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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릴리푸트읍이 그렇게 나쁩니까?

유영희 작가 지금도 노동자들이 공장에서 죽었다는 뉴스가 들리고 있다. 조사하면 언제나 노동자가 무리한 작업 상황에서 일하고 있었음이 밝혀진다. 그렇게 죽음이 이어져도 달라지는 건 없다. 연작소설집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의 작가 조세희가 2007년에 한 인터뷰를 보면, 1978년에 나온 이 책이 30년이 지나도록 읽힐 줄 몰랐다고 한다. 그러고도 15년이 더 지났지만, 아직도 이 책은 유효한 것 같다.대강의 내용은, 아버지, 엄마, 영수, 영호, 영희 가족이 재개발로 살던 곳에서 쫓겨나 은강이라는 도시에 정착하여 저임금 노동자로 고단하게 살아가는 이야기다. 결국 난장이 아버지는 삶을 스스로 마친다. 이 소설집에는 모두 열두 작품이 실려 있는데, 그 중 ‘은강 노동 가족의 생계비’에서 영희는 ‘릴리푸트읍’을 말하며 아버지가 생각나 눈물짓는다. ‘릴리푸트읍’은 가상의 국제 난장이 마을이다.“난장이들에게 릴리푸트읍처럼 안전한 곳은 없다. 집과 가구는 물론이고, 일상 생활용품의 크기가 난장이들에게 맞도록 만들어져 있다. 그곳에는 난장이의 생활을 위협하는 어떤 종류의 억압·공포·불공평·폭력도 없다. …. 릴리푸트읍에는 전제자가 없다. 큰 기업도 없고, 공장도 없고, 경영자도 없다. 여러 나라에서 모인 난장이들은 세계를 자기들에게 맞도록 축소시켰다. …. 독자적인 마을을 열망한 작은 힘들이 난장이 마을을 세웠다.”이 문단은 10여 년 전 어느 대학의 논술 모의고사에 나온 부분이기도 하다. 출제자는 릴리푸트읍을 비판하라고 했고, 예시 답안은 마을이 난장이들에게만 맞추어져 있는 획일적인 곳이어서 난장이가 아닌 사람들은 살 수 없다는 것이었다. 다양성을 지향한다는 명분으로 사회적 약자가 자기를 보호하려는 노력을 이렇게 뒤틀다니, 아무리 사고력을 시험하는 논술 문제라고 하지만, 지나치다는 생각이 들었다.그런데 최근 베스트셀러로 등극한 최병천의 ‘좋은 불평등’이라는 책을 보니 조세희의 이 작품이 다시 떠오른다. 1장 ‘좋은 불평등과 나쁜 평등’은, 평등은 좋고 불평등은 나쁘다는 기존 관념을 깨는 도발적인 제목이다. 저자는, 불평등이 심화된 것은 1994년부터인데, 이때부터 국내 총생산이 높아지고 대기업도 생겨서 덩달아 노동자의 임금도 올랐다고 하면서, 이것을 ‘좋은 불평등’이라고 한다. 아마도 저자는 불평등해도 모든 국민이 가지게 될 파이가 커지면 좋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릴리푸트읍에는 경제성장을 추동할 수 있는 강력한 전제자도 없고, 성장의 동력이 되는 대기업도 없다. 모의 논술 출제자에 의하면 릴리푸트읍은 획일적이어서 문제였는데, 최병천에 의하면 가난해서도 문제가 된다. 이렇게 릴리푸트읍을 나쁘다고 해도 괜찮은 것일까?중고등학교 사회 교과서에는 장애인, 외국인 노동자 등 사회적 소수자 모두 천부인권을 가지고 있다고 가르친다. 그러나 천부인권을 어떻게 보장해야 하는지는 내용이 없다. 장애인과 임금 노동자에게도 천부인권이 보장되는 사회, 그런 사회를 꿈꾸기가 점점 더 힘겨워지는 것 같다.

2022-12-11

한국의 태양광, 충분히 경제성 있다

위현복 (사)한국혁신연구원 이사장 한국은 땅이 좁아서 태양광을 비롯한 신·재생에너지 시설을 하기에 어려운 나라라는 말들을 많이 한다. 일조량이 부족해서 태양광의 경제성이 떨어진다고도 한다.모두 잘못된 편견이다. 지난해 말 한국의 신·재생에너지 비중은 7.2%였다.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신·재생에너지 비중이 70%는 돼야 한다. 통계적으로 2050년 총 에너지의 70%를 신·재생에너지로 충당하기 위해서는 우리 국토 면적의 3.5~4.0%의 토지가 필요하다. 현재 대부분 지방자치단체 태양광 설치 조례는 △절대농지의 경우 태양광 설치가 아예 안 되고 △인가(마을)에서 300~500m 이상 떨어져야 하며 △군도(郡道) 이상 도로에서 300~500m 이상 떨어져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심지어 도로에서 1천m 이상 떨어져야 한다는 조례도 있다. 이는 독일처럼 신·재생에너지 설치에 관한 별도의 법령 없이 국토부 건축법 시행령에 근거해서 일반 건축물 건축 시행령에 따라 시·군 단위 지방자치단체에서 조례를 제정하여 인·허가를 함으로써 생긴 문제이다. 현 조례대로 할 경우 구미시를 예로들면 태양광을 설치할 수 있는 토지가 0.09%에 불과하다.건축법 시행령에 근거하다 보니, 농지에 건축물을 짓지 못하듯이 태양광 발전소도 농지에 설치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태양광 시설이 환경문제가 제기되는 산이나 저수지로 가야 하는 사태가 발생하는 것이다.우리나라 농지는 국토 면적의 18% 정도이다. 농지 20~25%에 신·재생에너지 시설을 설치하면 2050년에는 신·재생에너지 비율이 70~75%까지 올라갈 수 있다. 다른 나라사례를 보면, 이웃 일본은 일찍부터 논에 태양광을 설치해서 경작과 함께 하는 ‘영농복합형 태양광’이라는 방안을 찾았다. 경작지에 태양광을 설치하면 땅이 평평하기 때문에 공사하기도 용이하다. 논에는 햇빛도 많이 들기 때문에 광 효율도 높아 유럽과 미국도 경작지에 태양광을 설치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농지법에 따라 농지에 건축행위를 하면 10년 만에 철거해야 한다. 수명 25년인 태양광을 10년 만에 철거하면 경제성이 없어 태양광 시설을 논·밭에 설치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리고 농지는 ‘식량안보’라는 틀에 갇혀서 쉽게 용도변경이 안되며, 용도 변경을 하더라도 추가로 부담금이 많이 든다.경제성을 보면, 농사를 지을 경우 쌀은 200평당 연간 50만 원 정도의 수익을 올리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이것도 경지 정리되고, 기계 영농이 가능한 곳의 이야기다. 일반 논은 200평 농사를 지으면 쌀 2포대(40kg) 정도 임대료로 받는다. 8만~10만 원 정도다. 그러니 버려진 논과 밭이 부지기수이다. 농사를 짓는 논·밭도 ‘직불금’ 때문에 농사짓는 시늉만 하는 곳이 많다. 직불금은 100평당 10만 원 내외 정도 받는다. 대신 논·밭에 태양광을 설치하면 300평에 100kWh 규모의 시설을 할 수 있다. 태양광 시설비를 제외하면 매월 300평당 150만 원 이상의 전기판매 수익을 올릴 수 있다. 쌀농사보다 매년 20배 이상의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것이다. 태양광 발전 시설비는 5~6년 치 태양광 수익정도로 계산하면 된다. 버려지고 방치된 농지가 신·재생에너지 시설로 바뀌면 산업계는 ‘RE100’도 달성할 수 있어 일거양득의 기회가 된다.우리나라의 엄격한 농지법 근거는 식량안보에 바탕을 두고 있다. 다락논으로 대표되는 우리나라의 논·밭은 기계화 영농을 하기에 충분하지도 적당하지도 않다. 산업화되기 전 농사만 지어서 살던 시절, 겨우겨우 입에 풀칠하기에 맞을 정도의 토지 면적밖에 되지 않는다.한국은 국토의 67% 정도가 산지이고 18%가 농지다. 자동화 시설을 도입해 규모의 농사를 짓더라도 충분한 식량 자급을 할 수 없는 나라다. 그러나 1960년대부터 시작한 산업화를 통해 세계적인 제조업 강국으로 발돋움했으며 독일, 일본 등과 함께 선진 제조업 강국이 됐다.우리나라는 현재 1인당 전기 사용량이 세계 7위다. 10위권 경제대국에 걸맞게 에너지 사용량도 세계 8위다. 나라의 경제를 뒷받침하는 제조업을 지탱하기 위해 막대한 에너지를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1960년대 이전에 제정한 농지법의 각종 제한으로 인해 농지는 버려지고 산업현장에서는 재생에너지 빈국으로 헤매고 있는 실정이다. 우선 각 시·군의 공업단지 주변 농지에 태양광 설비를 해서 공단입주 기업이 RE100을 달성하도록 하는 방안을 추천하고 싶다. 그렇게 되면 기업도 살고 산업 생태계도 새롭게 경쟁력을 갖추게 될 것이다.우리나라는 쌀이 자급되는 것 외에는 모든 작물이 95% 이상 수입되고 있다. 따라서 기계화 영농이 가능한 일부 논은 영농복합형 태양광을 설치하고, 이를 포함해서 농지 20~25% 정도에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 생산시설을 설치한다면 쌀 자급도 훼손하지 않고 에너지 안보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해 에너지 가격이 급상승해 현재 우리나라는 초유의 무역적자 시대를 경험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 국토의 3.5~4%, 농지의 20~25%만 잘 활용하면 에너지 수입국에서 에너지 자립국으로 탈바꿈할 수 있다. 그리고 기업들도 RE100을 달성해 최적의 산업생태계를 갖출 수 있을 것이다.

2022-12-11

미사일 발사장, 김정은 딸 김주애의 깜짝 등장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 북한 언론에서 김정은 가족의 노출은 전통적으로 금기시 되었다. 최고 지도자의 신비성과 정통성을 보존키 위함이다.김정은은 2018년 미 국무장관 폼페이오에게 “내 자녀들이 평생 핵무기를 이고 사는 것을 원치 않는다”며 비핵화의 의지를 보인바 있다.그러나 지난달 김정은은 화성 17호 대륙 간 장거리 미사일(ICBM) 발사장에 딸을 대동하고 나타났다. 그의 딸 김주애(2013년 생 추정)의 발사 현장 동행은 북한에서는 일찍이 볼 수 없었던 일이다.김정은은 왜 세계인들의 이목이 집중하는 미사일 발사 현장에 그의 딸을 동행했을까. 김정은이 딸을 동행한 이유는 여러 가지 해석이 따를 수 있다. 그가 어린 딸을 현장에 대동한 이유는 그의 인민 친화적 이미지 정치에 상당한 도움이 되기 때문일 것이다.먼저 김정은의 딸의 현장 동행은 미사일 발사의 안전성을 대내외적으로 선전하고 과시하기 위함이다. 북한 노동신문은 ‘우리 어린 딸이 전쟁을 모르고 푸른 하늘을 보면서 후대들이 평화롭게 살게 되었으며 우리는 전쟁 없는 평화로운 나라를 후대에게 물려주고 싶다’고 선전한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북한당국은 그들의 핵실험에 대한 세계적인 비판 여론에 신경을 쓰며 이를 잠재우려고 노력해 왔다.북한의 미사일 발사가 안전하면서 방어적이고 평화적인 입장임을 대내외에 선전하기 위한 노력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북한 당국의 핵과 미사일 시험 발사의 궁극적인 목표는 그들이 핵보유국으로 인정받아 미국과의 핵 협상에서 유리한 입장을 견지하기 위함이다.그들은 화성 17호 시험발사를 통해 미사일 성능을 고도화하고, 곧 재개될 7차 핵실험을 통해 다탄두 핵개발에 박차를 가할 것이다. 이런 정황에서 김정은은 미사일 시험발사의 긴장된 현장에 어린 딸을 대동한 것이다. 그것은 미사일의 안전성과 자신감을 내외에 과시하려는 의도가 있음이 분명하다.한편 북한 당국은 김정은의 자애로운 이미지를 부각하여 주민을 설득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 북한당국은 수령은 인체의 뇌수에 해당되며 전체 인민은 그의 손발과 같은 존재로 보고 ‘사회 정치 생명체론’을 수령론의 기본 골격으로 삼고 있다.이 이론의 연장선에서 그들은 수령승계를 정당화하고 있다. 그러나 이번 딸의 공개석상의 대동을 수령 권력 승계와 연계시킬 필요는 없다. 김정은은 38세이며 10세의 김주애는 아직 어리고 2남 1녀 중 중간일 뿐이다. 딸의 공개노출은 승계문제보다는 그의 인자함을 선전하려는 의도가 더욱 짙게 깔려 있다.북한은 과거에도 수령의 어질고 인자함을 대대적으로 홍보해 왔다. 북한 헌법 서문은 김일성의 ‘인덕(仁德)정치’를 명문화하고 있으며 김정일 시대에는 그의 ‘애민(愛民) 정치’를 칭송했다. 결국 이번 그의 딸의 공개는 경제적 위기 하에서 북한 주민에 대한 대민 설득용이라 보는 견해가 타당할 것이다. 즉 내부적으로 인민을 사랑하는 자상한 통치자의 이미지를 부각하기 위함이다.또한 딸의 대동은 백두 혈통의 정당성을 노출하려는 의도도 다소 포함되어 있다. 사실 김정은 주변의 백두 혈통은 아직 여러 명 있지만 공개할 입장은 되지 못한다. 김정은의 이복형 김정남(성혜림 소생)은 이미 말레이시아에서 피살되었고, 그의 장남 김한솔은 서방으로 탈출 잠적해 있다. 김정은의 고모부 장성택마저 공개 처형되었고 그의 딸마저 파리에서 자살하였으며 고모 김경희는 겨우 연명하고 있다. 김정은의 친형 정철은 여전히 베일에 쌓여있고 친 동생 김여정만이 김정은을 근접 보필하고 있을 뿐이다.이런 정황에서 어린 딸의 노출은 백두혈통의 안정적인 가족관계를 공개하려는 의도라고도 볼 수도 있다. 김정은의 두 아들은 외국 유학을 염두에 두어 노출을 기피한다는 주장도 있다. 이 역시 그의 수령의 카리스마적 이미지를 보강하려는 의도로 보지 않을 수 없다.여하튼 북한 중앙방송 등 언론 매체는 김정은이 어린 딸을 미사일 발사장뿐 아니라 핵과 미사일 개발 공로자를 포상하는 자리에까지 동행했다고 보도하였다. 북한 언론은 그의 딸을 ‘존귀하신 수령님의 자제분’으로 소개하였다. 노령의 북한의 국방 분야 원로 과학기술자들이 그의 어린 딸에게 머리를 조아리는 모습이 공개되었다. 북한은 이제 수령 가족을 베일에 가두고 신비성과 비밀성을 유지하던 시대에서 벗어나려고 하고 있다. 김정은은 정권 초기부터 부인 리설주를 대동하여 행사에 참여하고 팝콘을 먹으면서 영화를 관람하는 모습까지 보여주었다.그러나 이러한 가족의 공개는 북한 김정은의 리더십의 본질적인 변화로 판단할 수는 없다.김정은의 딸의 공개 행사 동행은 딸을 앞세운 미사일의 안전성과 수령의 애민 정신을 선전하기 위함이다. 결국 김정은의 이러한 처신은 경제 위기와 북핵 위기를 극복하려는 주민 설득 수단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2022-12-11

