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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100세 삶과 과제

초고령 사회에 진입한 일본에서 100세의 삶이 실현돼 이목을 끈다. 일본 정부는 최근 일본의 100세 이상 노인인구가 7만명을 넘어섰다고 했다. 통계 시점은 다르나 2017년 기준으로 우리나라의 100세 이상 인구 3천908명인 것에 비하면 놀라운 숫자다.일본은 1963년부터 100세 이상 초고령자 통계를 잡아 왔으나 첫해 153명이던 것이 1998년 1만명을 넘어섰고 이후 줄곧 증가세라 한다. 현재 7만명의 100세 이상 노인 중 여성 비율은 88%다. 남성을 압도한다.유엔은 2009년 세계인구 고령화 보고서에서 ‘호모 헌드레드’라는 말을 처음으로 사용했다. 100세의 삶이 보편화되는 시대라는 말이다. 당시 유엔 보고서에서는 평균 수명이 80세를 넘는 국가가 2000년 6개국에서 2020년에는 31개국으로 급증할 것을 전망했다.사람의 수명은 18세기 항생제가 개발되면서 크게 늘어난다. 그 이전만 해도 35세를 넘기기가 어려웠다. 의학의 발달로 늘어난 인간의 수명은 이제 일본처럼 100세 문턱을 넘보고 있다.2015년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사람의 평균 수명이 1970년보다 무려 20살이 는 것으로 조사됐다. 불과 40년 동안 20살이 늘어난 것은 기적적 변화다. 지금 선진국에서는 평균 10년에 2.5년, 1년에 3달, 하루에 6시간 수명이 는다고 한다. 인간의 수명이 의학술과 건강한 생활습관으로 장차 얼마나 더 늘지 알 수 없으나 호모 헌드레드 시대가 열리고 있음에는 틀림 없다.호모 헌드레드는 인간이 단순히 오래 사는 것보다 건강하게 잘 사는 것을 뜻한다. 우리에게 닥친 100세 시대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고민거리다. 인생의 노후준비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우정구(논설위원)

2019-09-15

‘달’과 ‘손가락’의 혈투

안재휘 논설위원유전무죄 무전유죄(有錢無罪 無錢有罪)라는 말이 세상에 나돈 건 지난 1988년 10월이었다. 교도소 이감 중이던 지강헌(池康憲)을 비롯한 미결수 12명이 집단 탈주한 뒤, 9일 동안 서울 시내 한복판에서 인질극을 벌이다가 서로 총을 쏘거나 경찰에게 사살 또는 검거됐다. 주범 지강헌은 인질극을 벌이는 와중에 “돈 있으면 무죄요, 돈 없으면 유죄”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조국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법무부 장관 취임은 아무리 돌아봐도 무리다. 문재인 정권은 가라앉지 않는 여론 악화를 차단하기 위해 온갖 술수를 다 동원하고 있다. 조국 장관 딸의 의학 논문 제1 저자 등재로 촉발된 공분을 ‘물타기’ 하는 일에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 아들의 서울대 실험실 사용 문제를 소환했다.때마침 제1야당의 공격수 장제원 의원의 아들이 음주운전 물의가 발생하자 오만 논리를 다 동원해 역공에 나섰다. 조국의 수신제가(修身齊家) 실패 모욕에 ‘물타기’ 하려는 치사한 선동술이 발휘되고 있는 셈이다. 민심의 거울에 어떻게 비치고 있는지를 정확하게 알 수는 없으나, 기본적으로 페어플레이를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지는 않는다.검찰이 조 장관의 5촌 조카를 인천국제공항에서 체포했다. 의혹의 키맨으로 불리는 혐의자가 날쌔게 해외로 달아났다가 장관 임명 직후에야 돌아오는 모습을 국민들은 과연 순수하게 읽어줄까. 조 장관 임명과정에서 불거진 논란 중에 최대의 모순은 ‘피의사실 공표’ 시비다. 조국 관련 수사기밀이 검찰로부터 흘러나온다는 의심인데, 새삼스럽고 뜬금없는 불평으로 들린다.청와대와 더불어민주당은 검찰이 아니고서는 출처를 따로 짐작할 수 없는 수사기밀들이 언론과 야당에 흘러 다닌다는 주장이다. 돌이켜 보면 언제 그런 적이 없었던가를 오히려 생각하게 된다. 형법 제126조(피의사실 공표)는 ‘피의사실을 공판청구 전에 공표한 때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5년 이하의 자격정지에 처한다’고 명백하게 규정하고 있다.생생하게 기억되는 일들이 있다. 대통령 자리에서 끌려 내려와 치욕스러운 영어(囹圄)의 생활을 하고 있는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국정농단’ 사건 수사는 시종일관 ‘피의사실 공표’의 광풍 속에 펼쳐졌다. 광폭으로 전개된 소위 ‘적폐 청산’ 수사는 또 어땠나. 정치보복으로 비친 그 편파 수사 역시 ‘피의사실 공표’를 통한 여론선동을 앞세워 자행돼온 게 어김없는 사실 아니던가.그때는 괜찮고 지금은 안 된다는 의식을 가진 유치한, 법치를 향한 어불성설의 ‘내로남불’ 의식이 탄식을 부른다. 온전한 정신이라면 그때도 잘못됐고, 지금도 잘못이라고 말해야 한다. 도둑놈 잡으라고 소리친 사람을 망신주기 위해 온갖 허물을 털어내는 구상유취한 짓은 제발 멈춰야 한다. 달을 보라 했더니 가리키는 손가락만 시비하는 일에나 몰두하는 구태정치는 청산돼야 한다. 아니, 그 ‘달’과 ‘손가락’의 혈투, 유권무죄(有權無罪)의 몰염치에 짓밟혀 쓰러지는 민생과, 무너지는 나라의 미래를 살려내야 한다. 이렇게 가서는 안 된다.

2019-09-15

산소카페 청송군, 황금사과를 낳다!

윤경희 청송군수고대 그리스의 우화에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있다면 대한민국엔 황금사과를 낳는 청송군이 있다. 청송사과는 청송을 대표하는 특산품이 된지 오래다. 7년 연속으로 대한민국 대표브랜드 대상을 수상하며 이를 증명하고 있다.지역 농수산물이 특산품이 되기까지는 최고의 품질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탁월한 자연조건이 갖추어져야 한다. 청송군은 해발 250m 이상의 산간지형이자 고지형 분지이며 생육기간 중 일교차가 13.4℃로 커 사과 재배에 아주 적합하다. 대륙성 기후와 해양성 기후가 교차하는 등의 날씨 여건도 플러스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타 지역에 비해 고목의 사과가 차지하는 비중이 낮은데다 계속해서 시대에 맞는 품종으로 경신하고 있다. 관수 및 지주시설 등에 대한 투자도 끊임없이 이뤄지고 있다. 품질 좋은 퇴비를 사용하는 것은 물론 지속적인 교육으로 사과재배 기술까지 월등히 향상됐다. 이런 여러 조건들이 톱니바퀴 맞물리듯 딱딱 맞아 들어가 명품 청송사과를 만들어 내고 있다.시너지 효과라는 말이 있다. 여러 요인이 한꺼번에 작용해 하나씩 미칠 때보다 더 커지는 상승 작용을 일컫는다. 청송사과가 그 예에 딱 맞는다. 천혜의 자연이 만들어 준 생육 환경이라는 바탕 위에 다양한 정책이 덧대져 엄청난 시너지 효과를 불러온 것이다. 시너지 효과는 명품 청송사과의 품질, 유통 및 홍보 등 다방면에서 업그레이드하는 결과를 불러왔다.먼저 남북농업교류협력사업을 들수 있다. 나는 지금까지 축적해놓은 사과 재배기술을 북한으로 이전하여 청송사과원을 조성한다면 ‘통일사과’, ‘평화사과’라는 브랜드와 또 ‘국민사과’라는 이미지까지 얻게 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면 자연스레 브랜드 가치의 상승을 불러올 것이며 사과의 국내 소비가 확산되는 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해외 수출로 확대되리라 전망한다.두 번째는 청송사과의 한국시리즈 진출이다. 지난 해 한국시리즈 2차전이 열린 잠실종합운동장 야구장에서 ‘청송황금사과 한국시리즈 나들이’라는 주제로 대대적인 청송사과 홍보를 펼쳤다. 현장에서 사과 맛을 본 서울시민들의 반응은 야구장의 함성만큼이나 뜨거웠고 청송사과의 명성을 드높이는데 일조했다.다음은 전국 146개 이마트에 청송사과를 납품하게 된 일이다. 청송 사과 판매를 위해 ‘세일즈 군수’가 되겠고 임기 초부터 굳은 결의를 다졌다. 전국 최고의 사과라는 타이틀에 만족하지 않고 다양한 홍보 마케팅 활동과 유통시설 확충, 지속적인 브랜드 관리를 통한 대도시 대형마트로의 진출 등 다양한 판로를 개척해 농가 수입창출에 이바지할 것이라는 약속을 지키게 됐다.이밖에 국내 최대 농산물 도소매 매장인 서울 하나로클럽(하나로마트) 양재점에서 지역 농협들과 함께 청송사과 홍보 판촉행사를 벌이는가 하면 청송사과GAP사업단, 농촌지도자청송군연합회 등의 지역 농민단체들도 부산, 포항 등지에서 홍보에 발 벗고 나서며 청송사과의 위상을 견고히 다졌다.청송군은 최근 청송황금사과 브랜드 ‘황금진’에 부합하는 디자인을 개발했다. 황금색 품종인 시나노골드의 브랜드를 선점하기 위한 청송군의 야심찬 계획이자 국내 최고를 자랑하는 청송사과의 영예를 이어갈 황금사과 출시를 상징하는 순간이었다. 이를 통해 청송사과만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고 황금사과 시장에 선제 대응해나갈 전략이다.여기에 어깨를 나란히 해 올해 청송사과축제의 주제를 ‘산소카페 청송군! 황금사과의 유혹’으로 정했다. 깨끗한 공기와 자연의 아름다움을 담아 청송을 찾는 관광객들에게 청정한 인상을 심어주면서 ‘황금사과’라는 이미지를 확고히 다지기 위한 수단이다. 또 나흘간 열렸던 청송사과축제를 닷새간으로 하루 연장키로 했다. 오는 10월 30일부터 11월 3일까지 5일간 열린다.최근에는 청송사과유통센터(APC)를 새롭게 운영할 법인이 공모를 통해 결정됐다. 평가단 대부분이 농업인으로 구성돼 농민들의 의견이 최대한 반영됐다.결론적으로 청송사과의 브랜드 가치와 명성을 한 단계 드높이고 급변하는 유통시장에 대응할 독점적이고 시장 선도적인 브랜드 디자인을 활용해 청송황금사과를 전국 최고의 브랜드로 만들겠다. 청송사과가 대한민국을 넘어 세계 시장으로 발돋움하는 날까지 최선을 다하겠다.

2019-09-15

소중한 것을 지켜야 할 책임

허진욱 직장인 생각학교ASK 연구원요즘 딸 표정이 무섭게 변했다. 말로만 듣던 중2병 증세일까? 같이 밥을 먹다 작은 실수라도 하면 이내 표정이 굳는다. 레이저 눈빛으로 아빠를 째려본 후 자기 방에 들어가 문을 닫아버린다. 잠깐 당황스럽지만 허허 웃으며 이내 마음을 추스른다.딸 모습은 33년 전 내 모습과 다르지 않다. 아니다. 나는 딸보다 백배는 더 심했을 것이다. 아침부터 학교 가기 싫다고 떼를 쓰는 것은 기본이었다. 그런 미성숙한 나를 인자한 표정으로 한 번도 감정 상하지 않게 깨워 주던 어머니 마음을 이제 와서야 조금이나마 이해하는 중이다. 늦잠 때문에 아침도 먹지 않고, 학교에 가려 집을 뛰어나가면 어머니는 안타까운 표정으로 조금이라도 먹이려 했다.평생토록 ‘자식이 행복’이라며 나를 소중한 존재로 만들어 준 어머니 덕분에 지금 나도 존재한다. 권투를 하다 다쳐 얼굴에 멍이라도 생기면 어머니는 눈물을 흘리며 걱정했다. 멍을 풀기 위해 받은 달걀로 우스운 표정을 지으며 눈을 비비고 있으면 그 모습에 파안대소하며 웃는 어머니로부터 나는 행복의 방법을 배웠다. 행복해서 웃는 게 아니라, 먼저 웃음을 잃지 않을 때 행복해지는 비결을.지난 주말 요양병원을 찾았다. 자식을 못 알아보는 어머니는 그래도 나를 보고 환하게 웃는다. 내게는 어머니로부터 받은 사랑을 딸에게 줄 책임이 있다. 중2병이 심하게 도지면 즐겁게 이야기하다가 난데없이 우락부락 인상 쓰지만 아무래도 어떤가. 그저 사랑스럽다.‘욱’하고 화가 치밀기도 하지만 어머니만 생각하면 가볍게 넘길 수 있다.권투 선수였던 나는 훈련이 힘들어도, 시합을 못 해도, 친구 때문에 힘들 때도 늘 어머니에게 짜증 냈다. 어머니는 폭우를 막아주는 우산처럼 다 받아주고 끝까지 사랑을 잃지 않았다.2018년 2월 11일 새벽 5시 3분, 모두가 깊이 잠든 고요한 새벽에 갑자기 집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마치 놀이기구를 타고 흔들리고 있는 느낌처럼 몸이 떨렸다. 갑작스러운 충격에도 이내 정신을 차리고 곧장 딸 아이 방으로 달려간다. 딸도 놀라 울면서 방에서 뛰어나온다. 아내와 딸아이를 진정시키고 무슨 일이진 TV를 켜보니 포항에 규모 4.7 지진이 발생했다는 뉴스가 나온다. TV와 영화로 접했던 지진을 실제로 겪어 보니 그 위력은 대단했다. 집이 이렇게까지 흔들릴 수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이 경험을 통해 내가 지켜야 할 소중한 존재가 있다는 것을 온 몸으로 배웠다.소중한 것은 잃어버리기 전에 지켜야 한다. 비단 가족만 아니라 우리 주변에 잃어가는 소중한 것들이 많다. 그중 하나가 맑은 공기다. 미세먼지가 요즘처럼 기승 부리기 전에는 공기의 소중함을 제대로 모르고 살았다. 봄마다 초미세먼지와 미세먼지가 극성을 부린 후에 비로소 맑은 공기의 중요성을 절감한다. 미세먼지는 노약자나 어린이에게 아토피, 천식, 비염을 치명적으로 유발한다. 노인과 어린 아이는 우리가 지켜야 할 소중한 존재들이다.포항 남구 지역 생활폐기물 시설(SRF) 굴뚝 높이 때문에 문제가 많다. 다른 지역 소각장은 굴뚝 높이가 150m인데 포항은 불과 34m다. 이 낮은 굴뚝은 인근 주민의 건강과 안전을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다. 특히 면역력이 약한 아이에게는 치명적이다. 쓰레기를 태울 때 발생하는 다이옥신, 발암물질, 미세먼지 등 환경 오염물질이 그 연기 안에 가득하기 때문이다. 굴뚝을 더 높게 쌓으려면 물론 돈이 들 것이다. 소리없이 우리 아이들 폐와 몸 속에 차곡차곡 쌓이는 무서운 물질들이 주는 피해를 어떻게 돈으로 환산할 수 있을까?자녀가 아픈 것을 지켜보는 것만큼 부모로서 큰 고통도 없을 것이다. 방심하다 그 소중한 것을 잃어버리기 전에 책임감을 갖고 소중한 아이들을 지켜야 한다. 자식이 당신에게 아무리 짜증을 내고 힘들게 해도 환하게 웃어 주던 어머니의 모습에서 사랑과 긍정, 희망, 감사를 배웠듯 지금 내가 딸에게 그렇게 하고 있다. 중2병이 아무리 심해도, 세상이 나를 좌절하게 하여 힘들어도 내가 웃을 수 있고 행복해할 수 있는 것은 결국 소중한 사람이 곁에 안전하게 함께 있기 때문이다.

