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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ㆍ특집

청정자연·전통문화가 반기는 ‘체류형 관광 1번지’로

청정한 환경에 볼거리와 즐길거리 많은 청송군이 ‘산소 카페’라는 도시 슬로건에 어울리는 문화관광 환경 조성을 위해 적극 나서고 있다. 올해 다양한 관광 시책사업을 추진해 ‘함께하는 문화관광, 상생하는 산소카페 청송군’으로 도약을 준비 중인 것.지금은 관광의 트랜드가 바뀌고 있는 시대다. 유명세를 떨치는 관광지보다는 관광객이 몰리지 않는 여행지를 선호하는 경향이 두드러지고 있는 가운데, 오랜 역사와 전통이 살아있는 고택이 즐비하고 다양한 지질 현상이 만들어내는 깨끗한 생태환경이 보존돼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으로 인증 받은 청송군이 관광객들의 눈길을 사로잡는 대표적 체류형 관광도시로 각광받고 있다. □문화관광도시 조성으로 지역경제 활성화청송군은 이러한 관광 트렌드에 발맞춰 체류형 관광도시로 발돋움하는 과정에서 크고 작은 관광사업을 통해 군의 특징을 살린 문화관광 정책을 추진함으로써 지역경제를 활성화할 예정이다. 특히 ‘산소카페 청송군’의 차별화된 청정자연과 유서 깊은 전통문화, 참신하고 다양한 문화 관광 콘텐츠를 융합해 한층 많아진 관광수요에 부합하는 지역 관광의 새로운 표준을 만들어갈 전략을 세우고 있다.청송군은 ‘주산지 관광지 조성사업’, ‘한옥스테이 사업’, ‘골목경제 회복 지원사업’ 등을 통해 유동 인구를 늘리고 지역 경제를 더불어 활성화시킬 복안을 가졌다. 특히 호텔과 글램핑장을 갖춘 이색 숙박시설을 조성해 젊은 세대와 가족 단위 여행객들이 지역에 더 오랫동안 머물게 하고, 달기 약수탕 거리 환경 개선과 메뉴 다양화로 관광객들의 입맛까지 사로잡을 수 있는 관광정책 다변화를 통해 청송형 관광사업의 외연을 확대해 나갈 예정이다.이와 함께 지역민들의 여가 생활과 건강까지 책임질 수 있는 청송 아웃도어 골프장과 진보면과 산남지역에 파크 골프장을 조성해 관광객들이 청송의 수려한 자연을 즐기는 공간으로 제공할 계획이다.더불어 청송을 대표하는 ‘청송사과축제’를 적극 활용해 관광 활성화를 이끌어 나간다는 계획도 세웠다. 올해 개최되는 제18회 청송사과축제는 새로운 프로그램 개발 등 청송사과축제만의 장점과 색깔을 담아내 청송사과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고, 청송군의 위상에 걸맞은 최고의 사과축제를 준비할 계획이다.이와 관련해 윤경희 청송군수는 “볼거리, 즐길거리, 먹을거리가 공존하고, 사람의 숨결까지 어우러진 최고의 문화관광 도시를 만들고 지역주민의 일자리를 늘려 관광을 통한 실질적인 지역경제 활성화를 이루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부연했다. □2024년 12월까지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 지위 유지청송군은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의 첫 재인증에도 성공했다.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 운영위원회는 지난해 9월 현장평가를 통해 청송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 관리·운영 현황을 점검했고, 이를 토대로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 최종이사회에서 재인증을 뜻하는 ‘그린카드(Green Card)’ 부여를 의결했다.지난해 6월 9일 공식 문서를 통해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의 재인증을 확정받은 청송군은 ‘코로나19 사태’로 연기됐던 현장평가 기간을 포함해 2024년 12월까지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이라는 세계적 브랜드 도시로서의 지위를 유지하게 됐다.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 집행이사회는 청송군이 2017년 최초 인증 당시 받았던 권고사항을 충실히 이행하였을 뿐 아니라, 지질유산과 문화유산의 연계, 지역주민 협력, 인구감소 및 기후변화 대처, 교육관광 프로그램 운영 등에 있어 유네스코가 추구하는 방향성과 취지에 맞게 세계지질공원을 관리·운영 했다는 점을 높이 평가했다.지난해 9월 청송군을 방문했던 현장평가단은 “지질공원 발전을 위한 청송군 관계자들과 지역주민의 적극적 지원과 노력이 돋보였다”며 “기후변화 및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지질공원 운영 목표와 지역주민 및 학교와의 협력은 전 세계 지질공원들이 벤치마킹할 만한 우수 사례로 판단된다”고 평했다.현장평가 위원장이었던 트란 탄 반(베트남)은 유네스코에서 세계지질공원을 그 취지에 맞게 운영한 세계지질공원에 부여하는 모범 운영 상(Best Practice Award)을 신청하라는 의견과 함께, 자신이 추천서를 제출하겠다는 의향을 내보였다.청송군은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재인증 평가 기간이 조정됨에 따라, 내년에 두 번째 재인증 평가를 받게 됐다.두 번째 재인증을 위해 청송군은 지질공원 가시성 확대, 교육 및 관광프로그램 운영 대상 확대, 인프라 조성, 국내외 교류활동 추진 등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 평가기준에 맞춘 지질공원 운영에 노력할 예정이다.□이색 숙박시설 만들고, 달기약수탕 거리 활성화최근 청송군은 경북도가 주관하는 ‘경북형 이색숙박시설 조성사업’ 공모에 최종 선정돼 사업비 100억 원을 확보했다. 이 공모사업은 글로벌 K-관광선도와 외국인 관광객 300만 명 시대를 여는 ‘경상북도 2030 관광 비전 목표’로 추진하는 사업이다.숙박시설 자체만으로 지역을 대표하는 관광자원이 되도록 유휴시설을 활용해 경북형 이색숙박시설을 조성하는 이번 사업의 대상지는 주왕산면 하의리 일원 청송양원(구 주왕산초등학교)으로 지난 2009년 청송군이 매입해 현재 예비군면대, 산불진화대 사무실 등으로 사용하고 있다.총사업비 100억 원으로 건축설계를 공모해 2026년 상반기 준공을 목표로 가족형호텔 15실, 청송사과 글램핑장 15곳, 바비큐장 15곳, 트리하우스 4곳, 라비에벨 카페식당, 야외물놀이장, 주차장 등을 조성할 계획이다. 호텔의 편안함과 캠핑의 즐거움, 그리고 산소카페 청송군의 아름다운 자연을 느낄 수 있는 이색 숙박시설을 조성한다는 것이 청송군의 각오다.또한, 이 사업은 청송의 주요 관광지인 주왕산, 주산지, 얼음골, 유교문화전시체험관 등 지역관광자원 연계와 관광객을 위한 체험관광 프로그램 개발로 이어져 일자리 창출과 지역경제 활성화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이외에도 청송군은 지난해에 이어 2년 연속으로 행정안전부 맞춤형 골목경제 활성화 공모사업에 선정됐다. 프로젝트의 세부 명칭은 ‘달빛 내려앉은 달기약수거리 활성화사업’이다.달빛 내려앉은 달기약수거리 활성화사업은 20억 원의 사업비로 수변테크 설치, 경관조명 설치, 노후된 약수탕 환경개선 등 가로환경개선사업을 진행하고, 관광객들의 체험과 휴식을 제공하기 위한 문화복합공간인 로컬 앵커스토어 건립 등도 추진한다.청송군은 이 공모사업을 통해 과거 달기약수탕의 명성을 되찾고 MZ세대들의 발길을 끌어들일 수 있도록 새롭게 단장해 달기약수탕 주변의 골목경제를 활성화 시킨다는 계획이다. 이에 더해 달기약수탕 상가지역 주민과 상인으로 구성된 골목경제 공동체 추진위원회를 구성해 지역주민과 상인이 주도적으로 참여하고 청송군이 협력해 사업을 추진해 나갈 방안도 마련된다. □맨발 걷기 명소로 주목받는 산소카페 청송정원이미 입소문을 통해 관광 랜드마크로 자리 잡은 ‘산소카페 청송정원’도 건강을 지켜주는 관광지로 주목받고 있다.4만2000평 규모의 백일홍 정원인 산소카페 청송정원은 연간 20만 명이 찾는다. 최근엔 맨발 걷기 열풍이 불고 있어 힐링 건강 명소로도 인기가 높다.실제로 청송정원에선 맨발로 걷는 관광객이나 군민들을 적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이는 맨발 걷기가 혈액 순환 개선과 활력 충전, 우울감 해소 등에 효과가 있어 사람들이 관심을 가진 결과로 해석된다.청송정원의 백일홍 향과 맑은 공기를 호흡하며 걷는 것은 자연의 아름다움을 느끼며 스트레스를 해소할 뿐 아니라, 혈액순환 촉진과 항산화 작용에도 도움이 되고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청송정원 산책로에는 태양광으로 밤에도 불을 밝히는 안심가로등이 설치돼 있어 야간에도 안심하고 산책이 가능하다. 앞으로도 청송군은 맨발 걷기를 하는 이들을 위해 안내 입간판, 신발장 등 편의시설을 설치하고, 걷기 지도자를 초빙해 맨발 걷기의 기본 자세와 주의점 등을 교육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게 된다.앞서 언급된 것처럼 문화관광의 활성화로 지역경제 발전을 모색하는 청송군의 노력은 현재도 활발하게 진행 중이다./김종철·홍성식기자

2024-04-22

자유·조화·인내·자신감… 흉내 낼 수 없는 연륜의 감정

노거수를 찾아다니면서 매번 느끼는 감정은 다르지만, 노거수의 기이함과 신비한 모습의 이미지에서 나름의 여러 가지 의미와 교훈을 깨닫고 배운다. 노거수는 있다는 그 자체만으로 어떤 영적인 깨달음의 감정과 즐거움의 감흥을 준다.키보다 앉은 자리의 지름이 무려 3배나 훌쩍 뛰어넘는 둥근 동산 모양이랄까, 아름다운 반달 모양의 늘 푸른 노거수가 있다. 경북 청송 장전리 산 18번지에 살아가고 있는 천연기념물 제313호 향나무이다. 나이 400살임에도 불구하고 키는 7.5m밖에 되지 않으나 앉은 자리는 지름 25m나 된다.가슴 높이 둘레가 5m이고 그 지점에서 네 가지가 사방으로 자신감 넘치게 뻗어 자라고 있다. 네 가지의 나무 둘레도 2m에서 1.5m로 다 합치면 원 줄기보다 더 굵다. 줄기에서 뻗은 가지가 땅을 딛고 발돋움하여 하늘로 비상하는 자세로 보이기도 하고, 문어발처럼 땅에 기어다니는 모습으로 보이기도 한다. 400년은 결코 만만한 세월이 아니다. 향나무 수형을 자세히 살펴보면 외관상으로는 세 그루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한 그루일 가능성이 크다. 나무 크기로나 줄기의 굵기 등으로 보아 같은 시대에 심은 것은 아닌 것 같다. 고령의 몸은 썩은 부위를 깨끗이 도려내고 방수, 방부 처리하여 원형을 영구히 보존하려는 미라처럼 보였다.나라에서도 노거수의 위대한 삶에 격려의 뜻으로 오래오래 장수하라는 의미로 지팡이 14개를 선물했다. 특이하게도 향나무는 마치 거대한 덩굴식물을 연상하게 했다. 여기저기 이리저리 엉키고 감긴 가지의 기이한 모습에서 오랜 세월이 숨어들어 꿈틀거리며 살아 숨 쉬고 있는 것만 같다. 이러한 노거수는 그 어디에서도 보기 어려운 수형이다. 신묘하여 신령스러운 기운을 느끼게 할 뿐만 아니라 늙은 몸에서 풍기는 여유로움은 어디에서 나오는지 신통할 따름이다.그러나 오늘날 우리 인간사회에서는 나무와는 달리 현대 문명은 늙음이라는 단어는 주로 부정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늙음은 쓸모없음의 동의어이며 우리는 늙었다는 말을 거의 모욕으로 받아들인다. 어르신이나 연장자와 같은 완곡한 말로 이를 회피하기도 한다. 지난날 노인은 위대한 존엄성의 상징이지만, 오늘날은 부담스러운 존재로 여기기도 하는 것 같다.왜 노인은 쓸모없는 존재로 여겨지는가? 노인이 되면 행위보다 있음이 강조되는데, 우리의 문명은 행위에 몰두해 순수한 있음의 존재 가치에 대해서는 모르고 있기 때문일까. 늙음은 우리 모두의 자화상인 걸 모르는지, 노인의 부정적인 의미는 우리를 슬프게 한다. 향나무 노거수의 나뭇가지가 뒤엉켜 있는 모습에서 자유, 조화, 인내, 끈기, 자신감을 느끼게 한다. 오랜 세월이 아니면 도저히 흉내를 낼 수 없는 연륜에서 느끼는 감정이다. 사계절 내내 푸른 잎이 촘촘히 감싸고 있어 그의 품속으로 들어가 보지 않고는 그의 연륜을 느낄 수 없다. 거대한 몸은 푸른 이끼 옷으로 입혀져 젊음과 공존의 기운을 느끼게 한다. 사계절 내내 푸른 옷을 입고 늘 푸름을 자랑하지만, 특히 겨울에는 때때로 흰 눈꽃을 피워 순수함을 느끼게도 한다. 노거수의 모습에서 본받아야 할 가치가 있듯이 노인에게서도 배워야 할 교훈이 있을 것이다.향나무 노거수를 통해서 조상의 은덕을 기리는 것이 자신을 위한 길임을 깨닫게 하였다. 향나무 노거수는 400년 전 영양 남씨(英陽南氏) 입향조인 운강공(雲岡公) 남계조(南繼曹)의 은덕을 기리기 위하여 후손들이 묘 주변에 심은 기념식수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주변에는 묘도비가 세워져 노거수와 단짝이 되었다. 400년이란 긴 세월 동안 운강공 후손들이 매년 이곳에 모여 밤을 다 함께 지새우다시피 하면서 문중의 우애와 화목을 실천하고 있다. 늙은 향나무가 매개체가 돼 그들의 문중을 끈끈한 정으로 묶었다.사람이라면 자신의 가문과 후손의 번영을 위하는 마음은 그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실천하는 사람은 의외로 흔하지 않다. 나 자신만 해도 그렇다. 문중 일에 바쁘다는 핑계로 늘 등한시 하다시피 했다. 지금부터라도 문중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을까 생각해 보았다.얼마 있으면 강선계(講先契) 100주년 기념행사가 대구시 수성구 고산 노인복지회관에서 개최된다. 강선계는 600년 전 혼인으로 맺은 인연의 끈을 1923년도 일제 강점기 시대에 조직의 목적과 운영 규약을 문서로 하여 지금까지 이어온 세 가문의 모임이다. 옥산 전씨(玉山全氏), 아산 장씨(牙山蔣氏), 밀양 박씨(密陽朴氏) 삼 성씨가 모여 문중의 친목과 화합을 돈독히 함은 물론 충의와 효도에 바탕을 두고 나라가 어려울 때마다 구국에 앞장섰다. 조선 전기의 친족 관행에서 유래된 인연을 현재까지 이어오며 더욱 활성화에 노력을 기울이는 강선계는 사료적 가치도 높다고 한다. 서구적 생활양식의 보편화로 인간관계가 파편화되고 소외가 만연한 현대 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할 것이다.어느 가문에서도 들어보지 못한 이러한 미담을 계속 이어가기 위해 살아있는 상징물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강선계 100주년 기념행사에 삼 성씨가 함께 조상 묘역에 기념식수로 향나무를 심자고 제안해 볼까. 향나무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장수목으로 울릉도 도동의 절벽 바위 위에 자라는 향나무는 2000살이 넘었다고 한다. 향나무는 우리나라 자생식물로 사계절 내내 푸름으로 단장해 있다. 특히 제사 향료로 많이 이용되고 묘역이나 우물가에 식재되는 경우가 많다. 우리 민속문화와도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오늘의 발걸음이 앞으로 500주년 때에는 장전리 향나무 노거수처럼 멋진 모습으로 후손들 앞에 서 있지 않을까. 에크하르트 톨에(Eckhart Toll)는 ‘삶으로 다시 떠오르기’라는 저서에서 “우리의 삶 전체의 여행이 궁극적으로는 이 순간에 내딛는 발걸음으로 이루어져 있다. 언제나 이 한 걸음만이 존재하며, 이 한 걸음이 가장 중요하다. 우리가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 무엇을 만나는가는 이 한 걸음의 성질에 달려 있다. 즉 미래는 우리의 지금의 의식 상태에 달려 있다”라고 했다. 그렇다. 지금 우리의 늙음도 따지고 보면 먼 젊은 시절에 내디딘 발걸음으로 이루어졌다. 지금 시작의 발걸음이 세월의 연륜이 더해 미래의 현재 앞에 그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대부분 인간은 영적 차원이 들어오는 게 대개 늙음을 통해서라고 한다. 그래서 노인은 존경받고 존중받았다. 노인은 지혜의 저장고였으며 깊이의 차원을 제공했다. 향나무 노거수의 삶과 마찬가지로 우리 노인의 삶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인데…. 오늘날 노인의 삶이 초라해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청송군 천연기념물·도 기념물 현황은청송은 천연기념물 노거수가 많은 고장이기도 하다. 안덕면 장전리 산 18 향나무 노거수, 수령 400년. 부남면 홍원리 547 개오동나무 노거수, 수령 450년. 파천면 관리 721 외 17필 왕버들 노거수, 수령 380년. 파천면 신기리 659 외 15필 느티나무 노거수. 수령 500년. 현서면 월정리 264(침류정) 향나무 노거수. 수령 350년 등이 잘 알려져 있다. 이밖에 청송읍 부곡리 왕버들은 태풍으로 쓰러져 지정이 해제됐다./글·사진=장은재 작가

2024-04-17

선거 결과에 유권자들 일희일비, 나무 ‘불변성’에서 교훈 얻길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22대 국회의원 선거가 며칠 전 끝났다. 그 결과 야당은 크게 웃었고, 여당은 침통함을 감추지 못했다. 전 법무부장관이 만든 신생 정당은 기대 이상의 성과를 얻어 곧 개원될 국회에서 정치적 입지를 다지게 됐다. 필부(匹夫)에 불과한 기자로선 어느 당이 국회의 패권을 장악하건 입법 권력이 국민들에게 희망과 신뢰를 주는 방향으로 나아갔으면 하는 바람이다.기자의 기억 속에 자리한 첫 국회의원 선거는 1985년 실시된 12대 총선. 유세가 진행된 인근 초등학교 운동장이 시끌벅적했고, 목소리 높인 후보들 간의 모략과 비방, 선거운동원들 사이의 욕설과 주먹질을 보며 ‘참으로 개판이군’이란 생각을 감출 수 없었다.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기자는 선거를 통한 민주주의의 발전을 회의하는 사람이 됐다. 이를 ‘정치 허무주의’라고 비난할 사람도 없지 않겠으나, 어쨌건 지금도 여전히 한국의 정치와 정치인에게서 미래와 희망, 믿음과 화합을 기대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어디서 희망과 믿음을 찾아야 할까? 볼프강 폰 괴테(1749~1832)는 자신의 희곡 ‘파우스트’에서 악마 메피스토펠레스에게 이런 말을 하게 만든다.“모든 이론은 회색이며 오로지 영원한 것은 저 생명의 나무 뿐이다.”이 문장에 등장하는 ‘나무’가 정확히 어떤 상징과 은유로 사용된 것인지에 관해서는 수백 년 동안 견해가 분분했다. 아직도 해답이 나오지 않았다. 문학의 해석에서 정답이란 없는 것이기도 하고.다만, 다른 예술 장르에선 ‘나무’가 어떤 은유와 상징으로 등장하는지 살펴본다면 해답에 조금은 가까이 접근할 수 있지 않을까? ▲시인 로트레아몽이 노래한 ‘나무’는…에스파냐어를 사용한 작가 중 ‘19세기 최고의 표상주의 시인’으로 추앙받는 이지도르 뒤카스(1846~1870·로트레아몽)가 쓴 단 한 줄짜리 짧은 시가 있다.많은 독자들이 읽었으나, 정작 그 안에 담긴 함의를 제대로 읽어내기는 어려운 단시(短詩).시인을 꿈꾸던 수많은 문학청년들에게 ‘이런 걸 써낼 수 있어야 한다면 나는 절대 시인이 될 수 없겠구나’라는 깊이 모를 절망과 ‘기필코 나도 인간의 심장을 떨리게 하는 이런 좋은 시를 쓰고야말겠다’는 뜨거운 열망을 동시에 안겨준 작품. ‘나무’라는 제목을 단 시의 전문은 다음과 같다.‘나무는 자신의 위대함을 모른다.’겸손할 줄 모르는 오만과 스스로의 능력과 주제를 파악하지 못하는 것에서 오는 터무니없는 자만에 콧대만 높던 문학소년들에게 로트레아몽의 ‘나무’가 던진 충격은 컸다.하나를 알고도 열을 아는 것처럼 짐짓 목소리를 높이던 문청들을 한없는 자기반성 속으로 이끌었던 이 시는 “나무는 왜 위대한가”라는 의문을 동시에 던진다. 시인을 꿈꾸던 적지 않은 이들이 살아온 시간은 혹시 그것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한 과정이 아니었을까?영화팬들에겐 두려움과 역겨움이 싫으면서도 공포영화에 집착하는 시절이 있다. 커다란 전정가위로 사람의 목을 잘라버리고, 바나나를 먹는 살찐 여자의 목에 나이프를 꽂는 미국 호러물에서부터 하얀 옷을 입은 귀신이 음습한 별장 지붕 위를 날아다니는 한국의 괴기영화까지.공포영화에 대한 집착은 인간 외부에 자의와는 무관하게 존재하는 두려움을 떨치기 위한 목적의식 때문이었을 터. 원래 젊은 시절이란 ‘자기 자신’ 외에는 아무 것도 무서워하지 않는다는 걸 보여주고 싶은 열망에 휘둘리는 때이기에 그랬을 것이다.그런데, 그 공포영화들마다 나무가 등장했다. 늪지의 가장자리에 머리를 푼 원귀의 모습으로, 또는 불어오는 바람에 몸을 뒤채는 은빛 여우의 울음을 울며.그렇다면 나무의 은유 중 하나인 ‘위대함’이란 인간이 범접할 수 없는 어떤 두려움을 그 안에 간직함으로써 얻어진 것일까? ▲‘나무’가 상징하는 두려움과 사랑하지만, 단순한 공포의 대상이 위대함이 될 수 없다는 걸 깨닫는 순간 ‘그건 아니다’라는 대답을 어렵지 않게 체득할 수 있다.오랜 기간 한국을 철권통치한 군부 출신 정치인 박정희나 전두환이 두려움의 대상일 수는 있지만, 그들이 위대했느냐 그렇지 않았느냐는 또 다른 차원의 문제인 것처럼.길게는 수십 년, 때로는 수백·수천 년을 한 자리에 꼿꼿하게 서서 비바람을 견딘다는 불변의 오만함 탓일까. 나무는 영원불멸의 사랑을 은유하는 대상으로도 곧잘 사용돼 왔다. 강제규 감독의 ‘은행나무 침대’, 노무현 정권 초기 문화관광부 장관으로 일한 이창동 감독의 ‘오아시스’가 현실에서의 그 사례다.저 먼 신라시대부터 20세기 말까지 자그마치 1천500년을 살아온 은행나무로 만든 침대에 전생(前生)에 목숨을 걸만큼 절실하게 사랑했던 여인의 혼이 들어있다는 설정(은행나무 침대)과 비록 성치 못한 몸이지만 서로의 아픔과 고통, 힘겨운 영혼까지 온전히 끌어안은 두 사람의 끈끈한 애정을 한밤에 베어지는 나무를 통해 형상화해낸 영화(오아시스).‘은행나무 침대’와 ‘오아시스’는 우리로 하여금 “나무의 위대함이란 불변하는 사랑을 은유함으로써 증명되는 것이 아닐까”란 독백을 하게 만든다.그러나 이 역시 만족스런 해답은 아니었다. 세상에는 남녀 간의 사랑 외에도 불변하는 것이 너무나 많다는 것을 이미 알아버린 이후였기에. ▲희망·믿음, 무엇으로도 파괴할 수 없는 것1990년대 중반. 우연히 극장에서 만난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의 ‘희생’은 많은 관객들의 감수성을 자극하며 ‘나무’에 관한 예상치 못한 깨달음을 선물했다.“태초에 말(言)이 있었다고 한다.그러나, 너는 그와는 무관하게 침묵하고 있구나. 마치 일생 말없이 물속을 헤엄치는 철갑상어처럼.”이 독백으로 시작하는 구 소련 거장의 영화는 “바람 속을 떠가는 구름의 소리까지 카메라에 담아냈다”는 영화평론가들의 극찬과 함께 ‘주목할 만한 20세기 영화’ 중 한 편으로 기록된다.영화 ‘희생’이 전하는 메시지는 의외로 간명하다. 사람을 구원하는 것은 다른 무엇이 아닌 ‘어떤 상황에서도 희망은 사라지지 않는다’라는 믿음. 이처럼 간단하지만 변하지 않는 진리의 잠언이 담긴 영화 ‘희생’.그렇다. 오늘날 현실에서 정치와 정치인이 주는 실망과 환멸이 아무리 크다 해도 그건 인간이 존재하는 한 사라지지 않을 ‘희망을 믿는 사람들’을 이길 수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희생’에 등장하는 아버지가 이미 죽은 나무에 물을 주면서도 포기하지 못했던 생명에 대한 외경과 부활에의 믿음. 우리의 생은 바로 그런 희망과 신뢰란 벽돌로 축조돼 왔고 앞으로도 그것들로 만들어져 나갈 것이 분명하다./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2024-04-16

70층 랜드마크 타워 오르니 ‘야경천국’이 열렸다

일본 여행이 붐을 이루고 있다. 벚꽃 계절을 맞아 도쿄나 오사카, 후쿠오카 등 일본의 대도시로 여행을 떠난다. 요코하마는 도쿄도에 속해있는 매력적인 항구도시지만 의외로 잘 찾지 않는 곳이기도 하다. 오래전 일본 요코하마를 찾은 적이 있었다. 요코하마 항구도시의 후미진 이자카야에서 경쾌한 노래가 흘러나왔다. ‘블루나이트 요코하마’가 반복되는 이 노래는 이시다 아유미라는 가수가 부른 엔카였다. “거리에 네온사인이 너무도 아름답네요 요코하마 푸른 등 요코하마 당신과 두 사람 행복해요 언제나처럼 사랑의 말을 요코하마 푸른 등 요코하마….” 나중에야 가사를 알게 됐지만 당시에도 항구의 불빛은 아름다웠다. 블루나이트 요코하마는 일본 대중문화가 개방되기 전에 들어와 큰 인기를 끌었던 노래다. 20년이 지나 요코하마를 다시 찾으니 항구는 상전벽해를 거듭했고 푸른 등이 반짝이던 항구는 영롱하기 이를 데 없는 불빛이 보태져 빛의 향연을 펼치고 있었다. 요코하마는 높은 자부심과 빼어난 패션 감각을 지닌 사람들이 사는 도시이자 최첨단과 레트로가 뒤섞인 매력적인 도시였다. ◇ 미나토미라이21 계획으로 성장한 도시요코하마는 도쿄를 자주 찾는 관광객도 의외로 잘 들르지 않는 곳이다. 도쿄 인근의 잘 알려진 관광지인 가마쿠라를 가기 전에 들르는 이들은 있어도 작정하고 요코하마를 찾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터놓고 이야기하자면 요코하마에는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관광지가 거의 없다. 그런데도 요코하마를 찾은 이들은 요코하마에 묘한 매력이 있다고 말한다. 요코하마는 원래 160년 정도의 짧은 역사를 지닌 젊은 도시다. 에도시대(1603~1867)만 해도 겨우 100가구가 사는 반농반어의 초라한 어촌마을이었다. 개항이 되면서 사람들이 몰렸지만 간토대지진과 미군 대공습(1945)으로 도심 절반이 파괴됐다.요코하마가 일어서기 시작한 것은 1960년대부터다. 경제 고도 성장기인 1963년 취임한 아스카타 이치오 시장은 국제문화도시를 만들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세우고 도심부를 강화하는 미나토미라이21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미래의 항구를 새롭게 그리겠다는 뜻을 담은 미나토미라이21 프로젝트는 요코하마가 자립해 살 수 있는 토대를 만들고 수도권 기능 분담을 목적으로 계획됐다. 1.86㎢에 이르는 바다를 메우고 그 땅에 주택지를 조성했다.현재는 쇼핑몰과 미술관 공원이 들어서서 요코하마의 주요한 관광 코스가 됐다. 오산바시 국제여객터미널에서 바라본 고층빌딩 밀집지역은 풍경이 아름다워 사람들이 즐겨찾는 명소 중 하나다. 환상적인 야경 스카이라인에 탄성이 절로 나온다. ◇ 근대의 상징이 된 뉴그랜드호텔미나토미라이역 21지구의 도심 재개발 사례 중 대표적인 예가 미나토미라이역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요코하마 아카렌가 창고다. 붉은 창고라는 뜻의 아카렌가는 영화나 드라마 촬영지로 종종 이용되는 이색적인 곳이다. 아카렌가는 1911~1913년 다이쇼 시대 정부의 보세 창고로 세워진 두 동의 붉은 별돌 건물로 이뤄져 있다. 원래 이곳은 일본 최초의 근대적 항만시설이었다고 한다. 1989년 창고의 사명을 다한 후 9년 동안 역사적 건조물로서 복원공사를 거쳐 2002년 문화상업시설로 새롭게 문을 열었다.아카렌가 창고 1호관은 다양한 기념품점이 들어서 있다. 일본에서도 인기가 높은 요코하마 베스트나 아카렌가 데포 등이 입점해 있다. 2층은 전시나 파티 공간, 3층은 연극과 콘서트 공간 등으로 활용되고 있다. 아카렌가 창고 2호관은 층마다 서로 다른 테마로 꾸며져 있다. 1층은 세계 각국 요리를 선보이는 캐주얼 레스토랑과 카페, 소품전문점 등이 있고 2층은 고급 엔티크 가구점, 3층은 중국 요리 전문 레스토랑과 바가 들어서 있다. 아카렌가 창고는 밤이면 더 아름답다. 벽돌 주위로 불빛이 일제히 빛나면서 환상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서구 문물이 들어오던 시절의 유산은 요코하마 곳곳에 근대 서양식 건축물로 고스란히 남아 있다. 그중 하나가 1927년 문을 연 뉴그랜드호텔이다. 간토대지진으로 폐허가 된 땅에 세워진 근대식 건축물은 요코하마를 발전시키고 싶어 한 당시 사람들의 염원이 모인 곳이기도 하다. 벌써 90년의 세월이 흘렀는데도 뉴그랜드호텔은 마치 세월이 비켜간 듯 당시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조금 촌스러운 느낌이 드는 푸른 융단에 육중해 보이는 돌계단, 마치 천장까지 이어질 듯한 높고 긴 유리창, 탁자와 의자까지 클래식하다. 심지어 90년 전에 만들어진 엘리베이터가 지금도 작동하고 있다. 요코하마의 역사와 같이한 호텔이다 보니 2차대전 당시 점령군으로 일본을 통치했던 맥아더 장군은 물론 찰리 채플린, 베이브 루스도 이곳에 묵은 적이 있다. 이 호텔 2대 총주방장이 만든 나폴리탄 스파게티는 지금도 호텔의 주메뉴일 뿐만 아니라 일본 전역에서 즐겨먹는 스파게티의 원조가 됐다. 1991년 신관이 새롭게 문을 열었지만 중후하고 클래식한 분위기 때문인지 구관에 투숙객이 더 많은 것은 물론 많은 이가 찾는 관광명소가 됐다. ◇ 요코하마 관광의 백미 눈부신 야경요코하마 관광의 백미는 야경이다. 일본에 수많은 야경 명소가 있지만 요코하마 야경은 3대 야경이니 5대 야경이니 하는 순위에 포함되지 않는다. 요코하마 야경은 이미 다른 야경지의 수준을 넘어섰다고 요코하마 사람들은 자랑한다. 요코하마 사람들의 자부심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실제로 야경을 보면 놀랄 만큼 눈부시다.요코하마의 야경 포인트 중 한 곳은 70층짜리 랜드마크 타워에서 관람하는 것이다. 랜드마크타워는 미국 건축가 휴 스티븐스의 설계로 1993년 지어진 296m 초고층 빌딩이다. 오사카의 아베노 하루카스(300m)가 건설되기 전까지 일본에서 가장 높은 빌딩이었다. 세계에서 두 번째로 빠른 엘리베이터로 약 40초(분속 740m) 만에 69층 전망대에 오르면 요코하마의 전경이 360도로 펼쳐진다. 전망대는 오후 5시부터 야경을 찍으려는 사람들로 붐비기 시작한다. 저마다 삼각대를 걸쳐놓고 요코하마항과 도쿄 도심까지 알록달록하게 펼쳐진 색의 향연을 카메라에 담기 위해 자리 다툼을 벌인다. 요코하마항 풍경도 빼어나지만 후지산을 중심으로 서서히 지는 낙조는 한 폭의 그림처럼 매력적이다.랜드마크타워 바로 옆에는 160여 개의 상점과 레스토랑이 밀집해 있는 대형 쇼핑몰인 랜드마크플라자가 있다. 해외 유명 브랜드와 일본 디자이너 편집숍이 들어서 있다. 랜드마크플라자 옆에는 로마 원형경기장처럼 생긴 도크야드가든이 이채롭다. 원래 이곳은 1896년에 선박 및 항만 관련 시설 정비용 도크로 지어진 곳이다. 선박들이 점차 대형화되면서 조선소가 옮겨갔고, 제기능을 상실했다가 1995년 국가 중요문화재로 지정돼 현재 모습으로 복원됐다.야경을 찍을 수 있는 또 하나의 명소는 아카렌가 창고에서 멀지 않은 요코하마항 오산바시에서 미나토미라이지구를 바라보는 풍경이다. 고층 빌딩들이 일제히 불을 밝히고 대관람차가 시간대에 맞춰 돌아가기 시작한다. 바야흐로 빛의 축제가 펼쳐진다. 이곳이 야경천국 요코하마다. /일본 요코하마=글·사진 최병일 여행전문기자

