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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고르바초프의 교훈

김규종경북대 교수·노문학1985년 3월 10일 소련 공산당 서기장 체르넨코가 서거하고, 이튿날 고르바초프가 54세 나이로 서기장에 취임한다. 소련 공산당 서기장 가운데 1917년 10월 사회주의 혁명 이후 출생자는 고르바초프가 유일하다. 장로정치(長老政治)에 익숙한 소련은 젊고 역동적인 고르바초프에게 묵직한 과업을 부여한다. 위대한 미국의 재건을 내세운 레이건의 국방과 외교정책에 효율적으로 대응하고, 소련내부의 적폐를 청산하는 역사적인 과업.케네디와 존슨, 닉슨을 거쳐 15년 넘게 2천억 달러를 쏟아 부은 베트남전쟁에서 참패한 미국은 1979년 호메이니가 이슬람 혁명으로 이란의 최고지도자가 되는 것을 수수방관해야 했다. 인권과 민주주의, 동서화합을 주도한 카터는 강력한 미국의 재생을 선언한 레이건에게 패배한다. 친기업과 부자감세, 작은 정부로 표현되는 신자유주의를 내세운 레이건은 천문학적인 국방예산 증액으로 사회주의 심장부 소련을 압박한다.휘청거리는 제국을 물려받은 고르바초프는 페레스트로이카(perestrojka)와 글라스노스트(glasnost)로 국내문제에 천착한다. 사회주의 체제를 온존하면서 국가재건을 도모하겠다는 것이 페레스트로이카의 핵심이고, 각종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겠다는 것이 글라스노스트다. 후자의 극명한 본보기가 1986년 4월 26일 발생한 체르노빌 원전사고다. 이전 권력자들 같았으면 감추기에 여념이 없었을 터이나, 고르바초프는 모든 것을 밝히도록 한다.고르바초프는 소련의 당면문제를 관료주의와 알코올중독, 두 가지로 압축한다. 자동차에 문제가 생겨 수리를 맡기면 동베를린에서는 3개월, 레닌그라드에서는 6개월, 모스크바에서는 1년이 걸리던 때. 끝없는 서류와 문건, 승인절차와 도장 따위로 일을 지연시키고 효율을 떨어뜨리는 관료주의. 복지부동과 상명하복으로 악명 높은 관료주의 척결과 국민의 30%를 넘어서는 알코올중독이 제국을 80대 동맥경화 노인으로 만들고 있었다.산적한 현안에 고르바초프가 골머리를 썩일 때 예상치 못한 문제가 발생한다. 아제르바이잔 내부에 자리한 나고르노-카라바흐를 둘러싼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 사이의 해묵은 민족문제가 터진 것이다. 1988년 일이다. 이것은 이슬람의 아제르바이잔과 기독교의 아르메니아 사이의 종교분쟁이기도 하며, 훗날 유고연방에서 벌어진 보스니아 내전을 앞선 사건이기도 하다. 고르바초프는 이 문제를 지나치게 낙관적으로 생각한다.사회주의 소련에서는 200여 종에 이르는 모든 민족과 종족이 동등한 지위를 가졌다. 소련을 구성하는 핵심세력은 대러시아, 백러시아, 우크라이나였지만, 헌법상 지위는 차별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그루지야 출신의 스탈린이 레닌의 뒤를 이을 수 있었다. 사회주의 원칙에 충실했던 고르바초프는 민족문제 발생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것이 그의 실각과 제국의 몰락을 재촉하는 아킬레스건으로 작동한다.홍콩 시민들의 반중시위가 세계적으로 화제다. 중국 공산당 정부의 ‘송환법’에 저항하는 홍콩 시민들의 강력한 함성이 지구촌 곳곳을 달아오르게 한다. 중국이 원하면 홍콩인이나 홍콩을 방문하는 외국인까지도 중국송환을 가능하도록 하는 것이 송환법의 요체(要諦)다. 이 법안이 관철되면 홍콩의 반체제인사와 인권운동가들이 중국본토로 송환되는데 악용될 것이라는 해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홍콩은 1984년 등소평과 대처의 ‘일국양제(一國兩制)’ 원칙에 따라 1997년 중국에게 이양된다. 홍콩 주권반환 이후 50년 동안 중국이 홍콩의 외교와 국방주권을 갖되 홍콩에 자치권을 부여하는 것이 일국양제의 고갱이다. 송환법은 그것을 뿌리째 흔들고 있다. 740만 인구의 홍콩을 14억 중국이 경시한다면 그것은 대만과 또 다른 일국양제 문제로 확대될 수 있다. 나아가 그것은 중국전체의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고르바초프의 교훈이다.

2019-06-19

임금의 초대를 받은 남자

밤중에 누군가 대문을 두드립니다. “임금의 명령을 전하러 온 사람이오. 임금께서는 당신을 데려오라 하셨소.” 남자는 무슨 일로 임금이 자기를 부르는 지 알 길이 없습니다. 혼자서 궁궐로 갈 용기가 나지 않습니다. 밤을 꼬박 새우고 아침 일찍 집을 나섭니다.남자에게는 세상에 둘도 없는 친구가 있습니다. 친구를 설득해 궁궐에 같이 들어가자고 요청합니다. 친구는 안색이 변하며 거절하지요. “미안하네. 약속이 있어서 갈 수가 없네.” 두 번째 친구를 찾아갑니다. “자네 말 대로 함께 가기는 하겠지만, 궁궐 안까지는 어렵겠네.” 실망한 남자는 마지막으로 친구 집을 찾아 문을 두드립니다. “걱정 말게. 자네같이 착한 사람에게 무슨 잘못이 있다고 임금이 벌을 내리시겠는가? 내가 함께 가서 혹시라도 자네가 무슨 오해를 받는 일이 있으면 내가 잘 말씀드리도록 하겠네. 서둘러 궁에 가 보세. 12시까지 도착하려면 빨리 가야 할 것 같네.” 남자는 뛸 듯이 기뻐하며 친구와 함께 대궐로 향합니다.탈무드에서는 이 이야기를 이렇게 해석합니다. 대문을 두드린 자는 죽음의 사신이지요. 모든 사람은 어느 순간 죽음의 초대를 받는 순간이 온다는 것입니다. 첫째 친구는 재물입니다. 살아 있는 동안 누구나 재물이 가장 진실된 친구라고 생각하지만, 막상 재물은 살아 있는 동안 필요한 것이지 죽을 때는 동행할 수 없는 것을 의미합니다. 둘째 친구는 인맥 또는 가족, 친척입니다. 아무리 가까운 가족과 친척, 지인이라도 죽었을 때 장례식까지만 함께 하지 무덤 속까지 따라올 수는 없다는 것이지요. 마지막 친구는 무엇일까요? 탈무드는 선행이라 말합니다. 착한 행실은 그가 살아있을 때는 별로 보답도 해 주지 않고 빛나게 해 주지 못하지만 죽은 뒤에는 영원히 그와 함께 계속 동행한다는 것이지요.초등학교 다닐 때 일일일선(一日一善) 즉 하루에 착한 일 한 가지를 하기 숙제가 있었습니다. 아직까지 기억에 남아 있는 것을 보면 제 삶에 강력한 인상을 남긴 숙제였음이 분명합니다. 매일 한 가지 선행을 하기 위해 이리 저리 고심했으니까요. 약한 자들, 결핍 가운데 신음하는 이들, 굶주리고 있는 자들, 소망을 잃고 하루 하루 허무하게 지내는 이들에게 베푸는 우리의 작은 손길과 관심 한 조각이 우리를 살리고 그들을 살립니다. 톨스토이는 말합니다. “선행이 어떠한 목적을 위해 행해진다면, 그것은 이미 선행이 아니다. 목적이 없을 때 비로소 참된 선행이 되는 것이다.” /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 대표

2019-06-19

감성팔이

김병래수필가·시조시인인간은 이성적 동물이라고 하지만 인격의 형성에는 이성에 못지않게 감성(感性)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감성과 이성은 상반되는 개념이지만, 그 둘이 적절히 조화될 때에만 정상적으로 사고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서적 반응을 처리하는 뇌의 전두엽 부위가 손상되어 감성이 마비되면 기억이나 언어, 운동, 시각 등 다른 기능이 멀쩡해도 정상적으로 의사결정을 못하고 엉뚱한 말이나 행동을 반복하게 된다는 사실이 실험으로 밝혀졌다. 공감능력의 결핍으로 끔찍한 범죄를 저지르고도 죄의식을 못 느끼는 사이코패스나, 분노조절이 안 되어 폭력적인 언행을 일삼는 사람의 경우도 감성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범람하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서는 감성을 자극하는 것이 그중 효과적이다. 상품의 광고는 물론 개인이나 단체의 사업 홍보에도 감성적 접근이 우선으로 채택되는 이유다. 휴대전화 하나로 언제 어디서나 온갖 정보를 접할 수 있는 디지털시대에는 이성보다는 감성의 비중이 커지는 경향이다. 논리적인 사고나 판단보다는 말초적이고 감각적인 선전이나 선동에 휩쓸리기 쉽다는 얘기다.군중 속의 고독이라는 말처럼 감성을 자극하는 정보들이 넘쳐나는데 세상이 더 각박하고 삭막해지는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말초적인 감각이나 자극하는 것은 마치 바닷물로 해갈하는 것과 같다고나 할까. 목이 마르다고 바닷물을 들이켜 봐야 갈증이 더 심해지는 것처럼 오히려 감성의 피폐를 가져올 뿐이다. 맑은 우물물 같은 감성이라야 근본적으로 마음의 갈증을 해소하는 대책이 될 것이다.어떤 상품이 가진 성능이나 실용성도 감성의 포장을 하지 않으면 제대로 상품가치를 가질 수가 없기 때문에 감성적 접근을 상품 마케팅의 주요 전략으로 삼게 마련이다. 그런데 그 전략이 지나쳐서 실질과는 동떨어진 과대포장이나 허위광고가 되어서는 ‘감성팔이’라는 오명과 함께 불신과 외면을 받게 된다. ‘감성’에다 ‘팔이’란 접미사를 붙인 이 말은, 소기의 목적달성을 위해 일부러 대중의 감성을 자극하는 연출을 비꼬는 말이다.상업적 마케팅을 위한 감성팔이는 결국 소비자들의 비난이나 외면으로 끝날 일이지만, 정치권에서 자행되는 감성팔이는 그 미치는 여파가 상당히 심각할 수 있다. 왜냐하면 정치적 판단이나 결정은 국가의 명운이 걸린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나 경제와 국방의 문제를 감성팔이로 해결할 수는 없는 일이다. 최저임금 인상이나 퍼주기식 복지, 강성노조에 영합하는 정책 등은 감성팔이식 포퓰리즘의 혐의가 다분하다.좌파들 중에서는 세기적인 명장면이라고 감격해하는 이들도 있지만, 판문점 남북정상회담의 나무다리 연출도 결국은 감성팔이밖에는 남은 것이 없지 않는가. 북한의 김정은이 왜 핵을 포기하지 못하는지, 결국 핵을 포기할 수밖에 없도록 하려면 어떤 전략과 정책이 가장 적절한지, 냉철하고 엄정하고 치밀한 분석과 판단과 전략이 요구되는 것이지 감성놀음이나 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우리 민족의 일반적인 성향은 이성적이기보다 감정적이라고 한다. 정이 많다거나 정에 약하다는 것은 그만큼 감정적이라는 얘기다. 그만큼 감성팔이가 잘 먹혀드는 기질이라는 얘기도 된다. 국민을 선동하고 지지를 확보하기 위한 수단으로 정치권에서 자행되는 감성팔이는 심각하게 사실의 호도나 왜곡을 초래할 수 있다. 그런 선동이 역사의 흐름을 파탄의 길로 돌려놓을 수도 있다는 걸 베네수엘라 같은 외국의 사례에서 보게 된다.역사의 평가는 역사학자들에게 맡겨야 한다. 역사적 평가에도 좌우가 갈릴 수 있지만 정부가 나서서 한 쪽을 편드는 건 분명한 잘못이다. 현재의 정부가 할 일은, 지난 일을 자꾸만 들추고 뒤집는 게 아니라 오늘과 내일을 위해 전심전력 최선의 정책을 마련하고 실행하는 일이다.