2019-09-15

조국 장관과 중국 고사

사실상 만신창이가 된 조국 후보자를 반대 여론이 우세한데도 대통령은 법무부 장관에 기용했다. 조국 사태는 일시적 소강국면에 들어선듯하지만 지금부터 또다른 국면에 돌입할 것이다. 이것이 정국에 어떤 영향을 줄지 아무도 모른다. 중국 고사를 통해 조국 사태의 의미를 한번 짚어 보았다.첫 번째 읍참마속(泣斬馬謖)이다. 읍참마속은 울면서 마속의 목을 벴다는 뜻이다. 공정한 업무 처리와 법적용을 위해 사사로운 정을 포기한다는 의미다. 촉나라 승상 제갈량이 가장 가까운 친구의 동생인 마속을 군령 위반죄를 물어 참수형에 처한 것을 두고 나온 일화다. 더 큰 전쟁에 이기기 위해 불가피했던 결단이었다. 머리가 비상하고 군략에도 능한 젊은 장수의 목을 베면서 제갈량도 뒤돌아 눈물을 훔쳤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문 대통령도 조국 후보자의 장관 임명을 두고 밤새 노심초사했다는 후문이다. 그가 고심 끝에 내린 선택이 향후 정국에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는 아직 모른다. 다만 제갈량의 선택과는 달랐다는 점이 눈에 띈다.두 번째는 순망치한(脣亡齒寒)의 고사다.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리다는 말이다. 서로가 의지하고 있어 한쪽이 사라지면 다른 한쪽도 안전을 확보하기 어려운 관계를 뜻한다. 조국과의 돈독한 관계이기 때문에 이번 결단이 나쁜 결과를 초래한다면 대통령에게도 역풍이 몰려 올 수 있을 것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마지막은 권토중래(捲土重來)다. 항우가 유방과 패권을 다투다 패하여 자살한 것을 두고 당나라 시인 두목이 항우가 좌절을 딛고 훗날 새롭게 도모하지 못하였음을 아쉬워한 시에서 나온 고사다. 조국 장관의 검찰개혁이 만약 성공한다면 이 고사는 조국 장관의 성공을 뒷받침할 고사가 될 것이다./우정구(논설위원)

2019-09-10

민주가 문제다

장규열 한동대 교수한 달의 소동. 장관 한 사람을 살펴 임명하기 위하여 어지러웠다. 결과를 놓고도 편갈린 마음들이 혼란스럽다. 보수와 진보, 이념 성향을 기준으로 딱 절반으로 나뉘었다. 틀린 사람은 하나도 없고 모두가 확신범이다. 무엇 때문이었을까. 우리는 무엇을 향하고 있을까. 그게 혹 민주주의가 아닐까.민주주의(民主主義). 어원을 찾으면, ‘국민이 다스리는’ 정체성을 의미한다고 한다. 군주나 독재자가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 국민이 ‘스스로’ 다스리는 사회를 만들어 간다는 지향성. 이를 구현해 가는 길에 ‘어떻게’를 놓고 보수와 진보가 갈린다. 그래서 우리 국회는 국민의 손으로 선출한 의원들이 국민을 대신하여 법을 만든다. 그 법을 역시 국민이 선출한 대통령이 국민을 대신하여 이끄는 행정부가 시행한다. 이 모든 일들이 국민을 위하여 정의롭게 진행되는지 판단하기 위하여 사법부가 존재한다. 각료의 자격과 도덕성을 살피기 위하여 국회에서 열리는 청문의 과정은 ‘국민’이 따져보는 일이 아닌가. 한 달의 진통과 청문회를 굳이 가진 뜻도 ‘국민의 검증’을 확보하기 위함이 아니었을까.국회는 이념을 놓고 갈리었을지언정, 청문 중이었다. 청문 대상 후보자를 놓고 검증하던 말미에 이르러 돌발변수가 발생하였다. ‘검찰’의 개입. 일단의 국민은 불편하였으며, 다른 쪽은 가슴을 쓸어내렸다고 한다. 국민을 대표하여 국회가 청문을 진행하는 중에, 행정부에 속한 ‘검찰’이 재단자의 모습으로 등장하는 일은 민주주의를 돕는 일일까 아니면 해가 되는 것일까. 국민을 대표하여 국정을 살피는 국회의원들은 이 일이 부끄러울까 아니면 자랑스러울까. 국민의 손으로 선출된 당신의 마당이 국민이 선출하지 않은 이들의 판단에 어지러워진 모습이 아니었던가. 이념을 내려놓고 생각해도 이는 ‘국민이 스스로 다스리는 민주주의’를 간섭하는 결과를 초래한 것이 아닌가. 앞으로 언젠가 이런 일이 발생한다면 그 땐 또 어찌할 것인가.개혁(改革)은 누구를 위하여 하는가. 특정 이념에 복무하는 개혁은 개혁이 아니다. 개혁이야말로 모든 국민에 공평해야 하며 누구나 인정하는 새로움을 지향해야 한다. 보수나 진보에만 유리한 개혁은 정권이 바뀌면 반드시 도루묵이 된다. 오늘 정부가 의도하는 개혁에도 ‘국민을 마음에 담은’ 구상이 실렸기를 기대한다. 오늘 국회는 ‘국민을 위한 청문’이 국민의 기대를 담아 끝까지 정리되지 못한 일을 돌아보아야 한다. 검찰의 권력이 도를 넘었는지 판단도 국민을 위하여 내려야 한다. 이를 바로잡기 위하여 무엇을 할 것인지도 국회는 진지하게 살펴야 한다.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가 되기 위하여 국회의 본질을 회복하여야 한다.문제는 이념이 아니다. 진짜 문제는 국민이다. 국민이 스스로 다스리는 민주주의를 정의롭게 구현해야 한다. 이념에도 휘둘리지 않을 개혁을 당겨내야 한다. 믿음과 소신에 따라 정당한 주장도 펼쳐야 하고 필요한 타협에도 나서야 한다. 완성판 민주주의는 없다. 끊임없이 만들어 가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국민이 마침내 스스로 다스리기 위하여. 문제는 민주주의다.

2019-09-10

나를 믿어주는 한 사람

극도로 열악한 환경에서 자란 이 72명 아이들에게는 주변 사람 중에 적어도 한 사람 이상 그 아이 입장을 이해하고 받아주는 어른, 믿어주는 어른이 존재했다는 겁니다.엄마, 아빠 혹은 할머니, 할아버지 심지어 삼촌, 이모, 이웃 중에서 그 아이를 가까이서 지켜봐 주고 격려해 주고 칭찬해 주고 무조건 적인 사랑을 베풀어 아이가 언제든 기댈 수 있는 심리적 언덕이 되어 준 사람이 반드시 한 명 이상 존재했다는 것을 에미 워너 연구는 입증합니다.이 한 사람이 없는 아이들, 즉 나머지 129명 아이들은 악순환의 절망에 빠질 수밖에 없었지만, 믿고 지지해 준 한 사람이 있었던 아이들 72명은 정상적인 생활을 영위할 수 있었던 겁니다. 에미 워너 교수는 이 속성을 회복탄력성(Resilience)라고 이름 붙입니다. 어릴 때 받는 무조건적인 신뢰와 사랑이 회복 탄력성의 근간을 이룬다고 결론을 내립니다.한 사람의 믿음이 우리를 살립니다. 덴마크 농가 가난한 할머니 할아버지 이야기는 안데르센의 상상력의 산물이지만, 1955년부터 40년간 걸친 하와이‘카우아이 종단연구 1’을 통해 그 믿음이 과학적으로 얼마나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는 이야기라는 것이 밝혀졌습니다.내게 필요한 것은 바로 그 한 사람입니다. 나 또한 누군가에게 그 한 사람이 되어 줄 수 있습니다. 비록 그가 하는 행동이 이해할 수 없고 타산이 맞지 않으며 하는 일마다 최악의 결과를 낸다 하더라도, 비난하거나 채찍질하거나 찌르는 말을 하지 않고, 덴마크 할머니처럼 믿어주고 맞장구쳐주고 기뻐해 준다면 그 한 사람의 지지와 격려로 세상은 지금보다 한결 아름답고 멋지게 변할 것을 믿습니다.어둠으로 캄캄한 방에는 창문이 여럿 있을 필요가 없습니다. 단 하나의 창문만 있어도 그 방은 신선한 공기와 환한 빛으로 가득할 수 있는 법이니까요./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대표

2019-09-10

지금은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김진홍 한국은행 포항본부 부국장전국 각지의 도시들은 어떻게든 소멸도시의 위험에서 벗어나 생존할 것인가 고심하고 있다. 일부 도시들은 중앙 관청이나 대형 공기업의 이전 또는 혁신도시 지정 등에 힘입어 도시의 면목을 일신하기도 하였다. 그에 따라 인구증가라는 가시적인 성과도 나오자 다른 도시들도 이와 유사한 발전 전략에 주목하는 모습이다.하지만 적어도 포항만큼은 유사한 전략을 적용하기 어렵다고 본다. 포항 정도의 지방 대도시들은 대부분 지난 수십 년 동안 산업과 소비, 물류 등 경제기반이 도로교통망과 밀접한 연결고리를 가지면서 오늘의 도시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때문에 어떠한 단일 공기업의 본사나 대기업의 공장 하나를 유치한다고 해서 도시 전체 네트워크가 재편되거나 새로운 산업의 생태계가 조성될 정도로 파급력을 기대하기는 매우 어렵다.결국 이들은 지금의 기반을 활용하여 활로를 모색하는 수밖에 없다. 그러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도시가 지닌 장단점, 그중에서도 약점을 제대로 규명할 필요가 있다.사실 포항시만큼 잠재력이 큰 지방도시도 드물다. 적어도 일정 수준만큼은 도시의 생산과 고용 그리고 소비를 책임지는 철강 산업이 건재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새로운 발전의 계기도 생겨났다. 최근 영일만 해안선 주변의 구도심 일원이 영일만관광특구로 지정된 것이 그것이다. 이번 기회에 해양관광도시 포항으로서의 모습을 제대로 그려야만 한다.그렇다면 이것을 방해할 포항의 약점은 무엇일까. 하나만 꼽는다면 영일만이라는 천혜의 수변공간임에도 해운대 마린시티나 시드니 오페라하우스 같은 바다에서 조망할 만한 랜드 마크가 없다는 점이다. 물론 포항이 자랑하는 포스코 야경도 바다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하지만 독보적인 야경은 아니다. 무엇보다도 영일만 바다에서 바라보는 송도와 영일대해수욕장에는 단 하나의 고층빌딩도 찾을 수 없다. 바로 이것이 해양관광도시 포항으로 가는 길을 막는 최대의 약점이자 걸림돌이 아닐까 한다.사실 멋진 수변공간을 가지면서도 초고층 특급호텔이 들어오지 못하는 이유는 따로 있다. 부산기상청 포항기상대가 송도에 자리잡은 이래 송도가 고도제한을 적용받고 있기 때문이다. 포항기상대는 일제강점기였던 1943년 설치된 포항측후소가 전신인데 1963년부터 국내 유일의 고층기후관측소로서 우리나라 기상관측에 중요한 역할을 수행해왔다. 하지만 송도에서만 기상관측을 해야만 하는 것일까. 과거의 포항은 모르지만 십여 년 이상 지역경제가 정체된 지금의 포항은 어떠한 수단을 동원하더라도 약점을 해결해 나가야만 한다.해양관광도시의 핵심은 영일만관광특구다. 그리고 그 특구의 꽃인 송도는 ‘영일만의 홍콩’처럼 개발할 수 있는 유일한 곳이다. 지금은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포항이 해양관광도시로 거듭나려면 먼저 송도개발의 약점인 포항기상대문제부터 해결하여 어떠한 랜드 마크라도 들어설 수 있도록 환경부터 조성해야만 한다. 포항이 모든 것을 그대로 둔 채 개발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도시가 생존하려면 주어진 환경에 순응만 해서는 안되고 필요하다면 아예 그 환경조차 바꾸려는 노력이 뒤따라야만 한다.