경주 남산 마애불, 꼭 바로 세워야 하나

홍석봉 정치에디터 2007년 경주 남산에서 엎어진 채 발견된 ‘열암곡 마애불’을 세우는 논의가 불 붙었다. 열암곡 마애불입상은 9세기 통일신라시대에 조성된 마애불(磨崖佛) 가운데 가장 완벽한 얼굴을 갖췄다고 평가받는다. 얼굴은 풍화 흔적 하나 없다. 학계는 마애불이 1430년 발생한 지진 때 쓰러졌다고 분석한다.불상이 암벽에서 떨어졌는데도 부처의 얼굴이 전혀 훼손되지 않았다. 엎어진 불상의 얼굴과 바닥 사이는 5㎝에 불과하다. ‘5㎝의 기적’으로 불린다.무게 80t의 불상을 세우는 작업은 쉽지 않다. 문화재청도 여러 차례 검토했지만 불상 훼손을 우려, 쉽사리 사업을 추진하지 못했다. 건축계도 난색이다. 마애불이 있는 곳이 급경사로 둘러싸여 중장비 반입이 어렵다. 화강암 재질의 불상은 작은 충격에도 부서질 수 있다.신임 조계종 총무원장이 마애불을 세우겠다고 나섰다. 마애불 세우기가 탄력받았다. 현 상태 유지는 불상의 안전에 도움 되지 않는다는 학계 의견이 힘이 됐다. 찬성 목소리가 커졌다.2017년 발생한 진도 5.8의 경주 지진은 마애불 보존 문제를 소환했다. 기술적인 문제는 헬기를 동원, 중장비를 현장 조립해 해결할 수 있게 됐다. 조계종은 부처님을 바로 세우는 일을 종교를 떠나 민족 얼을 되살리는 일이라며 국민적 관심과 의미를 부여했다.하지만 엎드려 있는 마애불을 꼭 다시 일으켜 세워야 할까. 학자들 중에는 이론을 거꾸로 뒤집어 보는 이들이 있다. 대한민국 지도를 거꾸로 걸어놓고 세계를 향한 꿈을 키운 이들도 있었다. 새로운 시각을 가질 수 있는 방법 중 하나기 때문이다. 마애불을 현 상태로 그냥 두고 주변 환경을 가꿔 새로운 형태의 불교 성지를 조성해 오히려 가치를 더 높일 수도 있지 않을까. 열암곡 마애불상은 엎드려 있는 자체로도 그 고결함이 빛을 잃지는 않는다. 오히려 희소성 때문에 그 가치를 더 높이 평가받을 수도 있다.이탈리아 피사의 사탑이 세계적인 명물이 된 것도 기울어진 채 그 건축미를 뽐내고 있기 때문이다. 두오모 대성당의 부속 종탑이지만 기울어진 모습 때문에 대성당 보다 훨씬 유명하다. 1820년 에게해의 밀로스섬에서 발견, 루브르 박물관에 소장돼 있는 ‘밀로의 비너스’는 세기의 보물이다. 양팔이 부서지고 없지만 아프로디테 여신의 우아함을 뽐내며 아름다움의 극치로 평가받는다.우리는 혹여 똑바로 선 것 만이 정상이고 바른 것으로 여기는 경직된 사고로 인해 석불의 진정한 가치를 보지 못하는 것은 아닌지 모른다. 많은 과학적 성취가 다름과 이유를 찾다가 발견됐다. 그 깨달음이 과학적 성취가 되고 세상을 발전시키는 원동력이 됐다.엎어진 채 600년 인고의 세월을 버텨온 것을 감안하면 오히려 현 상태가 더 안전할 지도 모른다. 현 상태로 보존하는 것이 최상의 선택이 될 수가 있다.엎드려 있는 불상은 그것 대로의 가치가 있다. 바로 세우는 것 만이 능사는 아니다. 지진으로 인해 엎드렸으면 이 또한 부처의 가르침이다. 범인의 잣대로 세상을 재단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는 말아야 한다.

2022-12-08

‘중꺾마’ 열풍

우정구 논설위원 2002년 한일 월드컵에 처음 등장한 “대-한-민-국”은 지금도 감동의 메시지로 남아 우리의 가슴을 울리고 있다. 국제 스포츠대회에서 한국을 응원할 때면 으레 “대-한-민-국”이 소환된다.월드컵이란 스포츠를 통해 온 국민의 마음을 하나로 응집할 수 있다는 것은 스포츠만이 가지는 위대함이요 매력이다. 한국 대표팀의 4강 진출 신화를 남긴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남긴 최고의 메시지는 “꿈은 이루어진다”였다.기대와 예상을 뛰어넘은 한국팀의 선전은 꿈은 이루어질 수 있다는 신념으로 국민의 마음을 파고들었다. “세상은 꿈꾸는 자의 것”이라는 말에 믿음을 갖게 한 위대한 구호였다.2002년 월드컵의 메시지가 “꿈은 이루어진다”였다면 2022년 카타르 월드컵의 메시지는 “중꺾마”다. 중꺾마는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의 줄임말이다. 주로 MZ세대가 많이 사용하는 단어로 끝까지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다지는 상황을 응원하는 말이다.카타르 월드컵 때 한국축구 대표팀이 강호 포르투갈을 꺾고 16강 진출을 확정짓는 것을 계기로 이 단어가 급부상했다. 당시 태극전사들이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이라고 적힌 태극기를 들고 환호하는 모습이 카메라에 잡혀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비록 8강 진출은 실패했으나 우리 선수들이 남긴 중꺾마 정신은 많은 국민에게 또 하나의 감동 깊은 메시지로 남았다. 취업준비생이나 입시생, 다이어트에 열중인 사람까지 중꺾마를 적어놓고 의지를 다지는 열풍이 일고 있다.스포츠를 통해 등장한 “꿈은 이루어진다”는 말이 젊은층에게 희망의 기운을 불어넣었듯이 중꺾마 역시 역경에 처한 우리사회에 안겨준 희망의 효과는 엄청나다./우정구(논설위원)

2022-12-08

억새의 겨울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겨울 들녘에는 억새가 주인이다. 생기를 다 소진한 마른 억새들이 겨울 들판을 지킨다. 수시로 바람이 불고, 고니나 청둥오리 같은 철새들이 찾아오고, 눈이 내릴 때도 있지만 이 들녘의 주인은 어디까지나 붙박이인 억새다. 날마다 들길을 걷는 나도 이 겨울공화국의 일원이고 억새와도 친하다. 억새가 나를 친구로 여기는지는 몰라도, 겨울들판에서는 빼놓을 수 없는 이웃이고 동무다. 나의 겨울에는 억새가 있다.억새는 참 억센 풀이다. 초본식물 중에 억새보다 억센 풀을 본 적이 없다. 솜털이 붙은 조그만 씨앗이 바람이 날아와 정착을 하면 그 땅은 억새의 영토가 된다. 서슬 퍼런 잎은 맨손으로 잡으면 베이기 일쑤고, 해묵은 뿌리는 삽이나 괭이로도 캐내기가 쉽지 않다. 번식력도 강하고 결속력도 강해서 무리를 지어 산야의 일대를 장악하고 이삭이 피면 장관을 이루기도 한다. 흔하디흔한 들풀이지만, 그 기백과 결기를 헤아리자면 내가 너무 왜소해진다.“그윽한 향기나 고아한 자태를, 탐스러운 열매를 꿈꾸지 않는다/ 누구의 식욕이나 호사취미에 기대어 목숨을 부지하고 싶지도 않다/ 이 땅 들녘이나 산자락에 뿌리박고 지천으로 자라는 풀이지만/ 누구의 발길에 함부로 밟히거나 어느 손아귀에 쉽사리 뽑히지도 않는다/ 혹한의 계절에도 뿌리째 얼어 죽지는 않아/ 여름 한 철 다시 시퍼런 서슬로 뻗쳐올라/ 탱탱한 욕망의 이삭을 밀어 올린다” -졸시 ‘억새’일부우리는 백의민족이었다. 사대부나 관리들 말고는 모두가 물들이지 않은 흰 옷을 입었다. 조선말에 다녀간 선교사들이 찍은 흑백사진을 보면 실감을 하게 된다. 늦가을에 하얗게 무리지어 핀 억새는 우리민족을 떠올리게 한다. 그 희고 푸근한 빛이 감싸고 있는 억센 기질이 닮았다. 뿌리 뽑히지 않고 이어온 오천년 역사와, 식민지배와 동족상잔의 전쟁을 겪고서도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으로 우뚝 선 것이 바로 억새의 기질이었다.늦가을에 하얗게 부푼 억새의 이삭은 꽃이 아니다. 억새꽃은 출수할 때 잠시 피었다가 수정을 하고는 이내 진다. 그 다음부터는 그냥 이삭이다. 다들 꽃이라 해서 꽃으로 굳어가는 분위기지만, 실상을 아는 나로서는 그렇게 묻어가고 싶지가 않다. 뭐라고 부를까, 생각을 해봐도 우리말 중에는 적당한 게 떠오르지 않는다.‘민들레 홀씨’니 ‘억새꽃’이니 하는 말에 거부감이 없다는 것은 아마도 나만큼 그들을 잘 알고 친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적당한 이름을 불러주지 못한 미안함을 이런 시로나 대신한다.“억새에는 새가 있다/ 억새, 하고 부르면/ 바람 찬 들녘에 새들이 모여 섰다/ 바람의 유전자를 가져도/ 날지는 못하는 새// 뿌리가 없어 바람은 억새를 키우고/ 날개가 없어 억새는 바람을 품는다/ 새처럼 깃털이 있다/ 억새의 씨앗에는// 바람이 방목하는 겨울 들녘의 억새들/ 마른기침 서걱대며 모가지 길게 빼고/ 바람이 데려간 자식들 안부를 묻고 있다” -졸시 ‘바람과 억새’이 겨울이 너무 시리고 쓸쓸한 사람은 저 들녘의 억새를 만나러 가자. 다 비우고 삭풍을 맞는 억새의 전언을 듣자.

2022-12-08

대설(大雪)의 계절에

윤영대 수필가 큰 눈이 내린다는 대설(大雪), 이곳 동해안 포항은 아직 눈 소식이 없고 건조한 바람이 불어 산불위험이 있으니 조심하라는 경고만 들린다.이제 추수한 곡식이 쌓여있는 곳간을 보며 일 년을 마무리하고 새해를 준비하는 농한기이다. 김장을 담그고 메주도 쑤고 보리밟기도 하는 계절, 흰 눈이 소복이 내리면 아이들과 눈사람도 만들어 보고 싶다. ‘눈은 보리의 이불’이라 하니 기온이 영하로 내려가는 들판에 눈이 쌓이면 그 밑에서 푸른 보리는 봄의 꿈을 키우겠지….이 한겨울에 ‘열사의 나라’ 카타르에서 열린 월드컵 축구대회에서 우리 선수들은 지칠 줄 모르는 투혼과 모두의 마음을 모은 붉은 악마의 응원으로 뜨겁게 하나 되어 월드컵 16강의 기적을 일구어냈으나 태극전사들은 최강팀 브라질을 맞아 초반의 긴장감을 가진 탓인지 아쉽게도 8강에 오르지는 못했다. 시원하게 터진 중거리 슛 한 골, 그것만으로도 마음을 달래며 4년 후 승리의 영광을 꿈꾸어 보자.10일은 세계인권 선언일이다, 1948년 파리에서 열린 제3회 유엔총회에서 2차 세계대전 때 인권침해가 극심했던 쓰린 역사를 뒤돌아보며, 인간으로서 자유와 기본권리를 존중해야 한다는 원칙으로 노동자 단결권, 교육의 권리, 예술을 향유할 수 있는 권리 등 경제, 사회, 문화적 권리를 선언했었다.지금 우리나라는 화물연대 운송자들을 중심으로 최저시급, 안전운임제 등을 내세워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지킨다’는 외침으로 집단운송거부를 하며 총파업 보름째를 맞고 있다. 여기에 건설 노조와 서비스 연맹 등은 참가했지만 철강과 시멘트, 레미콘 등의 부족으로 심각한 사회문제를 일으키자 포스코와 현대제철 노조 등이 탈퇴와 불참을 하는 등 불협화를 보이고 있다.대설의 계절에 하얀 눈이 쌓이면 우리 국민의 마음도 맑아지려나. 사회와 경제가 안전한 국가, 평등하고 공정한 사회, 그리고 관용과 신뢰로 이어진 조직을 모두가 바라고 있지만 이루기에는 참으로 먼 세상이다. 다사다난했던 한 해의 마지막, 정부와 노동계가 강력 일변도의 대립 관계를 끌고 가기보다는 서로 배려하는 정책과 행동으로, 먹이를 다투는 호랑이의 포효를 멈추고 사이좋게 떡방아를 찍고 있는 두 마리 토끼의 모습을 보여주었으면 한다.9일부터 사흘간 제20회 경북과학 축전이 포항운동장 만인당에서 ‘경북을 보다 과학을 읽다 미래를 쓰다’라는 주제로 AI, 로봇, 메타버스 등 체험 부스 운영으로 100개가 넘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마련한다고 하니 차가워지는 겨울 속의 축제마당을 찾아 축하공연도 보며 따뜻하게 즐겨보자.올해 ‘호미곶 해맞이 축제’행사는 취소됐다. 3년 만에 열리는가 기대했었는데 아직 꺼지지 않은 코로나 열기와 수많은 방문객의 안전을 위해 취소되어 상생의 손은 손님을 맞지 못하게 됐고,‘토끼의 해’새해 첫날, 붉은 일출 위로 계수나무 밑에서 놀던 토끼가 내려와 춤추는 환상을 그려보려는데 또 다음으로 미루어야겠다.겨울 가뭄이 계속되는 12월, 아직 큰 눈 소식은 들려오지 않지만 잘 익은 고구마 구워 먹으며 멋진 설국(雪國)을 기다려 본다.

2022-12-08

병술(丙戌)

