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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침묵의 소리 안에서

무미건조한 삶의 불안에게서 도망치는... /언스플래쉬 삶이라는 거대한 미션 속에서 너무 도망치고 싶거나 의기소침한 마음이 들 때쯤 영화 ‘졸업’의 마지막 장면을 떠올리게 된다. 영화 ‘졸업’에선 상류층 가정에서 부모님 뜻대로 착실히 살아온 스무살 초반의 벤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대학 수석 졸업을 마치고 집으로 금의환향한 벤은 부모님이 마련한 성대한 파티에 참석한다. 그는 상류층 집안에서 부모님의 뜻에 따라 착실히 순종적으로 지낸 아들이면서, 명문대학을 수석으로 졸업한 명석한 두뇌의 엄친아이기도 하다. 겉으로 보기엔 누구나 부러워할 법한 그의 스펙이지만 실은 벤은 계속해서 물에 잠겨 있거나 넓은 바다 위를 홀로 외롭게 부유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어쩐지 떨어뜨릴 수 없다. 무언가 단단히 길을 잃어버린 것만 같아 극도의 불안을 느끼는 벤. 하지만 그런 착잡한 마음을 아무도 알아주지 못해 시간이 흐를수록 거듭 외로워질 뿐이었다. 그러한 불안의 상황속에서 갑작스레 벤 앞에 나타난 로빈슨 부인. 그녀는 의도적으로 벤과 부적절한 관계를 취하고 벤 또한 옳고 그름을 판단하지 못하는 상황 속에서 그녀의 손아귀에 이끌려 다니게 된다. 부적절한 관계 속에서 공허하고 혼란스러워하던 벤이었지만 자신의 아버지의 소개로 로빈슨 부인의 딸 일레인과 만나게 되고, 일레인과의 데이트 도중 그녀에게 사랑에 빠지고 만다. 점차 자신의 감정이 깊어져 가던 도중 일레인에게 벤자민 부인과의 있었던 일을 솔직하게 털어놓게 되지만 일레인은 자신의 어머니와 부적절한 관계를 맺은 벤을 용서하지 못하고 자신이 다니던 대학으로 멀리 떠나게 된다. 벤은 자신의 눈앞에서 사라진 일레인의 부재를 견디지 못하고 그녀의 대학까지 쫓아가 일레인을 다시금 붙잡아 보지만 일레인의 마음은 이미 혼란스러운 상태. 벤은 처음으로 자신의 삶에서 일레인이라는 주체적인 선택을 하고, 일레인의 마음을 얻기 위해 부던히도 노력한다. 하지만 일레인은 결국 벤을 떠나 은신하며 다른 남자와의 결혼을 선택하게 되고 이를 알아챈 벤은 소식 없이 사라진 일레인의 뒤를 쫓아 결혼식장까지 난입하게 되는데, 여기서 그 유명한 장면인 웨딩드레스를 입은 일레인과 손을 잡고 도망가는 장면이 등장한다. 결국 도망치는 데에 성공한 벤과 일레인은 버스를 잡아 타고선 서로를 향해 활짝 웃어보이는데 영화의 막바지에 다다를수록 둘은 애매한 표정을 짓는다. 그리고 착잡과 두려움, 혼란과 절망이 모두 담긴 표정이 클로즈업 되며 영화는 생뚱맞게 막을 내린다. 그 장면 속에 삽입된 폴 사이먼의 The Sound Of Silence의 곡 또한 “반갑네, 내 오랜 친구 어둠이여. 다시 한 번 말을 나누려 왔다네”, “현자의 말이란 오직 지하철 역사의 벽이나 노숙 시설의 벽 따위에 적혀 있도다. 그렇게 속삭였네, 침묵의 소리로”라는 가사가 등장하며 인생의 공허와 불확실성을 내포한다. 그리고 영화의 마지막 장면과 어우러지며 삶의 불안은 언제나 누구나 겪는 것이며, 삶의 불안에게선 절대 도망칠 수 없고 외면할 수 없단 메시지가 드러난다. 윤여진 2018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현재보다 미래가 기대되는 젊은 작가. 벤과 일레인, 그들은 여전히 미래로부터 불안하고 현재라는 삶의 불확실함 한가운데에 서 있다. 이 메시지를 전달한 영화 ‘졸업’은 1967년 개봉작이며, 개봉 당시 60년대 미국은 기성세대 간의 갈등이 심했던 시기이기도 하다. 때문에 벤은 자신의 부모님인 기성세대의 뜻에 반하여 자신의 커리어와 재력을 모두 버린 채 오직 일레인만을 선택한다는 행동이 더욱 강조되기도 했다. 또한 60년대 말은 베트남 전쟁으로 혼란스러웠던 시기로 꿈과 희망을 담은 영화의 주제를 전달하기 보단 혼란스럽던 시대 그대로를 고스란히 담은 영화가 흥행하던 시기이기도 하다. 이 때 열풍이 불었던 아메리카 뉴웨이브 시네마는 당시 미국 사회 현실을 냉철하고 적나라하게 드러내며 결국 해피엔딩만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라는 굵직한 주제의 영화가 주로 등장했으며, ‘졸업’도 그 중 하나의 대표작이라 볼 수 있다. 무미건조한 삶의 불안에게서 벤과 일레인처럼 마냥 도망칠 수만은 없을 터. 그렇다고 슈퍼히어로처럼 막대한 힘으로 이길 수만은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언젠가는 지며, 또는 언젠가는 두 눈을 부릅뜨며 유연하게 나아가는 수밖엔 없지 않을까. 가수 아이유의 아이와 나의 바다라는 곡의 마지막 가사처럼. ‘그럼에도 여전히 가끔은 삶에게 지는 날들도 있겠지만’, ‘또다시 헤매일지라도 돌아오는 길을 알고 있다면’ 말이다.

2024-11-04

아우라와 지속적인 체험

길버트 카플란(1941~2016)은 스물세 살 평범한 경영대학원생이었다. 1965년 그는 뉴욕 카네기홀에서 열린 아메리칸 심포니 오케스트라 연주회에 갔다가 구스타프 말러의 교향곡 2번 ‘부활’을 듣고 엄청난 충격과 감동에 휩싸인다. 그의 표현을 그대로 빌리자면 “번개가 나를 꿰뚫고 가는 듯한” 전율을 체험한 것이다. 그날 이후 그는 엉뚱한 꿈을 품는다. 단 한 번도 정규 음악 교육을 받아본 적이 없는 ‘음알못’이지만 언젠가는 꼭 말러 교향곡 2번을 지휘하는 지휘자가 되겠다고 마음먹은 것이다. 대학원 졸업 후 금융전문잡지를 창간해 큰 성공을 거둔 그는 백만장자가 됐는데, 젊은 날의 꿈을 잊지 않았다. 개인 교사를 고용해 하루에 몇 시간씩 화성학, 대위법, 지휘법 등을 배우기 시작한다. 철학자 발터 벤야민은 ‘아우라(Aura)’를 “예술작품의 여기와 지금으로서, 곧 예술작품이 있는 시간과 장소에서 그것이 뿜어내는 재현 불가능한 단 한 번의 영적 광휘”라고 정의한다. 사진술과 영상술, 레코딩 기술이 발명되면서 이 아우라는 위기를 맞는다. 사진으로 복제된 이미지와 음반은 언제 어디서든 내가 원하는 시간과 장소에서 예술작품을 무한대로 반복해서 감상할 수 있게 해주고, 그러면서 예술작품은 그 신비의 베일이 벗겨져 감상자는 이제 숭배가 아닌 비평을 하게 된다. 이는 대중문화의 시대를 여는 중요한 변화가 되었다. 하지만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실시간으로 현장에서 감상하는 예술작품의 감동, 아우라까지는 재현할 수 없다. 벤야민은 아우라의 붕괴를 긍정적인 변화로 여기면서도 인간에게서 ‘지속적인 체험의 기회’를 앗아간 것을 안타까워했다. ‘모나리자’를 본다는 것은 그냥 그림 한 장 보는 게 아니라 파리의 공기와 분위기, 루브르 박물관 외벽에 드리워진 햇살, 그림이 걸린 벽면의 명암과 조명, 그림 앞에 선 사람들의 경탄 어린 표정까지를 모두 포함하는 체험인 것이다. 무언가를 알기 위해, 보기 위해, 사랑하기 위해 우리는 그것이 있는 시간과 장소로 나아가야 하고, 그 나아감 가운데 다채롭고 우연한 아름다움들과 마주하게 된다. 스마트폰 검색을 통한 예술 감상에는 이러한 지속적 체험이 없다. 수년의 노력 끝에 길버트 카플란은 말러 교향곡 2번을 지휘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른다. 처음 말러를 듣고 전율한 지 18년만인 1981년, 카플란은 자비로 카네기홀을 빌리고 아메리칸 심포니 오케스트라를 섭외했다. 세상은 백만장자의 과시욕이나 엉터리 괴짜의 기행쯤으로 여겼지만 그의 손에 들린 금빛 지휘봉이 공중에 우아한 선을 그으며 1시간 20분짜리 대곡의 마지막 5악장을 마치는 순간 환호와 박수가 터져 나왔다. 이후 그는 말러 교향곡 2번만을 지휘하는 전문 지휘자가 되어 세계를 돌며 공연했다. 누군가는 카플란이 지휘하는 ‘부활’을 들으면서 과거의 그가 그랬던 것처럼 번개 맞은 듯한 감동을 느꼈을 것이다. 아우라를 체험한 사람은 아우라의 생산자가 된다. 내 시를 읽으면서 어떤 숭고한 광휘를 느낀 독자가 과연 있을까마는 내가 지금껏 문학가로 살 수 있던 것은 문학과 음악과 미술을 통해 감각한 아우라 덕분이다. 아우라가 있는 시간과 장소에 도달하기까지 체험한 세계의 다채로움 덕분이다. 이병철 문학평론가이자 시인. 낚시와 야구 등 활동적인 스포츠도 좋아하며,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소설 ‘그리스인 조르바’를 읽은 스물두 살 여름, 크레타에 무작정 가고 싶어 아르바이트로 여행 경비를 마련해 그리스 땅을 밟았다. 영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를 보고는 영화 속 북유럽 풍경에 매료돼 통장을 탈탈 털어 노르웨이로 가는 항공권을 끊기도 했다. 스페인 문학에 등장하는 새끼돼지 통구이 ‘코치니요 아사도(Cochinillo Asado)’를 꼭 한번 먹고 싶어 바르셀로나 외곽을 헤매거나 티브이에서 녹화 중계해준 베를린 필하모닉 공연의 감동을 직접 느끼고자 독일에 가는 동안 대출금은 늘어나고, 여행 후 삶이 고달파졌다. 하지만 전혀 후회하지 않는다. 이 가을, 예술작품이 있는 시간과 장소로 직접 나아가보라. 가는 길의 햇살과 단풍과 낙엽을, 설렘으로 부푸는 가슴의 떨림과 친구의 웃음소리와 호수에 비친 산그림자를 모두 몸과 마음에 담으면서. 이런 지속적 체험을 통해 우리는 보편적 타인과 구별되는 개성을 갖게 되며, 영원히 아름다운 예술작품처럼 찬란한 아우라를 발산하는 고유한 개인이 될 수 있다.

2024-11-04

‘이분법 정치’를 넘어서

변창구 대구가톨릭대 명예교수·정치학 ‘이분법 정치’가 나라를 망치고 있다. 사회갈등을 조정하고 통합해야 할 정치인들이 “우리는 천사, 저들은 악마”라는 편 가르기와 흑백논리로 갈등을 오히려 부추기고 있다. 여야가 상대를 ‘대화와 타협의 대상’이 아니라 ‘제거해야 할 적’으로 인식하는 한 ‘정치는 전쟁’이 될 수밖에 없다. 오죽하면 정치원로 유인태 전 의원이 “우리정치는 진영논리가 극심해서 아무리 훌륭한 사람도 4년 뒤에는 다 몹쓸 사람이 된다.”고 했겠는가. 그렇다면 정치인들은 왜 이분법 정치에 빠져있는가? 그것은 잘못된 정치의식과 권력욕 때문이다. 이분법은 권력을 획득·유지·강화하기 위하여 모든 현상을 극화한 ‘정치마케팅 전략’일 뿐, 객관적 사실(fact)과는 거리가 멀다. 이분법은 정치현상 이해의 편리함과 명확성을 제공하지만, 흑백 사이에 존재하는 수많은 회색을 외면하는 ‘아메바(amoeba)적 사고방식’이다. 정치철학자 아렌트(H. Arendt)가 “악(惡)의 동의어는 무사유(無思惟)이며, 그것은 곧 정신의 죽음”이라고 지적했듯이, 정치적 신념이 ‘다른 것’을 악과 연계하여 ‘틀린 것’이라고 주장하는 정치인들의 ‘무지와 오만’이 이분법 정치의 주범이다. 정치란 흑백의 양자택일이 아니라 다양한 회색의 스팩트럼(spectrum) 가운데 하나를 대화와 타협으로 결정해나가는 과정임에도 정치인들의 사유능력 부족과 잘못된 권력욕이 정치를 실종시킨 것이다. 이분법 정치에서는 민주주의가 정상적으로 작동할 수 없다. 민주주의는 ‘전부 또는 전무(all or nothing)’가 아니라 ‘좀 더 많거나 적은 것(more or less)’을 두고 타협하는 열린사회의 정치사상이다. 반면에 절대주의는 인간의 한계와 상대성을 부정하는 닫힌사회의 흑백론이다. 독재정치에서는 관점의 다양성이 허용되지 않으며, 오직 독재자의 판단만이 선이요 정의라고 강요될 뿐이다. 그럼에도 여야 정치인들이 모두 민주주의를 역설하면서도 이분법 정치를 고집하는 것은 자기모순이다. 민주주의 원칙인 ‘대화와 타협에 필요한 사고의 유연성’은 없고 상대에 대한 ‘편견과 선입견’이 강하게 작용하는 반면, 자신의 한계와 문제점에 대한 성찰에는 인색하다. ‘양비론(兩非論)’을 혐오하고, 중도층을 ‘회색분자’ 또는 ‘기회주의자’로 매도하는 이분법 정치는 사회갈등을 더욱 악화시킬 뿐만 아니라, 다원화·복잡화·세계화된 오늘날에는 시대착오다. 민주주의는 ‘갈등과 대결을 부추기는 흑백논리’가 아니라 ‘조정과 타협으로 균형점을 찾아가는 회색논리’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이분법 정치를 넘어서야 나라의 미래가 있다. ‘법’은 선악을 구분하는 ‘흑백논리’이지만, ‘정치’는 이해갈등을 조정·타협하는 ‘회색논리’이다. 때문에 법조인 출신 대통령과 여야의 당 대표들은 ‘법’과 ‘정치’를 혼동하여 선악의 이분법에 빠져서는 안 된다. 정치지도자들이 열린 마음으로 역지사지(易地思之)하고 타협할 수 있을 때 비로소 ‘경직된 이념의 정치’는 ‘유연한 실용의 정치’로 전환될 수 있다.

