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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ㆍ특집

도전과 혁신 DNA로 ‘행복한 고령’ 만든다

고령군이 오랜 기간 지속해서 꿈꿔온 것은 ‘군민의 행복’이었다. 군의 슬로건으로 이야기되는 “누구나 살고 싶은 도시”도 그런 차원에서 만들어졌다.고령군은 최근 10년 이상 내외적으로 비약적인 발전을 이뤘다. 그럼에도 거기에 만족하지 않고 ‘더 새롭고 희망찬 고령군’으로의 도약을 준비 중이다.3년을 지속된 ‘코로나19 사태’의 어둠 속에서도 선제적이고 적극적인 대처로 어려움을 이겨온 고령은 이제 지역 실정에 맞는 다양한 정책과 실천을 통해 한 단계 더 나아간 고령군을 꿈꾸고 있다.지난 12년간 도시 경쟁력과 주민 행복감을 높이기 위해 도전과 혁신을 지속한 고령의 그간 행적을 아래에서 구체적으로 점검해보고자 한다. □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군민의 행복’지역민 삶의 질을 한 차원 끌어올리고자 수년 간 다각도로 열정을 쏟은 결실은 고령군 전반에 가시적인 성과로 잘 드러나 있다.보건소 신축을 시작으로 추후 이어진 2015년 문화·체육·복지 복합시설인 대가야문화누리 건립은 주민들의 일상을 새롭게 바꿨다.대가야문화누리는 삶의 품격을 높인 공간으로 자리매김했고, 이후 다산면 행정복합타운, 출산통합지원센터와 아이나라 키즈교육센터, 파크골프장, 쌍림면 행복이음터 등을 지속적으로 건립했다.현재는 다목적 군민체육관 신축, 다산 건강가족센터, 대가야 청춘누리관과 어르신 백세건강센터 건립, 대가야읍·다산면 도시재생사업 등을 추진함으로써 고령군민 삶의 만족도를 높이는데 행정력을 집중하고 있다.사람 중심의 쾌적하고 안전한 도시 환경 구축도 고령군의 행정 목표였다. 이를 위해 도시가스 공급 확대, 지방상수도 급수구역 확장, 노후관로 개량, 하수관거 확충 등 다방면의 정주여건 개선사업을 추진했다.여기에 더해 각종 재난상황 및 사건·사고를 즉각 파악해 대처하는 재난 통합시스템과 스마트 관제시스템을 구축했고, 다산 119 안전센터 개소로 군민 생명과 재산 보호는 물론 양질의 소방 서비스도 제공하고 있다.그외에도 고령군 CCTV 통합관제센터 운영, 개진면 신안지구 수해상습지 개선사업, 소하천정비 종합계획 수립·추진, 회전교차로 설치 확대는 군민들이 안심하고 살 수 있는 환경을 완비하는데 일조했다.지난 2020년 2월 코로나19로 감염자가 폭증하던 위기의 순간에는 주민과 군청이 합심해 선제적 방역 조치를 취함으로써 당시 대구와 인접한 자치단체 중 가장 적은 수의 확진자를 보였다. 이후엔 코로나19 백신예방접종센터 개소, 경북 최초 음압형 워크스루 선별진료소 설치, 발 빠른 백신 보급·접종 등도 신속하게 이어져 안팎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다. □ 경제 기반 구축으로 삶의 질 높아져기업 경영에 좋은 환경을 조성하고, 지속가능한 성장 기반을 다지기 위해 사통팔달의 교통망 구축을 추진한 것도 주목할 필요성이 있다.그 계획 아래 광주-대구고속도로 확장, 국도 26·33호선, 국지도 67호선(우곡~운수), 월성~송곡간 광역도로, 다산 산업레저 연계도로, 성산 인안산업단지 연계도로, 동고령 물류단지 진입도로가 개통됐고, 운수~용암간 국지도 67호선과 성산 득성~다산 송곡 간 지방도 905호선 확장사업도 진행 중이다.동고령 일반산업단지 조성 및 열뫼·월성·송곡 일반산업단지 조성도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으며, 동고령IC 인근 물류단지 건설로 낙동강 경제벨트도 완성 단계에 이르고 있다. 또, 대가야시장 활성화를 위한 문화관광형시장 육성사업, 대구경북 최초 모바일·카드형 지역사랑상품권 출시, 청년 일자리 및 청년 창업지원 사업, 시가지 전선 지중화 사업을 통한 도시미관 개선사업 등도 지역민들의 삶의 질 향상에 적지 않게 기여했다.□ 문화관광의 21세기로 향해 가는 대가야 고령고령군은 5개 시·도 26개 시·군이 참여하는 전국 최대 규모의 행정협의회인 가야문화권 지역발전 시장군수협의회의 의장군이다.이 위치에 걸맞게 지난 10여 년간 영호남의 공동 발전 방안을 모색하고, 통합과 상생의 마중물 역할을 수행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평가다.그간 역사문화권 정비 등에 관한 특별법 제정, 가야문화권 조사·연구 및 복원 정비 국정과제 선정 등의 성과를 거뒀고, 대가야읍에 자리한 지산동 고분군은 유네스코 세계유산 최종 등재를 앞두고 있다.대가야의 옛 도읍으로서 역사성과 상징성을 부여하고자 기존의 고령읍을 대가야읍으로 명칭 변경해 군민의 자부심을 높이고, 고령군을 대가야 역사문화 도시로 각인시키는 계기도 마련했다. 또한 대가야 정체성 확립을 위해 가야국의 시조인 ‘정견모주’와 대가야국의 시조인 ‘이진아시왕’의 정부 표준영정 지정 및 대가야 종묘 건립, 대가야 대종 제작 등도 의욕적으로 추진했다. 이런 역사문화 콘텐츠를 각종 관광자원 개발사업과 연계해 대가야 문화벨트를 완성시킨다는 것이 고령군의 복안이다.가야금의 발상지이자 우륵의 고장으로서 도립 국악단 이전, 고령군립가야금 연주단과 우륵청소년 가야금연주단 창단, 전국 우륵가야금경연대회 개최, 뮤지컬 ‘가얏고’ 제작 등을 통해서는 국악도시로 자리 잡았으며, 2014년엔 서양의 현악기인 바이올린으로 유명한 이탈리아 크레모나시(市)와 우호교류를 맺기도 했다.2005년 처음 시작돼 2022년까지 개최된 대가야체험축제는 매년 30만 명이 넘는 관광객들이 찾는 대구·경북 대표축제로 자리 잡았다.이 축제는 민감하게 변화하는 관광 트렌드에 맞춰 민관 합동의 고령군관광협의회를 구성해 경쟁력을 강화한 덕에 수차례 대한민국 우수축제로 지정됐고, 2017년에는 고령군이 올해의 관광도시로 선정되는 등 구체적 성공 사례도 적지 않았다.얼마 전 열린 2022년 대가야체험축제는 일상으로의 복귀를 바라는 이들이 응답이라도 하듯, 수많은 인파가 몰리며 여행자들의 주목을 끌기도 했다. □ 선진 농업도시와 화합의 행정도시로…21세기 농업이 처한 어려움 속에서 안정적인 소득 기반을 갖추고 새로운 희망을 창출하기 위한 고령군의 노력도 꾸준히 지속돼 왔다.고부가가치 농업도시 조성을 위해 농·축산산업 지원조례 제정, ICT스마트팜 시스템 도입, 농업회의소 설립, 기후변화 대응 작목 보급, 스마트농업 및 정밀과학농업 확대, 땅심 회복 지원사업과 농업인 교육 및 전문경영인 양성에 힘썼고, 농기계임대사업소 확충과 무인항공 병해충 방제사업 등에도 관심을 기울였다. 애플수박, 한라봉, 블루베리, 아로니아 등 새 소득 작목 개발보급 사업도 추진해 농산물 생산 품목 다각화를 통한 기후 변화와 소비자 트렌드 변화에도 능동적으로 대처했다. 여기에 “농산물의 안정적 판로 확보와 산지 마케팅 경쟁력 강화에도 힘을 쏟았다”는 것이 고령군의 설명이다.이와 함께 교육행정 서비스의 질적 강화를 위해 교육지원청을 신축·이전하고, 미국·중국 등 청소년 국제교류사업 확대했다.자아실현의 실천적 학습 시스템을 갖춘 평생교육의 강화와 다산도서관 건립 등 지역 교육 여건 개선사업도 지속적으로 추진했다. 청렴한 공직사회를 위해 전 직원을 대상으로 하는 청렴자가학습시스템을 도입하고, 공사와 관련된 부정부패를 예방하고자 계약 사업주에게 청렴 알림문자를 발송한 것도 좋은 평가를 얻었다.이러한 노력의 결과로 고령군은 ‘공공기관 청렴도 평가’에서 최근 3년간 연속 2등급을 달성했다.앞으로도 고령군은 ‘희망차고 행복한 도시’ ‘대한민국 대표 행복도시’로 도약하기 위해 군민과의 적극적인 소통으로 다수가 공감하는 행정을 펼칠 계획이다.새롭게 시작되는 민선8기 고령군은 또 어떤 변화와 발전의 청사진을 그려가며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줄까? 이에 주목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고령/전병휴기자 kr5853@kbmaeil.com

2022-06-19

다시 하늘과 맞닿을 날, 천년을 숨겨온 미소와 만난다

경주국립공원 새갓골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남산에 오를 준비를 했다. 관광객이나 여행자가 드문 평일 오전이었다.까마득히 먼 옛날 8세기에 만들어져 수백 년 전에 쓰러졌고, 아직 넘어진 그 형상 그대로 엎드려 땅을 보고 있는 ‘열암곡 마애불’을 조용한 가운데 세밀하게 관찰하고 싶어서였다.주차장에서 만난 경주국립공원 안내원은 “가볍게 산책하듯 올라가면 됩니다. 20~30분이면 도착할 수 있을 걸요”라며 더위가 시작된 초여름 산에 오를 기자의 긴장감을 풀어줬다.그러나, 매일 남산을 오르내린다는 안내원과 보통 사람의 산행 속도는 달랐다. 체감하는 힘겨움 역시 같을 수 없었다.한 번도 쉬지 않고 30분쯤을 헉헉대며 걸었다. 종아리는 뻐근했고 셔츠가 땀에 젖었다. 그때서야 마침내 거대한 바위 전면에 몸을 숨긴 마애불이 우뚝한 콧날을 드러냈다.마애불(磨崖佛)은 ‘바위에 새겨진 부처’를 의미한다. 경주만이 아닌 한국, 더 나아가 인도와 중국에도 다양한 기법으로 새긴 마애불이 적지 않다.지난 2000년으로 시간을 되돌려보자. 아프가니스탄 바미안 지방의 암벽에 우뚝 섰던 2개의 불상, 즉 마애불은 높이가 각각 52.5m와 34.5m였다. 세계에서 가장 컸던 이 마애불은 불교 유물을 이단(異端)으로 규정한 과격 이슬람 세력에 의해 폭파됐다.탈레반이 주도한 이 행위는 인류의 공동자산이라 할 문화예술을 모독하고, 인간이 축적한 역사의 시간을 거스르는 행동이었기에 세계 각국의 비판을 받았다.경주 남산의 마애불은 이 같은 인위적인 이유로 쓰러진 것은 아닌 듯하다. 대부분의 학자들은 신라 혹은, 조선시대에 발생한 지진이 남산 열암곡 마애불의 붕괴 이유라고 추정하고 있다. □ 마애불, 경주 남산에서 1천200년의 시간을 뛰어넘다남산 마애불은 높이가 4m60cm, 부처가 새겨진 바위의 무게가 80t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만약 이 불상이 온전한 형태로 지금까지 보존됐더라면 4세기 중국에서 만들어진 둔황의 천불동(千佛洞)에서 받은 감동을 경주에서도 느낄 수 있지 않았을까?이마에 맺힌 땀을 닦고 유물 보호를 위해 쳐놓은 철망 가까이 다가가 마애불의 얼굴을 올려다봤다.매끈한 코와 얼굴 형상이 어제 만든 것처럼 또렷했다. 도저히 1천200년 전에 새겨진 불상이라고는 보이지 않았다. 바위에 깃든 부처는 저 홀로 시간을 뛰어넘고 있었다. 경외감이 느껴졌다.경주 남산은 1971년 경주국립공원 남산지구로 지정됐고, 1985년엔 사적 제311호가 됐다. 지난 2000년 12월에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경주 역사유적지구)으로 등재되기도 했다. 아름다움과 그 안에 간직한 수많은 유물을 인정한 결과다.‘남산 마애불’ 또는, ‘열암곡 마애불상’으로 불리는 이 유물은 언제 어떤 경로로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을까?이 의문에 관해 경주문화재연구소가 펴낸 ‘경주 남산 열암곡 마애불상 정비 보고서’는 이런 답변을 들려준다.“2007년 5월 22일 경북 경주시 내남면 노곡리 산119번지, 열암곡 석불좌상((列岩谷 石佛坐像)에서 남동쪽으로 30m 정도 떨어진 지점에서 발견되었다. 당시 이곳에는 열암곡 석불좌상과 그 주변 사역에 대한 발굴조사가 진행 중이었다. 사역 안에는 광배와 대좌를 갖춘 열암곡 석불좌상의 구성 부재가 흩어져 있었으며, 석불좌상의 보수·정비를 위해 유실된 부재 여부와 사역 배치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발견됐다.”주변 다른 불상의 조사와 발굴 과정에서 그야말로 ‘우연히’ 찾게 된 남산 마애불은 발견 당시부터 역사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끌었다.“언제 만들어진 것인지” “왜 쓰러졌는지” “어째서 일으켜 세우지 못했는지” 등의 의문은 발견 후 15년이 지난 현재까지 온전히 풀리지 않은 수수께끼다. □ 안전한 보존 위해 철 구조물과 CCTV 등 설치바위에 불상을 새기는 건 흔하게 볼 수 있는 불교미술의 한 양식이다. 학자들은 2~3세기 고대 인도의 석굴사원 조영에서 마애불 양식이 시작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이 양식이 서역을 거쳐 중국과 한국으로 넘어왔다고 보는 게 일반적 견해.인도의 경우 초기에는 바위로 생성된 굴의 벽에 부처의 일대기와 관련 설화를 표현하다가 차츰 불상을 새기는 방식으로 변화했다.한국의 경우엔 7세기를 전후해 충청도 해안 지역에서 마애불이 처음 나타나기 시작한다.경주 마애불은 신라가 통일 후 번성기를 누리던 8세기 즈음에 새겨진 것으로 학계에서는 추측하고 있다.발견 당시와 달리 현재는 보존과 복원을 위한 과정이 진행 중이라 쓰러진 마애불 바로 앞까지는 접근이 어렵다.외부 요인 탓에 발생하는 미세한 움직임을 관찰하기 위한 기계 장치가 설치됐고, 더 이상의 훼손을 막기 위해 철망과 CCTV도 갖춰졌다. 또한, 인근 바위의 추가적인 붕괴를 방지하고자 철 구조물까지 추가로 제작됐다.첨단 장비와 육중한 철제 구조물로 현대적 보호 장치를 완비해놓았음에도 남산 마애불 주위에선 고대의 신비스런 향기가 수시로 풍겨온다.불상의 코와 바닥의 간격은 겨우 5cm 안팎. 어떤 역사학자는 이 틈을 ‘기적의 5cm’라 명명하기도 했다. 남산 마애불은 쓰러지는 순간에도 수백 년 후 자신을 발견할 사람들을 배려한 것일까?□ 발견 초기부터 붕괴 이유 파악과 복원 논의 진행돼지면에 거의 닿을 듯 엎드린 형태라 남산 마애불의 전체 형상을 육안으로 확인하기는 어렵다.다만 발견 초기부터 마애불의 보존과 복원 과정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던 경주문화재연구소의 아래 설명을 통해 전체 모습을 대략 짐작할 수 있다.“열암곡 마애불상은 소발의 머리에 높은 육계가 표현되어 있다. 타원형의 얼굴에는 오뚝하게 솟은 코와 아래로 내리뜬 길고 날카로운 눈매, 그리고 도톰하고 부드럽게 처리된 입술 등이 조각돼 있다. 귀는 어깨 바로 위까지 내려오고 목에는 볼륨감 있는 삼도가 표현됐다. 불상의 수인은 왼손 등을 바깥으로 하여 손가락을 가지런히 펴서 가슴 위에 얹었으며, 오른손 역시 손등이 밖을 향하고, 엄지손가락을 안으로 감싼 채 네 손가락을 가지런히 하복부에 대고 있는 특이한 형식이다.”남산 마애불이 쓰러진 이유가 무엇인지에 관해서는 여러 가지 견해가 있다. 지난 2018년 한국건설기술연구원은 “1430년에 발생한 규모 6.4의 지진으로 넘어진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았다. 하지만, 다른 연구자는 신라시대에 발생한 지진이 마애불을 넘어뜨렸다고 주장하기도 한다.정확한 붕괴 이유 파악과 함께, 보존과 복원을 위한 노력도 15년간 꾸준히 이뤄졌다.“미적경관 정비, 탐방객을 위한 출입로, 마애불상 주변 배수로 작업 등 마애불상의 안전과 관람을 고려한 일련의 작업들이 하나씩 추진되었고, 마애불상 아래 석축 축조와 수목 식재 등을 통한 주변 지반의 붕괴를 미연에 방지하도록 하는 조치가 이어졌다”는 것이 이와 관련한 경주문화재연구소의 부연이다.그렇다면 남산 마애불이 발견된 2007년부터 2022년 현재까지 붕괴 원인 조사, 보존·복원 방안 연구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진행돼 왔을까? 다음 회에선 그것들을 알아보기로 한다. 기왕 경주 남산까지 갔다면…바로 옆 쪽 ‘열암곡 석불좌상’‘봉화곡 봉수대’ ‘염불사지’ 등발걸음마다 역사·예술 ‘만끽’쓰러진 마애불을 보러 경주 남산까지 갔다면 주위에 흩어져 있는 귀한 신라의 유적과 유물을 함께 보지 않을 이유가 없다.경주국립공원 새갓골주차장을 출발해 남산 마애불상이 위치한 곳까지 오르면 바로 옆엔 ‘열암곡 석불좌상’이 자리해 있다. 파손된 채 흩어진 조각을 모아 복원한 불상으로 연꽃무늬 대좌와 화려한 광배가 눈길을 끈다.산행을 좋아하는 관광객이라면 거기서 더 올라가 ‘봉화곡 봉수대’와 8세기 신라 불상의 특징을 가장 잘 보여준다는 국보 ‘칠불암 마애불상군’과 만나도 좋을 듯하다.조금 더 힘을 내서 등산을 지속한다면 ‘기이한 승려의 염불 소리가 먼 산에서 서라벌 성안까지 들렸다’는 설화가 전하는 ‘염불사지’에도 이를 수 있다.역사와 불교문화에 관심이 있는 여행자라면 시간을 내 한 번쯤 찾아보길 권한다./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2022-06-14

