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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가장 값진 보물은

유람선을 타고 여행하던 사람들은 대부분 부자들이었습니다. 그들 틈에 남루한 랍비가 한 명 있었습니다. 배는 순풍에 돛 달고 목적지를 향해 기분 좋게 항해하고 있었지요. 손님들은 모두 자기 재산이 얼마나 많은가 한바탕 자랑을 늘어놓고 있었습니다.“내 소유의 토지는 얼마나 넓은가 육안으로는 그 끝을 누구도 볼 수 없지요.” 그러자 다른 사람이 지지 않고 한 마디 덧붙입니다. “우리 저택에서는 늘 파티가 열리는데 한 번 쓰고 버리는 이쑤시개도 모두 황금으로 되어 있소.”모두 껄껄 웃으며 왁자지껄 떠들고 있을 때 가난한 랍비가 끼어들었습니다. “세상에서 제일 부자는 바로 나요. 하지만 지금 당장은 내가 가진 것을 당신들에게 보여줄 수가 없어 안타깝소.”부자들은 랍비의 말에 코웃음을 치며 비웃습니다. “랍비여, 당신 머리가 좀 어떻게 된 것이 아닌가 걱정이 되는군요.” 모두 그를 보며 비쭉거렸습니다. 그러나 랍비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말합니다. “두고 보시오. 내 말이 맞다는 사실을 곧 알게 될 거요.”그때 어디선가 외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해적이다!” 사람들은 허둥지둥 자기 보물들을 간수하느라 야단법석을 떨었지만 결국 그들은 자랑하던 보물을 해적들에게 송두리째 빼앗기고 겨우 목숨만 구한 채 항구에 도착했습니다.가난한 랍비는 마을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을 했습니다. 세월이 흐른 어느 날 같은 배에 탔던 부자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하나같이 모두 파산해 거지처럼 살고 있었지요. 그들은 랍비를 보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랍비님의 말이 옳았어요. 빼앗길 염려도 없고 언제나 가지고 다닐 수 있는 지식이야말로 가장 값진 보물임이 틀림없어요.”지혜로운 사람은 보이는 것이 아닌 보이지 않는 것을 더 소중하게 여기고 정성껏 돌봅니다. 그 누구도 빼앗을 수 없는 지식과 교양은 가장 값진 보물입니다. /인문고전독서포럼 대표

2020-03-17

청년 일자리, 해법을 부탁해!

박은미경북여성정책개발원 정책실장청년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 의하면, 2000년 중반 이전은 결혼과 노후 문제에 관해 중점적으로 분석하고 논의하였다.한편, 2000년 중반 이후는 청년의 가치관을 중심으로 결혼관, 경제관, 가족관, 사회적 가치관이 주로 제시되었다.결혼을 선택하는 과정이 점점 더 신중해진다는 연구 분석 결과가 제시되었으며, 일과 생활의 경계가 명확하게 분리되는 경향도 함께 나타났다.지난해 고용노동부에서 발표한 일·가정양립 실태조사에 의하면 ‘남녀고용차별개선 및 직장내 성희롱예방’이 가장 중요한 요소로 꼽혀 고용유지와 경력단절 예방을 위한 고용환경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기업의 열악한 근무환경, 낮은 임금은 청년실업률에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이로 인한 중소기업 역시 인력난을 겪고 있는 것도 현실이다. 부모와 함께 동거하면서 부모에게 경제적으로 의존하는 청년문제도 사회문제화 되고 있다.취업을 하여 부모로부터 경제적으로 자립하고, 일자리가 있는 지역에서 머물면서 경제생활과 여가활동을 할 것이다.청년이 구직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현실에서 좀 더 고민해야 할 부분은 무엇인가? 먼저, 취업 및 진로 상담이 필요할 것이다.세분화 그리고 다양성이 중요한 가치인 현재, 청년들의 진로 혹은 취업을 선택하기 이전에 자신의 타고난 성격이나 가치관 등이 어떠한 직무에 적합한지 확인해 보고 구체적인 진로 방향을 설정하는 것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구직에 어려움을 겪는 것이 개인의 실제 적성과 시장에 있는 일자리의 괴리에서 나올 수 있으므로 진로탐색이나 상담은 도움이 될 것이다. 적성검사 혹은 심리검사를 통해 적합한 진로 방향을 설정하는 것이 필요하다.이를 위해 20대 초반 취업준비자, 중고생대상 조기상담 등 대상별 진로설계를 지원한다.진로설계 전문상담 센터를 지정하여 경력관리를 지원하고, 직업역량 강화를 노력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취업연계를 위한 직장 체험, 개인 취업관을 반영한 맞춤형 취업정보 제공, 다양한 직종에서서의 기업 연계망을 확대해야 한다.두 번째, 고용환경 개선을 주력하여 일자리 창출 분위기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 취업 시 여성을 기피하는 현상이라든가 직장 내 남성과 동등한 대우를 하지 않은 부분에 있어서 여전히 성차별적인 고용환경이 존재하는 것으로 보인다.때문에 유연근무, 재택·원격 근무 등 일하는 시간과 장소가 유연한 근무 제도를 기업에 도입 및 확산하여 장시간 근로관행을 개선해야 한다. 그리고 일·가정 양립 고용환경을 조성하여 남녀가 모두 평등하게 일하고, 직장과 가정을 원만하게 양립하여 청년이 노동시장에 머물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무엇보다도 가족친화적인 기업문화를 조성하기 위해 재정지원이라든가 조세감면 등의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방안을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아울러 가족친화교육프로그램을 개발하여 일과 가정의 균형, 청년여성근로자의 모성보호, 근로자의 출산 및 육아, 유연한 근로시간 및 방식 등의 모듈을 연계할 필요가 있다.마지막으로 청년에게 많은 지식, 정보보다 구체적 경험 및 과정을 공유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

2020-03-17

색깔 이야기

박화진영남대 객원교수·전 경북지방경찰청장봄이 성큼 다가왔다. 코로나19도 봄을 이기지는 못하는 모양이다. 벚꽃, 개나리 꽃망울들이 봄의 전령사를 자처한 듯 꿈틀거리더니 어느새 만개하고 있다.연푸른 나뭇잎 사이로 새색시 볼 같이 피어오르는 분홍 빛깔에 쑥스럽게도 중년의 가슴이 살며시 설렌다. 병아리 속 털 같은 노란빛 꽃들을 보노라면 코로나19 시름마저 잊게 해준다. 머지않아 형형색색의 꽃 잔치가 펼쳐질 것 같다.사회적 거리두기 같은 심리적 고립감을 동네 주변 봄꽃들을 보면서 탈출해봄직하다. 봄가을 꽃이나 낙엽의 색깔을 보고 있노라면 어떻게 저런 고운 색깔을 내는지 궁금해진다.사람이 보고 느끼는 색깔은 물질이 가진 근원에 굴절된 빛이 시신경을 통해 뇌가 인식하는 구조라고 한다. 그렇게 인식되는 색들은 자연에서 내뿜는 본연의 색은 아닐 것이다.어떤 뛰어난 화가도 자연의 천연색을 담지 못한다고 한다.인상파 화가들도 자연의 색을 담지 못한 한계에 부딪쳐 새로운 색과 빛을 창출한 것 아닐까 싶다. 자연의 위대함에 경외감이 들게 된다. 하지만 색깔에 이념이 채색되고 있다.자연의 아름다움과 순수함이 퇴색되는 시대가 된 것 같다. 색이 원치 않는 편 가르기에 동원되었다. 열정과 사랑의 상징이었던 붉은색은 공산주의자의 피의 혁명을 상징했다. 자유진영에서 거부감을 가진 적이 있다.이를 꼬집고 이야기하면 색깔논쟁으로 비화된다. 희망과 따뜻함을 나타내던 노란색이 진보의 가치를 내세우던 정당의 상징색이 된 적이 있다. 보수진영으로부터 반감을 갖는 색으로 된 인식의 변질도 있었다.오랫동안 보수성향 정당이 누리던 파란색이 진보성향 정당의 상징색으로 채택되는 아이러니도 경험하고 보니 색에 덧칠해진 이념은 고착되는 것은 아닌가보다. 색깔을 통한 소속과 정체성 알리기가 더욱 가열되고 있다.경선에서 탈락하고도 무소속 출마를 강행하는 후보자는 이전 소속 정당 색의 근사치 색으로 덧칠한다. 정체성이 완전히 다르지 않다는 것을 역설한다. 색(?)들의 전쟁이다. 그래서 선거철에는 자리에 따라 옷차림조차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다.속칭 ‘깔맞춤’(색깔맞춤)을 해야 한다. 남자들은 넥타이 색깔 고르기까지 신경을 써야한다고 하니 씁쓸한 기분이 든다. 색의 상징화가 권력투쟁의 치열한 도구가 되었다. 색으로 이념을 세뇌시킨다.자연이 준 순수한 아름다움에 취할 행복감을 박탈하는 결함을 가진다. 색으로 편 가르기 하는데 휘둘려 봄의 아름다움을 놓치지 말아야겠다. 코로나19로 거리의 색이 변하고 있다. 현란한 채색의 도심이든 시골의 한적한 동네든 사람이 있는 곳에는 직사각형 작은 흰색이 움직이고 있다.순결과 청결을 상징하는 흰색이다. 중환자들이 감염되지 않기 위해 착용하던 마스크를 많은 사람들이 착용하고 다니는 모습. 온통 중환자들이 거리를 다니는 것 같다. 흰색에 대한 혐오증을 불러일으킬까 걱정된다.우울감이 더해간다. 고생하는 흰색에게 순결과 청결의 고귀함을 빨리 찾아주고 싶다. 마스크 앞면에 스마일 표시라도 해서 오가는 사람들이 ‘씨익’ 눈웃음이라도 나누었으면 좋겠다.

2020-03-17

수만 번의 헛기도로 이어지는… 충주 석종사(釋宗寺)

충주 금봉산(金鳳山) 자락에 석종사라는 절이 있다. 그리 멀지 않지만 내게는 낯설고 생경스러운 도시를 혜국 스님의 말씀 하나 잡고 찾아 나선다. 휴일이 무색할 정도로 고속도로는 한산한데 두어 시간 만에 도착한 석종사에는 뜻밖에 봄기운이 완연하다.일주문을 지나 노자의 도덕경에 나오는 ‘상선약수’를 문패처럼 내건 곳에 넓은 주차장이 자리하고 있다. 과거 죽장사라는 절이 있던 폐사지를 봉암사에서 수행하던 혜국 스님이 현몽을 꾼 뒤 찾아와 석종사를 세웠다. 스님은 갈 곳 없는 연로한 스님들과, 이들의 외로움을 덜어 주기 위해 부모 없는 아이들과 함께 살았다. 대웅전 창건을 시작으로 혜국 스님의 상좌들이 직접 중장비를 운전하고, 신도들이 힘을 합쳐 지금의 대대적인 불사를 이루었으니 불심의 깊이가 제대로 살아 있는 절이다.크고 작은 당우들이 널찍하게 거리를 둔 경내는 인적 없이 고요하다. 천척루를 배경으로 계단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던, 늙은 어머니와 딸인 듯한 모녀가 봄꽃 같은 미소를 피우며 반긴다. 마스크를 하지 않은 채, 두려움 없는 민낯의 온화함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고려 때 만들어진 오층석탑은 멀찍이 서서 홀로 참선 중이다. 결코 쓸쓸하지 않은, 환한 평화가 넘실거리는 경내로 조심스레 발걸음을 옮긴다.석종사는 웅장한 외형만큼 내재된 힘을 자랑한다. 군장병을 위한 템플스테이와 출가한 승려만을 위한 공간을 지양하고 재가자(在家者)도 사찰에 머물며 수행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사찰은 그리 흔하지 않다. 진지하게 명상에 잠긴 불자들의 모습은 매너리즘에 빠져 살아가는 내게 고무적일만큼 서늘하게 다가왔다. 육신의 눈에 의존하지 않고 마음의 눈을 뜨기 위해 수행에 전념하는 사람들, 그들은 모습은 참으로 경건해 보였다.누하진입식 천척루를 지나 마당보다 더 낮은 곳으로 흐르는 감로수에 손을 씻는다. 대빗자루 자국이 선명한 마당, 눈부신 햇살, 잘 생긴 나무들, 모두가 흐트러짐 없이 참선 중이다. 지독히도 그립고 그립던 봄이 오는 풍경이다. 신선한 설렘과 전율들을 뒤로 하고 대웅전으로 향한다. 마스크를 벗지 않고 계단을 오르는 나와 신음 소리를 내며 물러서는 햇살의 만남이 어색하다. 나는 최대한 천천히 그리고 묵묵히, 계단을 오른다.대웅전 팔작지붕은 툭 트인 산야를 향해 날아오를 듯 힘차고 웅장한데 너른 뜰 위로 수많은 좌복들이 나와 일광욕을 즐기고 있다. 이색적인 사찰의 봄맞이 풍경이다. 풍수에 문외한인 내게도 명당 터라는 게 느껴진다. 가부좌가 아닌 편한 자세로 대웅전 뜰 위에 하염없이 앉아 있고 싶다.가지런히 전지를 한 나무들처럼 탐욕과 집착으로 멍든 마음 깨끗이 잘려나가고 고착된 습은 봄볕에 녹아 재가 될 것 같다. 고만고만한 종류의 반성과 다짐이 되풀이 될 때마다 겪어야 했던 자괴감들, 행동은 마음을 따르지 못해 자주 괴로워했다. 습의 굴레에서 벗어나 나를 바꾼다는 건 쉽지 않았다. 천하의 법도로 삼을 만큼 한결 같은 ‘하나’, 그것이 부재인 채로 나는 육신이 끄는 대로 살아왔다.게으름으로 시간을 낭비할 때마다 맞닥뜨려야 했던 순간들이 얼굴을 화끈거리게 한다. 새해 첫날의 다짐처럼 오래지 않아 기도는 무질서 속으로 함몰되었으며, 감정 앞에서 속절없이 무너지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수많은 사찰과 말씀들이 든든한 위안처가 되어 주었다.청소기를 돌리고 걸레질을 하며 대청소를 하느라 정신이 없는 법당에 끌리듯 발을 들여놓고 말았다. 그들도 나도 서로를 의식하지 않는다. 그들은 기도하듯 청소를 하고 열린 어간문 앞을 서성대던 햇살이 나를 안내하고 처마 끝의 풍경도 울지 않았다. 삼배의 예를 갖추자 한결 마음이 정갈해진다.조낭희 수필가큰 절은 무언가로 꽉 차 흐른다. 삼라만상 실개성불(森羅萬象 悉皆成佛). 하늘과 땅에 가득 찬 것들이 모두 부처를 이루었다는 부처님 말씀이 떠오른다. 보이지 않는 아우성으로 가득한 이 어수선한 봄날, 둘러보니 부처님 아닌 것이 없다. 실눈을 뜨는 나무와 바위, 높다란 처마 끝에 매달린 풍경, 시선 닿는 곳마다 생명이 숨 쉰다.대웅전 뜰 위에 서서 내 안을 응시한다. 캄캄한 어둠 속을 헤맬 때마다 어김없이 손 내미는 분이 있다는 건 얼마나 큰 축복인가. 이번에는 혜국 스님의 말씀이 봄꽃처럼 마음의 눈을 뜨게 해 주었다. 모든 건 필연이다. 어둠 속에서 만나는 한 줌의 햇살, 뒤이어 따라오는 수많은 전율들, 인생은 결코 고행만 있는 것은 아니다.혜국 스님의 말씀을 따라 햇살 속을 걷는다. 한 번의 참기도는 수만 번의 헛기도를 필요로 한다는 스님의 가르침이 죽비가 되어 내려친다. 나는 언제나 조급했다. 달팽이처럼 느린 걸음으로 목적지를 향해 쉼 없이 나아가야 한다는 걸 간과했었다.서둘러 피었다가 이내 이울더라도 다시 그렁그렁 눈물 같은 꽃눈을 달고 헛노력이라도 해봐야겠다. 언젠가 이승을 떠날 때 스스로에게 부끄럽고 미안해지지 않도록, 더 이상은 두렵거나 쓸쓸하지 않을 미지의 세계를 위해….삶은 수많은 출발들로 점철되어 있지 않은가.

