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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ㆍ특집

‘스마트도시’ 달서구, 지속가능한 대구 미래 이끈다

대구미래 변화의 중심에 달서구가 있다.최근 대구는 KTX 서대구역세권 개발사업과 대구시 신청사 이전, 4호선 순환선(트램) 건설로 서남부생활권으로 대구도심이 변화하고 있다.전국에서 3번째로 주민수가 많은 거대자치구인 달서구는 교통, 교육, 주거환경 등 정주여건이 뛰어난 곳이지만, 급속한 도시화에 따른 교통체증, 환경오염 등의 새로운 도시문제에 직면했다.이러한 도심문제는 전 세계적으로 디지털과 그린혁신의 바람을 일으켰고, 우리가 받아들여야하는 진화의 흐름이 됐다.세계뿐만 아니라 전국 자치단체는 디지털 경쟁에서 우위를 확보하기 위해 애쓰고 미래성장동력으로 육성하기 위한 노력 중이다.지난해 코로나19 라는 대위기 속에 디지털 혁신정책은 계속 확대 강화해 나가야하는 전략으로 급부상했고, 같은해 7월 정부는 ‘한국판 뉴딜1.0’발표에 이어 올해 7월 14일 한 단계 더 진화된‘한국판 뉴딜2.0’ 추진전략을 발표했다.이에 달서구도 당면한 위기극복 뿐 아니라 지역문제를 선도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체계적 인프라 조성과 탄탄한 민·관·산·학·연 협업체계를 구축해 비수도권 자치단체 중 최초이며 유일하게 세계지식포럼행사에서 ‘2021 대한민국 지식혁신 스마트시티 우수상’을 받았다.지속 성장하는 대구 미래를 위해 대구 중심에 선 달서구는 주민에게 귀 기울이며 동참을 끌어내 대구미래를 선도하는 자치구로서 4차 산업혁명의 대표 아이콘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나갈 계획이다. □ 스마트도시 달서구는 이렇게 준비했다우선, 추진체계와 제도부문 정비를 위해 지난해 7월 대구 기초지자체 중 최초로 스마트도시 전담조직을 신설하고, 이달부터는 스마트도시 전문가 인력풀(30여명)을 구성해 분야별 전문가와 정기·수시회의를 통해 사업발굴 및 미래도시에 대한 비전을 만들어가고 있다.특히, 내부역량강화를 위해 ‘스마트도시 연구 학습동아리’를 구성·운영했고, 자유로운 소통과 토론을 위한 직원 ‘브라운백미팅’을 열었다.또, 사업부서 담당자 역량제고를 위한 전문가 초청 컨설팅 간담회 및 세계스마트시티 엑스포 견학으로 현장체험교육 강화에도 노력했다.지난해말 스마트도시사업에 대한 제도적 근거 마련을 위해 ‘달서구 스마트도시 조성 및 운영 조례’를 지역 최초로 제정했고, 부구청장을 위원장으로 대학, 기업, 공공기관, 연구원, 공무원 등 각계 ICT 관련 전문가 18명으로 ‘달서구 스마트도시위원회’를 구성했다.올해는 달서구형 스마트도시 모델 창출을 위한 중장기 종합계획 수립 등의 내용을 담은 ‘달서구 스마트도시 조성 5개년 계획’을 수립 중에 있고, 주민들이 참여해 삶의 현장에서 다양한 도시·사회문제를 발굴하고 해결에 함께 참여하는 ‘주민참여 리빙랩(Living Lab)’도 운영하고 있다.이밖에도 국내·외 스마트시티 서비스 우수기업 등과 업무협약을 체결하는 등 스마트도시 분야 비즈니스 생태계 활성화를 위해 노력한 결과 현재 달서구는 다양한 첨단 스마트서비스가 제공되고 있다.□ 도심환경을 위한 스마트그린도시 서비스달서구는 지난해부터 다양한 정부 공모사업에 14개 사업이 선정돼 87억원의 국·시비 인센티브 예산을 확보했고, 자체사업으로 26억 규모로 스마트도시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달서구는 도심 한가운데 대규모의 성서산업단지가 위치한 지역 특성을 반영해 드론과 IOT를 활용한 입체적 환경감시망을 구축했다.실시간 미세먼지 측정 및 상황실 운영으로 지난해 7월 행정안전부로부터 ‘우수 적극행정’으로 선정됐다.또한, 2020년 9월에는 행안부·과기부의 협업공모사업에 ‘미세먼지 저감 도출을 위한 지도기반의 미세먼지 및 바람길 모니터링 시스템 구축’사업이 선정되어 앱을 통해 주민에게 미세먼지 농도 및 알림서비스를 제공하고, 모스월·소형분진흡입차량 등 저감장비를 운영해 미세먼지 대응시스템을 구축했다.현재 미세먼지 강창안심구역으로 선정된 호산동 일원에 국·시비 2억원으로 미세먼지 저감사업을 추진 중이며, 지역 내 경로당에는 미세먼지 정보알리미 및 고효율 에너지 공기순환기 등을 설치해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 혁신 신기술 활용한 안전도시 구축지난해 7월 국토교통부 ‘스마트시티 통합플랫폼 기반 구축사업’에 선정돼 방범·소방·교통 등 스마트 서비스들을 연계할 수 있는 통합플랫폼을 지역 최초로 구축·완료했다.이에 따라 달서구관제센터 2천여대의 CCTV영상을 경찰서·소방서·재난상황실과 연계해 실시간 영상확인으로 출동시간 단축 및 긴급대응으로 구민이 안전하고 편리한 삶을 누리도록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또한, 특화서비스로 달서안심이 앱서비스, 전통시장 화재알림서비스, 체납차량 위치알림서비스도 추가로 제공하고 있다.이뿐만이 아니다. 올해 3월 선정된 국토교통부 ‘2021년 스마트시티 솔루션 확산사업’은 37억5천만원 규모의 사업으로 어린이 교통사고가 많은 위험예상 지역에 스마트횡단보도 23곳을 설치하고 스마트 버스정류장(쉘터) 4곳과 스마트폴 8식을 설치해 첨단 신기술 서비스를 제공할 예정이다.아울러, 올해 4월에는 행정안전부 공모사업 ‘주소체계 고도화 및 주소산업 창출 공모사업’에 전국 최초로 선정돼 공원·버스정류장·안심귀갓길 등 주소가 필요한 시설물에 사물주소를 부여해 주민에게 통합서비스를 제공할 예정이다.□ 지역경제를 위한 혁신적 노력지난해 중소벤처기업부에서 진행하는 ‘스마트 시범상가’ 사업에 성서와룡시장이 선정돼 스마트상가(45개 점포)로 거듭났다.비대면 주문·배송서비스와 스마트(디지털) 메뉴판, AR을 이용한 스마트미러 등 여러 스마트 기술을 시장현장에서 접할 수 있게 됐다.올해도 성서아울렛타운, 두류젊음의 광장 상가가 스마트시범상가에 선정돼 지역 특성에 맞는 스마트시스템을 제공할 예정이다.올해 3월부터 대구지역 최초로 네이버 ‘동네시장 장보기’ 사이트에서 서비스를 개시한 서남신시장은 언택트 시대에 맞춰 누구나 쉽게 온라인·모바일로 전통시장을 이용할 수 있도록 쇼핑환경을 제공하고 있다.특히 지역 내 전통시장 중 화재에 취약한 예전우시장, 달서시장, 서남신시장, 와룡시장, 성서용산시장, 상원시장 등 6곳 시장에 스마트 화재알림시설을 구축하고, 스마트시티 통합플랫폼과 연계해 실시간 화재영상 확인 등으로 안전한 전통시장으로 변모하고 있다.더불어, 성서산업단지가 전국 최초 스마트산단으로 지정돼 제조공정혁신 및 창업 지원, 근로환경 개선, 산단 인프라 확충 등 산단 대개조사업이 올해부터 본격 추진돼 달서구에서 제공되는 스마트도시서비스와 함께 시너지 효과를 낼 예정이다. □ 사회적 약자를 위한 스마트 돌봄서비스 제공보건복지부에서 시행하는 응급안전안심서비스사업을 통해 안전 사각지대에 있는 지역 1천634가구에 화재·가스감지센서 등을 설치해 응급상황 발생시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119에 자동신고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달서구 특화사업으로 1인가구 위기상황 예방을 위한 달서안심 돌봄플러스사업은 지난 7월부터 취약계층 66세대에 스마트플러그를 보급해 전력량 및 조도변화 확인으로 안전확인 및 고독사 등 위기를 예방하고 있다.또한, 초등학생대상 구강위생검사 후 검사결과에 따라 맞춤형 온라인 구강보건교육을 제공하는 ‘언택트 구강보건교육’ 서비스사업도 올해 5월부터 지역내 56곳 초등학교 2학년 5천200명을 대상으로 시범 운영 중이다.□ 대구미래는 스마트도시 달서가 선도달서구 스마트도시의 중장기적 비전 및 체계적 추진방향, 스마트도시 미래상, 로드맵 설정, 재원조달방안 등의 내용을 담은 ‘달서구 스마트도시 조성 5개년(2022~2026년) 계획’이 이달말 확정될 예정이다.이 계획을 토대로 달서구는 스마트그린산단을 기반으로 한 청년층 인구유입 확대와 이들의 정주여건 개선을 통해 도시 활력에 노력을 기울일 방침이다.이와 더불어 중앙정부 정책 흐름(데이터 활용, 탄소중립, BIM)에 부합하면서 동시에 데이터 기반 비즈니스 생태계 조성에 선도적 역할을 수행해 나갈예정이다.정부가 지난 7월에 발표한 ‘한국판 뉴딜2.0’의 주요 추진전략인 디지털뉴딜, 그린뉴딜, 휴먼뉴딜 등이 지역균형의 프로젝트로 부상한 만큼 급변하는 전환의 중심에서 달서구 전체 공무원이 변화에 선제적으로 대응해 나가기로 했다.달서구는 미래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내부직원 역량 제고는 물론 주민주도 참여기반 마련을 위한 스마트도시 네트워크 강화 및 소통채널을 구축하는 등 첨단기술을 활용해 주민이 체감할 수 있는 사람중심의 스마트도시 조성에 더욱 박차를 가할 계획이다.이태훈 달서구청장은 “지역사회 발전을 견인하는 스마트 선도 자치구가 되기 위해 전 부서, 전 직원들이 한마음으로 함께 이러한 진화에 적극적으로 동참할 수 있도록 역량을 집중해 나가겠다”며 “지속 성장하는 대구의 미래를 위해 대구 중심에 선 달서구가 구민 수요에 귀 기울이고 동참을 끌어내 민·관·산·학·연이 함께 만들어가는 ‘대구미래를 선도하는 4차 산업혁명의 아이콘’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언급했다./심상선기자 antiphs@kbmaeil.com

2021-10-18

학교, 도농교류·도농상생으로 가는 징검다리가 되다

‘위기는 곧 기회다’수도권 집중에 따른 지역 소멸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지역 주민과 광역·기초자치단체, 교육기관 등이 힘을 합쳤다는 소식이 전국에서 들려오고 있다.날이 갈수록 소멸 위험이 심각해지고 있는 농촌마을을 중심으로 사회 구성원들이 지역 특색에 맞는 인구유입 정책과 사업 등을 펼치며 ‘소멸’에서 ‘회생’으로 대반전을 이룩하고 있기 때문이다.특히 ‘작은 학교 살리기’의 목표는 폐교 위기에 놓인 ‘학교’살리기에만 국한된 게 아니라 ‘농촌공동체 활성화’에 있다. 쉽게 말해, 교육을 매개로 외지에서 들어오는 학부모들이 마을 주민과 함께 힘을 모아 작은 학교 살리기에 동참하면서 도농교류와 도농 상생 활성화를 꾀하는 것이다.앞서 지난해 경남 거창군 신원면과 신원초등학교는 ‘신원신바람위원회’를 구성하고, 폐교위기에 처한 작은 학교를 살리기에 나섰다. ‘신원신바람위원회’는 귀농 농가에 빈집과 일자리를 소개하고 면민과 동창회에서 기금을 조성하는 등 학교특성화 교육과 학생복지를 늘리기 위해 힘써왔다. 이같은 노력의 결과로 마을에는 귀촌을 택한 젊은이들이 하나둘씩 늘어나고 있으며 폐교 직전에 놓인 학교와 마을에도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글 싣는 순서1. 소멸 위기에 놓인 시골학교의 현실2. 시골학교에서 부르는 희망노래Ⅰ3. 시골학교에서 부르는 희망노래Ⅱ4. 경북도교육청 작은 학교 자유 학구제 명과 암5. 지속 가능한 시골학교 상상 아닌 현실로 □신원초의 번영과 쇠퇴경남 거창군 신원면에 위치한 신원초등학교는 지난 1926년 개교해 졸업생 2천660여명을 배출해 낸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학교다. 1980년대 당시 신원면의 학생 수는 약 1천200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때 신원초의 재학생 수는 200여명이 넘었다. 그런데 1990년대부터 이촌향도 현상이 발생하며 인구 유출이 가속하기 시작했다.이후 출산율 감소로 인한 학령인구 급감 등의 영향으로 1996년부터 현재까지 신원면에 있는 4개 학교(율원초등학교, 산수초등학교, 중유초등학교, 용현초등학교)가 모두 신원초등학교로 통폐합됐다.신원초도 2000년대부터 재학생의 수가 빠른 속도로 줄어들기 시작했고, 지난 2015년부터 2019년까지 전교생 수가 20∼30명 내외에 그쳤다.특히 지난해 신원초의 재학생 수는 모두 26명(초등학생 23명, 유치원 3명)이었다. 뿐만 아니라 2021학년도 신입생이 없어 6학급에서 5학급으로 감축될 위기를 맞닥뜨리기도 했다.돌파구를 마련하지 못한다면 오는 2023학년도에는 4학급으로 학급수가 대폭 줄어들게 되고, 3∼4년 뒤면 신원초는 자연스럽게 분교와 폐교 수순을 밟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위기를 직감한 신원초는 같은 해 8월부터 본격적으로 ‘작은 학교를 살리기’운동에 돌입했다.학교는 ‘신바람 신원 교육’(신나는 배움, 바른 몸과 마음, 자람과 보람이 있는 생활)을 슬로건으로 내세우며 학교 특성화 교육 홍보 활동에 열을 올렸다.우선 해외수학여행과 승마장 체험 등과 같은 폭넓은 현장체험학습을 통해 재미있는 교육활동을 하고, Non-GMO 친환경 급식과 감염병 걱정 없는 안심학교(코로나 청정지역) 등을 적극 어필하며 학생 유치에 나섰다.신원초는 같은해 8월 10일 거창군으로부터 ‘폐교 위기 탈출 컨설팅 대상 학교’로 선정되며 지자체의 도움을 받아오며 홍보활동을 펼칠 좋은 기회도 얻게 됐다.뿐만 아니라 9월부터 신원초가 폐교 위기에 직면해 있다는 소식을 전해 들은 졸업생 및 향후회, 마을 주민, 학부모들도 ‘신원신바람위원회’를 꾸린 뒤 폐교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두팔을 걷어붙였다.이들은 자체적으로 ‘작은 학교 살리기’를 위해 기금 모금을 전개했고, 그 결과 4천280여만원의 기부금이 조성됐다. 회원들의 따뜻한 마음이 모인 귀중한 기부금은 전교생 장학금, 전(입)학생 장학금·복지·수학여행 등과 모두 학생들을 위해 사용됐다. □작은학교 마을의 희망으로 피어나다민·관·학 모두가 힘을 합쳐 노력한 결과 지난달 24일 기준 병설유치원에는 3명이 입원을 했으며, 초등학교는 9명(1학년 2명, 2학년 4명, 4학년 2명, 5학년 1명)이 전·입학하는 쾌거를 거뒀다. 그뿐만 아니라 서울, 경기, 부산, 경북 등 전국 각지에서 전입 상담을 문의하는 경우가 끊이지 않고 있다. 대기 가구만 40가구에 달한다.학교는 이 같은 추세가 지속된다면 2022학년도 유·초등 학생 수가 50명에 이를 것을 예상하고 있다.특히 올해 신원면에는 네 가정이 전입했으며 앞으로 두 가정이 추가로 전입할 예정이어서 신원면 인구 또한 지난해 말과 비교하면 28명이 더 증가했다. 이는 지난 2019년 8월 인구 1천500명의 선이 무너지면서 같은 해 9월 1천448명까지 감소한 이후 2년여 만에 거둬들인 성과인 셈이다. 신원면의 인구가 지속적으로 감소하는 추세라는 점에서 눈여겨 볼만 한 대목이다.신원면의 인구 증가의 주요 요인은 신원초의 폐교위기 극복을 위해 추진 중인 ‘작은 학교 살리기’에 따른 성과로 연결할 수 있다.마을 주민들은 “누군가에게는 학생 수가 적어 없어져야 할 학교지만, 우리에게는 그 시설의 추억과 마을을 위해 나설 수 밖에 없다”며 “신원초 마저 폐교되어 버린다면 신원면에는 초등학교가 단 하나도 없는 상황이 되어버리고 우리는 이를 막기 위해 최선을 다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또 최근 거창군 신원면은 겹경사를 맞았다.지난 8월 국토교토부가 주관한 지역수요 맞춤지원 공모에 ‘신원면 신바람 주거 플랫폼 구축사업’이 선정돼 국비 28억원을 확보하는 쾌거를 거뒀기 때문이다.신원면 ‘신바람 주거플랫폼 구축사업’은 폐교위기 탈출을 위한 LH공공임대주택 신축사업과 연계해 생활 SOC 정주 여건을 개선하는 것으로 커뮤니티 거점 조성, 체육관 리모델링, 보행환경 개선을 전액 국비로 추진하게 된다.거창군은 폐교된 신원중학교 유휴부지에 다목적 홀, 공유카페 등 개방형 공유공간인 어울림센터와 전 연령층이 이용할 수 있는 작은 숲 도서관을 조성할 계획이다.또 옛 신원중학교 체육관은 리모델링을 통해 생활체육시설로 탈바꿈해 지역 주민과 이주민이 소통할 수 있는 문화·체육 플랫폼 공간으로 만들 예정이다.거창군은 한국토지주택공사(LH)와 협약을 맺고 작은 학교 살리기를 위한 LH공공임대주택 신축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신원면에는 지역에 2022년을 목표로 임대주택 12호가 완공되면 신원초 전·입학 전입세대에게 우선으로 공급할 계획이다.제인식 신원초등학교장은 “지금까지의 성과는 학교뿐만 아니라 지역주민, 신원면 졸업 동문, 신원면 관계기관 등 열정을 가지고 노력한 결과라고 생각한다”며 “적극적인 학생 유치로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넘치는 안전한 배움터 신바람 나는 신원초등학교를 만들고, 신원초만의 특성화된 교육과정을 통해 아이들이 행복한 학교를 만들어 나갈 예정이다”고 밝혔다./이시라기자 sira115@kbmaeil.com※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1-10-14

터키처럼 러시아 여행길도 다시 열리기를

최근 코로나19 바이러스와 관련해 러시아의 자존심이 무너진 일이 언론을 통해 한국에 알려졌다.러시아는 세계 최초로 코로나19 백신을 만들었다. 이름하여 ‘스푸트니크V’. 하지만, 이 백신은 아직 세계보건기구(WHO)의 공식적인 승인을 받지 못했다. 러시아 사람들조차 스푸트니크V의 효과를 확신하지 못하는 상태.이런 상황이니 비교적 오가기 쉬운 인근 동유럽 국가로 미국이나 영국에서 개발한 코로나19 백신을 맞으러 가는 러시아인들이 적지 않다고 한다.러시아의 ‘코로나19 사태’는 여전히 심각한 현재진행형이다. 지난주에도 1일 확진자가 3만 명에 이르렀고, 숨지는 이들도 하루 1천 명에 가깝다고 한다.현재까지 러시아의 코로나19 누적 확진자는 770만여 명. 사망자 역시 21만 명을 넘고 있다. 백신 접종률도 30% 안팎으로 다른 국가들에 비해 낮은 편. 여러 조건을 감안할 때 아직은 안전한 러시아 여행이 힘들어 보인다.노모와 함께 다시금 블라디보스토크행 크루즈에 몸을 싣는 꿈 ▲낭만적인 기억으로 남은 포항-러시아 크루즈 여행형편이 이러하니 러시아로 떠나고 싶은 사람들의 욕망은 더 커지고 있다. 시베리아 횡단열차에 몸을 싣고 아름다운 바이칼 호수와 만나는 꿈, 몇 시간이고 끝없이 이어지는 해바라기밭을 바라보는 꿈은 당분간 미뤄둘 수밖에 없을 듯하다.러시아는 전 세계에서 가장 큰 나라다. 국토의 면적이 미국과 중국을 합친 규모에 육박한다. 그러니 특정 지역을 여행한 것만으로는 “러시아에 가봤다”고 말하는 게 우습게 들린다.기자의 경우엔 극동 러시아 지역인 블라디보스토크 여행이 근사한 추억으로 가슴에 새겨져 있다. 이동 수단이 비행기가 아닌 크루즈였다는 게 여행의 낭만성을 배가시켜줬다.블라디보스토크로 항해한 이탈리아 크루즈 ‘네오 로만티카(Neo Romantica)’가 포항을 떠난 건 코로나19 사태가 일어나기 불과 1개월 전. 그때만 해도 낯설고 끈질긴 바이러스가 지구 전체를 위험에 빠뜨릴 것이란 사실을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지 못했다.어쨌건 그 항해는 즐거웠다. 자그마치 30시간 넘게 배 안에 있었지만 지겨운 줄 몰랐다. 60층 높이의 빌딩을 눕혀 놓은 크기의 거대한 크루즈 안에선 시간마다 다양한 공연과 이벤트가 펼쳐졌고, 끼니마다 제공되는 어지간한 호텔 수준의 음식은 입을 즐겁게 했다.크루즈 여행의 특성상 나이 지긋한 관광객들의 만족도는 더 높아 보였다. 먼 거리를 걸어서 이동하거나 흔들리는 버스를 장시간 타야 하는 보통의 여행과는 달리 배에서 모든 서비스를 제공받는 편안함이 있기에 그런 것 같았다.지금의 코로나19 사태를 알 수 없었던 포항시는 전 세계 크루즈 승객이 3천만 명에 이르던 2019년의 상황을 고려해 포항과 블라디보스토크를 오가는 크루즈의 취항을 준비했었다. 그건 해양경제시대를 맞은 포항이란 도시의 관광 경쟁력을 획기적으로 높일 방법의 하나이기도 했으니까. ▲노모와 블라디보스토크로 갈 날을 기다리며그러나, 불과 2년 사이에 크루즈 여행이 애물단지로 취급받고 있는 게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2020년 초반. 세계 각지에서 크루즈 여행을 즐기던 사람들 모두가 배에서 내리지 못하고 크루즈 자체가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온상’으로 취급받는 장면을 수많은 사람들이 지켜봐야 했다.여행하고 싶다는 열망은 그곳에 쉽게 갈 수 없을 때 더 증폭된다. 크루즈를 타고 도착했던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또한 그런 여행지가 됐다.겨울이면 기온이 영하 20℃ 이하로 떨어지는 곳이지만, 입김을 뿜으며 돌아다니던 혁명광장과 독수리 전망대, 도시 곳곳에서 볼 수 있던 유럽 스타일의 예쁜 건물들이 눈앞에 삼삼하다.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맛본 큼직한 킹크랩을 떠올리면 지금도 군침이 돈다.포항과 블라디보스토크를 왕복하는 크루즈가 상설화됐다면 일흔다섯 살 노모를 모시고 한 번쯤 배에 오르려 했다. 그건 효도와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아온 자식의 소박한 꿈이었다.항해 중에는 노인들을 위해 준비된 각종 이벤트와 게임·노래자랑을 즐기게 해주고, 매일 식구들의 음식을 준비하느라 긴 세월 고생한 모친에게 한국에선 맛보기 어려운 러시아 특유의 요리를 대접하고 싶었는데….이런 마음이 들 때면 ‘영원히 지속되는 수난과 고통은 없다’는 잠언을 떠올리게 된다. 블라디보스토크를 포함한 러시아 전체가 코로나19가 가져온 수난과 고통에서 한시바삐 벗어나기를 기원한다.그렇게 된다면 매서운 극동 러시아의 찬바람도 기꺼이 맞으며, 일주일쯤 기차를 타고 멀고 먼 모스크바까지 달려 매력적인 러시아 관광지 곳곳을 돌아보고 싶다는 바람 간절하다. 22개월 만에 열린 터키 하늘길… 그리운 아나톨리아, 카파도키아 ▲터키로 가는 하늘길은 이제 열렸다는데...터키 역시 러시아만큼이나 코로나19로 인한 피해가 컸던 국가다. 누적 확진자가 745만 명에 이르렀으니까. 하지만, 사망률은 0.9%로 다른 나라들에 비해 비교적 낮은 상황이다.관광 관련 산업은 터키의 주요한 수입원 중 하나였다. 유럽과 아시아의 경계에 위치했기에 두 대륙의 특성을 모두 지니고 있는 터키 최대 도시 이스탄불로 관광객들이 몰려들었다. 보스포루스 해협에서 20~30분쯤 배를 타면 아시아 지구에서 유럽 지구에 도착할 수 있는 도시가 바로 이스탄불.인위적으로는 도저히 만들어낼 수 없는 풍경이 여행자를 매료시키는 터키 카파도키아 지역은 기암괴석으로 만들어진 외계 행성처럼 느껴졌다. 조그만 마을 괴레메에서 숙소로 이용한 어두컴컴한 동굴호텔은 또 얼마나 흥미로웠던가.지난해부터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상당수의 국가가 여행자의 방문을 자제시켰던 것처럼 터키도 관광객의 유입을 어쩔 수 없이 막았다. 그런데 최근 22개월 만에 터키로 가는 하늘길이 다시 열렸다는 뉴스가 들려왔다.여행사의 전언에 따르면 코로나19 백신 2차 접종을 마친 사람들은 터키 여행 후 2주간의 자가 격리를 면제받을 수 있다고 한다. 다만 출국 72시간 전 PCR(유전자 증폭) 검사는 필수다. 터키 외에 몇몇 유럽 국가와 싱가포르 등도 여행이 작년보다는 훨씬 쉬워졌다. 자신이 생활하는 일상의 공간을 벗어나 낯선 곳에서 다른 문화와 생활양식을 체험하고 싶었던 이들에겐 오랜만에 들려온 희소식이 아닐 수 없다.“유럽의 입구, 아시아의 출구”로 불리는 터키는 1920년대 술탄(Sultan·이슬람국가의 최고 통치자)이 없어지기 전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오스만 투르크 제국으로 익숙했다. 공화국이 된 건 불과 100여 년 전.이란, 아르메니아, 이라크, 시리아, 불가리아 등과 국경을 접한 터키는 흑해, 지중해, 마르마라해 등 아름다운 바다가 사시사철 반갑게 손짓하는 곳이기도 하다. 해안선 길이가 자그마치 7천200km에 이른다. 해변도시 안탈리아는 로마 시절부터 유명한 휴양지였다.동방과 서방을 연결하는 가교 역할을 해온 국가였기에 정치·사회적 우여곡절도 많았다. 아직도 분쟁을 겪는 이웃 나라가 있을 정도다.국민의 대다수가 이슬람교를 믿지만, 종교적 도그마가 여행자의 기분을 상하게는 하지 않는다. 이는 오스만 투르크 시절부터 몸에 배인 이방인에 대한 포용력이 터키 국민들의 핏속에 흐르기 때문인 듯.한 달쯤 터키를 여행한 경험에 의하면 이스탄불과 흑해 주변도 좋지만, 아나톨리아 고원지대가 특히 매력적인 여행지다.1950년대 초반 한국전쟁이 일어났을 땐 적지 않은 터키 젊은이들이 한국으로 왔다. 파병된 그들은 한 번도 보지 못한 나라의 자유와 인권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쳤다. 분명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터.그런 역사 때문에 흰 수염이 멋진 70~80대 터키 할아버지들은 한국 청년 여행자들을 손자처럼 여기기도 한다. 기자 역시 몇몇 가정에 초대받아 달콤한 홍차와 터키식 피자 ‘피데(Pide)’를 대접받는 호사를 누리기도 했다.코로나19 바이러스에 막혔던 여행길이 많은 나라에서 여전히 뚫리지 않았지만, 터키 등을 필두로 이제 서서히 열리고 있는 추세다. 한국도 ‘위드 코로나 시대’를 준비하며 해외 관광객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다. 다가오는 겨울엔 러시아의 새하얀 설원과도 기쁘게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2021-10-13

