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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ㆍ특집

“갈등 없는 추석 명절… 조선시대 선조들처럼”

오는 10일은 추석 명절이다. 풍요롭고 즐거워야 할 명절이지만 명절갈등이라는 심각한 사회문제가 대두되는 시기이기도 하다.하지만 조선시대 추석 풍경을 담은 일기를 살펴보면 차례를 모시는 장소와 참여 범위, 역할 분담에 이르기까지 오늘날보다 더 유연하고 합리적인 모습이 담겨 있다. 우리는 조선시대의 추석 풍경을 담은 일기를 통해 형식에 치우친 차례 문화보다 조상을 기리며 함께 모여 수확의 기쁨을 누린다는 추석의 의미를 되살려 가족 모두를 포용하는 추석 원래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이 필요하다.△그 갈등의 시작…명절추석은 신라시대부터 내려온 우리의 명절로 수확의 기쁨을 가족과 함께 나누며 조상을 기리는 날이다. 옛 어른들은 추석을 얘기할 때 ‘더도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라고 할 정도로 추석은 풍요로움을 상징했다. 더운 여름이 지나 날씨마저 덥지도 춥지도 않은 계절이거니와 막 추수를 시작하는 시기다 보니 먹을거리도 풍족했다. 이런 저런 걱정이 없으니 인심도 좋아져 서로에게 나누고 베푸는 그런 명절이었다.하지만 우리 사회가 발전함에 따라 풍요로움은 더 해갔고 먹을 걱정 입을 걱정이 사라지자 더 이상 명절이라고 큰 의미로 다가오는 것은 아니게 됐다. 오히려 명절이 가족 간의 갈등을 부채질 하고 이에 따른 사건사고가 뉴스를 채우는 지경에 이르고 있다.그러다 보니 요즘은 명절이 시작되기도 전에 많은 부부들이 갈등을 겪거나 주부들이 고민에 빠지는 경우가 많다. 명절에는 유독 주부들의 할 일이 많아지고 시댁과의 갈등도 빈번하게 일어나기 때문에 명절이 지나고 나면 많은 부부들이 후유증을 겪고 갈등을 극복하지 못해 결국 명절갈등이혼을 결정하는 경우도 늘어나고 있다. 이는 아직 우리사회에 남아 있는 가부장적인 사고방식도 어느 정도 작용한다고 할 수 있다.△명절 전·후 이혼율 11.5% 증가실제로 예전에는 가부장적인 관념 아래 여성의 일방적인 희생과 가사노동을 당연하게 여기는 경우가 많다 보니 며느리가 명절에 시댁 찾는 것을 꺼리는 행동을 두고 전통적인 윤리의식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법원이 남편의 이혼 청구를 받아들인 판례도 있을 정도다.이러한 가부장적인 태도도 2000년대 들어 여성의 권리 신장과 가정 내 양성평등을 구현하는 쪽으로 많이 바뀌면서 시댁에 대한 일방적 양보와 희생을 강요할 수 없게 됐다. 요즘은 오히려 위 사례와 달리 이러한 것을 강요했다는 이유로 이혼을 받아들이는 경우가 더 많다. 배우자로서 신의를 져버렸다는 것이 이유다. 즉 남편과 부인이 동등한 위치에서 책임과 의무를 다했는지 면밀히 따지는 추세로 변화한 것이다.통계청의 최근 5년간 이혼통계를 보면 설과 추석 명절 직후인 2월과 3월, 10월 11월의 이혼 건수가 직전 달보다 평균 11.5%나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즉, 명절 전후 갈등으로 인해 가족이라는 틀이 깨지고 있는 것이다.△더 이상 명절 차례를 지내지 않는 젊은세대이렇다 보니 요즘은 ‘명절 차례를 지내지 않는다’는 비율이 매년 증가하고 있다. 이는 아직 차례 문화를 이어가야 한다는 기성세대와 젊은 세대의 갈등으로 나타나기도 한다.지난해 5월 여성가족부가 발표한 ‘제4차 가족실태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45.6%가 ‘제사를 지내지 않는 것에 동의한다’고 대답했다. 특히, 20대 응답자는 63.5%가 제사 폐지에 찬성했지만, 70세 이상 응답자는 27.8%만 이에 동의했다. 여러 문항 가운데 세대 간 동의 비율 차이가 가장 크게 나타난 문항이었다.이처럼 명절 갈등의 원인은 조선후기 가례의 보급과 확산으로 양반 가문에 사당이 건립되고, 제례의 순서 및 제사상 음식의 조리법과 배치까지 정례화되면서 시작됐다고 할 수 있다. 여기에 신분제 동요와 재산상속 문제와 맞물려 더욱 보수화된 제례 문화가 현재까지 이어져 오면서 갈등의 원인이 되고 있는 것이다.하지만 한국국학진흥원이 보유하고 있는 조선시대의 추석 풍경을 담은 옛 성현들의 일기를 살펴보면 현대 사회가 얼마나 잘못된 방향으로 변질됐는지 알 수 있다. 자료에는 차례를 모시는 장소와 참여 범위, 역할 분담에 이르기까지 오늘날보다 더 유연하고 합리적이었던 추석 모습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조선시대 산소에서 지내는 추석 차례, 차례와 성묘의 이중 부담 해소경북 예천의 초간 권문해(權文海·1534~1591)의 ‘초간일기(1582년 (음)8월 15일)’에는 “용문(龍門)에 있는 선조 무덤에서 제사를 지내서 어머니를 모시고 산소에 올라갔다”는 내용이 실려있다.안동 예안에 살았던 조성당 김택룡(金澤龍·1547~1627) 역시 ‘조성당일기(1617년 (음)8월 15일자)’에서 “술과 과일을 마련해 누이의 아들 정득, 조카 김형, 손자 괴를 데리고 가동(檟洞)의 선산에 올라 선영에 잔을 올리고 절을 했다”고 했다. 또한 그 전해에도 “가동의 선조 무덤에 제사를 지내므로 직접 그곳으로 갔다”고 적어놓았다. 이를 통해 우리는 추석 차례를 가족과 친척이 산소에 모여 지내기도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상주의 청대 권상일(權相一·1679~1759)은 ‘청대일기(1745년 (음)8월 15일자)’에서 “시냇물이 불어나 건너기 어려워 산소에 성묘하러 갈 수가 없었다. 해가 저문 뒤에 손자 복인과 아우 상기가 술과 포를 조촐하게 갖추어 성묘하고 돌아왔다”고 적어 상황이 여의치 않을 때는 간소한 제물로 성묘를 지낸 모습도 보여준다.△친가, 외가, 처가의 구분 없는 조선시대 차례문화, 함께하는 추석김택룡의 ‘조성당일기(1616년 (음)8월 15일자)’에는 “가동에서 합제(合祭·여러 사람에게 함께 제사를 지냄)를 지냈는데, 영해(寧海)의 외조부모도 함께 제사를 지냈다”는 내용이 실려있다.다음 해 추석에는 산소에 가기에 앞서 집에서 외조부모의 제사를 지냈고, 선조의 무덤에서 차례를 지낸 후에는 “제물을 나눠 영해의 장인 에게도 절을 올렸다”고 기록돼 있다.안동 예안의 계암 김령(金坽·1577~1641)은 ‘계암일기(1621년 8월 15일자)’에서 “먼저 외가의 추석 차례를 지낸 후, 집의 사당에서 추석 차례를 올렸다”고 적어 추석 차례에 참석하는 친족의 범위가 지금과 달랐다는 사실을 알려준다.대구의 모당 손처눌(孫處訥·1553~1634)은 ‘모당일기(1601년 (음)8월 15일자)’에서 “오후에 조부 및 부친의 묘에서 돌아왔다. 동생 희로가 두 사위를 데리고 와서 참석했다”고 적었다. △같이하는 추석 준비, 모두가 행복한 명절 지내기김택룡은 1617년 성묘에 생질이 함께한 사실을 기록하고 있다. 김택룡 일가는 추석 준비도 함께했다. “조카 김형을 시켜 수록동(水錄洞)에 있는 조부의 묘소를 벌초하고 음식을 올리도록 했다(1616년)”, “누이의 아들 정득의 무리가 수록동에서 벌초했다(1617년)”와 같이 친가와 외가의 후손이 번갈아 산소의 벌초와 차례를 맡았다.또 음식 마련도 서로 도왔다. “가동의 제사에 범금과 임인이 술을 가지고 와 올렸다(1616년)”, “포태(泡太·두부를 만드는 데 쓰는 콩)를 보냈다. 내일 누님이 가동의 선조 무덤에 가려하시기 때문이다(1617년 (음)8월 13일자)”는 기록은 형편껏 역할을 분담해 서로 도와가며 추석을 지낸 모습을 담고 있다.한국국학진흥원 관계자는 “형식에 치우친 차례 문화는 명절의 본래 취지에 맞지 않는 것이다. 조상을 기리며 함께 모여 수확의 기쁨을 누린다는 추석의 의미를 되살려, 가족 모두를 포용하는 추석 원래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밝혔다./피현진기자 phj@kbmaeil.com

2022-09-07

한가위 달밤, 동화 속으로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라고 한다. 먹을 것이 풍요롭기에 생긴 여유가 마음의 양식을 찾기 때문이다. 더하여 한가위가 들어 피붙이들이 보름달 아래 모여 정겨운 답소를 나누기 좋은 시간이다. 올 한가위는 삼대가 모여 동화를 읽으면 어떨까. 각자 흩어져 휴대폰만 들여다본다면 피붙이가 한자리에 모인 의미가 퇴색된다. 어른은 어른을 위한 동화, 아이는 아이들을 위한 동화, 이에 읽을만한 동화책 세 권을 소개한다.어린이의 마음속에는 동심이 흐른다. 그것은 지하수와 같아서 때 묻지 않고 맑다. 동심은 순수하고 천진하고 난만하다. 그렇다고 모두 동화가 되는 것은 아니다. 아이들 가슴 깊이 흐르는 아이다운 정서를 찾아 두레박을 내려야 한다. 동심의 우물에서 길어 올린, 맑고 순수한 이야기를 읽어보자. 작품을 다 읽고 나면 어른도 맑은 동심 한 사발 마신 듯 갈증이 풀린다. ① 단편동화 ‘냄새폭탄 뿜! 뿜!’(박채현 글, 허구 그림)‘냄새폭탄 뿜! 뿜!’에는 다섯 이야기가 실려있다. 모두 동심이 흐르는 길목에서 퍼 올린 이야기다. 작가는 동심이 휘돌고 굽이치고 출렁거리는 자리를 안다. 그 자리에 우물을 파고 두레박을 내려 소재를 퍼 올려 이야기를 짓는데, 서사만 나열하지 않는다. 아이들 특유의 행동과 심리를 문장으로 절묘하게 녹여 이야기마다 동심이 살아 숨을 쉰다.‘너라도 그럴 거야’: 먹고 싶은 것을 꾹 참으며 용돈을 모아 병아리를 산 승표, 그런데 고양이가 병아리를 물고 가버린다. 승표는 며칠 동안 친구들과 고양이를 추적한다. 철거를 앞둔 집에서 고양이의 집을 발견한 승표는 아이들과 함께 간다. 회초리를 든 승표는 끝내 복수를 포기하고 만다. 이를 갈며 복수의 칼을 벼렸는데, 왜 승표는 회초리로 고양이를 때리지 못했을까. 그 이유를 알면 누구나 제목에 공감하게 된다.‘나 좀 읽어줘’: 엄마가 마음을 몰라준다고 심통이 퉁퉁 불은 동아, 엄마를 따라 헌책방으로 가는데, 헌책방 골목에 들어서지 책들이 나 좀 읽어달라고 아우성을 친다. 헌책방이라는 현실이 판타지의 세계가 되고 동아는 그 세계 속에서 헤맨다. 판타지 속에서 무엇을 경험했으며 또 어떻게 될까.‘냄새폭탄 뿜! 뿜!’: 학교에서 친구들의 놀림을 받아도 말 한마디 못 하는 금은파 이야기다. 은파는 벌을 따라 텃밭으로 가고, 텃밭에는 이런저런 생명이 자신을 지키며 산다. 대파는 자신을 지키기 위해 매운 냄새를 뿜는다. 대파는 은파에게 소리친다. “뿌리에서부터 냄새를 끌어 올려. 매운 냄새를 풍기라고. 줄기는 질깃질깃해야 살아남아” 은파도 대파처럼 씩씩하게 자기를 지킬 수 있을까.‘바보 여우와 작은 씨앗’: 보리수나무 씨앗이 바람에 떨어진다. 떨어진 씨앗이 다시 바람에 실려 벌판으로 가고, 씨앗은 붉은꼬리여우 조의 뱃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씨앗은 조의 똥에 섞여 다시 땅에 떨어진다. 싹을 틔운 씨앗은 여우의 보살핌으로 자란다. 늙고 병든 여우가 보리수나무로 아래로 찾아온다. 둘은 어떻게 될까. ② 중편동화 ‘걱정을 없애주는 마카롱’(성주희 글, 유경화 그림)어른의 걱정은 생존에 관한 것이 많다. 어떻게 먹고 살까. 아이를 어떻게 공부시킬까. 묵직한 걱정이다. 어른이 보기에는 아이의 걱정은 무겁거나 거창하지 않다. 하지만 아이에게는 소소한 걱정도 무겁다. 그 무게에 눌리면 동심은 더 무거워진다.작가는 엄마다. 아이를 키우면서 아이들이 자잘한 걱정에 휩싸인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작가도 어릴 적에 크고 작은 걱정에 시달렸기에 아이들 세계의 걱정을 들여다본다. 한 뼘 두 뼘 마음이 크는 과정에서 걱정은 자연스러운 현상인데, 걱정에 사로잡혀 아이다움을 충분히 누리지 못하는 아이들이 안타깝다. 그래서 작가는 걱정하는 마음을 토닥여주고 걱정이라는 먹구름 뒤에는 맑은 하늘이 펼쳐진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싶었다.집에 도둑이 들어오면 어떡하지? 자다가 불이 나면? 갑자기 땅이 흔들리면? 걱정왕 ‘왕기우’는 온갖 걱정을 달고 산다. 심지어 요즘 유행하는 ‘걱정두병’에 걸렸을지 모른다는 걱정에 시달린다. 엄마 친구 아들인 ‘오해소’는 이런 기우를 걱정왕이라며 놀린다.하루는 기우 앞에 묘한 유리병 하나가 나타난다. “당신의 걱정을 없애 드립니다” 일단 믿어보기로 한 기우는 병 안에 든 ‘걱정을 없애주는 마카롱’을 먹는다. 진짜로 온갖 걱정이 사라지고 기우는 모든 걱정에서 홀가분해진다. 그런데 기우가 놓친 게 있다. 걱정이 없는 날에도 걱정을 적어야 한다는 조건을 까먹은 것이다. 걱정을 만들어야 한다는 걱정에 걸린 기우는 어떻게 될까.아이들의 걱정을 판타지 기법으로 풀어낸 이야기다. 작가는 아이들이 마음껏 공상과 상상의 세계를 경험하고 단단한 마음으로 성장하는 힘을 얻기 바란다고 말한다. ③ 어른을 위한 동화 ‘책상은 책상이다’(페터 빅셀 지음, 이용숙 옮김)이 책은 어른을 위한 동화이다. 사고가 엉뚱하고 행동이 바보 같은 사람의 일곱 이야기다. 현실에 없는 이야기 같지만 나 또는 나와 가까운 데 있는 이야기다.‘지구는 둥글다’는 정말 지구가 둥근지 확인해보려고 길을 떠나는 남자의 이야기다. 남자는 계속 똑바로 나아가면 이 책상이 있는 곳으로 다시 돌아올 것이라는 걸 안다. 알긴 하지만 믿을 수 없어서 남자는 길을 떠난다. 처음 떠난 자리로 정확하게 돌아오려면 어떡해야 할까. 어떠한 난관이 기다리고 있을까.‘책상은 책상이다’는 반복되는 일상 때문에 무료함이 극에 달한 한 남자의 이야기다. 이 나이 많은 남자는 아침에 한 번, 오후에 한 번 산책하고, 이웃과 몇 마디 이야기를 주고받고, 저녁이면 자기 책상 앞에 앉아 있었다. 남자는 “달라져야 한다고!” 외친 뒤, 침대를 ‘사진’으로, 의자를 ‘시계’로, 책상을 ‘양탄자’로 부른다. 주변 사물의 이름을 다 바꿔 부르다 보니, 시간이 흘러 타인이 자신의 이야기를 이해할 수 없다. 결국 자신도 타인의 이야기를 이해할 수 없는 지경까지 이른다. 이 남자는 어떻게 될까.‘아메리카는 없다’는 왕의 무료함을 달래려고 궁정의 광대를 자꾸 교체하는 이야기다. 광대는 왕이 시키는 대로 무조건 복종한다. 왕을 위한 땅을 발견해야 한다고 명령하자 콜롬빈이라는 광대가 뱃사람이 되어 대륙을 발견하러 떠난다. 시간이 지나 찾지도 않은 땅을 발견했다며 콜롬빈이 나타난다. 사람들은 확인하지도 않고 그것을 믿는다. 너무 먼 곳에 있어 확인할 길이 없으니까.이외에도 ‘발명가’, ‘기억력이 좋은 남자’, ‘요도크 아저씨의 안부인사’, ‘아무것도 더 알고 싶지 않은 남자’가 실렸다. 모두 엉뚱한 사람들의 이야기인데, 그 결말은 슬프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하고, 한 편으로는 쓴웃음이 나기도 한다.어른을 위한 동화를 다 읽고 나면 기분이 상쾌하지는 않다. 엉뚱한 사람들이 이야기는 역설逆說이 되어 나름의 메시지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우리 주변 어딘가에 있는 바보 같은 남의 이야기 같지만, 가만히 생각하면 내 안에도 이러한 기질이 조금씩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김이랑 수필가·문학평론가

