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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꼼수’냐, ‘묘수’냐

안재휘 논설위원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50년 집권론’ 실체가 드러나고 있다. 이 대표가 처음 그 말을 했을 때 많은 이들이 뜬금없는 희망가이거나 오만한 발언 정도로 여겼다. 그런데 지난해 울산시장선거를 앞두고 청와대가 나서서 야당 후보의 공약사업을 물 카드로 만들고, 경찰을 동원해 파렴치범으로 몬 정황이 드러나면서 얘기가 달라지고 있다. 최근 뜨거운 뉴스로 떠오른 이 논란의 ‘협잡’ 의혹은 이해찬이 무슨 자신감에서 그런 장담을 해왔는지를 짐작하게 한다.작년 울산시장선거에서 당시 시장이던 한국당 김기현 후보와 현 시장인 민주당 송철호 후보는 각각 ‘산업재해 모(母)병원’과 ‘공공병원’ 건립 공약을 내걸고 경쟁했다. 선거일을 불과 보름 앞두고 정부는 ‘산재 모병원’에 예비타당성 조사 불합격 판정을 내렸고, 송철호가 시장으로 당선된 후 올 1월 ‘공공병원’을 예타 면제사업으로 선정한 데 이어 지난달 KDI의 사업 적정성 검토까지 완료했다. 도대체 무슨 뒷구멍 꼼수 장난질이 펼쳐지고 있는 것인가.경찰의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으로 시작된 이 사안은 수사의 단초가 된 첩보가 청와대발이라는 사실이 본질이다. 송병기 울산시 경제부시장의 메모에 따르면, 송철호는 후보가 되기 전부터 청와대 인사들을 만나 선거 관련 논의를 한 정황이 뚜렷하다. 당내경선 상대였던 임동호를 주저앉히고 송철호를 단독 전략공천하기 위해 청와대 참모들을 비롯한 정권 실세들이 합동작전이 펼친 것으로 의심되는 정황도 역력하다.선거법 개정과 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법을 둘러싼 여야의 정쟁은 비상식의 난장(亂場)이다. 집권당은 교섭단체 중심이 아닌 마음에 맞는 초록 동색들을 아울러 ‘4+1’이라는 희한한 협의체를 앞세워 입법을 강행하고자 들이밀고 있다. 친여 군소정당들이 비례대표 의석을 더 확보할 수 있는 장치를 만들어주는 대가로 대통령 친위부대 공수처를 바꿔먹는 뒷거래를 시도하고 있는 셈이다. 공수처는 민변 소속 변호사들이 장악할 수상한 옥상옥 사법기관이다.그런데 한국당이 회심의 일격을 가했다. ‘비례 한국당’이라는 위성정당 맞대응 반전 카드다. 이미 외국에도 사례가 있다는 이 기습반격에 그동안 의기양양하던 여권(與圈)은 허를 찔린 듯 당황한 기색이 완연하다. 민주당·정의당 할 것 없이 차례로 나서서 ‘꼼수’라며 바짝 흥분하는 것만 봐도 그렇다. 객관적으로 보면, ‘4+1’ 꼼수를 되받아친 자유한국당의 꼼수는 역설적이게도 절묘한 ‘묘수’로 작용하고 있는 형국으로 읽힌다.‘꼼수 공화국’의 냄새 나는 시궁창 드라마에 청와대가 어김없이 등장하는 이 얄궂은 현상은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 청와대 모든 비서관실에 붙어 있다는 ‘춘풍추상(春風秋霜)’ 액자를 모조리 뒤집어 달아야 할 판이다. 거룩한 본뜻은 산산조각이 나고 ‘남을 대할 때에는 서릿발처럼, 자신을 대할 때에는 가을 봄바람처럼’으로 의미가 물구나무를 서고 있으니 기가 찰 노릇이다. 민주주의가 점점 더 위태로워지고 있다.

2019-12-22

타산지석(他山之石)

미국의 45대 대통령에 당선된 트럼프는 미 공화당 내에서도 비주류 정치인으로 통했다. 과거 대권에 도전했던 정치인과는 딴판의 길을 걸었다. 하원과 상원의원, 주지사 등의 이력과 인지도를 발판으로 삼아 대권에 도전했던 기성의 정치인과는 경로가 달랐다는 뜻이다. 그를 아웃사이더 대통령이라 부른 이유다.아버지의 재산을 물러 받은 막강한 재력과 사교계를 통해 이름을 알렸다. 특히 TV쇼에 출연해 “넌 해고야”라 하는 유행어를 만들면서 그는 일약 명사가 됐던 것이다. 그가 민주당 힐러리 후보를 제끼고 대통령에 당선된 것을 두고 당시 여론은 기성정치에 대한 분노와 좌절이 대폭발한 것이라 해석했다. 그의 미국 제일주의와 보호무역 정책은 세계를 충격과 혼란에 빠뜨렸다. 여성비하와 인종차별 발언 등 각종 논란의 중심에 선 그를 두고 역대 대통령 중 가장 천박한 대통령이란 고약한 평가도 받았다.권력 남용과 의회 방해라는 두 가지 의혹으로 트럼프 대통령은 미 하원에서 탄핵안이 가결되는 불명예를 썼다. 평소의 변덕과 즉흥적이고 돌발적이며 대통령으로서는 매우 부적절한 언행을 본다면 그에 대한 탄핵은 예측된 측면도 없지 않다. 하지만 정작 탄핵안 통과에 대한 미국 내 반응은 오히려 차분하다. 상원의 탄핵안 가결 가능성이 낮다는 것이 주요 이유지만 핫 이슈임에도 국민적 공감대가 별로 없다는 것이 이상하다.지금의 미국 경제는 너무 잘 돌아가고 있다. 미국 내 실업률 등 각종 경제 지표는 전례 없는 호황세다. 탄핵이 되레 야당인 민주당의 짐이 된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예부터 정치는 백성이 잘 먹고 사는데 기본을 두고 있다. 우리의 정치가 타산지석으로 살펴볼 대목이 많은 트럼프 탄핵 사태다./우정구(논설위원)

2019-12-22

대역사문화 재조명을 통한 영덕의 희망

이희진 영덕군수돌아보면 어떤 기대와 흥분으로 기해년 벽두를 맞았던 것 같다. 민선7기를 맞아 2천만 관광시대를 실현하려면 첫 단추를 어떻게 꿰어야 할지 고민이 컸다. 지역 고유의 자원을 활용한 문화관광 콘텐츠가 관건이라 여겼기에 영덕의 면면을 찬찬히 톺아봤다. 하나의 그림이 그려졌다. 독립운동사에서 큰 족적을 남긴 영해 3·18만세운동과 그 유산을 대구의 김광석거리처럼 특화시킨다면 좋은 결과가 나오리라 생각했다.3·1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 되는 해라 정부도 100주년 기념행사를 대대적으로 준비하고 있었다. 우선 호국의 고장으로서 영덕의 정체성을 새롭게 다지는 게 중요했다. 한국 근대사의 암흑기였던 일제강점기는 민족 불굴의 투지를 증명한 긍정의 역사로 일깨워져야 했다. 영덕에서는 항일시위의 영웅들을 자랑스러운 역사의 주체로 재정립하는 작업이 필요했고 그 과정에서 후손들은 역사적 긍지를 다시금 품게 될 것이었다.100주년 기념 3·18독립만세문화제를 준비하면서 만세운동을 처음으로 모의했던 지품면 낙평리에 발상지 기념비를 세우고 영해 3·18의거탑에는 대형 태극기 게양대를 설치해 ‘독립의 횃불, 전국 릴레이’행사를 열었다. 문화제에서 지역주민들은 플래시몹 공연에 대거 참여하며 대동단결의 축제를 만들고 횃불행진을 하며 선대의 숭고한 희생을 기렸다. 이런 노력들이 높게 평가받아 ‘제9회 대한민국 의병의 날’행사도 신돌석 평민의병장 유적지에서 개최할 수 있었다. 축산면의 작은 유적지에서 1천명이 넘는 인파가 대한독립만세의 함성을 외쳤고 돌아가는 군민의 손엔 영덕 의병의 역사를 새로 집대성한 책자가 들려있었다.군민의 역사적 자부심을 북돋우는 작업과 동시에 추진한 사업이 문화재청의 근대역사문화공간 재생활성화공모사업에 영해장터거리를 신청하는 것이었다. 근대역사문화공간은 근대 시기에 형성된 거리, 마을경관 등 역사문화자원이 집적된 지역을 의미한다. 문화재청에서 그동안 개별 건축물 등 점(點) 단위로만 지정했던 등록문화재를 선(線)과 면(面) 단위로 확장해 근대문화유산을 입체적으로 보존·활용하자는 취지로 시작했다. 현 정부의 국정과제로 ‘도시재생 뉴딜사업’이 추진되면서 활성화됐다. 지난 11월 영덕과 익산 두 곳만이 선정됐다. 전국의 내로라하는 11개의 역사문화도시가 자웅을 겨룬 심사에서 영덕이 두각을 나타낸 이유는 영해장터거리 주민의 역사의식이 남달랐기 때문이다.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선 보존하고 활용할 가치가 있는 건축물을 보유한 주민들의 동의가 필수다. 이 문턱을 넘지 못한 시군이 많았는데, 우리 만세운동의 후예들은 기꺼이 사업에 참여하겠다는 의지를 밝히며 적극 동참했다. 매년 만세운동을 재현하며 숭고한 희생을 기려온 후손들이어서 가능했던, 선대를 향한 헌정의 예(禮)라 하겠다. 실로 감사한 일이다.현재 영해장터거리의 건물 10개소가 국가지정문화재로 등록됐다. 문화재들은 근대가옥 갤러리, 의상대여점, 박물관, 주막체험 양조장, 사진관, 인력거 정류소, 게스트하우스 등으로 활용되며 이와 연계해 다양한 먹거리와 문화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다. 근대역사문화공간이 조성되면 매년 개최하는 3·18독립만세문화제의 장이 더욱 다양해지고 콘텐츠도 풍부해질 것이다. 인근의 전통시장인 영해만세시장도 더욱 활력이 넘칠 것이다. 영해장터거리는 영덕군을 상징하는 역사문화공간이 되리라 믿는다. 영해장터거리는 지난 11월 정부공모사업에 선정된 축산 블루시티 조성사업과 현재 입소문을 타고 방문객이 늘고 있는 창수면 인문힐링센터 여명과 함께 영덕군 북부의 관광거점 역할을 수행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매년 한국관광의 별에 선정돼 겨울과 봄철 많은 관광객을 유치하는 남부의 강구대게거리와 조응하는, 균형개발의 효과도 기대된다. 영덕대게와 복숭아, 송이, 해수욕장은 모두 특정 계절의 영향 아래 있지만 문화재를 보존하고 활용하는 근대역사문화공간은 사계절 관광명소로서, 지역경제에 한 몫을 제대로 담당할 것이다.문화관광과의 근대역사문화공간사업 사업담당자는 요즘 밥 먹듯이 야근을 한다. 원래의 업무에 영해장터거리 활성화사업이 추가되었기 때문이다. 민선6기 중반부터 열악한 군 재정의 대안으로 정부공모사업을 직원들에게 많이 주문했다. 그동안 역량이 늘고 선정되는 사업도 많아졌는데 그에 비례해 직원들 피로감도 커졌다. 올해는 유별나게 태풍도 많아 비상근무도 잦았다. 걱정이다. 12월에 특별휴가를 챙겨봤지만 충분할지 모르겠다. 문화재 등록에 기꺼이 동참한 영해장터거리의 주민들, 사업추진과 잦은 비상근무에 헌신한 공무원들 모두가 3·18만세운동의 자랑스러운 후예들이다. 바로 이들이 영덕의 2천만 관광시대의 여명을 밝히고 있다.

