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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제로 웨이스트’

남광현 대구경북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잘 알고 있는 바와 같이 나날이 심해지는 기후재난에 대응하여 전 지구적으로 2050탄소중립을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우리나라도 2030년까지 2018년 배출량 대비 40%나 되는 감축을 국제사회에 약속하였다.이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온실가스 배출율이 37%로 가장 높은 전환부분(주로 발전분야)은 44.4%로 40%이상 감축을 계획하였으나 전환분야 다음으로 배출율이 높은 산업(36%)부문은 14.5%에 불과하며, 수송(13%)과 건물(7%) 부문도 각각 37.8%와 32.8%로 40%에 미치지 못한다.이로 인해 배출율이 2.4%에 불과한 폐기물부문에서 폐기물 감량이나 재활용, 바이오가스 생산 등 다양한 수단을 총동원하여 무려 46.8%의 감축을 계획하고 있다. 즉, 2050탄소중립에 20년 앞서 2030년까지 2018년 대비 40%의 감축을 달성하기 위해 폐기물부문에서의 감축 약속의 강도가 가장 높다.이를 위해 국민은 일상생활에서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쓰레기를 완벽하게 재활용하여 배출을 ‘0(Zero)’에 가깝게 최소화해야 한다.탄소중립을 위해 RE100 프로젝트 등의 전개로 신재생에너지 사용 비율을 비약적으로 높이고 에너지이용 효율을 극대화하여도 산업이나 농축수산 부문 등에서 물질이용은 불가피하며, 온실가스는 필연적으로 배출될 수밖에 없다. 즉 2050탄소중립을 위해서는 산업, 농축수산, 폐기물 등 각 부문에서 물질순환 비율을 최대한 높이고, 폐기물배출을 극소화하는 순환경제 시스템의 도입이 시급하다. 이 순환경제 시스템이 정착되어 2050탄소중립을 확실히 실현하기 위해서 국민은 이제부터 제로 웨이스트(Zero Waste) 라는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하루라도 빨리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현실에서 제로 웨이스트는 모든 제품, 포장 및 자재를 태우지 않고, 환경이나 인간의 건강을 위협할 수 있는 토지, 해양, 공기로 배출하지 않으며, 책임 있는 생산, 소비, 재사용 및 회수를 통해 모든 자원을 보존하는 것으로 인식되어야 한다.미국의 제로 웨이스트 운동가 비 존슨(Bea Johnson)은 ‘5R 운동’을 제안하였는데, Refuse(거절하기), Reduce(줄이기), Reuse(재사용하기), Recycle(재활용하기), Rot(썩히기) 등이 그것이다. 이 중에서 Refuse(거절하기)는 아무것도 사지 않는 날(Buy Nothing Day) 캠페인을 전개하는 것이 하나의 사례가 될 수 있을 것이며, Rot(썩히기)는 음식물쓰레기를 퇴비화하여 농업에 재활용하는 것이 하나의 사례이다.최근의 대구통계를 살펴보면 1일 쓰레기 배출량은 2014년에 1만2천489t에서 2019년에 1만5천757t으로 급격히 증가하였다. 이에 대응하여 재활용량이 크게 증가하였으나 매립과 소각 등 최종 처분량도 동시에 증가하고 있어 폐기물부문 탄소배출량은 계속 늘고 있고 2050탄소중립에 역행하고 있다. 이와중에 지난 3월말에 대구시와 대구녹색소비자연대가 제로 웨이스트 운동에 적극 동참하는 ‘아까와 가게’ 38곳을 선정한 것은 매우 고무적이다.

2022-04-25

엔데믹 시대의 과제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 사회적 거리두기가 완전히 해제되고 25일부터는 주요 교통수단을 비롯해 영화관, 실내 공연장 등에서도 취식이 허용되는 등 엔데믹 시대가 본격화하고 있다.전세계를 강타한 코로나19는 현재 팬데믹 감염병으로 지정돼 있다.팬데믹은 세계보건기구가 지정한 감염병 최고등급으로, 전 세계적으로 감염병이 대유행하는 상태를 의미한다.이제 세계 각국이 코로나19를 엔데믹으로 감염등급을 하향조정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엔데믹이란 특정지역에 사는 주민들에게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질병을 의미하며, 대표적인 예가 말라리아, 뎅기열, 장티푸스 등이 여기에 속한다.엔데믹 시대의 도래에 따라 코로나로 옥죄었던 일상이 빠르게 원상으로 돌아가고 있고, 침체됐던 밑바닥 경제도 활기를 되찾을 전망이다. 다만, 사회 곳곳에서 코로나 팬데믹 후유증이 남아있다.특히 외식업계는 영업시간 제한이 풀렸음에도 정작 함께 일할 직원들을 다시 구하기가 쉽지 않아 몸살을 앓고 있다. 코로나 팬데믹 이전에 일하던 외국인 종업원들은 이미 다 대한민국을 빠져나갔고 국내 인력은 임금을 더 준다고 해도 일할 사람이 없다.유흥업계에서 인력난은 더욱 심각하다. 쉬는 기간 종업원들이 다른 일자리를 찾거나 그만둔 경우가 많아 2년 전 인력의 절반도 못 채우고 있다. 인력난에 시달리는 곳은 외식업계뿐만 아니라 호텔업계와 서비스업 등 산업 전반에 나타나고 있다.무엇보다 코로나 유행 이후 일상에서 우울감 등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코로나19로 인한 일상생활 제약으로 혼란을 겪고, 또 다시 일상회복이라는 변화로 생활 패턴 변화의 조짐을 보이면서 우울감과 혼란을 느끼는 현대인들이 많아진 것이다. ‘엔데믹 블루’, 엔데믹 시대의 과제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2-04-25

물꼬 트는 나눔활동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꽃피고 새가 울며 잎새들이 싱그럽다. 화창한 날씨에 부드러운 바람이 불고 초목은 생명의 잔치를 벌이는 듯 푸르고 싱싱하다. 3년째 발목 잡던 코로나19의 아귀에서 벗어나려는 사람들의 봄을 즐기는 발걸음도 잦아들며 차츰 활기를 더해가는 것 같다. 아직은 여전히 마스크 너머의 세상이지만, 그간 멀어졌던 몸의 거리두기를 없애고 마음의 거리를 좁히며 아쉬움을 달래는 표정들이 사뭇 밝고 넉넉하기만 하다.만물이 생기를 더해가는 때, 마침내 코로나의 안개도 서서히 걷히는 듯하니 날씨마저 청량하고 산천은 한껏 푸르름으로 일렁이고 있다. 전염병 확산 방지를 위해 취해졌던 ‘사회적 거리두기’가 해제되고 가공(可恐)의 코로나19도 홍역, 수두와 같은 2급 감염병으로 조정돼, 일종의 엔데믹(풍토병)으로 가는 대응체계 전환과 일상회복의 길이 열리고 있어서 안도와 다행스럽기만 하다. 그에 따라 최근 한강변의 나들이객이 부쩍 늘었는가 하면 전국 곳곳에서는 3년째 미뤄왔던 축제를 재개한다는 소식 등으로 확연히 달라지고 생기를 되찾아가는 모습들이 역력하다.그에 발맞춰 한동안 뜸해졌던 나눔과 봉사활동도 활발하게 펼쳐지고 있어서 반갑고 고무적이다. 곧 개방할 경로당이나 무료급식소를 대청소하고 방역작업을 실시하는가 하면, 야외시설에 대한 일제점검 보수와 묵은때 제거, 칙칙한 골목길 담벼락의 벽화 도색, 바닷가와 산책로 주변의 환경정화, 어르신들의 건강과 장수를 기원하는 장수사진 촬영 등의 다양한 자원봉사활동이 물꼬 트이듯이 동시다발로 전개되고 있다. 이러한 일련의 봉사활동은 포스코 직원과 가족들이 각 부서 자매마을이나 재능봉사단 등을 통해 펼치는 새봄맞이 사랑의 손길, 희망의 나눔활동이다.포스코는 이와 같은 봉사활동을 포함, 임직원들의 자발적인 기부금을 활용해 운영되는 1%나눔재단의 고유한 사회공헌 활동으로 정착시켜 2013년부터 다양한 나눔 사업을 적극적, 지속적으로 진행해왔다. 지역별 소외되거나 취약해진 계층에 대한 맞춤형 나눔, 지원사업은 물론, 아동·청소년, 다문화 가정, 홀몸어르신 등을 중심으로 1%나눔사업을 강화하고, 태풍, 화재 등 자연재난을 입은 지역사회에 임직원들의 봉사활동과 연계시켜 피해복구지원과 상생협력을 도모하는 사회공헌 및 기업시민 나눔활동의 가치를 부각시키고 있다.관심과 사랑에서 비롯되는 나눔활동은 많은 것들을 변화, 발전시킬 수 있다. 작은 나눔의 손길이 큰 희망의 씨앗이 되고 한, 두발 내딛는 나눔의 발걸음이 큰 세상을 움직이는 기틀이 된다. 나눌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이 있고, 함께 나누는 마음들이 자라고 있음은 따스하고 넉넉한 일이다. 배려의 마음으로 이어지는 온정의 나눔 속에 보람이 싹트고 기쁨과 감사의 꽃이 피어나게 될 것이다.찬란한 햇볕도 나누어 가지고 싱그러운 꽃밭도 함께 뛰놀면 언제나 기쁨이 넘쳐 흐르지 않을까? 코로나로 가뜩이나 메마르고 성글어진 마음 밭에 나눔의 새순들이 신록처럼 움트고 잎새처럼 무성해지면 좋겠다. 나눔과 베풂으로 밝고 아름다운 세상을 함께 만들어 가면 어떨까?