2020-03-16

보이지 않았던 세계에 대한 공포

주제 사라마구코로나19로 인해 사회에 공포가 만연해 있다. 과학의 발전으로 지금까지 눈에 보이지 않았던 세균과 바이러스의 영역을 발견해 낸 것이 위생의 영역에 있어서 인류가 이룬 가장 큰 진보 중 하나였지만, 그것이 존재하되 여전히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이 우리의 마음속에 공포를 만들어낸다.우리 마음속에 불길과 같이 일어나는 공포는 비가시적인 존재에 대한 가시화된 상상에서 비롯된다. 우리가 맺고 있던 인간적인 관계들과 매일 생활하는 공간은 지금 눈에 보이지 않지만, 공기 중에 떠다니고 있을, 위험한 존재들에 대한 상상을 통해 전혀 다른 것으로 바뀐다. 공포는 인간이 갖고 있는 감각을 바꾸고, 관계를 바꾸고, 자신이 영위하는 시공간의 형태를 바꾼다.세계 속에는 인간이 공포를 느낄 만한 대상들이 수도 없이 존재하고 있지만, 비가시적인 대상에 대한 공포만큼 본질적인 공포는 존재하지 않는다. 범죄나 전쟁처럼 명확하게 타자화될 수 있는 공포의 대상과 달리, 바이러스와 세균에 대한 공포는 인간이 살아가는 전제 조건에 대한 믿음을 흔든다. 언제나 붙잡고 기대 있던 손잡이의 명확한 감각도, 내가 의지하고 믿고 있던 사람들과의 유대 관계도, 늘 그렇게 계속해서 이어져야만 할 것 같은 집이 주는 안온함도, 전염병에 대한 공포는 그 모든 것을 이전과는 다른 눈으로 볼 수밖에 없도록 강제하는 현상이었다.어쩌면, 이러한 전염병에 대한 공포는 우리로 하여금 우리가 바깥 세계와 맺고 있는 인간적인 관계들을 다시 생각해 보게 하는 계기라는 점에서 문학적인 사유의 대상이 되곤 했다. ‘페스트’를 통해 인간 사회에 흘러 넘쳐 있는 비인간성이라는 징후를 파악했던 알베르 까뮈의 ‘페스트(1947)’가 그렇고, 콜레라를 사랑의 열병에 비유하면서 인생을 살아가며 사랑하고 고통 받는 것에 대해 긴 호흡으로 담아낸 가브리엘 마르케스의 ‘콜레라 시대의 사랑(1985)’이 그러하다.1998년 노벨 문학상을 받은 주제 사라마구(Jos00E9 de Sousa Saramago·1922~2010)의 ‘눈먼자들의 도시(1995)’는 그 중에서도 인간의 시각의존성과 전염되는 질병에 대한 공포 사이에서 직조되는 인간성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어느 날 의사는 자동차를 운전하다가 자신이 눈이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의사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하나 둘 씩 눈이 멀게 되고, 그는 이것이 원인을 알 수 없이 전염되는 백색 질병임을 당국에 알리고, 역시 전염되는 상황이었지만, 특이하게도 눈이 멀지 않은 자신의 아내와 함께 격리된다.눈이 먼 사람들이 한 곳에 모여 격리되면서 그들에게는 전문가의 권위나 윤리, 이성적 판단 같은 인간이 인간됨을 규정해왔던 여러 가지 기준들이 사라지고, 일용품과 식품에 대한 약탈을 넘어 인간에 대한 약탈이 시작된다. 이 ‘눈먼자들의 도시’속 인간들은 시력이 상실된 것은 아니었지만, 자신이 보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고 표현할 줄 모르는 채 공포에 자신을 내맡긴 인간들의 세계가 얼마나 처참한 것인가 하는 것을 보여주는 인간 역사에 대한 우화이다. 눈이 보이는 자들은 남의 것을 훔치고, 눈이 보이지 않는 자들은 길바닥을 기어가며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포기하고 생존을 위한 먹을 것에 매달린다.이 소설에서 함께 하고 있는 무리들 중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이 모든 비인간적인 상황을 목도하고 있던 의사의 아내는 아이와 어른을 씻기고, 상처에 붕대를 감아주며, 그 모든 공포와 고통을 이겨내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 그 노력이 단지 숭고하다 말하는 것은 현실적이지 못하다. 유일하게 눈이 보이는 그는 맹목적 폭력을 막기 위해 또 다른 폭력을 행사하기도 하고, 그로 인해 엄청난 죄책감에 시달리기도 하기 때문이다. 모두가 공포에 질려 있을 때, 그것에 대처하면서 삶으로 나아가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공포는 종종 절망으로 바뀌기도 한다. 하지만, 서로에 대한 믿음과 배려를 가진 인간은 공포 속에서도 그것을 절망으로 바꾸지 않을 힘을 갖고 있다. 모든 것보다 가장 인간다운 것이 그것일지도 모른다./홍익대 교수 송민호

2020-03-16

코로나 진단법 논란

세계적으로 팬데믹(pandemic·세계적 대유행) 국면에 접어든 코로나19 진단법에는 분자진단법(RT PCR), 배양법, 항원 항체 검사법 등 3가지 진단법이 있다. 분자진단법, 배양법은 바이러스 자체를 보는 것이고, 항원 항체 검사법은 바이러스가 아닌 항원이나 항체를 검사하는 방법이다. 현재 질병관리본부에서 코로나19 확진 검사법으로 인정한 것은 RT PCR과 배양법 2가지뿐이고,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쓰고, 전 세계적으로 표준이되는 코로나19 진단법은 RT PCR이다. 검체에 있는 바이러스에서 핵산을 추출한 뒤 이를 증폭시켜 진단 장비로 읽어내는 방식이다. 빠르면 3시간 정도면 검사 결과가 나오며, 정확도는 99%다. 또 RT PCR은 바이러스를 기본적으로 죽여서 검사하기 때문에 배양법보다 안전하다. 현재 국내 긴급사용 승인된 5개 코로나19 진단시약은 모두 이 방식을 사용하는 제품이다. 또 다른 검사법인 배양법은 주로 연구용으로 쓴다. 검사에 짧게는 이틀에서 길게는 일주일이 걸린다. 무엇보다 검사 과정이 위험해 일반 병원에서는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최근 미국 하원에서 논란이 된 코로나19 검사법은 항원 항체 검사법이다. 이 검사법은 신속진단법, 또는 간이진단법으로 불리며, 바이러스 자체보다는 바이러스의 항체를 검사하거나 바이러스의 부스러기 단백질인 항원을 검사하는 면역학법 검사법이다. 독감검사나 임신진단 키트와 원리가 동일해 키트에 항원이나 항체를 떨어트리면 10~15분에 검사 결과가 나오지만 민감도, 즉 환자를 검출하는 비율이 50~70%정도여서 현재의 코로나 사태서 사용하기는 어렵다. 미국 의회에서 한국의 코로나19 사태 대응을 폄하하는 발언이 나온 것은 매우 유감스런 일이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0-03-16

관점에 대하여

유영희인문글쓰기 강사·작가직업 상 읽기 쓰기 경험을 많이 하는데, 학생들과 텍스트를 같이 읽거나 그들이 쓴 감상문을 보다 보면, 학생들에게 관점이 숨어 있다는 것을 발견한다. ‘수련을 꿈꾸었다’는 수필을 같이 읽을 때다. 작가 김선우가 캄보디아에 갔을 때 소년이 구걸하지 않고 꽃을 파는 모습을 보고 쓴 글이다. 가난 속에서도 순수함을 잃지 않았다면서 그 소년을 더러운 물에서 피는 수련에 비유하는 내용이다.이 글을 보고 어떤 학생은 작가의 감동에 감정 이입하여 캄보디아 소년의 순수함에 매료된다. 그러나 어떤 학생은 수련이 과연 얼마나 더러운 곳에서 피는지 사실을 확인하려 든다. 어떤 학생은 구걸을 금지한 캄보디아 정책 때문에 소년이 꽃을 팔고 있다는 사실을 들며 감동을 거부한다. 어떤 학생은 사실과는 별개로 작가의 아름다운 마음에 감동한다. 이렇게 같은 자료를 보아도 반응이 다른데, 그것은 관점이 다르기 때문이다.글을 쓸 때도 마찬가지다. 아쿠다카와 류노스케의 단편 ‘라쇼몽’은 오랜 가뭄으로 주인집에서 쫓겨난 하인이 라쇼몽에서 노파를 만난 후 도둑으로 변하면서 자신을 합리화하는 내용이다. 이 단편을 읽고 어떤 학생은 가난을 구제하는 사회적 노력이 필요하다고 감상문을 쓰고, 어떤 학생은 하인의 부도덕함을 심판하는 글을 쓴다. 이것 역시 작품을 보는 관점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다.그런데 학생들의 그런 관점은 평소 가지고 있던 가치관과 경험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이다. 수련이 얼마나 더러운 물에서 피는지 궁금해 하는 학생은 사물을 볼 때 사실을 중시하는 평소 관점이 기저에 깔려 있다. 캄보디아의 구걸 금지 정책은 경험하지 않으면 관심 갖기 힘든 정보이니, 작품을 볼 때 자신의 경험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렇게 작품을 보면서 어떤 점이 눈에 띄는 것은 그 부분을 일부러 골랐다기보다는 자신의 관심과 경험에 의해서 그것들이 보인 것이다.관점은 자기가 속한 문화 속에서 오랜 시간 형성된다. 동양인지 서양인지, 한국인지 중국인지, 상위 10%에 속하는지 아닌지, 부모가 엄격한지 개방적인지에 따라 영향을 받아 형성된다. 심지어 여러 과학 연구 결과에 의하면 진보냐 보수냐 하는 정치적 관점의 경우 타고난 뇌 구조에 의해서 결정된다고도 한다. 그러니 관점을 의식적으로 만드는 것은 아주 어렵다.그렇다고 관점이 절대로 변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나는 관점을 바꿀거야 해서 바꿀 수는 없지만, 절박한 상황이 되면 바뀌는 경우가 있다. 인생의 큰 시련을 겪으면 종교를 갖게 되거나 개종을 하기도 한다. 민주화 운동을 하는 자녀가 있으면 부모도 진보 쪽으로 기울기도 한다.그러나 그런 경험 역시 내가 하고 싶다고 해서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보통 사람이 자신의 관점을 돌아볼 수 있는 기회는 같이 읽기와 글쓰기가 적절한 도구다. 같이 읽고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관점의 차이를 발견하게 되고, 퇴고를 거듭하다 보면 관점에 변화가 오기도 한다.