2022-09-07

태국, 배낭 하나 달랑 메고… 자유여행의 천국으로

젊은 시절. 배낭 하나 달랑 메고 낯선 아시아의 거리를 헤매본 사람이라면 잊을 수 없는 지명이 있다. 아니, 비단 배낭여행자가 아니더라도 적지 않은 한국인에게 분명 익숙한 이름일 것이다. 카오산 로드(Khaosan road).태국 방콕은 인근 국가인 베트남, 라오스, 캄보디아, 미얀마, 말레이시아 등을 묶어 1~2개월 혹은, 더 긴 기간 동안 돌아보고 싶은 청년들에게 거점 같은 도시다.패키지여행이 아닌 개별적인 자유여행을 계획한 이들이라면 보통 한국에서 방콕으로 날아가는 비행기 티켓을 구매해 가장 먼저 카오산 로드로 간다.거기서 좀 더 구체적인 여행 계획을 세우고, 인접국으로 향하는 기차표나 버스표 또는, 배표를 예매하는 게 동남아 배낭여행의 가장 보편적 방법이었다. 몇 해 전 발생한 ‘코로나19 사태’가 있기 전에는. □ 300m 남짓 거리가 배낭여행자들로 넘쳐났던 곳이…방콕공항에서 택시나 셔틀버스로 1시간 남짓 달리면 만날 수 있는 카오산 로드는 어떤 곳일까? ‘위키백과’가 간략하게 그곳을 요약해주고 있다.“카오산 로드는 태국 방콕 시내 프라나콘 방람푸 지역에 있는 짧은 거리 이름이다. 카오산 로드는 300m도 채 안 되는 거리지만, 전 세계 배낭여행객들의 집합소이자 젊은이들의 해방구다. 태국뿐만 아니라 동남아 여행을 계획하고 있는 여행자들에게 카오산 로드는 반드시 거쳐야 하는 관문이자 베이스캠프이기 때문. 이곳에서는 여행자 입맛에 맞는 다양한 음식도 먹을 수 있다. 방콕 왕궁과 왓 프라깨우가 있는 1km 북쪽에 자리한다.”2020년 초 코로나19가 불러온 ‘세계여행 암흑기’의 직격탄을 카오산 로드도 피해갈 수 없었다.1년 내내 유럽과 북아메리카, 아시아에서 온 여행자들로 넘쳐나던 그 거리가 인적 없는 유령도시처럼 변한 ‘코로나19 사태’ 이후 사진과 영상은 많은 이들을 충격에 빠지게 했다.한국보다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맥주와 커피를 마시고, 태국 요리부터 인근 동남아시아 길거리 음식까지 맛볼 수 있었던 카오산 로드.자정을 넘겨 새벽에도 꺼지지 않던 거리의 불빛이 사라진 카로산 로드는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인해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지역 중 하나였다. 다행히 최근 언론 보도에 의하면 3년 전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태국을 여행하려는 관광객들이 조금씩 늘고 있다고 한다.카오산 로드 역시 개점휴업 상태이던 상점과 카페들이 하나둘 활기를 찾아가며 야간 영업시간 확대까지 준비하고 있다고.기자 역시 배낭여행을 즐기던 30대 초반부터 40대 중반까지 대여섯 차례 이상 방문한 곳이 카오산 로드다. 당연지사 잊을 수 없는 추억도 여럿 만들었다. 처음 그곳을 찾았을 때 일본 와세다대학에 재학 중인 청년 하나를 만났다. 태국은 물론, 캄보디아와 라오스, 인도네시아를 거치며 3개월째 여행을 지속하고 있다는 그는 “앞으로도 3개월쯤 더 여행을 계속할 것”이라는 말로 기자를 놀라게 했다.사실 여행은 인생의 교과서로 역할 한다. 한국인들은 일본인에 비해 그 사실을 늦게 깨달았다. 아니, 늦게 알았다기보다는 알고 있다고 해도 해외여행이 수월치 않았다.이른바 MZ세대에게는 비행기를 타고 가까운 일본이나 중국, 멀리는 유럽과 아메리카 대륙까지 가는 게 놀랍고 드문 일이 아니지만, 그 이전 세대는 달랐다.지금 50대 이상인 한국인들에겐 여권을 발급 받아 외국으로 가는 비행기를 탄다는 것 자체가 일종의 특권처럼 인식됐다. 그보다 이전엔 돈이 있어도 해외여행을 마음대로 갈 수 없던 시절도 있었다.세상은 빠르게 변했다. 21세기에 들어서며 적지 않은 한국 젊은이들도 태국 방콕 카오산 로드를 자기 동네 뒷산 드나들듯 가기 시작했다. 그 추세는 속도를 더했고, 이제는 해외여행 경험이 없는 대학생들을 보기 어려울 지경.□ 몸 추스르고 여행자 맞기 시작한 ‘카오산 로드’코로나19가 불청객처럼 찾아와 세상을 흉흉하게 만들기 1년 6개월 전. 그러니까 2018년 카오산 로드를 찾았다.거기서 대구에서 학교를 다닌다는 한 청년과 술잔을 기울였다. 스물셋. 2000년대 초반 만났던 와세다대학 청년과 같은 나이였다.“도서관이 아닌 낯선 세상에서 인생 공부를 해보고 싶어 여름방학 내내 공사장에서 힘든 일을 해 300만 원을 모았다”는 대구 청년은 “돈이 바닥날 때까지 동남아시아 곳곳을 떠돌아다닐 것”이라고 했다.전공서적이 아닌 낯선 풍경과 처음 만난 사람들로부터 무언가를 배우겠다는 그의 태도가 보기 좋았다.이미 생활인으로 몸과 마음이 굳어진 중년들과는 세상을 받아들이고, 해석하고, 살아가고자 하는 방법이 확연히 달랐다.카오산 로드의 매력은 앞서 언급한 일본 청년과 한국 청년 같은 이들이 뿜어내는 젊음의 에너지를 바로 앞에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비단 아시아의 청년들만이 아니다. 그곳에선 전 세계 각국에서 온 젊은이들이 가슴 안에 간직한 싱싱한 꿈과 희망이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춘다. 나이 지긋한 관광객들은 그걸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행복감을 느낄 수 있다. 카오산 로드로 몰려드는 다양한 국적과 인종의 청년들이 얼마나 늘어났는지를 보면 아시아 배낭여행 시장의 회복 가능성도 점칠 수 있을 터. 앞서도 말했지만 카오산 로드는 단순한 방콕의 한 거리가 아니라, 동남아시아 여행의 가장 주요한 거점이기 때문이다.카오산 로드엔 저렴한 숙소가 많다. 하룻밤 1만 원 정도의 허름한 도미토리에서 깨어나 새벽부터 문을 여는 수상시장에서 힘겹지만 성실하게 살아가는 방콕 사람들과 만나보는 것, 다른 환경과 제도 아래서 살아온 세계 여러 나라 청년들과 스스럼없이 어울리며 친구가 돼보는 것.바로 이런 게 책에선 배울 수 없고, 찾을 수 없는 ‘살아있는 세상 공부’가 아닐까.그래서다.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카오산 로드가 조금씩 활기를 찾아가고 있다는 소식이 더없이 반갑다. 여행 속에서 인생을 배워가려는 청년들을 위해서라도 그 거리에 활력이 더해가기를 바란다.□ 보다 행복한 여행을 위해선 현지인들과 친해져야태국은 국민의 절대다수가 불교신자다. 인도에서 생겨나 태국을 비롯한 동남아 일대로 전파된 소승불교(小乘佛敎)는 무엇보다 개인의 해탈을 중요시한다. 알다시피 불교는 욕망을 버리는 수양을 통해 성숙에 이르고자 하는 종교.크고 작은 방콕의 사원에선 조용히 머리 숙이고 부처 앞에서 합장하는 적지 않은 태국인들을 볼 수 있다. 비단 사원에서만이 아니다. 불교는 태국 사람들 속으로 들어와 생활의 일부가 돼있다.상점과 카페, 심지어 술집과 거리에서도 불상을 볼 수 있는 곳이 태국이다. 하루에도 몇 번씩 그 불상 앞에 고개를 숙인다. 이처럼 독실한 종교적 자세는 보통의 태국 사람들을 겸손하고 선량하게 만든 듯했다.여러 차례 태국을 여행하면서 겪고 본 바에 따르면 태국인들은 크게 고함을 치며 치고받는 싸움을 하는 경우가 드물다.태국 사람들의 보편적 성정을 장황하게 설명하는 이유가 있다. 여행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 형성 노하우를 배울 수 있는 좋은 기회다. 비단 여행자와 여행자 사이에서만이 아닌, 여행자와 현지인 사이에도 그 기회는 존재한다. 처음 낯선 나라로 떠나는 사람은 현지인과의 관계 맺기에 어려움을 호소하는 경우가 흔하다. 해외여행에서 만나는 이들은 서로 사용하는 언어가 달라 진심을 전하기도 어렵다. ‘혹시 저 사람이 내게 사기를 치면 어떡하나’ ‘어두운 골목에 서성거리는 사람이 불량배면 어쩌지’라는 공포가 있을 수 있다.그러나, 그런 닫힌 마음과 지레짐작의 두려움으로는 제대로 된 여행을 할 수 없다는 게 기자의 생각이다.어느 나라에나 나쁜 사람은 있지만, 그래도 아직 세상엔 착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이들이 다수가 아닐까. 태국도 마찬가지다. 먼저 다가가 환하게 웃으며 물건 가격을 흥정하고, 예의를 지켜 길을 묻는 여행자에게 해를 끼치는 현지인은 드물 터.그러니, 마음을 열고 ‘세상 누구와도 친구가 될 수 있다’는 태도를 취하는 게 한층 즐거운 태국 여행으로 당신을 이끌 것이다./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2022-09-06

영일만과 동빈내항에 온갖 고기들이 넘쳐나

산업화 이전 포항의 바다 풍경은 어땠을까? 이북의 유년시절부터 아버지를 따라 낚시를 다녔던 한동웅 선생은 포항에 와서도 낚시를 즐겼다. 덕분에 누구보다 영일만과 동빈내항, 칠성천, 해도 염전의 모습을 생생하게 재현해낼 수 있었다. 김 : 교직에 오랫동안 계셨는데, 감회는 어떻습니까?한 : 우여곡절 끝에 교단에 섰는데 38년 6개월 근무하고, 그중 16년이나 교장을 했으니 복 받은 사람이지.김 : 교사로서 좌우명이나 원칙 같은 게 있었다면.한 : 나는 아버지를 많이 닮았어. 정의와 정직을 중요하게 여겼고, 그게 원칙이라면 원칙이었지. 간혹 학교에 납품하는 사업자가 미끼를 던질 때가 있는데 나는 원칙대로 단호하게 대처했어. 민주적인 교장이 되려고 노력했고, 교사들하고도 잘 지냈지. 교장으로 있으면서 교사들에게 고함을 지른 적은 딱 한 번이었어. 한 교사가 절차와 예의를 무시하고 행동하길래 화를 냈지. 그 직후 화를 낸 것은 사과하고 좋게 풀었어.김 : 교단에 있을 동안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한 : 동지상고는 한 학년의 절반은 진학반이고, 나머지 절반은 취업반이었어. 또 진학반을 우열반으로 나누었는데, 한번은 내가 열(劣)반의 담임을 맡게 되었지. 나는 당연히 우(優)반의 담임을 맡게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말야. 그래서 교감에게 내가 왜 열반을 맡게 되었는지 물었더니, 우반 아이들이야 알아서 잘할 테지만 열반 아이들은 잘 이끌어줄 유능한 교사가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대답하는 거야. 일리가 있는 말이었지. 그래서 열반을 맡고 보니 학급 아이들 태반이 태권도, 유도, 검도의 유단자더군. 그 단(段)을 모두 합하니 100단이 넘어. 그래서 내가 아이들에게 말했지. “나는 참 행복하다. 이렇게 든든한 무술 유단자를 제자로 거느리고 있으니 말이야.” 그 아이들하고 참 잘 지냈는데 기어이 사고가 나더군.김 :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나 봅니다.한 : 포항역에서 기차를 타고 경주로 가을 소풍을 가는 길이었어. 기차 안에는 경주의 한 고등학교 교사가 있었는데, 유도 유단자인 우리 반 아이와 시비가 붙은 거야. 해병대 출신인 교사가 아이한테 봉변을 당했지. 나는 그 교사한테 용서해달라고 빌었지만 용서는커녕 사건을 확대하려고 하더군. 나는 어떻게든 막아보려고 백방으로 애를 썼는데 결국 경북도교육청에서 사건을 알게 되었지. 그 일 때문에 나는 감봉 처분을 받았어. 동지교육재단 하태환 이사장에게 자초지종을 보고하니 특유의 목소리로 잘했다고 하시더군. 하태환 이사장은 그런 분이었어. 그 감봉이 교직에 있는 동안 내가 유일하게 받은 징계야.김 : 다른 얘기를 좀 해보겠습니다. 선생님은 낚시를 좋아한다고 들었습니다.한 : 나는 낚시 마니아야. 낚시하다가 죽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때도 있어. 어릴 때 아버지를 따라다니며 낚시를 배운 덕분이지. 한번은 릴낚싯대를 들고 호미곶에 갔더니 온 마을 사람들이 다 나와서 내가 낚시하는 장면을 지켜보더군. 호미곶 주민들이 릴낚싯대를 처음 본 거지. 포항은 낚시하기에 좋은 곳이어서 나는 이래저래 포항을 좋아할 수밖에 없어.김 : 부자지간에 낚시도 자주 다녔겠습니다.한 : 그랬지. 내가 어릴 때 아버지와 동생 동명이 그리고 나 셋이서 낚시를 자주 다녔어. 나룻배를 타고 영일만에 나간 적도 여러 번 있었지. 과거 영일만에는 고기가 엄청 많았어. 특히 바닥을 뱀장어로 깔아둔 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뱀장어가 많았지. 하루는 얼마나 큰 뱀장어가 잡혔는지 아버지도 기분이 꺼림칙했던 모양이야. 영일만 이무기가 올라온 것 같다며 용왕님께 잘못한 걸 빌고 집으로 가자고 하셨어. 김 : 영일만에 어떤 어종이 많았습니까?한 : 온갖 고기가 다 있었지. 청어와 정어리는 정말 많았어. 물 반 고기 반이라는 말이 실감 날 정도였지. 조업 나간 뱃사람들이 청어와 정어리를 적당히 싣고 들어오면 될 텐데, 욕심을 못 이기고 갑판 가득 싣고 들어올 때가 있어. 그러다가 선착장 가까이 와서는 고기 무게를 못 이겨 배가 가라앉기도 했지. 고등어 떼가 영일만에서 뛰어오를 때는 장관이었어. 요즘은 박물관에 가야 볼 수 있다는 감성돔도 지천이었고.김 : 고래를 보신 적도 있습니까?한 : 내가 어릴 때는 고래가 사람을 잡아먹는다는 인식이 퍼져 있었지. 1950년대 후반으로 기억하는데, 여름철 송도해수욕장에 고래가 얕은 바다까지 들어왔어. 그때 해병대 하계 휴양소가 송도에 있었거든. 해병대 대원들이 모터보트를 급히 띄워서 총을 쏘며 고래를 쫓아갔지. 피서객들은 박수를 치고 발을 동동 구르며 난리가 났어. 그런데 고래가 잡힐 리 있나. 도구 쪽으로 유유히 사라지더군. 영일만에 고래밥으로 통하는 곤쟁이가 많았어. 그러니 영일만에 고래도 많았을 거야. 학꽁치 잡을 때도 곤쟁이가 최고 미끼인데 지금은 구할 수가 없지.김 : 동빈내항이나 칠성천 쪽은 어땠습니까?한 : 비 내린 다음 날 동빈내항에 가면 황토가 씻겨 들어와 누렇게 변해 있었어. 그런 날에는 민물장어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이 잡혔지. 칠성천에는 상류까지 황어와 고등어 떼가 올라왔어. 어느 날엔가 칠성천에서 낚시를 하는데 탄띠가 올라오는 거야. 6·25전쟁 때 희생된 군인의 탄띠지. 그 실한 고기들이 사람 먹고 자란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더군.김 : 해도 염전 쪽에도 고기가 올라왔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한 : 염전 사이로 가자미와 숭어 떼가 올라왔지. 가자미는 힘이 좋아서 잡는 재미가 쏠쏠했어. 숭어를 잡으려고 해도 다리 근처에 사람들이 싸릿대로 물길을 막고 가마니를 깔아두었어. 그러면 팔뚝만 한 숭어가 싸릿대에 걸려서 가마니 위로 펄쩍펄쩍 뛰어올랐지. 그뿐만이 아니야. 당시에 송도다리가 ‘찢어져 있다’고 했어. 배의 돛대가 지나갈 수 있도록 다리 사이를 살짝 비워둔 거지. 그 위에 염전으로 유명한 염동골이 있었는데 거기까지 황어와 감성돔이 올라왔어.김 : 수영도 잘하셨습니까?한 : 강과 바다가 곁에 있으니까 웬만한 아이들은 수영을 잘했지. 동네 아이들과 헤엄쳐 형산강을 건너 송정까지 가기도 했어. 당시 송정에는 사람의 발길이 거의 없었거든. 송정 백사장에 멸치 떼와 숭어 떼가 뛰어오르기도 했어. 조개는 또 얼마나 많았던지 마대에 넣으면 무거워서 들지도 못했어.김 : 생선을 좋아하시겠습니다.한 : 말해 무엇하겠어. 특히 고래고기를 좋아해. 교직에 있을 때는 퇴근하면 시내 대흥식당에서 살다시피 한 적도 있어. 그 집에서 고래고기를 즐겨 먹었지. 아동문학가 손춘익이 아버지를 따랐기에 나와도 친했어. 하루는 손춘익과 구룡포에서 고래고기를 안주 삼아 술을 거나하게 마셨어. 남은 고래고기를 시멘트 포장지에 둘둘 말아서 포항행 완행버스에 탔지. 그러고는 버스 뒷좌석에 앉아서 고래고기를 꺼내 또 술을 마신 거야. 입맛을 다시는 승객들이 있길래 어울려서 술판을 벌였지.김 : 술 인심이 좋았던 시절의 얘기군요.한 : 아마 이런 말은 들어본 적이 없을 거야. ‘날로, 하머, 과타.’ 대폿집에서 소주잔을 기울이다 보면 그 옆에 한 술꾼이 쓸쓸하게 앉아 있을 때가 있어. 그에게 소주잔을 권하면 ‘날로’라고 해. 풀이하자면 ‘나에게 술잔을 주는 겁니까?’ 하는 뜻이야. 조금 있다가 또 술잔을 권하면 ‘하머’라고 하지. ‘벌써’라는 뜻이야. 한 뜸 들였다가 또 한 잔을 권하면 껄껄 웃으면서 ‘과타’라고 해. ‘과하다’라는 뜻이지. 난생처음 보는 술꾼끼리도 그렇게 정을 나누던 시절이었어.김 : 1940년대 후반부터 포항을 지켜보셨습니다. 포항의 변화상을 짤막하게 말씀해주신다면.한 : 1960년대 후반까지 포항은 한적한 항구도시였지. 그때는 구룡포항이 더 활발했어. 포항제철이 들어서면서 포항은 상전벽해의 변화가 일어났지. 포항이 이렇게 변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어. /대담·정리 : 김도형(작가)

2022-09-05

제주의 초록숲에 물든‘예술가의 흔적’ 찾아서

여름 볕에 지친 제주의 초록 숲이 서늘한 바람에 흔들려 가을빛으로 물들어간다. 계절은 또 오고, 햇살은 깊어진다. 차분해진 제주의 풍경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는 미술관에서는 예술의 향기가 흘러나온다. 가을의 초입, 예술을 감상하며 사색하기 좋은 미술관으로 떠나보면 어떨까. △제주도립 김창열미술관제주시 한림읍에 있는 김창열미술관은 ‘물방울 화가’로 알려진 김창열 화백의 대표작품 220점을 만날 수 있는 공간이다. 예술성과 대중성을 모두 갖추어 한국미술을 대표하는 화가로 손꼽히는 김창열은 활동 초기에 6·25전쟁의 아픔을 형상화한 추상 작품을 그렸다. 1973년 파리에서 물방울작품을 처음 선보인 후, 캔버스, 신문지, 나무, 흑연, 모래 등에 오랜 세월 물방울만 그렸다.물방울은 캔버스 위에 포도알처럼 주렁주렁 달려 있기도 하고, 흩뿌려진 빗방울처럼 맺혀 있기도 하다. 금방이라도 바닥으로 또르르 흘러내릴 듯한 물방울은 작품을 바라보는 각도에 따라 다른 색채로 빛나기도 한다. 미술관 곳곳에서 구르는 물방울을 감상하다 보면 마치 모차르트 피아노 소나타의 선율이 들리는 듯하다.미술관 건물을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한자 ‘돌아올 회(回)’처럼 보인다. 물방울을 통해 무(無)로 회귀하고자 했던 작가의 철학이 공간에 투영되었다. 건축물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빛의 중정’은 글자의 모양처럼 건물 한가운데 자리한다. 하늘이 뻥 뚫린 정원 분수 한가운데 놓인 물방울 조형물은 쏟아지는 빛을 머금어 반짝인다. 비가 그친 뒤 무지개가 떠오르듯 분수의 물줄기가 꺼지면 오색찬란한 빛이 물방울에 맺힌다. 검은 송판 무늬의 콘크리트 건물은 화산섬에 깔린 현무암처럼 제주의 풍경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든다. △이중섭 미술관한국 근대미술을 대표하는 ‘황소’의 화가 이중섭의 예술혼이 담긴 이중섭 미술관은 그가 머물던 서귀포에 있다.이중섭은 일본 유학 시절 만난 야마모토 마사코(이남덕)와 사랑에 빠져 결혼하고 두 아들까지 얻었다.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가족과 함께 부산으로 피난 갔다가 제주도까지 내려오게 된다. 1951년 1월부터 1년간 지낸 서귀포에서의 생활은 궁핍했다. 그림 그릴 재료와 도구가 없어 나무판자에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가난 속에서도 아이들과 바닷가에 나가 게를 잡거나 농장에서 감귤을 따며 소박한 행복을 누렸다. 그래서일까. 당시에 그린 ‘서귀포의 환상’, ‘섶섬이 보이는 풍경’, ‘바닷가의 아이들’ 등에는 따뜻함이 묻어있다.이중섭 미술관이라지만 소장한 작품의 거의 없어 한산했던 미술관은 최근 이건희 컬렉션의 12개 작품이 더해져 볼거리가 풍성해졌다. 70여 년 만에 서귀포 품으로 돌아온 대표작품 섶섬이 보이는 풍경은 이중섭 미술관 근처에서 그린 것으로 평화로운 마을의 모습을 담고 있다. 미술관 옥상에 올라가 내다보면 이중섭이 바라봤을 서귀포 앞바다의 섶섬이 여전히 푸른 바다 위에 그대로 떠 있다. △김영갑갤러리두모악 미술관서귀포 동쪽 성산읍에 있는 김영갑갤러리두모악 미술관은 폐교였던 삼달분교를 개조해 2002년 문을 열었다. 한라산의 옛 이름이기도 한 ‘두모악’에는 20여 년 동안 제주의 풍경과 도민을 필름에 담아온 사진작가 김영갑의 작품이 전시돼 있다.김영갑은 서울에서 제주를 오가며 사진을 찍다가 제주의 풍경에 매혹돼 1985년 정착했다. 섬, 바다, 오름, 나무, 이름 없는 풀꽃들이 하나하나 들려주는 이야기들은 그의 필름에서 작품이 되었다. 그는 구좌읍 종달리의 풀밭 오름인 용눈이오름을 가장 사랑했다. 사계절, 이른 새벽부터 달 밝은 밤까지 열정을 바쳐 평화롭고도 쓸쓸한 오름의 초원을 사진에 담았다.당근이나 고구마로 배고픔을 달래고 돈을 아껴 필름을 샀다. 창고에 차곡차곡 쌓인 사진을 전시할 곳을 마련하기 위해 버려진 초등학교를 구했다. 공간을 다져갈 무렵,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손이 떨리고 허리에 통증이 왔다. 루게릭병이라는 진단을 받고 카메라를 들지도, 걷지도, 먹지도 못할 지경이 됐다. 점점 퇴화하는 근육을 간신히 움직여 사진 전시관 만들기에 열중했지만, 투병 6년 만에 그는 사랑했던 섬 제주, 두모악에 잠들었다.김영갑갤러리두모악 미술관의 ‘두모악관’, ‘하날오름관’에서는 지금은 볼 수 없는 제주의 모습과 속살을 감상할 수 있다. 병과 힘겹게 싸우면서도 제주의 돌과 바람, 사람을 모티브로 손수 일군 정원에는 작은 뷰파인더로 세상을 바라보며 치열하게 살다 간 예술가의 설렘과 고통이 곳곳에 배어 있다. △우도 훈데르트바서 파크소를 닮은 섬, 우도에서는 구스타프 클림트, 에곤 실레와 함께 오스트리아 대표 예술가로 꼽히는 화가이자 건축가 훈데르트바서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숙박 시설, 카페, 갤러리, 뮤지엄이 한데 모여 있는 ‘훈데르트바서 파크’의 알록달록한 색채는 신비로운 섬에 이질감 없이 잘 어우러진다. 자연을 테마로 작품을 구상하는 훈데르트바서의 철학 때문일 것이다.뮤지엄 건물은 독일에서 제작해 공수해 온 78개의 세라믹 기둥, 궁전 같은 양파 모양의 돔, 131개의 크고 작은 창문들로 만들어져 자체가 예술품이다. 오스트리아 빈에 있는 ‘훈데르트바서하우스’의 화려한 색감과 곡선미 넘치는 건축물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하다. 훈데르트바서는 ‘직선은 부도덕하며 인간성의 상실로 이어진다’고 주장하며 그림과 건축물에 물이 흐르는 듯한 곡선만 표현했다.뮤지엄 회화관에서는 빛나는 원색을 좋아한 훈데르트바서의 회화가 진품만큼 강렬한 색채를 고스란히 전해준다. 판화관에는 훈데르트바서가 직접 그린 판화 22점도 소장·전시하고 있다. 환경 건축관에는 독일 다름슈타트(Darmstadt)의 ‘나선의 숲’ 건축물 모형이 전시돼 있다. ‘나선의 숲’은 독일 다름슈타트에 설계된 서민 아파트로, 환경운동가이기도 했던 훈데르트바서가 친환경 재료를 사용해 지은 나선형 모양의 건물을 지붕까지 산책하듯 오를 수 있게 만들었다.우도의 테마파크도 그의 정신을 불어넣어 건설했다. 부지에 자생하던 1600여 그루의 나무들을 건축물에 그대로 옮겨 심었다. 메마른 건축물에서 생명이 숨을 쉰다. 자연을 품은 화려한 색채의 건물은 우도의 아름다운 풍경에 그림처럼 스며든다. 한적한 제주 독채형 숙소로 GO~여행을 일상처럼 즐기고 싶은 여행자들에게 제주의 자연을 집 안에서 오롯이 즐길 수 있는 독채형 숙소가 사랑받고 있다. 취사 가능한 주방까지 갖춘 매력적인 숙소에서 가족과 편안하게 쉬고 싶다면 제주 속 보석 같은 에어비앤비 숙소를 찾아보자.▷탁 트인 창과 툇마루에서 만나는 제주의 자연, ‘송당미학’‘오름의 정원’이라 불리는 구좌읍 송당리에 있는 ‘송당미학’은 거실의 커다란 통창으로 보이는 풍경이 아름다운 곳이다. 삼각 지붕의 높은 천장으로 쾌적하고 시원한 공간감을 느낄 수 있다. 통창을 열고 나가면 툇마루에서 오름의 능선과 먼바다가 내다보인다. 흔들의자에 앉아 새소리를 듣고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온전한 휴식을 누릴 수 있다.▷제주 바다와 가까운 소박한 돌담집, ‘이플’제주 동쪽 구좌읍 한동리 작은 바다마을에 있는 ‘이플’은 소박하고 아담한 독채 숙소다. 바닷가 바로 앞에 있는 낡은 돌집과 마당을 정성 들여 가꾼 숙소 침실 창으로 아침볕이 가득 들어온다. 초록 잔디 마당을 두른 돌담 너머로 보이는 바다에서 아침에는 눈부신 일출을, 저녁에는 고즈넉한 일몰을 감상할 수 있다.▷하늘 보이는 자쿠지에서 누리는 제주의 운치, ‘북촌리브’제주시 조천읍의 ‘북촌리브’는 욕실 천장 창에서 하늘이 보이는 자쿠지가 있다. 안거리와 밖거리에 각각 잔디마당이 있다. 정겨운 돌담집 내부는 서까래 기둥을 살려 전통적이면서도 모던하고 깔끔하다. 마당에서 바비큐를 즐길 수도 있고, 바닷가 어촌마을에 있어 집 밖을 산책하며 바다를 만날 수 있다. /제주=글·사진 이솔 객원기자

