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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새로운 문화의 발돋움 ‘詩뜨락’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초록이 흐르고 연둣빛이 피어나는 5월은 눈길 닿는 곳마다 푸르기에 푸른달이라 했던가. 봄의 꽃잔치 속에 조금씩 돋아나던 잎사귀가 오월 들어 본격적으로 피어나며 그야말로 초록의 세상을 이루고 있다. 겨울을 이겨낸 진초록 잎새 위에 연초록 잎새가 겹쳐서 피어나니, 마치 울음처럼 복받치는 연둣빛 그리움이 꿈결처럼 흐르는 듯하다. 온통 초록과 연두의 녹엽으로 펼쳐지는 오월은 맑고 푸르러 싱그럽기만 하다.푸르른 오월을 기약이라도 하듯이 4월의 잎새달 끝자락에 초록빛 문화예술의 향기가 5월의 푸르름마냥 진하게 피어났다. 코로나19의 진저리를 떨치기라도 하는 듯 도심 속 작은 정원에서 잔잔한 시낭송과 악기 연주, 시인과 독자와의 대화가 들꽃처럼 소담스레 피어났다. 초록의 계절에 어울리는 시편과 일상 속의 다반사인 커피 마시는 얘기, 사랑과 그리움을 노래하고 행복을 부르는 시낭송의 메아리가 수수한 듯 낭랑한 음성으로 다가오고, 간간이 악기의 선율과 시 같은 노래가 그윽하면서도 유장하게 울려 퍼졌다.이같은 일련의 행사는 4월의 마지막 날 포항시 효자동의 한 켠에서 포항시낭송회가 주관한 일곱 번째 시뜨락(詩가 흐르는 뜨락)의 주요 레퍼토리다. 서옥(書屋)의 좁다란 뒤뜰에서 간소하게 열렸지만, 시낭송과 음악의 문화적인 울림은 어느 공연 못지 않게 넓고 깊었다. 특히 이번에는 전국적으로 ‘커피시인’의 명성을 떨치고 있는 윤보영 시인을 초대하여 그의 스무 번째 시집인 ‘세상에 그저 피는 꽃은 없다 사랑처럼’에 실린 시를 골라 낭송하고, 서예가의 시서(詩書) 작품으로 미니 전시회까지 곁들여 다채로움을 더했다.이른바 감성시인으로 통하는 윤보영 시인은 신춘문예에 동시(童詩)로 등단해 스무 권의 시집을 내면서 간결하고 섬세한 감정으로 공감을 불러일으켜 초등, 중등학교 교과서에 시와 동요의 가사가 수록되는 등 관록있고 독자층이 두터운 시인이다.특히 일상적이고 평범한 소재 속에서 시를 끌어올리고 전혀 생각지 못했던 발상이 읽는 이의 마음을 두드리며, 순수하고 긍정적인 감정이 메말라 가는 각박한 시대에 커피 한 잔처럼 따스하게 마음을 데워줄 수 있는 감성적인 시를 많이 썼다. 그에 따라 춘천, 파주, 문경 등지에 ‘윤보영 시가 있는 길’이 조성되기도 했고, ‘윤보영 동시 전국 어린이 낭송대회’ 개최와 ‘윤보영 캘리랜드연구소’ 등의 운영으로 시의 저변확대와 새로운 발전 모색에 큰 기여를 하고 있다.그러한 저명시인을 모시고 봄과 커피에 어우러진 시잔치를 벌였으니 문화도시 포항의 품격이 적지 않게 올라가지 않았을까 싶다. 경향의 문인을 초대하여 시낭송회와 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문학과 예술의 삶을 공감하고 문인과 독자가 소통하는 ‘시뜨락’은 문화의 새로운 발돋움이 아닐 수 없다. 마침 코로나의 터널에서도 벗어나는 때, 시와 시인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펼치는 시뜨락 같은 시낭송 토크가 전국적으로 퍼지고 활성화되기를 기대해 본다.

2022-05-02

윤석열 정부의 ‘공정’과 ‘상식’을 위하여

변창구대구가톨릭대 명예교수·국제정치학 윤석열 당선인의 아이콘(icon), ‘공정’과 ‘상식’이 중대한 시험대에 올랐다. 인사청문회와 ‘검수완박’(검찰수사권 완전박탈) 협상과정에서 보여준 당선인의 태도는 실망스럽다. 새 정부의 정체성이라고 할 수 있는 공정과 상식이 벌써부터 흔들리고 있으니 우려가 크다.공정을 역설했던 당선인이 정호영 보건복지부장관 후보자의 ‘아빠찬스’ 의혹에 대해서는 모호한 입장을 보였다. 정 후보 관련 의혹들은 조국 전 장관 자녀의 특혜 입학과 닮은꼴이다. 2030세대는 물론이고 보수언론들까지 많은 의혹들을 지적, 낙마의 불가피성을 지적했음에도 청문회를 지켜보자고 했다. 청문회는 법적 판단을 할 수 있는 곳이 아니며, 법의 역할과 정치의 역할은 다르다. 대통령이 된 ‘정치인 윤석열’은 ‘검사 윤석열’과는 달라야 한다.당선인은 선거에서 자신을 “조국의 위선을 무너뜨린 공정의 상징”이라고 하면서 문재인 정부와는 달리 “내로남불 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공정이라는 잣대는 여당과 야당, 조국과 정호영에게 다르게 적용될 수 있는 ‘고무줄’이 아니다. ‘특권에 대한 이중 잣대’가 바로 내로남불이다. 정 후보자를 두고 좌고우면(左顧右眄)하는 당선인의 태도에 대해 벌써 조국 전 장관은 “윤석열의 선택적 정의”라고 비판하고 있지 않는가? 권력과 결탁하여 이익공동체가 되어버린 어용교수는 공정할 수가 없다. 자녀에게 ‘아빠찬스’를 제공한 장관이 업무에는 공정할 것이라고 믿는 사람이 있겠는가? 최근 당선인의 직무수행을 평가한 여론조사는 부정(45%)이 긍정(42%)보다 높다는 사실을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이뿐만 아니라 ‘검수완박’ 협상과정에서 보여준 당선인의 태도 역시 적절하지 못했다. 그는 “검찰 수사권 폐지와 중대범죄수사청 설치는 법치주의를 심각하게 훼손한다”고 하면서 검찰총장직을 던지고 대선에 출마해서 국민의 선택을 받았다. 그런데 이른바 ‘윤핵관’이라는 권성동 원내대표가 법안의 핵심내용에는 전혀 변화가 없는 국회의장 중재안에 전격 합의한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에 국민들이 ‘신·구 권력의 정치적 야합’이라고 거세게 반발했고, 심지어 안철수 인수위원장까지 “이해 상충이며 국민들이 분노하고 있다”고 비판하자, 그때서야 비로소 당선인은 “국민을 이기는 권력은 없다”고 했다. 최측근이 합의한 내용을 몰랐다는 말인가? 더욱이 원내대표가 합의하고 의총에서 추인까지 받았는데, 이를 3일 만에 파기한 것을 당선인이 역설해 온 ‘상식’으로 이해될 수 있는 일인가?이처럼 윤석열의 공정과 상식은 ‘내로남불’과 ‘합의번복’으로 명분도 잃고 실리도 잃으면서 표류하고 있다. 공정과 상식의 잣대가 흔들리면 국민의 불신을 사게 된다. 입법 권력의 독재도 문제지만 집행 권력의 ‘선택적 공정’ 역시 문제다. 여소야대 정국에서 요구되는 협치는 집권당이 먼저 공정과 상식을 지킬 때 가능하다. 당선인에게 기대하는 ‘춘풍추상(春風秋霜)’이 일장춘몽(一場春夢)으로 끝나지 않기를 바란다.

2022-05-02

마스크 착용의무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 코로나 팬데믹 이후 1년여 넘게 지속돼온 실외 마스크 착용의무가 2일부터 해제됐다. 방역당국은 다른 사람과의 거리가 1m 이상 되고, 자연 환기가 잘 이뤄지는 실외에선 전파 위험이 실내보다 낮다고 판단해 마스크를 벗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사람과의 거리가 좁고 군중이 몰리는 곳, 대화와 함성이 이어지는 곳 등에선 실외여도 마스크 착용 의무가 유지된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의 안내에 따르면 2일부턴 실내에선 마스크를 쓰고 실외에선 마스크를 벗을 수 있다. 다만 마스크를 벗을 수 있는 환경을 판별하는 기준은 자연환기가 지속적으로 이뤄지는 곳인지 여부에 따라 달라진다. 예를 들어 버스·택시·기차·배·항공기 등 대중교통, 트럭 등 운송수단, 외부와 차단된 건물 내부 등에선 마스크를 착용해야 한다. 또한 50명 이상이 모여 함성·대화과 밀접 접촉이 등이 빈번하게 이뤄지는 집회·공연·행사·경기장 등에서도 감염을 막기 위해 마스크를 써야 한다. 놀이공원·해수욕장 등 야외에 노출된 환경이라도 사람과 사람 사이에 1m 이상 거리를 둘 수 없을 정도로 인구밀집도 높은 곳에선 마스크 착용을 권고한다는 게 중대본 관계자의 설명이다. 따라서 밀폐·밀집·밀접 시설이나 요양병원·요양원 등 감염에 취약한 시설에선 KF80 이상 되는 마스크를 꼭 착용해야 한다. 마스크 착용의무를 위반하면 과태료를 부과한다. 하지만 학교 운동장에서 학급단위 체육수업, 두 면 이상이 열려있는 실외 전철 승강장, 다른 사람과 1m 이상 거리를 둬 움직일 수 있는 공원 등에선 마스크를 벗을 수 있다. 실외 마스크 착용의무 해제가 너무 반갑지만 아직도 대중교통이나 건물 내부에서는 마스크 착용이 의무화돼 있다는 점을 꼭 명심해야겠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2-05-02

끝까지 ‘내로남불’인가

김진국 고문 결국 난장판이 됐다. 몸싸움이 벌어지고, 욕설이 오갔다. 민주당은 숫자로 밀어붙여 검찰청법 개정안을 통과시켰고, 국민의힘은 악을 썼다. 국가 공권력이 전리품인가. 차기 행정부와 의회 권력의 힘겨루기가 막장극을 연출했다. 전문가들과 숙의도 공론화도 없다. 꼼수와 편법이 야바위꾼 뺨친다. 이게 이 나라의 지도자들이다.‘검수완박’이 뭔가. ‘검찰 수사권을 완전히 박탈’한다고 한다. 검찰 권력이 너무 커서 횡포를 부린다는 이유다. 다른 견제 수단은 없는 걸까. 수사와 기소를 어느 정도 분리하는 게 효율적인가. 검찰이 하던 수사는 모두 누가 하나. 전문가들 사이에도 논란이 계속된다. 아직도 혼란이다. 어느 정당을 지지하느냐에 따라 정치적 판단뿐이다. 이미 대부분 수사권을 경찰로 넘겼다. 공수처도 출범했다. 1차 수사권 조정에 따라 개정된 형사소송법과 검찰청법에 적응도 하기 전에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서두는 이유를 이해하기 어렵다. 동원된 편법들이 ‘사사오입 개헌’과 ‘10월 유신’ 등 혼란스럽던 헌정사를 떠올린다. 민주당은 윤석열 당선인이 5월 10일 취임하기 전에 공포 절차까지 마치려고 한다. 새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피하기 위해서다. 이게 그렇게 중대한 사안일까.‘검수완박’에 반대한 양향자 의원(무소속)은 “더불어민주당 소속 의원들로부터 ‘검수완박을 처리하지 않으면 문재인 청와대 사람 20명이 감옥 갈 수 있다’는 말을 들었다”라고 주장했다. 지은 죄가 많아선가. 아니면 검찰의 공정성을 의심해서인가. 어느 쪽이든 정권 교체 이후 안전이 문제인 건 틀림없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기억도 있다.그렇지만 검찰만 수사하는 게 아니다. 검찰은 독립을 보장하는 장치라도 있다. 다른 수사기관은 윤석열 정부가 직접 통제한다.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한국형 FBI)도 법무부 장관이 지휘한다. 더 어이가 없는 일은 법무부 장관에 한동훈 후보자가 지명되자 개정안에서 중수청 설치 조항까지 넣었다 뺐다 촌극을 벌였다. 다른 사람이 지명되면 윤석열 정부 각료가 아닌가. 이럴 참이면 아예, 검찰과 경찰을 모두 없애는 정부조직법을 만들어버리는 건 어떤가.원안과 법사위안과 본회의안이 수시로 바뀌었다. 그렇게 중대한 법안을 이렇게 조령모개(朝令暮改)하나. 수사권을 경찰에 넘기면 절대 안 된다는 말이 아니다. 합당한 논리적 근거가 있다면 국민을 설득하고, 전문가의 의견을 수렴하는 게 정상이다. 몰아치는 모양이 선거 패배의 분풀이 같다. ‘윤석열=검찰’이라 생각하는 건 아닌가.제도의 횡포는 검찰이 아니라 국회가 하고 있다. 필리버스터를 무력화하기 위해 회기를 쪼갰다. 국회 선진화법과 필리버스터 제도가 무력해졌다. 중수청도 없이 검찰 수사권부터 없앴다. 정상적인 법체계를 짜는 게 아니라 검찰 수사권 해체가 목적이다. 안건 조정위를 무력화하는데 민주당 출신 무소속을 활용해왔다. 양향자 의원마저 ‘검수완박’을 반대하자 민형배 민주당 의원을 거짓 탈당시켜 무소속 의원으로 위장했다. 비례대표용 가짜정당을 만들어 선거법을 우롱하더니, 이제 가짜 탈당으로 국회법을 조롱한다.문 대통령 임기 안에 공포하려고 국무회의 시간까지 변칙으로 바꿨다. 민주당 단독으로 사법개혁특별위원회(사개특위) 구성 결의안도 통과했다. 히틀러는 민간 돌격대(SA)를 이용해 테러로 합법을 가장한 권력 장악을 했다. 그리고는 친위대(SS)를 이용해 돌격대를 제거했다. 독립적인 판결을 하는 판사들이 일당 독재에 걸리적거리자 반역죄를 전담하는 인민재판소, 정치범을 처벌하는 특별재판소를 따로 설치했다. 가장 민주적이었던 바이마르공화국은 그렇게 무너졌다. 히틀러는 시스템의 합리성이 아니라 나에게 도움이 되느냐 아니냐 하는 피아(彼我) 구분으로 존폐를 판단했다. 지금이 그 꼴이다.이명박·박근혜 정부를 청산할 때는 검찰 특수수사를 강화했다가, 그 칼날이 나에게 돌아올 때가 되자 그 칼을 빼앗았다. 권불십년(權不十年)이다. 마구 휘두르면 나도 다칠 각오를 해야 한다. 처지가 바뀌면 자기가 뱉은 말과 싸워야 한다. 그게 ‘내로남불’이다. /본사고문