‘사통팔달 철도망’ 시동 김천, 철도교통 허브 도약 날개 편다

김천시는 국토 중심에 위치한 지리적 이점과 사통팔달의 교통의 중심도시로서 KTX, 일반철도, 고속도로, 국도가 십자축을 이루며 교차하는 남부내륙의 교통 요충지이다.지난해 발표된 ‘제4차 국가철도망 구축계획’에 김천∼거제, 김천∼문경, 김천∼전주를 연결하는 철도 신설과 대구권 광역철도 김천 연장 등 4대 사업이 모두 반영됐다. 김천시는 이러한 교통 인프라 확충을 성장 동력으로 십분 활용하여 미래 100년을 내다보는 지역발전의 기반을 튼튼히 다지고 있다.최근 국토교통부에서 김천에서 거제를 연결하는 남부내륙철도 건설사업은 기본계획을 확정하고, 2027년 준공을 목표로 기본 및 실시설계를 착수함에 따라 상반기 타당성조사 발표 예정인 중부내륙철도(김천∼문경)와 연계하여 수도권과 남해권을 연결하는 광역철도망이 구축되어 김천이 철도교통의 중심허브 도시로 거듭날 것으로 보인다.뿐만 아니라 김천에서 전주를 잇는 동서횡단철도도 금년 상반기 사전타당성조사용역을 착수하였고, 높은 경제성을 확보한 대구권 광역전철 김천 연장 사업 또한 높은 경제성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재선에 성공한 김충섭 김천시장은 “물류·교통의 허브도시로 거듭날 김천시는 혁신도시와 일반산업단지의 순조로운 정착에 이어 인구 30만 이상의 중추도시로의 발전을 실현하는 중대한 기회를 가졌을 뿐만 아니라, 국토균형발전의 거점도시로 도약할 여건을 충분히 갖추고 있다”고 자부했다.남부내륙철도(김천∼거제간)기본·실시설계 추진… 2027년 개통총연장 177.9㎞ 총 4조8천억원 투입1966년 기공식까지 치른 김천∼삼천포간의 김삼선(金三線) 철도가 김천∼사천(舊삼천포)∼거제 간 남부내륙철도로 이름표를 바꿔달고 사업에 착수했다.정부의 ‘2019 국가균형발전 프로젝트’에 포함되어 국무회의 의결을 거쳐 예비타당성조사 면제사업으로 선정된 후 기본계획을 확정·고시했고, 현재 기본 및 실시설계를 추진중에 있다.경북 김천시에서 경남 거제시까지 연결하는 남부내륙철도는 총연장 177.9㎞에 4조8천억원을 투입하여 2027년 개통하게 된다. 철도가 완공되면 김천에서 서울까지 1시간 30분, 거제까지 1시간 10분에 도달이 가능하여 수도권과 중부내륙 및 남해권을 연결하는 중심지로서 김천이 교두보 역할을 담당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김천시는 김천∼거제간 남부내륙철도의 조기 착수를 위해 철도가 통과하는 9개 시군과 행정협의체를 구성하여 긴밀한 협조체계를 구축하였고, 김충섭 시장과 송언석 지역 국회의원이 함께 정부를 비롯한 관련기관을 수차례 방문·건의한 결과 2019년 12월 기본계획수립 용역이 착수됨에 따라 남부내륙철도 건설 사업이 본격적으로 가시화됐다.남부내륙철도 건설로 김천시는 남해권의 풍부한 해양·관광자원과 수도권의 인적·물적 자원을 효과적으로 공급하는 물류교통의 거점도시로 새롭게 도약할 뿐만 아니라, 인접한 구미, 상주, 영동, 무주 등의 자치단체와의 연계를 통한 문화, 관광, 지역 특화사업 발전도 크게 견인할 것으로 기대된다. 중부내륙철도(김천∼문경·수서간)문경~김천 구간 71㎞ 1조2천억 들여상반기중 예비타당성 조사결과 발표김천시는 수서∼문경간 중부내륙철도를 남부내륙철도(김천∼거제)와 연계한 철도교통망을 구축하기 위해 많은 정성을 드렸다. 이를 위해 관련부처를 방문·건의한 결과, 2016년 제3차에 이어 2021년 제4차 국가철도망구축계획에 “철도운영 효율성제고를 위한 단절구간 연결사업”으로 반영되었으며, 올해 상반기 중 예비타당성 조사결과를 발표 할 예정이다.중부내륙철도는 수도권인 수서에서부터 이천, 충주를 거쳐 문경을 잇는 철도사업으로서 2구간으로 분리 추진되고 있으며, 이천∼충주구간은 2021년, 충주∼문경 구간은 2023년 준공 계획이다.중부내륙철도 문경∼김천간 건설사업은 총연장 71㎞에 1조 2천억원이 투입되며 사업이 완료되면 기존의 중앙선·경북선의 용량부족 해소는 물론 철도운영의 효율성을 증대시키고 나아가 국토 균형발전을 도모할 수 있는 시너지 효과가 매우 높을 것으로 보고 있다.김천∼문경간 철도는 수도권과 남부권을 연결하는 또 하나의 국가 대동맥을 구축하고 남부내륙철도(김천∼거제간)와 연계하는 내륙철도망이 완성됨으로써 국토의 효율적인 발전과 연결이라는 측면에서 김천시가 중추적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는데 큰 의미가 있다.동서횡단철도(김천∼전주간)지난해 타당성 인정 노선 특별 지정연내 사전 타당성 조사 마무리 계획동서횡단철도는 제2차에 이어 제3차 국가철도망구축계획에 반영되어 사업의 필요성은 공감하였으나, 사업추진이 더딘 상황이었다.그러나 김천시는 철도관계 부처에 지속적인 건의요구를 하는 한편, 지난 2020년 11월 경상북도와 전라북도를 비롯한 철도노선 지자체장의 공동건의문과 시민들의 호소문 제출 등을 거쳐 지난 2021년 7월 제4차 국가철도망구축계획에 “타당성이 인정되면 사업을 추진하는 노선”으로 특별 지정되었다.금년에 사전타당성 조사용역에 착수하여 금년 12월 완료할 계획으로 김천시는 국토교통부와 철도통과 노선 지자체와 긴밀히 공조해 노선신설의 경제성 확보를 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일 방침이다. 대구권 광역철도 김천 연장국가철도망구축계획 신규 사업 반영사업완료땐 1일 61회·15분간격 운행경부고속철도 개통에 따라 기존 경부선의 여유 용량을 활용한 저비용 고효율 사업인 대구권 광역철도가 기획재정부의 예비타당성 조사를 거쳐 기본 계획을 수립하고 2019년 4월 착공하는 등 본격적으로 건설되고 있다.대구권 광역철도는 1,200억원을 투입하여 대구시청으로부터 반경 40㎞이내에 전체구간이 포함된 구미에서 경산까지 총 연장 62㎞를 광역철도 노선으로 지정하고 2023년 개통을 목표로 사업을 추진 중이다.김천시는 도시간 대중교통 역할 수행은 물론 지역발전과 경제 활성화를 도모하기 위해 구미까지 계획된 대구권 광역철도를 김천까지 연장해 줄 것을 적극적으로 요구하기 위해 김천∼구미간 연장 사전타당성 조사용역을 실시했으며, 그 결과 경제성과 사업성이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이에 제4차 국가철도망구축계획 신규사업으로 반영되어 대구권 광역철도의 김천 연장을 위한 사업이 탄력을 받고 있다. 사업이 완료되면 1일 61회, 15분 간격으로 운행된다.김천시는 “대구권 광역철도 김천 연장 운행으로 대구와 경북남서부지역이 하나의 생활권으로 형성되면서 지역의 균형발전과 경제권의 확대 등 대구·경북의 상생발전을 더 촉진시킬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재선에 성공한 김충섭 김천시장은 “교통 인프라 확충을 성장 동력으로 십분 활용하여 미래 100년을 내다보는 지역발전의 기반을 튼튼히 다지겠다”며 철도와 연계한 미래 신산업 육성 의지를 피력했다. 김천시는 도로교통 여건 개선과 도시의 균형발전을 위해 도로교통망 확충 및 SOC기반 구축사업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있다.김천에서 거창을 연결하는 국도3호선 확장사업은 총연장 44㎞에 4,300억원을 투입하여 2022년 개통될 예정이며, 김천에서 구미 선산간 국도59호선은 총연장 16㎞에 495억원을 투입해 2023년 준공예정으로 토지보상 및 구조물 시공 공사를 진행에 있다.또한, 도심지 교통체증과 국도의 기능향상을 위한 국도대체우회도로 건설사업은 총 4개 구간을 단계별로 시행하고 있다. 2,573억원을 투입해 1·2단계 양천∼농소월곡∼어모옥률간 18.2㎞는 개통되었고, 현재 3단계 구간인 어모옥률∼대항대룡간 6.94㎞는 1,235억원을 투입해 2023년 개통 예정이며, 4단계 구간인 대항대룡∼양천구간은 제5차 국도·국지도 건설계획에 반영되어 설계용역에 곧 착수할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도심 네트워크 간선도로망 확충사업으로 시청에서 혁신도시간 연결도로 개설사업은 총 연장 5.6㎞에 1,483억원을 투입해 4~6차로로 2023년 개통예정으로 시청에서 환경사업소 1구간은 대신터널과 함께 2021년 10월 개통했으며, 국도·고속도로, 감천을 횡단하는 교량 설치를 완료했고 현재 경부선 철도 횡단교량을 시공 중에 있다. 그 외 김천대학교∼봉산면간 도로확장 2.2㎞ 구간에 255억원, 대홍맨션∼묘광마을간 도로확장 2.45㎞ 구간에 176억원, 신음동 금음마을∼아홉사리 도로개설 0.7㎞ 구간에 95억원, 양천 진입도로 개설 0.25㎞ 구간에 75억원 등 총 14개 지구에 2,300억원의 예산을 투입하여 연차적으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김천시는 도심네트워크 간선도로망 확충 및 도시계획도로 개설사업을 지속적으로 추진해 도심지 교통체증을 해소하고, 농촌지역의 정주여건 개선을 위한 지역현안 도로사업을 통해 지역균형 발전을 촉진시켜 농촌과 도시의 조화로운 발전과 미래에 지속가능한 도시를 만들어 가고 있다.김천/나채복기자 ncb7737@kbmaeil.com

2022-06-13

영주 미래 100년, 산업·문화·먹거리로 키워나간다

영주시는 지역의 균형적 발전과 미래지향적 행정 계획을 바탕으로 후손에게 물려줄 경쟁력 있는 도시 건설을 위해 다양한 제도의 개선과 100년 먹거리 마련을 위한 노력에 중점을 두고 역량을 모으고 있다.이 가운데 산업을 통한 미래 역량을 결집한 베어링산업 국가산단, 2022영주세계풍기인삼엑스포, 세계 속의 문화관광 중심 도시로서의 성장, 한 테마파크 사업으로 추진 중인 선비세상은 영주 미래의 새로운 동력이 될 전망이다.◇첨단베어링산업 국가 산단첨단베어링 국가산업단지조성사업 시행예정자인 경상북도개발공사가 국가산업단지계획 승인 신청서를 지난달 26일 국토부에 제출해 본격적인 절차에 들어갔다.영주시는 국내 베어링산업 앵커기업인 일진그룹 (주)베어링아트를 발판으로 첨단베어링산업을 지역의 대표산업으로 육성하기 위해 국내 유일의 베어링 전문연구기관인 하이테크베어링 시험평가센터 건립, 베어링 관련기업, 연구소 유치에 나서는 등 베어링산업 중심지 기반구축을 적극 추진 중이다.베어링 클러스터 사업은 총 5천억원 규모로 국토부 사업으로 2천500억원이 투여 되는 베어링국가산업단지 조성사업과 산업부 사업으로 2천500억원이 투자 되는 첨단베어링 제조기반 구축, 핵심원천기술 개발과 고부가 베어링 제조기술개발, 베어링 전문 인력 양성 및 사업화 지원 사업으로 구분된다.사업대상지는 영주시 적서동, 문수 권선리 일원에 130만㎡ 규모로 조성된다.영주를 중심으로 인접한 중부내륙 3개도 8개 시군(충북동부, 강원남부, 경북북부) 1만5천개 일자리 창출과 인근 동양대학교 외 6개 지역대학 인재확보 및 청년 일자리 창출에 큰 몫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베어링클러스터 조성 사업은 2027년까지 준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서산~영주~울진 잇는 중부권 동서횡단철도중부권 동서횡단철도는 충남 서산을 출발해 당진·예산·아산·천안, 충북의 청주·괴산을 거쳐 경북의 영주·문경·예천·봉화를 지나 울진까지 한반도 동서를 가로지르는 330㎞의 철길이다.중부권 동서횡단철도는 문재인 정부 100대 국정과제였지만 경제성 평가에서 낮은 평가를 받으며 지난해 6월 정부의 제4차 철도망 구축 계획에 반영되지 않았다.그러나 이번 대선 과정에서 여·야 후보가 모두 중부권 동서횡단철도 공약을 내놓으면서 탄력을 받을 수 있을지 주목 되고 있다.윤석열 대통령은 후보 당시 동서횡단철도를 공약에 반영시키고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동서횡단철도를 예타 면제사업으로 적극 추진할 것이라 해 사업 추진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동서횡단철도가 성사될 경우 영주시는 철도구간 연계 12개 도시와 관광, 경제, 문화 등 다양한 부분에 접촉이 가능해져 지역간 균형발전 및 영주지역 성장에 또다른 토대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중부권 12개 시·군은 동서횡단철도 건설을 촉구하고자 2016년 시장·군수들로 구성된 협력체를 구성, 사업의 조기 추진을 위해 공동으로 대응해왔다. ◇한(韓) 테마파크 선비세상한국문화의 전통적 가치를 재조명하고 선비인성 교육의 중심지가 될 한국문화테마파크 선비세상은 다양한 체험 콘텐츠와 차별화된 인성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해 명실상부한 한국문화·선비문화의 메카로 개장을 앞두고 있다.대한민국 한(韓) 문화의 중심지가 될 선비세상은 한복, 한식, 한옥, 한글, 한지, 한음악 등 6가지 테마의 매력 있는 한 스타일을 담아내고, 전통문화와 선비정신의 세계화, 관광화, 산업화를 이루어 영주의 100년 미래 문화산업으로 키워나가게 된다.영주가 가진 유네스코 세계유산 소수서원과 선비촌을 활용한 인성 프로그램 활성화와 세계인성 포럼 개최, 선비대상 시상, 국립인성교육진흥원 유치로 인성교육의 중심도시로 성장시켜 나갈 예정이다.선비세상은 전국 단일 최대 전통문화 단지로 한옥, 한복, 한식, 한글, 한지, 한음악 등 브랜드 6개 분야가 주 테마다.선비세상은 총 사업비 1천473억 원을 들여 순흥 선비촌 인근에 96만974㎡ 규모로 조성 중이다.영주시는 옛 전통과 선비문화를 영주의 대표적 경쟁력으로 키운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다.이를 위해 순흥면과 단산면 일원 960,974㎡(약 30만평)면적에 총사업비 1천670억원을 들여 한테마파크 선비세상은 한문화 RD지구, 전통숙박, 전통문화지구로 꾸며진다.◇2022영주세계풍기인삼엑스포500여 년의 역사를 가진 국내 재배삼의 시배지인 영주시 풍기읍 풍기인삼문화팝업공원 일원에서 ‘인삼, 세계를 품고 미래를 열다!’라는 주제로 올해 9월 30일부터 10월 23일까지 2022영주세계풍기인삼엑스포를 개최한다.이번 엑스포는 인삼의 ‘생명력’, ‘인류 행복’, ‘미래 산업’ 등 3가지 핵심 가치를 바탕으로 고려인삼의 우수성을 세계적으로 알려 인삼 종주국으로서의 위상 회복과 국가 브랜드 가치를 높이고 인삼이 먹을거리로서만이 아니라 다양한 산업으로 나갈 수 있는 방향을 모색하고자 개최된다.2022영주세계풍기인삼엑스포는 국내·외에 풍기인삼의 브랜드 가치 극대화를 통한 미래가치를 공유하고 고려인삼 산업의 해외 진출과 투자 활성화를 통한 영주시의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풍기인삼을 기반으로 한 신산업 육성과 지역 경제 도약의 발판으로 삼는데 목적을 두고 있다.엑스포를 통해 생산유발 2천474억원, 부가가치 유발 1천5억원, 취업인구 2천798명과 인삼산업 경쟁력 강화와 발전을 통해 산업적 기반 조성과 인삼의 주산지이자 시배지로서의 위상과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사회적, 문화적 발전을 목표로 하고 있다. ◇신소득 작목 영주 별사과, 한라봉영주시 봉현면 가을향기 농원을 운영 중인 장석철(59)씨가 품종 개발한 ‘별 사과’가 소비자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으며 영주시의 새로운 신소득 작목으로 주목 받고 있다.영주 지역에서만 생산되는 별 사과는 가을 스타라는 신품종으로 한입 크기의 사과로 생김새가 별모양을 닮았다.별사과는 2017년 5월 국립종자원에 품종등록을 했다. 별모양이 선명하고 빨간색을 띠는 가을 스타는 10월 말부터 수확이 시작된다.당도는 17-19Brix로 육질이 단단해 저장 기간이 길며 맛과 향이 깊다. 별 사과는 육질이 단단해 저장 기간이 길고 유통 과정에서 발생하는 변질 가능성이 낮아 상품화에 경쟁력이 높다.별사과는 재배농가가 늘면서 작목반을 형성하는 등 영주 신소득 작목으로서 기반을 다져나가고 있다.시는 IoT 기반으로 2018년도부터 실시한 만감류 지역적응 시험연구를 통해 한라봉으로 널리 알려진 부지화가 영주지역에서 재배 가능하고, 경영비 분석 결과에도 신소득작목으로 육성 가능한 것으로 확인됐다.만감류는 감귤나무 품종과 당귤나무(오렌지) 품종을 교배해 새로 육성한 감귤류 과일을 지칭하는 것으로, 생육비대와 열과 방지를 위해 5~6월에는 하우스 내 주간 온도가 28℃이하로 관리를 해야 하고, 7~9월에는 하우스 내부 온도가 30℃이하로 관리한다.영주시에서 생산되는 부지화는 스마트팜을 통한 생산량 증가와 지역적 특성을 반영한 네이밍으로 소비자들에게 쉽게 기억되며 많이 찾는 농산물 브랜드로 성장 가능성을 높여 별사과와 함께 신소득 작목으로 미래 농업을 열어나가고 있다. 영주/김세동기자

2022-06-07

피어린 의병 격전지이자 3대 대장 최세윤 출생지 포항엔 추모비 하나 없어

의병들은 홍해 전투 이틀 후에 다시 청하군 읍내를 공격해 순검 김학윤의 의복 및 관급품을 빼앗고 연이어 흥해 분파소를 공격해 적 2명을 죽이고 무기를 압수하였고, 분파소 및 관계 건물 3동을 소각했다.12월 5일에는 영덕군 주방(周防)에서 일본군 영덕분견대를 야간에 습격해 격파하였으나, 12월 6일 새벽에 일군경의 기습으로 의병 제2초장 남경숙이 전사하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이날 의병들은 마산(馬山·이전평 동방 약 4리)으로 퇴각했다. 이튿날 남경숙의 전사에 격분한 정환직이 부하 83명을 데리고 영덕을 역습했다. 이때 무기 28정을 빼앗고, 쟁암동(靜岩洞)에서 적 2명, 유암동(酉岩洞)에서 적 1명, 도천동(道川洞)에서 적 4명을 죽인 후 영덕읍의 분파소 및 관계 건물을 소각시켰다.이에 일본군은 바닷길을 이용해 도망했다. 영덕에서 일본군이 패하여 도망가자 정환직은 본진을 이끌고 청하로 회군했다.이 무렵 일본군은 계속 지원을 받아 그 기세가 강성했던 반면, 의진은 탄약과 장비가 고갈된 상태. 정환직 부대의 관동으로의 북상계획은 현실적으로 좌절되었고 눈앞에 있는 적과 투쟁하기에도 힘겨웠다.1907년 12월 8일 청하군 각전(角田·뿔밭)에 모인 의병들에게 정환직은 힘겨운 결정을 내렸다. “내가 먼저 관동에 들어가 여러분들을 기다릴 것이니 여러분들은 각지로 나아가 탄약과 의복 등을 구해 관동으로 들어오라”고 명했다.이에 따라 의병들은 별도로 계획을 세우고 상인 혹은, 농부로 변장해 각지에서 탄약을 구한 뒤 관동지방에서 다시 회합하기로 기약 없는 약속을 하고 소부대별로 헤어졌다. △정환직, 죽장 상옥에서 체포돼 영천에서 피살청하군 뿔밭에서 소부대로 나눈 의병들은 각자 무리를 이루어 일본군을 공격하면서 북상을 시도했다. 정환직은 대부분 부하를 해산시킨 후 6명만 데리고 청하군 북면 고천동(高川洞·현재 죽장면 상옥리)에 사는 동서 구칠서의 집으로 갔다.나머지 분산된 의병들은 뿔밭에서 고개를 넘어 상옥을 거쳐 영덕 옥계계곡을 지나 개별적으로 북상했다. 그러나 불행히도 1907년 12월 10일 옥계계곡 끝머리에 있던 영덕군 대서면 옥녀암동 민가에서 북상하던 정환직의 부하 이봉수와 박기원이 미리 정보를 알고 포위망을 좁혀오던 일본군 보병 14연대 11중대에 포로로 잡혔다.니시오카 중대장이 이끄는 11중대는 이들을 고문해 정환직의 움직임과 각 부대가 사방에 흩어져 은신해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정환직의 은신처를 알아낸 니시오카는 이날 오후 1시경 부대를 출동시켜 1907년 12월 11일 오전 5시 30분 상옥리 계곡에 산재해 있는 90여 호에 달하는 민가를 수색하기 시작했다.한편, 정환직은 전날 상옥1리에 있는 구칠서의 집에서 하루를 묵었다. 정환직은 같이 데리고 온 의병 6명을 턱골바위 고개에 배치해 적의 동태를 살피게 했다.1907년 12월 11일 아침 8시 30분경 정환직은 급히 구칠서의 집을 빠져나와 그곳에서 북쪽으로 약 500m 떨어진 턱골바위 매복지로 갔다. 이때는 이미 일본수비대가 상옥 2리 쪽에서 그곳을 향하여 내려오는 중이었다.이를 본 의병 보초 중 몇 명이 지레 겁을 먹고 도망치기 시작했다. 도망가지 않고 현장에 남아있던 3명의 의병은 정환직을 보호하기 위하여 끝까지 응사하였으나 일부는 현장에서 즉사하고 일부는 체포됐다.정환직 역시 이날 오전 8시 40분경 일본군들에게 체포되었다. 정환직은 청하군에 있던 수비대에 인치되었다가 1907년 12월 17일 대구로 호송되던 중 영천 남교(南郊)에서 총살됐다. 산남의진의 총수이자 제2대 의병 대장이었던 정환직이 일본군에게 재판도 없이 총살당함으로써 산남의진은 또다시 큰 시련을 맞게 되었다.1907년 12월 11일, 정환직이 체포되던 날, 일본군 수비대는 사지를 갈가리 찢어 누구 시체인지 분간하지 못할 정도로 훼손한 의병의 시신 3구를 죽장면 상옥리 현장에 둔 채 정환직만 데리고 떠나버렸다.이 시신들은 3일간 현장에 방치되다가 왜군들이 완전히 철수한 것을 확인한 마을 주민들이 대충 사지와 목을 맞추어 관도 없이 그곳에 묻었다. 이들이 끝까지 목숨을 걸고 정환직을 보호하기 위해 항전한 것으로 보아 산남의진 본부에 속한 심복이었을 것으로 추정되나, 그들이 누구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흥해 사람 최세윤 3대 대장, 옥중에서 순국정환직이 일본 군사들에게 총살을 당함으로써 대장이 없는 과정에서도 산남의진 의병들의 투쟁은 계속 이어졌다.1908년 1월 8일 의병 약 30명이 영천 북안면에서 일본인 오우라 다쓰조(大浦辰藏)를 살해하였다. 1월 12일 손수조 등 의병 200여 명이 이석이의 지휘로 청하주재소를 공격하였으나, 의병 19명이 전사하는 피해를 보았다.의병들은 이에 굴하지 않고 이튿날 의병 수십 명이 흥해 순사주재소를 습격해 일본인 순사 1명과 한국인 순사 1명을 총살했고, 1월 25일 의병 약 50명이 의성분파소의 적수비대를 습격했으나 소득 없이 퇴각하였다.같은 날 이진규 등 의병 수십 명이 청하군 순사주재소를 습격하였으나, 이진규가 체포되는 비운을 겪기도 했다. 이후 산남의진은 흥해사람 최세윤을 추대해 3대 대장으로 삼았다.최세윤 부대는 무기와 인원, 보급 등 여러 가지 여건이 갖추어지지 않은 열악한 환경에서도 경상북도 전역에서 1910년 6월경까지 활동을 했다. 그러나 결과는 무수한 희생자만 나왔다.이런 피해는 산남의진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었다. 1907년 7월부터 1908년 5월 19일까지의 의병 희생자가 총 1만3천445명에 달했다. 이에 비하여 일본 측은 수비대 56명, 경찰 55명, 헌병 4명으로 모두 115명이 사살되었다.단순계산으로 일본 군경 1명당 의병은 117명이 숨졌다. 이를 보면, 1905년부터 1910년 말까지의 국권 회복을 위한 의병 활동인 후기의병 전쟁은 의병과 일본 군경 간의 전투라기보다는 일본 군경에 의한 일방적인 의병 학살 전쟁이라 해야 맞는 말이다. 결국, 최세윤은 1911년 초가을, 장기군 용동에서 체포되어 서대문형무소에서 수감생활 중 순국했다.△포항에도 최세윤 추모하는 비석 하나는 세워야3대 대장까지 없어진 산남의진은 각기 흩어져 항전을 계속하다가 대개는 순절, 투옥 또는, 국외로 망명했다. 산남의진 선봉장으로 끝까지 살아남았던 우재룡은 1915년 7월 15일 대한광복회를 결성한 주역 중 한 사람이 되었다.일제강점기 36년의 설움을 극복하고 나라를 되찾았을 때, 그 광복의 중심에 섰던 대한광복회에서는 그 이듬해인 1946년 2월에 산남의진 창의대장 정용기와 참모장 손영각 등 많은 장졸이 전사한 포항 죽장 입암전투지를 찾아 위령제를 올렸다.이를 계기로 산남의진의 역사를 공적인 기록으로 남기자는 의견이 모아졌다. 집필자인 이종락·이병기 등은 의진에 직접 참여하여 활동하였던 이순구를 비롯한 참여 의사들의 증언과 유족들의 증거자료들을 참고하여 ‘산남창의지’를 써서 남겼다.그간 이어진 3회의 연재기사를 통해 확인했듯 일제강점기 참담한 상황에서 보여준 산남의진의 애국심과 투쟁의지는 실로 위대한 것이었다.그렇기에 산남의진의 대장 정용기·정환직 부자의 출생지인 영천은 일찍부터 산남의진 의병들을 추모하는 기념물을 건립하고 관련 행사를 열어왔다. 인근 영덕 또한 당시 의병장이던 신돌석 장군을 추모하며 신돌석기념관을 세웠는가 하면, 성역화사업을 지금도 이어가고 있다.하지만, 산남의진 3대 대장 최세윤이 태어난 포항엔 그를 기념하는 추모비 하나 없다. 산남의진 1~3대 대장들과 함께 나라를 지키고자 목숨을 걸었던 700여 명의 의병들은 대부분 포항 죽장 일대 사람들이 아닌가. 그들을 기억하고 추모하는 것이야말로 지역의 정체성과 자긍심의 문제와도 연결되는 것일 터. 그래서 제의한다.포항시민의 힘으로 도시공원 한 모퉁이에라도 좋으니 산남의진 추모비 하나쯤은 세우자. 이름 없이 죽어간 의병들의 넋을 거두고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서도 이제 이 일을 더 이상 늦출 수 없다. 포항 흥해 사람 최세윤 대장이 지하에서나마 웃을 수 있게 해주는 것은 이제 우리들의 몫이다. /이상준(향토사학자·본지 객원 편집위원) 홍성식기자끝