2022-09-01

아시아·유럽이 공존 두가지 매력 속으로

이른바 ‘코로나19 사태’가 2년을 넘겨 3년째 끊어질 듯, 끊어질 듯 이어지고 있다.이제 한국만이 아니라, 다른 나라 사람들도 이 바이러스가 ‘죽음을 부르는 치명적인 전염병 유발체’가 아닌 ‘감기처럼 누구나 언제든 감염될 수 있는 병의 하나’로 인식하는 경향이 강하다.코로나19 바이러스가 들불처럼 번지던 2020년 초반에는 국가들마다 국경의 빗장을 닫아걸고 외국인의 출입을 막았다. 예외인 나라가 드물었다. 하지만, 현재는 상당수의 국가가 나라 밖에서 찾아오는 관광객들의 입국을 허용하는 추세.사실 어떤 극악한 바이러스도 ‘내가 사는 이곳이 아닌, 가보지 못한 낯선 공간을 여행하고 싶다’는 인간의 본질적 욕망을 온전히 막을 수는 없다.올해 들어 부쩍 늘었다는 해외여행객들은 이번 여름휴가 기간에도 가까운 나라건, 먼 곳이건 외국을 찾았다. 관광객들의 해외여행 욕구는 연휴가 이어질 추석에도 통제되지 못할 듯하다.“1~2년에 한 번쯤 다녀오는 외국 여행이 지루하고 무료한 삶에 활력소가 된다”고 말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기자 또한 이 말에 동의한다.코로나19와 함께 살아가야 한다는 ‘위드 코로나 시대’는 어쩔 수 없이 보편화될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건 외국이건. 아직은 두려움과 망설임 속에서 외국으로의 여행을 주저하는 사람들이 더 많지만, 코로나19의 그늘이 보다 명확하게 걷히는 게 확인된다면 다시금 비행기를 타려는 이들이 공항을 채울 터.‘위드 코로나 시대’라고 해도 철저한 방역수칙 준수로 바이러스 감염의 가능성을 낮추는 건 중요한 일. 그걸 염두에 두고 몇 해 전 다녀온 튀르키예 여행을 추억하며, 아주 오랜만에 해외여행을 준비해본다. □ 한국을 ‘형제의 나라’로 부르는 튀르키예 노인들아직까진 ‘터키’라고 부르는 것이 더 익숙한 나라 튀르키예는 2022년 5월 그들 국가의 명칭을 바꿨다. 공식 영어 표기가 수정된 것이다. 터키(Turkey)는 영어로 칠면조라는 뜻이 있고, 또한 속어로는 ‘비겁한 사람’을 지칭하기도 한다.그러니, 과거 한때 아시아와 유럽에서 위세를 떨쳤던 ‘용감한 민족’으로 스스로를 말하는 튀르키예 사람들에게 ‘터키’라는 국호가 기분 좋게 들릴 리 없었다.실제로 튀르키예인들의 용맹성은 중세의 정복전쟁만이 아닌 1950년대 초반 한국전쟁에서도 발휘됐다. 속설처럼 전해오는 이야기가 있다. 튀르키예 군대에는 ‘작전상 후퇴’라는 게 없다고 한다. 무조건 돌격해 적이 굴복하거나 자신이 죽을 때까지 물러서지 않는다는 것. 모든 게 낯설고 익숙하지 않은 환경 속에서 한국전쟁에 참전한 튀르키예 군대는 우리 땅 곳곳에서 용맹하게 싸웠던 것으로 전해진다. 6·25 한국전쟁 때 파병된 군인 숫자 대비 전사자가 가장 많은 나라도 튀르키예라고 한다.몇 해 전 튀르키예를 여행하면서는 한국전쟁 파병용사를 만나기도 했다. 이스탄불을 출발해 이란에서 가까운 튀르키예 동쪽으로 달리는 기차. 70대 노부부가 기자와 같은 침대칸에 탑승했다.할아버지는 함께 기차에 오른 사람이 한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볼 때마다 웃었고, “우리는 형제”라는 말을 여러 차례 했다. 30시간쯤을 같은 공간에 있었으니 할아버지가 건네주는 큼직한 빵과 할머니가 깎아주는 사과도 여러 개 얻어먹었다.비단 그 노부부만이 아니었다. 한 달쯤의 튀르키예 여행에서 “한국은 우리와 형제의 나라”라고 말하는 이들을 적지 않게 만났다. 그들이 때마다 홍차와 달콤한 튀르키예 과자를 권하는 건 하나의 정해진 수순 같았다.여행의 즐거움 중 절반은 그곳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선물한다. 그런 차원에서 보자면 튀르키예 여행은 한국인들에게 즐거움의 50%를 미리 보장해주는 여정이 아닐지.최근 몇 년 사이 튀르키예는 폭등하는 물가와 경제 성장 둔화로 적지 않은 국민들이 고통을 받고 있다고 한다. 기차에서 만난 친절했던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희망을 잃지 않고 건강하기를 빈다. □ 아시아·유럽 경계 지역에 위치… 다양한 볼거리가튀르키예는 아시아와 유럽의 경계 지역에 위치하고 있다. 그렇기에 두 대륙의 특성과 매력을 동시에 즐길 수 있는 여행지다.수도인 앙카라와 경제 중심지 이스탄불에서는 도시에서의 세련된 삶을 지켜볼 수 있고, 이란·아르메니아 등과 가까운 동부는 한국의 1970년대 같은 시골 풍경을 간직하고 있다.2주를 이스탄불에 머문 기자는 거기서 독특한 체험을 했다. 그 도시는 유럽지구와 아시아지구로 나눠져 있는데, 두 지역을 넘나들려면 10~20분간 배를 타야 한다.한국의 버스 요금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아시아와 유럽을 한눈에 담아볼 수 있는 묘한 매력이 있는 이스탄불의 여객선들. 해변에 세워진 모스크와 고딕풍 건물들도 꽤나 인상적이라 관광객들은 배에 탈 때부터 내릴 때까지 카메라를 손에서 내려놓지 못했다. 배 위에선 500원 정도면 마실 수 있는 홍차를 독특한 모양의 잔에 담아 판매한다. 짙푸른 바다를 바라보며 그걸 마시는 재미도 놓치면 아쉽다.이스탄불 사람들은 우리와 달리 느긋해 보였다. 여행지에서 파는 엽서에 곧잘 등장하는 갈라타 다리 위에서 하루 종일 조그만 물고기를 낚는 강태공들이 두런두런 이야기 나누는 풍경이 한적하고 평화롭게 느껴졌다.튀르키예의 이색적인 여행지는 이스탄불 외에도 숱하다. 카파도키아와 괴레메에서는 바위를 뚫어 만든 독특한 숙소에서 잠을 청하며, 기묘한 형상의 바위들을 둘러보는 체험이 가능하다.고대 로마의 유적이 그대로 남아있는 파묵칼레 역시 튀르키예에 간다면 꼭 찾아봐야 할 곳. 바다로 떨어지는 폭포가 장관인 안탈리아 역시 한국인들이 좋아할 만한 관광지다.조금 더 모험심을 가진다면 튀르키예 동쪽 끝자락에 있는 도우베야지트도 방문하지 못할 게 없다. 이란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그 도시엔 ‘노아의 방주’가 만들어졌다는 아라라트 산이 있다.쿠르드족이 다수 거주하는 도우베야지트에선 그들이 운영하는 식당에서 양고기는 물론 낙타고기로 만든 요리도 먹는 게 가능하다.낙타고기 맛은 어땠냐고? 지방이 적은 소고기를 먹는 것과 비슷했다. 여기에 더해 조그만 축제에서 본 쿠르드족의 애잔하고 슬퍼 보이는 전통춤은 잊기 힘든 기억으로 남았다. □ 큰 나라지만 비행기보다는 기차와 버스로 여행을고속열차가 나라의 끝에서 끝까지를 2시간 30분이면 달리는 한국. 이와 달리 튀르키예의 기차는 느리다. 하지만, 20세기풍의 낭만적인 기차여행을 원하는 사람들은 이를 반기기도 한다. 튀르키예 서쪽 끝인 이스탄불을 출발해 동쪽 도시들을 향해 가는 기차는 2~3일을 숨 가쁘게 달려 목적지에 사람들을 내려놓는다. 예전엔 그 기차가 이란의 수도 테헤란까지도 갔었다고 한다.며칠간 기차 안에서 잠을 자는, 한국에선 할 수 없는 경험을 해보는 게 가능한 곳이 튀르키예다. 기차 식당칸에서 튀르키예 전통요리를 맛보며 시원한 에페스 맥주 한잔 하는 것도 빼놓으면 섭섭하다. 창밖으로 펼쳐지는 광대한 아나톨리아 평원과 기묘한 형상의 바위들을 보고 있으면 마치 외계 행성에 온 것 같은 착각이 든다.국토가 넓고 관광업이 일찍부터 발달한 국가인지라 튀르키예는 유명한 관광지로 가는 버스 노선이 거미줄처럼 촘촘하게 이어져 있다. 기자가 갔었을 때는 한국에선 이미 사라진 직업을 가진 이들도 볼 수 있었다. 절대다수가 남성인 버스 안내원이 바로 그들.버스 안내원은 물과 음료수, 간단한 먹을거리를 승객들에게 나눠주기도 한다. 10시간 이상 버스를 타야 하는 경우가 흔하다보니 그런 서비스가 생겨난 것 같았다.튀르키예어를 하지 못한다고, 영어가 서툴다고 기차와 버스에서 만나는 현지인들을 서먹하게 대할 필요는 없다. 몸짓과 간단한 인사말만으로도 얼마든지 친해질 수 있는 사람들이 바로 튀르키예인들이니까.근사한 풍광과 맛있는 음식, 친절하고 선량한 사람들이 반기는 튀르키예로 다시 떠날 날이 어서 왔으면 하는 바람이다./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2022-08-30

검은돌장어 입맛 살리고! 흥겨운 공연 분위기 띄우고!

‘제7회 포항 영일만 검은 돌장어 축제’가 5천여명의 인파가 몰리며 성황리에 마무리됐다.코로나19의 여파로 3년 만에 재개된 이번 행사는 지난 27일부터 28일까지 포항 영일대해수욕장 일원에서 열렸다.포항시 주최, 경북매일신문 주관, 경북도·경북도의회·포항시의회·포항수협이 공동 후원한 이번 축제는 검은 돌장어를 널리 알리고 그 브랜드가치를 끌어올려 전국의 대표 특산품으로 성장시키기 위해 마련됐다. 행사 첫날 열린 개막식에는 이강덕 포항시장과 백인규 포항시의회의장, 임학진 포항수협장 등 주요 관계자와 방문객 3천여명이 참석해 축제의 높은 인기를 실감케 했다.오프닝 공연으로는 포항예술고등학교 실용무용과 학생들이 평소 갈고 닦은 기량을 뽐내며 관객들의 호응을 이끌어냈다.이어진 초대가수 공연에서는 트로트 경연 프로그램인 ‘미스터트롯’에서 매력적인 저음 보이스와 훈훈한 외모로 인기를 끈 가수 류지광이 멋진 공연을 펼치며 행사장 전체의 분위기를 후끈 달아오르게 했다. 이어 가수 김민교와 이병철이 화려한 퍼포먼스와 함께 ‘히트곡 메들리’를 불러 관객들의 뜨거운 반응을 이끌어냈다. 축제는 포항뿐만 아니라 서울과 대구, 구미, 부산 등 전국 각지에서 포항을 방문한 관광객들에게 검은 돌장어의 맛과 진가를 알렸다는 호평을 받았다.서울에서 온 조은정(38·여)씨는 “난생처음으로 검은 돌장어를 먹어봤는데 다른 장어보다 육질이 부드럽고 식감이 좋으며 비린 맛이 덜한 것 같다”며 “특히 장어 강정은 달콤 짭짤한 양념소스가 듬뿍 발라져 있어 생선 특유의 누린맛이 하나도 안 느껴져 어린 아이들이 먹기에도 안성맞춤인 것 같다”며 엄지를 치켜들었다.검은 돌장어의 저렴한 가격에 매력을 느꼈다는 반응도 있었다.포항시민 김재훈(45·남구 효자동)씨는 “일반 장어는 1㎏ 싯가로 3만9천원이 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행사장에서는 검은 돌장어 1세트를 2만5천원으로 팔고 있다”며 “몸이 허해 몸보신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면 값도 싸고 맛도 좋은 검은 돌장어를 사먹어야겠다”고 말했다. 단순한 먹거리 판매 외에 축제 기간 진행됐던 각종 부대 행사도 방문객들을 신나게 했다.십여 개가 넘는 먹거리 판매부스와 월드아트송페스티벌, 사물놀이 공연, 지역가수 공연, 색소폰 앙상블 연주 등의 행사는 축제를 더욱 다채롭게 만들었다.특히 축제 마지막 날인 28일에는 이번 행사의 하이라이트인 ‘전국 팔씨름 대회’가 진행됐다.사단법인 대한팔씨름협회가 진행한 팔씨름 대회는 일반부(남) 오른팔, 일반부(남) 왼팔, 일반부(여) 오른팔, 청소년(남) 오른팔 4종목에 전국에서 힘 좀 쓴다는 200여명의 선수들이 모여 평소 갈고 닦았던 기량을 겨뤘다. △일반부(남) 오른팔 75㎏이하 이용승(수원시), 90㎏이하 신호근(강릉시), 90㎏이상 이상필(포항시) △일반부(남) 왼팔 80㎏이하 김수범(포항시), 80㎏이상 이상필(청송군) △일반부 여자 오른팔 무체급 김혜정(대구시) △청소년 남자 오른팔 70㎏이하 서민규(포항시), 70㎏이상 이준희(포항시)가 1위를 차지해 우승의 영예를 안았다.임종석 경북매일신문 부사장은 기념사에서 “지난 2000년도 경북매일신문이 처음 과메기 축제를 시작했고 이제는 과메기가 포항을 대표하는 명품브랜드로 자리 잡았다. 검은 돌장어 역시도 포항의 두 번째 먹거리로 전국적인 브랜드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며 “영일만을 바라보며 검은 돌장어 많이 즐기시고 좋은 시간 보내시길 바란다”고 말했다.이강덕 포항시장도 “포항 향토 식품이 된 검은 돌장어를 더욱 발전시키고, 관광객들에게 대표적인 포항 먹거리를 제공할 필요가 있다”며 “이 축제를 통해 검은 돌장어 사업이 경북매일신문과 포항지역이 함께 노력해 더욱더 번성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축제 이모저모 선선한 날씨도 행사 성황에 한몫○… 행사가 열린 27일 오후 포항지역은 덥지 않은 화창한 날씨를 보인데다 행사 이틀째인 28일 낮 최고기온 25℃의 선선한 날씨로 행사장 곳곳에서 긴 팔 나들이 방문객 눈에 띌 정도.영일대해수욕장에 산책 나왔던 시민들도 인파에 놀라 걸음을 멈추고 행사장으로 쏟아져 들어오자 진행요원들이 바쁘게 의자를 꺼내주느라 분주.최고 인기상품은 장어구이 야채세트○… 행사 최고 인기상품은 단연 장어구이 야채세트. 방문객들의 발길을 사로잡은 장어구이 야채세트는 싱싱한 채소 쌈과 매콤달달한 양념이 발린 검은 돌장어 구이를 함께 먹는 조합.야외에서 진행된 요리 특성상 조리시간이 오래 걸렸음에도 구매 희망 줄은 계속 이어져 검은 돌장어의 폭풍 인기 실감. 구매자들은 탱글한 식감과 고소한 맛이 일품이라며 입 모아 칭찬. 축제에 빠질 수 없는 신나는 음악○… 초청 가수들과 지역 가수들의 공연으로 개막식장 뜨거운 열기로 가득.미스터트롯 출신 류지광이 시원한 날씨와 어울리는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를 시작으로 축제의 흥을 돋우고, 팀 ‘원플러스원’ 멤버 이병철·김민교가 ‘강남스타일’, ‘마지막 승부’ 등 댄스곡 메들리를 선사하자 행사장은 환호와 박수로 절정.방문객들도 자리에서 일어나 신나게 몸을 흔들며 분위기에 몸을 맡기는 모습.이강덕 시장, 포항 외식 산업 세계화 약속○… 이날 행사에는 이강덕 포항시장, 백인규 포항시의회 의장, 경북도의원, 시의원 등 많은 내빈이 참석해 자리를 빛내.이강덕 시장은 “포항지역 외식 산업을 세계화시키기 위해 온 힘을 쏟고 있다”며 “영일만 검은돌장어가 구룡포 과메기의 인기를 이을 것”이라 강조.김정재 국희의원과 김병욱 국회의원은 축전을 통해 “비록 함께 자리를 못하지만, 마음은 여러분과 함께 하겠다”며 행사성공을 기원하고 시민들에게 인사./이시라·김민지기자/사진이용선기자

2022-08-28

여름의 막바지 영화관으로 피서 어때요?