육십갑자 중 스물세 번째에 해당하는 병술(丙戌)이다. 천간(天干)은 병화(丙火), 지지(地支)는 술토(戌土)다. 병화와 술토는 모두 양의 기운이다. 병화는 태양처럼 이글거리며 정열적이다. 화생토(火生土)로 흙을 생해준다. 술토는 화기를 내장한 폭발성과 살기 성분을 지니고 있다. 동물로는 개다.병술일주(丙戌日柱)의 물상은 ‘화로(火爐)의 상(象)’ 또는 ‘태양 아래에서 집을 지키는 개의 상’이다. 책임감이 매우 강하며, 온화하고 부지런하며, 외유내강(外柔內剛)형의 성격이다. 집념이 강하고 무슨 일이든 빨리 처리하는 타입이다.활달한 언변을 가지고 있으며, 의협심이 강해서 희생도 불사하는 성질도 있다. 남의 일에 참견하기를 좋아한다. 그러나 백호살을 가지고 있어 고집이 남다르다. 타인의 말을 잘 듣지 않는 단점이 있다. 욱하는 성질과 살기를 가졌기 때문에 화를 잘 내는 습성이 있어 폭력적인 모습을 보이는 경우도 있다. 감정 표출이 선명하여 작은 일에도 화를 냈다가 돌아서면 풀어지는 등 감정 기복이 심한 편이다.로마의 철학자 세네카(BC4년∼AD65년)는 폭군 네로의 스승으로도 유명하다. 그의 저서 ‘화에 대하여’는 화를 잘 내는 그의 동생 노바투스에게 보내는 편지글 형식의 서간집이다. 세네카는 ‘화’를 다른 그 어떤 격정보다 특별히 비천하고 광포한 악덕이자 일시적인 광기라고 정의한다. ‘화’는 모든 것을 능가하는 최대의 악덕이다. 화는 그 기반이 튼튼하지 못하다. 바람처럼 공허하다. 화는 너무나 무모하고 성급해서 목표를 향해 돌진하다가 스스로 방해물이 된다. 그 결과 화는 자기 파괴적으로 작용하는 경우가 더 많다. 화는 종종 우리를 찾아오지만 사실은 우리가 제 발로 그것을 찾아가는 때가 더 많다. 우리가 스스로 화를 불러들이는 일은 절대 없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마음에서 화를 없애고 그것을 최대한 제어하고 그 맹습을 늦추는 것이 필요하다. 그에 대한 방법으로 세네카는 화가 났을 때 우리 자신의 얼굴을 거울로 보는 것만으로 큰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말한다. 화를 폭발시키는 순간 나의 모습을 거울로 본다면 추악하게 변해버린 자신의 모습에 경악을 금치 못할 것이다. 화가 당신을 버리는 것보다 당신이 화를 버려라. 그동안 다른 사람들을 괴롭히고, 나 자신도 괴롭히는 고통을 안겨준 화. 우리는 좋지도 않은 그 일에 귀한 인생을 얼마나 낭비하고 있으며 화를 내며 시간을 보내기에 우리의 인생은 너무나 짧다.병술일주(丙戌日柱)는 재고귀인(財庫貴人)을 가진 사주다. 지지에 재성(財星)의 창고를 두어 재물을 많이 모아 부자가 되는 길신이다. 돈을 모으는데 특별한 재주가 있다. 부모 덕이 없고 자수성가해야 하는 기질이 강하다. 작은 것에 만족할 줄 알고 자신의 결점을 고쳐나가면 나이가 들수록 유복해지는 삶을 누릴 수 있다.여성의 경우는 재고귀인으로 돈은 많을 수 있지만, 남편의 덕이 없고 고독하고 속으로 우울한 사람이다. 불쌍한 사람을 보면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는 동정심이 많은 사람이다. 마치 서산에 해가 기운 형태다. 겉은 화려하고 명랑하지만 속은 외롭고 우울증에 빠질 수 있으니 건강에 유의해야 한다.19세기 프랑스 대혁명 이후 새로운 자본 형성과 더불어 혈통에 따른 기존의 가치는 무너지고 돈과 자본에 의해 결정되는 새로운 사회계급이 형성됐다. 프랑스 소설가 발자크(1799∼1850)의 작품 ‘외제니 그랑데’는 막대한 재산에도 불구하고 인색하기 짝이 없는 수전노의 전형인 그랑데 영감과 그의 딸 외제니에 관한 이야기다.그랑데 영감은 자신이 가진 현금과 아내의 지참금을 가지고 루아르 강변 포도주 생산지 중 하나인 소뮈르에 있는 부동산을 매입한다. 사람의 심리를 이용해 자기의 상속녀가 될 딸 외제니를 이용해 금전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후작의 영지를 매입하는데 성공한다. 그는 시대를 잘 알고 투자도 잘하는 수완 좋은 사업가였다.외제니는 파리에서 온 사촌오빠 샤를을 보고 첫눈에 마음속으로 영원한 사랑을 바친다. 샤를은 아버지의 파산과 자살 때문에 돈을 벌기 위해 인도로 떠난다. 그때 외제니는 아버지가 준 금화를 모두 그에게 줬다. 7년 후 이재에 밝은 냉혈한으로 변모해 백작의 딸과 결혼하기 위해 외제니에게 이해를 얻으려는 기만적 편지를 보낸다. 왕정복고시대 사회지배층으로 편입하고자 하는 그 시대 청년의 고백이기도 하다. 류대창 명리연구자 그즈음 그랑데 영감은 죽음을 맞이한다. 죽음 앞에서 그는 테이블 위에 펼쳐진 금화를 보며 ‘황금은 나를 따뜻하게 한다’는 마지막 말을 남긴다. 아버지가 죽은 후에야 외제니는 자신이 엄청난 재산가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그렇다면 엄청난 재산을 물려받은 외제니는 행복한 삶을 살았을까? 그녀의 삶은 달라진 것이 없다. 많은 연금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그랑데 영감이 살던 방식 그대로 살았다. 그렇지만 외제니는 아버지가 모은 재산을 사랑하는 사람과 가난한 이웃을 위해 아낌없이 베풀면서 살아간다.발자크 소설에서 주된 주제는 돈이다. ‘돈은 사람처럼 살아 움직인다. 그것은 오고 가고 땀 흘리면서 스스로 생산한다’라고 말한다. 그 당시 러시아 청년 도스토예프스키는 발자크 소설 ‘외제니 그랑데’를 러시아어로 번역하였다. 발자크의 인기가 그에게 큰돈을 벌게 해주리라고 기대했지만 수입은 좋지 않았다.도스토예프스키는 23세가 되는 1844년 10월에 군에서 소위로 제대한다. 큰돈을 벌기 위해 전업작가로 나섰다. 다음 해에 ‘가난한 사람들’을 발표하자 혜성처럼 문단의 총아가 된다. 그는 “돈은 주조된 자유다”라고 말한다. 그렇지만 진정한 자유는 사랑과 용서에서 나오는 것이 아닐까.

2022-12-07

구부러진 길을 보다

양태순 수필가 댓잎이 사그락거린다. 대나무가 여린 바람에 구불구불 몸을 흔들며 고요를 털어낸다. 적막에 들었던 시간을 깨워 일제히 허리를 구부려 나를 끌어당긴다. 발보다 귀가 먼저 닿는다. 대와 대 사이를 지나는 바람에 몸을 맡기고 가만히 서 있으면 맑은 기운이 마음을 차지한 무거운 기운을 조금씩 밀어내는 것이 느껴진다. 내쉬는 숨이 텁텁하지 않다.대숲을 뒤로하고 걸음을 뗀다. 사박사박 소리를 달고 흙길을 걸으며 옛 생각에 젖는다. 몇백 년 전 유배지에서 우암과 다산이 걸었을 길, 그 길에서 복잡했을 마음을 짐작해보는 ‘사색의 길’에서 잠시 그들의 생각을 엿보려 한다. 걸음마다 발뒤축에서 분가루 같은 먼지가 날린다. 마치 뿌옇게 산란하는 안개처럼 자신들의 앞날을 스스로 결정할 수 없는 암담한 현실을 보는 듯하다. 길을 걸으며 갑갑하고 답답한 날에 한숨을 얹기도 하고 새로 깨달은 학문을 정리하기도 했으리라. 길이란 때로 어디로 향하는 목적보다 길 위에서 만나는 사람과 자유롭게 드나드는 생각을 펼치고 나름의 이론으로 정립하기 좋은 장소기도 하다.‘사색의 길’을 내려와 다리를 건너 장기 유배문화 체험촌에 들렀다. 먼저 105인 기록 이야기 벽으로 갔다. 다산과 우암이야 워낙 유명인이고 알려진 것들이 많으니 뒤로 미루고 어떤 인물들이 왔는지 기록을 읽어 나갔다. 이름도 들어본 적 없는 사람들 사이로 몇몇 아는 이름이 보인다. 박팽년과 관련 인물, 이시애의 난 관련 가족, 남이 역모 사건 관련, 이인좌의 난 관련 인물들이다. 조선시대는 역모가 가장 무거운 형벌을 받았음을 다시 확인한다. 무엇보다 놀랐던 것은 여인들도 왔다는 것이었다. 생각해보면 연좌제가 있어 부인과 며느리도 당연히 있었을 터인데 한 번도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아마도 방송에서 유배 생활을 보여줄 때 주로 남자만 나왔기 때문이지 싶다. 보이는 것만 보는 것이 얼마나 단편적인 사고를 확립하는지 경계해야 할 일임을 새긴다.이름 석 자도 없는 그녀들이 눈에 밟혔다. 누구의 처, 누구의 첩, 누구의 며느리로 기록된 그들의 삶이 어땠을지 나는 짐작조차 어렵다. 주로 여자는 관노로 일한다고 들었는데 곱게 자라 양반가에 시집을 가서 궂은일 하지 않고 아랫것들 단속하고 부리는 일에 익숙했던 이들이 어떻게 견뎠을까. 관청의 관리나 포졸들, 마을 양반들이 탐욕에 눈이 멀어 희롱하거나 인간의 선을 넘었으면 그들은 자신을 포기했을 것이다. 참담한 심정이 오롯이 전해진다.되돌아보는 지난날은 누구나 아쉬움의 연속이다. 그때 내가 이렇게 했더라면,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좋았을 것을. 부질없는 후회와 되새기는 시간은 비애와 고뇌를 번갈아 버무려선 매콤하게 심장을 찔렀다. 다시 되돌린들 상황과 사람과 이념이 서로 아귀를 맞추어 돌아가는데 뾰족한 수가 없을 것이다.인생은 직선만 있는 것이 아니다. 주요 분기점마다 찍힌 점들이 오르락내리락 곡선을 그리다 바닥을 찍기도 한다. 분명한 것은 바닥이 있어 배우는 것들이 있다. 진정한 타인의 입장이 되어볼 수 있고 자신을 객관적인 시각으로 볼 수 있게 된다. 또한 삶과 사람을 대하는 자세에서 딱딱한 잣대가 아니라 알파라는 미지수를 더할 줄 아는 품이 커진다. 걸어오면서 겪은 온갖 감정을 꿰매 우툴두툴한 곡선으로 만들어진 무늬는 저마다의 자리에서 가치를 드러내기 마련이다.유배지의 밤은 파랗다. 밤은 사색의 문을 열어두어 사념이 걷잡을 수 없는 속도로 달려가고 달려온다. 지푸라기에 불을 붙이듯 작은 꼬투리에 뼈대를 세우고 살을 입히고 무너뜨리고 다시 세우고, 과거의 어느 날을 당겨오고 밀어내느라 생각의 방에는 밤새 불이 켜져 있다. 나무들이 모조리 깨어나 방을 둘러싸고 뭇별들이 조용히 지켜보는 가운데서 각자의 서사는 덧대어졌다. 그들의 삶에서 유배 생활은 어떤 영향을 주었을까? 마냥 억울하고 화나는 시간만은 아니었지 싶다. 조용히 사색하면서 학문을 탐구하고 인간사 근본 문제를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을 터다. 이 땅의 선비이자 학자의 신분으로 해야 할 일을 다시 정립하는 계기가 되지 않았을까.햇살이 바다를 건너고 들을 건너와 발밑에 눕는다. 세상이 갖가지 사건들로 떠들썩하더라도 내 중심은 언제나 사람이 먼저이기를. 따스함에 물든다.

2022-12-07

월급 도둑

홍석봉 정치에디터 대구 지역 시민사회단체가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구속 기소된 대구시의원의 사퇴를 촉구했다. 옥중에서도 월정수당을 지급받고 있다는 것이 이유다. 일을 하지 않으면서 세비만 챙기는 것은 양심불량이라고 비판했다.우리복지시민연합은 최근 성명서를 내고 “선거법 위반 혐의로 구속돼 사실상 일을 할 수 없는 상황임에도 꼬박꼬박 월정수당을 받는 것은 선출직 지방의원으로서 파렴치한 행위가 아닐 수 없다”고 지적했다.이 시의원은 구속 상태임에도 월정수당으로 339만원 가량을 받고 있다고 했다. 지방의원은 월정수당과 의정활동비를 받는다. 월급 개념의 월정수당은 직무 활동에 대해 지급하는 비용이며, 의정활동비는 의정 자료수집·연구 등 보조활동에 사용되는 비용이다.이 단체는 “선거법 위반으로 출석조차 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세금을 꼬박꼬박 수령하는 것은 ‘세금 루팡’이 따로 없다”고 했다.‘월급 루팡’은 회사에서 하는 일 없이 월급만 축내는 직원을 일컫는 말이다. 월급 도둑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10여년 전부터 젊은층을 중심으로 유행되기 시작한 용어다. 특히 줄임말인 ‘월루’라는 용어로 직장인들 사이에서 자주 쓰였다. 한 조사에서 직장인의 80%는 회사에 일한 것보다 월급을 더 받는 월급 도둑, 즉 월급 루팡인 것으로 조사되기도 했다. 월급 루팡은 하는 일도 없으면서 바쁜 척 하거나 업무 중에 딴 짓 하기, 자신의 업무를 동료나 부하 직원에게 미루기 등의 사례가 거론된다.옥중 시의원을 월급 도둑이라고 했지만 기초 및 광역의원 중에도 1년 내 집행부를 상대로 질의조차 않거나 조례 한 건 발의하지 않은 의원들이 수두룩한 것이 현실이다. 이들도 밥값을 못하는 ‘월루’와 다름없다. /홍석봉(정치에디터)

2022-12-07

월드컵 한 수

장규열 전 한동대 교수 월드컵이 뜨겁다. 대한민국 축구가 16강에 올랐던 감격이 참으로 고맙다.월드컵 전장의 대세인 유럽과 남미가 끝내 8강을 장악했지만, 아시아, 아프리카와 북미도 열심히 겨루었다. 모로코가 마지막 기대를 불태우면서 월드컵은 막바지 결전으로 치닫는다. 둥근 축구공이 세계인의 모든 시선을 강탈하면서 온 세상을 하나로 묶는다. 월드컵 덕분에 몰랐던 세상을 배운다. 이란이 무엇으로 몸살을 앓는지 알게 되었고 웨일즈와 영국 이야기도 배우게 되었다. 튀니지와 크로아티아, 세르비아와 카메룬…. 생소했던 나라들을 찾아보면서 너른 글로벌 지평을 새롭게 깨우치기도 하였다. 나라 안 궂은 소식에 애만 태웠던 좁다락한 시선이 한층 확장된 느낌이 신선하였다. 아직도 진행 중인 월드컵이 세계를 향한 관심과 기대를 높이고 있다.평소엔 어떤가. 정치권의 이념대립과 언론의 편향보도는 국민의 관심을 국내뉴스로만 몰아가지 않는가. 사회적인 이슈와 문화적인 지평이 나라 안에만 묶여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세상은 빛의 속도로 바뀌어 가는데, 우리는 이러다 ‘우물 속의 개구리’가 되지 않을까. 월드컵이 열어준 세상의 모습은 4년 전과 확연히 다르다. 우리는 얼마나 다른 모습을 하고 있을까. 산업화와 민주화에 성공했다는 지나간 역사에 안주하고 있지나 않은지. 디지털과 온라인이 열어준 초연결사회와 우리는 어느 만큼 교감하고 있는지. 영화와 음악이 그나마 체면을 세우고 있는 사이에 정치와 사회의 시선은 글로벌을 대상으로 얼마나 열려있을까. 이제라도 세상과 함께 호흡하는 글로벌 호연지기(浩然之氣)를 본격적으로 키워야 하지 않을까.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 좁은 국토에 시선을 묶기에는 세계가 너무나 크다. 대한민국의 영향력을 제대로 발휘하기 위해서도 글로벌 안목을 키워야 한다. 교차문화적 감수성을 길러야 하고 다원사회적 이해도를 늘려야 한다. 나만 옳다는 생각을 이겨내야 하고 남을 존중하는 마음을 깨우쳐야 한다. 미묘하게 남을 비하하는 버릇을 극복해야 하고 누구와도 어렵지 않게 어울리는 습관을 배워야 한다. 소통과 교류에 보다 적극적이어야 하고 차단과 배제의 구습은 버려야 한다. 글로벌은 자신감이다. 대한민국은 이미 우뚝 성장하였다. 국민이 상대적으로 덜 자란 느낌이다. 세상이 기대하는 만큼 우리가 반응해야 한다. 영어가 불편했던 소극성을 극복해야 하며, 우리 문화의 빼어난 모습을 발견해야 한다. 나라 밖 소식에 마음의 문을 열어두어야 하며, 우리 소식을 밖으로 전하는 데에도 적극 나서야 한다. 세상과 함께 호흡하는 습관에 익숙해야 하고 다른 문화와 교감을 넓혀야 한다.월드컵에는 32개국이 출전했지만, 세상에는 훨씬 많은 나라들이 있다. 풍성한 문화적 배경과 사회적 환경을 가지고 색다른 기회와 도전의 가닥을 품고 있을 터이다. 나라 안에 묶였을 흥미와 관심의 테두리를 확장해야 한다. 경쟁과 다툼의 연속에서 찌들었을 자신감과 상상력의 가능성을 키워야 한다. 세상은 저렇게 기다리는데 우리가 쪼그라들 까닭이 없다. 넓은 세상으로 시선을 돌려야 한다.