2022-04-25

경쟁력의 조건, 기본의 실천

김종찬 포스코인재창조원 교수·컨설턴트 관성의 법칙이란 게 있다. 과학이라는 과목에서 손을 뗀 지 수십 년도 훨씬 더 된 내게 남아있는 기억으로는 가려던 것은 진행 방향으로 계속 이동하려 하는 속성이 있다는 것 정도의 의미다.묘한 건 이 ‘관성의 법칙’이란 게 물체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우리의 일 속에서도 작용한다는 것이다. 매일같이 반복되는 회의, 동일한 시간과 동일한 동선으로 움직이는 출퇴근, 우리의 생활은 같은 패턴을 반복하고,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그냥 가던 방향으로 흘러가고자 한다.무엇을 시작할 때는 장밋빛 희망으로 넘실대고 혁신적이며 각종 다짐들로 다이어리가 가득 차다 못해 넘쳐나기 마련이다. 그러나 일이든 취미든 익숙해지는 순간 또 관성의 지배를 받게 된다. 관성의 지배를 받는다는 건 안정을 보장받는 것과도 같기 때문이다.그 틀을 벗어나지 않는 한 커다란 위험은 없을 거라는 본능적인 선택, 무의식적으로 반복되는 일상에 진저리를 치면서도 그 안에 남아있을 수밖에 없는 건 그런 안도감이 주는 달콤함 때문인지도 모른다.개인이든 기업이든 관성의 법칙에 안주해 있다면 그 생명은 정점에서 이미 내려가고 있는 것이다. 관성의 법칙에서 벗어나 개인이나 기업이 경쟁력을 갖기 위해서는 ‘기본의 실천’이 필요하다.논어에서도 ‘본립도생(本立道生)’이라 하여 ‘기본이 바로 서면 나아갈 길이 생긴다’ 했다. 기본은 무엇을 하고자 할 때 반드시 내 것으로 갖추어야 할 자질이기도 하고 결코 건너뛸 수 없는 절차이다. 기본의 실천은 사람이나 기업이 경쟁력을 갖추어 치열한 시장에 들어설 수 있는 관문을 통과하는 것과 같다.우리는 기계도 학습하는 상상이 현실이 된 시대에 살고 있다. 딥러닝(Deep Learning)을 통해 다양한 데이터들의 상관관계를 분석하고, 거의 무한대의 변수를 고려한 최적화된 조건으로 제어되어 불량은 줄어들면서 생산성은 최상으로 유지되는 결과를 얻고 있지만 그것의 전제조건은 기본에 있다. 그 기본이 되는 3가지를 제안하고자 한다.첫째, ‘데이터 신뢰성’ 확보이다. 데이터 신뢰성은 ‘부품의 신뢰성’이며 부품이 가지고 있는 고유의 기능이 열화 되지 않도록 습도나 온도를 관리하고 최적의 기능을 발휘하도록 해야 한다.둘째, 완전한 점검이 돼야 한다. 점검은 자투리 시간에 한다는 생각으로 시기를 놓치게 되면 부품의 기능이 열화 되고 ‘데이터 신뢰성’에 영향을 주게 된다.완전한 점검이 되기 위해서는 스킬(Skill)을 갖추는 학습, 점검이 ‘가치 있는 일’이라는 생각, 관리자는 점검이 가능한 여건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마지막으로, 설비관리체계의 바닥을 다지는 일이다. 거기에는 이론이 아니라 실용이며, 말이 아니라 축적이 필요하다. 새것처럼 닦고, 느슨한 것은 조이고, 마찰되는 곳은 기름 치며 기본을 실천할 때 설비는 고장이 없는 강건함으로 보답을 할 것이며 그 보답은 ‘데이터 신뢰성’에 의한 강건한 경쟁력이 될 것이다.

2022-04-25

대나무에 관하여

김규종 경북대 교수 누구나 좋아하는 꽃과 나무가 있다. 나는 이팝나무꽃과 작약꽃 그리고 배꽃을 특히 좋아한다. 이팝나무꽃의 하얗고 풍성하며 우아하고 여유로운 자태와 그윽한 향기. 작약꽃의 은은하고 새침하며 깔끔한 자태. 배꽃의 화사하고 조화로우며 미끈한 형상이 정말 멋지다. 조선 시대 선비들은 복숭아꽃과 배꽃을 천시하고 구박했는데, 그것은 꽃에도 인문적인 의미와 가치를 부여했던 유자(儒者)들의 유난함 때문이었다.나무 가운데서는 느티나무와 단풍나무 그리고 대나무를 좋아한다. 가정집에서 느티나무를 키우는 일은 격에 어긋나는 일이어서 단풍나무를 기른다.화분에서 키우던 오죽(烏竹) 몇 그루와 산죽(山竹)을 마당에 옮겨 심었다. 단풍나무는 길이와 부피생장이 느긋한 편이다. 반면에 대나무는 감추고 있던 본성을 거침없이 드러내는 것이었다. 아, 저런 일이?!어째서 사람들이 ‘쑥대밭’이라는 말을 쓰는지 알게 되는 참사(慘事)가 일어났다. 어디서 날아온 지 모르게 마당 일부를 점령하여 세를 키워나가는 쑥과 오른쪽 모퉁이에서 시작하여 마당 전체를 접수할 요량으로 번지는 대나무의 위세는 파죽지세(破竹之勢)였다. 쑥대밭에 가깝게 번지는 녀석들의 기세는 실로 대단했다. 그들과 대적(對敵)하면서 ‘방아쇠 손가락’ 증후군까지 경험해야 했으니, 이쯤이면 전쟁이 따로 없었다.올해도 쑥과 대나무는 푸릇푸릇하게 존재감을 발휘한다. 서책에서 조선의 선비들이 대나무 그림을 즐겨 그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선비의 절개를 상징하는 사군자인 매화, 난초, 국화, 대나무는 춘하추동과 결부된다. 눈 속에서 피어나는 설중매, 여름의 무더위와 비바람을 견디는 난초, 서리를 이겨내고 피어나는 국화도 대단하기 그지없다. 하지만 사군자 가운데 으뜸은 역시 대나무라고 한다.곧게 자라는 강직함과 속이 빈 겸허함 그리고 백절불굴(百折不屈)의 지조와 절개를 선보이는 대나무야말로 선비의 표상으로 최고였기 때문이다.국가가 경영하는 ‘도화서’의 화원을 선발하는 과거시험인 ‘취재(取才)’에 대나무, 산수, 인물, 영모(翎毛), 화초의 다섯 가지 종목이 있었는데, 대나무가 그 가운데서 으뜸이었다고 한다. 대나무는 선비사회에서도, 화원 집단에서도 가장 사랑받은 묘사 대상이었다.조선 시대에 대나무 그림으로 널리 알려진 인물은 탄은(灘隱) 이정(1554∼1626)이었다. 세종의 고손자 이정은 왕족 출신 화가였다. 더욱이 그는 임진왜란 당시 오른팔에 왜놈의 칼을 맞아 치명상을 입은 것으로도 유명하다. 하지만 이정은 굴하지 않고 대나무 그림을 계속 그렸다. 그가 남긴 ‘풍죽도(風竹圖)’는 그야말로 대나무 그림의 압권이다. 바람에 휘날리는 대나무의 형상화가 최고도로 발현되어 있기 때문이다.이정의 그림은 바람이 균질하게 불지 않음까지도 포착하고 있다. 아, 저런 시선과 손길을 가진 화가가 실존했구나, 하는 크나큰 즐거움이 몰려온다. 그래도 마당에서 번성하는 대나무는 근절해야 한다는 다짐을 재삼재사 확인하는 시절이다.

2022-04-24

정치적 파국 위기를 반복할 건가

위태위태하다. 정치가 다시 살아날 수 있을지 걱정이다. 흔히 허니문 기간이라고 하는 인수위 단계에 선거 기간보다 더 격렬하게 정치권이 부딪쳤다. 주고받는 말도 협상 파트너의 대화가 아니다. 육탄전을 벌이는 병사를 연상시킨다.겨우 지난 22일 박병석 국회의장의 중재로 급한 불은 껐다. 하지만 ‘검수완박’은 아직도 진행형이다. ‘검사의 수사권을 완전히 박탈한다’(검수완박)는 구호를 검찰총장 출신인 대통령 당선인과의 전쟁으로 생각한다.사실 경찰이건 중수처(중대범죄수사처)건 윤석열 대통령이 지휘한다. 검찰보다 더 독립적인 기구를 만들기도 쉽지 않다. 윤석열 검찰총장에서 독립적인 수사 가능성을 봤다. 1차 ‘검수완박’을 제대로 해보지도 않았다. 그런데 왜 위장 탈당하는 무리수까지 두면서 서두르는지 알 수 없다.여야 지도부가 정치력이 없다. 그저 ‘돌격 앞으로’만 외친다. 이건 정치가 아니다. 중재안이 적절한지는 차치하고, 중재안 없이 벌어졌을 일을 생각하면 파국이다. 보이지 않는 길을 만드는 게 정치다. 그런데 왜 국회의장이 나설 때까지 그런 시도도 하지 않았나.정치의 주도권을 정치 팬덤에게 빼앗겼다. 이번 사태도 팬덤 정치 탓이다. 팬덤에 편승만 할 뿐 설득할 리더십이 없다. 팬덤 정치는 타협이 없다. 타협은 내 것을 내줘야 한다. 그런데 팬덤은 아무것도 내놓지 않으려 한다. 그래서는 협상할 수 없다.팬덤 정치의 싹은 ‘노사모’(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다. 지금도 봉하마을을 찾는 사람들이 많다. 지역주의에 번번이 무너지던 ‘바보 노무현’을 대통령으로 만든 최대의 공로자들이다. 이전 정치인들의 지지 모임과는 다른 팬덤 현상을 보였다. 그래서 만들어진 이름이 ‘노빠’다.노 전 대통령은 그들에게 끌려다니지 않았다. 필요하면 설득했다. 임기 중 이라크 파병, 강정기지, 한미FTA 등 지지층의 여론과 일치하지 않는 결단도 내렸다. 국익을 위해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지지자를 설득했다.그 이후로 정치인들에게 그런 결단력이 보이지 않는다. 문재인 대통령은 “586에 얹혀 간다”는 비난을 들을 정도다. 정치인만 달라진 게 아니다. 지지자들도 변했다. ‘노빠’는 노무현 전 대통령을 지켜주지 못했다고 후회했다. 노 전 대통령은 “나를 버리고 가라”고 말했다. 그렇지만 그를 공세로부터 지켜주지 못해 비극을 겪었다는 생각이다.그 반성이 ‘노빠’를 ‘문빠’로 만들었다. ‘대깨문’(대가리가 깨져도 문재인)이라는 이름은 시시비비에 대한 팬덤의 태도를 명징하게 보여준다. ‘우리 이니(문재인) 하고 싶은 것 다 해’라는 말도 무조건 지지하겠다는 표시다. 정치적 아젠다를 아이돌을 좋아하는 팬덤들의 놀이처럼 다루어가는 양상을 보여준다. 비속어가 자주 등장하는 것도 합리성과 자제를 포기하고, 전투력을 끌어올리려는 의도로 보인다.팬덤 현상이 정치 참여를 끌어올리는 것은 바람직하다. 문제는 전체주의적 성향이다. 경쟁자를 인정하지 않고, 타도 대상으로 삼는다. 내부에서도 이견을 용납하지 않는다. 여야 의원 중에 이런 극단적인 대결 양상을 걱정하는 이들이 있다. 합리적 접근보다 승리 지상주의에 매몰돼 간다고 말한다. 하지만 문자 폭탄이 겁나 공개적으로 말하지 못한다. 나치나 중국 문화대혁명기에 경험했던 실패를 반복하는 것 같다. 민주주의가 발붙일 여지가 없다.대선 결과 심각한 여소야대에 직면했다. 13대 국회의 여소야대와도 다르다. 그때는 4당 체제였다. 합종연횡할 수 있었다. 각당의 리더십도 확실했다. 지금은 그 반대다. 따라서 그 어느 때보다 국민통합, 협치가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이 입을 모은다. 그러나 ‘개딸’(개혁의 딸들) 등 민주당 팬덤은 선거 패배를 인정하지 않는다. 24만 표 차만 생각한다. 새 정부는 경험이 부족하다. 정치력도 없으면서 국회를 우회해 돌진하려 한다. 서로 상대를 정당한 경쟁자로 인정하지 않는다. 각자 가진 제도적 힘을 자제해야 한다. 팬덤을 무서워하면 정치를 할 수 없다.위기는 기회다. 극단적인 여소야대는 잘못된 선거제도 탓이다. 이참에 대화와 타협을 할 수 있는 정치제도를 고민해야 한다. 김진국 고문 김진국△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중앙SUNDAY 고문,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본사 고문