2022-06-02

죽장 입암리 항일 무장투쟁… 통곡의 전투로 남다

1907년 10월 2일 영천군 자양면 검단동의 본가가 불타버린 것을 확인한 후 포항 기계 안국사로 돌아온 정용기는 야간회의를 열고 북상에 대한 부장(副將)들의 의견을 다시 모았다.이날 회의에서 정용기는 병사들에게 ‘10일간 휴가를 보낸다’라는 결정을 내렸다. 병사들 대부분이 기계·죽장·청송·청하·영일·흥해 등지에 본가를 둔 사람들이었기에 집안도 둘러보고 가족도 만나볼 수 있는 여유를 주고, 강릉 북상을 위해 그동안 입고 있던 얇은 의복을 동복으로 바꾸어 입고 오도록 하기 위함이었다.영장(營將)들에도 각기 부하를 끌고 각지로 가서 의복을 구해오도록 하였다. 정용기 자신은 본진 150여 명을 이끌고 죽장면 매현리(梅峴里)에 유숙하며 휴가를 간 장병들의 귀대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세기 부장, 일본군을 선제공격 했지만…그런데 1907년 10월 6일 오후 4시에 갑자기 척후로부터 ‘우리를 추격하는 일본군이 청송에서 죽장으로 이동한다’는 보고를 받았다. 이에 정용기는 일본군이 만약 죽장면으로 들어온다면 중심 마을인 입암리에 유숙하리라 예측하고, 당시 매현리 본영에 함께 있던 부장 중 우재룡·김일언·이세기 등에게 각기 부대 하나씩을 이끌고 적소에 매복하여 있다가 적의 길목을 차단하도록 지시하였다.만약 적이 들어오기만 하면 10월 8일 새벽에 입암을 공격할 것이며, 이때 적의 퇴로를 차단하여 적 전부를 섬멸할 계획임도 주지시켰다.1907년 10월 7일 정용기의 명을 받은 세 부장은 작전에 따라 명령받은 매복 장소로 향하였다. 그런데 선발대로 나선 이세기 부장이 죽장면 광천(廣川)으로 매복 나갔다가 왜병 수 명이 이미 죽장면 소재지인 입암 1리 안동 권씨 문중 재실에 들어와 있다는 정보를 입수했다.더군다나 왜병들은 고지기(庫直)인 안도치(安道致)에게 저녁밥을 시켜놓고는 대청인 영모당(永慕堂)에 총을 모아 세워둔 채 보초 없이 모두 누워 쉬고 있다는 것이다.이세기는 왜군들로부터 주문을 강요받고 닭을 잡아서 재실 앞 개울로 내려와 잡은 닭을 손질하던 안도치로부터 적의 병력이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을 확인하게 되었다.그는 본부에 연락할 필요도 없이 현재의 군사로도 충분히 방심한 적들을 제압할 수 있다고 봤다. 이런 기화가 다시는 없다고 생각한 의병들은 왜군들을 향하여 일제히 선제공격을 가하였다. 갑자기 총소리를 듣고 놀란 것은 인근 매현에 있던 정용기 이하 본진의 군사들이었다. 그들은 매복 나간 군사들이 급습을 당한 줄로 알고 단숨에 달려와 영문도 모른 채 이세기 부대에 합류했다. 의병 150명은 이날 밤 9시 30분 시무나무걸(야연림·惹煙林) 소하천 둑을 따라 엎드린 채 왜군들이 있는 영모당 대청을 향해 집중사격을 가했다. 한참 동안의 집중사격 뒤, 일본군의 응사가 없자 의병들은 일본군이 모두 전사한 것으로 판단하고, 원촌(院村) 입암서원 쪽으로 퇴각했다.의병들은 서원 맞은편에 있는 길옆 주막에서 승전을 자축하며 늦은 저녁밥을 먹었다. 권씨 재실에 들어간 일본군 청송수비대 11중대 미야하라(宮原) 소대가 의병들로부터 공격을 받자 마루 밑바닥에 납작 엎드려서 죽은 시늉만 하면서 처음부터 끝까지 상대방의 동태를 파악하고 있었다는 것을 꿈에도 모른 채였다. △통곡의 입암지변(立巖之變)이날 의병들은 사정거리로 인정할 수도 없는 100여m 밖 원격사격으로 러·일전쟁을 치른 경험이 있는 일본군 청송수비대 병력을 건드리기만 했던 셈이다.상대방이 오합지졸이라는 것을 파악한 소대장 미야하라 소위는 치밀하게 의병들의 움직임을 주시하였다. 이들은 의병들이 그곳으로부터 약 1.5㎞ 떨어진 입암서원 앞 주막에서 술과 야식을 먹으며 방심하고 있다는 사실까지 파악했다. 상대방에 대한 정보를 충분히 접수한 수비대는 10월 8일 오전 0시 20분부터 공세로 전환하였다. 고성능 무라다(村田) 연발총으로 무장한 일본군 수비대는 의병들이 모여있던 주막을 둘러싸고 집중사격을 가하였다.의병들의 화승총과 창칼은 이들 앞에서는 무용지물이었다. 화력과 전술로 비한다면 일본군 1명이 의병 100명을 상대하고도 남았다. 9월 초하루여서 달빛도 없었다. 그때 의병들은 대부분 흰옷을 입고 있었고 왜군들은 검은 군복을 입고 있었으니 이것 또한 결정적으로 불리한 점이었다. 이날 약 4시간 30분 동안 벌어진 입암서원 격전에서 대장 정용기, 중군장 이한구, 참모장 손영각, 좌영장 권규섭 등 수뇌부를 비롯해 19명의 의병이 한순간에 전사했다. 반면에 일본군은 2명의 부상자밖에 나지 않았을 정도로 전쟁은 일본군의 일방적 승리였다.입암마을 수십 동의 민가도 소실되었다. 그것도 모자라 일군들은 양민 수십 명까지 학살하고 동민들이 보관하고 있던 귀중품들을 약탈해갔다. 입암 전투는 패전의 참화를 전국에서 가장 먼저 겪은 의병항전이었다. 죽장면 방흥리 이한구의 묘. 1908년 봄 최세윤은 권대진, 정화재, 정진소 등과 함께 죽장 임암전투 전사 현지에 가매장 했던 이한구를 죽현산(竹縣山)으로 이장했다. △아버지가 아들의 대장직을 이어받다1907년 10월 8일 새벽, 정환직은 영일 기북면 막실에 있는 처남 이능추의 집에서 입암전투의 비보를 접하고 놀란 나머지 황급히 현장으로 달려갔다. 입암서원에 도착하여 확인한 아들 정용기의 시신에는 총상이 10여 군데나 있었고, 핏자국이 서원의 온 집안에 퍼져 있었다. 정용기가 체포되었다가 석방되어 재기한 지 5개월 만에 또다시 의진은 흔들리기 시작했다. 입암 전투로 의진의 지휘부가 무너지자 남은 장령들이 정환직에게 의진을 이끌어 줄 것을 간곡히 청하였다.정환직도 의진 총수로서 지금까지 이를 총괄해 왔던 만큼 더는 사양하지 못하고, 제2대 대장직을 맡았다. 그때 정환직의 나이 64세였다.정환직은 의진을 재편하고, 1907년 10월부터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갔다. 의진은 청송 보현산과 영일 북동대산(北東大山)을 거점으로 삼았다. 이곳은 오늘날 청송군·영덕군·영천군·포항시(영일군)의 접경지로 공격과 후퇴가 쉬울 뿐 아니라 진영을 분산·집합시키는 데에도 적합한 천혜의 요충지였다.본격적인 진용을 정비한 정환직은 1907년 10월 16일 약 200명의 의병을 이끌고 흥해분파소를 공격하여 적 수 명을 죽이고 분파소 및 관계 건물을 소각하였다.10월 29일 다시 의병 약 150명을 인솔하여 흥해 분파소를 습격하여 우편국과 분파소를 불태우고 소장 이치하라 다메타로(市原爲太郞)와 그의 처 지요(千代)와 딸 우시키쿠(午菊)를 총검으로 살해하고 그곳에 보관된 돈 300여 관(貫) 및 기타 군수물을 빼앗고, 건물 13동을 불태웠다. 살아남은 일본 순사들은 겁에 질려 가족들을 인솔하여 포항으로 피신해버렸다.11월 3일에는 의병 약 50명으로 영천 신령을 공격하여 분파소에 보관하던 총기 60여 정을 빼앗고 분파소 및 순검의 주택을 소각하고 이튿날에는 군위군 의흥(義興) 분파소를 습격하여 분파소를 불태우고 총기 49정을 빼앗았다.다시 청송으로 가서 11월 8일 청송군 유전(楡田)에서 일본군을 만났으나 패전하여 무기 131정을 빼앗기고 의병 조재술은 좌측 다리에 관통상을 당하였다. 그런데도 11월 11일 청하에서 영천수비대와 교전하였고, 11월 16일 정완전(鄭完全)· 우재룡과 함께 흥해를 습격하여 분파소를 불태우고 일본 순사 곤지(權治) 및 한국인 순검 정영필(鄭永弼)을 죽이고 순사 숙사 2동, 한인 순사 가옥 1동, 관유 건물 3동을 소각하였다./이상준(향토사학자·본지 객원 편집위원)·홍성식기자

2022-06-01

흥해·청하·장기·죽장… 포항 영일권, 의병 격전 중심에 서다

산남의진(山南義陣)은 을사늑약 직후 영일과 영천, 청송 등지의 백성들이 산남(문경새제 이남이란 뜻으로 영남 또는 교남과 같은 말이다)에서 일으킨 민간저항운동 조직의 하나다.영해 방면의 신돌석 의진, 장기(長䰇) 방면의 장헌문 의진과 기각지세(掎角之勢)를 이루면서 일본군 수비대를 교란했다. 의진의 창의소(倡義所)는 영천시 자양면 검단동(현재의 행정구역으로는 자양면 충효동)에 두었지만, 실질적인 의병본부가 전반기에는 포항 송라면(당시 청하군) 북동대산에, 후반기에는 포항 장기면(당시 장기군) 남동대산에 있었다.의군 참여자들도 영일군 죽장·상옥 지역의 유림과 산간포수들이 많았다. 산남의진의 대장들이 순국하거나 체포된 장소 또한 모두 포항권역이었다.제1대 정용기 대장은 죽장면 입암 전투에서 순국하였고, 제2대 정환직 대장은 죽장면 상옥에서, 제3대 최세윤 대장은 장기면 용동에서 체포되었다.큰 격전지도 흥해와 청하, 장기, 죽장, 상옥 등지였다. 산남의진의 전 활동 기간 포항 영일권은 항상 그 중심에 놓여있었던 것이다.산남의진은 정환직(鄭煥直)이 처음 결성했다. 그는 1887년 44세의 늦은 나이로 벼슬길에 올라 의금부도사·중추원의관 등을 두루 역임했으며 누구보다도 고종의 신임이 두터웠다. 을사늑약 직후인 1905년 12월 5일 고종황제는 그에게 밀지를 내려 창의를 준비하라고 했다. 정환직은 장남 정용기(鄭鏞基)를 불러 그 뜻을 알리고, 고향인 영천으로 내려가 의병을 일으켜 경북 동해안을 따라 북상하라는 지시를 내렸다.1905년 12월, 아버지의 뜻에 따라 정용기는 절친한 동지 이한구, 손영각, 정순기와 같이 영천 자양면 검단동에 창의소(倡義所)를 마련하고 의병을 모았다. △아들 정용기(鄭鏞基)가 1대 대장을 맡다산남의진은 정환직을 총수, 정용기를 대장으로 하고, 그 아래 중군·참모장·소모장·도총장·선봉장·후봉장·좌영장·우영장 등 16개 부서의 부대장(部隊長)을 뒀다. 전체 병력은 약 1천여 명. 각 부 장령은 본영의 지휘에 따라 각기 50~100명의 소부대를 지휘하였다.그 무렵, 영해(寧海)에서도 신돌석(申乭石)이 의병을 모아 기병했다. 두 의진은 서로 긴밀한 연락을 취하며 협조해 싸우기로 하였다. 당시 신돌석은 안동 진위대(鎭衛隊)의 공격을 받고 있으므로 산남의진이 남쪽에서 동해안을 따라 공격해 올라가면 견제가 될 것으로 생각했다.산남의진 또한 영일 죽장을 거점으로 하여 북진하면서 영덕 신돌석 장군과 합세한 후, 동해안을 따라 산악유격전을 펼치며 서울로 쳐 올라가기로 작전을 세웠다.정용기는 1906년 3월 행진을 시작하여 영천· 청송지방을 경유하고, 각 부대를 조종하며 북상했다. 서울에 머물던 정환직도 군대를 탈영한 군인 등 4월 중순에 모집된 의병 100여 명을 강원도 강릉의 남쪽 금광평(金光坪)으로 보내 남으로부터 올라오는 산남의진을 맞이하도록 모든 준비를 하고 있었다.그런데 의진이 출진한 지 달포가 지났을 무렵, 정용기를 대장으로 하는 산남의진은 신돌석(申乭石)의진이 영해에서 일본군 수비대에게 패했다는 연락을 받았다. 정용기는 이를 돕기 위해 수백 명의 군사를 이끌고 영해 방향으로 진군해 들어갔다.경주 진위대가 이런 움직임을 눈치 채고 저지에 나섰다. 정용기 부대가 1906년 5월 21일, 영일군 신광면 우각리에 이르렀을 때였다. 갑자기 한 무리의 병사들이 나타나더니, 자신들은 경주 진위대의 병사로서 대장 참령(參領) 신석호(申錫鎬)의 명을 받고 왔다며 인사를 했다.정용기는 본진 군사들을 진정시키고 이들을 만나보니 한 통의 편지를 꺼내 놓았다. 그 내용에는 ‘어느 대관이 서울에서 체포되었다 하니 존공(尊公)의 아버지(大人)가 아닌가? 이 일을 해결하자면 좋은 기회가 있기에 공을 만나고자 요청한다’라는 내용이었다.여기서 ‘존공의 아버지’는 바로 정환직이었다. 정용기는 이 편지를 진실로 믿고 뒷일을 중군장 이한구에게 맡기고는 혼자 경주로 신석호를 만나러 갔다가 붙잡히고 말았다.결국, 경주 진위대의 속임수에 걸려든 것이다. 정용기는 대구에 있는 경북경무서로 이송되어 구속되었다. 이렇게 서울 진공 작전은 출발부터 난관에 봉착하였다. △의진 재기를 논의해 다시 의병을 모으다한편, 아들 정용기의 구금 소식을 들은 정환직은 백방 요로에 힘을 써서 5개월 만인 1906년 9월 20일 경북경무서에서 아들을 석방하는 데 성공했다.정용기는 고향 영천으로 돌아와 옥고의 여독으로 수개월 동안 병상에 누워 있다가 몸을 추스른 뒤 1907년 4월에 들어 이한구·손영각·정순기 등과 만나 의진 재기를 의논했다. 이들은 1907년 6월 초순부터 본격적인 의병모집에 들어갔다. 정용기의 구속 등으로 1906년 7월 말 의진 활동이 중단된 지 약 1년 만에 다시 의진이 재결성된 것이었다.진용을 정비한 산남의진은 1907년 7월부터 본격적으로 활동에 들어갔다. 때맞춰 일본군 토벌대의 감시와 탄압도 강화됐다. 의진은 정환직으로부터 1907년 5월에 관동으로 들어가 서울로 진공하라는 명령을 받은 적이 있었으나 정용기가 오랫동안 신병을 앓고 있었는데다 군사 모집과 군수물자 확보 또한 여의치 않아 약정은 실현되지 못했다.그 과정에서 일본군과의 항전은 이어졌고 의진은 수많은 희생자를 냈다. 특히 무기도 열악했지만 탄약은 극히 부족한 상태였다. 의병들은 탄약과 보급이 떨어지면 산중 사찰이나 동굴을 근거지로 삼아 숨어 있다가 최신식 무기로 무장한 일본군이 접근해 오면 대항하여 싸웠다. 그 결과 수많은 의병이 이름도 남기지 못한 채 사살됐다.‘영릉의진(寧陵義陳)’의 신돌석 부대도 전반기에는 울진과 삼척을 공격하여 맹위를 떨쳤지만, 후반기에 일본군이 적극적으로 공격하고 나서기 시작하면서 관동으로 북상할 수 있는 통로를 열지 못하고 있었다.정용기는 신돌석 부대를 지원하는 한편, 동해안 쪽으로 척후병을 파견하면서 줄곧 길을 찾았다. 1907년 8월 초에는 청송·신령·의성 등지로 부대를 이동하면서 무기와 군량을 모으고 지역 실정과 적세를 탐지했다.1907년 8월 25일 의병 약 300명으로 청하 읍내를 공격하여 적 1명을 포살하고 분파소(分派所) 및 관계 건물을 소각했다. 일본군의 공세를 피하기 위해 이동할 때에는 부대를 해산하고 개별적으로 농민이나 상인 등으로 위장하여 약속한 장소로 모이게 하는 식으로 추격을 따돌렸다.△의병의 본거지 안국사가 불타다상황이 여기에 이르자 일본군 남부수비대장 요다(依田) 소장은 특별 조처를 내렸다.1907년 9월 5일 일본군 제14연대와 제47연대의 병력을 동원하여 경북지역 의병을 탄압하기 위한 ‘토벌대’(대장: 菊池 대좌)를 편성한 것이다. 기쿠치(菊池) 대좌가 이끄는 토벌대는 조직적으로 의진을 공격했다.정용기도 물러서지 않았다. 1907년 10월 2일 의병 약 150명으로 고향인 영천 자양(紫陽)을 공격하였다. 이날 일본군인 1명을 생포하여 사살했다. 정용기의 보폭이 넓어지면서 1907년 10월 2일 흥해 분파소 순사들에게 움직임이 포착되었다. 그들로부터 통보를 받은 일본군 14연대 소속 영일수비대와 청송수비대는 연합작전으로 정용기 부대의 행적을 추적하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1907년 10월 4일 포항 기계면 안국사(安國寺)가 일본군에 의해 소각당했다. 일본 측 보고서에 따르면, 그들이 안국사를 불태운 이유가 의병의 본거지이고 그 절에 있는 승려도 폭도였기 때문이라고 했다./이상준(향토사학자·본지 객원 편집위원)홍성식 기자