2024-04-11

한국에서 가장 키 큰 은행나무에게 ‘소원을 말해봐’

문경회(文卿會)는 퇴직한 공직자들의 친목 단체이다. 매년 봄가을에 북부권, 중부권, 남부권을 번갈아 문화유적지를 찾아다니면서 우정과 삶을 살찌우고 있다. 봄비가 내리다 그치다 하는 날 양평 용문사와 은행나무를 찾았다.고즈넉한 산중의 사찰이야 어느 때라도 풍경을 즐기며 마음 수양하기에 좋으련만, 은행나무는 누가 무어라고 하여도 노란 단풍이 곱게 물든 가을이 제철이다. 하지만 모임 일정 관계로 봄에 용문사와 은행나무를 찾았다.녹색이 물들어 가는 용문산 용문사로 향하는 숲속 길은 계곡물 소리와 함께 마음의 땟국물을 씻어 주었다. 절의 일주문을 들어서니 극락세계에 와 있는 느낌이다. 한 번도 와보지 못한 용문사와 우리나라에서 가장 키가 큰 은행나무 노거수를 만난다는 것만으로 가슴 설렜다. 모두가 말없이 묵묵히 걸었다. 눈앞에 펼쳐지는 봄의 향연을 만끽하며 걷는 것 자체가 묵언 수행이었다. 생각은 깊은 바다와 높은 하늘을 마음껏 유영하면서 끝없는 명상에 빠져들었다. 철학은 우리의 삶을 이야기하고 우리의 삶은 문학과 예술의 옷을 입혀서 아름답게 살찌우려 노력한다. 종교는 죽음에 대해서 말하고 행복한 죽음을 맞이하기 위하여 우리는 또 무엇으로 옷을 입힐까? 깊은 신앙심의 기도로 우리는 안식을 찾으려 한다. 우리의 궁극적 목적지는 어디일까? 열차에 태워진 몸처럼 가만히 있어도 안내되어 저절로 가는 곳, 무슨 애쓸 필요가 있을까? 애쓴다고 해서 되지도 않을 일을, 누가 가보고 온 사람도 없는 곳을, 그런데도 극락이니 천당이니 하여 가겠다고 빌고 또 빈다. 인간의 끝없는 욕심도 모자라 오늘도 이곳을 찾는 많은 사람이 용문사 부처님과 은행나무 앞에서 소원을 빌고 있다.걸음은 멈추어지고 묵언 수행도 끝이 났다. 연노란 잎을 단 하늘로 치솟은 거대한 은행나무 노거수가 우리 앞에 버티어 섰다. 놀라움에 아무 생각 없이 경배의 고개를 숙이고 두 손을 합장했다. 몸이 그렇게 반응했다. 딱히 소원도 없었다. 거대함과 아름다움에 마음은 홀라당 뺏겨 버렸다. 노란 은행잎 단풍을 주어 책갈피에 넣어 때때로 펼쳐보곤 했던 어린 시절의 아름다운 추억이 주마등처럼 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아름다운 연노란 은행잎 앞에 왜 지난 어린 시절의 노란 은행잎 추억이 떠오르는지 모를 일이다.그러나 그것도 잠시 잠깐이었다. 은행나무라 하면 노란 단풍잎을 매달고 노란 은행 열매를 생각했는데, 이슬 안개에 목욕하고 나온 연노란 은행나무 잎은 고목에 핀 아름다운 꽃과 같았다. 그 녹색의 향기는 또 어떠하리, 오방색 천이 은행나무에 걸쳐져 있고, 주변에는 노란 소원지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이것이 우리의 삶을 살찌우고 행복하게 하는 민속문화가 아닐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은행나무와 용문사는 하나로 생각되었다. 용문사를 세우고 은행나무를 심었을 것이다. 당시에는 은행나무는 용문사를 쳐다보면서 용문사의 보살핌을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은행나무는 용문사를 내려다보면서 용문사 수호신으로 자리매김하였다. 은행나무가 없는 용문사를 생각하면 외롭고 삭막할 것이다.지나가는 사람들의 흘리는 말을 주워 들어보면 용문사 절보다 은행나무가 더 유명하며 많은 사람이 찾는다고 했다. 중국 관광객까지 나무에 매료되어 기념사진을 찍고 소원지를 매달고 있는 것을 보아도 그런 것 같다. 변화가 없는 용문사보다 사계절 변하는 은행나무가 더 친근감이 들고 마음을 끌었다.용문사 절은 649년 신라 진덕여왕 때 원효대사가 세웠다고 한다. 은행나무 노거수는 신라의 마지막 임금인 경순왕의 아들 마의태자(麻衣太子)가 나라를 잃은 설움을 안고 금강산으로 가다가 심었다는 설과 의상대사가 짚고 다니던 지팡이를 꽂고 갔는데 그것이 자랐다는 설이 함께 전해지고 있다.원효와 의상대사가 당나라로 유학 가던 중 하룻밤을 유숙하면서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세상사 마음먹기에 달렸다)”라는 크나큰 깨달음을 얻었다 한다. 그렇다. 마음먹기에 따라 우리의 삶도 불행과 행복으로 갈라질 것이다. 우리의 최종 목적지는 어디인지를 알면서도 그 무엇에 시간을 허비하고 있다. 만물의 열매는 씨앗을 둘러싸고 있는 깍지 이외의 아무것도 아니다. 태양이 없는 밤은 모두를 같게 하고 태양이 있는 낮은 모두를 다르게 한다.같으면서도 다른 것이 세상의 만물이며 이치이다. 생과 사라는 삶과 죽음은 하나의 이음줄에 서있는, 높고 낮음과 귀하고 천함이 없는 평등한 물상이다. 있는 위치에서 즉 놓여 있는 곳에서 역할을 충실할 따름이다. 못하고 잘하고, 나쁘고 좋고, 필요 있고 필요 없음의 구분은 시와 때가 되면 바뀌고 변한다. 거대한 은행나무 앞에서 이런저런 생각에 물들었다.아무도 나를 해치지 않으려 하는데 나는 왜 내 자신이 무기력하고 나약하여 스스로 무너지려 하는지 모르겠다. 삶은 한 편의 꿈같은 것일까, 그 종말 또한 한 줌의 재로 끝난다는 것일까. 사람을 제외하면 어떤 생물도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 같다. 어떤 수컷 거미는 자신 몸의 살점을 암컷의 먹이로 주며 죽어가는데, 인간은 죽음을 두려워하고 있다니 미물만도 못한 것일까. 불교에서는 죽는다는 건 동시에 다른 어떤 것으로 태어나는 것이라는 윤회설을 믿고 있다. 보리수 아래에서 깨달음을 얻은 석가모니처럼 우리 또한 은행나무 아래에서 마음먹기에 따라 삶이 달라진다는 것을 깨닫는다.조선 시대 태종은 용문사 은행나무를 세상 모든 나무의 왕이라 했다. 세종대왕은 당상관 직첩의 벼슬을 내렸다. 불타 없어진 사천왕문을 대신한다고 천왕목(天王木)이라 불렀다. 나라에 위기가 있을 때마다 울기도 하고 전쟁과 환란에 함께 하였다고 하여 호국목(護國木)이라 불렀다. 아들을 낳지 못하는 부인이 정성껏 빌면 아들을 얻는다고 하여 사랑목이라 불렀다. 이렇게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불리면서 민속문화 유산으로 깊숙이 자리 잡았다. 1천100살이 훌쩍 넘은 나이임에도 매년 350여㎏의 은행이 열린다고 하니 청춘목(靑春木)이랄까, 다산목(多産木)이라는 이름을 덧붙여도 좋겠다.은행나무에는 금기 사항이 있어 이를 어기면 천벌을 받는다는 징벌담의 설화가 있다. 일제 강점기 시절 이곳 용문사는 의병 활동 근거지였다고 한다. 그런 이유로 일본군이 용문사를 불태웠지만, 은행나무는 무사했다고 한다. 어떤 연유로 불에 타지 않고 살아남았는지 천운을 타고난 것은 분명한 것 같다. 옛날 은행나무를 베고자 톱을 대었을 때 나무에 피가 나오고 맑던 하늘이 흐려지면서 천둥 번개가 쳤기 때문에 중지했다는 이야기도 내려오고 있다. 믿거나 말거나 신령스러운 은행나무 노거수인 만큼 별의별 믿기 어려운 전설이 뭉쳐서 내려오고 또 덧붙여서 내려가고 있다.우리 일행은 용문사를 빠져나왔다. 그 어디에도 우리들의 흔적은 남아있지 않다. 다만 우리 마음속에 그 흔적이 남아있을 뿐이다.용문사 호국목 은행나무 노거수는우리나라에서 가장 키가 큰 나무로 알려졌다. 1962년 12월 7일 천연기념물 제30호로 지정됐다. 경기도 양평군 용문면 신점리 625번지에 위치했다. 키 42m, 가슴 높이의 둘레 15.2m, 앉은 자리의 폭 28m이고, 나이는 최하 기준으로 1천100살로 안내되고 있다. 탄소동위원소 연대 측정기를 이용하여 정확한 나이를 알 수 있지만 그럴 필요는 없을 것 같다./글·사진=장은재 작가

2024-04-10

‘승자와 패자의 드라마’ 볼만한 정치 영화 어때요

“실정을 거듭하는 정권을 심판하자”는 구호와 “야당의 부도덕한 범법자들에게 표를 주면 안 된다”는 주장이 대립하는 2024년 봄이 지나고 있다. 오늘은 22대 국회의원 선거일. 가파르게 상승하는 물가와 뉴스를 통해 연일 들려오는 국회의원 후보자들의 탈법과 불법 사례, 양보와 화합이 아닌 극한 대결로만 치닫는 정치권을 보고 있으면 “봄은 왔으나 봄이 봄 같지 않다”는 끌탕이 절로 나온다. 그러나, 여당과 야당 모두에게 실망했다고 해서 유권자로서의 권리를 포기할 수는 없는 일. 정치학자들의 말처럼 ‘선거란 최선이 아닌 차악을 선택하는 행위’다. 식상한 레토릭이지만 ‘나의 소중한 한 표’가 이 땅 민주주의 발전에 기여할 것이기에 다시 투표장으로 향하는 발걸음들. 일찌감치 투표를 끝낸 독자들이 있다면 오후엔 아래 추천하는 영화를 보며 한국의 정치와 선거에 관해 곰곰이 생각하는 시간을 가져보길 권한다. 자연스레 현실에서의 국회의원 선거를 떠올리게 하는 ‘특별시민’배우 최민식이 뿜어내는 아우라(Aura)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영화 ‘명량’에서 열세에 몰린 조선 장군의 고뇌를 연기할 때도, 타자의 고통에 전혀 반응하지 않는 연쇄살인범으로 변신한 ‘악마를 보았다’에서도, 크나큰 상처를 지낸 채 살아가는 지리산 호랑이 사냥꾼으로 분한 영화 ‘대호’에 출연했을 때도 그는 돌올했다.사람에 따라 평가는 갈리지만, 최민식이 ‘연기 잘하는 배우’란 걸 부정할 영화팬은 많지 않을 듯하다. 그가 지닌 가장 큰 장점은 캐릭터와의 밀착력이다. 감독과 관객이 원하는 존재로의 자연스러운 변신, 영화 속 인물로의 완벽한 몰입.“배우라면 그게 당연하다”고 말할 수 있겠으나, 최민식 정도의 변신과 몰입은 아무나 흉내 낼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라는 게 기자의 생각이다.출연하는 영화마다 자신의 존재를 각인시켜온 최민식이 3선 국회의원 출신의 재선 서울시장으로 나오는 영화가 ‘특별시민’이다.비단 한국만이 아니다. 세계 어느 곳 할 것 없이 정치인들이 벌이는 최고의 이벤트라 할 선거를 꼼꼼히 들여다보면 ‘쇼(Show)’라는 단어가 발견될 게 분명하다.‘특별시민’은 눈앞에 닥친 선거의 승리를 위한 정치인들의 복마전과 이전투구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유권자들 앞에서는 “국민 행복과 공공의 이익을 위하여”를 외치다가 이내 돌아서서 “나와 가족의 이익을 위하여”라며 음흉하게 웃는 정치인과 선거의 어두운 이면에 카메라를 들이댄 것이다. ‘특별시민’의 무대가 되는 공간은 한국의 서울시. 서울시청사는 물론, 여의도 국회의사당과 청와대까지 거침없이 비추는 연출자 박인제 감독의 카메라는 2024년 4월 현재 진행되고 있는 국회의원 선거를 자연스레 떠올리게 만든다.‘특별시민’은 상영 시간 내내 영화와 현실의 경계에서 쓴웃음을 짓게 한다. 거듭되는 저급한 수준의 네거티브 공세와 공작 정치의 향기가 진하게 풍겨오는 선거캠프의 운동원들, 함량 미달의 정치인을 그럴듯하게 포장하기 위한 억지스러운 미디어 연출… 이쯤 되니 ‘특별시민’은 허구를 재료로 만든 극영화가 아닌 사실에 근거한 다큐멘터리처럼 보일 지경이다. 시종 흥미와 긴장감을 유지하는 사실적 연출은 ‘특별시민’을 특별하게 느껴지게 한다. 이는 박인제가 성취한 연출의 승리다.하지만, 박 감독이 이룬 작은 승리의 배후에는 영화 속 서울시장 후보 변종구의 큰 승리가 있다.젊은이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서라면 래퍼 분장도 마다치 않고, 묘하게 조작된 동영상을 통해 대중들의 마음을 들었다 놓았다 하며 선량한 정치인을 가장하는 변종구. 그러면서도 아내에게는 폭력적이고, 아랫사람에게는 권위적인 이중성을 시시때때로 드러내는 변종구….누구라 특정할 것도 없이 우리는 지금까지의 한국 정치 현실에서 얼마나 많은 ‘변종구’를 봐왔던가. 거기서 생긴 실망감이 ‘정치(선거) 허무주의’로 이어졌다고 하면 지나친 과장일까? 그렇지 않아 보인다.최민식은 다중성을 지닌 자신의 극 중 캐릭터 변종구를 완벽하게 소화해냈다. 앞서 말한 능수능란한 영화적 변신과 몰입을 통해. ‘특별시민’이 최소한 ‘재밌는 영화’로는 불릴 수 있는 이유다.그리고 마지막으로 하나 더. 정치와 정치인을 다룬 이전의 한국 영화들과 달리 ‘특별시민’은 끝까지 선과 악에 대한 감독의 자의적 가치 판단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 모호함이 세련됨으로 관객들에게 다가오는 건 영화가 주는 덤이다. 부패한 정치인과 조직폭력배에 관한 영화적 성찰 ‘레전드’20세기를 통틀어 ‘가장 용감했던 여기자’를 꼽으라면 누구도 감히 이의를 제기하기 어렵다. 오리아나 팔라치(1929~2006)가 바로 그 위치를 점한 사람이란 것에 관해.레지스탕스 아버지 밑에서 태어나, 2차 세계대전을 겪으며 수많은 죽음의 고비를 넘겼다. 뿐이랴. 베트남 전쟁의 포화 속으로 겁 없이 뛰어들었고, 혁명이 한창이던 멕시코에서는 총에 맞기도 했다.세상 대부분의 남자들이 두려워하던 이란의 아야툴라 호메이니, 리비아의 무아마르 카다피, 미국의 국무장관 헨리 키신저 앞에서도 기죽지 않고 자신이 주도해 인터뷰를 이어가던 무시무시한 여자.바로 이 오리아나 팔라치가 아래와 같은 말을 했다. “당신이 만난 권력의 최정점에 섰던 정치인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답하면서다.“그들은 보통의 사람들보다 똑똑하지도 선량하지도 않았어요. 좋은 가정교육을 받지도 못했고, 상대의 아픔을 공감할 수 있는 능력도 없습니다. 게다가 배려와 연민에서는 아주 먼 사람들이었죠. 그들이 가진 능력이라곤, 어떠한 수단을 써서라도 자신의 욕망을 이루려 했으며, 그 욕망을 이루기 위해서는 몹시 악랄한 수단도 마다치 않았다는 것이죠.”유명한 영국의 조직폭력배 형제 이야기를 다룬 영화 ‘레전드’를 보면서, 왜 이탈리아 출신의 여기자 오리아나의 진술이 떠올랐는지….조금 오래된 이야기지만 기자가 젊었던 시절 ‘L.A 컨피덴셜’을 보고 놀랐던 적이 있다.치고 빠지는 능수능란한 할리우드적 전술로 자국만이 아니라, 한국에서도 성공을 거둔 이 영화의 시나리오 작가는 브라이언 헬겔랜드. 아카데미 각색상을 받은 그가 만들었다는 것에 기대를 걸고 ‘레전드’와 만났다.그런데, 결론을 말하자면 영화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연출에선 힘이 빠졌고, 주연 톰 하디를 제외한 나머지 배우들의 캐릭터는 이전 이탈리아 마피아를 소재로 한 영화나, 1930년대 금주법 시대를 그린 미국 갱스터영화의 복사판이었다. 영화 ‘레전드’ 포스터. /영화 홈페이지 얼핏얼핏 비치는 ‘깡패도 휴머니티가 있다’는 식의 짜 맞추기식 화면 구성의 동어반복도 눈 높은 갱스터영화 팬이라면 참고 봐주기 힘든 수준.‘레전드’의 꽤 긴 상영 시간을 지겹지 않게 만드는 게 있다면, 1인 2역을 맡아 빼어난 연기로 이를 소화한 톰 하디(레지 크레이·로니 크레이 분)의 열연 정도다.어린 시절 나치의 폭격으로 정신이 이상해진 동생 로니와 그에 비해 훨씬 이성적인 쌍둥이 형 레지의 캐릭터를 동시에 연기하긴 어려웠을 게 명약관화한 일. 그럼에도 톰 하디는 군계일학의 연기력으로 이를 극복해낸다. 영화 ‘레전드’의 미덕을 하나만 더 꼽으라면 이렇게 말할 수 있겠다. “조직폭력배와 부패한 정치인은 결국 동질이형(同質異形)의 인간이란 걸 재치 있게 보여 준다”고.영화에서 묘사되는 런던의 고위직 경찰 간부와 영국의 상원의원은 추악하고, 위선적인 정도가 깡패와 다를 바 없다. 아니 오히려 더하다. 앞서 언급한 오리아나 팔라치의 진술과 유사하게.다행히 ‘우의’를 통한 에두른 세상의 비판이 ‘레전드’ 속엔 눈곱만치라도 담겼다. 이것이 난파 직전의 영화를 구하는 주요한 키워드로 역할 한다. 그나마 다행이다.영화가 끝나고, 마지막 엔딩 자막이 올라올 때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는 영화답게 ‘레전드’는 형제 조직폭력배 레지 크레이와 로니 크레이가 어떻게 최후를 맞았는지 알려준다. 그때 문득 떠오른 생각 하나.만약 ‘독설가’인 이탈이라 여기자 오리아나 팔라치가 아직도 살아있다면 이런 말을 ‘레전드’의 감독 브라이언 헬겔랜드에게 하지 않았을까.“영국이건 한국이건 조직폭력배와 부패한 정치인이 동일한 유전자를 가진 사람이라는 걸 여태 몰랐던 겁니까?”/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2024-04-09

차가운 바람에도 얼지 않는 압록강아

◆북간도에서 서간도로, 이 험한 길을 우리는 왜폭설이 쏟아졌다. 열차는 좌석이 동났고 고속도로는 통제됐다. ‘일단 가보자’ 서간도에 가겠다는 우리의 결의는 한결같았다. 국도로 이동하는 것 외에는 딱히 방법이 없었다. 이동 거리가 멀고 눈도 내리고 있어 만만치 않을 거라 예상했지만 현실은 더한 어려움이 따랐다.단둥(단동)까지 약 1천500km의 거리를 버스를 타고 이동했다. 가도 가도 끝이 없는 길, 이도백하에서 아침 7시에 출발해 밤 8시 반쯤 단둥에 도착했다. 11시간 반 만에 도착한 단둥은 늦은 밤이었다.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이쪽은 중국 단둥, 저쪽은 북한 신의주단둥엔 중국과 북한의 국경을 이루는 압록강이 흐른다. 압록강은 백두산 천지에서 발원하여 한반도와 중국의 국경을 이루며 혜산, 중강진, 만포, 신의주와 단둥을 적시고 가만가만 서해로 흘러간다.단둥은 중국에서 가장 큰 국경도시다. 붉은 ‘단(丹)’ 동쪽 ‘동(東)’, 붉은 기운이 솟구치는 동쪽. 그러나 이 두 글자의 이름에는 중국과 북한의 긴밀한 관계가 숨어 있다. ‘홍색동방지성(红色东方之城)’, 북한을 두고 ‘혈맹으로 붉게 물든 동쪽의 도시’라는 뜻이라 하니 두 나라의 관계가 얼마나 돈독한지 가늠이 된다.늦은 식사를 마치고 압록강 강변을 걸었다. 건물마다 형형색색의 불빛으로 윤곽을 두르고, 건물과 건물 틈마다 등(燈)을 달아 빛을 뿜게 했다. “저 다리가 압록강 단교입니다.” 양진오 교수가 강 위의 다리를 가리켰다. 화려한 불빛으로 치장한 다리는 무척 아름다웠다. “강 건너가 평안북도 신의주입니다.” 일행은 일제히 강 너머를 바라보았다.다리는 이쪽에서 저쪽으로 연결된 듯했지만 불빛은 어느 지점에서 멈췄고, 저쪽은 어둠에 갇힌 듯 그 무엇도 가늠할 수 없었다. 강 너머를 바라보며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말문이 막혀서가 아니라,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저곳이 신의주라는 게 믿기지 않기 때문이었다.단둥의 옛 이름은 ‘안동(安東)’이다. 1965년까지 그리 불렀다. 이름이 변경된 까닭은 중국 총리 주은래가 단둥에서 하룻밤을 묵었고, 다음 날 일출을 보고 아침 해가 북경보다 빨리 뜬다고 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단둥엔 조선족을 비롯해 한국인과 북한 동포가 한데 섞여 살고 있다. 어쩌면 단둥은 분단을 모르는 또 다른 조선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신의주 쪽에서 내일 아침 해가 뜰 겁니다. 일출을 보면 왜 ‘단둥’인지 알게 될 겁니다.” 양진오 교수가 압록강 너머 캄캄한 곳을 가리키며 말했다. ‘신의주, 신의주… 도대체 신의주는 어디에 있다는 거지?’ 나는 보이지 않는 도깨비 같은 도시를 쉬이 받아들이지 못했다. ◆신의주에서 떠오르는 해밤새 잠을 뒤척였다. 새벽부터 창가를 서성이다 6시 무렵 밖으로 나갔다. 간밤의 화려한 불빛은 물러나고 두꺼운 어둠이 장악한 사위는 두려움을 가져온다. 이국의 거리는 익숙하지 않아 더 그렇다. 강물에도 파도가 사는지, 강가로 밀려오고 밀려가는 물소리만 들린다.칼바람 속에도 집요하게 강 너머만 바라본다. 서서히 어둠이 걷히고 조금씩 형체가 드러난다. 가장 먼저 굴뚝이 눈에 들어오고 그 옆으로 공장인 듯 지붕과 지붕이 이어진다. 어둠이 물러날수록 건물의 색깔이 드러나고, 드물게 서 있는 나무의 흔들림까지 보인다.차가워질 대로 차가워진 볼에 감각이 무뎌질 무렵, 굴뚝 옆으로 붉은 기운이 깔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붉은 해가 모습을 드러낸다. 분명 해는 신의주에서 솟는다. 단둥에서 일출을 보고 북경보다 일찍 뜬다고 했다는 주은래는 틀렸다. 붉디붉은 기운은 신의주를 먼저 깨우고, 압록강을 밝힌 후 그다음에 단둥을 비춘다. ‘저기 어디 뒷동네 용천엔 겨레의 할아버지 함석헌 선생의 고향 이랬지. 단둥 세관에 근무하던 시인 백석은 압록강을 숱하게 바라보며 어떤 상념에 젖었을까.’신의주는 가난한 도시로 느껴지지 않는다. 여태껏 우리가 듣고 믿었던 북한은 어디일까. 북한은 가난하고 먹을 것도 없어 굶주린 인민들이 넘쳐날 것이라는 나의 추측은 완전히 빗나갔다. 우리는 어쩌면 세뇌되고 믿어버렸는지도 모른다. 그저 연민의 마음으로 처연하게만 여겨온 마음의 의심이 풀리는 순간이다. ◆압록강 단교압록강 하류엔 일제가 1911년 대륙 침략을 위해 건설한 다리가 있다. 이 다리는 중국과 한반도를 잇는 역할을 했다. 그러나 한국전쟁 때 중국이 북한을 도와 전쟁에 개입할 것을 우려한 미국은, 중공군이 한반도로 진입하는 것을 막기 위해 다리를 끊었다. 다리는 현재 중국 쪽 절반만 남았고 북한 쪽은 교각만 덩그러니 남았다. 구실 잃은 다리는 ‘단교(断桥)’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압록강 물살을 견딘다. 다리 위 마오쩌둥 사진 옆에 ‘항미원조 보가위국(抗美援朝 保家卫国, 미국에 대항하여 조선을 돕고 나라를 지켰다.)’고 기록해 놓았다.단교 옆엔 ‘중조우의교(中朝友谊桥)’가 있다. 중국과 북한을 잇기 위해 1943년 새로 건설했다. 944m 길이로 철길과 차선이 나란히 놓였다. 이따금 이 다리를 통해 커다란 차량이 국경을 넘어 북한으로 들어가는 것을 볼 수 있다. 우리에겐 너무 생소한 모습이지만 여기서는 자연스러운 모습이다.단교에 올라 압록강을 횡단해 본다. 칼바람이 온몸을 에워싼다. 압록강의 추위는 두만강보다 몇 곱절 더 시린 것만 같다. 다리 위를 걷다 어느 지점에 다다르면 ‘단절’을 경험하게 된다. 미처 마음의 준비를 하지 못한 탓일까. 더는 갈 수 없는 막막함과 서운함에 쉬이 발길을 돌리지 못한다. 가지 않아서가 아니라 가지 못하기에 더 간절해진다.유람선을 타고 압록강 물살을 거슬러 올라간다. 압록강은 북한과 중국의 공유지역이다. 일행들의 표정이 사뭇 진지하다. 북한은 지척에 있었다. 신의주 쪽으로 보이는 건물은 적당한 간격을 유지하며 정갈하게 자리 잡았다. 북한 장성급 별장이라고 현지 가이드가 일러준다. 별장이라… 가까이 갈수록 건물들에서 오는 이질감은 무엇일까. 겨우 붙어있는 판자며 금방이라도 떨어질 것만 같은 문짝, 잔바람에도 쓰러질 것만 같은 폐가 수준의 느낌은 나 혼자만의 오해인가. ◆이성계가 회군한 위화도, 중국과 맞닿은 황금평버스를 타고 강변을 달리다 개통을 앞둔 압록강 대교 부근에서 하차했다. 강물이 웅숭깊게 흘러가는 하구 어디쯤이었다. 양진오 교수가 강 너머를 가리키며 태조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위화도는 압록강 모래가 퇴적되어 만들어진 섬입니다. 고려 말 1388년(우왕 14) 음력 5월. 요동 정벌을 위해 우군 도통사 이성계는 압록강 하류 위화도까지 이르렀지요.” 우왕(고려 제32대)의 명을 받들어 개경에 머물던 총사령관 팔도도통사(八道都統使) 최영 장군은 명나라 정벌을 위해 요동까지 정벌을 추진했지만, 이성계는 현실적인 한계가 따른다며 위화도에서 군사를 물렸다. 위화도에서 회군한 지 4년여 만인 1392년 7월, 이성계는 신진사대부의 도움으로 고려를 멸망시키고 왕위에 올랐고, 다음 해 2월 국호를 고려에서 조선으로 바꿨다.그리고 황금평(黃金坪)에 대해 이야기했다. 원래 ‘황초평’으로 불렸으나 김일성이 황금평으로 이름을 바꿨다. 황금평은 오랜 퇴적으로 인해 중국 영토에 맞닿아 버렸다. 그렇다면 이는 누구의 땅인가. 북한에서는 한때 장성택의 주도로 황금평과 위화도, 나선지구를 신흥 경제 지구로 개발하려 했지만, 장성택이 숙청당한 이후 사업이 흐지부지되었다는 양진오 교수의 말은 흥미로웠다. ◆의친왕 상해임시정부로의 탈출 실패한 단둥역단둥역에 도착했다. 역 광장엔 중국 인민의 추앙 대상인 마오쩌둥의 거대한 동상이 베이징을 향해 서 있다. 단둥역에서는 베이징, 상하이를 비롯해 선양, 다롄, 하얼빈까지 고속열차가 연결되어 있다.단둥역은 의친왕의 기진한 얼굴이 떠오르는 곳이기도 하다. 의친왕은 황실 가족 가운데 가장 항일의식이 강했다. 3·1 만세운동이 한반도 전역에서 일어나고 전협과 최익환은 고종의 아들 이강(의친왕)을 상해로 망명시켜 임시정부 지도자로 추대하고자 했다. 1919년 11월 11일 중국 안동(당시는 안동현이었음)역. 경성에서 출발한 기차가 역내로 들어왔을 때, 역사는 일본 경찰들에게 포위된 상태였다. 이강의 얼굴을 알고 있던 요네야마 경부가 그에게 다가가 “전하, 어디로 가십니까?”라고 물었고 이강의 상해임시정부 행은 실패하게 되었다.◆서간도의 독립투사들_‘이 머리는 차라리 자를 수 있지만, 이 무릎을 꿇어 종이 될 수는 없도다.’석주(石州) 이상룡 ‘강을 건너다(渡江)’ 중에서1910년 12월, 이회영(1867~1932)과 여섯 형제는 일제와 무력 항쟁을 벌이기 위해 압록강을 건너 단둥으로 망명했다. 1911년 1월 경상북도 안동의 대부호이자 퇴계 학통 적통을 이어받은 유학자 이상룡(1858~1932) 선생도 노비문서를 모두 불태우고, 위패를 땅에 묻은 후 식솔 50여 명을 이끌고 압록강을 건넜다. 선생의 나이 52세였다.조선에서는 고관대작들이 나라를 팔아먹고 일제가 하사한 작위와 돈 잔치로 흥겨워하고 있을 때, 조선을 대표하는 유학자들은 모든 재산을 청산해 만주에서 독립운동을 펼쳤다. 이회영 형제가 자리를 잡으면서 1911년 4월 서간도 최초의 한인자치기관이자 독립운동 단체의 모태가 된 ‘경학사(耕學社)’를 창설했고, 이상룡 선생이 초대 사장에 추대되었다. 이들은 재산을 내어 신흥무관학교를 설립하여 독립군을 양성했다.1925년 이상룡 선생은 임시정부 초대국무령으로 추대되었고, 이듬해 김구 선생에게 물려주고 사임했다. 선생의 나이 69세였다. 이후 선생이 기운을 잃자 동생들이 환국을 간청하였으나 죽기 전에는 떠나지 않겠다며 거절하고 “국토가 회복되기 전에는 잠시 나를 여기에 묻어 두어라”라는 유언을 남기고 생을 마감했다. 1932년 6월, 향년 75세였다.5개월 뒤인 11월, 이시영 선생마저 생을 마감했다. 만주에서 항일에 대한 계획을 세운 뒤 다롄으로 이동하려다가 밀정에게 발각되어 고문 끝에 옥사했다. 향년 65세였다.◆서간도에서 다시 북간도로단둥에서 오후 2시 30분에 출발한 고속열차는 시속 300km로 달렸다. 병자호란 때 소현세자의 유배지였던 심양을 지나 옛 만주국 수도 장춘을 지나, 북쪽으로 갈수록 날은 저물고 눈 덮인 풍경은 하얗게 빛났다. 약 6시간 만에 연길역에 도착했다.역사란 기억하는 자의 몫이며, 걷고 쓰는 자의 몫이다. 만주·간도를 답사하며 길 위에서 만나는 새로운 것을 대할 때면 가슴이 뜨거워지곤 했다. 이것이 답사의 목적이고 이유다.우리는 이제 대한민국으로 돌어간다. 한동안 열병처럼 앓을지도 모르겠다. 만주를 미처 다 알지 못하고 떠나는 것이 못내 아쉽다. 그리하여 다시 와야 할 여지를 남긴다.글·사진/박시윤작가끝

