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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ㆍ특집

“눈송이 날리는 날, 과메기 먹으니 살살 녹네 녹아”

포항`구룡포 과메기`가 27일 서울의 심장부 서초구에 등장하자 5천여명의 참석자들은 “역시 최고”를 연발했다.개막식이 열린 이날 오후 1시 행사장에는 때마침 함박눈이 내리면서 재경출향인을 비롯해 정·관계 인사, 서초구민들은 겨울진객 과메기를 통해 `화이트 과메기`를 만끽했다.특히 이날 행사에서는 포항물회, 구룡포대게, 문어 등 포항의 수산물이 당일 직배송돼 서울시민들의 입맛을 사로잡았고, 퓨전 댄싱팀과 치어리더 공연, 인기가수의 노래 한마당 등 식전행사, 다양한 경품을 내건 행운권 추첨행사가 펼쳐지면서 출향인들에게는 고향의 정을, 서울시민들에게는 포항의 푸짐한 인심을 안겼다. ◆`화이트 과메기`에 축포도 `펑펑`포항 구룡포 과메기가 서울에 상륙한 27일, 과메기와 함께 서울을 찾은 이가 있었다. 바로 `함박눈`. 며칠전 진눈깨비가 서울에 내린적이 있었으나 그 양이 적어 이날 내린 눈이 사실상 서울의 첫눈이었던 셈.급기야 천둥번개까지 내리치는 최악의 날씨 상황이었지만 한편으로는 `화이트 과메기`의 상륙에 하늘이 축포까지 쏘아주는 셈.이 같은 날씨에 축사를 진행하는 모든 내빈들이 한마디씩 거들기도.박승호 시장은 “과메기는 춥고 눈발이 날리는 이때 제맛”이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고, 진익철 서초구청장은 “날씨가 춥고 하늘에서 눈이 좀 와야 제철”이라고 거들었다.정치5단인 이병석 국회부의장은 한걸음 더 나갔다. 이 부의장은 “하늘의 천기에 대해서 말을 잘못하면 큰일난다”고 말했으며, 서초구의 김회선 의원은 “날씨 진짜 죽입니다”로 인사를 대신했다.축포와 함께 등장한 강석훈 의원은 갑자기 내리는 우박과 휘청거릴 정도의 바람에 준비한 인사말을 못하고 단 한마디로 끝냈는데, “오늘은 과메기나 실컷 먹읍시다”라고. ◆자원봉사 풍년이날 행사에서는 `포항아줌마`들이 단연 큰 역할. 재경포항향우회 여성회원들은 영하의 날씨지만 과메기 등을 시식하기 위해 몰려드는 손님들을 대접하느라 입김을 날리며 완벽한 서비스 정신을 발휘.여기에다 행사 시작 전 포항에서 대형 버스를 이용해 상경한 포항서포터스 회원들도 가세해 손님맞이는 물론, 서로 안면을 익히고 출신 학교와 고향을 확인하면서 향우회 축제장을 연출. 향우회 인사들은 어깨동무를 하며 함박눈을 배경으로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누르며 추억만들기에 나서기도.이종칠 재경포항향우회장은 “포항과메기가 서울에 올라온 것도 반갑지만 포항의 특산물을 출향인과 서울시민들에게 나누는 재미에 힘든 줄도 모르겠다”며 함박웃음. ◆과메기만 있나? 우리도 있다서초구청 광장에는 과메기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과메기에 못지 않게 사랑을 받은 수산물은 바로 대게. 본행사가 끝나면서 포항에서 올라 온 `귀한 대게`시식회가 열리자 서울시민들은 일제히 환호성을 지르며 운집.행사장 한켠에서는 또 추운 날씨를 녹여줄 따끈한 어묵과 국물이 기다리고 있었고, 초장에 곱게 찍어진 오징어도 군침을 삼키게 했다.이외에도 행사장 한 곳에서는 대중가요에 맞춰 댄스로봇이 신나는 춤을 추면서 흥을 돋우었고, 과메기로 만든 비누도 큰 인기.과메기 등 포항수산물 판매코너에서는 몰려드는 인파로 준비한 물량이 일찌감치 동이나는 등 즐거운 비명. 시식회장에서 과메기 및 오징어 맛에 매료된 서울시민들은 포항수산물의 맛을 잊지못한 듯 판매장에 길게 줄을 늘어선 채 특산품을 구입했으며, 궂은 날씨로 손을 호호 불며 판매에 나섰던 생산자들은 “준비된 물량이 한정돼 더 이상 판매할 수 없어 안타깝고 미안했다”고 한마디씩.◆우리 지역에서도 행사 합시다서초구청 행사장의 인파를 시기하듯 자신들이 사는 곳에서도 과메기 행사를 하자는 제안도 봇물.과메기와 각종 수산물 시식에 이어 가족들과 함께할 수산물을 구입했다는 중구의 한 시민은 “얼마전까지는 청계천에서 행사를 했던 것 같은데, 청계천에는 언제 하나요?”라고 묻기도. 이어 송파구에서 왔다는 시민은 “송파구도 좋아요. 올림픽 공원에서 행사를 하면 얼마나 좋은데요. 내년에는 송파에서 한번 하시죠”라고 제안.포항시·서초구 도시발전 민간교류 협력경북매일신문이 주관한 `포항 과메기 시식 행사`로 인연을 맺은 포항시와 서초구가 실질적인 교류를 위한 준비작업에 착수했다.27일 박승호 포항시장과 진익철 서초구청장은 `2014 과메기 시식 행사`에 앞서 간담회를 갖고, 청소년 교류와 주민 상호방문 등 적극적인 협력 관계를 유지키로 결정했다.특히, 이번 교류는 지난 7월 27일 자매결연한 포항시와 서초구청이 민간부분의 적극적인 교류를 통해 도시 발전을 꾀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우선, 포항시와 서초구는 포스코와 포스텍 등 에너지 관련 사업을 적극 협력키로 하고, 미래의 동량인 청소년들의 교육에도 힘쓰기로 결정했다.아울러 내년부터는 포항시와 서초구의 청소년들이 `홈스테이 방식`으로 상호 방문하는 것을 구상키로 했으며, 이를 정례화한다는 방침이다.뿐만 아니라, 포항시와 서초구의 산하기관은 물론 민간의 상호 방문도 적극 추진키로 했다. 포항시민들이 서초구에 다녀가는 것은 기본으로, 서초구의 주민들이 포항운하를 관광하고 죽도시장을 들러 장보기를 하는 등의 실질적인 교류도 추진한다.이외에도 양 측은 야구와 축구 등 스포츠 교류에도 힘쓰기로 했으며, 이를 위해 양 도시에 위치하고 있는 스포츠 구단의 친선시합도 준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박승호 포항시장은 “구체적인 것은 곧 실무진에서 논의키로 했다”면서도 “포항에 대한 이미지를 좋게 가져오고, 양측의 교류가 차질없이 진행되도록 힘쓸 것”이라고 말했다.진익철 서초구청장도 “실질적인 양 도시 간의 교류가 이어져서 포항시 구석구석과 서초구 구석구석이 상생협력 발전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박순원기자 god02@kbmaeil.com

2013-11-28

`대구 속 강원도` 年 수천억 성장엔진으로 떠오르다

대구의 명산 팔공산은 대구 동구를 비롯한 군위, 칠곡, 영천, 경산 등 4개의 시·군에 걸쳐 있는 큰 산이다. 정상은 1천193m의 비로봉을 중심으로 동서로 봉우리들이 솟아 능선을 이루고 총 면적은 122.08㎢에 달하며 전체 능선길이만도 20㎞에 이른다. 팔공산은 예로부터 부악, 중악, 공산, 동수산 등 여러 이름으로 불렸고 남쪽에 문암천, 북쪽과 동쪽에 한천, 남천, 신녕천 등 여러 하천과 계곡을 품고 있다. 특히 팔공산의 명물 갓바위는 `한가지 소원은 반드시 들어준다`는 소문으로 전국서 참배객들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곳이다.신라 후대에 제작된 불상인 갓바위의 정식명칭은 관봉석조여래좌상으로 불리고 좌대의 크기를 포함해서 5m가 넘는 거대한 여래상이 머리 위로 갓을 쓴 듯 판석을 얹은 이 모양에서 이름이 유래했다. 또 조계종 제9교구 본사인 동화사와 조계종 10교구 본사인 은해사, 조선 왕실과 인연을 맺으며 보호를 받았던 파계사, 비구니 사찰인 부인사 등의 큰 절들을 안고 있다. 여기에 조선시대 산성인 가산산성과 천주교 신자들의 피난처이자 성지인 한티성지 등 여러 문화유산이 팔공산 자락에 산재해 있다.심지어 동구 둔산동 팔공산 자락에 있는 경주 최씨 칠계파 종가가 있는 옻골마을과 전국 2위의 체리 생산지인 상동마을, 대구사과의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평광동, 우리나라 천연기념물 제1호 측백수림이 있는 곳도 팔공산이다.신서혁신도시·포스코더샾 3차례 분양성공은 팔공산 프리미엄 덕분백불고택·둔산동 체리·평광동 사과 등 개발에 묶인 현실 극복사례글 싣는 순서① 신서혁신도시와 이시아폴리스②동구평생학습축제③동촌 유원지의 대변화④동대구역세권 개발⑤팔공산 권역의 상전벽해 □  팔공산은 성장동력의 든든한 밑거름팔공산 자락은 유명 사찰 등을 제외하면 대부분 지역이 대구에 사는 사람들조차 방문한 적이 없을 정도로 산골 분위기가 물씬 풍기고 이곳 주민들 스스로도 `대구 속 강원도`라고 부른다.최근 팔공산 올레길과 왕건길 등을 통해 팔공산의 오지들이 조금씩 알려지기 시작했고 인터넷의 여행 블로그들에 소개되면서 찾는 이들도 많아졌다.성장 동력에는 공단을 위시한 택지개발 등이 주를 이루지만 이의 바탕이 되는 것이 강과 산이라고 본다면 팔공산은 대구의 신성장 동력의 든든한 버팀목이자 바삐 살아온 이들에게 힐링할 수 있는 대구지역 최적의 공간일 수밖에 없다.이시아폴리스에서 분양한 포스코 더샾 아파트가 3차례 분양 모두를 성공적으로 끝낸 것도 바로 팔공산이 인접했기 때문에 가능했고 대구 신서혁신도시 입주 공공기관 역시 팔공산이라는 든든한 배경과 혜택을 무시할 수 없었다는 것이 건설 관계자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이시아폴리스 끝자락 상가가 들어선 팔공산 도입부분에는 길 양옆으로 아웃도어 매장들이 빼곡히 자리를 잡고 있다. 이 곳은 전국의 아웃도어 제품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는 전시장으로 형성돼 각 브랜드별로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고 국내 들어온 외국 브랜드 역시 대부분 이곳에 자리를 잡는 등 아웃도어와 관련한 새로운 상권으로 형성된 지 오래다. 특히 이곳의 아웃도어 매장들은 각 브랜드마다 전국 판매 1위를 기록하는 매장들이 거의 대부분이라고 할 정도로 많아 이제 아웃도어 상권에서 팔공산을 빼놓고는 말할 수 없을 만큼 성장세를 높이며 지역 경제에도 도움을 주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개발제한이 오히려 문화적 가치 높여이런 팔공산도 최근 10여년 전만 하더라고 동화사와 갓바위를 제외하곤 볼 것이 없고 항상 개발에 뒤처진 오지나 다름없었다.팔공산 지역이 항상 개발에 뒤처진 이유는 바로 현재 대구국제공항에 있다. 이 일대는 일제 강점기인 지난 1929년 일본항공 주식회사가 도쿄와 중국 대련 간 항공코스를 개발하면서 서울과 함께 대구에서 노선을 개척해 일찌감치 공항 자리로 낙점됐고 대구공항이 들어서면서 각종 개발에 제한을 받기 시작했다. 이어 팔공산은 지난 1980년 5월 도립공원으로 지정된 이후 지난 1981년 대구시가 경북도에서 분리되면서 대구시자연공원(3만5천365㎢, 28%)과 경북도도립공원(9만303㎢, 72%)으로 각각 관리되는 등 더욱 개발의 뒷전으로 밀려나 있었다.그러나 이 같은 현상으로 인해 경주최씨 칠계파 종가인 백불고택이 남아 있을 수 있었고 먹고살기 위한 지역민들의 노력이 체리 생산 전국 2위를 차지했으며 대구 도심에서는 볼 수 없는 대구사과의 마지막 보루가 되는 역설적인 현상까지 빚어졌다.이제는 그동안의 팔공산 인근 주민들의 희생으로 전국적인 명물반열에 올라섰고 한번쯤은 찾아보고 싶은 장소로 주목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국립공원 되면 대구·경북 발전의 토대여기에다 최근 팔공산에 희소식이 전해지고 있다. 개발에 대한 찬반양론이 있지만 바로 팔공산 국립공원지정을 위해 대구시와 경북도가 손을 잡고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이다.팔공산이 국립공원이 되면 연간 투입되는 대구시와 경북도가 투입한 약 100억원에 달하는 예산을 절감할 수 있다. 또 대구시와 경북도가 매년 투입해 온 예산을 훨씬 뛰어넘는 수백억원의 재정적 지원이 정부로부터 이뤄져 지자체에서 해결할 수 없었던 여러 가지 사업을 적극적으로 추진할 수 있게 된다. 이어 보다 효율적으로 팔공산의 자연과 환경자원의 보전은 물론이고 국립공원 승격에 따른 브랜드 가치 상승으로 인한 지역경제 활성화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이는 곧바로 지역경제 활성화로 인한 양질의 일자리 창출로 이어지며 지역의 청년에게 삶의 희망과 미래에 대한 비전을 제시해 줄 수 있는 팔공산이 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런 현상은 자연스럽게 지역사회의 선순환구조로 이어질 수 있고 그동안 생산성 부분에서 꼴찌를 하는 대구와 새로운 도약을 꿈꾸는 경북도의 성장실현에도 큰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전망하고 있다.□ 팔공산 가치는 연간 3천548억원에 달해그동안 지자체가 관리하던 것을 국가가 관리 책임을 지기 때문에 지자체로서는 연간 수십억원의 경비도 절감할 수 있고 일부 사유재산 행사에는 제한이 따르겠지만 길게 볼 때는 대구시와 경북도 모두에 도움이 되는 것은 틀림없다.바른사회하나로연구원의 최근 연구결과에 따르면 팔공산 국립공원화에 따른 지역경제에 미치는 파급 효과는 생산파급 효과 2천159억원을 비롯해서 소득파급 효과 381억원, 부가가치파급 효과 1천8억원 등 연간 모두 3천548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고용 창출도 1천808명에 달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을 정도로 팔공산은 이제 대구 신성장 동력의 밑거름에서 주역으로 서서히 부상하고 있는 상황이다.이재만 대구 동구청장은 “팔공산은 동구 발전의 핵심이자 든든한 버팀목으로서 대구 시민의 자부심을 키워주는 인문학의 보고”이라며 “팔공산에 산재해 있는 고려 태조 왕건과 관련된 스토리텔링과 관광 자원은 앞으로 대구·경북을 이끌어 가는 성장엔진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팔공산 문화·자연·환경 등 우리민족과 후손들의 자산"이재만 동구청장 인터뷰.이재만 대구 동구청장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팔공산에 대한 자랑을 끊임없이 펼친다.대구의 진산이라는 점도 있지만, 대구의 신성장 동력으로 부상하는 동구의 든든한 자원이자 버팀목으로 팔공산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이 청장은 “대구 동구는 동대구환승센터 건립을 비롯한 이시아폴리스와 신서혁신도시 등 대구 발전의 핵심으로 부상하고 있다”며 “K2이전을 통해 마무리 되겠지만 동구는 대구 신성장의 미래이자 현실이 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또 “대구 동구의 발전이 대구 발전의 키를 잡고 있는데는 무엇보다도 팔공산의 존재가 가장 큰 역할을 하고 있다”며 “팔공산의 문화·자연·환경 등 수많은 자산은 대구시의 자산이라기 보다는 우리민족과 후손들의 자산이다”고 강조했다.특히 이 청장은 “팔공산 지역은 그동안 여러가지 제약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었지만 동구주민들은 이를 슬기롭게 극복해 다양한 문화자산으로 조성해 놓았다”며 “백불고택과 둔산동 체리, 평광동 사과 등이 바로 동구주민들의 개발에 묶인 현실을 극복한 가장 큰 사례”이라고 주장했다.이어 이 청장은 “팔공산의 가치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대구의 자랑이며, 과거 고속성장의 이면에 가려진 아픔들을 치유하는 대구시민들의 힐링의 공간으로서 역할도 해왔다”면서 “앞으로도 팔공산은 이같은 문화적 가치를 보존하는데 주력해야 할 것”이라고 언급했다.아울러 이재만 대구 동구청장은 “대구 신성장 동력인 동구는 이제 앞으로 나아갈 길이 정해져 있는 만큼 그 가능성에 박차를 가할 일만 남았다”며 “대구시와 동구의 미래는 뒷 배경이 되는 팔공산을 중심으로 펼쳐져 대구·경북이 함께 발전하는 계기도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끝/김영태기자 piuskk@kbmaeil.com

2013-11-26

상주시, 모든 시민 고루 잘사는 행복도시 건설 매진

상주시는 새정부 출범과 함께 핵심 국정과제로 떠오르고 있는 서민경제 안정과 일자리창출을 위해 혼신의 노력을 다하고 있다. 시는 청년희망 일자리, 낙동강 新일자리, 사회적서비스 일자리, 친서민 일자리 등 총 3천600여개의 일자리를 창출해 나가면서 귀농귀촌과 농산물 해외수출을 통해 농촌경제를 부활시키고 있다. 특히 신낙동강 시대, 낙동강을 중심으로 각종 문화관광사업을 차질없이 시행해 새 일자리와 함께 관광객 유치, 농특산물 판매로 이어지는 1석2조의 성과를 올리고 있다.新낙동강시대 대비 문화관광사업 차질없이 추진 국내외 기업 잇단 유치로 일자리 창출 괄목성과귀농·귀촌 1번지 각광… 농특산물 수출도 활력□ 일자리 창출·지역경제활성화상주는 전국 어디서나 2시간 내 도달할 수 있는 물류와 교통의 Hub역할을 하고 있다. 여기에다 저렴한 부지가격과 적극적인 예산지원, 경북대 상주캠퍼스의 유능한 인재보유 등으로 대기업은 물론 많은 중소기업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도시 중 하나다.지난 5월 13일에는 상주시와 중국 절강상산자연식품유한공사와 ㈜한미래식품 간 함창 제2농공단지내 수산물(조미김) 제조 및 가공공장 건립을 위한 MOU를 체결했다. 중국기업인 절강상산자연식품유한공사는 중국의 절강성에 본사를 두고 있으며 한국식품과 중국현지 생산제품을 수입 유통하는 기업으로 월마트, 롯데마트, 까르프, 테스코, 대윤발 등 중국 전역의 1천300여 할인점에 입점해 있고 조미김과 유자차 등 연간 520만불 규모의 한국식품을 중국으로 수입하고 있는 기업이다. 1천만불을 투자하는 함창 제2농공단지내 수산물 제조 및 가공공장이 건립되면 일자리 창출과 더불어 중국 전역의 1천300여 유통망을 통한 지역 농특산물 진출이 가능할 것으로 기대된다.또 지난 9월 12일에는 한국타이어(주)와 `한국타이어 테스트 엔지니어링 센터` 건립을 위한 투자양해각서를 체결했다. 이 회사는 상주시 일원에 일반산업단지를 개발하고 오는 2020년까지 2천535억원을 투자해 주행시험장을 비롯한 타이어 상품 테스트 및 시험용 타이어 제조 시설 등을 건립해 371명이상의 고용을 창출할 계획이다. 한국타이어(주)와 한국타이어월드와이드(주)는 4개국 7개 공장에서 연간 9천400만개(2013년 예상)의 타이어를 생산하는 국내 1위, 글로벌 7위의 글로벌 Top Tier 기업이다. `한국타이어 테스트 엔지니어링 센터`는 세계 최고 수준의 타이어 상품 테스트 시설로 초고성능 타이어에 대한 극한 성능까지 테스트할 수 있는 규모이며 트럭/버스용 타이어까지 모든 타이어를 테스트 할 수 있는 약 40만평 규모의 시험장이다.또 낙동면 낙동리 일원 11만1천933㎡ 부지에 700억원을 들여 유통시설과 상업시설을 갖추게 될 LS네트웍스 물류센터는 오는 2014년에 준공된다. 물류센터가 정상 운영되면 100여명의 고용창출과 더불어 지역경제에도 활력을 불어 넣을 것으로 예상된다. 또 화산동 일원 33만8천655㎡ 부지에 500억원을 들여 물류시설과 도·소매, 공판장, 기타 지원시설 등이 들어서게 될 상주 종합물류단지도 2014년 준공을 목표로 행정적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낙동강 주변의 다양한 문화관광자원과 함께 국립낙동강생물자원관 등 35개 사업에 1조5천억원이 투자되는 문화관광벨트 조성사업이 성공적으로 마무리 되면 관광객 유치와 함께 지역경제 활성화에도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서민경제 살리기상주시는 지역 일자리 창출에 주력해 온 결과 지난 한해 동안 기업유치 일자리 1천193개와 사회적일자리 628개, 재정지원 일자리 2천672개 등 총 4천493개의 일자리를 창출해 목표대비 125%를 달성했다.이러한 성과를 거둘 수 있었던 것은 획일적이고 단순한 일자리 창출 목표를 지양하고 지역의 특성을 고려해 일자리담당 신설과, 전문 취업상담사 채용, 귀농·귀촌특별지원팀 설치, 일자리뱅크와 구인개척단 운영 등 다양한 인적·조직적 기반을 구축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이에 따라 상주시는 경상북도 일자리창출 2분기 평가에서 최우수기관표창, 경상북도 투자유치대상에서 우수상 수상, 경상북도 중소기업 지원실적 평가에서 우수상, 경상북도 사회적기업 육성 유공기관 및 개인표창 등 다양한 분야에서 수상을 하는 영광을 안기도 했다.상주시는 올해도 지역특성을 최대한 고려해 청년희망 일자리, 낙동강 신일자리, 사회적서비스 일자리, 친서민 일자리 등 총 3천600개의 일자리를 만든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다.□ 전통시장 및 지역경제 활성화시는 최근 대규모 점포와 SSM 등의 진입으로 이중고를 겪고 있는 전통시장을 살리기 위해 환경개선사업과 경영혁신, 다양한 이벤트를 실시하는 등 전통시장 살리기에 주력하고 있다.지난해 중앙시장에는 비가림시설을 설치·보수하고 쉼터를 조성했으며 공성시장 화장실 설치, 함창시장 바닥정비 등 현대화 사업을 펼쳐왔고 특히 전통시장을 찾는 시민들을 위해 풍물거리에 37면의 주정차 공간을 마련했다. 지난 2011년부터 추진하고 있는 중앙시장 공영주차장 조성사업은 4천681㎡의 부지에 일반차량 주차 124대를 포함, 총 137대 규모의 주차공간을 마련했다.시설정비와 더불어 중앙시장 상인회와 긴밀한 협조를 통해 상인대학을 매년 운영하고 있으며 각종 이벤트 행사를 개최해 시민들의 관심과 호응을 얻어 내고 있다.상주시 유통기업상생발전 및 전통사업보존구역 지정 등에 관한 조례를 개정해 의무휴업일 지정 및 영업시간을 제한하는 방안도 강구해 나갈 계획이다.□ 귀농·귀촌인 유치와 농특산물 해외수출상주시는 귀농귀촌특별지원팀과 서울사무소.부산사무소를 운영하면서 지난해 522세대에 966명의 젊고 유능한 귀농인을 유치했으며 올해 들어서도 지금까지 434가구 724명이 이주해 와 지역사회에 활력을 불어 넣고 있다.전국 최고를 자랑하는 포도, 곶감, 오이 등 다양한 품목과 전폭적인 행정지원, 농사짓기에 알맞은 자연조건과 순후한 인심 등으로 예비 귀농인들의 관심을 받고 있는 상주는 귀농.귀촌인 유치와 함께 안정적인 정착을 위해 다양한 지원시책을 펼쳐나가고 있다. 특히 입주자 주도형 소규모 전원마을 조성과 더불어 설계비 감면 등 상주만의 특수시책을 펼쳐 전국 최고의 귀농.귀촌도시로 각광받고 있다.상주시는 미래 생명산업인 농업이 살아 남아야 지역이 번영할 수 있다는 인식 아래 전국 지자체중 최초로 국제통상TF팀을 발족하고 7대전략프로젝트를 수립하는 등 해외수출 확대에 올인하고 있다.상주에서 생산되는 배, 사과, 막걸리, 쌀, 국화, 접목선인장, 복숭아, 포도, 곶감, 기타 가공품 등 10개 주요 품목은 미국, 대만, 동남아, 호주, 아랍권, 유럽 등 아프리카를 제외한 전 세계로 수출되고 있다.성백영 상주시장은 “모든 시민이 골고루 잘사는 행복도시 건설을 목표로 시민 생활안정과 소득증대를 위해 재래시장 활성화와 기업유치, 귀농귀촌인 유치와 농특산물 해외수출 등에 전력을 다해 나갈 것”이라고 각오를 밝혔다.상주/곽인규기자 ikkwack@kbmaeil.com