2022-05-01

울릉도의 오래된 미래, 손꽁치어업

김윤배 한국해양과학기술원 동해연구소울릉도독도해양연구기지 대장 울릉도에서는 매년 5~6월이면 특별한 어업 활동이 펼쳐졌다. 손으로 꽁치를 잡는 이른바 손꽁치어업이다. 꽁치는 우리나라 동해, 오호츠크해, 일본 연안에서 미국 연안에 이르는 북태평양 해역 등의 수심 30m 이내에 주로 분포하는 냉수성 근해 회유 어류이다.겨울철 동중국해, 일본 남쪽 바다에서 월동하다가 봄이 되면 동해안으로 올라와 산란하고, 더 북쪽으로 이동했다가 가을이 되면 다시 남쪽으로 회유해 월동하는 것으로 연구되고 있다. 울릉도 근해에서는 통상 5~6월이 산란기이다.꽁치의 수명은 약 3~4년으로, 2년차부터 산란하며 산란기 동안에 약 1천500~9천개의 알을 낳는다. 꽁치는 산란할 때 해조류 등 바다에 떠다니는 물체에 몸을 비비면서 알을 낳는 습성이 있는데, 알에는 약 20여 개의 털이 돋아 있어 해조류나 표류물에 잘 달라붙는 특징과 관련된다.울릉도에서는 이러한 꽁치의 산란 습성을 이용하여 몰이라 불렀던 모자반과 같은 해조류를 활용해 울릉도 연안에서 손으로 꽁치를 잡아왔다.손꽁치 어업은 손이 배 위에서 충분히 물속으로 들어갈 수 있어야 하기에 조그마한 선박이 필요하다. 울릉도에서는 3~4명 탈 수 있는 목선인 강고배 혹은 떼배가 활용되었다. 꽁치를 유인하는 해조류 또한 필요하다. 몰이라 불리는 괭생이모자반 같은 대형해조류가 활용되었다.손꽁치 어업은 파도와 바람이 잔잔한 날을 살피며 조업 해역을 정했다. 북서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댄갈바람, 댄갈청풍이라 불렀고, 남서풍은 갈바람, 동남풍은 동갈바람, 을진바람, 그리고 서풍은 청풍이라 불렀다. 청풍은 울릉도 지역에서만 부르는 독특한 바람 이름이었다.조업 해역에 도착하면 새끼를 꼬아 만든 줄로 몰을 묶고 수면에 띄운다. 몰을 긴 줄과 짧은 줄로 연결해 짧은 줄은 배 가까이에, 긴 줄은 배에서 멀리 하여 몰을 넓게 펴는 것도 중요하다.1960~70년대 울릉도에서 왕성했던 손꽁치어업을 기억하는 울릉도 현포 주민 최해관씨(82)는 무엇보다 몰을 잘 펴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최씨는 떼배의 노를 날렵하게 젓는 울릉도 어업사의 산 증인이기도 하다. 몰을 펼친 다음에는 꽁치가 몰 주변으로 몰려올 때까지 기다림의 시간이 필요하다. 꽁치가 몰려올 때 먼저 한쪽 손의 세 손가락을 이용하여 꽁치를 잡은 다음에 다른 손으로 연신 꽁치를 잡아 배에 건져 올린다. 많이 잡을 때는 3~4가마니는 거뜬했다.이렇게 잡은 꽁치는 그물로 잡은 꽁치에 비해 껍질을 벗겨 바로 먹을 정도로 신선도 면에서 매우 우수했고, 그물로 인한 해양쓰레기 문제 혹은 타 어종의 어획 문제가 없어 매우 친환경적인 어법이었다.울릉도에서는 손꽁치로 젓갈을 담그거나 꽁치를 말려 갈아 육수처럼 국에 넣기도 했으며, 꽁치 완자를 만들어 미역국에 넣기도 했다. 꽁치젓은 멸치젓에 비해 굉장히 깊은 맛이 우러나 울릉도 김장젓은 전부 꽁치젓갈이었다.하지만 무엇보다 울릉도 주민에게 손꽁치는 춘궁기를 견디는 구황 수산물이었으며, 가축이 적은 울릉도에서 축산물을 대신하는 최고의 단백질 공급원이었다.손꽁치는 과거 울릉도의 주식이었던 보리가 익어 수확하기 직전에 통상 조업이 시작됨으로써 울릉명이, 부지깽이와 같은 봄의 산채나물처럼 배고픈 울릉도 주민의 허기를 달래는 구황 수산물이었다. 울릉도의 봄의 허기를 달래는 바다의 선물이었다.1961년 울릉군 통계자료에 따르면 울릉도의 주요 수산물은 오징어(5천646t), 명태(747t), 미역(359t), 꽁치(317t)로 꽁치는 오징어, 명태와 함께 주요 어종이었다. 그러나 그 많던 꽁치는 이제 울릉도 주변의 아열대화와 함께 서서히 자취를 감추고 있다. 우리나라 연근해 꽁치 어획량 또한 1970년대 연평균 2만9천22t에서 2010년대 연평균 1천449t으로 크게 감소하였다. 늦봄 울릉도 바다를 누볐던 손꽁치어업 또한 거의 자취를 감추고 있다.그나마 다행인 것은 국제슬로푸드협회에서 점차 잊혀져가는 음식문화유산 보전 차원에서 울릉손꽁치를 지난 2014년에 맛의 방주로 지정하였으며, 울릉군에서는 슬로푸드 울릉지부와 연계해 다양한 음식문화 보전 노력을 진행하고 있다.또한 경북도와 울릉군에서는 울릉도 손꽁치어업을 국가중요어업유산으로 신청해 어업기술과 어업문화를 체계적으로 보전하고 정책적으로 지원하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어업인의 고령화, 우리 세대가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아열대화라는 바다 환경변화 앞에서 해양수산인의 적응이 요구된다. 그 과정에서 울릉도만의 독특함과 색깔을 잘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령화된 어업인은 걸어다니는 울릉도의 자연사 박물관이다. 너무도 울릉도다웠고, 너무도 자연과 인간의 조화를 보여줬던 울릉도 손꽁치어업. 손꽁치어업의 시대적 재해석을 통한 새로운 문화자원 창출이 필요하다. 울릉도의 오래된 미래, 울릉도 손꽁치어업의 국가어업유산 지정을 희망해 본다.

2022-05-01

ESG경영은 기회다!

이재혁 대구경북녹색연합 대표 새 정부 출범이 며칠 앞으로 다가왔다.최근 인수위에서는 새 정부의 ESG혁신성장 전략을 공개했다. 총 60조원의 재원을 투입해서 에너지, 탄소중립 분야의 신산업을 육성하고 중소·벤처기업을 지원하여 일자리를 92만개 만든다는 계획이다. ESG경영은 무엇이기에 정부와 기업이 관심을 보이는 것일까?전국경제인연합회가 2022년 2월 매출액 상위 300대 기업 ESG 담당자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기업 86개 중 81.4%가 2021년 대비 2022년 사업비와 인력을 늘리겠다고 답하였다고 한다. 하지만 ESG경영의 정확한 정의를 바탕으로 기업에 맞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대선을 통해 유명해진 RE100의 현황을 확인하면 우리의 부족한 점이 보인다.RE100은 재생에너지 전기(Renewable Electricity) 100% 의 약자로 기업 활동에 필요한 전력의 100%를 태양광과 풍력 등 재생에너지를 이용해 생산된 전기로 사용하겠다는 자발적인 글로벌 캠페인이며 ESG경영의 일환이다. 구글, 애플, BMW, 이케아 등 350여개 기업이 가입했고, 국내에서는 SK그룹, LG에너지솔루션, 미래에셋증권, 아모레퍼시픽, 한국수자원공사 등 14곳이 가입했다. 국내 재생에너지 발전이 선진국에 비해 낮은 상황에서 국내기업의 가입이 쉽지만은 않다.새 정부가 이런 점을 보완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ESG경영이란 환경보호(Environment)·사회공헌(Social)·윤리경영(Governance)의 약자이며, 기업이 환경보호에 앞장서며, 사회적 약자에 대한 지원 등 사회공헌 활동을 하고, 법과 윤리를 철저히 준수하는 경영 활동을 말한다.기존 경영방식은 투자자와 기업 간의 관계유지를 중시하고, ESG경영에서는 소비자와 노동자, 관련업체, 지역사회, 환경 등 다중 이해관계자들에 대한 원활한 관계를 유지하는데 중점을 두는 것이다. 기업은 비용지출의 부담이 있을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 기업 가치를 높일 수 있다.과거에도 ESG에 대한 관심이 높았으나, 코로나19 이후 환경이 인류미래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고 사회적 책임에 대한 사회적 관심은 더욱 높아지고 있다. ESG경영에 대한 필요성은 급증하고 있지만 이를 평가하는 지표는 제각각이라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전 세계적으로 기업의 ESG 등급을 평가하는 평가기관은 무려 125개 이상이며, 글로벌ESG 표준, 프레임워크, 데이터 공급업체까지 합치면 ESG 관련기관은 600개가 넘는다.국내의 경우 한국기업지배구조원이 자체 개발한 ESG 평가지표와 평가결과가 2011년부터 매년 공개되고 있고, 국민연금, KB, 신한, 한화, 미래에셋 등 주요 투자기관과 회사들도 각자 ESG 평가지표를 사용하고 있다.평가절차는 거의 유사하지만, ESG 평가 지표가 상이하다보니 평가기관별 ESG 점수도 차이가 발생한다.특히 기업에서 제공하는 정보량에 따라 평가점수는 크게 달라질 수 있다. 기업들은 ESG평가 지수를 높게 받아야 할 상황이지만 평가 기관마다 기준이 다르고 평가 기관이 관련 기준이나 내용으로 장사를 하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이러한 혼란을 줄이기 위해 총 61개 항목으로 구성된 ‘K-ESG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K-ESG 가이드라인은 관계부처 합동으로 다우존스지속가능경영지수(DJSI), 모건스탠리캐피탈 인터내셔널(MSCI), 세계경제포럼(WEF) 등 국내외 주요 13개 평가기관의 3천여 개 이상의 지표와 측정항목을 분석해 작성한 것이다.지금까지 ESG경영에 대한 관심은 높았지만 각기 다른 평가 방식으로 신뢰성 문제가 제기됐다. 이제 K-ESG 가이드라인을 통해 일관성 있는 평가를 기대해본다.지속가능한 성장으로의 패러다임을 위해 공공기관의 ESG 공시항목도 대폭 확대시키고 있다. 이는 지방공기업 평가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고, 지역사회에서도 필요성을 실감하고 있다.지난해 대구상공회의소가 대구지역 기업 375개사를 대상으로 ‘ESG 관련 대구기업 인식 조사’를 실시한 결과 62%가 ESG경영 도입이 필요하다고 응답하였다. 상당수 기업이 필요성은 느끼고 있지만 전문적 상담해줄 인프라 부족을 호소하고 있다. 코로나19 펜데믹으로 세계경제 동향도 급변하고 있고, 환경에 대한 중요성은 더욱 가중되고 있다.새로운 소비세대인 MZ세대는 소비에 가치를 담고 있기에 ESG경영은 수익성과도 연관이 있다.이제 똑똑한 소비자들은 가격, 선호도, 품질을 떠나 자신의 가치를 지지하는 방향으로 제품을 구매하고 투자하고 있다. 기업의 입장에서는 기회이다. 지속가능한 안전 사회를 만들어나가기 위해 ESG경영은 필요하며, 부패지수가 높고 환경인식이 낮은 대한민국이 선진국으로 평가받기 위한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 ESG경영은 꼭 살려야 될 기회이다.

2022-05-01

‘근로자의 날’ 유감

김규종 경북대 교수 해마다 5월 1일은 ‘노동절’이다. 이날은 세계 전역이 노동자와 노동을 생각하면서 하루 노동을 내려놓는 날이다. 그야말로 노동하는 인간들의 휴식과 노동의 의미 반추를 위해 만들어진 날이다. 그래서 이름도 ‘노동절’이다. 하지만 선진국이라 자부하는 이 나라에서는 노동절이 아니라, ‘근로자의 날’이다. 해괴한 일이다.1886년 5월 미국 시카고에서 발생한 노동자 시위와 관련하여 노동자 8명이 죽어 나간 비극적인 사건이 노동절의 발단이다. 1889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제2인터내셔널’ 창립대회에서 5월 1일을 ‘노동절’로 정해 기념하기로 한다. 노동절은 133년의 역사를 가지고 오늘에 이른 게다.한국에서는 이승만이 1958년에 3월 10일을 ‘노동절’로 정했으며, 1963년에 박정희는 ‘노동절’을 근로자의 날로 바꾼다. 김영삼은 1994년에 한국노총 창립기념일인 3월 10일 대신 5월 1일로 날짜만 바꾼다. 이름은 끝까지 ‘근로자의 날’을 고수한다.근로자와 노동자는 별 차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근로자는 국가나 회사를 위해 근면 성실하게 순종적으로 일하는 사람, 노동자는 주체적으로 힘써 일하는 사람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이래서 국가와 기업은 노동자보다 근로자를 좋아한다.21세기 2020년대를 살아가면서도 한국 정부와 관료, 기업은 여전히 고분고분하고 순종적이며 순치(馴致)된 인간을 욕망한다. 스스로 사유하고 판단하며 행동하는 깨어있는 노동자들을 두려워하고 경원하는 것이다. 20세기 3공과 5공의 너덜너덜하게 낡아빠진 시대착오적인 인식과 세계관으로 인간과 세상을 재단하는 자들이 이 나라 주류사회를 구성하고 있다. 세상 어느 선진국이 ‘근로자의 날’이란 이름으로 5월 초하루일 노동절을 기념하는가?!내가 굳이 노동절이라는 이름을 주장하는 데에는 까닭이 있다. 언젠가 공자의 제자인 자로(子路)가 스승에게 묻는다. “정치를 하신다면 무엇을 맨 먼저 하시겠습니까?!” 공자의 대답은 뜻밖이다. “반드시 이름을 바로 하겠노라! (必也正名乎)” 놀란 자로가 되묻는다. “현실을 모르십니다. 하필이면 이름을 바로 하시겠다니요?!” 이에 공자가 준엄하게 자로를 타이른다. 이른바 공자의 6단 논법이 화려하게 전개된다.“이름이 바르지 아니하면, 말이 이치에 맞지 않고, 말이 이치에 맞지 않으면, 일을 성취할 수 없고, 일을 성취할 수 없으면, 예와 악이 흥하지 못하며, 예와 악이 흥하지 못하면, 형벌이 실정과 어긋나게 된다. 형벌이 실정과 어긋나면, 백성들이 손발을 둘 곳이 없어진다. 고로 군자의 말에는 모호함이 없어야 한다. (名不正則言不順, 言不順則事不成, 事不成則禮樂不興, 禮樂不興則刑罰不中, 刑罰不中則民無所措手足. 君子於其言無所苟而已矣)” - 논어‘자로’ 편‘근로자의 날’과 한국 정부가 운영하는 국가기관 ‘고용노동부’의 부조화는 어찌할 터인가?! 고용노동부를 ‘고용근로부’로 바꾸든지 아니면 ‘근로자의 날’을 노동절로 바꿈이 온당하지 않겠는가?! 아무것도 하지 않은 진보 정부의 어리석음이 우리의 발목을 잡은 노동절이 어제였다.