2024-04-07

“고사리손도 힘 보태요” 착한 나눔도시 경산 주목

경산은 역사적으로 고대 도시인 압독국의 도읍으로, 김유신 장군이 삼국통일의 전초기지로 삼았던 곳으로 유명하다.지역에 불교 기도 도량으로 유명한 팔공산 관봉 갓바위가 있으나 지역보다는 대구의 명물로 알려지며 지역 유명세에 보탬이 되지 못하고 있다.또 대추와 묘목 등 농산물로 이름을 알리고 10개 이상의 대학과 대학생, 부설 연구기관 등으로 교육도시로 불리고 있지만 지금 가장 다가오는 단어는 ‘착한 나눔 도시 경산’이다.경산의 착한 나눔은 착한 가게 1호가 탄생한 2009년부터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이후 지역 경기의 부침에 따라 나눔의 손길에도 변화가 있었지만 어려움 속에도 나눔을 실천하는 손길은 끊이지 않고 15명의 지역 아너소사이어티를 배출한 가슴이 풍요로운 나눔 도시의 대명사가 되고 있다.사회가 우리에서 개인으로 변하고 너와 나의 구별이 명확한 시대를 살고 있지만 작은 나눔이 모여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경산시는 많은 시민들이 작은 나눔의 기쁨을 맛볼 수 있는 사회분위기 조성에 나서고 있다. □ 착한 가게착한 가게는 중소규모의 자영업에 종사하며 매출액의 일정부분을 정기적으로 기부에 동참하는 가게로 매장을 경영하는 자영업자나 중소기업, 가맹점, 학원, 병원 등 어떠한 업종의 가게도 참여할 수 있다.2009년 1호점이 탄생한 지역의 착한 가게는 나눔에 대한 견해가 유명 단체를 통한 국제적인 나눔 등을 선호한 까닭에 2015년까지 45호에 머무는 정체기를 겪었으나 2016년 경산시가 ‘나눔 문화 원년’을 선포하며 활성화돼 경북도 내 1위를 차지했다.이후 2020년까지 543호, 2023년까지 776호까지 증가해 착한 나눔을 실천하고 있다.나눔을 실천하는 착한가게 주인들은 “비록 많지 않은 금액이지만 지역에서 가게를 운영하며 생긴 수익으로 지역의 어려운 이웃을 도울 수 있어 기쁘고 앞으로도 주변을 돌아보는 일에 관심을 가지겠다”고 밝혀 착한 나눔 온도를 지속시키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 착한 일터착한 일터는 직장인의 나눔 프로그램으로 2016년 4월 경산시청 직원 900여 명이 가입을 시작으로 2016년에 6개소, 2017년 55개소가 가입하는 등 현재 73개소의 착한 일터가 있지만, 퇴직 등의 영향으로 현재에는 735명이 착한 일터에 동참하며 경산지역 나눔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고 있다.착한 일터는 2016년부터 지난해까지 30억125만9천955원의 나눔을 실천했다.□ 기부데이 한마당 축제지역의 나눔 문화 확산과 복지 사각지대 해소를 위해 경산시가 2016년부터 시작한 ‘기부데이 및 사랑 나눔 한마당 축제’는 지역민과 사회의 관심을 위해 같은 해 8일 8일부터 9월 5일까지 ‘2016 경산시 기부데이 기념표어 공모전’을 개최해 ‘사랑은 행복으로, 기부는 실천으로’라는 최우수 표어를 선정해 시상하고 10월 22일 실내체육관 어귀마당에서 첫 기부데이 행사를 진행했다.이후 코로나19 영향으로 2020년과 2021년 개최하지 못했으나 지속적인 개최로 지역의 나눔 문화를 일깨우고 있으며 올해도 10월 26일에 개최할 예정이다.지난해 10월 21일 열린 ‘2023 꽃피다 기부데이 한마당 축제’는 ‘나눔이 있는 곳, 행복이 있습니다’를 주제로 열려 현장 모금 캠페인에 많은 시민이 동참해 공무원 착한 일터 모금액을 포함해 8천819만5천 원의 귀중한 손길을 모았었다. □ 아너소사이어티 15명 배출아너소사이어티는 주로 학업 상으로 뛰어난 학생이나 학계에서 유의미한 연구성과를 이룬 연구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학문적인 의미이나 사랑의 열매의 아너소사이어티는 1억 원 이상을 기부하였거나 5년 이내 납부를 약정한 개인 고액 기부자들의 모임을 말한다.즉 사회문제에 관심과 이해를 바탕으로 참여와 지원을 통해 더 밝은 내일을 여는 사회지도자들의 모임이다.경산지역에서 아너소사이어티의 탄생은 2014년 동원금속(주) 이은우 대표가 1호를 기록한 이후 2014년 1명, 2015년 2명, 2017년 3명, 2019년 2명, 2020년 3명, 2021년과 2022년 1명씩, 2024년 1명의 아너소사이어티가 탄생하는 등 15명의 아너소사이어티가 탄생했지만 안타깝게도 2명의 아너소사이어티가 여러 가지 사정으로 약속을 지키지 못해 클럽에서 퇴출당했다.경산지역 아너소사이어티 클럽 가입 멤버는 이은우 동원금속(주) 대표, 송병관 은석철강(주) 대표, 손동수 약사암 회주, 권호흥 권치과 원장, 박왕서 삼현이피에스 대표, 반용석 반치과 원장, 이봉희 (주)보성산업 대표, 주재동 동도농산 대표, 김용봉 (주)와이쓰리 대표, 반성명 옥산가스 대표, 프랭크 페이건 목사, 서영수 서광농장 대표, 예선혜 승원치과 대표, 김홍탁 조일산업(주) 대표, 이형주 희성산업(주) 대표 등이다.인구 30만 명 미만의 중소도시에서 15명의 아너소사이어티를 배출했다는 것은 대단히 칭찬받을 일이다.□ 희망 나눔 캠페인세 개의 빨간 열매가 하나로 묶인 사랑의 열매로 대표되는 희망 나눔 캠페인에도 경산시민들은 적극적이다.세 개의 빨간 열매는 각각 나와 가족, 이웃을 뜻하며 열매의 빨간색은 사랑의 마음을 상징한다.그 열매를 하나로 묶은 것은 더불어 하는 사회를 이루자는 의미다.경산시는 ‘희망 2023 나눔 캠페인’에서 11억3천만 원 목표에 13억473만1천207원을 모금해 115%를 달성했고 ‘희망 2024 나눔 캠페인’에서도 12억2천만 원의 모금목표에 14억1천만 원을 모금해 역시 115%를 달성했다.이는 희망 나눔 캠페인 모금액 중 최고액으로 어려운 경제 상황 속에서도 나눔의 열기가 식지 않은 결과다.나눔의 손길에는 고사리손에서 나온 동전을 모아 온 유치원생들의 저금통, 시민들의 정성 어린 기부, 기관단체들의 십시일반, 시상금을 내어놓은 공무원 등 각계각층의 온정이 넘쳤다. 성금 외에도 식료품과 화장품, 생필품 등 다양한 물품이 기부됐다. 이 밖에도 경산시민의 나눔 활동은 곳곳에서 눈에 띈다.안전지원과 회복지원, 돌봄 지원으로 안전한 일상 회복을 위해 사랑의 열매가 추진한 ‘일상 회복 착!착!착! 나눔 캠페인’에서도 경북도 내에서 1위를 기록할 만큼 열정을 보였고 시시때때로 나눔을 실천한 소식이 전해진다.경북사회복지공동모금회와 시, 경산시백천사회복지관이 협약으로 지역의 복지 사각지대의 어려운 이웃을 발굴해 맞춤형 서비스로 생계안정과 자립을 지원하고 있다.조현일 경산시장은 “시민들이 뜨겁게 보여준 나눔,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이웃을 먼저 생각하는 시민과 기업, 단체들에 감사드리며 십시일반으로 모아준 소중한 사랑이 주변의 소외된 이웃들이 힘찬 발걸음을 내디딜 수 있는 희망이 되도록 뒷받침하고 행정적으로 도울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하겠다”며 “착한 나눔 도시 경산의 시장으로 근무하는 것이 너무 자랑스럽다”고 밝혔다./심한식기자 shs1127@kbmaeil.com

2024-04-07

이게 라오스 나눔 정신, 새벽 ‘탁발 행렬’에 감동

2008년 루앙프라방에 취재를 왔던 뉴욕타임스 기자의 시야에 이상한 장면이 눈에 들어왔다. 여명 속에서 희미하게 행렬을 이루고 있는 탁발승들의 모습이었다.주황색 장삼을 걸친 승려들이 사원을 따라 걸을 때 그들을 맞아주는 또 하나의 행렬, 그것은 바로 마을 사람들이었다.주민들은 새벽에 정성껏 준비한 과일, 밥, 떡을 승려의 바구니에 넣었고 탁발승들은 합장으로 공양을 받았다. 그날 ‘일용할 양식’이 그릇에 차면 승려들은 다시 밥이며 쌀을 다시 주민들의 바구니에 넣어주는데, 이 밥은 주변 소수민족이나 마을 빈곤층의 식탁에 올려졌다. 주민들의 식량이 절에 올려지고, 그 쌀이 다시 기층 민중에게 내려오는 선(善)순환 구조는 이기주의, 승자독식 시스템에 익숙한 미국 기자에게 경이(驚異) 그 자체였을 것이다.장엄한 의식에 감명 받은 기자는 현장에서 특집을 써내려갔고, 이 기사 덕에 루앙프라방은 ‘죽기 전에 꼭 와봐야 할 관광지’에 선정되었다. ◆ 고대부터 라오스 문명을 일군 곳 ‘제2의 수도’ 위상라오스를 ‘시간이 멈추는 곳’ ‘영혼을 치유하는 힐링의 도시’라고 표현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도시가 루앙프라방이다.해발 700m 고도에 위치한 이 곳은 고대부터 타이족, 라오족이 문명을 일궈 온 곳. 메콩강과 남칸강이 합류해 풍요로운 대지와 용수를 제공했는데, 이를 바탕으로 라오스의 ‘제2 수도’로 성장할 수 있었다.1353년부터 약 200년간 란싼왕국의 수도로 자리잡은 덕에 당시 왕궁과 불교 유적들이 많이 남아 있다. 특히 ‘사원의 도시’라고 부를 만큼 이들 사찰은 양, 질적인 면에서 라오스 불교문화를 대표해 도시 자체가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돼 있다.이런 도시 명성과 위상에 비해 사실 루앙프라방은 인구 6만의 소도시에 불과하다. 그러나 라오스 역사 1천년을 말할 때 한 왕조의 탄생지였고, 오랜 기간 라오스의 정신적 지주였던 만큼 사원들을 중심으로 지역 문화, 전통이 잘 보존돼 있다.이 도시에서 두 달을 머물렀던 무라카미 하루키는 여행에서의 사색을 꼼꼼히 적어 내려갔다. 이 책엔 느린 걸음으로 도시를 산책했던 작가의 관조(觀照)가 잘 나타나 있다. 그 결과 루앙프라방은 그의 베스트 여행지 10곳에 당당히 랭크되었고, 책 제목(‘라오스엔 대체 뭐가 있는데요?’)에까지 오르는 영광을 얻게 되었다. ◆ 여명 속 탁발행렬, 라오스의 나눔 정신 잘 나타나전 세계 여행객들의 버킷리스트 중 하나가 된 루앙프라방의 탁발행렬. 관람의 그 첫 문은 수면(睡眠)을 단축하는 불편을 감수해야 되는 일이었다. 오전 5시 알람 소리에 잠을 깬 일행은 버스를 타고 사원들이 물려있는 시내로 향했다.아직은 어둠이 사위(四圍)를 삼킨 이른 새벽, 관광객들과 보시(布施)에 나선 마을 주민들이 사원의 담장 밑에 늘어서 있었다.잠시 후 흐릿한 어둠 속에서 주황색 가사를 입은 승려들의 행렬이 나타났다. 하루에 첫 출발을 적선(積善)으로 시작하는 보시 행렬이요, 베풂으로 새벽을 여는 나눔의 행진이었다.이런 나눔 덕에 동남아의 최빈국 라오스에서는 주민들이 기아(飢餓)를 면할 수 있었고, 이런 공동체 미덕은 마을을 하나로 묶어주는 정신적 지주로 작용했다.승려 중에는 소년들도 많았는데 일부는 잠에서 덜 깬 듯 졸린 눈으로 행진을 하는 친구들도 있었다. 주민들은 이 동자승을 위해 과자, 초콜릿을 공양한다. 동심은 동심인지라 이들은 바구니 가득 과자, 사탕을 집어넣고 있었는데, 이들 역시 바구니가 차면 마을 어린이들과 나누는 것을 잊지 않았다.미국 언론에 알려질 당시만 해도 이 보시 행렬은 종교, 제의(祭儀) 기능에 충실했지만 지금은 일종의 퍼포먼스, 관광상품 정도로 퇴색되었다고 한다. 일행 중 몇 명이 이 체험에 참여했는데 밥, 바구니와 공양할 자리를 빌리는데 3달러를 내야 했다.이런 상업화의 비난과 관계없이 이 행진은 우리에게 깊은 여운으로 남았다. 구세군 냄비를 피해 돌아가고, 몇 천원 전화 다이얼링에도 인색한 우리에게 이 행렬은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 꽝시폭포 비취빛 물빛, 푸시산 노을 감상도 필수 코스루앙프라방이 라오스인들의 ‘정신적 지주’로 기능해 종교, 사상적인 면에서 중요성을 인정받고 있지만 이 도시는 자연경관, 문화재 등 관광자원 면에서도 빠지지 않는다.루앙프라방에서 가장 유명한 곳은 크로아티아의 플리트비체를 닮았다는 꽝시폭포.밀림으로 뒤덮인 숲속에 카르스트 지형이 빚은 계단식 웅덩이에 찰랑거리는 에메랄드 물빛은 관광객들을 동화 속 나라로 이끈다. 옥색 물빛이 수직으로 낙하하는 폭포 앞에서면 관광객들은 그 위용과 풍경에 압도돼 버린다.일정에 쫓긴 한국인들은 한두 시간 투어로 끝내지만 서양인들은 수영복, 튜브, 간식까지 가져와 반나절씩 머물고 간다.라오맥주(Lao Beer)를 마시며 석양을 감상할 수 있는 푸시산도 놓쳐서는 안 될 코스. ‘신성한 산’이라는 뜻의 푸시산은 시내 어디서든 볼 수 있어 교통의 기준, 랜드마크 역할을 한다. 총 328개의 계단을 올라야 하는 탓에 여성, 노약자, 어르신들은 힘들 수 있지만 대신 노역에 대한 대가는 확실히 보장된다. 관광객들은 이곳에 오를 때 커피와 이곳 특산물인 라오맥주를 가져가는데 이는 석양을 감상할 때 ‘조미료’로 쓰기 위해서다.일행이 도착할 무렵 이미 정상에는 관광객들이 빽빽이 들어차있었다. 바쁜 일정 관계로 일몰을 끝까지 감상하지 못했지만 맥주를 마시며 일몰을 기다리는 관광객들의 모습은 자체로 풍경이 되었다.메콩강을 붉게 물들인 노을이 저녁이 왔음을 알린다. 노을 사이로 선착장에 한무리 배낭 여행자들이 내린다. 그 배엔 다시 일정을 모두 마친 여행객들로 채워지며 관광객들이 교차한다.선착장에도 낮과 밤의 자리가 바뀌었다. 루앙프라방의 밤은 아주 천천히 찾아온다. 그 게으른 밤에 의지해 우리도 잠을 청한다.5일 일정이 모두 끝났고, 우리에게 주어진 70시간이 순식간에 흘러가 버렸다. 문득 스치는 한가지 의문. 라오스에서는 시간이 천천히 흐른다는데 이 ‘시간의 역설’은 왜 우리에게는 적용되지 않는 걸까. 더 낮추지 못하고, 더 내려 놓지 못해서였을까. 우리가 느낀 이 시간 지체(遲滯)는 라오스가 우리에게 던져 준 화두였다./글·사진 = 한상갑기자 arira6@kbmaeil.com끝

2024-04-04

고목 붉은 줄기선 용기를, 푸른 솔가지선 희망을 보았다

700년이나 살아온 소나무에서 비상하는 청룡과 똬리를 튼 붉은 뱀의 모습을 발견했다. 그의 모습에서 힘찬 기운과 안식의 편안함을 느꼈다. 무심하게 흐르는 세월에 딱딱하게 굳어져 가는 고목의 붉은 나무줄기에서 용기와 바람에 손짓하는 푸른 솔가지에서 희망을 보았다.외모에서 풍기는 이미지도 우리에게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알았다. 세월의 모진 풍파에 굴하지 않고 사계절을 맞이하고 보내면서 고귀한 품격을 다듬고 빛을 발하는 노거수를 보면서 내 늙음의 후줄근한 모습을 벗어던지고 밝은 웃음 가득한 얼굴로 일신우일신 해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오늘도 노거수를 찾아다니면서 늘 힘을 얻고 새로운 무엇인가 지혜를 터득하고 배운다.청룡과 함께 붉은 뱀이 똬리를 틀고 동거하는 모습은 황홀경 그 자체이다. 어디에서도 보지 못한 꿈에서만 볼 법한 괴이하고 신비한 모습이다. 용과 뱀이 동거하다니, 그야말로 상상의 세계에 온 느낌이다. 용은 신비한 조화능력이 있어 수많은 신화와 설화, 전설을 탄생시키기도 한다. 용은 비구름을 몰고 다니고 천둥 번개 등 날씨를 자유롭게 다룰 수 있는 요술도 함께 지니고 있다. 반대로 뱀은 실제의 동물이면서도 불구하고 인류 문화 발전에 가장 오래된 의식에 관여해 왔다. 지혜와 의술의 상징이기도 하면서 남을 해치려는 사악함, 욕심 등 나쁜 이미지를 품고 있기도 하다. 뱀은 지느러미와 다리, 날개도 없으면서 산, 들, 사막, 바다, 강 등 어느 곳이든 용케도 살아가는 지혜로움과 무섭고 사악한 이미지를 함께 가지고 있다. 용과 뱀은 우리 민속 문화에 깊숙이 스며들어 있다. 이런 상상의 용과 현실의 뱀이 동거하는 모습은 경상북도 예천군 감천면 천향리 804번지에 있는 부귀와 장수, 상록을 상징하는 700년이 훌쩍 넘은 석송령에서 볼 수 있었다.키 11m, 가슴높이 둘레가 4.2m, 나무 폭이 동서 34m, 남북 22m, 앉은 면적은 1,000m²에 이르는 거대한 소나무 노거수였다. 주민들은 노령의 몸을 유지하기 위해 나무 지팡이를 무려 79개를 선물하고 편한 팔걸이 돌기둥 5개를 설치하여 주었다. 그 신비함과 그 영험함을 알리기 위하여 제단을 설치하고 금줄을 쳐 놓았다. 또한 함부로 침범하지 못하도록 철책 울타리를 설치하여 자물쇠를 채워 철통같은 방비를 해 놓았다. 매년 정월 대보름날 새벽이면 제단에 제물을 놓고 제사를 드리고 있었다. 그 누구도 마을 주민의 허락 없이는 함부로 드나들 수 없어 용과 뱀이 동거하는 것을 외부 사람들은 알지도 보지도 못했을지 모른다. 알려고 하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것이 범인의 일상이고 보면 뭐 그리 나무랄 일도 아니다 싶었다.늘 푸른 솔잎 속에는 밑둥치에서 몸을 뒤틀면서 솟아올린 아름드리 줄기에는 거북등처럼 육각형의 껍질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밑둥치에서 뒤틀면서 힘차게 불끈 솟은 울퉁불퉁한 근육질의 몸은 바로 힘의 원천이며 청룡이 하늘로 승천하려는 모습으로 비추어졌다.문어발처럼 다섯 개의 팔은 하늘을 향하여 비상하려는 청룡이었다. 그 모습은 웅대하다 못해 미래를 향한 무한한 발전의 원동력으로 가슴에 와 닿았다. 가슴 속 심장의 고동이 요동치면서 나를 흥분하게 했다. 느지막한 황혼에 이런 뿌듯하고 황홀함을 느낄 수 있을까 하고 나도 모르게 탄성이 나왔다. 갑진년 청룡의 해에 사라져가는 불꽃이 다시 피어나는 느낌이었다. 마음이 눈을 대신했다. 붉은 근육질의 몸에 청룡이 두 눈을 부릅뜨고 있었다. 자세히 쳐다볼 엄두가 나지 않아 슬그머니 위로 고개를 돌렸다. 청룡의 몸에 붉은 뱀이 똬리를 틀고 있었다. 놀라움에 그만 발이 얼어붙고 말았다. 얽히고설킨 뱀의 똬리는 그 누구도 떼어놓지 못할 것 같았다. 한두 마리가 아닌 가족이 한데 어우러져 살아가고 있었다. 징그럽고 사악함이 아니라 아름답고 지혜로움의 상징물로 다가왔다. 황혼에도 끝없는 욕심을 버리지 못하고 아등바등 살아가는 우리의 삶에 우애와 평화, 지혜로움을 달라고 빌었다. 인간 태생이 욕심 덩어리인 것을 뻔히 알면서, 이 또한 욕심이 아닐지 의심하면서 부끄러움을 느꼈다.청룡의 품에 뱀의 똬리는 큰 사각형 모양의 연리지를 만들어 놓았다. 이는 수백 년이라는 세월이 아니면 도저히 만들 수 없는 희귀한 연리지였다. 신비함에 나도 모르게 경배의 기도를 드렸다. 도저히 혼자 보고 넘길 수 없었다. 함께 간 H 교수를 불렀다. 그도 석송령의 아름다움에 빠져 여기저기로 방향을 바꾸어 가면서 석송령의 신비한 모습을 카메라 렌즈에 담기 바빴다. 와서 보더니 감탄해 마지않았다. 카메라에 오롯이 잘 담아 사진전에 출품해 보라면서 소나무 연리지에 대한 유래를 들려주었다. 그 뜻을 알고는 더욱 신통하다면서 놀라워했다. 똬리를 튼 붉은 뱀을 품은 펼쳐진 푸른 잔솔가지 사이로 드나드는 빛의 음양과 바람이 묘한 느낌을 주었다. 흩날리는 솔향은 혈액을 타고 더덕더덕 붙은 몸속 땟물을 말끔히 씻어내고 솔잎은 바람의 빗자루가 되어 허공을 향해 설렁설렁 비질하니 빗살 끝에 닿은 하늘은 더욱 눈이 시리도록 맑았다. 몸도 마음도 맑은 하늘도 모두 하나의 자연이 되었다.잠에서 깨어나듯 정신을 수습하여 주변을 살펴보니 석송령의 자식 둘이 어머니 곁을 지키며 건장하게 살아가고 있었다. 2세의 자식은 번식과 혈통을 보존하기 위해서 1996년 9월 28일 종자를 받아 1997년 3월 24일 싹을 틔웠다. 그리고 1998년 4월 3일 예천읍 생천리 실증 시험 포장에 옮겨 키운 후 2002년 10월 19일 이곳으로 돌아왔다고 했다.나이 27세가 되도록 아직 이름이 없다니 언제까지 두고만 볼 것인지, 어미의 모습을 딴 용과 뱀을 의미하는 뜻을 가진 이름은 어떨까. 아무튼 어머니처럼 재산을 증식할 줄도 알고 수굿하게 마을 사람살이에 끼어들어 흔쾌히 모은 재산을 내놓는 훌륭한 목품(木品)으로 자라야 할 텐데.석송령 앞에는 거대한 바윗돌에 노래비를 세워놓았다. 나무에 대한 시비는 본 적이 있어도 나무에 대한 찬양의 노래비는 처음 보았다. 석송령의 아름다운 푸른 자태를 칭송한 노래였다. 한 몸이 된 청룡과 붉은 뱀의 모습은 보지 못했는지, 청룡의 영험함과 붉은 뱀의 지혜를 칭송하지 못했는지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다. 그의 영험함과 지혜를 노래했으면 하는 바람을 해본다. 청룡과 붉은 뱀이 한 몸이 된 석송령의 기이하고 신비한 아름다운 모습은 세월이 빚어놓은 생명이 깃든 진품·명품으로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석송령 노래비는…송문헌이 작곡하고 석만수가 작사한 석송령 노래는 2021년 8월 노래비로 만들어졌다. 아래는 석송령 노래비에 새겨진 가사다.천년세월 돌고 돌아 석관천을 들어서니 칠 백년 석송령이 그림같이 장관일세.푸른 솔 아름다운 절경이로다. 바람 따라 뭉게구름 휘감고 춤을 춘다 아~한평생 욕심 없이 옷 한 벌로 사는구나. 오고 가는 나그네가 가던 길을 멈추네.천년세월 돌고 돌아 식관천을 들어서니 칠 백년 석송령이 그림같이 장관일세.오는 님 반가웁게 맞이하면서 가는 님 다시 오라 말없이 손짓하네 아~푸른 솔 가지마다 새들 노래 즐겁구나. 오고 가는 나그네가 가던 길을 멈추네./글·사진=장은재 작가

2024-04-03

고요하고 아름다운… 한낮의 바다 향연

까마득한 옛날, 그러니까 100여 년 전 어느 봄날. 미국의 젊은 시인 T.S.엘리엇(1888~1965)은 유럽으로 건너가 4월을 ‘가장 잔인한 달’이라고 쓴다.화사하게 피어나는 꽃들과 추위를 피해 멀리 떠났던 새들이 웃으며 돌아오는 빛나고 환한 4월을 왜 ‘잔인하다’고 했을까?몇몇 문학평론가는 그걸 세상과 인간을 비극과 한탄 속으로 빠뜨린 제1차 세계대전 이후 황폐화된 유럽을 떠올리며 쓴 문장이라 했지만, 아직까지도 정확히 알 수 없다. 왜 엘리엇이 “4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라는 혼잣말을 웅얼거렸는지.한 세기를 넘어서까지 수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상징 가득한 문장을 쓴 작가는 이미 죽었으므로 그에게 “4월이 잔인한 이유가 뭔가”라고 물을 수도 없다. 망자(亡者)에겐 입이 없으므로.엘리엇이 연분홍빛 봄이 완연한 4월을 잔인하다고 말한 시대를 지난 이후에도 적지 않은 작가들이 봄과 4월에 관한 문장을 썼다. 봄꽃, 봄날의 하늘, 봄 바다…. 소재는 저마다 다양했다.여름 휴가철의 바다는 사람들로 득실댄다. 거기엔 사유(思惟)의 시간이 개입하기 어렵다. 골똘한 생각이란 외로움 속에서 잉태되는 것이기에.겨울의 바다는 그 차가움과 막막한 단절감 탓에 사고(思考)의 뿌리가 뻗어가기 쉽지 않다.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칠포 바닷가에서 떠올린 백일몽 같은 졸시인간의 상상력과 시적 감수성을 불러일으키는 공간으로는 ‘봄 바다’가 으뜸이라는 게 기자의 생각이다.‘백일몽(白日夢)’이란 환한 대낮에 꾸는 꿈이다. 또한, 이뤄질 수 없는 열망의 은유로 사용되는 단어이기도 하다. 세속도시의 4월이 너무 갑갑해 지난 월요일 오후 버스를 타고 백일몽을 불러다줄 봄 바다를 찾아 나섰다.시내에서 겨우 40분 남짓 달렸을 뿐인데, 포항 흥해읍 칠포해수욕장은 마치 세상과 아주 멀리 떨어진 피안(彼岸)인 듯 고요하고 아름다웠다.말을 섞을 사람이 없었으므로 홀로 오랫동안 해변을 거닐었다. 보채는 파도 소리가 요요했고, 소나무 사이로 따스한 바람이 술렁이고 있었다.젊은 시절 쓴 ‘백일몽’ 같은 졸시(拙詩) ‘출생의 비밀’이 떠오른 건 그 순간이었다. 이런 노래다.범선으로 요하네스버그를 떠나 마다가스카르에 도착한 아버지는 목덜미에 나비를 문신한 인도계 아프리카인. 파타고니아에서 태어나 해변으로 밀려온 혹등고래를 치료해준 엄마는 마드리드 뱃사람과 아르헨티나 원주민의 피가 섞인 붉은 얼굴의 메스티소였다.바나나를 따서 남태평양 폴리네시아 군도를 오가던 아버지는 초록빛 빙산을 타고 보라보라섬 사촌언니를 찾아온 엄마를 에메랄드빛 산호초가 꺼이꺼이 우는 타히티 북부 갈대숲에서 만났다. 1871년 봄이었다.엄마는 망고스틴 여섯 개를 건네는 아버지의 흙 묻은 손바닥을 얼굴로 가져가 달콤하게 핥았다. 둘이 몸을 섞은 얕은 바다에선 일만 년에 한 번 꽃을 피운다는 맹그로브 사이로 뜨거운 바람이 웅얼거렸다. 원주민들은 뜨지 않는 달을 기다렸다.여섯 달 후. 아버지는 조각된 여신상을 실은 목선을 타고 바그다드로 떠났다. 움직이는 섬에 오른 엄마 역시 북서쪽으로 흘러갔다. 외눈박이 숙부가 야자유 일곱 병을 들고 나와 배웅했다. 동아시아 낯선 항구에 도착한 엄마는 백년 후 사내아이를 낳았다. 나는 1971년 부산에서 첫울음을 터트렸다. □ 봄 바다의 일몰은 삶과 죽음 떠올리게 해기자가 동해 칠포해수욕장에서 한낮의 봄 바다가 선물해준 백일몽 닮은 열망에 들떴다면, 또 다른 어느 봄날 시인 문정희는 서쪽 바닷가에서 지는 해를 보며 ‘산다는 것과 사라진다는 것’에 관한 사색을 이어갔던 듯하다. ‘바다 앞에서’라는 시다.문득, 미열처럼 흐르는바람을 따라가서서해바다그 서럽고 아픈 일몰을 보았네한 생애잠시 타오르던불꽃은 스러지고주소도 모른 채떠날 채비를 하듯조용히 옷을 벗는 해안선을 보았네아, 자연당신께 드리는 나의 선물은소슬히 잊는 일뿐더운 호흡으로 밀려오던눈과 파도와비늘 같은 욕망을잊는 일뿐이었네잊는다는 일 하나만보석으로 닦고 있다떠나는 날몸과 함께 땅에 묻는 일이었네.돌아보면 사람의 삶과 죽음이란 ‘잠시 타오르던/불꽃은 스러지고/주소도 모른 채/떠날 채비를 하는’ 것에 불과한 게 아닐까?시인이 서해에서 떨어지는 붉은 해를 보며 간파해낸 인생의 진실을 여러 차례 곱씹어 행간의 의미를 고민해볼까?그러면, 허위허위 살다가 덧없이 사라지는 인간의 생애 자체가 ‘백일몽’과 다를 바 없다는 결론에 이를 수 있을 것 같다. □ 한낱 헛된 꿈같은 삶을 제대로 살아가기 위해선이루어질 가능성이 낮은 들뜬 열망 같은 삶. 대낮에 꾸는 잡스런 꿈을 닮은 생애. 그러나, 그렇다고 인간이 살아가는 행위 자체를 ‘헛되고 헛될 뿐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가벼이 말할 수는 없는 법.오세영 시인이 쓴 ‘바닷가에서’는 이 부박한 세상 속에서 어떤 삶을 지향해야 인간에 가까워질 수 있는지를 알려주고 있다.사는 길이 높고 가파르거든바닷가하얗게 부서지는 파도를 보아라아래로 아래로 흐르는 물이하나 되어 가득히 차오르는 수평선스스로 자신을 낮추는 자가 얻는평안이 거기 있다사는 길이 어둡고 막막하거든바닷가아득히 지는 일몰을 보아라어둠 속에서 어둠 속으로 고이는 빛이마침내 밝히는 여명스스로 자신을 포기하는 자가 얻는충족이 거기 있다사는 길이 슬프고 외롭거든바닷가가물가물 멀리 떠 있는 섬을 보아라홀로 견디는 것은 순결한 것멀리 있는 것은 아름다운 것스스로 자신을 감내하는 자의의지가 거기 있다.노시인은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와 ‘가물가물 멀리 떠 있는 섬’과 만난 봄 바다에서 진지하고 의미 있게 삶을 살아갈 방법을 찾아냈다. 우리도 그럴 수 있을까?/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2024-04-02

