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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토끼의 지혜로움으로

윤영대 전 포항대 교수 ‘검은 토끼의 해’ 계묘년(癸卯年)이 밝았다. ‘토끼’하면 보름달 속 계수나무 그늘에서 두 마리가 정답게 마주 보며 절굿공이로 무병장수의 선약(仙藥)을 빻고 있는 설화가 떠오른다. 집토끼는 ‘다산과 풍요’를 상징하며 친근하고 사랑스러운 동물이고, 산토끼는 총명하고 재빠른 몸놀림으로 천적들이 우글대는 숲속에서도 잘 살아왔으니 올해는 토끼에게 배워보자.토끼는 또 ‘꾀보’라는 애칭이 있고 깡충깡충 뛰어다니는 귀염둥이다. 그 순박한 모습에서 평화로운 세상을 그리며 지난 한 해를 돌아보면 유난히 심했던 재난과 재해의 기억들이 많다. 영덕과 울진 지역의 20년 만의 대형 산불을 비롯하여 수도권에 퍼부은 80년 만의 폭우, 또 가을에 불어닥친 태풍 힌남노로 인한 포항지역의 홍수와 인명피해 등 자연재해가 컸고, 코로나19는 3년째 여러 변이를 만들며 757일간의 거리 두기 해제를 비웃듯 감염자 1천만 명을 돌파했다. 10월 말 핼로윈 축제에 밀려든 인파가 골목에 넘쳐 158명의 사망자를 낸 이태원 참사는 국민의 마음을 울렸고, 3월 대선으로 정권이 교체되고 그 여파로 여의도 들판에는 혼탁한 바람이 불고 있다.그러나 이러한 사건들이 한바탕 휩쓸고 가는 어려움 속에서 자랑스러운 소식도 들려왔다. 뜨거운 나라 카타르의 월드컵에서 국민들의 응원으로 16강 대열에 섰으며, 누리호의 2차 발사 성공으로 우주 강국 7위에 올랐고, 이어 연말에는 다누리 우주선이 달 궤도에 안착하여 달나라 토끼가 보고 있을 지구의 모습을 보내왔다. 참으로 다사다난했던 호랑이해였다.이강덕 포항시장은 신년 시정 방향을 ‘창의·융합·혁신’으로 표방하며 ‘안전도시 포항, 흔들림 없는 경쟁력, 사람 중심의 친환경 도시’ 등을 실현하기 위해 힘차게 달려가겠다고 밝혔다.우리는 흔히 ‘두 마리 토끼를 잡는다’라는 말을 한다. 따로 뛰어다니는 두 마리를 한꺼번에 잡는 일이 어렵기도 하지만 잘하면 두 마리를 동시에 잡는 일거양득의 결과를 얻기도 하며, 또 계획 없이 함부로 잡으려다가 한 마리도 못 잡는다는 의미도 있으려니 올해는 국가는 견제와 타협, 사회는 성장과 복지, 국민은 일과 생활 등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별주부전’을 보면 토끼의 총명한 꾀가 대단하다. 병든 용왕이 토끼의 간을 먹어야 낫는다고 해서 자라가 육지로 올라가 토끼를 꼬셔 데려왔는데, 간을 내놓으라고 하니 ‘청산유수 맑은 물에 씻어 감추어 두었다’고 하여 다시 뭍으로 돌아와서는 ‘간 빼놓고 다니는 놈이 어디 있냐’고 하며 숲속으로 달아났다는 판소리 ‘수궁가’를 듣노라면 부귀영화를 탐낸 것에 후회하며 현명하게 빠져나온 토끼가 기특하다.올해는 국내외 정세를 보아 어느 때보다 위기를 헤쳐나가야 할 지혜로움이 필요한 것 같다. 큰 귀로 잘 듣고 퉁방울눈으로 사방을 살피며 뒷발로 힘차게 언덕을 뛰어오르는 토끼의 영특함을 배우자. 국내외 위기를 극복하고 사회 갈등을 해소하는 지혜를 발휘하여 풍요로운 한 해가 되길 바란다.

2023-01-05

범죄자 사진 공개

홍석봉 정치에디터 앞으로 강력범죄를 저지른 피의자들의 운전면허증 등 사진이 언론에 공개되는 모습은 없어질 전망이다.강력범죄자들의 신상 공개 때마다 심하게 보정됐거나 옛날 사진이 공개돼 실효성 논란이 일었다. 얼마 전 ‘택시기사·동거녀 살해범’의 신상을 공개하면서 실물과 다른 모습이 문제가 됐다. 이에 신상 공개 시 30일 이내의 사진을 공개토록 하는 법안이 나왔다.송언석 국민의힘 국회의원은 3일 특정강력범죄 혹은 성폭력 범죄를 저지른 피의자의 얼굴을 공개할 경우 30일 이내의 최근 모습을 공개하도록 하는 내용의 관련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개정안이 통과되면 범죄 피의자 얼굴을 대중들이 식별하기 쉬워지고 제도의 실효성이 높아질 전망이다. 궁극적으로는 범죄로부터 국민의 안전이 더욱 강화될 것으로 기대된다.현행법에는 특정강력범죄나 성폭력 범죄 피의자는 얼굴·성명·나이 등 신상 정보를 공개할 수 있도록 돼 있다. 하지만 공개되는 피의자 모습은 과거 사진이 많았다. 현재 모습과 달라 잘 알아볼 수 없다는 비판이 일었다. 피의자가 최근 사진 공개를 원치 않으면 방법이 없었다. 신상정보 공개의 원 취지인 국민의 알권리와 피의자의 재범 방지 등 효과를 달성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하지만 이제 관련법 개정으로 범죄자의 증명사진을 볼 일은 없어졌다.신상 및 사진 공개는 법 제정 당시 논란이 있었지만 잠재적 범죄예방 효과가 컸다. 국민의 알 권리와 공익적 가치를 위해 필요성이 높아졌다. 범죄 피의자에게 전자발찌를 채우고 화학적 거세까지 이뤄지는 상황이었다. 거기다 피의자의 신상 공개와 사진 공개라는 인격 모멸까지 더해졌다. 흉악 범죄는 우리 사회에서 이제 더이상 발붙이지 못하게 됐다. /홍석봉(대구지사장)

2023-01-04

지역은 대학부터 살려야 한다

장규열 한동대 교수 대학들이 새해 벽두부터 긴장을 탄다. 신입생 모집이 예전 같지 않다. 저출산과 고령화는 이미 예고되었지만 누구에게도 뾰족한 대책이 없다. 벚꽃 피는 순서로 문을 닫을 것이라는 경고등도 들어와 있었다. 대학들은 사실상 대안을 준비하지 않은채 바라만 보고 있다. 교과 과정뿐 아니라 행정 시스템에서도 교육부의 지휘 감독을 받는 입장에서 특별히 손을 쓸 겨를도 없다. 수년째 동결된 등록금으로는 학교 운영도 버거워 정부 지원에 목을 매는 형편이다. 학령 인구가 급격하게 줄어들면서 신입생 정원도 채우기 힘들게 되었다. 경북은 어떤가. 이를 어찌해야 하나. 대학의 위기지만, 대학만의 책임일까.지역에 대학들이 있으면 지역에는 무엇이 좋을까. 대학생들이 넘실대는 지역에는 우선 젊음이 넘친다. 청년문화가 지역의 역동성을 이끌어 싱싱한 분위기가 생긴다. 인구 고령화로 지역 소멸의 위기가 다가온다면, 지역은 대학들을 소중하게 여겨야 한다. 대학생들에게 지역에서 공부하고 연구하며 일하고 누릴만한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졸업과 동시에 지역을 떠난다는 대학생들에게 물어보자. 4년 이상 머물렀던 곳을 왜 떠나려 하는지. 일자리가 없고 재미가 없으니 떠나지 않을까. 기회가 충분하지 않고 미래를 담보할 비전을 발견할 수 없다. 지역에 독특하고 분명한 청사진이 보이지 않는데, 청년들이 머물러 기다릴 까닭이 없다. 정주여건으로 보아도 문화가 척박하여 재미가 없다. 재학 중에도 주말이면 지역에서 즐기기보다 서울로 달린다. 지역은 젊은이들이 머무르며 누릴만한 무엇을 가지고 있는가.대학도 문제다. 지역을 소재지로 삼은 것 외에 대학이 지역과 학생들을 함께 생각하며 제공한 협력수단은 무엇인가. 학생들이 지역에서 공부하는 동안 지역과 함께 호흡하면서 배우고 익히는 기회가 드물다. 대학에서 갈고 닦는 전문역량은 재학 중에도 얼마든지 지역에서 발휘하고 기여할 가치가 있다. 지역의 기업들과 단체들이 지역 대학생을 인턴으로 기용하여 경영일선에 적극적으로 활용하여야 한다. 대학생들은 주어진 기회에 감사하여 열심히 일할 터이고 기업에는 청년들이 불러올 젊은 기운으로 활기가 돌지 않을까. 더이상 강의실에서만 배우지 않는다. 현장에서 배우고 일하며 익히는 기회를 지역의 대학생들에게 제공해야 한다. 지역과 대학이 함께 호흡하며 상생과 협력의 기운을 만들어야 한다.교육부도 문제다. 지역 대학들이 지역과 함께 발전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해야 한다. 지역에 필요한 교과과정과 협력체계를 대학이 자발적으로 만들어 가야 한다. 정부는 대학들이 지역사정에 맞는 발전대안을 마련해 가도록 지원해야 한다. 대학은 자율과 책임을 확보하여 스스로 발전의 기틀을 마련해 일어나야 한다.필요한 재정은 일부 정부가 지원하되 대학이 자구책을 도모할 여건을 조성해야 한다. 나라의 고등교육은 그야말로 높은 수준에서 돌파구가 모색돼야 한다. 상상과 창의로 빛나는 열매를 일구어내는 지역대학 문화가 꽃피어야 한다. 교육부의 방침과 지도에 자율성이 꺾이는 대학은 부끄럽지 않은가. 대학이 살아야 지역이 살고, 대학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

2023-01-04

추워지는 날씨, 내 몸 같지 않은 손과 발

김영준 포항 약전부부한의원장 지난 몇 년간 코로나로 인해 함부로 집 안에만 있어서 잊고 있었을까. 올해는 유독 겨울이 추운 느낌이다. 이렇게 찬 바람이 쌩쌩 불기 시작하고 따뜻한 아랫목이 그리워질 때가 되면 환자들이 이야기하는 단골 증상이 있다. ‘손과 발이 시리고 저리다’라는 것이다. 환자들은 손과 발의 감각 이상을 여러 가지 표현으로 호소하게 된다. ‘저리다’ ‘시리다’ 또는 ‘발에 고춧가루를 뿌린 것 같다’ ‘아프다’ ‘내 발 같지 않다’등으로 일상생활에 불편을 느끼는 증상을 ‘수족냉증’ ‘수족비증’이라고 한다.‘불통즉통(不通則痛·흐름이 통하지 않으면 아프게 된다)’이라고 하였다. 날이 추워지니 몸이 움츠러들게 되고 이로 인해 혈관 또는 신경이 눌리면서 증상이 심해진다. 이런 손발의 감각 이상의 주된 원인이 혈액 순환의 문제로 발생하는 것인지 신경이 눌리면서 발생하는 것인지를 파악할 필요가 있다.먼저 증상이 발생할 때 실제 손과 발이 차가워 지면서 시린 증상이 나타나고, 또한 손과 발 양쪽으로 사지 모두에서 나타난다면 혈액 순환의 문제로 발생할 가능성이 더 크다고 추측해 볼 수 있다. 평소 추위를 많이 타며 시린 근육통을 많이 느끼고 마른 편에 속한다면 체질적으로 수족 냉증이 생기기 쉽다. 여성의 경우는 이런 경우가 더 많은데 위 증상과 더불어 생리통, 아랫배가 항상 찬 경우, 어지럼증 등이 있는 경우는 단순히 손발의 증상에만 집중하는 것보다는 몸 전체의 혈액 순환이 고려되어야 한다.몸 전체의 혈액 순환이 저하되는 경우 반신욕, 족욕 등 몸을 따뜻하게 해 주는 것이 도움이 되며 외출 시에 외투, 장갑, 목도리 등을 챙겨 방한에 더 유의하는 것이 좋다. 요즘처럼 날씨가 추울 때에는 찬 음식이나 찬물을 많이 마시는 것도 체온을 유지하는데 방해가 되므로 되도록 따뜻한 물이나 차를 마시는 것이 도움이 된다.한쪽 손 또는 발에만 증상이 나타나는 때에는 주위의 구조적 질환에 기인하는 경우가 많다.‘협착증’, ‘추간판탈출증’, ‘손목터널증후군’, ‘흉곽터널증후군’ 등 손, 발로 주행하는 신경이 목, 허리, 골반, 어깨, 손목 등에서 압박되어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 이러한 구조적 질환들은 평소 직업적으로 많이 하는 동작이나 자세, 습관에 의해 생기는 경우가 많으므로 악화 요인이 어디에 있는지 고려해보는 것이 중요하다. 좋지 않은 자세와 습관이 유지될 경우 치료가 잘 되었다고 하더라도 증상이 재발하기 쉽기 때문이다.한의학적 치료에는 몸을 따뜻하게 해 주는 치료가 많다. 한의학에서는 몸이 차고 추위를 느끼는 것이 중요한 진단 요소가 되고 몸을 따뜻하게 하고 순환시켜주는 한약재를 처방하는 것이 중요한 처방 포인트가 된다. 또한 근골격계의 치료에도 경피경근온열요법, 경피적외선조사법, 뜸치료 등 온열요법을 많이 사용한다. 날씨가 추워져서 더 심해지는 수족냉증, 수족비증에 이러한 한열 개념을 고려한 한의학 치료는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2023-01-04

새해에 다시 읽는 ‘난쏘공’

최병구 경상국립대 교수 거리두기 없는 3년 만의 연말로 들떠있는 작년 12월 25일 크리스마스에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의 조세희 선생이 세상을 떠나셨다. ‘난쏘공’은 교과서에 수록될 만큼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작품이지만, 1970년대 산업화 시대 노동자 계급의 소외를 다룬 작품으로 잘못 알려진 감이 있다. 백만 부가 넘게 판매되었지만, ‘난쏘공’에 깃든 작가의 시각은 아직 제대로 공유되지 못했다.‘난쏘공’은 대기업과 법이 지배하는 현실에 노동이 어떻게 저항할 수 있는지를 은유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다. 소설의 후반부에 노동자가 칼로 대기업 회장을 찌르고 재판을 받는 장면은 법이 지배하는 현실에 대한 격렬한 저항의 메시지다. 전직 대통령의 사면과 수십억의 벌금 면제 과정을 보고 있으니, 1980년대 후반 탈옥수에 의해 전국적으로 유명해진 ‘유전무죄 무전유죄’가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힘없는 사람들에게는 극단적 선택밖에는 답이 없는 것일까?새해에는 ‘난쏘공’의 주인공이 아닌 ‘신애’에게 주목하고 싶다. 신애는 ‘난쏘공’에서 난장이 가족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사나이에게 칼을 휘두를 수 있는 용기를 지닌 인물이지만, 속편 ‘시간여행’에서는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쉰두 평짜리 아파트로 이사했으며, 냉방기를 사다 놓을 정도로 경제적 풍요를 이루었다. 작가 조세희는 신애라는 인물을 통해 ‘나이-듦’의 의미에 대해 질문하고 있다.더 많은 자본을 획득하는 것이 ‘나이-듦’의 전부가 되는 것과 국가가 공정 혹은 합법이란 이름으로 합리화하려는 것의 정체를 인식하고 경계할 필요가 있겠다. 두 가지는 동전의 양면처럼 긴밀하게 연결된다. 작가는 ‘행복은 마음의 상태이기 때문에 달수도 없는 것이다. 어른들은 그것을 달아 나타내기 위해 지수화의 기술 개발을 꾀했고 결국은 마음의 상태를 몸무게처럼 달아 킬로그램으로 적고 있다. 그래서 난장이의 이야기를 썼다.’고 말한 바 있다.모든 것을 수치화하고 비교하는 우리의 마음을 새해에는 조금 더 들여다보고 개선할 방법을 찾아야겠다. 거창한 이념이나 목표가 아니라 주위의 사람들과 더 많이 만나고 이야기하며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을 필요가 있다. 언제부터인가 정신 건강이 안 좋고 무엇인가에 쫓기듯 생활하는 대학생들을 자주 목격하게 된다. 안타깝게도 조세희 작가가 ‘난쏘공’에서 읽어 낸 대한민국의 현실이 시간이 지나며 극단으로 달려가고 있는 것 같다.이런 의미에서 올해에는 자본을 얻는데 별 도움이 안 되더라도, 조세희 선생의 ‘난쏘공’과 같은 고전을 좀 더 읽고, 세상을 조금 다른 시각으로 볼 수 있길 기원한다. 이것이 조세희 선생이 ‘난쏘공’ 이후 소설 창작을 중단하고 서북 탄광에서 광부들의 사진을 찍어 기록해둔 이유일 것이다. 세상의 변화는 눈부시지만, 거기에는 언제나 그늘이 존재한다. 그리고 그 그늘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넓고 깊어지고 있다. 빛 속으로 들어가려 아등바등하기보다 그늘진 곳에서 사람들과 함께 쉬며 다른 내일을 기약하는 2023년이 되길 희망한다.