2022-04-24

성주 미래 100년 이끌 리더가 필요하다

이규현성주군체육회 수석부회장 성주군은 미래 100년 건설을 위한 중대한 기로에 서 있다.남부내륙철도 성주역 유치확정, 전국 최초 단일 농작물 연소득 6천억원 달성(참외), 동서3축 성주~대구간 고속도로 건설계획 확정, 선남~대구 다사간 국도 30호선 6차로 확장, 각종 국지도 및 지방도 확장·신설, 각종 국·도비 공모사업 선정에 따른 SOC(사회간접자본)사업 추진 등 성주군이 경북의 교통·경제·관광·주거의 중심허브로 도약할 용트림을 준비하고 있다.이러한 지역 변혁의 시대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은 성주군을 올바르고 강력하게 이끌 리더의 존재다.그러면 어떤 리더가 우리가 필요로 하는 사람일까?리더의 최우선 조건은 청렴이다. 청렴을 더하지 않는 능력과 소신은 바퀴없는 자동차와 같다.아무리 능력이 있고 추진력이 있다한들 청렴하지 않는 리더는 구성원으로부터 외면당하고 지지받지 못한다. 무슨 일이든 할 때 마다 의심받고 부정적인 비판에 직면할 것이다. 이번 20대 대통령 선거 결과가 잘 보여주듯이 국민들의 청렴에 대한 지지와 갈망이 높다는 것을 방증한다.리더는 시대의 흐름을 잘 읽고 그 핵심가치를 발굴하여 현실화 하는 능력이 필요하다.“세계의 명물 성주참외”는 지난 3년간 연소득 5천억원 이상의 고소득을 유지해왔고 지난해에는 5천534억원이라는 역대 최고의 소득을 올려 순항중이다.앞으로 성주군의 참외 산업은 쾌속으로 항해할 수 있는 돛을 달아야 하는 시점이다. 코로나19 이후 전 세계의 산업구조가 재편되고 있다. 오프라인 중심의 경제에서 온라인 경제로 급격하게 경제의 기울기가 기울어지고 있는 현 상황에서 농업부문에서도 흐름을 같이 한다고 볼 수 있다.각종 농산물이 백화점, 마트가 아닌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가정으로 배달되고 소비되는 비율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다행히, 최근 몇 년간 성주참외는 라이브 커머스, 온라인 쇼핑몰, 쿠팡, 마켓컬리 등을 통해 온라인 시장에서의 성장률이 눈에 띄게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올해도 5월에 개최할 예정인 참외 페스티벌은 메타버스(현실세계와 같은 사회·경제·문화 활동이 이뤄지는 3차원 가상세계를 일컫는 말)를 기초로 한 축제를 개최, 온라인 경쟁력을 높이고 젊은 소비자층에게 적극적으로 마케팅을 펼치고 있어 그 결과가 기대된다.이처럼 성주 참외의 미래를 위해서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소비패턴 변화를 읽고 대응할 수 있는 혜안을 가진 리더가 필요하다.과거 관료주의식 탁상행정을 펼치던 시기를 지나 현재는 현장중심으로 발로 뛰는 인재가 필요하다. 현장에서 주민들과 소통해 문제점을 파악하고 발전적인 대안을 제시하고 상황에 맞게 추진 할 수 있는 리더를 주민들은 원하고 있다. 집무실에서만 만날 수 있는 군수 보다는 마을에서 만나고 이야기 할 수 있는 군수가 주민들에게는 훨씬 인간적이고 가깝게 느껴지지 않을까?또한, 지역사회에서 행정을 이끄는 절대적인 힘은 예산의 확보다. 특히 국·도비 확보에 따라 지역의 발전 속도가 천차만별로 차이가 난다. 내 집 드나들 듯이 중앙부처, 도청을 방문하고 또 방문해서 그들에게 성주군 발전의 비전을 제시하고 공모사업을 통해 국·도비 예산을 확보함으로써 지역 발전의 기틀을 잡아 줄 수 있는 그런 사람이 필요하다.리더의 중요한 요건으로 제시할 수 있는 것이 경험의 유무이다.“어떠한 사람의 지식도 그 사람의 경험을 초월하는 것은 없다”라는 J. 로크의 말처럼 지도자로써 여러 가지 실적을 쌓고 난관을 극복해 본 사람의 능력치가 그렇지 못한 사람보다 훨씬 나을 것이라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미국 대통령 중임제가 대표적인 예가 되지 않을까? 지난 몇 년간의 경험을 바탕으로 정책의 연속성과 성공 확률을 높혀 줄 수 있는 기대감에 국민들은 전임 대통령에게 많은 지지를 해주었고 연임을 통해 선임된 대통령은 리더로써의 능력을 발휘해왔고 지금의 위대한 미국을 건설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앞서 말했듯이 성주군은 미래 100년을 위한 중대한 기로에 서 있다. 풍요롭고 살기 좋은, 아름다운 성주를 만들기 위한 현명한 선택이 필요하다.

2022-04-24

읽는다

혼자 묵독한다는 것은 19세기 중반까진 불가능했다. 그 이전엔 혼자서 책을 눈으로만 읽으며 사색에 잠기면 불온하며 위험한 자로 취급했다. 알렉산더 대왕도 어머니가 보낸 편지를 말없이 읽어 부하들이 당혹스러워했다고 한다. 시저도 연애편지를 소리 내서 읽지 않은 것이 특별한 일이라고 기록되어 있다니 지금은 웃음만 나오는 이야기다.하지만 나는 혼자서 조용히 읽는다. 소리 내어 읽으면 집중이 안 되기 때문이다. 늦은 밤일수록 책 읽는 속도가 난다. 묵직한 책을 들고 침대 머리맡에 기대 마음에 드는 문장에 밑줄 쫙, 글쓴이의 생각에 고개를 끄덕이다가 때론 내 생각은 다른데 하며 밑줄 옆에 메모를 남긴다. 그래서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보지 못한다. 줄을 긋고 모서리를 접기도 해야 읽었다는 느낌이 든다. 책 속에 있던 무심한 낱말이 그 순간 내게로 들어와 나만의 문장이 된다.물건 사는 것 자체를 즐긴다. 눈으로 하는 쇼핑을 더 좋아하지만, 가끔 꼭 쓸모가 있지 않은 물건도 보기에 좋으면 그냥 사버린다. 볼펜, 수첩, 티셔츠. 사놓고 한 번도 쓰지 않은 것들이 많다. 물건뿐만 아니라 책도 충동구매를 한다. 신문에 광고를 보고, 라디오나 텔레비전에 책 소개하는 걸 보고 덜렁 주문해버린다.또 좋아하는 작가의 새 책이란 이유로 내용도 보지 않고 사버리기도 한다. 고인이 된 작가의 단편집이 그랬다. 가격도 만만찮았는데 지금 아니면 못 살 것 같아서 저질렀다. 한정판이라는데 하면서. 다른 물건도 그렇지만, 책은 절판되는 경우가 많아서 다음에 사야지 하다가 놓친 책이 여러 권이다. 그래서 눈에 들어올 때 사야 한다.책이 배달되어 오는 날은 설렌다. 택배 상자를 뜯으며 연애편지를 볼 때 기분을 느낀다. 받은 책 겉장을 넘겨 그 책을 산 날짜와 이유와 그날의 기분 정도를 메모한다. 그래야 내 책이 된다. 오늘 도착한 택배는 상자가 아니라 비닐 포장만으로 우리 집까지 달려왔다. 명화가 많이 담겨 책 무게가 만만치 않은데 걱정을 하며 뜯었더니, 아니나 다를까, 배달 기사가 던졌는지 다른 상자에 눌린 것인지 뾰족한 책 모서리가 눌리고 찢겨 있었다.받자마자 읽으려고 준비한 마음이 무색해졌다. 교환신청을 하니 다음날 새 책이 당도했다. 파란 표지를 조심히 넘겨 책을 두 번 받은 사연과 기분까지 적어, 내 책이라는 표시를 남겼다. 서문을 읽으며 작가의 손을 맞잡는다. 만나서 반가워요, 이제 친구처럼 아는 책이 됐다. 그렇게 사 모은 것들이 한방 가득하다.문제는 다 읽지 못한다는 점. 단행본이면 그날로 보았을 것을 전집은 방학 때 읽어야지, 주말에 봐야지, 미루다 몇 년이 흘렀다. 저렇게 묶여 있으니 차일피일 미루다 아직 못 읽은 상태다. 책꽂이를 볼 때마다 읽지 않은 책에 대한 죄책감 같은 것을 느낀다. 다른 곳에 갔으면 사랑받으며 읽혔을 것을. 내 욕심에 갇혀 책꽂이에서 숨 한번 제대로 쉬지 못하고 기지개 한번 켜지 못했다. 집을 새로 단장하면서 먼저 정리한 것이 책장이다. 잡지류를 일 번으로, 색이 누렇게 변한 소설을 또 내놨다. 남편은 학창시절의 전공 서적도 버리려 했다. 안된다, 그건. 내가 그은 밑줄과 여백에 써놓은 글귀들의 아우성이 들리지 않느냐며 그 손에서 구해냈다. 두 권인 것과 죽어도 읽지 않을 것 같은 전집, 아이들 백과사전은 친구들에게 나눠주었다. 한 달 동안 반을 버렸다.리모델링 후 새로 맞춘 책꽂이에 주제를 나눠서 꽂았다. 역사, 시, 수필, 소설, 그림책, 그 외의 책을 영역별로 꽂으며 또 3분의 1을 버렸다. 책 사이로 난 틈으로 여유가 들어앉으니 내 마음에도 또 살 수 있다는 생각이라는 공간이 생겨 허허로웠다.조선 시대 선비들의 낭랑한 책 읽는 소리는 여인이 담장을 넘게 했고, 글을 배우지 못하게 한 계집아이가 귀동냥으로 천자문을 익힐 수 있게 했다. 글 읽는 소리는 비록 작지만, 누군가에게 가닿기를 기도하며 오늘 밤도 펜을 들고 쓰윽쓰윽 읽는다. /김순희(수필가)