2024-11-04

‘특화단지 3관왕’ 성과낸 포항, 미래가 밝다

포항시의 경제인프라가 미래산업 중심으로 급속하게 바뀌고 있다. 그만큼 신산업 생태계가 조성될 수 있는 연구개발 자원이 풍부하다는 의미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 1일 포항시를 수소특화단지로 지정했다. 포항 블루밸리 국가산업단지 내 부지(28만240㎡ 규모) 일부를 특화단지로 지정해 수소연료전지 생산·수출 거점으로 육성하겠다는 구상이다. 포항시는 2028년까지 블루밸리 국가산단에 수소연료전지 클러스터를 구축한 후 국내외 수소연료전지 분야 기업을 유치해 글로벌 경쟁력 강화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포항시의 구상은, 10년 후인 2035년까지 앵커기업을 비롯한 수소 기업 70개사를 유치해서 연료전지 부품·소재의 국산화율을 100%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포항시는 지난 6월에는 바이오 특화단지, 그리고 지난해 7월에는 이차전지 특화단지로 지정됐었다. 관련산업 인프라와 시 공무원들의 지역발전에 대한 열정 없이는 불가능한 성과다. 바이오 특화단지를 지원하는 인프라는 포스텍, 포항테크노파크, 바이오융합소재센터가 있다. 이곳에서는 바이오 스타트업 육성과 함께 신약 개발, 세포 치료제 연구 등 핵심원천기술을 연구하고 있다. 이미 전국적으로 널리 알려진 이차전지 특화단지에는 포스코퓨처엠과 같은 주요 기업들이 입주해 양극재·음극재 생산을 주도하고 있다. 에너지융합기술연구소(ECTI)를 보유하고 있는 한동대가 수소학과와 수소특화전공, 배터리 학과를 개설해 인재를 양성할 준비를 하는 것도 포항시로서는 든든한 일이다. 정부가 특화단지를 지정해 집중적인 지원을 하는 것은 국가 성장동력을 확보하려는 조치다. 포항시 입장에선, 국가로부터 관련기업 유치 활동에 대한 보증수표를 받은 것과 다름없다. 정부는 특화단지에 수도권 기업이 입주하면 보조금과 함께, 각종 규제면제나 수의계약 등의 혜택을 준다. 이제 포항시가 가야 할 ‘신산업육성 방향’은 정해진 것 같다.‘제1의 철강도시’라는 명성처럼 수소와 이차전지, 바이오 분야에서도 선두를 달리는 도시가 되길 바란다.

2024-11-04

중소기업에 적합한 ESG경영 장려책 필요

환경, 사회, 지배구조를 의미하는 ESG가 대기업뿐 아니라 중소기업도 피할 수 없는 글로벌 트렌드로 부상했다. 정부도 2050년 탄소중립 목표 달성을 위해 기업들에게 ESG 경영을 적극 권장하고 있어 ESG는 이젠 대기업뿐 아니라 중소기업에게도 중요한 경영전략의 하나로 인식되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많은 중소기업이 경제적 여력 등을 이유로 아직도 ESG 경영을 못하는 곳이 많다. 대구상공회의소가 최근 지역 내 443개 업체를 대상으로 ESG 경영 실태를 조사한 결과에서도 이런 내용이 드러났다. 조사에 따르면 응답 기업의 73.3%가 ESG 경영을 도입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고, 반면에 ESG 경영을 도입한 기업은 10군데 중 2∼3곳에 불과했다. ESG는 글로벌 트렌드가 되면서 기업성장의 필수 조건이 됐다. 글로벌 표준으로 부상해 수출 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의 경우는 선택이 아닌 생존을 위한 필수다. 그럼에도 이번 조사에서 응답 중소기업의 절반이 넘는 업체가 인적, 물적자원 부족으로 ESG 경영을 도입하지 못한다고 대답했다. 또 ESG 경영을 도입할 계획에 대해서는 54%가 계획이 없다고 대답해 중소기업에겐 ESG가 아직은 적지 않은 부담임을 짐작할 수 있다. 실제로 기업관계자는 “고객사의 요청으로 ESG를 하고 있지만 전담 조직과 인력 부재, 복잡한 절차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ESG는 당장의 재무적 가치를 판단하는 것이 아니고 기업의 중장기적 가치에 영향을 주는 비재무적 지표란 점에서 영세기업은 화급을 다툴 일로 보지 않는다는 뜻이다. ESG 경영에 중소기업의 동참을 유도하기 위해선 정부와 지자체의 지원이 필요하다. 대구상의 관계자는 “많은 중소기업이 인력부족과 비용부담의 어려움을 호소하는 만큼 ESG경영을 실천하는 기업에 대해서는 세제 혜택, 정책금융 확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공감이 가는 부분이다. 기후위기와 탄소중립 정책 등으로 기업경영 패러다임도 달라지고 있다. 중소기업 ESG 역량 증대를 위해 좀 더 세밀한 정부 지원책이 나와야 한다.

2024-11-04

중국의 쥐꼬리 출산장려금

홍성식 (기획특집부장) 중국 인구는 인도에 이어 세계에서 2번째로 많다. 14억2000만 명에 육박하니까. 북적거리는 도시와 높은 인구밀집도가 문제가 될 것 같지만 그렇지 않은 모양. 한국과 마찬가지로 중국 또한 급전직하하는 출산율 탓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고 한다. 아이를 낳아 기르는 것이 세대를 이어가는 당연한 순리가 아닌 ‘자신을 포기하고, 경력을 단절시키며, 큰돈이 사용되는 어려운 일’로 인식되는 세태가 여러 국가로 확산되는 상황이다. 국가마다 이른바 ‘출산지원정책’을 경쟁적으로 내놓고 있지만, 그것조차 약발이 안 먹힌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 한국과 중국이 다를 바 없다. 인식의 변화 없이는 백약이 무효인 형국으로 가고 있는 듯하다. 얼마 전 중국의 한 지자체는 내년부터 35세 이하 여성이 처음으로 혼인 등록을 할 경우 부부에게 30만원을 준다는 지원책을 내놨다. 이후 첫째 아이를 낳는다면 40만원을 더 주고, 둘째 출산 때는 100만원을 추가로 지급한다는 내용이었다. 이 정책이 발표되자마자 중국 네티즌들의 조롱 댓글이 줄을 이었다. “겨우 그 돈을 가지고 아이를 낳으라고?”라는 힐난부터, “참으로 오랜 고민 끝에 나온 빼어난 정책이네” 등 비꼬는 견해까지 넘쳐났다. 그 가운데는 “한국의 어떤 기업은 1억원을 준다는데…”라는 의견도 있었다. 지난해 중국에서 태어난 아이는 900만명 안팎이다. 1949년 통계를 내기 시작한 이후로 가장 낮은 수치를 기록했다. 2022년 1.09명이었던 중국의 출산율은 현재 1명 이하로 떨어졌다는 추정이 나온다. 출산지원금 규모를 용머리 수준으로 올려도 쉽게 해결될 수 없는 문제라는 게 더 심각하다. /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4-11-04

‘문장강화’에서 이태준의 방언 인식

이상규 경북대 명예교수 전 국립국어원장 우리의 근대는 대한제국에서 일제 강점기로 이어지는 도상에 있었다. 한문 소통의 세상에서 한글 소통으로의 변화는 한국사에서 매우 중요하고 적절한 선택지 가운데 하나였다. 그로부터 80년 한글 글쓰기는 노벨문학상 수상과 함께 세계적으로 공인되었으며 한글세계화전략에 맞춰 전 세계로 날개를 달고 뻗어나갔다. 그 결과 한국의 K-문화는 전 세계 문화 트렌드를 이끄는 선두에 서게 되었다. ‘표준어’와 ‘방언’은 때로는 상하 관계, 때로는 우열 관계로 인식되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글쓰기의 교본 ‘문장강화’를 펴낸 이태준이 방언을 언급하였다. 이태준은 글쓰기를 “언어의 기록 또는 언어를 문자로 표현한 것”이라고 전제하면서, 표준어가 한반도에서 지배적인 언어의 힘을 가지는 것으로 보았다. 대신 “방언이란 한 지방에만 쓰는 특색 있는(말소리로나 말투로나) 말을 가리킨다”고 하면서 방언의 역기능을 문제로 삼았다. 한문 소통 시대에서 한글 소통시대로 진입하면서 표준어란 잘 다듬어진 언어이고 방언은 소통범위가 제약된 다듬어지지 않는 언어로 인식한 것이다. 그러니까 누구나 쉽게 이해, 수용할 수 있는 표준어가 당연 우월하다는 인식을 할 수 밖에 없었다. 특히 문학 작품은 널리 읽혀져야 한다. 그러니까 표준어가 사용되어야 하고 방언은 부차적인 의미밖에 못 갖는다는 판단을 하고 있었다. 또한 표준어는 방언과 달리 품위를 지닌다는 가치의 문제로 인식함으로써 한동안 방언은 잘못된 말로 오해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태준은 완강하게 “시인, 작가는 모름지기 ‘언문의 통일’을 위해 일조를 해야 한다”고 하면서 표준어 중심 글쓰기를 권장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30년~1940년대, 방언에 대한 속깊은 인식을 기대하기도 어려웠던 시절이었지만 많은 시인들과 소설가들은 향토적인 상황에 등장하는 화자들의 언어를 방언으로 구사하였다. 문학에서 방언이 필요한 때도 있다고 보았다. 본래 작품은 그 제재나 배경, 등장인물을 생동감 있게 그려내야 한다. 그를 위해 등장인물의 대화 같은 것에는 방언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김동인의 ‘감자’의 한 부분을 들었다. 그에 대한 해석을 다음과 같이 했다. “여기서 만일 복녀 부처의 대화를 표준어로 써보라. 칠성문이 나오고, 기자묘가 나오는 평양 배경의 인물들로 얼마나 현실감이 없어질 것인가? 작자 자신이 쓰는 말, 즉 지문은 절대로 표준어일 것이나 표현하는 방법으로 인용하는 것은 어느 지방의 사투리든 상관할 바가 아니다.”라고 하여 문학에서 방언의 사용을 전적으로 제한하지는 않아 그나마 다행이었다. “어느 지방에서나 방언이 존재하는 한 또 그 지방 인물이나 풍정을 기록하는 한 의음의 효과로서 문장은 방언을 묘사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하는 이태준의 선구적 발언에는 그러나 다시 생각해 보면 얼마간의 한계 같은 것도 포함되어 있다. 우선 여기서는 방언의 효용, 기능이 지방색을 살리는 쪽으로만 파악되어 있다. 이것은 방언의 지역적 측면만을 생각한 결과다. 그러나 이미 지적된 바와 같이 방언에는 사회적 시각에서 이야기되어야 할 것이 있다. 실제 이태준은 ‘문장강화’의 다른 자리에서 이런 단면에 대해서 언급했다. 그것이 홍명희의 ‘임꺽정’에서 서림과 뱃사공이 주고받는 말을 끌어들여 생활 속어라는 말로 계급적인 언어 사용을 인정하였다. 방언은 지리적인 차이에 의한 방언과 계급적 차이 곧 반상과 중인 하인들의 언어가 약간의 차이를 보여준다. 전자를 지리방언이라고 한다면 후자는 사회방언이라고 말한다. 아마도 이태준은 그 당시 이러한 두 가지 방언의 차이를 인식하고 지리적 방언을 ‘방언’, 사회적 방언을 ‘생활 속어’라고 하여 이어(俚語)의 개념으로 인식하고 있었던 것이다. 특히 이와 비슷한 시기에 우리 문단에서 활약한 시인들 곧 이상화, 김소월, 김영랑. 백석, 이용악 등의 작품 가운데 어떤 것은 방언과 분리시켜 그 작품의 우수성이나 가치를 더 논할 수 없을 만큼 뛰어난 방언 시를 발표하였다. 근대화의 과정에서 보면 방언이란 언어의 하위 개념이다. 한 민족의 언어가 형성된 경우 방언의 문제는 부수적으로 제기되기 마련이었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 이에 대한 인식이 제대로 형성된 역사는 얼마 되지 않는다. 특히 방언이 우리 한국어의 총량 가운데 일부로 언어 정보자료로서 가치를 주장하게 된 것은 2000년대 들어서였다. 본격적으로 방언문학을 논의하게 된 단계에 이르러서 그 가치에 대한 결실이 맺어졌다.