2023-01-04

조청과 꿀단지

양태순 수필가 이십 년 전의 일이다. 시장 모퉁이에 있는 가판대에서 조청을 보았다. 가판대를 채우고 있는 잡다한 물건들 중에서 수숫빛 유리병에 먼저 눈길이 갔다. 조청! 참말 그 조청이란 말인가? 왠지 가슴이 콩닥거렸다. 나는 반가운 이를 대하듯 유리병을 어루만졌다. 딱히 쓸 곳은 없지만 사고 싶었다.어린 시절에 집에서 조청을 고는 날이면 어쩐지 설렜다. 그날은 어머니가 제일 바빴다. 수시로 솥뚜껑을 열고 손가락을 넣어 따끈한 정도를 확인했다. 온도가 적당치 않다 싶으면 불을 조금 때서 온도를 맞추었다. 해 질 무렵이면 베자루에 담아 건더기를 걸러내고 뭉근한 장작불로 엿물을 고기 시작했다. 동네 개 짖는 소리가 잦아들고 기다리던 아이들도 앉은 채 꾸벅거릴 때, 그제야 엿물은 눅진한 조청이 되었다. 어머니는 그걸 대접에 조금씩 담아 식구들에게 맛을 보였다. 그 맛은 내가 생각하는 쫀득하고 달큼한 맛이 아니었다. 조청은 뜨거울 때 먹으면 제맛을 모르고 오히려 속만 아리다는 걸 알았다.조청은 귀한 것이었다. 그 시절 시골 형편이 다 어려웠기에 명절에나 겨우 맛볼 수 있었다. 대개는 설을 앞두고 조청을 고아 강정도 만들고 엿도 만들었다. 식구들을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손님 접대용이었다. 할아버지가 계셨기에 명절이면 손님이 많이 왔다. 고모부가 오시기라도 하면 꽁꽁 숨겨 두었던 맛난 것들이 상 위에 올랐다. 나는 그중 조청 종지에서 눈을 떼기가 어려웠다.초등학교 1학년 때의 일이었다. 어느 날 이웃에 사는 친구 숙이가 선생님께 꿀을 가져다드린다고 들고 왔다. 조청과 꿀이 같은 줄 알았던 나는 친구가 엄청 부러웠다. 그 귀한 꿀을 갖다주면 숙이는 틀림없이 선생님의 귀여움을 독차지할 것 같았다. 나는 샘이 나서 소문을 내기로 했다. 몇몇 친구에게 그 얘기를 했다. 삽시간에 반 전체에 말이 퍼지고 아이들이 수군거렸다.쉬는 시간이었다. 숙이가 없을 때 친구들이 꿀단지를 구경하려고 모여들었다. 꿀단지는 보자기에 싸인 채 책상 서랍에 들어 있었다. 겁도 없이 누군가 그걸 덥석 꺼내 들었다. 뚜껑을 열어보다가 그만 단지를 떨어뜨렸다. ‘우짜노 우짜노’ 하는데 수업 종이 울렸다. 친구들과 나는 깨진 조각을 허둥지둥 보자기에 쌌다. 꿀범벅이 된 바닥을 걸레로 닦고 창문도 열었다. 교실로 돌아온 숙이는 너무 놀랐는지 아무 말도 못 했다.그날은 공부를 하는 둥 마는 둥 학교가 파했다. 다른 날과 달리 돌아오는 길은 조용했다. 숙이도 나도 발끝만 보고 걸었다. 길가 묘지 옆 빈터에 꿀단지 조각들을 묻었다. 서로 말은 없었지만 비밀이란 걸 눈빛으로 알았다. 꿀단지가 깨어진 게 순전히 내 탓인 것만 같았다. 숙이가 선생님께 꿀을 드린다고 소문낸 것도 나고, 그러면 선생님은 숙이만 예뻐할 거라고 흉을 본 것도 나였다.나는 겁이 났다. 친구들 앞에서는 태연한 척했지만 내 심장은 시시각각 쪼그라들고 있었다. 친구 엄마한테 야단맞을까 두려움에 떨었고 식구들이 알까 봐 조마조마했다. 누가 내 이름만 불러도 깜짝깜짝 놀랐고 숙이 얼굴 보기가 멋쩍어 피해 다녔다. 그러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마 친구가 부모님께 말하지 않았던가 보다.숙이가 선생님께 드리려던 것이 꿀이 아니었다면 나는 그토록 샘내지 않았을 것이다. 참기름이나 계란, 그보다 더 귀한 것이었다 해도 심통을 부리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꿀이 정말 조청과 같은 줄 알았었다. 꿀은 먼 나라 것처럼 익숙하지 않았고 꿀이 더 비싸다는 것도 몰랐다. 어머니는 먹고 싶은 조청 대신 엿밥을 주었다. 엿밥이 달콤하긴 했지만 조청에 대한 허기를 채워주진 못했다. 어머니 몰래 먹었던 조청의 맛은 오래 잊히지 않았다.이십 년 전에 간혹 보였던 조청이 요즘은 수시로 구할 수 있다. 지금도 조청만 보면 와락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막상 집에 있어도 쉽게 먹을 수가 없다. 꺼내서 병만 만지작거리다 도로 넣어 놓기 일쑤다. 가난하던 시절에 조청을 귀히 간수하던 어머니의 마음이 겹치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조청 앞에서 흔들리는 걸음이 먹먹히 멈출 것이다, 나는.

2023-01-04

수산업의 힘, 불황을 이겨내다

2023년 계묘년(癸卯年)이 밝았다. 일반적으로 계묘년은 지혜와 생존력의 표상이다. 음의 기운을 가진 계수는 어디든 흘러드는 작은 물로 약한 힘이자 동시에 지혜로 해석된다. 지지의 묘는 목의 기운으로 봄의 생동감, 동력 등을 뜻한다. 비록 약하지만 기지를 발휘해 위기를 모면하는 토끼의 모습이 계묘년의 의미로 풀이되는 이유이다.2023년은 계묘년의 표상답게 지혜를 발휘해야 하는 해라는 게 집단지성의 결론이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전 세계적으로 경기 불황의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다. 코로나 피해를 줄이기 위해 펼쳤던 재정, 금융 정책들이 부메랑이 되어 실물경제에 영향을 주고 있다는 진단이다. 높은 물가와 금리가 일상을 옥죈다. 동시에 지난해 있었던 많은 사건들도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코로나 3년이 만들어낸 뉴노멀의 새로운 기준도 여전히 2023년과 함께다. 지혜의 힘으로 넘고 극복하며 이겨내야 할 파고가 겹겹이다.지난해 임인년(壬寅年)엔 많은 일들이 있었다. 대양(大洋)의 기운과 호랑이의 양기가 만난 해였던 임인년은 코로나의 엔데믹과 대통령 선거, 이태원 압사 사고 등을 거치며 우리 현대사에 굵직한 이력을 남겼다. 특히 이태원 압사 사고는 세월호 사고 이후 가장 큰 시대적 아픔이 됐다. 10대, 20대의 젊은이들이 축제를 즐기다 무질서 속에 압사를 당하는, 그야말로 21세기에는 상상하기 힘든 사건이 벌어졌다. 코로나 때문에 막혀 있던 ‘함께 즐기는 문화’에 대한 갈증이 예상치 못한 곳에서 터져버렸다.이태원 사건의 슬픔은 현재진행형이다.관련자들이 줄줄이 소환됐고, 곧 사건 발생에 관한 실체적 진실이 밝혀질 것이다. 그리고 우리 사회는 또 다짐할 것이다. 다시는 이런 일이 되풀이 되지 말자고 말이다.큰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전문가들은 한 사회의 다양한 변수들을 상정하며 사건발생 원인과 변동성 등을 예측한다. 지난 해 발생한 많은 사건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대통령 선거로 정권이 교체되고, 코로나로 달라진 뉴노멀에 관한 단상들이 만들어낸 여파를 예측했다. 안타깝게도 많은 분야에서 예측이 빗나갔다. 카오스에 가까웠던 팬데믹은 그 이후의 삶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쳤고 바다의 변화무쌍함만큼이나 사회문화적 환경도 급변했다.코로나가 엔데믹으로 바뀌었지만 우리의 일상은 과거와는 확연히 다르다. 뉴노멀이 사회적 인식과 다양한 제도로 자리 잡았고 많은 이들이 이를 일상으로 받아들인다. 다만, 그렇게 힘들게 변화를 받아들이고 버텼는데, 다시 경제불황이라는 새로운 변동성이 나타나 두렵고 안타까울 따름이다. 전 세계적으로 경기불황을 예견하는 목소리가 높다. 특히 경제적인 불확실성에 대한 우려가 크다. 과거의 패턴과 주기 등을 들어 변화를 예측하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코로나가 만든 뉴노멀과 전쟁, 국가 간 무역마찰 등 변수가 얽히고 설켜 다양한 지점의 위기를 가리킨다. 결국 우리는 다시 물의 기운으로, 유연하게 흐르는 ‘지혜’라는 표상으로 돌아간다. 다행히 지난해 수산업 분야에서는 괄목할 만한 성과를 나타내며 글로벌 위기극복 가능성을 보여줬다.해양수산부는 지난해 12월, 사상 최초로 수산물 해외 수출 30억 달러(2022년 기준, 대략 4조원)를 달성했다고 밝혔다. 애초 2025년 수산물 수출액 4조원 달성을 목표로 다양한 정책을 발굴했던 해수부 입장에서는 무려 3년을 앞당긴 성과였다.전 세계적으로 열풍을 일으킨 K-POP, K-MOVIE 등의 영향과 건강식품을 찾는 식문화 트렌드가 결합해 이뤄낸 결실이었다. 정현미 작가 특히 한국의 김은 미국 등에서 스낵으로 각광받으며 김 업계 최초로 1억 달러 수출을 달성한 기업이 등장했다. 고등어의 가시를 발라낸, 순살 고등어를 진공 포장해 수출한 업체 역시 급성장했다. 아이디어에 기반한 수산물의 변신이 수출 증대에 큰 몫을 한 셈이다.바다는 수산업과 여행·관광업, 항만물류 등 다양한 산업경제와 연계되어 있다. 그래서 바다를 둘러싼 다양한 경제 주체들이 경제 불황을 극복할 수 있는 하나의 주축으로 대접받는다. 올해도 이 분야 경제 주축들이 제 역할을 해내며 건실할 것이라는 예측이 많다. 코로나 엔데믹 이후 수산업 뿐만 아니라 해운업도 뉴노멀을 적응하며 새로운 돌파구를 찾고 있기 때문이다.지혜는 위기에서 더욱 힘을 발휘한다. 토끼는 다가올 위기에 대비해 3곳에 도망갈 굴을 파놓는다고 한다. ‘교토삼굴(狡兎三窟)’의 어원이다. 올해는 우리에게도 이 같은 토끼의 지혜가 필요하지 않을까.우리 모두 지혜에서 오는 여유로움과 웃음을 즐기는, 그런 한 해가 되길 희망해본다.

2023-01-04

여당의 총선 D데이 벌써 시작됐다

심충택 논설위원 지난 2일 대구 수성구 범어동 국민의힘 대구시당에서 열린 ‘2023 대구·경북 신년교례회’에는 권성동·안철수·윤상현 의원과 나경원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 등 유력 당권주자들이 대부분 참석했다. 다음 달 초 당 대표 후보자 등록을 앞두고 국민의힘 책임당원 40%가 밀집한 대구·경북의 ‘당심(黨心) 잡기’에 나선 것이다.새해에는 큰 선거가 없지만, 여당은 3·8 전당대회를 계기로 내년 총선공천이 연초부터 민감한 이슈로 부상하고 있다. 집권여당으로선 총선승리가 무엇보다 절박한 과제이기 때문이다. 윤석열 정부는 만약 내년 총선에서 민주당에 패배할 경우, 그날부터 식물정부로 전락한다. 그런만큼 3월 전당대회에서 선출될 당 지도부의 리더십과 역할이 그 어느때 보다 중요하다. 국민의힘 차기 당 대표는 사실상 내년 총선의 공천권을 행사하며 선거전반을 진두지휘한다.국민의힘 당권레이스는 현재까진 친윤(윤석열)계를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다.지난달 장제원 의원이 주도하는 ‘국민공감’이 출범하면서 국민의힘은 친윤계가 장악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민공감에는 여당의원 115명 가운데 70여 명이 참여하고 있다. 전당대회 룰 개정에 따라 당 대표는 100% 당원투표로 결정되기 때문에, 돌발변수가 나타나지 않는 한 국민공감이 미는 당권주자 중 한 명이 대표가 될 공산이 크다.국민의힘 지지자들이 우려하는 부분은 현재 거론되는 당권주자 중에서 민심을 광범위하게 얻는 인물이 없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당 대표 출마선언을 했거나 후보로 거론되는 인물은 권성동·김기현·안철수·윤상현·조경태 의원과 나경원·유승민 전 의원 정도다.유일하게 윤석열 대통령에게 쓴소리를 하는 유승민 전 의원의 경우 최근 방송에 출연해 “당 대표에 도전하는 게 정말 의미가 있느냐를 고민하고 있다”고 언급해, 당권레이스가 친윤계만의 리그전이 될 가능성이 크다.여당의 전당대회가 특정 계파 중심으로 진행되는 것은 총선과 결부시켜보면 부정적이다. 당권레이스가 현 판세대로 지속돼 친윤계가 당권을 잡는다면, 국민의힘은 민주당과 마찬가지로 강성지지층에 의존하는 폐쇄적인 정당이 될 수 있다. 국민의힘이 총선에서 과반을 획득하려면 2년 전 치러진 6·11 전당대회 당시와 같은 역동적인 변화 없이는 불가능하다.이런 측면에서 최근 윤상현 의원(인천 동-미추홀을)이 ‘당 대표 후보 수도권 출마 공동선언’을 제안하고, 안철수 의원(경기 성남 분당갑)이 “내년 총선에서 수도권 70석 이상, 총 170석 이상 하려면 수도권 지도부로 정면 승부해야 한다”며 공감을 표명한 것은 바람직한 현상이다.국민의힘은 지난 2020년 총선에서 수도권 121석 중 16석(13.2%)을 얻는 데 그쳐 수도권 의석 탈환이 최대숙제다. 내년 총선에서 승리하려면 주호영 원내대표가 지난 연말 언급한 차기 당대표 3가지 조건론(수도권 민심을 장악할 수 있는 인물, 청년층 지지를 얻는 인물, 안정적인 공천을 할 수 있는 인물)을 항상 금과옥조(金科玉條)로 삼아야 한다.

