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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가업상속공제

가업상속공제는 가업을 이어받는 사주의 자녀에 대해 상속세를 줄여주는 제도로, 10년 이상 경영한 중소기업이나 매출액 3천억 원 미만 중견기업을 상속할 시 가업상속재산가액의 100%(최대 500억 원)를 공제해 주고 있다.100년 장수 기업을 육성하기 위해 1997년 도입된 이 제도는, 도입 당시에는 공제 한도가 1억 원이었다가 2008년에는 30억 원, 2012년에는 300억 원, 2014년에는 500억 원으로 확대됐다. 상속재산 공제액은 가업 영위 기간이 10년 이상은 200억 원, 20년 이상은 300억 원, 30년 이상은 500억 원이다. 공제 혜택을 받는 기업은 중소기업으로 제한됐다가 2013년부터는 매출 2천억 원 이하 중견기업으로, 2014년에는 3천억 원 미만 중견기업으로 범위가 확대됐다.이 제도에 따라 상속세를 공제받을 경우 상속인은 10년 동안 휴업·폐업, 업종변경, 가업용 자산 20% 이상 처분 등이 금지되며, 지분과 고용을 100%(중견기업은 120%) 유지해야 한다. 이 제도에 대해 기업 경제를 활성화시키기 위해 매출액 한도를 확대하고 10년으로 규정돼 있는 사후관리 기간을 단축시키는 등 규제를 완화하자는 주장과, 가업승계에서 세금을 과도하게 면제해 부의 세습을 가져올 수 있다는 주장이 엇갈리고 있다.그러나 현 정부에서는 규제를 완화하자는 분위기다.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11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가업상속세제 개편방안 당정협의에서 “업종변경 허용범위도 표준산업분류상 소분류에서 중분류까지 크게 확대해 급변하는 경영환경 변화에 보다 유연하게 대응하고자 했다”면서 “10년의 사후관리기간을 7년으로 단축할 것”이라고 밝혔기 때문이다. 또 자산의 처분도 보다 넓게 허용하고, 중견기업의 고용 유지 의무도 중소기업 수준으로 완화할 전망이다.다만 정부는 탈세, 회계부정에 따른 처벌을 받은 기업인에 대해서는 가업상속공제 혜택을 배제토록 했다. 나름 균형을 잡으려 노력한 흔적이지만 부의 세습을 막기에는 이미 구멍이 너무 커져버린 것은 아닐 까 싶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19-06-12

대학은 어쩌나

장규열 한동대 교수대학이 많다. 급격한 인구 고령화와 함께 저조한 출산율이 지속적으로 진행되면서 그 여파는 대학의 위기로 연결되고 있다. 인구 감소에 따라 고등학교 졸업자 숫자가 가파르게 줄어들면서, 2018년부터 이미 대학모집인원에 비해 졸업생 숫자가 적게 되어 정원을 채우지 못하는 대학들이 늘어날 것으로 예견되어 왔다. 최근 국가 교육통계를 분석한 바에 따르면, 2021년 대학입시에서 대입정원이 고졸자 수를 9만 명이나 초과할 것이라고 한다. 어림잡아 거의 백 개쯤 되는 대학들이 문을 닫아야 하는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다. 경상북도는 특히 심각하여, 입학정원이 고졸자 숫자의 거의 두 배에 달할 것이라 한다. 이를 어찌할 것인가. 인구감소 현상이야 어찌할 수 없겠지만, 대학은 어떤 문제를 가지고 있으며 어떻게 준비할 것인가. 대학은 이제 어디로 가야 하는가.우리 정부는 대학을 국가교육체계의 중요한 부분으로 보아 교육부가 대학의 교육과정과 재정운영에 깊이 관여해 왔다. 대학으로 보면 정부가 간섭도 하고 모니터링도 하지만 경제적으로 도움을 받으므로 이를 감수하면서 교육에 임해오고 있다. 그러는 사이, 개별 대학의 존재 이유와 독특한 개성들은 사라지고 학문의 전당이어야 하는 대학들이 거의 모두 같은 모습을 가지게 되었다. 대학들이 제각기 특수한 교육이념과 철학, 개성있는 학문적 특성을 살려 가면서 대학마다 완전히 다른 분위기와 학풍, 전통과 긍지를 만들어 내는 다른 나라의 대학들과는 매우 다른 ‘대학가 분위기’가 만들어진 것이다. ‘추격과 모방’을 기저로 하는 개발모형에는 매우 효율적인 접근이었겠으나, 21세기 ‘창의와 혁신’을 기반으로 해야 하는 지식정보사회에는 매우 어색한 대학 분위기인 것이다. 정부가 대학을 잊어야 한다. 이제는 손을 떼어야 한다.대학은 어찌해야 하는가. 가장 추운 겨울을 맞을 것으로 기대되는 대학의 미래는 대학 스스로 만들어 가야 한다. 교육, 연구, 봉사 모든 면에서 다 잘 해야 하고 하나같이 평가하는 일률적 대학평가모델을 벗어내고 각자 무엇에 강한 대학이 될 것인지 결정하여야 한다. 교육에 강한 대학과 연구에 튼실한 대학은 분명히 달라야 한다. 지역사회와 호흡하겠다는 대학이 있어야 하고 평생교육에 능수능란한 대학도 만나보고 싶다. 한 가지 잣대로 모든 대학을 바라보는 사회적 인식부터 바뀌어야 한다. 대학(大學)이 ‘큰 배움’인 까닭은 총체적으로 볼 때 그만큼 다양하고 풍성한 배움이 그곳에 있기 때문이 아닐까. 인문사회와 자연이공계, 그리고 예술문화 분야에 각각 튼실하고 강한 대학들이 나와야 하고, 지역마다 그곳의 분위기에 걸맞는 대학들이 일어나야 한다. 정부의 결정에 그 운명이 좌우되는 대학은 대학이 아니다. 대학이 기댈 언덕은 없다.그 같은 변화가 하루아침에는 어려울 터이다. 하지만 정부도 대학도 이제는 변해야 하는 조짐을 읽고 이제라도 과감히 새로운 대학교육의 장을 열어가야 한다. 대학마다 핵심역량에 집중해야 하고 각자의 대학브랜딩(University Branding)에도 나서야 한다. 교육소비자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도 잘 살펴야 하며 어떻게 특화할 것인지도 찾아내어야 한다. 대학마다 느껴지는 품격과 분위기가 달라야 하며 사회와 세계를 바라보는 시선과 해석도 모두 달랐으면 한다. 그런 곳을 통과한 젊은이들이 제각기 갈고닦은 식견과 소신으로 미래 사회에서 만날 때에 진정한 겨룸과 속 깊은 나눔으로 우리 사회를 움직여 갈 역동성이 솟아나지 않을까. 획일성은 이제 추구할 가치가 아니다. 다양성의 늪에서 진주를 건져낼 다짐으로 우리 대학을 키워가야 한다. 따로 떼어놓고 보면 모두 다른 듯 하여도, 사회 전체를 놓고 보면 역시 이끌고 움직여 가는 그 ‘한마당’이 대학이 되어야 한다.

2019-06-12

소 도살은 엄벌…조선 정조대왕 때에야 고기 문화 시작

이른 새벽이었다.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가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소리가 들렸다. 할머니의 목소리. “쟈, 오늘 먼 길 가는데 콩대도 좀 넣고. 여물 잘 끓여서 멕여라.” 아버지의 대답. “예, 그러잖아도, 콩대 마이 넣고, 보리쌀도 쫌 넉넉하게 넣니더.”1960년대 후반 어느 겨울 새벽, 외양간에는 누렁이가 여물을 먹고 있었다. 우리 집에서의 마지막 식사. 우시장에 팔려나간 누렁이는 도살장으로 끌려갔을지도 모른다. 저녁 무렵, 아버지는 오백 원 지폐 한 뭉치와 어린 송아지 한 마리를 데리고 오셨다.소는 식용의 대상이 아니었다. 우경(牛耕). 농사의 주요 도구였다. 겨울철, 송아지는 열심히 먹고 몸을 불린다. 봄철, 얼마쯤 자란 송아지는 코뚜레를 꿴다. 일할 준비를 한다. 한 해 동안 일하고 몸을 불리며 송아지는 점점 자라 슬슬 소의 모습을 갖춘다. 더러는 겨울을 넘기고 이듬해에도 우리 논에서 농사를 지었다. 그리고 겨울날의 어느 이른 새벽, 다 자란 소는 마지막 식사를 하고 우시장으로 향했다.한반도 소의 역사는 길다.소는, 농가의 ‘가족’이었다. 황소는 20인분의 일을 해낸다. 장정 몇이 파내지 못하는 큰 돌을 소는 쟁기질 한 번으로 뽑아낸다. 우리는 오랫동안 소를 농사의 도구로 이용했다. 이밥에 고깃국은 우리 민족의 소망이었다. 남쪽은 1970년대에 이루었고, 북쪽은 아직도 ‘소망’으로 남았다.농경민족이다. 부여, 고구려 등 기마, 수렵민족의 피를 물려받았으나 한반도로 들어온 우리 선조들은 농경(農耕)을 업으로 삼았다. 고기를 도축하고, 먹는 북방 수렵민족의 피는 희미해졌다. 10세기 말, 북방의 기마, 수렵민족이 한반도에 나타난다.눌재 양성지(1415~1482년)는 조선 전기의 문신이다. 세종-성종의 여섯 임금을 섬겼고, 많은 서적, 기록을 남겼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소 도살’을 금하자는 양성지의 상소문이 여러 군데 남아 있다. 1456년(세조 2년), 1467년(세조 13년), 1469년(예종 1년)이다.소 도살은 심각한 문제였다.더 큰 문제는 상황이 점점 나빠진다는 점이다. 양성지는 십수 년 동안 여러 차례 ‘소 불법 도살 문제’를 엄중하게 제기한다. 그동안 양성지는 집현전 직제학, 대사헌, 공조판서 등으로 관직도 달라진다.1456년 3월, 양성지의 상소문이다. 제목은 ‘집현전 직제학 양성지의 춘추 대사, 오경, 문묘 종사, 과거, 기인 등에 관한 상소’다. 긴 내용을 인용한다.“(전략) 대개 백정을 혹은 ‘화척(禾尺)’이라 하고 혹은 ‘재인(才人)’, 혹은 ‘달단(韃靼)’ (중략) 백정(白丁)이라 칭하여 (중략) 지금 오래된 자는 5백여 년이며, 가까운 자는 수백 년이나 됩니다. 본시 우리 족속이 아니므로 유속(遺俗)을 변치 않고 (중략) 혹은 살우(殺牛)하고 혹은 동량질을 하며, 혹은 도둑질을 합니다. 또 전조(前朝) 때, 거란(契丹)이 내침(來侵)하니, 가장 앞서 향도(嚮導)하고 또 가왜(假倭) 노릇을 해 가면서, (중략) 지금도 대소(大小)의 도적으로 체포된 자의 태반이 모두 이 무리입니다. 친척(親戚)과 인당(姻黨)이 팔도(八道)에 연면(連綿)하여, 적으면 기근(饑饉)되고, 크면 난리를 일으키니, 모두 염려가 됩니다. (중략) 그 홀로 산골짜기에 거처하면서 혹 자기들끼리 서로 혼취(婚娶) 하거나 혹은 도살(屠殺)을 행하며, 혹 구적(寇賊)을 행하고 혹은 악기(樂器)를 타며 구걸하는 자를 경외(京外)에서 엄히 금(禁)하여, (중략) 저들도 또한 스스로 이 농상(農桑)의 즐거움을 알게 되어 도적이 점점 그칠 것입니다.백정, 소를 도축하는 이들은 누구인가?이름이 여럿이다. 화척, 재인, 달단, 백정 등이다. 하는 일은 무엇인가? 농사를 짓지 않으니 소를 도축한다. 일거리가 없으면 동냥질, 도적질에 나선다. 언제 한반도에 왔는가? 이미 내륙 혹은 국경 언저리에 있었다. 거란이 침입하니 앞잡이가 되어 거란의 고려 침공을 돕는다. ‘전조(前朝)’는 고려다. 거란의 1차 고려 침략은 993년이다. 양성지의 상소문과 비교하면 460여 년 전이 일이다. ‘오래된 자는 5백 년’이란 표현이 맞다. 지금으로 치자면 1,100년 전이다. 한반도에도 북방 유목민족이 살고 있었다. 이들이 고기 문화를 한반도에 전한다. 송나라 사신 서긍(徐兢, 1091~1153년)이 ‘고려도경’에서 “고려의 고기 다루는 솜씨가 허술하다”라고 한 것은 1123년 무렵이다. 거란의 고려 침입 130년 후다. 여전히 한반도의 우리 선조들은 고기 다루는 솜씨가 늘지 않았다. 생활 습속이 다른 이민족은 고기를 도살하고 먹었지만 고려, 조선은 이단시한다.양성지가 상소문을 올린 조선 초기에는 이들이 사회 문제였다. 화척은 자기네들끼리 모여 산다. 결혼도 자기들끼리 한다. ‘강원도, 경상도’에 산 것은, 이 지역이 태백산맥 산악지대이기 때문이다. 산에는 짐승이 있다. 할 일이 있다. 외부에서 관군이 오더라도 버티기 쉽다. 거꾸로 관군들은 이들을 쫓기 힘들다. 차라리 깊은 산속에 사는 것이 낫다. 한양이나 대도시에 나타나면 불법 도축하고 사회적으로 말썽을 일으킨다.조선 정부는 이들이 ‘농상(農桑)의 즐거움’을 알고 농사에 편입되기를 기대한다. ‘농상’은 농사짓고, 뽕나무 기르며 누에 치는 삶을 뜻한다. 화척들은 호락호락 조선 사회에 편입되지 않는다.‘달단(韃靼)’은 ‘가죽을 잘 다루는 종족’이라는 뜻이다. 달단은 ‘타타르(tatar)’ 혹은 ‘타르타르(tartar)’ 족이다. ‘타타르 스테이크’는 날고기로 만든 스테이크다. 우리의 육회와 닮았다. 타타르 족은 터키, 동유럽 등으로 이주한다. 유목, 기마, 수렵민족이다.1467년(세조 13년) 1월, ‘대사헌 양성지’가 또 상소문을 올린다. 제목은 ‘농우 도살 금지에 관한 상소문’이다.(전략) 남산의 소나무는 진실로 없어서는 안 되지만, 설혹 없다손 치더라도 무방합니다. 그러나 중외(中外)의 소[牛畜]는 농사를 지어 살아가는 데 자산(資産)이 되니, 결코 없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중략) 곡식을 생산하는 소가 없다면, 곡식을 들여다 저장하는 창고가 있더라도 이를 장차 무엇에 쓰겠습니까? 옛날에는 백정(白丁)과 화척(禾尺)이 소를 잡았으나, 지금은 경외(京外)의 양민(良民)들도 모두 이를 잡으며, 옛날에는 흔히 잔치를 준비하기 위하여 소를 잡았으나, 지금은 저자 안에서 판매하기 위하여 이를 잡고, 옛날에는 남의 소를 훔쳐서 이를 잡았으나, 지금은 저자에서 사서 이를 잡습니다. 백정은 일정한 수(數)가 있으나 양민은 그 수가 무한(無限)하며, 잔치는 일정한 수가 있으나 판매하는 것은 끝이 없으며, 남의 것을 훔쳐서 잡는 것은 일정한 숫자가 있으나 소를 사서 잡는 것은 무궁(無窮)하니, 일정한 수효가 있는 소를 무궁한 날에 끝없이 잡는다면, 반드시 남산의 소나무와 같이 다 벤 다음에야 그만둘 것입니다. 그리고 지난날에는 소를 잡는 도적[宰牛賊]이라 하였으나 지금은 ‘거골장(去骨匠)’이라 칭하고, 여염(閭閻)의 곳곳에 잡거(雜居)하면서 소를 잡아도 대소(大小) 인리(隣里)에서 전혀 괴이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중략) 무릇 소를 잡은 사람은 (중략) 수종(首從)을 가리지 말고 모두 다 즉시 사형에 처하되, 그 처자(妻子)와 전 가족을 변방으로 이주시키고, 소를 잡는 것을 고(告)한 자는 재산(財産)으로써 상(賞)을 주되( 후략)살벌하다. 소를 불법 도축하면 주범이든 종범(從犯)이든 사형이다.신고하면 범인의 재산을 신고자에게 준다. 남산의 소나무가 없어지듯이 조만간 소가 씨가 마를 것이라고 경고한다. 여전히 불법 도축은 사라지지 않았다. 소 잡는 도둑, ‘재우적’이라고 하더니, 드디어 소 잡는 장인, ‘거골장’이라고 한다. 민간인까지 소 불법 도축에 나선다.1469년(예종 1년) 6월, 다시 양성지의 상소다. 더 절박하다.우선 우리나라의 풍속으로 말하더라도 양수척(楊水尺)이라는 것은 전조(前朝)의 초기에 있었는데, 강도(江都) 때에도 또한 있었으며, 재인(才人)과 백정(白丁)은 충렬왕(忠烈王) 때에 있었는데 공민왕(恭愍王) 때에도 있었으므로, 먼 것은 5, 6백 년, 가까운 것은 수백 년을 올라가지 않습니다. 그 현가(絃歌)의 풍습과 재살(宰殺)의 일은 지금까지도 고치지 않았으며, (후략)양수척은 고려 초기에 이미 있었다. 후삼국 시대에도 있었을 것이다. ‘강도’는 강화도로 천도한 고려 왕조를 이른다. 소를 도축하는 이들은 화척이었다. ‘현가의 풍습’이라고 못 박았다. ‘현가’는 거문고 타고, 노래 부른다는 뜻이다. 광대, 재인, 기생 등이 이들로부터 시작되었다는 추정도 있다. 농사짓는 소를 도살하며, 무리 지어 노래 부르고 논다. 일은 하지 않는다. 조선 왕조로서는 받아들이기 힘들다.한반도의 쇠고기 문화는 이들로부터 시작된다. 조선 후기인 정조대왕 시절에야 고기 먹는 문화가 서서히 정착된다. 무려 300여 년 후다.그동안 소의 불법 도살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도살은 늘어났다. 거꾸로 법 적용이 느슨해졌다. 양성지는 “소가 어느 날 남산의 소나무같이 없어지리라”고 경고했지만, 그렇지는 않았다. 살림살이가 나아지니 국왕 정조대왕부터 신하들과 고기 굽는 불판 앞에 앉는다. 난란회(煖暖會) 혹은 난로회(煖爐會)다. 한반도의 고기 문화는 이 무렵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맛칼럼니스트 황광해

