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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ㆍ특집

“확실한 시추결과 나온다면 포항이 거점 될 가능성 가장 커”

경북 지역은 석유 가스 매장, 인구 소멸, 지역 균형 발전, 지속가능한 발전, 지역경제 활성화 등 해결해야 할 다양한 이슈로 넘쳐나고 있다.지난 20일 포항이 포항 기회발전특구에 지정되면서 포항 현안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이 더욱 집중되고 있다.특히 포항 영일만 유전에 대한 이슈는 한동안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경북매일은 창간 34주년을 맞아 경북매일 본사 회의실에서 최병일 편집국장과 김진홍 포항지역학연구회 연구위원이 경북지역 산업·경제 현안에 대해 진단해 보는 자리를 가졌다. 포항지역의 다양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들을 살펴보고 미래 포항이 가야할 길을 알아본다.순서① 포항 영일만 석유가스… 포항경제에 미칠 영향② 경북 지역 인구 소멸… 해결해야 할 과제는③ 포항의 지속가능발전을 위한 방안은④ 포항이 글로컬 도시로 발전하기 위해서는⑤ 한국 경제의 미래는… 포항이 나아가야 할 길 - 윤 대통령은 지난 3일 포항 영일만 앞바다에 140억 배럴의 석유와 가스가 매장돼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물리 탐사 결과를 발표했다. 포항이 뉴스의 중심에 섰는데 이번 석유가스 발표가 포항 경제에 미칠 영향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지.△우선 긍정적인 영향으로 본다. 석유 유전 자체(소유권)가 포항하고 관련도가 0%라도 대상 영해는 포항에서 가장 가까운 곳이다. 확실하게 시추 결과가 나오면, 적어도 그 유전을 안정화시키고 개발하고 상업·생산에 이르기까지의 준비 등을 위한 전진기지는 포항이 거점이 될 가능성이 제일 높다. 그다음 포항만 놓고 볼 게 아니라 동해안을 놓고 본다면 포항보다는 울산이 직접적인 수혜를 받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산업 연관 분석의 파급효과를 생각하면 단순히 철강 별개, 석유·화학 별개가 아니라 석유·화학이 잘 나가거나 자동차가 잘 나가면 후방에 있는 철강 자재의 수요가 같이 늘어난다. 다만, 그런 효과 자체가 유전하고 다이렉트로 연결되는 건 거의 없지 않을까 생각한다.- 부정적인 효과는 이미 벌써 나타나고 있다고 한다.△첫 번째는 대통령이 조금 섣부르게 발표를 한 것 같다. 나름대로 좋은 소식이고 근거가 있는 소식이다 보니까 아마 마음이 급했던 것 같다. 시추 승인정도야 산업자원부 장관 정도 선에서 결재하고 끝내도 되었을 것 같은데, 시추가 제대로 된 후 좋은 소식이 나왔을 그때 대통령이 발표했으면 더 좋았을 것 같다. 어쨌든 정부가 푸시를 하거나 조금 도움을 줘 시추 승인까지 온 단계로 봤을 때, 그 공이 현 정부에 있다고 본다면 국면 전환용으로 아마 했지 않았을까 싶다. 그런데 문제는 예측 단계하고 물리 탐사, 시추 단계에서의 가능성 추정은 갭이 너무 크다. 정부는 2026년까지 시추 작업을 통해 실제 매장 여부를 확인할 계획이다. 1단계인 물리 탐사 결과가 나온 만큼, 2단계인 탐사시추를 진행한다. 실제 석유와 가스가 존재하는지, 실제 매장 규모는 얼마나 되는지 확인하는 것이다. 최소 다섯 개의 시추공을 뚫어야 하는데 한개당 1000억원이 넘는 비용이 들어간다. 총 5000억원이 거론되는데 나오기만 한다면 말할 것도 없다. 사전 준비 작업을 거쳐 올해 말에 첫 번째 시추공 작업에 들어가면, 내년 상반기까지는 어느 정도 결과가 나올 것이다. 김진홍 포항지역학연구회 연구위원 - 석유탐사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그동안 포항지역에서도 탐사를 위한 다양한 시도가 있었다.△우리나라는 1966년부터 해저 석유 가스 전 탐사를 꾸준히 시도해 왔다. 그 결과 1990년대 후반 4500만 배럴 규모의 동해 가스전을 발견해서 3년 전인 2021년까지 상업생산을 마친 바 있다. 그러니까 시추를 몇 개를 할 것이냐가 아니라 그 가능성을 보고 말해야 한다. 50개가 됐든, 100개가 됐든, 이번 기회에 동해안에 아예 석유는 없다, 아니면 있는데 진짜 조금밖에 없어서 뽑을 정도는 안 된다고 앞으로 또 50년 뒤에 이런 일이 있지 않도록 마침표를 찍었으면 한다. 사람들이 ‘포항 앞바다의 석유’ 그 다음에 ‘영일만 석유’ 이런 식의 키워드에 포항의 뉴스가 쏟아지다 보니까 이게 마치 유전을 발견하거나 뽑아내면, 포항에 엄청난 이득이 오는 것처럼 사람들이 착각을 하는 것 같다. 두바이의 경우 100% 두바이 소유 유전이니까, 두바이 돈으로 미래 먹거리산업으로 국제관광허브를 만든 것이다. 포항의 경우에는 석유·가스가 펑펑 나든, 100년 동안 나든, 포항하고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일부 시민 단체와 정치인이 지진 안전 보장 없는 석유 시추를 반대하고 있다.△지열발전소 개발 관련 촉발지진 때문에 포항시민들은 지진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미국 지질조사국에 ‘석유시추가 지진을 유발한다’는 조사 결과를 토대로 산유국도 좋지만 지진 재발에 대한 포항시민들의 우려가 많다고 한다.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 명예교수도 포항 영일만은 단층이 복잡하게 얽혀 있어 석유·가스 개발과정에서 단층지대를 건드려 지진이 발생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하는 상황이라고 한다.- 그만큼 지진위험성에 노출되어 있다는 이야기이기도 한데 외국에서도 시추와 관련해서 지진이슈가 부각된 사례가 있는가?△최근 네덜란드 정부도 38년간 천연가스 시추가 계속되면서 지진 발생위험이 급증했다는 지적에 시추를 중단하고 시설을 영구 폐쇄하기로 했다. 지열발전소 촉발 지진피해를 입은 시민들은 아직도 국가를 상대로 소송 중이라고 한다. 포항 앞바다에서 지진발생 가능성이 있는 석유·가스전 개발이 꼭 필요하다면 안전대책과 책임 소재를 분명하게 해야 하며 국민 안전보장 없는 자원개발은 다시는 없어야 할 것이라는 주장이 나오기도 했다. 요즘에는 기술이 좋아져서 지진 영향은 거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최병일 본지 편집국장 /이용선기자 - 다양한 문제에도 불구하고 영일만 석유 매장량은 엄청난 규모이고 시추가 성공하면 그만큼 부가가치가 큰 것은 사실아닌가?△심해 광구로는 금세기 최대 석유 개발 사업으로 평가 받는 남미 가이아나 광구의 110억 배럴보다도 더 많은 탐사 자원양이라고 한다. 실제 매장이 확인되면 2027년이나 2028년쯤 공사를 시작해 2035년 정도에 상업적 개발이 시작될 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 최소한의 원유저장탱크 시설과 같은 석유 산업 단지 조성은 물론 포항 지역 내 일자리 창출 등 부가가치가 상당할 것이다. 다만, 포항은 제철 단지이고, 울산은 석유 화학 단지이니 당연히 석유 화학 업종 관련 기업이나 지역에서 긍정적이다. 수천 ㎞까지 이르는 러시아에서 유럽까지 석유나 가스 파이프라인이 있다. 따라서 원유 수송 파이프라인을 통해 다이렉트로 울산 단지로 갈 가능성이 훨씬 높다.- 포항보다 울산이 더많은 혜택을 받을 것이라는 예측은 아쉽다.△동해 가스전도 그런 식으로 했다. 해양 생태계 파괴를 우려하는 것은 기우라고 본다. 오히려 포항시가 신경 쓸 부분은 시추 계획으로 인해 포항 영일만항으로 진출하는 항로에 하필이면 걸린다든지, 러시아와 환동해 무역을 하거나 크루즈가 지나갈 적에 걸린다든지 등 부정적 영향이 없도록 해야 한다. 그런데 벌써 포항의 땅과 아파트에 관련된 이야기들이 나오고 있다. 물론 포항 입장에서는 미분양을 해소할 수 있는 최고의 호재이다. 향후 포항이 수혜를 받았을 경우 막대한 산업 인력도 몰려올 것을 예상한다면, 포항 부동산 경기 부양 수단이 될 수도 있다. 지역적인 마인드로 보면 나쁘지 않다. 그러나 이것을 경제 효과라고 얘기하기는 힘들다. 때문에 최소한 포항지역민들이 기획부동산의 부축임에 부화뇌동해 부동산 쪽에 과도한 눈길을 보내는 것은 말리고 싶다.정리=이부용기자 lby1231@kbmaeil.com

2024-06-23

최대 140억 배럴, 2200조 규모 가스 29년·석유 4년 쓸 수 있어

경북 포항 영일만 앞바다에서 발견된 석유·가스전의 탐사 자원량이 1998년 동해 가스전의 300배가 넘는다는 발표가 나왔다.정부는 현재 물리 탐사를 마친 단계로 앞으로 직접 탐사 시추를 통해 부존 여부를 확인할 방침이다. 경제성이 있다고 판단되면 2035년경 본격적인 생산에 들어가 에너지 수입을 대체하고 남는 물량은 해외에 수출할 계획이다.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지난 3일 브리핑에서 “동해 석유·가스전의 매장 가치가 현시점에서 삼성전자 시가총액의 5배 수준”이라고 말했다. 삼성전자 시총을 약 440조 원으로 계산했을 때 약 2200조 원의 가치가 있는 셈이다.안 장관은 “상당한 경험과 노하우를 가진 세계적 에너지 개발 기업들이 이번 개발에 참여할 의향을 밝힐 정도로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며 “최대 매장 가능성으로 보면 약 140억 배럴 정도의 막대한 양이 매장된 것으로 보이며 4분의 3이 가스, 4분의 1이 석유로 추정된다”고 했다.이날 정부가 밝힌 예상 매장량은 최소 35억 배럴, 최대 140억 배럴이다. 가스 3억2000만∼12억9000만 톤(t), 석유 7억8000만∼42억2000만 배럴을 석유로 환산한 수치로 우리나라 전체가 석유는 최대 4년, 천연가스는 최대 29년을 넘게 쓸 수 있는 양이다.산업통상자원부는 현재 시추 성공률을 20%로 예상하고 있다. 다만 유전 개발은 물리 탐사, 탐사 시추, 상업 개발 3단계로 이루어지는데, 현재는 물리 탐사 과정을 통해 석유가 영일만에 매장되어 있을 가능성만 확인한 단계다.이런 제반 상황과 관련해 이강덕 포항시장은 “포항 앞바다에서 원유가 발견되고, 이를 지역에서 산업화하면 석유·화학산업의 새로운 전환점이 될 것”이라며 “기존 산업의 전후방 효과도 클 것으로 본다”며 기대감을 드러냈다./단정민수습기자 sweetjmini@kbmaeil.com

2024-06-23

노거수의 설화에 담긴 남녀의 사랑과 나무 보호 메시지

지역 자치단체가 머지않은 미래에 소멸한다고 그 대책에 골몰하고 있다. 생산인구가 급격히 줄어드는 인구 절벽 현상 때문이다. 한국 전쟁이 끝난 후 베이비 붐 세대를 거치면서 인구 증가로 골머리를 앓던 정부는 각종 인센티브제를 도입하여 출산 억제 정책을 널리 홍보하고 강하게 밀어붙인 것이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 역으로 출산 장려 정책을 쏟아 내놓고 있지만, 별 효과를 얻지 못하고 있다. 왜 효과가 나타나지 않을까? 혼인 적령기 세대는 주택, 육아, 교육비 등 경제, 사회 문제로 어려움을 호소하며 결혼과 출산을 늦추고 있다. 심지어 솔로 살기를 원하고 자식 낳기를 싫어하는 사람들도 있는 것 같다. 경북 고령 어곡리 마을 앞 들판 한 가운데에 살아가고 있는 왕버들에 대한 전설은 오늘날 우리에게 잔잔한 감동을 준다. 당시에는 불효의 심정으로 용서를 구하는 내용이지만, 세월이 흘러 오늘날에는 아이러니하게도 결혼을 반대하는 부모님에 대항하여 가출까지 하여 결혼하였으니 참으로 격세지감을 느낀다. 전설은 나무 사랑으로 승화하여 우리에게 교훈을 주고 있다.아주 오랜 옛날 마을에 마음씨 착한 가난한 농부와 그와는 반대로 많은 재산과 하인을 거느린 마음씨 고약한 부자가 살았다. 가난한 농부 집에는 잘생긴 아들이 있었으며, 고약한 부잣집에는 예쁜 딸이 있었다. 농부는 가난하게 사는 것이 한이 되어 아들을 자기처럼 가난하게 살지 않도록 열심히 공부하는 것이 소원이었다. 자신의 고생은 아랑곳하지 않고 오직 사랑하는 아들을 위하여 모든 것을 희생하면서 아들 잘되기만 바라고, 그것을 큰 낙으로 삼고 살았다. 아버지는 아들의 글 읽는 소리가 자랑스러웠다. 논에서 우는 개구리 울음소리가 혹시 아들의 공부에 방해가 될까 봐 쫓아다니다 밤을 지새운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오늘도 총각은 글 읽기에 여념이 없었는데 글 읽는 소리가 멀리 부잣집 귀여운 딸의 귓가에까지 들려왔다. “저렇게 낭랑하게 글을 읽는 도련님은 누구일까?” “글 읽는 소리가 아름다우니 인물 또한 얼마나 잘 생겼을까?” 이렇게 생각하며 방문을 열고 보니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가을 하늘의 둥근 보름달 빛이 훤히 비추었다. 아가씨는 자신도 모르게 글 읽는 소리에 이끌려 가난한 농부의 아들 글방 바로 앞까지 다다랐다. 한편 열심히 글을 읽던 총각은 인기척 소리에 글을 읽다 말고 문을 열었다. 달빛 속에 나타난 선녀와 같은 처녀를 보고 그만 흠모하게 되었다. 처녀 역시 총각의 공부하는 모습에 반하여 서로가 깊은 사랑을 하게 되었다.이들이 서로 사랑하게 된 것을 알게 된 양가의 부모님들은 결혼을 결사적으로 반대했다. 두 청춘남녀는 아무리 해도 부모님을 설득할 수 없음을 깨닫고, 사랑을 이루기 위하여 부모님 곁을 떠나게 되었다. 막상 부모의 뜻을 순종치 않음이 큰 죄인인 줄 알면서도 떠나지 않으면 안 되는 두 사람은 마지막 부모님 앞에 엎드려 “아버지 어머니 저희를 용서해 주십시오. 저희가 떠나면서 부모님이 보시는 마을 앞에 나무를 심어 놓겠습니다. 이 나무가 싱싱하게 잘 자라면 저희도 금실 좋게 잘살고 있는 줄 아시고, 만약에 이 나무가 말라 죽으면 저희도 죽은 줄 아십시오.” 하직 인사를 고한 뒤 먼 곳으로 떠났다. 양가 부모는 자고 나면 나무를 쳐다보고 무럭무럭 자라면 그들이 잘 사는 줄 알고, 시들면 걱정하며 살았다. 왕버들은 무럭무럭 잘 자라 마을의 정자나무가 되었다. 나무가 싱싱하게 잘 자라면 자식이 잘살고, 말라 죽으면 자식도 죽었다니 기가 막히는 고별인사다. 부모 입장에 어찌 나무를 보호하고 잘 가꾸지 아니하겠는가! 이보다 더한 나무 보호 메시지가 어디 있을까? 청춘남녀의 사랑에 관한 이야기가 왕버들 노거수에 입혀 오늘날까지 전해오고 있다. 이들의 순결한 사랑의 징표로 왕버들을 내세워 나무 보호 자연관을 우리 민족의 DNA에 잉태하게 했다. 나무를 함부로 훼손하거나 벌목함으로써 망한 나라나 소멸한 도시를 볼 때 왕버들 설화는 나무 사랑, 자연사랑 헌장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궁극적으로 왕버들 설화는 청춘남녀의 사랑 이야기에다 나무를 심고 보호하라는 깊은 메시지가 숨겨져 있다. 나무와 숲은 인류의 보금자리이다. 인류의 보금자리가 사라지면 그 결과는 너무나 뻔하다. 오늘날 인구 절벽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전설의 주인공 부름을 받고 새벽 일찍 일어나 만나러 갔다. 나무는 예전과 달리 키와 앉은자리가 턱없이 작아지고 줄어들었다. 왕버들은 굵은 두 줄기가 절단되고 잔가지 끝부분은 고사 되었다. 전설 속의 나무 사랑은 사라지고 알게 모르게 나무가 살아가야 할 터전은 공장과 도로로 변했다. 인간의 편리함과 물건 생산을 위한 일들이 결국 우리 모르게 인구 절벽으로 내몰고 있지 않은지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지구 인구부양능력 수치를 넘어서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이동 수단인 자동차, 기차, 배, 비행기 등 그들이 머물 차고와 다닐 도로, 생산을 위한 단지 확보를 위해 나무와 울창한 산림이 사라져가고 있다. 늘어나는 도로는 생태계를 파편화시키고 생물종의 다양성과 개체수가 줄어 궁극적으로 멸종 위기로 내몰고 있다. 사람과 마찬가지로 그들이 내뿜는 배기가스는 지구를 온난화하고 생산으로 자원은 고갈되어 가고 있다. 이는 인구 증가와 다름이 없다. 지구의 옷을 벗기고 몸에 생채기를 내니 지구는 자연의 법칙에 따라 극단의 자구적인 노력을 취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싶다. 바로 지구 온난화로 이어지는 이상 기후는 가뭄과 홍수, 태풍, 지진, 화산, 산불 등 지구 생태계의 균형과 안정을 유지하기 위한 항상성이 아닐까. 인구 절벽 또한 청춘 남녀의 DNA 유전자 정보에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하지 않았을까.서울과 같은 인구 집중의 수도권은 지구 인구부양능력과 생태발자국 수용 능력 수치를 넘어서지 않았나 싶다. 오늘날의 청춘남녀 결혼, 출산 회피 문제에 대한 결혼과 출산 장려 정책의 밑바탕에는 지구 자원 소비와 생활 방식의 변화가 먼저 시작점이 아닐지 싶다. 사랑목 왕버들 노거수 전설에서 조상의 나무 사랑 자연관을 알고 다시 한 번 나무와 숲의 중요함을 깨단했다.고령 왕버들과 인구부양능력은…경북 고령군 성산면 어곡리 410번지에 자리한 왕버들은 위도 35.743024 경도 128.362479에 위치했다. 나이는 250살, 2003년 11월 6일 조사 결과 키 14m, 가슴 높이 둘레 3.5m, 앉은 자리 넓이는 17m다.지구 인구부양능력은 사용 가능한 자원으로 얼마나 많은 인구를 지탱할 수 있는지를 나타내는 지표다. 이는 자원의 양과 인구 사이의 균형을 의미하며, 지속 가능한 발전과 직결된다. 인구 증가와 자원 소비의 균형을 맞추는 데 중요한 기준이다.생태발자국은 우리가 소비하는 자원의 양을 그 자원 생산에 필요한 땅 면적으로 환산한 것이다. 지구의 지속 가능성과 인간의 생활 방식 사이의 균형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항상성(Homeostasis)이란 생명체가 외부 환경의 변화에도 내부 환경을 일정하게 유지하는 능력을 말한다. 생명 유지에 필수적이며, 생존과 진화에 있어 중요한 특징이다./글·사진=장은재 작가

2024-06-19

모두가 누리는 고령으로, 군민과 함께 새로운 미래로 변화

2022년 7월 민선 8기의 출발을 알리며 변화를 예고한 고령군.마라톤처럼 이어졌던 수많은 군민과의 소통콘서트를 통해 ‘군민의 목소리’를 듣고, 더 나은 ‘군민의 삶’을 위해 쉼 없이 달려왔다.고령군은 민선 8기 전반기 동안 세계유산도시 도약, 철도시대 개막, 대도시권 배후도시 기반 마련 등 사회전반에 괄목한 성과를 달성했다. 이러한 성과를 바탕으로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 민선 8기 전반기 성과민선 8기 고령군의 가장 큰 성과와 변화는 ‘지산동 고분군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꼽을 수 있다. 가야고분군 중 핵심유산으로 인정받는 지산동 고분군을 보유한 고령군은 진정한 세계유산의 도시로 도약했다.세계유산과 야간관광프로그램을 중심으로 기획된 고령 대가야축제는 역대 최대 22만명이 방문하는 등 성공적으로 개최로 ‘문화체육관광부 지정 대한민국 문화관광축제’, ‘3년 연속 경북도 최우수축제’에 선정됐다.대도시와 연접해 개발제한구역으로 묶이며 각종 개발사업 추진에 어려움이 많았던 다산지역이 개발제한구역 해제 절차가 마무리단계에 접어들었다. 곽촌지구를 비롯한 공동주택 건설, 천년건축 시범마을 등 신규 주거단지 조성을 본격 추진할 예정이어서 고령군은 대도시권 배후도시로서 급부상할 것으로 기대된다.또한, ‘달빛철도 건설을 위한 특별법’제정으로 고령역사 건립의 발판을 마련하고, 고령 철도시대의 서막을 올렸다. 더불어, 한국중부발전과 ‘친환경 청정에너지 발전소 조성 MOU’를 체결하는 등 9000억 원에 달하는 투자유치 성과를 올리면서 미래 성장동력도 마련했다.청년임대주택 준공 및 고령청년 드루와락, 뮤즈하우스 등 청년을 위한 주거 및 문화 거점공간 조성, 청년창업지원센터 개소 등을 통해 청년들의 정주기반을 크게 개선했다. 산모 산후조리비 지원 어린이놀이터와 어린이과학체험관을 개소해 아이키우기 좋은 도시 기반도 마련했다.다산 좌학리 임대형 스마트팜과 고령군 드론센터 등을 준공해 새로운 농업인을 지원하고 농촌지역 생활여건 개선사업을 지속적으로 추진해 오며 농촌 정주 여건을 크게 향상시켰다. □ 꿈이 현실이 되는 청년희망도시청년임대주택 확대 및 매입임대주택사업을 추진하고, 천년건축 시범마을, 청년농촌보금자리 등 청년세대를 위한 주거인프라 구축한다.다자녀가정 대상 양육장려금 및 학자금을 지원하고, 청년 정착의 근간이 될 양질의 일자리 제공을 위해 지역특화 맞춤형 공공일자리사업, 일자리와 청년창업지원센터 운영, 청년몰 사업 등을 추진해 나갈 계획이다.특히, 연말 준공 예정인 월성일반산업단지 내 중견기업을 유치, 더 많은 일자리를 창출한다. 고령청년 드루와락 및 뮤즈하우스 활성화는 물론, 체류형 창작공간인 문화예술창작소와 청년희망이음클러스터 등을 통해 청년문화 정착을 지원한다.□ 글로컬 역사문화 힐링도시세계유산의 도시로 거듭난 고령군은 지산동 고분군의 가치를 널리 알리기 위해 가야고분군 세계유산 방문자센터 건립과 야간경관 조성, 세계유산 축전 및 야행 등 세계유산 활성화를 위한 다양한 사업을 추진한다.나아가 대가야 고도(古都) 지정, 대가야역사문화클러스터 사업 및 문화예술특화지구 조성으로 대가야 정체성을 공고히 하고, 역사문화도시로서 품격을 제고할 계획이다.휴식과 힐링, 자연친화적 관광선호 추세에 따라 다산 은행나무숲 일원 바래미 생태레저단지와 낙동강문화권 에코뮤지엄 조성, 회천변 어북실 초화단지 조성사업 등을 추진한다.야간경관 명소화사업 및 미디어아트숲 조성 등으로 온종일 꽃과 빛으로 물드는 매력적인 웰니스 관광도시 도약을 나선다. □ 경쟁력 있는 미래농촌 건설국가 전략사업 중 하나인 바이오산업에 대응해 추진 중인 그린바이오 산업화시설 조성사업을 통해 지역농업을 미래 성장산업이자 수출산업으로 키워나갈 계획이다.새로운 농업인구 유입을 위해 귀농·귀촌 통합플랫폼 임대형 스마트팜을 확대 구축하고, 청년복합귀농타운 조성 및 고령화와 농촌 인구구조 변화에 따른 농업인력뱅크를 운영한다. 또 농업근로자 기숙사 건립, 농기계 임대사업소 확대 조성할 계획이다.스마트 농업을 위해 시설 현대화사업의 지원을 확대하고, 과학영농시스템 조성으로 지속 가능한 농업기반을 구축해 나갈 예정이다. 농산물 가공 종합처리장 및 고령딸기 농촌융복합산업지구 조성, 농촌 크리에이투어 지원사업 등을 통해 지역 농·특산물 및 농촌 테마상품의 특화산업화로 고부가가치 창출을 도모, 경쟁력 있는 6차산업을 선도해 나갈 계획이다. □ 대도시권 배후도시 도약대구 제2국가산단이 지정되고, 대구·경북 행정통합이 논의되고 있어 고령군은 다산지역 개발제한구역 해제 절차를 밟으며 도시개발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이에 더해 월성일반산업단지 완공을 앞두고 있어 대구 배후도시로서 역할이 커지고 있다.달빛철도 역사 건립 추진과 대구·경북 대중교통 광역환승제 도입, 대가야 하이패스 IC 설치 및 다사-다산 간 광역도로 개설사업 등은 고령군의 도시접근성 향상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이렇듯 기업하기 좋은 도시 여건 조성을 위해 기회발전특구 지정 또한 계속해서 추진해 나가며, 투자유치 활성화를 위한 세일즈행정을 이어갈 예정이다. 동고령 IC 물류단지 등 신규 산업단지 조성, 중소기업 운전자금 지원 및 환경개선사업, 소상공인 특례보증 및 이차보전지원 확대 등으로 지역의 산업, 경제 기반을 탄탄하게 지원할 계획이다.□ 모두가 누리는 따뜻한 보금자리대가야읍 신규 청사와 연계한 ‘대가야권역 거점형 돌봄교육센터’를 조성해 돌봄·교육·문화 기능이 결합된 원스톱 완전돌봄 지원 공간을 마련한다.노인복지센터와 장애인 종합복지관을 건립해 다양한 형태의 저소득층 일자리를 창출해 ‘군민 행복시대’를 열 계획이다. 또한, 종합병원과 연계한 유기적 의료협업시스템을 갖추고, 마을주치의 사업과 같은 고령군만의 특색 있는 보건·의료서비스를 확대하는 등 군민 맞춤형 건강사업을 추진한다.이와 함께, 다산건강가족센터 건립과 읍면별 파크골프장 확대, 맨발걷기 길 조성 등 생활체육과 여가 인프라를 확충해 건전하고 건강한 군민의 삶을 보장할 방침이다.□ 군민과 함께 만드는 군정고령군은 군민과의 만남, 소통의 장을 통해 현장의 소리를 청취하고, 군정에 반영하는 동행의 행정을 이어갈 예정이다. 대가야읍 청사 건립 및 성산·쌍림면사무소 등 행정 인프라 개선을 통해 최고의 행정서비스를 제공한다.스마트시티 솔루션 확산사업, 도시재생사업, 생활밀착형 숲 조성해을 통해 편리하고, 한층 더 쾌적한 도시환경을 조성한다. 지역의 힘을 키울 교육여건을 만들어가기 위해 교육발전특구 지정, 원어민 영어교실 운영 및 군민독서실 이전 등을 추진해 지방을 살리는 교육혁신을 완성할 계획이다./전병휴기자 kr5853@kbmaeil.com