2019-06-19

철립 테두리에 구워먹다 어느 순간 섞어 넣고 끓였다

쇠고기에 대한 열망은 강했다. ‘벌’도 무거웠지만 ‘열망’이 벌을 넘었다. “소를 불법 도축하면 사형, 전 재산을 몰수한다”라고 해도 소 불법 도축은 사라지지 않았다. 숙종 시대를 지나며, 소를 도축하는 이들을 부르는 이름이 ‘백정’으로 굳어진다. 그 이전에 사용했던 ‘화척’ ‘양수척’ ‘재우적(宰牛賊, 소 도축하는 도둑)’은 서서히 사라진다. 이민족으로 지냈던 이들이 조선 사회에 동화된다. 원래는 ‘도둑’이라고 불렀다. 우리 백성이 아니라는 뜻이다. ‘백정’은 하층민이지만 조선사람이다. ‘산속에서 모여 살면서 자기들끼리 결혼하고, 동냥질, 도둑질하던 이민족’이 조선사람이 된 것이다.소나 짐승을 도축하는 것이 합법적으로 바뀌었을까? 그렇지는 않다. 조선 말기까지도 민간의 사사로운 소 도축은 금지 사항이었다. 여전히 쇠고기의 이름은 ‘금육(禁肉)’, 먹지 말라고, 법적으로 금하는 고기였다. 법은 있되, 단속이 느슨해졌다. 법을 정확하게 지키지 않은 것이다.조선 초기는 경제적으로 어려웠다. 먹고 살기도 힘든 판에 농사용 소를 도축하여 쇠고기를 먹을 수는 없다. 단속이 엄했다. ‘조선왕조실록’ 태종 18년(1418년)5월의 기록이다.“(전략) 소경공(昭頃公)이 평소에 쇠고기[牛肉]을 좋아하였으니, 삭망제(朔望祭)에 내가 이를 천신(薦新)하고자 한다. 그러나, 그 물건이 심히 크니 가볍게 쓸 수가 없다. 내 생각에는 혹은 연빈(燕賓)이 있거나 혹은 종묘(宗廟)에 제사할 때 이를 천신하는 것이 어떠할까 한다.(후략)”연빈은 중국 사신이다. 종묘 제사는 왕실의 어른을 모시는 것이다. 역시 ‘봉제사접빈객(奉祭祀接賓客)’이다. 집권 18년. 태종은 힘이 강한 군주였다. 막내아들이 소경공, 성녕대군이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성녕은 열네 살에 죽었다. 삭망제는 매달 초하루와 보름의 제사다. 귀한 아들의 삭망제에 쇠고기를 사용하지 못한다. 소를 도축하는 것은 부담스럽다. 중국 사신, 종묘 제사에 소를 도축한다. 그때 조금 남겨서 소경공의 제사에 쓰자고 말한다. 소, 쇠고기는 이렇게 귀했다.조선의 1차 성장기는 태조 이성계(1335~1408년)로부터 성종(1457~1494년)까지의 100년간이다. 연산군, 중종 조를 지나면서 불과 100년 후에 임진왜란을 겪는다. 조선의 쇠퇴기다. 임진왜란 후 숙종 조까지 조선은 두 가지 어려움을 겪는다. 하나는 전쟁 피해고 나머지는 지구 전체가 겪었던 소빙하기의 대기근이다. 임진왜란의 상처를 치료하기도 전에 병자호란 등 모두 네 번의 큰 전쟁을 겪었고, 경신대기근(庚辛大飢饉, 1670~1671년) 등 4대 기근을 이 시기에 겪는다. 숙종 조를 지나며 정조대왕이 돌아가시던 1800년까지 조선은 제2의 르네상스를 맞는다. 숙종, 경종, 영조, 정조의 ‘제2 르네상스’ 시기 쇠고기 문화가 서서히 나타난다.무명자 윤기(1741~1826년)의 ‘무명자집_시고 제3책_시_시월 초하루의 고사’의 한 구절이다. 무명자는 영조 시절 벼슬살이를 시작하여 정조, 순조 등 세 임금을 모셨다. 18세기 중반에 태어나 19세기 초반에 죽었다.시월 초하루는 길한 날이니/옛 풍속이 또한 볼만했지/예법 있는 가문에선 묘사에 정성 쏟고/부유한 집안에선 난로회 단란하네(富戶煖爐團)‘난로단(煖爐團)’은 난로를 피워두고 모여 앉는 자리를 말한다. ‘난로회(煖爐會)’ 혹은 ‘난란회(煖暖會)’라고도 한다. 난로회는, “불판을 피우고 둘러앉아 고기를 먹는다”는 게 뼈대다. 당시로는 퍽 호화로운 풍습이었다. ‘무명자 윤기의 난로회’는 18세기 후반, 19세기 초반의 풍습이다.난로회는 우리 풍습이 아니다. 송나라에서 시작된 풍습이다. 18세기, 한반도에 새롭게 등장했다. 난로회에 대한 정확한 기록은 홍석모(1781∼1857년)의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 1849년)’에 나타난다.18세기 서울, 경기 지역에도 난로회의 풍속이 유행하여 10월 1일이 되면 화로에 숯불을 피우고 번철(燔鐵)을 올려놓은 다음 쇠고기를 기름, 간장, 계란, 파, 마늘, 후춧가루 등으로 양념하여 화롯가에 둘러앉아 구워 먹었다. 또 쇠고기나 돼지고기에 무, 오이, 채소 나물 등의 야채와 계란을 섞어 전골을 만들어 먹는데 이것을 열구자탕(悅口子湯) 또는 신선로(神仙爐)라고 부른다고 하였다.시기적으로 18세기라고 못 박았다. 기록은 19세기 중반이지만 난로회의 시기는 18세기다. 숙종, 경종, 영조, 정조가 집권기다. ‘난로회’의 날짜는 10월 1일이다. 음력이니 늦가을, 초겨울이다. 숯불을 피워 놓고 번철(燔鐵)에 고기를 굽는다. 오늘날 같이 가는 석쇠는 드물었다. 번철은 무쇠 솥뚜껑 같은 것이다. 전을 굽는 그릇이라고 전철(煎鐵)이라고도 한다. 기름, 달걀과 여러 가지 양념으로 간을 한다. 여럿이 둘러앉아 먹는다.“소의 숫자는 유한하니, 화수척, 백정뿐만 아니라 민간에서도 도축을 하면 언젠가 소의 씨가 마를 것”이라고 절박하게 상소했던 조선 초기 집현전 직제학 양성지가 보았다면 기겁할 풍경이다.난로회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이야기가 전해진다. “청국 사행(使行)이 빈번해지면서 새로운 소육(燒肉) 조리법인 난로회가 조선에서 유행하였다”는 내용도 남아 있다. 18-19세기 청나라에서 보았다고 했다. 만주족의 청나라 풍습이라는 뜻이다. 홍석모의 ‘동국세시기’에는 난로회가 ‘송나라 풍습’이라고 못 박았다. 근거도 뚜렷하다. “여원명(呂原明)의 ‘세시잡기(歲時雜記)’와 맹원로(孟元老)의 ‘동경몽화록(東京夢華錄)’에 기록되어 있다. 송나라 풍습에서 유래한 것으로 생각한다”고 했다.“세시잡기(歲時雜記)”에 “연경 사람들은 10월 초하룻날에 술을 준비해 놓고 저민 고깃점을 화로 안에 구우면서 둘러앉아 마시며 먹는데 이것을 난로(煖爐)라고 한다.”라고 하였다. 또 “동경몽화록(東京夢華錄)”에 “10월 초하루에 유사(有司)들이 난로에 피울 숯을 대궐에 올리고 민간에서는 모두 술을 가져다 놓고 난로회를 갖는다”라고 하였다.여원명은 여희철(Lü Xizhe, 呂希哲, 1039~1116)로 송나라 관료다. ‘원명(原明)’은 호다. ‘세시잡기’는 송나라의 풍습을 적은 것이다. ‘동경몽화록’의 저자 맹원로(孟元老) 역시 송나라 사람이다. 송(宋) 휘종(徽宗) 2년(1103년) 아버지를 따라 지금의 하남성(河南省) 개봉시(開封市)로 왔다. 동경(東京)은 개봉이다. 그 후 금(金)나라의 침입으로 남쪽 지방으로 피난 가서 산다. 여원명이, 자신이 살던 동경, 개봉의 번화함을 추억하며 기록한 것이 ‘동경몽화록’이다.구운 고기, 불고기로 짐작할 수 있는 ‘소육(燒肉)’은 이전 우리 기록에도 있지만, 18세기를 지나며 난로회와 연관되어 수시로 나타난다. 민간, 궁중을 가리지 않고 하나의 풍습이 된다. 조선 후기 실학자 연암 박지원(1737~1805년)의 ‘연암집_제3권_공작관문고_만휴당기’의 일부다.“내가 예전에 작고한 대부(大夫) 김공 술부(金公述夫) 씨와 함께 눈 내리던 날 화로를 마주하고 ‘고기를 구우며 난회(燒肉作煖會)’를 했는데, 속칭 철립위(鐵笠圍)라 부른다. 온 방안이 연기로 후끈하고, 파, 마늘 냄새와 고기 누린내가 몸에 배었다. (후략)”연암이 대단한 부호는 아니었다. 그런데도 난로회는 가능했다. 민간에 널리 퍼졌다는 뜻이다. 난로회는 ‘난란회’ ‘난회’ 등 여러 이름으로 불렸다. ‘소육(燒肉)’은 고기를 굽는다는 뜻이다. 일본인들이 ‘야키니쿠’라고 부른 것이다. 우리의 불고기가 일본 야키니쿠에서 시작되었다, 아니다를 따지는 것은 의미가 없다. 조선 시대 여러 기록에 ‘소육’이 여러 차례 나타난다. 부르는 이름이야 어떻든, 고기를 굽는 것, 불고기는 일제강점기 훨씬 전에 있었다. 특히 파, 마늘, 기름, 후춧가루 등을 양념으로 사용한, 오늘날의 불고기와 비슷한 것들도 유행했다.‘철립위(鐵笠圍)’라는 표현도 재미있다. ‘철립’은 쇠로 만든 군사들의 모자다. 모직 등 천으로 만들면 ‘벙거지모자(氈笠, 전립)’다. 철립위는 철립의 테두리에 고기를 굽는다고 붙인 이름이다. ‘전립투(氈笠套)’는 쇠로 만든 전골냄비다.철립위는 아래로 움푹한 그릇이다. 마치 전립, 벙거지모자를 뒤집어 놓은 것 같다. 둥근 테두리에 고기 놓고 굽는다. 움푹한 곳에는 각종 채소, 양념 등을 넣고 끓인다. 테두리의 고기가 익으면, 움푹한 곳의 국물에 찍어 먹는다. 석쇠나 번철이 아니라 벙거지모자 뒤집은 것 같다. 어느 순간, 고기와 채소, 양념을 벙거지모자 같이 생긴 ‘전립투(전골냄비)’에 섞어 넣고 끓였다. 섞는 것은 ‘골(骨)’이다. 비빔밥을 ‘골동반(骨董飯)’이라 부른다. ‘전립투+골’이다. 전립투골을 줄여서 전골(氈骨)이라 부른다. ‘전립투골’은 ‘전립골’ 혹은 ‘벙거짓골’이라고도 불렀다. 역시 전골이다. 불고기[燒肉, 소육]는 철립의 테두리에 고기를 구워서 중간 움푹한 곳의 장물에 찍어 먹는 구조다. 전골은 움푹한 곳에 모든 식재료를 다 넣고 끓여 먹는 음식이다. 입을 즐겁게 한다고 열구자탕(悅口子湯) 혹은 신선로라고 부른다고 했다. 불고기와 전골은 다른 음식이지만 같은 뿌리에서 시작했다. /맛칼럼니스트 황광해

2019-06-19

AI반도체

AI(인공지능)반도체는 정보를 저장하는 용도로 사용되는 메모리 반도체(D램, 낸드플래스 등)와 달리 정보를 처리하기 위해 제작된 반도체로, ‘시스템 반도체’라고 불린다.시스템 반도체는 주로 연산, 추론 등 정보 처리 목적으로 쓰이며, AI반도체를 비롯해 컴퓨터의 두뇌로 불리는 중앙처리장치(CPU), 스마트폰에서 CPU 역할을 하는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 차량용 반도체, 전력용 반도체, 이미지센서 등이 대표적이다.메모리 반도체 강자인 삼성전자가 이번에는 비메모리 반도체 공략을 위해 인공지능(AI) 시대를 선도할 핵심 기술인‘신경망처리장치(NPU·Neural Processing Unit)’사업에 본격 뛰어들겠다고 선언했다. NPU는 AI의 핵심인 딥러닝(심층학습) 알고리즘 연산에 최적화된 프로세서다.딥러닝 알고리즘은 수천개 이상의 연산을 동시 처리해야 하는 병렬 컴퓨팅 기술이 요구된다. NPU는 이러한 대규모 병렬 연산을 효율적으로 처리할 수 있어 AI 구현을 위한 핵심기술로 꼽힌다. 예를 들어 NPU를 활용하면 AI 연산 속도가 빨라져 증강현실(AR)·가상현실(VR) 등에서 인물과 사물의 특징을 빠르고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다.실생활에선 사진 촬영시 피사체 형태, 장소, 주변 밝기 등을 순간적으로 파악한 후 최적값을 자동 설정해 최상의 이미지를 얻어낼 수 있다.안면 인식, 지능형 개인비서, 자율주행 등에 활용 가능하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첫 결과물로 모바일 SoC(System on Chip)내에 독자 NPU를 탑재한 ‘엑시노스 9(9820)’을 선보였다.이 제품은 기존에 클라우드 서버와 데이터를 주고받으며 수행하던 AI 연산 작업을 모바일 기기가 자체적으로 할 수 있도록 스마트폰 자체 AI를 구현했다.삼성전자는 오는 2030년까지 시스템 반도체 분야 글로벌 1위를 목표로 NPU 인력을 2천명 규모로 10배 이상 늘리고 차세대 NPU 기술 강화를 위해 전사적 역량을 집중하겠다고 발표했다. 비메모리 반도체 분야에 새롭게 도전장을 던진 삼성전자가 AI 시대의 주도권을 잡게 되길 기대한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19-06-19

그만들 좀 하십시다

장규열한동대 교수놀라운 일이다. 어느 틈에 세계수준에 가 있는 한국인들이 있다. 손흥민과 이강인 선수가 그렇고 류현진 투수는 물론 BTS 일곱 청년들이 그렇다. 지금도 그러하지만 생각해 보면 이전에도 한국인들은 문화와 예술, 그리고 스포츠 분야에서는 이미 빼어난 기량을 표출해 왔다. 비디오아트 백남준은 앞선 감각으로 미술의 판을 흔들었으며, 정경화, 정명화, 정명훈 남매는 클래식 음악계를 한동안 쥐락펴락하였다. 분데스리가는 차범근 선수의 흔적을 기억하며 박지성 선수의 후광도 눈이 부시다. 김연아, 박찬호, 황영조, 조수미, 싸이 등을 거쳐 박찬욱과 봉준호 감독에 이르러 만개하고 있다. 반면, 우리 사회와 정치는 1990년대 초 구소련의 붕괴와 함께 저물어 간 이념의 잣대에 아직도 서슬이 퍼렇다. 왜 그러는 것일까? 정치와 사회도 문화나 예술처럼 변화와 발전을 보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보수와 진보 또는 우와 좌로 갈라서 대결을 벌이던 이념의 분단 현상은 사실상 지구상에서 한반도 이외의 지역에서는 그리 쉽게 발견되지 않는다. 완전히 소멸하지는 않았다 하더라도, 지난 세기 냉전의 소용돌이만큼 첨예하게 대치하는 일은 거의 없는 게 현실이다. 우리에게 그럴 까닭이 있다면, 아직도 극복하지 못한 분단의 현실이 아프게 다가오기 때문이 아닐까. 오천 년을 함께 살았고 (겨우) 칠십 년을 나뉘어 살았다는 대통령의 표현이 있었지만, 그 칠십 년 단절의 세월이 이처럼 뛰어넘기 힘든 철벽을 가져다주지 않았는가. 분단의 벽을 우리가 넘을 수 있을 것인지는 우리가 이를 넘기 위하여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살피면 알 수 있지 않을까. 아니, 우리는 정녕 분단을 해소하고 싶은 것일까? 닳아버린 표현, ‘통일’은 아직도 우리에게 소원이 맞는가? 질문은 각자에게 가능하다. 나는 통일을 바라고 있는가. 남과 북은 하나가 되어야 하는가.등 돌린 사람들이 다시 함께 하려면, 아무리 힘들어도 만나야 한다. 어색하고 거북하며 비위가 틀려고 셈법이 맞지 않아도, 꾸준히 만나 겨루고 맞추며 나누어야 하지 않을까. 끝내 밀어붙여 이루어내기가 어렵고 힘들기는 운동과 음악, 미술과 문화에도 마찬가지가 아니었을까. 가무에 능한 민족이어서 그런 분야에 일가를 이루어 왔다면, 21세기에는 소통과 화합에도 새 역사를 써 내릴 수 없을까. 예술과 문화가 주로 ‘개인’의 기량에 달린 일이었다면, 이제는 ‘집단’으로 민족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함께 모으는 기량을 발휘할 때가 되지 않았을까.나라와 백성을 위해 일한다면서, 정치인들은 명분과 실리를 따진다고 한다. 포항지진으로 집을 잃은 백성은 아직도 천막에 머문 지가 550일이 훌쩍 넘겼다. 속초를 산불이 매섭게 쓸고 간 기억도 계절을 넘긴다. 어려운 경제는 날이 갈수록 국민의 삶을 어렵게 한다. 이제 그쯤 했으면 함께 할 명분도 서로 만들어 주고 각 당의 실리도 적절히 챙길 만하지 않은가. 남북이 만나야 하듯이 당신들도 나라를 위하여 만나야 한다. 국민이 당신들을, ‘나라야 산으로 가도 철밥통 지키며 싸움만 하는 이상한 사람들’로 보기 시작했다는 걸 알고는 계시는가. 문제를 풀기 위해서 남북도 만나야 하고 여야도 만나야 한다. 해결의 가닥은 만나야 잡힌다.운동선수가 훈련에 땀을 흘리고 예술가가 혼을 불사르며 최고의 작품에 도전하듯이, 이제는 우리 정치가 걸작을 낳아주기 바랄 뿐이다. 이 땅의 백성이 가무에만 능하겠는가. 편 가르기와 패거리 정치에 능했던 만큼, 바른 정치와 선한 펼침에 몰두해 주시라. 믿고 맡긴 국민이 옛날과는 다르다. 당신의 모습에 진정이 실려있는지 국민이 알고 있다. 얼른 만나고 당장 섬겨 주시라. 국민은 오늘보다 나은 정치를 만나볼 자격이 있다.