2022-12-07

사교육과 학벌사회

최병구 경상국립대 교수 해방 이후 대한민국은 ‘한강의 기적’이라 부를 만큼, 빠르고 성공적인 경제성장을 이루어 세계인들에게 선망의 대상이 되었다. 비록 IMF 외환위기를 겪었지만, 이후 대한민국은 위기를 넘어서고 첨단기술을 소유한 강국으로 탈바꿈했다. 삶의 질이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향상된 것은 당연한 결과다.모든 것이 바뀐 것처럼 보이지만, 해방 이후부터 지금까지 바뀌지 않은 것도 존재한다. 바로 사교육이다. 알다시피 대한민국은 1970년대부터 고교평준화정책, 과외 금지정책, 교육방송 강화, 선행학습 금지 등 다양한 정책과 규제로 사교육 시장의 팽창을 막기 위해 노력했지만, 모두 실패했다. ‘학벌주의’로 요약되는 지배 이념을 조금도 개선하지 못한 까닭이다.첫째 아이가 내년에 초등학교에 입학해서, 아내와 돌봄 공백에 대해 이야기 하는 시간이 늘어났다. 유치원은 오후 6시까지 아이 돌봄을 하지만, 초등학교 1학년은 오후 1시에 아이들을 귀가시킨다. 방과 후 학습이 있다지만 맞벌이에 아이가 2명이 있어야 간신히 자리를 차지할 수 있다. 우리 집 같은 외벌이 가정은 조금 나은 형편이지만, 누구의 도움조차 받을 수 없는 맞벌이 부부는 아이가 하교하는 1시부터 6시까지, 학원 시간을 빈틈없이 맞추어야 한다. 아이가 초등학교 저학년 무렵 여성의 경력단절이 일어나는 이유다.돌봄 단절을 해결하기 위해 사교육을 활용할 수밖에 없는 사정을 이해하는 것이 일단은 중요하다. 하지만 문제는 좀 복잡하다. 돌봄 공백을 해결하기 위한 선택이라지만 아이에게 다양한 경험을 시켜서 좀 더 경쟁력 있는 사람으로 만들려는 부모의 욕망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내 아이를 경쟁력 있는 사람으로 만들려는 욕망이 나쁘다는 소리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 경쟁력의 실체에 대해 질문해야 한다.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가 한 달에 100만원에 육박하는 사교육비를 통해 얻게 되는 경쟁력이란 무엇일까?2020년 기준 중소기업 월평균소득이 259만원이다. 지역대학 취업자의 대다수가 중소기업인 점을 감안하면 지역대학 출신에게 경쟁력 있는 아이를 키우는 일이란 불가능에 가깝다. 맞벌이가 필수인 시대가 된 이유이다. 새삼스러울 것 없다고? 대한민국의 역사만큼이나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학벌사회가 새롭지는 않지만, 우리는 과거와 비교하기 어려울 만큼 부의 양극화가 심화된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이는 곧 아이의 운명이 태어나면서 결정된다는 것을 의미한다.2016년 학벌 사회의 문제점을 고발해 온 시민단체 ‘학벌없는사회’는 자진해산하며, 학벌은 여전히 교육 문제의 핵심이지만, 학벌이 곧 권력을 보장하는 시대는 지나갔다고 말한 바 있다. 하지만 여전히 대한민국의 사교육 시장은 뜨겁고 학벌주의는 공고하다. 사교육에 대한 거부감으로 아이를 대안학교 보냈다가 대학입시를 앞두고 인문계로 전학시킨 선배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사교육 시장의 바깥은 존재할 수 없다는 생각마저 든다. 학벌 중심=서울 중심의 카르텔을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

2022-12-07

이맘때의 추억 한 꼭지

오낙률 시인·국악인 과일은 다 익은 후에 오히려 그 모습이 변형되지 않고 오래도록 유지 보관된다. 사람 또한 그러한 것 같다. 우리 동네 경로당을 오고 가시는 필자의 유년 시절 이웃집 아주머니 모습에서나, 동네 친구 어머니의 얼굴에서나, 예나 지금이나 똑같은 모습을 느낄 수 있으니 사람 또한 과일처럼 나이가 들어서야 오래도록 그 모습을 유지할 수 있는 게 아닌가 싶다.생각해보면 필자의 유년 시절 풍경은 오십여 년이 지난 기억 속에서도 꽤 또렷한 모습으로 남아 있다. 가끔 동네에서 구십 줄에 든 이웃집 할머니들의 모습을 뵐 때면 유년 시절에 뵙던 동네 남자 어르신의 생전의 모습 하며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동네 골목, 그리고 크고 작은 동네일을 앞장서서 하시던 동네 어른들의 생전 모습이, 마치 한 폭의 수묵화나 흑백 영화처럼 필자의 뇌리에 영상이 되어 떠오른다. 아마도 그것은, 어머니께서 나의 탯줄을 묻어주신 곳이자 내 유년의 추억이 석류알처럼 촘촘히 뇌리에 박혀있는, 이곳 출생지에서 사는 행복이 아닌가도 싶다.내 유년 기억의 시작은 초등학교 다닐 무렵인 60년대 중·후반쯤부터이다. 계절적으로 이맘때의 그 시절은 가을걷이가 모두 끝나고 초가집 마당마다 여름내 보이지 않던 ‘볏짚 가리’하며 ‘뒤주’가 마치 새로운 건축물처럼 생겨나던 시기이다. 그리고 동네 아저씨들이 대여섯 명씩 모여서 이 집 저 집 다니며 이엉을 엮어주던 시기이다. 이엉이란, 일년내내 비와 햇볕에 의해 썩어 가는 묵은 초가지붕을 걷어내고 새 지붕으로 단장하기 위해 새 볏짚을 촘촘히 엮어서 만든 일종의 볏짚 거적 같은 것인데, 둘둘 말아서 마당 한쪽에 수십 개씩 쌓아두었던 이엉 하나의 길이는 짐작으로 삼십 미터는 족히 넘었던 것으로 기억된다.일꾼 중에서 가장 솜씨가 좋은 아저씨 한 분쯤은 이엉과는 확연하게 모양이 다른 용마름을 도맡아 엮으셨다. 용마름이란 밑에서부터 이엉으로 지붕을 이어 올라갈 때 맨 마지막 지붕 꼭대기에 올리는 일종의 마감재라 할 수 있는데, 요즘의 기와지붕 꼭대기에서나 볼 수 있는 용마루에 해당한다. 그렇게 이엉 엮기가 끝나면 묶은 초가지붕을 털어내고 새 이엉으로 갈아주는 작업을 차례로 하였는데, 동네가 온통 노랗게 새 초가지붕으로 단장된 모습은 지금 생각하면 마치 동화에서나 봄 직한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저고리 소매에 코가 묻어 번질번질 한 옷을 입고도 마냥 즐겁던, 동네 아이들이 설빔을 갈아입고 세배를 드리려 늘어선 모습 같았다.생각해보면 차라리 그 시절이 지금보다 더 풍요를 누리던 시기는 아니었을까. 툭하면 광장에 모여드는 작금의 사람들처럼 여럿이 모여서 시위와 파업을 하는 게 아니라 여럿이 모여서 행복을 도모하던 시절, 여럿이 모여 한 사람을 쓰러뜨리려 않고 여럿이 힘을 합쳐 한 사람을 돕던 시절, 여럿이 모여 하나를 나무라지 않고 여럿이 모여 한 사람을 사랑하던 시절,어쩌면 그 시절이 지금보다 훨씬 더 행복의 지수가 높고 정서적 풍요를 누리던 시절이 아니었을까 싶다.

2022-12-07

즐거웠으면 좋겠어

누구든 그렇다. 즐겁던 일들이 하나도 즐겁지 않은 일이 되고, 너무나 기다려온 순간이 견딜 수 없이 고통스러운 순간이 된다. 아무런 생각 없이 즐기듯 하면 된다고 말하면서도, 정작 결정적인 순간이 되면 부담감에 치를 떨게 된다.일을 처음 시작하게 되는 순간을 떠올려보라. 어떻게든 취직을 하려고 했던 순간이 무색하게도, 실수에 대한 부담이 스스로를 짓누른다.등단을 준비하던 20대 때에는 등단만 하게 된다면, 내가 쓰고 싶은 글을 마음껏 쓰며 작가라는 직업을 즐기며 살 줄 알았다.하지만 정작 등단을 하고 나서 느낀 가장 큰 감정은 즐거움이 아니었다. 좋은 글을 써야 한다는 부담감과 실수를 하지 말아야 한다는 긴장감이 매순간 나를 압박했다.글의 내용이 구설수에 휘말릴까봐 두려웠고, 이번 청탁을 끝으로 더 이상 일이 들어오지 않으면 어떡하나 고민했다. 그러다보니 내가 쓰고 싶은 글보다 남들이 좋아할 글이 뭘까에 대한 고민을 훨씬 많이 했던 것 같다.타인이 좋아하는 건 무엇일까에 대한 고민. 그게 무조건 나쁜 것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어쨌든 그런 생각에 빠져있다 보면 나 자신이 사라져버린 것만 같은 그런 기분이 든다. 매순간 보이지 않는 타인에게 자신을 평가받는 기분. 내가 원하는 것보다는, 그 평가에 자신을 점점 더 규격화해나가는 것 같은 기분. 그땐 이 기분이 작가의 중압감 같은 거라고 생각했다. 대중에게 글을 보여주고 평가 받는 직업이 가진 고충 같은 것이라고.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건 반 정도만 맞는 생각이었던 것 같다.사실 우리가 살면서 저지르는 실수라는 건, 혹은 일을 처음 시작하면서 저지르는 실수라는 건 지나고 생각해보면 그리 큰일들이 아니다. 단지 일을 처음 시작하는 단계에서 저지르는 사소한 실수가 자신의 일생을 좌지우지할 것만 같은 중압감에 그 크기를 더욱 크게 느끼는 것뿐이다.물론 가끔은 그런 거대한 실수를 저지를지도 모르지만, 어떤 일이든 신입에게는 그렇게 크고 중요한 일을 맡기지 않는다. 실수를 마음껏 저지르라는 말은 아니지만, 그렇게 벌벌 떨 필요까지는 없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하지만 우리는 일을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면 늘 비슷한 상황에 처한다. 사소한 실수가 나에 대한 누군가의 평가로 이어질 것만 같고, 그 실수가 나를 평생 따라다니며 짓누를 것만 같다고 느낀다. 순간의 판단과 사소한 말실수가 나의 평생을 망가뜨릴 것만 같은 기분. 늘 긴장하게 되고, 그래서 더 위축되고, 그 탓에 다시금 사소한 실수를 저지르고, 실수를 들키지 않으려 조마조마한 기분으로 하루를 보내고, 이 일에 적성이 맞지 않는 걸까 고민하게 된다.생각해보면 허송세월 같은 건 없다. 조금의 시간을 보내고 나면, 일이 조금만 손에 익고 나면, 영영 찾아오지 않을 것만 같던 마음의 여유가 조금씩 차오른다. 그 즈음에 다시금 옛 일들을 떠올리자면 괜한 불안과 걱정을 한껏 부풀려 상상하며 살아온 것만 같아 실소가 나오곤 한다. 어쩌면 내가 사회 초년생으로써 느낀 불안과 걱정이라는 건 단지 내가 만들어낸 상상에 불과했던 걸지도 모르겠다. 임지훈 2020년 문화일보, 서울신문 신춘문예 평론 부문에 당선된 문학평론가. 한양대 국문과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얼마 전 ‘베개’라는 독립문예지의 낭송회에 다녀왔다. 그날도 원고 작업에 한껏 지쳐있었다. 그날 내가 쓴 글이 자기 복제처럼 느껴져서 마음이 위축되어 있는 상태였다. 아무도 좋아하지 않을 글을 썼다는 생각이 드는 하루였다. 그러던 찰나에 내가 본 낭송회의 풍경이란 익숙하면서도 낯선 그런 모습이었다. 사람들이 각기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표현하기 위해 시를 쓰고, 그걸 최선을 다해 떨리는 목소리로 낭독하는 장면은 분명 감동적인 것이었다. 타인을 위해 쓴 것이 아닌 자기 자신을 위해 쓴 글을 읽는 것. 어쩌면 그게 문학이라는 문화의 본질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청탁과 원고료에 목을 매는 나 자신이 조금은 우습게 느껴졌던 하루였다.사실 생각해보면 작가라는 건 꽤 즐겁고 재밌는 직업인데. 글을 쓰기 위해 고민하고 사색하고 무언가를 목격하기 위해 끊임없이 세상을 돌아다닌다는 건 생각보다 낭만적인 직업인데, 나는 이 직업이 누릴 수 있는 기쁨을 하나도 누리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즐거워지고 싶다. 즐거워지기 위해 다른 일을 찾는 것이 아니라, 이 일을 하면서 즐거워지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2022-12-06

건조함을 경계하기

날이 부쩍 차가워졌다. 집 밖의 나무는 앙상한 가지를 뻗고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의 옷차림도 두껍다. 어느새 성큼 다가온 겨울에 나도 모르게 몸을 움츠린다. 서늘한 공기에 입술도 손끝도 바싹바싹 마르는 것이 느껴진다. 이맘때는 몸뿐만 아니라 마음까지도 건조해지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감정의 폭이 유난히 큰 사람이 있다. 사소한 일에 크게 웃고 우는 이들과는 반대로 냉철하게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도 있다. 흔히 감정적, 이성적으로 나누는 이러한 특질은 사람의 본질을 결정짓는 부분은 아니다. 그러나 각자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가치는 다를 것이며 옳고 그름을 떠나 삶을 운용하는데 필요한 상반된 관점을 지니고 있을 것이다.나는 스스로가 굉장히 감정적인 편이라 생각했지만 최근엔 어떤 부분이 완전히 메말라버렸다고 느낀다. 그건 겨울이라는 계절이 주는 특이성과는 또 다른 것이다. 출퇴근하고 여러 사람과 부대끼면 용납할 수 없는 일이 자꾸만 생겨난다. 단조롭고 고요한 시간을 살았을 때는 알지 못했던 것들이 보이기도 한다. 소설이라고 생각하면 얼마든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 인물과 사건이 현실을 사는 내 앞에 나타난 순간 도무지 납득할 수 없는 고민으로 나타난다.그러니 자유와 사랑, 낭만을 거침없이 이야기하는 날이 점점 줄어든다. 이상을 꿈꾸고 손에 잡히지 않는 것을 믿는 일이 바보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좋게 보자면 현실적으로 되었다고 할까? 낙관적인 내일을 상상하는 것보다 중요한 건 늦지 않게 일어나야 한다는 것.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보다 먼저 떠오르는 건 처리해야 하는 업무의 양. 문득 눈이 떠진 이른 새벽 소복이 쌓인 첫눈을 마주하고서는 탄성보다 탄식을 뱉어냈다. 내면 깊은 곳에서 언제나 퐁퐁 솟아오르던 감정이 말라서 어떤 면에서는 마음이 완전히 늙어버린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시장의 논리가 지배하는 현대 사회에서 감수성이야말로 우리가 획득해야 하는 중요한 요소로 자리 잡았다. 감수성이 높다는 것은 타고난 것이기도 하지만 노력으로도 이뤄질 수 있는 일이다. 동시에 경계하고 훈련하지 않으면 금방 휘발되는 것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모두 다른 면면을 가지고 있으며 개인에게도 여러 면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모두가 같지 않음을 인정하고 모든 일을 선과 악의 이분법으로 나눌 수 없다고 여기는 순간부터 타인과 세계를 이해하는 감수성은 시작된다. 삶은 수학 공식처럼 정확한 숫자를 대입하면 맞아떨어지는 답이 나오는 게 아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불투명한 답을 획득하기 위해 나아갈 수밖에 없다.여전히 나는 누군가의 문장을 읽고 눈물을 흘린다. 좋은 노래를 들으면 숨이 쉬어지는 것 같다. 이해할 수 없는 타인을 찬찬히 헤아리면 어김없이 슬퍼지고 만다. 그것은 내 안에 아직 살아있는 감정의 불씨며 그것을 지키기 위해 더욱 노력해야 한다는 증거다. 현실을 살기 위해선 어느 정도의 건조함도 필요하지만 동시에 폭포처럼 쏟아지는 감정 또한 세계를 돌파할 수 있는 커다란 힘이 된다. 문은강 ‘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로 주목받은 소설가. 201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작가로 등단했다. 월드컵으로 모두의 마음이 들썩일 때 한 연예인이 대한민국의 16강 진출과 관련하여 ‘어차피 안 될 것을 알면서도 왜 희망을 품느냐’는 식의 이야기를 꺼내어 빈축을 샀다. 누군가는 그것을 이성적인 판단이라고 여길지도 모른다. 그러나 승리와 패배를 계산하며 가능성이 적은 쪽을 믿는 이들을 조롱하는 것은 패배주의에 빠지기 쉬운 일이다. 그럴 때 우리는 허무적이고 냉소적인 사람으로 전락한다. 감정을 누르고 오직 머리로만 삶을 통제할 수 있다고 여기는 순간 모든 일에 실패할 수밖에 없다. 희망을 믿는 것은 바보 같은 일이 아니다. 낙관적인 가능성만을 열어놓는 것도 아니다. 부정적인 영역까지도 기꺼이 받아들일 준비를 하는 것이다.알다시피 그가 불신했던 미래는 현실이 됐다. 포르투갈과의 경기 끝에 대한민국의 16강 진출이 확정됐을 때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손에 땀을 쥐고 몇 번이나 고개를 끄덕였는지 모른다. 꺾이지 않는 마음. 분투의 마음. 다음을 꿈꾸고 해낼 수 있다고 믿는 일. 행여 그 믿음이 실패로 돌아올지라도 결코 후회하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무조건적인 승리를 바라는 게 아니다. 우리 모두가 뭔가를 함께 바라고 간절히 호흡하는 일이 중요한 것이다. 손을 잡을 수 있는 곁의 누군가가 있어서 다행이란 생각이 들면 건조하게 느껴졌던 마음이 촉촉하게 젖어온다. 어떤 일이 찾아와도 절대 메마른 사람이 되지 않겠다는 다짐과 함께 이 겨울을 시작한다.