2013-11-26

가장 완벽한 매복 기습작전, `무적불패 17연대 신화`를 낳다

6·25 전쟁이 발발한지 2주째로 접어드는 1950년 7월중순 북한 제2군단은 조기에 소백산맥을 넘어 아직도 대전과 청주지방에서 분전중인 국군 및 유엔군의 퇴로를 차단, 섬멸전을 전개할 기도하에 그들의 선봉인 제15사단을 속리산 동쪽의 깊은 계곡으로 투입해 상주~김천 축선으로 돌파구를 확대코자 중앙돌파를 계획했다. 이때 국군 제1군단은 이 지역의 적정이 불명해 군단 정찰대로 하여금 화북~화서면 간의 공백지대를 탐색중 14일 정오경에 동비령에 다다른 동 정찰대가 북괴의 첨병소대를 발견하고 이를 기습, 12명의 포로를 사로잡았다. 육군본부는 보은에서 함창으로 이동중인 제17연대를 이곳 화령장에서 정지시켜 정찰대와 함께 이 적을 현지에서 저지 격멸토록 명령했다. 매복 작전을 전개한 연대는 5일동안에 걸쳐서 상곡리와 중달리 그리고 동관리 등을 오르내리며 유리한 지세를 이용한 기습공격으로 그들 제48연대의 주력을 격멸했다. 이어 25일 현지에 도착한 제1사단이 그 임무를 인수해 지연전을 폄으로써 국군은 전선전에 걸쳐 시간 여유를 얻어 제1군단은 안동지구로 이동하고 제2군단은 함창-상주 전선을 맡았다, 또한 미 제24사단을 비롯한 미 제25사단과 미 제1기갑사단도 상주-김천 정면에 병력을 전진하는 등 낙동강 방어선의 형성에 크게 기여했다.北 1개사단 격멸한 5일간 전투, 아군전사자는 4명 불과… 민·관·군 합심 값진 승리전승기념공원을 산악지구 테마공원으로… 전투현장 재현·트레킹 코스도 개발 방침□  1차 교전-상오리 전투화령장은 속리산과 주흘산으로 연결되는 소백산맥 지대를 말하며 800m 고지와 깊은 계곡으로 협로였다.또한 보은~상주 간의 25번 도로와 괴산~상주 간의 977번 도로의 접합점에 있기 때문에 소백산맥 방어에서 중요한 전략적 교통의 요충지였다.1950년 6월 25일 새벽에 불법 기습남침한 북한 인민군은 3일 만에 서울을 점령한 후 7월 중순에 총력을 기울여 소백산맥 일대에 대한 공격을 시도했다.하지만 전력이 부족하였던 국군은 이곳에 방어선을 구축하지 못했고 이점을 간파한 북한 인민군은 국군의 대비가 없는 공백지대인 977번 도로에 예하 15사단을 투입해 조기에 상주를 점령하고 국군이 낙동강 방어선을 구축하기 이전에 대구를 거쳐 부산으로 직행하려고 했다.이러한 상황에서 국군 제2군단 제17연대 제1대대장 이관수 소령은 정찰대를 파견해 때 마침 그 곳을 지나가던 북한군 전령 1명을 생포해 북한군 1개 대대가 어제 밤 이곳을 통과해 상주로 진출했으며, 본대인 제48연대가 후속할 예정임을 알게 됐다.대대장은 북한군 사이에 끼인 상태로 상주 쪽으로 행군할 것이 아니라 상곡리에 매복해 북한군 제48연대 본대를 기습할 것을 결심하고 7월17일 오후 3시께까지 전투 준비를 완료한 후 북한군의 접근을 기다렸다.이윽고 16시께, 제1대대가 매복중인 상곡리에 북한군의 행군대열이 나타났는데 그들은 선발대대가 아무 일 없이 지나갔던 관계로 경계를 풀고 저녁 식사를 준비했다. 바로 그때 제1대대의 모든 화기는 일제히 불을 뿜었고 1시간의 공격 끝에 북한군 제48연대는 붕괴돼 버렸다.이 전투로 제1대대는 250명의 적을 사살하고 30명의 포로를 잡았으며 1천200여정의 소총 등 수많은 군수품을 노획하는 대승을 거두었는데 전사는 이를 `상곡리 기습전`이라 명명했다.□  2차 교전-동관리 전투다음날 제17연대 제2대대가 화령장에 도착했고, 마침 북한군 제15사단의 제49연대가 제48연대를 후속할 예정이라는 귀중한 첩보를 입수했다.국군 제17연대장 백인엽 대령은 제49연대마저 격멸하기로 결심하고 제1대대를 현 위치인 상곡리에, 제2대대를 상곡리 북서쪽 동관리에 매복시켰다.그리고 3일 후 도로를 따라 밀집종대로 행군하며 내려온 북한군 제49연대는 제2대대의 포위망 안에 완벽하게 갇히게 됐고 기습에 순식간 무너져 버렸다. 이 작전으로 적 356명 사살, 26명을 포로로 잡고 박격포 16문 등 다수의 전투장비를 노획하는 큰 전과를 연이어 올렸다. 이 공로로 제17연대장(김희준 중령)과 전 장병이 1계급 특진하는 영예를 안았던 반면에 적 15사단의 상주 공격 시도는 무참히 좌절되고 말았다.결국 화령장 전투는 가장 완벽한 매복 기습작전을 전개해 최소한의 희생으로 적의 주력을 섬멸한 공세적 방어전투의 모범적 전례가 됐고 `무적불패 제17연대` 신화의 출발점이 됐다. 이 전투가 바로 동관리 기습전이다.□  화령장 전투의 교훈5일간의 전투로 북한군 1개 사단이 격멸됐지만 아군 전사자는 4명에 불과했다. 당시 전투를 지켜본 미 군사고문관 스카레기 소령은 “1, 2차 세계대전을 다 겪어 보았지만 이처럼 통쾌한 전투는 처음이었다”고 말할 정도로 아군은 압도적인 대승을 거뒀다.수적으로나 화력면에서도 절대적으로 불리했던 아군이 이길 수 있었던 것은 유리한 계곡지형을 잘 이용했고, 무엇보다 적이 눈앞에 다가오는 긴박한 순간에도 지휘관의 사격통제에 따르며 철저하게 전장군기를 유지했기 때문이었다.화령장 전투의 승리는 민관군이 힘을 이뤄낸 값진 승리였다. 북한군의 이동을 신고한 노인, 북한군에 대한 첩보를 제공해 준 경찰, 연일 계속된 전투에 지친 장병들에게 식사를 제공해 준 마을 주민, 지리를 잘 알고 있어 주변정찰에 직접 동행하며 도움을 주었던 청년, 이들 모두가 화령장 전투 승리의 주역이었다. 아군은 이 전투의 승리로 낙동강 방어선 구축을 위한 결정적인 시간을 확보할 수 있었고 17연대 전 장병은 1계급 특진하는 영예를 얻었다.□ 화령장전투 전승기념공원 조성상주시 화서면 화령초등학교 송계분교 일원에 추진되는 상주화령장 전투 전승기념공원은 경북도 낙동강 호국평화벨트 조성사업과 연계해 진행된다.부지면적 2만7천㎡에 110억원이 투입돼 내년 말 완공계획이다. 주요시설은 기념관, 추모공원, 광장, 체험시설 등이다.6·25전쟁중 육군 단독의 최초 전승지구로 낙동강 방어선 구축의 시간적 기반을 제공한 곳 답게 기념공원을 나라사랑 정신계승, 청소년 호국안보 교육장으로 활용한다는 계획이다. 상주 화령장전투는 6·25전쟁 중 한국군에 의한 최초의 승전지로, 지난 1980년 상주시 화서면에 화령장지구 전적지가 조성됐다. 지난해 장비전시장에 탱크와 장갑차를 전시하는 등 전시장과 조형물을 보수하고, 산중턱에 있는 전적비까지 방부목 계단을 설치하고 곳곳에 조망테크도 만들었다. 전적지에는 화령장전투의 요도 및 홍보판을 제작, 설치하는 등 말끔히 정비했다. 경북도는 산악지구 테마공원을 만들어 전투현장을 재현하고 서바이벌, 산악트레킹 코스도 개발할 방침이다.6·25 참전유공자회의 한 관계자는 “호국공원이 완성되면 우리나라를 이끌고나갈 젊은 세대들에게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한 조국을 지키기 위해 한 목숨 초개와 같이 버렸던 선배전우들의 애국심을 피부로 느끼게 될 것”이라며 “아직도 변하지 않고 있는 북한의 한반도 적화야욕을 새삼 상기시키는데 큰 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호국벨트 조성 착착각 지역 호국공원들관광명소 부상 기대▲ 김원석 경북도 사회복지과장“경북은 우리나라가 위기에 처했을때 스스로 일어나 몸을 던진 호국의 중심으로 그 중요성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김원석 경북도 사회복지과장은 “특히 6·25전쟁당시 전세를 역전시킨 낙동강전투의 중심이 경북인만큼 자라나는 청소년에게 호국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사업이 지역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게 자랑스럽다”고 말했다.칠곡 영천 포항 등 한국전쟁 당시 최대 격전지며 대반격의 전환점이 된 낙동강 방어선의 역사적가치를 재조명하고, 전후세대에게 호국안보교육, 전투병영체험, 추모와 체험공간, 여가기능등을 융합한 복합형 호국공원은 큰 의미가 있다고 덧붙였다. 또 호국공원은 지역의 관광명소로 탈바꿈 돼 지역경제에 활력을 불어넣는 부가적인 효과도 무시할 수 없다고 말했다.그는 경북곳곳에서 추진중인 호국공원은 주변의 우수한 자연환경을 적극 활용함과 동시에 새로운 개념의 안보주재 테마파크로써 자리매길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경북은 지난 2010~2016년 7년여에 걸쳐 약 1천500억원을 투입해 7개시군에 걸쳐 낙동가 호국벨트 조성사업을 추진중이다.그는 경북은 과거 임진왜란 병자호란 등 수십년간에 걸친 외침속에서도 우리민족과 얼을 보존하기 위해 분골쇄신한 선조들의 뼈가 묻힌곳인 만큼 호국공원조성으로 민족을 지켜낸 고장이라고 기억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이창훈기자myway@kbmaeil.com

2013-11-25

독도 경비대 이대홍 이경

대한민국의 아픈 역사와 국민의 염원을 가진 독도로 입도하게 된다는 독도경비대로서의 자부심을 느끼며 독도에 첫발을 내디뎠다.선임들과 지휘관들에게 인사를 하며 독도의 석양을 바라보며 마음속 다짐을 한 것이 엊그제 같았는데 벌써 한 달이란 시간이 지나 독도를 떠나야 할 날이 다가오고 있다.비록 4주 남짓한 기간의 독도 생활을 정리하면서 인상 깊은 점들이 떠오른다. 가장 인상 깊은 것은 단연 독도 그 자체다. 접안 지에서 관광객과 함께 독도를 보았고, 독도경비대가 사는 동도의 정상을 향해 한 계단씩 오를 때의 절경은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이러한 절경을 관광객은 보지 못하고 독도경비대만이 볼 수 있는 것이라서 아쉬움과 자긍심이 교차하기도 했다.육지 어디에서 출발하든 울릉도를 경유 배로만 약 6시간, 며칠간 시간을 할애하면서 날씨가 좋아야 독도에 발 한번 내딛게 된다. 어렵게 독도에 도착한 관광객들은 독도경비대원들의 통제를 야속하게 생각할지도 모른다.하지만 그들은 독도를 떠나면서 한결같이 독도를 지켜줘서 고맙다, 우리의 아들, 손자 같다고 다독거려 주던 모습들이 생각난다. 우리는 독도뿐만 아니라 국민의 염원을 지킨다는 막중한 책임감이 앞선다.4주 동안의 짧았지만, 의미 있었던 독도생활을 정리해 본다. 이렇게 떠남은 울릉도에 위치한 울릉경비대에 머물다가 새로 독도로 들어오기 위한 준비과정이다.신임 독도경비대원으로서 새로운 출발이라 여겨 독도를 떠나고자 짐을 싸는 것이 아쉽지만, 울릉경비대에서 훈련을 받고 다시 독도에 입도할 때는 좀 더 늠름한 대원으로 돌아오겠다고 다짐해 본다.충성!

2013-11-25

“꼼꼼한 위생·품질 관리로 지역 최고 특산물로 거듭 날 것”

- 구룡포 과메기와 평생을 함께했는데, 혹시 과메기와 연관된 에피소드가 있다면.△과메기가 유통이나 생산이 요즘처럼 전문화되기 전인 옛날엔 먹을거리도 많이 없고 음식이 지금보다 훨씬 귀했다. 구룡포에서 태어나고 쭉 자라 과메기를 늘 먹고 자랐는데, 덜 마르거나 상품성이 떨어져 팔 수 없는 과메기들이 너무 아까워 나름의 요리법으로 감나무잎을 깔고 쪄먹으면 된다는 이야기를 듣고 쪄먹었다. 먹을 때는 정말 둘이 먹다 하나 죽어도 모른다는 말이 실감 날 정도로 맛있게 실컷 먹었는데, 배탈이 나서 고생했던 기억이 난다. 배탈에 대한 후처방으로 쌀뜨물을 마시면 된다고 해서 병원도 안 가고 쌀뜨물을 마셨다. 하하하. 지나고 나니 젊은 날의 추억이다. 물론 따라하면 절대 안 된다.요즘은 생산방법이 전문화되고 위생상태가 최우선 되는 사항이므로 늘 철저하게 선별 및 점검하고 있다. 그러므로 위생에 대한 염려는 안 하셔도 된다.- 구룡포 과메기가 특별히 유명한 이유는.△구룡포의 지리적 특성이 맛있는 과메기를 만들 수 있게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 구룡포의 여름은 포항의 시가지보다 시원하고, 겨울은 따뜻하다. 과메기를 건조할만한 최적의 온도 조건을 가진 곳이 바로 구룡포다.날씨가 너무 추우면 꽁치가 꽁꽁 얼어 과메기의 맛이 떨어지는데, 밤엔 적당히 내려간 온도로 과메기가 살짝 얼고 낮에는 다시 녹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육질이 부드러워지게 된다. 또 바다의 습기를 머금은 눅눅한 바람이 호미곶 산을 넘어 건조한 바람으로 바뀌면서 과메기를 먹기 좋게 마르도록 도와준다. 잘 마른 구룡포 과메기는 이렇게 숙성돼 비린내가 나지 않고 고소하며 쫀득한 육질을 자랑한다. 구룡포 과메기는 가공하는 음식이 아니라 햇빛·온도·습도·바람 네 가지 조건을 갖춘 자연이 만드는 별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근 포항을 넘어 전국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데.△사실 구룡포 과메기가 상품화돼 타지역에 본격적으로 알려진 것은 10년이 채 안 됐다. 그동안 전국을 돌아다니며 홍보에 힘쓰고 직접 발로 뛴 효과가 이제 빛을 발하는 것으로 보인다. 오늘날 이렇게 많은 분이 찾는 이유는 물론, 구룡포 과메기가 가진 맛과 영양 등이 뛰어난 이유가 가장 클 것이다. 사실 예전엔 포항 특산물로 포항 시민들이 주로 많이 찾았던 음식이지만, 이제는 서울·대구 등 전국적으로 바다가 인접하지 않아 과메기가 다소 생소한 지역에도 판매량이 늘며 그 인기를 실감하고 있다.- 맛있게 먹는 방법은.△예전에는 회 먹듯, 초고추장에 그냥 찍어 먹거나 김에만 싸먹는 경우가 많았는데 인기가 많아지며 맛있게 먹는 방법이 여기저기서 많이 알려졌다. 배추와 생김, 쪽파, 마늘 고추 등을 곁들여 생미역과 함께 초고추장에 푹 찍어 먹으면 최고의 맛을 느낄 수 있다. 또한, 손질한 과메기는 칼이나 가위 등을 이용해 자르는 것보단 역시 손으로 쭉쭉 찢어 먹어야 제맛이다. 최근 젊은 여성분들은 쌈을 싸먹는 것보다 과메기를 잘게 찢어 각종 신선한 채소와 함께 아삭한 맛을 살려 초고추장에 비벼 먹는 `과메기 무침`도 선호하고 있다.남은 과메기를 보관하려면 수분 증발을 막도록 신문이나 깨끗한 종이에 말아 밀봉해 냉동실에 보관해 두고 빠른 시일 내에 먹는 것이 좋다.- 최근 구룡포 과메기 가공공장이 준공됐는데 앞으로의 각오는.△이번 공장 준공으로 생산 방식이 현대화됐다.위생이나 품질을 검사할 수 있는 검사장비도 갖췄으며 직접동결시설도 마련해 체계화했다. 조합이 꽁치를 공동 수매해 원가를 절감하는 등 어민의 소득증대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또한, 품질 관리 등에 힘을 기울여 구룡포 과메기가 최고 특산물의 선두주자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 할 것이다./고세리기자 manutd20@kbmaeil.com

2013-11-22

청정 해풍 맞은 `명품 과메기` 맛보러 오이소~

미식가들의 입맛을 사로 잡는 과메기의 계절 겨울이 돌아왔다.과메기 본고장인 포항 구룡포지역의 해안도로를 따라 가다보면 길게 늘어진 과메기 덕장이 장관을 이룬다. 구룡포의 해풍을 맞아 냉동과 해동을 거듭하면서 특유의 맛이 완성되는 과정을 보고 있노라면 입맛을 다시게 된다.본지는 이달 27일 서울 서초구청 광장에서 열리는 `2013 경북 수산특산물 및 포항 구룡포 과메기 서울 홍보행사`와 다음달 29일 포항 영일대해수욕장에서 개최되는 `2013 포항 구룡포 과메기와 겨울바다 축제`를 맞아 포항 구룡포지역의 특산물인 과메기를 소개한다.□ 궁중특미 `과메기`과메기는 말린 청어인 `관목청어(貫目靑魚)`에서 나온 말이다. 꼬챙이 같은 것으로 청어의 눈을 뚫어 말렸다는 뜻이다. 영일만에서는`목`이란 말을 흔히 `메기` 또는 `미기`로 불렀다. 이 때문에 `관목`은 `관메기`로 불리다가 오랜 세월을 지나면서 `관`의 ㄴ받침이 탈락되고 `과메기`가 됐다.예로부터 청어잡이가 활발했던 영일만 어민들은 겨우내 잡힌 청어를 오랫동안 먹을 방법을 두고 고민하던 중 청어를 새끼에 꿴 후 부엌의 살창에 걸어 말리는 방법을 사용하기로 했다. 살창은 부엌에서 밥을 지을 때 땔감인 솔가지가 타는 과정에서 발생한 연기가 빠져나가는 구멍으로 이곳에 걸린 청어는 훈훈한 기운과 바깥의 찬바람을 교대로 맞으며 특유의 육질이 살아났다. 살창으로 들어오는 송엽향은 구수한 과메기의 맛과 조화돼 궁중으로까지 진상됐다고 한다. 지금의 꽁치를 바람이 잘 통하는 곳에 걸어 자연 건조시키는 것과는 달리 냉훈법에는 조상의 슬기와 지혜의 한 단면을 엿볼 수 있다.`경상도읍지`와`영남읍지`에서 영일만의 토속식품 중 조선시대 진상품으로 선정된 것은 구룡포에서 천연가공된 관목청어(과메기) 뿐이다.`동국여지승람`영일현 편에는 매년 겨울이면 청어가 주진(지금의 영일만 하구)에서 잡힌다고 하는데 이를 나라에 진헌한 다음에야 모든 읍에서 고기잡이를 시작했다고 한다. 진상되는 청어가 많고 적음에 따라 그해의 풍흉을 짐작할 수 있었다.`소천소지`에는 동해안의 한 선비가 겨울에 한양으로 과거를 보러 가기 위해 해안가를 걷다가 배고픔에 시달리고 있는데 해변가 언덕 위의 나뭇가지에 청어 한 마리가 끼여 죽어있는 것을 보고 찢어 먹었는데 맛이 좋아 과거를 보고 내려온 이후에도 겨울마다 청어를 말려먹었다고 기록돼 있다.□ 성장기 어린아이, 성인병 예방에 최고과메기에 함유된 지질 중 고도불포화지방산인 EPA와 DHA는 혈관확장작용, 혈소판 응집억제작용, 혈압저하작용, 혈액중 중성지방 저하작용, 혈액중 저비중 콜레스테롤 저하작용, 혈액중 고비중 중성지방 저하작용, 혈액점도 저하작용, 심근경색방지, 뇌경색 방지 등 성인병 예방에 적합한 생리적 기능을 가진 것으로 알려져있다.과메기에 관련된 각종 연구를 살펴보면 성인 남자의 식사에 과메기를 함께 먹었을 때 혈청 콜레스테롤이 감소하고, 혈청 내 DHA와 EPA 수치가 증가했다고 분석됐다.특히 생청어 혹은 꽁치보다 과메기를 만들어 먹었을 경우 전체 영양소 중 DHA와 오메가3의 비중은 크게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DHA는 일반식품에서는 섭취하기 힘든 요소이기 때문에 성인들에게는 성인병 예방에 필요한 식품이다. 또한 과메기를 먹으면 술에 잘 취하지 않는다는 말이 전해오는데 이는 과메기에 숙취해독 기능이 있는 아스파라긴산이 함유돼 있기 때문이다.과메기의 구수한 맛을 내는 글루타민산과 필수 아미노산인 트레오닌, 리진 등도 상당량 함유돼 있다.혈관을 튼튼히 해 장내 출혈을 막아주는 비타민P와 빈혈치료제인 비타민B12 및 항암 및 피부 비타민인 비타민A의 경우 쇠고기의 4배 가량 함유돼 있다.이들 비타민은 성선을 자극해 정력을 왕성하게 할 뿐 아니라 성장발육에도 큰 도움이 된다.성장기 어린이에게 필수적이며 중년기 남자와 갱년기 여성기에 뼈를 튼튼히 하는 칼슘은 쇠고기의 5배 가량 함유돼 있다.□ 경북 동해안을 넘어 전국으로포항을 대표하는 수산물인 과메기가 서울 나들이에 나선다.포항시가 주최하고 본지가 주관하는`2013 경북 수산특산물 및 포항 구룡포 과메기 서울 홍보행사`가 오는 27~29일 서울 서초구청 광장에서 열린다.포항시는 이번 행사를 통해 경북지역의 수산물을 각인시키면서 포항의 대표특산물인 구룡포 과메기의 입지를 전국시장에 구축한다는 의지다.이를 위해 서울 시민들에게 수산물을 직접 보고 시식하며 체험하는 기회를 제공하는 등 기존 홍보행사와는 차별화된 진행방법을 활용할 계획이다.특히 이번 행사는 20~30대 젊은 고객층을 공략하기 위해 트위터 등 SNS를 활용해 과메기에 관련된 추억이 담긴 사진이나 사연을 접수받아 우수작을 선정해 아이패드, 갤럭시 탭 등의 선물을 증정한다.아울러 과메기 퓨전요리 만들기 체험, 과메기 비누·오일 체험, 경북 수산물 홍보부스 운영, 과메기 다트 및 체험부스 운영, 과메기 사진전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준비해 서울 시민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을 계획이다.서울시와 서울시시설관리공단에서도 적극적인 협조를 통해 과메기와 경북수산물의 우수성과 공익성을 다수의 시민들에게 알릴 예정이다.다음달 29~31일 포항 영일대해수욕장 특설행사장에서 열리는 `2013 포항 구룡포 과메기와 겨울바다 축제`는 포항과 경북 동해안에 과메기의 입지를 더욱 굳건히 하는데 도움을 줄 전망이다.포항시가 주최하고 본지와 영일대해수욕장 상가번영회가 주관하는 이번 행사는 과메기 홍보활동 뿐만 아니라 다양한 축제를 마련해 포항시민화합의 장으로 활용될 예정이다./박동혁기자phil@kbmaeil.com

2013-11-22

전남 해남 달마산

이번 등산지는 전남 해남의 땅끝 마을에 위치한 달마산이다. 남도의 명산이라고 불리어지는 이 산은 그 이름에서 보듯이 달마대사와 연관이 있는 듯하여 먼저 자료를 찾아보았다.보리달마는 현재의 인도 옛 나라 파사국 향지왕의 셋째 아들로 태어나 그곳에서 살다가 바다를 건너 중국으로 왔다. 이때가 527년으로 남조 양나라 고조 때이다.달마는 중국 광주에 도착하여 선종(禪宗)의 시조가 된다.달마가 죽은 기록이 없고 전해지는 말로는 한쪽 신발만 가지고 서천을 향하여 사라졌다고 하는데, 행방은 묘연했지만 후세에 특히 우리나라에서 달마대사는 익숙한 이름이다.달마산이 있는 전남 해남은 우리나라 육지의 맨 남쪽이다. 등산을 가려고 새벽에 길을 나서서 송촌에 도착하니 오전 10시 반이었다. 늘 하던 대로 잠시 준비를 하고서 바로 산행을 시작한다.송촌마을-바람재-불썬봉-미황사 4시간 반 소요정상 오르면 멀리 다도해 아름다운 풍경 한눈에바다가 훤히 보이는 곳이니 해발로 치면 500m가 채 되지 않는 곳이지만 밑에서 바라다보니 돌산으로 구성되어 있어 만만치가 않아 보인다. 일반 등산지가 아니고 암릉이다 보니 사고가 나지 않게 단단히 벼르고 출발하게 된다.일행들은 13번 국도상에 있는 딱골재 들머리로 들어서서 달마산 정봉을 향해 오른다. 초입에서부터 예사롭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산세가 험하다거나 등산이 어렵다는 그런 뜻이 아니라 달마산의 암봉이 마치 공룡 등처럼 울퉁불퉁한 암릉으로 되어 있는데다가 산 위에서 보면 다도해가 점점이 띄워져 있는 아름다운 풍경이 빼어나기 때문이다.그래서 전국의 산악인들이 선정한 국내 100대 가고픈 산행지로 해남의 달마산을 꼽고 있으니 그 멋과 맛이 고스란히 가슴으로 전해져서 지금 이 순간에도 기대감을 주는 것이다.달마산 등산은 단일 코스다. 1코스는 송촌마을을 출발하여 관음봉, 바람재, 달마산의 정봉인 불썬봉을 지나서 미황사로 내려오는 길인데 4시간 반이 소요된다. 계속 등산을 하려면 불썬봉에서 떡봉을 지나 도솔봉에 올랐다가 내려오는 코스로 송촌마을에서는 8시간 걸린다.간단한 코스로는 미황사에서 뒷산인 달마산 정봉에 올랐다가 내려오는 코스인데 한시간 정도면 가능하여 절을 찾는 일반인들이 즐겨 찾는다. 이곳에 등산온 사람들은 일찌감치 등산을 끝내고 가까이 있는 땅끝마을을 돌아보기도 한다.일행들은 큰 딱골재와 작은 딱골재를 지나고 바람재를 넘어서 어느덧 관음봉에 도착했다. 오른편쪽을 내려다보면 바다 너머로 진도가 보이고, 왼쪽으로 보면 섬이 많은 완도가 눈앞에 펼쳐진다. 저 멀리 어렴풋하게 보이는 섬에 대해서도 누군가가 알려주는데 보길도라고 한다.관음봉을 지나면 암릉이 시작된다. 조심스럽게 걸음을 옮기며 계속 능선을 타고서 앞을 내달려 능선삼거리를 지나 농바우봉에 도착했다. 이정표를 보니 송촌에서 2km 정도 왔으니 농바우봉이 달마산까지 가는데 중간 지점으로 달마산까지는 2km가 남았다.잠시 쉬고서는 다시 발걸음을 옮기는데 수시로 시야를 돌려 좌우를 살펴보면 바다와 그 위에 떠 있는 섬들이 올망졸망하니 풍경이 멋스럽다. 다른 산처럼 나무숲속의 길을 걷는 것이 아니라 오르락내리락하면서 해안경관을 보면서 걸으니 단조로운 산타기보다는 재미가 있고, 암릉 보행이지만 걸음이 빠른 것 같이 느껴진다.계속 암릉길을 걸어 1봉, 8봉을 거쳐 드디어 달마산에 도착했다. 달마산에 관해서는 `신증동국여지승람`(해남)에 기록이 있다. 내용에 의하면 1218년(고려 고종 5) 중국 남송시대 남송의 배가 이곳까지 표류하였는데, 그 일행이 달마산을 보고 “이름만 듣고 멀리 공경하여 마지않았더니 가히 달마대사가 살고 계실만하다”라고 적혀 있다.이곳 산 지명이 고려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고 있고, 달마대사와 관련되어 있음을 살펴볼 수 있다. 달마산 자료를 보면서 아쉬운 점은 현재 지명인 달마산(達馬山)이 옛 문헌인 `해동여지도`(해남)에는 달마산(達磨山)으로 기록되어 있고, `신증동국여지승람`, `대동여지도` 등에는 달마산(達摩山)으로 표기되어 있어 한자가 각기 다르고, 달마대사의 달마(達摩)와도 다르다.일설에 의하면 현재의 산 이름은 일제강점기부터 한자를 잘못 사용한 것이라는 지적이 있다. `한국의 명산기`에서 “국내에 전해오는 모든 문헌들이 한결같은데도 현대지형도에서만 달마산(達馬山)이라고 쓰고 있는데, 혹 일본식 표기를 그냥 따른 것이 아닌가 하고도 여겨진다”는 내용이다. 잠시 벗어났지만 달마산의 유래 등에 관한 것이니 참고로 적어본다.달마산 정상은 불썬봉(489m)이다. 불썬봉은 이곳 사투리로 `불을 켰던(썼던) 봉`으로 봉화대 상봉을 이르는 말이다. 정상 표지석이 서 있는 남쪽 바로 옆에 봉화대가 있다. 암반 위에 있는데 유구한 세월이 흘러도 무너지지 않고 그대로 있는 게 신기하기만 하다.달마산 정상에서 가까이 주변을 살펴보거나 멀리 바다로 시선을 돌려 바라보면 보는 사람들의 마음에 신선의 경지를 담겨줄 것 같은 착각을 하고도 남는 것은 이곳의 기암괴석 등 자연이 만들어낸 절경에 감탄하기 때문이다.이 풍광 좋은 곳에서 머리를 스쳐가는 아름다운 생각들! 달마산 같은 명산에서 얻는 여유로움이다. 가까이에서 공룡 등처럼 울퉁불퉁한 바윗돌의 묘미를 보면서 어떻게 저런 모습으로 여기에 서 있는가를 헤아려보다가 불현 듯 필자도 자연 속의 한 부분으로 몰입된다.한 마리 새가 되어 달마산 불썬봉 위를 나르다가 어느덧 바다 위로 날아들어 다도해 위를 혼자 훨훨 날아다니는 착각을 한다. 그럴 때는 사실과 다르게 영낙 없는 전문 등산가의 경지에 이른 것 같다.사실 필자는 몇 년 전부터 지금까지 등산을 지속적으로 해오면서 주말마다 즐기는 등산이 이제는 일상이 돼버렸다. 처음에는 평일의 일상에서 시달린 마음을 정리하고 머리를 시킬 겸해서 조용한 곳을 찾아 떠나는 것에서부터 시작했지만 이제는 등산 그 자체가 즐거움이다.매번 등산을 하면서 느낀 점은 등산은 자기 과시가 아니라는 것이다. 또한 내가 등산하므로 인해 무조건 대가를 요구하지 않는 것이니 자연스런 행동에서 나타나는 자연에 대한 순수한 마음이요, 무상의 행위이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프랑스의 유명한 등산가 리오넬 테레이(1921~ 1965)의 명문의 글을 읽고 나서다. 테레이는 `등산은 무상(無償)의 행위`라고 설파하면서 그 순수성을 표현했다. 그가 등산을 하면서 기록에 남긴 글 가운데 `천국의 문`이란 시는 지금 달마산 정상에서 한 마리 새를 꿈꾸는 필자의 심정을 정리한 글처럼 느껴진다.불썬봉에서의 짧은 시간이지만 많은 생각을 했다. 전국 여러 산들에 올랐지만 흔하지 않는 행동이었는데, 그것은 아마 이곳의 특이한 암릉의 모양새하며 산과 바다가 어우러진 경관이 필자로 하여금 가을 한낮의 교향곡을 연주하게 했을지도 모를 일이다.다시 행장을 갖추어 사자암쪽으로 향한다. 전국에서 달마산을 찾아온 사람들이 많다. 그 중에서 일부는 바로 아래에 있는 미황사 절로 향하는 하산길을 선택하는 사람들도 있다. 우리 일행은 등산을 계속하면서 암릉 길을 타면서 떡봉을 지나 도솔암에 도착했다. 불썬봉에서 도솔암까지는 5km거리다.도솔암은 미황사를 창건한 의조대사가 수행 정진하던 암자로 정유재란 때 화재 때 소실된 것을 2002년 복원했으며, 자연과 조화를 이루고 있는 작은 암자는 영낙 없는 한 폭의 그림같다.산 위, 암릉 사이에 자리한 도솔암은 이미 등산인들에게 달마산의 풍광을 충분히 만끽한지라 그 감정의 영향인지 몰라도 이곳 풍경에서도 매료된다. 이렇게 자연은 저 홀로 있으면서도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기쁨과 활홀경 같은 만족감을 선사한다.여기서 남쪽 방향으로 더 나아가면 사자봉이다. 또 그 곳을 지나 곧장 계속가면 산자락이 끝나는 지점이고, 바다가 마주보이는 해남 땅끝마을에 이르게 된다. 필자는 미황사 절로 가기 위해 다시 돌아 나와 하산 길을 택하여 능선을 타고 내려와 미황사에 도착했다. 시계를 보니 오후 4시 20분경으로 등산을 한지 6시간 가까이 됐다.미황사는 신라 35대 경덕왕 때인 749년에 의조화상이 창건한 절이다. 사적비 기록에 의하면, 의조화상이 어느 날 꿈을 꾸었는데, 금인이 나타나 “나는 본래 우진국(인도) 왕으로 여러 나라를 다니며 부처님 모실 곳을 구하였소. 이 곳에 이르러 달마산 꼭대기를 바라보니 1만불이 나타나므로 여기에 부처님을 모시려 하오. 소에 경전을 싣고 가다 소가 누웠다 일어나지 아니하면 그 자리에 모시도록 하시오”라는 것이었다. 의조화상이 소를 앞세우고 가는데 소가 한번 땅바닥에 눕더니 일어났고, 산골짜기에 이르러 이내 쓰러져 일어나지 아니하여 그곳에 의조화상이 미황사를 지었다고 한다. 미황사의 `미`는 소의 울음소리가 하도 아름다워서 따온 것이고, `황`은 소를 데려온 금인의 황홀한 색에서 따와 붙인 것이라 전해진다.미황사 경내를 둘러보고 사찰 위에 있는 달마산을 올려다보면서 필자는 아련한 생각에 잠긴다. 어떻게 저곳에 올라갔을까 하는 자연에 대한 경외심이다. 불과 몇 시간 전 오후 한때에 필자가 달마산 정봉 위에서 바다와 저 아래 펼쳐진 미황사를 보면서 사색하던 때가 분명 있었건만 마치 꿈속 등산을 다녀온 기분이다.이제 하루 일정을 모두 마치고 차에 올랐다. 귀가 길에 산 고개를 돌아 나오면서 다시금 이번 달마산 등산을 생각해본다. 지금까지 수많은 등산을 하고 전국 각지의 명산을 다녀봤지만 이번 달마산 등산은 자연에 대한 경외사상으로 필자에게 등산에 관한 새로움에 눈 뜨게 해준 일정이었다.산과 하늘, 바다와 바람을 만날 수 있는 곳! 남도의 명산 달마산 정상에서 머물던 한때 자연의 아름다움을 보면서 황홀지경에 빠졌던 필자의 마음을 정리하여 끄트머리에 시를 옮긴다.“곁을 스쳐가는/ 인파들의 웃음소리도/ 여기서는 그저 허허로움이다./ 기묘하게 생긴 달마산의/ 암릉, 바위틈에 앉아/ 달마대사의 섬광이 비쳐나는/ 그의 눈을 엿본다.// 저 멀리 섬 가까이/ 그 위를 나르는 해조는/ 무슨 꿈을 꾸고 있을까./ 불썬봉의 선율들이/ 자연의 곡조로 번져나는/ 달마산에 서서/ 천년도량에 울려날 소 울음을 기다린다”(남도의 명산, 달마산에서)▲ 손경찬/수필가·예술소비운동 본부장