2019-06-12

천안문 사태 30주년을 생각하다

김규종 경북대 교수·노문학지난 6월 4일은 천안문 사태가 발생한 지 30주년 되는 날이다. 1989년 6월 4일 북경의 천안문 광장에서 언론자유, 법치주의, 사상해방 및 민주화를 요구하던 100만의 학생과 시민들에게 인민해방군이 무차별적으로 발포함으로써 대규모 유혈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1990년 중국정부의 공식발표에 따르면 희생자는 민간인사망 875명, 부상자 1만4천550명, 군인사망 56명, 부상자 7천525명이었다. 현대중국 역사에서 씻을 수 없는 비극적인 사건이 천안문 사태다.천안문은 명-청시기에 국가의 주요 법률이나 명령을 공표하던 장소로 출전과 개선하는 군대를 황제가 맞이하던 장소였다. 천안문은 천명을 받들고 하늘을 섬겨 나라를 평안하게 하고 백성을 다스린다는 ‘수명우천 안방치민(受命于天, 安邦治民)’에서 유래한 것이다. 1949년 10월 1일 모택동이 중화인민공화국을 선포한 장소가 천안문이었고, 인민해방군 열병식이 거행되는 곳도 천안문이다. 이런 천안문에서 전대미문(前代未聞)의 대학살이 자행된 것이다.천안문 사태는 복합적인 요인으로 발생한다. 대약진운동(1958∼1960)의 실패로 권력상실의 위기에 몰린 모택동이 추진한 문화대혁명은 숱한 모순과 파탄을 경험하면서 10년 만인 1976년 그의 죽음과 함께 막을 내린다. 모택동의 뒤를 이은 화국봉(華國鋒)은 모택동 사상을 국가의 기본 정강으로 설정하면서 체제유지에 몰두한다. 문화대혁명으로 박해와 탄압을 받은 공산당 원로들은 화국봉을 비판하고 등소평을 전면에 내세워 권력지반을 다져 나간다.실사구시(實事求是)와 사상해방을 내세운 등소평은 1982년 개혁적인 인물 호요방(胡耀邦)과 조자양(趙紫陽)을 총서기와 총리로 세우고, 자신은 중앙군사위 주석에 오름으로써 정권을 장악한다. 실질적인 등소평 시대가 개막한 것이다. 등소평은 농업, 공업, 과학, 기술의 4대 현대화를 주창하면서 이른바 ‘흑묘백묘론(黑猫白猫論)’을 설파한다. 검은 고양이든 하얀 고양이든 쥐만 잡으면 된다는 지극한 실용주의 노선이다.오늘날 중국식 사회주의 체제, 즉 자본주의 시장경제와 상품경제를 대거 도입함으로써 중국 현대화를 주도한 인물이 등소평이다. 그는 1985년 이후 소련 공산당 서기장 고르바초프가 실시한 페레스트로이카와 글라스노스트를 선행하는 개혁개방 정책을 담대하게 구체화한다. 중국의 신경제정책은 연평균 11%의 경이로운 성장으로 결실을 맺지만, 그로 인한 부작용을 피할 수 없었다. 도시와 농촌의 소득격차와 도시내부의 빈부격차가 그것이다.평등을 최우선 가치로 인식하는 사회주의 체제에서 소득격차는 체제에 대한 불만을 야기했고, 실업문제와 인플레이션은 그것을 가속화한다. 텔레비전과 개방정책으로 서방세계의 생활과 정치의식에 노출된 중국인들은 정치적 변화에 대한 소망을 품기 시작한다. 정치적 민주화를 향한 열망이 태동한 것이다. 그러나 등소평은 공산당을 통한 개혁과 개방만이 유일한 방도라고 확신하면서 아래로부터의 정치개혁과 변화요구에 소극적으로 임한다.이런 상황에서 1986년부터 시작된 대학생들의 시위는 1989년에 절정에 이르게 된다. 개혁파 지도자 호요방의 실각과 급사(急死), 조자양의 가택연금이 한 편의 드라마처럼 발생한다. 동시에 등소평의 충실한 하수인인 이붕(李鵬) 총리와 양상곤(楊尙昆) 같은 보수파가 천안문에 모인 시민과 학생들을 향해 총포를 난사함으로써 천안문 사태가 촉발된다. 중국판 ‘피의 일요일 사건’은 이와 같은 일련의 역사적인 변곡점을 매개로 발생한 것이다.천안문 사태 30주년을 맞아 중국정부는 검열과 사상통제를 강화했다고 한다. 세계 시민들은 중국의 비극적인 사건을 성찰하면서 진상규명과 희생자들의 명예회복을 요구하고 있다. 천안문 사태와 같은 비극은 결코 반복되면 안 된다. 이것이 천안문 사태의 교훈이자,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근본 목적이다.

2019-06-12

누가 돌을 던지나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예수께서 예루살렘 성전 마당에서 사람들을 가르칠 때,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간음 중에 붙잡힌 여자를 끌고 와서 물었다. “선생이여 이 여자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혔습니다. 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 명하였는데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습니까” 예수는 아무런 대꾸를 하지 않고 손가락으로 땅바닥에 뭔가를 쓰고 있다가 그들이 자꾸 다그치자 일어나서 “너희들 중에서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하고는 다시 고개를 숙이고 앉아 땅바닥에 낙서(?)를 했다.그 말을 듣고는 양심의 가책을 받아 여자를 끌고 왔던 사람들은 하나 둘 자리를 뜨고 여자 혼자 남아 있는 것을 보고 예수는 “여자여 너를 고소하던 그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정죄한 자가 없느냐”고 물었다. 여자가 없다고 하자 “나도 너를 정죄(定罪)하지 않겠으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고 했다.이상은 기독교 신약성서에 나오는 이야기다. 간음하다 붙잡혀온 여자는 매춘부인가 본데, 아마도 당시에는 매춘에 대해서 모세의 율법이 엄격하게 적용되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매춘부를 돌로 쳐 죽이라고 하는 것은 현실에 맞지 않은 일이고, 용서를 하라는 것은 모세의 율법을 어기라는 것인즉 예수가 어떻게 대응하는지 시험해 보려고 했던 것이다.문재인 정권은 시작부터 ‘적폐청산’을 기치로 내걸었다. 지난 정권을 적폐로 규정하고 전 대통령들을 비롯하여 국정원장, 장관, 검찰청장 그리고 대법원장과 재벌총수들까지 온갖 꼬투리를 잡아 처벌하는 청산(?)을 단행했다. 적체된 폐단을 일소하겠다는 명분이야 그럴듯하지만, 문제는 그 적폐를 규정하고 척결하는 주체가 누구이고 어떤 잣대를 가졌느냐 하는 것이다. 외계인들이 와서 하는 일이 아닐진대, 누가 누구를 적폐로 몰고 처단을 하는 지에 대한 논란이 없을 수가 없다.소위 ‘촛불혁명’ 세력의 지지와 성원을 명분으로 삼았지만, 원래가 41%의 득표로 탄생한 정권인데다 2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는 다시 과반수 이상이 찬성을 하지 않는 정권이니 그것을 절대적인 명분이랄 수는 없는 일이다.더구나 지금처럼 좌우가 극명하게 엇갈리고 대립이 첨예한 시국에선 한 쪽의 주장이나 명분은 편파적일 수밖에 없고 대립과 갈등의 골을 더 깊게 하게 마련이다.좌파들이 장악한 정부에서는 우파정권의 행위들 거의가 적폐로 보일진대, 나중에 우파가 정권을 잡게 된다면 지금 좌파정권의 적폐청산 행위 역시 적폐로 몰릴 것이다. 그러다 보니 정권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게 되고, 나라의 모든 부서와 기관은 물론 언론과 여론까지 장악을 하려고 혈안이 될 수밖에 없다.“나도 너를 정죄하지 않으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는 예수의 심판이야말로 적폐청산의 전범이 되어야 할 것이다. 가장 바람직한 적폐청산은 지난 일들을 모조리 들춰내어 저들의 잣대로 재단하고 처벌하는 것이 아니라, 지난 정권의 적폐를 타산지석으로 삼아 이제부터는 폐단을 짓지 않겠다는 결의와 다짐을 실행하는 일이다.과거청산을 가장 모범적으로 보여준 지도자로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만델라 대통령을 들 수 있다. 반정부 투쟁을 하다 체포되어 종신형을 받고 27년간이나 옥고를 치렀지만, 대통령에 당선된 그는 ‘진실과 화해 위원회’를 결성하여 용서와 화해를 강조하는 ‘과거청산’을 단행했다. 지난 시절 인권차별 반대투쟁을 잔악한 방법으로 탄압한 국가폭력 가해자들도 잘못을 뉘우치면 사면하는 정책으로 흑백간의 오랜 갈등과 충돌을 성공적으로 해결한 것이다.그와는 반대로 저들이 마치 정의의 사도인 양 무소불위로 권력을 휘둘러 상대를 적폐로 몰아가는 이 정권의 오만과 독선은 도를 넘은지 오래다.

2019-06-12

삶이 한 권의 책이라면 (1)

라스베이거스에서 태어나고 자란 소녀가 있습니다. 꿈 많은 십대에 소녀는 삶을 뒤 흔드는 질문을 만납니다. “만약 인생이 한 권의 책이고 당신이 그 책의 작가라면 당신은 그 책에 어떤 이야기를 담고 싶은가요?”황량하기 그지없는 사막에서 태어나고 자랐기 때문에 자신의 인생이라는 책에 눈(snow)이 들어가는 설정을 꿈꿉니다. 라스베이거스를 떠나보지 못한 삶이 싫었습니다. 자유를 찾아 전 세계를 여행하고 진기한 경험 가득한 스토리를 쓰고 싶어하지요.스무 살이 된 에이미 퍼디는 꿈에 한 발짝 다가섭니다. 눈 많은 솔트레이크로 이사를 간 겁니다. 마사지 치료사가 되지요. 두 손과 마사지용 간이 침대만 있으면 어디서든 돈을 벌 수 있었고 스노 보드를 맘껏 탈 수 있었습니다. 처음으로 인생에서 주인이 된 기분을 느낍니다. 자신감으로 충만했고 자유로웠습니다.감기 기운이 있어서 조금 일찍 퇴근한 어느 날 오후. 에이미는 혼수상태에 빠집니다. 24시간도 지나지 않아 산소 호흡기를 달고 생명 유지장치를 매단 채 중환자실에 누워있습니다. 의사들이 원인을 찾기 위해 숨가쁘게 움직입니다. 위급한 알람이 생명 유지장치의 모니터에 울려 댑니다. 데이터가 보여주는 생존 확률은 2%. 사투 끝에 원인을 찾아내는데 성공합니다. “박테리아성 뇌수막염.”이제는 치료를 위한 전투를 시작합니다. 에이미는 싸움에서 승리했고 목숨을 지켜내지요. 두 달 반의 투쟁 결과는 참담합니다. 비장과 신장을 잃었고 한쪽 청력이 사라집니다. 무릎 아래를 절단합니다. 퇴원하는 날 휠체어에 앉아있는 그녀는 조각조각 이어 붙인 누더기 인형과 다르지 않았습니다.며칠 후 에이미는 사투를 벌일 때보다 더 큰 충격을 받습니다. 금속 덩어리 차디찬 종아리. 볼트로 죈 파이프 발목. 노란 고무 발. 두툼한 의족을 신고 일어서 본 에이미는 세상이 무너져 내리는 기분에 사로잡히지요. 고통스럽고 부자유했습니다. 주체할 수 없이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생각합니다. “이 못생긴 의족을 신고 앞으로 어떻게 세상을 살아갈 수 있을까? 모험과 흥미진진한 이야기로 가득한 삶을 이제 어떻게 살 수 있을까? 스노 보드와는 영원히 이별해야 하는 걸까?”삶의 이유와 소망을 잃어버린 에이미는 무기력에 빠집니다. 침대만 파고 듭니다. 자고 먹고 또 자고. 고통을 잊기 위해 잠에 빠져듭니다. 의족을 침대 곁에 세워 둔 채로. 괴물같은 저 의족을 신고 세상을 마주할 용기가 생기지 않습니다. (내일 계속)/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 대표

2019-06-12

은혼식

김순희 수필가남편은 길치다. 포항 토박이면서 육거리에서 50년 넘게 자리를 지킨 한일냉면도 못 찾는다. 갈 때마다 헷갈려한다. 그 골목이 그 골목 같다며 내게 되묻는다. 그런 사람이 술에 만취한 상태로 집을 찾아오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길치들이 한 번 갔던 길을 기억하는 방식이 따로 있단다. 골목을 가다가 고양이가 웅크리고 있는 게 보이면 모퉁이를 돌고 또 한참 가다가 쓰레기통이 보이면 좌회전한다, 이런 식이다. 모르는 사람들은 내비게이션을 보면 되지 하겠지만 길치들은 보고도 해독을 못 해 길을 잘 못 접어들기 일쑤다.반면에 나는 길을 잘 찾는다. 아니 첨부터 잘 찾는 사람이었는지 모르겠지만 길치 남편 옆에서 나라도 정신을 바짝 차려야 했다. 그런 시간들이 쌓여 어지간한 길은 혼자서 잘도 다닌다. 새 차를 살 때에 꼭 필요한 사양에 내비게이션은 넣지 않자 세일즈맨도 의아해했다.25년 전, 동네 어귀의 용다방에서 맞선을 봤다. 억지춘향처럼 엄마의 권유에 못 이겨 나간 자리에 남편이 있었다. 차 한 잔만 마시고 와야지 하며 갔다가 말이 잘 통해 저녁까지 먹고 말았다. 그것도 모자라 후식으로 칵테일을 마시며, 내 손에 낀 세 개의 링 반지가 무슨 의미냐고 물었다. 만나던 남자들이 헤어질 때 하나씩 해 준거라며 웃어주었다. 이 정도면 놀라 자빠졌겠지 했지만 며칠 뒤 애프터 신청이 왔다.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남편과 나는 한 가지 일을 두고도 다른 생각을 했었다. 선 보기 싫어 30분 늦게 나갔지만 여자는 원래 조금씩 늦게 오는 것이라 여겼단다.두 번째 만남에 친구를 네 명이나 데리고 나가 바가지를 씌웠다. 정 떨어져 도망가라고 한 일인데 남편은 자신이 맘에 들어 친구까지 소개시켜 준다며 좋았단다. 신명나서 노래방까지 따라와 취한 친구들을 한 명 한 명 집까지 데려다 줬다.다음 날 더 만날까말까 하는 내게 친구들은 사람 괜찮다며 더 만나라고 부추겼다. 그렇게 우린 부부가 되었다.영화 ‘그린북’에 글에 대해 문외한이던 운전기사가 시인이 되는 방법이 나온다. 공연 여행을 하며 흑인 피아니스트가 이탈리아 출신 백인 운전자에게 편지를 불러줬다. 그러다 두 달쯤 되니 기사가 혼자 편지를 쓰는 걸 보고, 왜 불러 달라고 하지 않느냐고 하니, 감 잡았다고 했다. 감 잡은 첫 문장은 이랬다. “디어, 여보. 당신은 가끔 집 같아. 노란 불이 켜져 있고 행복한 가족들이 웃고 있는 그런 집말이야.”피아니스트는 감 잡은 거 맞다며 웃었다. 두 달 만에 주먹 쓰는 건달이 시인이 되었다.시인이 되는 방법과 행복한 결혼생활 하는 방법이 별반 다르지 않다. 부부가 닮아 가는 것은 서로 다른 공간에 살다가 같은 공간에 살면서 습관도 식성도 얼굴도 닮아 가는 것이다. 25년 동안 안 맞는 부분은 서로 맞춰가며 익숙해졌다. 살면서 느낀 거지만 모든 게 꼭 맞을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달라서 더 편한 것도 있다. 둘 다 카레이서인 것보다 길치남편에 길눈 밝은 아내가 더 궁합이 맞다. 남편은 물김치가 풋내가 나는 걸 좋아해 맛있게 익기 시작하면 손을 대지 않는다. 신김치는 내 몫이다. 난 적당히 익어서 채소에 힘이 빠진 김치가 입에 달다. 치킨 한 마리를 시키면 나는 목과 날개를 고르고 남은 모든 부위는 남편 차지다. 술을 좋아해 늘 즐기는 남편에게 술 한 잔 못하는 나는 재미없는 술 상대이기 보다 술값이 덜 들어 좋단다. 음식 끝에 마음 상할 일은 없다.은혼식에는 25년 동안의 무사한 결혼을 기념하며 은으로 된 물건을 주고받는다. 만사에 좋은 게 좋은 거라는 남편은 올 해가 25주년인 줄 모르고 있다. 좋은 남편으로 가는 길을 거의 다 와서 입구를 못 찾고 헤매는 것 같다. 받고 싶은 선물 목록을 주며 엎드려 절을 받을까 말까 며칠 고민해야겠다.