2020-03-16

허경영 신드롬

김락기 전 한국시조문학진흥회 이사장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있다. 사람들은 자기가 아는 범위 내의 일만 진리라고 믿는 경향이 있다. 진리는 누구든지 인정할 수 있는 보편적인 법칙이나 사실을 이른다. 이를 벗어나면 사이비라 한다. 17세기 지구중심의 우주관에서 갈릴레오의 태양중심설이 그랬고, 잘 사는 남한 실상을 알기 전 탈북민이 그랬을 것이다. 국가혁명배당금당 허경영 대표의 언행이 그처럼 잘못 알려진 것 같다.그는 ‘공중부양’이나 ‘축지법’ 같은 기행들로 시중의 관심을 끌었다. 그것은 다만 서민대중과 가까이 하기 위한 하나의 방편이 아니었나 싶다.그의 자서전 ‘무궁화 꽃은 지지 않았다’나 유튜브 등을 통해 느낀 필자 나름의 생각을 써본다. 다가갈수록 자애로운 인간미와 통찰력이 번뜩였다. 그에 대한 비방풍문은 사실과 적잖이 달랐다. 정계에 뛰어든 지 수십여 년 동안 대과 없는 처신은 여간 어렵지 않았을 테다.그는 우선 국민에게 헌신하는 대통령이 되고 싶어 한다. 대통령이 되면 추진하겠다는 33정책은 이미 1996년도에 원형이 제시되었다. 그 중 스무 살 이상 전 국민에게 매월 150만 원씩 배당금을 지급하겠다는 말은 얼핏 허황된 포퓰리즘으로 들린다. 한데, 우리나라가 이만큼 잘 살게 된 것은 입때까지 온 국민의 합심노력 덕분이랄 수 있겠다.그렇다면 주식회사에 해당하는 국가는 주주인 국민에게 그 수익을 돌려주는 것이 마땅하고, 이를 ‘국민배당금’이라 하여 별로 어색하지 없다. 국회의원 100명에 무보수 명예직화, 지자체의원제와 정당지원금제 폐지 같은 고비용적 요소를 변혁하면 가용 재원을 확보할 수 있다는 설명은 가히 혁명적이다. 변혁과정에 일부층의 기득권이 내려지는 등 동통은 따르겠지만, 별도 국민 세금 징수는 없다는 점이 중요하다.그는 또한 매주말 일반인에게 강연을 해왔다. 현재 토요일 강연이 1천200회가 넘었으니, 그 엄청난 학해는 천이지혜가 아니고는 할 수 없다. 강연마다 신선한 충격 속에 가득찬 청중을 매료시킨다.일례로, 우리가 매일 보는 태양은 원래 뜨겁지 않다고 한다. ‘생다이아몬드 탄소덩어리 온도 0도의 자체발광체’란다. 표면온도 6천K, 수소와 헬륨으로 된 불덩어리라는 통상의 태양 개념과는 전혀 다르다. 아직 사계의 반론을 보지 못했다. 뜬금없는 말 같지만, 논리적인 설명에 어안이 벙벙해질 뿐이다.삼세(三世)를 꿰뚫으며 사자후를 토하는 모습은 성현들의 가르침을 넘어선 것 같다. 경계할 일은 석가모니나 예수 같은 성현의 죽음 뒤에는 당시 가까운 인간의 배반과 모함이 있었다는 것, 요즘에도 유념할 일이다.그의 말들마다 구절마다 울림이 있다. 쉬운 듯 아닌 듯 화두로 꽂힌다. 초종교적 언행은 우리가 믿고 있는 상식의 그릇을 깨뜨린다. 나아가 세계인을 아우르는 섭리의 정치를 꿈꾼다. 아는 만큼 보인다 했다. 중국발 코로나19 팬데믹으로 국민들이 고통받는 이때, 허경영 같은 세계적 지도자 감을 주목한다면 헛수고일까. 시조로 읊는다.“동방의 등촉/바람 앞에 등촉이란/꺼지기도 할 터인데/타고르의 그 등촉은/여태까지 타다 남아/이제 곧/본 태양으로/온 천하를 비추리.”

2020-03-16

깨진 꽃병의 비밀

네덜란드 로테르담 지방의 작은 마을에 조촐한 파티가 열렸습니다.한 노부부의 결혼 50주년 기념 파티입니다. 부부는 한 마을에서 태어나 결혼하고 아이를 낳으며 살아왔습니다.마을 사람들은 그동안 노부부가 한 번도 큰소리치면서 싸우는 것을 본 일도, 술자리에서나 빨래터에서 부부가 서로를 헐뜯는 소리를 들은 적도 없었습니다. 노부부 얼굴에는 늘 미소가 떠나지 않았습니다. 모두의 존경과 사랑을 받는 부부였습니다.파티가 열린 집은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거실 탁자 위에 깨진 꽃병 하나가 놓여 있었지요. 파티와 어울리지 않는 흉물스러운 꽃병이어서 몇몇 부인들이 치우려 했지만 할머니는 한사코 만류했습니다.이들 노부부가 손님들에게 인사하기 위해 거실로 나왔습니다. 할머니가 먼저 입을 열었습니다.“대단치도 않은 일로 많이들 와주셔서 고맙습니다. 벌써 50년이나 되었군요. 세월이 참 빠릅니다. 남편과 제가 이때까지 아무 탈 없이 결혼생활을 지속해 올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저 탁자 위 깨진 꽃병 때문이랍니다. 남편에게 실망을 느낄 때나 여러 가지 고난으로 괴로울 때 저 꽃병이 나를 지켜주었답니다. 51년 전 늠름한 청년이었던 남편이 청혼했을 때 얼마나 가슴이 뛰던 지 감격한 나머지 이리 저리 집안을 춤추듯 돌아다니다 탁자 위 꽃병을 깨뜨리고 말았어요. 저 깨진 꽃병은 그 날 제가 경험한 감동 바로 그 자체입니다. 그날의 감사한 마음과 감동을 늘 기억하기 위해 꽃병을 저기 50년 동안 놓아 두었던 겁니다.”흉물스러운 꽃병은 이제 사람들 눈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병으로 보이기 시작했습니다.“네 상처(scar)를 별(star)로 만들어라.” 서양의 유명한 격언입니다.누구에게나 있는 아픈 상처는 우리 삶을 파멸로 이끌 수도 있고 빛나는 존재로 탈바꿈시켜 별처럼 반짝일 수도 있습니다./인문고전독서포럼 대표

2020-03-16

문화유산이 밥이다

권영세 안동시장안동은 문화재의 보고이자 산실이다. 낙동강 상류에 위치해 있으며, 안동댐과 임하댐 등 두 개의 다목적댐이 건설되어 있어 각종 지역 개발 사업이 제한을 받는다. 이런 지역 여건으로 인해 문화자산은 지역 관광산업의 활로를 열어가는 알짜배기 동력일 수밖에 없다.따라서 곳곳에 산재해 있는 지정문화재 중심의 문화적 자산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관광산업과 연계해 지역의 성장 동력을 이끌어내느냐 하는 것이 관건이다.안동은 현재 328점의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는데 이는 경주와 더불어 전국 최고 수준이다. 이 중 국보는 ‘징비록’을 비롯해 5점, 보물은 ‘퇴계선생문집’ 목판 752매와 김성일 종가 전적 56종을 비롯해 42점이 지정돼 있다.이외에도 구리측백나무숲 등 7곳은 천연기념물, 백운정 개호송과 만휴정 원림은 명승, 도산서원과 병산서원 2곳은 사적으로 지정돼 있다. 차전놀이(제24호)와 하회별신굿놀이(제69호)에 이어 지난해 12월 안동시 임하면 금소리 안동포 타운의 삼베짜기가 국가무형문화재 제140호로 지정됐다.조선 시대 궁중 진상품이었던 ‘안동포’는 마을 사람들의 협업을 통해 생산되고 후대로 전승된 집단적 기술의 산물로 길쌈 문화의 상징이다. 특히 기원전 1세기 낙동강 유역에서 명맥을 이어오던 대마의 역사가 지금도 여전히 안동의 작은 마을에서 재현되고 있는 것은 단순한 기술 전수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사)안동포마을문화보존회가 삼베짜기의 보유단체로 지정된 것은 당연한 수순인 것이다.이뿐만이 아니다. 안동은 500년이라는 시간의 흔적이 고스란히 깃든 오랜 가옥이 지역 곳곳에 있다. 인위적으로 한데 묶어놓거나 마을을 부러 조성한 것이 아닌, 예전부터 있어 온 그대로의 모습으로 말이다.더욱이 대부분 국가민속문화재로 지정돼 세계유산의 도시로서 우리 유산의 원형이 얼마나 잘 보존되고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그 가운데 하회마을(2010년), 봉정사(2018년), 도산서원·병산서원(2019년)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는 쾌거를 이루면서 관광산업을 통해 지역 먹거리를 해결할 수 있는 여건이 한층 더 탄탄해졌다.특히 올해는 안동 브랜드가치의 성장을 재촉하는 큰 걸음이 될 것이다. 문화는 곧 도시를 상징하는 매력이 되고 그 매력은 곧 자본으로서 브랜드 가치가 된다.이러한 문화자산이 관광이라는 연결고리를 통해 지역 성장 동력이 되고 훌륭한 먹거리가 된다는 사실은 이번에 안동이 대한민국 지역관광거점 도시로 선정되는 과정에서도 여실히 증명되었다.대한민국 관광거점 도시 육성 사업은 △하회-로열웨이권역 △원도심권역 △안동댐권역 △도산권역으로 나누어 5년간 17개 사업에 1천억 원을 중앙정부가 투자하는 관광 한국 메가(mega) 프로젝트이다. 관광 안동의 비전과 선정비결의 숨은 일등 공신은 누가 뭐라고 해도 안동의 다양하고 심층적인 문화자산이라 할 수 있다.안동은 이제 대한민국 관광거점 도시라는 바탕 위에 세계유산도시로 도약하는 포부도 당당하게 진행하고 있다.유교책판(儒敎冊版·2015년)의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넘어 만인소(萬人疏), 편액(扁額), 내방가사(內房歌辭)까지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하기 위한 만반의 준비를 마쳤다.또한, 올해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 신청 대상으로 선정된 하회별신굿탈놀이가 2022년 최종 등재되면, 안동은 세계유산과 세계기록유산, 인류무형문화유산 등 유네스코 3대 카테고리를 모두 완성하는 유일한 지자체라는 명성과 함께 세계유산 8건을 보유하는 유일무이한 도시가 된다.그동안 안동이 문화관광에 중심을 두고 나아가고 걸어간 방향은 옳았다. 재앙이라는 인식에 머물러 있던 안동, 임하댐을 축복으로 전환한 저력만큼이나, 점으로 흩어져 있던 문화유산을 관광이라는 선으로 연결하는 진화적 작업은 분명히 우리 안동의 미래를 더욱 밝게 할 것이다.이제 이러한 철학의 방향 위에서 문화관광과 바이오산업, 농업, 교육, 교통, 물 등의 다양한 자원과 기반을 어떻게 밥으로 연결할 것인가를 고민한다면 더 많은 것들이 새롭게 조합되고 창조되어 위대한 안동의 여정은 계속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2020-03-15

잃어버린 일상을 찾아서

정은숙생각학교ASK 연구원·프리랜서이른 아침, 비 내리는 수목원을 걸었다. 궂은 날씨에도 산책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코로나19 사태로 힘겨운 대구에서 살아가는 소시민이 누리는 작은 위안이다. 틀어박혀 살아야만 하는 요즘, 산책 한 번도 얼마나 소중한지를 새삼 깨닫는다.얼마 만에 돌아온 주부의 삶인지 모르겠다. 남편 출근시키고, 설거지하고 따뜻한 차 한 잔을 마신 후 모닝 요가로 긴장을 푼다. 시계가 아침 아홉 시를 가리키면 수목원, 화원동산, 수변공원을 요일마다 번갈아 가며 산책한다. 이렇게 바뀐 일상은 낯설지만, 짙은 불행의 그림자가 드리운 도시에서 일상의 자그마한 행복을 한 조각 선물해 준다.사람들의 삶은 멀리서 보면 대략 비슷비슷해 보이지만 개인적으로 한 사람 한 사람을 분리해 자세히 들여다보면 우주만큼 복잡하고 다양한 사연과 이유를 갖고 살아간다. ‘수많은 인생들은 과연 자신의 삶에 스스로 얼마나 만족하며 살아갈까?’ 대부분 각양각색의 모양으로 불평불만에 젖어 막연히 저 멀리 어딘가 감추어진 행복을 추구하지 않을까?근래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할 것 없이 예기치 못하게 덮친 코로나19로 인해 일상이 붕괴되고 삶이 위협받는 상황에 대한 불안감이 클 것이다. 불안감 속에 자가격리나 스스로 절제하며 대면 접촉을 기피하는 현재 상황에서 ‘사람에 대한 그리움’이 깊어진다. 집단 속에서 받던 스트레스가 이제는 일상에 대한 절실한 욕구로 옮겨졌다. 나도 그랬다. 출근하지 않아도 되는 며칠은 마치 휴가를 얻은 것처럼 좋았지만 사태가 장기화되고 격리의 시간이 길어질수록 익숙했던 과거를 갈망하는 나를 발견하는 중이다.아침이 밝으면 출근하고, 저녁 어둠이 깃들면 퇴근길에 동료들과 술자리를 갖거나 가족과 저녁식사를 하는 다람쥐 쳇바퀴 도는 그 일상이 지고한 만족감을 주는 시간이기 때문은 아니다. 손에 붙잡을 수 없는 금지된 일상이기에 어쩌면 욕구가 강렬해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보다 더 큰 위기를 겪으며 살아가는 사람들도 많을 텐데, 이런 불편한 현실쯤은 기꺼이 받아들이자고 스스로 다독인다.전쟁처럼 바뀐 요즘, 일상의 두려움을 행복으로 전환할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이 있다면 ‘자세히 보기’다. 예전까지는 늘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기에도 바빴던 일상이라 무심하게 지나치고 자세히 시선을 주지 못한 것들, 듣지 못하던 소리를 듣는 일에 집중해 보는 거다. 갑자기 늘어난 산책 시간은 내게 그렇게 ‘자세히 보기’가 주는 일상의 행복을 발견하게 해 주었다. 늘 그 자리에 있었던 것들의 아름다움을.가냘프게 매달린 앙상한 가지에 조금씩 물이 차오르는 모습, 메마른 땅속에서 존재조차 몰랐던 야생화가 움트는 생명력, 소리 없이 피어나는 봄꽃들을 보며 활기를 얻는다.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가는 계절은 고요하다. 하지만 하루가 다르게 고개를 내미는 봄꽃으로부터 위대함과 침착함을 배운다. 그들의 조화로움을 배운다. 나름의 색깔과 다채로움으로 봄이 탄생하듯 사람 또한 각양 색깔과 가치관들로 조화를 이루며 살아간다. 조화롭지 못한 일이 생기는 건 무언가 순리를 역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19도 그렇게 어느 날 갑자기 우리에게 왔다. 이겨내야 한다.고통은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삶’을 반성하게 해 준다. ‘평범함’에 대한 감사를 회복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일에 대한 감사, 내 곁에 가까이 있는 사람에 대한 감사, 더불어 함께 살아야 행복할 수 있다는 반성, 집 안 구석구석 내 손길이 필요함을 깨닫는 시간이다. 매일 집안 일정한 공간을 지정해 정리정돈을 시도해 보고, 시간이 없어 하지 못했던 일을 기억을 떠올려 누려보는 일, 때로는 멍 때리며 아무것도 하지 않고 멈춰 보는 것, 비 오는 공원을 걸으며 구석구석 야생화를 찾아보는 작은 실천이 지친 우리에게 또 다른 행복을 발견하게 해 줄 것이다.“이 또한 지나가리라.” 옛 왕의 반지에 새겨진 문구처럼, 지금의 힘든 시간은 언젠가 좋은 기억으로 그리움이 될지 모를 일이다. 그러므로 지금 ‘자세히 보기’를 통해 행복을 되찾는 일. 그것이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 아닐까? 행복은 강도가 아니라 빈도이기 때문이다.