2019-12-22

선물은 내 마음속에 있다

허진욱 회사원가쁜 숨이 턱까지 차오르고 뜨거운 햇볕은 얼굴과 몸을 태우는 듯하다. 더 이상 달릴 수 없다. 온몸은 땀 범벅이고 젖은 옷이 묵직하다. 힘들다. 청소년 시절 내 모습이다. 고된 훈련을 하는 이유는 이루고 싶은 꿈이 있기 때문이었다.88서울올림픽을 TV로 보면서 꿈이 생겼다. 복싱 문성길 선수가 시상대 제일 높은 곳에 올랐다. 그의 목에 금메달이 걸리는 순간 감전된 듯한 전율을 느꼈다. 멋있었다. 나도 저 시상대 제일 높은 곳에 오르겠다고 다짐했다. 그 순간 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금메달이라는 목표를 내 가슴에 새겼다. 심장은 뛰었고, 아무리 힘든 훈련도 내 꿈을 꺾을 수 없었다.고등학교 1학년이던 필자는 시합에서 고등부 최연소, 최우수 선수상을 받으며 승승장구했다. 전직 권투선수인 아버지가 적극적으로 지원했다. 아버지도 기대가 컸다. 당신의 꿈을 아들이 대신 이루어 가고 있기 때문이다. 시합마다 우리는 함께 했고, 우승할 때마다 아버지는 나보다 더 기뻐했다.어느 날 사고가 났다. 훈련 중 왼손을 다쳤다. 수술을 받았지만, 신경이 끊어진 탓에 복싱을 더 이상 할 수 없다고 했다. 하늘이 무너졌다. 꿈과 희망이 한순간에 물거품처럼 사라졌다. 더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밥도 먹기 싫었고 학교도 가기 싫었다. 그렇게 내 인생은 끝났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가출을 밥 먹듯이 하고, 술에 취했다. 학교에서도 문제아로 전락했다. 담임도 내 방황을 이해했지만, 방황은 더 심해졌다. 많이 울면서 답도 없는 질문만 던졌다. “왜 내게만 이런 시련이 닥친 걸까?” 친구들도 이런 나를 이해하지 못했다. 꿈을 잃은 내 마음을 그들이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긴 방황은 아버지의 설득과 어머니가 흘린 눈물, 내 이야기를 끊지 않고 묵묵히 들어준 형들 덕분에 끝났다. 마치 차가운 얼음이 따뜻함에 스르르 녹아내리듯 마음이 풀렸다. 그 지점에서 새 희망이 보였다. 다시 심장이 뛰었다. 새로운 꿈을 꾸기 시작했다. 한쪽 문이 닫히면 다른 문이 열리는 법일까? 문제 속에 답이 있다는 깨달음이 왔고 위기 속에 기회가 숨어 있음을 알았다.“후회한다고 해서 이미 늦은 것은 아니다.”라는 어느 철학자의 말을 깨달으면서 후회의 진정한 뜻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후회하며 지나간 일에 대한 아쉬움이나 슬픔에 빠질 게 아니라 내 연약함을 뉘우치고, 반성하는 시간을 보냈다. 철학자의 말처럼 이미 늦은 것이 아님을 깨닫는 순간 나는 또 다른 희망을 품은 것이다. 내가 스스로 어떤 마음을 품는가에 따라 절망에 빠질 수도 희망으로 마음 설렐 수 있음을 알았다먼 여행을 떠난 주인공은 파랑새를 찾아 헤맨다. 결국 파랑새를 찾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와 보니 파랑새가 바로 내 집에 살고 있었음을 깨닫는 이야기처럼, 고등학교 시절 시련을 통해 희망이 저 멀리 밖에 있지 않고 마음속 깊은 곳에 있음을 배웠다. 사람은 생각하는 대로 움직인다. 새롭게 시작할 수 있다고 마음을 먹는 순간 새 희망이 생겨나는 법이다.그 깨달음은 내게 큰 선물이었다. 세상을 긍정적으로 보는 관점이 생기면서 직장 생활을 하는 데 있어 큰 경쟁력을 갖추는 계기였다. 남들이 힘들어하는 일도 오히려 배울 수 있는 좋은 기회라는 마음을 품었다. 누가 불만을 터뜨리면 나는 그 시간에 문제의 원인을 분석하고 해결하려 노력했다. 그런 태도 덕분에 입사 첫해, 우수사원으로 뽑히기도 했다. 희망을 잃어버리는 경우도, 절망하는 때도 모두 내 안에서 시작하는 법이고 내 마음이 만드는 결과임을 배워갔다.희망은 이미 내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다. 그것을 키워 활활 타오르게도 할 수 있고 얼음처럼 차갑게도 할 수 있다. 시련은 사람을 단단하게 한다. 어린 나이에 깨달은 이 선물 덕분에 세상을 넓고, 깊게 볼 수 있게 되었으니 그보다 더 큰 선물이 있었을까?이틀 후면 즐거운 크리스마스다. 2020년도 카운트다운에 들어갔다. 성탄과 새해, 나를 위해 준비해 둔 가장 귀한 선물을 받기 위해 나는 오늘도 꿈을 꾼다. 2020년 한 해 동안 내게 펼쳐질 새로운 희망을 찾아 내 안으로 탐험을 떠나는 연말이다.

2019-12-22

하루 분의 좋은 세상

내가 알고 있는 단 한 가지는 내가 아무 것도 모른다는 것이라고 소크라테스는 말했다지요. 그런 것 같습니다. 지혜라는 것은 그러니까 내가 아는 것을 믿고 확신을 가지고 나아가는 데 있지 않겠지요. 모르고도 따라할 수 있고 따라갈 줄 아는 것이야말로 지혜로운 것이겠지요.궤변일까요? 하지만 저는 요즘 갈증이 심합니다. 무엇을, 어느 분을 믿고 따라야 할지 모릅니다오늘은 일찍 집을 나섰습니다. 집에는 나와 내 고양이밖에 없습니다. 캄캄할 때 집을 나설 때는 이상한 느낌이 듭니다. 제 삶은 늘 길 위에 있는 것 같다고나 할까요. 그래도 집에는 괭이가 혼자서라도 기다려 주겠지요. 전철을 타고 있는 시간처럼 한가로울 때가 있을까요. 아무리 바빠도 전철 안에서는 뛰어갈 재주가 없습니다. 부처님 손바닥 안이라고나 할까요. 전철 맨 앞칸까지 뛰어가야 무엇하겠습니까. 갈아타는 곳은 뒤에 앉아 있을 때. 더 빠를지도 모르는 것을요.오늘은 앉아서 아무 것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다행이라고나 할까요. 제가 잘못한 일들, 초조한 일들, 미운 일, 급한 일들 때문에 마음이 고단하지 않아서 좋으니까요. 옛날에는 사람들이 왜 마인드 콘트롤을 배우나 했습니다. 그런 것까지 배워야 하느냐고요. 그런데 이 미련한 소 같은 놈이 어디로 그렇게 바쁘게 돌아다니는지요.드디어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앞에 걸음이 좋지 않은 사람이 하나 비척비척 걸어갑니다. 저 분도 오늘의 저처럼 걸음걸이가 좋았으면 좋겠습니다. 사실은 저도 요즘은 지팡이 신세를 지는 날이 있습니다. 그런 증세가 꽤 오래 되었지만 차차 나아질 것이라 생각합니다.제가 나가는 전철역 입구 쪽으로 에스컬레이터가 설치되어 있습니다. 계단을 걸어 올라가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늘 에스컬레이터가 반갑습니다. 그러고 보면 이제 역마다 에스컬레이터가 없는 곳이 없습니다.천천히 올라가는 입구 쪽으로 날이 밝아오고 있습니다. 이런 때를 미명이라고 하던가요. 지금 빛이 작고 흐리지만 차츰 주위가 환해질 테지요. 새벽에 일찍 길을 떠나면 날이 완전히 밝을 때까지 시간이 길다고 느껴집니다.드디어 지상으로 올라왔습니다. 세상입니다. 오늘 분의 세상을 일찍 맞았습니다.오늘은 깨끗한 공기만 마시고 싶습니다. 맑은 사람들만 만나 이야기 나누고 싶습니다. 안부를 묻지 못하는 것처럼 슬픈 일이 없습니다. 오늘 저는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좋은 인삿말을 건네고 싶습니다. 그를 기쁘게 해주기 위해서요. /방민호 서울대 국문과 교수/삽화 = 이철진한국화가

2019-12-19

고가 주택

돈의 가치는 어떻게 평가되는 것이 정당할까.10년 전에 내가 가졌던 1억원의 가치가 올해 와서는 분명 다를 수 있다. 이렇듯 돈의 가치는 시간과 장소에 따라 느끼는 무게가 달라진다. 경제학적으로 말하면 물가상승이나 인플레이션 등의 경제현상에 따라 돈의 가치가 변동되는 것을 의미한다. 100억원 가진 사람과 100만원을 가진 사람이 있다고 치자. 만약 두 사람이 내일 죽는다고 가정했을 때 누가 더 억울할 것인지 생각해 보면 돈의 가치는 또 어떻게 평가하는 것이 옳을까. 돈은 사람의 형편과 장소, 여건에 따라 그 가치 평가가 천차만별이라 하겠다.대한민국에서는 얼마만큼 있어야 부자로 평가 받을 것인지 한 취업 포털에서 조사를 했다. 4천여명의 성인 남녀를 대상으로 물어보았더니 39억원을 부자의 기준점으로 보았다. 우라나라 가구당 평균 자산인 4억원을 기준하면 10배쯤 되는 금액이다. 연봉 5천만원을 버는 직장인은 한 푼도 안 쓰고 78년을 모아야 할 돈이다.정부가 치솟는 아파트 값을 잡는다고 부동산 종합대책을 발표하면서 15억원 이상을 고가주택이라 칭했다. 왜 15억원 이상이 고가주택인지에 대해서는 자세한 설명은 없다. 주택 보유자 입장에서는 14억원은 되고 15억원은 안 된다고 하니 그 기준점이 궁금할 뿐이다.부동산 가격 안정을 위해 당국의 규제 의지는 이해되나 내 재산을 담보로 내 마음대로 돈을 빌려 쓸 수 없다고 하니 그것 또한 답답한 노릇이다. 아니나 다를까 정부의 부동산 규제조치 후 하룻만에 “대출금지는 위헌”이라는 헌법 소원이 제기됐다. 정부 정책이 정당성을 가지기 위해서는 국민을 설득하는 법리가 분명해야 한다. 헌법소원의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궁금해진다. /우정구(논설위원)

2019-12-19

제4의 길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역대 국회의장이 퇴임을 하면 흔히 세가지 길이 있다고 한다. 첫째가 정계원로의 길을 걷는 경우다. 황낙주·박관용·임채정·김형오·박희태·강창희 전 의장 등이 이 길을 걸었다. 둘째는 퇴임후 다시 총선에 출마해 선수를 더한 경우다. 박준규·이만섭·김원기 전 의장이 그랬다. 셋째는 국회의장을 지낸 뒤 대권에 도전한 경우다. 초대의장인 이승만 전 대통령과 신익희 전 의장이 그랬다. 이번에 총리후보자로 지명된 정세균 전 국회의장은 모 중앙지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세가지 길 중 어느 길을 걷고 싶으냐”는 질문에“제4의 길”이라고 답했다고 한다. 말이 씨가 됐을까. 정 전 의장은 자신이 한 답변 그대로‘제4의 길’을 걷고 있다. “정치는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이 변화무쌍한 생물”이란 말이 실감나는 대목이다.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이 19일까지 나흘째 패스트트랙 규탄대회를 열고, 여당의 공수처법과 선거법 날치기를 저지하겠다는 결기를 보이고 있다. 며칠 전에는 국회내에 한국당 지지자들이 대거 몰려 들어와 아수라장이 되기도 했다. 최근의 한국당 집회에는‘태극기 부대’로 상징되는 극우단체까지 참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일각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터져나오고 있다. 한국당과 황교안 대표가 국회 로텐더홀 밤샘농성에 이어 국회앞 규탄대회 개최 등 장외투쟁으로 번져가면서 급속히 극우성향으로 치닫는 데 대한 우려다.여당이 새해 예산을 일방적으로 날치기 통과시킨 후 다수의 횡포를 막기 위해 장외투쟁으로 치달은 한국당의 입장을 이해못할 바 아니지만 정치권의 우려는 깊어지고 있다. 무엇보다 야당으로서 집권여당과 싸우는 방법이 빗나간 것 아니냐는 지적이 많다. 한국당이 패스트트랙 저지에 올인하면서 장외투쟁으로 뛰쳐나가는 것은 오히려 논점을 흐리는 것이란 비판이다. 사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과 군소야당의 협의체인 ‘4+1협의체’가 힘을 합쳐 선거법과 공수처법을 통과시키겠다고 나서면 한국당이 물리적으로 막을 수 없다. 협의체가 과반수를 확보해 다수결의 원칙에 따라 법을 통과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한국당이 며칠째 전국의 당협위원장들을 동원해 규탄대회를 여는 이유가 뭘까. 추측컨대 여당과 협의할 명분, 즉 출구전략을 찾지 못하고 있기 때문은 아닌가 싶다. 공수처 법안만 해도 한국당 일각에선 일부 독소조항을 바꾸면 통과시키지 못할 이유가 없다는 목소리가 있고, 준연동형 비례대표제가 골자인 선거법 개편안은 거대정당인 민주당과 한국당의 이해관계가 거의 일치한다. 그러니 이제라도 여당과의 물밑대화로 꼬인 정국을 푸는 게 옳다. 그런 연후 청와대 하명수사, 유재수 전 부산시 경제부시장 감찰무마사건, 우리들병원 특혜 부정사건 등 ‘친문3대 게이트’를 대여공세의 지렛대로 하고, 민생경제 침체를 강도높게 비판하며 이를 극복할 대안을 제시하는 대안정당의 모양새를 갖춰야 한다. 아울러 참신한 인물을 적극 영입해 쇄신바람을 일으키고, 보수의 목소리를 한데 모아 보수통합을 이뤄야 할 것이다. 그것이 한국당이 가야할 제4의 길이다.

2019-12-19

흐르는 물

서의호 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흐르는 물은 썩지 않는다고 한다. 학문의 흐름은 흐르는 물처럼 변화무쌍하다. 특히 정보분야는 그 정도가 속도나 양상에 있어서 타 분야를 앞서고 있다. 포스텍이 내년 3월 개원을 앞둔 인공지능(AI)전문대학원의 첫 입시 결과를 발표했다. 이번 AI전문대학원 내 석사과정·박사과정·석박사 통합과정 등 3개 과정 전체 합격률이 18.5%였다고 17일 밝혔다. 이 가운데 석박사 통합과정의 경우 합격률은 9%에 불과했다고 한다.경영정보시스템(MIS)은 필자가 학위공부를 하던 30여년 전에는 의사결정시스템이 크게 유행하여 인기를 끌었다. 그래서 필자도 그 분야로 학위를 받았다. 당시 인공지능(AI)은 아주 초보적 단계였고 상상의 세계에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AI 주요 분야를 알지 않고는 MIS를 논할 수 없을 정도로 AI가 크게 부상하고 있다.포스텍은 AI분야에서 국내 최고 수준의 역량은 물론 관련 분야 교육 경험이 풍부한 교원들을 보유하고 있다고 한다. 이번 입시에서는 AI 분야에 대한 선풍적인 사회적 관심을 반영하듯 국내 유수대학은 물론 해외 대학 출신자까지 지원을 해와 많은 고민이 있었다고 하고 실제로 해외대학에서 지원한 학생 중 1명밖에 선발을 못할 정도로 경쟁이 치열하였다고 한다.필자는 금년 봄부터 수원에 있는 아주대학교에서 대학원 강의를 하고 있다. 주변에 있는 삼성 등 유수기업에서 많은 학생들이 대학원 강의를 듣고 있는데 AI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아주대는 최근 지역사회 청소년을 대상으로 AI 인재양성을 위해 수원시와 업무협약을 맺고 프로젝트에 박차를 가할 계획이라고 한다. 4차 산업혁명 핵심기술인 인공지능에 대한 이해와 체험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청소년 인공지능 아카데미’를 운영하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사용되는 언어가 인공지능 프로그래밍으로 각광을 받는 파이선(Python)이다. 파이선으로 기계학습 기초·응용 3D프린팅 디자인 체험 등의 교육을 제공한다고 한다.포스텍 AI 대학원 설립과 아주대의 AI 청소년 아카데미에서 사용될 주요 언어가 파이선이 될 전망이다. 필자가 70년대 대학을 다닐 때는 과학은 포트란(Fortran), 상업용으로는 코볼(Cobol)이 대세였고 그걸 배우느라 동분서주하였다. 그런데 80년대 미국유학을 가서는 파스칼(Pascal)이란 언어를 배워야 했다. 모든 과목이 파스칼로 진행되었다. 새로운 언어를 배우느라 고생하던 생각이 난다. MIS의 트렌드가 변하고 프로그래밍 언어가 변하듯 이렇게 학문도 변하고 그걸 따라잡지 못하면 뒤처진다.흐르는 물은 썩지 않는다고 한다. 학문도 흐르고 학자도 흘러야 한다.그런데 왜 우리 정치만은 흐르는 물을 따르잡지 못하는 것일까? 고집과 대립으로 얼룩지고 고함과 비아냥으로 가득찬 청문회와 정치판도는 여전하다. 아전인수의 정치 판도는 흐르지 않는 물이다. 흐르지 않는 물은 썩게 마련이다. 우리 정치도 흐르는 물이 되어야 한다.