2024-11-04

실크로드(Silk Road), 동서양을 잇는 장대한 길

이상은 꿈꾸는 자의 몫이다. 인류 이래 인간의 꿈은 단 한 번도 고여 있지 않았다. 이상은 도전을 낳는다. 도전은 새로운 꿈으로 탄생해 너머의 세상에 대한 동경이 인류 문화와 역사를 창조해 왔다. 인류의 역사는 길에서 만들어졌다. 그 길은 역사 속에 묻혀버린 단절이 아니라 살아 숨 쉬는 꿈의 길이며, 역사와 문화, 겨레와 겨레, 이웃과 이웃을 연결하는 화합의 메신저다. 실크로드란, 인류문명의 교류가 진행된 통로다. 문명이란 자생적 혹은 모방적인 탄생과 동시에 이동하며 전파하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 실크로드는 인류 문명의 선구자적 자취가 담긴 길이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 세상을 넓혀 나에서 우리로 확장해 민족이라는 뿌리를 내리게 한 길이다. 동방의 불빛을 따라, 혹은 서방의 이상을 갈망하며 허기를 채웠다. 더 넓은 세상에 대한 동경은 그 무엇도 막을 수 없었다. 메마른 사막을 지나 황량한 벌판을 내달려 지옥의 산맥을 넘을 수 있는 용기를 주었다. 구도자가 묵묵히 법(法)을 구하기 위해 걸었던 길이며, 혹은 새로운 시장 개척을 위해, 때론 정복이라는 명목으로, 제국주의의 촉수 선교란 핑계로, 값싼 원료를 구하고자 식민지 개척이란 욕망으로, 개화란 미명으로 파괴와 폭력에 이용되기도 했다. 어찌 되었건 문명의 전파를 동반한 인류 역사와 문화의 연결 단초를 제공하는 쾌거로 이루어진 결과다. 실크로드란 말은 대략 140여 년 전부터 사용하기 시작했다. 독일의 지리학자 리히트호펜(Richthofen, 1833~1905)이 1869년에서 1872년까지 중국 각지를 답사하고, 1877년부터 ‘중국’(China)이란 책 5권을 저술하게 된다. 서북인도로 수출되는 주요 물품이 비단(silk)이라는 사실을 감안하여 이 교역로를 독일어로 ‘자이덴 슈트라센’(Seiden Strassen : Seiden 비단, Strassen 길을 영어로 Silk Road)이라고 명명한 것이 오늘에 이른다. 차츰 그 개념이 확대되면서 하나의 상징적인 명칭으로 변했다. 사실상 초원로나 해로(海路)는 물론, 오아시스로(사막)도 그 길을 따라 비단이 교류품의 주종으로 오고 간 것은 역사상 짧은 기간이었을 뿐, 여러 가지 교역품이나 문물이 오랫동안 교류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크로드란 이름이 존속되어 온 것은 상징성 때문이다. 문명의 탄생은 교통의 발달과 불가분 관계에 있다. 교통의 후진은 문명의 후진성을 초래한다. 고대 오리엔트문명, 황허문명, 인더스문명, 그리스·로마, 스키타이, 불교, 페르시아, 이슬람 등 동서고금을 망라한 전 문명이 모두 실크로드를 동맥으로 하여 싹트기 시작했으며, 이 길에서 꽃피우고 열매를 맺었다. 무엇보다 실크로드는 한민족의 위상을 드높인 길이기도 하다. 대한민국 최초의 세계인이라 불리는 계림(신라 경주) 출신의 혜초(慧超·704~787)도 빼놓을 수 없다. 신라 승려 혜초는 구법자(求法者)의 길을 걸었다. 죽음의 사막도, 험준한 산맥도 막지 못했다. 동양에서 혜초에 앞서 아시아 대륙의 중심부를 해로와 육로로 일주한 사람은 일찍이 없었다. 해로와 오아시스로를 거쳐 인도와 페르시아까지 다녀와 현지 견문록인 ‘왕오천축국전’을 남겼다. 이 명저는 마르코 폴로(Marco Polo)의 ‘동방견문록’보다 약 550년 앞서 저술된 세계적 여행기로서 인류 공동의 위대한 문화유산이다. 고구려의 후예인 당나라 장수 고선지高仙芝란 인물도 있다. 동양의 한니발로 불리는 그가 ‘세계의 지붕’ 파미르고원을 넘나들면서 11년간(740~751년) 5차례나 단행한 서정(西征)은 세계 전쟁사에 전례 없는 기적으로 기록되었다. 그의 원정에 의한 제지술의 세계적 전파와 중앙아시아 보물의 유입은 중세 문명교류사에 불후의 업적이다. 그렇다면 실크로드가 과연 이스탄불, 혹은 로마에서 시작되어 중국 시안(西安)이 종착지라는 통념은 정설일까. 한반도에서 발견된 여러 가지 서역이나 북방계의 유물들, 그리고 내외의 관련 문헌 기록들은 일찍부터 한반도가 외부 세계와 문물을 교류하고 인적 왕래가 있었음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여러 가지 유물과 기록에 의해 실크로드 3대 간선인 초원로와 오아시스로, 해로의 동단(東段)은 각각 중국에서 멎은 것이 아니라 한반도로까지 이어졌다는 것이 입증되었다. 고대에는 우리나라를 무지개가 뜨는 아름다운 나라, 풍족하고 이상적인 나라로 생각했다. 그들이 동경하는 이상세계 동방의 불빛을 따라 벌판과 사막을 지나 한반도 신라(경주)까지 찾아왔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에만 안주하지 않았다. 풍부한 물산과 앞선 문화의 바탕 위에 서방의 문화를 수용해 우리 민족 특유의 부드러움과 아름다움으로 승화시켜 새롭게 서방세계에 전했다. 이렇게 보면 K-pop, K-드라마, 영화, 게임 등 한류문화가 하루아침에 이뤄진 것이 아니다. 새로운 문물을 받아들이되, 우리 것으로 새롭게 창조해 세계로 전파하면서 지구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한류의 위대함은 오랜 시간 축적된 한민족 문화적 동력이다. /박필우 스토리텔링 작가

2024-11-04

“오빠, 대통령 자격 있는 거야?”

김진국 고문 윤석열 대통령 지지율이 10%대로 추락했다. 지난 1일 문화일보가 발표한 창간 기념 여론조사에서 윤 대통령 국정 수행에 대한 긍정 평가는 17%였다. 반면 부정 평가는 78%였다. 같은날 발표된 한국갤럽 조사에서도 윤 대통령의 직무수행 긍정 평가는 19%, 부정 평가는 72%였다.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이 두 여론조사는 윤 대통령이 국민의힘 공천에 개입한 의혹을 담은 녹음 파일이 공개되기 직전 실시됐다. 조사가 끝난 직후 “‘김영선이를 좀 해줘라’ 그랬는데, 말이 많네, 당에서…”라고 말하는 윤 대통령 육성이 처음 공개됐다. 김건희 여사는 “오빠, 이거 오빠 대통령 자격 있는 거야?”라며 김영선 전 의원 공천 요구를 빨리 들어주라고 재촉했다는 명태균 씨의 목소리 녹음도 공개됐다. 지지율 10%대는 심리적 탄핵상태라고 한다. 설마 하던 일이 벌어졌다. 놀랍지도 않다. 앞으로 녹음 내용에 실망한 여론이 어디까지 더 떨어질지 모르겠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 직전 보인 현상과 비슷하다. 당시 한국갤럽 조사를 보면 박 전 대통령은 2016년 9월까지 30%대 지지율을 지키다, 10월 들어 20%대로 떨어졌다. 그러다 10월 셋째 주 25%에서 넷째 주 17%로 떨어지더니, 11월 곧바로 5%로 추락하면서 탄핵당했다. 당시 박 전 대통령과 최순실 씨의 일탈에 대한 폭로가 이어지면서 계속 여론을 자극했다. 마지막 방아쇠를 당긴 건 대구·경북(TK) 여론이다. 폭로로 의혹이 부풀어 오르면서 최후의 보루인 TK마저 지지를 거둬들였다. ‘콘크리트 지지층’이 무너지자, 지지율이 10%대로 급전직하했다. 지난주 한국갤럽 조사를 보면 TK에서 윤 대통령에 대한 긍정 평가가 18%였다. 직전 조사의 26%에서 8%나 빠지면서 10%대로 곤두박질했다. 부정 평가는 69%였다. 보수 세력의 지지기반인 60대 이상에서도 부정 평가가 높았다. 60대는 긍정 평가가 24%, 부정 평가 66%, 70대 이상은 긍정 평가 41%, 부정 평가 47%였다. 국민의힘 지지자도 긍정 평가(44%)와 부정평가(44%)가 같다. 정당 지지율이 국민의힘과 민주당이 32%로 같은 점을 고려하면 지지층도 윤 대통령에게 실망한 것이다. 선거 때는 별별 사람이 다 달려든다. 후보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어진다. 더구나 윤 대통령은 정치 초보다. 화술 좋은 사람이 그럴듯하게 해설하면 빠져들 수 있다. ‘윤핵관’이 정상적인 방법으로 해결하지 못하는 일도 명태균 씨가 풀어냈다고 한다. 편법이건, 불법이건, 정치입문자의 눈에는 능력자로 보였을 법하다. 그런 사람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다. 선거 때는 작은 힘이라도 보탠다. 잘못이 있었다면 처음부터 사실대로 털어놓고 국민의 용서를 구했어야 했다. 그런데 왜 대통령 내외는 명 씨를 잘 모르는 사람 취급했을까.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는 더 심각한 문제가 있는 건가. 어떤 경우든 양파나 살라미처럼 야금야금 비리가 드러나는 것만큼 나쁜 방법은 없다. 거짓말을 하게 된다. 하나씩 터져 나올 때마다 변명과 거짓말로 일을 키운다. 윤 대통령을 무너뜨리려는 사람이라면 속으로 쾌재를 불렀을 대응이다. 이제라도 단칼에 잘라야 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이런 아내를…”처럼 다시는 그 말이 안 나올 선까지 뒤집어야 한다. 선거 때는 후보 주변 사람이 당연히 총동원된다. 배우자는 가장 훌륭한 참모다. 그러나 거기까지다. 아무리 큰 역할을 했어도, 당선된 사람은 후보 한 사람이다. 선거가 끝난 즉시 뒤로 물러났어야 했다. 아직 드러나지 않은 많은 일이 있었을 수 있다. 지금이라도 모두 던져 사죄하고, 스스로 위리안치하는 것이 본인도 살고, 대통령도 사는 길이다. 대통령 주변은 아직도 법률을 따진다. 불법이 아니라 사과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한다. 법률만 따지면 불법의 꼬투리를 잡히지 않기 위해 거짓말을 반복한다. 살라미의 덫에 걸린 이유다. 무서운 건 신뢰 상실이다. 재판이 아닌 정치로 풀 방법을 찾아야 한다. 지금이야말로 스스로 그 질문을 할 때다. “오빠, 대통령 자격 있는 거야?” 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4-11-03