아스팔트가 녹아내리고, 달궈진 낮의 열기가 식지 않아 밤새 잠을 이루기 힘들었던 열대야의 성하(盛夏)가 서서히 끝나가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덥다. 재론이 여지없이 아직은 여름.하나 둘씩 순서대로 폐장하는 해수욕장을 찾기는 그렇고, 멀리 있는 계곡으로 가기도 어려운 처지라면 에어컨 시원한 극장에서 2시간 남짓 더위를 피해보는 게 어떨까?다행히 현재 영화관엔 여름 성수기 관객을 겨냥해 개봉된 작품들이 적지 않다. 한국 영화가 주류를 이루지만, 주목할 만한 외화도 찾아보면 얼마든지 있다.적절한 주제의식과 어느 정도 재미를 갖춘 것이라면 영화를 통해 맛보는 ‘대리 만족’의 기쁨은 지불하는 입장료에 비해 크다. 막바지 여름을 이기는 피서법으로 나쁘지 않을 듯하다.현실에선 불가능한 일이지만 영화관에서라면 조선과 일본이 나라의 운명을 걸고 전투를 벌였던 400년 전 한산도 바다를 볼 수 있고, 불의한 독재자를 처단하고 싶었던 40년 전 사내들과 만날 수 있으며,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온갖 욕망이 비등하는 오늘날 미국 할리우드 인근 목장에서 달리는 말에 올라타는 게 가능하다.지난주. 앞서거니 뒤서거니 비슷한 시기에 개봉돼 관객들의 관심을 끌고 있는 영화 3편을 관람했다. 간략하게 이 작품들을 소개하는 것으로 독자들의 선택에 작은 도움을 주고자 한다. ▲또 다시 소환된 이순신… ‘한산:용의 출현’영화나 드라마, 연극이나 소설로 만들어질 만한 매력을 갖춘 역사적 사건은 우리나라에도 여럿이다. 하지만, ‘임진왜란’ 정도의 드라마틱한 요소를 간직한 건 드물다.대륙으로의 진출을 열망하던 섬나라 일본이 교두보로 지목한 조선을 침탈하고, 백성을 지켜야 할 왕과 벼슬아치들은 일본 군대를 피해 도망치고, 나라로부터 받은 혜택이 거의 없었던 이들이 의병으로 일어나 왜군에 대항하고, 이런 과정을 거치며 국난(國難)에서 민족을 구하는 영웅이 탄생하고….임진왜란의 전개는 그 자체로 영화적이다. 그랬기에 이미 수십 수백 차례 영화나 드라마로 만들어져 관객들과 만났다.부정할 수도 없고, 선택을 망설일 것도 없다. 임진왜란이 낳은 ‘최고의 스타’는 이순신이다.국가의 존망에는 관심 없고 자신의 욕심만을 채우던 탐관오리와 싸워보지도 않고 겁을 집어먹은 채 식솔들을 이끌고 왜군을 피해 달아나던 상당수 조선 관료들 사이에서 이순신은 돌올했다.지금의 해군 작전사령관격인 삼도수군통제사(三道水軍統制使)을 맡아 반쯤은 파손된 12척의 보잘것없는 함선으로 일본 해군 전투선 133척에 맞서 싸운 그의 기개와 전략은 400년이 지난 지금도 칭송받고 있다.이 전투를 영상으로 옮긴 것이 자그마치 1천700만 명의 관객을 극장으로 불러들인 ‘명량’이다. 연출자는 김한민.이순신이라는 이름이 가진 힘이 21세기에도 통한다는 것을 깨달은 김한민은 이를 한 번 더 우려낸다.‘한산:용의 출현’은 명량해전이 있기 5년 전 한산도에서 벌어진 조선 수군과 일본 해군 사이의 전투를 소재로 만들어진 영화다. 이 역시 흥행 가도를 달려 벌써 관람객이 600만 명을 넘어섰다.역사에 손톱만한 관심이라도 있는 사람이라면 이 전투의 승자가 누구이고, 패자가 누구인지 안다. 그러니, 구구절절 ‘한산: 용의 출현’의 줄거리를 읊을 필요는 없어 보인다.바다 위에서 펼쳐지는 일진일퇴의 16세기 전투 장면은 제법 실감나고, 박해일을 포함한 주연과 조연들의 연기력도 크게 흠잡을 게 없다. 그러나, 그게 전부다.‘한산: 용이 출현’에서 임진왜란을 해석하는 새로운 시각과 이순신에 관한 기존의 인식을 전복시키는 놀라움은 기대하지 않는 게 좋다. 하기야, 그러기엔 우리들 머릿속에 새겨진 ‘이순신이란 존재’의 힘이 너무 강하다. ▲두 사내, 학살자에게 총을 겨누다… ‘헌트’키 크고 잘생긴, 그러나 연기력은 거론할 게 없던 20대 초반 배우에서 시작해 현재는 지천명(知天命)에 이른 이정재와 정우성.결코 짧지 않은 30년의 시간은 두 사람을 ‘그저 잘생긴 영화배우’에서 타자의 삶을 자신의 몸 안에 효과적으로 담아낼 줄 아는 능숙한 연기자로 만들었다.이제는 이정재와 정우성의 연기를 “형편없다”고 말하는 이들이 드문 걸 보면 이는 비단 기자만의 생각은 아닌 듯하다.둘은 나란히 영화 연출에도 도전을 했는데, 배우가 아닌 감독으로서 받은 평가도 박하진 않은 것 같다. 얼마 전 개봉된 ‘헌트(Hunt)’의 연출자는 이정재. 주연도 맡았으니 1인2역이다.제목으로 정한 ‘사냥’이란 단어가 의미심장하다. 누가 누구를 사냥하고 싶은 것일까? 사냥의 대상으로 지목된 짐승 혹은, 인간은 누구일까? 마지막엔 진짜 사냥꾼이 밝혀질까?‘헌트’의 시대적 배경은 1980년대 초반. 쿠데타를 일으킨 군인의 18년 장기집권을 부하였던 군인이 끝냈고, 또 다른 정치지향형 군인들이 등장해 이른바 ‘군사독재’를 이어가던 이 시기 역시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로 만들어져 우리에게 익숙하다.1970년대와 1980년대 내내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했던 중앙정보부와 보안사령부. 이 나라를 독단과 교의가 지배하던 중세 유럽의 어둠 속으로 뒷걸음질 치게 했던 그 두 기관에도 의인(義人)은 있었던 모양이다. 영화 ‘헌트’에 따르자면 그렇다는 이야기.영화는 군사독재 시절 최고의 권력기관 내에서 벌어지는 막후 암투와 50대 이상의 관객들에겐 아직도 기억 속에 또렷이 남은 역사적 사건들을 적절히 버무려 흥미로운 2시간 5분을 선물한다.이정재와 정우성은 영화가 상영되는 내내 근사한 슈트를 차려 입고 뛰어다니며 폼나게 총질을 한다. 이것만으로도 적지 않은 둘의 팬들은 열광할 게 분명한 일.몇몇 부분은 극영화가 아닌 다큐멘터리의 냄새가 난다. 비유하자면 애써 공부한 티가 이곳저곳에서 난다는 것. 연기자로선 베테랑이지만 감독으로서는 신출내기인 이정재의 연출력이 제법이다.그러나, ‘헌트’의 배경이 되는 1980년대를 몸으로 겪으며 살았고, 한국 현대사에 관심을 가지고 제대로 공부한 이들이라면 영화가 밍밍하고 싱거울 수도 있다. 이를 감안하고 보시길. ▲우리를 삼키는 괴물의 이름은 욕망… ‘놉’매주 극장에 걸리는 천편일률적이고, 그저 그런 상업영화에 물린 사람들이라면 조던 필(Jordan Peele)이라는 이름을 분명 알고 있을 것이다.조던 필은 전작 ‘겟 아웃’과 ‘어스’를 통해 그가 태어나 활동하고 있는 미국만이 아닌 전 세계 영화팬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 감독이다. 한국에도 적지 않은 추종자를 거느린.그의 영화는 치밀한 복선 깔기와 예상을 뛰어넘는 의외의 결말, 능수능란한 배경 음악 사용과 오래 기억될 은유와 상징을 두루 보여주고 있어 ‘영화 보기의 즐거움’이 무엇인지를 알게 해준다는 평가를 받는다.평론가와 관객 모두가 주목하고 있는 연출가 조던 필. 여전히 백인이 헤게모니를 장악한 할리우드에서 흑인이 감독하고, 흑인이 주연을 맡는 드문 영화가 그의 작품들이다.조던 필은 초지일관 흑인이 연관된 정치·사회적 문제에 눈길을 보내고 있는 것으로도 꽤 유명하다. 다만, 그걸 대놓고 드러내지 않고, 보일 듯 말 듯 영화 속에 녹여내고 있으니 세련되기까지 했다.그의 신작 ‘놉(Nope)’은 스토리가 아주 간명해 그걸 언급하면 아직 영화를 보지 않은 이들에게 욕을 얻어먹을 게 분명하다. 스포일러 유포는 기자의 몫이 아니다.하지만, 이것 하나 정도는 말해도 되지 않을까? 영화엔 각기 다른 이유에 의해 무언가의 커다란 입 속으로 삼켜지는 인간들이 수없이 등장한다.인간은 왜 위기에 처할 것을 뻔히 알면서도 욕망을 포기하지 못할까? 어째서 그렇게 태어났을까? ‘놉’엔 이 질문에 대한 조던 필의 답이 담겼다./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2022-08-23

‘군민과 함께하는 행복한 청송’ 위해 날마다 한 걸음씩

변화와 도전은 윤경희 청송군수가 지향하는 군정의 주요 방향이다. 이를 바탕으로 ‘군민과 함께하는 행복한 청송’을 만드는 것이 윤 군수의 궁극적 지향점.민선 7기를 거치며 청송군은 사회와 경제를 포함한 많은 분야에서 발전을 이뤄냈다. 민생과 직결된 여러 사업들은 지금도 적극적으로 추진 중이다.앞서 언급한 변화와 도전의 의지로 발전의 길을 걷고 있는 청송군의 현재 모습을 아래에서 상세하게 살펴봤다. △개선된 도시 미관과 상생하는 지역경제최근 청송군의 도시 환경이 눈에 띄게 밝고 깨끗해졌다. 청정한 콘셉트의 도시브랜드 ‘산소카페 청송군’ 개발 이후 이에 어울리는 정책과 사업을 펼친 결과다.청송읍 소재지 중앙로 구간에 거미줄처럼 얽혀 있는 전신주와 통신주를 지중화해 전선 없는 깨끗한 거리로 만들었다. 보행환경과 도시미관이 개선돼 주민들의 삶의 질도 올라갔다. 청송읍 소재지 금월로 전선지중화사업도 진행 중이며, 앞으론 진보면 소재지에도 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라는 것이 청송군의 설명.간판개선사업도 아름다운 거리환경 조성에 보탬을 주고 있다. 무분별하게 난립한 옥외간판을 정비해 쾌적하고 깨끗한 도시미관을 만들기 위해 청송읍 간판개선사업과 진보면 신촌 간판개선사업이 진행됐고, 진보면 진안리에서도 같은 사업을 벌이고 있다.청송의 밤도 환해졌다. 용전천 주변의 경관 조명들이 어두운 청송의 밤을 환하게 밝히면서 주민들과 관광객들을 불러 모으고 있다.청송의 관문인 청송IC에 지역을 상징하는 명품 소나무숲과 경관 시설물을 설치해 방문객의 눈길을 사로잡은 것과 ‘산소카페 청송군’ ‘청송사과’ 경관 시설물 설치도 좋은 반응을 얻었다.앞으로도 청송군은 밝고 깨끗한 도시환경 조성을 위한 정책을 이어감으로써 군민 삶의 질 향상과 관광객 유치에도 진력할 방침이다.청송군은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전 세계적 경기 침체에도 군민이 살맛나는 다양한 생활밀착형 경기부양책을 펼쳐 상생하는 지역경제 선순환 구조를 구축하려는 노력을 지속적으로 기울여왔다.그중 군민들에게 실질적인 큰 도움을 주고 있는 것이 청송사랑화폐다. 청송사랑화폐는 지난 2020년부터 유통됐다. 발행 규모만 봐도 2020년 251억, 2021년 455억, 2022년 600억 원으로 인기가 계속 상승하고 있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10% 할인판매를 비롯해 농민수당, 농산물택배비, 재난지원금 등 각종 정책수당이 청송사랑화폐로 지급되면서, 이러한 자금이 타 지역으로 유출되지 않고 지역의 소상공인 매출 향상으로 이어졌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평가다.이와 더불어 경기 침체로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청송군 소재 소상공인을 대상으로 특례보증을 지원하고, 2020년부터 매년 맞춤형 재난지원금을 지급해 골목 상권을 살리는데도 주력하고 있다.또한 전국 규모의 체육대회 개최로 지역경제 활성화를 도모했다. 전국 고등축구리그, 회장기 전국 중·고등학교 검도대회, 청송사과배 전국테니스대회 등은 청송군을 찾는 방문객을 증가시켰고, 이는 지역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는 역할을 톡톡히 해줬다. △맞춤복지 실현과 체류형 관광지로의 도약청송군은 포용적 복지 실현에도 계속적으로 노력했다. 청송군 전체 인구 중 30% 이상을 차지하는 고령층을 위해 추진해온 100세 행복 정책들이 지금은 그 결실을 맺고 있다.경로당 지원을 현실화하고, 경로당 신축·환경 개선을 통해 소외와 불편 없는 행복경로당을 만들어가고 있고, 노인일자리사업도 점진적으로 확대할 것이라는 게 청송군의 부연.어르신 목욕비 지원, 어르신 맞춤돌봄서비스 제공 등은 노인 복지사각지대 해소에도 도움을 줬다. 향후 보편적 복지 확대 차원에서 군민은 물론 청송을 방문한 누구나 관내 시내버스를 무료로 이용할 수 있도록 관련 지원도 적극적으로 준비 중이다.청송은 출산장려금 확대 지원으로 저출산 문제 해결에도 앞장섰다. 진보키즈카페는 어린이들에게는 놀이공간을, 주민들에게는 쉼터 역할을 하고 있다는 평가다.지역 청소년들의 교육환경 개선과 양질의 교육기회 제공도 청송군이 신경 쓰고 있는 문제다. 나라를 위해 헌신한 보훈가족에 대한 예우와 지원을 확대하고, 장애인 일자리사업을 활성화한다는 것도 청송군의 향후 계획이다.체류형 관광지로의 도약도 청송군의 비전이다. 맑고 청정한 자연친화 도시 이미지를 바탕으로 ‘산소카페 청송군’ 브랜드를 활용한 마케팅과 언택트 관광정책 등이 그 실질적 사례다.‘산소카페 청송정원’은 새로운 힐링 공간으로 떠오르고 있고, ‘청송 산림레포츠 휴양단지 조성사업’은 청송의 관광지도를 바꿀 역점 시책으로 꼽힌다. 체류형 관광지로의 도약을 위한 새로운 먹을거리 개발과 양질의 숙소도 준비하게 된다. “사과축제도 재정비 할 것”이라고 청송군은 설명한다. △군민의 건강과 안전 속에 미래농업 구축청송은 실속 있는 농업 지원정책과 기술 개발로 지속가능한 농업경쟁력을 견인하고 있다. 농민수당 제도를 도입해 농업인의 자긍심을 고취하고, 삶의 질 향상과 농업의 공익적 기능을 증진시킨다는 것은 변함없는 청송군의 미래 계획.지역 농산물 판로 확대와 유통 활성화를 위해 택배비, 포장재, 유통편의장비, 비대면 판매 지원 등의 사업을 진행 중이며, 청송사과유통센터 운영체제 변경과 농산물 산지 공판장 개설로 농산물의 유통·판매 경로를 다각화하고 있다.청송황금사과 ‘황금진’을 상표로 등록하고, 튀는 컬러와 새콤달콤한 맛으로 소비자의 눈과 입을 사로잡는 마케팅 전략을 펼쳐 황금사과 시장도 선도하고 있다. 여기에 청송사과 품질보증제, 농축산물 가격안정기금 운용, 농업인 안전보험료 지원도 농민들에게 작지 않은 힘을 주고 있다. 청송군은 차별화된 미래농업의 선두주자로 달려가고 있는 중이다.윤경희 군수는 지난 민선7기 임기 첫날 민생 현장을 방문하는 것으로 군정을 시작했다. 당시 태풍 쁘라삐룬의 피해 현장을 살핀 것이다. 군민의 생명과 안전을 최우선으로 여기는 군정 철학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지난 3년 가까운 시간 동안 전 세계는 코로나19 사태로 어려운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청송군은 선제적인 행정조치와 군민들의 적극적인 방역 참여로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해 나갈 수 있었다.선제 검사 조치와 치밀한 방역체계 구축은 바이러스의 지역사회 전파를 막았고, 청송군은 우수한 대응책을 인정받아 행정안전부로부터 특별교부세를 확보하기도 했다‘걸음아 나 살려라’ ‘나 혼자 운동한다’ ‘마실길 걷기’ ‘자기주도 건강관리교실’ 등 각종 비대면 건강관리 프로그램도 군민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았다.산남지역 건강증진센터 운영과 응급 의료 전용헬기장 조성, 정신건강 복지센터 설치와 보건의료원 의료진 숙소 건립 등도 주목할 만한 사업이었다.윤경희 군수는 말한다. “변화가 없으면 모든 것은 도태되기 마련이다. 우리 사회는 늘 새로움을 원하고 있고, 농촌도 그 변화의 흐름을 거스를 수는 없다”고. 이에 덧붙여 “많은 현실적 난관들이 있지만, 앞으로도 청송군은 변화와 혁신을 선도해 더 나은 내일을 만드는데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약속했다./김종철·홍성식기자