2022-05-31

청송군, 천혜의 자연환경에 관광산업을 더하다

그간 청송군은 ‘내륙의 섬’이라 불릴 만큼 오지로 인식돼 왔다. 경상북도의 다른 지자체와 마찬가지로 인구도 줄어들고 있는 게 부정할 수 없는 현실.하지만, 주왕산과 주산지 등이 만들어내는 깨끗한 자연환경과 전국적으로 유명한 특산물인 사과, 여기에 ‘산소카페’라는 도시 슬로건에 어울리는 맑고 시원한 공기가 합쳐져 관광지로서의 매력은 결코 작지 않은 곳이 청송군이다.재론의 여지없다. 21세기 최고 유망산업 중 하나는 관광업이다. 최근 청송군은 이에 착안해 2가지 사업을 의욕적으로 펼치겠다는 미래 청사진을 제시하고 있어 주목된다.대중제 골프장을 필두로 하는 산림레포츠 휴양단지 조성사업과 여행자들의 호평 속에 성장하고 있는 ‘산소카페 청송정원’의 획기적인 보완과 개선이 바로 그것.이러한 사업들의 추진은 ‘골프 대중화 시대’를 맞아 증가하고 있는 골프 애호가의 만족도를 높이는 것은 물론, 가족단위 관광객들에게 매력을 어필하는 청송정원의 아름다움까지 더해져 괄목할 정도의 상승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듯하다.아래에서 그 2가지 프로젝트의 현재 진행 상황과 향후 전망을 세밀하게 짚어보고자 한다. □골프장 등 산림레포츠 휴양단지 조성으로 관광산업 비전 제시청송군이 열정적으로 추진 중인 ‘청송 산림레포츠 휴양단지 조성사업’의 실적은 이제 가시화 단계에 들어섰다는 게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평가다.군은 파천면 신기리 산30번지 일대에 청송 산림레포츠 휴양단지 조성사업을 추진할 민간 사업시행자 공모를 지난 3월 23일부터 진행했다.국제산악연맹 청송 아이스클라이밍 월드컵을 비롯해 전국산악자전거 대회, 청송사과 트레일런, 전국모터사이클챔피언십 등 굵직한 전국 단위 대회를 해마다 열어온 청송군은 여기에 더해 산림레포츠 휴양단지를 조성함으로써 앞으로 ‘산림레포츠를 선도하는 도시’로 입지를 굳힐 것이란 의지를 드러낸 바 있다.이와 관련 “2025년 완공을 목표로 민간투자를 유치해 185만 5천227㎡ 부지에 27홀 대중제 골프장과 산림레포츠 시설을 조성할 계획”이라는 게 청송군 관계자의 설명이다.민자 유치 공모의 핵심은 144만 1천142㎡ 규모로 만들어질 골프장의 운영을 맡을 민간 사업시행자의 모집.사업대상지는 군유지가 75% 이상이며, “현재 경상북도에 용도 지역 변경신청 절차를 앞두고 있다”고 청송군은 부연했다.군은 입지조건도 덧붙여 공지했다. 사업이 진행될 지역은 당진과 영덕을 잇는 고속도로의 청송IC에서 8분 거리에 위치한다. 교통 접근성은 물론, 주왕산 국립공원과 가까워 편리함에 탁월한 전망이 더해진다. 골프장이 들어서기에 최적의 자리다.“향후 공모에 선정된 민간사업자에게 토지를 매각해 사업자가 건립 후 소유·운영하는 방식으로 사업을 추진할 것”이란 게 청송군이 내놓은 방침이다.사업 신청자격은 신청접수 마감일 기준 재무상태표 상의 자본총합이 100억 원 이상인 법인(컨소시엄 포함)이어야 한다. 4월 1일까지 사업 참가 의향서를 제출받은 결과 모두 17개 업체가 신청할 정도로 반응이 좋았다.청송 산림레포츠 휴양단지 조성사업의 신청접수 마감은 6월 10일이다. 마감 후 청송군은 신청자가 제출한 사업계획서를 평가해 6월 16일 우선협상대상자를 선정해 발표할 예정.평가는 이 사업과 관련된 전문가로 구성한 우선협상대상자 선정심의위원회와 청송군이 진행하게 된다. “절대평가 부문과 상대평가 부문을 합한 점수가 가장 높은 업체가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다”는 것이 청송군의 부연이다.사업 신청 마감을 앞둔 청송군은 “골프장을 포함한 양질의 산림레포츠 휴양단지를 만들어 미래 관광산업의 비전을 제시하겠다”며 “민간사업자가 선정되면 일자리 창출과 상권 활성화 등 지역 발전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행정적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지역 랜드마크로 자리매김하는 ‘산소카페 청송정원’청송군이 ‘산소카페’라는 도시 슬로건에 어울리게 조성한 청송정원은 파천면 신기리 일원 13만6천m²에 만들어졌다. 이곳은 국내 최대 규모의 백일홍 화원이다.지난해 9월 1일에 개장한 청송정원은 평일 평균 약 1천 명, 주말 평균 약 5천 명에 달하는 여행자들이 방문해 그해에만 총 10만 여 명이 방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청송의 새로운 관광명소가 된 것이다.‘산소카페 청송정원’을 운영한 청송문화관광재단은 주말마다 꽃밭음악회와 버스킹 등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했고, 관계 부서와 협력해 청송사과즙 나눔 행사, 청송사과빵 시식회도 진행했다.코로나19 사태의 기나긴 그늘 속에서 우울해하던 사람들은 1억 송이에 달하는 백일홍의 자태와 향기에 큰 위로를 받았다. 향후 ‘위드 코로나 시대’가 일상화되면 청송정원의 매력은 더욱 크게 부각될 전망이다.이미 지난해 말 청송군은 입장료 3천원을 내면 정원에서 나갈 때 청송사랑화폐 3천원을 되돌려줌으로써 지역 경제 활성화에 기여하고, 안정적인 운영과 체계적인 방역시스템을 구축해 청송정원이 새로운 랜드마크가 될 수 있도록 향후 다양한 개선책을 내놓겠다는 방침을 세웠다.올해도 산소카페 청송공원의 인기는 지난해와 다르지 않았다. 아니 더 높아졌다. 지난 5월 5일 청송정원에서 열린 어린이날 행사에는 3천여 명의 인파가 몰렸고, 아이들과 부모들의 웃음소리가 가득했다.이는 ‘코로나19 사태’로 지난 2년간 청송에서 어린이날 행사가 열리지 못했던 만큼 기대감에 부푼 지역 어린이들과 가족들은 물론이고, 인근 시·군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행사장을 찾은 결과라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가족간 사랑 확인하는 이벤트 열릴 청송정원으로미세먼지 한 점 없는 날씨에 짙푸른 청보리가 넘실거리고 푸르른 하늘까지 더해져 청송의 5월은 싱그러움의 절정을 이룬다. 그랬기에 산소카페 청송정원은 방문객들의 발길을 오랫동안 붙잡을 수 있었다.이날 행사에 참석한 어린이들은 청송정원 걷기, 꿈의 오케스트라, 마술쇼, 댄스, 태권도 시범 등의 다채로운 공연에 푹 빠졌다. 에어바운스 체험과 예쁜 사진 콘테스트, 장기자랑과 각종 체험행사 등의 프로그램은 아이들은 물론, 함께 온 부모들까지 환한 미소로 이끌었다.청송정원을 배경으로 가족사진을 찍던 방문자들은 “오랜만에 아이들과 함께 아름다운 정원을 걸으니 기분이 너무 좋고, 마음까지 시원스러워졌다”고 입을 모았다.어린이날 행사를 성공적으로 치른 청송군은 앞으로도 가정의 화목과 가족간의 사랑을 확인할 수 있는 각종 이벤트를 마련하겠다는 계획을 밝혀 앞으로 청송정원을 찾을 여행자들의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산소카페 청송정원과 청송 산림레포츠 휴양단지 조성사업으로 탄생할 골프장 조성이 예정된 지역은 약 2km의 가까운 거리. 이 두 곳의 유기적이고 효과적인 연계는 미래 청송 관광산업의 발전을 이끌 핵심 키워드가 될 듯하다./김종철·홍성식 기자

2022-05-23

문화유산 품은 자연 속 문경… 여행 떠나볼까

◇ 한국 관광의 별 문경새재한양과 영남을 이어주는 영남대로의 관문, 문경새재백두대간의 조령산을 넘는 이 고갯길은 옛 길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어 걷기 좋은 길로 큰 사랑을 받고 있다. 그 중 아이들의 소풍지로 문경생태미로공원과 옛길박물관을 추천한다. 문경생태미로공원은 문경새재 옛길박물관 건너편 자연생태공원 부지 안에 조성되었으며, 기 조성된 생태연못, 생태습지를 중심으로 도자기 미로, 연인의 미로, 돌미로, 생태미로 등 4개 테마로 이루어진 미로를 비롯한 유아체험 숲 놀이터, 각종 동물 조형물과 항아리 계곡 등 다양한 볼거리로 꾸며져 있다.특히, 4개 미로 중 돌미로에는 쿨링포그 시스템이 설치되어 미로찾기에 즐거움이 더해지고 있다.쿨링포크 시스템은 정수 처리한 깨끗한 물을 특수 노즐을 이용해 미세한 크기의 인공안개로 분사된다. 여름철 쿨링포크 시스템의 분사된 물 입자는 주위 온도를 최대 10℃까지 낮춰 무더운 날씨에도 미로공원을 이용하는 관광객들이 시원하게 즐길 수 있고, 물안개가 시야를 적당히 가려 한층 더 마로 찾기에 즐거움을 더할 것으로 기대된다. 옛길박물관은 이름 그대로 옛길을 주제로 만들어진 박물관이다.문경에는 문경새재, 우리나라 최고의 고갯길인 하늘재, 옛길의 백미 토끼비리, 영남대로 상의 허브 역할 담당했던 유곡역 등 길과 관련된 문화유적이 많다. 옛길박물관은 이러한 문경의 역사 문화적 정체성을 잘 나타내기 위해 건립된 박물관으로 옛길 위에서 펼쳐졌던 각종 문화상을 담아내고 있다.옛 사람들은 여행을 하면서 무엇을 지니고 다녔으며, 괴나리봇짐 속에는 무엇이 담겨 있을지.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것보다 훨씬 작고 앙증맞은 유물들을 감상할 수 있다. 그 옛날 길 위에서 이루어졌던 각종 여행기와 풍속화, 중요민속자료 제254호인 문경 평산 신씨 묘 출토복식과 같은 문경의 문화유산도 함께 전시되어 있다.◇ 문경단산관광모노레일 · 편안히 산 정상으로 올라가는 방법문경 단산관광모노레일은 단산(해발 956m) 북쪽 능선의 약 1.8km 구간을 오르내리는 장거리 산악 모노레일이다. 상행 35분, 하행 25분 소요되는 8인승 모노레일을 타고 오르다 보면 사방이 탁 트여 백두대간의 광활한 모습을 볼 수 있다. 등산이 어려운 아이들, 어르신들에겐 산 정상을 체험하기 쉽지 않으나, 문경에서는 모노레일로 쉽게 정상까지 올라갈 수 있어 힐링 관광지로 인기를 얻고 있다.상부 승강장에 내려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패러글라이딩 활공장으로 이어진다. 활공장과 곳곳에 설치된 포토존(초승달 포토존, 그네 포토존, 어린 왕자 포토존, 하늘쉼터)에서 인생샷을 남겨도 좋다.최근에는 하부 승강장에 VR장비를 착용하고 게임을 즐기는 가상체험존이 만들어져, 대기 시간을 즐겁게 보낼 수 있다. ◇돌리네? 교과서에서 배운 ‘돌리네’ 직접 찾아가보자!생명의 보금자리 문경 돌리네습지.습지라고 하면 하천이나 호수, 갯벌과 같이 물이 느리고 고이며, 머무는 곳을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산 속에서 습지를 만날 수 있다면? 국내 유일의 내륙형, 산지형 습지. 돌리네습지가 바로 문경에 있다.돌리네(Doline)라는 지역명은 석회암지대에 생성된 접시모양의 움푹 파인 땅을 의미한다. 그 지하부에는 탄산칼슘이 지하수에 씻겨나간 자리에 크고 작은 천연동굴이 형성된다.이 동굴을 통해 비가 오는 족족 빗물이 빠져나가니 돌리네는 보통 건조한 지형이다. 하지만 문경시 산북면 굴봉산에 위치한 문경 돌리네습지는 석회암 지역이지만 특이하게도 물이 풍부하게 고여 있고, 한여름에도 물이 마르지 않아 매우 희귀하다.그 이유는 오랜 세월 석회암이 빗물에 녹아내리고 남게 된 점토 물질인 붉은 땅, 테라로사에 있다. 물 빠짐이 잘 안 되는 테라로사에 물이 고이고, 식물이 자란다. 이곳에서는 물이 풍부해 예부터 농사를 지었는데, 지금도 농사짓던 논과 오미자 밭, 사과나무 과수원이 있다.또한, 돌리네습지에는 습지 생태계, 초원 생태계, 육상 생태계가 공존해 731종에 이르는 동식물이 서식하고 있다. 특히 수달, 담비, 삵, 구렁이 등 멸종위기 야생동물과 꼬리진달래, 낙지다리, 들통발 등 희귀식물까지 서식하고 있어 학생들의 학습장으로 최적이다. ◇ 문경에코랄라 광부의 하루를 디지털 실감 콘텐츠로 체험문경에코랄라는 국내 최초의 문화·생태·영상을 테마로 하는 문화콘텐츠 테마파크이다. 주요 시설로는 백두대간의 생태와 문화, 영상 콘텐츠 체험을 할 수 있는 에코타운과 에코스튜디오, 유아 및 어린이를 대상으로 하는 야외체험시설로 꾸며진 자이언트 포레스트와 함께 석탄박물관, 탄광촌, 가은오픈세트장, 모노레일 등이 있다.백두대간과 생태에 관한 미디어아트 전시 공간인 에코써클과 나만의 영상을 기획하고, 각종 특수장비로 촬영 후 편집이 가능한 에코 스튜디오는 높은 만족도와 성취감을 안겨준다. 에코랄라에 왔다면 광부의 하루를 체험할 수 있는 은성갱토 실감체험관을 만나볼 것.1994년 은성탄광이 문을 닫은 이후 석탄을 채굴하던 갱도는 문경석탄박물관 개관과 함께 실제 갱도를 체험할 수 있는 공간으로 이용되었다. 석탄을 캐던 갱도 공간에는 홀로그램, 증강현실 등 첨단 기술과 음악이 합쳐져 마치 광부들과 함께 탄광 속을 탐험하는 것과 같은 생생함을 느낄 수 있다.◇ 문경철로자전거석탄을 실어 나르던 폐선로에 자전거를 전국 최초로 도입한 문경.문경 철로자전거는 2005년 개통한 진남역 구간을 시작으로 총 5개 구간을 운영하다가 현재는 진남역과 구랑리역 2구간을 운영하고 있다.문경 여행에서 철로 자전거를 빼놓을 수 없는 이유는 아름다운 문경의 절경을 온 몸으로 감상하며, 힐링 여행을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문경 철로자전거는 반자동 철로 자전거를 운영하고 있지만, 최근 진남역 구간에 전자동 철로 자전거를 도입해 시범 운영하고 있어 힘들이지 않고 편안하게 아름다운 경치를 감상할 수 있게 된다./강남진기자75kangnj@kbmaeil.com

2022-05-22

오·감·만·족 ‘V로드’ 따라 걸어볼까요

봉화군은 물야면 물야저수지를 활용해 포스트 코로나에 대응한 새로운 관광 콘텐츠 개발에 적극 나서고 있다.물야저수지는 내성천 시발점인 선달산의 계곡물이 주 수원으로 연중 수량이 풍부함은 물론, 봄철 약 2~3km 정도의 화려한 벚꽃을 구경하기 위해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장소이다.또한 과거에는 봉화 보부상들의 활동 거점으로 알려져 있어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특색있는 스토리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이에 봉화군은 물야저수지의 다양한 스토리에 차별화된 콘텐츠를 입혀 새로운 변신을 준비하고 있다.◇물야저수지내성천서 흐르는 선달산 계곡 주 수원봄철엔 2~3km 벚꽃 화려한 장관옛날 보부상 활동거점으로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스토리 품어◇V로드물야저수지 지형 본떠 붙여진 이름1.6km 친환경 웰니스 산책로 조성내년까지 구간별 특별한 콘텐츠 부여◇물야 오전리‘오동나무에 봉황이 죽실 먹고 산다’봉황산 밑 마을 ‘오전’이라 불려보부상 정원, 조형물·경관 조명 설치봉화객주, 갓 구운 참나무 화덕피자에족욕체험장 갖춰 피로 함께 푸는 힐링장 ◇ 흔한 저수지, 새로운 관광명소로 재탄생하다포스트 코로나 시대, 최근 관광 트렌드는 친환경과 힐링이 대세로 자리매김하고 있다.특히 물야저수지는 수려한 주변 경치와 연분홍빛 화려한 벚꽃으로 인해 꾸준히 관광객들이 찾는 힐링의 공간으로 정평이 나있는 곳으로 군은 여기에 관광의 요소를 더욱 가미해 더 큰 도약을 계획하고 있다.이를 위해 총 52억 원의 사업비가 투입되는 친환경 웰니스 관광자원화사업, 약칭 V로드 조성사업을 추진 중이다. V로드라는 말은 물야저수지 지형이 영문자 V와 비슷해 붙여진 이름으로 총 3개 구간에 차별화되고 특색있는 콘텐츠를 담을 계획이다.지난해 1차 사업구간(생달 입구~마을)은 데크와 야자매트를 활용해 1.6km 산책로를 조성하고 있으며 올해 6월이면 마무리가 된다.올해는 도비 포함 20억 원의 사업비를 확보해 2차 구간 사업을 계획하고 있으며 세부구상 용역 완료 후 실시설계를 통해 10월경 사업을 발주한다.마지막 3차 구간은 2023년 예산 확보 후 사업을 추진해 총 공사가 완료되는 시점인 내년 하반기가 되면 관광객들에게 그 모습을 선보일 예정이다.특히, 지난 1월 V로드 총 구간에 대한 특색 있는 콘텐츠를 발굴하기 위해 세부구상 용역을 진행하고 있어 전국에서 흔히 보는 둘레길이 아닌 봉화만의 콘텐츠가 조성될 것으로 기대가 된다. ◇ 물야 오전리, ‘娛(즐거울 오) 廛(터 전)’ 즐거움이 가득한 장소로 거듭나다물야면 오전리는 봉황산 밑 평지에 자리한 마을로 봉황이 오동나무를 좋아하고 죽실을 먹고 산다고 해 오전(梧田)이라고 불렸다. 군은 이러한 오전리를 娛(즐거울 오) 廛(터 전), 즐거움이 가득한 장소로 만들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해왔다.지난 2020년에는 오전약수관광지 내에 보부상을 테마로 한 보부상 정원을 조성하고 달·토끼 조형물을 설치해 볼거리를 더했으며 경관조명, 쉼터 등 관광 인프라를 더욱 확충해 관광객들이 편히 찾을 수 있도록 했다.특히 지난해 관리사무소를 리모델링해 오픈한 봉화객주(카페)는 오전약수관광지 활성화에 큰 도움을 주고 있다. 여기에는 맛있는 화덕피자와 커피 등 다양한 먹거리는 물론 족욕체험장이 함께 운영되고 있다. 카페 입구에는 참나무 화덕이 있어 직접 손으로 반죽해 화덕에서 갓 구운 피자를 맛볼 수 있으며 육즙이 그대로 살아있는 부드러운 치킨스테이크도 함께 즐길 수 있다.또한 카페 안에는 차를 마시며 족욕체험을 할 수 있는 공간이 있어 관광객들의 여행 피로를 풀어주는 이색적인 힐링 공간으로 사랑을 받고 있다.오전 V로드가 모두 조성되면 오전리 일원은 봉화 관광거점의 역할을 톡톡히 할 것으로 예상된다. ◇ 포스트 코로나에 대응한 친환경 힐링 도시 ‘봉화군’ 만들다코로나19 이후 일상회복에 따라 치유와 휴식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웰니스 관광이 계속해서 성장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군은 이에 발맞춰 물야저수지 일대를 ‘머무르며 힐링할 수 있는 관광지’로 발전시키며 친환경 관광지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노력한다는 계획이다.봉화군은 지금까지 개별 관광지의 기능을 하던 오전약수관광지와 물야저수지를 하나로 엮어 새로운 형태의 관광자원으로 만드는데 노력하고 있으며 추후 오전V로드 조성으로 오전리 일원의 관광자원과 연계해 지역 새로운 관광명소로 자리매김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봉화군 금대원 문화관광체육과장는 “친환경 웰니스 관광자원화사업(V로드)이 완공되면 지역의 대표 관광지로 거듭날 것으로 기대하며 앞으로도 청정도시, 힐링도시 봉화의 명성을 제고하기 위해 다양한 사업들을 추진해 나가겠다”라고 말했다.봉화/박종화기자 pjh4500@kbmaeil.com