2019-12-19

몽롱한 글쓰기 (3)

문장이 꼭 매끄럽게 연결되지 않아도 상관없습니다. 마치 배설하듯, 내면에서 들리는 그 어떤 소리라도 마구 종이에 토해 내는 거죠. 재밌습니다. 한 페이지를 가득 채운 후에는 가급적이면 그 페이지를 밀봉합니다. 두 번 다시 보지 않는 거죠.몽롱 쓰기는 암묵지, 즉 내 무의식 안에 스며 있는 경험과 정보, 느낌의 보물 창고를 활짝 열어줍니다.꾸준히 반복하다 보면, 외부에서 보물을 찾는 것이 아니라, 내면에 감추어 있는 보물이 얼마나 많은지 경험할 수 있습니다.고약한 이성의 검열관에 가로막혀 발현되지 않던 내 안의 빛나는 보석과 맑은 샘물이 조금씩 밖으로 꺼내지는 경험을 선사하죠.이렇게 쓴 글은 8주 동안 읽지 않는다는 규칙이 있습니다. 두 달 묵힌 후에 봉인을 해제할 수 있지요. 깜짝 놀랄 만한 내용들이 그 안에 반짝반짝 빛나고 있을 확률이 높습니다.맑은 샘물은 퍼내면 퍼낼수록 더 맑은 물이 퐁퐁 솟아나게 마련이지요. 누구나 자신만의 암묵지 안에는 어마어마하게 맑고 시원한 수맥이 있습니다. 다만, 그것을 길어 올릴 생각을 못하거나, 방법을 모를 뿐이지요.아침에 눈 뜨자마자 15분. 몽롱한 상태로 노트 한 페이지 정도를 채우는 분량의 무의식 쓰기 방법은 우리 안에 딱딱하게 잠자고 있는 창조성을 깨워주는 강력한 도구입니다.수많은 점으로 가득한 우리의 내면. 그 안에 보석이 가득합니다. 독서를 통해 우리 내면을 비옥하게 만드는 행위만으로는 창조적 삶을 살 수 없습니다. 쌓인 점들을 하나씩 둘씩 이어 나가는 일이 필요합니다. 내 안의 소중한 콘텐츠를 꺼내 타인과 나눌 때 행복할 수 있습니다. 지금 막 그대 안에서 꿈틀거리며 솟구치는 배움에의 욕구가 있으신가요?올해도 며칠 남지 않았습니다. 일상의 쳇바퀴에 가로막혀 내 안의 창조성이 억눌려 있지는 않은지 멈추어 생각할 때입니다. /인문고전독서포럼대표

2019-12-19

통일로 가는 길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우리의 소원은 통일/ 꿈에도 소원은 통일/ 이 목숨 바쳐서 통일/ 통일이여 오라’우리가 이 노래를 초등학교 음악시간에 배울 당시에는 남북통일이 상당히 절실한 과제였다. 남북의 분단과 6·25전쟁을 겪으면서 부모형제와 생이별을 한 천만 이산가족의 생살을 찢은 상처가 고스란히 남아있던 시절이었다. 유구한 역사와 전통을 가진 한 겨레가 둘로 갈라져 동족상잔의 전쟁까지 벌였다는 건 천추의 한으로 남을 비극이었다. 노랫말처럼 목숨을 바쳐서라도 이루어야 할 민족의 숙원이 통일이었다.분단이 된지 70년이 지나도록 줄곧‘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노래했지만 아직도 통일의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그 동안 다방면으로 통일을 위한 노력이 있었지만, 확인된 것은 북쪽의 김일성 왕조가 건재하는한 통일이란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지금으로선 김정은 일당의 체제가 무너지지 않고는 통일에 대한 온갖 논의와 수고가 다 부질없는 짓이라는 것이다. 통일은 물론 핵무기의 포기조차 절대로 허용할 수 없는 것이 김정은의 처지다. 김정은에게 핵을 포기하라는 것은 무장 강도에게 흉기를 내놓으라는 것이나 다름없는 일이다. 무장 강도가 흉기를 내려놓는 순간 그를 기다리는 것은 쇠고랑과 교수대뿐인데 어찌 쉽사리 항복을 하겠는가. 북한 주민을 다 죽이는 한이 있더라도 버티는 데까지 버텨보는 수밖에 다른 대책이 없을 것이다.북의 김정은은 결코 핵을 포기하거나 통일을 바라지 않는다. 그것은 곧 자멸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혹자는 김정은이 적화통일을 노리고 있다고 하지만 그것도 언감생심이다. 완전히 꼭두각시가 된 2천 5백만 북한 인민들도 감당하기 벅찬데, 민주화투쟁의 역사를 자랑하고 전직 대통령들도 감방으로 보내는 대한민국 5천만 국민까지 통치하겠다는 꿈을 꿀 수가 있겠는가. 그런즉 김정은이 말하는 통일이란 위장술일 뿐이다. 따라서 남북정상회담이니 남북공동선언이니 하는 것도 시간과 돈을 벌기 위한 사기극에 지나지 않는다.순진한(?) 국민들의 감성을 자극했던 김정은과 문 대통령의 판문점 도보다리의 만남도 그렇다. 문 대통령이 김정은의 속셈을 모른 채 그런 기획을 했다면 완전히 농락을 당한 것이고, 알고도 그랬다면 사기극의 공모자인 것이다. 그 때는 몰랐더라도 지금쯤은 눈치를 챘을 것이다. 아직도 사태파악을 못했다면 그것은 무지몽매의 차원이 아니라 정신상태를 의심해야 할 일이다. 무엇에 홀린 듯 이 정권은 임기의 절반이 지나도록 오로지 김정은의 눈치를 보고 비위를 맞추는 데만 집착을 해왔다. 그 결과 상식이 통하지 않는 무리수를 남발하여 정치, 경제, 외교, 안보를 파탄지경에 빠트렸다.통일로 가는 길에 무엇이 가장 걸림돌인지는 자명하다. 외부의 힘에 의한 제거가 어렵다면 내부의 봉기를 기대해 보는 수밖에 없다. 겉으로는 대화와 협상의 문을 열어 놓더라도, 암암리에 북한의 인민들이 김일성 일족의 주술에서 풀려나 세습독재에 저항하는 세력을 형성할 수 있도록 전력 지원하는 것이 통일을 앞당기는 최선일 것이다.

2019-12-19

여성은 강하다

장규열 한동대 교수탈출을 꿈꾼다고 한다. 최근 언론 보도에 따르면, 우리나라 여성 80%가 ‘한국을 떠나고 싶어한다’는 것이다. 문화적으로 여성이 가지는 지위와 여성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그들에게 억울함, 우울감, 상실감, 자괴감을 가지게 하여 다른 나라로 떠났으면 한다는 것이다. 게다가 범죄피해에 대한 불안과 불공정성에 대해 느끼는 정도도 여성이 남성에 비해 크다고 한다. 어느 다른 곳들과 비교하기도 전에 우리 여성들에게는 이 나라에서 살아가는 일이 버거운 게 아닐까. 이제는 누구도 무엇이든 숨길 수가 없다. 나라의 울타리 안에서 그저 우리의 문화려니 하고 받아들이던 일들이 이제는 나라들 간의 비교가 얼마든지 가능하여 누구나 알게 되었다.둘러보니, 정반대도 있다. 핀란드의 수상으로 선출된 산나 마린(Sanna Marin)은 34세 청년이다. 여성이면서 젊다. 그가 만든 내각은 구성원 19명 가운데 여성이 열둘이다. 나라의 미래와 정책을 펼쳐가는 분위기와 방향이 느껴지지 않는가. 최근 구성된 영국 하원도 총원 650명 가운데 220명이 여성이라고 한다. 3분의 1을 넘는 숫자가 아닌가. 그 가운데 노동당 소속 의원들 가운데에는 여성이 절반을 넘는다고 한다. 이들 나라에서는, 여성이라는 까닭에 정부가 펼치는 정책과 관련하여 공연히 우울하거나 자괴감에 빠지는 일은 없지 않을까 싶다.어떻게 이처럼 다른 것일까, 이 나라와 저 세상은. 여성들에게 이 나라에서 행복하게 살자고 주장할 재간이 우리에게 있는가. 최근에는 미국의 버락 오바마(Barack Obama) 전 대통령도 한몫 거든다. 싱가포르에서 열린 어느 모임에서 ‘모든 나라에서 여성들이 지도자가 된다면, 우리는 참으로 멋진 세상을 만날’게 아니냐고 물었다. ‘여성이라고 완벽할 수는 없겠지만, 남성보다는 여성이 분명히 낫다’고 단언한 그는 ‘세상이 겪는 문제들은 남성이 권력을 너무 오래 잡고 있어 생겨난다’고까지 하였다. 저런 고백을 하는 남성지도자들이 늘어가면 세상이 더 빠르게 변하지 않을까. 여성의 목소리가 높아가고 리더십이 검증되면 세상에는 더 많은 여성지도자들이 나타날 것이다. 우리는 준비되어 있는가. 우리 사회는 여성의 능력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더욱 성숙한 모습으로 나아갈 것인가.우리 사회가 거칠다. 막말과 다툼은 일상이 되어버렸고 극한 대립과 양보불가의 구호로 멍들어간다. 불공대천이며 타도필승이다. 이게 정상인가 싶은 대치와 성벽이 늘어만 간다. 나라와 사회가 진정으로 소통하고 화합하며 회복하고 일어서는 일이 가능할 것인가 걱정이 앞선다. 화합의 정치와 소통의 언론은 보이지 않으며, 선동과 편가르는 일에만 열중할 뿐이다.여성의 섬세함과 치밀함에 다음 기대를 걸어보면 어떨까. 전통과 문화에 사로잡힌 여성상을 벗고 새로운 지도력으로 옹골차게 다진 여성들을 만나고 싶다. 정책과 소통이 유연해지고 상식과 논리가 통하는 사회가 되려면 여성이 분발하여 나서야 한다.

2019-12-18

레이더 vs 라이더

레이더(Radar)는 전파를 사용해 목표물의 거리, 방향, 각도 및 속도를 측정하는 감지 시스템이다. 전쟁에서 적 비행기의 위치를 알아내기도 하며, 사람이 들어가지 못하는 심해의 수심을 알아내기도 한다. 또한 물체의 형상을 확실하게 인식할 수는 없지만 날씨나 시간과 관계없이 제 성능을 발휘하는 센서여서 자율주행자동차에 널리 쓰인다. 주파수에 따라 단거리부터 중거리, 장거리를 모두 감지할 수 있어 현재도 긴급자동제동장치, 스마트크루즈컨트롤 등 다양한 첨단운전자 지원시스템 기술에 적용되고 있다. 중장거리 레이더는 150~200m 이상을 확인할 수 있지만 화각이 40도 안팎으로 좁고, 단거리 레이더는 100m 이내 거리를 감지하되 화각이 100도 이상으로 넓다. 중장거리 레이더 센서는 앞차와의 거리와 속도를 측정해 충돌을 피하는 전방충돌 방지보조기술 등에 주로 활용되고, 단거리 레이더 센서는 후측방 사각지대 감지 기술 등에 주로 활용된다.라이더(Lidar)는 전자파가 아니라 직진성이 강한 고출력 레이저를 발사하여 산란되거나 반사되는 레이저가 돌아오는 시간과 강도, 주파수의 변화, 편광 상태의 변화 등으로부터 측정 대상물의 거리와 농도, 속도, 형상 등 물리적 성질을 측정하는 센서를 말한다. 이 센서는 고해상도의 3차원공간 정보를 확보할 수 있어 오차가 cm단위에 불과할 정도로 정확하다. 다만 비싼 가격과 짧은 수명 등으로 상용차에 적용하기는 어렵다는 기술적 한계가 있다. 레이더와 라이더 센서는 카메라와 함께 미래기술인 자율주행자동차의 3대 핵심센서로 꼽힌다. 공상과학영화에나 나오던 자율주행자동차의 출현에 가장 큰 기여를 하고 있는 기술의 발전이 눈부신 요즘이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19-12-18