2019-09-10

추석(秋夕)과 밀레의 ‘만종’

김태곤 대백프라자갤러리 큐레이터30도를 넘나들던 한여름의 더위가 누그러지는가 싶더니 벌써 우리 민족의 최대명절인 추석이 성큼 다가와 버렸다. 한여름 농부들의 고단한 땀방울로 수확한 곡식들을 조상과 신들에게 올리는 감사의 풍습은 동·서양의 공통된 문화이다. 중국은 중추절, 일본은 오봉절 그리고 미국에서는 추수감사절과 독일의 옥토버페스트 등은 인류가 자연에 대한 감사와 경배의 기념일이다.유럽인들은 산업혁명이 일어나기 이전까지 대부분은 농업에 종사하며 농사에 의존해 생활했다. 이후 점차적으로 유럽 전역에 도시화가 확산되면서 열악한 농촌 환경에도 불구하고 전통과 가치가 살아 있었던 농촌생활에 대한 새로운 평가가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그중 프랑스의 빈촌인 바르비종으로 이주해 죽는 날까지 그곳에 머물며 자기만의 농민상을 화폭에 담은 화가 장 프랑수아 밀레(1814∼1875)는 농민들의 노동하는 모습을 통해 자연에 대한 감사하는 마음과 진정한 수확의 기쁨을 그림으로 표현했던 화가였다.그가 남긴 ‘이삭줍기’와 ‘만종’은 그의 대표작들로 평가받고 있는데, 둘 다 같은 시기에 그려진 작품들로 그중 ‘이삭줍기’는 1857년 살롱에 출품되어져 당시 비평가들의 뜨거운 공방의 대상이 되었던 작품으로 유명하다. 보수적인 비평가들은 그림 속에서 빈민계급에 의한 혁명 사상을 보고 비난했으며, 중산계급도 두려움을 감추지 못했다. 반대로 진보적인 좌익계통의 비평가는 민주주의적이고 사회주의적인 사상을 읽고 이것을 칭찬하며 환영하였다. 하지만 그는 그런 비평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노동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 인간의 존엄성을 그리려는 일관된 작가관을 구사했었다. 그림속의 부부는 감자를 수확하다가 잠시 허리를 펴고 기도를 하고 있다. 이들의 발 근처에는 쇠스랑과 바구니, 자루, 손수레 같은 농기구가 세밀하게 그려져 있다. 이렇듯 그림을 구성하는 이미지들은 상당히 사실적으로 묘사되었지만, 관람자는 그림의 세부적인 내용보다는 그림 전체에서 풍겨져 나오는 웅장함과 차분함을 먼저 느끼게 된다. 이러한 느낌은 밀레의 독특한 화법과 더불어 크게 부각되어 그려진 인물의 모습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그림의 주인공인 농부 부부는 마치 그림의 전경으로 분리된 것처럼 그려져 외로운 느낌을 강하게 주지만, 화폭 전체를 차지하면서 관람자의 시선을 사로잡는다.그림의 모든 소재는 농촌의 일상을 묘사하고 있으며, 그림 속 여인들은 어렵고 힘겨운 삶을 살면서도 인간으로서의 존엄은 조금도 잃지 않고 있음을 보여 주고 있다. 그것은 그들의 삶이 스스로의 노동으로 떳떳하게 해결하고 있기 때문이며 어떤 노동이든 노동은 인간을 존엄하게 만든다는 의미를 전하고 있다. 사람이 노동하기 때문에 천박해지는 것이 아니라 일하지 않고 일확천금을 노리기 때문에 천박해지는 것이며 그렇게 되면 인간으로서의 존엄도 잃게 된다는 농민화가 밀레만의 깊은 철학이 담겨져 있기 때문이다. 밀레가 가졌던 삶의 철학처럼 우리 농부들의 진정한 노동의 가치와 수확의 기쁨을 함께 나눌 수 있는 한가위가 되었으면 한다.

2019-09-10

네바다 주-미국여행 2

캘리포니아 주에서 네바다 주로 넘어가 들어간 곳은 라스베이거스, 도박의 도시였다. 우리가 머무른 곳은 피라미드 모양을 흉내낸 호텔, 그래서 그런지 안에서 길 잃어버리기 딱 좋았다.강행군 여행 탓에 내일이면 당장 애리조나 그랜드 캐년으로 떠난다니 여기서 ‘한 재산’ 날릴 기회는 오늘밖에 없었다.도박도 재미없고 마굴 구경도 재미없고, 그래도 낮밤이 뒤바뀌어 잠은 않고, 새벽에 억지로 일어나 도박장에 내려가 룰렛 게임 구경하다 심심풀이로 울긋불긋 동그란 원판이 돌아가는 기계 앞에서 손가락 튕기다 아침을 맞는다.버스는 또 다시 광야를 달린다. 나라가 아름답다기보다 넓디 넓은 황무지다. 미국은 윤택하다고들 말하는데 그 대신에 끝없이 이어지는 메마른 황야, ‘사보텐’ 선인장 풍경이다. 철 들기 전 어릴 적에 나는 이 일본말 ‘사보텐’을 만화책에서 배웠다. 카우보이들이 마차를 타고 선인장 삐죽삐죽 솟아난 광야를 달리는 만화는 도대체 왜 1970년대 중반의 우리 만화책에 등장했던 것일까. 가이드 분이 갑자기 노래를 틀어준다. “카우보이 아리조나 카우보이 광야를 달려가는 아리조나 카우보이 말채찍을 말아들고 역마차는 달려간다 저 멀리 인디언의 북소리 들려오면 고개 너머 주막집에 아가씨가 그리워 달려라 역마야 아리조나 카우보이” 1959년에 파라마운트레코드에서 찍어낸 유성기판에 가수 명국환의 이 노래가 들어 있었다 한다. 6·25 전쟁으로 미국이 이 나라의 시장과 영화관과 군사도시를 휩쓸고 있을 때 이 ‘이국종’ 노래도 꽤나 인기몰이를 했다는 것이다. 황야를 달리며, 나는, 윤택함보다 이 광활한 황무지, 희박한 인구밀도가 더 무섭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는 이 미국이라는 나라를 영원히 알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기에는 나는 너무 나이들고 너무 오래 작은 나라 안에서만 살았던 것이다.잠깐 원고에 한눈 파는 사이에 버스가 그랜드 캐년 지역으로 들어선다고 한다. 어디가? 어째서 그랜드 캐년이란 말이야? 땅가죽이 양옆으로 좍좍 갈라지고 천길, 만길 낭떠러지가 코앞에 박두해 있어야 하는 것을. 그러나 있다. 버스 주차장에서 내려 몇 걸음 앞으로 나아가자 갑자기 측량할 수 없는 광대한 단층이 모습을 드러낸다. 육백만 년 동안의 지질학적 활동과 콜로라도 강의 침식 작용이 만들어낸 장대한 결과물. 이런 것이었나? 나는 이쪽 땅끝에 서서 저쪽 건너갈 수 없는 ‘피안’의 땅을 바라본다. 부연 저편 절벽은 무슨 스크린화처럼 공중에 떠 있다. 왔다. 오기는 왔다. 영영 이런 곳에는 못 올 줄 알았는데. 왜 그렇게 생각했던 것일까.낭떠러지 끝에 꼼짝 않고 서서 생각한다. 나는 이편에 아직은 살아있는 것이라고. /방민호 서울대 국문과 교수 /삽화 = 이철진한국화가

2019-09-10

일자리가 줄어들고 있어요. 그러니 추석에는

일자리가 줄어들고 있다. 그러니 제발 당신의 조카에게 사촌에게 취직은 했니 따위의 말은 묻지 말기 바란다. 꽤 오래된 일이지만 하이네켄은 인턴 채용과정을 동영상으로 담아 배포한 일이 있었다. 인턴지원자 1천734명 중 적합한 인재를 찾기 위해 ‘킥오프’, ‘응급처치’, ‘출구’ 라는 세 가지 면접방식을 소개했다. 먼저 지원자는 면접자의 손을 잡고 면접장소로 이동한다.인터뷰 도중 면접관이 쓰러지는 응급상황이 발생하고, 비상벨이 울려 건물 밖으로 탈출하는 상황에 처한다. 이 과정을 거친 후 최종 후보자 세 명을 선발한다. 하이네켄 직원이 투표를 통해 세 명 중 한 명을 뽑는다. 가장 많은 표를 얻은 면접자는 유벤투스 경기장에서 마지막 미션을 행하게 된다.마지막 미션은 커다란 전광판을 통해 채용 사실을 통보받고, 경기장을 가득 메운 관람객으로부터 축하를 받는 일이다. 하이네켄은 이러한 면접방식을 통해 전형적인 채용과정에서 파악하기 힘들었던 지원자의 성향을 제대로 파악했고, 창의적인 기업이라는 이미지를 널리 알리는 광고효과도 거둘 수 있었다.여기서 꼭 기억해두어야 할 것은 여기에 지원자가 1천734명이라는 것이며, 더욱 정유한 것은 이 많은 사람 중 겨우 한 명을 뽑았다는 것이다. 1천734:1의 경쟁률을 뚫고 뽑힌 가이 루히팅이란 지원자는 좋겠지만 나머지 1천733명은 어떻게 해야 하나? 채용된 사람은 유벤투스 경기장을 가득 메운 사람에게 환호와 갈채를 받았겠지만, 나머지 1천733명은 어디서 어떻게 위로받아야 하는 것일까? 어쩌다 취업이 이렇게 어려워진 것일까? 취업을 했을 뿐인데 경기장을 가득 메운 사람은 왜 모두 자기 일처럼 그렇게 열렬히 환호하는 것일까?‘미생’이란 웹툰은 대중의 인기에 힘입어 드라마로 제작되었다. 이 드라마는 ‘미생’ 신드롬을 불러 일으킬 정도였다. 여기에는 한국 기원의 연구생이었으나 프로입단에 실패한 장그래라는 주인공이 등장한다. 장그래는 프로기사의 꿈을 접고 대기업의 계약직 직원에서 정직원으로 채용되기 위해 노력한다. 이 웹툰에서 흥미로운 장면은 장그래가 꺼내놓은 일기장이다. 장그래는 한국기원 연구생 시절 두었던 대국을 기보로 남겨 왔다. 이러한 습관은 회사 생활에서도 이어져 그날 있었던 일을 되새기며 매일매일 일기를 쓴다. 문제는 그렇게 열정적이며, 성실하게 일했고, 높은 실적을 올리기도 했지만 그는 채용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다시 원래의 질문으로 돌아와 물어야 한다. 어쩌다 청년취업이 이렇게 어려워진 것일까?활판인쇄를 하던 시절, 식자공이라는 직업이 있었다. 원고대로 활자를 활자판에 배열하는 일을 했다. 인쇄술이 발전하자 식자공은 사라졌다. 통신기술이 발전하자 전화교환수라는 직업이 사라졌다. 증기선이 나오게 되자 뱃사공이 사라졌으며, 자동차가 보급되자 인력거꾼이 사라졌다.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무수한 직업이 있었지만, 기술의 발전과 함께 많은 직업이 사라졌다. 스탠퍼드대의 토니 세바(Tony Seba)는 2030년에는 현재 있는 직업의 47%가 사라질 것으로 내다봤으며 미국의 미래학자 토마스 프레이(Tomas Frey)는 20억여 명에 달하는 사람이 일자리를 잃게 될 것이라고 한다. 2016년 1월 스위스 다보스 포럼에서는 5년 후에는 현재의 일자리가 710만여 개가 사라지고 새로운 형태의 일자리 200만여 개 만들어져 결국 500만여 개의 일자리가 사라질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러면 답은 분명해진다. 취업이 어려워진 것은 기술산업의 발전의 영향을 간과할 수 없다.폴란드 출신의 영국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은 1970년대를 기준으로 근대적 자본주의(1970년 이전의 자본주의)와 탈근대적 자본주의(1970년 이후의 자본주의)를 구분한다. 그는 근대적 자본주의를 지배하고 있는 중요한 가치가 생산과 노동이었다면, 탈근대적 자본주의를 지배하는 가치는 소비와 자유라고 말한다. 생산과 노동이 중시되었던 시대는 일자리가 남아돌았다. 그런 이유로 언제든 노동시장에 투입될 수 있는 예비 노동 인력을 확보하고 있어야 했다. 그래서 국가는 실업자를 부양했다. 하지만 소비를 통해 자유를 만끽하는 1970년대 이후 실업자는 골칫거리이자 ‘잉여’ 인구가 되었다. 생산자사회에선 누구건 일해야 하지만 소비자사회에선 누구건 소비해야 한다. 과거에는 일하지 않는 자가 문제였다면, 오늘날은 소비하지 않는 자가 문제다.공강일 서울대 강사·국문학일하지 않는 자를 일하게 하고, 소비하지 않는 자를 소비하게 만들면 사회적 문제는 많이 해결된다. 그런데 어떻게 소비하게 만들 것인가? 직업은 한정되어 있고, 한정되어 있는 것마저 줄어가고 있는 상황에서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바우만이 내놓은 대책은 노동과 노동시장을 분리하고, 소득 자격과 소득 능력을 분리하라는 것이다. 어렵게 들릴지 모르나 기업은 노동자를 채용하려고 애쓰고, 노동자는 실업자와 노동시간을 나누고, 정부는 실직자가 살아갈 수 있도록 기본소득을 보장할 수 있는 제도를 만들면 된다. 정부는 노동시장에서 밀려난 실직자가 재기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다시 경제활동에 복귀할 수 있는 길을 열어야 한다. 인간의 수명이 연장되었기에 제2, 제3의 인생을 설계할 필요가 있는 고령인구에 관한 정책도 같은 맥락에서 검토되어야 한다.이런 상황이니 올해만은 제발 취직을 못한 취준생을 괴롭히지 말 것!

2019-09-10

개 코 이야기

개는 후각을 통해 세상을 이해하고 기억한다. 개의 뇌는 인간의 뇌보다 10배정도 작지만 개의 후각망울(olfactory bulb)은 인간에 비해 3배나 크고 1차 신경세포의 숫자도 인간에 비해 40배나 더 많다. 개는 특정 유기화합물에 대해서 인간이 맡을 수 있는 냄새 농도의 몇백분의 1만 되어도 냄새를 맡을 수 있다. 심지어 몇백만분의 1만 되어도 냄새를 맡는 경우도 있다. 또한 개는 한꺼번에 뒤섞인 냄새들 중에 자기가 관심있는 냄새를 찾아내어 구별하는 능력이 있다. 개가 마약탐지견이나 수색견으로 활동할 수 있는 이유이다. 인간의 경우 코의 감각수용체는 5백만개이지만 개는 약 2억 2천만개를 가지고 있다. 개는 인간의 한 발자국과 다음 발자국의 미묘한 냄새의 차이도 구별 할 수 있다는 연구결과가 있는데, 시간이 지남에 따른 냄새 정도의 차이까지도 개 코는 감지한다는 것이다.개가 이렇게 냄새를 잘 맡는 이유는 숨을 내쉬면서 자연스럽게 작은 기류를 만들어 내고 이것이 들숨의 속도를 높여주어 더 많은 새로운 냄새가 안으로 빨려 들어올 수 있도록 하고, 코를 촉촉이 유지하여 작은 분자들이 코의 외부조직에 들러붙고 분자들이 붙으면 용해되어 내부 운송기관을 통해 콧속의 감각세포를 활용하여 냄새를 감지할 수 있도록 돕기 때문이다.영국의 경찰견인 블러드하운드는 개 중에서 후각이 가장 발달한 종이다. 몸의 많은 특징들이 특별히 강한 후각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데, 머리를 약간만 흔들어도 귀가 펄럭이면서 더 많은 냄새가 콧속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해주며, 끊임없이 흘러내리는 침은 보습코기관으로 더 많은 액체가 흘러들어가게 하는 완벽한 역할을 한다. 미국의 도그타임에서 발표한 후각능력에 대한 개의 순위는 1위가 블러드하운드, 2위가 바셋하운드, 3위가 비글, 4위가 저먼 셰퍼드 5위가 래브라도 리트리버였다.최근에는 개를 위한 아로마쎄라피가 유행이다. 아로마는 식물에서 채취한 정제유를 사용해서 부작용이 거의 없다는 것이 장점이고, 개의 스트레스를 치유하는 좋은 방법으로 활용되고 있다. 사람의 경우 좋은 향기를 맡으면 뇌파의 개선 효과가 있는 것으로 과학적으로 입증되어 있는데 개도 비슷한 체험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개에게 아로마세라피를 적용할 때 사람에게 쓰는 농도를 그대로 쓰는 것은 자극이 강할 수 있는데 기본적으로 주의할 사항은 개가 어떤 향기를 좋아하는지 확인하는 것이다.이동훈만일 개가 싫어하는 냄새를 억지로 맡게 되면 오히려 스트레스가 높아질수 있으니 아로마를 사용하기 전에 개가 어떤 향을 좋아하는지 반드시 테스트를 거쳐야 한다. 희석한 아로마를 개의 코에 가까이 대고 싫어하는 기색은 없는지 흥미를 보이는지 먼저 관찰해 본다. 우리 개가 좋아하는 향을 선택했다면 아로마를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 거실이나 집의 분위기에 맞는 사용방법을 찾아야 한다.향을 피우거나 개집 바닥에 깔아주는 타월에 아로마 오일을 소량 묻혀두는 방법도 좋다. 까다롭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개의 경우에는 아로마 요법을 좀 더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데, 민감하게 반응하거나 정신없이 돌아다니는 개의 경우 아로마 향을 피워 마음을 진정시킬수도 있다.아로마 요법은 우선 주인이 좋아하는 향을 고르고 개에게도 적용되는 향을 선택해보자. 라벤더 향은 긴장을 완화시켜주는데 효과가 있어서 쉽게 흥분하는 개, 잘 짖는 개 산만한 개에게 적합할 수 있다. 통증을 완화시켜주는 효과가 있어서 개가 출산할 때 사용하기도 한다. 레몬이나 오렌지와 같은 감귤류 향은 기분을 진정시키는 효과가 있어서 소심한 성격의 개의 기분을 밝게하는 효과가 있다. /서라벌대 교수(마사과)