2022-05-10

‘골목투어’로 대구를 세계 관광지로 만들다

관광이란 걸으면서 먹고 보고 즐기는 것이다. 런던, 파리, 뉴욕, 동경 등 세계 유명 관광지가 모두 도시인 이유다. 도시에는 그 도시만의 색깔이 있고 냄새가 있고 그것이 골목에서부터 비쳐지고 풍겨진다. 대구가 근대 골목투어를 통해 세계적 관광 도시로 부상하고 있다.윤순영 여성과 도시 대표(전 대구 중구청장)는 골목을 통해 도심을 되살리고 골목투어를 이끌어낸 골목대장이다.골목투어는 골목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삶이 날것 그대로 외부인에게 노출되는 예민하고 위험한 게임이다. 윤 대표는 “관광객들이 보는 대구의 속살이 깊숙한 골목에 감추어진 빈곤과 한숨이어서는 안 된다”며 “(당시) 중구청이 주민들의 삶을 가꾸는 데 신경을 썼고 복지시스템이 가장 잘 정비된 지자체가 된 이유”라고 말한다. 그래서 골목투어는 주민들의 은근하고 사소한 행복까지 들여다보는 투어가 됐다. - 여전히 바쁘고 신명나게 사는 것 같다.△구청장 때보다 더 바쁜 것 같다. 청장 12년의 활동을 퇴임 후 4년 동안 다시 집중적으로 하고 있다. 청장 재직 시 ‘내가 시민으로 돌아갔을 때 시민으로서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던 일들을 하고 있다.- 여성과 도시는 어떤 성격으로 만들어졌나.△우리가 사는 도시를 여성의 눈으로 보고 아름답게 꾸며 가는 것이다. 이런 일에 돈이나 행정적 지원이 따르면 무엇엔가 구속되고 자유롭지 못하게 된다. 회원 모두가 대구에서 활동하고 있는 전문직 여성 아닌가. 우리가 받은 혜택을 시민들에게 돌려주자며 만들어진 것이 여성과 도시다.- 고 박동준씨를 기리는 박동준 기념사업회 이사장과 갤러리 분도까지 맡고 있다. 대구를 더 아름답고 살기 좋은 도시로 만들겠다는 열정이 청장 재직시절을 무색케 한다.△박동준상은 매일신문과 공동으로 올해 3회째 패션 부분을 시상하게 된다. 첫해 패션, 다음해 미술부분 시상을 했다. 영남일보와 공동으로 기획한 미터상(美와 우리 사는 땅을 말하는 터의 합성어)도 올해 3회째 시상하게 된다. 그동안 TBC와 함께 도시다큐 재생 프로그램으로 외국과 한국의 골목과 도시재생이야기도 필름에 담았다. 외국은 덴마크 코펜하겐과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을, 국내에서는 서울과 부산 그리고 목포와 대구의 달성을 담았다. 서로 비교해 가면서 도시 재생과 그 터전을 주민들이 어떻게 꾸며 가는지 담아냈다.- 골목과 도시재생 프로그램에 목포가 들어 있다.△목포는 항구도시지만 우리 문화가 잘 보전돼 있더라. 군산에서부터 완주 목포로 이어지는 라인이 아주 색깔이 있었다, 주민들의 살아보겠다는 의지와 생명력이 느껴지는 도시였다. 바닷가지만 근대의 일제 잔재가 많이 남아있고 특히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예능인을 많이 배출한 예도답다고 느껴졌다.추억과 흔적을 소중히 여기는 풍토였다. 문화관광으로 먹고 살만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부러웠다. 이곳 예술인들, 차범석 임방울 윤심덕 등 근대 예술인들의 맥을 지금도 이어오고 그 터전과 흔적을 보전 보존하고 있더라.그런 도시들에 비하면 대구는 너무 똑똑한 사람들이 많다. 개성들이 강한 것 같다.- 2006년 여성 전략 공천으로 경선을 거쳐 후보가 됐다. 정치인도 행정가도 아닌 사회운동가가 보수적 조직인 구청에 들어갔는데 기득권인 조직의 반발은 없었나.△선거 때는 정치인이 아니니 순수하다고 보고 밀어주어 당선됐던 것 같다. 취임하니 과장급 이상 간부공무원 중 여성은 단 1명뿐이더라. 그런데 임기 말년엔 여성 간부를 30% 수준으로 만들었다. 재선 캐치프레이즈로 ‘일 잘하는 공무원 만들겠다’고 약속했는데 직원들이 따라주었고 주민들이 믿어줬다. 여성 공직자들이 텃세 센 남성사회에서 죽기 살기로 일하니 성적순 승진에서 제대로 평가받았던 것 같다.- 취임했을 때 주위에서 중구청은 민주노총이라며 걱정들을 했다.△나는 노동조합도 필요하다고 했고 그들도 녹을 먹는 공직자들이니 국가를 위해 일할 것을 믿었다. 무엇보다 공정을 내세웠고 그걸로 노조도 설득했다. 안 되는 것, 비합리적이고 불합리한 요구는 들어주지 않았다. 한때는 출근길 팻말을 내걸고 따라다니며 반대 시위를 하기도 했지만 결국 대화와 설득을 통해 공정한 처리로 해결해 나갔다.- 선출직 자치단체장에 여성이 없다. 어떻게 여성으로 3연임을 했나.△지금까지도 여성 단체장이 없다는 것이 답답하고 안타깝다. 단체장은 살림을 사는 것이고 살림살이는 여성의 섬세함이 더 유리할 것이라고 생각한다.여성의 섬세함과 어머니의 포근함으로 감동시켰다. 일 잘하는 직원을 일부러 드러내 표창할 순 없지만 세심히 관찰하고 기회를 포착해서 칭찬해준다. 직원 생일 파티를 해 주기도 했다. 그 직원이 소속된 부서를 무심히 찾아 회식 기회를 만들고 직원의 생일임을 조직원들에게 상기시키며 미리 준비한 케이크를 자르는 이벤트를 벌인다. 물론 나는 사전 준비한 행사지만 직원들은 감동하게 된다. 아주 작고 사소한 것에서 공감대를 만들어 감동하고 화합하게 만드는 것이 리더의 역할이라 생각한다.- 구청장 12년 동안 중구청 문화를 바꾸었다고 한다.△2006년 취임하니 구청 홈페이지가 4년 전에서 멈춰 있더라. 아무도 안 보고 관심도 없어서 갱신하지 않고 업그레이드도 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아직 간부 중에서 컴퓨터에 익숙하지 않은 공무원도 상당수 있었다. 아침마다 신문을 스크랩해서 올라왔다. 지금 세상에 인터넷으로 직접 검색하고 스크린 하는데, 이런 20세기식 문서를 없애고 줄이라고 했다.이런 일들은 내가 재선되고 난 뒤 정부에서부터 전자결재 시스템이 도입되고 디지털화하면서 바뀌기 시작했다.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변환되는 과도기였기 때문일 것이다.또 국장급에서 9급 직원까지 누구에게도 반말을 하지 않고 존대했다. 나이 든 간부들이 부하 직원들에게 하대하는 문화를 바꾸기 위해 노력했다. 직원들을 인간적으로 존중해 주면서 신뢰를 쌓아갔다.- 대구를 관광객이 몰려드는 한국의 관광 도시로 만들었다. 대구 관광은 중구 골목에서 시작됐고 그래서 윤 대표를 골목대장이라 부른다.△대구 중구는 재개발 재건축이 아닌 보존과 재생이 도시발전의 키워드가 돼야 한다는 것이 신념이다. 구청장이 되어 새 아파트를 짓는 대신 재생 보존하겠다고 했더니 지역민들부터 강력 반발했다. 나는 “현재 사는 집을 아파트보다 더 비싸게 만들어 주겠다”고 설득했고 또 그것이 가능해졌다. 그들이 나를 믿은 것은 동성로 노점상을 철거한 행정집행력에 대한 신뢰 때문이었다.- 동성로 노점상 철거로 완성된 동성로 공공디자인의 성공은 어떻게 시작됐고 또 추진됐나.△동성로 노점상 철거는 혁명이다. 지금 생각해도 아찔하다.중구에는 국회의원도, 구청장도 재선 이상이 없었다. 그런데 3선을 했다. 내가 재선을 하게 된 것은 동성로 노점상 철거 때문이었을 것이다. ‘한 번 하고 그만 둔다’는 생각으로 최선을 다했다. 도대체 지금까지 정치인 시장 구청장들은 무얼 했나 싶더라. 동성로 노점상들을 어떻게 저대로 둘 수 있나. 만약 불이라도 나면 소방차도 진입 못하는 것 아닌가. 어떻게든 철거해야 했다. 계획을 발표하자 노점상은 물론 시민단체들까지 그들을 비호하면서 반대했다. 전국노점상들도 가세했다. 그러나 노점들을 철저히 조사했더니 노점들은 전주가 따로 있거나 외제차를 모는 기업형도 있었고 폭력조직도 가세하고 있었다. 그래서 정면 돌파를 선택했다. 재산등록 1억원 이하의 노점상 30%는 정비해서 존치하고 나머지는 전부 철거시켰다. 그 동성로를 관광객과 젊은이들에게 돌려줬다.- 어떤 정치인도 해결하지 못한 ‘방안의 고릴라’ 같은 노점상을 어떻게 정비할 생각을 했나.△청장이 되기 전에 이상화 고택 보존사업을 한 경험이 있다. 고택 앞으로 소방도로를 뚫겠다기에 이를 막고 고택을 보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당시 언론과 시민들의 도움으로 고택을 살릴 수 있었다. 그 때 살펴보니 중구에 정말 골목이 많았다. 골목의 역사를 찾아 기록하고 스토리를 살려 골목 본래의 기능을 되찾는 것이 골목을 살리고 대구를 살리는 것이라고 확신했다. 이를 구청장이 되자 실천에 옮긴 것이다. 중구는 파괴와 재개발이 아닌 재생으로 정체성을 살려야겠다는 생각을 이 때 갖게 됐다. 선출직이 표를 의식하면 아무 일도 할 수 없게 된다.- 대구 근대골목 투어 1, 2, 3, 4, 5코스를 만들었다. 왜 하필 골목인가.△도시는 우리 눈이 보고 싶도록 만들어야 한다. 도시 디자인을 해야 한다는 거다. 그런데 아파트도 300세대 이상 건축은 대구시장 권한이어서 구청장은 관여에 한계가 있다. 또 4차선 도로 이상은 대구시장 권한이고 구청장은 2차선 이하 골목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 대구 중구는 골목이 그렇게 많고 또 골목마다 스토리가 많았다. 대구 문화재의 45%가 중구에 있다는 것도 실사를 통해 확인한 것이다.직선은 곡선으로 바꾸면 부드럽고 유순해진다. 그런데 우리는 굽은 길을 바로 펴려고만 했고 좁은 길을 넓히려고만 했다.구불구불하게 굽은 길을 가 보아야 천천히 걷는 법과 뒤를 돌아보는 여유도 부릴 수 있다. 모퉁이를 돌아보아야 가다가 쉬는 순간을 짚어낼 수 있다. 막다를 길을 만나 보아야 잘못 들어선 길을 깨달을 수 있다. 길도 삶도 구불구불해야 재미있다.오래되고 낡은 골목에는 저마다의 특별한 이야기들이 숨어 있다. 골목마다 숨어 있는 역사를 현재로 불러내어 새 생명을 불어넣는 것, 그것이 바로 예술과 행정이 만나는 접점이다. 근대골목, 김광석 다시 그리기 길 등 골목에 스토리를 입히고 역사를 기록했다. 파괴와 재개발 대신 골목에 숨어 있는 문화 예술적 가치를 재발견하여 되살리는 도심재생사업이 구정의 핵심이 된 이유다.- 지금 단체장 등 지방선거와 국회의원 보궐선거를 앞두고 있다. 구청장 퇴임 후 윤 대표에게 선출직에 출마하라는 요청은 없었나.△구청장은 3연임 제한이 없다면 한 번은 더 하고 싶었다. 그러나 국회의원이나 시장 직은 생각 없다. 지난 번 보궐선거에도 나오라는 권유를 많이 받았지만 ‘착각하고 싶지 않았다’. 사람들은 나더러 ‘무소속으로 나와도 승산 있다’며 다시 한 번 중구와 대구를 위해 일해 달라고 했다. 그러나 국가에 대한 봉사는 구청장 12년으로 충분했다고 생각한다. 또 후배들에게 길을 터주어야 한다고도 생각했다. 이제 보이지 않는 곳에서 지역과 지역민을 위해 봉사하는 것이 내 소명이다.- 지역의 여성 정치지망생들에게 충고해 준다면.△남성문화가 만연한 대구다. 지연 학연이 활개치는 사회에서 여성이 선택받기 위해서는 남성보다 2배 3배 노력해야 한다. 평소 자신을 부끄럽지 않도록 철저히 관리해야 한다. 또 도전정신이 있어야 한다. 지역 정서가 여성에게 힘들지만 그렇다고 홍시가 떨어지길 기다려서는 차지할 수 없다. 피나는 노력을 해야 한다. □ 윤순영(尹順永) (사)여성과 도시 이사장상주여고. 경일대 경영학과. 중앙대 문화예술행정학 석사. 대구가톨릭대학교 예술학 박사과정 수료.전 대구시 중구청장(2006 ~2018), 지방자치발전위원회 위원, 중구 도심재생문화재단 이사장. 현 여성과 도시 이사장, (사)박동준기념사업회 이사장. 갤러리분도 대표, 아름다운가게 대구 대표, 대구아트페어 운영위원, 대구국립박물관 자문위원장. 지방자치행정대상(2018), 올해의 지방자치 CEO 대상(2015), 대한민국 글로벌리더 대상(2016, 2017)대구근대골목은 2012 한국관광의 별(장애물 없는 관광자원)에 선정됐고 저서 ‘골목, 별이되다’(2014)는 교보문고 판매 1위를 기록하기도 했다.5남매의 막내딸로 사촌형제만도 30명이 넘는 대가족 속에서 아버지의 귀염과 기대 속에유년기를 보낸 문화기획가이자 사회운동가이다. 자신은 “아버지에게서 세상과 타협하지않는 법과 카리스마를 물려받았고 평생을 대가족 맏며느리로 살아온 어머니의 지지로 당당하고 멋진 자유인으로 살고 있다”고 술회한다./이경우 편집위원

2022-05-09

5월은 푸르구나 우리들은 자란다… ‘웃음꽃 가득한 날’

제100주년 어린이날을 기념해 포항시가 주최하고 경북매일신문이 주관한 ‘100주년 기념 2022 포항 어린이날 행사’가 5일 포항 철길숲 한터마당 일원에서 성대하게 열렸다.코로나19 여파 등으로 인해 놀이문화를 잃어버린 미래 세대의 주역인 어린이들에게 새로운 콘텐츠로 신나는 하루를 선사해 주기 위해 열린 이날 행사는 어린이, 학부모 등 2천여 명이 철길숲 전체를 가득 메우며 웃음꽃을 피웠다. 이날 포항지역의 낮 최고기온은 28℃를 웃돌며 초여름 날씨를 보였지만, 어린이들은 무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행사장 곳곳에 비치된 체험부스를 누비며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오전 10시30분부터 진행된 어린이날 기념식에는 이장식 포항시장 권한대행과 박치민 포항남부소방서장, 류득곤 포항북부소방서장, 최윤채 경북매일신문 사장 등 내빈들이 참석해 자리를 빛냈다.식전행사에는 지역 학교에 재학 중인 모범 어린이 20명에게 표창을 수여했으며, 포항예술고 학생들의 챔버 앙상블과 버블쇼, 마술쇼, K-pop 댄스 등 눈과 귀를 즐겁게 하는 공연이 이어져 박수와 환호가 끊이지 않았다. 또한 행사장 곳곳에 마련된 체험부스에서는 3D 입체 퍼즐 체험을 비롯해 비눗방울, 자석 그네 만들기, 회전목마 만들기 등 다양한 체험 키트를 아이들에게 선물로 나눠줬다. 특히 어린이들이 무대 위로 직접 올라와 푸른 화분에 물을 주고 빨간색 꽃이 피어오르는 퍼포먼스가 진행되면서 분위기가 더욱 무르익었다. 이장식 포항시장 권한대행은 “100주년이라는 기념적인날 포항 어린이 여러분들을 만나뵙게 돼 기쁘다”면서 “대한민국의 미래이자 희망인 여러분의 꿈을 포항시에서도 응원하겠다”고 밝혔다.권경애 포항시의회 복지환경위원장은 “여러분의 건강하고 행복한 모습을 직접 보니 덩달아 행복해진다”며 “오늘의 주인공은 어린이 여러분이니 가족과 함께 다양하고 소중한 추억을 가지고 갔으면 한다”고 말했다.최윤채 경북매일신문 사장은 “코로나19로 인해 2년 6개월 만이지만 협소한 장소에서나마 어린이들이 한자리에 모일 수 있게 돼 기분이 좋다”며 “오늘 어린이날 행사 주제가 ‘웃음꽃이 피었습니다’인 만큼 즐거운 시간을 보내다 가셨으면 한다”고 밝혔다.한편, 이날 행사는 온라인 체험 이벤트도 함께 진행됐다.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야외 스튜디오를 찾아오는 어린이들에게 집에서 가족과 함께 즐길 수 있는 체험 키트를 나눠줬으며 유튜브를 통해 함께 만들어 볼 수 있는 시간을 가졌다. 아울러 ‘2022 포항 어린이날 행사’의 각종 행사도 포항시 홈페이지 유튜브 채널을 통해 생중계됐다. /이시라·김민지기자 5일 어린이날을 맞아 포항지역 어린이와 학부모들에게 소중한 추억을 한아름 선사했던 ‘100주년 기념 2022 포항 어린이날 행사’의 이모저모를 카메라에 담았다.사진=이용선기자

2022-05-05

더 늦기전에… 거룩한 희생 ‘정당한 평가’ 이뤄져야

장사상륙작전 참전 학도병의 훈장 추서와 수여에 의미 있는 파란불이 켜졌다.본지의 기획연재 ‘99세 노병의 잃어버린 훈장’2022년 4월 6일, 13일, 20일, 27일 보도을 통해 제기된 문제에 윤석열 정부의 첫 국방부장관 지명자인 이종섭(62)씨가 관련 입장을 표명한 것.이 국방장관 지명자는 최근 국민의힘 강대식 의원이 청문회와 관련돼 보낸 서면질의서에 포함된 “장사상륙작전 참전 학도병들의 국가를 위한 희생과 헌신에 합당한 예우 방법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에 “공적을 최대한 발굴해 합당한 예우가 이뤄지도록 관심을 가지겠다”고 약속했다.이에 더해 장사상륙작전이 “(한국전쟁 당시) 동해안 장사리 일대 북한군 점령지역에서 전개된 상륙작전임을 알고 있다”며 “영덕 및 포항지구에 압박을 가하던 북한군 2군단의 붕괴에도 상당한 기여를 한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고 답변했다.“국가를 위해 희생하고 헌신하신 분들에 대한 예우는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하며, 취임하게 되면 공적을 확인하겠다”는 것도 그가 밝힌 향후 계획이다.이 국방장관 지명자는 현역 시절 국방부 정책기획차장과 합동참모본부 차장을 지낸 국방정책 분야 전문가로 알려져 있다. △ 72년 세월이 흐르고서야 주목받는 장사상륙작전 학도병들곽경택·김태훈 감독이 연출한 영화 ‘장사리-잊혀진 영웅들’로도 제작돼 사람들의 관심을 모은 장사상륙작전.6·25전쟁 초기였던 1950년 9월 ‘육본 작전명령 174호’에 의해 인천상륙작전에 앞서 경북 영덕 장사해변으로 772명의 학도병들(육군 독립 제1유격대대)이 상륙한다.제대로 된 군사훈련을 받지 못했고, 변변한 무기도 갖추지 못한 10대 후반의 그들은 조선인민군 2군단에 맞서 북한군의 보급 루트를 차단했고, 아홉 곳의 인민군 진지를 파괴하는 전공을 세웠다.치열한 전투 과정에서 학도병 139명이 전사하고, 100명이 넘는 이들이 부상을 입거나, 북한군의 포로가 됐다.이에 UN군 사령관을 지낸 더글러스 맥아더는 1960년 “헌신적이고 충성스러운 전우로 당신들을 기억할 것”이란 내용의 친서를 전달하며 장사상륙작전 참전 학도병들에게 고마움을 표했다.2019년 6월 24일엔 국군통수권자인 문재인 대통령이 한국전쟁 유공자를 초청한 청와대 행사에서 장사상륙작전기념사업회 류병추(91) 회장을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에 공헌했다”고 소개하기도 했다.그럼에도 이들 772명 학도병들의 애국심과 희생에 값하는 예우가 아직은 미흡하다는 지적이 없지 않다. ‘전쟁 혹은, 국가 비상사태 때 전투에 참가해 무공을 세운 사람에게 주는 무공훈장’ 추서와 수여가 이뤄지지 않은 것 때문이다.이와 관련한 육군본부의 공식 입장은 “한국전쟁 관련 문서를 통해 실명과 공적이 기록된 분들이 아니면 훈장 추서와 수여가 어렵다”는 것.장사상륙작전 참전 노병들의 안타까운 소식을 접한 본지는 지난 3월 취재팀을 구성해 생존 노병 3명(류병추, 이영희, 배수용)을 인터뷰했고, 그들을 영덕 장사상륙작전 전승기념관으로 초대해 1950년 9월 당시 치열했던 전투의 전후 상황을 상세하게 이야기 들었다. 이후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의 장사상륙작전 관련 논문들을 검토한 다음 “명백한 정황 증거가 있고, 참전 사실을 입증할 수 있는 신뢰할 만한 증인이 있을 경우 장사상륙작전 참전 학도병의 서훈 추천을 고려할 수 있다”는 방향으로 법 개정을 추진하자는 분위기 조성에 힘을 쏟았다.이번 국회 국방위 강대식 의원과의 인터뷰도 이러한 일련의 과정 중 하나로 준비됐다.장사상륙작전을 포함한 6·25전쟁 학도병들의 예우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가진 강 의원의 질의에 응한 이종섭 국방장관 지명자의 답변은 긍정적이고 희망적이다.장사상륙작전에 참전한 구순의 노병들이 무공훈장을 들고 열여덟 살 학도병으로 함께 싸운 전우들의 유택(幽宅)을 찾는 날이 머지않아 오기를 기대한다. 국회 국방위에서 한국전쟁 유공자의 명예 회복에 힘쓰고 있는 강대식 의원. 인터뷰 - 국회 국방위 강대식 의원“국방부·육군본부·국회 법제실과 논의… 관련법 개정 적극 검토할 것”국회 국방위원회에서 활동하는 국민의힘 강대식(대구 동구을) 의원은 그간 안보정책은 물론, 한국전쟁과 관련한 보훈정책에 대해서도 다각도로 고민하며 적극적인 입법 활동을 펼쳐왔다.장사상륙작전 참전 학도병 772명의 훈장 추서와 수여 문제도 강 의원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안 중 하나.아래는 장사상륙작전이 한국전쟁사에서 가지는 위상과 향후 참전 학도병 서훈 문제에 관해 강대식 의원과 주고받은 이야기다.-한국전쟁 초기엔 정규군의 자리를 적지 않은 학도병(17~19세 학생들)이 채웠다. 이들의 순정한 애국심이 정당한 평가를 받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한국전쟁 관련 문서를 통해 실명과 공적이 기록된 분이 아니면 훈장 추서와 수여가 어려운 상황인 것으로 알고 있다. 이런 이유로 학도지원병들의 공적이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어 아쉬움이 크다.-장사상륙작전에 관해 어느 정도 알고 있는지.△6·25전쟁 초반 국군이 낙동강 전선으로 밀린 상황에서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 실시 하루 전에 UN군 사령부가 북한군을 교란하기 위해 전북 군산과 경북 영덕에서의 양동작전을 지시했다. 낙동강 전투가 치열했던 경북에서 벌여진 상륙작전이 장사상륙작전이다. 이 작전은 인천상륙작전에 쏠린 북한군의 주의를 분산시키고, 낙동강 전선 북한군의 방어태세를 약화시킨 작전이며, 인천상륙작전에 크게 기여한 작전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인천상륙작전에 가려져 오랜 세월 동안 주목받지 못한, 학도병의 희생에 모든 것을 맡긴 슬픈 전쟁의 역사라고 기억하고 있다.-장사상륙작전 참전 학도병에 관한 평가가 미진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장사상륙작전이 있었기에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할 수 있었다고 평가하는 분들이 많다. 작전과 전투에 참여한 772명 학도병의 희생을 잊지 않기 위해 장사상륙작전 전승기념관과 기념공원이 조성돼 있다. 다만 국방부와 육군본부는 상훈법에 따라 공적을 세운 사람, 전쟁사·전투상보 등을 통해 개인의 공적이 확인되는 사람을 무공훈장 대상으로 추천하고 있다. 전투에 참가하거나 부상당한 것만으로 무공훈장을 수여하는 것이 아니라 뚜렷한 무공이 있어야 서훈이 가능하다고 안내하고 있는 것을 볼 때 당시 참전 기록의 확인이 어려운 분에 대해선 정당한 평가가 미진할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국회 국방위에서 활동 중이다. 장사상륙작전 참전 학도병들의 훈장 추서와 수여가 논의된 적이 있는지.△ 그간 국방위에서는 장사상륙작전만을 위한 활동은 부진했으나, 나를 포함해 국회 국방위 소속 의원들은 6.25전쟁 참전 소년·소녀병들의 명예회복을 위해 여야 가릴 것 없이 법안을 발의하고 있다. 이는 그분들의 공적을 적극적으로 발굴해 국가에 대한 희생과 헌신에 합당한 예우가 있도록 노력하고자 하는 차원에서다. 국방부도 장사상륙작전 참전 학도병들을 포함한 6·25전쟁 참전자에 대한 추가 서훈을 절차에 따라 진행 중이며, 오는 6월에도 추가 서훈 수여가 예정돼 있는 것으로 안다.-장사상륙작전 등과 관련해‘명백한 정황증거가 있고, 참전 사실을 입증할 수 있는 신뢰할 만한 증인이 있을 경우 서훈 추천을 고려할 수 있다’는 방향으로 법 개정을 논의할 의향이 있는지 궁금하다.△ 21대 국회에서 첫 발의한 법안이 ‘6·25 참전 소년·소녀병 보상에 관한 법률’제정안이다. 국민과 국가를 위해 희생한 소년·소녀병 및 이중징집자들의 명예와 예우를 보장해주는 것은 국가의 의무다. 나라를 지키기 위해 희생을 감내해야 했던 소년·소녀병들의 명예회복과 헌신에 따른 보상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곧 6·25전쟁 72주년을 맞이한다. 21대 국회에서 반드시 법안이 통과돼 지금은 고령이 된 소년·소녀병들에 대한 국가의 예우가 꼭 이뤄지도록 하고 학도병, 소년·소녀병 모두를 잊지 않고 있다는 걸 확인시키도록 최선을 다할 생각이다. 아울러 ‘명백한 정황증거가 있고, 참전 사실을 입증할 수 있는 신뢰할 만한 증인이 있을 경우 서훈 추천을 고려할 수 있다’는 방향으로 법 개정안 발의가 가능한 것인지를 국방부와 육군본부 및 국회 법제실과 논의해 적극 검토하려 한다.끝/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2022-05-03