툰베리와 트럼프 그리고 보우소나루

김규종 경북대 교수12·12 군사쿠데타 40주년이던 지난 12일 시사주간지 ‘타임’은 올해의 인물로 그레타 툰베리를 선정했다. 스웨덴 국적의 약년(弱年) 16세 소녀 툰베리는 특별한 이력의 소유자다.그녀는 ‘포브스’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 여성, 영국 ‘비비시’가 선정한 올해의 여성 100인, ‘타임’이 선정한 가장 영향력 있는 지도자 100인으로 선정된 바 있다. 툰베리는 세계적인 기후위기에 매주 금요일 학교를 가지 않고 스웨덴 국회 앞에서 1인 시위를 시작한다. 그리하여 세계 150개국 청소년들이 기후변화를 막기 위한 각국 정부의 즉각적인 대응을 촉구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툰베리는 말한다.“오늘날 우리는 석유 1조 6천억 리터를 단 하루 만에 사용합니다. 어떤 정치체도 이것을 바꾸려하지 않아요. 석유를 지하에 묶어두려는 법규는 없어요. 따라서 법을 따르면 세상을 구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법이 바뀌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이 바뀌어야 합니다. 그리고 오늘 시작해야 합니다.”트럼프는 2016년 11월 4일 발효된 ‘파리협약’을 2019년 11월 4일 탈퇴한다고 선언한다. ‘파리협약’은 세계가 기후위기에 한마음으로 대응하기로 한 약정이지만, 탈퇴는 발효시점에서 3년이 지나야 가능하다. 더욱이 탈퇴가 완료되는 데에는 다시 1년의 시간이 필요하다. 따라서 미국의 ‘파리협약’ 탈퇴가 실효를 거두는 시간대는 2020년 11월 4일, 미국 대통령선거 다음날이다. 과연 다음 미국 대통령은 누가 될 것인지 궁금한 대목이다. 그러하되 ‘타임’이 올해의 인물로 툰베리를 선정한 당일 73세의 노인 트럼프는 툰베리에게 고약한 트위터를 날린다. “아주 웃긴다. 그레타는 자신의 분노조절에 애써야 한다. 그러고 나서 친구랑 좋은 옛날 영화를 보러 가라. 진정해라 그레타, 진정해!”열여섯 살배기 툰베리의 응수가 재미있다. 그녀는 트위터의 자기소개 공간에 ‘자신의 분노조절 문제에 애쓰는 10대 청소년. 현재 진정하고 친구와 좋은 옛날 영화를 보고 있음’이라고 쓴다. 누가 더 성숙한 인격을 갖추고 있는 교양인이자 어른인지, 가늠하기 어렵지 않다.이것은 보수우익 트럼프에 국한하지 않는다. 보우소나루 브라질 대통령도 툰베리를 ‘버릇없는 꼬맹이’라고 비난한 바 있다. 툰베리는 보우소나루의 방조 아래 아마존 삼림을 불법으로 벌채하는 브라질 당국에 맞서 싸우다가 원주민들이 계속 살해당하는 현실에 침묵하는 세계가 부끄럽다고 비판했기 때문이다. 64세의 환경파괴자 극우파 브라질 대통령에게 맞서 툰베리는 트위터에 자신을 ‘버릇없는 꼬맹이’라고 응수하면서 맞장 뜬 것이다. ‘브라질의 트럼프’ 혹은 ‘열대의 트럼프’로 불리면서 친기업-반환경정책을 밀어붙이는 보우소나루에게도 툰베리는 눈엣가시가 분명하다. 하지만 그녀가 물러설 기색은 없다. 사회관계망 서비스로 세계 전역에서 이들의 흥미진진한 대결을 응시하고 있다. 노년의 남성 정치가들과 소녀티를 벗지 못한 툰베리의 대결이 21세기 지구촌의 운명과 직결되어 있는지도 모른다.

2019-12-18

12월에 읽는 10월 시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감“무언가 잃어 간다는 것은/하나씩 성숙해 간다는 것이다. (중략)// 낙과(落果)여, 네 마지막의 투신을 슬퍼하지 말라./마지막의 이별이란 이미 이별이 아닌 것/빛과 향이 어울린 또 한 번의 만남인 것을//우리는 하나의 아름다운 이별을 갖기 위해서/오늘도 잃어 가는 연습을 해야 한다.” (오세영, ‘시월’)지난 10월을 건너면서 필자는 매일 ‘시월’을 읽었다. 아름다운 이별과 잃어가는 연습이라는 두 단어가 힘겨운 10월을 견디는 힘을 주었다. 참 어수선했던 나라, 올해만 살고 말 것처럼 숨 막혔던 집회의 대한민국 2019년 10월! 절망의 10월을 넘어오면서 필자는 “빛과 향이 어울린 또 한 번의 만남”을 상상했다. 그 만남은 안정되고 희망찬 12월이었다. 그런데 그 상상은 허상이 되었다. 10월을 데자뷰 하듯 광장은 또 시끄럽다.오로지 집권 연장에 혈안이 되어 있는 사람들과 다시 그 자리에 가기 위해 사생결단을 하고 있는 사람들! 대한민국 정치엔 이 두 부류의 사람들 말고 오롯이 국민에게 희망을 제시하는 정치인은 단 한 명도 없다. 패스트트랙이고 뭣이고 이 나라 정치인들이 하는 모든 짓은 자신들의 정치 생명 연장을 위한 정쟁(政爭) 수단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그런데 아픈 것은 이 나라 정치야 태생부터가 국민과는 별개로 정치인 자신들의 영욕을 위한 싸움의 장이라고 치더라도 교육은 왜 이 모양이냐는 것이다. 정치판에 구속된 교육의 모습이란? 교육 전문가도 아닌 대통령의 감정적인 말 한 마디에 교육 시스템 전부가 바뀌는 이런 말도 안 되는 교육 판에 우리는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맡길 수 있을까?대학수학능력시험 성적 발표가 끝나기 무섭게 고등학교 정문은 물론 골목마다 대학 합격을 축하하는 가로펼침막이 내걸렸다. 대상 학교는 S대학교! 축하할 일이고, 축하받을 일이다. 그 학교에 합격하기 위해 얼마나 고생했을지 알기에 필자도 뜨거운 축하의 박수를 보낸다. 그러면서 필자는 생각한다, 정말 이 나라 초중고 교육의 끝이 어디인지? 그 끝을 이야기 해주는 말이 있다. “서, 고연, 서성한, 중경외시, 건홍동 ……” 필자도 오래 전부터 씁쓸하게 이 말을 학생들과 학부모들에게 노래하듯 해오고 있다. 그런데 수십 년이 지났지만 이 말은 없어지기는커녕 더 큰 생명력을 얻고 있다.이 나라 학생들은 역사 속 임금 순서보다 이 말을 더 절실히 외우고 있다. 이것이 마치 이 나라 교육의 종착지인 양 생각하고 무조건 앞쪽에 들기 위해 올인한다. 만약 들어가지 못하면 실패한 인생 취급을 받는다. 그래서 다시 공부해서라도 순서를 당기려 애쓴다. 학생들의 희망과 행복지수, 출산율 등 이 나라 교육은 참 많은 것을 잃었다. 시에서는 “잃어 간다는 것은/하나씩 성숙해 간다는 것”이라고 했는데, 이 나라 교육은 언제 즈음 성숙의 반열에 올라 모든 학생들이 행복하게 학교에서 자신과 나라의 밝은 미래를 준비할 수 있을까? 올해가 이런데 내년이야? 희망 없는 내년을 맞이해야 할 학생들에게 미안하기만 한 연말이다.

2019-12-18

몽롱한 글쓰기 (2)

줄리아 카메론은 일상에서 창조성이 필요한 디자이너, 작가, 미술가, 음악가, 안무가들, 영화인 등 수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었습니다.매일 글을 써야 하는 저는 이 방법을 읽었을 때 깊이 공감했습니다.저도 새벽에 일어나 첫 작업으로 무조건 한 페이지 쓰는 행위를 일종의 의식처럼 해 오고 있었거든요. 20년이 훌쩍 넘는 세월 동안 빠지지 않고 해왔습니다.글을 잘 쓰는 방법은 딱 한 가지입니다. 많이 써 보기지요. 대부분 많이 쓰는 일 자체를 못하기 때문에 궤도에 올라가지 못합니다. “글을 잘 쓰는 사람은 많이 써 봤기 때문에 잘 쓰는 것이고, 글을 못쓴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글을 많이 써볼 기회를 갖기 못했기 때문에 못쓰게 되는 원리입니다.”빈익빈, 부익부와 같지요? 글을 많이 쓰는데 결정적인 장애물이 바로 ‘자기 검열’입니다.이 글을 다른 사람들이 봤을 때 무엇이라고 평가할 것인가? 다른 사람의 글과 자신을 비교하며 위축되면서 온갖 장애물들이 글을 쓰는 동안 우리의 뇌에 갖가지 야유를 퍼붓습니다. 그 검열관을 죽여버릴 수 있어야 글쓰기의 날개를 달 수 있습니다.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훌륭한 방법이 눈뜨자 마자 마구 마구 글을 써 대는 겁니다. 이런 방식의 글쓰기 훈련을 저는 ‘몽롱 쓰기’라고 표현합니다.전날 밤에 잠들기 전에 노트와 연필을 준비합니다. 아침에 눈뜨자 마자 책상에 앉아 ‘의식의 검열관’이 깨어나 찾아오기 전에 몽롱한 상태에서 무조건 쓰기 시작하는 거죠. 내용은 그 무엇이라도 상관이 없습니다. 그냥 무의식 가운데 떠오르는 대로 일필휘지로 씁니다.간단한 규칙이 있습니다. 몽롱 쓰기를 할 때는 절대로 이미 썼던 내용을 되돌아가 다시 읽지 않습니다. 말이 되든 안되든, 논리적이든 논리적 비약이 있든 그냥 마음 속에 떠오르는 내용을 줄줄 써 내려가면 그만입니다. (계속)/인문고전독서포럼대표

2019-12-18

언어라는 불투명한 거울

디지털 시대로 접어들면서 대중매체가 미치는 영향력이 점점 커지고 있다. 이러한 대중매체는 사람들의 가치관 및 자아 정체성 형성 과정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이 때 사람들이 접하는 매체들에서 사용되는 언어는 그 형태에 따라 보고 듣는 이의 사고에 막대한 변화를 불러일으킨다. 즉, 어떤 단어나 어떤 표현을 사용하느냐에 따라 그 문구를 접한 사람들의 사고의 방향이 무의식중에 바뀔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비단 대중 매체 뿐만 아니라 실제 생활에서도 나타난다는 것을 알아둘 필요가 있다.언어와 사유(여기서는 감각기관을 통해 지각한 내용, 사물에 대한 느낌, 기억, 추상적 사고 등을 모두 포함시키는 개념으로 간주한다)의 관계를 바라보는 두 가지 관점을 이해해야 한다.첫 번째 관점은 우리가 이미 전(前)언어적으로 이해한 어떤 것을 타인에게 전달하는 수단이 언어라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는 사유가 언어에 선행한다. (정확히는 사물이나 사태로 이루어진 세계→이에 대한 우리들의 관념→이를 표현하고 전달하기 위한 언어의 순서일 것이다)우리가 자신의 생각에 맞는 적당한 단어를 찾아내려고 애를 쓸 때, 새로운 물건이나 세태를 표현하려고 신조어를 만들 때, 사유는 언어에 앞서 이미 존재한다. 그리고 이때 언어는 사유를 전달하는 매체일 뿐이며 사유의 내용에 하등의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그러나 두 번째 관점 즉 언어가 사유를 규정한다는 관점에서 보면, 이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우리가 스펙트럼인 무지개를 일곱 가지 색깔로 지각하는 것은 무지개의 색깔을 일곱 가지로 표현하는 언어의 영향 때문이다. 또한 조선시대의 사람들이 남녀차별적인 생각을 가졌던 근본적 이유도 그들의 언어 속에 담겨 있는 역사와 전통의 영향력 때문이다. 이러한 사정은 전술한 예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수 있는 적당한 단어를 찾으려 할 때나 신조어를 만들 때에도 우리는 ‘다른 단어들을 가지고’ 사유하고 있는 것이다! (가령 television이라는 신조어도 tele라는 접두사와 vision이라는 명사의 합성어이다.)즉, 우리의 세계에 대한 지각, 느낌, 사유는 언어의 틀 속에서 세계를 해석한 결과물이다. 갓난아이들처럼 언어라는 매체 없이 바라보는 세상은 연속적으로 변화하는 무지개의 색깔처럼 미분화된 덩어리일 뿐인 것이다.첫 번째 관점, 즉 사유와 언어는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있다는 관점에 따르면 언어의 영향력으로부터 자유로운 우리의 의식이 이 세계를 맑고 굴곡 없는 거울처럼 비출 수 있다.가령 무지개를 바라볼 때 무지개가 가지는 스펙트럼이 우리의 의식에 그대로 반영될 가능성을 인정하는 것이다. 결국 언어는 사고를 전달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고 보고 언어 역할을 이차적으로 평가한다. 이런 주장을 펼치는 대표적인 철학자로는 플라톤(Platon), 데카르크(R. Descartes), 로크(J, Locke), 칸트(I. Kant) 등이 있다.공강일 서울대 강사·국문학그러나 두 번째 관점, 즉 언어와 사유는 분리불가능하며, 나아가 언어에 의해 사유가 결정된다고 보는 입장에 따르면, 우리의 의식은 언어의 규정을 받으며 이 세계를 해석한다. 언어의 규정을 받는 의식이라는 거울은 일그러지고 불투명한 거울이어서 이 세계를 그대로 반영하지 않는다. 가령 우리의 의식은 스펙트럼 형태의 무지개를 일곱 가지 색깔의 무지개로 해석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 관점에서는 우리의 경험 혹은 감각적 지각은 사유에 바로 닿는 것이 아니라 언어라는 필터를 거쳐 우리에게 전달된다. 이러한 사정은 이성적 사유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진자운동 또는 낙하법칙이라는 이론(이러한 이론들도 언어로 되어 있어 우리들의 사유를 규정함을 명심하자.)을 가지고 끈에 매달린 돌의 운동을 관찰(엄밀히 말하면 해석)할 수 있을 뿐, 돌의 운동을 굴절되지 않은 형태로 의식 속에 그대로 비출 수는 없는 것이다. 언어와 사고를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대표적인 철학자로는 훔볼트(W.v Humboldt), 비트겐슈타인(L. Wittgenstein) 등이 있다.미국의 현대철학자 로티(Rorty)는 “우리는 피부의 바깥으로 나갈 수 없듯이 언어의 바깥으로도 나갈 수 없다”는 말을 했다. 이것은 우리가 언어라는 안경 없이는 세상을 보지 못한다는 뜻이며, 언어라는 안경을 통해 사물을 바라보는 이상, 렌즈의 굴절률(언어 속에 담긴 편견, 전통 등)로 인해 변형(해석)되지 않은 세상을 인식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렇다. 언어로부터 해방된 어떤 성찰의 순간이 절대로 오지 않는다는 주장은 다소 과장된 것이라 할지라도, 그러한 순간이 인생에서 극히 예외적인 순간일 것이라는 점은 분명한 것 같다.만약 여러분도 언어가 사유를 규정한다는 두 번째 관점을 지지한다면, 앞 절에서 제기한 질문에 대한 답을 얻게 될 것이다. 우리들의 감각적 지각은 물론 이성적 사유조차도 언어의 규정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이상, 관념과 사실의 완전한 대응을 토대로 절대적 진리를 추구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2019-12-17