2024-06-19

1980년 5월 ‘핏빛 광주’그 아픔을 기억합니다

‘반성으로 돌아보지 않은 역사는 또 다른 비극으로 잉태된다’는 사실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이는 장르를 불문한 한국의 작가들이 ‘1980년 5월 광주’를 끈질기게 추적하고, 문학적으로 형상화해온 이유이기도 하다. 지금으로부터 44년 전 5월. 열흘간 전개된 ‘5·18광주민주화운동’이 한국의 인권 신장과 사회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부정하는 이들은 드물다.잊어서는 안 될 한국 현대사 속 ‘5월정신’을 알리는데 진력해온 5·18기념재단(이사장 원순석)이 창립 30주년을 맞았다. 최근 출간된 ‘오월문학총서’ 시리즈는 바로 이 5·18기념재단 주도로 한국의 시인, 소설가, 희곡작가, 문학평론가들의 ‘5월항쟁’ 탐구 성과를 집대성한 결과물이다. 서적 간행의 실무 총괄책임은 이승철(시인·한국문학사 연구가·사진)이 맡았다.본지는 20대부터 50대까지 3명의 기자가 참여해 이 책을 함께 읽었다. 아래 23세 성지영 인턴기자, 30세 단정민 수습기자, 54세 홍성식 특집부장이 각자의 역사의식과 세대 감각으로 읽어낸 ‘오월문학총서’ 독후감을 소개한다. / 편집자 주 시·평론 시는 파토스(patho)를 가장 잘 드러낼 수 있는 문학 장르다. 시인들에게 순간의 격정과 열정을 보여주기에 ‘1980년 5월 광주’만한 소재가 또 있을까?그게 슬픔과 비극의 역사라 할지라도, 한국의 시인들은 그 속에서 눈물 어린 희망과 어두운 터널이 끝나는 곳에서 우리를 기다리는 환한 미래를 찾아내고자 고군분투 해왔다.‘오월문학총서’ 1편으로 묶인 ‘시’. 여기엔 200명이 넘는 시인들이 참여했다. 그들은 각기 다른 형식과 스타일로 ‘5월 그날’의 아픔을 문장 사이사이에 새기고, 역사 속에서 부활하는 5월 희생자들을 노래하고 있다.자신의 작품을 이 책에 기꺼이 수록해준 시인들은 최근 타계한 문단의 원로 신경림(1936~2024)부터 2007년 ‘5·18민주화운동 기념 서울 청소년 백일장’ 당시 18세 여고생이던 장원 수상자 정민경까지 연령대의 프리즘이 넓다. 그렇기에 각각의 세대가 인식하고, 해석하고, 전망하는 ‘5월정신’을 한 권의 책에서 효과적으로 확인해 볼 수 있을 듯하다.어느 시인의 특정 작품을 지목해 거론할 것도 없다. 책에 실린 시인들의 노래 하나하나 모두가 “민주주의를 위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던 위대한 ‘시민정신’을 기억하고, ‘절대공동체’라는 아름다운 ‘대동세상’을 소환할 것”이란 간행위원회의 바람에 답하는 것들이 분명해 보인다. 시가 행간에 숨은 의미를 은유와 상징을 해석해 읽어내는 것이라면, ‘평론’은 로고스(logos)를 기반으로 쓰인 글이기에 보다 이성적인 태도의 독서가 필요한 문학 장르.오월문학총서 4편 ‘평론’은 “5·18에 대한 근본 문제를 중심에 둔 총론격의 글과 문학 장르를 중심으로 시, 소설, 복합 영역으로 나누어 기존 발표작 중에서 골라낸 11편의 글, 5월문학 형성에 기여한 문학예술인과 작품을 심도 있게 논의한 신작 원고 5편 등 총 16편을 수록했다”는 게 간행위원회의 설명이다.‘5월정신과 아시아 민주주의’라는 김동춘의 평론으로 시작되는 책은 ‘5월 시문학의 흐름과 전망’(이성혁), ‘고통과 문학, 고통의 문학’(김영찬), ‘절대 신화 너머의 자리, 포스트-광주’(김영삼), ‘5월, 죽음이 삶이었던 시의 시대’(이영진) 등으로 이어진다. 수록된 평론 대부분이 주도면밀한 읽기와 비판적 재해석이 필요한 글들로 보인다. 새로운 전망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단단한 벽돌 역할을 할 것들이기에 그 중요성이 시와 다를 바 없이 만만찮게 느껴진다. 소설 2011년 5월, 5·18광주민주화운동 기록물이 유네스코 세계기록 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이를 기념하는 작업의 일환으로 올해 5·18기념재단과 출판사 ‘문학들’은 ‘오월문학총서’ 제2차분을 최근 출간했다.이 총서는 1980년 이후 발표된 오월문학 작품을 집대성해 5월정신의 전국화와 세계화를 목표로 하며, 5·18의 왜곡된 진상을 바로잡고자 기획됐다. 이번 총서 중 하나인 소설집은 40여 편의 중단편 소설 중 15편을 선정, 세대와 시각을 초월한 다양한 작품을 담고 있다.책을 펼치면 이순원의 ‘얼굴’이란 소설이 가장 먼저 등장한다. 주인공인 아들은 월부로 자기 방에 놓아둘 텔레비전과 비디오 세트를 구입하고, 구할 수 있는 대로 ‘광주항쟁 관련 비디오’를 구해 복제하기 시작한다. KBS의 ‘광주는 말한다’를 볼 때도 그는 내내 거기 어딘가에 있을지 모를 자신의 얼굴을 찾기에 바쁘다. 그러나 찾을 수 없었고 이에 안심하지만, 한 번씩 오랫동안 묵혀뒀던 기계를 점검하듯 테이프를 꺼내 그것들을 다시 확인한다. 어느 날 문득 그 속 어딘가에 자신의 얼굴이 화면 안에서 바깥으로 튀어나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잠기게 되면서다. 1980년대 이른바 ‘서울의 봄’. 33개월의 군 복무 기간보다, 지금까지 살아온 날들보다, 더 길고도 아득했던 살육의 현장에 서 있던 아들은 죄책감에 빠져 술과 함께 긴 밤을 지새우지만, 오늘도 철모를 쓴 계엄군의 모습은 나타나지 않는다.순천대 교수로 재직 중인 전성태의 ‘지워진 풍경’에는 1980년 5월 당시 계엄군으로 인해 말하지 못할 아픔을 갖고 살아가는 ‘노인과 그 아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아들은 시간이 흐른 지금도 자신의 기억을 믿지 못하고 있다. 계엄군이 돌아와 시민들을 살해하던 밤. 그는 이불 속에 숨어 총성을 들었다. 숨죽여 우는 어머니, 윽박지르는 아버지, 총에 맞아 피를 흘리며 쓰러진 누이의 모습을 또렷이 기억하고 있지만 지금도 그게 꿈인지 생시인지 분간할 수 없는 듯하다. 아들의 아버지인 노인은 아들과 같은 증상으로 치료를 받는 많은 환자들이 망상과 함께 살아가면서도 큰 지장 없이 일상을 견딘다는 말에 위안을 받지만….이처럼 오월문학총서 소설 15편에는 광주 오월의 모습이 다각적으로 담겨있다. 특히 ‘5월정신’을 승화시키고자 한 작가들의 마음이 실감 나는 묘사를 통해 잘 전달되고 있어 다양한 세대가 문학적으로 형상화한 ‘5월 광주의 소설’을 만나고 싶은 이들에게 추천한다. 희곡 ‘오월문학총서’는 5·18 민주화운동을 기억하고자 집필한 책이다. 오늘날 우리는 군사정권에 맞서 국가의 민주화를 위해 목숨을 걸고 싸웠던 그 시절 젊은이들의 피를 숭고하게 생각하는가?‘오월문학총서’ 희곡편은 지금의 우리를 뜨거웠던 민주항쟁의 현장으로 데리고 가 광주시민들이 느꼈을 뜨겁고 무거운 호흡에 동참시킨다. 그중 박지현의 ‘어느 봄날의 약속…’은 5·18 민주화 운동에 참여하고 싶은 18세 안종팔이 어머니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집을 나와 담임선생님(박선조), 그리고 기독교 전도사(문운동)와 함께 계엄군에 맞서 싸우다 죽음에 이르는 비극적인 스토리를 담고 있다.극의 분량이 그다지 길지 않음에도 18세의 어린 나이로 나라의 민주화를 위해서 싸우고자 하는 안종팔의 의지와 사랑하는 여인과의 결혼을 앞두고도 국가를 위해 한 치의 망설임 없이 앞으로 나아가는 문운동 전도사의 용기가 경이로웠다.극은 안종팔의 시신을 보고 창자가 끊어질 듯 절규하는 안종팔의 어머니(김경숙)의 모습으로 막을 내린다. 문운동 전도사는 정의를 지키는데 어린 생명이 제물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했지만 결국 5·18은 셀 수 없이 많은 어린 생명을 앗아갔다.박지현의 ‘어느 봄날의 약속…’은 독자들에게 ‘만약 내가 광주항쟁 현장에 있었다면 어떤 선택을 했을지’ 거듭해 고민하게 만든다. 총칼을 거머쥐고 있는 군인들 사이로 뛰어가 “계엄령을 해제하라”, “유신잔당 퇴진하라”를 자신 있게 외칠 수 있다고 자부할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되겠는가.극의 마지막인 에필로그. 5·18 민주화 운동으로 죽음을 맞이한 사람과 살아남은 사람이 항쟁 전 약속했던 것처럼 한자리에 모여 극의 주제곡인 ‘어느 봄날의 약속’을 부른다.1980년 5월 광주에는 지키지 못할 약속을 할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이 참 많았을 듯하다. 이미 44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떨어지는 꽃잎처럼 지지 말고 활짝 핀 꽃으로 돌아오라”는 어머니와의 약속을 지키지 못한 안종팔의 앳된 얼굴이 오랫동안 아른거렸다./홍성식기자 hss@kbmaeil.com/단정민 수습기자 sweetjmini@kbmaeil.com/성지영 인턴기자 thepen02@kbmaeil.com

2024-06-18

하소연 들어주고 마음 달래주는 친구이자 스승, 신적 존재

낙동강 물돌이 모래벌판 언덕 마을이 2010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는 쾌거를 이루었다.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이 이곳을 방문하여 생일을 맞이하는 등 세계 각국의 유명 인사는 물론 관광객들이 줄지어 찾아오고 있다. 바로 안동 하회마을이다. 마을엔 국가지정문화재만 국보 2점, 보물 2점, 국가민속문화재 9점 등 모두 13점에 이른다. 척박한 강변 모래벌판 언덕 마을에 무엇이 이런 귀중한 문화유산을 품었을까?곰곰이 마을의 역사를 살펴보아도 명쾌한 답을 찾을 수 없다. 하회마을은 예로부터 경주 허씨 터전에 광주 안씨 문전으로 풍산 류씨 배판이라는 말이 있다. 이는 마을 주민들의 성씨 변천 과정을 설명한 것에 불과하다. 우리 조상들이 말하는 풍수지리설에 길지인 배산임수형도 아니고 그 어떤 유형에도 포함되지 않는다. 그리고 보면 마을의 외형에 있는 것이 아니고 주민의 생활 속에 깃들어 있는 정신문화에 있지 않을까? 안동은 우리 3대 문화권 중에 유교문화의 중심지이며 정신문화의 수도이기도 하다. 하회마을에는 그 옛날 마을을 개척할 당시부터 내려오는 마을 공동행사가 있다. 매년 서낭당, 국신당, 삼신당에 동신제를 지냈다. 그러다 하회탈을 쓰고 별신굿을 해 오고 있다. 그 내력은 하회탈 제작에 대한 전설로부터 시작되었다.“마을재앙에 마음 아파하며 매일 밤 삼신당 나무에 물을 떠 놓고 재앙을 막아 달라고 정성껏 비는 허 도령이라는 청년이 있었다. 어느 날 신령이 꿈에 나타나서 ‘탈을 깎아, 그 탈을 쓰고 신을 위해 굿을 하면 되느니라. 그런데 탈을 깎는 동안 누구라도 엿 보면 그 자리에서 피를 토하고 죽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허 도령을 사랑한 마을 김씨 처녀가 그사이 그리움을 참지 못하고 금줄을 넘고 말았다. 하늘에서 천둥 번개가 치더니 허 도령이 피를 토하고 쓰러졌다. 김씨 처녀도 따라 죽었다. 처녀를 기리는 뜻으로 별신굿을 시작했다. 이유야 어쨌든 간에 이는 마을 주민들이 하나로 뭉치는 계기가 되었고 고난을 극복하고 흥겨움을 안겨주었다.”마을 주민은 서낭당을 상당, 국신당을 중당, 삼신당을 하당이라 불렀다. 삼신당은 마을 한 가운데 자리 잡고 당집의 형태를 갖추고 있지 않으며 삼신할매라고 부르기도 하고 그 대상은 느티나무이다. 약 600년 전 풍산 류씨 입향조가 심었다고 전해지는 이 나무는 잉태의 소원을 비는 곳으로 유명한데, 연리지를 관찰할 수 있다. 삼신당은 별신굿을 시작하는 장소이기도 하다.하회별신굿탈놀이는 안동 하회마을에서 12세기 중엽부터 상민(常民)들에 의해서 연희(演戱)가 되어온 탈놀이이다. 하회별신굿탈놀이는 5년 또는 10년에 한 번 정월 보름날 또는 특별한 일이 있을 때 해 왔다. 탈놀이는 마을의 안녕과 풍농을 기원하기 위하여 마을굿의 일환으로 연희가 되었다. 탈을 쓴 광대가 양반을 해학적으로 풍자하여 온갖 쓴소리를 내뱉는다. 이는 서민의 유일한 언로였으며 흥겨움까지 주었다. 놀이마당, 무동마당 등 여덟 마당으로 구성되어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다.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는 마을 수호신에게 매년 올리는 동신제나 별신굿을 한 때 미신으로 폄하여 금지하기도 했다. 종교적 측면으로 그리 볼 수 있으나 고유 전통 민속신앙은 우리의 삶에 많은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부계 중심의 남아선호사상의 사회 환경에서 우리의 할머니, 어머니는 보고도 못 본채, 듣고도 못 들은 채, 하고 싶은 말도 못 한 채 참고 9년의 시집살이를 했다는 말이 있다. 이렇게 인내할 수 있었던 것은 억압된 사회에서 소원을 빌고 하소연할 탈출구로 삼신당 느티나무가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삼신당 느티나무는 이를 들어주고 해결해 주는 친구이며 스승이요 신적 존재였을 것이다. 그때 사회 환경이 옳다면 민속신앙 역시 옳은 것일 것이고, 그때 사회 환경이 바르지 않다면, 민속신앙을 미신으로만 치부할 수 있을까. 오늘날 자유로운 시대는 농촌과 도시, 산중 마을에도 절이 있고 예배당이 있어 신앙심을 키울 수 있고 스님, 목사, 신부 등 성직자가 있어 고해하고 마음을 추스르며 안정을 찾을 수 있다. 그러하므로 오늘날 동신제는 점점 그 기능이 빛이 바래고 사라져 가고 있는 것을 보아도 그렇다.마을의 결속과 단합의 동기를 부여하는 것으로 동신제와 별신굿탈놀이 만한 것이 또 있을까. 제사를 올리는 시기는 대부분 정월 대보름날이다. 이는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되는 정월은 가장 신성하며 이날 뜨는 달이 가장 깨끗하고 신비스러워 소망한 것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새로 시작하는 명분으로 이것보다 더 좋은 날은 없을 것 같다. 물질적인 외형의 그 무엇보다 정신적인 마음의 자세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합심하여 기원한 내용을 이루기 위하여 단합하고 실천하는 동기로 작용하였을 것이다. 간절히 바라면 이루어진다는 믿음은 우리가 경험한 일이기도 하다. 하회마을이 평화롭고 풍요로운 마을로 발전하고 임진왜란 때 ‘10만 양병설’을 주장한 유성룡과 같은 걸출한 인재가 많이 배출된 것도 유형의 자연환경보다 무형의 정신 환경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지 싶다. 하회마을의 고택도 지형도 샅샅이 살펴보았지만, 특별한 무엇을 찾아보지는 못했다. 오히려 낙동강변 모래벌판 위에 세워진 것은 자연조건으로 따져보면 불리한 조건이지, 유리한 조건은 아니다. 그런데도 오늘날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주민들이 행복하게 살아온 것은 삼신당 느티나무를 중심으로 뭉치고 단합한 결과가 아닐지 싶다. 삼신당 느티나무에 소원을 빌고 인내하면서 살아온 우리 할머니 어머니의 위대함은 민속신앙으로부터 인내심과 응집력을 키운 덕분이 아닐는지 모르겠다.나무는 땅에 뿌리를 내리고 물과 영양소를 빨아들이고 하늘에서 빛에너지와 탄소를 받아들여 누구의 도움 없이 자연의 무한한 에너지로 스스로 독립적으로 살아간다. 뭍 생명체를 품고 그들의 먹이를 제공하고 삶을 이어가도록 기꺼이 희생을 감내한다. 나무야말로 남의 생명체를 먹고 살아가는 인간에게는 없어서는 안 될 유일한 생명체이기도 하다. 그리고 보면 나무를 신의 반열에 올려놓아도 조금도 어색하지 않다. 늘 우리 가까이에서 도움을 주는 나무야말로 신령이 깃들여 있다고 한들 누가 무어라 할까.안동 하회탈 별신굿놀이는…경북 안동시 풍천면 하회 709-3번지 삼신당은 별신굿판의 시작이고 동신제의 마지막 장소다. 그곳에 640살 느티나무 노거수가 살아가고 있다. 키 17m, 몸의 둘레 15m, 앉은 자리는 22m다. 마을굿을 통해 별신굿이 추구하는 목적을 이루기 위한 하나의 주술적인 행위로써 탈을 만들고 탈춤을 추게 된 것이다. 서낭당에서 신내림을 받는 강신(降神)이나 신을 마을로 맞이하는 무동(舞童), 상상의 동물인 주지 한 쌍을 등장시킨 탈춤판은 마을을 정화하는 것이다. 암수의 싸움에서 암컷이 이기고 성행위를 하는 것은 생산을 북돋워 풍농을 기원하는 주술적인 행위다. 강신(降神), 오신(娛神), 송신(送神) 과정으로 구성돼 있다./글·사진=장은재 작가

2024-06-12

“청소년을 성장시키는 건, 부모의 무한한 사랑 아닐까요”

최근 청소년 시집 ‘해저 연애 통신’을 펴낸 이병철 시인. 1407일 동안 특정 신문사에 칼럼을 연재했다. 3년 6개월의 짧지 않은 시간이다. 그럼에도 단 한 번 자신의 원고를 ‘펑크’낸 적이 없다. 그 사람이 타자와 맺은 약속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다.한국에서 ‘대학 시간강사’란 세칭 ‘3D 업종’에 가깝다. 그 일을 얻기까지의 시간과 노력은 경제적 이익과 무관하다. 이병철은 대학 시간강사다. ‘돈이 되지 않는’ 그 일을 유지하기 위해 중고 오토바이를 구입해 음식 배달까지 했지만, 그때도 절망하거나 얼굴을 찌푸리지 않았다.상대와 한 약속을 소중하게 여기며, ‘도저한 예술가의 낙관성’까지 지닌 이병철은 30대의 끝 무렵을 살고 있는 시인이다. 문학평론도 한다. 뿐인가. 프로페셔널 수준의 낚시꾼이며, 아마추어를 넘어서는 야구 선수(투수)의 면모까지.바로 그 이병철이 이번엔 ‘청소년 시집’을 출간했다. 이 시인의 10번째 책이다. 기자에겐 이번 출간이 ‘의외의 이벤트’로 느껴졌다.그의 활동 영역이 앞으로 얼마나 더 확장될 것인지 예측하는 건 쉽지 않다. 다만, 어째서 ‘청소년을 위한 책’을 썼는지는 궁금했다. 더불어, 아직도 ‘앞길이 구만 리’인 그의 향후 계획까지 묻고 싶었다.아래는 그 의문을 풀기 위해 전화 통화와 이메일을 통해 이병철과 주고받은 이야기를 간략하게 요약한 것이다. -청소년 시집 출간은 처음으로 안다. ‘해저 연애 통신’을 내고자 마음먹은 이유는.△한 선배 시인이 내가 쓴 시 한 편을 보더니 청소년들을 위한 시로 바꿔 보면 좋겠다고 했다. 호기심이 생겼는데 아예 자연, 낚시, 학창시절 등을 소재로 50편쯤 시를 써 책으로 묶으면 어떨까 하는 제안을 받았다. 10년 전 서대문구 성산 지역아동센터에서 저소득층 아이들과 동시 창작 수업을 했고, 또 몇 해 전에는 단대부고 문학동아리 지도 교사를 맡은 적이 있다. 그때 아이들이 참 좋았다. 청소년 문학에 대한 생각이 없지 않았다.-‘해저 연애 통신’이란 제목이 흥미롭다. 어떤 의미인가.△원래 제목은 ‘나, 너한테 낚였어!’였는데, ‘낚시’라는 소재가 너무 부각되는 느낌도 있고, ‘낚다’에 보이스피싱이나 스미싱 같은 신종사기 수법을 연상시키는 데가 있다며 출판사에서 ‘해저 연애 통신’으로 바꿨다. 깊은 바다 속은 뭐가 있을지 모르는 미지의 세계다. 사춘기 청소년의 내면도 저 바다 속처럼 무궁무진하며 무한한 잠재력과 꿈들로 가득하지 않나. 이 시집은 어른들이 모르는 청소년들만의 비밀스런 세계에서 알록달록한 산호초처럼, 은빛 정어리떼처럼 다채롭게 반짝이는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우리가 통칭하는 ‘시’를 쓸 때와 ‘청소년 시’를 쓸 때는 뭐가 다른가. 그리고, 어떤 게 더 어려운지.△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시가 좀 더 쉽고, 쓰면서도 재밌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려운 관념이나 잠언, 화려한 기교나 수사를 배제하고 내가 청소년 화자가 돼 또래 친구와 마주앉아 있다고 생각하며 시를 썼다. 읽는 청소년 독자들도 시 속 화자를 어른이 아닌 친구로 느꼈으면 한다. 청소년이 읽을 시에서는 아무래도 가독성과 흥미 요소, 그리고 무엇보다 여리고 예민한 감수성과 그들만의 세대 문화에 부합하는 공감대가 중요한 듯하다.-기획-집필-퇴고-출간까지 걸린 기간은. 출간 과정에서의 어려움은 무엇이었나.△2019년 초에 청소년 시집을 써보라는 권유를 받고 겨울방학을 이용해 시집 한 권 분량을 탈고했다. 산문집과 평론집 등 다른 책들이 나올 예정이라 청소년 시집 출간은 다음으로 미루었는데, 출판사에서 원고가 좋으니 우수출판콘텐츠 등 지원사업 수혜를 받아 내면 어떻겠냐고 해서 그렇게 몇 차례 사업에 응모하고 탈락하고를 반복하느라 출간이 늦어졌다. 올해 경기도와 안양문화예술재단 지원사업인 ‘모든예술31’의 수혜를 받아 원고가 완성된 지 5년 만에 출간되게 됐다.-이번 책에서 딱 한 편만 골라 읽어야하는 사람이 있다면 어떤 걸 추천하는가.△미학적인 시, 메시지가 좋은 시, 핍진한 페이소스가 재현되는 시 등 추천하고 싶은 시가 여럿 있지만, 표제작 ‘해저 연애 통신’을 꼽고 싶다. “여기는 비밀, 우리만의 세상”에 어른들이 많이 개입하지 않았으면 해서다. 청소년들을 개성과 취향과 자의식을 지닌 독립된 인격으로 존중해줬으면 좋겠다. 어른들이 원하는 무엇이 되기보다 “나는 네가 원하는 뭐든지 될 수 있어”라고 짝사랑 상대 아이에게 큰소리치는 낭만은 오직 그 시절에만 가질 수 있는 순수함이다. 청소년들의 그 순수함을 예쁘게 봐줬으면 하는 마음에서 이 시를 추천한다. -‘해저 연애 통신’ 출간 이후 선후배 작가와 독자들의 반응은.△재밌게 읽었다는 반응이 많다. 내 청소년기가 자전적으로 담겨 있는 시들도 있어서 시를 읽으며 시인을 알게 됐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몇몇 시들에는 사람 이름이 나오는데 거의 다 친구들이나 주변인들 이름을 가져다 쓴 것이다. 시집 출간 전에 친구들한테 “네 이름이 나온다”고 하자 다들 흔쾌히 기뻐했다.-청소년을 어른으로 성장시키는 과정에서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게 뭐라고 생각하나.△역시 사랑이 아닐까. 부모님과 가족의 조건 없는 그 무한한 사랑. 어릴 때는 그것이 사랑인 줄 몰랐다. 티브이 드라마에 나오는 것처럼 끌어안고 쓰다듬고 “사랑해”라고 말해야 사랑인 줄 알았다. 하지만 가세가 기울어 넉넉지 못한 형편에서도 당신들의 삶을 다 제쳐두고 자식을 위해 사셨다. 그 억척스럽고 지난한 삶에서 다정함이나 살가움 같은 게 참 힘들고 어렵다는 걸 나이 먹으니 좀 알 것 같다. 삼시 세끼 먹이며 공부시켜야 한다는 부모님의 일념이야말로 가장 뜨거운 사랑이었다.-이번 책이 10번째 저서다. 적지 않은 숫자다. 집필의 에너지는 어디에서 오는지.△술 마시고 놀고 낚시 다니고 여행 가는 등 바깥으로 보이는 한량의 생활이 압도적인 것 같아도 실은 보이지 않는 방 안에서 읽고 쓰는 시간이 대부분이다. 항상 무엇이든 써야 한다는 강박이 있는 듯하다. 가장 큰 동력은 열등감과 무력감이다. 어떤 글을 써도 만족스럽지 않다. 시를 쓰면 마음에 들지 않아 산문을 쓰고 산문을 쓰면 또 마음에 들지 않아 비평을 쓴다. 비평이 형편없어 다시 시를 쓴다. 벌써 10년 가까이 매주 혹은 격주 쓰고 있는 신문 칼럼은 문학적 글쓰기를 위한 일종의 준비운동으로 여긴다. -다음에 출간될 책은.△세 번째 시집 원고가 꽤 모였는데 마음에 들지 않는다. 50편쯤 되는데 그중 20~30편은 버리고 새로 쓰고 싶다. 다음 책으로는 시집이 가장 앞줄에 있고, 박사학위 논문을 조금 라이트한 학술서적으로 고쳐 출간할 생각도 있다. 2019년에 경북매일에 연재한 ‘경북 바닷길 기행문’에다 다른 지역 여행기를 합쳐 전국 기행으로 완성한 가칭 ‘길에서 부르는 노래’라는 원고가 있는데, 출간은 쉽지 않아 보인다. 책을 내줄 출판사가 있으면 좋겠다.-문학을 가르치는 대학 시간강사다. 어떤 보람과 어려움이 있는지.△비전임교원으로 학생들을 가르친다는 건 이상과 현실의 괴리에서 늘 괴로워해야 하는 일이다. 출강하는 두 학교에서 초빙교수로 있지만 사실 시간강사의 다른 이름이다. 강의와 학생 지도, 상담에만 전념할 수 있는 경제적 여건이 되질 않으니 외부강의나 집필활동, 부업 등을 겸할 수밖에 없다. 내 경우엔 지난해까지 배달 라이더로 일했다. 비전임교원은 방학에 급여가 지급되지 않고, 건강보험도 지역가입자로 전환된다. 그리고 학교에 연구실이나 휴게실이 될 만한 공간 또한 제공되지 않으므로 강의와 강의 사이 휴식이나 학생 상담 같은 게 어렵다. 하지만 이런 어려움에도 학생들과 문학에 대해 이야기하고, 시가 좋아서, 소설이 좋아서 반짝이는 그 눈빛들을 보는 일은 인생의 가장 큰 보람이다. 학생들이 성장하는 모습을 볼 때, 수업을 통해 무언가 얻어갈 때 정말 기쁘다.-멀리 10년 후를 내다보는 당신의 장기계획이 궁금하다.△실업계 고등학교에 다닐 때 지하 납땜 실습실에서 ‘전문대 문창과 입학-4년제 편입-육군 학사장교-대학원 진학-석사 및 박사-등단-책 출간-강의’라는 10여 년의 단계적 꿈을 꿨고 운이 좋아 그대로 됐다. 현실적으로는 대학의 전임교원이 되는 걸 최우선 계획으로 삼아야 하는 게 맞는데, 이상적으로는 잘 모르겠다. 그저 계속 글을 쓸 수만 있다면, 지금 사랑하는 것들을 계속 사랑하면서 살 수만 있다면 좋겠다.-마지막으로 덧붙일 말은.△‘해저 연애 통신’은 청소년들이 읽기 좋은 책인 동시에 학부모와 교사들도 함께 읽어볼 만하다. 시집에는 여름방학의 계절감이 주로 펼쳐져 있으니 곧 다가올 여름방학 동안 부모와 자녀가 함께, 교사와 학생이 함께 읽어보길 권한다. 모든 분들에게 푸른 바다를 달리는 은빛 물고기떼처럼 맹렬하게 반짝이는 행복이 가득하길 기원한다./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2024-06-11

6세기 ‘한강유역 점령’ 고구려가 포항 흥해까지 남하했다고?

