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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풍년의 역설

홍석봉정치에디터 흉년만큼 힘든 풍년이다. 풍년에 농부의 소득이 오히려 줄어드는 현상인 이른바 ‘풍년의 역설’ 때문이다. 국내산 과일의 가격이 전년보다 뚝 떨어졌다. 소비자들은 미소 짓는 반면 농부들은 한숨만 내쉰다. 과일은 풍작인데 값은 오히려 전년보다 못하다. 각종 자재 및 농약 등과 인건비는 올랐는데도 과일값에 반영하지 못하는 형편이다. 반면 수입산 과일은 원가 상승에 따라 고공행진 중이다.올해 사과와 배 등 과일이 풍작을 이뤘다. 예년에 비해 태풍 피해가 크지 않았고 수확기에 일조량이 좋았던 덕분이다. 과일은 잘 익었고 병충해 발생도 적었다. 과일의 당도가 높고 맛이 뛰어나지만 가격은 오히려 지난해보다 크게 떨어졌다. 이른 추석에 따른 소비 부진으로 많이 남은 물량도 가격 하락을 부추겼다.농촌경제연구원은 최근 올해 생산된 사과와 배 저장량이 전년 대비 각각 2%, 21% 늘어났다고 발표했다. 물량이 늘면 값은 떨어지기 마련이다. 단감은 생산량과 출하량이 전년 대비 각각 12%, 6% 늘면서 도매가격이 전년보다 20~30% 떨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샤인머스켓도 전년의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다. 샤인머스켓은 재배 면적이 크게 늘어난 탓이다.쌀은 ‘풍년의 역설’을 해마다 반복하고 있다. 풍년이 쌀값 폭락으로 이어져 농심을 멍들게 한다. 정부는 시장격리와 공공비축미를 늘리는 대책을 내놓았다. 농민 살리려다가 국가 재정이 구멍날 판이다.배추와 양파, 마늘 등 농작물은 걸핏하면 풍작과 가격폭락을 되풀이한다. 수급조절을 못한 농정과 농민 탓이 크다. 올해는 특히 작황이 좋은 과일이 풍년의 역설을 피해가지 못했다. 농민은 절망한다. 농부의 마음은 풍년을 반기지 못한채 타들어가고 있다./홍석봉(정치에디터)

2022-11-14

지난 정부와 비교, 그만하라

김진국 고문 퇴임한 뒤에도 문재인 전 대통령이 자주 소환된다.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비판이 제기될 때마다 여권 인사들은 조건반사처럼 문 전 대통령을 거론한다. “그때는 더했다.” 윤 대통령을 변호할 때 가장 많이 쓰는 논리다.윤 대통령도 조각(組閣)할 때부터 이 방법을 썼다. 도어스테핑에서 기자가 비판 여론을 전하자 “전 정권에 지명된 장관 중에 이렇게 훌륭한 사람 봤어요? 다른 정권 때하고 한번 비교를 해보세요”라고 반박했다. 국회에서 청문보고서를 채택하지 않은 장관 임명에 대해서도 권성동 당시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문재인 정부는 그렇게 임명한 장관이 31명”이라고 반박했다. 윤 대통령이 영국을 방문했을 때 민주당이 홀대 논란을 제기하자, 국민의힘은 문 전 대통령의 베이징 ‘혼밥’ 논란을 들어 반격했다.김건희 여사의 의상과 액세서리가 논란이 되자 김정숙 여사의 의상으로 맞불을 놓았고, 김건희 여사의 대통령 동행과 지인의 전용기 동승을 비판하자 김정숙 여사의 인도 방문 등 ‘버킷리스트’, 지인인 디자이너 딸의 청와대 근무를 꼬집었다. 알박기 인사에 대한 압박 감사·수사 논란에도 “문 정부는 청와대 캐비닛까지 뒤져 수사하지 않았느냐”고 반박했다. 문제가 된 일을 어떻게 하는 게 옳은지는 처음부터 논외다. 너도 한 일이니 입을 다물라니, 유치한 어린애들 싸움 같다.비판하는 사람에 아무래도 민주당 지지자가 많다. 그러니 조건반사적으로 그런 논박이 튀어나오는 게 이해는 된다. ‘× 묻은 개’라는 생각이 들 법도 하다. 하지만 국정을 책임진 사람의 말은 사사로운 언쟁과 다르다. 언쟁 당사자가 아니라 국민에게 들려주는 말이다. 그렇다면 아무래도 이런 대응이 적절해 보이지 않는다. 더군다나 이태원 참사처럼 거대한 비극을 두고 이런 입씨름은 더더욱 곤란하다. 이태원 참사와 관련된 경찰 간부들을 지목해 “문재인 정권 퇴임 3개월 전 알박기 인사에서 영전된 인물”이라고 떠미는 식이다. 취임한 그 날부터 국정의 모든 책임은 대통령에게 있다. 설령 실제로 알박기였다 해도 바로 잡지 않고, 지휘·감독을 제대로 못 한 윤 정부 책임이다.정권마다 업적도 있지만, 잘못도 있다. 집권하겠다고 표를 구하는 것은 그 모든 짐을 떠맡겠다는 약속이다. 영광의 역사, 오욕의 역사를 모두 짊어지겠다고 나선 것이다. 내 마음에 안 든다고 역사의 한 토막을 잘라낼 수는 없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과거 정부 탓만 하면 국정은 누가 이끌고, 책임을 지나.지난 8일 국회 운영위에서 주호영 위원장이 김은혜 대통령 홍보수석과 강승규 시민사회수석을 퇴장시켰다. ‘웃기고 있네’라는 필담에 민주당이 반발했기 때문이다. 한 언론은 윤 대통령도 이 일에 대해 ‘역정을 냈다’라고 보도했다.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의 “소설을 쓰시네” “어이가 없다”라는 발언을 소환하며 일부 여권 인사들도 주 위원장을 비판했다.사사건건 시비를 거는 민주당 행태를 보면 이런 반박도 나무라기가 조심스럽다. 특히 ‘처럼회’는 한동훈 법무부 장관을 집중적으로 공격했지만, 번번이 되잡혔다. 김의겸 의원의 청담동 술집 이야기는 젊은 남녀의 알리바이 만들기에 놀아난 것으로 보여 어이가 없다. 정말 국정을 걱정한 비판인지 꼬투리를 잡으려 안간힘을 쓰는 건지 모르겠다.격투기를 보듯 내가 응원하는 사람이 이기면 보는 사람도 신이 날 수 있다. 하지만 게임이 아니라 국정이다. 때려 부수고, 망가뜨려도 리셋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지난 정부를 따라 한다고 무조건 용인될 수 없다. 유치한 입씨름일 뿐, 국민에게 할 말이 아니다. 지난 정부가 한 일이라도 잘못한 것은 잘못한 것이다. 사과부터 하고, 책임을 져야 한다.윤석열 정부는 문재인 정부의 ‘내로남불’을 지겨워 한 유권자가 만들었다. 같은 꼴을 보려고 정권을 바꾼 게 아니다. 당장은 미운 놈 혼내는 것만으로도 손뼉을 치겠지만, 결국은 불만이 되어 돌아온다. 욕하면서 배운다. 과거 정부를 소환하고, 비교하는 것은 국민의 몫이다. 국정을 맡은 사람이 할 말이 아니다. 과거의 적폐로, 누적된 부채로 힘들어도 그것을 해결할 책임은 현 정부에 있다.김진국△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중앙SUNDAY 고문,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본사 고문

2022-11-13

맨발로도 청춘

유영희인문글쓰기 강사·작가 아니, 여기서 신발을 벗어요? 산을 그냥 다 맨발로 올라가요? 네, 다 맨발로 올라가는 거예요. 처음 맨발 등산을 제안한 한 사람만 이 상황을 알고 있었나 보다. 따라나선 네 명은 어리둥절 잠시 머뭇거렸다. 그러다 한 명 두 명 신발도 벗고 양말도 벗었다. 뒤이어 제안자가 신발 들고 다니기 불편하면 여기 벤치 아래 그냥 놔두고 가면 된다고 했지만, 네 명은 기어코 신발을 배낭에 넣었다.맨발 걷기라니, 살짝 긴장감이 느껴진다. 모두 걱정 반 기대 반으로 한 걸음 한 걸음 발을 디뎠다. 머뭇머뭇하던 중 누군가 정상을 목표로 하지 말고 한 시간만 걷자고 하자, 모두 기다렸다는 듯이 동의한다.이렇게 맨발로 줄지어 산에 오르니 남들이 보면 꽤 오래된 친구처럼 보이겠지만, 사실은 서로 이름도 잘 모르는 사이다. 이들은 오늘 60대를 위한 가치 있는 여행 방법을 교육하는 모임에서 한 사람의 제안이 옆 사람으로 꼬리를 물어 갑자기 함께하게 된 것이다. 60대라고 해도 모임 주제가 여행인 데다, SNS를 통해 자발적으로 신청한 사람들이라 그런지 기본적으로 낯선 사람에 대한 경계심도 적은 것 같다.그래도 처음 올라갈 때는 맨발 산행의 효과 같은 건강 이야기를 주로 나눴다. 맨발로 걸을 때는 터널 위는 안 되고 땅밑까지 다 흙으로 된 산을 걸어야 한단다. 과학적 근거가 충분한지는 모르겠지만, 맨발로 땅을 디디면 사람 몸의 양전하가 땅의 음전하와 만나 중화되는 접지 효과로 건강이 좋아지는 것이란다.그러나 10m도 못 가서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너도나도 인증샷을 찍자고 한다. 맨발을 한 발씩 내밀어 사진을 찍었다. 산에 다 올라가서는 나란히 서서 셀카도 찍었다. 이제 내려올 때 우리의 대화는 금세 정치, 결혼, 예능 등 다양한 주제를 넘나들었다.우리 다섯 명이 찾은 D 산은 도시 가까이에 있는 작은 산이라 그런지 발바닥이 생각보다 아프지 않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박동창의 저서 ‘맨발로 걸어라’가 매스컴을 탄 후 이 산에서 맨발로 걷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이 산에서 매주 맨발 걷기 강좌도 진행되고 있었다. 맨발 산행을 마치고 내려오니 두고 간 신발이 제자리에 잘 있다. 옆에 다른 신발도 하나 놓여있다. 배낭이 없는 누군가가 두고 갔으리라. 한 시간 만에 신발을 신으니 신발이 이렇게 푹신했던가 부드러운 감촉에 감탄하면서도 맨발로 걸었던 80분이라는 시간이 소중하게 느껴졌다.맨발이라는 단어 때문인지 뜬금없이 최희준의 노래 ‘맨발의 청춘’이 생각났다. 노래에서 맨발은 길거리 청춘의 지고지순한 사랑을 의미하지만, 우리의 맨발에 그런 열정이 담겨 있을 리 없다. 행여 다칠까 조심조심 올라가느라 길을 잘 못 봐서 내려올 때는 길을 잘못 들기도 했다.우리가 맨발로 산행 한번 했다고 청춘 같은 건강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 그래도 새로운 사람을 만나 공동의 관심으로 의기투합할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활기를 회복했다는 기분이 든다. 시니어를 위한 문화 프로그램이 제대로 가치를 발휘한 순간이었다.

2022-11-13

경쟁력을 지속하는 혁신의 원리

김종찬포스코인재창조원 교수·컨설턴트 오늘날 품질은 기업에서 필수 요소가 되었다. 이는 제품을 잘 만드는 것을 넘어서 서비스를 포함한 기업의 전반적인 것을 잘 관리해야 된다는 경영적 필수 요소로 이해하기에 이르렀다. 품질을 결정하는 가장 큰 요소는 현장의 경쟁력이다. 현장의 경쟁력은 어느 한 가지로만 정의하기에는 변수가 너무나 다양하여 제어하는 것이 어렵다.그 이유는 현장을 구성하는 요소들이 시시각각 변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설비의 컨디션도 조건에 따라 변하고, 직원들의 사기 또한 내외부의 요인에 의해 영향을 받고 있으니 현장의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기업들은 혁신 방법론들을 도입하고 있다. 그러나 경영자나 관리자들이 혁신의 원리를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한다면 투입된 시간과 돈과 노력이 성과로 이어지기 어렵다.혁신활동의 아웃풋은 적을 소(少), 길 장(長), 짧을 단(短), 편안할 안(安), 네 가지로 나타나야 한다. 少는 대상이 줄어야 한다는 뜻이다. 인간의 기억에 의존하거나 주의력을 필요로 하는 작업은 줄여야 한다. 長은 기간이 길어져야 한다는 뜻이다. 고장 원인을 제거하여 신뢰도가 향상되면 점검의 주기가 길어져서 효율이 증가한다. 短은 투입되는 노력이나 시간이 짧아져야 한다는 뜻이다. 설비 특성에 맞는 청소 도구를 개발하여 청소 시간이 짧아지고, 진동에 의한 풀림의 위험이 있는 볼트에는 페인트로 표시하여 점검 시간이 짧아져야 한다. 마지막으로 安은 작업환경이 편안해야 한다는 뜻이다. 유해 위험 물질 운영이 법규를 충족하고, 소음이나 먼지 등이 통제되어 작업이 편안해야 한다.혁신의 아웃풋과 함께 ‘혁신의 원리’를 이해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원리를 이해해야 현장에 축적이 되고 문화에 녹아들어 지속성을 갖게 된다. 혁신이 현장의 토양에 맞게 내재화되기 위한 네 가지를 소개하고자 한다.첫째 ‘혁신의 조건’을 파악해야 한다. 중국 전국시대 각국의 제도를 기록한 주례에 ‘귤이 회수(淮水)를 넘어 북으로 가면 탱자나무가 된다’했듯이 성공이 검증된 방식이라도 무조건적인 도입보다는 직원의 근속 분포, 상주와 교대 근무 여건, 세대별 특징 등에 따라 토양에 맞는 조건을 찾아야 한다. 둘째는 ‘혁신의 도구’이다. 이 혁신의 도구는 첫 번째인 ‘혁신의 조건’에 따라 세밀하게 적용해야 성공한다. 포스코의 혁신 성공이 여기에 해당한다. 6시그마와 토요타 생산방식(TPS)의 장점을 포스코의 특성에 맞게 진화 발전시켜 QSS(Quick Six Sigma) 방법론으로 정립하였다. 세 번째는 ‘혁신의 대상’이다. 설비의 성능 유지가 중요한 ‘장치산업’, 작업자의 숙련도가 중요한 ‘조립산업’등의 속성에 따라 앞의 ‘혁신의 조건’과 ‘혁신의 도구’를 적절히 사용해야 한다.마지막 네 번째는 ‘조직의 윤활제’이다. 부서와 조직끼리 서로 벽을 쌓고, 중요한 정보가 공유되지 않는 사일로 현상은 모든 성과를 허물어 버리므로 ‘조직의 윤활제’가 되는 칭찬과 격려, 타인의 감정을 고스란히 느끼는 ‘공감 능력’, 받은 것에 대한 피드백의 ‘감사와 봉사’는 조직의 윤활제가 되어 마모되지 않고 기업의 경쟁력을 오래오래 유지시키는 수단이 될 것이다.

