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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ㆍ특집

겨울이 다시 우리 곁에 왔다그를 벗 삼아 일상을 놓는다

본격적인 겨울의 문턱이라는 소설(小雪)이 지나고, 중부 지방엔 눈이 내렸다는 뉴스가 들려왔다.며칠 전부터 부쩍 차가워진 날씨 탓에 옷장 깊숙이 넣어뒀던 두꺼운 모직 코트나 패딩점퍼를 꺼내 입고 출근과 등교를 서두르는 이들이 많아졌다.흐르는 시간은 누구도 멈추거나 건너 뛸 수 없다. 그건 수만 년 이어져온 부정할 수 있는 당연명제다.저 멀리 북쪽에서 불어오는 삭풍은 이제 곧 경북 일대에도 닥칠 것이고, 울긋불긋한 단풍이 떨어진 자리엔 하얀 눈이 쌓일 터.2년 가까이 우리를 괴롭힌 ‘코로나19 사태’의 수난 속에서도 또 이렇게 한 계절이 가고, 다른 한 계절이 오고 있다. 거부할 수 없는 자연의 순리.이달 초부터 이른바 ‘위드 코로나’가 시작됐지만, 전망이 밝지만은 않다. 최근 들어 바이러스 확진자가 눈에 띄게 증가하고 있고, 중증 환자 역시 늘어간다는 소식은 그간 억눌렀던 여행 욕구를 발산하려는 사람들에게 실망감을 안겼다.하지만, 추위와 두려움 때문에 달콤하고 맑은 바깥 공기를 거부하기엔 근사한 경북의 겨울 여행지가 지닌 매력이 너무 크다.조심스럽게 코로나19 방역수칙을 준수하며, 조용히 다녀올 수 있는 곳은 없을까? 마음속으로 이런 질문을 던지는 독자들을 위해 매력적인 풍광과 인문학적 향기가 곳곳에 숨겨진 경북의 여행지 몇 곳을 추천하고자 한다. △청송, 주산지를 돌아보고 김주영 문학의 향기 속으로한때는 ‘경북의 오지’라고 불렸지만 이제는 교통 환경이 많이 좋아진 청송군은 무엇보다 주왕산으로 유명한 도시다. 차가운 겨울 하늘 아래서 청송의 자연 속을 산책하다보면 왜 그곳이 ‘산소 카페’라고 불리는지 실감하게 되다.톡 쏘는 맛으로 유명한 달기약수로 끓인 삼계탕은 청송의 대표적인 먹을거리. 청아한 계곡물 소리를 들으며 한적한 식당에서 삼계탕과 함께 매콤한 양념으로 버무린 닭 불고기까지 먹어보기를 권한다. ‘겨울의 낭만이 바로 이것이구나’라는 걸 느낄 수 있을 것이다.취재를 위해 아름답다고 소문난 경북의 저수지를 여러 곳 돌아다녔다. 누군가 “그중 손꼽을 만한 저수지가 어딘가”라고 묻는다면 별다른 고민 없이 “주산지”라고 답할 수 있을 듯하다.속세에서의 해탈과 번뇌하는 인간의 한계를 다룬 영화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의 촬영지인 청송 주산지는 해마다 전국의 수많은 사진가들을 불러 모으는 매력적인 공간이다.“조선 경종 원년(1721년)에 인위적으로 만든 농업용 저수지인데, 그 안에 자라고 있는 20여 그루의 왕버들이 신비롭고 아름다운 풍광을 만들어낸다”는 게 청송군의 설명.봄의 주산지는 재론의 여지없이 멋지다. 그러나, 보다 적요한 시기에 내밀한 주산지의 속살을 들여다보려는 이들은 겨울에 이곳을 찾는다.얇게 언 저수지 얼음 위에 눈이 쌓이면 왕버들은 더욱 기기묘묘한 모습으로 여행자를 반긴다. 애틋하고 쓸쓸한 풍경화가 따로 없다.주산지를 포함한 청송은 소설가 김주영의 문학 속 무대이기도 하다. 김주영 작가의 대표작에서 이름을 따온 객주문학관에선 청송이 사랑하는 소설가 김주영 문학의 진수를 맛볼 수 있다. 들르지 않을 이유가 없다.주산지를 돌아보고, 달기약수를 맛봤다면 조용한 찻집에서 1~2시간 쯤 김주영의 소설 속에 빠져보는 건 어떨지.문학평론가 이경재는 ‘명작의 공간을 걷다’라는 책에서 김주영의 생애와 문학을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김주영은 1939년 경북 청송군진보면에서 태어났다. 문학에 대한 열정으로 서라벌예술대학에서 공부한 후에는, 오랜 시간 안동에 있는 엽연초생산조합에서 일했다. 1976년 상경할 때까지 안동 지역의 문인들과 어울리며 ‘안동문학’을 창간하기도 했다. 김주영이 창작한 방대한 문학세계는 도시 빈민들을 다룬 소설, 대하역사소설, 유년기 체험을 다룬 소설로 나눠볼 수 있다. 김주영 문학은 ‘소외된 국외인들인 배고픈 유년, 도시빈민 악동, 과부, 유랑인을 묘사’하거나 ‘의리 이데올로기를 내세움으로써 동양적 전통의 웅자(雄姿)한 남성문학의 전통’을 보여준다고 평가된다.” △영양, 고요한 자작나무숲을 즐겼다면 조지훈 생가를 향해너무나 많은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야 하는 현대인들. 그래서일까? 때로는 아무도 나를 모르고, 나 또한 애써 상대방에 관해 알 필요가 없는 곳에서 며칠 머무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사람은 사람에 기대 살지만, 어떤 순간은 온전히 혼자가 되는 절대고독이 그리운 것 또한 사람이다. 적지 않은 이들이 이러한 상반된 욕망을 지니고 생활한다.당신은 맵찬 북풍 불어오는 숲 속을 목적 없이 헤매보고 싶지 않은지. 그런 침잠과 고독의 시간 속에서 ‘나는 누구이고, 세상은 무엇인지’라는 형이상학적인 상념에 빠져보고 싶지는 않은지.만약 그렇다면 달리는 차의 방향을 영양군 수비면 죽파리로 돌리면 된다. 거기에 뭐가 있냐고? 자작나무숲이 있다. 자작나무는 얇은 껍질이 종이처럼 하얗게 벗겨진다. 몇몇 연인들은 그 나무에 사랑의 메시지를 새기기도 한다고.영양 검마산 죽파리엔 인공적으로 심어 키운 거대한 자작나무숲이 있다. 2km에 이르는 산책로는 아직 아는 사람보다 모르는 이들이 더 많다. 조용하고 비밀스런 여행지란 이야기다. 만약 추위 속에 오지를 헤매는 것이 또 다른 낭만이라고 느낄 수 있다면 죽파리 자작나무숲은 더없이 좋은 겨울 여행지가 될 수 있을 것이다.숲의 입구까지만 차를 타고, 숲이 시작되는 곳에서부턴 걸어보는 게 죽파리를 즐기는 최적의 방법이라고 다녀온 사람들은 입을 모은다. 얼마 전까진 휴대전화도 터지지 않았다고 하니, 침묵의 숲이라 불러도 무방할 듯. 번잡한 일상을 살아온 도시인들에겐 이 또한 선물처럼 느껴질 수 있다.영양은 한국문학사에 우뚝 선 작가가 여러 명 태어난 곳이기도 하다. 조지훈과 이문열이 대표적이다. 영양 일월면엔 조지훈의 생가와 지훈문학관이 자리하고 있다. 자작나무숲의 고요함을 충분히 즐겼다면 이제 시(詩)의 향기 곁으로 가보자.1920년 영양에서 태어난 조지훈의 본명은 동탁(東卓). 유년 시절엔 한학을 익혔고, 중학교 과정은 독학했다고 한다. ‘문장(文章)’을 통해 등단한 그는 고전적 풍물을 소재로 한 우아하고 섬세한 시로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다.그는 경기여고와 고려대에서 교편을 잡았고,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 초대 소장이었다. 앞서 언급한 책에서 이경재는 조지훈을 이렇게 평가하고 있다.“조지훈의 삶을 뒷받침한 것은 조선 500년을 이어온 선비정신이다. 조지훈의 고향은 경북 영양군 일월면 주곡. 이곳은 한양 조씨들이 대를 이어 살아온 마을이다. 그의 조상은 이상적인 도학정치를 구현하기 위해 애쓰다 쓰러진 정암 조광조(1482~1519)다. 조지훈은 일제가 주도하는 신교육 대신 전통적인 유학을 주로 배우며 성장했다. 수백 년간 주곡 마을을 채워온 올곧은 선비정신 속에서 조지훈은 정신의 뼈와 살을 형성한 것이다.”△의성, 아득한 시절 존재했던 조문국의 역사와 만나다풍경과 문학이 행복하게 만나는 공간인 청송과 영양. 취향에 따라서는 시와 소설보다 역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도 있을 터. 만약 그렇다면 의성군이 적합한 여행지가 돼줄 것이다.의성은 희미한 기록과 기억으로 남은 조문국(召文國)이 있었던 곳이다. ‘두산백과’가 이 나라에 대한 보다 구체적인 설명을 들려준다.“삼한시대 초기에 경북 의성군 금성면 일대에서 세력을 형성했던 부족국가로 규모는 소국(小國)이었다. ‘삼국사기’에는 185년 신라 벌휴왕 때 파진찬 구도와 일길찬 구수혜가 조문국을 정벌해 군(郡)으로 삼았다고 기록돼 있다. ‘고려사’와 ‘신증동국여지승람’에도 조문국에 대한 기록이 전한다. 금성면 일대엔 조문국 지배자들의 묘로 추정되는 대형 고분들이 남아있다.”자그마치 1천900여 년 전에 존재했던 조그만 국가의 흔적을 되살려낸 곳이 의성 조문국박물관이다. 상설전시와 기획전시가 이뤄지는 박물관에선 신라와는 또 다른 예술성과 미적 감각을 지닌 조문국의 유물들을 확인할 수 있다.그리고, 하나 더. 기자는 지난해 여름 금성면 대리리, 학미리, 탑리리 일대에 흩어져 있는 수백 기의 고분을 보고 깜짝 놀랐다. 크기를 달리하며 솟아오른 고분이 만들어내는 이채로운 모습은 눈 쌓인 겨울에 더 아름다울 것 같았다. 그래서다. 겨울이 깊어지면 다시 한 번 찾고 싶은 여행지가 바로 의성이다. /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2021-11-24

경주 문무대왕과학硏, 새 에너지문명시대 열 전초기지

우리나라는 부존자원이 거의 없는 가운데서도 에너지 집약적 산업구조를 성공적으로 운용해 왔다. 그러나 최근 정부가 발표한 원자력발전 없는 2050 탄소중립 달성 시나리오는 에너지 관련 산업구조에 많은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특히 한국 최대 원자력 집적단지인 경북·경주는 이에 대한 대응 방안 마련이 생존권 차원에서도 매우 시급하고 절실한 과제다. 따라서 그간 정부가 주도해온 탈원전 정책과 최근 발표된 ‘2050 탄소중립’ 시대를 준비하고 있는 현 시점에서 원자력의 역할과 그와 연계한 경북·경주의 미래 발전 방향을 재조명해 보고자 ‘2021 경북 원자력포럼’을 마련했다. 23일 경주 블루원리조트에서 열린 이번 포럼에서는 전문가들이 한자리에 모여 원자력산업과 관련된 화두들에 대해 심도있는 논의를 펼쳤다. 백원필 한국원자력학회 수석부회장의 기조강연을 시작으로 김호진 경주시 부시장, 임채영 한국원자력연구원 혁신원자력시스템연구소장, 박해준 한국원자력연구원 책임연구원, 이상일 현대엔지니어링 박사가 주제발표를 진행했다.기조 발표 백원필 한국원자력학회수석부회장2050년까지 탄소 중립전 세계가 공감대 형성원자력 역할 확대 필수적 현재 세계는 파국적인 상황을 예방하기 위해 산업혁명 이전 대비 지구 평균온도 상승을 1.5℃ 이하로 낮춰야 하고, 이를 위해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달성하자는 데 공감대를 이뤄가고 있다. 나라마다 처한 사정이 크게 달라서 구체적 실천사항에 대한 국제적 합의에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결국은 화석연료 중심의 에너지 소비체계에서 탈피해 거의 모든 에너지를 전기(일부는 수소) 형태로 이용하고, 그 전기는 무탄소 에너지원에 의해 생산해야 할 것이다. 무탄소 에너지원에는 태양광, 풍력 등 간헐성 재생에너지, 수력 등 지역이 제한된 재생에너지와 지역 제한이 없고 안정적인 원자력 등 3가지뿐이다. 원전을 자력으로 건설하고 수출경쟁력까지 갖춘 우리나라에서 원자력의 중요성은 더 말할 필요가 없다. 탄소중립시대에 선박을 위시한 물류 이동수단, 대규모 에너지를 필요로 하는 제철업 등 모든 분야가 그 제한으로부터 자유스러울 수가 없다. 무한 에너지원인 원자력의 역할 확대는 필수불가결하며, 이를 위해서는 혁신적 원자력기술 개발이 필요하다. 단기적으로는 안전성 우려를 완전히 배제한 SMR, 그리고 액체연료기반 소형 동력용 원자로 등의 개발을 속도감 있게 진행해야 한다.새로운 에너지 문명시대는 인류의 에너지 불평등을 해소할 것이며, 지구를 넘어 우주 시대의 초석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경주에 위치한 문무대왕과학연구소는 새로운 에너지 문명시대를 열어가는 전초기지가 될 것이다.주제 발표 김호진 경주시 부시장경북의 K-원자력 전략은혁신원자력·원자력수소원전수출·지역상생이 핵심경북은 전국 에너지 수급 중심지역으로, 원자력발전소(총 24기 가동 원전 중 11기) 및 각종 원자력 관련 기관 유치, 신재생에너지 발전량 또한 12.5%를 차지하며 증가추세다. 하지만 정부의 에너지전환 정책으로 60년간 축적된 원자력 산업샌태계가 붕괴 위기를 맞이하고 있다.하지만 경북도와 경주시는 기존 인프라를 기반으로 원자력에너지클러스터를 조성해 신재생에너지와 더불어 동해안 에너지산업융복합단지를 구상해 환동해안권의 신성장 동력을 마련코자 한다.경상북도의 K-원자력 전략은 4개 분야 12개 과제다. 첫째는 ‘혁신원자력’으로 혁신원자력연구단지, 중수로해체기술원, 방폐물 정밀분석센터 설립을 내용으로 한다. 둘째는 ‘원자력수소’로 첨단원자력융합연구센터, 그린수소생산 실증단지, 원전 상생 국가산단 조성이 내용이다. 셋째는 ‘원전수출’이다.이는 혁신형 i-SMR, 차세대 원자로 수출이 주요 내용이다. 마지막으로는 지역상생·제도개선이 있는데 지역상생 모델개발, 원자력진흥법 개정, 국립 탄소중립 에너지미래관 설립, 서울대 연구소 유치 등을 추구한다.이런 가운데 경주시 혁신 원자력기술의 메카 조성으로 9개 과제를 선정했다. △문무대왕과학연구소 발전 △혁신 원자력 연구단지Ⅱ △초임계 CO₂발전시스템 △탄소 자원화 클러스터 △수소에너지 혁신 클러스터 △원자력-신재생 상생단지 △GeV급 양성자가속기 구축 △차세대 극한환경 연구개발 클러스터 △양성자가속기 첨단연구단지가 그것이다. 과제 수행을 통해 경주는 대한민국의 자부심이 되는 혁신 원자력 기술의 메카로 거듭날 전망이다. 임채영 한국원자력연구원 혁신원자력시스템연구소장미래 원자력 성장동력 SMR은대형 원전 한계 극복할 먹거리다양한 기술개발로 경쟁력 UPSMR은 대형원전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장점을 있기 때문에 여러 국가들이 관심을 보이고 있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50종 이상의 SMR이 경쟁적으로 개발되고 있으며 주요국은 국가에서 초기 개발과 실증단계 위험을 분담하면서 개발을 지원하고 있다. 이러한 지원에 힘입어 개발이 앞선 몇 종의 SMR은 실증단계에 진입하고 있다.따라서 SMR은 탄소중립의 효과적인 수단으로서 만이 아니라 신산업의 관점에서도 새롭게 바라봐야 한다. 우리 정부도 이러한 필요성을 인식하고 혁신형 SMR(i-SMR) 개발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현재의 계획대로라면 2028년까지 세계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는 새로운 SMR이 설계인가를 마치게 된다.새롭게 개발되는 i-SMR은 최고 수준의 안전성과 경제성을 확보하는 한편, 재생에너지와의 연계를 위한 출력조절의 유연성도 갖추게 될 것이다. 또한 국제해사기구가 요구하는 선박의 온실가스 감축에 대비해 조선업체에서 많은 관심을 가지고 개발을 추진하는 해양용 원자로를 실증하기 위한 다목적 연구로 사업도 진행하고 있다. 현재는 기존의 대형원전의 경험과 기술을 활용할 수 경수형 SMR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그러나 이에 못지않게 나트륨이나 헬륨을 냉각재로 사용하는 새로운 SMR도 시장에 등장하고 있어 치열한 SMR 개발 경쟁의 승자가 누가 될지는 아직 알 수 없다.빌게이츠가 개발하는 원자로와 유사한 원리를 갖고 있는 소듐냉각고속로와 고온의 열을 생산해 수소를 효율적으로 생산하는데 강점이 있는 고온가스로를 개발하고 있으며 차세대 원자로인 용융염원자로도 기초연구를 시작했다. 이러한 다양한 기술개발이 결실을 맺게 된다면 SMR은 원자력계는 물론 국가의 새로운 성장동력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박해준 한국원자력연구원 책임연구원비파괴적 전통 문화유산 보전유일한 수단이자 대체기술우리나라도 국제표준에 참여한국원자력연구원과 문화재 분야 부처 기관(문화재청 등)간의 협력은 1960년대부터 시작됐으며 한국원자력연구원은 전통문화유산 보존을 위해 원자력 기술을 이용해 문화유산의 문화적, 사회적, 역사적, 지리적 배경 등을 쉽고 정밀하게 파악할 수 있는 기술을 제공해오고 있다. 중성자선, 엑스선, 감마선을 이용한 유형 문화유산의 비파괴적 검사를 통해 내부 구조, 구성 성분, 제조 기법 등에 대한 정보 획득하는 것이 그 기술의 핵심이며, 특히 문화재 보존전문가들 요구하는 진단 한계 돌파를 하는 기술들을 순차적으로 제공해오면서 지난 60년간 우리 전통문화유산 보존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한편 그동안 문화재 보존처리 역할을 완벽하게 해오던 훈증소독제 메틸브로마이드가 사용금지됐다. 유럽을 중심으로 한 선진국에서는 이미 유해훈증소독제 메틸브로마이드를 대체해 감마선 소독을 표준으로 사용하고 있으며 우리나라도 문화재청의 요청에 의해 한국원자력연구원에서 방사선을 이용한 우리 전통문화 문화유산 맞춤형 소독처리기술을 개발하고 있으며 국립문화재연구소와 함께 이를 수행하기 위한 관련 국가규정을 준비하고 있다. 현재 방사선만이 비파괴적으로 문화재의 생물학적 손상으로부터 지켜낼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자 대체 친환경 기술로, 프랑스 ARC-Nucleart에서는 1970년대부터 방사선 기술을 이용해 람세스 2세 미아라, 등 문화재의 보존·복원·멸균처리를 수행해왔다. 현재는 유럽, 미주 국가뿐만 아니라 브라질, 이란, 우크라이나로 확대돼 22개 국가에서 표준으로 사용하고 있다. 국제기구를 통해 우리나라도 국제표준에 참여해 이들 국가와 함께 인류공동문화유산 보존에 이바지하려 하고 있다. 이상일 현대엔지니어링 박사초소형 원자로 활용 그린수소생산 통해 기후변화에 대응수소생산 상용화에 매진할 터현대엔지니어링은 건설업의 특성을 살려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사회적 움직임에 함께 하고자 한다. 이에 국내외 사업 수주에 있어 친환경성을 우선 고려하며, 신재생 에너지 관련 프로젝트 수주를 통해 역량을 강화하고 있다. 수소에너지는 화석연료의 단점을 보완할 수 있는 청정에너지로 평가받고 있다. 다양한 수소에너지 생산 방식 중 화석연료를 사용하지 않고 생산된 전기를 통해 수전해 방식으로 추출된 수소를 그린수소라고 한다. 그린수소는 생산과정에서 온실가스가 전혀 발생하지 않아 가장 친환경적인 수소 생산기술로 각광받고 있다. 물의 전기분해를 통해 추출되기 때문에 화석연료와 비교하면 고갈위험이 없어 화석연료의 단점을 보완할 수 있는 청정에너지로 평가받고 있다. 현대엔지니어링은 초소형 원자로(MMR, Micro Modular Reactor)를 활용한 그린수소 생산을 통해 기후변화에 대응하고자 한다. 수소 에너지의 대량생산을 위해서는 MMR을 이용한 고온수전해 기술이 필요하다. 고온증기의 생산을 담당하는 MMR은 대형 원자로 발전소보다 작은 크기로 더 높은 온도의 증기를 생산하기에 경제적 가치가 높다. 또한, 헬륨을 냉각재로 사용해 방사성 물질의 노출 위험이 거의 없어 안전성 또한 우수해 전 세계적으로 그린수소 기술 개발에 많이 활용되고 있다. 현대엔지니어링은 캐나다에서 MMR 실증사업을 추진하고, 경상북도, 포스코, 한국원자력연구원 등의 기관과 ‘원자력 활용 그린수소 생산 기술 개발 MOU’를 체결하는 등 국내외 그린수소 및 MMR 시장을 선도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앞으로 현대엔지니어링은 국내외 실중 사업을 적극 추진해 MMR 전력생산 및 수소생산 기술의 상용화에 기여할 계획이다./전준혁기자

