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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유머 넘치는 신화 염소자리

물병자리 남쪽과 궁수자리 동쪽 사이 큰 별과 자잘한 별이 뒤집어진 삼각형을 이루고 있는데 이것이 염소자리다. 황도12궁 중에서 10궁에 속하며 이 별자리 β별인 다비흐(Dabih)가 견우별(牽牛星)이다.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의 제자들은 염소자리를 ‘신들의 문’이라 부르면서, 그 문을 통해 고통과 속박에서 벗어난 영혼이 천국으로 들어갈 수 있다고 여겼다.그리스 신화 대부분이 비극적이거나 영웅적인 내용이지만, 이 염소자리에는 거의 유일하게도 우스운 이야기가 담겨 있다. 판(Pan)은 목축의 신이다. 판은 전령의 신 헤르메스와 아이러니하게도 오이칼리에에서 가장 아름다운 드리오페 사이에서 태어났다. 판은 태어날 때부터 얼굴에 털이 숭숭 나 있어 어머니조차도 징그럽다며 젖을 물리지 않고 도망쳤을 정도였다. 그러나 헤르메스는 희한하게 생긴 아들을 좋아했다. 다른 신들도 늘 명랑한 판을 좋아해서 ‘모든 것’이란 의미인 ‘판’으로 이름 붙여주었다.판이 짝사랑하던 님프 시링크스를 따라갔는데 놀란 시링크스가 급하게 도망치다가 풀로 변했다. 판은 잔혹하게도 그 풀을 꺾어 풀피리를 만들어 불며 들판이나 숲에서 노래와 춤을 즐겼다. 그 피리로 다양한 소리를 내 숲속 님프들을 놀라게 하곤 했다. 뿐만 아니라 잠든 사람에게 악몽을 꾸게 만드는 다소 짓궂은 면도 있었으며, 때때로는 사람을 공포로 몰아넣기도 했다. 공황(恐慌)을 뜻하는 ‘패닉’ 어원이 판에 의해 생겨난다. 반면에 다소 덜렁대기도 해서 신들에게 웃음을 선사하기도 했다.어느 가을날, 이집트 나일강변에서 제우스를 비롯해 헤라, 아르테미스, 아폴론 등 올림포스 신들이 모두 모여 성대한 축제를 열었다. 축제가 막바지에 이를 무렵 티폰이 공격해왔다. 티폰은 양팔을 벌리면 그 손이 동쪽 끝과 서쪽 끝에 닿는 데다, 머리는 은하수에 다다를 정도로 큰 괴물이었다. 상체는 백 개의 머리를 가졌으며, 하체는 거대한 뱀이 꿈틀거렸다. 타이폰, 즉 태풍의 어원이 티폰에서 유래되었다.당황한 제우스는 물론 신들이 동물로 변신해 도망치기 시작했다. 도망치던 판이 나일강변에 이르렀다. 그는 물고기로 변해야 했지만, 허둥대다가 주문을 덜 외운 채 물에 뛰어든 탓에 하반신은 물고기로 변했지만 상반신은 염소 모습 그대로 남았다. 정작 이 사실을 몰랐던 판은 마치 자신이 완벽한 물고기인 양 헤엄쳤다. 그 모습을 본 신들이 배꼽을 잡고 웃었다. 신들은 이를 기념하겠다면서 판이 싫다는데도 막무가내로 하늘에 올려 별자리로 만들었던 것이다.유쾌하면서도 엉뚱한, 그러나 남을 놀래거나 괴롭히는 신이라니 다양한 신성을 지녔다. 인간도 별반 다르지 않다. 현대는 스마트폰 천국이다. 그렇지만 좋은 기술을 가지고도 범죄에 더 많이 이용되는 현실이다. 선한 사람이 만들면 선한 인공지능이 되고, 악한 사람이 만들면 악한 인공지능이 된다고 한다. 본성 중 후천적인 교육을 통해 장점만 활용해 살아가거나 단점에 지배당하는 삶이 결정된다. 장점만 살려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올바른 교육이나 건전한 사색이 필요하다.신들의 잔치에 나타나 공격했던 괴물 티폰은 어찌 되었을까? 사전에 의하면 신들의 제왕 제우스가 잡아, 시칠리아 동쪽 해안 에트나산 아래에 가둬놓았다. 이 산은 지중해 섬들 중 가장 높은 산이다. 자연은 간혹 인간에게 경고로써 말을 건네곤 한다. 에트나화산은 2007년 9월에도 분출했다. 티폰이 살아 발버둥 치는 것은 아닐까? 환경은 실천의 문제라고 말이다. /박필우 스토리텔러

2022-11-27

이솝 우화를 고쳐 쓰다가

유영희 인문글쓰기 강사·작가 이솝의 우화를 읽다 보면, 세상 물정에 대한 번뜩이는 통찰을 얻는 때가 많다. 답답한 도덕 교과서도 아니어서 사이다 같은 통쾌함을 주기도 한다. 그러나 이번에 읽은 우화는 답답하면서도 절망적인 느낌이 들었다.한번은 늑대들과 개들이 서로 적대했다. 개들은 그리스 개를 자신들의 장군으로 뽑았다. 그리스 개는 늑대들이 심하게 위협해 오는 데도 전투를 시작하기를 망설였다. “너희는 내가 왜 망설이는지 알겠나? 늑대들은 종족도 같고 색깔도 같지만, 우리 군사는 관습도 다르고 색깔도 달라서 조화롭지 못하니, 이렇게 모든 점에서 다른 자들을 내가 어떻게 싸움터로 인도할 수 있겠나?”이것은 천병희 교수가 번역한 ‘정본 이솝 우화’의 ‘늑대와 개들의 싸움’ 이야기를 약간 줄인 것이다. 현재 전해지는 ‘이솝 우화’는 본문과 교훈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나 교훈은 이솝의 작품이 아니고, 이솝이 살았던 시대보다 최소 200년이 지난 헬레니즘 시대에 덧붙여졌다고 한다. 우화의 의미를 이해할 때 교훈을 참고할 수는 있지만, 교훈이 다 옳다고 믿을 필요는 없다. 그런 점에서 ‘군대에게 승리를 보장하는 것은 의지와 생각의 통일이라는 것이다’라는 이 우화의 교훈 역시 지금 그대로 받아들여야 할지 망설여진다.개들이 그리스 개를 장군으로 뽑았다는 것은 그만큼 의견이 통일되어 있다는 증거이다. 개들의 출신과 크기와 털 색깔이 늑대와의 싸움에 불리하다는 증거도 없고, 설사 불리하다 해도 그것을 이유로 싸움터에 나가기를 망설인다는 것은 장군이기를 포기한 것이다. 이렇게 장군이 자기 할 일을 안 하고 머뭇거리면 개들은 패배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문장 하나 덧붙여서 이 우화를 마무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개들은 늑대한테 다 잡아먹혔다’고.이제 이 우화의 교훈은 확실하게 ‘장군 한번 잘못 뽑으면 개들이 다 죽는다.’가 되어 버린다. 장군 하나 잘못 뽑은 대가가 너무 큰가? 그러나 지도자가 잘못해서 국민이 도탄에 빠진 일은 역사에서 비일비재하다.그렇다면 좀 더 낙관적으로 고쳐 써 보면 어떨까? ‘개들은 그리스 개를 무리에서 영원히 추방하고 새 장군을 뽑았다. 새 장군은 개들의 출신, 크기, 털 색깔을 적절히 활용하여 각개전투 방식으로 늑대를 혼란에 빠트려 완벽하게 물리쳤다’고. 이솝이 아폴론 신전 사제의 탐욕을 고발해서 죽음을 당했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이렇게 마무리하는 것도 이솝의 의도에서 그리 멀리 떨어져 있을 것 같지는 않다.이렇게 ‘늑대와 개들의 싸움’을 읽으며 고쳐 쓰기를 하노라니, 슬그머니 요즘의 현실이 겹쳐 보인다. 사실을 보도한, 또는 사실이 아니더라도 자신이 원하는 방향대로 보도하지 않은 한 방송국을 악의적이라고 비난하며 대통령 전용기 탑승도 배제하고 도어스테핑까지 중단한 대통령실의 태도는 마치 개들 크기와 털 색깔이 다르다고 자기가 할 일을 안 하겠다는 그리스 개와 오묘하게 닮은 듯하다. 현실 고치기는 우화 고쳐 쓰듯 할 수 없으니, 맥없이 우화만 고쳐 쓰면서 상상의 날개를 펴본다.

2022-11-27

만남, 20221124

강길수 수필가 눈길이 저절로 멈추었다. 늦가을, 그것도 11월 하순에 이런 만남이 기다리고 있을 줄이야….평소 출근보다 1시간 빠른 출장길이다. 북향 7번 국도가 제법 붐빈다. 벌어먹으려고 직장가는 차들이 꼬리를 문다. 알게 모르게 이 근교에도 일자리들이 생긴 결과이리라. 송라를 벗어나자 차량이 줄었다. 저지난밤 100mm 안팎의 많은 가을비가 내렸던 흔적이 도롯가나 들녘에 드러나도 생각만큼 심해 보이지 않는다.일찍 집을 나선 덕인가, 경고인가, 깨우침인가. 눈길 멈춘 곳 앞 도로 가드레일 위에 쪼그리고 앉았다. 원자력 발전소의 한 건물 녹지 곁 도로다. 찬찬히 살펴본다. 저쪽 크지 않은 앙상한 모과나무 밑에, 노란 모과 한 개가 낙엽과 섞인 푸른 풀들을 베고 누워있다. 그 오른편에 낮은 관목 두 그루가 마지막 잎새 몇 개를 달고 떤다.나무 앞 제법 넓은 면적에 어린 클로버가 밭을 이뤘다. 6월의 클로버만큼이나 많은 흰 꽃을 피워냈다. 그 밭 가장자리엔 노란 민들레꽃 하나 해님이다. 곁에 서 있는 민들레 관모 서너 송이는 작은 솜사탕이다. 솜사탕 뒤로 나지막한 옥향나무들이 가드레일을 따라 줄지어 섰다. 용케도 무시무시한 예초기 날을 피했을 개망초 한 포기가, 두 옥향나무 사이에서 계란프라이 모양 꽃 일고여덟을 달고 늦가을을 노래한다.6일만 지나면 12월인데, 꽃 피운 클로버와 민들레와 개망초 그리고 푸른 풀들, 낙엽과 앙상한 나무들은 어떤 메시지를 사람에게 보내고 있을까. ‘당신들 때문에 우리는 지금 봄이라고 착각한 채 살고 있어요’라고 할까. ‘우리는 속이지 못해요. 이 발전소 근로자들처럼 정직하게 살아낼 뿐입니다’라 말할까. 또는 ‘지구촌 아니, 우주 공동운명체 안에서 우리는 설계된 디엔에이대로 살잖아요’라고 할까.땅거미 내리는 7번 국도를 따라 돌아오는 차창 밖을 보며 생각했다. ‘그래. 올 11월 24일 만난 클로버꽃과 민들레꽃, 개망초꽃, 누운 모과, 앙상한 가지, 팔랑이는 마지막 잎새는 정직하고, 진실했던 거다. 기후변화에 따라 살며, 꽃피우고, 열매 맺으며, 주어진 삶을 그대로 주위에 보여주고 있다. 마지 발전소 현장 근로자들처럼’….지금 우리 사회의 모습은 어떤가. 어떤 성직자들은 대통령이 죽기를 바랐다. 제1야당 대표는 개발사업 비리 의혹에 사업 시행 지자체 최종결재자이면서도 ‘모르쇠’가 되어,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는 오만으로 일관한다. 어떤 정치권은 자기편의 일방적 안을 ‘정의’라고 우기며 왜곡을 일삼는 언론을 무기로 선동하고 강요한다. 북핵이 국민을 위협해도 정치권은 걱정이 없다. 일군의 선각자들이, 부정선거 문제를 복음처럼 외쳐도 응답하는 정치권은 없다.한마디로, 우리 사회는 진실과 정직을 버린 맛이 간 사회다. 국민은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모름지기 정치인은 국민 목소리를 찾아 듣고, 그 해결의 길에 나서야만 한다. 정치권이 변화에 정직한 식물과 자기 일에 정직한 근로자들의 숨은 진실을 본받는 길…. 그 길이, 자유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살리고 더 꽃피워 열매 맺을 테니까.

2022-11-27

면책특권

우정구 논설위원 국회의원에게는 두가지 특권이 있다. 하나는 면책특권이고 또 다른 하나는 불체포특권이다. 특권이라는 용어에 강한 거부감이 있지만 국회의원에게 이를 부여한 것은 민의를 대표하는 신분이기 때문이다.헌법 제45조에 “국회의원은 국회에서 직무상 행한 발언과 표결에 관해 국회 외에서 책임을 지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국회가 절대권력이나 집권자의 부당한 압력 또는 탄압으로부터 보호받아야 한다는 취지다.국회가 정부의 정책통제기관으로서 기능을 다하고 의원이 국민의 대표자로서 민의를 충실히 반영하라는 뜻이다. 이 제도는 의회의 나라 영국에서 출발해 지금은 세계 각국이 도입하고 있다.그러나 국민을 위해 쓰도록 한 권리가 국민이 아닌 정당이나 정파적 이익을 위해 악용되는 경우가 있어 이를 제한하자는 비판 여론도 없지는 않았다. 이와 관련, 대법원은 “발언 내용이 명백히 허위임을 알면서도 이를 적시해 타인 명예를 훼손하는 경우는 면책특권 대상이 될 수 없다”는 판시도 한 적이 있다. 면책특권 범위의 모호성이 문제의 논란이다.최근 김의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제기한 청담동 술자리 의혹이 거짓으로 드러나 면책특권이 또다시 비판 대상으로 떠올랐다. 제도의 잘못보다 주어진 권리를 남용하는 국회의원 개인의 양식이나 도덕성 그리고 자질 부족이 제도의 취지를 못 살린다는 비판이 많다.뻔히 알면서 면책특권의 가면을 쓰고 이를 악용하는 국회의원에 대해서는 국회 스스로가 강한 척결 의지를 보여야 한다는 여론이다.논란을 일으킨 김 의원에 대해 법무부장관이 책임을 묻겠다고 했으니 그 결과를 주목하면서 이번 사건을 계기로 새 전기 삼는 중의가 모아져야 한다. /우정구(논설위원)