2022-05-01

참다운 도덕성 지닌 지도자 찾아야

권영호 아동문학·의성문협회장 노란 산수유가 당겨 놓은 봄이다. 새악시처럼 수줍게 피어난 노란 개나리, 연분홍 진달래, 그리고 하얀 벚꽃은 우리가 뽑은 봄 향연의 주인공들이다.기초단체장과 광역·기초의원을 선출하는 6·1 전국 동시 지방 선거 날이 다가온다. 생명의 계절인 새봄을 맞이했을 때, 무언가 꼭 이루어질 것 같았던 기대로 마음이 설렌다.선출직의 입후보자는 피선거권을 가진 국민의 권리이며 자유이다. 국가와 국민을 위한 봉사자라고 자처하는 입후보자들이 국민의 선택을 받아 궁극적으로 얻고자 하는 것은 지도자 즉 리더라는 이름이다. 지도자, 그 이름은 가지고 있는 걸로만 존경을 받을 수는 없다. 지도자라고 부르는 사람들을 위해 막중한 책임과 의무를 했을 때 비로소 별처럼 빛나는 이름이 되는 것이다.농경시대, 윤리와 도덕 위주의 가치관은 물질 만능 시대를 살아가면서 물질적 가치관으로 변했다. 지도자의 역할과 책무라고 규정 짓는 지도력 역시 다양한 형태로 변모해 왔다. 그렇다면 다변화의 시대에 과연 어떤 지도력을 가진 입후보자가 지도자로 선택될까.우리는 맨 먼저 참다운 도덕성을 지닌 지도자를 찾아낼 것이다.예나 지금이나 훌륭한 지도자가 되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자기관리가 필요하다. 사람을 지도한다는 것은 곧 자기를 다루는 일이기 때문이다.지도자는 자기를 선택한 사람들이 가진 문제를 반드시 해결해 주어야 한다. 그러나 지도자에게는 그 책무성을 실현하는 능력을 갖추는 것보다 더 소중한 것은 참다운 도덕성을 지니는 것이다. 여태껏 우리는 바르지 못함에서 얻으려고 법을 멀리했고 자기의 양심마저 내팽개친 지도자들을 자주 보아왔다. 부도덕한 지도자를 믿고 따랐던 우리는 망연자실(茫然自失)하다가 급기야는 오랫동안 허탈의 늪으로 깊숙이 빠져들기도 했다. 그래 놓고도 후안무치(厚顔無恥)했던 그 지도자를 쳐다보며 우리는 오히려 자신이 부끄러워 고개를 돌려야 했다.이번 선거에서 우리는 자신의 인격을 자신의 지위보다 더 중요하게 인식하는 참다운 도덕성을 지닌 지도자를 다시 찾아낼 것이다. 진정 자기를 비우는 법을 터득하고 자기 부정에 단련된 도덕성을 지닌 그런 지도자를 말이다,우리는 삶의 질을 높여주는 정책을 추진하는 지도자와 함께하고 싶다. 코로나의 팬데믹에 빠져 허우적거렸던 날들이 벌써 이태가 지났다. 게다가 우크라이나 사태로 촉발된 에너지 및 원자재 상승 충격으로 내수가 감소하는 등 경기 둔화가 심각하다. 국가의 재정과 개인의 가계는 팍팍하다 못해 붕괴될 위기에 이르렀다며 미리 걱정하는 사람이 많다. 이러한 총체적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정책을 구상하고 합리적으로 추진해 줄 지도자가 절실하게 필요하다.그러나 한편으로 걱정이 앞선다. 우리가 뽑은 지도자가 국민 삶의 질을 높인다는 명분으로 입안한 정책을 자신의 정치적, 사적 이익을 위해 독선적으로 결정해 버리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은 쓸데없는 걱정이었으면 좋겠다. 아무리 작은 정책을 수립함에도 지도자는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근거를 바탕으로 해야 한다. 그렇게 정해진 정책은 자신을 다른 사람 위에 두지 않고 항상 겸허하고 지혜롭게 추진해야 한다. 아울러 일하는 과정에 참여의 문을 만들어 활짝 열어둬야 한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마음껏 그 문을 드나들게하여 시행착오를 극소화 시켜야 한다. 우리는 풍요와 행복을 추구한다. 그런 까닭에 진정 국민을 위해 창의적인 정책을 만들어 열과 성을 다해 펼쳐 주는 지도자와 함께하고 싶다.머지않아 선거 운동이 시작된다. 국민을 위해 헌신할 기회를 달라는 입후보자들의 간곡한 호소와 고장의 발전은 반드시 내가 이루겠다는 호언장담으로 선거판은 뜨겁게 달아오를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의 언행을 눈여겨보고 귀담아들을 뿐 그 어떤 것에도 현혹되지 않는다. 오직 참다운 도덕성을 지닌 사람, 삶의 질을 높이는 정책을 추진하는 사람을 찾아 지도자라는 빛나는 이름표를 달아 줄 것이다.

2022-05-01

봄날에 어머니 생각

따르릉, “형수님, 전데요. 엄마가 독사에 물려서 119 불러서 병원으로 가고 있대요. 같이 가실래요?” 시동생과 함께 병원으로 가는 길에 목 뒤가 당겨오며 머리가 아파 미칠 지경이다. 독사가 내 머리를 물은 것 같았다. 병원에 도착하니 어머님은 그새 치료를 끝내고 병실에 계셨다. 어디 물리신 거냐고 여쭈니 오른손 중지를 보여주셨다. 퉁퉁 부었을 줄 알았는데 워낙 마르신 분이라 그런가, 다행히 붓기가 없었다.어머님은 내가 결혼하고부터 봐왔지만 흥분해서 일을 그르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어지간한 일은 속으로 삭이고 혼자 해결하셨다. 둘째 아들과 큰며느리가 궁금한 눈빛으로 옆에 서 있으니 천천히 입을 떼셨다. 산에 동네 친구분들과 나물을 하러 가셨단다. 나물 따라 자꾸 오르다 뭔가 손이 따끔해서 가시에 찔렸나 하고 장갑을 벗어보니 이빨 자국이 선명해서 독사에게 물렸다는 것을 직감했단다. 그래서 바로 옷핀으로 마구 찔러서 피를 내고 그것도 모자라 입으로 피를 빨아 뱉고를 반복하고 운동화 끈을 끊어서 손가락에 묶었단다. 병원에 오니 의사 선생님이 응급처치를 잘해서 다행이라고 칭찬하셨단다.산속 깊은 곳이라 내려오면서 바로 전화하면 119가 기다릴까 봐 산을 거의 내려오면서 여기쯤이면 기다리지 않아도 될 시간이겠지 싶어 그때야 전화를 걸었단다. 그러고선 그래도 병원을 가는데 몸빼바지는 예의가 아니라고 집에 가서 바지 갈아입고 의료보험카드 챙겨서 구급차를 탔다고 했다. 정말 대단하신 분이시다.그 말끝에 시동생 “어지간하면 화장도 하고 오지 그랬노, 엄마?” 어머님은 누워서도 종일 뜯은 나물 상할까 봐 걱정이셨다. 그때 시동생에게 동서가 전화를 걸어왔다. 어머님을 문 뱀이 무슨 뱀이냐고 묻자 “뱀이 뭐 이름표 달고 다니나, 이따가 엄마한테 인상착의 물어볼게.” 그 어머니에 그 아들이다.자주 돌아가신 어머님 생각이 나지만, 특히 봄에 내 곁을 다녀가시는 듯하다. 쑥 뜯을 시기가 오면, 산에 고사리가 필 무렵, 오천 장날 난전에 할머니들이 봄나물을 내놓고 파는 것을 보면 더 선명하게 어머님 얼굴이 떠오른다.묵밭두댁이, 무시나물, 참뜯까리, 우산나물, 산초나물, 재피나물, 콩대가리나물, 취나물, 쑥, 두릅, 고추나물, 달래나물, 부지깽이나물, 어름순(국수나물), 꽃나물, 어머님과 2006년 산에 가서 뜯은 나물들이다. 어머님 입에서 나는 소리를 그대로 적어본 것이라서 표준말도 아니고 정확한 풀 이름은 따로 있을 것이다.그해 봄, 어머님이 독사에 물리신 거다. 남편이 저녁 야간 당번을 마치고 퇴근하면서 어머니 병문안을 가잔다. 낮에 갔다 왔지만, 아이들이 할머니 궁금하다고 해서 또 따라나섰다. 할머니가 독사에 물렸다니까, 아홉 살인 둘째가 “뱀한테 물렸으면 진짜 큰일인데 다형이다.” 다행이란 말을 처음 배웠는지 ‘다형’으로 들은 것 같다. 독사는 독이든 뱀인데 다른 종류인 줄 아는 둘째. 모든 게 서툰 녀석이 “아버지, 음료수라도 사서 가야 하는 거 아니에요?” 이런다. 제법 컸구나 싶다.어머님이 좋아하시는 요구르트, 홍삼 사탕, 초콜릿을 사 들고 갔다. 병실에 도착하니 밤 10시라 불 끄고 주무시는 어머니를 깨워서 한참 재롱떨다가 왔다. 손자 둘이 왔더니 평소에 9시 전에 주무시는 분이 기분이 좋으신지 오래 견디셨다.그 손자가 16년이 지나 다 커서 자기가 자신을 책임지는 진짜 어른이 되었다. 멀리 안성에 첫 살림을 내주었다. 3월에 기다리던 첫 월급을 받았다. 어엿한 직장인이 된 모습을 어머님이 보셨다면 얼마나 좋아하셨을까. 아마 살림 내는 날 반찬까지 이것저것 해주시며 멀리까지 따라가 보셨으리라. 보내놓고 자주 안부를 물으셨으리라. 첫 월급으로 산 빨간 내복 선물로 받고 눈물지으셨으리라. 장가보내도 되겠네 하시며 둘째 손을 잡으셨으리라.봄이라 더 어머님 생각이 간절하다. /김순희(수필가)

2022-05-01

100년 맞는 어린이날

우정구 논설위원 올 5월 5일은 어린이날 제정 100주년 되는 날이다. 1922년 소파 방정환 선생(1899∼1931)이 천도교소년회 창립 1주년을 기념해 5월 1일을 어린이날로 지정하자고 주장하고 그다음 해 5월 1일 제1회 어린이날 행사가 개최되면서 시작된 날이다.100년 세월이 흘러 지금은 국가기념일, 법정 공휴일이 됐고 어린이에겐 가장 의미있는 날로 남았다. 어린이날 제정의 가장 큰 공로자는 방정환 선생이다. 일제 강점기에도 그는 “조선의 소년소녀 단 한사람이라도 빼지 말고 한결같이 좋은 사람이 되게 하자”는 어린이 인권보호운동을 펼친 선구자다. 어린이 운동가이면서 아동문학가다.32살의 젊은 나이로 타계했지만 짧은 생애동안 어린이를 위해 그가 일군 업적은 많다. 아이로 불리던 명칭을 어린이로 바꾸었다. 늙은이와 젊은이와 대등하다는 뜻이다.전통 유교문화가 강하게 지배하던 시절에 어린이를 비하하거나 낮추지 말고 존중하자는 인권운동을 전개했다. 어린이의 위상을 높이고자 아동문학 보급에도 앞장섰고, 1923년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순수 아동잡지 ‘어린이’를 창간했다. 동화, 동요 등의 창작과 번역을 통해 어린이 세상을 알리고 동화구연대회 등을 통해 어린이 애호사상도 전파했다.그는 숨을 거두는 마지막 순간까지 “어린이를 잘 부탁한다”는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또 그의 묘비에는 “어린이 마음은 천사와 같다”는 내용의 동심여선(童心如仙)이 새겨져 있다. 어린이를 올바르고 슬기롭게 키우고자 하는 그의 일편단심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코로나19로 바깥에서 열리지 못한 어린이날 행사가 올해는 대면행사로 다채롭게 펼쳐질 것 같다. 3년만에 맞는 이날 어린이에겐 더없이 즐겁고 풍요로운 하루였으면 한다. /우정구(논설위원)

2022-05-01

벚꽃 단상

이정희위덕대 교수·일본언어문화학과 올 4월 초 몇 년 만에 벚꽃구경을 갔었다. 낮에 걷기 운동 삼아 산책한 벚꽃나무 가로수 길은 벚꽃을 만끽하기에 충분했다. 그래도 뭐니 뭐니 해도 밤 벚꽃놀이가 최고다. 새삼 벚꽃의 아름다움에 취해 약 한 달 동안 벚꽃 세계에 빠져 지냈다. 수령이 족히 100년은 넘을 것 같은 아름드리 큰 나무에 만개한 벚꽃을 보면서 이렇게 큰 나무에 이렇게 많은 꽃을 화사하게 피우는 나무가 또 어디 있을까 하고 생각해 보니 벚나무밖에 없는 것 같다. 봄이 되면 어김없이 꽃을 피우는 개나리, 진달래도 늘 키가 고만고만하고 더이상 거목이 되지 않는다. 벚꽃보다 한 달 가량 앞서 피는 매화나무 역시 수령이 오래되었다 하더라도 벚나무처럼 큰 나무가 되지는 않는다. 벚나무는 크면 클수록 더 많은 꽃을 피운다. 신비로운 꽃나무다.이러한 벚꽃의 아름다움을 제일 먼저 알아차린 나라는 일본이다. 일본의 국화(國花)가 무엇이냐고 물으면 대부분 벚꽃이라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국화라는 것은 국기나 국가(國歌)와는 달리 법률 등에 의해 공식적으로 제정되는 경우가 드물고, 국민들의 의식 속에서 관습적으로 정해진다. 엄밀히 말해 일본 국화는 정해진 것이 없다. 그저 일본을 상징하는 꽃이 벚꽃이라고 우리가 생각하는 것이다. 그래서 한 때는 벚꽃에 대한 심리적 저항감이 발동해 2003년에 한 시민단체가 강원도 횡성군의 3·1공원에 있는 벚나무를 잘라내야 한다는 운동을 벌였었다. 나도 아파트 주변, 학교 교정 내에 있는 벚꽃을 보면서 일본 나라꽃인데 하면서 불편한 마음이 불쑥불쑥 들곤 했다. 그래도 위안으로 삼는 것이 있다면 일본의 벚꽃의 원산지가 제주도라는 이야기다.일본에서 벚꽃의 이미지는 단순히 나라를 상징하는 꽃이란 의미보다 더 큰 것을 내포하고 있다. 바로 무사도를 벚꽃의 이미지에 결부시켜 일본 정신의 상징으로 만들어 낸 것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일본 나라시대에는 일본인이 가장 좋아하고 즐기는 꽃은 매화라는 기록이 있다. 그러나 헤이안시대부터 벚꽃은 서민들에게 사랑받는 꽃으로 자리매김하고 여성의 화신으로 비유되었다. 특히 근세시대의 8대 도쿠가와 요시무네 장군에 의해 지금의 도쿄에 가로수로 벚나무가 대대적으로 심어졌고, 점차 일본 전역에 벚나무 심기가 장려되었고, 이후 서민들의 꽃놀이로 정착하였다.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벚꽃은 이미지로서는 여성의 꽃이었다. 그래서 근세시대에 성곽에 벚나무를 심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일례로 지금은 일본에서 벚꽃놀이 명소로 알려진 아오모리현의 히로사키성에 1882년 벚나무를 심었을 때 성곽을 여성의 이미지가 강한 꽃으로, 게다가 놀이장소로 만드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해서 벚꽃을 뽑아버렸다고 한다.근대 이후에 만개한 벚꽃이 지기 직전에 가장 화사한 모습을 보이고 미련 없이 깨끗이 진다는 데에서 무사도와 일치한다는 이미지를 결부시켜 일본의 국화로 만들어낸 것이다.봄이 되면 벚꽃구경에 심취한 우리의 마음속에는 일본이란 이미지는 더이상 없게 되었다. 이제 벚꽃은 반일감정의 대상에서 제외된 것이다.