2022-12-06

여당에서 ‘제2의 이준석 대표’ 나올까

심충택 논설위원 오늘(7일) 친윤(윤석열)계가 주축인 ‘국민공감’이 출범하면서 국민의힘 당권경쟁이 본격화되고 있다. 국민공감은 원래 친윤계의 핵심인 장제원 의원이 만든 ‘이너서클’ 성격을 가지고 있다.전당대회를 석 달여 남긴 시점에 장 의원이 당내 최대 모임의 구심점으로 활동을 재개하는 것이다. 국민공감에는 국민의힘 의원 115명 가운데 70여명이 참여하기 때문에, 리더인 장 의원이 직접 차기 당 대표에 욕심을 낸다면 당선될 확률이 높다.만약 장 의원이 당권을 잡는다면 국민의힘은 민주당과 마찬가지로 특정인 지지층에만 의존하는 폐쇄적인 정당이 될 수밖에 없다. 여야 진영간의 강대강 대치는 결국 지지층 결집을 더욱 공고히 하고, 2024년 총선판세를 일찌감치 굳힐 가능성이 있다.주호영 원내대표가 지난 3일 대구에서 열린 ‘아시아포럼21 토론회’에서 차기 전당대회 당 대표 출마 후보군을 일일이 언급하며 “다들 성에 차지 않는다”고 말한 것은 이러한 정치흐름을 우려한 것으로 읽혀진다.주 대표가 이날 토론회에서 대안으로 내놓은 당 대표 조건론에 대해 공감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가 제시한 3가지 조건은 “국회 지역구 의석의 절반이 수도권인 만큼 수도권에서 대처가 되는 대표가 나와야 한다. 특히 청년층인 MZ세대에도 인기 있는 대표여야 하고 오는 총선 공천에서 휘둘리지 않고 안정적으로 공천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주 대표가 토론회에 참석하기 직전 윤석열 대통령과 독대한 점을 들며, 이 기준이 대통령의 의중일지도 모른다는 추측이 나오지만, 아마 국민의힘 지지자들이면 누구든 수긍을 할 것이다.국민의힘 스케줄대로 내년 3월중 전당대회가 치러진다면 지금으로선 갑자기 혜성처럼 의외의 인물이 당권주자로 나타날 것 같지는 않다. 주 대표의 말대로 현재 거론되고 있는 인물 중에서 당 대표가 나온다면 국민의힘은 윤핵관이 주도하는 모양새로 차기 총선을 치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국민의힘이 지난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에 이길 수 있었던 일등공신은 이준석 전 당대표였다. 이 전 대표는 지난해 6·11 전당대회에서 젊은 당원들과 2030세대의 열광적인 지지로 36세에 제1야당 당수로 선출됐다. 당시 국민이 이준석을 국민의힘 사령탑으로 선택한 본질은 권위주의와 부패에 찌든 낡은 정치를 바꾸라는 것이다. 이 대표는 취임 후 국민의힘을 디지털정당으로 변신시켜 기업처럼 효율성과 효과성을 추구했다. 각 시·도당에서는 온라인 입당신청자가 쇄도했고, 호남지역에서도 신규당권이 급증했다. 국민의힘 전성기는 그때였다.민주당이 지금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아마 6·11전당대회 당시와 같은 국민의힘의 역동적인 변화일 것이다. 김어준, 더탐사 같은 장외정치세력에 끌려다니는 민주당이 차기 총선에서도 과반이상 의석을 차지하면 한국에서 어떤 무서운 일이 벌어질지 짐작할 수 없다. 지금 각종 여론조사를 보면, 국민의힘 지지율은 민주당에 항상 뒤지고 있다. 집권여당이 차기총선에서 민주당에 이기려면 ‘제2의 이준석’을 반드시 찾아내야 한다.

2022-12-06

퍼머크라이시스

우정구 논설위원 영국의 영어사전 출판사인 콜린스는 올해의 단어로 ‘퍼머크라이시스’를 선정했다. 영구를 뜻하는 Permanent와 위기의 Crisis가 합쳐진 말이다. 콜린스 측은 “장기간에 걸친 불안정과 불안”을 이 단어의 정의로 규정하고 “2022년이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끔찍했는지를 요약하는 단어”라고 설명했다.이 단어는 1970년대 학문적 용어로 처음 사용됐으나 최근 몇 달 동안 사용이 급증하면서 올해의 단어로 선정되는 배경이 됐다. 계속된 코로나 팬데믹 상황과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인플레이션, 경기침체, 고물가, 미. 중 패권 경쟁 등 하루도 쉴 새 없이 이어져 온 지구촌의 위기 상황이 퍼머크라이시스 시대를 열었다는 뜻으로 해석되는 대목이다.올해 우리나라 사정도 퍼머크라이시스로 요약되는 세계적 흐름과 별반 다르지 않다. 위기의 연속이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 상황이 이어진 가운데 글로벌 경제위기가 닥치면서 경제는 최악이다. 생산, 소비, 투자가 모두 감소하고 각 연구기관은 내년도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을 1%대로 전망했다. 정치는 위기상황을 외면하고 있다.영국의 경제 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내년도 세계 경제를 아우르는 키워드로 퍼머크라이시스를 제시한 것 또한 우연이 아니다. 내년도 예측 불가능한 위기상황이 이어질 것이란 관측 때문이다.해마다 한해가 마무리되어 갈 무렵이면 각기관들이 내놓는 세평이 있다. 교수신문은 지난해 “고양이와 쥐가 함께 있다”는 묘서동처(苗鼠同處)를 올해의 사자성어로 꼽았다. “도둑 잡을 사람이 도둑과 한패가 됐다”는 뜻이다.콜린스는 ‘퍼머크라이시스’로 올 한해를 세평했다. 우리나라 각 기관들은 올 한해를 어떤 내용으로 요약해 세평할 지 자못 궁금하다./우정구(논설위원)

2022-12-06

‘영유’ 뜻을 몰랐었다

이명균 창원대 명예교수 ‘영유’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무슨 뜻인지 몰랐다가 나중에야 ‘영어유치원’이라는 것을 알았다. 요즘 자녀교육에 열성적인 가정에서는 아이를 유치원 때부터 영어유치원에 보낸다하며 어떤 영어유치원은 입학 때부터 영재테스트를 거쳐 영어수준테스트도 한단다. 영어뿐 아니라 어떤 학습내용이든 유치원 때부터 아이를 시험으로 평가한다는 것은, 필자 생각으론, 정교한 기계에 모래를 뿌리는 것과 같으며 자유롭고 다양한 사고력 형성을 크게 저해하게 된다.언어의 주된 기능이 의사교환 수단의 역할이지만 인간은 언어를 습득함으로써 사물이나 현상을 구별할 수 있게 되고 추상적이며 개념화된 사고를 시작한다. 언어를 정확하고 아름답게 구사할 줄 알아야 논리적 사고력과 풍부한 창의력을 발달시킬 수 있다. 언어를 잘 구사한다는 것은 말과 글로 자신의 생각을 논리적으로 정확하게 표현하는 것이다. 따라서 영어를 잘한다는 것은 좋은 내용의 자기 생각을 영어로 체계적으로 정확하게 표현한다는 뜻이지 그저 발음 좋고 일상생활대화를 매끄럽게 하는 것으로 여겨선 안 된다.영어조기교육에 열성적인 엄마들은 미국의 대표적 언어학자인 노엄 촘스키 이론의 영향을 받은 것 같다. 촘스키 주장은 13세 이전엔 문법을 별도로 배우지 않고도 자연스럽게 언어를 습득할 수 있지만, 이후로는 문법규칙을 인위적으로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한편 2018년에 발표된 MIT 인지과학 연구원의 조슈아 하트숀 교수의 연구에 의하면 외국어 문법실력이 원어민 수준이 되려면 10세 이전에 학습을 시작하는 것이 좋은 것으로 나타났으나 18세까지는 언어문법 습득능력이 크게 쇠퇴하지는 않는다고 한다.어느 쪽 주장을 따르든 원어민 수준의 문법습득은 영어권 사회에서 생활하려는 아이들이나 나중에 우리 풍습이나 정서를 담은 문학예술작품을 영어로 번역하는 직업을 가지려는 아이들에게는 필요할 것이나 영어를 외국어로 삼으며 생활할 아이들에게는 그렇게 필요한 학습이 아니다. 외국어로서의 영어는 고등학교나 대학 때 공부하더라도 필요한 영어능력은 얼마든지 습득할 수 있다. 어릴 때 영어 학습에 쏟을 에너지를, 악기나 운동 등 다른 재능이나 기능들의 개발·연마에 쓰는 것이 아이의 미래행복을 위해 훨씬 더 중요할 것이다. 무엇보다 우리말을 정확하고 아름답게 잘할 수 있어야 사고도 정확하고 고상하게 할 수 있으며 따라서 외국어도 수준 높게 잘 구사할 수 있다. 영미권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한 교수라는 사람이 우리말 설명을 제대로 못하는 경우를 본 적이 있는데, 그런 사람은 대개 영어실력도 별로였다.집에선 우리말을 하는데 유치원·학원에선 영어를 써야한다면 아이가 스트레스를 받을 뿐 아니라 인성교육에도 문제가 될 수 있다. 5∼7세 사이에 모국어 습득이 체계화되면서 아이들의 사고력이 형성되는데, 외국어 학습을 인지발달이 충분히 이루어진 후에 수행하면 더 효과적이란 연구결과도 있다. 영어 장사하는 사람들의 광고와 마케팅에 좌우되지 않은 채 중심을 잡고 아이를 키우겠다는 엄마들의 지혜와 용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2022-12-06

너도 콩이다

조현태수필가 필자에게는 유휴지를 이용한 칠십 평가량의 밭이 있다. 옛날에는 논이었다는데 경작하지 않고 너무 오래 방치해 둔 땅이라 잡목과 풀만 가득했다. 어느 날 트랙터를 빌려서 나무는 뽑아내고 밭으로 일구었다. 비록 내 소유의 땅은 아니지만 누군지도 모를 주인이 나타나면 그냥 돌려주면 될 일이었다. 하여, 유실수나 약초처럼 재배기간이 긴 작물은 심지 않고 당년에 수확하는 콩이나 들깨, 고추 정도만 재배했다. 그 땅을 경작한 지 벌써 삼십 년이 넘었다.올해는 검정콩(서리태)을 심었다. 11월 중순에야 콩대를 잘라놨다가 그저께 마당으로 옮겨 털었다. 전문 농사꾼이 아닌지라 땅 면적 대비 수확량은 많이 떨어지지만 몇몇 지인들과 나눠먹는 결실은 충분히 된다. 흐뭇한 기분으로 항아리에 쏟아 부으면서 잠시 생각이 며칠 전으로 돌아간다.마른콩대를 차에 싣고 나니 땅에 떨어진 콩이 눈에 들어온다. 검정색이라 유난히 눈에 띄기도 하지만 자연스럽게 꼬투리에서 터져 나온 콩알이라 더욱 굵게 보인다. 그거 다 주워 모아도 일 리터가 될까 말까하지만 그냥 돌아설 수가 없다. 거의 한 시간을 소비하고 ‘끙’하며 일어서야 할 판에 콧노래를 흥얼거리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마당에서 막대기로 두드려 털고 바람에 날려서 알곡을 가릴 때였다. 빈껍데기야 당연히 선풍기 바람에 날려 나가지만 아직 덜 영근 콩알이나 그것이 들어있는 꼬투리는 반쯤 날아가다 어정쩡하게 떨어진다. 그러니 곡식도 아니요 죽정이도 아니다. 버리기는 미안하고 거두기는 찜찜하다. 그러다 결국은 어중간한 놈들을 따로 쓸어 담는다. 저녁에 심심풀이로 손질해 볼 요량으로.이틀 저녁 동안 그 콩을 마무리하고 보니 제법 한 되는 되어 보인다. 품질이 떨어지는 곡식이라 남에게 주지는 못해도 내가 먹을 수는 있다. 밥 지을 때 섞어보니 그다지 나쁜 콩이라 여겨지지도 않는다. 평소에도 땅콩이랑 밤이랑 은행 따위를 섞어 밥을 짓는데 검정콩이 보태지니 훨씬 더 잡곡밥으로 보인다. 그래서 했던 말이 ‘그래 너도 콩이다’했다. 충실하게 영글어 저절로 터지는 콩만 콩인가 생각하니 관자놀이가 뜨듯해진다. 사람으로 치면 꼴찌도 사람이니까 말이다.재건중학교와 고등기술학교는 학력으로 인정되지 않으니 초등학교졸업 학력으로 사회생활을 했던 청년 시절. ○○대학교 정문 앞에서 장사하며 대학생을 얼마나 부러워했는지 모른다. 대학생들이 가게 구석자리를 차지하고 종일 바둑 두며 떠들어대도 좋게만 보였다. 나는 죽었다 깨어나도 대학생이 될 수 없다고 여겼으니까. 육순을 훌쩍 넘은 나이에 방송통신대학이라도 공부하려고 등록했다가 한 달 만에 등록취소 당했다. 그때야 검정고시에 도전했고 만 사 년 만에 나도 대학교 졸업생이 될 수 있었다.반세기 동안 묵었던 땅도 갈아엎으면 밭이 될 수 있었다. 그냥 두었다면 묵지일 뿐이요 거들떠보지도 않는 땅인데 일구어 밭을 만들면 농지다. 깨를 심으면 깨밭이요 콩을 심으면 콩밭으로 일컬어진다. 비록 잡초에 부대껴 자라면서 반쯤 영글다가 뽑히고 마는 어설픈 콩이더라도 콩은 콩이 아니던가.

2022-12-06

사람경영과 기업문화

정상철포스코인재창조원 교수·컨설턴트 세계 일류기업은 독특한 기업문화가 있다. 기업문화는 창업주의 철학과 사상에서 시작되거나 업의 특성과 창업시기의 사회적 여건에 따라 형성되기도 한다. 기업을 움직이는 힘이 문화에 달렸다는 인식이 커지면서 조직에 인사문화실을 두어 움직이는 기업들이 많지만 기업문화에 대한 올바른 인식부족으로 문화를 거꾸로 가는 기업도 있고 이것은 쇠퇴하는 기업의 지름길이다.삼성의 창업주는 후계자가 부회장으로 승진했을 때 목계(木鷄)를 선물하고 ‘목계지덕(木鷄之德·최고의 싸움닭은 자랑하지 않는다)’과 ‘경청(敬聽)’의 휘호를 써서 선물한다. 목계(木鷄) 사상은 기원전 8세기 무렵의 일인 장자 외편 달생에 나오는 싸움 닭 투계의 자세와 태도에 관한 일화다.‘목계’란 나무로 만든 닭이란 뜻이다. 마치 나무로 깎아놓은 닭(木鷄)처럼 어떤 상황에서도 어떤 상대에게도 동요하지 않고 평정을 잃지않은 경영자로서의 덕목을 가르친 것이다. 이것은 덕의 완전성과 경청의 중요성을 말한 것이고, 사람을 이해하는 것이 경영의 시작이며, 경청은 사람을 이해하는 비기(秘技)인 것이다.삼성의 기업경영 비밀은 인재중심의 창조경영에 있다. 사업 특성에 따라 다르겠지만 냉장고, 세탁기 등 끊임없이 신상품을 시장에 내놓아야 하는 전자산업은 소비자가 원하는 디자인과 기능을 갖춘 제품을 지속적으로 개발하여 시장에 출시하고 선점을 놓치지 않아야 생존할 수 있다. 또한, 미래의 산업으로 반도체를 선택했을 때 직접 실리콘밸리를 찾아가 적합한 인재를 발굴하는 선택과 집중전략을 통해 성공에 이르게 하는 것이다. 결국 사람이 답인 것이다.좋은 인재들이 선택하는 직장의 조건은 연봉과 기업복지, 성장 비전이라고 한다. 젊은이의 선택에서 멀어지는 기업이 일류기업으로 성장하는 일은 불가능한 일이다. 모 글로벌 선진기업은 ‘Working Life Challenge Vision’으로 인사문화를 형성하고 좋은 기업문화에 역량있는 인재들이 모여든다고 한다. 입사를 하면 개인별 퇴직할 때까지 성장비전이 설정되고 도전하는 기업문화가 형성되어 있어 선망의 대상이 되고 명문가 선진기업이 되는 것이다.사람경영에는 3가지 요소가 필요하다. 첫째, 능력을 갖춘 인재 등용이다. 결국 사람이 답인데 좋은 인재가 시장 경쟁력의 기본이 되는 것이다. 둘째, 덕을 갖춘 사람이다. 능력이 있어도 덕이 없으면 긍정적인 조직문화 형성이 어렵고 조직의 융화와 힘을 기대하기 어려운 것이다. 셋째, 개인의 성장 비전을 제시하는 운영제도이다. 성장 비전이 제시되는 기업문화의 틀 속에 개인은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고 끊임없이 자신의 성장경로를 선택하고 도전하면 회사의 발전과 개인의 성장이 함께 가는 기업문화인 것이다. 기업문화는 기업의 특성을 바탕으로 창업주의 철학과 사상, 후대의 경영전략에 따라 시간의 흐름 속에 형성되며, 가장 큰 요소는 결국 사람경영을 어떻게 하느냐에 기업의 미래가 결정되는 것이다. 사람경영과 기업문화는 선진기업의 성장과 발전의 핵심요소이다.

