조작, 재료의 해체 등 단순 반복작업에서부터 최근 오퍼레이터의 업무는 설비의 운전, 유지, 감시로 급속히 이동하고 있다. 그러한 결과로 제조 현장에서는 전통적인 숙련공에 요구되는 정확한 동작이나 빠른 손놀림, 숙련에 대한 기대가 변해가고 있다 하겠다.어쨌든 조립이나 준비 교체 등의 수작업 자동화를 더욱 발전시키고, 제조업에서의 설비 의존은 더욱 진행될 것이며 설비 관리는 한층 더 심화된 결과를 요구할 것이다. 자동화가 진행되어 설비가 바르게 운전, 조작, 유지, 관리되어 항상 올바르게 기능을 발휘한다고 가정하면 기계는 잘못이나 오차를 발생하지 않기 때문에 고장, 불량은 ‘0’가 될 것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현실은 많은 공장에서 매일 고장이나 불량이 발생하고 있다. 언뜻 보면 이들 현상은 뭔가 통계적으로 의미 있는 확률 분포를 따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요인의 관계를 면밀히 해석해 보면 현상을 일으키는 요인, 즉, 설비의 올바른 유지, 관리가 되어 있지 않다는 걸 알 수 있다.설비의 기능과 성능의 변화로 생산에 영향과 불량을 일으키고 있는데 자동화된 설비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표면적으로는 사람이 수작업에 의존하고 있던 때와 마찬가지로 고장, 불량의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자동화가 진전된 공장에서는 어떤 공정의 아웃풋으로서 만들어 낸 제품의 품질을 이제까지와 마찬가지로 통계적으로 고찰해 본다고 해도 거의 의미가 없다. 불량이라는 현상에 대한 의논보다도 오히려 불량을 발생시키는 설비의 요인은 무엇인가를 논리적이고 공학적으로 의논하고 불량을 발생시킨 요인까지 추적하는 것이 필요하다. 자동화가 주는 이익은 아이러니하게도 사람이 손끝으로 관리하는 설비의 유지에 쏟는 땀이 결정을 한다는 사실이다.