2023-01-03

기적의 글꼴

우정구 논설위원 경북 칠곡군 할머니들의 글씨체가 이처럼 유명해질 지는 과연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지난 2020년 칠곡군이 동네 어르신을 상대로 문을 연 성인문해교실에서 생애 처음으로 한글을 깨친 400여 할머니 글씨 중 개성이 강한 글씨체를 선정해 글꼴을 제작한 것이 지금은 전국 곳곳에서 많은 이가 즐겨 애용되고 있다.신년을 맞아 윤석열 대통령이 각계에 보낸 연하장에도 칠곡 할매 글씨체가 사용돼 또 한번 화제를 일으켰다. 연하장에는 “위 서체는 76세 늦은 나이에 경북 칠곡군 한글교실에서 글씨를 배운 권안자 어르신의 서체로 제작되었다”고 적고 있다.칠곡군 할매 글씨체는 담당 공무원들의 정성어린 노력으로 2020년 글꼴로 제작됐다. 이후 한컴오피스와 MS오피스 프로그램에 연이어 탑재되는 영광을 안았다. 또 국립한글박물관에 칠곡 할매글꼴로 제작한 표구가 상설 전시되면서 관광객의 볼거리를 제공했고, 전국적 유명세도 타기 시작했다. 박물관측은 “한글 교육을 받지 못한 마지막 세대가 남긴 문화유산으로 한글이 걸어온 역사의 한 발자취”라고 높이 평가했다.할머니들의 글씨가 글꼴로 제작되면서 당시 칠곡군수는 할매글꼴로 명함을 새겨 돌리고 식당에서는 안내문의 글씨체로 이를 활용했다. 포항 해병대는 “신병환영”이란 현수막을 내걸며 칠곡 할매글꼴을 사용하기도 했다.칠순이 넘어 팔순에 이른 어르신들이 생애 처음 배워 쓴 삐뚤삐뚤한 한글 글씨체가 이처럼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게 될 줄은 누가 알았을까.일찍 한글 교육을 받지 못한 할머니들의 한과 삶의 무게가 글씨 속에 고스란히 스며져 있은 탓은 아닌지 모른다. 질곡의 삶을 산 우리시대 할머니의 애환이 기적을 일으킨 것이다. /우정구(논설위원)

2023-01-03

다시 또, 새로운 시작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어김없이 또 한 해가 밝았다. 매일같이 뜨는 해지만, 연도가 바뀌는 새해의 첫날에 뜨는 해는 새로운 시작을 의미하기에 느낌이 다를 수밖에 없다. 새로움과 처음에는 신선함과 설레임이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우리는 매일을 새로움으로 처음처럼 살아가는지도 모른다. 이 아침 뜨는 해는 어제와 다르고 어제 본 강물은 오늘과 다르듯이, 날마다 새롭고(日日又日新) 처음과 같은 마음과 느낌으로 살아가고 있다. 단조롭고 낡은 일상의 반복 같은 지루한 나날같아도, 기실은 매순간 무엇인가가 변화하고 나타나거나 소멸하면서 시간의 바퀴가 굴러가고 있는 것이다.첫 시작을 잘해야 어떤 사물이나 경기, 시스템 등이 순조롭고 원활하게 작동될 것이다. 예컨대 옷의 첫 단추를 잘 끼워야 옷이 제대로 입혀지듯이, 길을 걷거나 일을 하는데 있어서 처음의 방향이나 시도가 분명하게 잡히고 길목에 제대로 들어야 목적을 향해 순탄하게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라는 속담처럼 그만큼 첫출발이 중요함을 시사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새롭게 바뀐 새해 첫날에 붉게 떠오르는 해를 보며 소원을 빌거나 새로운 다짐을 하면서 힘찬 새출발을 기약하는 걸까? 시작이 좋아야 끝도 좋다는 말처럼, 일단 첫 마음으로 확고하게 다짐하고 쌈박하게 첫발을 내디뎌야 의지를 줄기차게 펼쳐나갈 수 있다고 믿으며 안도하는 모양새다.새해 첫날의 이른 아침, 꼭 1년만에 형산갓바위를 다시 찾으니 과연 예년 못지않게 해맞이객들로 붐볐다. 운무가 끼어선지 여명은 밋밋했고 형산강 하류의 물길과 주변의 시가지는 베일에 싸인 듯 흐릿하기만 했다. 한참을 기다린 끝에 솟아오른 계묘년 태양은 가뜩이나 상기된 듯 발그스름했지만, 사람들은 나뭇가지 사이로 떠오르는 해를 향해 기도를 하거나 연신 사진으로 담기에 바쁜 모습들이었다. 그러한 틈바구니에서 필자 역시 준비해간 연하장을 펼치며 촬영하는 나름의 ‘해맞이 퍼포먼스(?)’를 벌이다가 우연찮게 지인을 만나 반가움을 나누기도 했었다. 서로 몇 마디 새해인사와 덕담을 건네면서 ‘밝고 희망찬 새날’ ‘좋은 일로 껑충껑충 뛰는 힘찬 2023년’‘遠禍召福(원화소복)’ 등의 붓글씨로 적힌 연하장을 건네주며 신년의 다복과 평안을 기원했다.“첫눈, 첫사랑, 첫걸음/첫 약속, 첫 여행, 첫 무대/처음의 것은/늘 신선하고 아름답습니다/순결한 설레임의 기쁨이/숨어 있습니다//게으름과 타성의 늪에 빠질 때마다/한없이 뜨겁고 순수했던/우리의 첫 열정을 새롭히며/다시 시작하는 기쁨으로/다시 살게 하십시오//새해 첫날/첫 기도가 아름답듯이/우리의 모든 아침은/초인종을 누르며/새로이 찾아오는 고운 첫 손님” -이해인 시 ‘다시 시작하는 기쁨으로’중1년이라는 기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지는 선물이다. 그 시간의 선물을 본인 자신이 어떻게 받아들이고 활용하느냐에 따라 삶의 궤적이 달라지게 된다. 순간은 영속의 실재이듯이, 하루하루 저마다 새롭게 내딛는 발걸음이 일년 내내 옹골차고 야무지길 기대해본다.

2023-01-03

2023년, 대한민국의 첫 과제

이상산 한동대 교수·AI융합교육원장 새해를 맞은 대한민국, 국가적으로 가장 중요한 과제가 무엇일까 생각해 보자. 얼마 전 포항시에서 인구가 50만명 아래로 떨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거주자의 주민등록을 포항시로 옮기는 사업을 추진했었다. 반짝 증가하던 인구는 계속 감소하여 결국 지난해 6월에 50만 명 선이 무너졌다. 지역소멸의 문제가 심각하다.최근 통계청의 데이터는 더 근본적인 문제를 드러내고 있다. 2012년 1.30에서 시작해 1.19, 1.20, 1.24, 1.17, 1.05, 0.98, 0.92, 0.84, 그리고 작년 0.81. 지난 10년간의 우리나라 합계출산율이다. 합계출산율이란 여성 한 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기대되는 평균 출생아의 수를 나타낸다. 합계출산율이 1인 사회는 남녀가 결혼해 한 아이를 출산하는 사회이다. 또 그 아이는 자라서 다른 부모가 출산한 한 아이를 만나 결혼해 또 한 아이를 출산한다. 이 사회에서는 양육의 부담을 축소한 대가로, 윗 세대를 부양하는 부담은 세대를 거듭하며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 기존의 생활방식, 도덕과 가치로는 이 사회를 유지할 수 없다. 위기의 사회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이미 이 단계를 넘어섰다. 그래서 소득수준이 높아졌지만, 구성원들의 행복 지수가 떨어지고 정신건강은 악화되고 있다. OECD 국가 중 최고라는 우리나라 자살율이 그 대표적인 지표이다. 이런 사회에는 미래가 없다.이 문제의 원인을 여성에게서 청년 세대에게서 찾으려는 노력이 많다. 그러나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서는 문제를 그들에게서뿐만 아니라 그들이 처한 환경에서도 찾아야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살펴볼 두 번째 통계청 데이터는 2021년 광역지자체별 합계출산율이다. 최저는 서울시 0.63, 이어서 부산시 0.73, 대구시 0.79. 반면에 최고는 세종시 1.28, 이어서 전남 1.02, 강원 0.98. 인구가 밀집되고 소득수준이 높은 대도시에서는 출산율이 낮다. 출산과 양육에 대한 지원이 안정적인 세종시에서는 예외적으로 높다. 오늘도 경쟁적이고 개인화된 사회에서 고소득과 편의를 향해 청년들이 몰려가고 있다. 그런 청년들을 지금까지는 대도시에서 수용해왔으나, 이제 그 수용력이 포화에 이르고 있다. 건강하지 않은 사회는 지속가능성이 낮다. 청년들이 돌아와 경제생활을 하며 머물 매력적인 공동체가 전국 곳곳에 일어나도록 국가와 지방정부가 창의적인 제도와 정책을 준비해야 한다.2023년 우리 사회가 해야 할 첫 과제는, 지금의 청년들과 앞으로 태어날 세대들이 청년이 됐을 때 대한민국이 지구상에 존재할 수 있을 방안을 찾는 것이다. 그리고 그 첫 주춧돌을 놓는 것이어야 한다. 대한민국이 존재해야 경제성장도 사회정의도 자유민주도 민족통일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시작을 한 해 더 늦추면, 회복과정에서는 두 해 이상의 고통을 다음 세대에 남기게 된다.청년들이 다시 꿈꾸고 활짝 웃는 사회, 그런 2023년 새해가 됐으면 좋겠다.

2023-01-03

노력하지 않을 겁니다만?

또 한 살 먹었다. 아….연말 내내 독감을 앓느라 새해가 된 줄도 몰랐다. 아침에 일어나 밥 먹고 약 먹고 빨래 돌리고 방 정리도 하고, 아파서 하지 못했던 설거지며 온갖 잡무를 한바탕 해치우고 잠깐 숨 돌릴 겸 TV를 켰다가 오늘이 1월 1일인 걸 알았다. 앓아눕는 동안 시간 감각이 마비된 건지, 여전히 12월의 어디쯤인 것 같다. 왠지 나 혼자 외딴 시간 속을 헤매는 기분. 어쨌든 새해구나. 한 살 더 먹었네.별다른 감흥이 없다. 이십 대 때에는 새해 인사와 덕담에 핸드폰이 터질 것 같았는데 올 해엔 그런 연락도 뜸하다. 왠지 2022년의 인간관계 성적표를 받는 기분이다. 새해 인사도 별로 못 받을 만큼 인간관계를 소홀히 했구나! 평생 새해 인사나 덕담 같은 걸 성실히 하지 않은 업보(?)를 이제 돌려받는 것 같다. 홀가분하다.사실 난 연말 연초의 분위기가 좀 그렇다. 좋다 싫다 라기보다는 그냥 이렇게까지 호들갑을 떨어야 하나, 그런 기분이 든다. 어딜 나가도 사람으로 넘치고, 다들 억지로라도 신나야 할 것 같은 분위기라 부담스럽기 짝이 없다. 호들갑. 그 단어가 딱 잘 어울리는 것 같다. 한 해를 끝낸다는 건 분명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 하지만 그 상징적인 의미라는 게 모든 사람에게 같은 의미는 아닐 거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한 해를 보내고 새 해를 맞이하는 일을 신나는 축제처럼 보내야 한다고 강박을 느끼는 것 같다. 마치, 억지로 슬프고 괴로운 일들을 잊으려고 술을 퍼붓는 사람들로 세상이 가득 찬 것 같은 느낌이다. 그런 기분에 동참하고 싶지 않아 연말 모임에 최대한 불참을 했더니, 몸과 마음은 편하다. 독감이 좋은 핑계가 되었던 것 같다.작년 한 해는 참 정신없었다. 졸업을 하고 사회생활을 시작한 첫 해. 그 전에도 돈을 벌지 않았던 건 아니지만, 적은 돈이나마 월급을 받는다는 건 꽤 기분 좋은 일이었다.물론 월급은 들어오자마자 대출금이며 할부금이며 공금이며 순식간에 사라지기 일쑤였지만, 다음 달에도 비슷한 돈을 번다는 건 생각보다 꽤 큰 안정감을 줬다.미뤄둔 일들을 하나씩 처리할 수 있는 힘이 생긴 기분. 이제, 원하는 걸 하나씩 마련하고 좋은 걸 하나씩 가져도 된다는 사회의 허락을 받은 기분이었다. 처음으로 전셋집으로 이사를 왔고, 이제는 운전면허 학원을 다니며 차를 살 준비를 하고 있다. 여전히 통장 잔고는 항상 아슬아슬하지만 그래도 전처럼 불안하지는 않은 것 같다. 살면서 처음으로 느껴보는 안정감에 기분이 제법 묘하다.안정감. 경제적으로는 조금 나은 삶을 살게 되었지만(사실 그마저도 다른 사람들에 비하면 형편없을지 모르지만), 대신 건강이 심히 안 좋아졌다. 학기 내내 수업과 원고 마감에 치여 살면서 밥도 제대로 챙겨먹지 못했고 잠도 제대로 못 잤다. 잠들어야 한다는 생각이 강박 수준이 되어 이상한 불면에 시달릴 즈음부터는 자기 전마다 술을 마셨다. 임지훈 2020년 문화일보, 서울신문 신춘문예 평론 부문에 당선된 문학평론가. 한양대 국문과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덕분에 영상 실조라는 어이없는 진단도 받아봤고, 골다공증 초기라는 황당한 진단도 받았다. 그런데도 마음은 전보다 편하다니. 정말 묘한 기분이다.사실 병원에서 좋지 않은 진단 결과를 받았을 땐 이상하게 마음이 편해졌다. 뭐랄까, 열심히 몸을 돌보지 않고 살고 있다는 공증을 받은 기분이랄까. 그게 이상하게 사람의 마음을 편하게 만들어줬다.지금까지의 내 삶의 모든 불행과 사건사고가 내가 열심히 살아오지 않은 탓인 것만 같은 이상한 불안감에 시달렸었는데, 몸이 심히 안 좋아지고 나니 그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이렇게까지 하는데도 삶에 불행이 찾아든다면, 그건 내 탓은 아니겠네. 내가 어쩔 수가 없는 일이겠네 하는 기묘한 안심. 이걸 안심이라고 불러도 되나 싶긴 하지만.그래서 올 한 해에는 그다지 열심히 살지 않아볼 계획이다. 돈도 열심히 안 모을 거다. 자동차나 사고, 할부금만 갚을 정도로 살 거다. 진심이다. 열심히 사는 거 별로 좋은 거 아닌 것 같다. 아프기나 하고, 괜히 더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강박에나 시달리고, 몸도 망치고 기분도 망치고 주변 사람들에게 예민하게 행동하기나 하고. 행복하려고 노력하지도 않을 거고, 뭔가를 사려고 노력하지도 않아볼 계획이다. 작으나마 전셋집에 차까지 구했으면 됐지 뭘. 그런 기분으로 책방에 갔고, 시집을 두 권 샀다. 아. 만화책이나 살 걸. 왜 난 또 시집을 샀지? 직업병인 것 같다. 올 해엔 진짜 공부도 열심히 안 할 거고, 일도 열심히 안 할 거다. 그런 기분으로 또 마감을 하나 끝냈다. 서른여섯 살이 되었다.