이익을 따지지 않는 사랑을 지켜나갈 때

조현일 경산시장 우리는 멋있는 삶, 행복한 삶을 살길 원한다. 남에게 베풀고, 용서의 용기를 실천해 칭찬받고 기억되는 삶이 되길 기대하며 남이 먼저 나에게 다가와 손을 내밀길 바란다. 결단코 쉽지 않은 이러한 삶의 바탕에는 ‘이익을 따지지 않는 사랑’이 존재한다. 먼저 손을 내밀 수 있는 용기도 여기에서 출발한다. 세상은 사랑을 크게 3가지로 분류했다. 남녀 간의 사랑인 ‘에로스’와 부모가 자녀에게 혹은 자녀가 부모에게 느끼는 가족의 사랑, 형제애 등을 지칭하는 ‘스토로게’, 무조건으로 베푸는, 종교적인 색채가 짙은 ‘아가페’ 등으로 구분하며 아가페 사랑을 최고의 사랑으로 손꼽고 있다. 그러나 현실은 너무나 달리진 현상을 보여주고 있어 이러한 사랑들을 이야기하는 것이 시대착오적인 현상처럼 보이기도 한다. 부모가 자식을, 자식이 부모를 상하게 하거나 죽음에 이르게 하는 일들이 곳곳에서 일어나는 세상을 우린 살고 있다. 이성 간의 사랑도 물질이 앞서는 변질한 모습으로 변했고 헌신적인 아가페 사랑은 기대하기 어려워졌고 국제적으로는 이익을 위해 전쟁을 불사하고 남의 인권은 안중에도 없다. 그러함에도 우리는 머리에 떠오르고 가슴이 느끼는 사랑의 모습을 지켜가야 한다. 나와 너뿐만 아닌 우리가 살아가는 현재를 지켜내고 후손에게 선한 영향력을 전해 미풍양속(美風良俗)이라도 존재할 수 있도록 자치단체들이 사랑과 나눔에 앞장서야 한다. 경산시는 지난 2016년부터 ‘기부데이 및 사랑 나눔 한마당 축제’를 진행해 사랑을 실천하고 있다. 지난 26일에도 2024년도 꽃피다 기부데이 한마당 축제를 개최해 착한 경산인을 표창하고 경산시청 착한 일터 모금액 5000만 원 전달, 기부타임, 문화공연 등으로 나눔과 기부 문화확산을 위한 뜻깊은 시간을 가졌다. 2022년 기부데이에서는 6027만 원, 2023년 기부데이는 8819만 원의 모금하는 등 해마다 모금액이 늘어나는 지역 사랑에 앞장서고 있다. 기부금은 위기가정 생계비와 의료비 지원, 소규모 복지기관 지원사업, 월동난방비, 명절 위문금으로 기부되고 아동·청소년, 장애인, 노인, 여성·다문화 가정을 위해 사용되고 있다. 경산시는 사랑의 열매 희망 나눔 캠페인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2023년 11억3000만 원 목표에 13억1527만 원을 모금해 116도의 사랑의 온도를, 2024년 12억2000만 원 목표에 14억6450만 원을 모금해 사랑의 온도 120도를 기록해 2025년도 사랑 온도도 기대하게 하고 있다. 안전지원과 회복지원, 돌봄 지원으로 안전한 일상 회복을 위해 사랑의 열매가 추진한 ‘일상 회복 착!착!착!’나눔 캠페인에서도 경북 1위를 기록하는 열정을 보였다. 경산시의 또 다른 사랑의 실천은 착한 나눔에서 찾을 수 있다. 시의 착한 나눔은 2009년 착한 가게 1호가 탄생한 이후 지역 경기의 부침에도 나눔을 실천하는 손길이 끊이지 않아 현재는 착한 가게 325곳, 착한 일터 32곳이 사랑의 나눔을 실천하고 있다. 특히 1억 이상 고액기부의 아너소사이어티도 13명을 배출하는 등 착한 나눔 도시로 점점 진행되고 있다. 착한 가게는 중소규모의 자영업에 종사하며 매출액의 일정부분을 정기적으로 기부에 동참하고 착한 일터는 직장인의 나눔 프로그램이다. 경산시가 착한 나눔 도시로 뿌듯하게 생각하는 것은 고사리손에서 나온 동전을 모은 저금통으로 우리의 걱정과 달리 이웃의 아픔을 새로운 새싹들이 생각하며 실천하는 것을 보면서 희망을 품는다. 또 정기적인 기부활동뿐만 아니라 시시때때로 도움의 손길을 펴는 천사들이 많다. 이처럼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이웃을 먼저 생각하는 시민과 기업, 단체들이 십시일반으로 모아준 소중한 사랑이 주변의 소외된 이웃들이 힘찬 발걸음을 내디딜 수 있는 희망이 되도록 뒷받침하고 행정적으로 도울 방법을 찾고자 노력하고 있다. 한 번쯤이라도 이익을 따지지 않는 사랑을 실천할 수 있다면 우리의 내일은 행복할 것이다.

2024-11-03

닳아 가는 것들의 에필로그

이희정시인 가을이 닳고 있다, 바스락 바스락 몸살을 앓으며 시간이 닳고 있다 또 한 번 나이테 더하는 내 목숨도 닳고 있다 주변의 모든 것들이 나를 위해 닳아간다 신발이며 옷이며 책상이며 자동차까지 모두가 닳아 가면서 말이 없다 생색내지 않는다 자신만을 위해 닳아온 시끄러운 나의 소리 깎을 새 없이 닳아 있던 엄마의 손톱처럼 이 가을, 누군가를 위해 말없이 닳아지기를 ― 김귀현, ‘닳아 간다는 것’ 전문 (‘너라는 화두’, 좋은생각) 기꺼이 닳아 가며 누군가를 ‘위해’ 살아보겠다는 마음을 무조건적 사랑(agape)이라고 한다면 이 시가 그렇다. 시인은 “주변의 모든 것들이 나를 위해 닳아간다”고 했다. “가을이”“몸살을 앓으며”“닳고 있”는 “바스락”거리는 시간은 아낌없이 헌신적이다. 우리는 사소한 것에도 길들어 간다. 자주 사용하는 물건들, “신발이며 옷이며 책상이며 자동차까지” 일상의 모든 것들이 사막의 여우가 어린 왕자에게 한 말처럼 사랑도 길들어져 익숙해지는 것인지 모르겠다. “깎을 새 없이 닳아 있던 엄마의 손톱”처럼 말이다. 화자는 닳아 가는 가을 속에 슬그머니 “엄마의 손톱”을 부려놓고 “자신만을 위해 닳아온 시끄러운 나의 소리”를 해찰하고 있다. 시나몬 향 그윽한 가을이다. 렌즈에 담는다면 무엇을 담을 것인가. 아니 어떻게 담을 것인가. 첫 행엔 가을의 바스러지는 낙엽의 외양을 비추지만, 이후 이런 풍경들은 나이테를 더하며 닳고 있는 장엄한 목숨으로 점차 바뀌어 간다. 그 모든 슬프고 번잡한 일상으로부터 갑자기 뚝 떨어진 듯 초연한 느낌을 주기도 하지만, 결국 이렇게 내밀하게 들여다본 가을 풍경은 곡진하게 아름답다고 일러주고 싶어 하는 어머니의 마음을 담은 것처럼 보인다. 시간 속에 담긴 풍경이란 어떤가. 자신만을 위해 닳아온 시끄러운 나의 소리는 혼잡하고 시끄러운 현대의 우리들 삶 전체를 상징하는 부분처럼 느껴진다. 그러니까 삶의 모든 시절에는 그 시절만의 치열한 문제가 있다. 세월이 흐른다고 문제가 저절로 해결되지는 않겠지만 시간이 흐르면 문제가 달라 보이기도 한다. 오직 ‘나를 위해’라는 고유성은 결국 세월 속에서 ‘누군가’라는 익명성 속으로 녹아 들어가고 마는 것. 그것이 시간이 가진 위무일까. 그렇게 줌인으로 시작된 시인의 가을은 서서히 줌아웃 되면서 화자가 바라보는 주관적 시점에서의 묘사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말하자면 화자는 바스러지는 낙엽의 시간 바깥에서 자신과 어머니의 헌신적 삶을 그대로 겹치면서 이 쓸쓸한 이야기는 온기 있는 이미지가 된다. 김귀현 시인이 걸어온 삶의 깊이만큼 진폭의 울림이 크다. 시인의 사유는 현역에서부터 지금까지 소외된 사람들을 보살펴 온 개인적 이력과도 무관하지 않겠지만 그보다 사회적인 인간으로서의 이타적인 세포가 생래적으로 내장되어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간 시인이 걸어온 시간이 욕망과 체념이 뒤섞인 풍경이었다면 닳아 가는 것들은 궁극의 화자가 닿으려고 한 시간 그 자체이다. 유채색 사유들이 무채색으로 등뼈 깊이 새겨진 나이테는 빛과 어둠이 그려내는 삶의 진경이 아닐까. 그 길을 향해 여기까지 온 것이다. 사람의 생의 끝이 처음처럼 아름다울 수 없다는 사실을 안다. 시의 전체적 조망은 단풍 든 나무를 현상으로 인식하고 스산한 늦가을의 허전한 정취에 화자의 모습이 겹쳐 있음을 알 수 있다. 자칫 단풍이 발색으로 보이지만 기실은 탈색이다. 색이 빠지면서 비로소 안 보이던 제 색이 나오는 것이다. 생색내지 않고 닳아 가는 것들의 탈색이 아름다운 마침표를 찍고 있는 풍광, 이 또한 자연의 반복된 여정일테니까. “이 가을, 누군가를 위해 말없이 닳아지기를”

2024-11-03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기보다는

유영희 작가 10월 7일 시작한 국정 감사가 11월 1일 끝났다. 정기국회의 꽃이라 불리는 국정 감사는 보통 9월부터 12월 사이에 열리는 정기국회 중간에 이루어진다. 국회의 17개 상임위원회는 해당 담당 기관의 예산이나 정책 등을 감시하고 평가한 후 시정 조치를 요구한다. 국정 감사는 1948년에 시작되었는데 유신독재가 시작된 1972년에 중단되었다가 1987년 9차 개헌 후 다시 시작되어 오늘에 이른다. 입법기관인 국회가 행정기관을 점검하는 일은 민주주의 실현에 꼭 필요한 일이다. 감사 대상이 되는 사건을 선택하는 것 못지않게 선택한 사건을 어떻게 감사할 것인가 하는 방법의 문제도 중요하다. 감사를 잘하기 위해서는 질문을 잘해야 한다. 주관적인 견해를 묻는 것처럼 질문하거나 열린 질문 방식은 의미 있는 결과를 도출하기 어렵다. 정동영 의원이 조혜진 KBS노조수석본부장을 증인으로 불러서 폐지된 여러 프로그램을 거론하며 ‘KBS의 제작 자율성 파괴 상황을 어떻게 보십니까?’라고 질문했는데 여기에는 두 가지 아쉬움이 있다. 하나는 KBS 제작 자율성이 파괴되고 있다고 자기가 미리 결론을 냈다는 점이다. 박민 사장이 제작 자율성이 파괴되지 않았다고 답변해버리면 더 이상 사실을 확인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박민 사장은 자율성 침해 아니라고 답했다. ‘어떻게 보십니까?’라고 질문하면 답변도 주관적인 견해처럼 보일 수 있다. 실제로 박민 사장이 프로그램 폐지를 지시한 적이 없다고 답변하자 조혜진 피디는 지시하지 않았어도 책임은 있다고 답한다. 이러면 설득력이 떨어진다. 그 대신 구체적으로 하나를 선택하여 질문하는 것이 좋다. 시청자가 가장 좋아한 프로그램으로 꼽혔던 ‘더 라이브’가 폐지된 이유를 단계적으로 질문하면 더 효과적이었을 것이다. 실제로 박민 사장은 정동영 의원이 거론한 여러 가지 프로그램에 대해 자기가 답변하기 좋은 것만 골라서 답하고 더 라이브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그에 비해 최민희 과방위 위원장은 시작부터 단답형으로 하겠다고 선언하고 ‘그런 사실이 있습니까?’, ‘왜 안 했습니까?’라는 단답을 유도하는 질문만으로 증인의 위증 사실을 밝혔다. 류희림 방통위 위원장이 구글 부사장 마컴 에릭슨을 만나 유튜브의 불법 유해 콘텐츠를 신속하게 삭제하고 차단하겠다는 협조를 약속받았다고 발표했다가 MBC에서 그런 사실 없다고 보도한 것에 대해 최민희 위원장은 그 보도가 거짓이라면 ‘항의를 했느냐?’, ‘왜 한 번만 했느냐?’를 묻고 담당자가 답변을 못하자 그 이유를 증명하는 증거를 보여주는 식이다. 그 증거란, 마컴 에릭슨이 그런 확약을 한 적이 없다고 보내온 메일이다. 이렇게 하면 방송을 보는 국민은 방통위의 위증도 알게 되고 확약 자체도 거짓이었다는 것도 알게 된다. 국정 감사 영상 몇 개만 봐도 거짓말하는 증인이 너무 많았다. 이런 위증을 밝혀내기 위해서는 미리 결론을 내고 질문하기보다는 팩트 체크로 국민의 눈앞에 진실을 보여주어야 한다. 좋은 질문으로 국정 감사가 제 기능을 해주기 바란다.