2013-11-22

경주 `신원 아침도시` 229세대 오늘 공개

오는 2015년 한수원 본사 이전을 앞두고 경주지역이 공동주택 부족 현상이 지적되고 있는 가운데 공동주택업체들이 이에 대비한 수요대책으로 활발하다.신원종합개발(주)는 경주시 충효동 한국원자력환경공단 인근에 총 229세대의 공동주택을 건립한다.충효동 원자력환경공단 인근에 30년 건축 노하우로 준비KTX역·고속버스터미널 인접, 시내·외 교통 접근성 탁월남향배치·중형위주·양도세 면제 등 벌써 뜨거운 관심경주 `신원아침도시`로 출발하는 이 회사는 30년 아파트 건설 역사를 갖고 있는 건설전문기업이다.특히 자신들만의 노하우와 문화도시 경주에 맞춘 최적의 단지 설계로 새롭게 준비하고 있으며, 신원만의 특화된 장점으로 경주에서 야심차게 분양을 준비 중이다.분양하는 아파트는 78m² ,81m² ,84m²등 3가지 타입이며 단지 내 독서실과 피트니스 센터와 실내 골프 연습장이 설치된다.또 어르신들을 위한 경로당과 단지 주민들을 위한 쾌적한 쉼터로 손색이 없는 선큰벽천까지 설계되어 있어 최적의 환경에서 최고의 휴식을 누리고 싶은 도시민이라면 누구나 관심가질 만한 주거단지로 손색이 없다. 더욱이 아파트 단지 배후에는 초록빛으로 가득 차 있는 송화산이 있고, 경주 도심을 통과하는 형산강이 흐르는 등 전형적인 배산임수의 입지조건을 갖췄다.형산강에는 계절마다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는 등산로와 강변을 끼고 조성된 억새 공원 산책로에서 1년 365일 여유로운 휴식과 도심 속 낭만을 누릴 수 있는 최적의 자연 환경이 있다.아파트 단지는 역사와 문화를 답사하는 자연 학습장이면서 일상의 쉼터로 부족함이 없다. 인근의 김유신묘와 흥무공원 그리고 경주 국립공원 서악지구의 등산로는 도시민들에게 쾌적한 힐링 코스로 그 멋을 더해주고 있다.최적의 자연 환경이 안겨주는 쾌적함 위에 도시의 편리성이 보태어진 `경주 신원아침도시`는 KTX 신경주역에서 10분, 경주 고속버스터미널에서 5분 거리에 위치하고 있어 경주 시내·외는 물론 포항이나 울산 등 대도시로의 접근성도 탁월해 단지의 매력을 더해주고 있다.또한 단지 옆으로는 한국원자력환경공단 사옥이 들어설 예정으로 직원들의 출퇴근이 쉽고 서천교의 초입에 위치해 있어 경주시내의 접근성이 뛰어난 점도 `경주 신원아침도시`의 장점이기도 하다. 또한 경주에 새 부도심을 건설하는 `신경주 역세권 지역종합개발사업 프로젝트` 가 추진되고 있고, KTX 신경주역 인근에 국도대체 우회도로 (효현 ~ 내남 ~ 외동)와 지방도 904 호선 등이 확장 개통되면 `경주 신원아침도시`의 교통편리성과 입지성은 더 높아지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천년고도 신라를 상징하는 옛 도시 경주가 이제 건천산업단지의 성공적인 개발에 이어 생명공학기술과 의료기술 분야의 첨단 연구센터와 기업을 유치하게 될 양성자가속기 배후 산업단지 조성 사업까지 진행되는 산업도시 조성으로 서부지역은 개발의 중심지로 새롭게 자리매김하고 있다.도시 전체가 `하나의 커다란 문화재`라는 별칭처럼 도시 곳곳에서 옛 신라의 분위기가 느껴지는 지역의 특성을 한껏 살린 `경주 신원아침도시`는 이제 `학교가기 좋은 아침` ,`산책하기 좋은 아침`, `미래가 즐거운 아침` 위에 11월, `이사가기 좋은 아침` 이라는 슬로건을 걸고 최고의 단지에서 최적의 삶을 누리기 원하는 입주민들을 기다리고 있다.특히, 남향 위주의 배치와 중형으로 구성된 평형 단지라는 특징 위에 경주시에서 마지막으로 시행되는 양도세 면제 혜택 및 무제한 전매 가능 단지라는 점도 `경주 신원아침도시`의 매력이다.이렇듯 최적의 여건을 갖추고 있는 역사 깊은 문화도시 경주에서 신원이 야심차게 준비하고 있는 `경주 신원아침도시` 는 모델하우스가 오픈되기도 전에 이미 지역주민들 로부터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다.`경주 신원아침도시` 는 22일 경주시 성건동 409~ 6 (영마을 삼거리) 에 모델하우스가 오픈되며 2015년 2월에 입주 예정으로 분양가는 700만원 대다.경주/윤종현기자yjh0931@kbmaeil.com

2013-11-22

파죽지세 적군, 세번의 탈환으로 막아내다

무방비 상태의 3·8선을 돌파한 북한군이 영덕지역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1950년 7월초. 동해안을 따라 파죽지세로 남진하던 북한군 제5사단이 울진 부근에서 국군에 의해 그 기세가 저지되면서 잠시 멈추게 된다. 6월 29일 국군 제3사단 23연대는 울진에 도착한 후 북한군과 접전을 벌이면서 15일 정도 적의 진공을 지연시킨 후 평해를 거쳐 7월12일 영덕으로 철수, 영덕 부근에 연대 전투지휘소를 설치하고 북한군의 공격을 저지하고자 했다. 7월14일에는 먼저 설치돼 있던 제3사단 지휘소를 포항으로 옮긴 후 미8군 해·공군의 지원을 받아 영덕지구를 고수하기로 결정하고 북한군의 진격을 저지하고 있었다. 그래서 북한군 제5군단장은 국군의 저항에 부딪혀 진격이 늦은 제5사단 지휘부를 질책하는 한편, 북한군 제12사단으로 하여금 안동을 거쳐 포항을 공격하라는 명령을 하달하고는 전투를 독려했다. 영덕지역에서 아군과 대치하고 있던 북한군 제5사단은 상부의 질책과 제12사단의 안동을 우회한 포항 점령의 작전을 성사시키기 위해 7월17일 여명을 기해 영덕 북방 화수동에서 북한군을 저지하고 있던 국군 제23연대를 집중 공격해 왔다.적의 맹렬한 공격에 제23연대는 영덕을 적의 수중에 넘기고 영덕 남쪽으로 후퇴했다. 그러나 영덕이 안동과 영양을 잇는 교통의 요충지일 뿐만 아니라 포항방어를 위한 최일선의 전초기지로써 그 중요성이 높아 국군과 미8군은 영덕을 재탈환하기로 결정했다. 제3사단은 미8군으로부터 105㎜ 곡사포 부대를 지원 받은 후, 7월18일 새벽 제23연대와 독립대대가 영덕탈환 작전을 펼쳐 영덕을 다시 탈환했다. 이 전투에서 적은 막대한 피해를 입은 후 화림산 쪽으로 패주했다. 그러나 이튿날인 7월 19일 전열을 정비한 북한군은 다시 영덕을 공격해 강구까지 진출 강구와 영덕의 중간에 위치한 181고지, 즉 금호리 뒷산 일대를 중심으로 밀고 밀리는 공방을 계속했다. 이러한 181고지를 선점하기 위한 공방은 이후 7월 29일까지 계속됐으며, 7월 29일 아군은 영덕을 세번째 탈환하고 영덕 북쪽 2㎞선에서 방어진지를 구축하는데 성공했다.1950년 7월 북한군 영덕 일대 아군 후방지역 교란 극심장사상륙작전은 인천상륙작전 성공보장 위한 양동작전전투 경험 없는 어린 학도병 수백명 고귀한 희생 치러□ 지품 삼화동 전투개전초에 파죽지세로 남하하던 북한군 제5사단 이외에도 북한 제766유격부대가 이미 영덕지역으로 침투해 영덕에서 안강지구에 이르는 아군의 후방지역을 교란하고 있었다.따라서 7월12일 울진에서 영덕으로 후퇴한 제3사단 23연대장은 적 정규군의 공격이 있기전에 후방의 위협을 제거하기 위해 7월15일 아침 35명의 고참 중대원을 선발, 화림산 좌단으로부터 34번도로 북방일대에서 주간에는 수색정찰, 야간에는 매복으로 적 유격대의 영덕침입을 저지하고 이를 토벌하도록 명령했다.대원들은 첫날 주간에 삼화리 일대를 수색한 후 야간에는 오천리 마을 뒤의 오솔길 양측에 매복을 하면서 중기관총 1정을 우측대열 중간에 배치했다. 밤이 깊어지자 소대 규모의 적들이 오솔길을 따라 접근해 왔다.대원들은 적들이 오솔길 가운데 들어설 때까지 조용히 기다리고 있다 일제히 기습사격을 가해 완전히 섬멸한 후 적 증원부대의 공격에 대비 약 4㎞ 동쪽의 화림산 좌단에 새로 매복을 했다. 대장인 박관영 상사는 35명의 대원을 3개조로 나눠 `ㄷ`자형으로 배치하고 좌측에 중기관총을, 정면에는 2.36인치 로켓포를 배치하고 사격개시 신호는 로켓포의 초탄발사로 했다. 모든 준비를 마친 아군의 대유격 특공대원들은 적의 증원부대가 다가오도록 조용히 기다렸다.이윽고 먼동이 터 오를 무렵 풀이 우거진 전방에서 인기척과 함께 적 유격대원들의 조심스런 접근이 포착됐다. 대원들은 초긴장 속에 적 유격대가 `ㄷ`자형의 정면으로 들어 올 때까지 쥐죽은 듯이 기다렸다.마침내 적들이 올가미 가운데로 들어오자 박관영 상사의 로켓포가 섬광을 일으킴과 동시에 전 화기가 적들을 향해 불을 뿜었으며, 일부 도주하는 적들은 아군과의 백병전에 의해 모두 섬멸됐다.□ 축산 도곡지구 적 전차 습격전1950년 7월 하순께는 북한군 제5사단은 영덕선까지 진출 아군 제3사단과 일진일퇴를 거듭하며 공방전을 치르고 있었다. 이때 3사단 지휘부는 서울지역 전투에 투입되었던 22연대를 사단에 복귀시켜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181고지를 점령할 수 있도록 요청했다.22연대가 마침내 181고지 일대를 점령해 영덕지구 방어를 위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였으나, 이 과정에서 적 전차로 인한 피해가 엄청났다. 따라서 22연대장은 적 전차를 없애지 않고는 아군의 작전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것이라고 판단, 이들 전차의 파괴를 위한 특공대를 조직했다.이들은 침투 도중 전방 약 3㎞ 지점에서 적 1개 소대 규모가 휴식을 취하는 것을 보고 3면에서 포위 공격 4명을 제외한 전원을 사살하는 전과를 올렸다. 생포된 4명 중 3명은 이 지역에서 북한군에 강제로 징집된 신병으로 아군에게 적극적으로 협력을 하겠다고 해 포로로 잡았다. 이들은 적의 전차대에 소속된 정찰병으로 전차의 움직임에 대해 상세히 알고 있어 특공작전에 많은 도움이 됐다. 특공대원들은 포로를 앞세우고 적 전차 진지까지 무사히 접근했다. 적 전차 진지에는 3대의 전차가 있었다. 대장은 3명의 포로를 1명씩 각조에 배치해 각 조가 1대씩 적 전차를 파괴하도록 지시했다. 각 조의 조장은 포로를 이용, 전차병을 유인해 전차의 해치를 열도록 했으며 적 전차병이 해치를 열면 포탑 옆에 숨어있던 특공대들이 일제히 수류탄을 해치 안으로 집어넣어 적 전차 3대를 모두 파괴시켰다.임무를 완수한 특공대는 재빨리 철수했다. 그러나 철수도중 상곡재 부근의 138고지 동쪽에서 적의 경계부대에 발각돼 치열한 접전 끝에 후미의 3조는 행방불명이 되고 1·2조만 귀환했다.□ 장사 상륙작전잊혀진 전투 장사상륙작전은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을 보장하기 위한 양동작전이었다. 적의 주의를 돌리기 위해 인천상륙작전을 하루 앞둔 1950년 9월 14일 전격 이뤄졌으며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은 한국전쟁의 전세를 역전시키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장사상륙작전은 참전병 779명중 600여명이 18세부터 19세까지의 어린 학도병들로 불과 보름 동안의 훈련을 거쳐 해군 수송함인 LST문산호에 몸을 싣고 9월13일 부산항을 출발, 다음날인 14일 새벽 5시께 영덕군 장사해안에 도착했다.이 날은 태풍 `케지아`의 영향으로 바람이 세차고 파도가 높은 가운데 안개마저 자욱해 지척을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장사동의 남쪽 해안으로 접근하던 문산호는 상륙직전 좌초하면서 상륙작전 자체가 자칫 수포로 돌아갈 형편이 됐다.하지만 미 구축함의 지시에 따라 작전은 감행되었고 장사동에 주둔하고 있던 1개 대대 규모의 적은 문산호를 향해 집중포화를 퍼부었다. 아군은 해안가에 로프를 결박해 헤엄을 쳐가면서 상륙작전을 감행했으나 전투경험이 없는 선발대는 수많은 희생을 당했다.아군은 계속해서 상륙을 감행 적5사단과 열한 전투를 벌여 적군의 동부지구 후방 보급로를 완전 차단하고, 적의 후방 주력을 동해안으로 유인 집결토록 함으로써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에 토대를 마련했다.이 작전으로 110명의 부상자와 129명의 전사자가 발생하고 39명이 구조선에 오르지 못하고 해안에 남는 등 많은 희생이 따랐다.이때 생존한 학도병들은 `장사상륙작전참전유격동지회`를 결성 매년 영덕군과 더불어 위령제를 지내고 있다. 정규군이 아니라는 이유로 국가로부터 예우를 받지못한 서러움과 나라와 민족을 위한 고귀한 희생정신은 올해 착공되는 `장사상륙작전 전승기념공원조성사업`의 준공과 더불어 깨끗이 씻겨나갈 거라고 믿고 있다.■ 장사상륙작전 전승기념공원상징탑, 추모광장 등 설치LST문산호도 재현키로장사상륙작전 전승기념공원은 영덕군 남정면 장사해수욕장 일원 6만8천㎡ 면적에 309억원의 예산을 투입 상징탑, 추모광장등을 공원부지내 설치하고 LST문산호를 재현한다. 전시·교육기능과 5D시물레이션체험관, 세계최초 퇴함(退艦)담력체험장 등을 갖춘 기념관을 바다위에 설치, 단순히 볼거리 위주를 탈피해 전후세대는 물론 전후3세대까지 국난극복의 현장을 직접 체험하고 즐기는 교육의 장으로 만든다는 계획이다.영덕군민들은 동서고금의 전사를 막론하고 1개대대, 그것도 실전경험이 없고 훈련도 부족한 학도병들이 한국전쟁의 전세를 역전시킨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을 이끈 결정적 계기를 만든 전투를 성공적으로 수행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영덕군은 지난 2007년부터 추모음악회, 학술세미나, 국군의날 특집 다큐멘터리 제작 등을 통해 장사상륙작전의 재평가와 기념공원 조성사업의 필요성에 대해 노력해온 결과 2009년 국가보훈처의 협조로 총사업비 240억원을 확보하게 됐다. 이후 실시설계 과정에서 동해안의 특수성을 고려할 때 안정성 문제가 대두돼 사업비가 증액됐다.군민들은 세계최고의 호국전승공원인 장사상륙작전전승기념공원 조성사업이 완공되면 군사·역사적 재평가와 선열들의 희생정신을 되새기는 교육의 장은 물론 관광객 천만시대를 열어가는 전초기지 역할을 맡아 지역경기 활성화에도 많은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이창훈기자 myway@kbmaeil.com

2013-11-20

인성·취업교육 차별화로 `잘 가르치는 대학` 명성 얻어

대구경북 5개 대형대학중 취업률 1위를 자랑하는 대구가톨릭대가 파격적인 장학금 등을 바탕으로 2014년도 정시 신입생 모집에 나선다. 대구가톨릭대는 2014년 정시 `나`군(574명)과 `다`군(677명)에서 모두 1천251명의 신입생을 선발한다. 정시 `나`군은 수능성적 70%와 학교생활기록부 30%를 반영하고 `다`군은 수능성적 100%로 전형하지만 신학부와 의예과, 해외복수학위, 예체능계열은 반영비율이 조금씩 다르다. 일부 학과를 제외하고 인문계와 자연계의 교차지원이 가능하고 `나`군과 `다`군의 별도 모집단위 지원도 할 수 있다.의예과는 국어A, 수학B, 영어B, 과학탐구가 지정돼 있고, 해외복수학위는 영어B가 지정돼 있다. 의예과와 해외복수학위를 제외하고 수능 A형과 B형에 대한 응시 제한은 없지만, 가산점은 적용된다. 인문계열과 자연계열의 경우, 국어B 5%, 수학B 15%, 영어B 25%의 가산점이 각각 부여된다. 자연계열의 경우 과학탐구는 5% 가산점이 있다.해외복수학위는 최저학력기준이 적용된다. `나`군과 `다`군의 미국복수학위는 수능 4개영역 등급 합이 8 이내를 만족해야 한다. 중국복수학위는 수능 4개영역 등급 합이 10이내여야 지원할 수 있다. 탐구영역은 최상위 1과목을 반영한다. 전국 대학 최초로 인성교육 전담부서 설치최근 수년간 대구·경북서 취업률 1위 기염파격적 장학금·기숙사 등 면학환경 뛰어나□ 창의성 교육에 집중대구가톨릭대는 `잘 가르치는 대학`으로 통한다. 2010년 정부의 학부교육선진화선도대학(ACE)사업에 선정돼 우리나라 학부교육을 선도할 우수한 교육모델을 구축하면서 `잘 가르치는 대학`의 명성을 얻었다. 또한 창조경제를 선도하는 대학으로서 학생들의 창의성 교육에 집중하고, 차별화된 인성교육과 취업교육에 주력하고 있다.`창조적 사회인`을 양성하기 위해 학생들의 `기(氣)`를 살리고 `끼`를 키우는 데 많은 노력을 한다. 창의력을 키우는 교육을 최고의 가치로 설정하고 이를 뒷받침할 최적의 교육환경을 만들어 나가고 있다.2013년도부터 본격 시행한 융·복합전공(복수전공, 연계전공, 다전공, 부전공, 자기설계전공)은 창의적 융·복합 인재 양성의 중심축이다. 한 가지 전공에서 벗어나 2~3개 전공을 이수할 수 있는 제도로 융·복합전공을 하는 학생에게 학교가 상당한 금액의 장학금을 지급할 정도로 창의적 융·복합 인재 양성에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대구가톨릭대는 창조경제 시대를 이끌어갈 인재 양성을 위해 창조융합대학원을 설립해 2014학년도부터 운영할 계획이다. 창조융합대학원은 현 정부의 주요 국정전략인 `창조경제`와 최근 학계에서 이슈가 되고 있는 `융합교육`을 접목해 국내 최초의 창조경제 및 융합 분야 특수대학원으로 설립된다. □ 인성교육하면 대구가톨릭대대구가톨릭대의 인성교육은 정평이 나 있다. 지난 1996년 전국 대학 최초로 인성교육 전담부서인 인성교양부(2011년 인성교육원으로 명칭 변경)를 설치해 인성교육을 18년째 실천하고 있다. 인성교육원에서 가톨릭윤리에 기초한 인성교육을 담당하는 교과목을 운영하는데, 학생들에게 올바른 인간관과 세계관을 가르치고 인간과 사회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와 지식을 습득하여 이웃과 사회에 대한 사랑과 봉사의 정신을 키우도록 한다.올해부터 3천300여명의 신입생 전원은 1박2일 일정의 인성캠프에 참여하고 있다. 인성캠프는 활동 및 토론 중심의 체험형 인성 프로그램을 통해 자신의 주요 인성 기준을 설정하고, 자기 성찰적 인성을 함양할 수 있도록 운영된다. 참가한 학생들은 인성서바이벌을 통해 협동, 나눔, 배려의 가치를 직접 체험하고, 자신의 `인생 사명서`를 작성하면서 자신은 무엇을 위해 사는지 고민하는 시간을 갖는다. 또 성인으로서 갖추어야 할 인성 덕목은 무엇인지 팀별로 토론하고 이를 퍼포먼스로 표현한다.□ 차별화된 취업교육과 교육 역량차별화된 취업교육도 주목받고 있다. 2010년 취업교육 전용시설인 취업·창업센터를 건립해 취업에 관한 모든 교육 프로그램을 원스톱으로 지원하고, 학생들은 입학과 동시에 단계별로 체계적인 취업교육을 받도록 하고 있다. 방과 후 취업준비특별반 운영, 학과별 취업캠프 운영, 산학협력중점교수와 취업지원관을 통한 취업 실무교육과 지속적 상담, 취업프로그램 이수나 자격증 취득에 부여하는 `CU Good Point 장학금` 지급 등 다양한 취업 프로그램은 학생들 취업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해외취업에서도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한국산업인력공단에서 주관하는 해외취업프로그램(GE4U)에 7회 연속 선정돼 중남미, 싱가포르 등에서 연수한 학생 36명이 현지 취업에 성공했다. 지난10월에는 중남미지역 교류와 취업지원을 위해 교내에 중남미센터를 설립했으며, 미국 한인기업과의 MOU 체결과 해외현장학기제 실시를 통해 학생들의 해외인턴십 기회를 확대하고 있다.대구가톨릭대는 현재 교육부의 3대 국책사업을 모두 수행하는 교육 역량을 발휘하고 있다. 2010년 전국 11개 대학만 선정하는 학부교육선진화선도대학(ACE)사업에 뽑혔으며, 2010~2014년 4년 연속으로 교육역량강화사업에 선정됐다. 2012년 산학협력선도대학(LINC)사업에 선정돼 활발한 산학협력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또 2011년 고용노동부로부터 대학취업지원역량인증대학으로 선정된 것을 비롯해, 2011~2012, 2013년 대구경북 5대 대형대학(재학생 1만 명 이상) 가운데 취업률 1위를 달성하는 등 우수한 교육 역량을 바탕으로 최고의 교육중심대학으로 나아가고 있다. □ 파격적 장학금과 기숙사대가대의 HONORS장학금은 파격적이다. 수능 3개 영역이 모두 1등급 이내인 학생(의예과 제외)에게 제공되는 HONORS-S 장학금은 정규학기 등록금 전액과 기숙사비가 면제된다. 또 매월 100만원(연간 800만원)의 면학장려금이 지급되고, 해외복수학위 파견이나 교환학생 파견 중 하나를 선택해 외국에서 공부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수능 4개영역 평균이 2.5등급 이내인 학생에게 제공되는 HONORS-A1 장학금은 정규학기 등록금 전액과 기숙사비가 면제된다. 수능 3개 영역 평균이 3등급 이내인 학생도 정규학기 등록금 반액이 면제되는 HONORS-A2 장학금을 받는다.2천700여명을 수용할 수 있는 기숙사는 대구·경북지역 대형대학 가운데 최고의 수용률(20.4%)을 자랑한다. 깨끗하고 쾌적한 환경 속에 각종 편의시설이 잘 갖춰져 있어 학생들의 만족도가 높다. 또 학교 랜드마크가 될 15층 규모(500여명 수용)의 기숙사를 신축하고 있어 학생들의 학습 환경이 더욱 좋아질 것으로 기대된다.경산/심한식기자 shs1127@kbmaeil.com

