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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보헤미안의 음악정서를 세계화 하다

예술은 과학이나 수학 같은 이공 계열과는 다른 점이 있다. 맞고 틀리다의 정답이 없는 점이다. 이러한 이유로 예술의 역사를 통틀어 보면 많은 대립과 논쟁이 있어왔다. 그리고 이러한 논쟁은 에너지의 낭비로 끝나버린 것이 아니라 새로운 사조의 음악을 등장시키는 촉매제가 되었다. 예를 들면 음악사 백년전쟁이라고 불리는 브람스의 절대음악파와 바그너의 극음악파의 대립은 말러와 부르크너와 같은 새로운 음악형태를 출현시켰으며 러시아의 민족음악을 고수하던 ‘러시아 5인조’와 차이콥스키를 위시한 ‘러시아 서방파’의 대립은 프로코피에프와 쇼스타코비치와 같은 소비에트를 대표하는 사회주의와 러시아의 냄새가 강한 음악경향들을 만들어 냈다.19세기에서 20세기의 초기까지 외세의 지배를 받던 많은 약소민족의 작곡가들은 민족에서 음악의 소재를 찾아내고자 했으며 민요 등 민속음악의 연구를 통해 그 해답을 찾고자 했다. 우리는 그것을 국민주의 음악이라고 부른다.작곡가들의 이러한 민족주의적인 성향은 다분히 의도적인 것과 성장배경의 여러 가지 요소들이 작품에 자연스럽게 배어든 순수한 것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 오늘 소개할 드보르작은 후자에 속한 경우이며 그 음악적 힘은 순수함을 등에 업고 있기에 더욱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어린 시절 학교의 음악시간에 드보르작을 처음 접하였는데 그 국적으로 되어 있는 ‘보헤미아’라는 지역은 너무나 생소했다. 드보르작은 체코의 수도인 프라하에서 북쪽으로 30㎞ 떨어진 ‘네라호제베스’라는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다. 그룹 퀸의 ‘보헤미안 랩소디’나 푸치니의 오페라 ‘라 보엠’이 ‘보헤미안’이란 뜻을 가지고 있는데, 이 명칭은 사회적인 관습이나 전통에 얽매이지 않고 방랑적이며 자유로운 생활을 하는 사람을 말하거나, 가난하고 하루하루 벌어 사는 노동자나 외국 이민자들을 지칭하기도 하였다.드보르작은 성장기에 다른 작곡가와는 다른 특이한 경험을 한다. 그는 작은 여인숙을 겸한 정육점 집안의 아들로 태어났는데, 그의 아버지는 그에게 정육점의 가업을 잇게 하려고 하였다. 그는 음악가의 꿈을 가지고 있었으나 아버지의 뜻을 묵살하지 않고 순응하여 정육점을 경영할 수 있는 ‘정육면허’를 가지게 된다. 드보르작의 부모는 그의 아들을 음악가로 키울 생각이 없었지만 장사를 위한 독일어 교육을 위해 집안에 들인 교사가 음악가였다. 드보르작은 다양한 국적의 손님들이 오가는 아버지가 경영하는 여인숙에서 자주 연주를 하였으며, 이것은 드보르작 자신도 오가는 여행객들의 음악을 자주 들을 기회가 있었음을 의미한다. 다양한 음악을 소화하여 자신의 프리즘으로 흡수하는 것은 이후 드보르작의 음악이 세계화될 수 있는 원천이 된다.16살이 되어 프라하의 음악학교에 진학하며 본격적인 음악수업을 받게 되지만 졸업 후 34살이 될 때까지는 카페와 술집에서 음악을 연주하는 등 힘든 나날을 보내게 된다. 그에게 작곡가로서의 커리어가 시작된 것은 ‘오스트리아 정부 주최의 공모전’에 자신의 작품을 지원한 일이다. 이 공모전에서 당시 유럽 음악계의 보증수표였던 브람스는 드보르작의 작품을 접하게 되었으며 브람스는 드보르작의 작품을 자신이 잘 알던 출판업자인 짐 로크에게 적극적으로 출판을 추천하였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오스트리아 정부에서 주는 연금도 추천하여 이후 안정되게 자신의 작품에 전념할 수 있게 된다.드보르작은 쇼팽과 마찬가지로 식민지의 작곡가였다. 첫 출판된 그의 작품에 작곡가명이 ‘안토닌 드보르작’이 아닌 독일식인 ‘안톤 드보르작’으로 표기되었는데 이것은 악보를 많이 팔기 위한 출판업자의 꼼수(?)였다고 생각된다. 드보르작은 강하게 항의하여 결국은 원래 자신의 이름으로 다시 정정하였다. 이후 1884년 영국을 방문하였을 때 케임브리지 대학의 명예박사 학위를 받고 오스트리아 정부로부터 빈으로 이주하여 살도록 많은 권유를 받았으나 거절한 것도 조국에 대한 사랑과 오스트리아 정부에 대해 독립운동을 벌이고 있던 동포에 대한 미안한 마음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된다. 일제 강점기 말엽, 우리가 알고 있던 많은 작곡가들이 창씨개명을 하고 일제의 강제적인 징병과 차출을 찬양하는 곡을 쓰며 친일행적을 한 것과 애국가의 작곡가마저 친일 논쟁에 휘말려 있는 것을 본다면 드보르작이 한 행동은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행동은 아니었다. /문양일 포항예술고 음악교사

2020-01-06

나를 세우는 첫걸음은… 경주 함월사(含月寺)

달을 품은 절, 함월사는 경주 금오산(金鰲山)에 있는 비구니 사찰로 삼릉 근처에 있다. 함월사가 달을 품고 있어서일까? 삼릉 숲에서는 낮달이 보이지 않는다.하지만 천 년의 시간을 품은 삼릉이 달처럼 다사롭고 은은하게 소나무 숲을 지킨다. 소나무 아래로 난 길은 참선하듯 조심스럽고, 그 가운데 깊고 예스러운 숨결들이 늘 그렇듯 먼저 안부를 물어온다. 육신의 피로와 정신의 때가 녹아내린다.솔숲을 배경으로 식당과 카페들이 늘고 있다. 발길 닿는 곳이면 어디든 따라다니는 거대한 자본의 유혹들, 함월사가 깊은 산중을 두고 이곳에 자리잡은 이유를 알 것 같다. 금자라가 달을 먹으면 캄캄하여 어두운 쪽으로 기울어지고, 달을 먹지 않고 그대로 내 보내면 밝은 쪽으로 기울어지니, 어느 쪽으로도 기울어지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조실 우룡 스님이 이름을 지었다는 함월사다.절은 정갈하다. 향기 강한 수종의 나무들이 눈길을 끈다. 설법당 앞마당에는 커다란 은목서들이 겨울에도 눈길을 끌고, 봄을 기다리는 목련의 순결한 꽃눈은 차고 건조한 허공에 몸을 맡기고도 우아함을 잃지 않는다. 여름이 오면 스스로를 주체하지 못해 농염함을 뿌려댈 치자나무의 아찔한 눈빛과 그에 질새라 은목서들의 향기가 존재감을 드러낼 늦가을을 상상하니 턱턱 숨이 막힌다.철마다 각기 다른 향기로 부처님을 맞을 함월사의 나무들이 앞마당을 거니는 내 안에 하나의 말씀이 되어 머문다. 지금은 향기 없는 피라칸타의 붉은 열매들이 꽃처럼 익어 차가운 계절을 견디고 있다. 어느 한곳으로 치우치지 않으며, 스스로를 틀에 가두지 않고 탐욕도 근심도 모두 내려놓고 중도의 길을 걷듯 함월사의 겨울은 편안하다.차가운 땅을 밟고 선 나무들의 짧고도 긴 휴식, 제 각각의 향기를 품고 때를 기다리는 나무들의 눈빛이 아름답다. 침묵의 시간이 길수록 향기도 강한 법, 언젠가부터 어둠을 견디는 흐느낌과도 같은 고요가 좋다. 차고 썰렁한 법당과 달리 요사채는 훈기가 돌고 안온하다.올해 아흔을 맞는다는 우룡 스님은 향기 강한 나무처럼 정정하시다. 어쩌면 반가부좌의 자세가 저토록 편안할 수 있을까? 스님의 살아오신 긴 세월이 보인다. 뿌리 깊은 나무를 연상케 하면서도 미소는 아이처럼 천진스럽다. 힘이 담긴 목소리보다 깊은 연륜에서 흘러나오는 웃음이 더 큰 말씀으로 다가온다.앉기가 무섭게 음식 앞에서 감사 기도를 하느냐고 물으신다. 어린아이가 된 기분이다. 내심 깊고 감동적인 말씀을 기대했었는데 스님은 자꾸 그 말씀만 되풀이 하신다. 쪼그리고 앉은 다리는 눈치도 없이 저려오는데 스님은 몇 번이나 하신 말씀을 되풀이 하신다.“가족 간에 함부로 던진 말 한 마디가 원수 원결(怨結)을 낳게 돼요. 그 원결은 쉽게 녹아내리지 않아요. 깊은 참회나 수행, 크나큰 선업을 닦아야 맺힌 원한을 풀 수가 있어요. 허물없는 사이라고 함부로 말을 해서는 안 돼요. 명심하세요.”스님은 가족 간이나 일상에서 놓치기 쉬운 마음자리를 돌아보게 하신다. 말씀은 쉽고 평범하면서도 명료하다. 그 실천의 길은 평생이 걸릴 수도 있지만. 듣고 들을수록 말씀들이 살아서 콕콕 나를 찌른다. 풀풀 바람처럼 날리던 눈 속을 걷다 폭설에 갇힌 기분이다.삶의 기본이 되어야 할 언행을 뒤늦은 나이에 귀 기울인다는 게 부끄럽다. 나는 지금까지 무엇을 위해 살아왔던가? 현학적인 지식을 좇으며 지적 호기심을 채우거나 끝없이 물질의 노예가 되어 달려왔던 오랜 시간들, 그 만족감은 오래 가지 못하고 늘 뒤가 허전했다. 늦었지만 내게 필요한 공부가 무엇인지 깨닫게 된 것은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절을 나서며 받아든 우룡 스님의 법어집 두 권, 집에 돌아오자마자 나는 삼배를 한 후 책장을 펼쳤다. 커다란 활자들이 주는 가벼움, 그 고정관념을 없애고 싶었다. 아상의 불길을 끄는데 도움이 될 활자들은 곧 나의 부처님이다. 책장을 넘길수록 마음은 가벼워지고 지혜의 눈이 밝아오는 것 같다.조낭희 수필가입문단계에 서 있는 내게 불교와 선(禪)은 한없이 깊고도 어렵다. 잡힐 듯 하면서도 까마득히 멀다. 머리로 아는 것도 아니고 맹목적인 기도가 지름길도 아닌 것 같다. 아직은 좌충우돌 안간힘을 쓰며 조심스럽게 걸음을 내디딜 뿐이다. 지혜와 덕을 갖춘 불성이 내 안에도 있다는 그 말씀 하나만 믿고서.사람들이 함월사를 좋아하는 건 향기 강한 수종의 나무들 때문이 아니다. 지혜가 담긴 부처님 말씀을 우룡 스님은 머리가 아닌 몸과 마음으로 행해야 할 과제임을 일러주신다. 힘들다고 느낄 때마다 또 다른 길이 보인다. 아주 작은 오솔길도 언젠가는 큰길로 통한다는 것을 안다.타인의 불성은 참 잘 보이는데 왜 내 안의 불성은 보이지 않는 걸까? 끝없이 솟아오르는 의문을 안고 오늘도 식탁 앞에서 공양의 기도를 드린다. 작지만 신심을 바로 세우는 길, 그것이 첫걸음이다.

2020-01-06

“나는 어디서 무엇을 위해 살았는가 -‘월든’이 묻다”

신희선 숙명여대 기초교양대학 교수·정치학 박사“나의 하루하루는 24시간으로 쪼개져 시계의 재깍재깍하는 소리에 먹혀들어가는 그런 하루가 아니었다.”‘월든’에서 헨리 데이빗 소로우는 호화로운 가구, 맛있는 요리, 고급 주택 등을 살 돈을 마련하는 데 자신의 시간을 허비하고 싶지 않았다고 말한다. 월든 호숫가 근처에 작은 오두막을 짓고 살았던 소로우는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얽매임이 없는 ‘자유’라며, 자신이 숲으로 들어간 이유도 죽음을 맞이했을 때 자신이 헛된 삶을 살았구나 깨닫지 않도록 삶의 본질을 찾기 위해서라고 하였다. 소로우가 ‘월든’에서 던진 질문을 통해 2019년을 지나 온 시간들을 돌아본다. “나는 어디서 무엇을 위해 살았는가?”소로우는 ‘지금 여기’의 중요성을 말한다. 시간에 쫓기듯이 분주하게 사는 삶은 결국 우리의 생을 낭비하는 것임을 지적한다. 우리는 더 많은 것을 가지려고만 하고 더 적은 것으로 만족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고, 병들 때를 대비해 돈을 벌려고 애쓴 나머지 무리한 결과로 결국 병이 들고 마는 우리의 현실을 꼬집는다. 그는 ‘운명을 개선해보려는 노력은 보류한 채 가난하게 타고난 자신의 신세만을 한탄하는 사람들과, 찌꺼기 같은 부를 축적하여 겉으로는 부유하지만 스스로 금과 은으로 된 족쇄를 찬 사람들’을 향해 자신이 스스로 선택한 월든에서의 삶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는 “과거와 미래를 포함하여 그 어느 시대도 ‘지금’보다 더 거룩하지는 않다”며 깨어 있는 삶을 강조한다. 인간의 영혼과 오늘이라는 시점이 우리의 삶에서 가장 소중한 것임을 보여준다.소로우는 ‘독서’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말한다. 그는 “거리의 천박함을 넘어서서 영원한 암시와 자극을 주는” 고전 독서의 가치를 강조한다. 심심풀이로 하는 가벼운 읽을거리를 찾는 독서는 참다운 독서가 아니라고 하며, “발돋움하고 서듯이 하는 독서, 우리가 가장 또렷또렷하게 깨어 있는 시간들을 바치는 독서”가 진정한 의미의 독서라고 하였다. 독서는 그가 머물었던 콩코드 지역의 인물들보다 더 현명한 사람들과 사귀며 그들의 예지에 귀를 기울이는 일이자, 고대의 위인들만큼 훌륭해지려면 그들이 얼마나 훌륭했던가를 먼저 알아야 한다는 점에서 가치 있는 일이라고 하였다. 생계를 유지하는데 바빠 책읽기를 등한시해 왔던 성인들을 위해 마을 하나하나가 대학이 되어야 한다며, 배움은 평생의 과정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임을 강조하였다.소로우는 “당신 내부에 있는 신대륙과 신세계를 발견하는 콜럼버스가 되라”고 역설하였다. 자기 자신의 내면을 탐험하고 자신만의 고유한 길을 만들어가라고 하였다. 그는 자기 자신의 삶을 표현하기를 “선실에 편히 묵으면서 손님으로 항해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며, 인생의 돛대 앞에, 갑판 위에 있기를 원한다”고 하였다. 이렇듯 2019년에 다시 읽은 소로우의 ‘월든’은 여전히 빛나는 구절들로 마음을 사로잡는다. 1845년 소로우가 던진 질문은 2020년을 맞은 우리에게 깊은 울림을 준다. “나는 어디서 무엇을 위해 살아갈 것인가?” 그 화두로 경자년(庚子年) 새해를 시작할 일이다.