2022-11-13

지역민에 돌려주는 도심 하천

조현일 경산시장 자치단체장, 특히 지자체의 단체장은 지역민의 행복을 최우선으로 한다.지역민을 위한 새로운 사업을 찾는 것도 중요하지만, 있는 자원을 잘 활용하는 것도 의미 있다.예로부터 우리는 배산임수(背山臨水)를 중요하게 생각하며 수도(서울)를 정할 때도 깊게 고려했다.현재의 서울 도심을 흐르는 한강을 바라보며 살 수 있는 조망권이 큰 관심을 받는 것처럼 지역의 중심을 관통하는 도심 하천이 있다는 것은 지역에 내려 준 큰 축복이다.경산에도 도심을 가르는 하천 ‘남천(南川)’이 흐르고 있다.남천은 남천면 하도리 하도저수지에서 금호강 합류 지점까지 연장 19.29km의 소하천을 부르는 것으로 경산 구간은 16.75km다.현재 남천 주변 서부 1·2동, 중앙·중방·남부동 등에는 경산시민의 70%가 생활하고 있어 지역주민과 남천은 떼어놓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로 많은 시민이 남천 둔치에 조성된 시설물과 산책코스를 이용하고 있다.이러한 남천임에도 비가 와야만 유지용수가 흐르는 건천으로 2천 년대 초반까지는 둔치도 날 것 그대로인 2%가 부족한 도심 하천이었다.2천 년대 초반 호안 정비와 함께 8만 9천200㎡의 남천 둔치에 잔디가 조성되며 초록의 싱그러움을 제공하며 시민들의 휴식공간으로 자리 잡았지만, 강을 반듯하게 하는 직강사업과 함께 호안을 콘크리트로 조성하는 등 인간 편의주의가 적용된 불행한 소하천이었다.이후 고향 강 살리기 운동이 시작되며 남천을 자연형 하천으로 정화하는 사업이 2008년 시작되며 시민들에게 다가가는 하천으로 재조명되었다.이를 통해 백천동 백농교에서 대구 수성구 매호천 합류 구간 5.5km의 콘크리트로 파괴된 호안의 생태기능을 회복하고 건천화에 따른 녹조 과다발생 등 열악한 환경을 개선할 수생 동·식물을 서식하고 매설한 9km의 송수 및 도수관로 1일 10t의 유지용수를 공급해 시민들과 가족들이 즐기는 장소로 조성했다.남천 자연형 하천 정화사업은 지역민에게 자연의 소중함과 가치를 인식시키고 친수공간의 확보로 삶의 질 향상을 높이며 토종 동·식물의 서식 공간확보로 종 보존에 이바지한다는 의미가 강했다.하지만, 세월이 흐르며 남천의 범람 등으로 자연형 하천으로 개발될 당시의 모습이 사라지고 정적인 공간의 이미지가 강해 남천의 새로운 모습을 원하는 시민들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남천은 하상정비와 자연스러운 호안정비 등에도 집중호우에는 둔치를 넘치는 경우가 발생해 2011년 준공된 남천 자연형 하천 정화사업의 결과물을 지금은 찾아보기 어렵다.많은 시민이 이용하는 남천 둔치에는 사계를 즐길 수 있는 꽃밭에 무궁화동산, 푸른 잔디밭 등이 있지만, 시장에 취임하며 남천을 지역의 랜드마크로 만들어 경산시민들만이 아닌 인접 도시민들도 찾는 공간으로 조성할 것을 결심했다.이 결심을 반영한 ‘남천 자연형 하천 조성사업’을 내년부터 2024년까지 추진해 시민들에게 새로운 남천을 돌려준다.남천 자연형 하천 조성사업의 큰 틀은 남천을 치수와 이수, 환경과 친수가 어우러지게 하는 것이다.이를 위해 수막 경관 분수 설치와 경관 조명 설치로 밝고 안전한 환경을 조성하고 오래되었거나 훼손된 하천 시설물을 정비한다.현재의 남천을 사랑하고 보전하고 싶은 시민들도 있을 것이다.고치를 벗어나 힘찬 날갯짓으로 꽃밭을 수놓는 나비의 아름다움과 비교하기는 어렵지만 새롭게 변모한 남천이 주는 즐거움과 행복감이 지금보다는 클 것으로 예상한다.도심하천 남천을 새로운 남천으로 지역민에게 돌려주는 것은 나에게 주어진 책무, 시민을 행복하게 하는 일의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남천이 새롭게 변모되어 시민들이 행복한 모습으로 남천을 찾는 모습을 그려보면 얼굴에 웃음이 절로 진다.경산시는 앞으로도 주어진 환경을 최대한 이용하고 새로운 먹거리, 볼거리, 즐길 거리를 개발해 시민의 얼굴이 웃음이 사라지지 않도록 노력해 나갈 것이다.

2022-11-13

슬픈 연인의 신화 거문고자리

옛날에 하프를 잘 켜는 음유시인 오르페우스가 트라키아 물의 님프 에우리디케와 결혼해 행복하게 살고 있었다.어느 날, 에우리디케가 홀로 산책을 즐기고 있을 때였다. 재배의 신 아리스타이오스가 그녀의 아름다움에 반해 뒤를 따라왔다. 이를 눈치챈 에우리디케가 숲으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때 숲에 숨어있던 독사에게 물려 숨을 거두고 만다.오르페우스는 돌아오지 않는 아내를 찾으러 나섰다가 싸늘하게 죽어 있는 아내를 발견한다. 오르페우스는 슬픔을 이기지 못해 그날 이후 다시는 하프를 켜지 않았다. 슬퍼만 하던 그는 용기를 내 지하세계의 신 하데스를 찾아가 아내를 데려오기로 결심한다.길을 떠난 오르페우스는 타이나로스 곶에서 지하세계로 통하는 깊게 팬 구멍을 발견했다. 컴컴한 동굴에서는 퀴퀴한 냄새와 음침한 울음소리까지 들려왔다. 우여곡절 끝에 지하세계에 도착한 오르페우스는 하데스에게 끌려가게 된다. 오르페우스는 하프를 연주하면서 아내를 돌려달라며 애원했다. 어처구니없는 요구에 화가 났던 하데스 마음도 하프 소리에 조금씩 풀렸다. 그러나 지하세계에 만의 규칙과 질서가 있었다. 하데스는 오르페우스에게 조건을 걸었다.“아내가 따라가고 따르지 않고는 그녀 의사에 달렸다. 너를 사랑한다면 반드시 뒤를 따를 것이다. 그러니 땅 위에 도착하기까지 말을 해서도 안 되고 뒤를 돌아보아서도 안 된다. 그 약속을 어긴다면 다시는 아내를 만나지 못할 것이다.”오르페우스는 아내를 돌려준다는 말에 기뻐서 그러겠노라고 대답했다. 그러고는 앞장서 걷기 시작했다. 얼마를 걸었을까? 오르페우스는 아내가 정말로 자신을 따라오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뒤를 따르는 발소리도 들리지 않았을 뿐 아니라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지옥의 왕 하데스에게 속았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게다가 동굴은 자신 발소리만 들릴 뿐 고요하기만 했다. 결국 오르페우스는 아내 에우리디케가 변심한 것은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어 고개를 돌리고 말았다. 그런데 이게 웬일? 아내 에우리디케가 바로 뒤에 따라오고 있었다. 에우리디케가 창백해진 얼굴로 눈물을 글썽이며 말했다.“어찌 이러십니까? 저를 믿지 못하셨나요? 약속을 믿지 못하셨나요?”이 말을 마치자마자 에우리디케는 다시 지하세계로 빨려 들어가고 말았다. 오르페우스가 후회했지만 소용없었다. 자신을 원망하던 에우리디케 마지막 모습이 떠올라 미칠 것만 같았다. 그는 산과 들을 이리저리 떠돌다 하프를 가슴에 안고 강에 몸을 던졌다.하프는 주인을 떠나 홀로 아름다운 선율을 내면서 둥실둥실 떠돌다 바다까지 흘러갔다. 그러자 하프 소리에 매료된 신들의 제왕 제우스가 영원히 기억될 수 있도록 하늘에 올려 별자리로 만들어주었다.다른 이야기도 있다. 죽은 오르페우스가 영웅의 영혼만이 머문다는 낙원 엘리시온(Elysion)에서 행복하게 살았다는 내용이다. 이는 다분히 행복한 결말을 기대했던 사람들에 의해 생겨난 이야기가 아닐까 한다.거문고자리는 헤라클레스와 용자리 사이에 있다. 이 별자리 α별 베가가 우리나라에서 칠월칠석 때 볼 수 있는 직녀별이다. 견우직녀 사연과 거문고자리 애절한 사랑 이야기가 겹치면서 묘한 느낌을 준다.이 신화가 주는 교훈은 사랑에는 믿음이 중요하다는 뜻인지도 모른다. 사랑한다는 말 앞에는 ‘어떤 일이 있어도’란 말이 생략되어 있으니 말이다./박필우 스토리텔러

2022-11-13

시가 죽어가는 세상에서

김규종 경북대 교수 마쓰오 바쇼(1644∼1694)는 하이쿠(俳句)를 배우의 유희에서 예술의 경지로 승화시킨 인물이다. 평생을 가난과 방랑으로 일관한 그는 돈이 지배하는 시대에 당당하게 맞선 인물이다.에도 막부(1603∼1868) 초기를 살아간 그는 자본주의의 광풍에 휘둘리는 군중과 시류에 온몸으로 저항한다. 그가 남긴 하이쿠 한 수는 이렇다.“두견새 운다 / 지금은 시인이 없는 세상”봄의 서정이 피를 토하며 우는 두견새의 울음소리로 단출하게 구상화된다. 그런 봄날에 에도의 시인들은 시를 버리고 돈을 찾은 지 오래다.서정주는 ‘귀촉도’에서 먼저 세상 버린 낭군을 그리워하며 고요히 절규하는 여인의 형상을 두견새로 그려낸다. 하지만 마쓰오 바쇼는 봄의 절정에서 울어대는 두견새와 시인의 부재를 나란히 세운다.하지만 일본에는 예나 지금이나 시인이 살았고 살고 있다. 그들의 시문학 전통과 창작자 그리고 독서층이 강고하되 문득 도타운 정황은 어제오늘의 얘기가 아니다.서정주가 ‘귀촉도’ 시집(詩集)을 출간한 때가 해방공간인 1948년이었다. 수많은 정치적 이념과 노선이 엇갈려 불꽃처럼 각축하고 항쟁했던 때에도 사람들은 시를 읽었다. 6·25 한국전쟁의 와중에도, 4·19 혁명과 5·16 군사정변, 1980년 광주항쟁과 1987년 6월 대투쟁의 시기에도 그러했다.국제통화기금 사태로 촉발된 노숙자들이 거리를 헤매던 때에도 시인들은 시를 썼고, 독자는 여전히 시를 읽었다. 그러나 똑똑한 전화기 ‘스마트폰’이 도래하면서 모든 것이 전복된다. 시인은 아직도 꿈처럼 추억처럼 시를 쓰지만, 시를 읽고 나직하게 암송하며 거리를 걸어가는 청춘은 완전히 소멸했다. 아침햇살에 간밤의 보름달이 빛을 잃고 시나브로 사위어가는 것처럼 시를 읽는 청춘들은 소리도 흔적도 없이 스러지고 말았다.대학에 들어와서 제 돈을 주고 시집을 사서 읽어본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손드는 학생은 하나도 없다. 시가 죽고 소설이 절멸하는 판국에 희곡을 읽는 학생은 진즉에 깔끔하게 사라졌다. 문학의 종말, 문학의 소거(消去), 문학의 죽음이 당연시되는 시간대가 우리 곁에서 고요하게 흘러간다. 하지만 누구 하나 아쉬워하거나 조종(弔鐘)을 울리거나 손을 들어 무언가를 표시하지 않는다. 그것이 우리 시대의 얼굴이며 진면목(眞面目)이다.시가 어려워서, 시를 읽는다는 것이 너무나 한가로운 일이어서, 시를 읽는 시간이 아까워서 젊은이들은 시를 버리고 현실로 도주한다. 학점, 알바, 취직에 목매야 하는 판국에 시와 시인과 시집은 한가로운 옛노래라는 게 그들의 합리적인 변명이다. 우리 사회에서 시가 이렇게 완벽하게 죽어 나가고, 시인이 이토록 위축된 적은 없었던 듯하다. 모두 과학기술과 생활의 편리와 이기, 눈앞의 이익과 돈벌이로 질주하는데, 어떻게 저항할 수 있단 말인가?!시가 죽어버린 참혹한 세상에 살면서 새벽녘 된서리 맞은 머위와 루드베키아와 민들레 이파리를 본다. 죽었으되 다시 살아나는 생명이 시와 시인에게도 허여될 것인가?!