2019-09-10

역경을 이긴 아이들의 특징

“말을 암소하고 바꿨지.” “어머, 우유를 실컷 먹을 수 있겠군요. 버터와 치즈도 식탁에 올릴 수 있고요. 정말 잘 바꿨어요.”“암소를 양하고 바꿨다오.” “그게 더 나은걸요! 양젖과 치즈와 털옷과 털 양말까지! 암소는 아무리 털이 많아도 그런 건 주지 않잖아요? 당신은 현명해요.” 할머니는 기뻐서 어쩔 줄 모릅니다.“양을 거위하고 바꿨는데?” “그래요? 올해는 거위 요리를 먹게 되었으니 더 좋아요.” “거위를 암탉과 바꿨지.” “최고예요. 닭이 알을 낳아 부화하면 병아리를 얻게 될 테니까요. 이제 마당에 닭이 가득하겠군요. 바로 그거예요.” “그렇지? 하지만, 썩은 사과 한 자루와 바꿔 버렸는걸.”“어머나, 당신께 키스해 드려야겠군요. 영감, 고마워요! 오늘 저녁 당신을 부추를 넣은 오믈렛과 베이컨을 해 드리려고 했는데 부추가 없지 뭐예요. 그래서 옆집에 가서 부추를 조금만 빌려 달라고 하니 이러더군요. ‘빌려 달라고요? 하지만, 할머니 집에는 썩은 사과 한 알도 없을 텐데. 어떻게 빌려줄 수 있겠어요?’ 그 부인에게 썩은 사과 한 자루를 통째로 빌려줄 수 있으니, 생각만 해도 재미있어요, 영감.” 할머니는 남편 입술에 키스합니다.“거참 유쾌하군. 갈수록 손해를 보는데도 저렇게 너그러우니, 이 정도면 금화를 줄 가치가 충분히 있어.” 부자 영국인 두 사람은 내기에서 진 것을 인정하며 할아버지에게 금화 한 자루를 선물하지요. 안데르센 동화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에이미 워너라는 심리학자는 하와이 카우아이 섬에서 가장 열악한 아이 201명을 관찰합니다. 3분의 2는 심각한 문제아로 자랐지만 72명은 최악의 환경에서도 대도시 남부럽지 않은 정상 가정 아이들처럼 성장합니다. 72명 성장에 담긴 비밀을 연구하던 중 이들에는 역경을 이겨낼 수 있는 공통 속성이 있음을 발견하지요. (내일 편지에 계속)/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대표

2019-09-09

9월, 배려의 달

박상영 대구가톨릭대 교수얼마 전, 결혼한 지 5년이 채 안 된 후배가 추석 인사 겸 감사의 뜻도 전한다며 연락이 왔다. 그런데 긴 한숨을 푹~ 내쉬는 것이 아닌가. 이유인즉슨, 작년까진 회사에 급한 일로 시댁에 가지 않아도 되었는데 올해는 가야 해서 가슴이 답답하다는 것이었다. 명절 때가 되면 연중행사처럼 스트레스증후군으로 한바탕 전쟁을 치른다 하니, 괜한 씁쓸함이 몰려왔다.시대가 많이 바뀌었어도, 명절 때만 되면 어김없이 명절 스트레스 증후군을 앓는 이들이 많다. 큰 명절을 쇠고 나면, 이혼율이 평소보다 몇 배나 급증한다는 사실이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최근에는, 물 만난 고기처럼, 명절 연휴가 긴 경우는, 그 의미를 되새기기보다는 서둘러 해외여행을 계획하는 이들도 많이 늘어나는 추세이다. 명절을 어떻게 보내느냐는 각자의 몫이지만, 어쩌다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이 이렇게 되어 버렸을까?옛날, 추석에 행해진 많은 풍습들 중에 반보기라는 것이 있다. 이는 며느리가 떡, 술병, 닭이나 달걀꾸러미 등을 들고 친정에 가는 근친의 기회를 갖지 못했을 때, 친정과 미리 통문하여 친정과 시집 중간의 경치 좋은 곳을 정해, 친정어머니와 만나게 하던 풍습이었다. 이때, 딸과 친정어머니는 서로가 좋아하는 음식을 정성껏 마련해서 만났는데, 중간에서 만난다 하여 중로회견(中路會見)이라고도 했다. 한번 결혼하면 친정에 가기가 쉽지 않았던 그 때, 그래도 추석동안만은 짧지만 친정어머니와의 회포를 풀도록 한 시댁의 아름다운 배려였던 셈이다.그런데 오늘날은 어떠할까? 명절 때만 되면, 친정 방문을 앞두고 실랑이가 벌어지는 경우를 종종 본다. 아침부터 서둘러 친정에 가려고 온갖 일거리를 바삐 마무리하는 며느리와 그 마음을 모른 채 늑장부리는 남편 간의 미묘한 감정 다툼, 빨리 가라 재촉하는 시부모님이라면 참 다행이지만, 점심까지 먹고 가라고 붙들면 이제 며느리는 시댁의 ‘시’자만 들어도 짜증스러울 법하다. 차라리 일을 핑계로 시댁에 안 가거나 해외로 멀리 갔으면 하는 마음마저 생겨날 터.옛날, 추석에는 상대에 대한 배려가 있었다. 여름내 고생한 농군들이 소놀이(일을 잘한 상머슴을 농우에 태워 마을을 누비던 풍습)·거북놀이(“바다에서 거북이가 왔는데 목이 마르다”면서 큰 집을 찾아가던 풍습)를 하면 주인들은 음식을 크게 대접하였고, 가난해서 추석 음식을 장만 못하는 사람에게는 음식을 주었고, ‘추석빔’이라 하여 머슴들에게까지 새 옷을 마련해 주었으며, 친정에 자주 못가는 며느리를 위해서는 손수 음식들을 장만해서 친정어머니를 보고 오라 독려하기도 했다. 모두가 서로 알뜰살뜰 챙겨주는 아름다운 풍습들이 아닐 수 없다.상대에 대한 배려가 없는 명절은, 진정한 명절이 아니다. 비록 과학 기술이 발전하면서, 점차 개인주의가 되어 가고 있는 오늘날이지만, 그래도 추석이 있는 9월 달에는, 한번쯤, ‘나’가 아닌 ‘우리’, ‘너’를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져보면 어떨까? 햇과일, 햇곡식만 풍성한 계절이 아니라 진정 마음과 정신이 풍성한 계절 가을일 수 있게 말이다.

2019-09-09

미국이 필요한 한국의 지정학적 조건

강희룡 서예가미국이 한국에 대해서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 것은 1834년 아시아지역에 파견되었던 미국의 로버츠 특사가 조선과도 교역할 가능성이 있다고 귀국보고를 하면서부터이지만 보다 구체적으로는 1845년 Z.프래트 의원이 조선에 대한 통상사절 파견을 제기한 데서 비롯된다. 양국이 공적으로 접촉할 계기가 된 것은 ‘제너럴 셔먼호사건’과 신미양요이다. 일본 주재 청국 외교관 황준헌이 조선의 외교진로에 관해 쓴 ‘사의조선책략(1880)’이 입수되어 이것이 어전회의에 상정된 뒤부터 미국에 대한 인식이 달라져 양국관계가 호전되는 계기가 되었다. 이 책략이 가장 주목되는 것은 러시아의 남침을 막는 방아책(防俄策)으로 중국, 일본, 미국과 연대함으로써 자강책을 도모하라는 것이다.오늘날 미국은 아시아에서 자신들의 영향력을 키우고 싶어 한다. 세계에서 제2의 대국으로 성장한 중국이 아시아의 패권을 잡는 것을 우려하는 미국에게 한국의 지리적 위치는 전략적 요충지로 적절하기에 한미동맹관계를 통해 동아시아 정세를 주도함으로써 세계 패권국의 입지를 더욱 공고히 하고자 하는 야심을 가지고 있다. 리처드 에머슨의 ‘교환이론’에 따르면 한미는 서로에게 얻고자하는 가치 있는 자원이 존재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북한이라는 나라의 존재이다. 한미동맹의 두 나라간 결합관계를 설명하려면 북한의 존재가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한국은 세계 최고의 군사력을 보유한 미국과의 동맹을 통해 국가안보의 안정성을 보장받으며, 또한 이 동맹으로 한국에서의 전쟁 가능성은 확연하게 떨어진다. 교환이론의 관점에서 보면 한미동맹은 불균형관계이다. 이런 상황은 서로 교환하는 자원의 필요성부분에서 미국이 제공하는 자원을 한국이 좀 더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2014년 한국에 사드배치의 미국요구는 미국이 힘의 우위에 있다는 이유에서 그 요구를 들어줄 수밖에 없는 국가 간의 불균형관계를 보여주고 있다. 한미동맹의 불균형관계를 균형화상태로 실행하려면 미국으로부터 받는 자원의 가치를 감소시키는 것이며, 그 대안으로는 국방력을 높이는 것이다. 즉 미군 없이도 자체국방력으로 북한의 남침을 억제할 수 있다면 미군이 제공하는 안보의 안전성이라는 자원의 가치는 상대적으로 감소할 것이다. 주한미군 역사에서 미군을 용병으로 운운하는 트럼프 대통령 재 임기는 변곡점이 될 가능성이 크다. 트럼프에게 동맹의 개념이 희박하다는 건 이제 상식이다. 평택 캠프 험프리는 중국을 코앞에서 제압할 수 있는 전략적 요충지이다. 기지 건설비의 90%인 97억 달러를 한국이 부담했다. 트럼프 요구대로 되면 동북아의 요충지에 군사력을 전진 배치하면서 매년 수 조원을 한국에 부담시키는 셈이 된다.연간 ‘방위비분담금 50억 달러(약 6조원)’를 앵무새처럼 반복하고 있는 천박한 장사꾼 대통령이 미국의 국익을 해치는 것은 물론 피로 맺은 동맹국과 동북아의 안정을 파괴하는 위험한 게임을 하고 있는 것이다.

2019-09-09

‘커다란 도약’ 있게 한 ‘작은 발걸음’에 대해

인류 역사에서 가장 드라마틱한 어떤 성공은 어떻게 된 영문인지 50년이 지난 지금도 성공을 있게 한 고난과 역경의 과정은 가물가물하고 성공의 첫 발자국과 감회의 한마디만 깊게 각인되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1969년 7월 16일 지구를 떠나 7월 21일 인류 최초로 달에 착륙한 닐 암스트롱. “이것은 한 명의 인간에게는 작은 발걸음이지만, 인류에게는 커다른 도약이다”라는 말과 함께 흑백 영상과 몇 장의 사진으로 길이 남는다. 그가 어떻게 그 발걸음을 내딛게 되었는지, 뚜렷한 기억과 별다른 호기심이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우리는 그 놀라움이, 미지의 세계에 첫발을 내딛던 그 감동적인 순간이 너무나 강렬하여 당연히 준비된 선물처럼 그 성공을 순순히 받아들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데이미언 셔젤 감독의 ‘퍼스트맨’은 성공을 있게한 첫번째 실패에서 시작한다. 성공을 위해 몇 번의 실패가 있었으며, 거대한 프로젝트 속에서 한 인간이 느꼈을 감정은 어떠했는가에 집중하고 있다. 바로 ‘커다란 도약’보다는 ‘작은 발걸음’에 집중한 영화다.아폴로11호가 달에 착륙하기까지 아폴로 1호부터 10호가 있었으며, 그 이전에 제미니 1호부터 12호가 있었다. 그리고 그 이전에 있었던 미항공우주국의 초음속 실험용 비행기 X15에 탑승해 시험비행을 하는 닐 암스트롱의 모습에서 영화는 시작된다.1957년 소련이 쏘아 올린 첫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1호’는 냉전시대 미소의 우주를 향한 경쟁의 도화선이 된다. 이후 1961년 4월 12일 소련의 우주 비행사 유리 가가린이 ‘보스토크 1호’를 타고 최초 유인 우주비행을 성공하게 되자 우주 경쟁에서 계속 뒤쳐지던 미국은 “1960년대 안에 인류를 달에 보내겠다”고 선언하게 된다. 바로 아폴로 계획의 시작이 된다.이를 위해 선결해야할 과제는 엄청난 무게를 지구 궤도에 올릴 수 있는 막강한 추진력을 가진 로켓을 개발해야하는 일이었다. 그리고 우주 공간에서 본선과 탐사선의 랑데뷰, 도킹, 분리 등의 우주 비행기술을 발전시켜야할 필요가 있었다. 이를 위해 시행된 것이 제미니 계획이었다.영화는 닐 암스트롱과 연관된 우주 계획의 과정을 보여준다. ‘커다란 도약’을 있게했던 동료의 사망과 개인의 두려움, 과정의 어려움이 제미니1호에서부터 12호, 아폴로 1호에서부터 11호까지 우주선의 이름과 함께 점증되어가는 과정을 보여준다.좁은 우주선에 몸을 구겨넣은 모습. 커다란 진동과 거대한 소음 속에 사정없이 흔들리는 모습. 죽을 수도 있는, 돌아오지 못할 수 있는 여정을 앞두고 차마 어린 두 아들의 눈을 제대로 마주하지 못하는 모습 속에서 ‘커다란 도약’을 있게 했던 한 명의 인간이 내딛었던 ‘작은 발걸음’의 과정을 목격하게 된다.우리는 50년 전에 있었던 아폴로11호의 성공을 알고 있다. 익숙한 이야기에 가려졌던 한 인간의 고독한 여정 앞에서 달에 착륙해 첫발을 내딛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환희의 기쁨, 성공의 안도보다는 쉽게 설명되지 않는 가슴 먹먹함이 앞선다.영화 ‘퍼스트맨’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의 영화다. 우리가 인류의 달 착륙 과정을 지켜보던 위치에서 함께 달에 착륙시키는 영화다. 그는 인류 최초로 달에 착륙한 ‘퍼스트맨’이기 이전에 한 인간이 견뎌야했던 엄청난 무게의 고통을 안고 지구로 귀환한 ‘퍼스트맨’이었음을 영화가 보여주고 있다. /김규형 문화기획사 엔진42대표* 영화‘퍼스트맨’은 네이버영화, 구글플레이, 넷플릭스에서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2019-09-09