2024-11-03

세상을 변화시키는 지혜 : 도도새의 법칙

신일철 포스코인재창조원 교수·컨설턴트 아프리카 동쪽 인도양에 모리셔스라는 아름다운 섬이 있다. 17세기 포르투갈 선원들이 이 섬에 처음 발을 디뎠을 때 도망도 못 가고 멍청히 쳐다만 보고 있는 새가 있었다. 도도새는 칠면조보다 크고 몸무게는 23㎏ 정도이며 부리는 23㎝ 정도이며 작고 쓸모 없는 날개를 가졌다. 그래서 선원들은 ‘바보, 멍청이’라는 뜻으로 이름을 ‘도도’라고 붙였다. 이 새의 날개는 기능이 퇴화되어 인간에게 쉽게 사냥을 당해 결국 멸종하고 말았다. 오랫동안 천적이 살지 않는 서식지의 환경으로 새는 생존 수단인 날개까지 포기해버린 것이다. 모리셔스 섬에 인간이 발을 들여 놓은 지 100년 만에 한때 많은 개체를 자랑하던 도도새가 희귀종이 되어버렸으며, 1681년에 마지막 새가 죽임을 당했다. 도도새의 법칙은 주어진 환경에서 변화나 도전 없이 편안하게 살려는 사람이나 조직은 결국 도태되고, 외부의 자극이 없으면 발전도 생존도 없다는 교훈을 주고 있다. 개인의 성장 뿐만 아니라 조직의 발전에도 적용될 수 있는 중요한 교훈이다. 도도새의 멸종은 변화하는 환경에 민감하게 적응하는 것이 조직과 기업에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고 있다.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기업들의 사례를 살펴보자. 노키아는 1990년대 최대의 휴대폰 제조사였지만 애플의 아이폰과 삼성의 갤럭시폰에 밀려 시장에서 퇴출되었다. 결국 스마트 폰의 트렌드를 읽지 못한 전략적 실패이다. 또한 전세계 카메라 필름 시장을 석권한 코닥은 디지털 카메라 기술을 개발하였지만 기존 필름 사업에 지속적으로 의지하는 바람에 디지털 사업 전환에 실패하고 파산신청에 이르게 되었다. 미국 제조업의 대명사 GE 또한 그룹의 뿌리이자 생존 수단인 제조업을 등한시 하면서 몰락의 길을 걷고 있다. 제조업과 제조 현장은 하나의 생명체이다. 매일 조금씩 변화하고 있고 그 변화에 도전과 응전이 계속되는 것이 살아있는 모습이다. 이것을 “바람직한 제조 현장의 지속적인 개선”이라고 부른다. 변화하는 사람과 설비를 대상으로 지속적 인재육성과 예방적 설비 관리가 진행되어야 한다. 도도새의 교훈으로부터 세 가지 인식변화를 강조하고자 한다. 첫째, 환경변화를 올바르고 민감하게 인지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시장의 변화와 소비자 트렌드 등을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고 적기에 대응해야 한다. 둘째, 변화에 대한 지속적인 응전과 혁신이 필요하다. 과거의 성공에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아이디어와 기술을 도입하여 경쟁력을 유지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위기 상황에서도 빠르게 대응하는 유연한 조직 구조와 리더십이 중요하다. 조직은 단기적 성과에만 집중하지 않고 지속성장 가능성을 고려한 경영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특히 기업의 일하는 방식은 기업문화에 강하게 연결되어 있어 그 가치와 철학은 유지하되 시장의 변화와 고객의 트렌드에 맞추어 나가야한다. 천적없이 풍요로운 먹거리와 외적 변화가 거의 없는 평안함 속에 멸종된 도도새는 도전·시련이 없으면 발전도 없다는 교훈과 더불어 우리의 안일한 모습을 일깨워주고 있다. 꾸준한 변화와 개선으로 지속 가능한 기업문화를 계승하고 발전시켜나가는 것이 불확실한 미래의 유일한 생존해답이다.

2024-11-03

위기맞은 여권… 尹이 선제적으로 풀어라

윤석열 정권이 임기 반환점(11월 10일)을 앞두고 위기에 처했다. 한국갤럽이 지난 1일 발표한 여론조사에서 윤 대통령 직무수행 지지율이 19%로 추락했다. 취임 이후 10%대를 기록한 것은 처음이다. 특히 보수정권 최대지지기반인 대구경북(TK) 지지율은 전국 평균보다 낮은 18%를 기록했다. 직전 주(26%)와 비교하면, 한 주 사이에 8%포인트나 하락(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 홈페이지 참조)했다. ‘한동훈의 수모’라는 말이 나온 ‘10·21 용산면담’이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윤 대통령이 TK에서조차 10%대 지지율을 기록한 것은 보통 심각한 게 아니다. 한국갤럽은 “(윤 대통령과 명태균씨) 음성 녹음파일 공개 반향은 차후 드러날 것”이라고 했다. 지지율이 더 추락할 수도 있다는 예측이다. 여권내에서도 “추세로 봤을 땐 한자릿수 지지율도 각오해야 한다”는 말이 나온다. 야권은 지난주말 물 만난 고기처럼 총공세를 폈다. 민주당은 2일 서울역 앞에서 대규모 장외집회를 열었다. 명목상 ‘김건희 여사 특검법’을 촉구하는 집회였지만, 지도부 입에서 윤 대통령 탄핵 발언이 쏟아졌다. 오는 15일 이재명 대표 1심 선고기일이 다가올수록 민주당 공세수위는 점점 올라갈 것이다. 조국 혁신당 대표도 이날 대구에서 ‘탄핵다방 1호점’ 행사를 열고 “윤 정권은 조기종식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 대표는 대구를 시작으로 목포, 서울, 전주, 광주, 경남 등에서 릴레이 탄핵행사를 개최한다. 여권의 고민은 야당 공세에 적극 대응하기가 난처하다는 점이다. 윤 대통령과 명씨의 추가 녹음파일이 언제 다시 공개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이제는 상황이 더 악화하기 전에 윤 대통령이 직접 나서야 한다. 선제적으로 김 여사 문제를 푸는 데서 지지율 회복의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 이와함께 대통령실과 내각의 전면적인 인사와 국정기조 쇄신도 필요하다. 지금은 나라가 안팎으로 어려운 상황이다. 하루빨리 윤 대통령이 리더십을 되찾아 임기후반부 국정동력을 리드해 나가길 바란다.

2024-11-03

김장 담그기

우정구 논설위원 김장은 한국인의 오래된 전통문화이자 대표 음식이다. 2013년 유네스코가 한국의 김장문화를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했는데, 이는 김치보다는 지역사회가 공동으로 김장을 담고 이웃간에 정을 나누는 공동체 정신을 더 높게 평가한 결과라 하겠다. 신라시대부터 채소를 발효시켜 먹었다는 역사기록으로 보아 김치의 역사는 상당히 오래됐다. 그러나 고추가 도입된 조선시대에 들어와 매운 김치가 만들어지면서 김치는 민중의 김치로 대중화 길을 걸어왔다. 특히 겨울철을 앞두고 이웃 공동체가 모여 품앗이 하듯 김치를 담그는 행사는 음식을 떠나 한국인의 생활에 깊게 뿌리를 내린 문화가 됐다. 1970년대 초반만 해도 이웃끼리 모여 김치를 담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었다. 김장은 평균 기온이 4도 이하가 유지될 때 하는 것이 가장 좋다. 예로부터 입동(11월 2일)부터 소서(11월 22일) 사이를 적기로 보았다. 김장의 재료인 채소가 얼기 전에 담가야 하고 날씨가 너무 따뜻하면 쉽게 시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김장김치는 소금에 절인 배추를 고춧가루, 파 등의 양념에 버무려 옹기에 담아 땅속 깊이 묻어두는 발효음식이다. 배추가 생산되지 않는 겨울동안 먹기 위해 담아두는 것이지만 발효식품이기 때문에 소화가 잘되고 건강에도 좋다, 우리 조상들은 겨울철에 부족하기 쉬운 비타민을 김장김치로 보충했다. 올해는 늦더위가 이어지면서 배추값이 폭등하자 김장 담그는 가정이 확 줄 것 같다는 소식이다. 가뜩이나 식문화 변화로 김장을 담는 가정이 줄고 있는 마당에 배추값 때문에 김장을 포기하는 가정이 는다니 한국인 고유의 김장문화가 퇴색하지나 않을까 걱정이다. /우정구(논설위원)

2024-11-03

결혼·출산 늘어난 대구, 꿈과 희망의 도시로

지난 7월 통계청의 자료에 의하면 대구는 혼인과 출생아 수가 전국에서 가장 많았다. 5월말 기준 혼인 건수는 전국 평균 증가율(8.7%)의 두배 수준인 19.6%를 기록했고, 출생아 수는 전국이 감소세(-2.9%)임에도 대구는 2%가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이에 대해 대구시는 결혼 적령기 연령(30∼34세) 인구가 2022년부터 꾸준히 증가한 것이 혼인율 등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한 바 있다. 최근 대구정책연구원이 대구 출생아 수 및 혼인 건수 증가 요인을 분석한 자료에도 대구시는 혼인 건수와 출생아 수는 여전히 증가세다. 또 결혼 적령기 청년도 늘어나고 있다. 결혼 적령기 청년은 2020년 13만4656명에서 지난해는 14만6165명으로 2.7%가 증가했다. 수도권으로 발길을 옮기는 청년이 대구로 유입된다는 통계는 그 자체로 매우 유의미한 결과다. 수도권을 제외한 전국이 공통으로 인구감소로 인한 지방소멸을 걱정한다. 이런 마당에 대구는 청년 유입이 늘고 결혼·출생아 수가 늘어난다는 사실에 지역민이면 반가워하지 않을 사람이 없다. 그 이유에 대해 연구원은 3가지 요인을 손꼽았다. 일자리요인과 주거요인, 정책요인이다. 연구원 관계자는 “양질의 일자리를 찾아 대구에 유입된 청년이 직장 소득을 고려해 주택을 구하고 이 과정에서 대구의 출산·보육정책 등이 맞아 떨어져 출생과 혼인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했다. 홍준표 시장 취임 후 대구시는 대구산업 구조개편에 집중 투자하고 있다. 미래 5대 신산업으로 ABB, 로봇, 반도체, UAM, 헬스케어 등을 육성하고 2년간 8조원이 넘는 기업투자도 이끌었다. 청년이 선호하는 신산업 분야의 일자리 창출은 청년 유입에 직접적 영향을 미친다. 특히 수도권에 비해 저렴한 주거비용은 청년이 대구에 머물 수 있는 중요한 이유가 된다. 대구는 육아 지원정책과 더불어 전국적으로 우수한 교육 환경을 가진 곳이다. 일자리와 좋은 복지가 있는 도시라면 청년이 찾아오지 않을 이유가 없다. 청년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도시를 위해 대구시의 더 많은 분발이 필요하다.

2024-11-03

시간은 어디서 오는가?!

김규종 경북대 명예교수 2024년 달력이 얇아지고 있다. 10월 말이면 나이 든 사람들을 감상에 젖게 하는 유행가 ‘잊혀진 계절’(1982)이 거리를 소란스럽게 한다. 계절이 오직 10월에만 잊히는 것도 아닐 것인데, 어째서 유독 10월이 거명되는지 모를 일이다. 그런 10월에도 적잖은 비가 자주 내렸다. 그래서 ‘가을비 우산 속’(1978)이란 노래도 곳곳에서 불린 모양이다. 그런데 우리가 시간을 인식하는 방식은 두 가지다. 손목시계나 휴대전화에 내장된 시계에서 하루의 시간을 보는 것이 하나이고, 달력으로 1개월 단위의 시간을 포착하는 것이 그 둘이다. 미시적인 시간을 살면서 거시적인 시간을 의식하고 살아가는 유일한 존재가 성숙한 인간이다. 어린아이들은 개미나 매미처럼 지금과 여기에만 초점을 맞추며 시간을 보낸다. 그들이 철이 들 무렵을 사춘기라 하는데, 그것은 그들이 시간의 흐름을 비로소 인식하는 것을 의미한다. 과학기술이 발전하는 광속(光速)의 시간대에서 우리는 고도로 진척된 물리학 개념을 따라잡지 못하고 끝없이 표류한다. 이탈리아 양자물리학자 카를로 로벨리(1957∼)는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2019)에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고전적인 시간 개념을 전복(顚覆)한다. 과거에서 현재를 거쳐 미래로 나아간다는 고정된 시간 개념을 분쇄해버리기 때문이다. ‘군도’의 작가 프리드리히 실러(1759∼1805)는 “현재는 쏜살같이 달아나고, 미래는 주춤주춤 다가오고, 과거는 영원히 정지해있다”라고 했다. 이 문장에 따르면, 시간은 미래에서 출발하여 현재를 거쳐 영원히 정지된 과거로 흘러간다. 미래는 현재로 슬금슬금 다가오고, 현재는 쏜살같이 과거로 달아나며, 과거는 죽음보다 견고하게 미동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시간의 화살 시간의 순환’(2012)에서 과학사가(科學史家) 스티븐 제이굴드(1941∼2002)는 직선적인 시간과 순환적인 시간을 지질학으로 풀어낸다. 지층은 오래된 것일수록 아래에 자리하고, 새로운 것일수록 위에 자리한다. 지층만 생각해본다면, 시간은 분명히 과거에서 출발하여 현재를 거쳐 미래로 나아가는 직선적인 흐름을 가진다고 단언할 수 있다. 하지만 직선적인 시간에는 문제가 있다. 이를테면 색바랜 사진에 들어있는 어린 시절 당신의 모습을 보라. 중고교 졸업사진에 뚜렷하게 각인(刻印)돼 있는 당신은 지금 어디 있는가?! 그때의 당신과 지금의 당신은 같은 사람인가?! 사진 속의 당신과 사진을 보고 있는 당신이 진정 같은 사람이라 할 수 있겠는가?! 육신은 우리의 통제 영역을 벗어난 존재다. 인간을 구성하는 물질(오장육부, 피부, 뼈, 혈액, 세포 등등)이 순간순간 변한다는 사실에 주목하시라. 어제의 나와 1년 전의 나, 그리고 10년 전 나의 물질적 구성은 전혀 다르다. 우리가 정신 혹은 마음이라 부르는 것 또한 고정불변하지 않은 것이다. 어제의 마음과 오늘의 마음, 한 시간 전의 마음과 지금의 마음이 같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인간의 영혼과 육신이 항상(恒常)하지 않다는 사실과 만난다. 시간처럼 인간도 불변한 존재가 아니다. 그러니 사라진 과거와 오지 않은 미래와 작별하고 지금과 여기를 응시하시라!