우리 곁 경북도 지정문화재 1천399점… 여러분은 아시나요?

어린 시절, 아버지의 고향인 달성군 시골집 인근에 있던 사당은 동네 아이들의 놀이터였다. 다소 괴기스러운 모습이기도 했고, ‘귀신이 나온다’는 동네 형들의 귓속말은 또래 사내 아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기도 했다. 특히나 쾌쾌한 냄새가 나는 연못 오른편에 놓여 있었던 작은 석탑 주변은 무성하게 자란 풀떼기 만큼이나 시간을 보내기에 가장 좋은 곳이었다. 고등학교에 입학할 무렵, ‘200년은 넘은 사당’이라는 동네 어른의 이야기에 놀라움을 표했다. 또 어린 아이의 치기라고 할 수 있는 문화재를 훼손하는 장난보다는 멀찍이 떨어져서 200년의 세월을 감상하는 조금은 어른스러운 행동을 가지게 됐다.진부한 질문이지만, 대한민국의 국보 1호는 무엇일까. 대부분의 사람들이 숭례문을 이야기할 것이다. 조금 나이가 있는 사람이라면 남대문을 이야기할 수도 있을 것이리라. 그렇다면 대한민국의 보물 1호는 무엇일까. 더 나아가 경상북도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경상북도의 지정문화재 1호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졌을 때, 이를 정확하게 알고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국가지정문화재 : 문화재위원의 심의를 거쳐 문화재청장이 지정한 문화재이다. 국보와 보물, 사적, 명승, 천연기념물, 국가무형문화재, 국가민속문화재가 이에 속한다.」「시·도지정문화재 : 국가지정문화재가 아닌 문화재 가운데 특별시장·광역시장·특별자치시장·도지사 또는 특별자치도지사가 지정하는 문화재이다. 시·도 지정 유형문화재와 무형문화재, 민속문화재, 기념물 등이 이에 속한다.」「문화재자료 : 국가지정문화재와 시·도지정문화재로 지정되지 않은 문화재 가운데 향토보존상 시·도지사가 지정한 문화재이다.」경상북도청에 따르면, 2020년 12월 말 기준으로 지역의 국가지정문화재는 모두 793점이다. 하지만 경상북도 지정문화재는 국가지정문화재의 2배에 가까운 1천399점이 존재한다. 구체적으로 문화재자료가 581점으로 가장 많고, 유형문화재가 473점, 민속문화재가 154점, 기념물이 152점, 무형문화재가 139점이다. 다만, 경상북도가 지정한 유형문화재는 552호까지 있다.그렇다면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진, 어린 시절 시골 동네에서 가까이서 보았던 우리 지역의 문화재는 어떠한 것이 있을까. 다시 한 번 진부한 질문이지만, 경상북도의 지정문화재 1호는 무엇일까?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경상북도가 지정한 유형문화재 1호와 2호는 존재하지 않는다. 명칭조차 ‘미상’이다. 본래 경상북도의 지정문화재 1호는 대구 중구 경상감영공원에 있는 선화당이었다. 선화당은 경상도 관찰사가 공적인 일을 하던 건물로 안동에 있던 것을 조선 선조 34년(1601년)에 지금의 자리로 옮겼다. 그 뒤 현종 11년(1670년), 영조 6년(1730년), 순조 6년(1806년) 3차례에 걸친 화재로 타버렸다. 지금의 건물은 순조 7년에 다시 지은 것이다. 이후 경상북도 도청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1981년 7월 1일 이전까지 경상북도의 지정문화재 1호였으나, 대구시가 대구직할시로 승격됨에 따라 경상북도에서 분리되어 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 1호로 재지정됐다. 경상북도의 유형문화재 2호였던 징청각 역시 대구시의 분리로 현재 대구시 유형문화재 2호로 재지정된 상태다. 선화당과 마찬가지로 경상감영공원에 위치한 징청각은 경상도 관찰사가 살림채로 쓰던 건물이었다. 조선 선조 34년에 선화당, 응향당 등 여러 건물과 함께 지었다.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3호는 지난 2010년 2월 24일까지 존재했었다. 경북 예천군 상리면 명봉리에 있었던 ‘명봉사경청선원자적선사릉운탑비(鳴鳳僿境淸禪院慈寂禪師凌雲塔碑)’가 주인공이다. 유형문화재 3호는 그해 보물 제1648호로 승격됐다.현재 경상북도가 지정한 유형문화재의 제일 앞줄에 있는 것은 영주시 풍기읍 비로사 경내에 있는 ‘비로사진공대사보법탑비(毘盧寺眞空大師普法塔碑)’다. ‘비로사진공대사보법탑비’는 비로사 안에 있는 진공대사의 탑비다. 고려 태조 22년(939년)에 세운 비이며, 현재 일부가 파손된 상태다.경북 경주시 배동 산72-6번지에 있는 경상북도 지정 유형문화재 19호와 21호도 눈길을 끈다. 유형 문화재 19호는 ‘삼릉계곡마애관음보살상(三陵溪谷磨崖觀音菩薩像)’이며 21호는 ‘삼릉계곡선각육존불(三陵溪谷線刻六尊佛)’이다. 2개의 문화재 모두 1972년 12월 29일 지정됐다. 불상은 정확한 연대와 조각자가 알려져 있지 않으나, 통일신라시대인 8~9세기 작품으로 추정된다.경상북도 지정의 유형문화재 63호는 오래된 초상화다. ‘농암영정후사본및금서대 (聾巖影幀後寫本및金犀帶)’라는 이름의 그림은 조선 중기의 문신이며 시조작가인 농암 이현보(1467~1555) 선생의 초상화다. 추사 김정희의 소개로 소당 이재관이 분강서원에서 그렸다고 한다. 현재 개인 소유다. 경상북도 지정 유형문화재 248호인 ‘영주가흥리암각화 (榮州可興里岩刻畵)’는 본래 마을 아이들의 놀이터였다. 향토사학자에 따르면, “1990년 8월 7일 문화재 지정 이전에 아이들의 낙서가 많았다”고 한다. 가흥리 암각화는 청동기 시대의 것이다. 청동 동구로 쪼아서 새기는 방법을 사용하여, 3~5개의 선을 옆으로 연결했는데 그 의미는 아직 알 수 없다.2020년 말 기준으로 경상북도 지정 유형문화재의 막내는 550호와 551호, 552호인 ‘최벽 관련 고문헌(崔璧 關聯 古文獻)’, ‘안동 용수사 소장 용산지(安東 龍壽寺 所藏 龍山誌)’, ‘안동 용수사 소장 통진대사 양경 비편(安東 龍壽寺 所藏 通眞大師 讓景 碑片)’이다. 이 가운데 ‘안동 용수사 소장 통진대사 양경 비편’은 원래 안동 태자사에 있던 통진대사 양경(879∼954)의 비문으로 추정된다. 학자들은 “범일-행적-양경으로 이어지는 사굴산문의 계보 및 고려 초기의 역사적 사실과 관련한 귀중한 자료”라고 판단하고 있다. □곁에 있는 지정문화재, 관심과 보존 필요근래에 경북 포항시 남구 효자동에 있는 연일향교를 찾았다. 등잔밑이 어둡다고 하더니 고층 아파트의 옆으로 기와집이 늘어져 있었다. 효자동 입구에 ‘연일향교’라고 쓴 표지판이 작게 있었지만, 누군들 관심이 있었을까. 뜻밖에 연일향교는 1985년 8월 5일 지정된 경상북도의 문화재자료 1호였다.「연일향교는 고려 말기에서 조선 성종 이전에 처음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대성전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평면으로 구성되어 있고, 정면에 있는 중앙 칸의 칸살을 퇴칸보다 넓게 잡고 측면의 칸살은 뒤칸 앞쪽보다 2배 정도 더 넓게 잡은 칸잡이법을 사용했다. 건물의 구조와 공포 형식이 조선후기의 장식성이 강한 면을 보이고 있다. 대성전은 뒤에 위치하고 내삼문 앞으로 명륜당을 배치시키고 있다. 또한 주건물과 외상문이 동일축선상에 있어 전학후묘의 배치를 보여주고 있다. 조성권이 쓴 상량문에는 조선 태조 7년(1398년)에 대송면 장흥리에 처음 건립되었으나, 임진왜란으로 전소되어 숙종 때 성좌동으로 옮겨 다시 건립되었다고 한다. 고종 8년(1871년)에 현감 원우상이 읍치를 효자동으로 옮기게 되면서 향교 역시 현재의 자리로 옮겨지게 되었다.」 연일향교는 마치 백성을 내려다보듯이 제법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었다. 주변에 집이 없었던 과거라면 형산강과 연일 뜰이 한 눈에 보였을 것 같았다. 특히, 연일향교는 새로 손을 본 것인지 깔끔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과거의 손때가 여기저기 묻어 있는 것도 보였지만, 고즈넉한 분위기와 함께 도시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것이 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문제는 1시간 가까이 연일향교를 둘러보는 사이, 어느 누구도 이곳을 찾지 않았다. 국보와 보물에 몰두된 우리의 관심에 서글퍼지는 순간이었다.사실 국보와 보물도 지정 호수 2자리가 넘어가면 관심이 없는 것이 현대인의 삶이라고 했다. 하물며 광역자치단체가 지정한 문화재에 관심을 가지는 것도 과분한 일이기는 하다. 다만, 대다수의 지정문화재는 우리가 살고 있는 마을에 위치하고 있으며, 국보와 보물에 비해 접하기가 쉬운 것도 사실이다. 지정문화재에 대해 공부를 하며 만났던 한 향토사학자는 “경상북도의 지정문화재라고 하지만 문화재의 등급을 매긴 것에 불과하다”면서 “지정문화재이건 비지정문화재이건 작은 관심이 필요한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박순원기자 god02@kbmaeil.com

2021-10-12

“포항의 어제와 오늘을 주제로 사진전 해보고 싶어”

작가 이도윤은 평생 사진을 찍으면서 어떤 일을 겪었을까? 그리고 사진작가는 어떤 자세로 사진을 대해야 한다고 생각할까? 그 밖에 남은 생에 그가 이루고 싶은 일에 대해 들어보았다. 조 : 평생 사진을 찍으면서 에피소드가 많았을 것 같습니다.이 : 오죽하겠어. 별일이 다 있었지. 간첩으로 몰려 파출소에서 조사받은 적도 여러 번 있었어. 무거운 카메라를 메고 버스 타고 걸어서 시골로 들어가 이 집 저 집 기웃거리니 이상하게 생각했겠지. 당시에 시골 사람들 신고 정신이 투철했거든. 카메라 장비를 도난당했을 때는 하늘이 무너지는 심정이었지. 부산 서면에 촬영대회가 있어서 새벽에 버스를 타고 움직였더니 촬영이 끝난 후에는 지칠 대로 지쳤던 거라. 부산에서 만원 버스를 타고 이동하는데 어느 순간 카메라 가방에 있던 카메라가 사라진 거야. 카메라는 말할 것도 없고 고생해서 찍은 필름도 없어져 정말 속이 쓰렸지. 이건 자랑 같은데 포항 시의원 중에 내가 인물을 찍은 사람은 모두 당선되었어. 그 소문을 듣고 시도 의원들이 내 사진관에 와서 졸면서 기다리기도 했어. 울릉도에서 찾아온 군의원도 있었고.조 : 사진관으로 찾아온 사람도 많았겠습니다.이 : 지금이야 휴대전화로 사진을 쉽게 찍을 수 있으니 사진관 갈 일이 별로 없지만 과거에 사진관 가려면 큰맘을 먹어야 했지. 환갑 사진을 찍을 때는 온 가족이 버스를 대절해 오기도 했어. 그렇게 사진관에 오면 맨 처음 가족 전체 사진을 찍고, 큰아들 가족, 작은아들 가족, 부부 사진, 개인 사진 순으로 찍는 거야. 그 사진이 영정 사진도 되는 거라. 돌 사진, 백일 사진, 약혼 사진은 물론 언약식 사진을 찍으러 오는 경우도 많았지. 그러고 보면 시대마다 계절마다 복장도 다양했어. 그래서 유행이 바뀔 때마다 서울 동대문, 남대문으로 옷을 구하러 다니기도 했어. 학교 졸업앨범도 많이 했지. 대개 증명사진을 찍을 때 한 번 찰칵 하면 다 찍었다고 하는데 나는 여러 포즈를 신경 쓰며 고개를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주문하며 세밀하게 여러 번 찍고 가장 잘 나오는 것으로 인화했지. 그래서 학생들 앨범 촬영하는 게 정말 힘들었어. 그래도 사진 잘 나왔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피로가 눈 녹듯이 사라졌지. 한번은 누드 사진을 찍으러 온 아가씨가 있었어. 저녁 무렵에 퇴근하려는데 한 아가씨가 조심스럽게 들어오더니 누드 사진을 찍으러 왔다는 거야. 그때만 해도 누드 사진에 대한 이해가 거의 없던 때여서 나도 의아했지. 왜 누드 사진을 찍고 싶냐고 물으니 상체에 자신이 있어서 사진으로 남겨두고 싶은데 누구한테 부탁해야 하나 고민하다가 포항에서는 이도윤이 가장 유명하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왔다는 거야. 어떡하겠나, 사진을 찍어주었지.조 : 선생님 사진을 살펴보면 ‘생업’이란 제목이 여러 개 보입니다.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이 : ‘생업’은 단순히 직업을 말하는 게 아니라 살기 위해 절실한 마음으로 일하는 것이지. 이 사진은 내 사진관에서 아래를 내려다보고 찍었는데 우체국 앞이야. 눈발이 날리는 어느 날 한 아낙네가 얇은 옷차림에 고무 대야를 이고 어디론가 바삐 걸어가는 장면이지. 고무 대야에는 감자 몇 알이 담겨 있고. 아낙네는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감자를 팔러 장으로 가는 것일까, 아니면 어린 자식들에게 저녁을 먹이러 가는 것일까. 이런저런 생각을 많이 하게 되는 사진이지. 이런 삶을 생업이라 보는 것이지.다큐멘터리를 넘어 깊은 진실과 교감하려는 이도윤의 작가정신은 다음 글이 잘 설명해준다.“사람들의 표정과 몸짓에서 고달팠던 삶을 읽도록 해야겠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사진을 찍었다.”작가가 담아내려 했던 것은 그 순간의 어떤 진실만큼이나 그 진실이 담겨진 더 큰 그릇이라 할 수 있는 당대의 사회적 현실이었고, 그 현실을 직조하고 있는 우리네 삶의 진득한 기록이었던 것이다. 그런 면에서 사진은 잊혀짐과 망각에 대한 저항, 기록인 것이며, 그러한 순간순간의 기록이 모여 역사를 이룬다. 거창하기만 한 거대 서사가 아닌 평범한 이들의 일상들이 쌓이고 쌓인 역사이기에 그 의미는 더욱더 남다를 수밖에 없다.작가의 사진은 이처럼 순간의 진실이 하나하나 모여 이루어진 우리네 평범한 이웃들의 씨줄 날줄로 엮어진 풍경이며 역사인 것이다. 아울러 그저 단순히 차가운 객관적인 다큐멘터리로서의 진실만이 아닌, 그 속에 담겨진 진실과 교감하려는 작가적 애정이고 태도이기에 더 큰 울림을 전한다.- 민병직, ‘그리운 포항, 사람들’, 포항시립미술관, 2012, 8쪽.조 : 지금도 찍고 싶은 사진이 있는지요.이 : 특별히 찍고 싶은 사진이 있다기보다 사진전에 가면 사진을 찍고 싶은 충동을 느껴. 이건 이렇게 찍으면 안 되는데, 저건 어떤 앵글로 찍어야 하는데 하는 아쉬움이나 안타까움이 생겨. 아프기 전에는 쉼 없이 계속 움직였지. 매일 아침 6시 전에 나가 오전 10시까지 촬영했어. 사진은 역광이 중요하니까. 지금도 사람들이 나를 보면 사진 촬영하느냐고 물으면서 사진 좀 가르쳐달라고 해. 내 처지가 이러니 어디 가서 어떻게 찍어라고 말해주는 게 전부야. 아날로그에서 디지털 카메라로 넘어오면서 사진을 더 많이 찍었지. 디지털이 아무리 편리하다고 해도 아날로그보다는 못해. 사진의 톤과 디테일에서 아직은 디지털이 아날로그를 따라오지 못하지. 조 : 선생님 말씀을 들어보면 카메라 성능이 아무리 좋아져도 근본적으로 사진에 임하는 자세가 더 중요한 것 같습니다.이 : 사진을 편안하게 찍으려고 해서는 안 돼. 근성이 있어야 해. 한 장면을 찍어도 다양한 각도에서 접근해야지. 이명동 선생 같은 열정과 프로 근성을 배워야 해. 요즘 사진을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 사진작가의 혼이 작품에 담겨 있다는 느낌이 별로 안 들어. 화가들이 왜 사진을 가볍게 여기겠어? 화가는 사력을 다해 그림을 그리잖아. 사진작가도 과연 그럴까? 한번 생각해볼 문제지. 그런 의미에서 흑백 사진을 많이 했으면 좋겠어. 그림도 살릴 수 없는 것을 흑백 사진은 살릴 수 있어. 사진을 배우는 사람들이 흑백 사진을 찍게 되면 사진 예술의 본질을 깊이 이해할 수 있거든. 내 사진 중에 ‘돼지몰이’, ‘생업’은 흑백 사진이 주는 최고치의 아름다움이라 할 수 있지.조 : 끝으로 사진계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해주시지요.이 : 사진은 나에게 삶 그 자체지. 매 순간 사진을 생각했고 매일 사진을 찍었어. 그러다가 목표가 생겼는데 사진을 사회와 접목해보자는 것이었어. 그리고 그 길을 향해 열심히 걸어갔지. 나는 이 모든 걸 내가 좋아서 했어. 그 과정에서 많은 도움을 준 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어. 요즘 사진전에 가보면 사진과 관련된 사람들만 오는데 이건 좀 아쉬워. 내가 개인전을 할 때는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많이 왔지. 지역 유지들도 찾아와서 좋은 작품 만든다고 고생 많았다며 격려도 해주고 그랬어. 왜 사람들이 사진전에 별로 오지 않는지 사진계에서 고민하고 개선책을 찾아야 해. 그리고 이 이야기를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망설여지는데, 내 사진과 필름을 어떻게 할까 고민이야. 포항시립미술관에 맡길지, 한국사진협회 포항지부에 맡길지. 여건이 되면 ‘포항의 어제와 오늘’이라는 주제로 사진전을 해보고 싶군. 이도윤 작가 이도윤1940년 경남 남해에서 태어났다. 1967년 포항에 정착하면서 사람들의 삶과 풍경을 사진에 담아왔다. 1973년 포항 맥심다방에서 첫 개인전을 열었으며 2012년 포항시립미술관에서 ‘그리운 포항, 사람들’이란 주제로 여섯 번째 개인전을 열었다. 프랑스 국제사진전 우수상, 아시아태평양 사진전과 유네스코 사진전 우수상, 중화민국 사진전 3회 입선, 대한민국 미술대전 2회 입선, 대한민국 사진대전 입선 등의 수상 경력이 있다. 한국사진작가협회 포항지부장, 영상동인회 전국 회장, 선린대학·포항대학 강사 등을 역임했다.대담·정리 : 조혜경(시인)