2022-12-12

손잡고 더불어 다문화와 함께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겨울의 초입을 알리는듯 반짝추위가 시작됐지만, 연말이라 그런지 사람들의 발길은 분주하기만 하다. 불과 20여일밖에 남지 않은 한 해를 마무리하고 새해를 맞이해야 하기에, 새로운 계획과 목표를 정하고 예산을 짜며 운영방안을 모색하느라 너나없이 바빠지기도 한다. 또한 미뤘거나 미처 행동으로 옮기지 못했던 일들을 최소한 연내에 실행하고 매듭지어야 하기에 더더욱 다급해지는지도 모른다. 결국 모든 일들은 자신이 하기에 달렸지만, 사소한 일 하나라도 소홀히 대하고 싶지 않은 것이 사람들의 보편적인 마음자세일 것이다. 더욱이 환경과 문화가 다른 상황에서는 그러한 부분이 한껏 중시되고 민감해질 수가 있을 것이다. 그러한 측면에서 다문화가족에 대한 이질감과 문화적인 견해차 등은 사회적으로도 상당히 긴요한 사안이라고 할 수 있다.이른바 다문화사회란 한 사회 안에서 다른 인종, 민족, 종교, 계급, 성 등에 따른 다양한 문화와 가치를 존중하는 다인종·다양성의 사회를 뜻한다. 20세기 후반부터 자본과 노동의 세계화, 교통 및 정보통신의 발달에 따른 글로벌화의 추세로 국가 간 인구 이동과 교류가 증가하면서 다문화시대에 돌입하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도 외국인 근로자, 국제결혼 여성, 외국인 가정의 자녀 등에 이르기까지 국내 체류 외국인의 구성이 다양해지고 있으며, 그 수도 1990년에 5만명 수준에서 현재 약 215만명으로 국내 총인구의 4.2%를 차지할 정도로 꾸준한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포항지역도 예외가 아니라서 다문화가정 세대수가 최근 2천100세대를 넘어서는 등 다양한 인종과 문화 공존의 문제해결을 위한 대책 마련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이러한 차제에 최근 열린 제12회 포항시다문화축제는 코로나19로 인해 3년만에 재개됐지만 다문화가족의 화합을 다지고 시민과 함께하는 어울림 마당으로서 손색이 없었다. 각 나라별 전통놀이를 체험하고 페이스 페인팅, 요술풍선 만들기, 마술체험, 다문화 포토존 등의 체험코너와 난타 공연, 무용과 합창, 독특한 의상과 댄싱, 웃음과 재미를 더하는 명랑운동회 등의 프로그램은, 참여한 가족들에게 코로나의 갑갑함을 일순간에 떨쳐내고 흥겨움과 유쾌함을 안겨주기에 충분한 것으로 보였다. 다양성의 조화가 보여주는 아름다움과 소통의 공감 속에 배려와 만남의 소중함이 어우러지는 것 같았다. 그 같은 자리에 자원봉사자들의 정성스런 손길이 더해져 한결 다채롭고 넉넉했었는데, 특히 포항제철소 사진봉사단원들이 행사장에서 신청가족의 다양한 프로필사진과 스냅사진을 촬영하고 즉석에서 인화, 미니앨범에 넣어 추억을 선물해주는 재능봉사활동으로 주위의 큰 호응을 받았다.다문화현상은 이제 더 이상 편견이나 갈등, 차별이 아니라고 본다. 글로벌시대의 사회를 다양하고 풍요롭게 만드는 동시에 개방성, 창의성이 증진되는 상생의 공동체로서 따뜻한 시선과 연대의식을 가져야 할 것이다. 손잡고 더불어 호흡하는 동행과 포용의 걸음을 함께 내디딜 때, 진정한 어울림의 다문화 꽃이 피어날 것이다.