2022-11-13

팔공산 갓바위

우정구 논설위원 경산시 와촌면에 위치한 갓바위 부처는 간절히 바라는 것은 무엇이든 한번은 들어준다는 부처님으로 소문나 있다.팔공산 남쪽 관봉(冠峰)의 정상에 병풍처럼 둘러쳐진 암벽을 배경으로 만들어진 좌불상인 이 부처님의 정식 명칭은 관봉석조여래좌상(冠峰石造如來坐像)이다.그러나 세칭 갓바위 부처로 더 잘 알려져 있다. 통일 신라시대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1960년대초 학술지에 소개되면서 전국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했고 1965년 보물 제431호로 지정되었다. 이후 체계적인 보존 관리를 위해 국보 승격을 문화재청에 건의했지만 가치가 다소 떨어진다는 이유로 유보된 바 있다.갓바위란 이름은 불상의 머리에 마치 갓을 쓴 듯한 넓적한 돌이 올려져 있어 유래했다.갓은 본래 팔각형이었던 것으로 추정되나 오랜 세월 속에 훼손되는 바람에 지금의 모양으로 남은 것으로 본다.석굴암 본존불상처럼 후덕하고 무뚝뚝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문화재청은 갓바위의 모습을 이렇게 소개하고 있다. “얼굴은 둥글고 풍만하여 탄력이 있지만 눈꼬리가 약간 치켜 올라가 있다. 귀는 어깨까지 길게 내려오고 굵고 짧은 목에 3중의 주름인 삼도(三道)가 표시돼 있다.”갓바위 부처는 해발 850m 산정상에 있다. 그럼에도 소원을 비는 사람들의 발길이 연중 끊이지 않는다. 특히 입시철에는 자녀의 대학진학을 소원하는 사람들로 발디딜 틈이 없다. 부처님의 시선이 부산, 경남쪽을 향하고 있다하여 그 지역 신도들의 방문도 잦다.대학수학능력시험이 코앞에 닥쳤다. 소원성취 갓바위 부처님의 영험함이 모든 이에게 골고루 전해졌으면 좋겠다./우정구(논설위원)

2022-11-13

내우외환 위기의 참된 극복 방식

배한동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 북한은 미사일을 쉴 새 없이 쏘아대고, 이태원에서는 156명의 고귀한 생명이 압사되었다. 물가고와 환율 등 경제위기는 차치하고라도 나라 전체가 내우외환의 위기에 처해 있다. 이를 극복하는 중지를 모아야 할 시기이다. 이러한 국가적 위기가 있을 때 정부는 재발 방지를 약속하지만 한국적인 대형 참사는 반복되고 있으니 말이다. 세계적 토픽이 된 성수대교와 삼풍백화점이 붕괴되었고, 8년 전 세월호 사건으로 수백 명의 어린 학생이 희생되었다. 수많은 생명을 앗아간 세월호 사건은 대통령의 탄핵으로 이어졌는데도 또 다시 어처구니없는 참사가 서울 도심 이태원에서 발생한 것이다.그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 그간 정부의 미흡한 대책 때문일까. 우리 국민들의 안전 불감증 때문일까. 하루 빨리 총체적 위기의 극복책을 마련해야 할 시점이다.핼러윈 행사로 빚어진 이태원의 참사(慘死)는 형언하기 어려운 후진국적 비극이다. 이 참사는 세월호 이후 최대의 참사(disaster)인데도 정부는 우발적 사고(accident)로 규정하고 싶어 한다. 참사의 직접적인 책임자들마저 면피용 발언만 남발하는 뻔뻔함까지 연출하였다. 자식을 잃은 부모들의 찢어지는 심정을 조금도 이해치 못한 행태이다. 용산 대통령실 앞의 반정부 시위를 막기에 여력이 없었다든지 마약 단속 때문이라는 변명은 전혀 설득력이 없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최우선 해야 할 당국이 11만여 명의 인파가 밀려오는데 파출소 순경 30여 명으로 대처했다니 더욱 어이가 없다. 현장에서 ‘압사’될 것 같다는 참가자의 10여 차례 이상의 긴박한 신고마저 112 상황 본부는 무시해 버렸다.일선 경찰과 경찰청장, 당해 장관의 보고 체계는 완전히 붕괴되어 있었다. 대한민국을 좋아하여 찾아온 외국인 26명이 희생되었다. 경제 강국, 문화 강국이라는 한국의 이미지는 하루아침에 실추되었다.이 와중에 김정은 정권은 동·서해에 수십 발의 미사일을 시험 발사하다 곧 7차 핵실험을 단행할 징조까지 보인다. 이 미사일 비용은 돈으로 환산하면 북한의 1년 쌀 수입 액수와 거의 맞먹는다는 분석도 있다. 한마디로 김정은 정권의 파렴치한 행위이다.처음에는 새 정권 출범 초기의 엄포라고 생각했으나 이제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을 시험 발사하여 미국을 자극하고 있다. 그 한발이 실수인지 고의인지 북방한계선(NNL) 남쪽에 떨어졌다. 그들의 본심은 하루 빨리 핵보유국으로 인정받아 미국과 협상하여 소위 그들의 국가 존엄을 보위하겠다는 것이다. ‘비질런트 스톰(Vigilant Storm)’ 한미 연합 훈련에서는 한미 연합 공군기 240대가 공대지 미사일 발사까지 연습하였다. 이에 북한군은 즉각적으로 동·서해에 지대공 미사일로 맞대응했다. 이러한 한반도 상황이 오래 가다 충돌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이러한 외환(外患)도 평화적 방법으로 해결할 수밖에 없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윤석열 정부는 ‘막을 수 있었는데 국가가 없었다’는 성난 민심을 직시해야 한다.이태원에서 희생된 꽃다운 젊은이들의 장례식이 가족장으로 끝났다. 정규직에 취업하여 기뻐하던 젊은이, 결혼을 앞둔 신부마저 세상을 떠났다. 사고가 터질 때마다 책임자만 처벌하고 시간이 지나면 모두가 잠잠해지는 것이 우리의 반복된 현실이다. 이번 사건은 무엇보다도 사전 대처를 소홀히 한 치안 당국에 일차적 책임이 있다. 정권 초기의 상부의 눈치만 보면서 무사안일한 행정이 빚은 충격적 비극이다.행안부 장관의 현장 병력이 많았더라도 사고는 불가피했다는 발언은 전형적인 책임회피식 발언이다. 경찰 기동대는 대형 참사 후 뒤늦게 도착하였다. 사고 현장에서 인파를 해치고 질서 유지에 안간힘을 쓴 파출소의 경찰관, 인공호흡으로 여러 명의 생명을 살린 미군, 참사 현장의 의인들이 오히려 돋보이고 있다. 이번 사태로 ‘공정과 상식’을 내세운 윤석열 정부의 이미지는 또 다시 추락하고 말았다.다시는 이러한 참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근원적 처방과 대책이 마련되어야 한다.여기에는 여야가 힘을 모아야 한다. 여당은 눈만 뜨면 야당의 비리를 폭로하고, 사법부를 통해 상대 후보를 잡아넣겠다고 벼르고, 야당은 이에 질세라 사사건건 발목을 잡는 구태의 정치가 국민을 불안케 한다. 이러한 정황에서 올바른 위기 극복의 대안이 나올 수 없다. 필자는 기회 있을 때마다 여야의 극한적인 정쟁을 멈추고 화해 정치, 협치를 제안한 바 있다.상대를 비난하고 공격해야 내가 살 수 있는 상호 부정과 거부의 정치에서 국민을 위한 정치가 나올 수 없기 때문이다. 민생은 날로 달로 어려운데 눈만 뜨면 상대를 비난하고 저주하는 정치의 틀을 벗어나야 한다. 이번 참사를 계기로 정치권은 겸허히 상호 반성하여 국민적인 신뢰부터 회복해야 한다. 여야 정치권의 각성이 우선되어야 위기의 진정한 대응책이 마련될 수 있다.

2022-11-13

나비처럼 걷기

이원만맏뫼골놀이마당 한터울 대표 나비가 백송이의 꽃을 기웃거린다면 그 중 아흔아홉 송이는 ‘그냥’이다. 무엇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냥 기웃거린다. 그래서 나비의 비행은 요리조리 자유분방하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우리는 풍경을 ‘저기를 사서 어떻게 하면 이익이 될 것이다’며 바라보는 것에 익숙하다. 나비처럼 ‘그냥 즐기지’ 못한다. 우리의 감수성은 빠른 속도, 유용성, 수익, 효율성, 경쟁에 익숙해졌고 느림, 유연성, 대화, 호기심, 무용성, 우정 같은 것에 무감각하다. ‘어디로 가기위해서가 아니라 걷기 위해서 여행을 한다. 중요한 것은 움직이는 것’이라는 식의 말을 들으면 뭔가 뒤쳐진 자의 핑계 같아서 쉽게 동의하기가 어렵다.얼마 전 소설을 쓰는 친구가 찾아왔다. 서울에서의 생활을 청산하고 지역의 어느 작은 도시에 방을 얻고 틈만 나면 여기저기를 기웃거리며 걸어 다닌다고 한다. 그러다보니 도시의 가로수 한 그루, 골목 한 귀퉁이도 다 아름답고 길에서 만나 인사하는 사람들의 친절함 같은 것이 느껴지더라는 것이다. 감수성의 근육이 다시 생겨났다는 것이다. 차를 타고 다니며 얼마나 많은 것들을 놓치고 있었는지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다고 한다. 자기 자신에게 느긋한 시간과 아름다움으로 가득한 공간을 제공하는 중이고 한 동안은 ‘자기 자신에게 윤리적인 이 일을 계속할 것’이라고 하며 환한 미소를 지어보였다.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내 다리가 움직이기 시작하면 내생각도 흐르기 시작한다.’고 했다. 니체도 지팡이 끝에 잉크를 넣어 다니며 걷기가 주는 생각들을 그때마다 휘갈겨 책을 썼다. 빅토르 위고는 걷기 시작하면 ‘머릿속에 벌떼가 날아다니는 것처럼 온갖 생각들로 가득 찼다.’고 했으며 평생 도보 여행자였던 릴케는 ‘바람구두를 신은 사내’라는 별명을 얻었다. 산책은 ‘살아있는 책을 읽는 것’이고 산길은 많은 사람들이 동의하여 그어놓은 ‘자연에 친 밑줄’이라는 것을 많은 예술가들이 말하고 있다. 그렇다. 걷기는 쇼핑과는 다르다.프랑스의 비행청소년들을 감옥대신 걷게 함으로서 사회관계를 회복하게 하는 단체인 쇠이유협회에 따르면 걷기는 내면의 여정 즉 ‘활기-존재감 높이기-신뢰를 쌓는 능력-연대감’을 느낄 수 있어서 오래 걷다보면 결국 자신에 대해 감탄할 만한 일을 발견해 낼 수 있어서 감옥보다 훨씬 교정효과가 높다고 한다. 길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음식, 햇볕에 아름답게 빛나는 나무, 등을 밀어주는 바람, 더운 몸을 식혀주는 명랑한 계곡물소리, 힘들 때 함께 부르는 노래. 상상해보면 걸으면서 만나는 모든 것들은 상큼하고 향기로운 공기처럼 내면으로 들어와 우리 안의 퀴퀴하고 어두운 것들을 함께 뱉어내게 만든다.유럽을 가보면 한적한 공원에 사람들이 의자와 담요를 들고 모여들더니 제각기 의자를 펴고 담요를 무릎위에 올리고 바로 책을 펼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세상에 있는 가장 평화로운 모습이라 부러워하며 바라본 적 있다. 그리고 오래 지켜보고 있으면 책을 덮고 공원을 산책하며 친구들과 깔깔거리며 산책을 하거나 혼자 빠져나가 걷는다. 걷다가 들고 있던 책을 친구들에게 낭송하거나 홀로 암송하다가 잊어버린 듯 자주 펼쳐보기도 한다. 자연스럽게 펼쳐진 일이라 그 자리에 있던 내가 본 일상적인 풍경이다. 저 여유로움과 그냥 걷는 것 자체가 목적인 사람들의 걷기는 방향을 정하지 않고 마음대로 날며 꽃을 읽는 나비 같다는 생각을 했다.“느림이란 더 빠른 박자에 적응하지 못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느림은 시간을 성급히 다루지 않겠다는 의지, 시간에 쫓겨 허둥대며 살지 않겠다는 의지, 세상을 넉넉히 받아들이며 인생길에서 자신을 잃지 않는 능력을 키워가겠다는 의지의 확인이다” 프랑스의 수필가인 피에르쌍소의 말이다.한가롭게 걷고 그 속에서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생각을 글로 옮기고 바위에 걸터앉아 쉬면서 영혼의 숨쉬기를 하라는 말이다. 그런 소소하고 작은 일상을 삶의 리듬으로 만들어 지속하는 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에너지가 된다는 말이다. 우연히 만난 들꽃 한 송이에도 우리는 변화하고 스스로를 되돌아보게 된다. 성장은 더 나은 인간은 그런 사소한 것들을 끊임없이 해낼 때 선물처럼 주어진다. 더 적게 소비하고 더 풍성하게 누리는 ‘대안적 쾌락’은 이제 시대의 요구이다. 그래서 ‘빨리 도착하기’가 아니라 ‘나비처럼 걷기’다.가을이다. 많은 이들이 가을단풍을 구경하기 위해 산길을 걷는다. 나무라는 책을 읽으러 간다. 바람이 책장을 넘겨주고 새들이 끼어들어 ‘이 구절 어때?’ 암송도 해 줄 것이다. 산길을 걸으며 ‘저 풀은 허리에 좋고, 위에 좋고’를 이야기하기보다는 솔바람소리에 바람을 꿰어서 헤진 마음 한 구석을 바느질하는 것은 어떤가. 먹과 종이를 들고 소나무 숲에 부는 솔바람소리를 듣기위해 만나고 물감을 미처 준비하지 못해 김치 국물로 단풍의 아름다움을 화폭에 담아낸 조선선비들의 풍류모임도 바로 그런 것이 아니었을까!짧은 가을, 혼자서 하루를 길게 늘여 쓸 수 있는 느리게 걷기를 권한다. 나비처럼 걷기를 권한다.

2022-11-13

밀지 마라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지난 10월 29일 이태원에서 일어난 참사는 아무도 예견하지 못한 일이었다. 만약의 경우에 대한 대비가 있었더라면 충분히 막을 수 있는 일이기도 했다. 공영방송에서조차 주의나 경고는커녕 오히려 부추겼다고 하니, 결국 일어날 사고가 일어난 셈이었다. 이번 참사의 특징은 위급상황에서 발생한 게 아니라는 점이다. 많은 사람들이 모인 공연장 같은 곳에 화재나 테러가 발생했다거나, 운동경기장에서 흥분한 관중들의 집단소요사태로 생긴 인명사고와는 다른 것이다. 그냥 놀러 나온 사람들이 너무 많아 길이 막혀 난 사고다. 다급한 사정이 아닌 만큼 길이 막히면 멈추어서 기다리거나 다른 곳으로 돌아서 가면 그만인 상황이었다. 그런데도 앞의 사람들이 백 수십 명이나 압사를 했다는 것은, 뒤로부터 도저히 버틸 수 없을 만큼 밀어붙이는 힘이 작용했다는 것 말고는 설명할 길이 없는 일이다.한 마디로, 뒤에서 밀었기 때문이 일어난 사고였다. 고의로 밀었건, 장난삼아 밀었건, 별 생각 없이 밀었건, 민다는 행위들이 합쳐져서 대형 참사를 빚은 것이다. 사람이 많이 몰려 길이 막혔을 때는 절대로 뒤에서 밀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이번 사건이 주는 뼈아픈 교훈이다. 설령 위급한 상황이라 할지라도, 아니 위급한 상황일수록 더더욱 밀어서는 안 된다. 더구나 병목현상을 일으키는 좁은 골목일 때는 반드시 지켜야 할 사항으로 화재나 지진의 대피요령과 함께 필히 학교 교육과목에도 넣어야 할 것이다.사람이 많이 모인 곳에서는 군중심리가 발동하기 마련이다. 군중심리란 ‘많은 사람이 모여 있을 때 자제력을 잃고 다른 사람의 언동에 휩쓸리는 심리현상’을 말한다. 생존을 위한 동물적 본능에서 유래된 것으로 긍정적인 측면도 있는 반면 나치의 파시즘 같은 엄청난 해악을 끼치기도 한다. 요즘은 SNS의 획기적인 발달로 실시간 비대면으로도 정보를 공유할 수 있어 새로운 양상의 군중심리가 하나의 사회현상으로 대두되었다. 최소한의 신분노출도 필요 없는 익명성과 실시간 다중소통이 가능한 파급력으로 현대사회를 움직이는 주동력이 된 것이다. 정치와 경제, 문화 등 어느 분야건 군중심리를 이용하지 않고는 설 자리가 없을 정도다.핼로윈이라는 남의 나라 풍습을 좇아 젊은이들이 몰려든 것도 군중심리의 하나일 것이고, 그런 곳에서 일어나는 대부분의 일들이 다 군중심리의 발로라고 할 것이다. 그럴 경우 불의의 사고가 발생할 확률이 매우 높다는 것을 예상하고 만반의 대비를 하는 것이 지자체나 경찰 당국의 역할이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속담이 있지만, 계속 소를 먹이려면 외양간부터 고쳐야 한다. 다시는 이번과 같은 대형 참사가 발생하지 않도록 근본적이고 철저한 대비책이 마련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 일환으로 시대현실에 맞는 공중질서의식을 학교 교육에서부터 길러야 한다. 군중심리가 개인과 사회에 미치는 영향과 같은 심도 있는 연구도 요구되는 현실이다. 교육을 통해서든 언론매체를 통해서든 사람이 운집한 곳에서는 절대로 남을 밀어서는 안 된다는 의식쯤은 갖게 해야 선진국이다.