2021-10-11

‘마을이 살아나기 시작하다’ 지역사회 구심점으로서의 학교

학교의 존폐가 지역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은 상당하다. 특히 농촌지역에서 학교는 단순히 교육을 제공하는 기관의 역할만 하는 것이 아니라 지역 사회 공동체의 구심점 노릇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학교가 설립될 당시에 마을 주민들이 땅을 무료로 제공해 주는 등 학교 건립에 어떠한 형태로든 동참했다면 학교는 교육기관 그 이상의 의미를 갖게 된다.이 같은 상황에서 ‘작은 학교 통폐합’과 ‘적정규모학교(학생들의 교육력 향상을 위해 교육과정을 정상적으로 운영하는 것을 목표로 교육결손 최소화 및 교육적 효과 극대가 가능한 규모로서의 학교) 육성’ 등과 같은 교육정책은 지역 인구 감소를 부추기고 결국 ‘농촌 공동화’ 현상을 만드는 결과를 가져온다. 이는 곧 마을 주민들의 활동을 위축시키고, 지역 사회의 황폐화를 이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입장으로 바라볼 수 없다.청성초는 민·관·학이 힘을 모아 ‘작은 학교 살리기’를 일궈낸 곳이다. 분교 격하 위기에 놓였던 청성초는 ‘교육 이주 정책’을 통해 난관을 극복해 냈고, 그렇게 찾아온 이주 가정은 학교를 넘어 청성면에까지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글 싣는 순서1. 소멸 위기에 놓인 시골학교의 현실2. 시골학교에서 부르는 희망노래Ⅰ3. 시골학교에서 부르는 희망노래Ⅱ4. 경북도교육청 작은 학교 자유 학구제 명과 암5. 지속 가능한 시골학교 상상 아닌 현실로 □청성초의 번영과 쇠퇴충북 옥천군에서 산비탈을 따라 굽이굽이 올라가다 보면 조그마한 초등학교 한 곳이 나온다. 이곳이 바로 1932년 3월 개교한 청성초등학교다.청성초는 개교 이래 지난 86년 동안 모두 3천921명의 졸업생을 배출해 낸 지역의 전통 있는 명문학교로 손꼽힌다. 청성초는 1970∼1980년 베이비 붐 세대들이 초등학교에 재학 중이던 시절 전교생이 한때 1천여명에 이를 정도로 학생 수가 많았다. 그런데 1990년대부터 이촌향도 현상이 발생하며 인구 유출이 가속하기 시작했다.2000년도에 접어들어서는 출산율 감소로 인한 학령인구 급감 등의 영향으로 지난 1995년부터 현재까지 청성지역에 존재하는 4개(신서분교장, 묘금분교장, 화성분교장, 능월분교장)의 초등학교는 모두 이 학교로 통폐합하게 됐다.마을 주민들은 “학교가 차례대로 문을 닫기 시작한 이후에 지역 인구도 꾸준히 줄어들고 있다”며 “2015년 이후부터 마을에서 갓난아이의 울음소리를 들어본 기억이 언제인지 가물가물 정도”라고 전했다.실제로 청성초의 전교생 수도 기하급수적으로 감소해 지난해 16명을 기록하게 됐다.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청성초는 ‘학생배치계획에 따른 학교 학생 수 추이’를 분석해 봤다. 그 결과 오는 2022년에는 15명, 2023년 13명, 2024년 10명, 2025년 15명, 2026년 16명이 될 것으로 예상됐다.문제는 전교생이 20명인 상황이 3년 이상 지속될 경우 학교를 분교장으로 격하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 같은 추세가 계속되면 2024년이면 청성초등학교가 결국 ‘청성분교장’으로 격하된다.청성초마저 사라져 버리면 이 마을에는 초등학교가 단 한 곳도 없는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민·관·학이 협력한 ‘청성초 살리기 운동’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마을 주민들은 한마음 한뜻으로 ‘청성초 살기기 운동’에 두 팔을 걷어붙였다. 본격적인 움직임이 시작된 건 지난해 12월부터이다.우선 청성면 마을주민과 청성면사무소, 청성초, 교육지원청 등이 모여 ‘지역공동체 협력에 따른 소규모 학교 살리기’ 첫 대책회의를 열었다.청성초 동문회 등은 십시일반 모금된 성금으로 장학사업 이외에 교육 이주 주택수리비, 어학연수비, 교육 프로그램비, 학교 선후배가 함께하는 멘토·멘티를 계획했다.또 이들이 가장 중점을 둔 건 전학 가정에게 거주할 ‘주택’을 제공해 주는 것이다. 학교 총동문회에서는 마을의 빈집부터 찾기 시작했다. 먼저 마을회관 한 층 전체를 새로운 주거 공간으로 변화시켰다. 또 자치단체에서 조성한 ‘귀농인을 위한 집’도 활용하기로 했다.인근에 위치한 산계 3리와 구음2리에 있는 빈집을 전학가정이 전입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도배와 장판, 보일러 등 100∼200만원 정도의 비용 지원으로 시설 보수를 해줬다. 이주 가구에는 보증금은 이주자 본인이 부담토록 하고, 1년 동안 총 120만원의 월세를 제공해 줬다.이주민들이 도시에서 생활하다 귀농을 하게 될 경우 어떻게 별다른 일자리가 없어 애를 먹는데, 이를 도와주고자 마을 주민들은 이들을 위한 일자리도 소개해줬다. 실제로 근처 포도연구소 등의 공공 일자리를 제공하는 방안과 마을 대단위 가족 기업에서 일할 기회도 제공했다.교육활동에 대해서는 학교에서 1.5㎞ 이상 떨어진 지역에 거주하고 있는 학생을 대상으로 등하교 지원을 위한 통학차량이 운행된다. 학교는 방과후학교 프로그램 및 방과후학교에서 실시하고 있는 교육비 및 교육재료비에 대해 수익자 부담없이 전액 무료 지원을 하고 있다. 전교생의 오후 돌봄 및 마을공동체 방과 후 프로그램의 비용 전체를 학교 및 교육청에서 담당한다.□학교를 살리자 ‘마을이 되살아 났어요’이러한 노력에 대한 결실로 지난 9월 말 기준 모두 8가구 14명(유치원생 4명, 초등학생 10명)의 학생이 청성초로 전학을 왔다. 그뿐만 아니라 양주, 오산 등 2가구가 새로 이사 올 예정이다. 전입 상담도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대기 가구만 9가구(유치원 10명, 초등학생 6명)에 달한다.여기에 ‘청성면 산성문화마을 주거플랫폼 구축사업’이 국토교통부의 ‘2021 지역수요 맞춤지원 공모사업’에 선정되면서 전입 인구 증가에 대한 기대감은 더욱 커지고 있다.군은 내년부터 85억원의 예산을 투입해 2024년까지 청성면 산계리 131-1번지 일원에 초등학교 전학생과 인근 산업단지 근로자를 위한 공공임대주택 15호와 복지센터, 주차장, 친환경 숲 속 놀이터 등을 조성할 계획이다. 최소 1가구에 4명만 잡아도 60명의 인구가 늘어날 것으로 추정된다.박희경 청성초교장은 “학생 감소로 분교 위기에 있던 유난이 힘든 시기에 미래 사회를 살아갈 우리 학생들을 위해 물심양면으로 애써주신 마을주민, 총동문회에 고맙다”며 “더 많은 학생이 청성초에서 따뜻한 인성을 기르고 슬기롭고 바르게 서로 어울려 따뜻한 인성, 창의, 융합적이고 복합적인 사고를 갖춘 아이로 자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전했다./이시라기자 sira115@kbmaeil.com※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1-10-07

인도와 이란, 코로나19의 고통에서 벗어나기를

무엇보다 귀한 인도의 관광 자원은 사람들의 미소먼저 두 가지 질문. 가난 속을 살면서도 세상 무엇도 부럽지 않다는 듯 행복하게 웃는 사람들이 많은 나라는 어딜까? 자신에게 돌아올 이익이 없음에도 남을 돕는 걸 일상 속에서 실천하는 이들은 어디에 많이 살까?30여 개 나라를 여행한 경험에 한정시켜 말하자면 첫 번째 물음에 대한 답은 인도, 두 번째 질문에는 이란이라고 답할 수 있을 것 같다.인도의 거리에선 찌푸린 사람을 보기 어렵다. 좌판을 펼치고 채소나 과일을 파는 상인들은 물론, 심지어 걸인까지도 미소와 멀어지지 않고 산다. 현세는 잠시잠깐이고 내세에 보다 나은 삶을 얻어낼 수 있다는 종교적 믿음 때문일까?이란에선 영어로 소통이 쉽지 않다. 그럼에도 페르시아 말을 하지 못하는 여행자들도 큰 불편을 느끼지 못한다. 크고 작은 도움이 필요할 때면 피붙이처럼 다가와 자기 일처럼 도와주려는 이란 사람들을 어느 도시에서건 쉽게 만날 수 있기에 그렇다.선량하고 순수한 사람이 많은 인도와 이란은 많은 이들에게 다시 가고 싶은 여행지로 손꼽히는 곳이다. 왜냐? 여행이란 ‘사람들과의 관계 맺기’이기도 하기에. ▲확진자 증가에도 바이러스와의 공존 모색하는 국가 늘어눈에 보이지 않는 코로나19 바이러스가 눈에 보이는 여행자들의 길을 막아선 게 벌써 2년째다. 인도와 이란을 향하는 관광객들은 거의 제로(0)에 가깝게 대폭 줄어들었다.그도 그럴 것이 두 나라의 ‘코로나19 사태’는 세계 어느 곳보다 심각한 상황을 거치고 있다. 흉악한 역병은 착한 사람들을 피해가지 않았다. 바이러스가 야기한 인도와 이란의 피해는 컸다.현재 인도의 코로나19 누적 확진자 수는 3천400만 명에 이른다. 미국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다. 사망자 역시 45만 명에 가까운 숫자. 안타까운 일이다.코로나19로 인해 죽은 사람들을 태우는 화장터 사진과 아내의 시신을 자전거에 싣고 가다가 통곡하는 남편을 찍은 사진을 본 많은 이들이 인도로 눈길을 돌렸고, 연민의 마음을 전했다. 이제는 전력난까지 겪고 있다니 인도의 상황은 앞으로도 전망하기가 어렵다.이란 역시 560만 명 이상의 국민이 코로나19 바이러스에 감염됐다. 그중 12만 명은 죽음을 맞았다. 다소 폐쇄된 형태를 가진 국가라 피해 관련 뉴스가 많이 전해지진 않지만, 아직도 하루 확진자가 1만 명 이상씩 나오고 있어 사태가 안정화되려면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할 듯하다.코로나19 사태가 본격화된 지 21개월째. 많은 국가들이 정책 방향을 바꾸고 있는 중이다. 무조건적인 바이러스 배척이 아닌 함께 공존하는 방식으로 코로나19에 대응하고 있는 것.경제적인 어려움을 겪는 인도로는 코로나19 백신 지원이 이어지고 있고, 이란은 19개월 만에 관광 목적의 비자 발급을 다시 시작했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다.두 나라로 가는 하늘길이 열리고, 예전처럼 인도와 이란의 넉넉한 인심과 환한 웃음을 보는 날이 속히 오기를 바라며 과거 좋았던 기억을 떠올려본다. ▲코로나19 아픔 딛고 인도 특유의 천진한 미소 되찾길코로나19 바이러스가 세상을 지배하기 한참 전 경험한 ‘28일간의 인도 여행’을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꾸미지 않고 사심 없이 웃는 사람들을 가장 많이 만난 시간’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어떤 난처한 상황에서도 인도 사람들은 “No problem(아무 문제 없어요)”이라며 크게 웃었다. 손을 내밀며 적선을 요구하는 이들까지도 “지금 내가 당신에게 좋은 일을 하도록 해주고 있고, 그로 인해 당신은 다음 생에 부자로 태어날 것”이라고 미소 섞어 말했다.그런 그들이 밉지 않았다. 국적과 결혼 여부, 여기에 아버지 이름과 월급까지 궁금해 하는 수많은 인도인들의 질문이 처음엔 곤혹스러웠으나 여행의 기간이 길어질수록 웃으며 답해주는 여유가 생겼다.태어난 곳에서 70년을 살며 마을 밖으로 한 번도 나가보지 않은 인도 할머니는 “여기서 먹고 사는 게 다 해결되는데 뭐 하러 다른 마을에 가느냐”며 천진하게 웃었다.작은 거짓도 섞이지 않은 순정한 그 말에 마땅한 답변을 찾기가 어려웠다. 인도 사람들이 삶과 죽음을 대하는 방식은 우리와는 전혀 달랐다. 그게 옳다 그르다를 판별하는 건 기자의 능력 밖에 있는 일.1857년 무굴제국이 멸망한 후 영국의 식민지가 된 인도는 100년 가까운 기간 동안 영국의 정치·경제적 지배를 받았다. 독립된 건 1947년.파키스탄, 중국, 네팔, 방글라데시 등과 국경을 마주한 인도는 많은 국민들이 사망하는 심각한 국경·종교 관련 분쟁을 숱하게 겪었다. 그럼에도 울음보다는 웃음에 익숙한 게 어떤 측면에선 놀랍기도 했다.불교가 생겨난 인도는 국토가 세계에서 일곱 번째로 넓고, 인구도 중국에 이어 세계 2위다. 이는 발전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는 이야기.수도인 델리와 경제 발전이 눈부신 뭄바이는 인도의 대표적인 거대 도시이자 관광객들이 사랑하는 지역이다. 10명 중 8명의 국민이 힌두교도이기에 생사관(生死觀)이 한국인들과는 많이 다르다.우리와는 1973년부터 외교 관계를 본격화했고, 한국으로 철광석, 원면, 피혁제품 등을 수출하고 있다.낯설지만 매력적인 여행지 인도에선 힌두사원과 이슬람교당을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석굴 사원과 고대 문명의 흔적도 뚜렷하다. 이런 이유로 유럽과 북미 관광객들은 ‘아름답고 신비한 나라’로 인도를 인식한다.그러나 무엇보다 귀한 인도의 관광자원은 순박하고 세파에 찌들지 않은 사람들의 미소다. 그 웃음과 만날 날을 기다리는 여행자들이 적지 않다. 이방인에 피붙이처럼 다가와 도와주는 이란 사람들 ▲이란, 친절과 타자 향한 배려로 역병 이겨내길페르시아의 후손들이 살고 있는 이란은 세계 최강대국인 미국에 당당히 맞서 공동체의 자존을 지키는 몇 안 되는 나라 중 하나다. 2천500년 전 페르시아는 지구의 1/3을 지배한 대제국이었다.이란 사람들은 강한 자존심과 더불어 타인에 대한 배려와 친절을 지니고 살아간다. 기자는 그 친절을 직접 몸으로 겪었다.출근길은 한국이나 이란이나 몹시 바쁘다. 페르시아어를 한마디도 못하는 여행자가 내민 쪽지. 거기엔 찾아갈 숙소 이름과 주소가 삐뚤빼뚤 적혀 있었다. 그걸 받아든 테헤란의 직장인 한 명이 지하철과 버스를 갈아타면서 기자를 숙소 앞까지 데려다줬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 베푼 조건 없는 친절.서로의 언어를 이해할 수 없는 둘은 1시간 넘게 동행하면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저 상대를 바라보며 멋쩍게 웃었을 뿐. 말로 전하지 못하는 고마움을 악수로 대신하며 서로의 이름을 알려줬던 이란 여행 첫날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거칠고 교조적”이라는 선입견과 오해 속에서 살아가는 이란의 이슬람교도들. 그러나, 기자가 거기서 본 것은 폭력적인 편견이 아닌 다른 나라에선 체험하지 못한 사람에 대한 진심 어린 배려였다. 아마도 그건 종교와는 무관한 인간적인 차원의 것이 아니었을까?코로나19 사태 초기부터 이란은 큰 혼란과 수난을 겪었다. 확진자 수도 세계에서 여덟 번째로 많다. 하지만, 수난 이후에도 이웃과 타자를 대하는 방식은 달라지지 않았으리라 믿고 싶다. 이타심(利他心)은 이란인을 특정 짓는 단어 중 하나이기에. 파키스탄, 터키, 이라크, 아제르바이잔과 인접한 이란은 유럽과 아시아의 중간에서 동양과 서양을 잇는 문명의 다리 역할을 해왔다.이슬람 시아파(이슬람교 2대 종파의 하나로 마호메트의 사위인 알리가 후계자가 되어 세운 교파)의 주도국인 이란은 전 세계에서 손꼽히는 산유국이다.정치권력은 최고 종교지도자인 이맘(Imam)이 가졌다. 호메이니에 뒤를 이어 이맘에 오른 사람은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고전적인 아름다움 가득한 궁전과 단아한 왕비의 사원이 여행자를 놀라게 하는 이스파한과 영화 ‘300’에 등장하는 페르시아 황제의 별궁 페르세폴리스는 이란이 내세우는 관광지다.수백 년 전 흙벽돌로 만들어진 독특한 건물이 가득한 사막 도시 야즈드와 지구에서 가장 큰 호수 카스피해에서 즐기는 낭만과 맛있는 생선 요리 또한 빼놓으면 아쉬운 이란 여행의 즐거움.저녁 무렵 조그만 시장 거리에서 갓 구운 따끈한 빵을 먹어보라며 내밀던 이란 할머니의 잔잔한 미소를 다시 한 번 보고 싶다./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2021-10-06

지역경제 활성화와 고용창출… 지속가능 도시발전 이룬다

김충섭 김천시장은 민선7기 시장으로 취임하면서 ‘지역경제 활성화와 고용창출’을 시정의 최우선 과제로 삼고 일자리 친화적인 우량기업 유치에 올인했다. 그 성과가 가시적으로 나타나고 있다.올 12월 준공예정인 김천1일반산업단지 3단계 부지에 35개 기업 2천900개의 일자리와 6천500억원의 투자를 유치했다.리쇼어링(re-shoring) 1호기업인 아주스틸, e-커머스 1위 기업인 (주)쿠팡의 첨단물류단지, 신선식품기업 대정, (주)현대에이알씨코리아 등이 김천에 새로운 둥지를 틀었다.김천∼거제 간 남부내륙철도 건설사업은 예비타당성조사 면제 사업으로 현재 전략환경영향평가와 기본설계를 시행 중이다.이번 ‘제4차 국가철도망구축계획’에 시행 중인 사업으로 포함돼 2022년 착공하게 된다. 총연장 172㎞에 4조7천억원이 투입되며, 철도가 개통되면 1시간 10분만에 김천에서 거제까지 갈 수 있어 물류교통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김충섭 김천시장. 김 시장은 지난 6월 한국매니페스토 실천본부에서 진행한 민선7기 전국공약이행 평가에서 최고등급인 SA(최우수)를 받아 지난해에 이어 2년 연속 선거공약을 가장 잘 실천하고 있는 자치단체장으로 인정받았다.김 시장은 기업유치, 공약사업이행, 철도망구축 등 시정을 성공적으로 추진하고, 민선 7기 마무리에 행정력을 집중하고 있다. 지속가능한 미래발전을 위해 추진하고 있는 주요 현안사업에 대해 알아본다.◇시청삼거리∼환경사업소∼유한킴벌리 10월말 도로개통김천시는 시가지 교통체증 해소와 지역균형발전을 도모하기 위해 1천483억원을 투입해 시청 삼거리∼환경사업소∼유한킴벌리∼혁신도시간 연장 5.6㎞에 4~6차로의 도로개설 사업을 추진 중이다.2023년 전 구간 개통 예정으로 최근 삼애원 터널공사와 국가하천 감천(甘川)을 횡단하는 교량, 그리고 공사구간 중 최고 난공사인 경부고속도로 횡단교량(덕곡교) 거치를 완료했다.◇70억원 들여 공공산후조리원 2022년 상반기 완공김천시는 ‘엄마와 아이가 행복한 김천’ 만들기 공약사업의 일환으로 공공산후조리원을 건립하고 있다. 모암동 김천의료원 인근 1천689.6㎡ 부지에 70억원을 투입해 지상 2층 연면적 1천432㎡ 규모로 건립되며, 지난 6월 착공해서 2022년 상반기에 완공 계획이다.‘김천시공공산후조리원’ 모자동실에는 개인 좌욕기와 거동이 불편한 산모를 위한 전용 샴푸실, 감염병 예방을 위한 비대면 면회실을 배치하고, 신생아실은 베네 캠(Bene cam)을 통해서 언제 어디서나 신생아의 상태를 볼 수 있도록 하는 등 타 시군의 시설과 차별화하고 있다.◇50억원 투입 장애인회관 2022년 12월 준공시내 곳곳에 산재해 있는 장애인 단체 사무실을 단일 건물 입주로 통합해서 장애인 단체 간의 연대를 강화하고, 장애인의 편익을 증진시키기 위해 옛 응명초등학교 부지에 ‘장애인회관’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총사업비 50억원, 연면적 2천480㎡(지하 1층, 지상 3층) 규모로 지난 7월 설계공모를 완료하고, 현재 실시설계 중에 있다. 올 연말에 착공해서 2022년 12월 준공할 예정이다.◇66억원 들여 노인건강센터 2022년 10월 준공김천시는 노인인구(65세 이상)가 전체인구의 23%로 이미 초고령 사회에 진입함에 따라 남산동 중앙공원에 66억원을 투입해 연면적 2천973㎡(지하 1층, 지상 5층) 규모로 올해 1월 착공해 2022년 10월 준공예정이다.노인건강센터는 노후생활에 꼭 필요한 다양한 시설과 프로그램을 갖추고 각종 노인복지 서비스를 종합적으로 제공하는 중심센터 역할을 하게 된다.◇263억원 투입 감호지구 도시재생 2024년 완료‘감호지구 도시재생 뉴딜사업’은 지역주민과 상인협의체의 적극적인 참여로 정정당당 은빛복지센터, 보행자 안전 우선도로, 문화광장, 행복한 가게프로젝트 창업공간 조성사업 등의 설계가 원활히 진행 중이다.감호지구 도시재생 뉴딜사업은 국비 141억원을 포함 총 263억원을 투입해 2024년 사업 준공을 목표로 생활 SOC시설 등 8개 분야 23개 사업을 차질없이 추진하여 주민들의 삶의 질 향상과 도심기능 회복 및 지역경제 활성화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평화동 도시재생, 행복주택 2022년 4월 입주김천시 평화동 원도심을 활성화하기 위해 지난 6년간 프로젝트 사업으로 추진 중인 ‘평화동 도시재생사업’이 어느덧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고 있다. 2016년에 공모에 선정된 ‘평화동 도시재생사업’은 3개 분야, 18개 세부사업으로 연차별 계획에 따라 차질 없이 추진되고 있으며, 연내 마무리될 예정이다.도시재생사업 중 가장 눈에 띄는 사업은 김천역 인근 지하 2층, 지상 15층 규모로 건립 중인 복합문화센터 및 행복주택 조성사업으로 1~4층까지는 청년센터와 건강다문화센터로 활용하고, 5~15층까지는 청년, 신혼부부, 대학생 등을 위한 행복주택(99호)이 들어서게 되며, 2022년 1월 완공해 4월부터 입주가 시작된다. ◇통합보건타운 건립으로 도심 활성화평화동 옛 김천대학교 창업보육센터 일원에 계획하고 있는 ‘통합보건타운’ 건립은 총사업비 348억원을 투입해 연면적 1만1천200㎡(지하 2층, 지상 3층) 규모로 9월부터 설계공모에 들어가 2022년 8월 착공해서 2024년 상반기에 개소할 계획이다.‘통합보건타운’은 보건소, 중앙보건지소, 치매·정신건강복지센터를 단일 건물에 통합·운영함으로 시민들에게 양질의 보건의료 서비스를 한 곳에서 종합적으로 제공한다.근무인력 200여명과 시설 이용자들의 유동인구 증가로 침체돼 있는 평화동 원도심 활성화에도 큰 기여를 할 것으로 기대된다.◇시내 가로수, 화이트 핑크 삼색버드나무 심어김천시 평화로에 시민생활에 지장을 주지 않으면서도 쾌적하고 아름다운 도시경관을 연출할 수 있는 화이트 핑크 셀릭스(삼색버드나무)를 식재했다.이 수종은 계절에 따라 잎이 핑크, 화이트, 그린 3가지 색으로 변하는 신품종으로 맹아력(萌芽力, 싹트는 힘)이 좋아서 원하는 다양한 수형을 연출할 수 있어 가로수, 정원수, 공원수 등으로 많이 식재되고 있다.◇고성산 둘레길, 느긋하게 천천히 걷는 트래킹 코스고성산은 도심 시가지(평화남산동, 양금동, 대곡동)와 연접해 시민들이 쉽게 찾을 수 있는 김천의 대표적인 도시 숲으로 시민들에게 쉼터와 휴식공간을 제공하고 있다.최근에는 가족들과 산책을 즐기고, 가벼운 조깅도 할 수 있는, 느긋하게 천천히 걷는 트래킹코스가 각광받고 있다. 이에 발맞추어 현재 계획 중인 ‘고성산 둘레길’ 또한 김천의 대표적인 트레킹 코스로 남녀노소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고 시민들의 건강과 활력을 지켜주는 쉼터로 조성할 계획이다.◇복합혁신센터 건립 공정률 46%, 내년 완공김천혁신도시의 정주여건 개선과 주민들의 다양한 문화욕구 충족을 위해 건립하고 있는 김천복합혁신센터의 공정율이 46%를 보이는 가운데 2022년 완공을 목표로 차질 없이 진행되고 있다.김천복합혁신센터는 국도비 114억원을 지원받아 총 363억의 사업비를 투입해 8천287㎡ 부지(육아종합지원센터 옆)에 지하 1층, 지상 2층 규모(연면적 1만163㎡)로 건립한다.이곳에는 도서관, 다목적강당, 청소년실, 휴게실 등 다양한 문화공간을 꾸며 지역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을 것으로 기대된다.지난해 공모를 거친 건축디자인은 김천시의 대표 무형문화재인 ‘빗내농악’의 상징적 의미를 형상화하여 빼어난 건축미를 더했고, 가족열람실, 종합자료실, 열람실, 공연 및 음악회, 야외전시, 강연 및 강좌, 세미나, 힐링·카페 독서공간과 청소년 활동공간으로 구성했다. ◇농산물종합유통타운, 농산물 유통구조 혁신김천시는 교통의 중심지이자 과실류 집산지인 강점을 살려 대형 장기프로젝트인 ‘농산물종합유통타운’ 건립을 계획하고 입지선정을 위한 준비 등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농산물종합유통타운 건립사업은 산지의 조직화, 규모화, 전문화를 통한 통합마케팅 체계구축, 농산물 유통구조의 혁신과 더불어 소비자 중심의 미래 먹거리변화에 적극 대응하기 위해 과수거점 산지유통센터, 비상품화농산물 자원화센터, 로컬푸드 복합센터(로컬푸드 직매장, 농가 레스토랑 및 테마카페 등), 전송물류센터, 체험형 축산테마공원 등 최근 소비트렌드 변화에 따른 농산물 유통의 새로운 미래를 열어갈 계획이다.이를 위해 김충섭 김천시장은 지난해 9월 김현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을 방문, 농산물종합유통타운 건립의 당위성과 필요성을 충분히 설명하고 국비지원 등을 건의했다.◇황산공원, 가족단위 휴식공간으로 조성장기미집행 공원 일몰제에 대비해 추진된 지좌 황산공원은 2019년 설계에 착수해 현재 토지보상 및 용역을 추진 중에 있으며, 올해 보상 및 설계를 완료하고 2022년 착공할 예정이다.주요 도입시설은 산책로, 광장, 물놀이시설, 흙놀이터, 초록쉼터, 네트어드벤처 등이 있다.그동안 급경사로 인해 이용이 불편했던 황산에 다양한 산책로와 데크길을 만들어 주민들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게 접근성을 높인다.또 지좌 황산공원에 흙놀이터, 물놀이시설, 네트어드벤처 등을 설치해 가족들이 아이들과 편안하게 이용하도록 한다. 훼손된 숲은 복원하고 편백나무 숲 등을 조성해 치유와 휴식의 공간으로 재탄생시킬 예정이다./나채복기자ncb7737@kbmaeil.com