2019-06-12

‘쓸모없는 기계’와 방탄소년단

△쓸모없는 기계여기 디지털을 잘 설명할 수 있는 기계가 있다. 이 기계를 본 공상과학소설가 아서 클라크(Arthur C. Clarke)는 이 장치를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이보다 더 간단할 수 없다. 시거 상자 크기의 조그만 나무상자위에 한 개의 스위치가 달려있다. 만약 스위치를 올리면, 분노의 목적성 있는 진동이 일어난다. 뚜껑이 천천히 열리며, 바닥에서 손이 떠오른다. 그 손은 스위치를 아래로 내리고 상자 안으로 도로 들어간다. 관이 최후에 닫히듯이 뚜껑은 철컥 닫히고, 진동은 멈춘 후에 이전의 평화로움으로 돌아간다.”클라크 아서는 뭔가 굉장한 장치인 것처럼 설명하고 있지만 이 기계는 아주 간단하게 작동한다. 상자 위의 스위치를 켜면 상자 속에 있는 로봇팔이 나와 스위치를 끄고 들어가버린다. 이것이 전부다. 사람들이 이 기계에 붙인 이름은 ‘쓸모없는 기계(Useless Machine)’다. 더 가혹하게는 ‘가장 쓸모없는 기계(The Useless Machine)’라고도 부른다. 그러나 클라우드 섀넌과 함께 이 기계를 고안한 마빈 민스키(Marvin Minsky)는 ‘궁극의 기계(ultimate machine)’라 명명했다. (마빈 민스키는 MIT의 인공지능 연구소의 공동 설립자로 인공지능(AI) 분야를 개척한 과학자다.)이 기계는 스위치를 켜(on)면 끈(off)다. ‘on’과 ‘off’이라는 정보, 인간에게는 무척 단순해 보이는 정보지만, 기계가 인간의 언어를 알 리 없다. 그렇다면 우리가 아는 언어를 기계가 알 수 있는 언어로 바꿀 필요가 있다. 이렇게 전환된 정보를 디지털(Digital)이라 부른다. 그런 점에서 궁극의 기계는 디지털 기계의 장단점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기계라 할 수 있다.간단히 말해 디지털은 중간값을 가지지 않는데, 쉽게 말해 디지털은 애매모호한 것을 기록하지 않는다라는 뜻이기도 하다. 디지털은 애매모호한 것을 알아차리지 못하며, 그것을 표현할 방법도 없고, 따라서 표현도 할 수 없다는 말로 이해할 수도 있다. 이것이 디지털을 비판하는 사람들의 입장이기도 하다.그런데 세계는 분명한 것이 아니라 애매모호한 것이 훨씬 많다. 세상에 노란색보다는 노르스름한 색이 더 많으며, 인간의 감정은 좋으면서도 좋지 않고, 슬프지만 나쁘지 않은 감정을 가질 때가 많다. 디지털은 이런 것을 표현할 수 없다. 그런 점에서 기계는 인문학적이지 않으며, 사람들은 이것을 디지털의 한계라 말하고, 때로는 이런 식의 디지털화에 거부감을 보이기도 한다.이것은 제4차 산업혁명 시대의 디지털에 대해서 모르고 하는 소리다. 이런 문제는 디지털의 부분적 문제이며 개선 가능한 문제에 지나지 않는다. 무엇보다 지금의 디지털은 아날로그를 뛰어넘어서고 있다. 대상을 비판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런 비판을 위해서라도 디지털이 이룩한 거대한 변화와 그것이 가져올 변화에 대해서 아는 것이 좋다.△‘지금 여기에서’의 디지털 혁명방탄소년단이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빌보드 차트에 1위에 올랐다. 그 힘은 어디에서 비롯하는 것일까. 방탄소년단은 빌보드 차트 1위에 오르기 전 ‘빌보드 뮤직 어워드’에서 신곡인 ‘Fake Love’를 발표했다. 이것이 놀라운 이유는 히트곡이 아니라 신곡을 시상식 장에서 선보였기 때문이다. 지난 1년 사이 크게 인기를 끈 대스타 한 명의 공연을 빼고 방탄소년단의 신곡이 들어갔다는 것인데, 이런 신곡 발표는 비욘세, 레이디 가가와 같은 슈퍼스타들에게만 허용된다. 방탄소년단이 그런 대우를 받았다.이보다 흥미로운 것은 방탄소년단의 새 앨범이 공개된 지 이틀밖에 되지 않았음에도, 더욱이 영어가 아니라 한국어로 불렸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인 팬들은 한국식 ‘떼창’과 한글 피켓을 선보였다. 미국팬들은 SNS와 유튜브를 타고 번지는 번역된 가사와 영상물을 접하며 노래를 익히고, 어떤 지점에서 노래를 따라 불러야 하고, 어떤 부분에서 가수들의 이름을 외쳐야 하는지를 배울 수 있었다.이를 통해 개인의 외침이 아니라 팬 전체가 일사불란하게 외치는 ‘떼창’이 가능할 수 있었다.SNS와 유투브에 올라오는 방탄소년단의 콘텐츠는 소속사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아미(A.R.M.Y)’들에 의해 생산된다. 방탄소년의 팬클럽을 총칭하는 말이다. 방탄소년단이 가진 총기 이미지와 결합한 ‘아미’는 그야말로 ‘군대’를 방불케 한다. 이들은 노래가 출시되자 마자 자발적으로 노래를 영어, 일어, 중국어, 아랍어 등으로 번역하여 전 세계로 순식간에 송출한다.‘아미’들은 단순히 뮤직비디오를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가사에서 다 말하지 못한 곡의 주제와 숨겨진 의미를 찾기 위해 뮤직비디오, 프롤로그, 티져 등을 분석한다. 그리고 이 파편적인 영상물 속에서 유기성을 발견하고 재해석한다. 이렇게 방탄소년단의 노래는 새롭게 분석되어 다시 송출된다. 아미는 모바일 네트워크를 통해 메시지를 재생산한다. 이들은 소비자이면서 동시에 생산자다. 방탄소년단과 아미의 수평적 소통과 상화작용, 이것을 ‘BTS: 예술혁명’의 저자 이지영은 ‘네트워크 이미지’라고 불렀으며, 이것이 예술을 새로운 차원으로 도약시킨다고 말했다.‘아미’들은 SNS를 통해 방탄소년단의 노래를 퍼 나르고 자신들이 재생산한 이미지를 확산시킨다. SNS는 커뮤니케이션의 수단을 넘어선지 오래다. 과거에 마케팅이 신문이나 TV를 통해서 이뤄졌다면, SNS를 활용한 마케팅은 필수다. 페이스북 사용자수는 20억 명을 돌파하고 있다.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 자체가 거대한 시장이 된다. 이런 시장에서는 욕구가 분출한다. 더욱이 모든 사람들에게 동일하게 광고를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인터넷 검색 성향, 게시하는 글, 좋아요 등을 분석하여 맞춤식 광고를 보낼 수 있다. 이런 모든 것들은 디지털을 통해서 가능해진다.공강일 서울대 강사·국문학△전체는 전체와 엮여 있다.제4차 산업혁명 시대, 언제든 누구든 어디에서든 모바일을 통해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런 기술을 바탕으로 더 많은 정보가 생산되고 더 많은 정보가 유통된다.그리고 늘 소비자에 있었던 소비자들이 생산자의 영역에 참여할 수 있게 되었다.예컨대 영상을 만들어낼 수 있는 사진기, 카메라, 편집기와 같은 생산수단은 값이 비쌌고 많은 수의 전문 인력이 다루었다. 하지만 기술의 발달은 그런 생산수단을 소비자도 가질 수 있게 만들었다. 결국 소비자와 생산자 간의 경계가 사라졌다. 그리하여 정보를 누구나 생산하고 유통시킬 수 있게 되었으며, 이전보다 훨씬 더 정보량이 늘어난다. 이렇게 늘어난 정보량은 새로운 기계와 새로운 기술을 추동한다.아날로그 정보를 디지털 정보로 바꾸는 것도 공학이며, 이런 정보를 저장하고 저장속도 및 처리 속도를 높일 수 있는 반도체와 같은 물리적 기반을 만드는 것 역시 공학이다. 공학은 특정한 분야에 한정되지 않고 전체와 엮여 있다.정보기술은 통신과 밀접한 관련을 맺으며, 통신기술은 컴퓨터와 관련을 맺고 있다. 이같은 얽힘들 속에서 정보기술은 통신기술을 추동하고 통신기술은 컴퓨터 기술을 향상시키고 사회는 변화한다. 변화한 사회가 다시 기술발전에 영향을 미친다. 이 거대한 선순환의 구조를 공학이 만들어내고 있다.

2019-06-12

염치(廉恥) 교육부터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금요일에 고숙상(姑叔喪)이 있어 기차로 서울을 다녀왔다. 비가 와서인지 세상은 온통 흐렸다. 사람들의 표정은 말 그대로 잿빛 하늘이었다. 마치 기차는 빠른 속도로 사람들을 우울의 섬으로 데리고 가는 것 같았다. 전체적인 분위기가 그래서인지 눈을 뜨고 있으면, 우울(憂鬱)에 감염되어 더 큰 우울의 나락으로 떨어질 것 같아 눈을 감아버렸다.그런데 그것이 실수였다. 눈을 감는 순간 모든 감각이 청각으로 집중되었다. 필자의 귀엔 비속어들밖에 들리지 않았다. 한번 들어온 비속어들은 귀에서 나갈 생각을 않았다. 여러 지역의 어조들이 혼합된 비속어들은 심한 말 멀미의 원인이 되었다. 좀처럼 멀미를 하지 않는 필자이지만, 더 이상 눈을 감고 있을 수가 없었다. 악몽에서 깨듯 눈을 번쩍 떴다.필자는 눈을 뜸과 동시에 눈 뜬 것에 대해 후회하였다. 필자의 눈엔 초로(初老)의 한 신사가 당신 앞자리에서 비속어로 통화를 하고 있는 이십대 초의 젊은이에게 정중하게 통화 소리를 줄여줄 것을 부탁하는 모습과 세상에서 가장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알 수 없는 말과 함께 아버지 연배 되는 사람을 잡아먹을 듯이 노려보는 젊은이의 모습이 동시에 들어왔다.당황한 것은 부탁을 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더 이상 말을 하지 못하고 당신의 짐을 챙겨나가 버렸다. 목적지가 어디인지는 모르겠지만 기차가 종착역인 서울역에 도착할 때까지 그 자리는 주인을 만나지 못했다. 그 대신 젊은이의 비속어가 자리를 떠난 사람을 비웃기라도 하듯 더 크게 객실 안을 점령하였다. 필자를 비롯하여 많은 승객들이 있었지만, 비속어를 멈출 수는 없었다. 공공질서를 지켜줄 것을 당부하는 안내방송이 나왔지만 무용지물이었다. 승무원이 몇 번 다녀가고서야 젊은이의 염치(廉恥)없는 통화는 끝이 났다.그런데 문제는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이번엔 필자 뒤편에서 코를 빨아들이는 소리와 함께 비속어가 날라 왔다. 누구와 대화하는 것도 아닌데 코를 흡입할 때마다 그 사람은 욕을 했다. 습관인지 불편함에 대한 표현인지는 모르겠지만, 욕하는 주기는 점점 짧아졌다. 정말 대략난감이었다. 다른 승객들은 하나둘씩 이어폰을 꺼냈다. 그리고 기차 안 현실과 담을 쌓았다. 불행하게도 필자에겐 이어폰이 없었다. 필자는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이 오면 “어쩔 수 없는 건 받아들이는 것이다.”라는 글귀를 주문처럼 외우는 버릇이 있다. 이번엔 주문이 통하지 않았다.잠은 달아난 지 오래였다. 그리고 욕 멀미 때문에 펼쳐 놓은 책장은 넘어가기를 거부하였다. 필자가 할 수 있는 일은 도착을 알리는 기내방송을 기다리는 것과 휴대전화를 통해 인터넷에 접속하는 것뿐이었다. 그런데 후자를 선택하였을 경우 더 강력한 후회를 하게 됨을 필자는 알고 있지만, 이미 손은 인터넷에 접속하고 있었다. 숨진 7개월 영아, 6일 동안 방치! 인천 도심 카페서 흉기 살인 사건! 김원봉 언급 후폭풍 갈 길 바쁜 정국에 이념 논쟁 불똥!갑자기 사람들의 눈총이 필자에게로 쏠리는 것을 느꼈다. 무슨 일인지 몰라 주변을 살피다가 필자는 깜짝 놀랐다. 필자는 필자도 모르게 비속어를 쏟아내고 있었던 것이다. 비속어를 멈추려고 했지만, 조금 전 기사들 때문에, 특히 김원봉에 대한 기사는 오히려 더 심한 비속어를 생각나게 했다. 그리고 현충일에 시장에서 뵌 어느 아저씨의 말이 계속 떠올랐다. “한국 전쟁 때 우리 아버지 죽인 놈들은 왜 한 마디도 사과를 안 하는지 모르겠다.”많은 단어들이 현 정부 들어 사라졌다. 그 중 대표적인 말이 염치(廉恥)라는 말이 아닐까 싶다. 남북 정치인들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관용구가 있다. “염치와 담 쌓은 사람(놈)” 자신들의 정치 잇속을 위한 말잔치는 이젠 그만 두고 제발 염치부터 좀 차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때 기차는 욕을 권하는 사회에 필자를 내려주었다.

2019-06-11

인위적인 자생적 생태계를 만들자

김진홍 한국은행 포항본부 기획조사팀장우리 경제는 그동안 주요산업의 성장 과정에서 이른바 따라잡기, 체질개선, 구조조정, 합리화 등 시기별로 요구되는 상징적인 개념들에 대해 그 때마다 적절한 대응조치를 마련하며 오늘에 이르렀다. 이러한 개념들은 대체로 일정한 시한이나 목적이 달성되면 더 이상 불필요한 일종의 일시적 내지는 일과성 현상이었다고 할 수 있다.그러나 최근 주목받고 있는 ‘생태계(ecosystem)’라는 개념은 다소 맥락을 달리한다. 경제 산업측면에서 본다면 자유로운 창업과 성장, 기업 간 흡수합병, 기업공개와 퇴출, 연구개발을 통한 신기술개발이나 혁신 등으로 경쟁력을 갖추며 확대재생산에 성공하는 일련의 순환과정 모두를 포괄하는 복잡하고 지속적인 현상을 나타내는 개념이다. 이는 결국 우리 경제가 특정 산업이나 분야에 대해 지금까지와 같은 단편적인 일과성의 정책만으로는 제대로 대응할 수 없는 시스템으로 확장되었음을 상징하는 반증일 것이다.사실 특정 산업이나 분야에 대해 경제적인 측면에서 생태계라는 개념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산업클러스터라는 것도 비슷한 개념이다. 다양한 기업들이 기술과 혁신을 기반으로 경쟁력을 갖추어 흡수, 합병, 자회사 분할 등을 통해 확대 재생산과정을 거쳐 주변 지역까지 경제적 영향력이 확산되는 클러스터야말로 산업생태계 그 자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과거 우리나라는 상대적 후진성을 무기로 저렴한 노동력, 혁신기술보다는 기능적 숙련도에 입각한 효율성, 다양한 면세 등 보호조치가 적용되는 특정지역의 ‘산업단지’를 조성하여 선진국에 대한 경쟁력을 갖추었다. 기업들이 자연발생적으로 필요에 따라 모여든 생태계가 아니라, 정부 주도로 유사, 동종 기업체들을 모아 일견 ‘클러스터’로 보이는 ‘산업단지’정책은 당시로서는 매우 성공적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그러한 여파로 지금도 전국 각지에는 다양한 목적을 가진 산업단지들이 많이 개발되고 있는 실정이다.포항은 그러한 산업단지 정책의 초기 모델로 성장한 산업도시 중 하나다. 그동안 일부 학자나 전문가들은 철강 산업단지를 철강클러스터로 표현하거나, 각 지역들도 산업단지를 조성하면서 아예 클러스터라는 이름을 붙이는 경우도 많았다. 하지만 산업단지와 클러스터는 다른 것이다. 산업단지는 ‘기업 집적’에 불과하다. 자율적인 기업의 분할과 합병이 이루어지고 연구개발과 혁신을 통한 경쟁으로 확대재생산이 이루어지는 ‘클러스터’와 기업을 모은 ‘산업단지’는 다를 수밖에 없다.한국은행 포항본부가 금년 세미나 주제로 삼은 것은 ‘자생적 생태계의 조성’인데 이것도 같은 맥락이다. 흔히 들었던 주제일 것이다. 문제는 왜 또다시 제기할 수밖에 없는지를 깨달을 필요가 있다. 지금은 아무도 모르는 100년전 포항 영일만의 유명 특산물 중 ‘돌김’이 있었다. 당시 영일만 어가들은 특정 시기의 청어 잡이만으로는 연중 소득에 한계가 있어 바닷가 암초에 시멘트를 발라 돌김을 양식하였다. 최고 품질의 이 돌김은 일본, 미국까지 수출되었다. 처음에야 일부 어가에게만 인위적으로 돌김 양식을 장려하였지만, 이후 대부분 어가들이 합류함으로써 포항 영일만의 특산품 ‘돌김’의 자생적인 생산생태계가 조성되었던 것이다.포항의 철강 산업도 처음에는 이러한 인위적인 조성 노력이 필요하다. 비록 기업이라 할 수도 없을 작은 철공소라도 재료인 철만 있으면 어떤 시제품이라도 만들 수 있는 기초 생태계부터 조성해야만 한다.어떠한 창업가라도 철을 이용한 제품을 생산하고 싶을 때면 먼저 포항부터 찾아와 시제품이라도 만들어볼 생각을 가질 수 있는 자생적 생태계를 먼저 인위적이라도 만들어 나가야만 포항경제는 지속가능해질 것이다.