2022-11-27

‘자칭(自稱)’ 선진국

김규종 경북대 교수 언제부턴가 대한민국은 선진국이 되었다. 누가 어떤 근거로 선진과 후진을 규정하는지 알 수 없지만, 우리나라가 선진국 대열에 올랐다고 한다. 좋은 일이다. 반갑고 가슴 벅찬 일이다. 어린 시절엔 후진국 소리를 들어야 했고, 청소년 시기엔 개발도상국 소리를 지겨울 정도로 들어야 했다. 그러다 어느 날 대한민국은 선진국이 되어 있었다. 실로 경천동지할 일 아닌가?!닷새 전인 11월 23일 서울 서대문구 다세대주택에서 모녀 사망 사고가 보고된다. 그들이 살던 방 앞에는 미납된 5개월분 전기요금과 월세를 독촉하는 주인의 편지가 있었다고 한다. 언론은 숨진 60대와 30대 모녀는 극심한 생활고를 겪다가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이라고 전한다. 지난 8월에는 수원에서 세 모녀가 생활고를 겪다가 숨진 사건이 일어나기도 했으니, 복지 사각지대에서 발생하는 자살자들의 행렬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이번에 일어난 두 사건을 보면서 2014년에 일어난 송파구 세 모녀 자살 사건을 떠올린 사람은 비단 나만은 아닐 것이다. 2014년 2월 서울 송파구 석촌동 반지하에 살던 세 모녀가 번개탄을 피워놓고 자살한 사건은 한국 사회를 크게 동요시켰다. 그들은 전 재산 70만 원을 짤막한 유서와 함께 남기고 지옥 같은 이 나라를 영원히 떠나갔다.“마지막 집세와 공과금입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이보다 더 절절하게 인간의 영혼을 후벼파는 글이 있었던가?!수업 시간에 학생들에게 물었다. “자네들에게 마지막 70만 원이 남았다면, 그걸로 집세와 공과금을 내겠나, 아니면 탕진하고 생을 마감하겠는가?!” 단 하나의 예외도 없이 돈을 다 쓰고 죽겠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60대 모친과 30대 두 딸에게 그토록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행위를 추동한 것은 대체 무엇이었을까?! 그렇게 순정한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고 간 이 나라의 정체는 무엇이고, 권력자와 정치가들은 뭘 하고 있었단 말인가?!송파구 세 모녀 자살 사건이 일어나고 불과 두 달이 지나지 않아서 세월호 대참사가 일어났다. 단원고 학생 250명을 포함한 304명이 우리가 보는 앞에서 차가운 바닷물 속으로 생매장되었다. 이 사건을 책임지는 정부 고위직 인사는 아무도 없었다. 지난 10월 29일 이태원 참사로 158명이 사망하고 196명이 다쳤다. 지금까지 이 사건으로 옷을 벗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저 뭉개고들 있을 뿐이다. 혹여 책임의 파편이 날아올까 전전긍긍하면서!삶의 의지를 꺾어버리는 참혹한 나라, 사람이 죽어 나가도 돈만 외치는 인간 장사꾼들의 나라, 누가 죽든 나와 내 가족만 아니면 된다고 생각하는 아귀들의 나라, 오직 아파트 가격 하락만 걱정하는 경제 동물들의 나라, 세상이 어찌 되든 월드컵에 정신 놓은 인간들의 나라, 국민의 삶과 죽음에 무관심한 자칭 권력자들의 나라, 정치는 사라지고 권력욕만 판을 치는 하이에나들의 나라, 대한민국!사람이 사람으로 살아가는 근저에는 인간적인 정과 유대가 있는 법이다. 최소한의 인간적인 정리(情理)가 사라지면 그 사회와 국가는 소멸하는 법이다. 이것을 모두가 기억했으면 한다.

2022-11-27

무당 내치지 않으면 미래 없다

홍석봉정치에디터 민주노총이 정치투쟁을 벌이고 있다. 국가 물류와 교통을 인질로 삼았다. 노란봉투법 통과와 노동개악 중단이 명분이다. 총파업과 총력 투쟁을 선포했다. 화물연대 등이 릴레이파업에 돌입하면서 온 나라가 비상이다. 정부는 엄정 대응 엄포를 놓았지만 민노총은 눈도 꿈쩍 않는다.지금 우리나라는 안보 및 경제 위기로 안팎곱사등이 신세다. 이런 와중에 주사파 종북세력이 끊임없이 나라를 흔들고 있다. 보수가 맞불을 놓으면서 사회는 혼란스럽기 짝이 없다. 주말마다 서울 한복판에서 진보와 보수로 나뉘어 총칼없는 전쟁이 벌어진다. 수 년 째 광화문 일대에서 펼쳐지는 풍경이다.국가 존망이 흔들리는 백척간두의 위기다. 주사파 종북세력이 우리 사회 곳곳에서 합법의 탈을 쓴 채 극단적인 주장을 펴며 사회 기강을 흔들고 있다. 환상에 빠진 민주화 추종 세력들이 볼모가 됐다. 뜬구름 주장에 끌려가며 거수기와 심부름꾼 노릇을 하고 있다.정치판은 주사파를 계승한 586 세력이 장악한 후 난파선이 된지 오래다. 민주당은 사사건건 윤석열 정부의 발목을 잡으며 반대를 위한 반대에 골몰하고 있다. 김건희 여사를 조롱의 대상으로 만들었다. 이젠 김건희 스토커가 됐다. 대장동 수사 검찰의 칼끝이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턱밑에 다달았다. 이재명 사법리스크가 현실화됐다. 민주당은 이재명 지키기에 사활을 걸고 있다. 민주당 최대 위기다. 경고음도 안 들린다. 끓는 주전자 안의 개구리처럼, 죽는 지도 모르고 있다. 함께 구렁텅이에 빠져 허우적댄다. 민주당이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는 내로남불을 지켜보는 국민은 피곤하다.윤석열 정부 출범 6개월 동안 국회를 통과한 정부 법안은 전무하다. 70여 개 민생 법안이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TK 염원인 군위군 대구편입과 통합신공항특별법 법안 소위도 연기됐다. 시한내 통과가 어렵다는 전망도 나온다. 국회 다수 의석을 차지하고 있는 민주당의 횡포 때문이다.서문표는 전국시대 위(魏)나라의 정치가다. 서문표가 업 땅 수령으로 부임했을 때 하백을 믿는 이 곳 백성들이 해마다 처녀를 골라 하백에게 제사지내기 위해 강물에 던지는 폐습이 있었다. 서문표는 무당과 추종자, 착취를 일삼은 고을 원로 및 아전들을 황하에 던져 미신에 시달리던 백성들의 고통을 일소했다. 오랫동안 지방 정치를 농단하고 지역민들을 수탈해온 토호세력들을 기지로 굴복시켰다. 우리에게 지금 서문표가 필요하다. 민주를 앞세워 국민을 혼란과 고통으로 내모는 무당 세력을 일소해야 한다.윤석열 대통령은 “종북 주사파는 반국가세력이고, 반헌법 세력이다. 이들과는 협치가 불가능하다”고 말한 바 있다. 사기 춘신군전에 ‘당단부단 반수기란(當斷不斷 反受其亂)’이라는 말이 나온다. ‘당연히 처단해야 할 것을 주저하여 처단하지 않으면 훗날 그로 말미암아 도리어 화를 입게 된다’는 뜻이다.심복대환이 된 주사파 종북세력 척결이 급선무다. 철 지난 유행가나 읊고 자신들의 이익만을 위해 사회 정의는 팽개친 무당을 몰아내지 않고서는 우리의 미래는 없다.

2022-11-24

고향세

우정구 논설위원 내년 1월부터 시행될 고향사랑기부금제를 활성화하기 위한 지방자치단체의 준비가 한창이다. 고향사랑기부금을 낸 사람에게 돌려줄 답례품 선정에서부터 더 많은 기부금을 확보하기 위한 각종 노력이 병행, 추진되고 있다.그러나 진작 이 제도를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지 않아 제도 정착을 위한 더 많은 홍보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한 여론조사 기관의 고향사랑기부금제에 관한 인식조사에서 “고향세를 들어봤거나 알고 있다”고 응답한 사람이 27%에 불과했다. 73%는 “전혀 모른다”는 답변을 해 고향세 시행에 따른 성과가 제대로 나올지 의문이다.한국지방세연구원 연구에 의하면 시행 첫해 모아질 기부금의 규모가 전국적으로 576억∼865억원 정도로 예측됐다. 우리보다 앞서 시행한 일본처럼 인지도가 최대한 높아질 경우 최대 7천767억원의 기부금이 조성될 것으로 연구원은 내다봤다. 일본의 경우 2008년 처음 시행하면서 첫해 865억원의 기부금이 모아졌으나 2020년에는 7조원이 넘는 돈이 고향을 위해 기부된 것으로 조사됐다.고향사랑기부금제는 출향인사들의 자발적인 기부를 통해 지방재정을 확충하고 나아가 지역경제 활성화에 기여하고자 하는 제도이다. 그러나 시행을 한 달여 앞둔 우리나라의 경우 아직 대다수 국민이 제도를 잘 알지 못하고 있어 제도 취지를 제대로 살릴 수 있을지 의문이다. 지자체가 기부자에 대한 답례품으로 해당 지역 농축산물을 주로 이용하기로 하면서 농민들의 기대는 커가고 있으나 기부금 모금이 부진할 경우 되레 실망감이 커질 수 있다.지금부터라도 고향세에 대한 적극적 홍보를 벌여야 성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 같다./우정구(논설위원)

2022-11-24

다시 한번, 대~한민국

윤영대 수필가 2022 FIFA월드컵 대회가 카타르에서 열리고 있다. 전 세계 지역 예선을 통과한 32개국이 나라의 명예를 걸고 한 달간의 열띤 경기를 벌이는 세계인의 축구 축제가 사상 처음으로 중동의 무더운 나라에서 열리게 된 것이다. 통상 6~7월에 열렸으나 카타르의 무더위 탓에 이번에는 11월부터 12월까지, 그것도 아랍 이슬람 국가에서 최초로 개최되는 월드컵 경기이다.우리나라는 1954년 스위스 대회에 처음으로 참가하여 헝가리와 터키에 참패를 당했지만, 그 후 실력을 쌓아 1986년부터 9회 연속 본선 진출 팀이 되었으며 우리가 너무나도 잘 기억하는 2002년 한·일 월드컵은 대회 유치는 물론 패배 없는 2승1무로 4강 진출을 달성하는 기염을 토했었다. 그리고 2018년에 지난 대회 우승팀인 독일을 2-0으로 격파한 손흥민의 활약을 기억하며 이번 카타르 월드컵 본선에 진출하게 되었고 앞으로 한 달간 또 하나 우승의 꿈을 이루어나갈 것이다.개막식은 20일 오후 5시 40분이었으나 시차가 6시간인 우리나라에서는 자정 무렵에 중계되었다. 우리나라의 첫 경기도 거의 한밤중인 24일 밤 10시 되어서 볼 수 있었다. 조금은 피곤했지만 그래도 우리의 태극전사들을 위하여 잠 못 이루는 응원을 펼쳤다.이번 카타르 월드컵의 슬로건은 ‘놀라움을 기대하라(Expect Amazing)’이며 개회식에서 방탄소년단 BTS 정욱의 단독 공연을 보노라면 20년 전, 2002 한·일 월드컵 대회 때 불렀던 응원가 ‘오 필승 코리아’가 불현듯 생각난다. 그때의 슬로건이었던 ‘새천년, 새 만남, 새 출발’처럼 우리는 포르투갈과 이탈리아를 차례로 꺾고 8강에 올랐으며 스페인과의 승부차기로 이겼을 때, 나는 유럽 연수여행을 가던 비행기 안에서 승리를 귀띔받고 환호했던 날로 기억하고 있다. 독일과의 준결승 경기는 시내 일정을 잠시 미루고 파리시청 앞 광장에 앉아서 응원했는데 패하여 씁쓸한 마음이 되었었고, 귀국하는 날 3∼4위 전에서 터키에 또 패배하여 4위가 되었으나 우리 축구 응원단 ‘붉은 악마’는 국민의 마음을 한 곳으로 모았고 필승 코리아를 외치며 세계로 한 발짝 더 나아가는 문을 열었다. 도심 한복판을 붉은 응원의 물결로 넘실거리게 했고 ‘대~한민국’을 외치며 흔들며 전국을 열광의 도가니로 몰아넣었었다.이제 다시 그 붉은 악마의 힘찬 함성이 뜨겁게 되살아나려는 분위기이다. 아직 이태원 참사의 아픔이 사라지지 않은 만큼 거리응원을 하더라도 조심하고 질서를 지켜 마음을 합치는 월드컵이 되었으면 한다. 중동에서 불어오는 열풍으로 얼어붙은 남북관계와 국내 정치계도 녹이고 서로 투닥이는 말싸움도 한마음 응원가로 씻어내자. 이번 카타르 월드컵의 열기가 국민 모두의 가슴 속에 힘찬 응원의 힘을 불어넣어 월드컵 4강을 이루고 그 기치를 높이 들어 주기를 소망해 본다.다시 한번 외쳐 보자. 오! 필승 코리아, 대~한민국 짜짜짜 짜짜.

2022-11-24

죽음에 대한 예의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우리나라의 연간 사망자수는 30만을 넘는다. 그 중에서 교통사고로 숨진 경우도 3천명 가까이 되고, 자살 사망자는 1만3천명을 넘어 하루 평균 36명꼴이라 한다. 지난해 산업재해 사망자는 828명이고 살인사건의 희생자 수도 300명이 넘는다. 그러니까 노령이나 질병으로 사망하는 경우를 제외한, 교통사고 등 불의의 사고로 사망한 사람의 수만도 연간 4천명 이상이라는 통계다.신(神) 앞에 만인이 평등하듯 죽음 앞에서도 모든 사람은 평등하다. 누구나 예외 없이 결국에는 죽는다는 생물학적인 관점에서 그렇다. 그러나 사회학적인 측면에서는 죽음에도 천차만별 종류가 있고 의미와 가치가 다르다. 예수처럼 인류를 위해 희생한 거룩한 죽음이 있는가 하면, 온갖 악행을 저지르고 그 벌로 처형되는 죽음도 있다. 그것은 물론 죽음이라는 생물학적 현상에 대한 평가가 아니라 죽음 직전까지의 삶에 대한 평가인 것이다.동서를 막론하고 죽음 앞에서는 경건하게 예를 갖추어야 한다는 것이 보편적인 인식이고 정서다. 유가(儒家)에서는 관혼상제(冠婚喪祭)의 예식을 인생의 가장 중요한 통과의례로 삼는데, 그 중 절반인 상례(喪禮)와 제례(祭禮)는 죽음에 관한 것이다. 삶과 죽음을 같은 비율로 본다는 것은 의미심장한 일이다. 서양에도 죽음을 상기시키는 ‘메멘토모리’란 말이 있지만, 죽음을 우리의 삶 속에 끌어들여 내면화하는 종교적이고 철학적인 함의를 갖는 일이라 할 것이다.한 장소에서 한꺼번에 많은 죽음이 발생한 참사는 온 국민을 충격에 빠뜨리게 마련이다. 2014년의 세월호사건이 그렇고, 지난 10월의 이태원사건이 그렇다. 개별적으로 볼 때는 다른 사고사와 다르지 않지만, 대형 참사에는 분명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점이 드러난 만큼 반드시 책임소재의 규명과 시정대책이 따라야 한다. 며칠을 애도의 기간으로 정하여 국민 모두가 조의를 표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대형 참사가 인재(人災)일 경우에는 원인규명과 재발방지를 위한 대책이 신속히 수행되어야 한다, 세월호사건의 경우, 여객선에 대한 관계기관의 철저한 감시감독과 사고발생시의 매뉴얼에 대한 교육과 훈련을 제도화하고 수시로 점검을 해야 한다. 이태원의 참사는 그 경위가 그리 복잡하지 않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많은 사람들이 운집하는 장소에 대한 사전 점검과 대처 매뉴얼을 만들어 유사시에 차질이 없도록 대비하면 얼마든지 방지할 수 있는 일이다.죽음에 대한 예의는 곧 인간에 대한 예의다. 그리고 예의의 기본은 절도(節度)다. 모자라서도 안 되지만 지나쳐서도 무례가 된다. 행여 죽음을 왜곡하거나 불순한 목적으로 이용하는 것은 무례를 넘어 망자를 모욕하는 악행이다. 유족들의 아픔과 슬픔이야 한이 없겠지만, 제3자들이 나서서 난리를 치는 것은 예의가 아닐뿐더러 저의가 의심스러운 일이다. 경건한 마음으로 초의를 표했으면 더 이상은 관여를 말고 잊는 것이 예의다. 무례하게 날뛰는 자들이 많아서 하는 말이다.