2021-10-04

경제 활성화·체감형 복지·나눔으로 지역상생 앞장

금방 끝날 것 같았던 코로나19가 두 번째 추석을 지나도록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시간이 약’이라고 했다. 갑갑하고 불편하기 짝이 없던 마스크도 그새 익숙해졌는지 이젠 민낯이 더 어색할 지경이다. 마스크 쓰는 날이 길어질수록 소상공인의 시름도 함께 깊어지고 있다. 한국수력원자력(주) 한울원자력본부(본부장 박범수)가 있는 울진군 역시 사정은 별반 다르지 않다. 관광객의 발길이 뚝 끊기면서 지역경제가 고사 직전이다. 어려울 때 의지할 구석 하나 있으면 참 든든하다.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는 울진군에 힘을 보태고 있는 한울원자력본부의 ‘울진 사랑’이 눈물겹다. ◇판로 개척부터 랜드마크 지원까지 ‘지역경제야 살아나라’코로나19로 가라앉은 경기를 살리기 위해 한울본부도 한 몫 거들었다. 판로가 늘 고민이었던 지역 사회적경제기업을 위해 우체국쇼핑몰에 ‘지역 농수산물 브랜드관’을 개설했다. 단순히 새로운 판매 창구를 열어준 것에 그치지 않고 할인 프로모션도 함께 마련해 판매자와 소비자 모두에게 호평을 받고 있다.마른 오징어며 미역, 조청 등 울진지역에서 생산된 농수산물이 대표 선수다. 아는 이들만 알음알음 찾았던 상품들이 온라인 쇼핑몰을 통해 차츰 입소문을 타는 모양새다.우체국 지역브랜드관에 입점한 지역업체 대표는 “한울본부가 마련해준 온라인 장터의 재미가 쏠쏠하다”며 “어디서들 알고 오는지 작년 대비 매출이 큰 폭으로 뛰었다”고 말했다. 한울본부가 마련한 가격 할인 프로모션은 관련 예산이 소진될 때까지 계속될 예정이다.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울진읍 바지게시장도 코로나19로 인한 경기 침체를 피할 순 없었다. 장날만 되면 발 디딜 곳 없을 정도로 북적이던 시장이 허전하기 일쑤다. 깊은 고민 끝에 상인들은 가보지 않은 길을 걷기로 했다. 자체 온라인 쇼핑몰인 바지게몰닷컴이 바로 그것. 상인들의 새로운 도전에 한울본부도 힘을 보탰다. 지난 4월 창립 20주년을 맞아 바지게시장 쇼핑몰 신규 가입자에게 쇼핑지원금 1만원을 지급하는 이벤트로 소비자의 눈길을 끌며 지원사격을 톡톡히 했다.신규 관광객 유치를 위한 노력 또한 열매를 맺었다. 지난 8월 5일 개장한 ‘죽변 해안스카이레일’이 그 주인공이다. 죽변 해안스카이레일은 울진 죽변항에서 후정해수욕장까지 2.4km의 해안선을 따라 놓인 왕복 궤도시설로 최대 높이는 11m에 달한다. 한울본부는 사업비 약 230억원 중 95억을 부담했다. 동해안을 따라 펼쳐진 절경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어 관광객의 관심을 끌고 있다. 실제로 개장 이후 한 달 만에 1만8천명이 방문하면서 울진군의 새로운 관광명소로 발돋움하고 있다. 지역사회에서도 해안스카이레일이 불러올 경제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 효과에 기대가 크다.◇전기요금부터 TV수신료, 수도요금까지 ‘고지서에서 직접 확인해보세요’울진군을 위해 다양한 지원사업을 펴고 있지만, 그중에서도 보편적 복지형 사업을 향한 지역사회의 호응이 뜨겁다. 개별 주민마다 실생활에서 혜택을 직접 체감할 수 있어서다. 한울본부는 1996년 시작한 전기요금 보조사업을 통해 매년 꾸준히 발전소 주변지역 3개 읍면(북면, 죽변면, 울진읍)에 전기요금을 지원하고 있다. 이에 그치지 않고 지역주민의 경제부담을 완화하고자 다른 분야로 지원 범위를 점차 넓혀가고 있다.전기요금에 이어서 발굴한 분야는 건강검진이다. 건강은 인간이라면 당연히 누려야 하는 중요한 가치인 만큼 울진군민들이 건강한 삶을 유지할 수 있도록 2013년부터 종합건강검진을 전액 무상으로 제공하고 있다. 지난 8년간 한해도 거르지 않고 시행한 끝에 약 1만2천명이 혜택을 받았고 총 지원금은 57억원에 달한다. 거동이 불편한 주민들을 위해 병원까지 가는 셔틀버스를 함께 운영하는 세심한 배려로 주민 만족도가 크다. 올해도 지역주민 2천200명이 건강검진 서비스를 받을 예정이다.TV수신료도 지원한다. TV수신료는 한국방송공사(KBS)가 방송법에 따라 징수하는 요금이다. 한 가구당 2천500원씩 매달 전기요금과 함께 부과된다. 한울본부는 2018년 KBS와 협약을 맺고 발전소 주변지역 3개 읍면 가정용 TV 앞으로 나온 수신료를 전액 지원했다. 시범 운영한 사업이 지역사회에서 큰 호응을 얻자 이듬해 울진군 전체로 범위를 확대했다. 울진군에 등록된 TV 2만여대에 부과된 TV수신료 총 6억여원은 2019년부터 한울본부가 일괄 납부하고 있다.2022년부터는 수도요금도 추가된다. 모든 울진군 관내 가정용 급수전 사용 가구에 월 5천원 한도로 상수도 요금을 보조할 계획이다. 현재 한울본부는 울진군 맑은물사업소와 손잡고 수도요금 시스템 개선 및 고지서 변경 등 사전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올해 7월 기준 맑은물사업소 요금부과 현황 자료에 따르면 지역주민 2만 가구 정도가 혜택을 볼 것으로 전망된다. ◇따뜻한 이웃사랑 나눔 실천 ‘어려울 때일수록 도와야죠!’모두가 어려운 시기인 만큼 상생 협력의 자세가 빛을 발하는 때다. 한울본부 역시 지역과 함께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지난 7월 16일 자체 봉사단을 꾸려 코로나19 백신 접종 현장을 찾았다. 지역주민들이 원활하게 백신을 맞을 수 있도록 일일 도우미로 나서 일손 부족으로 허덕이던 보건당국의 어깨를 가볍게 했다.이날 접종대상은 접종 절차가 낯선 노년층과 학생들의 비중이 높았던지라 한울본부의 친절한 안내는 더욱 큰 힘이 됐다.울진군보건소 최용팔 보건사업과장은 “한울본부 덕분에 수월하게 예방접종을 마칠 수 있었다”며 “이른 아침부터 나와 지역주민들을 위해 수고해줘 진심으로 감사하다”고 말했다.이웃을 향한 나눔 행보도 이어갔다. 울진군은 동해안을 따라 남북으로 길게 뻗어 있을 뿐만 아니라 농어촌 지역 특성상 대중교통 접근성이 상대적으로 떨어져 복지 서비스 사각지대가 발생할 수 있는 지역이다. 2006년부터 한울본부는 지역 복지기관이 효율적으로 서비스를 제공하고 마을 구석구석까지 찾아갈 수 있도록 차량을 지원하고 있다. 그동안 지역 복지시설에 후원한 차량은 총 37대다. 올해 역시 승합차 3대를 비롯해 트럭, 경차, 의료용버스 등 총 6대를 전달했다. 지난 5월에는 경북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직원들이 십시일반 모은 성금 2억여원을 전달하며 나눔문화 확산에 앞장섰다. 한울본부가 내놓은 기부금은 지역 자원봉사단체 활동 지원, 복지시설 운영 프로그램 후원 등 취약계층 복지증진을 위해 쓰일 예정이다.뿐만 아니라 설·추석, 창립 기념으로 찾은 장보기행사는 조용했던 장터를 모처럼 떠들썩하게 했다. 세 차례 행사에서 총 8천만원 상당의 농수산물을 구입해 정성스레 선물꾸러미로 만들어 지역 취약계층에 전달하며 전통시장도 살리고 이웃사랑 정신도 실천하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았다.한울본부 지역복지사업 업무를 담당하는 김종미 과장은 “코로나19가 길어지면서 지역사회에서도 어려움이 많다”며 “울진지역을 대표하는 기업으로서 지역과 함께 어려운 시기를 극복할 수 있도록 상생 협력에 최선을 다하겠다” 고 말했다./장인설기자 jang3338@kbmaeil.com

2021-09-30

1970년 초등학생 574만명서 현재 267만명으로 절반이 감소

최근 저출산 고령화 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면서 전국적으로 학령인구가 급격히 감소하고 있다.학생 수 감소에 따른 학교 존폐문제는 정규교육과정의 첫 시작인 초등학교부터 시작된다. 학령인구 감소는 수도권보다는 비수도권, 비수도권 중에서도 지방 중소도시에서 더욱 심각한 상황이다. 이른바 ‘시골학교’라 불리는 농촌지역 초등학교들은 분교로 격하되거나 폐교되는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본지는 폐교위기에 놓였던 시골학교가 여러 가지 방안 모색으로 인해 되살아난 사례를 찾아보고 경북지역 학교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지 대안을 제시해 보고자 한다.글 싣는 순서1. 소멸 위기에 놓인 시골학교의 현실2. 시골학교에서 부르는 희망노래Ⅰ3. 시골학교에서 부르는 희망노래Ⅱ4. 경북도교육청 작은 학교 자유 학구제 명과 암5. 지속 가능한 시골학교 상상 아닌 현실로 □소멸 위기에 놓인 시골학교의 현실교육부가 실시한 ‘2021년 교육기본통계 결과’자료를 살펴보면 올해 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전체 학생 수는 595만7천87명인 것으로 집계됐다. 이는 지난해보다 0.9%(5만2천919명) 감소한 수치다.1970년 우리나라 초등학교 학생 수는 574만9천301명을 기록했다. 이후 2000년에는 401만9천991명으로 무려 70여만명이 줄어들었고, 2010년 329만9천94명, 2015년에는 271만4천610명으로 해마다 감소했다. 이후 2019년 274만7천219명에서 2020년 269만3천716명으로 잠시 늘어났지만, 이마저도 올해 267만2천340명으로 다시 줄어들었다. 1970년 당시와 비교하면 절반에도 못미치는 수준인 것이다.안타깝게도 자연적으로 감소하는 인구를 예전 규모로 다시 회복시킬 수 있는 물리적 대안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 사람이 떠난 자리에 학교와 같은 기반시설들마저 사라지게 된다면 마을을 다시 찾는 사람은 대폭 줄어들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학령인구 감소는 인구가 집중된 수도권 보다는 상대적으로 인구가 적은 비수도권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비수도권 지역 중에서도 상대적으로 인구가 적은 농어촌 지역에서 학령인구 감소는 폐교라는 최악의 결과로 이어지고 있다.지난 40년 동안 전국에서 폐교된 초·중·고등학교는 3만8천55개교에 이른 것으로 집계됐다. 특히 폐교가 가장 많은 지역은 전남으로 전체 문을 닫은 학교의 21%인 833개교를 차지했으며 바로 그다음이 경북(732개교), 경남(582개교), 강원(464개교) 순이었다.올해도 전국에서 6곳의 학교가 ‘재학생이 1명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휴·폐교에 들어갔다. 폐교된 학교 다수가 가진 공통점은 규모가 작은 농산어촌지역을 중심으로 위치해 있다는 것이다.저출산 현상이 심화하면서 학령인구가 꾸준히 줄어드는 가운데 2023학년도부터 향후 5년간 초등학교 입학 인원은 해마다 감소해 현재의 ⅔수준으로 급격하게 감소할 전망이다.2022학년도까지 42만명대인 초등학교 입학 인원은 2023년도부터 4년간 3만2천명, 4만8천명, 3만명, 2만4천명으로 계속 떨어지는 추세다. 2026학년도에는 초등학교 입학생이 29만5천명으로 대폭 감소한다.한국교육개발원 통계에 따르면 2020년 4월 기준 전교생 60명 이하 소규모 초등학교는 전국적으로 1천488개교로 집계됐다.특히 경북지역의 경우에는 231개교로 전국 17개 광역지자체 중 소규모 초등학교가 가장 많은 것으로 확인됐다. □‘시골학교 살리기 운동’이 불러온 기적입학생이 없어 폐교 위기에 처한 농촌지역의 학교들이 갈수록 느는 가운데 ‘시골학교 살리기 운동’이 전국 지자체를 중심으로 확산하고 있다.이 같은 노력에 부응하듯 ‘학교를 살리자 마을이 되살아났다’는 반가운 소식이 지역 곳곳에서 울려 퍼지고 있다.일례로 1932년 3월 개교한 충북 옥천 지역에 청성초는 1970∼1980년 베이비 붐 세대들이 초등학교에 재학 중이던 시절 전교생이 한때 1천여명에 이를 정도로 학생 수가 많았다.그런데 1990년대 말부터 이촌향도 현상이 발생하며 인구 유출이 장기화했고, 결국 지난해 전교생이 16명을 기록하게 됐다.문제는 전교생이 20명인 상황이 3년 동안 지속될 경우 학교를 분교로 격하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이에 지역 주민과 옥천군·총문회는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리고 ‘청성초 살리기’ 운동에 두 팔을 걷고 나섰다.이들은 전국에서 유일한 정주 여건과 지원금을 함께 지원하는 ‘교육지원 정책’을 만들었다. 청성초는 숙소 무료 제공, 전교생 장학금 지급 등 각종 파격 혜택을 내세우며 적극적인 홍보를 펼쳤다. 전국의 맘 카페는 물론 학부모 모임 동아리, 교육자 모임 동아리 등 학생들과 관련한 모든 전산망에 홍보를 진행했다.이후 지난 8월 기준 8가구, 모두 10명의 학생이 이주하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또 9월께 2가구의 이주로 학생 2명이 더 늘어날 것으로 보여 당분간은 분교 격하에 대한 걱정은 한시름 덜어 놓은 상황이다.경남 거창군의 신원초등학교도 지난해까지만 해도 올해 입학생이 없어 5학급으로 줄어들 위기에 놓여 있었다. 학교는 유치원 아이들의 수가 3명밖에 되지 않아, 앞으로 3∼4년 뒤면 자연스럽게 분교와 폐교 수순을 밟을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이 같은 상황을 알게 된 지역 주민과 동문회는 아이들을 유입 위해 ‘작은 학교 살리기’ 운동을 전개했고, 그 결과 올해 3명의 입학생이 신원초등학교에 입학했다. 입학생뿐만 아니라 유치원생과 2학년, 3학년 학생도 늘어 20여명 남짓했던 전교생 수가 유치원생을 포함한 무려 32명으로 늘어났다.특히 올해 신원면에는 네 가정이 전입했으며 앞으로 두 가정이 추가로 전입할 예정이어서 신원면 인구 또한 지난해 말과 비교하면 28명이 더 증가했다.신원면의 인구증가 및 신원초 학생 수의 증가는 거창군과 협업해 학교에서 자체 계획을 수립하고, 과감한 학생 복지 및 시설 투자를 통해 학생들을 유치한 노력에서 이뤄진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경북지역의 시골학교 살리기 현주소경북도교육청은 소규모 학교를 살리기 위한 방안으로 2019년부터 ‘작은 학교 자유 학구제’를 도입하며 작은 학교 살리기에 나서고 있다.작은 학교 자유학구제는 작은 학교 학구를 큰 학교 학구까지 확대해 큰 학교 학생들이 주소이전 없이 작은 학교로 일방향 전·입학이 가능하도록 학교 선택권을 주는 제도다.2019년 첫해 29개 초등학교를 대상으로 시범 운영한 결과 작은 학교로 134명이 유입돼 학교당 평균 4.6명의 학생이 늘어나는 효과를 얻었다.경북도교육청은 올해 자유학구제 운영대상학교를 143개 학교로 확대하고 작은 학교를 살리기 위한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일 방침이다.하지만, 이 같은 교육청 차원의 노력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것은 지역 주민과, 지역 기관단체 교직원들의 유기적인 협력을 통해 ‘가고 싶은 학교’를 만들기 위한 자구책 마련이 절실하다는 것이다. 누구 하나의 노력만으로는 이 같은 성과를 달성하기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경북도교육청 관계자는 “자유학구제는 지역 내 과밀학교나 학급 문제를 해결하는 동시에 작은 학교를 살리는 ‘윈윈(Win-Win)’전략으로 생각한다”며 “작은 학교 자유학구제의 안정적인 정착과 활성화로 농산어촌의 작은 학교가 정상적인 교육과정 운영이 가능하게 해 도농 간 교육격차를 해소하겠다”고 밝혔다./이시라기자 sira115@kbmaeil.com※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1-09-30