2022-12-05

감나무와 까치밥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어느새 12월, 매듭달이다. 무던히 앞만 보고 달려온 듯한 올해도 이제 달력 한 장만 달랑 남겨두고 세모(歲暮)의 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해마다 이맘 때가 되면 저마다 연초에 세웠던 계획이나 목표를 어느 정도 이뤘고, 이루기 위해 얼마만큼 노력했는지 지난 한 해를 되돌아보게 된다. 성취를 누린 안도감이나 미진함에서 오는 아쉬움 등으로 이래저래 희비가 교차하고 뒤숭숭하지만, 어쨌든 한 해를 매듭지어야 하기에 연말은 늘 착잡해지는지도 모른다. 이런 때일수록 차분한 마음으로 자신과 주변을 성찰하며, 막연한 회한에 빠져들기 보다는 아직 남은 날들에 새로운 기대와 희망을 걸어보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 듯싶다.우거의 뒤뜰 감나무에도 까치밥으로 남겼었던 십여 개의 감 중 마지막 한 개가 ‘마지막 잎새’ 마냥 가지 끝에서 대롱거리고 있다. 감꽃 피는 5월을 지나 무성한 잎새의 여름날 속에서 파릇한 감들을 숨기듯 꿰어 차다가, 가을 초입에 들이닥친 태풍의 생채기로 절반가량을 떨궈내고, 정갈한 햇살 받아 용케도 정(情)처럼 익어 얽힌 주홍빛 감들이 스무 여개. 태풍과 천둥을 견디면서 떫고 힘겨운 시절을 이겨내듯 가을날의 환하고 반가운 결실로 보답하는 감나무의 수고(?)이다. 해마다 늘 그 자리에서 한결 같은 모습으로 몇 개의 감을 선사하기에 고맙고 넉넉하기만 하다.감꽃과 홍시를 간식처럼 먹던 유년시절이 있었다. 필자의 고향집에서 50여미터 위쪽 언덕에 사셨던 조부모님 집 뒤로는 제법 큰 감나무가 10여 그루 있었는데, 봄이나 가을날이면 뒤란에 떨어진 감꽃과 홍시를 주워 먹으며 허기를 달래곤 했었다. 감꽃이 많이 떨어지면 빗자루로 일일이 쓸기까지 하면서, 할머니께선 밤새 소변을 받아낸 요강을 감나무 근처에 쏟으시며 나무뿌리를 튼튼히 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서리가 내리면서 감들이 익어갈 즈음이면 감 따기는 으레 내 몫이었다. 긴 대나무 끝에 V자 홈을 파고 잠자리채 같은 망(網)을 매단 ‘감조리개’로 땅에서 따거나 다람쥐처럼 감나무에 올라가 가지 사이사이를 날렵하게 옮겨가면서 그 많던 감들을 거의 다 따내곤 했었다. 손이 닿지 않으면 당연히 까치밥으로 남겼었는데, 감나무가 많아선지 대부분의 까치밥은 눈이 내릴 때까지 남아있기도 했었다.효자동 집 주위에 심겨진 몇 그루의 감나무에 예전을 반추하는 감들이 꽃등처럼 열려서 회억에 잠기곤 한다. 올해는 해거리가 무색할 정도로 많은 감들이 열려‘새들을 위한 잔치(?)’를 벌이기로 했다. 찾아온 새들을 쫓지 않고 혹여 방해가 될까봐 창밖으로만 넌지시 감 쪼는 모습 보기를 은근히 즐기면서, 한 달가량 까치밥으로 10여개를 내주고 이제 마지막 1개만 남겨두고 있다. 도심의 새들은 갈수록 먹이 구하기가 힘든 걸까? 크고 작은 새들이 수시로 날아와 재잘거리며 감을 쪼아대는 풍경이 그림처럼 푸근하기만 하다.

2022-12-05

굴의 계절이 돌아오다

겨울, 굴의 계절이다. 뜨거운 화로 위에 통째 구워 먹는 석화구이는 겨울철 대표적인 낭만 중하나다. 훌쩍 떠나는 바닷가 캠핑족에게도 석화는 반가운 식재료다. 올해는 크기와 상품성 등 작황이 특히 좋다고 한다. 알이 굵고 생산량이 많아 가격도 지난해와 비슷한 수준이다. 고물가시대, 건강과 감성을 채울 수 있는 식재료로 인기를 얻고 있다.굴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고급 식재료로 인식되어 왔다. 특히 유럽에서는 클레오파트라와 카사노바가 즐겨먹은 음식으로 손꼽혔고, 일반인들에게는 젊음과 고급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우리나라에서 굴은 남해안 지역의 대표적인 수출효자상품이다. 미국 FDA(美 식품의약국)의 점검 하에 매년 수출 길에 오르고 있어 국제적으로 청정해역의 지위를 갖추고 있다. 남해안과 서해안은 1972년 한미패류위생협정에 따라 ‘패류수출지정해역’으로 지정돼 있어 이곳에서 생산되는 굴은 미국 뿐만 아니라 캐나다와 유럽, 일본 등지로 수출된다.생산량도 매년 증가세다. 굴은 경남 남해안이 주산지로 전국 굴 생산의 75% 가량이 이 지역에서 출하되며, 물량으로 따지면 매년 30만 톤가량이 생산된다. 수출의 경우 가격경쟁력과 상품성 등에 따라 수출량의 변동이 발생하지만 매년 국제적인 수요가 늘고 있다.최근에는 식재료뿐만 아니라 굴 껍데기(이하, 굴 패각)가 새로운 산업원료로 각광받고 있다. 대표적인 경우가 포스코와 현대제철에서 사용하는 ‘석회석 대체 원료’다. 일반적으로 가루형태의 철광석을 고로(용량로)에 넣기 위해서는 주먹크기의 소결광으로 만드는 작업이 선행된다. 철광석을 소결광 형태로 잡아주고 성분을 조절하는 역할에 석회석이 활용되는데, 이 석회 원료를 굴 패각으로 대체하는 것이다. 이는 소결공정에 사용되는 석회석의 성분이 굴 패각의 함유성분과 유사하다는 데에서 착안한 것으로, 현대제철과 포스코는 이를 통해 약 40만 톤의 탄소를 줄일 수 있다고 밝혔다.굴 패각을 활용한 산학연의 연구개발도 활발하다. 한양대학교 건축공학부 배성철 교수팀은 시멘트 내 석회석 대체재로 굴 패각을 활용하는 방안을 개발했다.차세대 시멘트로 주목받는 ‘석회석 소성 점토 시멘트(LC3)’에 굴 패각을 재활용한 방안으로, 지난해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가 주최한 대회에서 ‘과학기술 우수논문상’을 수상했다. 배 교수팀에 따르면 시멘트의 원료인 석회석에는 다량의 탄산칼슘(CaCO3)이 함유돼 있는데, 굴 패각 내 탄산칼슘은 석회석과 동일한 구조를 갖췄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고품위 석회석 기준치보다 탄산칼슘의 함량이 더 높은 것으로 확인됐다. 이는 굴 패각이 친환경 건축 재료로 활용될 수 있는 가능성을 입증한 것으로 앞으로 현장 활용가능성이 더 높아질 것으로 예측된다.연세대학교 화공생명공학과 박진원 교수팀은 최근 ‘패각 내 유효성분 활용 고품질 경질 탄산칼슘 합성 연구’를 발표했다. 연구팀은 굴 패각을 잘게 부숴 산화칼슘을 만든 뒤 탄소를 투입해 경질 탄산칼슘을 생성하는 기술을 개발했다. 경질 탄산칼슘은 입자 크기가 나노(10억분의 1미터)수준인 것으로 중질 탄산칼슘보다 반응성이 높아 활용도가 좋다고 한다. 산화칼슘이 탄소와 결합해 경질 탄산칼슘으로 바뀌는 성질은 콘크리트 등 건설소재나 화장품 제조, 약물 전달 매개체로 사용될 수 있다.해양수산부는 산학연의 이런 움직임에 발 바꿔 제도 개선에 나서고 있다. 지난해 7월 해수부는 수산부산물을 친환경적으로 처리 및 재활용하는 것을 촉진하기 위해 ‘수산부산물 재활용 촉진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고 패각 폐기물의 재활용을 장려했다. 그동안 굴 패각은 ‘폐기물 관리법’에 따라 사업장 폐기물로 분류돼 활용하는 방안이 마땅치 않았다. 이 법은 올해 7월부터 본격적으로 시행됐으며, 양식 굴의 대표 산지인 통영시 역시 이 법에 발맞춰 배연탈황흡수제를 생산하기로 했다. 정현미 작가 배연탈황흡수제는 화력발전소 매연에서 나오는 황산화물을 제거하는 물질로 석회성분이 원료가 된다. 통영시는 굴 패각의 석회성분을 자원화해 배연탈황흡수제로 활용한다고 밝혔다. 이는 매년 수만 톤에 가까운 굴 패각을 처리하는 데 어려움을 겪던 지자체가 스스로 나서 문제를 해결한 결과이기도 하다.굴 패각은 산학연정의 관리 하에 새로운 산업의 가능성을 선보이고 있다. 그동안 매년 쌓이던 굴 패각의 처리문제가 결국 다양한 주체들의 적극적인 노력과 발상의 전환으로 해결방향을 찾아가고 있는 셈이다. 수산부산물을 폐기물로 보느냐, 재활용이 가능한 산업원료로 보느냐에 따라 다른 결과가 도출됐다. 굴 패각은 탄소를 줄이는 새로운 원료로 활용되고, 더욱이 산업적인 측면에서 경제적인 이득까지 갖출 수 있는 자원으로 재탄생했다. 앞으로도 굴 패각은 다양한 형태로 활용될 전망이다.

2022-12-05

비잔틴 미술이 비잔틴에 없는 이유

서양미술사는 이탈리아, 프랑스, 독일 등 서유럽 지역에서 나타난 미술을 중심으로 서술된다. 지금의 서유럽 각 나라들은 국경을 통해 서로 분리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각자 자신들의 언어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미술사 전개에 있어서도 나라 간의 차이가 선명하게 드러난다. 하지만 중세미술을 살필 때는 역사를 바라보는 다른 틀이 필요하다.중세미술은 서양미술사에서 가장 긴 시기를 차지한다. 로마제국이 동서로 분열된 후 게르만의 침입으로 서로마제국이 멸망한 476년 중세가 시작되어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르네상스가 꽃을 피운 1400년까지 이어졌다. 고대 로마와 르네상스 중간에 나타난 시대라 해서 붙여진 이름이 ‘중세(中世)’이고, 르네상스인들은 이 시대에 ‘암흑’이라는 ‘부당한 수식어’를 붙였다. 미술사적으로 이 수식어가 부당한 이유는 중세 전체가 암흑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물론 혼란이 극심해 학문과 문화 예술이 쇠락한 시기도 분명히 있었다. 예컨대 500년에서 800년 사이가 특히 그렇다. 이 시기 서로마제국을 멸망시킨 게르만의 군소 부족들이 여러 지역에 터를 잡으면서 시시각각 전쟁과 약탈이 벌어졌다. 하지만 이런 혼란기에도 비잔틴 제국에서는 예술이 융성했고 비잔틴 최고의 기술자들이 옛 서로마제국의 땅으로 건너와 걸작들을 남겼다.이탈리아 북동부 아드리아 해안에 위치한 고도(古都) 라벤나에는 비잔틴 미술의 걸작들이 지금도 찬란한 빛을 발하고 있다. 서양미술사에서 특히 초기 기독교 미술에 있어서 라벤나는 성지나 다름없다. 서로마제국이 멸망할 당시 제국의 수도가 라벤나였고 이민족에게 빼앗긴 땅을 비잔틴의 황제 유스티니아누스가 수복하면서 기념비적인 교회들이 세워졌다. 그런데 정작 비잔틴 제국이 자리하던 지금의 터키나 북아프리카 혹은 중동지역에서는 그 화려했던 미술의 흔적을 거의 찾을 수 없다. 이것은 기독교가 종교적 체계를 잡아가던 과정에서 미술품 사용에 대한 동서 교회의 입장이 달랐던 것과 관계가 있다.교회에서의 미술품 사용은 우상숭배라는 민감한 신학적 문제에 닿아 있다. 대교황 그레고리우스가 글을 읽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그림 사용을 적극 옹호한 가운데 동방교회는 성상사용을 반대했고 급기야 ‘성상파괴운동’이 일어나게 된다.성상에 반대한 동방교회의 핵심 논리는 이렇다. 예수나 마리아 혹은 성인들의 모습을 담고 있는 그림들 종교적으로 사용하는 것은 우상숭배이다. 기독교 교리에 따르면 예수는 사람의 몸을 입고 태어난 신이다. 이것을 성육화(Incarnation)라고 한다. 예수는 완전한 신이자 완전한 사람으로 그에게는 신성과 인성이 공존한다. 그림은 인간 예수의 모습을 담을 수 있지만 그의 신성은 물질로 표현지 못한다. 따라서 예수를 그림으로 그리는 것 자체가 예수의 신성과 인성을 분리하는 행위로 교리에 반할 뿐 아니라 물질적 대상을 경배하는 우상숭배라고 주장한다. 로마 가톨릭의 성상옹호론자들은 동일한 문제를 전혀 다른 방식으로 해석한다. 신이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온 사실 그 자체가 이미 육체 안에 신의 형상이 깃들어 있다는 것을 뜻함으로 그림으로 그리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주장한다.결국 성상을 둘러싼 논쟁은 비잔틴의 황제 레오 3세가 성상반대자들의 손을 들어주는 것으로 일단락되었다. 726년 황제는 ‘성상 금지령’을 내렸고 교회를 장식하던 비잔틴의 미술품들이 대거 파괴되었다. 이 때부터 100여 년 동안 비잔틴 제국에서는 성상파괴운동이 진행되었고 그 여파로 대부분의 미술품이 희생되었다.성상 금지령이 발효되자 가톨릭의 서방교회는 게르만족에 대한 포교가 어려워졌고 이를 이유로 콘스탄티노플에 바치던 세금을 중단한다. 이 일이 발단이 되어 동서 교회의 본격적인 대립이 시작된다. 사실 로마 가톨릭에게 성상 금지령은 분쟁의 명목에 불과했다. 서방 교회의 속내는 비잔틴의 간섭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는 것이었고 결국 두 교회는 서로 다른 길을 걷게 된다./미술사학자