백고무신…. 학창시절 한강을 점령한 순서(백제, 고구려, 신라)를 외우던 암기비법(?)이다. 5세기 중국 대륙을 호령하던 고구려는 갑자기 남하 정책으로 대외 노선을 변경한다. 북위(北魏), 양쯔강 일대 한족과 화평했던 고구려가 굳이 정복전쟁을 펼칠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고구려는 신라 진흥왕이 한강으로 진출하기 6세기 중반까지 강(江) 일대를 차지했는데, 당시 고구려 국경은 충남 당성군(唐城郡·남양만)에서 충북 진천에 이르고 있었다는 게 학계 정설이었다. 그러나 1992년 포항시 신광면에서 발견된 냉수리고분은 이런 기존 학설을 뒤집는 것이어서 역사학계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무덤 형식이나 부장된 유물들이 모두 고구려계로 판명됐기 때문이다. 단순히 한강 일대에 그친 줄 알았던 고구려 강역이 중원을 넘어 신라 턱밑에까지 칼끝을 겨눴다는 사실에 학계는 큰 충격에 빠졌다. 6세기 흥해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을까. 냉수리고분 속으로 들어가 보자. ◆6세기 고구려는 한강-중원-대전까지 진출영남대박물관에 가면 ‘고구려강역도’(高句麗疆域圖)가 있다. 6세기 고구려가 어디까지 남하했는지 알 수 있는 지도로, 당시 지명과 고구려 지명을 병기하고 있다.지도에는 당시 충남 남양-진천-청하를 연결하는 동서라인을 고구려 영역으로 표기하고 있다. 이는 고구려 지배 범위를 한강유역으로 한정한 기존 학계의 견해를 뒤집는 것이다.이를 뒷받침하는 사료도 보고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연기읍지’(燕岐邑誌)다. 이 읍지엔 ‘개소문’성에 대한 기록이 보인다. 연개소문은 천개소문(泉蓋蘇文), 개금(蓋金), 개소문 등 많은 별칭으로 불렸다.읍지엔 ‘소문산성’ 기록이 세 군데나 나타나 이곳이 고구려와 백제의 접전지였음을 알 수 있다. 6세기 고구려가 서울(한강)을 훌쩍 넘어 충남 일대까지 세력을 펼쳤다는 해석이 가능하다.최근 대전에서 발견된 ‘월평동유적’의 토기도 관심 대상이 되고 있다. 이곳 토기들은 저온에서 구워 갈색을 띠고 바닥이 평평한 전형적인 고구려 토기 특징을 보이고 있다.청림문화연구소의 박승규 원장은 “최근까지 사학계에서는 고구려 강역을 한강 즉 차령산맥 이북으로 비정해 왔지만, 최근 고구려의 군사력이 대전, 연기군까지 미치고 있다는 사료, 유물들이 많이 보고되고 있다”고 말했다. ◆냉수리고분에서 고구려계 유물 출토냉수리고분은 포항시 북구 신광면에 위치해 있다. 도음산(384m)의 서측 자락과 용천저수지 사이에 자리잡고 있으며 모두 7기의 고분이 확인되었다. 고분이 위치한 곳은 안강 방면에서 동해로 통하는 길목으로 이곳은 고대부터 중요한 교통로로 기능했다. 즉 삼국시대 경주를 중심으로 한 신라가 동해안과 북쪽 산악지대로 진출하는 길목이었다.냉수리고분은 1992년 도로공사 중에 우연히 발견됐다. 당시 조사단은 신라 수도였던 경주와 50km 이상 떨어져 있고 주변에 뚜렷한 유적지도 없어 지방 토족(신라계)의 수장급 무덤으로 여겼다.무덤 양식도 신라의 무덤 양식 즉 횡혈식석실(橫穴式石室) 형태를 띠었기에 크게 주목하지 않았다. 그러나 덮개석이 들어올려 졌을 때 뜻밖의 광경이 펼쳐졌다. 연도(羨道) 부분에 측실(側室·곁방) 이라고 부르는 ‘이실’(耳室)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이 석실은 고구려계 무덤에서만 주로 나타나는 유적이다. 고구려는 초기에 적석총(積石塚) 묘제를 주로 사용했지만 4세기 이후 곁방이 있는 다실묘(多室墓) 등으로 변천했다.출토된 유물들도 연구원들의 관심을 끌었다. 묘제에 이어 부장품들도 고구려와의 교류 흔적을 잘 나타내주고 있기 때문이다.먼저 학자들의 주목을 끈 건 ‘부뚜막형 토기’. 이 토기는 고구려 토기 양식을 대표하는 유물로 주로 의례, 제례용으로 널리 쓰이던 양식이다. 조리기구를 부장함으로써 ‘저 세상에서도 배불리 먹으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한다. 쟁반, 소반 모양의 ‘반형(盤形)토기’도 많은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출토된 반형토기는 3중으로 겹쳐진 형태로, 이 역시 전형적인 고구려 양식이다.발굴에 참여했던 한 연구원은 “신라 영토로 여겨졌던 경북에서, 그것도 한강과 수백km 떨어진 흥해에서 고구려계 유물, 유적들이 쏟아져 나온 것은 매우 이례적”이라고 설명했다. ◆영주 순흥리고분벽화도 고구려계 유적6세기 ‘고구려의 경북 진출설’과 관련해 영주 순흥리고분벽화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1985년 발견된 순흥리고분에서 고구려 화풍이 뚜렷한 벽화가 발견되었다. 당시 언론은 ‘신라영토에서 고구려 벽화 발견’ 제목으로 대서특필하며 세기적 사건에 열광했다.장수왕의 남하정책이 펼쳐지던 시기 학계에서 고구려는 남한강을 따라 중원(中原)에서 신라와 전선(戰線)을 형성했다고 보았다. 이 기록은 ‘중원고구려비’에서도 잘 나타나 고구려의 군사 주둔 범위가 충주-청주-단양 일대에 미치고 있음이 확인됐다.그러나 순흥리에서 고구려계 벽화가 발견됨으로써 고구려 군사 접경이 중원을 뛰어넘어(훨씬 남하해) 경북 내륙까지 미치고 있음이 입증된 것이다.당시 고분을 발굴했던 이명식 전 대구대 교수는 “순흥리고분의 벽화 화풍이 고구려 영향을 받은 흔적이 많이 나타나고 있다”며 고구려와의 긴밀한 정치적, 문화적 연결성을 확인해줬다. 벽화 소재인 산악도(山岳圖)도 고구려의 덕흥리고분, 무용총의 소재와 비슷해 이 학설에 무게를 실어줬다. 반형토기. /고로로블로그 제공 ◆‘고구려 경북 북부 지배설’ 학문적 모색 필요고구려 묘제, 고구려 양식 토기, 고구려풍 벽화가 발견됐다고 해서 모두 그 지역이 고구려의 영토였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일시 점령과정에서 생긴 과도기적 사건일 수 있고, 양국간 교류 과정에서 나타난 문화현상일 수도 있다. 삼국사기 등 사료에서도 이와 배치되는 기록도 많이 보이고 반론도 만만찮다.당시 고구려가 한반도 남부에 군사적 영향력을 행사한 사실은 다양한 사료에 나타나지만 이를 정치적 지배로까지 해석하는 건 무리라는 지적도 있다. 당시 6세기 대외팽창기 고구려는 신라, 백제 일부지역을 선(線)적으로 지배했을 뿐 면(面)적 통치에까지 이르지 못했다는 것이다.그럼에도 대전·충남지역, 경북 내륙에 이어 동해안 지역까지 고구려의 흔적이 많이 보이고, 비슷한 시기에 고분, 벽화, 부장품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북방 흔적이 나타난다는 사실은 이를 단편적인 사실(史實)이나 문화현상으로 치부하기에 무리라는 지적도 있다.6세기 고구려 강역은 대체 어디까지일까. 중원인가, 대전·충남인가, 영남 내륙, 동해안인가. 이제 학계가 가설을 넘어 학문적으로 정리를 할 때가 아닌가 한다./글·사진=한상갑기자 arira6@kbmaeil.com

2024-06-06

판이한 시절을 살아온 두 세대의 눈으로 본 ‘퓨리오사’

영화란 1만 명이 본다면 1만 개의 해석과 감상이 나올 수 있는 예술 장르다. 각자가 가진 세계관과 처한 입장, 정치·경제·사회적 문제를 대하는 태도에 따라 관객마다 다른 감상문을 남길 수 있다는 이야기. 그렇다면, 영화 해석과 감상에 세대 차이도 존재할까? 이 궁금증을 해소하고자 동일한 영화를 선택해 서로 다른 지향과 목표를 가지고 판이한 시절을 살아온 두 세대가 리뷰를 써보기로 했다. X세대인 본지 홍성식(1971년생) 특집부장과 MZ세대인 성지영(2002년생) 인턴기자가 이 흥미로운 실험에 참여했다. 리뷰 대상으로 지목된 영화는 ‘퓨리오사: 매드 맥스 사가’다. / 편집자 주 X세대의 눈“영화란 답답하고 변화 없는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신나는 꿈을 꾸는 순간”이라 말하는 이들에겐 이 영화와의 만남이 더없이 즐거운 시간이었을 게 분명하다.골라 뽑은 미남·미녀 주연배우의 흠 잡을 것없는 연기에 전작(前作)에서도 이미 증명된 조지 밀러 감독의 스릴감 넘치는 연출, 여기에 박진감 가득한 자동차 추격신과 사실적인 전투신 등 할리우드 스타일의 다양한 흥미 유발 요소들까지.최근 개봉해 흥행 가도를 거침없이 달려가는 영화 ‘퓨리오사: 매드맥스 사가’ 이야기다. ‘대중예술로서의 영화’ ‘산업으로서의 영화’에 포커스를 맞출 것 같으면 이 작품은 비판의 여지를 거의 주지 않는다.일단 시원시원하고 재밌다. 음악과 미술 등 각종 예술 장르가 유기적으로 결합해 최고의 상업성을 갖춘 매력적인 상품으로 탄생했다는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 게다가 영화의 스토리는 ‘구조’라는 단어를 사용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간단하다.평화와 안정을 지향하는 작은 공동체에서 살던 여자아이가 악당에게 엄마를 잃는다. 소녀의 불구대천(不俱戴天) 원수가 된 사람은 폐허로 변한 세상에서 에너지의 독점을 통해 인간을 지배하려는 독특한 캐릭터의 악당. 소녀는 지난하고 힘겨운 과정을 거쳐 악당의 숨통을 끊는 것으로 복수에 성공한다.2시간이 훌쩍 넘는 꽤 긴 영화를 단 160자로 요약할 수 있다는 건 ‘퓨리오사: 매드맥스 사가’는 관람 시간 내내 고민할 게 하나도 없는 영화라는 뜻이 아닐까?‘재밌는 상업영화=철학이 부재한 유치한 작품’이란 등식은 독선적이고 낡아 보인다. 그렇다고 이 등식이 무용할까?재미에 초점을 맞추고 영화를 선택하는 관객이 있다면, “영화란 한가한 인간들의 시간 때우기용 팝콘이 아닌 변혁의 수단”이라 말하는 관객도 분명 존재한다.사회 진화와 인간의 성장 과정에서 영화가 미치는 힘을 믿는 이들에겐 ‘퓨리오사: 매드맥스 사가’를 보고 있는 시간이 지겹고 무료했을 터.왜냐? 영화의 핵심이자 키워드라 할 수 있는 퓨리오사가 갖은 모욕과 고통을 견디며 아이에서 성인으로 성장하는 과정엔 인간적 성찰과 복합적 고뇌가 빠져 있다.그저 “내 엄마를 죽인 원수를 기필코 갚고야 말겠다”는 20세기식 단순한 절치부심(切齒腐心)만으로 세련된 21세기 영화팬들에게 수긍의 고개 끄덕임을 얻어낼 수 있을까?대부분의 인간은 영화 속 퓨리오사처럼 그렇게 단순한 존재가 아니다. 행동의 저변에 그 행동을 추동하는 수십, 수백 가지의 이유를 가지는 게 보편의 인간. 복수심 하나만으로 평생을 사는 사람은 극히 드물거나 아예 없다.‘퓨리오사: 매드맥스 사가’의 또 다른 주인공이라 할 악당 디멘투스의 캐릭터 역시 단선적이고 맹목적으로 느껴진다. ‘좋은 영화’의 기본이라 할 인물의 캐릭터 형성에 실패한 것이다. 이는 영화의 핍진성을 떨어뜨리는 치명적인 결점이다.‘문명’이라 부를만한 것들은 모조리 사라지고, 모래바람 부는 황량한 땅에 합리적이지 못한 극단의 이데올로기를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 그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갈등과 반목에 카메라를 들이댄 영화 ‘퓨리오사: 매드맥스 사가’.극장에 들어서기 전엔 우리의 기대와는 달리 디스토피아가 돼버린 미래와 그런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 인간들에 관한 철학적 성찰이 아주 조금은 보일 것이라 기대했다. 그러나, 기대는 기대만으로 끝났다. 매번 속으면서도 할리우드의 영화 홍보 방식에 또 속았다는 느낌. 영화를 본 후 입맛이 씁쓸했다. MZ세대의 눈액션 영화를 좋아하지 않는다. 극장에 앉은 148분 중 120분 이상을 누군가를 찌르고 협박하는 영상물을 왜 봐야 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퓨리오사: 매드맥스 사가’ 포스터를 본 순간부터 영화관에 들어가는 순간까지 어깨는 움츠린 채로, 눈은 반쯤 감은 채로 영화를 봤다.‘퓨리오사: 매드맥스 사가’는 2015년에 개봉된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의 이전 이야기를 다루는 작품. 퓨리오사는 ‘시타델’의 사령관으로 황무지가 된 세상에서 물을 차지하고 있는 임모탄의 충실한 부하다. 최근 공개된 ‘퓨리오사: 매드맥스 사가’에서는 그녀가 어떻게 시타델이 들어오게 되었고, 왜 갑자기 임모탄을 배신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담겼다.영화를 보면서 퓨리오사의 MBTI가 ESTP임을 확신했다. 그 이유는 기자라면 절대 하지 않았을 선택들을 너무 많이 했기 때문. 기자는 ENFJ로 퓨리오사와 정반대되는 사람이다. 퓨리오사는 모험심이 넘치다 못해 지나치고, 의리에 휘둘리는 인간이라 도망칠 수 있는 상황에도 다시 위험 속으로 뛰어든다. 물론 그녀의 극단적인 성격들로 인해 148분이라는 긴 러닝타임이 짧게 느껴지긴 하지만.퓨리오사는 어머니를 죽이고 시타델로 자신을 팔아버린 디멘투스를 죽이고, 고향인 ‘풍요의 땅’으로 돌아가기 위해 시타델로부터 도망치려 한다. 원했던 결과를 이루기 위해선 시타델의 상위 계층에 속해야 했다. 그랬기에 퓨리오사가 임모탄의 충실한 사령관인 척했던 것.영화에서 가장 인상 깊은 장면은 퓨리오사가 디멘투스에 머리에 총을 겨눈 채 나누는 대화다. 디멘투스 자신을 죽이려는 퓨리오사를 향해 “우리는 이미 죽은 자들이야”라고 말한다. 이 말은 즉 자신이 가지고 있는 생명 그 자체의 소중함은 잃은 채 죽음에서 오는 자극만을 쫓고 있는 본인과 퓨리오사는 이미 정식적으론 죽은 자들이며, 퓨리오사가 자신을 죽이더라도 허망할 것이라는 것을 의미하는 듯하다.디멘투스의 말엔 어느 정도 일리가 있다. ‘이에는 이 눈에는 눈’ 식의 복수는 결국 복수를 하고자 하는 상대와 나를 동일한 존재로 만든다. 그럼에도 복수까지의 여정은 늘 짜릿하기에 퓨리오사는 복수를 멈출 수 없었던 게 아닐지.일부 관객은 디멘투스가 죽지도 살지도 못하는 입장에 처한 마지막 장면을 보면서 ‘사이다’를 느꼈는지 모르겠지만 기자는 이 장면이 찜찜했다. 복수가 주는 짧은 짜릿함을 느끼기 위해 복수를 하고자 하는 대상과 같은 존재가 되는 건 적어도 기자에겐 어리석은 일처럼 보인 탓이다. ‘매드맥스’ 시리즈는 황무지가 된 세상에서 물, 무기, 기름을 차지한 세 집단들의 생존기를 담은 영화다. 그런데, 인간이 물, 무기, 기름이라는 ‘자연물’ 을 완전히 소유 하고 이를 기반으로 권력을 휘두르는 것이 당연한 걸까?감독은 자연물을 기괴한 형태로 소유하고 있는 세 집단을 등장시킴으로써 ‘인간이 궁극적으로 완전히 소유할 수 있는 것이 존재하는가?’라는 무겁고 철학적인 질문을 대중들에게 던지고 싶었던 것 같다.자연에서 오는 것들 중 우리가 완전히 소유 할 수 있는 건 없다. 잠시 그걸 가졌다고 착각할 뿐, 결국 그 모든 것들은 자연에게 돌려줘야 한다.퓨리오사도 디멘투스에 대한 복수는 ‘소유’했지만. 그의 생명까지 온전히 ‘소유’할 수는 없었다. 과연 퓨리오사에겐 디멘투스의 생명의 빼앗는 방식의 복수만이 유일했던 것일까? ‘퓨리오사: 매드맥스 사가’는 이런 의문을 부르는 영화다./홍성식·성지영 인턴기자

2024-06-04

포항 해양쓰레기 발생 전국 1위 불명예 벗어야

포항이 ‘해양쓰레기 발생량 1위 도시’라는 한국해양대 연구진의 충격적인 조사 결과가 나왔다. 포항시민들로선 불명예스럽고 부끄러운 일이다.포항시는 지난 2021년부터 2023년까지 3년간 해양쓰레기 1626t을 수거했는데, 2018~2020년까지 수거량과 비교하면 폐어망·어구 쓰레기는 2배나 늘어난 수치다.본지는 창간 34주년을 맞아 해양쓰레기 문제를 넘어 환경 오염·환경 파괴의 심각성과 해결 방안을 모색하기 위한 기획물을 연재한다. 본지가 시민단체인 포항환경연대와 함께 해양환경공단과 환경부 등 관계기관을 취재한 결과, 어업활동 중 버려지는 폐어구와 스티로폼 부표, 폐통발 등이 가장 심각한 환경문제라는 사실이 밝혀졌다.본지는 이번 기획물에서 해양쓰레기 문제 외에도 소비자들의 무절제하게 사용하는 일회용품과 폭증하는 생활폐기물 등에 대해서도 다룬다. 소비자들이 자원을 구매, 사용, 처리하는 일상생활 과정에서 어떤 환경 문제가 발생하는지를 짚어보고, 자원절약을 생활화하는 방안을 제시할 계획이다.인류는 산업화와 과학 기술의 발달로 편리한 생활과 물질적인 풍요를 얻었지만, 동시에 이로 인한 환경 오염과 환경 파괴라는 혹독한 대가를 치르고 있다. 인류의 지속 가능성을 실현하기 위해서라도 환경파괴 행위에 대한 지속적인 관리 감독이 가능한 시스템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편집자 주포항시가 ‘해양쓰레기 발생 전국 1위’다. 우리나라 바다에 쌓인 해양쓰레기 가운데 지역별로 포항과 강화도가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포항과 강화도에서는 100m당 30개 이상의 해양쓰레기가 파악되고 있다.이 같은 불명예스러운 통계는 한국해양대 연구진이 지난해 국제학술지 해양오염학회지에 발표한 ‘2009∼2021년 한국 해안선 조사에 기초한 해양쓰레기 분석 및 전망’ 논문에서 나타났다. 포항시 해양수산과 통계에서도 포항의 해양쓰레기 발생량이 2021년 750t, 2022년 800t, 2023년 1015t으로 매년 큰 폭으로 증가하고 있다.‘해양쓰레기 발생 전국 1위 포항시’라는 보도 이후 해양 환경 보전에 걸림돌이 되고 있는 해양쓰레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근본 대책 마련이 요구되고 있는 가운데 올해 ‘바다의 날(5월 31일)’을 계기로 포항에서도 해양쓰레기를 처리하는 친환경선박발전소에 대한 논의가 대두돼야 한다는 지적이다.관련기사 7면지난 2022년 1월 해양수산부에서는 국가연구개발혁신법 제9조 및 해양수산과학기술육성법 제8조(연구개발사업 등의 추진)에 따라 ‘해양 부유 쓰레기 수거·처리용 친환경 선박개발 및 실증’사업을 공모한 바가 있다.또 지난해 6월에는 부산대와 인도네시아 해양수산부가 해양쓰레기 수거·처리용 수소하이브리드 친환경 선박의 활용을 비롯한 조선 해양 분야 협력플랫폼 구축에 대해 국제공동협력협약을 맺었다. 양측은 해양폐기물을 기반한 수소생산, 수소 선박 활용 방안 및 성과확산을 위해 공동의 노력을 추진하기로 했다.해양수산부와 부산대 수소 선박 기술센터가 추진 중인 해양쓰레기 수거처리 친환경 선박 기술의 최종 목표가 해양쓰레기로부터 전기에너지를 획득하는 선박 위의 발전(發電) 기술로 나아갈 것이라며, 지속 가능 포항환경연대 유성찬 공동대표가 포항에서도 선박발전소 기술을 연구할 때가 됐다는 의견을 낸 것이다.30일 유성찬 포항환경연대 공동대표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해양쓰레기는 매년 10만여t 이상이라고 한다. 2050년 바다에는 물고기보다 플라스틱이 많을 것이라는 말이 생겨날 지경으로 해양 플라스틱 쓰레기가 많이 발생한다.유 공동대표는 “해양쓰레기 발생 전국 1위가 포항이라고 하는데, 장기적인 대책 없이 어민들이 수거해온 해양쓰레기를 200리터 1포대에 2만원을 지급하는 것으로 끝낼 수는 없는 일”이라며 “조업 중에 발견, 발생한 쓰레기일지라도 다시 바다에 그대로 버리고 올 수밖에 없는 상황일 것이다. 어선에는 잡은 물고기 외에 실을 공간이 부족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서 “포항의 어민들이 조업 도중에 발생한 폐그물 등 해양쓰레기를 위판장까지 싣고 와서 처리해야 할 지경이라니, 해양쓰레기를 수거해도 끝이 없다는 말이 나온다”고 전했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장은희기자 jangeh@kbmaeil.com

2024-05-30

바다밑 미세 플라스틱 조각 75조 개… 떠다니며 인류 위협

한계에 다다른 환경오염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지구를 위해 세계 각국은 지속가능한 환경 보전을 위한 대책 마련을 고심 중이다. 특히 해양쓰레기는 세계의 바다를 급속하게 망가트리고 있다. 이는 생태계와 연안 경제, 그리고 오염된 해산물을 먹는 수십억 인류의 건강을 위협하고 있다.한국 정부도 2008년 세계 최초로 법정계획으로서 해양쓰레기 관리 기본계획을 수립했다. 2019년에는 2030년까지 해양 플라스틱의 50%를 저감하는 목표를 담은 ‘해양 플라스틱 저감 종합대책’을 수립하고, 바다의 날을 맞이해 ‘해양플라스틱 제로화 원년’을 선포하기도 했다. 같은 해 해양수산부는 2020년 주요 예산 편성 방향 1순위로 “항만 지역 미세먼지와 해양쓰레기 저감에 집중 투자한다”는 공식 입장을 밝힌 바 있다.해양쓰레기 문제는 정부만의 현안은 아니다. 포항시에서 간헐적으로 다뤄지던 해양쓰레기 문제는 지난 2020년을 기점으로 시와 포스코 간 공동 사업을 추진하는 등 지자체와 기업 간의 주요한 지속 가능한 지구 보전 문제로 부상했다. △포항시 3년간 해양쓰레기 1626t 수거…이전 3년 대비 2배나 증가포항시는 포스코와 함께 ‘Save Our Ocean’ 해양 환경 정화 사업을 통해 지난 2021년부터 지난해까지 최근 3년간 1626t의 해양쓰레기를 수거했다. 이는 사업 시행 전인 2018~2020년까지 3년과 비교하면 폐어망·어구 수거량이 2배 정도 증가한 수치다.해양쓰레기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자 포항시는 포스코와 2021년부터 민관협력으로 ▲조업 중 인양 쓰레기 수매 ▲어촌계별 쓰레기 수거 장비 지원 ▲영일만 해역 자율 해양 정화 활동 등을 추진했다.하지만 어업인들의 조업 활동 중 인양한 폐어망, 폐통발 등의 해양쓰레기는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한 실정이다. 폐어망 어구로 인한 해양오염은 전국적으로 우리나라에서 발생하는 해양 플라스틱 6.7만t의 54%인 3.6만t이 발생하고, 폐어구로 인한 유령어업으로 연간 4100억 원의 피해가 발생하고 있다. △포항시 해양쓰레기 발생량, 종류, 처리예산포항시는 정부가 2019년, 2030년까지 해양 플라스틱의 50%를 저감하겠다는 목표를 담은 ‘해양 플라스틱 저감 종합대책’을 수립하고 집중적으로 투자해왔다.포항시의 해양쓰레기 처리예산은 2021년 발생량 750t에 해양쓰레기 수거 사업 3억1000만원, 태풍 카눈 피해복구 2억500만원에서 2022년 발생량 800t 해양쓰레기수거사업 3억1000만원, 태풍 카눈 피해복구 4억2000만원으로 확대 편성했다.해안가 읍면동에서 인력으로 처리하기 어려운 쓰레기는 굴삭기를 임차해 처리하고, 포항시 해양항만과에서 업체에 의뢰해 처리하고 있다. 모래까지 같이 수거되는 해양쓰레기는 사토 처리도 하고 있다.△정책과제만이 아닌, 시민 전체가 체감해야 할 환경 문제간헐적으로 다뤄지던 해양쓰레기 문제는 2000년대 이후에는 플라스틱이라는 소재를 중심으로 해양쓰레기가 독립적인 의제로서 다뤄지기 시작했다. 특히 유엔은 지속가능발전목표(Sustainable Development Goals; SDG)와 연계해 해양쓰레기, 해양 플라스틱을 주요한 사안으로 지적했다.유넵(United Nations Environment Programme, UNEP)이 발표한 해양쓰레기 대응 전략인 호놀룰루 전략(NOAA and UNEP, 2011)과 2012년 해양쓰레기에 관한 글로벌 파트너십 형성 전후를 기점으로 이에 대한 공동행동이 강조되고 있다.WWF나 Green Peace 등으로 대표되는 국제 NGO 역시 해양쓰레기를 세계적으로 문제화하는 데 기여했다. 해양은 해양쓰레기로부터 보호해야 할 대상으로서 재구성되고 있다.△인류를 위협하는 가장 작은 적, 심해 점령 플라스틱매년, 세계 바다에 버려지는 플라스틱의 양이 최대 1천만t에 달한다. 10,000,000t. 100억㎏. 쉽게 짐작이 되지 않는 너무나도 큰 양이다. 알 자지라(Al Jazeera)의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의 바다 플라스틱을 모아서 납작하게 펼쳤을 때 대략 카타르 크기의 지역을 덮을 수 있다. 그리고 50년 안에, 플라스틱 쓰레기의 면적은 프랑스의 국토 면적보다 더 커질 수 있다. 플라스틱이 세계의 바다를 옥죄어오면서 수십억 인류의 건강을 위협하고 있다.해양은 하나의 또 다른 인류의 가공할 쓰레기장이다. 매년 1500만t의 플라스틱 쓰레기들이 바다로 유입된다. 특유의 난분해성(분해가 잘 되지 않는 특징)은 우리 생활에 유익한 반면, 심해에서도 사라지지 않는 골칫거리 쓰레기다. 일본 타쿠 아무라(Taku Omura)팀이 최근 플라스틱 심해도 분석 연구에서 심해 플라스틱 쓰레기들이 어떻게 생분해되는지, 그 생분해를 돕는 미생물 집단의 특징은 어떤지에 대한 연구를 진행해 연구 결과를 네이처(nature)지에 게재했다.△파악조차 어려운 미세플라스틱 쓰레기 피해해양수산부 해양환경정보포털에 따르면 지난해 정부와 각 지자체에서 수거한 해양쓰레기는 약 12만6000t으로, 6년 전인 2017년(8만2000t)에 비해 54% 급증했다. 2013년 4만9000t에 불과했던 집계치는 2020년 13만8000t으로 최대치를 기록했다. 2021년에는 12만1000t으로 감소했지만, 지난해 다시 5000t(4%) 늘어났다. 정부가 지역별 해안 쓰레기 모니터링 통계를 매년 공개하고 있으나, 실제로 얼마나 발생했는지는 정확히 파악할 수 없는 상황이다.겉으로 드러난 해양오염보다 우리가 보지 못하는 영역은 더 심각할지도 모른다. 물의 표면 아래 떠다니는 미세 플라스틱은 전체 해양 플라스틱의 약 99%를 차지한다. 최대 75조 개의 미세 플라스틱 조각들이 바다에 떠다닌다. 해산물에 축적된 플라스틱이 우리의 식탁 위에 오르는 것은 그중 하나다. △인천시, 100t급 해양환경정화선 1척 더 건립할 계획한강을 통해 유입되는 매년 수만t의 쓰레기와 폐어구들로 인해 몸살을 앓고 있는 인천시는 2022년 해양쓰레기 수거 관리 체계를 본격 개선했다. 해안가 쓰레기 불법투기 감시 인력을 기존 11명에서 36명으로 늘리고, 대상 지역도 대폭 확대할 방침이다.또 어민들이 수거한 해양쓰레기를 사들이는 사업에 총 3억 원의 예산을 투입하고 해양쓰레기 집하장도 5곳을 추가 설치한다. 올해 말까지 75억 원을 들여 100t급 해양환경정화선 1척을 더 건조한다.현재 인천의 해양오염도 조사, 미세플라스틱 조사 등에 투입하는 해양환경정화선은 85t급 ‘씨클린호’가 유일하다. 지난해 무인도 등에서 모두 22t의 해양쓰레기를 처리했다.△세계 최초 해양쓰레기 수거용 액화천연가스·수소 하이브리드 선박 신기술거둬들인 해양쓰레기를 육상에서 재활용·소각·매립하던 처리기술이 변화하고 있다. 배 위에서 해양쓰레기 수거와 처리를 한꺼번에 하는 신개념 LNG·수소 하이브리드 특수선박 기술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아이디어는 부산대 수소선박기술센터에서 나왔다. 지난해 2월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다부처 공동 사업에 선정되면서 2026년까지 국비 278억 원, 부산시·울산시·경남도비 100억~130억 원, 민간기관 90억 원 등 500여억 원의 사업비를 투자받기로 했다. 상용화 시기는 2027년으로 잡고 있다.사업의 성패를 가를 핵심 기술은 영하 163도의 냉열을 이용해 해양쓰레기를 얼려서 분쇄하는 기술이다. 해양쓰레기를 배 위에서 수거·처리해서 수소를 만들면 해상과 육상을 오가는 데 드는 시간과 비용을 줄이고, 육상 처리에서 생기는 매립·소각 문제를 해결하는 효과가 있다. /윤희정·장은희기자

2024-05-30

백두대간 초목 푸르게 푸르게… “산림은 가꾸고 지키는 것”