2023-01-03

세차를 잘하는 어른

올겨울은 정말이지 겨울 같다. 이게 무슨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나는 소리인가 싶지만, 세포 하나하나가 열렬히 소리치는 중이다. 세상에! 진짜 겨울이야! 쏟아지는 함박눈을 보면서 양손을 모았다. 크리스마스카드처럼 반짝반짝한 겨울. 춥고 차갑고 꽁꽁 얼어붙은 그야말로 겨울다운 겨울. 첫눈 오던 날엔 함께 공부하는 학생들과 전망 좋은 카페에 있었다.흩날리는 눈발을 바라보며 우리가 스노우볼 안에 있는 장난감처럼 느껴진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친애하는 이들의 와하하 웃는 얼굴과 모락모락 피어나는 찻잔 속의 김. 비딱한 모양의 눈사람 오너먼트와 아무도 밟지 않은 새하얀 눈길. 추운 날씨가 무엇보다 싫은 나조차도 설레게 만드는 그런 겨울.이토록 낭만적인 풍경 뒤에 남은 건 지극히 지난한 현실이다. 미끄러운 도로와 질퍽질퍽해진 거리, 더러워진 자동차다. 어찌나 지저분하던지 차 문에 손을 대기가 두려울 정도다. 이젠 진짜 세차해야지, 생각하면 눈 소식이 있고 기온은 영하를 웃돈다.그렇다고 그냥 두기엔 사회적 체면이 서지 않을 정도로 더럽다. 미루고 미루다가 안 되겠다 싶어 손 세차장을 찾았다. 신년이니까. 새로운 해에는 몸도 마음도 깨끗해야 하니까. 울며 겨자 먹기라는 말이 이렇게 딱 들어맞는 순간이 오면 이상하게 현실감각이 축소된다. 세차장 입구에 들어서면서도 머뭇거렸다.이렇게 추운 날 세차하는 게 과연 제대로 된 판단일까, 반신반의하면서 액셀러레이터를 밟았다. 나에게 세차란, 특히 내 손으로 하는 세차란, 너무도 어른의 영역이었다. 내가 범접할 수 없는, 나보다 삶을 더 제대로 살아내는 사람들이 하는 일들. 비단 세차뿐만이 아니었다. 내가 생각했던 어른의 영역이란 각종 세금을 미납하지 않고 꼬박꼬박 제때 내는 것. 출퇴근을 성실히 이행하며 사회적 관계를 맺는 것에 두려워하지 않는 것. 낯선 사람에게 먼저 악수를 청하는 것. 복잡하게만 느껴지는 제도적 시스템을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처리하는 마음의 여유를 가지는, 뭐 그런 것들이었다.언제부터였을까. 나는 익숙하게 종합소득세를 신고하고 자동차세를 내며 이런저런 계약서를 검토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무엇보다 지금 이렇게 손 세차까지 하고 있지 않은가. 어렸을 때 세차장에서 훔쳐봤던 어른들의 우아한 손놀림이 이젠 무엇보다 슬픈 몸짓으로 느껴진다. 지금처럼 입김이 솔솔 나는 한겨울엔 더욱 그렇다. 그들은 어떤 마음으로 자기 차를 쓸고 닦았던가. 아마 나와 같은 상태였겠지. 더러운 차를 몰고 다니는 것이 나의 게으름을 증명하는 일인 것 같아 부끄럽고 동시에 나 자신과 주변을 정돈하는 일을 관성처럼 해내는 인간이 되었다. 어느 순간부터.양손에 고무장갑을 끼고 기합을 넣어본다. 물을 뿌리는 동시에 얼어버리는 건 아닌가 싶었는데 다행히 물줄기를 타고 구정물이 죽죽 흐른다. 세제를 풀어 커다란 차의 구석구석을 닦다 보면 땀이 나고 팔다리가 저려온다. 얼마나 비싼 차라고 이런 수고로움을 감당하나 싶다가도 다시 열심히 손을 움직인다. 문은강 ‘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로 주목받은 소설가. 201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작가로 등단했다. 일찍 일어나서 억지로 머리를 감고 비척비척 출근길에 올라 잦은 분노와 스트레스를 참아가면서 번 돈으로 산 물건이다. 이제 나는 노동하는 행위가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알게 되었고 사회적 구성원으로 살아가는 일이 쉽지 않다는 것도 느꼈다. 그렇지만 고작 그 정도를 경험했다고 해서 어른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러니까 어른이 된다는 건 뭘까?그런 의문이 찾아오면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작은 존재가 되어버린다.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그다지 특별하지 않은 시간을 지나면서 나는 무엇을 배웠던가. 매 순간 온몸으로 부딪혀야만 알 수 있는 것들이 있다. 그런 면에서 나는 아직 경험하지 못한 것들이 넘쳐난다. 결승선에 가장 먼저 도착하는 사람이 되고 싶던 적도 있었다. 이젠 그런 것이 의미가 없다는 걸, 결승선은 허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안다. 내겐 지금까지의 삶보다 앞으로 더 긴 시간이 남아 있을 것이고 그건 그만큼의 모자람과 부족함을 쥐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차 구석구석을 꼼꼼하게 닦았다고 생각했는데 주차장에 도착해서야 얼룩을 발견했다. 미처 시선이 닿지 않은 곳이었다.나는 어쩜 이런 작은 일도 촘촘하게 완수하지 못할까. 스스로를 채찍질하다가 고개를 젓는다. 신년 목표는 그런 어른이 되는 것으로 정했다. 세차를 잘하는 어른. 아니, 잘하지 못해도 괜찮다.지저분한 차를 보면서 한숨을 쉴지언정 결국에는 세차장으로 터벅터벅 향하는 어른. 그 정도면 충분하다. 까치발 든 아이처럼, 한 뼘이 채 안 되는 높이를 얻었다는 것에 으쓱할 수 있는. 그 정도의 성장에도 크게 기뻐하는 한 해가 되기를 바란다.

2023-01-03

‘래빗점프’

남광현 경북연구원 선임연구위원 검은 토끼의 해, 계묘년(癸卯年) 2023년이 이제 막 시작되었다. 코로나19 팬데믹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지속되고, 중국-미국 갈등도 더욱 고조됨에 따라 세계 경제는 장기간의 침체에 빠져들었고, 수출에 의존하는 우리나라 경제도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이러한 암울한 환경들로 인해 2023년은 어떠한 모습으로 변화할 것인가 무척 궁금하다.서울대 소비트렌드분석센터가 발간한 ‘트렌드 코리아 2023’의 부제는 ‘더 높은 도약을 준비하는 검은 토끼의 해’이다. 부제에 걸맞게 2023년 예측된 10가지 소비트렌드 키워드들을 하나로 묶어 ‘래빗점프: RABBIT JUMP’로 명명하였다.‘RABBIT JUMP’를 구성하는 10가지 소비트렌드 키워드는 경제, 사람, 기술의 3가지 측면에서 그룹화되어 있다. 우선 경제 측면 트렌드 키워드들은 ‘평균 실종’, ‘체리슈머’, ‘뉴디멘드 전략’ 등 3가지이다.‘평균 실종’은 집단을 대표하는 평균값은 더 이상 무의미해지고 있는 트렌드로 평균이라는 안전지대에서 벗어나야 함을 시사한다. ‘체리슈머’는 소비심리 악화로 비용 대비 효용을 극도로 추구하는 트렌드로 최소한 매너소비자의 덕목을 갖추어야 함을 시사한다. ‘뉴디멘드 전략’은 불황기에도 사지 않고는 배길 수 없는 대체 불가능한 상품을 개발해야 한다는 트렌드를 표현했다.사람 측면 트렌드 키워드들은 ‘오피스 빅뱅’, ‘인덱스 관계’, ‘디깅모멘텀’, ‘알파세대가 온다’, ‘네버랜드 신드롬’ 등 5가지로 가장 많다.‘오피스 빅뱅’은 재택근무와 자율출퇴근제 확산, 보수보다 업무환경을 선호하는 트렌드, ‘인덱스 관계’는 타인과의 관계에 색인을 붙여 전략적으로 관리하는 현대인의 관계 맺기 방식의 트렌드를 표현한다. ‘디깅모멘텀’은 자신의 취향에 맞는 한 분야에 깊이 파고드는 행위를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트렌드, ‘알파세대가 온다’는 2010년 이후 출생으로, 태어나면서 디지털기기와 함께 생활하는 진정한 ‘디지털원주민’이 주류가 되는 트렌드, ‘네버랜드 신드롬’은 나이보다 어리게 사는 것이 하나의 미덕인 사회 트렌드이다.기술 측면 트렌드 키워드들은 ‘선제적 대응기술’과 ‘공간력’ 2가지이다. ‘선제적 대응기술’은 기술이 이용자에게 필요한 기능을 스스로 파악해 미리 제공하는 단계에 진입하게 된 트렌드, ‘공간력’은 가상공간보다 실제공간의 힘이 강력함을 보이는 트렌드이다. 10가지 트렌드는 2023년 대한민국의 역동적 변화의 단면을 잘 표현하고 있다. 다만 이러한 트렌드 변화는 국내·외의 여러 가지 환경조건에 지배되어 나타나는 피동적 현상이다.지난 연말 정부가 내어놓은 ‘2023년 경제정책방향’에서 ‘민간중심 활용 제고’ 사업 등이 성공적으로 추진된다면 트렌드는 또 달라질 것이다.또한, 정부가 ‘2023년 경제정책방향’에서 제시한 3대(노동, 교육, 연금) 구조개혁, 3대 경영혁신(금융, 서비스, 공공), 인구·기후위기대응, 경제안보강화, 상생·지역 균형 발전 등 미래 대비 체질 개선 사업을 착실히 수행한다면 언어적 수사에 불과했던 ‘래빗점프’가 제대로 실행될 것으로 보인다.

2023-01-02

공짜 버스와 천원 택시

홍석봉 대구지사장 경북 청송군이 1일부터 지역에서 모든 버스를 무료로 운행하고 있다. 승객의 연령과 주소지 등도 상관없이 공짜다. 외지인에게도 무료다. 전국에서 처음 시작했다. 교통 오지 주민들을 위해서다. 가뜩이나 오지 운행 버스회사에는 지자체가 손실금을 전액 보전하는 판이었다.경북 농어촌 지역에 등장한 공짜버스와 천원 택시가 주민들에게 호응을 얻고 있다. 대중교통 소외지역 주민들의 이동 편익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 교통 오지 주민들의 손발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는 것이다.청송군은 앞서 2015년부터 경북에서 처음으로 천원 택시를 운영하기 시작했다. 지역 주민들은 한 차례 1천원의 요금만 내면 읍면 버스터미널까지 갈 수 있다. 요금 차액은 지자체에서 지원했다.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없던 오지 주민들의 불편이 크게 줄었다. 노약자들에게 응급상황 발생 시 빨리 대비할 수 있었다. 청송의 천원 택시는 2017년 국민이 뽑은 행정서비스 정부 3.0 대표 브랜드 30선에 선정되기도 했다. 이후 경북도내에서 행복 택시, 천원 택시, 희망 택시, 별고을 택시 등 다양한 이름이 붙은 택시가 등장했다. 전남 등 지역에서는 100원 택시도 등장했다.행복택시는 운행 횟수와 범위가 대폭 확대됐다. 주민들의 이동 편의성이 크게 높아졌다. 특히 오지마을이 많은 군 단위에서 행복택시는 효과가 기대 이상이었다. 시골 노인들의 의료시설 이용과 복지·문화서비스에도 접근성을 높이는 역할을 했다.천원 택시와 공짜 버스를 포퓰리즘으로 보는 시각도 없지 않은 것 같다. 교통복지로 포장한 표 확보 수단 쯤으로 여기는 모양이다. 참담한 농촌 실정을 생각하면 이런 포퓰리즘은 언제든 환영이다./홍석봉(대구지사장)

2023-01-02

과메기와 기후위기

홍덕구포스텍 소통과공론연구소 연구원 포항에 와서 과메기 맛을 재발견했다. 저장과 유통기술의 발달로 타지에서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게 되었지만, 찬바람이 불면 찾아오는 햇과메기의 맛은 포항에서만 느낄 수 있는 별미다. 김이나 돌미역, 곰피 쌈으로 먹는 것도 좋지만, 개인적으로 제일 좋아하는 방식은 썰지 않은 ‘짜배기’(배를 갈라 말린 것)를 한 손에 들고 베어먹으며 맥주를 마시는 것이다. 과메기 하면 막걸리와의 궁합을 떠올리기 쉽지만, 꾸덕하게 기름기 오른 제철 과메기는 참치 뱃살에도 밀리지 않는 진한 맛 덕분에 맥주와도 잘 어울린다.과메기는 주로 예전에는 청어, 최근에는 꽁치로 만든다. 그 시대에 가장 많이 잡혀서 저렴한 생선을 사용하는 것이다. 지금은 내륙지방에서도 신선한 활어회를 얼마든지 맛볼 수 있지만, 불과 백여 년 전만 하더라도 신선한 생선은 바닷가 사람들이나 맛볼 수 있는 귀한 음식이었다. 새우젓이나 북어 정도가 내륙지방 사람들이 접할 수 있는 해산물의 전부였던 시대가 고작 백여 년 전이다. 서민들도 육고기 맛보기가 그리 어렵지 않은 요즘에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상허 이태준의 소설 ‘사상의 월야’(1941)에는 배고픈 아이들이 북어를 널어 말리는 덕장에서 꼬챙이로 북어 눈깔을 빼먹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만큼 육고기나 생선 같은 단백질 식품을 접하기 어려운 시대였음을 잘 보여준다.‘탄소 발자국’이라는 개념이 있다. 어떤 제품이나 서비스의 원료 채취, 생산, 수송 및 유통, 사용, 폐기 등 전 과정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 발생량을 이산화탄소 배출량으로 환산해 파악하는 것이다. EPA(미국 환경보호청) 보고서에 따르면 양고기 1kg를 소비하는 것은 39.2kg의 이산화탄소를 발생시키며, 이것은 약 145km를 운전할 때 발생하는 이산화탄소의 양과 같다고 한다. 양을 기르고 도축하고 운송하는 전 과정에서 이산화탄소가 배출되기 때문이다.그렇다면 과메기의 탄소 발자국은 어떨까? 물론 원재료가 되는 생선을 잡는 과정과 유통 과정에서 부득이하게 이산화탄소가 발생하겠지만, 이후부터는 태양과 바람, 그리고 영상과 영하를 오르내리는 기온의 힘으로 만들어진다. 특히 햇과메기를 산지 인근에서 소비한다면 온실가스 발생은 최소화될 것이다. 내륙에서는 소금에 절이거나 바짝 말린 해산물을 먹고, 해안가에서는 활어와 선어를 먹는 것이 자연스럽다. 과메기는 교통과 냉장기술이 발달하지 못했던 시대에, 귀한 해산물을 내륙지방까지 전하기 위해 고안된 ‘적정 기술’(해당 공동체의 상황에 맞춰 고안된 기술)이었다. 따라서 미식과 괴식 사이에 놓인 지역 특산물이 아니라, 생산, 유통, 소비의 전 과정에 걸쳐 적정 기술의 차원에서 과메기를 재평가해야 한다. 과메기 자체를 신화화하자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 담긴 지혜와 절제의 미덕을 배우자는 것이다.계절과 지리에 상관없이 원하는 시간, 원하는 장소에서 신선한 해산물과 과일, 채소, 푸짐한 육고기를 먹고 싶다는 소비자본주의적 욕망이 탄소 발자국을 늘려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과메기를 먹으며 기후위기를 생각해 본다.