2022-12-12

국립근대미술관 건립을 통해 문화로 빛날 달성군

최재훈 대구 달성군수 프랑스의 오르세미술관, 일본의 도쿄국립근대미술관 및 교토국립근대미술관, 영국의 테이트브리튼.이들의 특징은 모두 고대와 현대의 사이인 근대미술의 역사를 담은 콘텐츠가 가득한 곳이라는 점이다.그러나 한국에는 국립중앙박물관, 국립현대미술관은 있지만 근대미술관은 부재해 있다.고대-근대-현대에 이어지는 시대별 문화를 정립하고 각 미술관마다 전문적인 역할을 맡기 위해서는 국립근대미술관 건립이 필수적이다. 특히 한국의 근대란 관습적인 조선시대에서 일제강점기라는 격변적인 시대를 지나 일본문화권의 강력한 지배하에 맞서 싸운 작가들이 살았던 시대이다. 이에 어떤 시기보다 정신적인 억압의 아픔을 극복하고 예술인으로서 작품으로 승화해 뛰어난 기량을 보인다. 하지만 이렇게 소중한 근대미술품은 전쟁과 대립의 시절을 겪었고 이후에도 제대로 발굴되지 못한 채 많은 문화가 소실돼 있는 상태라 하루빨리 보존이 필요한 상태이다. 지금까지는 소수의 학자들이 근대 미술에 대해 연구해왔지만 아카이브를 구축하고 더 이상 소실되지 않도록 보전해야 한다.그렇다면, 한국미술계에 중요한 국립근대미술관은 어디에 지어야 할까.당연히 국내에서 근대 미술에 대한 역사적 인식이 높은 곳이어야 할 것이다. 대구는 오랜 근대미술에 대한 역사를 지니고 서동진, 이인성, 이쾌대 등 수많은 근대 작가들을 포용한 곳이다. 또한, 지방 문화 분권에 대한 국정과제와 외국의 사례에서도 살펴볼 수 있듯이 균형적인 발전을 위해서도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곳이다. 지역의 다양한 장소에 중요한 미술사를 연구하고 전시하는 공간을 구성함으로써 전 국민 모두가 함께 문화를 즐길 수 있기에 더 의의가 있다.한국전쟁의 피난지로서 대구는 여러 예술인들이 모여 개인전을 열고 1952년 대구화우회를 창립하기도 했다. 대구 근대 미술전, 대구미술전람회 등을 열어 지속적으로 근대 미술에 대한 노력을 아끼지 않는 곳이다. 한국 근대 미술에 큰 획을 그은 화가인 이인성의 예술 정신을 기리고 미술 발전의 기여를 위해 매년 대구미술관에서 ‘이인성 미술상’의 수상자를 선정하고 있기도 하다.근대 미술의 역사가 가득 향유된 대구에 국립근대미술관이 지어지는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은 것이다.만약 대구에 당장의 유수한 미술품들을 보전할 수 있는 장소가 있다면 어디일까. 감히 대구교도소 후적지가 최적의 장소라 단언해 본다.윤석열 정부의 구(舊) 경북도청 후적지 문화예술허브 조성의 방향성을 조금 바꿔 그보다 시민들이 교통에 편리하게 접근하고 무엇보다 열렬히 콘텐츠를 지속적으로 발굴시키는데 관심을 가지고 지속적으로 후원할 수 있는 달성군이 어떨까 하는 것이다.대구의 근대시대 문화 아이템은 중구의 김광석거리, 근대골목 등의 다양한 관광 상품을 통해 문화 시설이 다양해졌다. 이에 달성군의 근대미술관 건립을 통해 수성구의 간송미술관, 대구미술관과 함께 대구 관광 트라이앵글 특구가 되어 시각예술 클러스터를 조성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대구교도소후적지는 근대미술관뿐만 아니라 문화체험시설이나 공원 등 복합문화시설로 꾸며져 많은 시민들이 문화를 향유할 수 있는 곳으로 탈바꿈 할 공간이다. 근대미술관의 건립을 통해 비단 달성군민뿐만 아니라 대구 시민들의 문화의식 향상과 지방분권에 대한 긍정적인 결과물로 보이게 될 것이다.국립근대미술관과 같은 거대한 공간의 조성을 위해서라면 지자체의 후원이 꼭 필요하다. 달성군은 여러 근대 작가들의 작품을 연구하고 애정을 가지며 아낌없이 내어줄 준비가 돼 있다.국립근대미술관 건립에 대한 기본구상과 타당성 조사를 통해 지속적으로 선진 사례를 검토하고 군민들과 의회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의견을 수렴해 반영할 생각이다.이와 함께 고(故) 이건희 회장의 기증품에서 쏟아진 근대미술관에 대한 관심을 살려 적극적으로 특화된 사업여건을 분석하고 전략을 마련해 건립 가능성을 보일까한다.아울러 우리 달성군은 대구교도소 후적지를 시작으로 구(舊) 화원운전면허시험장-사문진나루터-달성습지-디아크로 이어지는 S자형 관광벨트를 구축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근대미술관을 시작으로 대구 관광에 대한 새로운 지평선을 열 것이다. 자연스럽게 다양한 콘텐츠로 꾸며진 대구와 달성군에 많은 관광객들이 찾아올 것이며, 지역 청년들의 일자리 창출에도 기여할 수 있지 않을까.