2022-05-01

세대를 공급하나요

유영희 작가 며칠 전 버스 안 운전기사 뒤에 달린 모니터에서 전국 2만295가구 분양이라는 뉴스를 보았다. 보통 아파트 분양 기사에는 ‘500세대 분양’ 이런 식으로 세대라는 단어를 많이 쓰는데 가구라고 하니 새로웠다. 하긴, 정부가 추진하는 주택 정책은 1가구 1주택이라고 하니 가구라는 표현도 말이 된다.혹시나 해서 표준국어대사전을 찾아보니 세대와 가구 모두 ‘주거 및 생계를 같이하는 사람의 집단’이라고 풀이되어 있고 두 단어는 동의어라고 한다. 행정용어 풀이에 보면, 세대는 동거인을 포함하여 한 집에서 생계를 같이하는 사람이라고 되어 있어서 가구와 세대는 완벽한 동의어처럼 보인다.그러나 일상에서 세대는 가족을 기반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아서 가구와는 구분해서 쓰인다. 실제로 주민등록등본을 발급받을 때 가족은 세대원이라고 명시되어 있고 그 세대원은 등본에 안 나오게 할 수 없다. 그런데 동거인은 가족이 아니라서 등본에 안 나오게 할 수 있다. 이렇게 보면, 가족 중심의 세대 개념은 가구와 동의어라기보다는 유의어라고 하는 것이 적당하다. 그래서 1세대 1주택이 아니라 1가구 1주택이라고 했을 것이다.현행법으로 보면, 혈연관계가 아니라도 한 집에 거주하고 있는 동거인도 독립적으로 아파트 분양 신청을 할 수 없다. 집이 있는 세대주와 동거할 때는 전세 대출에 제한이 있다. 그러고 보면, 행정용어에서 세대에 동거인을 포함시킨 것은 1가구 1주택 정책을 실현하기 위한 행정적 편의라고 보인다. 한편으로는 부당하다는 생각도 들지만, 동거인도 주거와 생계를 같이하는 사람이라는 점에서 1세대 1주택이라는 표현보다 1가구 1주택 쪽이 더 합리적으로 보인다.문제는 아파트 공급 물량을 표현할 때 가구나 세대라는 용어를 쓰는 것이 적절한지 의심스럽다는 것이다. 실제로 LH 홈페이지에도 들어가 보면, ‘공급 호수 총 000세대, 특별 공급 000세대, 일반 공급 000세대’라고 되어 있다.아파트는 1세대 또는 1가구가 1호만 분양 신청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세대라고 하든 가구라고 하든 호수와 내용이 일치한다. 아파트의 경우 한 집에 한 세대 또는 한 가구만 거주할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요즘 아파트는 두 세대, 두 가구가 거주할 수 있게 짓기도 하지만, 주인은 한 사람이므로 그건 문제가 아니다. 다만, 세대원이나 동거인도 아파트를 신청할 수 있는 상황이 되면 한 세대나 한 가구에 2호를 공급할 수 있는 경우는 성립되지 않는다. 그래도 이런 문제는 그때 가서 바꾸면 되니까 큰 문제는 아니다.무엇보다 이 표현은 문법적으로 비문이라는 점이 걸린다. 집‘을’ 세대나 가구‘에게’ 공급하는 것이므로 세대나 가구를 공급의 목적어로 쓰면 어색하기 때문이다. 공급 호수 122‘세대’가 아니라 공급 물량 122‘호’, 이런 표현이 알맞지 않을까? 정확한 용어를 쓰는 것은 소통의 기본이다. 관공서에서 정확한 용어를 사용하는 것은 부정확한 언어생활을 개선하는 데 더욱 효과적이다. 관계 기관의 검토를 바란다.

2022-05-01

공천의 원칙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 6·1지방선거 기초단체장 공천을 두고 대구·경북지역이 북새통이다. 이 지역에서 압도적인 지지세를 자랑하는 국민의힘 공천은 파급효과가 크다. 공천이 곧 당선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지역구 국회의원을 뽑는 총선 공천은 주로 정치 계파를 중심으로 한 공천이 이뤄지며, 그 와중에 불협화음을 내는 경우가 많았다. 지난 2016년 치러진 20대 총선에서는 친이계와 친박계의 파벌갈등에다 이른바‘옥새들고 나르샤’공천파동이 벌어져 여소야대 형국이 되고 말았고, 2020년 치러진 21대 총선에서는 국민의힘 전신인 미래통합당이 친박, 비박 나눠 싸우느라 더불어민주당을 180석의 거대여당으로 만들어주고 말았다. 이처럼 국민의힘이 총선에서 패한 것은 모두 당 내부의 파벌갈등이 가장 큰 요인이었다.그러나 지방선거의 경우 양상이 자못 다르다. 당 내부의 파벌갈등보다는 지역구 국회의원들의 입맛에 따라 공천하는 이른바 ‘사천’내지‘엿장수공천’이 문제다. 특히 6·1지방선거는 3·9대선을 치른 직후 곧바로 닥쳐온 선거라는 특수성이 있다.정치권에서는 국민의힘 당 지도부가 대선 전에 이미 지역구 국회의원들에게 지방선거 공천권을 주기로 약속했다는 설이 파다하다. 대선 때 중앙당에서 선거자금 지원을 제대로 해주지 못하는 만큼 지역에서 선거자금을 알아서 조달하고, 그 대신 신세진 사람들에게 기초단체장이나 기초·광역의원 공천을 줄 수 있도록 했다는 얘기다.음모론에 가깝지만 무리한 공천으로 물의를 빚고있는 경산시 등 일부 지역에선 꽤 설득력있게 나도는 풍문이다. 경북도당 공관위가 3선에 도전하는 단체장 가운데 포항·영주·군위시장에 대해 컷오프 결정을 내렸다가 중앙당 공심위로부터 ‘교체지수 재조사’통보를 받은 데 이어 ‘단체장 포함 경선’이란 최종결정을 통보받는 혼선을 빚은 것도 모양새가 나쁘다.경북도당 위원장이자 경북도당 공천관리위원장을 맡은 김정재 의원이 자신과 사이가 나쁜 이강덕 현 포항시장을 컷오프시키려다 빚어진 일이란 설명 자체가 공당의 공천에 당협위원장의 사적 감정이 크게 작용하고 있다는 방증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국민의힘 공천기준도 문제다. 중앙당 공관위가 경북도당 공관위 등에 하달한 기초단체장 교체지수 규정을 보면 ‘필요시 현역기초단체장 교체지수를 적용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다. 교체지수는 개별평가방식(재지지율/당지지도)과 상대 평가 방식(현역 대상 교체 희망률 일괄 조사 후 비교) 두 가지로 제시됐고, 여기서 컷오프 적용 비율은 해당지역 공관위에 권한을 위임했다. 기초단체장의 생사여탈권을 지역 공관위에 위임한 듯 보이지만 그게 아니다. 공관위가 지역구 당협위원장의 의중을 최우선 고려하도록 돼있으니 결국 지역구 국회의원의 뜻에 따라 기초단체장 공천이 이뤄진다.풀뿌리민주주의를 실현하는 기초단체장 공천이 당협위원장의 뜻에 따라 좌우되는 것은 매우 불합리하다. 공정과 상식을 모토로 출범하는 윤석열 정부 아래 공정과 상식, 바로 그게 공천의 원칙이 돼야 한다.

2022-04-28

행복의 비결

우정구 논설위원 인간이 추구하는 궁극적 목표가 행복이라는데 이의를 달 사람은 별로 없다. 행복해지고 싶어 하는 욕망의 크기에 따라 행복의 만족도는 개인별로 큰 차이가 날 수 있다.사상가 벤담이 말한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은 되도록 많은 사람이 행복을 누리는 사회를 뜻한다. 모든 사람에게 공평한 민주주의도 많은 사람이 행복을 누리도록 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행복은 인간이 추구하는 최고의 가치다.그러나 누구나 행복을 갈구하지만 스스로 행복하다고 말하는 사람은 많지가 않다. 행복해지는 비결을 모르는 탓일지도 모른다. 세계적 대문호 톨스토이는 “행복한 가정은 모두 비슷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 다른 이유로 불행하다”는 말을 했다.국가마다 국민이 느끼는 행복의 정도도 천차만별이다. 미국이나 영국, 일본 등 경제적 부국이라고 반드시 행복지수가 높은 것은 아니다. 국민이 행복할 수 있는 요소는 나라의 전통과 문화, 국민성 등 수많은 요소며 이로인해 완성되는 것이 아닌가 싶다.얼마 전 유엔산하 자문기관인 지속발전가능해법 네트워크가 각국의 행복지수를 조사해 보니 핀란드가 5년 연속 세계 1위를 차지했다. 특히 눈길을 끈 대목은 복지국가로 일컬어지는 북유럽국가들이 대체로 상위그룹으로 포진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미국 16위, 영국 17위, 프랑스는 20위로 조사됐고 한국은 146개국 중 59위였다.북유럽국가의 행복지수가 높은 비결에 대해 전문가들은 높은 사회적 신뢰를 먼저 손꼽았다. 정직한 국민성과 낯선 사람에 대한 믿음과 배려, 국가와 국민과의 상호신뢰가 복지사회와 연결되고 있다는 것이다.대립과 갈등, 반목이 반복되는 우리나라가 배울 점이다./우정구(논설위원)

2022-04-28

폐기물의 재활용

윤영대수필가 봄은 이사 철이다. 대단지 아파트에는 하루에도 몇 건씩 대형 크레인이 설치되고 이삿짐센터 트럭이 와서 이삿짐을 싣고 내린다. 이사 후, 쓰레기장에는 값비싼 장롱부터 탁자, 침대와 가전제품들이 수북이 쌓여있다. 언뜻 보면 모두 쓸만한 것들인데 다 폐기되는 것이다. 그것도 그냥 버리고 가는 것이 아니라 돈을 주고 산 폐기물 딱지를 붙여둔다. 버릴 때 돈도 들지만 중요한 것은 분리배출이다. 나무 금속 등은 재가공 처리되어 중고품이 되고 종이와 비닐류는 재활용될 수 있다.국내 폐기물발생량은 연간 약 1억9천5백만 톤, 그중에서 사업장 폐기물이 약 2천만 톤이고 건설폐기물은 약 1천만 톤이다. 이들 대부분은 소각하거나 매립하겠지만 이제 소각시설도 지역 주민들의 반대가 심하고 대도시 인근 매립장은 소각 후 남은 재만 선별하여 묻어야 한다. 따라서 폐기물 재활용방안이 여러 분야에서 연구 시행되고 있는데, 예를 들면 시멘트산업 분야에서 생산원료인 석회석을 제외한 부원료와 연료에 폐기물 680만 톤을 재활용하는 등 순환율은 23%를 이루었다지만 독일 68%, 유럽연합(EU) 46%에 비하면 아직도 적은 수치다.‘폐기물관리법’이 1986년에 제정되어 사회의 변화에 따라 개정되어 오면서 폐기물 발생을 억제하고 친환경적으로 처리하여 환경보전과 국민 생활의 질적 향상을 꾀하고 있는데 국민의 생활의식이 무엇보다 중요하다.생활 쓰레기 중 가장 골칫거리가 플라스틱과 비닐류 물품들이다. 플라스틱은 석유 추출 고분자 화합물인 합성수지이며 염산과 황산에도 녹지 않고 5백 년간 썩지도 않는다니 재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가장 좋겠다. 매년 세계적으로 수천만 톤이 생산되는 폴리에틸렌은 투명도와 단열성으로 현재 가장 널리 사용되는 플라스틱이며 아무렇게나 버린 조각들이 바다를 떠돌며 전 세계 거북이들의 반 이상이 삼키고 있다는 소식에 안타깝다.우리의 실생활에서 무심히 버리고 있는 쓰레기 중 조금만 신경을 쓰면 재활용될 수 있는 것이 페트(PET)병과 종이컵이다. 페트병은 생수병으로 가장 많이 사용되며 페트병 환급제도를 위한 조사보고서에는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로 수거율이 85%이지만 재활용률은 10% 이하라고 하니 버릴 때 다른 플라스틱 폐기물과 혼합되지 않도록 하고 이물질도 씻어내고 부착물도 떼어내어 재활용이 쉽도록 해야 한다.1회용 컵도 마찬가지이다. ‘컵 보증금제’라는 제도를 마련하여 커피 열풍으로 엄청나게 소비하는 종이컵도 함부로 버리지 말고 회수하여 재활용할 수 있도록 실시할 예정이다. 연평균 230억 개가 사용된다고 추정되는데 그 회수율은 1.5%에 불과한 것은 재활용 방법의 홍보가 미흡한 탓일까? 종이컵은 안쪽이 비닐 코팅이 되어 있어 종이가 아니다. 플라스틱 뚜껑과 분리하고 모아서 버리면 휴지의 원료로 재탄생하는 자원이 될 수 있으며 소각할 때보다 온실가스를 66%로 감소시킨다는 것도 알아야 한다.