2022-08-22

“여긴 어디?”… 섬에 발 디디면 황홀한 풍경에 홀리다

“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 꽃 피는 숲에 저녁노을이 비치어 구름처럼 부풀어 오른 섬들은 바다에 결박된 사슬을 풀고 어두워지는 수평선 너머로 흘러가는 듯 싶었다.”섬을 다룬 수많은 소설을 읽었지만 김훈의 첫 문장만큼 아름다운 표현을 본 적이 없다. 대청도는 김훈의 문장이 육신의 골격을 입고 되살아나는 느낌이다. 여름이 절정인 대청도는 마치 꽃이 피듯 화사한 풍경이 피어난다. 한반도의 서쪽 끝 대청도는 쉽게 갈 수 없는 곳이지만 막상 섬에 발을 디디면 황홀한 풍경에 사로잡혀 버린다. 섬의 모든 것이 푸르른 섬 대청도로 여름 여행을 떠나보면 어떨까? △해안사구가 이색적인 옥죽포 모래사막바다는 쉽사리 섬을 허락하지 않았다. 대청도로 향하는 배는 쉴 새 없이 위아래로 흔들렸다. 롤러코스터를 타는 듯한 뱃길을 따라 4시간을 가니 쪽빛처럼 파란 바다가 마중을 나왔다.인천에서 북서쪽으로 202㎞나 떨어진 외로운 섬 대청도(大靑島)다.육지에서 멀리 떨어진 곳이어서 예로부터 권력에 밀려난 이들을 품어온 유배의 섬이기도 했다. 대청도는 옛 원나라의 유배지이기도 했는데 원나라의 마지막 황제이자 고려 출신 공녀를 황후(기황후)로 삼았던 혜종(토곤테무르)이 황태자 시절 2년가량 이곳에 유배되기도 했다.대청도 여행의 시작점은 선진포선착장에서 3.5㎞ 떨어진 옥죽포 모래사막이다.밀물에 밀려와 썰물 때 햇볕에 바짝 마른 모래가 이룬 해안사구가 이국적 분위기를 연출해 한국의 ‘사하라 사막’이라는 애칭이 붙었다. 옥죽포 해안사구는 인근 옥죽동 농여해변에서 날아온 모래가 수만 년에 걸쳐 쌓여 이뤄진 신의 걸작이다.과거에는 모래사장의 규모가 컸으나 30여 년 전 소나무 방풍림이 조성되면서 모래사장 규모가 5분의 1로 줄어들었다.대청도에는 굳이 옥죽포 모래사막이 아니어도 모래와 관련된 이야기가 곳곳에 널려 있다.과거 대청도에서 여자아이가 태어나 혼기가 차면 ‘모래 서 말은 먹어야 시집을 간다’는 말로 동네 어른들이 놀리곤 했다고 한다.집안에 하도 모래가 많아 빨래할 때, 밥 지을 때, 반찬 만들 때마다 모래가 섞여 들어가 알게 모르게 먹었기 때문이다.모래와 관련된 또 다른 곳은 대청 4리에 있는 사탄동(沙灘洞)이다. 한자를 풀면 ‘모래 여울마을’이지만 악마를 뜻하는 ‘사탄’으로 들리는 게 싫어서 주민들이 옹진군에 모래여울마을로 바꿔달라 청원했다고 한다. △영화에서 본 듯한 농여해변이 이색적 풍경대청도 해안가로 내려오면 백령도까지 이어지는 모래풀등을 만날 수 있다.모래풀등은 간조 때 바닷속에서 하루 두 번 드러나는 모래섬이다. 풀등을 품은 농여해변은 대청도의 8개 해변 중 가장 아름답고 볼거리가 가득한 곳이다. 해변에 줄지어 선 기암괴석이 그중 하나다. 풍화작용으로 표면이 나무의 나이테 질감을 지닌 ‘나무테 바위’는 자연의 경이로움 그 자체다.시간의 변화에 따라 농여해변은 색다른 아름다움을 내뿜는다. 해가 저물기 시작하면 뭇사람을 감성적 존재로 만드는 아름다운 노을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이어 해가 지고 완전한 어둠이 찾아오면 ‘별이 쏟아지는’ 해변을 감상할 수 있다. 끝이 보이지 않는 해변이 저녁해를 받아 붉게 물드는 장관을 넋 놓고 바라봤다. 지구가 10억 년 세월을 들여 지켜온 풍경은 마치 영화에서나 봤던 화성의 모습과 닮았다.대청도는 걷기 여행지로도 최적이다. 매바위 전망대를 출발해 삼각산 정상을 찍고 광난두로 내려와 서풍받이를 돌아 나오는 7㎞ 코스를 삼각산의 ‘삼’, 서풍받이의 ‘서’를 따서 ‘삼서 트레킹’이라고 부른다.대청도가 자랑하는 대표적인 걷기 길이다. 삼각산을 오르는 들머리는 매 동상이 있는 매바위전망대다. 광난두에서 20분쯤 제법 가파른 길을 오르면 능선 위에 매바위 전망대가 나온다. 매바위 전망대에 오르면 남서쪽으로 모래울 해변과 독바위 해변, 대청도의 보물 서풍받이가 보인다. 대청도 서쪽 끝에 있는 서풍받이는 지명에서 알 수 있듯 서쪽에서 몰아치는 바람과 파도를 막는 기암절벽이다. 깎아지른 해안절벽은 대청도 제1경으로 꼽힌다. 매바위 전망대에서 삼각산 정상까지는 큰 어려움 없이 오를 수 있다.삼각산 능선에서 모래울해변과 서풍받이로 이어지는 대청도 서쪽 해안의 모습을 내려다보니 영락없이 날개를 펼친 매의 형상이다. 서풍받이가 매의 머리라면 광난두해안이 왼쪽 날개, 모래울 뒤편 울창한 송림이 오른쪽 날개가 되는 셈이다.호젓한 숲길과 암릉을 통과하자 널찍한 전망대가 설치된 정상이 나온다. 북쪽 농여해변에는 풀등이 길게 드러났고, 그 뒤로 백령도가 보인다. 백령도 뒤로 아스라이 북녘 황해도 땅이 펼쳐진다. △트레킹 중 만나는 풍경마다 절경 펼쳐져대청도 트레킹의 또 다른 코스인 서풍받이 트레킹은 광난두 정자각에서 출발해 서풍받이와 마당바위를 찍고 오는 왕복 코스다. 정자각에 오르면 두 개의 뿔처럼 튀어나온 봉우리와 그 사이에 자리한 서풍받이 전망대가 보인다.우렁찬 파도 소리 들으며 해안 쪽으로 가면 갈림길이 나타난다. 오른쪽, 왼쪽 어느 쪽으로 가도 길은 이어진다. 작은 언덕을 넘으면 바람이 휘몰아치는 서풍받이 전망대에 닿는다. 전망대 양쪽으로 보이는 높이 약 80m의 눈부신 흰색 규암이 서풍받이다. 가히 백령도 두무진의 기암절벽이 부럽지 않은 절경이다. 섬이 탄생한 10억 년 전부터 섬으로 몰아치는 서풍을 온몸으로 받았다니 고맙고도 든든하다.전망대에서 언덕을 오르면 서풍받이 트레킹 중 가장 높은 봉우리에 닿는다. 여기에 하늘전망대가 있다. 전망대에서는 작은 바위섬인 대갑죽도가 잘 보인다. 사람의 옆얼굴을 닮았다고 하는데, 아무리 봐도 사람 형상은 아니다. 주민들은 대갑죽도를 바라보면서 고기잡이 나간 가족의 무사 귀환을 빌었다고 한다.하늘전망대에서 내려와 숲길을 지나면 마당바위를 만난다. 마당바위 다음에는 이름 없는 해변이 나온다. 타조 알만 한 돌이 널려 있다. 해변에서 발 담그며 잠시 한숨 돌린다. 산행의 피로가 파도에 씻겨 나가는 듯하다. 다시 출발해 야트막한 언덕을 넘자 앞에서 봤던 갈림길을 만나고, 광난두정자각에 닿으면서 트레킹이 마무리된다. 찾아가는 길대청도로 가려면 인천항연안여객터미널에서 하루 3회(오전 7시50분·8시30분, 낮 12시30분) 운항하는 배를 타야 한다. 대청도까지는 3시간 20분 걸린다. 선진포선착장에서 마을버스를 이용해 광난두정자각 정류장에 하차해서 트레킹을 시작하면 된다. 아가페펜션과 엘림펜션, 하늘민박, 오후엔 등이 깔끔하고 조용하다.바다식당은 홍어회와 홍합탕이 맛있다. 섬에는 맛있는 중국음식점이 제법 많다. 그중에서도 섬중화요리는 짬뽕이 특히 맛있다. 돼지가든은 간재미탕이 칼칼하고 담백하다./최병일 작가

2022-08-18

“위기와 불편의 현장, 보살핌이 필요한 곳에 항상 머무를 것”

울릉도는 도서 낙도로 정부예산을 많이 유치해야 하기 때문에 집권당과 지역구 국회의원의 소속 정당과 관계가 어느 지역보다 돈독하다. 따라서 보수 성향이 굉장히 높은 편이다.국민의 힘이 5년 만에 집권하고 지역 국회의원도 국민의 힘이다. 정치 구도상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울릉군수 선거에 무소속으로 당선되기는 낙타가 바늘구멍을 들어가기보다 어렵다는 표현이 옳다.그런데 현 남한권 울릉군수는 집권당 후보와 1대1 대결에서 투표자 수 6천796명 가운데 4천629표(69.71%)를 받아 압도적 지지로 당선의 영광을 안았다. 역대 어느 군수보다 확실한 울릉군민의 지지를 받은 것이다.이 같은 힘을 바탕으로 전 군수들이 표를 의식해 하지 못한 일도 과감하게 추진할 힘을 얻었다. 따라서 남 군수는 자신이 평소 하고 싶었던 일은 물론, 과거 못한 민원 해결을 위해 실제 행동에 옮기면서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이로 인해 일부 이기적인 군민의 저항도 작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런 만큼 민선 8기 울릉군은 새로운 전환점을 맞을 것으로 보인다. 이 같은 여건과 울릉도 출신의 최초 장군 예편, 행정학박사라는 타이들이 무게감과 함께 변화에 대한 기대감을 주고 있다.군민들의 기대감속 주식회사 울릉군의 대표이사로 취임한 남 군수에게서 울릉군정의 방향과 미래의 청사진을 들어보았다. -늦었지만, 압도적 당선을 먼저 축하한다. 울릉도를 끊임없이 사랑하고 아껴왔고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울릉도를 만들겠다고 했는데 4년간 울릉군정을 어떻게 이끌어갈지 궁금하다.△ 울릉군민들께서 위대한 선택으로 태어났고, 살았고, 저의 육신과 영혼이 머무는 고향 울릉도를 위해 일 하다가 죽는 제일 행복한 사명을 실천할 수 있도록 믿고 맡겨 주셔서 정말 감사드린다.선거 기간 군민의 바람과 고충을 가슴에 새기며 오직 멋지고 행복한 울릉건설과 잘사는 군민의 삶을 그려왔다. 위기와 불편한 현장, 보살핌이 필요한 곳에 자리하겠다. 군수 위에 군민이 있다.진짜 울릉을 사랑하는 그 초심으로 맡겨진 책임과 소명을 다하고자 한다. 군민을 부모·형제처럼 생각하는 따뜻한 사람으로 늘 곁에 있겠다.어디서라도 울릉을 대변하고 대표하겠다. 일을 잘하는 것은 기본이고 열정과 신념으로 울릉의 특별한 변화에 부응해 정직하고 성실한 군수가 되겠다. -지금 울릉도는 위기라고 하셨는데.△ 군민을 만나다 보니 많은 분이 ‘울릉이 달라져야 한다.’라고 했다. 허리 세대인 젊은이들이 떠나기만 하고 미래 성장 동력을 찾기 어렵다, 경제, 관광, 일자리, 의료, 교육, 숙박, 주거, 교통, 주차장, 쓰레기, 하수처리, 독도문제 등 해결해야 할 과제가 산적해 있다.코로나 19의 빗장이 풀려 관광객들이 다시 울릉도를 찾고 있다. 크루즈가 취항하고 울릉공항이 2025년 개항을 목표로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 울릉도역사와 함께 천 년에 한번 올까 말까 하는 이 기회, 반드시 꽉 잡아야 한다.지금부터 민선 8기 재임기간인 3~4년이 울릉도 미래 100년을 준비하기 위한 기본 인프라를 구축하는 중차대한 시기로 미치도록 일하며 바꿔 나가야 한다. 군민들의 적극적인 협조가 필요하다. 반드시 함께 해주시기 바란다.군민과 함께 새로운 울릉의 시대를 열어가고자 한다. ‘새희망 새울릉’의 민선 8기 군정 슬로건 아래 군정 목표는 ‘행복한 군민 다시 찾는 새 울릉’으로 정하고 앞으로 4년 동안 중점적으로 울릉을 경영할 5대 군정을 발표했다.-군민이 주인인 열린 군정을 펼치겠다고 했는데.△군민의 목소리에 더욱 낮은 자세로 경청하겠으며 월 1회 이상 군정 브리핑과 찾아가는 군정 서비스를 시행하고 차별과 편견을 넘어 서로 ‘틀림’이 아닌 ‘다름’을 인정하고 양보하고 배려하면서 소통하겠다.대화를 하면 어떤 갈등과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다. 당장 취임식 이후 주민 선표 문제도 인터넷이 어렵고 불편한 65세 이상 어르신들이 군청민원실에서 전화 예약하는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울릉군의 가장 큰 복지는 울릉주민들이 육지를 마음대로 다닐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그래서 병원과 친인척 길·흉사도 언제든지 다니도록 하는 것이 울릉주민들의 복지다.-다 함께 누리는 희망 복지를 실현하겠다는 의미는.△청년 및 서민 임대주택 공급을 시작으로 주거환경 불균형 해소 시책 등을 추진하겠다. 울릉도 상주 응급헬기 운영과 이른 시일 안에 기본의료체계를 만들고 힐링과 치유가 병행하는 찾아오는 웰니스 관광계획을 수립·시행하겠다.어르신들이 편안하고 재미있는 노후를 보내실 수 있도록 구석구석을 챙기겠다. 인재육성은 교육이 핵심으로 더 당당한 경쟁력을 가질 수 있도록 아이들의 미래를 책임지는 교육환경 조성에도 총력을 기울이겠다.-웃음꽃 피우는 지역경제를 만들어 가겠다고 했는데.△우선 일자리 창출 기본계획을 수립해 인구증가와 경제 활성화를 도모하고 투자유치 활성화를 위해 제작 직접 세일즈맨으로 나서서 ‘주식회사 울릉도’를 전국 1위 잘사는 도시 건설을 위해 매진하겠다. 남한권 울릉군수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농수산업으로 육성하겠다는 것은?△지금의 농·어촌은 인구 유출은 물론 급속한 노령화에 따른 일손 부족 현상으로 많은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지만 지원하고 육성해 부가가치를 창출하도록 하겠다.또, 섬 지역특성상 울릉도주민들이 가장 많이 이용하는 택배시스템을 획기적으로 개선하고 울릉도 농·수산물이 특별한 가치를 지닌 상품으로 울릉브랜드를 세계화 하겠다.-매력이 넘치는 생태관광 섬을 조성하겠다는 공약은?△울릉도는 자연이 살아 숨 쉬고 태고의 신비를 간직한 세계적인 보석 같은 섬으로 최우선 과제는 관광산업의 도약이다. 공모선과 대형여객선 취항, 위그선의 현실화, 2025년 울릉공항 개항에 발맞춰 걸맞은 사업을 추진하겠다.먼저 관광의 3대 거리인 볼거리, 먹을거리, 쉬고 즐길 거리를 만들도록 노력하고 이를 통해 사계절 쉼 없는 관광 섬으로 관광기본계획을 수립하고 이를 바탕으로 100만 관광객이 찾아오는 생태 도시를 만들겠다.-추가적인 계획은 없나?△지면상 언급이 어려워 제가 약속드린 공약 실행과 미래를 위해 가칭 ‘울릉도 발전특별위원회’를 만들어 추진할 것이며 인수위원회에서 구체적인 군정의 현 수준을 파악해 정책추진백서를 만들었다.-끝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공직자들은 개개인 모두가 훌륭하다. 공직자의 직무수행과 행동은 울릉군을 대표하고 군수가 하는 일이다. 공직자가 곧 군수이자 군수의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 공직자들은 이를 명심해야 한다. 저에게는 꿈 있다, 새희망, 새울릉을 위해 울릉도의 잠재력을 최대한 끌어올려 모든 사람들이 다시 찾는 새로운 울릉도를 만들고 이 작은 공간을 울릉군민 모두가 화합해 즐겁고 살맛 나는 섬을 만드는 것이 꿈이다.주어진 4년 동안 1분 1초라도 게을리하지 않고 군민과 함께하겠다. 어떤 어려움이 닥칠지라도 그 길은 우리 울릉도와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미래를 열어가는 길이 될 것이라 확신한다.반드시 울릉도에 사는 것이 자랑이요 행복임을 느끼게 하겠다. 그 도전의 길에 군민 여러분께서 함께 해주시기 바란다. 울릉군민 여러분이 울릉도 주인이기 때문이다.울릉/김두한기자kimdh@kbmaeil.com

2022-08-16

폭염 속, 한 줄 ‘문장’이 주는 위로와 감동이란…

세 나라 소설가들이 바라본 베트남 전쟁문학평론가 이경재 ‘한국 베트남 미국의 베트남전 소설 비교’문학평론가 이경재는 꽤 오랜 시간을 투자해 ‘소설과 그 소설의 무대인 공간의 연관성’을 탐구해온 국문학자다.몇 해 전엔 본지에 ‘경북문학기행’을 6개월 간 연재하며 문학사에 빛나는 이름을 남긴 대구·경북 소설가와 시인들을 세밀하게 소개하기도 했다.숭실대 국문과 교수이기도 한 이경재가 가장 최근에 출간한 책은 ‘한국 베트남 미국의 베트남전 소설 비교’. 이 책은 제목 그대로 3개 나라 소설가들의 작품 연구를 통해 ‘베트남 전쟁’이라는 인류사의 비극을 해석하고 있다.10여 년 전부터 결혼이주여성에 대한 관심이 지대했던 이 교수는 다문화를 소재로 한 소설들을 읽으며 그것들 속에 자주 등장하는 베트남 사람들에 대한 관심을 증폭시켰고, 그 관심은 이번 저작으로 이어졌다.1960년대 시작돼 1970년대까지 이어진 베트남과 미국의 전쟁은 제국주의와 민족주의의 충돌,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의 갈등, 민족해방을 지향하는 베트남인과 이데올로기와 경제적 이익을 포기할 수 없었던 미국의 곤혹스런 입장 등으로 인해 복잡한 양상을 띠며 전개됐다. 한국도 이 전쟁의 제3자가 아니었다. 우리나라는 베트남전에 미국 다음으로 많은 수의 군인을 파병한 국가다.10년 이상 장기적으로 진행된 전투는 군인들만이 아니라 적지 않은 작가들에게 충격과 환멸을 가져왔고, 이는 당연한 수순처럼 소설과 시로 형상화됐다.이경재 교수는 ‘국가’ ‘정체성’ ‘젠더’라는 3가지 관점에서 베트남전을 소재로 하는 소설들을 읽어내 수많은 사상자를 낸 비극적 전쟁의 뿌리를 찾아간다. 이 교수에 의하면 베트남 전쟁이라는 것을 소재로 하는 것은 동일하지만 미국 작품들의 경우 ‘현미경적 시각으로 병사의 감각에 제한된 현장밀착식 재현’을 위주로 하는 것이 많고, 한국 소설은 ‘베트남전의 보편적·역사적 맥락을 조망하려는 특징이 있다’고 한다.전쟁의 고통을 가장 크게 겪은 베트남 작가들의 경우는 ‘정서적인 측면이 강하며 비극의 직접적인 당사자인 베트남인들의 내면을 형상화하는데 탁월하다’고 이경재는 설명한다.‘코로나19 사태’가 있기 직전까지 베트남은 한국인들이 즐겨 찾는 휴양지 중 한 곳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 나라가 어떤 역사적 아픔을 겪었는지 제대로 알려하는 이들은 드물었던 게 부정할 수 없는 사실.만약 이번 여름에 이경재의 ‘한국 베트남 미국의 베트남전 소설 비교’를 읽는다면 이후에 떠나는 베트남 여행은 이전과는 전혀 다른 느낌으로 다가올 것이 분명하다.너무나 자주 사용된 문장이라 식상하지만, ‘아는 만큼 보이는 것’이 여행이니까. 사랑은 불완전한 종교가 아닐지…이병철 시인 ‘사랑이라는 신을 계속 믿을 수 있게’이병철 시인은 독특한 사람이다. 통상 ‘시인’이라는 단어에서 사람들이 떠올리는 해사한 얼굴에 여윈 몸, 영감을 기다리며 잠들지 못하는 불면 등과 이 시인은 거리가 멀다.그는 아마추어 야구단의 에이스고, 학생들에게는 더없이 유쾌한 선생이며, 프로 수준의 낚시 실력을 갖춘 한국에선 유사한 전례가 거의 없는 시인.2년째 본지에 ‘2030 우리가 만난 세상’이라는 제목의 칼럼을 연재하고 있는 이병철은 그 긴 기간 동안 한 번도 원고 마감을 지키지 않은 적이 없는 성실한 생활인이기도 하다.이병철의 2번째 시집 ‘사랑이라는 신을 계속 믿을 수 있게’는 그가 시간을 쪼개 쓰며 살고 있는 삶이 어떠한 형태이며, 열망 뜨거운 한국의 젊은 시인이 꿈꾸는 세상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게 해준다. 이병철은 시집의 제목이며, 동시에 인간들이 객관적으로는 영원히 해석해내지 못할 ‘사랑’을 아래와 같이 정의하고 있다.“사랑은 구원이다. 그래서 사랑이라는 신(神)이다. 인간이 실존의 한계인 죽음이나 현실원칙으로 인한 고통을 잊는 순간은 오직 타자와 사랑할 때다. 너를 위해 죽을 수 있다는 무모한 열정에서 완벽한 사랑의 형태가 빚어진다.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힘으로써 사랑을 완성했듯. 사랑할 때 인간은 신이다. ‘나’와 ‘너’가 만나 서로의 신앙이 되고, 서로의 세계가 되고, 서로의 신이 되어 구원했다가 끝내는 심판하는 것이 사랑이라는 불완전한 종교라고 믿는다.”사실 이병철의 말처럼 “시는 예정된 실패고, 미래가 없는 몰입이고, 이룰 수 없는 꿈”일 수도 있다.그러나, 체온보다 뜨거운 날씨 속에서 달아오른 서로의 몸과 만질 수 없는 마음까지 애타게 탐하는 ‘사랑’이 없다면, 인간의 삶이란 얼마나 쓸쓸할 것인가.그래서다. 아래와 같은 이병철의 시를 읽다보면 아주 잠깐이나마 여름밤의 찜통 같은 더위를 잊게 된다. 청와대서 문학으로 돌아온 시인이 하고픈 말신동호 시인 ‘그림자를 가지러 가야 한다’지난 문재인 정부에서 청와대 연설비서관으로 일했던 신동호가 자신의 본령이자 본업이라 할 문학으로 귀환했다.세상의 흐름을 때마다 정확하게 읽어내고, 민감한 정치적 사안을 예민하게 포착해 써내야 하는 대통령 연설문을 작성하는 건 당연지사 쉽지 않은 일이었을 터.그러나, 신동호는 이 지난한 작업을 5년간 큰 실수 없이 해냈다. 그를 오래전부터 알아온 기자는 그 5년 동안 신동호의 숨겨진 면모를 여러 번 발견할 수 있었다. 그는 운문만이 아닌 산문도 좋은 작가다.50대 후반인 그를 지금은 ‘대통령의 연설문을 썼던 사람’으로 기억하는 이들이 많겠지만, 강원도 춘천에서 태어난 신동호는 사실 10대 때부터 상징과 은유 가득한 문장을 써내던 영민한 소년 시인이었다.19세에 강원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한 신동호는 청년 시절을 거치며 ‘겨울 경춘선’ ‘저물 무렵’ ‘장촌냉면집 아저씨는 어디 갔을까’ 등의 시집을 펴내며 작가로서의 길을 꾸준히 걸었던 사람.그가 청와대로 갔을 때 누군가는 “출세”라고 했고, 또 다른 누군가는 “이제 문학에서 멀어지게 될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을 내놓았지만, 천만에. 신동호는 보란 듯 시인으로 돌아왔고, 4번째 시집 ‘그림자를 가지러 가야 한다’를 최근 출간했다. “아직 만나지 못한 사람이 있다. 가보지 못한 길이 있다. (그러니) 여전히 골목을 서성일 수밖에 없다.”신동호가 이번 시집을 출간하며 독자들에게 전한 말이다. 여기서 ‘아직 만나지 못한 사람’ ‘가보지 못한 길’ ‘서성일 수밖에 없는 골목’은 모두가 ‘시(詩)’의 은유란 걸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세상 사람들에겐 저마다 자신에게 어울리는 옷이 있다. 신동호에게 어울리는 옷은 청와대가 아닌 앞으로 그가 서성일 골목에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신동호는 언제나 문학으로 돌아오고 싶어 하던 사람이었다. 아래와 같은 절창을 쓰는 시인이니 그의 귀환이 더욱 반갑다. /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2022-08-16