북간도에 나린 시(詩) 시(詩) 시(詩)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중략) /어머님/ 그리고 당신은 멀리 북간도에 계십니다.-윤동주, ‘별헤는 밤’ 중에서-◆청년문사 송몽규, 시인 윤동주, 두 청년을 애도하며밤새 창을 두드리며 울다간 바람 소리에 잠을 설쳤다. 꼭 만나야 할 인연이 있는 것처럼, 우리는 아직 연변 조선족자치주를 떠나지 못했다. 희붐한 아침, 일행을 태운 버스는 둔덕을 조심스레 오르고 있었다. 죽은 사람의 혼을, 주검을 운구하는 영여(靈輿)와 상여(喪輿)처럼, 느린 버스 안에서 모두는 침묵했다.길림성 용정시가 내려다보이는 허청리촌(合成利村) 둥산(東山), 나직한 둔덕엔 겨우내 바싹 마른 옥수수 잎사귀만 바람에 바스락대고 있었다. “여기입니다.” 길잡이 양진오 교수가 버스를 세워 본능처럼 무덤이 즐비한 기슭으로 걸어간다. 잠시 후 “이쪽입니다.” 손짓하는 양진오 교수의 목소리가 높고 밝다. 수많은 무덤 중 나무 울타리가 둘러쳐진 작은 무덤이었다. 여러 개의 비석이 먼저 눈에 띈다. ‘詩人尹東柱之墓[시인 윤동주지묘]’, 낮은 봉분엔 떼가 잘 자라지 않아 한기마저 느껴진다. 울타리와 비석이 없었다면 우리는 분명 지나쳤을 것이다. ◆시인윤동주지묘(詩人尹東柱之墓), 청년문사 송몽규지묘(靑年文士宋夢奎之墓) 앞에서일본 유학 당시 윤동주는 송몽규와 함께 나라를 걱정했다. 일본 경찰의 감시를 받고 있던 몽규였다. 그런 것도 모르고 둘은 진심으로 조선의 앞날을 걱정하고 무엇이 나라를 위하는 것인지 의논했다. 경찰에 체포된 몽규와 동주는 정식 기소되었다. ‘치안유지법 위반’이 이유였지만, 죄명은 독립운동이었다. 몽규와 동주는 징역 2년을 선고받고 규슈 후쿠오카 형무소에 수감된다. 故 윤동주 영정. 매달 집으로 배달되던 동주의 소식이 끊기고, 애태우던 가족에게 동주가 사망했다는 한 통의 전보가 전해진다. 부친 윤영석과 당숙 윤영춘이 동주의 시신을 인수하러 일본으로 갔다. 동주는 한 줌의 재가 되어 고향으로 돌아왔다. 3월 6일, 집 앞 뜰에서 장례를 치르고 용정 동산공원에 묻혔다. 눈보라가 몹시 몰아치는 추운 날이었다. 다음 날인 3월 7일 새벽, 같은 형무소에 수감 중이던 몽규마저 세상을 떠났다.몽규의 시신은 명동 장재촌 뒷산에 안장되었다. 아버지 송창의는 아들의 무덤에 ‘靑年文士宋夢奎之墓[청년문사송몽규지묘]’라는 비석을 세웠다. 유수 같은 세월이 흘렀다. 많은 무덤이 그렇듯 사람의 발길도 뜸해지고 기억마저 희미해져 갔다. 동주의 무덤도, 몽규의 무덤도 그랬다. ◆윤동주를 사랑한 일본인, 오오무라 마스오한국이 중국과 수교를 맺기 전인 1985년, 동주의 무덤을 찾아 달라는 유족의 부탁을 받고 일본 와세다대 오오무라 마스오 교수가 북간도로 향했다. 그는 북간도의 묘지를 떠돌다 윤동주의 묘비와 무덤을 확인했다. 그는 윤동주의 무덤이 용정에 있다는 것을 한국에 처음 소개했다. 마스오 교수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광명중학 학적부, 릿쿄대학과 도시샤대학의 학적부 등 동주의 행적을 찾아 정리하는 등 윤동주 연구에 몰입했다. 그는 한국인보다 동주를 사랑한 일본인 학자였다. ◆죽어서도 나란히 북간도 하늘을 우러러동주의 묘역에서 10m 떨어진 곳에 몽규의 묘가 있다. 동주는 용정 동산공원에, 몽규는 명동 장재촌 뒷산에 묻혀있었다. 1990년 연변의 유지들이 몽규의 무덤을 동주의 묘소 바로 옆으로 이장하면서 둘의 무덤도 나란해졌다.마른 풀 서걱대는 소리가 동주의, 몽규의 마지막 절규 같아 마음이 숙연해진다. 비석이 여러 개 세워진 동주의 묘에 비하면 몽규의 묘는 부친이 세웠다는 묘비 하나가 전부다. 떼가 잘 자라지 못해 춥게 느껴진다. 무덤 앞엔 누구의 정성인지 그의 시 ‘밤’을 기록한 작은 액자가 놓여있다. 우리는 무덤 앞에서 눈을 감는다. 그리고 묵념 후 경건하게 그의 시를 낭독한다.고요히 침전된 어둠/ 만지울듯 무거웁고/ 밤은 바다보다 깊구나/ 홀로 헤아리는 이 맘은/ 험한 산길을 걷고/ 나의 꿈은 밤보다 깊어/ 호수군한 물소리를 뒤로/ 멀-리 별을 쳐다 쉬파람 분다/-송몽규, 밤(夜), 1938년 9월, 조선일보낭독하는 이의 목소리가 흔들린다. 한 다발의 국화를 놓고 술을 올리니 눈시울이 젖는다. 바다보다 깊은 밤을 홀로 헤아렸을 몽규를 떠올리며 감히, 어떤 추모도 할 수가 없다. 일제의 폭압과 나라 잃은 비참한 현실을 직시하고, 어려서부터 독립운동의 뜻을 품었던 몽규였다. 10대 때, 낙양군관학교에 입학해 안중근 의사의 동생 안공근에게 군사훈련을 배운 그였다.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지만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석방된 후에도 몽규의 반일은 꺾이지 않았다. 연희전문학교 졸업식, 교장으로 부임한 친일파 윤치호가 부상으로 준 일본 군국주의를 정당화하는 책자를 바닥에 내동댕이 치는 등 반일 의식이 뿌리 깊게 박힌 조선의 청년 몽규였다. 故 송몽규 영정 ◆현해탄을 건너간 몽규와 동주몽규와 동주는 일본 유학을 떠나는 과정에서 창씨개명을 해야 했다. 몽규는 宋村夢奎[송촌몽규] ‘소오우라 무게이’로, 동주는 平沼東柱[평소동주] ‘히라누마 도오쥬우’가 되어야 했다.몽규는 일본제국 경찰의 요시찰 명부에 기록되어 있었다. 악명 높은 고등계 형사들이 몽규의 하숙집을 밀착 감시하고 있다는 걸 알지 못했다. 결국 고희욱, 윤동주, 송몽규는 일본 경찰에 체포된다. 고희욱은 며칠 뒤 풀려났지만, 몽규와 동주는 규슈 북서쪽 후쿠오카 형무소로 이송되고 1년 후인 1945년 2월 16일에 동주가, 3월 7일에 몽규가 사망했다.◆몽규와 동주, 영원히 살아 있는 명동촌-명동학교 옛 터 기념관1899년 윤동주의 증조부 윤재옥은 두만강을 건넜다. 간도는 주인 없는 땅으로 인식되던 시절이었다. 1889년 윤동주의 외삼촌이자 독립운동가였던 규암(圭巖) 김약연(金躍淵 : 1868-1942) 선생 외 문치정·남위언·김하규, 김학연 등도 일제의 폭정을 피해 집안을 이끌고 ‘비둘기 바위’라는 뜻을 지닌 북간도 ‘부걸라재(鵓鴿磖子)’로 이주했다. 그리고 ‘동방, 곧 한반도를 밝히는 곳’이라는 뜻의 ‘명동촌(明東村)’으로 이름을 붙였다.이들은 나라를 되찾는 길은 오로지 교육뿐이라고 여겼다. 1901년 김약연 선생은 장재촌에 ‘규암재(圭岩齋)’를 세웠고, 남위언은 상중영촌에 ‘오룡재(五龍齋)’를, 김하규는 대룡동에 ‘소암재(素岩齋)’를 지어 학문을 가르쳤다. 1908년 여러 서재를 합하여 명동서숙을 설립하고 명동서숙은 명동학교로, 명동학교는 명동중학으로 발전했다.-송몽규, 윤동주 생가윤동주 생가는 1900년 경, 조부인 윤하현 선생이 지었다. 기와를 얹은 영락없는 조선 전통 가옥이다. 몽규의 어머니가 몸을 풀기 위해 친정인 동주의 집으로 왔다. 몽규는 1917년 9월 28일, 동주는 1917년 12월 30일에 명동촌 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둘은 고종 사촌지간으로 어려서부터 함께 한 형제이자 친구였다.윤동주 생가는 우리가 명동촌에 오는 동안에도 관람이 불투명했다. 중국에서 ‘중국애국시인’으로 둔갑시킨 후 개방까지 불허한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그러나 명동촌에 도착하기 직전, 현지 가이드로부터 윤동주 생가를 개방해 주겠다는 기쁜 소식을 접했다.명동학교기념관 앞마당을 지나니 걸음이 빨라진다. 몽규가 살던 ‘송몽규옛집’은 문이 굳게 잠겨 발을 들이지는 못했다. 조금 더 골목을 따라가니 길 끝에 웅장하게 치장된 돌비석이 나타난다. ‘중국조선족 애족시인 윤동주생가’. 낮은 산 아래 넓은 마당에 발을 들이니 고요가 밀려온다. 곳곳에 놓인 크고 작은 시비들이 발소리마저 숨죽이게 한다. 하늘은 맑고 바람은 잔잔하고 새들은 정다웠으나 소란하지 않았다. 한옥 마루에 앉으니 겨울임에도 봄처럼 따스한 햇살이 들어 눈이 부시다. 동주는 오늘 같은 날에도 분명 시를 썼을 것이다.제한된 시간이 못내 아쉬워 돌아보고 만져보고, 또 기대어 본다. 바람과 햇살과 구름이 한데 어우러져 참으로 귀한 날이다. 학사모를 쓴 윤동주와 서시를 새긴 시비 앞에서 우리는 우두커니 서서 영원한 청년 윤동주를 마주한다. 귀한 사람, 아까운 사람. 이렇게라도 만나니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우리는 감사하자고 했다. ◆용정(竜井), 생명의 물 길어 올리던 용두레 우물해란강은 하얗게 얼었고, 언 사이로 얼지 않은 물이 흐른다. 비옥한 땅이 펼쳐진 가운데 용정시가 가지런히 자리 잡았다. 전체 인구의 70%가 조선족인 용정시 한복판에 ‘거룡우호공원(巨龍友好公園)’이 있다. 경남 거제시와 자매결연을 맺고 기념하기 위해 조성한 공원이다. 이곳에는 특별한 우물이 있다.용두레 우물이다. 19세기 말 조선에서 건너온 선조들이 우물을 발견하고 용두레를 달아 물을 길어 썼다. 사람들이 우물 근처에 모여 살면서 용두레촌으로 불리다가 ‘용정촌’이 되었다. 용두레 우물은 비록 작은 우물에 불과하지만, 조선족들에겐 생명의 근원이자 뿌리가 된 거대한 우물이었다.용정시를 벗어나 평강벌 길 위 어디쯤에서 일송정을 보았다. 먼발치에서 가곡 ‘선구자’를 읊조리는데 울컥 슬픔이 치민다. ‘일송정 푸른 솔은 늙어 늙어 갔어도’ 일제는 일송정을 지키던 한 그루 소나무마저도 껍질을 벗기고 도려내어 잔혹하게 말려 죽였다. 그리고 정자마저 파괴했다.해가 저물 무렵의 무지근한 우울 때문인가. 아니면 심연 깊은 바닥에서 우러나오는 고마움 때문인가. 평강벌을 굽이굽이 흐르는 해란강을 따라 달리며, 일제의 탄압 속에서도 오직 조국의 독립만 염원하며 이 땅을 개척했을 선조들께 뭉클한 고마움이 인다.우리는 해란강처럼 소리 없이 유유히 용정을 벗어난다. 다시 올 날을 기약하며.글·사진/박시윤작가

2024-03-31

‘새롭게 아름답게’ 대한민국 대표 도자기축제 온다

2024년 대한민국 명예문화관광축제인 문경찻사발축제가 오는 4월 27일부터 5월 6일까지 ‘문경찻사발, 새롭게 아름답게’라는 새로운 주제로 문경새재 오픈세트장에서 개최된다.이번 문경찻사발축제는 명실상부한 대한민국 대표도자기축제로서 자리잡은 전통찻사발의 확립된 정체성에서 더 나아가 생활자기의 대중화를 목표로 새롭고 다양한 도자기 라인업과 전시·체험행사, 특별행사를 관람객들에게 선보일 예정이다.신현국 문경시장은 “전통의 가치관을 지키면서도 다변화된 도자기 수요에 맞게 생활자기 라인업으로 다양성을 추구하는 찻사발축제의 새로운 변화에 대한 도전을 적극 지원하고 응원하겠다”고 말했다.신 시장은 이어 “신속한 축제장 이용을 위한 전용차선 셔틀버스 운영 시스템을 확립하고 축제 구성원 모두 친절하게 축제를 준비해 더욱 많은 관람객이 축제에 참여하고 즐길 수 있는 또 오고 싶은 축제장을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 알찬 개막식과 실속있는 폐막식문경새재 야외공연장에서 열리는 축제 첫날의 개막식은 문경시 홍보대사인 박서진과 박군, 주미와 더불어 조명섭, 영기가 출연해 흥겨운 공연을 통해 축제의 시작을 알린다.축제 마지막 날 폐막식에는 통일메아리악단과 하랑(구 초코파이브), 윤윤서양이 출연해 축제를 마무리하는 무대를 꾸민다.특히, 올해부터는 야외공연장에 대형 비가림시설이 설치돼 우천에서도 안전하고 쾌적한 관람이 가능해 졌다. 관광들은 날씨 걱정 없이 축제의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게 됐다. □ 생활자기 라인업 확대지난해부터 시작된 생활자기의 대중화 시도에 따라 이번 축제에도 다양한 가격대의 찻사발과 도자기를 요장에서 판매한다.특히, 올해는 요장별 개성있는 커피사발을 도입해 축제 기간 중 한정 물량을 판매하고 행사 프로그램에서 경품으로도 제공된다.지역 청년들이 운영하는 커피전문점과 함께하는 커피사발을 활용한 커피이벤트도 축제기간 중 새롭게 도입해 매년 계속 키워나갈 계획이다.□ 국제교류전과 특별 전시관축제 대표 전시 컨텐츠로 루마니아와 중국 이싱시의 도예작가와 우리시 무형문화재 작가들의 작품이 전시되는 부스테이너 특별전시관이 문경새재 1관문 앞에 설치된다.이번 국제교류전에는 김선식 축제추진위원장과 해외 도예 시연행사로 연을 맺은 루마니아의 최고 명망있는 다니엘 레스 작가가 참여해 본인의 작품을 전시하고 직접 관람객 앞에서 시연하는 시간도 갖는다.문경시와 해외 자매결연 지자체인 중국 이싱시에서는 촉망받는 젊은 작가가 전시회에 참석해 두 도시의 우애를 쌓고 특별한 경험을 공유한다.문경시를 대표하는 무형 문화재 특별전에는 백산 김정옥, 묵심 이학천, 문산 김영식, 미산 김선식 등 우리나라 도자기 장인들의 진수를 느낄 수 있는 작품 20여 점을 감상할 수 있다. □ 대형LED와 일원화된 광화문 무대이번 축제의 눈길을 끄는 점으로 오픈세트장 내 광화문의 대형LED 설치와 광화문 무대의 일원화가 주목된다.800인치의 대형LED에는 모든 축제영상과 프로그램 소개가 진행되고 망댕이 가마 역시 화려한 영상으로 구현해 웅장한 매력을 표현할 계획이다.또한, 기존 광화문 무대와 저잣거리 무대의 이원화된 무대를 확장된 광화문 무대로 일원화하고 저잣거리쪽은 체험과 먹거리로 구성해 세트장을 구역별로 구분해 세트장 구석구석을 쉽게 찾아 이용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더 커진 광화문 무대에서는 발물레경진대회, 다화경연대회, 읍·면·동 시민의 날 등 축제의 메인이벤트가 진행된다.공간이 비어있는 저잣거리쪽으로는 식당용 돔부스를 설치해 안전하고 위생적으로 축제먹거리를 운영할 수 있도록 새로운 시설 투자로 식당가를 구상한다.□ 진화된 특별체험행사특별체험행사로 기존의 ‘사기장의 하루’에서 진화된 ‘슬기로운 도예생활’이 메인 체험행사로 구성된다.정해진 시간 동안 직접 사기장의 제자가 돼 도예 체험을 하는 소중한 시간을 갖게된다. 단순히 시연을 지켜보는 프로그램에서 직접 작가들과 함께하는 체험프로그램으로 진화해 많은 사람들의 호응을 얻을 것으로 기대된다.그 밖에 ‘찻사발 빚기’와 ‘찻사발그림그리기’, ‘다례체험’, ‘디저트 아트전시’, ‘풍선공연’ 등 가족·연인들이 함께 즐기고 참여할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준비된다.지난해 처음 도입돼 찻잔 구입권과 축제 내 체험, 경품추첨권, 관내 관광지 할인까지 묶어 판매하는 방식으로 신선한 시도였다는 평을 받았던 원픽패스권은 올해 개장한 문경새재 어드벤처파크까지 추가돼 한층 더 업그레이드됐다.찻사발축제 홈페이지를 통한 사전 구입시 원래 가격(2만원)에서 할인된 가격(1만5천원)으로 구입할 수 있으며, 선물과 단체 구입도 가능해 사전판매로 축제를 홍보하는 역할도 톡톡히 하게 된다. □ 찻사발축제 부대프로그램 ‘한복패션쇼’축제의 다양한 부대행사 차원에 지난해 처음 도입됐던 ‘한복패션쇼’는 축제기간 중 시내가 공동화된다는 의견에 따라 점촌 문화의거리로 위치를 옮겨 열린다.30여명의 한복 모델들의 패션쇼와 거리행진이 이어진다. 사전행사로 명인의 줄타기와 북소리 퍼포먼스, 도예작가들의 발물레 시연도 함께 진행된다. 향후 지속가능한 축제를 위해 이와 같은 축제 장소 확대 외에도 관내에서 다양한 부대행사를 기획해 변화를 모색할 계획이다./강남진기자 75kangnj@kbmaeil.com

2024-03-31

열기구, 짚라인, 카약킹… 육해공 액티비티 총출동

라오스 관광의 삼각벨트를 이루는 비엔티안, 방비엥, 루앙프라방은 각 도시마다 뚜렷한 특징을 자랑한다.비엔티안이 란싼 왕조 500년 수도로서 역사, 문화 전통을 자랑한다면, 방비엥엔 남쏭강과 아열대 밀림을 기반으로 야외 레저 활동이 잘 발달해 있다. 경주나 교토와 비교되는 루앙프라방은 탁발행렬 같은 사원의 제의(祭儀)를 통해 ‘진정한 나’를 찾아가는 길과 연결된다.오늘 일행이 찾은 곳은 ‘액티비티의 천국’으로 불리는 방비엥. 열기구, 동력 패러글라이딩부터 짚라인, 카약, 보트, 튜빙까지 갖춰져 육해공 레저를 모두 즐길 수 있다. 종류도 많고 대기 인원도 많아 제때 예약은 필수. 남쏭강의 계곡과 블루라군의 에메랄드 물빛 속으로 뛰어들어 보자. ◆ 인구 2만5천명의 한적한 시골마을 ‘배낭여행의 성지’여행객들은 방비엥을 흔히 경기도 가평군과 비교한다. 서울과 가깝고 전원 풍경이 잘 간직되어 있으며, 무엇보다 천혜의 물놀이 환경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비엔티안에서 북쪽으로 150㎞ 떨어진 방비엥은 수도와 루앙프라방을 연결하는 중간 기착지로서 의미를 갖는다. 베트남 전쟁 발발 때부터 1970년대까지 미군의 공군 기지가 있던 덕에 마을과 도로망이 잘 정비되어 있다. 인구는 약 2만5천명으로 마을을 한 바퀴 도는데도 한두 시간이면 충분하다.2000년대부터 외국인 배낭 여행객들에게 성지로 알려져 초기엔 호주, 유럽 등 지갑이 얇은 젊은 층들이 값싸게 놀고 가는 장소로 알려졌다. 특히 남쏭강을 사이에 두고 좌우로 펼쳐진 넓은 평야와 밀림, 석회암봉은 왜 이곳이 ‘여행객들의 블랙홀’으로 불리는지에 대한 명확한 해답을 제공한다.마을은 우리나라의 읍(邑) 정도로 작지만 카페나 식당, K마트 등이 잘 갖춰져 이들 카페를 배경으로 오버나이트 파티가 연일 벌어진다. ◆ 버기카로 오프로드를 달리는 길, 흙탕물 세례에 동심으로부왕~. 방비엥에서 아침을 깨운 건 거친 동력음(音) 이었다. 숙소 베란다로 나가 보니 카르스트 석회암봉 위로 동력 패러글라이딩들이 고공비행을 하고 있었다. 단독 비행도 있고 3~4팀씩 선단 라이딩도 있었는데 새벽 하늘을 수놓은 총천연색 기체(機體)가 무척 아름다웠다. 지금 글라이더들의 시야엔 방비엔의 그림 같은 풍경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고 있을 것이다.조식 후 예약했던 버기카(Buggy Car)가 숙소에 도착했다. 버기카는 간단한 조작만으로 동작이 가능해 누구나 손쉽게 운전할 수 있다. 무게 중심이 하부에 집중돼 안정감이 좋은 이 차의 가장 큰 특징은 오프로드를 맘껏 질주할 수 있다는 점. 시골길에 들어서자 비포장도로의 거친 승차감이 오히려 유쾌한 기분으로 다가온다. 전날 비가 와서 인지 군데군데 웅덩이에 물이 고여 있었는데, 이 덕에 수륙(水陸)양용 버기카의 효용도 실험할 수 있었다. 일행의 옷은 곧 흙탕물로 범벅이 되었지만, 다들 이런 해프닝과 일탈을 반길 뿐 불평을 하지 않았다. ◆ 블루 라군 에메랄드 호수에 다이빙, 세계 관광객들 환호온몸의 진흙이 마를 새도 없이 버기카는 우리를 블루라군에 데려다 놓았다. TV에서만 보았던 에메랄드빛 물빛이 우리 일행을 맞았다. 블루라군 호수 주변 카페엔 각국에서 온 수백명의 관광객들이 물놀이를 즐기고 있었다. 우선 더위에 지친 몸을 호수에 담갔다. 흙먼지를 씻어낸 후 다이빙 모험에 나선다.수심을 측정하기 위해 1차로 다이빙대로 올라갔다. 2층 난간에 서있는 기분이었는데 생각 보다 높아 보였다. 약간의 두려움이 느껴졌지만 그대로 뛰어내렸다. 짧은 시간에 와~ 하는 함성 소리가 들렸다. (모든 입수자가 점프를 할 때마다 각국 관광객들은 함성과 박수로 응원을 한다)1차 시도에서 자신감을 얻고 본격 다이빙(머리부터 입수) 시도에 나섰다. 다이빙대로 오르는데 내 앞에서 84세 어르신이 먼저 입수를 했다.(그날 최고령) 함성이 계곡에 울려 퍼졌다. 나도 나름 멋진 다이빙에 성공했지만 어르신의 노익장에 밀려 빛이 바래고 말았다.‘글로벌 시민’들의 환호를 다시 한 번 기대하며 다이빙대에 올랐는데 이번에도 운이 따라주지 않았다. 내 뒤에 뛴 분이 점프 중 부상을 당해 구급차가 출동했기 때문이다. (나의 그림 같은 다이빙 샷은 사고 해프닝에 또 묻히고 말았다.) ◆ 튜브타고 동굴 탐험, 계곡과 계곡을 이은 짚라인도 인기다이빙 흥행 실패로 ‘당신처럼 불운한 분은 처음’이라는 가이드의 조롱을 뒤로하고 튜빙 장소로 이동했다. 튜빙은 말 그대로 튜브를 타고 계곡이나 동굴을 탐험하는 것이다. 동굴 전체에 코스를 따라 밧줄이 설치돼 있어 줄을 잡고 진행하면 된다. 각국 어디든 동굴은 흔한데 이런 천연자원을 레저로 개발한 아이디어가 감탄스럽다. 헤드랜턴 빛을 따라 동굴 내부를 감상하는 것도 큰 즐거움이다. 구명조끼를 입었고, 수심도 그리 깊지 않아 큰 위험은 없었지만 20여분 탐험 끝에 나타난 출구가 무척 반갑게 느껴졌다.산과 강의 중간지대에서 타잔놀이를 즐길 수 있는 짚라인도 절대 놓쳐서는 안 될 필수 템이다. 국내에도 근래 많은 짚라인 코스들이 개발돼 인기를 끌고 있지만, 방비엥의 짚라인은 접근 방법 자체부터 다르다. 계곡과 계곡을 고공 라인으로 연결해 짜릿한 스릴을 느낄 수 있고, 코스가 강 위를 활공해 시원한 리버뷰를 만끽할 수 있다. 규모와 스케일에서도 여타 시설을 압도한다. 일행이 탔던 라인은 200~300m 코스를 7개 구간으로 연결한 코스로 총 연장 길이만 2~3㎞에 이른다.처음엔 극도의 긴장감 때문에 눈을 감지만 주행에 적응되면 바로 감상모드로 전환한다. 덕분에 관광객들은 공포가 감탄으로 대치되는 기막힌 반전 속으로 빠져들 수 있다. 아열대 밀림과 기괴한 석회암 그리고 은비늘로 반짝이는 강물 위를 비행했던 즐거움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이다. ◆ 석양 노을 바라보며 즐기는 롱테일보트 최고 비경“이젠 줄 위에서 감상하던 그 강물로 뛰어들 차례입니다.” 가이드가 일행을 카약킹 장소로 이끌었다. 이곳 카약은 3인승으로 현지인이 동승해 전 코스를 진행한다. 80㎝ 남짓한 좁은 배안, 자칫 균형을 잃으면 위험해지는 공간에서 관광객들은 배에 몸을 맡긴다. 배는 급하지도 느리지도 않게 강물을 따라 내려간다. 가끔씩 여울지대를 만나면 현지인이 방향을 잡아주거나 동승자가 함께 협력해 물살을 빠져 나온다. 가이드가 일부러 옆의 배와 밀착시켜 물싸움을 유도한다. 경쟁심에 자극된 일부 관광객들은 즉석에서 수전(水戰)을 벌이고, 스피드 레이스를 벌이기도 한다.거친 물살을 헤쳐 가느라 피곤해진 어깨를 달래는 데는 롱테일 보트(Long tail boat)가 딱이다. 무동력 카약킹이 관광객을 혹사시켰다면 동력으로 달리는 롱테일 보트는 관광객들에게 노동이나 부역을 요구하지 않아서 좋다.보통 가이드는 보트 투어를 맨 마지막에 배치하는데 거기에는 이유가 있다. 바로 노을에 물든 강을 즐기게 하려는 배려다. 가이드의 설계대로 우리가 배에 오를 무렵 노을은 절정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때마침 주변에서 수십 기의 열기구들도 동시에 떠올랐다. 덕분에 남쏭강가엔 카약과 보트와 열기구의 퍼레이드가 동시에 펼쳐지며 일대 장관을 연출했다. 이번 라오스 여행을 한 컷으로 압축하라고 한다면 바로 이 장면이 아닐까 한다. 강 하류에 이르면 수십마리 물소들이 유영하는 모습을 관찰할 수 있다. 낯선 보트들의 공습에 익숙한지 옆으로 다가가도 겁내지 않고 목욕만 즐긴다.40여 분의 보트 투어가 모두 끝나고 현지인들은 배를 정박하느라 분주하다. 땅거미 밀려오는 강 건너로 물소를 이끌고 집으로 향하는 농부들의 고단한 발길이 정겹게 느껴진다. 그들의 힘든 노동 앞에 지금 우리의 유희가 조금은 미안하지만 그냥 묻어 두기로 한다. 그들은 사랑하는 가족과 평온한 저녁을 맞을 것이고, 우리도 여행이 끝나면 모두 생업으로, 생산 현장으로 돌아갈 것이기 때문이다.내일은 ‘라오스의 정신수도’로 일컬어지는 루앙프라방에서 일정이 시작된다. 방비엥에서의 ‘유흥끼’는 쏙 빼고 승려들의 수행에 참여하면서 구도자로써 삶의 의미를 돌아보게 된다. 짧은 시간에 불현듯 ‘참나’와 만나는 기적은 벌어지지 않겠지만 반나절 잠시 ‘나’를 내려놓고 사원 뒷뜰을 거닐어봐야겠다./글·사진 = 한상갑기자 arira6@kbmaeil.com

2024-03-28

특별한 꿈 덕에 이름 얻고 재산 물려받은 ‘건물주 소나무’