2022-11-10

개기월식을 지켜보았다

윤영대수필가 입동(立冬) 다음날 8일 저녁, 오후 6시경부터 개기월식이 있다는 것을 알고 좀 두텁게 입고 해그름의 영일대 해수욕장으로 나갔다. 벌써 수평선 위로 보름달이 떠 있고 다행히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저녁 하늘이어서 보름달의 변화를 지켜보기로 했다.월식은 해-지구-달이 일직선으로 있을 때 지구 그림자가 둥근 달을 갉아먹는 것처럼 보인다고 월식(月蝕)이라고 하는데 오늘은 몽땅 다 갉아먹는 개기월식이고, 또 가까이 지나는 천왕성을 덮어버린다는 ‘천왕성 엄폐’가 동시에 일어나는 희귀한 ‘우주 쇼’라는 것이다. 그래서 쌍안경까지 챙겨서 나갔었다. 넓은 바다를 향해 앉아 지구가 달을 갉아먹는 것을 보려니 6시8분48초에 시작됐다는 월식은 이미 상현달 모양이다. 조금씩 가늘어지며 거꾸로 초승달 모양으로 되어 가더니 7시16분경에 개기월식이 시작되어 서서히 검붉게 변하여 8시경에 절정을 이루어 핏빛의 블러드 문(Blood Moon)으로 변했다. 이때 붉은 달은 햇빛이 지구를 지나며 푸른빛은 산란하고 붉은빛만 굴절되어 달을 비추기 때문이다. 바닷가에는 조용히 흰 파도가 밀리고 해변 모래밭을 걷던 산책객들도 월식 현상을 폰카메라로 찍어댄다. 망원렌즈를 부착한 큰 카메라를 앞에 두고 앉아 촬영하고 있는 사람도 보인다.다음 개기월식은 2025년 9월에나 볼 수 있다고 한다. 맨눈으로는 볼 수 없는 천왕성 엄폐 모습은 200년 후에나 다시 발생한다는 사실이 아쉬워 쌍안경으로 텅 빈 하늘을 이리저리 찾아봤으나 작은 렌즈 속으로 보름달을 끌어넣기가 쉽지 않았고 겨우 계수나무 밑에서 토끼가 방아 찍는 모습이 불그스럼한 자국으로 보일 뿐….8시43분 경에 90여 분 정도의 개기월식이 끝나자 붉은 달 왼쪽이 하얗게 빛나더니 그믐달이 되며 지구 그림자를 벗어나기 시작했다. 영일대 누각에서 보면 어떨까 하고 장미원 광장으로 가는데 한 무리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오늘 무슨 축제인가?’하고 가까이 가봤더니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고 커다란 망원경도 4대나 놓여있었다. ‘2022년 개기월식 공개 관측회’라는 현수막도 낮게 걸려있었다. 알아보니 경북천문교육연구회와 포항고등학교 별바라기 모임에서 시민들에게 개기월식을 직접 관찰하게 하는 행사였다. 이날 전국적으로 30여 곳 천문대 등에서 별빛보기 행사를 했다고 하는데, 포항에도 이렇게 15명 정도의 고등학생들이 천문연구 모임을 만들어 우주를 공부하고 있다니 자랑스럽다. 그때 막 개기월식이 종료되고 부분일식이 시작되는 시점이라 줄 서서 기다렸다가 망원경 렌즈에 눈을 갖다 대었다. 붉은 보름달이 신비로운 우주의 모습을 대형 망원경으로 보는 것도 첫 경험이다. 행사 요원의 도움으로 그 영상을 휴대폰에 담아왔다. 달은 그믐달에서 서서히 빛을 찾아가며 하현달을 지나고 9시30분이 되어서 환한 보름달의 밝음을 되찾았다.하루 저녁 3시간 동안에 초승달 보름달 그믐달까지 모든 모습을 보여준 개기월식을 잘 보았다는 생각에 해변의 푸드트럭에서 블러드 문을 닮은 타꼬야끼 한 봉지를 사 먹으며 흐뭇한 마음으로 집에 돌아오는 뇌리에는 아직도 개기월식이 진행되고 있었다.

2022-11-10

공감능력 없는 사회

홍석봉 정치에디터 나라 안팎의 중첩된 위기 속에 ‘개 소동’이 일었다. 이태원 참사의 애도기간이 끝나자마자 벌어진 일이다. 문 전 대통령이 퇴임하면서 청와대에서 키우던 풍산개 3마리를 양산 사저로 데려갔다. 김정은에게 선물 받은 개다. 그런데 6개월 만에 더 못 키우겠다며 정부에 반납하겠다고 했다. 개 사료 값과 관리비 월 250만원을 정부가 지원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다. 여야 공방이 벌어졌다. 단초를 제공한 문 전 대통령은 의식수준을 의심 받았다. 개는 장난감이나 사진배경용 소품이 아니라는 지적이 나왔다. 이유야 어떠하든 국민과의 공감이 부족했다.대통령실 국정감사장에서 나온 ‘웃기고 있네’ 메모 파문은 더욱 가관이다. 이태원 참사의 진실규명 자리가 돼야 할 국감장이 희화의 장이 됐다. 당사자들의 변명과 사과가 이어졌지만 대통령 참모의 저급한 표현에 아연실색할 뿐이다. 대통령실의 현주소다.윤석열 대통령의 이태원 참사 대응도 도마에 올랐다. 정부의 부실대처가 드러났다. ‘선 수사, 후 책임’만 앵무새처럼 되뇌었다. 책임자 문책 등 선제조치를 않았다. 국민의 슬픔과 분노에 공감하는 모습은 없었다. 뒤늦게 사과했지만 국민들의 상처를 보듬기에는 역부족이었다.재난 관리 주무부처 수장은 책임회피 발언으로 질타 받았다. 국무총리의 농담은 아예 상식밖이다.정부 대응도 수준 이하다. ‘이태원 참사’ 대신 ‘이태원 사고’로, ‘희생자’를 ‘사망자’라고 했다가 야당의 호된 질책을 받았다. ‘근조(謹弔) 글자 없는 검은 리본’ 패용 지시는 어안이 벙벙케 했다. 애도의 진정성을 의심받았다. 경찰은 민간단체 반응 조사라는 케케묵은 수법을 꺼내들었다가 힐난 받았다. 상부 눈치보기 행정이다. 민심을 읽지 못했다.민주당의 행태도 오십보백보다. 민주당은 기회는 이때라는 듯이 정부를 물고 늘어졌다. 장외 촛불투쟁을 부추기며 윤석열 정부의 목을 죄고 있다. 전형적인 국면전환 수법이다. 이재명 대표의 사법 리스크 판을 뒤집어 보려는 것이다.정치권의 혐오와 증오는 자신의 정치 집단만을 추종하고 민심을 읽지 못한 탓이 크다. 국민들의 공감 범위에서 벗어났다. 민심을 우선하고 상식이 지배하는 정당의 지향하는 바와도 거리가 멀다.파업과 투쟁을 일삼는 민주노총과 참교육을 앞세운 전교조 등 진보 단체의 정치화도 국민들의 기대와는 어긋났다. 이들 단체의 종북 바라기는 북한 김정은의 핵위협에 치를 떠는 국민 정서는 안중에도 없다. 보수단체의 극단적인 주장과 행동도 국민의 관심 밖이다. 공감능력 부재가 우리 사회의 현상이 됐다.국민들은 코로나19 속에 경제난과 북핵 위기로 몸과 마음이 지쳐 번아웃 상태다. ‘이태원 참사’는 국민들을 집단 트라우마에 빠뜨렸다. 국민들은 지도층이 생각 없이 불쑥불쑥 던지는 실언에 상처받고 있다. 국민에게 필요한 것은 위로와 위안이다. 그런데 껴안아 주지는 못할망정 국민 가슴을 헤집어 놓고 있다. 타인의 슬픔을 공유하고 배려할 줄 아는 마음이 없어서다. 우리 사회에 공감 능력 교육이 절실하다. 괴물이 되지 않으려면….

2022-11-10

억대 부농

우정구 논설위원 월급쟁이한테 억대 연봉은 로망이다. 경제발전으로 국민의 소득이 크게 늘어났어도 개인 소득이 억대에 달하는 인구는 전체 월급쟁이의 3∼4% 수준에 불과하다. 수십년을 봉급생활하면서 억대 연봉을 못받고 퇴직한 월급 근로자가 대부분이다.농촌에서 농사를 지으면서 억대 수입을 올린다면 남다른 면모가 분명 있을 것이다. 부농(富農)의 기준이라고 특별한 게 있지 않으나 보통 부농이라하면 연 수입 1억원을 기준으로 한다.올해 경북 성주군에서 참외 농사를 지으면서 1억원대 수입을 올린 농가가 1천713호에 달했다고 한다. 작년보다 억대 농가가 101호가 더 늘었다.성주에서 생산되는 성주참외는 참외 가운데 전국 최고 브랜드다. 육질이 단단하고 당도가 높다. 저장성도 뛰어나 신선도를 따라올 다른 참외가 별로 없다. 경북 성주하면 참외를 떠올린다. 올해 성주군 참외는 조수입이 5천763억원에 달했다. 4년 연속 5천억원대의 매출을 올리면서 내년에는 6천억원대 돌파를 꿈꾼다고 한다.성주참외가 전국에서 독보적인 것은 고품질로 소비자의 입맛을 사로잡은 데 있다. 이는 가야산을 배경으로 한 맑은물과 좋은 토양, 최고의 일조량 등 천혜적인 재배조건을 갖추고 있는 것과 더불어 70년 이상 축적된 재배기술이 더해진 탓이다.특히 성주 참외농들의 끊임없는 기술개발과 전략적 유통망 개척, 생산자와 유통단체 등의 단합된 노력의 결과다.부농은 그냥 되는 것이 아니다. 한 여론조사에 부농의 성공비결을 조사했더니 꼼꼼한 영농활동과 근면, 성실 등이 최고로 손꼽혔다 한다. 경북 성주에서 억대 부농이 많이 배출된 것은 결코 우연한 일은 아니다. /우정구(논설위원)

2022-11-10

놀거리가 없다

장규열 한동대 교수 참담하다. 참혹했을 이태원 골목길의 토요일 저녁을 생각하면 마음이 힘들다. 너무나 많은 청년들을 어처구니없이 하늘로 보낸 일은 우리 사회가 두고두고 곱씹어 돌아볼 일이다.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진 만큼 앞으로는 절대로 같은 일을 반복할 수는 없다. 외국 풍습에 젖은 놀이문화를 탓하기도 하지만, 따지고 보면 우리 젊은이들에게 즐길 거리를 충분하게 마련해 주지 못한 문화의 척박함을 돌아볼 생각거리이다. 이 땅의 사람들을 일과 경쟁으로만 내몰아 온 우리의 허점을 들여다봐야 한다. 이제라도 누구라도 여유롭게 즐기고 누릴 놀이문화를 길러내야 한다.탈출구가 필요하다.누구든 삶의 긴장으로부터 다소간의 해방을 즐길 여유가 있어야 한다. 치열한 일상의 연속에서 잠시라도 벗어나 새로운 환경을 만끽하는 기회가 허용되어야 한다. 경쟁의 악다구니뿐 아니라 공동체의 푸근함도 느낄만한 공간이 있어야 한다. 적자생존과 무한경쟁, 추격과 탈취의 목표만 떠오르는 곳에 여유로운 문화의 향기가 피어나지 않는다. 견제와 긴장의 차가운 다짐을 풀고 포용과 관용의 따뜻한 가슴이 있어야 한다. 신자유주의의 경쟁적 이념구도를 극복하고 공동체의 조화로움을 구현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외래문화에 의지하지 않고, 우리 문화로도 충분히 즐거울 가능성을 개발해야 한다.돌아보면, 공동체적 놀이문화가 우리 문화에도 숨어있었다. ‘가무에 능한 민족’이라는 역사적 평가가 있었는가 하면 함께 즐기는 놀거리가 우리문화 안에는 수다히 존재하였다. ‘우리의 것’에 대한 사랑과 관심은 어째서 사라진 것일까. 우리가 가진 문화적 요소들에 대한 까닭모를 자격지심은 어떻게 생긴 것일까. 우리의 옛모습과 전통, 오늘 우리가 선 자리 등에 관하여 더욱 자긍심을 가져야 한다. 우리 것을 바라보는 시선과 인식이 오늘보다 따뜻해져야 한다. 다툼과 질시, 경쟁과 추격의 대상으로만 대할 것이 아니라 이제는 서로의 모습을 긍정하고 포근하게 받아들이며 함께 즐기고 누리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줄다리기와 쥐불놀이, 숨바꼭질과 땅따먹기에는 함께 누리는 공동체가 살아 있었다. 혹 겨루고 다툴지언정 늘 서로를 인정하는 눈길이 숨어있었다. 의식적으로 경쟁구도를 만들어 끊임없이 다투기만 하는 신자유주의적 긴장은 아예 존재하지 않았다. 당당히 맞서고 이기고 지기도 하지만 언제나 ‘우리가 함께 즐거운’ 공동체가 살아나야 한다. 사회가 문화로 강하려면, 그 문화가 공동체를 지지하는 지평을 품어야 한다.젊은이들이 일상의 긴장을 풀고 주말의 여유를 즐길 ‘우리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알 수 없는 열등감을 벗고 문화를 향한 자긍심도 길러야 한다. 문화를 전통과 구습으로만 해석하지 말고 오늘을 사는 세대들이 모두 함께 누리는 문화로 만들어야 한다. 문화가 일상이 되어 즐거운 놀거리가 우리 안에서 솟아올라야 한다. 남의 문화에 기대어 비극적인 결말을 보는 참담함이 다시는 없어야 한다. 문화가 삶의 모든 영역에 스며들도록 가꾸어야 한다. 문화가 살아야 모두가 이긴다.