2022-12-11

황금 양모의 전설 양자리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장화홍련전’이나 ‘신데렐라’처럼 계모에게 구박과 홀대를 받는 아이들을 소재로 한 이야기가 많다. 이번 이야기도 그렇다.아테네 북쪽 아타마스 왕이 다스리는 보이오티아라는 나라가 있었다. 왕비 네펠레(구름의 정령) 사이에 왕자 프릭소스와 공주 헬레가 생겼지만, 아타마스 왕이 네펠레를 쫒아버리고 이노라는 여인을 새 왕비로 맞이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이노는 네펠레가 낳은 아이들을 맡아 키웠으나, 친아들이 생기자 남매를 구박하기 시작한다. 결국엔 도를 넘어 왕자와 공주를 죽이기 위한 음모를 꾸민다.이노는 이듬해 논밭에 뿌릴 곡물을 몰래 불로 익혀 놓았다. 그 사실을 알 리 없는 사람들은 봄이 되자 씨앗을 뿌렸으나 익은 종자에서 싹이 돋아날 리 없었다. 당황한 아마타스 왕이 델포이 신전에서 신탁을 청했더니, 왕자와 공주 두 아이를 신전 제물로 바치면 싹이 돋을 것이라는 답이 나왔다. 이 역시 계모 이노가 신전 사제에게 돈을 주고 꾸민 거짓이었다.아무리 신탁이라고 해도 자신의 아들딸을 희생시킬 부모는 없다. 왕이 움직이지 않자 계모 이노는 신탁 내용을 나라에 퍼트렸다. 그러자 사람들은 왕에게 항의하기 시작했다. 왕은 어쩔 수 없이 나라를 안정시키고자 힘든 결정을 내린다. 결국 제단에 바쳐진 프릭소스와 헬레가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게 되는 순간이 다가왔다. 그런데 갑자기 구름이 몰려와 신전을 에워싸면서 한 치 앞도 보이지 않게 되었다. 그렇게 얼마가 지나 구름이 걷히고 보니 신전 제단에 묶여 있던 왕자와 공주가 사라졌다. 어머니 사랑이 일으킨 기적이었다.두 남매를 지켜보던 어머니 네펠레는 아이들이 위험에 처하자 제우스신에게 남매를 도울 수 있게 해달라고 애원했다. 제우스는 전령신 헤르메스에게 부탁해 하늘을 달리는 황금양을 얻어 네펠레에게 주었다. 구름의 요정이었던 네펠레는 그 덕에 신전으로 달려가 운무를 일으켜 두 아이를 숨긴 채 하늘로 끌어올릴 수 있었다. 그리고 헤르메스에게 받은 황금양 등에 아이들을 태워, 당시 세상의 끝이라 여겼던 동쪽 끝 아득히 먼 콜키스로 날아가게 했다. 그러나 가는 도중 바다를 건너야 했다. 이때 넓게 펼쳐진 바다를 내려다보던 여동생 헬레가 현기증을 일으켜 바다로 떨어지고 말았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오빠 프릭소스도 어쩌지 못했다. 동생은 까마득한 점이 되어 포말을 일으켰고, 결국 파도의 먹이가 되었다. 그래서 훗날 사람들은 동생 헬레가 떨어진 바다를 헬레스폰토스 해협이라 부르며 안타까워했다.혼자가 된 프릭소스는 흑해를 건너 콜키스에 도착하자 그곳 왕 아이에테스가 따뜻하게 맞아주었다. 프릭소스는 신의 계시를 받아 황금 숫양을 제우스 제단에 바쳤고, 아이에테스에게는 황금 가죽을 주었다. 왕은 기뻐하여 황금 가죽을 떡갈나무에 걸어놓고 밤에도 잠을 자지 않는 독룡에게 지키도록 했다. 제우스는 황금 숫양을 가상히 여겨 사람들이 오래도록 기억하게끔 별자리로 만들어주었다.프릭소스는 콜키스의 공주 카리오페와 결혼했지만, 행복은 오래가지 않았다. 향수병이 생긴 것이다. 고향 그리스를 그리워하다가 젊은 나이에 요절하고 만다. 이래저래 불운한 프릭소스 삶이었다. ‘친아버지 도끼질하는데 가지 말고, 의붓아버지 떡치는데 가라’라는 말이 새삼스럽지 않게 들리는 신화다.양자리와 관련된 신화는 여기까지다. 그렇지만 이 신화는 유명한 ‘이아손과 아르고호의 대모험’에서 바로 이 황금 가죽을 얻기 위해 떠나는 새로운 영웅들이 탄생하는 시점이다. /박필우 스토리텔러