2022-12-05

기적의 세리머니

홍석봉정치에디터 카타르 월드컵 축구 대회에서 포르투갈을 꺾고 16강에 오른 한국 선수단은 단체 슬라이딩을 하며 응원단과 함께 16강 진출의 기쁨을 만끽했다. 2002년 월드컵 당시 대표팀의 슬라이딩 세리머니가 20년 만에 도하에서 재현됐다.축구경기에서 선수가 골을 넣은 뒤 보여주는 기쁨의 표현이 ‘골 세리머니’다. 우리말로 ‘득점 뒤풀이’다.골 세리머니는 80년대 이전에는 요란하지 않았다. 1982년 스페인 월드컵 결승에서 마르코 타르델리라는 선수가 득점 후 사자후를 지르며 질주하는 퍼포먼스 ‘타르델리의 포효’가 사람들의 뇌리에 각인, 세리머니의 새 지평을 열었다고 한다. 이를 계기로 세리머니가 점점 발전돼 90년대부터 축구계의 콘텐츠로 자리잡았다.백혈병에 걸린 경북 칠곡의 여고생이 카타르 월드컵에서 손흥민 선수의 ‘럭키칠곡’ 골 세리머니를 보고 싶다는 사연이 화제다. 럭키칠곡 포즈는 왼손 엄지와 검지를 펴 검지가 아래쪽으로 향하게 하는 ‘7’자 모양의 자세로 김재욱 칠곡군수가 고안했다.칠곡 순심여고 1학년 김재은(15)양은 지난 3일 서울대병원에서 항암치료를 받는 병실에서 ‘7’자 세리머니를 하며 축구 대표팀을 응원했다. 김양은 이날 SNS에 손흥민에게 골과 럭키세븐 세리머니를 해달라는 글을 올렸다. 자신은 물론 질병으로 어려움을 겪는 친구들에게 긍정적인 생각과 희망을 전하자는 뜻에서다.손흥민의 등 번호가 ‘7’번이고 대표팀과 토트넘에서 7번을 달고 뛴다. 칠곡은 첫 글자 ‘칠’과 발음이 같은 숫자 7을 ‘평화와 행운’의 상징으로 여긴다.럭키칠곡 세리머니가 손흥민의 새 아이콘이 되고 승리의 여신이 되길 바란다. 백혈병 김양에게는 기적의 세리머니가 되길./홍석봉(정치에디터)

2022-12-05

‘자전거 친화도시’

남광현 ​​​​​​​대구경북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소설가 김훈은 “자전거 타는 것은 과정을 생략하지 않고 거느리면서 내 몸을 다 부여하면서 가는 것이기에 매우 신나는 일이다”라고 하였다. 그리고 “자전거는 엔진과 연료가 없이 인간이 가진 고유한 생명의 힘으로 이동할 수 있다는 것을 실천하는 것이며, 이는 중요한 문명적인 대안이자 아름다운 가능성이다”라고 하였다.그런데, 실상은 아파트 계단이나 외벽에 부서지고 녹슨 채 방치되어 있는 자전거가 너무 많다. 초중고등학교 시기에 놀이용이나 등하교용으로 집집이 한 대씩은 있었던 자전거가 점차 성인이 되면서 출퇴근용으로는 거의 사용을 하지 않고 있다.2015년 교통통계연보에서 대구광역시의 수송분담율을 보면, 승용차 36.5%, 대중교통(버스, 철도, 택시 등) 30.1%, 도보 25.9%이고, 자전거는 2.5%에 불과하다. 이후 2019년 현재 승용차 52.4%, 대중교통 38.9%로 증가하고 도보나 자전거 수송분담율은 오히려 감소하였다.대구시의 자전거 도로연장이 2021년 현재 1,071.5㎞로 7대 특광역시 중 서울시 다음으로 가장 길게 조성되었음에도 그렇다. 아마도 조성된 4가지 형태의 자전거도로 중에 자전거보행자겸용도로 비율이 87%로 가장 많고 자전거전용도로는 11%에 불과하여서 자전거 이동의 실효성이 매우 낮기 때문일 것이다.2021년 자전거 교통사고 통계를 보면 대구광역시는 인구 10만명당 자전거사고 발생건수가 17건으로 서울시(18건) 다음으로 많고 사망자 수도 4명으로 서울시(13명) 다음으로 많다. 자전거 사고의 원인은 매우 다양하고 안전시설과 의식의 부족이 가장 큰 원인으로 지적되지만, 자전거 운전자의 고령화도 큰 원인이 되고 있다. 실제 2021년 기준 연령별 전국 자전거 교통사고 현황을 보면 피해운전자 기준 사고건수 7천960건 중에서 51세 이상 연령대 발생건수가 4천67건으로 무려 51%나 되었다. 결국 자전거 사고는 자전거수송분담율 감소에 크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을 방증하고 있다.2018년 기준 대구시의 에너지 부문 온실가스 직접배출량은 약 712.5만톤(이산화탄소 환산량)인데, 이중에서 수송 부문이 372.8만톤으로 무려 52.3%를 차지하며, 가정, 상업 및 공공부문을 합친량 200.3만톤(28.1%)보다 월등히 높다. 따라서 대구시의 2050년 탄소중립계획에 녹색교통(Green Mobility) 전략을 수립하였으며, 친환경차 전환, 대중교통 확충 및 자전거 이용 활성화 등의 계획을 수립하였는데, 가급적 자전거, 대중교통, 친환경차 등의 순서로 정책의 우선순위를 둘 필요가 있다.도로다이어트를 통한 자전거도로 조성, 자전거 주차장 확대와 자전거 표지판 정비 등 자전거 인프라 확대와 함께 자전거 안전교육장, 수리센터 등도 늘여야 한다.대구에는 시민사회가 주도하여 전국 최초로 에코바이크 앱을 만들어 자전거 마일리지 운동이 시작되었고, 전국으로 확대되었다. 지난 5월에는 아이바이크 대구클럽이 출범하여 자전거 출퇴근 캠페인과 각종 행사에 자전거 시민참여를 활성화하고 있어 ‘자전거친화도시’로 전국적 명성이 높아지고 있다.

2022-12-05

서해 공무원 피살, 인권 혹은 정쟁

김진국 고문 문재인 전 대통령이 “도를 넘지 마라”고 했다. 검찰이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 조작 여부를 수사하는 데 대해 지난 1일 입장문을 내고 불만을 표시했다. 언뜻 보기에 문 전 대통령이 부하를 보호하고, “모든 게 내 책임”이라고 대인배 모습을 보였다고 생각된다. 그런데 자세히 읽어보니 그런 첫인상에 의심이 생긴다.2020년 9월 21일 실종된 어업지도원, 이대준 씨를 하루 뒤 북한군이 사살, 소각했다. 당시 문재인 정부는 이 씨가 월북했다가 사살됐다고 발표했다. 발표대로라면 그는 대한민국이 싫어서 달아났고, 우리와 대치 중인 북한에 귀순했다. 죽었어도 동정의 여지가 없다. 자기 의지로 죽을 곳을 찾아갔다. 이 씨 가족도 죄인이다. 연좌제가 없어졌다고 하지만 월북자 가족이 겪는 고통은 여전하다.그런데 정권이 바뀌면서 국방부가 “실종 공무원의 자진 월북을 입증할 증거는 없다”라고 발표했다. 해경도 “수사했지만, 월북 의도를 발견하지 못했다”라고 뒤집었다. 간단한 문제 같지만, 당사자에게는 완전히 다르게 다가온다. 적국으로 달아날 수밖에 없는 많은 죄를 저지른 인간쓰레기, 부역자로 낙인이 찍힐뻔한 이 씨가 정부의 부실 대응 탓에 희생된 억울한 국민이라고 인정받는다. 가족도 손가락질이 아니라 사과와 위로, 보호와 보상을 받게 된다.이 사건은 정쟁의 대상이면서 인권 문제다. 두 가지 성격을 다 담고 있다. 하지만 국가 공권력과 힘없는 개인이 얽혀 있다면, 국민의 인권, 생명 문제를 먼저 살펴보는 게 순서다. 국민 옆에서, 억울한 사람이 생기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런데도 문 전 대통령이 이 씨와 그 가족에게 사과부터 하지 않고, “도를 넘지 말라”며 정치적 반격을 한 것은 실망스럽다.문 전 대통령은 입장문에서 “사실을 명확하게 규명하는 것이 불가능한 상황”이었다고 밝혔다. “할 수 있는 범위에서 사실을 추정”했다고 한다. 이 씨가 월북했는지, 표류한 것인지 단정할 수 없었다는 말이다. 단정할 수 없다면 억울한 누명은 쓰지 않게 하는 게 형사법의 원칙이다.수사 과정에서 드러난 일부 보도를 보면 단순히 부족한 정보로 추정만 한 것인지도 의문이 생긴다. 조작 가능성이다. 당시 조사 당국은 이 씨가 한자가 적힌 구명조끼를 입고 있었다는 정보를 애써 무시했다. 자진 월북이 아니라는 다른 정황들도 모두 외면했다. 관련 첩보를 삭제한 흔적도 있다. 채무 등 이 씨 형편도 과장됐다. 미리 방향을 정해놓고 ‘월북’으로 몰아갔다고 의심된다. 국가 공권력이 힘없는 하위 공무원이 살해되도록 방치하고, 정치적 목적으로 범죄자를 만들었다면 중대한 인권 범죄다.문 전 대통령은 자신이 ‘월북’이라는 판단을 ‘최종승인’, ‘수용했다’라고 밝혔다. 판단을 잘못하고, 조작했다면 자기 책임이라는 말인가. 아니다. 교묘한 말장난이 숨어 있다. 그는 자신이 ‘판단했다’라고 말하지 않았다. 보고와 판단을 ‘수용했다’라고 했다. 조작이나 오판은 부하들 책임이라는 말이다. 자신은 잘못된 보고를 받고 ‘수용’한 책임밖에 없다.문 전 대통령은 “다른 가능성은 제시하지 못하면서 발표가 조작되었다는 비난만 한다”라고 주장했다. 다른 가능성이나, 다른 증거를 확인하려면 수사가 필요하다. 그 증거가 어디 있나. 문 대통령은 ‘대통령 기록물’로 지정해 15년간 볼 수 없게 봉인했다. 유족에게 진실을 밝히겠다고 약속해놓고, 확인조차 못 하게 만들었다. 풀어줄 수 있는 건 본인이다. 그런데 감사원의 서명 조사 요구에도 그는 “무례하다”라고 발끈했다.문 전 대통령은 “오랜 세월 국가 안보에 헌신해온 공직자들의 자부심을 짓밟는다”라고 비난했다. 증거를 조작하고, 불가능한 판단을 억지로 내려 인권을 짓밟은 ‘공직자의 자부심’은 강조하면서, 확인하지도 못한 혐의를 씌워 고통받은 피해자에게는 사과도 하지 않았다. 무례하고, 도를 넘는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나. 감히 전직 대통령을 건드린다는 말인가. 법 앞에는 만인이 평등하다. 황제라도 법 위에 군림할 수 없는 게 민주국가다. 국민의 편, 인권의 눈으로 이 사안을 바라볼 때 국민도 전직 대통령으로 예우할 것이다. /본사 고문김진국△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중앙SUNDAY 고문,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2-12-04

테니스를 골프보다 더 즐기는 이유

서의호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 필자는 오랫동안 테니스와 골프를 즐겨왔다. 둘 다 나이가 들어도 즐길 수 있는 개인 운동으로 즐겁고 건강에도 좋은 운동들이다.그런데 “테니스와 골프 중 어느 운동이 더 즐거운가”라고 물으면 서슴없이 “테니스”라고 대답한다.필자가 왜 테니스를 더 좋아하고 즐길까 하는 이유가 좀 색다르다. 운동량이 더 많아서 라든가 비용과 시간이 적게 든다는 점이 보통 테니스를 골프보다 더 좋아하는 대표적인 이유이다.테니스가 2시간 정도의 운동량으로 4시간의 골프운동량을 넘어서고 잠시 시간을 내서 칠 수 있지만 골프는 하루 종일 시간을 내야 하고 비용도 한국에서는 테니스보다 엄청 비싸기에 그런 이유가 테니스를 더 즐기는 대표적 이유가 된다.그런데 필자가 테니스를 더 즐기는 이유는 위에 열거한 이유도 있겠지만 아주 색다른 이유가 있다.스코어를 세는 방식이 공정하기에 마음이 편하다는 이유이다. 테니스는 상대의 공을 받아치면서 스코어가 카운트 되기에 속일 수도 없고 봐줄 수도 없는 경기이다. 물론 약한 상대를 위해 살살 치는 경우가 간혹 있지만 대체적으로 최선을 다하고 스코어도 정확히 카운트 된다.그런데 한국의 동호인 골프는 시작부터 룰이 파격적이다. 첫 홀이나 마지막 홀은 모두 파(par)라고 선언하기도 하고, 더블보기(double bogey) 이상은 카운트 안한다든가 하는 룰도 있다. 또 그린에서 OK라는 제도가 있는데 기준이 들쑥 날쑥이어서 한사람이 버디(birdie)를 하면 모두 OK라고 하면서 퍼팅을 안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공을 만지고 라이(lie)를 개선한다든가 오비, 해저드 티(OB, Hazard tee) 가 별도로 플레이에게 유리하게 설정되어 있기도 하다.캐디에게 들은 이야기는 일본이나 미국사람들이 골프를 치면 스코어를 공정하고 정확히 카운트 한다고 한다. 스코어를 적당히 얼버무리지 않고 공정한 카운트를 통한 즐거움을 찾는다는 것이다.한국 골퍼들에게 인기를 끄는, 줄로 연결된 티(tee)가 왜 미국에는 없는지 한동안 의아했었다. 그런데 줄티는 타구 방향을 가르치기 때문에 룰에 어긋나 사용하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되었다. 룰에 어긋나는 일은 하지 않는다는 것이 몸에 배어 있는 것이다.한국에서 불공정한 스코어링으로 진행되는 골프를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해봤다. 왜 미국은 과학, 의학 등 분야에서 노벨상을 300여 명도 넘게 받고 우리 한국은 한 명도 없는가? 그건 적당주의를 거부하고 룰을 지키는 그들의 몸에 밴 문화 때문이 아닐까?‘MIT, 스탠퍼드 같은 미국 명문대의 조교수는 인간이 아니다’라는 자조적인 말은 그들이 테뉴어라고 일컫는 종신직을 얻기 위해 피눈물 나는 노력을 하고 있는 현상을 일컫는다. 반면, 한국 대학 교수들의 테뉴어 심사는 일부 대학을 제외하고는 사실상 명목뿐인 경우가 많다. 한국대학에서 테뉴어를 못 받아 다른 대학으로 옮기는 교수를 보는 것은 쉽지 않다.한국의 ‘적당주의’는 사회 곳곳에서 문제가 되고 있다. 학계뿐만 아니라, 최근 일어난 이태원 참사부터 시작해서 오래전 일어난 삼풍백화점, 성수대교 붕괴, 태풍 매미 참사 같은 대형 사고는 물론, 정교한 정책질문이 아닌 호통으로 일관하는 국회 청문회에 이르기까지 학계, 사회, 정치 모든 면에서 문제가 되고 있다.얼마 전 미국유학 중 맹장이 터져 수술을 해야 하는 아들이 대학병원에 입원했으나 수술을 즉시 하지 않고, 항생제 투여로 염증을 치료할 수 있는지 가능성을 보는 의사를 보면서 답답해하던 기억이 있다. 수술은 안 할 수 있으면 안 한다는 원칙이 있다고 한다. 미국 의술의 현장 집행 방법에 대해 의문점을 가졌던 적이 있다.한국의 친구 의사는 “한국 사람들은 손재주가 좋아서 골프도 잘하고 그리고 병원에서 수술도 잘하는 거야. 자네 아들 맹장염 수술도 역시 한국이 최고야”라고 자랑스럽게 말했다.필자에게 한 가지 진한 의문이 다가왔다. “골프도 잘하고 수술도 잘하는 손재주 좋고 머리 좋고 재능 있는 한국 사람들이 왜 노벨상은 단 한 개도 타지 못할까?”엉뚱하게도 필자는 골프에서 원칙을 지키는 스코어링과 맹장염 수술을 미루면서 원칙에 충실하려는 미국의학이 답답하긴 해도 노벨상 수백개를 타낸 밑바탕을 형성하고 있는 저력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사실 수천가지 약품은 한국인이 만든 건 없다고 한다. 서양인들이 만든 약품과 CT, MRI 등 기술과 로봇 수술 등 대부분 서양에서 만들어 졌다. 손재주는 좋다고 하지만 그들이 만든 수술방식 없이는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아이러니를 생각할 때 무엇이 더 중요할까?“빨리빨리” 와 적당주의가 빨라보여도 결국 깊이를 더하지 못하는 근본적 문제를 가져와 각종사고는 물론 노벨상을 타지 못하는 얕은 학문을 초래하고 있는 건 아닐까?아마도 그건 동호인 골프에서부터 적당주의 카운트 방식을 몰아내는 것이 첫 걸음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간다.