2022-11-09

트라우마의 시대

홍석봉정치에디터 이태원 참사 사상자와 가족들의 후유증이 심각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현장 목격자와 구호활동자 등의 심리상담 요청이 쏟아지고 있다. 참혹한 현장을 목격한 충격으로 인한 ‘트라우마(정신적 외상)’다.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다수의 희생자가 발생한 데다 SNS 등에서 여과 없는 정보가 전달된 탓이 크다. 의료계에서는 신속한 치료가 필요하다고 한다. 의료계는 또 ‘이태원 참사’를 ‘10·29 참사’로 명칭 변경을 건의하고 있다. 특정 지명이 들어간 표현이 불안과 공포를 가중시켜 트라우마를 더 자극할 수 있고, 낙인 효과가 발생할 수도 있다는 주장이다.봉화의 광산 매몰사고 생환 광부들도 마찬가지로 정신적 트라우마를 겪고 있다. 생환한 두 사람은 매일 밤 깊이 잠들지 못한 채 소리를 지르거나 경련을 일으킨다고 한다.잇따르는 각종 재난과 사고로 전 국민이 정신적 상처를 입었다.‘트라우마’는 프로이드의 심리학 이론에서 출발했지만 지금은 개인의 심리적 외상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에서 인간의 정신상태를 드러내는 단어가 됐다. 전쟁 및 재난에서부터, 성폭행과 학대 같은 개인의 삶이 자존감과 자신감을 잃게 만드는 것까지, 다양한 형태의 트라우마가 우리의 생활 속 곳곳에 생겨나고 있다.정부는 2018년 국가트라우마센터를 개소, 재난이나 사고로 정신적 충격을 받은 이들의 심리적 안정과 사회 적응을 돕고 있다.재난과 사고는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다. 재난 당사자는 물론 가족과 지인 등도 충격과 상실, 스트레스를 받는다.재난과 사고로 심적 고통을 겪는 이들의 회복을 돕는 치료는 필수적이다. 그 보다는 재난과 사고가 없는 사회가 우선돼야 한다. 안전사회는 희망에 불과할까./홍석봉(정치에디터)

2022-11-09

국가란 무엇인가?

최병구 경상국립대 교수 또, 다시 상상하기 어려운 참사가 발생했다. 10월 29일 밤, 이태원에서 안타까운 목숨을 잃은 156명 중 10~20대가 116명이다.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지 8년, 당시 고등학생이던 아이들은 20대 중반 청년이 되어 다시 비극을 맞게 된 것이다. 8년 전 참사를 겪으며 안전한 대한민국을 만들겠다는 다짐을 했던 국가는 왜, 다시 이런 사태를 막지 못했을까? 참담한 마음이 너무 커서 애도를 표하기조차 어려운 시간이 지나가고 있다.당일 밤, 처음 소식을 접했을 때는 사태를 정확히 파악하기 어려웠다. 서울 한복판에 늘어선 구급차와 길거리에 누운 사람들의 모습은 그로테스크했다. 이후 보도를 종합하면 참사가 발생하기 이전부터 시민들의 신고가 이어졌지만, 무슨 이유인지 경찰은 신고에 적절한 대응을 하지 못했다. 세월호 참사 당시 배 안에 갇혀 있던 아이들을 구하지 못하고 주변을 빙빙 돌기만 하던 해경의 모습이 겹쳐지는 대목이다.세월호 참사 당시 대통령의 행적에서 배운 탓일까? 참사 발생 이후에 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정부는 발 빠르게 움직였다. 당일 밤부터 대통령이 주재한 대책회의가 열렸으며 희생자를 위한 지원 대책이 발표되었다. 용산구가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되고 국가 애도기간이 지정되었다. 대통령은 국가 애도기간에 하루도 빠지지 않고 합동분향소를 찾아 조문했다.우리는 국가가 시민의 안전을 지켜줄 것이란 믿음을 가지고 살아간다. 그 믿음을 전제로 시민들은 국가가 자신을 통제하는 것에 따른다. 경제적 이익이나 권력자의 안위 따위가 아니라 시민의 안전이 우선이라는 사실은 상식에 속한다. 문제는 이런 기본적인 인지 능력을 갖추지 못한 자들이 권력을 손에 넣을 때 발생한다. 요컨대 8년 동안 조금도 나아지지 못한 대한민국의 현실은 권력자들의 인식 수준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다.용산구청장과 행정안전부 장관, 국무총리 등의 적절하지 못한 발언에 대한 많은 비판이 이어졌다. 그들은 곧 사과했지만, 그 사과를 진심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말은 자신의 평소 사고를 여과 없이 드러낸다. 글은 정제할 시간이 있지만, 말은 무의식이 매개 없이 드러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런 측면에서 참사 초기 이번 사태의 희생자를 ‘이태원 사고 사망자’로 명명한 것은, 이번 참사를 바라보는 정부의 시각을 단적으로 보여준 것이다. 법적인 주최가 없다는 이유로 중립적 언어를 사용해야 한다는 정부의 (무)의식을 어떻게 이해해야 좋을까.놀러 나간 사람들에게 정부가 장례비와 위로금을 지원하는 것에 대한 반대 여론이 조직적으로 조성되고 있다. 법을 빌미로 참사를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려는 시각이 정부와 대중들 사이에서 폭넓게 공유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노동현장에서 청년들의 억울한 죽음이 이어지고 있지만 ‘중대재해 처벌법’조차 제대로 만들지 못하는 나라에 살고 있다. 대기업과 자본의 이익을 우선하기 때문이다. 8년 전 세월호 참사 당시에도 동일했다. 이제 다시, 시민들의 행동이 필요한 시점이다.

2022-11-09

어느 가을날의 사색

오낙률 시인·국악인 가을 단풍이 절정에 든 모습은 인간과 자연이 함께 어우러지는 커다란 축제라 해도 부족함이 없다. 요즘처럼 단풍이 절정에 이르면 사람들의 마음은 본능처럼 달아오른다. 아마도 그것은 붉은색 노란색에서 오는 따스한 느낌이 인간의 몸에 혈류 순환을 돕기 때문 아닐까 싶다. 단풍이란 겨울이 가까워지면서 산천에 나무들이 제 몸에 머금은 물기를 내리고 겨울 준비를 하는 모습이다. 나무가 제 몸에서 물기를 내리고 나면 푸르던 나뭇잎에 남은 색깔은 흙의 색깔인 황색과 불의 색깔인 홍색뿐인데 이는 지상의 모든 생명 구조는 물과 불과 흙의 구조로 되어 있다는 사실을 암시하는 자연의 메시지가 아닐까 싶다. 하나의 생이 그 명을 다하면 그 몸에서 물이 제일 먼저 떠나고 그다음은 불의 기운이 떠나고 마지막 남는 것은 흙뿐이라는, 오묘한 생명 구조의 원리를 암시하는 그런 메시지가 아닐까 싶다.현란하게 불타는 산야의 단풍을 보노라면 지난 여름 어느 축제장에서 본 불꽃놀이가 연상된다. 화구를 벗어나 끝없이 하늘을 향해 솟구치다가 그 여력이 다할 때쯤 큰 소리와 함께 현란한 빛을 발산하며 사라지던 그 불꽃은 온 계절을 푸르게 일하다가 그 본분을 다하고 아름다운 빛을 발산하며 떨어지는 저기 산천의 단풍과 닮아도 너무 닮았다. 축제장에서 산화의 빛을 발하며 생을 마감하던 그 불꽃이나 저렇게 아름다운 회상으로 제 살던 나무와의 작별의 준비를 하는 단풍잎을 보며 우리네 인간의 생(生)이라는 것 또한 태어나는 그 순간부터 화려한 빛을 발하며 산화되어가는, 그런 불꽃놀이나 단풍의 모습과 별반 차이가 나지 않는다는 생각을 해본다.대기권에 존재하는 세상 만물은 태양 볕에 노출되는 그 순간부터 급속히 혹은 서서히 산화되기 시작한다. 그 산화하는 속도가 매우 급속한 현상을 두고 우리는 그것을 불이라 이름 지어 부른다. 그리고 아주 천천히 느리게 산화되는 과정을 생(生)이라 이름 지었고 조금은 느리게 몇 달 혹은 며칠의 시간 안에서 산화되는 현상을 두고 썩는다거나 발효된다고 한다.산화하는 모든 생명은 탄소배출을 한다. 세상의 모든 생명체는 가지는 것과 내어놓는 것에서 균형의 법칙을 적용받고 있다. 흔히 나무가 산소 배출을 많이 하는 것으로 사람들은 알고 있지만 나무가 수명을 다하여 산화될 때 그 크기와 삶의 무게만큼 탄소를 배출해야 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자연 현상이라 할 수 있겠다. 해서 사람들이 탄소배출의 책임을 인간 혹은 소 등의 동물류에게만 떠넘기는 것에 조금의 모순이 느껴지기도 한다.가을이면 나는 늘 푸른 바다 그 아래 산다. 사람들이 하늘이라 부르는 저 푸른 수평선 위로 돌고래처럼 튀어 올라 푸른 도시의 주인이 되고도 싶고, 가을 바다에서 만난 온기를 지닌 해양 생물과 함께 푸른 세상을 가꾸고도 싶다. 촌부의 능력으로 어디 그게 가능할까 싶지만, 그 또한 이 계절이 주는 ‘꿈꾸는 특권’이어서 나는 살면서 만나는 여러 개의 가을 중에 하나쯤은 어떤 그리움에 젖어 사는 가을이어도 좋을 성싶다.

2022-11-09

단풍잎 손

정미영 수필가 쌀쌀한 가을비가 쏟아졌다. 한 차례 내린 비로 아파트 화단에 단풍잎이 떨어져 소복이 쌓였다. 비 그친 뒤에 베란다에서 내려다보니, 아이들이 단풍잎을 두 손 가득 머리 위로 던지고는 환하게 웃었다. 흩어지는 웃음 방울을 따라 옛 추억 하나가 고개를 내밀었다.아들이 어렸을 때, 집 근처 해맞이공원으로 나들이를 갔다. 공원으로 향하는 길옆에는 키 큰 은행나무가 빼곡하게 서 있었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신발에 달라붙던 은행잎, 그 한 잎을 손에 들고 신이 난 아들을 보니 내 기분마저 상쾌했다.멀리 인공폭포 물이 세차게 흘러 내렸다. 쏴아 큰 소리로 울려 퍼지는 물소리를 듣자, 아들은 단숨에 달음박질하여 폭포수 앞에 다다랐다. 거친 숨을 고를 틈 없이 아들이 돌에 엎드려 물속에 손을 담갔다. 손가락에 물을 묻혀 연못가 돌 위에 그림을 그렸다. 이해할 수 없는 그림을 그려 놓고 ‘엄마 얼굴’이라고 했다. 아무리 봐도 사람 얼굴이라고는 말할 수 없었지만, 그래도 엄마를 그렸다니 기뻤다.정자에 앉아 잠시 쉬기로 했다. 폭포를 뒤로하고 난간에 걸터앉았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노래하듯 소리치며 이리저리 뛰어 놀던 아들이 보이지 않았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한참을 찾았는데, 어느 순간 저만치 나무 뒤에서 아들이 활짝 웃으며 나타났다.“엄마, 선물.”불쑥 내민 손에 이름 모를 풀이랑, 단풍잎이랑, 나뭇가지가 한 움큼 들려 있었다. 예쁜 그 손!산책길을 따라 걸으며 아들이 선물한 아기단풍 잎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손가락을 쫙 펼친 아들의 조그만 손을 닮았다. 갈바람과 뒹굴며 놀았던 탓에 잘 마른 단풍잎은 조금 까칠까칠했다. 문득 내 아이의 손을 만져 보았다. 부드러웠다. 엄마 손의 감촉을 느꼈는지 아이는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제법 세게 잡으며 ‘엄마’하고 불렀다.그 날 우리는 해질 무렵 집으로 돌아왔다. 큰방에서 이불을 개키며 정리하고 있었는데, 아들의 외마디소리가 들렸다.“앗, 뜨거워.”부엌으로 달려가니 아들이 싱크대 앞에 주저앉아서 울고 있었다.“주전자가 뜨겁다는 것 몰랐어? 괜찮아? 큰일 날 뻔했잖아.”“소리가 나서….”엄마의 걱정 반 다그침 반 외침에 손으로 눈물을 훔치며, 고사리 같은 왼손으로 오른 손의 둘째, 셋째 손가락을 가리키며 아프다고 했다.아들의 손을 얼음물에 재빨리 담갔다. 주전자를 짚었던 탓에 발갛게 부풀었던 손가락 끝이 다행히 가라앉았다. 조금 전에 불을 끈 가스레인지 위의 주전자에서 보리를 담은 망이 ‘딸그락딸그락’ 소리를 낸 것이 원인이었다. 과연 호기심 왕성한 네 살이었다. 소리가 궁금해 뜨거운 주전자를 만졌다니….시계를 보니 밤 아홉 시였다. 안아달라고 칭얼대며 품에 안겼다. 저도 놀랐을 터이고, 하루 종일 공원에서 뛰어다니며 논다고 피곤했을 터라, 안자마자 곧바로 잠이 들었다. 침대에 눕히고 난 뒤 새삼스레 아들의 손을 만져 보았다. 가슴이 찡했다. 이렇게 작을 수가!아들이 처음 세상에 얼굴을 내밀 때였다. 빛을 만난 순간에 두려워할까 봐, 안심하라고, 건강하게 태어나서 기쁘다고, 태어나자마자 손을 잡고 인사했었다. 그 사랑스럽고 귀엽던 아기 손이 해를 거듭할수록 장난이 심해졌다. 때론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궁금증에 난감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가끔 미울 때도 있었다.해마다 이맘때쯤이다. 찬바람이 불어와 단풍잎들이 흩날릴 때면 지나온 일들이 떠올라 그립다. 아들이 엄마의 손길을 믿고 잘 자라주었듯이, 앞으로도 나는 아들이 살아가면서 삶의 고비를 겪을 때면 그의 손을 꼭 잡아 줄 것이다. 초록에서 빨강, 노랑으로 곱게 변하는 잎사귀처럼 때론 고맙기도, 때론 밉기도 했던 아들의 손을 기억하며, 나는 지금, 단풍잎 한 잎을 내 손바닥에 올려본다. 가을이 담겨 있다.