2019-06-11

문화를 바꾸는 힘은 어디에서 오는가?

사막의 개혁자라는 별명이 붙은 텔레마쿠스는 아무도 찾지 않는 이집트 외딴 사막에 은둔하며 하루 빵 한 조각과 약간의 물 그리고 노동과 기도로 수행하며 살아갑니다. 어느 날 내면의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로마로 가라. 그곳에 네 일터다. 로마가 너를 부른다.”즉시 로마로 떠납니다. 주말이면 원형극장에서 포로로 잡혀온 검투사들이 서로 칼싸움을 합니다. 한 쪽이 죽을 때까지 멈추지 않는 잔혹한 경기입니다. 텔레마쿠스가 도착했을 때 경기장에는 8만명 넘는 관중들이 칼 싸움에 흠뻑 빠져 목이 터져라 함성을 지르며 광분하고 있었지요.“이것을 막으라고 신께서 나를 이곳으로 보내셨도다.” 텔레마쿠스는 경기장 안으로 뛰어내립니다. 경기가 중단됩니다. 텔레마쿠스는 큰 소리로 외칩니다. “신께서 명령하신다. 이 싸움을 즉시 멈춰라!” 관중들은 이벤트인 줄 알고 폭소를 터뜨리며 함성을 더 크게 지릅니다. 심판은 텔레마쿠스에게 나가라고 지시하고 다시 경기를 재개합니다. 텔레마쿠스는 굽히지 않고 외칩니다. 오랜 실랑이 끝에 심판관은 검투사 한 명에게 텔레마쿠스를 처치하라는 손짓을 내리지요. 번뜩이는 칼날로 텔레마쿠스 배를 찌릅니다. 힘없이 나동그라진 텔레마쿠스는 분수처럼 피를 뿜으면서도 외치는 일을 멈추지 않습니다. “신께서 명령하신다. 이 싸움을 즉시 멈춰라!”침묵이 흐릅니다. 숙연한 기운이 관중들의 광기 어린 함성을 순식간에 잠재웁니다. 누군가가 퇴장합니다. 로마 황제 호노리우스입니다. 원로들이 서둘러 경기장을 빠져나갑니다. 뒤를 따라 관중들이 하나 둘 모두 자리를 떠나고 검투사들도 고개를 푹 숙인채 퇴장하지요. AD 391년 로마에서 실제 벌어진 사건입니다. 이 일을 계기로 로마에서는 검투사 경기 문화가 사라집니다.텔레마쿠스가 사막으로 나가 은둔자가 된 것은 기다림을 위한 것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세상을 바꾸기 위해 먼저 나 자신을 바꾸려는 사막의 구도자들. 그들의 우선 순위는 놀랍습니다. 헤라클레이토스의 강론 ‘숨은 조화’에 나오는 한 토막입니다. “모든 불행은 그대가 상궤를 벗어나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 존재한다. 즉시 돌아오라. 그대 몸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할 때 본질과 내면적인 존재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할 때 그대는 더욱더 행복해진다. 본질의 소리를 잘 듣도록 하라. 로고스에 귀를 기울여라.”그대의 귀 기울임과 용기를 통해 왜곡된 문화들이 조금씩 변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 대표

2019-06-11

경주가 매진하고 있는 사업과 미래 먹거리에 대해

주낙영경주시장최근 전국적으로 제조업의 불경기가 심각하게 위축되고 있고, 경주 또한 자동차 부품 산업의 50% 정도가 가동 중지되고 있는 매우 심각한 상황이다.경주시는 이러한 불경기를 헤쳐나가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우선 도시재생 뉴딜사업을 비롯해 감포권역 명품 어촌테마 마을과 수렴항 어촌뉴딜 300 사업 등 대형 공모사업에도 선정되는 성과를 거두었고,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한 밑거름이 될 새로운 신정장 동력 확보도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었는데, 중국 장쑤젠캉 자동차회사 유한공사와 경주에 들어설 전기자동차 완성차 공장 설립을 위한 MOU를 맺었고, 금속가공분야에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가진 글로벌 기업 프랑스 HEF와 3천만불의 투자유치 MOU를 체결했으며, 또한 세계최대 규모인 200MWH급 친환경 수소연료 전지발전소 투자유치 MOU도 맺었다.특히 산업통상자원부가 공모한 2020년도 스마트 특성화 기반구축 사업에 ‘차량용 첨단소재 성형가공 기술 고도화 센터 건립사업’이 최종 선정됐으며, 이를 통해 3년간 300억원의 사업비가 투자될 계획이다. 이번에 선정된 ‘차량용 첨단소재 성형가공 기술 고도화 센터’는 경북지역 자동차 부품 생산의 절반을 담당하고 있는 경주시 일원에 자동차 부품의 경량화와 내구성 증대를 위한 기술지도와 신뢰성 평가를 지원하는 사업으로서 경주시 최초의 기업지원센터이다.이 센터에는 전문장비 13종과 지원 인력을 확보해 기업지원 및 전문기업을 육성할 계획이며, 향후 전기차, 수소차 등 미래 친환경 자동차 시장을 선점해 나가기 위한 기업지원 사업을 전개해 나갈 예정이다.또하나 중요한 사업으로 신경주역세권 개발 사업이다. 곧 토지보상과 문화재 시굴조사가 완료되고, 때를 맞추어 신경주를 포함한 경북 10년 개발 계획이 국토부의 승인을 받아 사업이 큰 탄력을 받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경주는 세계적인 역사문화관광도시로서 신라왕경 핵심유적 복원정비사업이 차질 없이 진행될 수 있도록 특별법 제정에 더욱 힘을 쏟을 것이며, 이와 함께 고도보존지구 지정은 최소화하고 각종 규제를 대폭 완화해 새로운 변화가 필요할 것이다.신라왕경 핵심유적 복원사업은 2014년부터 2025년까지 약 1조원의 예산으로 진행되는 대형 국가사업으로 첫 성과라 할 수 있는 월정교가 지난해에 복원되어 경주관광의 새로운 랜드마크로 자리잡았고, 올해 초에는 월정교 문루 홍보관을 마무리하여 관광객들이 직접 보고, 체험할 수 있는 교육·홍보 공간으로 선보이고 있다.또한 관광산업에도 변화와 혁신이 필요한 시점으로 기존의 전통적인 역사유적관광만으로는 새로운 관광객들을 끌어들이는데 한계가 있을 것이므로 경주만의 고유한 특징을 살리면서 요즘 여행의 트랜드에 맞춰 직접 체험하고 즐기고 맛보는 오감을 만족시킬 수 있는 관광 상품 개발이 필요할 것으로 이에 대한 대비도 착실히 준비해야 할 것이다.문무대왕릉 성역화와 금관총 전시관, 신라역사관, 경북문화컨텐츠 진흥원 분원 설치를 통해 신라 천년 수도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해 나가는 것이 필요할 것이며, 문화재의 디지털 재현을 통한 가상체험 콘텐츠 개발과 유적 발굴 현장 개방 등 경주의 특색이 가미된 새로운 관광상품 개발에도 박차를 기해야 할 것이다.또 하나 경주시가 매진하고 있는 분야가 미래 먹거리 산업이다.경주는 전국 3위, 경북 1위의 도농복합지역이다. 농어촌 귀농지원 사업으로 전국에서 가장 농업하기 좋은 도시 경주로 거듭나기 위해 귀농지원상담센터를 개소하였으며, 이를 통해 귀농인의 정착과 영농활동을 적극 도울 것이다.축산분야에도 축사시설 현대화, 유통·마케팅 지원, 친환경 축산환경 조성으로 경주 한우가 전국 최고의 명품한우 브랜드로 자리매김할 수있도록 육성해 나가야 할 것이다.청정해역인 경주바다에 대한 인지도를 높이고, 경주의 특산품인 참가자미, 미역, 참전복 등을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육성하고 수산물 유통·가공·판매를 위한 수산융복합센터 조성과 양식시설 현대화로 살맛나는 어촌마을을 만들어 가야 할 것이다.이와 함께 여성농어업인 육성 및 지원조례를 제정하여 여성 영농어업인의 권익 보호와 삶의 질 향상을 통해 젊고 활기찬 농어촌이 되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다.

2019-06-11

반려동물 경제, 펫코노미(2)

반려동물 산업은 세계적으로 이미 거대시장이 형성되어 있다. 반려동물 산업이란 사람들과 함께 동거하면서 사람들에게 행복과 즐거움이라는 가치를 제공하는 반려동물과 반려동물에 관련된 용품 및 관련 서비스를 총칭한다. 반려동물을 소재로 한 1, 2, 3차산업 분야 전체와 문화, 복지 및 관광 등 주변영역을 포함하여 산업분야가 갈수록 다양화되고 확대되고 있는 추세이다.지금까지는 반려동물의 분양, 사료 및 용품이 높은 비중을 차지하였으나 최근에는 건강, 의료영역을 비롯한 3차산업 영역으로 비중이 확대되는 추세이며 반려동물 동반 카페, 호텔 및 테마파크 등에 이어 캐릭터, 영화산업같은 문화콘텐츠 산업으로까지 사업 영역이 확대되고 있으며 최첨단 BT기술을 활용한 고부가 서비스 분야도 포함되고 있다.세계 미래학회에서 미래 10대 전망 중의 하나로 반려동물 산업이 급속하게 팽창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핵가족화와 고령화 사회현상의 가속화, 사이버공간의 활성화 등의 이유로 반려동물의 증가가 지속된다는 예측이다. 현재 미국인들의 여가선용을 위한 영화, 노래, 게임산업을 합친 규모보다 반려동물 산업분야가 더 큰 규모를 형성하고 있고, 중국을 비롯한 신흥 아시아권에서도 반려동물 산업이 빠른 성장산업으로 발전하고 있을뿐 아니라 사업영역의 폭이 다각화 되고 있으며 고급화, 단순한 화려함을 넘어 반려동물의 인격화 추세에 있다.최근 KB경영연구소 자료에 의하면 우리나라에서 반려견을 키우는 사람들이 카페나 숙소 등 반려동물과 동반할 수 있는 장소에 대한 정보를 가장 필요로 하고 있다는 조사 결과를 발표하였다. 이는 우리나라의 관광산업 형태가 기존의 단순한 여행을 추구하던 모습에서 색다른 경험을 추구하는 형태로 변화되고 있는 트렌드와 맥을 같이 한다. 앞으로의 관광형태는 단순관광이 아니라 색다른 경험의 추구, 전문성의 추구 등 특수목적 혹은 특별분야에 대한 관심이 관광현상으로 표현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특히 반려동물 테마는 교육 문화 관광적 요소를 갖춘 경쟁력있는 분야로 발전할 수 있다. 지역의 전통 주력사업의 쇠퇴에 따른 경제 침체가 장기화 되는 가운데 지역 경제 진흥을 위해서는 대체산업의 활성화를 통한 도시 경제구조의 개편과 특화산업 육성이 필요한 시대이다.세계 반려동물산업의 급속한 확대와 다양한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경상북도의 반려동물 산업은 관련 정책과 산업기반 조성이 부족한 상황이다.한발 앞선 산업발전을 위해서는 정부정책의 보완 및 제안적 기능이 절대적으로 필요할 뿐아니라 규제가 아닌 실질적인 반려동물 산업 관련 정책이 매우 중요한 실정임을 감안할 때 가장 먼저 경상북도가 핵심역량을 갖춘 인재들의 네트워크를 구축하여 합리적인 정책제안 시스템을 운영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반려동물 산업분야는 경상북도의 관광산업 발전과 고령화 시대의 노인일자리 창출을 비롯하여 반려동물 교감 교육, 활동, 복지영역의 청년일자리 창출을 선도할 수 있을 것이다. 반려동물 산업의 발전을 위해서는 규격화 및 체계화, 과학화된 반려동물의 관리시스템이 기본적으로 필요하다고 본다.사회문제로 대두되는 무분별한 반려견 생산 판매업자, 무등록, 가짜인증서, 유기동물 등의 문제는 반려동물 산업관련 첨단 BT기술과 IT기술을 도입하여 국제경쟁력을 신속히 갖추고 체계적인 관리시스템을 갖추면 해결해 나갈 수 있다.대부분 수입에 의존중인 국내 반려동물 산업의 활성화를 위한 종합적인 공간, 시설, 장비 등을 지원하고 산업체에 필요한 전문기술 인력을 양성, 공급하여 반려동물 산업 발전을 위한 개발 기술확보 및 기술이전, 벤처창업 및 산업화 촉진을 위한 핵심적인 앵커기능을 담당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필요하다.이동훈경북은 이미 천연기념물 삽살개와 경주개 동경이를 보존하고 있고 첨단 기술을 접목, 활용할 수 있는 다양한 인프라를 보유하고 있으므로 관련 인재들이 주도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지자체는 길을 열어주고 반려동물 산업관련 핵심 기반을 구축할 수 있도록 민간투자 유치 및 연계된 관련산업의 육성을 동시 추진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경상북도가 반려동물의 문화와 산업을 선도하는 이미지를 선점하고 동시에 반려동물 산업지원센터를 통하여 실질적으로 반려동물 산업 관련 요소들의 육성 및 지원을 통해 경북이 반려동물 산업의 아시아 허브역할과 함께 세계적으로 경쟁력 있는 산업으로 발전시킬 수 있기를 기대한다./서라벌대 반려동물연구소 소장(마사과 교수)

2019-06-11

금값

금은 인류가 가장 많이 그리고 가장 오래 사용해온 금속류다. 사용 연대도 기원전 3천년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하니 가히 인류의 역사와 궤적을 같이했다 할만하다. 엘도라도는 황금이 넘쳐나 온 도시가 황금으로 도배됐다는 전설의 도시다. 그러나 중세시대 탐험가들은 어디에 있을지도 모를 전설의 도시를 찾아 머나먼 항해의 길도 마다하지 않았다. 금에 대한 인간의 애착은 시대를 관통할 정도로 집요하다.골드러시란 말의 유래가 19세기 미국에서 발견된 금광 소식에 몰려든 인파에서 나왔다고 한다. 금이 있는 곳에는 반드시 사람이 들끓었으니 금과 인간의 관계는 불가분이다.금은 일찍이 상거래의 화폐로, 권위의 상징으로, 화려한 장식으로 인류의 사랑을 받아왔다. 이집트 왕릉에서도 신라왕릉에서도 화려한 금관과 금으로 된 장식품이 쏟아진 사실만으로 이를 입증한다. 현대에 와서도 금의 존재 가치는 여전히 엄중하다. 금은 탁월한 부의 저장 수단으로 인정받는다. 불확실성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해 주는 수단으로 금만한 것이 없다. 미래에 도래할지도 모를 통화시스템의 붕괴에 대해서도 금은 안전성을 보장할 거라 대부분 믿는다. 금본위제란 금의 가치가 화폐의 기준이 되는 제도였다. 금이 가진 자체의 성질이 그 값어치를 충분히 하기에 만들어진 제도였다.금값이 뛰고 있다. 미국과 중국의 무역 분쟁으로 안전자산 선호심리가 작용한 탓이라 설명한다. 하지만 금값 상승에는 항상 사회적 불안 심리와 연동돼 왔다는 것을 우린 경험으로 알고 있다. 지난달부터 골드바를 판매하기 시작한 우체국에서 한달 사이 43억원어치의 골드바가 팔려 나갔다고 한다. 우체국 관계자도 예상을 뒤엎는 결과라고 한다. 금 거래량도 지난해 8월 이후 최고다. 가격도 지난 1월보다 10% 정도가 올랐다. 재화 수단으로 금은 지구촌 공통의 화폐다. 언제나 변하지 않는 가치성 때문에 보험으로서 기능도 한다.보통서민은 금값이 오르면 괜히 불안해진다. 정치 경제적으로 나쁜 일들이 생길까봐 조바심이 난다. 최근 금값 상승이 행여 정치 경제적 악재에 의한 동요가 아니었으면 한다./우정구(논설위원)