기후 온난화로 인한 기후 재앙이 지구촌을 뒤덮고 있다. 대형 산불과 극강의 호우로 인한 각종 재난으로 고통받고 있다. 급속한 산업화에 따른 과도한 탄소배출과 무분별한 도시개발 등으로 인한 자연생태계 파괴에서 비롯되고 있다. 기후 위기 극복은 우리의 소중한 산림자원을 지키고 가꾸는데서 출발해야 한다는 진단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산림자원은 대형 산불과 집중호우로 인한 산사태, 창궐하는 재선충병 등으로 파괴되고 있다. 이에 대한 예방대책은 물론 지속적인 숲가꾸기 사업을 통해 산림생태계를 보존하는 일이 무엇보다 시급하다. 백두대간을 중심으로 도시전체가 산으로 둘러싸인 문경시의 산림행정은 기후 위기의 최전선에 서있다. □ 백두대간 산림보호백두대간은 백두산에서 시작해 금강산, 설악산, 태백산, 소백산을 거쳐 지리산으로 이어지는 큰 산줄기를 일컫는다.문경시에는 황장산, 조령산, 희양산, 대야산이 백두대간에 속해있다. 백두대간 전체 길이 1400㎞ 중 110㎞에 이른다. 황장산과 조령산은 대한민국 100대 명산에 포함되어 있다.백두대간은 대한민국 국토의 중심 축이며, 수려한 경관을 간직한 생태계의 보고로 우리나라의 자연문화유산이기도 하다. 우리나라는 지난 2005년 백두대간 보호에 관한 법률을 제정해 법률로서 보호하고 있다.올해 4월 산림청은 경북도, 문경시와 함께 지구의 날의 기념하기 위해 백두대간 하늘재에서 백두대간사랑운동 캠페인을 개최했다. 문경시는 이처럼 중요한 백두대간 산림생태계를 지키고 관리하고 있다.□ 산림보호의 최대적 산불우리는 최근 5년 내 울진과 포항, 안동을 비롯한 경북전역에 대형산불이 잇따라 엄청난 산림이 훼손됐다. 기후변화로 산불은 점점 더 대형화되고 있고, 인적, 물적 피해도 예상을 뛰어넘을 만큼 막대하다.산불예방을 위해 봄철 2월 1일부터 5월 15일까지를 산불조심 기간으로 정해 산불대책 본부를 운영한다. 대책본부는 산불예방활동과 산불조기 발견을 위해 읍면동별 산불감시원을 배치하여 감시활동을 강화하고, 산불발생 시 진화를 위해 산불전문예방진화대 대책 본부하에 운영하고 있다.문경시는 산불발생 시 초동진화를 위해 3400ℓ급 헬기를 상주시와 공동 임차해 운영하고 있다.가을철 산불은 10월 1일부터 12월 15일까지 산불조심 기간으로 정해 운영한다. 봄철에 비해 산불 발생빈도나 피해규모 면에서 상대적으로 양호하지만 산불은 인명피해와 막대한 재산피해를 유발하는 만큼 예방활동과 진화에 있어 봄철과 동일하게 대책본부를 운영한다. 산불진화진화는 필수 전문인력인 산불전문예방진화대가 상당부분을 담당하고 있으나, 진화조직은 비정규직 약 40명으로 봄철 4개월, 가을철 2개월간 운영된다. 전문성 향상 측면에서 한계가 있어 이에 대한 중앙부처의 대책이 필요한 실정이다. □ 대형산사태 예방여름철 장마와 극한강우로 인한 산사태가 재난분야 아킬레스건으로 작용한다. 지난해 문경시와 예천군, 영주시, 봉화군은 기록적 폭우로 인해 많은 엄청난 피해를 입었고, 아직도 그때의 악몽에 시달리고 있다.문경시도 집중호우로 인해 2명의 안타까운 인명피해가 났고, 농경지 유실, 도로 파손, 산사태 등으로 신음하고 있다.산사태는 예측이 어려운데다 순식간에 산림 내 토석류가 흘러내려 큰 피해가 발생한다.산사태 예방을 위해 사방댐 건설과 계류보전사업을 통해 유속의 흐름을 원활히 하고, 계곡으로부터 유출되는 토석류를 막아주는 사방사업 확대 추진이 불가피한 상황이다.무엇보다 산사태로 인한 인명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집중호우 시 안전한 곳으로 대피하는 것이다.과거 집중호우 시 대피에 대한 인식이 부족해 많은 인명피해가 발생했던 사례를 거울삼아 대피체계를 구축하고 주민들의 인식이 강화되고 대피가 일상화되어야 할 것이다. 문경시는 산사태 발생에 대비해 363곳을 산사태 취약지역으로 지정해 특별 관리하고 있다. 산사태 취약지역은 사방댐 건설 등 사방사업을 우선 추진하게 되고 주기적으로 모니터링을 실시하고 있으며 매년 취약지역을 확대하고 있다.문경시는 올해 집중호우에 대비하가 위해 마을 단위의 대피소 안전여부를 전문기관에 용역을 의뢰해 부적정 판정을 받은 대피소를 보다 안전한 곳으로 재지정할 계획이다.지방은 고령화로 인해 거소주민의 상당수가 연로하거나 몸이 불편한 분들이 많아 대피소가 있다 하더라도 신속한 대피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문경시는 이에 따라 소방서와 경찰서와 합동으로 부상자나 몸이 불편한 주민 대피 훈련을 상시적으로 하고 있다.□ 재선충병 방제우리나라 산림은 소나무가 주를 이루고 있다. 1998년 우리나라에 소나무의 위기가 찾아왔다. 1905년 일본에서 최초로 발생한 소나무재선충병이 1998년 부산에서 발생해 현재 전국적으로 확산된 상황이다.정부는 2005년도 소나무재선충병방제특별법을 제정하여 본격적인 방제작업을 실시하고 있다. 소나무재선충병은 단기간에 급속히 나무를 고사시키는 시들음병으로 한 번 감염되면 치료 회복이 불가능하고 100% 고사해 흔히 소나무에이즈라고 불리기도 한다. 이처럼 소나무재선충병은 현재 치료방법이 없어 병에 걸린 나무를 제거해 추가 확산을 방지하는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지금은 지역에 맞는 방제방법을 택하고 있고, 항공방제, 약제방제, 천적활용 등 다양한 방제방법을 시도하고 있다.문경시 산림보호팀은 소나무재선충병 확산을 저지하기 위해 고사목 제거, 수간주사, 항공방제 등을 실시해 최상단 백두대간까지 확산 하는 것을 막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 숲을 가꾸는 산림행정산림보호팀의 특별한 업무 중 하나가 산림을 지키고 가꾸는 일이다. 문경시 산림녹지과는 산림경영팀, 산지관리팀, 산림보호팀, 녹지조경팀, 산림휴양팀으로 구성돼 산림행정을 펼치고 있다.산림경영팀은 숲가꾸기사업과 입목벌채허가, 백두대간주민지원사업 등 업무를 추진하고 있으며, 그중 주목할 업무는 백두대간주민지원사업이다.백두대간주민지원사업은 지리적으로 백두대간과 인접해 산림경영에 있어 상대적으로 불리한 지역(문경읍, 가은읍, 농암면, 동로면) 주민들을 대상으로 각종 보조 사업을 추진한다.산지관리팀은 산지의 이용적 측면에서 산지를 농업인 주택 및 창고 등 산지전용허가와 쇄골재용, 토목용, 건축용재 생산을 하기 위한 토석채취허가, 광물생산 관련시설 설치를 위한 산지일시사용허가 등의 업무를 추진하고 있다. 녹지조경팀은 유휴토지를 활용해 숲조성, 소공원조성, 가로수 조성 및 관리의 업무를 추진하고 있다. 산림보호팀은 산림 내 불법임산물채취, 불법산지전용, 불법입목벌채 등 산림 내 위법행위에 대해 조사와 수사를 거쳐 검찰청에 사건을 송치하는 업무를 한다. 산림휴양팀은 문경시 10대 중점추진 업무인 문경새재하늘길조성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올해 문경읍의 랜드마크인 봉명산 출렁다리를 준공해 문경을 찾는 많은 관광객들에게 볼거리 즐길거리를 제공하고 있다.신현국 문경시장은 “각종 재난에 대한 대비를 철저히 하여 안전한 문경시를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며, 특히 산불, 산사태 등 산림재난에 대해 유관기관과 면밀히 소통하고 철저한 준비를 통해 재난 피해를 최소화 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강남진기자75kangnj@kbmaeil.com

2024-05-30

신임·이임 감사들 행차 굽어보며 태평성대 빌었던 노송

문경새재 옛길은 역사의 길이다. 영남의 선비들이 한양으로 오가며 과거시험 보러 가는 등용문의 길이며 낙향의 길이다. 외침으로부터 조선의 수도 한양을 지키는 고갯길이다. 이런저런 우리 조상의 삶이 스며있는 애환의 아리랑 고갯길이며 인생길이다.이제 옛 기억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건강을 위한 치유와 명상의 숲길로 재탄생하여 힐링하는 사람들로 물결치고 있다. 신록의 계절 오월의 어느 주말 문경새재 녹색 숲길을 찾았다. 넓은 주차장부터 만차이다. 영남인뿐만 아니라 전국, 세계인들이 찾아오고 있다. 무엇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을까? 산속 숲길에는 유명한 가수의 공연도 명사의 강연도 인위적인 그 어떤 행사도 놀이기구도 없다. 그저 나무들이 운집한 울창한 녹색의 숲에는 맑은 계곡물 흐르는 소리, 새들의 지저귐, 바람 소리 등 자연의 소리뿐이다. 그러나 녹색의 숲길에 들어서면 볼 수도 없는 신선한 공기가 쭈그러진 우리의 가슴을 부풀게 하고 축 늘어진 어깨가 으쓱해지고 동공을 키우며 마음을 매료시킨다.넓은 푸른 잔디광장 끝에는 주흘산과 조령산 자락을 끌어당겨 성벽으로 묶어 놓고 중앙에 주흘관이라는 육중한 성문을 만들어 놓았다. 문짝 없는 성문은 밀려드는 사람들을 마다하지 않고 품었다. 먼저 조선 관리의 공덕비가 한 줄로 서서 방문객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새재의 숲길은 오월의 따가운 햇살을 나뭇잎들이 가리어 그림자를 드리우고 길 위에는 녹색의 향을 뿌렸다. 길 따라 깊은 숲속에서 계곡물이 흘러내리고, 길옆 도랑에는 계곡물을 끌어들여 또 다른 작은 물길을 터놓았다. 물은 자연의 섭리에 따라 낮은 곳으로 흐르니 극히 자연스러운 데 반하여 나는 숲길을 거슬러 오르니 숨이 차다. 물은 낮은 곳으로 흐르는 것이 본성이나 인간은 높은 곳으로 오르고 싶은 욕망 때문에 늘 힘들어한다. 무거운 욕심의 짐 내려놓으려고 하나, 그것 또한 마음뿐이다. 물길은 내림의 길이고 인생길은 오름의 길인가 보다. 맑은 물소리는 자연의 소리와 하모니를 이루어 녹색 숲의 깊은 늪에 빠져들게 했다.주흘관(主屹關)과 조곡관(鳥谷關) 중간 지점 용추연(龍湫淵)이 있었다. 용추연은 계곡 바위 위에서 떨어지는 폭포 아래에 깊은 소가 있는 곳으로 오랜 세월 동안 자연이 빚어 만든 절경으로 많은 시인 묵객이 노래하던 곳이다.아름다운 용추연 있는 곳에 교귀정(交龜亭)이 있었다. 교귀정은 조선시대 경상도 신구감사 교인식을 거행한 교인처(交印處)를 말한다. 교귀정에는 소나무 노거수가 늘 함께하고 있었다.짐작하건대 언뜻 보아도 나이가 삼사백 살은 되어 보인다. 거북등 같은 육각형 수피가 뚜렷이 몸을 감싸고 있는 것만 보아도 그렇고, 몸 둘레의 굵기는 2.6m이고 키는 8m나 되었다. 외모로 보아도 인고의 세월을 견디어 온 범상치 않은 경륜을 말해 주고 있었다. 교귀정 주변에는 이 외에도 여러 그루의 소나무 노거수가 함께 살아가고 있었다. 뭐니 해도 문경새재 숲길의 절정은 용추연과 돌에 새겨진 그 노래 시비, 교귀정과 그 지킴이 소나무 노거수가 있는 이곳이 아닌가 싶다.교귀정 노거수는 청렴, 절개, 사랑, 효도의 표징으로 관리의 서약을 받았을지도 모른다. 소나무는 우리 민족의 삶과 문화에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민족의 나무라 할 수 있다. 부임하는 관리에게는 응원의 격려를, 떠나는 관리에게는 감사의 박수를 보냈을 것이다. 이제는 할 일이 없어졌는지 비스듬히 누운 자세로 노송은 여유를 즐기며 교귀정을 지키고 있다. 새알 같은 둥근 바위에 “이 교귀정 소나무는 … 마치 여인이 춤을 추는 듯 새재를 찾는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고 있다. 보면 볼수록 특이한 형태와 수형으로 그 신비감을 더해 준다”라고 소나무 노거수를 찬양한 글이 새겨져 있었다. 교귀정 노거수가 이렇게 오랫동안 산 증인으로 살아갈 수 있었던 것은 ‘불됴심’이라 새겨진 길가 비석 때문이 아닐까. 새재 길을 오르내리는 사람들이 불조심이라는 경구의 표석을 보고 마음에 새기고 조심한 덕분이 아닐까. 그러나 교귀정 소나무는 하필 물도랑을 낼 때 뿌리 밑으로 내는 바람에 뿌리가 많이 상한 탓에 가지가 고사한 흔적이 여기저기 보여 안타까움을 자아내었다. 지난봄, 여름, 가을, 겨울에도 이 길 위를 걷고 또 오늘도 걸었다. 사계절 걸으면서 듣는 숲속의 바람 소리는 제각각 다르게 느껴졌다. 숲의 위치에 따라, 나무의 종류에 따라, 지형에 따라, 고도에 따라, 음지, 양지에 따라, 날씨에 따라 달랐다. 또한 마음의 평온 여부에 따라 달랐다. 숲은 소리의 고향이 아닌가 싶다. 문경새재 숲길이라는 장소는 변함없는데, 계절에 따라 또 다른 모습과 느낌으로 다가온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많이 찾아와 신발을 벗어놓고 맨발로 걷는 사람도 많다. 발을 씻을 수 있는 세족장에서 바가지로 물을 퍼 흙 묻은 발을 씻고 있는 그들의 얼굴은 환하게 밝았다. 나 또한 그들과 같이 신발을 벗어 배낭에 넣고 맨발로 녹색의 숲길을 걸었다. 대지의 흙에 맨발바닥 살을 갖다 대니 묘한 촉감이 감정선을 자극했다.산이며, 하늘이며, 숲의 자연은 마치 사람의 얼굴과 같아서 자세히 보아야만 알 수 있으며 슬쩍 눈길만 주어서는 모른다. 하늘과 땅 사이에 물건마다 모두 주인이 있으니, 내 소유가 아니면 한 점도 취할 수 없지만, 오직 숲길에 부는 맑고 시원한 바람과 나뭇잎 사이의 따뜻한 햇살은 얼마든 취해도 막는 이 없고 아무리 사용해도 없어지지 않는다. 이야말로 조물주의 끝없이 감추어 놓은 화수분이 아닐까. 옛날 우리 조상들은 산의 아름다움은 흙으로 살을 붙이고 돌로써 골격을 삼고, 초목으로 모발을 삼는다고 했다. 초목이 무성해야 살과 골격을 온전히 보전할 것이다. 문경새재 숲길은 이 모두가 잘 갖추어져 있어 우리 조상의 자연사랑을 엿볼 수 있었다.문경새재 사계절의 숲길을 걸으면서 내 인생 한해의 삶을 반추해 본다. 풍성한 수확을 기대하면서 살아왔지만, 매번 큰 결실의 열매를 얻지는 못한 것 같다. 나의 노력이 부족 하였든지 아니면 봄에 희망의 씨앗을 제대로 뿌리고 여름에 가꾸는 데 나무와는 달리 열심히 노력을 기울이지 못했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봄의 희망이 지키지도 못할 과한 욕심이 아닐는지. 매년 후회를 하면서 늘 빈 가슴을 안고 살아왔다. 그러나 나에게 물질적으로 얻은 것은 그다지 없다 하더라도 계절을 맞이하면서 보내는 숲길에서 콩나물 같은 철학의 이삭 하나쯤은 주었다.매번 숲에 오면 숲과 한 몸이 된다. 숲에서 심호흡하고 숲의 향기를 맡고, 나무와 숲을 감상해 본다. 숲속 나무 아래에 서서 나무를 쳐다보며 허파 속 묵은 공기를 내뿜고 신선한 숲의 공기를 마셔본다. 공기의 신선한 맛을 음미하면서 온몸의 핏줄을 따라 퍼지는 것을 느껴본다. 욕심의 찌꺼기를 씻어내니 빈손으로 들어가 나올 때도 비록 빈손이지만, 텅 빈 가슴에는 기쁨의 충만감으로 가득 채워져 있다. 경상감사 도임행차(到任行次)는교귀정은 도임하는 신임 감사와 업무를 마치고 이임하는 감사가 관인(官印)을 인계인수하던 곳이다. 문경새재 용추폭포 옆에 위치했다. 문경 현감 신승명(愼承命)이 1400년대 후반(1466-1488년)에 세웠다고 전해진다. 구한말에 불에 타 없어졌던 것을 1999년 중창하였다. 경상감사 도임행차는 조선시대의 ’미암일기초(尾84ED日記草)‘와 ’탐라순력도(耽羅巡歷圖)‘에서 보여지는데 총 300여 명으로 구성됐었다./글·사진=장은재 작가

2024-05-29

“고향을 찾아가는 일은 묻었던 옛 기억을 소환하는 일”

한 사람이 한 가지 일을 제대로 잘하기도 어려운 세상이다.그런데, 묵직한 중저음으로 노래하는 가수이자, 사람들의 가슴을 울리는 음악을 만드는 작곡가, 거기에 사진전시회를 열 정도의 카메라 촬영 실력을 갖췄고, 대학에서 한국 대중음악 역사를 학생들에게 가르쳤으며, 글까지 잘 쓰는 사람이 있다면 누구나 이런 질문을 던질 법하다.“그게 대체 누구야?”중언부언 하지 않고 바로 답한다.“이지상(58)이다.”1998년 첫 번째 음반 ‘사람이 사는 마을’을 필두로 몇 해 전엔 여섯 번째 음반 ‘나의 늙은 애인아’를 대중들에게 선보인 이지상은 노래와 작곡 활동 외에도 여행기 ‘스파시바, 시베리아’와 ‘여행자를 위한 에세이 북(北)’을 출간하며 음악 만들기와 글쓰기 2가지 측면 모두에서 발군의 실력을 보여 왔다. 바로 그 재능 승한 이지상이 또 한 권의 책을 자신의 프로필에 보탰다. 이름하여 ‘포천’(21세기북스 출간). ‘대한민국 도슨트-한국의 땅과 사람에 관한 이야기’라는 부제가 붙은 서적이다.경기도 포천시는 이지상의 고향. 이번 책에서 그는 포천의 산과 호수, 숲과 거리를 수십 번 거듭 살펴 걸으며, 제 고향의 진면목과 숨겨진 아름다움을 독자들에게 소개한다. 앞서 언급된 ‘도슨트(docent)’는 안내자 혹은, 길잡이로 해석이 가능한 단어다.책에 수록돼 포천시의 매력을 유감없이 보여주는 사진도 모두 이지상이 직접 촬영한 것이다. ‘팔방미인(八方美人)이 쓴 흥미로운 책’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고향에 대한 애정과 그리움은 경기도 사람과 대구·경북 사람이 다를 수 없다. 그래서다. 이지상에게 전화를 걸어 인터뷰를 부탁했다.“그럽시다.” 시원하고 흔쾌한 대답으로 시작된 기자와 이지상의 제법 길었던 대화. 아래 그걸 요약해 독자들께 전한다. ‘포천, 대한민국 도슨트-한국의 땅과 사람에 관한 이야기’ -포천은 당신의 고향이다. 그러나, 그것과 고향에 관한 책을 쓰는 건 다른 문제다. 집필의 이유는.△출판사로부터 집필 의뢰를 받았다. 대한민국의 곳곳을 책을 엮어 안내하는 ‘도슨트 시리즈’를 기획 중이었는데 ‘포천’편을 내가 쓰게 된 거다. 지역의 역사와 문학과 문화가 어우러지는 심도 깊은 인문 안내서 집필을 주문받았다. 책방을 꼭 넣어달라는 부탁이 인상적이었다.-읽어보니 취재를 위해 소요된 시간과 공력이 적지 않았을 듯하다. 지치고 힘들 때 에너지는 어디에서 얻었나.△계약서에 도장 찍고 출판까지 4년 정도 걸렸다. 첫 문장을 바로 시작하지 못했고 최초 6개월 정도의 사전 취재를 거친 후 취재와 집필을 반복하는 형식이었다. 고향을 찾아가는 일은 묻어 두었던 옛 기억을 소환하는 일이다. 찾아가는 동네마다 생각나는 이름이 있었다. 각색되지 않고 고스란히 내 머릿속에 저장돼 있던 오래된 풍경들은 더없이 좋았다. 집필 기간은 3년 정도였는데 지칠 일이 없었던 이유는 그때마다 충전되는 그리움이라는 양식이 있었기 때문인 듯하다.-포천은 당신이 ‘나의 하느님’이라 부르는 어머니가 살다가 돌아가신 곳이다. 거길 다녔으니 당연지사 어머니를 떠올렸을 텐데.△난 자연을 신으로 믿는 사람이다. 내가 익혀왔던 자연의 중심에는 언제나 어머니가 있었다. 모든 순간 내가 신께 나의 기도로 의지할 수 있었던 이유는 내가 믿는 신이 어머니의 모습이라고 생각해서다. 포천의 25곳을 선정하고 100여 번을 넘게 다니면서 그리움의 흔적을 적어내는 일은 거기서 어머니와 나눈 대화였다고 해도 무방하다. 아픈 다리로 절며 평생을 사신 어머니가 장터로 가신 길을 함께 다녔고, 생전의 어머니가 한 번도 다녀가지 못했던 포천의 명소도 함께 걸었다. ‘여기 참 좋다’라고 분명히 말씀하셨을 어머니의 육성을 환청으로나마 듣는 순간이었다. -출간 과정에서 행복했던 순간과 힘겨웠던 순간은.△어려웠던 일이라… 내가 원하는 장면을 보기 위해 새벽부터 서둘러야 하는 일이 많았다. 울미마을 연꽃이나 산정호수의 잔물결은 새벽안개가 있어야 했다. 또한 밤늦게 까지 머물러야 하는 시간도 있었다. 명성산 갈대밭의 우체통은 저녁 무렵이어야 했고, 한탄강 하늘다리위에는 꼭 별이 있어야 했으니까. 명성산에서 하산할 땐 위험한 순간도 있었다. 반면 행복한 기억도 많이 떠올렸다. 학창시절을 함께 보냈던 벗들의 이름을 기억할 때였다. 어느 동네를 가든 떠오르는 이름들이 있었고, 그 이름을 대면 동네 사람들은 마치 오래된 이웃처럼 반겨줬다. 그 중에는 벌써 세상을 등진 이름들도 있었다. 하지만, 안타까움과 회한조차 그리움으로 여겨지는 순간이었다.-책에는 포천의 명소가 여럿 등장한다. 그중 딱 한 곳만을 골라야 하는 사람에겐 어떤 곳을 추천하고 싶은지.△서점 ‘무아의 계절’이다. ‘이건 현실이지만 멋지군’이란 영화의 명대사를 고스란히 옮겨놓은 공간이다. 경영난에 언제 문을 닫을지도 모를 위태로운 공간이기도 했다. 미래의 불안을 책과 함께 이겨내려는 서점의 모든 것이 아름다웠다. ‘책이 나오기 전에 서점이 사라지면 어떡하지’란 걱정을 한 적도 있다. 다행히 공간을 옮겨 상가가 많은 곳에서 잘 운영되고 있다고 한다. 나와 같은 삶의 불안을 내재하고 있어 더 애정이 가는 공간이다. -본업이 가수다. 그럼에도 정확한 단어 선택과 유려한 문장의 조합이 썩 좋아 보였다. 문장 강화를 위해 특별한 노력을 했는지. 당신만의 글쓰기 노하우가 있는 건가.△대학에서 국문학과를 다녔지만 글 쓰는 것과는 무관한 학교 생활을 했다. 다만 노래를 만들고, 시대와 불화하는 삶을 살면서 주워들은 얘기가 많았던 것 같다. 굳이 노하우를 묻는다면 어떤 창작을 하건 오래 걸린다. 분량과 무관하게 글 한 편, 노래 한 곡 만드는데 보통 이틀이나 사나흘 밤을 샌다.-이번 책의 제목이며, 당신의 고향인 ‘포천’은 어떤 매력이 있는 곳인지.△잘나지는 못했지만 모나지 않은 사람들이 많이 사는 곳이 아닐까 싶다. 내가 누구라고 우쭐댈 필요도 없고, 또한 같은 이유로 비굴해질 필요도 없는 평범한 사람들의 도시다. -당신 존재의 2가지 측면 즉, 가수와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각각의 계획은.△다가올 가을에 7집 음반을 발매해야 한다. 기다리는 사람은 없어도 해야 할 일은 해야겠기에(웃음). 노래는 준비가 돼있다. 제목을 ‘천천히 순하고 뜨끈하게’로 해볼까 생각 중이다. 발매 후엔 당연히 콘서트도 열 계획이다. 또, 연말까지 순천 와온해변을 무대로 생의 가치를 재점검하고 새로운 삶을 기약하는 책을 써야 한다. 계약 기간을 훌쩍 넘겼는데 아직 시작을 못했다. 2년 동안 와온해변을 숱하게 다녔다. 지난해 9월엔 사진전도 열었다. 5년쯤 뒤 다시 준비할 사진전을 위해서도 열심히 발품을 팔아야 한다.-마지막으로 덧붙일 말이 있다면.△포천을 소개하는 책이지만, 포천을 매개로 한 ‘자기 고백서’로 읽어주시면 더 좋겠다. 나와 비슷한 삶을 살았거나, 비슷한 생각을 하거나, 비슷한 언어를 쓰는 사람들이 적지 않을 거라고 여긴다. 이 책을 통해 그들과 교감할 수 있다면 좋겠다. /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2024-05-28

영주에 생활·문화인프라 갖춘 청년들의 보금자리 들어선다

영주시에 지방소멸 위기에 대응할 지역활력타운이 들어선다. 2024년 지역활력타운 조성 공모사업에 선정됐기 때문이다.영주시는 최근 국가산단 최종 승인과 영주댐 준공에 따라 산업, 문화, 레저 등 다양한 부분에 성장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이는 영주시의 미래를 밝게 하는 청신호다. 지역활력타운은 행정안전부, 국토교통부, 문화체육관광부 등 8개 중앙부처가 합동으로 청년층·은퇴자 등의 지역 정착을 지원하는 사업으로 주거·문화·복지·일자리 등을 복합 지원해 살기 좋은 주거단지를 조성하는 사업이다.영주시는 최근 국가산단과 영주댐 준공에 따른 산업, 문화, 관광 레저 기반이 확충되면서 이를 뒷받침 할 정주여건 등 대도시 수준의 생활서비스 필요성에 대한 주민 요구가 높아지고 있다.이런 가운데 지역활력타운 선정은 영주시로서는 미래 성장 예측의 가능성을 높여주는 성과물이라 할 수 있다.지역활력타운 조성사업은 주거, 생활인프라, 생활서비스가 연계된 인구유입 활력 플랫폼을 구축, 영주의 새로운 생활거점을 조성해 지방소멸 위기에 대응하고 필수 생활 서비스를 통합적으로 지원하는 신거점으로 만들어 나가게 된다. □ 사업계획지역활력타운은 청년인구 유입 여건 조성과 지역 주민 활력 제고를 위해 주거, 생활인프라, 생활서비스가 연계된 인구유입 및 활력 플랫폼 조성에 중점을 두고 시행된다.2027년 첨단베어링 국가산업단지 조성 및 지역 대기업 SK스페셜티의 추가 투자로 일자리가 늘어나 유입 청년 근로자의 지역정착 유인에도 큰 역할을 할 전망이다.이 사업은 신도심 대비 인프라가 부족한 구도심 권역에 거점 인프라를 조성해 열악한 지역 정주여건을 개선, 대도시 수준의 삶의 질을 보장하게 된다.HIVE(벌집)처럼 북새통을 이루는 영주시 지역활력타운은 신규 산업단지 조성과 청년창업 특화프로젝트 운영으로 청년인구 유입과 정착 플랫폼을 구축하게 된다.생활SOC 재배치로 도심 균형발전 및 지역공동체 활성화와 구도심 활력을 위해 주거, 인프라, 서비스가 결합된 생활거점 공간으로 조성한다.지역활력타운 조성을 두고 시민들은 크게 반기고 있다.공모 사업 신청 전 시민들의 의견은 청년 및 신혼부부를 위한 주거공간 부족과 정주 불만족해소, 지역 유입 청년들을 위한 저렴하고 쾌적한 주거공간 확충의 필요성을 지적했다.이와 함께 영주형 주민 정주여건 개선과 서비스 부족, 신도심 중심의 도시 인프라, 국가산단 등 투자 기업에 의한 청년 유입과 이에 따른 주거공간 확충의 필요성을 들었다.이번 지역활력타운 사업이 확정되면서 지역민들의 의견 및 지적 사항이 해소되게 됐다. □ 추진 방향지역활력타운은 총사업비 693억원을 투입해 하망동 514번지 일원 4만3088㎡에 조성된다.주요사업 내용은 크게 3개 분야로 구분된다.주거부분은 청년·신혼부부를 위한 연립형 타운하우스 70세대 주거단지 조성과 생활인프라 부문은 복합커뮤니티센터에서 교육, 창업, 문화예술, 공동체 활성화 공간이 마련된다.실내스포츠복합시설에는 수영장, 다목적체육관, 건강증진센터, 체육특화 돌봄 공간 등으로 구성된다.생활서비스 부분은 주거, 인프라 시설과 연계 제공되는 특화 생활 서비스 공간으로 Hi Live는 새로운 주거와 정주공간으로 정착지원과 지역 융화, Hi Vive는 교육, 문화, 청년창업 등 교류의장, Hi Five는 체육특화 돌봄, 웰니스 건강증진 공간으로 조성된다.지역활력타운은 지역여건 고려 및 연계방안을 통한 인프라 구축, 지역 활성화를 도모하는데 역점을 둔다.특히 주민건강증진을 위한 의료서비스, 보육환경 만족도를 높여줄 영유아, 어린이 교육, 행정서비스 접근 편의 증진, 골목상권 회복을 위한 생필품 구매 및 로컬브랜딩 활성화, 편리한 금융서비스, 도서대여와 놀이방, 문화프로그램 운영, 아동, 노인, 장애인복지 통합 서비스, 교육환경 개선, 공원녹지 조성 등 주거 만족도를 높이게 된다.이뿐만 아니라 다양한 홍보 컨텐츠를 활용해 지역활력타운 홍보 및 유입대상자들의 관심을 유발하는 홍보계획을 수립해 추진한다.홍보활동은 하이브 홈페이지 제작 등 브랜드를 활용한 영주시 홍보와 지역활력타운 시설 상시 안내, 연간 월간 이벤트 등을 다양한 SNS를 통해 홍보하게 된다. 홍보는 영주시와 도슨트, 영주시관광협의회, 입주민협의체가 주체가 된다. □ 기대효과지역활력타운 사업의 기대 효과는 무엇보다 주민 만족도 제고 및 지역경제 파급 효과와 주민 생활여건 개선 부분이다.시는 주민 삶의 질 향상을 위한 가능성 부분에 대해 수요자 니즈에 맞춘 지역활력타운 조성으로 주민 생활여건을 향상시키는데 중점을 두고 있다. 이를 위해 실수요자의 의견을 고려 주거, 생활인프라, 생활서비스를 구성해 제공하고 구도심 지역을 지역활력타운 인프라 및 서비스 연계로 입주자와 지역민의 생활여건을 개선하는데 역점을 두고 있다.영주첨단베어링 국가산업단지 조성과 지역 대기업 SK스페셜티의 대규모 추가 투자 등으로 유입되는 청년 근로자의 지역정착을 유인하고 구도심 권역에 거점 인프라를 조성, 대도시 수준의 생활서비스를 제공을 위해 영주시는 행정력을 집중하게 된다.영주시의 미래를 위해 청년층의 안정적 정착을 위한 지역의 정주 여건 개선과 낙후된 구도심 발전을 위한 획기적 계기 마련을 위해 현재 지역에서 추진 중인 대규모 사업들과 더불어 지역을 떠난 청년들을 유입해 도시 활력을 높일 수 있는 다양한 사업을 추진하는 등 영주 발전을 전략적으로 실현해 나가게 된다.지역활력타운 조성으로 지역주민 일자리 창출 및 지역경제 파급 효과는 1258억원의 생산유발 효과와 513억원의 부가가치유발효과, 742명의 취업 효과가 발생할 것으로 전망된다.시는 사업유지 및 관리계획의 적절성을 위해 체계적이고 안정적인 운영 관리를 위한 민관협업 체계를 구축할 방침이다.협력체계 구축은 유관기관, 입주자 등 6개 기관 협력으로 운영위원회를 구성해 주거, 생활인프라, 생활서비스별 협력 체계를 마련한다.시는 사업의 연계성과 종합적인 성과를 도출하고자 시민과의 소통을 통한 현장 요구 해소 등 다양한 협의를 바탕으로 사업을 추진해 나갈 계획이다.전국 243여개의 지방자치단체들 중 광역 및 인구밀집 도시 일부를 제외한 대부분의 지자체는 비슷한 환경의 지역 문화, 관광자원, 산업기반, 교육 자원을 갖고 있다.각 지자체는 지역 발전을 위해 다양한 아이디어를 발굴하고 시책으로 적극 추진하지만 기대만큼 성장하지 못하는 것도 현실이다.지방자치시대가 되면서 주민들의 요구와 그 다양성도 세분화되고 있다. 또한, 지역주민의 동시다발적인 숙원사업의 요구도 늘어가고 있다. 이러한 주민 요구는 지방재정으로는 해결하지 못하는 숙제이기도 하다.그러나 이번 영주시의 2024년 지역활력타운 조성 공모사업 선정은 영주시가 한층 더 발전하는 새로운 변화의 기회가 될 것이라는 시민들의 기대치가 높아지고 있다./김세동기자 kimsdyj@kbmaeil.com