2020-01-06

현금 없는 사회

현금없는 사회란 정보화 사회로의 발전 및 각종 금융 기관 업무의 전산화에 따라 지폐·동전 등 현금이 필요하지 않은 사회를 말한다.우리나라는 현재 현금 없는 사회로 진입을 앞두고 있다. 특히 1990년대 후반 IMF를 겪고 난 뒤 조세확보 차원에서 신용카드 보급을 촉진했고, 여기에 소득공제 등의 혜택까지 더해지면서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2015년 일본 경제산업성이 세계 각국의 현금 없는 결제 비율을 조사한 결과, 한국의 비현금 결제 비율은 무려 90%에 달했다. 한국은행은 지난 해 11월 잔돈 계좌적립서비스 시행을 위해 시범 유통사업자를 모집한다고 밝혔고, 올해 초부터 현금거래후에 생긴 잔돈을 계좌로 직접 적립하는 서비스를 실시할 예정이다.현금없는 사회의 도래는 모든 금융 거래가 전산화해 투명성이 높아지고, 지폐·동전을 사용하면서 일어나는 보관·휴대의 불편함들이 한 번에 해결된다. 휴대하고 다니지 않으니 강도에 의한 도난·분실 우려가 없고, 지폐·동전 제조비용이 절감된다.한은에 따르면 지난해 100원짜리 동전 2억5천만개 등 동전 6억 개를 제조하는 데 든 비용만 539억원이다. 홍수나 화재 등 자연재해로 돈이 타거나 사라지는 등의 물리적 손상에 대해 매우 안전하다는 장점이 크다. 반면에 현금 대신 사용하게 될 거래수단은 모두 기록이 남기 때문에 다른 누군가의 추적이 가능해 사생활 침해 논란이 있고, 지진이나 태풍같은 자연재해나 화재와 같은 재해로 통신망 마비 사태가 발생할 때는 결제기능이 멈춰버릴 우려가 있다.노약자나 장애인, 어린이 등 사회적 약자들의 이용하기에 불편한 것도 단점이다. 세상만사 어디에나 빛과 어둠이 공존하는 게 자연의 섭리인가 보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0-01-06

100세 건강, 김형석 교수와 송해 선생의 장수비결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신년교례회가 곳곳에서 열리고 있다. 어제도 두 곳이나 다녀왔다. 선거의 해인지라 참석자도 많고 열기도 뜨겁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건강하십시오’라는 덕담이 오가기 마련이다. 우리 모두가 건강 상식 때문인지 의료보험 덕인지 주변에 장수하는 사람이 많다. 주변 지인의 모친은 105세를 넘기고 있다. 1920년 생 김형석 교수는 올해 100세, 송해 선생은 93세이다. 단순히 연세만 많은 것이 아니라 아직도 두 분 다 열심히 뛰는 현역이다.김형석 교수님, 아직도 그는 신문 글을 쓸 뿐 아니라 전국을 누비며 특강을 하신다. 나도 매주 그의 100세 일기를 읽고 있다. 아직도 젊은이 못지 않은 의욕이 넘쳐나 부럽기까지 하다. 내가 김형석 선생을 처음 뵌 지는 50여 년이 훨씬 지났다. 고등학교 2학년 시절 우리는 학교 대강당에 모여 그의 특강을 들었다. 당시 텔레비전이 없던 시절 연세대 철학 교수 김형석 교수 강의를 직접 들은 것이다. 카랑 카랑한 목소리와 유머가 아직도 뇌리에 남아 있다. 나는 후일 그의 수필집 여러 권을 구해 밤새워 읽은 적이 있다. 며칠 전 그가 강원도 양구에서 지난해 마지막 특강을 했다는 기사도 보았다.송해 선생의 대중적 인기는 하늘을 찌르고 있다. 일요일의 남자 송해의 ‘전국노래자랑’은 시청률이 매우 높은 프로이다. 지난해 대구의 송해 공원을 아내와 함께 찾은 적이 있다. 옥연지를 가로 지르는 다리 위 팔각정 아래 송해의 빛바랜 사진들을 보았다. 송해 공원 인근 마을이 그의 처가 곳이라는 것도 처음 알았다. 그는 불행히도 사랑하는 아들과 아내를 먼저 저 세상으로 보냈다. 인간적인 불행을 딛고 그는 아직도 유쾌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그가 갑자기 병원에 입원했다는 소식이 들린다. 그가 쾌유하여 다시 전국을 누비기를 바란다.새해 아침 이 분들의 장수 비결을 생각해 본다. 무엇보다도 두 분 다 90넘어까지 자신들이 하고 싶은 일을 즐겁게 한다는 점이다. 김형석 교수는 평생의 업인 강의를 통해, 송해 선생은 노래자랑을 통해 하시고 있다. 요즘은 건강에 관한 정보가 지나치게 넘쳐나고 있다. 한 가지 공통점은 스트레스가 건강의 적이라는 점이다. 두 분 다 자신의 일을 통해 스트레스를 날려 보내고 있다. 김형석 선생의 글에는 항상 위트와 유머가 넘쳐난다. 송해 선생의 말에는 아직도 유머가 곳곳에 배어 있다.두 분 다 고향을 떠난 실향민이다. 김형석은 평양 대동 출신이고 송해는 해주 출신이다. 실향민으로 이 땅에 정착키 위해 산전수전 다 겪은 분이다. 두 분 다 고난 속에서도 도전적인 삶을 살아오신 분이다. 그것 역시 장수의 또 다른 비결인지 모른다.내 친구 중에는 나이를 지나치게 의식하고 체면을 중시여기는 분이 많다. 어딜 가나 노인 행세를 하려고 한다. 내가 존경하는 K선생은 94세인데도 아직도 학술 강연에 열심히 참여한다. 지난해 주변 만류를 뿌리치고 연해주 항일 탐방까지 다녀왔다. 어느 분이 더 장수할 것인가. 독자 여러분의 건강을 기원드린다.

2020-01-05

당신의 첫 기억

김현욱 시인어머니에게 듣기론 내가 아주 어렸을 때, 두호동, 오천읍에서 살았다고 한다. 기억은 없다. 내 최초의 기억은 포항시 청하면 서정1리에서 시작된다. 서정1리 마을회관, 약방과 슈퍼를 겸했던 옆집, 포도, 돼지 농장, 안심저수지가 떠오른다. 그러니까, 내 유년의 고향은 서정리다. 그곳에서부터 내 첫 기억이 메모리에 저장되었다. 가을이면 지천에 갈대와 코스모스가 하늘거리던 아름다운 곳이었다. 그당(돌무더기가 많은 하천)과 안심저수지에서 자주 놀았고, 포도와 참외, 수박 서리를 하다가 붙잡혀 혼나기도 했다. 친구들과 북한으로 가겠다고(그때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다) 가방에 간식을 챙겨 산을 넘다 하늘에 헬리콥터가 지나가자 여기가 북한이구나, 화들짝 놀랐던 장면도 떠오른다. 마당이 넓은 집에 살았는데 아버지랑 평상에 마주 앉아 구구단을 잘 외운다고 칭찬을 받았던 일, 여동생이 변소에 빠졌던 일, 숨바꼭질하다가 넘어져 눈가가 크게 찢어진 일, 일요일 아침마다 마을회관에 청소하러 나가야하는데 그게 싫어 숨었던 일, 어머니를 기쁘게 하려고 포대기에 갈비(소나무 이파리)를 가득 담아 메고 내려왔던 일 등이 떠오른다.주저리주저리 유년의 기억을 끄집어내는 것은 내 인생의 첫 기억이 궁금해서다. 뇌 과학자들은 대부분의 첫 기억이 재구성된다고 한다. 기억의 속성이 그러하듯 끊임없이 편집, 재구성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강렬했던 내 인생의 첫 기억은 메모리카드에 쓰기 금지를 해놓은 것처럼 잘 보존되었다. 다섯 살인가 여섯 살 무렵이었을 것이다. 친구들과 안심저수지에서 실컷 놀다 저녁 어스름, 갈대밭 사잇길을 돌아 집으로 오는데, 바람에 한들거리는 갈대와 코스모스와 밥 짓는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우리 마을이 참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면서, ‘나’와 ‘세상’이 둘이 아니라 하나라는 합일감, 자연의 충만함을 느꼈다. ‘나’라는 경계가 지워지고 사라지면서 이상한 기쁨과 행복을 느꼈다. 그 기억은 오랫동안 내 삶에 환기되었다.작년부터 아나빠나사띠(들숨날숨에 대한 마음 챙김) 명상을 꾸준히 하면서, ‘나’가 사라졌던 내 인생의 첫 기억을 자주 마주친다. 여태 살면서 나는 ‘나’가 너무 진해지고 강해지고 딱딱해졌음을 느낀다. 콘크리트 같은 아집과 망상에 갇혀 허우적거리는 내가 참 불쌍하고 안쓰럽다. 콘크리트를 깨부수려면 강력한 압쇄기가 필요하다. 명상이 그것이다. 나는 명상이 아집과 망상이라는 콘크리트를 깨부수는 압쇄기라고 생각한다. 깨부수고 나오고 싶다. 그때의 어린 나에게로. 자연과의 충만한 합일로.전현수 박사는 ‘생각 사용 설명서’에서 “첫 기억은 그 사람 인생의 중요한 일면을 보여준다. (중략) 일반 사람의 경우에도 첫 기억은 어떤 사람이든 그 사람의 삶의 중요한 면을 보여주는 경우가 많다. 첫 기억도 내가 진정으로 어떤 사람이라는 것을 아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첫 기억과 지금의 내 모습과의 연관성을 찾아보는 것도 나를 있는 그대로 아는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2020년에 벽두에 묻는다. 당신의 첫 기억은 무엇인가?

2020-01-05

나눔의 신비

어느 날 스승이 제자들을 모두 불러모았습니다. 요즘 들어 제자들끼리 다투는 모습이 자주 눈에 띄었기 때문입니다. 젊은 스승은 무언가 대책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제자들에게 물었습니다.“작은 솥에 떡을 쪘다. 그런데 세 명이 먹기엔 모자라지만 천 명이 먹으면 떡이 남는다. 너희 중 그 이유를 아는 사람은 대답해보아라.”어느 제자도 대답하지 못하고 우물쭈물하고 있었습니다. 이때 밖에서 이것을 듣고 있던 늙은 스승이 들어오더니 무심히 한 마디 툭 던졌습니다. “쯧쯧…, 자기 배를 채우는 것에만 급급하면 언제나 음식이 부족한 법이지.”스승은 고개를 끄덕이며 제자들에게 말했습니다. “노 스승님 말씀을 잘 들었느냐? 세 명이 먹더라도 서로 다투면 부족하고 천 명이 먹더라도 양보하면 남는 것이 이치다.”시인 박노해는 나눔의 신비를 이렇게 노래합니다.“촛불 하나가 다른 촛불에 불을 옮겨 준다고 그 불빛이 사그라지는 건 아니다. 벌들이 꽃에 앉아 꿀을 따간다고 그 꽃이 시들어가는 건 아니다. 내 미소를 너의 입술에 옮겨준다고 내 기쁨이 줄어드는 건 아니다.빛은 나누어줄수록 더 밝아지고 꽃은 꿀을 내줄수록 결실을 맺어가고 미소는 번질수록 더 아름답다. 자신의 것을 잃지 않으면 누구에게도 나누어 줄 수 없고 자신을 나누지 않는 사람은 시간과 함께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션과 정혜영 부부는 자녀가 넷입니다. 하나만 낳아 잘 기르자 했는데, 첫 아이를 키우며 둘째도 낳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하지요. 이렇게 하나 둘 늘어나 넷이 되었습니다. 이들이 같은 마음으로 시작한 후원도, 하나 둘 늘어나 이제 800명의 아이로 퍼졌습니다. 내 식구 챙기기만 급급한 이 시대와 정반대로 살아가는 이들 모습이 빛납니다. 행복은 우리가 자신을 남에게 주느라 여념 없는 순간에 소리없이 찾아오기 마련입니다./인문고전독서포럼 대표

2020-01-05

유승민·안철수, ‘비워야’ 보인다

안재휘 논설위원지난 1987년 제13대 대통령 선거사는 유망정치인들의 사욕이 민심을 어떻게 난도질하는지를 드러내는 아픈 교훈을 남긴다. 외유 생활을 끝내고 돌아온 김대중(DJ)과 군사독재정권 치하 국내에서 반독재 투쟁을 지속해온 김영삼(YS) 두 사람의 욕심 충돌은 국민의 민주화 열망을 구렁텅이에 빠트렸었다. 당권·대권을 다 거머쥐려는 YS와 당권을 확보하려는 DJ는 결국 민의를 배신하고 대선에 모두 출마해 군사정권 연장을 헌납하는 참담한 결과를 빚고 말았다. 그날의 역사에는 ‘죽 쒀서 개 주었다’는 비탄 딱지가 따라붙어 있다.4·15 총선을 저만큼 앞두고 정치권에 폭풍주의보가 떴다. 여야 정당들은 일찌감치 총선체제로 전환되고 있고, 100일 전쟁을 채비하는 이합집산이 분주히 모색되고 있다. 유승민을 비롯한 바른미래당 위원들은 탈당을 결행하여 ‘새로운보수당’ 창당에 몸을 실었다. 때마침 유럽을 거쳐 미국에 가 있던 안철수가 정치 복귀를 선언해 새로운 변수로 떠올랐다. 정권의 무능과 야권의 무기력이 또다시 정치권 한복판에 ‘중도(中道)’ 화두를 불러세우는 중이다.20대 총선의 결과는 분명히 여소야대(與小野大)였다. 그러나 임기 말로 다가오면서 국회 구성은 ‘4+1’ 등장으로 여대야소(與大野小)로 뒤집혔다. 국민이 만들어준 세력 판도를 정략에 빠진 정치꾼들이 임의로 뒤집어버린 셈이다. 이는 분명히 민주주의를 후퇴시킨 뒷거래다. 선거에서 내린 국민의 명령을 인위적으로 조작해 바꾼 것이나 다름이 없다. 무엇보다도 소중한 ‘중도’ 민심의 씨앗을 말살한 횡포는 용서 못 할 중대범죄다.설 전에 돌아올 예정인 안철수의 행보는 아직 오리무중이다. 손학규의 ‘뻐꾸기 알’ 놀음에 만신창이가 된 유승민은 ‘새로운보수당’이라는 새 간판을 장만했다. 2년 전 유승민과 안철수가 야심 차게 추구했던 ‘개혁적 보수, 합리적 진보’라는 중도실험은 일단 실패했다. 유승민이 굳이 당명에다가 ‘보수’라는 개념을 넣은 것도 어정쩡한 ‘중도’의 위험성에 대한 고통스러운 경험의 산물로 읽힌다.문제는 안철수가 ‘보수’라는 단어를 극도로 싫어했었다는 증언이다. 안철수에게 변화가 있지 않다면, 선택지가 그만큼 줄어들 수밖에 없을 것이다. 여전히 진보 민심을 등에 업고 중도영역을 개척하는 것이 정치행로 이정표라면, 안철수의 귀국은 보수정치에 또 다른 위협이 될 따름이다. 더욱 강력한 4+1 또는 5+1이 보수정치의 말살을 넘어 민주주의를 통째로 위협할 개연성마저 있다.힘을 키우기 위해서는, 누군가 들어올 자리를 먼저 비워주는 게 지혜다. 유승민은 비워놓고 있는가. 안철수는 얼마나 비우고 돌아오나. 우리 정치사가 명료하게 알려주는 교훈은 뚜렷하다. 비우는 자에게 길이 보인다. YS와 DJ처럼 또다시 스스로를 비우지 못해 역사에 죄를 짓는 길을 갈 것인가. 참다운 ‘중도’ 민심을 개척해 양극화의 지옥에서 좀처럼 헤어나지 못하는 이 나라 정치를 선진화해줄 시대의 참 리더는 과연 누구인가.