누구나, 어디서든배움의 재미 찾게

안동시는 지난 2020년 ‘국제교육도시연합(IAEC) 세계총회’의 유치를 시작으로 글로벌 평생학습도시로 도약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국제회의 유치의 배경에는 2003년 대구·경북 최초의 평생학습도시로 선정된 이후로 시민 누구나 평생학습에 참여할 수 있도록 힘써온 20년 동안의 안동시의 노력이 녹아 있다. ‘배움으로 활력 넘치는 글로벌 평생학습도시 안동’이라는 비전 실현을 목표로 늘 배움의 도시 조성에 매진하고 있는 안동시의 평생학습에 대해서 알아본다. △ 제16회 안동 국제교육도시연합(IAEC) 세계총회 성공개최 준비 총력평생학습도시 안동시는 ‘제16회 안동 국제교육도시연합(IAEC) 세계총회’의 성공 개최를 위한 빈틈없는 준비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세계총회는 올해 10월 25일~10월 28일까지 ‘안동국제컨벤션센터(ADCO)’에서 개최될 예정이다. 국제교육도시연합(IAEC)는 1994년 설립된 이래 전 세계의 35개국 500여 개의 도시가 회원으로 가입돼 있는 역사와 권위를 가진 교육관련 국제기구이며, IAEC에서 주관하는 ‘IAEC 세계총회’는 전 세계의 교육도시들이 한 자리에 모여 각 도시들의 교육 사례들과 비전을 공유하는 국제회의로써 2년 단위로 개최되는 IAEC의 가장 중요한 활동이다.‘전통에서 미래교육을 보다’라는 주제로 진행되는 이번 세계총회에는 세계 각국의 회원도시 시장단과 평생학습 관계자, 학자 등 2천여 명이 참석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으며, 안동시는 ‘글로벌 학습도시’의 브랜드 이미지를 제고하고 우수한 교육시스템과 문화유산, 관광자원을 전 세계에 알리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도록 준비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특히, 성공적인 총회 개최를 위해 전담조직인 ‘IAEC 세계총회 TF팀’을 구성, 유관 기관들과의 업무협약을 통해 자문위원회와 학술위원회를 출범했으며, 지난 3월부터 행사 주관사(PCO) 선정을 위한 입찰을 진행하는 한편, 각 부서의 역량을 결집할 수 있도록 이상학 부시장을 단장으로 23개 부서가 참여해 4개 반, 10개 팀으로 국제회의추진단을 편성했다.또한, 권영세 시장은 이번 세계총회 개최 홍보를 위해 IAEC 정례회의 및 상임위원회의에 참여해 안동총회를 소개하고 현장 참여를 독려했으며, 9월 중 TV 스팟광고, SNS, 유튜브 등 다양한 홍보 전략을 기획하고 있다. 이와 함께 ‘IAEC세계총회 서포터즈’ 발대식을 통해 다양한 현장 홍보활동을 실시하고, 자원봉사자 모집 등 세계총회 운영을 지원할 인력 양성에도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 시민이 함께 만드는 평생학습 도시안동시는 평생학습원을 중심으로 배움을 원하는 시민들이 언제 어디서나, 누구나, 원하는 때, 원하는 학습을 할 수 있는 학습 환경을 구축해 나가고 있다.시민참여 프로그램 운영 활성화를 위해 평생학습 우수프로그램 및 학습동아리 공모사업에 7천500만 원을 지원한다. 지난 2004년부터 이어 온 우수프로그램 공모사업은 시민들에게 다양한 학습 기회를 제공하고 평생학습 참여 분위기 조성을 위한 사업으로 평생학습도시 안동의 근간이 되고 있다.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만들어 참여하는 프로그램으로 매년 관심도가 증가하고 있으며, 올해도 12개의 평생학습 우수프로그램과 6개의 우수학습동아리를 선정해 지원하고 평생학습 저변확대 및 학습문화진흥을 위해 적극적인 지원책도 마련한다.마을 평생학습체계 구축을 위한 ‘행복학습센터’는 지역주민들이 근거리에서 언제든지 교육을 받을 수 있는 동네배움터로, 안동시는 3개소의 행복학습센터를 운영 중이다. 용상동 행복학습센터에서는 용상동 주민센터에 위치하고 있으며, 기타, 퀼트, 댄스 등 정규과정과 다양한 토요가족 특강 등을 운영하고 있다.안동병원 내 반올림행복학습센터는 지난 2014년 국내 병원 가운데 최초로 문을 열고 입원 환자들과 가족, 요양센터 입소 어르신, 외국인 환자들뿐만 아니라 병원을 방문하는 지역 주민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 운영해 오고 있는데, 병마에 지친 환자들에게 치료활력을 더해 주고 있어 많은 환자들의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또한, 지난해 행복학습센터로 신규지정 된 안동시종합사회복지관(옥동행복학습센터)에서는 시민을 위한 원데이 클래스, 유아동을 위한 창의교육프로그램, 가족 단위의 체험교육을 위한 캠핑프로그램 등을 운영해 지역 내 다양한 계층과 연령을 위한 평생교육 프로그램 개발, 시민의 교육 만족도 제고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올해는 성인, 유아동, 가족 대상 프로그램뿐만 아니라 청소년이 참여하는 요리 프로그램을 개설해 교육에 참가하는 청소년들이 만든 반찬을 지역 내 독거노인에게 전달하는 봉사활동과 연계 진행할 예정이다.안동시에서 2018년부터 추진하고 있는 ‘길거리 교실’사업은 5인 이상의 시민이 모여 강좌를 신청할 경우 길거리 교실로 선정된 커피숍, 식당 등에서 원하는 강좌를 개설해 배울 수 있으며, 원하는 강좌를 원하는 장소에서 수강할 수 있어 시민들의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지난 해 관내 10여개의 길거리 교실에서 미술, 어학, 공예 등 35개 강좌가 코로나로 인해 사회 활동이 제한되는 가운데에서도 소규모 인원으로 교육을 운영돼 코로나로 지친 시민의 심신을 평생교육을 통해 치유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또한 ‘시민강사 9단’사업을 통해 재능을 가진 시민고수를 강사로 발굴, 시민 주도적 평생학습 모델 구축에도 앞장서고 있다.안동시민의 체계적이고 수준 높은 평생학습 기회 제공을 목표로 개설된 ‘경북도민행복대학’은 지난 해 제1기 교육생 50명 배출을 시작으로 올해는 제2기 교육생 50명 모집을 마감해 3월부터 본격적인 강의 운영을 시작했다. 금융, 인문학, 경제, 역사, 문화, 지역학, 미래학 등 30개의 다양한 분야의 강좌로 교육과정을 구성했으며, 강의는 매주 화요일 진행된다. △ 소외계층 맞춤형 프로그램 운영안동시는 급변하는 사회 환경 속에서 장애인의 자립생활능력과 사회적응능력을 높이기 위한 체계적이고 제도화된 교육환경 조성을 위해 ‘장애인 평생학습 진흥조례’를 제정해 장애인 평생학습권 보장의 기틀을 마련하고, 3천만 원의 예산을 투입해 ‘발달장애인 맞춤형 평생학습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한편 장애인 행복학습센터 사업을 시범추진, 장애인을 비롯한 누구도 소외됨 없이 양질의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지원할 계획이다.마리스타학교, 용상평생교육원, 안동시종합사회복지관에서는 학령기에 빈곤·남아선호사상 등의 사유로 기초교육을 받지 못한 비문해자를 위한 ‘성인문해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글을 읽고 쓸 수 없어 사회참여가 제한되었던 비문해 성인들이 다시 사회의 구성원으로 활동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으며, 보건·안전·금융 분야 등 생활 교육을 병행하며 교육 참가자들의 사회 참여도 및 자존감 제고와 삶의 질 향상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교육인프라가 부족한 읍·면지역에는 교사가 직접 해당지역을 방문해 한글교육을 실시하는 ‘찾아가는 한글배달교실’을 운영하고 있다. ‘찾아가는 한글배달교실’은 읍·면지역의 경로당 또는 마을 회관 등의 시설을 활용해 관내 15개소를 운영하고 있는데, 안동시와 한국수자원공사안동지사, 한국남부발전(주)안동빛드림본부가 업무협약(MOU)을 체결하여 예산을 지원하고 있다.특히, 지난 해 부터는 한글배달교실 중 8개 교실이 초등학교 학력인정과정으로 지정되면서 전체 3년 과정(총 720시간)의 교육과정을 이수하면 검정고시를 보지 않고도 초등학교 졸업장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지난 해 부터 국비 선정되어 운영을 시작한 가정방문형 문해교실 ‘집집마다 한글교실’은 거동·교통이 불편해 문해교육기관 방문이 어려운 비문해 성인을 위해 문해 교사가 학습자의 가정을 방문 3~5명의 학습자를 대상으로 그룹 맞춤형 한글 교육을 진행하는 교육프로그램으로, 올해는 총 20개소 100명을 대상으로 주1회 2시간 교육을 30주간 진행할 예정이다.이 뿐만 아니라, 일반학교에 적응하기 어려운 학생들의 진학과 사회진출을 돕기 위한 위탁형 대안학교인 ‘나섬학교’와 마리스타학교에서 운영하는 검정고시 야간학교 운영을 지원하며 누구나 교육의 기회를 공평하게 누릴 수 있는 평생학습도시 조성을 위해 꾸준히 노력하고 있다.김병진 평생교육과장은 “안동시는 100세 시대를 맞아 시민들이 행복한 도시, 글로벌 학습도시 안동을 만들고 지방소멸의 해법으로 평생교육을 제시하면서 ‘16만 안동시민들과 함께 살기 좋은 안동을 만드는데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목표를 밝혔다./피현진기자 phj@kbmaeil.com

2022-05-01

이제는 ‘국군통수권자’ 대통령이 결단 내릴때

지난 2019년 10월 14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장사상륙작전 참전 용사 중 단 1명도 훈장을 받지 못했습니다’란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1950년 9월 15일 139명의 전사자와 92명의 부상자가 발생한 경북 영덕 장사해변에서의 전투에 참여한 학도병 가족 중 한 명이 쓴 것으로 추정되는 청원(請願)은 전쟁을 겪지 못한, 곧 국방의 의무를 지키려 입대할 20대 청년들의 눈길까지 끄는 것이었다.선친이 한국전쟁 당시 장사상륙작전에 참전했다고 밝힌 청원인은 “대부분 15세에서 18세의 어린 학도병으로 참전한 용사들은 최근까지도 그 존재가 잊혀졌다”고 지적했다.이에 덧붙여 “참전용사들과의 대화에서 이 작전에 참전한 학도병 중 단 한 명도 훈·포장을 받은 분이 없다는 것을 확인했다”며 안타까워했다.6·25전쟁의 전세를 뒤집은 인천상륙작전에 작지 않은 도움을 줬음에도 장사상륙작전은 오랜 시간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했다는 게 군사전문가들을 포함한 세간의 평이다.청원인은 “해군의 적극적인 활동으로 (장사상륙작전에 참여한) LST문산호의 선원 10명이 올해(2019년) 6월 8일 무공훈장을 수여받은 것은 그나마 다행”이라면서도, “수많은 희생자를 낸 참전용사들은 왜 한 명도 훈장을 받지 못한 것인지…”라는 의문을 드러내며 정부와 국방부, 육군본부의 무관심을 질타했다.그러나, 이 절절한 장사상륙작전 유족의 청원은 대답 없는 메아리로 남았다. △ 대통령의 전공 평가와 상찬(賞讚)이 있었음에도같은 해인 2019년 6월 24일 문재인 대통령은 한국전쟁 참전 유공자 182명을 청와대 영빈관으로 모셨다. 대부분이 80대와 90대인 이들이 호텔이 아닌 청와대로 초청돼 식사를 대접받은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고 한다.이날 문 대통령은 6·25를 “자유와 평화를 사랑하는 세계인이 함께 전쟁의 폭력에 맞선 정의로운 인류의 역사”라 평가했다.또, 장사상륙작전 참전 학도병인 류병추(장사상륙작전기념사업회장·91)씨를 가리켜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에 공헌하셨다”고 말했다. 이른바 ‘6·25전쟁 영웅’을 소개하는 순서에서였다.대한민국 대통령은 이 땅의 모든 군인을 총괄·지휘하는 국군통수권자다. 국군통수권(國軍統帥權)이란 육·해·공군을 포함한 국방기구와 그 아래 편제된 모든 국군을 지휘통할(指揮統轄)하는 권한을 지칭한다.우리의 헌법과 법률, 그리고 국군조직법에 근거하면 국군의 최고통수권자는 바로 대통령이다.장사상륙작전이 있고난 후 자그마치 69년이 지나서야 국군통수권자로부터 전투에서 세운 공적을 인정받고 칭찬받은 류 회장을 포함한 772명의 학도병들.이는 소년의 티를 갓 벗은 18살 청년들이 아흔을 넘긴 노인이 돼서야 자신의 행위가 나라를 구하는 힘이 됐다는 걸 인정받은 것으로 봐도 무방하지 않을까?2020년 개관한 경북 영덕의 장사상륙작전 전승기념관. 그곳에 들어서는 관람객들은 가장 먼저 아래와 같은 가슴 찡한 글귀와 만나게 된다.“학생들은 학업 대신 조국을 지키기 위해 학도의용군을 조직하고 조국을 수호하는데 앞장섰다. 학생의 신분으로 조직된 학도의용군은 한국전쟁 초기부터 국가의 위기 극복에 기여했고, 전쟁 중에 현역으로 충원됨으로써 국군의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하였다.”전승기념관에선 전사자와 부상자가 속출하는 조선인민군과의 전투 속에서 총 한 번 쏴본 경험이 없는 어린 학도병들이 어떤 애국심과 용기를 보여주었는지도 확인이 가능하다.국군통수권자인 대통령의 공적 인정이 있었고, 여기에 더해 최근엔 장사상륙작전의 전공을 기리는 기념관까지 세워졌음에도 어째서 참전 노병들에 대한 훈장 추서와 수여는 지지부진한 것일까. △ “훈장 추서와 수여? 이젠 지쳐 기대도 하지 않지만…”지난달 류병추 회장은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서운함과 허탈함을 이렇게 설명했다.“대통령과의 청와대 오찬이 열린 다음해 육군본부에서 사람이 찾아왔더라. 내가 그랬다. ‘훈장이란 전쟁 당시에 공훈을 세우면 주는 건데, 세월이 이렇게 흐르고 나서야 찾아왔는가? 훈장을 줄 것 같았으면 이승만 전 대통령이나, 정일권(한국전쟁 당시 국군 총참모장) 소장이 줘야했던 게 아니냐’고. 이후 내가 관련 자료와 책을 주고, 이야기도 여러 차례 나눴으나 지금까지도 서훈 추천 문제는 가타부타 말이 없다. 이젠 지쳐서 기대도 안 한다.”2020년 류 회장과 만난 한국전쟁 참전군인 서훈 추천 담당 육군본부 사무관과의 통화를 통해 전후 상황을 물었다.“장사상륙작전 참전 학도병에 관해선 관심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서훈 추천을 검토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론 그분들이 훈장을 추서 받거나 수여 받지는 못했다. 국회 차원의 특별법 추진 등이 과거에 논의 됐다고는 들었는데…”라며 안타까움을 전했다.앞서 언급처럼 류병추 회장을 비롯한 장사상륙작전 참전 학도병과 청년지원병들은 작전이 끝나고 조치원함에 실려 부산으로 철수한 이후에도 군대에 남아 한국전쟁이 휴전될 무렵까지 여러 전투에 투입됐다.류 회장은 경북 영천, 강원도 홍천과 춘천, 경기도 청평까지 행군하며 군인으로 복무했다. 그의 예편 일자는 1953년 4월 22일.장사상륙작전 전우인 이영희(전 옥천군 교육장·91)씨와 배수용(한국전쟁 참전 유공자회 경북도지부 고문·99)씨 역시 국군 2군단과 3군단에서 전투병과 작전병으로 짧지 않은 기간 군대 생활을 이어갔다.가장 빛나는 청춘시절 2~3년을 나라를 위해 기꺼이 바친 학도병들. 강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연필 대신 총을 들었던 그들은 ‘군번 없는 학도병’으로 입대해 ‘군번을 가진 국군’으로 끔찍하고 비극적인 한국전쟁을 치러냈다.미국은 국가에 헌신한 군인들의 유해를 외국에서 국내로 송환하는 일에 수십 년째 천문학적 예산을 투입하고 있다. 이는 ‘나라를 위해 죽은 이들을 절대 잊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한국의 국회와 국방부는 이런 의지를 보여주면 안 되는 걸까.현재까지 살아남은 20여 명 장사상륙작전 참전 학도병들은 입을 모아 말한다. “왜 우리의 전투는 그토록 오랜 기간 국군의 역사에서 잊혀졌던가.” 이젠 노병들의 물음에 국군통수권자가 답해야 할 때가 아닐까? 육군 독립 제1유격대대가 올린 전과(戰果)장사 해안 주요거점 200고지 점령… 북한군 병력 분산에 혁혁한 功장사상륙작전에 투입된 부대인 ‘육군 독립 제1유격대대’는 전체 인원 중 8할이 10대 후반의 학도병으로 구성됐다. 1950년 9월 15일 장사해변 전투에서 처음으로 총을 쏴 본 이들이 대부분이었다.그럼에도 순정한 애국심과 자신이 속한 공동체를 지키겠다는 젊음의 열정은 잘 훈련된 베테랑 군인들 못지않았다.이종훈의 ‘무명용사의 열혈전투실기’ 등엔 “해안에 상륙을 완료한 독립 제1유격대대는 15일 오후 3시경에 장사동 해안지역의 주요 거점인 200고지를 점령했다. 유격대는 39명의 적을 사살하고 3명의 포로를 생포했으며, 9곳의 토치카(진지)를 파괴하고 직사포 2문, 포탄 450발, 지프차 1대, 기관총 45정, 로켓포 1문, 다발총 5정, M1총 9정, 소련제 장총 12정, 박격포 1문, 그리고 다량의 실탄을 노획하는 전과를 올렸다”는 학도병들의 전투 행적이 드러난다.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에서 발행된 논문에도 이 부분이 인용됐다. 이에 더해 장사상륙작전 전승기념관은 참전 학도병과 청년지원병의 전공을 아래와 같이 기록하고 있다.“작전 기간 중 139명이 전사하고, 92명의 부상자가 발생하는 인명 손실을 겪었지만, 적 270명을 사살하고 학살 직전의 청년 10여 명을 구출하는 전과를 올렸다. 인천상륙작전에 대한 기만으로 북한군을 분산시키고, 심리적으로 위축시킨 전술은 대성공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2022-04-26