2022-04-28

법치를 파괴하는 정치모리배들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온갖 수단과 방법으로 자신의 이익만을 꾀하는 사람이나 무리’를 모리배(謀利輩)라 한다. 지금 대한민국 정치판에는 이런 모리배들이 득실거린다. 이들은 자신의 안위와 이득을 위해서는 민주주의의 기본 틀인 법치(法治)를 파괴하는 행위도 서슴지 않는다. 문재인 정권 5년 동안 삼권분립은 무너지고, 입법·사법·행정부가 좌경이념의 진영논리로 한 덩어리가 되어 법치와 국가 체제를 심각하게 훼손했다.소위 ‘검수완박’을 놓고 온 나라가 뒤끓고 있다. 며칠 전 국회의장의 중재안을 여·야 원내대표가 받아들여 합의를 하더니, 대다수 국민들의 반발이 거세지자 야당이 합의를 번복하는 촌극을 빚기도 했다. 검찰의 수사권을 완전히 박탈하겠다는 발상 자체가 위헌의 소지가 있는 국기문란에 해당한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그것이 과연 문재인 정권이 추구하는 정의로운 검찰개혁이라면 당연히 정권 초기부터 공론화하고 입법절차를 밟아야 했다. 검찰이 지난 정권을 적폐로 몰아 수천 명을 수사하고 수백 명을 기소할 때는 박수를 쳐놓고 이제 저들의 적폐가 도마에 오르자 서둘러서 검찰의 수사권을 박탈하겠다는 것은 파렴치하고 후안무치한 법치파괴가 아닐 수 없다.좌파정권에 국회 다수의석을 몰아준 것은 망나니에게 칼자루를 쥐어준 것이나 다름없었다. 국민의 대의기관인 국회의 기본 취지인 토의나 협상 따위는 안중에도 없고 망나니의 칼춤을 방불케 하는 전횡으로 법치를 누더기로 만들어 버렸다. 걸핏하면 수적 우세를 내세워 저들의 입맛에 맞게 법조문을 뜯어고치거나 위헌의 소지가 있는 법안을 밀어부치는 만행을 저질렀다. 흔히들 민주주의는 다수결에 의한 제도라고 하지만, 히틀러의 나치가 그랬듯이 다수에 의한 결정이라고 해서 항상 옳은 것은 아니다. 국회의 다수의석으로 밀어부친 입법권의 횡포가 어떻게 민주주의와 법치를 훼손할 수 있는가를 역력히 보여주는 현실이다.영국에서 비롯된 법치주의는 절대군주의 권력을 견제하여 군주의 자의적인 통치를 막고,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에서 제정된 법률에 의해서만 통치하게 하려는 데 그 의의가 있었다. 그러나 통치를 법에 의한다는 것만으로는 권력자의 자의를 통제하고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는데 충분하지가 않다. 지금처럼 여당이 국회의 다수의석을 차지하고 정권이 사법부를 장악한 경우엔 법치가 오히려 권력의 전횡을 합법화하는 도구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실질적 법치주의’라는 개념이다. 국가권력을 단순히 형식적인 법치가 아닌 헌법의 실질적인 가치에 귀속시키는 원리다. 즉, 모든 국가권력은 인간의 존엄성을 존중하고 보호할 의무를 지게 되고, 모든 법률은 이 헌법의 최고 가치를 실현할 때에만 법률로서의 효력을 가질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아무튼 검찰의 수사권을 박탈하는 것은 대한민국의 헌정질서를 훼손한 폭거로 역사에 남을 일이다. 자의로 법을 고쳐 형법체계의 근간을 파괴하는 짓을 공청회나 여론수렴은 물론 국회토론 등의 충분한 과정과 절차를 거치지 않고 날치기로 의결한다면, 그 불의한 행위에 대한 법적 책임도 반드시 물어야 할 것이다.

2022-04-28

카플레이션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 카플레이션(Carflation·자동차와 인플레이션을 합친 용어)이 심화하고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자동차 제조에 필요한 각종 원자재 가격이 폭등하고 있기 때문이다.우선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중국 코로나 봉쇄 등 국제 정세 악화가 주요 요인이다. 지난해부터 이어진 차량용 반도체 수급난도 카플레이션 영향을 미치게 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완성차업계에 따르면 차량 가격은 차량용 반도체 수급난을 거치며 가파르게 오르고 있다. 현대자동차의 지난해 승용 모델 평균 가격은 4천759만원으로 전년 대비 13.8% 올랐다. 기아의 지난해 레저용차량(RV) 가격도 4천130만원으로 전년 대비 13.9% 상승했다. 국내 차량의 대당 평균가격도 4천416만원으로 처음으로 4천만원선을 돌파했다.카플레이션은 올해 하반기까지 지속될 전망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중국의 코로나 봉쇄 등으로 각종 원자재 가격이 폭등하고 있기 때문이다.가장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은 바로 차량용 강판가격 인상이다. 철강과 완성차업계는 최근 강판 가격을 톤(t)당 15만원 가량 인상하기로 잠정합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철강 가격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사태로 가격이 급등하고 있다. 실제 철광석 가격은 지난 23일 기준 t당 150.5달러(약 19만원)로 연초에 비해 22.5% 올랐다. 이외에도 전기자동차의 핵심으로 꼽히는 배터리 생산 원자재인 니켈·코발트를 비롯해 자동차 경량화 필수 소재인 알루미늄 등 원자재 가격이 오르고 있다.완성차업계는 개별소비세 인하 폭 확대 등 정부 차원의 지원책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사치품이 아닌 자동차의 개별소비세 폐지에 점차 힘이 실린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2-04-27

내려가는 길에 미끄러지지 않도록

장규열한동대 교수 긴 터널이었다. 마스크와 함께 두 해를 훌쩍 넘겼다. 스산한 거리를 만나 소상공인들은 얼마나 힘들었는지. 학생이 사라진 강의실은 쓸쓸하였다. 손님이 없는 극장은 다시 살아날 수 있을까. 학교 운동장이 공터가 되었고 도시의 빌딩 숲까지 한산하였다. 일일 감염자 숫자에 때로 예민했지만, 기승을 부리는 코로나19에 온 세상이 잠식당했다.이제는 끝이 보이는지 급격하게 숫자가 내려간다. 급격한 하락세에 코로나19는 감염병 등급마저 2급으로 강등되었다. 확연한 내림세를 의학계는 ‘안정적 감소세’라 부르고 팬데믹(Pandemic)이 엔데믹(Endemic)으로 바뀌어간다고 표현한다. 무서운 전염병이 아니라, 늘 존재하는 풍토병 정도로 보겠다 한다. 사회적 거리두기도 막을 내렸고 학교들이 전면 대면수업에 돌입하였다.기세가 꺾인 건 분명하지만, 끝나지는 않았다. 대한의사협회가 ‘코로나 종식이 아니며 마스크 착용의무조치를 해제하기에는 시기상조’라고 경고한다. 돌이켜 보면, 코로나가 시작되던 첫 해의 봄을 넘기며 한 차례 긴장이 느슨해 지기도 하였다. 스러진듯 하지만 사라지지 않았다. 아직도 하루에 몇만씩 신규감염이 발생한다.등산을 즐긴다면, 사고는 올라갈 때 보다 늘 내려오는 길에 만난다. 사회통계에 따르면, 교통사고도 하루 중 귀가 길에 더 많이 발생한다는 게 아닌가. 비행기는 이륙보다 착륙이 어렵다고 한다. 만날 때 보다 헤어질 때 좋게 마무리하는 게 어디 쉬운가. 제러드 다이아몬드(Jared Diamond)가 ‘총,균,쇠’에서 ‘질병이 인류의 문명에 변화를 초래할 것’이라는 경고는 여전히 유효하다.빌게이츠(Bill Gates)가 수년 전부터 팬데믹의 도래를 예견했을 뿐 아니라, 코로나19 이후에도 유사한 바이러스의 습격이 인류를 덮칠 것을 경고한다. 생활 속에서 적정거리를 유지해야 하고 배려있는 소통과 교류에 익숙해야 한다.포스트코로나의 뉴노멀(New normal)을 다시 정리해 보아야 하며 새로운 환경과 질서를 만들어가야 한다. 디지털과 온라인 소통을 다시 들여다 보아야 하고, 소비문화와 레저환경도 바뀌어 가야 한다. 급격하게 코로나19 이전으로 돌아갈 듯한 환상은 버려야 하고, 차분하게 새로운 질서를 생각해야 한다. 경제를 다시 일으켜야 하지만, 급하게 모든 문을 열 수 있을지는 생각해 보아야 한다. 빠져나가는 터널의 끄트머리에 또 어떤 복병이 기다리고 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이전으로 돌아가지 못할 게 분명하다면 새롭게 만날 세상을 사려깊게 준비해야 한다. 방역과 의료체계, 소통과 협력의 양태, 국가와 시민사회의 역할, 사람 간 관계형성과 유지방식, 과학문명과 세계질서의 변화 등 헤아려야 할 과제가 차고 넘친다.이럴수록 차분히 신중하게 정비하여 내일을 준비해야 한다. 반갑지만 찬찬히 헤아려야 한다. 흥분하여 옛 모습으로 달려가기 보다 차분하게 포스트코로나를 맞아야 한다. 어려웠던 시간을 함께 견뎌준 모두에게 고마운 마음이다. 마지막 언덕을 아름답게 넘었으면 한다.

2022-04-27

내나무

정미영수필가 봄기운이 완연한 내연산 수목원을 걷는다.싱그러운 나뭇가지들이 연초록 바람을 일으키며 눈인사를 건넨다. 나뭇잎 속에 담겨 있는 바람의 지문을 열심히 정독하는데, 묘목을 심느라 애썼던 어릴 적 추억이 찰랑거리는 바람결에 실려 온다.초등학교 오 학년 때였다. 집 가까이 신축 학교가 들어섰기에 친구들과 그곳으로 등교했다. 전에 다녔던 학교까지는 강둑을 걸어 꼬박 한 시간이 걸렸다. 나는 늘 뭉쳐 있던 다리를 만지며, 앞으로 다리 고생은 줄겠구나 싶었다. 하지만 다리 대신에 손 고생이 시작되었다. 새로 지은 학교 운동장에는 돌이 많았다. 매주 월요일 조회 때나 체육 시간은 물론, 틈만 나면 돌을 주워 화단 한쪽에 돌무더기를 쌓았다.선생님들께서 돌 줍기를 시키신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학생들이 운동장에서 뛰다가 넘어졌을 때 돌이 있으면 다칠 가능성이 높았다. 또 돌과 시멘트를 섞어 건물 뒤편 구석진 곳에 낮은 울타리를 만들었다. 그곳에서 서너 마리의 토끼를 풀어놓고 키웠다.어느 날, 담임선생님은 우리 반만의 추억 만들기를 하자고 하셨다. 집에서 꽃씨나 묘목을 가지고 오라고 당부하셨다. 친구들 대부분은 구하기 쉬운 꽃씨를 가지고 왔다. 우리 집에는 마침 아버지가 마당에 심으려고 했던 동백 묘목이 있었다. 나는 신문지에 뿌리를 둘둘 말고는 비닐봉지에 넣어 조심스레 들고 갔다. 나무를 가지고 온 아이는 나밖에 없었다.친구들은 나무에 관심을 보였다. 심을 장소를 물색하고 학교 창고에서 삽이며 호미를 들고 와 구덩이를 팠다. 선생님의 지시대로 땅은 알맞은 깊이로 파였는지 삼십 센티미터 자로 재어보는 개구쟁이도 있었다. 나는 뿌리가 상하지 않게 손으로 흙을 덮고 발로 다지며 잘 자라기를 빌었다.추억 만들기는 선생님의 나직한 가르침이었다. 선생님은 평소에 우리가 주워 나른 돌멩이를 가지고, 일정한 간격으로 나무를 빙 둘러쌌다. 그러고는 이제 묘목은 장대비에도 끄떡없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 동안 쓸모없다고 생각했던 돌들이 고마웠다. 짜증스럽던 돌 줍기가 보람으로 변하는 순간이었다.선생님은 나에게 이름표를 만들라고 하셨다. 나는 나무 이름과 소망하는 것을 빼곡히 적었다. 내가 만든 이름표를 보고 선생님은 빙그레 웃으셨다.동백나무가 ‘내나무’라고 말씀하시며, 내나무에 얽힌 이야기를 해주셨다.우리 조상들은 예부터 아이가 태어나면 나무를 심는 풍속이 있었다. 아이를 족보에 올리면서 집 주위나 논두렁에 몇 그루의 나무를 심었다. 딸 앞으로는 오동나무를 심고, 아들을 위해서는 소나무와 잣나무를 심었다. 딸이 커서 시집갈 날을 받으면 그 나무로 장롱을 만들어 주었다. 아들의 경우는 관을 짜는 데 사용되었다.‘내나무, 내나무’ 입 안에서 굴려보았다. 부를 때마다 동백나무는 소중한 의미로 마음에 담겼다. 날마다 키 재기를 했다. 자주 들여다보며 물을 주고 말을 걸었다. 걱정이 있거나 비밀이 있을 때 친구들 몰래 찾아가 내 속마음을 내비치기도 했다. 그러면 신기하게도 지끈거렸던 머릿속이 한결 나아졌다.나만의 작은 나무가 있어 생활이 즐거웠다.학교는 점점 신나는 곳이 되었다. 나는 누구보다 일찍 학교에 갔다. 무릎을 굽히고 내 키를 낮춰 악수하듯 이슬 맺힌 동백나무를 살며시 잡으며 속삭였다. 꽃망울을 맺어주어 고맙다고.시간이 흘러 꽃송이가 붉게 터졌다. 꽃봉오리에 코를 박고 한참을 머물러 있으면 가슴이 찌르르 떨렸다. 지금 생각해도 그 때의 감동이 전해지는 것만 같아 기분이 벅차다. 투덜이 여학생이 긍정적인 소녀로 바뀐 것은 모두 내나무 덕분이었다.나무 계단을 올라 수목원 전망대에 오른다. 드넓게 펼쳐진 숲이 바다가 되어 일렁인다. 초록 물결이 출렁대자, 어릴 적 교정에 심었던 내나무가 떠밀려와 품에 안긴다. 동백나무와의 추억들이 열심히 여물어 간다.