젖은 눈빛이 전하는 말… 영천 영지사(靈芝寺)

비가 지나간 뒤 숲은 온통 젖어 있다. 도랑물이 콸콸 젖어 흐르고 이끼 낀 부도들도 잿빛으로 젖어 있다. 젖은 나무들이 천년고찰의 일주문을 대신한다.영지사의 주차장은 키 큰 참나무 숲이다. 세속을 비켜 앉은 무념의 기운이 지배하는 소박한 곳, 잠시 마음을 내려놓고 싶다. 발 빠른 변화를 요구하는 시대를 담담히 돌아앉아 고요히 참선하는, 그런 절이다.영지사는 신라 무열왕 때 의상대사가 웅정암(熊井庵)이라 창건하였으나 임진왜란 때 소실되어 선조 때 중창하면서 영지사(靈芝寺)로 바뀌었다. 영조 50년에 중수하였다는 유적비와 지금까지 사찰을 지켜 온 주지 스님들의 부도 네 기가 나란히 초입을 지킨다.가난한 민초들의 등 휜 일생을 말없이 보듬으며 함께 늙어갔을 법한 절간에서 고양이 한 마리가 마중을 나온다. 느릿느릿 한가로운 걸음걸이와 방문객을 맞는 애교가 보통이 아니다. 고양이의 안내를 받는 사이 먼저 온 불자와 차담을 나누던 스님이 인사를 건네 온다. 편안하다. 절도 스님도.절은 작지 않다. 공사중이라 그런지 숙환을 앓는 노인의 젖은 눈빛 같은 안쓰러움이 묻어난다. 그 중심을 범종각(泛鐘閣)이 지키고 있다. 누하진입식(樓下進入式) 형태를 갖췄는데 현판에는 루(樓)가 아닌 각(閣), 불경 범(梵) 대신 들 범(泛)자를 쓴 까닭은 옛날에 이곳은 물 위에 떠 있었기 때문이다.타원형으로 생긴 법고도 특이하고 종을 치는 당목의 나이도 만만치 않아 보인다. 운판과 목어, 갖출 거 다 갖춘 범종각이 어딘지 외롭고 허전해 보인다. 시방세계를 깨우치며 지옥중생을 구제한다는 법고는 속울음 삼키듯 안으로 우는 법에 익숙해진 것은 아닐까. 범종각 위를 서성이며 한 때는 찬란했을 영지사의 옛날을 그려본다.해질녘 절간에서 울리는 타종 소리나 노을을 등에 업고 댕강대는 교회의 종소리는 생각만 해도 엄숙하고 평화롭다. 타종 소리는 종과 당목, 온도와 습도, 절간의 분위기에 따라 그 울림이 다르다. 영지사의 타종소리가 궁금하다. 그리운 것들 떠나보내느라 한철 꽃잎 지듯 아플 것 같다. 쇠줄과 당목을 연결하는 무명천의 낡고 쓸쓸한 눈빛 위에는 얼마나 많은 시간들이 머물다 갔을까.대웅전 법당문은 굳게 닫혀 있다. 기도하는 불자 대신 여름풀들이 드문드문 앞마당을 지키고 고양이와 강아지가 삼층석탑 주변을 돌며 장난을 친다. 일상적인 그들의 평화가 나를 미소 짓게 한다. 인간만이 불성을 가진다는 말이 중심을 잡지 못하고 비틀거린다.양측 문이 잠겨 있어 조심스럽게 어간문을 열고 들어갔다. 기도하는 불자보다 스님 홀로 예불 보는 시간이 많을 것 같은 작은 법당, 문 여는 소리에 숲과 바람이 먼저 귀를 세우고, 축원을 담은 불자들의 주소와 이름이 천장에 매달려 무심히 바라본다. 이 찰나적 순간에도 계절은 오고 한동안 익숙했던 계절은 또 사라져 갈 것이다.주지 스님이 가리키는 곳에 작은 악착보살이 줄을 잡고 반야용선에 오르고 있다. 악착(齷齪)스럽다는 강한 말의 이미지와는 달리 귀엽고 천진한 표정이다. 뜻한 바를 이루기 위해 몰입하는 순간만큼은 꽉 찬 비움의 상태임을 말해 주듯이. 흔하게 쓰는 ‘악착스럽다’는 좋은 의미를 가진 절집 용어였던 것이다.어원은 이렇다. 불심 깊은 한 여인이 극락정토로 인도하는 반야용선에 오르기로 했는데 그만 늦고 말았다. 반야용선을 타지 못해 발을 구르는 모습을 보고 부처님이 밧줄을 내려주자 여인이 악착같이 매달려 반야용선에 오르게 되었다. 용맹정진 수행하라는 뜻으로 악착보살은 그 오랜 세월 법당에 매달려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권위와 형식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성천 주지 스님의 미소는 소탈하다. 삶의 철학도 분명해 보인다. 드러나는 것이 실상이 아니라는 것쯤은 알기에 나는 긴장을 놓지 않는다. 차를 마시고 대화를 나누면서도 부질없는 분별심을 습관처럼 즐기고 있다.그럴수록 스님은 여유롭고 나는 점점 방향을 잃고 미궁을 헤맨다. 고양이 요요가 소리도 없이 잔디밭을 지난다. 그 발걸음과 스님이 닮았다고 생각할 때, 스님이 말씀하신다.“언행이 실망스러운 스님을 만나면 감정을 소진하지 말고 ‘스님, 초심으로 돌아가십시오’ 하고 마음으로 기도하세요.”조낭희수필가와르르 아집이 무너지는 소리가 들린다. 산사를 찾아다니면 번뇌가 줄어들 거라 믿었던, 어리석음을 위한 송가이기를 바란다. 허탈하다. 처음 출발선 그 자리에서 여태 맴 돌고 있는 나를 보았다. 무욕(無慾)의 가벼움은 멀고도 멀다. 절집을 찾아다닐수록 허기졌던 이유를 알 것 같다.스님이 어떤 분인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마음을 비운다는 건 어떤 대상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이리라. 일상의 진리 앞에서 나는 지나치게 얕았거나 깊었다. 마음과 마음을 드나들 수 있는 바람 한 줄기 내 안에 재워두고 살고 싶다.낮은 창문을 기웃거리던 은행나무 그림자가 넉넉해지는 오후, 고양이 요요의 몸짓도 느려지고, 젖었던 내 발걸음의 뒤축도 한결 가벼워 온다. 영지사는 여전히 돌아앉아 참선 중이다.

2019-09-09

송이를 귀히 여겼지만다른 버섯을 멸시하지는 않았다

“일 능이, 이 표고, 삼 송이”라는 표현이 있다. 능이버섯, 표고버섯, 송이버섯 순서라는 뜻이다. 엉터리다. 근거는 없다. 언제 누가 한 말인지 알 수가 없다. 조선 시대, 일제강점기 기록에도 이런 문구는 없다. 표고버섯, 석이, 목이버섯, 싸리버섯[鳥足茸, 오족이]은 기록에 있지만, 능이버섯은 없다. 능이는 2000년 이후 나타난다.능이나 표고가 나쁘다는 뜻이 아니다. 이런 순서매김은 없었다. 우리 선조들은 버섯뿐만 아니라 음식물, 식재료의 순서를 정해서 이야기하지 않았다. 한식은 진귀한 식재료를 구하지 않는다. 모든 식재료를 귀하게 여긴다. 이파리부터 뿌리까지 모두 귀하게 여긴다. 한식의 길이다. 생선의 부위를 세밀하게 가르고 그 부위마다, 이른바, 스토리텔링을 하는 것은 일본 음식의 방식이다. 버섯 역시 마찬가지다. 우리 선조들은 송이버섯을 귀하게 여기긴 했지만 다른 버섯을 멸시하지는 않았다. 버섯의 순서를 정하는 것은 터무니가 없다.조선 시대 문신 계곡 장유의 시 ‘적상산의 승려에게 지어준 시’에 버섯이 나타난다.부처님 귀 모양의 향긋한 버섯/고목나무 등걸에서 커 나왔는데/따다가 솥에 넣고 우려낸 그 맛/연하고 부드럽기 고기보다 훨씬 낫네(계곡 선생집_25권)‘부처님 귀 모양의 향긋한 버섯’이 정확히 어떤 버섯인지는 알 수가 없다. 송이버섯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 고목 등걸에서 컸다고 했다. 송이버섯은 나뭇등걸에서 자라지 않는다. ‘적상산 승려에게 주는 시’라고 했다. 적상산은 전북 무주의 산이다. 예나 지금이나 송이버섯의 대량 산지는 아니다. 계곡은 ‘연하고 부드럽기가 고기보다 낫다’고 추켜세웠다. 송이버섯 향이 좋긴 하지만, 가장 으뜸이라고 말하지는 않았다. 다른 버섯도 좋다. 다만 송이버섯은 점잖은 솔 향기가 나니 좋다는 정도였다.송이버섯을 귀하게 여긴 이유는 바로 ‘향’ 때문이었다. ‘송이(松茸)’는 ‘소나무 버섯’이다. 소나무의 향기를 지닌다.한반도에 가장 흔한 나무는 소나무다. 소나무는 한겨울에도 ‘독야청청’한다. ‘남산 위의 저 소나무’는 민족 기개다. ‘송(松)’은 ‘목(木)+공(公)’이다. 나무 중의 귀족이요, 으뜸이다. 한반도에는 흔하다. 우리 민족은 소나무의 향과 친숙하다. 유럽인들은 송이버섯을 피한다. ‘테라핀 냄새’가 난다. 소나무의 독특한 향을 싫어한다. 송이버섯도 피한다. 우리는 다르다. 귀하지만 흔한 나무, 소나무 아래서 자라고, 소나무 향을 고스란히 지녔다. 송이버섯은 귀하다. 송이버섯은 죽은 나무, 썩은 나무에 기생하지 않는다. 대부분 버섯은 죽은 나무에 기생하거나, 부패한 흙에서 자란다. 더러 생나무에서 자라는 버섯도 있지만, 송이버섯처럼 아예 맑은 흙에 뿌리를 내리고 자라는 버섯은 귀하다. 송이버섯은 거름이 강한 땅에서도 자라지 않는다. 송이버섯을 귀하게 여긴 또 다른 이유다.음식, 식재료는 대부분 맛으로 가른다. ‘맛있다’ ‘맛없다’로 가른다. 송이버섯은 맛이 아니라 향이다. 고려의 문신 이규보(1168~1241년)가 송이버섯에 대해 남긴 시가 있다. 송이버섯을 정확히 설명한다. 제목은 ‘송이버섯을 먹다’이다.버섯은 썩은 땅에서 나거나/아니면 나무에서 나기도 한다/모두가 썩은 데서 나기에/흔히들 중독이 많았다 하네/이 버섯만은 소나무 아래에서 나/늘 솔잎에 덮였었다네/소나무 훈기에서 나왔기에/맑은 향기 어찌 그리도 많은지/향기 따라 처음 얻으니/두어 개만 해도 한 웅큼일세/내 듣거니, 솔 진액 먹는 사람/가장 빨리 신선 된단다/송이도 솔 기운이리니/어찌 약 종류가 아니랴이규보는 약 800년 전, 고려 후기 사람이다. 오래전부터 송이버섯에 대해서 정확히 알고 있었다. 송이버섯 식용의 역사는 길다. ‘삼국사기’에, “신라 성덕왕(702~737년) 때 왕에게 송이버섯을 진상했다”는 내용이 있다. 기록상 가장 오래된 송이버섯 이야기다. 무려 1,300년 전의 기록이다. 송이버섯이 성덕왕 때 갑자기 나타났을 리 없으니 식용의 역사는 그보다 앞선다고 추정한다.기록이 많이 남아 있지 않은 고려 시대에도 송이버섯에 관한 내용은 꾸준히 나타난다. 고려 말기 문신 근재 안축(1282~1348년)의 시는 제목이 ‘송이버섯[松菌, 송균]’이다.서늘한 가을 지팡이 짚고 소나무 사이 걷다가/손으로 따서 새로 난 것 먹어 보니 맛이 좋구나/관가의 좋은 반찬[粱肉, 양육]도 향이 이만 못하여/구름 보고 젓가락 던지며 청산에 부끄러워하네(근재집 제1권)예나 지금이나 송이버섯은 소나무 숲에서 자란다. 맛은 어떠했을까? 근재는 송이버섯의 ‘맛’을 ‘향’으로 설명한다. ‘양육(粱肉)’은 좋은 음식 혹은 ‘쌀밥과 고기’다. ‘양(粱)’은 기장(혹은 수수)이다. 중국에서는 손님이 오면 기장밥을 내놓았다. 기장밥이 일상 최고의 음식이었다. ‘양육’이라고 표기하고, ‘쌀밥과 고기’라고 해석하는 이유다. ‘양육’은 최고의 음식이다. 송이버섯의 향은 ‘관가의 양육’을 넘어선다. 조선 시대의 시는 좀 더 구체적으로 송이버섯을 설명한다. 조선 중기의 문인, 관료 고산 윤선도(1587∼1671년)의 칠언절구다. 시의 끝부분에 “이 시는 송이버섯을 보내준 것을 사례한 것”이라고 적혀 있다.솔 사이에 자란 식물 맛[嘉味]이 좋아서/쓰지도 시지도 않고 맵지도 않아/이파리, 줄기 없어도 제대로 몸을 갖췄고/싱그런 향기에 정신이 벌써 상쾌해라/오랜 벗이 성중의 객에게 선물을 보냈나니/부엌 아낙 도마 먼지 닦느라 바쁘다/만약 장공에게 한 젓가락 맛보게 한다면/오회 강의 가득한 순채를 어찌 말하리오송이버섯은 ‘가미(嘉味)’다. 좋은 맛, 진미다. ‘프리미엄 향’이다. “이파리, 줄기 없이 제대로 몸을 갖췄다”는 표현은 절묘하다. 잎도 줄기도 없지만 여느 식물을 앞서는 향이 있다.‘장공’ ‘오회 강의 가득한 순채’는 설명이 필요하다. 장공은 진[西晉, 서진]나라 제왕(齊王) 시절, 동조연(東曹掾)으로 벼슬생활을 하던 장한(張翰)이다. 어느 날, 가을바람이 불어오자 문득, 고향 강동(江東) 오중(吳中)의 순채 국과 농어회를 떠올린다. 장한은 그길로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간다. ‘순갱노회(蓴羹鱸膾)’의 고사다. 순갱노회는 조선 시대 사대부의 로망이었다. 고산은 송이버섯이 ‘순갱노회’를 앞지른다고 말한다.예나 지금이나 송이버섯의 주산지는 소나무가 흔한 곳이다. 소나무나 그 지역의 토질, 바람, 습도, 온도, 강우량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송이버섯의 생산량과 품질을 정한다. 송이버섯은 자연산이다. 실험실에서 ‘일부’ 양식에 성공한 적도 있지만 ‘실험실의 성공’에 불과하다. 일본과 한국 모두 ‘양식 재배’는 여전히 힘들다.생산량, 품질로는 경북이 가장 앞선다. 전국 생산량의 40-50%가 경북 영덕 몫이다. 봉화, 청송 역시 송이버섯에서는 빠지지 않는다. 송이버섯은 태백산맥을 중심으로 생산된다. 경북 울진, 영덕, 봉화, 영양, 문경, 영주 그리고 태백산맥의 끝자락인 영천 등에서 송이버섯을 생산한다. 경북 생산량이 전체의 70~80%를 차지한다.송이버섯은 4단계로 분류한다. 상품 1, 2, 3등급이 있다. 등외품도 있다. 1등품 기준으로 한때 1Kg, 100만 원을 넘긴 적도 있지만 대략 30-40만 원 선이다. 수백만 원을 호가하는 송로버섯(트러플)에 비하면 낮은 가격이라지만 여전히 비싸다. 2등품은 크기가 작고, 갓이 일부 핀 것이다. 3등품은 생장을 멈춘 생장정지품 혹은 갓이 1/3 이상 핀 것이다.가격은 한결 싸지만, 실제 식탁에서 느끼는 향은 1등품과 큰 차이가 없다. 다행히, 냉장 보관의 경우 향도 큰 차이가 없다. 봉화, 영덕에서는 ‘송이라면’을 내놓는 집들도 있다. 송이라면, 송이버섯 덮밥의 경우, 굳이 1등품을 고집할 필요는 없다. 소비자도 마찬가지. 선물용이 아니라면 굳이 가격이 높은 1등품을 고집할 필요는 없다./맛칼럼니스트 황광해