2019-06-19

인생은 끊임없는 배움의 여정, 김천평생교육 ‘50+ 학교’

김충섭 김천시장우리사회에서 갈수록 노년인구가 늘어나는 반면에 은퇴 시기는 빨라지고 있다. 은퇴는 자신의 인생에 있어서 1막이 끝나고 2막이 다시 시작하는 시기이다. 이때의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해서 고민하는 것을 은퇴 이전부터 중요하게 생각할 일이다. 40대 혹은 50대 초반부터 이제는 100살까지 살 미래를 위해 자신의 삶의 포트폴리오를 만들고, 삶 전반에 대한 설계를 해볼 일인 것이다.유엔 발표에 의하면 18∼65세를 청년, 66∼79세를 중년, 80∼99세를 노년, 100세 이상을 장수노인이라 한다. 인생을 전반생과 후반생으로 나눌 수 있으며, 전반생과 후반생 사이에 자신이 후반생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볼 시간을 가질 필요가 있다.비록 전반생에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을 하지 못한 사람일지라도, 조용하게 자신을 돌아보고 자기평가의 시간을 갖고 내 인생의 후반생을 어떤 일을 하면서, 어떻게 살 것인지 시간을 두고, 진지하게 행복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 한다. 40대 후반, 50∼60대는 다른 세대에 비해서 특히 사회적 지원이 많지 않은 세대다. 청년이라 할 수는 없는데, 슬슬 퇴직을 하고 은퇴를 하고 회사를 나와야 하지만, 그렇다고 노년이라 하기엔 너무 젊은 나이. 생각해보면 50대 쯤 돼서 더 이상 회사를 다닐 수 없게 되면 무엇을 해야 할지 딱히 떠오르는 게 없다.김천시는 이러한 50+ 세대들을 위한 ‘인생 후반기 맞춤형 교육프로그램’을 고민해 오다 시민들의 인생 이모작을 돕기 위해 나섰다. 삶과 노후에 대한 인식전환과 다시 시작하는 인생 재설계의 실마리를 제공하여 다양한 각도의 제2인생 설계를 모색할 수 있도록 50 이후의 삶을 지원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김천시평생교육원에 문을 연 ‘50+학교’다.아름답고 활기찬 인생 후반전을 위한 준비가 김천시평생교육원에서 시작되고 있다. ‘50+학교’는 김천시민의 바람을 그대로 담아 만들어진 프로그램이다. 김천시는 ‘50+학교’ 개설에 앞서 먼저 김천시에 거주하고 있는 50대 시민들을 대상으로 수요를 조사했고, 이들이 가장 필요로 하는 내용을 중심으로 프로그램을 구성했다. 덕분에 삶과 노후에 대한 인식전환, 커리어설계 프로그램, 취미여가설계 프로그램, 시니어(50+) 인생찾기 특별강좌 등 인생 후반전을 보다 진지하게 고민하고 준비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만들어졌다.‘50+학교’는 취미·여가설계반, 악기·커리어설계반 총 2반으로 운영 중이며, 1인당 최대 4개 과목까지 수강할 수 있다. 하반기에는 2학기 수강생을 모집할 예정이다.운영 과목은 총 12개로, △인생설계프로그램(건강, 재무, 여가) △취미·여가설계 프로그램(악기, 요리, 스포츠) △커리어설계 프로그램(치매예방 트레이너, 건강관리사, 부동산 경매) 등의 과목을 개설했다. 또한 시니어(50+) 인생찾기 특별강좌를 통해 다양한 일자리의 이해, 사회적 기여, 버킷리스트 등의 프로그램도 제공하고 있다. 이를 통해 50+ 장년들을 사회적 자원으로 활용하기 위한 전문기관과의 연계도 도모하고 있다. 고용복지+센터, 여성새로일하기센터, 시청 일자리경제과를 통한 취·창업 지원, 김천시종합자원봉사센터를 통한 사회공헌활동과 연계시키는 한편, 자격 취득 프로그램을 통한 주민강사 육성 등 인적 네트워크를 구축해서 이들의 50+ 인생 활동을 적극 지원해 나갈 방침이다.50 플러스 인생 후반전. 이제부터가 중요하다. 인생 백세시대. 그냥 가만히, 그리고 조용히 세월만 보내는 옛날과는 다른 시대다. 인생 후반전을 명승부를 펼쳐야 한다. 후반전에 이겨야 진짜 이기는 것이다.그리고 하나 더. 인생 후반전을 준비하면서 함께 생각해 볼 것이 소확행(小確幸)이다. 소확행은 주택구입, 취업, 결혼 등 인생에 있어서 크지만 성취가 불확실한 행복을 쫓기보다는 일상에서 느낄 수 있는 작지만 확실하게 실현 가능한 행복. 또는 그러한 행복을 추구하는 삶의 경향, 또는 그러한 행복을 말한다.소확행은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한 수필집에서 행복을 ‘갓 구운 빵을 손으로 찢어 먹는 것, 서랍 안에 반듯하게 접어 넣은 속옷이 잔뜩 쌓여 있는 것, 새로 산 정결한 면 냄새가 풍기는 하얀 셔츠를 머리에서부터 뒤집어쓸 때의 기분…’이라고 정의했다. 말 그대로 ‘일상에서의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의 축약어다.이른 새벽에 시원하고 신선한 공기를 마시는 일, 작지만 아담한 마당 쓸기, 화분이나 텃밭 가꾸기, 한 잔의 차와 독서하기, 집안 청소하기, 이타심을 발휘하는 다양한 봉사활동 등 우리 주변에 ‘소확행’을 실현할 수 있는 것은 무궁무진하다. 조용히 스스로 자신의 주변을 한번쯤 되돌아보자.인생은 모든 연령대가 나름의 행복을 가지고 있다. 10대는 10대의 즐거움이, 50대는 50대의 즐거움이, 70대는 70대의 즐거움이 있다. 현재의 나이는 과거를 보면 가장 많은 연령이고 미래를 보면 가장 어린 연령이다. 어느 연령대에 있든지 그 나이의 즐거움을 만끽하고 유쾌하게 살아가기를 바란다.조기 퇴직과 정년퇴직으로 늘어만 가는 50+ 세대들이 인생 후반전을 미리 준비하고 아름답고 행복한 삶을 살아 갈 수 있도록 우리사회가 더 많은 지원과 기회를 만들어 주어야 할 시기이다.

2019-06-18

개와 산책하는 올바른 방법(上)

개는 일반적으로 먹는 것보다 산책을 더 좋아한다. 보통 개들은 새끼에게 젖을 물리고 있을 때도 먹을 것을 보면 새끼를 밀치고 먹이를 향해 달려갈 만큼 먹는 것을 좋아하는데 이보다 더 좋아하는 것이 정기적으로 산책을 해온 개들이 원하는 산책이다. 정기적으로 주인과 산책한 개들은 먹는 것보다 주인과 함께하는 산책을 더 좋아한다. 사실 산책시간은 불규칙한 것이 좋은데, 사람들은 일정한 시간에 개와 산책하여 문제를 만든다.개는 시간에 굉장히 예민한 동물이라서 일주일 동안 같은 시간에 산책을 나갔다면 개는 그 시간을 정확히 기억하는 편이다. 그래서 산책 갈 시간이 가까워지면 개는 밖으로 나가고 싶어 불안해 하고 낑낑거린다. 만약 주인이 그 시간을 무심히 지나치면 개는 당연히 산책을 가고 싶다고 조르거나 짖게 된다.개의 이런 행동을 오해하는 주인도 있다. “우리 개는 아주 영리해요. 시간을 다 알아요” 하지만 이런 생각은 사람의 착각일 뿐이고, 개는 속으로 이렇게 말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봐 이제 슬슬 산책시간인데, 뭘하고 있는거야 빨리 날 모시고 나가야지” 정기적인 시간에 하는 산책이 반복되어 개가 계속해서 짖어대면 주인은 어쩔 수 없이 개의 요구대로 산책을 나갈 수 밖에 없어진다.아파트 등에서 개 짖는 소리는 이웃의 눈치가 보이기 때문이다. 이정도 되면 개의 산책에 사람이 끌려가는 모양새가 된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면 서열을 중시하는 개의 입장에서는 주인의 머리 위에 있으려는 상황이 되는 것이다. 매일 일정한 시간에 꼬박꼬박 산책을 데리고 나가면 개는 사람을 자기가 길들였다고 생각하게 될 것이다. 필히 기억하라. 산책 시간을 규칙적으로 정하지 말아야 한다.산책은 주인의 상황에 따라 나가야 한다. 시간에 관계없이 주인이 주도권을 늘 가질 수 있도록 해야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산책을 나가지 않아도 된다. 그래야 개도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짖어대는 일도 없다. 습관적 산책은 스트레스의 원인이 된다.개를 키우는 사람들은 매일 빠지지 않고 산책을 나가주는 것이 스트레스를 풀어주는 것이라 생각할 수 있지만 개는 산책이 습관화되면 습관대로 하지 않는 것에 불만을 가지게 되는 것이 더 큰 문제이다. 산책은 주인 마음대로, 형편에 따라서 가능한 불규칙한 시간에 하라. 산책을 의무로 생각할 필요도 없고 산책을 가지 못한다고 고민할 필요도 없다. 더 나아가 정기적 산책의 결과로 개가 줄을 가지고 와서 산책을 가자고 조르는 경우가 있다. 이때 주인은 개가 똑똑해 보이고 심지어 이것을 자랑하는 사람도 있지만 사실 이 모습은 개가 주인에게 산책을 가자고 명령하고 있는 것이다.이것은 서열상 위에 있다고 생각하는 개가 서열이 낮은 주인에게 산책을 요구하는 모습인데, 이때 개의 요구에 따라 산책에 응해줘서는 안된다. 이때 산책에 응해주면 개의 본능은 점점 주인에게 복종이 아니라 자기 마음대로 하려 할 것이다. 개가 줄을 물고 와서 산책을 가자고 조를 때는 일단 거부해야 한다는 것을 꼭 명심해야 한다. 산책에 나가서도 개가 사람보다 앞서가거나 줄을 당기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개가 힘이 넘쳐서가 아니라 개가 주인을 지배하고 있다는 것을 행동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경우에 주종관계를 역전시키는 방법은 한가지 뿐이다.주인이 가고 싶은 곳으로 개를 이끌고 가는 것인데, 개가 앞서지 못하게 하고 반드시 뒤에 따라 오도록 해야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이를 위한 효과적인 방법이 리더워크인데, 개와 시선을 맞추지 않은 상태에서 개가 앞으로 가려고 하면 빙글 돌아서 방향을 바꾸어 반대방향으로 가고, 다시 앞으로 나가려고 하면 다른 방향으로 전환하여 사람이 가고 싶은 데로 걷는 방법이다. 이사람 저사람이 돌아가면서 하는 것이 효과적이다.산책에서 개의 운동량은 어느 정도가 적당할까? 운동을 많이 시키면 개도 체력이 길러진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왕성한 체력을 발산하고 싶어하고 그렇지 못하면 개는 스트레스가 쌓이기도 한다. 결국 개와의 장거리 산책이나 달리기로 습관이 되는 경우들이 있다. 지나친 운동형 산책은 단명의 원인이 될 수도 있다. 지나친 운동은 개의 행복과는 거리가 멀다. 대형견이라고 해서 장거리를 달리게 할 필요가 없으며 지나친 운동은 피하고 주인과 적당한 운동을 하면 되는데, 몸집이 큰 사람이 작은 사람보다 운동을 특별히 더 많이해야 하는 것은 아님을 생각하면 된다. 몸집이 큰개라고 운동을 무조건 많이 해야하는 것은 아니다./서라벌대 반려동물연구소 소장(마사과 교수)

2019-06-18

대구를 빛낸 사람

대구 출신의 20세 이하(U-20) 월드컵 대표팀 정정용 감독에 대한 뒷 얘기가 무성하다. 마치 2002년 월드컵 때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았던 히딩크를 연상케 한다.한국 축구 사상 최초로 U-20 준우승이란 신화를 일궈낸 그에게 언론은 그의 지도력과 인간애 등을 최고의 화제로 삼았다. 무명선수 출신으로 평범했던 그가 오늘의 영광을 안게 된 것은 오직 성실성과 인간적 면모가 있었기 때문이라 평가했다.그는 대구신암초교에서 축구를 시작해 축구명문 청구중고교에서 선수로 뛰었다. 경일대를 졸업하고 아마구단인 이랜드 푸마에 입단했으나 서른도 되기 전에 부상으로 선수생활을 접었다. 그러나 축구에 대한 일념으로 대학원 과정에서의 공부와 열정으로 그만의 전략과 전술을 완성하는데 성공했다. 선수들은 그를 ‘제갈용’이라 불렀다. 삼국지에 나오는 책략가 제갈공명 못지않은 축구 전략가라는 뜻이다. 변화무쌍한 전술 구사로 적의 허점을 찌르고 승리를 이끌어 내는 그의 전술은 그야말로 ‘신의 한수’와 같았다는 평가다.그만의 리더십도 주목을 받고 있다. 지시보다 이해를 먼저 구하는 그의 태도에서 선수들은 그를 감독이라 부르지 않고 선생님이라 불렀다. 언론은 그의 리더십을 ‘아저씨 리더십’으로 표현했다. 권위적인 리더십과는 다른 그의 다정다감한 리더십이 선수들과 호흡을 맞추고 팀의 동력을 키우는 힘의 원천이 됐다는 설명이다. 국가대표 이승우 선수는 “가장 존경하는 감독”이라 말했다. 평범하지만 인간적인 그의 지도력이 새로운 리더십으로 주목받는 이유는 그리 복잡하지 않았다.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힘든 요즘이다. 대구출신의 그가 들려준 낭보는 이곳 고향사람에게는 청량제와 같다. 갑갑하던 마음 한구석이 뻥 뚫린 듯한 기분이다. 정 감독이 일궈낸 신화는 대한민국 모두의 영광이지만 낮은 자리에서 묵묵히 제 일만을 열심히 해온 그의 성실함은 우리가 배울만한 일이다. 정 감독과 함께 대표팀에는 고재현,김세윤 두 명의 대구신암초교 출신선수가 더 있다. 그들이 함께 했기에 이번 영광이 더 자랑스럽다./우정구(논설위원)

2019-06-18

용적률 인센티브 유감

김영태 대구취재본부 부장대구지역에 아파트를 지을 수 있는 택지가 거의 고갈되면서 재개발·재건축 사업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최근 6개월 동안 이들 사업을 수주한 회사들은 지역업체는 단 한 곳도 없고 전부 서울에 본사를 둔 이른바 메이저급 회사들이 차지했다. 대구시가 지난해 11월 지역업체들의 재개발·재건축 사업 참여율을 높이기 위해 용적률 인센티브를 23%까지 높여주는 제도를 도입했는데도 이 같은 현상이 벌어져 고개를 갸우뚱하게 한다. 용적률 인센티브를 적용하면 조합원은 가구당 수천만원의 이익이 돌아오는 제도인 데도 조합원들이 외면했기 때문이다. 이런 결과를 두고 지역 건설업체들을 중심으로 대구시의 인센티브 제도가 유명무실하다는 평가까지 나오고 있다. 결국 대구지역 재개발·재건축 사업은 이제 메이저급 건설회사들의 각축장이나 다름없게 됐고 곳곳에서 지역업체들이 수주전에서 선정되지 않는 현상을 볼 수밖에 없는 상태다. 이는 인센티브 적용사업장이 적은데다 홍보마저 부족하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있다.지역의 한 건설업체가 분석한 결과 대구에서 성공 가능성이 큰 사업지는 10여 곳이고 이중 단 2곳만 용적률 인센티브를 적용할 수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마저도 조합원에 대한 사전 홍보활동 금지 규정에 발목이 잡혀 이를 적극적으로 홍보할 수 없어 지역 건설업체들이 수주전에서 고전하는 결과를 낳았다. 특히 용적률 인센티브를 적용하면 조합원의 개발이익이 가구당 상당함에도 불구하고 충분히 홍보할 시간이 없어 애로를 겪었다는 것이 지역 업체들의 한결같은 하소연이다. 심지어 지역 건설업체들은 대구시의 홍보가 부족해 조합원들이 용적률 인센티브 제도를 알지 못하면서 외지 대형 건설업체의 브랜드 네임을 통한 아파트값 상승을 원인으로 한 선호도를 보인다고 평가한다.실질적으로 메이저 건설업체들은 브랜드 네임에 대한 인센티브를 최대한 강조하며 조합원들에게 어필하고 지역업체를 몇 수 아래로 보는 수주전을 펼치는 전략을 사용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달 코오롱글로벌이 시공사로 선정된 대구 북구 ‘칠성24지구 재건축사업’의 경우에는 용적률 인센티브에 대한 논란이 끊이질 않았다. 지역업체인 화성산업은 공사비로 3.3㎡당 447만원에 대구시가 지원하는 용적률 인센티브 23%를 적용해 용적률 407%에 최고층수 41층을 제안했다. 반면 인센티브가 없는데도 코오롱글로벌은 3.3㎡당 공사비 447만원, 용적률 410%를 적용해 최고층수 49층, 851가구를 제안했다. 이는 지역업체 용적률 인센티브를 적용한 것보다 코오롱글로벌이 더 높은 용적률을 제시한 것으로 현실성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기에 충분했다. 이에 대해 분명한 답변을 해 줄 수 있는 대구시 관계자는 ‘맞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는 모호한 답변을 한 것으로 알려져 조합원들의 불만을 샀다. 이러니 최근 6개월 동안 지역업체의 재개발, 재건축 수주가 단 한 건도 없었을 수밖에 없는 것이 아닐까. 제도상으로는 지역 업체들을 돕고 지역 경제활성화를 이끄는 것으로 보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제도다. 지역 건설업체들이 더 이상 수주전에 용적률 인센티브를 강조 않겠다고 할 정도로 유명무실한 제도로 여기는 이유도 이것이다.대구시의 어정쩡한 자세 때문에 건설사들의 수주경쟁이 과열되면서 금품살포 의혹이 일거나 세입자·재건축조합 간에 이주 지원을 둘러싸고 집단 갈등도 빚어졌다. 특히 지난달 실시된 대구 북구 ‘칠성24지구 재건축사업’과 관련, 수주 경쟁을 벌이는 건설사들을 상대로 금품제공 여부를 대구경찰이 수사에 들어갔다.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에 따르면 건설업자가 조합원에 금품 등을 제공할 경우 과징금과 함께 1∼2년간 입찰참가가 제한된다. 대구지역 건설업체 수주를 통한 경제 활성화라는 대전제를 깔고 있는 용적률 인센티브 제도가 오히려 지역업체의 발목을 잡는 현실을 타개할 실질적인 방안을 대구시가 내놓아야 할 때다.