2021-11-23

포항의 철이 빚어낸 예술… 영일만의 하늘을 담다

국내 최대 체험형 조형물 ‘스페이스 워크’가 영일만 관광특구 중심지인 환호공원서 지난 18일 시민들에게 공개됐다. 포항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랜드마크로 포스코의 Park1538, 역사관, 제철소 야경, 포항 1고로 박물관 등 포항의 새로운 문화콘텐츠와 연계해 관광 활성화에 기여함은 물론 향후 해상케이블카 사업과도 시너지 효과를 거둘 것으로 예상된다.지역 사회를 재생시키고 활기를 불어넣는 조형물 또는 공공 예술작품으로서의 역할도 충실히 할 것으로 기대된다. 과거 영국 북부의 게이츠헤드 사례를 보면 이러한 점을 잘 알 수 있는데, 한때 몰락한 탄광촌이었던 게이츠헤드는 전쟁피해와 산업쇠퇴를 겪으며 실업률이 20%에 육박하던 절망적인 도시였다. 그러나 안토리 곰리의 거대 조형물 ‘북방의 천사’ 설치 후 쇠락한 탄광촌은 수많은 관광객을 불러모으는 명품 문화 관광도시로 탈바꿈해 서비스업을 부흥시키고 도시 재생에 성공했다.지난 2001년 포스코가 200억원을 기부해 조성된 환호공원. 아름다운 해안선과 일출 그리고 포스코 전경을 즐길 수 있어 지역 주민들로부터 이미 큰 사랑을 받아 온 이곳에서, 새롭게 들어선 ‘스페이스 워크’가 어떤 변화를 일으킬지 이목이 쏠리고 있다. □ 국내 공공미술의 새로운 패러다임 제시최근 전세계적으로 조형물 등 예술작품의 추세를 보면 사람들이 예술을 평행적으로 읽고 일방적으로 바라보는 것에서 벗어나 어떻게 하면 입체적인 경험을 할 것인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스페이스 워크’ 역시 바라만 보는 것이 아니라 관람객들이 작품 위로 직접 올라가 계단을 거닐며 작품과 교감하고, 시각을 넘어 촉각 및 청각 등을 통해 작품을 실제 체험함으로써 그 자체가 하나의 예술이 되는 무척이나 특별한 경험을 하게 만들어졌다.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선보이는 체험형 작품인 셈이다.무엇보다 작품 기획단계부터 완공까지 작품의 예술성 확보를 위해 추진한 프로세스는 기존 공공미술 추진방식과는 다르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작가는 포항제철소, 죽도시장, 해맞이공원 등 각종 명소를 방문하며 포항시민과 함께 호흡하고 향토사학자 등을 만나 지역에 대한 이해도를 높였고, 조형·건축·미술 분야 권위 있는 전문가와 포스코, 포항시 관계자 등으로 구성된 자문위원단과 지속적으로 소통하는 공론화 과정을 거치며 작품을 디자인했다.이같은 공론화 과정은 청계천 상징 조형물처럼 아예 해외 작가가 한국에 와보지도 않고 제작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큰 차이가 있다. 따라서 2년 7개월에 걸친 대장정을 지나오며 지속적인 의견 수렴 등 공론화 과정을 착실히 밟아온 ‘스페이스 워크’의 사례는 타 지자체 조형물 설치 시 모범사례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포스코의 역량과 기술력이 집약된 작품작품 그 자체에만 집중하더라도 스페이스 워크는 뛰어난 부분이 한두 개가 아니다. 100% 포스코 강재로 제작된데다 포스코 기술연구소와의 협업을 거치며 엔지니어링과 예술적 요소가 융합된 작품이 됐다. 해안가라 부식위험이 높은 포항의 지리적 특성은 물론 포항의 강풍과 지진을 고려해 부식되지 않는 다양한 재료를 검토·연구한 끝에 일반 스테인리스강(304, 316 등)보다 부식에 월등히 강한 스테인리스 329J3L이라는 고가의 재료를 조형물에 적용했다. 또한 철을 소재로한 비정형 조형물이라는 점에서 오차를 최소화하고 정밀도를 높이기 위해 제작과 설치 과정에서는 MEP(mechanical, electrical and plumbing/기계, 전기 및 배관) 레이아웃 솔루션, GPS 및3D 스캐닝 검측, 초음파 비파괴 검사 등 첨단 장비와 포스코의 전문 인력이 참여했다.특히 체험형 조형물로서 안전을 최우선하기 위해 땅밑으로 조형물을 지지하는 25개의 기둥이 모두 연결돼 있고, 이렇게 연결된 기둥은 조형물 전체를 114개 마이크로파일을 활용해 암반에 고정시킴으로써 국내역대 최대 규모의 태풍이 와도 영향을 받지 않도록 설계됐다. 즉 스페이스 워크는 역대 최대 규모 태풍 강도를 고려해 기본풍속 40m/s, 설계풍속 67m/s으로 설계했고 리히터 규모 6.5 이상의 강진에도 붕괴되지 않는 내진 설계가 적용됐다.체험형 예술작품으로서 가치를 높이기 위해 파트 하나하나를 조각품 다루듯 수작업으로 마무리하기도 했다. 작품의 계단도 예술품으로서 가치를 높이기 위해 작은 부분까지 디자인에 신경을 쓰며 제작했고, 맑은 날 햇빛을 받으면 아름답게 빛나도록 수작업으로 가공했다.더욱 놀라운 점은 3차원으로 휘어지고 뒤틀려 있는 비정형 형태의 대형 구조물을 오차 없이 안전하게 설치한다는 것이 쉽지 않은 일임에도, 포스코는 333m의 초대형 조형물인 ‘스페이스 워크’를 제작하면서 시작 지점과 끝 지점 오차를 겨우 0.5㎝ 이하로 시공 완료하는 기술력을 보였다는 것이다.□ 작품의 예술적 특징작품의 예술적인 특징도 눈여겨볼 만하다. 스페이스 워크는 기존에 관람객이 바라만 보던 작품, 만지면 안되는 작품이 아닌, 직접 작품 속으로 걸어 들어가서 예술과 관람객이 하나의 풍경이 되는 체험형 조형물이다. 트랙 위를 천천히 걸으면 마치 신선이 된 듯 구름 속을 산책하는 과정에서 스페이스 워크라는 제목처럼 마치 무중력 상태의 공간 속, 우주를 유영하는 듯한 신비로운 체험을 하게 된다. 스페이스 워크는 멀리서 보면 롤러코스터를 연상시키며 ‘빠른 속도’라는 이미지가 그려지지만 실상 작품 트랙 위에서 관람객들이 경험하는 것은 ‘작품을 따라 느리게 걷는’ 나의 신체와 공간의 관계, 느림의 미학을 보유하고 있다. 이러한 모순적 장치는 스페이스 워크의 중요한 미학적 개념인 ‘시간의 상대성’을 드러내며, 철로 그려진 우아한 곡선과 밤하늘을 수놓은 조명은 철과 빛의 도시 포항을 상징한다. 특히 작품 위에서 360도로 개방돼 있는 풍경을 바라보면 파노라마처럼 펼쳐져 있는 전경이 탄성을 자아낸다.스페이스 워크는 디자인 제안 때부터 환호공원에 살포시 내려앉은 구름의 모습이 연상된다고 해서 클라우드(Cloud)라는 애칭으로도 불리는데, 시카고 밀레니엄파크의 애니쉬 카푸어의 작품도 콩을 닮았다고 해서 ‘빈(Bean, 콩)’이라는 애칭이 더 많이 사용되고 있는 것처럼 해외 유명 작품의 경우 종종 정식 작품 제목과 닉네임(애칭)이 함께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또한 조형물 중앙에 있는 원형 루프는 올라갈 수 없으며 결국 왔던 길을 되돌아가야 하는데, 작가는 이에 대해 “의도된 불편함을 통해 편리함만을 추구하는 현대사회에 대한 성찰과 되돌아가는 수고로운 행위를 통해 각자의 방식으로 시간과 공간의 상대성에 대해 경험할 수 있다”고 디자인 의도를 설명했다. 아울러 올라갈 수 없는 루프에 대해 작가는 “유토피아를 상징한다”며 “가고 싶지만 갈 수 없는 곳, 볼 수 있지만 만질 수 없는 대상에 대한 갈망과 도전, 실패를 끊임없이 반복하면서 한 걸음씩 나아가는 무한한 도전정신을 표현한 작품”이라고 설명했다.이어 진입계단을 지나 양방향으로 나눠지는 트랙은 반드시 되돌아오면서 결국 하나로 합쳐지게 된다. 작가는 이를 통해 “예술과 인간, 기업과 시민, 포스코와 포항시의 하나됨을 상징한다”고 밝혔다. 또 조형물은 보는 각도에 따라 2개의 원형이 만들어지고, 직접 볼 수는 없지만 공중에서 조형물을 바라보면 2개의 원형이 보이는데 작가는 이에 대해 “포항의 대표적인 설화인 연오랑 세오녀의 오마쥬”라고 말했다. □ 시민과 지속적인 호흡작품의 설치가 끝은 아니다. 포스코는 시민들과 함께하는 스페이스 워크(Space Walk) Open Day 행사를 열며 시민들의 삶 속에 작품이 녹아들 수 있도록 힘쓰고 있다. 작품 공개 하루만인 19일 스페이스 워크 이벤트 광장에서는 ‘스페이스 워크 시민 Open Day’가 열렸다. 스페이스 워크는 포스코와 포항시민의 상생과 화합을 상징하는 작품이기에, 포스코는 Open Day를 통해 시민들과 함께 교감할 수 있는 시간을 마련했으며, 행사에는 포항제철소 남수희 소장을 비롯한 포스코 임직원과 333팀의 포항시민들이 참석했다.이날 포스코의 재능봉사단은 각종 이벤트를 주최하며 소통의 장을 만들었다. 포스코의 캘리그라피, 붓글씨 재능봉사단은 시민들에게 희망의 메시지가 담긴 글귀를 선물했고, 풍선아트 봉사단은 스페이스 워크를 상징하는 다양한 풍선 아트를 제공했다. 또한 사진 봉사단은 행사에 참여한 시민들을 위해 기념사진을 촬영해줬으며, 사랑의 붕어빵 봉사단은 따듯한 투어가 될 수 있도록 붕어빵을 나눠주며 추억 거리를 선사했다.바로 옆에 위치한 환호공원 무대에서는 포스코 문화예술봉사단 주관으로 음악회가 열렸다. 포스코 풍물봉사단, 클래식 기타 동호회와 지역 음악 동호회인 꿈틀로 중창단, 포항다소리세오녀 합창단 등의 단체들이 무대를 꾸몄다. 색소폰 연주, 하모니카 공연, 가요 중창 등 수준 높고 다채로운 공연으로 행사 내내 관람객들의 귀를 즐겁게 했다. 분위기를 돋우는 음악과 다양한 선물, 그리고 롤러코스터를 연상케 하는 스페이스 워크가 어우러진 풍경은 마치 놀이공원에 와 있는 듯한 인상을 줬다.행사에 참여한 한 시민은 “포항에 새로운 랜드마크를 건립하고 오늘의 즐거운 행사를 마련해 준 포스코에 감사하다”며 “경관이 너무 좋아서 개인적으로도 자주 방문할 것 같고, 포항 시민들과 관광객들도 이색적인 체험을 위해서 많이 방문할 것 같다”라고 행사에 참여한 소감을 밝혔다./전준혁기자 jhjeon@kbmaeil.com

2021-11-21

고령, 에너지복지 사각지대 없는 행복도시 만든다

오늘날 에너지 관련 정책의 핵심은 편의성과 친환경성의 추구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21세기 주요한 시대적 과제의 하나이기도 하다.지난 시절처럼 에너지를 무분별하게 사용한다면 자칫 미래세대가 위협받을 수도 있다는 위기의식이 커지고 있다. 에너지 사용에 관한 인식의 변화가 오고 있는 과정이다.인간이 생활하는데 꼭 필요한 에너지. 어떻게 하면 이것들을 편리하게 이용하면서도 환경 오염과 공해 발생을 줄일 수 있을지 정부와 관련 학자들은 고민하고 있다. 한국의 지방자치단체 역시 이런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있는 추세다.보다 안전하고 경제적인 도시가스의 공급 확대와 전기차 보급, 여기에 태양광과 지열 등 친환경 에너지 개발이 어느 도시 할 것 없이 진행되고 있는 중이다. 그렇다면 고령군은 이런 상황에 어떻게 대응하고 있을까? 그 궁금증을 풀어보고자 한다. 4개의 주요 에너지 복지사업 진행 중인 고령군먼저 효과적인 에너지 복지 정책의 중단 없는 추진으로 ‘더 큰 고령, 군민이 행복한 고령’을 만들려는 노력은 크게 4가지로 요약된다.이를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먼저 도시가스 공급 확대를 들 수 있다. 대가야읍과 다산면 도시가스 공급 확대가 그 중추라고 할 수 있다. 다음으로는 가스시설 개선사업이다. 관련해서 마을 단위의 LPG 배관망사업과 소형 저장탱크 보급이 진행되고 있다는 게 관계자의 설명이다.신재생에너지 보급사업도 빼놓을 수 없다. 원활한 사업 추진 속에서 융복합 지원사업, 지역 지원사업, 건물 지원사업이 동시에 이뤄지고 있다. 더불어 고령군은 주택 보급사업과 사회복지시설 냉난방기 보급사업에도 노력하고 있다.고령군에선 전기자동차의 보급도 원활하게 진행 중이다. 전기자동차 운행에 필수요건이라 할 수 있는 급속충전기 설치 작업도 착착 이뤄지고 있다고 한다. 이는 안정적인 인프라 구축 차원에서다.이것들을 종합하면 고령군은 306억 원의 사업비 예산을 투입해 도시가스 공급확대(115억 원), 가스시설 개선사업(63억 원), 신재생에너지 보급사업(88억 원), 전기자동차 보급사업(40억 원) 등 에너지복지사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것.편의성과 환경친화성을 중심에 두고 누구나 살고 싶고, 머물고 싶은 행복도시로 고령을 만들려는 노력들. 이러한 일련의 사업은 편안하고 안정적인 정주 여건을 만들고, 지역경제의 활성화에도 작지 않은 영향을 주고 있다.아래에서는 보다 구체적으로 고령군의 에너지 복지 정책이 어떤 방향으로 어디까지 진행되고 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도시가스 공급 확대로 정주여건 개선 효과까지천연가스로도 불리는 도시가스는 공기보다 가벼워 누출되더라도 대기 중에 쉽게 확산돼 화재 등의 사고 위험성이 매우 낮다.또한, 배관을 통해 가스기기까지 공급되기 때문에 별도의 수송 수단이나 연료 저장시설이 필요 없고, 타 연료에 비해 연소성과 열효율도 높다. 바꿔 말하면 에너지 절약에 기여하는 경제적인 연료라는 말이다.고령군은 올해 사업비 12억 원으로 현재까지 475세대에 도시가스 신규 공급을 했고, 연말까지 600세대 정도에 새롭게 도시가스를 공급하게 된다.민선7기 공약사업인 도시가스 공급 확대 목표는 1천710세대였다. 현재는 2천171세대에 공급을 완료함으로써 목표를 초과 달성했다는 것이 군청의 부연이다.지금도 도시가스를 원하는 주민들은 적지 않다. 그런 이유로 이 사업은 계속적으로 추진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고령군에선 현재 도시가스가 총 5천700여 세대(대가야읍 3천세대, 다산면 2천700세대)에 공급되고 있다. 이를 통해 타연료에 비해 30~50%의 에너지 절감을 실천하고 있으며, 정주여건 개선으로 주민의 타지역 이탈도 방지하고 있다고 한다. 이는 당연한 수순처럼 주민들 삶의 질 향상에도 기여하고 있다. 가스 공급시설 확충으로 저렴한 에너지 사용 환경 조성마을 단위 LPG 배관망사업은 쌍림면 하거2리 마을을 시작으로 현재까지 6개 마을의 사업이 준공됐다. 올해도 12억 원의 예산으로 쌍림면 귀원리(125세대)에 사업을 추진해 12월 중 준공 예정이다.내년에는 우곡면 도진리(99세대)에서 사업을 추진해 도시가스가 공급되지 않는 마을에서도 도시가스처럼 저렴하고 안전한 LP가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는 것이 고령군의 복안이다.여기에 가스 안전을 위해 마을 노인회관 25곳에 소형 저장탱크 보급사업을 추진하고 있으며, 저소득층과 고령층이 거주하는 3천400여 세대에 고무호스를 금속배관으로 교체하기도 했다. 타이머콕이 보급된 집도 3천500여 세대를 넘겼다.올해는 대가야읍과 쌍림면에서 LP가스시설 안전점검 대행 시범사업을 진행했고, 2022년에는 점검 대상을 고령군 전체로 확대하는 등 보다 안전한 고령을 만드는데 적극 노력하겠다는 방침도 함께 밝혔다.신재생에너지 보급은 정부 방침에도 부합하는 사업고령군은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사업비 59억 원으로 신재생에너지 융복합지원사업을 추진해 700여 세대에 신재생에너지(태양광, 태양열, 지열)를 보급했고, 주택 지원사업으로도 300여 세대에 신재생에너지를 보급하고 있다.이는 가구당 월 4만~5만 원 가량의 전기료와 난방비 등 에너지 비용을 줄이는 효과로 나타나고 있다. 관공서, 마을회관, 경로당 164곳에 태양광, 태양열, 지열 등 신재생에너지를 설치해 효율적인 에너지 절감을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마을회관 경로당 44곳에 고효율 냉난방기를 설치했고, 이 사업은 내년에도 이어져 17곳에 효율 높은 냉난방기를 설치·지원할 계획이다.사업의 효과는 실제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올해 초 태양광을 설치한 마을 주민들은 “매달 5만~6만 원의 전기요금을 내던 지난해와 달리 올해는 기본요금만 부과돼 월평균 5만 원의 전기요금이 절약되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군청은 “주민들이 만족도가 생각보다 높다”며 “앞으로도 중단 없는 사업 추진을 통해 많은 주민들에게 신재생에너지 관련 설비의 설치를 지원함으로써 코로나 등으로 어려운 가계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고자 한다”고 밝혔다.앞으로도 고령군은 정부의 온실가스 감축 방침과 그린 뉴딜 정책에 발맞춰 신재생에너지 보급 사업을 적극 검토·추진할 예정이다. 이는 실질적으로 군민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사업을 발굴해 진행한다는 방침과도 일맥상통한다. 전기차는 경제성과 함께 환경보호에도 효과전기차는 무엇보다 경제성이 뛰어나 구입하는 군민들의 부담을 덜어줄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대기 환경 개선에도 효과가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 고령군은 현재까지 40억 원의 예산을 지원해 전기자동차 196대(승용 90대, 화물 104대)와 이륜차 20대를 보급했다.이 사업은 내년에도 이어진다. 26억 원의 예산으로 전기자동차 143대(승용 63대, 화물 80대)와 이륜차 50대의 보조금을 지급할 예정인 것. 전기차 급속충전기는 현재 23곳을 운영 중에 있고, 올해 중으로 5곳이 추가로 설치돼 운영된다.앞서 말한 것처럼 전기차는 배출가스가 발생하지 않아 대기 질 개선에 효과가 있다. 환경을 생각하는 차량인 것이다. 정부 보조금 지급으로 구입비 부담도 낮다. 연료비 등 유지비 역시 내연기관 차량의 절반 수준이기에 앞으로도 전기자동차 보급사업은 지속적으로 진행될 예정이다.이와 관련해 곽용환 고령군수는 “우리 군의 에너지 복지사업은 군민들 삶의 만족도를 높이는 데도 큰 영향을 미쳤다”며 “주민들의 생활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에너지 복지사업을 중단 없이 추진해 누구나 살고 싶은 아름다운 도시로 고령을 만들어갈 것”이라고 약속했다.이처럼 다양한 방향에서 추진되고 있는 고령군의 에너지 관련 정책과 사업은 21세기형 행복도시를 만드는 길에 적지 않은 도움이 되고 있다. 그렇기에 향후 고령의 변화와 발전 과정이 주목된다./전병휴기자 kr5853@kbmaeil.com