2020-03-15

위로의 백신

강성태 서예가·시조시인설마설마 하던 일들이 우려의 현실로 돼버렸다. 중국 우한에서 발원한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우리나라 전역에 후폭풍처럼 소용돌이 치고 있다. 감염원 원천 차단을 위한 철저한 통제와 제재로 초동 대처가 유효한 듯 싶었다. 그러나 첫 감염자가 나오고 불과 한 달도 채 안돼 지역사회 감염 사례가 속출하면서 확진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작금의 비상사태를 전혀 예기치 못한 변종 바이러스 감염증 확산에 봉착하여 온 나라가 오리무중에 휩싸인 듯 하다.사상 초유의 사태에 직면해서 사람들은 불안과 조바심으로 하루하루를 살얼음판 걷듯이 살아가고 있다. 외출과 이동 자제 등 감염을 피하기 위해 거의 두문불출하다 보니 모든 것들이 위축되고 경색돼 가고 있다. 대화와 대문이 닫히고 만남이 줄어들면서 사람들의 왕래와 소통이 눈에 띄게 끊어졌는가 하면, 식당이나 시장, 소상공인, 중소기업체 등에게는 생계와 존폐를 위협할 정도로 심각하고 치명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다. 일상이 격리되고 사회, 경제적인 엄청난 타격 속에 걷잡을 수 없는 혼란과 공포가 온 나라를 송두리째 흔들고 있는 형국이다. 어쩌다가 이런 변고가 생겼을까? 당국과 정부에서는 사태가 이렇게 종잡을 수 없이 야기되고 악화를 막기 위한 최선의 노력을 응당 다했을 것이다. 다만, 현 상황을 놓고 보면 초기의 다각적인 유입 차단과 과도할 정도의 대응, 보다 면밀하고 확고한 선제적 대처가 아쉽게 여겨짐은 비단 필자만의 소견일까? 소 잃고 외양간 고쳐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잘잘못을 따지자는 얘기가 아니다.‘천하의 어려운 일은 반드시 쉬운 데서 시작되고, 세상의 큰 일은 반드시 세밀한 데서 비롯된다(天下難事必作於易 天下大事必作於細)’는 노자 도덕경의 글귀가 생각난다. 중요한 문제를 대수롭잖게 여기고 쉬운 일들을 어렵게 풀려니 자꾸 엇박자가 나고 뒷북만 치는 양상이다. 행정 수반의 혜안, 의료전문가들의 심층적인 조언과 긴요한 대안제시, 실무진의 총체적인 검토와 과학적인 대응체계 등을 좀 더 중차대하게 다뤘으면 어땠을까. 항간에 떠도는 ‘대통령의 주치의는 있는데 국민의 주치의는 없다’는 얘기가 결코 빈말이 아닐 것이다.그래도 우리나라는 위기에 강하고 상황대처능력이 뛰어난 민족이다. 최고의 의료진과 의술, 발 빠른 행정력과 지원체계, 그리고 국민들의 온정과 응원으로 절체절명의 난국을 잘 헤쳐가고 있다. 성숙한 시민의식과 정으로 다져진 사회적 신뢰자본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태의 장기화 앞에서는 헌신과 열정도 약해지기 마련이다.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며 스스로 방역의 주체자가 되어, 배려와 이타심으로 국가적 어려움을 다 함께 슬기롭게 이겨내야 한다.어쩌면 평범한 일상이 소소한 행복이었음을 일깨워주는 요즘, 몸도 마음도 지치지 않도록 각자가 인내와 절제로 생활 속의 면역력을 키워나가야 한다. 희망을 나누기 위해 불철주야 고군분투하는 의료진과 공무원, 봉사자들의 노고에 위로의 백신을 보내며, 우리 모두 웃음백신으로 활짝 웃는 봄맞이를 고대해본다.

2020-03-15

15㎝의 위력

하반신을 쓸 수 없는 척추 마비 장애인이 1천m 암벽에 도전했습니다.29세 마크 웰먼은 미국 캘리포니아 주 엘카피딩암벽에 도전해 성공했습니다. 그의 등반은 친구가 암벽에 로프를 걸어주면 팔의 힘만으로 기어오르는 방식으로 여러 날에 걸쳐 이어졌습니다.그는 한 번에 겨우 15㎝만 몸을 위로 끌어올릴 수 있었습니다. 무려 9일에 걸친 이 등반에서 그는 39℃가 넘는 폭염 속에서 약 7천 번 로프를 끌어당기는 일을 반복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등정에 성공했지요. 비결을 묻는 기자에게 이렇게 대답했습니다.“한 번에 15㎝만 오르면 됩니다.”누구나 표현하지 않더라도 마음속 깊은 곳에는 꿈을 품고 살아갑니다. 꿈이 없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런데 이 꿈에 관해 사람에게는 두 가지 유형이 있는 것을 봅니다. 첫째 유형은 꿈을 꾸는 사람이고 둘째 유형은 꿈을 이루는 사람입니다.꿈을 꾸는 사람은 그저 꿈만 꾸는 사람입니다. 몽상가지요. 그들은 이런 식입니다. “5개 국어를 하고 싶다. 내가 5년만 더 젊었어도 가능할 텐데.” 그런 사람은 10년 후에 만나도 똑같은 말을 합니다.꿈을 이루는 사람은 꿈을 향해 오늘도 한 발짝 앞으로 나가는 사람입니다. 마크 웰먼이 한 번에 15cm씩 몸을 끌어올리는 것처럼 포기하지 않고 조금씩 꿈틀거리며 나아가는 사람입니다. 아무리 큰 목표라도 조금씩 잘게 쪼개고 꾸준히 그것을 실천하기 위해 애쓰는 사람에게는 그 목표가 자리를 내어주게 마련입니다.샘물을 길어 내면 다음날 새롭고 신선한 물이 솟습니다. 아까워 쓰지 않으면 결국 샘물은 메말라버립니다.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쏟을 때 샘물처럼 다른 에너지가 또 솟구치게 마련입니다. 꿈을 이루기 위해 오늘도 15cm 위로 자신을 끌어올리는 그대의 숭고한 노력에 뜨거운 박수를 드립니다./인문고전독서포럼 대표

2020-03-15

진짜? 가짜?

박상영 대구가톨릭대 교수내 지인 중에 L이란 위인이 있다. L은 모 대학 정교수인데, 행동이 차분하고 말솜씨는 조곤조곤하며 성격도 유한 편이라 사람들마다 그 인품을 칭찬하지 않는 이가 없을 정도였다.심지어 주위로부터 이 시대의 ‘선비’, ‘양반’이라는 별칭까지 얻은 터였다. 그런데 유독, 이 L을 가까이서 한 10년 이상 알아 온 Y만큼은, 사람들이 칭찬할 때마다 인상을 쓰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곤 했다. 나중에 L이 교육자로서 해선 안 되는 불미한 사건으로 경질되어, 주위 사람들을 경악케 했을 때, Y만큼은 그다지 놀라지 않고 혀를 차며 하던 말이 생각난다. ‘쯧쯧. 비슷한 건 가짜인데 그것을 다들 모르고.’옛말에, 양두구육(羊頭狗肉)이란 말이 있다. 겉으론 양 머리를 걸고서 뒤로는 개고기를 판다는 말로, 겉과 속이 다른 것을 빗댄 말이다. 춘추시대 제나라 영공(靈公)이 본인은 여인들의 남장을 좋아하여 궁중에서 몰래 행하면서 온 나라에는 금지시키자, 당대 유명한 사상가 안자(晏子)가, “이는 곧 문에는 소머리를 걸고서 안에서는 말고기를 파는 것과 같다.”라 한 데서 비슷한 의미로 바뀌어 오늘날까지 전하게 된 고사이다.사실 겉과 속이 다른 사람들은 오래 전부터 많은 성현들이 극도로 경계했던 바이다. 겉, 속이 다른 선비를 특히 향원이라 했는데, 이는 비슷하지만 아닌 것, 곧 사이비(似而非) 선비를 일컫는다. 공자는 ‘논어’에 “자색이 적색을 망침을 미워한다”라고 한 바 있고, 맹자 또한 충직하고 신실한 듯(似忠信), 염치 있고 고결한 듯(似廉潔)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사이비들을 경계해야 한다고 설파하였다.그러면서, 사이비들은 마치 논두렁에 있는 ‘피’와 같다고 했다. 피는 벼와 흡사하게 생겨 뒤엉켜 자라며 벼의 성장을 방해하기에, 노련한 농부가 아니면 다 자라 열매 맺을 때까지 구별하기가 쉽지 않은 까닭이다.이러한 향원을 극도로 싫어한 인물로는 또 연암 박지원이 있다. 그는 스무 가지의 환희(요술)를 구경하고 글 하나를 남겼는데(‘환희기’), 핵심은 눈에 보이는 요술로 눈속임하는 것보다 실상은 눈에 보이지 않는 요술 곧 겉으로는 덕 있는 체 하면서, 온갖 교묘한 말로 위로는 임금을 아래로는 백성들을 눈속임하는 것이 더 무섭다는 것이다. 눈에 빤히 보이는 ‘눈속임’이야 알아서 피하면 될 일이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눈속임’은 간파해 내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요즘, 코로나19 사태로 모두가 침울한 분위기이다. 사소한 것 하나라도 진실이 중요한 이 마당에, 겉으로는 진실한 척, 정부에 적극 협력하는 척, 뒤로는 ‘감춤’, ‘거짓’을 밥 먹듯 하는 종교인들이 많다. 또 다가온 선거철, 표심에 눈멀어 겉으로는 국민을 생각하는 ‘척’, 뒤로는 또 다른 꿍꿍이를 꿈꾸는 정치인들도 많다. 다들 이 시대의 향원들이자, 사회를 좀먹는 벌레들이다. 눈 감아야 코 베가던 세상이, 이제 눈을 빤히 뜨고도 코 베이는 세상이 되었다. 가짜가 판치는 세상, 실상 코로나바이러스보다도 향원 바이러스가 더 무섭게 된 이 세상에, 다들 벼와 섞여 있는 피를 잘 솎아내는 노련한 농부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2020-03-15

기발한 드라이브 스루

미국 트럼프 대통령이 코로나19 확진자가 증가하자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특히 눈길을 끄는 대목은 한국에서 최초 선보인 드라이브 스루(Drive Thru) 방식의 선별진료소 도입이다.불과 일주일 전만해도 시큰둥한 반응이었던 트럼프 대통령이 드라이브 스루 방식의 선별진료소를 도입키로 한 배경에는 미국 내 확진자가 속출한데 따른 비판여론 때문이라 한다. 대구에서 처음 시작한 드라이브 스루 선별진료소는 대량으로 발생하던 코로나 확진자 검체에 획기적 성과를 냈다. 30분이나 걸리던 한 사람의 검사시간을 10분으로 단축했다. 진료, 수납, 검체까지 종전보다 3배나 빠르게 진행했을 뿐 아니라 감염 위험성도 현저히 낮췄다.1940년대 미국 패스트푸드점에서 시작된 드라이브 스루는 소비자가 구입할 메뉴를 즉석 주문하고 차안에서 물건을 받아가는 방식이다. 우리나라도 스타벅스나 맥도널드 등 패스트푸드점에서 많이 활용한다. 코로나19가 확산되면서 패스트푸드점은 대인 접촉이 없다는 이유로 드라이브 스루를 통한 판매가 되레 인기를 모은다고 한다.영국의 BBC 특파원은 “한국은 기발한 아이디어를 빠르게 적용했다”는 보도를 통해 한국인의 코로나 대응력을 크게 칭찬했다.코로나19가 사람의 활동을 크게 제약하자 일부 도서관에서도 드라이브 스루를 이용한 책 대출이 등장했다. 이용자가 사전에 빌려볼 책을 예약하고 차량을 몰고 가 책을 대출받는 방식이다. 포항에서는 코로나 사태로 어려움을 겪는 양식어업인을 돕기 위해 드라이브 스루 방식의 생선회 판촉전에 나섰다. 호미곶 광장에 설치한 판매대는 즉석에서 잡은 생선회를 드라이브 스루로 판매한다. 궁하면 통하는 법일까. 한국인의 아이디어가 참으로 기발하다. /우정구(논설위원)