2024-11-03

불조심 강조의 달, 우리 삶의 안전 ‘방화벽’

심학수 포항북부소방서장 선선한 바람이 불고 나들이하기 좋은 청명한 가을이 성큼 다가왔다. 11월은 불조심 강조의 달이다. 특히 11월부터 2월까지는 전체 화재 발생의 약 40%가 집중되는 기간으로, 화재 예방의 중요성이 절실히 요구되는 시기다. 11월은 난방 기기 사용이 늘어나고 공기가 건조 해지면서 화재 발생 위험이 커진다. 이에 우리 삶의 안전 방화벽을 함께 만들어 갈 수 있도록 몇 가지 화재 예방 수칙에 대해 소개하고자 한다. 첫 번째, 난방 기기 취급 및 사용에 주의하자. 일교차가 크고 쌀쌀해진 날씨로 인해 난방 기기나 전열기구 사용이 늘고 있으며 특히 주거시설에서의 부주의가 주 화재 원인으로 나타나고 있다. 전기 난방용품은 반드시 KC인증 제품을 사용하고 주변 가연물 적치 금지, 사용하지 않을 시 전원플러그 분리, 오래된 전선 및 멀티탭 교체 등을 통해 안전하게 사용하자. 두 번째, 공동주택 화재 예방 안전 수칙을 숙지하자. 공동주택 화재는 발생 시 다수의 인명 피해가 우려되므로 각별한 주의가 요구된다. 주방 화재 등 공동주택에서 발생할 수 있는 화재 예방과 더불어 피난, 대피에 대한 사전 대응 태세도 무척 중요하다. 세대별로 주택용소방시설인 소화기와 단독경보형 감지기를 설치하고 정기적으로 점검해야 하며 아파트 복도나 계단에는 물건을 쌓아두지 않고 철저히 대비할 필요가 있다. 세 번째, 전기자동차 등 충전시설 화재 예방 안전 수칙을 준수하자. 전기자동차의 보급이 늘면서 관련 화재도 증가하고 있어 전기차 화재 예방 수칙을 정확히 숙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충전 중 차량에 이상이 있는 경우 즉시 충전을 중단하고 점검받아야 하며, 충전 장소는 환기가 잘되는 곳에서 지정된 충전기를 사용하는 것이 좋다. 주행 중 차량에서 연기나 이상한 냄새가 발생하는 경우 즉시 차량을 안전한 곳에 정차시키고 119에 신고하자. 또한, 전기차 전용 소화기를 꼭 비치하여 긴급 상황에 대비하자. 화재는 한순간의 부주의로도 큰 피해를 초래할 수 있다. 작은 부주의가 큰 피해로 이어질 수 있음을 기억하고 각종 화재 예방에 주의를 기울여 우리 삶의 터전에 안전 방화벽을 튼튼하게 세울 수 있기를 바란다.

2024-10-31

원자력 발전의 부활

윤영대 전 포항대 교수 몇 년간 닫혀있던 원자력 발전소 건설의 문이 다시 열렸다. 지난달 30일 경북 울진의 한울원자력본부에서 신한울 원전 1·2호기 종합준공 및 3·4호기 착공식에 참석한 윤석열 대통령이 축사에서 ‘탈원전 폐기’를 선언한 것이다. 2017년 문재인 정부는 출범 직후, 고리원전 1호기의 영구 정지 선포식에서 ‘친환경적이지 않고, 값도 싸지 않고, 위험한 에너지’라며 ‘탈원전’을 외쳤고, 신규원전 백지화와 기존 원전의 단계적 감축 등으로 한국전력에 26조 원이라는 손해를 끼쳐놓은 굴레를 벗긴 것이다. 설계 수명을 다하면 폐기하겠다는 것이었는데 미국은 80년, 유럽은 무한이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운전 중인 원전은 26기이며 발전량은 세계 6위이고 국내 전력 생산량의 30%를 담당하고 있는데 2016년 새울 3·4호기 이후 8년 만에 신규 건설이 이뤄지게 된 것이다. 발전 방식에는 수력, 화력, 원자력과 친환경인 풍력과 태양열 등이 있으며 이 중 원자력 발전은 지속 가능한 자원의 활용으로 에너지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고 온실가스 방출 감소로 환경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며 엄격한 안전관리로 안정적 운영뿐만 아니라 에너지 공급의 독립성과 경제적 미래를 보장받을 수 있으며, 연료도 우라늄 1kg은 석유 9천 드럼, 석탄 3천t의 발전량을 갖는다. 물론 핵폐기물과 방사능 유출, 또 사고 발생 시 환경 파괴 등 안전에 대한 염려도 많을 것이다. 원자력 개발은 19세기 말 방사선이 발견된 후 우라늄 핵분열을 연구하여 핵폭탄이 만들어지고 2차 대전 때 미국은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떨어트려서 전쟁을 끝내게 된다. 이에 1953년 미국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원자력 평화 이용’ 선언으로 많은 나라가 핵에너지 이용을 추구해 온 결과 미국이 최초로 원자력 시설을 만들었다. 우리나라는 1956년 당시 이승만 대통령이 원자력은 미래의 힘임을 간파하고 미국과 기술협력을 맺고 원자력법을 만들어 원자력연구소를 설립한 덕분에 핵연료 국산화 그리고 2012년 원자력 산업기술의 자립을 이뤘다. 이로써 에너지 안보와 탄소중립을 바탕으로 원전 르네상스를 기대하고 있으며 2009년 아랍에미리트에 원자로 4기를 수출했고 이어 요르단과 터키에도 기술력을 전했으며 최근에 체코와 수출계약을 하는 등 원전산업 재도약이 기대되어 K-원전이 뜨고 있다. 한국은 1971년 가압경수로를 만들었고 2011년에는 제3세대 개량형인 한국표준 원전도 제작했다. 우리의 원전 1기는 약 100만kW이며 발전 단가는 kWh당 50원 정도로 석탄 석유보다 훨씬 싸다. 우리의 기억 속에는 미국 스리마일, 구 소련의 체르노빌 그리고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맴돌고, 우리나라도 8년 전 경주 지진으로 인해 원전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높아졌을 것이다. 원자력 발전에는 많은 공업용수와 냉각수가 필요하여 한울 6기는 울진, 월성 5기는 경주, 고리 5기와 새울 4기는 부산, 한빛 6기는 전남 바닷가에 배치돼 있다. 윤 대통령이 원전 생태 복원을 외친 ‘2050 중장기 원전산업 로드맵’을 실현하여 세계에 우뚝 서는 원전 강국을 이뤄 내기를 꿈꿔 본다.

2024-10-31

이성(理性)과 합리(合理)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인류사회가 지금 이만큼 유지되는 것은 이성과 합리가 바탕이 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종교적 신념이나 예술적 감성도 삶을 보다 깊고 풍성하게 하는 요소이긴 하지만, 인간사회의 기본 구조를 지탱하고 유지하기 위해서는 이성과 합리를 먼저 꼽을 수밖에 없을 터이다. 이성과 합리는 철학과 심리학의 근간을 이루는 중요한 개념이다. 현대 사회에서의 문제 해결, 개인의 판단력, 나아가 사회적·정치적 결정에까지도 깊이 관여하는 개념들로, 우리가 사물을 이해하고 선택하며 행동하는 방식을 형성한다. 두 개념이 서로 얽히고 맞물려 있지만, 그 차이와 상호작용을 이해하는 것은 중요한 통찰을 제공한다. 이성이란 논리와 객관적 사고의 근원으로 인간의 사유 능력, 즉 생각하고 논리적 결론을 내리는 능력을 말한다. 이성적인 사고는 객관적 데이터를 기반으로 하고, 감정보다는 논리와 근거에 따라 결론을 도출하는 과정이다. 이러한 능력은 우리가 삶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문제를 분석하고, 상황을 예측하며, 목표를 향해 일관되게 나아갈 수 있도록 한다. 이성적인 사고의 장점은 개인의 주관적 경험이나 편견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비판적 사고와 연관되며, 진실을 찾으려는 진중한 태도에서 비롯된다. 그러나 이성만으로는 인간의 복잡한 감정과 심리적 욕구를 충분히 설명할 수 없다는 한계가 있다. 합리는, 이성적 사고와 조금 다르게 현실적인 맥락을 고려하여 가장 적합한 결정을 내리는 것을 의미한다. 즉, 합리적이라는 것은 이론적으로 완벽한 해결책이라기보다, 주어진 상황에서 가능한 최선의 선택을 의미한다. 합리적 사고는 대개 비용, 시간, 에너지 등의 자원 제한이 있는 현실에서 실용성을 강조한다. 합리성의 장점은 현실에 근거하여 구체적이고 실행 가능한 결정을 내릴 수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지나치게 실용성만을 추구하다 보면 윤리적 가치나 인간의 감정과 같은 요소들을 놓칠 수가 있다. 이성과 합리는 서로 다른 기준으로 행동을 이끌어내기도 하지만, 동시에 상호 보완적이기도 하다. 이성은 큰 그림을 보고 논리적 타당성을 갖춘 이론을 제시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합리는 그 이론을 현실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실질적 방법을 제공한다. 따라서 두 개념은 개인의 의사결정뿐 아니라 사회적 합의와 정책개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영역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우리나라 정국이 지금 극도로 혼란한 것은 바로 이런 이성과 합리가 실종되었기 때문이다. 공산주의국가들의 몰락과 함께 마땅히 폐기처분 되어야 할 구시대의 잔재가 21세기 첨단국가 중의 하나인 대한민국에서 이토록 창궐하고 득세하는 것은 도무지 이성적이 아니다. 더구나 온갖 범죄혐의로 수사나 재판을 받고 있는 당 대표를 ‘방탄’하기 위해서 최소한의 이성이나 양심까지 팽개친 무리들이 나라를 무법천지로 만들고 있다. 부디 이 해가 다 가기 전에 줄줄이 이어지는 재판의 결과가 신속하고 엄정하여 이 광란의 시국이 평정되길 바라마지 않는다.

2024-10-31

‘원전 메카’된 경북, 첨단기업 유치 쉬워진다

경북 원전의 르네상스를 여는 울진 신한울 원전 1·2호기 준공식과 3·4호기 착공식이 그저께(30일) 신한울 원전 부지에서 열렸다. 신한울 1·2호기는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첫 번째로 완성한 원전이고, 3·4호기는 처음 착공하는 원전이다. 신한울 3·4호기는 발전사업 허가까지 받은 상황에서 전 정부의 탈원전 정책으로 2017년부터 건설이 중단되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이날 행사에 참석한 윤 대통령은 “원전 생태계의 완전한 정상화에 박차를 가하겠다. 정치로 인해 원전산업이 무너지는 일이 없도록 원전 로드맵을 마련하고, 원전 산업 지원에 관한 특별법 제정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이었던 지난 2021년 12월 신한울 원전 건설 현장을 방문해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 폐기를 선언했었다. 윤 대통령이 이날 원전 르네상스를 맞아 1000조원의 글로벌 원전 시장이 열리고 있다고 했지만, 망가진 국내 원전생태계를 복원하려면 갈 길이 멀다. 최우선 과제는 전문인력 양성이다. 국내 원전 인력은 전 정권의 탈원전 정책으로 급격하게 이탈했다. 단적으로 카이스트 원자력양자공학과의 전공자 수를 보면, 2016년 22명에서 7년 연속 한자릿수로 줄었고 올 1학기 입학생은 3명뿐이다. 원전산업 지원을 위한 법제화도 큰 숙제다. 한시가 급한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 특별법’은 아직 국회에 계류중이다. 현재 울진 한울원전과 경주 월성원전의 경우 사용후핵연료를 원전 부지 안에 임시로 저장하고 있지만, 곧 포화상태에 이르러 하루빨리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경북도는 이제 신한울 원전 준공으로 원전산업 메카로서의 입지를 굳히게 됐다. 국내 가동중인 원전 26기 중 13기가 경북에 있다. 향후 8년간 11조6000억원이 투입되는 신한울 3·4호기가 완공되면 경북은 국내 최대 전력생산 기지가 된다. 오는 2026년부터 차등요금제(발전소 밀집 지역 전기요금 인하)가 시행되면, 경북도는 전력수요가 많은 첨단 산업 유치도 한층 쉬워질 것이다.