2022-04-24

‘협치(協治)’의 서광이 보인다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 불안한 대결의 정치, 한치 앞을 볼 수 없는 격랑의 정치는 한국의 고질병이다. 대선이 끝난 지 달포가 지났지만 우리 정치는 여전히 대선의 연장전이다. 역대 어느 선거보다 마타도어가 판을 쳤던 선거 결과는 간발의 차이로 승패를 판가름 지었다.주변에는 이기고도 크게 만세를 부르지 못하고, 지고도 졌다고 승복하는 사람이 없다.새 내각 후보자들의 인사 청문회를 앞두고 그들의 도덕성뿐 아니라 비리와 비행이 드러나고 있다. 검찰 개혁을 빌미로 ‘검수완박’정국이 여야를 대치시키고 극한 대립으로 국민을 불안케 했다. 윤석열 정부에 기대가 컸던 사람들마저 벌써 실망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 누구를 위한 정치인가. 상호 거부하는 대결의 정치, 패거리 정치는 언제쯤 사라질 것인가.지난주 검찰개혁을 둘러싼 대결의 정국이 타협 정치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타협의 달인이라던 박병석 국회의장의 리더십이 크게 돋보였다. 과거의 국회는 의장의 중재안이나 타협안이 여지없이 무시되고 의장실마저 점거당하는 일이 빈번하였다.박 의장은 미국 방문도 연기하고 검찰 개혁 법안의 중재에 나섰고 여야는 이에 즉각 동의하였다. 이 중재안은 여당과 야당, 대법원과 검찰, 변협과 시민 단체의 요구까지 적절히 반영하였다. 검찰의 수사와 기소권의 분리 원칙을 수용하면서도 그 과도기적 조치를 인정한 것이 중재안의 주요 골격이다.6개의 중대 범죄 중 부정부패와 대형 경제 범죄는 6개월간 검찰에 한시적으로 존치하면서도 한국형 FBI인 중수청이 설립되면 이전한다는 것이다. 여당에서 172석이라는 수적 우세와 위장 탈당이라는 꼼수로 무리한 법 통과를 기획하였고, 야당은 필리버스터 등 극한 저지를 통해 입법을 저지하려는 상황에서 극적인 타협이 이루어진 것이다. 무척 다행한 일이다.극한적 대치상황에서 여야가 극적으로 중재안을 수용한 배경은 무엇일까.여당은 절대 다수 의석을 배경으로 법안 통과를 위한 무리수를 쓴 것은 사실이다. 안건 조정위에서 즉각 법사위로 넘기기 위한 민형배 의원의 위장 탈당행태까지 자행되었다. 이에 여론은 의회 정치의 ‘절차적 정당성’ 파괴와 의회 독재라는 비난으로 비등하였다. 이를 저지하려는 야당 역시 검찰의 수사권 유지 및 기소권 독점에 대한 비판적인 여론을 피할 수 없었다. 이는 윤석열 정부의 출범에 앞선 청문회 정국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었다.더 근원적인 문제는 검찰 총장 출신 대통령과 이에 저항하는 다수 야당의 대결 구도는 윤석열 새 정부 출범의 걸림돌이 되었다. 또한 민생을 외면하고 코로나로 지친 여론의 질타는 여야 정치인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졌다. 이러한 정황이 여야가 국회의장의 중재안을 전격 수용하는 배경이 되었다.아직도 검찰은 이 중재안에 반대하고 있지만, 검찰 이기주의로 비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여야가 이번 중재안을 수용한 것은 타협정치의 모델이 될 수 있다.우리 정치는 여야 모두 상생과 화합의 정치를 외치면서도 사실상 상호 부정의 정치로 일관하였기 때문이다. 우리 정치는 민주주의의 과실인 선거마저 내면적으로 승복치 못하는 이상한 정치 풍토가 되어 버렸다.이런 정치문화에서 타협이나 화해는 비굴이나 굴종으로 비쳐지고, 투쟁만이 선명성으로 위장되었다. 우리 정치는 아직도 민주화 세력과 반민주화 세력으로 양분되어 상호 불신의 정치가 판을 치고 있다.자기편은 빛이며 상대는 어둠으로 치부하는 네거티브 정치가 계속될 수밖에 없다. 같은 우군 내에도 불신과 대립의 계파 정치가 저주의 정치로 지속되고 있다. 이러한 정치문화는 결국 적대적 공존 관계만 성립시킨다. 이번 여야의 극적인 타협을 이제 상생의 정치, 공존의 정치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이제 시민 사회의 정치의식도 상당히 높아져 투쟁의 정치에 염증을 느끼는 사람이 많다. 20∼30대 청년들도 이념성향의 표심이 흔들리고 실용적인 이익 투표로 변화하고 있다. 고질적인 지역감정의 표심도 완화될 기미를 보인다. 우리 정치가 선진 민주 정치를 배우기에 앞서 협치의 전통을 하나씩이라도 쌓아야 한다.서구는 이미 좌파나 심지어 공산당까지 포용하는 ‘역사적 타협’을 통해 타협의 정치를 실행한지 오래다. 여야는 대선 과정에서 합의한 다당제의 협치 약속부터 반드시 지켜야 한다.이를 위해 정치인들의 구태 정치 전반에 대한 자성이 선행되어야 한다. 87 체제서 주역으로 등장했던 586 세대의 자기반성이 반드시 따라야 한다. 그들의 민주화 세력이라는 자부심이 기득권 세력화하여 소위 ‘내로남불’의 정치가 빈발하고 있다. 한국의 보수 세력은 위장된 자유 민주주의이념에 안주하여 상대를 여전히 좌익 프레임으로 가두려 한다.이러한 구시대적 정치를 혁파하지 않고는 타협의 정치는 더욱 어렵다. 구시대 청산을 위한 개헌보다는 정치인들의 정화 노력이 선행되어야 한다.

2022-04-24

지지배배(知知拜拜)

이원만 맏뫼골놀이마당 한터울 대표 知之知之 主之主之去之年之 又之拜알겠지요? 알겠지요? 주인님 알겠지요.떠난 지 해가 지나 다시 와서 인사드립니다.판소리 흥보가 제비노정기에 나오는 제비울음소리 대목의 일부다. 강남 갔던 제비가 다시 돌아와 주인을 알아보고 아는 척 절을 한다는 뜻이니 지지배배는 ‘知知拜拜’라고 제비의 울음소리를 적을 수 있겠다.제비는 빈집에 집을 짓지 않는다. 상위 포식자인 사람이 자신을 보호해 줄 수 있는 집의 처마 밑에 둥지를 튼다. 사람들도 삼월 삼짓날이 가까워지면 제비가 돌아올 줄 알고 둥지를 고쳐주는 풍속을 만들기도 했다. 제비는 사람의 곡식을 먹지 않고 하루 400회의 비행으로 1천 마리의 해충을 잡아먹는 농사에 큰 일꾼인 셈이니 기꺼이 처마 밑을 내어주었다.사람과 함께 사는 야생의 새가 있다니 신기한 일이기도 하고 사람에게 이로운 새이니 판소리에도 등장을 시켰을 것이다. 다리를 다친 제비를 치료해서 강남으로 돌려보내 주었더니 다음해에 은혜를 갚는 박씨를 물고와 흥보가 잘 살게 되었다는 스토리텔링이 자연스러웠을 것이다.학생들에게 전통음악을 가르치는 교육프로그램을 연구/개발할 일이 생겨 연극, 미술, 판소리꾼 등 예술가들을 만났을 때 나는 주저 없이 흥보가의 제비노정기를 제안하였다.21세기 한국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은 판소리가 되어야 의미가 있다며 ‘포항예술가들의 더늠’을 해보자는 제안에 다들 찬성했고 단막창극의 대본작업에 들어갔다.지금 우리 주변의 새들이 아파트의 방음벽 때문에 많이 죽어가는 이야기처럼 새들이 보호받지 못하는 것을 아이들과 함께 찾아내고 새들이 멀리서도 금방 볼 수 있는 필름 막을 박을 타면 나오게 하자는 등등 온갖 아이디어들이 쏟아져 나왔다. 흥보가가 새 지킴이 흥보가로 거듭나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짜여진 교육프로그램은 전통판소리교육과 지구시민교육의 콘텐츠가 되어 아이들을 만날 것이다.판소리대본을 쓰기 위해 새 이야기를 찾아보니 극 제비갈매기는 겨울을 나기 위해 따뜻한 남쪽의 바다를 찾아가기 위해 1만 2천㎞를 비행한다고 한다. 그리고 6개월의 방랑생활, 다시 돌아오는데 1만 2천㎞까지 합치면 한해에만 9만㎞를 이동한다고 한다.최근 쇠제비갈메기의 한국 여름나기도 우리와 친숙하다. 매년 4, 5월 호주에서 날아와 안동호, 포항, 부산 등지에서 둥지를 틀고 여름을 나고 있다. 바다가 아닌 안동호 둥지를 튼 쇠제비갈메기 이야기는 지난 2013년부터 내륙 안동호 내 쌍둥이 모래섬에서 알을 낳고 새끼를 길러 다시 호주로 돌아가기를 반복하고 있다. 안동시는 인공모래섬까지 만들어 안전하게 호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정성을 다해 돌보고 있다.그냥 산보하듯 강남 갔다 오는 게 아닌 것이다. 그 작은 덩치와 작은 날개로 하늘을 날며 사람은 정면으로 쳐다보기 어려운 태양을 가장 오래 보는 새라는 이야기를 들으면 겸허해지기까지 한다.새는 하늘과 땅 ‘사이’를 난다고 ‘새’라고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하늘의 메시지를 땅에 전하는 전령사로 자유로움의 상징인 새들이 인간이 만든 건축물, 비행기, 농약 등에 죽어가고 도시의 확장으로 서식처를 잃어가고 있다.미국의 어느 도시에서는 굴뚝을 서식처로 삼는 칼새를 위해 초등학교 아이들이 난방은 칼새가 돌아간 뒤에 하자는 캠페인을 위해 2주간 홍보티셔츠를 입고 다녔다고 한다.그리고 그 캠페인에 호응하여 어른들은 양조장 굴뚝을 무너뜨리지 않는 조건으로 야외에서 칼새를 관찰하며 술을 마시는 ‘칼새와 보내는 밤 산책’이라는 프로그램까지 만들어 보호운동을 하고 있다고 한다.새들이 도시에 찾아오는 이유는 도시가 만들어지기 전에도 왔기 때문이다. 코로나 펜데믹으로 인간들이 비운 거리에 얼룩말들이 다니고 유람선이 사라진 강에는 백조와 물고기들이 돌아왔다는 이야기도 같은 맥락이다.인도의 한 음악가는 연주 중에 새가 날아와 울자 연주를 멈추고 새가 떠날 때까지 연주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 새가 사라지자 자신의 음악은 저 소리에서 탄생했다는 이야기를 하며 연주를 다시 시작했다고 한다. 그렇게 새는 자연과 사람을 이어주는 메신저다.봄이 되어도 사람들은 ‘소통대신 소탕’을 하느라 시끌시끌하다. 새소리가 끼어들 틈이 없다. 신호등을 이용해 자동차 바퀴에 견과류를 깨어 먹을 줄 아는 까마귀들에게 빵빵거릴 뿐 까마귀의 식사를 웃으며 도와 줄 여유가 없다. 사람과 나무 사이에 새가 날지 않는다면 얼마나 삭막한가.아이들과 새로운 버전의 판소리 한 대목을 나누며 인도의 음악가처럼 음악의 근원을 생각해볼 수 있었으면 한다. 새들이 그 먼 거리를 날아와서 어처구니없이 죽거나 다치는 일이 없도록 방지하는 일을 같이 했으면 좋겠다. 그래서 지지배배, 아는 척 절을 하며 날아드는 제비들을 포항에서도 많이 볼 수 있었으면 한다.