2024-05-26

연륜 쌓인 ‘노목의 기개’서 공자의 가르침을 얻다

하늘에서 녹색의 빗물이 봄바람 붓끝에 휘몰아쳐 산천을 채색하고 있다. 겨울의 텅 빈 흑백의 산야에 풍성한 녹색의 물결이 어제와 오늘이 다르게 출렁이며 춤을 추고 있다. 녹색의 빗물이 서석지를 녹색으로 물들이고 처마 기와 골 끝에 줄지어 마당으로 떨어지는 녹색 빗물은 작은 웅덩이를 만들어 동그라미를 그리며 사라진다.비 내리는 오월, 정원의 경정 마루 끝에 앉아 있노라니 몸과 마음이 녹색으로 물들어 간다. 성리학에 심취한 정원의 주인 정영방(鄭榮邦)은 경북 영양 자양산의 남쪽 자락에 터를 잡고 거처할 집을 짓고는 자연에 철학을 담은 정자와 연못이 있는 아담한 정원을 조성했다.연못은 사각형의 돌출된 부분을 두어 선비들이 좋아하는 송죽매국(松竹梅菊)을 심어 그 본성을 노래하며 삶의 본보기를 삼았다. 동북쪽 귀퉁이에 연못으로 물을 끌어들이는 도랑을 내고, 그 대각점이 되는 서남쪽 귀퉁이에 물이 흘러 나가는 도랑을 두었다. 바깥 물이 들어오면 자연히 넘쳐 나가는 자연의 섭리를 따랐다. 연못 안에 솟은 서석군(瑞石群)에서 유래하여 서석지(瑞石池)라 이름을 지었다. 크고 작은 20여 개 돌들이 각양각색의 형태로 솟아 있는 것을 보고 돌 하나하나에 선유석(仙遊石)이니 통진교(通眞橋)니 하면서 이름을 붙여 의미를 부여했다.이는 정원 주인의 학문과 인생관은 물론 은둔생활의 이상적 경지와 자연의 오묘함과 아름다움을 찬양하고 심취하는 심성을 나타낸 것이리라. 정자의 네모난 기둥에 원기둥 하나는 양을 표시하고 둥근 기둥에는 네모난 고리를, 네모난 기둥에는 둥근 고리로 음양의 사상을 재현했다.정자의 건축과 연못의 조성에도 성리학의 이기론(理氣論) 철학을 표현했다. 우주와 인간의 본질을 이(理)와 기(氣)의 상호작용이라면서 이(理)는 불변하는 원리나 이치를, 기(氣)는 물질적 에너지를 의미했다. 인간의 본성과 정서, 도덕적 행위를 이해하는 데 중점을 두며, 인간이 선한 이(理)를 실현하도록 강조했다.성리학은 조선시대에 이르러 통치 이념으로 채택되었고, 사회적 질서와 윤리적 가치를 강화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인간의 심성을 탐구하고, 인의예지(仁義禮智)의 본성을 강조했으나 관념적인 면이 강하여 개인의 자유나 개성, 실사구시적인 면에서는 등한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과거의 의미와는 달리 오늘날 이곳을 찾는 방문객은 세 부류로 나눌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고건축물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경정(敬亭)이라는 정자와 그 부속건물을, 연못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서석지를, 나처럼 노거수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은행나무를 보러 오지 않을까 싶다. 삼종을 한 세트로 묶어서 연당마을 서석지(瑞石池)로 통한다. 연못(蓮池)은 땅을 파거나 흐르는 물을 막아서 물을 가두어 놓은 곳을 의미한다. 못(池)은 대개 자연스럽게 형성된 느낌이 나지만, 연못이라 하면 사람이 미관을 위해 정원 등 인공적으로 만든 느낌이 난다. 연못은 스스로 작은 생태계를 구성하므로 자연스레 오랫동안 보존될수록 희귀생물의 보고로 변한다. 생태적인 정원의 연못에 인문학의 옷을 입혀 이상적인 삶을 엿볼 수 있다. 녹색에 물들면서 그 옛날 조선의 성리학에서 오늘날 생태학의 정원으로 바라보았다. 연못은 주택에 필요한 부속품이다. 삶에 있어서 건강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 연못은 건강을 답보하는 예방 의학적 측면에서도 또한 삶의 정서를 살찌우는 심리적 측면에서도 더할 나위 없이 좋다.연못은 정원과 함께 더운 여름에는 높은 기온을 낮추고 추운 겨울에는 낮은 기온을 높인다. 또한 습도를 조절하는 등 미세 기후를 조절하여 우리 건강에 도움을 준다. 미생물, 곤충, 새 등 다양한 생명체들이 살아가는 데 물을 제공하는 등 많은 생명체를 불러들여 자연 생태계의 다양성을 놓인다.정원의 미적 아름다움은 정원의 주인이나 찾아오는 방문객들에게 정서를 순화시켜 심미적인 감흥에 젖어 들게 한다. 인공으로 만든 연못이 자연과 조화하여 아름다움을 더할 뿐만 아니라 작은 생태계의 핵심 구역으로 그 기능을 발휘하기도 한다.특히 은행나무는 석문 정영방 선생이 본래 의도한 바는 아니지만, 부인이 가마 안에 은행나무를 가지고 와서 심었다고 하니 참으로 선생의 아내다운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한 신의 한 수라는 생각이 든다. 은행나무는 처음에는 정원의 일개 구성원인 평범한 가족이었으나 세월의 연륜이 쌓이면서 성장하여 이제는 정원의 주인격이 되었다. 언젠가 모르게 담장을 뛰어넘고 연못에 그림자를 드리우며 자신의 존재감을 키워갔다. 이제는 어릴 적에 쳐다보았던 정자도 송죽매국도 모두 은행나무를 쳐다보는 격이 되었다.나이가 많아 주민들로부터 어른 대접으로 지팡이도 선물 받았다. 그 누구도 함부로 볼 수 없는 석문에 있는 거대한 촛대, 선바위를 볼 수 있고, 석벽을 끼고 흐르는 남이포 푸른 물도 볼 수 있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지금은 정원뿐만 아니라 마을의 품격도 높여 주고 유명세는 날이 갈수록 하늘을 솟구치고 있다. 이제는 서석지 하면 은행나무 노거수를 빼놓을 수 없게 되었다.까치는 은행나무에 둥지를 틀고 아침마다 반가운 소식을 전한다. 까치 가족이 오순도순 살아가는 모습에서 반포지효(反哺之孝)라는 교훈을 얻는다. 까마귀 새끼가 자라서 늙은 어미에게 먹이를 물어다 주는 효라는 뜻으로, 자식이 자라서 어버이의 은혜에 보답하는 효성을 이르는 말이다. 또 은행나무는 행단(杏壇)을 생각하게 하고 행단은 공자를 떠올리게 한다. 공자는 15세에 지학(志學), 학문에 뜻을 두었고, 30세 이립(而立), 학문에 기초를 세웠다. 40세 불혹(不惑), 사물의 이치에 대해서 의문 나는 점이 없었고, 50세 지명(知命), 천명을 알았다. 60세 이순(耳順), 남의 말을 순순히 받아들일 수 있었고, 70세 종심(從心), 뜻대로 행하여도 도에 어긋나지 않았다고 한다. 은행나무 아래에서 공자의 일생을 생각하면서 또 하나의 교훈을 얻는다.서석지를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정원의 아름다움과 정자와 연못의 오묘함만 설명할 것이 아니라 정원의 연못과 은행나무의 생태와 문화를 설명하고 인문학의 옷을 입혀 주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아내는 나를 가만히 쳐다보더니 말했다. “당신은 참으로 행복한 사람이다,” 왜? “이렇게 아름다운 좋은 곳에 와서 그 옛날의 발자취를 더듬고 오늘날 문학의 옷을 입혀 스스로 침묵 속에 감동과 환희의 시간을 가지니 더 무엇을 바랄 것인가.”라고 말했다.그렇다. 비를 맞으면서 마음 내키는 대로 행동하는 나 자신을 잊고 있다. 고금을 드나들며 무아지경(無我之境)에 빠져 있다고 할까.영양 연당마을 서석지(瑞石池)는…서석지는 성리학자이며 문인인 정영방(鄭榮邦)이 1613년에 조선 광해군 시대 축조하였다고 전한다. 은행나무 나이는 440살, 키는 15m, 가슴높이의 둘레는 6m가 넘는다. 수관 폭이 24m이고 앉은 자리 넓이는 130여 평이나 된다. 담양의 소쇄원(瀟灑園), 보길도 세연정(洗然亭)과 함께 서서지 정원을 우리나라 3대 민간 정원으로 꼽았다. 경상북도 영양군 입암면 연당리 394-1 위치해 있으며, 중요민속자료 제108호이기도 하다./글·사진=장은재 작가

2024-05-22

작지만 강한 도시 청송… 크게 펼치는 ‘보편 복지 시스템’

한국이라면 어느 시·군이랄 것 없다. 이전 시대와는 변별되는 개별 지방자치단체의 복지 정책 개발과 실행에 골몰하는 게 21세기를 규정하는 하나의 키워드가 됐다.경상북도의 크지 않은 지자체지만 청송군 역시 이런 시대적 흐름에 눈 돌릴 수는 없는 일. 청송은 빼어난 자연 풍광에 사람들의 마음을 평화와 안정으로 이끄는 맑은 공기로 요약되는 ‘작지만 강한 도시’다.여기에 더해 지역에 거주하는 군민들을 위한 복지 정책의 입안과 수립에도 여념이 없는 게 청송군의 오늘이다.윤경희 청송군수는 올 초 2024년 복지 정책의 핵심을 “군민이 원하는 곳에 맞춤으로 들어서는 보편복지의 실현”이라고 요약했다. 이는 군민 중심의 사회안전망 구축이라는 과제와 함께 쉼 없이 추진돼야 할 프로젝트가 아닐 수 없다. 아래에서 ‘모두가 행복으로 한 걸음 다가서는 청송군’ 복지 시스템의 핵심을 요약해본다. □ 이웃이 이웃을 도울 수 있는 시스템의 수립과 실행청송군은 올해 사회적 약자에 대한 복지 사각지대를 해소하고, 노인·아동·청소년·여성·다문화가정 등 다양한 계층에게 적합한 복지서비스를 지원해 군민 모두가 행복한 맞춤 복지를 구현해나갈 방침이라고 천명했다.이를 위해 사회보장수급가구(기초생활보장, 기초연금, 차상위계층 등) 결정에 사회보장시스템을 활용한 조사, 방문 실태 확인 등으로 적정한 급여를 결정하겠다는 계획이다.또한 인적·소득재산 변동사항을 수시로 조사해 수급 자격을 정비함으로써 최저생활 보장과 생활안정 지원을 위한 맞춤형보장급여를 제공한다는 방침이다.더불어 이웃이 이웃을 돌보는 인적안전망, 이를테면 가칭 ‘안녕 살피미’의 창립, 지역사회보장협의체의 원활한 운영 시스템을 구축해 복지 위기가구를 조기에 발견하고, 주민 조직화 및 주민 역량의 강화로 지역민이 주도적으로 마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마을복지계획을 수립·실천할 수 있도록 돕는다.또한, 올해 신규 사업으로 고독사 및 사회적 고립가구 예방사업을 추진키 위해 상시 발굴 지원체계를 구축한다. 이는 민·관 협력 사회적 고립가구 해소 캠페인으로 구체화 된다는 것이 군의 부연이다. 고독사 위험가구에 대해서는 통합사례 관리, IoT 장비를 통한 스마트 안부 확인과 상시 모니터링을 실시하고, 중장년 1인가구를 위한 요리교실 등도 운영해 건강한 식생활까지 지원하게 된다. □ 국가유공자와 가족에 대한 지원도 대폭 강화숱한 시련의 역사 속에서 구국·호국 의지를 불태우다 목숨을 잃은 국가유공자와 그 가족에 대한 예우와 지원도 강화한다는 게 청송군의 의지다.참전명예 수당, 보훈예우 수당, 참전배우자 수당을 제때에 지급하고, 소외되기 쉬운 장애인들의 사회 참여와 소득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장애인 일자리 제공과 확대 시책을 보다 넓힐 예정이다.지역의 노인들이 쾌적한 휴식 공간에서 편안한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경로당을 보수하고, 경로당 운영 지원도 지속적으로 추진한다. 특히 경로당에 소파, 테이블, 의자 등 입식 시설을 보급해 연로한 지역민들의 건강하고 편안한 생활을 조력한다는 것도 청송군의 복지 방침 중 하나다.더불어 기초연금 인상, 어르신 목욕비 지원, 노인 일자리와 사회활동 지원사업 참여자를 매년 확대해 노령층의 안정적 소득기반을 조성하고, 사회참여 기회도 늘여나갈 계획이다.노인교실과 ‘경로당 행복선생님 사업’ 운영도 그 폭이 확대된다. 경로당에 대한 전폭적 지원을 통해 지역 노인층의 건강한 여가활동을 지원하고, 일상생활을 혼자 수행하기 어려운 취약 노인들에게는 맞춤돌봄 서비스와 독거노인 응급안전안심 서비스를 제공해 일상생활 유지를 가능토록 할 예정이다. 이런 것이 바로 “실질적인 사회 안정망 확충”이라고 전문가들도 입을 모은다.맞춤형 보육서비스 제공 또한 청송군이 주목하는 문제다. 아이 키우기 좋은 보육환경 조성은 한국사회 어느 곳 할 것 없는 주요한 과제. □ 지역 노령층에게는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도움 제공청송군은 부모급여, 영유아보육료, 가정양육수당 등을 다양한 형태로 지원해 양육가정의 경제적 부담을 줄이고, 노후화된 보육시설에 대한 환경개선사업으로 안전한 보육환경을 만들어 나갈 것이라는 청사진도 이미 제시했다.저소득 한부모가족·미혼가족·조손가족 등이 가족의 친밀함을 느끼고, 밀착감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돕는 것도 소홀히 할 수 없다. 건강하고 문화적인 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내실 있는 지원사업을 수행함으로써 한부모가족의 생활안정과 자립기반 조성에 도움을 주는 것에도 윤 군수는 큰 관심을 가지고 있다.아이 돌봄 서비스 제공과 양육 공백의 최소화, 결혼이민 여성을 대상으로 한 한국어 교육 등도 청송군을 복지가 실현된 지자체로 만드는 프로젝트의 하나다.이를 위해 청송군은 결혼이민 여성의 한국사회 조기 적응을 적극적으로 지원함으로써 다문화가족 자녀의 효과적 언어 발달과 기초학습의 기회 확장에도 도움을 줄 것이라 약속했다. 드림스타트사업·지역아동센터·다함께돌봄센터 운영, 청소년방과 후 아카데미 활성화, 청소년 보호육성사업 등은 이를 위한 구체적 프로젝트로 지목될 수 있다.방과 후 학교의 운영은 학교 교육 지원 차원에서 백안시할 수 없다. 중·고등학교 신입생 교복 구입비 지원과 고등학교 무상교육 지원 역시 공공성 강화 차원의 문제이니 그냥 두고 볼 수 없을 터. 청송인재양성원을 통한 지역 학생들의 교육 의지 고취도 이런 차원에서 함께 해석될 수 있을 듯하다.이처럼 위에 언급된 청송군의 각종 복지 프로트와 관련해 윤경희 군수는 “희망과 용기를 북돋아주는 복지 정책, 그리고 군민의 삶이 보다 안정될 수 있는 정책의 꾸준하고 지속적인 추진으로 모두가 빠짐없이 행복한 청송을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다짐을 알려왔다. 이 약속의 현실적 실현에 주목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김종철·홍성식 기자

2024-05-22

구미, 산업도시 이미지 벗고 낭만과 문화가 흐르는 도시로

구미시가 민선 8기에 들어서면서 산업도시의 의미지를 벗어내고 낭만과 문화가 흐르는 도시로 변모하고 있다. 특히, 새로운 공공디자인과 지역 특색을 살린 참신한 콘텐츠로 구미만의 색깔을 입히면서 시민들의 호응과 더불어 도시의 이미지를 바꿔가고 있다.구미의 주요 도심에는 새롭게 설치된 대형 조형물들이 방문객들의 이목을 끌고, 야간경관을 활용한 수변공간 조성, 특색있는 관광·스포츠 인프라 확충을 통해 회색도시 이미지를 벗고 역동적이고 매력적인 도시로 변화 중이다.김장호 구미시장은 “지역 특색을 살린 새로운 시도들이 호응을 얻으며, 무미건조했던 산업도시 구미의 색깔이 바뀌고 있다”며 “앞으로도 구미의 지속적인 변화와 다채로운 매력 발산을 기대해 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 구미만의 대형 조형물…도시경관 업그레이드올해 경북도민체육대회를 개최한 구미시는 6년 만에 종합우승을 달성하며 대회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 대회를 준비하며 도시 주요 길목에 대형 조형물을 설치해 도시경관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했다. 도시의 관문인 구미IC 진출로에 대형 ‘WELCOME GUMI’ 조형물을 설치해 방문객들에게 환영 메시지를 전하고, 시민운동장 앞 광장에는 선수들의 열정과 노력을 상징하는 ‘승리의 주먹’을, 운동장 전면에는 넓이 67m의 초대형 입체조형물로 이목을 끌었다.경기장 앞 회전교차로에는 다이내믹한 육상경기 조형물도 설치했다. 각각의 조형물에는 경관조명이 있어 야간에도 아름다운 모습을 감상할 수 있다.시는 앞으로 주요 장소에 미디어 콘텐츠가 담긴 대형 조형물과 서울에서나 볼 수 있었던 ‘미디어아트 월’도 추가 설치해 시민들에게 수준 높은 영상 콘텐츠를 제공할 예정이다. □ 비산 나룻길과 지산 샛강 생태공원 명소화 사업지난 2월 개방한 낙동강 탐방로 ‘비산 나룻길’은 비산 나루터에서 구미천 종점부까지 이어지는 길이 1㎞의 산책로로 총 55억 원의 사업비를 투입해 수상 보도교와 데크길로 해당 구간을 연결했다. 낙동강을 따라 조성된 ‘비산 나룻길’은 강가의 아름다운 풍경과 잘 보존된 자연생태계를 감상하며 걸을 수 있어 구미의 새로운 힐링 공간으로 떠오르고 있다.시는 낙동강과 구미천이 만나는 지점에 있는 갈대 습지 1.3㎞ 거리에 탐방로를 조성한다. 탐방로는 습지에 다양한 야생 동·식물이 서식하는 만큼 상세한 계획 수립과 하천점용 등의 절차를 거쳐 올해 연말에 개방될 예정이다.도심과 가까운 곳에 자리 잡은 지산 샛강 생태공원은 봄에는 벚꽃, 여름에는 연꽃, 겨울에는 천연기념물 큰고니의 도래 등 천혜의 자연을 시민들에게 선물하고 있다.시는 전국 3대 천연기념물 큰고니를 상징하는 큰고니 부부 상징 조형물을 데크 광장에 설치해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또 황토 맨발 길 체험에 대한 수요 급증에 따라 지산 샛강 생태공원 기존 산책로에 황토 맨발 길 시범 구간(L=250m)을 조성해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여기에 황토길, 황토풀, 황토볼, 세족장, 신발장도 설치했다. 올해는 황토 맨발 길을 추가로 연장(L=750m)해 다양한 체험 공간을 확충해 구미의‘핫 플레이스’로 조성해 나갈 계획이다. □ 야간경관 활용, 아름다운 야경 선물시는 최근 자연과 빛, 조명이 어우러지는 수변공간과 도심 속 골목 정원 조성으로 시민들에게 아름다운 야경을 선물하고 있다.지산샛강 생태공원 둘레길의 벚나무에 경관조명 250개를 설치하고 민들레와 초승달, 갈대 조명 등 특색있는 야간조명으로 야경 맛집으로 소문났다.비산나룻길에는 165개의 핸드레일바 경관조명과 43개의 보안등을 설치해, 야간에도 화려한 조명과 함께 산책이 가능해 시민들의 야간산책 코스로 사랑받고 있다.원평동 금오천 일원에는 옹벽의 실루엣과 어우러져 환상적인 분위기를 연출하는 옹벽경관등과 벚꽃나무에 수목투과등을 설치해 금오천을 방문한 시민들에게 멋진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여기에 야간조도를 더 높이고 주요 길목에 미디어를 활용한 특화연출조명 설치로 더욱 풍성한 볼거리를 선사할 예정이다. 금리단길(각산 마을) 골목길과 문화광장 등에 6개의 포토존과 디자인 가로등, 시간대별 다른 로고라이팅 연출로 거리경관을 개선했다.또 마을 주민들이 자생적으로 가드닝팀(gardening-team)을 결성하고 골목 벽면과 유휴지에 장미와 화초를 심어 생동감과 향기가 있는 마을길을 조성했다.산호대교에는 배면부를 특징적으로 표현하는 특화연출조명을 설치하고, 낙동강 체육공원에도 30억원을 투자해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조형물과 미디어아트를 설치할 계획이다. □ 파크골프장과 인조 잔디 야구장 조성도내 최다 홀수의 파크골프장을 보유한 구미시는 지난 4월 지역 파크골프장 7개소(장애인파크골프장 포함)의 잔디보호 및 생육을 위한 휴장을 마치고 전면 재개장했다.휴장기간 홀컵 주변 잔디 보식, 배토 작업, 잔디보호 매트 및 복합 잔디 설치, 주차장 차선도색 등 시설물 정비를 완료했다. 또 구미파크골프장의 재래식 화장실을 철거하고 수세식 화장실 3개소를 설치했다. 올해 총 9억원의 예산을 투입해 시설 개선 및 이용자 편의증진 사업으로 최상의 파크골프장 환경을 조성할 계획이다.시는 구미대교 아래 낙동강변에 전국대회가 가능한 공인 규격의 인조 잔디 야구장(3면)을 지난 4월 개장했다. 기존 흙 구장 3면 야구장(3만6000㎡ 규모)에 총사업비 40억원을 투입해 인조 잔디, 휀스, 더그아웃, 본부석 등을 설치했다.또 올해 지산 낙동강 체육공원에 인조 잔디 야구장 1면을 추가로 조성해 총 4면의 정규 공인 규격의 야구장으로 각종 전국 단위 대회를 유치해 스포츠 도시로써의 위상도 높여나갈 계획이다.□머무르고 싶은 도시, 체류형 관광인프라 조성회색 산업도시 구미에 낭만이 가득한 관광 인프라가 늘어나며, 머무르고 싶은 도시로 변하고 있다.지난 4월 구미 원도심인 새마을중앙시장에서 개장한 낭만야시장은 개막 당일 3만명의 구름인파가 몰려 대박을 터트렸다. 다른 야시장과 차별화된 콘텐츠와 특색있는 메뉴로 인기몰이에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으며, 전통시장 활성화와 원도심 부흥의 신호탄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도심 속 힐링공간으로 새롭게 각광받고 있는 지산샛강 생태공원은 맨발걷기와 아름다운 야경, 무인카페 고니벅스로 인기몰이 중이다. 지난 3월 벚꽃 개화 기간에만 6만명의 방문객이 찾았으며, 구미시민과 함께 인근 지역에서도 발걸음이 이어지고 있다.구미의 대표적인 젊은이들의 거리인 금리단길은 로컬 크리에이터와 협업해 북카페 거리로 조성하고 있으며, 전선지중화, 보행로 개선 작업을 통해 보행자 특화거리로 변화를 꾀하고 있다.이 밖에도 구미의 교촌통닭 1호점을 테마로 한 특화거리 조성을 비롯해 진평동 먹자골목과 송정동 송정맛길 등 젊은 세대들의 입맛과 관심을 사로잡을 특색있는 문화거리 조성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김락현기자 kimrh@kbmaeil.com

2024-05-21

“과감히 생략하는 용기… 보이지 않는 것들을 보는 방법”