2022-11-24

저널리즘의 존재 이유

장규열 한동대 교수 언론은 왜 필요한가. 디지털세계는 소통의 형태와 소비를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온라인과 사이버 세상은 온갖 정보를 범람하게 만들어 필요한 정보와 소식은 딱히 언론기관을 통하지 않아도 쉽게 접하게 되었다. 수 년 전 미국 카네기멜론(Carnegie Mellon)대학의 보고에 따르면, 전세계에서 하루에 소통되는 정보의 양이 어마어마한 가운데 99퍼센트는 의미없는 대화일 뿐이라고 하였다. 웹정보분석회사 시만텍(Symantec)은 주고받는 이메일의 70퍼센트 이상이 스팸(Spam)에 해당한다고 한다. 이메일과 스팸, 블로그와 트윗, 페이스북과 카톡 등 온갖 통로를 활용하는 정보와 소식들 가운데에도 ‘저널리즘(Journalism)’이라 일컫는 언론행위에는 아직도 대중이 거는 비교적 높은 기대가 있다.소비자 대중은 언론에 무엇을 기대하는 것일까. 언론이 지향하는 소통에는 다른 소통방식들과 어떤 차이와 까닭이 있어 끊임없는 주목과 관심을 향유하는 것일까. 오늘처럼 바뀐 미디어환경에서 언론은 어떻게 변화해 가야하는 것일까. 수다한 스토리들과 연예공연물, 스포츠와 오락콘텐츠, 의견과 주장, 광고와 선전물들이 득실거리는 현대 미디어의 틈바구니에서 취재와 보도를 기반으로 하는 언론행위가 명맥을 유지하는 일이 쉽지않아 보인다. 그럼에도 저널리즘이라 불리우는 이 독특한 영역이 아직까지는 그 ‘가치’를 인정받는 것으로 보인다. ‘기레기’라는 멸칭이 특정한 의미를 동반하며 언론인들을 공격하지만, 기자들이 아니면 불가능에 가까울 영역이 존재하므로 언론의 존재 이유는 남아있는 터이다.사실보도를 비롯하여 논설집필에 이르기까지 사회적 필요를 채우는 언론의 사명은 퇴색하지 않았다. 미디어환경에서 감지되는 정보의 무분별한 범람으로 인하여 정돈되고 분석력이 넘치는 고급 정보콘텐츠는 더욱 필요하게 되었다. 언론행위의 목적은 독자시민들로 하여금 일상생활에서 보다 나은 다양한 결정이 가능하도록 사실에 근거한 진실을 전하는 데에 있다. 사실을 사실로 확인하는 수고를 독자를 대신하여 성실하게 한다는 점에서도 언론행위의 가치는 충분히 보인다.진실을 전한다는 맥락에서 언론이 때로는 독자를 대신하여 권력에 맞서야 한다. 정치적, 경제적, 제도적으로 힘을 가진 이들이 가진 권력을 온당하게 행사하는지 감시하고 살피는 역할은 언론에게 특별히 지워진 책임이며 사명인 셈이다. 민주주의가 제공하는 삼권분립에 더하여 언론을 네 번째 축으로 여기는 까닭이 그에 있지 않을까. 나라의 헌법이 ‘표현의 자유’를 언론에 특별하게 허용하는 까닭도 언론이 자임하는 ‘감시자의 역할’에 기인한다.언론은 사회가 공동체적 의미를 회복하고 공론의 장을 펼치는 데 기여해야 한다. 비판과 타협을 사회적으로 숙성시키는 일에도 언론의 책임이 크다. 사회적으로 소외된 여러 영역에도 목소리를 제공하는 사회적 공기로서 역할도 무시할 수 없다. 세상이 아무리 변하여도 언론이 가진 본연의 사명과 역할은 쉽사리 사라지지 않는다. 변화된 환경에 적응하면서 가진 책임에 오히려 치열하게 복무하는 언론을 만나고 싶다. 언론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

2022-11-23

군위 인각사의 수난

홍석봉정치에디터 ‘삼국유사’는 경북 군위군의 트레이드 마크다. 군위군 삼국유사면에 있는 인각사(麟角寺)는 고려말 승려인 일연(1206∼1289)이 삼국유사를 편찬한 곳으로 이름 높다. 643년 원효(元曉)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한다. 절 입구에 깎아지른 듯한 바위에 기린이 뿔을 얹었다고 해서 절 이름을 인각사라고 지었다고 한다. 삼국유사를 지은 일연은 인각사를 중창하고 이곳에서 입적했다.보물로 지정된 인각사보각국사탑 및 비석이 중요문화재다. 2008년 인각사 건물지 유구에서 출토된 금속공예품과 청자 등 18점의 유물도 보물로 지정됐다.삼국유사와 인각사의 가치를 꿰뚫어 본 군위군은 2010년부터 삼국유사의 역사를 관광자원화하는 사업을 추진 중이다. 2011년엔 삼국유사 테마파크가 문 열었다. 2021년엔 기존의 고로면의 명칭을 삼국유사면으로 바꿔 삼국유사의 고장 조성에 한 획을 그었다.군위군은 소중한 기록 문화유산인 삼국유사를 유네스코 기록물로 등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지난 9월에는 인각사에서 삼국유사 유네스코 기록물 등재를 기원하는 음악회를 열기도 했다.그런데 이런 군위군의 노력에 재를 뿌리는 일이 발생했다. 역사문화환경 보존지역인 인각사 주변에 수자원공사가 무단으로 전봇대를 세웠다가 철거하는 소동을 빚었다. 수자원공사는 인각사 부근 삼국유사로에 전봇대 12개를 세우고 시설물을 설치하려다 군청의 공사중지와 함께 원상복구 명령을 받았다. 인근 군위댐의 수상태양광발전소에서 생산한 전기를 공급하기 위한 것이었다. 문화재보호법에 따라 인각사 인근에서 문화재청 허가 없이는 어떤 개발 사업도 할 수 없는데도 이를 무시한 것이다. 어처구니없는 공기업의 행태에 기가 막힐 따름이다. /홍석봉(정치에디터)

2022-11-23

선거 낙마로 힘들때 힘이 돼준 양식

삶과 죽음에 대한 고민은 인간의 원초적 질문임과 동시에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숙연한 물음으로 연말이 다가오는 이맘때 즈음이면 많은 사람이 문득 그런 생각에 빠질지 모르겠다.러시아 출신의 레프 니콜라이비치 톨스토이(1828~1910)는 그의 뛰어난 장편소설 전쟁과 평화, 안나 카레니나, 부활 등을 통해 많은 등장인물의 다양한 모습을 그려내며 작품 속에 그의 생각을 녹여 넣은 세계적인 문학가일 뿐 아니라 뛰어난 사상가로서도 평가되고 있다.나는 왜 살아야 하는가?사람은 과연 무엇으로 사는가?이러한 근본적 질문에 대한 답과 함께 삶의 의지를 일깨워 준 책이 바로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이다.오늘날 고전으로 불리는 그의 훌륭한 장편들보다 특별히 1885년 발표된 이 단편소설을 소개하고자 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톨스토이는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에서 가난한 구두 수선공 세묜과 그의 아내 마트료나, 하나님의 벌을 받고 인간 세상에 떨어진 천사 미하일, 부유하고 거만한 모피 신사와 쌍둥이 아이를 자식으로 받아들여 키우는 마리아를 통해 인간 삶의 본질과 한계, 그리고 삶의 원동력은 무엇인가에 대해 매우 쉽고 따뜻한 이야기로 전하고 있다.이 소설은 등장인물 미하일에게 비추는 한 줄기 빛처럼 다가왔다. 마치 19세기 러시아의 톨스토이가 21세기 대한민국의 김하수를 위해 쓴 책이라는 느낌을 받을 정도로 가슴 깊은 울림을 주었다. 집도 농토도 없이 세 들어 살면서 하루하루 구두 수선으로 자신들의 앞가림에 급급하던 세묜과 마트료나 부부가 고단한 일상에도 내면 깊숙한 곳에서 끌어올리는 사람에 대한 근본적인 사랑,온갖 부귀영화를 누리며 1년 동안이나 끄떡없이 신을 수 있는 가죽 장화를 만들어 달라고 주문한 신사가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갑자기 죽게 되는 일, 아무런 혈연관계도 없는 마리아가 엄마를 잃은 이웃집 쌍둥이를 자신의 아이처럼 사랑으로 기르는 일,인간에 대한 측은지심으로 하느님의 명령을 거부하다 날개를 꺾여 인간 세상으로 보내진 천사 미하일이 마침내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에 대한 세 가지 본질을 알아 가는 과정은 한편의 감동적인 드라마다. 이들의 행동이 가슴 깊이 다가온 것은 그 당시 심한 좌절과 고통 속에 삶과 죽음에 대해 깊이 고민하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이 책은 사람에게는 사랑이 있고, 없는 것은 자신에게 어떤 미래가 올지 알지 못한다는 것이며 그럼에도 사람들은 서로 사랑하면서 그 힘으로 어울려 살아간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일찍이 가톨릭에 몸담아 사회복지 현장에서 일하며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경상북도의회 의원으로 보람을 느끼고 꿈을 키우며 고향 청도의 군수 선거에 나섰다가 근소한 표 차이의 연이은 낙마로 스스로 능력과 한계에 대해 질문하며 힘들어하던 나에게 한 줄기 빛으로 다가왔던 톨스토이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는 한나절 앞도 내다볼 수 없는 부족한 인간이지만 내면의 사랑을 끌어올려 그 힘으로 함께 어울려 살아가라고 말했다.신이 주신 소명이라는 생각으로 군수로 당선되면서 ‘청도를 새롭게! 군민을 힘 나게’의 슬로건을 실제 현장에서 구현하고자 기꺼운 마음으로 노력하고 있다. 사랑하는 고향 청도의 발전과 군민 행복을 위해 일할 수 있는 오늘에 감사하며 “더 큰 사랑으로 군민들과 하느님께서 주신 소명을 실현하겠다”는 약속의 다짐을 한다.

2022-11-23

생각하지 못하는 아이

최병구 경상국립대 교수 큰 아이가 인라인 스케이트를 배우기 시작하며 주말에는 아이와 함께 경기장에 나가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경기장에 온 부모는 자신의 아이가 스케이트를 타는 것을 보며 90분의 강습 시간을 기다린다. 수업은 상급·중급·초급으로 구분해서 진행되지만, 초급반의 경우 아이들 실력 차이가 제법 난다. 이제 처음 강습을 받기 시작한 아이와 스케이트를 배운지 두 달이 넘은 아이는 같은 초급반이지만, 도저히 함께 배우기 어려울 정도의 실력 차이를 보이는 것이다.문제는 이런 구조에서 생겨났다. 처음 배우는 아이들은 자주 넘어진다. 하지만 초급반 강사는 다른 아이들을 지도하느라 넘어지는 아이 한 명을 챙겨줄 수가 없다. 보통의 부모는 넘어진 아이를 안타까운 눈으로 지켜보지만, 일부의 부모는 넘어진 아이를 일으켜 세우기 위해 경기장 안으로 달려온다. 90분의 시간은 귀한 우리 아이를 향한 부모의 마음이 고스란히 노출되는 시간이다. 그 시간이 불편해진 나는 경기장 주변을 달리는데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지만, 아이의 요청에 오랜 시간 자리를 비우기 어렵다.얼마 전 학과의 학생회장과 이야기하다 학생회비 사용처를 묻는 학부모의 전화를 자주 받는다는 말을 들었다. 학생회비의 사용처는 투명하게 학생들에게 공개하지만, 학생-부모 사이의 소통이 제대로 안 되자 답답해진 부모가 학생회장에게 직접 연락을 한 것이다. 이 정도는 귀여운 상황이다. 학생회 활동의 적절성까지 따지는 부모가 있다니, 이쯤이면 자식 사랑이 남다르다고 생각하며 넘어가기에는 석연치 않다.2010년대 중반, 교수에게 아이의 성적 이의신청을 한 엄마 이야기를 듣고 크게 놀란 적이 있다. 좀 더 시간이 지난 지금, 여전히 그런 부모는 존재한다. 아니 이제 부모는 대학에서 아이가 겪는 크고 작은 문제를 직접 나서서 해결해주는 존재로 자리 잡았다. 중·고등학교도 크게 다르지 않다. 부모가 직접 대입을 설계하고 자식이 따라가지 못할 때 생기는 갈등은 너무 많아서 열거하기도 힘들다. 당연히 그 과정에서 낙오한 아이들은 상처받고 정신적 고통을 겪게 된다.왜, 넘어진 아이가 스스로 일어나게 지켜보지 못하는 것일까? 왜, 성인이 된 자식이 겪는 어려움까지 해결해주려고 하는 걸까? 여러 이유가 복합적으로 얽혀 있어서 원인을 분석하기 쉽지 않다. 일단 지적하고 싶은 것은 입시 위주의 대한민국 교육이 만든 결과라는 점이다. ‘공부’하기도 부족한 아이를 위해 공부 이외의 일은 아예 생각하지 못하게 만드는 부모의 열정(?)을 온전히 부모 탓으로 돌리기는 어렵지만, 그들은 적지 않은 책임감을 가질 필요가 있다.과학기술의 시대에는 공부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스스로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요즘 대학이 강조하는 ‘플립러닝’이나 문제해결기반학습(PBL)은 이런 문제의식을 반영한 수업 방법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스스로 생각하여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은 갑자기 생겨나지 않는다. 우리 아이를 위한 길이 무엇인지 근본부터 다시 생각해보아야 한다.