2019-06-11

권영진 시장이 공직비리 특단 대책을 꺼내든 이유

이곤영대구취재본부장‘조정에 청백리의 자손을 등용하라는 명은 있으나, 오직 뇌물을 쓰는 자들이 벼슬을 하고 청백리 자손들은 모두 초야에서 굶주려 죽고 만다.’조선시대 이익이 ‘성호사설’에 쓴 글이다. 조선시대에 청렴하고 강직한 신하 의정부 및 사헌부, 사간원 등의 추천을 받아 임금의 결재를 받아 내리는 ‘청백리’는 후손들에게 벼슬을 할 수 있는 특전을 줄 만큼 명예롭고 존경을 받았다. 그러나 조선 왕조 500년 동안 청백리로 인정받은 사람은 단 218명에 불과했다고 하니 부패가 만연했을 것으로 보인다.조선시대 부패의 근원은 지방 관청에서 행정 실무를 담당하던 하급관리 ‘아전’을 뒀기 때문이라고 한다. 세금 징수나 잡무, 수령의 둔전을 관리하는 업무 등 대를 이어 지방 행정 실무를 맡았던 지방 아전은 국가에서 월급을 지급하지 않았다. 이렇다보니 아전들은 부정부패와 비리를 통해 모자란 급여를 대신했다. 아전의 비리가 제일 심한 것이 ‘세금 착복’이었다. 이들은 성인이 안된 어린애에게 군역을 물리는 ‘황구첨정’, 죽은 사람에게 군포를 물리는 ‘백골징포’, 군역을 피해 도망간 사람의 이웃이나 친척과 이웃에게 군포를 물리는 ‘족징’과 ‘인징’을 등을 통해 세금을 착복했다. 또 세금으로 내는 지방특산물을 상인들에게 비싸게 사게 하고 상인들에게 뒷돈을 챙기는 등 각종 비리를 일삼았다. 이 때문에 백성들의 삶은 갈수록 어려워졌고, 조정의 재정은 약해지는 악순환이 이어졌다. 이처럼 공직자들의 비리는 오랜 세월 동안 전통처럼(?) 내려왔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에도 공직자에게는 쥐꼬리만한 월급만 주어지는 등 비리는 선배 때부터 후배에게로 답습되어 온 것이 사실이었다. 이에 정부는 공직자 비리를 끊기 위해 2002년 부패방지법을 시행하고 국민권익위원회를 설치했으나 공직자의 부패·비리 사건이 끊임없이 발생했다. 특히, 2010년 ‘스폰서 검사’와 2011년 ‘벤츠 여검사’ 사건이 발생했다. 향응과 금품 수수를 했음에도 ‘대가성과 직무관련성이 없다’는 등의 이유로 무죄를 선고받자 기존의 법으로 처벌하지 못하는 공직자들의 부정부패·비리를 규제하는 법이 제정야 한다는 여론이 일었다. 2011년 6월 당시 김영란 국민권익위원장이 국무회의에서 ‘공정사회 구현, 국민과 함께 하는 청렴 확산 방안’을 보고하며, 가칭 ‘공직자의 청탁 수수 및 사익추구 금지법’ 제정의 단초를 마련했다. 이 법을 제안한 대법관의 이름을 딴 ‘김영란법’은 부처간 이견으로 진통을 겪다 2013년 7월 국무회의를 통과했으나 국회 제출 이후에도 ‘법의 적용 대상이 광범위하고 위헌소지가 있다’는 등의 이유로 표류를 거듭했다. 그러다 2015년 3월 3일 국회를 통과했고 3월 27일 제정·공포되었으며, 2016년 9월 28일부터 시행됐다.김영란법이 시행되었는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공직자들의 비리가 끊이지 않고 있다. 대구의 경우, 지난 2017년 7월 모 구청 건축과장으로 취임한 공직자가 업무 편의 제공 등의 대가로 그해 8월부터 지난해 8월까지 건축사가 회사 명의로 리스한 제네시스 승용차를 건네받아 공짜로 탔다. 그는 건축사와 현장소장 등으로부터 각종 인허가, 준공 편의를 제공하는 대가로 64차례에 걸쳐 골프장 이용료·숙박료 등 1천297만원 상당을 받은 혐의도 받고 있다. 또 최근에는 시청 공무원 등 3명이 골프 접대 등 비리가 불거져 경찰이 해당 공무원 사무실 등을 압수 수색하는 등 수사를 하고 있다. 이처럼 대구 공직자들의 비리가 이어지자 권영진 대구시장은 특단의 대책을 꺼내 들었다. 비리공무원 발생시 연대책임까지 묻겠다고 밝힌 권 시장은 최근에는 공직자 비리와 관련된 업체도 아예 대구시가 발주하는 공사에 손도 대지 못하게 하는 ‘원 스트라이크 아웃’ 제도를 시행하겠다고 밝혔다.업체와 비리 공무원의 먹이 사슬관계를 원천적으로 끊겠다는 것이다. 공직자 비리는 국민이 공직자에게 주어진 권한을 이용해 이득을 보는 행위인 만큼 반드시 근절돼야 할 것이다.

2019-06-11

미지의 존재는 우리의 어떤 기억으로 오는가? ‘미지와의 조우’ & ‘콘택트’ & ‘컨택트’

밤 하늘의 무수한 별을 올려다 보던 소년. ‘아무런 걱정도 없이 가을 속의 별들을 다 헬 듯’하던 소년은 ‘청춘이다하였음’에도 ‘가슴 속에 하나 둘 새겨지는 별을’중년이 되었어도 다 헤지 못하고 오늘도 고단한 하루 일과를 마무리한다. 그때 밤 하늘의 무수한 별들을 올려다보며 상상의 나래를 폈던 그 기억, 그 꿈들은 우주의 어느 행성 사이를 오고가는지.어느 날, 출근을 위해 잠이 덜 깬 눈으로 입에 칫솔을 물고 아침 뉴스를 보고 있노라니 긴급속보가 뜬다. 미지의 세계에서 미지의 존재들이 지구에 나타난 것이다. 또 지구촌 어느 곳에서는 ‘베가성(직녀성)’으로부터 정체 모를 메시지를 받았다고 한다. 멀리 계신 부모님에게 전화를 드려야 하나 말아야 하나, 저들의 지구 방문 목적은 무엇이며, 공격을 해야 하나, 베가성은 어디고, 저들은 어떻게 생겼는가라는 질문 속에 오늘 출근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냐는 갈등까지 더해진다.일련의 전문가들은 그들의 모든 지식을 동원해 외계인의 지구방문 목적과 그들이 보낸 메시지의 의미를 추측하고 그 와중에도 서로 난상토론을 벌이며 싸우기 바쁘고, 전세계 지구인의 다양한 양태들을 TV는 열심히 실어 나른다. 혼란스러운 화면에 크게 ‘잠시 후 대통령 긴급 담화 발표 예정’이라는 자막이 하나 뜬다.이러한 출현이 현실이 되었을 때, 우리(지구인)는 그들과 무엇으로 어떻게 소통하여 그들의 지구 방문 의도를 파악할 것인가.△ 미지의 존재로부터 온 초대장미지의 세계에서 온 외계인과의 조우에서 무엇으로 그들에게 질문을 던질 것이며, 그들의 의도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의 문제는 언어가 통하지 않는 다른 인종과의 조우와는 차원이 다른 문제다. 적어도 우리는 지구에서 같은 진화의 과정을 거치며 형태적인 유사성이라도 있지만 미지의 세계에서 온 존재는 형태부터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유성음과 무성음으로 이루어진 언어라는 것을 가지고 있는지조차 알 수 없다. 이러한 외계인과의 첫 접촉에서 우리는 어떻게 그들과 커뮤니케이션 할 것인가라는 주제를 두고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은 미지와의 조우에서 ‘음악’을 그 도구로 사용한다.외계인의 출현으로 전세계의 과학자들은 외계인과 통신할 수 있는 음악코드를 개발해서 그들과의 접촉을 시도한다. 음악은 규칙이다. 그 규칙은 수학을 기반으로 하고 있으며, 수학적 비율을 통해 음악이 만들어진다. 소리는 ‘진동’이다. 진동수가 클수록 진동이 빠르고, 더 높은 소리가 난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은 수학적 비율과 진동, 그리고 그 진동을 시각화한 전광판으로 ‘미지와의 조우’를 시도한다.세계적인 천문학자인 칼 세이건의 원작소설을 영화로 만든 로버트 저메키스 감독의 콘택트는 제목처럼 미지와의 ‘접촉’을 다른 차원으로 이끈다.“우주에 만약 우리만 있다면 엄청난 공간의 낭비이겠지”밤 하늘의 별을 올려다 보던 소녀는 자라서 전파천문학자가 되어 아버지가 들려줬던 말을 따라 ‘외계 지적 생명체 탐사(Search for Extra-Terrestrial Intelligence - SETI)’프로그램에 지원한다. SETI 프로젝트는 전파 망원경을 통해 우주로부터 오는 각종 전파 중에서 인공 전파를 수신해 외계 생명체가 보내는 신호를 감지하는 것이다. 어느 날, 주인공인 앨리 애로워는 베가성(직녀성)으로부터 정체 모를 메시지를 수신한다. 처음 그 신호는 점멸하는 단순한 신호로 해독 결과 수학적으로도 분석이 가능한 유의미한 신호이며 인공적으로 보내진 신호로 밝혀진다. 수학적 분석이라고 하지만 그 분석 기준은 점멸하는 신호가 지속적으로 보내는 신호는 바로 ‘소수(1과 자신의 수로 밖에 나누어 떨어지지 않는 수로 그 개수는 무한하다)’의 나열이었다. 이후 이 소수 배열의 신호 속에 엄청난 양의 정보가 들어 있음을 알게되고 이 정보를 해독하여 미지와의 ‘접촉’을 어떻게 이어가느냐의 내용이다.수신된 신호를 두고 ‘우호와 적대’의 갈등양상은 신과 종교, 과학과 종교, 과학과 철학, 존재의 의미 등 다채로운 충돌을 보인다. ‘오컴의 면도날(같은 현상을 설명하는 두 개의 주장이 있다면, 간단한 쪽을 선택하라는 뜻으로 14세기 영국의 논리학자이며 수사였던 오컴의 윌리엄에서 따왔다)’을 들어 베가성에서 미지의 존재가 보냈던 신호 속에 내재된 정보는 외계인이 지구인에게 보내는 ‘초대장’으로 결론을 내린다. 그리고 그 ‘초대장’을 통해 ‘로젠의 다리(서로 다른 두 시공간을 잇는 구멍으로 웜홀이라고도 한다. 그 이전에 고안자의 이름을 따와서 아인슈타인 -로젠의 다리라고 불렸다)’를 건너 미지와의 조우를 한다. 그리고 그 미지의 존재는 우리들 기억의 모습으로 등장한다.△ 더 이상 시작과 끝이 무의미한 당신 인생의 이야기표기법만 약간 다르며 같은 뜻의 영화제목을 가진 드니 빌뇌브 감독의 컨택트 역시 외계인과의 첫 ‘접촉’을 어떻게 할 것인가의 문제를 다룬다. 테드 창의 당신 인생의 이야기를 원작으로 하고 있는 컨택트는 어떤 이유였는지 국내 개봉에서 어라이벌(Arrival, 도착)이라는 제목을 버리고 ‘컨택트’를 취한다.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미지와의 조우에서 음악을, 로버트 저메키스 감독이 콘택트에서 수학을 대화의 수단으로 삼았는데 반해 컨택트는 음성이 배제된 시각적 언어(문자)를 통해 어떻게 커뮤니케이션할 것인가를 영화에 담는다.12개의 거대한 비행 물체(쉘)가 세계 각지 상공에 등장한다. 역시 “왜”라는 의문을 가지고 세계 각국은 협업을 통해 이들과의 대화를 시도한다. 이에 각개 각층의 전문가들이 동원되고 미국에서는 언어학 전문가 루이스 뱅크스 박사와 천체물리학자 이안 도넬리를 소환하여 접촉을 시도한다. 인문학과 과학의 협업이 처음부터 수월하지 않다. 이안이 쓴 저서의 서문 ‘언어가 모든 문명의 초석이다’를 두고 “과학이 모든 문명의 초석이다”라고 웅수하며 서로의 커뮤니케이션 도구를 두고 긴장감을 유발한다. 하지만 18시간마다 아래쪽에서 문이 열리는 쉘 내부로 진입한 순간 놀라움과 함께 ‘어떻게’를 두고 협업의 단계로 곧장 진입한다.쉘의 내부에서 투명막을 두고 마주한 지구인과 외계인은 각자의 문자로 서로의 존재와 이름을 지칭하는 것으로 대화를 시작한다. 하지만 쉽지 않다. 외계인이 허공에 그들의 이상한 다리를 펼쳐 표현하는 문자는 비선형 철자로 지구상에 존재했던 어떠한 언어 문자와도 다른 독특한 형태를 띠고 있다. ‘접촉’의 팽팽한 긴장감 속으로 주인공 이안과 그녀의 딸 ‘한나’와의 이유를 알 수 없는 회상(?) 장면이 연결되어 있다. 그 장면은 불규칙적으로 한나의 성장 과정을 담고 있다. 어떤 장면은 성장이라는 순차적인 과정이 아닌 순서가 뒤바뀌어 삽입되어 있기도 하다.외계인과의 접촉과 한나의 등장은 우리에게 익숙한 시간(영화적 시간)의 흐름을 방해한다. 이는 외계인과의 접촉을 반복하며 조금씩 그들의 문자를 이해하는 과정에 그들의 문자가 가지는 ‘시간’이라는 특성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햅타포드라고 지칭되는 외계인의 문자에는 그들만의 독특한 시간관념이 내포되어 있다. 지구인에게 시간은 과거에서 현재, 그리고 미래로 흘러가는 직선을 그리며, 이러한 시제가 한 순간 한 장소에 동시에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지구인의 다양한 언어에는 반드시 시제가 등장한다. 물론 그 시제가 흐릿한 언어도 있지만 대체적으로 거의 모든 언어는 과거, 현재, 미래라는 시제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햅타포트의 문자에는 이러한 과거, 현재, 미래의 시제가 혼재되어 있다는 것이다. 비선형 문자인 햅타포드 문자는 그래서 시작과 끝이 없는 원형의 형태를 기본으로 하고 있다. 지구의 거의 모든 언어가 가로든 세로든, 오른쪽이든 왼쪽이든 시작과 끝이 분명함에 반해 햅타포드의 문자는 시작과 끝이 없다. 바로 시제가 혼재된 문자이기 때문이다.영화 컨택트는 ‘한 사람이 세상을 이해하는 방법과 행동이 그 사람이 쓰는 언어의 문법적 체계와 관련이 있다’는 언어학적 가설인 ‘사피어-워프 가설’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다른 환경에서 성장한 존재는 시간을 포함해 다른 언어적 체계를 가지고 있다는 의미다.겨우 몇 단어의 햅타포트 언어를 이해하게 되면서 한 단어의 중의적인 해석을 두고 협력관계였던 세계 각국은 의견이 갈린다. 갈린 의견에 따라 한 국가가 외계인에 대해 ‘공격’이라는 선제적인 조치를 취하자 세계는 공격의 카드를 꺼내든다. 그리고 공격할 것인가, 대화할 것인가의 결정을 두고 이야기는 절정에 오른다.미지와의 접촉, 낯선 세계에서 온 존재들과의 대화의 도구로 음악, 수학, 문자를 사용한 세 편의 영화는 ‘접촉’이라는 공통된 내용으로 각기 다른 전개를 펼친다. 그 속에 철학적인 질문과 수학적·과학적 질문과 용어들을 등장시킨다. 어려울 수 있지만 내용만으로도 충분히 흥미로운 영화들이다. 등장과 함께 공격하거나 ‘접촉’의 복잡다단한 과정을 생략한 수많은 외계인 등장 영화들과는 다른결의 영화들이다.이 영화들을 통해 오늘, 모처럼 밤 하늘을 올려다 본다. ‘가슴 속에 하나 둘 새겨지는 별’들을 향해 안테나를 높이 올린다. “아~! 아~! 들리는가? 들리는가? 응답바람!” /김규형 문화기획사 엔진42대표* 위에 소개된 세 편의 영화는 네이버영화와 구글플레이, 넷플릭스에서 감상하실 수 있으며, 일부 문장은 윤동주 시인의 시 ‘별 헤는 밤’에서 차용하였습니다.