2020-01-05

경세제민

유전무죄(有錢無罪) 무전유죄(無錢有罪)라는 말이 아직은 통용되는 시대에 살고 있다. 돈이면 무엇이든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이 우리를 여전히 지배한다. 자식에게 “행복은 성적순이 아냐”고 가르치고 있지만 물질적 가치가 주는 행복의 무게를 부정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KBS가 행복을 화두로 신년 여론조사를 했다. 국민에게 자신의 삶에 대해 만족하느냐는 물음에 전체의 46%가 만족으로 답했다. 이를 계층별로 구분해 다시 질문했다. 자신을 상위 80% 이상이라 생각하는 쪽은 무려 82.4%가 만족으로 답했다. 반면에 자신을 소득하위 20% 이하라 생각하는 사람은 19.5%만 만족으로 답했다. 소득계층별로 느끼는 삶의 만족도가 극명하게 갈라졌다. 물질만이 행복이 아니라고 말하기에 궁색한 결과다. 여론 조사 결과는 우리 국민이 느끼는 행복은 소득 순이다. 소득이 높으면 반드시는 아니지만 행복해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말해 주는 결과다. 경세제민(經世濟民)은 세상을 다스려 백성을 고난에서 구한다는 뜻이다. 경제(經濟)라는 말이 여기서 유래했다. 세상을 다스린다는 것은 지금의 정치와 같은 의미다. 위정자가 가장 근본으로 여겨야 할 부분은 백성을 배부르게 잘 살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경제가 정치의 근본이 돼야 한다는 것을 말한다.올 한해 한국의 경제전망은 여전히 밝지가 않다. 미중갈등과 한일갈등 그리고 불안전한 한반도 비핵화 문제 등 우리의 경제를 둘러싼 환경이 녹록지가 않다. 한국의 석학 43인이 2020년 한국경제의 키워드를 오리무중(五里霧中) 속 고군분투(孤軍奮鬪)라 했다. 한치 앞을 알 수 없는 위기속 외로운 싸움이란 뜻이다. 경세제민의 지혜가 더 절실해지는 한해다./우정구(논설위원)

2020-01-05

2019년 포항의 분야별 성적표

2020년 새해를 맞이하면서 궁금한 것은 지난해 포항의 각 분야별 활동상황이 어떠했을까 하는 것이었다. 성과에 대한 분석이 있어야 올해의 흐름도 짚어 볼 수 있기에 나름의 기준으로 성적을 매겨봤다. 어디까지나 필자의 판단인바 사전 양해를 구하고자 한다. 포항은 철강업을 중심으로 하고 있기에 예나 앞으로도 국내 산업과의 연관 관계를 넘어 글로벌경제와 맥을 같이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우선 나라 밖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다.2019년은 과거 그 어느 때보다 각 국가 지역 할 것 없이 국익 우선주의, 지역 이기주의가 극명하게 표출되었던 한 해였다. 그중의 백미는 미국과 중국. 양국 간 무역전쟁은 단순하게 두 나라 사이에 경제적 이해관계로 인한 충돌을 넘어섰다. 새로운 세계정치 질서가 양강 체제(G2)로 재편되는 패권쟁탈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불거진 국지전이었다. 그렇기에 양국 간 분쟁은 언제든지 어떤 분야에서든 전면전으로 확대될 여지를 남기고 있다. 당연히 그 여파는 직간접적으로 우리나라 정치, 경제, 사회 모든 분야에 걸쳐 영향을 미쳤다. 일본도 마찬가지다. 불과 1년 뒤인 2020년 도쿄올림픽을 앞둔 미묘한 시점임에도 불구하고 한국에 대해 수출규제조치라는 선택을 했다. 이는 그동안 북미, 남북정상회담 등 남북관계개선에 자국이 소외되었던 것에 대한 불편함, 양국 간 위안부, 전범 기업처리 문제와 더불어 실패한 아베노믹스 등 자국 내 정치기반의 흔들림 등 복합적인 문제 해결을 위한 정치적 선택이었을 것이다. 그 후유증으로 한국과 일본 양국은 극한 갈등 양상으로 보였으나 연말부터 다소나마 해결점을 찾아가는 모양새다.아직 결과를 예단키는 어렵지만 일본의 이번 조치는 적어도 우리경제에 효과가 큰 백신을 주사해 준 것이 아닌가 여겨진다. 그동안 우리는 산업계 전반에 나타나고 있던 ‘불편한 진실’을 사실상 외면해왔다. 그저 외형적인 매출액 부풀리기에만 주목하여 소재에서 부품, 최종 완성재에 이르는 공급사슬(supply chain) 전반에 걸친 부가가치율은 국제분업 진전이라는 말로 무시해왔던 것이다. 과도한 일본에 대한 소재부품 의존도에 무뎌지던 감각은 재벌, 기업체 사장, 정책당국자를 가리지 않았다. 일본의 이번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조치는 그런 면에서 ‘극약처방’이었다. 우리 모두 정신을 차리도록 ‘현실’을 깨닫게 해주었다는 점에서 그 경제적 효과는 매우 컸다고 평가한다. 만약 세월이 더욱 흘러 일본이라는 깊은 수렁에서 도저히 빠져나올 수 없는 시점에 일본이 같은 한 수를 두었다면 그 결과는 상상조차 하기 힘들다. 아마도 경제 우선이라는 말로 일본에 모든 것을 내주었을 수도 있다. 그런 면에서 일본은 이번 한 수를 너무 쉽게 쓴 셈이고, 우리는 그나마 다행이었던 순간이다. 유로 지역도 미국을 따라 수입제한조치 등 보호무역주의를 강화하고 있고, 영국은 엄청난 눈치작전 끝에 결국은 예정대로 브렉시트를 위한 절차를 착실히 밟고 있다. 이처럼 2019년 세계는 ‘국익’ 우선주의로 인한 거친 파도로 인해 국내경제도 그 영향을 크게 받았다.포항경제도 그 영향권을 벗어날 수 없었다. 각국의 이익 우선 다툼에서 직간접적인 타격을 많이 입었다. 2019년 포항의 철강산업은 적어도 상반기까지는 외부요인에 의한 충격으로 감소하였던 수출물량을 철강재 시황이 보완하는 모습이었지만 하반기까지 이어진 원자재가격 상승이 발목을 잡았다. 특히, 3/4분기부터는 글로벌 경기 하강으로 수출마저 주춤, 재고가 엄청 쌓였다. 이 문제가 포항 경제를 크게 억눌렸다 할 수 있다.즉각적인 효과로 나타난 건 아니지만 포항경제의 잠재력을 확인하고 앞으로의 도약을 위한 투자는 나쁘지 않았다. 영일만항 인입 철도가 완공되었고, 국제크루즈여객부두와 여객터미널 완공을 앞두고 포항-블라디보스토크 간 국제 크루즈 시범 운항, 도심철길 숲 조성과 도심 재생 사업 등은 향 후 다양한 먹거리 창출을 유도할 수 있는 기반으로 평가받을만하다.포항지역 경제 주축인 철강산업과 미래 먹거리를 위한 투자 등을 종합한 실물경제에 있어 지난해 성적표를 매긴다면 ‘B+’ 정도는 주고 싶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선방하였다는 격려성 학점이다. 물론 포항경제가 지닌 약점과 어려움은 성적표에 매기지 않았다. 일례로 여전히 산업인력 고령화에 따른 고임금 급여자를 많이 보유하고 있는 가운데 기초임금상승 등으로 기업 고정비용 부담이 가중되고 있는 내부요인은 어쩔 수 없기 때문이다.지역 금융은 ‘B’ 정도에 그쳤다고 본다. 포항시 소재 제1, 2금융권을 합한 총수신잔액은 2018년 말 15조9천352억 원에서 2019년 10월 말 15조8천379억 원으로 973억 원 정도 줄었다. 같은 기준 총여신잔액은 지역 내 아파트경기 부진, 공장 등 투자위축 등으로 16조7천59억 원에서 15조3천566억 원으로 1조3천493억 원이 줄어들었다. 금융권의 통합 예대율(대출/예금x100)은 같은 기간 99.4에서 91.9로 상당 폭 감소하였는데 이는 새마을금고, 신협 등 제2금융권 예대율이 같은 기간 70.8에서 62.3으로 부진했던 것이 이유다. 제1금융권인 예금은행도 감소하기는 하였으나 2019년 10월 말 현재 133.9를 기록하였다. 예금은행은 지역예금보다 33.9%가 넘는 자금을 다른 지역에서 끌어와 지역에 대출한 셈이다. 문제는 높은 금리로 예금은 받아들이면서도 지역 서민이나 예금은행을 이용하지 못하는 영세소상공인들이 지역 경기 부진의 영향으로 대출자금 수요가 많지 않아 제2금융권은 금융중개실적을 높이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다른 지역에서 자금을 운용하기도 쉽지 않아 이들 제2금융권이 지역 사업에 활발하게 참여, 투자할 방안을 앞으로 모두 고민해 나가야만 한다.지역 정치부문은 ‘C+’ 정도로 판단한다. 지난해 연초부터 20만 명이 넘는 지역민들이 포항지진특별법 제정에 대한 국민청원으로 바랐던 갈증은 거의 자포자기 시점인 연말에야 겨우 통과되었다. 그래서 시행령과 행정규칙을 마련하고 또 예산 확보까지는 적어도 6개월 늦으면 거의 1년 가까이 시간적 지연손실을 입을 가능성이 커졌다. 게다가 숙원사업인 영일만대교 건설사업에 대한 예타 면제 탈락과 생활폐기물에너지화시설(SRF)을 둘러싼 오천읍 주민들에 의한 주민소환문제도 있었다. 풀뿌리 민주주의라는 관점에서는 나름의 의미 있는 정치적 사건으로 평가할 수도 있겠지만 정치적 논의와 화합으로 민의를 수렴하는 것보다는 지역 사회의 이견이 상호교류로 융화되지 못하고 거기에서 멈춘 것은 앞으로도 불씨를 안고 있다는 점에서 아쉽다.포항시의 지난해 가장 눈부신 성과 중 하나는 강소연구개발특구를 시작으로 배터리규제자유특구, 영일만관광특구 등 ‘3대 국가전략특구’ 지정으로 평가되고 있다.국악가족 뮤지컬 ‘강치전’ 포스터.최고학점을 주고 싶은 분야도 있다. 문화예술 쪽이다. ‘A+’를 줬다. 어느 지역이고 연중 문화예술 행사는 끊이지 않는다. 하지만 특정 지역이 지닌 문화역사자원을 콘텐츠화하고 이를 스토리텔링으로 엮어 하나의 뮤지컬, 연극, 테마파크 등으로 승화시킨 것은 높이 평가할 필요가 있다.이러한 콘텐츠의 개발이야말로 언제든 확대재생산이 가능한 포항지역만이 지닌 토종 종자(seed)로서 높은 점수를 매기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지역 보물인 암각화를 학술적으로 정리하고 특별전으로 역사문화유산을 재조명함으로써 포항인의 자존감을 끌어올렸다. 장기유배문화체험촌의 조성, 연오랑세오녀테마공원 등은 가점 항목이었다. 이 모든 것을 뒷받침한 행정도 같은 학점을 줘도 될 듯하다.포항의 과거, 현재, 미래는 포항인의 몫이다. 어떠한 사업이라도 최우선 순위는 포항에 소재하는 학자, 기업, 단체이기를 바란다. 특히 포항의 미래를 결정하는 사상, 철학, 인문학적인 연구일수록 유명도는 낮더라도 포항을 더 잘 아는 포항 출신 문화예술인, 포항에 자리한 대학교수, 포항에서 활동하는 전문가에게 맡길 필요가 있다. 그래야만 포항에 부족한 전문 인력이 향후 양성될 수 있다. 2020년부터는 지역 행정, 기업 등이 발주하는 주요 용역사업에서 포항에 대해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다른 지역 전문가가 함부로 재단하고 결론을 지은 어설픈 보고서만은 없었으면 한다. 당연히 본인도 ‘지익(地益)’ 우선주의자다./한국은행 포항본부 부국장