2023-01-02

묘(卯) 이야기

박상영 ​​​​​​​대구가톨릭대 교수 2023년 계묘년(癸卯年)이 밝았다. 여기서 ‘계’는 10개의 천간 중 마지막으로 검은색에 해당하며, ‘묘’는 12개의 지지 중 네 번째 ‘토끼’를 뜻하기에 이 둘을 합쳐 올해를 검은 토끼해라고 한다.토끼는 작고 귀여운 생김새에 놀란 듯한 표정 때문에 약하고 선한 동물로 종종 묘사되곤 한다.하지만 동시에 밤하늘 달 속에서 방아 찧는 신비스러운 존재, 새끼를 여럿 낳는 다산과 풍요, 자라의 꾐에서 빠져나오는 지혜의 상징 등 다양한 함의를 지녀왔다.이 중 지혜의 상징으로서의 토끼는 문헌 상 삼국유사 열전 ‘김유신’조에, 고구려에 청병하러 간 김춘수가 죽을 위기에 처했을 때, 보장왕의 총신 선문해에게 청포 300포(布)를 뇌물로 바치자 선도해가 취중에 들려주었다는 ‘귀토지설(龜兎之說)’ 이야기가 꽤 유명하다.이 외에도 사기 ‘맹상군열전’에 나오는 교토삼굴(狡FA32三窟) 고사도 빼놓을 수 없다. 영리한 토끼는 앞일을 대비해 미리 세 개의 굴을 판다는 뜻으로, 이는 맹상군의 식객, 풍환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는 우선 맹상군을 위해 그의 돈을 빌린 설 땅 사람들에게 선의를 베풀어 맹상군이 위험에 처했을 때 그들을 곁에 두게 했고, 둘째로 이웃 나라에 맹상군을 적극 추천한 뒤 다시 본국 제왕에게도 이를 알려 경쟁심을 부추겨 이전보다 더 후하게 맹상군을 기용토록 했으며 마지막으로 설 땅에 맹상군 선대의 종묘를 세워 민왕도 함부로 못 대하게 함으로써 맹상군의 지위를 더욱 공고히 하였다.이처럼 영리한 토끼는 난세에 현명한 지략을 펼치는 법이다.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토끼가 이러한 지혜로움 때문만으로 숭앙의 대상이 된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지혜는 급변하는 사회 속 혼자 살겠다고 교묘한 계책을 쓰며 요리조리 잔머리를 굴리는 데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그런 이들을 두고 우린 지능적이라고 할지는 몰라도 ‘지혜롭다’고 하진 않는다. 지혜로운 현자(賢者)는, 바로 앞을 보는 혜안과 더불어 때에 따라선 자기 한 몸 희생할 줄 아는 그런 정신이 배어 있는 이들을 말한다. 이들은 정도(正道)를 걸어가면서 자기희생적 모습도 보여주기에, 뭇사람들의 존경과 숭앙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토끼는 그런 점에서 희생정신의 대명사이기도 하다.‘금석물어집’에는 노인으로 변한 제석천이 원숭이, 여우, 토끼에게 먹을 것을 청했는데, 토끼만 아무것도 못 구해 오자 스스로 불 속에 몸을 던져 ‘나를 잡수시오’했고 이를 가상히 여긴 제석천이 토끼를 어여삐 여겨 달 속에 소생케 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토끼의 희생정신이 어느 정도인지 가히 짐작할 만하다.바야흐로 새해 벽두다. 이때쯤이면, 다사다난했던 한 해를 뒤로 하고, 누구랄 것 없이 다들 새해 소망 빌기로 한창이다.올 한해는, 허울뿐인 계획들, 소망들이 아닌, 계묘년 토끼의 지혜와 희생정신을 새긴 알찬 한 해 계획을 한번 세워보면 어떨까 싶다.

2023-01-02

해마다 돌아오는 연말연초, 같은 사람 다른 느낌

최은주 한국국학진흥원책임연구위원 어김없이 연말을 보내고 새해를 맞이했다. 같은 날의 연속이지만 한 해의 마감 그리고 한 해의 시작이라는 느낌 때문에 누구에게나 특별하게 다가오는 시간이다. 매일 뜨는 해이지만, 새해 첫날 뜨는 해를 보기 위해 일출 명소를 찾는 것이 그런 느낌이지 않을까.경상북도 상주의 근암리(현재 문경시 산북면 서중리) 출신의 선비 청대(淸臺) 권상일(權相一·1679~1759)은 24세이던 1703년(숙종 29) 12월 29일에 한 해를 돌아보며 아래와 같이 기록했다. 그는 이 시절 한창 과거시험 공부 중이었다. 때마침 권상일은 여러 사람들과 함께 대승사(大乘寺)에 모여서 한 달이 넘는 기간 동안 과거시험을 위해 집중 대비하고 있었다. 권상일은 1707년(숙종 33) 28세에 창녕에서 치른 초시에 합격했고, 1710년(숙종 36) 31세에 증광문과에 급제해 승문원부정자로 관직생활을 시작했다.“오늘이 입춘이다. 올해도 다 지나갔으니 지난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는 느낌이 특별하다. 밤에 눈이 조금 내렸다. 이달 22일과 23일에 천재(天災)와 시변(時變)이 아울러 일어났다고 하니 변고가 없는 해가 없다. 앞날이 걱정이다. 적과(賊科) 무리가 군정(軍丁)에 편입되고 제주도로 귀양 갔다고 한다. 이 무리의 죄는 만 번 죽어야 마땅한데도 지금 이와같이 죽이지 않고 감형해 주니 통탄할 일이다.”- 권상일의 ‘청대일기’1703년(숙종 29) 12월 29일 일기 중에서1703년, 이 해에 권상일은 대승사에서 한 해를 마무리하고 또 새해도 맞이했다. 당시는 음력이 기준이었으니 입춘을 전후한 즈음이 연말연초에 해당했다. 그가 남긴 일기에 의거하면, 권상일은 1710년 문과에 급제할 때까지 총 8번의 시험을 치렀다.(‘청대일기’는 1702년부터 1759년까지 일부 누락된 해를 제외하고 43년간의 일기가 전해진다) 20대 시절 권상일은 수험생으로서 치열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공부하고 또 공부했으며, 백일장과 거접(그룹스터디)을 통해 끊임없이 자신의 실력을 검증했다. 그리고 시험이 있을 때마다 도전했다. 실패를 거듭했지만, 결국 31세라는 젊은 나이에 과거시험 합격을 성취했다.절에서 연말을 보내던 수험생 권상일은 다 지나간 한 해를 돌아보며 잠시 특별한 감상에 젖었다가 며칠 전에 일어난 천재와 시변을 되새기며 앞날을 걱정하기도 했다.마지막에 강한 어조로 비판을 서슴지 않았던 것은 적과(賊科) 죄인들에게 내린 벌이 가볍다고 생각해서였다. 적과란 과거 시험장에서 남의 답안을 훔쳐 자기의 이름을 써내던 부정행위를 가리킨다. 1699년(숙종 25) 가을에 시행된 식년시(式年試) 복시(覆試)에서 감시관(監試官)과 봉미관(封彌官) 등의 방조 아래 답안지가 뒤바뀌어 응시생 송성(宋晟)·박필위(朴弼渭)·이성휘(李聖輝)·이수철(李秀哲) 등이 부정으로 합격한 사건이 있었다. 이 사건은 그해 11월에 발각되어 한참 동안 시간을 끌다가 1703년(숙종 29) 10월 12일에 이르러서야 부정 합격자들을 멀리 유배 보내고 관노로 삼도록 결정이 났다. 당시 부정행위를 도모했던 인물들이 유력 가문의 자제들이었기에 이해관계가 얽힌 정치계에서 그 논란이 한참 지속되었던 것이다. 권상일의‘청대일기’12책 중 1책(1702~1704). 사진출처 : 한국국학진흥원 ‘선인의 일상생활, 일기’ 과거시험 공부에 온갖 노력을 쏟아붓던 20대 시절 어느 해 연말, 권상일은 시험부정 행위자들의 처벌이 가볍다고 분통을 터뜨리며 ‘만 번 죽어야 마땅할 죄’라는 기록으로 이 해 마지막 일기를 마무리했다.그의 시선이 그의 마음이 그 소식에 머물고 그 소식에 분노한 것은 너무 당연한 것이었다. 게다가 그는 연말이라는 특별한 시간을 시험 공부 때문에 집이 아닌 절에서 보내고 있었다. 그래서 감정이 좀 더 격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해마다 돌아오는 연말연초, 언제 어디에서 어떤 상황으로 맞이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다. 권상일도 그랬다. 이후의 일기에서 그는 어떤 연말은 평온한 마음으로 어떤 연말은 그래도 다행이라는 마음으로 어떤 연말은 피곤한 마음으로 어떤 연말은 걱정스런 마음으로 그렇게 다르게 보냈다. 지난 해 어떤 일이 어떻게 있었는가. 내 삶은 한 해 동안 축적된 경험의 시간과 어떻게 연결되어 지속되고 있는가. 묵은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는 지금 우리는 어떤 마음인가.최은주 경북대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현재 한국국학진흥원 책임연구위원으로 국학기반본부 국학자료팀장을 맡고 있다.

2023-01-02

건축의 인용과 정치적 정당성

독일의 아헨 대성당. 독일의 고도 아헨(Aachen)은 프랑크 왕국의 위대한 왕 샤를마뉴(747∼814)가 통치의 중심지로 삼았던 곳이다. 도시의 중심에는 왕의 거처와 통치를 위한 부속 건물들이 지어졌지만 지금까지 옛 궁터에 남아 있는 것은 왕실교회 밖에 없다. 아헨 대성당이라고 불리는 이 교회는 796년 경 지어지기 시작해 798년 무렵 완성되었고 805년 교황 레오 3세에 의해 축성되었다.아헨 대성당은 중세 교회건축의 전형이라 할 수 있는 직육면체의 바실리카가 아닌 비잔틴의 중앙집중식 구조로 지어졌다. 건축물의 중심에는 8각형 돔이 올라가 있고 그것을 둘러싸고 있는 외벽은 16각형이다. 내부 역시 비잔틴 교회건축에서 관찰되는 화려한 모자이크로 장식되어 있다. 아헨 대성당은 건축 구조나 장식 등에서 비잔틴의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더욱이 이 교회와 거의 똑같이 생긴 교회가 이탈리아 북동부 라벤나에서 발견된다.아헨 대성당과 닮아 있는 라벤나의 교회는 산 비탈레(San Vitale)로 547년 완공되었다. 250년 이상의 시차가 있는 두 교회의 유사성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역사는 395년 로마제국이 동서로 나누어지는 시점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로마제국의 기운이 쇠하던 394년 황제 테오도시우스 1세는 제국을 동서로 나누어 두 아들에게 상속했다. 이듬해 황제가 세상을 떠나면서 제국은 분열하게 된다. 로마가 동서로 나누어진 후 채 100년을 견디지 못하고 서로마제국은 476년 게르만족에 의해 멸망하고 만다. 이 때 서로마제국의 수도가 라벤나였다. 493년 라벤나는 다시금 동고트의 왕 테오도리쿠스에게 넘어 갔지만, 540년 비잔틴 제국의 명장 벨리사리우스가 서로마제국의 옛 수도를 탈환했다. 산 비탈레 교회는 이때 지어졌다.중심에 돔이 올라가 있고 팔각형의 외벽으로 둘러싸인 형태를 지닌 산 비탈레 교회의 내부는 비잔틴 특유의 모자이크로 장식되어 있다. 제단이 위치한 후진의 상단 좌우 벽면에는 비잔틴의 황제 유스티니아누스와 황녀 테오도라의 모습이 모자이크로 표현되어 있다. 교회건축에서 종교적으로 가장 성스러운 공간에 세속 군주가 그림으로 등장하는 것은 아주 이례적인 일이다. 라벤나의 역사성과 비잔틴 황제의 권위가 성스러운 공간과 연결되면서 상징적 의미가 피어난다.프랑크 왕국의 샤를마뉴가 라벤나의 산 비탈레 교회를 모방해 아헨에 교회를 세운 것은 비잔틴 황제가 지니고 있는 정통성 때문이다. 이것은 단순한 모방이 아니라 건축적 인용이다.키가 190cm에 가까운 건장한 체구의 샤를마뉴는 덥수룩하게 수염을 길렀고 항상 날카로운 보검을 지니고 다녔다. 47년의 통치기간 동안 대부분의 시간을 전쟁터에서 보냈다. 랑고바르드를 굴복시켜 북부 이탈리아를 통치했고, 대군을 이끌고 떠난 원정에서 작센을 정복했다. 서쪽으로 진격해 스페인까지 영토를 넓혔으며 동쪽으로는 도나우 강 중부 아바르 족을 무찔렀다. 샤를마뉴의 프랑크 왕국은 옛 서로마제국의 땅을 거의 회복했을 정도로 서유럽지역에서 가장 강력한 국가로 성장했다.샤를마뉴의 권력이 절정에 올랐을 때 795년 로마에서는 레오 3세가 새로운 교황으로 선출되었다. 혈통적 콤플렉스가 있었던 샤를마뉴는 교황과의 돈독한 친분을 쌓기 위해 막대한 축하 선물과 함께 ‘교회와 교황을 보호하는 것이 자신의 역할’이라는 내용을 담은 서한을 보내며 교황에 대한 충성을 드러냈다. 교황 역시 강력한 세속군주의 지원이 절실하던 차였다. 로마 귀족들의 지지를 얻지 못하고 교황의 자리에 오른 레오 3세는 늘 위협에 불안한 처지였다. 799년 4월 25일 교황은 괴한들의 습격을 받아 목숨을 잃을 뻔 했고 마침 샤를마뉴의 사절단 호위 군인들이 그를 발견하고 구출해 준다. 교황은 이에 대한 답례로 800년 성탄절 날 샤를마뉴를 로마 성 베드로 대성당으로 불렀고 그의 머리에 왕관을 씌워준다. 샤를마뉴의 정치적 정당성을 교황이 인정한 것이다. /김석모 미술사학자

