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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그림도 없는 책을 무슨 재미로 볼까?

“그림도 없고 대화도 없는 책을 왜 보는 걸까? 그런 책이 무슨 소용이람?”루이스 캐럴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시작 부분에 앨리스는 언니와 함께 강둑에 앉아 있다가 언니가 읽고 있던 책을 흘끔거리고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어른들만 읽던’ 글자만 있던 책이 지루했던 앨리스는 환상적인 이미지들이 넘치고 있는 꿈 속 세계로 토끼를 따라 들어가게 된 것이다. 루이스 캐럴 역시 이 아이들을 위한 환상의 동화의 삽화를 소설만큼이나 귀중하게 골라 넣었다. 어쩌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독자들을 끌고 가는 것은 이야기의 힘이 아니라 그 속에 들어 있는 삽화와 대사의 맛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지금처럼 어디에나 시각적 이미지가 넘쳐나는 시대에는 책 속에 들어가 있는 삽화 정도는 그다지 특별할 것도 없겠지만, 불과 몇 십 년 전만 하더라도 책 속에 간간히 들어 있는 삽화들은 그야말로 사막에서 발견한 오아시스 같은 반가운 것이었다. 아직도 읽는 것을 취미로 여기고 있는 분들이라면, 아마 책 속에 간혹 들어 있는 삽화를 여전히 기억하고 계신 분들이 많으시리라. 물론, 문장을 읽고 또 읽고 난 뒤, 머릿속에서 만들어지는 희부윰하지만 강렬한 세계라는 것도 매력적인 것이 아닐 수 없지만, 간단히 손으로 그린 작은 삽화라도 문자로 만드는 세계를 위한 상상의 재료로 소중했다.한국에서 신문에 연재된 소설에 삽화가 처음 들어가게 된 것은, 1912년 1월 1일의 일이었다.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의 기관지나 다름없던 ‘매일신보’가 판매부수를 늘리기 위해 연재소설을 싣기 시작했고, 나아가 연재소설에 삽화를 넣기 시작했던 것이다. 강점 이전 제국신문에서 오랜 기간 동안 소설을 연재했던 작가 이해조(李海朝)가 새롭게 연재했던 ‘춘외춘’이라는 제목의 소설에 신문 일을 하려고 잠시 한국에 와 있던 일본인 화가가 삽화를 넣었다. 한국인 소설가가 쓴 소설에, 일본인 화가가 삽화를 넣었으니, 소설의 내용과 삽화가 잘 맞을 리가 없었다. 그래도, 문밖으로 내다보고 있는 어린 여자 아이의 뒷모습이 그려진 이 삽화는 한국에서 이후 백 년 좀 못되게 이어진 삽화가 들어 있는 신문연재소설의 관습적 전통을 만들어낸 최초의 일이 되었다. 대체로 인쇄 매체 속에 시각적 이미지가 부족했던 당대의 독자들이 삽화 속 이미지를 상상의 재료로 소설 속 세계를 보다 다채롭게 만들었을까 하는 것은 충분히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금색야차’ 같은 작품을 썼던 오자키 고요나, ‘무정’의 이광수도 연재소설의 삽화에는 다소 부정적인 입장이었다. 그들은 삽화가 소설적 세계의 상상을 제약한다고 믿었다. 그러나 삽화는 이미 시대적인 흐름이 되었다. 당시 이 삽화가 붙은 신문연재소설은 엄청난 인기를 얻었다. 1912년 이후 약 3~4년 동안 한국인 소설가와 일본인 삽화가의 공존은 계속되어 ‘장한몽’등 번안소설로 이어졌고, 3·1운동 이후 국내에 민간신문이 생겨나면서, 안석주, 이승만, 이상범, 노수현 등의 전문 삽화가들이 등장하여 전성기를 맞았다. 옛신문의 연재소설란을 아직 기억하시는 분이라면, 2단 정도의 크기로 소설과 함께 실려 있던 이 반가운 흑백의 삽화를 여전히 기억하고 계실지도 모르겠다.물론, 지금처럼 시각적 이미지가 넘쳐 나는 시대에 이 흑백의 삽화를 추억하는 것은 시대착오가 아닐 수 없지만, 눈으로 꾸역꾸역 읽어내던 문자들이 물릴 때쯤, 나타나 눈을 시원하게 해주던 이 삽화를, 그 반가움을 기억한다. 전달의 매체는 다를지언정 그것을 통해 그려내고자 하는 상상의 세계는 다를 바 없다는 사실을 생각한다. 그렇게 삽화의 시대는 저물었으면서, 이제는 우리 주변을 가득 채우고 있다. /홍익대 교수 송민호

2022-05-09

마이걸 <Ⅲ>

안나는 사랑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우리의 사랑이라 말하기도 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분위기를 맞추기 위해, 만식의 기분을 고려한 것이었다. 만식도 알고 있겠지. 그렇다고 미워하거나, 일부러 말을 꺼내 ‘나는 당신을 사랑하지 않아요’라 할 수 있는 감정도 아니었다. 그것을 사랑이라 말할 수 없을 뿐이었다. 만식은 안나에게서 안나는 만식에게서 서로 필요한 것을 얻었다.-짓궂으시네요. 이 상황에서 대답 안 하면 사랑하지 않는 게 되잖아요. 우리 아이의 아빠고, 저를 엄마로 만들어 주신 분이에요. 제게는 소중한 분이십니다. 저는 그분의 아이를 가졌어요.필립이 웃었다. 안나는 웃음이 무슨 의미인지 알고 싶었지만 묻지 않았다. 사랑 따위에 대한 대화를 끝내고 싶었다.-말씀을 들어보니 아버지가 안나 씨를 사랑하는 것은 맞나 보네요. 아버지가 안나 씨에게 아이를 낳아달라고 하셨으니. 하하. 농담입니다. 결혼식은? 혼인 신고는 어떻게 하신 답니까?결혼식? 혼인 신고? 이게 궁금했던 건가? 만식이 결혼식이나 혼인 신고에 대해서 이야기한 적 없었다. 안나도 마찬가지.-아마도 이야기 꺼내지 않으셨을 겁니다. 아버지의 아이를 가지는 것과 아버지의 부인이 되는 것은 다른 문제지요. 그 문제에 대해서만은 아버지도 생각이 많을 겁니다. 얽혀 있는 사람들의 생각과 입장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지요. 사실 지난 번 인공 폐 이식을 할 것이라고 제게 말씀하셨던 그 다음날 아버지를 만났습니다. 아버지께서 부르셨지요. 그 자리에서 아버지께서 제게 약속을 하셨습니다. 이 젊은 여자를 너의 새엄마로 삼지는 않을 것이다. 결혼식은 물론이고 혼인 신고도 하지 않을 것이다. 이 젊은 여자가 언제까지 내 곁에 있을지, 내가 언제까지 그 여자를 내 곁에 둘지 알 수 없지 않느냐. 하지만 뱃속의 아이는 다르다. 그 아이는 나의 아이이며 너의 동생이다. 그러니 더 이상 이 문제로 시끄러운 상황이 벌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오해하실까봐 말씀드리는 건데 아버지께서 하신 약속은 제가 요구한 것 아닙니다. 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아버지께서 먼저 꺼내신 약속입니다.치즈의 비린 맛이 속에서 입으로 올라왔다. 안나는 휴지를 들어 침을 뱉어내었고 입술을 닦았다. 만식으로부터 들은 적 없는 이야기였다. 안나는 만식이 자신을 무척 아낀다 생각했었다. 아니었나? 안나는 자신을 바라보던 만식의 눈길을 떠올렸다.아이를 가지지 않았다면 다른 삶을 선택할 수 있겠지만, 돌이킬 수 없고 그러고 싶지도 않았다. 아이가 태어나면 아이의 엄마로 살아야 한다. 안나는 뱃속의 아이를 아빠 없는 아이로 키우고 싶지 않았다. 구십 살이 다 되어가는 아빠일지라도.-그렇군요. 그런 일이 있었군요. 잘 알겠습니다.필립이 치즈 케이크를 더 드시라 권했다.-맛이 비려요.안나는 케이크가 담긴 접시를 옆으로 밀었다.-제가 이런 이야기를 했다고 아버지께 말씀드리지 않았으면 합니다. 저는 단지 안나 씨에게 스스로의 인생을 생각할 기회를 주고 싶었습니다. 선의로. 그리고 남자 형제가 한 명 있던데. 이름이 ‘노마’던가요?안나는 필립이 오빠의 이름을 알고 있다는 것에 놀라지 않았다. 뒷조사를 했을 수도 있고. 그랬다 하더라도 따질 일은 아니었다. 게다가 다른 생각을 할 여유가 없었다. 만식이 필립에게 했다는 이야기가 머릿속을 맴돌았다.-네. 하나 있는 오빠지요. 로봇 관리사예요. 지금은 보잘 것 없어도 학교 다닐 때는 제법 수재 소리를 들었어요. 몇몇 공모전에 나가서 상도 탔구요.-아. 네. 그렇더군요. 사이보그와 인간형 로봇이 주 전공이었더군요. 공부도 꽤 했던데. 요즘 젊은 사람들 삶이 다 그렇지요.지난밤 안나가 울었다. 왜 그러냐. 노마가 다그쳤지만 대답을 하지 않았다. 한참 동안 흐느끼다 입을 열었다. 오빠, 밤늦게 미안해. 그러고는 전화를 끊었다. 노마는 잠을 이루지 못했다. 아침, 노마는 안나에게 전화를 걸었다. 얼굴 좀 보자, 오랜만에.카페 소파에 등을 기대고 앉아있는 안나의 배가 제법 불러 보였다. 저것이, 뭐가 아쉬워서. 노마는 안나의 선택에 동의할 수 없었지만 그렇다고 노마가 할 수 있는 것도 없었다. 안나 뱃속에는 이미 늙은이의 아이가 자라고 있었고 그 아이는 안나가 원한 아이이기도 했다. 노마가 테이블 맞은편 의자에 엉덩이를 걸치자 안나는 허리를 세워 앉았다.-왔어? 오빠, 오랜만이네.노마는 손을 내저었다.-아니야. 그대로 기대고 있어. 우리 사이에 무슨 예의야. 네 몸 편한 대로 앉아있어. 몸은 좀 어때? 아이는 잘 크고 있대? 먹고 싶은 것은 없어? 입덧은 안 하고?-그렇게 많은 걸 한꺼번에 물으면 어떻게 대답해.안나는 등 뒤로 쿠션 두 개를 받히고 다시 기대며 말했다.-그런가? 뭐, 대답은 한꺼번에 하지 않아도 돼. / 김강 소설가

2022-05-09

노화방지기술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 과학과 의학기술의 발달로 인간의 평균수명이 늘어나면서 노화방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하지만 노화는 현대의학의 최대 난제다. 노화방지기술, 이른바 ‘역 노화 기술’ 개념은 지난 2012년 노벨생리학상을 수상한 일본 교토대학교 야마나카 신야 교수가 처음 제시했다. 이미 분화된 세포를 역분화시키는 4개의 전사인자를 일시적으로 발현시켜 노화세포를 젊은 상태로 되돌리는 것이다. 다만 이 기술은 노화된 세포가 젊은 세포로 되돌아갈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지만 유전자 돌연변이로 암세포가 생기거나 상처가 났을 때 조직재생을 더디게 하는 부작용이 있어 부작용을 배제할 수 있는 정교한 제어가 난제로 남아있다.이런 가운데 국내 연구진이 노화된 세포를 젊은 세포로 되돌리는 역(逆) 노화 원천기술을 개발해 화제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 바이오 및 뇌공학과 조광현 교수 연구팀은 노화된 인간 진피 ‘섬유아세포’를 정상적인 젊은 세포로 되돌리는 역 노화 초기 원천기술을 최초로 개발했다고 밝혔다. 우리 몸안의 세포 분자를 조절하면 세포의 상태를 바꿀 수 있다. 개발중인 역 노화 기술은 노화세포를 없애는 항노화 기술과 다르게 노화세포를 정상으로 되돌려 암과 같은 노인성 질환의 발병을 늦춘다.연구팀은 시뮬레이션 분석을 통해 노화된 인간 진피 섬유아세포를 젊은 세포로 되돌리는데 필요한 핵심 인자 ‘PDK1’를 찾아냈다. 연구팀은 PDK1을 억제함으로써 노화된 인간 진피 섬유아세포를 다시 정상적인 젊은 세포로 되돌릴 수 있음을 분자 세포실험 및 노화 인공피부 모델 실험을 통해 입증했다. 조만간 이 기술을 적용한 화장품도 출시될 예정이란다. 나이를 먹어도 늙지않는 노화방지기술이 손에 잡힐 듯 다가왔다니 자못 기대된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2-05-09

‘혁신성장’

남광현대구경북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우리나라 생산가능 인구는 매년 지속해서 감소추세에 있으며, 생산성과 자본 및 노동으로 이루어진 잠재성장률도 2000년대 초반 5% 전후에서 최근에는 2~3%로 급격히 하락하였고 계속 떨어질 것으로 전망된다.이는 저출산과 고령화 심화, 반도체, 자동차, 조선 등 기존 주력산업에 편중된 산업구조 고착화, 미래 먹거리 발굴 노력 부족, 높은 청년실업률에서 보여주는 일자리 분배의 난맥상 등 경제·사회 분야의 심각한 구조적 문제에서 비롯된다. 따라서 민간주도의 기술, 자본, 인력 등 생산요소의 원활한 연결, 효율적인 자원배분, 노동시장 개선, 규제 재설계, 사회적 자본 확충 등 경제·사회 구조와 체질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혁신성장’의 필요성이 강조되고 있다.지난 5월 3일 제20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발표한 윤석열 정부의 국정비전과 목표, 110대 ‘국정과제’를 살펴보면 “다시 도약하는 대한민국, 함께 잘 사는 국민의 나라”라는 ‘국정비전’이 제시되었다. 그리고 ‘민간이 끌고 정부가 미는 역동적 경제’라는 ‘국정목표’ 달성을 위해 110대 ‘국정과제’의 많은 부분에 ‘혁신성장’을 위한 다양한 제도개선과 정책과제를 담고 있다.특히 “경제체질을 선진화하여 혁신성장의 디딤돌을 놓겠습니다.”, “핵심전략산업 육성으로 경제 재도약을 견인하겠습니다”, “중소벤처기업이 경제의 중심에 서는 나라를 만들겠습니다”와 같은 국민께 드리는 약속들을 제시하였다. 이 약속은 경제의 중심을 기업과 국민으로 전환하여 민간의 창의, 역동성과 활력 속에서 성장과 복지가 공정하게 선순환하는 경제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함이라고 하고 있다.구체적으로 이러한 약속을 실현하기 위한 ‘국정과제’ 들을 살펴보면, ‘성장지향형 산업전략추진’, ‘역동적 혁신성장을 위한 금융·세제지원강화’, ‘중소기업 정책을 민간주도 혁신성장의 관점에서 재설계’ 등 혁신성장과 관련된 많은 과제들이 제안되고 있다.이들 과제들의 주요내용을 살펴보면 규제영향 분석, 덩어리규제 집중발굴, 규제세르파, 규제샌드박스 플러스, 네거티브 규제시스템 도입 등 매우 도전적 과제들이 제안되고 있다.갈수록 심각해지는 기후변화와 환경문제, 늘어나는 자연·사회재난 피해의 저감을 위해 불가피하게 강화될 수밖에 없는 규제에 효율적으로 대응하면서 혁신성장을 도모하기 위한 많은 규제혁신 과제들이다.또한 성장사다리 구축, 혁신생태계 복원, 중소·중견기업 ESG경영 확산, 지속성장위원회 신설, 소셜택소노미 도입, 기업활력법 상시화, 산업브레인센터 구축, 클러스터경제 혁신체계 구축, 중소기업생산성 특별법 제정 및 벤처기업 복수의결권 도입 등 ‘혁신성장’을 위한 참신한 과제들이 많이 제안되었다.대구·경북은 산업구조적 취약성 등으로 인해 2010년 이후 연평균 성장률이 각각 2.0%, 1.0%로 전국 평균(2.5%) 보다도 낮아서 신정부의 ‘혁신성장’ 관련 핵심 ‘국정과제’가 선도적으로 실천 되어야할 지역이다.