과학적 논리로 증명할 수 없지만, 꿈의 영험함을 믿고 있다. 어머니로부터 이야기들은 태몽은 늘 내 삶에 영향을 끼쳤다. 때로는 내가 직접 꾼 꿈으로부터 그 영험함을 실감하기도 했다. 그런 까닭에 남들은 황당하다고 말할 때 ‘꿈같은 소리 하네.’라고 하면서 핀잔을 주지만, 지난밤 꿈이 상서롭거나 불길할 때면 그날은 늘 긴장하고 조심했다.아무도 앞날의 일을 예측할 수 없는 우리의 삶에 꿈은 내게 특별한 예언으로 다가왔다. 지나고 나서 꿈풀이 해 보면 전부는 아닐지라도 예언이 맞아떨어지는 경우가 종종 있어 놀랍기도 했다. 그런데 특별한 꿈으로 인하여 뜻밖에 횡재를 한 소나무 노거수가 예천군 감천면 천향리 804번지 마을 주민이 되어 부자로 살아가고 있다고 했다. 마을 살림살이에 기부도 하고 학생들에게 장학금도 주는 등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궁금증은 하늘을 찔렀다.한창 마을 나무 노거수를 식생 조사할 때이다. 지금으로부터 20여 년 전 2002년 봄이다. 아지랑이 피어나는 따뜻한 봄날, 계명대학교 식생조사팀과 함께 현장 조사를 위해 선바람에 꿈으로 대박 난 주인공이 사는 예천으로 향했다.산세 좋고 물 맑은 예천은 예향의 고장이다. 예부터 성품이 온화한 주민들은 문향의 고장답게 어진 선비들이 많이 나온 건 당연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예천이 선비 문화를 꽃피울 수 있었던 것은 학문을 숭상하는 선비들이 후학을 양성하는 데 게으르지 않았던 탓일 것이다.석송령이 있는 천향리는 백두대간 옥녀봉에서 발원하는 석관천 맑은 물이 흐르고 있었다. 석평, 샘발, 진발, 귀리, 베트리 등 5개의 자연부락으로 올망졸망 산자락과 하천 주변에 어우러져 있었다. 석송령은 역사적 유래와 함께 생동감으로 감동을 안겨 주었었다.“이곳 석평마을 이수목(李秀睦)이라는 사람은 재산은 넉넉했으나 물려줄 슬하에 자식이 없어 근심이 많았다. 그는 문득 나무에 재산을 물려준다면 오랫동안 잘 지켜지리라는 생뚱맞은 생각을 했다. 그러던 중 마을 당산나무 그늘에서 낮잠을 자다가 꿈을 꾸었다. 꿈에 ‘걱정하지 말라’고 하는 소리를 들었다. 꿈에서 깬 그의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게 바로 자신이 낮잠을 잘 수 있도록 그늘을 지워준 당산 소나무였다. 잠에서 깨어난 그는 곧바로 군청으로 달려가 소나무를 자식이라 생각하고 석송령(石松靈)이란 이름을 지어 호적에 올렸다. 석송령(石松靈)은 석평마을에서 생명을 얻은 나무여서 석(石)씨의 성을 붙이고 영혼이 있는 소나무라는 뜻에서 소나무라는 송(松)과 신령하다는 영(靈)을 써서 석송령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그리고 자신의 전 재산 5천87㎡ 토지를 등기까지 하여 물려주었다.”다른 나라에서는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흥미로운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석송령은 1928년부터 매년 재산이 증식되어 지금은 건물주란다. 100여 년이 지난 지금은 재산이 늘어나 토지가 6천248m²나 되고 건물도 천향보건진료소, 마을회관, 만수당 등이 있다. 이를 소유한 석송령은 누가 뭐래도 부자다.박정희 전 대통령도 이런 미담을 전해 듣고 500만 원의 하사금을 보태어 주었다. 매년 임대료로 벌어들인 돈은 세금을 내고 나머지 돈은 금융기관에 예치하여 장학사업 등 어려운 마을 살림살이에도 보태주었다.이는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유래가 없는, 오늘날의 가진 자의 사회적 의무인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 실천운동과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이런저런 이유로 신문이나 방송에 오르내려 그 유명세로 마을의 품격을 높여주고 주민들에게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었다.석송령 이름만큼이나 탄생의 설화도 재미있었다. “석송령이 마을에 자리 잡은 건 700여 년 전이다. 당시 영주 풍기 지역에 큰 홍수가 나서 마을 앞 석관천에 온갖 잡동사니가 떠내려왔다. 그 가운데 뿌리째 뽑힌 한 그루의 소나무가 떠내려 오는 것을 본 주민이 나무의 운명을 안타까워하며 건져내 개울 옆에 심은 것이 시작이었다.” 이러한 애틋한 식목담(植木談)만큼이나 나무를 보호하고 가꾸어 왔을 것이 분명하다. 그때부터 소나무는 마을의 구심점 역할을 하고 마을 수호신 나무로 자리매김했다. 소나무는 마을 주민에 의해 이름과 재산도 얻고 생명을 부지할 수 있었다. 반면에 마을 주민은 소나무로부터 마을의 단합, 평화에 이어 마음의 위안을 얻었다. 마을 주민과 석송령은 마치 한 몸체가 된 것처럼 더불어 살아가고 있었다.석송령 노거수에 대한 설화를 보면 조상의 지혜로움이 잘 나타나 있다. “일본 강점기 때의 일이다. 일본 순사(巡査)가 석송령을 제거하여 대한제국의 민족정기를 말살하고, 일본 군함 건조 재료로 사용하고자 했다. 순사는 인부를 동원하여 나무를 베려고 자전거를 타고 석송령 부근의 개울을 건너오다 갑자기 자전거 핸들이 뚝 부러져 넘어지면서 목이 부러져 죽고 말았다. 인부들은 노거수의 거대하고 우람한 모습에 놀라 영험한 나무라 믿고 겁에 질려 달아났다고 한다.”이때는 이미 마을 주민들이 송계(松契)를 조직하여 나무를 보호하고 있을 때였다. 석송령을 해치려 일본 순사가 온다는 것을 미리 알고 주민들이 사전에 어떤 방법으로든지 이를 막기 위하여 준비하지 않았을까? 일본 순사의 죽음이 단순 우연의 사고일까? 그러하지 않다는 의심이 강하게 드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국법은 무너져 있고 약육강식의 지배사회에서 마을의 질서와 평화의 구심점이 된 송계의 주인공 석송령을 해치려 하는데 가만히 두고만 보고 있지 않았을 것이다.사람들은 부귀, 장수, 상록을 상징하고 있는 석송령 노거수가 마을을 수호해 주고 있다고 믿고 있다. 석송령에서 매년 정월 대보름날 새벽에 주민들은 한 해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는 제사를 지낸다. 마을 제사가 끝나면 마을 사람들은 막걸리를 들고 나무의 주변을 돌면서 술을 대접한다.이러한 민속문화는 나무를 보호하고 사랑하는 행동으로 이어지고, 나아가서는 석평마을의 단합과 발전으로 평화로운 마을 건설에 밑바탕이 되었다. 특히 마을 제사를 지낼 때 쓰는 하얀 고깔을 가져다 태워서 아들 없는 사람이 먹으면 아들을 낳고, 공부하는 학생이 먹으면 공부를 잘한다고 하여 마을 제사를 지낼 때는 고깔을 가지려 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세월이 흐르면서 석송령 노거수에 더 많은 미담이 입혀져 마을 주민들과 함께 천대 만대 만수무강하기를 마음속으로 기원해 본다.늘 푸른 기상을 지닌 한민족의 표상 소나무는육송(陸松), 적송(赤松), Red Pine은 수형이 곧고 수피는 붉은색을 띠고 있다. 금강송, 강송, 춘양목이라고 부른다. 해송(海松), 흑송(黑松), Black Pine은 수피가 흑갈색이며 동아는 흰색을 띠고 있다. 모두 상록 침엽교목이다. 송(松)은 나무 목(木)에 벼슬을 뜻하는 공(公)을 붙여 벼슬을 해도 좋을 만큼 훌륭한 나무라는 의미도 있다. 하나의 인격체로 생각해 궁궐 복원을 위해 소나무를 벨 때도 반드시 예를 갖추어 ‘어명이요’를 세 번 알리고 나서야 톱을 댄다. 속리산 정이품송은 나라로부터 벼슬을 하사 받았고, 예천 석송령은 재산을 상속받았다./글·사진=장은재 작가

2024-03-27

‘不滅’하는 아름다움을 찾아낸 ‘꽃’에 관한 이야기…

꽃샘추위가 며칠을 이어져 넣어뒀던 겨울옷을 다시 꺼내게 만들고, 어둡고 습한 하늘에서 쏟아지는 궂은비가 잠시잠깐 심사를 우울하게 만들어도 결국 올 것은 오고, 갈 것은 간다.“봄꽃의 개화가 늦어지고 있어, 꽃이 없는 꽃 축제가 열리고 있다”는 소식이 방송 뉴스와 신문 기사를 통해 들려오지만 머지않아 겨울이 온전히 사라지고, 봄이 올 것임은 불을 보듯 뻔하다. 이는 수천 년간 변하지 않은 세상사 순리.추위는 몸과 더불어 의식까지 일정 부분 마비시키는 힘을 가졌다. 그래서다. 봄에 비해 겨울엔 이런저런 인간의 상상력이 뻗어나가기 어렵다.그것을 증명하듯 완연한 봄에 가까운 지금은 오만가지 ‘생각’이 많아진다. 3월 말 환한 햇살 아래를 걷다보면 너나 할 것 없이 누구나 철학자 흉내를 내게 된다. 이는 봄 산책이 주는 선물 같은 것.‘겨울이 가면 봄이 온다’는 당연한 이야기처럼, 세상엔 ‘사라지지 않고 영원히 존재하는’ 것들이 있다. 우리는 이를 ‘불멸(不滅)’이라 칭해왔다.‘바람’은 인간보다 먼저 존재했다. 돌도끼로 짐승을 사냥해 불에 익히지도 않고 날고기를 먹던 시절의 바람과 지금의 바람은 그 형태가 다르지 않다. 수백만 년을 동일한 방식으로 어디선가 불어와 어디론가 사라졌다.태양도 그렇다. 아무도 정확히 알 수 없는 시기에 어떤 이유에선가 생겨나 현재도 사람들의 머리 위에서 뜨겁게 이글거린다. 수명이 다하면 빛을 빼앗기는 형광등과 백열등 수천만 개로도 대신할 수 없는 영원성을 지닌 채.인간은 제아무리 잘나봐야 100년을 살기 힘든 ‘유한한 존재’다. 그래서일까? 영원 혹은, 영원에 가깝게 존재하는 것들에 대해 외경심을 가져왔다. 바람, 태양과 더불어 ‘꽃’ 또한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불멸의 이미지를 가진 사물 중 하나다.‘봄은 꽃의 전성기’라는 걸 부정하긴 힘들다. 사념과 고민이 늘어나는 이 계절. 인간보다 오래전 생겨나, 인간보다 더 오래 존재할 것이 분명한 꽃을 보며 예술가와 학자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그리고, 그 생각은 어떻게 문학과 노래로 표현됐을까?‘16세기 조선 성리학의 거두’로 이야기되는 퇴계 이황(1501~1570)부터 우리와 동시대를 살고 있는 시인과 가수가 꼼꼼히 살펴 그 불멸하는 아름다움을 찾아낸 ‘꽃’에 관한 이야기를 해볼까한다.□ 돈은 유한하고 꽃은 무한하다… 시인 정호승촉촉한 연민과 감수성 가득한 문장으로 많은 독자들에게 사랑받아온 서정시인 정호승은 지금 이 시기쯤에 벚꽃을 본 듯하다.화사한 연분홍 개화와 무장무장 쏟아져 내리는 무더기 낙화 앞에서 시인은 무한함과 유한함을 동시에 떠올린다. 그리고는 아래와 같은 시를 쓴다. ‘꽃을 따르라’는 그의 명령이 선지자(先知者)의 예언처럼 들린다.돈을 따르지 말고꽃을 따르라봄날에 피는 꽃을 따르지 말고봄날에 지는 꽃을 따르라벚꽃을 보라눈보라처럼 휘날리는 꽃잎에봄의 슬픔마저 찬란하지 않으냐돈을 따르지 말고지는 꽃을 따르라사람은 지는 꽃을 따를 때가장 아름답다.‘피는 꽃’이 아닌 ‘지는 꽃’의 서러운 아름다움을 노래한 이 시의 핵심 문장은 ‘돈을 따르지 말고/지는 꽃을 따르라’가 아닐까? 누구나 알고 있지만, 삶에서 쉽사리 실천할 수 없는 예술가의 청빈한 명령.모두가 알고 있다. 돈은 유한하고 꽃은 무한하다는 걸. 그러면서도 유한한 욕망 앞에 한없이 무기력한 사람들. 정호승의 시는 독자들에게 아프게 묻는다. “돈과 꽃 중 어떤 게 불멸할 것인가?” 속인(俗人)들에겐 대답이 쉽지 않은 질문이다. □ 사랑했던 기억은 불멸하는 것… 가수 양희은1편의 노랫말이 조잡한 시 10편을 압도하는 경우가 드물게 있다. 한국에는 노래만 잘 부르게 아니라, 가사를 탁월하게 잘 쓰는 가수가 몇몇 존재한다. 양희은도 그런 사람 중 한 명.옛사랑의 기억을 가슴 안에 지니고 사는 중년들은 해마다 다음과 같은 노래에 매혹된다. 30대와 40대 시절이 그랬고, 더 나이를 먹어도 마찬가지일 게 분명하다. 양희은의 ‘하얀 목련’.하얀 목련이 필 때면 다시 생각나는 사람봄비 내린 거리마다 슬픈 그대 뒷모습하얀 눈이 내리던 어느 날 우리 따스한 기억들언제까지 내 사랑이어라 내 사랑이어라거리에 다정한 연인들 혼자서 걷는 외로운 나아름다운 사랑 얘기를 잊을 수 있을까그대 떠난 봄처럼 다시 목련은 피어나고아픈 가슴 빈자리엔 하얀 목련이 진다.목련은 어떤 꽃보다 먼저 화들짝 피어나 봄이 왔음을 알린 후, 아주 짧은 시간 동안 그 매력을 보여주다가 녹슨 쇠그릇처럼 떨어진다. 그 드라마틱한 개화와 낙화가 우리 모두가 겪었던 첫사랑과 몹시 닮았다.이미 다들 아는 이야기지만 어떤 사랑도 영원히 지속되지 못한다. 그러나, 사랑했던 기억만은 불멸하는 게 아닐까?그래서 ‘그대 떠난 봄처럼 다시 목련은 피어나고/아픈 가슴 빈자리엔 하얀 목련이 진다’는 양희은의 노랫말이 시간을 뛰어넘어 사람들의 영혼을 울리는 게 아닐지. □ 사는 내내 매화를 닮으려 했다… 퇴계 이황지금으로부터 454년 전인 1570년 봄. 자신의 죽음을 예감한 당대 최고의 성리학자 이황은 방문을 열고 마당의 매화나무를 바라본다. 그리곤 말했다. “매화에 물을 줘야겠구나.” 이 짤막한 문장은 그대로 퇴계의 유언(遺言)이 됐다.퇴계 이황의 ‘매화 사랑’은 유별났다고 한다. ‘어떤 추위에도 그 향기를 팔지 않는다’는 절개를 이유로 매화를 선비처럼 대접한 그는 아래와 같은 칠언절구(七言絕句)로 그 꽃을 예찬했다. 一樹庭梅雪滿枝(일수정매설만지)뜰 앞에 매화나무에 눈꽃이 가득하구나風塵湖海夢差池(풍진호해몽차지)티끌 같은 세상살이니 꿈마저 어지럽고玉堂坐對春宵月(옥당좌대춘소월)옥당에 앉아 봄밤의 달을 마주하고鴻雁聲中有所思(홍안성중유소사)울며 나는 기러기 보니 생각이 많아지네.티끌 같은 세상살이에 포박된 인간의 삶은 언젠가는 사라지고 잊힐 유한함 안에 있다. 하지만, ‘달’과 ‘매화’는 퇴계 자신을 포함한 인간이 사라진 후에도 항상 존재할 무한한 불멸성을 지닌 것.평생을 인간 존재의 본질과 심성의 근본을 찾아 일로매진했던 노학자가 유독 봄꽃을 아꼈던 이유가 뭔지 궁금해진다. 혹, 거기서 불멸하는 어떤 정신을 발견했던 건 아닐까./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2024-03-26

“하나 되는 청송·다 함께 잘 사는 청송을 향해 달린다”

청송군은 올해 초 재해 예방과 농촌 일손 부족 문제 해결, 인구유입을 통한 경제 활성화, 도시 공간 정비 사업 등을 핵심축으로 하는 2024년 군정 목표를 설정한 바 있다. 그 계획이 현실에서 어떻게 실행되고 있는지 궁금한 이들이 적지 않다. 아래에서 구체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 혁신적인 농업 정책으로 지역 발전 견인현재 청송은 변화를 이끄는 농업 정책 추진에 힘을 쏟고 있다. 자주 발생하는 이상 기온은 먹거리 생산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자연 재해다. 농업이 주를 이루는 청송군은 봄철 과수 냉해 여부가 그 해 농업 성과를 결정한다.이에 청송군은 냉해 피해 예방을 위해 미세 살수 장치를 지원하고, 지원 한도와 보조 비율을 늘려 농가 부담을 줄여나갈 예정이다. 또한 병해충에 강한 대목을 육성해 보급하고 과수 화상병약을 보급해 과수 전염병을 예방함과 더불어 재해 예방 과수 재배기술을 전파해 농가의 경쟁력과 생산성을 높여나갈 방침이다.시대에 발맞춰 생산과 유통 환경을 노동력이 줄어드는 방향으로 바꾸는 노력도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청송군은 청송사과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미래형 과원 조성에 힘을 투여하는 중이다. 또한, 묘목비 지원을 현실화해 다축 및 고밀식 과원을 신규로 조성함으로써 농가의 부담을 덜어주고 있다.이와 함께 청송군은 군민의 전 생애주기를 책임지는 ‘복지 청송’ 구현을 위해서도 각종 정책을 마련해 시행한다. 노인 인구가 40%가 넘는 청송군이 활력이 넘치는 공동체가 되려면 어르신들이 건강하고 활기차게 생활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환경 조성에 애쓰는 것이다.이를 현실적으로 실현하기 위해 어르신들의 능력과 요구에 맞는 다양한 일자리 발굴과 참여 기회를 확대한다는 것이 청송군의 계획. 또한 경로당 시설을 개선하고 다양한 여가 프로그램을 운영해 어르신들의 활발한 사회활동을 유도할 예정이다.보건의료원 필수인력 확보를 통해서는 차별 없는 기본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고, 아이와 부모의 행복을 위해 임신부 스트레스를 완화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것도 청송의 변함없는 정책 방향이다. 이를 위해 부모 급여 지원금 확대 추진, 온종일 돌봄서비스와 방과 후 아카데미 운영 등이 준비되고 있다.더불어 놀이시설이 부족한 지역 청소년을 위해서는 청소년 수련관 앞에 온 가족이 함께 여가를 즐길 수 있는 야외 문화 체육시설도 조성하게 된다. □ 경제 발전을 위한 다양한 정책 마련해 추진넉넉한 지역경제 구축을 위한 정책도 마련된다. 정주인구와 생활인구가 늘어나는 주거환경 조성으로 지역에 맞는 산업을 육성해 청년이 지역에 거주하며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나간다는 것이 청송군의 미래 계획이다.청송읍 월막리에 공공임대주택을 건립해 청송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청년들이 지역에 정착할 수 있도록 돕고, 월막지구와 덕리지구에도 공동주택을 건립해 주택난을 해소한다. 이는 인구 유출을 막는 정책의 첫 단계가 될 것이다.청년들에게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하기 위해 청송군과 지역 대학, 기업이 힘을 합쳐 청송군 K-U시티 항노화 사업도 추진한다. 지방 소멸 대응기금을 확보해 지역 인재를 육성하고 청년창업을 돕는 항노화 연구센터 건립과 연구원과 기업 직원이 거주하는 주거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그 구체적인 복안이다.인구 증가를 기대할 수 있는 문화관광 정책도 준비된다. 옛 주왕산 초등학교 부지에 가족호텔과 글램핑장을 갖춘 숙박시설을 조성해 젊은 세대와 가족단위 여행객들이 지역에 더 오래 머물게 하고, 달기 약수탕 거리환경 개선과 메뉴 다양화로 관광객들의 입맛을 사로잡는다는 게 청송군의 계획이다.산림 레포츠 휴양단지 조성과 한옥스테이 사업, 골목경제 회복지원 사업과 청송사과축제 등 청송군의 특징을 살린 문화관광 정책도 지속적으로 추진된다. 이는 생활인구를 늘리고 지역경제를 활성화시킬 복안이다.이와 함께 관광객만이 아니라 지역민들의 여가 생활과 건강까지 책임질 수 있는 청송 아웃도어 골프장을 만들고, 진보면과 산남 지역에 파크골프장을 조성해 천혜의 자연환경 속에서 다양한 문화관광 프로그램을 즐길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편안하고 안전한 도시 환경을 조성하는 것도 놓쳐서는 안 될 청송군의 미래 청사진이다. 도시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노후화된 도시 공간을 효율적으로 개선하고, 읍과 면소재지에 사람들의 왕래가 많아지도록 거점 공간을 조성한다는 것이 구체적 계획이다.청송읍 농촌중심지 활성화 사업, 청송읍 금곡지구 도시재생 인정사업, 진보 진안지구 도시재생 뉴딜사업을 추진함으로써 읍·면 중심지에 행정, 상업, 문화 거점 공간을 만들어 원도심을 활성화시키는 정책도 동시에 추진된다.덧붙여 “도시계획도로 정비, 청송읍 중앙로 회전교차로 설치, 노후 상수관로 정비, 급수구역 확장 등의 사업도 예정대로 착착 진행하게 될 것”이란 게 청송군의 설명이다. 이는 주민 삶의 만족도 향상으로 이어질 전망이다. □ 문화예술 활성화와 교정시설 추가 건립도 진행여타 지자체와 마찬가지로 청송 역시 문화예술 활성화를 도모하고 있다. 이는 주민들의 일상이 풍요로워지는 유효한 수단이기 때문.주민맞춤형 문화교양강좌 개설, 문화예술단체 활동 지원, 취약계층 문화누리카드 지원, 문화예술단체의 대주민 문화예술활동 참여 프로그램 활성화 등은 모두 이와 연관된 사업이다.청송군이 자랑할 만한 문화유산인 청송백자를 주제로 진행되는 청송백자축제는 청송사과축제와 함께 지역 문화관광축제로 그 위치를 견고히 할 예정이다. 그 외에도 청송문화제, 청송특화공연 등이 풍요로운 문화도시 청송 구현에 기여하게 된다.지역 소비 촉진을 위해 제작·유통되는 청송사랑화폐는 전년과 같이 700억 원 규모로 연중 10% 할인 발행할 방침이다. 또한, 신재생에너지 보급 및 신재생에너지 융복합지원사업을 통해 군민 에너지 복지 실현에도 진력한다는 것이 군의 계획이다.청송군은 1981년 만들어진 보호감호소를 필두로 4개의 교도소가 위치하고 있는 전국 최대의 교정타운이다. 40년 넘게 수용자 교화의 역할을 수행해온 것이다.최근 청송군은 법무부와의 면담에서 경북 북부 교정시설 내 여성교도소를 신축하고, 교정공무원 숙소를 추가로 건립해 일자리 창출과 경제 활성화, 국가균형발전을 도모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요청을 전달했다.교정시설 인근에는 문화체육센터, 도서관, 키즈카페, 체육공원 등이 자리하고 있어 여성교도소와 교정공무원 숙소 건립에 적합한 위치로 평가받는다. 만약 수용 인원 1천 명 규모의 교정시설이 들어서면 교정공무원 400여 명 정도의 직접 고용효과와 더불어, 지역 물품 구매, 주거, 편의·교육시설 등 인프라 확충이 기대되고 있다.위에 언급된 여러 정책과 사업을 열정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윤경희 청송군수는 “하나 되는 청송, 다 함께 잘 사는 청송은 변함없는 군정의 주요 방향”이라며 “아직 가야 할 길이 멀고 극복할 과제도 산재했지만, 도전과 노력을 멈추지 않고 희망찬 미래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김종철·홍성식 기자

2024-03-24

간도에 뿌리내린 애국의 이름, 무명(無名)

1909년 조선에서는 무단통치, 강압 통지가 계속되었다. 일제는 한반도 대토벌을 시작했다. 버틸 곳이 없던 의병 세력들은 비교적 안전한 만주나 연해주로 활동처를 옮겼다. 간도는 오래전부터 가난하고 힘없는 백성들이 범법의 죄를 알고도 살기 위해 들어갈 수밖에 없는 땅이었다. 국경을 넘어 황무지를 일구는 민중의 삶은 처참했다. 굶주림과 싸워야 했고 추위와도 싸워야 했다. 도처에 깔린 죽음의 고비를 넘기며 근근이 목숨을 붙였다. 한편 조선에서는 참고 버티던 백성들이 1919년 3·1 무장 만세운동을 일으켰다. 농민들마저 곡괭이와 호미를 들고 뛰쳐나와 일본에 저항했다. 이 무렵 두만강변 북한과 중국 국경지대엔 팽팽한 긴장감이 맴돌기 시작했다. ◆삼툰자를 찾아서산들은 어깨와 어깨를 맞대고 이어진다. 그 사이로 두만강 물줄기가 낮게 흐른다. 남쪽은 함경북도 종성군 강양이고, 북쪽은 중국 땅 도문이다. 해가 서쪽으로 넘어갈 무렵 일광산 자락 아래, 어느 땅에 당도했다. 이정표도 팻말도 하나 없는 타국의 들판은 적막으로 가득했다. 삼툰자는 어디인가? 조용히 지세를 살피던 길잡이 양진오 교수가 한쪽을 가리켰다. 일행은 모두 길잡이가 가리키는 곳, 어떤 처연함이 서린 곳을 바라보았다. 겨울 저물녘의 시골이 모두 그렇겠지만 삼툰자는 서글픔마저 묻어났다. 세월에 묻혀 잊히는 듯, 희미한 안내조차 없는 들판은 적막하기만 했다.두만강을 등지고 서니 일광산 아래 몇 안 되는 집들이 폐허의 풍경처럼 다가온다. 두만강을 건너온 시린 바람이 어둑어둑한 들판을 휘감을 무렵 ‘처절한 전투’ 그리고 ‘죽음’이라는 단어가 먼저 뇌리를 스친다. 나라를 빼앗긴 사람들이 처절하게 항거했던 땅. 삼툰자는 독립투사들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우리에게 그런 의미의 땅이기도 하다.지금은 간평촌으로 불리는 삼툰자는, 조선 강양에서 김·박·최 씨 세 성(聲)이 두만강을 도강하여 각각 한마을씩, 세 개의 씨족 부락을 이루면서 붙여진 이름이다. 삼툰자가 들어선 땅은 아무도 살지 않는 황무지였기에 세 집안이 터를 잡기에는 그만이었다. 모두 피를 나눈 가족 마을이니 밀정이 붙을 리 만무했다.두만강 넘어 간도 땅에 독립군이 있다는 것을 안 일본군은, 독립군이 조선으로 들어오는 것을 막겠다는 이유로 접경지역인 함경북도 온성군 남양 두만강변에 대규모 진을 쳤다. 두만강을 사이에 두고 조선 독립군과 일본 남양수비대가 대치한 셈이었다.일광산에 오르면 두만강 건너 온성군의 산천이 한눈에 들어왔다. 독립군은 온성군 일대에 진을 친 남양수비대의 동태를 한눈에 파악하고 있었다. 1920년 6월, 청년 독립군 신민단 대원들은 두만강을 건너가 일본 국경초소, 일제 통치기관을 차례대로 습격하며 남양수비대와 수시로 교전했다. 두만강 물이 얕아 도강이 쉬웠고 산과 골짜기로 이루어진 강양 일대는 지형에 능통한 독립군들이 움직이기에 자유로웠다. 독립군의 습격이 점점 거세지자, 약이 오를 대로 오른 일본군은 두만강을 건너 국경을 넘어 중국 땅으로 진입했다.일본군은 민간을 수색하다가 조선인이면 임산부, 아이, 노인 할 것 없이 무고한 백성의 목숨을 거리낌 없이 앗아갔다. 이때 신민단 대원들은 삼툰자 상촌에 은둔하고 있었다. 삼툰자 하촌을 공격하던 일본군은 신민단 대원들을 쫓아 상촌까지 바짝 추격했다.◆저수지가 된 봉오동전투 격전지삼툰자에서 일본군과 총격전을 벌인 신민단 대원들은 고려령을 넘어 봉오골로 이동했다. 삼툰자에서 손실을 입은 일본군은 대규모 병력을 갖추어 ‘월강추격대’를 편성했다. 그들은 두만강을 건너 곧장 고려령을 넘어 독립군의 숨통을 죄며 봉오골로 향했다. 자비란 한 방울도 없는 월강추격대의 무서운 추격이 시작되었다. 독립연합군의 홍범도 장군은 월강추격대가 봉오골로 올 것을 예측하고 주민을 먼저 피신시킨 뒤 최진동, 안무 등 독립군 연합부대(대한군북로독군부)와 함께 각 고지에 병력을 매복시켰다. 지형에 능했던 신민단 대원들은 삼툰자에서 약20km 떨어진 봉오골 상촌까지 월강추격대를 유인해 갔다.“나라 뺏긴 설움이 우리를 북받치고 소총 잡게 만들었다 이 말이야”-영화 봉오동전투 “해철(유해진)의 대사 중-봉오동은 입구에서 안쪽까지 수많은 골짜기로 이루어졌고, 마치 삿갓을 뒤집어 놓은 것과 같은 지형이라 한다. 독립군의 매복에 대해 철저한 준비를 한 일본군은 척후병을 봉오골로 먼저 들여보냈다. 하지만 독립군은 척후병을 공격하지 않았다. 의병이 없다는 듯 속여 월강추격대의 본대가 상촌 중심부로 들어오도록 유인했다. 봉오골은 사면이 야산으로 둘러싸인 협곡으로 이루어진 천연 요새였다. 본대가 봉오골 중심부로 들어오자 4면의 고지에 매복하고 있던 독립군연합부대는 일제히 공격을 퍼부었다.봉오동전투는 거의 4시간 동안 이루어졌다. 하늘도 독립군을 도운 것인지, 오후 4시 무렵 갑자기 하늘에서 번개가 치고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거센 폭우에 피아식별이 어려워지자 월강추격대는 자국의 후원부대와 서로 적으로 오인하여 총격전까지 벌이다 많은 사상자를 냈다. 월강추격대는 조선 온성으로 급히 퇴각했다. 뺏기지 않으려고 지키려고 목숨을 건 독립군과 뺏으려고 독기를 품은 일본군 사이에서 선(善)은 악(惡)을 이겼다.봉오동전투 승전 소식은 한반도 조선까지 순식간에 퍼졌다. 모두가 싸워 망국의 설움에서 벗어나고자 할 때 봉오동 승전 소식은 조선 국민에게 큰 등불이 되었다. 독립군의 첫 승리 소식을 듣고 죽기를 각오한 많은 동포가 만주 간도, 연해주로 이주해 독립군에 입대하는 계기가 되었다. “독립군 수는 셀 수가 없어, 왠지 알아? 어제 농사짓던 인물이 내일 독립군이 될 수 있다 이 말이야.”-영화 봉오동전투 “해철(유해진)의 대사 중-봉오동으로 가는 내내 두만강은 우리와 함께 했다. 두만강 건너 북한의 강양 마을도 함께 따라왔다. 국경은 차갑고 이국은 낯설지만 강 건너 강양, 우리 땅은 반갑다.봉오동에 도착하니 굳게 닫힌 철문이 일행을 막아선다. 상기된 표정들, 무심한 듯 세심한 눈빛들은 이미 철문 넘어 골짜기를 응시한다. 모두 말이 없다. 100년 전, 선조들의 치열했던 격전지를 찾아 타국으로 온 이방인들의 발길이 묶이는 순간이다. 눈앞에 두고 선조들의 숨결을 더 따라 밟을 수 없는 아쉬움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좁은 협곡이 많았던 봉오동은 저수지가 되었다.어디선가 졸졸졸 물 흐르는 소리가 난다. 봉오동 저수지 쪽에서 작은 개울이 흐르고 있다. 독립을 위해 치열하게 살았던 무명의 이름들이 흐르고 있는 듯하다. 봉오동 승리의 골짜기는 이들의 투혼과 이름을 품고 저수지에 고요히 잠겨 있다.글·사진/박시윤 작가

2024-03-24

“철강·이차전지 쌍두마차로… 노사 ‘원팀’ 초일류 나갈 것”