2019-06-18

외풍에 흔들리지 않는 법

김진홍 한국은행 포항본부 기획조사팀장기업 경영자들은 지금쯤 ‘여름이라는 계절’의 느낌보다는 자신이 앞으로 나아가야할 사방이 모두 날카로운 칼날로 덮여있어 한발만 잘못 내디디면 베일까 가슴이 서늘해지는 ‘정치라는 계절’임을 깨닫고 있을 것이다. 2020년은 수많은 1년 중 하나에 불과하지만 미국과 우리에게는 묵직한 한해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4월 15일이면 제21대 국회의원 총선거를 치르게 된다. 그로부터 6개월 정도, 11월 3일이면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할지 아니면 수많은 오바마 전 대통령의 후계자 중 하나가 정권을 잡을지 결정될 것이다. 선거는 내년이지만 이미 이를 의식한 정치인들은 분주하다. 우리는 이미 정치의 계절에 살고 있는 것이다.지난 6월 11일 미 법무부는 반독점법(Antitrust Laws)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공표하였다. 과거 반독점법은 독점상태에서 부당하게 높은 가격을 매겨 ‘소비자의 불이익’을 일으키는 기업을 단속하기 위해 탄생하였다. 그런데 이 ‘소비자의 불이익’에 대한 개념을 이전보다 더욱 확장한 것이다. 경쟁상대방을 매수함으로써 혁신적인 제품이나 서비스를 시장에서 퇴출시키거나 기업이 개인정보를 독점하여 프라이버시 보호에 방심할 우려, 경쟁기업 부재에 따른 ‘저품질의 경쟁’상태를 유발하는 것까지도 ‘소비자의 불이익’으로 보겠다는 것이다.미국 사법당국의 이러한 움직임은 가파(GAFA)에 화살을 겨냥하고 있다. 즉 구글(G), 아마존(A), 페이스북(F), 애플(A)이라는 세계적인 대형IT기업을 대상으로 반독점법에 따른 규제를 검토한다는 것이다. 일례로 페이스북이 인스타그램이나 왓츠앱을 인수한 것도 경쟁상대를 미연에 방지하는 행위로 간주해서 반독점법 적용을 검토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일련의 움직임은 미국의 정책변화를 암시한다. 지금까지 미국 IT산업의 성장과 경쟁력의 원천이 정부의 ‘자유방임’정책이었음은 누구도 부정하기 어렵다. 하지만, 이제 ‘규제강화’로 정책변화의 조짐이 보이고 있는 것이다. 다양한 배경이 있겠지만 이 또한 2020년 미국의 ‘대선’이라는 ‘정치의 계절’이 다가온 것과도 무관하지 않다.물론 우리나라는 대선과 같이 국가적인 경제정책의 기조변화까지는 발생하기 어려운 ‘총선’이기 때문에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서는 긴장감이 그리 크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총선이 1년도 남지 않은 현 시점에서 각 지역별 현안사항을 중심으로 국회의원과 소속 정당 등의 공약, 지지계층의 반응 등이 얽혀 있는 데다 선거결과에 따라 해당 지역경제의 향방에 영향을 줄수도 있다는 점에서 지역 기업의 경영자의 입장에서는 어쩌면 대선보다 총선이 더욱 민감하게 느낄 가능성도 있다.이러한 정치의 계절에서 지역 기업들은 과연 어떠한 선택을 할 것인가. 사실 아무리 ‘정치의 계절’이 오더라도 흔들리지 않는 기업의 요건은 항상 변함이 없다. 게다가 과거처럼 정치적 배경만으로 승승장구하기도 어려운 시대다. 미국 정치인들이 ‘소비자의 불이익’을 내세우고 있지만 결국 기업의 생존은 자사의 제품, 자신의 서비스로 ‘소비자의 만족’을 이끌어내는가에 달려있다. 경기가 최악이라는 포항이지만 시내 곳곳에는 줄지어 대기하며 예약해야만 이용할 수 있는 음식점도 있고, 2호점 3호점으로 도리어 확장하는 가게들도 분명히 존재한다. 결국 ‘소비자의 눈’은 정확한 것이다. 정치의 계절에 정치인들이 정치소비자인 ‘시민’을 의식하듯이 기업가는 소비자인 ‘수요기업’이나 ‘구매자’를 의식하여야만 한다. 정치의 계절이라고 좌충우돌할 필요는 없다. 언제나 ‘소비자’만 바라보는 기업이라면 비록 정치의 계절이라 하더라도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소비자 우선주의는 언제나 최고의 방법이며 유일한 방법이다.

2019-06-18

코리안 마마

마더 테레사는 살아 생전 거리에서 죽어가는 사람들, 주린 배를 움켜 쥐고 거리를 떠도는 아이들을 어머니처럼 보살핍니다. 그녀가 50년 넘도록 말과 행동으로 전한 사랑의 메시지는 종교와 이념을 초월해 이기주의와 물질 만능에 빠져드는 20세기말 인류의 양심을 흔들어 깨웠습니다. 마더 테레사는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걸어온 길은 단순합니다. 믿음을 갖고 자신을 완전히 내어 주는 것입니다.”피부가 문드러져 썩어가는 나병 환자의 손에 입을 맞추고 악취나는 몸을 씻어주고 죽어가는 에이즈 환자를 끌어안는, 자신을 끊임없이 타인에게 나눠주는 희생과 사랑. 마더 테레사는 평소 ‘당신이 크리스천이 된다면 우리는 당신을 도울 거에요!’라는 말을 전혀 하지 않았습니다. 무조건적 사랑이 그녀의 목표였습니다.LA의 마더 테레사로 불리는 한국인이 있습니다. 미국명으로 글로리아 김(김연응)입니다. LA타임즈는 지면 2개를 빌어 그녀를 조명한 적이 있지요. 글로리아 김은 20년 동안 새벽 2시면 어김없이 일어나 거리 노숙자들에게 나눠 줄 음식을 준비합니다 새벽 4시면 낡은 승합차에 온갖 음식을 싣고 다리 밑, 공원 구석, 거리 모퉁이를 천천히 돌면서 노숙자들을 발견하면 음식을 나눕니다. 차에는 바나나 2박스, 물 25ℓ, 빵 400개, 200명 분의 스프, 포도와 양말, 옷가지 등이 실려 있습니다. 그녀의 별명은 ‘코리안 마마’. 으슥한 새벽, 그녀 승합차가 거리의 노숙자들에게 나타나면 그들은 “마마” “마마”를 외치며 반깁니다. 둘러서서 따스한 음식을 먹으면서 함께 노래를 부릅니다.김연응씨의 봉사가 남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노숙자들을 위해 먹을 거리를 제공하는 봉사는 많이 있습니다. 국내도 역 광장 등에서 무료 급식하는 장면들을 봅니다. 종교 단체에서는 급식 행사를 하면서 단체를 홍보하거나 특정 종교를 내세우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습니다.누구도 보지 않는 곳에서 노숙자들이 숨어 있는 곳을 찾아 다니며 손 내미는 봉사여서 글로리아의 봉사가 남다릅니다. 아무 것도 요구하지 않고 아무 것도 바라지 않는 무조건적 희생과 나눔이지요. 글로리아 본인도 70세를 넘은 고령에 관절염과 백내장으로 하루가 힘겹지만, 매일 새벽 200명 이상의 노숙자들을 찾아 다니며 음식을 공급하는 일을 멈추지 않습니다.아무런 조건없이 아무런 이름도 내걸지 않고 순수하게 손 내미는 참된 선행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조금씩 늘어나는 아름다운 사회를 꿈꾸어 봅니다./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 대표

2019-06-18

학교와 마을의 상생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산자연중학교 바로 옆 학교 진학을 위해 주택을 준비하신다면 신축급 전원주택 추천합니다.”학교 기사를 검색하다 의외의 내용을 보고 필자는 매우 당혹스러웠다. 그 당혹감은 곧 묘한 기대감으로 변했다. 비록 큰 광고는 아니었지만, 학교가 상업광고에서 불특정 다수 소비자들을 설득시키는 중요한 논리로 사용된다는 것은 학교 입장에서는 분명 흥미로운 일이다.이 글을 쓰면서 필자는 산자연중학교가 소재한 마을의 모습을 학교가 개교한 2014년도와 비교해 보았다. 필자는 의미 있는 변화 몇 가지를 발견했다. 제일 큰 변화는 마을에 새 집들이 여러 채 생긴 것이다. 학교 소재지 마을은 슈퍼는 물론 네온사인 하나 없는 전형적인 시골마을이다. 하루에 시내버스가 아침, 점심, 저녁 세 번만 운행하는 마을이라고 하면 좀 더 이해가 쉬울 것이다. 이런 마을에 세련된 디자인의 집들이 늘어난다는 것은 분명 큰 변화다. 이런 집들 때문인지 마을의 이미지도 전통과 현대가 조화된 밝은 이미지로 바뀌고 있다.마을의 이미지 변화는 마을 주민들의 삶의 변화로 이어졌다. 학교가 들어오기 전에는 어스름이 내리기 시작하면 마을은 곧 어둠에 잠겼다고 한다. 분명 그 때는 해가 넘어가기도 전에 마을길엔 인기척이 사라졌을 것이다. 그리고 곧 침묵의 마을로 변했을 것이다.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주경야주(晝耕夜奏)! 이 말은 필자가 지금 학교 소재지 주민들의 삶을 표현하기 위해 만든 말이다. 마을 어르신들은 낮에는 들에서 열심히 농사를 지으신다. 그리고 밤에는 학교에 오셔서 색소폰 등을 배우신다. 비록 고된 농사일에 힘이 드시지만, 거의 매일 저녁 학교에 오셔서 레슨도 받으시고, 또 밤늦게까지 연습을 하시다 기쁘게 댁으로 가신다.2017년 대안학교 우수프로그램 일환으로 시작한 마을 색소폰 연주단은 올해로 3년째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어르신 연주단은 마을과 학교, 그리고 교육청 행사에도 참가할 정도로 연주 실력이 우수하다. 지난 5월 8일에는 지자체 경로 효 잔치에 초대되어 연주를 하였다.마을 색소폰 연주단의 평균 연령은 60대 중반을 넘는다. 그러다보니 연주도 연주지만 연주단원들의 활동 모습은 주변 마을 어르신들께 큰 희망을 주고 있다. 그래서 학교에는 연주단 가입에 대한 문의가 1년 내 끊이지 않는다. 비록 신청하신 모든 분께 기회를 드리지 못해 죄송하지만, 내년에는 제일 먼저 연락을 달라는 어르신들의 목소리에서 필자는 힘을 얻는다.산자연중학교에는 마을 색소폰 연주단 이외에도 서예, 수영 등 마을 어르신들과 학생들이 함께 배우는 특성화 프로그램들이 있다. 또 산자연중학교 학생들은 학기별 1회 이상 어르신들을 모시고 세대 공감 여행을 떠나는데, 여행단의 모습에 많은 관광객들이 박수를 보내주신다.필자는 산자연중학교와 오산리 마을의 관계는 상생(相生)의 본보기라고 생각한다. 산자연중학교 교육공동체 모두는 마을이 학교와 학생들을 잘 키워주셨고, 또 앞으로도 더 잘 키워주시리라 확신하고 있다. 그래서 마을 어르신들께 더 잘 하려고 노력한다. 마을 어르신들 또한 조용하기만 하던 마을에 생기(生氣)를 불어넣어주는 학교와 학생들에게 늘 감사함을 포현하신다. 학교가 마을이고, 마을이 곧 학교인 영천시 화북면 오산리, 그리고 산자연중학교!“재미삼아 무차별 폭행” 또래 숨지게 한 10대 4명 ‘살인죄’ 적용 검토! 참으로 아프고 슬픈 이야기이다. 학교 현장에 인성교육이 의무화된지 오래이지만, 인성교육 시간에 비례하여 학생 사건은 더 잔혹(殘酷)해지고 있다. 과연 우리 교육은 바로 가고 있는 게 맞을까? 삭막해져만 가는 학교 현장! 마을과 학교가 함께 행복한 산자연중학교의 마을 학교 프로그램을 다른 학교들도 벤치마킹해보면 어떨지 제안해 본다.

2019-06-18

현대 건축디자인의 시작 ‘바우하우스’