2022-11-23

집회와 문화

오낙률 시인·국악인 산야에 무리를 지어 피는 꽃의 광경을 축제적 의미로 생각하는 것은 아마도 사람들의 일반적 시각일 것이다. 그러나 많은 꽃이 모여 피는 모습에서 그 꽃들이 모여서 피는 것에 목적이 있고 인간에게 요구사항이 있다고 가정한다면 어떠한 느낌이 들까? 아마도 그 광경은 오늘날의 인간을 상대로 하는 꽃들의 집회 내지는 시위라 해도 되지 않을까 싶다. 더 아름다운 꽃을 피우고 싶어 더 좋은 자연적 환경을 인간에게 요구하는 꽃들의 절박한 집회라 해도 되지 않을까 싶다. 해마다 철마다 사람들은 영문도 모르고 야단법석을 떨며 꽃 잔치를 즐긴다고 가정한다면 아마도 그곳에 모인 사람들의 낮 빛은 꽃보다 더 붉어야 함이 마땅하지 않을까 싶다. 집회라는 것은 애당초, 인간의 전유물이 아니고 나약함이 모여 강함을 이루어 내려는 여린 생명들의 소박한 지혜가 아닐까도 싶다.언젠가 서울역 인근에서 벌어진 어느 단체의 집회 현장에서 의도치 않게 충실한 관객이 되어드린 기억이 있다. 무릎이 불편한 탓에 지하철역에 내려서 행사 현장까지 걷는 불편을 덜고 싶은 마음에 택시를 탔는데, 그 순간의 선택이 십 분이면 갈 곳을 한 시간 십 분 만에 도착하게 한 황당한 기억이다. 주말이라서 그런지 서울역 주변과 종로 주변에 조그만 공터만 있어도 각기 다른 이름의 단체들이 다투어 집회장으로 이용하고 있었다. 택시기사님의 말에 의하면, 한 단체는 집회 참가자가 6만 명이나 된다고 하였는데 그들은 여러 대의 커다란 방송 차량을 앞세우며 거리 행진을 하고 있었다. 교차로마다 수많은 경찰이 동원되어 교통 통제를 하고 있었고, 아이러니하게도 그때 느낀 경찰의 모습은 도로에서 볼모로 잡혀있는 시민은 안중에도 없고 오직 시위참가자를 위한 경찰처럼 느껴졌었다. 종로 일대가 교통지옥이 되었는데도 그들은 쩌렁쩌렁하게 확성기로 구호를 외치며 거리 행진을 하고 있었다.시민의 불편을 볼모로 자신들의 요구사항을 충족시키려는 행위는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집회가 아니다. 이는 마치 강력범죄 사건을 다루는 영화에서나 봄 직한 인질극과 별반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민주주의 탈을 쓴 조직적 폭력이라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마도 집회와 시위로 인해 도로 한복판에서 몇 시간을 인질로 잡혀있던 사람들은 감히 그 행사 주최 측에 항의할 엄두도 못 내었을 것은 뻔한 일이고, 오히려 다수의 군중과 개인 간에 느낄 수 있는 공포심마저 느끼지 않았을까 싶다.이제 우리나라도 집회와 시위가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아가고 있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해서 필자는 이참에 국가에서 집회와 시위를 위한 공원이나 대규모 광장 하나쯤 조성하면 어떨까 싶다. 국제 공항을 건설하듯, 변두리 평야 어디쯤 여의도 면적 크기의 부지를 확보하여 그곳으로 국회의사당도 옮기고 대통령 집무실도 옮기고 신문사, 방송국 등 각종 언론매체도 이주시키고, 모든 집회와 시위를 그곳에서만 이뤄지도록 법령도 만들고 해서, 제발 도심 한가운데서 거리 행진을 벌이는 그런 이기적인 집회가 ‘집회문화’라는 탈을 쓰고 버젓이 거리를 활보하지 않았으면 좋을 것 같다.

2022-11-23

소설(小雪)즈음에

배문경 수필가 차창 밖으로 풍경이 지나간다. 단풍을 보려고 창문을 열자 찬바람이 먼저 들어앉는다. 가을인가 했더니 십일월이 벌써 겨울이다. 바람에 내려앉은 낙엽이 차바퀴 바람에 춤을 춘다. 따라나서는 은행잎이며 가로수 잎이 버석하다.김동길은 나이만큼 세월은 가속도가 붙는다고 했던가. 흔하고 흔한 이야기로 모를 사람이 없지만 세월이 내달리는 속도에 현기증이 난다. 하루하루가 활시위를 떠난 화살촉처럼 저 끝 어딘가를 향해 달리고 있다.그 화살은 계속 날아가지만 불혹을 넘기고서야 조금씩 마음이 편안해진다. 집착과 안달하던 시간이 조금씩 미풍처럼 부드러워진다. 사람도 사랑도 그리움도 한 발씩만 벗어나면 편안해지는 것을 놓지도 버리지도 못하고 늘 앵앵거렸다. 그 마음이 엉덩이를 깔고 앉으니 그 만큼 편해진다.친구들과 함께 한겨울 대관령을 갔었다. 언덕을 오르자 때 묻은 양떼들이 마른 짚을 먹으려 우리 곁으로 다가왔다. 그림에만 보던 양들이었다. 중년의 여자들이 양털이 정말 옷에 사용 되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 얼굴에 와 닿던 찬 기운 때문에 웃음꽃이 피었다. 일 년에 한 번 만날까 말까하는 여고 친구들은 쟁여놓은 이야기보따리로 2박3일이 늘 모자란다. 더 늙기 전에 제주도로 일본이든 중국이든 외국여행을 떠나자며 호들갑을 떨었다.오래전, 한여름 바닷가에 아이들을 풀어놓으면 밀려오던 파도와 달리고 모래성을 쌓으며 시간을 보내고 와서는 배가 고프다했다. 수다삼매경에 빠져 있다가 아이들을 건사하고 푸른 바다 앞에서 마시던 한 잔의 커피는 어쩌면 힘들게 낳은 아이들로부터 잠시잠깐의 여유로운 시간이었다. 이제는 현관으로 들어서는 아이들이 자신의 역할을 해내는 것을 보면 대견하다. 조바심 내던 시간들이 안정적이고 등두드릴만큼 커줘서 고맙기까지 하다.나이 들고 나이를 먹고 나이가 차는 일이 늘고 지치고 힘들지 만은 않다. 먹고 사는 일로 바쁜 일상을 살다 문인협회 일을 보조하다보니 거의 한 달에 한 번씩은 행사를 한다. 눈부신 햇살 아래 넉넉한 날, 백일장에서 환하게 웃음 짓는 아이들의 표정에서 노고가 절로 녹는다. 뿌듯하고 감사하다. 넉넉해진 마음자리를 느낄 때가 많다.혼자 토함산 등산을 하고 내려왔다. 주말이라 제법 사람들로 버스를 기다리는 승강장이 붐볐다. 버스를 기다리는 또래의 여자에게 다가가서 어디에서 왔느냐고 물었더니 대구에서 왔단다. 남산 산행 후 토함산을 다시 오르고 내려온 상황이었다. 등산을 좋아한다는 것과 또래라는 것에 버스손잡이를 붙잡고 흔들리면서도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쉬 나를 털어놓고 타인의 삶에 공감할 나이란 얼마나 편안한가.소설가 박경리는 “다시 젊어지고 싶지 않다. 모진 세월 가고, 아아…. 편안하다. 늙어서 이렇게 편안한 것을,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고 했고 노년의 박완서 또한 “나이가 드니 마음 놓고 고무줄 바지를 입을 수 있는 것처럼 나 편한 데로 헐렁하게 살 수 있어서 좋고 하고 싶지 않은 것을 안 할 수 있어 좋다. 다시 젊어지고 싶지 않다. 하고 싶지 않은 것을 안 하고 싶다고 말할 수 있는 자유가 얼마나 좋은데 젊음과 바꾸겠는가?”라고 했다.수레가 달려봐야 얼마나 달릴 수 있었을까. 기차가 생기고 나서 인상파 화가가 생겼다는 일설이 있다. 기차가 속도를 내며 달리자 들판의 나무며 꽃이 흐려지기 시작했다. 속도감은 낱낱이 상세히 보이던 정밀을 놓치는 대신 커다란 시각적 변화를 가져왔다. 흐리게 그러나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는 시야와 마음의 부피도 커진 만큼 풍요롭고 편안해질 수 있다. 시야가 넉넉해지는 것이 화풍(畵風)의 변화만은 아닐 것이다. 바삐 내달리는 인생 후반전이 더 많은 것으로 마음을 채우는 일이 된다. 살아온 만큼 쌓아둔 곳간의 곡식처럼 이제 마음의 양식으로 넉넉해지면 좋겠다.따뜻한 겨울 준비로 소설(小雪)에 김장을 챙긴다. 배추를 소금에 절이고 씻고 물을 빼고 양념에 버무려 통에 담으며 늘 해 오던 일이 주는 감사를 손으로 느낀다. 익어 식탁에 오르는 김치처럼 일상이 잘 버무려져 풍미를 더해갈 일이다. 익어감에 감사하며.

2022-11-23

을유(乙酉)

육십갑자 중 스물두 번째에 해당하는 을유(乙酉)다. 천간(天干)은 을목(乙木)이고, 지지(地支)는 유금(酉金)이다. 을목과 유금은 음 기운이다. 을목은 연약한 나무나 담쟁이넝쿨, 꽃 등으로 여성적이다. 유금은 금(金)의 결정체로서 단단함을 가진다. 동물로는 닭이다.을유일주(乙酉日柱)는 겉모습이 화초다. 여린 나무라 부드럽지만, 속은 유금의 속성으로 날카로운 칼의 형상이다. 겉은 부드럽고 속은 단단한 외유내강한 사람이다. 남의 눈치를 보지만 자존심이 강하고 다른 사람과는 타협을 싫어한다. 어떤 위기에서도 풍파를 이기고 나온 화초같이 노련한 지혜와 고집이 있다.을유일주는 단단한 바위 사이에 핀 화초, 담장을 타고 자라는 능소화로 비유된다. 남을 의식하여 좋게 보이는 것을 좋아한다. 출세 지향적이며, 우아하고 단아하다. 내적으로는 끊임없이 불안하고 흔들린다. 뿌리를 내리기 위해서 성실하고 적응력이 뛰어나다.중국 당나라 때 백거이문집 ‘유목편’에 나오는 시다.“꽃나무 능소화는 곱기도 하여도 고상하다고는 못하네/ 옆에선 나무를 타고, 넝쿨 넝쿨 백 자나 뻗어 나가며 발부리 돋아 내어 나무줄기에 붙이고, 나뭇가지 끝마다 꽃을 피우네/ 스스로 꿋꿋함을 뽐내며 태풍인들 나를 흔들까 으스대지만/ 어느 날 아침 의지하던 나무가 쓰러지고 나니/ 홀로 서있는 것이 어느새 깃발처럼 나부끼네/ 문득 동풍이 불어 닥치니 아침밥 먹기도 전에 부러지누나/ 해 뜰 때 구름 같던 꽃들이 해도 지기 전에 쓰러져 땔나무로 되는구나.”스스로 일어서려는 사람들에게 이야기한다. 맥없이 쓰러지는 저 꽃나무를 배우지 말아야 한다. 남의 세력을 등에 업고 스스로 뽐내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그렇지만 사람은 처한 환경에 따라 행운과 불행이 결정된다.환경이 뿌리를 내리기 어렵기 때문에 마음이 편하지 않지만, 날카롭고 끈질긴 성격으로 공과 사는 분명하다. 감정기복이 심한 편이다. 자신이 생각하는 이상은 높지만 결과에 만족하지 못하고 스스로를 괴롭게 만들기 때문에 신경질적인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아무리 어려운 역경이라도 겨울에 꽃피는 인동초 같은 끈질김도 있다.을유일주는 지지 유금(酉金)이 도화(桃花)를 뜻하는 글자이기에 감각적인 면이 뛰어나서 연예계나 예술계에서 능력을 발휘한다. 동물로는 닭이다. 닭 벼슬처럼 남녀 모두 고고한 이미지나 유려한 모습이 있는 분들이 많다. 남자는 부드럽고 지적인 얼굴에 날카롭고 차가워 보인다. 여자는 화분에 심은 꽃처럼 아름답고 치장을 잘한다. 특히 평균 이상의 미인이 많다.을유일주는 지지 유금(酉金)안에 경금(庚金)과 신금(辛金)이 차가운 칼을 가지고 있는 형상이기에 냉정한 기질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 서리가 내릴 정도로 차가운 사람으로 변한다. 특히 원수가 되면 언젠가는 복수를 하고 마는 기질이 있다. 가급적 원한을 살 일이나 말을 하지 않는 것이 좋다. 여자의 경우는 질곡의 삶을 암시하기도 한다.프랑스 작가 에밀졸라(1840~1902년)의 소설 ‘목로주점’은 성실하고 착했던 여성 제르베즈의 삶이 자신의 의지나 노력과 상관없이 숙명적으로 철저하게 파멸되어가는 과정을 매우 사실적으로 그리고 있다.절름발이이지만 착하고 예쁜 제르베즈는 가족과 함께 파리에 정착한다. 그러나 씀씀이가 헤프고 바람둥이인 남편 랑치에는 제르베즈를 버리고 다른 여자와 도망쳐 버린다. 그녀는 불행을 딛고 세탁소의 점원이 되어 열심히 살면서 자식들의 뒷바라지에 최선을 다한다.이때 기와장이 쿠포의 거듭된 청혼에 그녀는 재혼을 하게 되고, 일시적이나마 안정과 행복을 찾는다. 그러나 쿠포가 작업 중 추락사고를 겪으면서 다시 몰락의 길로 들어선다. 사고 이후 불쑥 나타난 전남편 랑치에가 한집에서 기숙하게 되고, 그녀의 몰락은 가속된다. 제르베즈는 세탁소를 처분하고 남의 집 세탁부로 나선다. 이 와중에 딸 나나도 가출과 타락의 길을 걷게 된다. 그리고 쿠포도 알코올 중독으로 비참한 삶을 마감한다. 제르베즈도 역시 알코올 중독과 정신이상으로 죽고 만다.19세기 자연주의는 인간의 삶이란 개인의 노력과 구상과 결심에 의해서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시대의 상황과 유전적 소인에 의해서 만들어진다는 점을 보여준다.우리나라에서는 계용묵(1904∼1961)의 소설 ‘백치 아다다’가 좋은 예다. 아다다는 백치, 벙어리에다가 소박데기다. 노총각 수롱이는 사고무친에다 가난뱅이였다. 볼품없는 외모, 제 깜냥 갖고는 평생 장가 한 번 들어보지 못하고 죽을 판에 아다다를 아내로 맞아들인다. 그녀가 비록 불구였지만 부지런하고 순진해서 수족처럼 움직여주니 더 바랄 데 없다. 거기에다 명색이 김초시의 딸 아닌가. 류대창 명리연구자 둘은 신미도라는 섬 마을로 도망쳐 살림을 차린다. 수롱이가 아다다에게 뭉칫돈을 꺼내면서 밭을 사서 둘이 열심히 농사지으면 큰돈을 벌 것이라고 신이 났다. 하지만 아다다는 깊은 수심의 그림자가 드리워진다.첫 남편과의 짧은 결혼생활이 생각난 것이다. 싸들고 간 지참금 덕에 한 밑천 잡게 되자. 번듯한 여자를 들여놓고서는 아다다를 소박을 놓아버렸다.수롱이도 그럴지 모른다는 생각에 뭉칫돈을 꺼내어 바다로 가서 흩뿌려 버린다. 그러자 수롱이는 아다다를 개 패듯이 팬 다음 바다에 던져버린다. 결국 돈 없이 가난해도 사랑하며 살 수 있다는 아다다의 희망은 파도에 묻혀 버렸다.유전과 환경이 삶의 고비와 곡절을 온통 지배한다는 생각은 그 시대의 편견인 듯 여겨진다. 사람은 물건처럼 단순한 존재가 아닌 것이다. 신체결함을 지닌 채 살아가는 하층민의 삶에도 충실함과 소박함, 수고로움이 녹아있다. 경제개발 과정을 통해 성취한 부와 안락한 생활을 위해 숱한 아다다를 바다에 던지지는 않았는지 되돌아본다. 인간의 존엄성을 되새기면서 진정한 삶의 의미가 무엇인지 물어 본다.