2020-01-05

당신의 꿈은 무엇입니까

정은숙 프리랜서연초에 빠뜨리지 않는 활동 한 가지가 있다. 지난해 바인더에 꼬박 작성한 플래너를 보며, 머물렀던 시간의 흔적을 되짚어 보는 일이다. 이를 토대로 새로운 한 해 계획을 짠다. 당시에는 상황에 함몰되어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던 부분을 이때 새롭게 발견하는 기쁨이 있다. ‘힘들고 고통스러웠지만 그 순간을 잘 이겨냈구나. 포기했으면 후회할 뻔했지?’ 이런 아찔함을 느끼기는 일도 있다. 무언가 쉽게 포기하면서 얻는 안락함보다 고비를 넘겨 쟁취한 승리의 달콤함이 수십, 수백 배 더 가치 있음을 알아간다.한때 자기계발서를 부지런히 읽으며 목표를 세운 적이 있었다. 책 한 권을 읽고 나면 반드시 한 가지를 실천하기로 마음먹었다. 그 당시 유행하던 책에서는 꿈을 이루는 공식을 와닿게 설명했다. R(꿈의 현실화)=V(생생한 vivid) D(꿈꾸기·dream), 즉 생생하게 꿈을 꾸면 현실로 이루어진다는 의미였다. 부정적인 생각에 빠져들지 않고 이루고 싶은 바를 생생하게 실체를 보듯 꿈꾸라는 뜻이다. 실천하려 애썼지만 생각보다 어려웠다. 무의식 속에 있는 부정적 생각을 없애는 방법으로 내 소망을 가족 앞에서 말로 선포하기로 했다. 10년도 훨씬 전의 일이다.“엄마가 2009년 12월에 새 자동차를 살 건데 차종은 어떤 게 좋을까?” 모두 피식 웃음을 터뜨리면서 비아냥거렸다. “엄마, 이번에는 대체 무슨 책을 읽은 거야?” “그때쯤 YF 쏘나타가 나온다고 하던데.” 가족들이 농담처럼 말했다. 이런 반응은 너무도 당연했는데 당시 내게는 돈도 계획도 그렇다고 희망이 있었던 상황이 결코 아니었기 때문이다. 로또를 맞지 않고서 3천만 원이 넘는 새 차를 장만하기란 꿈도 꿀 수 없음을 가족만 아니라 나 자신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일단 선포하고 행동으로 옮겼다.아직 정식 배포도 안 된 신차 카탈로그를 어렵게 구해 주방 잘 보이는 곳에 붙여 놓고 매일 마음속에 새기려고 애썼다. 의심이 스며들 때마다 스스로를 타일렀다. “확신을 가져라. 의심은 금물이다. 주위 사람들이 뭐라고 하든, 당신의 내부의 부정적 자아가 어떤 소리를 하든 상관하지 마라. 오직 믿음에 믿음만 더하라.”결론을 말하자면 가족에게 선포한 예정일보다 한 달 앞당겨 차를 탈 수 있었다. 신기했다. 부정적인 생각을 차단하고 긍정의 소리를 들려주는 단순한 행위가 힘이 있다는 걸 경험해 보았다. 자신이 생겼다.이 일을 계기로 작은 꿈을 하나씩 이뤄가는 성취감이 벽돌처럼 쌓이기 시작했다. 생각의 힘이 얼마나 놀라운지, 또 얼마나 강렬한지 경험을 통해서 깨닫고 용기를 더해 다른 시도를 할 수 있었다. 왜 해야 하는지 이유를 정확히 알면 행동이 쉬워진다. 한 가지 목표를 세우고 이를 실천해 이루어 보는 경험을 해 보는 것이다. 가끔 생각하고 있는 사람이 전화를 걸어오거나, 내 앞에 나타나는 경험을 할 때가 있다. 보이진 않지만, 에너지 파장으로 전해지는 힘일 것이다.말이 미치는 영향을 실험한 적이 있다. 프로그램을 보다가 신기해서 직접 해 보았는데. ‘사랑해’라고 말한 밥은 하얀색 곰팡이가, ‘짜증 나’라고 말한 밥은 검고 고약한 냄새까지 풍기는 곰팡이로 변하는 것을 경험했다.한 해를 돌아보며 내가 맺은 긍정의 열매와 부정의 열매를 돌아보았다. 열매를 보면 알 수 있다. 내가 생각하고 상상하는 것은 실상으로 나타나게 마련이다. 좋은 말은 긍정적 상황을 만들어 가는 씨앗이다. 좋은 말, 좋은 생각으로 시작하는 기운은 꿈을 이루는 초석이다.무심코 던지는 말 한마디, 생각 한 자락이 나의 몸에 기록된다는 것을 기억하고, 예쁘고 먹음직스러운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힘쓰고 싶다. 2020년을 맞으면서 “내가 할 수 있을까?”“난 이렇게 못난 모습일까?” 의기소침했던 마음, 아쉬웠던 마음을 “난 괜찮은 사람이다“ “나는 꿈을 이룬다”라는 긍정의 소리로 바꾸어 보자. 실험 삼아 조금 큰 도전일 수도 있는 꿈 하나를 선택하고 즐겁게 상상해 보면 어떨까? 작은 점 하나를 찍는 것으로 무엇이든 시작하는 법이니까. 2020년 우리 모두 긍정의 꿈을 꾸는 한 해이기를 소망한다.

2020-01-05

한국 최고 문화관광·친환경 에너지 전환 도시로 도약

엄태항봉화군수요즘 대내외 어려운 상황 속에서 봉화의 군정은 여러 분야에서 많은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먼저 지역을 살리는 첫걸음, 봉화퍼스트가 지역의 브랜드도 자리매김했다. 불금축제, 지역상품권 발행, 관내 물품 우선 구매 등 다양한 모습으로 전개되며 지역경제 활성화에 큰 축을 담당하고 있고, 인근 시군에서 벤치마킹하는 등 어려운 지역경제를 살리는 전국 모범사례로 각광받고 있다.또, 전국 최고 관광도시 기반 확충에는 세계 최장 산악현수교인 청량산 모험의 다리 설치, 루지체험장 조성, 베트남 타운조성 등 문화관광 개발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지난해 은어·송이 축제는 스윙교 퍼포먼스, 맥주페스티벌 등 밤낮 없이 펼쳐진 볼거리와 즐길거리를 통해 총 65만 여명의 외지인이 방문해 400억원의 경제 파급효과를 거두었다.미래형 도시 디자인을 위해서는 봉화군 도시재생지원센터의 개소로 원도심 부활의 전기를 마련한 가운데, 봉화읍 도시재생사업과 경관타워 조성 등이 사전 준비를 마치고 본격 추진을 앞두고 있다.이러한 봉화군 노력의 결실은 각종 평가에서 값진 성과를 이루었다. 에너지 전환포럼 에너지 전환상, 전국 기초단체장 매니페스토 경진대회 우수상, 행정안전부 지방재정평가 우수상, 대한민국 축제 콘텐츠 대상, 봉화 한약우 올해의 브랜드 대상 등 다수의 수상으로 우리 군의 위상을 대내외에 알릴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이번 봉화군이 중점 추진하는 6대 발전전략은 △녹색에너지, 에너지 전환도시 기틀 마련 △소비가 살아나고 일자리가 늘어나는 도약하는 지역경제 △꿈과 경쟁력이 있는 부자농촌 △희망주는 나눔복지 △전국 제일의 문화관광도시 도약 △골고루 잘사는 균형 있는 미래도시 봉화 등을 역점으로 추진한다.그 중에서 봉화군에서 중점적으로 추진하는 두 가지 전략을 살펴보면 첫째, 친환경 에너지 전환도시로 그 첫발인 분양형 태양광 사업의 추진 경험과 함께, 군민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협동조합형 태양광사업, 1+1 소득이 창출되는 영농복합형 태양광사업 그리고 계획입지형 태양광 사업 등 녹색에너지 역점 사업이 가시적 성과를 보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다. 아울러 수소 및 풍력발전, 산림바이오매스 등 다양한 신재생에너지 사업 발굴에도 적극 나서 봉화를 전국 최고의 친환경 에너지 전환 도시로 만들어 나간다는 방침이다.둘째, 봉화군의 문화관광 산업의 획기적인 한해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봉화관광의 새로운 역사가 될 청량산 모험의 다리 조성에 박차를 가하고 루지체험장과 MTB 및 테마 트레킹 로드 조성에도 속도를 내어 청량산을 전국 최고의 관광명소로 만들어 나간다는 계획이다. 지역의 랜드 마크가 될 내성천 경관타워 조성사업은 내년도 완공을 목표로 추진에 속도를 내고, 수목원 주변 관광기반시설 조성을 통해 지금까지 지체되어 왔던 수목원 주변개발 사업에도 탄력을 붙여 나간다.베트남 타운 조성사업은 뜨선시와 우호관계를 유지하며 한-베 교류사업의 선도 사례가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다. 문화재수리재료센터 건립은 문화재청과 지속 협의하여 원활히 추진하며, 아울러 축제관광재단 설립 등 축제 활성화를 위한 제도적 장치가 마련된 만큼 기반시설 확충과 알찬 프로그램 도입으로 봉화군 은어·송이 양대 축제의 위상을 높여 나간다.골고루 잘사는 균형 있는 미래도시 봉화 건설을 위해서도 적극 나선다. 재생에너지와 연계한 테마 전원주택 단지를 관내 고르게 조성하며 미래형 도시 디자인을 위한 봉화 도시재생사업을 본격 추진하고, 일반농산어촌개발 사업, 내성지구 개발사업, 봉화복합힐링파크 조성 등 원도심 활력사업에 적극 힘써 나가고, 명호 복합문화센터, 내성리 및 분천리 주차장 조성, 공공임대주택, 내성천 생태놀이터 조성 등 생활밀착형 인프라 확충에도 노력한다. 또한 국민체육센터 완공으로 군민들의 건강증진과 여가선용의 기회를 제공할 계획이다.또 도시가스 추가 보급으로 연료비 혜택을 확대하고, 봉화댐을 조기 건설하여 안정적인 용수 공급과 재해예방에 적극 대비한다. 국지도 88호선과 지방도915·918호선이 제5차 국토종합계획, 경북도 도로정비계획에 꼭 반영되어 조기 추진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한다는 각오다.2020년은 봉화의 새로운 미래와 가치를 향해 힘차게 도약하는 한해가 될 것이다. 모든 군민이 함께하는 아름다운 동행은 힘이 되고 기적이 되는 만큼 보다 나은 봉화의 내일을 위해 3만 3천여 군민과 함께 함께 만들어가겠다.

2020-01-05

다수의 독재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다수의 독재’가 우리 국회를 점령했다는 탄식이 터져나오고 있다. ‘다수의 독재’란 말은 지난 1993년 미국 대통령으로 선출된 빌 클린턴이 법무부의 시민권담당자로 지명했다가 보수진영의 강력한 반발에 밀려 지명철회했던 흑인 여성법학자인 라니 귀니에르가 강조했던 개념이다. 급진적 진보주의자로 자처한 귀니에르는 “다수에 의한 통치가 실제로는 공정하지도 않으며, 결코 민주적이지 않을 뿐 더러 오히려 ‘다수의 독재’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이를 타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앞서 미국 건국의 아버지인 제임스 메디슨 역시 51%가 강요하는 ‘다수의 독재’는 모두가 피를 흘리며 저항했던 왕정독재 못지 않게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요소라고 주장했다.혹자는 다수결의 원칙인 의회민주주의가 지배하는 시대에 다수의 독재란 말은 지나치다고 말한다. 의회에서 다수를 차지한 측이 자신들의 뜻대로 국회를 운영하는 것이 합당하다는 논리다. 원칙적으로 다수결의 원칙에 따르자면 그게 맞다. 하지만 대한민국 헌법 제1조는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고 돼 있다. 주권자인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의원이 소수라고 해서 결코 무시돼선 안되는 이유다. 특히 국민들의 삶을 직접적으로 규제하는 법령을 만들거나 바꿀 때는 더욱 그렇다. 더구나 과반수가 안되는 여당이 군소야당을 규합해 4+1협의체를 구성, 법안과 예산을 야당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모조리 통과시킨 행위는 나머지 100여명이 넘는 선량을 지지한 국민의 뜻을 모조리 무시하는 짓이다. 다수결 원칙의 공정성에 대한 신념이 지나쳐 ‘승자독식’의 오만으로 이어진 셈이다. 이런 상황이면 ‘다수의 독재’란 비판에 힘이 실릴 수 밖에 없다.특히 지난 연말 여야 4+1협의체가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여야 합의없이 통과시킨 것은 다수의 독재가 불러온 최대 참사라는 지적이 많다. 왜냐하면 권위주의 정권 시대에도 선거법은 총선이라는 게임의 룰을 바꾸는 일이란 점에서 합의를 통해 바꿔왔기 때문이다. 이어 여야 4+1협의체가 공수처법까지 통과시키자 자유한국당이 의원직 총사퇴를 결의한 것도 필연적인 수순이다. 야당으로서 국회 내에서 더 이상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선언이자 여당을 최대한 압박하겠다는 뜻일게다. 현실적으로 총사퇴가 이뤄질 가능성은 낮지만 합의정치는 실종되고 말았다.여야의 강대강 대치에 대해 경북의 한 재선의원은 “여당은 야당을 적폐청산 대상으로 볼 뿐 대화나 타협의 대상으로 보지 않는 것 같다”고 토로했다. 젊고 유능한 스타급 정치인으로 평가받던 더불어민주당 비례대표 이철희 의원은 최근 “국회의원을 한 번 더 한다고 해서 정치를 바꿔놓을 자신이 없다”며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그러면서 그는 386세대 용퇴론을 넘어 정당개혁, 국회 개혁, 개헌 등 정치개혁을 통해 국민과 같이 가는 정치가 작동하도록 판갈이를 해야 한다고 목청을 높였다. 다수의 독재는 여야 모두에게 정치실종의 허탈감을 안겨주고 있다.

2020-01-02

쾌도난마

한해를 되돌아보거나 새로운 각오를 펼치고자 할 때 사람들은 사자성어를 인용해 자신의 뜻을 표현한다. 사자성어는 자신이 표현하고픈 내용을 비유적으로 설명할 뿐 아니라 짧은 네 글자 안에 내용이 함축적으로 담겨 있어 전달하기 좋기 때문이다. 특히 한해가 끝나는 세모 무렵이나 신년 초에 사자성어가 자주 등장한다. 대표적인 것이 교수신문이 뽑는 올해의 사자성어다. 교수신문은 벌써 18년째 우리사회 현상을 사자성어로 표현했다. 지난해는 공명지조(共命之鳥)를 선정했다. 자기만 살려면 결국 공멸하고 만다는 뜻이다. 우리사회의 갈등과 분열상을 꼬집은 말이다.지난해 우리나라 구직자가 가장 많이 추천한 사자성어는 전전반측(輾轉反側)이다. 걱정이 많아 잠을 못 이뤄 뒤척인다는 말이다. 2위는 노이무공(勞而無功)이다. 온갖 애를 썼지만 애쓴 보람이 없었다는 것이다. 올해 경북도는 녹풍다경(綠風多慶)을 사자성어로 정했다. 푸른 바람을 일으켜 좋은 일 많이 만들겠다는 도정의 각오다. 포항시는 지진극복 의지를 담은 합심진력(合心盡力)을 꼽았고 경주는 난관을 뚫고 나가겠다는 의미의 십벌지목(十伐之木)을 지정했다.신년 초를 맞아 각자가 올해 내가 바라는 소망이나 목표를 생각해 볼 때다. 내가 생각하는 소망과 부합하는 사자성어를 찾아 한해의 각오를 준비하는 것도 좋을 듯하다. 작심삼일이 될지는 모르나 한해 목표와 소망을 담았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는 자기 준비의 일이다.쾌도난마(快刀亂麻)란 헝클어진 삼을 잘 드는 칼로 단숨에 자른다는 뜻이다. 복잡한 문제를 빠르고 명쾌하게 해결할 때 쓰는 말이다. 복잡하게 얽힌 내 주변의 각종 문제가 올해는 쾌도난마처럼 잘 풀려나갔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나의 올 소망은 쾌도난마다./우정구(논설위원)