2023-01-02

검은 토끼의 도약을 기다리며

김진국 고문 해가 떠올랐다. 검푸른 동해를 뚫고 2023년의 해가 떠올랐다. 이 해에 우리의 꿈이 담겼다. 우리의 희망이 새겨져 있다. 지난 3년 동안 우리는 코로나19에 시달렸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세계 경제를 흔들어놓았다. 금리·환율·물가가 한꺼번에 오르는 ‘3고 현상’에 무역수지 적자와 가계부채 증가까지 더한 불황이 덮쳤다. 그렇지만 주변 여건이 어렵다고 좌절할 수 없다. 오히려 우리를 단련시키는 자양분으로 삼아 미래를 개척해나가야 한다.이제 그 긴 터널의 끝에 이를 때가 됐다. 개구리가 뛰어오르려면 움츠려야 하듯, 지난 3년을 발판 삼아 이제 토끼처럼 새로 도약할 때다. 전쟁의 폐허에서 세계 10위권 경제 대국으로 발전시킨 DNA가 우리에게 있다.계묘년(癸卯年)은 ‘검은 토끼의 해’다. 토끼는 영리하다. 우리는 안팎으로 어려움을 맞고 있다. 힘으로만 밀어붙여 풀릴 형편이 아니다. 좀 더 현명하게 풀어나가야 한다. 꾀 많은 토끼는 굴을 세 개 판다(교토삼굴·狡兎三窟)고 한다. 간을 산에 두고 왔다고 속이고 살아난 토끼처럼 지혜를 짜내야 한다. 해답의 단순한 선택이 아니라 판을 뒤집는 창의력이 필요하다.토끼는 온순하고, 평화의 상징이다. 지난 한 해는 무한 대결의 시간이었다. 안으로는 정치가 실종됐다. 대통령은 야당을 국정의 파트너로 인정하지 않았다. 야당 대표와 밥 한번 먹은 적이 없다. 마주 앉아 대화해본 일도 없다. 야당은 대통령을 인정하지 않았다. 취임 직후부터 사사건건 발목만 잡았다. 스토킹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대통령 부인의 일거수일투족을 비틀고, 비아냥대고, 시빗거리로 삼았다. 한나라 두 정부의 내전 상황을 연상케 했다.이재명 민주당 대표를 둘러싼 의혹 수사가 막바지를 향해 가고 있다. 정치적 이유로 혐의를 덮을 수는 없다. 하지만 서둘러 결론을 내고, 정치를 복원해야 한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공격은, 불법적인 침략과 인명피해를 용납할 수 없다. 더구나 국제 경제에 미치는 악영향이 너무 심각하다. 국제 공조가 조기에 전쟁을 종결시킬 수 있기를 기원한다. 핵무기 개발과 미사일 발사에 매달리는 북한 정권의 무모한 도발을 끝내는 것도 올해 이루어야 할 목표다.토끼는 겁이 많고, 온순하다. 분에 넘치게 욕심내지 않는 것이 토끼의 미덕이다. 정의가 실현되는 공정한 사회에 대한 기대를 안고 윤석열 정부를 탄생시켰다. 그렇게 움직일 때 지지율도 올라갔다. 윤석열 정부는 빚이 적다. 정치를 오래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 정부가 좁은 인재 풀에 갇혀 ‘윤핵관’ 시비에 휘말리는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 문을 좀 더 넓게 열어야 한다. 적재적소에 사람을 쓰고, 모든 자리를 내 사람으로 채우려는 욕심은 버려야 한다.토끼가 마음 놓고 풀을 뜯는 안전한 나라를 원한다. 북한의 도발로부터 안전한 나라, 핵으로 위협해도 안심하고 경제 활동을 할 수 있는 나라를 원한다. 미사일을 거꾸로 쏘고, 드론이 서울 상공을 마음대로 휘젓고 다니는 모습은 불안하기 짝이 없다.노동이 안전해야 한다. 자본도 노조도 노동자의 안전을 위협해서는 안 된다. 인권과 정치적 자유가 보장되고, 튼튼한 사회안전망으로 굶주림으로부터 안전해야 한다. 거북이가 전령으로 일하는 게 공정이 아니다. 전령은 발 빠른 토끼가 맡아 역할을 잘해 내야 모두 안전해진다. 상식이 통하는 사회가 공정하다.권력자의 성질대로 휘두르는 정치가 아니라 정치적 경쟁자의 손을 잡고, 상생해야 한다. 민주주의의 틀을 다시 짜야 한다. 현행 선거법은 위성정당을 낳은 법이다. 선거법과 헌법을 10여 년째 만지고 있다. 이제는 매듭을 지을 때다.토끼는 생명력이 뛰어나다. 임신기간이 30일에 불과하다. 한배에 새끼 4~12마리를 낳는다. 새끼는 6~7개월만 자라면 임신할 수 있다. 놀라운 번식력이다. 지혜와 생존력은 현 정세에 가장 필요한 덕목이다. 토끼의 기운을 빌려 어려운 국내외 환경을 이겨내고, 경제가 부활하고 재도약하는 기회의 해로 만들자.김진국△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본사고문

2023-01-01

미래를 향한 새로운 도전

정상철포스코인재창조원 교수·컨설턴트 사람은 미래를 향한 꿈과 희망으로 살아간다. 꿈은 도전을 낳고 도전은 열매를 맺는다. 꿈을 잃은 미국 피츠버그시 베들레헴제철소는 자만과 매너리즘에 젖어 백 년의 부귀영화를 접고 2001년 6월에 문을 내렸다. 미래를 향해 새로운 도전의 연속인 기업은 멈추지 않고 성장하고 발전하는 것이다.계묘년(癸卯年) 새해는 검은 토끼 해로 사람의 지혜를 뜻하는 검정과 풍요를 상징한다. 지혜와 풍요의 계묘년 새해에는 모든 이들이 새로운 꿈을 설정하고 즐거운 도전을 해보시기를 기원해본다. 미래의 꿈을 향한 도전, 지속 가능한 경영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필자는 삶은 선택과 도전의 연속이며 어디까지나 자기창조라는 주관을 갖고 살아간다. P사가 운영하는 교육재단의 고교에 전국모집 1기생으로 입학했고, 입사 후는 일본 유학의 꿈을 갖고 IMF 이후 어려운 여건이었지만 일본어 독학과 새로운 도전 속에 2000년 오사카 소재 철강대학 재료공학과에 합격했다. 기계, 전기, 재료, 정보처리, 지진에 대응하는 구조공학과 등 5개 학과 880명 수준 대학의 총학생회장 선거에 도전하여 일본 S사 기업생을 제치며 유학생 최초로 당선되었고 재학생 대표로 송사를 하기도 했다. 유학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에 불과했다. 학업을 계속하여 기업혁신을 연구하며 경영학 석·박사 학위를 받았고, 제조업의 다양한 업종에 컨설팅과 지속적인 연구를 하고 있다.최근에는 전혀 새로운 업종이라 할 수 있는 P사의 사내 식당을 전문적으로 운영하는 W사 컨설팅을 시작했다.‘적자를 흑자로 돌려달라’는 요청에 처음엔 설렘반 두려움 반으로 시작했지만 경영학 전공과 기업혁신 진화원리를 연구한 것이 요식업까지도 경영진단과 방향 제시를 할 수 있었다. 이를 통한 조리업의 특성에 맞게 종합체계를 완성하여 개선활동의 이정표를 만들었고 고객의 격과 식당 운영의 격, 경영의 격을 올려 W사는 흑자는 물론 안전사고 없고 일이 편리한 조리장이 완성되고 회사의 격 향상에 일조를 했다.혁신 선진기업 일본 도요타의 개선활동은 자동차 조립 프로세스가 정의 되어 있고, 공정별 표준작업에서 시작해서 표준작업으로 끝난다. 즉, 작업표준에서 문제를 드러내고 개선하면 한단계 발전하는 표준작업이 완성되고 또 제로베이스에서 문제를 드러내고 지속적인 개선활동을 통하여 생산프로세스 수준을 높이고 경쟁력 확보와 수익성을 실현해나가는 것이다.이렇듯 혁신이 성공하는 데는 3가지 요소가 있다. 첫째는 표준프로세스 정립이다. 개선은 프로세스로 시작하여 프로세스로 끝난다. 둘째, 프로세스 속의 공정별 작업표준화이다. 표준작업은 또 다른 개선의 테이블이다. 셋째, 지속적인 낭비발굴과 개선으로 프로세스 수준을 높이는 일이다. 이를 통해서 미래를 향한 꿈을 설정하고 도전하고 열매를 맺어가는 것이 지속가능 경영의 비결인 것이다.필자는 아직 꿈이 멈추지 않았다. 미래를 향한 꿈의 종합 결정체는 이제부터다. 새해에는 1인 기업 미래혁신전략연구소를 설립하고 전문성을 활용하여 건강한 사회 기여에 도전한다.

2023-01-01

다른 사람 의자에 앉아 보세요

유영희 인문글쓰기 강사·작가 며칠 전, 대학원 은사님과 선배와 강릉 율곡연구원에서 열리는 학회 나들이를 가기로 했다가 취소되었다. 율곡연구원 건물에 엘리베이터가 없어서 다리에 많이 무리가 될 것 같다고 하신다. 은사님이 몇 달 전 다리를 삐었는데 치료를 잘못해서 나들이 이틀 전까지 불편감이 가시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 역시 왼쪽 발목에 문제가 있어 걷기 힘들 때가 여러 번 있었기에 다리가 아프면 얼마나 불편한지 잘 알고 있다.새해가 밝았다. 들뜬 마음으로 의욕적인 한 해를 기대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힘겨운 나날이 기다리고 있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장애인의 이동권 보장을 비롯한 인권보장을 외치며 2021년 12월부터 서울 지하철 시위를 이어온 전국장애인철폐연대(전장연)에게도 새해는 희망보다는 고난이 기다리고 있다. 지난 1년여간의 시위로 많은 서울 시민이 불편을 호소하고 있는 데다 ‘지하철 탑승 시위 지속하면 더이상 관용이 어렵다’는 오세훈 서울시장의 단호한 태도 때문이다.장애인 예산 부족이 시민 잘못도 아닌데 시민이 불편을 왜 겪어야 하느냐는 항변도 일리가 있다. 그러나 지난 20년간 장애인 인권보장을 호소했어도 아무도 몰랐다가 지하철 시위를 해서야 정치인과 시민에게 들리기 시작했다는 전장연의 입장도 이해가 된다. 생각해보니, 지하철 계단에 종종 보이던 장애인용 리프트가 언제부터인가 보이지 않았어도 전장연의 시위가 있기 전까지는 전혀 알아채지 못했다.‘현재의 질서가 필요하다고 느끼는 사람일수록, 질서를 흐트러뜨리는 사람 중에 질서의 결함을 다른 사람보다 강하게 느끼거나 그 결함에 희생되어 고통스러워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오에 겐자부로의 스승으로 알려진 와타나베 가즈오 교수의 말이다. 누구에게는 당연하고 필요한 질서라도 다른 사람에게는 고통일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고 하면서, 불관용을 벌하기 위해 불관용으로 맞서는 것을 ‘관용의 자살’이라고 한다. 전장연이 출근하는 직장인에게 불관용의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그것을 다시 불관용으로 맞서는 것은 민주주의 정신에 어긋난다는 뜻이다. 민주주의는 사소한 장소들에서 모든 사람이 무사히 함께 살아가게 하는 대화의 연속이라는 와타나베의 말이 마음을 울린다.장대익은 ‘공감의 반경’에서 느낌을 중심으로 하는 엠퍼시는 집단 이기주의에 빠지기 쉽다면서 사고를 통한 엠퍼시를 강조했지만, 사고를 통해 엠퍼시를 경험하기는 말처럼 쉽지는 않다. 감정 경험이 너무 강렬하고 직접적이다 보니 자기 사고의 합리성이나 타당성을 따져보기가 어렵기 때문이다.내가 서 있는 자리를 유지하면서 남의 고통을 이해하기는 불가능에 가깝다. 진정한 ‘엠퍼시(empathy)’를 갖기 위해서는 자기가 겪어보는 것이 중요하다. 이때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남의 의자에 앉아 보는 것이다. 다른 사람 의자에 앉으면 내 자리에서 보던 것과 다른 것이 많다. 바로 옆자리에 앉은 사람에게 보이는 것이 내게는 안 보이기도 한다. 새해에는 국회의원과 서울시장이 휠체어를 타고 하루라도 다녀보고 전장연과 대화하기를 바란다.

2023-01-01

국토교통부 유감

김규종 경북대 교수 길은 추상과 구체의 양면성을 가진 단어다. 우리가 걷거나 교통편으로 목적지에 도달하도록 사통팔달(四通八達)로 나 있는 가시적인 물상(物像)이 길이다. 인도나 보도, 자전거 전용도로나 국도나 고속국도 혹은 철도를 본보기로 들 수 있다. 물과 바다, 하늘에도 길은 있다. 일컬어 수로와 해로 그리고 항로라 한다. 둘 다 길인데 도(道)와 로(路)로 나누어 사용하는 데에는 분명 무슨 까닭이 있을 터.“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朝聞道 夕死可矣)”는 기막힌 명제를 남긴 공자에게 도는 필생의 목표였다.노자의 명저 ‘도덕경’에는 도와 덕의 의미와 작용원리 및 쓰임새가 빼곡하게 담겨 있다. 여기서 도는 눈에 보이지 않고, 귀에 들리지 않으며, 손으로 잡을 수 없는 추상적인 개념이다. 오랜 세월 우리는 사람으로 살아갈 근본방책으로 도를 추구해왔다. 따라서 도에는 추상과 구체의 양면성이 내재해 있는 것이다.21세기 인공지능 로봇이 활개 치는 세상에서 인간은 추상적인 의미의 ‘도’를 상실했다. 의도적으로 내다 버렸는지도 모르겠다. 도가 이젠 쓸모없다고 판단한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반면에 길에 대한 인간의 집착은 나날이 깊어져 간다. 2023년의 첫날인 1월 초하루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승용차와 고속버스, 열차와 비행기, 선박편으로 해돋이를 보려고 길 떠났는지 우리는 안다. 그들에게 길은 구체적이고 실용적이다.길을 걷노라면 인도가 갑자기 사라진다. 차도는 멀쩡한데 인도는 오간 데 없다. 한국의 길은 자동차와 기업체를 위해 존재한다. 이런 현상은 수많은 학교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차도는 있는데, 인도나 보도는 차도에 밀려나 수줍게 고개 숙이고 있다. 사정이 이러니 크고 작은 인명사고가 잇따른다. 얼마 전에 초등학교 부근에서 인도 없는 차도를 걸어가던 아이가 승용차에 치여 숨지는 사고도 일어났다.농촌에 사는 나는 두려울 때가 적잖다. 시골길에는 가로등도 한적하다. 그러다 한밤중에 느릿하게 달리는 경운기나 자전거 혹은 보행자와 느닷없이 마주치는 수가 있다. 등골이 서늘하다. 왜 국토교통부는 야광 표시기가 없는 경운기와 자전거 판매를 아직도 허용하고 있는가. 캄캄한 길을 달리는 승용차가 경운기나 자전거와 추돌하는 장면을 국토부 관료들은 상상이나 해보았는지 궁금하다. 야광 표시기 같은 최소한의 안전장치를 의무화하면 간단히 해결될 일이다.30년 전 도이칠란트를 유학할 때 타고 다니던 자전거는 밤이면 전조등이 빛나고, 지나가는 차량의 불빛을 받으면 타이어에 부착된 야광 표시기가 초록과 노랑과 빨강으로 환하게 반짝였다. 거리도 밝았을 뿐만 아니라, 자전거의 안전장치가 거의 완전하여 자동차와 자전거의 추돌과 충돌은 일어나지 않도록 설계돼 있었다. 그런데 선진국 타령하는 대한민국 국토교통부의 관료들은 여전히 경운기와 자전거의 안전장치에는 전연 무심하다.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것이 국가가 존립하는 제1과 제1장임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공무원이라면 자신이 맡은 최소한의 책무라도 수행하면서 연봉을 받아야 하지 않을까.