2022-05-09

새 대통령의 출발과 기대

강성태시조시인·서예가 초록빛 향연이 눈부신 계절이다. 연두와 초록으로 넘실대는 산과 들엔 희끗희끗 아카시아꽃이 수를 놓고, 오월의 고운 꿈으로 내려앉는 햇살은 정갈하기만 하다. 생명의 잔치가 시작되는 봄날이 깊어지자 초목은 무엇 하나 거리낌없이 초록의 진영으로 무성해지고 있다. 바람은 부드럽게 쓰다듬듯이 불어오고 때 맞추어 단비(好雨)가 자분자분 내리니, 들판의 농작물은 춤추듯이 반기며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부푼 설렘과 새로운 시작의 봄날은 깐깐오월마냥 활기차고 꿋꿋하기만 하다.5월의 푸르름 속에 새로운 희망과 기대로 오늘은 제20대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하는 날이다. ‘다시, 대한민국! 새로운 국민의 나라’를 슬로건으로 국민이 소망하며 염원하는 정책을 실천하고, 국민이 행복한 미래를 약속하는 윤석열정부가 국민의 기대와 축복 속에 새롭게 출범하는 것이다. 이른바 공정과 상식이 통하고 정의와 법치가 살아 숨쉬는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고, 국민통합과 화합을 이루며 국민의 뜻을 겸손하게 받들어 나갈 새로운 대통령이 첫 발을 내딛는 의미있는 날이다. 그만큼 국민들의 여망과 성원이 큰 날이기도 하다.신선한 새 출발은 언제나 설레고 벅차다.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날이 그렇고 첫 직장에서 첫 월급을 받았을 때의 뿌듯함이 그러하다. 하물며 한 나라의 수장으로 통솔과 최고 지도자의 자리에 오르는 심정은 오죽하랴. 이루 말할 수 없는 자긍심과 함께 막중한 책임감이 느껴질 것이다. 국민들의 축하와 신임을 받은 만큼 요구와 기대에 부응하며 당면한 역할과 리더의 책무를 다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찬반이 대립되고 갈등이 난무하며 이해가 얽힌 작금의 현실은 결코 녹록지가 않다. 그렇기에 늘 지도자의 짐은 무겁고 갈 길은 멀다(任重而道遠)고 하는지도 모른다.지도자의 길은 지고지난(至高至難)하면서도 지엄(至嚴)하다. 보수와 진보의 틈바귀에 지역과 계층을 아우르고 세대와 성별을 배려하며 균형과 통합을 조율해야 한다. 국민을 살뜰히 섬기면서도 국정철학과 비전을 제시하고 시대정신과 가치를 담아 밝은 미래의 희망을 기약하는 소신이 있어야 한다. 새 정부 출범 때마다 장밋빛 청사진으로 국정운영의 희망을 제시하지만, 임기말에는 대부분 국민들의 기대치와 요구치에 다소의 괴리가 있어 왔다. 그만큼 국정과 위정자에게는 복잡다단함이 많고 민심은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그래도 새롭게 내딛는 정부에 또 다른 희망을 걸어보는 것은, 어쨌거나 좀 더 나아지고 편안한 삶을 희원하는 대다수 국민들의 바람과 믿음 때문이 아닐까 싶다. 윤석열정부는 특히, 공정과 정의, 통합과 균등을 위한 당찬 의지로 이례적이고 차별화된 정책대안을 마련하는 듯해서 자못 기대가 크다. 이러한 신정부의 순항을 위해서는 늘 국민 앞에 겸손하고 소통을 강화하며 소명과 책임의식으로 임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위정자가 나무 옮기기로 백성들을 믿게 한다’는 사목지신(徙木之信)의 자세로 굳건히 약속을 지켜 나가는 것이 무엇보다도 관건일 것이다.

2022-05-09

기업의 최대 화두, 안전 최우선

장광일포스코 인재창조원 교수·컨설턴트 명심보감 효행편에 보면 ‘신체발부 수지부모(身體髮膚 受之父母)’란 말이 있다. 신체와 터럭과 피부는 부모에게서 받은 것이라는 말로 무릇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신체가 다치거나 상해를 입으면 효를 다하지 못 한다는 것이다.지난 주말 모친의 팔순을 맞이하여 고향에 다녀왔다. 필자는 선물로 “인생은 80부터 건강하게 오래오래 꽃 길만 걸으면서 사세요”라는 글과 장수 축원 성구(成句)로 “산처럼 오래 살고 바다같이 큰 복을 누리라”라는 ‘수산복해(壽山福海)’라는 글을 붓글씨로 적어서 드렸다.모친도 건강 덕담으로 “늘 건강하구 회사생활 할 때 다치지 않도록 조심하라”라는 말을 하였는데, 명심보감의 구절을 생각해 보면서 기업에서 안전 최우선 활동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 의미를 다시한번 새기고자 한다.우리나라 기대수명이 남자는 80.5세, 여자는 86.5세로 늘었고, 올해 1인당 GDP도 3만4천994달러로 전세계 29위로 높아졌다. 따라서 수명과 수입이 늘어난 만큼 기업에서의 안전사고 충격은 그만큼 커지게 되었다.또한 시대적으로 기업 경영의 최우선 가치가 생산, 품질, 원가 중심에서 작업자 안전을 최우선 가치로 변화되고 있다.안전을 최우선 핵심가치로 삼으면서도 100년 넘게 사업을 성공적으로 이어나가는 세계적인 기업이 많이 있는 것을 보면 안전 투자가 미래의 중요한 요소가 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 중 유명한 기업이 듀폰사이다.이 회사처럼 많은 기업들이 안전을 최우선 핵심가치로 삼고, 안전한 현장을 위해 개선하는 비용에 아끼지 말고 투자해야 한다고 본다.최근 컨설팅하면서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것 중 하나가 안전최우선 ‘해저드 프리(Hazard Free) 공장 만들기 활동’이다. 해저드 프리는 위험점(Hazard)에서 해방(Free)된다는 의미이며, 다시말해 위험점을 없애서 근로자가 안전한 현장에서 일할 수 있도록 현장을 만들어 놓는 ‘안전 최우선 현장 혁신활동’이라 할 수 있다.안전 최우선 현장 혁신활동은 작업자의 안전을 최우선 가치에 두고 작업자가 안전하고 행복하게 일할 수 있는 강한 현장 만들기에 적합한 현장 혁신활동이라 할 수 있다.실상 산업현장을 살펴보면 수많은 위험요소가 잠재되어 있고 작업자들이 곳곳의 위험에 노출돼 있는 것이 현실인데 이런 위험한 현장을 작업자·설비 간 접촉 방지를 위한 위험점 제거 활동과 설비와 사람의 불안전한 상태와 불안전 행동 개선 활동에 집중하는 것이 중요하다.이 활동의 핵심은 잠재위험을 지속적으로 발굴, 개선하여 안전이 확보된 작업현장을 구현하는 것을 목표로 생산, 품질, 원가 측면이 아닌 안전에 집중하는 활동이 수반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안전은 직원의 행복을 위한 기본이며 혁신활동은 ‘실천을 중시하는 전원 참여 활동’이 되어야 한다.안전이 담보되지 않은 기업은 생존이 어려워진 시점에서 안전이 기업 경영의 최우선 가치로 자리잡을 수 있도록 안전 최우선 현장혁신활동이 기업에 뿌리내리길 기대해 본다.

2022-05-09

퇴임하는 대통령, 취임하는 대통령

김진국 고문 오늘 문재인 대통령 임기가 끝난다. 그는 취임하면서 ‘국민과 역사가 평가하는 성공한 대통령’이 되겠다고 약속했다. 5년 임기를 마친 오늘 그는 어떤 마음으로 걸어 나올까. 5년 전 그는 “잘못한 일은 잘못했다고 말씀드리겠다. 거짓으로 불리한 여론을 덮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니 닷새 전 “우리가 이룬 성과에 대해서 자부하고 있다”는 그의 자평은 진심일 것이다.문 대통령은 취임식에서 “진정한 국민 통합이 시작된 날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가. 지금 국민은 유례없이 갈라져 있다. 옳고 그름도 없다. 누구 편이냐가 기준이다. 그는 또 “승자도 패자도 없다…함께 손을 맞잡고 앞으로 전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5년 내내 적폐 청산에 매달렸다. 퇴임 직전에야 “이승만 대통령으로부터 저에 이르기까지 역대 대통령의 공과 과가 있는데…그 역사를 청산의 대상으로 여긴다면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문 대통령 말처럼 적어도 취임 초에는 새 정부가 하는 걸 지켜보는 게 정상이다. 국민의 선택이기 때문이다. 그래야 평가할 수 있다. 그런데 국정 운영을 시작하기도 전에 전쟁이다. 민주당 송영길 서울시장 후보는 윤 당선인을 ‘0.73%포인트짜리’라고 깎아내렸다. 적은 표 차로 당선됐다는 말이다.21대 총선에서 민주당의 정당 득표율(33.4%)은 미래통합당(33.8%)보다 적었다. 지역구 득표율도 과반에 못 미쳤다. 그런데도 대선 직후 다수의 힘을 더 휘두른다. 대통령 집무실 이전을 가로막고, ‘검수완박’ 법안을 온갖 꼼수로 밀어붙이고, 법사위원장 배정 합의도 뒤집으려 한다. 민주당 정부 총리였던 한덕수 후보까지 발목을 잡아, 내각 없이 취임하고, 한동안 그렇게 굴러갈 판이다. 문 대통령은 퇴임 직전까지 소금을 뿌리고 있다.윤석열 당선인도 굽히지 않는다. 당장 급한 건 당선인이다. 그런데도 강수로 밀어붙인다. 마주 달리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두렵다. 당장 한미 정상회담은 제대로 할 수 있을까. 북한의 잇따른 미사일 도발, 핵 도발을 어떻게 대처하며, 빅스텝 파도는 견뎌낼 수 있을까. 결국은 대통령의 거부권 남발, 시행령 정부, 공안 정국이 이어지며 파국으로 치닫지 않을까.민주주의는 상생이다. 상대에 대한 인정, 나와 다른 생각에 대한 존중이다. 나만 옳다면 정당이 여러 개 있을 이유가 없다. 서로 다른 처지와 생각을 인정하고, 대화와 타협으로 합의점을 찾아가는 게 민주주의다. 그런데 우리 정치가 일당 독재의 승리 지상주의, 독선에 빠졌다. 모의법정의 변호사와 검사처럼 이기는 데만 몰두한다. 정말 민주주의가 걱정이다. 민주당 박지현 공동비대위원장은 “당내에 생각이 달라도 다른 목소리를 낼 수 없게 만드는 진영논리와 학연·지연·혈연에 따라 내 편을 챙기는 온정주의가 팽배해 있다”라고 지적했다. 안희정 전 충남지사 조문, 부동산 등 대선 패배 책임론, 최강욱 의원 성적 비속어 발언…. 곳곳에서 내 편 감싸기를 보였다. 20대 위원장의 쓴소리에 기성 정치인 반응은 시큰둥하다. 나잇값을 못 한다.내 생각이, 틀릴 수도 있다는 여지는 남겨야 한다. 그래야 소수도 숨을 쉴 수 있다. 나와 다른 생각을 인정하지 않고, 공격하는 요즘 정치가 두렵다. 정치적으로 나와 다른 생각을 청산, 박멸, 척결하자는 말을 너무 쉽게 한다. 독일의 나치나 중국의 문화대혁명, 스탈린의 대학살에서나 보던 태도다. 유일사상에 대한 신앙이다.지금 이 나라에는 두 개의 나라가 있는 것 같다. 대통령 정부와 국회 정부, 국민의힘 정부와 민주당 정부다. 민주당은 선거 막판에 다당제 연합정치를 위한 정치개혁안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박 비대위원장은 “(대선에서) 졌을지라도 국민께 한 약속은 지켜야 한다”고 했다. 정치지도자들이 조금은 더 어른스러워야 하지 않나.문 대통령은 5년 내내 잘못을 시인한 적이 없다. 물러나는 날까지 ‘남 탓’했다. 부동산도, 경기도, 고용도 이전 정부, 야당, 국민 탓이다. 남 탓의 유효 기간은 짧다. 잘못이 쌓여 있는 건 사실이다. 그러나 내일부터는 윤 정부가 책임져야 한다. 적어도 자세는 그래야 한다. /본사 고문김진국△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중앙SUNDAY 고문,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2-05-08

공천 잡음에 대해 김형동 의원이 답해야!