2021-11-17

오메! 단풍 들것네

특정한 어느 한 곳을 지칭할 것도 없다. 한국의 산 대부분이 ‘가을의 마법’ 단풍으로 절경을 펼치고 있다. 경상북도 역시 마찬가지다. ‘코로나19 사태’의 가혹한 소용돌이 속에서도 찾아온 만추.오래전 미당 서정주(1915~2000)는 요즘과 같은 날들을 아래와 같이 노래했다.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저기 저기 저 가을 꽃 자리초록이 지쳐 단풍 드는데눈이 내리면 어이 하리야봄이 또 오면 어이 하리야내가 죽고서 네가 산다면네가 죽고서 내가 산다면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단풍은 ‘초록에 지친’ 산이 붉고 아름다운 풍경화를 그려냄으로써 ‘죽고 사는’ 굴레에 갇힌 인간의 유한함과 수천 년 지치지 않고 반복되는 자연의 무한함을 가르치기 위해 우리 곁에 해마다 오는 것일까? 눈이 부시도록 푸른 가을 하늘과 함께.이른바 ‘위드 코로나 시대’가 한국에서도 시작됐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11월 첫 주말을 이용해 단풍놀이를 즐겼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그 흐름은 이번 주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자칫 성급한 코로나19와의 공존 움직임이 바이러스 확진자 증가로 이어져 다시금 위험한 상황이 올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없지 않지만, 그것만으론 2년 가까이 갑갑한 일상을 반복하며 집에 갇혀 지내던 사람들의 일상 탈출 욕구를 제지하기 힘들 듯하다.이런 때일수록 사람이 몰리는 곳에선 마스크를 꼼꼼하게 착용하고, 식당과 카페 등 다중 밀집장소에선 방역수칙을 철저하게 지키는 자기방어가 필요해 보인다. 그런 태도가 ‘위드 코로나 시대’를 사는 현명한 방법일 터. 아름답게 붉은 나뭇잎 아래를 걷는 즐거움봄의 꽃놀이와 여름의 물놀이도 좋지만, 해마다 가을이면 여러 사람을 설레게 하는 단풍놀이는 누구나 기다리는 최고의 즐거움 중 하나다. 춥지도 덥지도 않은 청명한 날씨. 샛노랗고 투명하게 붉은 나뭇잎 아래를 거니는 걸 누가 마다하겠는가.단풍은 “기후 변화로 식물의 잎이 붉은빛이나 노란빛으로 변하는 현상”을 일컫는다. 하지만, 한국에선 이런 사전적 정의를 뛰어넘는 게 바로 단풍이고, 단풍놀이다. 지긋지긋한 바이러스 탓에 지난해는 단풍과의 만남을 애써 참아왔으니 올해 바라보는 빨갛고 노란 가을 나뭇잎은 더 반갑고 애틋할 게 자명한 이치.경북의 단풍놀이 명소는 여러 곳이다. 그중 경주시 통일로에 자리한 경상북도산림환경연구원 내 수목원의 단풍은 풍성한 아름다움을 지녔다.산림환경에 대한 조사, 병해충 방제, 임산물 연구 등을 수행하는 기관인 경북산림환경연구원은 연구를 목적으로 설립한 곳이지만, 그 안에 다양한 나무를 심어 잘 관리하고 있는 장소로도 유명하다.관광객과 주민들에게 활짝 열려 있는 수목원은 해마다 많은 이들이 찾아와 가을날의 정취를 만끽하는 곳이다.서로의 사진을 찍어주던 나이 지긋한 관광객들은 “마법 같은 변화를 보여주는 나무들을 보면 우리도 저 단풍 든 나무처럼 아름답게 늙어가고 싶어진다”며 소리 내 웃었다. 그 웃음이 가을바람처럼 청량했다.단풍놀이는 중년의 전유물도 아니었다. 20대 젊은 연인들도 잘 그려진 수채화 같은 가을 풍경 속에서 도란도란 밀어를 나누며 단풍 아래 한 폭의 그림으로 녹아들고 있었다.“봄날 피는 꽃도 근사하지만, 여름을 이기고 노랗게 물들어가는 나무들이 만들어내는 단풍 또한 꽃만큼이나 아름답네요. 내년에도 와야겠어요.” 대구 팔공산에서 무르익은 가을과 만나다갑갑한 거대 도시 한복판에서 만날 수 있는 대구 팔공산 단풍도 내로라하는 ‘한국의 가을 명품’이 된 지 이미 오래다. 올해는 예년보다 조금 늦게 찾아온 단풍철이 이제 절정으로 치닫고 있다.‘두산백과’에 따르면 팔공산의 높이는 1천192m. 대구광역시 중심부에서 북동쪽으로 약 20㎞ 떨어진 지점에 솟은 대구의 진산이다.남쪽으로 내달리던 태백산맥이 낙동강·금호강과 만나는 곳에 솟아 행정구역상으로는 대구시 동구에 속하지만, 영천시·경산시·칠곡군·군위군 등 4개 시·군이 맞닿아 경계를 이루는 산.원래 ‘공산’으로 불리던 것이 신숭겸을 포함한 고려의 개국공신 8명을 기리기 위해 팔공산(八公山)이라 불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 산은 보물 제431호 관봉 석조여래좌상으로 유명하지만, 가을엔 여기에 유명세가 하나 더해진다. 순환도로의 단풍 길이 바로 그것.그곳에서 차를 몰아본 이들은 “자연이 만들어놓은 동화 속을 달리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다소간의 차량 정체도 이 길에선 얼마든지 참을 수 있을 듯했다.팔공산이 선물하는 보너스는 하나 더 있다. 케이블카에서 내려다보는 단풍 역시 절경 중 절경. 지난 주말에도 적지 않은 여행자들이 팔공산이 주는 선물에 흡족해했다는 후문이다.팔공산을 찾았다면 동화사, 파계사, 부인사, 은해사를 둘러보지 않을 이유가 없다. 무르익은 가을날 조용한 산사(山寺)를 거니는 즐거움은 비단 불교 신자가 아니라도 놓치기 아쉬운 것 아니겠는가. 청송과 영주, 문경의 단풍도 빼놓으면 아쉬워경북의 단풍 이야기를 하면서 청송 주왕산을 빼놓을 수 있을까? 청송군 문화관광 홈페이지를 보면 군민들이 주왕산에 얼마나 큰 자긍심을 가지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다.“1976년 우리나라 12번째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으며, ‘택리지(擇里志)’의 저자 이중환은 주왕산을 일러 ‘모두 돌로써 골짜기 동네를 이루어 마음과 눈을 놀라게 하는 산’이라고 했다. 유네스코세계지질공원 명소 24곳이 분포돼 있는 주왕산은 한국 3대 암산(巖山)의 하나다.”코로나19가 우리 곁을 찾아오기 전 주왕산 일대는 매년 가을마다 몸살을 앓았다. 찾아오는 가을 손님이 너무 많아서였다. 도로와 주차장은 관광버스와 승용차로 넘쳐났고, 주변 상인들은 즐거운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모두가 알다시피 지난해는 그렇지 못했다.그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서일 것이다. 올해는 꽤 많은 이들이 단풍이 절정인 시기에 청송을 찾을 것으로 예측된다. 청송에서 태어나 50년을 그곳에서 살아온 기자의 지인은 “절골계곡의 단풍이 주왕산의 백미”라고 추천했다.은행나무는 열매를 떨굴 때 향기롭지 못한 냄새를 피운다. 그러나, 노란 물감을 흩뿌린 듯 아름답게 물든 이즈음의 은행나무를 보면 지난날의 악취는 자연스레 잊을 수밖에 없다.영주 부석사의 은행나무 단풍은 전국적으로도 이름이 높다. 부석사는 신라 문무왕 16년(676년)에 의상대사가 세운 화엄종 사찰.‘땅에서 뜬 돌’이란 뜻의 절 이름이 이채롭다. 만약 부석사로 단풍놀이를 간다면 노란 수채화를 닮은 풍경 속에서 사찰 명칭에 얽힌 설화도 찾아보면 어떨지. ‘걷기 좋은 관광지’를 말할 때 가장 앞서 이야기되는 문경새재 도립공원. 이곳에도 현란한 색채의 단풍이 절정을 이루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문경새재는 ‘새도 날아서 넘기 힘든 고개’라는 뜻의 조령(鳥嶺)이라고도 불린다. 천천히 느긋한 걸음으로 공원을 산책하며 붉고 노란 나뭇잎 속에 숨은 산새를 찾아보는 흥미로운 체험. 문경새재의 한적한 가을날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얼마 전 제주 한라산엔 첫눈이 내렸다고 한다. “가을이 왜 이렇게 빨리 떠나버렸지”라며 아쉬워할 시간이 코앞이다. 그러니, 더 늦기 전에 환한 빛깔로 우릴 기다리는 단풍과 만나봐야 할 것 같다. /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2021-11-10

거점산업 몰락의 ‘후폭풍’… 지방도시 기능이 멈춘다

일본제철은 한동안 세계를 주름잡던 철강 기업이었다. 불과 5년전까지 만 해도 일본제철은 구조조정은커녕 몸집 불리기에 집중했다. 2012년에는 스미모토 금속공업을, 2016년에는 일신제강을 합병했고, 한때는 세계 2위 철강 기업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그러나 중국이 본격적인 증산에 나서면서 상황은 급격하게 달라졌다. 후발주자였던 중국 철강업은 빠르게 기술력을 축적, 대량 생산을 본격화했다. 일본제철은 당장 공급 과잉 해소라는 사태에 직면했다. 이때를 전후해 기술력 측면에서도 한국 철강기업에 밀리기 시작했고, 이는 수익성 악화로 귀결됐다.결과는 참담했다. 2018년 수익성을 보여주는 지표인, 이자·세금 차감 전 조강 1t 당 이익(EBIT)은 2018년 40달러까지 낮아졌다. 같은 해 포스코가 116달러, 중국 바오산 강철이 107달러였던 것을 감안하면 수모에 가까웠다.결국 2019년 일본제철은 4천400억 엔의 적자를 기록했다. 1950년 출범 이후 최대 적자였다. 일본제철이 보유한 3대 제철소가 모두 3천억 엔이 넘는 손실을 냈고, 쿠레제철소도 3천966억 엔의 손실을 봤다.냉혹한 현실을 마주한 일본제철은 2020년 2월 대규모 사업구조 재편을 결정했다. 일본제철이 보유 중인 15기 고로 중 4기의 가동을 중지하겠다는 것이었다. 코로나19로 수요가 더욱 쪼그라들자 다음해 일본제철은 고로 1기 추가 폐쇄를 결정했다.2025년까지 고로 15기를 10개로 축소하고 전체 직원의 20%에 해당하는 1만 명의 인력을 감원키로 했다고 발표했다. 일본제철은 이런 구조조정을 통해 연간 1천500억 엔의 비용 절감 효과를 거둘 것으로 전망했다. □ 철강과 조선의 도시 쿠레시, 일순간에 나락으로쿠레시는 일본제철의 구조조정에 가장 큰 영향을 받은 도시다. 지난 9월을 끝으로 쿠레제철소의 고로 2기는 가동을 중단했다. 일본제철은 2023년까지 압연 공정을 비롯한 하공정까지 전면 폐쇄할 계획이다. 이렇게 되면 59년의 역사를 뒤로하고 제철소 하나가 사라지는 것이다.그동안 쿠레제철소는 철강과 조선의 쿠레시를 상징하는 랜드마크나 다름없었다. 1962년 첫 화입을 시작한 이후 일신제강의 주력 제철소로 활약하다 지난 2016년 일본제철이 일신제강을 합병하면서 일본제철 품안에 둥지를 들었다. 1962년 화입 당시 일본 츄코쿠 지역 최초의 고로였던 쿠레제철소 1고로는 쿠레시와 히로시마현, 나아가 츄코쿠 지역의 경제에 그동안 큰 힘을 실어줬고, 중심축을 이뤘다.쿠레제철소에는 일본제철 직원 1천여 명, 협력회사 2천여 명이 근무하고 있는데, 고로 가동 중단 조치로 절반 이상의 인력이 고용에 타격을 입은 것으로 추정된다. 지역 음식점, 숙박시설 등에 미치는 간접적인 영향까지 포함하면 쿠레시의 경제적 타격은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 쿠레제철소에서 발생한 소비지출을 약 100억 엔으로 추산한 일본 매체들은 “제철소 가동으로 발생한 쿠레시의 시민세와 재산세 소득 또한 연간 약 300억 엔에 육박했다”며 당장 이 문제 해소가 시급한 현안이라고 진단한다. 제철소 폐쇄 이후 일본제철이 쿠레의 토지와 설비까지 처분하면 매년 몇 억 엔에 달하는 고정 자산세 수입도 없어지게 된 점도 시로서는 뼈아픈 대목이다.최근 철강재 수요 회복으로 수급이 타이트한 상황이라 당초 수립했던 고로 휴지 계획에 대한 재검토 요구 등도 있었으나 일본제철은 최적 생산체제 구축을 추진한다는 방침에는 변화가 없다고 확실하게 입장을 정리했다.일각에선 쿠레제철소 폐쇄 결정이 취급 품목, 생산성, 경쟁력 등을 종합하여 고려한 것이라고는 하나 지난 2019년 8월에 발생한 화재사고도 중요한 한 원인이었던 것으로 전해진다.이는 중대재해특별법이 시행되면서 안전에 대한 부분이 무엇보다 현안이 되고 있는 국내 산업계에도 특별한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라 할 수 있어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할 수 있다.□ 쿠레시의 철강산업 호황, 이제는 기억으로만 남아우리나라 창원시 진해구와 비슷한 도시인 쿠레시의 산업역사는 지역이 어떻게 흥하고 망하는지를 한눈에 보여준다.쿠레시는 오랫동안 중후장대산업이 주를 이뤘던 도시였다. 조그만 어촌이었던 쿠레시는 메이지유신 이후 1886년 일본 해군이 주둔하며 2차 세계 대전 당시 조선소와 무기 공장이 들어서며 전환점을 맞이했다. 이후 조선과 철강업의 성장과 함께 산업도시로 발전했다. 실제로 2018년 기준 쿠레시의 총 생산액은 1조1천395억 엔. 이 중 제조업의 비중이 43%로 히로시마현 평균인 27%보다 높았고 다른 도시의 부러움을 받았다.그러나 그 영화의 순간은 이제 기억으로만 남을 수밖에 없게 됐다. 일본제철의 구조조정으로 인한 고로 폐쇄 조치로 지역 자체가 물거품이 될 위기에 직면해 있다. 설상가상, 일본제철에 이어 지역 대표 조선소인 칸다 조선소의 쿠레시 철수설도 나오고 있어 지역에는 불안감이 감돌고 있다.쿠레시의 신하라 요시아케 쿠레 시장은 최근 인터뷰에서 “쿠레시는 중후장대 산업으로 성장했다는 자부심 속에 시대 흐름에 둔감했었다”며 고개를 숙였다. 그는 “지금까지는 지역이 대기업의 하청에 익숙해져 있었던 구조라 쿠레제철소 폐쇄로 이 부분을 어떻게 극복할지가 현재 관건이 되고 있다”고 했다.그러면서 “중후장대 산업의 쇠퇴가 지금 시작된 것이 아니다. 그동안 지역사회나 행정기관의 민감도도 낮았기에 이에 대한 대책을 손 놓고 있었을 뿐”이라며 “20~30년 전부터 산업의 구조 전환에 대해 고려했더라면 상황은 지금과는 달라졌을 것”이라고 아쉬움을 표했다. □ 탄소중립시대, 지속가능한 도시 유지 해법 찾아야 할 때소셜미디어에 ‘쿠레시’를 검색하면 용광로가 멈춘 쿠레시의 모습을 사진으로 만나볼 수 있다. 굴뚝은 있으나 연기는 없는 고요한 풍경이다. 그 장면을 보면 그 도시가 안고 있는 분위기를 쉽게 짐작할 수 있다.산업의 축을 잃어버린 쿠레시 지방정부는 제철소 부지를 도시재생사업으로 가닥 잡는 한편 항구도시의 이점을 살려 수소 수입거점 지역으로의 성장 계획 등을 수립 중이다. 또 신산업 육성을 비롯 관광루트 개발과 함께 탄소중립이라는 시대의 흐름 속에 지속 가능한 도시 유지를 위한 해법을 찾아야 한다며 목소리를 내고는 있다.그러나 현지에서는 그것이 쉽지 않다는 게 더 큰 문제라고들 한다. 더욱이 이미 젊은 층이 다른 지역 취직 등으로 속속 떠나고 있다. 따라서 현재 22여만 명인 수준인 인구도 조만간 20만 명으로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제철소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지역사회를 지탱해 오고, 지역사회는 그들을 키워왔던 쿠레시에서의 역사는 이제 뒤안길로 사라질 운명에 놓여 있다.한국 산업도시의 현실도 일본과 별반 다르지 않다. 대부분 한국 지방 도시들은 단일 산업에 의존하고 있다. 저출산 및 지방 기피 현상으로 인구 절벽의 위기에 놓인 지방 도시에게 거점 산업의 몰락은 위기 그 자체다.글로벌 경제권에서 산업 구조 변화는 점점 가속화되고 있다. 따라서 지역 여건에 맞는 ‘지속 가능한 산업 단지’ 조성이 무엇보다 시급한 상황이다. 기존 거점 산업이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게 고부가가치화를 꾀하는 한편, 거점 산업 중심으로 형성된 탄탄한 인프라를 활용해 신성장 동력을 찾는 투 트랙 전략 등 지역의 미래를 이끌어 갈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한 다양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2021-11-07

모든 철도는 문경으로 통한다

문경시는 쾌적하고, 편리한 교통환경 조성으로 수도권과의 접근성을 향상시키고, 코로나 19의 확산으로 침체된 지역 경기를 활성화하기 위해 철도 및 역세권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경기, 충청, 경북의 중부내륙과 수도권을 연결하는 중부내륙철도 이천~문경구간(93km)은 올해 예산 4천52억을 투입해 2023년 조기완공을 목표로 추진 중이며, 이천~충주 구간은 최근 완공돼 시험 운전에 들어갔다.올해 국비 35억이 반영된 문경~김천 간 내륙철도 사업은 예비타당성 조사가 진행 중이고, 예비타당성 조사가 통과되면 기본계획수립 등 사업추진이 본격화될 전망이다. 이렇듯 중부내륙철도, 중부권 동서내륙철도(서산~문경~울진), 문경~김천선(문경~상주~김천), 경북선전철화(점촌~예천~영주) 철도망이 구축되면 우리나라 남북과 동서를 잇는 십자형 철도망이 완성돼 십자철도망의 중심에 바로 문경이 위치하게 된다.중부내륙철도가 개통되면 문경에서 서울까지 1시간 19분이면 도착할 수 있어, 수도권과 접근성이 대폭 향상된다.문경시는 이러한 사통팔달의 교통망을 완성해 지역경제를 견인할 새로운 성장 동력 확보와 미래 관광사업의 적극적인 발굴에 전력을 다하고 있다.첫 번째가 바로 문경역세권 도시개발사업이다.문경역세권 도시개발사업은 중부내륙고속철도 문경역 신설에 따른 주변지역의 신시가지 개발로 보다 체계적이고 합리적인 도시발전을 위해 추진하는 사업으로, 문경읍 마원리 일원 35만7천㎡ 면적에 주거, 상업, 공업, 기반시설용지 설치 등 788억원의 사업비를 투입해 2023년 완공을 목표로 진행하고 있다.2월 도시개발구역지정 및 지형도면 고시가 됐으며, 현재는 세부적인 개발계획을 수립 중으로 주민의견 청취 및 관계기관 협의를 완료했다. 향후 시의회 의견청취, 문경시 도시계획위원회 자문 등과 경상도 도시계획위원회 심의 절차를 거쳐 개발계획을 최종 승인받고 내년 실시계획 인가를 완료할 계획이다.여객과 화물 운송을 주로 할 문경역은 2023년 운영 시 총 승·하차 인원이 1천 명대로 예상되고, 철도역사, 승강장, 화물 적하장, 주차장, 버스정류장 등의 시설이 완비된다.또 역세권 개발사업을 고도화해 역사주변을 주거, 상업, 물류단지, 공공기관 이전부지 등의 복합단지로 직접 조성할 계획으로 사업의 성공적인 추진에 민간의 참여가 중요하다고 판단, 역세권 개발사업의 행정절차를 추진함과 동시에 민자 유치도 본격적으로 시작한다.지원방안과 참여절차 등의 정보를 제공해 투자참여를 적극 유도하고, 도로, 환경개선, 기반시설 뿐만 아니라 투자자를 위한 지원방안도 다각적으로 제시할 계획이다.기업유치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물류비용을 절감해 줄 사통팔달의 교통망, 풍부한 인력, 그리고 저렴한 분양가격이다.중부내륙고속철도가 개통되면 현재 2시간인 수도권과의 접근 시간이 1시간으로 단축되고, 경북도청 30분, 행정수도인 세종시와는 1시간, 부산과의 거리도 2시간 이내로 단축되며 기업의 물류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대구경북통합신공항 개항 시 신공항과 45분 이내 도착할 수 있어 공항 연계 사업에도 최적지가 될 것이다.문경역세권사업은 기관 또는 기업 즉 수요자가 원하는 대로, 수요자에게 집중한 맞춤형 개발을 기본 방침으로 한다. 수요에 따라 용지규모를 정하고, 부지를 조성원가로 제공하며, 진입도로, 상하수도, 전기통신 등 기반시설 인프라 지원으로 기관과 기업의 편의성을 극대화시킨다. 또 행정지원을 위한 TF팀 구성, 전문지식을 갖춘 전담직원 배치, 토지매입 및 관련 인허가 원스톱 행정서비스 지원, 주거, 자녀 교육, 직원 생활을 위한 1대1 맞춤형 지원, 문경 지역 내 관광시설 이용 시 특별 할인혜택 제공 등 상생을 위한 최상의 행정 서비스도 제공한다.이를 위해 문경시가 역세권 도시개발사업 부지 내 투자자 유치에 본격적으로 나섰다.먼저 수도권 이전 대상 공공기관·국내 주요 물류업체·100대 건설업체·향우회·동창회 등 340여 곳에 홍보물을 제작·발송하고, 유튜브·인스타그램 등 SNS 홍보에 돌입했으며, 전국 2시간대의 교통망, 국토의 중심에 위치한 지리적 이점, 관광, 문화, 스포츠 등 차별화된 지역의 강점을 중점 홍보하고, 향후 팀을 편성해 공공기관 및 기업 방문도 실시할 계획이다.문경역세권 개발로 인구유입 및 관광여건 등의 많은 변화가 예상된다.특히, 문경은 문경새재도립공원과 문경생태미로공원, 문경단산관광모노레일, 문경에코랄라, 고모산성, 돌리네습지 등 우수한 관광자원이 가득해 자연, 문화, 관광, 휴양, 숙박 서비스 등 힐링·관광서비스 산업 구축에 최적이다.코로나19로 대부분의 관광산업이 어려움을 겪었지만, 문경은 새로운 관광자원 개발과 합리적인 운영으로 코로나19 이전 수준으로 관광객 수가 회복하고 있고, 올해 주요 관광지의 관광객이 전년보다 크게 증가해 안전한 여행지, 힐링 여행지로 각광 받고 있다.아울러, 수려한 경관을 벗 삼아 심신을 치유할 수 있는 공간도 많다.현재 건립 중인 봉암사의 문경세계명상마을과 고요아리랑 민속마을, 황창연 신부의 성필립보 생태마을 등 문경에는 삶의 여유와 품격을 높일 수 있는 공간이 다양하다.문경을 방문하는 많은 관광객들에게 정주욕구를 심어줄 수 있도록 풍광 좋고 교통이 편리한 지역 곳곳에 전원·휴양마을을 조성하고, 경량철골조 모듈주택 사업을 추진해 인구 유입은 물론 전국 최고의 장수도시 문경의 이미지를 확고히 해나갈 방침이다.고윤환 문경시장은 “문경역세권 도시개발사업은 신기동 시멘트공장의 경제기반형 도시재생뉴딜사업과 연계해 문경시가 한 단계 더 도약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우량 기업과 공공기관의 유치로 한반도 허리 경제권의 중심축, 최적의 물류 교통망의 중심축으로 문경을 만들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강남진기자 75kangnj@kbmaeil.com