2022-11-23

마음의 상처

조현태수필가 늙은 어머니를 모시고 어렵게 살아가는 한 남자가 있었다. 폐품을 모아 힘겹게 생활하는 중에 치매를 앓던 어머니마저 돌아가셨다.그 남자에게 남은 가족이 있다면 칠 년여를 함께 살아온 ‘똘이’라는 개 한 마리. 그 개에게도 남자가 유일한 가족이지만 갑자기 사라졌다. 왜냐면 어느 날 그 집에 화재가 발생해 집이 다 타버렸기 때문이다. 남자는 크게 화상을 입어 119구급차로 이송되어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었다. 똘이 역시 화상으로 다리를 절룩거렸지만 아픈 것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오직 주인 남자가 없다는 것만이 관심이었다. 전소된 집터에 널브러진 남자의 바지 하나와 평소에 똘이가 누웠던 자리만 보면 애타게 주인을 찾는 소리를 질렀다. 바지에서 맡아지는 익숙한 주인 냄새를 맡을 때마다 길게 우짖는 소리. 집 앞을 지나다니는 차량을 유심히 살피는 눈길. 갑자기 혼자만 남겨두고 왜 주인도 사라지고 집도 없어졌는지 모르겠다는 똘이의 표정은 불안하고 어둡기만 했다.한편 남자는 매우 아픈 화상치료에 정신이 팔려 똘이를 깜빡 잊고 있었다. 알고 보니 똘이도 화상을 입은 채 절룩거리면서도 자기를 애타게 찾아다니고 있었다. 벌써 한 달이 넘어가는데 똘이는 생각하지도 않았던 자신을 탓하며 울먹인다. 그렇다고 개를 병원으로 데려올 수도 없으며 만나러 나가는 외출도 허용되지 않으니 안타까울 뿐이었다.이런 사실을 알게 된 이웃이 나섰다. 개를 붙잡아 치료도 하고 먹이도 제공했다. 그러나 아무것도 먹지 않고 불안한 눈만 굴리고 있었다. 갑자기 당한 생이별이 얼마나 큰 간극을 벌려놨는지 훤히 보이는 장면이었다. 동물병원 수의사가 말했다. 육체에 생긴 상처로 아프고 쓰라린 고통은 별거 아니지만 생이별하게 된 마음의 상처는 설명되지 않는 깊은 고통을 남긴다고 했다. 둘 사이에 생이별을 해결해 줄 방법은 다시 만나게 하는 방법밖에 없었다. 우선 주인의 영상을 보여주고 ‘어서 와, 밥 먹어’라는 녹음된 음성도 듣게 했다. 익숙한 목소리에 관심을 갖는 듯 하다가 주인의 모자와 지갑을 먹이 곁에 놓아주고서야 똘이가 경계를 풀고 먹이를 조심스럽게 먹기 시작했다. 병원에서도 특별히 배려하여 똘이를 병원 뒷마당까지 데려와도 된다고 허용했다. 이제는 영상이 아니라 직접 만나는 기쁨까지 누리게 해 주었다. 미리 뒷마당에 나와 똘이를 애타게 기다리는 주인의 감정과 멋모르고 실려와 ‘똘이야’부르는 정겨운 소리를 얼른 알아차리고 뛰어가서 안기고 핥아주는 감정이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단 둘만 남은 가족인데 재활치료가 끝나면 다시 한 집에서 더욱 사랑하며 살 것만 같았다.이러한 형편을 알게 된 이웃들이 힘을 합하여 불타버린 집도 새로 마련하고 세간과 똘이 집까지 마련하여 주었다. 텔레비전에서 이 방송을 시청하면서 콧날이 찡 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남의 마음에 상처를 내는 일이 처처에 있다. 그나마 상처 준 잘못을 깨달으면 똘이처럼 치유가 되겠지만 상처를 주었는지조차 모르고 있다면 아! 똘이보다 못한…. 필자는 희망을 갖는다. 우리에게는 선하고 아름다운 이웃이 있다는 것을.

2022-11-22

모기보다도 간담 서늘한

이재현동덕여대 교수·교양대학 “맹호가 울 밑에서 으르렁대도 / 나는 코 골며 잠잘 수 있고 / 긴 뱀이 처마 끝에 걸려 있어도 / 누워서 꿈틀대는 꼴 볼 수 있지만 / 모기 한 마리 왱 하고 귓가에 들려오면 / 기가 질려 속이 타고 간담이 서늘하구나 / 부리 박아 피를 빨면 그것으로 족해야지 / 어이하여 뼈에까지 독기를 불어넣느냐”조선의 실학자 다산 정약용의 문집 여유당전서(與猶堂全書)에 실려 있는 한시 ‘증문’(憎蚊, 얄미운 모기)의 첫 8행이다. 조선 시대라는 것을 감안하면 73세라는 나이로 장수를 하기도 했지만, 조선 후기 유학의 한 학풍인 실학을 기반으로 하여 천문, 지리에서부터 수학, 의학, 동물학에까지 학문적 업적을 남기고 사회, 경제, 사상의 거의 모든 영역에 걸친 500여 권이라는 엄청난 저서를 남긴 정약용은 2012년의 유네스코 세계기념인물로 선정되기도 하였다.물론 이 시에서의 모기는 호랑이나 뱀과 같은 거대 권력 권력이 아닌 말단 관리의 횡포를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이기는 하지만 위대한 학자인 정약용에게도 모기는 간담을 서늘하게 하는 존재였음은 분명하다.코로나19 팬데믹 사태가 3년째 겨울을 맞고 있다. 11월 22일 현재 전 세계의 확진자 수는 6억4천160여만 명에 사망자는 662만 명에 이르고, 한국 역시 인구 절반 가까운 2천658만여 명의 확진자에 사망자는 3만 명이 넘었다. 하도 코로나가 입에 오르내리다 보니 마치 코로나가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희생자를 발생시킨 전염병인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기까지 한다. 그러나, 역사상 사람을 가장 많이 해친 전염병은 말라리아이다. 그리고 이 말라리아 전염병을 인간에게 퍼뜨린 것이 바로 모기이다.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만든 영화 ‘쥬라기 공원’(Jurassic Park)에서는 호박에 갇혀 화석이 된 모기가 빨아 먹은 공룡의 피에서 DNA를 복제하여 공룡을 부활시킨다. 이처럼 모기는 인류보다 훨씬 전에 지구상에 등장하였다고 한다. 그 생명의 연원이 오랜 만큼 모기는 지속적으로 인간을 괴롭혀 왔고 엄청난 해를 끼쳤다. 2019년에 한국에서 번역 출판된 티모시 C. 와인가드가 쓴 ‘모기 : 인류 역사를 결정지은 치명적인 살인자’라는 책에 따르면, 모기가 유발한 질병으로 사망한 사람의 숫자가 연간 100만 명에서 300만 명에 이르고, 인류가 지구상에 출현한 이래 약 20만 년 동안 존재했던 1천80억 명의 사람 중에서 약 520억 명의 목숨을 모기가 앗아갔다고 한다.이쯤 되면 코로나는 별 것 아니구나 하는 생각에까지 이르게 된다. 우리나라의 확진자 수는 아직도 매일 1만 명에서 5만 명대를 오르내리고 있지만 사람들은 이제 그 숫자의 많고 적음에 그다지 동요하는 기색을 보이지 않는다.나는 한국에서 돌고 있는 색깔 덧씌우기라는 전염병이 코로나보다도 모기를 매개로 한 전염병보다도 더 우려스럽다. 단순히 색깔 덧씌우기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색깔이 다르다고 생각되면 서로를 비난하고 그러다가 급기야는 상대를 향한 눈과 귀를 막고 문을 닫아 버리는 지금의 한국사회의 모습이 모기보다도 모질고 간담이 서늘하게 느껴진다.

2022-11-22

“대~한민국” 함성이여

우정구 논설위원 붉은 악마는 한국 국가대표 축구팀 서포터즈의 이름이다. 1997년 PC통신의 한 축구동호회가 국가대표팀을 공식적으로 응원할 서포터즈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모으면서 탄생했다.붉은 악마의 응원전은 이듬해 프랑스 월드컵 아시아지역 1차 예선부터 시작됐고, 그해 아시아지역 최종 예선전인 한·일전 때는 길거리 응원전으로 확대됐다. 2002년 한·일 월드컵에 와서는 길거리 응원이 절정에 이르러 대회기간 동안 동원된 연 인원이 무려 2천400만명에 달했다고 하니 실로 놀라운 일이 벌어진 셈이다.붉은 악마란 이름은 1983년 멕시코 세계 청소년 축구 선수권 대회에서 우리나라가 4강에 올라 전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을 당시 외국 언론들이 대표팀을 ‘붉은 악령’으로 부른 데서 유래했다. 붉은 색은 1954년 스위스 월드컵 때부터 선수들이 상의를 붉은 색으로 입어와 대표팀 상징 색으로 어색함이 없다. 붉은 악마는 치우천왕기를 응원기로 쓰는데, 치우천왕은 환인의 후손으로 전쟁에서 반드시 승리한다는 전설의 군신(軍神)으로 알려진 인물이다.일본도 국가대표 공식 서포터즈로 ‘울트라닛폰’이 있고, 중국은 ‘볼에 미친 사람’이란 뜻의 ‘치우미(球迷)’란 이름의 서포터즈가 있다. 그러나 우리의 붉은 악마처럼 외국언론으로부터 큰 주목을 받는 활약상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2022년 카타르 월드컵이 개막되면서 붉은 악마의 서울 광화문 거리 응원전을 두고 갑론을박이다. 2002년 월드컵 당시 국민을 하나로 만든 응원이 필요하다는 의견과 이태원 참사가 있은지 얼마 되지 않아 거리응원은 시기적으로 부적절하다는 의견이 맞서 있다.결정이 어떻게 나든 “대~한민국”의 함성은 또다시 울려 퍼질 것이다. /우정구(논설위원)

2022-11-22

“대구가 삼성 비메모리 사업의 최적지”

심충택 논설위원 지난 주말 열린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회장의 추도행사가 주목을 받으면서 삼성과 대구와의 운명적인 인연을 떠올리게 된다.이 회장이 대구를 첫 사업 장소로 선택한 것은 1930년대 일제강점기 때다. 1938년, 28세였던 그는 중국과 만주를 떠돌며 중계무역을 경험한 후, 서문시장(큰장) 맞은편에 전문 경영인 두 명과 함께 지금 삼성그룹의 모태인 삼성상회를 설립했다. ‘별표국수’라는 브랜드를 가진 삼성상회는 창업초기부터 국수를 생산하면서 큰돈을 벌었다. 6·25전쟁 중에는 별표국수가 피난민들의 주식(主食)이 되다시피 했다. 전쟁 중 삼성상회 앞에는 매일 피난민과 대구시민들이 몰려와 장사진을 쳤다고 전해진다. 그는 삼성상회에서 얻은 수익금으로 부산에 삼성물산을 재건했다.이 회장은 1954년에는 대구에 제일모직 공장을 짓기 시작했다. 대구는 당시에도 섬유산업이 발전한데다, 서문시장에는 전국적인 섬유류 도매상이 몰려 있었다. 여기에다 대구시가지를 가로지르는 신천이 공업용수를 공급해 주었기 때문에 공장입지로는 최적지라는 판단을 했기 때문이다. 그는 신천인근에 있는 침산동 논밭 7만여 평을 공장부지로 확보했다.제일모직 건설 당시 이 회장은 가건물에 사장집무실과 숙소를 만들고, 공사현장을 직접 지휘했다. 그는 특히 제일모직 사원들의 기숙사를 지을 때 와세다대학 재학 시절에 읽은 ‘여공애사(女工哀史)’라는 소설에 영향을 받아 많은 공을 들였다고 한다. 1956년 5월 2일 제일모직이 ‘골덴텍스’ 생산을 시작한 이후에도 이 회장은 자주 대구에 내려와 제일모직 숙소에서 기거했다. 대구시는 중구 ‘삼성상회’ 터와 제일모직이 있던 자리인 북구 대구삼성창조캠퍼스까지 4㎞ 구간을 ‘경제 신화 도보길’로 조성해, 이 회장의 발자취를 기념하고 있다.삼성그룹을 승계한 이재용 회장이 최근 비메모리 반도체분야 투자적지를 찾는 것으로 알려져 관심을 끌고 있다. 현재 전 세계 비메모리 시장에서 삼성은 2위를 차지하고 있지만, 1위와의 격차가 매우 큰 상황이다. 삼성전자가 ‘반도체 초격차(경쟁업체가 추격할 수 없는 기술 격차)’를 달성하려면 비메모리 반도체 시장을 결코 놓쳐서는 안 된다. 삼성전자는 오는 2030년까지 비메모리 반도체 분야 연구개발(RD)과 생산시설 확충에 133조원을 투자하고 전문인력 1만5천명을 채용한다는 계획도 발표해 놓은 상태다.삼성그룹이 잘 파악하고 있겠지만, 대구에 있는 경북대와 디지스트(DGIST)의 비메모리분야 RD 인프라는 국내 어떤 대학보다 경쟁력이 있다. 대구·경북지역 대학에서 한 해 배출되는 반도체 전문인력도 수도권에 뒤지지 않는다. 특히 대구에는 K-2군공항이 이전하면 정주여건이 최고 수준인 후적지가 생겨난다. 홍준표 대구시장도 취임 직후부터 비메모리 반도체 대기업 유치를 위해 전력을 쏟고 있다.이재용 회장이 최첨단 반도체 생산 인프라를 갖춘 투자처를 찾는다면, 삼성상회와 제일모직 설립 때 할아버지 이병철 회장이 선택한 것처럼 대구가 최적지라는 조언을 하고 싶다.