2024-10-31

무주택 서민 등치는 분양사기 엄단해야

최근 몇 년에 걸쳐 전세 사기범죄가 기승을 부리면서 많은 무주택 서민들이 절망감에 빠졌다. 정부가 특별법을 만들고 피해주민 구제에 나섰지만 피해가 완전 회복되기가 쉽지 않다. 사법당국도 전세사기는 서민의 삶의 기반을 무너뜨리는 중범죄에 해당한다고 밝히고 엄벌을 선언했지만 근절까지는 우리사회의 시스템 개선에 더 많은 노력이 있어야 한다. 지금까지 정부가 인정한 전세사기 건수만 전국적으로 2만3000여 건에 달하고 피해 금액이 수조원에 이른다 하니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특히 임차인 상당수가 이제 사회생활을 막 시작하는 신혼부부이거나 젊은층이어서 그들의 고통을 감당할 법적 안전장치 마련이 시급한 일이다. 지난 5월 대구 남구에서는 30대 여성이 전세 살던 집이 근저당에 잡혀 보증금을 돌려받을 수 없게 되자 스스로 목숨을 끊는 불행한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 전세사기뿐 아니라 무주택 서민의 등을 치는 분양사기도 이와 유사한 범죄 행위다. 그저께 대구지방경찰청이 민간임대아파트 분양 사기로 100억원대 출자금을 가로챈 일당을 붙잡아 검찰에 넘겼다고 한다. 이들은 임대아파트를 정상적으로 분양할 의사나 능력도 없이 협동조합형 민간 임대아파트 조합원 225명을 모집해 놓고 출자금 143억원 상당을 가로챈 혐의를 받고 있다. 이들은 과거에도 유사한 사업에 실패해 상당한 채무가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고, 사업을 정상적으로 진행할 의사도 매우 부족했던 것으로 경찰은 밝혔다. 분양사기 역시 무주택 서민의 등을 치는 악질적 범죄다. 피해를 당한 서민은 일시에 삶의 기반이 무너지는 좌절감에 빠지게 된다. 주택을 분양받기 전 해당업체에 대한 충분한 사전정보를 알아보는 신중함이 필요하다. 경찰 관계자는 최근 전국적으로 협동조합형 민간임대주택 사업관련 민·형사 문제가 자주 발생한다고 밝히고 있다. 본인의 신중한 결정과 함께 사법당국의 엄중한 법 처벌로 유사범죄가 발붙이지 못하도록 하여야 한다. 침체된 지역부동산 경기를 정상화시키는 행정당국의 노력도 병행돼야 한다.

2024-10-31

직장 떠나는 MZ공무원

우정구 논설위원 MZ세대란 일반적으로 1980년 초반부터 2010년까지 태어난 사람을 정의하는 표현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베이비붐 세대의 자녀가 많다. 전 세계적으로는 출산율이 감소하는 시기에 태어난 세대라 이전세대와 구분되는 특징이 많다. 휴대폰, 인터넷 등 디지털 환경에 친숙하다. 빠른 정보수집 능력을 갖추고 있으며 광고나 마케팅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자신만의 가치관과 취향을 가지고 있으며 개인주의적 성향이 강한 세대로 평가된다. 세대간 의식의 차이는 굳이 MZ세대가 아니더라도 생기는 당연한 시대 흐름이다. 우리는 이를 ‘세대차이’라고 부른다. MZ세대 공무원들의 퇴직이 늘어나 공직사회가 비상이라 한다. MZ공무원을 붙잡기 위해 지자체마다 아이디어가 속출하지만 붙잡기가 만만치 않다. 장기재직 휴가를 늘리거나 대상 범위를 확대하고 새내기 휴가란 이름으로 재충전 기회도 제공한다. 또 가족이 병원에 진료 중이면 간병휴가도 준다. 최근 행안부는 중앙부처와 지방자치단체 MZ공무원을 모아 애로사항을 청취하고 여기서 모아진 의견을 정리해 공직사회 권고사항으로 발표했다. 근무시간외 무분별한 연락 자제, 상대방을 존중하는 언행, 눈치 야근하지 않기 등등이 이에 해당한다. 공직을 안정적 직장으로 생각하던 사회 인식이 MZ세대를 중심으로 바뀌는 분위기다. 낮은 보수와 경직된 공직사회 직장 분위기에 대한 MZ세대의 거부 반응이다. 통계에 의하면 지난해 재직 5년 이하 공무원의 퇴직자 수가 무려 1만3500여명이다. 5년 전보다 배가 증가한 것이다. MZ세대의 특성에 적합한 조치가 안 나오면 공직이 비인기 직장으로 전락하는 것은 아닌지 알 수 없다. /우정구(논설위원)

2024-10-31

‘大慶特別市’ 섬유패션 산업 부활의 길

신광조​​​​​​​사실과 과학 시민네트워크 공동대표 첨단산업과 중공업이 경제발전을 이끌어온 것 같지만 방적·나일론 의류와 신발 등 경공업 현장에서 흘린 우리 누님들의 땀과 눈물이 있었다. 사양(斜陽)산업은 없다. 인간은 과학기술로 돈을 만들고, ‘보고 듣고 맛보고 향(香)을 맡고 만지는 오감만족’을 위해 돈을 쓴다. 한국은 매력적인 이미지 문화적 유산에도, 세계에 통하는 브랜드 하나 못 만들고, ‘디올’백 타령만 하고 있다. 대구시의 ‘쉬메릭’브랜드만 해도 많은 돈을 들여 홍보한 지 몇 년이 되었건만, ‘황홀하다’는 뜻이 너무나 어렵다. 대구 의류의 브랜드로는 ‘Ambition(앰비션·야망, 포부)’ 정도가 적절하다. 삼성전자와 힙합 가수그룹 간 상표분쟁이 붙었으나, 삼성전자에서 상표등록만 하고 사용하지 않아 분쟁요소는 없다. 인간의 감성을 이용하여 너끈히 먹고 사는 경제 강국도 있다. 프랑스와 이탈리아, 스위스다. 대구·경북 특별시도가 ‘Ambition(야망·포부)’를 의류· 안경 등 지역 감성 상품 브랜드로 장착하였다면. 어떤 야망과 희망으로 채울 것인가? 의류 산업은 첨단 과학기술 산업이면서도 디자인 산업 즉 과학과 예술이 결합된 산업 분야이다. 의류 산업 구성요소는 뛰어난 재료인 원단 소재, 고객 만족의 디자인, 그리고 현대 산업의 특성인 유통마케팅 삼위일체로 구성된다. 10번째 유니콘 기업으로까지 성장하여, 의욕적인 도전을 펼치고 있는 ‘무신사’(‘무진장 많은 신발 사진’약자)의 젊은 조만희 대표나, “옷을 바꾸고 상식을 바꾸고 세계를 바꾼다”는 유니클로 창업주 야나이 타다시는 시대 흐름과 인간의 심리를 확실히 감지해 대단한 부자가 되었다. 대구의 의류 업체들은 뛰어난 기능성 원단 제조를 빼고는, 주로 온라인에서 현란하게 펼쳐지고 있는 유통마케팅 경쟁의 장(場)에서 위 기업들을 따라잡을 수는 없다. 묘수를 찾아야 한다. 바이오 과학기술이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체온1도 올리면 면역력이 5배 오른다. 내 몸의 적정체온을 36.5∼37.1도로 사수하는 의류 개발이 필요하다. 유니클로는 히트텍으로 대히트를 쳤다. 더 히트가 예상되는 것은 햇볕의 자가 치유능력을 결합시킨 첨단 의류소재 개발이다. 한국의 유력한 노벨과학상 후보인 서울대 남기태 교수팀은 자연계에 존재하는 단백질들의 자가 치유기술을 모방해 수용액 상에서 불안정한 유무기 복합 소재를 안정화시키고, 태양에너지 수소변환 소재로 활용하는 연구 성과를 2016년 창출했다. 남기태 나노융합 신소재 개발팀을 대구시 다이텍(DYETEC) 연구원과 결합시키면 의류소재 개발에 혁명을 가져올 것이다. 박태영 수영복은 상어의 지느러미에서, 고어텍스 의류 방수성은 물을 튀기는 연(蓮)잎들에서 왔다. 자연은 우리의 가장 훌륭한 스승이다. 자연에서 영감을 얻고 자연을 모방하면 지구 온난화 위기 해결과 인간을 풍요롭고 편리하게 하는 멘토를 가질 수 있다. 이를 발견하고 연구하며 적용하는 기술을 ‘청색기술’이라 부른다. 포항시나 경산시 같은 곳에 ‘청색기술 융·복합 연구기술재단’을 설립하여, 이 분야 일인자인 이인식 지식융합연구소장을 책임자로 앉혀 놓으면 된다. 대경권(大慶圈) 의류산업 진흥과 지구환경 보전, 지속가능 발전 금자탑이 될 것이다.

2024-10-31

편안한 수면

박용호 포항참사랑송광한의원장 인체의 삼대 욕구 중 하나인 수면욕은 건강한 삶을 위해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잠을 잘 때 척수액이 뇌를 씻어 하루 동안 쌓인 피로 물질을 씻어 낸다. 척수액은 동맥을 따라 뇌 안쪽으로 흘러들어 쌓인 독소와 필요 없는 물질을 걸러내 정맥을 통해 뇌 밖으로 나온다. 이는 인체의 피로를 줄여주고 면역력을 높여준다. 또 잠을 잘 때 깊은 수면과 얕은 수면이 반복되어 나타나는데 얕은 수면인 렘수면 중 우리는 하루 동안 있었던 일을 정리하고 쌓인 스트레스를 해소한다. 꿈도 이때 꾸게 되고 그날 있었던 일이나 나의 걱정거리가 꿈에 나타나기도 한다. 전부 정신적인 작용과 관련이 있고 렘수면 중 이런 스트레스를 해소한다. 따라서 렘수면이 부족하면 감정조절이 어려워지고 집중력이 떨어진다. 공부를 하는 학생들과 중요한 프로젝트가 있는 사람들은 밤을 새면 안 되는 이유다. 깊은 수면은 비렘수면이라고 하고 렘수면과 달리 이때 육체적 휴식과 충전을 하게 된다. 성장호르몬도 이 시기에 많이 분비가 되고 낮에 쌓인 피로물질과 노폐물이 처리된다. 따라서 잠을 충분히 자게 되면 피로가 풀리고 면역력도 강화된다. 특히 성장기에 있는 아이들은 깊은 수면이 충분해야 성장기의 키를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다. 이와 같이 수면은 육체의 피로와 정신적 피로, 스트레스를 풀어 몸의 피로를 없애주고 면역력을 높여준다. 그러나 잠은 자고 싶다고 해서 맘껏 잘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선천적으로 심장의 기능이 약하면서 가슴에 열이 많은 사람, 큰 스트레스를 지속적으로 몇 년 동안 받은 사람들은 쉽게 잠을 들지 못하고 유지하지도 못한다. 잠을 자려고 누워도 온갖 생각이 머리를 뚫고 머리를 헤집으며 그동안 받았던 스트레스가 머리에 떠오른다. 이렇게 수개월 수년을 지내면 정신만 피폐해지는 것이 아니라 육체도 약해지고 면역력도 떨어진다. 잠을 충분히 자면 해결 되는 문제이기 때문에 잠을 어떻게 하면 잘 잘 수 있을까에 대해 알아보자. 첫째, 매일 낮에 충분히 햇볕을 쬐어야 한다. 인체에는 신체 시계가 있고 태양이 떠있을 때 충분히 햇볕을 받으면 인체 시계는 정상 작동을 하게 된다. 쉬는 시간에 멍하니 컴퓨터를 하거나 스마트폰을 보지 말고 밖에 나가서 햇볕을 쬐자. 둘째, 하루 10분만 눈을 감고 가만히 있어 보자. 눈을 감고 호흡에 정신을 집중하며 가만히 있어 보자. 처음에는 많은 생각이 머릿속에 떠오르나 익숙해지면 머리가 맑아지고 스트레스로 복잡한 머리가 가라앉는다. 잠을 잘 때도 누워서 명상을 하듯이 눈을 감고 편안히 호흡에 집중을 하면 어느새 잠을 자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볼 수도 있다. 셋째, 산조인과 치자 대추를 같은 비율로 물에 끓여 시간이 날 때마다 조금씩 마셔 보자. 연하게 타서 시간이 날 때 물 대신 마시면 된다. 그리고 한의원에서 자율신경을 조절할 수 있는 한약과 약침 치료 등을 병행하면 좀 더 쉽고 빠르게 스트레스를 풀고 잠을 잘 수 있으니 주변 한의원에 들러 도움을 받아도 좋겠다.