2021-11-07

구미, 공단도시에서 숲의 도시로

최근 산림청·한국산림복지진흥원 주관으로 처음 실시한 2022년 녹색자금 지원 ‘치유의 숲’ 전국 공모 사업에 경북도 대표로 응모해 최종 선정된 구미시가 대형 산림프로젝트인 ‘선산 산림 휴양타운 조성’사업을 본격적으로 추진한다. 그동안 구미시는 ‘공단도시’에서 ‘숲의 도시’로 거듭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특히, 산림휴양·치유·문화·체험 등과 첨단산업이 공존하는 살기 좋은 행복도시 조성을 위해 선산읍 노상리 산 8-2번지 일원(선산뒷골) 국·공유지(시유림) 면적 120㏊(총지적 313㏊)를 2022년부터 2027년까지 총 사업비 320억원(녹색자금 42억, 국·도비 141억, 시비 137억)을 연차적으로 투자해 산림복합휴양타운으로 조성할 계획이다. 이 사업은 구미시가 지방정원, 치유의 숲, 산림레포츠, 숲속 야영장(캠핑장), 목재문화체험장 5개의 단위사업으로 추진하는 것으로, 이를 통해 명실 상부한 최고의 복합 산림관광 메카도시로 거듭날 것으로 기대된다. 이에 본지는 구미시가 추진하고 있는 산림복합휴양타운에 대해 알아봤다. △ 2022년 3개 단위사업 220억원 확보구미시는 그동안 일상 속 행복실현 및 삶의 질 향상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 기본구상 용역에 이어 예산 확보를 위해 녹색자금 지원 공모사업 응모 및 산림청·경북도 관련 부서를 수시로 방문해 사업에 대한 설명과 적극적인 사업추진 의지를 표명했다. 그 결과 5개 단위사업 중 2022년도 3개의 단위사업(지방정원 100억, 치유의 숲 70억, 산림레포츠 50억)에 대한 사업비 220억원을 확보하는 쾌거를 이뤄냈다.또 2023년도에 나머지 2개 단위사업(숲속 야영장 50억, 목재문화체험장 50억) 조성에 따른 예산 100억원을 추가로 확보할 예정이다.구미시는 본격적인 사업 추진을 위해 2022년 3개 단위사업에 대한 기본 및 실시설계 용역을 내년도 상반기에 착수할 계획이다. 입지여건, 자연환경 특성에 맞게 차별화되고 테마가 있는 산림을 조성해 산림휴양(치유)과 산림문화 및 산림레포츠 기능을 한 곳에서 모두 체험할 수 있는 종합적 힐링 공간을 제공해 전국 최고의 산림휴양 인프라를 구축할 예정이다. △ 숲에서 퇴근, 숲으로 출근… 모두가 즐거운 숲구미시는 ‘선산 산림 휴양타운에서 워케이션(Work+Vacation) 즐기다’라는 부제로 5개 테마의 산림시설을 조성할 계획이다. 이는 코로나19 장기화로 인해 일과 휴가를 겸하는 ‘워케이션’이라는 새로운 트렌드에 부합하기 위함이다.이를 위해 구미시는 시내뿐 아니라 인근 대도시와의 접근성이 우수하고 자연친화적이며 감성 레저를 즐길 수 있는 ‘워케이션’ 최적의 입지 조건인 선산읍 노상리 일원(선산뒷골)에 복합 산림휴양 공간을 조성한다.그 중 첫번째가 바로 ‘지방정원’ 조성이다. ‘선산 산림 휴양타운 조성’사업의 핵심이기도 한 지방정원 조성은 면적 30㏊에 온실카페 및 물소리정원, 초화원, 시민참여 정원, 빛의정원 등 6개의 테마 정원과 지역특성을 고려한 정원 시설을 도입한 새로운 형태의 숲속 지방정원을 조성하는 사업이다.두번째는 ‘치유의 숲’ 조성 사업이다. 지난 10월 산림청 녹색자금 공모사업에 최종 선정된 치유의 숲 조성은 면적 50ha에 치유센터, 테마치유 숲(촉각·향기치유 및 동행의 숲 등) 4개소 및 유니버셜 디자인을 적용한 기반시설을 제공하고, 누구나 쉽게 휴식과 치유를 즐길 수 있는 공간에서 구미시만의 차별화된 도심형 산림치유 프로그램을 개발·운영해 모든 시민들이 자유롭고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할 방침이다.세번째는 ‘산림 레포츠’시설이다. 점차 다양화되고 급증하는 새로운 산림레프츠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자연훼손을 최소화하고 산림지형을 최대한 활용하는 자연 체험형 모험 시설과 가족이 함께 이용할 수 있는 네트 어드벤처 등 다양한 관광객 니즈에 부합하는 특색있는 체험의 장을 조성한다.네번째는 ‘숲속 야영장’ 조성이다. 최근 캠핑, 차박 등의 야영객이 급속도로 증가하고 있는 추세에 맞춰 오토캠핑장 및 카라반 등의 숙박 시설과 샤워실, 음수대와 같은 편익시설, 사계절 이용 가능한 썰매장을 현지 여건에 맞게 설치할 계획이다.마지막 다섯번째는 ‘목재문화 체험장’ 조성이다. 목재문화체험관 내 목공예 제작소, 목재정보 학습 및 기획 전시공간을 배치하고 유아 놀이 중심 체험, 원데이 클래스, 목공기능인 양성과정, 생활공예품 취미과정을 도입한 프로그램을 개발해 청소년들에게는 진로 체험의 기회를, 성인들에게는 취미 활용과 목공기술의 교육장으로 제공한다. 또 지역공동체와 연계해 운영할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마련할 예정이다. △ 전문가·주민이 함께 참여하는 협의체 구성구미시는 ‘산림 휴양타운 조성’사업이 시민들의 삶과 밀접하고 관심이 높은 만큼 본격적인 사업 추진에 앞서 추진배경과 방향, 세부사업에 대해 주민들에게 사전 설명할 계획이다.이를 위해 8일 선산읍사무소 회의실에서 주민 설명회를 열어 주민들의 다양한 목소리를 담아낼 예정이다. 또 앞으로 설계용역 단계부터 각 분야별 전문가(조경, 토목, 건축, 디자인 등)를 참여시키고 다양한 의견 수렴과 국내 및 해외 우수사례를 벤치마킹 해 좋은 우수 사례들을 적극 반영할 방침이다.구미시는 이번 대형 산림프로젝트 사업이 도심에서 가까운 지역 밀착형 종합 산림복지 관광사업으로 산림 치유·교육·모험·휴양까지 한 곳에서 One-Stop으로 이용 가능하도록 해 성별·연령·계층에 상관없이 누구나 다양한 볼거리와 체험을 즐길 수 있는 숲 맞춤형 행복 산림복지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구미시는 이 사업의 차질없는 추진을 위해 자체 T/F팀을 구성·운영할 계획이다.장세용 구미시장은 “코로나 19 장기화로 생활패턴과 여가활동에 대한 트렌드가 변화함에 따라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위한 산림의 시대적 역할이 중요해졌다”며 “이번 선산 산림 휴양타운 조성사업은 변화하는 산림여가 활동 수요에 선제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기반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김락현기자 kimrh@kbmaeil.com

2021-11-04

주민주도형 캠페인으로 빛나는 변화를 꿈꾸다

캠페인은 ‘어떤 성과를 기대하고 일정 기간 동안 행해지는 사회적, 정치적, 상업적인 일련의 조직 활동이나 운동’을 의미한다.그간 우리 사회에선 이름을 달리하는 여러 캠페인이 시도됐다. 그 중에서는 좋은 성과를 거둔 캠페인도 있었고, 애초의 기대에 이르지 못한 경우도 없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캠페인의 성공 여부는 ‘자발성’에 달렸다고 말한다.바로 이 자발성을 바탕으로 고령군이 진행하고 있는 캠페인 ‘아이 러브 대가야 고령’이 주목받고 있다.주민들에게 ‘우리 고장을 우리 힘으로 아름답고 살기 좋게 가꿔가겠다’는 목적의식과 동기를 부여함으로써 성공적인 캠페인 사례로 기록될 것으로 보이는 ‘아이 러브 대가야’ 프로젝트의 그간 추진 과정과 향후 전망을 아래에서 살펴보고자 한다.내 고장을 누구나 살고 싶은 아름다운 곳으로지난 2019년부터 3개년 계획으로 추진 중인 ‘아이 러브 대가야 고령’ 프로젝트는 ‘누구나 살고 싶은 아름다운 도시 고령’으로 나아가고자, 지금 이 순간에도 가치 있는 작은 발걸음을 지속하고 있는 고령군의 범 군민캠페인이다.고령군은 안전하고 아름다운 환경의 조성이 지역의 경쟁력으로 이어진다는 시대적 인식 아래 군민이 직접 주도하는 자발적·상향적 마을 가꾸기 사업인 ‘아름다운 고령 만들기’를 추진하고 있다.이는 자신의 고장을 누구나 살고 싶은 쾌적하고 안전한 공간으로 만들고자 하는 군민과 행정기관의 전향적 사고 전환에서 출발한 것이라 봐도 무방할 듯하다.고령군은 여기에 더해 그간 문제점으로 지적됐던 행정기관의 일방적이고 하향식 위주였던 정비사업의 한계를 넘어서려는 모습도 보여줬다. 이 또한 눈에 띄는 긍정적 변화다.이런 변화의 시도를 통해 도시 브랜딩으로 지역 경쟁력을 제고하는 근본적인 변혁을 모색하고 있는 게 현재의 고령군이다. 앞서 열거한 것들이 바로 ‘아이 러브 대가야 고령’ 프로젝트의 시발점이자 단초가 되었다.지난 2019년 9월에 시작해 오는 2022년 6월까지 3년여 간 전 군민과 행정기관이 함께 하는 ‘아이 러브 대가야 고령’ 프로젝트는 주민들이 주도해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사업이라는데 그 방점이 찍혔다.이를 위해 행정기관, 사회단체, 읍면자치위원회 등이 참여하는 민·관 합동 추진위원회를 구성했다. 위원회는 ‘기획·홍보, 청결, 친절, 아름다운’ 등 4개 분과로 이뤄져 있다는 게 고령군의 설명이다.또한 각 읍·면별로 추진위원회를 구성해 읍·면민들과 함께 프로젝트 취지에 맞으면서도 해당 지역에 적합한 실천 계획을 수립했고, 추진위원회는 현재 사업 수행에 중추적인 역할을 해나가고 있다. 지난해는 ‘아이 러브 대가야 고령’ 프로젝트 본격화 시기2020년은 ‘아이 러브 대가야 고령’ 프로젝트가 본격 궤도에 오른 해로 기록될 수 있을 듯하다. 그해 연초부터 분과별 간담회를 갖고 실질적인 실천과제를 발굴·선정하는 추진활동을 전개하는 노력을 펼친 것이다.그러나, 누구도 쉽게 예측할 수 없었던 ‘코로나19 사태’라는 예상치 못한 팬데믹 악재로 사업 전반에 예기치 않은 제동이 걸리기도 했다.사실 지난해 초부터 현재까지 한국 사회 전체, 아니 전 세계가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야기한 고통과 시련 속에서 살고 있는 중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비단 고령군만의 문제가 아닌 국가적으로도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었다.하지만, 이런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고령군은 읍면 위원회를 중심으로 상습적 위생 취약지 집중 환경 정비와 주민 생활 주변 공간 청결 관리를 지속적으로 추진했다. 어떤 시련과 고난 속에서도 인간의 삶은 지속돼야 할 중요한 가치였기 때문이다.‘코로나19 사태’로 인해 황폐해진 사람들의 마음을 달래려는 노력도 함께 진행됐다. 고령군은 공한지와 자투리땅을 정돈해 꽃나무를 심어 화단을 조성했다. 바이러스에 지친 사람들에게 작은 위로나마 주기 위해서였다. 이러한 아름다운 마을 가꾸기 활동은 지금까지도 꾸준히 전개되고 있다.코로나19 등 갖가지 시련이 없지 않았지만, 아름답고 건강한 고장을 만들겠다는 고령군민의 뜻은 쉽사리 꺾이지 않았다.한편, 기획·홍보 분과도 캠페인의 성공을 위한 걸음을 멈춤 없이 지속했다. 고령군 주민을 대상으로 ‘아이 러브 대가야 고령’ 캠페인을 알리고, 그 취지에 자연스럽게 녹아들게 하기 위해 BI(Brand Identity·브랜드 이미지를 통합하는 작업)를 개발한 것.여기에 더해 BI에 걸맞은 마스코트 ‘가야베리’까지 성공적으로 탄생시켰다. 더불어 ‘가야베리’를 활용한 선전 활동도 지역 곳곳에서 열어 캠페인의 뜻이 제대로 전파될 수 있도록 노력했다.‘아이 러브 대가야 고령’ 프로젝트의 원활한 진행에는 이러한 지속적인 아이디어 발굴과 아이디어를 현실화 시키려는 주민들과 위원회의 땀방울이 숨겨져 있었다는 게 전문가들의 전반적인 견해다. 아름다운 마을 만들기 위한 주민들의 자발적 노력올해도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캠페인은 지속됐다. 고령군 아이 러브 대가야 고령 추진위원회(공동위원장 곽용환·김의순)는 프로젝트의 핵심 사업 중 하나로 ‘아름다운 마을 콘테스트’를 기획해 적극적으로 추진했다.지난 4월엔 각 읍·면을 대표해 참여 의사가 확고하고, 사업 성과가 유망한 마을들을 중심으로 캠페인에 참여할 8개 마을을 선정했다. 이 소식을 접한 주민들의 참여 의지가 뜨거웠다는 후문이다.그 결과 대가야읍 지산1리, 덕곡면 후암2리, 운수면 운산2리, 성산면 기족리, 다산면 상곡1리, 개진면 인안2리, 우곡면 도진리, 쌍림면 산당리가 ‘아름다운 마을 콘테스트’의 참여 마을이 됐다.이 마을들은 올 봄부터 쾌적함과 따스함이 숨 쉬는 마을을 가꾸기 위한 자체 계획을 수립했다. 이후, 마을마다 할당된 사업비를 최대한 합리적으로 활용해 콘테스트 본대회를 준비 중이다.대회를 맞이한 주민들은 자발적인 참여와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최고의 성과를 달성하고자 마을별로 선의의 경쟁을 하듯 결의를 다지고 있다는 것이 군청의 부연이다.대가야읍 지산1리와 성산면 기족리, 우곡면 도진리 등은 제각기 특색을 갖춘 꽃길 및 화단 정비를 마무리했다. 덕곡면 후암2리는 마을 소공원 일대 재단장을, 운수면 운산2리는 벽화마을 조성을 추진하고 있다. 또, 개진면 인안2리는 영농폐비닐 공동집하장 개선을 진행했다는 게 관계자의 설명.그 외 마을에서도 주민들의 애향심과 유대감을 바탕으로 활발한 참여를 이끌어낼 수 있었기에 ‘아름다운 마을 콘테스트’ 프로젝트 추진은 순항 중에 있다고 한다. 군민들의 참여로 더 크고 더 행복한 고령으로‘아이 러브 대가야 고령’ 프로젝트는 군민이 주도하고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것을 특징으로 한다. 이는 “지난 시대의 관 주도형 캠페인이나 프로젝트와 구분되는 진일보한 모습”이라고 주민들은 입을 모은다.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군민의식의 변화를 도모하고, 군민과 행정기관이 하나가 돼 청결하고 친절하며 아름다운 ‘대한민국 대표 행복도시, 누구나 살고 싶은 도시 고령’을 만들겠다는 것이 고령군이 지향하는 최종 목표다. 그렇기에 이 캠페인은 고령군민 모두의 프로젝트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이와 관련해 고령군은 “실질적인 주민 수요 중심의 계획을 세워 프로젝트를 실천해 나가다보면 고령군과 고령군민의 수준이 차차 약진해 보다 나은 다음 단계로 도약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드러냈다. 프로젝트를 기획한 주체로서는 당연한 바람이다.이에 덧붙여 “함께 이루는 고령의 꿈 ‘아이 러브 대가야 고령’ 범 군민캠페인을 통해 오늘도 군민과 함께 더 크고 더 행복한 고령을 그려가고 있다”며 뿌듯한 마음까지 전했다.어느 지역이나 마찬가지다. 변화를 꿈꾸지 않는 도시는 퇴보한다. 시대의 흐름에 유연하고 적극적으로 대응해 보다 나은 방식의 지역 발전 방안을 모색하는 건 한국 모든 지방자치단체의 책무이자 권리일 것이다.주민이 주도하고 행정기관은 이를 적극적으로 보조하고 돕는 지향할만한 도시 변화 프로젝트 ‘아이 러브 대가야’가 향후 어떤 긍정적 효과를 발생시킬 수 있을지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는 이들이 적지 않다./전병휴기자 kr5853@kbmaeil.com

2021-11-03

영덕 영해면, 대한민국 변방에서 ‘도시재생’ 중심으로

도시. 우리는 그것을 대부분 딱딱한 건물과 도로로 구성된 사물의 집합체로 인식해 왔다. 하지만 최근 도시를 살아있는 유기체, 즉 생명으로 바라보는 관점이 늘고 있다. 태어나서 성장하고, 전성기를 맞은 후 쇠퇴하는 우리 사람처럼. 문제는 지방의 도시들 대다수가 생명력이 다해 이제는 소멸의 위기에까지 몰린 것이다. 각 지방자치단체들은 살아남기 위해 저마다의 생존전략을 발휘해 경쟁하고 있지만 결국 엄혹한 진화의 과정에서 소수의 생명만이 ‘도시’라는 유전자를 남길 수 있을 것이다.그런 가운데 최근 영덕군의 움직임이 심상치가 않다. 영덕군은 수많은 공모를 통해 국비를 끌어 모은 후 여러 사업들을 연계해 관할구역인 영해면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대단위 ‘도시재생’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작은 지방자치단체에겐 대담한 도전이 될 이번 프로젝트의 성패는 지방소멸의 위기 속에서 생존의 갈림길에 놓인 다른 수많은 지방자치단체들에겐 하나의 지표가 될 것이다. 과연 영덕군 영해면은 대한민국 도시재생의 모델하우스가 될 수 있을까? ◇ 왜 도시 ‘재생’ 인가때는 바야흐로 2002년. IMF 외환위기 이후 얼어붙은 경기의 부양정책으로 ‘뉴타운·재개발’ 사업이 붐을 일으켰다. 사람들은 허름한 건물을 밀어버리고 휘황찬란한 고층건물을 세우면 모두가 도시인의 풍요로운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라 꿈꿨다. 하지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에 뉴타운·재개발 사업은 대실패로 막을 내렸다.영덕군이 성장 중심의 재개발·재건축이 아닌 지속가능성 중심의 도시재생을 선포한 이유는 이러한 역사적인 교훈의 발로이며 그 핵심가치엔 공공성이 있었다. 주민들이 소외되는 그 어떤 개발사업도 명분이나 효능이 없다는 것이다. 영덕군의 이러한 기조는 되새길만하다. 새로운 인구유입을 기대하기 어려운 지방도시에서 주민들을 배재한 개발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결국, 영덕군이 영해면에 그리는 ‘도시재생’은 시대적 요구이며, 전성기가 지난 도시에 생명력을 불어넣어 공간의 기능을 회복시킴으로써 주민들의 생활여건을 실질적으로 개선시킬 사회, 경제, 문화, 주거, 환경에 대한 종합적인 비전과 실천인 셈이다.◇ 뉴딜을 넘어 도시재생+SOC확충의 콜라보레이션영해면에 시행될 도시재생사업의 면면을 들여다보면, 영덕군은 2018년부터 2025년까지 8년간 영해면 일대에 1천700여억원의 예산을 투여한다. 모두 국비를 확보한 사업들이다. 영덕군의 도시재생사업이 여타 시군의 뉴딜사업과 차별화되는 것은 비단 그 규모의 우월성만은 아니다. 각각의 사업들이 독립적으로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개별 도시재생사업들 간의 연계, 그리고 도시재생사업과 사회간접자본(SOC) 구축사업 간의 연계가 유기적으로 융합해 서로 시너지를 발휘할 수 있게 설계됐기 때문이다.그 예로, 최근 국비를 확보한 ‘도시재생 뉴딜사업’은 대상지인 영해면 성내리 일원의 주거환경정비와 골목상권 활성화를 위해 143억원이 투입되는데, 이 일대와 교집합을 이루어 ‘근대역사문화공간 조성사업(450억원)’, ‘농촌중심지 활성화사업(150억원)’과 같은 기존에 국비를 확보한 도시재생사업들이 긴밀히 연계돼 있고, 여기서 다시 ‘예주 행복드림센터 조성(147억원)’, ‘3.18만세시장 보행환경 조성(16억원)’과 같은 SOC 구축사업이 융·복합되면서 각각의 사업들이 마치 거미줄처럼 서로를 보완·견인하고 있다.영덕군의 이러한 복안은 도시를 수많은 세포가 모이고 각각의 기관이 유기적으로 조화를 이루는 하나의 생명체로 바라보는 철학에서 기인한다. SOC 구축으로 뼈를 형성하고, 그 위에 도시재생사업으로 근육을 단련하며, 그 속에 주민들의 사회적·경제적 활동에 생기를 북돋아 장기를 강화한다. 영해라는 생명활동의 중심에 ‘지역공동체’가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실제 영덕군은 여러 도시재생사업의 계획착수 단계부터 주민역량강화 프로그램을 시행하고 주민협의체와 주민위원회의 발족을 이끌어 민관이 긴밀히 협조해 사업을 추진함으로써 주민들을 사업의 주체로 세워내는 노력들을 아끼지 않았다. ◇ 영해 도시재생사업의 핵심은 ‘도시 정체성’ 복원!그렇다면 과연 영해라는 생명체의 정신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영덕군이 영해면에 시행하는 과감하고 도전적인 일련의 도시재생사업의 본질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예주’로 기억되는 역사적·문화적 가치를 확립하는 일, 바로 영해의 정체성을 공표하고 이를 도시경쟁력으로 확보하는 것이다.지방소멸이 가속화되고 지자체간의 경쟁이 심화된 오늘날엔 도시의 이미지를 결정하는 역사·문화적 정체성이 그 도시의 경쟁력을 가늠하는 척도가 된다. 낡은 건물을 밀어버리고 새 건물을 번듯하게 올리는 것이 전부인 재개발사업은 시간이 지날수록 주위에 새로 조성되는 신도시에 의해 상대적으로 가치가 낮아질 수밖에 없지만 고유한 역사와 문화가 깃든 지역은 절대적인 가치를 유지할 수 있다. 우리보다 먼저 태어나 쇠퇴기를 겪는 서구의 도시들이 역사와 문화를 도시재생의 핵심전략으로 삼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영해는 2,000년 전 삼한시대의 신비로운 우시국을 시작으로 남쪽의 경주, 북쪽의 강릉과 버금가는 동해안의 거점도시였고, 고려 해안방어의 요충지로 읍성이 건축됐으며, 일제에 대한 민중의 저항정신을 상징하는 신돌석 의병장의 항일운동과 동해안 최대 만세운동이 펼쳐진 충절의 도시이다. 영덕군의 여러 도시재생사업이 영해 주민들의 생활근거지이자 역사·문화의 상징인 만세시장을 중심으로 폭넓게 융합된다는 것은 도시의 정체성을 복원하고 계승하는 것이 영덕군 도시재생사업의 본질임을 일깨워준다. 그리고 이를 활용한 지역경제 활성화와 지역공동체 통합이 바로 영해의 경쟁력이 될 것이다.지금까지 살펴본 영덕군의 도시재생사업은 ‘영해가 확 바뀐다’, ‘동해안 중심도시로 도약’ 등과 같은 과장되고 상투적인 언어로는 표현될 수 없다. 모든 도시가 그렇듯 쇠퇴기를 겪는 ‘영해’가 건강한 삶을 지속할 수 있도록 남다른 케어 프로그램을 가동했다고 볼 수 있다. 영덕군의 도전적인 도시재생사업에 관찰이 아닌 관조의 시선이 보내지는 것은 변화될 ‘영해’가 보여줄 드라마이며 그것이 끼칠 영향력일 것이다. 하나의 생명체로서./박윤식기자 newsyd@kbmaeil.com