2022-04-27

ESG경영과 해조류

햇수로 9년 전 일이다. 출산예정일이 6일 지난 날, 터질 듯한 배를 안고 황급히 병원을 찾았다. 진통 없이 양수가 터진 상황으로 의사는 보호자를 대동한 입원을 권했다. 가족을 불러야 했지만 공공제대혈 은행에 먼저 연락을 취했다. 출산 전 연락이 닿아야 의약품 전담 특수차량이 제때 도착할 수 있다는 전언 때문. 물론 아이와 함께 하는 ‘생애 첫 기부’를 성공하고 싶은 마음도 컸다.다행히 아이는 건강하게 태어났고 제대혈 채취도 문제없이 진행됐다. 한 달 뒤 은행으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제대혈 성분 결과 연구와 기증이 가능하다는 것. 곧 의미 있게 사용될 것이라고 했다. 순간 조혈모세포 이식을 기다리는 골수병 아이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뭉클한 순간, 새근거리며 자는 아이를 바라보자 벅찬 마음에 눈물이 쏟아졌다. 우리가 한 작은 기부가 또 다른 생명을 살릴 수 있다는 사실, 온 우주가 감동받는 기분이었다.그 이후 찾아온 엄마라는 극한 직업은 내 삶을 통째로 바꿔놓았다. 물론 거창한 것은 아니다. 플라스틱 장난감을 사주고 종이 기저귀를 사용하면서 스치는 생각. 이렇게 쓰다보면 내 아이와 그 아이의 아이는 어떤 환경을 마주하게 될까. 출산 전에는 단 한 번도 해보지 않은 고민이었다. 그 후 소비와 구매에 ESG 평가 지표를 활용하기 시작했다. 작지만 소중한 우리 가족만의 환경사랑 실천방식이 됐다.잘 알다시피 ESG경영은 환경(Environment)과 사회(Social), 지배구조(Governance) 등 기업의 비재무적인 요소를 기업경영에 반영하는 것을 의미한다. 흔히 기업의 지속가능성을 가늠하는 잣대로 쓰인다. 미세먼지로 아픈 횟수가 늘고, 바닷가 산책에서 쓰레기더미를 만날수록 기후변화와 탄소배출, 생태계와 생물다양성 등에 관심을 갖게 됐다. 종이 빨대를 사용하는 기업의 커피를 마시고, 지속가능성을 인증 받은 수산물을 구매했다. 특히 세계자연기금(WWF)과 네덜란드 지속가능한 무역(IDH)이 공동 설립한 국제 인증인 MSC에코라벨을 알고 난 후 제품 선택의 기준이 더 까다로워졌다. MSC(해양관리협의회)에코라벨은 생산과정에서 해양환경 훼손을 최소화했다는 인증으로 수산업 분야의 친환경인증마크다.최근에는 탄소배출을 줄이는 아이디어를 가진 스타트업 기업들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해조류를 이용한 친환경기업이다. 해조류의 효용가치는 그동안 꾸준히 발표되어 왔다. 먼저 해조류는 화석연료를 대체할 바이오에너지로 손꼽힌다. 현재도 많은 기업들이 기술개발 및 양산에 나서고 있다. 최근엔 이산화탄소 흡수율이 높아 탄소중립을 실현시킬 대체재로 떠오르기도 했다. 식품으로 소비하기 위해 양식하는 해조류 양이 늘어날수록 지구를 살린다는 개념이다.여기에 더해 신소재로도 개발되고 있다. 미국 스타트업 롤리웨어(LOLIWARE)는 해조류로 식기를 개발해 폐기물 문제의 새로운 대안을 제시했다. 한국의 스타트업 기업도 미역귀와 우뭇가사리 등으로 친환경 종이컵과 달걀 담는 용기를 개발해 국제대회에서 수상하기도 했다.해양수산부가 주최하는 창업 콘테스트에서는 해조류를 이용한 기술 발굴이 진행되고 있다. 지난해 대회에서는 유망 창업 아이디어로 ‘해조류를 이용한 화장품’과 ‘해조류 사료’가 대상을 수상했다. 해조류 사료의 경우 소의 헛배 부름을 막아 트름과 방귀에서 나오는 메탄가스를 획기적으로 줄인다고 한다. 실제 메탄가스는 지구온난화에 미치는 영향력이 이산화탄소보다 84배나 높다. 탄소중립의 대안으로 해조류가 떠오르는 이유다. 해조류가 지구를 살리고 가축의 건강까지 챙기는 역할을 하는 셈이다. 정현미작가 해조류의 영양학적 가치는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식이섬유와 단백질, 비타민, 미네랄 등이 풍부해 대표적인 건강식으로 꼽힌다. 사실 미역국에 톳나물 반찬으로 식사를 하고, 간식으로 다시마 부각을 먹는 민족은 한국 등 동아시아에 집중된 편이다. 미국과 유럽에서 해조류가 각광받으면서 한국의 식문화가 자세히 소개되기도 했다. 요즘엔 미국의 아이들도 스낵으로 조미김을 먹는다고 한다.오는 5월 10일은 바다 식목일이다. 바다 속에 해조류를 심어 바다 숲을 살리는 등 바다 생태계의 중요성을 알리기 위해 제정된 날이다. 바다사막화를 의미하는 갯녹음 현상이 급속히 퍼지자 이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바다 숲을 되살리자는 의미라고 한다. 해조류의 효용성이 주목받는 동시에 한 쪽에서는 파괴되어 가는 해조류 숲을 살리는 운동이 벌어지는 아이러니다. 해조류는 바다 숲을 이루는 근간이자 바다 생태계를 지탱하는 힘이다. 해조류가 기후변화를 감지하는 바로미터 역할을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기후변화는 내 아이의 먼 미래가 아닌, 지금 당장 내 삶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지금 당장의 실천이 필요하다.

2022-04-27

거짓으로 피는 꽃

오낙률시인·국악인 살면서 그리움 하나쯤 가슴에 묻고 살지 않은 이가 있을까?봄을 맞아 산이나 들판 혹은 공원 등에서 이름조차도 너무나 아름다운 수많은 생명이 다투어 인연의 실타래를 풀어 헤치고 있다. 팬데믹으로 고통받던 우리네 인간도 거리두기 제한이 풀렸으니 저 대자연의 대열에 끼어 아름답게 피어날 그리움의 씨앗들을 사방에 뿌리며 실로 몇 년 만에 봄 다운 봄을 즐기게 될 것이다. 직장인, 소상공인, 예술인 등 많은 국민의 가슴 가슴에 지금쯤은 작고도 큰 희망의 꽃송이가 봄꽃 터지듯 번지지지 않을까 싶다. 바야흐로 움츠려져 좀처럼 피어나지 못하던 인간의 꽃 무리가 다발로 모여 피는 야생화 군락처럼 여기저기서 수도 없이 피어날 것이다.꽃이 가짜로 필 수 있다면 꽃의 존재가 우리 인간에게 어떻게 느껴졌을까? 만약에 눈속임으로 예쁘게 피는 꽃이 있다면 그건 아름답기에 앞서 신기한 것이거나 대단한 능력을 지닌 꽃임은 분명하지만 적어도 그 꽃을 두고 아름답다거나 예쁘다는 찬사는 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아름답다는 말 대신에 현혹이라거나 유혹이라는 말이 그 꽃에 매겨지는 기본 이미지가 되지 않았을까 싶다. 그러면서 가끔은 그 꽃이 두렵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을 것이다.인간의 웃음을 꽃의 반열에 올려놓고 보면, 앞에서 말한 ‘거짓으로 피는 꽃’을 인간의 꽃밭에서 종종 만날 수 있다는 현실에 마음이 좀 그렇다. 지천으로 피어나는 4월의 꽃밭에서 가슴 한쪽에 작고도 시린 그늘을 느끼게 되는 이유가 봄이면 딜레마처럼 생각나는, 인간의 원죄 같은, 거짓으로 피는 사람의 꽃 때문이라 생각하면 마음이 좀 아리다. 특히 선거를 앞둔 이맘때면 그렇게 거짓으로 피는 꽃이 무리 지어서 피는 것 같아 씁쓸하다.웃지도 울지도 못하는 시신에서 떠나는 영혼은 그냥 떠나는 게 아니라 탈출하는 것이다. 그렇듯 사람에게 주었던 사람의 마음이 떠난다는 것 또한 참으로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사람에게서 사람의 마음이 떠난다는 것처럼 슬프고 어쩔 수 없는 일이 우리네 인간사 중에 과연 몇이나 될까?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운명처럼 몇 번은 만나야 하는 꽃이 가짜로 피는 인간의 꽃이라면 그것이 어쩌면 우리 인간이 이렇게 찬란한 봄에 저렇게 온 대지를 뒤덮으며 거짓 없이 피어나는 식물들의 꽃을 보며 치유와 위안을 더 크게 얻게 되는 까닭인지도 모를 일이다.꽃이란 그리움 그 자체이다. 꽃은 세상 아름다운 것의 대표이며 핵심이다. 그리고 그립다는 것은 아름답다는 표현의 역설이다. 나를 낳아준 부모님과 조상님이 그립고, 가고 없는 배우자가 그립고 나를 즐겁게 해주던 어느 날의 이성이나 정답게 지내던 형제며 친구가 그리운 것은 모두 과거 그들과 맺어 놓은 인연이 꽃처럼 아름답기 때문이다. 해서 우리 인간은 그리운 꽃만 피울 일이다. 훗날에 누군가가 나를 사무치게 그리워할 그런 꽃만 피울 일이다, 그래서 인간의 얼굴에서 피는 꽃이, 오늘 같은 봄날에도 한치 부끄럼 없이 대자연에 녹아들어 대자연의 꽃처럼 아름다워야 할 일이다.

2022-04-27

꿈이란 무엇인가?

최병구경상국립대 교수 요즘 많은 대학에서 학부생 진로 상담은 교수의 의무이다. 우리 대학도 매 학기 학생들과 꿈과 미래를 주제로 상담을 해야 한다. 내가 대학에 다닐 때 학과 교수와 진로 상담은 당연히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다. 진로란 자신의 관심사에 맞춰 각자 설계하고 노력하는 과정 정도로 생각했었다. 이런 분위기 때문인지, 학부생 진로 상담 제도가 시행되고도 꽤 오랫동안 형식적으로 이루어졌다고 한다.시대가 바뀌면 제도와 사람들의 인식도 변한다. 이제 대학은 학생의 입학부터 졸업 후 진로까지 시스템으로 관리하는 공간이 되었다. 대학이 ‘소비자 만족도 조사 1위’라는 타이틀을 자랑스러워하는 시대이며, 수업에서 ‘가성비’를 따지는 학생들의 모습을 찾기란 어렵지 않다. 대학이 취업사관학교가 되었다는 자조가 들려 온 지도 어림잡아 10년이니, 이제 학부생 진로 상담은 꽤나 신경이 쓰이는 일이 되었다. 당연히 문제가 없을 수 없지만, 우리 학과 학생들의 고민을 알게 된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면도 분명히 존재한다.보통 처음 만나는 학생들에게는 꿈이 무엇인지 혹은 어떤 이유로 국어국문학과에 진학했는지를 묻는다. 그럼 여지없이 돌아오는 대답은 교사, 작가, 공무원 등과 같은 특정 직업이다. 그럼 다시 물어본다. 가령 왜 선생님이 되려고 하니? 라고 묻는 것이다. 두 번째 질문에는 많은 학생이 제대로 대답을 하지 못한다. 안정적인 직업이라서 되고 싶다는 경우가 다수이고 일부 학생이 학창시절 기억에 남는 선생님을 추억하며 그런 선생님이 되고 싶다고 한다.사실 꿈을 질문하며 내가 기대한 답변은 ‘가치’였다. 좀 더 정확히는 어떤 가치를 평생 진력을 다해 실현할 것인지가 중요하다. 그 가치를 구체화시키기 위한 현실적 수단이 바로 직업이다. 직업 안정성만 보고 교사가 된 사람보다 윤리라는 가치를 추구하는 사람이 더 좋은 선생님이 된다는 보장은 없지만, 고난이 찾아왔을 때 이를 극복할 가능성이 크다고는 말할 수 있다. 왜 그럴까? 안정성이 가장 중요한 가치인 사람은 안정성을 유지하기 위해 그 어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지만, 윤리적 올바름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불안정성을 즐길 준비가 되어 있기 때문이다.지난주 신입생들의 학창시절 고민이 담겨 있는 작문에서 성적으로 학생을 차별하는 행동과 같은 비상식적 모습을 가진 선생님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여전히 고등학교에서는 우·열반이 존재한다고 한다. 그분들도 한때는 좋은 선생님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가치를 잊어버리는 순간 인간은 순식간에 괴물이 되고 만다.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서 조급함을 버리는 일이 필요하다. 당장 어떤 직업으로 진로를 결정하기보다는 어떤 가치를 추구할 것인지를 천천히 고민하자.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많은 경험을 쌓는 과정에서 올바른 가치 추구라는 문제를 풀어낼 수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 과정은 평생 반복되어야 한다는 점이다.꿈은 내가 생각하는 올바른 가치를 쫓는 과정에서 느끼는 설렘이다. 이번 주말에는 내 꿈에 대해 오랜만에 다시 생각해 보아야 겠다.

2022-04-27

야만의 도시, 포항

허명환 한국재정투자평가원장 사람은 기본적으로 식물이 아닌 동물에 속한다. 동물의 속성을 적나라하게 볼 수 있는 곳이 아프리카 세렝게티 초원이다. 누, 가젤, 얼룩말, 치타, 사자, 하이에나 등이 평화롭게 사는 듯 보이지만 실상은 처절하고 치열하다. 죽으려 하지 않는 상대를 잡아먹어야 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들의 공통적인 속성은 죽음 회피 그리고 먹기와 번식이다. 만물의 영장이라 하는 인간 역시 동물이기에 그 속성을 벗어날 수 없다. 하지만 인간이 짐승과 다른 점은 옳고 그름을 안다는 것이다. 옳은 일을 하면 명예롭고 그릇된 일을 하면 부끄러움을 느끼기 때문에 인간이 짐승과는 다르게 존엄성을 유지할 수 있다.인간은 공동체 생활을 한다. 공동체 생활을 하면서 동물적 속성이 견제되지 않는다면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 되어버릴 것이다. 각자가 동물적 속성을 충족하면서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는 방법을 인류는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며 찾아내었다. 법이 우리를 자유롭게 한다는 사실이다. 동물적 속성을 충족하면서도 공동체 생활을 유지할 수 있도록 법이 고안된 것이다. 이때 법이란 법률만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도덕과 관습도 포함한다. 즉 인간은 누구나 정해진 법에 따라 행동할 때 진정 자유로워지고, 우리는 그것을 바로 법치라 하는 것이다.그 법을 어겨도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고, 그 법을 내가 권세를 지녔다고 내 마음대로 정하고 강요하는 것을 독재라 한다. 그런 경우 법과 정의란 강자의 이익일 뿐 약자들이 믿고 의지할 수단이 되지 못한다. 껍데기만 민주주의 운운하지 세렝게티 초원의 야만생활과 다르지 않은 것이다. 그런 나라는 스페인처럼 한 때 융성했더라도 결국은 쇠락한 것이 역사의 교훈이다.포항에서 정치를 하면 남녀노소 불문하고 다양하게 시민들과 접촉하게 된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포항시민들이 어떻게 세월을 살아가는지 윤곽을 그릴 수 있다. 포항시민 역시 동물적 속성을 유지한다. 죽음을 회피하니 자동차도 조심해서 몰고, 코로나 방역조치에 협조를 한다. 먹고 살기 위해 죽도시장이든 비학산이든 연일들이든 직장에서든 열심히 일을 한다. 그러면서 결혼도 하고 가정을 꾸리며 후손을 키워가고 있는 것이다.대부분 포항시민의 소득원은 크게 두 가지로 포스코와 포항시청이다. 포스코는 정권이 바뀌면 새로운 권력이 기존의 밥그릇 체계를 바꾸지 않을까 신경을 곤두세운다. 포항시장 선거 역시 마찬가지다. 선거 때만 되면 어느 줄에 설지 잘 판단해야 나중에 먹고 사는데 편해진다. 수많은 관변단체, 협회, 인쇄, 광고, 꽃집, 식당, 납품, 건설 등등 사업자들이 안테나를 높이고 줄을 댄다. 먹이가 우선이라 평상시 인간관계는 한 줌 가치도 없다. 우리 편이 아니면 아래 위도 없이 물어뜯어 댄다. 세렝게티 초원의 야만성이 극명하게 드러나는 것이다.인간의 동물적 속성상 자신의 이익을 위해 행동하는 것은 당연하다. 아담 스미스는 우리가 저녁식사를 기대하는 것은 푸줏간, 술집, 빵집 주인의 자비심이 아니라 그들 자신의 이해에 대한 욕심 때문이라 했다. 그러기에 법을 지키면서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은 자유민주주주의 나라라면 오히려 권할 일이다.3선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나 새 인물로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나 다 자기들 주장일 뿐이다. 각자의 주장을 목소리만 높인다면 포항은 세렝게티 초원이 될 것이다. 그렇기에 공천은 정치관행이 중요하다. 법과 원칙이 안정되어야 잠재적인 입후보자들의 예측 가능성을 높일 수 있는 것이다. 시장 개인에 대한 지지도와 당에 대한 지지도 차이를 이용한 교체지수를 4년 전에 적용 않다가 이번에 적용하거나, 일부 시군에만 적용하면 관행에 맞지 않다. 정해진 규칙에 따라야지, 권세 쥐었다고 그 때 그 때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만 적용하면 법이란 강자의 이익에 불과하다. 힘 있는 곳에 붙어야 먹고 산다며 민초들을 야만의 세계로 인도하는 꼴이다.진정한 포항의 지도자들이란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판단할 줄 알고, 명예와 수치를 알며, 자신이 손해를 보더라도 옳음을 실천할 수 있어야 한다. 공직은 개인의 소유물이 아니라 일시 담임을 할 뿐이다. 선출직 권력이 천년만년 갈 듯 옳음보다 이익만 쫓고 그것에 빨대 꽂아 단물 빨아대는 기생세력이 기세등등 하는 한 포항은 세렝게티 초원이 된다. 항상 양지바른 곳만 찾는 해바라기가 득세하는 한 포항은 쇠락하는 야만의 도시가 될 뿐이다.