2022-11-09

갑신(甲申)

육십갑자 중 스물한 번째에 해당하는 갑신(甲申)이다. 천간(天干)은 갑목(甲木)이고, 지지(地支)는 신금(申金)이다. 갑목은 양기를 가진 큰 나무요, 신금은 동물로는 원숭이다. 물상으로는 커다란 나무 위에 매달려 있는 원숭이다.갑신일주(甲申日柱)는 우두머리가 되려는 욕망이 있으며, 자존심이 세다. 사회를 개혁하려는 의지가 강하여 자기를 소진하는 경향이 있다. 다방면에 관심이 많고 다재다능하다. 그러나 어느 하나에 집중하지 않으면 성공하기 힘들다. 원숭이처럼 재능이 무궁무진하나 집안에만 있기는 어렵고 밖으로 다니기를 좋아한다. 체면을 중요시하며, 품위 유지비용이 많이 든다. 그러므로 돈을 모으기는 힘이 든다.중국 전국시대에 제(齊)나라 임금인 장공이 사냥을 하러 성 밖으로 나갔다. 그런데 어떤 곤충 한 마리가 조그만 발을 쳐든 채 장공이 타고 가는 수레의 바퀴를 향하여 덤벼들고 있었다. 장공이 마부에게 “저것이 무슨 곤충이냐”라고 물었다. 마부는 “사마귀라고 부르는 곤충입니다. 저놈들은 앞으로만 나갈 줄 알지, 뒤로 물러날 줄 모릅니다. 저놈들은 자기 능력만 생각하고, 겁도 없이 상대방을 가볍게 여기는 버릇이 있습니다”라고 대답하였다.장공은 “저놈이 사람이라면 아주 용감한 용사가 될 텐데….”라고 말하고는 말머리를 돌려서 그 사마귀를 피해갔다. 몇몇 용감한 사람들이 그 일을 듣고 자신들도 그와 같은 자세로 나라를 위하여 죽어야겠다고 결심하게 되었다. 회남자 ‘인간훈편’에 나오는 이야기다.용기는 마음에서 우러나는 덕이다. 지나친 용기는 화를 자초하는 수가 있다. 일명 망신살이 끼었다고 한다. 사주에 망신살이 있는 사람은 과감하고 성급하며 노출이나 언행에 실수가 많다. 갑작스러운 일에 우왕좌왕하게 되고 예상치 못한 일에 망신을 당한다. 특히 돈과 명예를 가진 사람들에게 자주 발생한다. 가지지 못한 사람은 망신당할 일이 없다.갑신일주 특징은 꿋꿋하고 강직하여 굽힐 줄 모르며 모난 것 같으면서도 모나지 않는다. 단 지고는 못사는 성격이기에 꼭 이겨야만 직성이 풀리고 마는 것이 특징이기도 하다. 천성은 인정과 의리에 치중하다 보니 좋을 땐 한없이 좋으나, 자기의 체면이나 체통을 손상시키면 그 자리에서 면박을 주는 급한 성격이기도 하여 병 주고 약 주는 식이다.갑신일주를 바위 위에 있는 소나무로 비유한다. 그래서 어려운 환경이지만 그만큼 인내력과 적응력이 뛰어나다. 인생에 굴곡이 많은 편이 단점이다. 인생의 고난이 사람을 강하게 만들고 그 고난을 이겨내면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은 결실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우리가 가을 산행을 할 때 절벽 사이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소나무를 보면 한 폭의 동양화를 보듯 그 아름다움에 감탄을 한다. 석선 선생의 시 ‘바위 위의 소나무’의 한 구절을 음미해본다. “바위 위의 소나무야/ 외로운 한 그루 소나무야/ 너는 사철 무엇 먹고 산단 말이냐// 흙이 있어 먹겠느냐/ 물이 있어 마시겠느냐/ 흙도 물도 없으니 무엇 먹고 산단 말이냐.”시인은 열악한 환경에서도 살아가는 소나무를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렇지만 나무는 근심 걱정 없이 그냥 존재할 뿐이다. 하이데거는 시인은 언어를 가지고 존재를 지키는 파수꾼이라고 했다.그리고 ‘존재와 시간’에서 인간은 살아있는 동안 근심의 존재요. 그 길 끝에는 오직 죽음만이 기다리는 비극적 존재라고 했다. 하지만 그 존재는 흔히 평균화된 익명의 존재로 자신을 위장함으로써 이 삶의 비극적 상황으로부터 벗어나려 한다’라고 말한다.그리스신화에 나오는 이야기다. 어느 날, 근심의 신, 쿠라가 흙을 가지고 놀다가 이상한 형상 하나를 우연히 만들게 되었다. 쿠라는 그 모양이 너무나 마음에 들어서 이게 움직이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였다. 마침, 영혼의 신 제우스가 지나가고 있어서 그에게 부탁했다. 그가 숨결을 훅 불어넣으니 살아 움직이는 흙덩이 즉, 사람이 되었다.그러나 세 명의 신이 각각 그게 자기 것이라고 고집했다. 먼저, 흙의 신, 호무스가 내 몸으로 만들어냈으니 자기 것이라고 주장했다. 쿠라는 자신이 만들어냈으니 내 것이라고 핏대를 세웠다. 제우스는 살아 움직이게 만들었으니 그 주인은 당연히 자기 것이라고 우겨댔다. 류대창명리연구자 하는 수 없이 그들은 심판의 신, 사튀른에게 가서 판결을 부탁하였다. 한참 숙고하던 심판의 신이 내린 결론은 이러했다. “이 살아 움직이는 것은 오래가지 않아 죽을 것이다. 그때 가서 몸은 호무스에게서 온 것이므로 호무스가 가지고, 영혼은 제우스에게서 온 것이니 제우스가 가져라. 그러나 살아있는 동안은 만들어낸 쿠라의 것이다.” 그래서 사람은 근심의 신 쿠라에 종속된 존재가 되었다. 결국 인간은 살아있는 동안 근심과 염려 속에 허덕이게 되고, 그것을 피할 수 없게 됐다.인간이 죽음으로 향하는 존재임을 알 때 비로소 염려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죽음은 인간의 유한성을 말한다. 곧 인간이 자신의 유한성을 자각할 때 비로소 시간의 소중함을 알고 미래를 기획하는 존재가 된다고 하이데거는 말한다.예기치 못한 재난 소식을 들었을 때 안타깝고 불안하고 걱정을 하게 된다. 우리는 모두 쿠라의 자손이기 때문이다. 타자가 있기에 내가 존재하듯이 나 역시 타인에게는 타자가 되는 것이다. 타자란 사회 안에서 서로 구별되지 않고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이름이 된다. 타자를 서로 돌보아주고 보살펴 주는 것이 우리의 마음씀 즉, 배려와 사랑이다.

2022-11-09

핼로윈 문화

조현태수필가 핼로윈 문화는 까마득한 옛날에 아일랜드 켈트족의 풍습에서 유래됐다고 한다. 일종의 종교적 의식으로 죽은 사람의 영혼에 대응하는 풍속이 핼로윈데이로 정착했다고 한다. 19세기 중반 무렵 미국에 아일랜드 출신의 이민자가 늘어나면서 미국에서 핼로윈 축제가 빠르게 확산되었다. 근래에 와서 빼빼로데이, 화이트데이, 삼겹살데이, 밸런타인데이 같은 신종 문화가 한국에도 유행하여 축제 행사처럼 열리고 있다.이렇게 외국 문화가 한국에 들어오듯 한국 문화도 외국으로 많이 전파되고 있다. 이는 어느 한 국가라기보다 세계 모든 국가와 사람이 점차 어우러져 통합되어가는 모습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핼로윈 문화를 거부할 필요는 없다. 다만 한국적인 핼로윈으로 즐기면 될 일이다.2022년의 핼로윈은 대단한 충격과 슬픔을 남긴 축제로 기록될 것이다. 과밀한 인파에서 발생한 압사사건으로 무려 343명이나 되는 사상자를 냈기 때문이다.방송사나 신문사의 발표를 보면 원인을 규명하고 처벌하는 일련의 과정을 보도하고 있다. 경찰의 대응이 늦었다는 둥, 골목에 무단점유물이 문제라는 둥, 좁은 길에 너무 많은 인파가 몰렸다는 둥…. 다양한 의견들이 나오는데 필자의 생각으로는 무엇이 잘못된 일인지 딱 꼬집어 정하기 어려워 보인다. 그러니까 어느 누구의 잘못이라기보다 우리 사회 전체가 자성하라는 큼직한 꾸중이 아닌가 싶다.이번 이태원 참사의 특징은 뚜렷하다. 첫째, 외국 문화가 물밀듯 밀려와도 거절할 수 없는 지구촌 시대이다. 특히 젊은 층이 향유하는 축제 분위기는 저지 억제한다고 수그러들지 않는다. 둘째, 한국 사회가 저질러 온 무분별한 행동에도 문제가 있다. 긴급전화 112 혹은 119에 재미삼아 전화하여 장난하는 경우가 매우 흔하다. 그래서 경찰이 전화를 받아도 어디냐고 자꾸 따지고 확인하는 절차를 거치게 된다. 이참에 긴급전화만큼은 발신자 위치와 번호를 자동으로 체크할 수 있는 장치를 개발하면 어떨까. 그래서 장난전화에 대한 처벌도 따라야 할 터이다. 셋째, 코로나19를 겪으면서 억눌렸던 감정이 축제 분위기와 겹치면서 과밀한 군중이 참여함으로 통제가 어려웠다.이태원 참사 중에 경찰이 적극 개입했다면 사망자 수를 훨씬 줄일 수 있었으리라는 판단으로 조사 중이라고 한다. ‘경찰이 다 잘 했다고는 할 수 없듯이 참여한 군중이나 현장 사정은 전혀 문제가 없는가? 외국 문화에 거침없이 반응하는 지금 시대는 다 잘 했는가?’라고 질문해 보면 어떤 대답이 나올까.이미 수많은 목숨이 사라졌고 또 이러한 변고가 발생하지 않아야 한다는 원칙은 변함이 없다. 중요한 것은 이런 사건을 바탕으로 사회의 질서나 신뢰가 더욱 발전하여 아름다운 사회로 거듭나기를 바랄 뿐이다. 황망한 슬픔에 빠진 유족에 진심어린 위로와 사랑을 전한다. 마음이 많이 상하겠지만 처벌과 보상만이 유일한 해결책은 아닐 수도 있다. 온 국민이 함께 짊어져야 할 숙제이기도 하다. 아울러 안전하고 행복한 사회로의 기틀을 잡게 하는 긍정 의미를 부여하고 싶다.

2022-11-08

이제 그들에게 서른 즈음은 없다

이재현동덕여대 교수·교양대학 “이십대에는 / 서른이 두려웠다 / 서른이 되면 죽는 줄 알았다 / 이윽고 서른이 되었고 싱겁게 난 살아 있었다 / 마흔이 되니 / 그때가 그리 아름다운 나이였다.”박우현 시인의 시집 ‘그때는 그때의 아름다움을 모른다’(작은숲, 2014)에 수록된 같은 제목의 시 1연이다. 겪어보지 않은 앞날은 늘 두렵고 떨리지만 지나온 날들은 아름답게 기억되게 마련이다. 그때는 좋은 줄 몰랐어도, 어쩌면 힘들고 괴롭고 지워버리고 싶은 시간이었다고 해도 돌아보면 소중하고 아름다운 날들이 옛날의 그때 그 시간인 것이다. 그래서 시인은 마지막 연에서 “죽음 앞에서 / 모든 그때는 절정이다 / 모든 나이는 아름답다 / 다만 그때는 그때의 아름다움을 모를 뿐이다.”라고 삶을 관조한다.모든 날들이 절정이고 모든 나이가 아름답다고는 해도 인생의 ‘화양연화(花樣年華), 라 벨르 에포크(La Belle 00E9poque)’는 역시 이삼십 대 아닐까? 삼사십 대를 살아가고 있는 이들 누구에게나 스무 살의 추억과 아프건 슬프건 스물을 건너간 흔적을 지니고 있다. 이십 대와 삼십 대를 거치지 않고는 그 누구도 마흔도 쉰도 예순도 될 수 없다. 나이가 들고 설령 치매가 와서 기억이 소멸해 간다 해도 젊은 날 그 시절은 가슴 속 어디엔가는 향기 짙은 꽃으로 피어 있을 것이다.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의 브리핑에 따르면 11월 7일 기준으로 10·29참사 희생자는 외국인 26명을 포함하여 모두 156명이다.(나는 ‘이태원’이라는 땅이름보다 사고가 난 날짜를 쓰는 것이 더 낫고, 객관적인 용어라는 ‘사고’와 ‘사망자’보다 ‘참사’와 ‘희생자’라는 표현이 더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심정적으로도 그렇고, 사고의 상황과 언어적 맥락으로 보아도 그렇다.) 희생자 중 이십 대가 104명으로 정확히 2/3이다. 십 대 희생자 12명과 삼십 대 희생자 31명을 포함하면 그야말로 꽃다운 나이에, 그리고 꽃도 제대로 피워보지 못한 나이에 세상을 뜬 젊은이들이 희생자의 94%가 넘는다. 외국인 희생자 역시 대부분이 이삼십 대이다. 이들은 한국이 좋아 한국 대학에서 공부하고 한국에서 일하다가 자신들이 좋아하던 이 땅에서 영원히 돌아오지 못할 강을 건너고 말았다.음유시인으로 불리웠던 1964년 1월생 김광석은 갓 서른이 된 1994년 6월에 ‘서른 즈음에’라는 노래를 발표했다. 머물러 있는 청춘인 줄로 알았는데 멀어지고 잊혀지고 이별하는 젊음을 허탄해 하였다. 그리고는 서른 즈음 젊은 날을 얼마 살아보지도 못하고 1996년 1월에 세상을 떴다. 그런데, 젊음을 누리러 이태원에 갔던 우리의 어리고 젊은 벗 백여 명에게 서른 즈음이라는 시간은 영원히 없다. 다만 제대로 누려보지도 못한 스물 즈음만이 버려진 가방과 신발로 남아 있을 뿐이다. 사십 대와 오십 대의 안타까운 희생자들에게도 이제 서른 즈음이 없기는 마찬가지. 살아 있어야 서른 즈음 젊었던 날을 돌아보고 때로는 후회도 할 수 있을 것 아닌가.이들이 가져보지 못한 서른, 돌아보지 못할 서른을 아무도 책임지려 하지 않은 채 대한민국은 스산한 겨울로 접어들고 있다.