반려동물 교감치유(中)

최근 반려동물교감 프로그램의 긍정적 효과가 입증되면서 국내에서도 많은 관심을 나타내고 있다.자폐아동, 우울증환자, 학교폭력으로 인한 대인 기피증을 보이는 청소년, 고아, 치매환자, 외로운 독거노인 등이 반려동물들과 만나는 과정속에서 마음의 치유 및 정서적 안정을 얻고 사회성을 회복하게 되었다는 사례들이 알려지고 있다.반려동물과의 일상생활을 통해, 동물과의 많은 대화를 통해 어휘구사능력이 향상되고 의사소통이 원활해져서 대인관계가 증진되었다거나 동물을 규칙적이고 반복적으로 관리하면서 생활태도와 기억력이 향상되는 사례도 있고, 양육능력과 생명존중감을 키우면서 양육받고 싶어하는 자신의 욕구를 충족하게 되는 사례도 있다.반려동물은 특히 감정적으로 상처를 입은 사람들의 닫혔던 문을 열리게 하는 효과가 있다. 사람들은 사회생활에서 만나게 되는 사람들에게 상처를 받고 그 정도가 심할 경우 정신적 질환을 가지게 되는데 사람에게 받은 상처를 사람이 낫게 하는 것이 어려운 경우 치유프로그램에서 반려동물과의 교감이 중요한 역할을 하기도 한다.동물교감치유 및 교육프로그램에서 학교의 모든 학생들이 대상자가 될 수 있는데 청소년의 학교부적응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이해와 적합한 중재 및 상담활동이 부족한 실정임을 고려할 때 반려동물교감치유 프로그램을 어린이, 청소년, 부적응아, 특수교육대상자 등의 사회성 향상, 대인관계증진, 비행습관 교정, 정상적인 발달과업 증진을 위해 구성할 수 있다. 교내 동물사육장을 활용하여 전담교사의 지도에 따라 학생들이 당번제 활동으로 사육동물을 관리할 수 있도록 하고 수업전, 방과후 활동프로그램을 구성해 관찰, 활동일지를 기록하는 형태로 운영이 가능하다.또한 예방웰빙의 측면에서 고아,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는자나 독신자, 배우자 상실 독거인, 소년소녀 가장들에게는 반려동물과 함께하는 시간을 통해 즐거움과 안정을 줄 수 있도록 하여 긴장, 불안등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구성할 수 있다.이동훈가족간의 불화가 있는 경우 반려동물은 가족간의 대화주제가 될 수 있도록 구성하고 은퇴자, 독거노인, 고령자의 경우 반려동물과 함께하는 대화와 놀이친구가 될 수 있도록 하여 외로움을 극복 할 수 있도록 구성할 수 있다. 나아가 재활과 치유분야의 경우 우울증, 기억력, 집중력 치료에 반려동물이 참여하는 국내외 사례가 보고되고 있으며 반려동물과 함께하는 프로그램 구성을 통해 소근육, 대근육의 기능회복과 치유에 도움이 되도록 하는 사례들도 보고되고 있다. 많은 연구에서 동물이 곁에 있으면 심박수와 혈압이 감소하고 행복감을 주는 호르몬 수치가 증가했다는 결과가 보고되고 있다.물리치료를 위해 기구를 한시간 돌리는 것보다 반려동물을 빗질하거나 반려동물과 함께 산책하며 운동하는 프로그램들이 정서적인 부분을 포함하여 신체적 정신적으로 긍정적인 효과가 있음도 밝혀지고 있다.동물교감치유 분야의 활성화를 위해서는 다학제간 협력이 필요한데 의료분야, 심리·상담분야, 동물·수의분야, 사회복지분야, 자원봉사분야 등 산학민관 전문가들과 활동가들의 참여로 이론적 정립과 다양한 프로그램의 개발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대학의 동물자원 및 반려동물 관련학과의 교육과정에 동물교감치유 분야 교과목을 개설해 훈련된 전문 동물교감치유사를 양성될 필요가 있다. 국내 동물교감프로그램의 전문화와 활성화를 기대한다./서라벌대 반려동물학과 학과장

2019-12-17

참수제도

사형수의 목을 베는 사람을 예부터 망나니라 불렀다. 닥치는대로 한다는 뜻의 접두사 ‘막’에다 ‘낳은 이’를 합해 부른 이름이다. 나라마다 그들은 대개 천인이나 중죄인 가운데 뽑아 강제로 일을 시켰다. 요즘은 언행이 좋지 않거나 버르장머리가 없는 이를 망나니라 부르지만 그 어원을 따져보면 사형수의 목을 벤 사람이다.사람의 목을 베어 형을 집행하는 참수형(斬首刑)은 동서양 어느 문화권에서든 쉽게 만날 수 있는 사형제도다. 조선조에도 1896년까지 이 제도에 의해 죄인을 다스렸다. 한국인 최초 천주교 사제인 김대건 신부가 참수형으로 처형된 것은 잘 알려진 일화다. 중국에서는 오래전부터 오형(五刑) 중 하나로 참형 또는 참시라고 불렀다. 근대에 와서 대부분의 나라에서 이 제도가 사라졌으나 아랍권 일부 국가에서는 아직 잔존한다. 그러나 실제 집행되는 나라는 사우디가 유일하다. 사우디에서는 아직 참형을 집행하는 망나니를 공개 모집까지 하고 있다고 한다. 원래 참수는 동물의 도살을 모방한 것으로 아랍권에서는 치욕스런 죽음으로 인식한다. 극렬 테러리스트가 인질을 참수하는 장면을 공개하는 것도 적군은 사람 취급을 않겠다는 나쁜 의도를 담고 있다. 그러나 참수형 자체가 비인간적이며 혐오성이 강해 사회적 거부감은 크다. 조선조에서도 극악무도한 범죄자가 아니면 참수형 보다는 사약으로 형을 다스렸다는 기록이 있다.최근 친북 반미단체가 주한 미 대사에 대한 참수 퍼포먼스를 벌여 논란을 빚었다. 한미동맹 관계에 갈등을 일으킬 외교적 문제와는 별개로 참수 퍼포먼스 행위 자체가 자극적이고 충격적이어서 높은 비난을 쌌다. 우리 사회의 무질서가 어디까지 갈 것인지 우려되는 일이다. /우정구(논설위원)

2019-12-17

2020년 포항경제가 나아갈 길

김진홍 한국은행 포항본부 부국장매년 새해를 맞이할 시기가 되면 무사히 한 해를 보낸 것에 감사하기보다는 다가오는 새해에 뭔가 새롭고 희망적인 일들이 실현되기를 기대하는 마음이 더욱 부풀어 오르기 마련이다. 하지만 포항의 올해는 그 어느 때보다도 감사할만한 일이 많았다. 시 승격 70주년을 맞이하여 연중 다양한 문화, 예술 행사가 끊이지 않았고, 포항지진특별법 제정을 위한 국민청원에 시민들이 일치단결하였으며, 암각화 특별전을 개최하면서 뿌리 깊은 역사유적을 지녔다는 자긍심을 가지기도 하였다. 또 강소연구개발특구와 영일만 관광특구의 지정 등 지속 가능한 도시 포항의 미래먹거리도 착실히 마련한 성공적인 한해였다고 자평할 수 있을 것이다.그렇다면 새해는 어떠할까. 먼저 포항 지역경제를 둘러싼 대내외 여건부터 점검해 보자. 현시점에서 확실한 것은 정치 일정뿐이다. 21대 총선과 관련한 예비후보자 등록 신청이 어제부터 개시되면서 지역의 정치 시계는 이미 빠르게 돌아가고 있어 국내의 정치정세는 내년 4월 중순이면 마무리된다. 다만, 세계 정치경제정세에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칠 미국의 대통령 선거와 관련하여서는 2월에 예비선거가 있지만 11월에 선거가 있어 연중 미국 정세의 변화에 따라 국내외 금융시장은 상당히 민감하게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영국의 브렉시트이행기한도 12월이어서 정치정세와 관련한 불확실성은 연말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그렇다면 포항의 경제정세는 어떠할까. 지역의 주력부문인 철강산업은 주요 국제 철강재 가격이 하락 경향인 데다, 올해 들어 다시 상승하기 시작한 국제철광석 가격도 높은 수준을 지속하고 있어 적어도 내년 상반기까지는 매출 감소와 원가상승에 따른 수익성 악화요인이 해소되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게다가 지역 철강업체의 내부요인도 상황은 만만치 않다. 숙련기능직의 정년 도래로 기술력 보존이 쉽지 않은 데다 직원들의 고령화와 더불어 3년간 최저임금이 32.8%가 상승하면서 평균 인건비 부담이 커진 점까지 고려하면 철강을 중심으로 하는 포항경제의 내년 기상도는 대체로 흐린 날씨가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결국, 포항경제를 조금이라고 회복시키려면 비철강, 비제조 부문에 주목할 수밖에 없다. 그러한 맥락에서 내년에는 지진재해 복구 관련 사업을 최우선 추진할 필요가 있다. 지역 건설업체가 주도하는 토목, 건설사업이 활발해지면 지역 철강의 부진도 다소 완화시킬 수 있다. 이왕이면 지금 시범 운항에 나선 국제크루즈산업의 육성을 위한 기반조성사업도 동시에 추진하였으면 한다. 크루즈산업의 경제효과는 영일만항에서 도보로 이동하거나 가까운 지역에 위치한 최상급의 요리를 제공하는 음식점, 포항에서만 체험하거나 볼 수 있는 독특한 관광상품, 크루즈선이 제공하는 최고 수준의 숙박여건을 경험한 관광객이라도 만족할 만한 특급호텔 등과 같은 기반인프라에서 창출되는 것이다. 크루즈선의 기항은 항만의 접안능력의 대소가 아니라 기항지가 지닌 소비기반의 매력에 좌우되는 것이다. 적어도 2020년은 포항경제가 지닌 약점을 보완하고 인내하면서 밝은 미래를 대비하기 위한 기반 조성에 매진하는 한 해가 되었으면 한다.

2019-12-17

소통

류영재 포항예총 회장12월은 여느 달보다 모임이 많기 마련이다. 공적인 성격을 띤 단체는 의례히 한 해의 결산을 해야 할 것이며 사적인 모임이라하더라도 이런저런 의미를 붙인 마무리가 거의 12월에 집중된다. 특히 송년회는 빠지기도 찜찜하여 일일이 참석하다보면 피로감이 쌓여 일상이 불편할 지경이다. 쌓여가는 송년의 피로 중에도 더러는 휴식 같은 모임도 있다.며칠전 40년 지기가 되어버린 후배가 카톡으로 초대장을 보내왔다. “○○아트팜 송년파티에 초대합니다.” 과수원 냉장창고를 리모델링한 작업실을 ‘아트팜’이라 이름붙이고 가끔씩 지인들을 불러서 예술행사를 벌이는데, 송년회에 초대되기는 처음이다.먼저 도착한 일행들은 클래식기타 연주에 심취해 있었는데, 귀에 익은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을 비롯하여 이문세의 ‘행복한 사람’으로 연주를 마친 팀은 놀랍게도 포스코 사원이라 소개되었다. 푸짐하게 준비된 음식을 먹고 차를 마시며 대화하다 다시 음악감상 시간을 가졌는데, 해설을 곁들인 희귀음반 감상이었다. 일본의 시라토리 에미코를 시작으로 미국의 싱어송라이터 주디 씰의 앨범이 소개되었고, 천상의 목소리라 불리는 브라질의 재즈싱어 마르시아 로페즈 등 격이 다른 음악이었다. 음악은 국적과 언어를 넘어 감동의 커뮤니케이션이 가능케 하였다.옆 자리에 앉은 이가 스스럼없이 얘기를 건넸다. 분명히 일본, 미국, 브라질 등 한마디도 알아들을 수 없는 내용의 음악을 들으며 이렇게 소통이 되는데, 얼마 전 라오스 여행에서 한국사람을 만났는데 그렇지 못했다면서 웃었다. 충청도 출신인 한국인이 베트남에서만 난다는 향료인 ‘침향’을 팔고 있었는데, 경상도 사람인 이 양반이 “그거 빠사 무도 돼요?”라고 물으니 무슨 말인지 도통 알아듣지를 못하더라는 얘기였다. 물론 심한 사투리 탓이긴 하나 한국인간에도 한국말로 소통이 어려울 때가 있다.소통이 화두인 시대이다. 온갖 방식으로 전 세계가 실시간으로 소통하는 세상에 여전히 불통인 경우도 허다하다. 소통의 부재는 오해를 불러오기도 한다.도시의 미래는 청년문화가 좌우한다. 문화는 그 특성상 뿌리 내리는데 오랜 시간이 소요되며 반드시 선행학습이 필요하다. 포항시도 청소년문화센터의 건립 등을 통하여 청년문화의 계발과 청년창업에 집중하고 있다. 포항예총에서 청소년들의 꿈과 재능을 키우기 위하여 ‘틴틴페스티벌’이라는 청소년공연예술축제를 위한 예산을 신청했는데, 시의회 심의에서 예총회원들의 연령이 높으니 청소년문화를 이끌 수 있겠는가를 걱정하며 예산을 배정해도 이벤트사에 위탁하지 않을까를 우려한다고 들었다. 당연한 염려이다. 그러나 이 일은 누가해도 해야 한다. 가장 잘 할 수 있는 사람이 하면 된다. 예총회원들의 연령이 높은 것도 사실이지만 일천명 회원 중에는 젊은 회원들도 많다. 그리고 청년문화를 꽃피우는 주체는 청소년들이지만 문화제공자는 기성세대일 수밖에 없다. 문제는 얼마나 정성을 다하여 올바르게 운영하느냐 일 것이다.진정한 소통은 무조건 믿고 보는 것도 아니고 ‘우리가 남이가’ 하는 패거리 문화도 아닌 공감과 경청에 기반한 쌍방의 소통일 것이다. 문화예술인들도 시민의 대의기관인 의회와 긴밀하게 소통해야 할 때이다.