2013-11-20

구미시, 지속성장 가능한 `젊은 도시`로 힘찬 발돋움

구미시가 2013년에도 가파른 성장세를 이었다. 인구 증가에다 공단 노후화 단지 구조고도화 등으로 각 기관이 선정한 연초 목표 달성 또한 어렵지 않을 전망이다. 또 인구 증가는 아파트 등 주거시설 공급에 영향을 미쳤고, 이는 또다시 인구 유입이라는 선순환 구조를 올해에도 유지시켰다. 그 결과 구미시는 연내 42만 인구 달성이 가능해졌고, 역동적이고 지속적인 성장 가능한 젊은도시라는 닉네임을 얻으며 성장엔진이 힘차게 돌아가고 있다. 구미시에 따르면 역내 인구는 지난 10월말을 기준으로 41만 9천228명으로 올연말 42만 명 달성을 눈앞에 두고 있다. 인구증가율은 도내 1위. 구미시의 꾸준한 산업단지 확충과 일자리 창출 등 타지에서 구미로 정착하는 비율이 높은 것이 원인이다. 이런 조건 덕에 구미시는 올해 지역산업정책대상 종합대상, 대한민국 소비자신뢰 대표 브랜드(예스구미) 대상 기관우수상 등 21개를 수상했으며 남유진 시장도 한국지방자치경영대상 최고경영자상 등 개인상을 3개나 받는 쾌거를 이뤘다.△근로자수, 포항시보다 많아구미가 역동적인 사실은 근로자 수가 11만명을 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도내 최대 규모 도시 포항을 상회하는 것으로, 도시가 살아있다는 증거다. 특히 구미 근로자는 젊은 층이 주를 이루고 있다. 그만큼 도시가 젊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당연히 이는 앞으로의 도시 성장 기반 잠재력이기도 하다. 도시 계획 관계자들과 경북도는 현재의 흐름이 지속된다면 구미가 인구 면에서 포항을 제치는 일은 시간 문제일뿐이라는 견해가 많다. 일각에서는 10년이 채 걸리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하기도 한다. 이에 힘입어 구미는 투자유치 11조원, 5공단 조성등도 순조롭게 착착 진행되고 있다.이 중심에는 남유진 시장이 있다. 그는 특유의 공격적인 마케팅과 다양한 기업지원정책을 펼쳐 올해 LG디스플레이 신규투자 8천326억 원등 지난 7년간 총 283개사 11조 4천억 원 규모의 투자유치를 달성하는 쾌거를 이뤄냈다.구미5공단, 4공단 확장단지 등 대규모 산업단지 조성으로 6년만에 구미공단 면적이 70% 증가했으며, 16.5㎢(500만평) 규모의 신규공단 조성으로 차세대 성장동력산업 유치를 위한 기반도 착착 진행되고 있다. 지난해 12월 착공한 구미국가산업 제5단지 9.34㎢, 4단지 확장단지 2.46㎢, 구미경제자유구역 4.7㎢ 조기조성 등은 구미의 미래 먹거리 산업 육성발판을 마련했다는 평가며, 산업 구조의 근본적인 세대교체도 시기 적절한 시책으로 주목받는다. 또 4공단 외국인 투자지역을 중심으로 한 글로벌 첨단기업 유치와 더불어 노후화된 1공단의 구조 고도화가 착실히 진행 중에 있어 구미의 미래를 밝게 해주고 있다구미 최초 1공단이 조성된 1968년 이후 4공단 조성이 완료된 2011년 까지, 기존공단(1~4공단) 24.4㎢(737만평)이 조성되는데 43년의 시간이 소요된 것에 비해, 5공단 구미하이테크밸리 9.3㎢(283만평), 확장단지 2.46㎢(74만평) 등 357만평 공단 조성은 2008년 이후 불과 6년여 만에 성사시켜 구미의 힘을 대내외에 과시했다. 시는 또 현재 경제자유구역 4.7㎢(142만평)의 조기조성을 위해 산업부 등 중앙정부에 꾸준히 건의하고 있다.△ 활발한 기업유치와 고용창출 공단 조성은 기업 유치로 이어지고, 이는 고용창출 효과로 나타나 2013년 4월말 기준 지역별 사업체노동력조사(대구고용노동청 발표)결과 구미시는 종사자수에서 도내 1위(165,431명)를 차지했으며, 종사자 증가율도 +3.3%로 높게 나타났다. 또한, 최근 몇 년간 꾸준히 늘어난 인구증가세로 주택 미분양 문제가 거의 해소 돼 현재 구미에는 집 부족 현상이 빚어지고 있다. 집이 남아돌아 문제인 다른 시군과는 너무나도 대비되는 것이다.지역이 활활세를 유지하다보니 주택업체들도 진출을 서두르고 있다. 올 해 아파트 신규분양 3천793세대의 분양이 완료된 것은 수요 인프라 기반이 받쳐준다는 증거로, 내년에도 1천300여 세대 분양계획이 이미 잡혀 있다. 구미시는 주택 재개발재건축 추진 활성화로 관련법령 개정 등 주택정비사업도 적극 지원할 계획이다. 구미는 이런 추세에 힘입어 지난 9월 지역의 아파트매매가 상승률이 10.08%로 전국 1위를 차지했다.△ 미래 신성장 동력산업 순조롭게 진행구미의 미래 신성장 동력이 될 5공단과 확장단지 등 대형 프로젝트 사업도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 5공단 대상지역 보상 보상 집행액은 11월 현재 2천109억 원으로 마무리 돼 향후 구미 경기활성화에 일조할 것으로 기대된다. 노후화 된 1공단 구조고도화 사업도 세대교체를 발 빠르게 진행해 비워있는 한국전기초자 1, 2,3공장은 LG이노텍(주) 등 18개사가 입주하여 스마트기기용 광학기기 사업 분야에서 5천130억원의 투자가 진행되고 있다.또한, 옛 동국무역, 한국합섬의 공장이 있었던 지역은 부지를 분할해 필요한 중소기업의 입주가 이루어졌으며, 1공단 내 휴폐업 부지활용 방안에 대해서는 구)대우일렉트로닉스 부지의 성공적 구조고도화 사업추진의 경험을 토대로, 적기에 원하는 기업에 공급할 수 있는 방안을 꾸준히 마련하고 있다. 지난 10월 30일 중소기업청으로부터 구미국가산업단지 제1단지에 있는 구미벤처기업육성촉진지구를 109만평(3.6㎢)으로 확대 지정받아 당초 지정면적 94만평에 (구)대우전자 및 동국무역 부지 15만평이 더해졌고, 이에 따라 지구 내 벤처기업들이 법인세와 소득세 50% 감면 등 각종 세제 지원을 받게 되어 벤처기업체 경영에 큰 보탬이 될 것으로 보여 1공단 투자 활력에 청신호가 켜졌다.△녹색 명품도시 목표구미는 그동안 산업도시, 회색의 공단도시로 불려져 왔다. 그러나 구미는 지난 7년간 건강한 변신을 거듭했다. 남유진 시장이 2006년 취임 후 공약사업으로 시작된 일천만그루 나무심기운동은 대표적 사례다. 걸어서 5분 안에 시민 누구나 쾌적한 자연의 쉼터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한다는 이 프로젝트는 짧은 기간안에 구미를 녹색공간으로 만들어 냈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 산림청 선정의 2012 한국의 가로수길 62선에 구미의 도시숲 3개소가 뽑혔으며, 옥성 초곡소하천이 2013 아름다운 소하천 가꾸기 공모전에서 최우수상을, 이어서 2013 도시녹화운동 전개 우수사례 공모최우수상의 영예를 안았다.또한, 4대강 사업의 영향으로 낙동강 일원은 시민들의 환경, 생태, 레포츠, 휴식공간으로서 변모됐다. 2012년 준공된 낙동강체육공원은 도심 가까운 하천둔치에 9종48면의 체육시설과 산책로 15km, 피크닉장 등 시민여가공간이 함께 조성되어 있어 다양한 레포츠 활동과 다목적 시민휴식공간으로 자리 잡고 있다. 구미시는 중장기 마스터플랜인 낙동강 구미 7경 6락 리버사이트 프로젝트수립으로 구미의 중앙을 가로지르는 낙동강을 문화, 레저, 관광을 연계하는 친환경 수변복합레저파크로 조성하기 위한 미래 청사진을 완성하여 낙동강 중심 녹색수변도시 조성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남유진 구미 시장경북 최대 역동적 도시 시민들 적극 참여 때문남유진 구미 시장 인터뷰 “공단 조성과 인구 증가 등 지역 발전이 목표했던 방향으로 차근차근 잘 가고 있다. 머잖아 인구 50만 시대 달성도 가능할 것이다”남유진 구미시장은 "근로자 11만명이라는 것은 구미가 그만큼 젊고 성장 동력을 갖고 있다는 증거"라면서 현재의 상태에 도달하는 데에는 시민들이 가장 큰 역할을 했다고 강조했다. 그는 지난해 9월 전국적 이슈된 구미 불산누출사고 발생 당시 시민들이 보여 준 헌신적인 자세 등 그동안 구미가 어려울 때마다 시민들이 발벗고 나서 시정에 협조해 주었다면서 이런 자세가 전제되었기에 지금 구미는 경북에서 가장 역동적인 도시가 되고 미래의 초석이 조성된 것이라고 덧붙였다.남유진 시장은 “그 동안 집중해 온 도시의 외적성장과 질적성장, 그리고 세계속의 명품도시 시책은 그대로 유지하면서도 시민안전과 복지 등의 분야에도 심혈을 기울이겠다"고 말했다.구미/남보수기자 nbs@kbmaeil.com

2013-11-19

독도 경비대 최시영 이경

운이 좋은 것인지 독도경비대에 전입하자마자 바로 독도에 들어오게 됐다. 사실 독도경비대는 4개 소대(지역대)가 50일씩 교대로 근무하는 독도에서보다는 울릉도에서 지내는 시간이 더 많다.아직 모든 것이 낯설었던 나 같은 신병에게 독도는 경외감 그 자체였다.사진으로 보던 것과는 또 다른 느낌이랄까. 생각보다 독도는 웅장했고, 거센 파도와 사람도 날려버릴 듯한 바닷바람은 자연의 위대함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듯했다.독도경비대에서 내가 맡은 역할은 관측 근무이다. 두 시간씩 정해진 위치에서 저 멀리까지 펼쳐진 수평선을 응시하며 주변의 상황을 경계하는 것이 주된 임무이다.11월 초임에도 살을 에는 듯한 바람이 눈에 들어가 눈물을 줄줄 흘리기도 한다.관측 근무를 서고 있으면 여러 상황에 맞부딪히게 된다. 사각지대에서 갑자기 나타난 미확인 선박 때문에 비상이 걸리기도 하고, 아무런 연락이 없는 어선 때문에 근무 내내 긴장하기도 한다.일본 순시선이 자주 독도 주변 해상에 출몰하는 것은 많은 사람이 알 것이다. 독도를 호시탐탐 노리는 세력이 있어 우리는 언제나 긴장한 상태로 경계근무를 서고 있지만 일본 배가 접근할 때면 대원 모두 더욱더 철통 같은 경계를 유지한다.독도에서 생활하다 보면 국내 여객선으로부터 위문품을 종종 받곤 한다. 관광객 분들이 사오는 작은 먹을거리부터 단체에서 주는 여러 가지 물품이나 음식들, 때로는 받기에 부담이 될 만큼 좋은 위문품들도 있다.사람들이 우리 독도 경비대에 이만한 관심과 사랑을 주는 이유는 단순히 고생한다는 뜻이 아니라 앞으로도 독도를 잘 지켜주기 바란다는 뜻일 것이다. 위문품을 받을 때마다 항상 무언가 빚진다는 생각을 한다. 그 빚을 갚는 방법은 내가 맡은 근무에 최선을 다하는 것 뿐이다.오늘도 새벽에 근무를 서야 한다.자다 일어나 졸린 눈을 비비고 거친 바람과 어둠 속에서 서 있어야 하지만, 외롭거나 힘들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매섭게 바다를 응시하는 나의 뒤에 많은 사람들이 함께하고 있기 때문이다.충성!

2013-11-18

“허허벌판 영일만서 `세계최고 철강회사` 기적에 한몫 했죠”

“4년만에 포항을 찾았는데, 올 때마다 자꾸 달라지는 것 같아요.마치 고향에 온 것 처럼 푸근합니다”2013 포항철강산업대전 특별공로상을 수상한 류호문(81·전 건설부 산업입지국장)회장은포항의 변화된 모습에 놀라움을 표시하면서 글로벌 기업으로 우뚝선 포스코의자랑스러움에 뿌듯한 자부심을 느낀다고 했다.그는 영일만을 포항제철소 입지로 선정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 주인공이다.허허벌판이었던 영일만 모래사장을오늘날 세계 최고의 철강회사로 성장하는데 초석을 다진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지난 15일 포항 영일대에서 만난 그는포항제철소 입지선정과정에서의 겪었던숱한 얘기들을 쏟아냈다.“ 300만평 모래사장 가진 영일만은 축복받은 곳1967년 일관제철소 건설계획이 구체화되자 정치권 실세들이 연고지 쪽으로 유치해 자신의 정치적 기반을 다지기 위해 여러 통로로 압력을 행사했어요. 당시 김종필 국무총리는 충남 비인, 이후락 비서실장은 경남 울산을, 김윤기 건설부장관은 전남 보성을, 백진기 건설부 국장은 경북 칠포를 각각 후보지로 내세웠죠. 그리고 대한국제제철차관단(KISA)에서는 삼천포를 적지로 지목했어요. 그때 나는 어떠한 압력에도 굴하지 않고 오직 올바른 입지선정에만 매달려야겠다고 결심했죠.또 대형 선박을 접안할 수 있는 항만기능, 적절한 면적(약 300만 평 기준), 견고한 지질, 공업용수 확보, 후방 교통여건 등의 기준을 마련하고 전국을 돌아보았지만, 그런 기준을 충족시킬 곳을 찾지 못했어요. 그래서 일본으로 건너가서 홋카이도의 도마코마이, 도쿄(東京)만과 오사카만에 있는 가와사키제철과 일본강관, 규슈의 야하다(八幡)제철소에 이르는 수많은 제철소를 살펴보며 참고했죠. 국내로 돌아와 동해안 묵호항에서부터 해안선을 따라 남해안, 서해안 전역을 훑어가며 적소 찾기에 나섰죠.당시 전국 해안선을 두루 답사했는데도 그때는 일본과 같이 좋은 조건을 갖춘 곳을 찾을 수가 없었어요. 그러던 어느 날 KISA의 총괄회원사였던 미국 코퍼스의 존스(Jones)씨가 경북 칠포에 같이 가보자고 제안을 했죠. 이미 가본 곳이라 가고 싶지 않았지만 존스씨는 정부가 추천한 곳이니 한반 가봐야 한다고 부추겼죠.일정을 줄이기 위해 4인승 세스나 비행기를 빌려 타고 포항 해병대 비행장에 내린 후 택시를 이용하는 일정이었는데, 포항 상공에서 지금의 포항제철소 자리를 내려다보는 순간 아! 한국에 이런 곳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딱 맘에 들었어요. 지금와서 느끼지만 포항은 축복받은 땅이고, 이것이 바로 신의 뜻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죠.991만7천355㎡(약 300만 평)가량의 모래사장이 소나무로 뒤덮여 있었고, 시가지와의 거리도 적당한 데다 해안이 만(灣)으로 돼 있어 항만입지 또한 최적이었죠.아름다운 소나무숲이 아깝기는 했지만 국가적 대업을 위해서 희생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죠. 돌아오자마자 백진기 국장을 찾아가 포항에 적소를 발견했다고 보고했죠. 하지만 백 국장은 “거기는 모래사장인데, 예부터 사상누각(沙上閣)이라는 말이 있는데 되겠느냐”며 심하게 반대했죠. 모래 기반이 우수한 기반이라는 것은 지질공학에 있어 상식인데도 말이죠.“ 전남 보성에 밀려 자칫 탈락할 위기도포항 영일만을 선정하기까지 난관이 무척 많았죠. 전남 보성에 미련을 버리지 못한 김윤기 건설부장관은 다시금 보성을 넣어 재검토하라며 용역조사를 지시했죠. 아무리 확신이 있다 해도 위의 지시로 발주한 용역조사의 대상 안에 국장이 사상누각 운운하며 반대하는 포항을 포함시킬 수는 없었죠. 그러나 일은 묘하게 흘렀죠. 당시 국내 토목기술용역사는 한국종합기술공사 하나뿐이었는데, 이름만 용역사이지 제대로 기술인력을 갖추지 못했고 당연히 용역을 수행할 능력도 없었어요. 그때 용역 계약은 했으나 수행할 능력이 없었던 기술공사가 나보고 일을 해달라는 거예요. 그 순간 아, `포항을 대상에 포함시킬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하고 일을 맡았죠.외부에는 일체 알리지 않고 각 전문분야의 후배를 동원해 사무실 인근 여관방에서 보름동안 작업했죠. 그리고 최종 용역보고서를 인쇄했죠. 마침 그때 청와대에서 제철입지를 보고하라는 지시가 떨어졌어요.보고서를 본 김 장관은 노발대발했죠. 자신이 밀었던 보성이 탈락하고 당초 용역대상에 포함되지도 않았던 포항으로 결론이 났으니 당연했죠. 그러나 보고서를 고쳐 쓸 시간적 여유가 없었기 때문에 이 보고서가 그대로 박정희 대통령에게 보고됐어요. 보고서를 본 박 대통령께서는 “거 잘됐군, 이대로 하게”하시면서 그 자리에서 결정을 내리신 거죠. 그렇게 해서 제철소가 포항으로 결정됐죠. 결국 일은 잘됐지만 이 사건으로 인해 백 국장은 옷을 벗고 말았죠.“ 우여곡절 많던 제2제철 선정도 엎치락 뒤치락1973년 당시 제2제철 부지선정을 놓고 6년을 끌었죠. 제가 추천한 곳은 전남 광양만과 충남 아산만이었는데, 이 두 곳은 낙동강 하구나 대호지구와는 비교할 수 없이 좋은 곳이 었어요. 하지만 당시 정부는 6개의 전략사업과 입지를 선정하면서 제2제철의 입지를 낙동강 하구로 결정, 공포했어요.뒤늦게 알게 돼 오원철 당시 제2경제수석을 찾아가 왜 낙동강 하구가 부적합한지를 설명했죠. 낙동강 하구는 홍수 때마다 토사가 흘러내려와 수심 유지가 안 되고, 만이 아니어서 태평양의 파도를 그대로 받기 때문에 아예 항구를 만들 수 없는 곳이라고 말했죠. 게다가 연약지반이라 제철공장과 같은 중공업시설은 불가능하고, 더욱이 부산시민의 식수 확보도 어려운 판에 공업용수를 어디서 구하느냐고 따졌어요.하지만 오 수석은 “이미 대통령의 재가가 나고 신문에 공포까지 했는데 이제와서 무슨 소리하느냐, 어떻게든 해내야 된다”며 호통을 쳤죠. 오 수석을 설득하기 어렵다고 판단하고 장예준 당시 건설부장관에게 이 사실을 알려 대통령께 보고하도록 했죠. 장관의 보고를 받은 대통령은 다시 오 수석을 불러, 낙동강 하구 외에 다른 곳의 가능성도 조사해 보라는 지시를 내리게 되었죠. 오 수석이 잔뜩 화가난 채 저를 보고 제철입지로서 적당한 다른 곳이 어디냐고 묻기에 아산만과 광양만 두 곳뿐이라고 했죠. 그래서 이 두 곳과 낙동강 하구를 포함한 세 곳의 지질조사를 시작하게 됐죠.당시 경제기획원에서 유에스스틸에 용역을 주었는데 평가가 아산만, 광양만, 낙동강 하구 순으로 나온거죠. 낙동강 하구는 불가한 지역이라고 평가된거죠. 오 수석은 입장이 난처했는지 이번에는 현대건설에 낙동강 하구에 대해 별도로 평가용역을 주더군요. 당시 현대건설에는 입지선정 용역기능이 없었는데도 말이죠. 당시 현대건설의 용역 보고서는 짐작했던 대로 낙동강하구도 무방하다는 주장을 담고 있었죠.현대그룹이 제철사업에 뛰어들기 위해 보고서를 무리하게 작성했고, 내용이 모순투성이어서 검수를 거부했죠. 그러던 어느 날 오 수석이 이번에는 느닷없이 포항 북쪽에 있는 영해지구를 후보지로 들고 나오더군요. 낙동강 하구가 아닌 아산만이나 광양만으로 결정 나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고 본거죠. 당시 제철업 진출이 염원이었던 현대는 영해에 병원(현 영덕아산병원)까지 세우면서 대항했지만, 항만·용수·제품수송로의 중복 등 모든 면에서 영해가 제철소 입지로 부적합 했죠.그러던 어느 날 박태준 당시 포철 사장이 “대통령께서 오 수석과 함께 내일 헬기로 제철소 입지 때문에 충청남도 가로림만을 둘러보자고 하는데 이 지역은 어떤가”라고 물었죠. 나는 구체적인 데이터를 조목조목 들어 가로림만의 부적절성을 설명했죠. 박 대통령은 인접한 대호지구를 내려다보고 박태준 사장에게 “여기도 한번 조사해보라”고 지시했죠. 또 아산을 지날 때는 “아산이 좋긴 좋단 말이야”하면서 주위를 훑어보았죠. 이날 동행하면서 박 대통령은 박태준 사장에게 “어차피 제2제철도 자네가 맡아 해야 할 것이니 입지선정도 자네가 알아서 하게”라고 지시했었죠. 그날부로 결정권이 박태준 사장에게 넘어갔죠. 오 수석이 6년이나 넘게 결정을 못 보니 대통령께서 박 사장에게 넘긴거죠. 그때 이미 포스코에서 제2제철 입지를 아산만으로 해달라는 내용의 공문을 건설부로 보내온 상태라 내심으로는 안심했어요. 그런데 반년쯤 후에 포철에 근무하던 후배가 찾아와서 “큰일났다, 아산이 아니고 대호지구로 결정됐다”고 했어요. 그 말을 듣고 아연실색했지요.“ 박 대통령 서거 후 결국 광양으로 바꿔네덜란드의 네데코사, 일본 항만컨설턴트, 가와사키제철 등 세 군데의 용역업체 가운데 두 군데서 대호지구를 추천했었죠. 곧바로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에게 전화를 걸어 그 다음날 만나 그동안의 상황을 소상히 얘기했죠. 김 부장은 편지를 쓰면 그 것을 대통령께 전해드리겠다고 했어요. 그래서 그날 밤새 편지를 작성해 이튿날 아침 일찍 김 부장을 통해 대통령께 전달했죠. 일종의 상소문이었죠.김재규 부장은 나의 중학교 선생님이었고, 박정희 대통령은 나의 초등학교 시절 담임선생님이었죠. 묘한 인연이지요. 바로 그날 아침 10시께 청와대에서 즉각 장관에게 연락이 왔다. 내일 청와대로 들어오라고 했어요. 다음 날 고재일 건설부장관과 같이 청와대 회의실에 들어서니 신현확 부총리, 오원철 경제수석, 최각규 상공부장관, 박태준 포철 사장과 정명식 건설본부장 등이 앉아 있었죠.박태준 사장은 보고를 통해 대호지구, 아산만, 가로림만 순으로 용역 결과가 나왔다면서 대호지구로의 결단을 대통령께 요청했다. 대통령이 좌중의 의견을 묻자 모두들 `이견 없다`고 했었죠. 이때 건설부장관이 나에게 설명할 기회를 줬어요. 차근차근 설명했죠. 항만·용수·지질 등 제철소 입지조건들을 차례로 열거하면서 대호지구의 부적절성과 아산의 적절성을 설명했죠. 그때 대통령께서 “아산이 좋긴 좋은데, 제철은 공해산업이니까 가급적 바깥쪽으로 나가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하시더군요. 저는 안 되겠다 싶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서 “뻘구덩이 대호지구에는 호안축조만 2년, 준설에 3년, 지반개량에 3년 등 10년이 걸려도 제철소를 완성할 수 없습니다”고 폭탄선언을 했었죠.결국 건설을 맡을 현대·대림·동아·삼환 4개사가 두달이상 용역을 수행한 결과 모두가 대호지구는 안 된다는 의견을 내었죠. 그런데 나중에 현대가 슬그머니 의견을 수정한 거예요. 결국 현대만 대호지구를 추천하고 나머지는 모두 아산만을 추천해 3 대 1로 아산만이 결정됐죠. 결국 아산만으로의 결정이 확정된 6개월 후 박 대통령이 서거하자 제2제철은 다시 광양만으로 변경됐죠.류호문 회장은· 1932년 경북 군위에서 출생· 1956년 서울대 토목공학과 졸업· 1965년 네덜란드 델프트공과대학교 수공학· 1956년 해무청 시설국 토목기사건설부 특정지역국 항만과항만국 토목기정건설부 산업입지국장· 1981년 대한준설공사 사장· 1982년 서울시농구협회장· 1987년 제동흥산 사장· 1991년 한진종합건설 사장한국항만협회 이사/김명득기자 mdkim@kbmaeil.com

2013-11-18

철강인·시민 하나된 화합의 장, 지역 뿌리산업 미래 보다

경북매일신문과 포항시, 포항상의, 포항철강관리공단, 포항시노사민정협의회가 공동 주최·주관한 2013 포항철강산업대전 노사민정 어울림한마당, 포항일자리박람회가 지난 15, 16일 이틀 동안 해도 공원에서 성황리에 열렸다. 철강산업대전 영광의 수상자들과 참여업체 전시부스, 인기가수의 신나는 공연, 시민들의 어울림 한마당 등 행사의 이모저모를 화보에 담았다. 참가업체 보안유지 신경전… 시민 “철강제품 신기”○…포항에서 처음 열리는 박람회 성격의 철강산업대전에 참여하는 업체들의 신경전도 수준급. 포스코LED는 개막 하루전날 일찌기 전시부스를 완료해 주목 받기도. LED업체답게 각종 전구를 이용한 다양한 모양의 전시홀을 구성했고, 상품을 증정하는 즉석 이벤트까지 마련해 시민들의 눈길을 끌기도. 특히 다른 업체에서 벤치마킹 할까봐 극도의 보안속에 전시홀을 마련했고, 개막 당일 전시부스홀 앞을 흰 천으로 막아 지나는 시민들의 궁금증을 자아내기도.○…전시부스 구성을 놓고 동종업계끼리 과열 경쟁으로 보는 이들로 하여금 관심을 끌기도. 후판 가공업인 제일테크노스와 융진은 전시부스 구성을 놓고 온갖 아이디어를 짜내 다른 업체에 비해 단연 돋보였다. 융진은 세계 1위라는 현수막까지 전시부스 앞에 내놓고 홍보에 열을 올렸고, 제일테크노스는 기술을 바탕으로 세계 최고의 기업을 홍보하기도. 이들 두 기업의 부스대결을 본 다른 업체 관계자는 “마치 기업의 이미지를 홍보하는 축소판 같다”며 “서로 발전을 위한 선의의 경쟁이 펼쳐져 보기 좋았다”고 칭찬.○…철강업체 전시장을 둘러 본 시민들은 다양한 철강제품을 보고 놀라는 분위기. 특히 코스틸의 전시장 앞에 전시된 각종 못과 생활용품을 본 한 시민은 “포항에 이런 걸 만드는 공장도 있었느냐”며 “처음 접해 본 철강제품이 신기하다”고 했다. 코스틸 직원이 전시된 못을 좀 가져가도 된다고 하자 고맙다며 인사한 뒤 한손 가득 들고 사라지기도.○…이날 철강산업대전 대상 및 부문별 수상자 시상식에서 대상을 받은 권용덕(37) 동국제강 중앙기술연구소 연구원의 다섯살짜리 아들 형욱군이 직접 꽃다발을 들고 나와 눈길을 끌었고, 마케팅부문상을 받은 김달삼(49) 시노펙스 전무이사는 이날 서울출장중인데도 상을 받기 위해 KTX를 타고 급히 내려왔다 올라 가기도. 또 포스코 임직원들은 특별공로상을 수상한 류호문(81) 전 건설부 산업입지국장에게 꽃다발을 전달, 주위를 흐뭇하게 했다.  사진=이용선기자/김명득기자 mdkim@kbmaeil.com