2022-11-08

사고의 전환으로 미래 준비해야

‘축의 전환’은 2030년, 약 8년 후에 닥칠 우리 사회의 단기적 변화를 다루고 있는 책이다.우리는 그리 멀지 않은 미래를 예측하고 그 변화에 대해 우리가 대응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방안을 찾아야 한다.국가나 자치단체의 정책부터 개인적인 행동까지 모든 상황에 대해 변화를 대비하는 것이 중요하다.우리가 직면한 거대한 변화는 코로나19라는 변수로 이미 진행되고 있던 흐름을 더욱 가속화하고 있고 블록체인을 비롯한 신기술의 신속한 도입, 인구 고령화의 급격한 심화, 여성의 사회적 역할의 지속적인 상승, 신흥 산업국의 성장 등 급격한 변화가 이루어지고 있다.그 과정에서 우리는 변화의 물결을 이끄는 가장 역동적이고 진취적인 국가의 면모를 가지고 있다.1960년대부터 2020년대까지 한국은 눈부신 성장을 이룩하며 한 때 비슷한 경제 수준을 가진 국가들이 한국의 성장을 부러워한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세상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고 미래는 예측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임기응변의 순발력을 가지고 미래를 준비해야 할 것이다.이와 같은 맥락으로 영양군도 다가올 2030년의 변화에 대비해야 한다.단적인 예로 현재 지방소멸이라는 국가적 위기가 다가오고 있지만 이런 위기를 변화로 받아들이고 미래를 예측하고 극복할 방안을 마련해 대비하는 등 강점을 잘 살리면서 약점을 보완하는 정책들을 펼쳐 다가올 미래에 대비해 한 발짝 앞서 나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특히 이 책에서 우리가 미래에 직면할 변화는 출산율의 변화, 노년세대의 재발견, 새로운 중산층의 출현, 여성주도 세상의 도래, 도시의 재발견, 신기술의 확산, 탈소유 경제의 확산, 새로운 화폐의 도입 등 8가지로 나누고 있다.이러한 변화에 대비하기 위해‘수평적 사고’라는 기존의 주어진 상황에 집착하지 않고 상황자체를 바꾸는 방법에 대해 고민하는 것이 전제가 되어야 할 것이다.‘수평적 사고’의 핵심 원칙은 멀리보기, 다양한 길 모색하기, 천리 길도 한걸음부터, 막다른 상황피하기, 불확실한 상황에서 낙관적으로 접근하기, 역경을 두려워하지 않기, 흐름을 놓치지 않기 등 7가지이다. 오도창 영양군수 이 원칙들은 언뜻 보기에도 평범하고 우리가 일상적으로 요구받던 태도다.그러나 현실의 변화를 바로 읽고 적절하게 대응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이렇게 평범한 덕목일지도 모른다.2030년은 예측이 불가능할 정도로 먼 미래가 아니다.우리는 7∼8년 앞으로 다가올 미래의 기회와 도전을 미리 준비해 둘 필요가 있다.미래에 다가올 기회를 잡고 도전할 시기에‘수평적 사고’는 대단히 중요하다.우리 영양군이 앞으로 추진해야 할 정책들에‘수평적 사고’를 접목시켜 기존에 없었던 획기적인 정책을 마련해 우리 영양군이 더욱 도약할 수 있기를 바란다.이를 통해 모든 군민들이 미래 2030년의 변화에 잘 대응해 한 단계 더 성장하고 발전할 수 있는 희망찬 영양을 만들어 가는데 일조할 것이라 믿는다.

2022-11-08

우리가 우리일 수 있는 이유

참담한 마음으로 일상을 보내는 요즘이다. /언스플래쉬 며칠간 참담한 마음으로 일상을 보냈다.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며칠 전 일어난 참사와 관련하여 많은 사람이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다. 감히 헤아릴 수 없는 유가족의 아픔에 어찌 비할 수 있겠느냐만 개인적인 차원에서의 죄책감을 끊임없이 느낀다. 책상 앞에 앉아 문장 몇 줄을 쓰는 것이 위선적인 행위처럼 여겨진다. 애도 위로 쏟아지는 혐오와 무분별한 언어폭력에도, 공적으로 책임져야 할 지점을 개인의 영역으로 밀어내는 일에도 완전히 지쳤다. 자꾸만 무너지고 무력해진다.마음이 자꾸 극단적으로 치닫는 이유는 분명하다. 같은 슬픔을 같은 마음으로 몇 번이나 경험하고 있다는 자각 때문이다.우리는 여러 죽음을 겪었다. 최소한의 안전을 보장받지 못한 노동자의 죽음과 삽시간에 무너지는 건물 안에서 빠져나오지 못 한 사람들. 우리 사회를 비통함으로 물들게 했던 참사들. 그에 따른 상처가 채 아물기도 전에 비슷한 상황이 또다시 반복되었다.이번에는 다를 것이라고 믿었던 참사 전후의 예방과 대처는 여전히 미흡하다. 세상은 얼마나 더 끔찍해질 수 있을까. 상상의 범주를 넘어선 죽음이 매일같이 벌어지고 있다. 도무지 끝이 보이지 않는 컴컴한 터널 안을 헤매는 기분으로 맥없이 고개를 떨어뜨린다.이태원 참사의 사망자와 부상자 수를 본다. 이것은 숫자 이상의 고통과 상실이 우리 주변에 만연하다는 뜻이다. 내게 더없이 소중한 사람이 하룻밤에 사라져버리는 일. 경험하지 않은 자들이 쉽게 재단할 수 없는 마음에 놓인 이들에게 어떤 위로의 말을 건네야 할지 가늠이 되지 않는다.그러한 아픔을 마주하는 과정에 예의를 지키기는커녕 더욱 고통스럽게 만드는 말이 있다. 춤추고 노래하는 일 자체가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일. 자유와 젊음으로 대변되던 공간을 순식간에 부패한 곳으로 만들어버리는 일. 사람 많은 곳에 간 것이 잘못이다. 놀러 나가지 않았다면 이런 일은 없다. 이러한 말은 상대를 완전히 파괴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절대적으로 근거 없는 힐난의 말이다. 이런 말의 깊은 곳에는 비이성적인 혐오가 뿌리잡고 있으며 개인 존재의 존엄을 축소하는 태도가 내재하여있다.그러니까 이것은 책임에 관한 문제이기도 하다. 시민과 안전을 책임지는 정부에게 책임을 묻지 않고서는 이 일을 결코 종결지을 수 없다. 쓰러진 친구의 호흡기를 누르며 무릎에 시퍼렇게 멍이 들면서도 자기 탓이라며 울부짖는 청년에게 그것은 너의 잘못이 아니라고 이야기하는 일. 사고의 트라우마로 고통받는 생존자의 마음을 헤아리는 일. 개인의 영역을 넘어서 공동체가 짊어져야 하는 것들이 있다. 우리에게는 우리가 감당해야 할 몫이 있다.민중이 국가권력에 책임을 묻는 것은 당연하다. 정치적인 영역을 넘어서서 그 무능과 안일함을 질타하지 않으면 안 된다. 책임을 떠넘기는 공직자들의 발언을 보면서도 그랬다. 상실감을 이해하는 것이 선행되지 못한 채로 책임을 절감시키기에 급급한 태도는 국가에 대한 믿음을 지워버리는 것이다.인터넷에 올라오는 사상자를 혐오하는 발언이나 자극적인 영상, 기사들 역시 자기 책임을 내버린 일이다. 타인에 대한 예의를 가져야 한다는 당연한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 채로 행해지는 일들이 있다. 한 사람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서 이런 식의 발화는 엄격한 법적 장치를 통해 통제되어야 한다. 문은강 ‘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로 주목받은 소설가. 201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작가로 등단했다. 우리는 우리의 삶을 살아내야 하는 의무를 지고 있다. 단순한 생존을 위해서가 아니라 제대로 잘 살아가고자 하는 욕망은 결코 이상한 것이 아니다. 어느 순간 우리는 당연한 일상이 제대로 보호받지 못한다고 느낀다. 지금 발붙이고 있는 이 시간이 언제 꺼질지 모르는 위기로 느껴진다.‘나는’보다 ‘우리는’이라는 주어가 더욱더 강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자명하다. 각자도생을 권유받는 국가의 국민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사람은 없다. 그러므로 이 모든 참사가 타인의 일이 아니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누군가의 고통을 멀리 두는 순간 자기의 삶을 파괴하는 일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우리는 함께 동시대를 걸어가는 공동체의 일원이며 이 모든 일에는 우리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이런 당연한 이야기를 쓰기까지도 오랜 고민이 필요했다. 쓰고 지우고를 반복할 수밖에 없던 이유는 나 역시 아픔의 당사자가 아니라는 자각 때문이었다. 막막한 무력함으로 문장을 지우고 다시 쓰기를 반복하다가 마음을 다잡는다. 이 발화는 나를 깨우치는 기록이다. 절대 잊지 않기 위함이다. 누군가의 고통이 결국에는 나와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함이다.함께 아파하고 슬퍼해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우리일 수 있는 이유다.

2022-11-08

당신의 믿음

초등학교 1학년 때의 일이다. 학교 근처의 신축 빌라 공사 현장에서 사고가 일어나 인부 여럿이 다치고 죽었다. 어린 나는 내 가까이서 사람이 죽었다는 게 딱히 실감이 나진 않았던 것 같다. 사람이 죽는다는 건, 토요 미스터리 극장이나 이야기 속으로 같은 무서운 TV 프로그램, 혹은 경찰청 사람들이나 공개수배 25시 같은 수사 프로그램에서나 나오던 이야기였기에 그랬던 것 같다.늦은 밤 부모님 몰래 TV를 보는 아이처럼, 나는 한동안 사고가 일어난 주변을 몰래 바라보곤 했다. 사람이 죽는다는 것도, 사람이 저곳에서 죽었다는 것도 실감나지 않았으므로. 그렇게 사고는 내 머릿속에서 빠르게 사라졌다. 당시엔 그런 일들보다 재밌고 신나는 일이 너무나도 많았다. 어린 나의 마음은 그 일을 오래도록 담아둘 정도로 크지도 않았다.오래도록 그 일을 잊고 있다가 다시금 떠오른 건 초등학교 2학년이 끝나갈 무렵이었다. 수업 시간에 친구와 장난을 치다가 노년의 담임선생에게 뺨을 맞은 적이 있었다. 아직 국민 학교라는 명칭을 사용하던 때의, 아직은 체벌이 익숙하던 시절이었기에 가능했던 이야기. 그날 화가 난 선생님은 9살짜리 아이를 오래도록 혼내며 이런 이야기를 했다.너 같은 애는 나중에 커서도 뻔하다. 저기 공사장에서 사람 죽은 거 아느냐. 선생님 말도 잘 안 듣고, 하느님도 안 믿고, 성경 공부도 안 한 사람들이다. 하느님 안 믿으니까 공부도 안하고, 방탕하게 살다가 공사장에서 험한 일만 하다 천벌 받은 거다. 그게 다 죄다. 너도 커서 똑같이 그렇게 될 거다.누군가에게 뺨을 맞은 건 처음이었기에 많이 놀라고 당황스러웠던 탓도 있지만, 그보다는 내가 큰 죄를 지었다는 사실이 무섭고 두려워 나는 큰소리로 오래도록 엉엉 울었다. 결국 소리를 듣고 놀란 옆 반 선생님이 양호실로 데리고 갈 때까지도, 나는 계속 울었다. 죄라는 건 TV에 나오는 험악하고 무서운, 귀신이나 범죄자들이나 저지르는 건 줄 알았던 나에게 담임 선생이 한 말은 감당할 수 없는 이야기였다.뺨을 맞고 펑펑 운 탓에 얼굴이 퉁퉁 부은 채로 집에 돌아온 나를 본 할머니는 화가 머리끝까지 올라 고모와 함께 학교에 쳐들어갔다. 그 담임선생이 고모와 같은 교회의 신자였다는 걸 알게 된 건 내가 중학교에 올라갈 무렵의 일이다.무섭고 두려웠던 그날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은 건 많이 놀랐던 탓도 있겠지만, 사실 그보단 마음속에 오래도록 남았던 질문이 해결되었기 때문도 있다. 좀처럼 알 수 없던 사실이 슬며시 “아, 그래서였구나.”로 바뀌는 기억은 좀처럼 마음속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사람은 왜 죽는 것인지, 왜 누군가의 죽음은 저처럼 손가락질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지 미처 알지 못했던 나에게, 그날의 기억은 세상에 대해 처음 알게 된 순간이기도 했다.그렇구나. 죽는다는 건 죄에 대한 벌이구나. 하느님 믿고, 선생님 말씀 잘 듣고 성경 공부 잘 하지 않으면 죄인인 거구나. 그러면 저렇게 죽는 거구나. 나도 언젠가는 저렇게 죽게 되겠구나. 무섭도록 유치하고 단순하기에 더 잔인한 이야기. 그래서 오래도록 마음에 새겨지고 마는 상처 같은 이야기. 임지훈 2020년 문화일보, 서울신문 신춘문예 평론 부문에 당선된 문학평론가. 한양대 국문과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그런 사람들이 있다. 그 사람들이 죽은 건, 하느님을 믿지 않고 이교도의 축제를 즐기러 가서라고 말하는 사람들. 그들이 죽은 건 하느님의 심판이라고 말하는 사람들. 참사는 북한 공작이며, 이게 다 지난 정부의 문제라고 말하는 사람들. 정부를 전복하기 위해 만들어낸 거짓 참사라고 말하는 사람들. 사람들이 죽은 앞에서 찬송가를 틀고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는 사람들. 신의 이름을 아무렇지 않게 빌리고는 무엇으로도 갚지 않는 사람들. 무섭도록 유치하고 단순하기에 더 잔인한 이야기. 그래서 더욱 오래도록 마음에 남는 이야기. 누군가는 진심으로 믿게 될 그런 이야기. 참사가 벌어질 때면 매번 나오는 이야기.나는 그 이야기를 들을 때면 내가 어릴 적 겪었던 일이 떠오른다. 그래서 매번 다시금 묻게 된다. 내가 저지른 죄는 정말 그렇게 큰 죄였나요? 그들이 죽은 건 그렇게 큰 죄를 지었기 때문인가요? 우리의 가난과 우리의 삶과 우리의 슬픔은 모두 우리가 지은 죄 탓인가요? 예수님께서는 당신들의 죄만을 대속하셨을 뿐, 우리의 죄는 고스란히 우리의 몫으로 남겨졌던 것인가요? 우리를 죄인이라 말하는 당신은 누구인가요.만약 내가 그 시절로 돌아가게 된다면, 그를 향해 말하고 싶다. 예수께서는 누군가의 죄를 짊어지고자 십자가에 못 박히셨는데, 당신은 누군가의 죄를 탓하고 욕하고 벌하기 위해 세상을 살아가는군요. 그건 지옥의 일이에요. 당신은 지옥을 믿는 사람입니다.