2019-12-17

몽롱한 글쓰기 (1)

유명한 할리우드 영화감독을 남편으로 둔 시나리오 작가가 있습니다. 삶은 찬란했습니다. 남편은 택시 드라이버, 휴고 등 대표작을 내며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로버트 드 니로 등과 함께 일하는 거장입니다.부부가 성공 가도를 달리고 있던 어느 날, 남편이 외도를 합니다. 딸 하나를 낳고 달콤하게 살던 이 여인의 삶은 그대로 추락하지요. 술이 없이는 하루도 잠을 이루지 못합니다. 작가로서의 경력 또한 올 스톱. 삶은 의미를 찾을 수 없는 고역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혼 후 우울증이 그녀를 덮칩니다. 알코올에 의지하지 않고는 한 글자도 쓸 수 없습니다.그러던 어느 날. 도저히 이렇게 살 수 없다 생각한 그녀는 산책하며 몸을 움직이기로 결심합니다.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어느 날, 집 앞에서 고양이 한 마리를 발견하지요. 고양이와 조금씩 가까워진 그녀. 일주일 후에는 고양이와 오랜 이야기를 나눕니다.“고양이와 대화하면서, 주위에 관심을 기울이는 연습을 시작했어요. 그동안 내 문제에만 함몰되어 주위를 돌아볼 생각조차 못하고 살았었죠. 내가 고통에서 빠져나오는 탈출구였어요.”우울감과 무기력의 연속에서 빠져나와 회복한 그녀는 이후의 삶을 ‘창조성 회복의 전도사’로 살아갑니다. 이혼, 우울증, 알콜 중독을 이겨낸 시나리오 작가 줄리아 카메론(Julia Cameron 1948∼) 이야기입니다. 카메론은 창조성을 회복하기 위해 두 가지 도구가 필요하다고 말합니다.하나는 아침에 눈 뜨자 마자 일어나 무조건 한 페이지를 쓰는 ‘모닝 페이지’입니다. 두 번째는 일주일에 2시간을 자신만을 위한 창조성 회복에 투자하는 일입니다. 공연을 보거나, 박물관을 찾아가거나, 해변을 산책하는 등, 누구도 의식하지 않고 오롯이 자신의 내면을 돌아볼 수 있는 경험을 매주 한 차례 2시간 정도 의식처럼 수행하라는 것이지요. (계속)/인문고전독서포럼대표

2019-12-17

울릉군 공무원청렴도의 이면

김두한 경북부울릉군 공무원 청렴도는 왜 전국 꼴찌 수준을 이어갈까. 정말 부조리가 많고 상사들이 부당한 지시를 하고, 금품요구를 하고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아니다.국민권익위원회가 2019년도 공공기관 청렴도 측정 결과를 최근 공개했다. 기초 자치단체에서 울릉군은 지난해 대비 한 단계 상승한 4등급을 기록했다. 하지만, 여전히 꼴찌 수준이다.울릉군은 지난해 종합청렴도 측정 결과 최하위등급인 5등급에서 올해는 한 단계 상승한 4등급을 받았다. 지난해 5등급을 받았던 외부청렴도가 1단계 올라 4등급이 됐다. 하지만, 내부청렴도는 1단계 하락한 5등급이다.이 같은 결과가 왜 나올까? 울릉군공무원의 구조를 보면 알 수 있다. 울릉군의 공무원 정원은 399명(공무직, 기간제 근로자 제외), 현원 382명이며 이 가운데 전출제한이 적용되는 공무원이 211명이다.울릉군공무원 임용 조건에 아예 5년, 7년 근무를 해야 전출 가능한 공무원이 55.23%다. 절반이 넘는다, 이들은 육지 전출이 가능하면 대부분 육지로 나갈 의향이 있는 공무원이라고 봐야 한다.특히 울릉군공무원 임용때는 전출기간이 5년이었다가 임용 때 7년으로 바뀐 공무원도 34명이나 된다. 이들은 시험을 칠 때 조건은 내년부터 전출할 수 있었지만 2년 늘어났다.이들의 불만은 하늘을 찌른다. 승진을 거부한 공무원도 30여 명이나 된다. 9급에서 8급 승진하려면 1년 6월이 걸리고 8급→7급은 2년이다. 공무원으로 임용돼 3년6개월 근무하면 7급으로 승진하지만 7급으로 승진하면 타지역 전출이 어려워지게 돼 아예 승진조차 꺼린다.요즘은 육지로 전출하려면 울릉도에서 7년을 근무해야 한다. 이 같은 조건에서 근무에 전념하라고 요구하기 어렵다. 불만이 쏟아질 수밖에 없다. 어려가지 사정으로 고향 등 육지로 나가려고 혈안이 돼 있는데 뜻대로 안 되니 울릉군 행정에 우호적일리 만무하다.울릉도를 떠나야 하는데 여건은 안 되고 그렇다고 근무환경이 좋은 것도 아니다. 직원 사택은 턱없이 부족하고 울릉도는 물가가 비싸 원룸 임대도 보증금 500만 원에 월임대료로 50만 원을 내야 한다.이 같은 구조에서 업무처리, 보조금 지원업무, 부당한 영향력 행사, 부정청탁에 따른 업무처리, 공용물 사적이용 등을 평가하면 곱게 보일리 만무하고 상사 지시가 귀에 들어 올리도 없다. 이런게 내부청렴도란 점수로 나타나게 된 것이다.육지 나갈 근무연한이 되면 근무성적에 상관없이 힘 좋고, 배경 좋은 사람이 먼저 나간다. 이유는 타 시군에서 울릉군에 할애 요청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성적에 따라 전출 가는 것이 아니다.근무 성적이 나쁜 사람이 오히려 유리할지도 모른다. 울릉군이 소위 일 안 하는 골통을 붙잡아 놓을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이래저래 불만이 더 쌓일 수밖에 없는 구조다. 근본적인 방안을 더 늦기 전에 찾아야 할 때다./kimdh@kbmaeil.com

2019-12-16

예산농단과 세금도둑

강희룡 서예가조선시대는 토지에 세금을 부여하는 것이 국가의 가장 큰 재원이었다. 건국 초기에는 손실답험법(損失踏驗法)이라 하여, 풍·흉년을 직접 조사하여 세금을 매겼으나, 토지를 조사하는 관리들의 성향에 따라 좌우되었기 때문에 문제가 많아 세종시대 역시 과세기준에 고민이 있었다. 이에 임금은 공법(貢法)이라는 새로운 세법을 마련했다. 공법이란 국가가 수취하는 토지세의 한 제도로서, 수년간의 수확고를 통산하여 평년의 수익을 정해진 비율로 삼아 세금을 매기는 제도였다. 세종 12년의 ‘세종실록’ 기록을 보면 세종은 공법 결정 이전에 과거시험에 공법 관련 내용을 출제하여 공법 제정 문제가 조정의 현안임을 강조하는 한편, 공법시행 이전에 신하와 유생들의 의견을 알아본 후에 최종적으로 공법의 시행은 백성이 결정할 사안으로 판단하였다.1430년(세종12) 세종은 이 새로운 세법 시안을 갖고 백성들에게 그 찬반 의사를 묻는 국민투표를 3월 5일부터 8월 10일까지 무려 5개월간 실시하였다. 치밀한 성품과 백성들을 최우선으로 하는 세종의 의지가 워낙 강했기 때문이었다.세종실록에는 ‘정부와 육조, 각 관사와 각 도의 감사, 지방수령 및 여염(閭閻)의 세민(細民)에 이르기까지 모두 가부(可否)를 물어서 아뢰게 하라.’는 기록은 임금이 백성들이 좋지 않다면 이를 행할 수 없다고 천명한 것이다. 8월 10일 호조에서 발표한 국민투표 결과보고를 보면 17만여 명의 백성들이 투표에 참여하여, 9만8천657명이 찬성, 7만4천148명이 반대한 것으로 집계됐다.그 시절에 수많은 백성들을 대상으로 일일이 투표에 참석하도록 한 점은 매우 눈길을 끈다. 아무리 좋은 제도라도 특히 조세에서 백성이 찬성하지 않으면 행할 수 없다는 성군으로서 세종의 선언은 오늘날에도 많은 시사점을 주고 있다.지난 10일 여당은 제1야당을 배제하고 4+1협의체라는 정당구조로 512조의 슈퍼예산안을 28분 만에 날치기로 통과시켰다. 즉 대대적인 세금 ‘나눠먹기 짬짜미’를 한 것으로 그야말로 예산을 농단하며 희대의 ‘세금 도둑질’을 한 것이다. 입법부 수장으로 중립의무를 지켜야 할 국회의장이 그의 지역구에 아들 세습공천을 위해 여당의 선봉대 역할을 했다는 게 진실이라면 그는 이미 의장으로서의 역할과 정치인으로서의 생명은 끝난 것이다.더구나 박지원 의원은 그의 지역구 목포에서 의정보고회 때 아예 ‘예산농단주범, 세금도둑 박지원입니다’를 인사말로 세금도둑질을 공개적으로 자랑하며 다니니 이런 부류의 정치인들로 인해 납세의무를 성실히 수행한 국민들은 세금을 내면서도 뭔가 빼앗기고, 분하고, 부당하다는 느낌을 받지 않을 수 없다. ‘민본과 민주적 절차’와 소통을 중시했던 세종의 의지는 600년 전의 국민투표를 가능하게 했고, 그 성과물인 공법은 시대를 더욱 빛나게 했다.지금 한국사회에서 벌어지는 정치인의 작태를 보면 ‘납세의무를 국민이 당연히 져야만 하는가?’라는 의문만 더욱 강하게 든다.

2019-12-16

기적의 사과 (5)

이후 몇 년을 기무라는 지력 회복에 모든 초점을 맞춥니다.벌레 잡는 일을 그만두고 산속의 생명력 넘치는 흙을 과수원에 구현하려 애씁니다. 콩을 뿌리고 잡초를 기르고 식초를 뿌리고, 생명체들이 자연스럽게 자신의 밭에 생태계를 이루도록 각고의 노력을 기울이지요.“10년째 처음으로 사과꽃 일곱 송이가 피었어요. 온 가족이 얼싸안고 눈물을 흘렸습니다.” 이듬해 6만평 전체에 사과꽃이 피었습니다. 수확은 보잘 것 없었어요. 탁구공 만한 사과가 열렸으니까요. 그러나 정말 맛있었지요.11년 동안의 사투 끝에 그는 마침내 6만평의 사과 밭에서 기적의 사과를 수확합니다. 그 밭은 잡초와 온갖 생물로 가득합니다.연구 결과 약 2천종의 생명이 이 밭에 공생한다고 합니다. 완벽한 생태계의 평형을 이룬 거지요.이제 벌레가 전혀 없습니다. 농약 한 방울 치지 않는데 말이지요. 벌레를 잡아먹는 포식자들이 있고 나무 자체가 저항력이 생겨 스스로 자가 치유를 합니다. 비밀은 뿌리에 있습니다. 토양이 미생물로 가득한 풍요로운 흙이 되자, 뿌리는 더 깊게 자랍니다.일반적으로 사과 뿌리가 1∼2m인데 기무라의 뿌리는 최소 10m, 긴 것은 20m가 넘도록 깊습니다. 기적은 땅속 깊은 곳, 보이지 않는 지점에서 일어나고 있었던 겁니다.이 기적의 사과는 1년에 2천명만 맛볼 수 있습니다. 응모기간에는 순식간에 신청이 마감되지요. 그의 사과로 만든 사과 수프를 판매하는 도쿄의 레스토랑은 6개월 예약이 꽉 차있는 상태입니다.한 입 베어 물면 그 향기로운 맛에 누구라도 눈물을 흘린다는 기적의 사과입니다. 천재라고 칭송하는 말에 기무라씨는 대꾸합니다. “아니야, 난 바보야. 바보니까 이런 일을 하는 거지. 힘을 내 준건 나무들이야. 나무들이 힘을 내 주지 않았으면 절대 이 일은 성공할 수 없었어.”/인문고전독서포럼대표