2020-03-15

종교의 정치개입은 정당화될 수 없다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종교와 정치영역은 구분되는 영역이다. 종교가 영혼 구원이 목적이라면 정치는 국리민복이다. 상호 존중해야할 영역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을 ‘정치적 동물’로 보았고, 철학적 인간학의 시조 막스 셀러는 종교적 인간을 중시하였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도 종교가 정치에 개입하는 현상을 자주 목도하게 된다. 전광훈 목사의 한기총(CCK)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석방과 문재인 대통령의 탄핵을 주도하고 있다. 이들의 종교를 앞세운 정치 집회는 정당화 될 수 있을까. 한국 사회의 종교의 정치개입 행태부터 짚어보기로 한다.우리 역사에서 고려조에는 불교가 호국 불교라는 명분으로 조선조에서는 유교가 통치이념으로 영향을 미쳤다. 종교가 정치와 분리 되지 못한채 상호 야합한 결과이다. 임란 시 일본의 조선 침략에 가톨릭 종군신부까지 동원되었다는 기록도 있다. 해방 후 한국의 독재 정권하에서는 종교가 현실 정치를 옹호하는 수단이 되기도 하였다. 정권이 종교를 정치에 교묘히 방편으로 이용하였기 때문이다. 종교가 특정 정치 세력에 기생하고 권력에 비위를 맞추는 행태는 오늘도 이어지고 있다. 문제의 신천지와 정치권력과의 관계도 분명히 밝혀져야 할 것이다.해방이후 한국 사회의 민주화 과정에서 종교는 정치권력에 비판적 입장을 표출하였다. 시민사회의 성장이 정체된 사회에서 종교가 비판적 기능을 대행한 셈이다. 특히 가톨릭교회의 정의사제구현단과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는 권위주의 정권시절 반정부적 비판적인 입장을 취했다. 보수층에서는 종교단체의 이러한 역할을 비판하였고, 진보 측에서는 이를 적극 지지하였다. 여기에는 남미의 해방신학의 영향도 무시하지 못할 것이다. 여하튼 당시 성당, 교회, 사찰은 반정부적 인사들의 보호처가 되기도 했다.그러나 최근 한기총의 광화문 집회와 같은 정치행위는 상당한 문제점을 지니고 있다. 극우의 입장인 한기총 전광훈 목사가 주도하는 탄핵집회는 종교의 과잉 정치 참여라고 볼 수밖에 없다. 물론 시민사회의 입장은 그에 대한 평가는 처한 입장에 따라 상반된다. 결국 광화문 집회의 주역인 전 목사는 선거법 위반으로 구속 조사를 받고 있다. 그는 대통령의 탄핵 주장뿐 아니라 극우 보수 정당 창당의 주역이기도 하다. 그들은 신학자 본 훼퍼의 ‘미친 자에게 운전을 맡길 수 없다’는 표어를 내세우며 현직 대통령의 탄핵에 앞장서고 있다. 이들의 정치 개입 행위는 기독교 종교내부 뿐아니라 시민 사회의 비판도 이어지고 있다.결론적으로 한기총의 정치 개입 행위는 정당화되기 어렵다. 기독교의 교리 상에도 하느님의 권력과 나라와 세상의 권력은 엄연히 구분되어 있다. 일부 급진 기독교에서 예수를 ‘혁명가’로 묘사하기도 한다. 예수가 당시의 유태 사회의 구조적 모순에는 반기를 들었지만 행위의 본질은 사랑이다. 물론 정치는 종교와 자유 신앙의 자유는 절대적으로 존중해야 한다. 결국 종교가 정치권력에 기생하고 안주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종교의 정치에 관한 무관심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한기총 식의 과잉 정치 개입은 사회적 분열과 갈등만 야기할 뿐이다.

2020-03-15

위기의 사후 대책과 선제 대응

불과 몇 개월 뒤면 열릴 일본 도쿄올림픽의 개최가 코로나19 사태로 불투명해졌다. 취소 또는 연기 여부는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아닌 세계보건기구(WHO)의 손에 달린 듯하다. 토마스 바흐(Thomas Bach) IOC 위원장은 지난 2월 14일과 27일 두 차례 모두 인터뷰에서 코로나19 전염병이 퍼지는 상황이긴 하나 7월 24일 개최 예정인 도쿄올림픽이 예정대로 개최되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상황이 달라지고 있다. 3월 12일 스위스 제네바에 본부를 두고 있는 WHO에서는 코로나19를 ‘세계적 대유행(pandemic)’으로 선언하였다. 3월 13일 오전 2시 현재 기준으로 전 세계에서 코로나19 바이러스 감염자 발생 국가는 116개국, 확진자는 13만1천460명, 사망자는 4천923명에 달할 정도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동안 잠잠하였던 아프리카 전역에서도 감염자가 발생하였고 북부 아프리카에서는 사망자도 나왔다. 결국, 토마스 바흐 IOC위원장은 3월 13일 독일 공영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준비는 계속한다면서도 도쿄올림픽 개최를 WHO가 중지할 것을 권고한다면 이에 따르겠다며 한발 물러섰다.거기에 3월 13일 미국 트럼프 대통령은 리오 버라드커(Leo Varadkar) 아일랜드 총리와의 회담 직전 인터뷰에서 ‘도쿄올림픽 개최를 1년 연기하는 것도 좋을 것’이라는 견해를 밝혔다. 그리고 ‘아베 총리에게 권유하지는 않겠다’면서도 ‘관객이 없는 경기장보다는 나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일본 국내에서는 이 발언에 대한 비난 여론도 적지 않다. IOC가 2013년부터 2018년까지 거둬들인 총수입 약 5조9천억 원 가운데 약 80퍼센트에 가까운 4조7천억 원 정도가 미국 NBC 방송국의 중계권 수수료라며 관객이 없으면 방송국 즉, 미국의 수입이 걱정되기 때문일 것이라며 꼬집었다. IOC는 WHO의 권고에 따른다고 하기는 하였으나 일본올림픽위원회(JOC) 아니 일본 정부의 최종적인 판단에 달린 것인지도 모른다. 소비세율 인상과 같은 악재에 코로나19사태로 일본 국내 스포츠 경기들이 연기되면서 경제적 피해가 커지는 상황에서 과연 일본 정부가 재빨리 올림픽 개최 여부에 대한 최종 판단을 내릴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그러면 우리의 입장은 무엇이고 어떻게 대응해야 할 것인가. 만일 WHO가 올림픽 개최를 중지 내지는 연기할 것을 권고하고 IOC가 받아들인다면 각국은 이에 따르기만 하면 될 것이다. 하지만 JOC나 일본 정부가 끝까지 강행한다는 의지를 보인다면 과연 어떻게 될까. 어쩌면 도쿄올림픽은 그대로 개최하되 올림픽 참가 여부는 각국이 스스로 결정하는 방향으로 흐를 수도 있다. 그리고 문제는 또 있다. 현재 일본이 코로나19사태를 빌미로 한국인의 입국을 제한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이번 사태가 수습되고 오히려 일본이 확산 경향을 계속 보인다면 우리는 어떻게 할 것인가. 또 여전히 다른 국가에서는 사태가 진정되지 않는 상황이라면 그래도 선수단의 생명과 안전을 무시하고 올림픽에 선수단을 파견할 것인가. 이번 코로나19사태가 일으킨 도쿄올림픽에 관한 문제는 앞으로 신중하게 심사숙고해야 할 과제가 될 것이다.그동안 우리는 많은 위기를 겪었지만 슬기롭게 사태를 수습하며 위기를 극복해 왔다. 그동안 위기 극복을 위한 대책들은 형태나 방식, 그 규모에 다소 차이는 있을지언정 과정은 거의 같았다. 어느 지역에서 화재, 폭발, 태풍, 지진 등과 같은 인재, 천재를 불문하고 재난이 발생하면 가장 먼저 재난지역을 선포한다. 그리고 재해의 조기 복구와 정상화를 위해 특별예산을 편성하고 소상공인이나 중소기업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경제 대책도 마련한다. 각종 세금의 납부 기한을 연기해주거나 특별 재정자금을 편성하여 이자 부담을 경감시키는 등 금융지원도 뒤따른다. 이번 코로나19사태도 이와 비슷한 위기 대책의 수습 과정이 그대로 적용되었다.하지만 당장 다가온 총선 문제, 수개월 뒤로 다가온 일본 도쿄올림픽과 관련한 논의는 아직 공공연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물론 지금은 국가의 모든 힘을 코로나19사태의 예방과 방역, 마스크 5부제 실시 등과 같이 사태 수습에 주력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그에 못지않게 당장 앞으로 다가온 도쿄올림픽의 취소 또는 연기와 관련한 문제는 한일 양국 간에 얽혀있는 정치, 경제 모든 면에서 매우 민감하게 작용할 공산이 크다.사실 올림픽의 취소 또는 연기로 인한 경제적 악영향은 일본에만 발생하지 않는다. 선수단과 관광객 등은 올림픽 기간동안 참가를 위해 여행사, 항공 티켓, 호텔 등 숙박업소의 예약에 이르는 모든 준비는 이미 완료한 상태일 것이다. 만일 일본 정부가 차일피일 미루다가 개최 시기에 임박해서 중단 또는 연기 결정을 하게 된다면 경제적 손실은 더욱 커질 수 있다. 선수단이나 관련 단체, 선수 가족과 일반 관광객 등이 예약 일정에 가까운 시점에 취소할 경우 과연 현지 일본의 사업체가 아무런 페널티도 받지 않고 사전 지급한 예약금이나 선결제한 대금을 환급해 줄지는 의문이다. 어쩌면 올림픽 특수에 대비하여 수년간 설비투자를 진행한 사업체 중에는 예약자금을 이미 사용하여 환급 처리 과정에서 파산하는 곳이 생길 수도 있다.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해 미리 검토해둘 필요가 있다. 도쿄올림픽의 중단 내지는 연기가 WHO나 IOC 등에 의해 강제적으로 이루어진다면 크게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특히 각국의 의사결정에 따라 결정하게 되는 사태가 벌어진다면 충분한 검토와 협상이 필요하게 될 것이다. 물론 JOC나 일본 정부가 한국의 참가 여부에는 전혀 관심을 두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성공적인 도쿄올림픽을 위해 최대한 많은 나라의 참가를 바랄 것이다. 앞으로 상황 변화에 예의주시하면서 올림픽 문제를 경색된 한일관계의 정상화를 도모하는 수단으로 활용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앞으로도 우리는 지금까지 경험한 적이 없던 제2의 코로나19와 같은 또 다른 위기상황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코로나19와 같은 강력한 전염병이 다시 발생할 경우를 염두에 둔 대책, 포항지진과 같은 재해, 기후변화로 인한 극한의 환경 속에서 무엇인가를 해야만 하는 경우 등 새로운 위기상황에 대한 대처가 필요해지는 상황은 앞으로도 계속 발생할 것은 분명하다.하지만 적어도 지금 포항에는 이처럼 다가올 위기에 선제적으로 대응 가능한 두 가지는 확실하게 가지고 있다. 바이오신약과 로봇 관련 연구개발이다. 어쩌면 좀 더 빨리 바이오신약 클러스터를 조성하기 시작하였다면 이번 코로나19사태에 포항에서 개발된 백신이나 치료제 등이 활약하였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포항은 국내 6대 로봇 연구기관이면서 국내 최고의 실용 로봇 전문 연구기관인 한국로봇융합연구원을 가지고 있다. 이미 중국에서는 코로나19 사태 이후 방역, 감염자 발견과 진단에 인공지능이 탑재된 지능형 로봇이 크게 활약하고 있다. 지금 당장은 어렵더라도 앞으로의 새로운 위기 상황에 대비하여 인간이 수행하기 어려운 극한의 환경이나 지금과 같은 전염병이 발생하였을 때 인공지능과 빅데이터를 활용하여 활약할 수 있는 로봇이 포항에서 태어났으면 좋겠다. 그리고 포항산 로봇이 진단한 감염자를 조기에 치료하고 예방할 수 있는 포항산 바이오신약과 함께./한국은행 포항본부 부국장

2020-03-15

18세 유권자의 선택, 말이 통하는 사회로의 첫걸음

김한석 군위군선거관리위원회 지도홍보계장최근 Kobaco에서 제작한 ‘상호존중과 통합, 대한민국 듣기평가’라는 공익광고에서 ‘말이 통하는 사회, 듣기에서 시작됩니다’라는 메시지를 주고 있다.그 60초의 영상에는 ‘부하직원의 의견을 들으려고도 하지 않는 직장 상사’, ‘엄마의 관심과 배려를 거부하며 귀를 막는 딸’, ‘자신의 생각과 다르다며 토론회에서 상대방의 발언조차 막아버리고 자신의 이야기만 하는 토론자’의 모습을 담고 있다.이 단편적인 모습들은 아직까지 우리 사회에 소통이 필요한 것을 보여주고 있는데, 어린아이가 마지막으로 말하는 소리에 우리의 고개가 끄덕여 질 수밖에 없다.민주주의란 모든 사람들이 스스로 삶의 주인이 되어 자유롭고 평등한 입장에서 대화와 토론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제도다.대화와 토론을 통한 소통이 되지 않는다면 앞서 언급한 모습에서처럼 우리사회는 아직 참된 민주주의라고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선거도 마찬가지로 우리 사회의 기성세대조차 쉽지 않은 것이 바로 투표이고, 민주주의인 것이다.작년 12월 기나긴 줄다리기 끝에 공직선거법이 개정됐다. 개정된 내용 중 오랫동안 논의되었던 참정권 확대인 선거권 연령도 만 18세로 하향됐다. 이제 18세면 누구든지 선거에 참여하고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되었고, 정당이나 후보자를 선택할 수 있는 권리가 생긴 것이다. 오는 4월 15일에 치러지는 제21대 국회의원선거에서 18세 유권자는 50만 여명 정도로 전체 유권자의 1.2% 정도가 될 것으로 보인다.18세 유권자는 당당하게 국민의 한명으로서 투표를 할 수 있게 되었지만, 기성세대인 어른들에게도 어려운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를 이해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정치적으로 사회에 첫걸음을 내딛는 18세 유권자가 가장 먼저 해야할 것이 바로 선거와의 ‘소통’이다. 단순히 자신과 직접적으로 연관이 있지 않다고 생각하거나 정치 자체에 거부감을 가지고 있어서는 소통을 할 수 없다. 소통을 하려면 우선 선거에 대해 알고 있어야 하고, 선거를 알려고 하면 나 자신부터 관심을 가져야 한다. 스스로 대한민국의 주인이라는 의식을 가져야 한다. 그 주인의식을 바탕으로 소통의 상대방인 정당이나 후보자가 말하는 것을 잘 듣고, 유권자로서의 목소리 또한 낼 수 있어야 한다.제21대 국회의원선거가 앞으로 30여일 정도 밖에 남지 않았다. 4월 15일, 유권자의 선택에 따라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의원이 결정된다. 대한민국을 ‘말이 통하는 사회’로 만들기 위해서 우리는 유권자로서 ‘투표’라는 소통을 통해 선거에 참여해야 할 것이다.