“다양한 비전 실행, 조화로운 균형발전 이끌겠다”

끈기의 4전 5기 신기록으로 청도군의 행정을 책임지게 된 김하수 청도군수. 이러한 연유로 김 군수에게 ‘청도군수’의 직함은 남다른 감회로 다가오며 4만2천명의 군민을 바라보는 시선이 따사로울 수밖에 없다.민선 8기 청도 군정의 슬로건을 ‘청도를 새롭게! 군민을 힘나게!’로 정한 것에서도 군민을 최우선으로 하는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다.행정학 박사로 청정자연을 지키며 군민의 소득증대를, 인구감소 문제 해결책을 제시하며 농촌의 대표도시로 내일의 청도를 짊어질 젊은 층의 욕구에도 부응해야 하는 김 군수에게서 청도 군정의 방향성과 미래의 청사진을 들어보았다. -늦었지만, 당선을 축하하며 앞으로 4년간의 군정을 어떻게 이끌어 갈 것인지 궁금하다.△선거에서 보내준 군민의 과분한 사랑과 성원에 감사드린다. 군민이 저에게 거는 기대를 잘 알고 있어 기대에 부응할 수 있도록 슬로건인 ‘오직 군민 행복!, 오직 청도발전!’을 위해 한 걸음씩 전진하겠다. 더 큰 청도를 만들라는 군민의 명령을 받았으니 군민 모두가 살기 좋고 행복한 청도, 열린 청도, 함께하는 청도를 만들고자 제대로 일하고 소통하는 군수가 되겠다.이를 위해 청도 군정은 △첨단 기술을 접목한 고품질 친환경 미래농업 육성으로 부자가 많은 살기 좋은 청도 △최고의 위락단지와 레포츠단지 조성을 통한 관광의 메카로 부상 △다 함께 누리는 따뜻한 선진 복지를 실현 △지방소멸 위기에 적극 대응 △상생 협력의 신성장 혁신경제를 구현 △소통과 변화, 섬김의 군정 추진 등을 약속한다.청도를 중심으로 영남권에 1,300만 명이 살고 있다. 이를 활용할 수 있는 최고의 위락단지와 레포츠단지가 조성되면 청도 경제에 큰 힘이 될 것이다.군민 모두가 평등하고 차별이 없는 맞춤형 복지와 군민 모두가 행복한 세상, 일자리와 주거, 교육, 문화예술, 체육 기반시설이 조화롭게 정착하는 환경을 아름답게 만들겠다. -4년 군정 방향에서 가장 중요 포인트는 무엇인가.△인구유입정책으로 생동감 넘치는 청도를 만드는 것이다. 관광단지 조성 등으로 인구유입에 적극적으로 나서겠지만 군정 운영의 핵심 가치인 군민 참여와 소통을 전제로 할 것이다.소통의 시작은 경청이지만 소통의 완성은 진솔한 대화를 통해 서로 마음이 공감할 때 비로소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지역에 거주하는 외부 전문가들이 외부에서 겪은 경험을 행정에 접목해 군정 운영에 반영하고 군민들과 소통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 생각이다.또 행정을 주도적으로 접하고 집행하는 공직자의 역량도 개발하며 공직자 스스로 혁신할 수 있도록 할 것이다. 군수와 공직자가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마인드로 지역문제를 군민과 함께 해결한다면 두려울 것이 없을 것이다. 군정 운영은 군수 한 사람이 아니라 군민과 공직자 등 모두의 힘으로 이루어지는 만큼 적극적인 소통의 장을 만들고 실천할 것이다. -선거에서 균열 된 민심의 화합을 위해 어떤 노력을 할 것인지.△지방자치단체장이 선출직으로 바뀌고 난 후부터 지역 분열의 우려는 전국적인 현상이다. 선거 과정에서 누구를 지지했건 청도의 발전을 염원하는 마음은 같아 가장 먼저 선거 때문에 흩어진 민심을 하나로 묶어야 한다.지지하지 않았던 군민들과 대화를 통해 이 불협화음을 풀어나가는 것이 일차적인 과제로 경쟁했던 후보의 공약도 청도발전을 위한 것이라면 함께 실현해 나가면서 통합의 메시지를 전달하겠다.-군정 슬로건을 ‘청도를 새롭게!, 군민을 힘나게!“로 정한 이유는.△청도군의 미래 비전을 제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청도군수 후보 시절 ‘농업은 생명, 농촌의 미래’라는 메시지를 제시한 바 있다. 청도군민의 70%는 농·축산업에 종사해 농위국본(農爲國本)이라는 말처럼 당연히 농업은 중요하다. 변화에 가장 잘 적응하는 동물만이 살아남듯이 지방자치단체도 마찬가지로 4차 산업혁명과 더불어 농업도 변화의 시대에 발맞추어 간다면 농촌의 미래가 될 것이다.그러나 농업만으로는 청도군 전체를 이끌어 갈 수 없기에 도시·문화관광·인구 정책 등 전방위로 청도군의 미래 청사진을 담을 수 있는 통합과 발전의 슬로건이 필요했다. -청도군의 군정 목표로 ‘혁신하는 친환경 농업도시 조성’ 등 5대 목표가 제시되었다. 이들을 설명한다면.△군정의 5대 목표는 △혁신하는 친환경 농업도시 조성 △살고 싶은 행복한 복지도시 △성장하는 상생의 균형도시 △매력적인 고품격 관광도시 △변화하는 창의적 교육도시 등이다.첫째 혁신하는 친환경 농업도시 조성은 미래전략형 신성장 농업인 육성 등 첨단 기술을 접목한 친환경 미래농업을 육성하고 부농이 많고 농민이 꿈과 희망을 키우는 청도를 만드는 것이다.둘째 살고 싶은 행복한 복지도시는 드림생활봉사센터와 가족센터 건립 등으로 아이의 꿈을 키우고 어르신의 행복한 노후 생활을 보장해 누구나 살고 싶은 청도로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셋째 성장하는 상생의 균형도시는 대도시와 연접한 청도만의 큰 장점을 살리며 지역 자생력을 높여 안정적인 일자리를 창출하는 등 지역 경제 활성화를 도모한다.넷째 매력적인 고품격 관광도시는 1천300만 명의 배후 관광객을 관광과 휴양, 치유, 힐링의 관광 서비스를 제공해 매력적인 고품격 관광도시로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다섯째 변화하는 창의적 교육도시는 지방소멸 위기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아이의 꿈을 키우며 더 나은 교육 환경에서 생활할 수 있도록 하는 것으로 인재 양성원을 설립하고 청소년 국제 교육 교류 추진, 유명 강사 초빙 등으로 교육의 변화를 주도하는 것이다. -군민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청도군수로 일할 기회를 준 군민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리며 첫 번째도 두 번째도 청도군민을 중심으로 생각하며, 청도군 예산 1조원 시대가 현실이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또 두 손 모두를 오직 군민 행복과 청도발전이 갑절이 될 수 있도록 사용하겠으니 많은 응원과 지지를 부탁한다.청도/심한식기자 shs1127@kbmaeil.com

2022-08-11

3년 만의 귀환… 반가움에 ‘흠뻑’ 흥겨움에 또 한번 ‘흠뻑’

‘2022 예천 낙동강 7경 문화한마당’이 10일 오후 7시 ‘SEMI 곤충엑스포 2022 예천곤충축제’가 열리고 있는 한천체육공원 메인무대에서 성황리에 열렸다.예천군이 주최하고 경북매일신문이 주관한 이 행사는 ‘SEMI 곤충엑스포 2022 예천곤충축제’를 축하하고 낙동강 수변생태공간 홍보 및 낙동강 관광·레저 산업 육성을 통한 관광객 유치와 지역 경기 활성화를 위해 마련됐다. 코로나19로 취소·연기된 이후 3년 만에 열려 축제장을 찾는 관람객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했다. 이날 행사에는 김학동 군수를 비롯 최윤채 경북매일신문 사장, 최병욱 군의장, 도기욱·이영식 도의원, 신향순 군의원 등 지역 기관단체장과 군민, 관광객 등 2천여 명이 참석해 깊어가는 여름밤의 정취를 만끽했다.특히 여름방학과 휴가철을 맞은 가족단위 관람객들은 비가 오는 날씨에도 다채로운 체험·공연 행사를 즐기며 축제의 흥겨운 분위기를 만끽했다. 전시·체험 프로그램으로는 민속놀이 체험, 보부상 체험, 추억의 뻥튀기, 옛날 간식 체험 등이 마련됐으며 부대행사로 신도시 맘카페와 연계한 플리마켓 장터가 운영돼 많은 관람객의 발길이 이어졌다.특히 ‘살아있는 곤충 세상 속으로’를 주제로 개최되는 이번 ‘예천곤충축제’장에서는 딱정벌레목 곤충과 나비, 호박벌 등 살아있는 곤충을 다양하게 체험할 수 있도록 마련해 인기를 모았다.이날 ‘예천 낙동강 7경 문화한마당’은 신인배우 서하가 사회를 맡아 양동근, 산이, 강혜연, 류원정, 김민교, 이병철, 최상, 강민주, 이종학 등 국내 정상급 인기가수들이 대거 출연해 열정적인 무대를 선보여 관객들을 흥분의 도가니로 이끌어냈다.김학동 예천군수는 “이번 ‘낙동강 7경 문화한마당’공연을 통해 휴가철 축제장을 찾아주신 지역 주민들과 많은 관광객들이 즐겁고 행복한 여름밤을 보내시고 추억을 만드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예천/정안진기자 ajjung@kbmaeil.com사진= 이용선 기자

2022-08-10

밤마다 그려내는원색 불빛 찬란한 포항 바다를 담다

‘항온동물’로 지칭되는 모두가 견딜 수 없는 더위가 한국을 휩싸고 있다.인간의 체온 이상을 넘나드는 온도가 지속되는 8월 초의 폭염. 선풍기와 에어컨을 동원해 몸이 느끼는 온도를 낮춰보고 싶지만 그것조차 쉽지 않다.이런 뜨거운 날들이 캄캄한 밤까지 이어지는 열대야. 많은 이들이 더위에 취약한 인간이 아닌, 차가운 심해를 헤엄치는 물고기로 존재를 전이하고 싶어지는 시절이다.앞으로 얼마나 이런 시간이 지속될까? 가끔은 섭씨 40도를 위협하는 집안 온도계가 도깨비처럼 두렵다.아주 오래전 개봉한 영화지만 어둡고, 습하고, 그래서 인간의 몸을 움츠리게 하는 ‘그랑부르’를 기억하는 이들이 있을 듯하다.며칠 전이다. 견딜 수 없는 무더위를 피해 어둠이 내린 바닷가를 한참 동안 거닐었다. 점점이 빛나는 몇 점 불빛 외에는 어떤 것도 반겨주지 않는.앞서 언급한 ‘그랑부르’를 다시 떠올린 건 그 순간이었다. □ 늘어선 ‘차박 여행자’들은 무슨 꿈을 꾸고 있을까?푸르게 일렁이는 파도와 하얀 거품을 물고 자지러지는 포말, 원색의 비키니가 달리는 해변과 첫사랑의 기억인양 붉게 멍드는 석양. 전형적인 여름날 바닷가 풍경이다. 동양과 서양이 다를 수 없고, 옛날과 지금이 다르지 않은.아이들이 입을 모아 부르는 다장조의 동요 같은 도시의 회색 일상도 19세기나 지금 21세기나 다를 바 없다. 잠시잠깐의 떠남이 그 단조로움을 얼마만한 힘으로 치유할 것인지는 여전히 미지수.2022년 여름은 누구나 바다로 가는 기차를 타고 싶은 목마른 날들이다. 하지만 떠나고 싶어도 떠날 수 없는 사람들이 세상에는 언제나 있기 마련.햇살 부서지는 낭만의 금빛 해변을 꿈꾸었지만, 이런저런 사정으로 떠날 수 없는 사람들에게 프랑스의 영화감독 뤽 베송의 영화 ‘그랑부르’는 조그맣지만 그 힘을 부정할 수 없는 대리만족의 기쁨을 선사한다. 이 영화는 차갑고 서늘한 페루와 그리스의 바다풍광을 배경으로 ‘인간이란 끊임없이 외로움과 싸우는 가여운 존재에 불과하다’는 깨달음을 주는 슬프고, 그 슬픔 때문에 끔찍하게 아름다운 영화다.‘코로나19 사태’로 인해 바다 건너 낯선 땅으로 가는 길이 막힌 지 이미 오래. 한 해에 1천만 명 이상이 가깝건, 멀건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국가로 여행을 다녔던 한국인들은 ‘앞으로는 오로지 조그만 한국, 여기서만 생을 견뎌야 한다’는 갑갑함을 견디기가 어렵다.그래서였을 것이다. 타고 다니던 차에 텐트를 싣거나, 아예 기본적 의·식·주의 해결이 가능한 캠핑카를 마련한 이들은 이른바 ‘차박’으로 갑갑함을 풀고 있다.대여섯 시간이면 ‘낭만의 금빛 해변’으로 자신을 데려다줄 비행기에 몸을 싣기 어려워진 시기.그러니, “불법주차입니다. 빨리 차를 빼주세요”라는 위협을 감수하면서 캠핑카에 ‘지금 이곳이 아닌 다른 어떤 곳으로 가고 싶다’는 꿈을 실은 여행객들을 마냥 질책하기도 어렵다.뜨거운 날씨 속에서 그보다 더 뜨거운 열망으로 차를 몰고 바닷가를 향하는 여행자들. 그들에게 함부로 돌을 던질 수 없는 이유는 우리들 대부분이 마음속에서 ‘차박 캠핑 여행자’를 꿈꾸고 있기 때문 아닐까? □ 포항 밤바다가 주는 특별한 선물을 기다리며앞서 말한 영화 ‘그랑부르’의 이야기는 이렇게 이어진다. 자크 마이욜(장 마르크바 분)과 엔조 몰리나(장 르노 분)는 어린 시절부터 친구다. 한적한 그리스의 해변 마을에서 누가 깊이 자맥질하는가를 내기하던 철부지들. 영화는 그 철부지들의 성장과 좌절, 희망과 소멸을 ‘짙푸른 바다’의 색채와 구원의 여인으로 상정된 조안나(로잔나 아퀘트 분)를 통해 보여준다.1988년 프랑스 칸영화제 오프닝 작품으로 상영된 ‘그랑부르’는 아주 긴 세월을 뛰어넘어, 하늘만큼이나 파랗고 광대한 심해(深海)의 풍경을 보여줌으로써 지금 이곳이 싫지만, 다른 저곳으로 갈 용기가 없는 인간들의 소심함을 위로해왔다.혼자선 외로움을 견딜 힘이 없고, 외로움을 나눠 가질 다른 사람을 사랑할 용기마저도 없는 사람들.그래서였을까? “나의 우주는 바로 당신”이라는 로잔나의 고백은 새벽녘 해미 같은 서늘함으로 우리들의 가슴을 적셨다.20세기 어느 시인은 노래했다. “너를 향한 그리움으로 오늘도 바다는 푸르렀다”고.눈으로 보는 바다는 단지 아름다울 뿐이다. 폭염의 햇살을 가리는 파라솔 아래에서 밀어를 속삭이는 연인들, 모래성을 허물며 발가락을 간질이는 파도, 수평선 저편에서 쏟아지는 무수한 별빛…. 그러나, 인간사에 어찌 아름다움만이 있을까.눈이 아닌 가슴으로 바라보는 바다는 막막함으로 우리의 가슴을 막아선다. 맑은 서정시의 소재가 되고 고운 노래의 가사가 되었던 바다. 그러나, 그 짙푸름 안에는 또 얼마나 많은 눈물과 슬픔이 녹아있던가. 세상사의 회한(悔恨)이란 인간에게나 바다에게나 마찬가지인 것을.포항의 해변에선 어디서나 어렵지 않게 포스코가 만들어내는 밤의 불빛을 만날 수 있다. 때론 여름날 정글을 닮은 초록빛으로, 가끔은 성하(盛夏)의 열정보다 온도 높은 선명한 붉은색으로 환한.낭만과 원시의 키워드인 ‘바다’가 생산과 노동의 은유인 ‘공장’의 불빛과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견해가 있을 수 있다. 사실 그게 보편적인 시선이기도 하다.하지만, 깊은 밤 포항 영일대해수욕장 모래밭을 거닐어본 사람은 안다. ‘낭만’과 ‘노동’은 별개로 존재하는 상극(相剋)의 단어가 아닌, 인간의 삶 내부에 동등하고 동일하게 존재하는 상생(相生)의 단어라는 것을.살풍경한 포항제철이 하늘을 배경으로 밤마다 그려내는 원색의 불빛은 어찌 보면 동해안 바닷가마을 포항을 ‘포항답게’ 만들어주는 가장 명백한 오브제(Objet)일 수도 있지 않을까. □ 이가리 닻 전망대에서 만난 밤바다는…다시 ‘그랑부르’로 돌아가 보자. 서늘한 밤바다로의 떠남을 꿈꾸었지만, 떠나지 못하고 식은땀 끈적이는 도시에 남은 사람들.떠난 사람들에게 ‘바다’는 분명 눈과 육체를 즐겁게 해주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떠나지 못한 사람은 어떤가? ‘그랑부르’를 통해 가슴과 영혼에 쌓인 일상의 묵은 때를 씻어내는 즐거움은 떠나지 못하고 도시에 남은 우리들의 몫이 아닐지.영화의 마지막. 자크는 돌고래의 노래 소리만이 적요함을 깨는 심해로 영원히 사라진다. 돌아오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환하게 웃으며 떠난다.그와 동시에 떠오르는 요절시인(夭折詩人) 박정만의 절명시 한 줄.“나는 사라진다 저 광활한 우주 속으로.”우리 모두는 이 지긋지긋한 여름을 피해 어디론가 사라지고 싶다. 그곳이 심해건, 우주건. 그러나, 그것이 마냥 쉬운 일은 아니다. 일상을 견디는 건 세속인간들의 천형(天刑)이기에.지난 주말이었다. 포항 청하면까지 차를 몰아 ‘이가리 닻 전망대’의 밤 풍경 속을 표표히 거닐던 지인에게 전화가 왔다. 이런 말을 했다.“여기서 캄캄한 바다를 바라보고 있으니, 산다는 것과 죽는다는 것의 경계가 희미해진다”고. “우리는 대체 무엇을 바라며 어디로 가고 있냐?”고.울울창창 소나무가 싱그러운 향기를 뿜어내고, 조선 최고의 화가 겸재 정선(1676~1759)의 그림 속에도 수차례 등장하는 아름다운 바다에서 왜 친구는 굳이 삶과 죽음의 덧없음과 생의 허무를 떠올렸을까?그날은 아무런 대답을 해주지 못했다. 이제야 이런 위로를 ‘이가리 닻 전망대’ 위에서 번민과 고뇌 속을 헤맸던 그에게 해줄 수 있을 듯하다.“생성과 소멸, 삶과 죽음, 열망과 환멸 사이의 간극을 온전히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없다. 그저 네 눈앞에서 빛나던 밤바다의 별빛만이 그 답을 알고 있을 뿐.”/홍성식기자