푸른 바다가 지척에서 일렁이는 포항에서 유년과 소녀시절을 보낸 시인 이소연(41)이 깔끔하게 단장된 매혹적인 산문집을 출간했다. 이름하여 ‘그저 예뻐서 마음에 품는 단어’.10년 전 시인으로 등단한 이소연은 그간 ‘나는 천천히 죽어갈 소녀가 필요하다’ ‘거의 모든 기쁨’이란 제목을 단 시집을 펴내며 서서히 그러나, 성실하게 자신만의 문학 세계를 구축해가고 있는 젊은 작가다.운문으로 구축된 시와는 달리 에세이 혹은, 수필이라 불리는 문학 장르는 산문을 사용해 만들어진다. 한국 문단을 떠도는 흥미로운 풍문 가운데 하나가 “산문을 주로 써온 작가는 운문을 잘 쓰는 경우가 드물다. 그러나, 운문을 쓰는 시인들은 산문을 못 쓰는 경우가 드물다”는 이야기다. 그렇다. 대부분의 시인은 수필도 잘 쓴다.그런 통상적인 기대를 가지고 이소연의 산문집을 펼쳐들었다. 기자의 예상과 풍문은 틀리지 않았다. 조그맣고 앙증맞은 판형의 산문집(수필집이라 불러도 무방하다) ‘그저 예뻐서 마음에 품는 단어’는 여름날 먹는 시원한 국수처럼 술술 넘어가듯 읽혔다. 뿐 아니다. 행간에 담긴 의미와 메시지의 무게도 만만찮았다. 기대 이상의 즐거운 독서였음을 고백한다.이소연의 산문집에선 세계와 인간의 내밀한 본질을 시인의 예민한 촉수로 더듬어낸 눈 밝은 문장을 곳곳에서 어렵지 않게 발견해낼 수 있다. 이는 쉽게 이루지 못할 인정할만한 작가적 성취다. 예컨대 아래와 같은 것들. ‘그저 예뻐서 마음에 품는 단어’ 중 ‘보이지 않는 것들을 보는 방법’이란 소제목을 단 글의 몇 문장을 인용한다.“(전략)…중국 북송 황제 휘종이 궁중의 화가들에게 ‘말발굽에 묻은 꽃향기’를 그리라고 했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꽃향기를 어찌 그리란 말인가. 화원 하나가 말발굽을 쫓아가는 나비 떼를 그린 그림이 휘종의 마음을 흡족하게 했다고 한다. 누군가 내게 참새 지저귀는 소리를 그리라고 하면 인동덩굴을 가득 그려 놓으면 될까? 휘종이 깊은 산속에 감춰져 보이지 않는 절을 그리라고 하는데도 많은 화가가 눈에 보이는 절을 그리는 데 집착했다고 한다. 그 마음도 이해가 간다. 내가 말하지 않아서 알아주지 않으면 어떡하지? 그럴 땐 결심이나 용기가 필요하다. 누군가는 내 의도를 정확히 읽어 내리라는 기대 속에서 과감히 생략하는 용기 말이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지 않는 상태로 둘 수 있는 사람만이 그릴 수 있는 것이 있다.…(후략)”마지막 책장을 넘겨 책 읽기를 끝내니, 산문집 ‘그저 예뻐서 마음에 품는 단어’가 어떤 경로를 통해 탄생한 것이고, 이소연은 ‘이걸 무슨 마음으로 썼을까’라는 게 궁금해졌다.그래서다. 스무 살에 포항을 떠나 현재는 서울에 살고 있는 이소연에게 질문지를 보냈다. 보통의 독자들이 던질만한 질문 몇 가지가 쓰였다. 다음은 그 물음을 접하고 친절하게 보내온 이소연의 답변을 요약한 것이다. -포항에서 유년을 보낸 것으로 안다. 기억 속에 남아있는 인상적인 풍경은.△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포항에서 머물렀다. 부모님은 아직 포항에 있다. 산문집 곳곳에 포항에 대한 기억이 담겨 있다. 아홉 살 때까지 살았던 동네 풍경이 생생히 떠오른다. 산 밑에 자리한 집까지는 버스가 다니지 않아 연일사거리에서 한참 걸어 들어가야 했다. 그 하염없이 이어지던 길이, 양쪽으론 논밭뿐인 그 후끈후끈한 여름길이 자꾸 떠오른다. 어머니가 아픈 날 데리고 그 길을 걸어 나오는 동안 병이 낫곤 했다. 이상했다. 보건소 문이 닫혀 진료를 받지 못했는데도 보건소 옆 슈퍼에서 사이다 한 병 마시면 병이 낫곤 했으니까.-시집을 2권 낸 시인이다. 시와 산문을 쓸 때는 마음가짐이 다를 듯하다.△시를 쓸 땐 본업의 마음이 있다. 더 고심하고 애쓰는 시간이 힘들면서도 힘들지가 않다. 노력이 허투루 돌아가도 아깝지가 않다. 시를 쓰고 나면 기분이 좋다. 할 일을 한 것 같은 느낌이랄까. 반면 산문을 쓸 때는 고심하고 애쓰는 시간보다 솔직하고 싶다는 욕망에 시달리는 것 같다. 시에서도 솔직하려 하지만, 그것과는 다른 차원의 솔직함이 산문에는 있다. 말 안 해도 아는 것과 말을 해야 아는 것의 차이인가 싶기도 하다. 시는 이미지와 이미지 사이를 건너뛰어도 사유를 만들어 놓고 산문은 쓰는 과정을 통해서, 뭔가에 대해서 알아가는 느낌 속에 사유가 있었다.-2014년 ‘한국경제’ 신춘문예로 등단했으니, 10년차 시인이다. 시는 무엇이고, 시인은 어떤 존재인가.△시는 과거를 현재로 살아가게 하는 일이고 나와 나를 대면하게 하는 일이기도 하다. 봄이라 포항 곳곳에 아카시아 꽃이 만발했다, 아카시아 꽃을 보니 백일장 나가던 때가 떠올랐다. 백일장 장소가 수도산이었던 것 같다. 마치 이미지가 과거와 현재를 이어 놓는 사다리 같다. 10년차 시인이 되어서 작은 변화라면 이제는 시를 쓰는 일이 두렵지 않다. 물론 예전에도 두렵지 않았다. 그때는 몰라서 두려운지 몰랐다. 모르면 용감하다는 말처럼. 지금도 역시 시를 모르지만 실패가 단순히 실패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나에게 시는 그저 쓰는 과정일 뿐이다.-산문집 출간의 계기가 있었는지.△‘한국경제신문’에 2022년 4월부터 칼럼을 연재했다. 오피니언을 눈여겨 본 편집자가 있어 제안 받았다. 출판사에서 새롭게 원고를 집필하라고 했으면 산문집 출간이 어려웠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다행히 연재 마감 덕분에 매달 원고가 차곡차곡 쌓여가고 있었고, 그간 여기 저기 발표한 산문들도 결이 비슷해 함께 모았더니 한 권의 산문이 됐다.-산문집 제목이 좋다. ‘그저 예뻐서 마음에 품는 단어’. 직접 지은 것인지,△세상 여기저기에 놓인 글감들은 그저 예쁜 것 같다. 그것에게 다가갈 수 있는 힘을 준다. 글을 쓰려면 먼저 다가가는 마음이 필요하지 않은가. 요즘 속이 안 좋아 한약을 먹고 있다. 그 탓에 밀가루 음식을 피하는 중이다. 밀가루 아닌 것들과 친해져야 하는데 그것을 찾는 일이 시를 찾는 일과 비슷한 것 같다. 자꾸 먹을 수 없는 것에 가 닿게 한다. ‘그저 예뻐서 마음에 품는 단어’라는 제목은 ‘포란의 계절’ 산문의 첫 문장에서 따온 것이다. 그저 예뻐서 마음에 품는 단어는 ‘포란(抱卵)’이다. 동물이 알을 품는 행위를 뜻하는 말이지만, 나는 이 말을 봄과 나란히 두며, 많은 걸 품었다. 글이라는 건 말을 말로서 지나가게 하는 것이 아니라 품게 해서 좋다. -시와 산문, 통칭해 문학은 인간에게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아직도 문학은 읽고 싶은 이들에게, 사유하고자하는 이들에게 파동을 일으킨다. 문학에 관심 없어 보이는 것 같지만 내가 느끼기엔 그렇지 않다. 많은 이들이 아직 시를 좋아하고 문학에 관심을 가진다.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블로그 등의 SNS채널마다 공유하는 문학들이 있고 난 그것들에 영향을 받는다. 적어도 문학은 나에게 힘을 발휘하고 있고, 내가 아는 문학을 좋아하는 이들에게 힘을 발휘하고 있다.-주목하는 동년배 작가는 누구이고, 주목의 이유는.△김은지 시인이 생각난다. 이제 거의 버릇처럼 튀어나오는 이름이다. 같이 활동을 많이 한다. 김현 시인, 유현아 시인도 있다. ‘해변’이라는 공간을 함께 운영하고 있다. 주목하는 이유는 함께하기 때문이다. 함께하는 이들의 작품을 주목하지 않고 나를 가꿔 나갈 수는 없다. 그밖에 철공소에서 일하는 사람, 소금가마니를 지고 히말라야를 오르는 사람, 절벽을 타고 올라 꿀을 따는 사람들이 내가 주목하는 미래의 작가다. 이런 분들의 삶을 들여다보고 싶다. 거기에 이야기가 있기 때문이다.-시인으로서 단기 계획과 중장기 계획은.△5월 마지막 날 출판사 ‘창비’에서 세 번째 시집 ‘콜리플라워’가 출간될 예정이다. 그리고 청소년 시집 출간과 오피니언 연재도 이어나가야 한다. 앞으로 다음 시집은 10년 동안 퇴고하겠다. 물론 그 안에 낼 수도 있다.(웃음)-‘그저 예뻐서 마음에 품는 단어’를 읽은 후 독자들이 보내준 가장 인상적인 의견은.△셋째 이모가 전해준 얘기다. 병원에 입원한 이모부에게 심심할 때 읽어보라고 ‘그저 예뻐서 마음에 품는 단어’를 선물했는데, 평소 책도 잘 안 읽고 대화도 거의 없는 사람이 ‘정말 재미있게 소설을 읽었다’며 책 내용을 상세하게 이야기 해주더라는 얘기였다. 에세이를 썼는데 소설로 이야기 한 게 너무 재밌어 기억에 남는다. 문학과는 거리가 먼 분이라 장르도 잘 모르시는 분도 재미있게 읽었다는 점이 좋았다. 나의 문학이 사람들에게 그렇게 쉽게 다가갈 수 있다면 좋겠다.-마지막으로 덧붙일 말이 있다면.△나를 낳아주고 품어준 아빠 엄마의 바다, 포항 바다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2024-05-21

천년 세월 지나며 신격화… 두려움과 경외심의 존재

오월은 신록의 계절이다. 텅 빈 숲의 나무도 푸름으로 풍성해지고, 짝을 찾느라 분주하게 지저귀던 새들도 푸른 숲에 보금자리를 틀고 알을 품고 있는지 잘 보이지 않는다. 나무를 쫓아다니다 보니 나무의 성장 과정이 우리 인간의 삶과 많이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나무는 살아있을 때는 부드럽고 연약하며, 죽었을 때는 딱딱하다.이와 마찬가지로 우리의 삶도 부드럽고 연약함으로 생명을 유지할 수 있다고 생각된다. 이는 생명체가 겪는 변화와 성장의 자연스러움을 상징한다. 비바람에 꽃이 떨어지는 모습은 생명의 연약함과 아름다움을 동시에 보여 준다. 꽃이 지고 난 꽃자리에 열매를 맺음으로써 새로운 생명을 계승한다. 자연의 순환과 강인함을 또한 생명의 연속성을 드러낸다. 나무가 겪는 성장의 과정, 즉 자연의 법칙에서 인간에게도 적용되는 보편적인 원리에 대한 깊은 성찰로 교훈을 얻는다. 영덕군 지품면 신안리 512-1번지에 천년의 세월을 품고 살아가는 명품 느티나무 노거수 여행을 떠났다. 말이 천년이지 100년을 10번 곱한 숫자다. 조선 500년을 뛰어넘은 고려시대에 태어나 지금까지 살고 있으니, 역사의 산증인이다. 당산나무로 신격화하여 제사를 지낼 뿐 아니라 금기 사항을 정하고 이를 무시하고 훼손하게 되면 동티가 난다고 하여 모두 두려움과 경외감을 가졌다.숲에 깃든 정령 중에 나무의 정령이 으뜸이 아닐까 싶다. 키 14m, 몸 둘레는 9m의 천년의 세월을 품은 느티나무는 가부좌 틀고 앉은 온화한 부처님으로 다가왔다. 그를 톺아보니 “나를 자세히 보아주니 고맙구나. 많은 사람이 나에게 공손히 두 손 모아 절을 하면서 소원을 빌기도 한단다”라고 말했다. 나는 물었다. “무엇을 소원하고 빌지요?” 그러자 느티나무 노거수는 말했다.“나를 장수목(長壽木)이라면서 오래오래 살게 해 달라고 빈단다. 사실 숨 쉬는 생명체로서 마을에서 가장 나이도 많고 오래 살아왔단다. 마을을 개척할 때부터 아니 마을이 들어서기 전부터 지금까지 살아오고 있단다. 마을을 떠나지 않고 늘 주민과 함께 살고 있으니 마을 역사의 산증인이라 해도 누가 뭐라 할 수 없을 것이다. 이러하니 영생불멸하고 싶은 인간의 욕망을 대리 만족할 수 있는 대상물로 나무랄 데 없지 않니?”라고 했다. 고개를 끄덕이었다.“나를 다산목(多産木)이라면서 특히 아들을 낳아달라고 빈단다. 수많은 꽃을 피우고 많은 열매를 맺는 것을 보고 하는 모양인 것 같구나. 척박한 땅에도 경사진 계곡에도 그 어느 곳에도 마다하지 않고 자리를 잡고 뿌리를 내린단다. 한 번 뿌리를 내리면 주변 환경이나 역경에도 굴하지 않고 적응하면서 자손을 번식한단다. 오늘날 삼천리 방방곡곡 마을에 나를 볼 수 있는 것만 해도 그렇지 않니?”라고 했다. 어릴 적 목격한 것이라 또 수긍했다.“나를 건강목(健康木)이라 하면서 건강을 소원한단다. 울퉁불퉁한 근육질은 계곡에서 쏟아지는 바윗돌에도 견디어 낸 훈장이란다. 꽃과 열매가 작고 볼품이 없는 것은 에너지 분배에서 거대한 몸을 유지하는 데 에너지를 많이 사용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란다. 사계절을 맞이하면서 변화는 나의 아름다움을 보았지 않았나. 튼튼하고 아름답고 풍성한 몸매는 어느 나무도 나를 따를 수 없지. 아름다움은 건강의 바로미터란다”라고 했다. 또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나를 재생목(再生木)이라면서 놀라움을 금하지 못한단다. 휘몰아치는 비바람에 가지가 부러지고 절단된 모습이 여기저기 흉터로 남아있는 것이 보이지? 이 또한 스스로 아물어 새로운 가지를 재생되어 푸른 하늘로 꿈을 키운단다. 노령의 상처 난 몸에 돋아난 어린 가지 푸른 잎이 예사롭지 않아 보이지? 늘 면역력을 키우고 항상성으로 다친 몸을 스스로 치료하는 재생능력이 있단다”라고 했다. 이것은 인간이 할 수 없는 일이라 부럽기까지 했다. “나를 영속목(永續木)이라면서 부러워도 한단다. 계절 변화에 따라 봄이면 연노랑 잎이 여름이 되면서 녹색 잎으로 가을에는 고운 단풍잎으로 변했다가 겨울이 되면 미련 없이 훌훌 벗어버리고 새하얀 눈옷으로 갈아입지. 이렇게 계절 변화에 맞추어 일생을 살아간단다. 외모는 그렇지만, 나에게도 봄에는 희망의 꿈을 꾸고, 여름에는 꿈을 향한 노력을 하고, 가을에는 그 꿈을 이룬단다. 겨울에는 욕심을 내려놓고 봄을 기다린단다. 그러하니 천년의 세월을 품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라고 했다. 인간은 이루지도 못할 욕심에 짓눌러 아우성을 치고 괴로움에 잠 못 이루어 밤을 설친다. 한 번 가지면 놓지 않으려 하고 쌓아두려고만 하는 인간과는 달리 계절의 변화에 맞추어 우주의 리듬을 재현하니 참으로 본받을 만한 일이란 생각이 들었다.“그리고 요즘은 여성목(女性木)이라면서 호들갑을 떨고 있단다. 계절에 따라 변하는 모습이 몸단장하고 아름다움을 꾸미는 여성을 연상하게 한단다. 수형 또한 여자의 오지랖과 많이 닮았다고들 한다. 곤충, 새 등 많은 생명체의 서식처가 되어 주고 휴식처, 피난처를 제공해 주고 있으니 포용과 희생정신이 여성과 많이 닮았다고 한단다”라고 했다. 그렇다. 수렵시대와 농경시대는 힘으로 상징되는 남성의 시대라면 21세기는 부드러움과 감성의 시대로 여성의 시대가 아닐지 싶기도 했다.느티나무는 우리 삶의 지향점이랄까 다양한 상징성을 지니고 있다. 그런 의미인지 2000년을 맞이할 때 무슨 나무로 새 천 년 밀레니엄나무로 할까, 나라에서 논의했다. 많은 산림 전문가와 생태학자들, 그리고 나무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느티나무를 선호하여 산림청은 새천년 밀레니엄나무로 지정했다. 우리 삶에 본받아야 할 상징성을 많이 지닌 것을 알고는 탁월한 선택을 한 산림청에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천년의 세월을 품은 느티나무는 말했다. “나를 경외하며 소원을 빌면서도 발등 위에 농기계를 올려놓고 당집을 짓고 시멘트로 나의 목을 조르고 있어 숨쉬기도 힘들다. 신격화는 아니해도 좋으니 제발 목줄을 풀어주고 무거운 시설물을 치워 주면 좋겠다”라고 했다. 그러나 나의 힘만으로는 할 수 없고 주민 모두가 힘을 모아야 할 수 있어 참으로 난감할 따름이었다. 느티나무는 위대한 스승으로서 충분한 자격과 요건을 갖추었다. 나 또한 주민들과 함께 오늘도 소원을 빌며 부족함을 채우고 교훈을 얻고자 노력한다. 한국산림문학헌장비는…‘한국산림문학헌장’은 이서연 시인이 지어 2021년 11월 18일 충남 보령시 미산면 봉성리에 세웠다. ‘숲을 사랑하여 시문(詩文)으로/ 숲의 정신을 담는 산림문학은/ 나무와 돌과 흙에서/ 삶의 씨앗이 되고 뿌리가 되고 꽃이 되는 문학으로/ 숲의 미래를 여는 산림문화를 이루고 가꾼다/ 나무 한 그루 한 그루가 미래가 되고 역사가 되도록/ 산림문학이 사람 사는 세상에 나무가 되어/ 숲에서 형성된 맑은 영혼이 삶의 가치를 높여 가리니/ 자연의 섭리가 문학의 향기로 퍼져/ 문학이 숲이 되고 숲이 문학이 되도록 한다’는 내용이다.(사)한국산림문학회는 2024년 5월 8일 산림문학헌장비공원 내 시비제막식과 정자현판식을 열고 15년생 배롱나무를 기념식수 했다. 산림문학회 이사장 김선길 시인의 ‘나는 한 그루 나무이려니’ 외 4기의 시비가 세워졌다./글·사진=장은재 작가

2024-05-15

정상에서 내려다 본 형산강 파노라마 뷰, 잊지 못할 감동

한반도 동남부에 위치한 해양도시 포항에는 크고 작은 산들이 오밀조밀 펼쳐진다. 주로 서쪽으로 포진한 이 산들은 높낮이를 달리하며 제각각 존재 의미를 뽐낸다. 포항의 주산(主山)은 뭐니뭐니해도 내연산이다. 북구 송라면에서 산맥을 일으킨 내연산은 흥해에서 도음산과 만난 포항을 감싼다. 경주 강동을 끼고 남진하던 도음산은 양학산에 이르러 낮게 깔리며 호흡을 고른다.산맥은 다시 남쪽으로 뻗어가다 형산강에 막혀 형산과 제산으로 분기(分岐)하는데 이곳이 후술할 ‘형산, 제산 전설’의 배경이다. 형산강에서 수기(水氣)를 머금은 후 산세는 다시 남진해 운제산에서 포항의 산맥을 완성한다. 오늘 소개할 형산(兄山)은 포항의 산은 아니다. 그러나 내연-도음-양학의 산세를 이어받아 운제산에 연결되는 산중 정류장으로써 의미를 갖는다. 관할구역은 경주(강동면)에 위치해 행정상으로는 포항과 벗어나 있다. 그러나 포항 지곡동, 효자동, 연일읍과 가까워 포항 시민들이 아끼고 오르는 산이다. ◆ 신라 경순왕 때 처음으로 역사서에 등장형산이 위치한 곳은 경주시 강동면 국당리. 강의 남쪽에 자리 잡은 해발 257m의 낮은 산이다.사기에는 신라 왕궁에서 ‘중사’(中祀)를 치르는 북형산성(北兄山城)으로 언급돼 있다. 중사라면 국사(國祀)에 이은 다음 제례로 지금으로 치면 자치단체 축제에 해당한다.동국여지승람에도 ‘중사를 지냈다는 기록’과 ‘영천의 소산(所山)과 통하는 봉수대가 있었다’는 기록이 전한다.삼국사기 신라 경순왕 조(條)에 형산은 다시 한 번 역사에 등장한다, ‘강동, 안강 지역에 큰산(형산, 제산)이 붙어있어 매년 수해가 발생해 주민 피해가 컸는데 태자 김충을 시켜 산을 두 개로 갈라 재해에서 벗어났다’는 내용이다. 용이 승천하며 산줄기가 뚫리고, 물길이 열린 후 강동면 일대에 넓은 평야가 드러나니 이곳이 유금들이다.보통 두 산이 나란히 있을 때 큰산, 작은산이나 방위에 따른 동봉, 서봉으로 지칭하는데 이곳은 인칭을 썼고 더구나 형산, 제산처럼 혈연관계로 묶어 놓은 서사 구조가 특이하다.앞서 언급한 형산 설화엔 마의태자(김충)부터 용(龍) 신화까지 등장하는데 그만큼 형산이 신라인들의 의식 속에 크게 자리잡고 있었다는 방증이다.이후 형산은 역사 속에서 오랜 기간 등장하지 않다가 6·25 한국전쟁 때 ‘포항 형산강 방어전투’ 당시 구국의 요새로 등장하며 다시 한 번 현대사에 전면으로 등장한다. ◆ 왕룡사에서 내려다 본 형산강 뷰 백미형산에는 경순왕 조에 등장하는 형산, 제산 전설 외 크게 주목할 만한 역사적 사실이 없고, 정상에 있는 왕룡사가 거의 유일한 사적이다. 창건 연대나 창립 인물에 대한 상세한 기록도 없어 역사성, 기록성 면에서도 주목받지 못하는 곳이다.그러나 사찰 구석구석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뜻밖의 재미있는 사실들과 만나게 된다. 먼저 여행객들의 시선을 끄는 것은 절 동쪽에 위치한 약사여래불이다. 낮은 가부좌로 동해를 응시하는 부처의 눈길에서 ‘병에서 중생을 구제’하려는 인자함이 느껴진다. 부처를 향해 두 손을 모은 불자들의 모습에서 치유를 향한 강한 소망이 묻어난다.약사여래불 앞으로 작은 광장이 펼쳐지는 데 이곳이 형산강을 조망하는 최고의 포인트다. 연일대교, 형산대교에 이어 포스코의 힘찬 굴뚝과 영일만 앞바다까지 파노라마로 펼쳐져 포항의 경관과 정체성을 가장 잘 표현하고 있는 곳이다.정상에서 만난 한 시민은 “왕룡사는 형산강의 전체 조망을 드론 뷰 수준으로 관람할 수 있는 유일한 곳”이라며 “오션 뷰에 익숙한 포항 시민들이 다른 감흥을 찾아서 오기에 좋은 장소”라고 말한다. ◆ 태종 무열왕, 김유신 민간 신앙의 대상으로무량수전 옆에 있는 용왕전도 반드시 들러야 할 코스. 이곳엔 아주 특이한 유물이 전해진다. 바로 태종 무열왕과 김유신 장군의 목조상이다. 기록에 의하면 일제강점기부터 전해진다고 하는데 정확한 기원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다.우선 두 인물을 모신 곳이 ‘용왕전’이라는 점에서 주목을 끈다. 보통 역사 속 인물들은 동상이나 초상화, 영정(影幀) 정도로 예우하는데 ‘전’(展)에 따로 모셨다는 것은 이 분들이 위인(偉人)을 넘어 반신(半神)수준의 숭배대상이 됐다는 것을 뜻한다. 중국에서 관우(關羽)가, 한국에서도 최영 장군이나 곽재우 장군 등이 사당에 봉양되면서 신앙의 대상으로 숭배되고 있는 현상과 유사하다. 일설에는 이 목조상이 경순왕과 마의태자라는 설이 있는데 이는 형산 일대를 신라 부흥운동과 연결해서 해석하는 시각이다.미학적 측면에서 이 목상들의 수준은 볼품이 없다. 그러나 삼국통일 위업을 달성한 두 영웅에게 향했던 민초들이 존경심은 조각의 완성도를 넘어 시공을 초월해 이어지고 있다.사찰의 가람 배치에서 재미있는 것이 산신각의 위치다. 아이 출산을 점지해준다는 산신각은 보통 절의 가장 외진 곳에 자리 잡고 있다. 대웅전이라는 훌륭한 기도처가 있고 그곳에는 전지전능한 석가모니가 있는데 왜 신도들은 외진 골방으로 찾아갈까.기도자에 초점을 맞춰보면 의문은 금방 풀린다. 이곳 출입자들은 대부분 아기를 희망하는 여성들이다. 여인들은 사찰 맨구석에서 신과 1대1로 만나 ‘직거래’로 소원을 이루려한다. 석가모니에 드리던 기도가 총알이 흩어지는 ‘산탄’(散彈) 이라면, 산신각은 단발로 목표물을 명중시키는 로켓으로써 의미를 갖는다고 하겠다. 북당마을-왕룡사-부조정-소형산 코스 인기형산을 오르는 루트는 다양하다. 강동면 북당마을에서 정상까지는 시멘트 포장이 돼 있어 자동차로 쉽게 접근할 수 있다. 10~30도를 오르내리는 경사도 때문에 익스트림을 즐기려는 자전거 동호인들도 자주 찾는다. 이분들에게 형산은 자전거 라이딩 외 왕룡사 참배나 형산강 뷰 관람이 목적이다.산행이 목적인 등산 마니아들에게도 형산은 다양한 코스를 열어놓고 있다. 정국사 입구-전망대-왕룡사-약사여래불을 돌아보는 2시간 코스가 일반적인 코스지만, 3~4km 코스에 성이 차지않는 마니아들은 왕룡사에서 반경을 넓혀 맞은 편의 부조정터-소형산으로 연장하기도 한다. 단 임도에서 진입로가 불분명하고, 등산로 표지판이 준비가 덜 되어 초행길, 초보 산행자들은 상당한 주의를 요한다.포항 사람들에게 바다는 늘 접하고 부딪히는 일상이다. 생업을 일궈 온 터전이고 삶의 수단으로써 의미를 갖는다. 늘 가까이에 있고, 손만 뻗으면 닿을 수 있기에 일찍부터 도시 발전과 문명을 일구는 기반이 되었다.포항의 문명을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곳이 있다. 바로 형산강이다. 고대부터 중국 한군현은 물론, 일본과 통하던 곳도 이곳이었다. 넉넉한 수량은 연일, 오천 뜰의 넉넉한 젖줄이 됐고, 수천년 동안 시민들의 생활용수, 상수원이 됐다.오션 뷰에 잠시 식상했던 독자라면, 다른 자극을 찾고 있던 시민이라면 주말쯤 한번 형산으로 오르길 추천한다.옅은 신록을 배경으로 강물이 은빛으로 일렁이고, 정극후(鄭克後·1577∼1658)가 ‘동방의 적벽’이라고 칭찬했던 형산강뷰가 발아래 펼쳐질 것이다./글·사진= 한상갑기자 arira6@kbmaeil.com

2024-05-09

물결치듯 사방으로 뻗어나간 가지 아래 짙은 그늘이

춘 사월, 화창한 봄날, 햇볕은 나무에 옷을 입히고 새들에게 사랑의 보금자리를 만들어 주느라 날은 짧기만 하다. 상춘객들은 어디 어느 곳이 더 좋다느니 화려하다느니 나름의 관광지 경험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내 눈에 도긴개긴이란 생각이 든다.어디가 더 경치가 좋고 나쁨의 우열을 가릴 수 없다. 가는 어느 곳이나 보이는 어느 곳이나 아름다운 봄꽃으로 단장되어 움츠렸던 마음을 펴게 한다. 나목의 가지에 연노란 잎이 나자, 만개한 벚꽃이 나무와 이별을 고한다. 하늘을 종횡무진 날아다니다 꽃비로 변하여 도로에는 꽃길로 수놓는다. 자동차 창문을 살짝 열고 봄바람 기운을 맞이한다. 날아든 하얀 꽃잎이 운전석 옆자리에 살포시 내려앉아 나즐로(나 홀로 즐겁게) 노거수 탐방을 함께 하잔다.안동 와룡면 주하리 마을로 향하는 농촌 시골길은 참으로 아기자기한 맛이 있다. 주변 산야는 봄의 향연이 펼쳐지고 있다. 오르막으로 오르는가 싶더니 또 내리막길이 나타나고 모퉁이를 돌고 나도 또 모퉁이가 나타나고, 곡선의 시골길은 한 편의 드라마와 같이 긴장과 설렘의 연속이다.주하리 천연기념물 뚝향나무 노거수를 만나러 가는 날, 생각지도 못한 호사를 누릴 줄이야 누가 알리라. 봄의 풍경에 빠져 보니 더할 나위 없이 좋다. ‘진성 이씨(眞城李氏) 주촌종택(周村宗澤) 뚝향나무 천연기념물 제314호’라는 표지석 옆 주차장에 차를 주차하고 서 있는데 마침 주촌 종택에 거주하는 이세준 씨를 만나 뚝향나무에 대한 소중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조선 세종 때인 1430년경 선산부사를 지낸 이정(李楨)이 평안도 정주 판관으로 있을 때 가져와 심은 것이란다. 이정이 약산산성(藥山山城) 쌓기를 마치고 귀향하면서 세 그루의 향나무를 가지고 왔는데 도산면 온혜와 외손인 선산의 박 씨에게 각각 한 그루씩 주고, 남은 한 그루를 이곳에 심었는데 유일하게 살아남았다고 했다.안내판에 “높이는 3.3m, 가슴높이의 둘레는 2.3m, 밑동 둘레는 2.4m, 가지 밑의 높이는 1.3m이고, 가지의 길이는 동쪽으로 5.8m, 서쪽으로 6.3m, 남쪽으로 5,5m, 북쪽으로 5.7m이다. 향나무와 비슷하지만 곧게 자라지 않고 전체가 옆으로 퍼지면서 자란다. 이 지방에서 많이 자라고 있다”라고 기록되어 있었다.약산산성 쌓기를 마친 기념으로 향나무를 가지고 와서 심은 것으로 소위 기념식수목이며 명목인 셈이다. 우리 조상들은 아들딸을 낳았을 때 기념으로 소나무와 오동나무를 심었다고 한다. 그리고 장성한 후에는 딸의 경우 혼수 기념으로 오동나무는 장롱의 재목으로, 소나무는 장례식에 사용할 관으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조상의 지혜가 돋보이는 기념식수목이다. 오늘날에도 이와 같은 기념일을 찾아 기념식수를 하면 어떨까.주하리 뚝향나무를 노송으로 불렀다고 하는 이야기도 전한다. 노송운첩(老松韻帖)과 김성설, 이만인(1834~1897)이 지은 경류정노송기(慶流亭老松記) 도판을 보면 “우리 종가 경류정(慶流亭) 앞에는 만년송(萬年松) 한 그루가 있다. 가지와 줄기가 극히 구불구불 서리서리 얽혀서 엄연히 화개(華盖)를 우뚝 펼쳐놓은 것처럼 되었다. 높이는 겨우 몇 길도 안 되지만, 그 아래에는 백 명 정도를 수용할 수 있는, 참으로 기품인 송(松)이다. 그러나, 그 깊은 뿌리와 많은 가지, 무성한 잎으로 짙게 그늘진 모습은, 송과 떨어질 수 없는 것일 뿐만 아니라, 일찍이 덕을 힘쓰고 업적이 넓은 군자의 솜씨를 거치지 않았다면 이처럼 오래도록 무성하게 우거지지는 못했을 것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경류정노송기처럼 뚝향나무는 지금도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땅에서 뿌리를 내린 줄기는 비틀려 꼬였고 지상 1.3m 높이에서 여러 개의 가지를 내어 사방으로 뻗었는데, 밑으로 늘어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28개 지지대를 받치고 있다.그런 연유인지 몰라도 위로 자란 줄기는 아이스크림이 녹아내린 모양으로 줄기가 뭉쳐있었다. 거대한 하나의 뭉치로 뱀이 꽈리를 틀고 숨을 죽이고 있는 모습을 방불하게 했다. 한편으로는 파도치는 물결처럼 살아 움직이는 느낌으로와 닿았다. 많은 가지가 하나로 통일되고 단결된 모습의 견고함을 느끼게 했다.밑으로 내려오지 못함에 대한 반항의 몸부림인지 자유 의지의 꺾임에 대한 분노의 표출인지 모를 일이다. 인위적인 행위의 제한에 신비로운 모습으로 다가와 보이지만, 뚝향나무 본래의 성질에 반하다 보니, 그야말로 괴이함이랄까 거대한 분재형의 예술품으로 우리 앞에 섰다. 여기에 더하여 문화재청에서는 삼각형으로 만들어 보겠다고 사람의 상투처럼 나무의 가지를 억지로 하늘로 뽑아 올리고 있다. 아래로는 지지대를 세워 못 내려가게 하고 위로는 높은 지지대를 세워 가지를 상투처럼 뽑아 올리고 있다. 뚝향나무는 한국 특산종으로 줄기가 똑바로 자라지 않고 가지는 비스듬히 자라다가 전체가 수평으로 퍼지는 점이 특징이다. 그런데 뚝향나무 본래의 성질에 반하는 이러한 행동이 오랜 세월은 괴이하면서도 아름다운 분재형의 예술작품으로 만들어 놓았다. 보지 않으면 믿기 어려운 수형의 모습에 그저 감탄할 따름이다. 나무 본래의 성질에 반하는 인위적인 수형의 모습에 감탄하고 있으니 참으로 아이러니하다.뚝향나무 주변에는 벚나무, 단풍나무, 장미, 박태기나무, 철쭉나무 등 여러 종류의 나무들이 자라고 있었다. 세월이 흐를수록 이들 나무가 자라 뚝향나무에 나쁜 영향을 미칠 것이다. 더 크기 전에 다른 곳으로 옮겨 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벚꽃이 뚝향나무에 하얗게 내려앉아 광합성 작용에 방해가 되고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지금도 뚝향나무 아래 통풍이 잘되지 않아 이끼가 무성하다. 습기가 차 나무줄기에는 병충해와 균이 침입하여 나무를 상하게 하지 않을까 싶다.진성 이씨 이정이 심은 뚝향나무는 이제 이정의 분신으로 자리매김하여 후손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사랑을 받고 있다. 약산산성을 성공적으로 쌓은 기념으로 고향에 심은 뚝향나무가 이정의 정신으로 변하여 600여 년을 이어오고 있다. 경류정 뚝향나무라 부르면 어떨까. 경류정은 퇴계 선생이 이름 지은 별당으로 선생의 큰집 종택이기도 하다.주변에 공원을 조성하여 주민이 뚝향나무 가지를 꺾어 삽목한 50년생 나무를 안동시에서 두 그루를 구입하여 2012년 3월 15일에 옮겨 후계목으로 심어 놓았다. 모두 어미나무처럼 형태를 잡아 키우고 있었다.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 후계목으로 어미나무 못지않게 우리 후손의 앞에 서서 그 신기한 모습을 뽐내고 있으리라 짐작해 본다.안동 진성 이씨 종택(安東 眞城李氏宗宅)은…14세기에 안동 지역에 정착한 송안군 이자수(松安君 李子脩)가 지었다고 전한다. 이자수는 진성 이씨의 시조 이석의 아들로 고려 시대의 문신이다.종택은 본채와 별당, 그리고 사당, 행랑채, 방앗간채로 이루어져 있다. 본채는 안채와 사랑채가 안마당을 중심으로 ‘ㅁ’자형을 이루고 있으며, 성리학적 생활 규범에 따라 남성과 여성의 생활공간이 구분되어 있다.본채 뒤편에 있는 사당은 내삼문이 있는 담장으로 둘러싸여서 독립적인 공간을 이루고 있다. 본채 왼쪽에 있는 별당은 이자수의 6대손인 이연이 성종 23년 1492년에 지었다고 한다. 별당의 이름인 경류정(慶流亭)은 조선 시대의 대학자 퇴계 이황(退溪 李滉)이 지었다. 지방민속자료 제72호다./글·사진=장은재 작가