2020-03-12

코로나19, 그리고 이재명

코로나19는 바야흐로 ‘팬데믹’, ‘세계적 대유행’에 들어갔다고 한다. 테드로스 아드하놈 게브레예수스 WHO 사무국장의 선언은 벌써 늦었다는 비판과 함께 뉴욕증시를 다시 한 번 폭락시켜 버렸다. (이 분 국적은 에티오피아라던가. ‘다음’ 포털에 들어갔더니 사람들은 국적이 그렇게 궁금했던 모양이다.)이 와중에 한국은 다 알 듯 벌써 확진자 8천 명을 넘겼다. 그래도 이탈리아의 걷잡을 수 없는 상황, 일본과 미국의 ‘검사 안 하기’ 전략과는 달리 열심히 방어하고 있는 중이다. 진단 숫자로 세계 어느 나라보다 높고 사망률도 다행히 아직 1퍼센트 미만이다.일본이 한국을 향해 ‘입국 금지’ 조치를 내린 것은 아베가 얼마나 무능한지, 한국을 자기 통치의 값싼 도구로 삼는지 보여준다. 언론에서는 일본이 알려진 것보다 열 배는 더 많을 것이라고들 한다. 올림픽은 세계 잔치니 잘 되어야 하겠는데, 이 상태에서는 장담할 수 없다.이래저래, 이번 선거는 아예 ‘코로나 선거’다. 코로나19, ‘신천지’, ‘마스크’, ‘확진자’, ‘추가경정예산’, ‘입국 금지’ 같은 말들이 숨 가쁘게 언론에 오르내린다.정치는 어떻게 될까? ‘만주 정치평론가’의 시선에 이번에는 이재명이 보인다. 사태가 벌어지자 그는 신속하게 ‘신천지’를 급습해서 명부를 내놓으라고, 안 내놓으면 큰일 날 줄 알라고 으름장을 놨다.그가 ‘원하던 대로’ 지지율이 크게 용트림을 했다. 한 주마다 하는 여론조사, 나는 신임하지 않지만, 암튼, 이번 코로나19에 득 본 사람은 이재명, 안철수, 박원순 등이라고 했다.여러 가지 세평들이 교차하지만 이재명 하면 뭣보다 뚝심, 행정력 같은 말이 떠오른다. 직설적 언사도 온갖 풍파 거치면서 한결 제련되었다. 그나저나 그 여자 영화배우 어디로 갔는지? 그 여성작가는 또 어디로 갔고? 왕년에 장관 지낸 분은 왜 그렇게 집요하게 따지고 들었는지?사실 이재명 목숨은 아직도 ‘간당간당’이다. 벌금 300만원의 ‘죄’라는 게 우습기 짝이 없건만, 그래도 대법원이 그의 ‘명줄’을 쥐고 있다.그런데도 그 ‘뭣이냐’ 비례연합당이라는 걸 비판하고 나섰다나? ‘통합당’ 비례당이든 ‘민주당’ 비례연합당이든 나도 사실은 고개 갸웃이다. 도대체 어쩌자는 말이냐는 말이다.코로나19도, 정국도, 미세먼지 날씨처럼 뿌옇다. 어서 좋은 날 오기만을 기다릴 뿐./방민호 서울대 국문과 교수 /삽화 = 이철진 한국화가

2020-03-12

아부와 조롱

서의호 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중국 시진핑 주석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어려울 때 친구가 진정한 친구”라고 했다고 한다. 아주 유명한 격언을 인용했다. 한국이 중국인 입국금지를 하지 않고 도와주려고 한 것에 대한 감사의 표시이다. 그리고 몇일 후 완전히 역전현상이 일어났다. 한국에 코로나19 확진자가 늘어나니까 중국의 일부 지역이 한국인 입국을 금지하고 14일 격리기간을 요구하고, 한국인을 기피한다고 한다. 오히려 중국이“정치 외교 논리보다 국민의 안전이 중요하다”라고 했으니 적반하장도 유분수라는 탄식이 나온다.상황초기 한국의 의료진들이 중국에서 오는 여행객에 대한 입국금지 내지는 입국컨트롤을 줄기차게 요구했지만 정부는 중국의 눈치를 보느라 또 시진핑의 방한계획에 차질이 올까봐 전전긍긍하며 골든타임을 놓쳤다.그런 결과 급속도로 한국에서는 코로나19 바이러스가 퍼지기 시작하고 오히려 중국은 상항이 가라앉고 있다. 그리고 중국은 한국을 조롱하기 시작했다. 마스크를 보내 준다고 조롱기 섞인 제의도 한다. 이런 현상은 북한과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이다.국민들의 눈에 이 정부는 북한에 대해 비굴할 정도로 아부를 하고 있다. 그들이 무슨 말을 해도 아무 대꾸도 못한다. 온갖 욕을 듣고도 그저 김정은 친서 하나에 감동을 받는다. 미국과 북한의 협상이 겉도는 상황에서 한국 정부는 북한의 공공연한 한국 원망과 비난에 길들여지고 있다. 결국 아부하여 돌아온 건 조롱과 멸시뿐이다.적지 않은 국민들은 과학적 합리적 사고를 무시한 채 정치적 논리로 정책을 펼치는 현 정부의 정책에 절망한다.탈원전이 대표적이다. 대통령이 보았다는 한 편의 영화, 상상력으로 그려진 허구의 픽션으로 과학자들의 줄기찬 주장에도 불구하고 탈원전을 추진했다. 선거공약을 지키겠다는 정치적 논리와 북한과의 관계가 바탕이 되었을 것이다. 북한은 무력을 강화하는데 우리만의 일방적 화해 조치가 무슨 의미가 있는지 과학자들은 알지 못한다.북한이 핵을 포기할 것이라는 한심한 착각과 중국 비위를 맞추면 평화가 올꺼라는 대중국 굴종외교 등 모두가 합리적이고 과학적이 아니다. 한미 한일 동맹에 금이 가고, 중국에 냉대 받고, 북한에 모욕당하면서 국격이 땅에 떨어졌다. 그리고 코로나19 사태가 터졌다. 여전히 전문가들 과학자들은 정부의 정치적 논리에 밀렸다. 의사협회·감염학회 등이 ‘중국인 차단’을 줄기차게 주장했지만 정부는 끝내 거부했다. 오히려 중국이 우리 입국을 거부하고 조롱하는 사태까지 왔다.‘아부와 조롱’, 이건 붙어 다니는 단어이다. 아부는 당장은 상대가 고마워 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아부를 듣는 상대는 당신을 무시하고 조롱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아부하지 않고 정치적 논리에 흔들리지 않고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정책을 당당히 펼 때에 오히려 상대는 당신을 존중하고 조롱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왜 우리 정부만 이런 간단한 논리를 모르는 것일까?

2020-03-12

플라시보 효과 vs 노시보 효과

일정기간 한 집단의 환자들에게 ‘새로 개발한 특별한 약’을 투약하고 다른 집단의 환자들에게는 ‘기존의 보통 약’을 투약했습니다. 실험 후 환자의 위장 상태를 검사했습니다.‘새로 개발한 특별 약’을 투약한 집단의 위장 상태가 눈에 띄게 좋았습니다. 문제는 새로 개발한 특별한 약이라는 것이 단순한 영양제였고 기존의 보통 약이란 것도 동일한 영양제였다고 합니다.두 집단이 서로 다른 효과를 낸 것은 환자의 심리적 상태, 즉 나아질 것이란 기대감 때문이었던 거죠. 이것을 의학계에서는 플라시보 효과(Placebo effect)라 부릅니다. 대개 30% 확률로 이런 결과가 나타났습니다.노시보 효과(Nocebo effect)라는 것도 있습니다.노시보란 ‘해를 끼친다’는 의미의 라틴어입니다. 혈액응고방지목적으로 아스피린을 처방한 두 그룹에게는 위장관 부작용이 있다고 경고해 주었고 나머지 한 그룹에게는 주의사항을 전하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세 그룹의 위 내시경 결과는 차이가 없었으나 부작용 주의를 들은 그룹은 듣지 않은 그룹보다 3배 이상 통증과 부작용을 호소했습니다.동물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곰 쓸개는 크기가 손바닥 1/5 정도밖에 안 되지만 우리에 30분 정도 가두어 놓고 약을 올리면 쓸개의 크기가 손바닥만큼 커진다고 합니다. 부정적인 마음 상태로 곰을 자극하면 즉시 몸이 반응하는 겁니다.사람은 나이 일곱 살 이전에 어떤 태도로 세상을 살아갈지 거의 프로그래밍이 완료된다고 합니다. 유명한 수도회에서는 일곱 살 이전에 아이를 자신들에게 맡기면 성자로 만들어 줄 수 있다고 단언하기까지 합니다.일곱 살 이전에 부정적인 마음 상태로 프로그래밍 받은 대부분의 평범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끊임없이 자각하고 서로를 일깨우는 방법 외에는 없다고 합니다. 긍정의 마음이 절실한 시대입니다. /인문고전독서포럼 대표

2020-03-12

쑥과 냉이

김병래시조시인우수와 경칩을 지나 봄이 성큼 다가선다. 가뜩이나 경제가 어려운 형편에다 전염병까지 창궐해 온 나라가 아우성인데, 그런 사정에는 아랑곳없이 봄은 오고 있다. 올해도 어김없이 만물이 소생하는 새봄을 펼쳐 놓을 테니 인간사는 너희가 알아서 하라는 자연의 섭리다.봄을 가장 봄답게 하는 것은 무채색의 들판을 푸르게 물들이는 온갖 풀들이다. 그 중에서 우리 민족의 정서에 가장 깊이 닿아있는 풀을 하나만 고르라면, 나이든 사람들 중 대다수는 쑥을 들지 않을까 싶다. 곰이 쑥과 마늘을 먹고 우리의 조상이 되었다는 단군신화 때문이 아니라, 우리의 삶과 가장 밀접한 풀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쑥은 먹을 수 있는 가장 흔한 풀이다. 먹고살기 어려운 시절엔 봄이 오기를 기다려 들에 나가 쑥을 뜯어다가 끼니를 때우곤 했다.쑥은 여러 가지 음식의 재료일 뿐 아니라 약효도 많다. 동의보감에는 위장과 간장, 신장의 기능을 강화해 복통치료에 좋고, 피를 맑게 하며 살균, 진통, 소염 등의 작용과 냉·대하, 생리통 등 부인병에도 좋다고 한다. 말린 잎을 비벼서 뜸을 뜨는 데 쓰기도 하고 단오에는 잡귀가 들어오지 못하도록 문간에 걸어두기도 한다. 아마도 그런 약효의 원천은 쑥이 가진 왕성한 생명력에 있는 것 같다. 어디든 빈터가 있으면 선착순 뿌리를 내려 소위 쑥대밭이 된다. 더구나 여린 싹이 아스팔트를 뚫고 나오는 걸 보면 경악을 금치 못한다. 마른 쑥대 하나가 달고 있는 씨앗은 아마 수만에서 수십만은 될 것이다. 늦가을과 초겨울에 하늘 가득 씨앗을 날려 보내니 어느 땅인들 쑥의 영토가 아니겠는가.냉이도 이른 봄에 들판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나물이다. 산과 들에 봄나물이 많지만 쑥과 냉이가 그중 흔하다. 가을에 싹을 틔워 월동을 하는 냉이도 강인한 생명력으로는 쑥에 못지않다. 겨울 혹한에 얼어 죽은 듯하다가도 날이 풀리면 생기를 띠고 돋아난다. 뿌리째 뽑아서 국을 끓이거나 데쳐서 무쳐 먹는 봄의 별미다. 어려운 시절에야 물론 구황식물의 하나였지만. 식용식물이 다 그렇듯 냉이 역시도 ‘본초강목’에 역을 풀고, 풍을 제거하고, 눈을 밝게 하며, 오장을 보하는 등의 약효가 있다고 나와 있다.오늘 들에 나가 냉이를 캐고 쑥을 뜯어다 쑥국을 끓이고 냉이무침을 만들었다. 된장을 푼 물에다 멸치를 몇 마리 넣고 끌이다가 쑥을 넣으면 쑥국이 되고, 끓는 물에 데친 냉이를 다진 마늘과 된장과 참기름을 넣고 버무리면 냉이무침이다. 쌉쌀한 쑥의 맛과 달짝지근한 냉이의 맛은 정서를 편하고 담담하게 한다. 식탐이나 과식을 걱정할 필요 없는 소박한 맛이다. 지금 우리에게 쑥과 냉이는 봄철 입맛으로나 먹는 나물이지만, 기근이 들어 끼니를 잇기 어려운 백성들에게는 지천인 풀이면서 먹을 수가 있다는 게 얼마나 고마운 일이었을까. 전염병으로 국경이 차단된 북쪽에서는 아직도 굶주리는 사람들이 많다니, 쑥이나 냉이로 주린 배를 채우는 사람인들 없겠는가. 아무쪼록 이봄 북녘 들판에 쑥과 냉이라도 풍성하게 돋아나기를 바란다.