2013-11-18

전남 구례 오산

`우리들 산악회`에서 이번 산행은 구례 오산과 사성암이란 연락을 받고 사전 정보를 입수할 요량으로 구례군청 홈페이지를 찾았다. 행정기관의 메인화면에서 두 가지 홍보가 나오는데 하나는 `오산과 사성암`이고 나머지 하나는 `피아골 단풍축제`를 알리는 내용이다. 또한 `구례10경` 가운데 9경에 속하는 오산에 대해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오산은 문척면 죽마리에 위치해 있는 해발 531m의 호젓한 산으로 자라모양을 하고 있으며, 높지도 험하지도 않고 비경이 많아 가족 등반이나 단체소풍 코스로 사랑받는 정취어린 산이다.사성암은 백제 성왕 22년(544년)에 연기조사가 처음 건립하였다고 전해지고 있다. 암벽에는 서 있는 부처의 모습이 조각돼 있는데 이를 마애여래입상이라 한다.원래는 오산암이라 불리다가 이곳에서 원효, 도선, 진각, 의상 등 네 성인이 수도하였다하여 사성암이라 부르고 있다는 글이다.이 내용만 봐도 지리산, 섬진강 등 천혜의 자연을 가지고 있는 구례군의 명소 중에서 오산 사성암이 자리잡고 있다는 것을 느끼며 즐거운 산행을 그려본다.사성암- 오산- 둥주리봉- 동해마을로 내려오는 4시간 산행정상오르면 지리산 자락·굽이쳐 흐르는 섬진강 모습 한눈에우리들 산악회원을 태운 관광버스는 88올림픽 길을 달려 오전 10시 반경에 구례군 문척면 죽연마을에 도착했다. 일행들은 주차장에 내려 잠시 휴식을 취한 후에 산행을 준비한다. 어느 행사처럼 산행 홍보 말을 듣고 플래카드를 걸고서 기념사진을 찍는다.구례 오산 등산은 수월한 편이다. 등산코스로는 두 가지가 있는데, 1코스는 죽연주차장을 출발해 사성암과 오산을 거쳐 둥주리봉에 올랐다가 동해마을로 내려오는 하산하는 4시간 반가량의 산행이다.2코스는 죽연주차장- 사성암- 오산- 둥주리봉- 능괭이갈림길- 용서폭포를 거쳐 용서마을을 지나 동해마을로 오는 코스로 6시간 50분이 소요된다.이번 우리들 산악회의 등산 일정은 죽연마을에서 사성암과 오산을 올랐다가 돌아오는 코스로 1코스의 일부 구간이다. 그러나 필자는 산행을 연장해 매봉, 선바위, 둥주리봉을 거쳐 동해마을로 내려오는 긴 산행일정을 택했는데 오산 등산의 1코스에 해당된다.오전 10시40분경에 죽연마을에서 산행을 시작한다. 마을길 초입의 콘크리트길이 끝난 지점에서 조금 더 걸어가니 너덜지점에 돌탑들이 있다. 어느 등산로에서든 돌이 많이 있는 곳에서는 만나볼 수 있는 흔한 풍경이다.평이한 길로 1시간 남짓 올라가니 기암절벽위에 터를 잡은 사성암이 나타난다. 출발지에서 2.2km의 거리다. 여기에는 산행하는 사람들보다 불자들이나 일반관광객들이 많이 찾아오는데, 가을 등산도 볼거리가 넘쳐나지만 특히 구례에 유명한 산수유나 벚꽃이 피는 봄철은 오산 앞으로 흐르는 섬진강의 풍경과 어울려 멋진 장관을 만들어낸다.사성암은 암반 위에 만들어져 있는 관계로 어느 사찰에서 보는 마당이 없다는 게 특색이다. 사차건물이 오산으로 오르는 절벽에 하나씩 세워져있으니 그 자체만 하더라도 볼거리가 된다.누가 이곳에 힘들게 사찰을 지었을까? 그 의문부터가 고행을 수행하는 길의 시초다.544년(백제 성왕 22년) 연기조사가 처음 건립했다고 전해지고 있는 이곳은 원래 오산암이라 불렀다고 한다. 오산은 바위가 거북이 등껍질처럼 생겨서 명명된 이름으로 `사성암사적`에 의하면 원효대사, 도선국사, 진각선사, 의상대사가 수도하였다고 해 사성암이라 부르고 있다는 기록이다.필자는 먼저 사선암 법당에 찾아들어 20분간 예불을 올렸다. 등산을 하면서 사찰에 들려서 매양 하는 것이지만 소원하는 것은 가족의 평안이고, 오늘 등산 온 일행들의 무사 귀환과 함께 필자가 일상에서 맞닥뜨리고 있는 예술소비운동의 대중화와 지역내에서 문화예술이 활기를 찾기 위한 나름대로의 바람들이다.기도를 마치고 나와서 주변을 살펴본다. 법당 왼편에 지장전, 도선굴, 소원바위가 있다. 또한 사선암에서 동쪽으로 약 50m 떨어진 암벽에 높이 4m 정도 되는 음각 마애여래입상이 있는데, 고려 초기에 조성됐다고 한다. 일설에는 원효대사가 손톱으로 그렸다고 전해진다.산왕전, 도선굴을 지나 산 위를 7~8분 오르니 바로 오산 정상이 나타난다. 오산 정상은 암봉으로 돼 있는데, 팔각정 정자가 있어 그 위에 올라 사방을 바라보는 전망이 좋다. 저 위쪽으로는 지리산 자락이 보이고 아래쪽에는 굽이쳐 흐르는 섬진강의 모습도 아름답다.구례군청 홈페이지 메인화면에서 홍보하고 있는 `오산 사선암`이다 보니 명성에 걸맞게 주변의 풍경이 비경이다. 사찰이긴 하지만 자연 속에 있으니 개인의 종교관을 떠나서 사서암은 누구나 한번쯤은 볼만한 건물이다.일행들과 함께 오산 정봉(530.8m)에서 사진을 찍고 주변을 살펴보다가 다음 행선지인 둥주리봉으로 향한다. 여기서 동행한 우리들 산악회 회원들은 다시 하산하여 다른 행차를 하게 된다. 필자는 이왕 여기까지 올라온 김에 오산 등산의 명품지인 등주리봉까지 올랐다가 동해마을로 하산할 계획이다.산세나 등산길도 그렇지만 호젓한 등산이 시작된다. 조금 전만 해도 사선암에서 전국에서 몰려온 많은 사람들의 복잡함 속에 있었는데 그들 무리를 빠져나와서 혼자 걷는 기분도 좋다.오산에서 매봉을 거쳐 둥주리봉으로 걸어가는 길은 혼자다. 단풍철에는 산악회에서 주로 단풍이 곱게 찾아드는 명산을 찾아가기 마련이지만 전국 산을 다녀보면 알려지지 않은 산도 그 경치가 빼어나 함께 하지 못하는 아쉬움이 많다.400m쯤 지나니 매봉(528m)이 나타나고, 그곳에서 둥주리봉까지 4.2km이다. 원래 이 길 선바위산책길 1.1km 거리는 등산하기 편안한 길로 등산로가 잘 정비돼 있어 사색하며 걷는 길로써는 안성맞춤이다.선바위전망대에 도착하여 혼자서 주변을 살펴본다. 가을햇살이 따갑다. 멀리 구례쪽으로 흘러가는 섬진강의 모습이 잔잔히 눈앞에 펼쳐진다. 섬진강을 소재로 하는 숱한 글이 많지만 강은 그보다 더 많은 비밀을 안고서 묵묵히 흐르는 것이다.조금 전에 여럿사람과 올랐던 사선암이 오른쪽에 보인다. 시간으로 따지면 불과 몇십 분 전이고 거리로 따져도 1km 남짓한데, 함께 산을 올랐던 일행들이나 절에 온 사람들의 모습이나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이미 시공에서 멀어졌고 굳이 말하자면 과거 속으로 흘러간 것이다.삼거리 갈림길을 지나 선바위에 올랐다가 다시 걸음을 재촉한다. 이정표를 보니 여기서부터 둥주리봉까지는 3km인데, 잘 다듬어진 소나무 숲길로 나 있어 정말 마음이 편안한 등산이다.이름 없는 등성이 무명봉에 홀로 올랐다가 헬기장 인근에 다다르니 벌써 1시 40분이나 됐다.소나무가 있는 전망좋은 그늘을 찾아 잠시 쉬면서 가져온 음식으로 점심식사를 한다. 여느 때 같으면 옹기종기 둘러앉아서 이런 저런 이야기하면서 식사를 할 테지만 이번은 사정이 다르다. 급한 것이 없으니 천천히 식사를 하고나서 주변의 풍경도 즐긴다.때늦은 시간에 식사를 하고 잠시 쉬고 난 후에 등산을 계속해 배바위를 지나 삼거리 전망 테크에서 등산 온 일행을 만났다. 이곳까지 오면서 처음으로 만난 일행이었는데 그들은 목재 테크에 자리를 깔고서 때늦은 오찬을 하면서 오후의 가을소풍을 즐기고 있었다.이번 등산길에서 다른 평이한 길과는 다르게 암반길을 조금 걷다보니 주봉이 나타났다. 이곳이 동주리봉이다. 오산에서 일행과 헤어져 혼자 등산을 시작한지 2시간 반이 걸려 여기까지 왔다.마지막 산 정상(690m)에서 전망을 본다. 지리산이 가까워서인지 저 멀리로 보이는 산들의 산세가 웅장해 보인다. 울긋불긋 물드는 가을 산은 전국 어디를 가나 풍경이 아름답다. 게다가 오늘은 혼자서 자연의 경치를 살피면서 호젓하게 걷다보니 더 많은 생각을 가지면서 등산에 대한 애착을 가진다.많은 사람들이 산이나 자연을 좋아해 답사하고 있지만 자연을 대하는 문화적인 성숙도는 낮다. 등산을 하고서는 다른 사람들은 안중에도 없이 자리를 깔고서는 술을 먹고서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르는 꼴불견들도 자주 보인다.특히 가을에는 단풍놀이 오는 사람들 가운데 질서를 지키지 않고 자연에 대한 방종자들이 많다. 이런 류의 사람들은 거의가 산에 와서 놀고 난 뒤에도 쓰레기를 아무데나 방치하는 등 성숙한 등산문화가 없다. 산에 와서는 자연을 느끼고 자기를 뒤돌아보고 해야 되는데, 자신만 생각하지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부족하다. 그래서 늘 아쉬움으로 남는다.이제 동해마을 쪽으로 하산하면 일정이 끝난다. 둥주리봉에서 동해마을 쪽으로 가는 등산로는 잘 다듬어지지 않아 필자는 집중해 마을로 하산했다. 시간을 보니 오후 3시 20분이었고, 국도를 따라 30분 걸어서 주차장까지 걸어왔다. 오늘 사선암과 오산을 거쳐 둥주리봉까지 코스를 완주하는데 총 5시간 10분이나 걸렸다.이번 산행은 다른 산행과는 달리 도중에 일행과 헤어져 홀로 등산을 했다. 자연을 배우며 한창 무르익는 가을볕을 이고 호젓한 가을 등산을 하니 마음의 여유가 쌓인다. 한편으로 등산하는 동안 자신에 대해서도 성찰해본 계기가 됐다. 지금까지 살아온 길과 또 앞으로 가치 있게 살아갈 날에 대해, 그리고 어떻게 하는 것이 잘사는 것인지 인생철학까지 두루 생각나게 한 의미 있는 등산이었다.구례 10경 중 하나인 기암괴석 위에 세워진 사선암과 밑으로 섬진강을 굽어보는 오산의 풍경은 빼어났다. 기도처로서도 유명한 곳이지만 주변 전망도 워낙 좋아 자연의 길로 통하는 구례군이 자신 있게 홍보해도 손색이 전혀 없는 곳이다.그러니 “오산을 오르지 않으면 후회할 것이고 다시 가지 않아도 후회할 것이다”는 말이 설득력을 가진다.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다시 이곳 오산과 사선암을 찾아와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글·사진= 손경찬/수필가·예술소비운동 본부장

2013-11-15

청하현감 부임 겸재 정선, 내연산 배경 진경산수화 남겨

두바퀴路의 이번 문화 탐방지는 내연산이다. 겸재 정선(1676~1759)의 `갑인추 정선(甲寅秋 鄭敾)`이 각인돼 있는 연산폭포를 최종 목적지로 정했다. “여러분, 오늘은 속세의 욕심은 모두 내려놓고 내연산을 오르면서 자연과 하나 되어 다함께 신선이 됩시다” 박계현 (사)문화와 시민 이사장의 출발신호와 함께 내연산으로 향했다.쌍생폭포에 이르러 잠시 땀을 식히며 고개를 드니 왼쪽에는 우뚝 솟은 절벽이 천 길이나 되고 용추의 물은 검푸른 빛을 띨 만큼 깊어 바닥이 보이지 않았다. 두 줄기 폭포가 눈발처럼 하얀 물보라를 뿜어내며 절벽 아래로 떨어지는 모습이 더욱 장관이다.좁은 오르막을 한참이나 올랐나 싶더니 갑자기 계곡이 확 트이면서 암자에서 들려오는 독경소리가 온 계곡에 울려 퍼졌다. 가슴속에 쌓였던 속세의 때가 모두 씻기는 듯하다. 관음폭포를 둘러싼 봉우리는 마주 솟아 병풍처럼 이어지고 그 안은 다시 확 트여 하나의 거대한 선경을 이루었다. 출렁다리를 건너면서 내려다본 관음폭포는 유리처럼 푸르고 맑았다. 그 아래의 계곡을 굽어보니 정신이 아찔하였다.눈앞에는 만 길의 높은 절벽이 담처럼 빙 둘러 에워싸고 있는 속에 마침내 연산폭포가 모습을 드러냈다. 왼쪽 절벽에 폭포가 걸려 있는데, 절벽 틈을 따라 폭포수가 깎아지른 벼랑에서 곧장 떨어지는데 떨어진 물이 사방으로 흩뿌려져 골짜기가 온통 안개와 흰 눈 속에 휩싸이는 것 같았다. 사람으로 하여금 인간 세상을 훌훌 떠나고 싶은 마음이 들게 했다.연산폭포 사방 암벽에는 머물다간 명사들의 이름들이 새겨져 있었다. 자신을 드러내고 싶은 인간의 욕심인가 싶지만 그래도 그 흔적을 남겨두어 후손은 과거를 탐지하는 재미가 있어 그 역시 좋다.겸재는 이 기암절벽 어딘가에 자신의 흔적을 바위에 새기고 내연산의 진경을 그림으로 남겼다. 바로 그때 신일권 박사의 목소리가 들린다. “찾았습니다. `갑인추 정선`, 글자가 주변 다른 각자(刻字)에 비해 너무 작게 새겨져있고 마모돼 두 눈 부릅떠야 보이네요.”겸재는 1733년에서 1735년까지 청하현감을 지내면서 청하 고을의 `청하성읍도`와 내연산의 비경을 담은 `내연삼용추`, `내연산폭포도`, `고사의송관란도`등의 작품을 남겼다.우리나라의 진짜 산천 그린다는 의미에서 `眞景`연산폭포 기암절벽에 `甲寅秋 鄭敾` 희미한 刻字명승지 소재로 내면적 주관 표현“이 박사님 진경산수화가 무슨 뜻입니까. 실제 경치를 그렸는데 실경산수화와 다릅니까?” 박계현 이사장이 미술사학을 전공한 이나나 박사에게 설명을 부탁했다.“노·장 사상을 근원으로 하는 산수화는 속세와 단절된, 때 묻지 않은 깊고 그윽한 심산유곡(深山幽谷)을 그린 것입니다. 즉 기암절벽과 짙은 운무가 가득하여 인간의 발길이 닿기 힘든 산을 그린 그림입니다. 조선전기 까지만 해도 우리나라의 산수화는 중국산천을 그렸습니다. 조선후기에 들어서면서 중국산천을 그리지 말고 조선의 산수를 그리자는 주장이 일어났습니다.정선의 진경산수화가 지닌 가장 큰 의의는 바로 우리나라의 명산과 명승지를 소재로 삼았다는 것과 그 속에 담아낸 작가의 이념입니다. 정선의 `금강전도`와 `인왕제색도`를 보면 모두 실경을 소재로 하였지만 `실경산수화`라 부르지 않고 오히려 `진경산수화`라고 합니다. 실경을 대상으로 그려진 그림이지만 `형사(형태를 같게 그림)` 보다는 문인화의 요체인 `신사·사의·전신(정신을 그림)`의 묘사에 그 중심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원대의 황공망이 `천지석벽도`나 `부춘산거도`에서 실경을 기하하적으로 시각화하여 대상을 재현했던 차원과 유사하며, 명의 심주가 실경을 재해석하여 점·선·면으로 조형화시킨 표현과 흑백의 대비로 음양의 조화에 주목하는 원리와도 같습니다.정선의 `금강전도`와 `인왕제색도`는 실제 금강산과 인왕산이 지닌 특수한 현장감이 크게 부각되면서도 흑과 백의 대비라는 음양의 원리에 입각하여 제작되었습니다. 음과 양은 `주역`에서 세상만물의 근원으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금강전도`의 화면구성은 암산(陽)이 토산(陰)을 감싸는 태극모양의 원형구도입니다. 음양의 조화를 추구하면서 금강산의 특징을 절묘하게 드러냈습니다. 기법적인 측면에서도 백색의 암산은 북종화 기법의 강한 부벽준으로 표현되어졌고, 수림이 우거진 토산은 서정적인 남종화의 부드러운 묵법으로 처리되어 이 역시 음양의 조화로움을 이루고 있습니다. `인왕제색도`는 비온 후 맑게 갠 인왕산 모습이 기운생동하게 농묵으로 묘사되었습니다. 정선은 인왕산의 백색 암산이 비에 젖어 거무스름한 바위로 변화되어 보이는 것에 주목하였습니다. 비로 인해 검게 변하여 더욱 중량감 있어 보이게 표현된 암산[양]과 비에 젖어 온통 검게 보이는 숲을 백색의 운무(음)로 감싸듯이 표현하였습니다. 정선은 바로 여기서 흑(바위)과 백(안개) 그리고 강함(바위)과 부드러움(안개)이라는 음양의 대비로 해석하여 조형화하였습니다. 중국풍 산수화와 분명히 달라정선의 산수화를 `실경`이라 하지 않고 `진경`이라 부르는 것도 외형적 사실 보다는 작가의 내면적 주관을 더욱 중시해 표현되어졌기 때문입니다. `참(眞)`은 `거짓(假)`의 상대개념입니다. 즉 중국의 산수를 `거짓(假)`으로 보고, 우리나라의 산수를 `참(眞)`으로 본 것입니다. `진경`이란 중국의 `거짓 산수`가 아닌 우리나라의 `참 산수`를 그린다는 뜻입니다. 그 당시에 `사실적`이라는 말은 `참(眞)`이란 뜻으로, 오늘날 대상을 있는 그대로 사실적으로 그린다는 사실화와는 그 의미가 다릅니다. 겸재의 산수화는 중국의 산천이 아닌 우리나라의 진짜 산천을 그린다는 의미에서 `진경산수화`라 부릅니다. 겸재의 그림은 우리나라나 산천을 그리되 그 속에 있는 사물들은 작가의 상상에 의해 빼기도하고 더하기도 하는 것입니다.그런데 이러한 `진경`의 의미를 모르는 일부 비전문가들이 겸재의 `고사의송관란도` 속에 있는 소나무가 비하대에 실존한다면서 `겸재송`이라고 부릅니다. 겸재의 산수화는 우리산천을 그린 진경산수화도 있지만 중국풍의 남종산수화도 있습니다. 진경산수화와 중국풍의 산수화는 분명히 다릅니다.첫째 그림 속의 인물이 다릅니다. 중국풍에는 중국의 고사나 문인들이 나타납니다. 그들이 입은 복장은 모두 중국 고대 의복입니다. 하지만 겸재의 진경산수화에는 갓을 쓰고 도포를 입은 조선의 선비들이 산수를 즐기고 있습니다. 둘째는 지명입니다. 진경산수화는 실경이기 때문에 `내연산삼용추`와 같이 실명이 기록됩니다. 그러나 중국풍은 실존이 아니기 때문에 작품에 `만추`와 같이 계절과 관련되거나 고사 인물의 이름이 사용됩니다. `고사의송관란도`는 그림 옆에 `삼용추폭하 유연견남산`(三龍湫瀑下 悠然見南山, 삼용추폭포 아래서 한가로이 남산을 바라본다)고 쓰여 있습니다. `유연견남산`은 겸재가 도연명의 시 `음주` 20수 중 제5수의 싯구를 차용한 것입니다. 즉 이 그림은 겸재가 삼용추폭포 아래에서 도연명과 같은 은자의 삶을 동경하며 그린 중국풍의 남종산수화입니다. 그림 속 인물을 자세히 살펴보면 중국 그림 속에 나오는 고사들의 복장과 머리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이 그림은 높은 인품을 가진 은자를 상상해서 그린 것으로 실존 인물이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고사가 의지하고 있는 소나무 또한 실재하는 소나무가 아닙니다.”이나나 박사의 명쾌한 설명에 모두들 감탄과 함께 우레와 같은 박수를 쳤다.오늘 한 중앙지에 `억지스토리 전국문화관광 축제의 현실`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려 있었다. 지자체가 주최·주관하거나 지원하는 문화 사업에 억지스토리가 난무한다고 한다.지원금 심사위원으로 참여한 한 인사는 배점표에 스토리텔링 항목이 있으니 확실한 문헌 증거도 없는데 무리한 스토리를 만들어 넣고, 억지스러운 스토리텔링으로 덧칠한다고 지적했다.포항 내연산의 뛰어난 절경과 겸재 정선이 남긴 내연산 그림들은 충분히 문화적 가치가 높다. 그러나 `겸재송`이라든지 청하의 내연산을 겸재 진경산수화의 발원지로 과잉 포장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좀더 심도 깊은 학술연구를 통해 합당한 방법을 찾아가는 것이 바람직한 지역 문화의 발굴이 될 것이다.◇ 대표집필:모성은 교수◇ 문화가이드:이나나 미술사학 박사◇ 자전거 협찬:서일주(포항녹색희망자전거사업단 단장)◇ 사진촬영:안성용, 황종희◇ 집필지도:이나나, 신일권◇ 취재동행:박계현, 이명희, 이영숙, 이선덕, 김효은, 노경훈◇ 제작책임:사단법인 문화와 시민

2013-11-14

“포항 발전이 대한민국, 나아가 세계 발전 이끌 것”

이명박 전 대통령이 13일 포항을 방문했다. 이 전 대통령은 이날 포항시청과 고향인 북구 흥해읍 덕성1리의 덕실마을과 신광리 선영, 죽도시장, 포항운하 현장을 찾아 고향사람들을 만났다. △ 포항시청이날 오전 10시 10분 포항시청 정문에 도착했다. 포항시민과 공무원들이 시청 출입구에 길게 늘어서 큰 박수로 이 전대통령을 맞이했다. 3층 현관에 마련된 방명록에 서명하고 기관장들과 환담한 뒤 시청 대회의실에 들어섰다.지역 기관장들의 환영인사를 받고 영상물 시청을 한 뒤 고향방문 소감을 밝혔다.이 전 대통령은 “대통령에서 물러난 이후 첫 공식 방문으로 고향을 찾게 돼 감개무량하다. 고향은 늘 가슴 설렌다. 어렵고 힘들 때마다 고향은 늘 큰 힘이 되어주었다. 대임을 무사히 마칠 때까지 항상 도움을 준 고향 사람들에게 거듭 감사를 드린다”고 인사를 했다.이어 “포항에 올 때마다 엄청난 발전 속도를 느낀다. 어릴 적 기억을 못할 정도다. 대한민국의 발전속도를 능가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산업과 환경 등 종합적이고 균형적인 발전을 거듭하고 있는 포항의 모습을 보니 정말 기쁘다”고 격려했다.이 전대통령은 이와 함께 감사나눔운동에 대한 칭찬도 했다.이 전대통령은 “포항에서 감사나눔운동을 한 것은 참 잘한 것이다. 대통령 재임시절 교육관계자들을 만날 때마다 작은 도시 포항의 감사나눔운동을 자랑했다”고 운을 뗀 뒤 “남을 인정하고 존경하는 사회를 만드는 바탕은 어렸을 때부터 시작해야 한다. 국민 모두가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게 되면 갈등과 분열도 없을 것이다. 감사나눔 운동은 이런 사회를 만드는 운동이다”고 칭찬했다.이 전 대통령은 또 “세계 2차세계대전 후 독립한 국가 가운데 원조를 주는 국가가 된 곳은 대한민국이 유일하다”며 “대한민국은 이제 인구 5000만명 이상, 국민소득 2만 달러를 넘는 명실공히 선진국이 됐다”고 강조했다.이와 함께 “세계가 대한민국을 높이 평가하면서 대한민국은 새로운 시대를 맞고 있다. 이제 선진화된 대한민국은 선진화된 위상에 걸맞게 민주화도 한 단계 더 도약해야 한다”고 설명했다.대한민국은 이제 더이상 약소국이 아니라 일본, 중국과 대등한 21세기 강대국으로 민주화 산업화를 동시에 이룬 나라이다. 이제 도전정신과 용기를 갖고 이를 한단계 더 발전시켜나가야 한다고 덧붙였다.이 전대통령은 “포항은 항상 국가발전의 중심이었고 이제 포항의 발전은 대한민국, 나아가 세계의 발전을 이끌 것”이라고 강조했다. △덕실마을오전 11시30분께 이 전 대통령이 덕실마을을 찾자 마을 주민과 동문들, 기관 단체장, 상공인 등 200여 명은 박수갈채와 환호성으로 맞이했다.이 전 대통령은 덕실마을 회관에서 마을 주민들을 만난 뒤 덕실관에 들러 그동안 활동했던 자신의 사진과 게시물들을 둘러보고 자신의 일대기를 다룬 영상을 감상하기도 했다. 이 자리에서 이 전 대통령은 재직 당시 자신이 지인으로부터 선물을 받았던 `청하지도`를 덕실관에 기증했다. 청하지도는 조선시대였던 지난 1872년 흥선대원군의 명으로 자신의 고향인 청하현(현재 포항시 북구 청라면·송라면 일대)의 현감이 제작·복원해 올린 지방지도다.이후 주민간담회에서 이 전 대통령은 포항의 자랑거리인 포항물회와 영일만친구 막걸리 등으로 오찬을 했다. 이 전 대통령은 “그동안 보지 못했던 문중 사람들과 고향 사람들, 친구들을 드디어 만났다”며 “지난 5년의 임기 동안 지지와 배려를 아끼지 않았던 여러분 덕분에 세계적 금융위기가 찾아왔던 임기를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며 그리움과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대통령이 되어 버린 이웃사촌을 손꼽아 기다리는 어르신도 만날 수 있었다.이 전 대통령의 이웃사촌이자 먼 친척이라 소개한 조규자(75) 할머니는 “아주 어렸을 때는 일본에 살았지만 이곳에 와서는 먹고살기가 빠듯해도 나눌 줄 아는 인심 좋은 가족이었다”며 “이 전 대통령이 청와대에 있을 때 직접 만든 조청을 전달한 적이 있었는데 좋아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오늘도 조청을 준비해 왔다”며 밝은 표정을 지었다.복원된 자신의 생가를 둘러본 이 전 대통령 내외는 이후 북구 신광면 만석리의 선영을 참배했다. △죽도시장오후 3시께 이명박 전 대통령이 경북 동해안 최대규모를 자랑하는 죽도어시장을 방문하자 우레와 같은 박수갈채가 쏟아져 나왔다. 또 죽도시장을 찾은 관광객과 시민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다 뒤늦게 이 전 대통령임을 알아차리고는 자신의 스마트폰에 전 대통령의 사진을 담아내느라 분주한 모습이었다.이 전 대통령 내외는 시장 곳곳을 둘러보며 오징어와 고등어 등 싱싱한 수산물을 검은 비닐봉지에 담았다. 이곳에 있던 많은 시민들은 지갑에서 만원짜리를 꺼내 오징어를 맨손으로 비닐봉지에 담는 이 전 대통령을 보며 즐거운 한 때를 보냈다. 또 어떤 이들은 갑작스러운 전 대통령 내외의 방문에 놀라워하며 악수를 청하기도 하고, 함께 사진을 찍기도 했다.△포항운하오후 3시30분께 이 전 대통령이 찾은 포항운하건설현장에도 고향 방문을 환영하는 인파가 잇따랐다.이 자리에는 자신의 후배인 영흥초등학교 학생들과 동지고등학교 학생 등 총 80여명이 자신의 선배이자 전 대통령을 반기며 태극기를 흔들었다.후배들과 함께 사진촬영을 한 이 전 대통령은 동지고등학교 학생들과 함께 교가를 목소리 높여 부르기도 했다.이후 포항운하물관리센터에서 이병석 부의장과 박승호 포항시장 등에게 자세한 포항운하에 대한 설명을 들은 이 전 대통령은 “포항의 산업화가 이뤄졌으니 이제는 자연보전을 준비해야 할 때”라며 “포스코가 있는 포항이 이렇게 친환경적으로 바뀌면 포항의 이미지도 함께 좋아질 것”이라고 말했다.포항공항을 향하기 전 다시 한번 동지고등학교 후배들을 만난 이 전 대통령은 일일이 악수를 청하며 “공부도 열심히 하고 놀기도 열심히 해야 한다”는 당부의 말도 잊지 않았다.대통령이었던 대선배를 만난 동지고등학교 2학년 김창현 군은 “TV로만 보던 선배님을 직접 보니 신기하기도 하고 영광스러웠다”며 밝게 웃었다.눈코 뜰새 없이 바쁜 하루를 보낸 이명박 전 대통령은 아쉬움을 뒤로하고 포항공항을 향해 발걸음을 돌리며 이날 일정을 마무리했다./정철화기자 chhjeong@kbmaeil.com/윤경보기자 kbyoon@kbmaeil.com

2013-11-14

상주시, 대한민국 농업 선도·세계시장 개척 앞장

쌀과 배 생산량은 경북1위, 곶감은 전국시장의 60%를 차지, 명실상부한 전국1위. 전체인구중 농업 인구수가 36%인 상주는 대한민국 농업의 수도로 불린다. 상주농업의 현황과 장점을 살펴본다.농업인구 36%·경지면적 도내 최대로 `농업수도` 명성전국시장 60% 차지 곶감에 쌀·배·육계 등 최고 경쟁력국립 교육농장 등 인프라 추진, 귀농·귀촌 유치도 활발□대한민국 농업수도 선포상주는 삼한시대에 축조된 `공검지`가 있어 역사적으로도 농업과는 불가분의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낙동강유역의 넓은 평야와 풍부한 수자원으로 인해 수도작이 잘 발달해 있으며 전통 농경문화의 중심지로서 풍부한 농업문화자원도 보유하고 있다.농업은 상주시의 기간산업(基幹産業)으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데 전체 가구수 4만4천981호중 농가가 1만5천903호(36%)이고 전체 인구수 10만4천여명 중 농업 인구수는 3만8천508명(36%)에 달한다.경지면적은 2만6천187ha(논 1만5천511ha, 밭 1만676ha)로 도내에서 가장 넓고 곶감은 전국시장의 60%(전국1위)를 차지하고 있으며 오이 2만884t, 양봉 786t, 육계 311만8천수로 전국1위, 명실상감 한우는 전국2위, 쌀과 배는 경북1위의 생산량을 자랑한다.농산물 총생산 조수익은 연간 1조 2천억원을 넘어 1억 이상 고소득 농가가 1천500여 호나 돼 농사만 지어도 잘사는 도시라는 명성을 얻고 있다.상주시는 올해 전체예산 5천957억원중 전년대비 82억원이 증액된 약 1천17억원(17%)을 농업 인프라구축과 생산기반조성, 저장, 가공, 유통, 농업기술교육 등 농업·농촌분야에 지원하고 있다.상주시는 민선5기 출범과 더불어 지난 2011년 대한민국 농업의 수도임을 대·내외 천명하는 선포식을 가졌다. 이어 2011년 12월에 `대한민국 농업수도 상주`라는 업무표장 등록을 해 상주가 대한민국 농업의 중심지임을 만천하에 알렸다.이후 상주시는 상주농업 발전 방안을 마련하면서 2013-2017년까지 4대목표 4대전략 732개 세부과제를 설정하고 올해부터 농업 전 분야에 걸쳐 단계별로 사업에 착수하고 있다. □세계화를 향한 상주 농업 육성상주농업의 주요 육성 분야는 쌀, 곶감, 말, 누에와 명주, 포도, 사과, 배, 오미자, 한우, 양봉, 육계 등을 꼽을 수 있다.상주 곶감은 전국적으로 유명하다.2005년부터 상주곶감산업 육성을 위해 시청 산림공원과 내에 곶감전담팀을 신설해 재배, 가공 기술교육 체계화를 통한 철저한 품질관리와 함께 전처리위생시설(HACCP)을 추진하고 있다. 곶감의 저장·보관·유통 방법에 대한 개선과 연구는 물론 종합적인 곶감산업 기반 구축을 통해 상주곶감의 세계시장 석권도 넘보고 있다.상주쌀은 예로부터 토질이 좋아 밥맛이 뛰어나기로 유명하며 생산량 또한 도내 1위로 `쌀 산업 선진화 프로젝트”를 가동하고 있다.상주의 슬로시티 친환경 녹색농업은 `국민과 자연이 함께 하는 친환경 녹색산업 구현`이라는 비전 아래 2015년까지 무농약 이상 인증농가 3천600호를 육성하고 친환경농산물 재배면적을 전체 재배면적 대비 12%까지 확대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다.상주는 포도 생산량 경북3위, 배 생산량 경북1위, 사과 생산량 경북 8위 등 주요 과수 주산지로 2004년 한ㆍ칠레 FTA체결 이후 과수 재배농가 생산시설 현대화사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특히 대체과수명품화사업,다목적농가형저온저장고지원사업,에너지이용효율화사업, 화훼경쟁력제고사업, 잠업명품화사업 등을 통해 FTA체결로 어려움에 처해있는 원예특작 농가에 대한 경쟁력을 더욱 높여가고 있다.상주시는 국제규모의 승마장을 보유한 승마도시로서 말산업 육성을 위해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지난 2010년부터 전국 말 산업을 주도하기 위해 축산유통과 내에 말 산업팀을 신설해 착실히 기반을 다져오고 있는데 2013년부터 승용마, 경주마 생산농가 육성을 위해 경북도와 함께 예산을 확보하고 구입자금, 관세 등에 대한 지원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아울러 경마장 건설이 영천시로 확정되자 지자체간 중복투자와 과잉경쟁을 피하기 위해 그 방향을 승용마와 식용마 쪽으로 돌리고 승용마 육성센터건립, 에코힐링 호스파크 등을 추진하고 있다. □농산물 세계시장 진출 확대상주시는 국내외적으로 어려움에 처해 있는 농업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농식품 해외수출을 최우선 목표로 정하고 전국 지자체중 최초로 국제통상T/F팀을 출범시켰다.2013년도 수출 목표를 지난해 135억원 대비 207%가 증가한 300억원으로 잡았으며 3년후에는 농특산품 1천억원 수출을 계획하고 있다.올해는 농특산물 해외수출 전략프로젝트를 가동해 캐나다,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미국 등지로 2천312t(76억원)을 수출했는가 하면 뉴질랜드에 첫 참배 수출망을 확보 하기도 했다.시는 상주 농산물 세계 진출을 위해 미국 데이비스시, 중국 의춘시, 대만 기륭시 등과 자매결연을 하고 교류를 확대하는 한편 민간수출 유통사업단을 발족하고 농산물 원예수출단지 확대조성, 농식품 해외시장 개척과 수출 마인드 제고 등 7대 전략 프로젝트를 활발하게 추진하고 있다. □전국 귀농귀촌 1번지 상주시는 지난해 4월, 귀농·귀촌추진을 위해 10명의 인원으로 T/F팀을 구성했으며 올해 4월 5일에는 서울 사무소에 이어 부산과 경남지역 귀농귀촌인 유치를 목적으로 부산사무소를 추가 개설했다.특히 매년 500가구 5년간 3천가구 유치를 목표로 귀농귀촌을 위한 다양한 시책과 지원을 펼치고 있다.이 결과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벌써 434가구 724명(지난달 21일 기준)의 귀농·귀촌인을 유치했다.귀농.귀촌인 유치를 위해 입주자 주도형 소규모 전원마을을 조성하고 농가 소득지원 사업, 농가주택수리비 지원, 영농 정착금 지원 등 다양한 시책을 추진하고 있다시는 서울과 부산 등 대도시 베이비 부머 세대 퇴직예정자를 대상으로 상주만이 가지는 색깔있는 시책과 여건을 적극 홍보하는 세일즈 행정을 펼치고 있다.□농업 인프라 구축 활발상주는 대한민국의 농업을 선도 하기위한 농업 중심도시가 되기 위해 그 위상에 맞는 관련 인프라를 하나씩 구축해 나갈 계획이다.△국립 교육농장 건립=상주시 낙동면 장곡리 일원에 2014년부터 2016년까지 18만6천㎡ 면적에 2만6천㎡ 규모의 국립 교육농장건립을 추진하고 있다.△농업시험연구 재배단지 조성=상주시 사벌면 삼덕리 일원에 2014년부터 2016년까지 70ha(21만평) 규모의 농업시험연구 재배단지를 조성한다.△경북 생명건강산업 특화단지 조성=상주시 함창읍, 이안, 은척면을 중심으로 슬로시티와 양잠 문화가 연계된 경상북도의 특화된 생명건강산업기반을 구축할 계획이다.△상주 농수산물도매시장 건립=상주시 화산동 일원에 2014년~2016년까지 3만평 부지에 농산물 공판시설, 수산물종합유통물류센터, 야외테마공원을 조성해 농업 물류의 중심으로 키워 나갈 계획이다.□상주 농업의 비전상주는 농업에 종사하는 농업인구 비율과 경지면적이 넓어 농사짓기에 최적의 요건을 갖추고 있다. 이러한 탄탄한 농업기반과 역사성을 살려 농업 수도의 명성을 높이고 농업을 상주시의 역량 산업으로 육성할 계획이다.현재 전국 시장의 60%이상을 점유하고 있는 상주곶감은 고품질화를 통한 세계진출로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인지도에서 미흡한 상주쌀은 품종개량을 통한 고품질화와 적극적인 마케팅을 통해 옛 명성을 찾아 나갈 계획이다.성백영 상주시장은 “상주 농업은 역사와 문화가 살아있는 전통 주력 산업인 만큼 농사짓기 좋은 여건과 사통팔달의 교통망을 최대한 활용해 농업 중심도시로 발전 시켜 나갈 것”이라며 “농사만 지어도 잘사는 도시, 누구나 와서 살고 싶은 농촌 힐링 도시를 만드는데 모든 행정역량을 집중할 계획”이라고 포부를 밝혔다.상주/곽인규기자 ikkwack@kbmaeil.com