2022-12-04

기후 변화 불확실성에 대응할 역량 있는가?

양만재포항지역사회복지연구소 소장 폭우가 또 내렸다. 지난달 22일 오전 11시까지 울진군 온정면 182.5㎜, 영덕군 영해면 146.4㎜, 포항시 호미곶 139.5㎜의 비가 내렸다. 11월 최대 강수량이라고 했다.겨울에 즈음하여 집중 호우는 기후변화를 연속 실감한다. 지난 9월초 한반도에 상륙한 힌남노 태풍은 한국의 제조업의 기반을 붕괴시켰고, 포항지역 시민 10명의 귀중한 생명을 빼앗아 갔고, 600여 명의 이재민을 발생시켰다. 시간당 100㎜ 이상 내린 폭우에 따른 천재지변의 자연재난과 도시화와 산업화에 의한 인재와 결합된 일명 ‘복합참사’(hybrid disaster)일게다.8월 서울 폭우, 9월 힌남노 폭우에 이어 11월에 다시 우리 경상북도 지역은 집중호우로 생명과 재산에 위협에 느끼고 있는데 반해, 호남지역은 최악의 가을가뭄으로 인해 광주지역은 30년만에 제한 급수할 수 있다는 전망까지 하고 있다.기후변화에 따른 참사라는 말이 언어의 수준을 넘어 재산을 파괴하고 생명을 파괴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기후변화의 심각성은 갈수록 점증되고 있다. 왜냐면, 첫째, 기후변화는 태풍, 홍수, 산불 등과 같은 재난을 갑작스럽게 발생케 한다는 것이다.포항시가 겪은 힌남노 태풍으로 홍수 피해도 기후변화의 속성을 보였다. 또 기후변화로 인한 갑작스러운 자연재난은 한번으로 끝나지 않는다. 발생 빈도가 증가하면서 연속적으로 발생할 뿐만 아니라 동시다발적으로 참사가 발생하여 재난의 피해가 ‘계단식’(cascading)으로 증가하는 특징을 보인다.서울과 경상지역에서 예기치 않은 집중호우가 쏟아지고 전라도 지역은 최악의 가뭄 사태로 재난의 피해를 가중시키는 상황이 입증하고 있다.기후변화는 다중적인 속성을 실감케 한다. 이상 기후현상이 발생할 수 없는 지역에서도 예기치 않은 재난이 발생하는 특징도 보인다.예컨대 지난 500년 동안 홍수피해와 무관하였던 지역에서 홍수피해를 키워 세상이 변했음을 체험하고 있다.우리 지역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포스코 창립 50여년만에 공장가동이 멈춘 초유의 사태를 직면했으니 말이다. 작은 변화가 큰 변화를 창출하기도 한다. 지구의 평균기온 1℃가 증가하면 지구의 극단적인 참사를 일으키는 주범이 바로 기후변화로 귀속시킬 수 있는 세상으로 변했다.기후변화에 관한 가장 권위 있는 세계협의체가 지난 4월에 발표한 내용이다. “만일 지구 평균기온 상승폭이 1.5℃에 도달하면 약 22억 인구가 5년마다 더 잦고 거센 폭염에 노출되고, 해수면이 상승하며 일부 생물종은 멸종하고 식량위기가 심화하고 새 전염병이 출몰한다.”점진적인 작은 기온 변화가 갑작스럽고 예측가능하지 않는 참사의 주범이 바로 기후변화이다. 2025년부터 온실가스 배출량 감소를 시작하지 않으면 최악의 순간을 맞게 될 것이라는 내용도 있다.기후변화의 재난증가는 이제 더 이상 강 건너에서 바라볼 불이 아니다. 재난의 강도, 범위, 빈도가 증가할 것이며 일상의 삶을 파괴하는 심각한 위협으로 다가왔다.세계 국가의 정상들을 향해 비판의 메시지를 거침없이 전달하고 있는 스웨덴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도 더욱 위협적인 주장을 했다. “기후 변화는 인류에게 존재론적 위협이며 이로 인해 인류는 여섯 번째 대종말을 맞이하고 있다. 생존은 회색 지대가 존재하지 않는 죽느냐 사느냐의 영역이다. 현대 문명의 존속 여부와는 상관없이 기후 변화는 저지되어야만 한다.”기후재난 위험에 대응하는 전략과 방안도 결코 쉽지 않다. 복합재난인데다 과학적인 사실에 근거한 예측가능성이 낮은 ‘불확실성’ 때문이다. 어디로 튈지 알 수 없는 럭비공이나 다름없다. 예컨대 기상청의 예보가 예상에서 벗어나는 횟수가 증가하고 있다.우수한 장비를 갖춘 기상청은 힌남노 태풍이 포항에 근접할 것이라는 예보는 할 수 있지만, 포항시의 어느 지역에 어느 시간대에 400~500㎜ 집중호우 예측을 할 수 있는 수준에 아직은 못 미치고 있다. ‘위험’을 쉽게 인지할 수 있고 충분한 예상을 할 수 있고, 사전 징후와 예고가 통하는 ‘단순한 재난’이 아니다. 위험을 예측하기 힘들고 예측할 확률적 지식도 부재한 ‘불확실성이 높은 복합재난’이다.그럴지라도 우리는 지역수준에서의 기후변화에 따른 불확실성을 대처하는 실천적 전략으로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서. 과거와 근본적으로 다른 기후 변화의 불확실성과 함께 살고 대응하는 방법을 배워야 할 시기가 도래했다. 예측과 통제로 주도하는 중앙 집중식 관료와 전문가 중심의 지식에 의해 대처하는 기술 관료적인 방안으로는 부족하다.지역에서의 민관이 자발적이며 다양한 영역에서 서로 협조와 참여를 이끌어 내고 다양한 지식을 활용하는 ‘회복탄력성’과 ‘변혁적인 리더십’이 필요한 현실이다.

2022-12-04

경운기

가난했던 아버지는 반평생 땅 한 평 가지지 못했다. 사람의 손이 닿기 어려운 산비탈을 개간하여 고구마나 콩을 심어 놓으면 짐승이 제 주인인 듯 먼저 다녀갔다. 실망한 아버지는 점점 바쁠 것이 없는 사람이 되었다. 산골의 아침 햇살이 방안으로 들이닥치면 그제야 이불에서 빠져나왔다.아버지와 달리 어머니는 걸음이 재발랐다. 동살이 잡히면 채마밭에서 웃자란 풀을 향해 호미를 들었다. 고추, 상추, 호박이 잘 여물 수 있게 고랑을 돋우고는 부엌으로 우물가로 잰걸음을 걸었다. 어머니 덕분에 우리 집에서 피어오르는 연기가 봉수대처럼 산골 마을의 아침을 알렸다. 그러나 우리 집 살림살이는 쉽게 볕이 들지 않았다갑자기 어머니 걸음이 빨라졌다. 새마을 개발위원과 이장을 만나 머리를 맞대더니 이웃의 논과 밭을 무시로 드나들었다. 뭔가를 도모하는가 싶더니 읍내에 나가 경운기를 덜컥 샀다. 농사일에 서툴렀던 아버지는 돈이 없다는 것은 참 좋은 핑계였다. 더욱이 경운기처럼 덩치 큰 농기구를 들인다는 것은 생각지 못한 일이었다.경운기가 집에 오는 날, 아버지의 목소리는 쩌렁쩌렁했다. 구령에 맞춰 출정식을 하고 우리를 경운기에 태웠다. 어머니는 대문을 활짝 열고 손을 흔들어주었다. 아버지의 심장도 경운기 엔진처럼 힘이 넘쳤다. 스타트 레버를 수십 번 돌려 퉁, 퉁, 탕, 탕, 탕 경운기 엔진과 펌프질한 아버지의 심장이 밭으로 나갈 준비를 끝냈다.동창을 벗기는 것은 아버지의 경운기 소리였다. 비알밭을 맴돌고 있던 콩새는 아버지 연장 끄는 소리에 숨죽이고 경운기 소리에 댓 걸음 도망쳤다. 산비탈에서 탕탕거리는 소리가 나는가 싶더니 어느 사이 논에서, 하천 밭에서 저녁노을을 물릴 때까지 경운기 소리가 났다.타작할 때면 경운기에 줄을 걸어 탈곡기를 돌렸다. 경운기 소리 못지않게 탈곡기도 ‘아롱시롱’ 떠들어 댔다. 그 소리에 신이 난 우리는 마당과 뒤안을 쏘다니며 놀았다.하루는, 평상시처럼 일을 마치고 집으로 오는 중이었다. 막 모퉁이를 돌아가다가 경운기가 갑자기 산언덕으로 올라갔다. 아버지는 방향을 돌려 보았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급기야 아버지는 조종간까지 놓쳐버렸다. 그 순간, 아버지는 거칠게 발버둥 치는 경운기에서 뛰어내렸다. 어머니까지 버리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어디론가 도망갔다.어머니는 평생을 같이한 당신이 그럴 수 있느냐고 따졌다. 다 늙어서 혼자 살려고 줄행랑치는 꼴이 볼썽사나웠다며 어머니는 분한 마음을 쏟아냈다. 겁이 나서 얼떨결에 그랬다고 아버지가 해명했지만, 경운기 사건이 소문이 나자 아버지는 대문 밖을 나가지 않고 집 안에만 머물렀다. 이순혜 수필가 경운기 시동 거는 소리가 더는 들리지 않았다. 아버지의 부지런에 어지간히 시달린 경운기였지만, 헛간 구석으로 밀려나 녹이 슬기 시작했다. 어둠이 내리면 덜컹거렸던 몸을 쉬고 또 가야 할 곳을 생각하며 이우는 별을 헤아렸던 때가 가물가물했다. 후둑 후두두 헛간 슬레이트 지붕에 비가 내려도 아버지는 경운기를 돌보지 않았다.아버지도 다리에 힘이 빠졌다. 헛간 구석에 웅크리고 앉아 있는 경운기와 마루에 힘없이 쪼그리고 앉아 있는 아버지는 그렇게 같은 시간을 보냈다. 한 하늘 아래에서 아버지와 함께했던 경운기도 탕탕거렸던 소리를 기억하고 있을까. 헛간에 오도카니 놓인 경운기에 아버지는 더는 시동을 걸지 않았다.아버지의 전성기도 이울었다. 뜨거운 심장 소리를 내며 한 시대를 풍미하던 아버지는 더는 경운기 시동을 걸지 않았다. 마당 구석에 있던 경운기는 텅텅 힘 빠진 소리를 내며 옆집 아재네로 옮겨졌다.경운기는 일머리를 모르는 아버지에게 자존심과 같은 존재였다. 그 자존심이 사라지고 아버지의 기력도 쇠하여졌다. 그렇게 경운기가 없는 헛간은 오래도록 고요에 들었다.어디선가 탕탕탕 경운기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2022-12-04

상상이 곧 현실이 되는 대구 동구

윤석준 대구 동구청장 “모든 것은 SF로 통한다. 현대의 SF 작가들이 오늘 발명하는 것들을 당신과 나는 내일 실현할 것이다.”무려 50년 전, 영국의 SF 소설가이자 역사가인 제임스 그레이엄 밸러드가 한 말이다.드론택시, 플라잉카, 자율주행차 등 SF 작가들이 상상하고, 수많은 영화로 나왔던 장면들이 이제 현실로 만날 날이 머지않았다.그 현실에 한 발 다가간 날이 최근 있었다. 동구청이 주관한 공항후적지의 성공적인 개발을 위한 정책토론회가 열렸기 때문이다.‘미래모빌리티와 첨단산업이 융합된 스마트도시’란 주제로 열린 이날 토론회에는 국내 최고의 도시계획과 미래모빌리티 분야 전문가들이 함께해 열띤 토론을 펼쳤다.주제 발표와 토론을 듣는 내내 머릿속으로 상상을 해보았다.드론 택시로 이동하는 시민들, 버티포트(Vertiport)라고 불리는 UAM(Urban Air Mobility: 도심항공교통)의 정류장에서 하늘로 날 준비를 하는 플라잉카 등 마치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이야기가 우리 동구에서 이뤄질 것이라는 생각을.‘UAM은 가까운 미래의 이동수단이 될 것이며, 그 중심엔 대구 동구가 있다’, 토론회에서 나온 많은 이야기를 한 마디로 요약하면 이렇다.어디 상상이나 한 번 해봤을까. 불과 몇 년 전만해도 낙후된 도시, 소음의 도시, 고도제한의 도시였던 곳이 바로 동구였다.하지만 이제 동구는 내일을 기대하고 있다.UAM 특화도시로 발돋움 할 준비를 하고 있다. 토론회에서 공항후적지가 UAM 특화도시가 될 수 있는 최적의 입지 조건임이 확인됐다.특히 공항후적지는 자유로운 도시 설계를 할 수 있다는 것이 큰 장점이다. 고도 설정부터 회랑 설계가 용이하고, 충분한 서비스 인프라를 반영할 수 있는 이점이 있다. 한 마디로 공항후적지는 계획된 UAM 특화도시로 건설이 가능하다는 말이다.앞으로 공항후적지는 UAM이 결합된 친환경 글로벌 수변도시로 거듭나 대구를 넘어 대한민국의 대변혁을 이끌 것이다.한편 이날 토론회에서는 공항후적지 개발에 대한 동구 주민들의 기대가 매우 크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동구청에 실시한 공항후적지 개발 구민설문조사에서 응답자 중 93.6%가 ‘공항후적지 개발이 동구발전에 기여할 것이다’고 답한 것. 인상 깊었던 점은 공항후적지 개발을 통해 동구에 계속 거주할 의향을 묻는 질문에도 95.7%가 긍정적으로 대답했다. 공항후적지 개발을 반드시 성공해야 하는 이유기도 하다.과제도 확인 할 수 있었다.응답자 중 40.3%가 다양한 첨단산업이 어우러진 중견 기업도시 조성을 통한 경제 활성화를 해야 한다고 답했으며, 34.9%는 국내외 대기업 1∼2개 중심으로 선택과 집중을 꼽기도 했다.즉 아파트 위주의 공동주택이 아닌 첨단산업을 통한 기업 유치로 일자리를 만들라는 게 동구 주민들의 생각이다. 또 사업의 성공을 위해서는 특별법 제정을 통한 국가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도 답했다.이제 시작이다.이날 토론회에서 나온 전문가들의 의견 그리고 설문조사를 통해 나타난 주민들의 생각을 모으고 모아 공항후적지 개발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 무엇보다 연내 신공항 특별법 역시 통과되어야 한다.앞으로 대구 동구청은 공항후적지 개발과 관련해 주민들의 생각을 묻는 자리를 더 많이 만들 생각이다.특히 공항후적지 인프라 구성에 대해 ‘테마가 있는 도심 숲, 수변공간 조성’(38.9%), ‘대규모 복합쇼핑몰’(29.1%), ‘세계적인 테마파크 유치’(17.8%) 등 의견이 다양한 만큼 주민들이 원하는 수변공간의 모습은 무엇인지, 원하는 쇼핑몰과 세계적인 테마파크는 어떤 것이 있는지 등 지속적으로 들어볼 생각이다.토론회에 참여한 한 주민은 나에게 “공항이 간다는 말을 들은 게 10년도 넘었다. 가지 못할 거라는 말도 많이 들었다. 하지만 토론회를 보니 이제 공항이 가는 게 조금 실감이 난다”고 말씀해 주셨다.주민들의 기대가 크다.소음과 고도제한 등으로 수십년 고통을 받아온 우리 주민들을 위해서라도 성공적인 대구경북통합신공항 건설과 공항후적지 개발에 더욱 노력해야 할 것이다.동구 주민 모두와 함께 무한한 가능성이 확신이 되고, 상상이 곧 현실이 되는 공항후적지를 반드시 만들겠다.

2022-12-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