2020-03-12

新 보릿고개

“아이야 뛰지 마라 배 꺼질라. 가슴시린 보릿고개….”란 노랫말의 유행가가 요즘 뜨고 있다. 먹거리가 없어 전전긍긍하던 그 시절의 기억이 새삼 할아버지와 할머니 세대의 향수를 자극한 모양이다.손자가 뛰는 모습을 보고 행여 배가 빨리 꺼질까봐 뛰지 말라 만류했던 할머니의 애달픈 심정을 담은 이 노랫말은 그들 세대만이 공감할 충분한 소재일 것이다.보릿고개는 지난해 가을 수확한 양식은 바닥이 나고, 보리는 미처 여물지 않은 음력 4∼5월이다. 춘궁기(春窮期) 맥령기(麥嶺期) 등으로도 불렸다. 이때쯤이면 서민층은 풀뿌리나 나무껍질 등으로도 끼니를 이어갔다 하여 초근목피(草根木皮)라는 말이 생겨났다. 먹을 것이 없는 백성은 걸식이나 빚으로 연명하고, 그마저 못하는 많은 빈곤층은 굶어 죽었다. 예로부터 하늘을 의지해 농사짓는 우리 민족에게 보릿고개는 어쩌면 숙명적 고난의 시기다.“설마”하고 믿고 싶지 않겠지만 보릿고개는 1960년대 초반까지 우리나라 농촌에서도 볼 수 있었다. 오래 굶어 살이 붓고 누렇게 뜬 부황증 증세의 사람도 그 시절은 흔히 만날 수 있었다.눈부신 경제성장으로 이젠 우리에게 먹고사는 문제는 남의 나라 일이 됐다. 특히 젊은 세대에게 보릿고개는 할머니 이야기 속의 전설처럼 들릴 뿐이다.얼마 전 매스컴에서는 은퇴 후 5∼10년을 연금 없이 버텨야하는 소득공백기를 신보릿고개라 불렀다. 퇴직 연령은 빨라지고 국민연금 수령은 늦어지는 우리 사회의 모순적 구조를 꼬집는 표현으로 사용했다.지금 대구와 경북은 코로나19 사태로 모든 산업이 멈춰 섰다. 곳곳에서 생존위기를 호소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현대판 보릿고개가 대구경북에 번지고 있는 것이다. 정부 대책이 절박하다./우정구(논설위원)

2020-03-12

공천, 그리고 낙화

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대구·경북 지역의 미래통합당 현역의원에 대한 공천 칼날이 피를 뿌리고 있다. 박근혜 정부 때 청와대 정무수석을 지낸 3선의 친박계 핵심 출신 김재원 의원, 비박계 3선 강석호 의원, 초선인 곽대훈·김석기·백승주·정태옥 의원과 재선의 박명재 의원까지 컷오프돼 지역구 의원 20명 중 7명이 낙마했다. 이로써 대구·경북지역에서는 20명의 현역의원 중 불출마를 선언한 의원 5명을 포함해 12명이 물갈이 됐다. 특히 지역에서 중진 정치인으로 발돋움하던 3선이상 정치인 5명 중 주호영 의원을 제외한 4명이 공천에서 모두 교체된 것은 무척 아쉬운 대목이다. 선수를 우선시하는 국회의 관례를 생각하면 21대 국회에서 TK지역은 단 한명의 상임위원장도 배출할 수 없는 진용으로 짜여진 셈이다. 3선 이상 정치내공을 쌓아 온 이들 마저 공천의 칼날을 피하지 못하고 컷오프의 수모를 견뎌야 하는 이유가 뭘까. 이는 텃밭에서 현역의원들을 대거 교체하지 않으면 쇄신이란 모양새를 내기 어렵다는 현실적 한계에다 지금 이대로는 정권교체를 이루기 힘들다는 당내 절박감이 컸기 때문일게다. 또한 텃밭에 안주한 정치인의 경쟁력이 그만큼 약하다는 방증일 수 있다.홍준표 전 대표는 수도권 험지출마를 거부했다는 이유로 컷오프된 후 대구에 무소속 출마하겠다며 선언해 또 다른 후폭풍을 불러오고 있다. 실제로 홍 전 대표의 무소속 출마선언을 계기로 곽대훈(달서갑) ,정태옥(북구갑), 강효상(달서병) 의원 등이 무소속 출마대열에 합류할 것으로 보여 TK발 무소속연대가 실현될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게 정치권의 전망이다.이런 가운데 재선의 포항남·울릉 지역구 박명재 의원이 컷오프이후 무소속 불출마 선언을 해 조용한 반향을 일으켰다. 박 의원은 지난 9일 포항KTX역에서 지지자들과 당원들에게 “이번 공천은 분명 잘못된 것”이라면서도 “그러나 ‘당과 포항, 대한민국발전에 어떤 도움이 되느냐’를 생각해야 하고, 우리당 후보가 당선되는 데, 걸림돌이 되어서는 안 된다”며 공천결과 수용의 뜻을 밝혔다. 그러면서 그는 이형기 시인의 시 ‘낙화(落花)’의 첫 구절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라는 시구로 말을 맺었다. 시인은 이렇게 노래했다. “…. 봄 한철/격정을 인내한/나의 사랑은 지고있다//분분한 낙화…/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에 싸여/지금은 가야 할 때//무성한 녹음과 그리고/머지않아 열매맺는/가을을 향하여/나의 청춘은 꽃답게 죽는다//헤어지자/섬세한 손길을 흔들며/하롱하롱 꽃잎이 지는 어느날//나의 사랑, 나의 결별/샘터에 물 고이듯 성숙하는/내 영혼의 슬픈 눈”이 아름다운 시를 진흙탕 싸움이기 쉬운 정치적 현실에 대입하는 일은 무척 민망스럽다. 그러나 봄 한철 격정같던 사랑은 어디 갔을까 자문해보자. 이 계절이 지나면 무성한 녹음과 열매맺는 가을, 그리고 겨울이 오는 자연의 섭리를 누군들 모르랴.그렇다해도 꽃잎이 지는 낙화의 아픔은 좀처럼 덜어지지 않는 듯 싶다.

2020-03-12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조근식 포항침례교회 담임목사암흑 같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한 줄기 빛 같이 산 한 분을 소개하려고 한다. 시각장애인으로서 최초로 백악관 차관보를 지낸 고 강영우 박사다. 강 박사는 경기도 양평에서 태어나 1968년 서울맹학교를 졸업하고 72년 연세대 교육학과를 차석으로 졸업한 뒤 아내 석은옥씨와 미국으로 유학해 3년 8개월 만에 피츠버그대학에서 교육 전공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 장애인이 받은 최초의 박사학위였다.그의 어린 시절은 얼룩이 많았다. 중학교 3학년 때 골키퍼를 하다가 친구가 찬 공에 눈을 맞아 실명했다. 그 소식을 들은 어머니는 8시간 만에 뇌졸중으로 세상을 떠났다. 아버지는 이미 3년 전 돌아가셨다. 졸지에 집안의 가장이 된 누나는 평화시장 봉제공장에서 일하다가 과로로 숨진다. 13세 남동생은 철물점으로, 9세 여동생은 고아원으로 보내졌다. 그가 갈곳은 없었던 차에 맹인재활센터로 버려지듯 가야 했다.훗날 강 박사는 “제가 살아온 인생은 보통 사람보다 어려웠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나쁜 일 때문에 내 삶엔 더 좋은 일이 생겼다. 저는 나쁜 일이 생기면 미래에 더 좋은 일이 생긴다는 긍정적인 가치관, 생각으로 늘 살아왔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라는 말을 남겼다. 강 박사에겐 긍정의 유전자가 뼛속 깊이 박혀 있었다. 고통과 시련에 직면한 젊은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도 그거라고 했다.힘들 때 포기하지 않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강 박사는 긍정적인 가치관만으론 안 되고 “섬김과 나눔의 가치관이 필요하다”고 설명하면서 미국 최고의 명문 사립고인 필립스 아카데미의 230년 전 건학 이념이 ‘Not for Self(나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다)’라며 “공부를 하는 목적과 사는 목적은 내가 가진 것을 세상에 주어 더 좋은 세상으로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다.췌장암에 걸려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은 강영우 박사의 기뻐하고 긍정하는 삶의 가치에 관한 이야기는 많은 사람들에게 큰 도전이 되었다.지금 온 세상이 코로나19로 죽음의 공포에 휩싸여 마치 대양에 휘몰아치는 폭풍과 거대한 파도에 휩쓸려 갈 곳을 잃고 떠가는 돛단배의 모습이다. 지금 당장 퇴로가 보이지 않지만 곧 길이 보일 것이다. 지금 우리들에게 필요한 것은 위로와 격려이며 희망이다.어릴 때 동네 구석진 모퉁이에서 삼삼오오 모여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노래가 들리면 모두 술래를 피해 숨었다. 잡히면 술래가 되기 때문에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인다’라고 목을 조이기도 한다. 요즈음 코로나19와 숨바꼭질하는 기분이다. 누군가에게 쫓기는 기분이다. 특별히 국가 간 관계가 깨어지고 이웃의 개념이 더 흐려지는 이때 함께 뒤얽혀 즐겁게 살았던 그 시절이 그립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2020-03-11

언론은 무엇을 먹고사는가

장규열 한동대 교수‘엄마가 널 사랑한다고? 그거, 확인해!’시카고트리뷴(Chicago Tribune)지 본사 복도에 걸린 현수막이다. 누가 어머니의 사랑을 의심할 수 있을까. 하지만, 저 현수막은 언론이 하는 일 가운데 ‘확인하고 확인하는 일’ 만큼 중요한 일도 없다는 걸 강조한다. 생각 속에 그 어떤 확신이 있다고 해도, 사실로 확인하지 않고는 보도하지 말라는 것이다.‘확인은 모든 언론행위의 본질이다.’ 하버드대학에서 언론 관련 이슈들을 다루는 니먼재단(Nieman Foundation)이 보고서에 적은 한 줄이다. 현실적인 어려움 때문에 이런저런 실수들이 혹 있을 수도 있겠으나, ‘확인’에서만큼은 물러서지 않겠다는 다짐이 언론인들에게 요청되는 바이다.신뢰는 어디서 오는가. 옥스퍼드대학의 언론연구소가 38개국 국민들의 언론신뢰도를 조사했다. 한국은 겨우 22퍼센트의 국민들이 언론을 신뢰할 수 있다고 답하여 최하위를 차지했다. 한국인의 거의 80퍼센트가 언론보도를 믿지 못한다는 것이 아닌가. 언론을 믿지 못하겠으면 우리는 무엇을 믿어야 하는가. 독자의 신뢰를 먹고 살아야 하는 언론이 시민들에게 믿음을 주지 못한다면 어찌해야 하는가. 날마다 시간마다 보고듣는 언론보도를 시민들이 그리 신뢰하지 않는다는 게 아닌가. 언론이 누리는 ‘언론자유’지수는 향상되고 있다는데, 국민으로부터 신뢰를 얻지 못한다면 누구의 책임일까. 한 영국인 프리랜서 기자는 ‘한국언론이 형편없다’는 혹평을 하면서, 부실한 출처확인을 지적하였다고 한다. 외국인의 눈에도 확인부실이 보인다면 누가 책임져야 하겠는가.언론뿐일까. 확인없이 쓰고 읽고 나누고 소통하는 일. 생각없이 받아들인 책임은 독자에게도 있다. 살피지 않고 나누고 마는 대중에게도 책임은 있다. 세상이 변한 줄 모르고 수동적으로 보도를 수용하는 일을 이제는 멈추어야 한다. 언론이 또 다른 권력임에 틀림이 없으므로, 견제와 균형은 언론에도 적용해야 한다. 신문에 났거나 방송에서 보았으므로 그대로 믿어주던 시절이 있었다. 언론기관이 독자 대중의 눈과 귀를 좌우하던 시절이 있었다. 디지털과 온라인의 도래는 심대한 도전으로 다가와 바뀌지 않고는 배길 재간이 없다. 소문과 확신으로 써 내리는 기사는 사라져야 한다. 양심을 빙자하여 진영논리에 갇힌 기사는 그만 보고 싶다. 공정하고 투명하여 사안의 넓은 지평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길 바란다. 확인에 들인 노력을 확인하고 싶다.길은 본질에 있다. 언론은 독자의 신뢰를 먹고 산다. 힘있는 자들을 향한 매서운 감시와 분명한 견제를 실행하려면, 언론의 본질로 돌아가야 한다. 코로나19 상황을 지나며 우리 언론이 보는 시각과 해외 언론이 평하는 바가 어떻게 비교되는지도 살펴야 한다. 확인을 생명으로 한 언론 보도와 느낌을 배경으로 한 소설 쓰기는 다를 수 밖에. 확인을 토대로 우리 언론이 시퍼렇게 살아나기를 기대해 본다. 확인이 사라지면 언론이 아니다. 언론이 없으면 민주주의도 없다.

2020-03-11

유튜브 선거전

유튜브가 선거운동의 주요수단으로 진화하고 있다. 유튜브는 구글이 운영하는 동영상 공유 서비스로, 사용자가 동영상을 업로드하고 시청하며, 공유할 수 있도록 한다. 당신(You)과 브라운관(Tube·텔레비전)이라는 단어의 합성어다. 지난 2005년 2월 페이팔(PayPal)의 직원이었던 채드 헐리, 스티브 첸, 조드 카림이 캘리포니아 산 브루노에 유튜브사를 설립했다.유튜브의 시초는 세 명의 창립 멤버가 친구들에게 파티 비디오를 배포하기 위해 ‘모두가 쉽게 비디오 영상을 공유할 수 있는 기술’을 생각해낸 데서 시작됐다. 소셜 미디어 서비스의 일종인 유튜브가 선거운동에 중심을 차지하게 된 것은 천재지변인 코로나19 사태가 계기가 됐다. 대면접촉 위주의 기존 선거운동이 막히면서 유례가 없는 ‘유튜브 총선전’이 벌어진 것.여야 각 후보들은 유튜브를 통해 출마를 선언하거나, 활동을 유권자에게 알리고 있다. 또 각당 역시 공식 채널을 통해 표심에 호소하고 있다. 특히 21대 총선 최대 관심사인 서울 종로 선거전은 유튜브가 선거운동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여야를 대표하는 이낙연 전 총리와 황교안 미래통합당 당대표가 맞붙은 이 지역 선거운동 역시 각각 이낙연TV·황교안오피셜을 개설해 선거운동을 하고 있다.과거 선거운동은 군중·길거리 연설에서 문자·이메일 홍보로 진화했다. 2010년 전후엔 트위터·페이스북 등이 SNS 선거전 수단으로 자리 잡았다. 지난 2017년 대선부터 대선후보 1인에 집중된 유튜브 선거가 치러졌다. 정치권에서는 이번 총선을 유튜브가 본격적으로 활용되는 최초의 ‘전국 단위 선거’로 평가한다. 환경의 변화가 문화의 변화를 이끌어내고 있는 현장이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0-03-11