장인화 신임 포스코그룹 회장은 21일 “친환경 미래로 나아가는 포스코그룹의 새로운 도약과 성장은 소재의 혁신으로 이뤄낼 수 있다”며 “포스코그룹의 새로운 비전은 ‘미래를 여는 소재, 초일류를 향한 혁신’”이라고 말했다.장 회장은 이날 서울 강남구 포스코센터에서 열린 포스코홀딩스 주주총회에서 신임 회장으로 선임된 직후 기자간담회를 갖고 이같이 밝혔다.인류의 가치를 높이는 미래소재와 한계를 뛰어넘는 도전 정신으로 더 큰 성과를 만들어 갈 것이라는 장 회장과 질의응답 시간을 가졌다.- 철강보다는 미래 소재에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사업 전략 방향으로 함께 발표한 철강사업 초격차 경쟁우위는 어떻게 가져갈 것인지.△포스코는 철강사업이 기본이고, 이차전지소재사업이 쌍두마차로써 똑같이 초일류로 가야 한다. 단순 철강기업 포스코가 아니고 미래를 여는 소재로 함께해 우리 미래의 국가 경제도 소재부문에서 포스코가 책임지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철강부문은 역사적으로 보면 포스코가 굉장히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여러 어려움에도 포스코는 임직원들이 똘똘 뭉쳐서 역량을 다해 극복해 왔다. 극복한 것 뿐만 아니라 그것을 기회삼아 포스코가 더 발전해 왔다. 직원들의 경험과 능력을 믿는다. 직원들과 함께하면 못할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100일 동안 현장에서 직원들과 같이 있으려고 한다. 포항과 광양 뿐만 아니라 여러 사업회사를 돌아다니며 현장 직원들과 직접 소통하고, 그분들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살펴보려고 한다. 그 와중에 우리가 철강사업을 어떻게 발전시킬 수 있을지 상세한 의견을 들어서 잘 실행토록 하겠다.- 후추위 면접 때 당면한 위기돌파 방법에 대해 어떻게 답을 했는지. 철강 업황 부진과 이차전지 해법에 대해 알려달라.△철강업은 전세계적으로 경기가 별로 좋지 않다. 이차전지소재사업의 경우 신사업이 흔히 겪는 캐즘 현상의 초기에 있다고 본다. 철강은 부진이 길거나 깊지 않을 것 같은데 이차전지는 조금 더 길게 갈 수도 있다. 철강도 이차전지도 마찬가지로 둘 다 위기는 기회라고 생각한다. 위기의 순간에 원가를 낮추는 등 경쟁력을 키워 놓으면 경기가 되살아났을 때 우리에게 훨씬 더 리워드가 크다. 이차전지는 최근에 완공된 공장도 많고, 앞으로 준공될 공장들도 많다. 이러한 공장들을 초기에 다잡아서 정상화시킬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이차전지소재에서도 운이 따르는 게 아닌가 싶다.- 최정우 전 회장이 기업시민이라는 포괄적 경영이념을 선포해 운영해왔는데, 신임 회장이 새로운 경영이념을 구상하고 있는 것이 있는지.△기업의 사회적인 책임에 대해 중요시 생각하고 있다. 국가의 발전과 나라의 미래를 위해서 기업이 할 수 있는 역할이 분명히 있다. 그것이 사회적 책임이다. 국가와 사회를 위해 포스코가 해야할 일을 열심히 찾아 성실히 수행하려고 한다. ‘국민기업 포스코’는 얻기 힘든 큰 영예이고, 마찬가지로 국가와 사회를 위해 포스코가 외부에서 볼 때도 반듯이 서있는 회사가 되려고 열심히 노력하겠다.- 새로운 비전을 발표했는데, 조직이나 인사, 기업문화 등 구체적인 혁신 방안이 궁금하다. 신임 회장으로서 가장 먼저 바꾸겠다고 생각한 것이 있다면.△우선 100일 동안 저희 직원 전체 의견을 듣겠다. 전체 의견을 듣고 난 후 거기서부터 시작하겠다. 기본적인 방향은 조직은 슬림하고 플랫해지고, 빠르게 결정할 수 있는 조직이 돼야 할 것이고, 과감하게 도전할 수 있는 문화가 만들어져야 한다. 이러한 큰 틀 안에서 더 상세한 내용은 나중에 자세히 말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호주 필바라 광석 리튬, 아르헨티나 염호 리튬으로 공급망 불안에 선제 대응해왔다는 평가가 있는데. 추가로 염두에 두고 있는 해외 공급망 투자처가 있는지.△이차전지, 전기자동차는 지구의 운명이다. 그 속도가 늦어졌다, 빨라졌다 하며 부침이 있겠지만 큰 틀에서 이것이 흐트러지리라 생각하지는 않는다. 지금이야말로 공급망을 더 강화시킬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열심히 잘 살펴보겠다.- 그린 워싱 이슈에 있어서 문제제기를 받아왔고, 최근에도 정부기관에서 조사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아직 상세한 내용을 파악하진 못했으나, 포스코가 성실히 노력을 했을 것이라 확신한다. 그런 문제에 대해서는 정직하게, 사회가 바라보는 눈높이에 맞게 열심히 노력해 나가겠다. - 스톡그랜트 이슈가 전임 회장때 논란이 많았다. 이와는 다른 임원 장기 인센티브 체제를 생각하고 있는지 궁금하다.△스톡그랜트가 시작된 이유는 책임경영을 강화한다는 의미이며, 스톡그랜트 제도가 꼭 나쁜 제도라고만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사회에서 다른 생각들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고, 이에 대해서는 안타까운 마음이다. 스톡그랜트 문제에 대해서는 사회의 눈높이에 맞춰 다시 검토하도록 하겠다.- 여전히 이차전지 미래사업을 그룹의 투톱으로 가져가는 것인지. 투자 속도 등에 변함은 없는지.△투자라는 것은 항상 상황에 따라 변화를 주어야 하는 것이다. 이차전지소재사업은 회사가 10여 년간 꾸준히 해왔고, 그동안 포스코가 많은 신사업에 도전해왔는데 가장 잘 한 사업이라 생각한다. 제 생각에 무조건 이 사업을 성공시키겠다는 굳은 마음을 가지고 있다. 투자에 있어 시장이 나쁘다고 투자를 하지 않는다는 생각은 가지고 있지 않다. 적기에 적절하게 투자하겠다.- 포스코 미래 경쟁력은 자체 노력 외에도 외부 조건 변화도 필요하다. 친환경 전력이나 그린 수소 확보 등의 과제를 어떻게 해결해 나갈 것인지.△회사가 당면한 큰 문제 중 그린트랜스포메이션이 우리 회사가 가지고 있는 가장 큰 숙제이다. 이는 회사 혼자 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또한 글로벌 협력이 그린트랜스포메이션에서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국가가 글로벌 그린트랜스포메이션에 선두주자가 되려면, 국가도 이 부분에 대해서 상당한 노력을 해야하고, 노력하는 기업들도 도와줘야 한다. 여러 관계 기관과 최대한 협력하며 같이 풀어나가야할 문제이다. 하지만 우리가 풀어가야 할 문제도 있다. 예를 들어, 수소가 그린트랜스포메이션에서 중요한데,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되기를 바라기만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우리도 이를 새로운 사업기회로 삼아서 그린트랜스포메이션에 선두에 있는 부분이기 때문에 이를 새로운 사업 기회로 삼아 미래 사업과 연계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RD부터 시작하고 필요하다면 투자까지 할 것이다.- 원팀 포스코를 만드는게 중요하다. 노조나 내부 문제들로 부터 원팀을 만들기 위한 회장의 생각이나, 기업 문화는 어떻게 바꾸어 나갈 것인지.△직원들의 능력과 경험이다. 굉장히 어려운 상황 속에서 회사를 두 배씩 키워왔다. 지금의 어려움도 직원들과 함께하고 직원들을 믿고 가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노사도 결코 다르지 않을 것이다. 회사를 위해 하는 일에 있어서 노사가 따로 있을 수 없다. 이를 위해 신뢰가 가장 중요하다. 먼저 다가가서 신뢰를 느낄 수 있도록 하고, 같이 노력하겠다./이부용기자 lby1231@kbmaeil.com

2024-03-21

메콩강 따라 펼쳐지는 란쌍왕조 화려한 유적들

‘라오스엔 대체 뭐가 있는데요?’ 무라카미 하루키가 물었다.그는 즉답 대신 ‘바로 그 무언가를 찾기 위한 과정으로서 여행의 의미가 있다’고 강조했다.그렇다. 여행은 무언가를 보러 가는 것이 아니라 그 무엇을 찾아 나서는 과정인 것이다. 이 테마에 잘 부합하는 여행지가 라오스다.이 일본 소설가는 루앙프라방에 50일을 머무르며 이곳의 자연, 경관뿐만 아니라 라오스의 내면으로 빠져들었다.일본 작가 예찬이 아니더라도 어느덧 라오스는 지구상의 최고 힐링 여행지로 떠오르고 있다. 연간 300만 명 이상이 라오스를 방문하고, 매년 두자릿 수 증가세를 기록하고 있다. 이제 라오스의 관광산업은 국가경제의 10% 이상 비중을 차지하며 주력산업으로 성장했다.‘지구촌의 마지막 힐링지’라고 불리는 라오스의 도시(비엔티안, 방비엥, 루앙프라방)를 3회에 걸쳐 소개한다. ◆ 라오스와 한국은 고대 알타이어계로 한뿌리우선 라오스와 한국은 연결 고리가 거의 없는 것처럼 보인다. 연간 교역량도 135억 달러로 주변 태국이나 베트남에 비해 훨씬 적고, 그 흔한 축구 라이벌 관계도 아니다.그러나 역사 시계를 고대(古代)로 돌려보면 뜻밖의 사실과 만난다. 바로 라오족의 조상인 고대 타이족(Thái)이 바로 시베리아 알타이산맥에서 갈라져 나왔기 때문이다. 당연히 언어상으로 알타이어계인 우리와 깊은 지리적 배경과 혈연관계를 공유한다.현지에서 만난 가이드는 “라오족, 묘족, 몽족은 모두 한 계통으로 시베리아 알타이산맥에서 갈라져 나왔다”며 “기원전 무렵에 우리 고대 선조들과 혈연, 지연으로 뚜렷하게 연결된다”고 설명했다.별 인연이 없어 보이던 라오스가 우리 생활 속으로 갑자기 들어오게 된 것은 한 TV 프로그램 때문이었다. 2014년 tvN ‘꽃보다 청춘’에 나왔던 블루 라군의 원초적 풍경과 물빛, 거기서 벌어진 출연자들의 크고 작은 에피소드는 시청자들을 매료시켰다.프로그램 히트는 바로 라오스 열풍으로 이어졌다. 2014년 방영이후 라오스행 게이트엔 여행객이 줄을 이었고, 관광지의 식당, 노점엔 한글이 걸리기 시작했다.이런 한국인의 ‘공습’은 부작용도 불러왔다. 현지 물가를 순식간에 3~4배나 올려 하루 3~4만원 대의 값싼 관광을 즐기던 외국인들을 대거 축출(?)시키기도 했다. ◆ 라오스의 500년 수도 비엔티안, 사찰-박물관 밀집비엔티안의 현지 이름은 ‘위양 짠’으로 ‘달의 도시’라는 뜻이다. 동남아시아 최대 물줄기 메콩강을 품은 덕에 물고기, 농업용수는 물론 수력발전까지 가능해 라오스인들의 삶을 풍요롭게 해주고 있다. 인구는 100만명이 채 안되지만 명실공히 라오스의 정치, 경제, 행정의 중심으로 자리 잡고 있다.특히 이 메콩강을 따라 펼쳐지는 란싼왕조, 비엔티안왕조의 화려한 유적은 마치 시간이 멈춰 선 듯한 착각에 빠지게 한다.보통 비엔티안 투어의 출발은 왓 씨싸켓에서 시작한다. 비엔티안의 사원 중 가장 오래된 건축물이다. 1818년 건립되었다가 1829년 전란으로 소실되었는데 1935년 재건되었다. 왓 씨싸켓을 라오스를 대표하는 사찰로 끌어올린 건 사원 내부 담장에 진열된 6천890개 이르는 불상들이다. 불상들은 은(銀) 또는 토기로 제작된 것으로 상당 부분 훼손되어 있지만 그 원형만큼은 퇴색되지 않고 200년 가까이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인물들은 같은 모양이 없고 수인(手印)이나 입상(立像) 모습이 모두 다르다. 형상을 이렇게 많이 만든 것은 부처께서 낮은 곳으로 내려와 모든 중생과 불자 하나하나의 삶과 고통까지 살핀다는 뜻일 것이다.라오스 엽서에 단골로 등장하는 ‘탓 루앙’도 인기 코스다. 라오스 관광 표지 메인을 장식하는 금빛 사원으로, 국가의 상징이자 라오스에서 가장 신성시 되는 곳이다. 부처의 가슴뼈, 사리와 유물을 묻고 그 위에 기둥을 올렸다고 한다. 우리나라로 치면 적멸보궁 쯤 되는 셈이다.사원 앞을 지키고 있는 셋타티랏왕 동상도 눈여겨봐야 할 대상이다. 이 왕은 14세기 라오스를 전성기로 이끈 창 왕조의 군주로, 라오스 역사상 가장 위대한 지도자로 추앙받고 있다.재위 중에 불철주야 통치를 위해 몸을 돌보지 않았는데, 사후에라도 편히 쉬라는 의미로 앉은 자세로 동상을 제작했다고 한다. 우리나라로 치면 대왕, 성군으로 추앙받는 세종과 이미지가 겹친다.(세종대왕 동상도 좌상이다) ◆ 라오스인들의 독립정신이 서려 있는 빠뚜싸이비엔티안의 한복판에서 도시의 중심을 잡고 있는 빠뚜싸이는 라오스인들이 독립정신이 서려 있는 곳이다. 1969년 프랑스와의 독립 전쟁에서 희생된 사람들을 기리기 위해 만들어진 ‘승리의 문’이다. 모습은 프랑스 개선문과 비슷하지만 내부엔 라오스의 전통 문양이 새겨져 민족의식을 강조했다. 빠뚜싸이가 라오스인들에게 얼마나 상징적인 건물인가 하는 것은 국가 정책에서도 잘 나타난다. 라오스 정부는 최근까지 탑 높이보다 높은 건축물을 짓지 못하도록 법으로 규제했을 정도다.단, 자주 독립을 기념하는 건축물을 적국인 프랑스 개선문을 모델로 삼았다는 점과 그 비용을 범국민적인 성금이나 국가자본으로 조달하지 않고 미국 원조자금으로 충당했다는 점에서 아쉬움은 남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여행자의 단상일 뿐이다.비엔티안 시티투어를 끝내고 방비엥 남쏭강 옆 호텔에 짐을 풀었다. 500년 고도 비엔티안 시내에서의 흥분은 이제 물소리, 새소리에 잦아들었다.석양에 물든 남쏭강이 맑게 흐르고, 강 건너엔 사진에서 보았던 중국 계림, 베트남 하롱베이의 석회암 카르스트산맥들이 옅은 음영으로 펼쳐진다.내일 방비엔은 어떤 모습으로 우리에게 나타날까. 기분 좋은 상상 속에서 고단한 몸을 누인다. 라오스의 문화 코드 ‘뽀뺀양’라오스의 1인당 GDP는 1천800달러 선으로 이웃한 내전(內戰) 국가 미얀마를 제외하고 동남아에서 소득 수준이 가장 낮다.그럼에도 현지에서 만난 라오스인들의 표정은 무척 밝고 평안하다. 이런 평온은 거리, 시장 같은 일상을 물론 개개인의 삶에도 연결된다.라오스에서는 3가지를 볼 수 없다고 한다. 경적소리, 싸우는 소리, 장례식장에서 우는 소리다. 실제로 여행 중 일행을 태운 차가 고장으로 도로 한복판에서 10여 분을 서 있었는데도 단 한 번 빵빵 소리를 듣지 못했다.또 불교 윤회사상 때문인지 ‘죽음을 이생의 업(業)을 마감하고 다음 생을 준비하는 과정’으로 인식하는 탓에 우리와 같은 애도(哀悼) 문화도 없다.또 라오스에서 ‘싸바이 디’(안녕하세요) 다음으로 많이 듣는 소리가 ‘뽀뺀양’이다. 우리말로 ‘괜찮아’ ‘그럴 수 있지’ 쯤으로 해석된다.사소한 일과 실수에 대해 서로 따지지 않는 문화 덕에 사회적 완충장치를 하는 어법(語法)이다. 이 마법 덕에 라오스에서는 큰 싸움이나 분쟁이 생기지 않는다.혹시 여행 중에 곤란한 일이 생기면 ‘뽀뺀양’이라고 말해 보라. 열에 아홉은 상황이 종결된다.글·사진/한상갑기자 arira6@kbmaeil.com

2024-03-21

“소통과 협력으로 주민밀착형 의정활동 펼칠 터”

안동시의회는 총 18명의 의원들이 의장과 부의장을 중심으로 △의회운영원원회 △문화복지원원회 △경제도시위원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등에 소속돼 있다. 이 중 문화복지원원회와 경제도시위원회가 의회 구성의 핵심이며, 이 두 개의 위원회에서 안동시의회 모든 의안과 정책들이 결정된다.□ 안동시의회 경제도시위원회안동시의회 경제도시위원회는 정복순 의원을 위원장으로 이재갑, 권기탁, 우창하, 김상진, 김새롬, 김창현, 박치선, 김순중 의원으로 구성돼 있다.이들은 안동시 18개과(일자리경제과, 투자유치과, 농정과, 유통특작과, 축산진흥과, 농촌활력과, 환경관리과, 자원순환과, 산림과, 공원녹지과, 도시디자인과, 건설과, 건축과, 교통행정과, 상하수도과, 도시재생과, 안전재난과, 토지정보과)와 1개 직속기관(농업기술센터-농촌지원과, 기술보급과, 미래농업과), 3개 사업소(상수도관리사무소, 안동시농수산물도매시장관리 사무소, 안동임하호수운관리사무소), 1개 지방공기업(안동시시설관리공단)을 담당한다. □ 위원회 조례안 발의제9대 안동시의회 경제도시위원회는 개원 후 20개의 의원발의 조례안을 통해 시민들의 민의를 대변했다.대표 조례안으로 △여성농업인 육성 및 지원 조례안 △에너지 기본 조례 일부개정조례안 △도시계획 조례 일부개정조례안-수정가결 △4차산업혁명 기반산업 육성 및 지원에 관한 조례 일부개정조례안 △단독주택 등에 대한 도시가스 공급사업 보조금 지원 조례 전부개정조례안 등이 있다.또한 △재활용품 수집인 지원에 관한 조례안 △농축산물 가격안정기금 설치 및 운용에 관한 조례 일부개정조례안 △사회적경제활동 지원 조례 일부개정조례안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 조례안-수정가결 △반려동물 보호 및 반려문화 조성에 관한 조례안 등도 발의했다.이와함께 △음식물류 폐기물 감량기기 설치 및 지원에 관한 조례안 △병역명문가 예우 및 지원에 관한 조례안 △양봉산업 육성 및 지원 조례안 △청년 기본 조례 일부개정조례안 △청년 주거 기본 조례안-수정가결 △치유농업 육성 및 지원에 관한 조례안을 제개정했다.특히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가입 추진 반대 촉구결의안(정복순 의원) △안동·예천 국회의원 선거구 존속 촉구건의안(우창하 의원) △국립의대 설립 촉구결의안(여주희 의원) △일본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해양방류 결정 철회 촉구결의안(김새롬 의원) △노동·연금·교육 3대 분야의 조속하고 확실한 개혁을 위한 촉구결의안(안유안 의원) △안동시시설관리공단 이사장·본부장 사퇴 촉구결의안(정복순 의원) △안동문화관광단지 미개발 부지 활성화 촉구건의안(김경도 의원) △안동호·임하호 수리권 안동시민으로 이전 촉구건의안(김경도 의원) 등 촉구건의안을 통해 사회문제를 지적하고, 시민을 위한 정책을 제시했다.아울러 집행부에서 올라온 안건에 대해서도 논란이 되는 부분은 직접 수정 의결하거나 의회 의견을 붙여 조건부로 의결하는 등 의원 개개인이 집행부 조례 제·개정안의 심사 역할에 그치지 않고, 자치 입법기관 구성원으로서 심도있는 고민·탐구를 바탕으로 민의를 담은 조례를 연구해 시민 삶의 질을 높이는데 노력했다.특히, 2023년도 행정사무감사를 통해 시정 문제점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고, 집행부와의 소통을 통해 더 나은 정책 방향과 행정 운용 방안을 권고했으며, 집행부를 대상으로 하는 시정 질의에서는 행정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는 한편, 시민 행복 만족도 증진에 기여하는 지방행정 구현을 주문했다.이 밖에도 수시로 주요사업장 등을 대상으로 현장 방문을 실시해 문제점을 파악하고, 이를 지적하는 동시에 의회차원에서 대안을 모색하고, 집행부와 협의해 시민이 만족하는 의정활동을 펼치도록 노력했다. □ 5분 발언 의원 활동안동시의회 경제도시위원회에 소속된 의원들은 제9대 의회에서 다양한 5분 발언을 통해 안건과 대안을 제시했다. 이렇게 제시된 대안과 안건은 실제로 조례안으로 만들어져 시민 불편을 줄이거나 혜택으로 돌아갔다.정복순 의원은 총 2번의 5분 발언을 통해 △친일사관 논란 한희원 교수의 경북독립운동기념관장 임명 철회 촉구 △안동시 상수도요금 반값 공약 제고 촉구 등 경북도와 안동시의 인사와 공약 정책에 대해 날카롭게 지적했다.이어 이재갑 부위원장은 총 2번의 5분 발언을 통해 △원도심 공동화 해결 촉구 및 공무원 공로연수 제도부터 폐기, 안동국제컨벤션센터 활용방안 도출 △일본 후쿠시아 원전 사고 후 일본 수입식품 3천200여t에서 방사능 검출 등 문제와 인구감소 문제 대응 미비, 안동댐 자연환경보전지역 해제 문제, 3대 문화권 사업의 운영실태 지적, 안동시 복지사업실태 지적, 경북산업용헴프규제자유특구 기업 유치 등의 문제를 지적했다.우창하 의원은 △안전 사각지대에 놓인 노후 공동주택의 안전과 지원을 얘기하면서 소규모 노후 공동주택에 주로 어르신들이 거주하고 있는 만큼 공동주택지원 조례의 개정을 통해 공동주택지원에 대한 예산확보 노력과 지원 대상에 대한 적극 검토를 주장했다.김새롬 의원은 △미세먼지로부터 자유로운 공공형 실내놀이터 조성 제안을 통해 안동시의 행정복지센터, 폐역사 등 공공시설 유휴공간을 활용한 공공형 실내놀이터 조성 촉구와 층간 소음분쟁이 잦은 공공주택 내 실내 놀이공간 조성을 위한 정책 개발과 제도 개선 제안 등 어린이들이 행복하고 부모들이 안심하는 보육환경이 조성을 촉구했다.김창현 의원은 총 3번의 5분 발언을 통해 △중앙선 폐선구간 교통불편 시설물의 조속한 철거와 폐철도 구간 35km의 활용방안 제안 △바이오생명 국가산업단지 후보지 선정 및 안동댐 주변 자연환경보전지역의 용도지역 변경을 위한 환경영향평가 통과에 따른 안동시의 역할과 주민의 생존권 회복에 대한 촉구 △전기자전거 보급 촉진 및 이용 활성화를 위한 전기자전거 구입 보조금 지원 방안 수립과 관련 인프라 구축 등을 제안했다.박치선 의원은 △사회적 약자도 함께 누릴 수 있는 호반나들이길 조성과 용상 야외 어린이놀이터 조성에 대해 제안하면서 호반나들이길의 모든 계단을 경사가 완만한 비탈길로 정비하고, 사회적 약자를 위한 안전장치 및 편의시설을 마련 및 우리 지역에 특색있고 안전한 야외 놀이터 조성으로 안동시가 아이 키우기 좋은 도시로 나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김순중 의원은 △한국남부발전에서 추진 중인 ‘안동복합화력발전소 2호기’ 증설 반대를 언급하면서 안동시의 탄소제로 정책과 RE100을 추진하는 데 불리하며, 지역민의 환경권을 위협한다고 주장했다.□전반기 활동 목표이처럼 제9대 안동시의회 경제도시위원들은 전반기 20개의 의원발의 조례안과 집행부 조례 제·개정안의 심사, 5분 발언 등을 통해 시민들을 위한 정치 활동을 펼쳐왔다. 이제 제9대 의회 전반기는 약 4개월의 시간이 남아있다. 이 기간 경제도시위원회 의원들은 비회기 중에도 지역 현안이나 숙원사업 해결을 위한 주민 간담회, 상담 등의 활동을 통해 주민밀착형 의정활동을 펼친다는 각오다.정복순 위원장은 “안동시의회 경제도시위원회는 안동시 주요 현안 사업들이 실효성 있게 추진될 수 있도록 지속적인 관심과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며 “지속적으로 소통하고 협력하며, 정책 마련을 위해 적극 노력하겠다”고 밝혔다./피현진 기자 phj@kbmaeil.com

2024-03-20

청도김씨 집안 절부들의 영혼 달래는 마을 터줏대감

내가 왜 노거수를 찾아다닐까? 하고 의문을 가져본 적이 있다. 추상적인 관념이 아니라 눈에 보이는 나무 실체의 아름다움에 이야기가 덧붙여져 있어 감정이 이입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나무가 다 똑같다고 하는 사람을 보면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똑같아 보이는 나무일지라도 사는 위치, 나이, 생김새 등 삶의 꼴이 모두 다르다. 나무를 찾아서 그에 얽힌 이야기를 들으면 희로애락에 춤추며 좋아하기도 하고 절규하며 마음 아파하기도 한다. 한 그루의 노거수를 이해하고 품는 것은 한 권의 양서를 읽음과 다름이 없이 삶의 영혼을 살찌게 한다.나무 한 그루 없는 마을이라면 얼마나 삭막할까, 나무 한 그루 없는 집이라면 얼마나 쓸쓸하고 외로울까. 나무 한 그루 없는 도로라면 얼마나 심심하고 무료할까. 새들이 찾아와 노래를 불러주려 해도 앉을 자리가 없고, 바람이 먼 곳에서 찾아와 좋은 소식을 전해 줄래도 멈추어 쉴 자리가 없다. 도로를 따라 열 지어 서 있는 가로수는 차들을 인도하고 운전자와 동승자에게 볼거리를 제공해 주며 심심함을 덜어준다.인공으로 심은 나무라면 식목담이라는 태생의 이유를 다 가지고 있다. 그것이 노거수라면 도서관에 소장된 역사책처럼 나이테에 꼼꼼히 기록해 두었을 것이리라. 쉬어가고 붙잡아 둘 노거수가 있는 집과 마을이라면 어디라도 찾아가 이야기를 듣고 또 나누고 싶다.500여 년이라는 오랜 세월 동안 한 집안의 절부(節婦)들이 울부짖는 영혼을 잠재우는 낙화송(落花松) 노거수가 있다기에 단숨에 찾아 나셨다. 상주시 화동면 판곡리 마을 423번지에 낙화담(落花潭) 한 가운데 홀로 살아가고 있었다. 낙화담은 조선시대 초기 만들어진 연못으로 임진왜란 때 여자들이 왜군을 피해 이곳에서 투신하면서 낙화담이라는 이름이 지어졌다고 한다. 지금은 면적이 190㎡로 채 60평이 안 되는 작은 연못이지만, 당시에는 매우 컸다고 한다.낙화담 연못 가운데에 있는 낙화송 노거수는 아름다운 꽃이 떨어진다는 이름에서부터 슬픔이 묻어난다. 키 13m, 흉고 둘레 2m, 수관 폭 20m에 이르며 나이는 550살이나 되었다.열악한 환경임에도 건강하게 살아가고 있다. 연못 한가운데 흙으로 조그만 동산을 쌓아 그곳에 소나무를 심어놓았다. 큰 화분에 담겨있는 분재형 소나무 같다. 뿌리가 더 이상 옆으로 뻗어나갈 수 없어 나이에 비해 왜소해 보이지만, 연륜과 아름다움만큼은 어느 소나무 노거수 못지않다.마을 주민들은 소나무 노거수를 마을의 수호목이자 상징물로 여겨 소중히 보살피고 있다. 나라에서도 1982년 10월 26일 보호수로 지정하여 정성껏 보호하고 있다. 판곡리 마을 청도김씨(淸道金氏) 집안 절부의 영혼을 위무하고 품어주는 낙화송이 위대해 보인다.오늘날 장례문화 중의 하나인 수목장의 시초가 아닐까. 전쟁의 비극은 전쟁에 참여한 의병이나 장수만의 문제가 아닌 한 집안을 몰살하는 참담함임을 낙화송은 말하고 있다. 한 마을의 절부들이 울부짖는 원혼을 품고 있는 낙화송 노거수를 추모의 마음으로 천연기념물 반열로 품격을 올려주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낙화담 연못 한가운데 있는 노거수로 들어갈 수 있게 철제 다리로 연결해 놓았다. 마을 주민들이 선물한 지팡이 10개를 짚고 있었다. 마을 주민들은 낙화담 주변에는 아픈 역사를 잊지 않으려고 아니 잊지 말라고 의사 제단 비, 위령비, 의적 찬양 시비, 제실 등을 짓고 의병장 김준신과 절부들의 영혼을 추모하고 있었다. 낙화송은 살아있는 생명체로서 위령 나무로 그 어느 문화재보다 값어치 있고 정감이 갔다.낙화담에 얽힌 이야기는 우리의 가슴을 아프게 한다. 다시는 일어나지 말아야 할 역사의 아픈 사연을 오늘날 곱씹어 본다.‘김준신은 왜란이 일어날 것을 미리 알고 당시 상주 목사 김해를 찾아가 방비를 서둘러야 한다고 하다가 오히려 유언비어로 세상을 어지럽힌다고 하여 감옥에 갇혔다. 왜군이 쳐들어오자 다급해진 목사는 기병 백여 명을 내주면서 먼저 출전케 하고 자신은 나중에 뒤따르겠다고 했으나 남쪽에서 도망쳐 오는 난민들을 왜적으로 오인하고 발길을 되돌리고 말았다. 칠곡 석전에 이르러 원군을 기다리던 김준신은 황당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지체할 수 없어 부하들을 이끌고 대구 인근까지 진출했다. 이때 왜군은 이미 대구를 함락하고 금호강을 건너 북상하는 중이었다. 황급히 상주 본진으로 되돌아와 북천전투에 참여하여 수백 명의 왜적의 목을 베고 임진년 4월 25일 32세의 나이로 장렬히 순직했다.큰 피해를 당한 왜군은 분을 이기지 못하고 40여 리 떨어진 이곳 판곡리까지 쳐들어와 그의 가족은 물론 마을 사람들을 무참히 살해했다. 이때 부녀자들은 정절을 지키기 위해 입향조가 화기(火氣)를 누르기 위해 파 놓았던 못에 투신하였다. 훗날 유림의 발의로 김준신의 공적이 조정에 알려져 정조(正祖)가 의사(義士)로 칭하였고, 1820년 순조는 통훈대부 사헌부 종3품의 집의로 추증했다.’ 이 이야기는 실제 일어난 역사적 사실이다.노산 이은상 선생은 1973년 ‘낙화담의적천양시(落花潭義蹟闡揚詩)’를 짓고 일초 김현승 선생이 쓴 시비가 가슴을 아리게 한다.임진년 풍우 속에 눈부신 의사 모습/ 집은 무너져도 나라는 살아났네//절사곡(節士谷) 피 묻은 역사야 어느 적에 잊으리/ 설악산 높은 봉에 본대로 이르는 말//꽃은 떨어져도 열매는 맺았다고/ 오늘도 낙화담 향기 바람결에 풍기네.//아버지에 대한 효심이 지극한 아들 이야기가 낙화담과 함께 문중의 문집에 기록되어 전해오고 있다.“구사일생으로 김준신의 아들은 목숨을 건졌다. 난이 평정된 뒤에 아들 백일은 아버지가 전사한 곳을 찾아가 밤낮으로 울며 아버지의 유해라도 찾으려 하였으나 알 길이 없었다. 아들 백일은 목욕재계하고 하늘에 축수하기를 ‘아버님 돌아가신 자리이거든 제가 든 이 술잔을 엎어 주십시오’ 하고, 제사에 들일 잔을 들고 다녔는데, 상주 서문의 토성 근방에까지 갔다. 그때 바람 한 점 없었는데 갑자기 잔이 엎어졌다. 백일은 드디어 그 자리의 흙을 파서 그 땅에 여막을 짓고 3년을 시묘살이 했다. 그 슬퍼하는 것을 보고 많은 사람이 감동의 눈물을 흘리게 하였다. 그때 사람들이 ‘하늘이 아버지의 충혼과 아들의 효성에 감동한 탓이다’ 하고 다들 기이하다고 여겼다 한다.”낙화담, 첨모재, 위령비, 시비, 낙화송은 모두 우리의 문화재이다. 특히 살아 숨 쉬는 낙화송 노거수에 정이 더 감은 무엇 때문일까. 의병장 김준신의 위국충절과 아들 백일의 효심, 낙화담에 뛰어내린 판교리 절부들의 원혼 때문일까. 전쟁으로 희생된 모든 분께 고개 숙여 고인의 명복을 기원해본다. 낙화담(落花潭)이란 명칭은낙화담이 자리한 곳은 마을을 개척할 때 풍수지리설에 따라 마을 뒤쪽은 산이 감싸 찬바람을 막아주고, 앞은 훤히 트여 양지바르며, 들은 크지 않지만 땅이 기름져 수십 가구가 먹고살기에 충분해 보인다.그러나 멀리 보이는 백화산의 뾰족한 봉우리가 화기(火氣)를 머금고 있어 오랜 세월에 걸쳐 발복(發福)할 수 없다고 하여 결함을 보충하기 위해 마을 한복판에 커다란 못을 팠다고 한다. 제아무리 강한 불꽃이라도 이 정도의 물은 이길 수 없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임진왜란 때 마을 여자들이 왜군을 피해 이곳에서 투신하면서 낙화담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글·사진=장은재 작가