2024-05-08

위트와 흥미로 치장된 ‘시와 만화’의 행복한 결합

최근 출간된 오봉옥 시인의 웹툰시집 ‘달리지馬’. 이른바 ‘해방공간’으로 불렸던 1946년. 전남 화순의 탄광에서 미군정의 탄압에 맞서 탄부(炭夫)들이 궐기한다. 36명이 죽었고, 500여 명이 크게 다쳤다. 한국 근대사의 비극 중 하나로 기록된 이 사건이 1989년 스물여덟 살 청년시인에 의해 문학적으로 형상화된다. 장편 서사시 ‘붉은 산 검은 피’다.당시 한국은 군사정권이 통치하던 시절. ‘붉은 산 검은 피’를 펴낸 출판사와 시집을 쓴 작가 모두가 고통과 수난을 겪는다. 책에는 판매 금지의 붉은 딱지가 붙었고, 시인 오봉옥은 구속된다.이는 20세기 말 한국 문단의 비극적 풍경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 중 하나로도 기록됐다. 그랬다. 1989년은 정권의 입맛에 맞지 않은 시를 썼다는 이유로 작가를 감옥에 보낼 수도 있는 시대였다.세월은 흘렀다. 비분강개와 결기로 눈동자를 새파랗게 빛내던 젊은 시인 오봉옥은 이제 회갑을 넘긴 예순셋 중년의 교수가 됐다.최근 눈에 띄는 시집 한 권이 출간됐다. 제목은 ‘달리지 馬’. 앞서 언급한 오봉옥의 제6시집이다.헌데, 독특하다. 얼핏 봐선 만화책처럼 보인다. 언필칭 ‘웹툰시집’이란다. “이건 뭐지?”라는 혼잣말을 하며 오봉옥 시인에게 전화를 걸었다.물론, 세상은 변하고 사람도 변한다. 이건 ‘변화·발전’이라는 칼 마르크스의 낡은 레토릭이 아니더라도 모두가 인지하는 사실. 그 변화라는 순리에선 시인 또한 자유로울 수 없다.그럼에도 ‘붉은 산 검은 피’라는 무겁고 심각한 시집에서 비교적 가벼운 위트와 흥미로움으로 치장된 ‘달리지 馬’로의 변화가 어디에서부터 시작됐고, 그걸 작가 자신과 독자들은 어떻게 느끼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다음은 기자와 오봉옥 시인이 주고받은 이야기를 핵심만 요약한 것이다. 한국 문학, 특히 시에 관심이 조금이라도 있는 독자들이 ‘시인 오봉옥의 변화’ 어떻게 받아들일지 무척 궁금하다. 웹툰시집 ‘달리지馬’의 내용 중 한 부분. -‘웹툰시집’이라는 단어부터가 생경하다. 필자로서 이를 어떻게 정의하는지. 또, 만화와 시를 결합해 시집을 낸 이유는 무엇인지.△웹툰시집이 장르 혼합의 개념이니 생경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동안 시의 독자층이 줄어들고 있는 점을 안타깝게 생각해 왔다. 그건 활자매체의 영향력이 줄어드는 반면 영상매체의 영향력이 날로 커져가는 시대적 상황과 맞물려 있고, 또 한편으로는 시를 어느 사이 마니아들만 읽는 장르로 만들어버린 시(詩)문단 내부의 흐름과도 관계가 있다고 생각한다.그런 차원에서 고상하다고 할 수 있는 시를 웹툰과 결합한다면 시의 대중화에 기여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사실은 ‘웹툰시’라는 개념보다는 시라는 말을 앞세운 ‘포엠툰’이라는 개념을 쓰고 싶었는데 주위에서 그건 너무 생경하게 느껴진다는 말들을 많이 해 그냥 ‘웹툰시’로 쓴 것이다.-기존의 시와 웹툰시는 어떤 차이점이 있나. 쓴 사람으로서 웹툰시의 매력이나 장점은.△기존의 시들는 시의 여백까지를 독자가 스스로 느끼게 하는 측면에서 좋은 것 같고, 웹툰시는 어렵게 느껴지는 시를 보다 쉽게 읽을 수 있도록 만드는 장점이 있는 것 같다. ‘시인의 말’에서도 밝혔지만 시적 상상력이 만화에 영향을 주어 재미의 차원을 넘어서게 하고, 만화적 상상력이 시에 또 다른 영감을 줘 시의 세계가 더욱 더 넓어지기를 바라고 있다. 그러자면 그 둘의 창조적 결합이 중요하다. 웹툰시를 쓴다고 생각하니까 확실히 쉬우면서도 감동적인 작품을 쓰려는 의식이 앞서는 것 같았다.-출간 이후 동료 시인들과 독자들의 반응이 궁금하다.△사실 그 부분이 제일 궁금했다. 그런데 의외인 것은 시인들의 반응이었다. 일부 생경하게 느껴진다는 사람도 있었지만 대체적으로 흥미롭게 읽었다는 시인들이 많았고, 구체적으로 자기도 웹툰시집을 낼 수 있게 도움을 줄 수 있느냐는 말들을 많이 했다.독자들의 반응은 예상하는 바와 같았다. 쉽게 잘 읽힌다, 시가 이렇게 재밌을 줄 몰랐다, 아이들도 앉은 자리에서 끝까지 읽더라 등등 긍정적이었다. 얼마 전 ‘북토크’를 한 적 있는데 거기에서 사인을 받은 사람들이 자기 이름이 아닌 자식들이나 조카 이름을 써달라는 경우가 많아 흐뭇했다.-시집 ‘달리지馬’에선 마(馬) 자가 생물학적 동물부터, 명령형 어미 등 여러 의미로 변용돼 사용된다. 이를 의도했을 것 같은데.△웹툰시집을 낸다고 생각하니 말놀이가 곁들여지면 더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말놀이는 시를 끌고 가는 시적 화자와 달리 밖에 있는 시인이 시 속으로 들어와서 펼치는 천진난만한 행위다. 다시 말해 아이들이 펼치는 동화적 상상력과 같이 시인과 시적 화자가 넘나들고, 시의 안과 밖이 자유롭게 넘나들어야 한다. 이번 시집에선 말놀이를 세 가지의 형태로 드러내 보았다. 우선 ‘달리지馬’처럼 언어로서의 말놀이, 시 안의 등장인물들이 구어체로 드러낸 삶의 표현으로서의 말놀이, 말을 거꾸로 세우는 등의 형태로서의 말놀이가 그것이다. 이번 웹툰시집이 실험적 측면에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고, 독자들 역시 그 부분을 긍정적으로 봐주셨으면 하는 바람이다.-어려운 일이겠지만, 이번 시집 수록작 중 딱 한 편만 읽어야 한다면 어떤 작품을 독자들에게 권하겠는가.△맞다. 한 편을 선택하는 게 늘 어렵다.(웃음) 굳이 하나를 고르자면 ‘자식 생각’이다.“휠체어 탄 울엄니 등산 간다는 나에게 말하시네./ 산에 가서 구절초를 보거든 그 냄새 쪼깨만 개비에 넣어 온나./ 오는 길에 바다에도 들를 거라는 말엔 또,/ 갯바닥에 가믄 파도소리도 쬠만 귓구녕에 담아오고 잉./ 그럼 구절초 한 다발 꺾고/ 파도소리도 녹음해 올게요 했더니/ 니가 날 걱정할까봐/ 괜시리 한번 혀보는 소리라며 손사래를 치신다./ 걱정 말라니 원./ 그걸 말씀이라고 하고 계신다.”이 시는 말놀이를 하는 어머니와 자식인 시적 화자의 대화로 이루어져 있다. 말놀이는 단지 흥미만을 자아내는 게 아니라 이 시의 경우처럼 눈물겨운 행위이기도 하다. 휠체어를 탄 어머니는 혼자 등산을 가면서 미안해하는 자식의 마음을 헤아리며 ‘구어’로써 말놀이를 하고, 자식은 그런 어머니를 향한 연민의 정서를 보여주고 있는데…. 그 마음들을 잘 헤아려보면 좋겠다. -1985년 등단이니 시력이 40년에 이르렀다. 시는 무엇이고, 시인은 어떤 사람인가.△특별한 성과도 없이 벌써 40년이 흘러버렸다. 글쎄 시는 뭘까? 그림은 손이 불러내는 시, 노래는 목이 토해내는 시, 춤은 몸이 쓰는 시라고 할 수 있는데 시는 정작 시가 아니어서 시가 된다고 생각한다.시는 그저 마음밭에서 절로 풀어지는 길이자 그 길 위에서 어느 한 사람의 순정한 영혼이 불러일으키는 한 줄기 바람일 뿐이다. 시를 쓴다고 생각하는 순간 좋은 시는 탄생하지 않는다. 자기도 모르게 나오는 한숨 같은 것, 눈물 같은 것, 하소연 같은 것이 시가 아닐까. 그러니 어느 촌부의 말 한 대목이 시이기도 하고, 어느 노동자의 일기 한 대목이 시이기도 하다.시라는 예술에 가장 잘 어울리는 말이 ‘무위이화(無爲而化)’라고 생각한다. 억지로 꾸미지 않고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 내 안에서 나도 모르게 절로 터져 나오는 것, 그것이 시가 아닐까 싶다.-앞으로의 계획은. 그리고, 100년이 흐른 후엔 어떤 시인으로 사람들에게 기억되고 싶은지.△살아서 가진 욕망을 죽은 뒤에까지 가져가고 싶진 않다. 그래서 그에 관해 깊이 생각해 본 적은 없다. 그냥 한 시대를 열심히 살았으니 그것으로 만족한다. 늘 피해가지 않고 부딪쳐서 돌파하려고 했다.첫 시집 ‘지리산 갈대꽃’(창비)은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빨치산 가족사를 전면에 드러냈다는 평가를 받았고, 두 번째 시집인 장편서사시 ‘붉은산 검은피’(실천문학)로 군사정권 하에서 필화를 겪고 투옥까지 되었지만 우리 역사에 묻혀있던 한 사건인 화순항쟁을 세상 밖으로 끄집어내 언론계나 학계의 연구로까지 이어지게 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을 것 같다.그리고 이번에 낸 여섯 번째 시집 ‘달리지馬’ 또한 국내외 최초의 웹툰시집이었다는 점에서 그 의미를 찾아볼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차원에서 시적 역량에 대한 평가는 차치하고 최소한 ‘도전의 아이콘’ 정도로는 기억을 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앞으로도 그렇게 살 것이다. 뒷방 늙은이가 되고 싶진 않다. 죽을 때까지 아이처럼, 청년처럼 살고 싶다. 아이처럼 살기 위해서는 내 자신을 닦고 또 닦아야 한다. 청년처럼 살기 위해선 긴장을 잃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공부하고 고민해야 할 것이다. /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2024-05-07

‘낙동강 7경’ 풍경 감상하며 ‘흥·끼·신명 축제’ 맘껏

안동시와 예천군이 주최하고 경북매일신문이 주관하는 ‘낙동강 7경 문화한마당’과 ‘안동 어린이 백일장및 사생대회’가 성황리에 열렸다.지난 3일 차전장군노국공주 축제 개막식 축하무대로 개최된 ‘안동 낙동강 7경 문화한마당’ 행사에는 1만여 명이 몰려 본격적인 축제의 개막을 알렸다.기웅 아재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무대에는 수많은 팬을 몰고 다니기로 유명한 가수 박서진, 김용빈, 박미영, 단비를 비롯해 여성 발라드 가수의 정점에 있는 백지영 등이 대거 출연해 화려한 무대를 꾸몄다. 권기창 시장은 “차전장군노국공주 축제는 낙동강 문화의 연장선상”이라며 “낙동강 보존 노력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이어 6일에는 안동에 거주하는 어린이들을 위한 ‘안동 어린이 백일장 및 사생대회’가 안동 탈춤공원 일원에서 개최됐다.지난 2007년 시작된 어린이 백일장 및 사생대회는 미래 꿈나무인 어린이들에게 창작의 즐거움을 전해주기 위한 문예마당으로 경북 북부지역을 대표하는 문화행사로 자리매김하고 있다.이번 대회는 안동과 도청신도시 등에 거주하는 어린이들과 학부모 등 300여 명이 참가해 그림과 글쓰기 등의 실력을 마음껏 뽐냈다.또한, 이날 행사장을 찾은 어린이들을 위한 레크리에이션과 마술쇼 버블 공연 등의 볼거리가 마련돼 지역의 어린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선물했다.‘제11회 낙동강 7경 예천군 문화한마당’ 행사는 6일 오후 7시 한천체육공원 특설무대에서 화려하게 펼쳐졌다. 이날 행사는 김학동 군수와 최병욱 군의장을 비롯한 경북도의원, 군의원, 군민 등 2000여명이 함께 어우러져 서로 응원하고 화합하는 한마당잔치로 치러졌다.이번 행사는 ‘2024 예천활축제’ 마지막을 장식하는 특별 공연으로 혼성그룹 스페이스A, ‘내일은 국민가수’ 최연소 참가자인 김유하, 싱어송라이터 김원준 등 국내 최정상 인기가수들이 대거 출연해 특별한 공연을 펼치며 지역민과 관광객들에 축제의 즐거움을 선사했다.‘낙동강 7경 문화한마당’은 낙동강 수변생태공간을 홍보하고 낙동강 관광·레저 산업 육성을 통한 관광객 유치를 위해 매년 개최되고 있다. 올해 행사는 예천활축제장을 찾은 관람객에게 즐거움을 선사하기 위해 마련됐으며 지역경제활성화에도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정안진·피현진기자 □ 3일 안동 낙동강 7경 문화한마당 □ 6일 안동시 어린이 백일장·사생대회 □ 6일 예천 낙동강 7경 문화한마당 사진=이용선기자

2024-05-06

수천장 종이비행기 함께 날리며 ‘꿈과 희망’ 활짝

‘2024 포항 어린이날 큰 잔치’가 5일 포항 환호공원 일원에서 포항시 주최, 경북매일신문 주관으로 성황리에 개최됐다.‘즐거움이 퐝! 퐝!’이라는 주제로 제102회 어린이날을 기념해 열린 이번 행사는 비가 오는 궂은 날씨에도 어린이, 학부모 등 4000여 명이 환호공원을 가득 메웠다.기념식에는 이강덕 포항시장과 김정재 국회의원, 이상휘 국회의원 당선인, 백인규 포항시의회 의장과 김일만 포항시의회 부의장, 박용선 경북도의회 부의장, 김희수 경북도의원, 김형철·김종익 포항시의원, 천종복 포항교육장, 심학수 포항북부소방서장, 류득곤 포항남부소방서장, 최윤채 경북매일신문 사장 등 내빈들이 참석해 어린이날을 축하했다. 개막식의 종이비행기 던지기 퍼포먼스에서는 참가자 전원이 ‘비상하는 어린이들의 꿈과 희망을 응원’하는 수천장의 종이비행기를 던지는 장관을 연출했다.이날 행사에서는 버블·매직쇼와 방송댄스 등 식전 공연으로 시작해 아동권리헌장 낭독과 모범어린이 시상 등 기념식, 포항소년소녀합창단 어린이날 노래 합창이 이어졌다. 식후 축하공연으로는 지댄스 공연과 삐에로 공연, 퀴즈 대회 등이 열려 어린이들의 흥을 돋웠다.또 ‘경북 어린이 백일장 및 사생대회’도 이날 함께 진행됐다. 환호공원 여기저기에 어린이들이 삼삼오오 모여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면서 담소를 나누는 정겨운 모습을 연출했다.오전 10시부터 행사장 곳곳에 마련된 부스에서는 달란트 상점, 인생네컷, 페이스페인팅, 교통안전 증강현실 체험, 심폐소생술, 소방 안전 체험, 전통혼례 체험, 화분 받침대 만들기 등 다양한 체험활동 행사가 열렸다. 이강덕 시장은 “어린이들의 102번째 어린이날을 축하한다”면서 “우리 포항의 희망이고 꿈인 어린이 여러분들이 자랑스럽다”고 말했다.김정재 국회의원은 “여러분들이 좋아하는 일을 열심히 하는, 적극적이고 행복한 어린이가 됐으면 한다”고 했고 이상휘 국회의원 당선인은 “공부 보다는 건강하고 밝게 성장하는 어린이가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백인규 시의회 의장은 “우리들의 미래고 희망인 어린이 여러분들이, 안전하고 행복할 수 있는 포항을 만들어가겠다”고 강조했고 최윤채 경북매일신문 사장은 “날씨가 심술궂지만, 오늘 하루 친구들과 신나고 즐겁고 재미있게 보내길 바란다”고 했다. /장은희기자·단정민 수습기자사진=이용선기자

2024-05-05

국권 찬탈 치욕의 현장, 나무는 모두를 지켜봤다

전국에 비가 내린다는 일기예보는 어긋났다. 왜 빗나간 일기예보가 이렇게 기쁠까. 문경회(文卿會·퇴직공직자 모임) 회원들은 서울 나들이로 월드컵경기장을 관람하고 남산공원에 있는 시립서울 남산유스 호텔에 숙박했다. 아침 식전에 남산공원 둘레길을 산책했다.서울 한가운데 자리 잡은 남산 공원 둘레길은 울창한 숲속에 잘 다듬어져 있었다. 녹색 상큼한 향기 마음껏 만끽하지도 못하고 국립중앙박물관 관람 관계로 중도에 멈추고 되돌아와야 했다. 진한 아쉬움이 남았다.언제 또 기회가 있을지 모르는 일이고 보면 아쉬움이 컸다. 오늘 모든 모임 일정을 마치고 딸아이 집에서 자고 내일 오후에 대구로 갈 기차표를 예매해 둔 상태였다. 때를 기다리기보다 기회를 만들면 된다. 다음날 서울 남산공원 둘레길을 산책하기로 마음을 먹었다.서울을 방문하는 관광객이라면 누구나 꼭 한 번쯤 가보고 싶은 곳, 연인들이 사랑을 맹세하는 도심 속 로맨틱한 섬 서울 남산타워가 정상에 우뚝 서 있는 남산공원일 것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남산케이블카, 남산타워만 생각하고 산책로인 둘레길을 놓치는 경우가 많아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울 남산공원 둘레길은 북측 순환로와 남측 숲길을 연결한 7.5㎞로 1시간 반이면 걸을 수 있는 도심 속 산책길이었다. 지하철 4호선 명동역을 이용하면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누구나 쉽게 찾을 수 있다. 남산공원 둘레길은 사계절 아름다움을 연출하지만, 특히 봄에는 벚꽃, 개나리, 철쭉이 흐드러지고 피어 꽃길로 수놓았다.흩날리는 꽃비를 맞으며 걷다 보니 일상에 지쳐있던 발걸음은 어느 때보다도 경쾌하고 가벼웠다. 푸른 나무들이 울창한 숲길을 따라 걷다 보면 간간이 서울 도심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어 좋았다. 약 3.3㎞ 이어지는 북측 순환산책로는 차와 자전거의 통행이 전면 금지되고 오직 보행자만 걸을 수 있는 순수한 산책로였다. 복잡한 서울 도심에 이런 조용한 숲길이 있다는 것 자체가 신기할 정도였다.숲길 걷는 것을 좋아하는 나는 남산 둘레길을 완주하고 정상에 올라 있었다. 아름다운 서울이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서울은 세계 어느 나라 수도 못지않게 발전하고 아름다운데 왜 내 마음에는 남산 둘레길 초입에서 만난 침묵하는 관저 느티나무와 은행나무 노거수가 긴 여운을 남길까. 옛 일본 통감 관저 오른쪽에는 느티나무가 왼쪽에는 은행나무가 형제처럼 살고 있었다. 임진왜란을 전후로 남산 기슭에 느티나무가 먼저 태어나 살고 있는데 누군가 은행나무를 이곳으로 옮겨 형제처럼 살아가게 했다.지금은 관저 건물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기억의 터’와 ‘통감 관저 터’ 빗돌만 세워 놓았다. ‘기억의 터’는 강제로 꽃다운 나이에 낯선 곳으로 끌려가 갖은 치욕을 당한 위안부를 잊지 말자고 이곳에 빗돌을 세웠다고 했다.‘통감 관저 터’ 빗돌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었다. “일제 침략기 통감 관저가 있었던 곳으로 1910년 8월 22일 3대 통감 데라우치 마사다게와 총리대신 이완용이 강제 병합 조약을 조인한 ‘경술국치’의 현장이다.” 그리고 보면 지금으로부터 꼭 114년 전인 대한제국의 국권이 일본에 공식적으로 넘어간 ‘국치’의 현장이었다. 통감 관저는 조약체결 이후 ‘총독 관저’로 바뀌었고, 1939년 9월 현 청와대 자리에 총독 관저가 신축돼 옮겨가기 전까지 29년간 그 기능을 유지했다고 한다. 당시의 통감인 하야시 곤스케(林權助)의 작위를 기리는 동상이 거꾸로 세워져 있었다. 내게는 그 모습이 하야시 곤스케가 자신의 아니 일본의 잘못을 용서해 달라고 거꾸로 매달려 빌고 있는 모습으로 비추어졌다.그때 이곳 현장에 있었던 관저와 인물들은 다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지만, 아직도 현장의 역사를 증언하는 관저를 감시한 느티나무와 은행나무 노거수가 살아가고 있다. 총독 관저를 뻔질나게 드나들면서 일본 총독의 개노릇을 하는 것도 모자라 나라까지 팔아먹고 자신의 배를 불린 매국노들이 누군지 노거수는 다 알고 있을 터이다.밤의 도둑고양이처럼 시도 때도 없이 관저를 찾아 드는 매국노의 숨을 죽인 게다 소리도 노거수는 보고 듣고 기록해 두었으리라. 한편으로는 외침의 봉송 대 연기에 놀라 헐떡이며 말을 타고 오르내리는 순찰대의 말발굽 소리도 보고 듣고 우국충정의 관리도 노거수는 기록해 두었으리라. 언제 나무와 의사가 교환된다면 그 옛날 매국노는 누구고 충신은 누구인지 만천하에 밝혀지리라. 모두가 수치스러움에 입을 다물고 노거수처럼 침묵을 지키고 있는지도 모른다.왼쪽의 감시인 은행나무는 나이가 400살, 키 21.3m, 가슴 높이 둘레 5.94m이다. 오른쪽 감시인 느티나무는 나이 450살, 키 23m, 가슴 높이 둘레 6.37m이다. 지금은 ‘기억의 터’와 ‘관저의 터’를 내려다보면서 남산 둘레길을 찾는 방문객들에게 역사의 현장을 지키고 있는 증인으로 거듭나고 있다. 아름다운 이곳을 어떻게 알고 여기에 침략국 원수의 관저를 지었는지 모를 일이다.그 위세라면 궁궐도 강탈할 수 있을 텐데, 겸손을 가장하고 아름다운 우리 강산의 정수를 노리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제 우리는 느티나무와 은행나무 노거수를 역사의 산증인으로 ‘기억목(記憶木)’으로 이름을 붙여주고 천연기념물 반열에 올려 서울 남산공원 상징물로 자리매김해야 하지 않을지 싶다. 기억목은 귀띔해준다. “자강만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거라며, 누굴 원망하고 미워하기보다 스스로 잘못은 없는지 그들에게 어떤 빌미를 주지 않았는지 반성부터 해 보라 한다.” 4월의 봄은 나목의 나뭇가지에 푸른 옷을 입히고 꽃을 피워 외침에 희생된 영혼들을 위로하고 있는 것 같다. 봄바람에 숲은 파도처럼 푸른 물결이 끊임없이 출렁인다.서울처럼 한 나라의 수도가 산으로 둘러싸인 곳은 세계적으로도 보기 드물다. 높고 낮은 산이 병풍처럼 두르고 푸른 한강이 그림처럼 흐르는 서울의 중심에 우뚝 자리한 남산은 우리나라의 보배이다. 남산 정상에는 사랑의 자물쇠가 빼곡히 달려 있었다. 열쇠를 통에 넣어버렸으니 잠긴 자물쇠는 영원히 열리지 않는 것처럼 사랑 또한 지속될 것이다. 일제강점기의 아픈 역사를 증언해 줄 느티나무, 은행나무 노거수를 이제는 기억목 노거수로 남산의 상징물로 천년만년 살아가기를 희망해 본다. 서울 남산공원 둘레길 산책하면서 우리의 아픈 역사 현장을 지키고 있는 노거수를 보고 다시는 그런 일이 없도록 다짐해 본다. 목멱산(木覓山) 봉수대전국의 봉수가 집결되었던 곳으로 경봉수(京712F雄)라고도 불렸다. 봉수제도는 신호체계에 따라 연기나 불을 피워서 변방의 긴급한 사정을 중앙까지 전달하여 알리며, 해당 지역의 주민들에게도 알려 빨리 대처하도록 하는 일종의 통신수단이다.산봉우리에 봉수대를 설치하여 불을 피워서 낮에는 연기, 밤에는 불빛으로 신호를 알아볼 수 있도록 하였다.제1 봉수대는 함경도-강원도-양주 아차산, 제2 봉수대는 경상도-충청도-광주 천립산, 제3 봉수대는 평안도 강지-황해도-한성 무악 동봉, 제4 봉수대는 평안도 의주 황해도 해안-한성 무악 서봉, 제5 봉수대는 전라도-충청도-양천 개화산에 이르는 봉수를 받았다./글·사진=장은재 작가