2022-12-11

대북 관계로 재미 볼 때는 지났다

김진국 고문 쌍방울이 북한에 수백만 달러를 몰래 전달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경기도 지사 시절 쌍방울이 북한과의 통로 역할을 했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지난달에는 정진석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이 이것을 ‘문재인 정부 차원의 대북 송금’이라고 주장했다. 그러자 윤건영 민주당 의원은 “문재인 정부는 북한에 1원 한 장 준 적이 없다”라면서 “백번 천번 양보해 쌍방울이 검찰 주장대로 북한에 정말 돈을 줬다 하더라도, 그게 대체 왜 문재인 정부 차원의 ‘공작’이란 말이냐”라고 반박했다. 이재명 대표의 문제에 문재인 전 대통령을 끌어들이지 말라는 항변으로 들린다.진실은 재판을 통해 드러날 것이다. 쌍방울이 아니라도 북한으로 달러가 흘러 들어가는 문제는 심각하다. 핵과 미사일이 되는 자금이기 때문이다. 한때 좌우를 막론하고 정치권이 북한과의 우호 관계를 경쟁하던 시절이 있었다. 대통령 후보가 되기 전 북한을 다녀오는 걸 통과의례로 여겼다. 대통령의 업적으로 가장 욕심을 낸 것도 남북관계다. 그럴수록 북한은 대가를 요구했다. 정치인뿐 아니다. 민간 접촉에도 돈을 요구했다. 북한 입국 비자가 달러였다.남북 화해의 상징인 금강산 관광이나 개성공단도 북한의 달러박스였다. 김대중 정부 때 ‘햇볕정책’ 세례를 받았다. 조건 없이 포용하면 상대도 우리 손을 잡을 거라고 믿었다. 그러나 북한은 화해 정책을 이용해 핵 개발에 몰두했다. 입으로는 ‘비핵화’를 외치면서 사실상 핵무기 보유국이 됐다. 미사일은 미국 전역을 위협할 정도로 발전했다.북한의 핵무기는 누구를 위협하나. 정말 자위용으로 갖고만 있겠다는 건가. 지난 4월 김정은은 “우리의 핵이 전쟁 방지라는 하나의 사명에만 속박돼 있을 수 없다”라고 천명했다. 체제 방어용이 아니라 한국을 향한 공격용이고, 적화통일의 수단이라는 생각을 드러낸 것이다. 북한 핵무기는 우리를 겨냥한 게 아니라거나, 통일되면 우리 것이라는 주장은 순진하고 어리석은 몽상에 불과했다.지금의 눈으로 과거를 따지기는 어렵다. 그때는 그 당시의 정세가 있었다. 북방정책은 우리의 외교 관계를 튼튼하게 했고, 화해 정책으로 대북 관계의 주도권을 쥐었다. 선의를 악용한 건 북한 정권이다. 화해 제의를 핵 개발 자금과 시간을 버는 데 이용했다. 그러나 이제 달라졌다. 생존을 위해서도 북한의 전쟁 준비 자금은 철저히 차단해야 한다. 정파를 뛰어넘어 생존의 문제다.올 한해 북한이 쏜 미사일과 핵 실험 비용을 1조 원 정도로 추정한다. 한국은행 기준 지난해 북한의 예산이 91.2억 달러다. 전체 예산의 10분의 1을 미사일로 쏜 셈이다.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에 전용할 수 있는 전략물자 수입 의존도가 2018년 96%에 이르렀다는 한국국방연구원 보고가 있다.유엔 제재의 가장 큰 구멍은 중국이다. 니키 헤일리 전 유엔주재 미국대사는 중국과 러시아는 대북 제재 해제를, 한국은 예외를 요구한다고 말했다. 유엔 제재의 구멍이 중국·러시아 다음으로 우리라는 의미다. 물론 남북 대화를 유지하기 위해 불가피한 측면도 있다. 그러나 정치적 계산과 개인적 탐욕을 위해 우리를 겨냥한 총알을 제공하는 것은 막아야 한다.유엔이 금지한 일이 계속됐다. 한국 유조선이 북한에 매각됐다. 해상에서 북한 배에 석유를 옮겨 실어준 한국 배, 북한 석탄과 선철을 바다에서 몰래 옮겨 실은 한국 배가 적발됐다. 북한을 방문할 때마다 거액의 통행세를 지급하고, 컴퓨터 등 수출금지 품목을 휴대 물품으로 들고 가 ‘분실’하고 나오는 일이 허다했다. 코인의 해킹과 자금 세탁의 통로로 한국이 이용된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최근에는 10조 원에 이르는 수상한 해외 송금이 수사받고 있다. 북한이 연루된 건 아닌지 조사해야 한다.대북 관계가 정치적으로 이용되거나, 무분별한 돈벌이 수단이 되어선 곤란하다. 남북관계로 재미 볼 때는 지났다. 생존의 문제다. 우리 생명과 재산을 위협할 북한의 핵과 미사일 개발을 돕는 것은 이적행위다. 달러는 전용될 게 뻔하다. 물품도 확실한 검증이 필요하다. 정치적 이해를 뛰어넘어 초당적으로 협력해야 할 때다. /본사 고문김진국△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중앙SUNDAY 고문,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2-12-11