2020-01-02

쥐 이야기

경자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돼지해가 가고 쥐의 해가 돌아왔습니다.쥐하면 저에게는 썩 좋은 기억이 없습니다. 옛날에 아주 어렸을 때 학교에서 돌아오니 안방에 쥐가 한 마리 들어와 있었습니다. 아주 작은 쥐였는데, 우리네 생활에서 쥐란 크든 작든 환영을 받지 못했지요. 저는 어떻게든 이 쥐를 잡아야겠다는 마음으로 쥐를 한 구석으로 몰았습니다. 저는 이 쥐를 겁도 없이 손으로 잡으려 했습니다.‘아야!’ 하고 비명을 지르는 순간, 저는 쥐한테 넷째 손가락을 물리고 만 것이었습니다. 살갗이 찢기고 피가 났습니다. 아무리 약한 쥐라도 함부로 구석으로 몰 일은 아님을 그때 경험으로 알았습니다.또 한 번은 부모님이 쥐를 잡으려고 놓은 쥐약에 제가 애지중지 사랑하던 치와와 어미 개‘워이지’가 죽음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밤새 이 어미 개가 고통을 못 이겨 담벼락 밑을 파던 기억이 지금도 선명합니다.쥐의 해에 너무 무서운 이야기만 했나 봅니다. 안타까운 이야기는 새해에는 가급적 안 하는 게 좋은데 말입니다.제가 멀리 여행을 갔을 때입니다. 아주 더운 나라였는데 그때 한 도시에서 다른 도시로 가려면 자동차를 타고 기차역이 있는 곳까지 멀리 일곱여덟 시간을 한밤에 달려야 했습니다. 포장도 제대로 안된데다 가로등도 없는 길이어서 한밤을 가는데도 여러날이 걸릴 것같이 힘들고 어려운 여행이었습니다. 한 가닥 위안은 제가 8인승 차의 가장 앞자리에 탔기 때문에 앞으로 다가오는 풍경을 볼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자동차 전조등이 시골 길을 비추는데, 그때, 길 한쪽에서 다른 쪽으로 제법 큰 쥐 한 마리가 재빨리 건너가는 것이 보였습니다. 저는 이 쥐가 그만 차에 치일까봐 가슴이 조마조마했습니다. 다행이 쥐는 발을 재게 놀려 무사히 자동차길을 건너갔습니다.차는 계속해서 달리고 그러다가 또 쥐 한마리가 나타났습니다. 아까 보았던 쥐보다 훨씬 작은 새앙쥐였습니다. 저는 또 겁이 덜컥 났습니다. 무사히 건너가야 할 텐데, 이 새끼 쥐는 너무나 작고 발이 느린 것 같았습니다. 아하, 그래도 이 작은 쥐는 그렇게 느리지는 않았습니다. 자동차가 달려오는 큰 길을 작은 쥐는 드디어 간발의 차이로 무사히 건너갔습니다.서울에 돌아와서 두어달 전에 저는 무슨 일로 파주에 가느라 자유로를 달려야 했습니다. 자유로는 파주, 문산 가는 길이지요. 그런데 쥐가, 또, 그 자동차들 쌩쌩 달리는 아스팔트 도로를 건너는게 아닙니까.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하, 이번에도 쥐는 무사히 건너는 것이었어요. 무사함이 세 번 겹치는 행운도 세상에는 있는 것이었지요.경자년 새해에는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무사했으면,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삶은 누구나 소중한 것이니까요./방민호 서울대 국문과 교수 /삽화 = 이철진한국화가

2020-01-02

천재들의 공통적인 습관

역사상 천재로 분류하는 301명의 전기를 분석해 성공 요인을 연구한 학자가 있습니다. 스탠퍼드 대학교 심리학자 캐서린 콕스입니다. 그녀는 1450년부터 1850년까지 아이큐 측정법이 개발되기 전 위대한 인물을 분석합니다. 그들의 일상 습관을 조사한 콕스는 공통점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아침부터 저녁 늦게까지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한가롭게 명상에 빠져서 보내는 사람도 있었지요. 그러다가 마침내 그녀는 한 가지 공통점을 발견합니다.301명의 위대한 인물은 대부분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을 종이에 기록하는 습관이 있었음을 발견합니다. 그들은 ‘기록의 달인’ 즉 라이톨로지(writology)입니다. 그들이 주로 기록한 내용은 자신의 ‘생각’입니다. 이 습관은 그들의 지성을 높이고, 잠재의식을 일깨우는 역할을 했습니다. 한때 적자생존이란 농담이 유행했지요. 적는 사람만이 살아남는다는 유머였습니다.콕스와 조교들은 이들 301명 가운데 100명만 따로 뽑아 67가지로 세분화한 성격 특성을 평가했습니다. 그들의 명성은 외향성, 쾌활함이나 유머감각과는 관련이 없었습니다. 이들 모두가 학교 다닐 때 뛰어난 성적이 거둔 것도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일반인과 이들을 확실히 구분하는 지표가 있었습니다. 콕스는 이 지표들을 묶어 ‘지속적 동기부여’라고 불렀습니다.이들에게는 모두 확고한 목표, 과제를 포기하지 않는 의지력, 한번 결정한 사항은 조용히 밀고 나가는 결단력, 장애물 앞에서도 과업을 포기하지 않는 성향, 끈기, 집요함, 완강함이라고 콕스는 밝힙니다.“지능이 최상위권은 아니지만, 상위권에 속하면서 끈기가 유달리 강한 이들이, 지능이 최상위권이면서 끈기가 다소 부족한 이들보다 크게 성공할 것이다.”생각을 메모하며 가슴 속 빛나는 꿈에 끈기 있게 도전할 2020년 우리 모두에게 박수를 보냅니다./인문고전독서포럼 대표

2020-01-02

새해아침, 그 기대와 우려

서의호 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2020년 쌍20년의 해가 떠올랐다. 쌍10년, 쌍20년, 쌍30년은 결국 거의 1천년에 한번 오는 독특한 숫자이다. 숫자로 보면 큰 행운이 올 것같은 새해 아침이다.필자는 미국으로 이민온 가족들 연례 모임에 참석하기 위해 세계의 수도 워싱턴에서 쌍십년의 새해 아침을 맞았다. 그런데 연말 연시에 국내에서 들려오는 소식은 우울한 소식뿐이다. 북한이 미국과의 대립을 선언하면서 한국정부를 왕따시켰다고 한다. 공수처법이 야당의 퇴장 속에 통과되면서 정국도 소용돌이에 들어가고 기업들은 정치권의 눈치를 보면서 우왕좌왕하는 모습이다.정치안보는 끝없는 대립적 논쟁으로 차치하고라도 경제가 큰 문제이다. 2019년에는 일본의 수출규제 및 미·중 무역분쟁 등으로 국내 기업에도 정말 힘든 한해였다. 기업들의 수난의 한해이기도 했다. 사실 워싱턴에서 바라본 미국의 한국기업의 진출은 눈부시다. 현대, 기아 자동차를 필두로 삼성, LG의 미주 시장 진출은 이제 한국 제품은 더이상 싸구려 제품이 아니라 품격이 있는 제품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월마트 같은 주요 체인점의 가전제품은 한국제품의 특별 코너가 있다.한국기업들의 공장도 점점 확산되고 있다. 알라바마 헌츠빌의 LG, 몽고메리의 현대차, 조지아 웨스트포인트의 기아차, 그리고 텍사스 달라스나 사우스캐롤라이나 뉴베리의 삼성전자 등은 수많은 관련 부품업체 공장들도 많이 진출해 있다. 사실 미국 내에서 자동차 뿐만이 아니다. 가전제품이나 스마트폰 IT 제품 시장에서 한국제품의 비중은 날로 높아지고 있다. 과거 일본이나 미국제품에 밀렸던 가전제품시장에서 한국 가전제품의 약진은 실로 매우 놀라운 것이다. 이제 미국 동남부 지역을 중심으로 70년부터 봇물을 이루었던 한국의 코리언 드림은 이제 코리언 프라이드로 바뀌고 있다.그런데 그런 코리언 프라이드를 엮어나가는 현대차나 삼성전자의 국내 현실은 밝지 못하다. 현대차는 노조에 시달리고 삼성은 정부가 바뀔 때마다 각종 조사에 시달린다. 정치권의 입맛을 맞추어야 하고 또 정권이 바뀌면 그로 인해 곤욕을 치른다. 이러한 기업들의 매출의 반 이상이 해외에서 일어난다면 이들이 갈 길은 정말 암담해진다.현대차 뿐만 아니라 현대중공업은 4년 연속 임단협 연내 타결에 실패했다고 한다. 재계 1위 삼성그룹의 이재용 부회장은 2020년에도 사법처리에 대해 고심이 깊다. 제발 괴롭히지 말라라는 말도 나온다. 물론 재벌기업들의 운영방식을 무조건 옹호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들의 국제적 위상과 국가에 공헌하는 정도를 볼 때 그들에 대한 정치권의 정의적 판단과 탄력적인 정책이 아쉽게 느껴진다.현대의 국가의 힘은 면적이나 인구숫자에 상관없이 얼마나 세계로 뻗어나가는가 하는 세계적인 경제력의 힘으로 결정된다. 각국은 각국을 먹여살리는 브랜드 기업을 위해 뛰고 있다. 새해에는 한국의 프라이드인 그런 대기업들이 정치권으로부터 고통을 당하지 않고 의연히 세계경영을 할 수 있는 그런 한 해가 되길 기대해 본다.

2020-01-02

근하신년(謹賀新年)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새해 첫날 아침/ 떠오르는 해를 바라보며/ 나는 아무것도 빌지 않았다// 이 세상 이토록 장엄이고 충만인데/ 무슨 소원이 더 필요하랴// 지금 여기 내가 있는 것으로/ 완성이었다’- 졸시 ‘원단일출’# 새해 첫날입니다. 동해 바닷가에서 일출을 보았습니다. 삼백예순다섯 날이 든 선물 보따리를 뜨겁게 받아 안은 마음입니다. 그게 다 내 몫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 하루하루가 다행과 감격의 날들입니다. 개똥밭에 굴러도, 살아있다는 건 축복입니다. 저토록 찬란하게 열리는 하루를 무상으로 받는 것보다 더 큰 축복과 선물이 어디 있겠습니까. 이 벅찬 황송과 감격 앞에 모든 탐욕과 사악함과 어리석음은 부질없습니다. 오늘은 새해 첫날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우리 여생(餘生)의 첫날입니다. 해 아래 새로운 것이 없다지만 오늘의 강이 어제의 강물이 아니듯 어제와 똑 같은 오늘은 없습니다. 그래서 모든 오늘은, 전인미답의 설원처럼 설레고 떨리는 첫날입니다. 첫날에는 과거가 없습니다. 어제의 그늘이 없고, 아무것도 연연할 것이 없습니다. 첫날에는 새롭지 않은 것이 없고, 꿈과 희망 아닌 것이 없습니다. 새로운 시작 아닌 것이 없습니다. 몇 날이 더 남았는지는 몰라도 이 아침, 눈부시게 찬란한 남은 생의 첫 해가 떠오릅니다. 이 한 해가 모든 분들에게 감격과 황홀의 선물보따리기를 바랍니다.# 나무도 짐승들도 함께 맞는 새해입니다. 나무나 짐승들은 달력이 따로 필요없지만, 나는 새해라고 지난 달력을 내리고 새 달력을 걸었습니다. 직사각형 칸 속에 커다란 고딕체 숫자들이 빼곡한 달력입니다. 새 달력 속의 숫자들은 아직 사용하지 않은 배터리인 셈입니다. 하루에 하나씩 갈아 넣는 365일분 새 배터리입니다. 돈이 많거나 힘이 세다고 더 주지는 않는 딱 일 년 치인데, 중간에 본체가 파손되지 않으면 누구에게나 남지도 모자라지도 않은 수입니다. 나무와 짐승들에게 달력이 따로 필요없는 것은 그 몸이 달력이기 때문입니다. 몸속에 시계와 달력이 들어 있어서 안 보고도 시간과 계절을 아는 거지요. 사람도 원래는 그랬지만 한눈팔다 잃어버리고 부랴부랴 달력을 만들고 시계를 만든 것이지요. 나무와 짐승들이 맨몸으로 가는 길을 시계 차고 달력 보면서 허둥지둥 쫓아가는 꼴이라고 할까요.사람들은 새해를 맞는 법도 잊어버렸습니다. 해맞이다 뭐다 부산을 떨지만 원래는 그럴 필요가 없는 일이지요. 나무들과 청둥오리들이 어떻게 이 아침을 맞는지를 보면 알지요. 겨울나무와 청둥오리들이 어떻게 혹한의 밤을 견디는지는 우리도 발가벗고 하룻밤 밖에서 지내보면 알 일이고요. 각자가 남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일 년 치 배터리를 받았고, 어떻게 살아야 할 지 보고 배울 이웃이 있다는 말로 새해 덕담을 대신합니다. 배터리 하나하나의 수명은 24시간이지만 전력은 제한이 없답니다.# 보다 맑은 세상을 바랄진대/ 내가 한 줄기 샘물이 되어야 하고/ 보다 밝은 세상을 바랄진대/ 나부터 작은 등불이라도 되어야 하는 것/ 정의도 평화도 자유도 나에게서 비롯되는 것.

2020-01-02

한 남자의 후회 없는 삶

‘꿈을 종이에 쓰면 이루어진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물론 이 말은 ‘쓰기’만 하면 마법처럼 절로 꿈이 이루어진다는 의미가 아닙니다.꿈을 써 보는 행위를 통해 내 삶의 방향을 볼 수 있고, 노력을 집중할 수 있는 힘이 생긴다는 뜻이지요.당연히 꿈을 이룰 확률 또한 높아집니다.1944년 어느 비 내리는 오후, 열일곱 살 소년 존 고다드는 식탁에 앉아 노란색 종이 위에 ‘내 인생 목표’라는 제목을 쓰고 하나하나 써 내려가 모두 127가지를 적었습니다.‘탐험할 강’, ‘원시 문화 답사’, ‘등반할 산’, ‘배워야 할 것들’, ‘사진 촬영’, ‘바닷속 탐험’, ‘여행할 장소’, ‘수영해 볼 장소’, ‘해낼 일’ 등으로 그 꿈의 목록은 영역이 구분되어 있었습니다.이후 존 고다드는 꿈을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했고 47세가 되던 1972년 ‘라이프’ 지에 그의 기사가 등장합니다.제목은 ‘한 남자의 후회 없는 삶’이었지요. 첫 꿈을 기록한 지 64년이 흐른 2008년에는 127가지의 목표 중 109가지를 이루었습니다.존 고다드가 그런 목표를 세운 계기가 있습니다.할머니와 숙모가 나누던 대화 중에 “이것을 내가 젊었을 때 했더라면…”이라는 푸념을 두 사람이 남발하는 모습을 보고 나서였습니다. “나는 커서 무엇을 했더라면… 이라는 후회는 말아야지!” 소년 존 고다드는 결심했고 끝내 지켜냈습니다.존은 60세 되던 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틀에 박힌 생활을 하고 싶지 않으며 끊임없이 나 자신의 한계에 대해 도전을 하고 싶었습니다. 127개 항목을 모두 다 이루려고 고민하지 않았습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그렇게 살고 싶었다는 것입니다.”그는 목표 세우기를 망설이는 사람들에게 충고합니다. “우리는 모두 마음속에 별을 품고 있습니다. 미루지 말고 즉각 목표를 구체적으로 기록해 보세요.” /인문고전독서포럼대표

2020-01-01

9와 0사이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감우여곡절 끝에 9에서 0으로 넘어왔다. 다사다난(多事多難)이라는 말로는 부족할 정도로 세상을 놀라게 할 일이 끊이지 않았던 2019년! 누군가가 제대로 “아홉수”에 걸렸다고 했다. 민간에 전해지는 이야기들을 믿는 편은 아니지만 “아홉수”라는 말에는 고개가 끄덕여졌다. 갈라질 대로 갈라진 국론을 보면 대한민국은 아홉수에 걸린 것이 확실하다. 아홉수에서 아홉은 9를 의미한다. 그럼 9는 어떤 의미와 기운을 가졌기에 이 나라가 이다지도 어려울까? 9라는 숫자에 대한 여러 해석이 있지만 지금의 시국 상황을 가장 잘 표현하는 설명이 있어 인용한다.“숫자 9는 분열, 성장하게 하는 양수의 마지막 변화 단계를 뜻합니다. 따라서 달이 차면 기울듯이 성장의 끝에는 반드시 반대되는 기운이 올 차례이기 때문에 그 과정에서 큰 충격이 생기게 되는데 현자들은 이 시점에 세상에 큰 변국이 닥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이 나라에는 큰 변국(變局)이 닥쳤다. 혼란스러움은 말로 다 할 수 없다. 정치인들의 밥그릇 싸움에 국민들은 하루가 다르게 희망을 잃어가고 있다. 기고만장의 정점에 있는 정치인들의 눈에 국민의 힘듦이 보일 리 만무하다. 그런 정치인들이 국민 운운(云云)하니 분통이 터진다.벌써부터 목 좋은 곳에는 자신들의 이름을 알리려는 철새 정치인들의 대형 선거 홍보물이 내걸렸다. 여태까지 어디에서 무엇 하다가 선거 때만 되면 나타나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기인(棄人)도 아마 이런 기인(奇人)은 없을 것이다. 오로지 당선을 위해 네거리에서 기계처럼 손 흔들며 영혼 없는 인사를 할 그들의 역겨운 모습을 생각하니 새해 기분이 다 날아 가버렸다.분명 달력은 9에서 0으로 넘어 왔다. 그런데 어찌 이 나라는 아홉수 덫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못 하고 있을까? 이런 걸 보면 역사는 발전한다는 논리는 오류임이 분명하다. 필자는 최근 들어 “역사는 발전하지 않는다.”라는 논제에 대해 깊이 생각하기 시작했다.“단언컨대 역사는 발전하지 않는다. 정(正)으로 나아간 만큼 딱 그만큼 반(反)으로 후퇴해 합(合)은 결국 제자리이다. 역사는 발전하는 게 아니라 반복될 뿐이다. (중략) 역사의 주체가 달라지지 않았으니 역사가 발전할 까닭이 없다.(….)”필자의 저 깊은 내면에는 위의 말을 부정하는 소리들이 요동치고 있다. 하지만 지금 나라 돌아가는 상황이 내면의 절규를 덮어버렸다. 2019년의 사람들, 특히 정치하는 사람들이 바뀌지 않았는데 2020년의 나라 모습이 바뀔까? 역사가 반복된다면 우리의 2020년 모습은 어떨까? 언제나 그랬듯이 선거 이후에는 더 극심한 혼돈이 있었다. 희망을 말하고 싶지만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알기에 마음이 아픈 신년 벽두다.비록 구태의연한 정치인들 때문에 나라가 아직 아홉수에 갇혀 있지만, 교육과 국민이 9를 밀어내고 0의 새 시대를 맞이해야 한다. 0은 시작점을 나타낸다. 국민을 불행하게 만드는 모든 것들이 사라지고, 국민들이 희망 안에서 희망의 가치를 공유함으로써 더 큰 희망 만들어갈 그런 시작점이 될 2020년, 대한민국, 교육을 바란다.