2019-09-09

K-푸드

드라마·영화나 K-팝 같은 콘텐츠로 인한 한류열풍 만큼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는 게 ‘K-푸드’ 열풍. 한국음식에 대한 폭발적인 인기를 가리키는 말로, 주로 미국시장에서 불고 있다.과거 미국에 알려진 우리 음식은 불고기와 김치 정도였고, 한국인 이민자들의 주요 정착지인 하와이나 로스앤젤레스(LA) 코리아타운에서나 맛볼 수 있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빵, 라면, 만두 등으로 상징되는 한국 대표 브랜드를 미국 어느 지역에서나 만날 수 있다. 이제 한국의 맛이 미국을 물들이고 있다.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브랜드는 CJ제일제당의 만두 ‘비비고’다. 비비고 만두는 미국 코스트코에서 중국 만두 ‘링링’을 제치고 만두부문 판매 1위에 올라섰다. 링링은 미국 만두시장을 25년간 독식해 온 브랜드인 데, 미국판 비비고 만두는 돼지고기 대신 소고기를 부추 대신 고수를 넣은 현지화 전략으로 미국인들 입맛을 사로잡았다. 라면 중 매운 맛 브랜드도 인기다. 신라면, 육개장사발면 등 농심의 라면 브랜드들은 미국의 면시장을 뒤흔들고 있다. 베이커리업계에서도 한국 맛 바람이 불고 있다. 한국 대표 프랜차이즈로 꼽히는 SPC는 파리바게뜨 브랜드로 미국을 공략 중이다. 2005년 LA 코리아타운에 미국 1호점(웨스턴점) 오픈을 시작으로 맨해튼 핵심상권, 캘리포니아 주의 대표적인 주택가 등에 진출했다. 풀무원은 국내에서 생산한 김치를 미국 전역 대형 매장부터 슈퍼마켓까지 1만 개 매장에서 판매하고 있다. 오리온은 지난달 29일‘꼬북칩’(미국명 터틀칩스 ‘TURTLE CHIPS’)을 미국 코스트코에 입점, 본격적으로 미주시장 공략에 나서게 됐다. K-푸드의 한류열풍 합류는 세계를 한 울타리로 만드는 호재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19-09-09

“꼭 청출어람 하겠습니다”

신희선 숙명여대 기초교양대학 교수·정치학 박사“선생님이 안계셨으면 이 책도 없었습니다.”개강 첫 주 학교를 찾아온 경욱군이 자신이 쓴 책 ‘이렇게 된 이상 마트로 간다’를 건네주며 속표지에 이렇게 적었다. 대기업을 다니다가 사표를 내고 고향인 군산으로 내려가 마트를 창업한 경욱군이 카카오 브런치에 썼던 글이다. 365일 문을 닫지 않는 마트에서 바쁜 일상 틈틈이 책을 읽고 고민했던 청춘의 시간이 진솔한 문장에 담겨 있었다. 경욱군은 “글쓰기를 통해 나는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었다. 글을 쓰면서 나는 어떤 사람인지 생각하고, 막연하게 생각했던 주제에 대한 내 의견이 무엇인지 정리할 수 있었다. 그리고 ‘어떻게 살아야 할까?’에 대한 답을 끊임없이 찾아나갔다.”고 했다. 대학에서 ‘글쓰기’를 가르치다 보니, 자신의 책을 낸 제자의 모습을 보며 대학 교양교육의 의미를 생각해 본다.한 학기 수업만으로 끝나지 않는 인연이 있다. 경욱군은 2011년 ‘리더십과 의사소통’ 수업에서 만난 서강대 학생이었다. 타 대학 교양 수업이었음에도 지금까지 당시에 만났던 학생들과 만남이 이어지고 있다. 학생들은 말한다. 일방적인 강의가 아니었고 서로 생각을 나누며 함께 만들어갔던 즐거운 수업이었다고. 학생들은 스스로 주제를 잡아 탐색하고, 토론하고 발표하면서 많이 배웠다고 한다. 교수자로서 했던 역할은 수업에 필요한 자료를 공유하고 학생들의 말을 경청하며 질문하고 피드백하는 일이었다. 학생들은 자신의 몸을 통과한 이 시간을 기억하였다.“교수는 학생을 가르치는 게 아니라 단지 도울 뿐이다.” 미국 세인트 존스 대학 총장은 말한다. 대학 4년 동안 전공교육은 없다. 대신 다양한 분야의 고전을 읽고 토론하고 에세이를 쓰는 교양교육을 통해 인재를 육성한다. 카넬로스 총장은 “배운 사람이 아니라 배울 수 있는 사람을 키우는 것”이 교육 목표라고 강조한다. ‘교수’가 없고 ‘강의’가 없다. 학생들과 함께 공부해 가는‘튜터’가 있을 뿐이다. 강의실 안팎에서 새로운 배움에 학생들의 눈빛이 빛나도록 자극하고, 학생 스스로 공부할 수 있는 경험의 장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교수는 학생의 잠재력을 믿고 격려하고 응원하는 선배이자 코치인 것이다.경욱군은 자신의 꿈을 말한다. “단순히 돈 많은 사람보다 돈으로 좋은 영향력을 미치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이미 ‘십시일반 프로젝트’, ‘고사리 희망장터’를 통해 소외된 이웃들에게 따스한 손길을 건네고 있음에도 그의 마음은 세상 속에 더 의미있는 실천을 꿈꾼다. 대학에서 한 학기 수업이 학생들에게 어떤 변화를 만들 수 있을까? 그러나 경험적으로 믿게 된 진실이 있다. 당장의 결과로는 알 수 없는 의미 있는 성장이 그 시간 속에 숨어 있다는 것을. 자신을 성찰하고 세상과 소통하는 힘은 결국 글쓰기와 토론교육에 있다는 사실을. 이제 가을 학기가 시작되었다. 새로운 얼굴들을 만나고 이들과 만들어갈 앞으로의 시간이 기대가 된다. “꼭 청출어람 하겠습니다”고 한 경욱군의 다짐이 먼 미래가 아니라 이미 시작된 현재이듯이.

2019-09-09

가을 태풍

카리브해의 섬나라 바하마는 지난 3일 허리케인 도리안의 상륙으로 온 나라가 초토화됐다. CNN은 “바하마에서 태풍으로 유례없는 규모의 파괴가 일어났다”고 보도했다. 아바코와 그랜드 바하마에서는 전체 가옥의 절반인 1만3천 채가 파괴됐다. 주민은 섬 전체가 물에 잠길 것 같은 공포를 겪었다고 했다.가을 태풍은 대체로 역대급이 많다. 2013년 11월 필리핀에 상륙한 태풍 하이옌은 430만명의 이재민을 내고 사망자만 1만2천명을 발생케 했다. 순간 최대풍속이 초속 105m로 태풍사상 가장 강력했다. 1970년 11월 방글라데시에서 발생한 태풍은 30만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바람의 세기가 하이옌만 못했으나 방글라데시의 취약한 사회기반으로 희생자는 더 많았다.우리나라도 역대 최악의 피해를 낸 태풍은 가을 태풍이다. 2002년 9월 태풍 루사는 246명의 인명 피해를 냈다. 당시 재산피해가 5조원이다. 2003년 9월 태풍 매미는 131명의 인명 피해를 냈다. 849명의 목숨을 앗아간 1959년 태풍 사라도 추석 직전인 9월에 발생했다. 우리나라는 8월 중 태풍이 가장 많이 발생하지만 피해는 9월 발생 태풍이 더 크다. 이처럼 가을 태풍이 강력해지고 있는 것에 대해 전문가는 지구 온난화의 영향을 손꼽고 있다. 그것이 유일한 이유는 아니라 해도 바람 세기와 비의 양을 늘리는 것에 대해서는 부인하지 않는다.지난 100년 동안 해수면은 20㎝ 상승했다. 세계기상기구는 20세기 지구의 평균 기온이 1.8도 올랐다고 했다. 기온이 1도 오를 때 강수량은 5∼10%씩 상승한다. 점차 아열대기후로 바뀌어 가는 한국에도 겨울에 태풍이 찾아 올거란 예측이 나온다. 인간이 자초한 지구온난화의 대가가 가히 두렵다./우정구(논설위원)

2019-09-08

‘검찰 개혁’은 시작됐나

안재휘 논설위원지금은 거의 잊혔지만, 지난 1992년 이탈리아에서 열혈 검사들이 주도해 일어난 마니풀리테(Mani Pulite 깨끗한 손)라는 이름의 부정부패추방 운동은 세상을 놀라게 한 사건이다. 안토니오 디 피에트로 검사의 본격적인 수사로 시작된 마니풀리테 결과, 1년 동안 고위공직자와 정치인 등 무려 3천여 명의 정·재계 인사가 체포·구속됐다. 전 국회의원의 4분의 1가량인 177명이 검찰 조사를 받았다.검찰이 사생결단에 나선 듯한 결기로 날카로운 칼끝을 장관후보자 조국에게 겨눈 일을 놓고 상대적으로 더 많이 놀란 쪽은 여권(與圈)인 듯하다. 청와대와 행정부, 더불어민주당이 분을 참지 못하는 표정이다. 청와대 일부 관계자는 ‘미쳐 날뛰는 늑대’라는 극단적 수식어까지 동원해 “내란음모 사건이나 전국 조직폭력배를 소탕하듯 한다”며 검찰을 비난했다. 여당 의원들도 앞다투어 검찰을 힐난하고 있다.검찰은 가만히 있지 않았다. 대검 관계자는 “수사 개입 우려가 있는 매우 부적절한 일”이라고 반박했다. 며칠 전만 해도 윤석열을 ‘사상 최고의 검찰총장’이라던 여권 인사들이 같은 입으로 ‘반란’이라고 욕하는 게 말이 되나. ‘검찰 개혁’을 위해 조국을 내세웠다는 말이 진심이라면 ‘사전보고 안 했다’고 화를 내선 더더욱 안 된다.‘죽은 고기만 먹는 하이에나’라는 치욕적인 오명을 걸머졌던 검찰이 이번 사태를 계기로 민심을 얻을 수 있을 것인가가 관심거리다. 윤석열 총장은 바야흐로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자신의 멋들어진 발언이 참인지 아닌지를 판가름하는 시험대에 올랐다.‘검찰 개혁’에는 크게 두 개의 과정이 있다. 그 1단계는 ‘정치 권력으로부터의 독립’이다. 2단계는 시대에 맞지 않는 ‘무소불위(無所不爲)의 권력독점을 해소하는 일’이다. 기본적으로 ‘검찰 개혁’은 법무부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결국은 법을 개정해야 될 일이라 검찰의 공감 아래 입법부 국회가 나서야 가능한 일이다.까놓고 말하자면, 역대 정권이 줄줄이 ‘검찰 개혁’에 실패한 것은 선거 때 득표를 위해 공약했다가 막상 정권을 잡고 난 뒤 ‘사냥개 부리는 재미’에 흠뻑 빠져서 약속을 뒤집은 탓 아닌가.‘어쩌면 윤석열은 문재인 대통령의 제1 충신일지도 모른다’는 분석도 있다. 민심의 흐름을 역행하면서 문 대통령을 ‘망하는 길’로 몰고 가는 청와대 참모들과 정부·여당에 대해서 의미 있는 반기를 들고 있다는 추리인 것이다.이제 욕심을 좀 더 부리고 싶다. 윤석열이 그보다 훨씬 더 큰 가치, ‘이 나라의 부정부패와 불공정을 일소하기 위한 일대 설거지’에 나선 감동적인 혁신가였으면 좋겠다. 감동적인 한국판 마니풀리테를 볼 수는 없을까. 민심 지지를 바탕으로 검찰 개혁의 1단계인 집권세력으로부터의 독립만 철저히 실현할 수만 있다면 못할 일도 아니라는 생각이다.명실공히 ‘국민 검찰’로 거듭날 수 있는 길이 아예 없는 것도 아니지 싶은 기대가 부질없는 착각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2019-09-08