독일 베를린에서 남동쪽으로 한 시간 남짓 떨어진 한적한 마을 데사우(Dessau). 이곳에는 현대건축의 선구자 발터 그로피우스(Walter Gropius, 1883-1969)가 세운 종합예술학교 ‘바우하우스’(Bauhaus)가 자리하고 있다. 바우하우스 건물의 모든 외벽은 유리로 이루어져 있다. 지금이야 전면 유리 파사드가 흔히 사용되고 있지만 1926년 바우하우스 건물이 처음 대중들에게 공개되었을 때만 하더라도 그것은 아주 혁신적인 건축언어였다.데사우 바우하우스 건물은 그 자체가 바우하우스의 이념을 담고 있는 기념비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 1926년 12월 4일 바우하우스 건물의 준공식을 보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데사우를 방문했고 이들은 현대 건축디자인의 역사적 현장을 목격하게 된다. 도시에 어둠이 내려앉자 바우하우스 건물에 불이 켜지면서 장관이 펼쳐졌다. 격자 모양의 구조가 선명히 드러나고 유리 파사드가 빛을 뿜어내면서 지금까지 본적도, 존재하지도 않았던 완전히 새로운 유전자의 건축물이 탄생한 것이다.바우하우스는 독일어로 ‘짓다’는 단어 ‘Bauen’(바우엔)과 ‘집’을 뜻하는 ‘Haus’(하우스)의 합성어이다. 바우하우스가 처음 시작된 것은 1919년 독일의 바이마르(Weimar)이다. 마흔 세 살의 건축가 발터 그로피우스는 기술과 예술을 하나로 엮어 새로운 산업적 미학을 창조하고자 바우하우스 운동을 일으켰다. 지금 우리가 디자인이라고 부르는 것의 시작이 바로 그로피우스가 주창한 바우하우스이다. 바이마르의 평범한 공공건물에서 시작된 바우하우스 예술학교에서는 미술뿐만 아니라 금속가공, 목공 등 공예와 관련된 전 분야는 물론 공연과 무용에 이르는 모든 예술 교육이 통합적으로 이루어졌다.추상미술의 선구자 바실리 칸딘스키와 파울 클레가 색채 교육을 책임지면서 순수 미술에서 추구했던 미학이 일상에서 사용되는 가전이나 가구에 접목되었다. 교수와 학생들에게는 창작을 위한 충분한 자유가 주어졌고 수많은 실험들이 어떠한 제도적 방해 없이 이루어질 수 있었다. 이렇게 바이마르에서 순탄하게 시작된 바우하우스는 1925년 위기를 맞이한다. 그해 바이마르 시의 정권을 잡은 극우정당은 학교를 폐교할 목적으로 재정 지원에 대한 전면 중단을 결정하였고 바우하우스는 불가피하게 이전을 계획할 수밖에 없었다.예술과 기술을 접목해 일상의 물건이나 심지어 기계마저도 아름다울 수 있다는 새로운 산업 미학을 만들어낸 바우하우스. 1919년 독일의 역사적인 도시 바이마르에서 처음 문을 열었던 바우하우스는 극우정당이 정권을 잡으면서 재정 지원이 끊겨버렸고 존폐의 위기 속에서 새로운 도시 데사우로 그 자리를 옮기게 된다. 당시 데사우는 독일 산업의 전진기지로 도시의 정체성이 바우하우스의 이념과 정확히 맞아 떨어졌기 때문에 재정적 지원은 물론 학교 건축을 위한 넉넉한 부지도 기꺼이 마련해 주면서 그로피우스의 종합예술학교 이전을 적극적으로 지원했다. 데사우 시당국이 그로피우스에게 학교 부지로 제안한 곳은 도심에서 벗어난 넓은 벌판이었기 때문에 별다른 제약 없이 건축적 상상력을 펼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그로피우스는 새로운 터에 자리하게 될 예술학교를 설계하면서 바우하우스의 이념에 따라 각 공간들이 독립적으로 기능하지만 유기적으로 상호작용할 수 있도록 통합적인 건축을 소개한다. 그 시대에 유행하던 건축 양식이나 형태에 구애를 받지 않고 쓰임에 적합하지만 자유롭고 통합적인 구조로 공간들을 배치하였다. 학교는 미술학교를 위한 건물은 물론 기술학교, 사무공간, 식당과 기숙사 등의 부속 건물들로 이루어졌는데 그로피우스는 각각의 요소들이 전체적으로 통일성은 보여주되 지루하지 않도록 대칭적 구조를 피하고 크기와 높이에 변주를 가했다. 그렇다보니 바우하우스 건축물의 전체 구조는 여느 건축물들과는 달리 좀처럼 한 눈에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 건축물들은 구조적으로 대개 연속성을 지니기 때문에 외부에서 내부를, 하나의 공간에서 다음 공간을, 부분에서 전체를 읽어 낼 수 있다. 그런데 그로피우스의 바우하우스 건물은 그렇지 않다. 학교를 구성하는 개별 건물들은 형태뿐만 아니라 크기나 구조 또한 모두 달랐기 때문에 외관의 피상적인 관찰을 통해 내부를 읽을 수 없고, 부분을 통해 전체를 파악할 수도 없었다. 바우하우스의 건축 구조와 공간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오로지 직접 걸어 다니며 공간을 경험할 수밖에 없다.바우하우스를 건축하면서 그로피우스의 고집이 강하게 드러난 부분은 디자인이다. 바우하우스의 기본적인 건축철학은 ‘집과 가구는 조화를 이루어야한다’는 것이다. 이 같은 생각에 따라 문고리를 비롯해 전등이나 심지어 전기 스위치와 같은 소소한 대상들까지도 건물 전체 디자인에 맞게 세심하게 제작되었다. 바우하우스에 사용될 조명들은 재학생들에 의해 직접 제작되었다. 각 층과 공간은 그 용도와 성격에 따라 다른 색으로 칠해졌다. 이렇게 기능성과 효율성을 유지하면서 미적 감각까지 더해 진 바우하우스 건물이 탄생한 것이다.1933년 나치가 데사우 시의회를 장악하면서 바우하우스는 다시 한 번 자리를 옮길 수밖에 없었다. 바우하우스는 베를린에서 다시 문을 열었지만 나치의 탄압에 위협을 느낀 발터 그로피우스는 이듬해인 1934년 영국으로 망명해 미국으로 건너간 이후 하버드 대학의 디자인대학원장을 역임하면서 현대건축에 지대한 공헌을 한다. 바우하우스가 베를린으로 이전해 버리고 데사우의 건물은 그대로 방치되고 말았다. 나치는 바우하우스 건물을 ‘역겨운 건축’이라고 폄하한다. 1945년 폭격으로 건물 일부가 파괴되었고, 전쟁이 끝난 후 데사우는 동독에 편입이 되었다. 동독 정부는 바우하우스 건물을 독일 건축의 전통을 파괴하는 흉물로 취급했지만 완전히 철거를 하지는 않았다. 20여년의 시간이 지난 후 동독 내 정치적 분위기가 달라지면서 1976년 바우하우스는 옛 모습으로 복원되었다. 동서로 나누어진 독일이 다시 통일을 이루고 바우하우스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일부는 학교로 일부는 박물관으로 활용되고 있다.바우하우스의 창시자 발터 그로피우스. 그는 ‘예술은 탐구에서 비롯된다’고 믿었다. 그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탐구는 발견을, 발견은 창조를 이끌어 내기 때문이다. 창조가 탐구에서 비롯된다면 그 토양이 되는 것은 ‘자유’이다. 시대를 움직이는 진정한 예술이 탄생하기 위해서는 생각의 자유, 행동의 자유. 표현의 자유가 전제되어야 한다.발터 그로피우스가 바우하우스를 통해 남기고 간 위대한 예술정신도 역시 자유이다./김석모 포항시립미술관 학예실장

2019-06-17

소셜벤처

소셜벤처는 환경, 교육, 삶의 질 등 사회문제를 혁신적인 기술과 사업 모델로 해결하려는 기업이다. 빈곤과 불평등, 환경 파괴, 교육 격차 등을 해소하면서도 사업을 지속할 수익을 창출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최근 스웨덴을 방문하면서 스웨덴과 양국 협력의 일환으로 소셜벤처 육성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해 화제가 됐다.중소벤처기업부에 따르면, 이날 교류행사에 참여한 한국의 소셜벤처는 (주)엔젤스윙(대표 박원녕), (주)닷(공동대표 김주윤·성기광), (주)테스트웍스(대표 윤석원), (주)오파테크(대표 이경황), (주)모어댄(대표 최이현), (주)유니크굿컴퍼니(공동대표 송인혁·이은영) 총 6개사로, 뛰어난 혁신기술이나 비즈니스 모델을 가지고 사회적 가치를 창출함으로서 국제적으로도 인정받는 기업들이다.우선 (주)엔젤스윙(ANGELSWING)은 웹에서 드론 데이터를 처리·분석하여 맞춤형 지도를 제공할 수 있는 플랫폼 제작기술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재난 복구를 돕는 등 사회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제공하는 소셜벤처다. 기업명 역시 ‘하늘을 나는 드론의 날개가 사회문제 해소에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지은 명칭으로, 엔젤스윙의 창업자 박원녕 대표는 대학 창업팀 시절부터 드론 기술을 바탕으로 사회문제를 해결하는데 기여해왔고, 이를 통해 미국 포브스지에서 발표하는 ‘아시아의 30세 이하 영향력 있는 리더’에 선정되기도 했다. 실제로 창업팀 때는 2015년 네팔 대지진 당시 드론을 이용한 정밀 3D 지도를 제작하여 재난현장의 복구를 도왔고, 2017년에는 서울시와 함께 ‘서울 쪽방촌 리빙랩 프로젝트’를 추진, 쪽방촌의 안전과 삶의 질을 개선하는데 주력해 왔다.폐자동차 시트 등 재활용 가죽을 활용하여 친환경 제품을 제작하고 있는 (주)모어댄, 시각장애인용 점자 스마트기기를 개발 사업화하고 있는 (주)닷 등 다른 소셜벤처 5개사도 혁신적 기술 또는 비즈니스 모델을 통해 사회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기업들로 널리 알려져있다.혁신적 기술이 사회적 변화를 이끌 수 있다는 이상을 실천하는 기업인 소셜벤처가 크게 발전하기를 기대한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19-06-17

“냄새가 선을 넘는다”

신희선 숙명여대 기초교양대학 교수·정치학 박사“‘반지하’ 냄새야, 이사 가야 없어져.” 영화 ‘기생충’에서 주목한 말이다. 제72회 칸국제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은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은 계급을 상징하는 장치들로 넘친다. 그 중에 하나가 ‘냄새’다. ‘기생충’은 와이파이도 잘 안터지는 반지하에 살고 있는 기우네가 고액 과외를 시작으로 박사장네 저택에 미술치료사, 기사, 가사도우미로 합류하며 펼쳐지는 계층간의 대비를 보여준다. 영화에서 ‘냄새’는 불평등한 계층구조의 단면을 암시한다. ‘향기’가 아니라 ‘냄새’의 발신자는 가난한 사람들이다. 반지하 방에 잠깐 들어오는 한 줌 햇살에 양말을 말리는 생활에 배인 냄새다. 이러한 선을 넘는 ‘냄새’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선을 넘는 사람들, 내가 제일 싫어하는데.” IT회사 젊은 CEO 박 사장은 말한다. ‘대지 600평에 1층만 200평’인 대저택, 한눈에 정원이 보이는 통유리로 된 거실이 있는 곳에서 사는 박 사장에게 젖은 행주에서 나는 듯한 퀴퀴한 냄새는 불쾌하다. 지하철을 타는 사람들과 구분지으며 이질적인 냄새에 대한 불편함을 얘기한다. 마크 냅은 ‘비언어 커뮤니케이션’에서 “냄새 효과는 본질적으로 의식적이 아닐 수 있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우리의 행동은 숨 쉬는 공간에서 떠다니는 냄새의 영향을 받을 수 있고, 주위의 냄새는 사람들의 행동양식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줄리아 우드는 “권력이 있는 사람은 권력이 더 적거나 권력이 없는 사람보다 더 넓은 공간을 차지한다”는 점을 지적한다. 우리가 몸담고 있는 여러 ‘공간’은 사회경제적 위치를 반영한다. 차를 여러 대 갖고 있는 상류층은 대중교통을 이용할 필요가 거의 없다. 지하철이나 버스를 이용하는 사람들은 주로 서민들이다. 폐기물 처리장이나 유해한 시설은 대체로 저소득층 거주 지역에 배치된다. 권력과 영향력을 가진 상류층은 안전지대에, 가장 취약한 계층은 일상의 위험에 불균형적으로 노출된다. 국토교통부의 ‘2018 주거실태조사’에 따르면, 38만 가구가 반지하에 살고 있다. 전체 아동 10명 중 1명은 열악한 주거환경에 놓여 있다. ‘기생충’에서 대주택과 반지하, 숨겨진 지하공간이 대비되듯이 집은 우리 사회의 불평등을 극명하게 보여준다.문제는 살고 있는 집에 따라 ‘구분짓기’가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크고 높은 아파트’에 사는 아이들과 ‘작고 낮은 임대’에 사는 아이들이 서로 어울려 놀지 않는다. 이질적인 주거환경이 인간관계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친구를 집에 초대해본 적이 없다’고 답한 일반가구 아동이 36.2%였던 것에 비해, 주거 빈곤 계층의 아이들은 66.9%나 되었다. 취약한 주거환경은 도스토예프스키가 ‘가난한 사람들’에서 말했던 것처럼 심리적 위축으로 이어진다. “가난한 사람은 주변을 항상 잔뜩 주눅이 든 눈으로 살피면서, 주위 사람들의 한 마디 한 마디에 신경을 쓰게 된다.” 주거 빈곤의 고착화는 공동체 의식마저 약화시키고 있다.냄새가 선을 넘어야 한다. 마이클 샌델은 ‘정의란 무엇인가’에서 다양한 계층의 시민들이 서로 만날 있는 공간을 말한다. “공동선을 추구하는 정치는 시민들의 삶에 기반이 되는 시설들의 재건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 부자와 가난한 사람 모두 아이를 보내고 싶은 공립학교, 상류층 통근자를 끌어들일 대중교통, 민주시민이 공유하는 장소로 모이게 하는 ‘시설’을 늘려야 한다”고 강조한다. 누군가에게 ‘기생’하는 삶이 아니라 모든 구성원들이 함께 살아가는 ‘공생’의 사회를 만들려면, 무엇보다도 만날 수 있는 공간이 많아져야 한다. 공원, 체육관, 복지관, 도서관, 박물관에서 서로의 냄새들이 어우러지고, 서로의 마음과 생각을 나눌 수 있어야 한다. 공간의 경계를 허물고 일상의 불편함을 해소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2019-06-17

증시의 저승사자는 죽었다

김학주한동대 교수증시 투자자들은 지난 10년간 인플레를 두려워했다. 인플레가 오면 서민들의 삶이 피폐해지므로 정부는 시중에 풀린 자금이 회수될 수 밖에 없고, 증시 주변 자금들도 마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늑대는 오지 않았다. 죽었기 때문이다.최근 일본에서는 몇 십 년 만에 생필품 가격이 인상됐다. 노동력이 부족하여 인건비를 올려줄 수 밖에 없었고, 이를 충당하기 위해 제품가격을 올린 것이다. 그러나 물가 상승은 좌절됐다. 왜냐하면 가격이 오르자 물건이 안 팔려 슈퍼마켓에서 어쩔 수 없이 가격을 할인했기 때문이다. 세계 전체적으로 소비심리는 극도로 악화되어 물가가 오르면 사람들이 쉽게 소비를 포기하는 환경이 되어 버렸다. 늙었기 때문이다.문제는 인건비처럼 물가상승 요인이 발생해도 실제 물건 가격은 오르지 않지만 기업들의 수익성이 훼손된다는 점이다. 지금처럼 미-중 무역갈등을 비롯해 세계 전역에서 교역을 지양하고, 각자 도생의 길로 가면 국가간 비교우위가 사라지고 생산성이 떨어진다. 쉽게 말해 싼 중국제품을 미국인들이 사용하지 못한다는 것이다.이 경우 비용상승 요인이 발생하지만 기업은 제품 가격을 올릴 수 없으므로 수익성이 악화된다. 정부가 아무리 시중에 자금을 공급해도 기업 실적이 악화되면 주가는 하락할 수 밖에 없다. 즉 트럼프가 지금 예민한 곳을 건드리고 있는 것이다.그러므로 증시의 새로운 저승사자는 생산성 하락이다. 이것이 기업을 질식시키기 때문이다. 다행스러운 것은 세계 세계경제가 저성장으로 가는 대신 본능적으로 비용을 절감하려는 몸부림이 나타난다는 점이다. 빅데이터(big data)를 활용한 공유경제 플랫폼, 또는 인공지능을 기반으로 한 스마트 솔루션 등이 대표적인 예다. 이런 움직임으로 인해 생산성이 개선되면 비용상승 인플레 압력이 약해지고, 그 만큼 정부는 많은 양의 자금을 증시에 남겨둘 수 있다.그런데 최근 이들 플랫폼과 제도권과의 갈등이 첨예하다. 즉 규제로 인해 이들 플랫폼들이 제대로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시장의 우려가 많다. 최근 후쿠오카에서 열렸던 G20 재무장관 회의에서는 향후 재정지출에 대한 의존도가 증가하고 그 과정에서 정부 빚이 증가할 수 밖에 없으므로 이를 해소할 수 있는 세수에 대해 주로 논의했다. 그 가운데 데이터에 대한 과세가 쟁점이었다. 즉 데이터에 부가가치가 형성되는 과정을 정의하고, 해당 데이터가 제공된 곳에 세금을 매기자는 내용이었다.그러나 데이터 자체에 세금을 부과하면 이중과세다. 플랫폼 업체들의 이익에도 법인세를 부과할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직접적인 과세는 아닐 것이다. 또한 빅데이터 플랫폼에서 지속적으로 세금을 거두려면 관련 규정을 만들어 사업을 구체화시켜 주어야 한다. 따라서 이들의 생산성 개선 활동이 시장의 우려만큼 방해받지는 않을 것 같다.그 결과 인플레 압력이 최소화되었고, 정부가 편하게 시장에 개입할 수 있는 환경이 되었다. 따라서 증시의 복원력도 강해졌다. 그러나 이는 시장이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정부의 인위적인 정책 때문임을 명심하자. 과거 미국이 경쟁력 있었던 이유는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즉시 시장원리가 작동하여 빠르게 정상화시켰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은행이 망하면 예금자들이 손실을 떠 안고 끝낸다. 환부만 얼른 도려낸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민간의 부실을 공공 부채로 떠 넘기며 상처를 숨기고 있다.정부가 이렇게 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세계경제 시스템이 서로 연결되어 있어 부분의 실패를 인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즉 부실이 전염된다는 것이다. 인구의 구조가 바뀌거나 새로운 성장동력이 나타날 때까지 이렇게 버티자는 것이고, 그 결과 시장은 평온해 보인다. 그러나 숨겼던 부실이 가끔씩 드러날 수 있으므로 그 때마다 증시를 피하는 훈련은 필요해 보인다.