2019-06-10

뿌리 이야기

서수백 대구가톨릭대 교수·한국어문학과2년 전부터 학생들과 단편소설 한 편을 필사하고, 낭독하고, 생각을 나누는 활동을 해 오고 있다. 사실 나는 소설을 잘 모른다. 정확히 말하면 소설을 이해할 수 있는 지적 감성이 매우 부족하다. 그래도 한때는 학내 문학 공모전에 당선도 해 보고 ‘문학소녀’라는 간지러운 말도 들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나는 감성은 잃어버리고 ‘팩트(fact)’와 ‘실용성(utility)’만을 중시해 온 듯하다. 학생들과 소설을 읽기로 한 것은 처음에는 권유에 따른 것이었고 이후엔 자연스러운 내 의지였다. 솔직히 사실과 실용을 중시하기 때문이라는 건 핑계일 뿐이고 소설을 읽지 않은 건 순전히 독서에 대한 내 게으름 탓이다. 어떤 장르를 읽든 독서를 통한 배움은 참 크다는 생각을 다시금 한다. 올 5월에 네 번째 소설로 김숨 작가의 ‘뿌리 이야기’를 읽고 있다. ‘이상문학상’ 대상이라는 거창한 타이틀 때문에 이 소설을 읽기로 한 것은 아니다. 소설 ‘뿌리이야기’를 통해 우리 시대 ‘뿌리 뽑힘’에 대한 연민을 이야기하고 싶었다는 작가의 말에 공감과 진정성이 느껴졌다. 그것을 나누는 것에 대한 가치는 더욱 확신이 들었다.작가는 길가에 심겨진 나무가 먼 타국에서 옮겨져 온 것이라는 말에서 이 소설의 모티브를 얻었다고 한다. 작가는 나무가 느꼈을 뿌리 뽑힘에 대한 공포를 생각했다고 한다. 다소 비약적이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으나 작가는 노인들이 살던 집에서 죽음을 맞지 못하고 요양원이나 병원에서 죽음을 맞는 것이 뿌리가 뽑힌 불행한 모습이라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작가와 그의 작품에서 사람에게 ‘뿌리’가 무엇이고 ‘뿌리를 내린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가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은 분명하다. 내가 인상 깊게 읽은 ‘뿌리이야기’의 한 부분을 소개한다.“포도나무 뿌리는 천근성이야. 태생적으로 뿌리를 깊게 내리는 나무가 아니지. 뿌리 뻗음이 얕아서 땅 표현 가까이 뿌리를 내리지. 포도나무 뿌리가 그악스러워 보이는 것은 그 때문이지. 깊게 뿌리를 내리지 못하니까 거머리처럼 땅 표면에 달라붙어서 옆으로 옆으로 산란하게 영역을 확장해 나가는 거야 (중략) 호두나무 같은 심근성 나무는 뿌리를 깊이, 단순하게 내리지. 당신을 처음 봤을 때 심근성 나무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어.”“어떤 포도농장들은 포도나무들 사이사이에 민들레나 토끼풀 같은 잡풀을 심기도 한다는 걸 그는 모르는 듯했다. 포도나무가 물을 얻으려 잡풀과 경쟁하느라 뿌리를 땅 속 깊이 내리는 효과를 볼 수 있기 때문에 전략적으로 그렇게 한다는 것을. 천근성인 포도나무 뿌리가 태생적인 기질을 거스르고 땅속 깊이 내리면 생산량은 줄어들지만 품질이 좋아지기 때문에 그렇게 한다는 것을. 수평을 지향하는 천근성 식물과 수직을 지향하는 심근성 식물을 밀식하면 뿌리의 모양과 성장 특성이 달라 공존이 가능하다는 것을. 심근성 식물만 심었을 때는 경쟁하듯 키 재기를 하면서 서로를 도태시킨다는 것을. 천근성 식물만 심었을 때는 영역을 더 차지하기 위해 서로가 서로를 말려 죽인다는 것을.”소설 속 남녀주인공들이 하는 이 말에서 우리 시대의 모습이 떠오른다. 뿌리를 내리려는 사람, 뿌리를 내리지 않으려는 사람, 뿌리를 뽑는 사람과 뿌리 뽑힘을 당하는 사람이 섞여 사는 우리네 삶의 모습이…. 그리고 얼마 전 난민 인정을 받기 위해 인천공항에서 4개월 이상을 노숙하고 있다는 앙골라인 루렌도 가족 생각도 났다. 그러나 나 역시 분명한 결론을 내리지 못하는 답답함을 느낄 뿐이다. ‘뿌리이야기’에서 천근성(淺根性)을 심근성(深根性)으로 변화시키는 전략으로 양질의 포도를 수확하는 포도농장 사람들의 지혜가 필요하다. 천근성의 나무와 심근성의 나무가 함께 공생할 수 있는 책임감과 연대감을 새삼스레 되새기게 된다.

2019-06-10

빨리 빨리 vs 뽈레 뽈레

피라미드를 연구하던 영국 고고학자들은 3천년 전에 미라를 발굴합니다. 미라는 손에 꽃 한 송이를 들고 있었는데 밀폐된 상태에 있던 꽃에 공기가 닿는 순간 산산조각 나지요. 주위에 떨어진 몇 알의 꽃씨를 보관해 영국으로 건너옵니다. 3천년 묵은 씨앗이었을테지요. 실험 삼아 씨앗을 땅에 심어 보았습니다. 싹이 트고 건강하게 자라 꽃을 피웁니다. 당시 유럽에는 이런 수종이 없었기 때문에 꽃 재배에 관여했던 스웨덴의 식물학자 ‘다알’의 이름을 따 ‘다알리아’라는 예쁜 이름을 붙입니다.감사, 우아함, 화려함의 꽃 말을 지닌 다알리아는 3천년의 오랜 기다림 끝에 꽃망울을 틔웁니다. 끝도 없는 기다림 끝에 피어난 화려하고 우아한, 감사의 꽃입니다. 생명이란 이렇게 끈질긴 것입니다. 1천년 묵은 연꽃 종자를 출토해 심었는데 건강하게 자란 일이 보고된 적도 있습니다. 헤롯의 궁전에서 발굴된 2천년 전의 야자수 씨앗도 싹을 틔워 열매를 맺은 사건으로 유명하지요. 흔한 가로수 플라타나스 씨앗은 땅에 떨어지면 곧장 발아하지 않습니다. 껍질이 얼마나 단단한지, 땅에서 몇 년을 걸쳐 짓밟히며 껍질이 손상되어야 비로소 발아합니다. 씨앗을 심고 싹 트기를 기다리는 일, 열매를 맺는 일은 허둥지둥 서두른다고 되지 않습니다.농장의 법칙이라는 것이 존재하지요. 시험을 준비하고 치르는 일은 벼락치기가 가능할지 모릅니다. 현대 사회는 마감에 쫓겨 몇 날 며칠 밤을 지새며 무언가를 이뤄 낼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만 농장은 벼락치기가 통하지 않는 곳입니다. 기다림과 성실함을 요구합니다.빨리 빨리! 대한민국을 지금까지 성장시킨 우리 민족의 위대한 DNA이자 온갖 사고를 야기하는 양 날의 검이지요. 우리는 느린 것을 참지 못합니다. 인터넷이 속도가 느린 것을 못 참는 특징이 있기에 세계에서 가장 빠른 인터넷 속도를 자랑합니다. 급격한 산업화와 더불어 성과 위주의 물질문명이 고유한 멋을 사라지게 했습니다. 원래 우리는 선비 정신을 지닌 느긋하고 품격 있는 문화를 갖고 있었는데 말입니다. 뽈레 뽈레! 아프리카 말인데 빨리 빨리와 비슷한 발음이지만 뜻은 정반대입니다. ‘느긋하게 느긋하게!’내면의 농장을 생각합니다. 잡초와 엉겅퀴를 제거하고 씨앗 뿌리고 몇 달 혹은 몇 년을 기다려야 할지도 모릅니다. 설령 3천년이 흐른다 해도 생명이 내 안에 존재하는 한 꽃은 기어코 피어나는 법이니까요. 그대 삶의 농장에 주렁 주렁 열매 가득한 미래가 보입니다. /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 대표

2019-06-10

수소 연료전지에 대한 기대와 한계

김학주 한동대 교수현대자동차는 수소 연료전지 개발에 향후 10년간 7.6조원을 투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왜 이런 선택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2차전지(배터리) 전기차 개발에 늦었으므로 수소전지로 판을 바꾸겠다는 생각이라면 오산이다. 길게 보고 천천히 개발하는 것은 바람직하다.향후 20년 안에 전기차가 석유차를 대체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내년부터는 전기차의 보급이 빨라질 것이다. 그것은 세계 자동차 업체들의 신차개발 계획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지금까지는 배터리를 사용하는 전기차가 대세였는데 수소 연료전지 자동차도 경쟁 대열에 합류할 수 있을까?수소 연료전지차도 성장 잠재력을 부인할 수 없다. 그 근거는 첫째, 연료를 태우지 않으므로 그 만큼 열 손실이 없고, 친환경이다. 또 지구상에 널린 것이 수소다. 둘째, 2차전지가 갖고 있는 고민에서 자유롭다. 즉 리튬, 코발트, 니켈 같은 희귀금속을 소재로 쓰지 않는다. 그리고 1회 충전시 300마일(480km) 달릴 수 있으므로 석유차에 버금간다. 1회 충전 시간도 5분 정도밖에 소요되지 않는다.그러나 단기적으로 수소 연료전지차의 보급이 쉽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자동차는 고용 연관 효과가 어떤 산업보다 커 정치적으로 문제가 해결되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이다. 만일 당장 수소전지차가 보급된다면 그 동안 천문학적인 자금 투자를 했던 배터리 전기차 기술의 가치가 떨어지거나 무용지물이 될 수 있으므로 기득권에게 반갑지 않을 것이다. 또한 수소전지차 기술을 갖고 있는 업체는 도요타, 혼다, 현대차, 벤츠 정도에 불과하므로 수소전지차가 성능 및 경제성 측면에서 배터리 전기차를 압도하지 않는 한 당장 주류가 될 수는 없다.안타깝게도 수소 연료전지는 아직 한계가 여럿 있다. 먼저 수소를 추출하는 방법 중 현재 95%를 차지하는 것은 천연가스의 메탄과 수증기를 섞어 개질(reforming)하는 방법인데 메탄은 온실가스를 유발하는 주범이다. 즉 친환경에 문제가 있을 수 있다. 또 수소를 만들었어도 사용처까지 운송해서 저장해야 하는데 지금처럼 수소저장 인프라가 갖춰지지 않은 상황에서는 운송, 보관비용이 훨씬 많이 소요된다. 차량 디자인에 있어서도 불리하다. 승용차에 수소탱크를 달고 다닐 경우 탱크의 부피가 만만치 않다. 그 만큼 차량 내 공간이 줄어들 수 밖에 없다.혹시 중국이 판도를 뒤집어 줄 수 있을까? 만일 중국이 에너지의 패권을 석유에서 전기로 바꾸기 위해 의도적으로 전국에 수소충전소를 설치하면 수소자동차의 매력이 생기고, 석유차를 대체할 수도 있다. 판매대수 기준으로 중국은 세계 자동차 수요의 30%를 차지하는 최대 시장이다. 그러나 중국 시장만 보고 자동차를 개발할 수 있을까? 신차개발에는 엄청난 연구비용이 소요되며, 특히 새로운 형태의 엔진을 장착할 경우 개발비용은 더 커지는데 그러기에는 30%의 시장이 너무 작아 보인다. 설령 중국이 수소 인프라에 투자를 한다 하더라도 중국이 일본업체들의 선진 기술을 따라 잡은 후에 하지 않을까?한편 수소를 얻기 위해 물을 전기 분해하는 방법도 있다. 중국 일부 지역은 그 동안 신재생 발전에 너무 많은 투자를 한 결과 2차전지가 부족해서 전기를 그냥 흘려버린다. 이런 경우 남는 전기로 수소를 만들고, 이를 전기가 필요한 지역으로 옮겨 발전을 할 수 있지만 일반적인 경우는 아니다. 중국은 신재생 발전을 통해 전기 생산을 늘리고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여전히 전기가 부족하다. 아직 발전의 70%를 석탄에 의존한다.당분간 수소 연료전지는 트럭이나 기차와 같이 수소탱크를 장착하는데 공간적 부담이 없고, 큰 힘이 필요한 운송수단 위주의 틈새시장에서 사용될 전망이다. 그러므로 수소전지가 2차전지의 수요성장세를 가로막지는 못할 것으로 보인다.

2019-06-10

플라스틱 프리챌린지

‘플라스틱 프리 챌린지’ 캠페인은 플라스틱 제품과 일회용품 사용을 줄이기 위해 세계자연기금(WWF)이 주관해 시작한 친환경 운동으로, 머그컵과 텀블러 등 재활용이 가능한 친환경 제품을 사용하는 사진을 찍어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 게재하고 다음 참여자를 지목하는 릴레이 환경 캠페인이다.지난해 10월 유럽연합(EU) 의회는 ‘특정 용품에 대한 1회용 플라스틱 사용 금지 규제안’을 통과시켰고, 2021년부터는 전 분야에 걸쳐 대대적으로 제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미국에서도 역시 작년 5월 캘리포니아주를 시작으로 로스앤젤레스가 가세했고, 올해부터는 뉴욕까지 대부분 대도시에서 커피 컵과 빨대, 포장용기 등에 플라스틱 활용을 금지했다.한국도 지난해부터 커피 전문점에서 1회용 빨대 및 컵 사용을 금지하는 정책을 시작으로, 올해 들어 자원의 절약과 재활용 촉진에 관한 법률 시행규칙에 따라 지난 4월1일부터 대형 마트와 165㎡ 이상의 슈퍼마켓에서 비닐 봉지 이용을 금하고, 제공 시 최대 300만원의 과태료를 부과하고 있다. 이는 한국 국민 1인당 연간 420장 정도의 비닐 봉지를 쓰고, 100㎏에 이르는 플라스틱을 소비해 전 세계 플라스틱 소비량 1위국이라는 오명을 쓰고 있다.현재 전 세계가 해마다 생산하는 플라스틱 양은 3억3000만t. 1950년대부터 지금까지 생산된 약 83억t은 미국 뉴욕의 맨해튼을 3.2㎞ 깊이로 묻어버릴 수 있는 규모의 양이다.문제는 그동안 생산된 플라스틱의 재활용 비율이 불과 9%에 그치고 있으며, 79%는 그대로 폐기물이 되었다는 점이다.지금 추세대로라면 2050년까지 폐기되는 플라스틱 쓰레기는 약 120억t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이고, 이 중 약 1천200만t은 매년 바다로 흘러가 잘게 쪼개진 뒤 세밀한 미세 플라스틱 덩어리가 돼 해양 생태계를 교란하고, 결국 사람에게까지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환경보호를 위한 최소한의 노력이 될 ‘플라스틱 프리챌린지’ 캠페인이 전세계에 환경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19-06-10

통합과 협치를 약속한 대통령은 누구인가

변창구대구가톨릭대 명예교수·국제정치학문재인 대통령은 2년 전 취임사에서 “저는 감히 약속드립니다. 2017년 5월 10일 이날은 진정한 국민통합이 시작된 날로 역사에 기록될 것입니다.…. 분열과 갈등의 정치를 바꾸겠습니다. 보수와 진보의 갈등은 끝나야 합니다. 대통령이 나서서 직접 대화하겠습니다.…. 군림하고 통치하는 대통령이 아니라 대화하고 소통하는 대통령이 되겠습니다”라고 했다. 또한 취임 당일 각 당의 대표들을 만난 자리에서 “야당과도 빈번하게 대화하고 협력, 타협하는 정치를 할 것”이라고 하면서 협치(協治) 의지를 거듭 밝혔다.이처럼 통합과 협치를 국민 앞에서 엄숙히 약속했던 우리의 대통령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여당과 야당, 보수와 진보의 갈등은 날로 격화되고 있고 민생을 챙겨야 할 국회도 파업상태인데, 문제해결의 열쇠를 쥐고 있는 제왕적 대통령은 대화와 협치에 매우 인색하다. 최근 문 대통령이 취임 2주년 기자회견에서 말한 것처럼 “적폐청산이 이뤄진 다음 새로운 나라를 만드는데 공감이 있다면 협치하고 타협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면 도대체 그 때가 언제이며, 앞으로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하는가? 정치적으로 악용될 가능성이 큰 적폐청산을 이유로 국민통합과 협치를 미룬다면 이제 1년도 채 남지 않은 총선을 앞두고 점점 더 극단으로 치닫고 있는 국민적 갈등과 적대감은 치유할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대통령은 왜 통합과 협치를 약속한 초심을 지키지 못하고 독선과 아집에 빠지고 있는가? 파스칼(B. Pascal)은 “독선과 아집은 대상(사물이나 사안)을 바라보는 관점의 편향성에서 비롯된다”고 했다.이것은 바로 ‘확증편향(confirmation bias)’, 즉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고, 믿고 싶은 것만 믿은 결과’이다.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용비어천가를 불러대는 예스맨(yes man)들’에게 둘러싸여 있으면 확증편향은 더욱 심해진다. 대통령이 이러한 편향성을 가지고 있는 한 국민통합이나 야당과의 협치는 불가능하다.그렇다면 통합과 협치를 위해 대통령에게 요구되는 인식과 태도는 무엇인가?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대통령의 ‘민주적 정치정향(political orientation)’이다. 민주주의에서 가장 중요한 원칙은 여당과 야당, 보수와 진보라는 서로 견해를 달리하는 정치세력들 간의 대화와 타협이다. 이것은 대통령도 인간 능력의 유한성 때문에 정치적 오류를 범할 수 있음을 인정하고 상대방의 견해를 존중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는 천사, 당신은 악마’라는 이분법적 흑백논리는 인간에 대한 이해 부족에서 비롯된 매우 비민주적인 정치정향이다.문대통령은 정치적 동지였던 노무현 전 대통령도 “독선과 아집, 배제와 타도는 민주주의의 적”이라고 항상 경계하였음을 잊지 않아야 한다.민주주의체제에서 대통령은 갈등과 분열의 논리를 배격하고 협력과 통합의 가치를 적극 수용해야 하기 때문이다.그러나 불행하게도 우리의 헌정사를 되돌아보면 제왕적 권력을 가졌던 대통령들은 하나같이 독선과 아집에서 벗어나지 못하여 대부분 불행한 종말을 맞이하였다. 이처럼 ‘절대 권력은 절대적으로 부패하는 법’이기 때문에 대통령의 선의와 약속만 믿고 그가 독선을 버리고 협치를 할 것으로 기대할 수는 없다. 따라서 국민은 대통령의 독선과 아집으로 인한 정치적 오류를 끊임없이 감시·감독하지 않으면 안 되는데, 이 때 특히 여론형성자(opinion maker)로서 ‘언론과 지식인’의 역할이 중요하다. 사회정의와 국민통합의 구현에 앞장서야 할 언론과 지식인들은 권력과 야합하는 ‘외눈박이 언론’이나 권력에 아부하는 ‘어용 지식인’이 되어서는 안되며, 대통령의 ‘독선과 아집에 대한 비판자’이자 ‘통합과 협치를 위한 촉진자’로서 올바른 역할과 책임을 다해야 한다.