추모와 함께 누구나 쉽게 찾을 수 있는 ‘공원’ 만들어야

백번 듣는 것이 한번 보는 것만 못하다는 뜻의 ‘백문불여일견’이라는 말이 있다.종합장사시설도 사진이나 영상 혹은 글을 통하는 것보다 직접 방문해 볼 기회가 있다면 꼭 방문해보길 추천하고 싶다. 같은 맥락에서 담당자에게 직접 듣는 조언도 소중할 수밖에 없다. 이에 인천가족공원 및 세종은하수공원 담당자와의 인터뷰를 대담형식으로 풀어봤다.인천가족공원은 인천시설공단 가족공원사업단 강서구 과장(이하 강)이, 세종은하수공원은 세종시설관리공단 은하수공원사업소 이현섭 팀장(이하 이)이 인터뷰에 응했다. 이어 전국 최고의 종합장사시설 마련의 포부를 가지고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포항시 담당자와의 일문일답도 준비했다. 글 싣는 순서 1. 장사시설과 장사문화, 우리는 장사를 어떻게 보고 있나 2. 포항시, 종합장사시설 마련 첫걸음 3. 장사시설 선두주자 인천 가족공원 4. 시민의 품 안에 세종 은하수 공원 5. 장사 문화 개선을 위해 포항이 나아가야 할 방향 인천시설공단 가족공원사업단 강서구 과장 / 세종은하수공원사업소 이현섭 팀장“공원화 통한 시민 인식 변화·편리한 접근성이 성패 관건”- 인천가족공원이나 세종은하수공원 모두 종합장사시설로는 선진적이고 모범적인 곳이다. 각 시설만의 장점이 있다면.강: 도심에 위치하고 있다는 점을 인천가족공원의 장점으로 우선 꼽고 싶다. 인천가족공원은 인근에 지하철도 있고 버스도 다니고 해서 교통이 매우 편리하다. 그런 연유에서인지 평일에도 3천명에서 4천명이 오가고, 명절에는 35만명이 방문한다. 아마 인천가족공원이 방문객 규모로는 전국에서 가장 많을 것이다. 공원 자체가 늘 확장하고 있다는 점도 꼽을 수 있다. 이를 통해 일반적인 장사시설이 아니라 공원화해서 시민들이 와서 휴식을 즐길 수 있게 조성하고 있다. 혐오에서 추모로 인식을 바꾸는 것이 일반적인데, 우리는 추모에다 휴식까지 플러스해서 개념이 들어간다고 보면 된다. 또 다른 장점으로 온라인 성묘도 있으며, 종합적으로는 항상 능동적으로 대처한다는 부분이 인천가족공원의 큰 장점이라고 볼 수 있다.이: 은하수공원의 가장 큰 장점은 장례부터 안장까지 모든 서비스가 한곳에서 제공된다는 점이다. 36만㎡의 부지에 10개 빈소의 장례식장, 초대형 화로 10개를 갖춘 화장장, 2만기 안장 규모의 봉안당, 그리고 공원형 장사시설로서 아름다운 경치를 자랑하는 잔디장과 도시형 수목장이 조성돼 있으며, 현재 산림형 수목장과 화초장 및 어린이 테마장지를 추가로 조성 중에 있다. 또한 상조회사 가입 유무에 관계없이 24시간 상주하는 세종시설공단 장례지도사 직원들의 체계적인 종합장사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는 점도 큰 장점이다.- 조성과 관련해 지역 주민들과의 갈등은 없었나. 혹은 그들과의 관계 개선을 위한 노력은 어떤 것이 있었나.강: 인천가족공원이 위치한 이곳의 산 자체가 예전부터 일반 사용자들의 묘지였다. 이를 친 자연장으로 개장하며 보상을 적절하게 진행했다. 묘지 자체가 부지도 많이 차지하고 인식도 점점 좋지 않게 바뀌고 있는 상황이라 자연장으로의 개장에 대해 큰 반대는 없었다. 또한 근교에 꽃집을 마련해 우선순위로 이를 운영할 권리를 줬다. 이러한 점을 바탕으로 인천가족공원은 대규모 부지에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인천가족공원의 화장시설은 전국 2위정도지만, 안치규모는 전국에서 최고의 규모다. 아직도 조금씩 확장해 나가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전국최대규모가 될 수밖에 없다.이: 세종시의 조성과 함께 만들어진 곳이라 큰 반대는 없었다. 다만 설립 이후 주민들과의 긍정적 관계 유지를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우선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견학프로그램을 운영해 화장을 통한 자연장의 장점을 적극 홍보했을 뿐만 아니라, 시니어클럽 어르신들과 시민 자원 봉사자들이 은하수공원 장례문화홍보관 운영에 직접 참여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해 선진 장례문화 전파에 노력하고 있다. 또한 은하수공원에는 늘해랑이라는 시민공원이 조성돼 있는데 이곳은 평소 시민들의 산책 공간, 어린이들의 생태학습장으로 활용되고 해마다 가을에는 은하수공원 축제를 개최해 1만명 이상의 시민이 가족단위로 방문해 벼룩시장, 사생대회, 걷기대회 및 음악 공연을 즐기기도 했다. 이를 통해 자연스럽게 화장 문화와 자연장에 대한 긍정적인 면을 알리는 효과를 얻을 수 있었다.- 포항시가 새롭게 종합장사시설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포항에 조언을 한다면.강: 주민들의 인식을 바꾸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누구나 방문할 수 있는 공원을 만들겠다”라는 생각을 해야 한다. 혐오시설이란 인식을 없애고 점차 공원화로 탈바꿈해야 주민들의 인식도 바뀐다. 접근성도 너무나 중요하다. 비용을 포기하더라도 접근성이 좋아야 한다. 가족공원을 처음 본 시민들은 대부분 잘 조성된 공원의 모습에 깜짝 놀란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에서도 기존의 부정적인 인식을 바꾸는데 몇십 년이 걸렸다는 점을 감안하면, 접근성이 떨어져 주민들의 방문이 원활하지 않을 경우 인식 개선은 더욱 힘들어질 것이다. 또한 인천가족공원에는 주민지원기금협의체란 것이 있다. 이를 통해 인근 4개 동에 화장시설의 일부 수익금 등을 기부했다. 공원의 개선과 발전도 주민이 있어야 가능하다. 주민의 민원과 비판이 있었고, 이를 받아들이고 수용하는 과정을 통해 지금 인천공원으로서의 발전이 가능했다. 지금은 인천가족공원 자체가 인천의 큰 혜택이 됐고 행운이 됐다.이: 비록 은하수공원은 시민들의 큰 반대 없이 건립이 추진돼 원활하게 운영돼 왔지만, 장사시설은 무엇보다 인식 개선이 필요한 시설임에는 분명하다. 신규 장사시설을 설치하고자 하는 대부분의 지자체가 지역주민의 반대에 부딪히고 해당 지역 주민을 위한 혜택을 제시하지만 집단 동의를 얻기란 쉽지 않다.장사시설이 가족과 이웃에게 꼭 필요한 필수 시설임을 알려 갈등을 해소하고 서로 공생할 수 있는 보완책 마련에 대한 최우선적 접근이 필요할 것이다. 포항시 한상호 복지국장“고인엔 존엄·가족엔 위로의 공간으로”- 종합장사시설 건립을 준비하면서 어려운 점이 있나.먼저 포항시추모공원건립위원회 발족 이후 현재까지 9회에 걸쳐 회의를 진행해오면서 다양한 주민지원방안 및 시민홍보방안, 주민 마찰을 최소화하려는 방안, 추모공원 내 문화·예술·관광·교육 및 힐링공원을 조성하기 위한 세부적인 방안 등을 마련하는데 있어 시의원, 환경단체, 시민대표, 공무원, 장사전문가 등으로 구성된 위원들과의 시각 차이를 좁히는 부분이 어려웠다. 또한 시민과 눈높이를 맞추면서 선진장사시설의 잘된 부분을 본받는 동시에 잘못된 부분은 개선하면서 창의적인 공원건립을 위해 다양한 의견과 아이디어를 좁혀 가는 데 있어서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이러한 추모공원 건립사업은 마치 퍼즐 맞추기나 바둑을 두는 느낌이 든다고 생각된다. 단순한 건물을 짓는 것이 아니라 포항시민의 전반적인 생각과 유치 지역민의 예상되는 요구 사항, 그리고 관련 부서별 행정적 처리절차 및 과정, 추후 예상되는 민원 등을 미리 생각하고 대책을 세워야 하는 일련의 복잡다단한 百年之大計(백년지대계)를 이루는 과정이라고 본다.- 앞으로도 갈 길이 멀다. 타 시군과 비교될 수밖에 없을 건데, 이와 관련해 준비하고 있는 포항시만의 특화된 내용은 있는지.포항시는 타지역 장사시설과 다른 특화된 지리적 환경을 보유하고 있고, 더불어 인프라 역시 잘 돼 있다고 생각한다. 우선 사통팔달로 뻗어진 도로 및 철도 환경으로 인해 접근성이 용이하다. 여기에 산과 바다, 들녘으로 이뤄진 지리적 환경성을 최대한 활용하고 좋은 풍수에 추모공원이 자리한다면 더욱 금상첨화라고 생각된다.특히 포항시는 추모공원건립위원회에서 다양한 아이디어를 통해 시민들이 만족하고 지역주민들에게는 유치에 환영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아이디어와 특화된 내용을 준비하고 있다. 추모공원 내 장사시설과 일반공원을 분리하고, 장사시설 내 추모객에게는 고인에 대한 존엄을, 가족에게는 위로가 되는 시설 등의 분위기를 만들 예정이다. 일반공원 내 방문하는 공원에는 명상공원 등 다양한 테마가 있는 공원 및 문화 콘텐츠를 통해 지역민뿐만 아니라 국·내외 많은 관광객이 방문할 수 있는 공간을 조성할 계획이다.- 향후 계획과 포항시민들에게 한 말씀.먼저 10월 중 후보지 공모를 시작으로 건립타당성 및 후보지 선정조사 용역을 거칠 계획이다. 이어 오는 2022년 6월 부지선정을 통해 주민지원기금 및 시설관리운영 조례를 제정하고 2025년 12월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추모공원 건립은 현재 포항시가 안고 있는 현안 중 무엇보다도 시민들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사항이다. 시민 모두 크게 보면 추모공원의 필요성과 그 중요성을 인지하지만, 근시안적으로 본다면 사사로운 이익으로 큰일을 그르칠 수 있다. 이에 和而不同(화이부동) 철학으로 개인 각자의 생각을 모아 조화롭고 지혜롭게 해 모든 시민의 큰 뜻을 꼭 이룰 수 있도록 많은 응원과 성원을 부탁드린다.□ 추모는 복지다글을 마무리하며 추모(追慕)가 과연 무엇인지 생각해 본다. 사전적으로는 죽은 사람을 그리며 생각한다는 의미인데, 우리에게 왜 추모를 할 수 있는 장소는 혐오시설이 됐을까 반문한다. 또한 묘지, 사후세계, 장례, 죽음 등이 왜 부정적인 것으로 인식되고 있을까란 의문도 든다.몇 년 전 지인의 추천으로 ‘코코’라는 애니메이션을 본 적이 있다. 2018년 제90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장편 애니메이션상을 수상한 명작이기도 하다. 멕시코의 시골에 사는 미겔이라는 소년이 사후세계를 방문하며 겪는 일을 풀어내고 있는데, 그 배경이 멕시코 고유의 명절인 망자의 날(Dia de Los Muertos)이다. 사후세계를 묘사한 분위기가 너무나도 밝고 아름답다는 점에 이끌려 망자의 날에 대해 좀 더 알아보니, 맥시코에서 망자의 날은 국가적인 명절이자 축제였다. 이 기간에 사람들은 해골 장식물을 만들고 분장을 하며 퍼레이드를 하거나, 각자의 집에 고인의 사진과 주황색 멕시코 국화 꽃잎으로 제단을 만들어 기린다는 것을 알게 됐다. 여기에는 죽음에 대한 멕시코인들의 인식도 크게 작용하고 있다. 멕시코인들은 기억해 주는 자가 이승에 아무도 없게 된 영혼은 결국 소멸한다고 믿었는데, 결론적으로 이들에게 추모는 사후세계에서 영혼이 존재하기 위해 꼭 필요한 조건이 된다. 추모가 일상에 녹아들어 있는 이유다.우리가 멕시코처럼 바뀌어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다만 “장사시설은 혐오시설이며 장례와 추모는 단순한 개인적인 문제다”라는 비판 때문에, 종합장사시설 마련을 통해 소중했던 고인을 가까운 곳에 모시고 오랫동안 기억할 수 있는 기회가 사라지지 않았으면 한다. 추모는 이제는 복지다. 그것도 몇몇에 국한된 것이 아닌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똑같은 복지다. 인간은 누구나 죽음을 맞이하고, “아름다운 장소에서 생을 마감하고 가족으로부터 영원히 기억되고 싶다”라는 욕구는 모두에게 동일할 것이기 때문이다./전준혁기자 jhjeon@kbmaeil.com끝

2021-09-29

여행자들은 ‘코로나19’ 소멸을 기다리고 있다

한국인들의 여름휴가가 대부분 마무리되는 9월 말이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우리네 일상을 깨뜨리기 전 이맘때쯤이면 ‘올해는 몇 백만 명의 사람들이 해외로 여행을 다녀온 것으로 집계됐다’는 뉴스가 TV 화면을 장식하곤 했다.슬그머니 찾아와 질기게도 떠나지 않으며 전 세계를 공황과 우울증 속으로 빠뜨리고 있는 코로나19. 이 ‘역병’은 벌써 2년 가까이 다른 나라로 가고자 하는 여행자의 의지를 막고 있다.20세기 후반에 들어서며 해외여행은 적지 않은 한국인에게 일상이 됐다. 신혼부부는 물론 가족이나 친척들, 연인과 친구들은 휴가 때면 삼삼오오 짝을 이뤄 가까운 아시아는 물론, 멀리 유럽을 향하는 비행기에 올랐다.모험심 가득하고 먼 곳에 존재하는 세상에 대한 호기심으로 설레던 청년들은 배낭 하나만을 메고 미지의 대륙이라 불리는 아프리카나 지구 반대편 남아메리카로 장기여행을 떠나기도 했다.‘코로나19 사태’는 여행하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을 가로막았다. 바이러스의 높은 전염성을 우려한 많은 나라들이 코로나19 유행 초기에 국경을 닫았다. 불가피한 방문의 경우에도 격리 기간을 거쳐야 외국에 갈 수 있었다.새로운 문물을 접하고, 동시대를 살아가는 다른 민족의 삶을 가까이에서 들여다보고자 했던 여행자들은 실망감에 빠졌다.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유럽에서 아시아로 사람들을 실어 나르던 비행기와 배의 숫자가 대폭 줄었다.하지만 어떤 비극적 상황에도 끝은 있는 법. ‘코로나19 시대’가 영원하지는 않을 것이다. 아직은 소수지만 백신 접종을 완료한 몇몇 여행자들은 다시 해외여행에 나서고 있다. 이 추세는 앞으로도 가속화 될 듯하다.여행지에서 그 나라가 세운 방역지침을 철저하게 지킨다면 크게 불편할 것이 없다는 이야기도 조금씩 흘러나온다.“세상 어떤 것도 코로나19 이전과 같을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하는 미래학자도 존재한다. 그렇다고 다른 세계를 궁금해 하는 인간의 욕망이 코로나19 사태 이전과 달라질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낙관적인 감정을 가지고 코로나19가 사라지는 때가 오면 그곳으로 날아가는 비행기에 몸을 싣고 싶은 나라를 떠올려보는 건 해외여행을 꿈꾸는 이들의 심장을 두근거리게 한다. 아래 코로나19 시대가 끝난 후 가볼만한 여행지 몇 곳을 소개한다. 보석빛 바다가 역병 겪은 사람들 위로할 크로아티아 푸른 보석의 빛깔로 반짝이는 바닷가에서 수영을 즐기거나 비치베드에 한가롭게 드러누워 책을 읽는 건 여름을 보내는 가장 즐거운 방법이 아닐까.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인해 여름다운 여름을 보내지 못해 발을 굴렀던 이들이라면 크로아티아로 떠나볼 것을 권한다.크로아티아는 10년 전쯤만 해도 한국엔 잘 알려지지 않은 여행지였다. 하지만 TV 프로그램에서 연예인들이 다녀온 크로아티아의 도시 두브로브니크와 스플리트 등을 소개하며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동유럽의 보석’으로 불리는 이 나라는 붉은 지붕과 푸른 바다가 극명한 대비를 이루는 엽서 같은 풍경으로 사람들을 유혹한다. 해변에 서있는 것만으로도 이른바 ‘인생 사진’을 건질 수 있는 두브로브니크는 역병에 몸서리쳤던 시간을 잊고 그곳을 찾은 여행자의 얼굴에 미소를 선물할 듯하다.아드리아해 동부에 위치한 크로아티아는 연중 쾌적한 지중해성 기후로 유명하다. 인구가 한국의 1/10이 채 되지 않아 관광지라 해도 조용하고 한가로운 느낌을 준다.이전엔 유고슬라비아 연방을 이루던 공화국의 하나였지만 1991년 독립했다. 앞서 말했듯 해변도 좋지만, 수도인 자그레브를 가로질러 흐르는 사바 강과 헝가리 국경으로 흐르는 드라바 강, 세르비아와의 경계가 되는 도나우 강의 풍광도 그저 그만이다.스플리트는 사파이어빛 바다와 고대 로마의 건축물이 조화를 이룬 유명 관광지인데 다녀온 한국 여행자만이 아니라 유럽인들도 이곳의 풍경에 엄지를 치켜세운다. 여기에 그림 같은 폭포와 진녹색 나무들이 동화적 풍경을 만들어내는 플리트비체 국립공원도 관광객들이 손꼽는 크로아티아의 핫 플레이스다.큼직한 오징어에 빵가루를 입혀 튀겨낸 ‘리그네’와 생선을 토마토와 함께 끓여낸 ‘브로데트’, 쇠고기를 갈아 만든 ‘체밥치치’ 등이 크로아티아의 특미. 시원한 맥주 한 잔 앞에 놓고 짙푸른 아드리아해를 바라볼 날이 빨리 왔으면. 앙코르와트 지붕을 물들이는 붉은 석양의 캄보디아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리기 전 한국인들이 가장 선호하는 여행지는 동남아시아였다. 7~8월이면 베트남과 태국의 유명 관광지엔 어느 곳에서도 한국말로 대화하는 여행자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다낭, 나트랑, 방콕, 푸켓 등에는 그곳에 정착한 한국 사람들이 운영하는 여행사와 식당, 카페가 넘쳐났다. 비교적 저렴하게 여행할 수 있기에 비용에 대한 부담이 적은 여행지가 많았던 동남아시아. 베트남, 태국과 국경을 맞댄 캄보디아 역시 많은 한국인 관광객들이 찾았던 나라다. 여기엔 천년 동안 밀림 속에 모습을 숨겼던 크메르의 유적 앙코르와트가 있다. 유럽의 어떤 유적과 비교해도 격조가 떨어지지 않는 아름다운 석조 건축물. 아직 빈곤에서 온전히 빠져나오지 못한 캄보디아는 앙코르와트를 찾는 여행자들이 사용하고 가는 외화로 국가 기반시설을 만들고, 학교를 짓기도 했다. 그런 발전의 길을 바이러스가 막고 있으니 작지 않은 문제다.인도차이나 서남부에 위치한 캄보디아는 1970년대엔 수백 만 명의 국민이 죽는 혹독한 학살의 역사를 겪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국민들은 친절하고 외국인에 대한 경계심이 거의 없다. 프랑스 식민지였던 탓에 유럽풍으로 만들어진 빵도 맛있다. 거리에선 주황색 승복을 입은 꼬마 스님들과 눈인사를 나누는 정겨운 풍경도 연출된다. 천연고무와 농산물, 목재 등을 주로 수출하는데 수도인 프놈펜과 앙코르와트가 있는 시엠립, 해변도시 시아누크빌엔 무역업과 관광업에 종사하는 한국인들이 많다. 그들도 코로나19 사태의 여파를 혹독하게 겪고 있는 중이다. 비행기로 4~5시간이면 도착할 수 있는 캄보디아는 흙먼지 날리는 시장에서 가난하지만 성실하게 살고 있는 사람들을 보며, 자신이 살아온 삶을 진지하게 반추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는 여행지다.1천 년 전. 신이 되고자 했던 크메르 왕들의 지시로 만들어진 사원을 돌아보며 유한한 인간의 삶과 무한한 역사를 떠올릴 수 있는 도시 캄보디아 시엠립. 앙코르와트 지붕으로 떨어지는 아름다운 석양을 바라보던 때가 그립다. 푸른 초원에 누워서 밤하늘 별을 올려다보는 몽골 “밖으로 나가 다른 사람들을 만나는 것은 바이러스 감염의 위험성을 높이는 행위다. 가능하면 집에 머물며 외출을 자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권고와 경고를 내내 들어야했던 게 코로나19 시대. 갑갑함을 견디기 힘들어하는 이들은 마음껏 산책하고 달릴 수 있는 탁 트인 공간이 간절했을 것이다. 푸른 초원이 주는 위로와 치유의 힘을 믿는 여행자라면 바이러스 소멸과 동시에 몽골로 떠나보는 게 어떨까.도심에서 30분만 차를 타고 나가면 끝없이 펼쳐지는 초원. 양과 말이 뛰노는 그곳엔 아시아에서 출발해 유럽에 이르는 거대한 제국을 건설한 원나라의 황제 칭기즈칸의 후예들이 산다. 주위를 둘러싼 휘황한 네온사인과 콘크리트 건물에 가슴 답답해하던 한국 여행자들에게 몽골은 원시적이며 황량한 풍경을 보여줌으로써 ‘여행은 번잡한 일상의 반대편에 존재하는 고요한 낙원’이라는 사실을 알렸다.아시아 중앙에 자리한 내륙국 몽골은 동서양 여러 국가에 사회·문화적 영향력을 미쳤다. 앞서 말한 칭기즈칸이 주도한 정복전쟁이 가져온 효과였다. 수도인 울란바토르에 대부분의 국민들이 살고 있지만, 몽골의 매력은 도시가 아닌 초원에 있다. 인접국 러시아의 영향을 받아 세계에서 두 번째로 공산주의 국가가 됐지만, 얼마 전부턴 경제난 해결을 위해 자본주의 국가들과 활발하게 교류하고 있기에 여행자가 걱정할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과묵하고 진중하지만 관광객을 웃음으로 따뜻하게 맞아주는 몽골 사람들의 성정은 유목생활에서 생겨난 것처럼 보인다.작지만 옹골찬 몽골 말을 타고 초원을 돌아다니거나 트래킹을 즐기다가 이동식 텐트 게르에 몸을 누이기 전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는 낭만. 그걸 기다리는 여행자들을 위해서라도 코로나19 종식 소식이 어서 들려왔으면 좋겠다./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2021-09-29