2022-11-08

“문제는 경제”

우정구 논설위원 미국 중간선거에서 민주당과 공화당이 대혼전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선거 승패를 가를 핵심쟁점으로 ‘경제문제’가 떠올랐다고 한다. 미국 언론 여론조사에서 투표에 미치는 영향의 요인으로 응답자의 81%가 ‘경제’를 꼽았고, 78%는 ‘인플레이션’이라 응답했다고 한다.정치가 자당의 이해득실을 따져 온갖 음모술수로 정치적 이슈를 쟁점화하려도 국민의 눈에는 경제만큼 중요한 이슈가 없다는 해석이다.“바보야 문제는 경제야”는 빌 클린턴을 대통령으로 당선시킨 구호로 유명하다. 1992년 미국 대선에서 걸프전 승리로 인기 절정에 있던 현직 대통령인 조지 부시를 누르고 승리한 빌 클린턴은 당시 미국의 경제난을 국민에게 부각시킨 덕에 대통령에 당선된 것이다.의외의 결과에 미국 정치계도 놀랐던 일이다. 국민의 관심은 그 어떤 것보다 경제문제 해결에 더 많음이 확인된 것이다. 이번 미 중간선거도 같은 맥락에서 바라볼 수 있다.우리나라도 아마 비슷할 거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 우리경제는 사면초가 상황이다. 경제 3요소인 생산, 소비, 투자가 트리플 감소하고 물가는 다락같이 올라 서민의 삶은 그 어느 때보다 팍팍해졌다. 미국발 금리 인상으로 영끌족과 빚투족은 물론 서민층까지 금리인상에 따른 부담으로 밤잠을 설치는 지금이다.2천조원에 달하는 사상 초유의 가계부채가 폭발할지도 모르는 위급한 상황에 그 어떤 정치적 이슈가 경제를 누를 수 있을지 의문이다. 정치의 근본은 백성을 잘 살게 하는 데 있다는 선현의 말이 새삼 와 닿는다. 민심이 경제다.정쟁에 중독된 듯 싸움판으로 변질돼 가는 우리 정치에 국민은 더 이상 관심이 없다. 경제문제를 푸는 정치가 바로 이기는 정치가 되는 길이다. /우정구(논설위원)

2022-11-08

“핵전쟁 공포에서 의지할 곳은 정부뿐”

심충택 논설위원 한반도에 전운이 감돌면서 지난주(2일)에는 북한이 울릉도를 겨냥해 미사일을 발사했다. 울릉도에는 요격미사일도 없어 만약 북한이 실제 미사일을 쏘았다면 무슨 일이 일어났을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이날은 북한이 동·서해상으로 단거리 탄도미사일과 지대공 미사일 25발을 연달아 발사했다. 6·25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북한은 최근 우리 주요 도시를 목표로 정해 발사시간과 장소, 비행거리를 수시로 바꾸면서 미사일 성능시험을 하고 있다. 부산에 입항한 미 항공모함을 겨냥한듯한 거리만큼 동해상에 미사일을 발사하는가 하면, 백령도 부근 NLL을 북한 상선이 고의로 침범한 뒤 방사포를 쏘기도 했다. 언제 어디서 우발적인 전선(戰線)이 형성될지 모르는 불안한 상황이다.국제정세도 심상찮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지난달 말 “한국이 우크라이나에 무기와 탄약을 제공하기로 한 사실을 알고 있다”며 우리를 콕 집어 위협했다.미국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달 “푸틴이 전술핵이나 생화학 무기를 언급할 때 그건 농담이 아니었다”며 ‘아마겟돈’이 일어날 가능성에 대해 말했다.인류 멸망을 의미하는 아마겟돈이라는 단어가 미국 대통령의 입에서 나온 것은 놀랍고 두려운 일이다. 최근 한·미 양국이 북핵 공격에 대비해 매년 ‘핵우산 훈련’을 하고 미국의 전략자산(핵추진 잠수함, 전략폭격기 등)을 한반도에 상시배치하기로 한 것은 그만큼 전쟁위험이 크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북한은 최근 한국에 핵 공격을 가할 수 있는 5가지 조건을 열거했다. 언제, 어떤 상황에서든 그들이 자의적으로 판단해서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다는 선언이다.이러한 위기상황에서 야당은 이태원 참사를 정쟁의 도구로 이용하며 내각 총사퇴를 거론하고, 주말마다 열리는 촛불집회에서는 대통령 퇴진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그야말로 내우외환(內憂外患)이다. 국가가 마치 ‘바람 앞의 등불’ 같다. 이 와중에 무소속 윤미향 의원은 “한미 합동 공중 군사훈련을 당장 멈추라”는 글을 페이스북에 올리고 있으니, 야당 정치인의 사고가 정말 이해하기 어렵다.조선이 일제의 침략에서 버티지 못한 이유 중의 하나는 대적(對敵)할 무기가 없었다는 점이다. 1884년 겨울 갑신정변을 일으킨 김옥균은 ‘갑신일록’에서 “창덕궁 무기고를 열었을 때 총과 칼이란 죄다 녹슬어서 처음부터 탄환을 장전할 수 없는 형편이었다”고 기록했다.북한이 만약 핵전쟁을 유발할 경우, 여기에 맞서 대응할 무기가 없는 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앞으로 북한의 도발은 계속될 것이다. 이제 핵실험을 넘어 예상치 못하는 수위로 도발해올 가능성이 있다. 북한이 입맛대로 우리 국토를 미사일과 방사포로 유린하는 것은 핵무기를 가졌기 때문이다. 아무리 도발해도 국제사회가 그들을 공격할 수 없다는 확신이 있는 것이다.지금 우리 국민이 핵전쟁 공포에서 의지할 곳은 오직 정부뿐이다. 윤석열 정부는 정쟁(政爭)에 휩쓸려 시간을 허비해선 절대 안 된다. 항상 최악의 상황을 가정해서 북한의 핵도발에 즉각 대응할 수 있는 만반의 수단을 갖춰야 한다.

2022-11-08

군민과 공직자 행복 위한 안내서

삶의 궁극적인 목표를 묻는다면 대부분 ‘행복’이라고 답할 것이다. 하버드 대학의 긍정 심리학 교수로 행복(Happi ness) 수업을 강의한 탈 벤 샤하르 교수는 “지속할 수 있는 행복을 얻기 위해서는 목표를 가져야 한다”며 “행복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명확하고 구체적인 삶의 목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군정이 지향해야 할 목표이자 가치는 군정의 주인인 군민의 행복이다. 민선 8기가 출범하고 4개월 동안 많은 곳을 둘러보고 군민들을 만나며 어떻게 하면 군민 모두가 행복하고 잘 사는 봉화를 만들어 나갈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이 많아졌다.이런 고민을 할 때면 오래전 감명 깊게 읽은 책 한 권이 떠오른다. 20세기 대표적 지성으로 꼽히는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은 ‘행복의 정복’이라는 책을 통해 이런 말을 남겼다. “행복은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약속된 미래가 아니고, 노력해서 정복해야 할 대상이다.”1930년 출간된 이 책은 러셀이 그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삶의 지혜와 행복에 대한 생각이 담겼다. 출판된 지 100년 가까이 됐지만 여전히 고개가 끄덕여지는 부분이 많다.책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1부는 행복이 우리 곁을 떠난 이유를 설명하며 경쟁이 심화된 현대 사회, 인간이 살아가면서 느낄 수밖에 없는 권태, 걱정 등에 대해 이야기한다. 2부는 행복으로 가는 길을 안내하며 우리가 행복을 느끼고 쟁취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지 소개하고 있다.러셀은 행복을 방해하는 걱정에 대해서 이야기하며 이렇게 해결책을 제시했다. “현명한 사람은 고민하는 것이 효과가 있을 때만 고민하고, 고민을 해도 효과가 없을 때는 다른 생각을 한다. 특히 밤에는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다.” 박현국 봉화군수 한시도 쉬지 않고 고민하기보다, 꼭 필요한 때 적당하게 고민하는 침착한 태도를 길러야 행복과 능률을 증진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행복하기 위해서는 가능한 한 폭넓은 관심을 가지고 외부의 사물이나 사람에게 따뜻한 반응을 보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특히 동료인 인간을 향한 따뜻한 관심은 행복한 일상을 만드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러셀은 또한 “당신이 잘하는 일이라면 무엇이나 행복에 도움이 된다.”고 이야기했다. 군민들의 행복을 위해 잘하는 일을 하려고 애쓰면 나 스스로도 행복해질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개인이 행복해야 사회 전체가 행복하다. 공직자가 행복해야 군민이 행복하고, 군민이 행복하면 공직자에게 그 행복이 돌아올 것이다. 군민의 안녕과 행복을 군정 운영의 최우선 가치로 두고 민선 8기 봉화군을 이끌어 가는 우리 공직자들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

2022-11-07

미래를 여는 혁신

정상철 포스코인재창조원 교수·컨설턴트 삶은 어제를 추억하고 오늘을 사랑하며 내일을 희망한다. 미래를 예측하기 어렵다고 하지만 삶의 비전과 지금의 생각과 습관이 내일을 결정한다. 미래를 여는 혁신은 개인과 기업의 성장과 발전을 꾀하는 일이다. 미래가 없는 기업은 구성원의 희망을 잃는 것과 같고 꿈과 희망을 잃은 사람은 도전적이고 역동적일 수 없다. 기업은 생존을 위해 매일 새벽 전쟁이 시작된다. 생존을 유지하고 성장 발전하기 위해서는 기업은 무엇을 해야 할까.세계 굴지의 기업은 기술문명이 발전하는 흐름에 따라 타이밍을 놓치지 않고 선택과 도전의 혁신을 했다. 가령, 삼성은 2000년 최고 CEO의 결단으로 미래 먹거리는 반도체로 보고 ‘마누라 빼고 다 바꾸라’라는 콘셉트로 프랑크푸르트를 선언했다. CEO 주도 선택과 집중전략으로 불과 5년만에 일본 소니를 추월하고 세계 최고로 우뚝 선 것은 미래를 여는 경영전략을 타이밍에 맞게 실행한 결과였다. 일본에서는 삼성을 연구하는 1천200명의 전문가가 있고, 앞으로 5년 내 소니가 다시 삼성을 추월할 수도 있다고 한다. 일본 경제학자 연구진이 쓴 책 ‘삼성이 두렵다’를 보면 삼성전자 모든 기업의 경영 흐름과 CEO의 일거수일투족이 분석되어 있고 미래 전자기술특허도 5건 확보했다고 한다. 기업의 혁신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고 하지만 제대로 하지 않으면 겉도는 혁신을 하는 경우가 많다.혁신은 ‘가치있는 새로운 변화’라고 정의하는데 제도에 허가 있으면 실행에 허가 생기고 기획과 실행이 매칭이 안 되면 성과 달성도 어렵고 실행의 주체들로부터 불신을 갖게 되어 소멸되고 마는 속성이 있다. 한 번 기획하는 혁신은 10년 이상 가는 제도가 되어야 하고 100년 기업문화로 가는 요소가 되어야 한다.세계 선진기업인 도요타는 새로운 제도를 도입하거나 보완하고자 할 때 현장 부서 200인 위원의 1차 의견수렴을 하고 초안을 만들어 설명회를 갖고 보완한다. 최종안은 직접 직원 설명회를 하고 다시 의견수렴 후 반영하여 최종 공지한다. 한 번 만든 제도는 중도에 사라지는 경우는 드물다. ‘룰과 매뉴얼의 문화’를 보여주는 일본과 다양성과 창의성이 강한 한국은 다른 면은 있지만 기업의 기획과 실행은 하나가 되어야 한다. 혁신은 대내외 변화와 경영전략과 연계하여 실행되어야 한다.필자가 지도하는 P사는 스마트 팩토리의 장기 비전을 갖고 추진되고 있고 비전을 향한 생산프로세스 분석과 설비고도화를 근간으로 첨단 제어기술과 수작업을 기계화·자동화·지능화하는 등 기술적인 개선으로 가고 있다. 스마트 팩토리로 성공한 독일 지멘스는 제품생산 불량률이 0.000021%라고 하고, AI를 적용한 주행자율자동차는 사람이 운전하는 것보다 교통사고율이 현저히 낮다. 이렇듯 기업에서 미래를 여는 혁신은 스마트 팩토리로 가는 길이며, 이에 따른 기업 생산 흐름은 MG세대를 넘어 알파세대(2010~2024년 출생)가 주도하는 생산시스템으로 세대 변화에 맞게 진화 발전해 나가야 한다. 기업의 미래 경쟁력은 경영 비전이 설정되고 혁신을 통해서 실현시켜 나가는 것으로 결정된다.

2022-11-07

그립고 아름다운 울릉도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지난 2일 오전 울릉도 전역에 공습경보가 내려졌다. 북한이 원산 일대에서 동해상으로 발사한 탄도미사일 3발 중 1발이 울릉도 방향으로 날아온데 따른 경보발령 조치였다. 비록 날아가다가 동해상 북방한계선(NLL) 이남 공해상에 떨어지긴 했지만, 1분만 그대로 날아갔더라면 울릉도에 직접적인 타격을 줄 수 있을 만큼 위급한 상황이었다. 평온한 섬 울릉도에 갑자기 공습경보 사이렌이 울리고 주민 긴급대피령이 내려지자 당국과 주민, 관광객들은 놀라움과 함께 바짝 긴장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불과 1주일 전에 울릉도를 다녀오고 이번 주 또 다시 울릉도에 입도하는 필자 역시 당황스러움과 함께 일말의 우려를 떨쳐버릴 수 없었다.울릉도는 필자와 인연이 많은 곳이다. 40여년 전 고교시절에 친구따라 강남가듯이 처음으로 가본 울릉도엘 몇 번 가족과 함께 들어가서 성인봉을 오르고 독도를 찾았는가 하면, 직장 동료들과는 자전거를 타고 섬 일주로를 따라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내수전옛길 트레킹도 즐기는 등 과연 울릉도에 각별한 애착(?)이 있어 보이는 것만은 확실하다. 그도 그럴 것이 단순한 관광이나 탐방을 위한 입도는 차치하고라도, 울릉도에는 인연따라 마음따라 이어지는 지인이 있고 애틋한 사연과 추억이 물결처럼 늘 가슴 속에 일렁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살가운 울도(울릉도)엘 늦가을의 소슬바람따라 이번에 또 들어가게 된 것이다.울릉도는 찾으면 찾을수록 매력이 넘쳐나는 곳이다. 명소나 관광지 대부분이 그러하겠지만, 한 번 가보고서는 절대 다 보고 알거나 제대로 느끼기가 어려울 것이다. 특히 울릉도는 더욱 그러하다. 풀꽃 하나라도 ‘자세히 보고 오래 보아야 예쁘고 사랑스럽’듯이, 울릉도·독도 전역이 국가지질공원이니 적어도 수 차례쯤은 가봐야 절해고도의 지질과 자연, 문화와 역사에 대해 조금이나마 알게 되고 섬사람들의 풍습과 애환을 느끼보지 않을까 싶다. 그만큼 울릉도는 구석구석 신비로움에 쌓여있기에 사시사철 매혹적이고, 골골샅샅 호기심이 묻어나기에 늘 가슴이 울렁거리는지도 모른다.“삐죽삐죽 구불구불 위태위태 난 길따라/도동에서 통구미로 설레여 밟는 페달/태고의 신비 벗기듯 한 꺼풀씩 저어가네//낙타등 같이 굴곡진 태하령과 현포고개/숨소리 거칠어도 구슬땀이 달가운데/마루턱 언저리에는 바람의 결 정겹기만//파도의 하얀 안부 갈매기의 추임새에/코끼리바위(孔岩)이 꿈틀대고 삼선암이 들썪이네/어느새 관음도 눈썹이 노을빛에 수줍은 듯/애환 서린 내수전 옛길 아슬한 걸음으로/휘청이며 비틀대도 끌고 들고 메고 가니/두 바퀴 펼치는 세상 봉래폭포 환호성” - 拙시조 ‘울릉도 라이딩’ 전문이렇게 보면 볼수록 아름답고 매력적인 울릉도에까지 북한의 미사일 발사 표적이 되고 있다니, 참으로 개탄스럽고 공노할 일이 아닐 수 없다. 올해 들어 북한의 미사일 도발은 갈수록 많아지고 과격화되고 있다. 그럴수록 우리는 단호한 응징과 안보태세를 굳건히 갖춰야 할 것이다. 울릉도에 현재 상대적으로 취약한 안보, 방공시설의 확충과 방위시스템 등을 단계적으로 보강해야 할 것이다.

2022-11-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