이상한 거래

덴마크 시골에 가진 것은 없으나 유쾌하게 살아가는 노부부가 있습니다. 식량이 떨어진 부부는 말 한 마리를 처분하기로 합니다. 시장으로 가던 할아버지는 암소를 키우는 남자를 만납니다. “신선한 우유가 나오겠지? 말과 바꾸면 좋겠어.” 양을 끌고 가는 사람과 마주칩니다. ‘집 앞 공터에는 풀이 충분하니 암소보다 양이 나을 것 같은데?’양을 끌고 시장을 향하던 할아버지는 거위를 안고 논길을 걷는 남자를 만납니다. “실한 놈이구려. 할멈은 거위가 좋다고 몇 번이나 말했거든. 양하고 바꾸는 게 어떻겠소?” 감자밭에서 암탉 한 마리를 본 할아버지. 마음이 또 흔들립니다. ‘저렇게 아름다운 암탉은 알도 잘 낳을 거고. 거위와 바꾸면 수지맞는 거래가 될 거야.’할아버지는 주막을 찾습니다. 입구에서 썩은 사과를 짊어지고 주막을 나서는 마부를 만나지요. 할아버지는 암탉과 바꾼 썩은 사과 한 자루를 메고 주막으로 들어갑니다. 맞은편 좌석에는 돈 많은 영국 부자 두 사람이 있습니다.할아버지는 말을 가지고 나왔다가 썩은 사과로 바꾸기까지 과정을 자랑삼아 들려줍니다. “영감님은 이제 집에 가면 마나님한테 혼나시겠군요.” 영국인이 걱정스럽게 묻습니다. “뭐라고? 오히려 내게 입을 맞춰주며 기뻐할걸요? 마누라는 틀림없이 ‘영감이 하는 일은 언제나 옳아요.’하고 말할 거요.” 할아버지는 큰소리칩니다.“내기할까요? 영감님이 이기면 금화 한 자루를 주겠소. 평생 돈을 펑펑 써도 남을 거요.” “거 참, 너그러우시구려. 하지만, 난, 이 썩은 사과 한 자루와 마누라, 나 자신밖에 걸 수 없소. 당신네가 이기면 우리 부부는 기꺼이 당신들 종이 될 수 있지. ”내기가 이루어집니다. 그들은 때마침 도착한 주막 주인의 마차를 타고 농부 집으로 함께 가지요. 영국인은 창밖에 숨어 대화를 엿듣습니다. (내일 편지에 계속)/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대표

2019-09-08

상처와 무늬 그리고 김종원

김도형 아시아퍼시픽해양문화연구원 이사상처 많은 나무가 아름다운 무늬를 남긴다는 말이 있다. 사람의 경우는 어떨까? 상처 없는 사람은 없다. 누구나 상처를 입지만 그 고통을 견디며 살아가기 마련이다. 그렇다고 모든 상처가 아름다운 무늬가 되는 것은 아니다. 상처가 아름다운 무늬가 되고 세상에 향기를 전하는 삶은 극히 드물다.포항 동빈동에 흰색의 아담한 목조건물 하나가 있었다. 따듯한 정감과 품위를 느끼게 한 그 건물은 선린병원이었다. 선린병원은 단순히 하나의 병원이 아니다. 파란만장한 현대사와 개인사가 씨줄과 날줄로 엮여 있다. 전쟁으로 초토화돼 수많은 전쟁고아들이 길거리를 헤매고, 홀로 된 산모들이 흐느끼고 있는 포항에서 그들을 치료하고 섬기는 사명이 선린병원의 뿌리다. 그 사명을 깨달아 병원을 헌신적으로 이끌고 키운 사람이 김종원이다.그는 1914년 평안북도 초산군에서 태어나 평양의전을 졸업하고 평양의대 소아과에서 근무했다. 6·25전쟁이 터지고 월남해 대구 동산기독병원에 있던 중 전쟁고아들을 무료 진료하는 미해병대 기념 소아진료소가 포항에 만들어지면서 진료소를 이끌 적임자로 추천을 받게 된다. 그는 온몸을 바쳐 전쟁고아뿐만 아니라 오갈 데 없는 산모들의 진료를 맡았다. 한국 최초의 모자보건 활동을 펼친 것이다. 이 진료소는 김종원의 정성이 밑거름이 돼 선린병원으로 성장하게 된다. 그는 의사로서 얼마든지 편하게 살 수 있었지만 30년 된 텔레비전과 냉장고를 사용하는 무소유의 삶을 살았다.그의 삶에는 깊은 상처가 있었다. 남쪽으로 올 때 북에 세 아들이 남아 있었다. 피난 올 때 갓난아기였던 넷째 아들은 경기고 진학을 위해 서울 하숙집에 머물다가 연탄가스에 중독돼 숨을 거뒀다. 2007년 3월 김종원이 영면하자 조문 행렬이 끊이지 않았고, 하관식 때 그의 품에서 자란 많은 고아들이 눈물을 흘렸다. 포탄의 웅덩이에서 놀던 고아들은 북에 두고 온 그의 아이들로 보였겠지만, “예수님의 다른 모습이었는지도 모른다”고 선린병원 원장 이임사에서 고백했다. 김종원은 감내하기 힘든 상처를 견뎌내며 이웃들에게 감동의 인술을 펼쳤다.인산(仁山) 김종원의 삶은 성산(聖山) 장기려의 삶과 여러모로 겹친다. 장기려는 1911년 평안북도 용천군에서 태어나 경성의전을 졸업하고 일본에서 의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전쟁통에 월남한 후 부산 영도에 병원을 세워 피난민을 무료 진료했고, 국내 최초의 의료보험조합을 만들어 가난한 사람들도 치료받을 수 있는 기틀을 만들었다. 그 또한 이산가족이었다. 월남하면서 아내와 네 자녀는 북에 두었고, 차남만 데리고 부산에 정착했다. 노년에 병고에 시달리면서도 집 한 칸 없이 소외된 사람들을 섬긴 작은 예수였다.배금주의가 횡행하는 시대, 인산과 성산의 삶은 인간의 상처와 그 상처를 극복하면서 만들어간 무늬의 의미를 묻게 한다. 부산에는 장기려를 기념하는 센터가 있고, 곳곳에 그의 자취가 남아 있다. 포항에서 김종원의 흔적을 찾아보기는 쉽지 않다. 선린, 그 아름다운 이름으로 초토에서 버림받은 이들을 보살핀 동빈동에 그의 고귀한 삶을 기리는 작은 표지석이라도 하나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2019-09-08

북한의 대미 협상 전술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 정치학박한식 교수를 만난 지는 상당히 오래되었다. 20여 년 전 어느 세미나에서 한반도 문제에 대한 그의 혜안은 상당히 참신하였다. 미국 조지아대학 교수이며 대구 출신인 그는 아직 고향 사투리를 그대로 쓴다. 세계적인 북한 문제 전문가인 그는 카터와 클린턴 대통령의 방북을 주선하기도 하였다. 그는 북한을 50여 차례 방문하여 북한 당국의 입장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최근 그의 북한 관련 언급은 우리들에게 상당한 시사점을 주고 있다.북한 당국은 종래의 통미통남(通美通南) 정책에서 다시 통미봉남(通美封南) 정책으로 회귀하였다. 북한이 최근 우리의 대북화해 협력 정책을 무시하고 남한 배제 정책을 쓰는 이유이다. 그것은 우리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한 강한 불신에서 비롯되었다. 김정은은 작년 9월 3차 평양 정상회담에서 문 대통령에게 파격적인 예우를 했다. 그러나 북한은 문재인 정부가 ‘우리끼리 정신’을 무시하고 미국의 대북 정책에 종속되었다고 비난한다. 북한이 남쪽을 향해 ‘오지랖 넓은 중재자’로 비판하면서 문 대통령의 8·15 경축사까지 ‘삶은 소대가리도 앙천대소할 노릇’이라고 원색적으로 비난하는 이유이다.북한은 북미 협상을 앞둔 시점에서 미사일 시험 발사 등 종래의 벼랑끝 전술을 강화하였다. 그것은 한미 합동 군사 훈련에 관한 북한식 불만의 표시이며, 대미 협상력을 높이기 위한 압력이다. 물론 여기에는 북한이 상대적 열세인 재래식 무기를 미사일로 보완한다는 의도도 깔려 있다. 이는 북한이 단거리 미사일 발사를 통해 자신들의 기술력을 세계에 과시하고, 이의 제3세계 판매전술도 고려한 조치이다. 트럼프는 북한의 단거리 미사일 시험은 대북제재에 해당되지 않으며, 경비가 많이 드는 한미 합동 군사 훈련도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 역시 트럼프식의 대북 협상용 카드일 뿐이다.북한은 궁극적으로 체제 안전 보장 전술을 구사하고 있다. 김정은은 북한 체제의 안전성 보장이 전제되지 않으면 결코 핵을 포기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사실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와 대북 제재해제는 단번에 합의될 수 있는 사안은 아니다. 북한과 미국이 일괄 타결론과 단계론적 타결론으로 대립하는 이유이다. 그러므로 북한 당국은 대북 경제 제재 해제만으로 결코 비핵화를 실천하지 않을 것이다. 북한은 북미 평화 협정체결과 대사급 외교 관계 수립을 비핵화의 전제로 본다. 북한은 어떠한 진통을 겪더라도 체제의 안전 보장이 우선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북한의 이러한 대미 협상 전술은 트럼프와는 협상의 셈법이 다르다. 트럼프는 어느 협상에서나 미국 이익의 극대화를 최고로 우선한다. 그는 정치나 외교를 그의 경험세계인 비즈니스 개념으로만 파악한다. 트럼프가 최근 미일 동맹을 강화한 것도 미국 군산복합체의 이익확보를 위함이다. 그는 미국 이익에 배치되면 언제든지 협상의 결과를 파기할 수도 있다. 트럼프가 이란과 체결한 핵 협정을 폐기한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이에 비해 김정은의 최대 관심사는 북한 정권의 안전 보장이다. 북한당국이 경제적 제재 해제만으로 핵을 포기하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물론 북한의 협상 전술도 고정된 틀은 아니며 상당한 가변성이 있다.

2019-09-08

통합신공항과 함께 대구경북 미래를 꿈꾸다

김영만군위군수군위군의 황금빛 미래를 꿈꾼다. 이제는 현실이 된 대구경북 통합신공항의 군위 유치를 앞두고 있다. 2016년 대구경북 통합신공항 유치 의사를 밝혔을 때만 해도 현실로 다가올 것이라고 아무도 믿지 않았다. 그러나 금년내 최종이전지 선정을 정부에서 약속했다. 흔들림 없이 추진한 통합신공항 유치의 결실을 맺을 시기가 다가오는 것이다.통합신공항을 유치하려는 가장 큰 이유는 심각한 인구감소와 고령화로 열악한 자치기반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대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는 상태에서 대구공항 통합이전 소식을 ‘절체절명의 순간에 다가온 지역발전의 기회’로 판단하였기 때문이다. 통합신공항은 주민소환이라는 거대한 벽을 만나기도 했고 지난 선거에서는 정쟁의 대상이 되어 지역은 용광로처럼 끓어올랐다. 그때마다 군민이 함께 있어 그 벽을 넘을 수 있었다.군위군은 대구광역시와 접해 있으면서도 팔공산이라는 지리적 여건으로 그동안 발전에 소외되었다. 부계~동명간 팔공산 터널 개통으로 대구에서 30분 생활권으로 들어가고 대구경북 어디에서도 1시간안에 접근할 수 있는 중앙고속도로와 상주~영천간 고속도로의 개통으로 이전할 대구통합신공항의 입지적인 여건이 확연하게 좋아졌다. 대구통합신공항 이전은 대구경북이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대역사의 시작이다. 통합신공항 군위 유치는 생산효과 13조원, 부가가치유발 5조원, 취업유발 12만명의 경제적 파급효과를 가져온다. 내륙 거점도시로서 SOC유치와 경기활성화도 꿈꾼다.공항 이전은 공항만 오는 것이 아니다. 공항과 연결을 위한 도로망 구축, 고속도로 신설 및 확장, 철도망 구축 등 다양한 SOC가 개발된다. 교통망이 구축된다는 것은 산업기반의 핵심요소가 충족되는 것으로 글로벌 관문은 물론 대구경북 광역경제 공동체의 핵심 역할로 새로운 도약을 이루어 낼 것이다.통합신공항은 대구경북의 미래를 위한 시대적 소명이기도 하다. 4차산업 혁명으로 항공물류 기능이 더욱 중요해진 상황에서 수용 한계치를 넘어 섰고, 전국 거점공항중 시설여건, 규모가 가장 열악하여 취약한 항공물류 기능으로 대구경북 산업 발전에 큰 한계로 작용하는 대구공항의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다.중장거리 공항으로 지역 이용객은 물론, 지역기업들의 물류비용과 시간을 절감하여 수도권에 집중된 항공물류를 분담해 대구경북의 항공 물류를 처리하는 거점기지가 될 것이다. 대구경북 내 산업도 함께 살아날 것이다. 인천국제공항에 2017년 12월 성탄 연휴 첫날 짙은 안개로 300여 편의 항공기가 지연 또는 결항된 적이 있다. 해안가 공항의 한계인 해무가 이착륙을 방해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9월엔 일본 간사이공항이 태풍 ‘제비’의 영향으로 침수되어 공항이 일시 폐쇄되기까지 했다. 이는 해안가 공항 건설의 이점을 주장해 온 사람들에게 그 위험이 얼마나 큰 것인가를 일깨우는 계기가 되었다. 여기에 대안은 안전한 내륙공항에 있다. 현재 군위후보지가 그러하다.공항은 방문객들의 규모가 크고, 방문객 1인당 지출이 일반 관광객보다 훨씬 높아 관광수익뿐 아니라 일자리 창출효과와 홍보마케팅 유발효과도 커 최근 세계 주요도시들의 불황극복의 새로운 산업분야로 지목받고 있다.공항을 매개로 한 회의,포상관광,켄벤션,전시회등 4개 비즈니스사업인 마이스(MICE) 산업과 연계하여 대구경북의 문화가 세계에 통하는 경쟁력 있는 문화유산임에도 접근성이 떨어져 외국인에게 외면받았지만 제대로 된 대구경북의 관문공항은 분명히 새롭게 조명받을 것이다.