2013-11-12

6·25전쟁 초반 불리한 전세 극적 역전시킨 `구국의 일전`

영천전투는 6·25전쟁 초기 아군에게 불리한 전세를 극적으로 역전시켜 전쟁의 마지막 보루인 낙동강방어선에서 위기를 구한 구국의 일전이었다. 이 전투는 1950년 9월 2일부터 13일까지 국군 8사단이 북한군 2군단의 공격을 방어한 6·25전쟁의 일대 전환점이 된 전투였다. 한국군 8사단은 이 전투에서 북한군 15사단을 궤멸시키고 승기를 잡았다.1950년 8월 말 북한군 2군단 15사단은 영천 동북 입암리에서 2개 연대를 증원받고 최종 공세를 준비했다. 이들의 목표는 영천을 점령한 다음 대구로 진출하는 것이었다. 국군 8사단은 보현산과 입암 남쪽 고지 일대에 방어진지를 편성한 후 이미 전초전을 수행하고 있었다. 영천은 신령ㆍ구산동ㆍ입암으로부터의 도로 교차점으로, 대구와 경주 방향으로의 도로망이 발달돼 있고 중앙선ㆍ대구선ㆍ동해남부선 등 철도의 분기점으로 군사요충지다. 이곳이 뚫릴 경우 대구와 경주 방면이 위협을 받게 되며 국군 1ㆍ2군단이 분리되는 동시에 동서 간의 보급로가 차단된다. 따라서 이곳은 낙동강 전선의 전략적 요충지였다.영천전투 메모리얼파크 사업, 279억원 투입 내년 말 완공호국원·마현산 일대 `호국추모`·`전쟁체험` 권역구분 조성 □ 북한군 9월 공세와 영천의 위기북한군 전선사령부는 1950년 9월 2일 전 전선에 걸쳐 공격을 명령했다. 북한군 15사단도 이날 야간 영천을 목표로 일제히 공격했다. 국군 8사단은 적의 야간공격을 받고 분전했으나 3일 새벽 우일선 16연대의 방어진지가 무너지면서 영천북방 기룡산 일대로 철수했다. 국군 8사단은 4일 오후까지 기룡산 능선을 따라 방어선을 편성했다. 사단은 왼쪽부터 21연대, 16연대와 3연대 1대대, 7사단 5연대를 배치했다. 육군본부는 신령에서 작전 중인 7사단 8연대를 영천의 8사단으로 배속 전환시키고, 7사단 공병대대도 추가로 투입해 영천지구의 전력을 강화했다. 북한군 15사단은 9월 5일 새벽 1시 각종 포의 지원 하에 전차 5대를 선두로 3개 방면에서 공격을 개시했다.국군 8사단은 중앙의 16연대와 3연대 1대대가 적의 공격을 받아 수 시간 만에 돌파돼 위기를 맞았다.좌우측 21ㆍ5연대도 적의 공격을 저지하다가 부득이 영천 북방으로 물러났다. 육군본부는 5일 지휘 일원화를 고려해 국군 8사단을 2군단으로 배속 변경했다. 군단장은 적이 영천 돌파에 주력하고 있다고 판단하고 국군 1사단과 6사단에서 각 1개 연대를 8사단에 배속해 영천을 고수하기로 했다.당시 다부동과 신녕도 위기였기 때문에 이는 대단히 어려운 결단이었다. 군단장은 당장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 전차부대의 지원이 시급하다고 판단하고 직접 미 1기병사단과 8군사령부를 방문해 지원을 요청했다.적측에서도 이날 영천 점령의 지연 책임을 물어 15사단장 박성철을 경질하고 부군단장 조광열을 임명해 영천 돌파를 재촉했다. 이날 밤까지 계속된 전투에서 중앙의 16연대가 영천 외곽까지 밀리고 있었다. 이때 사단장 이성가 준장은 8연대로 역습을 전개해 가까스로 적의 돌파구 확대를 저지하게 됐다. □ 적의 돌파구 봉쇄와 반격 준비9월 5일 야간부터 북한군 15사단은 영천을 공격하기 시작해 다음날 새벽 수대의 전차를 선두로 읍내로 진입했다. 기습을 당한 16ㆍ8연대는 더 이상 적의 공격을 저지하지 못하고 영천 남쪽으로 철수했으며, 영천을 점령한 적은 곧바로 경주 방면으로 진격을 계속했다.8사단장은 즉시 군단에 증원 부대를 요청하고 오수동에서 철수부대를 재편성했다. 이날 오후 좌전방 21연대를 공격하던 적 15사단 45연대도 남하해 영천의 돌파구 확대를 기도했다. 이날 오전 사단 공병대대는 군단장의 요청으로 도착한 미군 전차 1개 소대(5대)의 지원 하에 영천읍내로 돌입했다.공격부대는 영천역을 경비하고 있던 소수의 적을 격퇴하고 영천을 탈환했으며, 이때 40여 대의 차량과 10여 문의 대전차포를 노획했다. 공병대대는 전차의 지원 하에 완산동으로 진출했으나, 저녁 무렵 조교동 일대의 적으로부터 역습을 받을 위험이 있어 다시 물러났다.9월 6일 오후 국군 2군단의 증원부대인 1사단 11연대와 6사단 19연대가 영천에 도착했다. 이로써 8사단은 비로소 영천 동북방에서 돌파 저지선을 형성하고 예비부대를 확보할 수 있게 됐다. 9월 7일 새벽 국군 21연대가 적 103연대의 공격을 수차례 격퇴했으며, 19연대도 아침 무렵 적의 보급지원부대를 기습해 큰 전과를 올리고 다음날 오후 2시 45분 영천을 장악한 적을 격멸하고 영천을 다시 탈환했다. □ 총반격작전과 적 부대의 포위 섬멸국군 2군단은 10일부터 총 반격전을 개시했다. 군단은 영천 북쪽에서 21ㆍ19연대로 적의 퇴로를 차단하고 영천 남쪽에서는 5연대를 선봉으로 총 5개 연대가 반격했다. 5연대는 포병과 공군기의 지원 하에 임포동 부근의 적을 기습해 차량 50대, 야포 10여 문을 파괴하는 전과를 달성했으며, 10ㆍ8ㆍ11연대도 미군 전차의 지원 하에 일제히 유상동, 유하동 방면으로 진출했다. 16연대는 재편성 후 작산동으로 진출해 무질서하게 퇴각하는 적을 추격했다. 8연대는 우측 11연대가 1사단으로 복귀하자 그 지역까지를 담당하고 5연대와 협조해 북진했다. 5연대는 임포동 부근의 적 56연대 본부를 공격해 전차 2대, 박격포 6문을 노획하면서 적을 격멸했으며 이로써 5일간이나 차단됐던 영천~경주 사이의 도로가 완전히 개통됐다. 이무렵 적은 퇴로가 차단된 상황에서 총반격을 받아 거의 전멸된 상태에서 분산 철수하고 있었다. 영천 남쪽에서 적을 추격하던 10연대는 11일 21ㆍ19연대 사이 신흥동을 경유해 곧바로 평천동으로 진출했으며, 21ㆍ19연대도 월곡동ㆍ운천동으로 각각 진출해 적의 퇴로를 차단했다.각 공격부대는 12일 마침내 9월 공세 이전 8사단 주저항선을 회복하는 데 성공했고, 반면 적 15사단은 전투력을 완전히 상실했다. □ 영천전투 결과영천전투는 낙동강방어선에서 돌파되느냐 사수하느냐를 가름할 만큼 전쟁의 전환점이 된 중요한 전투였다.특히 9월 5~6일 대구와 경주가 위협받을 무렵에 영천이 돌파되어 그 위기가 더욱 가중됐다.북한군 2군단은 5개 연대를 투입해 영천을 점령하고 경주로 진출하려 했으나, 국군은 이곳에 7사단 3개 연대는 물론 1, 6사단의 각 1개 연대도 투입해 3개 사단으로 방어조치를 취하는 등 육군과 군단의 시의 적절한 지휘조치로써 위기를 극복하고 낙동강방어선을 지키는 데 결정적 기여를 했다.국군은 영천 부근에서 적 사살 3천799명, 포로 309명, 전차 5대 파괴, 장갑차 2대, 차량 85대, 소화기 2천327정 등을 노획하는 대전과를 달성했으며, 후에 적의 지휘부가 평가한 바에 의하면 영천의 상실로 전체 작전의 패색이 짙게 됐다고 분석했다.□호국성지 전투메모리얼파크충절의 고장 영천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할 영천전투메모리얼파크 조성사업은 고경면 청정리 소재 국립호국원과 마현산 정상의 창구·교촌동 일대 11만1천320㎡부지에 조성된다.내년 말까지 279억원(국도비 75%)이 투입돼 영천호국기념관 호국둘레길 염원의 마당 영천전투전망타워 시가전 고지전체험장 지휘통제센터 등을 만든다.전투메모리얼 파크사업은 호국추모권역과 전쟁체험권역으로 구분해 조성한다. 호국추모권역에는 영천호국기념관, 기억의 연못, 염원의 마당, 하늘길 등이 들어서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순국선열을 조용히 추상하며 새로운 각오를 다지는 장소로 만든다는 계획이다. 전쟁체험권역은 영천전투 전망 타워, 영천시가전 체험장, 야외 숙영 체험장, 고지전 체험장, 국군 훈련장, 지휘통제센터, 충혼탑 주변 정비를 해 학생들에게 전쟁의 체험을 해봄으로써 평화의 중요성을 각인시킨다는 계획이다.경북도 사회복지과 이복영 사무관은 “갈수록 희미해져가는 청소년들의 애국에 대한 인식전환과 아울러 세계적 추세인 `다크 투어리즘`(Dark Tourism)을 통한 역사의식 함양 및 관광활성화를 추구하고 있다”고 밝혔다.◆다크 투어리즘=역사적으로 비극적이거나 잔악무도한 사건이 발생한 곳 또는 그러한 사건과 관련이 있는 곳을 여행하는 것을 의미한다. 대표적인 곳으로는 아우슈비츠(폴란드), 뉴욕 그라운드제로, 진주만, 킬링필드(캄보디아)등이다./이창훈기자 myway@kbmaeil.com

2013-11-11

동대구역세권은 지금 마천루 숲으로 변신 준비 끝

대구지역은 과거 몇 년간 건설사들의 무덤으로 통했다.하지만 최근 2~3년 동안 10여년만에 이른바 `떴다방`이 등장해 검·경이 단속에 나서는가 하면 타지역 부동산 경기는 침체 일로를 걷고 있는데 반해 대구지역은 연일 상승하는 등 부동산 붐이 일고 있다. 이는 동대구역세권 개발이라는 강력한 호재가 등장한 것을 비롯한 대구국가산업단지 개발, 대구혁신도시 건설 등이 한몫하고 있기 때문이다.특히 동대구역세권 개발로 인해 현재 동대구역 주변은 이제 오피스텔 건설 현장이 줄을 이었고 일부 주민들은 공영주차장에 내려놓은 건설사들의 무분별한 건설자재 하역으로 통행에 어려움을 겪는 민원을 제기할 정도로 많아진 상태다. 특히 동대구역세권 개발의 중심인 동대구복합환승센터는 신세계건설이 오는 12월중에 착공해 오는 2016년 하반기에 완공할 예정이다.이에 따라 동대구역 주변은 하루가 다르게 하늘 높이 올라가는 건물들이 늘어나고 있다.이같은 변화는 동쪽으로는 대구 지하철 아양역, 서쪽은 지하철 신천역, 남쪽은 수성구 범어네거리, 북쪽은 파티마 병원을 잇는 지역들에서 확연하게 드러나고 있다. 동대구역세권에 포함된 곳에서 건설 중이거나 건설계획을 잡는 오피스텔만도 10여 곳이 넘고, 증·개축을 서두르는 건물도 수도 없이 많다. 복합환승센터 건립 이후에는 인근의 빌딩 건축은 다반사로 진행될 것이라는 것이 부동산 관계자들의 전망이다.복합환승센터 완공땐 세계 기네스 등재 `부산 팬텀시티` 넘보는 규모 성장 전망 차량정체·기형적 팽창 등 각종 문제해결 안되면 시너지효과 상당 부분 빛 바래글 싣는 순서① 신서혁신도시와 이시아폴리스②동구평생학습축제③동촌 유원지의 대변화④동대구역세권 개발⑤팔공산 권역의 상전벽해□ 동대구역 부근은 온통 개발 붐동대구역세권 개발 호재에 따라 지난달 24일 대구지방법원 경매에 올라 지역 최고가로 이목을 집중시켰던 귀빈예식장 건물이 공시지만 296억원임에도 불구하고 단 한번만에 303억여원에 낙찰됐다.이번 낙찰에 대해 경매 및 부동산전문가들은 다소 비싼 가격임에도 동대구환승센터를 비롯해 동대구역세권개발 등에 따른 개발가치를 염두에 둔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이는 단순 토지 감정가만도 3.3㎡당 1천만원을 웃돌고 예식장 이외로 사용할 경우 68억원짜리 건물을 헐어야 하며 20억원 정도의 철거비용까지 부담해야 하는 등 낙찰후 비용만도 만만치 않음에도 낙찰됐기 때문이다.동대구역 주변인 신암동과 신천동일대 일반주택의 경우에도 이같은 역세권 개발에 힘입어 3.3㎡당 1천만원 이상에 거래가 성사되지만 앞으로 지가 상승여력이 많아 매물로 나오는 땅은 극히 적은 상태다. 경매 전문가들도 동대구복합환승센터가 건립되면 세계 기네스에 등재된 부산의 팬텀시티를 위협하는 규모로 성장해 침체된 대구경제는 물론이고 영남권 경제의 견인차 역할을 할 것으로 분석하고 있을 정도다.이같은 반향은 이미 지역 건설사인 화성산업이 대구법원옆에 주상복합 건물을 완공했고 서한도 동대구역 네거리에 오피스텔을 건축한 바 있으며 다른 업체들도 현재 진행중인 아파트 분양 이후 동대구역세권 개발 이익에 뛰어들 태세를 하고 있다. 발 빠른 건설사들의 움직임에는 결국 동대구역세권 개발이라는 호재로 인해 상전벽해의 모습을 할 동대구역 주변을 감지했기 때문이다.□ 일본서도 확인된 역세권 상전벽해동대구역세권 개발의 미래는 일본에서도 이미 확인된 바 있다. 일본의 교토, 오사카, 하카다 등의 복합환승센터 주변은 가히 상전벽해의 모습으로 변모했고 그 지역의 행정과 경제, 문화, 물류, 관광 등의 중심지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맡고 있다.동대구복합환승센터는 지하 7층, 지상 9층 규모에 전체면적 29만4천200㎡ (8만9천여평), 매장 면적 9만9천170㎡ (3만여평)의 초대형 시설이다.사업 시행자인 신세계 측은 동대구복합환승센터를 KTX동대구역사와 고속버스, 지하철이 연결되는 교통의 중심지로 개발하는 동시에 패션과 엔터테인먼트 등이 결합된 대구·경북지역 최고의 랜드마크로 만들겠다는 계획이다. 동대구역 인근에 흩어져 있던 고속버스 터미널이 복합환승센터로 들어오면 환승센터에는 문화·컨벤션·테마파크 등을 한곳에서 접할 수 있는 다양한 복합문화시설이 들어서는 등 일본 후쿠오카의 하카다 복합환승센터(하카다시티)와 비슷하다.신세계는 동대구복합 환승센터개발에 모두 8천억여원을 투자하는 만큼 지역 경제 회복에 전환점이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동대구복합환승센터 개점 이후 고용 창출에 의한 경제 효과는 예상 근무인원만 6천여명이고 이에 따른 2차 고용 효과도 1만2천여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했다. 또 광역 상권화에 따라 국내 고객은 물론 해외 관광객 등 연간 500만명 이상의 유동인구가 동대구복합환승센터를 이용할 것으로 전망돼 지역 경기 활성화에도 큰 도움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이에 따라 동촌유원지와 팔공산은 자연스럽게 전국에서 편리하게 쉴 수 있는 관광지로 부상하게 되고 동구의 청사진도 점차 이에 맞춰 변화에 변화를 거듭하는 계획을 세우는 등 대구신성장 동력으로서의 역할을 도맡아야 한다.□편의·접근성 망치는 교통대란 걱정개발이면에 편의성과 접근성을 망치게 하는 교통대란을 걱정하는 이들도 있다.우선 동대구로는 과거 도시계획을 잘한 관계로 교통량 증가시 현재 심어져 있는 가로수를 제거한다면 별다른 걱정은 없지만 가장 큰 문제점은 파티마병원 삼거리로 지목되고 있다.이 곳은 동대구복합환승센터가 건립되면 넘쳐나는 유동인구에다 주변에 자리잡은 오피스텔 이용객의 흐름 등을 고려해도 밀려드는 교통량을 감당하기 어려운 구조다.물론 성동고가도로는 개설 계획이 잡혀 있어 어느 정도 교통분산 효과는 있겠지만, 파티마 삼거리는 지금도 정체가 심각한 수준이기 때문에 대구 동구의회측은 신천3동~신암3동간 고가도로 건설의 계속된 요구에서 반영이 되지 않고 있다.이럴 경우 파티마병원을 찾는 응급환자 이송에 막대한 지장을 가져오는 것은 물론이고 철도, 고속버스, 시외버스 이용객들은 가히 교통지옥을 방불케 하는 신청 네거리에서 상당한 시간을 허비할 수밖에 없다.만성적인 정체현상을 빚는 동대구역 진입로처럼 되면 동대구복합환승센터를 찾는 이용객들은 다른 지역을 통해 유입할 수밖에 없어 역세권이라는 좋은 이점을 살리기 어려워진다는 것이 도시공학 관계자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대구 동구의회 신종하 의원은 “동대구역세권의 시너지 효과를 최대한 발휘하기 위해서는 주변과 상생하는 방안을 대구시가 마련해야 한다”면서 “그렇지 않으면 역세권 개발의 극대화는 기대하지 못하고 후적지의 기형적인 팽창만을 빚어올 것”이라고 밝혔다.신 의원은 “교통흐름을 우선시 하는 정책으로 개발하지 않는다면 차량 정체현상은 피할 수 없는 것이 되고 접근하기 어려운 역세권이라는 불명예를 안게 된다”며 “신천3동~신암3동간 고가도로 건설은 차량정체를 막고 지역의 균형적인 발전을 위해 길을 트는 것”이라고 제안했다.□사회적 약자와의 공생관계 생각해야또 다른 문제점이 하나 더 있다.바로 개발의 뒷전으로 내몰리는 행려자와 쪽방에 기거하는 이들이다.동대구역과 고속버스터미널 부근에는 모두 80여개동에 1천여개의 쪽방이 존재하며 이곳에 평균 800여명 이상이 하루 5천~8천원이나 월세 10만~18만원으로 살아가는 곳이다.대부분 낡은 여관이나 여인숙에서 기거하는 쪽방인들은 고령에다 노동능력도 부족해 개발의 뒷그림자를 형성하며 쓸쓸히 퇴장하는 일만 남아 있는 셈이다.여기에다 동대구역과 고속버스터미널에 상주하다시피하는 행려자들도 동대구복합환승센터 건립 이후 자취를 감춰야 하는 대상이다.오는 2016년 하반기 동대구복합환승센터 건립이후 현재 쪽방촌들은 개발에 밀려 사라지게 되면 현재의 쪽방인들과 행려자들은 극단의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내몰리게 된다.가장 큰 우려는 이들이 매혈을 통해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그 여파로 인해 노동력과 건강을 상실하는 단계로 접어들 가능성이 커 이들에 대한 대책도 대구시는 고민해야 하는 문제다.대구 동구의회 황순규 의원은 “동대구역세권개발은 우선 교통불편을 최소화하는 것이 관건이지만 개발 이면에 소외되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를 생각해야 하는 시점”이라며 “개발이익의 일부라도 쪽방촌 사람들과 노숙인, 행려자들을 배려하는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이어 황 의원은 “동대구역세권 일제정비안을 마련할 때 반드시 사회적 약자와 공생하는 쉼터 등을 마련하는 방안을 대구시와 동구청은 고려해야 한다”면서 “그렇지 않다면 개발업자와 땅주인만 이익을 보는 개발이 되고 그로인한 문제점은 다시 대구시민들의 세금을 통해 해결해야 하는 악순환을 반복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김영태기자 piuskk@kbmaeil.com

2013-11-11

독도경비대 유영재 상경

서울도 이제 많이 쌀쌀해졌겠구나. 수능 시험은 잘 쳤을 것으로 믿는다. 대학입학 준비로 정신없이 하루하루 보내고 있을 네 모습을 생각하니 아련해지네. 요즘 들어 시간이 참 빠르게 흐르는 것 같다.입대를 한 지 벌써 1년이 다돼가면서 계절도 몇 번이나 바뀌었고, 소대에는 이제 나를 가르쳐주던 선임들보다 새로운 후임들이 더 많아.그래서 그런지 이제는 가르쳐줘야 할 책임감을 느끼고 사소한 것이라도 좀 더 신중히 생각하고 어떤 일이든 간에 더 열심히 하려고 노력하고 있단다.소대 막내로 독도에 처음 들어왔던 게 엊그제 같은데 말이야. 얼마 전 10월25일은 독도의 날이었어. 많은 방송사와 언론사들이 독도의 날을 맞아 독도에 큰 관심을 보여주었다. 그날은 도서지역 합동훈련도 했는데 실전처럼 훈련하면서 겉만 번지르한 독도경비대원이 아닌 진정한 독도경비대원으로서 더욱 뿌듯함과 사명감을 느낄 수 있었단다.섬이라는 고립된 지역에서 생활하다 보니 어떨 때는 고립감을 느끼기도 하고 외로움을 타기도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네 오빠는 독도경비대원으로서 자긍심을 갖고 철저히 국토수호를 하고 있단다.사실 입대 전 나는 많은 걱정이 있었다. 또래 친구들이 대부분 전역을 하고 사회생활을 다시 시작하고 있는 걸 보니깐 뒤처진다는 느낌을 버릴 수가 없었다.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라는 말이 있다.너도 알고 있을 거야. 하지만, 그 당시 나로서는 사실 피하고 싶은 것을 즐긴다는 것 자체가 아이러니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어.어느덧 20대 중반이라는 꼬리표가 나를 따라다니고 있었고 취업은 취업대로 걱정이었으니 말이다.그렇게 한 달 정도 걱정을 하다가 우연히 인터넷으로 독도경비대라는 것을 알게 됐어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 다시 한 번 이 식상한 문장 하나가 내 뇌리에 박히더라고. 이번에는 가슴 깊이 다가왔지.대한건아로 태어난 이상, 국방의 의무는 당연히 져야 하는데 이왕 하는 군 생활 정말 멋지게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독도경비대 입대를 신청하게 됐지, 지역적 특성 때문에 스스로 걱정도 많이 했고 부모님께서도 처음에는 반대하셨지만 지금은 잘해내고 있다고 스스로 믿고 있단다.또한, 그 만큼 노력하고 있고. 지난봄 새 학기가 시작되고 지리 시간에 독도경비대원 오빠를 둔 것을 자랑스럽게 얘기했었다는 네가 기억나. 그때 나는 한창 전입신고를 마치고 소대생활에 적응하느라 바빴던 시기였다.너의 그 한마디가 얼마나 힘이 되고 위로가 되었던지 너는 모를 거다. 정말 고마웠단다. 동생아. 이제 그만 줄여야 할 것 같네.스스로 잘 해내리라 믿지만 시기가 시기인 만큼 마무리 잘할 수 있도록 하고, 너무 걱정하지 말고 즐기면서 잘 이겨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나 또한 대한민국 민족의 섬 독도를 지키는 자랑스러운 독도경비대원 오빠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할게.파이팅!