2020-01-01

2020년 새로운 길에 오르며

김규종 경북대 교수다시 새로운 해가 시작됐다. 21세기 스무 번째 새해가 떠올랐다. 해마다 12월 31일이면 수많은 인파가 동해로 달려 나간다. 지체와 서행을 반복해도 아랑곳하지 않는 맹렬 기사들이 거리에 차고 넘친다. 그들의 목표는 하나! 새해일출을 보고 소원을 비는 것이다. 길이 아무리 멀고 고단해도 그들의 바람을 꺾지 못한다. 그들에게는 그만큼 절실한 소망과 꿈이 있다는 얘기다.싫든 좋든 2020년은 시작됐고, 우리는 다시 새로운 길에 올랐다. 길은 길에 연하여 끝이 없으며, 길은 다시 다른 길과 이어지며 확장된다. 길을 걸으며 우리는 자연지리와 인문지리를 배우고, 드넓은 자연과 세상의 풍경에 깊이 감복한다. 우리나라가 좁다고들 하는데, 그들에게 매번 묻고 싶은 말이 있다. “그대는 이 나라 산천을 얼마나 다녀보았는가. 자동차나 열차가 아니라 발품을 팔아서 걸어본 곳이 얼마나 되는가?!”걷는다는 것은 속도의 욕망을 극복하고 사유와 인식과 정서를 극대화하는 일이다. 빨리 달릴수록 우리는 아무것도 보거나 듣지 못한다. 그저 달릴 뿐이다. 그것은 행선지를 향한 유일목표, 즉 도달에만 집중하는 행위다. 과정은 사라지고 결과만 남는 질주의 행렬은 우울하거나 초라하다. 걷는다함은 과정을 중시하는 것이며, 느림에서 비롯하는 새김질과 반성과 성찰이 덤으로 보태진다.얼마 전에 친구 하나는 에스파냐의 ‘산티아고 순례길’ 가는 것이 꿈이라 했다. 나는 즉시 다른 생각을 전했다. 우리나라 곳곳에 자리한 크고 작은 길을 함께 걸어보지 않겠느냐고 제안한 것이다. 장시간 비행기를 타고, 거기서도 다시 이동하여 순례길 초입까지 가야 한다. 아주 멀리 있는 타국의 길보다는 산천경개(山川景槪) 수려한 한반도 남단을 느긋하게 걸으며 상념에 젖거나 지난날을 추억하거나 미래를 기획하는 것이 낫다는 생각이다.요즘에는 지자체 곳곳에서 경쟁하듯 길을 제공하고 있기에 발품 파는 일도 어렵지 않다. 부담 없는 일정 짜서 걷다 일상으로 복귀하고, 멈춘 곳에서 다시 출발하면 그만 아닌가. 특별한 목표를 정하지 않고, 이런 길 저런 길, 굽은 길 곧은 길, 언덕길과 산길, 오르막과 내리막, 바다와 강을 끼고 있는 길, 농촌과 산촌의 길을 걷는다는 것은 얼마나 유쾌한 일인가.운이 좋으면 ‘길’의 잠파노와 젤소미나처럼 아픈 사랑을 했던 동반자의 구수한 이야기도 함께할 것이다. 문제는 당장 실천하는 것이다. 내일이나 모레, 그 어느 즐거운 날에 혹은 특정기념일을 염두에 두고 시작하는 것은 성사를 늦출 뿐이다. 현재의 수인이 되어 자기만의 성채에 둘러싸인 채 안주하지 않는다면, 2020년에 우리는 장정에 오를 수 있다.돌궐을 건국한 돈유곡의 말이 폐부를 찌른다. “성을 쌓고 사는 자, 기필코 망할 것이며, 끊임없이 이동하는 자, 그가 살아남을 것이다!” 정주(定住)와 멈춤은 부패와 타락의 전주곡이다. 바야흐로 새로운 길을 향한 장정을 시작할 때다.

2020-01-01

글로벌 浩然之氣

장규열 한동대 교수한국 사람은 탁월하다. 한국인의 우수함은 역설적으로 국내에서보다 해외에서 더 많이 발견한다. 땅은 좁은데 사람이 너무 많아서 그럴까, 나라 안에서 두각을 나타내기가 좀처럼 쉽지 않다. 비슷한 기량을 가지고도 외국에서 뿌리를 내린 이들이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루고 남들의 인정을 받는다. 시작은 물론 안에서 했겠지만, 밖에서 나래를 펼친 이들을 우리는 수없이 목격하였다. 물이 좁아서 그럴까, 넓은 물을 겪게 하면 사람이 달라진다. 생각이 자유로와지고 시선이 더 먼 곳에 가 닿는다. 남들을 밟고 올라서기보다 나 자신을 갈고닦아 성숙하려 애쓰게 된다. 발을 딛고 선 곳만 바뀌면 사람이 달라지는 일이 정말로 가능한 것일까.아들은 공부를 못하는 아이였다. 아빠를 따라 억지로 국내에서 보낸 5년 여 동안 학교는 그를 포기하였다. 아니 본인도 자신을 놓아버렸다. 무엇을 해도 되는 일이 없었다. 선생님들로부터 칭찬과 격려를 매일 받았던 미국 학교와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늘 틀렸고 항상 잘못했으며 지적만 한가득 받아오는 게 학교생활이었다. 엄마와 아빠가 들려주는 응원의 목소리마저 가짜처럼 들렸으니까. 힘들고 지치며 재미없고 외로웠지만 달리 방법도 보이지 않아 그냥 그렇게 견딘 몇 년이었다. 그러다 혼자라도 미국으로 돌아가 볼까 생각하였다. 한번 해보겠노라고 아빠엄마를 설득하여 아들은 돌아갔다. 아들이 달라졌다! 안 되는 게 없었다. 정반대의 상황이 펼쳐졌다.놀기만 좋아해서 그런 걸 즐긴다고 핀잔을 들었던 연극활동으로 뮤지컬 주연을 겹겹이 도맡았다. 무엇을 해도 칭찬으로 가득했으며, 좀 실수를 해도 금방 수정하면 오히려 상을 받았다. 자신이 생각해도 분에 넘치게 졸업식에서는 대표연설을 하였다. 제목은 ‘우리는 모두 다르다.’ 대학을 다니며 기숙사 방에서 차린 카페는 수많은 친구들의 수다방이 되었다. 학교는 오히려 문제의 소지를 없애주며 격려해 주었다. 꿈을 키우켜 학교를 대도시로 옮겼다. 처음 뉴욕에 도착하였을 적에 ‘디즈니 스토어’ 임시점원으로 일했지만 지금은 ‘디즈니 뉴욕’ 정직원으로 회사가 만드는 뮤지컬을 전국에 마케팅한다. 스스로도 ‘꿈 속을 걷고 있다’면서, 애써 지핀 이 불씨를 더 키워가기 위해 오늘도 열심히 던진단다. 아들의 긴 이야기를 짧게 적어 보았지만, 적어도 그가 겪은 미국과 한국은 참으로 다르다. 같은 사람 알렉스가 어쩌면 그렇게 다른 모습이었을까.사람을 어떻게 보느냐에 달려있지 않을까. 오늘 그의 모습이 어떠하든지 그로부터 가능성을 찾고 내일을 보아야 한다. 그는 ‘오늘의 최선’이 아닌가. 거기서부터 쌓아 올려야 한다. 그러기 위해 학교가 있고 부모가 있으며 선생이 있다. 가능성의 가닥이 꼭 학과목이어야 할 까닭은 또 어디에 있는가. 공부만 잘 하여 문제만 일으키는 어른이 얼마나 많은가. 멀리 보게 하고 깊이 생각하게 하며 폭넓게 담게 하자. 호연지기, 2020년에는 ‘글로벌 호연지기’를 심기로 하자. 알렉스, 파이팅!

2020-01-01

13월의 월급

13월의 월급이란 연말정산시 매달 급여를 받을 때 소득에서 원천징수했던 세액을 연간 단위로 정산한 뒤 세금을 많이 냈다면 차액을 환급받고, 적게 냈으면 추가로 징수하는 금액을 일컫는 말이다. 이달 15일부터 시작되는 연말정산은 지난 해와 많이 달라졌다.우선 올해부터 산후조리원 비용이 200만원까지 의료비 세액공제 대상에 포함됐고, 급여 총액이 7천만원 이하인 근로자가 지난해 7월 1일 이후 박물관·미술관 입장료를 신용카드로 결제했을 경우 30%를 소득 공제받게 된다.기부금액의 30%가 산출세액에서 공제되는 고액기부금 기준금액도 2천만원 초과에서 1천만원 초과로 낮아졌다. 또 집이 없거나 1개 주택만 보유한 세대주 근로자는 금융기관 등에 상환하는 주택저당차입금 이자를 소득공제 받는데, 올해부터 공제 대상 주택의 기준시가 요건이 4억원 이하에서 5억원 이하로 상향됐다.월세액 공제 혜택은 지난해까지 국민주택 규모의 집을 임차한 경우에만 적용됐으나, 올해는 집이 기준시가 3억원 이하면 공제받을 수 있다. 생산직 근로자 야간근로수당 비과세 기준도 월정액 급여 190만원 이하에서 210만원 이하로 확대됐다.신용카드 소득공제는 총급여의 25%를 초과해서 쓴 경우만 해당되고, 의료비는 급여의 3%를 초과해야 공제 대상이 된다. 신용카드 결제 시 추가공제와 중복공제가 가능하다.대중교통 요금, 전통시장 이용액, 도서·공연비 등을 카드로 결제할 경우 각각 100만원까지 소득공제를 추가로 받을 수 있다. 또 의료비, 취학 전 아동 학원비, 교복 구입비는 중복으로 소득공제를 받는 것이 가능하다.‘13월의 월급’으로 불리지만 자칫하면 추가로 납부해야 하는 경우도 많아 공제요건을 꼼꼼이 확인하고 준비해야 한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0-01-01