2019-09-08

우리는 책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오지은 공무원지식과 정보는 다양한 매체를 통해 얻을 수 있지만 책은 지식을 얻는 가장 보편적이고 신뢰할 수 있는 매체라고 할 수 있다. 독서의 계절이라고 하는 가을 문턱에서 왜 책을 읽어야 하는지 생각해 본다. 공부를 위한 기본 지식을 습득하기 위해, 다른 사람에게 유식하게 보이기 위해, 더 넓은 세상에 대해 알고 싶어서 등 책을 읽는 이유는 다양하다. 어떤 이유로든 우리는 자신의 필요 때문에 책을 읽을 것이다.과거에는 높은 신분을 가진 사람만 책을 읽을 수 있었다.책을 읽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일종의 특권이었다. 고급 정보에 접근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했고, 깊은 사고력을 바탕으로 세상에 대한 안목을 넓힐 기회를 가질 수 있음을 의미했다. 과거의 사치품은 현대의 필수품이 된다고 하던가? 책 읽기도 마찬가지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무료로 책을 읽을 수 있는 환경이 활짝 열려 있다.25년 차 공무원인 내게 있어 책 읽기는 생존을 위한 무기였다. 겉보기에 무난한 삶이지만 고비 고비마다 순탄한 적이 없었다.공정하게 느껴지지 않는 상황들, 모두가 자기 손해는 손톱만큼도 안 보는데 나만 순진해서 당하는 느낌, 바보 같이 살고 있다는 생각들이 짓누를 때 속으로는 화나고 슬펐지만, 겉으로 속상하지 않은 척 씩씩한 척해야 할 때가 많았다. 누군가에게 위로를 받고 싶었다. 누군가 내게 힘내라고 말해주었으면 싶었다.이런 힘든 상황을 가족이나 친구에게 사사건건 말할 수도 없다. 하소연하면 결국 나만 속 좁은 사람이 되고 말았다. 타인이해 주는 위로가 아니라 스스로 방법을 찾아야만 했다. 그때 나는 책을 통해서 자신을 위로하고 내면의 안정을 추구하는 것이 가능함을 발견했다.책에 나오는 한 구절 한 구절은 내가 공정하지 못한 것 같은 세상에 분노할 때, 세상은 원래 그런 것이라고 말해주었다. 그래도 과거보다는 지금 세상이 훨씬 공정하게 바뀌고 있음을 알려주었고 이런 세상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의 노고가 있었는지 알게 해 주었다. 자기 생명을 위협받는 순간에도 자신을 믿고 행동한다면 극복할 수 있다고 말해주었다. 조금만 다르게 생각하면 지금의 시련이 너를 더욱 강하게 만들어 줄 것이라고 격려도 해주었다. 네가 언제 한 번이라도 마음과 목숨을 다 바쳐 무엇인가 해 본 적이 있냐고 질책하기도 했다.세상에는 헐벗고 굶주린 상태로 폭탄이 집에 떨어지지 않기 만을 바라는 제3 세계 사람들이 더 많다는 것을 알려주었고, 위만 바라보고 불평하던 내게 지금 얼마나 풍족하게 살고 있는지를 일깨워 주었다. 그래서 나는 사회에 나와 더 많은 책을 읽었던 것 같다. ‘죽음의 수용소에서’, ‘칼의 노래’, ‘한비자의 관계술’, ‘한강’, ‘태백산맥’, ‘연을 좇는 아이’, ‘히말라야 환상방황’, ‘죄와 벌’ 이런 책들을 통해 역경을 이겨낸 사람들을 만났고,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지혜도 배웠다.책을 읽으면서 힘을 주는 문장, 내 마음을 귀신같이 알고 위로해 주는 그 문장들 때문에 용기를 내어 외국인들이 역동적이라고 표현하는 한국에서 아직 잘살고 있다.책은 새로운 세계를 향해 성큼 발 내디딜 수 있는 길잡이다.몰랐던 사실에 대해 놀라워하기도 하고, 깨달음을 얻기도 한다. 저자의 날카로운 통찰력을 만나 지혜를 얻을 수도 있고 때로는 책을 읽다가 만난 문장을 통해 삶이 뒤집기도 한다. 그 한 문장은 누군가의 인생 방향을 바꿀 수도 있다.사람들은 왜 책을 쓸까? 유전학에 의하면 달고 기름진 음식에 식탐을 느끼는 이유가 열량을 최대한 저장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태곳적 생존 정보가 우리 DNA에 각인된 결과라고 한다. 책을 통한 삶의 지혜 또한 인류가 살아남기 위해 축적한 지식을 다음 세대에 전해줌으로써 인류 생존을 지속시키고자 하는 본능일 것이다.가장 좋은 대화의 방법은 다른 사람 말을 잘 들어주는 경청이다. 책을 읽는 것을 저자와의 대화라고 말한다. 가을의 문턱에서 저마다 책에서 얻고자 하는 것은 다를지라도 저자와 대화를 해 보자. 나보다 인생의 경험이 많은 작가들 이야기를 경청해 보자. 그러면 거기에서 삶의 해답을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2019-09-08

의심하라 모오든 광명을

피실험자가 광고를 볼 때 뇌파가 어떻게 변하는지, 어느 부분에 민감하게 반응하는지 관찰한 빅 데이터를 모아 마케팅 전략을 수립합니다. 고급 매장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유심히 들어보신 적 있으세요? 나긋나긋 느린 음악이 주로 흐릅니다. 매장 내 음악 속도는 고객 매장 체류 시간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칩니다.가격표가 빨간색인 이유는 가격 파괴 기대감을 심어줘 시선을 고정하는 효과가 있습니다. 뇌는 손해에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2+1이나 한정 판매가 효과적인 이유는 사람들이 기회를 놓쳤을 때 손해 볼 것이라는 심리가 작동하기 때문입니다. 백화점이나 매장, 홈쇼핑은 뉴로 마케팅 집합체라고 보시면 됩니다. 이성적 사고방식으로 자제하려 해도 우리의 각오는 그들 전문성을 이겨내기 힘든 게 사실이지요.왜 굴지의 기업들이 인공지능 스피커를 각 가정에 서로 깔려고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을까요? AI 스피커는 사물 인터넷의 첫 교두보로 모든 가정에서 빅 데이터를 수집하는 안테나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AI 스피커 점유율은 데이터양과 질에서 현저한 차이를 낼 수밖에 없기 때문이지요.편리함과 즐거움. 빠른 속도와 안락함. 다양한 먹거리와 안전하고 풍요로운 삶. 누구나 선망하는 삶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서서히 길들여지다가 언젠가는 덜컥, 더 이상 우리의 자유 의지대로 살 수 없는 것은 아닐까 의심해 보아야 합니다.지금 이 새벽에도 포항 앞바다에는 오징어잡이 배들의 집어등이 찬란하게 빛납니다. 그 불빛을 보면 견딜 수 없어 수면 위로 꿈틀거리며 올라가는 오징어들의 몸짓을 상상합니다.유하 시인은 그의 시 ‘오징어’에서 “의심하라 모오든 광명을”이라 외쳤는데, 지금 우리를 향해 밝게 비추고 있는 저 빛이 과연 진리의 빛인지, 뉴로 마케팅의 첨단 연구로 똘똘 뭉친 유혹의 빛인지를 따져 물어야 합니다./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대표

2019-09-05

진대제의 기업가 정신

서의호 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지난 4일 한국 반도체 개발의 산역사이며, 삼성전자 대표이사, 정보통신부 장관 등을 지낸 진대제 전 장관이 포스텍에서 강연을 펼쳤다. 그는 ‘제2회 현은강좌’의 강사로 초대되었다. ‘현은강좌’는 필자가 제자들과 함께 조성한 ‘현은 기금’에 의해 매년 국가를 이끌어 가는 여러 분야의 주요 인사들을 초청하여 강연을 듣는 프로그램이다.그의 훌륭한 업적과 경력에 대해서는 익히 들어서 알고 있지만, 그날 현장에서 카리스마 있는 강연을 들으며 강당을 가득 메운 학생, 교수, 직원 그리고 외부 청중들에게 감동을 주는 순간을 경험했다. 한국인의 자부심을 가득 심어주는 시간이었다. 특히 일본과의 관계가 미묘하고 일본을 어떻게 넘을 수 있느냐는 관심이 고조된 가운데 열린 강연이었기에 의미가 있었다.진 전 장관은 필자와 함께 스탠포드대학 재학시에도 자전거, 자동차를 직접 고칠 정도로 손재주가 비상했다. 졸업 후 IBM연구소에 근무할 때도 4MD램 팀에서 탁월한 역량을 발휘하여 귀국시 IBM 측은 귀국을 만류하면서 “IBM에 언제든지 돌아와도 좋다”라는 백지수표를 받았다고 한다.귀국하면서 그가 외친 말은 “Swallow Japan(일본을 삼키자)”이었고 그래서 주변에서는 “그렇게 입이 크냐”는 농담도 들었다고 했다.우리나라에서 더 좋은 반도체를 만들어 일본회사들 문을 닫게 하겠다는 다짐을 하고 귀국한 진 전 장관은 16MD램을 개발해 미국으로 들고 갔다고 한다.IBM이 “I Buy Memory(나는 메모리를 구입한다)”의 약자라고 농담을 곁들인 그는 16MD램을 내놓기 전까지 한마디로 그들에게 무시당했다고 한다. 일본과 한국을 차별하던 그들 앞에서 마지막 꺼낸 카드가 16MD램이라고 한다. 16MD램을 가방에서 내놓은 다음 그들의 안색이 변헀고, 자기들끼리 회의를 하면서 난리가 났다고 한다. 미국신문에는 “삼성의 쿠데타”라고 헤드라인을 뽑고 삼성의 약진을 크게 보도했다고 한다. 어쨋든 짜릿한 순간이었고 일본의 히타치 도시바 NEC 반도체 등을 누르고 세계 정상에 서는 순간이었다고 한다.그는 실천적 엔지니어가 되는 기업가 정신을 강조했다. 지금까지는 소통과 실적의 두 개의 축으로 사람을 판단했지만 이제부터는 창의라고 하는 축을 만들어 3개의 축을 가진 3차원 공간에서 인재가 판단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기업가 정신의 필수요소로 세가지를 꼽았다. “문제해결 능력을 갖춘 전문가가 되라”는 것이었고, “소통과 협력을 통해 남의 얘기를 경청하고 질문을 할 줄 알고 협업을 잘 할 수 있어야 한다”라고 하였다. 마지막으로 “변화를 두려워 말고 끝없이 도전하라. 꿈과 상상력, 호기심을 가져라”고 그는 말했다. KTX 포항역을 빠져 나가는 그의 뒷모습을 보면서 일본과의 갈등 속에 경제적 위기에 처한 한국의 젊은이들에게 던진 그의 말이 전율을 타고 흘러왔다.“힘든시간은 오래가지 않는다. 그 힘든 시간을 견딘 이는 오래 간다.(Tough times never last, but, tough people do)”

2019-09-05

그들의 정의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촛불혁명으로 탄생한 정부’를 자처하는 이 정권은,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운’나라를 만들겠다고 호언장담하면서 출발을 했다. 그런데 임기 2년차가 지나면서 정치, 경제, 외교, 국방, 언론 등 각 방면에서 무능과 오만과 불의의 맨얼굴을 드러내고 있다. 과연 그들의 말처럼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를 보여주는 거라고나 할까.정권의 주역 중 한 사람이 법무장관으로 지명되자 온갖 추문들이 연일 봇물처럼 터져 나오고 있다. 가장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것은 딸의 진학을 둘러싼 비리와 부정에 관한 의혹들이다. 고등학교 3년 동안 남들은 꿈도 못 꾸는 화려한 스펙을 12가지나 쌓았다는 사실에 다들 혀를 내두른다. 그 중에서 단국대학교 의과대학 장영표 교수를 책임저자로 대한병리학회에 제출된 연구논문의 제1저자로 등재된 스펙이 가장 두드러지는데, 후보자의 딸이 고등학교 1학년 때 그 논문작성이 끝난 후에 2주간 인턴을 한 경력으로 제1저자가 되었다는 사실이 드러나 물의를 빚고 있다.대한의사협회는 지난달 21일 상임이사회를 열고 조 양의 지도교수인 장영표 교수를 중앙윤리위원회에 회부하기로 의결했다고 밝혔다. 그리고 “논문의 제1저자는 연구주제를 정하고 실험 대부분에 참여하는 등 논문 작성에 주도적 역할을 하며 기여도가 높아야 한다”면서 “객관적이고 구체적인 사실과 자료에 근거해 조사를 할 예정”이라지만, 한 마디로 말도 안 되는 일이라는 걸 부인할 수는 없을 것이다.더 가관인 것은 장 교수의 변명이다. 그 학생이 외국으로 유학을 간다고 해서 선의로 그랬다는 것이다. 명색이 대학교수라는 사람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온다는 게 참으로 놀랍다. 학자로서 그리고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수로서 일말의 양심이나 양식이라도 있다면 어떻게 그런 몰상식한 말을 버젓이 할 수가 있는가. 그리고 사람들을 못내 궁금하게 하는 것은 장 교수가 왜 그런 짓을 했을까 하는 점이다. 정신이 온전한 사람치고 그의 말대로 그냥 단순한 선의로 그런 비상식적인 짓을 했을 거라고 믿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검찰이 수사에 들어갔다고 하니 조만간 그 내막이 밝혀질 것으로 보인다.‘조국의 적은 조국’이라는 말이 유행한다. 조국이란 사람을 둘러싼 온갖 의혹과 스캔들은 평소 그가 그토록 신랄하게 비판하고 매도하던 일들이라는 것 때문에 생긴 말이다. 한 마디로 ‘조로남불’이고 겉과 속이 다른 위선자라 것이다. 그런 조국을 비호하고 두둔하는 일부 좌파 인사들도 지난 정권에 들이대던 정의와 윤리의 엄정한 잣대를 슬며시 감추는 이중성을 드러내고 있다. 정의와 도덕성을 전매특허로 내세우던 좌파집단의 민낯이 어떤 것인지를 전 국민에게 보여준 셈이다.증인채택 문제로 국회청문회가 결렬되자 조국 후보는 기습적으로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셀프청문회’로 일컬어지는 기자간담회에서 그는 의혹사항 대부분에 대해 모르쇠로 일관했다. 국민 과반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은 조국의 법무장관 임명을 강행할 거라는 예측이다. 지난 정권을 모조리 적폐로 몰아넣고 새로 구현하겠다는 그들의 정의(正義)가 과연 무엇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2019-09-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