정안진 경북취재부 지난 6일 오후 2시 예천군의회 앞에서 공천에 탈락한 군의원과 도의원 예비후보들이 국민의힘 경북도당을 규탄하는 성명서를 발표하고 집단 반발 조짐을 보이고 있다.이날 성명서에서 공천 낙천자 일동은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을 당선 시키기 위해 동분서주한 당원 동지들을 배려 한번 해주지 않았다”고 목소리를 높혔다.이에 이들은 “예천지역 지방의원 공천자들의 기초자격평가 점수를 공개하라”고 요구하고 “김형동 국회의원은 잘못된 공천에 책임을 지고 사퇴하라”고 주장해 파문이 커지고 있다.이보다 앞서 발표 된 국민의힘 예천지역 지방선거 공천자를 두고 당원이 아닌 지역주민들의 반응도 싸늘하기는 마찬가지다.특히 이번에 공천을 신청한 현역 군의원 대다수가 김은수 군의회 의장을 제외하고 자신이 출마를 희망한 지역에서 공천을 받은 것을 두고 부정적 여론이 지배적이다.이로 인해 현재 군의원 선거의 경우 국민의힘 공천자들을 모두 선거에서 낙마시켜야 한다는 낙선 운동 분위기마저 감지되면서 향후 선거 판세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여기에다 공천에서 탈락한 예비후보들이 앞다퉈 무소속 출마를 불사할 뜻까지 내비치며 국민의힘과 김형동 의원에게 압박을 가하고 있는 형세라 공천자들도 긴장하고 있다.실지로 예천군의 경우 그동안 역대 지방선거 군의원 선거에서 보수 정당 공천을 받고도 선거에서 낙선한 후보가 적지 않아 공천을 받은 후보들로서도 쉽게 마음을 놓지 못할 수 있다.공당의 공천은 누구나 인정할 수밖에 없는 공정하고 선명하게 이뤄져야 한다.이런 차원에서 이번 예천지역 국민의힘 지역선거 공천은 그 어떤 것보다 여성 비례대표에 대한 당원들과 군민들의 의구심이 만만치 않다.공천자 발표 이전부터 “의외의 인물이 비례대표로 공천된다”는 소문이 나기도 했었지만 이번에 공천자로 결정 된 A씨에 대해 당원들과 군민들 모두가 받아 들이기가 어렵다며 수군대고 있다.지난번 외유 사태로 군민 대다수의 신뢰를 잃으며 의회 무용론까지 제기 될 정도로 위기를 맞은 예천군의회가 공천 잡음 속에 치러진 선거로 원구성이 된다해도 군민들의 불신을 과연 얼마나 씻어 낼 수 있을 지가 걱정이다.이제 이같은 군민들과 당원들의 반발을 무마하고 새롭게 출발하는 국민의힘 윤석열 정부를 위해서라도 경북도당과 김형동 국회의원이 원칙있는 답변을 해야 할 시간이지 싶다.풀뿌리 민주주의의 근간을 지키는 길은 지역주민들의 머슴을 뽑는 일인 당의 공천이 아니라 지역 유권자들에게 온전히 맡기는 것이 타당하기 때문이다. 예천/ajjung@kbmaeil.com

2022-05-08

‘산업도시’ 구미, ‘문화도시’로 건너가기

황윤동 문화예술연구소 ‘점·선·면’ 소장 문화(文化)의 반대말은 자연(自然)이다.사회가 발전하면서 순차적으로 정치학, 법학, 경제학, 경영학, 사회학, 철학, 심리학, 고고학, 인류학 등의 학문이 그 사회에 주도적인 기능을 한다고 한다. 사회 발전에서 표출되는 다양한 방식의 삶을 사회 구성원에 의해 행동 또는 생활 양식화하는 과정에서 의식주, 언어, 풍습, 종교, 학문, 예술, 제도 따위를 만들어 내는 것이 문화이다. 따라서 문화는 정신적이고 지적인 발전을 하는 과정에서 주도적인 기능을 하는 학문에 의해 정리되고 정의되어지는 것이다. 한편, 인간의 문명은 농업혁명을 통해 원시사회에서 농업사회로 진화하고, 산업혁명을 통해 공업사회로 진화하는 과정을 겪는다. 산업혁명은 1차, 2차, 3차의 과정을 거쳐 융합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산업이 발전하는 시기라는 4차 혁명의 과정에서 문명의 진화를 준비하고 있다. 그러니까 문명은 물질적이고 기술적이며 사회 구조적인 발전을 하면서 나타나는 삶의 양태(樣態)인 것이다. 따라서 인간은 자연 상태에서 벗어나 일정한 목적과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정신적이고 지적인 발전을 하는 문화(文化)를 통해 물질적이고 기술적인 진보를 이룩한 문명(文明)을 이끌어 온 것이라 할 수 있다.구미는 1960년대 말 낙동강 모래벌판에 3백여만 평의 ‘굴뚝 숲’이 들어서면서 산업화와 근대화의 기틀을 마련하고, 이름 없던 이 곳은 국내최대산업단지가 되어 도시를 먹여 살리고 국가경제를 성장시킨 중요한 도시가 된다. 산업화의 과정은 국가주도의 방식이었고 그 계획은 시대의 요구에 부흥했으며 도시를 살 찌웠다. 시간이 흐르면서 도시의 성장세는 주춤하고 산업의 쇠약화로 도시 경쟁력이 약화되기 시작한다. 이에 대응할 새로운 신 성장 동력과 도시의 새로운 먹거리 마련이 새로운 과제로 등장한다. 한편 국가의 발전과 함께 사회·경제적 구조는 정보화 시대를 넘어 융합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산업으로 빠르게 재편되기 시작하고 우리나라는 선진국 대열에 합류하기 위해 ‘문화’를 국가 발전 전략으로 활용하기 시작한다. 바로 ‘문화도시’이다. 2014년 지역문화진흥법 제정으로 ‘문화도시 지정 및 지원(제4조)이 정식화되고 문화도시 조성 정책의 흐름이 정식적인 틀을 갖추게 되면서 많은 도시들이 이 사업에 뛰어들고 있다. 구미시는 이런 시대의 흐름에 맞춰 문화특화지역조성사업과 문화적도시재생사업을 통해 ‘문화도시’를 경험하고 ‘문화도시지정’ 공모에 2차례 도전하지만 ‘실패’한다. 하지만 이에 굴하지 않고 2021년 10월 전담부서인 ‘문화도시 TF팀’을 신설하고 적극적인 행정을 펼치고 있다.‘문화도시 지정’ 사업은 “자발적인 시민들의 자율성이 보장된 환경에서, 그들의 다양한 관점으로 ‘도시가 지닌 고유의 문화적 가치’에서, 보편적인 특성을 발견하고 진단하는 수평적인 과정을 통해, 도시의 정체성을 대표하는 새로운 이름을 가진 창의적인 도시 만들기”로 해석해 본다. 구미 문화도시의 핵심목표는 ‘산업도시’ 구미에서 다음 단계로 건너가기 위한 도시의 정체성 찾기이다.문화도시의 주인은 시민이다. 국가 주도의 산업화 과정에서 소외됐던 시민이 전면에 등장해야 한다. 구미시가 경험했던 ‘문화도시지정’ 실패의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다양한 ‘시민’의 목소리를 관 주도의 수직적이고 일방적인 방식으로 담아냈기 때문이다. 시민 거버넌스의 부재가 이를 증명한다. 따라서 구미시 행정의 서비스 대상은 시장이 아닌 시민이어야 하고, 그들의 자율적 의사구조를 지원하는 방식으로 체질을 개선해야 한다. 나아가 행정협의체는 부서별 사업 보고에만 머물지 말고 실질적인 업무협조를 통해 도시의 문제를 적극적으로 개선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시의회는 이런 수평적이고 민주적인 절차가 보호될 수 있도록 법적·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산업도시’ 구미가 다음 단계로 건너가기 위해서는, ‘문화를 통한 구미시의 도시전략수립’이라는 과감한 사고의 혁신으로 문화도시를 전개해야 할 것이다. 따라서 구미의 신 성장 동력은 바로 ‘문화’가 되어야 하며 도시의 새로운 먹거리 마련은 저절로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

2022-05-08

화석(花石)

오늘 아침 노래 하나가 입에 매달렸다. 옛날에 금잔디 동산에 매기 같이 앉아서 놀던 곳~, 어릴 적 이 노래를 들으면 왜 산에 메기가 산다는 거지 하다가 멜로디를 놓치곤 했다. ‘라디오에서 김창완 아저씨가 나와 똑같은 경험을 이야기했다. 아침에 떠오른 노래가 종일 따라다닌 것, 외국 사람 이름 매기가 물고기 이름 메기가 되어 뒤섞였던 기억이 같았다.매기의 추억을 들으면 초등학교 시절이, 또 어떤 곡을 들으면 중학생 때가, 이 노랜 대학생이 되어 불렀었지. 노래가 지나간 시절을 기억하게 하는 화석(化石)이라고 읊조렸다. 지질학에서 화석이 발견되면 그곳이 고생대 땅이니 중생대 땅이니 나누는 시준화석이 있다고 한다. 시준화석이란 어떤 일정한 층에서만 발견되는 화석속 또는 화석종을 이르는 용어다. 생존 기간이 한정되어 있고 그 분포가 넓어야만 해서 예로부터 고생대의 삼엽충류, 중생대의 암모나이트류, 신생대의 포유류 등이 시준화석으로 이용된다.내 추억의 시준화석으로는 초등학교 4학년 담임이 풍금을 연주하며 알려준 ‘아름다운 것들’이 있고, 임병수의 ‘약속’을 들으면 라디오 앞에 엎드린 중학교 3학년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이상은의 ‘담다디’를 들으면 교생 실습하던 가을이 내 몸 어딘가 저장돼 있다가 툭 튀어나와 가사 하나 잊히지 않고 따라부르게 한다. 그때 그 모습을 간직한 노래가 추억을 소환하는 화석이라는 김창완 아저씨 말이 딱 맞다.이렇게 추억을 불러내는 시준화석이 또 있다. 꽃이다. 겨울이 끝나고 봄이 왔다고 폭죽을 터뜨리는 산수유를 보면 비가 오는 날 함께 꽃내 골짜기에 산수유군락지를 함께 보러 갔던 현미씨가 생각나고, 통일전에 매화가 환하게 피면 꽃만큼 진한 향기가 입구부터 그득해 함께 코를 흠흠거렸던 은정씨 목소리가 들리고, 분홍빛 진달래를 보면 비슬산에 함께 올라 꽃길 사이를 누비던 경숙 순혜 언니가 생각난다. 꽃마다 데려다주는 사람이 다르다.5월, 향교산에 이팝꽃이 뽀얗게 얹혔다. 나무 아래서 올려다보면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가지마다 함박눈이 소복 쌓인듯하고, 늘어진 가지를 눈높이에서 마주하면 수북하던 이밥이 여러 개의 국수 가락으로 갈라져 흔들린다. 이래저래 보릿고개를 넘던 조상님들이 올려다보며 침을 꼴깍 삼킬만하다.오랜 시간 그곳에 잘 있어 주었다고 2020년 12월에 ‘포항 흥해 향교 이팝나무 군락’이라는 이름으로 천연기념물 제561호(식물-군락)로 지정됐다. 옥성리 흥해 향교와 임허사 주변에 있는 군락지는 향교 건립을 기념해 심은 이팝나무의 씨가 떨어져 번식해 조성됐다. 예로부터 흰쌀밥 모양인 이팝꽃이 많고 적음에 따라 한해 농사의 풍흉을 점치는 등 선조들의 문화와 연관성도 높아 민속·문화적으로도 가치가 크다는 평가도 받는다.십여 일 흥해 읍내 가로수부터 산까지 하얗게 뒤덮는다. 만개 하기 전에 민재씨와 같이 다니러 가 첫 눈맞춤을 했다. 며칠 뒤 선희씨와 도시락을 싸서 이팝꽃 그늘에서 점심을 먹었다. 삼 일 후 미정과 영희씨가 향교산을 모른다고 해서 가이드로 따라갔다.갈 때마다 꽃그늘 아래에는 어제도 그제도 거기 머물렀다는 듯 동네 할머니 할아버지가 자신들이 가져다 놓은 의자 하나씩 차지하고 앉았다. 이팝꽃이 그분들을 위로하고 그분들은 숲을 보전했다. 함께 같은 시간을 지나와서인지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풍경이다.꽃이 피었다는 소식을 다들 어디서 들었는지 상춘객들이 몰린다. 커다란 렌즈를 단 카메라를 들고 꽃을 담느라 꿀벌처럼 나무 주위를 맴돈다. 우리도 계단을 따라 내려가 동네와 만나는 곳에 가지를 드리운 이팝꽃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그 인증샷을 사진과 글을 나누는 SNS에 올리니 친구 주영이가 내가 선 곳이 자기 친정집 앞이라고 댓글을 달았다. 아침에 일어나 자신의 친정집을 보며 하루를 시작하니 반갑다고 했다. 흥해가 고향이라는 말은 들었지만 이렇게 내가 그 앞에 서서 꽃을 올려다볼 줄은 몰랐다. 이팝꽃이 피면 이제 소환될 친구가 하나 더 늘었다. /김순희(수필가)

2022-05-08

정치와 치킨게임

우정구 논설위원 손자병법은 시대를 초월해 병서로써만 아니라 일반인의 처세학으로도 자주 회자되는 책이다. 누구에게나 잘 알려진 지피지기 백전불태(知彼知己 百戰不殆)나 승패 병가상사(勝敗 兵家常事)라는 말이 여기에서 나왔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는 것과 “한번 이기고 한번 지는 것은 병가에서는 흔히 있는 일로서 지더라도 너무 낙담할 필요는 없다” 는 이 말은 진리처럼 회자되는 표현이다.어느 군사전문가는 “정치도 전쟁의 연장선”이라 말했다. 전쟁이란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려는 속성이 있기 때문으로 풀이되는 대목이다. 그러나 민주정치가 국민의 행복한 삶을 영위하는 데 있다면 전쟁이란 수단이 필요할지는 의문이다.맹자는 “정치는 민중의 마음을 얻기 위한 일련의 과정과 행위”라고 말했다. 민중의 마음을 얻지 못하면 위임된 정치권력은 회수되는 것이 마땅하다는 사상이다.치킨게임은 1950년대 미국 젊은이 사이에 유행한 자동차 게임에서 유래한 용어다. 두 명의 경쟁자가 각각 도로 끝에서 서로 마주보고 정면으로 돌진하다가 충돌 직전에 먼저 핸들을 꺾는 사람이 패자가 되는 게임이다. 여기서 핸들을 먼저 꺾는 사람을 치킨(chicken)이라고 불렀는데, 이는 겁쟁이라는 뜻이다.마주보며 달려오는 기차가 부딪치면 타고 있던 승객 수백명의 목숨이 위태로운 것은 당연한 이치다. 정치를 치킨게임처럼 할 수는 없다. 어느 한쪽의 승리가 아니고 모두가 공멸하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국가와 국민이 입는 피해는 말할 것도 없다. 정치에 대화와 협상이 반드시 필요한 이유다.지금 강대강 대결구도의 우리 정치가 행여 치킨게임처럼 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몹시 걱정스럽다./우정구(논설위원)