2022-04-24

꼼수와 묘수

꼼수는 바둑에서 나온 말이다. 바둑에서 상대가 잘못 대응할 것을 가정하고 두는 수다. 상대가 제대로 대응하면 오히려 손해를 볼 수 있다. 프로는 이런 의도된 수를 쓰지 않는다. 보통 아마추어가 상대의 실수를 노려 쓰는 경우가 많다.바둑에서는 꼼수 말고도 형편에 따라 여러 수가 동원된다. 묘수, 자충수, 강수, 초강수, 악수, 무리수 등등이 그런 경우다. 그중 꼼수는 최악의 수로 평한다. 반면 묘수(妙手)는 현 판세를 반전시킬 수 있는 승부수로 통한다.국어사전에는 꼼수를 째째한 수단이나 방법이라 설명한다. 교활하고 자기 이익을 위해 잔꾀를 굴린다는 뜻의 얍삽하다와 비슷하다. 경상도 포항지방에서는 이를 더듬수라는 사투리로 사용한다.우리 속담에 “눈 가리고 아웅한다”는 말이 있다. 눈을 가리고 고양이 소리를 낸들 사람이 고양이가 될리 없다. 얕은수로 남을 속이려 할 때 쓰는 표현인데 꼼수가 이와 같다. 정직하고 정상적인 방법이 아니어서 보통 꼼수는 소인배나 사기꾼이 잘 쓰는 수법이라 말한다.일상에서도 꼼수가를 많이 목격된다. 임대차 보호법 발효로 임대료가 제한되자 관리비를 잔뜩 올려 받는 임차인이 등장했는데, 이도 일종의 꼼수다. 고가의 슈퍼카를 폼 잡고 굴리는 사람의 뒤를 조사해 보니 70%가 회사 명의의 차로 밝혀졌다. 세금을 면탈하려는 부자들의 꼼수다.‘검수완박’을 둘러싼 정치권에서 꼼수논란이 벌어졌다. 정치적 이익을 위해 얕은 수를 쓴 민주당이 비난의 대상이다. 민주당 원로 정치인조차 “쥐 잡다가 쌀독 깬다”며 힐책했다. 꼼수가 묘수를 넘어설 수 없는 것은 속임수를 감춰두었기 때문이다. 순리가 아니라는 것이다./우정구(논설위원)

2022-04-24

무슨 바람

강길수 수필가 경내가 잔인하다. 울부짖음이 가득하다. 어제 퇴근 때는 연록 새 식구 맞는 노랫소리 흘러나오는 곳이었다. 한데, 오늘 아침엔 아파 우는 소리, 앓는 소리, 겁에 질린 소리가 마음 귀를 따갑게 파고든다. 게다가 커다란 기계음이 몸의 귀청을 마구 때린다. 가해자와 피해자의 소리가 뒤범벅되니 아수라장이 따로 없다.일꾼들은 사다리차 작업대에 타고 기계톱 소리 한껏 올려, 몸통에 뻗어 오른 굵은 팔뚝들을 툭툭 잘라낸다. 통곡도 기계음도 못 듣는 로봇 일꾼 같다. 며칠 안에 연록 새 잎새들이 손가락마다 돋아나 생명을 찬양할 텐데, 그 꿈들도 댕강 끊어지고 있다. 잘린 팔뚝들은 바닥에 이리저리 떨어져 너부러진다. 그 서슬에 애꿎은 진달래꽃 가지와 장미 새순도 덩달아 유명을 달리한다.대여섯 해를 이 담장 곁을 걸어 출퇴근하는데, 오늘 같은 광경은 처음이다. 해마다 거리에서 막무가내식 가로수 가지치기를 많이 보아 온 터다. 커다란 가로수들이 사람의 손에 갑자기 흉물스레 변모할 때는, 사람은 다른 생명에게 너무 잔인하다는 마음이 파도쳤었다. 반면, 이곳은 그런 무참한 모습이 없어 즐거웠다. 맘껏 사는 나무들과 자연스레 벗하며 오갔다.올핸 무슨 바람이 불었을까. 4월에 접어들자마자 사람 손이 울창하던 경내를 휑하게 만들기 시작했다. 뚝 잘린 팔뚝만 몸통에 붙인 채, 어쩔 줄 모르며 서 있는 저 나무들은 졸지에 얼마나 아프고 괴로울까. 교통방해, 통신시설 피해 등 불가피한 전지도 있다. 그 이외의 나무는 가로수나 정원수라도 자연의 섭리에 맡기는 문화는 만들 수 없을까. 인간은 자연의 주인이어야 하는가. 그 일부여야 하는가.오늘날 우리 지구 행성을 ‘지구촌’으로 만들어버린 서양문명은, 급변하는 생태계와 기후변화에 어떤 진단과 처방과 치료를 하고 있을까. 서양문명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바탕은 아무래도 유태교와 그리스도교일 것이다. 모세의 토라에서 신은 만물을 창조한 후, 사람을 만들고 그에게 ‘번성하여 땅을 가득 채우고 지배하여라. 또한, 온갖 생물을 다스려라.’하고 명하였다. 예수그리스도는 회개의 하늘나라를 선포하고, 병자를 치유했을 뿐 아니라, 죽었다가 부활하였다.땅과 생물을 지배하고 다스리라고 한 유다이즘과, 사람을 치유하고 부활한 예수그리스도의 모범은, 서양문명의 기조로 전승되면서 인간을 자연의 주인이라고 곡해하지 않았을까. 그 곡해가 자연을 크게 훼손해 왔다 싶다. 자연과 하나로 살아온 여러 문화의 멋진 삶은, 안타깝게도 기계 물질문명의 물결에 밀려나고 말았다. 웰빙, 로하스, 슬로시티 같은 운동이 서구 중심으로 일고 있으나 역부족으로 보인다.이곳 나무 가지치기는 사나흘에 걸쳐 끝났다. 자연 숲을 옮긴 듯 아름답던 경관은 사라지고, 텅 빈 허전함만 남았다. 전장(戰場)의 잔해처럼 남은 저 굵은 둥치들은, 언제 싹틔워 가지가 자라나고 초록 옷을 입을 것인가. 팔을 잃은 나무들은 끙끙 앓을망정 불평하지 않는다. 그러나, 외치고 있다.‘우린 절망을 모른답니다. 곧 새 팔에 연록 옷을 다시 입을 테니까요!’라고….

2022-04-24

지구가 식지 않는다 해도

유영희 작가 지난 4월 7일 10년 쓰던 승용차를 팔았다. 아플 때는 차가 있어야 한다는 동료 강사의 설득에 넘어가 차를 안 사겠다는 평소의 지론을 꺾고 운전을 배웠다. 그 중고차는 한참 건강이 안 좋을 때 나의 발이 되어 주었고, 무엇보다 부모님 병원 방문에 큰 도움이 되었다. 아이들 심부름에도 가끔 썼다.그러나 부모님도 돌아가시고 아이들도 독립하고 나니 차 쓸 일이 없어졌고, 건강도 나아져서 차 없이도 나들이를 잘 할 수 있게 되었다. 차가 있다가 없으면 불편하다고 아이들은 걱정했지만, 유지비만 나가고 쓸 일이 없는데 굳이 가지고 있을 필요가 있을까 싶었다.돌아보면, 30여 년 전에는 ‘내가 차를 안 사는 이유’라는 칼럼을 쓰기도 했고 이웃이 차를 산다고 하면 ‘녹색평론’을 들고 가서 차 사지 말라고 말리기도 했다. 두 살, 세 살짜리 두 아이를 데리고 지하철을 탔다가 두 아이가 잠들어서 목적지에서 내리지 못하고 종점까지 간 적도 있고, 나중에는 잠들지 말라고 지하철을 탈 때면 책을 읽어주기도 했다.결혼할 때 세탁기도 사지 않았다. 어떻게 알았는지 방송국에서 연락이 와서 세탁기 안 쓰는 가족으로 KBS ‘일요스페셜’에도 출연한 적도 있다. 그 후 아이들 한창 클 때 중고 세탁기를 잠시 집에 들이기는 했지만, 그나마도 몇 년 전 없애고 지금은 다시 손빨래를 하고 있다.그러고 보니, 지난주 4월 22일은 52주년이 되는 지구의 날이었다. 올해 지구의 날 주제는 ‘지구를 위한 실천 바로 지금 나부터’이다. 우연히도 차를 없애서 그런지 다른 지구의 날보다 올해는 내게 괜히 더 의미 있게 느껴진다.우리나라에서는 2009년부터 지구의 날 저녁 8시부터 10분간 전등을 끄는 소등 행사를 시행하고 있다. 이 10분간 소등 효과가 어느 정도인지 정확하지는 않다. 어느 기사에는 85만 가구가 참여하면 4만1천189kw/h가 절약된다고 하고, 다른 기사에는 100만 가구가 참여하면 10만7천kw/h가 절약된다고 한다. 이산화탄소 역시 20t에서 50t까지 감축된다고 한다. 참여하는 가구와 절감되는 에너지가 왜 비례하지 않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작은 실천의 에너지 절감 효과는 작지 않다. 30년생 소나무 7천900그루가 1년간 흡수하는 이산화탄소만큼 줄어든다고도 한다.아무리 지구가 빨개진다고 해도 가까운 내 생활의 편리를 포기하기는 쉽지 않다. 내가 너무 힘들 때는 차도 샀고 세탁기도 샀다. 차는 내게 없지만 그 차는 이집트로 가서 달릴 것이니 차 없앤 것을 내세울 일도 아니다. 나 한 사람 세탁기를 안 쓴다고 빨간 지구가 식을 것이라는 기대도 하지 않는다.그러나 가능하다면, 조금이라도 단순한 생활을 하는 것은 정신 건강과 신체 건강에 좋다는 것을 가진 물건을 줄일 때마다 깨닫는다. 옷도 줄이고 책도 줄이니 정신이 한가하다. 헬스장 갈 때도 50분 걸려 걸어가고 있다. 지구가 식으면 더 좋겠지만, 지구가 식는다는 보장이 없어도 더 줄이고 더 단순하게 살아가고 싶다.