2013-11-11

칠곡의 가을, 마을마다 사람마다 인문학 사랑 빠지다

`칠곡의 마을! 인문학을 만나다` 란 주제로 지난 9월29일 시작된`2013 칠곡 평생학습 인문학 축제`가 지난달 27일 북삼 숭오리 감따기체험과 농악과 시골길걷기체험을 마지막으로 한달간의 대장정을 마무리 했다.인문학 축제는 기산면의 `어르신 잔치 및 꿈꾸는 시어터의 마당놀이`를 시작으로 8개 읍·면별로 14개 동네를 돌며 그 지역의 특색을 살린 마을축제형태로 열렸다. 지난달 18, 19일 양일간 칠곡교육문화회관에서 `성인문해교육백일장`이 메인행사로 스타트를 끊은 뒤 지난 10월 내내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면서 칠곡은 풍성한 인문학 체험의 장이 됐다.13만 군민과 함께한 축제는 장소를 구애받지 않고 칠곡군 구석구석을 찾아 다녔다. 평생학습의 장인 칠곡교육문화회관에서 시작하여 마을공동작업장, 체육공원, 장터, 마을회관, 아파트공원, 강변 등에서 사람냄새를 풍기면서 인정을 나누었다.8개 읍·면 14개 동네 특색 살려 진행체험프로그램 강화로 전세대 아울러 □ 인문학 마을축제이야기칠곡군에서 시도한 마을축제는 전주민이 함께 배우고 즐기고 참여하는 나눔문화 조성을 목적으로 만든 프로그램으로 지역주민과 운영 주체 간 상호정보교환의 장과 문화, 교육, 복지를 포함한 학교, 동네, 가족이 하나 되는 새로운 축제문화 형성에 중점을 두었다. 또한 혼자하면 삶의 일부이지만 함께하면 역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목표로 축제를 시작했다.▲ 인문학 북 콘서트칠곡의 평생학습 인문학축제는 다양함에서 해답을 찾고 있다. 먼저 창조지역사업 공모사업인 인문학도시조성사업에 선정되어 지자체주민을 대상으로 다양한 인문학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었다. 이를 바탕으로 다양한 인문학콘텐츠를 개발하여 인문학축제에 반영하여 성공된 프로그램을 선별하여 지난축제를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인문학의 첫걸음인 `성인문해교육백일장`을 시작으로 칠곡군교육문화회관에서 열린 메인개회식과 개막공연 `만두와 깔창` 연극, 40개의 학습동아리무대, 인문학 골든벨, 은빛가요제, 고은시인초청 북콘서트, 향사 박귀희명창 학술세미나 등의 각종행사와 50여개의 평생학습체험부스를 통해 군민과 인문학의 만남이 이루어졌다.축제를 만든 관계자는 “체험프로그램강화로 전 세대를 아우르는 음악적 요소를 부각한 축제로 지역주민이 자치단체의 행정과 정책에 자발적으로 참여하여 삶의 질 향상과 생활만족도에 기여 되었다면 축제의 목적은 달성되었다”고 밝혔다. □ 주민의 힘으로 인문학을 세우다칠곡군민들은 한달여간 진행된 인문학 축제를 통해 바쁜 일상으로 만나지 못했던 이웃주민들과 얼굴을 마주하며 친목과 화합을 다졌고 잊고 지내던 삶의 소중한 부분을 되찾는 계기가 되었다는 반응이다.백선기 칠곡군수는 인문학축제를 마치면서 “얼 쇼리스의 `희망의 인문학`에서는 인문학이란 삶의 가치를 다루는 일이다. 문학이나 역사 또는 철학이 오늘의 밥을 해결해 주지는 못하지만, 계속되는 인생에서 어떤 태도로 삶을 살아야 하는지는 일깨워 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인생의 굴곡에서 한편의 시가 삶을 지탱하는 위안이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고 강조하며 “평생학습의 바탕이 탄탄한 칠곡에서 인문학의 꽃이 활짝 피어 새로운 칠곡, 잘사는 칠곡의 바탕이 되는 인문학도시로 만들어 전국에서 가장 주민이 행복한 도시로 만드는 초석과 같다”고 덧붙였다. 한편 인문과학은 인간의 조건에 관해 탐구하는 학문이며, 자연 과학과 사회 과학이 경험적인 접근을 주로 사용하는 것과는 달리, 분석적이고 비판적이며 사변적인 방법을 폭넓게 사용한다. 인문과학의 분야로는 철학과 문학, 역사학, 고고학, 언어학, 종교학, 여성학, 미학, 예술, 음악, 신학 등이 있으며, 크게 문학, 역사, 철학으로 요약되기도 한다. 칠곡/윤광석기자 yoon777@kbmaeil.com

2013-11-08

서울 도봉산

인구 1천만명이 모여 사는 서울에는 등산하기에 딱 좋은 명산들도 많다. 한강을 굽어보면서 북쪽에 우뚝 솟은 북한산과 도봉산, 남쪽에 자리한 관악산이나 청계산은 시민들에게 훌륭한 등산을 제공해준다. 지난달에는 등산동호회원들과 함께 서울의 양대 명산 중 하나인 북한산에 올랐고, 이번에는 혼자서 도봉산에 오르기로 했다. 인연이 되니 보름사이에 서울의 명산 두 곳을 오를 기회가 생겨서 기분 좋게 도봉산을 다녀왔다.이번에는 개별 등산이다. 간단한 등산장비를 챙겨 지하철을 타고 도봉산역으로 향했다. 지하철 안에는 등산을 하러가는 사람들이 많다. 도봉산에도 가고 의정부 쪽이나 동두천의 산에 가는 사람들도 많다.자료를 보고 등산길을 선택했는데, 도봉산역에서 하차하여 산악박물관-쌍줄기약수터- 도봉서원- 천축사- 마당바위- 신선대를 거쳐 도봉산 정상인 자운봉에 올랐다가 하산하는 길이다.도봉서원-천축사-자운봉-우이동유원지 코스 6시간 소요신선대 오르면 선인·만장봉 등 늠름한 모습 장관… 풍광 최고도봉산 등산은 오르내리는 코스가 많다. 도봉산 정상인 자운봉을 올라갔다가 내려오는데, 올라가는 길이 많다보니 등산 출발지점이 여러 곳에 있다.하루 등산코스로는 대개가 도봉동 매표소에서 출발하여 도봉동매표소- 도봉서원- 도봉산장, 천축사와 마당바위를 지나 자운봉에 올랐다가 우이암을 거쳐 우이동유원지로 내려오는 코스를 택하는데 6시간가량 소요된다.3시간 30분 걸리는 반나절 코스는 도봉동과 도봉산장을 거쳐 자운봉에 올랐다가 내려오는 길은 두 가지를 선택한다. 첫째는 우이암- 우이동으로 내려오는 길이 있고, 둘째는 포대능선 안부-회룡사-회룡동으로 내려오는 길이다.도봉산역에서 내린 필자는 함께 내린 등산하러가는 청년 일행에게 등산로 초입을 대략 묻고서는 그들을 따라서 걷는다. 많은 등산인들이 가족 또는 지인들과 함께 유쾌한 기분으로 도봉산 산행을 시작한다.“다람쥐가 꿈꾸는 도봉산으로, 그대 손을 잡고서 같이 갈거나. 하늘에는 흰 구름이 둥실 떠 있고…” 필자는 도봉산 등산길을 시작하면서 원로가수 송민도씨의 노래 `행복한 일요일`을 콧노래로 부르면서 도봉산의 아름다운 가을산행을 마음에 그려본다.북한산국립공원 도봉매표소를 지나 곧장 가다보니 산악박물관이 나타났다. 2011년 10월 1일에 개방된 이 박물관에는 국내 등산인들이 국내외에서 활동하며 사용했던 장비 200여 점이 전시돼 있다.그 가운데 모형으로 만들어진 암벽과 빙벽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등반용 헬멧과 각종 빙설장비, 피켈 등이 전시돼 있는데, 자료들을 보면서 우리나라 산악인 역사를 아는데 도움이 됐다. 구경을 마치고 다시 등산길에 올라 광륜사 절을 거치고 계속 직진하니 쌍줄기약수터가 있다.여름철에는 이곳까지 올라오느라 힘들고 목이 마른 등산인들에게는 휴식터가 된다. 일부 등산인들이 약수를 마시면서 쉬고 있지만 필자는 젊은 사람 일행을 따라 계속 행보를 한다.도봉서원에 도착했다. 현재 서울에 남아 있는 서원으로는 유일하다는 도봉서원은 조광조 선생과 송시열 선생을 기리는 곳이다. 1573년 지방유학자들이 뜻을 모아 조선시대 유학자인 조광조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하고 위패를 모신 곳인데, 1696년 우암 송시열 선생이 함께 모셔졌다고 한다.계곡을 거쳐 길을 올라가는데 물이 적다. 여름철에는 이 일대에는 등산인들과 놀러 나온 시민들로 가득할 것이지만 가을에 계곡을 찾는 사람들은 적다. 도봉산대피소를 지나 등성이를 오르니 등이 하나둘 보이고, 계속 길을 따라 올라가니 천축사 절이 나타난다. 입구에 불상들이 모여 있는데 얼굴과 손동작이 모두 다르다.천축사는 도봉산 선인봉에서 동쪽 아래에 위치하고 있는 천년 고찰이다. 신라 문무왕 13년(673년)에 의상대사가 옥선암을 세웠고, 조선 태조 이성계가 여기서 100일 기도를 하고 나서 왕위에 올랐다고 하여 절을 개축하고서 천축사라 부르게 됐다고 하다.천축사 경내를 둘러보고 사찰 뒤에 우뚝 솟은 선인봉의 위엄 있는 모습을 보면서 사진을 찍었다. 여기서 처음 보는 장면이지만 보면 볼수록 위엄을 느끼고 도봉의 위세를 느끼게 한다. 선인봉의 풍경을 매료되면서 숲길과 바윗길을 헤쳐 드디어 마당바위에 도착했다.마당처럼 넓어 붙여진 마당바위에는 많은 등산인들이 앉아서 쉬고 있다. 필자도 등산객 속에서 잠시 망중한을 즐긴다. 멀리 서울 시내가 눈에 들어온다. 여기서 가까운 노원구, 도봉구 지역인데 아파트촌이다.도봉의 정상 턱밑에서 잠시 쉬면서 도봉의 진면목을 느껴본다. 전국의 많은 산을 다녀보고 있지만 어느 산이라도 그 산의 매력은 다 있다. 항상 산을 올라 정상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올라온 길과 내려갈 길이 가물가물하게 보이고 어떤 때는 숲과 나무에 가려져서 보이지도 않는다. 그렇지만 그곳에 아름다운 길은 다 나 있는 것이다.올해 서울지역의 단풍 절정기는 10월 27일이라 한다. 그리고 이곳 도봉산에 단풍이 가장 곱게 물드는 시기는 10월 하순이라고 하는데 때맞추어 잘 찾아왔다. 마당바위에서 신선대, 자운봉으로 오르는 길은 힘든 코스다. 그러나 단풍을 보면서 또한 가을 느낌이 물씬 풍겨나는 정취를 느끼며 걸으니 발걸음도 자못 가볍다.도봉산 정상인 자운봉 옆에 있는 신선대에 오르는 길은 험난하다. 암반으로 되어 있는 등산로는 철책이 있고 발 내디딜 곳을 잘 찾아 조심조심 올라가야 한다. 앞에 오르는 사람들과 부딪힘을 신경쓰면서 드디어 신선대에 올랐다. 도봉산역에서 출발한지 5시간이 거의 되어 간다.이곳에서 주변의 풍경들은 정말 멋있다. 가까이 보이는 같은 도봉산의 선인봉과 만장봉, 자운봉의 늠름한 모습도 장관인데다가 북한산이나 멀리 시내의 풍경들은 가을 햇살을 받아 반짝이고 있다. 신선대의 이름을 괜히 신선대라 하였겠는가. 그만큼 풍광이 좋다는 뜻일 게다.다시 조심스럽게 암반 길을 내려와 이번 등산의 하이라이트인 도봉산의 중보인 자운봉으로 향한다. 고지가 바로 저기다. 길을 내려와 산등성이를 타고 다시 자운봉 쪽으로 오른다. 공휴일이라 많은 사람들이 길을 오르는 참이라 속도가 빠르지 못하다.드디어 도봉산의 주능선에 우뚝 솟은 최고봉에 올랐다. 서울의 명산 도봉산, `경기의 금강`이라 불리는 자운봉(740m)에 올라 가을빛이 한창 무르익는 사통팔방의 풍경들을 바라보면 잠시 나를 잊게 된다. 그저 무아지경의 황홀경이다.감격의 순간에는 말이 필요 없다. 마음으로 느껴지는 진한 감동에 마음마저 멍멍해진다. 도봉산 등산을 결심하고 혼자서 올라온 길이 저 멀리 보인다. 아침의 상쾌한 기분이 지금 이 순간에는 자연에 대한 경외한 마음으로 이어지는 감동의 도봉산 산행이었다. 이제 하산하는 것은 길대로 따라 내려가면 되지만 가을의 산행에서 명산 도봉이 내게 가져다준 의미는 신선하고 장엄한 느낌이다.정상이서 내려오는 길이 암반으로 되어 위험한지라 하산하면서 딴 생각을 할 수 없지만 그러나 “정말 이곳 도봉산을 잘 왔구나”하는 마음으로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떼놓는다. 이제 하산하는 길만 남았다. 사람들을 따라 온 곳을 찾아 내려가면 되는 것이다.이번 등산코스로 도봉산 코스를 선택하여 혼자서 올라본 가을 산의 풍광들이 가슴을 뜨겁게 달궜다. 끄트머리에서 의미가 있는 필자의 `가을, 도봉산 일기`를 적어본다.▲ 손경찬/수필가·예술소비운동 본부장

2013-11-08

취임 1년여 만에 흑자 전환…“열정·도전정신으로 일에 매진”

적자에 허덕이던 경상북도관광공사(이하 관광공사)가 공원식 사장이 지난해 6월 1일 취임 후 흑자체제로 전환했다.경북관광공사는 민자유치와 일자리 창출 부문에서도 탁월한 성과를 내며 출범을 앞두고 일었던 우려를 말끔히 씻어냈다. 이를 신호탄으로 경북도가 도청 내에 있던 관광마케팅 관련 업무를 내년부터 모두 관광공사로 이관시키기로 하는 등 관광공사가 경북관광정책의 중심으로 부상하고 있다.공원식 사장을 만나 그간의 경영성과와 변화된 모습에 대해 들어봤다.보문단지 274억원 등 총 300억원 민자 유치… 공격적 마케팅 `한몫``이스탄불-경주 엑스포` 관광자원·특산품 홍보, 관광객에 깊은 인상미래 경북관광 “타지역과 차별화된 명품관광 콘텐츠 발굴 노력할터”-관광공사가 재도약하게 된 배경은.◆ 관광공사와 경북관광개발공사의 합병에 따른 법률상 근거 부재, 양도차익에 따른 법인세 문제, 지방공기업법 개정 등의 현실적 어려움을 극복하는데 이병석 국회부의장님과 김태환 국회안전행정위원장님, 김관용 도지사님, 도의회 등의 적극적인 협조와 도움이 없었다면 경북관광공사의 설립은 불가능했다.경영자는 열정과 도전정신을 가진 사람이고 그걸 합리적으로 조직에 적용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열정과 도전 정신을 화두로 놓고 일에 매달리면 자연스럽게 아이디어가 나오고 문제를 해결하게 된다.-적자였던 회사가 흑자경영으로 전환했는데 1년 6개월 사이를 다시 짚는다면.◆ 포항시의회의장과 경북도정무부지사를 거치면서 시야가 넓어졌고 보는 관점이 달라졌다. 사업 전체를 펼쳐 놓고 들여다보면서 사업단위를 쪼갤수 있는 대로 쪼개고 공통점이 있는 작은 단위를 묶어 거기다 이름을 붙여주고 패턴화시키는 단순한 작업을 했더니 엄청난 시너지가 나왔다.경북관광개발공사 당시인 2012년에 64억원의 적자가 났다.사장에 취임하고 유사업무와 지원부서 통폐합을 통해 15개팀을 13개팀으로 줄였다.휴그린 골프장은 신규채용 없이 자체인력으로 전환배치만 했는데 10억원이 절감됐고, 식당을 아웃소싱한 결과 4억원의 예산이 절감됐다.공격적인 마케팅도 톡톡히 한몫을 했다. 경북관광개발공사 당시 2008년부터 5년 동안 토지매각 수익이 평균 73억원에 불과했지만 취임하고 나서 보문관광단지 274억원, 안동 관광단지 26억원 등 총 300억원의 민자를 유치했다.영천보현산천문전시체험관건립 체결을 맺으면서 30억원의 수익이 창출됐다.이렇게 해서 올 연말까지 100억원의 흑자가 예상된다.-공공기관들이 비리와 부정부패로 사회적 지탄을 받고 있는 가운데 관광공사가 최근 감사원 감사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는데.◆ 지난 9월말부터 2주간 감사원으로부터 경북관광개발공사 시절부터 최근까지 진행된 관광공사 설립과 관련한 사항, 휴그린 골프장과 유교랜드 공사 등 대형공사와 신입사원 채용, 세입세출 문제, 국고 보조금 등에 대해 광범위하게 감사가 진행됐는데 어떠한 지적 사항도 없이 잘 마무리 됐다. 오히려 감사관들이 감사우수기관 사례로 지정해야 한다는 얘기가 나왔다고 들었다.우리 공사는 2012년 종합청렴도 8.67점으로 16개 기타 공직유관 단체 중 내부 청렴도 1위를 차지한 우수기관이다.-`이스탄불- 경주세계문화엑스포 2013`이 국내외적으로 크게 화제가 됐다. 이 행사에서 관광공사는 어떤 역할을 했나.▲ 공원식 경북관광공사 사장.◆ 경주는 고대도시로는 이스탄불, 로마, 아테네, 서안과 같이 세계적으로 가치있는 도시라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이스탄불-경주 세계 문화엑스포`가 성공적으로 마무리 할 수 있었던 점에 대해 이 행사의 한 축을 맡았던 사람으로서 깊은 자부심을 느낀다.우리 공사는 이스탄불에 22개 시군 홍보관을 운영, 경북도내 지역의 문화와관광자원, 특산품을 알렸으며 다양한 체험프로그램을 운영해 현지인은 물론 세계의 관광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하루에 평균 7만명이 홍보관을 찾아 당초 80만명 목표를 2배나 되는 160만명이 홍보관을 찾았다.-경북도청의 관광마케팅업무가 공사로 이관된다는데 그 내용은.◆ 경북도청 업무의 공사 이전은 공사가 해당업무에 대해 경북도로부터 완벽한 신뢰를 얻었다는 뜻이고 업무를 수행할 능력을 갖췄다고 인정을 받았다는 것이다. 적자에서 흑자전환, 공격적 마케팅, 조직 안정 등이 업무이관을 결정하게 된 것으로 보고 있다.관광공사 설립 주요 취지가 `경북문화관광 총괄 콘트롤타워 역할`과 `관광전담 공기업 설립으로 지자체 주도의 관광개발 추진`이며,이관업무는 경북도의 관광마케팅업무 중 32개사업이다.이러한 많은 사업들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전담부서 설치 필요성에 따라 조직개편을 단행했다.기존 관광마케팅팀을 마케팅본부로 승격시키고 본부안에 마케팅 업무를 수행할 3개팀으로 확대 개편했다.- 미래핵심산업인 관광산업을 경상북도가 선도하기 위해 다른 지역과 차별화할 것은.◆ 관광산업은 결국은 차별화된 가치 발굴에 있다.서울의 북한산과 똑같다면 서울시민들이 포항 내연산은 찾지 않을 것이다. 내연산에는 겸재 정선이 청하현감을 지내며 진경산수화를 완성했다는 스토리가 있는 곳이다. 이런 점을 발굴하고 마케팅하는 것이 관광공사의 역할이다.경북도는 다른 어느 지역에서도 갖고 있지 않는 천혜의 자연환경과 찬란한 문화유산이 곳곳에 산재해 있다. 경주는 신라가, 안동은 유교문화가 있다. 포항의 과메기와 도심의 해수욕장, 국제 불꽃 축제가 있다. 이를 어떻게 개발하고 효과적으로 마케팅을 하느냐에 따라 경북의 관광미래가 달렸다고 본다.경북도만이 갖고 있는 강과 산, 바다, 그리고 IT문화와 스토리를 잘 조화시켜 타 지역과 차별화된 경북만의 명품관광콘텐츠를 발굴할 계획이다.경주/윤종현기자 yjh0931@kbmaeil.com

2013-11-08

대구 방어의 최일선, 인천상륙작전 성공 토대가 되다

며칠전까지만 해도 프로야구 코리안시리즈로 수많은 사람들이 TV를 보거나 야구장을 찾아 열광했다. 투수의 공 하나, 타자의 스윙 하나에 웃고 울고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하루의 일상을 마무리하고 지인들과 소주를 한잔 하거나 운동 등 취미생활을 하면서 마음껏 가을의 정취를 만끽하고 있다. 그야말로 평화로운 일상이다. 하지만 이 평화로움 뒤에는 호국선열들의 엄청난 희생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우리 모두 이 사실을 알고 있으나 진심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않은게 사실이다. 다만 그런일이 있었구나 하는 가벼운 마음으로 지나가고 있는 것이다. 언제까지 과거의 고통과 슬픔을 간직하고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오늘의 평화를 누리는 우리는 과거를 알아야 한다. 그리고 생각해야 한다. 또 후손들에게 평화를 물려줘야 한다. 올해 정전 60주년을 맞아 대구와 경북을 사수했던 칠곡 다부동 전투를 비롯 영천, 상주 등 지역의 치열한 전투지역을 찾아 지금의 평화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되짚어 본다.경북도 호국벨트사업의 시발점 `낙동강 호국평화공원` 내년말 완공태극기 형상 조성, 전시관·낙동강전투체험관·4D영상관 등 들어서□ 칠곡, 다부동·왜관 전투칠곡군 가산면 다부리와 석적면 중지리 일대는 여는 시골마을과 다를바가 없었다.한적한 농가에는 잘 익은 빨간 감이 자태를 뽐내며 길손들의 시선을 빼앗고 있다. 하지만 몇 십년전 이곳은 그야말로 격전지 였다. 수많은 우리의 아버지와 형님들이 목숨을 바쳐 이곳을 사수했다. 하지만 지금은 평온하다. 호국기념관의 덩그란 전적비 등 각종 기념물만이 그날의 함성을 잊지말라는 듯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반만년 역사를 통해 가장 참담한 동족상잔의 비극이 일어난, 1950년 6월25일 새벽. 소련과 중공의 지원아래 북한의 김일성은 38선 전역에 걸쳐 기습남침을 감행, 압도적인 군사력으로 남침 3일만인 6월28일 수도 서울을 함락시키고 그 여세로 낙동강까지 남하했다.한반도 땅 어느 한 곳 포화와 화약의 냄새가 나지 않는 곳이 없었으나, 남하하는 적을 막기위한 가장 치열한 전투가 이곳 다부동에서 벌어졌고, 그 결과 군인과 민간인의 희생이 가장 많았다. 다부동과 왜관일대는 유학산과 가산이 있어 방어선이 향성 되었으며, 이 곳이 뚫리게 되면 대구가 적 지상포화의 사정권내에 들어서게 됨에 따라 다부동과 왜관은 대구방어의 가장 중요한 전쟁터가 됐다.1950년 7월 21일, 낙동강 방어선이 구축되자 김일성은 수안보 전선까지 내려와 8.15 광복행사를 기필코 대구에서 하겠다며, 북한군 3사단은 성주를, 10사단은 고령, 13사단은 상주로 15사단과 1사단은 각각 선산과 효령으로 투입해 집중공세를 폈다, 아군은 왜관의 작오산(303고지), 석적포남(328고지), 숲데미산(518고지), 유학산(839고지)과 다부동, 중구동에 이르는 방어선을 구축하고 북한군과 맞서게 된다. 국군 제1사단이 낙동강으로 도하한 후 3일이 지난 8월4일 낙정리일대에서 시작된 낙동강 전투는 8월 16일 맥아더의 융단폭격 작전을 도화선으로 9월16일 천생산 탈환작전을 성공함으로써 잔적을 소탕한 9월 24일에야 끝이 난다.55일간의 전투에서 1만7천여명의 북한군, 1만여명의 국군 사상자가 발생했다. 두달간의 치열한 방어전투로 전쟁의 흐름을 수세에서 공세로 전환하고 반격의 계기가 돼 맥아더 장군이 인천상륙작전을 감행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 □ 다부동 전적기념관다부동은 1950년 8월, 북한군 5개사단이 왜관과 다부동 전선에 집중 투입돼 8월15일까지 대구를 함락 할 기세로 총 공세를 감행했다. 국군은 제1, 8사단이 주축이 되어 미 제1기병사단과 함께 수십차례의 밀고 밀리는 혈투끝에 적의 공격을 막아낸 곳이다. 9월초, 북한은 낙동강 방어선을 돌파하기 위해 최후의 공격을 감행했으나, 국군과 UN군의 우세한 화력과 반격으로 이 곳에서 주력부대가 섬멸됐다. 결과 국군은 대구·다부동선을 고수하고 반격의 보루를 확보하게 된다. 이를 기념해 국방부는 다부동 전적기념관을 1981년 11월 30일 건립했다. 현재 많은 학생들이 이곳을 찾아 호국과 평화의 중요성을 공부하고 있다.□ 왜관지구 전적기념관다부동과 마찬가지로 북한군이 대구를 침공하기 위해 최후의 공세를 편 곳으로, 낙동강을 두고 일대 격전을 치른 곳이다. 1950년 8월, 왜관읍 주민들에게 소개령이 내려지고 탱크를 앞세우고 남하하는 북한군을 차단하기 위해 왜관 (구)철교(낙동강 인도교)를 폭파하면서 왜관 전투는 시작된다. 북한군 5개사단이 투입돼 총공세를 펼치자, 국군은 작오산, 숲데미산, 유학산, 다부동, 중구동에 이르는 방어선을 구축하고 공방전이 시작된다.한국전쟁 당시 도하를 막고자 낙동강의 다리들이 모두 끊겼으나, 북한군 4만여명이 집결해 대규모 도하작전을 벌이자 맥아더장군에게 폭격을 요청한다.B29기 98대가 왜관 서북방 67km (약목, 구미일대)에 26분동안 90톤의 폭탄을 투하했다.이 폭격으로 북한군 4만명중 3만명이 죽었으니 1초에 20명, 1분에 1천150명의 사상자를 낸 유명한 `융단폭격작전`이다. 이 전투를 기념하기 위해 왜관지구 전적기념관이 조성됐다.□ 호국평화공원칠곡 낙동강 호국평화공원이 지난 6월 25일 착공식을 갖고 본격적인 공사에 들어갔다. 이 곳은 북한군의 기습남침으로 전 국토의 5%만 남은 풍전등화의 위기에서 최후의 보루로 방어선을 구축한 곳이다.선열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고 낙동강 방어선 전투를 재조명함으로써 자라나는 세대에게 호국과 평화의 소중함과 나라사랑정신을 함양하는 안보교육의 장으로 조성하기 위해 기념관 공사가 한창이다. 총사업비 547억원(국비 230억원, 도비 115억원, 군비 202억원)으로 석적읍 중지리 왜관지구전적기념관 일원에 23만2천㎡ 규모로 2014년말까지 완공할 계획이다.낙동강호국평화공원은 경북도 호국벨트사업의 시발점이며 나아가 칠곡군의 호국브랜드화 사업과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한 미래 신성장 동력의 중추사업으로 추진하게 됐다. ◆ 공원시설 현황메인시설인 호국평화기념관은 지하2층 지상4층에 연면적 9천218㎡로 휘날리는 승전의 태극기를 형상화 했고 바깥 외형은 수호의 성벽을 표현하고 있다. 내부에는 호국전시관, 낙동강전투체험관, 어린이평화체험관, 4D입체 영상관, 컨벤션센터, 세미나실, 카페테리어, 전망대 등이 들어선다. 옥상은 공간을 활용해 야외전시장, 공연장, 전승의 마당을 꾸며 소규모 행사와 공연이 가능한 문화공간으로 조성된다.외부공간은 호국광장, 화합의 광장, 스토리벽, 상징조형물, 전쟁테마놀이터로 구성했으며 특히 스토리벽은 워싱턴 DC의 한국 전쟁 참전용사 기념관을 벤치마킹해 야외에서도 자연스럽게 낙동강방어선전투를 쉽게 알 수 있도록 계획됐다. 또 왜관지구전적기념관 610㎡를 리모델링해 상설 및 기획전시실로 사용하고, 주변에는 상징적인 낙동폭포와 문화광장을 조성, 문화와 휴식이 있는 쉼 공간으로 변모된다.◆ 기대 효과직접 전투를 체험하는 최첨단 4D 전투영상관, 다부동의 전차전을 체험하는 라이더, 입체영상사격장, 어린이 평화체험관 등 체험시설로 특화해 어린이와 청소년, 성년 등 모든 연령층이 즐길 수 있는 시설이 도입된다. 누구나 손쉽게 찾아와서 보고, 듣고, 즐겁게 체험함으로써 자연스럽게 호국안보의식과 나라사랑정신을 함양할 수 있는 국제적인 호국안보 체험장으로 활용될 예정이다.칠곡군 호국의 고장 위상정립과 관광활성화를 위해 산재한 호국문화 유산들을 체계적, 전략적으로 정립하고 개발하는 호국브랜드화 사업의 핵심 선두 역할을 기대하고 있다.지역주민들을 비롯한 대구와 구미 등 인근의 250만 시민이 손쉽게 찾아와서 여가 시간을 즐길 수 있는 쉼터로 자리매김이 기대된다. 그 결과 지역경제 활성화와 더불어 인구유입 효과와 지역의 부가가치를 높일 수 있다고 보고 있다.경북도 김원석 사회복지과장은 “호국평화공원은 정부 지자체 등이 합심해 엄청난 규모로 조성하는 만큼, 완공되면 청소년들에게 안보호국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교육의 장과 아울러 관광명소화 돼 지역경제에도 상당한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이창훈기자 myway@kbmaeil.com

2013-11-04

독도경비대 독수리 지역대 김영웅 수경

어머니, 아버지 막내아들 김영웅입니다.훈련소에서 어머니께서 우시는 모습을 보며, 눈물을 꾹 참은 채 입대한 날이 어제만 같은데 벌써 의경으로서 마지막 계급인 수경을 달았습니다.울릉경비대와 독도를 오가면 이번에 마지막으로 들어온 세 번째 독도는 이전까지와는 사뭇 다르게 느껴집니다.군 생활의 마지막, 저 자신의 태도나 심경이 많이 변한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특히 모든 상황에서 급한 마음과 초조함이 사라지고 여유를 가지며 생활할 수 있게 된 것이 이 곳에서 얻은 가장 소중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여유를 갖고 생활하게 된 독도는 너무나도 아름답습니다.산과 바다, 좋은 경치를 좋아하시는 어머니, 아버지께 꼭 보여드리고 싶지만 그럴 수 없어 안타깝습니다. 언젠가 시간이 지나서 두 분이 손을 꼭 잡고 올 수 있는 날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지금까지의 독도생활 중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면, 관광객을 맞는 마음입니다. 어르신들이 독도에 많이 오시는데 오실 때마다 손을 꼭 잡아주시며 내 자식 같다며 눈물을 보이는 분들도 계십니다. 그런 분들을 보면 어머니, 아버지가 생각나 가슴뭉클하고 코가 시큰거립니다.우리 모든 대원들이 저와 똑 같은 마음일 것입니다. 그분들의 응원을 들으면 독도경비대로서의 자랑스러움과 책임감을 망각할 수 없습니다.문득 처음 육군훈련소에 면회 오셨을 때 부모님께 독도경비대에 지원했다고 뜬금없이 말씀드렸던 때가 생각납니다. 저에 대한 걱정도 많이 됐지만 네가 진정으로 가고 싶다면 가라고 응원해주시던 말씀이 큰 힘이 됐습니다. 남은 군 생활을 멋지게 하고, 그 어느곳에서도 얻을 수 없는 소중하고 값진 시간과 경험을 얻었습니다.어머니, 아버지 제가 자랑스럽습니다. 얼른 전역해 글로는 다 담을 수 없는 멋진 경험과 운치를 밤새도록 얘기해 드리고 싶습니다. 사랑합니다. 충성!