“경북 최초 전자상거래 라이브 커머스 인증 기업이죠”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초년생으로 현실의 벽에 좌절하고 ‘내가 뭐하러 공부를 했나’하는 자괴감에 빠지는 나이 20대. 때로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에 고민하기도 하고, 소소한 행복을 맛보며 넌지시 웃음을 보이기도 하는 나이 20대. 그 20대의 나이에 경북 최초의 라이브 커머스(실시간 동영상을 통해 상품을 판매하는 방송)를 업으로 하는 회사의 대표인 청년이 있다.주인공은 1993년생인 김규식(28) 대표. 라이브 커머스와 마케팅, 무역을 주로 하는 ‘KCI’라는 회사의 어엿한 대표다. 현재 직원만 6명이며, 모두 도시에서 포항으로 이주한 청년들이다. 김규식 대표의 이력도 20대 청년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화려하다. (재)환동해산업연구원 이사로 선임됐으며, 중국 비즈니스 협회의 이사도 겸하고 있다. 또 칭다오 도시개발구 협회 정회원이기도 하다. “처음에는 경상북도의 도시청년시골파견제의 도움을 받아 해삼을 중국에 수출하는 무역업을 했어요. 중국 절강이공대학에 교환학생으로 있으면서 인맥을 만들기도 했고, 코이카 활동을 했던 경험을 살려서 무역업을 했죠. 처음에는 성과가 좋았어요. 하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다른 분야로 눈을 돌려야 했죠.”현재 김규식 대표의 라이브 커머스 사업은 확장 추세다. 전문 쇼호스트 20여 명과 팀 계약을 했다. 이 중에 2명은 중국어가 가능한 전문 쇼호스트다. 이번 달에만 포항의 설머리 물회지구와 대구 약령시 청년몰을 홍보하는 라이브 커머스 방송을 진행했다.“올해 포항 설머리 지구의 횟집 한 곳을 대상으로 라이브 커머스 방송을 했어요. 근데 방송을 시작하고 10분도 안 돼서 480만원 가량의 매출이 일어났어요. 그야말로 센세이션이었죠. 물론 저희도 그만큼 매출이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했어요. 하지만 라이브 커머스의 시장이 커지면서 기대를 뛰어넘었죠. 방송의 효과가 좋았기 때문에, 9월 14일에는 설머리 물회지구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라이브 커머스 방송을 했어요.”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는 날도 마찬가지였다. 경북 성주에서 올라온 판매자들이 딸기로 만든 제품을 한가득 들고 사무실을 방문했다. 그리고 스튜디오 안에서 방송을 위한 준비를 하는 것이 아닌가.“저분들도 도시청년시골파견제로 시작한 분들이세요. 딸기청 등의 제품인데 오늘 라이브 커머스로 판매를 하려고 합니다.” □대구 청년, 포항에서 기지개를 켜다그렇다면 20대 청년 김규식 씨는 어떻게 해서 포항으로 오게 된 것일까. 사실 김규식 대표는 현재 포항에 큰 연고가 없다.“사실 어머니와 아버지의 고향이 포항이에요. 하지만 전 대구가 고향이구요. 그런데 아직 대학을 졸업하지는 않았어요. 창업을 할 당시에 한 학기가 남았었지만, 경상북도의 도시청년시골파견제에 지원하면서 휴학을 해야 했죠. 아직도 휴학생 신분이죠.(웃음) 그때 선택한 아이템이 해삼이었어요. 2019년이었죠. 당시에 저희 회사는 무역을 주로 했어요.”김규식 대표에 따르면, 초창기 해삼 무역은 ‘쏠쏠’했다. 중국의 인맥 덕분인지 주변의 도움도 상당했다. 하지만 갑자기 코로나19가 터지면서 해삼 사업은 타격을 받았다.“지금도 해삼 무역을 완전히 접은 것은 아니에요. 하지만 코로나19 이전 만큼은 아니죠. 그때 생각한 것이 경북의 중소기업과 중국의 기업을 연결하는 바이오 매칭 사업을 생각했어요. 생각보다 좋았어요. 작년에는 DGIST의 해외 바이오 매칭 사업을 주관하기도 했고, 경일대학교 산학협력단과 해외전시관 사업을 했어요. 또 포항시 사회적기업협의회의 해외전시관 사업도 주관했구요. 그리고 올해는 무역 플랫폼인 알리바바 닷컴에 입점했죠.”“사업이 잘되니까 국내 온라인 유통 사업에도 도전을 해보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실 경상북도에는 괜찮은 아이템이 많거든요. 보통 소상공인들과 제조업의 스타트업 기업들은 판로 개척이 제일 힘들잖아요. 그것을 내가 한 번 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한 것이죠. 그리고 열심히 하니까 주변에서 많이 도와도 주셨구요.”이렇게 김규식 대표의 도전이 성공하면서 그의 회사는 탄탄대로를 달리고 있다. 투자를 하겠다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다. 물론 그의 꿈이 크기 때문에 투자 제의는 모두 거절했다고 한다. 현재 직원은 모두 6명이다. 직원들의 고향도 대부분 서울과 대구다. 김규식 대표의 포항 정착이 또 다른 청년의 유입을 가져온 셈이다.그런데 이러한 김 대표는 욕심이 많다. 사실 생긴 모습만 봤을 때는 순딩이었다. 약간은 통통한 느낌에 아기자기한 부분도 보였다. 다만, 말과 행동에는 자신감이 넘쳐 흘렀다. “저희가 2019년부터 사업을 시작했어요. 그리고 올해는 라이브 커머스 쪽으로 투자도 많이 했구요. 직원들이 대부분 중국어를 할 수 있어요. 최종적으로는 쇼호스트들을 중국에 진출시키는 것이 목표에요. 한국의 제품을 중국어로 중국에 판매를 하는 거죠. ‘왕홍’이라고 한국으로 비유하자면 유튜버 또는 쇼호스트가 있어요. 대형백화점의 경우에는 유명한 왕홍을 초대해서 하루 매출 5천억원을 기록하기도 하거든요. 잘 될 것이라고 봅니다.” □맞춤형 인프라 필요, 청년들이 사업하기 좋은 경북이었으면그런 그에게 물었다. 평범한 대학 생활을 마치고 평범하게 살아가는 것이 부럽지 않냐고 말이다.“저는 지금이 정말 좋아요. 만족하고 있죠. 하지만 사업을 하는데 있어 수도권이 인프라가 부럽기는 해요. 포항이 시골은 아니지만, 서울만 가면 제품 생산을 위한 인프라가 정말 좋아요. 지역에서는 제품을 만들기 위한 인프라가 정말 부족하죠. 라이브 커머스도 마찬가지에요. 실제로 저희는 지금도 일산이나 서울에 가서 촬영하는 일이 많아요. 가수 등 유명인들을 초청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이죠. 지역에서는 그분들을 모셔오기가 힘들어요. 그분들을 포항에 부르기 위해서는 출연료로만은 안되거든요. 교통비에 숙박비 등등 지출이 많아요.”인터뷰를 진행하면서 김규식 대표의 사무실과 스튜디오를 둘러봤다. 직원들은 라이브 커머스 방송을 위해 알록달록한 소품들을 만들고 있었다. 마치 기성 제품과 같은 퀄리티였지만, “모든 것을 직원들이 직접 제작했다”는 말을 들을 수 있었다. 다만 스튜디오는 조금 좁아 보였다. 사무실 한 켠에 방송용 조명과 무대를 만들고 작은 카메라를 이용한 방송을 하고 있었다.다만, 회사가 커지면서 직원 충원을 고민하고 있다는 김규식 대표. 그에게 청년들이 로컬로 부르기 위한 대책을 물었다.“가장 큰 문제가 대한민국은 너무 획일적이에요. 제조업에 치중된 것이죠. 모두 4차 산업, 6차 산업 등에 한정되어 있어요. 그런데 그 사람들이 좋은 제품을 만들어도 소비자들이 최소한 한 번은 사용을 해봐야 하잖아요. 그 제품이 퀄리티가 좋은지 좋지 않은지 알려면 말이죠. 그런데 이 제품을 판매를 하지 못해요. 그리고 회사는 도산하죠. 사실 지역에서는 이러한 문제가 계속 반복되고 있어요. 결국은 판로가 있어야 하죠. 누구든지 사줘야 하는데, 살 사람이 없으면 안되잖아요. 그런데도 한국은 제조업에만 치중하고 있어요.”그리고 더 충격적인 이야기도 있었다. 바로 김규식 대표의 KCI가 경북 최초의 전자상거래 온라앤 판매 부분 인증기업이라는 사실이었다. 시작한지 만 3년이 안되는 기업인데 말이다.“경상북도에서 저희가 라이브 커머스 업체로는 처음으로 알고 있어요. 기술평가 인증기업으로는 유일하구요. 저희가 라이스에서 우수기업으로 인증을 받았어요. 경북에서 전자상거래의 온라인 판매 부분에서 인장을 받은 것은 저희가 처음이죠. 이제 사업을 시작한 시간이 3년도 안되는 데 말이죠. 사실 조금더 신경을 써주셨으면 좋겠어요. 정책적으로 말이죠. 저희 같은 기업들이 오래 살아남고 성과를 보이기 위해서는 맞춤형 지원이 필요한 것이 사실이거든요.”그래서 물었다. 포항 영일대 해수욕장 주변에 바다를 배경으로 하는 전문적인 촬영장소가 있다면?“그러면 정말 좋죠. 일산이나 서울에 출장을 갈 일이 많이 줄어들거든요.” /박순원기자 god02@kbmaeil.com

2021-09-28

‘일상의 휴식과 인생의 휴식이 공존하는 곳’

□ 이름처럼 아름다운 곳, 세종 은하수공원은하수공원은 세종특별자치시 정안세종로 1527(산울동)에 위치한 36만580㎡ 면적의 종합장사시설이자 추모공원이다. SK 및 LH의 무상기증을 통해 2010년 1월 12일 개장했다. 개장 당시 대부분의 시설은 위수탁 계약을 통해 관리했다. 화장장, 봉안당, 자연장, 장례식장 및 식당, 매점 등의 시설을 대상으로 민간기업과 위수탁 및 임대 계약을 진행해 운영했다. 그러다 2012년 7월 운영 및 일부 시설의 소유를 세종특별자치시로 이관했고, 이어 몇 번의 위수탁 계약을 거쳐 2017년 1월부터 세종시설공단이 직영하게 됐다. 글 싣는 순서 1. 장사시설과 장사문화, 우리는 장사를 어떻게 보고 있나 2. 포항시, 종합장사시설 마련 첫걸음 3. 장사시설 선두주자 인천 가족공원 4. 시민의 품 안에 세종 은하수 공원 5. 장사 문화 개선을 위해 포항이 나아가야 할 방향 시설은 크게 장례문화센터(장례식장, 봉안당, 화장장, 고객센터, 주차장)와 자연장지(잔디장, 수목장, 부대시설)로 나뉘어 있다.공원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장례식장이 마주한다. 4천368㎡ 규모의 지하 1층·지상 3층의 건물로, 지상에는 빈소 및 접객실 10곳이 있고 지하에는 영결식장·염습실·안치실·매점이 위치해 있다. 연도별 이용실적을 보면 2015년 283건이었던 것이 2020년에는 612건을 기록하는 등 큰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은하수 장례식장의 특장점으로 △조문객수에 맞는 다양한 빈소(특실, 일반실) △품격과 격조를 더한 호텔급 고품격 인테리어 △장례, 화장, 안장(봉안, 자연장)까지의 종합장사서비스를 제공하는 원 플레이스(One Place) 서비스를 꼽을 수 있다.장례식장 뒤로는 화장장(해님의 집)이 있다. 지하 1층·지상 2층의 7천926㎡ 규모 건물로, 지하 1층은 유족 주차장, 지상 1층은 화장로 10기·수골실·고객쉼터가 있다. 2층은 유족대기실 10곳과 수유실 및 매점이 위치해 있다. 이곳 역시 2015년 5천22건이었던 이용실적이 2020년에는 1만887건으로 2배나 증가했다. 고인의 거주 지역에 따라 이용료를 차등 적용하나, 기본적으로 거주지역 등에 제한 없이 이용가능하다. 화장은 오전 7시 30분 1회차를 시작으로 오후 3시 7회차까지 진행한다.화장장 다음으로 고객센터와 홍보관, 유택동산이 자리하고 있다. 홍보관에서는 우리나라 및 주요 국가의 장례 문화와 역사를 살펴볼 수 있으며, 최신 트렌드에 맞춰 장례문화를 VR로 체험할 수도 있다. 특히, SK그룹의 사회공헌을 통해 공원이 마련된 만큼 이를 소개하는 코너도 마련돼 있다.장례문화센터의 마지막 시설은 봉안당(달님의 집)이다. 지하 1층부터 3층까지 3천292㎡ 면적이며, 2만353기(옥내 1만8천945기, 옥외 1천408기)를 모실 수 있다. 제례실 4곳을 비롯해 헌화대 등의 시설이 있다. 이용기간은 15년으로, 단 1회에 한해 15년 연장이 가능하다.이들 시설을 제외한 대부분의 장소에는 자연장지가 꾸려져 있다. 6만8천976㎡ 규모의 자연장지는 잔디장(가온마루)과 수목장(미리별동산)으로 이뤄져 있으며, 2015년 399건의 이용실적이 2020년에는 2천628건으로 가파르게 증가했다. 이용기간은 30년으로, 부부합장·가족장·종중장은 기간 연장이 가능하다. 올해는 화초장, 어린이 장지(산골장, 잔디장)가 개장할 예정이다. □ SK그룹의 지원과 행정수도 신도시 세종시의 만남세종 은하수공원의 가장 큰 특징은 민간 기업이 자발적으로 조성했다는 점이다. SK그룹의 최종현 회장은 폐암으로 갑작스레 세상을 등지기 전 “내가 죽으면 반드시 화장(火葬)하고, 훌륭한 화장시설을 지어 사회에 기부하라”는 유언을 남겼다. 묘지 난립으로 좁은 국토를 효율적으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는 점을 평소 안타까워했던 최 회장이 사회지도층 인사 중 처음으로 화장을 택하면서 장례문화를 선도한 것이다. SK 최종현 회장은 생전에 하늘길을 주로 이용했는데, 공중에서 내려다본 국토가 묘지로 가득 찬 것을 보고 ‘이래서는 안되겠구나’고 생각했다고 한다. 최 회장의 시대를 앞선 유언은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고 그의 사후 한 달 만에 ‘한국 장묘문화개혁 범국민협의회’가 결성돼 ‘화장 유언 남기기 운동’이 전개될 정도로 국민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었다. 이후 SK는 최종현 회장의 유언에 따라 2010년 1월 은하수공원에 장례시설을 준공해 세종시에 기부했다. 물론 이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SK그룹은 화장장을 혐오시설로 보는 사회적 인식 때문에 터 선정에 난항을 겪었다. 애초 화장장 건립을 구상한 곳은 서울이었으나 지역민들의 반대 등에 부딪혀 진척이 없었다. 그러던 중 마침 세종시가 행정수도로 건설된다는 소식이 나왔고, 최종적으로 세종시가 낙점됐다. 이후의 과정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2007년 말 현재 터를 확보하고 착공한 지 2년여 만에 시설 공사를 마무리했다. LH공사에서 은하수공원 조성에 200억원을, SK에서 장례문화센터 조성에 500억원을 들여 현재 모습을 갖추고 이를 세종시에 기부채납했다.시민들과의 갈등이 거의 없었다는 점도 은하수공원이 현 모습을 갖추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세종시가 조성되면서부터 은하수공원도 동시에 개발을 시작했기 때문인데, 장사시설이 보통 기피시설로 여겨지고 있음에도 은하수공원만은 타지역과는 달리 큰 반대를 겪지 않고 시민의 품으로 들어왔다. 이렇듯 한번에 모든 시설이 들어오기 쉽지 않다는 일반적인 통념을 깨고 예외적으로 건립된 은하수공원은 여유 있는 부지로 인해 확장성 측면에서도 큰 장점을 가지고 있다. 즉 조그마한 규모로 시작해 점점 부지를 넓혀나가는 게 일반적인데, 은하수공원은 면적 전체가 다 장지라고 보면 되는 것. 실제로 건립 11년차에 접어들었으나 장지가 전체의 10퍼센트 정도밖에 차지 않아 이를 제외한 모든 곳이 공원으로 남아 있다.이 외에도 공립 의료원 등이 아닌 이상 종합장사시설 중에 장례식장 등을 직영하는 경우가 드문데, 화장장과 장례식장 등 시설 대부분을 직영한다는 점 역시 은하수공원만의 장점이다. 이런 장점에 따른 혜택은 유족들과 지역민에게 고스란히 돌아가고 있다. 장사시설을 이용하는 비용이 전국적으로 가장 저렴한 수준인 동시에, 매점·카페의 운영권과 장지 표지석 및 봉안당 위패 판매권을 지역민에게 줘 상생의 모범을 보이고 있다. □ 장사시설과 도심공원의 두 마리 토끼를 잡다“여기가 장사시설이라고?”아마 미리 알고 오지 않았더라면 대부분은 이곳을 장사시설로 느끼지 못할 것이다. 이는 바로 세종 은하수공원이 건립 당시부터 공원형 장사시설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도심과 가까운 곳에 위치해 언제나 방문할 수 있고, 잔디장과 수목장만 운영해 묘지가 없어 외관상으로도 공원처럼 보인다. 입구가 2곳인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정면을 기준으로 오른쪽 출입구는 장사시설이 단계적으로 조성돼 있으나, 후문으로 불리는 왼쪽 출입구는 시민공원으로 바로 이어져 중앙 상징탑까지 가지 않는 이상 장지 등과 마주치지 않는다.최신 시설로 만들어져 환경적인 부분에도 많이 신경을 썼다. 아직까지 유해물질 배출 등의 민원이 단 한 건도 발생하지 않았다는 것이 이를 증명한다. 실제로 세종시민 가운데서는 장사시설인 줄 모르고 방문하는 경우도 많다는 게 은하수공원 측의 설명이다. 훌륭하게 갖춰진 외관에 따른 이점은 또 있다. 각종 드라마나 영화 촬영지로 문의가 많이 들어와 장사시설에 대한 혐오를 줄이고 자연장을 홍보하는 역할도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 또한 야생화 단지로 꾸민 아름다운 생태공원에는 어린이집이나 유치원 등에서 놀이 및 소풍장소로 많이 찾기도 한다. 어린이뿐 아니라 일반 시민들 사이에서도 피크닉 명소로 잘 알려져 있으며, 특히 애완견주들에게는 애완견과 산책을 즐길 최고의 장소로 각광을 받고 있다. “일상의 휴식과 인생의 휴식이 공존하는 곳”이란 슬로건에 딱 맞아떨어지는 셈이다. 코로나19가 확산되기 전인 2019년까지는 축제가 진행되기도 했다. 은하수축제라는 이름의 축제에서는 야외무대에서 어린이 사생대회도 진행하고, 푸드트럭도 자리를 잡아 해마다 만 명 이상이 모인 가운데 성황리에 거행됐다. 이 외에도 자연장지 등의 모든 시설명을 주민공모를 거쳐 지음으로써 주민들과 함께하는 시설로 다가가고 있다./전준혁기자 jhjeon@kbmaeil.com※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1-09-22

고약한 바이러스가 횡행하는 세상서 ‘새로운 길’을 모색하다

그것이 외적인 문제에서 발생했건 내부에서 생겨난 것이건 고통은 인간에게 사색의 시간을 제공한다.코로나19 바이러스가 창궐하면서부터 바깥에서의 활동이 눈에 띄게 줄어든 2년 가까운 세월. 우리는 조용히 자신의 내부를 들여다보는 경험을 싫든 좋든 하고 있다.스스로의 심연(深淵)을 바라보는 행위는 비단 철학자나 문인이 아니라도 반드시 필요할 터. 그러니 바이러스로 인해 집에 머무는 시간이 늘어난 게 마냥 나쁜 것만은 아닐 수도 있다.주말이면 가까운 곳이건 먼 곳이건 다니던 나들이, 퇴근 후 동료 혹은, 연인과 어울려 가지던 술자리가 부쩍 줄어든 지난해와 올해. 그걸 대신해 자아를 살피는 침잠의 순간을 가지는 것도 좋을 것 같다.바로 그 ‘자아 성찰’의 중요한 도구가 돼주는 게 책읽기다. 특히나 눈앞으로 다가선 가을엔 더욱 그렇지 않을까.‘만다라’를 필두로 김성동의 소설들은 진중함과 진지함을 담고 있어 그 문장들 속에서 스스로를 돌아볼 기회를 가지게 한다. 이런 평가엔 한국의 문학비평가들 대부분이 동의하고 있다. 독자를 다독이는 진중하고 의로운 문장은 어디서…김성동은 병자호란 때 순국한 선원 김상용(金尙容·1561∼1637)과 1910년 8월 경술국치(庚戌國恥) 때 스스로 곡기를 끊어 자결한 김창규(金昌圭)의 후손이다.“제 아무리 빼어난 도둑도 정신과 피는 훔치지 못한다”는 말이 있다. 김성동의 자아는 이런 가풍 속에서 형성됐고, 그렇게 만들어진 정신은 문학의 중요한 밑거름이 된 것으로 보인다.김성동의 선조인 김상용은 조선 중기의 문신. 1590년 병과에 급제해 승문원부정자와 예문관검열 등을 지냈고, 병조와 이조의 판서였으며 ‘만인지상 일인지하’라는 정승에까지 올랐다. 그의 시와 글씨가 지닌 품격은 당대 최고로 인정받았다.김상용이 일흔 살이 넘어 맞게 된 병자호란. 원로대신인 그는 왕세자의 아내와 장남을 보필해 강화로 피난한다. 그러나, 강화의 수비를 맡은 벼슬아치는 “여기까지 오랑캐가 올 일이 없다”며 전쟁 중임에도 주지육림에 빠져든다. 그 오판 탓에 아낙들이 능욕 당하고, 백성은 도륙된다.그러한 비극을 지켜보던 김상용은 화약이 보관된 망루에 올라 임금이 있는 곳을 향해 세 번 절하고는, 하인을 모두 피신시키고 화약에 불을 붙여 자결한다. 나라를 지켜내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시달리던 선비가 택할 수밖에 없었던 불가피한 처신이었을 것이다.세월은 흘러 1880년. 앞서 말한 김창규가 태어난다. 여섯 살에 ‘논어’와 ‘맹자’, ‘중용’과 ‘대학’을 읽던 영민한 소년이었다. 열네 살이던 1894년. 갑오개혁이 있던 그해 조선의 마지막 과거시험에 급제해 왕으로부터 ‘교지(敎旨)’를 받은 김창규.그 역시 김상용처럼 스스로 목숨을 버린다. 1910년 굴욕적 한일합방 소식을 접한 직후다. “오얏나무 꽃이 떨어졌으니 이제 이곳은 내가 머물 땅이 아니다”라고 일갈한 뒤 스스로 방문에 못질을 해 곡기를 끊은 것. 겨우 서른의 나이였다.김상용과 김창규. 그들 후손으로서 핏줄 속에 표시나지 않게 흐르는 의로움과 고통과 수난의 삶이 만들어준 진중함은 김성동 문학을 다른 작가의 작품들과 구분하게 해주는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다.바로 이 진중함과 의로움은 21세기 소설이 놓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는 게 몇몇 평론가들의 견해.김성동의 첫 소설 ‘만다라’는 끝을 알 수 없는 깊은 절망에서 연유한 지산 스님의 만행과 무엇을 하고 어떻게 살 것인지를 고뇌하며 끝없이 떠도는 법운 스님의 방랑을 그려내 당시 젊은이들의 감수성을 사로잡았다.“병 속의 새를 어떻게 꺼낼 것인가?”라는 책이 던진 화두는 법운만의 몫이 아닌 독자 전체의 몫이 되기도 했다.1981년 배우 전무송과 안성기 주연으로 임권택 감독에 의해 영화화 된 ‘만다라’는 눈이 시린 겨울 산을 담아낸 아름다운 화면으로 한 번 더 대중들을 사로잡는다.이후에도 김성동은 많은 작품을 썼다. 조선조 말 몰락의 위기에 놓인 전통 예인들의 희망과 좌절을 당대의 정치, 사회, 풍속에 대한 철저한 고증과 탁월한 문장으로 재현한 ‘국수(國手)’, 시인 김지하가 ‘웃음과 풍자와 웅혼한 비약이 스며들기 시작했다’라 평한 소설 ‘길’, 가족공동체를 떠나서는 삶 자체가 존립할 수 없다는 깨달음이 읽히는 ‘집’, 그리고 아름답고 단아한 산문집 ‘먼 곳의 그림내에게’ 등등. 김성동의 유장한 문장과 우리 말 사랑을 확인할 수 있는 책 ‘국수’. 긴 호흡으로 코로나19 시대의 가을을 통과하려면…우울과 회한이 문득문득 곁에서 어두운 그림자를 드러내는 ‘코로나19 사태’ 속 2021년 가을. 김성동의 작품 ‘만다라’와 함께 권하고 싶은 건 ‘국수’다.책을 펴낸 솔출판사는 이 소설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김성동의 장편소설 ‘국수’는 1991년 11월 1일 문화일보 창간호에 연재를 시작한 이후 27년 만에 완간됐다. 이 작품은 임오군변(1882)과 갑신정변(1884) 무렵부터 동학농민운동(1894) 전야까지 각 분야의 예인과 인걸들이 한 시대를 풍미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130여 년 전 조선의 역사를 정면으로 다룬 소설로, 정치사보다는 민중의 구체적 삶과 언어를 충실하게 복원해낸 풍속사이자 조선의 문화사에 가깝다. 소설의 제목인 ‘국수’는 바둑과 소리, 악기, 무예, 글씨, 그림 등 나라 안에서 최고의 경지에 오른 예술가나 일인자를 지칭하는 말이다. 이 소설은 그 시대에 벌어진 사건들에 직간접적으로 맞닥뜨리고 때로는 그것을 일구기도 하는 인물 개개인을 중심으로 거대한 민중사적 흐름을 당대의 풍속사와 문화사 및 정신사적 관점에서 아름다운 조선말의 향연과 함께 펼쳐낸다.”긴 세월 끊임없이 단련해온 김성동 특유의 유장한 문장과 우리 말에 대한 애정이 곳곳에서 묻어나는 ‘국수’는 다섯 권의 책으로 만들어졌다. 짧지 않은 분량이고, 쉽게 읽기 어려운 긴 소설이다.그러나, 코로나19로 인해 외출이 줄어든 가을임을 감안한다면 이 책과 함께 한 계절을 보내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 아닐까.언젠가 김성동에게 “대체 문학은 무엇인가”라는 답하기 힘든 질문은 던진 적이 있다. 그때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문학은 그리움이야. 이루어지지 않는 것에 대한 그리움. 문학의 유효성이 어디 있냐고? 갈빗대 아래를 후비는 힘에 있지. 개인을 넘어서 세상을 위무하는 힘 말이야.”바이러스가 인간을 지배하는 듯 보이는 이상한 시절. 김성동의 문학은 이 시절 인간과 세상을 위무하는 힘으로 역할 할 수 있다는 게 기자의 생각이다. 이런 생각이 비단 혼자만의 것은 아니리라.보이지 않을 때가 있지만 언제나 ‘길’은 존재하는 것오래전이다. 김성동이 ‘만다라’를 개작해 세상에 선보였던 때. 독자의 한 사람으로서 이런 기록을 남겼다.“구도소설(求道小說)이라…. ‘길을 찾는 이야기’라는 뜻이 아닌가. 그렇다면 그것은 구도하고자 발버둥친 사람이 가장 잘 쓸 수 있을 터. 열여섯 살 입산한 이래 십여 년 넘게 길을 찾고자 했고, 환속 이후에는 다시 20년이 넘는 시간을 또 다른 길을 찾고 있는 사람 김성동. 김성동은 사바탁세(娑婆濁世)의 잔소리꾼이라 스스로를 낮춘다. 그러나, 세속에서 부처의 이치를 깨달은 이 잔소리꾼 구도자 덕분에 ‘만다라’는 세기를 뛰어넘어 다시 우리 곁에 올 수 있었다. 또한 그 ‘만다라’가 있기에 ‘우리도 이만한 구도소설을 가졌다’라 말할 수 있는 한국문학과 독자들은 행복한 게 아닐까?”소설가 김성동은 세속의 때가 묻지 않은 사람이다. 다른 돈벌이 수단을 가지지 못한 전업 작가임에도 원고료 셈에 서툴고, 집을 사고파는 매매행위는 물론 스마트폰 사용도 잘 못한다. 인터넷 만능시대에 컴퓨터를 켤 줄도 모른다.그는 속물 자본주의가 지배하는 21세기 한국 사회에 어울리지 않는 문인이다. 그러나, 그럼으로 인해서 철저하게 자본의 논리와 움직임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독자들을 위로하는 힘을 가질 수 있었다.‘국수’와 ‘만다라’는 고약한 바이러스가 횡행하는 세상에서 이제껏 경험해보지 못한 혼란과 공황을 느끼고 있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길’을 모색하게 해줄 듯하다.때로는 눈보라와 짙은 안개에 가려 길이 보이지 않을 수도 있지만, 길은 언제나 우리 곁에 존재했고, 존재하며, 존재할 것이다. 그건 변할 수 없는 진리다. 이 냉혹한 ‘코로나19 시대’에도.소설을 포함한 책을 읽는 게 일상이 아닌 특별한 행위가 돼버린 시절을 우리는 살고 있다. 책보다는 휴대폰과 컴퓨터, TV와 영화를 훨씬 가까이하며 살고 있는 현대인들. 과연 그것들이 자신의 심연을 들여다보는 사색의 시간을 제공해줄 수 있을지?한 번쯤 이런 의문을 가져봤다면 이번 가을만이라도 휴대폰에 표시되는 주식 시세와 현란한 컴퓨터게임 화면이 아닌 김성동의 ‘만다라’와 ‘국수’에 빠져보는 게 어떨까. /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2021-09-22