2019-12-16

학과와 전공에 대한 디지털 시대의 논리

서정목 대구가톨릭대학교 교수·번역학 전공바야흐로 대학 정시모집기간이다. 수험생들은 어느 대학, 무슨 과를 지원할지 실로 고민이 많을 것이다.오늘날의 대졸 취업준비생들은 단군 이래로 최대의 스펙을 갖추고 있다지만 막상 취업은 녹록치 않은 것이 현실이다. 취업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것이 바로 학과와 전공의 선택이다. 옛날에는 다니는 대학을 그만 두지 않은 이상 입학 시에 선택한 전공을 바꾸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러나 과거와는 달리 요즘에는 대학에서 전공을 바꾸는 제도인 전과 제도, 그리고 한 개 이상의 전공을 더 이수할 수 있는 복수전공 제도가 있다. 옛날부터 있어온 부전공 제도도 여전히 존재한다. 다른 대학교로 편입하는 기회도 과거와는 달리 많이 제공되고 있다.대학의 입장에서도 천편일률(千篇一律)적이던 학과의 명칭과 전공의 개념도 많이 변화하였다. 일반적으로 과거 대학의 조직은 인문과학, 사회과학, 자연과학, 공학, 농학, 사범대학, 법학, 의학으로 구분되었고, 각 단과대학의 개별 전공들이 독자적으로 하나의 전공으로 자리매김하는 데에는 큰 어려움이 없었다.가령, 기계과는 기계과, 자동차과는 자동차과와 같이 각자 독자적으로 운영되었고, 영어영문과, 중어중문과와 같이 어문계열의 경우, 문학과 어학을 위주로 학과의 명칭이 구성되어 운영되었다. 그러나 오늘날 융복합의 시대에서 외국어와 관광, 항공 서비스와 무역을 결합한 새로운 이름의 학과가 생겨나고, 전기자동차, 드론, 빅데이터와 인공지능과 같은 키워드를 학과 명칭에 포함한 학과와 전공이 속속 출현한다. 아울러 학교별 특성화에 따라 특색 있고 전문성을 지닌 다양한 전공을 제시하면서 고객 유치(!)에 나서고 있다.이제는 학과와 전공에 관한한 학생도 생물(生物)이고 대학교도 생물(生物)이어야 한다.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진화해야만 한다. 필자가 항상 학생들에게 강조하는 것은 하나의 전공에 너무 연연하지 말자는 것이다. 전통적인 학과의 개념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말이다.오늘날 우리 사회는 융복합을 지향하는 시대가 되었다. 하나의 전공에 자신의 적성과 희망, 그리고 특기를 살리기 위해 전과를 하거나 복수전공, 부전공, 연계전공, 자기설계전공 등을 결합해서 융복합적인 전공 지식을 형성하면서 창의적이고 융복합적인 인간이 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필자가 추천하는 전공은 소프트웨어공학이다.또한 막상 공부하고 싶은 전공이 없거나, 딱히 들어맞는 적성이 없다면, 소프트웨어공학, 또는 관련 전공을 선택하기를 권한다. 소프트웨어공학은 문과생들도 접근하기에 비교적 무난한 전공이다. 문과생이든 이과생이든 각자 자신의 전공에서 소프트웨어공학을 접목한다면, 단순한 산술적 합이 둘이 아닌 더 이상의 시너지를 발휘하게 된다.너도 나도 소프트웨어를 전공하면 그 분야에는 인력이 넘치지 않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각자의 전공과 전산의 융복합은 새로운 가치를 창조할 수 있다. ‘Atom’의 아날로그 세계와는 달리 ‘Bit’의 디지털 세계에서는 공유해도 줄어들지 않는다. 그래서 가능하다. 디지털의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

2019-12-16

포항의 맛? 과메기 받고 가자미

포항 먹거리? 라고 물으면 대부분 과메기와 물회를 대표적인 ‘포항의 맛’으로 손꼽는다. 맞다. 구룡포 과메기는 대표적인 포항의 맛이다. 초겨울, 구룡포 일대에 과메기 덕장이 선다. 바닷가 골목마다 과메기를 말린다. 실내에서 온풍 혹은 냉풍으로 말리는 곳도 있다. 겨울 구룡포는 과메기다.물회도 마찬가지. 포항에 오는 관광객들은 누구나 물회 한 그릇씩은 먹고 간다. 저마다 ‘포항 물회의 추억’을 가지고 돌아간다. ‘물회 마니아’들은 겨울을 노린다. 겨울에는 물가자미가 등장한다. 영덕, 울진 지역이 물가자미로 유명하지만, 오히려 생산, 소비량은 포항이 앞선다.그러나, 포항을 대표하는 것은 가자미다. 참가자미, 용가자미, 범가자미, 분홍 가자미, 홍가자미, 물가자미 등 가자미 종류도 숱하다. 포항 토박이들은 여러 종류의 가자미를 세심하게 가르고, 먹는다. 봄철에 물회용 가자미가 따로 있고, 구이용, 조림용 가자미를 따로 가른다. 죽도시장, 구룡포 시장에 가면 사시사철 가자미를 볼 수 있다. 싱싱한 생물 가자미, 말린 가자미, 반건조 가자미가 지천이다.웬만한 밥상에는 가자미구이 한 마리가 나온다. 찜이나 조림으로, 때로는 구이로 내놓는다. 제법 큼직한 가자미를 내놓으면 외지에서 온 관광객들은 당황한다. “가자미구이는 주문하지 않았는데”라고 생각한다. 반찬 중 하나다.포항 사람들은, 가자미를,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가자미는 늘, 곁에 있다. 시장에서, 바닷가에서, 골목에서, 식당에서 그리고 가정의 밥상에서 만난다. 수시로 만나는 흔한 생선이니, 포항 사는 이들은, 그저 그러려니 한다. 골목마다 가자미를 말리거나, 팔거나, 음식으로 내놓는 곳은 포항밖에 없다고 믿는 이는 없다. 전 국민이 가자미를 흔하게 대한다고 믿는다.아귀도 재미있다. 아귀는 마산에서 처음으로 ‘식용화’되었다고 전해진다. 정설이다. 지금도 ‘마산 아귀’는 고유명사다. 그동안 아귀가 ‘이사’했다. 최근 몇 년 동안 포항에서 가장 많이 잡히는 생선 중 하나가 아귀다. 아귀가 남해안에서 동해안으로 거슬러 오면서, 포항에 아귀가 흔해졌다.아귀 간을 일본인들은 ‘안키모(ankimo)’라 부른다. 귀하게 여긴다. 일본인 중에는 아귀 간이 프랑스의 푸아그라(foie gras)보다 낫다고 여기는 이들도 있다. ‘푸아(foie)’는 간이다. ‘그라(gras)’는 지방이다. 푸아그라는 지방 덩어리다. 아귀 간도 상당 부분이 지방질이다. 만지기 까다롭다. 열기가 강하면 물처럼 흘러내린다. 덜 익은 것은 날생선의 비린 맛이 느껴진다.신선한 아귀 수육과 더불어 아귀 간 찜을 먹을 수 있는 곳은 드물다. 아귀는 옮기는 과정에서 쉬 신선도가 떨어진다. 마산, 부산 그리고 포항에서 손질한 아귀를 대도시에 공급한다. 단언하기는 힘들지만, 포항에서 버스 편으로, 서울로 올라가는 ‘손질 아귀’의 양은 만만치 않다.포항 구룡포 일대에서 질 좋은 자연산 미역이 난다는 사실을 아는 이도 드물다. 외지 사람들은 “포항에서 질 좋은 자연산 미역이 생산된다”는 사실을 잘 모른다. 외지인뿐만 아니라 포항에 사는 이들도 마찬가지다. 죽도 시장에 가면 ‘완도 미역’이라고 표기한 마른미역이 심심치 않게 눈에 띈다.미역은 양식 미역과 자연산이다. 한때 동해안 울산, 부산 언저리에서도 미역을 양식, 재배했다. 없어진 이유는 간단하다. 공장 지대가 들어섰다. 울산 이진, 당월, 온산 미역도 사라졌다. 동해안 다른 지역도 마찬가지. 차가운 물에서는 미역 성장 속도가 느리다. 물이 따뜻한 남해안을 따르지 못한다. 겉모양도 남해안 것이 낫다. 먹어보면 다르지만, 소비자들이 그 내용을 알 리는 없다. 전국 어디서나 완도 미역을 쉽게 구할 수 있으니 이제 대도시 소비자들도 완도 미역을 최상품으로 여긴다. 그렇지는 않다.자연산 미역은 돌미역, 산모 미역, 해녀 채취 미역이라고 부른다. ‘돌’은 자연산, 거칠다는 뜻을 지니고 있다. 거친 자연산 미역이라서 돌미역이라고 부른다. 미역 줄기나 잎이 두껍고 거칠다. 웬만큼 삶아도 풀어지지 않는다. 푹 고면 뽀얀 국물이 우러난다. 산모를 위하여 사용하는 질 좋은 미역이 산모 미역이다. 해녀 채취 미역은 해녀가 한 올, 한 올 채취하기 때문에 붙인 이름이다. 마치 밭에서 채소를 채취하듯이, 바다의 미역밭에서 미역을 채취한다. 소량이다.식재료 가격은 인건비다. 해녀가 일일이 따 모은 미역은 비싸다. 구룡포에서 양포항 일대까지 자연산 미역을 채취한다. 생산 물량은 적지만, 품질은 수준급이다.포항 구룡포, 양포, 흥해, 칠포 일대의 깔떼기국, 깔떼기국수, 깔떼기도 특이한 음식이다. ‘미역국+곡물’ 형태다. 곡물은 수제비, 칼국수, 새알심 등이다. 수제비 미역국, 칼국수 미역국, 새알심 미역국이다.포항에는 여러 종류의 추어탕이 있다. 고등어추어탕, 꽁치추어탕 등이다. 추어탕의 ‘추어(鰌魚)’는 미꾸라지다. ‘고등어 미꾸라지탕’은 어색하다. 고등어를 재료로, 마치 추어탕처럼 끓인다. 포항 흥해에는 고등어추어탕 집이 몇몇 있다. 50년의 업력을 자랑하는 노포도 있다. 서울 등 대도시에서는 ‘추어탕에 미꾸라지 대신 고등어’를 넣은 집이 있다. 손님들은 질색한다. 포항의 고등어추어탕은 다르다. 포항 것은 고등어로 만든다. 대도시의 고등어추어탕은, “미꾸라지를 넣었다고 거짓말하고, 고등어를 넣은 것”이다. 고등어추어탕을 보면서 고개를 갸웃거리는 이들은 미꾸라지 대신 고등어를 넣은 ‘엉터리 추어탕’을 보았기 때문이다. 포항의 고등어추어탕은 죄가 없다. 떳떳하다. 처음부터 고등어를 넣는다고 밝힌다. 국산, 신선한 고등어를 넣은 고등어추어탕은 비린내도 거의 없다. 담백, 고소하다. 추어탕 산초가루는 고등어추어탕에도 유효하다.‘당구국’ ‘꽁치다대기추어탕’도 희한한 음식이다. 내용은 간단하다. 꽁치를 재료로 추어탕처럼 끓인 것이다. ‘꽁치국’을 ‘당구국’이라 부른다. ‘꽁치다대기추어탕’이라 부르는 곳도 있다.고등어추어탕과 꽁치추어탕은 큰 차이가 있다. 고등어추어탕은 신선한 고등어 살을 잘 발라서 여러 채소를 넣고 국을 끓인다. 꽁치추어탕은, 꽁치를 잘게 다진 다음 ‘꽁치 완자’를 만들어 넣는 방식이다. 잘 다지면 꽁치살은 점도가 높아진다. 전분, 밀가루 등을 조금만 넣어도 완자 만들기는 가능하다.포항에는 ‘숨어있는 음식’이 많다. 포항은 맛의 고장이다. 포항 사람들도 포항 음식을 잘 모르고 있을 뿐이다.장기 ‘창바우마을’의칼국수 미역국, 꽁치추어탕,그리고 성게덮밥‘경북 포항시 남구 장기면 동해안로 3404번길 55’는 신창리의 공식적인 주소다. 지역주민들은 ‘신창리’ 혹은 ‘창바우마을’이라고 부른다. 작은 자갈이 많은 해안선과 인근 경치가 좋다. 다산 정약용 유배 유적지와 일출암이 지척 간이다. 다산은 1801년 장기로 유배 와서 약 10개월간 있었다. ‘장기농가 10수’를 남겼다. 일출암은, 육당 최남선이 조선 10경 중 하나라고 손꼽은 곳이다.경치도 좋지만, 앞바다가 보물이다. 질 좋은 자연산 미역, 각종 성게가 풍성하다. 인근 항구에서는 대왕문어, 아귀, 꽁치 등을 비롯한 신선한 생선이 흔하다.‘어업회사법인_창바우마을(대표 김태섭)’은 2012년 설립, 그동안 후릿그물, 고둥잡기체험 등 다양한 체험프로그램을 선보였다. 체험프로그램에 참가하거나 예약하면 이 지역의 특산물을 이용한 음식도 맛볼 수 있다.‘성게덮밥’은 성게 알, 해조류, 채소를 가득 올린 후, 가마솥밥을 새로 지은 것이다. 정성이 많이 든 음식이다. 동해안 일대에서는 성게를 ‘앙장구’라고 부른다. 보라성게와 말똥성게가 흔한데, 앙장구는 말똥성게다. ‘창바우마을’에서는 계절별로 생산되는 성게를 이용하여 ‘성게덮밥’을 만든다. 성게덮밥보다는 ‘성게 가마솥밥’이 어울린다.‘깔떼기’ 혹은 ‘깔떼기국수’는 식당이 아니라 ‘창바우마을’에서만 맛볼 수 있는 음식이다. 앞바다에서 동네 해녀들이 채취한 미역에 들깻가루 등을 넣고 국을 끓인다. 한소끔 끓은 다음, 준비한 칼국수를 넣고 다시 끓인다. 칼국수는 직접 반죽한 것을 널찍하게 썰어서 사용한다. 오래전에는 칼국수 대신 수제비나 새알심을 넣기도 했다. 자연산 미역의 독특한 식감과 칼국수의 푸짐한 식감이 잘 어울린다.‘당구국’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마치 장구 치듯이 꽁치를 잘게 두드리기 때문에 붙인 이름이라는 ‘설’이 있다. ‘꽁치를 마치 장구 치듯이 다진 다음 끓인 국’이라는 설명이다. 어색하지만 현재로서는 이 설명밖에는 뚜렷한 설명이 없다.‘당구국’은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이다. 신선한 꽁치를 손질한 다음, 잘 다진다. 손으로 주물러 완자 형태를 만든다. 육수에, 준비한 우거지, 시래기, 각종 채소와 꽁치 완자를 넣는다. 꽁치 완자는 모양이 일정치 않다. 고소하면서도 꽁치 특유의 쌉싸래한 맛을 살린 꽁치국이다. 꽁치국인 ‘당구국’은 꽁치의 신선도가 생명이다. 신선하지 않은 꽁치는 쓴맛을 낸다./황광해 맛칼럼니스트