2023-01-01

금석위개 각오로

우정구 논설위원 고사성어는 옛 역사 속에 있었던 일을 한자말로 만든 관용어다. 고사성어의 상당수는 중국 전국시대에 생겨났다.제자백가(諸子百家)들이 위정자를 상대로 유세하면서 역사적 일화를 근거로 한 것 등이 주로 사자성어 형태로 전해져 온다.고사성어는 동양인 사유의 집적체라 할만큼 많이 인용된다. 특히 시공을 초월한 인간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력으로, 삶의 지침이나 교훈으로도 주목을 받는다.동양권에 속한 우리도 사자성어를 즐겨 사용한다. 특히 연말연시가 되면 한 해를 마무리하거나 새롭게 시작할 때 사자성어를 인용해 그해의 특징이나 나아갈 방향을 설정한다. 지방자치단체나 경제단체 등 많은 기관이 선택한 사자성어 속에서 그들의 각오와 반성을 읽을 수 있다.지난 연말 우리나라 대학교수들은 2022년 우리 사회를 “과이불개(過而不改)”라 설명했다. “잘못하고도 고치지 않는다”는 뜻이다. 남 탓만 하는 우리 정치의 그릇됨을 꼬집었다. 사자성어는 짧은 말 속에 큰 의미를 담아내는 촌철살인의 묘미가 있다.지난해 “살얼음을 밟고 있는 것처럼 아슬아슬하다”는 뜻의 여리박빙(如履薄氷)으로 한 해를 시작한 중소기업인들이 올해 사자성어로 금석위개(金石爲開)로 정했다. “쇠와 돌을 뚫는다”는 뜻이다. 정성을 다하면 쇠와 돌도 뚫을 수 있다는 의미로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말과 통한다.글로벌 경제난 극복에 온 힘을 쏟겠다는 중소기업인의 의지가 담긴 말이다.올해도 경제가 어려울 것 같다는 전망이다. 서민에게도 예외없이 혹독한 시련이 닥칠 것 같아 걱정이다. 금석위개의 각오를 다져야겠다./우정구(논설위원)

2023-01-01

2023년은 의대 설립의 원년으로!

서의호 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 어김없이 2023년 계묘년의 첫해가 떠올랐다.한반도에서 가장 첫해가 뜨는 곳은 지리적으로 울산의 간절곶이라고 하지만 경북 포항에서는 호미곶뿐이다.호미곶의 첫해를 바라보면서 한해의 평안을 빌어본다.사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시작된 2022년은 가을의 핼로윈 데이 이태원 대 참사로 이어지면서 국내외로 슬프고 어수선한 한해였다.그런 와중에 이 지역 포항은 포스텍의 의과학자 육성 의대 신설 논의로 정말 바쁜 한 해를 보냈다.최근 언론들은 ‘의대 열풍’을 보도하면서 오류가 있는 보도를 내놓았다. 의대 열풍은 현재 의사협의회가 포스텍이나 카이스트 의대 설립에 부정적인 견해에 기초를 제공하고 있다.의대 열풍이 존재하는 것은 인정하더라도 정확히 통계적 자료를 해석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2023학년도 대입 수시모집에서 일명 SKY(서울대·연세대·고려대) 최초 합격자 중 약 33%가 등록을 하지 않은 것으로 집계됐다고 보도했다. 서울대와 연세대·고려대가 발표한 올해 수시 1차 추가합격자는 총 2천206명으로 확인됐다. 2천206명이 다른 대학 등록을 위해 서울·고려·연세대 합격을 포기하면서, 추가합격자가 발생했다는 의미다.3개 대학이 수시모집에서 선발한 인원은 총 6천699명(서울대 2천56명, 연세대 2천110명, 고려대 2천533명). 전체 최초합격자 중 32.9%가 등록을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대학별로 보면 서울대의 1차 추가합격자는 138명이다. 연세대 1차 추가합격자는 자연 465명, 인문 350명 등 총 826명으로 집계됐다. 고려대의 1차 추가합격자는 자연 654명, 인문 574명 등 총 1천241명으로 파악됐다.언론은 이들이 대부분 다른 대학 의대로 진학하면서 의대 열풍을 주도했다고 보도했다.그런데 서울대의 경우는 그렇다 치더라도 연·고대의 경우는 반드시 의대 진학이 아니라 서울대, 카이스트, 포스텍 등에 중복으로 합격하면서 이동한 숫자도 상당수 될 것으로 보인다.정부와 기업이 역점 사업으로 추진하는 반도체계약 학과도 똑같은 문제를 겪고 있다고 보도되었다. 2023년도 연세대·고려대·한양대 반도체 계약학과도 수시모집 최초합격자 84명 중 58명(69%)이 등록을 포기하고 다른 대학을 택했다고 보도하면서 대부분 의대 열풍 때문일 것으로 추측했다.이러한 걱정 속에 포스텍은 서울 특급호텔에서 ‘합격자 설명회’를 열어 수험생과 가족을 초청하여 교수, 기업 간부들이 참가한 가운데, 학과의 성격과 각종 특전을 설명했다.포스텍의 경우 합격자 전원은 삼성전자 취업이 100% 보장되고, 등록금 전액 지원에 기숙사비 무료, 특별장학금에 해외 인턴 기회라는 파격적인 혜택이 주어지는데도 이탈을 막기 위해 노력했다고 한다.그러나 생각보다 이탈자가 거의 없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결국, 연고대 등의 이탈자들도 반드시 의대로 갔다기보다는 더 상위권 대학으로 이동한 경우가 많으니까 결국 포스텍의 걱정은 기우였다고 보인다.‘의대 열풍’이 존재하긴 하지만 언론의 보도는 잘못된 통계분석으로 오도하고 있다. 이러한 오도가 의협의 의대 신설에 대한 알레르기 반응을 더 재촉하는 것으로 보인다.언론의 통계적 잘못은 65세 시니어 운전자의 교통사고가 증가한다는 보도에서 절정을 이룬다.시니어 운전자의 면허증 유효기간을 짧게 하고 검사를 엄격히 강화한다는 보도가 있었다. 전체 교통사고에 시니어 운전자의 비율이 매년 높아진다고 대서특필하는 언론도 있다.의학상으로 시니어들의 노화 현상으로 운동감각이 저하되고 운전에 문제가 있을 수는 있다. 그러나 시니어의 절대 숫자가 늘고 있다면 당연히 시니어의 교통사고가 느는 건 인구 고령화 시대에 당연하다. 여기에는 인구 중 65세 시니어 비율이 늘어가는 통계와 시니어 운전자의 비율이 함께 고려되어야만 정확한 판단을 할 수 있다.정치에서도 표본의 오류, 분석의 오류, 조사방식의 오류가 ‘엉터리 여론조사’를 이끌고 있다. 정치적 이해집단들은 아전인수의 여론조사 결과를 인용하여 자기네가 우세하다고 여론을 오도한다. 여론조사는 민주사회에서 필요한 하나의 정보이기도 하다. 그러나 각종 오류로 점철된 여론조사가 횡행한다면 그것도 공정성을 중요시하는 민주주의에 역행하는 일이다.아이러니컬 하게 통계의 오류, 해석의 오류가 포스텍의 의대 설립을 막고 있다.2023년은 포항에 그리고 포스텍에 의대가 설립되는 원년이 되어야 한다.통계의 오류에 의한 과장된 의대 열풍은 의대 설립의 정당성을 막고 있다.의사의 숫자는 앞으로 지속적으로 증가할 것이다. 더구나 포스텍이 의도하는 과학자형 연구중심의 의사의 중요성은 향후 한국경제를 좌우하는 승부수와 관련이 깊다.2023년은 의대 설립의 원년이 되어야 한다.

2023-01-01

영일만대교 그리고 동해안 시대

서진국 전 포항시북구청장 계묘년 새해가 밝았다. 큰 기쁜 소식이 들려온다. 영일만대교 청신호이다. 섣불리 동해안 시대가 열리겠구나 하는 희망으로 설렌다. 인류 문명사 5만년을 거스르고, 동해물이 마르고 닳도록 영일만의 기슭에 검푸른 먼동이 튼다.지난달 27일 호미반도 해양생태공원조성사업이 정부의 예비타당성 조사 대상으로 선정되고, 이에 앞서 세계적인 기업 테슬라(Tesla)의 포항 유치 가능성도 언론에 회자되고 있다. 또한 미래 성장 동력인 코리포항(한미약품)이 경제자유구역에 신약 생산의 보금자리를 틀었다. 단비 같은 소식들이다.더욱이 온 시민들이 하나 되어 그동안 얼마나 염원 했던가? 영일만대교 설계비 50억원이 올해 예산에 반영된 것이다. 이는 동해안 최대 숙원인 영일만대교 건설이 본격적으로 추진될 수 있다는 것이다. 영일만대교의 위상을 생각해 본다.삼국유사의 연오랑 세오녀 설화는 고대 태양신화의 한 원형으로 여겨진다. 일찍이 육당 최남선은 가장 해가 먼저 뜨는 호미곶이 천하의 명당이라 했다. 호미곶을 품고 있는 해를 가장 먼저 맞이하는 영일만(迎日灣)의 기세가 전국에 이른다 할 것이다. 이러한 포항이 먹고 살 수 있는 미래 먹거리는 과연 무엇일까?그동안 포항은 철강산업도시로 성장해 왔다. 철강산업의 사양화는 탄소중립과 환경문제 등으로 미국에서도 러스트벨트(Rustbelt)와 선벨트(Sunbelt)가 선거 공약으로 나올 지경이 되었다. 러스트벨트는 철강산업의 메카였던 피츠버그와 필라델피아의 사양화된 지역을 일컫는 것이다. 철강산업의 하이테크(Hightech)화는 우리 포항의 지속적인 과제이다.포스텍을 중심으로 한 RD는 미래 포항의 희망이다. 영일만의 천연적인 환경조건이 영일만항의 컨테이너 부두를 가능하게 했다. 우리는 그동안 동해안시대를 대비해서 포항~대구 고속도로, KTX는 물론 영일만배후산업도로 및 철로 등 그 기반을 힘차게 준비해 왔다. 해양관광도시 포항의 실현은 영일만의 위상, 그 자체이다. 호미반도 해양생태공원조성은 물론 그 한가운데 랜드마크(Land Mark)로 영일만대교가 있는 것이다.그동안 L자형 국토개발 전략으로 동해안은 남해와 서해에 비해 지나치게 낙후되어 버렸다. 지난 2003년 국가균형발전을 이루고자 지역발전특별법이 제정된 바 있다. 국가균형발전 사업의 일환으로 추진된 영일만대교는 그동안 재정부담의 이유로 사업 추진이 답보 상태에 있었다.늦었지만 동해안고속도로의 가시적인 건설을 크게 환영하는 바이다. 영일만대교는 동해안의 랜드마크가 될 것임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인천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긴 다리로 바다 위의 하이웨이라는 인천대교가 인천국제공항 위상과 함께 세계적인 명소로 거듭나고 있고, 부산에는 해운대와 함께 불꽃 축제로 유명세를 타고 있는 다이아몬드 브리지인 광안대교가 있다. 태평양의 관문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세계 최초 현수교인 금문교는 가보지 않고는 세계적 관광지에 대한 얘기를 할 수 없다. 런던 브리지는 유럽 여행의 필수 코스로 런던의 랜드마크이다. 모두 지역을 상징하는 관광명소로서 지역민의 삶을 부유하게 함은 물론 역사적 위상과 자긍심도 갖게 한다.동해안에는 영일만이 대교를 건설할 수 있는 지리적 특수성을 갖고 있다. 그동안 윤석열 대통령이 영일만대교 건설을 대선공약으로 했고, 당선 이후에도 직접 포항을 방문하는 등 사업추진에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 영일만대교는 환동해 물류교통의 중심지가 되고 관광 등에 획기적인 기여로, 제2의 영일만 기적을 가져 오게 될 것으로 기대된다. 지금 한참 건설 중인 동해안고속도로는 영일만을 비켜 갈 수 없는 숙명의 과제를 안고 있다 할 것이다.영일만은 부산에서 삼척에 이르는 동해안고속도로 중간 허리 부근에 있다. 동해안고속도로가 영일만을 횡단하지 않으면 결국 포항 시가지를 우회하게 되는데 임시방편으로 국도대체우회도로를 겸용하거나, 새로운 우회 고속도로를 건설한다면, 포항은 이 고속도로로 인하여 또다시 시가지가 두 동강이 나버린다. 영일만을 횡단하는 노선으로 하는 영일만대교는 시가지 간선도로의 만성 교통체증을 해소할 수 있고, 블루밸리 산단과 영일만산단은 물론, 남구와 북구를 이어줌으로써 토지의 이용 가치는 숫자로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크다 할 것이다.정치권과 행정당국에서 이러한 영일만대교의 위상을 헤아려야 할 것이다. 영일만대교의 건설은 본격적인 동해안 시대의 서막을 예고한다. 중국의 동북 3성의 인구가 1억5천만명이 넘는다. 특히 길림성과 흑룡강성은 바다가 없다. 이들이 대량의 물류를 수송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항만이 필요하다.중국이 그동안 이를 해소하기 위해 북한의 나진과 선봉을 평양시 다음으로 특별시로 승격토록 노력했다고 한다. 나진항 부두를 중국의 코스코사에서 장기간 조차를 했다고도 한다. 모두 동해안 진출을 위한 교두보를 확보하고 있는 것이다. 영일만대교는 대기만성으로 동해안시대의 화룡점정으로 거듭날 것이다.