2019-06-17

한 소년이 불행에 대처하는 방법

2015년 6월 23일. 필리핀의 의대생인 조이스 토르프랭가(Joyce Torrefranca)는 세부섬 만다우에의 길거리에서 한 소년을 발견합니다. 소년의 모습에 감명을 받은 조이스는 멀리서 소년을 촬영해 페이스북에 올리며 한 문장을 씁니다. “한 아이를 통해 영감을 받았다.”사진 속 소년은 맥도날드 가게 앞 거리에 자그마한 간이 책상을 놓고 무언가를 열심히 공부하고 있습니다. 맥도날드 유리창 너머로 비치는 불빛에 의지해 책을 읽고 학교 숙제를 하고 있었던 거지요. 소년의 이름은 다니엘 카브레라(Daniel Cabrera). 5년 전 화재로 집이 불타 없어졌습니다. 3년 전에는 아버지마저 돌아가셨지요. 거리로 내몰린 엄마와 카브레라. 엄마는 편의점에서 일거리를 얻고 매장 주인의 가정부로 근무하며 하루 80페소를 법니다. 우리 돈으로 하면 일당 2천원. 도저히 생계를 유지할 수 없어 엄마는 길거리에서 담배와 사탕수수를 팔며 카브레라를 키워옵니다. 카브레라의 어머니 크리스티나 에스피노사는 말합니다.“아들은 항상 제게 말했어요. 엄마, 저는 이렇게 가난하게 살고 싶지 않아요. 열심히 공부해서 내 꿈을 이루고 싶어요.”카브레라는 밤에는 공부할 수 있는 공간이 없어 안타까웠습니다.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던 소년은 누가 버린 작은 책상 하나와 전 재산인 연필 한 자루를 들고 스스로 맥도날드 매장 옆에 자리를 잡고 공부를 시작합니다. 혹시라도 한 자루 남은 연필을 잃어버릴까봐 연필 끝에 끈을 달아 손에 묶고 공부합니다.하늘은 스스로 돕는자를 돕지요. 우연히 근처를 지나던 조이스 토르프랭가의 핸드폰에 찰칵, 그 장면이 찍힌 겁니다. 조이스의 페이스북은 폭발적 반응을 일으킵니다. 9800개의 공유가 끊임없이 일어나고 사진은 필리핀 전역에 큰 이슈가 됩니다. 나아가 세계 언론의 주목을 받지요. 여기 저기서 온정의 손길이 쏟아집니다.맥도날드는 카브레라가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장학금을 지급하기로 약속합니다. 필리핀 정부도 학용품비로 125만원을 지원합니다. 카브레라는 경찰이 되는 꿈을 꾸고 있지요. 로망 롤랭은 말합니다. “언제까지고 계속되는 불행은 없다. 가만히 견디고 참든지 용기로 내쫓아 버리든지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소년은 경찰이 되고 싶은 꿈을 이루고 싶은 열망에 용기를 냈습니다. 그 용기가 행운을 불러오고 마침내 자신의 불행을 내쫓아 버립니다. 소년의 눈빛은 세상 어느 반딧불이 보다 찬란하게 빛납니다./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 대표

2019-06-17

국민 세금과 고액 강연료

투자의 귀재 워렌 버핏과의 점심경매는 이제 연중행사가 됐다. 지난해 워렌 버핏과의 점심경매는 한화 약35억 원에 낙찰됐다. 낙찰을 받은 사람은 버핏과 3시간 동안 점심을 같이하며 그에게 돈버는 노하우를 듣는 댓가로 수십억을 던져버린 것이다.올해 경매는 암호화폐 트론(TRX) 창시자인 ‘저스틴 선’에게 한화 약 54억 원(456만달러)에 낙찰됐다. 지금까지 자선경매 중 가장 높은 낙찰금액이다. 그래도 사람들은 버핏이 알려주는 부자가 되는 비법을 한수 배우기 위해 해마다 엄청난 점심 값을 지불하려고 줄을 선다. 어떤 사람은 버핏과의 점심이 30억 원어치의 가치가 있다는 평가를 내리기도 한다.세상은 참 요지경이다. 돈으로 해결하지 못할 것이 없다. 돈 버는데도 엄청난 돈을 지불하는데 주저함이 없다. 버핏과의 점심경매는 20년째 진행 중이다. 여기에는 ‘투자의 귀재’란 버핏의 유명세가 덧붙여져 홍보 등 다른 이득 효과가 있다. 그래서 낙찰금액에 대한 적절성 시비는 없다. 게다가 여기에 모여진 돈은 전액 빈민구제단체에 기부되고 있어 행사 자체를 비난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방송인 김제동의 고액 강연료 시비가 적절성 여부를 두고 계속 논란이다. 김씨 강연료에 대해 여론은 “대체적으로 과하다”는 반응이다. 대학교수나 유명 기업인의 90분 강연료가 500만∼700만 원 수준인 점을 고려하면 그가 특별하게 더 받아야 할 이유가 없어 보인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강연료는 강의자의 사회적 지위와 강의 내용, 참석인원 정도, 서울이냐 지방이냐 등 여러 가지 조건을 따져서 결정한다. 강연료를 얼마나 줄 것이냐는 강연을 개최한 기관의 판단 몫이다. 개최 당사자가 판단해 일반적인 수준보다 더 주는 것을 탓할 수는 없는 것이다. 다만 주최자가 국가나 공공기관인지 혹은 사기업인지는 따져 볼 필요가 있다. 국민의 세금으로 강연료를 준다고 한다면 사회적 통념을 고려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누구의 강의도 모든 청중을 만족시킬 수는 없다. 누구에게는 감명을, 누구에게는 뜬구름 잡는 얘기로 들릴 수 있다는 것이다. 지나친 것은 모자람만 못하다는 말 새겨들어야 한다./우정구(논설위원)

2019-06-16

‘섀도캐비닛(Shadow Cabinet)’

안재휘 논설위원영국 ‘섀도캐비닛(Shadow Cabinet 그림자 내각)’ 제도의 시원은 지금으로부터 무려 143년 전인 187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섀도캐비닛’이라는 말은 1907년 영국보수당의 A.체임벌린이 최초로 사용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영국의 민주주의가 현대 민주주의의 표본으로 여겨지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 저력을 유지해가는 비결 중의 하나가 바로 이 ‘섀도캐비닛’ 제도일 것이다. ‘섀도캐비닛’은 야당이 정권획득에 대비해 수상 이하 각 각료를 예정해 미리 정책을 연구하고 대안을 만들며 집권 준비를 하는 제도다.양당제가 발달한 내각제 국가라는 특성을 살려 야당도 총리를 비롯한 내각을 미리 정해 정책을 다듬어간다는 차원에서 정권 교체에 따른 정치적 불안정성을 최대한 줄일 수 있다는 큰 장점이 있다. 평소에도 정당 운영 자체가 ‘섀도캐비닛’ 중심으로 움직이는 만큼 자연스럽게 정당은 ‘정책 정당’으로 발전하게 된다. 영국 정부는 야당의 ‘섀도캐비닛’이 정책 연구에 필요로 하는 정부 자료를 아낌없이 제공한다.평화적 정권 교체의 전통이 이제야 비로소 성립해가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작금 심각한 문제점으로 드러나고 있는 것은 바뀐 정권의 정책적 불안정성이다. 보수-진보 구조의 청백전 방식의 적대적 정치문화가 깊어질 대로 깊어진 상황에서 잦은 정권 교체로 인한 치명적인 정책 불안정성이 위험수위에 도달하고 있는 형국이다. 시행착오 때문에 번번이 죽어나는 것은 국민이다.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야심만만하게 펼쳐온 적폐청산 드라이브와 온갖 이념정책들은 형언키 어려운 부작용들을 양산하고 있다. 부작용, 반작용들은 거의 전 분야에서 동시다발적으로 터져 나오고 있다. 닥치라 하고 달려가는 정책의 방향도 그렇거니와 검증되지 않은 탁상공론들이 마치 무슨 비법이나 되는 양 마구 펼쳐지는 바람에 힘들어하는 사람이 너무 늘었다. 국민이 설익은 정책의 실험 대상으로 전락해버린 결과는 참담하기 짝이 없는 비극이다.제1야당 자유한국당이 ‘정책 정당’으로의 변신을 모색하고 있는 가운데, ‘섀도캐비닛’ 제도를 원용할 필요가 있다는 견해가 솔솔 나오고 있다. ‘반대를 위한 반대’를 일삼는 우리의 고질적 야당 풍토를 개선하기 위해서도 일리가 있는 발상이라는 생각이 든다. 문재인 대통령도 지난 대선 전 ‘섀도캐비닛’ 아이디어를 내놓은 적이 있다. 반대하는 사람들의 논리는 우선 ‘매관매직’이 될 가능성이 있다는 주장부터 펼친다. 불투명한 과거 정치의 관행에 비추어 볼 때 개연성이 전혀 없는 우려는 아니다. 그러나 제도가 가져올 편익을 좀 더 깊이 생각한다면 반대할 이유란 희박하다. 그래서 우리의 민주주의가 더 선진화할 수만 있다면 제도적 도입을 정식으로 생각해볼 수 있다는 판단이다. 그래서 국민이 정당의 수권 능력을 미리 심층적으로 가늠해볼 수 있다는 장점도 있지 않을까 싶다. ‘섀도캐비닛’은 ‘무조건 반대’의 습성에 빠져 여론 선동에만 혈안이 된 우리 정치의 구태(舊態)를 개선해갈 여지가 분명하다. 걱정스러운 것은 제도적으로 도입을 하려고 하면 정부 자료의 야당 제공을 극도로 싫어하는, 승자독식 의식에 포로가 된 정부·여당의 몽니가 여지없이 작동할 것이라는 점이다. 야당 인사에게 자료를 제공했다간 곧바로 공무원이 치도곤을 당하는 세상이다.당장 제도화가 어렵다 하더라도 자유한국당이 ‘섀도캐비닛’ 콘셉트를 십분 활용해 ‘대안 정당’으로서의 역량을 구축하는 것도 괜찮은 지혜다. 사탕발림, 궤변이 뒤범벅이 된 선동정치의 망령으로부터 무구한 민심을 해방시키기 위해서라도 ‘정책 정당화’ 작업은 시급한 과제다. 이 나라 국민들이 각종 연고에 집착하거나, 오만가지 포퓰리즘 선동정치의 마수로부터 벗어나 ‘정책’을 표심의 으뜸 척도로 작용하도록 만드는 일을 더는 미뤄서는 안 된다. 진정한 ‘발상의 혁명’이 절실하다.

2019-06-16

약산 김원봉 행적에 대한 양면적 평가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김원봉(1898∼1958)의 서훈 문제는 찬반이 엇갈리고 있다. 얼마 전 임정 100주년 기념 토론장에 참석한 옆 자리 여고학생에게 김원봉의 서훈문제를 슬쩍 물어보았다. 의외로 그는 김원봉에게 서훈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것이다. 그 이유를 물었더니 그의 항일 운동 업적을 보니 정부가 서훈하는 것은 마땅하다는 것이다. 대체로 보수층에서는 북한 정권에 참여한 그에 대한 서훈을 반대하는 입장이지만 진보층에서는 그의 항일 애국 활동에 초점을 두어 찬성한다는 입장이다. 그의 서훈 문제는 정부가 서훈 계획이 없다고 발표하여 일단락된 듯하다.차제에 김원봉의 행적에 관해 객관적 평가는 해볼 필요가 있다. 밀양 사람 김원봉은 1916년 18세 청년 나이로 일제에 저항하여 중국 망명길에 올랐다. 그는 1919년 길림에서 무정부주의적 의열단을 조직하고, 무한에서 1938년 10월 조선의용대를 창설하여 대장직을 맡았다. 그 조직이 1941년 조선의용군으로 확대발전하였다. 조선의용군은 초기에 장개석의 지원을 받았으나 결국 이 문제로 조직 내분이 일어나게 된다. 1941년 무정과 최창익, 박일우 등 좌파는 화북의 팔로군에 가담하고 무정은 팔로군의 포병사령관이 된다. 1942년 김원봉은 의용군 일부를 이끌고 중경의 광복군에 합류하여 부사령관이 된다. 광복군 장준하, 김준엽도 중경임정에 합류하던 시기이다. 김원봉의 광복군 복귀는 매우 잘된 선택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1945년 갑작스런 조국의 해방은 김원봉의 선택을 어렵게 하였다. 그는 1945년 12월 늦게 서울로 환국했지만 그에게는 설 자리가 없었다. 해방공간의 국내 정국이 김원봉을 실망시켰기 때문이다. 그는 일본 고등계 형사 출신 노덕술로부터 또 다시 수모를 당했다. 반민족특위는 유명무실해지고 이승만이 친일 청산의 의지마저 보이지 않자 그는 불만이 더욱 커졌다. 결국 정부 수립과 신탁 통치 문제로 어수선한 해방공간에서 그는 북쪽 정권을 선택했다. 1948년 김구, 김규식과 같이 평양 정치 협상회의에 갔다가 북한에 그대로 남았다. 그는 중경시절 비서 사모로에게 보낸 편지에서 ‘북조선에 가고 싶지 않지만 남한 정세가 나쁘고, 나를 위협한다.’는 사실을 고백하였다. 그의 월북이 자진이냐 납치냐 하는 논쟁은 불필요한 것이다.1948년 북한 정권 수립 후 김일성은 그에게 국가검열상이란 장관직을 주었다. 김일성은 자신의 정통성을 위해 광복군 출신 김원봉이 필요했던 것이다. 1952년 그는 노동상으로 발탁되고 1957년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겸 우리의 국회부의장 격인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부위원장직도 맡았다. 그러나 그는 1956년 갑자기 실각되고, 1958년 ‘반국가적 및 반혁명적 책동죄’로 정치범 수용소에서 생을 마감하였다. 그의 죽음에 청산가리 독살설, 자살설도 등 아직도 분명치 않지만 그가 북한에서 김일성에 의해 숙청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북한은 6·25 전쟁 후 연안파 무정도 숙청하고, 친소파 거두 허가이, 남로당 대표 박헌영도 숙청했다. 그들은 모두 북한정권 수립에 기여하고 토사구팽당한 인물들이다.결국 김원봉은 남북한 어디에서도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는 불행한 사람이 되었다. 일제하의 암울한 청년시절, 의혈단과 조선 의용대를 조직하고, 광복군에 합류하여 군무부장을 맡은 김원봉의 행적은 높이 평가받아야 마땅하다. 결코 폄훼되어서 안 될 부문이다. 그러나 해방 후 남한 정세에 대한 불만과 이승만에 대한 불신으로 북한 정권 수립에 참여한 것은 정당하지 못하다. 10대에 항일운동에 나선 열혈청년 김원봉, 풍찬노숙하며 조국 광복에 매진했지만 해방 공간에서 그의 형제 4명은 남쪽에서 좌익분자로 몰려 처형되고, 그 자신은 북한에서 희생제물이 되었다. 민족 분단이 낳은 또 하나의 비극이다. 먼 훗날 남북이 하나될 때 그에 대한 평가는 정당하게 자리매김 되어야 할 것이다.