부모의 자격

김규종 경북대 교수 35년 전 분단 서도이칠란트로 유학을 떠난 기억이 아직 생생하다. 난생처음 타본 비행기가 알래스카의 앵커리지를 경유(經由)해 북극항로로 프랑크푸르트 공항에 도착한 일을 잊은 적이 없다. 당시 한국 여권의 결혼 관련 질문은 두 가지였다. 미혼이냐 기혼이냐, 그것이 전부였다. 나 역시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기에 당연하다 여겼다. 그런데 도이칠란트에 가보니 당연한 것이 당연지사가 아니었다. 문화적 충격이 쿵, 하고 다가왔다.유럽의 유일 분단국가 서도이칠란트의 여권에 기록된 결혼 관련 질문은 다채로웠다. 미혼, 기혼, 이혼, 별거, 동거, 미혼모, 미혼부 같은 여러 항목이 기재돼 있었다. 당시 나로서는 경천동지할 일이었고, 전연 이해할 수 없는 요지경의 세상이었다. 이혼조차 낯선 것인데, 거기에 별거와 동거, 남편과 아내가 없는 미혼모와 미혼부라니, 상상을 초월하는 세계가 같은 하늘 같은 시간에 버젓하게 자리하고 있었다.서론이 길어진 까닭은 미국의 CNN 방송이 지적한 한국의 저출생 국가 면모에 대한 보도 때문이다. 주지하듯 대한민국의 출생률은 지난 3분기 기준 0.79명이다. 안정적인 인구 유지에 필요한 2.1명의 거의 3분의 1 수준이다. 미국의 1.6명이나 일본의 1.3명보다도 현저하게 낮은 출생률의 원인이 무엇인지를 짚은 CNN의 분석이 폐부를 찔러왔다. 지난 15년 동안 225조 원, 해마다 15조 원의 막대한 예산을 퍼붓고도 실패한 저출생의 원인을 지적한 게다.CNN 방송 보도에 내가 크게 공감한 까닭은 ‘부모의 자격’에 관한 지적 때문이다. “한국에서 아기를 갖는 것은 젊은 이성 신혼부부에게는 기대하는 일이지만, 그 외의 가정은 자녀를 기를 자격이 없다. 미혼여성에겐 체외수정이 제공되지 않고, 동성결혼은 인정하지 않으며, 사실혼 관계의 부부는 입양할 자격조차 없다. 이것이야말로 출생에 관한 청교도적인 접근이 아닐 수 없다.” 명쾌하고 통렬한 정답이다. 근데 언제부터 한국이 청교도의 나라가 되었는가?!결혼과 가족 그리고 부부의 형식에 관한 성찰이 배제된 채 돈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어리석은 정치권과 보수언론이 문제의 발원지다. 조선 시대의 권위적이고 남성 중심의 전통적인 결혼관이 지배하는 21세기 대한민국의 현실이 문제의 근원이다. 1820년대 팡틴이 코제트를 테나르디에 부부에게 맡겨야 했던 프랑스의 미혼모 문제가 200년 뒤에 자칭 선진국 대한민국에서 되풀이되고 있다.혼자 살거나 동성애 부부로 살면서 아이를 입양하여 가족을 구성할 수 있고, 결혼과 무관하게 아이를 낳아서 기르는 미혼모와 미혼부가 가능하다는 가족문화가 인정되어야 한다. 이른바 ‘정상’이란 틀 안으로 사회-정치적인 문제를 끌어들이려는 시대착오적이고 경직된 시선으로는 저출생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음을 직시해야 한다. 일본을 맹목적으로 따라가는 ‘단일민족신화’를 타파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시점이기도 하다.21세기를 살면서 결혼과 가족에 관한 국민의 의식은 아직 19세기에 정체돼 있음은 신비로운 현상이 아닐 수 없다. 이참에 우리의 후진성을 깊이 성찰해봄은 어떨까, 생각한다.