2022-05-08

붓다를 생각한다

김규종 경북대 교수 음력 4월 8일인 어제는 ‘부처님 오신 날’이었다. 올해가 2,022년이고, 불기(佛紀)로는 2,566년이기에 고타마 싯다르타는 기원전 544년에 태어난 셈이다. 도이칠란트 철학자 칼 야스퍼스는 1949년 역사의 기원과 목표에서 ‘축의 시대’라는 개념을 창안한다. 기원전 800년부터 기원전 200년까지 유라시아에 걸출한 사상과 종교가 동시다발적으로 출현했다는 것이다.놀라운 발상이자 탁월한 지적이 아닐 수 없다. 춘추전국시대 중국에서 공자를 비롯한 제자백가가 등장하고, 인도에는 우파니샤드 철학에 바탕을 둔 자이나교와 불교가 출현한다. 중앙아시아에는 배화교(拜火敎)를 창시한 조로아스터(차라투스트라)가 등장하며, 근동에서는 히브리 선지자들이 유대교의 가르침을 예비한다. 그리스에서는 탈레스와 피타고라스 같은 자연 철학자와 소크라테스를 비조(鼻祖)로 하는 아티카 철학이 나타난다.인공지능 로봇과 드론의 21세기에도 이들의 가르침은 강력한 위력을 발휘한다. 과학기술문명의 시대에도 우리는 2,000년 선각자들의 가르침에 의지해 살아간다.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요소 가운데 하나가 사상과 종교다. 종교와 사상의 가르침과 깨달음에 의지해서 우리는 인간성과 품위, 가치와 미덕, 선과 정의를 아침저녁으로 사유하면서 살아가기 때문이다.최고의 깨달음을 얻은 ‘붓다’ 말씀 가운데 ‘탐진치 삼독(三毒)’이 특히 폐부를 찌른다. 탐욕과 분노, 어리석음의 세 가지가 인생을 망치는 주범이라는 게 붓다의 가르침이다. 이들 세 가지는 세 마리 새끼돼지처럼 한 묶음으로 뭉쳐 다닌다. 탐욕에 사로잡혀 욕망을 실현하지 못하면, 우리는 분노의 차원으로 이동한다. 분노를 억제하지 못할 경우, 우리는 다시 어리석은 행동으로 향한다. 지극히 명약관화한 연쇄반응이자 인과(因果) 법칙이다.이 세상 누구에게나 나름의 욕망이 있다. 욕망이 없는 사람은 절정의 수도승이거나, 절반 죽은 사람 내지 광인(狂人)일 것이다. 문제는 욕망의 제어 정도에 있다. 욕망이 욕망과 충돌하면 강렬한 파찰음과 불화의 굉음이 터져 나온다. 요즘 한국 사회를 들여다보면 폭발 직전의 거대한 시한폭탄이 째깍거리는 듯하다. 남녀와 세대, 부자와 빈자, 지배계층과 피지배계층 사이의 갈등과 알력이 최고조에 달한 느낌이다.하나의 궤도(軌道) 위를 마주 보고 달리는 두 대의 열차가 정해진 충돌 시각에 맞춰 질주하는 살풍경을 나는 오늘도 예감하고 있다. 그 모든 것의 근저에 ‘탐욕’이 자리한다. 욕망을 넘어선 탐욕, 특히 물질을 향한 욕망이 괴기스러울 정도로 거대하다.영화 ‘스파이더맨’ 연작에 등장하는 각종 괴물이 한반도 남단에 총출동해 있다는 불길한 느낌이 비단 나만의 감촉일까?! 어째서 우리는 탐욕의 열차를 멈추지 못하고 충돌을 향해 곧바로 직진하고 있는 것일까?!이 나라의 수많은 민초(民草)의 넉넉함과 선량함과 달리 탐욕을 부추기는 정치인들과 언론인, 일부 권력자들의 행악질을 통렬하게 경고하고 그들을 퇴출하지 않으면 우리 공동체에 적신호가 켜질 것은 자명하다. 부처님 오신 날에 전하고자 하는 나의 낮은 목소리다.

2022-05-08

북한 농촌의 에너지자립마을을 꿈꾼다

위현복(사)한국혁신연구원 이사장 지난 2015년에 있었던 일이다. 러시아 현지 지사장을 맡고 있던 후배로부터 뜻밖의 주문이 날아왔다. 태양광 패널 100Wh, 200Wh, 300Wh 3종류를 구해줄 수 있느냐는 문의였다. 용도를 물었더니 의외의 대답이 돌아왔다. 북한에 수출하겠다고 했다. 국내 태양광 업체들에 문의했더니 그 정도 용량은 너무 소형이어서 한국에서는 생산되지 않는다고 했다. 국내에서는 최소한 1~3kWh 정도는 되어야 생산이 가능하다고 했다.그렇다면, 북한에서는 왜 이렇게 작은 소형패널이 필요한지 궁금했다. 내용을 알고 보니 뜻밖이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집권하면서 기존 집단농장을 해체해서 농민들에게 농지를 분배했다고 한다.농가마다 1천~1천500평씩 나눠줬고, 몇 년이 지나자 부지런한 농부들은 잉여 농산물을 내다 팔아서 나름대로 재산을 형성했고, 여유가 생기니 자연스럽게 TV도 사고 휴대폰도 가지게 되었다.하지만, 대부분의 농촌지역이 전기가 제대로 들어오지 않으니 TV도 볼 수 없고 휴대폰 충전도 할 수 없었다. 이런 사정 때문에 용량이 작은 태양광이라도 설치해서 전등 몇 개 켜고, TV도 1~2시간 보고, 휴대폰도 충전하고자 한다는 설명이었다. 이 얘기를 전해 듣고 몇 가지 사실을 새롭게 깨닫게 되었다.첫째, 집단농장을 없애고 농민들이 자경을 시작하면서 북한 사회에도 시장경제가 싹트고 있다는 점이다. 사유재산을 늘리기 위해 열심히 일하니까 생산량이 증가하고, 자연스럽게 잉여농산물을 거래하는 장마당이 활성화되고 있다는 것이다.둘째, 북한 농촌지역에는 전기공급이 거의 안 된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사실은 한밤에 찍은 인공위성 사진에 암흑으로 나타난 북한 모습으로 이미 증명되었다. 10여 년 전 선교단체들이 가로세로 40~60㎝ 태양광 패널에 충전용 전구 2개를 달아서 아프리카로 보내는 일에 동참한 적이 있었다. 바로 북한 농촌의 모습이 그와 유사한 상황이라 여겨져서 새삼 놀랐다.셋째, 북한 농민들이 중국산보다 훨씬 비싼 한국산을 원한다는 것이다. 북한에서도 중국산은 값은 싸지만 품질이 떨어진다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다고 했다. 동시에 농민들 마음속에 강한 반중감정이 자리잡고 있다는 소리도 듣긴다. 이런 이유로 가격은 조금 더 비싸긴 하지만 한국산 태양광패널을 선호한다고 했다.마지막으로 새롭게 깨달은 것은 북한 농촌에도 부자들이 생겨나고 있다는 점이다. 이제 김정은 집권 10년이 지났으니 빈부격차가 상당할 것이란 생각이 든다.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북한 농촌이야말로 탄소배출이 없는 이상적인 에너지자립마을로 만들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오히려 개발이 안된 북한 농촌이 가장 이상적인 21세기형 신·재생 에너지 기후환경사회로 직행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려 있는 것이다.내가 구상해본 북한 농촌의 탄소제로 에너지자립마을 조성 내용은 다음과 같다. 우선 거주환경이 취약한 농촌지역에 북유럽·러시아풍 목조주택을 지으면 건축과정에서 CO₂ 배출제로 주택을 지을 수 있다. 북한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시베리아에 수만 명의 벌목공을 파견했었다. 북한 입장에서 보면, 러시아로부터 주택건설용 목재를 들여와서 목조주택을 짓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로 추측된다.특히 남향 지붕 한 면에 태양광 패널을 설치하는 ‘지붕일체형 태양광 주택’을 지을 경우 한 가구에서만 5~10kWh 전기를 생산할 수 있다. 집집마다 소형 풍력발전기를 설치하면 2~3kWh 정도의 전력을 추가로 생산할 수 있다. 생산된 전기는 저장장치(ESS)에 갈무리해서 마을단위로 단일 그리드(전력망)에 묶으면 이상적인 에너지자립마을이 완성된다.북한은 지금 전기 불모지나 다름없다. 지난 2015년 기준, 북한의 발전설비 용량은 770만kW로 한국의 10%에도 못 미친다. 북한 당국이 오는 2044년까지 생산 목표로 잡고 있는 신·재생 에너지 전력량은 500만kWh이다. 이 정도는 북한 농촌주택 100만 호에 호당 5kWh용량 태양광 패널만 설치해도 달성되는 목표치다.마을마다 독립된 그리드를 구축하는 것은 송·배전 손실을 줄일 수 있어 국제적으로 권장하는 사항이다. 북한의 노후화된 송·배전 설비는 송전 손실률이 20%(한국은 3.5%)에 달해 마을별로 독립된 그리드를 구축하는 것은 시급하다.북한의 끊임없는 핵·미사일 위협으로 남북관계가 그 어느 때보다 위기상황에 놓여 있지만, 관계개선을 위한 다양한 채널은 열려 있어야 한다. 그 채널 중의 하나가 ‘북한 농촌 에너지자립마을 건설을 위한 협상창구’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 협상창구는 남북관계 개선에 실용적인 성과를 가져올 것으로 판단된다.내가 구상하는 에너지자립마을 건설이 가능해지기만 한다면, 국제사회에서 가장 외톨이로 지내는 북한이 지구촌의 최대 현안인 탄소중립이라는 글로벌 어젠더에 있어서는 선도적인 나라가 될 가능성이 있다.나의 이런 생각이 엉뚱한 상상이 아니라 현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2022-05-08

새 내각 인사 청문회를 보면서

배한동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 흔히들 인사가 만사라고 한다. 윤석열 당선자는 선거운동 기간 중 대통령에 당선되면 이 나라 최고 인재를 뽑아 국민을 위해 헌신하는 정치를 하겠다고 약속했다. 지역이나 세대, 당파를 뛰어 넘는 능력과 전문성에 기반한 인사를 기용하겠다는 뜻이다. 문재인 정부의 코드 인사에 염증을 느낀 국민들 중엔 새로운 내각에 대한 첫 인사에 기대가 컸던 것도 사실이다.지난달 총리 후보를 포함한 내각 후보 명단이 발표됐고 현재 인사 청문회가 진행 중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총리 후보의 인준 가능성마저 보이지 않고 있다.여소 야대 구도 하의 이번 청문회의 모습은 과거의 파행적인 모습과 달라지지 않았다. 후보의 비리의혹과 도덕성 문제가 여지없이 연일 폭로되고 있다.과거와 다른 ‘혹시나 청문회’가 ‘역시나 청문회’로 이어지고 있다. 5월 10일 출범하는 윤석열 정부는 총리나 장관 없이 출범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한덕수 총리후보 낙점은 새 정부에 대한 기대와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코로나와 경제적 위기 상황에서 그의 총리 발탁은 국민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주었고, 청문회 통과는 무난하리라는 예상도 있었다. 그러나 청문과정은 그에 대한 기대와 예상을 뒤엎어 버렸다. 그는 총리 등 공직 퇴직 후 이 나라 최대의 로펌에서 4년간 20억원의 고문료를 수령했음이 드러났다.그는 로펌에서의 활동과 역할에 대한 의원들의 질의에 ‘국익과 공익을 위해 일했다’고 답변하면서도 구체적 활동 내역은 로펌의 ‘영업비밀’이라 밝힐 수 없다고 했다.일부 의원들은 그가 론스타의 외환은행 매각에 관여한 대가라고 비판하고, 그의 여러 공직 경력은 로펌을 가기 위한 수단이라고 혹평하였다.과거 청문회에서 여러 총리 후보의 낙마사태가 연상된다. 박근혜 정부 시절 변호사 수임료 문제로 총리후보에서 낙마한 안대희 대법관의 데자뷰가 떠오른다. 차제에 고위 공직자와 로펌간의 회전문 인사를 막을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이번 청문과정에서 김인철 사회 부총리가 청문회 직전 전격 사퇴했다. 그의 사립대 총장직과 원로 교수로서의 경력은 장관후보로서 부족함이 없는듯 보였다. 그러나 청문과정에서 드러난 그의 과거 여러 행적은 결코 국민들의 정서에는 부정적으로 비쳤다.누구나 선망의 대상인 미국의 풀브라이트 장학금을 본인뿐 아니라 아내, 아들, 딸 등 전 가족이 수령했던 것이다.이 장학금은 연 6천만원 뿐 아니라 이사비까지 지원되는 최고의 장학 제도인데 김 후보자 자신도 장학생 선발의 추천자임이 드러났다. 더구나 그가 제자의 논문 심사를 유흥업소에서 했다는 보도는 그에 대한 위신을 여지없이 실추시켰다.그가 청문회 전 전격 사퇴한 것은 윤석열 정부를 위해서도 다행한 일이다. 그러나 사회 부총리 후보의 검증을 소홀히 한 인수 위원회 등 담당자들은 책임은 면하기 어렵다.보건 복지부 정호영 후보의 인사 청문회를 관심 있게 지켜보았다. 여론의 질타로 의기소침할 줄 알았던 정 후보는 청문회 초반부터 당당한 모습을 보였다. 그는 두 자녀 의대 편입이 도덕적으로도 전혀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확고히 견지했다. 정 후보자의 아들딸이 자신이 병원장으로 재직 중인 의과 대학 편입은 사실이지만 성인이 된 자녀가 자신의 자유의지로 편입한 것을 부모가 막을 수 없었다는 입장이다.같은 의대 동료 교수들에게도 ‘자녀가 떨어질까 두려워’ 알리지도 않았다고 강변하였다. 그의 주장이 사실일 수도 있다. 상식적으로 볼 때 두 자녀 모두 자신이 재직 중인 의과대학에 편입한 것은 국민 정서상 이해하기 어렵다. 더구나 조국교수 자녀의 부모 찬스 문제로 세상을 들끓게 한 민심이 이를 용납키는 더욱 어려운 현실이다. 그는 자녀의 의대 편입이 오얏나무 아래서 갓끈을 고쳐 맨 꼴이라 송구하다고 했으나 이 역시 적절한 비유로 보이지 않는다.5월 10일은 윤석열 새 정부의 출범일이다. 현재로서는 총리 인준은 기대하기 어렵고 거대 야당은 장관 후보 3∼4명의 낙마까지 주장하고 있다.이는 문재인 정부의 출범 시와 대동소이한 광경이다.각료들의 회전문 인사, 부모 찬스, 법인카드 사용, 병역비리, 자녀의 입시 스펙 쌓기 등은 청문회의 단골 메뉴가 되어 버렸다.새 정부의 인사 담당자들은 사전 검증을 철저히 하여 앞으로 있을 수많은 인사에서 달라진 모습을 보여야 한다.청문회 과정에서 드러난 공직자의 이해 충돌, 부모의 찬스 등도 상식의 잣대로 검증기준을 마련해야 한다.또한 야당의 총리인준 연계 장관 후보 사퇴 요구는 새 정부 출범 발목잡기라는 비난을 면키 어렵고, 국민의 눈높이에서 벗어난 주장 역시 엄청난 역풍을 맞을 수 있다.국민들의 인사에 대한 요구 수준은 저만큼 높아졌는데 후보의 도덕성은 더욱 퇴락하여 안타까울 뿐이다. 혹시나 했던 청문회가 역시나 청문회로 전락한 책임은 여야 모두에게 있다.

2022-05-08

여성가족부는 계륵인가?