2019-06-10

‘은퇴 나이’

우리나라에서 법적 정년이 모든 사업장에서 60세로 늘어난 것은 불과 2년 전 일이다. 그 이전만 해도 회사마다 정년 나이는 들쭉날쭉했다. 국회 입법조사처 자료에 따르면 2012년도에 우리나라 기업의 평균 정년은 58.6세로 조사됐다. 정년제도란 근로자가 일정한 연령에 도달하면 노사 당사자의 의사와 관계없이 근로관계가 종료되는 것을 의미한다. 평생직장이나 연공서열식 관념이 강한 우리나라 기업문화에서 고임금, 고연령 근로자를 자연스럽게 배제하고 인사의 신진대사를 확보하는 정책으로 적절했다.그러나 국민의 수명이 늘고, 노령인구가 증가하면서 발생하는 사회적 문제를 보완하기 위해서는 정년 연장의 필요성이 강하게 대두됐다. 모든 직장에서 법적 정년이 60세로 확대된 배경에는 노령화 현상에 대한 대책이 주된 이유다. 이로부터 불과 2년 만에 또다시 법적정년 65세 연장 문제가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최근 대법원도 육체노동으로 돈을 벌 수 있는 나이 상한선을 만 60세에서 65세로 끌어올렸다. 우리 사회의 급속한 노령화가 사회경제적 분위기를 빠른 속도로 변화시키고 있는 현상이다.한 취업포털 회사가 설문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응답자의 82%가 정년 연장에 대해 긍정 답변을 했다. 지금의 60세 정년이 65세 정년으로 미뤄지더라도 수긍한다는 뜻이다. 금융기관을 포함 이미 우리 기업 곳곳에서도 사회적 분위기를 반영, 이런 문제가 검토되고 있다고 한다. 최근 일본이 자국의 기업들이 종업원들에게 70세까지 일할 기회를 제공하도록 의무화하는 방안을 추진키로 하자 일부 장노년층에서 이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는 소식이다.노령인구 증가가 우리보다 앞선 일본은 2013년부터 기업의 정년을 65세로 연장했다. 그러나 또다시 70세까지 고용을 의무화한다는 정부의 발표가 나자 일부 노인층 사이에서 “언제까지 일을 해야 하느냐”식의 푸념적 비판이 나오고 있다는 것이다. 정년 연장은 당연한 사회적 흐름이지만 일을 멈추고 쉬고 싶은 충동을 느끼는 노인도 적지 않다. 무한정 정년을 늦출 수만 없다. 적절한 은퇴 나이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지 않을까. /우정구(논설위원)

2019-06-09

‘김원봉’ 핵실험

안재휘 논설위원결론부터 먼저 말하고 시작하자. 김원봉(金元鳳)은 독립운동가인가? 그렇다. 그는 애국지사인가? 그렇다. 김원봉은 국가유공자인가? 아니다. 그는 대한민국을 반대한 사람이다. 김원봉은 6·25 전쟁의 전범인가? 그렇다. 그는 민족상잔의 비극을 일으킨 북한 정권의 핵심이었다. 김원봉은 서훈의 대상이 될 수 있나? 아니다. 그에게 훈장을 주면 그와 그의 가족들이 보훈 대상이 되는데, 나랏돈이 그렇게 투입되는 것은 국민 정서에 맞지 않는다.문재인 대통령이 현충일 추념사를 통해서 느닷없이 소환한 인물 하나가 정국의 핵폭탄으로 등장했다. 문 대통령은 “광복군에는 무정부주의 세력 한국청년전지공작대에 이어 약산 김원봉 선생이 이끌던 조선의용대가 편입돼 마침내 민족의 독립운동역량을 집결했다”면서 “통합된 광복군 대원들의 불굴의 항쟁 의지, 연합군과 함께 기른 군사적 역량은 광복 후 대한민국 국군 창설의 뿌리가 되고, 나아가 한미동맹의 토대가 됐다”고 밝혔다.문 대통령의 발언을 듣는 순간 걱정스러운 마음이 든 사람들은 부지기수였을 것이다. 간단없이 발생하는 정치권의 막말 파동을 둘러싸고 가뜩이나 헝클어져 버린 정국 속에서 대통령의 도발적 발언이 처음이 아니라는 것이 더 문제다. 3·1절 기념사에서의 ‘빨갱이’, 5·18 기념사에서의 ‘독재자의 후예’ 발언의 여진이 채 가시지 않은 마당이다. 도대체 이 나라 대통령이 진심으로 바라는 바는 무엇인가.문 대통령이 ‘약산 김원봉’을 치켜세운 일은 그게 언제 어떤 자리였느냐부터 따져봐야 한다. 예순네 돌을 맞은 현충일이었고, 하필이면 6·25 전쟁으로 희생된 호국영령들이 묻혀있는 국립서울현충원이었다. 굳이 그 자리에서 김일성으로부터 훈장까지 받은 북한 권력 핵심의 이름을 불러 찬양한 것은 아무리 생각해봐도 인식의 오작동이다.배려심이 부족한 청와대의 행태는 그 며칠 전에도 있었다. 청와대는 현충일을 앞둔 지난 4일 천안함 폭침·연평해전 유가족을 비롯한 보훈가족들을 초청한 오찬 자리에서 북한 김정은과 문 대통령이 손을 맞잡은 사진이 담긴 안내서를 배포해 참석자들의 반발과 정치권의 비판을 샀다. 5·18 피해자들 앞에 전두환 대통령 부부와 문 대통령 부부가 손을 맞잡은 사진을 배포한 격이라는 비아냥이 조금도 지나치지 않을 패착이다.예상대로 심각한 후폭풍과 국민 갈등이 불거지고 있다. 야당 인사들이 줄줄이 맹비난을 퍼붓고 나섰다. 문 대통령이 새정치민주연합 대표 시절인 2015년에 했던 “약산 김원봉 선생에게 마음속으로나마 최고급의 독립유공자 훈장을 달아 드리고 술 한 잔을 바치고 싶다”고 했던 발언이 되살아나고 있다. 차명진 전 의원이 “문재인은 빨갱이”라는 막말까지 쏟아내어 세상이 또 시끄럽다. 조선의열단 창단 100주년을 맞아 다양한 기념사업을 추진 중인 국내 7개 독립운동 관련 단체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나섰다. 이들은 오는 8월부터 11월까지 광주·대구·대전·부산을 순회하며 ‘약산 김원봉 서훈 대국민 서명운동’을 전개한다고 밝혔다. 이래저래 민심은 더욱 갈기갈기 찢어지게 생겼다. 해방 전 조선의열단의 활약이 제대로 평가되는 것은 맞지만, 아무리 그 말로가 짠하다 해도 6·25 전범까지 미화(美化)하는 것은 결코 바른길이 아니다.친일 행적이 드러난 국가유공자를 유공자 호적에서 뺀다는 얘기도 있다. 손혜원 의원은 부친이 공산주의자였지만 전향해 경찰의 대공 수사에 협조했기 때문에 서훈 결정에 하자가 없다고 주장한다. 5·18민주화운동 유공자 중에 석연치 않은 인사가 적지 않다는 논란도 있다. 도대체 무엇이 진실인가. 어떻게 하는 것이 정의롭고 온당한 것인가. 그러잖아도 복잡하고 어지러운 정치판에, 노림수를 알 길 없는 문 대통령의 ‘김원봉’ 핵실험 연기가 자욱하다. 이 나라의 자유민주주의는 지금 온전한가.

2019-06-09

마음을 움직이는 방법 (2)

찰스 블론딘은 폭포의 거대한 굉음을 뚫고 등에 업힌 남자에게 외칩니다. “힘을 빼요! 당신은 이제 찰스 블론딘이오. 내 한 부분입니다. 내가 흔들리면 당신도 흔들려야 해요. 당신이 균형을 잡으려고 노력하지 마세요. 당신이 노력하면 우리는 둘 다 죽습니다. 나를 완전히 믿고 힘을 빼고 내 일부가 되세요.”두 사람은 목적지까지 건너는데 성공합니다. 숨죽여 보던 관중들은 두 사람에게 감정이 이입되어 마치 스스로가 나이아가라 폭포를 건넌 것처럼 부둥켜안고 눈물 흘리며 열광하고 기뻐합니다. 블론딘은 훗날 남자의 정체에 대해 밝히지요. 자신의 매니저 해리 콜코드(Harry Colcord)였습니다. 만약 그대가 찰스 블론딘의 매니저였다면 과연 그대는 콜코드처럼 행동하실 수 있었을까요? 콜코드의 동기는 과연 무엇이었을까요? 경영학에서는 이 일화를 동기부여를 설명할 때 자주 인용합니다.혹자는 콜코드의 동기를 ‘두려움’이라고 해석합니다. 만약 거절한다면 블론딘은 자신의 매니저조차 신뢰할 수 없는 존재가 될 것이고 두 사람의 사업은 망할 것이라는 두려움이 커서 지원했을 수 있다는 겁니다.두번째 해석은 ‘이익’ 때문이라는 겁니다. 두뇌 회전이 빠른 콜코드는 이 사건을 커다란 비즈니스의 기회로 보았던 거지요. 타인의 목숨을 담보로 외줄을 타는데 성공한다면 블론딘의 상품 가치는 상상을 초월하며 폭등할 것을 계산한 겁니다.마지막 세번째 해석이 있습니다. 사랑과 신뢰 때문이라는 겁니다. 콜코드는 이미 찰스 블론딘의 묘기와 그의 능력, 성품에 대해 익히 잘 알고 있었고, 실력을 추호도 의심하지 않았기 때문에 망설이지 않고 업힐 수 있었던 겁니다. 마치 엄마가 자기 자식을 구하기 위해 불길 속에도 뛰어드는 것처럼 무조건적인 사랑과 신뢰가 콜코드와 찰스 블론딘 사이에 형성되어 있었을 것이라는 해석이지요. 어떤 해석이 가장 합리적인 추정일까요? 사실 콜코드의 동기에 대해서는 아무도 알지 못합니다. 워낙 오래 전에 있었던 일이었고 당사자들이 이에 대해 언급한 바가 없기 때문이지요.그대가 이끄는 조직이 국가이건, 도시이건, 혹은 회사이건, 교실 또는 가정이건. 두 사람 이상 모인 곳에서 우리는 언제나 영향력을 행사하는 리더의 위치에 설 수밖에 없습니다. 그대가 발걸음 옮기고 딛는 곳마다, 구성원들 사이에 사랑과 신뢰가 차오르고 아름다운 헌신이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는 멋진 일들이 오늘도 가득한 날이시기를 기도합니다. /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 대표

2019-06-09

행정기관의 좋은 결정과 원칙있는 융통성

김준홍 포항대학교수오리(duck) 혹은 부두(dock).이 두 단어는 환경보전이냐 개발이냐의 가치 충돌을 표현한 상징적인 말이다. 인류는 산업혁명 이후 대량생산, 대량소비를 하면서부터 이 문제를 놓고 끊임없이 논쟁을 이어왔다. 어쩌면 인간이 삶을 영위하는 동안은 필연적으로 예견된 것으로 볼 수 있다. 환경보호주의자는 쾌적한 환경을 통한 행복한 삶의 추구를, 개발론자는 공장 유치나 건설 및 개발로 생기는 경제적 혜택으로 안정된 생활 영위에 가치를 두고 있다. 사실 자세히 들여다 보면 둘 다 궁극적으로는 인간 ‘삶의 질’ 향상에 관한 문제로 지향점은 같다고 볼 수 있다. 다만 추구하는 가치관의 무게를 어디에 더 두느냐에 따라 관점이 달라 보이는 것 뿐이다.환경보호의 중요성에 대한 숭고한 보편적인 가치는 전 세계적으로도 인정되고 있다. 그러나 각론으로 들어가서 환경문제 해결을 위한 정책을 보면 각국마다 경제발전의 단계, 산업구조 차이, 무역에서의 유·불리 등 처한 상황에 따라 나라별로 차이가 있다.최근 경상북도가 포스코 포항제철소 2고로에 대해 10일간의 조업정지를 사전 통지했다.브리더는 고로 내부 압력이 급격하게 상승할 때 이를 통해 압력을 배출하여 폭발을 사전에 방지하는 설비로, 문제가 된 것은 폭발 등 비상시에만 열도록 되어 있는 것을 정기적인 수리작업을 위해 한두 달에 한 번씩 용광로를 정비하면서 임의로 브리더를 열어 대기오염 물질을 무단 배출했다는 이유에서다.포스코를 비롯한 철강업계는 이 같은 운영 방식은 지난 100여 년 동안 미국, 유럽, 일본 등 해외선진 제철소에서도 안전 때문에 같은 방식으로 정비 및 개방하고 있으며 현재까지는 다른 기술적 대안이 없다고 한다. 그리고 배출되는 것은 대부분 수증기로 추정되며, 어떤 물질이 얼마나 나오고 있는지에 대해 뚜렷한 조사 결과가 없다고 항변하고 있다.이번 조치로 시민들은 지금까지 포스코가 실행한 환경보전 노력과 투자에 대해 의구심을 가지는 한편, 지진으로 어려운 지역 경제에 조업정지가 미칠 영향 등으로 우려와 당혹감을 보이고 있다.행정기관은 철강업계의 주장 속에 다소 궁색한 변명이 보이더라도, 조업정지 처분에 앞서 환경단체와 지자체, 환경부, 철강업체 등 관련 기관들이 모여서 세계철강협회나 선진 철강회사에 대안 기술이 있는지 문의도 해보고, 보완할 수 있는 기술개발 및 투자 기회제공, 배출되는 물질에 대한 유해 여부 및 성분조사 등 활발한 정책적 논의나 종합적·다각적 검토가 충분히 이루어졌는가 하는 아쉬움이 진하게 남는다.최근 미세먼지 파동 등 대기환경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이 그 어느 때 보다 높고 민감한 시기에 배출 물질성분에 대한 진실 여부와 상관없이 철강업계도 오랫동안 용인된 기술적 관행이라는 변명은 대중의 눈높이에 맞지 않다. 이번을 계기로 포스코가 발표한 환경보전에 대한 투자와 변화는 초일류기업의 약속이라 시민들은 지켜볼 것이다.행정기관은 좋은 결정이란 “좋은 가치와 목적”을 지닌 정책이어야 한다는 것을 신중하게 생각할 필요가 있다.왜냐하면 그 결과가 지역사회 구성원의 대다수가 공감하고 지지하는 공동의 이익을 가져와야하기 때문이다. 관계기관의 ‘조업정지’ 처분은 매뉴얼에 충실한 목적 지향적 결정이지만, 그 수단이 목적을 정당화하기에는 뭐라고 콕 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부작용과 무리가 따른다.‘원칙있는 융통성’으로 환경정책 고유의 가치와 목적이 빛을 발하기를 기대한다!

2019-06-09

강제이주 고려인들의 명예 회복 문제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한인들의 연해주 이민의 역사는 상당히 오래다. 1863년 함경도 무산 최운보 등 13가구가 크라스키노로 집단 이주한 것이 최초 이민이다. 연해주는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애국지사들의 망명지가 되기도 하였다.이상설, 최재형, 안중근, 홍범도, 문창범 등은 이곳에서 활동하였으며 이름 없이 죽어간 지사들도 상당히 많다. 조선에서 온 이주민들은 초기에 포시에트 부근 지신허(地新墟)에 첫 정착지를 마련하였다. 후일 이들은 우수리스크나 블라디보스토크로 진출하여 1930년대에는 이주민이 20여만 명 이상으로 늘어났다. 이들은 신한촌을 중심으로 학교와 신문사를 세우고 권업회를 결성하여 삶의 기반을 다져 나갔다.이 때 소련 독재자 스탈린은 연해주의 고려인을 중앙아시아에로의 집단이주 계획을 세운다. 연해주 고려인들의 ‘일본첩자’ 활동을 미리 막고, 그들의 ‘자치권 요구’를 사전 차단한다는 명분이었다. 스탈린은 소련 인민위원회 결정 No. 1647-377cc호에 의해 1937년 10월 연해주의 고려인 17만2천여 명을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시켜 버렸다. 사전 예고도 없이 3∼7일 전에 통보만 하고 며칠 분 식량만 휴대시켜 화물 열차에 짐짝처럼 실었다. 이 무자비한 음모를 위해 고려인 약 2천500여 명을 사전 검속하여 ‘반혁명’ 분자로 몰아 처형하였다. 이에 한 달 간 이송 도중 1천500명의 조선인이 죽어 나갔지만 그들은 승차 자체를 거부할 수는 없었다.조선인들은 그해 11월 겨울 칼바람과 배고픔 속에 중앙아시아의 낯선 땅에서 하차당했다.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 키르기스스탄 황무지에 내동댕이쳐진 것이다.억새와 잡초만 무성한 황무지에 흩뿌려진 이들의 고통은 이루 형언할 수 없었다. 그러나 고려인들은 이를 악물고 새로운 땅을 개간하였다. 그들은 ‘고본질’이라는 특유의 협동농업을 통해 생산력을 증대시켰다. 다행히 우즈벡 불멸의 ‘노력 영웅’ 김병화와 같은 걸출의 인물도 탄생하였다. 이들 고려인 3세 중에는 법조인, 교수 등 성공한 사람도 더러 있지만 아직도 고통의 세월을 보내는 사람도 많다.1937년 스탈린 정권의 고려인 강제 이주 정책은 그 정당성을 찾기 어렵다. 그들이 내세운 조선인의 ‘일본 첩자설’이나 ‘자치요구설’은 그 근거가 희박하다. 당시 연해주 고려인 대부분은 조선 땅에서 살기 힘들어 이주한 생계형 이민자들이었다.이들은 항일 투쟁에 앞장선 조선독립운동가들의 뜻에 따라 일본 첩자 역할은 엄두도 낼 수 없었다. 오히려 이들은 러시아의 도움으로 조국의 광복에 힘을 기울였을 뿐이다. 또한 당시 연해주 고려인들은 러시아의 유대인처럼 자치권을 요구할 형편도 되지 못했다. 결국 강제 이주는 스탈린 정권의 잘못되고 무자비한 정책 결정의 결과일 뿐이다. 차라리 소련은 중앙아시아 황무지 개발에 농사 잘 짓는 조선인이 필요했다고 고백하고 사죄를 구했으면 좋았을 것이다. 1953년 스탈린 사망 후 소련 당국의 입장은 많이 달라졌다. 흐루시초프는 1955년 고려인들의 법적 정치적 명예회복을 하겠다고 선언하였다. 소연방이 해체된 후 러시아 당국은 1992년 ‘고려인 강제이주 백서’까지 출판하였다. 이는 후일 러시아연방 최고회의 민족문제협의회가 소련 시기에 탄압받았던 민족들의 복권에 관한 조사 활동을 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 그 결과 한·러 수교 후 1993년 러시아 고려인의 복권에 관한 법령이 제정되었다. 이 법은 조선인들의 강제 이주가 잘못이며 그들의 명예는 회복해야 한다는 것이다. 늦으나마 다행한 일지만 그것이 중앙아시아로 끌려간 고려인들의 원한을 달래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러시아 등 여러 나라에 분산 거주하는 고려인들의 명예뿐 아니라 실질적 보상책도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우리 정부의 적극적인 외교적 노력이 요구되며, 남북한이 힘을 합쳐야 할 시점이다.