2019-12-16

아름다운 불국토의 나라… 경주 신선사(神仙寺)

신선이 노닐 법한 환상적인 이름과는 달리 시멘트로 포장된 길이 단조롭고도 가파르게 이어진다. 여느 산과 다름없는 겨울 풍경에 지쳐갈 무렵 독경소리가 마중을 나오고, 산 위의 양지바른 곳에는 바람 한 점 없이 따사롭다. 월동 중인 초록의 으름덩굴과 겨울햇살이 불이문 되어 진리의 세계인 불국토가 펼쳐질 것만 같다.신라의 명장 김유신이 한 노인으로부터 신검(神劍)을 얻어 이 산의 바위굴에서 검술을 닦았는데, 시험 삼아 칼로 바위를 내리치니 바위가 갈라졌다. 이에 산 이름을 단석산이라 했고 갈라진 틈에 절을 세워 단석사라 불렀다고 한다. 더러 신선사라는 절 이름을 화랑과 관련된 미륵신앙의 기도처로 생각하는 의견도 있다.신선사(神仙寺)는 7세기에 활동하던 자장의 제자 잠주(岑珠)가 창건한 법화종 사찰이다. 옛날 절 아래에 살던 한 젊은이가 이곳에 올라와 노인들이 바둑을 두는 걸 구경하고 집에 오니 아내는 이미 백발의 노파가 되어 있었다. 50년의 세월이 흐른 것이다. 그 뒤부터 이 바위를 신선이 바둑을 둔 곳으로 불렀고, 절 이름도 신선사라 했다는 전설도 있다.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염불소리에 귀를 세운 겨울 가지들의 눈빛이 신비스러울 정도로 빛난다. 골짜기는 봄 숲처럼 환하다. 좁은 비탈에 자리한 신선사도 계절의 을씨년스러움을 표정없이 비켜 앉아 있다. 콸콸 감로수 떨어지는 소리 요란한데 나이 많은 느티나무의 위엄이 눈길을 끈다. 겨울을 나기 위한 시래기 타래가 바람에 흔들리며 인사를 건넨다. 소박한 절이다. 산그늘에 발을 담그고 서 있는 대웅전과 석등조차 독송에 잠겨 스스로를 다스리고 있다.대웅전 법당은 작지만 안온하다. 앞마당을 지나치는 등산객들의 발자국 소리 때문일까 마음이 동요를 일으킨다. 대웅전 마당에서 서쪽으로 이어지는 나무데크 끝머리에 위치한 높다란 암벽과 인공 천정, 미륵전이라 적혀 있다. 나는 암벽을 돌아 서쪽으로 난 보다 넓은 출입구로 들어선다.신라 최초의 석굴사원, 거대한 ㄷ자 암벽의 자연석실에 들어서며 이십여 년 전 찾아갔던 이집트의 카르낙 신전을 떠올린다. 긴 시간을 뛰어 넘어 파라오를 만난다는 설렘으로 람세스를 탐독하던 시절, 나는 풍요로웠던 이집트의 물질 문명보다 람세스와 네페르타리의 성숙한 영혼을 찾아 헤맸다. 거대한 석상들의 웅장함과 물밀 듯 찾아드는 관광객들, 카이로의 회색빛 소음 속에서 나는 얼마나 혼란스러웠던가. 진정한 파라오의 힘과 자존심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가 없었다.듬성듬성 청이끼가 낀 미륵불이 지긋이 미소짓고 있다. 반쯤의 밝음과 반쯤의 어둠 속에서 느껴지는 신비로운 기운이 생동감으로 이어진다. 국보 제 199호인 단석산 신선사 마애불상군, 삼존불의 시선 속에 파라오와 비교할 수 없는 전율이 인다. 환상을 깨뜨리고 싶지 않아 두 손을 모으고 불상들을 우러러본다. 내부에 새겨진 명문은 마멸이 심해 완전한 판독은 어렵지만 이 석굴의 절 이름이 신선사이며 본존상이 미륵장육상임을 밝히고 있다.신라를 가장 현실적인 불국토라 여겼던 신라인들, 그들은 불교의 발생지인 인도를 종주국으로, 신라를 아류국으로 폄하하지 않았다. 서축에 견줄 만한 동축의 불교 주인국이라는, 강한 문화적 주체성을 가지고 있었다. 새로운 불교의 종주국으로 여기며 당당한 주체정신을 가졌던 신라인의 숨결, 마치 암벽으로 둘러싸인 영혼의 우물 속에 떠 있는 것 같다.가만히 눈을 감고 젊은 김유신을 생각한다. 성골이 아닌 비주류 가야 왕족 출신으로 신라의 중추적 인물이 되기까지의 갈등과 고뇌, 수많은 낭도들을 이끌고 중악석굴에서 자신을 단련시키는 의연한 모습까지. 8.2m 높이의 거대한 미륵보살은 알고 있으리라. 온화한 시선 속에 담고 있는 말씀과도 같은 궤적들을. 삼면에 10여구의 부처와 보살상이 조각되어 있지만 북쪽 암벽에 새겨진 주존불인 미륵불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다.중악석굴이 이곳인지 팔공산 중암암인지에 대한 의견은 분분하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이 땅을 빛나게 했던 신라인의 정신문화다. 원광법사와 세속오계, 삼국을 통일한 호국정신, 그들이 그토록 염원하던 미래상은 어떤 모습일까? 나는 칼로 잘린 듯한 거대한 암벽을 쓰다듬어 본다.조낭희 수필가주민들이 탱바위라고 부른다는 암벽 속을 염불소리 홀로 기도가 되어 드나들 뿐, 정상을 향해 오르내리는 등산객들만 바람처럼 들어왔다 또 바람처럼 사라진다. 한차례 왁자함을 쏟아내며 사진을 찍고 떠난 자리는 참으로 허전하다. 행여 우리는 설화적인 요소에 갇혀 고대 역사를 신화와 혼동하며 가볍게 여기지는 않는가?나와 역사에 대한 깊이가 빈약할수록 현실은 메마르고 비참해질 뿐이다. 신라인들이 가장 축복받고 이상적인 불국토라 여겼던 이 땅, 우리의 문화와 정서 속에 면면히 살아 있는 천년의 혼을 나는 외면한 채 무엇을 갈망하는가?심장에 가까운 붓다의 말씀이 들린다.“천상천하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 부디 자애의 마음으로 충만하라.”

2019-12-16

조국으로 돌아가지 못한 그리움의 음악

쇼팽은 처음 바르샤바를 떠난 후 비엔나에 정착했으나 러시아 제국주의와 동맹이었던 비엔나 사람들은 쇼팽이 폴란드인이란 이유로 ‘저항한 국가의 작곡가’라며 그의 음악을 외면했다고 한다. 그 후 프랑스 파리로 음악 활동의 근거지를 옮기게 된다. 이 후 쇼팽이 영국을 방문하려 한 적이 있었는데 프랑스 비자가 없어 어려움을 겪게 됐다. 쇼팽은 망명자 신분이었던 것이다. 이에 러시아 정부는 폴란드가 러시아의 식민지이므로 쇼팽만 인정한다면 ‘러시아 국민작곡가’로 선정해 러시아 비자를 발급하겠노라는 제의했으나 쇼팽은 단호히 거절했으며 이에 러시아 정부에 의해 ‘귀국 금지령’이 선포돼 다시는 고국에 돌아가지 못한 것이다.쇼팽이 조국의 독립을 위해 구체적인 행동을 하지는 못했지만 조국에 대한 사랑만은 그의 작품으로도 알 수가 있다. 폴란드의 민속춤인 ‘마주르카’와 ‘폴로네이즈’를 피아노곡으로 활용해 전 세계에 폴란드의 음악을 알렸으며 그가 창시한 피아노 장르인 ‘발라드’는 일정한 형식이 존재하지 않는 서사적이며 스케일이 큰 곡인데 이것은 폴란드의 애국시인 ‘아담 미키에비치(1798∼1855)’의 애국시에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쇼팽의 작곡 능력이 절정에 달하던 당시 유럽은 벨리니(1801∼1835)와 로시니(1792∼1868))의 오페라가 지배하던 시기였다. 정치적 이유로 폴란드에서 망명한 주위의 많은 이들이 쇼팽에게 애국적인 오페라 작품을 쓰길 권했지만, “나의 눈과 머릿속에는 오직 피아노건반 만이 보인다”고 말한 그의 말처럼 흥행을 뒤로 한 채 피아노만을 위한 새로운 음악세계를 고집스럽게 만들어 낸 것이다.쇼팽은 그보다 한 해 늦게 태어난 프란츠 리스트(1811∼1886)와 자주 비교된다. 피아노를 전공하는 학생이라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두 사람이다. 리스트는 잘생긴 외모를 과시하기 위해 피아노를 연주할 때 청중들에게 최초로 옆으로 앉아 연주를 시도한 슈퍼스타적 기질이 많은 인물이었다. 리스트의 작품들은 개인 감성의 표현보다는 한계를 뛰어넘는 초인적 연주법으로 일관돼 있으며 여인들과도 숱한 스캔들을 만들어낸 인물이다. 쇼팽은 리스트와 달라도 너무 달랐다. 남들 앞에 나서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으며 그의 일생을 통해 연주회는 50여회 밖에는 출연하지 않았고, 주로 소규모 모임의 살롱연주를 선호했다. 쇼팽의 음악은 구상된 작품이라기보다 현재의 감정을 표현해낸 즉흥적인 느낌의 곡이 많다. 그런 느낌을 가져야 효과적으로 연주할 수 있다.그의 피아노곡은 오케스트라나 다른 악기 편성을 위해 편곡을 통해 바꿔 놓으면 그 근본적인 악상이 손상되며 그 음악이 지니는 특수한 정서가 없어진다. 쇼팽에게 악상은 음악의 흐름으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피아노만이 가장 효과적으로 연주될 수 있게 작곡 되어진 것이다.요즘 유행하고 있는 주크박스 뮤지컬과 비슷한 ‘레 실피드(Les sylphides)’라는 발레곡이 있다. 쇼팽의 피아노곡만으로 구성된 옴니버스식 발레곡인데 편곡은 글라주노프(1865∼1936)가 담당했으며 줄거리는 없다. 이 곡을 감상하면 쇼팽의 작품을 오케스트라로 편곡함에는 한계가 있음을 실감하게 된다근대적인 형태의 최초의 지휘자인 한스 폰 뷜로는 ‘에튜드 op.25 no.11’일명 ‘겨울바람’을 두고 “오케스트라로서 표현할 수 없는 피아노로서의 가장 완벽한 곡”이라 평했다.쇼팽은 에튜드, 프렐류드, 발라드, 왈츠, 마주르카, 폴로네이즈, 녹턴 등의 피아노 형식에 특화된 장르만 창조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천재적인 창의성과 감수성으로 피아노만이 가질 수 있는 다양한 기법과 ‘템포 루바토’나 ‘헤미올라’ 등 특유의 릴렉스 기법을 통하여 피아노가 표현할 수 있는 모든 가능성들을 만들어 낸 것이다.고국을 떠나올 때 불안해했던 그의 예감대로 쇼팽은 죽을 때까지 고국 폴란드로 돌아가지 못했으나 그의 심장만은 돌아왔다. 그리고 그의 유언대로 장례식에는 모차르트의 ‘레퀴엠’과 그의 위대한 대작 ‘프렐류드의 op.28 no.4, e minor’ 가 오르간으로 쓸쓸히 연주됐으며, 그가 존경하던 J.S.바흐의 평균율 클라이비어곡집을 오마주하며 만들어낸 그의 작품, 전주곡처럼 그의 생도 너무나 짧았다. /문양일 포항예술고 교사

2019-12-16

정어리집회

정어리 집회는 수만 마리가 무리를 지어 몸집이 큰 포식자에 대항하는 정어리처럼 시민들이 하나로 뭉쳐 반(反)이민 등 극우주의에 저항하자는 풀뿌리 시민운동이다.길이가 15㎝ 정도인 정어리는 동물성 플랑크톤을 먹는 먹이사슬의 가장 아래쪽에 있는 물고기다. 다른 어류는 물론 고래나 물개 같은 해양 포유류의 먹잇감이다. 하지만 무리를 이룬 정어리 떼는 조밀하게 뭉쳐 몸집을 키우고, 지느러미를 움직여 진동을 만들어내면서 포식자의 공격을 피한다.정어리 집회의 시초는 내년 1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伊 살비니의 동맹당과 우호 정당들이 지지 집회를 갖기로 하자 마티아 산토리와 친구들이 인근 광장에서 대응 집회를 갖기로 하고 소셜미디어로 알린 것이 시초다. 산토리와 친구들은 흩어져 있을 땐 공격에 속수무책인 정어리가 무리를 지어 큰 적을 물리치는 것처럼 극우주의에 대항해 힘을 모으자며 소셜미디어에서 호소했고, 시민들이 이에 호응해 정어리가 집회의 상징이 됐다. 볼로냐에서 1만5000명으로 시작된 시위는 시칠리아, 밀라노, 토리노 등을 거쳐 수도인 로마에 상륙하면서 세를 점점 불려 최근에는 스스로를 정어리(sardine)라 부르는 시민 약 10만 명이 로마 산조반니 광장에 모여 이탈리아에서 득세하는 극우주의에 반대한다는 목소리를 냈다.특징적인 것은 집회 참석자들은 각양각색의 정어리를 그린 그림과 포스터 등을 손에 들고 있었다는 점이다. 이 집회는 정당이나 시민단체 등 특정 단체가 주도하는 일반적인 집회와 달리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로 이뤄진다.이탈리아에서 벌어진 정어리 집회 역시 민의의 준엄함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대한민국의 촛불집회를 떠올리게 한다. 정어리로 변신한 촛불이 세계를 가만히 흔들고 있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19-12-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