유영희 인문글쓰기 강사·작가 여성가족부 폐지를 공약으로 내걸었던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됐다. 그러나 내각 인선 발표에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가 지명되면서 당분간은 존속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고 보면, 여성가족부는 폐지하자니 아쉽고 유지하자니 큰 명분이 없는 상태가 되어 계륵이 된 모양새다. 계륵이란 닭의 갈비뼈라는 뜻으로 버리자니 아깝고 먹자니 먹을 것이 없는 것을 뜻한다. 여성가족부는 어쩌다 계륵이 되었을까?여성가족부의 전신은 여성부이다. 전 세계적으로 여성부 또는 여성 업무 전담 부서가 생기게 된 것은 1995년 베이징에서 열린 제4차 세계여성대회에서 유엔의 결의안이 채택된 데서 비롯됐다. 이 선언을 계기로 우리나라도 2001년 여성부를 설치한 것이다. 그러나 여성부의 역사는 순탄치 않았다.여성부가 설치되고 보건복지부 업무가 점점 이관되다가 2004년 보건복지부에서 담당하던 영유아 보육사무를 이관받은 후 그 다음 해에는 아예 명칭도 여성가족부로 바꾸고 보건복지부의 가족 관련 업무까지 여성가족부로 이관시키면서 여성부의 설립 이유가 흔들리기 시작했다.2008년 잠시 여성부로 개편됐지만, 다시 여성가족부로 바뀌고 보건복지부의 청소년과 가족 관련 업무를 이관시켰다. 그 후 점차 청소년과 가족 관련 예산이 증가하면서 올해에는 여가부 예산 1조 4천억 원 중 여성 예산은 2천억 원에 불과하다. 이제는 여성가족부라는 명칭이 무색해지고, 가족여성부 또는 청소년가족부라고 하는 것이 더 어울리는 상태가 됐다. 그러나 이렇게 여성 예산이 적은 것은 성차별이 해소되었기 때문은 아니다.영국의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2013년부터 매년 봄 유리천장 지수를 발표하고 있다. 유리천장 지수가 높을수록 여성이 일하기 좋은 환경이라는 뜻인데, 우리나라는 조사가 시작된 첫해부터 올해까지 10년 내내 조사대상국 29개국 중 꼴찌를 기록하고 있다. 남녀 임금 격차도 31.5%로 가장 높고, 관리직 여성 비율과 기업 내 여성 이사 비율 모두 꼴찌이다.그런데도 5월 7일 뉴스를 보니, 여가부 장관 후보를 지명한 일로 여가부 폐지 공약을 이행하지 않는다는 의심을 받았기 때문인지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여성가족부를 폐기하는 안건을 발의했다. 하루전까지만 해도 인구가족부로 발의한다고 예상했는데 아예 폐지로 돌아선 것이다. 그 대신 청소년과 가족 업무는 보건복지부로 이관하고 보건복지부 장관을 부총리 급으로 격상시킨다는 것이다.여성가족부가 이렇게 치이게 된 이유 중 하나는 부처 이름이 대상 중심으로 되어 있어서 업무가 여러 부처에 중복되어 있다는 인식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미국은 여성부가 독립되어 있지 않고 부처마다 국의 형태로 설치돼 있다.유리천장 지수 꼴찌에서 보듯이 한국의 여성 차별의 구조적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브라질, 방글라데시, 네팔, 인도는 물론, 프랑스를 비롯한 주요 선진국에도 여성부가 있거나 여성 전담 기구가 있다. 나라마다 형태는 다를지라도 구조적 성차별 문제를 해결할 전담 부서는 필요하다.

2022-05-08

코로나19 펜스

강길수 수필가 학교 녹지화단에서 영산홍꽃이 활짝 웃으며 어서 오라고 손짓한다. 하지만, 갈 수 없다. 전 같으면 여러 사람이 정자나 곁 의자에 앉아 웃음꽃을 피우고, 더러는 운동장을 걷고 있을 시간이다.무엇이 마음에 걸리고 억누르는 것만 같다. 찝찝한 생각도 가슴을 붙잡는다. 바로, 코로나19 바이러스 전염 후 새로 세운 펜스 때문이다. 펜스는 녹지의 화단이나 정자, 의자 같은 시설물들 위치를 고려하지 않고 부지경계선 위에 무작정 놓아졌다. 그 바람에 녹지의 꽃과 나무, 편의 시설들이 그만 갇힌 신세가 되고 말았다.십여 년 전쯤, 전국적인 ‘담장 허물기’ 붐이 일었다. 초등학교는 물론 관공서, 종교시설까지 담장 허물기 사업이 벌어졌다. 국민 쉼터가 부족한 우리나라 도심의 현실에서 담장 허물기 사업은 가뭄의 단비였다. 덕분에 주민들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쉬거나, 걷기운동까지 하게 되었으니 정말 따봉이었다. 피부에 와 닿는 위민(爲民)행정의 한 표본이었다.출퇴근 시마다 한 초등학교 곁을 걸어 지나다닌다. 보도 옆 학교 구내엔 아름다운 녹지 정원이 담장 허물기 사업으로 마련되었다. 정자, 야외의자 등 편의 시설도 함께 있어 도심의 훌륭한 녹지 쉼터다. 많은 시민이 쉬거나 여가를 즐기는 곳으로 자리매김하였다. 철길 숲이 생기기 전엔 나도 자주 걷거나 쉬었다. 코로나19가 퍼진 어느 날, 어른 허리춤 높이의 ‘코로나19 펜스’가 녹지 정원을 막아섰다.우리말 ‘울타리’는 풀이나 나무 따위를 얽거나 엮어서 만든 일종의 표지(標識)다. 경계를 알려주어 사람이 스스로 넘지 말라는 안내판 같은 것이리라. 하지만, 코로나19 전염을 막으러 설치한 이 금속펜스는 울타리로 보이지 않는다. 하얗게 칠하고 알록달록한 동그라미, 타원, 세모, 마름모 모양의 무늬들로 꾸몄다. 그러나 사람 출입을 강제로 막으려는 시설물이니, ‘울타리’가 될 수는 없을 터다.금속펜스의 높이나 견고성으로 볼 때, 영, 유아나 노약자 말고는 맘먹으면 누구나 넘을 수 있다. 때문에, 범죄 의도를 품고 넘는 자는 막을 수 없다. 때문에, 시민 쉼터만 빼앗은 결과가 되고 말았다. ‘코로나19 펜스’를 세운 이곳 초등학교들의 녹지 차단 모습은 거의 같다. 비용은 따지지 않더라도, 뻔히 보이는 것을 애써 감추려는 나라 살림의 단면을 펜스를 통해 보는 것 같아 답답하고 씁쓸하다.대통령이 ‘촛불혁명’이라 자칭하며 출범한 문재인 정권의 지난 5년이, 학교의 ‘코로나19 펜스’ 같아 보이는 것은 착각일까. 아름다운 녹지가 눈에 뻔히 보이는데, 불필요한 펜스가 가로막아 갈 수 없는 답답함…. ‘소득 주도 성장론’의 실패처럼 나라의 경제, 안보, 외교, 복지, 의료, 국방 등 주요 정책들이 현실과 동떨어진 펜스처럼 만들어져, 주권자 국민과 소통하지 못했다. ‘내로남불’의 먹먹한 세월만 보냈다.이번 3·9 대선은 중앙 선관위의 통계수치가 증명하는 ‘부정선거’ 정황에도 불구하고, 하늘의 도우심으로 정권이 바뀌게 됐다. 새 정부는 나라의 요소요소에 필요 없이 막아 세운 ‘코로나19 펜스들’을 하루빨리 제거해 나가면 좋겠다.

2022-05-08

1인가구 시대

우정구 논설위원 행안부 주민등록인구 통계에 의하면 2021년 9월 우리나라의 1인 가구수는 940만명이다. 전체 가구수의 40.1%다. 가구형태 가운데 가장 높은 비율이다. 2인 가구가 23.8%로 다음으로 많았다.부족사회에서 씨족사회로, 대가족사회에서 핵가족사회로 바뀌어 오던 종전의 가족 형태와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패턴의 가족개념이 1인가구다. 부모나 형제없이 혼자 사는 사람이다.1인 가구가 늘어난 이유는 다양하다. 결혼보다 자신의 삶을 즐기겠다는 시대적 흐름과 경제적 이유, 이혼율 증가, 고령화에 따른 노년인구 증가 등을 손꼽을 수 있겠다.이런 1인가구 증가는 미국, 일본 등 외국에서도 나타난 신조류다. 일본은 1980년쯤 등장해 1990년대에 와서는 보편화된 사회현상이다. 이후 1인가구로 살다가 혼자죽는 고독사가 늘면서 사회적으로 큰 충격을 던지기도 했다.우리나라는 1990년대에 이르러 본격 등장한다. 1997년 IMF 외환위기가 자극제가 됐고 이후 개인주의가 확산되면서 그 수가 늘었다. 지금은 증가 속도가 가팔라 머지않아 일본을 앞지를 것으로 보고 있다.뉴욕대 에릭 클라이넨버그 교수는 1인가구 증가에 따른 변화를 솔로 이코노미(Solo Economy)라고 불렀다. 혼자사는 싱글족을 겨냥한 새로운 시장경제의 흐름을 일컫는 말이다. 실제로 1인가구를 위한 소비상품은 이제 대중화됐다. 전기밥솥이나 초소형세탁기 등 혼자 쓰기 편리한 가전제품이나 가구는 물론 쪼개 파는 소포장 단위 식품과 1인가구를 위한 식당도 있다.1인가구가 새로운 트랜드임을 부인할 수는 없다. 오늘날 우리사회가 이를 어떻게 수용할지는 숙제다. 가정의 달을 맞아 한번쯤 생각해 볼 문제다./우정구(논설위원)

2022-05-05

검수완박을 보는 민심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 이른바 ‘검수완박’(검찰수사권 완전박탈) 법안이 정치권을 뒤흔들고 있다. 6·1 지방선거를 앞둔 시기여서인지 정치권의 반응은 더욱 예민하다.특히 검수완박 법안 추진 이후에 민주당 지지율이 떨어지고 있어 지방선거에서도 국민의힘이 낙승할 것이란 전망이 많다.우리 사회 일각에서 ‘검찰공화국’이란 말이 공공연하게 쓰일 만큼 검찰의 위세가 드높아지면서 병폐가 적지않다는 지적이 이어져왔다.‘전관예우’라는 전근대적인 비리도 그중 하나다. ‘절대적 권력은 절대적으로 부패한다’고 했다. 대통령제하에서 최고 권력자인 대통령에 맞서 검찰이 맞서 싸울 정도면 검찰의 권력이 그만큼 커진 것도 사실이다. 그러니 보수나 진보 할 것 없이 검찰의 제왕적 권력에 견제를 가할 필요성을 느끼는 것은 당연하다.그렇다해도 국회에서 과반을 넘는 다수의석을 가졌다는 이유로 더불어민주당이 여야간 충분한 논의와 국민적 합의 없이 일방적으로 밀어붙여 입법을 강행한 것은 국민의 지지를 받기 어렵다. 정당지지율을 일별로 분석한 자료를 되짚어보면 더욱 그렇다. 여야가 국회의장의 중재안을 수용한 날인 4월 22일 민주당 지지율이 급등하고, 국민의힘 지지율이 급락했다. 하지만 국민의힘이 재논의를 요구하면서 사실상 중재안을 거부한 4월 26일에는 민주당 지지율이 급락하고, 국민의힘 지지율이 급등했다는 것. 국민의힘이 여야 합의 파기란 부담감에도 불구하고 입장을 바꾼 이유를 알 수 있다.대다수의 보수층과 중도층이 검수완박 법안에 대해 비판적이라는 걸 미루어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더구나 이번 입법과정에서 중도층 여론에 더 직접적인 영향을 준 건 입법 강행 과정에서 노출된 편법과 꼼수다.아무리 정당한 입법이라고 해도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가 아닌가. 편법과 꼼수는 결코 정도가 아니다.민주당의 검수완박 입법을 바라보는 국민의 시각이 차가운 데는 또 하나의 이유가 있다. 선거사범에 대한 검찰 수사권 폐지가 포함된 입법은 아무리 봐도 방탄입법의 냄새가 짙기 때문이다.이런 이유로 검수완박 이슈는 6·1 지방선거에 임하는 민주당 후보자들에게 매우 곤혹스럽다. 국민의힘은 대선 때 들고나왔던 민주당 심판론을 다시 꺼내들면서 검수완박 이슈를 지방선거 때까지 끌고갈 태세다.여론조사에서도 민주당 핵심지지층이 많은 호남을 제외하곤 전국 대부분 지역에서 검찰 수사권 폐지에 반대 여론이 찬성보다 많고, 특히 수도권은 물론 캐스팅 보트라는 충청권에서도 10%p 넘게 차이를 보였다.민주당은 일단 인사청문회 정국을 통해 정국 주도권을 잡으려 하고 있지만 마땅치 않다. 검찰개혁이 꼭 필요했다면 물 흐르듯 했으면 어땠을까.노자는 도덕경에서 ‘상선약수(上善若水)’라 했다. 물은 만물을 이롭게 하면서도 다투지 않아 도에 가깝다. 시끄럽고 혼란스런 오늘의 정치가 물 흐르듯 이뤄지는 날은 언제일까.

2022-05-05

꿀벌을 어떻게 하나

김규인수필가 자기 몫을 챙기려는 근로자들의 목소리가 거리를 메운다. 요구조건을 관철하기 위하여 단식까지 하는 사람들. 그들의 발아래에 힘없이 떨어지는 꿀벌은 데모가 아니다. 말없이 일만 하는 저 성실한 일꾼들의 죽음을 알아야 한다. 몸이 버틸 때까지 견디다 쓰러지는 순진한 꿀벌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전국의 77억 마리가 넘는 꿀벌이 사라졌다. 봄이 다가와 꿀을 따는 꿀벌로 가득 차야 할 꽃밭에 벌이 사라졌다. 얼마 남지 않은 꿀벌이 돌아다니며 꿀을 따도, 꽃밭은 한산하다. 벌이 사라진 꽃밭에는 꽃만 홀로 피었다가 진다.세계 100대 농작물의 71%를 꿀벌이 수정한다. 꿀벌을 기다리는 농작물의 수정은 어떻게 할지. 수정하지 못해 쭉정이만 남은 너른 들판은 어떻게 하나. 세계적으로 발생한 꿀벌 실종 사건이 이제는 남의 나라 일이 아니다. 꿀벌이 사라지면 인류는 4년 안에 멸망한다는 아인슈타인의 예언이 빗나가기를 바랄 뿐이다.사람들의 무분별한 개발로 지구가 더워진다. 온도에 민감한 꿀벌에게 계속되는 지구 온난화는 치명적이다. 더운 날씨에 한꺼번에 핀 꽃은 꾸준하게 꿀을 모으는 꿀벌의 삶을 힘겹게 한다. 게다가 덥고 습한 기후로 꿀벌의 움직임마저 둔해진다. 날씨가 더워지니 꿀벌의 천적은 더욱 날뛴다. 높은 기온으로 배로아(Varroa)라는 기생 응애는 더 늘어난다. 늘어난 배로아는 빠른 속도로 꿀벌을 죽음으로 내몬다. 여기에다가 꿀벌의 유충에 발생하는 낭충봉아부패병으로 꿀벌은 점점 마르고 암갈색으로 색깔이 변하며 죽는다.병충해를 방지하기 위해 사람들은 농작물에 농약을 얼마나 쳐대는지 꿀벌이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특히 네오니코티노이드(Neonicotinoid) 화합물은 꿀벌의 뇌 기능을 떨어뜨린다. 학습과 기억에 생존이 달린 일벌들의 능력 저하는 꿀벌의 생존을 어렵게 한다.휴대폰을 위한 강한 전자파는 꿀벌의 신경계를 교란한다. 약해진 신경계로 꿀벌이 방향감각을 잃는다. 일하러 간 일벌이 사라지니 집에 남은 꿀벌은 먹지 못하여 죽어간다. 일벌이 내비게이션 기능을 잃음으로 꿀벌은 물론 인류의 삶마저 위태롭게 한다.꿀벌의 죽음은 만물의 영장이라 불리는 사람들 때문이다. 꿀벌의 아픔에 대하여는 크게 신경 쓰지 않으면서 꿀을 따지 못하는 것과 농사를 짓지 못하는 것만 걱정한다. 사람은 단지 꿀벌의 노동력을 착취하고 자연을 파괴하는 지구상 생명체의 한 종에 불과하다. 사람들은 부단히 자신들의 영역을 넓혀왔다. 통제하지 않는 욕구는 꿀벌의 생존만을 어렵게 하는 것이 아니다. 사라진 숲 때문에 야생동물은 설 자리를 잃고, 먼 거리를 이동하는 철새는 쉴 자리가 사라져 서서히 죽어간다. 지구는 열이 나서 질병에 시달린다.작은 벌이 살지 못하는 녹색별에 사람인들 살 수 있을까. 지구는 사람만 사는 곳이 아니다. 만물의 영장이라는 사람들이 이제는 욕심을 버려야 한다. 지구에서 함께 살아가는 생명체에 손을 내밀어야 한다. 자신을 위해서라도 사람다움을 잊지 말아야 한다.