올해는 ‘황금의 빛 대가야’… 희망과 치유 메시지 전한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코로나19 사태’가 오래 이어지면서 전국의 지역 축제가 2년 동안 열리지 못하는 상황이 지속됐다.최근 정부는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실행했던 ‘사회적 거리 두기’를 해제했다. 이에 따라 지역 축제가 경북 곳곳에서 펼쳐질 예정이다. 고령군도 예외일 수 없다.1천500여 년 전 찬란한 철기문화를 꽃피웠던 고대왕국 대가야의 진면목을 선보임으로써 호평 받은 경북의 대표적 지역 축제 중 하나인 ‘대가야 체험축제’도 새롭게 단장해 관광객과 만날 준비를 마쳤다.세계축제이벤트협회(IFEA)로부터 금상을 받은 바 있고, 대한민국 대표축제 전통문화 부문 대상을 수상했으며, 2013년부터 2019년까지 문화관광부 지정 대한민국 문화관광 우수·유망축제로 선정된 고령의 대가야 체험축제.고령군 관계자는 “오는 5월 5일부터 8일까지 대가야생활촌 일원에서 다양한 이벤트와 볼거리, 먹을거리까지 두루 마련된 즐거운 축제가 열릴 것”이라고 예고했다.완연해진 봄 날씨 속에서 오랜만에 가족, 친구들과 함께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는 ‘대가야 체험축제’는 어떻게 준비되고 있을까? 그 현장 속으로 미리 떠나본다. ◆다양한 전시와 행사, 체험과 공연이 함께 하는 축제앞서 언급했듯 고령 대가야 체험축제는 1천500년 전 대가야 시대의 이야기들을 흥미롭게 담아낸다. 대가야인들의 생활, 문화, 예술 등 삶 전체를 테마로 해 방문자들이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올해 축제의 주제는 ‘황금의 빛, 대가야’. 고령군관광협의회는 “황금과 빛을 통해 희망과 치유의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한다”며 “예부터 지금까지 귀한 광물로 여겨지는 ‘황금’이란 테마로 축제 참가자 모두가 코로나19로 인해 상처 받은 마음을 달랬으면 한다”는 바람을 전했다.고령군 또한 “지난 2년간 개최하지 못한 축제의 재시동으로 군민과 관광객을 위로하고, 지역 경제 회복에도 힘을 보태고자 축제 개최를 결정했다”고 부연했다.올해 축제의 주요 내용을 살펴보면 전시 분야에선 축제의 주제인 ‘황금의 나라, 대가야’ 전시장이 마련되고, 이와 하모니를 이룰 감성 포토존 또한 설치된다.개막 행사로는 ‘대가야 종각 현판식과 타종 행사’가 준비됐고, 폐막식에선 ‘자랑스런 군민상 시상식’이 열린다. 창작뮤지컬 ‘가얏고’와 어린이·가족뮤지컬, 지역 주민이 준비한 공연도 관심을 모은다. 오프라인만이 아닌 온라인에서도 ‘대가야축제TV’가 만들어지고, 인플루언서들의 방송도 진행될 예정이다.고령의 특산물을 선보일 홍보관이 마련되고, 라이브 커머스를 통한 판매도 계획돼 있다. 지역민의 축제 참여를 적극 유도할 부스도 설치된다. ◆코로나19 장기화에 지친 사람들 위로할 ‘안전한 축제’로능동적으로 축제를 즐기기 위해 2022년 대가야 체험축제의 주요 프로그램을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올해 축제의 메인 무대는 대가야의 옛 모습을 재현한 대가야생활촌이다. 여기는 메나릿골(용사체험장), 발굴체험학습장, 연조마을(공방촌), 인줄마을(고상가옥촌), 불묏골(제련소), 고아동 고분전시관으로 나눠져 있다.대가야 체험축제의 주제 체험이라 할 ‘황금테마체험’은 대가야생활촌 안에서 이뤄진다. 체험은 사금 채취, 대가야 금관 만들기, 금속공예 등으로 구성됐고, 이중 사금 채취는 캐낸 금을 유리병에 담아 가져가는 것으로 참가자들의 관심을 끌 듯하다.올해는 밤에 진행되는 프로그램도 강화된다. 대가야생활촌의 야간 조명을 따라 옛 이야기를 들으며 산책할 수 있는 대가야생활촌 야간투어와 고분이 들어선 구역의 밤 풍경을 감상할 수 있는 ‘문 보트(Moon Boat ) 체험’에 열기구 체험까지 준비되는 것.축제의 주제관에선 ‘황금의 나라 대가야’ 관련 영상을 확인할 수 있다. 대가야의 금제 유물과 지역 작가들의 작품도 전시된다.창착뮤지컬 ‘가얏고’는 고령군의 역사·문화 콘텐츠를 활용한 공연 프로그램. 올해는 ‘가야의 여신들’이라는 타이틀 아래 문화누리 우륵홀에서 펼쳐지게 된다. 행사 첫날인 5월 5일 어린이날에 관객들과 만나게 될 가족뮤지컬 ‘캐리와 친구들’도 기대를 모으는 작품이다.대가야 문화누리 야외공연장 등 행사장 전역에선 소규모 버스킹 공연도 진행될 예정이다.고령 지역 문화예술단체의 공연으로 ‘지역민과 함께하는 축제’라는 지향도 드러낸다. 읍·면 홍보 부스 운영을 통해 각 지역의 특산물과 명소도 소개할 계획을 세웠다. 다양한 온라인 프로그램 역시 기대된다. 메타버스 공간에서 대가야 체험축제를 즐길 수 있고, 대가야 역사문화퀴즈, 가야금 연주게임을 만날 수 있다. 이와 더불어 현장을 직접 찾기 힘든 이들을 위해 ‘대가야축제TV’ 유튜브 채널도 운영된다.고령군 관계자에 의하면 “대가야수목원에서 진행될 숲 해설 체험도 기대해도 좋다”고 한다.고령의 특산물인 딸기를 테마로 한 ‘딸기 카페’와 개실마을, 가얏고마을 등 4개 마을이 참여해 만든 농촌체험은 도시 생활에 익숙한 아이들에게 즐거운 경험을 선물할 것으로 보인다. “올해 대가야 체험축제는 코로나19 장기화로 지친 군민과 관광객을 위로하고, 침체된 지역 경제를 되살리는 것에 중점을 두고 안전한 축제로 운영할 것”이란 게 고령군의 설명이다. ◆축제와 함께 고령의 관광 명소도 둘러보면 어떨까고령군관광협의회는 대가야 체험축제를 찾을 관광객들을 위해 ‘추천 코스’를 안내했다. 그중 ‘따스한 5월 걷기 좋은 길’로 불릴만한 ‘대가야박물관→지산동 고분군→주산성→철쭉단지→청금정→반룡사’ 코스와 농촌문화를 맛볼 수 있는 ‘대가야 역사테마관광지→반룡사→개실마을→우륵박물관→대가야수목원’ 코스가 매력적으로 보인다.이와 함께 고령군은 방문객들을 위해 고령의 관광 명소도 상세하게 소개하고 있다.지산리에 자리한 지산동 고분군은 한국 최초로 발굴된 순장묘 지산동44·45호분을 포함한 크고 작은 700여 기의 고분이 분포하고 있어 낭만을 느끼며 산책하기 그만이다.대가야 왕릉이 모여 있는 주산 기슭의 대가야박물관은 지산동44호분을 재현해 당시의 무덤 축조 방식과 순장자의 매장 형태를 확인할 수 있어 아이들에게 역사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킬 수 있는 공간이다.가야금을 만든 악성 우륵의 생애와 음악을 중심으로 꾸며진 우륵박물관에선 전문 장인이 가야금 공방을 운영하고 있다. 거기서 가야금 제작 체험도 즐길 수 있다고 한다.선사시대 사람들이 바위 위에 그린 그림이나 도형을 확인할 수 있는 고령 양전동과 안화리도 눈길을 끈다.영남학파 종조인 점필재 김종직(1431∼1492)의 후손들이 대를 이어 살아오는 개실마을은 우리의 전통문화가 가진 매력을 몸으로 느낄 수 있어 인기를 모은다.그 외에도 대가야수목원과 ‘팔만대장경’을 해인사로 옮긴 역사로 인해 이름 붙은 개경포 등도 빼놓을 수 없는 고령의 관광 명소다.‘코로나19’로 인해 발이 묶였던 여행자들은 지난 2년의 아쉬움을 달래줄 대가야 체험축제를 기다리고 있다. 이 기다림과 기대를 잘 알기에 고령군은 축제 준비에 더욱 노력을 기울이는 중이다. /전병휴기자 kr5853@kbmaeil.com

2022-04-24

국가는 772명 어린 희생양들을 모른 척 했나?

먼저 1950년 9월 14일 장사상륙작전에 학도병으로 참전한 이영희(91)씨의 기억 속으로 들어가 본다.“출동 전날인가, 출동하는 날이었던가…. 교관이 손톱과 발톱, 머리카락을 깎아서 나눠준 봉지에 넣으라고 하더군요. 그게 무슨 의미인지는 몰랐지. 나중에야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군사작전에 동원된 사람들이 치르는 일종의 의식이란 걸 알았죠. 근데, 한참 후 들어보니 그때 700명 넘는 우리 전우들이 잘라낸 손발톱과 머리카락은 보관하지도 않고 버려졌다고 하더라고요.”아래는 이씨의 증언을 뒷받침해주는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양영조 책임연구원의 논문 ‘6·25전쟁 초기 장사상륙작전의 전개과정과 성격’의 일부다.“1950년 9월 14일 오전 육군 독립 제1유격대대(장사상륙작전 학도병 부대)는 육본 연병장에서 출동준비를 완료하였다…(중략) 출정식에 참석한 유격대 대원들은 육군본부 연병장에 질서정연하게 집합했다. 이들 전원은 출동에 앞서 각자의 머리카락, 손톱, 발톱의 일부를 잘라서 봉투에 넣어 육본에 보관시켰다. 작전지역으로 출동하기에 앞서 죽음을 각오하자는 결의의 표시였다.”위기에 빠진 나라를 구하겠다는 순수한 애국심에 입대를 자원한 학도병 772명. 그들은 손발톱과 머리카락을 깎은 그날 오후 부산항 4부두를 출발해 ‘죽음이 기다리는’ 장사해변으로 떠났다. LST문산호를 타고서였다.그중 139명은 영원히 돌아오지 못했고, 100명이 넘는 이들이 다치거나 조선인민군의 포로가 되는 수난을 겪어야 했다.군인이자 소설가였던 월터 카릭(Walter Karig·1898~1956)은 ‘6·25전쟁에 관한 전투 보고서(Battle Report the War in Korea)’에 “독립 제1유격대대의 유격대원들 중 약 80%에 해당하는 600여명이 주로 18~19세에 불과한 학생들이었고, 심지어 15세의 어린 학생도 일부 포함돼 있었다”고 기록했다. △ 장사상륙작전은 어떤 이유로 잊혀진 전투가 됐을까“한국전쟁의 전세를 역전시킨 인천상륙작전에 도움을 줬다” “낙동강 전선에서 고전하던 한국군 제1군단의 작전에 기여했다”는 군사전문가들의 호평이 있었음에도 어째서 장사상륙작전은 2009년 한국프레스센터에서의 학술세미나가 개최되기 전까지 59년간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했을까?10대 후반에서 20대 초·중반이던 학도병과 청년지원병이 주축이 됐던 ‘육군 독립 제1유격대대’는 국군 총참모장이 서명한 ‘육본 작전명령 174호’에 의해 상륙작전과 전투에 투입됐다.북한군의 동해안 보급 루트를 끊고, 당시 조선인민군 최정예 제2군단의 2개 연대와 전차에 맞서 용맹한 전투를 벌였음에도 왜 장사상륙작전 학도병들에겐 훈장 추서와 수여라는 희생에 값하는 위로와 격려가 없었을까?2020년 8월 발표된 군사편찬연구소 박종상 책임연구원의 논문 ‘6·25전쟁 시 장사상륙작전에 대한 재검토’는 “많은 시간이 지나 장사상륙작전이 일반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져가고 있을 무렵인 1980년 7월 14일 참전자들에 의해 ‘장사상륙참전유격동지회’가 결성됐다”고 쓰고 있다.이 논문에 의하면 장사상륙작전이 새롭게 조명을 받기 시작한 것은 “1997년 3월 6일 장사리 앞 해안을 수색하던 해병대 제1사단 해병대원이 바닷속에 묻혀 있는 LST문산호를 발견한 이후”다.장사상륙작전이 있은 후 70년이 지나서야 만들어진 영덕 장사해변의 전승기념관. 지난 3월 중순 이곳을 찾은 학도병 류병추(장사상륙작전기념사업회장·91), 이영희, 청년지원병 배수용(99)씨는 “아마도 우리들은 희생양이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큰 전투(인천상륙작전)의 승리를 위해 희생자가 발생할 것이 분명한 작은 전투(장사상륙작전)에 투입된 어린 군인들.그들에겐 군번도 없었다. 그러니, 문서로 남은 인사 기록이 정확하지 않고, 전투에서 세운 공적에 대한 명확한 평가 또한 없다.참전 후 70년이 지나서야 육군본부에서 받아본 류병추 회장의 ‘거주표’엔 정확한 예편 일자와 생년월일은 기록돼 있지만, 이름조차 오기(誤記)돼 있다. 류병추가 아닌 ‘유병식’으로 적힌 것.이런 상황을 감안한다면 “한국전쟁 당시 미군과 한국군 문서에 실명과 공적이 정확하게 기록된 분들에 한해 서훈 추천을 할 수밖에 없다”는 육군본부의 해명은 옹색해 보인다. △ 조선인민군 군가까지 배우며 분투한 학도병은 희생양?희생양은 ‘다른 사람의 이익이나 목적을 위해 목숨, 재산, 명예, 이익 따위를 빼앗긴 사람’을 비유하는 단어다.그런데, 장사상륙작전 참전 학도병들은 지향점이 판이한 ‘다른 사람’을 위해 싸운 게 아니었다.류병추, 이영희, 배수용 씨를 포함한 장사상륙작전 참전 학도병과 청년지원병 772명은 아버지와 어머니, 형제와 친구, 이웃, 더 큰 의미에선 조국을 위해 기꺼이 희생을 자처한 젊은이들이었다.그러니, 사전적 의미의 ‘희생양’과는 다른 형태로 해석되고, 평가받아야 마땅하지 않을까.1950년 8월 대구역 앞엔 ‘내가 총을 들고 전장에 나가는 것이 나라에 작은 도움이라도 된다면 마다할 이유가 없다’는 젊은 혈기와 신념으로 참전을 결심한 학도병 지원자들이 수천 명 모여들었다.장사상륙작전에 투입된 학도병도 바로 여기서 선발됐다. 부모에게 제대로 된 작별인사도 하지 못하고 기차에 오른 이들은 경남 밀양에 도착해 쌀을 보관하던 창고에서 가마니를 깔고 자며 낯선 군사훈련을 받았다. 식사라곤 차갑게 식은 주먹밥이 전부였다고 한다.류병추 회장은 2주간 훈련을 받던 그 시기를 지금도 뚜렷하게 기억하고 있다.“1주일쯤 지났을 때다. 교관이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사람은 손을 들라’고 했다. 손을 든 이들에겐 귀가가 허락됐다. 하지만, 그런 사람은 10명 중 1명도 되지 않았다.”당시 스물여섯 살이던 배수용 씨는 “나이가 많으면서 모범적으로 하지 못한다고 조교에게 맞기도 많이 맞았다”고 했다.그럼에도 절대다수의 학도병들은 편안한 집 대신 생명을 걸고 싸워야하는 전투 현장으로 가겠다고 스스로 선택했다.장사상륙작전은 조선인민군이 점령한 지역으로 학도병을 보내는 것이기에, 여차하면 인민군으로 위장하기 위해 북한 군가까지 배웠다.“장백산 줄기줄기 피어린 자욱/압록강 굽이굽이 피어린 자욱”으로 시작하는 ‘김일성 장군의 노래’다. 배수용, 류병추, 이영희 3명의 노병은 아직도 그 노래의 가사를 기억하고 있었다.이전까진 총 한 번 쏴본 적 없는 어린 학도병들은 그렇게 부산항 4부두를 떠나 조선인민군 2군단이 버티고 있는 영덕군 남정면 장사해변으로 떠났다. 앞서 언급한 ‘육본 작전명령 174호’가 그들을 사지(死地)로 보냈다.1950년 9월 14일 오후 4시였고, 동해가 태풍 케지아(Kejia)의 영향권에서 온전히 벗어나지 못한 날이었다. 육본 작전명령 174호는…독립 제1유격대대 보급·수송 지시 명령서… 참전 학도병 명백히 밝힐 자료 활용해야한국전쟁 때 국군 최고 책임자였던 총참모장 정일권(1917~1994) 소장의 직인이 찍힌 ‘육본 작전명령 174호’는 단기 4283년(1950년) 9월 10일 작성됐다.경북 포항과 안강의 전황을 설명하고, 작전에 참여할 독립 제1유격대대의 보급과 수송, 통신과 의료 관련 사항을 지시하고 있는 이 명령서는 ‘군사 극비’로 분류됐다.장사상륙작전에 투입된 학도병과 청년지원병은 바로 이 육본 작전명령 174호에 따라 이동·상륙·상륙 후 전투를 수행했다. 이는 명백하게 남아있는 ‘한국전쟁 당시 관련 문서’다.이를 토대로 참전 학도병의 이름을 찾아내 확인하는 게 대한민국 육군본부나 국방부에겐 그렇게 어려운 일일까? 참전자들의 전공(戰功)은 이미 각종 군사 관련 문헌이나 자료가 있으니 확인이 가능할 것이다. 정확한 성명과 전공. 현재 법률로선 훈장 추서와 수여는 이 두 가지가 선행돼야 가능하다.장사상륙작전 생존 학도병들은 입을 모은다.“지금 와서 공명심에 훈장을 바라는 게 아니다. 국가가 우리를 잊지 않았다는 걸 확인받고 싶다”고.장사상륙작전 전우 772명 중 현재 생존자는 20명이 채 되지 않는다. 이미 아흔을 넘긴 그들에겐 시간이 많지 않다.‘나라를 위해 몸을 바친다’는 군인의 본분은 장성과 학도병이 다를 리 없다. 정일권 소장은 1950년 을지무공훈장을, 1951년엔 태극무공훈장을 받았다./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2022-04-19

문경, 농업예산 1천억 돌파… 농축산 유통 중심 도시로

문경은 도농복합 도시라 어느 한쪽에 집중 투자하기가 곤란한 구조지만 작년 우리시 농업예산은 1천억 원을 넘어섰다. 국가 전체 예산 중 농업예산 비중은 사상 처음으로 2%대로 떨어졌지만 ‘농민이 잘 사는 부자농촌’ 건설을 위한 시정 목표아래 끊임없는 농업인들의 역량강화와 10년 동안 꾸준히 농업분야 지원을 확대한 결과의 산물이다.지난해 문경시에서는 산지유통기능 활성화와 농산물 가공산업, 마케팅 관련 예산 142억, 축산경쟁력 강화 및 경영안정화, 악성 가축전염병 차단방역을 통한 친환경 축산 예산 109억 등 총 251억을 확보해 농업인의 소득 향상은 물론 문경 농업발전을 위하여 역동적인 행정을 추진했다. 그에 힘입어 문경은 대를 이어 농사를 지을 청년들이 몰려들고 있어 조만간 농업도시로 등극 할 날이 멀지 않았다. ◇ 유통 성장기반 다지기 ‘착착’ 진행 그리고 도약문경 마성면에 위치한 문경거점산지유통센터는 문경사과의 메카이다. 입구부터 향긋하고 달달한 사과향의 유혹이 시작된다. 선별 작업장에는 규격별로 분류된 명품 문경사과가 형형색색의 박스에 포장되어 전국으로 팔려 나간다. 2009년 개장 이래 지난해까지 11년 연속 흑자 경영은 물론, 2020년에는 매출 300억을 달성하는 성과를 올리며 문경사과 산업의 큰 축을 담당했다.지난해는 개장 12년만에 30억원을 들여 최첨단 기능을 강화한 자동화 시설로 탈바꿈했다. 무게와 색태, 당도는 물론 내부의 부패 정도까지 판별하는 최첨단 선별라인과 로봇이 적재를 대신하는 무인화 시스템 도입으로 작업자의 피로도를 대폭 줄였다. 이 외에도 기존 중앙집중 냉각방식의 저온저장고를 개별 냉각방식으로 전환해 저장수율을 한층 높였다.이로써 문경거점산지유통센터는 대내외적으로 확고한 경쟁력을 갖추게 됨은 물론 유통채널의 다각화를 꾀할 수 있게 됐다.하지만, 또 다른 해결과제도 산적하다. 문경 산북면과 동로면을 중심으로 한 동부권역의 사과 생산량이 증가하면서 수확 철 저장시설이 부족해 유통시설의 확장요구도 이어지고 있다. 매년 타 지역의 공판장으로 유출되는 물량이 늘고 있어 그에 따른 농가의 불편과 비용이 증가하고 있는데, 이는 문경시 유통조직들의 규모화와 통합체 구성을 통해 해결 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지역의 농협들과 통합마케팅 조직 구성을 추진하고 있어 문경시 전체를 커버하는 유통조직의 탄생이 멀지 않았다.시는 농식품 가공시설 신·증설 지원으로 가공을 통한 지역농산물의 안정적 생산을 실현하고 있다. 사업여건과 농가수요를 반영하여 매년 10여개의 농식품 가공업체를 발굴, 3억여 원의 재정적 지원과 다양한 경영기법도 지도하고 있다.고소득 농산물이 다양한 문경에는 사과, 오미자에 이어 절임배추 관련 사업이 후발 주자로 떠오르고 있다. 절임배추는 취향에 맞는 양념을 간단하게 버무리기만 하면 맛있는 김치가 되어 그 시장이 확대되고 있다. 이에 시는 질 좋은 배추 생산량이 많은 농암지역에 절임배추 관련 가공산업을 육성하고 지원을 확대하기로 했다.가공산업은 1차 생산물 중심 농업에서 벗어나 유통과 서비스업을 아우르는 6차 산업의 원동력이 되는 분야인 만큼 문경의 작은 나비의 날개짓이 대한민국 전체 가공산업의 큰 물결을 일으키길 기대해본다. ◇ 다양한 마케팅 전략으로 농·특산물 최고 매출 달성코로나로 인해 2020년부터 전반적으로 농산물 판매가 감소했으나, 문경시는 지난해 농·특산물 직판장의 적극적인 판촉 행사와 온라인 쇼핑몰인 ‘문경사랑 새재장터’의 리뉴얼을 통해 역대 최고인 34억원의 농특산물 판매실적을 올렸다.올해에도 문경새재와 고속도로 휴게소 농·산물직판장의 물품 다양화와 판로확대에 중점을 두고 설 명절 특판 행사를 개최해 3억 원의 지역 대표 농·특산물을 판매했는데 이는 작년 설 보다 9.4%가 증가했다.또한, 위 직판장에 입점하는 모든 농특산물은 철저한 안전성 검사를 실시해 부적합 농·특산물 유통을 사전에 차단해 문경시 농·특산물의 대외 신뢰도를 높여 고객 모두가 안심하고 구매할 수 있는 지역 대표 농·특산물 직판장으로 만들어 가고자 노력하고 있다.광범위하고 적극적인 판매방법 중 하나가 TV홈쇼핑이다.시는 사과, 오미자의 TV홈쇼핑 판매를 지원하여 2021년 28억원의 매출을 올렸다.특히, 공영홈쇼핑 9월의 인기상품으로 문경오미자가 선정되기도 하여 문경농산물은 귀한 몸이 됐다. 올해는 작년보다 TV홈쇼핑 지원을 확대해 온라인 마케팅 기반을 공고히 다져나갈 계획이다.국내 농산물 시장의 한계를 극복하고 새로운 판로를 찾기 위해 해외판촉 행사와 박람회에도 참가해 해외 시장 개척도 나서고 있다. 지난해 러시아와 미국에 오미자김과 오미자 액기스를 수출했고, 수출촉진을 위한 수출물류비도 적극 지원해 농특산물 판로 확대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 각종 대회 휩쓸며 축산업 중심지로 도약2021년은 축산경쟁력 강화와 친환경 축산조성의 노력의 결실을 수확하는 한해였다. 전국한우능력평가대회 입상과 경상북도 한우경진대회에서 최고상인 챔피언상 수상, 낙농육우협회가 주관한 깨끗한 목장 가꾸기 운동에서 농림축산식품부장관상 수상 등 각종 축산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두었기 때문이다.축산경쟁력 및 경영안정 도모, 청정미래 축산업 구현, 친환경 축산조성, 악성가축전염병 차단방역을 위해 한 해 약 80억의 사업비를 투입하여 지속가능한 축산업 기반 구축에 힘쓰고 있다.차별화된 축산농가 소득증대를 위해 가축개량, 시설장비 현대화, 축산업 선진화를 위한 ICT 융복합사업 등에 14억, 축산분뇨로 인한 환경오염 예방과 악취를 제거해 자연 친화적인 깨끗한 축산농장 조성을 위해 20억 예산을 지원하고 있다.이러한 정책과 지원이 축산농가의 소득향상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다각도로 노력하고, 지역 주민들의 삶의 질 향상은 물론 귀농·귀촌인 정주여건 개선에 도움이 되어 사람이 모이고 쾌적하게 함께 살 수 있는 국내 최고의 미래형 축산업 중심지가 목표이다. ◇ 순풍의 날개를 단 문경약돌 브랜드육문경약돌한우 매출액은 재작년보다 89%, 문경약돌돼지 매출액은 22%가 증가해 많은 소비자의 사랑을 받고 있다. 이번 문경약돌 브랜드가 주목받게 된 배경에는 브랜드 농가와 관련단체의 노력과 문경시의 지원이 큰 역할을 했다.문경시는 지난 2015년 브랜드 상표사용 확대를 위해 조례를 전면 개정했고, 2022년에는 문경약돌한우 1곳, 문경약돌돼지 3곳을 상표권 사용업체로 선정해 현재 28개 업체가 문경약돌 축산물을 전문적으로 유통·판매하고 있다.또한, 2018년 12월 문경약돌축산물융복합명품화사업단(이하 명품화사업단)을 출범, 다각적인 홍보 전략을 구사해 문경 약돌 브랜드를 전국에 널리 알리고 있다.축산물 유통의 멀티플렉스인 문경약돌축산물유통센터를 2020년 12월에 준공해 개장 1년여만에 문경시의 랜드마크로 자리 잡았으며, 코로나19 시대에 맞춘 온라인 비즈니스 밴드(문경장터 약돌며느리), SNS홍보, Youtube와 라이브커머스 등을 운영해 다양한 판매망을 구축했다.그 외에도 타 지자체와 MOU를 통한 홍보·판매 활성화 및 신제품(약돌곰탕, 약돌돼지 불고기, 꼬리곰탕)을 개발·상업화 했으며, 최근 샤키테리 아카데미(소시지 전문가 육성)교육으로 가공품 전문가 양성과 이후 지역 내 개인 창업과 연결 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다.◇ 상시거점소독시설 설치 운영으로 가축질병 완전차단 기대시는 아프리카돼지열병 및 고병원성 AI의 원천 차단을 위해 거점소독시설 24시간 운영과 공동방제차량, 살수차, 광역방제차량를 동원한 양돈 및 가금 사육 농가 소독을 철저히 실시하며 총력대응 중이다.문경시 사육현황은 돼지 20호 43천두, 가금 22호 1천 522천수로서 돼지 이동 및 가금 출하 전 정밀검사를 실시하고 있으며 전담관리 공무원을 지정해 전화예찰·방역수칙 준수상황 점검 및 소독에 관한 지도를 강화하고 있다.지난 2월 이근 시·군에 이어 문경읍 관음리에서 야생멧돼지 ASF 양성 확진 폐사체가 발견됨에 따라 긴급 차단 울타리 설치, 경광등, 기피제, 출입통제 안내문, ASF 발생지역 입산금지 현수막을 설치하고 집중수색을 실시해 현재까지 추가 발생은 없는 상황이다.아울러 악성가축질병의 유입차단과 질병발생 시 신속한 차단방역으로 질병확산을 최소화하기 위해 현재는 시민운동장 주차장에 임시로 소독시설을 운영하고 있지만 축산차량이나 운전자를 소독하기에 미흡하다.이를 보완하기 위해 불정동에 14억원의 예산으로 250㎡ 규모의 거점소독시설을 공사 중에 있다. 사무실, 차량소독실, 대인소독실, GPS 축산차량 인식기능은 물론 오폐수 처리시설을 완비한 최첨단 시설로 지워진다. 4월말 공사를 마치고 한 달 간의 시험운전을 거친 뒤 6월부터 정상 가동되면 완벽한 동물전염병 차단이 가능해져 우리 문경은 가축전염병 청정지역으로 더욱 거듭나게 된다.농업이 ‘생명산업’이라면 가공과 유통은 ‘생명연장산업’이다.축적된 경험과 기후의 보장이 1차 농산물 생산의 성공 조건이라면 가공과 유통은 다양한 아이디어와 끝없는 재화 보급이 성공의 필수조건이기 때문에 상당한 위험을 감수해야 하지만 고용창출과 부가가치가 높은 분야이기도 하다.코로나19 팬데믹에 따른 노동시장 불안정, 기후불손, 예상하기 힘든 가격 변동에 더하여 소값 하락과 사료값 폭등으로 올해도 농업 현실은 녹록치않다. 하지만 끝임 없는 농업인들의 자기 개발과 행정의 지원의 조화로 농업은 문경을 대표하는 산업으로 자리 잡을 것이다./강남진기자75kangnj@kbmaeil.com