2022-08-09

민선8기 영주, ‘화려한 청년기’ 부활 기틀 만든다

박남서 영주시장은 민선 8기를 영주의 화려한 청년기를 되찾는 기틀을 마련한다는 포부다.박 시장은 취임 후 공약 및 핵심 사업을 점검하고 민생경제 챙기기에 몰두하고 있다.민선 8기 영주시정에서 가장 중요한 분야는 단연 “경제”에 방점을 두고 있다.박 시장은 영주경제 대변혁을 통해 미래 산업이 꽃피는 영주, 청년을 지키고 키우는 영주, 문화가 힘이 되는 영주로 거듭날 것을 선언하고, 이를 실행하기 위한 세부계획 마련에 나섰다. 먼저 지역 경기침체 및 지속적인 인구감소 문제 등의 시대적 숙제를 해결하는데 역점을 두고 관련 정책을 추진할 계획이다. 특히 기업에 대한 과감한 투자와 지원, 이를 통해 양질의 일자리 창출과 지역의 우수한 청년 육성, 사업하기 좋은 환경을 조성해 지역에 청년들이 북적이고 생기 넘치는 영주를 만들어 나갈 방침이다.이를 위해 기업지원 전담부서 신설과 국·도비 예산 확보를 위한 특별팀을 구성해 예산 1조원 시대를 연다는 계획이다. 민·관 합동 기업투자유치위원회를 구성해 기업유치에 대한 인센티브 제공 등 지역의 경제 발전을 위한 정책적 노력을 이어나가게 된다.박 시장은 “지역 기업이 살아야 영주가 도약한다는 신념으로 기업인들과의 정기적인 만남과 현장 기업인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더 역동적인 경제도시, 더 강한 경제도시 영주를 만들겠다”며 “지역경제 활성화와 우수 기업유치를 위한 노력에 시정을 집중해 나갈 계획”을 밝혔다. 특히 시가 그동안 중점 시업으로 추진해온 영주 첨단베어링 국가산업단지의 조성원가 재점검을 통해 시의 재정 부담을 줄이고 경량소재산업 육성 기반 구축과 기업유치에 힘써 안정적인 청년 일자리 확보와 세수를 올리는데 집중하는 등 청년들을 위한 일자리 창출에도 적극 힘을 싣는다는 포부다. 문화가 곧 지역경제의 힘이 되는 선비 관광산업에도 나선다.영주는 선비정신으로 대표되는 문화도시로, 교육, 관광, 문화·예술, 시민의식 등 사회 전 분야에 올바른 선비정신을 담아내고 정도전, 안향, 금성대군 등 영주의 역사 인물을 활용한 선비콘텐츠를 개발해 선비정신을 잇고, 관련 문화콘텐츠를 확대해 나갈 계획이다. 또, 소백산 케이블카, 익스트림 어드벤쳐파크 등 소백산 일대를 관광지화하는 계획을 검토 중이다.영주 지역의 자긍심인 소백산과 영주댐 일원을 관광경제의 랜드마크로 만드는 등 관광 산업에서도 지역 발전을 위한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는다. 영주의 대표적인 역사·문화관광 자산인 부석사와 소수서원, 선비촌, 무섬마을과 9월 개장하는 한문화 테마파크 선비세상의 성공적인 운영을 통해 K 문화 특별시 영주 조성에도 나선다.지역 경제의 또 다른 핵심축인 농업의 발전을 위한 정책도 새롭게 추진된다. 농산물 종합유통센터 건립 등 안정적인 유통망 구축과 농업에 6차 산업 추세에 발맞추는 정책으로 지역농업의 브랜드 가치를 높인다. 기존의 농업정책이 재배와 생산에 중점을 뒀다면 유통과 마케팅 분야도 그에 못지않은 노력을 기울여 나가게 된다. 미래 농업의 주역인 청년 농부 육성도 핵심 정책 중 하나다. 청년 농부 육성과 소득향상을 위해 청년 농업경제 플랫폼을 추진해 청년들에게 정보교류와 교육, 창업 등의 기회를 제공하는 등 청년 억대농부와 청년기업 육성에 힘쓸 방침이다.이 밖에도 교육재정 확대, 유소년 체육단 창립, 예·체능 특성화고 지원 등 교육정책을 강화하고 젊은 영주를 위해 구도심 경제활성화, 신도심 문화예술 및 힐링공간 확보 등 구도심과 신도심의 동반성장을 위한 계획도 추진한다.민선 8기에는 민생과 미래에 집중하며 모두가 행복한 영주시를 완성하는 데 힘쓰겠다고 밝힌 박 시장은 “겸손하고 낮은 자세로 시민의 작은 목소리에도 귀 기울이고 시민들에게 희망과 행복을 줄 수 있는 도시로 나아갈 수 있도록 힘써 영주의 꿈을 시민과 함께 이루어 나가도록 하겠다”고 민선 8기에 임하는 각오를 전했다. 박남서 영주시장에게 듣는다“시장 직속 기업실 신설, 투자유치 직접 챙길 터”- 선거 이후 시민 화합에 대한 방안이 있다면.△ 영주시장을 목표로 오랜 시간 달려왔다. 그만큼 지역의 구석구석을 발로 뛰며 시민들의 애환을 들었고 공감했다. 선거는 새로운 영주시의 미래를 개척하는 과정이다. 민선 8기에서는 이전 시정에서 챙기지 못했던 부분에 대해 하나하나 빠짐없이 챙겨나가겠다. 영주시민 모두가 하나 되는 사회적 분위기 조성과 시민을 위한 시정을 펼쳐나가겠다. 코로나19로 많은 것이 망가졌다, 어려운 시기를 잘 이겨 내준 시민들에게 감사하며 지역의 정상화를 이뤄나가는데 전력을 다할 계획이다. 시민 여러분들의 많은 성원과 관심을 당부 드린다.- 영주농축특산물 국내외 판로 개척에 대한 계획은.△ 지난 7월 영주시와 삼성홈플러스는 년간 70억 규모의 매입 업무협약을 체결했다.다양한 대형 브랜드를 대상으로 판로 확대를 위해 (가칭)영주시 유통공사를 설립 중이다. 이뿐만 아니라 다양한 온라인 판매 확대와 온 오프라인을 통한 수출상담회 개최 및 해외 우수 바이어 발굴을 지원할 계획이다. 수출물류비 지원 확대, 맞춤형 수출지원에 의한 통상경쟁력 강화, 국제 박람회 참가지원, 영주수출기업협의회 활성화에 중점 지원을 계획 중이다.- 경제 시장, 청렴 시장에 대한 시민 기대감이 크다.△ 시민들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도록 경제성장을 통한 시민 모두가 행복한 도시를 만들겠다. 시장 직속으로 기업실 신설, 기업하기 좋은 도시 기반 마련, 베어링산단 조기 완공, SK스페셜티 등 대규모 투자유치에 의한 일자리 창출에 주력할 것이다. 국가산단에 투자를 희망하는 기업에 대해 1기업 전담공무원 3명을 배치해 입주단계부터 지원해 나갈 방침이다. 깨끗하고 투명한 시정으로 청렴도를 높여나가겠다.- 고령화, 인구감소에 따른 경제인구 대처 방안은.△ 20만에 육박했던 영주인구가 10만 명대로 줄어들었다. 이런 상황은 결국 낮은 임금과 청년 일자리가 없다는 것이 중요한 부분이다. 인구감소의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위해 청년이 중심 되는 일자리 확보에 전력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첨단베어링 국가산단과 경량소재산업 육성 기반 구축 등 안정적인 일자리를 늘려나가겠다. 영주/김세동기자 kimsdyj@kbmaeil.com

2022-08-08

오징어배 줄고 사람들 떠났지만… 바다는 여전히 빛난다

화양연화(和樣年華), 누구에게나 삶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간은 있다. 석탄가루 묻어있는 검푸른 항구, 비좁고 가파른 골목에 다닥다닥 붙어 있는 집들이 추억으로 남아 있는 동해안의 묵호에도 찬란한 시절이 있었다. ‘동네 개도 만 원짜리를 물고 다녔다’고 할 만큼 풍요롭던 묵호항은 세월 속에 화려했던 시절을 묻어두고, 그 흔적만 묵묵히 간직하고 있다. 지금, 묵호의 바다는 그때와는 다른 색으로 빛나고 있다. 한 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의 삶의 애환이 흑백사진처럼 바다마을에 펼쳐진다. △옛 어촌마을 묵호동과 검은 바다 펼쳐진 묵호항강원도 동해시의 먹빛처럼 검푸른 바다가 일렁이는 묵호는 예전에 검은 새와 바위가 많아 포구가 까맣게 보였다. 그런 이유로 오진, 오이진(烏耳津)이라고 불렀다. 조선 현종 때, 오진에 큰 수해가 나자 강릉부사 이유응이 현장 시찰을 나왔다가 마을주민들과 촌장을 만났다. 유난히 검은 포구를 본 이유응은 마을 이름을 오진이라 부르는 까닭을 듣고, ‘산과 물이 어우러진 곳에서 멋진 경치를 보며 좋은 글씨는 쓰는데 부족함이 없다’는 의미의 ‘묵호(墨湖)’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밤이면 오징어 배의 불빛으로 묵호의 바다는 유월의 꽃밭처럼 현란하다.’라고 할 정도로 묵호 바다에서는 명태와 오징어가 많이 났다. 어획량이 풍부하니 묵호항은 일거리가 넘쳤다. 남자들이 오징어를 잡아 오면 아낙들은 오징어 배를 따고 내장을 다듬었다. 일손이 부족해 인부들이 몰려오면서 묵호동 산비탈에 슬레이트지나 양철로 지붕을 올린 판잣집들이 촘촘하게 들어섰다. 밤에 산비탈 언덕의 판자촌에서 새어 나오는 불빛은 마치 반짝이는 도시의 빌딩 숲 같았다. 지금도 지명이 남아 있는 산비탈 골목 ‘덕장길’에는 소나무로 만든 덕장에서 오징어, 대구, 명태, 가오리를 꾸덕꾸덕하게 말리는 비린내가 풍겼다.1960~70년대 묵호는 불꽃 같은 호황을 누렸다. 1941년 개항해 삼척 일대의 무연탄을 실어나르는 작은 항구였던 묵호항은 1964년 국제항으로 승격했다. 1968년에는 쌍용양회 대단위 시멘트 공장을 준공했다. 동해안 제1의 무역항이 되면서 석탄과 시멘트를 실어나르기 위해 전국에서 화주와 선원이 몰려들었다. 묵호는 이주민과 지역주민이 한 데 어울려 번성했다. 요정이 생겨나고 백화점이 문전성시를 이뤘다. ‘술과 바람의 도시’, ‘유행의 첨단도시’가 됐다. 그러다가 1983년 동해항이 국제무역항으로 떠오르면서 묵호는 점점 쇠퇴하기 시작했다. 명태도 더는 잡히지 않아 부산에서 냉동된 원양 생선을 사올 지경이었다. △벽화마을 묵호동 논골담길우뚝 솟은 등대가 한 가닥 빛을 비추는 등대마을. 하늘에 닿을 듯한 산자락 동네에는 발아래에 바다를 두고 살아온 사람들의 애환이 담겨있다. 가파른 비탈길이 온통 흙바닥이었던 붉은 언덕은 명태와 오징어를 나르는 지게와 고무 대야에서 흐른 바닷물로 질퍽해 장화 없이는 다닐 수 없었다고 한다. 마을은 줄줄 흘러내린 물 때문에 흙길이 논길처럼 질척거려서 ‘논골’이라 불렀다. 지금은 따개비 등껍질 같은 시멘트 바닥이 되었지만 오랜 세월 마을을 지켜온 주민들이 2010년부터 2015년까지 슬레이트집 담벼락에 묵호 이야기를 담은 벽화를 그려 ‘논골담길’ 벽화마을을 조성했다. 고단한 삶을 지게에 지고 이겨냈던 아버지들과 덕장에서 언 손으로 젊은 날을 보냈던 어머니들이 예술가들과 함께 무수한 이야기들을 마을에 그려냈다. 담화로 감성을 덧댄 소박한 마을은 색다른 여행지로 다시 태어났다.네 갈래로 나눠진 골목은 각기 다른 매력이 있다. 논골 1, 2, 3길을 수놓은 벽화에는 황금기를 보냈던 묵호항의 역사와 바다에서 살아가는 지난한 삶의 순간들이 필름처럼 펼쳐진다. 등대오름길에는 논골담길에 불어오는 새로운 희망과 바람이 담겼다. 등대오름길은 2013년 방영된 드라마 ‘상속자들’의 촬영지로도 유명하다. 주인공 은상이 어머니와 도망쳐 나와 살게 된 집의 오렌지빛 지붕과 짙푸른 바다색의 대비는 눈이 시리다. 언덕배기 골목길 주인 없는 대문에는 바다로 나간 이에 대한 그리움인지 홀로 남은 외로움인지 모를 눈물이 녹이 되어 흘러내린다. 해양문화공간으로 새롭게 태어난 묵호등대. △빛으로 마을을 물들이는 묵호등대마을 구석구석을 둘러보며 오르다 보면 논골담길 꼭대기에서 드넓은 바다와 동해시를 굽어보는 묵호등대에 다다른다. 파리의 에펠탑처럼 어디서나 보이는 묵호등대는 1963년 처음 불빛을 밝혔다. 하루에 보리쌀이나 밀가루 한 되 정도의 품삯을 받는 아르바이트로, 남자들은 지게를 지고 여자들은 대야를 머리에 이고 자갈, 모래, 시멘트를 담아 나르며 건설했다고 한다. 2007년 해양문화 공간을 조성해 새로 지은 묵호등대는 동해를 항해하는 선박과 묵호항을 찾는 선박들의 길잡이이자, 푸른 동해와 백두대간의 두타산·청옥산도 내다볼 수 있는 전망대이기도 하다. 아침이면 온몸으로 해를 맞이하는 등대는 한낮에는 바다 바라기를 한다. 밤이 오면 환한 불을 밝혀 항구를 빛으로 물들인다. △바다와 하늘을 즐기는 체험명소 도째비골 스카이밸리해랑전망대묵호등대와 이어진 도째비골 스카이밸리에 들어서면 마을의 감성에 취한 마음을 추스를 새도 없이 등골이 오싹해진다. 해발고도 약 59m 높이의 하늘 산책로, 스카이워크는 바다를 향해 난 바닥 일부가 유리로 만들어져 마치 허공을 걷는 듯한 기분이 든다. 담대한 마음으로 아래를 내려다보니 아찔하다. 왕버들을 모티브로 한 슈퍼트리 봉오리 조형물 앞에서 소망도 빌어본다. 영원한 약속을 의미하는 쌍가락지 조형물과 도깨비 뿔을 형상화한 조형물도 볼거리다.메인 타워에서 27m 아래로 미끄러져 내려가는 ‘자이언트 슬라이드’와 케이블 와이어를 따라 공중을 달리는 ‘스카이 사이클’을 체험하면 짜릿함은 배가 된다. 음식과 기념품을 판매하는 도째비 아트하우스 ‘눈누난나’는 도깨비에 홀린 듯 거꾸로 세워져 있다.바다로 내려가면 도깨비방망이를 형상화한 85m 길이의 해랑전망대를 만난다. 해상보도교량의 관문인 파란 도째비터널을 지나 다리 위를 걸으면 묵호의 바다 내음이 코끝으로 밀려온다. 투명한 유리 아래에서 파도가 발을 적실 듯 몰아친다. 하늘에서는 봉오리였던 슈퍼트리 조형물이 바다 위에 만개한 꽃처럼 피어있다.어스름 해가 저문다. 사람 냄새 물씬 나는 묵호항으로 향한다. 어시장 좌판에는 자연산 횟감들과 다리가 튼실한 대게, 눈알이 싱싱한 생선들과 살이 반쯤 말려진 생선들이 넘쳐난다. 흥정하던 사람들로 시끌벅적한 항구에 갑자기 짙은 해무가 몰려온다. 바다는 금세 자취를 감춘다. 항구에 정박한 배들과, 산비탈에 촘촘히 박힌 알록달록한 지붕과, 그 위에 우뚝 선 하얀 등대가 희미하다. ※여행메모생김새가 못나고 투박해 선창 바닥에 내동댕이쳤던 곰치에 잘 익은 김치를 썰어 넣어 김칫국처럼 끓여낸 곰치국은 동해에서 맛볼 수 있는 별미다. 흐물흐물한 생선 살덩이는 입안에서 녹을 것처럼 부드럽다. 정약전의 자산어보에 ‘살이 아주 연하고 싱거우며 곧잘 술병을 고친다’라고 전해질 만큼 얼큰하고 시원한 국물은 속을 확 풀어준다. 해랑전망대 맞은편에서 어달항, 묵호항까지 이어지는 해안가에는 식객 허영만이 다녀가 ‘백반기행’에 소개된 식당부터 곰치국의 원조임을 자랑하는 식당들이 늘어서 있다./묵호=글·사진 이솔 객원기자

2022-08-04

“지역미래 책임질 ‘5·5·5 프로젝트’ 반드시 성공 시킬터”

향후 고령의 미래를 책임지고 이끌어갈 이남철 군수가 얼마 전 임기를 시작했다. 어려운 경제상황과 코로나19의 재확산 등으로 나라 전체가 어려움에 빠져 있는 현재. 고령군도 적지 않은 문제를 해결하고, 향후 발전전략을 수립해야 하는 등 당면과제가 적지 않다.이남철 군수 역시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이 군수는 경기 침체와 인구 감소 등 해결해야 할 문제를 피해가지 않고, 적극 대응할 것을 내외에 천명하며 빈틈없는 군정을 약속했다.‘들썩들썩 젊은 고령’, ‘매력 넘치는 대가야’, ‘스마트한 부자농촌’, ‘일취월장 지역경제’, ‘다함께 행복한 복지’, ‘군민중심 공감행정’은 이남철 지사가 지향하는 군정의 기본 방향.군민중심의 공감행정 실현과 약속한 것은 꼭 지키겠다는 다짐을 내놓은 이남철 고령군수가 이번 인터뷰를 통해 향후 4년간의 계획을 가감 없이 밝혔다. 아래에서 그 계획의 구체적 실천방안을 들어본다. -먼저 축하드린다. 군정을 시작하며 든 생각은?△새롭게 시작될 희망 고령을 염원하며 보내주신 지지와 성원에 힘입어 46대 고령군수로서 일 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린다. 선거 과정에서 흩어져 있는 민심을 모아 오로지 군민화합과 ‘젊고 힘 있는 고령’을 위해 나아갈 것이다.불안정한 세계 정세 속에서 경기 침체, 인구 감소 등 해결해야 할 많은 문제들이 산적해 있다. 만만치 않은 위기 앞에 놓인 우리 고령군과 군민들을 위해 온 마음을 담아 열심히 뛰는 전심전력의 군수가 될 것을 약속드리고자 한다. 더 빠르고, 더 똑똑하게 빈틈없이 군정을 살피고자 다짐하고 있고, 공약 실현에 노력할 결심이다.-고령군의 미래 목표와 방향이 궁금하다.△포스트 코로나19 시대로의 전환과 함께 시작되는 민선8기다. 우리 군의 군정 목표는 ‘젊은 고령, 힘 있는 고령’이다. 침체된 경기와 인구 감소 등 시대적 난제를 해결할 수 있는 돌파구를 찾아가겠다. 한층 젊어진 고령의 힘을 발산해 이전과는 완전히 새로워진 고령의 시대를 열고자 한다.‘들썩들썩 젊은 고령’, ‘매력 넘치는 대가야’, ‘스마트한 부자농촌’, ‘일취월장 지역경제’, ‘다함께 행복한 복지’, ‘군민중심 공감행정’이라는 군정 계획을 민선 8기의 기조로 삼으려고 한다. 행정에서는 정확하고 똑똑하게 방향키 역할을 수행해 군민들과 함께 희망 고령을 그려갈 것을 약속한다.-역점적으로 추진할 사업은 어떤 것인가?△지역 경기 침체와 지속적인 인구 감소 문제 등의 시대적 숙제를 해결하는데 힘을 쏟으려고 한다. 이를 위해 기업에 대한 과감한 투자로 양질의 일자리 창출과 지역의 우수한 청년들을 육성하겠다. 더불어 사업하기 좋은 환경을 조성해 우리 지역에 청년들이 북적이고, 생기가 넘쳐나는 고령을 만들고자 노력할 것이다. 이를 위해 ‘인구 5만 명 도시, 신규주택 5천 호, 청년인구 5천 명’이라는 ‘5.5.5 프로젝트’를 역점적으로 추진하고자 하고 있다.지역의 우수한 청년들을 육성하고 이들을 우리 군에 정착시켜 ‘들썩들썩 젊은 고령’을 만들어보겠다. 청년농부를 위한 ‘스마트 팜 정책’을 통해 청년 리더를 키워나가고, 청년주택 등을 더욱 확대해 아름다운 전원마을 조성에 힘쓰겠다. 또한, 청년드림센터 운영을 통해 창업·정착·일자리 등 다방면의 원스톱 지원을 넓혀감으로써 우수한 청년들이 안정적으로 우리 지역을 삶의 터전으로 삼을 수 있도록 만들어 나갈 것이다. 또한 스마트한 부자농촌을 만들기 위해 우수 농축산물의 안정적인 유통망을 확산시키고, 농업 시설과 시스템의 현대화, 농촌인력뱅크 운영, 스마트 농축산 클러스터 조성을 통해 미래농업에 대비하는 플랫폼을 구축하고자 하는 노력도 지속하려고 한다. -‘5.5.5 프로젝트’의 구체적인 추진 방안은 무언가?△이 프로젝트를 통해 우수한 지역 청년들을 육성하고, 다른 지역으로부터 끌어들이며, 나아가 젊음의 기운으로 에너지 넘치는 들썩들썩한 고령의 미래를 그려나가고자 한다.먼저 6개 산업단지를 중심으로 선도경제 구축에 힘쓰며 1만 여 근로자의 ‘직장도, 집도, 주소도 고령’ 운동을 즉시 추진하려 한다. 100개 기업에 1조 원의 과감한 투자로 일자리 3천개 창출 등 지속가능한 산업경제 도시 인프라도 갖추겠다.둘째는 신도시를 조성하고 도시재생 뉴딜사업을 확장 추진하며, 도시가스 공급과 마을 하수도 시설을 확대하겠다. 타운하우스와 전원주택단지를 조성해 인구 유입을 이끌어내는 등 사람 중심의 고령 발전 기반을 마련코자 한다.셋째, 대구~광주간 달빛내륙철도 고령역 유치에 적극 나서고, 김천~거제간 KTX 조기 착공을 추진하고자 한다. 국지도 67호선과 지방도 905호선의 4차선 확장, 대가야 하이패스 전용 IC 설치로 광역교통망이 제대로 갖춰진 사통팔달 교통의 중추가 되도록 하겠다.마지막으로 친환경 축산 스마트단지를 조성하고 가축분뇨 에너지 인프라를 구축하고자 한다. 4차 산업혁명에 따른 스마트 팜 확대 및 클러스터 조성, 농촌지원 전담 인력센터 설치를 통해 미래 스마트 농업도시를 만들어 부자농촌의 희망을 가질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대가야 문화관광’의 발전 방향도 궁금하다.△대가야 문화를 바탕으로 ‘라이트플라워 로드’와 ‘왕의 길’ 등 빛과 자연이 어우러진 역사 힐링공간을 조성해 새로운 문화관광 트렌드로 구축할 것이다. 또한 폐교와 유휴자원을 활용해 문화예술 특화지구를 만들고, 낙동강 줄기를 따라 은행나무 숲 힐링단지와 수변테마파크, 낙동강 달빛 휴양원와 철기로드, 낙동문화권 에코뮤지엄과 주을저수지 생태공원을 조성할 계획이다. 자연친화적인 휴식 공간을 마련해 군민은 물론, 국내외 관광객을 끌어들일 수 있는 매력 넘치는 문화관광 힐링도시로 만들어갈 예정이다.-향후 4년간 군정을 어떻게 이끌어 나갈 것인가?△군민중심의 공감행정을 실현하기 위해 정례적인 군민 소통 콘서트를 개최해 한 분 한 분의 이야기를 듣고 해결책을 모색할 생각이다. 또한 군민이 만족하는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신속하고 간결한 행정 절차를 통해 대군민 서비스 만족도도 향상시킬 것이다.또한 공무원들의 적극적인 업무 추진과 사기 진작을 위해 열심히 일 잘하는 직원이 인정받을 수 있도록 체계적이고 투명한 인사시스템을 구축할 계획이다. 그들이 고령 발전에 보탬이 되는 일꾼이 되도록 이끌겠다. 공무원 스스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책임과 권한을 주고, 그 노력과 성과를 반영하는 조직문화를 만들고자 한다.군정 속으로 뛰어드는 ‘행동하는’ 군수, 군민들의 마음을 읽는 ‘공감하는’ 군수, 약속한 것을 지키는 ‘능력 있는’ 군수가 되도록 최선을 다할 생각이다.고령/전병휴기자 kr5853@kbmaeil.com