2024-03-20

새봄, 매혹적 향기 따라 사색의 길에 서다

산에는 울긋불긋 갖가지 꽃이 피고, 바다는 겨울을 이겨낸 온화함으로 사람들을 손짓해 부르는 시절이다. 떠났던 봄이 돌아왔다.경북의 여러 지자체들은 저마다 성큼 다가선 봄을 맞이할 다양한 축제를 준비하고 관광객들을 기다리고 있다. 곧 펼쳐질 화려한 페스티벌이 가족과 친구, 연인을 설레게 할 것이다.겨울은 아무래도 방 밖으로 나오기가 망설여진다. 매운 추위와 활동하기 좋은 낮 시간이 짧은 탓이다.하지만, 이제 바람에도 따스함이 스며들고 해도 부쩍 길어졌다. 누군가의 손을 잡고, 만약 동행할 사람이 없다면 혼자라도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지는 계절.특정한 여름 며칠에 몰리던 한국의 휴가 패턴이 달라진 건 이미 오래 전이다. 이제 봄에도 일정 기간의 휴가를 얻어 국내는 물론 해외로 여행을 떠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세상이 변한 것이다.고래로부터 ‘봄’은 좋은 계절로 불려왔다. 환한 3월 햇살 아래서 낯선 공간을 떠돌며 새로운 삶의 에너지를 얻고자 하는 이들에게는 특히 그랬다. 재론의 여지없다. 봄은 여행 세포가 꽃피는 시기다.목련을 필두로 진달래와 개나리가 망울을 터뜨리기 시작한 산도 좋고, 온갖 해산물이 잃었던 입맛을 돌려줄 바다도 좋다. 일상에서 훌쩍 벗어나 봄날의 맑고 자유로운 공기를 호흡할 수 있다면 그게 어디건 무슨 상관일까.초등학교 시절의 봄 소풍처럼 즐거운 기억으로 남을 2024년 봄 여행을 준비하는 이들의 기대감을 보다 높여줄 시 몇 편을 아래에서 소개한다. 시인들도 사색의 여행을 떠나는 계절이 시작됐다. 이성복 시집. ▲ 푸른 산과 바다를 동시에 보며 이성복의 ‘남해 금산’을경상남도 남해의 금산은 봄을 맞이한 산과 바다를 지척에서 동시에 즐길 수 있는 흥미로운 여행지다.“원래는 신라의 원효(元曉)가 보광사(普光寺)라는 절을 세웠기에 보광산이라 했는데, 고려 후기 이성계(李成桂)가 이 산에서 100일 기도 끝에 조선왕조를 개국한 영험에 보답하는 뜻으로 산 전체를 비단으로 덮었다 해서 금산이라고 부르게 되었다”는 것이 ‘두산백과’의 설명.한국문학사에 기록될 빼어난 모더니스트 이성복 시인은 남해 금산을 돌아보고는 이런 노래를 남겼다.한 여자 돌 속에 묻혀 있었네그 여자 사랑에 나도 돌 속에 들어갔네어느 여름 비 많이 오고그 여자 울면서 돌 속에서 떠나갔네떠나가는 그 여자 해와 달이 끌어 주었네남해 금산 푸른 하늘가에 나 혼자 있네남해 금산 푸른 바닷물 속에 나 혼자 잠기네.산에 얽힌 역사와는 무관하게 시인이 남해 금산에서 본 것은 ‘돌 속에 묻힌 한 여자’였다. 물론, 사람이 돌 안에 묻힐 수는 없는 일. 여기서 ‘여자’는 인간이 일생을 안고 살아갈 운명 또는, 그리움을 의미하는 것으로 읽힌다.운명과 그리움에서 벗어나 해와 달의 이끌림 속에서 어디론가 사라진 그 ‘여자’는 어디로 간 것일까? 이성복은 푸른 남쪽 바닷가를 거닐며 그것을 고민했던 듯하다.물론, 누구도 풀지 못한 운명과 그리움에 관한 삶의 수수께끼는 아직 풀리지 않았다. 그걸 남해 금산을 찾은 여행자가 된 당신이 풀어보면 어떨까. 곽재구 시집. ▲ 진달래가 불 밝힌 곳에선 곽재구의 ‘분홍산’을목련, 개나리와 함께 가장 먼저 봄을 알리는 꽃이 진달래다. 그 화사한 진분홍의 유혹은 천년 세월을 넘어 우리를 때마다 흔들어왔다. ‘봄의 전령사’라 불러도 좋을 진달래.중년을 넘긴 이들에겐 ‘먹어도 좋은 꽃’으로 기억되는 진달래는 번철 위에서 구워지던 부침개를 화려하게 장식하기도 했다.질박한 토속 언어로 한국 시의 한 산맥을 형성했다고 평가받는 곽재구는 저 멀리 분홍빛으로 가물거리는 진달래를 보며 다음과 같은 시를 썼다. 이 시가 만들어진 건 분명 3월이었을 터.봄 구산리길 걸었다아지랑이 한 마리나비처럼 팔랑팔랑 날았다봄콩 놓던 할머니 먼 산 보다가새참으로 들고 나온 막걸리 한 사발 부르르 마셨다진달래꽃이 피었는디진달래꽃이 피었는디아가 무신 잠이 이리도 깊으냐십 년 넘은 바위잠이 어디 있느냐아이고 다리 패던 허망한 숲 그늘 길끈적하게 타오르던 저 먼분홍산.먼지 날리는 시골길을 달리다가 자동차의 핸들을 놓고 무작정 낯설고 조그만 시골마을에 내려 주변을 살펴보자. 곽재구가 노래한 공간이 바로 거기에 있으니까.그렇게 한다면 누구라도 생물인 듯 흔들리며 꿈틀대는 ‘아지랑이’와 만날 수 있고, 주름 가득한 얼굴로 착하게 웃는 그 동네 ‘할머니’에게 막걸리 한잔 얻어 마실 수 있을 것이다.시인이 시의 제목으로 삼은 ‘분홍산’은 비단 진달래의 색깔만을 의미하진 않는다. ‘분홍산’은 봄이 선물한 유토피아의 다른 이름이기도 할 것이기에. 봄에 떠나는 여행은 이상향(理想鄕)을 찾는 행위에 가깝다. 김명인 시집. ▲ 봄의 주인공을 만난다면 김명인의 ‘꽃들’을누가 뭐래도 봄의 주인공은 ‘꽃들’이다. 꽃은 미움과 증오가 가득한 땅에도 화사하게 피어 사랑과 화해가 아름다운 단어임을 가르친다. 그렇기에 어떤 면에선 인간보다 낫다.이상과 괴리하는 현실의 아픔을 독자들에게 들려주며 자신의 문학적 영역을 탄탄하게 구축해온 시인 김명인은 바로 이 봄의 주인공인 ‘꽃’을 사랑의 이름으로 노래하고 있다.낮잠에서 깨니 머리맡에 꽃소식이 당도해 있다만선에 실려 오는 꽃나무 한 시절들그대가 약속을 지키려 근근하듯이꽃은 제철의 두근거림으로 한 해를 갱신한다상청 이불 덮고 누웠으니어디 산비둘기 구구거리는 한낮꽃 타래들, 다비에 든 듯 화염 사르는구나!공손한 꽃아, 피고 지는 건네 일이지만 나는 너를 빌려 쓰고 내일로 간다연년세세로 물든 분홍 새 날개 펴니거처 없이도 견디는 깃발처럼혼곤한 신생의 새봄 안간힘으로 울뚝하다오늘은 오늘 꽃, 수만 송이로 허무는 탑버림받을 사랑이니 돌보라고이 환, 나에게 흘려보내는 건 아니겠지?누구라도 새로움과 희망을 꿈꾸는 ‘신생의 새봄’이 바로 오늘이다. 때로는 ‘다비에 든 화염’처럼 매혹적으로 일렁이고, 어느 때는 ‘버림받을 사랑’을 아프게 돌아보라고 우리를 가르치는 봄.봄의 주인공 꽃들 속으로 떠난 여행에서 꿈과 사랑, 새로움과 희망의 은유를 찾아낼 수 있다면 독자들 또한 시 한 편 쓰지 못할 이유가 없을 듯하다./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2024-03-19

“지역경제 활력화 촉진 등 시민 삶의 질 향상 온힘”

지방자치는 일정 지역에 거주하는 주민이 지역단체를 구성해 지역 공동사회의 정치와 행정을 그들의 의사와 책임 아래 처리하는 것을 말한다.우리나라의 지방자치는 제1공화국 시대인 1952년부터 제2공화국이 끝나는 1961년 5·16까지 시행되었다가 중단됐다. 이후 30여년만인 1990년 지방자치 관계 법률의 제정과 개정으로 부활했다.그리하여 1991년에는 기초자치단체와 광역자치단체의 의회가 구성되고 1995년 6월에 광역 및 기초 자치단체장의 선거를 헌정사상 처음으로 시행해 본격적인 지방자치 시대를 열었다. 광역과 기초단체장, 광역 및 기초의회 의원 선거가 동시에 시행되었고 광역 및 기초단체장 직선은 1961년 5·16 이후 34년 만에 치러진 것이다.이러한 연유로 우리는 지방자치를 의회와 깊게 연관시킨다.특히 기초의회는 각 기초단체(시·군·구)의 중요 사항을 주민을 대표한 의원들이 최종적으로 심의·결정하는 최고 의결기관으로 예산·결산 승인을 비롯한 의결 기능과 행정 사무 조례를 제정하는 입법 기능, 자치행정의 집행을 감시·감독하는 통제 기능, 지역의 주요 현안에 대한 청원을 처리하거나 자치단체와 의견을 교환하는 조정 기능이 있다.시군이 통합돼 현재 9대를 맞은 경산시의회도 1991년 4월 15일 초대 경산시·군의회가 개원한데 이어 1995년 1월에 통합 경산시의회를 개원했다.현재 비례대표 2명 등 15명의 시의원으로 구성된 경산시의회도 지역민의 관심 속에서 여러 변화를 겪었다.1991년 제1대 선거에서 군의원 7명과 시의원 9명 등 16명의 기초의원을 선출했지만 제3대 선거에서는 14명으로 줄고 제4대 선거에서 다시 16명으로 늘었지만 제5대 선거부터 현행 15명의 체제로 굳어졌다.박순득 의장을 필두로 한 의장단으로 조례 제·개정, 집행부의 견제 세력으로 시민들의 삶의 질 향상에 노력하고 있는 경산시의회 제9대 전반기를 살펴본다. □ 경산시의회 구성경산시의회는 15명의 의원이 의장과 부의장의 책임과 운영위원회와 행정·사회위원회, 산업·건설위원회, 윤리특별위원회 등 4개의 상임위원회에서 활동하고 있다.운영위원회는 의회 운영의 전반을, 행정·사회위원회와 산업·건설위원회는 집행부의 사무와 예산 등에 대한 심사와 의결, 윤리특별위원회는 지방의회 의원의 윤리강령과 윤리실천 규범 위반 여부와 징계에 관한 심사를 담당한다.27명이 근무하는 의회사무국은 국장과 3명의 전문위원, 의정과 의사·홍보, 정책지원팀으로 구성되었다.2023년 1월 의원들의 의정 활동을 지원하고자 처음 도입된 정책지원팀은 5명의 직원이 의원들의 의정 활동 자료·정보수집을 지원하고 있다.□ 제9대 전반기 의정활동경산시의회는 현재까지 2022년 7월 5~6일 제237회 임시회 개회를 시작으로 지난 2월 26일부터 4일까지 제252회 임시회 개회 등 16차례의 의회를 개회해 조례 등 285건의 안건과 시정질문 5건, 5분 자유발언 33건 등 323건의 안건을 처리했다.특히 의원 제안으로 14건의 조례를 제정하는 성과도 보여 일하는 의회의 모습을 보여주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제240회 정례회와 247회 정례회에서는 행정 사무감사를 진행해 91건의 사례를 지적했다.지적된 행정 사무감사 결과는 2022년 9월 5일부터 28일까지 열린 제240회 정례회에서 시정 22건과 22건의 권고 등 44건이, 2023년 6월 7일부터 29일까지 개회된 제247회 정례회에서도 22건의 시정과 25건의 권고 등 47건이 지적됐다.2번의 행정 사무감사에서 공통으로 각종 보조사업에 대한 명확한 기준설정과 심의위원회 기능 강화, 실효성 있는 인구정책을 지적해 보조사업에 대한 투명성을 요구했다. □ 의원 연구단체 활동시의원들은 주요사업장을 방문해 지역 현안을 살피는 한편으로 ‘밝은 미래’ 등의 연구단체를 만들어 지역민을 위한 정책을 제안하고 있다.전봉근·안문길·이동욱·양재경 의원이 활동하는 밝은 미래는 ‘경산시 영유아보육정책의 동향과 과제 연구’로 지역의 영유아보육정책 특성 분석과 비전과 정책과제를 제시했다.김상호·김계태·김인수·손말남·윤기현 의원이 활동하는 행복도시 연구회는 ‘경산지역 도시경관 향상을 위한 발전방안 모색’을 주제로 경산시 도시경관 개선을 위한 기본현황과 환경분석, 법률정비, 정책 발굴 등 도시경관 관리모형을 제시했다.박미옥·강수명·김화선·권중석·이경원 의원이 소속된 관광도시 만들기 연구팀도 ‘경산시 관광 활성화 방안 정책 연구’를 통해 경산 지역경제 활력화 촉진과 살기 좋은 경산을 조성하기 위한 관광 활성화 방안을 도출했다. 박순득 경산시의회 의장 인터뷰“경산 시민 위한 늘 열린 의회 구현”-기초의회의 의미와 제9대 경산시의회 전반기를 평가해 달라.△기초의회, 경산시의회는 잘 아시다시피 경산시민들을 위해 열려 있으며 시민들을 위해 여러 가지 기능을 담당하면서 의원들이 생활하는 공간이라고 생각한다.제9대 의회의 전반기를 마감하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지만 제 나름대로는 어느 해보다 우리 의원들 서로 단합과 소통이 잘 되었다고 본다.조례 발의, 시정질문과 5분 자유발언 등 어느 회기보다 더 열정적으로 많이 했다고 자부하고 의원들의 지역 활동도 어느 해보다 더 활발하게 전개됐다고 생각한다.-의장으로서 수행 평점은.△평가보다는 나름대로 의장으로서 의회의 위상을 높이고자 노력했고 대외적으로는 우리 경북의 의장단 협의회에서도 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했고 특히 지역에 꼭 필요하다고 요구되는 대형 아울렛의 유치를 위해 지난해 의장단 협의회에서 결의문을 채택하는 등 최대한 노력했지만, 옆에서 지켜본 시민들이 좋은 평점을 줄지는 모르겠다.아직도 부족하고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그런 마음가짐으로 남은 임기에 최선을 다해 유종의 미를 거두겠다.-앞으로 경산시의회가 나아갈 방향성이 있다면.△의회가 나아갈 방향성은 의회가 바뀌는 것이다.의원의 직위를 내려놓으며 시민들에게 항상 말로만 다가가는 의원, 열린 의회라고 얘기를 하지만 정말로 문턱을 낮추고 의원들이 솔선수범해야 한다.우리가 나아가야 하는 방향은 집행부를 무조건 견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집행부가 요청하는 사업들에 대해서는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협조해야 하지만 예산이 수반되는 사업에 대해서는 정확한 셈으로 아닌 것은 앞으로 재발이 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의원들의 본분이라 생각한다.예산안에 대해 왜 이렇게 예산을 많이 집행하는가와 예산을 줄 것인가와 말 것일까를 따지는 시대는 지났다고 본다.집행부가 사업을 위해 예산을 요구하면 예산의 과다를 따지기보다는 예산만큼의 결과물이 나오도록 꼼꼼히 살펴 시민들이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의원들의 몸가짐일 것이다.-시민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제9대 의회의 전반기 마감을 눈앞에 두고 시민들이 다 만족하지는 못했을지 모르지만, 앞으로도 시민을 위한 늘 열린 의회를 구현하고 시민들의 복리 증진을 위해서 열심히 뛰겠으니 애정 어린 시선으로 지켜봐 달라./심한식기자 shs1127@kbmaeil.com

2024-03-17

두만강은 꽁꽁 얼었어도 물은 속으로 제 갈 길 간다

사이 ‘간(間)’, 섬 ‘도(道)’ 사이에 놓인 섬 ‘간도’, 간도는 중국 길림성(吉林省) 동남부 지역으로 중국에서는 연길도(延吉道)라 한다. 1869년 무렵 함경도에 큰 흉년이 들면서 많은 사람이 간도로 이주했고, 1910년을 전 후해 일제의 핍박이 심해지자 독립투사들은 항일 운동의 새로운 기지를 마련하기 위해 간도로 이주하기에 이르렀다. 민족운동의 산실이자 독립투사들의 숨결이 서린 간도로의 여정을 미약하게나마 따라가 본다. ◆김해공항에서 연길공항으로상공에서 보는 하늘은 맑았다. 두 시간 반 남짓 상공을 날던 비행기에서 안내방송이 나왔다. 곧 연길 공항에 도착한다는 것과 함께 ‘접경지역’이니 창문 셔터를 모두 내리라는 것이었다. 승무원들은 개폐 금지 스티커까지 나눠주며 창문 셔터에 붙이라고 했다. 안내대로 모든 게 완벽해졌을 때, 기내 조명등마저 꺼졌다. ‘꼭 이렇게까지 해야만 하는가?’ 비행기는 외부와 철저히 차단된 채 상공을 떠도는 행성과도 같았다.‘나라’와 ‘나라’를 건너가는 일, 어쩌면 우리는 변경(邊境) 지대의 묻히고 잊히는 이야기를 좇아 월강(越江)을 자처하는 겁 없는 이방인인지도 모른다. ◆중국조선족자치주 그리고 연길연길 공항을 빠져나오니 차가운 바람이 훅 끼친다. 볼을 찢을 것만 같은 칼바람이 정신을 번뜩 깨운다. 연길(延吉, 옌지)은 낯선 듯 낯설지 않다. 조선족자치주의 중심도시인 연길시를 남북으로 가로지르며 동쪽으로 흘러가는 강은 눈이 덮인 채 꽁꽁 얼었다. 어머니의 강, 버드나무 개울이라는 뜻의 만주어 ‘부르하통하(河)’는 도문시를 적시고 두만강으로 흘러들어 동해로 간다.국자교를 건너니 연길 시가지다. 대한민국 도시와 다를 것 없는 모습이다. 나직한 건물들 사이로 제법 높다란 빌딩이 보이고 형형색색의 간판이 하나같이 화려함을 자랑한다. 야무지고 당찬 느낌의 연길이 첫눈에 각인되는 순간이다. 간판은 한글과 한자를 혼용해서 쓰며 고속열차(가오티에·高铁) 내 방송조차 한국어로 안내가 되는 곳이다. 그렇다, 연길은 총인구 68만 가운데 20만여 명이 조선족이다. 우리 동포가 모여 사는 ‘조선족의 서울’인 셈이다.1932년 만주국 간도성의 성도(省都)가 되었다가 1952년 중국 조선족자치구가 되었다. 지금은 중국 땅이지만 과거에는 조선인들이 월강해 피와 땀으로 황무지를 일군 땅이고, 지금도 그들의 후손이 남아 대(代)를 이어 또 다른 문화를 이루어 가는 곳이다. ◆도문에서 마주한 두만강, 그리고 강 건너 북한 온성군 남양노동자구연길에서 차로 1시간 남짓 이동하니 도문이다. 총 인구 12만 명 중 50%가 넘는 조선족 집단 거주 지역이다. 도문은 두만강을 사이에 두고 북한과 국경을 맞댄 접경지역이다. 도문대교와 도문철교가 북한과 중국 사이에 놓여 두 나라 간 교류를 잇는 도시이기도 하다.두만강 광장에는 몇몇 인민들이 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현란하게 춤을 춘다. 광장 너머 헐벗은 산과 ‘中朝邊境(중조변경)’이라는 붉은색의 글자가 시선을 압도한다. ‘중국과 조선, 나라의 경계가 되는 변두리 땅’. 북한과 중국, 러시아와 북한은 서로 두만강을 접경하여 국경을 그었다. 한국전쟁 당시 두만강은 한 번도 대한민국이 점령하지 못했던 강이기도 하다.두만강은 허옇게 질린 듯 꽁꽁 얼어붙었다. 학창 시절 역사책에서나 배웠던 두만강(豆滿江), 님을 싣고 떠나던 배는 어디로 가고 두만강 나루에는 눈만 소복이 쌓였다. 백두산 동쪽에서 발원한 두만강(총길이 약 521km)은 낙동강(약 510km)보다 길다. 강폭은 400~500m 정도로, 언 강을 도강하기에는 그리 어려워 보이지는 않는다. 한때는 두만강이 얼면 강을 건너는 탈북민들도 꽤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였을까. 북한 주민들은 ‘도망강’이라고 부르기도 했다.그러나 폭이 좁다는 것은 언 강을 도강하는 것은 가능할 수도 있겠지만, 얼지 않으면 물살이 세 위험하다. 그러니 강이 얼든 녹든 국경을 넘어 도강을 결심한다는 건 목숨을 담보해야 할 위험천만한 일이다.남양과 도문 사이에 놓인 도문대교가 보인다. 1933년 일제가 중국 동북 지방의 자원을 반출하기 위해 남양과 중국 도문 사이를 연결하는 철교와 인도교를 건설했다. 인도교는 코로나 이전에는 대교를 개방해 한가운데 ‘변계선’까지 갈 수 있도록 했다고 하나, 지금은 그마저도 차단된 상태다. 대교 입구를 자물쇠로 걸어 잠근 것도 모자라 쇠사슬로 칭칭 감아 단절된 나라로의 통행을 엄격히 제한하고 있다.나는 조금 더 가까운 곳에서 우리 땅, 북한을 보고자 두만강 변 철책까지 내려갔다. 날카로운 미늘이 촘촘히 박힌 철조망을 사이에 두고 시야를 뻗으니, 한겨울 칼바람이 몰고 온 날카로운 통증이 동공을 찌른다. 코끝이 찡하고 눈시울이 붉어진다.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할 것 같은데 어떤 처연함이 턱밑까지 고인다.강 넘어 배경처럼 놓인 헐벗은 산이 도문을 향해 덩그러니 앉았다. 그리고 함경북도 온성군 남양노동자구가 그 아래 가지런히 놓였다. 한참을 바라보아도 인기척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실향민들이 그토록 밟고 싶어 하는 땅,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우리의 영토다. 가만히 응시하던 내가 카메라 셔터를 누르려는 순간 낯선 손길이 어깨를 건드린다. 남자는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하며 손짓한다. 영문을 모르는 내게 일행들이 빨리 올라오라고 말한다. ‘아, 여기는 중국이지.’ 남자는 월북을 우려해 접경지까지 내려간 이방인을 저지하는 것이었다. 여기서 나는 오직 남조선 사람이다. 당황스럽지만 여기서 내 진심 따위는 필요치 않다.차를 타고 두만강을 따라 달린다. 강 건너 북한의 풍경이 굽이굽이 참으로 적막하다. 산기슭에 자리 잡은 나직한 집마다 자꾸 눈길이 간다. 사람은 사는지, 당장 땟거리가 없어 굶지는 않는지 모든 게 걱정이다. 헐벗은 산이며 그 아래서 겨울 저녁임에도 연기를 피워 올리지 못하는 굴뚝이 애잔하게 느껴지는 것은 나 혼자만의 연민인가. 무얼 싣고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지만 드물게 지나는 기차조차도 그저 반갑기만 한 두만강의 풍경이다. ◆일광산에 오르니 남양노동자구가 한눈에두만강 나루 인근에 있는 일광산에 오른다. 산을 넘어가는 바람이 제법 맵다. 전망대에 오르니 남양노동자구가 입체적으로 한눈에 들어온다. 5층 빌라가 즐비한 남양은 아주 정갈한 모습이지만 여전히 인기척이 없으므로 보여주기식 마을인가 의심마저 든다. 그때 길잡이 양진오 교수가 한 장의 사진을 보여주신다. 건물과 건물 사이 공터에 일고여덟 명의 아이들이 놀고 있다. 어디든 아이들은 해맑다. 전쟁터 건 병원이 건 아이들의 본성은 즐겁다. 멀리서나마 아이들이 무탈하게 자라기를 기도한다.우리 가요 중 ‘눈물 젖은 두만강’이라는 노래가 있다. 두만강 어딘가에서 다시 만나자고 약속하고 다시는 만나지 못한 사람들. 그들의 눈물은 이쪽과 저쪽을 구분 짓지 아니하였음에도 다시는 만나지 못했다. 강은 단순히 흐르는 물줄기만은 아닐 게다. 이산의 아픔을 품고 곧 다시 만날 날을 기약하며 많은 이들의 아픔을 토닥거렸을 게다. 두만강은 아득한 곡선을 돌아 여기에 이르렀고, 다시 곡선을 그리며 까마득한 아래로 흘러갈 것이다.계속글·사진/박시윤작가

2024-03-17

직접 보고 듣고 소통… 시민과 함께하는 의회 구현

“시민과 함께하는 의회, 참여하고 소통하는 민주의회를 만들기 위해 한분 한분의 작은 목소리에 귀 기울이겠습니다. 신뢰받는 의회를 만들고, 항상 연구하는 자세로 창의적인 자치의회를 구현해 나가겠습니다. 다양한 가치와 의견이 모이는 정책연대의 장으로 만들고, 의원 각자가 시민의 심부름꾼으로서 책임과 의무를 다하겠습니다. 한 걸음 더 시민 곁으로’ 다가가는 안동시의회를 만들겠습니다.”안동시의회가 추구하는 의정 목표다. 안동시의회는 진정한 민의의 대변자로서 시민의 행복을 책임지는 동시에 시민의 안전과 행복을 최우선 가치로 두고 있다.안동시의회의 구성을 살펴보면 총 18명의 의원들이 의장과 부의장을 중심으로 △의회운영원원회 △문화복지원원회 △경제도시위원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등에 소속돼 있다.이 중 문화복지원원회와 경제도시위원회가 의회 구성의 핵심이며, 이 두 개의 위원회에서 안동시의회 모든 의안과 정책들이 결정된다.이들 위원회는 제9대 안동시의회 시작과 동시에 안동시를 견제·감시하고, 시민들에게는 다양한 정책과 조례안, 5분발언, 건의안 등으로 건전한 풀뿌리 민주주의를 실현하는데 앞장서고 있다. □ 안동시의회 문화복지위원회안동시의회 문화복지위원회는 임태섭 의원을 위원장으로 손광영, 김경도, 권기윤, 김정림, 김호석, 안유안, 여주희 의원으로 구성돼 있다.이들은 안동시 4개실(기획예산실, 종합민원실, 공보감사실, 행정지원실)과 11개과(전통문화예술과, 관광진흥과, 문화유산과, 체육새마을과, 유교문화권사업과, 세정과, 회계과, 정보통신과, 사회복지과, 노인장애인복지과, 여성가족과), 1개 직속기관(보건소, 보건위생과, 감염병대응과, 건강증진과, 치매안심센터), 4개 사업소(평생학습원, 평생교육과, 안동문화예술의전당) 시립도서관, 시립박물관(전통문화콘텐츠박물관포함) 도산서원관리사무소, 하회마을관리사무소를 담당한다.□ 문화복지원원회 조례안 발의제9대 안동시의회 문화복지위원회는 개원 후 17개의 의원발의 조례안을 통해 시민들의 민의를 대변했다.또한, 안동시 집행부에서 올라온 안건에 대해서도 그냥 통과시키지 않고, 논란이 되는 부분은 직접 수정 의결하거나 의회 의견을 붙여 조건부로 의결하는 등 이전보다 더욱 적극적인 심의를 진행했다. 이는 의원 개개인이 집행부 조례 제·개정안의 심사 역할에 그치지 않고, 자치 입법기관 구성원으로서 심도있는 고민·탐구를 바탕으로 민의를 담은 조례를 연구·성안(成案)한 결과다. 이를 통해 시민 삶의 질을 높이는 생활밀착형 조례가 다수 만들어졌다.특히, 2023년도 행정사무감사를 통해 시정 문제점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고, 행정 오류에 대한 질타 대신, 집행부와의 소통을 통해 더 나은 정책 방향과 행정 운용 방안을 권고하며, 발전적인 조화를 이뤄냈다.집행부를 대상으로 하는 시정 질의에서는 행정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는 한편, 시민 행복 만족도 증진에 기여하는 지방행정 구현을 주문했다. 여기에 임시회와 정례회에서 개별 의원들은 연이어 5분 자유발언을 통해 안동시민들의 목소리를 집행부에 전하며 수준 높은 정책대안 마련과 실시를 집행부에 요구했다.이 밖에도 다양한 위원회 활동도 눈길을 끈다. 제9대 의회 개원 후 수시로 주요사업장 등을 대상으로 현장 방문을 실시해 문제점을 파악하고, 이를 지적하는 동시에 의회차원에서 대안을 모색하고, 집행부와 협의해 시민이 만족하는 의정활동을 펼치도록 노력했다. 아울러 지역 내 환경정화, 복지시설 방문, 소외계층을 위한 봉사활동 등을 추진해 단 한 사람의 시민도 소외되지 않도록 했다. □ 5분 발언을 통한 의정 활동안동시의회 문화복지위원회에 소속된 이원 개개인의 활동도 눈여겨 볼 만하다. 문화복지위원회 소속 의원들은 제9대 의회에서 다양한 5분 발언을 통해 안건과 대안을 제시했다. 이렇게 제시된 대안과 안건은 실제로 조례안으로 만들어져 시민 불편을 줄이거나 혜택으로 돌아갔다. 의원 개인별 5분 발언 내용을 살펴보면 먼저 임태섭 위원장이 총 3번의 5분 발언을 통해 △비반려인과 반려인이 함께 휴식하고 즐길 수 있는 반려동물 운동장 조성 △낙동강변 어린이 물놀이 시설 확충 △안동 강남초등학교 학교 복합시설 사업을 제안했다.이어 김정림 부위원장은 총 2번의 5분 발언을 통해 △옥수교에서 수하보 일대 수변 자원을 활용한 안동시 관광산업 발전 방안 △전기차 주차장 충전구역 화재 관련 제도적 보완과 선제적 대책 마련을 주문했다.손광영 의원은 △안동시 사회지표조사 개선방안 △지역 현실을 반영한 지방소멸대응기금의 효율적인 시책 방향 △한국정신문화재단의 기능과 운영 방향성에 대한 지역 문화단체들과의 간담회 제안 △미래 농업을 선도하기 위한 농업연동센터 구축방안 △안동시 공공계약의 투명성과 공정성 운영방안 △지방재정 정상화를 위한 체질 개선 촉구 △안동시와 안동시의회 간 갈등 해소 방안 등 7번의 5분 발언으로 여러 가지 정책을 제안했다.김경도 의원은 △전선 지중화 사업과 관련 문제점 제기 및 대안 제시 요구 △안동시의 전략적이고 건전한 재정 운영을 촉구 △기후 위기 속 지속가능한 문화유산 보호 방안의 필요성 △저출산 극복을 위한 정책 수립으로 지방소멸 출구전략 마련 등 4번의 5분 발언으로 안동시의 문제점을 지적했다.권기윤 의원은 △장애인 돌봄의 사각지대를 해소, 상시 돌봄 안전망을 형성하고, 부모들과 그 가족들이 ‘돌봄’이라는 감옥에서 벗어나 ‘나 자신’의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힘을 모아줄 것을 주장했다.김호석 의원은 △안동의 생태계를 위협하는 가시박 퇴치 촉구 △위대한 문자 훈민정음 해례본의 도시로서의 위상을 높이기 위한, 한글 도시 프로젝트 제안 등 2번의 5분 발언으로 안동의 환경과 농민, 훈민정음해례본의 도시라는 정신문화도시 브랜딩을 주장했다.여주희 의원은 △‘모든 사람은 건강하고 안전한 삶을 누릴 동등한 권리를 가진다’는 국제안전도시 공인 사업 △영호루에서 영가대교 남단까지의 경관 재정비 △기후 위기 속 물 관리를 위한 우리의 역할 재고 등 3번의 5분 발언을 통해 안동의 안전한 관광 환경과 문화유산, 수자원을 지키기 위한 시 집행부의 대책을 주문했다.안유안 의원은 △안동시 산하기관 기관장에 대한 인사검증제도의 필요성을 언급, 제240회 임시회에서 경북도 내 지자체 중에서 최초로 조례안으로 만들어졌다. 이는 지난 6일 안동시설관리공단 이사장 후보자를 대상으로 인사청문특별위원회가 구성되면서 처음으로 안동시 산하기관 기관장에 대한 청문회를 진행하는 효력을 발휘했다.□ 전반기 활동 목표제9대 의회 전반기는 이제 4개월의 시간이 남아있다. 이 기간 문화복지위원회 의원들은 비회기 중에도 지역 현안이나 숙원사업 해결을 위한 주민 간담회, 상담 등의 활동을 통해 주민밀착형 의정활동을 펼친다는 각오다.특히, 지방자치법 개정에 따라 인사권 독립, 정책지원관제도 도입 등 지방의회의 권한이 강화된 만큼 시민들께 더 신뢰받는 의정활동을 펼칠 수 있도록 정비하고, 다양한 교육프로그램을 마련해 동료의원들이 한 층 더 전문화된 역량을 갖출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는 목표다.임태섭 위원장은 “안동시의회 문화복지위원회는 안동시민들을 위해 초심을 잃지 않고 시민의 곁에서 항상 시민과 함께한다는 생각으로 활동하겠다”며 “올해도 집행부에 대한 견제와 감시를 통해 의회 본연의 임무에 충실하면서도 지역 현안의 성공적인 추진을 위해 소모적인 갈등은 지양하고 안동시 집행부와 협력하는 의회가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피현진기자 phj@kbmaeil.com