2021-11-01

일본제철 대규모 구조조정 치명상… 한국, 경계 늦춰선 안돼

일본제철은 한때 세계 철강업계의 벤처마킹 단골 메뉴였다. 세계적 기술력으로 품질 좋은 철강 생산을 했고, 지역사회와의 협업 등 배울 점이 많아서였다. 포스코 또한 초기엔 일본제철로부터 기술을 이전받으며 성장판을 마련했다.그런 일본제철이 최근 구조조정에 나서고 있다. 글로벌 3위 철강 기업 일본제철에서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 철강도시 포항으로서는 일본제철 사례가 궁금증을 낳을 수밖에 없다. 현지 매체에 보도된 내용 등을 통해 그 배경을 살펴봤다.1950년 창업한 일본제철은 매출 6조2천억 엔(62조 원), 종업원 수 10만6천 명에 달하는 거대 기업이다. 1970년 일본 아와타 제철과 후지 제철이 합병해 신일본제철로 이름을 바꾼 이후, 2012년 스미모토 금속 공업과 합병해 ‘일본제철’로 탄생했다. 이후 일본 전국에 15기의 용광로를 운영하며 세계 최대 조강생산량과 판매량을 기록한다. 6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일본 경제를 견인해 왔고, 세계 철강 업계를 주름 잡기도 했다.그랬던 일본제철이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대규모 구조조정 계획을 내놨다. 지난 3월, 동일본제철소 카시마 지구의 고로 2기중 1기를 2024년 말까지 폐쇄하겠다고 발표한 것. □ 글로벌 경쟁 심화·탈탄소 압박 등이 요인일본제철의 고로 가동 중단은 당장 일본 산업계에 큰 파장을 불러 일으켰다. 일본제철은 국내 수요의 감소, 수출 채산성 악화, 중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철강사 경쟁과열 등을 구조조정의 이유로 밝혔으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한 수요 감소도 한몫 한 것으로 분석된다.OECD에 따르면 2019년 일본의 조강 생산 능력은 1억3천만t이지만 실제 생산량은 9천900만t에 그쳤고, 지난해에는 8천319만t까지 감소했다. 중국 철강 업체들의 공격적인 증산으로 인한 공급 과잉, 채산성 악화로 인해 위기를 겪고 있던 일본제철은 코로나19로 인해 수요가 더 축소되자 결국 카시마 제철소 고로 추가 폐쇄라는 극약 처방을 내리기에 이르렀다.일본제철의 구조조정 발표가 나오자 일본 내에서 다양한 분석들이 쏟아졌으며 그 여파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당시 닛케이신문은 일본 정부의 탈탄소 정책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도했다.일본 정부는 우리 나라와 마찬가지로 205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을 0으로 감축하는 것을 목표로 내건 상태.석탄을 원료로 하는 코크스를 이용하는 고로사의 부담은 자연스레 커질 수밖에 없다. 코크스를 사용하지 않는 전기로를 이용해도 되지만, 고로에 비해 전기로는 불순물 제거가 어려워 자동차에 사용되는 고장력 강판이나 전기자동차의 모터에 활용되는 전기강판 등 고성능 강재 생산에는 한계가 있다. 고로를 이용한 자동차용 강재 생산이 주력인 일본제철에게 탈탄소 정책은 상당한 부담이 되었을 것이 관련 학계 및 산업계의 는 분석이다. □ 고로 불 꺼지면 도시를 처음부터 다시 만들어야동일본제철소 카시마 지구 고로 1기가 구조조정 대상에 포함되면서 가장 충격을 받은 측은 제철소 소재 지방정부다. 이바라키현 남동부에 위치하고 있는 인구 6만여명의 작은 도시 카시마시는 철강과 함께 성장한 지역이다.스미모토 금속공업의 주력 제철소였던 동일본제철소 카시마 지구는 2012년 스미모토공업과 신일본제철이 합병하면서 일본제철 소유로 넘어갔고, 1968년 가동을 시작한 이후 자동차와 가전제품용 박판 등 일본 주력 수출품의 소재를 생산하면서 지역 경제를 든든히 받쳐왔다.카시마시와 일본제철과의 연관은 각종 지표로도 확인된다. 인구 6만7천여 명 중 일본제철의 종업원만 3천 명, 하청회사를 포함하면 거의 1만여 명이 일본제철과 관련된 업무에 종사하고 있다.도시 인구의 약 15%가 일본제철에 생계를 의지하고 있는 셈인 것이다. 일본제철은 고로 폐쇄에 따라 일자리를 잃게 생긴 인력을 타지에 위치한 제철소로 전환 배치하여 고용을 유지하겠다는 계획을 밝혔으나, 카시마시에 이미 기반을 마련한 일부 직원들은 강재가공회사 등이 위치한 인근 치바현 등으로 이직을 시도하고 있는 상황인 것으로 현지 매체들은 보도하고 있다.카시마시와 이바라키현 등 지방 정부는 제철소 일부가 폐쇄되면 고용과 납세 등에 타격을 받기 때문에 비상이 걸려 있다.카시마시 니시키오리 고이치 시장은 그동안 “고로 1기가 폐쇄되면 협력업체 뿐 아니라 음식업 등 여러 형태 사업장의 어려움으로 5천명 정도가 고용에 나쁜 영향이 받을 걸 각오해야 한다”고 예상했다. 그러면서 “결국 도시를 처음부터 다시 만들어야 한다”며 위기 상황임을 토로했다.카시마시는 앞서 철강 산업 구조조정으로 인해 쇠락의 길을 걸은 이와테현 가마이시시를 따라가는 것은 아닌지를 가장 우려하고 있다.일본 근대 제철산업의 발상지로 불리는 가마이시는 1978년부터 1989년 사이 석유파동과 엔고(円高) 현상으로 현재 일본제철의 전신인 신일본제철이 고로 2기를 폐쇄하는 구조조정을 단행하자, 지역의 근간을 이루던 산업이 쇠락의 길을 걸었고, 조선소와 하청업체도 도산하거나 공장을 이전하면서 도시 자체가 무너졌다. 1975년 기준 가마이시 제철소 종업원 수는 가마이시 지역 종사자 전체의 약 15%, 제조업 종사자 수의 약 61%였으며 1963년 철강 산업이 번성할 당시에 인구는 9만2천명에 달하기도 했다. 그러나 지난해 3월 기준 인구는 3만2천명까지 내려앉았다.이런 선례가 있다 보니 그간 경제 특구에 의한 공업용수와 수도요금 인하, 녹지율 완화 등의 지원을 해 온 이바라키현과 카시마시는 구조조정을 막기 위해 고로 2기 조업 유지와 관련해 필요한 100억 엔 규모의 지원을 일본제철에 제안한데 이어 탈탄소 정책 기조에 맞춘 수소환원제철 기술 개발에도 50억 엔 상당의 지원안을 제시했다. 그러나, 일본제철의 계획을 막지 못해 현재 비상이 걸려 있다. □ 다양한 대책 발표했지만, 기업도시로 재생은 어려울 전망그동안 일본제철과 20여 회 접촉하며 현재 체제 존속을 위해 나섰으나 협상에 실패한 이바라키현은 고로 폐쇄 발표 이후 대안으로 수소환원제철법 개발, 제로카본스틸 생산, 그린 수소 생산 등 수소를 테마로 한 탄소 중립 산업 거점으로 성장시키겠다며 재도약 시책을 내놓고 있다.카시마시 역시 공업 용수 가격 인하, 지역 교통 접근성 개선 등의 대책을 발표하고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현 상태에서 더 이상 기업도시로의 재생은 어려울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일본제철의 구조조정은 앞으로도 더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올해 철강업계가 유례없는 호황을 맞이하면서 일본제철의 경영 상황도 반전되었지만 구조조정에 대한 일본제철의 입장은 확고하다.실제 일본제철은 지난 2분기 경영실적 발표 연도 전체(21.4~22.3·일본 회계연도 기준) 영업이익 6조 원을 전망했으며 연결기준 조강생산량은 4천600만t에 달할 것으로 예상했다. 2019년 수준의 생산량을 회복하고 수익성도 나아졌으나 일본제철은 계획대로 구조조정을 실시하겠다는 방침이다.실적 발표장에서 향후 고정비를 절감하고 고부가가치재 위주 생산체계를 수립해 수익성을 극대화할 것이라고 밝힌 일본제철은 대대적인 설비 구조조정도 실시, 계획대로 기존 15기 고로를 순차적으로 폐쇄해 10기로 축소하고 조강생산능력을 20% 줄일 예정이라고 거듭 확인했다. 이후 고로가 가동 중인 다른 지역은 일본제철의 동향을 예의주시하며 긴장감을 늦추지 않고 있다./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2021-10-31

부족함보다 특별함에 집중… 교육변화 희망을 쏘다

학교는 지속 가능한 지역사회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한 필수 조건 중 하나다. 인구 감소로 지방소멸이 이뤄지고 있는 농촌 지역, 특히 면 지역에서 작은 학교의 존재가 갖는 의미는 더 특별하다.작은 학교는 오랜 시간 동안 학생과 학부모, 교사, 관공서 등을 잇는 지역사회의 중추 역할을 해오고 있기 때문이다.그렇다고 해서 소수 학생이 다니는 작은 학교에 지속적으로 수많은 예산을 투입하는 것에 대해서 과연 다른 시민들은 이해할 수 있을까. 경제적 논리로만 살펴본다면 이는 결코 효율적인 투자가 아니다.하지만, 때로는 관점을 조금 바꿔 생각해 볼 필요성도 있다. 작은 학교 살리기 운동이 교육변화의 신호탄으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까지 학생과 학부모는 학구 내에 배정된 초·중·고등학교를 다녀야만 했다. 일부 학부모들은 이사하면서 아이들이 다닐 학교에 대해 능동적으로 선택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대다수는 주거지에서 가까운 학교로 배정되고 그 학교에 다니는 경우가 더 많다.그로 인해 도심지역에 있는 대부분 학교는 학생 수 유지에 대한 부담이 없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이들 학교는 시대적 변화에 따른 교육 프로그램의 환경 개선에 대해 능동적인 태도를 취하지 못하고 있다.반면, 작은 학교의 상황은 정반대다. 교육 수요자인 학생과 학부모가 작은 학교를 택하지 않으면,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같은 의미에서 작은 학교를 살린다는 것은 학생과 학부모가 원하는 교육을 알아보고, 이를 통해 교육 시스템이 재개편되는 선구적 역할을 할 수 있다. 글 싣는 순서1. 소멸 위기에 놓인 시골학교의 현실2. 시골학교에서 부르는 희망노래Ⅰ3. 시골학교에서 부르는 희망노래Ⅱ4. 경북도교육청 작은 학교 자유 학구제 명과 암5. 지속 가능한 시골학교 상상 아닌 현실로 □ 분교와 폐교 위기에 놓인 포항지역 학교포항교육지원청에 따르면 교육부의 ‘적정 규모 학교 육성 권고 기준’은 초등학교 경우 면·벽지 60명 이하, 읍 지역 120명 이하, 도시 지역 240명 이하다. 중·고등학교는 면·벽지 60명 이하, 읍 지역 180명 이하, 도시 지역 300명 이하가 기준이 된다.지난 3월 1일 기준으로 지역에 위치한 교육부 권고 기준 이내의 학교는 초등학교 26개교, 중학교 13개교 총 39개교인 것으로 집계됐다.학생 수가 10명 이하인 ‘중점추진 통폐합 대상학교’는 죽장초등학교 상옥분교장(학생 수 3명)과 장기초모포분교장(학생 수 4명)이다. 특기 장기초모포분교장의 경우에는 재학생 수가 10명 이하이고, 신입생도 없어 5년 안으로 폐교가 될 상황에 놓였다. 현재 이 학교는 2학급, 학생 수 4명이 전부이고 6학년에 재학중인 학생 2명이 졸업하고 나서 더 이상 신입생이 입학하지 않는다면 폐교 수순을 밟을 수밖에 없다.□ 폐교·분교 위기에 놓인 학교를 되살리자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포항교육지원청은 지난 2019년 작은 학교 자유 학구제 시범 대상인 죽천초등학교에 운영 예산 2천만원을 지원했다. 또 2020년 초등학교 12개교에 1천만원, 중학교 1개교에 2천만원 총 1억4천만원을 전달했다.이후 2021년 초등학교 13개교와 중학교 4개교 중 중복사업 대상인 2개교(경북미래학교로 선정된 흥해서부초와 자율재능학교인 청하중)를 제외한 15개교에 1천만원씩 총 1억5천만원을 지원했다.뿐만 아니라 작은 학교에 방과후학교와 특기적성교육 프로그램을 무료로 운영하고, 교재·교구·도서 개발 운영 및 구입을 도와준다. 또 학생들이 통학하기 쉽게 차량 임차와 구입, 운영비 부담을 해 줬다.포항교육지원청은 작은 학교에 특색프로그램 개발비를 지원해 작은 학교에 대한 교육력을 강화하고, 작은 학교로 학생이 유입될 수 있도록 언론기관 및 홈페이지 홍보, 현수막 게시 등 다양한 방면으로 홍보를 병행하고 있다. □ 작은 학교 살리기 운동의 성과현재 작은 학교 학구제가 운영되고 있는 학교는 죽천초, 곡강초, 신광초, 송라초, 월포초, 흥해서부초, 문충초, 장기초, 양포초, 대송초, 남성초, 기북초, 죽장초, 장기중, 대송중, 청하중, 서포중 등 모두 17개교다. 작은 학교 학구제가 시행된 첫해인 2019년도에는 22명이 이듬해에는 108명의 학생이 작은 학교로 유입됐다.특히 지난 9월 1일 기준으로 올해는 모두 142명의 학생이 작은 학교를 다니는 것을 택했다.2021학년도 작은 학교 자유 학구제 유입학생 현황을 살펴보면 죽전초와 곡강초, 청하중이 22명으로 유입학생이 가장 많았고, 장기중 21명, 문충초 18명 흥해서부초 9명, 양포초 8명, 장기초와 남성초 7명의 학생이 작은 학교행을 택했다.1970년 개교한 흥해서부초는 올해까지 1천440여명의 졸업생을 배출해냈다. 하지만, 흥해서부초는 1990년대부터 입학생 수가 점점 줄어들기 시작했고, 2010년에는 전교생 수가 29명까지 줄어들며 폐교 대상 학교로 지정돼 행정적·재정적 지원이 끊기도 했다.하지만, 교직원들의 헌신적인 학생지도와 특색 있는 교육과정 운영 프로그램이 학부모들 사이에서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다.이후 전교생 수는 2017년 95명에서 2019년 100명, 2021년 현재 106명으로 해마다 늘어나고 있다. 특히 작은 학교 자유 학구제 대상 학교로 선정되면서, 재학생 중 14명의 학생이 서부초로 유입됐다.□ 작은 학교 살리기의 최종 목표작은 학교 살리기는 작은 학교만의 특색과 교육경쟁력을 강화를 시켜 다양한 교육과정을 운영하는 것이다. 또 작은 학교든 큰 학교든 간에 학교의 크기와 상관없이 모든 학생들에게 학습권을 보장하고 양질의 교육기회를 제공하고자 한다.또 적정한 규모의 학교를 키워나감으로 인해 교사가 수업에 대한 부담을 낮출 수 있고, 이후 수업 연구시간을 확보해 수업의 질이 향상된다면 그만큼 학생들의 교육수준도 높아질 수 있다.포항교육지원청 관계자는 “작은 학교를 특화해 인근에서 전학을 오고 싶은 학교를 만들기 위해서는 교직원의 열정과 학부모의 지원, 지역사회의 협력이 필요하다”며 “앞으로도 다양한 작은 학교 살리는 정책을 지속적으로 추진해 고른 성장을 지원하는 교육을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겠다”고 밝혔다./이시라기자 sira115@kbmaeil.com※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끝

2021-10-28

가장 낮은 곳에서 높이 빛나는 교회 ‘빈자의 미학’ 기적을 보여주다

만약 신(神)이나 절대자가 실재한다면 어떤 곳에 머무르기를 원할까?웅장하고 화려한 교회나 성당, 절이나 모스크에서 행복한 미소를 지을지, 아니면 작고 소박하더라도 자신을 섬기는 진실한 이들이 모여 있는 곳에서 환하게 웃을지.한국은 대도시이건 조그만 도시건 교회 건물이 높고 큰 것이 보편적이다. 첨탑에 세운 십자가를 눈에 띄게 네온사인으로 장식하는 경우도 흔하다. 성당과 절 역시 대형화하는 게 일종의 흐름이나 추세인 걸 부정하기 어렵다.농담처럼 전해져오는 이야기가 하나 있다. 유럽에서 한국으로 여행 온 사람들이 밤늦게 산에 올랐다. 산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수십 개의 네온사인 십자가. 어디서건 쉽게 보이는 빨간 십자가에 놀란 한 여행자가 말했다고 한다. “어… 한국의 야경은 유럽의 공동묘지 같네.”그는 아마도 독일이나 프랑스의 묘지에 세워진 수많은 십자가를 떠올린 것이리라.‘웅장하고 눈에 확 띄게’ 지어져 눈길을 사로잡는 대부분의 한국 교회와 전혀 다른 방식으로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교회가 있어 주목받고 있다. 20여 평 작은 규모의 소박한 벽돌 건물. 경산시 하양읍에 자리한 무학로교회다. 인위적 화려함을 의도적으로 배제한 독특한 예배당하양읍은 인구가 3만 명이 되지 않는 그야말로 소읍(小邑). 특별한 관광지가 없는 이곳으로 최근 1~2년 사이 전국에서 찾아오는 이들이 부쩍 늘었다. 바로 무학로교회를 보기 위해서다.지난 26일 찾아가서 직접 확인한 교회는 듣던 그대로 조그맣고 아담한 예배당이었다. 어깨를 붙이고 앉는다고 해도 50~60여 명이 겨우 들어갈 수 있을 정도. 사실 신축 예배당이 생기기 이전 무학로교회의 신자는 30여 명 남짓이었다고 한다.갈색의 벽돌로 묵묵히 쌓아올린, 화려함과는 거리가 먼 건물. 예배당 내부에도 설교를 하는 사람과 설교를 듣는 사람의 눈높이를 달리하게 만든 강단조차 없었다. 첨단의 조명 시설과 음향기기도 보이지 않았다.신축 교회는 2층으로 만들어졌다. 옥상인 2층에 올랐다. 거기서도 일체의 인위적인 장식을 찾아볼 수 없었다. 그저 조용하게 묵상과 기도를 할 수 있는 조그만 벽돌 벤치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을 뿐.작은 정원에도 야외 예배당이 꾸며져 있었는데, 그곳도 벽돌 벤치에 벽돌 설교대만 있는 심플한 모습. 동네 사람들이 와서 언제든 쉬어갈 수 있다고 했다.이전 교회와 새로 만든 교회 뒤쪽으로는 낡은 살림채가 그대로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무언가를 현란하게 꾸며서 보여주려는 의도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 담백함에 오히려 마음이 끌렸다. 눈빛이 선량한 조원경 목사를 교회 마당에서 만났다.“2019년 초반에 무학로교회를 신축했어요. 2년 6개월쯤 시간이 흘렀는데 그간 7천500명 넘는 사람들이 여길 찾아왔습니다. 지금 화장실을 수리하고, 에어컨을 새로 설치하고 있는데 그 비용도 모두 교회를 찾아준 분들의 헌금으로 충당하고 있습니다. 고마운 일이지요.”일체의 장식과 군더더기를 배제하고 ‘기도하고 묵상하는 공간’이라는 교회가 가진 본질에만 충실하고자 애쓴 건축가의 흔적이 역력했다.그럼 신축 무학로교회는 누가 설계하고 어떤 사람들이 만든 것일까? 이런 궁금증이 생긴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목사와 건축가, 스님과 지역 주민이 함께 만든 공간몇 년 전. 조원경 목사는 지역 문화 관련 세미나 모임에서 건축가 한 명을 만난다. 교인들이 30년을 사용한 오래되고 낡은 교회에서 예배를 보는 게 안타까웠던 조 목사는 건축가에게 묻는다.“우리에게 7천만 원이 있습니다. 이걸로 새 교회를 지을 수 있을까요?”이 질문에 “네. 할 수 있습니다”라고 답한 사람이 건축가 승효상(69·제5기 국가건축정책위원회 위원장)이다.건물의 설계와 건축에 대해 잘 알지 못했던 순박한 시골 교회 목사의 작은 희망을 기꺼이 받아들여 무료로 무학로교회를 설계한 승효상은 미술사학자 유홍준의 집 ‘수졸당’과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을 설계했던 한국의 대표적인 건축가 중 한 명.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무인도에 가서 사는 삶이 아닌 이상 더불어 산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사람들은 저마다 다르지만 어떻게 서로 많은 가치를 공유하고, 나누면서 살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게 중요하다고 본다”고 말했던 승효상은 저서 ‘빈자의 미학’으로도 유명하다.빈자의 미학을 “가난한 사람의 미학이 아니라, 가난할 줄 아는 사람의 미학”이라고 정의한 승효상이 그가 설계하는 건축물에 어떤 철학을 담아온 것인지는 어렵지 않게 짐작이 가능하다.더불어 사는 사람들이 공동체가 지향해야 할 가치를 함께 나누는 공간이 굳이 크고 화려할 필요가 있을까? 무학로교회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말없이 들려주고 있었다.신축된 무학로교회엔 조 목사와 건축가 승효상의 노력과 땀만 들어간 게 아니다.‘작은 시골에 평화로운 마음의 안식처를 만들고 싶다’는 뜻에 동의한 대구의 한 벽돌공장 대표는 10만 장의 벽돌을 선뜻 기부했고, 인근 영천시에 위치한 사찰 은해사도 기꺼이 교회 신축에 300만 원을 보탰다. 하양읍 주민들도 크고 작은 도움을 아끼지 않았다.무학로교회엔 은해사 주지가 심은 나무 한 그루가 서있고, 그 아래엔 ‘아름다운 우리의 인연이 영원히 이어졌으면 한다’는 내용의 표지석이 새겨져 있다. 그걸 보면서 섬기는 신은 달라도 결국 종교의 핵심은 사랑과 자비, 이해와 용서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목사와 건축가의 순수한 우정과 종교 간의 벽을 훌쩍 뛰어넘은 화합, 여기에 이름을 드러내지 않고 자신의 신앙심을 보여준 사람들. 무학로교회는 이 모든 것들을 재료로 만들어진 듯했다. ‘공간 물볕’도 하양읍의 새로운 명소로 떠올라비단 기독교인만이 아니라, 외로움과 번잡함에 지친 현대인들에게 위로를 주는 공간이라는 입소문이 나면서 무학로교회엔 갈수록 많은 사람들이 드나들고 있다.세상에서 상처받은 이들이 혼자 조용히 찾아와 한참을 예배당에 앉아 있다 가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귀띔. 여기에 더해 승효상의 스타일과 건축 철학을 직접 느껴보고자 하는 학생 여행자들도 방문한다고 했다.얼마 전엔 무학로교회 맞은편에 카페와 갤러리, 야외 전시장 등으로 구성된 ‘공간 물볕’이 또 하나의 ‘하양읍 명물’로 들어섰다. 깔끔하게 정돈된 정원과 감각적으로 디자인된 카페, 여기에 작고 예쁜 전시 공간까지.‘물볕’은 무학로교회가 있는 하양(河陽)의 순우리말이다. 여기를 설계한 건 승효상의 아들인 승지후. 그도 아버지처럼 건축가로 일하고 있다. 건물의 이름인 ‘공간 물볕’을 제안한 것은 아버지 승효상, 그 이름에 어울리는 건물을 구체화시킨 건 아들 승지후다.지척에 있는 무학로교회와의 조화를 위해 설계 과정에서 여러 고민을 했다는 게 어렵지 않게 느껴지는 ‘공간 물볕’.그곳 정원과 갤러리에 전시된 그림과 사진을 천천히 둘러보고, 카페에 마주 앉아 향기 좋은 커피를 마시는 젊은 연인들의 데이트가 다정해 보였다.기실 성(聖)과 속(俗)은 완벽한 반대의 개념이 아니다. 성스러움 속에는 속됨이 숨겨져 있고, 속된 것들 안에서 성스러움을 찾아내는 게 우리네 삶이 아닐까. 무학로교회와 ‘공간 물볕’이 불화하지 않고, 서로가 서로를 보완해주며 옹기종기 공존하고 있는 것처럼.다시 한 번 질문을 던져본다.“신이나 절대자가 기꺼이 머물며 사람들에게 사랑과 나눔을 설파하는 공간은 반드시 크고 권위적이어야 할까? 작고 소박한 곳에선 이타적이고 선한 행위가 이뤄지기 힘든 것일까?”이 물음에 관해 경산시 하양읍 무학로교회가 들려주는 답이 궁금하다면 언제든지 찾아가도 좋을 것 같다. 환한 가을볕과 규모는 작지만 큰 위로를 선물할 예배당이 당신을 반길 게 분명하다.돌아오는 길. 고무신을 신은 조 목사가 잔잔한 웃음으로 기자를 배웅했다. 교인들과 함께 가장 낮은 곳에서 높이 빛나는 교회를 만들고자 했던 그의 꿈이 하얀 고무신에 투영되고 있었다./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2021-10-27