2022-11-22

상대평가라는 허상

어느새 겨울이 다가오고 있다. 날이 추워졌고, 낙엽들이 우수수 떨어진다. 한 학기가 끝나간다는 신호다. 학기 내내 얼른 종강만 했으면 좋겠다고, 하루라도 좀 맘 편히 쉬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는데 막상 종강이 가까워지자 괜시리 마음이 바빠진다. 편치 않은 마음으로 아이들을 평가할 방법들을 점검한다. 내가 누군가를 평가한다는 게 마음을 불편하게 만든다.내가 맡은 수업은 말하기 수업과 글쓰기 수업인데, 객관적인 평가가 다소 어려운 과목이다 보니 어떤 기준으로 평가를 하는 게 좋은 방법인지 항상 궁금해진다. 사실 말하기와 글쓰기는 개인의 노력 여하도 중요하지만, 어느 정도는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부분이 존재하는 게 사실이라 결과물을 중심으로 평가를 하는 것이 옳은지 늘 고민이 된다. 그렇다고 해서 아이들의 말하기와 글쓰기를 성취도로 평가를 하자니, 객관적인 결과물이 눈앞에 놓여있어 그 또한 석연찮기는 마찬가지이다.그래서 일종의 대안으로 생각한 것이 상호평가였다. 평가 점수의 절반은 내가 책정하고, 나머지 절반은 같은 반의 학생들이 책정하도록 했다. 단순히 점수만이 아니라 피드백 또한 해줄 것을 부탁했다. 생각보다 학생들이 성실하게 평가를 해주었던 덕분에, 1학기 때에는 성적 평가를 하기 꽤 수월했던 것 같다. 또, 해당 성적에 대해서 이의가 들어온 경우에도 이를 해명하고 설득하기에 꽤 도움이 되었다. 어쨌든 자신 또한 평가의 주체였던 경험이 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하지만 이렇게 학생들을 각각의 점수에 따라 줄을 세우더라도 여전히 의구심이 남곤 한다. 나는 정말 아이들을 잘 가르친 걸까? 아이들은 내가 가르친 걸 잘 흡수한 걸까? 막상 이런 방식으로 평가를 하다보면 매 수업 성실하게 임했던 학생들이 항상 좋은 결과를 받는 것은 아니기에 더욱 그런 것 같다. 수업을 성실하게 들은 학생이 좋은 점수를 받는 것이 맞는 것인지, 아니면 재능이든 뭐든 좋은 결과물을 내놓는 학생이 좋은 점수를 받는 것이 맞는 것인지 늘 헷갈리곤 한다. 어쨌든 둘을 절충하는 방식으로 성적을 내곤 하지만, 그렇다고 의구심이 사라지지는 않는 것 같다.사실 좀 더 직접적으로 말하자면, 나는 상대평가 방식을 썩 신뢰하지 않는다. 절대적인 성취도가 아닌 상대적인 결과를 가지고 평가를 하는 것이다 보니 그다지 성취도가 높지 않더라도 한 반 안에서 상대적으로 잘하기만 한다면 A+를 받을 수 있다. 반면에 운이 안 좋게 학업 집중력이 높은 학생들이 많은 학과에서는 비슷한 성취도를 보이더라도 같은 성적을 받으리라 보장할 수 없다. 예컨대, 수업 반마다 성적을 책정하다보니, 한 반 내에서는 큰 문제가 없지만 그걸 학교 전체의 규모로 놓고 보게 되면, 어쩔 수 없는 결과적인 불평등이 생기곤 한다.그리고 또 한 가지, 반 전체의 분위기가 다 같이 열심히 하지 않는 방향으로 갈 때면 정말 걷잡을 수 없어진다. 어차피 성적은 상대적으로 결정 나는 것이다 보니, 다른 아이들보다 약간만 열심히 하면 될 뿐, 교강사의 기대에 부응하고자 노력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대학 내 상대평가 비중의 강화가 경쟁력 강화를 위함이었다는 것을 떠올려보자면, 이건 아무래도 예상치 못한 폐해가 아닐까 싶다. 임지훈 2020년 문화일보, 서울신문 신춘문예 평론 부문에 당선된 문학평론가. 한양대 국문과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학교의 목적이 지식의 습득이라는 점을 생각해보자면, 이처럼 지식의 습득 여부가 아닌 상대적인 결과에 따라 성적을 매기는 건 어쩐지 주객이 전도된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입사를 비롯한 여러 과정에 있어 대학에서의 성적이 공신력과 변별력을 가질 수 있도록 상대평가의 비중을 늘렸다고는 하지만, 그것이 과연 지식의 습득에 도움이 되는 결정인지에 대해서는 왠지 고민이 부족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인문학 교사의 관점에서 생각해보자면, 아무래도 아이들이 좋은 성적을 받기 위해 거기에 골몰하는 것보다는 수업 시간을 통해 이후에는 해볼 수 없는 고민을 해봤으면 싶다. 사실 입사를 비롯한 이후의 과정들에 대학에서의 성적이 그렇게 큰 변별력을 갖지도 못하는데, 왜 학생들이 오직 좋은 성적을 받는 것에만 골몰하도록 만드는 것일까. 대학교육의 실패란, 단지 사람들이 상식이 부족해진다거나 하는 지점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이처럼 사람들을 점점 더 아무런 사유도 질문도 하지 않도록 만들어가는 그 과정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하지만 어쨌든, 이번 학기에도 나는 학생들을 평가하고 제도와 규칙에 따라 성적을 배분하게 될 것이다. 어떻게 하면 이런 고민들을 학생들에 대한 평가에 녹여낼 수 있을지, 과연 이런 고민이 언젠가 끝나기는 할지. 어쨌든 아이들이 조금이라도 삶에 대해 고민할 수 있는 시간을 제공할 수 있도록, 조금이라도 좋은 평가방법을 고민해보는 수밖에 없겠다.

2022-11-22

나의 결핍이 자랑이 될 때

낙엽이 진 자리는 아름다운 것들로 채워질 것이다. /언스플래쉬 쌀쌀한 바람이 불어오는 늦가을, 떨어지는 낙엽을 바라보며 생각한다. 지금 나는 잘살고 있는 걸까? 제대로 된 답을 얻을 수 없다는 걸 알지만 이상하게 이런 질문을 던지는 걸 멈출 수가 없다. 생각은 오후의 그림자처럼 자꾸만 길어진다. 그간 내가 이뤄온 성취와 다짐, 소망, 꿈꾸는 미래의 방향성이나 지긋지긋하게 여기는 나의 단점까지 떠오른다. 스스로가 대견하다가도 한없이 작고 연약한 존재처럼 느껴진다. 그러다 콧잔등 위로 눅진한 빛이 내려앉으면 불현듯 하나의 깨달음이 밀려온다. 아, 가을이구나. 그래서 이렇게 감상적이구나.그런 날들이다. 달력을 한 장 넘기면 한 해의 끝이 다가오고, 몇 밤 자고 일어나면 새로운 해가 밝아있을 것이다. 올해의 나는 어땠던가. 이번 해는 제대로 살아냈는가. 뭔가에 쫓기듯 바쁘게 살았지만 매일같이 실수하고 있다는 생각을 지워버릴 수 없었고 가장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는 것만 같았다. 내 발걸음이 중심이 아닌 언저리를 돌고 있다는 감각. 오랜 시간 동안 내 안에 끈덕지게 붙어있는 우울을 가만히 들여다본다.요즘에는 잠이 부쩍 많아졌다. 온종일 잠자는 것도 가능하겠다고 느껴질 때도 있다. 가끔은 잠자는 행위가 최후의 도피처럼 느껴진다. 마음이 훼손되었다고 느끼는 날, 절망이나 고통과 같은 불행의 감정들이 내 안으로 썰물처럼 밀려드는 순간이 오면 나는 침대에 누워 두 눈을 감는다. 캄캄한 어둠 속에서 지금과는 전혀 다른 세계로 향함을 상상한다. 거기에서 나는 단 하나의 부족함도 없는 완벽한 사람이 된다. 통장에 돈이 넘치도록 가득하고 모든 사람의 존경을 받으며 근심이라곤 없는 하루를 보내는, 비극적 사건은 절대 찾아오지 않으며 주변 이들에게 자신의 것을 기쁘게 내어주는 그런 사람.그건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인간의 모습이라는 걸 안다. 어렸을 때는 그런 종류의 사람이 정말 있는 줄만 알았다. 그들이 세상의 다수라고 생각했던 적도 있었다. 나를 제외한 모두가 낙관적인 세계에서 산다고 여겼으며 웃는 얼굴의 사람들 사이를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헤집고 다녔다. 그러면 어떤 상실감이 찾아왔다. 인생을 운용하는 데 있어 중요한 하나의 조각, 그것을 이미 획득한 자들에게 질투를 느꼈으며 그 열등감이야말로 내 삶을 추동하는 원동력이었다.동시에 그런 내 마음이 들킬까 봐 두려웠던 적도 있었다. 가장 친한 친구가 나를 두고 결핍이 많은 아이라고 말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너무 분해서 잠을 이루지 못했다. 영영 들키고 싶지 않던 비밀을 폭로 당한 사람처럼 마음이 홧홧해졌다. 그렇지만 친구 앞에서 어떤 말도 하지 못했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씩씩하게 웃었다. 내 안에서 자꾸만 떠오르는 어떤 부정성을 모르는 척하는 것이 나를 지켜줄 것이라고 믿었던 것이다.슬픔, 모자람, 추하고 가끔은 천박하다고 느껴지는 내 모습을 기꺼이 받아들이기 시작하면서 비로소 나는 나를 지킬 수 있었다.손에 쥔 것에 별로 없다고 느껴질 때 나는 내 안에서 솟아오르는 우울을 본다. 그것이 없다면 나는 메마르고 텅 빈 몸이 되는 것이다. 늦가을의 책상 앞에 앉아 삶에 대해 몇 시간이고 고민하는 날이 사라지는 것이다. 그런 마음을 문장으로 적어내려는 시도도 없다. 누군가의 아픔에 공감하고 세상을 불신하고 얼굴도 모르는 타인을 질투하고 연민하는 일. 세상에 관한 진실을 알고 싶고 평온한 일상에 목말라하는 일. 이것은 모두 살아서 역동적으로 꿈틀대는 감정이다. 문은강 ‘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로 주목받은 소설가. 201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작가로 등단했다. 이제 나는 나의 결핍을 자랑으로 여긴다. 내 안에 비루하고 나약한 것들이 있다는 것이 다행으로 느껴진다. 그것은 나를 영웅으로 만들어주지 않지만 인간으로 남게끔 해준다. 쓸모없고 형편없는 것이 위대하게 느껴지는 순간을 경험하게 한다. 나의 영원한 한계이면서 동시에 나를 가장 나답게 만들어주는 요소라는 것을 안다.나는 나의 결핍으로 나를 증명할 수 있다. 내가 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을, 모든 것이 무의미하게 흩어지는 시간 속에서 혼자만 아는 어떤 표식을 남겨놓는 행위를 하는 일은 모두 나의 결핍 덕분이다. 나는 나의 결핍으로 타인을 받아들이고 소통하며 기꺼이 손을 내밀 수 있다. 나와 같은 마음으로 어떤 방에서 울고 있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나뭇가지 끝에 매달린 잎사귀 하나가 떨어진다. 버석버석한 낙엽이 차곡차곡 쌓인 거리를 바라본다. 이제 곧 긴긴 겨울이 온다. 늘 같은 자리에 굳건히 서 있는 나무는 다가올 추위를 견디고 다시 싹을 틔울 것이다. 황망하리만치 텅 빈 자리는 더욱 빼곡하고 아름다운 것들로 채워질 것이다. 그런 순환과 믿음을 떠올리는 가을이다.

2022-11-22

세월따라 추억 쌓기

강성태시조시인·서예가 간혹 예전에 노닐던 등성이나 벌판을 거닐어 보노라면 문득 어디에선가 들려오는 희미한 소리, 먼 지난날이 손짓하며 부르는 세월의 소리가 바람결에 실려옴을 느끼곤 한다.또래들의 시끌벅적한 재잘거림, 철딱서니 없는 아우성, 흥얼거리듯 외치는 환호 등 지금은 분간하기조차 힘든 유년의 함성이 눈길 따라 발길 따라 아련히 묻어나는데, 그토록 뻔질나게 부대끼며 목놓아 질러대던 그 시절의 주인공들은 지금은 다들 어디서 어떤 음조로 자신의 목소리를 내며 살아가고 있는지 짐짓 궁금하기만 하다. 뒷산에 올라 키재기하던 참나무는 내 키의 두배가 훨씬 넘는 거목으로 우뚝 섰고, 숨이 넘어갈 정도로 달음박질해야 겨우 다다를 수 있었던 앞산도 이제는 바로 지척에서 기웃거리는 듯하니, 무던한 시간의 물레에 버물려 자연과 나는 그렇게 변하고 성장했었나 보다.무릇 세월에는 소리와 향기가 있기 마련이다. 켜켜이 쌓인 책장 같은 나날에는 그날 그때의 장면이 고스란히 쟁여지고 사연이 응축되어 곰삭다가, 한 세월이 흐른 뒤에는 잘 익은 묵은지 마냥 새큼하고 걸쭉한 추억의 향기와 아스라한 울림으로 퍼지게 된다. 좋거나 좋지 않았던 기억의 편린들이 차곡차곡 뇌리에 쌓였다가 한동안의 숙성기간(?)을 거친 다음, 어느 순간 애증의 안개처럼 어련무던히 피어나는 것이다. 숱한 사연이나 애환의 잔상들은 세월의 저편에서 잠자듯 묻혀 있다가, 현실과의 교효작용으로 때때로 불현듯 스치거나 소환되고 꿈결처럼 여울지기도 하는 것이다.“어쩌면 나이를 먹는 것은/즐거운 일인지도 모른다/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추억은 늘어나는 법이니까//그리고 언젠가 그 추억의 주인이/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려도/추억이 공기 속을 떠돌고, 비에 녹고/흙에 스며들어 계속 살아남는다면….//여러 곳을 떠돌며/또 다른 누군가의 마음속에/잠시 숨어들지도 모른다//처음으로 간 곳인데/와본 적이 있다고 느끼게 되는 것은/바로 그런 추억의 장난이 아닐까?” -유모토 카즈미 ‘여름이 준 선물’ 중에서어려서는 꿈을 먹고 자란다지만 나이가 들어서는 추억을 먹고 산다고들 한다. 그만큼 좋은 경치를 보고 맛난 것을 먹으며 여행을 즐기고 누리는 경험과 기억이 많을수록, 대부분 자신의 삶이 풍부해진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예컨대, 명승지를 관광하고 문화유적을 탐방하면서 느끼는 감탄과 만족감은 자신에게 희열감과 아울러, 선물 같은 추억을 덤으로 안겨주기에 사람들은 여행지를 더욱 즐겨 찾게 되는지도 모른다. 여행의 경험은 누구에게나 소중하고 추억은 값지기 때문이다.지난 주말, 모처럼 고향 친구들과 안동 일원에서 서원을 답사하고 탈춤공연을 함께 보는 문화체험과 고택을 감상하는 등의 나들이는 늦가을의 햇살만큼이나 정갈하고 따스했다고나 할까? 마음이 이끌리고 몸이 움직이는대로 더불어 어울리며 함께 한 시간들은 단순한 ‘추억 쌓기’ 그 이상의 의미를 더해줬다. 회심(會心)의 어울림과 즐거운 추억은 중년의 삶을 더욱 활기차고 윤택하게 해줄 것이다.