2022-05-05

어린이는 나라의 미래

윤영대수필가 이번 5월 5일은 제100회 어린이날이다. 1923년 일제 강점기에 소파 방정환 선생이 그해 5월 1일 ‘색동회’를 주축으로 ‘어린이날’을 제정하고 ‘어린이 해방선언’을 했었다. 어린이들이 올바르고 슬기로우며 씩씩하게 자라도록 하고 어린이들에 대한 애호 사상을 앙양하기 위한 외침이었다. 즉, 윤리적 압박에서 벗어나 완전한 인격으로 예우하고 경제적 압박으로부터 해방시켜 14세 이하는 노동을 강요받지 않고 고요히 배우고 즐거이 놀기를 바랐다.그 후 1957년 5월 5일 ‘대한민국 어린이 헌장’이 선포되었고 2016년 ‘아동권리 헌장’에 이르기까지 몇 차례의 선언을 거치면서 인간의 존엄성과 민주사회 시민으로서의 어린이 미래를 표방하며 건강, 교육, 놀이와 노동에 대한 사회 보장을 통해 한 인간으로서의 진취적 기상을 갖추도록 하였다.UN 아동권리협약에도 ‘충분히 쉬고 놀 권리’를 말하고 있지만 우리나라 부모들의 자녀교육에 대한 과도한 학습과 경쟁의식으로 어린이들에게는 뜻하지 않은 정신적 신체적 피해를 줄 수 있다. 우리 민법에는 ‘부모가 자식을 보호 또는 교양(敎養)하기 위해 필요한 징계를 할 수 있다’는 그 징계권을 삭제하였지만 근래 들어 매년 아동학대 사건이 3만여 건, 사망이 40여 명이나 발생하여 제재의 강화뿐만 아니라 아동권리에 대한 부모나 사회의 인식이 필요하며 폭력적 자녀 양육방식에 대한 깊은 성찰이 요구되고 있다.어린이는 일반적으로 6~13세 아동을 말하며 단순한 자식으로서가 아니라 주체로서의 당연한 권리를 갖는다. 그러나 한 설문조사에서 70%가 학원이나 과외 공부에 불만이고 또 16% 이상이 숙제나 부모의 간섭에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한다. 2018년 보건복지부에서 9~17세 대상으로 한 ‘삶의 만족도’ 조사를 보면 10점 만점에 6.57점으로 OECD국가 중 최하위이다. 최고를 위해 강요하는 경향이 큰 교육방식으로 인해 ‘한국의 어린이는 결코 행복하지 않다’는 현실이다.소외 아동, 무연고 아동 등 복지 사각지대에 있는 취약계층 아이들에게 어린이 주간에는 더 많은 관심과 배려가 있어야 할 것이다. 초록우산 어린이 재단 등 사회의 여러 복지단체에서는 각종 후원금을 모아 기부하기도 하고 각종 행사를 통해 어린이들의 행복과 사회성 향상에 노력하고 있다.‘아동기에 행복을 모르면 평생 행복을 모른다’는 말처럼 어린이들에게 잘 먹고 잘 놀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어 역경을 헤쳐나가는 힘을 갖도록 이끌어야 한다. 또 어린이들을 비하하는 언어폭력을 삼가고 늘 부드럽고 사랑스럽게 존중하는 말을 나눔으로써 부모의 가정교육과 함께 참된 공교육을 통한 올바른 인성교육으로 학교폭력과 집단 괴롭힘이 없는 사회를 만들도록 국민 모두 마음을 다잡아야 한다.‘어린이가 없는 곳엔 천국이 없다’는 영국 시인 스윈번의 말을 되새기며 이제 코로나 방역도 어느 정도 해제됐으니 나라의 미래를 위해 어린이 마음에 더 따뜻한 사랑을 심어주어야겠다.

2022-05-05

우주영웅과 전장연 시위

김초엽 소설집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에 실린 단편 ‘나의 우주영웅에 관하여’는 매혹적인 작품이다. 간략하게 소개하자면, 48세의 미혼모 ‘재경’은 인류를 대표해 ‘우주 터널’을 통과할 우주인으로 선발된다. 우주 터널 저편에 있을 새로운 유토피아를 탐사하기 위해, 척박한 우주에서 생존하기 위해 18개월의 신체 개조를 견뎌낸 그녀는 사이보그 같은 초월적 몸을 갖게 된다. 마침내 우주 터널 프로젝트가 개막하는 날, 재경은 우주로 가는 대신 깊은 심해로 몸을 던져버린다. 엘리트주의가 한 개인에게 과도하게 짊어지운 성공 서사의 굴레를 벗어버리고, 주체적 선택을 통해 우주가 아닌 심해라는 제3의 세계, 인류를 위한 것이 아닌 자기 개인을 위한 완벽한 자유를 개척한 것이리라.재경은 동양인, 여성, 미혼모, 48세, 왜소한 신체 등 온갖 소수자적 조건을 갖춘 약자이자 비정상인이다. 이러한 재경이 인류를 대표하는 우주인으로 선발된다는 설정은 엘리트주의가 강요하는 ‘정상성’ 개념을 비판하기 위한 작가의 의도일 것이다. 독자들은 우주가 아닌 바다로 뛰어든 재경의 선택을 두고 생각이 복잡해진다. 정상성이라는 왜곡된 신화를 해체하는, 획일화된 성공 서사를 무력화하는 소수자 여성의 주체성으로 읽으면 응원하게 되지만, 우주 터널 프로젝트에 동원된 사회 자본과 수많은 사람들의 노력을 생각하면 한없이 이기적이고 무책임한 행동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이 양가적 감정 사이에 김초엽은 우리에게 화두를 하나 던진다. 개인의 신념과 행복 추구가 사회라는 전체와 충돌할 때, 또 소수자의 목소리가 보편다수의 평화에 노이즈를 일으킬 때 우리는 과연 그들의 타자성을 어떻게 수용할 것인가 하는 문제 말이다.재경에게 지워진 세계의 과도한 기대와 부담, 그것을 저버린 그녀의 주체적 선택은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 논란을 떠올리게 한다. 정부와 진보 지식인들은 ‘남북 평화’, ‘세계 평화’라는 거대담론을 내세워 선수 개개인에게 남북 단일팀 구성이라는 부당한 희생을 강요했다. 젊은 세대에서 반발이 일자 “어차피 메달권도 아니다”, “올림픽 정신도 모르는 이기적 철부지” 따위 막말도 했다. 국가라는 전체주의의 낡은 망령이 개인에게 가한 이 폭력을 보면서 대부분 사람들은 선수들을 응원했지만, 일각에서는 “국민 세금으로 국가가 제공한 시설에서 운동한 선수들이 국가를 위해 희생하는 게 당연하다”는 반응도 있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이하 전장연)의 시위를 두고 여론이 팽팽하다. “그만큼 절박하기에 저렇게까지 해서 목소리를 들어달라는 게 아니냐”는 옹호 여론과 “아무리 절박해도 시민들에게 피해를 입히는 건 폭력이다”는 비난 여론이다. 나는 전장연의 시위가 벼랑 끝에서 살려달라고 간신히 내뱉는 신음 같아서 안타깝고 아프다. 그들의 행동이 다 옳은 건 아니지만, 그럴 수밖에 없는 사정을 이해하고 응원하는 입장이다. 이병철 문학평론가이자 시인. 낚시와 야구 등 활동적인 스포츠도 좋아하며,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장애인들을 향해 손가락질하는 사람들이 야멸치게 느껴진다. 그런데 ‘당사자성’이라는 네 글자가 가슴 깊은 곳에 가 박히면 꽉 막힌 체증이 된다. 전장연 시위로 인해 중요한 취업 면접에 가지 못했다는 한 청년의 사연이 내 이야기였다면 나는 과연 지금처럼 고상하고 정의로운 척 그들을 옹호할 수 있을까?사회의 소수자, 약자들이 절박한 목소리를 낼 때, 그들의 권리 추구가 사회라는 전체, 보편다수의 ‘정상성’과 충돌할 때, 소수자들을 위해 다수가 자신들이 누리는 이익과 편리와 평화의 일부를 희생해야만 할 때, 그들로 인해 우리가 피해를 감수해야 할 때, 멀리서 쉽게 정의를 노래하다가 내가 피해의 직접 당사자가 될 때 우리는 과연 그들을 수용하고 보듬을 수 있을까?레비 스트로스가 지적한 대로 인류의 가장 큰 고민은 늘 ‘타자성’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의 문제였다. 김초엽 소설집의 또 다른 단편 ‘스펙트럼’에서 외계인 ‘루이’는 지구인 ‘희진’을 처음 본 순간 자신의 노트에 이렇게 적었다. “그는 놀랍고 아름다운 생물이다” 놀라움은 이질적 타자에 대한 본능적 반응이고, 아름다움은 감성, ‘생물’이라는 단어는 합리적 이성을 지시한다. 소수자의 타자성 앞에서 우리는 감성과 이성의 균형을 지켜야 한다. 어려운 얘기다.

2022-05-03

쓰는 비건

실외마스크 착용 의무가 해제되면서 다시금 색조 화장품에 관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일상 회복에 대한 기대감이 상승해선지 지난 달 색조 화장품 중심 매출이 최대 40% 증가하였고 로드샵과 면세점, 백화점 아울러 전반적인 화장품 매출 증가가 급증하였다고 한다.실외 마스크 착용 의무 해제로 코로나19 사회적인 분위기 흐름이 조금 달라지면서 ‘비건’에 대한 관심도도 높아지고 있다. 특히나 최근 ‘비건 뷰티’가 핫한 키워드로 떠오르고 있는데, 비건 화장품은 동물실험을 거치지 않고 동물성 원료를 대신하여 친환경 성분만을 사용하여 만드는 제품을 일컫는다. 비건 제품은 동물 실험으로 인해 얻어지는 성분과 원료를 포함하고 있지 않으며 과거 무작위로 착취 해왔던 동물 실험 자체도 일절 이루어지지지 않는다.많은 이들이 비건 뷰티에 관심을 갖기 이전, 그간 가루 형태의 파우더나 반짝이는 펄은 전부 동물이나 생선의 비늘에서 원료를 얻었다. 속눈썹을 길고 짙게 보일 수 있도록 해주는 마스카라의 경우엔 인체에 무해한지 실험하기 위해 토끼를 대상으로 실험 하였으며 화장할 때 흔히 쓰이는 붓의 경우엔 다람쥣과의 청설모 털을 사용하는 등 동물성 털로 만들어졌다.문제는 원료를 생산해내는 과정이 굉장히 비윤리적이라는 점이었다. 털이나 재료를 얻기 위해 감금은 물론 학대와 폭력이 동반되었기 때문이다.그런데 이젠 소비자의 인식이 분명히 변하고 있는 듯하다. 스킨이나 수분 크림 같은 기초 제품이 비건 위주로 쏟아지는 데다 최근에는 색조 제품 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게 되었다. 비건 립밤은 물론 선크림, 파운데이션, 마스카라, 아이쉐도우, 하이라이터, 립스틱, 틴트까지 그간 동물성 원료가 필수적으로 들어갔던 색조 화장품은 비건 제품으로 대체되어 종류가 무궁무진 증가하였다.더 놀라웠던 건 일반 화장품과 비교했을 때 결코 제품력이 떨어지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비건 인증기관에서의 까다로운 기준과 인증 과정을 거쳐야만 출시되는 데다 FSC 인증을 받은 포장재 사용, 화장품 공병 수거를 위한 캠페인 진행으로 지속 가능한 자원 순환과 나아가 환경 보호를 지향한다는 점도 놀라움을 자아냈다.비건 마크를 확인하는 방법으론 화장품 케이스 뒷면에 영국의 비건 소사이어티, 프랑스의 이브 비건, 한국비건인증원 비건 마크를 확인 하면 되어서 비교적 판별도 쉬워 구매하기에 용이하다.패션 업계 또한 비동물성 소재만을 사용하는 비건 패션이 중요 트렌드로 자리했다. 명품 브랜드 구찌의 최고경영자인 마르코 비자리는 더는 모피를 제작하거나 팔지 않겠다는 반모피 운동을 선언했고 줄줄이 조르지오 아르마니와 베르사체 등 모피 사용을 중단하는 등의 행보를 보였다.많은 패션 브랜드들 또한 그간 동물 학대와 착취를 통해 얻어지던 가죽과 모피를 사용하지 않고 그것을 대신할 소재를 찾아 나서고 있다. 특히나 겨울용 옷에 필수적으로 들어가는 메리노 울은 양의 엉덩이쪽 살을 비윤리적으로 잘라내어 무작위로 생산해내는데, 더 많은 양의 울을 얻기 위해 일부러 양의 엉덩이쪽 살을 쭈글쭈글하게 만들어 개량하기도 한다. 비건 패션은 이렇게 강제적으로 채취하는 울이나 모피를 대신하기 위해 인조 모피와 에코 퍼 소재를 대체하여 사용한다. 윤여진 2018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현재보다 미래가 기대되는 젊은 작가. 또한 말하지 않으면 알아차리기 힘들 정도로 다양한 소재가 개발되고 있는데, 와인 찌꺼기로 만든 가죽이나 파인애플 잎으로 만든 천연 섬유 또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먹는 비건 뿐만 아닌 내가 쓰는 물품도 비건을 지향할 수 있단 사실이 알면 알수록 놀라웠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씻곤 했던 손세정제나 옷, 화장품, 붓 등 얼핏 보면 작고 사소한 물건이지만 가늠할 수 없을 만큼의 동물들이 희생되었단 사실은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그러니 이제부턴 물건을 구매할 때 더욱이 신중을 기하기로 했다. 사실 조금 더 시선을 확장해보면 별다른 수고로움 없이도 너무나 쉽게 비건 제품을 만나볼 수 있다. 무엇이든 내가 할 수 있는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고 그것이 무언가에게 도움이 되는 옳은 방향이라는 생각이 들 때엔 내 자신이 조금 더 맑고 선명해지는 기분이 든다. 먹는 비건이 어렵다면 쓰는 비건부터 차근차근 실행해보는 것이 비건을 시작하는 좋은 방법 같다.