2022-08-03

한 여름의 ‘밤바다’때론 농밀하거나… 때론 고요하거나…

7월 말을 지나 8월 초순이다. 무더위는 한국 어느 곳에서도 피하기 어렵다. 이 기간은 한국 사람의 절반이 여름휴가를 떠나는 시기이기도 하다.산과 계곡으로의 피서도 좋다. 하지만, 대부분의 휴가객들은 ‘피서’라고 하면 가장 먼저 푸른 파도 넘실대는 바다부터 떠올린다. 한국인들은 특히 여름날의 바다를 좋아한다.‘코로나19 사태’가 한국을 뒤덮기 전 경상북도와 강원도, 부산의 해수욕장엔 해마다 수십 만 명의 인파가 북적였다. 바로 지금 이 시기 즉 7월 말, 8월 초가 그랬다.다시금 재확산 추세를 보이는 코로나19의 위험성을 감지한 사람들이 해외여행을 포기하고 국내 해변으로 휴가를 떠나고 있다.천정부지로 오른 항공료와 높아진 외국에서의 코로나19 바이러스 감염 위험성이 비교적 안전한 한국 바다로의 여행을 선택하는 이유일 터.영일대해수욕장과 칠포해수욕장을 비롯한 포항의 해변과 영덕과 울진 등 경북 일대 해수욕장을 지나는 도로는 주말과 평일 할 것 없이 정체가 이어지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해변마다 넘쳐나는 휴가객과 짜증스런 날씨에도 바다로 향하는 가족과 연인의 얼굴은 환하고 발걸음은 가볍다. 이는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온전한 휴식을 누린다는 마음의 여유가 생겼기 때문 아닐까. □ 수영과 일광욕을 즐기는 낮의 바다도 좋지만…지난 7월 31일 서울에서 긴 시간을 운전해 연인과 함께 포항으로 휴가를 온 K씨를 월포해수욕장에서 만났다.“1년 내내 도심에서 직장과 집만을 오가는 서울 사람들에겐 포항의 푸른 바다가 마치 꿈속 이상향 같이 느껴진다”는 그는 드라마 ‘갯마을 차차차’와 ‘동백꽃 필 무렵’을 보며 올여름 휴가지로 포항을 선택했다고 한다.월포 해변 일대는 ‘갯마을 차차차’의 촬영지로 유명세를 탔다. 드물게 파도타기가 가능한 한국 해변으로도 이름이 높은 월포해수욕장은 물론, 인근 청하시장에도 드라마 제작의 흔적이 남아 있어 젊은 여행자와 가족 단위 관광객들에게 인기가 높다.실제로 그날 월포해수욕장엔 100여 명 가까운 이들이 파도타기를 즐기고 있었다. 초보부터 전문가 수준까지 다양한 서퍼(surfer·파도타기 하는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가득했다.월포해수욕장엔 파도타기가 처음인 사람들을 위한 강습소와 장비대여점이 만들어져 있다. 비단 여름만이 아닌 겨울에도 적지 않은 서퍼들이 월포 해변을 찾는다는 게 파도타기 장비대여점의 설명.시내 한가운데 자리한 영일대해수욕장 역시 포항으로 여름휴가를 온다면 빼놓을 수 없는 방문지 중 하나다. 부산 해운대해수욕장이나 강릉 경포대해수욕장에 뒤지지 않을 정도로 접근성이 좋고, 각종 편의시설도 잘 준비돼 있다. 2km 가까운 긴 백사장과 다양한 형태의 카페와 주점, 한식부터 일식, 거기에 이탈리아 요리까지 두루 즐기는 게 가능한 영일대해수욕장은 수심이 낮아 어린아이들이 물놀이를 즐기기에도 그저 그만이다.영일대 해변에서 수영과 일광욕을 즐기는 건 한국 사람만이 아니다. 적지 않은 외국인들도 구릿빛으로 몸을 태우며 공놀이를 하는 모습을 바닷가 곳곳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이국적 풍경까지 선사하는 것. □ 북적이는 한낮의 해변이 아닌 고요한 밤바다에선…취향과 성향의 문제겠지만,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공간을 싫어하는 이들도 있다. 8월 초순 한낮의 바다는 관광객과 여행자들이 북적일 수밖에 없다.인파 넘치는 곳에서 보내는 시간을 즐거워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으니, 한낮의 해변은 그 나름의 매력이 있다.낮의 바다에선 찾아보기 힘든 고요와 한적함을 원하는 여행자가 있다면 밤바다로의 산책을 권해보고 싶다.‘코로나19 사태’가 있기 전이다. 필리핀 보라카이로 여름휴가를 떠났다. 눈처럼 곱고 하얀 모래가 깔린 보라카이 화이트비치의 쏟아지는 햇살 아래서 전 세계에서 온 여행자들이 저마다의 방식으로 휴가를 즐기고 있었다.수영을 하거나, 요트를 빌려 먼 바다로 나가 시원한 바람을 맞거나, 비치발리볼을 구경하거나, 선탠을 하거나…. 낮의 보라카이 해변은 수천 명의 인파로 시끌벅적했다.바로 그 해변의 또 다른 매력을 발견한 건 혼자서 산책을 나간 밤바다에서였다. 자정을 넘긴 시간, ‘언제 이곳이 그렇게 북적였던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조용한 밤의 해변은 고요함 속에서 스스로를 돌아보는 시간을 선물해줬다.낮에는 들리지 않던 파도소리가 너무나 선명했고, 물결에 부딪쳐 속살거리며 굴러가는 조그만 자갈까지도 눈에 들어왔다. 나 홀로 원시의 풍경 속에 내던져진 느낌이었다. 쓸쓸했지만, 그 쓸쓸함이 좋았다.연이어 오래 전에 읽은 이성복(70)의 시 ‘바다’가 머릿속을 스쳐 갔다. 이런 노래다.서러움이 내게 말 걸었지요나는 아무 대답도 안 했어요서러움이 날 따라왔어요나는 달아나지 않고그렇게 우리는 먼 길을 갔어요눈앞을 가린 소나무숲가에서서러움이 숨고한 순간 더 참고 나아가다불현듯 나는 보았습니다짙푸른 물굽이를 등지고흰 물거품 입에 물고서러움이, 서러움이 달려오고 있었습니다. □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게 해주는 밤의 해변‘바다’라는 제목을 달고도 바다가 아닌 ‘서러움’에 포커스를 맞춘 이성복의 시는 인간의 본질이 결국은 희열이 아닌 슬픔에 있다는 걸 문학적으로 형상화 한 절창이다.파도를 서러움으로 인식할 수 있는 건 시인만의 능력이겠지만, 보통의 사람들이라고 왜 밤바다를 보는 저마다의 감상이 없겠는가? 고요한 밤의 해변은 누구에게나 시적 영감을 주는 힘을 가졌다.영일대해수욕장과 월포해수욕장도 다를 바 없다. 휴가객이 북적거리는 낮의 해수욕장을 피해 밤늦은 시간 해변을 거닐어본다면 한낮엔 듣지 못했던 바다의 소리와 인파 속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미세한 움직임을 만나게 될 것이 분명하다.지난밤 영일대해수욕장을 거쳐 카페 거리가 형성돼 있는 여남동까지 방파제를 따라 30분쯤 걸었다.인적이 드물어진 그곳엔 열대야임에도 제법 서늘한 바람이 불었고, 물새 몇 마리가 졸고 있었다.24시간 문을 여는 편의점에서 커피 하나를 사들고 한참 동안 일렁이는 바다의 조용한 몸부림을 바라본 시간. 낮의 해변에선 맛보지 못한 충일감이 몸을 감쌌다.소설가 장정일은 ‘누군가의 춤추는 모습을 바라본다는 건 그 사람의 영혼을 지켜보는 것’이라고 썼다. 이걸 이렇게 바꿔 말해도 좋을 듯하다. “밤의 바다를 응시한다는 건 스스로의 내면을 바라보는 것”이라고.영일대해수욕장의 밤보다 더욱 농밀하고 원시적인 밤 풍경을 원하는 여행자도 있을 법 하다. 그렇다면 포항 장기면 신창리 해변으로 야간 산책을 가보면 어떨까 싶다.인적은 더 드물고, 바다와 백사장이 들려주는 여름밤의 소리를 더 미세하게 포착할 수 있는 공간이 바로 신창리 해변이다. 때론 무서우리만치 고요하고 괴괴한 어둠도 그곳에서라면 낭만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다.아름다움과 낭만은 한낮의 해변에만 존재하는 게 아니다. 자신의 가슴 속에서 들려오는 낮은 목소리에 귀 기울일 수 있는 밤바다의 숨겨진 매력을 발견하는 2022년 여름휴가를 계획해보는 것도 나쁜 선택이 아니다. /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2022-08-02

‘호국도시 칠곡’ 곳간 채우고, 경제 살리고, 군민 늘린다

김재욱 칠곡군수는 최근 ‘탈권위주의’소통 행보로 세간의 눈길을 끌고 있다. 자전거로 출·퇴근을 하며 주민들과 직접 소통하는가 하면 군수실을 방문한 손님을 위해 직접 커피를 내리는 등 파격적인 행보를 이어가고 있기 때문이다.김 군수는 자신의 이러한 행동을 경직된 조직 분위기를 누그러뜨려 직원들의 창의성을 끌어낼 수 있는 수평적 소통문화를 만들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CEO형 군수’를 표방한 김 군수는 경직된 공무원 조직이 먼저 변화와 혁신을 해야만 민선 8기 군정 비전인 ‘곳간 채우고, 경제 살리고, 군민 늘리고’를 현실화 시킬 수 있다고 본다.취임 한 달을 맞은 김 군수를 만나 그동안의 느낌점과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들어봤다.-최근 파격적인 행보로 관심을 받고 있는데, 기분이 어떤지.△주위에서 파격적인 행보를 한다고 하는데 사실 좀 당황스럽다. 출·퇴근길에 자전거를 타는 것은 지난 20년동안 해온 나의 일상이다. 규칙적인 운동으로 가장 좋은게 출·퇴근길에 자건거를 타는 것이여서 특별한 일이 없는 날은 자건거로 출·퇴근을 하고 있다. 칠곡군에 와서 자전거 출·퇴근의 불편함이 있다면 거리가 5∼10분거리밖에 안된다는 점이다.그래서 운동을 위해 이리저리 돌아다니게 되는데 그러다보면 평소 차로 이동할 때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인다. 방치된 쓰레기더미가 가장 눈에 잘 들어와 군청에 연락해 좀 치워달라고 부탁한다. 가장 큰 장점은 많은 주민분들을 만나게 된다는 점이다. 한번은 80이 넘은 할머니가 취임한지 얼마 되지도 않은 나를 알아보고 말을 걸어오시는 걸 보고 깜짝 놀란 적이 있었다. 그때 많은 분들이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정말 열심히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소감은.△선거에 당선돼 군에 들어오니 민간조직하고 많이 다르다는 것을 실감했다. 민간기업에서는 능력만 있으면 발탁인사로 국장도 시켜도 되고, 중요한 사안에 대해선 TF팀을 만들어 일을 빨리 진행시킬 수도 있는데 여기는 조례, 기존의 규정 때문에 빨리빨리 일을 진행 할 수 없다는 점이 사실 좀 갑갑하게 느껴진다. 물론 그것이 안전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지만, 그런 부분들이 발목을 잡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때가 있다. 공직에 들어와 보니 내부적으로 자율성이 좀 더 많아져야겠다고 느꼈다. 사고가 좀 유연하지 못한 부분과 불필요한 절차도 많은 것 같다. 예를 들면 내가 간단한 인사만 하면 되는 자리인데 과장, 국장이 모두 다 나왔있다. 난 이런 것이 불편하다. 그 시간에 일을 해야할 사람들이 불필요한 시간을 허비하고 있다고 느낀다. 꼭 필요한 자리에만 나왔으면 좋겠다.내가 군수실에서 손님을 위해 직접 커피를 내리는 것도 그 시간에 비서도 자신의 업무를 하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앞으로 조직의 유연성, 탄력성 등만 조금 바꿔 나간다면 절차는 복잡하지만, 전국 어느 행정기관보다 혁신적인 기관이 될 것으로 믿는다.-칠곡의 가장 큰 현안은.△누가 뭐라해도 경제다. 경제는 칠곡만의 문제가 아니고 코로나 장기화로 인해 대한민국 전체의 문제다. 살림이 나아져야 근심걱정이 덜어지는 것이다. 나 혼자 할 수 있는 일도 아니다. 나라에서도 기껏 했는 일이라는게 돈 나눠주는게 전부였다. 물론 돈을 나눠주는게 마중물 역할은 하겠지만 결국 경제가 돌아가게 만들어야 한다. 경제를 유기적으로 돌아가게 하려면 튼튼한 일자리부터 필요하고, 제대로 된 사람도 필요하고, 인구도 모아야 한다.실제 기업 사장님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면 사람만 있으면 지금 수출의 두배는 하겠다는 말씀들을 많이 하신다. 지금 사람들이 전부 수도권으로 떠나니 일할 사람 구하기가 힘들다는 뜻이다. 그래서 직장과 주거가 한 곳에 있는 직주근접을 실현시키는데 모든 역량을 집중할 생각이다.우선 지역이 특히 칠곡이 얼마나 생활하기 좋은 곳인지를 알리는 데 주력할 생각이다. 살기 좋은 곳, 교육시키기 좋은 곳으로 알려져 자연스럽게 인구가 늘어나도록 할 생각이다. 자연스럽게 인구가 늘어난다면 도드라지게 언급하지 않더라도 시 승격의 문제도 자연스럽게 해결될 것이다. 또 시 승격이 되지 않더라도 이렇게 우리만의 살기좋은 환경으로 변화해 간다면 그것만으로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생각한다.-지역의 균형발전을 어떤 식으로 진행할 것인지.△칠곡은 왜관을 중심으로 북삼, 석적 등 지역간 균형 문제가 지속적으로 제기돼 왔다. 앞으로는 이런 문제점들을 하나씩 해소해 나갈 것이다.대중교통이 큰 역할을 할 것이다. 북삼의 경우 대구 광역철도가 곧 개통이 되기에 율리택지지구와 같은 비중 있는 발전 전략이 나와야 할 것으로 보인다. 석적의 경우는 구미공단의 배드타운 역할을 해왔는데, 교통불편이 발전을 저해하는 가장 큰 요소였다. 그래서 석적구미하이패스IC, 석적에서 북삼역을 광역철도망을 이용할 수 있는 버스노선, 도로확장 이런것들을 통해 새로운 변화을 이끌 계획이다.새로운 교통망은 지역균형발전 문제도 자연스럽게 해결할 것이다. 이를 통해 북삼, 석적, 왜관이 나름대로의 역할을 가지면서 서로 상생할 수있는 여지를 만들어 갈 것이다. 지천, 동명의 경우도 지역의 반이상이 그린벨트로 지정돼 하고 싶은게 있어도 하지 못해왔다. 하지만 최근 대구의 발전중심이 동쪽에서 서쪽으로 조금씩 옮겨오면서 반사이익을 얻을 것으로 기대된다. 군부대 유치를 공약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군부대 유치를 그린벨트 내에 성사시키게 되면 도시 자체가 지천 자체가 젊어지게 되고, 지역 경제 활성화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요즘은 주민등록상의 인구도 좋지만 생활권 인구도 중요하다. 여기와서 먹고 쓰는 사람이 중요하지 주민등록만 옮겨놓고 먹고 쓰지 않는다면 지역 경제에는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최근 이승만 전 대통령과 트루먼 미국 전 대통령 동상 설치 문제가 논란이 되고 있는데….△트루먼 전 대통령은 아시아 끝에 있는 대한민국을 위해 미군을 참전시킨 사람이고, 이승만 전 대통령은 우리나라가 사회주의로 가느냐 자유민주주의로 가느냐에 있어 자유민주주의를 택해 그 길을 가도록 기여한 부분이 있다. 그런 부분에서 정말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고 본다. 어떤 사람이든 그 사람 일생 전체를 다 논할 수는 없다. 박정희 전 대통령도 만주군 이야기가 있고, 백승엽 장군도 간도 임시정부 이야기가 있다. 한 인물을 두고 처음부터 끝까지 일생 전체를 다 논할 수는 없다. 나 조차도 살면서 낯 부끄러운적이 얼마나 많은 적이 모른다. 이 분들이 일했던 부분을 조명하는 것은 괜찮다고 생각한다.또 칠곡군은 호국의 도시이다. 호국의 도시에는 100점 만점의 호국의 주인공, 60점 70점 주인공, 50점의 주인공도 있을 수 있다. 그런 분들을 모셔놓고, 그에 대한 이야기도 하고 토론회, 학술대회를 열 수 있어야만 진정한 호국의 도시라고 할 수 있다.그런 점에서 저는 호국과 관련된 모든 이슈를 여기 호국의 도시 칠곡에 가져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동상에 계란을 던지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그런 사람도 칠곡에 와서 이야기하고, 태극기부대도 와서 이야기하고, 공론의 장이 되어야한다. 그래야만 칠곡이 진정한 호국의 도시가 되지 않겠나. 순혈주의(純血主義)로 이사람 빼고 저사람 빼고 하는 것보다는 호국과 관련된 이슈들은 호국의 도시 칠곡을 중심으로 자유롭게 이야기 될 수 있었으면 한다. 개인적으로 이제는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있는 시대가 됐다고 본다.칠곡/김락현기자 kimrh@kbmaeil.com

2022-08-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