2013-11-04

강원도 오대산

아름다운 단풍이 곱게 물드는 가을은 산행하기에 안성맞춤의 계절이다. 날씨가 덥지도 춥지도 않아 야외 활동에 알맞은데다가 볼거리도 만만치가 않다. 그래서 여기저기서 함께 가자고 등산회에서 연락이 많이 오는 철이다.이번 등산에서는 오대산으로 정하고, 일행들과 떨어져 일요일 아침에 출발지점인 강원도 오대산 상원사 주차장에서 합류하기로 했다. 오대산으로 가는 시외버스 안에서 바깥으로 이어지는 풍경들을 본다. 모처럼 혼자 차를 타고가면서 편한 마음으로 주변을 살피는 여유로움을 가져본다. 도시를 벗어나 시골 길에 이르니 여기저기에 가을걷이가 끝난 논밭들이 나타난다.상원사-사자암-비로봉-소명골 9km 코스, 8시간 소요100년된 전나무 자리잡은 `오대산 옛길` 가을정취 만끽진부면터미널에 내려 택시를 갈아타고 상원사주차장에 도착하니 9시였다. 아직 일행들이 도착하지 않아 연락을 취하고서는 주변을 살피며 이것저것 둘러보았다. 일행들과 합류하여 상원사탐방지원센터 앞에서 등산을 시작했다.이번 오대산 등산코스는 상원사절- 사자암- 적멸보궁- 비로봉을 거쳐 상왕봉, 미륵암을 지나 소명골로 해서 상원사 주차장으로 내려오는 일정으로 돼 있다. 산행거리는 약 9km로 8시간 정도 소요될 것으로 나와 있다.오대산은 강원도 평창군과 홍천군, 강릉시 일부에 있는 산으로 비로봉(1천563m)을 주봉으로 동대산(1천434m), 두로봉(1천422m), 상왕봉(1천491m), 호령봉(1천561m)등 1천m가 넘는 다섯 봉우리가 병풍처럼 늘어서있어 붙여진 이름이다.등산을 시작하고 전나무 숲길을 300m 지나다보면 상원사로 오르는 계단길이다. 계단길이라 조금 가파르지만 등산로 초입에 있는데다가 넓고 평탄하게 되어 있어 오르기 쉬운 편이다. 일명, 번뇌가 사라지는 길이다.이 길을 걸으면서 오대산은 평이한 등성이라 등산하기가 어렵지 않고, 등산길에는 상원사나 적멸보궁, 그리고 하산하는 길에 월정사가 자리 잡고 있으며, 또한 주위의 풍경에 여유로움이 있어 번뇌가 사라지지 않을까 하고 혼자서 생각해본다.상원사에 도착하여 조요한 아침 산사의 진면목들을 본다. 상원사는 신라 성덕왕 4년(705년)에 신라의 보천과 효명 두 왕자에 의해 오대산 중대에 창건되어졌는데, 처음 이름은 진여원이다. 그 뒤 자장율사가 개산한 뒤로 오대산이 불교성지로 이름을 빛낸다고 한다.상원사에는 국보 중에서 동종(36호)가 있고 문수동자상(221호)가 있다. 동정각에 유리 칸막이 속에 있는 동종은 우리나라 현존 유물 중에서 가장 오래된 아름다운 종으로 유명하다. 경내에 있는 5층석탑 등을 잠시 둘러보고서 일행들은 다음 코스인 중대암으로 오른다.중대산에 도착하여 사자암을 둘러보고 난 후에 불교도들에게 기도처로 널리 알려진 적멸보궁을 향해 길을 걷는다. 사자암에서는 1.4km 거리에 있는데, 적멸보궁까지 돌길을 깔고 계단을 놓는 공사가 한창이다. 이 공사는 기도처를 찾는 사람들에게 오르내리기 편리하기 위함인데 가급적 자연상태를 살리면서 힘들거나 위험한 구간을 정비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져 본다.적멸보궁에 도착하니 먼저 온 사람들로 가득하다. 이곳 오대산 적멸보궁은 신라의 승려 자장율사가 당나라에서 수도를 마치고 돌아올 때에 부처님 진성사리를 가져와 봉안했는데, 여기 말고도 양산 통도사, 설악산 봉정암, 태백산 정암사, 사자산 법흥사 적멸보궁과 함께 5대 적멸보궁이다.이곳에서 가족 건강을 축원하고 나서 주변을 살펴보면서 일행들과 사진을 찍었다. 잠시 쉬다가 비로암을 향해 출발했다. 출발지점에서 여기까지 거리가 1.5km인데, 여기서부터 비로봉까지의 거리가 1.5km로 이번 등산 코스 중에서는 험난한 편이다.다시 비로봉을 향해 오른다. 이 일대에서는 벌써 단풍이 다 지고 상원사 계곡으로 내려갔다. 단풍나무에는 마른 잎들이 달려 있거나 나무 잎사귀가 이미 떨어진 상태다. 조금은 쓸쓸하다는 느낌이 든다. 산등성이의 풍경은 벌써 가을이 지나 겨울로 가는 형색이다.이곳 비로봉에서 상왕봉으로 가는 능선을 비롯해 오대산의 산등성이 완만한 능선은 눈이라도 오게 되면 설경이 멋있는 지역으로 유명한 곳이다. 벌써 마음속에서 이곳의 풍경과 함께 눈 내린 설원의 장면을 연상하게 된다.오대산 가운데 하나의 봉우리인 비로봉(1천 563 km)에 도착하니 오후 12시 20분이다. 정상에 서서 멀리 산들을 조망해본다. 강원도 산이라 하나 산세가 완만하니 편안한 마음이 든다. 일행들은 여기서 여기저기 둘러보고 정상표지석을 배경삼아 사진을 찍고 휴식을 취한다.그리고는 또 하나의 오대산 봉우리인 상왕봉을 향해 발걸음을 옮긴다. 이미 가을 단풍이 끝나버린 산길을 가을햇볕을 이고 1시간 남짓 거리를 걸으니 상왕봉이 나타난다. 돌무더기 옆의 상왕봉(1491m) 정상에 서서 오대산의 가을을 감상한다.다시 상왕봉을 내려서서 하산을 한다. 가다보면 직진하여 오대산의 한 봉우리인 두로령으로 가는 길과 우회전하여 상원사로 내려가는 북대사 삼거리를 만난다. 여기서 일행들은 일정 계획에 나와 있는 대로 미륵불이 있는 오른쪽 길을 따라 내려온다.여기서부터 큰 경사가 없는 내리막길이 계속된다. 미륵암을 찾아 잠시 구경하고서는 상원사로 내려가는 임도를 만나 편안한 산행을 계속한다. 길 주변에 있는 거대한 참나무도 볼거리다. 밋밋한 산 능선을 따라 쉬엄쉬엄 내려오니 아침에 출발했던 상원사 주차장에 이르니 오후 3시가 됐다.아침에 이곳에서 만나기로 하고 월정사에서 상원사까지 이어지는 오대산 옛길을 보행으로 탐방하지 못했다. 이 길은 2011년 아름다운숲 전국대회에서 최고상인 `아름다운 생명길`을 받았으니 만큼 유명해진 길이다.길 전체의 느낌은 100년이 넘는 수령의 전나무들이 즐비하게 자리잡은 가운데 계곡을 타고 아래로 흘러내리는 잔잔한 물, 아기자기한 시골길의 풍경이 넘쳐나는 콩밭길, 숲길, 징검다리를 건너면서 만나는 단풍들은 계절 맛을 흠뻑 젖게 한다.월정사 주차장에서 반야교까지 1.5km 구간은 포장이 되어 있지만 그 곳에서 상원사 입구까지는 비포장도로다. 일행들이 산행을 마치고 편안한 마음으로 걷는 길은 상원사에서 월정사까지 걷는 비포장도로의 옛길이다.본래 월정사에서 상원사로 들어가면서 이 길을 걸어야 하지만 필자는 하산길에 이 길을 택했는데 역코스다. 들어가는 길에서 `참된 나` 를 찾는 것이라면, 나오는 이 길은 자연과 동화되고 나서 `자아` 를 버리고 오는 길이기도 하다.선재길을 걸으며 아름다운 자연을 감상하면서 걷다보니 앞에 월정사가 보인다. 좋은 풍광에 고운 생각을 하다 보니 6km가 넘는 옛길을 금방 온 것 같다. 시간을 보니 오후 5시다. 월정사에 도착하여 법당에 들렸다가 나와서는 경내를 살펴본다.월정사는 선덕여왕 12(643년) 자장율사가 오대산이 문수보살이 머무는 성지라고 생각하여 지금의 절터에 초암을 짓고 머물면서 문수보살의 진신을 친견하고자 하여 머물던 곳이 바로 현재의 월정사 터라 한다. 이후 여러 차례 화재로 전소되었으나 1964년 이후 탄허, 만화, 현해 스님 등이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는 이름난 사찰이다.오늘 강원도 오대산 찾아 능선을 타고, 완전히 떠나지 못한 채로 계곡에 머물고 있는 가을단풍의 아름다운 자연을 만났다. 단풍이 들어 아름다운 자태를 마음껏 자랑하는 그 비경을 감상하면서 자연이 주는 여유로움을 배우기 위해 떠나온 오대산 산행 길.가을산행은 마음을 채우기 위함보다 비우기 위해 간다. 그 비움의 미학은 마음을 살찌우게 하고 아름다운 생각들을 가지게 하여 인생을 풍요롭게 한다. 그래서 복잡한 인간생활에서 자연이 주는 지혜를 얻기 위해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다. 등산의 기쁨은 여기에 있는 것이다.▲ 글·사진= 손경찬/수필가·예술소비운동 본부장

2013-11-01

원형보존 잘된 세계 최대 고인돌, 유일하게 세워진 구조

“와! 토요일이다” 두바퀴로의 지정 모임장소인 시립중앙아트홀 만남의 광장은 오늘도 문화탐방대원들의 반가운 미소로 가득하다. 이제 지역의 문화를 찾아가는 일이 익숙한 모습들이다.오늘따라 박계현 (사)문화와시민 이사장은 더욱 상기되어 있다.평소 영일만 일대의 고인돌에 대한 관심이 특별났기 때문이다. “여러분, 오늘은 HCN 최성필 PD가 함께 동행 합니다. 영일만 일대의 고인돌에 대한 다큐를 제작해 포항 고인돌의 가치를 전국에 알렸습니다.” 그러자 모두들 함성과 함께 큰 박수로 화답하였다.최성필 PD의 설명이다. “우리나라 고인돌은 서해안에서는 화순과 고창이 집단군을 이루며, 동해안에서는 영일만 일대를 중심으로 대거 분포합니다. 특히 오늘 탐방하는 기계면 일대의 고인돌은 칠포리 암각화 등과 함께 영일만 일대에 찬란한 고대문화가 형성되었음을 보여주는 증거로써 사료적 가치가 높습니다.”이때 해맞이 포럼 이명희씨가 한마디 한다. “우리는 너무나 우리 지역의 문화적 가치를 모르고 살아가는 것 같아요. 찬란했던 삼국문화 이전에 그 기반이 되었던 고대문화가 우리 포항 지역에서 형성되었다는 것은 포항의 자랑입니다.”“맞아요. 우리는 우리지역의 문화에 너무 무관심 했던 것 같습니다.” 한마음 후원회 권기봉 회장도 한마디 거든다.그렇다. 인근 경주에서 신라가 찬란한 삼국문화를 꽃피우기 이전에 영일만 일대에는 삼국문화의 기반이 되었던 큰 규모의 고대문화가 형성되어 있었던 것이다.기계면 일대만 1백수십기… 청동기시대 흔적 뚜렷고대 문화유적 귀중한 자산 방치돼 안타까움 더해영일만 일대는 남방식 고인돌 100여년 전까지만 해도 고인돌은 의미 없는 하나의 거대한 돌덩어리에 불과했다. 그러나 그 돌덩이 아래에서 마제석검, 청동검 등 고대 생활도구가 발굴됨으로써 당시 지도자의 돌무덤으로 밝혀졌다.고인돌은 돌을 괴어 만든 무덤이다. 청동기시대의 대표적인 무덤으로 지석묘라고도 한다.고인돌의 크기는 지도자의 권력과 힘의 크기를 상징한다. 그래서 큰 규모의 고대문화 흔적을 보여주는 것이다.고인돌의 구조는 받침돌과 덮개돌로 되어 있다. 형식에 따라 북방식 · 남방식 · 개석식으로 구분된다. 북방식은 주로 북쪽에서 많이 발견된다. 4개 혹은 2개의 굄돌을 세운 뒤 평평한 덮개돌을 얹은 모양이 마치 탁자모양을 하고 있어서 `탁자식`이라고도 한다. 남방식은 몇 개의 밑돌을 놓고 덮개돌을 얹는다. 마치 바둑판과 같아 `바둑판식`이라고도 부른다. 개석식은 받침돌 없이 덮개돌을 얹은 형식이다. `무지석식`이라고도 한다. 성계리를 비롯한 기계일대의 고인돌은 대부분 남방식이다.고인돌은 전 세계에 약 7만기가 있다. 한반도는 고인돌 왕국이라 할 만큼 세계 고인돌의 절반 이상인 4만기가 분포하며 크기와 규모도 세계 최대이다. 우리나라 고인돌은 지난 2000년 12월 종묘, 불국사 등에 이어 우리나라에서는 6번째로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되어 고대문화연구의 주요 유적으로 인정받고 있다.두바퀴로 탐방단은 포항 시가지를 약간 벗어나 황금물결 일렁이는 넓은 들을 따라 기계면 성계리에 도착했다. 마을 풍경이 색다르다.집안 담벼락 옆에서 호박 넝쿨을 덮어 쓴 고인돌, 장독대 옆에 놓여 있는 고인돌, 마을 길가에 서있는 고인돌, 고인돌과 고인돌 사이에 있는 집, 집과 집 사이에 있는 고인돌 등 마을이 커다란 돌덩이들 사이에 있는지, 커다란 돌덩이들 속에 마을이 있는지 구별이 안 간다. 고인돌과 생활을 같이하는 마을 풍경이 인상적이다.`칠성바위`라 부르며 신성시성계리 마을 안에만 해도 7기의 고인돌이 있다. 성계리는 원래 `칠성동`이라고 불렸다. 마을 사람들이 고인돌을 `칠성바위`라고 부르며 신성시한데서 유래됐다고 한다.성계리 고인돌은 타 지역에 비해 대부분 규모가 크고 거대하다. 최성필 PD의 안내를 따라 숲을 헤치며 풀 향기 가득한 오솔길을 따라 한참을 걸어 올라갔다. 오르는 길에서도 4,5기의 고인돌이 발견되었다. 산 정상에 굄돌을 한 고인돌이 위엄 있는 모습을 드러낸다. 인적 끊긴 노당재에 고인돌이 지키고 있었다.성계리 산중턱에 세워진 이 고인돌은 세계에서 가장 크고 원형 보존이 잘된 고인돌이다. 또 눕히지 않고 세워 둔 유일한 고인돌이다. 안강과 기계를 연결하는 노당재 길목 중간지점에 세워짐으로써 더욱 웅장하고 위엄이 돋보인다. 워낙 커서 굄돌의 크기만 해도 일반 고인돌 크기이다. 수천년의 세월 속에서도 꿋꿋이 서있는 고인돌을 보니 당시 고대인들의 석재를 다루는 기술과 운반기술이 상당한 수준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고인돌 유적지 관광자원화 해야 강화 고인돌 문화축제는 벌써 14회를 이어가고 있다. 채석·운반·가공·축조 등 고인돌을 세우기 위한 과정을 재연하는 행사를 통해 강화의 고대 문화유산으로 관광자원화 시켰다. 순천은 고인돌 공원을 만들어 선사시대 보존 교육장과 관광지를 조성했다.이에 반해 우리 포항 일대의 고인돌은 그 문화적 가치의 중요성은 제쳐두고서라도 존재에도 관심이 없다.포항은 성계리만 해도 수십 기의 고인돌이 있고, 기계에는 100기가 넘는 고인돌이 있다. 그러나 표지하나 없이 방치된 현실이 유감스럽다. 강화·고창순천은 이보다도 적은 수의 고인돌을 보유하고도 고인돌을 관광자원화 하는데 성공했다. 영일만은 우리나라 최대의 고인돌 분포지역이다. 기계면 일대의 고인돌은 칠포리 암각화 등과 더불어 고대문화 박물관으로 활용돼야 할 것이다.경주에 신라의 불교문화가 있고, 안동에 조선의 유교문화가 있다면, 포항에는 고대문화가 있다.◇ 대표집필:모성은 교수◇ 문화가이드:최성필(HCN 피디),◇자전거 협찬:서일주(포항녹색희망자전거사업단 단장)◇ 사진촬영:안성용, 황종희◇ 집필지도:이나나, 신일권◇청소년 기자단:최요한, 신창민, 장혜원, 이나영,◇ 취재동행:권기봉, 정경식, 이길호, 김영미, 진효승, 김명헌, 김병수, 박창교, 임채완, 장미향, 김하늘, 권태성, 이석호(한마음 후원회), 박계현, 이명희, 이영숙, 장재향, 이선덕, 김미숙, 이주형, 김효은, 노경훈, 최성룡◇ 제작책임:사단법인 문화와 시민

2013-10-31

해양실크로드 심포지엄1

▲ 배규성 교수 영남대학교동해, 7세기부터 해상실크로드와 연결해양실크로드와 동해우리가 알고 있는 실크로드는 두 갈래가 있다. 육상 실크로드와 해상 실크로드다. 실크로드 무역의 핵심은 비단과 향신료다. 중동 등지에서의 교역 상인들은 중국 등지에서 비단과 향신료를 사들여 되팔아 막대한 이득을 취했다.그것은 교역을 활발하게 했고, 서양 문물 등은 국경을 넘어 신라에까지 이른다. 신라 왕릉 등에 서역문화가 보이는 이유다. 실크로드 사업은 분야별로 탐험, 무역, 동서문화교류 및 융합, 미술, 종교와 사상전파 등으로 나뉠 수 있다.당시는 종교는 물론 흑사병이라는 질병도 실크로드와 무관치 않다. 실크로드는 어쩌면 지금도 그 맥을 같이한다. 동북아 각국의 실크로드 전략이 이를 보여준다. 중국은 철도를 통한 실크로드와 에너지 실크로드를 추진하고 있다. 중앙아시아를 거쳐 유럽까지 확장 노선, 남서부를 연결하는 동남아 노선, 남북한을 관통하는 철도와 중앙아시아의 가스전을 파이프라인을 통해 중국 동해안까지 연결하는 에너지가 그 단적인 예다. 일본도 마찬가지다. 동남아와의 통상, 물류를 확보하고자 하는 전략에 골몰하고 있지 않는가.7세기 지도와 8,9세기의 무역과 통상루트를 볼때 동해가 실크로드와 깊숙히 연결됐음을 알 수 있는데, 여전히 동해는 환동해 실크로드의 중심이다. 특히 에너지, 철도, Digital Silk Roads(DSR) Project 등은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실크로드와 관련, 한국의 전략은 통상, 물류의 루트 및 환경협력도 중요하지만, 남북한 철도연결과 TSR연결 프로젝트와 남·북·러 가스관 연결사업이 핵심인 만큼 민관 모두 전력을 다해야 한다.작금에 있어 환동해 실크로드 협력의 가장 큰 장애물은 일본의 영토분쟁이다. 일본-러시아간 남쿠릴열도 분쟁, 일본-중국간 센카쿠열도와 다오위다오 분쟁, 일본과 한국간 독도문제 등은 환동해 실크로드의 협력을 가로막고 있는 것이다.▲ 최영호 한국해양과학기술원 자문위원`길·인간·바다` 창의적 통찰 우선해야해양 인문학적 의미해양실크로드 탐험의 해양인문학적 차이의 해답은 경상북도의 강력한 추진 의지와 획기적인 기획에서 비롯되어야 한다. 먼저 경북을 신 실크로드의 거점 도시화하고, 문화 융성 시대의 견인차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또 KOREA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경북도와 해수부가 나서 `2014 해양민국 뿌리찾기 해양실크로드 대장정`을 추진해야 할 것이다. 해양실크로드의 구성요소로는 길(Road), 인간(Human), 바다(Sea) 등 세 가지를 들 수 있다.길은 개척, 도전, 용기의 집적을 의미하며 경험적 이해와 문화적 축적으로서의 연속성을 말한다. 인간은 차이와 변화, 선택의 총체로 융합적 사유와 호모 노마드적 속성을 일컫는다. 바다는 넓이와 깊이, 유동적인 물의 광장을 의미하며 창의적 사고와 과학기술의 구체적 실현이다. 이처럼 해양실크로드는 바로 물질, 즉 비단 그 자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물질에 가해진 인간 노동의 결과, 물질에 투영된 서로 다른 삶의 형태, 물질을 통해 구현된 인간의 문화 혹은 문명질서, 인간의 경험적 사고로 창조된 물질의 새로운 차이 등도 포함하고 있다.여기서 바로 소비 상품으로서의 한류, 정보 산업으로서의 한류, 문화와 엔터테인먼트의 결합으로서의 한류를 짚어볼 수 있다. 한류는 새로운 물음을 안고, 세계를 평면이 아닌 깊이로 사고하는 시도다. 이렇듯 자본주의 과정에 영합하는 한류는 문화적 상품화로 전락하기 쉬우며, 원동력이 되는 문화적 정체성 확립 없이는 곤란하다.따라서 해양실크로드 탐험 성과의 사후 활동을 위한 전문기획 및 연구 커뮤니티 구성이 무엇보다 이른 시일 내에 이뤄져야 한다. 이 밖에도 성과물의 효율적 관리 및 전시 가능한 공간을 확보해야 하며, 전 지구적으로 사고하고, 지역적으로 실천하는 경북도와 해수부의 지속적인 관심과 적극적인 지원이 수반되어야 한다.▲ 김웅서 박사 한국해양과학기술원해양 탐사로 새 과학적 지식 도출 가능탐험의 해양과학적 활용바다는 지구 표면적의 71%를 차지하는 반면 육지는 표면적의 29%에 불과하다. 특히 남반구는 표면적의 80%가 바다이므로 육지가 거의 보이지 않는다. 바다는 다양한 생물들이 살고 있는 지구에서 가장 큰 서식지이다.우리는 해양으로부터 많은 혜택을 얻는다. 해양에서는 생물자원, 광물자원, 에너지자원, 수자원, 공간자원 등을 얻을 수 있다. 또한 지구의 기후조절과 오염물질의 정화, 물류의 교통로 등의 역할을 한다.해양과학(Ocean Science)은 바다에 대한 과학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즉, 해양과학은 모든 과학적인 법칙과 방법을 활용해서 바다의 현상을 이해하려는 학문으로 물리학, 화학, 생물학, 지구과학 등 다학제적 과학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해양과학은 해양에 대한 순수과학뿐만 아니라 응용분야인 공학까지를 모두 포함하는 학문이다. 물리해양학과 화학해양학, 생물해양학, 해양지질학과 지구물리학, 해양공학 등 다양한 분야로 세분된다. 최근에는 해양과학이 해양정책과 같은 사회과학, 해양고고학과 같은 인문과학도 포함하는 포괄적인 의미로도 사용된다.역사적으로 유명한 해양과학 탐사는 제임스쿡(James Cook)의 항해, 비글호항해, 챌린저호탐사, 프램호탐사, 메테오르호 탐사, 글로마챌린저호 탐사 등이 있다.제임스쿡의 항해로 지도가 현대의 지도와 유사한 형태를 가지게 되었으며, 비글호 항해는 영국의 유명한 생물학자 찰스 다윈이 진화론을 만들게 된 계기가 됐다. 챌린저호탐사로 방대한 분량의 보고서가 발간되었고 해양과학 탐사의 기틀이 마련됐다.해양실크로드 탐사 기회를 이용해 해양과학적 조사를 함으로써 새로운 해양과학지식을 얻기란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이다.그러나 해양실크로드 탐사 루트를 따라가며 그 해역에서 기존에 알려진 해양과학지식이나, 해양박물관과 수족관 등 기항지의 해양과학관련 시설물에 대한 단행본을 출간할 수는 있을 것이다.▲ 전동철 박사 한국해양과학기술원허왕후 이동경로, 해상루트 2개 암시기상·해류로 본 항로 검토실크로드의 루트에 대해 위키피디아와 한국콘텐츠진흥원의 자료를 비교하면 다른 부분이 있다. 위키피디아에서는 유럽과 아시아 사이에 육상실크로드 이외에 지중해~홍해~인도양~남중국해를 잇는 해상 실크루트가 있었음을 보여주고 있으나, 중국과 인도네시아에서 끊겨 있다. 하지만, 한국콘텐츠진흥원에서는 서해~동중국해~남중국해를 지나 말라카해협을 통해 동인도양 벵골만까지 연결된 2개의 해상루트를 보여준다. 이 2개의 해상루트는 김해 가락국의 허왕후가 인도 갠지스강 중부의 아유타국에서 왔다는 기록에 따른 것으로 보이며, 기록에 의하면 서기48년 5월~7월 사이 약 3개월에 걸쳐 이동했다고 한다.아시아대륙 동안에서부터 아프리카 해안에 이르기까지의 몬순기후 즉, 해륙풍과 표층해류 및 기압배치도를 분석해보면 갠지스강하구에서부터 안다만~말라카해협을 통과한 후 베트남해안과 해남도~중국남해안~중국동해안을 따라서 산둥반도까지 오는 동북아시아 바닷길은 이 계절에 가장 안전한 해상루트임이 틀림없다.그러나 대만해협을 지나 백제와 신라에 이르기까지 산둥반도와 옹진반도를 잇는 루트가 가장 안전하다고 볼 수 있지만, 계절풍 이외에 태풍 등의 변수가 있으므로 해상루트를 하나로 단정하기는 어렵다. 즉, 양쯔강하구 역에서 제주해협을 가로지르는 해상루트가 장보고의 청해진 시대에는 가능했을 것으로 여겨진다. 지난 2009년과 2010년 11월~12월 1천400t급 온누리호를 타고 거제 장목에서 출발해 대만해협과 남중국해를 거쳐 말라카해협을 통과하는 옛날 허왕후의 이동경로와 반대되는 방향으로 탐사를 수행한 적이 있다. 온누리호는 평균 속력이 12~14노트며, 15일 정도 소요됐었는데 범선의 속력을 약 2~5노트라고 가정하면 온누리호보다 3배~6배 정도 소요될 것임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경북도의 해양실크로드 탐험은 신라인의 개방성과 진취성 등 정신적인 계승과 함께 경제 협력 구축이라는 실질을 도모하며 추진하길 권한다.▲ 김기복 해양과학기술원 연구선지원실장원양구역 항해 가능한 3천t급 선박 필요탐험선박 안전성 확보 제안해양실크로드를 문화·역사적으로 재조명하기 위한 탐험 선박은 안전성 확보를 가장 우선시 해야 한다. 선박에 관해 특히 안전성을 중요시하는 이유는 선박은 해상 항해에 종사함으로 육상과는 달리 해양 기상으로 인해 특별한 위험이 따른다.또 항해 기간이 길어서 육상으로부터 격리된 고립무원의 상태에서 행동하는 일이 많다. 따라서 선박이 해상에서 흔히 예상되는 위험을 극복하고 안전하게 항해할 수 있는 성능, 즉 감항성을 갖추기 위한 시설이 필요하고, 만일 비상시 위험에 빠진 경우에 인명의 안전을 보전하기 위한 시설도 요구된다.특히 해양실크로드 탐험 선박은 관계법에 의거 최소 자격 요건은 제3종선인 여객선 이외의 선박으로서 국제항해에 종사하는 총톤수 500t 이상의 선박으로 우리나라와 외국 간의 원양구역을 운항하는 10노트 이상의 최고 속력을 갖춘 배의 길이 60m 이상인 외항선이어야 한다.최소 자격을 갖췄다 하더라도 아프리카 및 동남아시아 지역에서 해적사고가 빈발하고 있고, 총기·도검으로 무장한 해적이 62.6%로서 흉포(凶暴)화 추세는 지속되고 있어 안전성 확보를 위해서는 더 많은 요구조건이 충족돼야 한다.따라서 해양실크로드 글로벌 대장정을 위해선 원양구역을 항행할 수 있는 원양급인 3천t 이상의 선박을 이용해 해적피해를 원천적으로 차단한 안전항해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해양경찰청이 보유한 3011 훈련함은 해양경찰 최초 훈련함인 `바다로함`은 정부기관 최초로 실전 배치된 4천200t급으로 길이 121m, 선폭 16m, 최대속력 18노트 규모로 100여명의 교육생이 동시에 생활하며 훈련할 수 있도록 준비된 함정이어서 비교적 안전하다.또 한국해양대학교가 소유한 6천686t급 한바다호도 250여명이 승선할 수 있고, 그동안 쌓은 풍부한 항해 경험 등에서 해양실크로드 탐험 선박으로는 최적이라 할 수 있다.

2013-10-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