랜선으로 즐기는 추석놀이

가을이 들어서는 입추, 귀뚜라미의 애간장을 태우는 처서가 지났다. 오뉴월의 땡볕이 곡식을 여물게 했다면 산들바람은 농부의 땀을 식혀 주겠다. 추수의 때를 기다리는 들판은 황금물결로 물든다.인류가 정착 생활을 하며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봄에는 언 땅을 갈아엎어 씨앗을 심고, 여름에는 태풍 두어 개, 땡볕 한 아름 다 견뎌내며 곡식이 여문다. 가을이면 잘 익은 곡식을 거둬들이고 하늘에 감사의 예(禮)를 올렸다. 조상들은 추수한 곡식을 이웃과 나눠 먹으며 다양한 놀이와 흥을 곁들여 잔치를 열었다. 추석에 하는 놀이는 수확의례와 관련된 행사이다. 거북놀이, 소멕이놀이, 줄다리기, 사자놀이, 지신밟기 등이 있다.△소멕이놀이장정 두 사람이 엉덩이를 맞대고 엎드린 위에 멍석을 뒤집어쓰고, 앞 사람은 고무래 두 개를 두 팔에 하나씩 나누어 쥐고, 뒷사람은 작대기로 뿔과 꼬리를 가장하여 소가 된다. 앞뒤로 주인과 머슴을 가장한 사람들이 소를 몰고 밤늦게까지 마을을 돌아다닌다. 부유한 집에 가서 “엄매, 엄매” 하고 소 울음을 흉내 내며, “옆집의 누렁소가 평생 즐기는 싸리 꼬챙이와 뜨물이 먹고 싶어 찾아왔으니 내놓으시오” 하고 외치면 그 집 주인은 산적과 술을 내놓는다.이때 농악대가 뒤따르며 소로 분장한 사람이 여러 가지 동작과 춤을 보이고, 농악에 맞추어 일동이 춤도 추고 노래를 부르며 마을을 다닌다. 이 놀이를 하면 풍년이 든다고 한다.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담아 다음 해의 농사를 기원하는 놀이다.△거북놀이소 대신 거북을 썼는데, 멍석 대신 수숫대 잎이나 짚으로 거북의 모양을 만든다. 거북놀이도 소멕이놀이처럼 기호 지방에서 추석에 행했으며, 거북의 장수에 빗대어 장수·무병을 빌고 마을의 잡귀·잡신을 쫓는다고 하였다. 거북은 수신(水神)을 나타내는 신령한 동물임을 생각할 때, 이 거북놀이도 소멕이놀이와 마찬가지로 농신(農神)에 관련된 기풍행사의 하나이다. △사자놀이사자 모습의 탈 안에 두 사람 또는 세 사람이 들어가 사자의 동작을 흉내 내며 하는 놀이다. 나무나 대광주리, 종이로 만든 사자탈 속에 두 사람이 들어가 풍물을 치면서 마을을 돌아다닌다. 여유 있는 집에 들어가 마당에서 한바탕 춤을 추고 돈 뒤에, 집주인으로부터 사례로 곡물이나 금전 등을 받는다. 이것은 마을의 공공사업에 사용되었다. 지방에 따라서는 주지놀음, 사지놀음, 사자놀음이라고도 한다.△지신밟기지신밟기는 풍물패들을 선두로 소고패, 양반, 하동, 포수 머슴과 탈을 쓰는 각시 등이 집마다 지신을 밟으면서 지신풀이 가사를 창하며 춤과 익살, 재주를 연희하는 것으로 마을의 안녕과 풍작 및 가정의 다복을 축원하는 민속놀이다. 지신풀이가 끝나면 주인이 대접하는 음식을 먹고 전곡을 얻어 가지고 간다. 얻은 재물은 마을 공동의 경비에 사용한다.△줄다리기‘동국세시기’에는 제주도에서 행하는 줄다리기를 이렇게 소개했다. 매년 8월 보름날 남녀가 함께 모여 노래하고 춤추며, 좌우로 편을 갈라 길고 굵은 줄의 양쪽을 잡아당겨 승부를 겨룬다. 줄이 만약 중간에서 끊어지면 양편이 모두 땅에 엎어지고 구경꾼들이 크게 웃는다. 이를 조리지희(照里之戱)라 한다.이 밖에 추석에는 각 지방에서 씨름 대회를 하거나 전남 지방 남해안 일대에 부녀자의 특유한 유희로 강강술래를 했다.다음은 완도 지방에 전해오는 강강술래 노래이다.“달아달아 밝은 달아 강강술래이태백이 노든달아 강강술래저기저기 저달속에 강강술래계수나무 박혔으니 강강술래은도끼로 찍어내어 강강술래금도끼로 다듬어서 강강술래초가삼간 집을 짓고 강강술래양친부모 모셔다가 강강술래양친부모 모셔다가 강강술래천년만년 살고지고 강강술래”리듬은 대체로 4·4조로 되어 있다. 목청 시원한 여자 한 사람이 선창하면 나머지 사람들은 ‘강강술래’라는 후렴구를 하고 원을 그리며 춤을 춘다. 영남지방에는 남자들이 추는 ‘쾌지나칭칭나네’가 있고, 안동 지방에는 ‘놋다리밟기’ 등이 있다.조상들은 한해 농사를 갈무리하며 하늘에 감사하고 여러 가지 축제로 잔치를 벌였다. 음식을 나누고 놀이를 통해 단합하며 농사의 수고로움에서 회복의 시간을 가졌다. 이제 추석에 하는 놀이는 옛것에 대한 그리움으로 남았다.코로나19로 인해 추석의 인사말이 바뀌었다. ‘모이지 않는 게 정, 몸은 멀리 마음은 가까이’라고 한다. 이번 추석에는 모이지 않고 랜선으로 축제를 즐기자. △챙겨요 건강 나눔 축제금산인삼축제, 풍기인삼축제, 산청한방약초축제가 있다. 코로나19로 건강의 중요성이 강조된 만큼 이와 관련한 온라인 축제도 큰 관심을 모은다. 금산인삼축제는 인삼주와 인삼 쉐이크 등 인삼을 소재로 한 체험 키트를 할인 가격으로 판매하고, 풍기인삼축제는 매일 오전 10시부터 유튜브를 통해 다양한 축제 프로그램을 생중계하고 풍기인삼을 경품으로 내건 이벤트도 수시로 연다.△랜선으로 즐기는 우리 문화온라인에서도 우리 문화의 매력은 빛을 발한다. 울산옹기축제는 옹기와 관련된 퀴즈를 풀고 옹기 쿡방, 옹기 홈쇼핑, 랜선 버스킹 등 다양한 콘텐츠로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또한 문경 찻사발축제는 도자기를 굽는 과정에서 나오는 다양한 소리를 ‘ASMR 불멍’이란 이름으로 제공하고 ‘차담이와 떠나는 문경 랜선 투어’, ‘윤택의 시골 알바’ 등 자체적으로 제작한 영상도 공개했다.△윷놀이지방자치단체 건강가정지원센터에서 후원하는 우리 가족 추석놀이가 있다. 가족과 함께하는 대형 윷놀이는 비대면 방법으로 실시한다. 인터넷으로 접속하여 QR코드로 인식하면 자세한 방법이 나온다. 윷놀이에 필요한 키트도 워킹스루로 받을 수 있다. 가족과 놀이하며 사진을 찍어 제출하면 된다.△한국인의 흥이 느껴지는 품바축제집에서도 엉덩이가 들썩들썩, 어깨가 으쓱으쓱 신나게 몸을 흔들며 즐기는 음악 축제도 온라인으로 열린다. 매년 한국인의 흥을 끓어오르게 하는 음성품바축제도 온라인으로 열리고 유튜브에서 생중계를 즐길 수 있다. 품바 공연에 무려 2천개의 댓글이 달리며 뜨거운 호응을 끌어냈다. △산청한방약초축제산청한방약초축제는 온라인 홍보채널에서 ‘추석맞이 약초·농특산물 판매대전’을 선보이며 작년보다 판매 기록을 갱신하고 있다. 고속도로 산청 휴게소 로컬푸드 행복장터와 단성IC근처에 직거래 장터를 마련, 청정자연에서 키워낸 산청약초를 저렴한 가격에 판매하며 구매자들의 호응을 얻었다.이번 추석놀이는 랜선으로 즐기자. 먼 내일의 우리는 ‘그땐 그랬지’라고 말하겠지. 미래의 우리는 또 어떤 추석놀이를 마주할까./이순혜(수필가)

2021-09-16

뛰어난 접근성·넓은 부지면적으로 확장성 무궁무진

□ 인천가족공원, 종합 장사시설의 모범이 되기까지인천가족공원은 인천광역시 부평구 평온로 61에 위치하고 있는 인천시의 종합장사시설이다. 기존 부평에 위치한 공동묘지를 전국 지방자치단체 가운데 처음으로 예산을 투입, 전체 묘지의 일부를 재개발해 자연장지 및 공원을 조성한 곳으로 유명하다. 공동묘지(共同墓地) 형태로 1934년부터 자연적으로 조성된 이곳은 1971년 6월 당시 건설부의 묘지공원 결정고시를 시작으로 1977년 4월 화장장인 부평시립 승화원이 이전(화장로 7기)해오며 장사시설 조성에 발을 뗐다고 볼 수 있다. 당시에는 화장에 대한 수요와 인식의 한계로 묘지로서의 역할에만 집중했다. 그러다 1996년 11월 공동묘지가 만장이 되자 2002년 4월 인천시설공단이 화장장을 인수해 운영에 나서며 종합장사시설로의 변화를 위한 본격적인 움직임에 돌입했다. 인천시설공단이 운영을 맡은 해인 2002년 10월 구화장을 철거하고 11기의 신축 화장로를 가동했으며, 2003년 3월에는 추모의 집을 준공했다. 이듬해인 2004년 9월에는 화장로 4기를 증설해 총 15기의 화장로를 보유하게 됐고, 2005년에 부평묘지관리업무를 인수한 뒤 2006년에 명칭을 현 인천가족공원으로 변경했다. 2007년 금마총 준공, 2010년 만월당 준공, 2011년 승화원 증축 및 리모델링 공사 준공(화장로 5기 증설), 2016년 2단계 시설물 인수인계(봉안담, 외국인묘역 등) 등을 거쳐 2019년 별빛당을 준공해 현 상태에 이르렀다.글 싣는 순서1. 장사시설과 장사문화,우리는 장사를 어떻게 보고 있나2. 포항시,종합장사시설 마련 첫걸음3. 장사시설 선두주자인천 가족공원4. 시민의 품 안에세종 은하수 공원5. 장사 문화 개선을 위해포항이 나아가야 할 방향 이 중에서 눈여겨볼 것은 2006년 현 인천가족공원으로의 명칭변경을 기점으로 종합장사시설로서의 모습을 착착 갖추게 됐다는 점이다. 이는 현재까지 3단계로 나눠 시행된 가족공원 조성계획이 차질없이 진행된 결과로 풀이된다.먼저 2006년부터 2011년까지 진행된 1단계 사업을 통해 인천가족공원에는 만월당, 관리사무소, 홍보관, 상가, 생태하천 등이 조성됐다. 이어 2011년부터 2016년 진행된 2단계 사업은 평온당, 외국인묘역, 봉안담, 자연장, 쌈지마당, 소로 정비 등을 진행했다. 현재 추진 중인 3단계 사업은 2016년부터 2040년까지로 계획돼 5차에 걸쳐 진행되고 있다. 우선 2016년부터 2020년까지 진행된 3-1단계 사업은 봉안당 건립, 자연장 조성, 산림자원 복원 등이, 2020년부터 2040년까지 진행될 3-2단계∼3-5단계 사업은 자연장 조성과 산림자원 복원에 집중한다. □ 성장과 발전을 거듭하는 종합장사시설의 모범인천가족공원의 가장 큰 장점은 뛰어난 접근성과 넓은 부지면적이다. 원래 공동묘지가 자연적으로 있었던 곳이기는 하지만, 인천의 발전과 확장 속에서도 외곽으로 이전되지 않고 꿋꿋하게 자리를 지켜 현재에 이르렀다. 일반현황을 보면 공원면적이 160만㎡(약 50만평)으로 국유지 71%, 시유지 18%, 사유지 11%로 이뤄져 있다. 장사시설로는 봉안시설, 자연장지, 화장장 등을 보유하고 있다.먼저 봉안시설을 살펴보자. 인천가족공원의 봉안시설로는 봉안당과 봉안담이 각각 5개씩 있다. 봉안당은 조성시기 순으로 △추모의집(2003년 3월) △금마총(2007년 12월) △만월당(2010년 5월) △평온당(2015년 4월) △별빛당(2019년 8월)이 있다. 안치능력은 추모의집 1만9천230기, 금마총 1만6천675기, 만월당 2만9천184기, 평온당 3만6천656기, 별빛당 3만5천104기다. 별빛당만 안치가 진행 중이며, 이를 제외한 4곳은 만장이다.봉안담은 2016년 5월에 5곳을 일제히 조성하기 시작했다. 이 중에서 회랑형(3천990기), 외국인(9천330기), 봉안담Ⅰ(부부, 1천140기)이 안치 중이다. 나머지 봉안담Ⅱ(가족, 1천696기)는 올해 11월부터 안치 예정이고, 봉안담Ⅲ(4천144기)는 조성을 진행하고 있다.이어 자연장은 총 9곳이 있다. 수목장림 및 자연장 6곳, 정원식 수목장 2곳, 가족정원장 1곳이 운영되고 있다. 이 중에서 2008년 7월 조성돼 1천366기가 안치된 수목장림, 2012년 6월 조성돼 1천321기가 안치된 늘푸른잔디장, 2012년 6월 조성돼 557기가 안치된 솔향기 정원식수목장, 2013년 7월 조성돼 2천604기가 안치된 하늘정원 잔디장, 2016년 5월 조성돼 2천63기가 안치된 별마루잔디장 5곳은 만장됐다. 현재는 2016년 5월 조성된 바람들녘 잔디장(2천600기), 바람정원 수목장(1천896기), 별하원(어린이전용 봉안시설, 720기)이 안치를 진행 중이며, 2018년 7월 조성된 가족정원장(336기)이 봉안담Ⅱ와 더불어 오는 2021년 11월 안치를 시작한다.화장장인 승화원은 연면적 5천608.22㎡에 건축면적 3천800.75㎡로, 화장로 20기를 보유하고 있다. 일일 처리능력은 72구로, 지하 1층부터 지상 2층까지 유족대기실, 화장로, 관망실, 접수실, 감시실, 수골실, 식당, 매점 등이 들어서 있다. 이 외에 인천가족공원묘지는 연면적 155만3천36㎡로 올해 7월말 기준 3만7천805기의 묘지가 있다. 여기서 짚고 넘어갈 사실은 인천가족공원이 종합장사시설로는 전국 최초다시피 할 정도로 오랜 역사를 갖고 있지만, 확장성이 무궁무진하다는 것이다. 만장 시기에 맞춰 준비해 온 계획대로 착착 시설을 확장하는 모습은 감탄을 자아낸다. □ 시민들과 함께하는 장소로인천가족공원은 국내 종합장사시설을 선도하는 곳이기도 하지만, 시민들에게 친숙하게 다가가고자 노력함은 물론 그들의 삶 속에 함께하는 공간으로 자리를 잡는 일도 소홀히 하지 않고 있다. 일례로 연중무휴 자유관람 형식으로 운영하고 있는 장사문화홍보관을 들 수 있는데, 우리 장사문화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로 이어지는 점층적 스토리텔링을 통해 친환경적인 자연장 홍보를 진행함으로써 새로운 장사문화 전환을 유도하고 있다. 또한 세계 각국의 장사문화 간접체험과 제사상 차림 등 장사 예절교육도 병행하고 있다.사이버추모관 역시 유족들을 위한 배려가 돋보이는 부분이다. 인천가족공원 사이버추모관은 인터넷 컴퓨터 통신망을 기반으로 가상공간을 활용해 365일 언제 어디서나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으면서 가족이나 친지 등 고인에 대한 영정과 음성을 보고 들으며 추모할 수 있는 온라인 서비스다. 인천가족공원에서 매장, 화장, 봉안, 수목장, 산골 등 장사 시설을 이용한 고인의 유가족을 대상으로 무료로 운영하고 있다. 사이버 추모관에서는 고인의 유족 및 단체의 방 관리자가 고인의 사진 또는 음성 및 동영상 자료를 50mb 내에서 자유롭게 게시·수정·삭제할 수 있으며, 유가족만을 위한 전용공간을 별도로 운영할 수도 있다. 고인을 추모하고자 하는 일반인의 경우 방 관리자가 특별히 제한을 두지 않는 범위 내에서 관리자가 게시한 자료의 열람 및 사이버 조문이 가능하며, 고인에게 소중한 마음이 담긴 편지를 자유롭게 보낼 수도 있다. 코로나19로 인한 언택트 시대에 걸맞은 서비스라고 볼 수 있다. 고객만족을 위한 각종 사업에도 열심이다. 고객들의 목소리와 요구 사항에 귀를 기울이고자 고객만족도 설문조사를 실시, 이를 바탕으로 지난 하반기에는 △별마루잔디장 휴게공간 조성 △화장로 탄력 운영 △상가동 보수공사 △승화원 식당·매점·카페 운영 등의 사업을 진행했다. 올해는 △승화원 운구방식 변경 및 진입로 노면표시 도색 공사 △바람정원자연장 시설보완 환경개선 △늘푸른잔디장과 파고라 지붕보수 공사 △추모의집 대형주차장 장애인 편의시설 개선을 추진하고 있다./전준혁기자 jhjeon@kbmaeil.com※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1-09-15