아름다운 컨테이너 숲 그 곳에 청년의 꿈이 산다

컨테이너를 이용한 트렌디한 공간 이자 젊은이들을 위한 공간인 FXCO(펙스코)가 대구에 들어서면서 최근 새로운 명소로 각광을 받고 있다.대구 젊은이들의 꿈의 공간 ‘펙스코(FXCO)’는 세계적으로 각광받고 있는 네덜란드 위트레흐트 대학의 알록달록한 컨테이너를 활용해 만든 기숙사 ‘스페이스 박스’, 2013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오픈한 ‘컨테이너 파크’ 등과 같이 화물수송을 목적으로 하는 금속 상자인 컨테이너를 젊은 아티스트를 위한 공간, 개방형 문화 공간, 최신 트렌드의 쇼핑 소비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다.네덜란드 위트레흐트 대학은 알록달록한 컨테이너를 활용해 기숙사인 ‘스페이스 박스’를 만들었다. 크레인을 이용해 3층으로 쌓아 올린 스페이스 박스는 학생들을 위한 쾌적한 주거환경을 제공하고 있다. 무주택자들을 위한 공간으로 네덜란드의 다른 도시에서설치되기도 했다. 미국 라스베이거스에는 2013년 ‘컨테이너 파크’가 오픈했다. 카지노 밀집 지역과는 조금 떨어진 다운타운인 상권이 침체되어 있는 곳이었다. 침체된 상권을 살리기 위해 시작된 프로젝트가 컨테이너를 재활용해 만든 복합 쇼핑센터인 ‘컨테이너 파크’로, 이 곳에는 개성 넘치는 각종 소규모 상점들과 식당, 그리고 아이들을 위한 놀이시설까지 갖추고 있어 인기를 얻고 있다.지역 청년들과 상생하는 패션-문화복합공간 펙스코는 대구시가 지역 패션분야 신진디자이너 브랜드의 판로확대를 지원하기 위해 기획해 10월 1일 정식으로 문을 열었다.건물 공사때부터 모아진 시민들의 관심과 기대를 증명하듯 사전 오픈 기간임에도 불구하고 마스크를 쓴 시민들의 발걸음이 이어져 대구의 새로운 랜드마크를 반기고 환영하는 분위기가 한껏 고조되고 있다.펙스코는 Fashion X Coexistence(패션과 공존)의 의미를 담아 이름 붙여진 트렌디한 컨테이너형 건물 3개동에 3층 연면적 1천839㎥ 규모로 완공된 대구 최초의 컨테이너형 패션·문화 복합공간이다. 패션 신진디자이너 브랜드의 상품을 모아 선보이는 편집 매장과 지역 청년들의 창업의 꿈을 실현하는 아트숍, 카페, 레스토랑, 일상에 작은 기쁨을 선사할 무료 전시와 아기자기한 리빙 소품 매장이 한 곳에 모인, 지역의 선도적 라이프 스타일을 주도하는 공간으로 자리매김하고자 한다.1층에는 펙스코 개관을 기념해 기획된 특별전 ‘뉴 트렌드 아트 마켓’(New Trend Art Market)이 전시되고 있다. 부모님과 아이를 동반한 가족 혹은 친구나 연인과 함께 부담없이 즐길 수 있는 전시회는 민경숙, 오영실, 정영숙 등 대구 대표 산업, 섬유를 모티브로 작가들의 감성을 더한 작품인 ‘Textile Sensibility’, 김정혜, 문경, 이승준, 주후식외 작가들이 동물을 소재로 회화, 세라믹, 키네틱아트의 형식으로 동물의 다채로운 모습을 표현한 ‘Animal Love’, 박우성, 박준상 외 작가들이 서브컬쳐로 대변되던 마니아 중심의 피규어에 시대를 관통하는 유머와 해학을 첨가한 ‘Figure Impressionism’이 전시돼 감동을 선사한다.또 바쁘고 지친 현대인들에게 필요한 아로마테라피(향기요법)를 천연 유래 성분의 제품으로 개발해 선보이는 자연주의 방향 브랜드 쌩스네이쳐(Thanks Nature), 예술이 있는 삶을 지향하는 독립 예술가들의 작품을 발굴해 다양한 상품으로 제작하고 합리적인 가격으로 일상 가까이에서 즐길 수 있는 라이프 스타일 아이템을 선보이는 아트 플랫폼이자 편집숍인 뚜누(Tounou), 소소한 일상에 즐거움을 선사하는 감성·토탈·리빙브랜드인 데일리 라이크(Daily Like), 최근 지역에서 떠오르고 있는 애리스 커피 스탠드(Arris Coffee Stand)가 입점해 있어 젊은이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2층에는 상품을 만들고도 독립 매장이나 판로를 찾지 못해 어려움을 겪는 패션 신진 디자이너들을 위한 편집매장인 펙스코숍(fxco#)이 들어서 있다.대구시는 섬유패션산업에 대한 지속적인 노력과 정책 지원사업으로 국내를 대표하는 것은 물론 세계적으로 빼놓을 수 없는 섬유패션 도시로 확고한 입지를 이어가기 위해 패션산업을 이끌어갈 신진디자이너의 지원과 브랜드 육성을 추진하고 있다. 이를 위해 대구시는 2002년부터 계명대학교 산학협력단과 함께섬유패션디자인창업보육센터를 설립하고 경제적, 체계적 기반이 약한 예비및 초기창업자의 디자인 기획, 생산, 유통에 대한 전문교육을 운영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또 한국패션산업연구원을 통해 크리에이티브 디자인 스튜디오(CDS: Creative Design Studio)를 마련해 지역 기반의 신진 디자이너들을 위한 창작공간과 비즈니스 활동에 필요한 각종 홍보, 마케팅, 교육, 컨설팅맞춤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다. 1, 2차에 걸친 디자이너 인큐베이팅프로그램인 셈이다.이번에 오픈하는 펙스코숍(fxco#)은 3차 프로그램에 해당한다. 지난 1월 25일부터 2월 10일까지 입점 브랜드 모집 공고를 내고 1, 2차에 걸친 심사를 통해 총 35개 브랜드가 선정됐다. 여성복 18개 브랜드, 남성복 5개 브랜드, 신발, 가방, 쥬얼리를 포함한 잡화 10개 브랜드, 대구의 또다른 대표 산업인 안경 브랜드와 소품을 선보이는 라이프 스타일 2개 브랜드의 상품들을 선보인다. 오프라인 매장뿐만 아니라 펙스코 온라인숍(www.fxcomall.com)을 통해서도 개성있고 트렌디한 디자인의 상품들을 만나볼 수 있다. 향후에는 이들의 중국시장 진출을 위한 지원과 해외 바이어 초청, 수주상담 및 전시회 참가, V-커머스 및 촬영 공간 지원 등 대구시 섬유패션사업의 다양한 혜택도 지속적으로 계획하고 있다.또 펙스코를 디자인으로 발전시키고 캐릭터화까지의 스토리를 소개하고 제품화된(굿즈) 상품을 선보이는 팝업 공간인 ‘펙스코드림숍(FXCO Dream#)’, 크리에이터들의 라이브 커머스, 리얼타임 이벤트를 위한 메타버스(온라인 가상세계) 공유 제작 스튜디오인 ‘메타버스 드림 스튜디오’가 상설 운영 중이며, 스페인 캐릭터 브랜드로 MZ 세대에 인기있는 무인숍 ‘쿠쿠스무스(Kukuxumusu) 카페’가 입점해 있다.3층에는 떡볶이와 튀김, 쫄면 등 익숙하고 당연한 맛의 메뉴를 세련된 감성으로 풀어낸 대구 대표 분식 브랜드인 ‘해피 치즈 스마일(Happy Cheese Smile)’, 깨끗한 공기와 물이 흐르는 밀양의 무농약 수경재배 야채들을 공수해 건강 도시락을 만드는 ‘컴앤헤브(Come and Have)’, 라곰파스타와 리조또,부채살 스테이크 등 퓨전 양식당인 ‘라곰 키친(Lagom Kitchen)’, 일곱 가지 드레싱 샐러드와 다양한 계절 과일로 만든 에이드, 가볍게 즐길 수 있는 건강한 맛의 부리또와 간편한 컵 와인을 즐길 수있는 카페 ‘소울 샐러드 위드 와인(Soul Salad with Wine)’이 입점해 있다.코로나19로 인해 자유로운 외출이 부담스럽다면 ‘방콕쇼핑’이 가능한 펙스코 VR투어도 가능하다. 펙스코몰의 홈페이지(www.fxcomall.com)에 접속한 다음 첫 화면 상단의 VR TOUR를 클릭하면 마우스의 움직임에 따라 마치 직접 걸어 다니면서 공간 곳곳을 둘러보는 것 같은 3D 입체 환경을 경험할 수 있다.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한 FXCO는 라이프스타일, 아티스트편집숍 등 청년 창업브랜드들에게 항시 도전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온오프 마케팅 및 글로벌 시장 판로 지원사업을 통해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을 제공한다.특히, 신진패션디자이너 브랜드의 브랜드아이덴티와 상품성 향상을 위해 주기적 고객반응 기반한 맞춤컨설팅 및 매출향상을 위한 라이브커머스, 마케팅 지원, 상품생산 지원, 중국, 일본 등 해외시장 진출을 위한 수주상담 및 전시회참가 등 실질적인 지원을 통해 신진브랜드에서 앵커브랜드로 성장시켜 지역을 넘어 글로벌 스타 브랜드로 육성할 계획이다.(주)모라비안앤코 펙스코(FXCO) 사업단 김윤찬 실장은 “대구의 랜드마크로써 팝업공간인 Colorful-X공간에서 매시즌 새로운 문화콘텐츠를 구성해 매번 방문할 때마다 새롭고 재미있는 공간으로 다시 찾고 싶은 공간으로 만들겠다”며 “펙스코 마당에서 펼쳐지는 시민들과 함께 하는 청년아티스트들의 공연, 실험적인 패션쇼, 시민들과 함께 하는 플리마켓 등으로 활력과 재미, 공감이 있는 패션·문화·복합공간으로 업그레이드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이곤영기자 lgy1964@kbmaeil.com

2021-10-27

세월을 버틴 나무들… 벌거숭이에서 울창한 숲이 되다

우리 주위에는 나무가 참으로 많다. 나무를 빗댄 노래도 많고, 문학 작품도 수두룩하다. 그 뿐인가. 상상 속의 나무를 가져와 민초들의 꿈을 이야기하기도 하고, 판타지적인 이야기를 풀어내기도 한다.외가가 있었던 경상남도 창녕군 모전마을의 입구에는 커다란 나무가 있었다. 까막눈이 시절 기억에 모전 마을 나무에는 색색이 종이를 매단 기다란 줄이 감겨 있기도 했고, 특별한 날에는 오래된 한복을 입은 마을 어르신들이 나무를 향해 수차례 절을 올리기도 했다. 모르긴 몰라도 모전 마을의 나무는 수백년 이상 살아온 마을의 수호신이었다. 외할아버지도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에게 ‘나무 등을 타고 놀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했으니 말이다. 그도 그러한 것이 마을 저수지의 머릿구에 서 있는 나무는 생명력 없는 검은 색깔을 가지고 있지만, 여름 한 철에는 녹색잎을 토해내기도 했다.「예전에는 아이가 태어나면 나무를 심었다. 여자 아이가 태어나면 오동나무를, 남자아이가 태어나면 소나무를 심었다. 딸아 자라 시집갈 때가 되면 그 오동나무를 베어 가구를 만들어 혼수로 보냈다. 소나무는 아들과 평생을 함께 하다가 생을 마감할 때가 되면 베어 관을 짜는데 썼다. 아이들마다 각각 내나무가 있었다. 이처럼 내나무는 나의 탄생과 더불어 나와 숙명을 같이하고 죽을 때에는 더불어 묻히는 존재였다. (이규태 수필 ‘내나무’ 가운데)」□ 울진 금강송면의 나무나무에 대한 아련한 기억을 품고 울진의 금강송면을 찾았다. 왕피천의 물줄기를 따르다 보면 멀리서 울창한 나무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울진군 북서부에 있는 금강송면은 본래 서면으로 불렸다. 하지만 2015년 4월 금강송면으로 개칭됐다. 면의 전 지적이 태백산맥에 속하여 500~1천m 이상의 험준한 산지를 이룬다. 한참의 시간을 걸려 금강송면에 있는 소나무숲길로 들어섰다.“울진 금강송면의 소나무숲길은 미국 CNN에서 선정한 세계 50대 명품 트레킹 장소에도 소개됐었죠.”한 관계자의 이야기처럼 곧게 뻗은 소나무 가지들은 마치 길을 들어서는 사람들에게 인사라도 하는 마냥 의연하기만 하다. 울진군 등에 따르면, 금강송면의 소나무숲길은 산림청이 국비로 조성한 전국 1호 숲길이기도 하며, 산림유전자원보호림으로 지정되어 있다. 어찌보면 우리나라에 트레킹과 둘레길에 많은데, 그중에서 으뜸으로 치는 곳이 바로 금강소나무숲길이 아닌가 한다.「태백산맥줄기를 타고 금강산에서 울진, 봉화와 영덕, 청송일부에 걸쳐 자라는 소나무는 주위에서 흔히 보는 꼬불꼬불한 일반 소나무와는 달리 줄기가 곧바르고 마디가 길며 껍질이 유별나게 붉은데, 이 소나무는 금강산의 이름을 따서 금강소나무(金剛松) 혹은 줄여서 강송이라고 학자들은 이름을 붙였으며, 흔히 춘양목(春陽木)이라고 알려진 나무이다. 결이 곱고 단단하며 켠 뒤에도 크게 굽거나 트지 않고 잘 썩지도 않아 예로부터 소나무 중에서 최고의 나무로 쳤다. 경북 울진군 서면 소광리 금강소나무 집단 분포지는 숙종 때 황장봉산으로 지정 관리하였으며, 1959년 육종림으로 지정된 후 2001년 산림유전자원보호림으로 지정할 정도로 유명한 숲으로 금강소나무 미인송(520년 된 할아버지 소나무)이 있는 지역으로서 특별 보존 관리하고 있는 청정지역이다. 500년이 넘은 천연수림의 소나무 터널을 통과하면서 금강소나무들의 열병 사열을 받아 볼 수 있다. 소나무 숲이 품어내는 식물성 호르몬인 피톤치드도 느껴볼 수 있다.(한국관광공사 ‘대한민국 구석구석’ 중에서)」그 중에서도 금강송면의 유명한 나무는 무엇이 있을까. 우선 천연기념물 제408호인 산돌배나무가 있다. 금강소나무숲길 2구간인 ‘한나무재길’을 걷다보면 만날 수 있다고 한다.“닥발골에서 또 한모퉁이 돌아서면 쌍전리 산돌배나무가 있는 큰닥발골이죠. 현재 우리나라에 있는 산돌배나무 중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나무로 생물자원으로서의 보존가치가 커요. 수령이 약 250년이고, 높이 25m, 가슴높이 4.3m죠.”또 금강소나무숲길 3구간인 ‘오백년소나무길’에는 소광리 금강송 군락지를 볼 수 있다. 이곳은 우리나라 최대의 금강소나무 군락지다. 오랜 시간을 지나면서 일제강점기의 엄청난 금강송 수탈에도 훼손되지 않았다. 남아 있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이곳이 산이 깊고 교통의 오지였기 때문이다. 그런가 하면 ‘병정소나무’도 있다. 6대의 아름드리 금강소나무가 한 줄로 서 있는 모양이 병정들이 정령하고 있는 것 같은 모습을 하고 있어서 ‘병정소나무’라 부른다. 과거 송진채취로 인한 아픈 흔적이 남아 있다.금강소나무숲길 4구간인 ‘대왕소나무길’에는 수령이 600년으로 추정되는 대왕소나무수종이 남아 있다. 아쉽게 볼 수는 없었지만, 사진으로 보는 자태는 커다란 충격으로 다가왔다. □ 한반도와 나무 그리고 사람갑작스레 궁금증이 일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나무는 어디에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생각외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것으로 추정되는 나무는 울릉도에 있었다. 경북 울릉군 도동리 산8, 도동향뒤 바위산 중턱에 위치한 향나무는 수령이 2천500년으로 추정되고 있다. 더 나아가 지난 2018년 울릉군발전연구소는 “도동리 향나무의 나이테를 조사한 결과, 5천~6천년으로 추정된다”고 하기도 했다. 이어 강원도 삼척시 도계면 늑구리 210-2에 있는 삼척 늑구리 은행나무는 수령 1천500년을 자랑한다. 경북 영주시 순흥면 내죽리 은행나무와 부부 사이라고 전해지고 있다.하지만 한반도의 산과 들에 지금처럼 나무가 많았던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일부 사유지를 제외하고는 민둥산이 대부분이었다는 것이 어른들의 이야기다.흔히, 나무가 없어 붉게 토양이 드러난 벌거숭이 산을 ‘민둥산’이라고 부른다. 사실 국토의 65% 가량이 산림인 우리나라에 민둥산이 펼쳐지던 시절이 있었다. 우리 국토에 산림 황폐화가 진행된 것은 조선시대 말부터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오랜 기간 동안 화전(火田)으로 인한 산림 훼손과 온돌을 사용하는 가옥구조로 인해 나무를 땔감으로 쓸 수밖에 없었고, 이후 일제가 목재를 수탈할 목적으로 그나마 남아있는 나무들을 마구 베어가면서 상황이 더욱 나빠졌다. 또 6·25전쟁을 겪으며 험난한 전투 속에서 산림의 황폐화는 더욱 가속화되었다.이러한 산림 황폐화는 조금만 비가 와도 산사태와 홍수로 이어졌고, 약한 바람에도 황토먼지가 날리며, 비가 오지 않으면 금방 가뭄이 드는 일로 이어졌다. 산속에는 새와 동물이 점점 사라져 생태계도 망가졌다. 하지만 여기 우리나라의 민둥산을 산림이 우거진 산으로 바꾼 인물이 있었다.“평생을 나무하고만 살아왔다. 그러다 보니 나무는 내 삶의 큰 부분을 차지하게 됐고 내가 나무 속에 있는지 나무가 내 속에 있는지조차 모를 느낌이 들 때가 많다.”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임목육종학자 고(故) 현신규 박사(1911~1986)가 생전에 남긴 말이다. 그는 일본의 수탈과 6·25전쟁을 거치며 황폐해진 조국의 모습을 보며 안타까워했다. 이에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는 ‘리기테다소나무’, 한국 토양에 잘 맞는 포플러나무인 ‘은수원사시나무’를 육종해 산림을 다시 푸르게 하는 데 기여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1979년 국토 녹화에 공헌한 현 박사의 공덕을 기리기 위해 은수원사시나무에 그의 성을 따서 ‘현사시나무’라는 이름을 붙였다.1911년 평안남도 안주군에서 태어난 현 박사는 철학이나 문학을 전공하고 싶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그를 서울대 농과대학 전신인 수원고등농림학교에 입학시켰다. 이후 일본 규슈대 임학과를 졸업하고 서울에 있는 조선총독부 임업시험장에서 연구직으로 일했다. 산림조사에 나갈 때마다 헐벗은 숲을 보며 안타까움을 느낀 그는 다시 규슈대 박사과정에 들어갔지만 1945년 전쟁 막바지 한국인으로서 신변에 위협을 느껴 귀국해야 했다. 이후 수원농업전문학교에서 조교수로 교편을 잡으며 연구자료를 정돈해 규슈대로 보냈고, 1949년 한국인 최초로 임업 분야 박사학위를 받았다. /박순원기자 god02@kbmaeil.com

2021-10-26

공단도시에서 숲의 도시로 거듭나는 ‘구미’