2024-10-30

사찰 순례

이정옥 위덕대 명예교수 매월 3번째 일요일이면, 사찰 순례를 위해 새벽에 일어나 채비를 서두른다. 7월부터였으니 이번 달까지 4번째였다. 사촌언니가 몇 년째 다녔던 ‘청계사 108기도순례’팀에 나를 넣어주어 가게 되었다. 언니가 보여준 일정표에는 일 년 계획이 미리 짜여져 있었고, 전국 팔도를 망라했다. 낮이 긴 여름에는 대구에서 먼 곳인 전남 해남, 강원 동해나 금강산, 충남 계룡산, 경기 화성, 전북 완산으로, 해가 짧아지면 경남 밀양, 충북 영동, 경북 경주였다. 그렇게나 많은 절이 있다는 데에 한 번 놀라고, 내가 가보지 못하고 모르는 절 또한 많은 거에 두 번 놀랐다. 우리나라엔 1만7141개의 사찰이 있고, 그 중 전통사찰은 982개소라는 정보를 검색해 찾아 보기도 했다. 나는 불교도이긴 해서 새해엔 팔공산 거조암을 찾는 루틴이 있고, 일 년 한두 번 108기도하는 정도였다. 기도보다는 역사문화 답사 목적의 사찰기행이 훨씬 많았다. 나의 첫 동참인 7월 일정은 강원도 금강산 건봉사, 화암사였다. 금강산은 북한 쪽에 있는 산인데 우리 땅에도 금강산이 있다니 호기심이 컸다. 미리 검색해보니 강원도 고성에 있으며 우리나라 동해안의 최북단이자 금강산의 최남단에 있는 절이었다. 장마 끝이라 비가 오락가락하는 날씨였고, 가는 동안 보게 된 강이나 작은 시내조차도 싯누런 큰물이 넘실대고 있었다. 대구에서 거의 5시간 가까이 소요되는 먼 곳이었다. 관광버스 두 대에 꽉 찬 동반들은 대부분 나이 지긋한 여신도들이었다. 절에 도착하면 그들은 모두 곧바로 대웅전, 극락전, 삼성당을 차례로 찾아들어가 정성껏 절을 하고 기도를 올렸다. 나는 삼배 정도만 하고는 절의 역사와 문화재를 찾아 기웃거렸다. 건봉사에는 사명당의승병기념관과 만해 한용운기념관이 있어 그곳에서 더 오래 머물게 되었다. 화암사는 절 이름대로 우리나라 구비설화의 대표적 화제(話題)인 쌀바위 전설이 있는 절이었으며, 과연 절 건너 야트막한 산 위엔 매우 큰 쌀바위가 있었다. 50년 국문학을 공부했지만, 몰랐다. 이제야 이런 인연으로 이곳엘 올 수 있다니, 몰라서 부끄러웠고, 이제라도 알게 되어 다행이었다. 세상엔 정말 배우고 공부해야 할 곳이 너무나 많다. 공부한답시고 안다고 나섰다간 큰일 날 뻔했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첫 시작의 강렬함은 이후의 일정엔 되도록 빠지지 않는 열정을 키웠다. 더구나 먼 여행의 동반들이 재밌고 좋았다. 차 안에선 각자 챙겨온 간식들이 좌석의 앞뒤로, 옆으로 넘나들며 나누어지기 바빴다. 내가 가져간 과일 몇 개를 나누어 덜면 가벼워질 줄 알았던 가방이 더욱 무거워지는 따뜻한 마법. 얼마 되지 않은 동참금을 내면 아침과 점심을 실하게 먹고-강원도는 멀다며 저녁식사까지 챙겨주었다- 먼 길 편하게 다녀올 수 있는 이런 기회가 어디 있으랴. 남편에게 자랑했더니 남자도 갈 수 있느냐고 물었다. 내 기억엔 남자는 없더라며 손사래를 쳤다. 팔공산 갓바위에 종종 올라 열심히 기도하시는 안사돈께 말씀드려 한 번 동행한 적은 있다.

2024-10-30

초대하지 않은 손님

피귀자 수필가 텔레비전에 흐르는 자막처럼 황금 들판이 지나간다. 풍성한 차창 밖의 풍경에 저절로 자동차의 속도가 줄어들었다. 네모반듯하게 경지 정리된 논 속의 벼들이 옹골차게 익어가는 모습은 농부가 아니더라도 배가 부르다. 오래보아도 질리지 않는 따뜻한 풍경. 저리 윤나게 가꾸자면 농부의 다리는 더 가늘어지고 손은 더 거칠어졌을 게다. 한집의 논인 냥 고르게 익어가는 들판에 유독 삐죽 올라온 식물이 눈에 띄었다. 고개 숙인 벼보다 한 뼘씩은 높이 고개를 바짝 쳐든 것은 바로 농민들의 골칫거리, 벼의 천적 ‘피’였다. 꽃보다 더한 열정으로 꽃밭을 점령하는 풀처럼 위세가 당당했다. 서로 다른 목소리로 합창이 되지 못하는 논. 피가 벼보다 키가 큰 이유는 햇빛을 많이 받으려고 경쟁하듯 키를 키운다는 것이다. 가을이 익으면 우수수 몸부림치며 흘러내릴 저 몸, 내년을 더 걱정하며 어떻게 저 논에만 피가 저리 많을까 저마다 한마디씩 했다. 농부가 게으른 탓인가, 약을 치지 않고 유기농법으로 농사를 짓는 게 아닐까, 설전이 이어졌다. 딸의 긴 머리카락 사이에 섞여있는 흰 머리카락이 벼논의 피처럼 바짝 고개를 들었다. 아직 흰머리가 생기기엔 젊은 나이인데 임신을 하고 해산달이 가까워 몸조차 이기지 못할 정도가 되니 더 도드라졌다. 오죽 힘들면 저리 되었을까 눈이 아리다. 골고루 챙겨 먹지 않으면서 영양분을 나누느라 머리카락까지 저리 되었으리라 생각하니 소화가 되지 않았다. 저릿한 마음을 사위 앞이라 내색도 못하고 자꾸 딸의 머리만 쓸었다. 큰 외손자가 아홉 살이 되도록 동생을 보지 않아 무던히 애를 태웠었다. 아이 하나도 제대로 키우려면 여간 힘든 게 아니라며 둘째 낳을 생각을 하지 않아, 그래도 둘은 되어야 한다고 타일러 보았지만 더 이상 어쩔 도리가 없었다. 사돈댁에서도 간절히 원하는 것 같았고 남편도 본인은 뒷전에 있으면서 나를 통해 채근을 하는 세월이 그렇게 흘러간 것이다. 다행히 시간이라는 더딘 처방, 완화 처방이 효과를 보아 모두 감사하고 기뻐했는데 딸이 힘들어하는 모습은 지켜보기가 힘들었다. 해산일이 가까워지자 앉기조차 힘들어하는 딸을 보며 한 숟가락이라도 더 먹이려고 애를 써 봐도 그마저도 쉽지 않았다. 대신 해줄 수 있는 집안일과 큰손자 보는 일에 성심성의를 다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둘째 손자를 안자 힘들었던 시간은 사라지고 웃음이 떠나지 않고 활짝 핀 꽃이 되어 켜를 이룬다. 고통과 인내의 연속이 끝나고 걸어온 길에 흔적 하나를 더 보탠 딸네 가족의 모습이 더없이 아름답다. 셋보다 넷의 조화가 뿌듯하다. 딸이나 사위도 참 잘한 선택임을 뒤늦게 기뻐하고 있다. 갓난아기가 뿜어내는 기쁨의 파동이 온가족을, 친척들까지 들뜨게 한다. 연일 소리 없이 봄이 핀다. 봄바람에 돋아나는 새싹처럼 연한 살결의 손자는 쌔근쌔근 잘 자고 엄마 젖도 잘 먹으며 하루가 다르게 잘 자란다. 하지만 수유 때문에 염색도 못하니 한숨을 먹으며 자란 흰 머리카락은 얼굴이 점점 더 커져간다. 드디어 딸의 머리카락이 빠지기 시작했다. 해산 후 어느 정도 지나면 일어나는 현상이라지만 쓸어낼수록 늘어나는 긴 머리카락이 애잔한데 빠지는 건 검은 머리카락뿐이다. 흰색은 뻣뻣이 나 여기 있소, 기세가 더욱 등등하다. 익어가는 벼논의 불청객 피를 보는 농부의 마음도 이러하지 않았을까. 날마다 빠지는 검은 긴 머리카락을 치우며 흰 머리카락이나 빠지길 바라지만 어쩌랴. 그 흰 머리카락마저 귀해질 때가 오리니. 검고 희고를 떠나 빠지는 자체가 애석해질 때가. 벼논의 제초제처럼 흰머리에는 염색약이 있지 않은가. 먹을 것이 귀한 시절엔 요긴한 먹을거리가 되기도 했던 피(陂). 하지만 요즘은 천덕꾸러기 초대하지 않은 손님이 된 지 오래다. 농부가 얄미운 피를 뽑듯 뽑아버리고 싶었던 딸의 흰 머리카락. 하지만 한 때는 찬 가슴 데워준 열정의 몸, 나이가 부피를 키워갈수록 염색할 수 있는 그 흰 머리카락마저도 소중해진다지 않은가. 부풀렸던 마음속 미운 풍선을 터트리기로 했다.

2024-10-30

독도, 누가 흔드나

장규열 고문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2차 세계대전을 마감하면서, 연합국들과 일본이 체결한 조약이다. 미국, 영국, 소련 등 관련국들이 참여하여 서명하고 1952년 4월에 공표되었다. 한국전쟁 중이었던 대한민국과 북한은 어느 쪽이 한반도를 대표하는지 불분명하다는 핑계로 초대도 받지 못하였다.‘일본은 한국의 독립을 인정하고 제주도, 거문도, 및 울릉도를 비롯한 한국에 대한 모든 권리와 소유권 및 청구권을 포기한다.’ 제2조 이 한 줄에 ‘독도’가 들어있지 않다면서, 일본은 지금껏 독도의 영유권을 주장한다. 독도가 일본의 영토로 ‘남은’ 증거라는 것이다. 저 조항의 해석은 물론, 조약이 대한민국의 영토주권에 미치는 영향에 대하여 우리의 입장을 분명히 해야 한다. 신한일어업협정. IMF사태 복판이었던 1998년에 체결되어 이듬해 발표된 대한민국과 일본 간의 어업협정이다. 협정이 양국 간에 설정한 ‘중간수역’에서는 두 나라의 국민과 어선이 상대국의 제한을 받지 않는다. 문제는, 대한민국의 영토여야 할 독도가 중간수역에 들어가 두 나라가 함께 관리하는 지역처럼 되어버렸다. 영토라면 당연히 누려야 할 배타적경제수역(EEZ)을 설정하지 않고 중간수역에 빠진 꼴이 된 것이다. 일본이 대한민국 영토 독도의 영유권적 지위를 최소 절반이라도 흔들 수 있는 빌미를 남긴 셈이다. 중간수역에 떨어진 독도의 운명은 누가 돌아보는가. 우리가 독도를 생각하며 다분히 정서적이며 감상적인 ‘독도는 우리땅’을 부르고 있을 때, 일본이 조직적인 논리로 그들의 주장을 뒷받침할 근거들을 모으며 국제적 분쟁거리로 독도문제를 준비하고 있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전쟁의 참상과 IMF사태의 난관을 기억하는 일에도 몸서리를 치겠지만, 그 와중에 ‘우리땅 독도’의 운명이 위태로울 움직임들이 있었다는 걸 기억해야 한다. 샌프란시스코 조약이 뿌리깊은 역사를 배경으로 하는 ‘대한민국의 섬 독도’를 흔들 수 없음을 체계적으로 조리있게 세계만방에 고해야 한다. 신한일어업협정은 그야말로 어업에 관한 나라 간의 약속으로 대한민국 독도의 영토적 지위와는 아무 상관이 없음도 분명히 짚어야 한다. 대한민국의 목소리가 적절하게 반영되지 않았던 샌프란시스코 조약이나 지극히 지엽적인 어업을 대상으로 하는 신한일어업협정이 대한민국 영토 독도의 영유권적 지위를 침탈할 수 없음을 국제사회에 천명해아 한다. 국익의 관점에서 일본이 우리의 땅 독도의 지위를 흔드는 행태는 단호하게 막아야 한다. 일본은 중고등학교 교과서에 독도를 일본땅으로 가르치고 있다. 최근에는 독도를 일본땅으로 표기한 관광지도를 서울 한복판에서 배포하였다. 경상북도와 울릉군 등에서 확고한 독도 정책을 세우고 다양한 이벤트를 펼쳐 효과적으로 그들의 헛된 생각을 막아내야 한다. ‘독도는 우리땅!’을 끊임없는 다짐과 구호로 간직하면서, 구체적이며 실증적인 논거와 실효적인 수호논리를 확보해야 한다. 일본 뿐 아니라 우리 안에도 혹 독도를 가벼이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지 경계해야 할 일이다. 독도는 누가 뭐라고 해도 대한민국의 영토가 아닌가.

2024-10-30

돈이 있어야 결혼하는 세상

홍성식 (기획특집부장) 20세기 한국사회. 결혼은 삶의 필수항목에 가까웠다. 대부분의 청년들은 20대 중후반, 늦어도 30대 초반이 되면 친구들의 결혼식 참석으로 주말이 분주했다. 부어라 마셔라 또래가 모인 피로연도 시끌벅적했다. 세태는 급격하게 변화했다. 21세기에 들어선지 24년. 이제 20~30대에게 결혼은 ‘선택’이 됐다. “월급을 모두 가져다주고, 가사까지 도우면서도 잔소리나 듣는 결혼을 왜 하냐”고 냉소하는 젊은 남성과 “내가 무엇 때문에 남의 엄마, 아버지까지 신경 써서 모실 것인가” 회의하는 여성들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실상 기자의 주변을 둘러봐도 30대, 40대 미혼남녀가 흔전만전이다. 억지로 이성을 만나 부부의 연을 맺겠다는 사람들이 드물어지고 있다. 이는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엄연한 현실. 남녀가 함께 같은 공간에서 생활하며 미래를 설계하는 결혼에 관한 환상이 무너진 것에 더해 갈수록 피폐해지는 한국의 경제 상황도 ‘결혼 사양’의 냉소적 분위기를 심화시킨다. 얼마 전 한 여론조사업체의 발표에 따르면 성인 남녀 10명 중 9명(89.6%)은 ‘한국은 돈이 없으면 결혼하기 힘든 사회’라고 인식하고 있었다. 같은 조사의 응답자 82.9%는 “결혼은 개인의 선택”이라고 답했다. 결혼에 관해 부정적 시각을 가진 응답자들은 ‘안정적 주거 마련의 어려움’(57%)과 ‘경제적 상황이 여유롭지 못함’(41.4%)을 결혼이란 장벽이 높아 보이는 이유로 지목했다. 약간의 과장을 보태면 ‘돈이 있어야 결혼을 하고 아이도 낳는 세상’이 도래한 것이다. 결혼식장에 나란히 선 신랑, 신부를 보기 힘들어진 시대가 가까워졌다. 아니 이미 왔는지도 모른다. /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4-10-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