2024-03-13

솔향 품은 거대한 몸, 하늘 향해 뻗은 단아한 육솔

“노거수 아래 낮잠을 자는 나를 보았다. 단잠을 자고 있는데 누가 부르는 소리를 듣고 얼떨떨한 정신에 눈을 떴다. 백두산 호랑이 한 마리가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주변 사람들이 이제 호랑이로부터 도망도 못 치고 큰일이 났다며 어쩔 줄 몰라 했다. 그러나 왠지 모르게 두려움보다는 친근감이 갔다. 호랑이는 긴 꼬리를 흔들며 등에 올라타라는 시늉을 했다. 호랑이 등은 참으로 포근했다. 호랑이는 천천히 산의 능선을 오르내리면서 산천을 주유하며 아름다움을 만끽하게 하였다.”동물의 왕국에서나 볼 법한 호랑이의 등에 올라탔다니, 호젓한 산중 고찰 뒤편 산신각 벽화에 그린 할아버지와 호랑이가 생각났다. 참으로 실제와 같은 묘한 단꿈을 생각하면서 문경 청화산 자락에 있는 농암면 화산리 942번지 제292호 천연기념물 반송 노거수를 찾았다.계곡 깊숙한 곳에 숨어있기라도 하듯이 반송은 늠름한 자태로 청화산 등산로 초입에 방문객을 맞이하고 있었다. 깊은 산속의 적막을 깨뜨리는 것은 청화산 자신이었다. 소란스럽고 시끌벅적한 것이 싫어서 조용하고 한적한 산을 찾아 힐링하고자 하는데, 때 아닌 겨울 산, 자신 몸에서 흘러내리는 청아한 개울 물소리와 나뭇가지에서 내는 솔바람 소리는 무한한 침묵에 대항하는 듯했다.그러나 산중의 물소리와 바람 소리는 인간이 만든 그 어떤 악기보다 아름답게 들려 그 무엇보다 힐링이 되었다. 솔향 품은 거대한 노거수를 카메라 렌즈에 담을 때 갑자기 개울에서 후닥닥하는 소리와 함께 고라리 한 마리 놀란 듯 쏜살같이 숲속으로 사라졌다. 지난 단꿈 생각과 함께 얼굴에는 엷은 미소가 떠올랐다. 푸른 솔가지에 매달아 놓은 오방색 띠가 무엇을 뜻하는지는 몰라도 겨울바람에 흩날리는 모습이 반송의 손에 쥐어진 장난감으로 생각되었다. 높은 산봉우리 시루봉 큰 바위 2개가 내려다보고 있었다. 소나무의 안위가 염려되어 높은 곳에서 경계를 서고 있는 것일까. 계곡물 합류 지점에 사는 반송은 넘쳐나는 계곡물에 언제 떠내려갈지 목숨이 위태롭다는 느낌이 들었다.어릴 적 홍수 때에는 목숨이 간당간당 했을지도 모른다. 형제처럼 주변에 세 그루의 동생 소나무 노거수를 데리고 있었다. 그들 나이도 300년은 훌쩍 넘었다. 계곡물에 휩쓸려 떠내려가지 않으려 뿌리 손은 계곡 언덕의 바위를 꽉 부여잡고 있었다. 푸른 이끼는 얼싸 좋다 하고 반송의 몸에 착 달라붙어 함께 살아가고 있었다. 참으로 묘한 공생의 동거를 하고 있었다.산중에 살아가는 반송 노거수는 자연이 창조한 예술 작품이다. 노거수의 아름다움을 칭송하지 않을 수 없다. 첫째, 높이 솟은 노거수 나뭇가지 곡선의 자유로움에서 무한한 곡선미를 느낀다. 둘째, 겨울임에도 전시장 벽에 걸린 한 폭의 그림과 같은 푸름의 미를 감상할 수 있는 것은 소나무만이 가능한 일이다. 셋째, 몸의 수피에서 느끼는 연륜의 미는 존경하는 스승과 진배없다. 넷째, 우산처럼 치렁치렁 늘어뜨린 솔가지의 균형과 조화미는 안정감을 주어 마음을 편안하게 한다. 다섯째, 거대한 몸을 지탱하기 위하여 땅을 파고든 뿌리의 강인함에서 보는 끈기의 미는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여섯째, 하늘을 향한 붉은 줄기와 단아한 수형에서 나오는 절제의 미를 느낀다. 산중 자연에서 살아가는 반송의 노거수를 여섯 가지의 미를 상징하여 육솔(六松)이라 부르면 어떨까. 옛 이름도 되찾고…,문화와 예술은 무어라 하여도 자연의 미를 최상으로 여긴다. 인공으로 창조한 미는 어딘가 모르게 좀 부족한 부분을 느낄 수 있지만, 자연의 미는 어디 하나 흠잡을 때 없다. 문화와 예술은 삶을 윤택하게 하고 마음을 순화시키고 맑게 해 준다.누군가 말했다. “이 지구상에서 가장 위험한 적은 인간이다. 오직 인간만이 인간을 제어할 수 있다. 이제 이 지구상에는 생물학적으로 인간을 위협할 종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위험한 인간을 인간답게 승화시키는 것은 문화와 예술이다.” 그렇다, 문화와 예술은 사회를 건강하게 하고 궁극적으로 인간을 인간답게 만든다. 이런 면에서 산림 자연을 대상으로 하는 산림 문학은 예나 지금이나 우리의 삶을 살찌게 한다. 특히 노거수는 문학 작품의 대상 이전에 우리에게 가르침을 주는 스승과 같은 존재이다.화산리 천연기념물 육솔의 노거수도 해코지하면 천벌을 받는다는 설화를 가지고 있다. 설화도 하나의 문화이며 문학이다. 실제 경험을 과장하였든지 아니면 상상으로 지어낸 허구는 세상에서 매우 가치 있는 것이기 때문에 문학은 인간을 감화시킬 수 있다. 말하자면 사회생활의 정신이자 기술로, 인간의 정신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 볼 때 허구 없이는 어떤 예술이나 재능도 완성될 수 없다. 만일 우리가 누군가를 기쁘게 해주거나 감동시키고 싶다면 우리가 줄 수 있는 것 이상으로 진심이 담긴 믿음을 주어야 한다. 자연 그 자체는 인간이 삶에 대해 호감을 느끼고 인내하도록 만든다. 노거수 설화 속에 담긴 금기 사항이나 지향하는 마음은 아름다움으로 향하는 길이다. 나무를 보호하는 것으로 아름다움을 마음속에 담을 수 있다. 영적 요소의 존재는 미의 완성에 불가결하다.나무 보호는 자연 사랑으로 이어져 공생의 길을 터놓았다. 그리고 세월이 만들어 놓은 소나무의 다양한 미는 우리가 지향하는 미의 결정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자연의 자연스러운 행위는 아름답기 때문이다. 또한 노거수를 보고 있으면 황홀감에 빠진다.인간이 창조한 작품은 아무리 오랫동안 작업을 해도 작가의 한 생애에 끝이 난다. 그러나 나무의 아름다운 미는 수백 년 동안 이루어 놓은 자연의 작품이니 비교할 수 없다. 자연의 물상을 자각하는 것만으로도 기쁨이요, 충만이다. 아름다움은 조화와 균형 속에 있다. 사계절이 한 해를 가득 채운다. 인간의 마음에도 사계절이 있다. 육솔의 노거수를 보면서 봄의 문턱에서 깨끗한 겨울의 상념들을 달콤하게 새김질해 본다. 노거수와 함께 전하는 설화육솔 노거수는 징벌담의 설화를 가지고 있는 노거수로 키 24m, 가슴 높이 둘레 5.1m, 나이 400살 훌쩍 넘어섰다. 나뭇가지가 여섯 개라서 육송이라고도 불렀다.노거수에 대한 고사와 설화는 여러 유형으로 구분해 이해할 수 있다. 식목담(植木談)은 마을을 개척한 사람이나 역사적으로 관련이 있는 사람이 심었다는 노거수에 대한 고사이다.이인계시담(異人啓示談)은 꿈속에 낯선 사람이 나타나 계시하는 대로 이행하면 반드시 유리한 상황이 전개된다는 노거수 설화이다.현몽담(現夢談)은 당산나무에 꿈 이야기가 부가되어 있는 것으로 꿈속에 목신이 나타나 인간에게 계시하는 것으로 사람과 대결한다거나 괴질을 물리친다는 노거수 설화이다.풍수담(風樹談)은 풍수지리설이 포함된 노거수 설화이다.환생담(還生談)은 사람이나 동물이 죽은 후 나무로 환생하여 신앙의 대상이 되거나 신성시되는 설화로서 징벌담과 마찬가지로 노거수의 설화로서 빈도가 높다. 하나의 노거수에 고사와 설화를 복합적으로 포함하는 경우도 많다./글·사진=장은재 작가

2024-03-13

‘파묘’하자 벌어진 기이함… 천만 관객 부른다

장재현 감독이 연출한 영화 ‘파묘’의 관객 동원력이 무서운 기세로 속도를 더하고 있다. 이른바 파죽지세(破竹之勢). 마른 대나무가 쪼개지는 형국이다. 개봉 20일을 넘긴 이 영화를 관람한 사람이 벌써 820만 명에 육박했다.인구가 5천만 명 남짓한 나라에서 특정 영화 한 편을 1천만 명 이상이 관람하는 ‘기이한(?) 현상’은 이제 한국에선 드문 일이 아니다.“일부 상업영화를 과도하게 많은 스크린에서 독점 상영함으로써 예술·독립영화는 설 자리를 잃고 있다”는 비판이 없지 않지만, 그런 목소리는 ‘최대치의 이익 획득’이 지상 목표인 자본의 논리 속에서 힘을 얻지 못한다.영화는 이제 예술이 아닌 산업의 범주에 속한다는 걸 누구도 부정하기 어렵다. 그러니, 세칭 ‘천만 영화’는 앞으로도 끊임없이 생겨날 게 명약관화해 보인다.그게 무엇이건 대중이 환호를 보내는 것에는 이유가 있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곧 ‘천만 영화’라는 타이틀을 달 것이 분명한 ‘파묘’에는 어떤 매력이 있기에 적지 않은 영화팬들이 극장을 찾는 것일까?이런 궁금증 속에서 기자도 지난 주말 영화관을 찾았다. 최민식, 유해진, 김고은 등 연기라면 여타 한국 배우 누구에게도 빠지지 않는 출연진들의 호연(好演)은 보기 전부터 예상이 가능했고, 실상도 그러했다.하지만, 그것뿐일까. 그렇지 않을 듯했다. 영화는 배우의 연기와 감독의 연출력, 거기에 더해 핍진성과 드라마틱한 구성, 전달하려는 메시지의 설득력까지를 갖춰야 비로소 ‘좋은’이라는 명패를 얻어낼 수 있다.아래에서 영화 ‘파묘’를 형성하고 있는 주요한 몇 개의 골자, 즉 키워드를 세세하게 살펴보고자 한다.이를 통해 이미 영화를 본 이들에게는 다시 한 번 작품을 되새김질하는 시간을 제공하고, 아직 ‘파묘’를 보지 않은 관객들에겐 관람에 유용한 사전 정보를 알릴 수 있을 듯하다.한 개인이 관람 후 영화에 관해 이야기하는 건 지극히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 허니, 타자의 해석이나 제공되는 정보와는 별개로 영화를 보고, 보지 않는 건 개인의 선택이다. ◇묘를 뒤집다… 파묘(破墓)파묘의 사전적 의미는 ‘옮기거나 고쳐 묻기 위해 무덤을 파내는 행위’. 봉건적 유교 질서가 여전히 강위력한 힘을 발휘하는 한국 사회에서 조상의 유택(幽宅)을 건드린다는 건 일종의 터부다.고대 중국 왕의 무덤과 신라와 조선의 왕릉은 그 규모와 부장품에서 인간들을 압도한다. 진시황이 묻힌 병마용갱과 경주의 거대한 봉분을 떠올려보라.비단 왕릉이 아니라도 선대 어른이 ‘영원한 잠에 들어 있다’고 믿는 무덤을 파헤치는 건 어지간해선 하지 않아야 할 짓이란 게 동양적 정서다. 여러 명의 왕 아래서 왕 이상의 권력을 행사하며 승승장구했던 조선 전기의 실권자 한명회는 연산군에 의해 부관참시(剖棺斬屍) 된다.‘부관참시’란 살아있을 때 단죄하지 못한 죄를 물어 사후에 무덤을 뒤집고 시체를 꺼낸 뒤 백골의 목을 자르는 형벌.후손들은 이 벌을 살아있는 사람의 목을 치는 것보다 더 치욕스럽고 고통스럽게 여겼다. 조상의 삶이 온전히 부정당했다고 느꼈기 때문.그래서다. 아직도 이 나라에선 파묘와 이장(移葬·무덤의 위치를 옮기는 것)은 대단히 조심스럽고 가능하면 하지 않아야 될 금기에 가깝게 인식되고 있다.헌데, 장재현 감독은 이런 터부 혹은, 금기를 용감하고 흥미롭게도 제목으로 사용한다. 과학과 미신 사이에 존재하는 ‘그 무엇’에 촉수를 가져다댄 것이다.할아버지가 지은 죄가 아들에 이어 손자와 증손자에게까지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파묘’의 영화적 설정. 그 업보를 끊기 위해선 ‘파묘’의 방법밖에는 없다는 위기감을 조성하며 영화는 시작된다. ◇하늘과 땅을 잇는 여자… 무당(巫堂)이전 작품들에서 그랬듯 배우 김고은은 ‘파묘’에서도 발군의 연기력을 선보인다. ‘파묘’에선 어둡고 눅눅한 숲 속 당집이 아닌 환하게 불 밝힌 헬스장에서 다이어트에 몰두하는 신세대 무당 역할을 맡았다.‘무당(巫堂)’의 한자는 대나무를 매개로 하늘과 땅과 인간을 연결하는 모습을 하고 있다. 옛날 무당이 거주하는 집에 마른 대나무가 꽂혀 있는 모습을 기억하는 이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근데, 영화 ‘파묘’에선 그런 고전적인 무당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김고은은 우리가 미신이라 부르는 힘을 사용해 과거를 찾아내고 현재를 진단하며 미래를 예측한다. 오갈 데 없는 천생 무당이다.그럼에도 ‘무당’ 김고은이 벌이는 굿과 퇴마의식은 휘황한 사이키 조명이 어지럽게 돌아가는 서울 강남의 클럽에서나 볼 수 있는 춤과 유사하다. 영화적 재미는 배가되지만, 리얼리티는 훼손된다.영화 ‘파묘’는 한 세기 전 벌어진 한국 역사의 비극. 그 비극이 21세기에 이르러 한 집안을 파국 직전까지 몰고 가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는다.조상의 죄로 인해 대신 벌을 받는 후손들. 그 죄와 벌의 연결고리를 끊어낼 역할을 맡아 거액의 돈을 받아 챙긴 ‘젊은 무당’은 ‘하늘과 땅, 인간을 이어주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에게 그만한 힘이 있기는 한 걸까? 이런 의문을 부르며 ‘파묘’는 절정으로 접어든다. ◇왕도 두려워했다?… 지관(地官)배우 조승우가 빼어난 지관으로 등장하는 ‘명당’이란 영화가 있다. 조선의 마지막 100년을 지배했던 안동 김씨 가문의 위세가 조상의 묫자리를 잘 썼기 때문이라는 설정. 국립민속박물관은 지관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풍수론에 기반해 집터와 묘터를 정하거나 길흉을 평가하는 사람. 중국과 한국에서 풍수지리가 오랫동안 성행하면서 고려시대부터 다수의 지관이 활동했다. 나말여초의 도선(道詵), 조선 초기의 무학(無學), 조선 중기의 남사고(南師古) 등은 한국의 유명한 지관으로 민간설화에도 곧잘 등장한다.”실제로 과학의 발전이 오늘만 못했던 시절엔 조상의 묘를 잘 쓰면 권력과 돈을 불러올 수 있다고 믿었다. 놀랍게도 ‘합리성의 시대’라 불리는 지금도 그걸 믿는 이들이 적지 않다고 한다.고대 왕국의 도읍을 정할 때와 왕과 귀족이 매장될 무덤을 찾을 땐 지관이 융숭한 대접을 받았다. 왕도 자신의 아버지 묫자리를 찾을 땐 지관을 두려워했을 정도.‘파묘’에선 최민식이 지관으로 분한다. 때론 코미디언처럼 능청스럽고, 때론 엄정한 스승처럼 진지한 모습을 연기한 최민식은 영화의 흥미를 끌어올리는 역할을 손색없이 해낸다. 베테랑답다.그러나, 이것 하나는 옥에 티. 돈맛을 누구보다 잘 아는 현실주의자 지관에서 갑작스레 우국지사(憂國之士)형 지관으로 변신하는 이유가 불확실하고 모호하다. 그럼에도 영화 ‘파묘’는 결말을 향해 쉼 없이 달린다.◇획죄어천 무소도야(獲罪於天 無所禱也)‘논어(論語)’는 공자와 그의 제자들 사이에서 오간 이야기를 담고 있다. 50대 이상의 중년들 중 몇몇은 이 책에서 인간 행위의 근본과 세상을 지탱하는 질서를 찾기도 한다. 기자 역시 그런 사람 중 하나다.바로 그 ‘논어’에 이런 문장이 쓰여 있다. ‘획죄어천 무소도야(獲罪於天 無所禱也)’. 무슨 말이냐고? “하늘에 죄를 지으면 숨을 곳이 없다”는 뜻이다. 영화 ‘파묘’가 중반부를 넘어서면서부터 내내 이 문장을 떠올린 이가 기자 하나만은 아니었을 것이라 생각한다.인간이 가진 재주와 능력은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해 사용될 때 그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는 법이다. 다른 사람을 위태롭게 하고, 나아가 국가를 망친다면 그따위 재주와 능력은 차라리 없는 게 낫다.장재현이 연출하고, 최민식과 김고은이 출연한 영화 ‘파묘’는 엔딩 크래딧이 올라오기 전 조용히 관객들에게 속삭인다.“하늘에 죄를 지으면 숨을 곳이 없다”고. ‘하늘’은 동시대를 살아가는 이웃과 그 이웃들이 발 딛고 선 땅의 다른 이름이다./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2024-03-12

포항 화장장 한계치 도달… 죽어서도 묻힐 곳 걱정이네

#1 포항시는 우현화장장(화장로 3기)과 구룡포 화장장(1기), 2곳의 시립화장장을 운영 중이다. 1941년과 1978년에 처음 지어져 올해 각각 83년, 46년째를 맞는다. 총 4기의 화장로는 하루에 4회 씩, 최대 총16회까지 가동이 가능한데 현재 하루 평균 14.6회의 화장이 이뤄져 사실상 포화상태다.#2 특히 우현화장장은 몰려드는 화장 수요를 감당하기 위해 예비 화장로 없이 3기의 화장로가 설과 추석 당일만 제외하고 363일 풀가동하고 있다. 리모델링을 거쳤다지만 협소하고 노후화된 시설은 포항의 도시 규모와 위상에 비해 심각하게 낙후됐다. 이를 안타까워하는 시민들과 화장장 이용객들은 ‘새 화장시설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3 포항의 화장률은 해마다 급증해 지난 2017년 79.1%에서 2022년 92.9%로 전국 평균 91.5%보다 높다. 또한 포항은 올해 1월 기준 65세 인구가 전체의 21%를 넘어 초고령화 사회에 이미 진입했다. 특히 포항의 면 지역은 65세 이상 43%로 사실상 ‘절반이 노인’이다. 이에 따라 코로나19가 한창이던 2022년 3~4월경 4~5일 장을 겪는 사례가 이미 있었는데, 오는 2028년이면 한계치 도달로 상시 4일장이 우려되고 있다. 현재 대한민국은 ‘화장(火葬)절벽’이 다가오고 있다.수도권을 중심으로 가족이 세상을 떠나도 화장할 곳을 찾지 못해 인근 지역으로 ‘원정화장’을 가는 실정이며, 대구·부산 등 광역시 역시 예외는 아니다.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18년부터 2022년까지 4년간 국내 화장인구가 8만2,781명(25만9347명→34만2128명) 증가할 동안 전국의 화장장은 2곳(60→62개), 화장로는 35개(347→382개)증가하는데 그쳤다. 향후 증가될 화장 수요를 분석하면 화장장의 능력을 초과하는 화장 수요가 2028년부터 발생하며 그 격차는 갈수록 더 커질 전망이다.현대화된 화장시설 건립이 시급한 포항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앞서 열거한 사실에서 확인되듯 열악한 사정으로 인해 포항 시민을 최대한 우선적으로 화장하고, 인근 시군의 화장 의뢰를 접수받고 있는 실정이다. 봉안시설이나 자연장 등 공설시설이 없는 포항에서 유가족들은 고인을 모시는 장소의 선택지가 없어 사설 종교 봉안시설을 찾아야 하는 현실이다.고인을 위해 보다 좋은 장소를 찾기 위해서는 타 시군의 장사시설을 알아봐야 하는데, 해당 시군의 화장 및 안치료보다 최소 3~8배의 비용을 부담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이에 따라 포항시는 장묘문화의 시대적인 변화를 반영하고 새로운 장사시설을 설치하기 위해 추모공원 건립을 역점 사업으로 추진중에 있다.시가 지난해 9월 부지를 공개 모집한 결과 7개 마을(구룡포, 장기2, 동해, 연일, 청하, 송라)이 신청해 화장장에 대한 시민들의 변화된 인식이 반영된 가운데 올해 상반기 내 최종 부지를 선정한다는 계획이다.포항시는 추모공원을 문화와 휴식, 첨단 기술이 융합된 ‘명품장례 문화공원’으로 조성한다는 계획이다. 특히 기피시설이라는 주민들의 오랜 고정관념과 막연한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 ‘친환경적(무연·무취·무색)’이고, ‘원스톱 장례서비스(장례~화장~봉안~추모)’를 제공하는 문화예술 연계공원으로 조성한다는 복안이다.부지면적 33만㎡ (10만평)의 80%를 시민을 위한 공원화 공간으로, 나머지 20%를 유족을 위한 장례식장, 화장·봉안시설, 자연장지, 유택동산 등으로 구성한다.세부적으로는 장사시설과 함께 사색의 숲, 트레킹 코스 등 테마별 공원과 인문학적 전시관의 문화공간, 메타버스, 홀로그램, AI기반 자동시스템의 4차 산업과 융합하는 첨단 공간으로 조성한다. 특히 포항시는 총 210억 원의 대규모 인센티브로 유치 지역 주민 지원 및 지역 경제 활성화까지 적극적으로 강구하고 있다. 추모공원 부지로 선정된 마을(리)에는 기금 40억 원, 화장시설 사용료 징수액 20%를 30년간 지원하고 주민 일자리도 제공한다. 또한 유치된 읍면에는 기금 80억원, 주민편익 및 숙원사업 45억원 규모를 지원한다.공모에 탈락한 지역에도 주민 위로와 화합 차원에서 3억~5억 원 상당의 숙원사업을 지원할 계획이다. 아울러 선정된 주변지역에는 땅값하락 등을 염려하는 주민들을 위해 파크골프장 건립 및 운영권 등 다양한 지역경제 활성화 방안을 강구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시는 장사시설이 더 이상 혐오시설이 아닌 주민 필수시설이자 복지시설이라는 점을 인식시키기 위한 노력 역시 꾸준히 해왔다.세종시의 추모공원인 은하수공원 등 선진지 견학, 후보 지역 주민 대표와 상생 협약 체결, 세계 추모공원 사진전시회 등을 통해 새로운 장례 문화 의식을 공유했다. 또한 과거 읍면지역에서만 했던 주민설명회를 올해 초부터는 동 지역까지 확대 실시하는 등 전 시민적인 공감대 확산에 주력하고 있다.이강덕 포항시장은 “추모공원은 시민 삶에 반드시 필요한 생활필수시설로 더 이상 건립을 미룰 수 없다”면서 “추모공원의 정확한 정보를 시민들에게 제공하고, 적극적인 소통을 통해 명품장례 문화시설로 건립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이시라기자

2024-03-10

산사와 마을에 핀 ‘봄의 전령’ 매화 찾아 떠나는 망중한

매화는 봄을 알리는 꽃이다. 매서운 추위를 뚫고 피어 강인함과 지조를 상징하기도 하고, 기품 있는 자태로 고고함을 대표하기도 한다. ‘세한삼우(歲寒三友)’라 하여 소나무, 대나무와 함께 절개를 상징하기도 한다. 봄의 상징과도 같은 매화가 전남 순천의 산사와 마을에 수줍게 피었다. 어느덧 봄이 성큼 다가온 것 같다.매화에 관한 우리 민족 최초의 기록은 삼국사기 고구려 대무신왕 24년 항목이다. 삼국유사 제3권 아도기라(阿道基羅) 맨 끝부분엔 “모랑댁(毛郞宅) 매화꽃 먼저 피게 하였네”라는 글이 나온다. 매화가 당시 귀족들 사이에 정원수로 심어지고 있었음을 말해준다. 여러 세기에 걸쳐 매화는 귀한 꽃으로 대접받았다.날이 아무리 변덕스러워도 이제 봄이다. 봄의 전령 매화를 찾아 봄나들이를 떠나보면 어떨까? ◇선암사의 선암매와 금둔사의 납월매이른 봄, 글 읽는 선비들이 도포 자락을 날리며 매화를 찾아나서는 여행을 ‘탐매(探梅)’라 했다. 매화 핀 경치를 찾아가 구경하는 탐매는 그저 보고 즐기는 것을 넘어 애틋하고도 간절한 마음이 담긴 여행이다. 사군자 중에서도 매화를 맨 앞에 두었으니, 혹독한 겨울을 지나 도도하고 단아한 자태를 드러낸 매화 한 송이는 고매한 군자를 대하는 것과 같았으리라.순천 매화 여행의 시작지는 선암사다. 선암사의 매화는 ‘선암매’라는 특별한 이름으로 불린다. 수백 년 동안 꽃을 피워낸 고목이 천연기념물 제488호로 지정돼 있다. 매서운 겨울 추위를 견디고 꽃망울을 터뜨리는 매화나무들이 종정원 담장을 따라 고운 꽃그늘을 드리우며 만개했다.매화가 핀 또 다른 산사는 금전산(金錢山) 금둔사(金芚寺)다. 금둔사는 순천의 대표적 사찰인 선암사나 송광사에 가려진 한적한 사찰이지만 ‘봄’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곳이다. 금둔사 곳곳에 피는 소담한 매화나무들 때문이다. 금둔사의 매화는 ‘납월매’라고 불린다. ‘납월’은 음력 섣달(12월)을 뜻하는 말로, 그만큼 일찍부터 꽃망울을 틔운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실제로 남도에서도 가장 일찍 피어나는 매화나무 중 하나라고 한다.‘납월홍매’라고 불리는 분홍빛 홍매화들은 이르면 1월부터 꽃을 피우기도 한다. 홍매화가 지기 시작하면서 하얀 팝콘 같은 청매화들이 톡톡 올라온다.선암사와 금둔사만으로 만족하지 못한다면 추천할 만한 곳이 순천의 대표적인 관광지인 낙안읍성이다. 성안에 300여 동이 넘는 초가가 옹기종기 모여 있는 낙안읍성에는 곳곳에 매화가 있다. 낙안읍성의 매화는 자연 속에서 저 홀로 피는 게 아니라 마을과 사람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피고 진다. 낙안읍성의 매화는 초록 기운 가득한 밭 두둑에서, 초가지붕의 민가 마당에서, 봄비에 젖은 장독대 곁에서 핀다. 매화와 함께 노란 산수유도 함께 핀다. 여기서 보는 매화는 나무 한 그루, 꽃 한 송이만 따로 보는 게 아니다. 매화가 피어서 비로소 완성하는 봄의 풍경을 총체적으로 감상하는 게 요령이다. ◇탐매마을에 화사하게 핀 홍매화깊은 산사에만 매화가 있는 것이 아니다. 전남 순천 원도심 골목의 오래된 주택에 홍매화 두 그루가 의연하게 서 있다. 산사의 매화도 아직 절반밖에 피지 않았는데 이곳 홍매화는 이미 만개해 마을을 분홍빛으로 물들였다. 홍매화가 핀 집은 ‘홍매가헌(紅梅佳軒)’이란 현판이 달려 있다. ‘붉은 매화가 아름다운 집’이란 뜻이다. 순천대에서 정년퇴직한 김준선 교수가 3대를 이어 살고 있는 집이라고 한다.해마다 일찍 피어 그윽한 향기를 뿜는 김 전 교수 집 정원의 두 그루 홍매나무가 알음알음 알려지면서 마을의 값진 자원이 됐다. 두 그루의 홍매나무를 중심으로 순천의 원도심 매곡동에 ‘탐매(探梅) 마을’이 조성됐다. 이름처럼 ‘매화 핀 경치를 구경하는’ 마을이다. 남도 땅에 매화 한두 그루 없는 동네가 있을까. 하지만 매곡동 매화는 존재감이 남다르다. 두 그루 홍매화에서 시작한 꽃불이 동네에 심은 매화나무로 옮겨붙게 된 것이었다. 마을 곳곳에는 홍매화가 피고, 골목마다 미술 마을 프로젝트로 그리거나 설치한 매화 그림, 조형물이 들어섰다.똑같은 꽃이라도 봄에 저 홀로 이르게 피는 것은 얼마나 귀한가. 여린 꽃이 알리는 봄의 도래는 또 얼마나 감동적인가. 매곡동 주택가의 홍매화는 별일 아니라는 듯이 진작 붉게 피어나서 절정으로 치닫고 있다. ◇순천복음교회의 매혹적인 매화정원순천시의 외곽 왕지동에 있는 순천복음교회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매화 명소가 있다. 교회에 웬 매화인가 싶겠지만 교회 마당에 연못과 개울을 놓고 매화정원을 조성했는데 그 모습이 가히 장관이다. 매화정원은 2년 전 순천복음교회를 은퇴한 양민정 목사가 30년에 걸쳐 조성한 곳이라고 한다. 교회 정원에는 동백과 소나무, 산다화 등 300여 그루의 나무가 있다. 그중 절반이 매화나무다.대형 수목원이나 매실 농장에다 대면 규모가 크지 않아 실망할 수도 있겠지만, 막상 매화정원에 들어서서 은은한 매화향을 맡으며 꽃을 감상하다 보면 이른 봄을 누리기에 이만한 호사가 또 있을까 싶은 생각이 절로 든다. 매화는 고즈넉한 절집에 어울린다 싶었는데, 로마네스크 양식의 교회와도 썩 잘 어울린다.매화에 대해 지식이 부족한 이들도 쉽게 구분할 수 있도록 홍매, 백매, 청매, 오색매 등 명패를 붙여 놓았다. 매화가 15종이나 된다고 한다. 그중에서도 가장 흥미로운 것이 꽃받침이 초록색을 띤 청매다. 흑매는 홑겹의 붉은 꽃이 너무 붉어서 검게 보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수령 100년이 넘는 고매(古梅)도 있다. 정원에 있는 고매만 38그루나 된다. 강원 영월에서 가져왔다는 복음매와 전남 영암에서 데려왔다는 백매, 장흥에서 가져온 홍매는 모두 수령이 200~300년은 족히 넘는 늙은 매화다.매화의 종류가 많다 보니 이제 겨우 움이 튼 것도 있고 벌써 만개해 화사해진 것도 있다. 매화정원의 매화들이 만개할 때는 3월 초라고 하니 공들여 찾아가도 결코 실망하지 않을 듯하다.순천 월등면에는 매실 농장으로 가득한 산골 마을이 있다. 대표적인 곳이 계월리 향매실 마을이다. 봄이 무르익으면 마을 전체에 ‘꽃 사태’가 난다. 월등면의 매실 밭은 주로 평지에 펼쳐져 있어 비탈에 자리잡은 섬진강변의 매실농원 풍경과 닮은 듯 다르다. 산자락을 따라 자리한 마을이 하얀 매화로 구름바다를 이루는 듯하다. 월등면의 매화는 섬진강 매화가 시들 무렵부터 피기 시작하니 늦은 봄나들이에 딱 좋은 곳이다./순천=글·사진 최병일 여행전문기자

2024-03-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