2022-12-11

장수 축하금

우정구 논설위원 얼마 전 구미시는 경북 자치단체로서는 최초로 만100세 이상 어르신에게 장수 축하금 100만원을 지급하는 조례안을 마련했다. 장수 축하금 지급대상은 구미시에 1년 이상 주민등록을 두고 거주하는 만100세 이상 어른이다. 현재 34명 정도 된다고 한다.인천시 계양구가 지난 10일 100번째 생일을 맞는 관내 노인들에게 장수 축하금 100만원을 전달했다. 계양구는 이를 위해 올해 3천만원의 예산을 편성했고 내년에도 계속사업으로 이어갈 계획이다. 구청 관계자는 “한 세기를 살아온 것 자체가 축하받을 일”이며 “사회적으로 장수 가치를 되새기며 경로효친의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목적이 있다”고 말했다.대구 달성군과 대전 중구, 울산 북구 등 전국적으로 10여 군데 지자체가 장수 축하금이란 명목으로 어르신에게 현금이나 상품 등을 전하고 있다.100세 시대를 맞아 자치단체의 복지사업으로 장수 축하금의 전달은 바람직한 측면이 많다. 장수 노인이 늘어나고 장수 노인에 대한 사회적 관심 촉구 등 건강한 사회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일본서는 매년 경로의 날을 맞아 100세를 맞는 노인에게 총리 명의의 축하장과 은잔을 증정했다. 그러나 2016년부터는 순은이 아닌 은도금으로 사양을 바꿔 전달했는데, 100세를 맞는 장수자가 맹렬히 늘어난 때문이라 한다. 현재 일본의 100세 이상 고령자는 8만5천여명이다. 우리도 100세 이상 고령자가 매년 급격히 늘어 지금은 2만2천여명에 달한다고 한다.100세 시대 개막은 인류학적으로 큰 진전임에 틀림없는 사실이다. 이것이 유병장수가 아닌 무병장수로 이어져야 장수의 가치는 더 빛날 수 있다. 인류의 장수 도전에 박수를 보낸다./우정구(논설위원)