2022-04-24

유영하의 ‘꽃놀이패’유감

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6·1지방선거 대구시장 선거전이 홍준표·김재원·유영하 3파전으로 흐르고 있는 가운데 유영하 후보에 대한 항간의 평가가 엇갈린다. ‘의리남’부터 ‘몹쓸 사람’까지 다양하다.유 후보는 2005년 이후 박근혜의 법률분야 참모로 두각을 나타내 정치 인생 동안 줄곧 박근혜 전 대통령을 지지하고 보좌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이후에는 박 전 대통령의 개인 변호인을 맡아 언론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그의 정치행보는 파란만장하다. 2004년부터 2012년까지 경기도 군포에서 세 차례 출마했고, 두번은 현 국무총리인 김부겸 후보에게 패했으며, 한번은 이학영 후보에게 패했다.2016년에는 새누리당 지지세가 높은 송파을에서 단수공천받기로 했으나 김무성 당시 대표의 이른바 ‘새누리당 대표 직인 날인 거부파동’으로 출마를 포기해야 했다. 일찍부터 정치에 뛰어들었지만 정치운은 무척 좋지 않은 셈이다.대구시장 선거에선 유 후보가 ‘꽃놀이패’를 진행중이다. 이겨도 좋고, 져도 좋다.국민의힘 공천 경선에서 지더라도 1위를 달리는 홍준표가 대구시장 후보 공천을 받게되면 선거법상 30일 이전에는 국회의원직을 사퇴해야 한다. 그러면 6월1일 지방선거일에 수성구을 국회의원 보궐선거가 함께 치러지게 되고, 보궐선거 전략공천을 받을 심산으로 수성구을 지역구에 주소를 옮겨놓은 상황이다. 전략공천 역시 박 전 대통령에 기대 따낼 요량인 듯 싶다. 대구시장에 출마했지만 유 후보는 대구와의 인연은 그리 깊지않다. 부산에서 태어나 대구로 이사한 뒤 대구서부초등학교 6학년까지 다니다 경기도 군포초등학교로 전학한 게 대구와의 인연 전부다.이게 국민의힘 대구시장 후보 공천경쟁에 뛰어든 유 후보의 실체다. 여기에는 대구시민을 위한 대구시장 후보로서 가져야 할 비전이나 결의, 각오는 찾아볼 수 없다.그렇다고 그가 보궐선거에 나설 대구 수성구을 지역구 국회의원 후보로서 지역구민과 대구시민에 대한 관심이나 애정이 있을 리 없다. 이런데도 대구시민들과 국민의힘 책임당원 상당수는 유영하 후보를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아무리 정치가 이상이 아니라 현실이라지만 대구시민 입장에선 거의 생면부지에 가까운 인물이 박근혜 전 대통령의 지지 동영상 하나로 이런 지지세를 얻는다니 개탄스럽고, 허망하다. “정치인은 본인 부고 기사 아니면 어떤 기사가 나도 땡큐”라고 했던 어느 정치인의 말이 떠올랐다. 그렇다고 최순실의 국정농단을 허용했다는 이유로 우리나라 역사상 최초로 탄핵돼 감옥살이까지 치른 박 전 대통령을 오랜 기간 별다른 보상없이 챙겨온 노고 자체를 폄하할 생각은 없다.박 전 대통령도 그런 그의 헌신이 기껍고 미더웠을 것이기에 반대급부로 후원회장 자리를 받아들이고, 지지 동영상을 찍었으리라. 다만 이런 처신이 과연 온당한가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그의 헌신이 결코 순수하게 읽히지 않는 이유다.그의 꽃놀이패 역시 고향 대구를 걱정하는 필자에게는 왠지 모욕처럼 느껴진다.

2022-04-21

‘尹心’, ‘朴心’보다 중요한 ‘民心’

정상호경북취재부장 대구시장 선거 과정에 ‘윤심’과 ‘박심’이란 말이 등장해 정치적으로 이런저런 말들이 오갔다. ‘윤심’이란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박심’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 마음속으로 지지하거나 후원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윤심팔이, 박심팔이 하지말라’는 것은 대통령 당선인과 전직 대통령 이름을 팔아가며 시장에 당선되려는 행동은 옳지 못하다는 정치공세로 보인다. 곧 청와대에 들어갈 차기 대통령과 가깝다는 것은 그만큼 영향력있는 정치인이란 의미를 담고 있다. 출소 후 달성군 사저로 입주한 박근혜 전 대통령 또한 여전히 지지하는 사람들이 많다보니 정치적으로 무시 못한다. 출마자 입장에선 ‘윤심’, ‘박심’의 지지를 받는다면 어느 쪽이든 대구시장 선거에 유리하면 유리했지, 나쁠 것이 없는 것도 사실이다. 대구시장 선거에만 ‘윤심’과 ‘박심’이 있는 것 같지 않다. 이번 지방 선거에서 출마한 국민의힘 후보자중 상당수는 자신의 위상을 과시하는 차원에서 윤 당선인과 인연을 내세우고 있다. 선거캠프에서 얻은 각종 직함을 내밀며 ‘윤심 마케팅’에 열심이다. 일부지역에서는 그런 윤심마케팅을 하는 후보가 공천을 받을 것 같은 분위기도 나돈다. 그러나 이를 지켜보는 유권자의 마음은 편치만은 않다. ‘윤심’도 좋고, ‘박심’도 좋지만 지방 선거가 그런 것에 좌우되는 것은 바람직해 보이지 않는다. 지방선거는 진정 지역민과 낙후된 지역발전을 위해 진심으로 일할 수있는 일꾼을 뽑는 선거이기 때문이다. 대구경북은 정치구도상 국민의힘 공천이 곧 당선 보증수표나 다름없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후보들은 민심은 안중에 없고 오로지 국민의힘 공천에만 사활을 건다. 공천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지역 국회의원들도 마찬가지다. 도덕성과 능력, 경륜을 공천의 기준으로 삼아 침체된 지역현실을 타개할 인물을 찾기보다 자기 마음에 드는 후보를 고르는 듯한 인상을 주고있다. 조금 나쁘게 말하면 공천이 아니라 사천을 하는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국민의힘 공천기준도 과연 공정한지 의문이다. 기준 미달 후보를 골라내는 컷오프라는 것도보기에 따라 국회의원이 칼 자루를 쥐고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 껄끄러운 후보를 쏚아내는데 활용되는 것처럼 비쳐진다. 다시 말해 자신의 말을 고분고분 잘 듣는 후보를 골라 주민의 심부름꾼이 아니라 자신의 심부름꾼으로 쓸 요량으로 정치적 갑질을 일삼는 행태로 풀이된다. 경북도 인구의 5분의1이 살고있는 포항시도 요즘 시장 후보 공천을 두고 온갖 말들이 시중에 나돈다. 포항시장은 51만 도시의 수장으로 포항 시민을 대표하는 막중한 자리다. 앞으로 포항을 어떻게 이끌어야 새롭게 도약할 수 있는지, 그 방향을 명확하게 제시하고 시민의 역량을 결집할 수 있는 인물이 다음 시장이 되어야 한다. 시민들이 납득하기 힘든 방법으로 공천이 이루어진다면 그 책임은 공천권을 행사한 사람이 향후 져야 할 것이다. 선거는 축제라고 한다. 포항시민 모두가 환영할 수 있는 후보가 선출되기를 희망해 본다. 그게 ‘윤심’, ‘박심’보다 중요한 ‘민심’이다.

2022-04-21

경오(庚午)