2024-05-01

묵묵히 걸었던 800㎞ 여정… 길에게 인생을 묻고 나를 찾다

지난 시대와는 비교할 수 없이 평균 수명이 길어진 21세기. 그에 발맞춰 많은 이들이 ‘걷기 운동’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지 이미 오래다. 동시에 주목받고 있는 국내외의 ‘걷기 좋은 길들’. 그 가운데 정점을 찍는 걷기 코스는 산티아고 순례길(El Camino de Santiago)이 아닐까 싶다. 이 길은 유럽에 산재한 여러 가지 루트로 출발해 최종 목적지인 스페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a) 성당에 도착하는 유명한 도보 순례 코스. 산티아고 순례길 완주를 위해선 꽤 긴 시간이 필요하고, 비용도 적지 않게 사용되지만 의의로 한국에도 그곳을 다녀온 이들이 적지 않다. 기자 주변에도 이미 3~4명의 선후배가 산티아고 순례길을 다녀왔거나, 걸을 계획을 세우고 있다. 자그마치 800㎞에 이르는 이 순례길에선 저마다의 사연과 이유를 가지고 묵묵히 발걸음을 옮기는 이들을 볼 수 있다고 한다. 종교적 신념, 삶의 본질에 대한 고민, 미래에 관한 불안, 실패한 연애가 준 절망감, 희망과 꿈을 향한 도전….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 이들의 가슴 안에는 수만 가지 사연이 담겨있을 터.경북 포항시 청하면에서 태어나 미국 컬럼비아대학 교육학 박사 학위를 취득한 후 세종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친 김상국 명예교수는 어린 시절부터 새로운 시도와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았던 사람이다. 바로 이 김 명예교수가 자신의 산티아고 순례길 완주 체험을 담은 책을 최근 출간했다. 이름하여 ‘잊혀진 나를 찾아가는 길’(도서출판 지식나무).그는 거기서 무엇을 보고, 누구를 만났으며, 어떤 걸 느끼고 돌아왔을까? 또한, 순례길 체험을 꿈꾸는 다른 이들에겐 무슨 말을 들려주고 싶을까? 그 궁금증을 풀기 위해 제법 긴 질문지를 보냈다. 김상국 명예교수와의 인터뷰는 몇 번의 통화와 이메일 수·발신으로 진행됐다. 아래 그와 주고받은 이야기를 요약해 옮긴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겠다고 결심한 이유는.△나이가 들수록 몸과 마음이 무기력해진 시점에서 Y대학 선배 교수의 산티아고 무용담을 듣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결심했다. 당시 나는 체중이 100kg이 넘어있었고 약간의 우울 증세도 있었다. 무기력해진 나를 바로 세울 수 있는 사람은 바로 나 자신이다. 더 나은 나를 만들기 위해 준비해나가기 시작했다. 또한, 젊은 시절의 믿음과 삶에 대한 열정을 되살리고 싶었다. 꿈을 포기하지 않으면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신념은 늘 잠재되어 있었다. 그것을 다시 찾고 싶어서 결심했다.-순례길 800㎞를 걸었다. 어떤 준비를 했는지.△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체력과 정신력이 필요했다. 체력은 하루 6~8시간 활동할 수 있는 적응력이 필수조건이다. 다음엔 지루하고 반복적인 활동을 이겨낼 수 있는 마음가짐을 만들어야 한다. “난, 완주할 수 있다”란 비장한 각오가 필요했다. 이런 습관은 모든 분야에 적용된다.-가장 힘겨웠던 구간은.△대부분의 순례자가 첫날 피레네산맥을 넘어오는 과정이 가장 힘들었다고 말한다. 해발 1500m다. 첫째 날 신고식을 혹독하게 치러야 이 산을 넘어간다. 높은 산들로 몇 시간이고 내내 오르막만 전개되기 때문이다. 평야만 있는 곳에서 살아온 순례자들은 특히 힘들게 느껴진다. 한국의 대청봉, 천왕봉, 한라산 정도의 운동량이라고 비교하면 된다. -반면 가장 감동적이었던 구간은.△순례길은 매 구간 특색이 있어 감동을 준다. 그러나 많은 순례자가 감격의 눈물을 뿌리는 곳은 두 곳이다. ‘철의 십자가’와 순례길 종착지다. 철의 십자가는 순례길 중 가장 높은 위치에 있고, 또 3주 이상을 지나야 만날 수 있는 곳이다. 자신의 소중한 물건 하나를 십자가 아래 내려놓고 기도하는 곳이기도 하다. 이곳에 수많은 사연을 놓고 간다. 어떤 순례자가 하늘나라로 간 사랑하는 사람의 사진을 두고 가는 걸 봤다. 이 철의 십자가는 순례자들 소망의 안식처가 되고, 세상의 온갖 죄와 허물을 씻어내는 사랑의 강물이 된다.-순례길에서 만난 이들 중 기억에 남는 사람은.△나와 여러 번 대화를 나눈 순례자들이다. 그중 약 500㎞를 동행한 미국 제임스 목사와 각별했다. 그는 내게 “Are you a Christian?”이라 질문해 그렇다고 대답하자, 다시 “Are you a born again Christian?”이란 질문을 던졌다. 제임스 목사와 긴 구간을 동행하며 많은 것을 배우고 느꼈다. 산티아고의 길과 어우러져 보람과 가치를 느끼게 한 사람이다.-이번 책 ‘잊혀진 나를 찾아가는 길’은 어떤 방식으로 썼는지.△지금까지 산티아고 순례길을 3번 완주했다. 이 책에 실린 이야기는 최초 방문했을 때 메모해둔 기록을 바탕으로 쓴 것이다. 첫 번째 시기는 ‘코로나19 사태’가 시작되기 전 약 한 달 남짓이었고, 최근 세 번째 다녀온 건 코로나19로부터 자유로워진 2023년 봄이었다. 매번 출발은 설렘 반 긴장 반으로 시작되지만, 일단 길 위에 올라서면 새로운 힘이 솟아난다. 자연이 준 신비한 기운 때문이 아닐까 한다. -책 제목이 흥미롭다.△제목은 직접 지은 것이다. 누구에게나 꿈이 있다. 그 꿈이 마음속에서 선명해질 때 ‘집념과 열정’이 생긴다. 꿈은 가슴에 품는 힘이며, 성공보다는 행복을 만든다. 이러한 에너지, 즉 열정은 인생 후반부터 강도가 떨어지기도 한다. 또한 길들여진 익숙한 프레임 속에서 오래 살아가다 보면 꿈과 열정 없이 무미건조한 삶으로 이어진다. 내가 미국 유학 시절에 꿈과 열정을 쏟았던 모습을 다시 살리고 싶은 생각에 ‘잊혀진 나를 찾아서’란 주제를 사용했다.-산티아고 순례길을 완주하던 날엔 어떤 감정이었나.△종착지인 산티아고 대성당 앞에 다가가면 “아! 나도 할 수 있어”란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이 밀려온다.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긴 결과다. 완주를 끝내고 얻은 성취감은 오랫동안 사라지지 않는다. 안도감과 함께, 건강하게 버텨 준 두 다리에 감사를 느꼈다. 체중이 8kg 빠지고 더 건강해진 느낌이었다. 순례길은 신비스러운 바다와 같다. 비가 오면 비를 맞고, 눈이 내리면 눈을 녹인다. 바람이 불면 녹색의 파도가 순례자의 가슴을 요동치게 한다.-순례길을 걷고자 하는 이들에겐 들려줄 조언은.△산티아고 순례길 800㎞는 체력과 마음의 준비가 필수다. 누구나 준비를 잘하면 무사히 완주가 가능하다. 준비 기간은 개인 차이가 있지만 6~12개월이면 충분하다. ‘길에서 만나는 외국인과 말이 통하지 않으면 어떻게 할까’라는 두려움보다 자신감에 더 큰 무게를 두면 된다. -앞으로도 길 위에서 삶의 해답을 찾을 생각인지.△나는 걷기를 무척 좋아한다. 올 봄에는 영국 바스(Bath) 지방을 걸으며 힘을 얻고 왔다. 내년에는 남아메리카 태양의 도시 혹은, 잃어버린 도시라고 알려진 페루 마추픽추(Machu Picchu)에 도전하고 싶다. 자연은 명화(名756B)다. 이것을 깨닫는 자는 자연이 아름답다는 것에 매력을 느낀다, 이게 바로 나를 멈추게 하지 않는 도전의식이다.-여행에 관해 젊은이들에게 조언한다면.△여행은 닫힌 마음을 열어주고, 자기주도적 인생 경험을 가능하게 만든다. 요즘 젊은이들은 익숙해진 편리함을 벗어나야 한다. 그 속에 빠질수록 무기력이 찾아온다. 스스로 배낭을 메고 도전하는 습관은 자신의 인생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자발적인 여행 습관은 인생을 성숙하게 만든다.-마지막으로 덧붙일 말은.△현대 문명은 인간을 편리함에 익숙하게 만들고, 그 익숙함에 속아 몸과 마음이 점점 무기력해지고 있다. 인생은 단 한 번이다. 건강을 지키는 건 우리들의 고귀한 책무다. 걷기만 잘해도 ‘생활습관병’을 예방할 수 있다. 걷기는 언제 어디서나 할 수 있고, 돈도 들지 않는다. 건강한 삶을 원한다면 오늘부터 걷기를 시작하면 된다. 건강은 행복의 밑거름이다. 여러분이 찾는 행복은 바로 자신 안에 있다./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2024-04-30

울창한 소나무숲 거닐며 피톤치드 샤워, 건강은 기본 힐링까지

100대 명산을 오르는 것 보다 더 좋은 것은? 동네 뒷산을 200번 오르는 것이다. 어느 산이든 곁에 있는 산이 최고이고, 접근성이 가장 큰 미덕이다. 산은 인(仁)과 통하니 수양에 좋고, 유산소 운동인 등산은 자체로 훌륭 한 건강 수단이자 치료제다. 세계에서 스트레스 지수가 가장 높다는 한국 중장년들이 그나마 잘 버티고 있는 것은 그들을 품어주는 산들이 주변에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이번에 소개할 산은 바로 이 컨셉에 가장 잘 들어맞는 곳이다. 도심과 가까이 있고 험하지도 않아 운동화와 물병을 챙기면 언제든지 오를 수 있다. 공기나 물처럼 너무 가까이 있으면 소중한 줄을 모른다고 하는데 자칫 이 산도 이런 범주에 들까 염려되는 곳이다. 너른 품을 열어 일상에 지친 포항시민들을 넉넉히 품어주는 양학산(良鶴山)을 소개한다. ◆부학산, 양학산, 방장산 등 다양한 이름양학산은 부학산, 방장산, 연화산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린다. 본래 이름은 무엇일까. 먼저, 방장산은 방장산터널 일대의 낮은 구릉을, 연화산은 대성사(大聖寺) 인근의 산을 지칭하는 것으로 보인다. (전체성, 대표성 떨어짐) 다음 양학산은 ‘양학동’이라는 행정동이 들어선(1966년) 후 정해진 일종의 행정명으로 고유성면에서 실격이다.그런 의미에서 ‘학이 날아오른다’는 뜻의 부학(浮鶴)이 가장 대표성을 띠고, 운치도 있어 본래 이름에 가장 가깝다는 판단이다. 무엇보다 산 주변에 학, 황새와 관련된 설화도 많이 등장해 역사, 고증에서도 유리하다. 이 산은 양학동, 대이동, 학잠동에 걸쳐 있는데 동(洞) 유래가 재미있어 잠깐 소개한다. 먼저 양학동은 기존에 있던 ‘득량마을’과 ‘학잠마을’ 이름에서 한글자 씩 따와 이름이 유래됐다. 득량의 기원인 ‘득량곡’(得良谷)은 마을에 득량지(池)가 있어 농사와 양식걱정이 없는 마을이라는 유래를 갖고 있다. ‘학잠’(鶴岑)은 뒷산의 묏부리 모양이 학이 내려앉는 모습을 닮았다고 해서 비롯됐다고 한다.대이동(大梨洞의) 유래도 재밌다. ‘대잠동’(大岑洞과) ‘이동’(梨洞)의 이름이 합쳐진 것인데, 대잠은 마을 한가운데로 산줄기(岑)가 길게 뻗은 데서, 이동은 마을 입구에 큰 배나무가 있어 이 지명이 붙었다. ◆KCC스위첸-양학연당-포항시청 코스 유명보통 양학산 등산로의 기본 코스는 KCC 양학스위첸으로 올라 부학정-양학연당-산림조합 뒤편으로 오른 후 제3체력단련장-이마트(이동점)-이동삼성아파트-방장산터널-전망대를 거쳐 포항시청으로 내려오는 7.5km 코스가 주류를 이룬다.이 코스의 장점은 크고 작은 소나무숲이 계속 이어진다는 점. 거목들이 군락을 이루거나 역사적 서사를 간직한 것은 아니지만 크고 작은 숲을 펼쳐 산행객들에게 피톤치드 세례를 만끽하게 해준다.전국적으로 소나무 재선충이 극성을 부리고 있다지만 이쪽은 해풍(海風) 덕인지 아직은 선방하고 있는 것 같다. 20리길 등산로가 성에 덜 차는 준족들은 서쪽 이동산 쪽으로 진행하거나 동쪽 연화재를 거쳐 아치재로 연장하기도 한다.전체 산세는 고도 200m 급으로 낮은 편이지만 지세가 평온해 저질 체력(?)들도 부담없이 오를 수 있다. ◆전망대-양학연당-부학정 등 곳곳에 명소이제 본격 산행에 나서보자. KCC 양학스위첸을 들머리로 잡고 올라 1시간쯤 지나면 아담한 정자가 하나 나온다. 양학동과 대이동을 한눈에 굽어볼 수 있는 부학정(浮鶴亭)이다. 산세가 학의 형상을 띠고 있어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아쉬운 것은 정자 이름을 한글로 표기했다는 점. 유감스럽지만 한글 간판으로는 ‘학이 날아오르는 정취’를 전혀 느낄 수 없다. 팝송을 한글로 적어 부르는 느낌이랄까?다시 북쪽으로 20분쯤 진행하면 ‘양학연당’이 나온다. 등산로에서 살짝 비켜서 있어 잠시 밑으로 내려가야 한다. 여름이면 못에 연꽃이 만발해 주민들에게 눈 호강을 시켜준다. 역시 아쉬운 점은 안내·해설 표지판이 없어 ‘연당’(蓮堂)인지 ‘연당’(淵堂)인지 헷갈린다는 점.길은 산림조합 뒷산을 거쳐 제3체력단련장으로 연결된다. 서쪽으로 이동산을 잠시 조망하며 걷다보면 이마트(이동점)에 이르는데, 여기서 잠시 도로로 접어들어 이동삼성아파트까지 진행한다.이동중학교-방장산터널을 지나 비탈길을 잠시 거친 호흡으로 오르면 전체 등산로 하이라이트 ‘전망대’에 이른다. 양학산 최고의 뷰 포인트로 시티뷰, 오션뷰를 두루 즐길 수 있다. 전망대 난간에 서면 영일만의 푸른 파도, 송도해수욕장과 우리나라 근대화의 상징 포스코 전경을 한눈에 굽어볼 수 있다. 전망대에서 서쪽으로 길을 접어들어 하산하면 전체 등산로의 종점 포항시청이 나온다.바다가 민물과 해류를 가려 받아들이지 않듯, 산도 희노애락 정서를 모두 품어준다. 연인, 벗들과 함께 하는 산은 희락(喜樂)일 것이고, 자녀 진로의 고민이 있는 주부나 시름에 찬 중년들이 오르는 산은 노애(怒哀)의 어디쯤 일 것이다.맘대로 따라주지 않는 자식으로 고민한다면, 취업·진로 문제로 우울한 청춘이라면, 직장의 진퇴를 놓고 고민하는 중년이라면, 지금 뒷산으로 오르라. 어진(良) 학(鶴)이 답으로 이끌 것이다. 양학산 일대 재미있는 지명들양학산 일대는 1980년대 이후 대부분 아파트촌으로 변했지만 아직도 군데군데 전통부락들이 많이 남아 있다. 재미있는 옛 지명들을 소개한다.▷선달각단=옛날에 무과 벼슬인 선달(先達)을 지낸 사람이 이 마을에서 살았다고 해서 유래된 이름이다.▷사장골(師丈谷)=문씨라는 선비가 현재 양학초교 근처에서 자리를 잡고 아이들을 가르쳤다고 하는 데 이 일대를 사장골이라고 부른다.▷가마골=마을 지형이 가마솥처럼 생겼다고 해서 유래된 이름이다. 이름처럼 이 골짜기는 겨울에도 따뜻하고 늘 의식(衣食)이 넘친다고 한다.▷못안(池內), 신지(新池)=득량못 안쪽에 있는 마을을 일컫는다. 이 못은 물이 깨끗해 붕어, 잉어 등 물고기들이 많이 잡힌다고 한다.▷큰골, 큰동네=학잠동에서 가장 큰 마을이다. 1974년 포항시 최초 아파트인 학잠아파트(현재 대림힐타운)가 들어섰다. 마을 입구엔 1981년 개장된 양학 시장이 있다./글·사진=한상갑기자 arira6@kbmaeil.com

2024-04-25

땅에 엎드려 기어가듯 ‘겸손의 자세’로 뿌리 내려

날씨만 맑고 포근하다면 겨울 여행도 괜찮다는 생각이 든다. 겨울임에도 맑고 푸른 하늘에서 따뜻한 햇살이 시골 마을에 내리쬐고 있다. 이럴 때 나즐로(나 홀로 즐겁게) 노거수를 찾아 떠나는 여행은 신명이 나서 눈앞에 펼쳐지는 공허한 자연마저 마음속엔 꽉 찬 느낌으로 다가온다.봄 여행은 때로는 춘곤증에 시달리고, 여름 여행은 모기, 쇠파리 등 갖은 벌레가 어디 가나 시도 때도 없이 달려들어 성가시게 굴기도 하고 때로는 시골길 풀숲에 뱀이 나타날까 봐 두렵고 무섭기도 하다. 가을 여행은 우수수 떨어지는 낙엽을 볼 때면 괜스레 감상적이어서 마음이 울적하기도 하다. 그러나 날씨만 괜찮다면 겨울 여행은 이 모두를 잠재우고 그저 목적하는 바를 즐겁게 이룰 수 있어 좋다. 고즈넉한 시골 마을 길을 굽이굽이 돌면서 경북 청도 명대리 32번지에 살아가는 뚝향나무 노거수를 찾았다. 작은 동산을 배경으로 운계사가 있고 조금 더 큰 산자락 끝을 붙잡고 모암재가 자리를 잡고 있었다.운계사(雲溪詞)는 1670년에 건축된 정면 3칸의 단출한 목조 기와로 절효(節孝) 김극일(金克一) 선생의 위패를 모시는 사당이다. 선생을 배향하는 모암재(慕庵齋)로 가는 길가에 1994년 9월 29일 경상북도 기념물 제100호로 지정된 뚝향나무 노거수가 살아가고 있다.땅에 엎드려 기어가는 뚝향나무는 모양에서도 범상치 않지만, 절효 선생과 깊은 관계가 있다. 절효(節孝)란 절(節)은 절조로 절개와 지조를 뜻하고 효(孝)는 효성으로 정성을 다하여 부모를 섬기는 마음이나 태도를 뜻한다. 절효 선생은 돌아가시고 없지만, 그 정신만은 오로지 뚝향나무에 옮겨져 오늘날까지 후손은 물론이고 우리에게 전해주고 있다. 멀리서도 한눈에 들어오는 거대한 노거수와는 달리 땅에 엎드려 겸손의 자세로 살아가고 있으니 쉽게 찾기도 어렵다. 어렵사리 찾았다고 해도 키는 작고 덩치만 옆으로 길게 퍼져 카메라 렌즈에 쉽게 담기도 어렵다. 주변에 단풍나무, 소나무, 사철나무가 함께 살아가고 있어 세월이 흐른 뒤에는 서로에게 적대적인 방해물로 애를 때울 것이 분명해 보여 일찍이 다른 곳으로 옮겨 주어야 할 것 같다.주변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면서 뚝향나무 노거수를 렌즈에 담았다. 나이는 350살 정도이고 키는 5m, 밑둥치 둘레는 1m, 수관 폭 앉은 자리는 30m나 된다고 안내판에 기록되어 있었다. 앉은 자리의 넓이는 키의 6배 정도나 되고 보니 참으로 놀랍다. 뚝향나무는 줄기와 가지가 비스듬히 자라다가 개울과 땅을 덮은 모양새를 취하고 있었다. 나무 아래 옹달샘이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확인할 수 없었다. 나뭇가지가 우거져서 밑으로 들어갈 수 없었다. 겨우 나무 아래 개울로 들어가 보니 7주로 보였다. 그러나 안내문에 따르면 모두 한 그루에서 나온 나무라 했다.사각형 철제 막대 위에 얹혀 있는 뚝향나무 가지가 자유 분방하게 이리저리 얽히고설킨 역동적인 모양은 차곡차곡 쌓인 세월의 흔적이 아닐까 싶다. 개울을 완전히 덮고 있어 비가 많이 와서 홍수라도 난다면 참으로 난감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걱정이 앞선다.향나무는 강한 향기를 가지고 있어 제사 때 향료로 사용되었으며 정원이나 공원의 울타리용으로 많이 심고 있다. 위로 자라는 향나무보다는 볼품이 다소 떨어지는 경향이 있지만, 일반적으로 조경용보다는 주로 비탈진 언덕이나 둑에 심는 것이 대부분이다.언덕에 심어진 뚝향나무는 비탈진 사면 따라서 자라기 때문에 빗물로 인한 토사의 유실을 방지하고, 흙을 움켜쥔 나무뿌리로 말미암아 땅을 단단하게 하는 효과가 있는 나무이다. 키가 작다 보니 한삼덩굴 등 여타 덩굴식물이 얕보고 나무를 타고 올라 휘감고 있었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뚝향나무는 절효 선생 후손에 관한 에피소드가 전해 내려오고 있었다.“후손 김용석은 딸만 낳고 가문의 대를 이을 아들이 없었다. 부인이 뚝향나무 아래 샘에 촛불을 켜고 지극 정성으로 아들을 낳게 해 달라고 뚝향나무에 빌었다. 그 정성 탓인지 아들을 낳았다. 그 아들이 6·25 한국 전쟁이 일어나 군에 입대했다. 부인은 어렵게 얻은 아들이 무사히 전쟁을 치르고 돌아오기만을 뚝향나무에 빌고 또 빌었다. 그 덕분인지 전쟁터에서 총알을 13발이나 맞았는데도 살아서 돌아왔다. 이 기적 같은 모든 일들이 뚝향나무 덕분이라고 믿었다. 뚝향나무가 조금이라도 상하게 되면 집안의 사람이 다친다든지 도둑을 맞는다든지 좋지 않은 일이 꼭 일어났다고 한다. 우연의 일이라 넘기기에는 너무 신기하여 집안의 대소사를 뚝향나무에 먼지 신고를 하는 등 경배하고 지금까지 보호하고 있다는 것이다.”뚝향나무 노거수와 절효 선생은 한 몸이란 생각이 든다, 뚝향나무를 보면서 우리 선조의 절개와 지조, 부모에 대한 효성을 본받고 마음을 다잡아 본다. 후손과 마을 주민들이 힘을 모아 뚝향나무 노거수를 잘 보호하여 수백 수천 년을 함께 번영해 나가기를 희망해 본다. 절효(節孝) 김극일 선생은…청도 명대리 뚝향나무는 조선 시대 효자인 절효(節孝) 김극일(金克一) 선생의 위패를 모시고 있는 운계사 사당 앞에 있다. 절효 선생은 성품이 지극히 효성스러워서 어머니를 위해 몸의 종기를 입으로 빨고 아버지의 병세를 위해 설사를 입으로 맛보았다고 한다.부모가 돌아가신 후 시묘살이 6년을 했는데, 호랑이가 무덤 곁에서 새끼 젖 먹이는 것을 보고는 제사를 지내고 남은 음식을 가축 기르듯이 호랑이 새끼에게 먹여 주었다고 한다.아버지에게 천첩(賤妾) 두 사람이 있었는데,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도 살아 계실 때와 같이 섬겼고, 두 분이 돌아가시자 모두 기년복(朞年服)을 입었다고 한다. 이 일이 임금에게도 알려져 정문(旌門)에 향리 유림과 제자들이 그 효행을 후세에 귀감으로 삼고자 사시호(私諡號·학력은 높은데 지위가 낮아 나라에서 시호를 내리지 않을 때 일가나 고향 사람, 제자들이 올리던 시호)를 절효(節孝)라 하여 절조와 효성의 본보기로 삼았다.청도군 이서면 서원리 자계서원(紫溪書院)에 위와 같은 내용의 정려비가 있다. 김극일(金克一) 선생을 배향하는 재사이다. 선생의 자는 용협(用協)이고 호는 모암(慕庵)이다. 의흥 현감 김서의 아들로 야은 길재(吉再) 선생의 문인이다.향리에서 후학들의 훈도에 힘쓰다 75세에 돌아가셨다./글·사진=장은재 작가

2024-04-24

동쪽 해변에서 마주한 석양, 장엄하고 쓸쓸함에 ‘뭉클’

매양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지만, 시간의 속도는 그 무엇보다 빠르다. ‘푸른 용이 여의주를 물고 온다’는 갑진년 벽두에 술렁이는 마음으로 새해 희망을 설계하던 게 엊그제 같은데, 이미 올해의 1/3이 흘러버렸다.외투 깃을 올려 세우던 1~2월 추위가 지나고, 3월엔 개나리와 매화를 필두로 벚꽃과 목련 등 봄꽃들이 피었다 지고, 중국에서 몰려온 누런 황사에 따가운 눈을 부비며 넣어뒀던 마스크를 꺼내 낀 채 거리를 걸었던 4월도 이제 막바지다.때론 날이 궂고 미세먼지가 호흡기를 위협하는 날들도 있지만, 그래도 봄은 산책하기 좋은 계절. 굳이 독일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1844~1900)의 “세상 모든 위대한 생각은 걸을 때 떠오른다”는 문장을 가져다 쓰지 않더라도.멀지 않은 거리에 해변 여러 개가 있어 마음만 먹으면 언제라도 푸른 바다와 부서지는 하얀 포말을 만날 수 있는 포항은 어떤 면에선 축복받은 도시다.한적한 4월의 주말 오후. 양덕동에 자리한 시내버스 207번과 600번 종점에서 20~30여 분만 걸으면 닿을 수 있는 죽천해수욕장으로 봄 산책을 나선 건 ‘오랜만에 자연 곁에서 걸어볼까’라는 가벼운 마음에서였다. 감히 니체 흉내를 내서 ‘위대한 생각’을 하겠다는 건 아니었고.□ 한산하고 고적한 죽천해변이 주는 즐거움최근 몇 년 새 각종 드라마와 TV 연예오락 프로그램을 통해 포항은 여행자들 사이에서 ‘떠오르는 핫 플레이스’가 됐다.드라마 촬영지로 이름을 알린 구룡포와 월포해수욕장엔 젊은 관광객들이 적지 않게 찾아와 과메기와 대게를 맛본 후 일본인 가옥거리를 돌아보고, 파도타기 등 해양 스포츠를 즐긴다.한국에선 드물게 시내 한복판에 위치한 영일대해수욕장은 다양한 형태의 카페와 주점, SNS로 유명해진 맛집이 집중적으로 몰려 있어 사철 20~30대 청년들로 북적인다.죽천해수욕장은 앞서 말한 유명 관광지처럼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해변은 아니다. 그러나, 시끌벅적한 관광지가 아닌 한산하고 고적한 분위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충분히 매력을 느낄만한 공간임에 분명하다.인터넷에서 한국의 주요 여행지와 숙박업소, 소문난 맛집 등을 사진과 함께 간략하게 안내하는 ‘트립인포’는 죽천해수욕장을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다.“죽천해수욕장은 경북 포항시 북구 흥해읍 죽천리에 있다. 광활한 동해를 배경으로 차박을 즐기기 좋은 명소로 알려지면서 전국 각지에서 많은 캠퍼가 모여든다. 낚시를 즐기는 여행자들도 즐겨 찾고, 여름 휴가철이면 해수욕을 만끽하고자 찾아오는 가족 단위 여행객도 많다. 포항IC에서 가깝고, 주변에 포항 해상스카이워크와 환호공원이 있어 연계 여행에 나서기 수월하다.”직접 가서 확인한 결과 위의 소개 중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이야기였다. 시야가 확 트인 널찍한 모래밭과 시원스레 펼쳐진 바다 풍경은 동해에 접한 여느 마을처럼 분명 근사했다.하지만, 차박을 준비하거나, 물고기를 낚는 이들은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물론 사람이 드물었던 이유는 아직 해수욕장이 진가를 발휘하는 여름이 아닌 이유도 있었을 터. 포항 시내와 그리 멀지 않음에도 인적이 드문 촌락 같은 풍경.조그만 텃밭에서 기른 마늘을 손질하던 할머니 한 분이 처음 보는 낯선 사람임에도 망설임 없이 기자에게 말을 걸어왔다.“어디서 왔어요? 8월에 오면 여기가 해운대나 경포대 못지않게 좋아요. 그때가 되면 내가 저기서 성게국수랑 파전도 만들어 파니까, 한여름에 꼭 한 번 다시 와요.”낯선 거리를 걷는다는 건 이처럼 예상치 않은 소박한 환대와 만나는 기쁨을 주기도 한다. 이런 게 바로 ‘산책의 즐거움’ 아닐지. □ 산책길의 끝에서 떠올린 김광균의 시 한 편따스하고 환한 웃음을 주고받으며 할머니와 몇 마디 더 이야기를 나눈 후엔 무작정 해변 마을 골목을 걸어 다녔다. 별다른 목적 없이 푸른 파도를 곁에 두고 청량한 봄볕 아래서 1~2시간쯤 걷는다는 건 나이·성별과는 무관하게 꽤 즐거운 일.커피와 아이스크림, 맥주와 칵테일 등을 판매하는 올망졸망한 카페가 2~3군데 문을 열고 있었으나 손님이 많진 않았다.죽천해변의 가장 큰 매력은 ‘한적한 평화로움’이라 할 수 있을 듯했다. 그리고, 이윽고 해가 저물기 시작했다. 바다를 지척에 두고 보는 석양은 비단 서해만 아름답진 않다. 동쪽 바다의 지는 해도 장엄하고 쓸쓸하기는 마찬가지다.죽천해수욕장의 고졸한 풍경 속에서 지켜본 4월 막바지 저물녘은 자연스레 한 편의 시를 떠올리게 했으니, 김광균((1914~1993)의 쓴 20세기풍 노래 ‘와사등(瓦斯燈)’이다.차단한 등불이 하나 비인 하늘에 걸려 있다내 호올로 어딜 가라는 슬픈 신호냐긴 여름해 황망히 나래를 접고;늘어선 고층(高層) 창백한 묘석(墓石)같이 황혼에 젖어찬란한 야경 무성한 잡초인 양 헝클어진 채사념(思念) 벙어리 되어 입을 다물다피부의 바깥에 스미는 어둠낯설은 거리의 아우성 소리까닭도 없이 눈물겹고나공허한 군중의 행렬에 섞이어내 어디서 그리 무거운 비애를 지니고 왔기에길게 늘인 그림자 이다지 어두워내 어디로 어떻게 가라는 슬픈 신호기차단한 등불이 하나 비인 하늘에 걸리어 있다. □ 봄날 해변을 걸으며 깨달은 작은 진실북한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냈지만 끝내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남한에서 죽음을 맞은 시인은 ‘피부의 바깥에 스미는 어둠’ 혹은, ‘공허한 군중의 행렬’에서 덧없는 인간의 삶을 읽어냈다.물리적으로 무게가 없는 그림자가 무겁게 느껴지고, ‘어디를 거쳐 어디로 가라’는 신호기가 차단된 세상에서 외롭지 않은 사람은 없다.또한, 고독하지 않은 생(生)도 없을 게 분명하다.죽천해변에서 마주한 석양은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진실 중 작은 하나를 새삼 깨닫게 했다. 그건 바다의 가르침이었을까? 시인의 인생 해설이었을까?2005년 4월. 1개월 일정으로 인도 남부를 여행했다. 아라비아해(海)에 접한 고아(Goa)는 1960~1970년대 제도부터의 자유와 억압으로부터의 해방을 지향하는 히피(hippie)들의 성지로 이름이 높았다.1961년까진 포르투갈의 식민지였기에 소를 신성시하는 인도임에도 소고기 요리가 있는 지역. 인도이면서도 ‘인도다움’이 별반 느껴지지 않는 고아엔 수십 개의 해변이 있다.독일과 프랑스, 스웨덴과 네덜란드에서 온 젊은 여행자들은 짧게는 1~2주, 길게는 몇 개월씩 언주나, 팔롤렘, 콜람 등의 이름이 붙은 해변의 허름한 숙소에 머물며 진홍빛 석양과 어울려 논다. 낮에는 수영을 하고 밤에는 파티를 즐긴다.19년 전 바로 거기서 포항 죽천해변과 너무나 닮은 조용하고 한산한 베나울림해변을 만났다. 지는 해가 선사하는 심장 두근거림은 포항 죽천과 인도 베나울림이 다를 바 없었다. 바로 그 두근거림이 주제넘게 니체처럼 말하게 한다.“비록 덧없고 고독할지라도 삶은 포기해선 안 될 빛나는 어떤 것이다.”/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2024-04-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