경북의 음식은 법도다

지난 1년간, 연재에 관심을 보여주신 독자 여러분께 깊이 감사드린다. 지면을 허락한 경북매일신문과 취재 과정에 도움을 주신 분들께도 감사드린다.첫 칼럼에서 “왜 경북의 음식인가?”를 이야기했다. 경북은, 흔히, “음식이 없는 곳, 음식 맛이 없는 곳”으로 못 박는다. 그렇지는 않다. ‘맛’의 기준이 다르다. 세상에는 맛있는 음식이 많다. 경북 음식은 맛으로 만나는 음식이 아니다. 출발부터 다르다. 경북의 음식은 맛이 아니라 ‘법도(法道)’다. ‘법도’에 맞는 음식’이다.첫 칼럼에서 인용한, 탁청정 김유(1481~1552년)의 ‘수운잡방(需雲雜方)’이 법도에 맞는 음식의 예다. 탁청정은 조선 초기의 문사(文士)다. 벼슬도 구하지 않고 전원생활을 추구했다. 일생을 손님맞이에 힘썼다. ‘수운잡방’은 여러 가지 음식 만드는 법을 기술한 책이다. 남성인 유학자가 왜 음식에 관한 책을 기술했을까? 음식이 ‘봉제사접빈객(奉祭祀接賓客)’의 주요 도구이기 때문이다. 탁청정은 손님맞이 음식과 그 음식을 만들기 위한 재료, 장(醬), 지(漬), 초(酢) 술[酒, 주]에 대해서 정리했다.유교적 관점이다. 음식은, 제사 모시고, 손님맞이에 필수적인 도구다. 남자인 유학자가 음식 관련 책을 기술한 이유다.오늘날 경북은 100년 전, 경상좌도와 대부분 겹친다. 갑오경장 이전에는 전국 팔도를 좌와 우로 나누었다. 한양에서 바로 보기에 낙동강 왼쪽은 경상좌도, 오른쪽은 경상우도다. 경북은 대부분 경상좌도 지역이었다.경상좌도는 유교의 중심지다. 고려를 마지막까지 지켰던 포은 정몽주(영일만, 영천), 고려를 무너뜨리고 조선을 건국한 삼봉 정도전(영주)은 좌도의 유학자였다. 포은과 삼봉의 스승 목은 이색(영덕), 야은 길재(구미 선산), 도은 이숭인(성주)도 좌도와 연관이 있는 유학자였다.성리학을 대표하는 퇴계 이황(안동)도 좌도의 유학자였다. 경상우도가 ‘남명 조식의 나라’라면, 경상좌도는 ‘퇴계의 나라’였다. 1670년 무렵, 정부인 장계향이 기술한 ‘음식디미방’이 나왔다. 장계향의 친정아버지 경당 장흥효(안동), 남편 석계 이시명(영해, 영덕), 아들 갈암 이현일(영해)은 퇴계의 학통을 이었다.조선 말기 상주에서 ‘시의전서’가 발견되었다. ‘수운잡방’ ‘음식디미방’ ‘시의전서’ 등 음식 관련 책이 모두 ‘음식 맛없는’ 경북에서 나왔다. ‘법도’를 지키는 ‘퇴계의 나라’였기 때문이다.경북은 ‘곰탕의 나라’다. 영천에 가면 ‘포항 할매곰탕’이 있고, 포항에는 ‘안동할매곰탕’과 ‘장기식당’이 유명하다. 경북의 웬만한 중소도시, 시골 골목에는 곰탕집이 있다. 시장통에는 30년, 50년을 넘긴 곰탕집이 흔하다. 설렁탕 집은 귀하지만, 다른 곳에서는 귀한 곰탕집은 널리고 널렸다. 소머리곰탕이 있는가 하면, 경북 북부에는 사골곰탕도 흔하다.서울에는 설렁탕 집은 많으나 곰탕집은 그리 많지 않다. 오래된 설렁탕 노포도 마찬가지. 메뉴에서 ‘곰탕’을 찾기는 어렵다. 왜 곰탕이 경북 지방에만 흔할까? 곰탕이 ‘봉제사접빈객’의 으뜸 음식이기 때문이다. 곰탕은 대갱(大羹)이다. 대갱은 모든 음식의 기준이다. 대갱은 고기 곤 국물이다. 으뜸이고 기준이니 조미도 하지 않는다. “매실과 소금 양념도 하지 않은 국물”이 대갱이다.국물 음식이지만 굳이 국물로 가르지 않는다. 제사상에 밥과 국이 있는데 반드시 곰탕을 올리는 이유다. 양깃살(양짓살)에 다시마, 무를 넣고 푹 곤다. 그뿐이다.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은[華而不侈, 화이불치] 음식이다.민간에 고기가 흔할 리 없다. 소머리(소대가리)를 삶는다. 고기를 발라 넣고, 뼈 곤 국물에 밥을 만다. 소머리곰탕이다. 고기를 도축하고 나면 뼈가 남는다. 역시 곤다. 소, 돼지는 다리가 네 개다. 사골(四骨)이다. 사골을 곤 국물이 사골곰탕이다. 정육(精肉)이 귀하니 소 대가리와 다리뼈도 사용한다. 갈비뼈, 다른 잡뼈도 넣는다. 내용물은 설렁탕과 닮았으나 경북에서는 굳이 곰탕이다. 곧이 곧 대로의 곰탕은 아니되, 곰탕이다.경북 음식의 또 다른 키워드는 국수다. 곰탕집 못지않게 군데군데 국숫집이 있다. 큰길가, 동네 골목에도 있지만, 시장에서도 30년 이상의 국수 노포를 쉽게 찾을 수 있다. 왜 국숫집이 많을까? 역시 국수가 ‘봉제사접빈객’의 주요 도구였기 때문이다. 여전히 안동에서는 “국수 없는 제사 없다”고 말한다.대구 시내 시장통에는 ‘합천할매집’이 있고, 칠곡의 국숫집에서는 안동식 건진국시, 제물국시를 내놓는다. 국수 중에도 칼국숫집이 유난히 많다. 경북 만의 국수도 있다. 반드시 콩가루를 ‘쪼매’ 넣는다. 경주 ‘웃장’의 칼국수 미는 사람이나 안동의 건진국시, 제물국시 맛집들도 ‘콩가루 쪼매’에 대해서는 각각 말이 다르다. 수십 번을 물어봐도 아무도 “몇 퍼센트 넣는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저 ‘쪼매’다.‘쪼매’는 한식의 특질이다. 오랜 경험과 연습으로만 다다를 수 있는 경지다. 레시피대로라면 누구나 만들 수 있다. ‘쪼매’는 딥러닝(Deep Running)을 거친 AI(Artificial Intelligence)도 따르기 힘들다. 그날의 온도, 습도, 불의 강도와 가족들의 시시각각 바뀌는 식성까지 헤아려야 한다. 우리의 ‘엄마’ ‘할매’들은 이런 어려운, ‘콩가루 쪼매 넣은 칼국수’를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손쉽게 만들었다. “콩가루를 얼마나 넣느냐?”는 질문에 대한 명답이 있다. “여름철에는 ‘쪼매’ 더 넣고, 겨울에는 ‘쪼매’ 덜 넣니더”.구룡포, 장기 일대에도 재미있는 국수가 있다. ‘깔때기’ 혹은 ‘깔때기 국수’다. 미역국에 밀가루 음식을 넣어 먹는다. 수제비를 넣어서 먹었다는 이도 있고, 같은 지역임에도 새알심을 넣었다는 이도 있다. 요즘은 굵직한 칼국수 형태의 밀가루를 넣는다. 바닷가의 흔한 미역과 밀가루가 만난 경우다. 지금도 경북에서는 “난 하루 세끼 국수를 먹을 수 있다”는 이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국수는 일상적이다. 누구나 자신만의 국수, 국수 맛을 기억하고 있다. ‘멸치 쪼매 부숴 넣고, 콩가루 쪼매 넣어서 해 먹었던 칼국수’는 경북 출신들의 ‘소울푸드’다.경북의 모든 음식이 봉제사접빈객의 음식은 아니다. 추어탕은 서민의 일상식이다. 추어탕은 중부식과 남부식으로 나눌 수 있다.중부식은 한양, 서울 방식이다. 국물을 별도로 마련한다. 국물은 소 내장이나 부속물을 우린 것이다. 고명, 육수 모두 화려하다. 고춧가루나 고추장을 사용한다. 붉고 맵다.경상도식 추어탕은 단순, 담백하다. 미꾸라지를 삶은 후, 곱게 간다. 곱게 간 미꾸라지 살로 추어탕을 끓인다. 된장 혹은 간장을 육수 대신 사용한다. 담백하다. 채소도 우거지, 시래기 등이다. 주로 배추 우거지를 곱게 쓴다. 여기에 산초가루를 더한다. 그뿐이다. 맑고 담백하다. 농경 지역 형태다. 청도 일대의 추어탕은 메기를 더했다. 추어탕에 메기를 넣는 이유는 간단하다. 맛이다. 상주, 예천, 문경 등에는 논, 개울에서 직접 미꾸라지를 잡아서 추어탕, 추어전골을 내놓는 집들도 있다.‘갱시기’는 퍽 재미있다. 갱식(羹食), 혹은 갱식(更食)에서 시작되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앞은 ‘국물 음식’이고, 뒤는 ‘다시 끓여 먹는다’는 뜻이다.“나를 키운 것은 팔할이 시래기였다”고 떠들었다. 시래기와 갱시기. 나머지 2할은 갱시기였다. 소설가 성석제도 갱시기에 대해서 글을 썼다. 성석제는 고향이 상주 은척이다. ‘상업화’에는 실패했지만, 갱시기는 한식의 특질을 고스란히 지니고 있다. 한식은 ‘탕반(湯飯)음식’이다. 갱시기도 간편한 국물 음식이다. 멸치, 김칫국물에 식은 밥을 더한다. 콩나물, 두부 등을 넣어도 좋다. 남은 음식은 다시 끓여도 된다. 인스턴트 음식이다.한식의 특질은 삭힘이다. 유럽인들이 우유, 고기를 삭힌 유장(乳醬)을 자랑하지만, 좁고 얕다. 한식은 콩 등을 삭힌 두장(豆醬)과 생선을 삭힌 어장(魚醬)을 동시에 사용한다. 겨울이면 포항을 비롯, 동해안 전 지역에서는 ‘밥식해(食醢)’를 먹는다. 가자미, 명태, 횟대, 오징어, 꼴뚜기 등 생선도 가리지 않는다. 액젓 젓갈과 물기 없는 젓갈까지, 다양하다.갱시기의 주재료는 김치다. 그중에서도 김장김치다. 양력 3월이면, 김장김치가 푹 익어 곰삭은 쿰쿰한 맛을 낸다. 갱시기는 삭힌 음식을 조리한 것이다. 갱시기는 검소하나 누추하지 않다. ‘검이불루(儉而不陋)’의 음식이다.한식은 “화려하나 사치스럽지 않고, 검소하나 누추하지 않다”. 경북 음식은 법도에 맞는 음식이다. ‘검이불루 화이불치(儉而不陋 華而不侈)’다. /황광해 맛칼럼니스트끝

2019-12-30

조선의 삼사(三司)와 공수처

강희룡 서예가빛나는 문화와 풍요로운 경제력을 자랑했던 송나라 태조 조광윤은 백성을 위한 모범적인 정치를 위해 ‘언론으로 인해 죽는 사람이 없도록 하라’라는 유훈을 남겼다. 왕이 간신의 아첨에만 빠져 있으면 올바른 정치를 할 수 없으며 결국 망국으로 치닫는다. 귀에 거슬리는 말을 했다는 이유로 피해를 입게 되면 어느 누가 나라를 위해 바른 말을 하겠는가.송 태조가 언로(言路)를 보호한 것은 바로 그 때문이었다.조선의 건국 주체들의 생각엔 언로의 보장은 그들의 이상에 매우 적합한 제도였고 언관(言官)제도의 강화를 위해 왕명과 정책에 직접 간쟁을 담당하는 언론기관을 창설했으니 삼사(三司)로 사헌부, 사간원, 홍문관을 가리키는 말이다. 관료들은 이 삼사에서 관직생활하는 것을 영예로 여겼으며 이들의 주요 임무는 잘못되는 정치 전반에 걸친 비판적 기능을 수행하는 직책이었다.따라서 이들의 힘이 강할 때는 왕권과 신권의 전제를 막았으나 이들의 힘이 약하거나 파벌에 의해 나눠질 때는 나라가 혼란스러웠다. 백관을 규찰하며 기강과 풍속을 바로잡고 억울한 일을 없애주는 일 등을 맡는 기관은 송나라나 고려에서 어사대가 그 역할을 하였는데 조선에서는 삼사 중 사헌부가 담당했다.이 사헌부는 고위직의 직무를 감찰하고 공직기강을 바로 잡는 업무를 주로 하다 보니 먼저 본인들 부서 내부에서도 규율이 매우 엄격했으며 권력에 휘둘리지 않고 조정 신료들의 규율과 기강을 책임지고 있다는 자부심이 대단했던 만큼 스스로의 행동과 위계질서가 일종의 타의 모범이 되는 행동으로 여겼다. 왕에게 직언하며 고위관료들을 탄핵하고 견제하는 만큼, 왕이 파직 명령을 내리는 등 따위의 지위의 위태로움도 안고 있었다.이런 위험 속에서도 잘못된 정치에는 목숨을 걸고 임금께 상소를 올리며 자신의 주관을 펼치는 청렴한 관료들이다 보니 그 위엄은 사뭇 대단했으며 정승을 꿈꾸는 자들에게는 선망의 대상이었다.지금 국회는 본회의에 상정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 법안에 대한 여야의 필리버스터가 진행되며 팽팽한 공방전을 초래했다. 이 공수처의 수사 대상은 대통령, 국회의원, 대법원장 및 대법관, 헌법재판소장과 헌법재판관, 국무총리와 국무총리 비서실 정무직 공무원 등이다.결국 공수처는 입법 행정 사법을 초월하는 초헌법적 기구로 절대 권력을 가지게 된다.더구나 대법원장, 공수처장을 대통령이 임명하며 수사기관이 고위공직자에 대한 혐의를 인지단계에서부터 공수처에 통보토록 한 새 조항의 도입은 더 이상 견제할 기관도 없는 무소불위의 괴물로 만든 것이다. 3권 분립이라는 민주주의 기본 틀을 깨부순 이 공수처의 입김에서 모든 기관들은 결코 자유로울 수 없으며 사법부 역시 그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판결을 할 수 밖에 없게 되어 사법권의 독립은 사라질 것이다. 헌법 1조 1항에 명시된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란 대한민국에서 지금 일어나고 있는 현실이다.

2019-12-30

학년말 학생부 쓰기 격무의 늪에 빠진 교사

조현명 시인학기와 학년이 마무리되면서 선생님들은 전에 없던 노동에 시달린다.그것은 학생부 작성이라는 가중된 업무이다. “원래 선생님들의 업무가 아니냐?” 라는 물음에 답을 하기 싫을 정도로 격무가 되었다.웬만하면 이것 때문에 담임을 맡기 싫다는 말이 나오겠는가? 예전 손으로 쓰던 시기가 있었다. 그때도 나름 어려움은 있었다. 흑색 볼펜으로 써야하고 오기나 잘못쓰기라도 하면 수정이 어려워 아예 다시 쓰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글자 수는 지금에 비하면 몇 자 적은 것도 아니다. 그것 때문에 고민되는 수준은 아니었다.그런데 지금은 학급당 학생 수가 줄어도 자율 활동, 동아리 활동, 봉사 활동, 진로 활동의 특기사항에다 과목별 세부능력특기사항과 종합의견란으로 써야하는 항목이 늘어났다. 게다가 기록을 구체적으로 해야 대입에 도움이 된다고 하기에 없는 글을 짜내느라 머리가 아플 지경이다.이런 변명을 하면 관리자나 교육청에서는 미리 관찰기록을 작성하고 누가기록을 바탕으로 쓰면 쉽지 않겠느냐며 반문한다. 그러나 누가기록을 놓고 보아도 막연할 때가 많다. 글쟁이인 내가 그런데 글쓰기에 능숙하지 못한 선생님들은 어떤 심정일까 생각이 든다. 올해부터는 또 거짓으로 꾸며 쓴 내용이 있으면 징계하겠다고 엄포까지 공문으로 전달받은 상태이다. 이러고 보니 진퇴양난이다. 학생들과 학부모들의 부탁과 성화에 좋은 글을 짜내어 없는 것도 좋게 꾸며내야 할 판인데 감사가 겁이 나서 함부로 거짓으로 꾸밀 수도 없고 적당히 에둘러 적다보면 구체적이기보다는 두루뭉수리하고 추상적인 내용일 수밖에 없다. 어떤 학생이든지 성실하고 적극적이고 열심히 노력하고 훌륭하며 매사에 솔선수범하는 멋진 학생이다.복사하기 붙여넣기를 하다 보니 문장이 같아지는 학생이 많아지면 그것도 지적사항이 된다. 수업 장면에서 학생의 능력을 좋게 써주려고 하다 보니 교육과정을 넘어가기도 한다. 그러면 지적사항이다.해마다 같은 내용을 하는 동아리의 기록을 달리해야 하다 보니 순서나 행사들을 나누어 적기도 한다. 그러다가 같은 문장이 3년 반복되어 지적되기도 한다. 오타나 말도 안 되는 문장, 길게 늘어져서 읽기가 거북한 문장, 자율 활동에도 나오고 진로 활동에도 나오고 종합의견에도 나오는 똑같은 문장 이런 것들이 수도 없이 지적된다. 그럼에도 이것을 가지고 대학입학사정관들은 점수를 매긴다. 대입의 당락에 영향을 주기도 한다. 선생님의 글 솜씨에 의해 학생들의 당락이 좌우된다니 그냥 글쓰기가 아니다. 신경을 바짝 써야하는 어려운 글쓰기이다. 이런 격무는 대한민국에서나 있는 일이다.그래서 몇 해 전 해외토픽에도 오르기도 했다. 이후 교육부가 학생부의 공정성을 위해 글자 수를 줄이고 항목도 줄인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학생부종합전형이 그대로 유지되는 이상 없어지지 않을 격무다.게다가 이것으로 학교 수업을 변화시키는 동력으로 삼겠다는 발상이 없어지지 않는 이상 그대로 유지될 격무이다. “누가 여기서 좀 구해주시오”라고 아무리 소리쳐도 격무의 늪에 빠진 교사들을 다 외면하고 지나쳐 갈뿐이다.