육십갑자 중 일곱번 째 경오(庚午)다. 경(庚)이라는 천시(天時)는 바로 단풍으로 물들어가는 나무라 할 수 있다. 나무에게서 하늘의 기운인 천기를 다시 거두어 가는 것이기에 결실을 맺는다. 겨울을 대비하기 위함이다. 사실, 나무는 ‘에고 에고 나 죽소!’하는데 사람들은 단풍놀이에 흠뻑 빠져 아름다움에 즐거워한다. 달도 차면 기우는 법, 자연의 이치를 모를 뿐이다.땅의 기운은 ‘말’오(午)다. ‘말’이라는 지기(地氣)만 놓고 본다면 일기당천(一騎當千·한 사람의 기병이 천 사람을 당한다는 싸우는 능력이 아주 뛰어나다는 뜻)하기에 더 적합한 하늘의 기운을 키울 ‘종마’(種馬·씨를 받기 위하여 기르는 말)가 된다. 조랑말이나 짐을 끌고 다니는 말이 아니라, 천리를 달리는 천리마(千里馬), 적토마(赤兎馬) 같은 명마를 길러낼 ‘종마’가 된다. 말 중에 제일 비싼 말이 ‘종마’다.창업을 하여 오너가 되려면 ‘종잣(種子)돈’이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꼭 그렇지는 않다. 사람들은 장사를 하건, 사업을 하건, 뭔가 있어야 하지라고 말 하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신뢰’가 ‘종잣돈’이라 생각한다. ‘신뢰’가 없으면 천신(天神), 지신(地神), 또 어떠한 존재도 마음속의 소망을 이룰 ‘종잣돈’을 주지 않는다. ‘신뢰’라는 종자를 만들어 낼 수 있다면 하늘이 돕고 땅이 돕는다는 천지신명(天地神明)의 도움이라는 천군만마(千軍萬馬)를 얻게 되는 것이다.프랑스혁명 당시 루이 16세와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가 시민혁명군에 포위되었을 때 궁전을 마지막까지 지킨 것은 스위스 용병 약 700명이다. 이들은 프랑스 왕과 왕비를 지키기 위해 용맹하게 싸우다가 장렬하게 최후를 맞았다. 시민혁명군이 퇴각의 기회를 주었는데도 스위스 용병은 계약기간이 남았다는 이유로 제의를 거절했다. “우리가 신뢰나 의무를 저버린다면 우리 후손은 더이상 용병으로 일할 수 없을 것이다.” 죽은 용병의 품에서 나온 유서 글이다. 오늘날 스위스 용병이 로마교황청의 경비도 담당하는 전통으로 이어지는 이유다.사주 인연이 부자인 사람은 부자거나 부자였고, 출세한 사람은 출세했거나 한 때 그러했다. 사주 인연이 그저 먹고 사는 사람은 과거에도 그랬거나, 지금도 그러한 정도다. 반면에 사주 인연이 거의 없는 사람은 원래 이번 생(生)이 그러하거나, 무식하게 까불다가 강등된 분이다. 그래서 자기 위치와 환경을 볼 줄 아는 공부를 해야 하는 것이다.경오(庚午) 일주는 하늘에서 경을 치니(나쁜 짓을 해서 혼내주다) 말이 무조건 달려가는 형상이다. 자기 사주를 모르고, 지금 처한 형편도 모르면 위험이 닥칠 수 있다. 바로 내가 가진 아집을 버려야 큰 것을 얻을 힘이 들어온다. 이런 이치도 모르고 멀쩡한 부모, 형제 복을 자기 발로 걷어차고 나는 자수성가한다고 억지를 부리면 성공할 확률이 희박하다. 그러나 성공하면 크게 성공을 한다. 주위의 인연을 볼 줄 아는 안목이 필요하다.경(庚)은 다듬어지지 않은 원석, 바위다. 오(午)는 야생성을 잃지 않은 말의 모습이다. 대담하고 거침이 없으며 앞만 보고 달려가는 기상을 가지고 있다. 길들여지지 않은 야성미와 자연미가 있어 많은 사람들에게 호감과 선망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꾸미지 않아도 자체에서 발산되는 원초적인 아름다움으로 인해 뭇사람의 관심과 이목을 끄는 경우가 많다.말은 등에 누가 타든 주인에 대한 인식이 없이 무작정 달려가는 습성이 있다. 그러므로 안하무인(眼下無人)적인 행동이 큰 단점이다. 말은 주인을 잘 만나야 힘들지 않은 삶을 영위 할 수 있고, 아니면 똥 구르마를 끄는 고달픈 신세가 된다. 사람도 배우자를 잘 만나야 된다.옛날 어떤 임금이 천금을 가지고 천리마를 사려고 삼 년 동안 노력하였지만, 사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어떤 환관이 “제가 천리마를 사 올 터이니 저를 보내 주십시오”라고 임금에게 청했다. 임금이 허락하였다. 허락을 받고 천리마를 찾아 나선 그 환관은 석 달을 아무 성과 없이 보내고 나서야 참다운 천리마 한 마리를 찾아냈다. 그러나 그 말을 찾았을 때는 이미 그 말이 죽은 후였다.그 환관은 5백금을 주고 죽은 말의 머리를 사서 매우 기뻐하면서 궁궐로 돌아왔다. 임금이 그 환관을 보고 크게 화가 나서 벼락같은 소리로 “내가 사오라고 한 것이 살아있는 말인 줄 몰랐더냐? 죽은 말을 무엇에 쓰란 말이냐? 게다가 어처구니없게 5백금이나 헛되게 써버리다니!”라면서 나무랐다. 류대창명리연구자 그 환관은 “비록 죽었을지라도 천리마라는 이유로 5백금을 아낌없이 줄 수 있다면, 살아 있는 천리마야 더 말할 것이 있겠습니까? 이 소식이 온 나라에 퍼져 나간다면, 백성들은 임금님께서 진심으로 천리마를 사고 싶어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천리마는 스스로 이곳으로 찾아 올 것입니다”라고 대답하였다. 과연 일 년도 못 되어서 궁궐 문 앞은 팔려고 내 놓은 천리마로 장시를 이루게 되었다. 유향의 전국책 ‘연책(燕策) 1편’에 나오는 글이다.사마천 사기 ‘백이열전’에 안회를 ‘천리마의 꼬리에 매달려 천 리를 가는 쉬파리’로 표현했다. 젊은 나이에 요절했지만 공문십철의 으뜸으로 인정받은 것은 공자의 수제자로서 학문과 덕행이 뛰어나 후세까지 이름을 남긴 것이다. 사람들은 세상에 천리마가 없다고 한다. 천리마가 없는 것이 아니라 찾지 못하는 것이다. 천리마도 자기를 알아주는 현명한 사람을 만나면 그 모습을 드러내는 법이다. 겉모습을 보고 판단하면 실수하기 쉽다. 비슷한 것은 다 가짜이기 때문이다.

2022-04-20

누구에게나 편리해야 할

키오스크(터치 스크린 방식의 무인 단말기)를 이용할 땐 약간의 긴장을 하게 된다. 시력이 좋지 않기 때문에 늘 화면 앞에서 눈을 부릅떠야하고, 글자는 작고 메뉴는 설명 없이 사진만 덩그러니 놓여 있기 때문에 고르는 데도 은근 어렵다. 무사히 메뉴를 다 정했다면 포인트 적립이나 카드 할인 혜택, 결제 방식 등의 단계를 맞닥뜨리게 된다.괜히 포인트 적립이나 카드 할인 혜택을 받겠다며 이것저것 잘못 누르다간 시간 초과로 처음 화면으로 돌아가게 되니, 웬만하면 복잡한 과정 거치지 않고 빠르게 결제를 향해 달려야 한다. 거북이의 속도로 키오스크 한 대를 내 것 마냥 점령했다간 뒤에서 빨리 좀 끝내라는 은근한 압박이 날아올 수도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미션 임파서블의 한 장면처럼 신속하면서도 능숙하게 모든 과정을 끝내면 결제가 완료 되었단 영수증 하나를 받아볼 수 있다. 겨우 메뉴 하나 주문하는 게 이토록 복잡하고 어려울 필요 있는 건지, 손바닥 만한 작은 종이 쪼가리를 집어들며 괜스레 머쓱해진다.최근 코로나19로 인해 비대면 서비스가 증가하면서 키오스크 보급률이 대폭 증가했다고 한다. 2021년 기준 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회가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26,574대의 키오스크가 신규 보급되었고 햄버거 프렌차이즈 버거킹의 경우 코로나 이후 키오스크 도입 비율을 95%나 늘렸다고 한다.이제는 음식점뿐만 아니라 영화관이나 카페 은행이나 병원 관공서 등 일상 곳곳에서 키오스크를 쉽게 찾아볼 수 있게 되었다. 디지털에 익숙한 세대에겐 쉽고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지만, 이에 반해 65세 이상의 고령 소비자인 디지털 취약 계층은 무인기기 사용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한국소비자원의 조사에 따르면 최근 1년 동안 키오스크를 경험한 65세 이상의 고령 소비자 245명을 대상으로 설문해보았더니 평균 난이도 75,5점으로 많은 고령층이 키오스크 이용에 어려움을 겪고 있음을 드러냈다. 병원과 외식업 대중교통과 문화시설 관공서 순으로 다양한 장소에서의 어려움을 느끼고 있었다.고령 소비자는 익숙하지 않은 용어나 외래어, 조작방식을 이해하는 데에 어려움을 겪었다. 한글 글자 크기조차 작은데다 외래어까지 섞여 있으니 충분히 어려울 만도 하다. 더군다나 각 키오스크마다 내장된 하드웨어가 다르고 메뉴를 택할 수 있는 인터페이스 구성이 다르기 때문에 더욱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대형 마트의 경우엔 옆의 직원이 상주하고 있다지만, 무인 카페나 편의점인 경우엔 도와주는 사람도 없는데다 안내 음성도 없으니, 이러한 곳은 시각장애인이나 어린이 또한 출입조차 불가능할 정도다.편리함을 목적으로 모습을 드러낸 키오스크지만 특정 계층에서 불편함을 겪고 있고 소외 현상이 느껴진다면 서둘러 운영 상황을 개선하고, 누구나 쉽게 사용할 수 있도록 해결되어야 할 것이다.이에 각 기업은 디지털 소외계층이나 휠체어에 탑승한 고객도 쉽게 손이 닿을 수 있도록 화면을 아래쪽에 배치하는 등의 개발 노력을 하고 있다. 디지털 기기 이용에 어려움을 느끼는 이들을 대상으로 기기 사용을 가르쳐주는 디지털 배움터 또한 각 17개 광역시·도 별로 상세히 운영하고 있다.다양한 스마트 기기를 상시 체험할 수 있고 키오스크 외에도 태블릿 PC나 AI 스피커 등의 사용법을 익힐 수 있고 디지털 강사의 강의도 무료로 들을 수 있다. 윤여진 2018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현재보다 미래가 기대되는 젊은 작가. 국회에서도 디지털 포용법 제정에 논의가 한창이다. 사회의 모든 구성원이 소외와 차별 없이 디지털 기술을 활용할 수 있도록 포용적인 사회를 만들어야 한단 취지다.디지털 취약 계층을 비롯하여, 어린이와 시각 장애인 등 사회에서 배제되는 일이 없도록 모두가 전보다 보다 편리하고 나은 삶을 택하여 누릴 수 있어야 한다.이 때문에 난 아직도 키오스크가 마냥 편하지 않다. 물론 아직까지 사람에게 직접 가서 주문하는 것이 훨씬 편하고 좋다.단골이라며 늘 덤을 챙겨 주는 카페 직원 언니와 주기적으로 근황을 나누어야 하고, 위염 때문에 자주 뵙는 간호사 선생님께 꾸준히 충고도 들어야 하니까.어쩐지 막연히 기계 앞에서 헤매고 있는 사람들을 바라볼 때면, 키오스크에 더 느리게 적응해도 좋을 것 같다.