2023-01-01

경주시 새해 경제산업지도 대변화 예고

주낙영 경주시장 주낙영 경주시장은 오직 시민과 소통하면서 중단 없는 경주발전과 지역경제 활성을 최우선으로 경제시장을 표명하며, 2천년 역사도시의 정체성을 분명히 하면서도 신성장 동력을 발굴해 더 큰 경주 더 나은 미래 100년 대계 건설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경주시의 올해 예산 2조원 시대에 돌입했다. 민선7기 1조 4천215억 대비 약 5년 만에 40%(5천785억)가 증가했다. 민선8기에 돌입하여서는 굵직굵직한 정부 공모사업에 선정되어 경제산업 지도의 대변화가 머지않았다.경주와 포항의 형제의 강이자 환동해 상생의 강인 ‘형산강’이 22일 환경부 주관 ‘홍수에 안전한 지역맞춤형 통합하천사업’에 선정됨에 따라 홍수 안전, 하천 환경개선은 물론 친수공간까지 조성한다.형산강 36㎞ 구간에 사업비 4천942억을 투입해 2024년부터 단계적으로 추진한다. 사업내용은 치수안정을 위한 형산강 상류 하도준설, 중류지역인 안강읍에 저류지와 서천교 인근에 복합친수레저공원 조성, 하천 산책로 및 자전거도로와 형산~제산 연결교량 조성 , 장군교·형산강철교 리모델링, 생태계 보전 및 교육 목적의 생태공원 조성 등 24개 사업이다.신형산강 프로젝트는 형산강 발전을 골자로 추진된 ‘형산강 에코트레일’과 ‘형산강 프로젝트’에 이은 세 번째 전략 프로젝트이다.또한 경주는 지난 11일 KTX 신경주역세권 해오름 플랫폼 시티가 국토부 주관 ‘거점 육성형 투자선도지구’에 선정됨에 따라 현재 추진 중인 신경주역세권 지역개발사업과 양성자가속기 RDB단지 조성, SMR 국가산단 전문인력 상주공간 확보, 신경주역세권 2차 개발과 연계하여 지역의 새로운 성장거점으로 발돋움한다.신경주역 일원 113만 2천529㎡ 부지에 사업비 5천407억을 투입해 2031년까지 환승주차장, 컨벤션시설, 문화 및 집회시설 등의 복합환승센터, 다목적 스포츠 콤플렉스, 그린에너지(수소융복합시설) 등 광역교통 연계 융복합 자족도시로 개발된다.신경주와 경상권 지역에 부족한 교통망을 구축하고, 신경주역을 중심으로 지역특화산업(양성자, 원자력)을 비롯해 전통적인 역사문화관광이 융·복합된 거점 조성과 함께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한 새로운 성장 동력의 견인차 역할이 크게 기대된다.경주시가 자동차 부품산업의 잠재적 위기를 새로운 도약과 혁신의 계기로 만들고자 도내 노·사·민·정과 함께 힘을 합쳤다. 이 프로젝트는 경북도를 비롯해 경주, 영천, 경산에 소재한 내연기관 중심의 자동차 부품산업 대혁신으로 지역 상생의 미래차 부품산업 수퍼 클러스터를 조성해 산업 및 노동 전환에 따른 일자리 유지, 인력양성을 통한 새로운 일자리 창출을 목표로 한다.경주 소재 (주)다스, 에코플라스틱(주), 영신정공(주) 3개 기업 등 총 10개 기업은 기존 내연기관 중심의 산업구조를 미래차 부품산업 위주로 전환하기 위해, 2025년까지 5천880억 이상을 투자하고 800여명의 고용창출을 목표로 하고 있다. 또한 지역에 미래차 부품 혁신센터, 일자리 혁신파크, 글로벌비즈니스지원센터 등을 구축하여 RD, 생산, 판매 등 분야별 지원, 설비투자 지원, 지방세 감면 등의 세제혜택이 포함돼 있다.경주시의 원전사업은 지역 혁신 성장의 큰 디딤돌이 될 전망이다.시는 동경주 지역 150만㎡(46만평) 부지에 2030년까지 총 3천170억을 투입하여 SMR 등 혁신원자로 제조 및 소재.부품.장비 산업 육성과 집적화, 혁신형 i-SMR 수출모델 공급망 구축 등 산업생태계를 조성하여 미래 세계 원전수출시장을 선점한다는 계획이다.지난해 7월 착공한 SMR 1단계 사업인 ‘문무대왕 과학 연구소’가 순항 중에 있으며, 중수로해체기술원 설립, 소형 모듈원자로에 적용할 수 있는 ‘초임계 CO2 발전 시스템 기술개발 협약’ 체결, 산학연·유관기관과 ‘경주 SMR 국가산단 유치 협력 및 지역 상생발전’ 협약 체결 등 SMR 국가산단은 경주가 최적지임이 분명해졌다.특히 SMR 국가산단 입주의향 및 설문조사 결과 현대엔지니어링 등 원전 관련 우량강소기업 225개 기업에서 참여의향을 밝혔으며, 1천여 명 이상의 석·박사 전문 인력 상주, 배후단지 조성, 고용창출 등 미래 원전 먹거리 산업의 효자로 부각되고 있다.

2023-01-01

평화를 주문처럼

이희정 시인 하루를 살아도온 세상이 평화롭게 이틀을 살더라도사흘을 살더라도 평화롭게 그런 날들이그날들이 영원토록 평화롭게  김종삼, ‘平和롭게’ 전문 한겨울 정신이 번쩍 드는 추위 속에 새해는 온다. 첫해, 첫날의 ‘첫’이라는 외자가 새 희망을 향한 각오로 들리지 않는가. 저마다 새해엔 지난해보다 더 나아질 거란 기대로 이른 새벽 일출에 기대어 소원을 빌곤 한다.새 술을 새 부대에 담듯 새해 첫술로 김종삼 시인의 ‘평화롭게’를 올린다. 학기를 모두 마치던 날, 존경하는 은사님이 주문처럼 얹어 주신 글이다. 벽에 걸어 두고 마음이 분주할 때마다 읊조려 본다. 평화(平和)가 방 안 가득 울리는 듯하다. 언제나 끝은 출발이 예정된 길이기에 새 걸음으로 나아가라는 희망과 함께.모든 예술은 음악의 상태를 동경한다고 한다. 우리가 숨 쉬는 동안 움직이는 모든 것들에는 리듬이 숨어 있다. 길가의 나무에도, 새근새근 잠든 아가의 숨소리에도, 함박눈 펑펑 쌓인 마당을 뛰어다니는 강아지의 통통 튀는 네 발에도 있다. 남다른 리듬감으로 짧은 시어를 견인하는 시인을 따라 소리 내어 노래하듯 ‘평화’를 불러내 보자.시인이 부르는 평화는 단순하고 순수한 듯하나 그를 바라보는 우리는 단순하지도 순수하지도 않다. ‘평화’는 화자의 영혼에 찾아와 끊임없이 평화롭지 못한 평화를 확인시켜주는 듯 짧은 어휘를 통해 거듭 강조하고 있으니까. 이런 의식은 길지 않은 행간을 담담하게 지난다. “하루를 살더라도”라는 간구는 평화가 없을 것이라는 절박한 의식으로도 들린다. 화자가 반복하는 평화와 평화가 마주 보는 눈은 온화하지만, 녹록지 않은 세상을 몸으로 살아낸 시인은 주문처럼 평화를 읊었는지도 모른다.김종삼(1921~1984)은 우리 시에서 ‘순도 높은 순수시’를 쓴 한국 시문학사에서도 가장 뛰어난 시인의 한 사람으로 서슴없이 손꼽히는 인물이다. 평생 단칸방 월세살이에서 벗어나 보지 못했던 그에게 현실적으로 창작의 공간 같은 것은 허락되지 않았을 터. 그에게는 종교적 신앙생활에 비견될 수 있었던 술과 음악에의 탐닉, 그 의식 아닌 의식의 시간만이 유일하게 허락된 창작공간이자 시작의 모든 과정이었을 것이다.그는 말한다. 시는 가난과 소외 속에서도 선량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힘과 위안이 되어야 한다고, 시가 하나의 말씀이고 복음이어야 한다고. 다시 호흡을 맞추어 가볍게 낭송해 보자. 시인이 바라 마지않은‘평화’가 평화롭기 그지없이 혀끝에서 울리지 않는가.시인이 말하는 평화는 먼 곳에 있지 않다. 첫눈 오는 날 연인들에게도, 곁이 되는 문장의 밑줄에도, 시골 마을 굴뚝마다 피어오르는 밥 짓는 연기에도, 새벽을 달리는 배송 기사의 바쁜 걸음에도, 완생을 꿈꾸며 사지선다를 읽는 미생의 독방에도 평화는 두루 미친다.‘평화’를 주문처럼 외다 보니 어느 경제학자의 시에 대한 한 줄 감상이 떠오른다. 시에는 경제성이 있다고. 시는 살림을 잘 살아서 짧게 축약된 몇 행 안에 넓고도 먼 보폭의 사유를 숨기듯 잘 담아낸다고. 세상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는 종류의 위안으로 온기 있는 겨울을 날 수 있다고 말이다.새해에는 움츠렸던 살림이, 사람 사이 접혔던 주름이 포근하게 펴지면 좋겠다. 몸이 추우면 마음도 추워질 테니까. 가까이에서부터 저 먼 곳의 평화가 오는 것처럼 누군가 있는 먼 걸음까지 새해, 새날, 새마음의 평화가 ‘평화롭게’닿기를 주문처럼 외워본다.“하루를 살아도, 이틀을 살더라도, 사흘을 살더라도” ◇ 이희정 시인 약력 ·2019년 경상일보 신춘문예 등단 ·시집 ‘내 오랜 이웃의 문장들’

2023-01-01

드론의 공포

우정구 논설위원 드론은 전파로 조정할 수 있는 무인 비행기다. 카메라, 센서, 통신시스템이 장착돼 있어 군사용으로 먼저 시작을 했으나 지금은 고공 촬영, 배달 등 민간영역에서도 그 사용 빈도가 늘고 있다.군사용으로 처음 사용할 때는 공군의 미사일 폭격 연습대상이었지만 지금은 정찰과 공격적인 용도로까지 사용 범위가 넓어져 국지전에서 드론의 활약상이 자주 소개된다.드론이 군사용으로 인기를 유지하는 이유는 조종사 없이도 적군의 동태를 파악하고 폭격까지 가능하기 때문이다. 또 적은 비용으로 효과적인 공격을 가할 수 있는 장점도 드론의 이용률을 높이고 있다.엄청난 비용을 들인 초음속 비행기보다 저렴한 비용으로 더 높은 효과를 내니 세계 각국마다 지금 첨단드론 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다. 드론이 미래 전쟁의 양상도 바꿀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이스라엘이 개발한 자폭 드론 ‘로템-L’은 프로펠러가 4개 달린 쿼드콥터 형태다. 작고 가벼워 병사가 배낭에 담아 다닐 수 있어 언제 어디서든 단시간에 목표물을 파괴할 수 있다, 특수 목적의 부대가 활용하기 제격이라 한다. 비록 수류탄 2발 정도의 위력이지만 정확한 장소와 목표물에 대한 접근성이 높아 파괴력이 결코 약하지 않다는 평가다.북한 무인기 5대가 군사분계선을 넘어 우리 상공을 휘젓고 다닌 사실이 알려지면서 안보에 대한 국민적 불신감이 커졌다. 더 충격적인 것은 북한 드론 침범에 대한 우리 군의 무능한 대응이다.만약 북한이 드론에 고성능 폭발물이나 생화학 무기를 탑재했다면 어떤 참변이 일어났을까.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드론의 공포를 막아줄 특단의 대응책이 먼저 나와야겠다. /우정구(논설위원)

2022-12-29

홍준표의 질주

홍석봉정치에디터 홍준표 대구시장의 행보가 거침 없다. 질풍노도다. 취임 6개월 동안 쉼 없이 달렸다. 홍 시장 취임 후 대구 시정은 파격이 일상화됐다. 홍 시장은 옳다고 생각하면 좌고우면하지 않는다. 우려의 시선도 적잖다. 마뜩찮아 하는 언론과 시의회와는 일전도 불사한다. 그의 질주는 멈출 줄 모른다. 페이스 조절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대구시의회가 내년도 대구시 신청사 예산을 전액 삭감하자 홍준표 시장은 신청사 건립 유보를 선언했다. 곧바로 관련 부서를 해체했다. 다분히 감정적인 대응이 아닐 수 없었다.신청사 건립을 달갑지 않게 여기던 홍 시장은 청사 예정 부지 일부를 팔아 건립 비용에 충당하려고 했다. 하지만 의회가 반대했다. 땅을 파는 데 부정적이었다. 타협여지도 남기지 않는 홍 시장의 대응에 시의원들은 곤혹스럽다.상급기관과의 충돌도 마다 않았다. 홍 시장은 지자체 공무원의 교육파견 정원축소 방침과 관련해 행정안전부와 맞부딪혔다. 급기야 행안부가 파견한 고위 공무원들을 돌려보내겠다고 했다. 이전엔 상상도 못하던 일이다.홍 시장은 군사정권 시대에서나 하던 지방자치단체에 대한 통제와 갑질이라고 성토했다. 바로 전날 대구시가 파견하던 교육파견 공무원의 정원을 줄이겠다는 행안부 공문이 발단이다. 그는 행안부 조치가 대구시의 한시조직 설치에 대한 보복이라고 판단했다. 공무원의 교육파견 중단을 선언했다.사법기관에 대한 질책도 서슴지 않는다. 이태원 참사 수사 및 이재명 민주당 대표 수사와 관련, 경찰과 검찰의 무능을 꼬집고 소신있는 수사를 주문했다.홍준표 시장은 정부조차 껄끄러워하는 민노총의 횡포를 한방에 주저앉혔다. 대구시의 대형마트 의무휴업일 평일 전환 추진에 반발하는 민주노총 소속 대형마트 직원들의 시청 점거 시위에 가담자들을 경찰에 고발했다. 특정세력에 의한 공공질서 파괴행위 및 공권력 무력화 등 불법은 용납할 수 없다고 했다. 아무 것도 법 위에 군림할 수 없다는 것이 그의 소신이다.공무원 인사 틀도 확 바꿨다. 연공서열주의를 타파했다. 능력과 성과위주의 발탁 인사를 했다. 젊은 인재들을 전진배치했다. 산하 공기업도 통폐합했다. 숫자를 바짝 줄였다. 대구시 조직을 일신했다. 공무원들은 납작 엎드렸고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북한 무인기가 침범하자 대구경북 통합신공항 건설의 당위성을 주장했다. 이참에 유사시 인천공항을 대치할 제2의 중추공항을 만들자고 했다. 발빠른 대응이다.전국시대 위(魏)나라의 정치가 서문표는 업 땅 수령으로 부임, 해마다 처녀를 골라 강물에 던지고 하백에게 제사지내는 폐습을 일소했다. 서문표는 이후 12개의 수로를 파고 황하의 물을 끌어들여 농업 혁신을 가져왔다. 수로작업 동원을 꺼려하는 백성들의 반발을 무릅쓰고 공사를 했다. 자신을 욕하지만 후손들이 평가할 것이라고 했다. 업 주민들은 수리사업 덕에 지금도 풍족한 생활을 누리고 있다.홍준표 시장이 질풍같이 달려온 임인년 끝이다. 서문표 같이 후세에도 평가받길 바란다. 하지만 너무 곧은 나무는 부러지기 쉽다.

2022-12-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