2019-12-30

관점을 바꾸는 일 (3)

서로 짝을 지어 친구가 친구에게 스승이 될 수 있도록 서로 가르치는 방법입니다. 이 방식을 ‘하브루타’라고 합니다. 상대방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를 정도로 혹독하게 몰아붙이며 탈무드를 해석하기 위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을 하도록 요구합니다.한 시간의 탈무드 공부를 위해 2∼3시간 동안 본문을 연구해 옵니다.그리고 둘이 끝장 토론하듯 상대에게 질문 공세를 퍼붓는 거죠. 이런 방식의 질문과 토론을 매일 반복한다니 소름 돋습니다.왜 그들이 미국의 ‘법조계’를 장악하고 있는지, ‘언어’를 다루는 언론, 출판, 방송, 영화 등을 독점하는가를 이해할 수 있는 대목입니다.소크라테스는 삶의 본질을 제대로 알고 훌륭한 삶을 누리기 위해 캐묻는 삶을 강조했고, 절대 진리라고 생각하는 것에 함께 도달하도록 상대를 다그쳤습니다. 100명의 사람을 찾아가면 오직 한 가지 ‘진리’에 도달하도록 질문하기를 멈추지 않았지요. 즉 100대 1의 원리입니다.유대인들의 접근 방식은 소크라테스와 반대입니다. 한 가지 정답을 캐내고 추구하는 방식이 아니라 100명이 모이면 100가지 다른 다양한 관점들을 꺼낼 수 있도록 자극하고 거세게 몰아붙이는 겁니다. 100대 100의 원리인 셈이지요. 유대인 랍비들이 제자들을 자극하는 가장 치욕적인 말이 있습니다. “마따호쉐프!” 번역하면 이런 뜻입니다. “얘야. 너는 왜 ‘네 생각’이 없느냐!”정현종 시인이 파블로 네루다 시집 ‘질문의 책’을 번역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질문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모르는 자리로 돌아가는 것이며, 홀연히 ‘처음’의 시간 속에 있는 것이고, ‘끝없는 시작’ 속에 있는 것이다.” 나를 둘러싼 삶에 대한 다양한 질문으로 2019년을 마무리해 보는 건 어떨까요? 밝아오는 2020년을 스스로에 대한 질문으로 시작해 보는 건 어떨까요?/인문고전독서포럼대표

2019-12-30

백석 시를 맛보는 겨울밤

백석 시인언제든 시간이 지나도 반복되고 찾아오는 것들이 있다. 처음에는 분명 어떤 ‘마음’에서 비롯되었지만, 지금은 단순한 제도나 의무 같이 내게 주어져 그 이유를 물을 필요 없이 그렇게 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으로 남겨진 것들 말이다. 어릴 때, 이유도 모른 채 부모님들의 손에 끌려 참석했던 제사 의례가 그렇고, 온 가족이 모여 겨우내 먹을 김치를 담그는 김장처럼, 한 해의 정해진 때에 꼭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예의 관념이 꼭 그런 것들이다.인간에게 있어 이렇게 반복되는 것들이 매번 다른 의미를 갖기 어려운 까닭은 반복되는 것들 사이에서 매번 의미를 챙기기보다는 그대로 흘러가도록 두는 것이 더 수월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단순 반복되는 일들을 행하기에 적절한 존재가 아니니, 어쩔 수 없이 그렇게 하는 경우에는 하나하나의 일들에 의미를 담기보다는 기계화된 동작과 의식으로 반복되는 일들에 자기를 맞춰갈 수밖에 없다. 인간을 둘러싼 반복적인 의례들이 매번 새로운 의미를 갖기 어려운 것은 어쩌면 인간이 그러한 노동에 적응해 나가는 과정에서 당연하게 된 것일 터이다. 그러한 의례에 담긴 큰 뜻이나 취지를 다시 설명한다고 해서 사라진 마음이 다시 생기는 것은 아니다.하지만, 이제는 그렇게 반복되는 겉치레의 예의 속에 다 사라졌다고 생각했던 인간의 삶에 가끔씩 어떤 ‘마음’이 찾아오는 때가 있다. 어느 겨울밤, 누군가 밖에 온 것 같아 공연히 문을 열어보게 되는 것처럼. 혹은, 새벽녘 문득 울린 스마트폰 알림에 이제는 잊어버렸다고 생각했던 어떤 기억들이 찾아오는 것처럼. 연말 같은 시기가 되면 문득 찾아오는 그 마음은 이제는 관성화되어 버린 반복된 예의 관념의 근원을 깨닫게 한다. 그래, 그랬었지, 우리가 그것을 처음 행했던 것에는 바로 그런 ‘마음’이 있었다. 우리는 어떤 것이 먼저였고, 어떤 것이 나중이었는지 쉽게 잊어버린다.어쩐 일인지 모르지만, 겨울밤이 되면 나는 어김없이 백석을 떠올리고, 백석 시 몇 편을 읽곤 한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니, 의례나 의무 같은 것은 분명 아니다. 유독 겨울밤이 되면 찾아오는 그런 어렴풋한 ‘마음’을 백석만큼은 그대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무릇 시인이라면 자기 앞에 놓인 무표정한 반복들 속에서 어떤 의미를 찾아내는 것이 당연한 의무 같은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유독 백석은 낯선 얼굴 너머에 들어앉아 있는 어떤 ‘마음’의 기원을 찾아낸다.백석에게 있어 그 ‘마음’은 사방으로 눈이 내려 주변이 먹먹함으로 가득한 때, 온 가족들이 모여 보내는 명절날의 분위기로부터 온다. 그것은 일회적인 것이 아니라 언제나 반복되어 찾아오는 것이니, ‘원형’적인 것이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아니, 매번 반복되는 명절날이나 가족들이 모임이 먼저가 아니다. ‘마음’이 먼저다. 내 앞에 가득 사리워 오는 한 그릇의 국수 속에도, 어떤 날을 떠올리도록 푹푹 내리는 눈 속에도, 눈같이 하얀 달이 빛나는 밤에도 그 마음이 담겨 찾아오는 것이다. 마치 이제는 어떤 정신도 죽어버렸다고 생각되던 고도 자본주의시대에도 보들레르가 언어 속에서 맡았던 고대의 향기처럼. 백석의 시 속에는 어떤 오래되었지만, 그리 오래된 것만도 아닌 어떤 ‘마음’을 동반한 맛이 존재한다.물론, 깊은 겨울 밤 따뜻한 방안에서 차갑고 시큼한 귤을 까먹으며, 백석 시를 맛보는 재미가 어디 그런 어렵고 복잡한 생각의 재미뿐이겠는가. 지금은 귀에 선 이북 사투리를 읽는 재미라든가, 마치 코끝이나 혀끝에서 맴돌 듯 느껴지는 감각도, 눈이 내리면 어김없이 생각나는 “눈은 푹푹 나리고 /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 어디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를 읊으며, 데운 술을 한 잔 마시는 경험도 백석 시를 맛보는 겨울밤의 일부가 아닐 것인가./송민호 홍익대 교수

2019-12-30

자유를 위한 아름다운 고독… 성주 심원사(深源寺)

가야산 허리를 감으며 차는 심원사를 향해 달린다. 한적한 겨울 산사를 상상했는데 울창한 소나무 숲을 지나자 주차장에는 차들로 가득하다. 큰 행사가 끝난 듯 많은 사람들이 총총히 심원사를 빠져나오고 있었다. 인적이 빠져나가기를 기다렸지만 공양간 앞에는 여전히 남은 사람들로 어수선하다.해인사의 말사인 심원사는 통일신라시대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된다. 고려말 도은 이숭인이 심원사를 고사(古寺)라 칭한 시가 남아 있고 오랫동안 법등도 이어져 왔다고 전한다. 조선 중종 때 승려 지원이 중수하지만 임진왜란을 거치면서 소실되어 폐사되었다. 새로 지은 전각들 사이로 삼층석탑과 부서진 석조 유물들이 오랜 역사를 증명하는, 생각보다 큰 절이다.북적이는 산사의 정경이 낯설다. 고즈넉한 산사 분위기에 익숙해 오다 이토록 많은 사람을 만나기는 처음이다. 스님과 친근하게 인사를 나누는 불자들 사이에서 나는 이방인처럼 어색하다. 술렁이는 인파를 피해 대웅전 법당으로 들어선다. 아무도 없는 법당에 나를 내려놓지만 마음은 아득한 허공처럼 잡히지를 않는다.대웅전을 나와 이곳저곳을 둘러보다 종각 앞에 놓인 팥죽을 보고 뒤늦게 동지임을 알았다. 특별한 날의 기도는 무엇이 다르기에 이토록 사람이 모이는가. 눈앞에 펼쳐진 비슬산과 가야산의 빼어난 경관 앞에서도 마음은 여전히 신산하다. 스님과 차담을 나누기엔 아무래도 날을 잘못 잡은 것 같다.‘문 없는 문을 뚫는다’는 무문관(無門關)이 심원사에도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 곧장 달려왔는데 허탈하다. 깨우침의 길을 뜻하는 문 없는 문, 무문관 수행의 규범은 매우 엄격하여 일체 문밖을 나올 수 없으며 조그만 창구로 음식물이 들어간다. 심원사의 무문관도 바깥에 자물쇠가 있어 안에서는 문을 열 수 없지만 하루 한번 문이 열린다고 한다.스스로 화두를 잡고 고행의 길을 선택한 스님들이 계시는 상왕선원(象王禪院), 청정한 눈빛들이 문풍지를 울리고 허기진 언어들은 바람에 업혀 달아날 것만 같다. 술렁이는 절 분위기와 상관없이 상왕선원은 섬처럼 고독하다. 마치 비어 있는 것처럼.이름을 남긴 대선사들의 면벽 수행과 깨달음의 이야기는 수없이 회자된다. 스님이라면 한번쯤 꿈꾸고 도전해 볼만한 유혹이 담긴 고행이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허락되는 것은 아니다. 꿈꾸기는 쉬워도 그 꿈을 현실로 이루기는 쉽지 않다. 안거 경력 40년이 넘은 선원장 스님에서부터 선방 생활을 오래한 구참 스님들에게만 허락된 고독이다.숭모전으로 향하는 높다란 계단 좌측편으로 상왕선원이 또렷이 보인다. 출입을 금한다는 팻말은 삭제된 일기장을 대하듯 호기심을 증폭시킨다. 대나무 울타리에 둘러싸인 단청 없는 소박한 전각을 향해 두 손을 모은다. 더없이 작고 평범한 나와 팥죽 같은 미소를 안고 총총히 사라지는 불자들, 상왕선원 앞에는 깊고 도도한 강물이 흐른다.의식주에 집착하며 살아가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평생 하품인생을 벗어나지 못한다고 한다. 나 역시 좀 더 나은 삶을 살고자 발버둥쳐 보지만 언제나 관계 속에서 빚어지는 욕망과 번뇌, 나태와 게으름 앞에서 속수무책 넘어질 뿐이다.조낭희 수필가심원사를 다녀온 후 ‘카르투시오 봉쇄수도원’이란 다큐멘터리 영화가 또 나를 흔들었다. 일체의 외출도 허락되지 않는 봉쇄 수도원에서 평생을 살기로 약속한 수도사들의 눈빛은 지극히 고요하고 평화로웠다. 세상과의 접촉을 끊고 엄격한 규율과 절제, 기도와 노동, 청빈함으로 살아가는 위대한 침묵 앞에서 내 안에 뜨거운 것이 일렁였다.구멍이 난 양말과 소품들, 가난을 통해 얻어지는 무소유의 즐거움, 육신의 노화와 질병을 담담히 받아들이는 자세는 참으로 아름답고 숭고했다. 이웃과 인류를 향한 그들의 보이지 않는 고독이 면류관이 되어 내 안을 밝힌다. 평범한 사람들은 범접조차 할 수 없는 무문관 수행에 비해 수도사들의 삶은 좀 더 구체적인 삶의 방향을 제시해 주었다.오랜 역사를 가진 가톨릭의 카르투시오 봉쇄수도원과 불교의 무문관, 종교는 달라도 영원의 진리를 좇는 목표는 닮았다. 신과 하나가 되고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 오로지 고독과 싸우는 길을 택한 사람들. 참된 믿음은 교회나 절, 성서나 경전 속에만 있는 것은 아니리라. 절제와 고독을 좀 더 사랑할 수 있다면 나의 일상도 달라지리라.하나의 목표를 가지고 자신의 삶을 헌신하기로 마음먹었다면 절대 뒤돌아보지 않아야 진정한 자유를 얻을 수 있다고 말한 어느 스님의 말씀이 떠오른다. 현대를 살아가는 나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 삶의 의미를 다시 한번 돌아보게 한 연말이다. 오늘 하루의 평화도 누군가의 기도와 자비의 힘으로 내게 주어졌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나는 삶을 헌신할 만한 간절한 목표가 없다. 하지만 불어터진 빵조각 같은 삶으로 생을 마감하고 싶지는 않다. 넘어지고 방황하면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채찍을 가해야 할 시시포스의 운명을 죽는 날까지 사랑하리라. 그것이 하품인생의 어설픈 고독이라 할지라도.

2019-12-30

폰지 사기

폰지 사기는 신규 투자자의 돈으로 기존 투자자에게 이자나 배당금을 지급하는 방식의 다단계 금융사기를 일컫는다. 1920년대 미국에서 찰스 폰지(Charles Ponzi)가 벌인 사기 행각에서 유래됐다.이탈리아 태생인 찰스 폰지(1882~1949)는 1903년 미국으로 건너와 허황한 꿈을 좇으며 도박과 낭비를 일삼다가 전과자가 됐다. 1919년 국제우편 요금을 지불하는 대체수단인 국제우편쿠폰이 제1차세계대전을 겪으면서 크게 변한 환율을 적용하지 않고 전쟁 전의 환율로 교환되는 점에 착안해 해외에서 대량으로 매입한 뒤 미국에서 유통시켜 차익을 얻는 사업을 구상했다. 폰지는 45일 후 원금의 50%, 90일 후 원금의 100%에 이르는 수익을 지급할 것을 약속하고 투자자를 모집했으며, 투자자들은 약정된 수익금이 지급되자 자신의 지인을 2차 투자자로 모집하게 됐다.이 소문이 미국 전역에 퍼져 투자 총액이 몇 달 만에 막대한 규모로 불어났다. 폰지는 몇 개월 만에 무일푼에서 갑부가 됐다. 그러나 이 사업의 실상은 나중에 투자한 사람의 돈으로 먼저 투자한 사람의 수익을 지급하는 금융피라미드였다. 여기에다 보스턴우체국에서 국제우편쿠폰을 환전하는 데는 폰지가 투자자들에게 약정한 기일보다 훨씬 더 오래 걸린다는 의혹을 제기하자 불안해진 투자자들이 투자금을 회수하기 시작했다. 결국 1920년 8월 폰지는 결국 파산신고를 하고 사기혐의로 구속됐다.최근 국내 1위 사모펀드 운용사인 라임자산운용이 투자한 미국 펀드업체가 폰지방식의 다단계 금융사기를 저지른 것으로 밝혀져 물의를 빚고있다. 투자자들은 투자금을 아예 돌려받지 못할 상황에 놓였다니 일확천금의 꿈은 세계 어디서나 끊기힘든 범죄를 부른다. /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19-12-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