2022-04-18

“청년이 조국 위해 희생하는 건 당연하지 않나”

훈장(勳章)이란 ‘국가나 사회에 공로가 뚜렷한 사람에게 나라에서 그 공적을 표창하기 위해 수여하는 기장(記章·기념장)’을 뜻한다.범위를 좁혀 볼 때 무공훈장은 ‘전쟁 혹은, 그에 준하는 국가 비상사태 때 전투에 참가해 뚜렷한 무공을 세운 자에게 수여하는 훈장’을 의미하는 것.72년 전. 한국은 국가의 운명이 백척간두에 처해 있었다. 소비에트연방의 지원을 받은 북한 조선인민군은 단 3개월 만에 남한 땅 거의 대부분을 집어삼켰다. 국군과 UN군의 최후 방어선이 낙동강 일대에 구축됐다.숫자나 화력 모두에서 조선인민군의 위세에 눌렸던 국군 수뇌부는 젊은이들의 애국심에 호소해 적지 않은 학도병과 청년지원병을 모았고, 이들은 체계적인 군사 훈련을 받지 못한 상태에서 급하게 전선으로 투입됐다.한국전쟁 초기. 10대 후반 학도병과 20대 초중반 청년지원병이 주축이 돼 눈에 띄는 전과를 올린 전투가 적지 않았다. 1950년 9월 15일 장사상륙작전도 그런 사례의 하나다. ▲조선인민군 2군단과 전투 과정서 적지않은 이들 생명 잃어미국이 제공한 상륙선 LST문산호에 오른 772명의 학도병(청년지원병 포함)은 목숨을 건 전투를 조선인민군 2군단과 벌였고, 작전 수행과 퇴각 과정에서 적지 않은 이들이 생명을 잃었다.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양영조 책임연구원은 논문 ‘6·25전쟁 초기 장사상륙작전의 전개과정과 성격’에서 아래 3가지를 강조한다.첫째 “육군 독립 제1유격대대는 문산호의 좌초와 태풍으로 인한 파고 등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부대장의 지휘 아래 피해를 최소하고, 상륙작전을 전개했다.”둘째 “낙동강선 일대의 북한군 주력의 전력을 약화시킴으로써 한국군 제1군단 작전에 크게 기여하였다.”셋째 “아군의 유격부대가 적의 후방인 영덕지구에 상륙하여 적의 판단을 흐리게 함으로써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에 간접적으로 기여할 수 있었다.”배수용(99·한국전쟁 참전 유공자회 경북도지부 고문), 류병추(91·장사상륙작전기념사업회장), 이영희(91·전 옥천군 교육장)씨는 앞서 언급된 육군 독립 제1유격대대의 전우다. 72년 전 포탄이 바로 눈앞에서 떨어지는 죽음의 공포 앞에서 함께 울고 웃으며 싸웠던.18세 학도병과 26세 청년지원병이던 그들은 이제 모두 아흔을 넘겼다. 애써 말을 참지만 그때 죽어간 139명의 전우와 장사해변에 남겨졌던 50명 가까운 친구들이 피로 세운 전공을 국가가 모른 척하는 것 같아 내심 서운하다.‘전쟁 혹은, 그에 준하는 국가 비상사태 때 전투에 참가해 뚜렷한 무공을 세운 자에게 수여하는 무공훈장’을 아직 장사상륙작전 참전 학도병들에게 추서하거나 수여하지 않는 이유는 뭘까?육군본부는 “한국전쟁 관련 문서에 이름과 공적이 명백하게 남아 있는 사람에 한해 서훈 추천을 할 수 있다”는 원칙적인 답변을 내놓는다.육본측의 입장도 일면 이해가 가지만, 생존 학도병들을 취재하는 과정에서 어쩔 수 없는 답답함을 느꼈다.아래 배수용, 류병추, 이영희 씨가 학도병과 청년지원병으로 참전하게 된 이유와 장사상륙작전 당시의 경험을 요약하는 것으로 이 답답함이 기자만의 것인지 독자들에게 묻고 싶다. ▲진로 고민하는 외손자에게 “투철한 국가관을 가진 군인이 되라”경북 경산시 백천동에 거주하는 배수용 고문은 거의 한 세기를 살아낸 사람이다. 그 나이면 육체가 쇠할 때가 됐다고 생각되지만, 천만에다.배 고문은 혼자서 1시간 30분 버스를 타고 경산에서 포항으로, 거기서 다시 버스를 갈아타고 영덕군 장사해수욕장으로 왔다.그곳은 자신이 1950년 9월 쏟아지는 조선인민군의 기관총탄 속에서 두려움 떨쳐내며 싸웠던 장사상륙작전의 현장. LST문산호를 본떠 만든 장사상륙작전 전승기념관 앞에 선 그가 말했다.“내년이면 백 살이 된다. 1950년에 지원병으로 참전해 1954년까지 군대에 있었다. 장사상륙작전 이후 육군 2사단에 편입돼 수십 차례 크고 작은 전투에 참가했다. 두렵지 않았냐고? 청년이 국가를 위해 희생하는 건 당연한 게 아닌가.” 진로를 고민하는 외손자에게 “투철한 국가관을 가진 군인이 되라”고 조언한 것도 배수용 고문이었다. 지금은 육군사관학교를 마치고 소령으로 근무하고 있는 외손자는 지난해 10월 1일 국군의 날 행사가 열린 포항을 찾았다. 한국전쟁 참전 군인으로 행사에 초대받은 할아버지와 함께였다. 외조부가 생명을 걸고 지킨 나라를 이제 손자가 지키고 있는 셈이다.배 고문은 경북 영덕에서 태어나 대구에서 조그만 사업을 하다가 “국군이 북한군에게 밀리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스스로 결정해 지원을 결심했다. “그 결심에는 지금도 후회가 없다”고 잘라 말했다. ▲ 장사상륙작전 당시 파도에 휩쓸려 죽을 고비 넘겨서울 을지로에 자리한 장사상륙작전기념사업회 사무실에서 만난 류병추 회장도 아흔한 살이라는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정정했다. 청년 이상의 유머감각도 갖추고 있어 놀랐다.류 회장은 18세에 학도병으로 자원했다. 대구 대건중학교 5학년에 다니던 때다. 집으로 찾아온 모병관이 “나라가 위태롭다. 후방을 지키는 걸 도와주면 좋겠다”는 권유에 망설임 없이 그를 따라나섰다.“대구역 앞에 가니 나 같은 학도병들이 많았다. 뒤늦게 조부와 아버지에게 인사도 못한 게 생각나서 다시 집으로 돌아갔다. 그리고는 ‘저는 잠시 집을 떠납니다. 늦을 수도 있습니다’란 작별 인사를 했다. 두 분은 내가 어딜 가는 줄도 몰랐다.”류 회장은 그때도 신문을 열심히 읽었는데 징병을 피해 외국으로 도피한 사람들에 관한 기사를 보고는 혀를 찼다고 했다.“대구역에서도 그렇고, 지원병을 태운 기차 안에서도 그랬고, 훈련장에서도 도망칠 수 있는 기회가 없지 않았다. 그러나, 도망칠 것 같았으면 아예 자원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류병추 회장은 함께 학도병이 된 친구 강정관(당시 대구 계성중학교 5학년)씨와 “우리는 절대로 흔들리지 않고 교과서에서 배운 대로 청년에게 주어진 국방의 의무를 수행할 것”이라 약속했고, 그 약속은 한국전쟁 기간 내내 그대로 지켜졌다.독립 제1유격대대 3중대 소속 학도병이던 열여덟 살 청년 류병추는 장사상륙작전 당시 파도에 휩쓸려 죽을 고비를 넘겼고, 장사상륙작전에서 퇴각한 이후에도 영천과 홍천, 춘천과 청평에서 생사를 건 전투를 여러 차례 치렀다.춘천에서는 잠깐이지만 조선인민군의 포로가 됐었고, 총상을 입어 군 병원에 오래 입원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류 회장의 태도는 단호하고 명쾌하다.“나라가 없다면 내가 있을 수 있겠나? 위기에 처한 조국을 구하는데 작은 몫이나마 했다는 자부심이 나를 전쟁 이후에도 당당하게 살 수 있도록 해줬다.” 장남을 전장으로 보낸 아버지 심정은…이영희 전 교육장아버지 뜻에 따라유서 쓴 후 학도병 지원옥천군 교육장을 지낸 이영희(91)씨 역시 장사상륙작전에 참전한 학도병이다. 그는 자신이 겪은 경험을 ‘장사상륙작전의 군번 없는 학도병’이란 책으로 펴냈다. 이 책은 이 전 교육장의 생생한 전쟁 체험을 담고 있어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한국전쟁이 시작됐을 때 충북 영동농업중학교 5학년에 재학 중이던 이 전 교육장은 전쟁의 포화를 피해 아버지와 함께 대구로 피난을 갔다.너무 어려 보여 입대를 피할 수 있었으나, 이영희 전 교육장의 아버지는 가문을 이어갈 금쪽같은 장남에게 입대를 권한다.‘다른 학생들은 모두 조국을 위해 싸우는데 내 아들만 군대에 보내지 않는 것은 정도(正道)가 아니다’라고 생각한 부친의 뜻을 알아챈 이 전 교육장은 유서를 쓴 후 아버지와 함께 대구역 앞으로 가 학도병에 자원한다.모병된 수백 명 학도병들 사이에 섞여 멀어지는 아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이 전 교육장 부친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전장(戰場)으로 아들을 보내는 아버지의 마음. 짐작조차 쉽지 않다.장사상륙작전에서 조선인민군의 고지로 진격하다 포로가 된 이영희 전 교육장은 감시가 소홀한 틈을 타 탈출했고, 이후 육군 3사단과 9사단에 소속돼 정전 협정 때까지 학도병으로 위국헌신 했다. 전쟁이 끝난 후 학업을 마친 이 전 교육장은 평생 교육자로 살았다.그는 말한다. “어떤 역경과 고난 속에서도 인간은 결코 희망을 꺾지 않는 강하고 아름다운 존재다. 나는 그것을 전쟁을 통해 깨달았다”고./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2022-04-12

청송 리모델링… 낮과 밤을 모두 아름답게

작지만 깨끗하고 인정 넘치는 도시. 전국적으로 유명한 특산물인 사과와 철마다 다른 매력을 보여주는 주왕산의 절경, 빼놓으면 아쉬운 사진 촬영 명소인 주산지….청송군을 떠올리면 이어지는 이미지들이다. 수려한 자연 경관과 더불어 매년 심혈을 기울여 진행한 도시 환경 정비로 청송은 ‘산소 카페’라는 별칭을 확인하기 위해 누구나 한 번쯤은 다녀오고 싶은 매력적인 여행지로 발돋움하고 있다. 주민들 삶의 질도 높아졌다는 전문가의 평가도 나온다. 취재를 위해 3월 말 돌아본 청송 시가지는 거미줄처럼 어지럽던 전선이 사라지고, 낡고 허름한 간판도 깔끔하게 교체돼 있었다. 이는 청송군청 공무원과 군민이 힘을 합쳐 도시재생을 위한 사업을 의욕적으로 추진한 결과다.그렇다면 몇 년째 쉼 없이 지속된 청송군의 도시 환경 정비·재생사업은 어떤 구체적인 과정을 거쳐 오늘에 이르렀을까. 아래에서 이를 세밀하게 짚어본다. ◆전신주와 통신주 지중화로 도시 미관 개선 효과청송군은 지난 2020년 봄부터 청송읍 소재지에 거미줄처럼 얽혀 있는 전신주와 통신주를 지중화함으로써 ‘전선 없는 깨끗한 거리’를 만들기 위한 사업을 추진했다.더불어 군은 가로 경관도 정비해 도시브랜드로 설정한 ‘산소카페 청송군’의 이미지에 걸맞은 깔끔한 도시 미관을 구축한다는 방침을 세웠다.사업은 청송읍 월막리 중앙로(청송버스터미널-구 군민회관) 1.3km 구간에서 진행됐다. 총 사업비는 67억원. 한국전력공사가 30억원을 부담하고, 통신사가 12억원, 청순군비도 25억원이 투입됐다.본격적인 사업 추진을 위해 한국전력공사와 4개 통신사(LGU+·SKB·SKT·LG헬로비전)가 사업이행 협약서를 체결했고, 그해 5월 실시설계를 발주한 후 여름엔 주민공청회를 거쳤다. 사업 추진 과정에서 청송군이 특히 신경을 쓴 부분은 주민들의 통행에 불편이 없도록 하는 것. 이를 위해 사업비 이외의 별도 군비 17억원을 사용해 포장 복구, 보도와 상·하수도 개선 등 가로 경관의 정비에도 힘썼다.“전선 지중화사업은 청송읍 농촌중심지활성화사업과 연계해 추진됐고, 보행환경과 도시미관 개선을 통해 ‘산소카페 청송군’의 이미지 개선에 크게 기여했다”는 것이 청송군청 관계자의 설명.당시 청송군은 청송읍 금월로 전선지중화사업도 2022년 연말 준공을 목표로 추진하겠다는 방침을 밝힌 바 있다.올 3월엔 진보면 소재지 전신주·통신주 지중화 사업도 진행됐다.사업 구간은 진보면 소재지 중심도로(이촌리 마을회관-진보체육문화센터) 2.57km. 여기엔 132억원의 사업비가 투입됐다.이 도로는 사람들의 왕래가 잦고 도로 폭이 좁아 주차난이 극심했다. 또 전봇대까지 설치돼 있어 주민 안전도 위협해 왔다. 이에 청송군은 도로 확장과 인도 정비, 상·하수도 보수 등 가로경관을 새롭게 정비하는 것으로 깨끗한 도시 미관을 구축한다는 계획이다.사업은 한국전력공사와 통신사의 협약 체결 완료 후, 행정절차를 마친 뒤에 오는 9월에 착공해 2024년 12월 마무리될 예정이다. ◆깔끔하고 세련된 간판은 도시의 얼굴 역할무질서하게 들어선 간판을 정리하고 개선하는 사업도 청송군이 추진한 주요한 도시 환경 개선사업의 하나다. 이를 위해 지난 2020년 여름 ‘청송읍 중앙로 3차 간판개선사업 주민설명회’를 열었다.군은 아름다운 거리 조성과 쾌적한 주거환경 정비를 위해 2019년에도 ‘중앙로 2차 간판개선사업(청송농협-청송터미널 구간)을 진행한 바 있다.이 사업을 위해 도비 1억500만원을 포함해 총 3억5천만원이 투입됐다. 그 결과 금곡1리 56곳, 월막1리 41곳, 달기약수탕 인근 부곡지역 30곳 등 모두 127곳의 낡은 간판이 새롭게 디자인된 깨끗한 간판으로 바뀌었다.도시환경 전문가들은 “간판개선사업은 아름다운 경관조성 뿐만 아니라 사람들 삶의 질 향상과 관광객 유치에도 도움이 된다”고 조언한다.지난해 12월 3일엔 행정안전부가 주관하는 ‘2022년 행안부 간판개선 추가공모사업’에 청송군이 최종 사업지역으로 선정됐다. 이를 통해 진보면 진보로와 진안로 일대 450m의 거리 환경을 새롭게 단장 중이다.행안부의 추가 공모사업에는 전국 7개 지자체가 최종 선정됐다. 경북에서는 청송군이 유일하다. 군은 공모사업으로 1억8천만 원의 국비 예산을 확보해 군비 1억2천만원을 포함한 총 사업비 3억원으로 진보면 중심소재지 64개 업소를 대상으로 노후화된 간판을 매력적인 디자인으로 교체하게 된다공모사업 선정 후 청송군은 “이번 간판개선사업은 낡은 간판을 예쁘고 감각적인 간판으로 바꿈으로써 쾌적한 거리 환경이 조성될 것”이라 기대하며 “거리의 간판 조명등도 LED등으로 교체해 에너지 효율도 높여갈 방침”이라고 말했다. ◆지속적 도시재생 추진으로 낮과 밤이 모두 아름다운 도시로도시재생을 위한 청송군의 노력도 지속적으로 이어졌다. 2020년 11월엔 ‘진보진안의(義) 상생(相生), 함께하는 삶’이라는 명칭의 프로젝트로 국토교통부가 주관하는 도시재생뉴딜사업 공모에 선정됐다.도시재생뉴딜사업은 노후 주거지와 쇠퇴한 구도심을 지역 공동체 주도로 활성화해 주거환경 개선과 공동체 활성화, 일자리 창출 등을 통해 도시에 활력을 불어넣는 사업이다. 당시 국토교통부로부터 국비를 지원 받은 지차체는 전국 47곳이었다.청송군은 이 공모사업 선정으로 마중물 사업비 130억원을 확보했고, 2024년까지 생활SOC 공급, 골목길 재생사업, 상권 활성화사업 등을 펼쳐 진보진안지구 맞춤형 재생사업을 진행하게 됐다.진보진안지구 사업을 시작으로 2027년까지 청송 2개 지구, 진보 1개 지구에 추가로 도시재생뉴딜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다.이와 관련해 진보진안지구 도시재생 주민협의체 권동준 위원장은 “도시재생뉴딜사업의 효과가 극대화될 수 있도록 주민협의체를 중심으로 지역 발전을 위한 상생·협력관계를 구축해 나가겠다”는 의지를 밝히기도 했다.지난해 7월에도 경사가 있었다. ‘청춘, 인생 제 2막을 열다! 5080 청춘삶터’ 사업이 국토교통부 주관 도시재생인정사업 공모에 선정된 것.도시재생인정사업은 위험·장기방치 건축물의 긴급정비 등 시급한 사업을 지원하는 것이다. 최종 심의를 통해 공모에 선정된 지자체는 모두 11곳.공모사업 선정으로 총사업비 83억3천만원을 확보한 청송군은 2023년까지 구 보건의료원(건축물 안전등급 D)을 철거해 ‘5080 신중장년층 세대’를 위한 건강·취미활동·소통공간으로 신축한다.도시재생뉴딜사업부터 도시재생인정사업까지 선정된 청송군은 “일련의 도시재생 사업을 의욕적으로 진행해 지역이 활력을 되찾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다짐을 내놓았다.일찍부터 도시재생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이에 공을 들여온 청송군은 이미 2019년 군청에 전담 부서를 만들고, 도시재생주민대학도 운영해 왔다. 체계적 계획 수립을 위한 주민공청회도 여러 차례 열렸다.지난해 말엔 국토교통부 주관의 ‘용전천 마실길, 사람이 모이는 월막(月幕) 만들기’ 사업에 선정되는 겹경사도 있었다.이 사업은 총사업비 1억5천만원으로 주민 참여형 마을 가꾸기 등을 진행하게 된다. 사업이 진행되는 지역은 용전천 마실길 일원이다.이외에도 청송군은 ‘밤이 낭만적인 도시’를 만들기 위해 청송읍 용전천 주변에 경관 조명을 설치해 어두운 밤을 환하고 밝혔다. 이는 치안 유지에도 도움을 주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이처럼 도시환경 개선과 도시재생을 위한 청송군의 노력은 오늘도 현재 진행형이다. 2022년 새 봄을 맞은 청송은 낮과 밤이 모두 아름다운 도시로 진화하고 있다./김종철·홍성식 기자

2022-04-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