2019-06-16

반딧불이

반딧불이를 직접 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도시에서 태어나 살아온 저는 40대 중반까지 반딧불이를 제대로 본 적이 없습니다. 몇 년 전 미국 출장 길에 뉴욕 브루더호프 커뮤니티에 잠시 체류한 적이 있습니다. 저를 호스팅해 준 가족들과 어느 날 저녁 마을 인근을 함께 산책합니다. 5월 말로 기억합니다. 어스름 해가 질 무렵 들판 곳곳에서 갑자기 반딧불이가 하나씩 둘씩 나타나더니 순식간에 산책로와 인근 들판, 숲을 가득 메우는 장관이 펼쳐졌지요. 이 공동체에 도착하기 전에 들렀던 맨해튼 마천루 불빛들과 차원이 다른 비교할 수 없는 감동이 밀려옵니다.7세기 펴낸 중국 진서(晉書)에 반딧불이가 등장합니다. 동진 때 사람인 차윤(330~400)은 어릴 때부터 학문을 좋아했고 대단한 노력파였습니다. 집안이 가난한지라 밤에 등불을 켤 기름을 살 돈이 없었지요. 자윤은 낮에 흠뻑 빠져 읽던 책을 밤의 어두움에 막혀 더 이상 읽을 수 없는 상황이 속상했습니다. 돈 있는 집 자제들은 등불을 켜고 밤에도 마음껏 책을 읽습니다.차윤은 밤에도 책을 읽을 궁리를 하다가 반딧불이의 아름다운 야간 비행을 보고 아이디어를 얻지요. 명주 주머니를 벌레 통처럼 만들어 반디를 수십 마리 잡아넣고 거기서 나오는 빛으로 책을 읽습니다.반딧불이 축제로 유명한 무주에서는 1998년 재밌는 실험을 합니다. 형설지공 체험 현장 이벤트를 벌이고 무풍면 계곡에서 잡은 반딧불이 80마리를 1ℓ짜리 페트 병에 모았습니다. 이 불빛으로 1페이지 20자 정도가 들어가는 천자문 책을 너끈히 읽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페이지 당 한자(漢子) 200글자를 배열한 책도 훤히 읽을 수 있었지요.이렇게 열심히 공부한 차윤은 이부상서에 오르고 나중에는 상서랑까지 승진해 유능한 관리로 성장합니다. 진서에는 차윤과 손강의 이야기를 묶어 형설지공(螢雪之功)이라는 유명한 사자성어를 만들어냅니다. 여름에는 반딧불이 흐린 불빛으로 밤에 책을 읽고 겨울에는 창밖으로 몸을 내밀어 눈에 비친 달빛으로 공부하는 선비들의 치열한 배움의 열정을 빗댄 말로 후대에 큰 영감을 줍니다.열정은 절박함으로부터 나옵니다. 그 절박함을 채워주는 도구가 책이라는 것을 깨달았기에 이들은 밤의 어둠과 추위와 궁핍을 책으로 이겨냅니다. 한결같은 배움의 열정이 우리를 흔들어 깨웁니다. 반딧불이의 작은 불빛은 거대한 LED 조명의 화려한 벽 같은 세상 앞에 쪼그라들며 나약해지는 생각을 죽비로 내리치는 참된 스승입니다./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 대표

2019-06-16

태극기 그리는 방법

김현욱 시인2015년 7월 4일, 국세공무원교육원에서 9급 세무직 공무원 면접이 치러졌다. 일부 면접관들이 응시생들에게 ‘애국가 4절을 불러보라’, ‘국기에 대한 맹세를 외워봐라’, ‘태극기 사괘가 무엇이냐’ 등의 질문을 했다고 한다. 지금까지 전해진 태극기 중 가장 오래된 태극기가 무엇이냐는 질문이 없어서 그나마 다행이다. 참고로 가장 오래된 태극기는 ‘데니 태극기’다. 구한말 고종이 미국인 외교관 데니에게 하사한 것이다. 태극 문양이 조금 다르지만 색과 사괘까지 지금의 태극기와 거의 흡사하다.당시 공무원시험 정보를 나누는 인터넷 카페에서는 대체로 어이가 없다는 반응이 많았다. 전 박근혜 대통령이 영화 ‘국제시장’ 속 국기 하강식 장면을 두고 ‘애국심’을 얘기했고, 당시 황교안 국무총리는 법무부 장관 시절 ‘애국가 4절을 완창’ 못하는 신임 검사들에게 ‘나라 사랑의 출발은 애국가’라고 질타했던 것이 불과 몇 년 전이다. 인사혁신처에서는 “스펙 위주가 아닌 나라 사랑하는 마음이 크고 국민의 안전과 행복을 실현하겠다는 의지와 능력을 갖춘 인재를 선별해 뽑겠다”고 공언하면서 “적어도 공무원이 되려는 이에게 국가에 대한 충성심, 국민에 대한 봉사의식을 환기시킬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고 말했다.하긴, 2016년에 성인문해학교에 입학했던 예순의 어머니와 작년에 초등학교 1학년에 입학한 딸아이가 동시에 ‘태극기 그리기’와 ‘애국가 4절까지 외우기’ 숙제를 가져왔다. 한국에서 ‘배움의 출발은 애국가와 태극기’인 것이다. 일제 강점기 때 ‘나라 없는 설움’을 당한 선조들에게 태극기와 애국가는 가슴 뭉클한 조국의 상징이고 울림이었을 것이다. 태극기에 관한 최초의 기록은 1882년 일본에서 발행한 ‘시사신보’에서 찾을 수 있다. 일본에 수신사로 갔던 박영효는 고종의 명을 받아 태극기를 그렸는데, 그가 묵었던 숙소 고베의 니시무라 여관에 태극기를 걸어놓았다. 그것을 일본인 기자가 그려 신문에 게재한 것이 최초의 기록이다. 애석하게도 당시 박영효가 그린 태극기는 국내에 없다. 그것을 2008년 영국의 국립문서보관소에서 발견한 한철호 교수가 국내에 소개했다. 태극이 회전하는 방향과 모양, 사괘의 색이 푸른색에 가까운 것이 지금과는 조금 다르다.고종이 태극기의 존재를 공표한 것은 1883년이다. 태극기를 널리 알리기 위해 우표를 활용했다. 1884년에 나온 최초의 우표인 ‘문위우표’에는 태극 문양이 선명하게 그려져 있다. 태극기는 중심에 위치한 원형의 ‘태극’에서부터 시작된다. ‘태극’이라는 말은 ‘주역’에 나온다. 하늘과 땅이 생기기 이전의 상태를 ‘태극’이라고 한다. ‘태극’의 기원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지만, 형태와 의미에서 중국과는 다르다. 중국의 ‘태극도설’에 나온 태극은 동그라미가 여러 개 있고, 반으로 갈라져서 흑백으로 나누어져 있다.전남 나주 복암리 고분군에서 ‘태극무늬 나무상자’가 발견됐다. 관청에서 공문서를 받고 보낼 때 봉투처럼 사용했던 것이다. 7세기 초 백제 사비시대 때 것으로 추정되는데 중국 태극의 최초 기록보다 무려 400년이나 앞선다. 신라에서는 태극이 세 갈래로 갈라진 삼태극 모양을 많이 그렸다. 경주 미추왕릉에서 발견된 보검과 감은사지 장대석에 새겨진 게 삼태극이다. 한국 최초의 주자학자 안향을 기리기 위해 세운 합호서원의 외삼문에 삼태극이 그려져 있다.태극기에서 하나의 괘는 세 개의 효가 모인 것이다. 하나로 이어진 것을 양효(陽爻), 나눠진 것을 음효(陰爻)라고 한다. 우리는 대자연의 원리를 담은 건곤이감(乾坤離坎)의 사괘를 사용한다. 세 개의 양효가 있는 ‘건’은 하늘, 세 개의 음효가 있는 ‘곤’은 땅, 가운데 하나의 음효가 있는 ‘이’는 불, 가운데 양효가 하나 있는 ‘감’은 물을 상징한다. 태극기를 그릴 때 ‘건곤’, 하늘과 땅이 만나는 대각선의 중심에서부터 그림을 시작해야 한다. 그 중심점을 기준으로 태극과 건, 곤을 그려야 한다. 오랜만에 태극기를 한 번 그려보면 어떨까?

2019-06-16

가토 기요마사

1562년에 나서 1611년에 세상을 떠난 일본 구마모토의 다이묘(大名)다. 우리한테는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일으킨 임진왜란에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와 함께 조선을 침공해 들어온 적장으로 악명이 더 높다.원래 도요토미의 먼 친척이라 하며 그가 일본의 패권을 쥘 때 전공을 세우면서 유명해졌다 한다. 그건 일본에서 일이고 한국에 와서는 조선 사람 살상하는 일로 큰일을 했다. 듣자하니 얼마나 공을 세웠나 하는 것은 사람 목을 얼마나 벴나 하는 것, 머리를 베어 보내려면 부피가 크니 귀를 잘라 소금에 절여 숫자를 셀 때까지 잘 보관되록 했다 한다. 제2차 진주성 싸움 때는 기어코 성을 무너뜨려 관군과 의병, 백성들 합쳐 6만 명이나 해쳤다 하니 그 잔인함을 가히 알 만하다.고니시 유키나가는 제1부대 선봉장이었지만 원래 기독교를 믿는 데다 장사꾼 출신이라 그런지 줄곧 화친을 도모했다 하고 애초에도 전쟁에 반대했다고도 한다. 그가 가토 기요마사와 사이가 좋지 않았을 것은 뻔한 이치. 서울에 들어올 때도 고니시가 먼저 들어온 것을 공을 다투려 애매하게 문서를 꾸려 본국에 보냈다 들통 나는 바람에 이를 드러낸 자와 원수지간이 됐다고도 하고. 함경도에 가서는 호랑이 사냥을 즐겨 ‘호랑이 가토’라는 별명까지 붙었다고도 한다. 그 용맹함이 곧 잔인함이었던 모양이다. 그런데도 구마모토 현에서는 그를 영웅으로 기려 구마모토 성 아래 미유키 다리 옆에 ‘가토 공’의 흉상이 서 있고 성으로 들어가는 초입에도 ‘가토 신사’까지 차려져 있다.이 가토가 그러면 임진왜란 중에 계속 그렇게 조선 사람 죽이는 일에만 신명을 냈느냐 하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 그 자신도 죽을 뻔한 고비를 여러 번 넘긴 것도 같은데, 장덕산 대첩의 정문부 장군한테도 꽤나 혼났던 것 같고, 서생포와 울산 학성에 왜성을 짓고‘진지전’을 벌일 때는 우물이 없는 학성에서 명나라 군사와 조선 관군에 포위된 채 굶주림과 목마름에 지친 끝에 죽음의 그림자까지 느낄 지경에 이르기까지 했다 한다. 그때 너무 혼이 난 바람에 오사카 성과 나고야 성에 이어 일본의 3대 성으로 이름난 구마모토 성을 지을 때 성내에 우물을 120개나 파고 은행나무를 심어 비상시에 먹을 것으로 쓰게 하려고까지 했다니, 가히 알 만한 일이다.그래도 목숨 줄이 길어 조선에서 살아나가 나중에는 세상 떠난 주군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아들을 배신하고 도쿠가와 이에야쓰 편에 서서 복록을 누렸다 한다. 사세가 이미 기울었던 탓도 크겠지만 본래 머리 쓰는 사람들은 손바닥을 잘, 자주 뒤집는 법이다.같은 사람도 이곳에서는 악인이 저곳에서는 영웅이 되는 것이 세상의 어두운 이치다. 이번에 한국전통 시가 시조를 알리는 일로 바다 건너간 구마모토에서 뜻밖에 ‘명장’ 가토 기요마사를 만났기에 하는 생각이다. 그게 어디, 한국과 일본 사이에서만 그렇던가. 같은 나라 안에서도 지역마다, 정파마다, 세대마다, 이해관계 따라 참으로 위아래가 다르고 옳고 그름이 다르다. 안쓰러운 세태라 하지 않을 수 없다./방민호 서울대 국문과 교수/삽화 = 이철진한국화가

2019-06-13

구미시, 샴페인 터트리긴 아직 이르다

김락현경북부구미시 전체가 LG화학 구미형일자리 투자로 들떠있다.그럴만도 하다. 장기 침체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지역 경제에 모처럼 단비가 오는 격이니 들뜨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냉철함을 갖고 사업추진에 빈틈이 없도록 해야한다. 샴페인을 일찍 터뜨리는 우를 범해선 안된다.지난 7일 구미시가 LG화학에 ‘구미형 일자리 투자 유치 제안서’를 전달하는 자리에서 LG화학측으로부터 양극재 공장을 짓겠다는 의견을 전달받았긴 했지만, 아직 실무적으로 이뤄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6천억원에서 1조원 정도가 투자되고, 직·간접적으로 1천여명 이상의 고용이 있을 것이라는 것도 예측일 뿐, 아직 구체적으로 결정된 바는 없다.투자 유치 제안서를 받은 LG화학측이 지난 11일 5공단에 대한 현장실사를 다녀간 것이 전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미시와 지역 정치인들은 마치 모든 게 다 이뤄진 것인냥 자축만하고 있는 건 아닌지 다시 한번 생각해 봐야 한다.실제 LG화학측이 구미에 현장실사를 왔다가 시청 앞에 걸린 ‘LG화학 구미 투자 환영’이라는 수많은 플래카드를 보고 난색을 표한 것만 봐도 구미시가 너무 앞서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 당시 LG화학 관계자는 “아직 아무것도 결정된 것이 없는데 부담스럽다”는 입장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LG화학이 구미에 양극재 공장 투자를 할 가능성이 높은 것은 사실리지만 구미형일자리사업으로 봤을 땐 이제 사업에 첫발을 내디뎠을 뿐이다. 앞으로 해야할 일들이 산적해 있다. 들뜬 기분을 가라앉히고 부지런히 바쁘게 일을 해야할 시기다.장세용 구미시장도 시청 직원들에게 들뜬 분위기에 휩쓸리지 말 것을 주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장 시장은 기자를 만난 자리에서 “LG화학 투자는 구미형일자리 사업의 시작점이다. 구미형일자리의 궁극적인 목표는 지역에서 완제품을 생산하도록 하는 것으로, 구미시는 이번 LG화학의 투자를 계기로 지역에서 전기자동차 완제품이 생산되도록 모든 역량을 모을 것이다”고 말했다. 장 시장의 말대로 구미시일자리는 지금부터가 시작이다.구미시가 이번 기회에 교육, 문화, 의료 등 기업이 원하는 정주여건을 잘 갖추기만 한다면 LG화학의 구미형 일자리사업뿐만 아니라 다른 기업들도 앞다퉈 구미에 투자하게 될 것이다.구미에서 전기자동차 완제품이 나오길 희망한다. 그러기 위해선 구미시가 신발끈을 바짝 조여매고 뛰어야 한다.kimrh@kbmaeil.com

2019-06-13

홍콩의 역대급 시위

박근혜 전대통령의 퇴진을 촉구하는 촛불 집회가 한창인 2016년 12월 우리나라 교수들이 뽑은 올해의 사자성어는 군주민수(君舟民水)였다. 군자주야 서자수야(君者舟也 庶者水也)에서 따온 말이다. “임금은 배고 백성은 물이다”는 뜻이다. 물은 배를 띄우기도 하고 물은 배를 뒤집기도 한다는 순자 왕제 편에 나오는 말로 순자는 “임금은 이를 염두에 두고 위기가 닥칠 때 이런 상황에 이르지 않게 해야 한다”고 했다.그 해 교수회가 올린 사자성어는 박 전대통령의 국정농단을 비판하는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두 번째로 교수의 지지를 받은 사자성어는 역천자망(逆天者亡)이다. 맹자에 나오는 말이다. “천리를 거스르는 자는 망한다”는 뜻이다. 천리를 따르는 사람은 흥한다는 순천자흥(順天者興)과는 반대되는 말이다. “이슬이 모여 바다를 이룬다”는 노적성해(露積成海)와 “사람이 많이 모이면 하늘도 이긴다”는 인중승천(人衆勝天)도 후보로 올랐다. 특히 군주민수는 유교적 사상에 근거한 민본주의 사상을 잘 표현한 말로 임금도 백성의 뜻을 굽어 살피는 일에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강조한 표현이어서 그 해 사자성어로 뽑혔다.모든 역사는 나라의 근본을 이루는 백성에서 시작된다. 역사는 백성이 태평성대를 누렸을 때 가장 잘한 정치라 칭하고 당시 군주를 성군(聖君)이라 불렀다. 역사적 사실을 귀납해보면 역사는 사람의 의도대로 되지 않고 하늘의 뜻에 달렸음을 깨닫게 된다. 수많은 정치적 물음에는 백성이 항상 가운데 있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1997년 홍콩이 중국으로 반환된 이후 가장 큰 규모의 반정부 시위가 홍콩에서 벌어져 국제적 관심을 모으고 있다. 지난 9일에는 100만 명이 넘는 군중이 운집, 경찰과 충돌도 빚었다. 시위대는 홍콩정부가 추진 중인 범죄인 인도법안이 반체제 인사나 인권운동가를 압박하고 홍콩의 자유를 위축하게 할 것을 우려한다며 반대에 나서고 있다. 홍콩의 시위는 미국 등 다른 국가에서도 지지를 보내면서 국제간 긴장도도 높아지고 있다. 홍콩 인구의 7분 1인 1백만 명이나 거리에 나선 홍콩인의 시위가 군주민수의 교훈을 받아들일지 궁금하다. /우정구(논설위원)