2022-04-26

그 많던 꿀벌은 어디로 갔을까

영화감독 M.나이트 샤말란은 초현실적인 요소를 바탕으로 현실적인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독특한 개성을 지닌 감독이다. 많은 이들에게 알려진 ‘식스 센스’에서부터, ‘싸인’, ‘언브레이커블’ 3부작, ‘데블’, ‘비지트’, 최근의 ‘올드’에 이르기까지, 감독은 하나의 이상 현상을 전제한 후 이로 인해 벌어지는 일상의 뒤틀림을 예민하게 포착한다. 이상 현상을 영화의 주된 장치로 활용한다는 점에서, 샤말란 감독의 영화가 포착하는 세계란 이해할 수 없고 저항할 수 없는 현실로 인해 느끼는 공포가 어떤 것인가를 극대화시킨 세계라 할 수 있다.그렇기에 샤말란 감독의 영화는 ‘코즈믹 호러’와 닮아있다.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인간이 감히 대적하거나 지각할 수 없는 거대한 미지’로 인해 촉발되는 공포다. 오로라나 거대한 협곡, 인간의 인지를 아득히 뛰어넘는 크기의 현상을 마주할 때 느끼는 경이로움과 숭고함과 같은 부류의 공포감이라 할 수 있다. 예컨대 영혼이나 악령 혹은 초능력자나 시간 가속과 같은 비일상적이며 불가해한 사건 앞에서 우리는 어떻게 반응할까. 샤말란 감독의 영화에 등장하는 초현실적인 장치란 그러한 질문을 던지기 위한 전제라 할 수 있다.그런 샤말란 감독의 영화들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은 ‘해프닝’이다. 여기에서 등장하는 것은 인간의 이유 없는 ‘자살’이다. 어느 날 사람들은 아무런 이유 없이 스스로의 목숨을 끊기 시작한다. 문제는 이와 같은 현상이 특정한 개인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인류 전체에게 발생한다는 점이다. 산책을 하던 사람이, 책을 읽던 학생이, 일을 하던 인부가 갑작스레 스스로의 목숨을 끊는다. 그러나 인간은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지 이해하지 못한다.때문에 사람들은 그러한 현상을 해석하고자 여러 가지의 가설을 내놓기 시작하고, 독가스 테러일 것이라 가정한다. 때문에 영화에서 사람들은 이와 같은 가정에 초점을 맞춰 살아남기 위한 행로를 결정하지만, 그와 같은 가정과 가설은 보기 좋게 빗나가고 만다. 대도시를 중심으로 한 테러일 것이라는 예측에 그들은 한적한 교외로 향하지만, 그곳에서도 마찬가지의 사건이 벌어지며 사람들은 패닉에 빠져버리고 만다.이유를 알 수 없는, 그러나 계속해서 벌어지는 ‘해프닝’ 앞에서, 인간은 속수무책으로 무너진다. 이유를 알 수도, 그렇기에 저항할 수도 없는 불명확한 대상 앞에서 인간은 전능한 존재가 아니라 한없이 무력한 존재에 불과할 뿐이다. 나이트 샤말란 감독의 영화가 으레 그렇듯, 이 영화 또한 우연의 우연이 중첩되며 가까스로 사태는 진정되지만 공포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이상 현상이 사실은 자연이 인간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낸 방어 기제로 인해 만들어진 독소로 인한 것이었으며, 때문에 언제든 사태는 반복될 수 있다는 암시가 남기 때문이다.물론 이와 같은 가정은 비과학적이며 극단적인 사례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영화를 쉽사리 무시하고 지나칠 수 없는 것은 영화의 초반부에 제시되는 하나의 설정 때문이다. 그것은 꿀벌의 실종이다. 갑작스럽게 시체도 없이 사라져버리는 꿀벌들은 왜, 그리고 어떻게 사라지는 것인가. 이것은 단지 영화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지금 경험하고 있는 현실이기에 더욱 섬뜩할 수밖에 없다. 현실에서도 꿀벌의 실종에 대해 여러 가설을 내놓고 있지만, 그 이유를 완전하게 해명하지는 못하고 있다. 임지훈 2020년 문화일보, 서울신문 신춘문예 평론 부문에 당선된 문학평론가. 한양대 국문과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이와 같은 현실을 과연 ‘해프닝’으로 치부할 수 있을까? 영화에서 꿀벌의 실종이 인간의 집단 자살 현상이라는 파국적인 결말의 전조로 설정되어 있었던 것을 떠올려보자면, 현실의 이와 같은 사건 또한 더 큰 비극과 파국이 다가오고 있음을 알리는 전조일지도 모른다. 지구 온난화를 비롯한 환경오염으로 인해 초래될 비극의 전조 말이다.우리가 지구 온난화와 환경오염의 문제를 더 이상 쉽사리 여겨서는 안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인간은 자연에 대해 충분히 알고 있으며 이를 통제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인간은 눈앞에 벌어지는 자연 현상에 대해 전지전능하지 않다. 이해할 수 없는 사례들을 단지 ‘해프닝’으로 치부함으로써, 우리가 자연을 충분히 이해하고 통제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을 따름이다. 그러나 이것은 견고한 환상에 불과하다. 우리의 무지와 환상의 대가는 언제 어떤 형태로 우리에게 닥쳐올지 모른다. 어쩌면 우리는 이미 샤말란 감독의 영화 속에 들어와 있는지도 모른다. 그것을 알지 못하는 것은 우리 자신뿐인 채로.

2022-04-26

사랑하는 일

설레는 순간을 경험해본 적 있을 것이다. 커피를 몇 잔이나 들이켠 것처럼 심장이 자꾸만 뛰고. 늦은 밤 침대에 누워도 잠은 쉽게 오지 않고. 양 발이 허공에 붕 떠 있는 것만 같은 기분.이따금 우리는 이러한 상태를 사랑이라고 생각하곤 한다. 그러다보면 흔히 사랑의 반대편에 있는 말로 외로움과 고독을 떠올리기도 한다. 외로움과 고독은 모든 것을 무자비하게 집어 삼키는 괴물처럼 성큼성큼 다가온다.그것은 인식할수록 선명해지는 것이라서 무엇보다 인간이 혼자 있을 때 더욱 거세게 문을 두드린다. 우리는 이 괴물이 두려워서 타인을 찾아가기도 한다.누군가가 곁에 있어주면 외로움과 고독은 완전히 소멸된 것처럼 느껴지고 일종의 안심 상태에 빠지기 때문이다. 괴물은 언제고 다시 찾아올 수 있으므로 불안한 마음은 쉽게 사라지지 않고 자신을 구원해줄 미지의 상대를 간절히 기다리기도 한다.불안과 고독을 다스리는 것이야말로 사랑을 찾기 위한 첫 번째 걸음이 아닐까.혼자서 무시무시한 괴물을 물리치는 법을 익혀야 하는 것이다. 처음부터 그 일을 완벽하게 해낼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분명 몇 번이고 무너질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스스로를 먼저 보살피는 것이며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일이다.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의 쓸모없게 느껴지고 아름답지 않은 부분까지도 감싸 안을 수 있는 너른 포용력이 필요하다. 불완전한 존재인 자신을 이해하고 그 마음을 신뢰하게 되었을 때, 내가 누구인지, 무엇을 원하는지, 어렴풋하게 느끼게 된다. 자신을 사랑하는 일은 결국 타인을 사랑하는 일까지 나아가게 된다.불가해한 타인을 사랑한다는 건 문자 그대로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 까다로운 일을 번번이 해내는 이상한 존재들이다.사랑에 빠진 사람은 아름답다는 말이 있다. 여기에서 말하는 아름다움은 겉으로 보기에만 예쁘고 반짝이는 모습이 아니다. 무언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오히려 괴로운 일에 가깝다. 대상을 사랑하는 일은 영원할 수 없다. 언젠가는 상실될 수밖에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언제나 이별은 힘겹다. 사랑했기 때문에 더욱 괴롭다. 이럴 거였으면 차라리 사랑하지 않았으면 더 좋았겠다고 외치고 싶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사랑을 한다. 설레고 기쁘고 즐거운 것을 넘어서서 아픔과 고통까지도 감내한다. 그러니 사랑은 슬픔까지도 기어이 껴안고야 마는 행위이며 이는 무엇과도 비견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다울 수밖에 없다.사랑은 이전과는 전혀 다른 세계를 만나고자 하는 노력의 영역이다. 인간은 평생 오직 자신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밖에 없다. 어떤 것이 좋거나 싫다고 결정하는 건 다른 누구도 아닌 자기 자신밖에 할 수 없는 일이다. 사랑은 타인의 눈으로 세상을 보게 한다. 혼자였다면 결코 맛보지 않았을 음식의 맛을 느끼게 되고, 묻지 않았던 질문에 관한 답을 찾게 되며, 그동안 자신이 아니라고 믿어왔던 것을 긍정하게 되는 일을 경험하게 된다. 누군가를 사랑하기 때문에 그가 바라보는 세상은 어떤 모습일지 의문하게 되며 타인의 감정에 공감하고 이해하게 된다.사랑하는 대상이 많아질수록 자기에게 갇혀 있던 시야는 계속해서 넓어지게 된다. 상대의 어려움을 고민하고 인간을 넘어선 생명의 영역에 대해 생각한다. 문은강 ‘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로 주목받은 소설가. 201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작가로 등단했다. 아스팔트 사이로 아무렇게나 피어난 들꽃을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은 일상의 아주 작은 영역까지도 사랑하는 사람이다. 사랑은 자기 반경을 무한히 넓히는 일이며 끊임없는 성장을 하게끔 하는 놀라운 힘이 있다.세상의 모든 언어를 쥔다고 해도 사랑이라는 감정을 완전하게 표현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온갖 감정들이 차곡차곡 쌓여가고 놀라운 형식으로 발현될 때 우리는 어렴풋하게 그것이 사랑은 아닐까 하고 생각할 뿐이다.‘자기 앞의 생’의 마지막 구절은 ‘사랑해야 한다’고 외치면서 끝난다. 그렇다. 우리는 사랑해야 한다. 끊임없는 자기모순을 경험하면서도 종국에는 자기 자신을 긍정하게 되는 일. 마주해야만 하는 현실의 고통을 감내하면서도 타인을 신뢰하게 되는 일. 영원히 함께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기에 지금 이 순간을 무엇보다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을 가지는 일. 슬픔까지 기꺼이 껴안으면서도 이토록 복잡한 세계까지 이해하게 일. 일말의 가능성을 믿는 일. 이 모든 것이 우리가 끝끝내 해내야만 하고 자신도 모르게 이행하고 있는 신비한 사랑의 영역이다.

2022-04-26

신공항 특별법, 대구시장선거가 기회다

심충택 논설위원 국민의힘 대구시장 후보인 홍준표 의원은 지난 19일 열린 국민의힘 대구시장 후보 경선 토론회에서 “대구 50년 미래번영의 토대를 마련하기 위해서는 대구통합신공항 건설과 동촌후적지의 성공적인 개발에 사활을 걸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공항산단 200만 평을 조성해 대기업과 첨단산업을 유치하고, 대구 동촌 이전터는 첨단관광상업지구로 개발하며 아파트는 짓지 않겠다”고 했다.TV토론회를 지켜보면서 홍 의원의 이 공약에 귀를 기울인 사람이 많을 것이다. 대구는 말할 것도 없고 비수도권 대도시의 가장 큰 현안은 대학을 졸업한 청년들이 취업할 만한 일자리를 많이 마련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반드시 대기업을 유치해야 한다. 국내에 있는 대기업이든, 해외에서 국내로 다시 리턴하는 대기업이든, 지자체가 깜짝 놀랄만한 인센티브를 제공하거나 정부가 압력을 넣는다고 해서 지방도시로 선뜻 이전해 오지 않는다.대기업을 움직이려면 반드시 국제사회와 24시간 연결돼 있는 관문공항이 있어야 한다. 홍 의원은 평소에도 기자들과 만나면 “대기업들이 수도권 입지를 선호하는 것은 항공화물의 거의 100%를 인천공항에서 처리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해왔다. 지방도시가 인근에 하늘길을 열어 기업 물류비를 줄여주고 다양한 인센티브를 제공한다면 땅값이 비싼 수도권을 선호할 이유가 없다는 얘기다.문제는 국비지원을 받아 통합신공항을 건설하려면 국회에서 특별법이 제정돼야 한다는 것이다. 신공항 건설의 제1관문인 예비타당성조사 면제와 국가 재정지원을 받으려면 홍 의원이 이미 국회에 발의한 특별법 제정이 선행돼야 한다. 다행인 것은 윤석열 당선인이 지난 2월 15일 동대구역 대선 유세에서 통합신공항 건설을 위해 확실히 협력과 지원을 하겠다고 약속했다는 것이다. 대통령직 인수위에서도 신공항 국책사업화를 위한 관련 TF가 꾸려지고, TF 첫 간담회에서 그동안의 최대현안이었던 국비 지원과 공공기관 개발참여가 긍정적으로 검토됐다.차기 정부가 특별법 제정에 대해 긍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다고 하더라도 칼자루를 쥔 측은 국회 다수의석을 가지고 있는 민주당이다. 민주당은 지난해 2월 대구경북신공항 특별법은 보류한 채 가덕도 특별법만 통과시킨 전례가 있다. 부산과 대구의 갈등을 유발시켜 정치적 이익을 도모한 것이다.밉든 곱든 지금으로선 대구경북신공항 특별법이 제정되려면 민주당이 찬성하지 않고는 달리 길이 없다. 민주당을 설득시키기 위해서는 1차적으로 이번 대구시장 선거에 출마한 여야 후보들이 특별법 제정에 대해 한목소리를 내야 한다.현재 민주당에서는 서재헌 전 대구 동구갑 지역위원장, 정의당에서는 한민정 대구시당위원장이 출마 의사를 밝힌 상태다. 선거운동 기간 중 여야후보들이 TV토론회 등을 통해 특별법 제정 촉구결의에 대한 합의안을 만들어 각 정당으로 하여금 당론으로 채택하게 하는 방법이 있다. 홍 의원이든 서 위원장이든 두 사람 중 한 사람이 제안을 하면 지방선거를 특별법 제정의 기회로 만들 수 있다.