2022-11-21

설비의 구성과 양품 생산의 원리

엄주선포스코 인재창조원 교수·컨설턴트 우리가 잘 산다고 하는 말의 뜻은 먹고 싸고 자는 것에 특별한 문제나 걱정이 없다는 것일 것이다.영국 심리학자 에이브러햄 매슬로는 이를 인간의 욕구 중 가장 낮은 단계라 하며 ‘생리적 욕구’라 했다. 기본 욕구가 해결되어야 그 다음에 안전, 애정, 존중, 자아실현으로 발전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먹을 것이 풍부해 선택해서 먹을 수 있다면 당연히 맛있는 것을 찾게 되고 발달된 기술과 모바일 기기를 총 동원해 알리고 찾고 하는 이유이기도 하지만 어쩌면 이 맛있는 먹을 거리를 통해 자아실현 단계까지 연결 될 지도 모른다.맛은 회사제품으로 치면 품질에 해당된다. 그래서 제조업의 본질도 ‘좋은 제품(Quality)을 남보다 싸게(Cost) 만들어 고객이 필요한 시점에 제공(Delivery)’하는 것으로 정의하며 그 첫째에 좋은 제품이 있는 것이다. 제조업에서 생산하는 제품은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많지만 생산을 위해서는 설비와 사람이라는 공통적인 요소가 작용하고 있다. 그래서 이 설비의 구성과 품질이 만들어 지는 원리를 잘 이해하면 좋은 제품을 만들기 위해 어떻게 설비를 관리해야 하는지 알게 되고 자연스럽게 경쟁력이 향상될 것이다.사람 몸의 구성을 보면 방어 지시 및 운동은 골격 근육 외피 계로 이루어지고 조정과 통제는 신경계와 내분비계, 순환은 심혈관과 림프계로 구성되어 있으며, 영양과 수분의 균형은 호흡기 소화기 비뇨기계로 구성되어 각 계통들이 정상적으로 기능하고 유기적으로 잘 움직여야 몸의 이상이 발생하지 않는다. 설비도 사람과 마찬가지로 본체체결, 구동전달운동, 전기제어, 윤활, 유압, 공압의 6계통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6개의 계통이 서로 사람의 인체와 같이 유기적으로 잘 움직여야 불량이 없이 좋은 제품이 생산되는 것이다.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우리가 라면을 먹기 위해서는 냄비에 적정량의 물을 넣고 렌지로 열을 가해 물을 끓인 다음 재료인 라면과 스프를 넣고 일정시간 이상의 가공 과정을 거처야 한다.이를 생산현장에 빗대어 표현하면 끓는 물과 라면이 만나는 부분을 ‘가공점’이라고 하며 이 가공점을 구성하기 위해서는 재료를 잡아주는 도구인 지그(냄비)와 재료를 가공하는 도구인 툴(렌지)이 정확한 위치를 잡고 연속성을 유지하여야 하며 가공 재계(물, 스프, 가스·전기)의 조건이 맞아야 맛있는 라면이 된다.이렇듯 생산제품 또한 고객이 요구하는 대로 가공을 하기 위해서는 설비를 구성하는 본체체결, 구동전달운동, 전기제어, 윤활, 유압, 공압 6계통이 정상적으로 작동해 재료의 가공점 위치를 올바르게 잡고 연속성이 유지되도록 하여야 한다.또한 각종 물 가스 등과 같은 가공재계에 대한 조건이 잘 관리되어야 좋은 제품이 생산되는 것이다. 설비별 계통의 구성과 가공재계의 종류와 조건은 생산되는 제품의 종류에 따라 다르지만 가공 원리와 설비의 구성 계통을 알고 개선활동을 지속한다면 사람의 역량 향상과 회사의 경쟁력은 지속 향상될 것이다.

2022-11-21

중세미술 : 그림은 읽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한 그려진 성서

서양의 중세하면 ‘암흑’이라는 수식어를 가장 먼저 떠올린다. 그런데 만약 중세가 ‘암흑’이라면 인류의 역사에서 암흑이 아니었던 시대는 한 번도 없었다. 여느 시대와 마찬가지로 중세에도 명암은 있었고, 혼란과 혼동의 시기가 있었으며, 학문적 번영과 찬란한 문화와 예술을 꽃피운 시기도 있었다.천년 동안 지속된 중세에 암흑이라는 꼬리표를 붙인 것은 누구인가? 15세기 이탈리아 르네상스 사람들이다. 역사학자 하위징아가 ‘가을’이라 일컬은 중세의 끝단 14세기와 15세기, 이탈리아에서는 르네상스라고 불리게 될 새로운 시대가 개막했다. 르네상스는 중세와 직접적으로 맞닿아 있었지만 그것이 갈망했던 것은 고대였다. 고대의 부활을 꿈꾼 르네상스 사람들은 자신들의 업적을 부각시키기 위해 앞선 중세를 어둠의 시대로 못 박았다. 중세 후기 300년 이상 유행했던 미술양식을 야만적인 고트족의 미술 ‘고딕’이라 낮추어 부른것도 르네상스 사람들이다. 하지만 정작 고딕은 고트족의 양식이 아니었을 뿐더러 결코 야만적이지 않다.서양의 역사에서 중세는 서로마 제국이 멸망한 476년경 시작된다. 콘스탄티누스 1세가 통합한 로마제국은 테오도시우스 1세가 서거한 395년 동과 서로 분열됐다. 콘스탄티노폴리스를 중심으로 발전한 로마제국의 동쪽 비잔틴제국은 동서로마제국 분열 이후 천년 이상 존재했지만 서로마제국은 476년 게르만족의 침략을 견디지 못하고 몰락한다. 서로마제국을 정복한 게르만의 부족들은 여러 나라를 세웠고 그 중 가장 번성한 것이 프랑크왕국이다. 동서로마제국의 분열은 서양미술사의 흐름을 이해함에 있어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제국이 나누어진 이후 서양미술사 서술은 비잔틴이 아니라 지금의 서유럽에 속하는 옛 서로마제국의 땅에서 벌어지는 변화를 좇는다.중세미술은 기독교미술이다. 교회가 지어졌고 교회의 실내공간은 그림으로 장식되었다. 교회에 그려진 그림들은 감상을 위해서가 아니라 분명한 종교적 기능과 목적이 있었다. 글을 읽을 줄도 쓸 줄도 몰랐던 대다수 신자들에게 성서의 말씀과 성인들의 이야기를 직접적이고 정확하게 전달하는 것이 그림의 기능이었다. 그러나 교회에서의 그림 사용을 둘러싸고 동방과 서방교회 사이에 격렬한 논쟁이 벌어졌다. 유일신을 섬기는 기독교는 모세의 계명에 따라 무엇이든 형상을 만들어 모시는 것을 엄격하게 금지한다. 기독교의 교리와 종교적 체계가 정립되고 있던 시기였기 때문에 교회에서의 그림 사용은 더더욱 큰 혼란을 야기할 수 있었다.서방의 로마교회는 그림 사용을 적극 장려했던 반면 비잔틴의 동방교회는 반대 입장을 취했다. 로마교회가 그림 사용을 옹호한 것에는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 서로마제국이 멸망한 후 가톨릭교회는 게르만족 개종에 큰 노력을 기울였고 포교를 위해 그림이 유용한 수단으로 이용되었다.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신자들이 문맹이었기 때문에 이들을 가르치기 위해 그림 보다 좋은 것은 없었다. 하지만 비잔틴 교회의 입장은 달랐다. 북아프리카와 중동지역에 해당하는 비잔틴 제국의 주요 도시에서는 학문이 발달해 이단 사상이 출현해 급속도로 확산되었다. 또한 각 도시들은 지리적으로 고립되어 있어 동방교회의 수장이 모든 지역을 통제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이런 현실적인 이유로 비잔틴 교회는 이단 사상의 발생과 확산을 막기 위해 그림 사용을 엄격히 금지했다.그림을 둘러싼 동서교회의 대립을 정리한 사람은 대교황 그레고리우스 1세(재위: 540∼604년)이다. 교황은 다음과 같은 주장을 펼치며 그림 사용을 옹호했다. “그림을 사용함으로써 글을 모르는 사람들이 책에서 읽지 못하는 것을 그려진 그림을 보면서 읽을 수 있다.” 교황의 주장에 따라 교회는 그림으로 장식되었다. 그렇다고 모든 그림이 허용된 것은 아니다. 본래 취지에서 벗어나지 않기 위해서 그림은 가능한 단순하고 명료하게 메시지를 전달해야 했다. 사람들의 관심을 다른 쪽으로 돌리는 것을 막기 위해 그림은 엄격하게 본질에만 집중했고 그 결과 로마제국의 높은 수준의 묘사와 표현이 서서히 쇠락하게 된다. /미술사학자 김석모

2022-11-21

연재를 마치며

올 1월부터 본지에 연재된 소설 ‘Grasp reflex’가 지난주 끝을 맺었다. 연재를 시작할 즈음 김 작가는 “두 개체가 조우하는 방식은 두 가지다. 우연의 방식이거나 혹은 한 개체가 다른 개체가 있는 곳으로 한 발 내딛는 것. 쓰는 이와 읽는 이의 경우는 어떤가?”라고 물으며, “우연은 차치하자. 자, 여기 문학이 있으니 와서 보시오. 하며 좌판에 앉아있는 것은 아닌가? 쓰기만 하시오, 내가 찾아가겠소. 이런 그대를 기다리는 것은 아닌가? 이 지점에서 나의 고민이 시작됐다. 이번에는 기다리지 않겠다. 일어나야겠다. 걸어야겠다”는 소설가로서의 결심을 밝힌 바 있다. 그리고, 이제 연재가 마무리되는 시점. 아래는 작가가 보내온 원고 ‘연재를 마치며’다. 문학에 관한 김강 작가 나름의 정의와 앞으로의 출간 계획까지가 담겨 있기에 가감 없이 게재한다. 편집자 주이야기가 내게 와 나의 손을 빌려 문자로 모습을 드러내고 나의 입을 통해 마지막 문장으로 세상에 나왔을 때, 누군가가 나를 보았다면 ‘기괴한 표정이다’라 말했을 것입니다.그때 나는 반가움과 두려움이 뒤섞인 감정을 어찌하지 못했습니다.입 꼬리를 바짝 올리면서도 눈은 아래를 향했고 찌푸린 미간 탓에 양쪽 관자놀이의 피부가 당겨졌지요.왼쪽 가슴이 쿵쿵쿵 뛰었는데 그것이 기뻐서인지, 아니면 두려워서인지 가늠할 수 없었습니다.기다렸던, 하고 싶었던 이야기였기에 반가울 수밖에 없었지만 한편으로는 이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전해야 한다는 일종의 의무감, 책임감, 같은 것들이 반가움과 함께 떠올랐기 때문이었습니다.글을 쓰는 이는 곧 글을 전하는 이 이어야 합니다.누군가에게 이야기를 전한다는 전제는 글을 쓰는 일이 단순한 오락을 넘어 선한 행위, 존재할 가치가 있는 어떤 일이 되도록 강제합니다. 그것은 쓰는 이, 그의 손을 빌려 나타난 이야기에 의미를 입히고 살아 숨 쉬게 합니다. 진정한 마침표가 됩니다.또한 그 전제로 인해 작가는 자신이 내어 놓은 글이 만나게 될 독자를 염두에 두게 되고 자신이 내어 놓은 글이 그들의 생각과 행동에 미칠 영향에 대해 고민을 하게 됩니다. 물론 그것은 글쓰는 이 자신의 관점에서지요. 쓰는 이는 독자를 보아가며, 눈치를 보며 타인의 입맛대로 자신의 이야기를 바꾸는 부류가 아니니까요.어떤 형식으로 이야기를 전할 것인가?그 지점에서 오랫동안 머물렀습니다.어느 순간 기회가 왔고, 마침표를 찍은 지 제법 시간이 지난 이야기를 달랠 수 있었습니다. 내게는, 나와 이야기에게는 경북매일신문 연재가 그 기회였습니다.한 가지 바람이 있습니다.저에게 주어졌던 이 기회가 다른 글 쓰는 이에게도 마땅히 주어지기를 기대합니다.글을 쓰기 시작한지 얼마 안 되었을 즈음 어느 자리에서 누군가 내게 물었습니다.“당신에게 문학은 무엇입니까?”나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저에게 문학은 질문입니다. 진실과 당위에 대한 질문입니다.”진실은 기억의 영역이며 당위는 미래의 영역입니다.기억 속에서 찾아낸 진실, 그 진실은 당위의 근거이며 미래를 예정합니다. 기억으로부터 미래가 시작됩니다.이 장편소설은 지금 우리 세계, 다가올 우리 세계에 대한 질문입니다.2022년이 지나고 2023년에 들어설 무렵 단행본으로 출간될 예정입니다.비로소 제게는 다음 질문을 준비할 시간이 주어질 것입니다. 그리고 한동안 저는 그것을 이야기로 내어놓는데 열중할 것입니다.한 가지 바람이 있습니다.이 장편소설이, 저의 질문이 많은 사람들과 만나기를 바랍니다. 독자 여러분의 응원을 기대합니다.촌스럽지만 꼭 하고 싶은, 이 자리가 아니면 하기 힘들 것 같은 감사 인사를 위해 지면을 빌립니다.지난 1년여 동안 매주 화요일자 경북매일 신문을 모으고, 저의 연재소설을 가위로 오려 스크랩을 만드신 아버님께, 매주 화요일 ‘아들, 파이팅!’, 문자를 보내주신 어머님께 감사드립니다.가장 든든한 후원자이며 관리자인 그녀와 두 아이에게도 고맙다는 말을 전합니다.매주 연재소설을 읽고 격려의 말씀을 전해주신 독자여러분을 잊지 않겠습니다.마지막으로 쉽지 않은 시기에 귀한 지면을 소설가에게 내어준 경북매일신문, 편집자께 고개 숙여 인사드립니다.한 가지 바람이 있습니다.세상 모든 이들에게, 생명을 가진 모든 것들에게 따듯한 새해, 2023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2022-11-21

‘조류독소’