2022-12-11

외롭던 이야기방

강길수 수필가 허전하다. 출퇴근 때마다 모서리를 돌며 안을 쳐다보던 작은 방이 사라졌다. 사라진 바닥엔 정사각형 새 보도블록이 어설프게 깔렸다.작은 방은 이따금 풋풋함이 넘쳤다. 중학생들이 한두 명 혹은, 두세 명 붙어서서 손에 든 것에 귀를 들이대며 얘기꽃 피우던 방이다. 때론 깔깔대고, 때로는 희죽거리거나 히죽대고, 어떤 날은 어두운 얼굴로 이야기를 했다. 옆엔 아파트 모델하우스와 은행도 있지만, 내가 본 이야기방은 중학생들을 빼면 거의 비어있었다. 하여, 운동장 밖 모퉁이에 홀로 섰던 이야기방은 외로워 보였다. 외로움 못 이겨 떠났을까.시대 변화가 잘 드러나는 곳의 하나가 된 이야기방, 이름하여 ‘공중전화 부스’다. 공중전화는 통신수단의 발전 단계에서, 아날로그 시대의 한 획을 그은 존재다. 휴대폰이 없던 시절, 공중전화는 사람들의 소유하지 않은 생활필수품이었다. 즉시성, 신속성, 편리성에다 익명성까지 제공해 주었으니 말이다. 하나, 사람들의 애환 담긴 이야기방도, 혹독한 경쟁력 시장환경에서 살아남지 못하고 있다.휴대폰이 없었던 젊은 날, 타지나 외국에 출장을 가면 공중전화를 많이 사용했다. 한 번은 LA공항에서 공장장이 공중전화를 하는 사이, 007가방 하나를 들치기 당하는 일도 있었다. 나도 그 곁에 서 있었는데, 어느새 훔쳐 갔는지 내가 어안이 더 벙벙했었다. 다행히 출장서류는 내 가방에 있어서 무사했다. 이처럼 공중전화 부스 이야기방은 사람 삶이 그대로 서린 현장이다.내 기억엔 휴대폰이 나온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인간 생활의 온갖 기능이 탑재된 스마트폰을 통해, 5세대 이동통신 디지털 혁명이 일어나고 있다. 즉, ‘가상현실(Virtual Reality), 증강현실(Augmented Reality), 자율주행, 사물인터넷 기술’ 등을 구현한다니 말이다. 스마트폰 하나로 삶의 모든 부문에 바라는 것을 실시간 이룰 수 있다 한다. 가히, 우리 삶의 근본적 변화가 다가오고 있다.그러나, 사라진 공중전화부스 자리에 깔린 보도블록을 밟고 선 내 마음은 허전하고, 불안하며, 무엇에 홀린 듯하다. 인간은 과학기술의 편리성에 중독되며, 자기도 모르게 ‘과학기술’이란 ‘냄비 안의 개구리’가 되어가고 있는 것만 같다. 마음먹으면 언제든지 운전하여 여행 갈 수 있는데 시내버스, 시외버스, 완행열차를 갈아타고 고생고생하며 여행 다니던 때가 왜 더 행복하게 느껴질까. 내가 구세대 꼰대이기 때문일까.이제, 이야기방에서 풋풋한 중학생들을 더 만날 수 없다. 그들에게 스마트폰으로 예전 같은 얘기꽃들을 피울 수 있는지 물어보고 싶다. 지난여름, 직장의 법정 교육 참가차 오랜만에 서울 지하철을 탔었다. 대부분 젊은이와 일부 나이 든 이들도, 객차 안에서 모두 스마트폰에 열중하고 있었다. 그들이 과연, 공중전화 부스의 전화처럼 고맙고 요긴한 마음으로 스마트폰을 쓰고 있었을까. 내 마음의 대답은 ‘아니다’이다.오늘 퇴근길에도, 이야기방이 외롭게 서 있던 자리에 내 마음은 머뭇거린다.

2022-1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