2022-04-26

정치 양극화

우정구 논설위원 내가 좋아하는 정치인이 있다고 가정하자. 나와 친한 친구가 내가 좋아하는 정치인을 반드시 좋아한다는 보장은 없다. 경우에 따라 그 정치인을 싫어할 수도 있는 것이 유권자의 정치적 호불호다.이런 사례는 흔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이것이 극단적 사례로 발전하는 경우가 있다. 동일 사안인데도 불구, 여당 지지자의 80%는 반대를 하고 야당 지지자의 80%는 찬성하는 경우다. 사안의 중요성보다 지지 정당의 호불호에 따라 지지자의 뜻이 반영되는 결과다.정치가 타협과 수용을 전제로 한다지만 이 정도쯤 되면 타협의 여지는 거의 없다.더 문제는 해결점을 찾겠다는 노력보다 서로를 악마시하는 상황으로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른 정당을 지지한다는 이유만으로 절친의 관계가 성립할 수 없다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지금 한국적 정치 상황이 이 지경이다.특히 대선 결과가 극소한 격차로 승부가 남에 따라 여야는 서로의 존재감에서 밀리지 않는 분위기다. 검수완박을 둘러싼 극한 대립도 이런 정치적 배경을 안고 다툼을 벌이는 양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얼마 전 한국행정연구원(KIPA)이 대통령의 국정수행 긍정평가 비율을 추적 분석한 결과, 여야 지지자간의 격차가 해마다 심화되는 것으로 밝혀졌다. 김영삼 정부 당시 39% 포인트였던 여야 지지자간 대통령 지지율 격차가 문재인 정부에 와서는 84% 포인트까지 벌어졌다고 했다. 민주화 이후 최악이라는 평가도 나왔다.정치의 양극화는 구조적으로 정치분열을 초래한다. 당연히 민주주의 발전에도 나쁘다. 새 대통령의 임기가 시작되기도 전에 지금 우리 정치권은 극심한 대립 국면에 빠져있다. 국민 입장에서는 불행한 일이다. /우정구(논설위원)

2022-04-26

마이걸 <Ⅰ>

안나는 헬스트레이너였다. 상류층을 대상으로 하는 스포츠센터 소속으로 일하던 중 만식의 집으로 출장을 갔다. 만식을 담당하던 트레이너가 교통사고로 자리를 비웠을 때였다. 트레이닝을 받은 지 두 달이 되었을 때 만식이 안나에게 제안을 했다. 스포츠센터 그만 두고 내 개인 트레이너가 되는 게 어때? 원한다면 지낼 방도 마련해주지. 충분한 급여와 기대 이상의 자유 시간, 조건이 나쁘지 않았다. 안나는 만식의 개인 트레이너가 되었다. 그래도 남잔데, 한 번 더 생각해봐. 안나의 어미가 말했었다. 아빠보다 더 나이 든 할아버지니 걱정 마. 안나는 여행 가방에 속옷을 넣으며 대답했다. 아들이 하나 있다는데 같이 사는 것은 아니니 그것도 걱정할 것은 아니라 했다.사귀던 남자가 반대했다. 안나는 그 남자와 헤어졌다. 자신을 믿지 못한다는 것이 이유였다. 만식의 집으로 짐을 옮기던 날 안나는 자신을 위해 준비된 방에서 만식이 직접 골랐다는 침대에 앉았다. 차라리 잘 되었어. 헤어질 이유가 필요했어. 엉덩이로 매트리스의 쿠션을 확인하며 혼잣말을 했다.만식은 건강한 남자였다. 규칙적인 트레이닝과 의료진의 정기적인 관리 그리고 인공 장기들이 만식의 건강을 지키고 있었다. 트레이닝 중 만식의 옆구리에 안나의 손이 스쳤을 때, 안나의 가슴이 만식의 등에 닿았을 때, 안나가 허리를 숙여 시범이라도 보일 때면 만식의 몸은 뻣뻣해졌고 얼굴은 붉어졌다. 잠시 동안은 숨을 쉴 수 없었고 어지러웠다. 인공 심장만이 아무 일 없는 듯 규칙적으로 뛰었다. 저 나이에도? 안나는 놀랐다. 그리고 궁금했다. 일부러 몸을 대어 보기도 했고 몸매가 드러나는 운동복을 입고 만식의 눈앞에서 이리저리 몸을 흔들었다. 만식은 엉거주춤한 자세로 주저앉거나 몸을 돌려 허공을 보면서도 힐끔거렸다. 안나는 만식의 반응이 재미있었다. 안나와 만식의 운동시간은 놀이 시간이 되었다. 놀이는 둘 사이를 친근하게 만들었고 친근함은 둘의 나이를 잊게 만들었다.건강과 재산을 가진 수컷들이 다음으로 관심을 가질 것은 뻔했다. 권력, 그리고 여자. 젊은 여자를 두고 젊은 남자와 늙은 남자가 경쟁하기 시작했다. 늙었지만 육체적으로 밀리지 않고 충분한 부를 가지고 있다면 젊은 남자와 겨루어 볼 만했다. 젊은 여자의 입장에서는 둘 사이를 견줄 만했다. 암컷에게 수컷의 건강함이란 자신과 자식들을 잘 보살필 수 있는가의 문제이기도 했다. 가죽 자켓을 입은 백발의 노인이 빨간 오픈카의 운전석에 앉아 경적을 울리고, 길을 걷던 젊은 남자가 놀라 몸을 피하고, 운전석 옆자리의 젊은 여자가 젊은 남자를 아래위로 훑어보며 입꼬리를 올리는 장면은 티브이 광고 속에서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안나도 그랬다. 미래를 알 수 없는 젊은 남자와 사귀며 그의 집에서 지내는 것보다 전 부인과 사별한 돈 많은 늙은 남자와 사귀며 그의 집에서 지내는 것이 더 나아 보였다. 만식과 잠자리를 같이 하면서도 안나는 자신이 몸을 팔고 있다 생각하지 않았다. 서로 주고받은 감정에서 우러난 자연스러운 것이라 여겼다. 상대가 젊은 남자가 아니라는 것? 그게 어때서? 그 뿐이었다. 사람들은 안나와 같은 여자를 마이걸이라 불렀다.안나는 가끔 스스로에게 물었다. 사랑은? 사랑? 사랑이야 언제든. 나는 아직 젊잖아. 대답에 망설임은 없었다.만식은 안나가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다음 날 필립에게 안나를 소개했다.-내 아이를 가졌다. 너의 동생인 셈이지. 새엄마라 부르라 하지 않겠다. 하지만 네 아버지의 여자고 네 동생의 엄마다. 기본적인 예의는 갖추어 주었으면 좋겠다.안나는 만식의 곁에 붙어 앉은 채 필립을 보았다.-그 헬스트레이너?필립이 물었다.-그렇게 되었다.만식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애들 엄마에게서 여자 트레이너가 상주한다는 이야기를 듣기는 했습니다만 이런 것도 하시는 줄은 몰랐네요. 그게 가능하다니. 아버지도 대단하십니다. 옆에 계신 분도 대단하시고. 아들 불러 자랑하실만하네요. 요즘 말하는 마이걸, 뭐 그런 겁니까? 아이고, 부러워라. 부럽습니다, 진정.-그런 것이 아니다. 비꼬지 말거라.만식의 곁에 꼭 붙어 앉아있던 안나가 자리를 고쳐 앉았다.-축하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싶어 부르셨습니까? 손녀 보기 부끄럽지 않으십니까? 하긴, 잘 되었네요. 언젠가 아버지 손녀가 삼촌이든 고모든 하나 있었으면 좋을 텐데 하고 아쉬워한 적 있었거든요. 아버지의 손녀에게 꼭 전해드리겠습니다. 삼촌이 될지 고모가 될지 알 수 없지만 할아버지가 널 위해 선물 하나 만드셨다고. 너하고 나이가 비슷한 할머니도 한 분 생겼다고.의자의 손잡이를 딛고 일어서려는 만식의 손을 안나가 잡았다. 안나가 필립에게 말했다./ 김강 소설가

2022-04-25

聖(성), 俗(속), 권력의 긴장감은 어디서 오는가

영화 ‘베네데타’는 세 가지의 층위로 이루어져 있다. 하나는 성스러운 종교의 층위로 신의 증명에 대한 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 종교가 세상의 중심이었던 17세기 중세의 속, 욕망에 대한 것이다. 그리고 두 가지 층위를 둘러싼 권력에 대한 것이다.주인공 베네데타는 이탈리아 벨라노 출신으로 8세 무렵에 토스카나의 작은 도시 페샤의 수녀원으로 들어간다. 당시 수녀가 되는 것은 가문의 영광으로 여겨지며, 상당한 금액의 지참금을 지불해야 수녀가 될 수 있었다. 여기서 거래가 시작된다. 가장 성스러운 길로 들어서는 초입에 ‘주님의 신부가 되기 위해서’ 흥정이 오간다. “과일과 포도주를 25년간 수녀원에 전하도록 하겠다”는 말에 “지참금은 얼마나 내겠냐”는 수녀원장의 질문이 이어진다. 금액이 제시되고 적어도 얼마 이상은 되어야 한다는 가이드라인이 정해진다. ‘매년 주님을 따르려는 소녀들’은 넘쳐나고 그 관문을 통과하는 것은 성스러운 영역이 아닌 지극히 세속적인 금전적 가치로 결정된다.신에게로 향하는 길에 들어설 수 있는 자격이 수요와 공급의 법칙에 따라 결정되고, 그 지불금액의 높고 낮음에 따라 신심이 결정되던 시기. 1517년 마틴 루터가 ‘95개조 반박문’을 비텐베르크성 교회 대문에 대자보를 내건지 100여 년이 지난 시점이다. 공고했던 신의 세상, 신의 관념으로 살고자 했던 세상에 균열이 일어나며 불길이 일어나기 직전의 시대이다.오랫동안 세계의 질서를 유지하고 인간의 삶에 지침이 되었던 종교는 수도원과 수녀원을 중심으로 매관매직과 부정부패가 극에 달했고, 신성이라는 장막 속에서 성적 일탈이 다반사로 벌어지던 시기. 14세기 시작된 흑사병이 유럽 전역을 휩쓸고 마지막 단계에 이르렀던 시기에 영화가 위치한다.성스러움과 세속의 욕망, 권력의 세 가지 층위를 모두 가지고 있으며, 이 세 가지의 경계지점을 아슬아슬하게 오고가면서 영화가 진행된다. 성령의 증거와 증명, 세속의 욕망이 어떻게 종교적으로 해석되고 판단되는가. 성령으로 주어지는 권력의 달콤하고 위험한 줄타기를 주인공 베네데타를 통해 보여준다. 베네데타는 이 세 가지를 한 몸에 지니고 있으며, 성과 욕망과 권력의 일체를 오간다.종교가 타락해갈수록 반대급부로 종교는 형식적 엄숙을 더해가면서 높고 견고한 장벽을 구축한다. 엄격하고 잔인한 잣대로 가짜 성인을 가려내는데 힘을 기울였던 시대에 베네데타를 둘러싼 실체는 쉽게 판단되지 않는다. ‘어쩌면’이라는 반문 속에서 성녀인지 악녀인지는 시대 상황과 맞물리며 두 시간이 넘는 동안 진위는 숨바꼭질을 한다.베네데타의 실체에 대한 암시는 기저에 깔고 있지만 영화는 그것의 중요성보다는 그것을 통한 한 시대의 논란이 되었던 사실을 통해 드러내고자 하는 것이 다른 지점에 있음을 말한다. 성녀인가 사기꾼인가. 이 문제를 통해 한 시대를 지배했던 문제점들을 드러내며 그 시대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시대가 열리고 있음을, 새로이 돋아나는 기운에 대해서 말한다.환상과 현실을 오가는 베네데타를 통해 성과 욕망, 권력의 자리를 오가며 실체에 대한 판단 근거들을 영화 곳곳에 배치하고 있지만 그것은 참고사항일 뿐 명확한 판단을 내리기에 모호한 지점으로 이끌고 간다. 진실인가 거짓인가가 두 시간 동안 이 영화를 끌고가는 원동력이 되고 있지만 어느 쪽을 결정짓고 영화를 보더라도 결말에 이르러 남게되는 감정은 동일할 것이다.수백년 간 유럽을 휩쓸었던 흑사병과 종교적 타락의 끝지점에서 견고했던 내부로부터 무너지는 것들의 원인이 대한 진단과 사례를 종교재판을 통해 보여준다. 레즈비언이라는 단어조차 존재하지 않았던 시대에 종교재판은 낱낱의 것들을 기록하고 상세하게 묘사해 기록에 남겼다.그 기록을 바탕으로 영화는 ‘주님의 신부’로서 “주님의 사랑과 보호 아래 수치심이란 없다”라는 당당함으로 나아간다. 신의 믿음을 빙자한 부조리가 만연하던 시대에 신의 이름으로 육체적 관계를 통해 ‘사랑’을 알게됐다는 베네데타의 대사는 그때는 틀리고 지금은 맞는 것인가. 17세기 페샤의 수녀원에서 일어난 실제 사건을 실화를 기록한 ‘수녀원 스캔들 : 르네상스 이탈리아의 한 레즈비언 수녀의 삶’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주)Engine42 대표 김규형

2022-04-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