‘역병의 시대’ 공포 앞에 선 인간에 내민 따스한 손길

역사와 이념이 야기한 아픔을 누구보다 크게 겪은 김성동 작가. 평화로운 마을을 갑작스레 덮친 낯설고 악랄한 도둑처럼 우리 곁을 찾아온 코로나19 바이러스. ‘금방 사라지고 다시 일상이 돌아오겠지’라는 기대와 바람은 2년 가까이 속절없이 무너지고 있다. 이른바 ‘코로나19 사태’의 그림자는 여전히 짙고, 터널의 끝은 아직 보이지 않는다.그래도 가을은 왔다. 코로나 바이러스와 함께 할 수밖에 없는 두 번째 가을이다. 훌쩍 떠나는 여행도, 친구와의 흥겨운 만남도 조심스러운 이때. 무엇이 우리를 위로할 수 있을까?아주 오래전부터 그랬듯 문학은 인간이 느끼는 외로움과 고립감을 이겨낼 힘이 돼준다. 지금 같은 상황에선 가벼운 소설이나 시보다는 조금은 진지하고 무거운 책 한 권을 펼쳐보는 게 어떨지.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역병의 시대’를 살고 있는 기자는 최근 소설가 김성동을 떠올렸다. 2021년 오늘 못지않은 고통의 시대를 살아온 그의 생애와 작품을 2회에 걸쳐 소개한다. ‘코로나19 시대’의 가을을 견디고 있는 독자들에게 ‘위무’라는 작은 선물이 될 수 있기를. 1979년 출간… 여전히 독자들의 사랑 받는 이유는“한국에서 더 이상의 구도소설((求道小說)은 있을 수 없다”라는 평가를 받은 김성동의 출세작 ‘만다라’를 처음 만난 건 1987년 가을이 완연한 때였다.문학과 음악에 눈 밝은 사촌형이 있다. 한 일간지 신춘문예 희곡 본심까지 오른 글재주도 겸비한. 한국문학사가 발행한 1979년판 ‘만다라’를 만난 건 그의 책꽂이에서다.군만두를 안주 삼아 술 마시는 법을 가르쳤던 다섯 살 터울의 사촌형은 술만이 아니라 세상도 가르쳤다. 겨우 스물두 살의 나이였지만 1천 권이 넘는 책을 소장한 장서가이자, 클래식음악 애호가였던 그의 방.조르주 바타유와 에밀 졸라 같은 발음하기도 힘든 외국 작가들의 이름을 들었고, 오페라 ‘마적’의 ‘밤의 여왕의 아리아’를 처음 접했다. 바로 그 방 책꽂이에서 만난 김성동의 소설 ‘만다라’. 이상했다. 분명 그 소설엔 ‘희고 탄력 있는 여인의 육체’ ‘붉은 등이 켜진 사창가’라는 표현이 등장했고, “나는 그 여자와 이층을 만들었다”는 등의 성적인 은유가 담긴 대사도 곧잘 나왔지만 그것들이 불러일으키는 감정은 에로틱하다기보다는 서글펐다. 궁금증을 풀어준 것은 사촌형이었다.“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쓴 글에서만 읽히는 슬픔이야. 그 사람 승려였어. 소설을 썼다는 이유로 불가(佛家)에서 축출 당했지. 그렇게 맑고 정직한 사람이 속세에서 얼마나 견딜 수 있을지…. 모르긴 해도 곧 다시 절로 돌아갈 걸.”처음으로 책이 나온 후 여러 출판사에 의해 수차례 재출간된 ‘만다라’. 출판사 새움은 이 소설을 아래와 같은 명료한 문장으로 요약하고 있다.“한국 불교소설의 백미로 평가받는 김성동의 ‘만다라’는 저자가 20대 젊은 날에 겪은 삶에 대한 번민이 고스란히 서려 있는 잿빛 노트이면서, 당시 산업화의 병폐가 나타나고 있던 한국사회와 속세의 가치를 탐했던 불교에 대한 직관적인 비판이 녹아 있는 작품이다. 그러나 종교적인 내용들을 모른다고 해서 작품을 어렵게 생각할 필요는 전혀 없다. ‘만다라’는 불교라는 상자 안에 인생의 진리를 찾아 방황하는 청춘들의 이야기를 담아, 그 안에서 새로운 가치를 모색해 보려는 시도이며 맹목적으로 불교의 교리가 주입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정확한 이야기다. 기자가 몇 번을 다시 읽은 ‘만다라’는 불교라는 종교적 틀 안에서만 해석되는 작품이 아니다. 거기엔 인간 보편의 고뇌와 거기서 빠져나와 참된 생의 가치를 찾으려는 젊은이의 발버둥이 핍진하게 그려져 있다.출간된 지 42년이 지났지만 ‘만다라’가 여전히 독자들의 관심과 사랑 속에서 생명력을 유지하는 이유는 바로 이 보편성과 현재성 때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1970년대 인간들이 겪었던 고통과 수난은 그 형태와 양상을 달리해 2021년 오늘의 사람들을 괴롭히고 있다. 코로나19 바이러스도 아마 그중 하나가 아닐까?그렇다면 소설 속에는 고통과 수난의 해결 방식도 담기지 않았을까? ‘만다라’를 펴든다는 건 이 물음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일 터. 상대의 손을 따스하게 잡아주는 ‘위로의 힘’을 아는 작가작가 김성동을 실제로 본 것은 책을 접한 지 15년쯤이 흐른 뒤였다. 좋아해온 소설가를 대면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부풀었다. 그러나 ‘만다라’에 이르는 길은 수월치 않았다.법명 정각(正覺), 속명 김성동(金聖東)을 찾아가는 길엔 애초 선배 두 명이 동행키로 약속돼 있었다. 하지만, 만남이 있던 날, 그 둘은 예기치 않은 일을 이유로 함께 갈 수 없음을 알려왔다.난감했다. 초행길을 혼자 나서야한다는 당혹감은 물론이거니와, 더 곤혹스러운 건 김성동과 둘이 마주앉아 대체 무슨 말을 해야 할까하는 난처함이었다. 당시 김성동은 경기도 양평과 강원도 화천의 중간 지점에 살고 있었다.버스에 올라서도 걱정은 여전했다. 하지만 버스가 서울 시내를 벗어나 교문리를 지나고, 다산 묘소에 이르자 들썩이던 심장이 다소간은 가라앉았다.도심에서 고작 30여 분을 달렸을 뿐이지만, 차창을 스치는 풍광은 도시의 그것과는 천양지차였다. 오랜만에 달려본 시골길은 아름다웠다. 김성동의 소설에서 묘사되는 풍광처럼.코앞까지 다가온 산에는 희끗희끗 잔설이 저녁 햇살에 빛나고, 팔당댐의 물빛은 울렁거리던 가슴을 진정시키기에 넉넉했다. 혼잣말을 했다.“그래 가보자. 정각의 말처럼 진리는 길 위에 있고 나는 지금 길 위에 서있지 않은가.”양수리에서 완행버스를 타고 양평, 거기서도 4~5km를 더 들어가는 골짜기. 김성동의 집에 도착했을 땐 짧은 해가 지고 어둠이 내리고 있었다.가방을 내려놓고, 외투를 벗으며 그와 악수를 나눈 순간. 그때까지도 완전히 떨쳐내지 못하고 있던 두려움과 막막함의 부스러기를 훌훌 털어낼 수 있었다. 김성동의 손이 너무도 따뜻했던 것이다.앞서 ‘코로나19 시대’의 위로에 관해 이야기한 바 있다. 어려움과 공포 앞에 서있는 인간을 위로하는 힘은 무엇보다 따스한 온기일 터.김성동의 문장에선 떨고 있는 사람의 어깨를 다독여주는 손길이 느껴진다. 비단 ‘만다라’만이 아닌 다른 작품들에서도 마찬가지다. 소설가가 겪어야 했던 소설 같은 가족사인간은 현재 자신이 겪는 아픔과 서러움이 세상에서 가장 큰 고통인 줄 안다. 그게 인간의 한계이기도 하다. 하지만, ‘코로나19 사태’ 이전에도 인간은 고통 속을 살았다.사람의 평생을 더듬어보면 누군들 아픈 사연이 없을까. 김성동 역시 역사와 이념이라는 단어에 짓눌려 춥고 배고픈 유년과 허무에 휘청거리는 청년시절을 보냈다.김성동의 아버지는 한국전쟁 직전 예비검속으로 교도소에 수감됐고, 1950년 대덕 산내에서 죽음을 맞았다. 좌익이라는 이유였다. 제삿날도 모른다.김성동의 어머니는 60년 이상을 남편의 생일날 제사상을 차렸다. 그녀 또한 남편의 이념에 동조했다는 이유로 고문을 모질게 당했다. 여기에 김성동은 이런 말을 덧붙였다.“외가? 말도 마라. 그쪽은 좌익들에게 풍비박산이 났어. 외숙부는 면장을 했는데 반동 부르주아라는 이유로 인민재판에서 처형당했지. 하긴 그때 우리 집안만 그랬겠어. 좌우의 대립이라는 한국 현대사가 남긴 상흔이지.”젖먹이 김성동에게 공무원과 장교가 될 수 없고, 고시를 통과해도 임관될 수 없으며, 비행기 타는 것조차 자유롭지 못한 ‘좌익의 아들’이란 멍에를 남기고 떠난 아버지. 그러나 김성동은 원망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런 말로 부친을 두둔했다. 코로나19가 주는 공황과 우울을 잠시나마 잊게 해줄 소설 ‘만다라’. “아버지는 당대의 이상주의자였고, 내겐 원초적 그리움의 대상일 뿐이야. 살면서 단 한 번도 아버지를 의심한 적이 없어.”1950년대. 남편 없는 아내와 아버지 없는 아들이 세상을 버텨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래서다. 둘은 서로가 서로에게 위로가 되고자 애썼다.애초 김성동에게 소설은 고문 후유증으로 앓아누운 어머니를 위로하는 수단이었다. 열두 살 소년에겐 고통을 멎게 해 줄 약을 살 돈이 없었다. 떠나간 아버지를 기다리는 가족의 이야기를 지어내 공책에다 끼적였고, 그걸 어머니에게 읽어줬다. 가만히 듣던 모친이 말했다고 한다.“너무 슬퍼서 눈물이 나네.”고래로부터 문학은 허구를 수단으로 현실을 위로해왔다. 반세기 전 이념 탓에 고통 받는 어머니에게 카타르시스를 줬던 김성동은 문장은 세월을 뛰어넘어 분명 코로나19로 인해 공황과 우울증에 시달리는 오늘의 우리를 따스하게 어루만져줄 것이다.청명하게 높아가는 하늘 아래서도 마냥 환하게 웃기 힘든 2021년 가을. 바이러스의 횡포 앞에 선 이들에게 소설 ‘만다라’가 전하는 위로와 만나보길 권한다./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2021-09-15

올 秋夕 ‘영주 농특산품’으로 따뜻한 마음 전하세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높은 하늘과 황금색 들판, 수줍은 미소를 보이는 밤 송이 등 풍요로움을 만끽할 수 있는 한가위가 찾아왔다.서로 환한 웃음과 나눔의 미덕이 어우러졌던 추석, 하지만 올해 추석은 코로나 19로 서로의 마음만을 전해야 할 듯하다.풍요롭고 행복한 추석의 즐거움, 농심의 정성이 가득한 영주 농특산품이 우리의 마음을 따뜻하게 이어 준다. ◇풍기인삼국내 최초 재배삼의 시효지인 영주 풍기 지역은 500여 년의 재배인삼 역사를 통해 우수한 인삼을 생산하고 있다.소백산록의 유기물이 풍부한 토양에서 생산되는 풍기인삼은 타 지역 인삼에 비해 내용과 조직이 충실하고 인삼향이 강하며 유효사포닌 함량이 매우 높다.다양한 홍삼제품은 웰빙건강 식품 뿐만 아니라 선물용으로도 크게 인기를 얻고 있다.홍삼제품은 홍삼절편삼, 홍삼차, 홍삼정과, 홍삼정, 홍삼타브렛, 홍삼액, 홍삼분말, 인삼분말, 홍삼캡슐, 홍삼비누, 홍삼젤리, 홍삼캔디 등이 있다.인삼은 혈압조절, 간장보호, 항암작용, 항당뇨, 피로회복, 식용증진, 면역력 강화에 좋은 것으로 알려졌다.문의 : 풍기인삼공사영농조합법인 054)638-2304, 풍기인삼협동조합 054)636-2714◇영주사과영주시는 국내 사과 생산의 14.5%를 차지하는 전국 제1의 사과 주산지다.이곳에서 생산되는 사과는 풍부한 일조량과 깨끗한 공기, 오염되지 않은 맑은 물에 의해 맛과 향이 뛰어나며 성숙기 일교차가 커 당도가 높다.영주사과는 대부분 15kg 상자로 포장돼 출하되고 있으나 다양한 소비자 욕구를 충족시키고자 포장단위를 5kg, 10kg 단위로 다양화 체제를 갖췄다.미국 및 동남아 시장에서 영주사과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면서 수출 물량도 매년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다.사과는 피로회복, 피부미용, 위장장애 등에 좋은 것으로 알려졌다.문의 : 영주농협공판장 054)636~8594, 풍기농협공판장 054)636-3209 ◇영주한우천혜의 환경을 자랑하는 소백산 맑은 물과 깨끗한 공기에서 사육된 영주한우는 개량된 암소에 1등급 정액으로 인공수정해 생산된 우량 수송아지를 5~6개월에 거세하고 한우고급육 표준사양관리프로그램에 의거 사육한다.비육 후기에는 특수사료 급여와 초음파 육질 진단을 실시해 출하 적기를 판단, 고품질의 육질만을 생산·판매한다.영주한우는 위생 및 질병 안정성을 위해 부루세라병 등의 악성가축전염병을 차단하고 축산물의 위생·안정성에 대한 소비자 신뢰확보를 위해 사육· 도축·가공·판매에 이르기까지 정보를 기록·관리하는 쇠고기 이력추적시스템을 2006년부터 실시해 소비자들이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안전한 축산물을 생산하고 있다.문의 : 영주축협본점직판장 054)630-6710◇풍기인견풍기인견은 천연섬유라 가볍고 시원하며 몸에 붙지 않고 통풍이 잘 되며 땀띠가 예방되고 촉감이 좋아 냉장고 섬유, 에어컨 섬유라 불린다.인견은 땀 흡수력이 탁월하며 정전기가 없고 부드러우며 식물성 자연 섬유로 피부가 여린 갓난아기, 알레르기성 피부, 아토피성 피부 등 피부가 약한 분들에게 좋은 건강섬유다. 가볍고 얇아서 여름 실내복, 반바지, 잠옷, 침구류, 천연염색을 한 외출복 등 다양한 제품들이 출시되고 있어 선물용으로 인기가 많다.◇영주복숭아소백산 자락의 청정 자연환경 속에서 자란 영주복숭아는 과실이 크고 육질이 연하며 과즙이 많고 당도가 매우 높을 뿐 아니라 비타민A와 펙틴이 풍부해 향이 뛰어나다.복숭아에 함유된 구연산 등 유기산은 니코틴 해독과 항암작용, 펙틴 성분은 장을 부드럽게 해 변비에 좋으며 혈액순환을 도와 관상동맥경화 등에 도움을 주는 것으로 알려졌다. 복숭아는 단맛이 강하지만 실제 당분은 10% 정도에 불과하며 펙틴 성분으로 인한 포만감으로 다이어트에도 도움을 준다.영주복숭아는 베트남, 홍콩, 태국, 몽골, 인도네시아 등에 수출을 하고 있다.◇단산포도단산포도는 간이비가림 시설과 저 농약 고품질 호맥재배로 생산 되는 유기물 생산품이다. 단산포도는 미숙과는 출하하지 않고 적정량을 착과시켜 품질이 우수하다.특히, 유기물효소를 균형시비하고 선과와 포장을 철저히 관리한다.단산 포도의 특징은 포도생육에 가장 적합한 최적의 기후조건과 비옥한 토양에서 유기농업으로 재배해 육질이 조밀하고 맛과 향이 뛰어나다.◇소백산 오정주옛날 사대부가의 선비들이 건강 약용주로 마시던 술로서 소백산 청정약수, 우리 쌀, 우리 밀로 만든 누룩, 소백산에서 자생하는 약초로 빚어 만든 전통 명주다.저온에서 백일이상 장기 숙성해 뒤끝이 깨끗한 오정주는 영주시 고현동 박찬정 가에서 4대째 그 비법을 전수해 오고 있다.문의 : 소백산오정주 054)633-8166 ◇상떼마루천혜의 자연속에서 재배된 지역 특산물인 영주사과로 만든 100% 순수 천연제품으로 설탕과 알코올이 전혀 첨가되지 않은 제품이다. 상떼마루 아이스와인은 2013년 샌프란시스코 국제와인품평회에서 은상을 받은바 있는 지역 특산품이다.◇고구마빵맑고 깨끗한 청정지역 영주에서 재배 가공한 자연 웰빙 건강제품으로 고구마는 칼륨성분이 많은 알칼리성 식품으로 소화촉진, 변비해소, 노폐물 배출, 간의 신진대사, 피부노화 방지, 체내지방 분해, 체중감량에 효과적이며 각종 비타민과 무기질 및 식이섬유가 함유된 국내산 100% 고구마로 만든 빵으로 남녀노소 누구나 즐길 수 있는 고구마빵이다. ◇정도너츠영주지역에서 생산되는 국내산 찹쌀을 주원료로 사용하는 찹쌀 도너츠로 지역의 특산물인 인삼, 사과, 생강, 고구마 등을 재료로 만든 웰빙 식품이다.찹쌀을 주재료로 하기 때문에 밀가루로 만든 도너츠 보다 영양 성분검사를 해보면 지방함량이 낮게 나오며 콜레스테롤과 트렌스지방 또한 낮아 먹을거리로 맛과 품질을 인정받고 있다.◇순흥기지떡기지떡은 서리꽃처럼 희고 아름답다는 뜻으로 상화떡, 상화병이라고도 하며 기지떡은 술로 빚어 여름철에도 쉬지 않아 오래 두고 먹을 수 있다. 칼로리가 낮고 속을 든든하게 해줘 여성들의 다이어트 식품으로도 인기가 높다. 한국 전통음식 조리법을 대표하는 발효 과정을 거친 떡이라 살아있는 유산균 덩어리로 단순한 계절떡, 의례떡과 달리 기지떡은 건강을 생각한 고품격 떡이다.◇선비촌한과전통의 맛을 지켜가는 선비촌한과는 영주지역의 특산품인 인삼, 마, 자연 식품인 쑥, 솔잎 등을 이용해 생산되고 있다.달지 않고 담백하며 고소한 맛이 특징으로 제수용, 선물용, 혼수용으로 구분 생산된다.영주시에서 생산되는 특산품들은 소백산록의 자연환경과 전통기법에 따른 생산 방식을 선택해 그 맛과 품질이 우수하며 무엇보다 농심과 정성이 가득 담긴 제품으로 한가위 선물 및 제수용품으로 그 가치를 높이 인정받고 있다./김세동기자 kimsdyj@kbmaeil.com

2021-09-12

켜켜이 쌓인 추억은 또 천년을 이어가고…

경주는 산책하기 좋은 도시다. 이 말에는 재론의 여지가 없다. ‘코로나19 사태’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여행자들의 발을 묶고 있는 상황이지만, 경주에는 여전히 ‘도시 산책자’가 적지 않게 보인다.동궁과 월지를 취재하며 늦봄부터 여름의 끝 무렵까지 모두 6차례 경주를 찾았다. 경주시외버스터미널에서 내려 대릉원과 첨성대를 거쳐 월지에 이르기도 했고, 어떤 때는 황리단길에서 시원한 음료수 한잔을 마시고 복원된 동궁 건물지 앞으로 가기도 했다.시원스런 돌담길 건너편에 청아한 자태로 피어있는 새하얀 연꽃과 만나고 국립경주박물관 내 월지관을 돌아본 날의 경험도 기억에 남았다.걸음을 빨리 하면 30~40분, 주위의 풍경을 감상하며 천천히 걸어도 1시간 남짓이면 터미널을 출발해 동궁과 월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걷는 여행’의 즐거움을 선물해준 경주.몹시 덥던 지난 7월 말이다. 60대로 보이는 동창생 서너 명이 동궁과 월지 입구에서 주고받는 이야기를 들었다. “야, 격세지감이네. 여기가 이렇게 변했어?”“세월이 많이 흘렀잖아. 우리가 수학여행 온 게 40년은 됐으니까.”“맞아. 그때는 여길 안압지라고 불렀던 것 같은데….”안압지… 안하지… 동궁과 월지소년시절을 추억하는 그들의 기억은 정확했다. 발굴과 복원작업을 거쳐 동궁과 월지로 불리기 전 연못의 이름은 안압지(雁鴨池)였다. 안압지 발굴조사 당시의 에피소드와 성과를 담은 책 ‘못 속에서 찾은 신라’엔 그와 관련한 설명이 담겼다.“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안압지는 ‘기러기와 오리가 날아드는 연못’이라는 뜻으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과 ‘동경잡기(東京雜記)’ 등 조선시대의 문헌에서 처음 나타난다. 특히 ‘신증동국여지승람’이 간행되기 전 김시습(1435~1493)이 지은 시에 안하지(安夏池)라는 표현이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안압지와 비슷한 발음을 가진 표현이 15세기 무렵 이미 사용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600여 년 전까지는 기러기와 오리가 날아다니는 연못이라고 해서 안압지, 혹은 유사한 발음의 안하지로 불리던 이 연못이 동궁과 월지로 개칭된 것은 언제였을까. 위의 책은 이렇게 부연한다.“안압지에서는 1975년 경주고적발굴조사단이 실시한 발굴조사에서 ‘의봉4년 개토(679)’명 기와와 ‘조로2년(680)’명 전돌이 출토되었는데, 이 유물을 통해 안압지 주변 건물지가 문무왕 19년(679)에 지은 동궁임을 알 수 있게 되었다. 이후 안압지라는 명칭은 1982년 당시 국립경주박물관 관장 한병삼에 의해 ‘안압지는 월지다’라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그 명칭의 타당성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졌다. 안압지에서 나온 ‘동궁아일(東宮衙鎰)’명 자물쇠, ‘세택(洗宅)’명 목간, ‘용왕신심(龍王辛審)’, ‘신심용왕(辛審龍王)’명 접시 등에 새겨진 명문은 ‘삼국사기’ 직관지에 나오는 동궁 소속 관청 가운데 세택(洗宅), 월지전(月池典), 월지악전(月池嶽典), 용왕전(龍王典) 등과 관련이 있다…(후략)”이런 과정을 거쳐 1963년에 사적 18호로 지정됐던 안압지를 포함한 신라왕궁 별궁터 경주 임해전지는 2011년 경주 동궁과 월지로 명칭이 바뀐다. 문헌 기록과 출토 유물 등의 재검토를 통해서였다.바뀐 이름과는 무관하게 이 연못은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의 역사적 호기심을 자극하고, 통일신라의 화려했던 전성기를 떠올리게 해준다.이는 40년 전이나 2021년 오늘이나 변함없이 많은 관광객들이 동궁과 월지를 포함한 경주의 유적을 찾는 이유일 터.깔끔하게 단장된 동궁과 월지에 입장하면 연못을 바라보며 유유자적 천년왕국의 역사 속을 산책하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 주위엔 소나무가 많아 시원한 그늘 아래서 잠시 더위를 피하기에도 좋다.조그맣게 마련된 야외 전시장에선 월지 발굴 현장에서 출토된 유물도 만나볼 수 있다. 아이들과 함께 방문했다면 빼놓지 않고 둘러봐야 할 곳이다.앞서 말한 동창생들은 하얗게 변한 머리칼을 쓸어 올리며 고등학생 시절을 돌이켜보는 듯 동궁과 월지에서 한참을 머물며 추억담 속에 빠져 있었다. 오랜 우정을 간직한 그들의 모습이 좋아 보였다. 진귀한 새와 짐승 뛰놀던 화원… 이제 젊은 연인들이고색창연함을 간직한 고도(古都)인지라 경주에는 나이 지긋한 관광객이 다수일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그러나 천만에다. 예전에도 그랬고, 현재도 마찬가지인데 경주에는 젊은 여행자들이 의외로 많다.얼마 전부터 전국적 핫 플레이스로 떠오른 황리단길에서만이 아니다. 대릉원, 첨성대 앞, 계림 부근과 국립경주박물관에서도 20~30대 청년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경주시는 21세기의 관광 트렌드에 발맞춰 도시를 변화시키고 있는 중이다. 역사의 현장에 문화·예술 스토리를 입히고, 젊은이들의 요구에 응답하는 거리를 조성하고, 다양한 즐길 거리와 특색 있는 숙소를 개발하고 있는 것.실제로 황리단길에서는 세계 각국의 음식을 맛볼 수 있고, 유행의 첨단을 달리는 카페와 주점도 지속적으로 생겨나고 있다. 또한 다른 도시에선 보기 힘든 근사한 한옥 숙소도 즐비하다.대릉원은 이른바 ‘인생 사진’을 남기는 장소로 20대 여행자들에게 이름을 알리고 있다. 여기에 더해 학구적인 청년들에게 경주박물관은 ‘역사 지식의 보물창고’로 역할 한다.황리단길에서 조그만 오토바이를 빌려 타고 동궁과 월지를 찾은 20대 초반 연인들은 역사에 관한 궁금증이 큰 모양이었다.표지판의 설명을 읽다가 눈을 동그랗게 뜬 여자가 물었다. “옛날엔 여기에 진귀한 동물이 많았다네. 신라시대엔 어떤 게 진귀한 동물이었을까?”남자친구를 대신해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신라 천년의 역사와 문화 편찬위원회가 간행한 ‘신라의 건축과 공예’가 들려준다.“문무왕 시대를 서술한 ‘삼국사기’를 보면 ‘진귀한 새와 짐승을 길렀다’는 기록이 있다. 여기 기록된 ‘진금기수(珍禽奇獸)’는 흰 사슴, 희거나 자줏빛인 노루, 흰 말, 흰 까마귀, 흰 꿩, 흰 매, 흰 까치, 앵무새, 공작새, 학들이다. ‘일본서기’에는 백제나 신라가 진금기수를 일본에 전해준 기록이 있는데 낙타, 양, 앵무새, 공작새, 까치, 흰 꿩 등이 그것이다.”그러고 보면 동궁과 월지는 ‘아름다운 신라의 화원’인 동시에 1천300여 년 전 만들어진 ‘신기한 동물원’이기도 했던 듯하다. 실제로 월지 발굴에선 포유동물의 뼈가 228점, 조류의 뼈가 14점, 치아가 29점 나오기도 했다.‘신라의 건축과 공예’에 따르면 월지엔 진귀한 새와 짐승만 있었던 게 아니다. 많은 종류의 꽃과 나무도 식재돼 있었다. 이런 설명이다.“화분 분석에 따르면 동궁과 월지에는 총 25 품종의 식물이 식재됐던 것으로 나타났다. 버드나무, 잣나무, 소나무, 굴피나무, 이팝나무, 배나무…(중략) 그 외에 신라시대에 흔히 식재됐다고 생각되는 수종으로 복숭아, 오얏, 대나무, 장미, 해당화, 모란을 들 수 있다.”통일신라의 왕족과 귀족들은 바로 여기서 화사하게 피어난 꽃들의 향기를 맡으며 진귀한 새의 날갯짓을 그윽한 눈빛으로 바라봤을 것이다. 그 모습을 상상하는 건 동궁과 월지가 선사하는 드물고도 흥미로운 체험이다. 낮과 밤, 맑은 날과 흐린 날… 언제 찾아도 좋은 곳인간 내부에 존재하는 ‘기억의 회로’는 구체적 사물을 매개체로 작동을 시작한다. 동궁과 월지에서 만났던 60대 동창생들과 20대 연인들은 화려했던 통일신라의 화원 월지와 세련된 미적 감각으로 만들어진 유물 가득한 동궁을 매개체로 경주를 기억했으며, 앞으로도 기억할 것이다.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던 날. 둥근 파문을 일으키는 월지를 바라보며 한참을 망연자실 서있던 기억이 난다. 빗물에 머리칼을 적시며 ‘삼국사기’ 등 고문헌에 등장하는 신라 왕들의 이름을 하나씩 떠올리다가, 문득 1천 년 전 서라벌 사람들을 생각했다. 무언가 애틋하고 사무치는 감정이 맑은 날 동궁과 월지에선 느껴보지 못한 것이라 이채로웠다. 그 옛날 신라인들 역시 비 내리는 날이면 섬세해진 마음으로 이 연못 주위를 서성이지 않았을까? 이름 모를 풀벌레가 우는 밤이면 어둠을 밝히는 화려한 불빛이 월지와 동궁을 감싼다. 동궁과 월지의 야경(夜景)은 낮 풍경 못지않게 근사하다.비단 같이 부드러운 바람이 불어오는 밤이 주는 평화로움. 색색깔 조명의 아름다움에 취한 여행자들은 곁에 선 가족과 연인의 손을 잡는다. 그 따스했던 기억이 그들을 다시 한 번 경주로 향하는 차에 오르게 할 것이 분명해 보였다.끝/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2021-09-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