2019-06-09

‘프리 솔로’

2018년에 만든 다큐멘터리 영화라고 한다. 프리 솔로 선수라고 해야 하나? 알렉스 호놀드는 드디어 요세미티 공원 암벽한 엘 캐피탄에 도전하기로 한다. 914미터 높이, 해발로 치면 2300미터의 화강암 암벽 덩어리 엘 캐피탄. 여기 어떤 등산 장비도 없이 오로지 맨손과 맨팔로, 등산화만 신은 채 오르고자 하는 것이다.어째서 이렇게 프리 솔로라는 말이 붙었는지 모르지만 어감부터 이런 류의 등반에 딱 어울리는 어휘라는 생각이 든다. 옛날에 어느 등반가가 등반 속에서, 산 속에서 얻는 고독을 흰 고독이라 하여 세속의 외로움 검은 고독에 대비시켰다 한다. 등반은 확실히 인생을 알게 하는, 인생에 너무나 잘 비견될 수 있는 단 하나의 종목인 것 같다.멀리서 보는 엘 캐피탄은 자연의 장관이다. 깍아지른 듯한 한 덩어리의 암벽. 이 바윗덩어리는 뭇사람들의 쉬운 접근을 결코 허용하지 않는다. 어째서 알렉스는 프리 솔로라는 위험한 도전에 빠져든 것일까? 다큐멘터리에 등장하는 실물의 알렉스는 말수 적고 자기 표현에 어려움을 겪는 듯한 내성적인 사내다. 사랑하는 사람도 있건만 그는 단 한 순간의 실수나 잘못으로 천 길 낭떠러지 아래로 추락해 버릴 수 있는 맨 손 오르기를 포기하지 않는다.어느 새벽 그는 암벽을 오르려다 도중에 그만두기도 한다. 뭔가 살벌한 예감에 사로잡혔기 때문일까. 안전 로프를 매단 채 연습할 때는 가능하던 팔바꿈, 다리 바꿈이 로프 없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에 그는 깊은 좌절을 경험한다. 언제 어떻게 새로 도전할 수 있게 될지 모르는 마음 고름의 시간이 계속된다.이 다큐멘터리를 미래를 알지 못한 채 찍은 드라마다. 이 활사실적 영화를 찍은 감독이며 카메라맨들도 날이 가까울수록 긴장에 사로잡혀 어쩔 줄 몰라 한다. 그들은 카메라를 들이대야 하지만 자칫 이는 알렉스의 도전에, 그의 날카로운 심리를 건드려 비극을 야기할 수도 있다.산악 영화를 자주 본다. 산악의 재난 영화는 그것이 가상이며 대부분은 다들 살아날 거라는 것을 아는데도 사람을 긴장할 수밖에 없도록 한다. 그런데 이 ‘프리 솔로’는 실제에 토대한 영화가 아니라 끝이 결정되지 않은 진행형 다큐멘터리 영화다.한 발 한 발, 아니다, 한 발가락 끝, 한 손가락 옮길 때마다, 저 아래로는 까마득한 낭떠러지. 0.1초의 순간에 알렉스는 이편 아닌 저편의 사람이 될 수도 있다. 끝은 어땠나? 다행히 비극은 일어나지 않았다. 엘 캐피탄 등반을 준비하는 동안에 알렉스는 어떤 유명한 프리 솔로 선수가 추락으로 목숨을 잃었다는 소식까지 듣는다. 자신도 그렇게 세상을 하직할지 알 수 없었고, 아무런 안전장치도 준비되지 않았다.알렉스가 보여주었듯이, 우리는 유머 없는 ‘프리 솔로’들일까? 나는 요즘 살아도 살아 있는 것 같지 않다. 삶과 죽음 사이의 ‘thin red line’위에 서 있는 것 같다. 삶이란 이렇게 위태로운가 한다. 나이를 많이 먹었다. 오늘은 통풍이 도져 등산용 스틱을 짚고 걷는다. 절뚝거리며. 알렉스처럼 무언가 위대한 기록조차 남길 수 없는 길을./방민호 서울대 국문과 교수 /삽화 = 이철진한국화가

2019-06-06

청와대와 자유한국당의 힘겨루기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청와대와 자유한국당의 힘겨루기가 계속되고 있다. 당초 문재인 대통령은 정국타개를 위해 지난달 9일 취임 2주년을 맞아 진행한 KBS 대담에서 대통령과 여야대표 회동을 제안했다.그러나 참석 정당의 범위에 대한 이견이 불거지며 논의는 한달 가까이 진전을 이루지 못했다. 자유한국당이 일대일 면담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여야간 대치가 길어지자 청와대에서는 지난달 31일 한국당에 ‘대통령-5당 대표 회동 직후 대통령-황 대표 일대일 회동’을 하자는 절충안을 제안했으나 한국당은 이를 거부했다.그후 한국당은 이달 2일 ‘대통령-교섭단체 3당대표 회동 직후 일대일 회동’이라는 역제안을 내놨지만, 이번에는 청와대가 거부했다.청와대는 협치를 위해 출범한 여야정 국정상설협의체의 정신을 살리기 위해 5당 대표의 전원 참석이 필수라는 입장이다.국민들은 청와대와 자유한국당의 힘겨루기 속에 국회가 공전되고 있는데 대해 양측 모두에게 매우 못마땅한 눈길을 보내고 있다.물론 막힌 물꼬를 트는 키를 쥔 것이 정권을 잡은 청와대쪽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그러나 강기정 청와대 정무수석이 손학규 대표에게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를 뺀 4당 대표와 정국타개 논의를 하면 어떻겠느냐는 제의를 했다가 손 대표가 언론에 이 사실을 폭로하는 바람에 곤욕을 치른 헤프닝에서 청와대가 정치권을 바라보는 시각이 정도에서 상당히 벗어나 있다는 사실이 드러나고 말았다.강 수석이 비록 이런저런 말로 해명은 했지만 앞뒤 정황을 살펴보면 청와대내에 자유한국당을 빼고 야4당과 정국을 헤쳐나가면 안되느냐는 강경 기류가 있었던 것이 사실이고, 그런 와중에 “야4당 대표와 논의” 운운한 것은 일종의 ‘간보기’가 이뤄졌다는 심증이 짙다. 정무수석으로서는 매우 치명적인 패착이다.정치권과 청와대간 의견을 조율해서 국정을 매끄럽게 이끌고 나가야 할 정무수석이 청와대의 강성기류에 휘둘려서 제1야당 패싱 가능성을 가늠해본 사건으로 귀결됐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강 수석이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을 상대로 어떤 제안을 하고, 물밑접촉을 할 수 있을 지 알 수 없게 됐다.이에 앞서 강 수석은 자유한국당이 추경예산이나 법안심의마저 올스톱시켜 국정이 마비되고 있는 상황인 만큼 어떤 조건을 받아들이더라도 하루빨리 국회정상화를 해야 한다는 정치권의 분위기를 청와대에 확실하게 전달하는 것이 옳았다.즉, 청와대가 자유한국당이 ‘3당대표 회동 직후 일대일 면담’으로 역제안을 해왔을 때 못이기는 체 받아들이도록 적극 설득했어야 했다. 그런데 이 마저도 국정상설협의체의 취지를 살리기 위해서는 5당 대표가 만나야 한다는 시답쟎은 이유로 거부하고 말았으니 이제 어쩔 것인가.일단 국회정상화를 위해 대통령과 3당 대표회동과 일대일 면담을 진행한 이후에 국정상설협의체를 재가동해도 되지않나.양보하고자 마음만 먹으면 별로 대단한 일도 아닌 것을 원리원칙 따지듯 꼬치꼬치 따지기 시작하면 쉽게 풀 문제도 풀리지 않는 걸 왜 모르나 싶다. 사실 여야가 협치해야 할 국회 정상화의 키를 청와대가 쥐게 된 것도 보기좋은 모양새가 아니다.청와대는 행정부의 수장인 대통령이 정부부처를 컨트롤하는 타워로서 기능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옳다.어떻든 국회정상화를 둘러싼 여야의 다툼이 길어진 만큼 이제라도 청와대가 마음을 고쳐먹고, 국회 정상화에 필요하다면 당 대표 회동형식에 관계없이 한국당의 제의를 받아들여 막힌 물꼬를 틔었으면 한다. 국민들은 소통과 협치의 국회를 언제나 볼 수 있으려나, 답답한 마음뿐이다.청와대나 여야 정치권 모두 국가 경제가 힘들고, 서민들 살림살이가 쪼그라드는 이때, 힘과 지혜를 모아 어려움을 헤쳐나가도 시원찮은 데, “때아닌 힘겨루기가 웬말이냐”고 질타하는 국민들의 목소리가 안들리는 모양이다.

2019-06-06

문산호의 기억

문산호는 장사상륙작전을 수행한 유일한 배다. 이 배는 1943년 미국 인디애나에서 건조된 2천366t의 전쟁용 수륙 양용차다. 2차 대전이 끝날 때까지 전쟁을 수행하다 1947년 한국 정부가 수송용으로 사들인 배다. 우리나라에 와서는 대한해운공사에서 수송용으로 사용했으며 전쟁이 나자 군사용으로 전환됐다. 장사상륙작전은 인천상륙작전을 성공시키기 위한 양동작전의 일환으로 단행된 전투다. 6.25 전쟁사 중에서도 잘 알려지지 않은 전투다. 작전이 치열한 첩보전 속에 비밀리에 진행 되어야 했고, 참가자 대부분이 학도병 등 민간이어서 기록도 거의 없다.1997년 3월 경북 영덕군 장사리 앞 바다에서 전쟁 당시 좌초됐던 문산호가 해병대 1사단 대원에 의해 발견된다. 47년 만에 바닷속 갯벌에서 세상 밖으로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문산호의 발견은 장사상륙작전을 세상에 알리는 계기가 됐다. 장사상륙작전이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을 위한 숨은 공로자임이 제대로 알려지고 이를 계기로 역사적 기록도 조금씩 밝혀졌다. 장사상륙작전이 일반의 기억에 남는 전기가 만들어진 셈이다. 인천상륙작전에는 유엔군과 해군 군함, 수백 척의 배 등이 동원됐으나 장사상륙작전에는 민간 선박인 문산호 1척이 다였다. 동원된 군사도 우리지역 출신 10대 학도병 772명과 해병 56명이 모두다. 임무는 적의 후방을 교란하고 보급로를 차단하는 것이다. 인천상륙작전 하루 전 새벽에 감행된 장사상륙작전은 때마침 찾아온 태풍과 적의 포격으로 해안에 도달하기도 전에 배가 침몰한다. 가까스로 육지에 도달한 병사들은 적의 공격으로 많은 희생을 치르고 끝내는 보급로 차단에 성공한다. 139명이 이 전투에서 목숨을 잃었다. 장사전투는 한 노병의 끈질긴 추적으로 최근에 문산호에 승선했던 선원 11명의 민간인 명단이 밝혀졌고 그들에게 화랑무공훈장도 수여하게 됐다. 늦게나마 그들의 넋을 위로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호국의 달. 국가의 안녕을 지키기 위해 희생한 호국영령을 추모하는 달이다. 전쟁에 대한 기억이 옅어져 가는 요즘 조국을 위해 목숨을 기꺼이 던졌던 그들의 고귀한 애국정신을 새롭게 다져볼 시간이다. /우정구(논설위원)

2019-06-06

포항시 승격 70주년

서의호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금년 포항시가 70돌 생일을 맞이했다. 1949년 시로 승격한 포항시가 이제 고희(古稀)를 맞이했고 포항시는 과거 70년 포항을 재조명하고 미래의 혁신성장동력 발굴과 비전 제시를 위한 ‘포항 미래비전 포럼’을 지난 5일 열었다. 필자는 90년대 환동해 연구회를 만들어 학자들과 함께 중국, 러시아, 일본을 돌면서 회의를 하고 환동해 발전축으로 포항을 키우려는 노력을 기울였던 기억이 새롭다. 이제 환동해지역본부가 2021년까지 흥해읍에 들어선다고 한다.환동해 중심권에서 포항의 역할은 정말 중요하다. 이미 일본은 오래 전부터 니가타를 중심으로 각 지역별로 환동해본부가 있으며 90년대 이후 환동해권의 주도권을 잡기 위한 노력을 꾸준히 진행하여 왔다. 한국을 대표하는 환동해 경제권의 중심지로서 포항의 지정학적 중요성은 누구든 부인할 수 없는 것은 사실이라고 생각된다. 또한 포항은 환동해 중심지역을 바탕으로 그레이터 포항(Greater Pohang)의 개념을 정립해야 한다. ‘그레이터’란 물리적인 면적은 아니지만 외연을 확대하는 영향력을 미치는 지역을 포괄해 ‘그레이터’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이제 현대 도시나 대학, 국가의 힘은 반드시 면적이나 구성원의 숫자에 상관없이 얼마나 세계로 뻗어나가는가 하는 것이 그 힘을 결정한다. 실리콘밸리는 샌프란시스코 남쪽 조그만 도시이지만 세계적인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그레이터 포항은 인구 50여 만의 아주 큰 도시는 아니지만 실리콘밸리가 가지고 있는 세계적인 영향력을 발휘할 잠재력이 있다. 세계적인 철강회사, 대학, 연구시설 등을 바탕으로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하는 전략이 있다면 그레이터 포항이 가능할 것이다.그레이터 포항으로 가기 위한 인프라는 어떤 것일까? 우선적으로 중요한 과제는 포항의 경제산업을 재건하는 것이다.이는 포스코가 과거철강산업에서 단일 기업으로는 세계 최고의 입지전적인 위치를 확보할 때의 전략과 포스텍이라는 대학이 세계 28위라는 업적을 내게 된 과정을 한번 살펴보고 그런 전략이 현재 경제나 산업환경이 바뀐 상태에서 어떻게 활용될 수 있는 지를 살펴보아야 한다.포스코와 포스텍을 중심으로 하는 클러스터 정책이 활용될 수 있는 분야는 포항의 미래성장엔진을 주도할 신소재, IT, 소프트웨어, 의생명, 해양산업을 비롯하여 매우 다양하다. 또 하나의 중요한 과제는 현재까지 포항이 배출한 인적물적 자원들을 동원하여 포항을 다시 활성화시키는 일이다.포스코는 지난 반세기 가까운 역사 속에 수많은 인적자원은 물론 한국산업의 기초를 제공해 왔다.포스코의 철강산업으로 인하여 자동차, 선박들의 산업이 활성화된 것이다. 이제 이러한 파생산업의 성공의 과실이 다시 포항으로 돌아와야 한다. 일반적으로 지역 도시 주변에 창업생태계가 갖춰져 있지 않으니 졸업생들이 수도권으로 갈 수밖에 없고, 인재확보를 위해 지역에 대도시권 생태계를 조성하는 노력이 필요하다.특히 인적자원은 주목할 만하다. 지역이 배출한 인재들은 이제 포항을 위해 지혜를 모아야 할 때이다. 이들의 성공의 열매를 포항으로 가져와야 한다. 이들의 네트워크는 이제 포항발전의 네트워크로 활용되어야 한다. 그들의 기술, 산업역량은 이제 포항, 우리의 자산이 되어야 한다.포항 발전을 위한 전략의 활용, 그리고 포항이 배출한 각종 인적, 물적 자원의 활용이 포항이 안고 있는 과제이며 그레이터 포항으로 가기위한 전제조건이다.​​​​​​​이와함께 첨언하고 싶은 것은 포항역같은 옛건물을 복원하여 구룡포 일본가옥거리 같이 옛것을 회복하면 유럽의 도시처럼 매력적인 도시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 경제의 활성화와 인재의 유입 그리고 현대와 옛것이 어울리는 매력적인 도시 포항! 포항시 승격 70년! 생일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2019-06-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