2019-06-13

추경예산 공방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야당인 자유한국당과 청와대·여당이 ‘시시비비를 알기힘든’ 일자리예산 공방으로 국민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들고 있다. 청와대와 여당, 야당의 주장이 극명하게 다르기 때문이다.정부여당은 통계청의 통계와 각종 경기지표 등을 제시하면서 추경예산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야당은 야당대로 예산 관련 토론회에서 야당 성향의 경제학 교수과 경제관료 출신 의원들을 앞장세워 “선거용 예산”이라며 강도높은 비판을 해댄다. 어쨌든 문제의 공방이 시작된 곳은 청와대부터다.정태호 청와대 일자리수석은 13일 오전 tbs 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해 “야당에서는 늘 경제 파탄이니 경제 폭망 이야기까지 하면서 정작 추가경정예산(추경)은 안 해 주니까 답답하다”고 말했다. 정 수석은 이어 “미중 무역 갈등도 있고 대외 리스크가 점점 커지고 있는 데다 경기적으로도 하강 국면에 있기 때문에 중요한 것이 추경”이라면서 “추경 내용을 보면 중소기업에 대한 지원들이 있고 수출기업에 대한 지원들도 있고 중소상인들에 대한 지원들도 있어 그야말로 경기 활력과 수출을 위한 예산들이 많이 들어가 있다”고 주장했다. 내년 총선을 겨냥한 추경이라는 야당의 비판에 대한 반박으로 풀이된다.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청와대와 보조를 맞춰 민생경제 회복을 위해 추경이 조속히 처리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이인영 원내대표는 “산불·지진으로 피해 입은 주민, 미세먼지 없는 봄을 기다리는 주민, 미·중 경제전쟁 여파로 예고된 수출 먹구름, 경제침체에 직면한 위기의 자영업자, 중소기업, 청년 등 경제가 어렵다”면서 “적재적소에 정확한 규모로 타이밍을 맞춰 추경을 해야 한다”라고 밝혔다.이에 대해 자유한국당은 이날도 경제전문가들과 함께 국회에서 ‘재해 및 건전재정 추경 긴급토론회’를 열고 이번 추경을 ‘선거용’이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이날 발제자로 나선 연세대학교 경제학과 양준모 교수는 ‘추경 5대 불가론’을 펼치면서 추경을 반대했다. 미세먼지 등은 엄밀히 말해 추경 대상이 아니고, 추경의 고용 효과가 불분명하며, 선심성 사업이 다수 포함된 만큼 한국당이 추경을 받아선 안 된다는 것이다.나경원 원내대표는 한 걸음 더 나아가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 실패를 진단하는 ‘경제 실정청문회’를 열자고 주장했다. 옛 재정경제부 차관 출신인 김광림 의원은 이번 추경에 대해 자기 정권 유지를 위한, 내년 총선과 다음 대선을 위한, 포퓰리즘을 벗어난 ‘재정 퍼줄리즘’이라고 비판했고, 기획재정부 차관 출신인 추경호 의원 역시 “이 정부는 증세 아니면 빚더미에 앉는 길로 가고 있다”며 “결국 빚잔치하고 ‘먹튀’행태를 보일 것”이라고 목청을 높였다.돌이켜보면 이명박 정부시절 4대강사업 때도 정치권은 이처럼 여야가 확연하게 엇갈리는 주장으로 국민들을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4대강 사업에 대한 평가는 아직도 찬반으로 엇갈린다.필자의 견해로는 4대강 사업 자체는 훌륭한 국토개발사업이라 생각한다. 다만 5년이란 단기간에 전 국토를 갈아엎는 토목사업을 강행하는 바람에 일부 대기업의 주머니만 불렸고, 4대강 환경문제도 막지 못한 채 나라 곳간이 말라버리는 부작용을 낳았다. 결국 중소건설업체들의 부도가 잇따르면서 나라경제가 위축되는 어려움을 겪었다. 그런 전례를 보면 정치권의 공방은 정답을 찾기 힘든 주장의 향연일 수 있다.어쨌든 요즘같으면 민초들의 주름살을 제대로 펴주지 못한 채 갈팡질팡하는 정부여당보다 경제정책의 선회를 주장하는 야당의 목소리에 좀 더 힘이 실릴 수 밖에 없다. 총선이 다가오니 ‘누가 옳고 그른가’보다 ‘누가 잘할까’에 관심을 갖게 되는 요즘이다.

2019-06-13

‘떠나감’의 미학

박상영대구가톨릭대 교수·국어교육과얼마 전의 일이다. 서로 살기 바빠 한동안 보지 못했던 지인 한 명이, 간만에 대구에 들를 일이 있다며 차나 한잔 하자고 불러내었다. 오랜 만에 보았는데 대뜸 한다는 이야기가, 그 동안 지극정성으로 사랑한 남편이, 다른 여자가 생겨서 떠나가겠다고 선포를 하더라는 것이다. 애를 셋이나 낳아 애지중지 키웠더니, 이게 무슨 청천벽력이냐며, 먹고 살만하니 그런다고 기가 막힌다며 하소연하던 그 앞에서, 나는 유자차 한 잔을 들이키며 지그시 눈을 감았다.“누군가를 사랑한다 해도 그가 떠나기를 원하면 손을 놓아주렴. 떠났다가 다시 돌아오는 것 그것을 받아들여. 돌아오지 않으면 그건 처음부터 너의 것이 아니었다고 잊어버리고 살거라.”신경숙의 소설 ‘깊은 슬픔’에 나오는 구절이다. 한때, 사랑으로 인해 아파하고 슬퍼하던 많은 청춘들의 심금을 울렸던 이 문구. 사랑하면 잡아둘 법한데, 왜 떠나보내라고 하는 것일까? 누군가를 떠나보낸다는 것은 분명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기에 우리의 옛 고전 시가에도, ‘떠나감’을 받아들이지 못한 예를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떠나는 임을 향해 적극 매달리며 잡으려는 여성(‘서경별곡’), 서러운 마음 꾹 누르며 보내니, 가는 듯 다시 돌아오라며 여운을 남기는 여성(‘가시리’), 술에 취해 물에 빠져 죽는 남편 따라 같이 죽는 여성(‘공무도하가’), 자신의 유혹을 거절한 채 갈 길 떠나는 남성에게 온갖 저주를 퍼붓는 여성(‘맏딸애기 노래’) 등.이는 비단 여성에게만 한정된 것도 아니요, 남녀 간의 문제이기만 한 것도 아니다. 사실 임금과 신하, 부모와 자식, 친구 사이 등 인간만사가 모두 떠나감-남겨짐의 관계 속에서 이루어진다. 떠나감이 있으면 다가옴이 있고, 다가옴이 있다면 떠나감도 있는 법이다. 애초에 이 세상에 태어날 때 오롯이 내 것이기만 한 것이 어디 있었던가. 살면서 잠시 ‘내 것’이 되었던 것일 뿐. 죄다 이 세상에 살면서 잠깐 ‘빌린 것’들일 뿐이지 않는가 말이다. 인생사가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인 것을. 헌데, 그것을 ‘내 것’이라 여기고 집착하고 놓치지 않으려 하고, 잃어버리는 것에 대한 두려움으로 잠 못 이룬다면, 이는 잠시 ‘빌린 것’에 스스로를 가두는 꼴이 아니고 무엇일까? 옛 여류 수필가 중, 1769년(영조 45년) 10월 13일 전북 남원에서 태어난 김삼의당 부인이 있다. 그는 2살배기 셋째 딸을 잃어버리고 쓴 제문(‘哭第三女文’)에, 이렇게 적었다. ‘생이든 죽음이든 사람이 다 한번은 겪는 것이다. 수명이나 천명은 사람이 반드시 제 마음대로 하지 못하는 바이다. 대저 어찌하여 살면 기쁨이요, 죽으면 슬픔이 되는가.’라고. 그리하여 ‘나는 너의 죽음을 애석해 하지 않고 오히려 다행으로 생각하고 있다’고.딸의 죽음 앞에서 이토록이나 담담하게 슬픔을 풀어낼 엄마가 세상에 몇이나 있을까. 김 부인이 딸의 죽음을 슬퍼하지 않은 것이 결코 아니다. 그러나 많은 정이 쌓인 후 어느 날 아침 죽는다면 더욱더 아플 것이니 차라리 그 전에 죽어버린 것이 오히려 다행이라는 역설을 통해, ‘떠나감’에 집착하지 않고 주어진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줄 아는 지혜를 보여준다. 누군가가 우리를 떠난다는 것은, 결코 ‘상실’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기다림’과 ‘절망’, ‘아픔’과 ‘슬픔’, ‘고통’과 같은 지독한 감정들을 겪고 난 후에 찾아오는 평온함, 그 속에서 ‘비움’을 채워갈 시간이 주어졌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떠나감’의 핵심은, ‘떠나가는 주체’가 남겨진 자의 가슴팍에 아로새기는 상흔들에 있는 것이 아니라, ‘보내는 주체’가 타자의 ‘떠나감’을 수용하는 과정에서 그간 스스로 집착하고 있던 것들을 떠나보내는 연습에 있다. 그 연습이야말로 다름 아닌, ‘떠나감’의 진정한 미학이라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연습 과정은 비록 뼈를 깎는 고통과 슬픔으로 가득할 지라도, 종국에는 스스로의 영혼을 성숙시키는 과정이자 언젠가 떠나간 빈자리를 채울 ‘새로움’을 위한 준비기간일 터이기 때문이다.

2019-06-13

폭증하는 외국인 유학생

서의호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한국대학 캠퍼스에서 외국인 유학생의 숫자가 급증하고 있다. 이제 한국의 어느 대학 캠퍼스를 가도 외국인 유학생을 쉽게 볼 수 있다. 이제 국내 대학의 외국인 유학생 수는 15만명을 넘어섰다고 한다. 이는 4년제 대학 기준으로 대강 캠퍼스당 1천명이 넘어선다. 유학생들이 선호하는 대학들은 이미 이들의 숫자가 3천명을 넘어섰고 5천명의 유학생을 가진 캠퍼스도 있다. 일부 대학은 중국에 지점을 설치하고 유학생 유치에 열을 올리고 있다.불과 20년이 채 안된 1990년말 1만명을 넘긴 유학생숫자가 급증하게 된 계기는 지난 2004년 당시 교육인적자원부의 ‘대학 글로벌화’ 추진이 기폭제가 되었다. 국내 대학교 입학생 수 부족과 유학수지 적자 개선을 위한 방안으로 ‘Study Korea Project’를 수립했다. 이에 따라 국내 외국인 유학생 수는 폭발적으로 증가하게 됐다. 이러한 현상은 세계적으로 유행하는 캠퍼스 글로벌화 추세에 비추어 볼 때 바람직한 현상으로 일단 받아들일 수 있다. 교육부의 2023년까지 외국인 유학생 유치 목표는 20만명이다.그러나 이러한 캠퍼스 국제화 실상을 들여다 보면 마냥 낙관적이지만 않다. 유학생의 90%는 아시아 국가 출신으로, 중국 출신이 압도적으로 많다. 전체 유학생 중 절반 가량은 중국 학생이다. 얼핏 보기엔 ‘대학 환경의 글로벌화’처럼 보일 수 있겠으나 속사정은 다르다. 외국인 유학생을 위한 학교 차원의 배려나 정책당국의 해법이 미약하고 유학생 관리 제도는 사실상 방임되고 있다. 교육부와 학교의 관리 소홀로 외국인 유학생의 중도탈락률은 갈수록 늘고 있다. 2016년부터 2018년까지의 중도탈락률은 각각 5.0%, 6.3%, 6.6%로 증가세다.최근 교육부가 내놓은 ‘유학생 표준업무처리요령’은 유학생 선발 절차와 학업지도 등에 관한 업무처리를 표준화하기 위해 작성됐다. 그러나 구체적인 제도를 제시하기보다는 추상적인 방향성만 권고하고 있을 뿐이다. 대부분의 선발·관리 절차는 대학의 자율에 맡기고 있다. 기본적인 시설만 갖추면 외국인 유학생을 받을 수 있다보니 질적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 서울 소재 한 명문대학교는 학교 내 어학당을 졸업하고 한국어 시험만 통과하면 대학교 입학 자격을 준다. 따로 수능이나 입학시험이 필요하지 않다.대학들이 외국인 유학생 유치에 사활을 거는 까닭은 저출산으로 인해 대학 진학자가 급격하게 줄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동결된 등록금으로 유학생 유치는 대학 재정에 절대 도움을 주는 상황이다. 하지만 정작 외국인 유학생의 관리에는 소홀하다.언어의 문제도 심각하다. 특히 명성이 낮은 대학에서의 문제점은 더 심각하다. 한국어 수준이 낮으니까 한국어 강의를 못 알아듣고 영어강의는 더 못알아 듣는 외국학생 특히 중국학생이 많다고 한다. 이들은 중국에서 대학을 실패하고 한국에 몰려온 케이스인데 대학들은 등록금 수입으로 받긴 하였지만 이들의 교육에 큰 골치를 앓고 있다.이제 유학생을 받아들이는 정책에 철학이 필요해 보인다. 등록금 동결로 재정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대학들이 유학생유치에 의존하는 것을 나무랄 수만은 없다. 그리고 외국인 유학생은 한국홍보와 국제적 네트워크의 첨병으로 여러 가지 장점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양적으로 팽창하는 유학생의 질이 관리되지 않는다면 이들은 고국에 돌아가서 한국유학생이란 타이틀로 한국의 이미지를 손상시킬 수도 있다.현실에 입각한 외국인 유학생 관리 정책과 대학별 유학생의 질을 관리하고 올바른 교육을 시키는 자율적 정책이 조화를 이루어 조만간 20만명을 돌파할 외국인 유학생이 진정 그들에게도 그리고 한국에게도 도움이 되는 인재가 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

2019-06-13

삶이 한 권의 책이라면 (2)

에이미는 더 이상 이렇게 살 수 없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스스로에게 묻기 시작하지요. “내 키가 굳이 167㎝일 이유가 무엇일까? 마음대로 키를 얼마든지 키울 수도 있어. 작은 사람과 데이트를 하게 된다면 줄일 수도 있지? 스노 보드를 탈 수 있다면 발이 하나도 시리지 않을 거야.”의족으로 사는 장점을 수없이 발견합니다. 마침내 그 질문을 다시 떠올리지요. “내 삶이 한 권의 책이고 내가 그 책의 작가라면 나는 어떤 이야기를 담을까?”에이미는 상상합니다. 우아하게 걷는 모습, 세계를 활보하며 여행하는 모습, 스노 보드를 타는 자신을 실제보다 더 구체적으로 상상하지요. 설원을 가로 지를 때 느끼는 세찬 바람, 흩날리는 머리카락, 미칠 것 같은 속도감을 심장이 쿵쿵거리며 반응할 때까지 치열하게 상상합니다. 그 연습이 에이미 인생을 바꾸어 놓습니다. 4개월 후, 에이미는 다시 스노 보드를 탈 수 있었으니까요.일을 시작하고 대학공부를 시작합니다. 2005년에는 비영리단체 ‘어댑티브 액션 스포츠(AAS)’를 설립해 장애를 겪고 있는 청소년들이 스포츠 활동으로 삶을 되찾을 수 있도록 돕습니다. 2015년에는 ABC방송의 ‘댄싱 위드 더 스타’에도 출연합니다. 정상인들과 춤을 겨뤄 결승까지 진출하지요. 놀라운 에이미의 춤 솜씨에 미국이 열광합니다. 수백만의 사람들이 에이미의 트위터에 응원의 글을 남깁니다. 2018년 2월 평창의 장애인 올림픽에서는 스노 보드 여자 크로스 경기에서 은메달을 따냅니다. 오프라 윈프리 쇼에도 출연하지요.책에 사용할 스토리를 개발할 때 작가로서 저도 비슷한 경험을 합니다. 주인공을 절망의 상황으로 빠뜨리지요. 예를 들면 경청에서는 이토벤이, 쿠션에서는 한바로가 더 이상 어찌 할 수 없는 인생의 장벽을 만나도록 설정합니다. 해결책을 미리 생각하고 글을 쓰지 않습니다. 절망 그 자체로 주인공을 몰아갑니다. 작가로서 주인공의 입장이 되어 함께 고민합니다. 실제로 작품의 캐릭터들과 대화도 수없이 주고받습니다. 에이미가 그랬던 것처럼 생생하게 주인공의 눈빛, 표정, 동작, 옷의 감촉까지 느끼면서 상상으로 그들과 대화를 나누며 절망의 구렁텅이에서 빠져나올 창의적인 방법을 찾아내려 몸부림 칩니다. 하나의 질문이 에이미의 인생을 바꾸었습니다. 그 질문을 모두에게 던져봅니다.“당신의 삶이 한 권의 책이라면 그리고 당신이 그 책의 작가라면 당신은 그 책에 어떤 스토리를 담고 싶으신가요?”/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 대표

2019-06-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