남광현 ​​​​​​​대구경북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녹조는 물속에 살고 있는 작은 생물이다. 광합성 작용으로 산소와 유기물을 만들어 수중 생태계의 1차 먹이를 제공한다. 수중생태계를 위해서는 꼭 필요한 것이 조류이지만 특히 남조류가 과도하게 성장하면 물의 색깔이 짙은 녹색으로 변하고 이를 ‘녹조현상’이라고 한다.‘녹조현상’은 인간의 활동으로 배출된 하·폐수나 쓰레기가 점오염원 또는 비점오염원 형태로 질소나 인과 같은 영양물질을 하천이나 호수 등에 풍부하게 공급한 것이 가장 기본적인 원인이 된다. ‘녹조현상’이 발생하면 물속의 생태계가 악화되고 하천 경관이 나빠지며, 남조류가 생산하는 ‘조류독소’로 인해 물이용이 어렵게 된다.우리는 남조류가 생성하는 ‘조류독소’로 간독성 유발물질인 ‘마이크로시스틴’을 많이 듣고 있지만, 그 외에도 똑같이 간독성을 유발하는 ‘실린드로퍼몹신’이라는 물질이, 신경독성을 유발하는 ‘아나톡신’과 ‘BMAA’라는 물질도 존재한다. 이런 ‘조류독소’를 주로 생성하는 남조류는 ‘마이크로시스틴’의 경우 ‘마이크로시스티스’, ‘아나베나’와 같은 종류이고, ‘실린드로퍼몹신’은 ‘신린드로퍼몹시스’, ‘아파니조메논’과 같은 것으로 제각각 이다.이들 ‘조류독소’ 유발 대표적 남조류의 형태는 현미경으로 뚜렷이 관찰된다. ‘조류독소’로 유발된 수질사고 기록 중 가장 큰 사건은 공교롭게도 1993년과 1996년에 같은 나라인 브라질에서 각각 88명과 60명이 사망한 사고이다.‘조류독소’로 인한 수질사고는 1878년부터 발생하였고 최근까지 사람뿐만 아니라 물고기, 개와 가축 및 새 등 다양한 피해 사례가 보고되고 있다. 여러 종류의 남조류와 이들에서 발생한 다양한 ‘조류독소’가 유발한 수질사고로 분석되고 있다. 그런데 여러 수질사고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조류독소’가 주원인인 것인지가 밝혀지지 않는 경우도 있다. 그만큼 ‘조류독소’ 원인물질이 다양하고 반응 메커니즘도 다양하기 때문이다.최근 국내 물 관련 대표적 학회인 ㈔대한상하수도학회와 ㈔한국물환경학회가 공동주관으로 ‘조류독소’ 분석과 관련한 기술세미나를 8주에 걸쳐 진행 중이다. 국내외 ‘조류독소’ 분석과 관련한 최고의 전문가들이 참가하여 발표와 토론을 진행하고 있다.위 전문가들의 발표에서 많은 ‘조류독소’ 분석방법들이 소개되었는데 대체적으로 ‘조류독소’의 존재를 파악하는 최초단계에서는 ‘쥐 생물검정’, ‘효소면역분석법: ELISA’, ‘단백질 포스파타제 억제법: PPIA’ 등의 생물학적 방법이 사용된다. 존재량을 결정하는 단계에서는 ‘액체크로마토그래프-텐덤질량분석법: LC-MS/MS’과 같은 물리화학적 방법이 사용된다. 국내의 상수원수 내 먹는물 수질감시항목에 ‘마이크로시스틴’을 지정하고 공정시험기준으로 ‘LC-MS/MS’ 분석법을 제시하고 있다.이처럼 ‘조류독소’ 분석기술이 많은 진전을 보이고 있지만 마시는 물이나 물놀이를 위한 수질과 독성 기준은 많은 추가연구가 필요하다. 낙동강과 금호강 물을 마시고 물놀이를 즐기고 싶은 대구경북 지역민들을 위해 ‘조류독소’의 막연한 공포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다양한 연구와 대책이 필요하다.

2022-11-21

슬리퍼는 죄가 없다

홍석봉정치에디터 20여년 전 슬리퍼 차림으로 등교하는 학생들을 보고는 충격을 받은 적이 있다. 요즘엔 한겨울에도 양말을 신고 슬리퍼를 신고 등교하는 학생들이 많다. 이들은 집에서부터 슬리퍼를 질질 끌며 신고 와서는 그대로 교실로 들어간다. 하루 종일 슬리퍼와 함께 공부한다.대부분의 학교가 슬리퍼 등교를 금하며 복장불량으로 벌점을 주지만 학생들은 개의치 않는다. 신발주머니를 갖고 다니다가 교문 밖에서 바꿔 신기도 한다. 슬리퍼가 등하굣길 패션은 물론, 학생들의 일상 패션으로 자리잡은지 오래다. 그들이 성인이 되면서 어느덧 아무 때나 편하게 신는 생활품이 됐다.슬리퍼(slipper)는 원래 실내에서 신는 신이다. 뒤축이 없이 발끝만 꿰게 돼 있다. 국내에서 슬리퍼 유행에 불을 지핀 것은 흔히 삼선 슬리퍼라고 불리는 아디다스 슬리퍼다. 정식 명칭은 ‘아딜렛(Adilette)’이다. ‘아딜렛’은 1972년 출시돼 현재까지 전 세계에서 꾸준히 사랑받고 있다. 한 때 촌스러움의 대명사로 여겨졌던 이 슬리퍼는 중고교생들에게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등하굣길 신발로 학생들의 필수 아이템이 됐다.MBC 기자의 슬리퍼 인터뷰가 시끄럽다. 지난 18일 윤석열 대통령의 도어스테핑 때 MBC의 전용기 탑승 배제와 관련, MBC 기자와 대통령실 간 고성이 오갔다. 대통령실은 MBC 보도가 악의적이었다고 비판했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당시 MBC 기자가 슬리퍼를 신고 있었다며 공격했다. 공식석상에서 취재원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며 비난했다. 야당은 취재 예의 논란이 일자 대통령실의 편협함을 지적했다.슬리퍼는 죄가 없다. 그래도 공식적인 자리에는 곤란하다. 옷차림은 그 사람의 인격을 말해 준다./홍석봉(정치에디터)

2022-11-21

김진국의 '정치 풍향계' 법률적 책임과 정치적 책임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주 귀국하면서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에게 “고생 많았다”라고 격려했다. 윤 대통령은 동남아시아 순방을 떠나면서 이 장관의 어깨를 두드리더니, 돌아오는 길에도 특별한 애정을 표시한 것이다.해외 순방으로 며칠씩 나라를 비우면서 내치 담당 장관에게 특별한 관심을 보이는 것은 당연한 일일 수 있다. 그렇지만 158명의 아까운 젊은이가 희생된 이태원 참사의 책임 문제가 불거진 시점이라는 점에서 예사롭지 않다. 윤 대통령이 이 장관을 안고 가겠다는 의지를 내비친 것이라는 해석이 분분하다.윤 대통령은 법률적 책임론에 치우쳐 있다. 법적으로 잘못이 없는데 책임을 묻는 것은 옳지 않다는 생각이다. 지난 7일 국가안전 시스템 점검 회의에서도 그는 “이번 참사와 관련해 진상규명이 철저히 이뤄지도록 하겠다”라면서 “그 결과에 따라 책임 있는 사람에 대해서는 엄정히 그 책임을 묻겠다”라고 말했다.윤 대통령은 평생 검사로 살아왔다. 죄를 지었으면 벌을 받고, 결백하다면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게 법적으로야 당연하다. 그러나 예로부터 비가 안 와도 임금님 탓이었다. 홍수가 나고, 전염병이 돌아도 임금님이 부덕해서라고 생각했다. 천재지변을 나라님 탓한 것은 미신에 가깝다고 해도, 수자원 관리나 보건 위생은 정부가 하기에 따라 얼마든지 피할 수 있는 일이다.책임 소관을 따지기 힘든 일이 무수히 많다. 천재지변이 아니라도 그렇다. 그런 문제는 당한 사람만 억울한가. 사회의 그런 빈 곳을 찾아 메우고, 대비하는 게 정부가 할 일이다. 하늘에서 폭우가 쏟아져 인명 피해가 생기고, 바람이 불고, 가물어 농작물이 타들어 가고, 눈에 보이지도 않는 병원균이 우리 목숨을 위협하는 일도 유능한 정부라면 대비해야 한다. 하물며 군중이 몰려 교통이 마비되고, 막대한 인명 피해가 생기지 않도록 조치하는 일을 정부가 아니면 누가 하겠는가.법 조항이 있든 없든 그런 일을 하는 것이 정부다. 대비가 안 돼 문제가 생기면 정부 책임이다. 정부 조직을 정비하지 못한 잘못이다. 체제가 돼 있었다면 제대로 실행하지 못한 실무자는 물론 관리·감독을 잘못한 사람도 책임을 피할 수 없다. 더구나 이런 큰 참사를 빚어놓고 일선 파출소에 모든 책임을 떠넘긴다면 어느 국민이 이해하겠나. 이번 참사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인재다. 윤 대통령도 경찰을 향해 흥분하며 질타했다. 그 어이없는 행정력의 최고 책임자는 대통령이다. 안전 문제의 최고 행정책임자인 이 장관이 정치적 책임을 떠안아야 윤 대통령의 짐이 덜어진다. 야당의 요구를 들어주는 게 아니라 국민을 설득하는 길이다.이 장관은 여론에 불을 지른 책임도 있다. 참사 직후 그는 “경찰이나 소방 인력을 미리 배치함으로써 해결될 수 있었던 문제는 아니었다”라고 말해 기겁하게 했다. 사퇴 여론이 높아지자 그는 또 “누군들 폼나게 사표 던지고 이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지 않겠나”라고 말해 다시 여론에 불을 질렀다. 참담한 사고의 책임자로서 사퇴하는 것을 어떻게 ‘폼나게’라고 표현할 수 있나.윤 대통령은 ‘의리’를 무척 중요하게 생각하는 인품이다. 사법시험 직전에도 조문을 가고, 친구 함 팔이를 갈 정도다. 검찰총장 시절에도 자신에 대한 징계위원회가 열리는데 조문을 거르지 않았다. 이 장관 같은 가까운 지인에 대한 윤 대통령의 신뢰는 이 의리를 바탕에 깔고 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가 왜 무너졌는지 생각해야 한다. 수많은 논란을 외면하고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을 지키려다 정권을 넘겨줬다. 사적 의리에 얽매이면 공적 임무를 수행하기 어렵다.조 전 장관 파문 때도 법률적 유무죄에 매달렸다. 그러나 고위공직자는 법률적으로 죄를 묻기 어려워도 도덕적·정치적 책임이 더 무거운 때가 있다. 이번 논란의 가장 핵심 인물인 용산경찰서장이 “보고를 못 받았다” “기동대 추가 파견을 요청했었다”라고 말하는 것도 법적 책임을 의식한 말이다. 형사사건으로만 보면 책임을 떠넘기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정치적으로는 더 큰 부담이 되어 돌아올 수 있다. 앞장서서 처리하지 않으면 밀려서 하게 된다. 읍참마속(泣斬馬謖)이 필요하다. 김진국△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중앙SUNDAY 고문,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본사 고문

2022-11-20

일에 지치고 힘들때 다시 용기주는 책

내년을 준비하는 부서별 보고자료를 들여다보다가 순간 집무실 책상 위 모퉁이에 붙어 있는 메모장이 눈에 띄었다. ‘잊지못할 한 권의 책’을 추천해달라고 쓰여진 메모 내용에 잠시 과거 회상에 빠졌다. 좋은 책은 여럿 추천할 수 있지만, 잊지못할 한 권의 책을 추천하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며칠간 고민 끝에 실용적이고 전문적인 서적보다는 모두가 잘 알고 접해 본 소설책을 소개하는 게 좋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래서 고른 책이 바로 우리 모두가 학창시절에 읽어봤을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다.무엇보다도 이 책에서 묘사되는 베르테르의 섬세한 감정표현이 아직도 생생하다. 지금이야 직설적인 화법을 ‘사이다’, ‘돌직구’ 등으로 표현하며 솔직한 표현의 한 방식으로 이해하지만, 내 젊은 학창 시절에는 완곡한 감정표현이 주를 이뤘을 때니 사뭇 생경할 따름이었다. 더 나아가 괴테가 이 소설을 집필했던 18세기에는 오죽했을까! 출간 당시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베르테르를 모방한 각종 신드롬이 생겨난 건 이 책을 읽게 되면 그리 놀라울 일이 아니다. 요즘 표현으로 베르테르의 당시 모습은 ‘힙’했다고 할까?로테를 향해 쏟아내는 서툰 감정과, 때로는 무모한 행동으로 소설을 읽는 내내 조마조마하게 만들었던 우리의 주인공 베르테르는 사랑하는 로테에 대한 감정은 늘 솔직하고 진심인 주인공이다. 그녀를 “그토록 지혜로우면서도 소박하고, 꿋꿋하면서도 상냥하며, 착하고 활발하고 영혼의 평화를 잃지 않는 사람”이라고 언급하며 사랑에 빠진 것을 고백하는 내용에서 여실히 그 감정이 드러난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순간부터 우리는 균형잡힌 이성보다는 위아래로 요동치는 감성에 좌우된 경험을 갖고 있을 터, 베르테르가 사랑한 로테는 어떻게 평가해도 어느 하나 부족한 점을 찾을 수 없을 것이다.그러나 이루어질 수 없는 로테를 향한 사랑이 깊어 질수록 역설적으로 좌절과 절망은 점점 더 커져만 간다. 그녀를 둘러싼 자들의 충격적인 소식은 결국 베르테르를 비극적인 결말로 이끈다. 불안정한 감정으로 가득 차 무책임한 선택을 한 철없어 보이는 베르테르를 이해하긴 쉽지 않다. 다만 제도권 안에서 구원받을 순 없지만 젊음 가득한 무모한 감정은 그것 자체로 자유롭고 통쾌하다. 신현국 문경시장 특히, 이제는 잔뜩 철든 어른이 돼 다시 베르테르를 돌아보니 그가 쏟아내는 순수하고 꾸밈없는 표현들이 흥미롭고 부러울뿐이다.집무실 밖에 내리는 가을비로 잠시 베르테르를 기억하며 떠난 추억 여행이 내 본래 삶으로 돌아왔다. 창밖으로 보이는 겨울을 기다리는 늦가을의 문경은 그저 고요하기만 하다.취임 초기부터 시민들과 직원들에게 긍정의 힘을 끊임없이 강조하며 인구 감소로 불확실성 큰 현실에 함께 맞서고 있다. 간혹 일에 진척이 없고 힘이 부칠 때 베르테르처럼 치기 어린 행동일지라도 우리 공동체의 미래를 향한 내 고민과 애착을 진심을 담아 절절하게 드러내며 외쳐보고 싶다.때로는 이런 무모함이 기존의 문법과 고정관념을 깨고 진일보를 이뤄낼 수 있다고 믿는다. 마지막으로 전무후무한 코로나19의 팬더믹 상황과 크고 작은 어려움 속에서도 내일의 더 나은 대한민국을 만들어가는 우리 모두에게 위로와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2022-1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