2022-05-03

출산육아·군복무 가산점 도입했으면

이명균​​​​​​​창원대 명예교수 인류가 낳은 최고의 과학자 아인슈타인의 첫 아내, 물리학자가 꿈이었던, 밀레바 마리치는 취리히 국립공과대학에서 석사학위 논문준비 중 임신출산으로 학업연구를 중단하였다. 두 사람 공동연구인 ‘특수상대성 이론’ 등 5편의 공동저작 발표논문에 결혼 전엔 ‘아인슈타인, 밀레바 마리치’로 공동 서명하였으나 결혼 후엔 ‘아인슈타인’ 이름만 썼다. 아인슈타인은 다른 여자와 결혼하려고 밀레바와 이혼하였고 밀레바는 피아노·수학 레슨으로 혼자 병약한 아이를 돌보며 살다, 말년엔 반신불수의 홀몸으로 눈을 감았다. 여자의 훌륭한 업적과 공로가 남자에 의하여 묻히고 출산육아로 그 꿈과 재능이 깡그리 희생된 대표적 사례. 밀레바가 학업연구를 계속할 수 있었다면 어떻게 됐을까?재능이 있으면서도 육아가사노동 때문에 아깝게도 썩는다고 생각되는 여성들을 주위에서 볼 수도 있고, 한편 재능과 자질이 훌륭하지만 육아가사에 전념한 결과 사회활동에 직접 참여한 것 못지않게 사회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여겨지는 경우도 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자신의 타고난 소질과 재능을 가능한 마음껏 개발·발휘하면서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이를 위해서는 남녀 누구든 사회 각 분야에서 각자의 재능발휘에 있어, 자신의 뜻에 반하여, 부당하게 피해보는 경우가 없도록 법적 제도적 필요한 장치들이 마련되어야 마땅하다. 그 구체적 방안의 하나로 여성들에겐 출산육아 가산점제를 그리고 남성들에겐 군복무가산점제를 도입할 것을 제안한다. 남성들의 종전 군가산점 제도를 폐지한 것은 여성들 의견이 많이 반영되었다고 하는데, 출산육아와 군복무에 대해 동시에 가산점제를 도입한다면 남녀평등과 형평원칙에도 어긋나지 않는다. 이는 출산육아 후 사회활동을 희망하는 소위 경단녀들의 사회 재진출의 경우에도 도움이 될 것이며, 군복무기간동안의 노동력제공과 군복무로 인한 국가시험 준비나 학업중단 등으로 발생하는 남성들의 피해에도 다소 보상이 될 수 있다. 외국에서는 모병제임에도 군제대자들에게 일정한 혜택을 주고 있는데, 우리는 징병제임에도 군복무의 혜택이 없다는 것은 형평원칙에도 맞지 않다.개인의 활동에서 잘못된 제도나 관념 때문에 받게 될 피해나 제한을 최대한 없애줌으로 남녀 모두의 에너지가 충분히 잘 활용되게 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남녀사이의 구조적갈등도 상당히 해소되어 요즘의 결혼기피현상 또는 여성들의 출산기피의식도 자연히 많이 해소될 것이며, 따라서 절박한 저 출산 대책에도 도움 되는 면이 있을 것이다. 서구에서는 많은 여성페미니스트들이 남자를 좋아하고 사랑할 뿐만 아니라, 스스로 원할 경우엔, 집에서 육아가사에 전념할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다고 한다. 남녀가 서로를 탓하거나 적대시하지 않고 좋아하고 사랑하는 가운데 화합하고 협력할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와 환경이 조성되도록 정부와 국가가 적극 나서주길 바란다. 남녀들이 서로 아끼면서 들려주는 웃음소리와 함께 귀여운 어린이들의 재잘거림 소리를 더 많이 들을 수 있으면 좋겠다.

2022-05-03

외나무다리 건너는 소

조현태수필가 중국에 아주 똑똑한 젊은이가 있었다. 그는 스무 살에 과거에 급제하여 관직에 등용됐다. 젊은 나이에 벼슬을 할 만큼 총명하여 자연히 황제의 관심을 받았다. 황제의 두터운 신망을 바탕으로 고속승진하며 남들이 부러워하는 출세가도를 달렸다. 자연히 온 장안에 최고의 화제가 될 정도였으니 많은 사람들에게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그러다보니 시기와 질투, 모함 등의 좋지 않은 시선도 있었다.어느 날 젊은이가 궁궐에서 퇴청하여 한적한 거리를 걷고 있었다. 배를 쭉 내밀고 온갖 거드름을 다 피우면서 걷고 있는데 조그만 냇가에 놓인 다리가 나타났다. 막 건너려고 할 때 다리난간에 걸터앉았던 한 노인과 눈이 마주쳤다. 초라한 차림에 걸인 행색을 한 노인이었다. 노인이 나지막하고 점잖은 소리로 젊은이를 불렀다. 젊은이는 그냥 지나치려다가 귀찮은 안색을 하고 노인 앞에 멈췄다. 노인은 “여보게 젊은이, 소(牛)가 외나무다리를 건너듯이 사는 것이 인생이라네.”하면서 生자를 땅바닥에 지팡이로 커다랗게 써 보였다.‘生’자는 코흘리개 적에 외워 둔 글자라 젊은이에게는 완전히 관심 밖이었다. 뿐만 아니라 남부러울 것 없이 자신만만하게 살고 있는 젊은이에게는 노인이 가엾은 거지로 보였다. 그래서 후하게 선심 쓰듯 엽전 한 닢을 던져주고 돌아갔다.그 후, 세월이 흘러 젊은이는 마흔 살에 벼슬의 최고봉인 재상에까지 올랐다. 그러나 재상에까지 오른 젊은이를 시기하고 질투하는 간신배들은 배알이 뒤틀렸다. 온갖 수단을 다 동원하여 젊은이를 황제 앞에서 대역죄인으로 몰아갔다. 결국에는 간신배들의 모함에 걸려 젊은이가 죄인으로 몰려 귀양을 가게 되었다. 귀양 가는 길에 노인을 만났던 그 다리를 건너가게 되었다.그제야 예전에 거지노인이 자신에게 했던 말이 다시 기억났다. 인생살이란 ‘소가 외나무다리를 건너는 형국’임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아하! 그렇구나. 이미 자신이 외나무다리 위에 서있는 소에 불과하구나 하고 무릎을 치더라는 이야기.그 당시의 소는 농사에 동원되고 등에 짐을 실어 나르는 힘든 삶에서 몸을 균형 잡는 훈련이 어느 정도 되었지 않을까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가 외나무다리를 건너는 것이 불안한 인생살이와 같다고 했음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그렇다면 지금의 소는 어떤가? 고급 사료와 안전한 시설에서 사육되고 있다. 운동이나 훈련은커녕 인간의 입맛에 맞아떨어지게 수명이 조정되고, 육질 좋은 몸집을 키워가도록 강요당하고 있는 고깃소에 불과하다. 심지어 새끼를 낳을 때도 사람이 거들어주지 않으면 자연분만이 어렵다.아마도 그 옛날과 현재에 같은 외나무다리를 건너게 한다면 현재 소가 더 불리하지 싶다.대다수의 독자들은 이의를 제기할 것이다. 외나무다리도 없어졌거니와 엄청 넓은 콘크리트 다리 위로 트럭에 실려 다닌다고. 하지만 필자는 인생 삶을 비유한 어느 작가의 이야기를 인용했다. 세상에서 소든지 사람이든지.

2022-05-03

文대통령 팬덤정치, 퇴임후도 이어질까

심충택논설위원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달 29일 대통령 집무실 이전 반대 국민청원에 답변하면서 “많은 비용을 들여 광화문이 아닌 다른 곳으로 꼭 이전해야 하는 것이냐”고 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집무실 이전을 직접적인 화법으로 비판한 것이다. 물러나는 대통령이 새 대통령을 이렇게 비판적으로 대하는 모습은 과거에는 듣도 보도 못했다. 청와대는 “임기말 없는 대통령으로 끝까지 일하겠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야당에선 “권력의 뒤끝이 대단하다”는 말이 나왔고, 대통령직 인수위는 “남은 임기동안 국민께 예의를 지켜달라”고 했다.문 대통령의 퇴임을 불과 며칠 앞두고 정권을 인계하는 쪽과 인수받는 쪽이 사사건건 부딪치면서 갈등을 노출하고 있다. 양측은 대선직후 첫 회동 일정조율 문제, 집무실 이전 예비비 승인 문제, 감사원과 중앙선관위원 인사권 문제 등을 두고 충돌을 거듭해왔다. 새 정부 출범을 코앞에 두고 신구 권력의 대치 전선이 오히려 확산되고 있는 느낌이어서 시민들이 받는 스트레스는 대단하다.문 대통령은 그동안 ‘잊혀진 사람이 되고 싶다’는 뜻을 거듭 밝히긴 했지만, 퇴임 후에도 정치적 메시지를 계속 내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최근 SNS팔로어 수 200만명을 자축하며 “이제 퇴임하면 정치에서 벗어나 새로운 생활이야기로 새롭게 대화를 나눌 수 있을까 기대해 본다”고 언급한데서, 그의 팬덤정치가 현실화될 가능성이 커졌다. 윤석열 정권에 대한 문 대통령의 공세적 메시지는 ‘문빠’를 중심으로 한 핵심 지지층을 결집시키는 데 엄청난 위력을 발휘한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문 대통령의 이러한 팬덤정치가 우려되는 부분은 팬덤의 극단적인 지지가 국론을 분열시키는 매우 비이성적인 경향을 띠고 있다는 것이다. 현 집권당 원로들도 “문재인의 문빠 정치가 진보세력을 망친다. 강성 지지층에 빠지면 중도, 혹은 대중을 외면하게 된다”며 걱정하고 있는 상황이다.지난 대선과정에서 과열된 범정치권의 팬덤문화로 인해 우리사회는 각계각층의 반목과 질시가 그 어느 때보다 심각해졌다. 무조건적 충성심을 가진 팬덤은 온라인 좌표 찍기, 게시판 댓글 도배, 특정인을 겨냥한 문자 폭탄을 도구로 사용하면서 온라인 커뮤니티를 휩쓸었다. 그 여파가 이제 진영싸움을 넘어서 대선불복 단계로 치닫고 있다.지금 우리나라는 국내외적으로 비상시국이다. 경제의 불확실성은 최고조에 달해 있다. 정치권이 한 몸이 돼 위기극복에 나서도 현 상황을 타개하기가 어려운 실정이다. 국가의 안위와 국민 분열을 걱정하는 책임 있는 정치인이라면 어떤 진영에 속하든 지금의 상황을 수습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맞다. 팬덤 뒤에 숨어서 좌표를 찍거나 충동질하는 모습은 결코 바람직한 태도가 아니다.우선 가장 정신을 차려야 할 사람은 문 대통령과 윤 당선인이다. 문 대통령은 자신과 국정철학이 다르더라도 속으로 삭이고 윤 당선인이 순조롭게 정권을 인수해 나라를 안정시키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그게 순리다. 윤 당선인과 인수위측 인사들은 물러나는 정권을 과도하게 자극해선 안 된다.

2022-05-03

팬데믹 예언

우정구논설위원 코로나 발생 전 인도의 14살 소년 예언가가 2019년 11월부터 전 세계적으로 전염병이 유행할 것이란 예언을 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아비냐 아난드라는 이름의 이 소년은 올해 초 “5월부터 마스크를 벗는다”고 예언하면서 그의 예언 적중이 또다시 회자되고 있다. 그는 비트코인 폭락을 예고했고, 최근에는 세계 3차대전 가능성도 예언해 세계의 주목을 끌었다.마이크로소프트 창업주인 빌게이츠가 코로나에 이어 또다른 팬데믹이 닥칠 것을 예고했다. 그는 미국 한 방송사와의 인터뷰에서 “코로나19의 위험이 현격히 감소했지만 전염성이 더 강하고 치명적인 팬데믹이 올 수 있다”고 밝혔다. 그는 인류가 전염병을 극복하는 데 공동의 힘을 모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빌게이츠는 2015년 한 강연에서 “전염병 확산은 전시 상황이다.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은 미사일이 아니라 미생물”이라고 말해 전염병 유행을 예고한 적이 있다. 그는 그때 “만약 앞으로 몇 십년간 무엇인가가 1천만명이 넘는 사람을 죽인다면 그것은 아마 전쟁이 아니며 전염병이 강한 바이러스일 것”이라고 말했다.지금 우리 앞에 벌어지는 코로나 사태를 보면서 우리는 그의 예측이 거의 적중되고 있음에 공감한다. 그는 코로나 전염병 대처를 위해 자선단체를 통해 10억달러 이상을 기부하는 등 또다른 전염병 확산 방지에도 노력하고 있다.실외지만 마스크 벗기가 허용되면서 팬데믹이 엔데믹으로 갈거라 느끼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빌게이츠의 말대로 우리 인류는 아직도 알 수 없는 바이러스와 끝없는 전쟁을 벌여야 할지 모른다.20세기 초 스페인 독감으로 5천만∼1억명이 희생됐다. 바이러스와 전쟁은 아무도 알 수 없는 예언의 영역인가 싶다./우정구(논설위원)

2022-05-03

학급수 조정

홍택정 문명중·고등학교 이사장 교육의 기회는 모든 학생들에게 균등하고, 공평한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 그런 다음에 학생 각자의 노력으로 얻어지는 학업성과 즉 실력은 개인적인 결과물일 것이다.공정이란 가치가 사회의 중요한 기준으로 등장하면서, 모든 분야가 공정의 잣대로 다시 한번 검증받고 있다. 고등학교 내신 성적은 학급수가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15학급 미만의 학교와 30학급 이상 학교의 상위권에 대한 대학의 평가는 절대적으로 대형 학교 학생들이 유리하다.공사립 중·고등학교 간의 학급수를 비교해 보면, 대부분 공립은 대형 학급 즉 30학급인데 반해 사립 중·고는 미니 학급의 경우가 많다.심지어 상치 과목 발생으로 비전공 교사의 지도로 부실한 수업을 받는 경우도 있다.100명 중의 1등급과 500명 중의 1등급에 대한 대학의 선호도는 대형 학교의 1등급을 결정적으로 선호한다.예를 들면 소형 학교의 학생들은 아예 의예과 진학은 포기해야 할 정도다. 학생과 학교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현상을 해결하지 못한다면 교육기회의 균등은 빈말이 되는 것이다.소규모 학교에 재학하는 대부분의 학생들과 학부모 들은 이와 같이 불공평한 불이익에 대한 문제 해결을 요구해야 한다.교육당국도 공사립 간의 학급 규모에 대한 재검토를 통해 적절한 조정을 해야만 공정한 교육기회와 대학 진학에 소규모 학교 학생들이 받고 있는 불공정한 내신평가가 해결될 것이다.신설 공립학교의 학급 규모는 대부분 30학급이 기본이다. 공립만이 공교육의 場이 아니다. 공사립의 지혜로운 조화를 통해 학령아동 감소로 겪고 있는 어려움에 대처해야 한다.