코로나19 재난 계기로 지역 회복력을 강화하자

지난 2019년 12월 중국 우한 지역에서 처음 발생한 코로나19가 전세계적으로 확산됨에 따라 올해 1월 30일을 기해 세계보건기구(WHO)는 국제적 공중보건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3월 11일 현재 전세계 80개 국가에서 확진환자수 9만5천24명, 사망자수 3천281명이다. 전염병(epidemic)이 전세계로 퍼질 때 이를 판데믹(pandemic)이라 하는데, 이미 중국, 한국, 이란, 이탈리아, 미국 등 전 대륙으로 퍼지고 있으므로 코로나19 확산은 이제 판데믹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겠다. 이번 코로나19는 2003년 사스, 2015년 메르스에 이어 3번째의 중증폐렴 유발 감염병 재난을 일으킨 바이러스가 되었다. 많은 전문가는 인류의 자연환경 파괴와 기후변화 가속화로 이러한 대형 바이러스 감염병 재앙은 계속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블랙스완(Black Swan)이란 지극히 예외적이어서 가능성이 거의 없어 보이지만 일단 발생하면 엄청난 충격과 파급효과를 가져오는 사건을 일컫는다. 우리 대구·경북지역 시도민 입장에서 보면 이번 코로나19 감염병 재난은 블랙스완과 같은 대형재난이며, 앞으로도 완전히 차단할 방법은 없어 보인다. 따라서 이러한 블랙스완형 대형재난에 대응력을 높이는 지역사회 리질리언스(Resilience, 회복력) 강화 노력이 절실히 요구되는데 그 구체적 방안은 무엇인지 한번 알아보자.△대구·경북지역 감염병 안전지수등급 16개 특·광역시 중 최하위 수준크고 작은 재난이 끊임없이 발생하는 오늘날 안전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으며, 재난으로부터 안전하게 국민을 보호하는 것은 국가와 지방정부의 가장 기본적이며 중요한 책무라고 할 수 있다.최근 10년간(2008~2017) 재난으로 인한 피해는 사망·실종 등 인명피해 1천97명(사회재난 945, 자연재난 152), 재산피해 12조9천174억원(사회재난 9조3천850억, 자연재난 3조 5천324억)이 발생하였다. 이중 자연재난에 대한 복구액은 총 7조3천658억원 소요되었다. 경상북도는 자연재난 재산피해액이 3천563억원, 피해복구액은 8천45억원으로 전국 4위 수준으로 매우 높으며, 대구광역시는 상대적으로 자연재난 피해가 적은 지역이다.2003년 수많은 인명피해를 낸 대구지하철사고에 이어 2016년과 2017년 국내관측사상 최고치의 진도를 기록한 경주, 포항 지진 이후 경상북도와 대구광역시에서는 재난안전의 중요성을 인식하여 대구경북연구원내에 재난안전연구센터를 개소하는 등 재난재해에 대하여 보다 적극적으로 대처하고 있다.지역안전지수등급은 행정안전부가 국민 개개인이 생활주변 위험에 관심을 가지고 스스로 대처할 수 있도록 안전정보들을 통합하여 지도 위에 표현한 서비스인 생활안전지도 홈페이지(http://www.safemap.go.kr/main/smap.do)를 통해서 안내하고 있는 안전수준이다. 이 지도에 제시된 대구광역시의 지역안전지수 등급 결과를 살펴보면, 감염병이 5등급으로 가장 나쁘게 평가되었으며, 화재와 자살이 4등급, 교통이 3등급, 범죄와 생활안전은 2등급으로 평가되었다. 경상북도의 지역안전지수 등급 결과를 살펴보면, 감염병과 교통이 4등급으로 가장 나쁘게 평가되었으며, 생활안전과 자살이 3등급, 화재가 2등급, 범죄는 1등급으로 평가되었다. 이 결과에서 특히 주목하게 되는 것은 이번 코로나19 감염병 사고 이전에도 우리 대구경북지역이 감염병 안전도가 전국 17개 특별·광역시 가운데 최하위 수준을 보이고 있었다는 것이다.△전세계 재난 회복력 증대 캠페인에 4천317개 지자체 참여UN의 재해감소국제전략기구(UNISDR)는 세계 각국의 지방정부가 스스로 위험을 인지하고 이를 극복하려는 노력을 장려하기 위해 재난에 강한도시 만들기(MCR, Making Cities Resilient) 캠페인을 시작하였다. UNISDR은 MCR 캠페인에 가입한 도시 중 회복력 향상을 위해 모범이 되는 도시를 선정하여 Role Model City 자격을 부여한다. MCR 캠페인은 지방정부만 가입할 수 있고, 추진방법은 UNISDR이 제시하는 10대 핵심사항을 실천하는 것이다. 2020년 현재, 전 세계 125개국 4천317개 도시가 참여하고 있으며, 우리나라도 175개 지자체가 참여하고 있으나 전세계 Role Model City로 인증 받은 지자체 49개 중 우리나라 지자체는 인천광역시가 유일하다.이 캠페인의 주된 목적은 지방정부 및 도시 규모에서 그들 각자가 직면한 위험을 인지하여 이를 줄이기 위한 노력을 요청함으로써 회복력 도시 조성을 장려하는 데에 있다. 이를 위해 전 세계 도시들 간의 정책 공유 및 협력, 정부 관계자들에서부터 도시 구성원에 이르기까지 도시가 직면한 위험을 인지시킨다.MCR 캠페인에 참가한 지자체는 지역의 회복력을 측정하기 위해 Score Card를 작성해야 한다. Score Card는 재난 회복력을 위한 조직구성 및 이행 준비, 현재와 미래의 위험 시나리오 분석, 이해, 활용, 재난 회복력을 위한 재정적 역량 강화, 회복력에 강한 도시개발과 설계 추구, 자연생태계가 제공하는 보호기능 강화를 위한 자연완충재보존, 회복력을 위한 기관역량강화, 회복력을 위한 사회적 역량이행 및 강화, 사회기반시설의 회복력 강화, 효과적인 재난 대비와 대응력 확보, 신속한 복원과 더 나은 재건 등을 평가할 수 있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코로나19 대응한 ‘사회적 거리두기’ 성공은 지역 회복력 강화의 원동력울산발전연구원 윤영배 부연구위원은 ‘울산시 도시회복력(Resilience) 강화방안 연구’에서 다음과 같이 6가지 주요 정책사업을 제안하였다.회복력 개념을 도입한 도시안전 최상위 기본계획인 ‘도시안전전략계획’을 조례개정을 통한 5년 단위 계획으로 수립한다. 비상사태나 재난으로 인해 공공기능의 운영이 중단되었을 때 정부의 핵심적인 기능을 보호, 유지하고 연속할 수 있도록 ‘기능연속성계획’을 수립한다. 침수흔적도, 재해정보지도 등 재해관련 공간데이터 구축 및 도시안전도 향상을 위한 재난정보 모니터링 등 재해예방데이터를 구축한다. 과거 피해사례 극복, 방재시설물 설치시 재해 취약성 고려, 피해저감형 토지 이용 등을 위한 회복력 개념을 도입한 도시(재)개발을 추진한다. 협력적 네트워크의 구심점 역할을 위한 도시안전연구센터를 설립하며, 안전정보 공유, 활동가 육성을 통한 주민활동 유도 및 안전한 지역사회 만들기대회개최 등을 통한 주민참여 소통 활성화사업을 시행한다.이들 사업은 대구경북에 그대로 반영해도 큰 무리가 없을 것으로 보이나 지역특성을 보다 면밀히 분석하여 추가 보완여부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서울 내러티브연구소 최남희 소장은 ‘재난을 뛰어넘는 지역사회 리질리언스’라는 특집 기고문(열린충남 겨울호, 2016)에서 사람들은 자기가 사는 세상이 그리 위험하지 않다는 믿음을 가지고 산다고 하였다. 그러한 믿음의 밑바닥에는 재난대응이 국가의 책무이고, 전문가들이 알아서 대처할 방안을 마련하지 않겠느냐는 믿음이 자리 잡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대형 참사나 재난은 국가적 차원의 전략만으로는 부족해서 재난에 대한 대응과 책무가 국가나 행정기관에 없다는 것이 아니라 어려운 상황은 여럿이 힘을 모으고 일상적 행동으로 준비되어 있어야 수월하게 겪을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이러한 주장은 우리가 지금 당면한 코로나19 감염병 재난을 극복하는데 결정적 기여를 할 것으로 기대되는 전국민 ‘사회적 거리두기’운동에서 그대로 적용되어야 할 것이다. 이를 통한 성공이 우리 지역의 회복력을 강화하는 큰 동력이 될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대구경북연구원 연구위원

2020-03-11

착각은 자유

한 여인이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탑승할 시간이 많아 남아 있었습니다. 그래서 공항에 있는 카페에서 아메리카노와 비닐로 포장된 쿠키 한 봉지를 샀습니다. 서점에서 잡지 한 권도 샀지요. 공항 대합실 의자에 앉아 잡지책을 뒤적이며 커피를 마시던 중 이상한 일이 일어났습니다.옆 자리에 있던 신사가 옆 좌석에 놓아둔 쿠키 비닐 포장을 뜯고 덥석 하나를 꺼내 먹는 게 아니겠습니까? 여인은 무척 놀랐지만 태연하게 자신도 쿠키를 먹었습니다. 남자가 상황을 깨닫고 무례한 행동을 그칠 것으로 생각했습니다.그런데 남자는 아무 일 없다는 듯 흘끗 여인을 한 번 바라볼 뿐, 계속 쿠키를 먹는 것 아닙니까?그냥 물러나면 비행 내내 마음이 불편할 것 같아서 남자가 물러설 때까지 여인은 꿋꿋이 쿠키를 먹었습니다. 남자도 말없이 커피를 마시며 쿠키를 먹습니다. 결국, 쿠키는 하나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남자는 망설임도 없이 마지막 쿠키를 절반으로 쪼개 한쪽을 여인에게 주고 나머지는 자기 입에 털어 넣었습니다.여인은 기가 막혀 할 말이 없었습니다. 잠시 후 탑승 안내 방송이 나왔고 여인은 비행기에 탑승해 좌석벨트를 맸습니다. 남자의 뻔뻔한 모습이 떠올라 기분이 언짢았습니다. 이륙 후 립스틱을 꺼내려고 핸드백을 열었습니다. 그런데 거기에 상상치도 못했던 물건이 있었습니다. 카페에서 샀던 쿠키가 봉지도 뜯지 않은 채 들어 있었던 겁니다. 대합실에서 정작 뻔뻔스러운 사람은 본인이었던 거지요.실화인지는 모르겠지만, 유명한 경영학 책에 나오는 일화입니다. 틀림없이 진실이 믿는 것이 오류일 가능성이 언제든 존재하기 때문에 우리는 편견을 내려놓고 빈 마음으로 상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경청의 기본적인 태도는 열린 마음으로 내 아집을 내려놓는 일입니다. 그럴 때 비로소 상대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인문고전독서포럼 대표

2020-03-11

교육 백신 6 - 생기부 기재요령 분리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감입춘, 우수에 이어 경칩이 지났다. 어수선한 인간 세상은 필자의 시선을 자연으로 돌렸다.마스크가 없으면 숨조차 편히 쉴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코로나19 바이러스에 심리적인 마지노선이 무너진 지금 마스크만이 사람들에게 안정감을 준다. 사람들이 희망, 배려, 양보 등의 가치보다 마스크 한 장의 가치를 더 크게 느끼는 것에 대해 누가 뭐라고 할 수 있을까? 하지만 마스크는 인위적이다. 마스크를 통해 숨을 쉴 때마다 필자는 필자의 모든 것이 인공적으로 변하는 것 같아 숨을 참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필자는 승용차 안에서는 마스크를 되도록 쓰지 않는다. 도심을 조금만 벗어나도 바로 차창을 활짝 연다. 밭일을 열심히 하는 농부를 볼 때면 차의 속도를 줄여 눈으로나마 그들과 함께한다. 그러면 농부의 건강함이 온몸 가득 들어온다. 그들은 절기를 생각하게 한다.“우수와 경칩은 새싹이 돋는 것을 기념하고 본격적인 농사를 준비하는 중요한 절기이다. 경칩이 되면 삼라만상이 겨울잠을 깬다고 한다.”경칩이 지난 산과 들은 절기를 지키어 만물의 잠을 깨우고 있다. 산은 꽃봉오리를 터트리고, 들은 농부의 부지런함에 봄갈이가 한창이다. 자연의 유전자를 가진 생명체는 자신 일에 열중이다. 하지만 자연적인 것을 찾아볼 수 없는 인간 사회는 마스크 안에서 무기력해지고 있다. 학교 또한 마찬가지이다. 학교에서 가장 인위적인 것은 학교생활기록부(이하 생기부)이다. 학기 초나 말이면 전 교사를 대상으로 생기부 기재요령 연수까지 한다.“학교생활기록부 기재요령은 학교생활기록부 작성 및 관리의 표준화를 통해 학교생활기록부의 공정성과 신뢰성을 제고하기 위한 것으로 ……” (기재요령 일러두기 중에서)그런데 아래 유의사항을 보면 이것이 얼마나 교육 현실과 거리가 먼지 알 수 있다. “학생의 성장과 학습 과정을 상시 관찰·평가한 누가기록 중심의 종합기록. 학교에서 실시한 각종 교육 활동의 이수상황(활동내용에 따른 개별적 특성이 드러나는 사항 중심)을 기재.”오로지 입시를 위한 시험만이 전부인 학교에서는 처음부터 가당치도 않은 것이었다. 구차한 말 다 치우고 생기부 기재요령이 나온 직접적인 이유는 입시 때문이다. 특수목적고등학교나 SKY 등에 입시 자료를 제공하기 위함이 궁극적인 목적이다.그런데 고등학교야 일류대학교가 아직 존재하지만, 중학교 사정은 많이 달라졌다. 정부의 일방적인 교육 정책으로 자사고, 외고, 국제고 등 특수목적고들이 지위를 많이 잃었다. 마지막 남은 것은 과학고뿐이다. 그런데 과학고 입시를 잡자고 지금과 같은 기재요령을 유지하는 것은 교육의 다양성을 죽임은 물론 너무도 큰 에너지 낭비다. 중학교에는 이젠 소용없는 생기부 기재요령 때문에 교사들의 힘을 빼서는 안 된다.교원 행정업무 경감이 교육계 화두이다. 그 첫 번째 방법은 중학교 생기부 기재요령을 없애는 것이다. 띄어쓰기 때문에 몇 번이고 생기부 수정을 요구하는 것이 기재요령이 나온 목적은 아닐 것이다. 기재요령이 꼭 필요하다면 춘분이 오기 전에 고등학교와 중학교를 분리하자!

2020-03-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