구미시가 ‘전자산업도시’, ‘회색공단도시’라는 이미지를 벗어던지고 ‘치유의 도시’, ‘숲의 도시’로 거듭난다.구미시는 1960년대부터 한국산업의 기틀을 마련하며 한국의 고속성장을 이끌었다.이로 인해 금오산, 천생산, 태조산 등과 낙동강이 관통하는 천혜의 자연환경에도 불구하고 산업도시라는 이미지에 가려져 있었다. 이런 구미가 최근 산림청·한국산림복지진흥원 주관으로 처음 실시한 2022년 녹색자금 지원 ‘치유의 숲’전국 공모 사업에 경북도 대표로 응모해 최종 선정됐다. ‘산업도시’, ‘공단도시’로만 알려졌던 구미가 ‘치유의 숲’ 전국 공모에 선정된 것은 구미가 이제서야 천혜의 자연환경을 알릴 수 있다는 의미로 그 의의가 깊다.특히 코로나19 장기화로 지친 심신에 산림치유가 좋은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결과가 연이어 발표되고 있어 구미의 ‘치유의 숲’은 더욱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이에 본지는 구미가 준비하고 있는 ‘치유의 숲’이 어떤 것인지 알아봤다. ◇구미시, ‘치유의 숲’ 전국 공모사업 최종 선정코로나19와 급속한 고령사회 등으로 늘어만 가는 산림치유와 휴양문화 수요를 충족하기 위해 다양한 산림휴양시설 확충사업에 총력을 기울여왔던 구미시가 최근 ‘치유의 숲’ 전국 공모사업 최종 선정돼 시민 모두가 함께 누리는 행복한 산림복지 구현에 한발 더 다가섰다.이번 공모사업은 복권 수익금 재원으로 마련된 녹색자금으로 조성된다.녹색자금은 산림의 기능을 증진하고, 가치있는 산림자원 등 공익적 사업 조성을 지원하는 목적으로 운영된다.구미시는 이번 전국 공모사업에 경북도 대표로 응모해 1차 서류심사, 2차 현장심사, 3차 발표심사(PPT) 등의 엄격한 심사를 거쳐 전남 신안군과 함께 최종 선정됐다.구미는 입지여건·접근성·자연환경·기반 인프라 등에서 최고의 점수를 받았으며, 사업 계획의 적정성, 관리계획의 구체성 등과 구미시의 적극적인 의지와 기관장(시장)의 관심도 분야에서도 높은 점수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구미시는 이번 ‘치유의 숲’선정으로 마련된 총 사업비 70억원(녹색자금 60% 42억원, 도비 12% 8억4천만원, 시비 28% 19억6천만원)으로 선산읍 노상리 일원 시유지 50㏊에 시민들의 심신치료, 휴양, 힐링 등 복합적인 녹색공간을 조성할 계획이다. 사업기간은 2022년부터 2025년까지 4년간으로 기본·실시설계 2년, 시공 2년으로 추진된다. ◇도심 속에 조성되는 ‘치유의 숲’코로나19 장기화로 시민들이 느끼는 스트레스가 점차 늘어남에 따라 숲이 주는 위로, 심신치료, 심리적 안정, 면역기능 강화 등 치유에 대한 숲의 관심도 역시 급증하고 있다. 숲이 가지고 있는 자연환경요소인 경관, 소리, 향기, 피톤치드, 음이온, 물, 광선, 기후, 지형 등이 인간의 신체조직과 생리적·감각적·정신적으로 교감해 심신건강을 증진시킨다는 연구결과가 연이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또 숲에서의 이뤄지는 각종 체험프로그램은 긍정적인 감정을 증가시켜 우울 수준을 낮추고 스트레스 호르몬 감소, 면역력 증가 등에도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이러한 ‘치유의 숲’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치유의 숲’이 갖춰야 할 조건들도 점차 강조되고 있다. 그 중 가장 중요한 조건이 바로 접근성이다.이에 구미시는 도심과 가까운 곳에 ‘치유의 숲’을 조성해 시민 누구나 쉽게 찾을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구미시는 뛰어난 자연환경과 주차장 등과 같은 기반시설 등을 이미 갖추고 있고, 접근성 또한 매우 용이한 선산읍 노상리 산8-2번지 일원(선산뒷골)에 도심 속 녹색 공간과 산림치유가 함께 공존하는 구미만의 ‘치유의 숲’을 조성할 계획이다. 이 곳에는 치유센타, 테마 치유숲(4개), 무장애 숲길 등 현지 여건에 맞는 도심형 복합 숲이 조성된다. ◇테마가 있는 ‘치유의 숲’구미시는 ‘치유의 숲’을 테마별로 다양하게 구성해 각계각층의 시민들에게 맞춤형 산림복지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계획이다.이를 위해 우선 내부시설을 유니버셜 디자인을 적용한 체험실, 건강측정실 등으로 구성된 ‘치유센타’를 건립해 치유의 숲 관리·안내 및 프로그램을 운영할 방침이다.또 △촉각 치유 숲 △바람소리 명상 치유 숲 △향기 치유 숲 △동행의 숲 등 4가지 테마로 구성된 숲을 조성하고, 차별화된 산림치유 프로그램을 운영할 예정이다.‘촉각 치유 숲’은 숲 구성 요소들을 질감을 손과 발 등 피부로 직접 느낄수 있도록 해 다양한 감각 회복을 통한 스트레스 해소 및 아토피 완화 등에 도움을 주는 공간이며, ‘바람소리 명상 치유 숲’은 바람소리를 들으며 마음의 평화를 찾아가는 공간으로 소규모 편의시설을 함께 설치하며 명상 및 산림욕 등을 즐길 수 있다.‘향기 치유 숲’은 숲속에서 풍기는 산림향인 피톤치드와 좋은 향기를 가진 수종으로 후각적 치유를 하는 숲으로, 향기를 이용한 감정 아로마테라피 프로그램 등을 시행할 예정이다.마지막인 ‘동행의 숲’은 숲을 산책하고, 관찰하며 산림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는 숲으로 조성한다.또 교통약자도 쉽게 접근·이용하도록 휠체어 교행을 고려한 무장애 데크로드를 설치한다.◇차별화된 구미만의 산림치유 프로그램 운영구미시는 이번 ‘치유의 숲’에 구미만의 차별화된 산림치유 프로그램을 운영할 계획이다.우선 국내 최대 산업단지를 보유하고 있는 구미의 특색에 맞게 기업체 노동자 맞춤형 쉼(休) 치유프로그램을 개발한다. 산림치유가 각종 공해와 환경오염, 소음과 같은 환경적 스트레스와 직업 환경에 따른 직무 스트레스 등을 해소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는 여러 연구결과가 있기 때문이다.이에 구미시는 산업단지 내 기업체와 MOU를 체결해 노동자들에게 산림복지서비스 등을 지원할 방침이다.또 일반시민들을 위해 가족과 함께하는 소통·화합 프로그램, 학생들을 위한 다양한 신체활동 치유 프로그램으로 신체적·정서적 성장과 안정을 선사할 예정이다.이를 위해 전문 산림치유지도사의 컨설팅을 반영한 연령주기별 맞춤형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이용객들의 니즈에 부합하는 구미시만의 차별화된 산림치유 프로그램을 개발·운영할 계획이다.여기에 시민단체와도 협약을 체결해 소외계층을 위한 숲체험과 산림휴양 서비스를 제공한다. 또 숲이 가진 문화적, 인문학적 가치를 발굴하고, 이를 다양한 산림휴양서비스와 접목해 숲에서 시민들이 건강과 함께 정서적 충만감도 느낄 수 있도록 할 방침이다.장세용 구미시장은 “코로나19 상황이 오랜 기간 지속되는 국가적 재난 상황 속에서 이번 산림청 녹색자금지원 공모사업 ‘치유의 숲’선정은 구미시민들의 삶의 희망과 여유의 안식처를 만들기 위한 시민들의 염원이 함께 어우러진 값진 결과”라며 “앞으로도 새로운 산림휴양시설 확충사업에 더욱 박차를 가해 시민 모두에게 다양한 산림복지서비스를 제공함은 물론 행복지수 향상과 정주여건 개선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구미/김락현기자 kimrh@kbmaeil.com

2021-10-24

학령인구 감소… ‘작은학교 자유학구제’로 반전 꾀한다

아이들이 줄어들고, 학교가 사라지면서, 농촌지역 마을들이 점점 더 힘을 잃어가고 있다.실제로 올해 경북지역의 합계출산율(여자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출생아 수)은 1.00명을 기록했다. 이는 현재 인구를 유지하기 위한 합계출산율인 2.1명의 절반 수준에도 못 미치는 수치다. 이미 지역 내 출생아 수는 2018년 1만6천79명에서 2019년 1만4천472명, 2020년 1만2천873명으로 해마다 평균 1천500명씩 급감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경북지역의 출생아 감소 속도는 이미 ‘위험수위’를 넘어섰다.출산율 감소는 학령인구의 감소로 이어지게 된다. 학생 수가 감소하면서 경북지역의 폐교 수는 전국에서 2번째로 많은 것으로 조사됐다. 교육부 통계 자료를 보면 1982년부터 올해 3월 1일까지 폐교된 전국의 초·중·고교는 3천855개교다. 특히 지역 내 폐교 수는 732개교인 것으로 집계됐다. 이는 전남(833개교)에 이어 전국에서 두 번째로 많은 수치다.이 같은 위기에 직면하자 경북도교육청은 ‘작은학교 자유학구제’를 운영하며 반전을 꾀하고자 노력하고 있다.경북도교육청의 작은 학교 살리기에 대한 모토는 ‘농어촌 소규모학교의 교육여건 개선’, ‘맞춤형 지원을 통한 교육력 회복’, ‘작지만 강한 학교 육성’이다. 글 싣는 순서1. 소멸 위기에 놓인 시골학교의 현실2. 시골학교에서 부르는 희망노래Ⅰ3. 시골학교에서 부르는 희망노래Ⅱ4. 경북도교육청 작은 학교 자유 학구제 명과 암5. 지속 가능한 시골학교 상상 아닌 현실로 □ 작은학교 자유학구제 도입 필요성 대두저출산과 고령화, 도시 집중화에 따른 농어촌 지역의 학령인구 감소로 인해 소규모 학교가 대폭 늘어나고 있다. 농산어촌 지역 작은 학교들의 열악한 교육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작은 학교 중심의 자유학구제 운영 필요성이 커졌다.경북도교육청은 지난 2019년 3월부터 작은 학교 학구를 큰 학교 학구까지 확대·지정해 큰 학교 학생들이 주소 이전 없이 작은 학교로만 전입 가능한 ‘작은 학교 자유학구제’를 만들었다.이에 대해 경북도교육청 관계자는 “학생 수 증대를 통한 작은 학교 활성화 및 지역 사회 붕괴 막기 위한 조치”라며 “적정규모학교 육성으로 통폐합학교의 재통합 방지를 위한 노력”이라고 전했다.자유학구제 대상학교는 ‘작은 학교’의 경우 읍·면 소재지에 위치해 있으면서 60명 이하 또는 초등학교 6학급, 3학급 이하 학교 중 희망하는 학교가 인근의 큰 학교 학구와 묶여 선정된다. ‘큰 학교’는 시·읍 지역에 있으면서 전교생 200명 이상을 유지하는 학교여야 한다. 경북도교육청은 작은 학교에서 큰 학교로 입학하는 것을 막기 위해 작은 학교로 배정된 학생은 큰 학교에 입학할 수 없도록 했다. □ 작은학교 학구제의 도입자유학구제에 선정되면 학교당 1천만원 이상의 예산이 지원되고, 학교별 특색있는 프로그램을 개발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된다. 올해는 143개교에 총 15억6천만원의 예산을 지원해 운영하고 있다.경북교육청은 지난 2019년 3월 초등학교 29개교를 시범학교로 지정했다. 이후 지난해에는 모두 108개교(초등학교 97개교, 중학교 11개교)가, 올해는 143개(초등학교 123개교, 중학교 20개교)가 참여하는 등 작은학교 자유학구제의 신청을 원하는 학교는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작은 학교학구제를 통해 유입되는 학생은 매년 늘어나고 있다. 도입 첫해인 2019년 134명, 2020년 460명, 올해 661명의 학생이 유입됐다. 지난해의 경우 안동 풍산중이 54명으로 유입학생이 가장 많았고, 포항 장기중 22명, 영주 이산초·포항 죽천초 19명이다.□ 작은학교 자유학구제의 효과작은 학교 자유학구제를 운영하면 과밀 학급을 해소할 수 있다. 그 예로 풍천중학구 학생 54명이 올해 풍산중으로 입학을 했다. 이들 학생이 풍천중으로 입학했을 경우 1학년의 한 학급당 평균 29명이 되는데, 이는 읍면 한 학급당기준 인원인 24명을 초과하게 돼 과밀학급이 되어버리는 상황이다. 다행히 이들 학생은 풍산중의 입학을 선호했고, 통학버스 2대를 이용해 통학을 하고 있다.뿐만 아니라 복식 학급(2개 이상의 학년을 한 교실 또는 한 명의 교사에 의해 운영하는 학급)을 해소하는 장점도 있다.실제로 포항 곡강초, 포항 남성초, 경주 연안초, 안동 서후초, 구미 옥성초, 영주 순흥초, 영천 청통초, 상주 은척초, 군위 우보초, 영양 입암초, 봉화 봉성초 등 모두 11개교의 학교가 복식 학급(12학급)이 감소하는 효과를 얻었다. 복식수업이 해소되게 되면서 교사들은 수업에 대한 부담을 줄게 되었고, 수업연구 시간이 더 확보되면서 수업의 질적 수준이 이전보다 더 향상되는 등의 이점이 있었다.특히 포항 장기중학교는 2020년 작은학교 자유학구제 시범학교로 지정된 후 ‘사군자(四君子)’ 교육 프로젝트, 1인 3악기 연주 재능 갖추기, 사제동행 아침 독서 등 특색프로그램 운영으로 지난해 14명이 입학했으며, 올해는 33명의 학생이 배정을 신청해 10여년 만에 1학년이 2학급 체제로 편성되는 성과를 얻었다. □ 자유학구제 완전 정착은 기다림이 더 필요경북도교육청이 최근 실시한 자유학구제 현장 설문조사 결과에서 96.04%가 ‘보통 이상 만족’한다고 답변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조사에는 자유학구제 운영으로 큰 학교에서 작은 학교로 유입된 학생 288명, 학부모 486명, 작은 학교 교원 563명 등 총 1천337명이 참여했다. 설문 조사 결과 매우 만족 63.13%(844명), 만족 26.78%(358명), 보통 6.13%(82명)을 각각 차지했다.자구책을 마련한 소규모 학교들이 반전에 성공하는 경우도 있지만, 한계는 여전히 존재한다.설문에 참가한 이들은 ‘불만족’을 선택한 이유로는 통학 시 안전 문제, 상급학교 진학 문제, 교우 관계, 시설물의 노후화, 교원의 업무량 증가와 생활지도의 어려움 등을 지목했기 때문이다.세부적으로 작은 학교의 경우 구기종목과 토론수업에 참여할 적정 규모의 학생수가 여전히 부족하다. 또 학생·학급간 선의의 경쟁체제 이뤄지지 않는 등 교육과정 운영이 곤란한 측면도 있다. 교직원들은 복식수업으로 인한 부담이 크고, 공문처리 건수 과다로 수업연구 소홀 및 수업의 질 하락을 걱정하고 있다.경북도교육청 관계자는 “전교생이 10명 이하인 작은 학교에 대해서 무조건적인 통폐합을 추진하는 것이 아니라 학부모와 학생들의 의견을 많이 수렴해 결정을 하려고 한다”며 “오는 2022년부터 자유학구제에 대한 시행 예산을 1천만∼3천만원 각 학교에 차등 지원해 특색프로그램을 더욱 알차게 만들고자 한다”고 밝혔다./이시라기자 sira115@kbmaeil.com※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1-10-21

‘순수한 사랑’ 희망 찾으러 청춘들이 온다, 포항으로 온다

“대체 이게 무슨 일이지?”평소 TV 드라마를 보지 않는 사람이라면 궁금증을 가질 만했다. 포항 외곽 조그만 전통시장에 50여 명의 젊은이들이 모여들어 이곳저곳에서 카메라 셔터를 눌러대는 모습은 눈에 익지 않은 낯선 광경이었다.포항시 북구 청하면 미남리에 자리한 청하시장은 1920년대부터 형성돼 과거엔 인근 지역 주민들의 사랑방 역할을 했었다. 그러나, 시내에 대형 마트가 우후죽순 들어서면서 갈수록 규모가 축소돼 지금은 5일마다 한 번 열리는 장날에만 예전 기억을 간직한 이들이 찾아오는 조그만 장터. 그곳에 왜 이렇게 많은 20~30대 여행자들이 몰리는 걸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청하시장 입구에서 좌판을 펼치고 오징어를 구워 파는 할머니의 입에서 나왔다.“드라마 때문에 안 그렇나. 쉬는 날에는 사람들이 더 많이 온다.”이전엔 양념한 돼지고기가 맛있는 식당이 있다는 정도로만 알려졌던 청하시장과 인근 월포해수욕장은 요즘 밀려드는 관광객들에 놀라고 있다.주말은 물론, 평일에도 적지 않은 사람들이 한적한 시골마을까지 먼 길을 마다않고 달려오고 있는 것.최근 종영된 tvN 드라마 ‘갯마을 차차차’의 인기에 힘입어 촬영지인 청하시장 일대가 함께 주목받고 있다. 여름부터 지금까지 식을 줄 모르는 열기다.기자가 거길 찾아간 건 지난 18일. 휴일이 아님에도 가족과 커플 단위의 여행객이 눈에 띌 정도로 많았다. 드라마에 등장했던 장소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려는 이들이 줄을 서서 자신의 차례를 기다릴 정도였다. 오가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예전에는 없던 푸드 트럭과 크고 작은 좌판들이 생겨났고, 청하시장에서 식당이나 카페를 운영하는 이들은 그 어렵다는 ‘코로나19 시대’에 찾아온 반가운 손님을 맞느라 바쁘게 손길을 놀리면서도 환하게 웃었다. ‘낭만적 사랑’이 이뤄진 공간을 찾는 관광객들젊은이들 사이에서 높은 인기를 끈 드라마 ‘갯마을 차차차’에서는 현실적인 깍쟁이 윤혜진(신민아 분)과 무뚝뚝하지만 속 깊은 홍두식(김선호 분)이 만들어가는 좌충우돌 로맨스가 펼쳐졌다.두 사람이 만나는 곳은 가상의 바닷가 마을인 청호시 공진동. 드라마 제작진은 포항 청하시장 일대를 공진동으로 설정하고 촬영을 진행했다. 청하시장에 몇몇의 세트가 만들어졌고, 인근 월포 바다와 한적한 어촌마을도 ‘갯마을 차차차’의 촬영장이 됐다.삶과 세상을 대하는 방식이 전혀 달랐던 혜진과 두식. 하지만, 잦아지는 만남 속에서 연애감정이 싹트고 결국엔 서로가 서로에게 의지하는 연인이 된다는 드라마의 전개. 낭만적 사랑이 이뤄지기까지의 과정을 유쾌하게 따라가는 로맨틱 코미디라 할 수 있는 ‘갯마을 차차차’는 주연 배우들과 함께 김영옥, 조한철, 강형석 등 조연을 맡은 배우들까지 맛깔스런 연기를 보여줘 시청률을 높였다. 공진반점, 보라슈퍼, 청호철물, 카페 ‘한낮엔 커피, 달밤엔 맥주’ 등의 간판을 단 가게들은 드라마 제작진이 촬영을 위해 청하시장에 만든 세트.소박한 스타일로 소읍의 분위기를 제대로 살려낸 그 공간은 포항을 찾은 여행자들이 ‘인생 사진’을 남기는 핫 플레이스가 됐다. 어린 딸을 품에 안고 보라슈퍼 앞에 선 젊은 아버지의 웃음이 따스해 보였다.“연차 휴가를 내고 대전에서 왔다”는 30대 연인은 포항이 처음이라고 했다. ‘한낮엔 커피, 달밤엔 맥주’ 앞에서 사진을 찍으려고 기다리는 둘에게 물었다.“포항 어때요? ‘갯마을 차차차’의 인기 비결은 뭐였을까요?”“현실에서라면 혜진과 두식의 사랑이 이뤄지기 힘들었을 것 같아요. 그러나, 드라마는 그렇지 않았죠. 순수한 사랑에 대한 긍정과 희망 같은 걸 보여줘서 좋았어요. 오다가 해변에도 들렀는데 포항 바다가 이렇게 예쁠 줄 몰랐어요.” 여행자와 주민들, 서로 배려해 청하시장 인기 이어지길한국의 시골이 대부분 그렇듯 젊은 세대를 보기 힘든 청하시장 주변. 그곳에서 오래 생활해온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은 오랜만에 들려오는 청년들의 웃음소리에 덩달아 기분이 좋아질 것도 같았다.그러나, 이것 하나는 잊지 않아야 한다. 관광객들에겐 아주 가끔 찾아가는 공간이 주민들에겐 일상을 영위하는 생활의 터전. 건물의 문을 함부로 열어본다거나, 쓰레기를 버리는 등의 행동은 삼가야 서로 얼굴을 붉히는 일이 없을 것이다.‘갯마을 차차차’는 불륜이나 폭력이 등장하지 않는 이른바 ‘착한 드라마’였다. 그 드라마의 팬들이 찾아오고 있으니 이건 쓸데없는 기우(杞憂)이려나?모처럼 찾아든 활기에 시끌벅적한 에너지로 넘쳐나는 청하시장을 나와 월포해수욕장을 향했다. 승용차로 채 5분이 걸리지 않는 거리다.포항시청은 인기 높은 지역 관광지의 하나로 떠오르고 있는 월포 해변을 이렇게 소개한다.“길이 900m, 폭 70m의 백사장에 하루 5만 명을 수용할 수 있다. 물이 맑고, 수심이 얕아 해수욕을 하기에 좋다. 월포방파제에선 낚시도 가능하다. 남쪽으로 해안선을 따라 내려가면 솔밭이 있어 삼림욕도 함께 즐길 수 있다.” 짙푸른 가을 바다 위로 수백 마리의 갈매기가 비상하고 있었다. 거기에 더해지는 하얀 포말. 이 역시 도시에선 보기 어려운 낭만적인 장면이었다. ‘갯마을 차차차’의 두 주인공 혜진과 두식의 애정이 깊어가는 공간으로 역할을 한 월포 바닷가에도 적지 않은 여행자들이 드라마가 남긴 여운을 즐기는 중이었다. 그날은 바람이 꽤 차가웠음에도 몇몇은 추위에 신경쓰지 않고 서핑을 하는 여유까지 보였다. 월포해수욕장은 파도타기를 즐기는 이들에겐 이미 유명한 곳이다.아기자기하게 꾸며진 예쁜 카페가 적지 않은 월포 해변. ‘제2의 혜진과 두식’을 꿈꾸는 연인들이라면 커피 한 잔을 앞에 놓고 드라마 속 장면처럼 알콩달콩 밀어(蜜語)를 속삭여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시간이 넉넉하고 기차가 선물하는 낭만을 좋아하는 관광객이라면 포항에서 동해선 기차를 타고 월포역까지 가보는 것을 권한다. 잠시잠깐이지만 흥미로운 체험이 될 것이다. 역에서 해변까지는 그야말로 지척이다.해변에 도착해서는 혜진처럼 신발을 벗고 한가롭게 바닷가를 산책하거나, 두식처럼 머리칼을 적시며 서핑을 해봐도 근사하지 않을까. 갑갑한 현실에서 벗어나 드라마 속 로맨스 속으로…‘갯마을 차차차’를 따라가는 여정은 청하시장과 월포해수욕장에서 끝나지 않는다.드라마에선 두식이 멀리 푸른 물결 일렁이는 바다를 배경으로 배를 수리하는 모습이 나온다. 놀란 눈빛으로 이를 지켜보는 혜진의 얼굴도 시청자들의 기억 속에 남아 있다.이 장면이 촬영된 곳은 사방기념공원. 공원은 경제적으로 궁핍했던 1960~1970년대 사방사업(沙防事業·산, 강가, 바닷가 따위에서 토사가 유실되거나 붕괴되는 것을 예방하기 위해 나무 등의 식물을 심는 사업)에 힘쓴 이들의 행적을 살펴볼 수 있는 곳이다.아니나 다를까. 그곳도 여행자들로 가득했다. 전문가가 아닌 보통 사람이 찍더라도 ‘엽서 같은 사진’을 만들어줄 풍경에 배가 놓인 언덕 위에 오른 연인과 가족들이 만족스런 미소를 지었다.혜진의 드라마 속 직업은 치과 의사다. 그렇다면 두식과의 달콤한 로맨스가 만들어지기도 했던 혜진의 병원은 어디에 있을까. 이곳 역시 월포해수욕장에서 멀지 않다. 청하면 해안 도로를 따라가다 보니 청진3리 어민복지회관을 세트로 개조한 ‘윤치과’가 나타났다.윤치과 앞에도 줄을 서서 자신의 촬영 순서를 기다리는 젊은 여행자가 가득했다. 동네 주민인 듯 보이는 할머니 한 분이 생선을 말리며 손자 또래의 관광객들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아마도 멀어진 자신의 청춘을 추억하고 있었을 것이다.여기까지 둘러보고도 ‘갯마을 차차차’와 헤어지기 아쉬운 사람이라면 드라마의 또 다른 촬영지인 곤륜산과 구룡포 석병리를 찾아가면 된다. 그리고, 하루쯤은 파도 소리가 잠을 깨우는 포항의 해변 숙소에서 묵어가면 어떨까.이미 막을 내렸지만 ‘갯마을 차차차’ 열풍은 아직 진행형이다. 갑갑한 현실과 일상에서 잠시나마 벗어나 드라마 속 로맨스의 공간을 찾는 여행자들의 발길 또한 한동안 이어질 게 분명하다./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2021-10-20