2022-05-02

쉰아홉 번째 베니스 비엔날레

베니스 비엔날레 방문을 위해 짧은 일정으로 먼 길 여행을 떠났다. 팬데믹 이전의 일상을 조금씩 회복하는 듯 느껴졌다.스마트폰에 저장된 백신접종 확인서만 내밀어 보이는 절차만 추가되었을 뿐 출국장의 분산함이 사라졌다는 것 이외에 공항의 풍경도 예전이나 크게 다르지 않았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비행경로가 달라졌다는 것. 그래서 비행시간이 3시간 남짓 늘어났다는 것 이외에 하늘에서 내려다 본 땅에도 큰 변화는 없어 보였다.베니스는 여전히 아름다웠다. 사람들을 실어 나르는 바포레토의 느린 움직임이 물 위에 그려진 하늘 풍경에 훼방을 놓는다. 도시 곳곳은 관광객들로 가득 차 있었다. 상상 초월하는 베니스의 인파를 경험해 본 적이 없다면 지금의 미묘한 한산함을 전혀 감지하지 못할 정도로 많은 이들이 찾았다.올해로 벌써 쉰아홉 번째로 개최되는 비엔날레다. 베니스에서 열리는 미술 비엔날레는 역사성으로 보나, 규모로 보나, 주목성으로 보나 여전히 최고의 권위를 자랑한다.베니스 비엔날레의 특징은 전시구성이 장소적으로 형식적으로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져 있다는 것이다. 공원 자르디니에는 스물여섯 개 나라의 국가관이 마련되어 있다. 한정된 공간 때문에 1995년 우여곡절 끝에 한국관이 세워진 것을 마지막으로 더이상 새로운 국가관이 들어오지 못한다. 자르디니에 자리를 얻지 못한 나라들은 별도의 공간을 마련해 국가관으로 운영하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심리적으로 자르디니에 포함된 국가관 그리고 그렇지 못한 국가관 간의 심리적 서열이 생겨났다. 자르디니에 국가관이 있느냐 아니냐가 공교롭게도 국가파워와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비엔날레 참가국들은 각자의 기준에 따라 커미셔너와 미술가를 선정해 국가관 전시를 진행한다. 각 국가별 전시가 이루어지다 보니 국내 언론에서는 베니스 비엔날레를 ‘미술 올림픽’으로 소개하기도 한다. 이런 비유가 적절한지 잘 모르겠다. 이번 비엔날레의 한국관은 김윤철 작가의 기계생명체를 연상시키는 키네틱 설치 작품들로 채워졌지만 전시 기술적 완성도에서 사뭇 아쉬움을 보였다.국가관이 위치한 자르니디로부터 조금 떨어진 곳에 아르스날레라는 곳이 있다. 아르스날레는 산업화되기 이전 배와 무기를 만들던 거대한 일종의 군수산업 복합단지였다. 이곳에서 베니스 비엔날레의 또 다른 중심 행사가 진행된다. 자르디니의 전시들이 국가관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면 아르스날레는 총감독의 기획아래 하나의 주제로 연결된 엄청난 규모의 전시가 만들어진다.올해 총감독으로 선정된 이탈리아 큐레이터 세실리아 알레마니는 ‘꿈의 우유’를 전시 주제로 내걸었다. 초현실주의 미술가 레오노라 캐링턴의 책 제목에서 따온 것이라고 한다.아르스날레의 본전시에는 총감독의 기획의도가 집결된다. 58개국 213명의 작가가 참여한 본전시에서 가장 도드라지는 특징은 여성 작가의 비율이 90%에 달한다는 것이다. 이같은 구성에 이미 총감독의 분명한 의지와 메시지가 담겨 있다. 한국 미술가로는 정금형, 이미래 두 사람이 초대 받았다.올해 베니스 비엔날레는 여성과 흑인여성이 주목을 끌었다. 본전시 최고 작가상은 미국의 흑인 여성작가 시몬 리에게 돌아갔고, 최고 국가가관의 명예를 차지한 것은 영국관이다. 영국관에서 소개된 소냐 보이스의 작품은 음악, 비디오, 콜라주가 결합된 사운드 설치작업으로 흑인 여성 뮤지션의 음악을 다루었다.비엔날레는 세계미술의 흐름을 읽는 중요한 바로미터로 여겨졌다. 지금도 그 역할을 하고 있다. 하지만 여러 측면에서 한계를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그 중에서도 전 세계 미술을 아우르는 전시와 연관 행사 규모로 미루어 보았을 2년의 준비 기간은 지나치게 숨 가쁘지 않은가 싶다./김석모 미술사학자

2022-05-02

마이걸 <Ⅱ>

-우리 둘 다 이런 일이 일어날 줄 몰랐어요. 이이에게 너무 뭐라 하지 마세요.만식이 안나의 손등을 토닥였다.-우리? 이이? 허, 참. 저는 갑니다. 알아서들 하시고. 그런데 아가씨, 뱃속의 아기가 저의 동생이라는 것은 확실한 겁니까?안나는 필립의 말에 화를 내지 않았다. 만식의 손을 자신의 배에 가져다 대며 빙긋이 웃었다.-누구든 상상할 수 있는 일이지요. 하지만 그걸 증명하겠다며 나서고 싶지는 않아요. 제 뱃속의 아기는 우리가 함께 만들어낸 생명이 분명하니까요. 손끝으로 만식의 눈가 주름 결을 어루만지며 안나가 덧붙여 말했다.-아이의 아빠가 누구인지, 아이의 엄마는 알아요.만식의 며느리가 다른 친지들과 함께 찾아와 무슨 말이든, 무슨 짓이든 할 것이라 생각했지만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필립도 그날 이후 안나의 임신에 대해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안나는 만식의 힘이라 여겼다. 안나는 뱃속의 아이에게 ‘증거’라는 태명을 붙였다. 만식이 무슨 증거냐 물었다. 안나는 배를 내려 보며 대답했다.-우리의 사랑, 당신의 건강, 그리고 당신이 가진 힘.당신이라, 사랑이라, 나쁘지 않군. 만식은 안나의 볼을 쓰다듬었다.인공 폐 이식을 받겠다 만식이 필립에게 통보한, 문을 나서는 필립에게 핸드폰을 던진 그날로부터 한 달이 지났을 때 안나와 필립이 만났다. 필립이 먼저 안나에게 연락을 했다. 안나는 그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궁금하지 않았다. 뭐라 이야기하든 흘려들을 거야, 마음먹었다. 만식은 강했고, 만식 앞에서 필립은 둘째 아들에 불과했다. 필립이 안나에게 무엇을 이야기하든 그것은 단순한 협박일 뿐이었다. 이루어질 수 없는 것들이라 여겼다.필립이 먼저 와 기다리고 있었다. 안나는 마주 앉은 필립의 눈가에서 깊은 주름을 보았다. 그도 늙는 중이었다. 많이 닮았네. 늙는 것까지. 하긴, 그의 아들이니까. 내 뱃속의 아이도 그렇겠지. 그래야 해. 아니, 똑같아야 해.-일전에는 제가 말이 좀 지나쳤습니다. 죄송합니다. 아가씨에게 화가 난 것이 아니었습니다. 아버지에게 화가 나기도 했고, 섭섭하기도 했던 거지요.부드러웠다. 만식의 목소리가 단호함이 배어 있는 저음이라면 필립의 목소리는 완곡함, 이해, 배려 이런 것들이 섞여 있는 저음이었다.-아니에요. 충분히 그러실 수 있지요. 제게도 많이 화나셨을 거예요. 저라도 그랬을 걸요.안나는 필립이 안쓰럽기도 했다. 만식의 옆에서 보고 들은 상황으로 짐작할 수 있었다. 보고를 하거나 결재를 받기 위해 만식의 집으로 찾아온 직원이 간혹 필립의 의견을 전하거나 필립이 이렇게 지시했다 이야기하면 만식은 크게 화를 냈다. 이 회사가 누구 것인데 그 녀석의 의견을 묻느냐? 내가 그 녀석에게 지시할 권한을 주었느냐? 너는 누구의 직원이냐? 대답 한 마디 하지 못한 직원은 만식의 서재 한구석에서 진땀을 흘리다 돌아갔다. 만식이 먼저 물어보지 않는 한, 경영에 관한 필립의 의견을 만식에게 전하지 않는 것이 올더앤베러의 불문율이었다.-동생은 잘 크고 있지요?필립이 안나 뱃속의 아이를 동생이라 불렀다. 안나는 필립의 호의에 고맙기도 했지만 필립의 태도가 바뀐 것이 의아했다.-이렇게 갑자기 바뀌신 이유가?필립이 찻잔을 들어 한 모금 마신 뒤 테이블에 찻잔을 내려놓았다. 쿵쿵 소리를 내며 잔을 내려놓는 만식과 달리 필립이 잔을 내려놓을 때는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안나. 이름이 안나 맞지요? 이게 뭐 안나 씨 잘못이겠습니까? 뱃속의 아이가 잘못이겠습니까? 잘못이라 할 것 없지요. 그럴 수 있는 세상이니까. 그저 내 입장에서 좀 답답한 일이기는 하지요. 그렇다고 화를 낼 정도는 아닙니다. 왕조 시대도 아니고, 세자 자리를 두고 싸우는 것도 아니니. 하긴 세자 자리라 해도 별 볼 일 없는 자리니 탐낼 일도 아니지만. 이번 일로 우리 아버지가 얼마나 건강한지 확인도 했고. 허허. 우리 아버지 정말 대단하지요?필립이 소리 내어 웃었다. 안나는 빙긋이 미소만 지었다. 필립이 차 말고 다른 것도 드시라 권했고 안나는 치즈 케이크 한 조각을 주문했다. 안나는 스푼으로 케이크 모서리를 떠서 입으로 가져갔다. 필립이 물었다.-우리 아버지, 사랑합니까? 지금 안나 씨 이러는 것 사랑입니까?안나는 스푼을 내려놓은 뒤 필립을 바라보았다. 되물었다.-무슨 뜻으로 물으시는 건지?-무슨 뜻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말 그대로 궁금해서요. 삼십 대 초반 젊은 여자와 팔십 대 후반 늙은 남자의 뜨거운 사랑인 건지. 아니면…….처음 받아 본 질문은 아니었다. 만식의 마이걸이 되면서부터 주위의 사람들로부터 익히 들어온 질문이었다. 만식의 아이를 가지자 사라진 질문이기도 했다.-아니면 뭐요?눈썹 사이를 찡그리며 안나가 물었다. 치즈의 비린 맛 때문이었다.-솔직한 안나 씨의 감정을 알고 싶어서 그럽니다. 물론 엄마로서의 감정, 뱃속 아이를 사랑하고 지켜주고 싶은 마음은 당연한 것이겠지만, 아버지에 대한 감정은 다를 수 있으니까요. 아버지를 사랑해서 곁에 있고 아이를 가진 건지 아니면 편안한 인생을 위해서 선택한 길인지. 아, 그렇다 하더라도 안나 씨를 비난할 생각은 없습니다. 그렇게 사는 것도 인생이지요. 그리고 여기서 안나 씨가 어떻게 대답하시더라도 아버지에게 말씀드리지는 않을 것입니다. 걱정하지 마시구요. 진정한 사랑이라 대답하시면 당연히 전해드리지요. 내키지 않으시면 대답 안 하셔도 됩니다./ 김강 소설가

2022-05-02

세대간 소통의 도구 5S활동

엄주선포스코 인재창조원 교수·컨설턴트 사람은 음식을 섭취하여 살아가는데 있어 꼭 필요한 에너지를 얻는다. 그러기에 인류는 탄생 이래 끊임없이 먹을 것을 효율적으로 생산하고 취득하기 위하여 부단한 노력을 해왔고 그 시대의 지혜와 지식을 총 동원하여 발전을 거듭하여 왔다. 그 결과물들은 종이가 없을 때는 동굴 속의 벽화나 말로 전해졌으며 종이와 글이 발명되면서부터는 글로 이어져 왔고 현대에는 정보통신기술을 이용해 영상으로 만들어 검색만 하면 누구나 필요한 정보를 필요한 때 손쉽게 접할 수 있게 되었다.오랜 시간에 걸쳐 정보가 누적되고 발전을 지속하는 데는 많은 사람들의 정리정돈의 노력이 작용하고 있다. 국어사전에서는 정리정돈을 ‘주변에 흐트러진 것이나 어수선한 것을 한데 모으거나 둘 자리에 가지런히 함’으로 정의하고 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정리는 ‘흐트러지거나 혼란스러운 상태에 있는 것을 한데 모으거나 치워서 질서 있는 상태가 되게 함’을, 정돈은 ‘어지럽게 흩어진 것을 규모 있게 고쳐 놓거나 가지런히 바로잡아 정리함’으로 표현하고 있다.일본에서 1945년 패전 이후 기업에서 일하는 직원의 단합과 생산현장을 관리하는 수단으로 정리정돈의 개념을 확장하여 정리(SEIRI), 정돈(SEITON), 청소(SEISO), 청결(SEIKETSU), 습관화(SHITSUKE)의 일본어 표현의 앞 글자인 ‘S’를 따서 5S활동을 창안하였다. 정리는 필요한 것과 불필요한 것을 구분하여 불필요한 것을 버리는 활동이며, 정돈은 정리 후 필요한 것들을 사용 후 되돌리기 쉽도록 어디에(정위치), 무엇이(정품), 얼마나(정량) 있는지를 구분하여 두는 곳을 표준화하는 활동이다.정돈활동으로 표준화된 현장을 주기적인 청소를 통해 점검하여 문제점을 발굴하고 개선하여 유지가 되도록 하는 것이 청결이며 습관화는 정리, 정돈, 청소, 청결 활동을 반복하여 몸에 배도록 하는 것이다. 이러한 5S활동을 필자가 지도하는 P사에서도 2005년부터 지금까지 전(全) 공장의 작업현장, 자재창고, 사무실 등을 중심으로 지속해오고 있다. 5S활동은 계층, 근속, 지식에 관계없이 누구나 참여하여 함께 땀 흘리고 아이디어를 도출하여 개선하는 과정을 통해 동료애와 협동심을 느낄 수 있는 가장 좋은 활동이다.작업 현장이 잘 정돈되어 있으면 찾고 되돌리는 낭비가 줄어 일의 효율이 향상되고 동선이 줄어 작업 안전이 자연스럽게 확보될 수 있는 활동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너무나 당연하기 때문에 소홀하기 쉬운 활동이기도 하다.중요한 것은 이 개념적인 5S활동을 우리가 일하는 현장에 접목하여 작업이 편하고 안전해지도록 만드는 것이다. 이는 생각만으로 되지 않으며 나와 동료를 위하는 마음으로 같이 행동할 때 구현이 가능하다. 최근에 많은 기업들이 MZ세대와의 소통으로 고민하고 있는데 공동의 터전인 작업현장을 안전하고 일하기 좋게 만들자는 공통의 목표로 세대를 넘어 함께 참여하고 일을 통해 소통하는 도구로 5S활동을 적극 권장한다.

2022-05-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