2022-04-19

쓸 수 있다

매일 밤 책상 앞에 앉아 무언가 쓴다. 뭐가 걸려 올라올지 모르는 채 바다로 나가는 어부가 그럴까. 생계를 위한 하루의 노동을 마치면 정신의 노동이 시작된다. 그것은 생계를 위한 것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고 위협하는 것이기도 하다. 나를 위한 것인지 잘 모르겠다. 누구를 위한 것인지, 무엇을 위해 쓰는지 모르면서 쓴다. 나는 시를 위해 시를 쓰는 것이다, 라고 혼잣말하면서도 시가 뭔지 모르겠다. 20년째 같은 혼잣말을 하고 있다.먼저 모드를 전환해야 한다. 일하던 몸, 먹고 사는 일 앞에 걱정하고 두려워하던 몸, 인사하고 부탁하고 아부하고 싸우던 몸을 시 쓰는 몸으로 바꿔야 한다. 생각에서 감각으로, 이성에서 직관으로, 베타파에서 알파파로 모드를 바꾸기 위해 핸드 그라인더로 커피 원두를 간다. 촛불 냄새, 연필심 냄새, 나무 냄새, 새벽 이불 냄새, 비 내린 저녁 냄새 같은 커피향이 방 안에 진동한다. 호흡이 차분해진다.너무 작아져서 더는 사용하지 않는 비누, 그래서 녹을 수 없는 비누, 거의 소멸됐지만 소멸이 유예된 비누에 대해 쓰고자 한다. 생각이 도무지 나아가지 않는다. 비누를 들여다보고 냄새 맡아보고 손에 쥐어본다. 비누가 말을 걸어오길 기다린다. 비누는 말이 없고, 옆집 변기 물 내리는 소리, 고양이 비명, 담배 연기만 수런거린다. 이 짓을 하고 있다 보면 이상(李箱)이 떠오른다. 시 쓰기는 육체의 일인가 정신의 일인가, 노동인가 아니면 유희인가 생각하는 것이다.“박제가 되어버린 천재를 아시오. 나는 유쾌하오. 육신이 흐느적흐느적 하도록 피로했을 때만 정신이 은화처럼 맑소”라던 이상의 고백은 가난이 예술가에게 질병과 굶주림이라는 절망을 가져다 줄 때 오히려 정신은 풍요롭다는 역설이다. ‘육체’의 세계인 자본주의 도시, 대중성과 결별하여 정신적 공간인 ‘방’ 안에 스스로 고립되는 순간 예술가는 마침내 ‘천재’를 회복해 “유쾌하다”고, 이상은 말한다. 하지만 나는 시 쓰는 게 유쾌하지 않다. 내가 천재가 아니라는 걸 깨달은 이후로 시는 언제나 고통이고 절망이다.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내가 이상보다 12년을 더 살았다. 김유정보다, 기형도보다 10년을 더 살았다. 나는 이미 그들처럼 될 수 없다.그럼에도 여전히 나는 무언가 쓰고 있다. ‘박제가 되어 버린 천재’이고 싶지는 않다. 천재는 애초에 틀렸고, 박제가 되기 싫다. 잘 살고 싶다. 건강하게, 남들처럼, 돈 벌고, 결혼하고, 주말엔 외식하고, 저축하고, 4대 보험의 혜택 안에서 살고 싶다. 밤마다 세속적 욕망과 문학에 대한 열정이 격렬하게 싸운다. 삶과 문학 사이에서 길항하다보면 삶도 문학도 다 이룰 수 없다는 걸 두려워하면서도.20대에는 시가 돈이 되지 않아도 행복했다. 아무도 걷지 않은 오솔길의 임금이 된 것만 같았으니까. 서른 살이 되자 돈이 되지 않는 시를 계속 붙잡을 수 없었다. 멀리 달아났다. 그런데 달아나면 달아날수록 시는 더 세게 나를 잡아당겼다. 돌아선 뒤통수에 쏟아지는 시의 따가운 눈총이 괴로워 취해버린 밤도 많았다. 돈 잘 벌고 ‘잘 나가도’ 시 한 편 쓰는 성취감에 비할 바 아니었다. 그래서 돌아왔다. 붙잡혀 끌려왔다는 편이 더 정확하겠지만. 이병철 문학평론가이자 시인. 낚시와 야구 등 활동적인 스포츠도 좋아하며,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30만원짜리 반지하 월세방에서 10년을 살았다. 많은 시와 평론, 논문을 썼다. 방 세 개 전셋집으로 이사했지만 시를 쓴다는 건 여전히 죄스럽다.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일을 한다는 누명이 억울하기도 하다. 세상의 냉대와 외면, 왜곡과 오해에 떠밀려 마음의 거처는 여전히 반지하에 머무는 날이 많다. 그때마다 시로 무언가를 이뤄야겠다고 다짐한다. 뭘 이룰 수 있는지도 모르면서 뭐라도 이루고 싶다.시 쓰면 굶어죽는 줄 알았는데 아직 살아 있고 건강하다. 등단을 했고, 시집도 냈다. 물론 등단이나 시집이 대단한 성취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어느 해엔가는 밥벌이를 다 잃고선 글만 써서 즉석밥과 라면을 먹었다. 이런저런 원고료로 전기세, 가스비 내고 방값도 냈다. 이룰 수 없는 문학을 붙잡고서 최소한의 생활을 유지해왔다. 시를 이루다보면 삶도 이뤄지는 기적을 믿을 수밖에 없다.이수명 시인은 내게 “시는 이뤘으나 이룰 수 없으므로 늘 이루지 못하게 한다”고 말했다. 시 쓰기는 언제나 무승부인 싸움, 또는 언제나 내가 지는 시합이다. 도대체 이걸 왜 붙잡고 있냐고, 나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내 질문에 나는 뭐라 답해야 할지 모르면서, 흔들리면서, 여기저기 부딪치면서 어디론가 나아간다.비누를 들여다본다. 오늘밤 나는 쓸 수 있다.

2022-04-19

절대권력 쥔 민주당과 ‘지록위마(指鹿爲馬)’

심충택 논설위원 더불어민주당이 지난 15일 검경 수사권 조정 이후 검찰에 남아 있던 6대 범죄(부패, 경제, 공직자, 선거, 방위사업, 대형참사)에 대한 수사권을 검찰에서 분리하는 형사소송법·검찰청법 개정안을 발의했다.두 개정안은 박홍근 원내대표가 대표 발의했으며 민주당 의원 172명 전원 명의로 제출됐다. 국가 사법체계의 핵심적인 기구인 검찰의 수사권을 박탈하는 법률 개정안이 어떻게 민주라는 이름을 내건 정당에서 한 사람의 반대의견도 없이 발의될 수 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민주당의 현 모습을 보면서 떠오르는 말은 ‘지록위마(指鹿爲馬)’라는 고사성어다. 중국 진나라 시절 조고는 황제도 눈 아래 둘 정도로 절대권력을 쥐고 있었다. 지금 민주당이 행사하고 있는 입법권력과 마찬가지다.조고 앞에서는 어느 누구도 그가 사슴을 말이라고 해도 틀렸다고 할 수 없었다. 조고의 거칠 것 없는 권력 행사는 민생 파탄을 가져오고 결국은 백성의 반란으로 이어졌다.절대권력이 해피엔딩이 될 수 없다는 것은 만고의 진리다. 민주당이 법률 제·개정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다수의석을 가졌다 해서 이를 국민이 부여한 권한으로 오해해선 안 된다. 국민이 민주당에 ‘입법독재’ 권한까지 위임한 것은 아니다. 민주주의 다수결 원리의 전제는 야당과의 절충과 타협이다. 다수의 독재는 1인의 독재보다 더 무섭다.민주당의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법안 핵심은 2가지다. 검사의 직접 수사 권한을 다룬 형사소송법 제196조를 삭제했다. 또 지난해 검경 수사권 조정 이후 검찰이 갖고 있던 6대 범죄에 대한 수사권을 명시한 검찰청법 4조의 조항을 삭제하고 검사의 직무에 대해 공소제기와 유지만 남겼다. 형사소송법과 검찰청법 개정으로 검사의 직접 수사 권한이 삭제되면서 검사가 보완 수사를 할 수 있는 근거도 사라졌다.최근 이복현 서울북부지검 형사 2부 부장검사는 사표를 내면서 “검찰의 수사권을 없애면 당분간 금융 증권시장 교란 행위, 대기업 시장 질서 문란행위, 최고위 권력층의 이권개입 등에 대한 수사는 사라져버릴 수밖에 없다”고 한 말이 잊혀지지 않는다. 우리사회에 다시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후진적인 병리현상이 판칠 것이라고 예고하는 소리다.민주당 의도대로 법률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 다음달부터 언론사 사회부 출입처에서도 검찰청은 빠지게 생겼다.수사를 하지 않는 검찰은 언론에서도 취재할 내용이 없다. 대신 지금은 갓 수습을 뗀 기자들이 주로 출입하는 경찰서는 중견기자들이 배치될 것으로 예상된다. 검찰에 기소를 하지 않고 경찰 선에서 내사종결되는 사건들을 추적해서 취재할 수 있는 역량을 가진 기자들이 필요하기 때문이다.이제 검수완박 법안과 관련한 공은 박병석 국회의장에게 넘어갔다. 박 의장이 본회의 사회권을 민주당 소속 국회부의장에게 넘기지 않고 해외출장(23일부터 10일간 미국·캐나다 순방)을 가면, 문재인 대통령 임기 중 검수완박 법안 통과는 사실상 물건너 간다.

2022-04-19

제로 코로나의 역설

우정구 논설위원 거리두기가 전면 해제된 우리나라와는 달리 중국 상하이는 지금 3주째 도시가 봉쇄중이다. 코로나 확진자가 발생하면 지역 봉쇄와 같은 고강도 방역조치를 취해 감염자를 0상태롤 돌린다는 중국 정부의 이른바 제로 코로나 정책 때문이다.전달 28일 인구 2천500만명의 상하이가 봉쇄된 것을 비롯 중국내에는 다수의 도시가 전면 혹은 부분 봉쇄중이다. 상하이로 유학 간 한국의 유학생 중에는 한달 가량 기숙사에서 나오지 못해 고국으로 돌아가겠다는 사람이 늘고 있으나 봉쇄조치 때문에 이마저도 쉽지가 않다.도시 봉쇄로 상하이 내 중국인들 간에는 생필품을 구하지 못해 필요한 물건을 물물교환 방식으로 바꿔가며 생활하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고 하니 도시봉쇄로 인한 주민 희생이 심각하다. 또 부유층 중심으로 이민을 준비하는 사람까지 늘고 있다고 한다.정부 당국의 방역정책이 되레 도시민의 생활을 최악의 상황으로 몰아가는 형국이다.특히 소비 감소를 시작으로 중국의 각종 경제지표가 나빠지기 시작했고 올해 중국의 연간 성장 목표율 달성도 어렵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문제는 경제를 질식시키는 이러한 봉쇄조치가 언제까지 계속될지 모른다는 데 상하이 시민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는 것이다.중국은 인민과 생명을 최우선으로 한다는 구호와 함께 제로 코로나를 사회주의의 우월성 정책으로 줄곧 내세워 왔다. 따라서 정책의 갑작스런 전환은 지금으로선 어려울 것 같다는 현지 관측이다.중국 내 관영매체는 여전히 제로 코로나가 최선의 방역이라 강조하고 있다. 유행성 독감보다 증상이 조금 더 심한 코로나19에 대응키 위해 주민의 일상을 희생시킨 사회주의 국가의 정책이 앞으로 어떻게 종결을 지어갈지 궁금하다./우정구(논설위원)

2022-04-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