‘검정고무신’·‘달려라 하니’… 추억의 한국만화

2천년대 이전을 살아온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오전 8시께 텔레비전 앞에 앉아 눈 앞에 펼쳐진 화려한 그래픽의 향연에 입을 벌리고 손뼉을 쳤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도 아니라면 케케묵은 냄새가 나는 만화방에서 수십권의 만화책을 쌓아놓고 자장면 곱배기 한 그릇을 냅다 해치웠던 기록이라도 말이다. 하물며 만화책 종이종이에 묻었던 이물질이 그리 더럽게 느껴지지 않았던 것 역시.현대 한국 만화의 효시는 1909년 6월 2일에 창간된 ‘대한민보’ 창간호에 실린 ‘삽화’라는 이름의 1칸 만화이다. 일종의 만평인 셈이다. 해당 만화는 화가 이도영이 그렸다. 한 전문가는 말했다. “아마 이도영의 만화를 처음 본 사람들은 신기했을 겁니다. 앞다투어 신문을 펼쳐든 사람들의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것은 신문 기사가 아니었으니까요. 바로 1면 중앙에 배치된 독특한 그림. 한 칸을 가득 채워 그린 개화기 신사의 모습과 인물에서 뻗어나온 선을 따라 쓰여진 글자들이죠. 그것이 바로 최초의 만화였습니다. 일본의 내정간섭이 극도에 달하며, 국민들의 불안감이 높아가는 가운데 애국단체 대한협회가 발간한 ‘대한민보’ 창간호가 파격적인 선택을 한 것이죠.”우리나라 시초 만화의 내용은 이랬다. ‘국가 정세를 바르게 이해하고, 한민족의 혼을 통합하여 백성의 목소리를 모아 보도 내용을 다채롭게 하겠다’다만, 한국 역사상 최초의 만화는 지난 1990년 충북 선산에서 발견된 의열도(義烈圖)로 여겨진다. 의열도는 조선시대 초 1745년, 선산의 부사였던 권상하가 지역에 내려오는 각종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서민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일부 이야기는 그림으로 묘사했다. 이 중 주인을 구한 소 이야기를 담은 의우도와 주인을 구한 개 이야기를 담은 의구도는 사실상 4컷 만화다. 하지만 의열도는 어디까지나 최초의 한국 만화였을 뿐, 다른 작품으로 이어지는 뿌리가 되거나 훗날 한국 만화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했기 때문에 한국 만화의 시초라고 보긴 어렵다. □ 그후 100년, 한국 만화 산업은 세계 5위한국콘텐츠진흥원에 따르면, 2019년 기준 세계 만화 시장의 규모는 78억7천800만 달러(약 9조2천억원)로 추정됐다. 이것도 순수한 만화 콘텐츠 시장 규모만 따진 것이다. 여기에 지식재산권(IP)과 부가가치를 합치면 웹툰 시장 규모는 훨씬 더 커진다. 물론 지식재산권 전체 만화 콘텐츠 시장의 절반 이상인 40억1천800만 달러를 일본이 차지할 것으로 예상됐다. 2위는 마블코믹스와 DC코믹스의 본고장인 미국(10억2천700만 달러·약 1조2천억원), 3위는 인구 대국인 중국(8억6천만 달러·약 1조100억원)이 차지했다. 한국은 2018년 3억1천300만 달러로 6위였지만, 2019년에는 5위로 올라섰다.“아마도 뿌리 깊은 천시 때문일 겁니다. 과거에도 글자를 모르는 백성에게 그림으로 교화한다는 사상이 있었잖아요. 만화 역시 배우지 못한 사람들이 보는 것이라는 풍조가 있었죠.”실제로 만화에 대한 저질시비는 상당히 뿌리깊은 악습이었다. 1920년대 조선일보에 4컷 만화 ‘멍텅구리’ 시리즈를 연재했을 때에 일부 식자층에게 ‘어른들을 단순 사고만 해대는 바보처럼 묘사하고 미련하게 표현했다’는 식으로 만화의 저질성이 지적된 바 있었다. 그러나 본격적인 비판은 상업 어린이 만화 시대가 도래한 1948년 7월 5일에 발행된 잡지 ‘백민(白民)’에 실린 수필가 양미림의 글 ‘만화시비’였다.「끝으로 결론삼아 몇 가지 만화에 대한 공통된 시비를 요약해 말해보면 첫째로 그 제재가 허무맹랑한 것과 미신적 내지 비과학적인 내용인 점이며 그 위에 또 회화예술의 소양이 매우 부족한 솜씨로 그려진 졸렬한 색채. 제멋대로의 사투리와 한글 철자법 사용 등이다. 감수력이 강렬하고 예민한 청소년들에게 주어지는 더구나 정화가 아닌 만화그림인 즉, 그 저작자와 출판자는 잘 팔리는 데만 정신이 팔리지 말고 모름지기 그 영향의 결과까지를 고려에 넣는 양심적 출판행동을 해야 할 것이다. (양미림의 ‘만화시비 중에서’)」하지만 2021년 현재 한국 만화 시장은 평균 1.5% 이상의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이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 더욱 그러하다. 만화 시장 상위 10개국 중 가장 높은 성장률인 것으로 추정되고 있기도 하다. 특히, 한국 웹툰사들의 수출 성과가 가시화하고 있다는 점이 기대 요인이다. 웹툰은 한국이 개발해 해외에 진출한 플랫폼이라 한국 기업이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한국이 선점한 시장이기 때문에 시장이 형성되면 한국이 차지할 파이가 크다.업계 관계자는 “해외 디지털만화는 종이만화를 단순히 모니터로 옮긴 형태로 소비돼 왔지만 한국 웹툰은 모바일 환경에 최적화한 플랫폼을 선보였다”고 설명했다.“지금 이현세나 박봉성, 허영만 등 만화가들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없을 겁니다. 하지만 전선욱, 주호민, 이말년 등의 이름은 젊은층 사이에서 유명하죠. 이들의 수익도 상상을 초월합니다. 일부 인기 작가들은 강남에 빌딩을 가지고 있다고도 하더라구요.” 2008년 서울 강동구 주민등록증을 받은 달려라 하니. □ 코끝을 간지르는 추억의 만화아기공룡 둘리와 달려라 하니, 천방지축 하니, 떠돌이 까치 등 우리의 눈과 귀를 브라운관 앞으로 모이게 하는 것들은 많이 있었다. 지금도 일부 사람들은 유튜브 등 동영상 스트리밍 사이트를 통해 과거의 추억에 젖어들고는 한다. 웹툰이 만화 시장을 접수한 2천년대 이후의 추억은 영화나 드라마로 나타났다. 인기 웹툰이 영화화되고 드라마화된 것이다.지난해 글로벌 인기 웹툰 ‘여신강림’은 동명의 드라마로 첫 선을 보였었고, 글로벌 누적 조회 수 12억뷰를 자랑했던 웹툰 ‘스위트홈’은 넷플릭스에서 인기를 끌었다. 올해도 마찬가지였다. JTBC 월화드라마 ‘선배, 그 립스틱 바르지 마요’는 네이버 시리즈 웹소설을 원작으로 했다. 이외에도 웹소설 ‘전지적 독자 시점’은 지난해 9월 영화 ‘신과 함께’ 제작사 리얼라이즈픽쳐스와 극장용 장편 영화 5편 제작에 대한 판권 계약을 맺었다.그렇다면 우리의 추억을 자극할 수 있는 만화는 어떠한 것이 있을까. 우선 ‘검정 고무신’은 어떠할까. ‘검정 고무신’은 가난했지만 행복했던 1969년을 배경으로 기영이와 기철이 형제의 풋풋한 성장 이야기를 들려주는 가족 만화다. 애니메이션으로도 제작됐다. 이영일(필명 도래미)이 스토리를 쓰고 이우영이 그렸다. 1992년 소년 챔프에 연재된 이후 2006년까지 연재해 한국 코믹스 만화 사상 최장수 연재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특이한 것은 아동용 만화임에도 불구하고 “엄마 나 군대가”, “으~ 술이 안 깨”, “진노 쓴물”과 같은 말이 등장한다. 3기의 ‘월남에서 돌아온 김상사’ 편에서는 도승이가 기철이에게 껌과 초콜릿을 줘서 계급이 상승하는 장면 등 풍자적인 모습도 나온다.‘달려라 하니’는 이진주 작가가 그린 순정만화다. KBS에 의해 만화 영화화된 초기 방송용 애니메이션이기도 하다. 어린 나이에 어머니를 여읜 소녀 주인공 하니가 역경을 딛고 육상 선수로 성장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만화는 86년 아시안 게임과 88년 서울 올림픽을 앞둔 시점인 1985년부터 1987년까지 만화 잡지 ‘보물섬’에 인기리에 연재됐으며, 1988년 만화영화가 되었다. 특이한 것은 해당 만화의 출판사가 육영재단이라는 점이다.2천년대 이후에는 만화보다는 웹툰이다. 요사이 만화는 웹툰과 동의어로 쓰이는 것 같기도 하다. 2천년대 이후 웹툰의 추억은 무엇이 있을까.호연 작가의 ‘도자기’는 수묵화 같은 느낌의 필치와 아기자기한 그림체로 한국의 도자기에 관해 다루는 웹툰이다. 단순한 그림체가 주는 편안함과 섬세한 내용이 주는 잔잔한 감동, 기발한 상상력으로 풀어가는 도자기의 세계에 빠져들게 된다. 2007년 1월에 연재를 시작해 9월까지 총 93화로 완결됐다.군대 생활을 기반으로 한 웹툰도 빠질 수가 없다. 그 시초격이라고 할 수 있는 ‘꾸나꼬무이야기’는 작가 겔부가 2006년부터 2012년까지 스포츠 투데이에 연재한 웹툰 형식의 만화다. 요사이에는 넷플릭스에서 드라마화된 ‘디피(D.P.)’도 화제다. ‘디피(D.P.)는 작가 김보통의 원작 웹툰 ‘디피: 개의 날’을 기반으로 한다./박순원기자 god02@kbmaeil.com

2021-10-19

하태환, 문달식… 짧지만 강렬한 발자취

1952년 개헌에서 대통령 직선제와 양원제가 채택됨으로써 국회는 민의원과 참의원으로 나눠지지만, 1954년 5월 20일 제3대 선거에서는 민의원 의원을 선출하는 선거만 실시된다. 이 선거에서 정당 공천제가 처음 실시되는데 자유당이 제1당, 민주국민당이 제2당이 된다. 임 : 1954년 제3대 민의원 의원 선거에서 영일군 갑구에서는 박순석, 을구에서는 김익로가 자유당 공천을 받아 당선됩니다. 하지만 포항은 무소속의 하태환(41·일본 리쓰메이칸대학 법문학부 졸·동지상고 교장)이 자유당 공천을 받은 김판석 의원을 누르고 당선되는 이변이 일어납니다. 흥미로운 대목이 아닐 수 없습니다.박 : 당시 선거판이 치열했고 자유당 횡포가 심했어. 하태환은 제헌의원 선거와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영일군 을구에 출마하지만 제헌의회 때는 사퇴하고 제2대에서는 낙선의 고배를 마시지. 하지만 하태환은 보통 인물이 아니야. 어려운 형편에 일본 유학을 다녀왔고, 한쪽 다리가 불편한 몸으로 동지교육재단과 포항대학을 세웠지. 그리고 정치에 뛰어든 사람이야. 위트와 유머가 넘치고 선거에는 귀재였어. 타고난 정치인이 아닌가 싶어. 1954년 선거 막판에 묘한 일이 벌어져. 하태환 후보의 선거운동용 차량이 사라진 거야. 몸이 불편한 사람이 차량이 없으니 선거운동을 어떻게 하겠어. 난리가 났지. 그런데 그 차량을 사흘 만엔가 동빈내항에서 건져낸 거야. 이 사건 때문에 포항이 시끌벅적했어. 선거 막판에 대형 이슈를 만들기 위해 하태환 측에서 자작극을 벌였다는 소문이 돌았어. 하지만 내 판단에 그 소문은 헛소문이야. 몸이 불편한 하태환 후보가 스스로 차량을 수몰시켰다는 것은 납득할 수 없지. 여하튼 그때 무소속이 자유당을 누르고 당선된다는 것은 굉장한 사건이었어. 하태환은 국회의원 당선 후에 자유당으로 옮기고 국방위원장이라는 노른자위 상임위원회의 위원장이 되지. 하지만 4·19혁명 후에 정치적 날개가 꺾이고 말아. 당시 선거 상황을 ‘포항시사’에서는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이 선거에서는 집권 자유당이 공천한 후보자를 당선시킬 목적으로 무제한의 공권력이 동원되었다. (중략) 심야에 후보자의 선거운동용 차량이 동빈동 항만에 수장되는 보기 드문 사건이 일어났으며 선거 당일에도 투표 방해와 공공연한 무더기표 투입 등이 있었다. 그러나 지나친 물리적 관권 개입이 민심을 극도로 자극하여 많은 시민이 탄압받는 후보자를 동정하고 그 선거운동을 자원하는 사람이 속출하고 지지세가 급증하여 선거는 예상 밖의 결과를 낳았다.-‘포항시사’, 1999, 534∼535쪽.임 : 하태환이 학교를 운영하고 있었던 것은 선거에 이점이 되었겠습니다.박 : 내가 그때 동지중학교 3학년이었어. 선거운동이 치열하게 전개될 때였는데 담임 선생님이 종례하면서 저녁 먹고 학교로 나오라고 하는 거야. 누군가 학교에 불을 지른다는 소문이 돌았거든. 자유당 횡포가 심해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상황이었어. 투표일에는 오전 수업을 마치고 투표소 주변을 돌기도 했지. 동지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투표소를 어슬렁거리면 상대측에서 겁이 났을 거야. 학생들은 한마음으로 우리 학교 선생님(하태환)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지.임 : 포항시 선거구 낙선자 중에 소방서장 문달식(37·포항수산대 졸)이란 인물이 있습니다.박 : 공무원 생활을 하다가 소방서장을 했지. 수산업도 꽤 크게 했고. 무엇보다 유도에 큰 발자취를 남겼어. 유도 6단이었거든. 대한유도회 창설의 근간을 만들었고 포항에 유도를 도입했지. 덕분에 포항이 유도가 아주 강한 도시가 되었어. 1967년 도쿄 유니버시아드대회 라이트헤비급에서 은메달을 획득해 장안의 화제가 되었고, 대한체육회장을 지낸 김정행이 문달식의 제자야. 해마다 포항에서 ‘동암(東庵) 문달식 추모 전국유도대회’가 열리는 것은 이와 같은 이유에서지. 포항시의 초대 민선 시장은 박일천이다. 1952년에 지방자치제가 처음 시행되면서 그해 5월 20명의 시의원이 간접선거로 시장을 선출하는데, 이때 당선자가 박일천이다. 문달식은 1960년 4·19혁명 후 5월 13일 제8대 포항시장으로 취임해 그해 12월 1일 임기를 마친다. 그리고 12월 19일 포항시장 선거에 출마하는데, 이 선거가 시민이 직접 시장을 선출하는 최초의 선거다. 이 선거에서 문달식이 당선되어 제9대 시장으로 12월 30일 취임하지만 이듬해 5·16 군사정변으로 인해 6월 20일부로 사임하게 된다. 문달식은 두 차례 시장에 취임하지만 임기는 13개월 정도에 불과했다.임 : 1958년 5월 2일 제4대 민의원 의원 선거가 실시됩니다. 그 이전의 선거 결과를 보면 1, 2위 득표차가 얼마 나지 않았는데 이 선거에서는 득표차가 굉장히 크게 납니다. 포항시, 영일군 갑·을 3개 선거구 모두 자유당 공천자들이 압승을 거두는 것이지요. 포항에서는 하태환이 재선에 성공하고, 영일군 갑구에서는 박순석, 을구에서는 김익로가 당선됩니다. 그런데 영일군 을구에서 ‘재재선거’라는, 지금은 상상하기 힘든 일이 벌어집니다.박 : 자유당의 횡포를 당해낼 재간이 없었지. 오죽하면 선거를 두 번이나 더 치렀겠나. 민주당에서 김상순(41·하얼빈국립대학 3년 졸) 후보가 등록했는데 무효 처리가 된 거야. 그 바람에 김익로가 압승했지. 그런데 김상순이 등록 무효가 부당하다고 소송을 제기해서 승소해. 다시 치른 선거에서 김익로가 300여 표차로 겨우 당선되었어(김익로 1만 4310표, 김상순 1만 3986표). 그런데 이게 끝이 아니야. 김상순 측이 재선거도 불법으로 치러졌다고 소송을 제기해 또다시 선거 무효 판결을 받아냈지. 재재선거는 1960년 1월 23일 실시되는데, 국민 여론이 어떠했겠나. 자유당은 악화된 여론을 잠재우기 위해 김익로 대신 김장섭을 공천했고, 민주당도 타 지역 출신인 현석호를 공천했는데 김장섭이 큰 표차로 당선되었지.임 : 당시에 부정선거가 어느 정도 심했습니까?박 : 그때 현장을 취재한 기자가 ‘동아일보’ 이만섭이야. 8선 의원으로 국회의장을 지냈지. 이만섭이 1932년생이니 젊은 시절의 이야기지. 이만섭이 재선거 개표장인 대송초등학교에 몰래 들어갔는데 밤 10시께가 되자 갑자기 전원이 차단되고 투표함에 정식 개표원이 아닌 사람의 손이 막 들어가더라는 거야. 그 장면을 이만섭이 카메라로 찍고는 필름을 교실 바깥에 대기하고 있던 동료에게 던졌지. 그 동료는 곧바로 대구 팔공산 송신소로 달렸고, 그곳에서 ‘동아일보’ 본사로 넘겼어. 다음 날 ‘동아일보’에 그 사진이 특종으로 실렸지.당시 상황을 다음의 글이 실감나게 묘사하고 있다.1958년 5월의 4대 국회의원 선거는 엉터리였다. 대리투표가 비일비재했고 야당 참관인을 쫓아내고 투표함도 바꿔치기를 했다. 부정선거에 대한 비판 여론이 거세지자 그해 9월 경북 영일군에서 재선거가 치러졌다. 당시 이만섭은 현장 취재를 갔다. 자유당 정권이 동원한 정치 깡패들이 개표장의 전기를 끊고 모아둔 표 중 민주당 표만 가지고 달아나자 민주당 참관인이 “표 도둑이야!”라고 고함쳤다. 이만섭도 “이 표 도둑놈들아” 하고 외치며 쫓아갔다. 취재만 하면 되는 기자가 울컥하는 마음에 뛰어갔다가 깡패들한테 많이 얻어맞았다. 몇 시간 후 개표가 재개됐다. 선거관리위원회에서 사과를 돌리자 이만섭은 분한 마음에 “나쁜 놈들”이라며 사과를 내던지며 항의했다. 그 후 자유당에서 “이만섭이 선거 개표를 방해했다”며 선거법 위반 혐의로 구속하라고 해서 열흘간 피해 다녔다.- 최영훈, ‘영원한 청년, 내가 본 이만섭 의장’, ‘용기와 양심의 정치인 청강 이만섭’, 청강 이만섭 평전 간행위원회, 박영사, 2018, 394쪽.임 : 김상순 후보는 비록 낙선했지만 이만섭 기자가 아주 고마웠겠습니다.박 : 이만섭과 김상순의 우정은 이만섭이 국민당 총재가 될 때까지 이어졌지. 내가 황대봉 국회의원 보좌관으로 있을 때 마침 이만섭 의원이 나를 불러 “자네 포항에서 왔나, 혹시 김상순을 아나?”라고 묻길래 “가끔 인사드린다”고 했더니 옛일을 이야기해주더군. 박이득1942년 포항에서 태어나 서울 인창고와 건국대 국문학과를 졸업했다. 포항 MBC, ‘영남일보’기자를 거쳤으며, 한국예총 포항지회장, 경북문인협회 부회장, 한흑구 선생 문학비 건립추진위원장, 포항독립운동사 발간 추진위원장을 역임했다. 수필가로 ‘월간문학’ 등에 작품을 발표했고, 제1회 애린문화상을 수상했다. 최세윤 의병장 기념사업회 이사장, 포항문화원 부설 포항문화연구소 연구위원을 맡고 있다.대담 : 임종석(경북매일신문 부사장) / 정리 : 최미경(시인·동화작가) /사진 : 김훈(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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