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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고전 속에 담긴 바른 삶의 길잡이를 찾아

목천 이희특(80·포항) 씨는 공직에서 근무하다 현재는 고전연구를 하며 유학자의 삶을 살고 있는 유학자이자 한학자이다.그는 어릴 적부터 선비였던 선친으로부터 한학과 서예의 가르침을 받으며 선비정신을 바탕으로 인간됨과 마음의 결을 다듬으며 살아왔다. 30년 공무원 생활 가운데서도 틈틈이 조선시대 유학의 유풍을 탁마해 후학들에게 사표가 되고 있다. ‘고전 속의 인문학’(도서출판 좋은땅)은 이 씨가 후대에게 전하고 싶었던 다양한 고전시가와 유학자들을 따듯하면서도 날카로운 관점으로 풀어낸 책이다. 책은 ‘선비문화의 향기’‘선비의 표상’‘선비의 풍류와 읽어볼 만한 고전’‘고전의 학습단계와 교과목’‘학문의 전당 서원’‘중국의 고전시가’‘한국의 고전시가’‘선비정신으로 살아온 나의 발자취’‘고전에서 뽑은 명언 한마디’등 총 9개의 챕터로 구분돼 있다.그는 다양한 고전시가와 역사적으로 선비의 표상이었던 유학자들을 소개하면서, 세상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선비정신’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이어 ‘논어’‘장자’등 고전 가운데 교과서적인 서책에 관해 “선비가 되려면 고전이 필수적이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려고 노력하는 것이 인문학이다. 고전 속에는 삶의 길잡이가 쌓여있다”고 말한다.이 외에도 책은 ‘알렉산더도 늘 고전을 탐독했다’‘오월동주(吳越同舟) 시대의 손자병법’‘유배지에서 쓴 목민심서’ ‘고전에서 배우는 처세술’ 등의 글을 통해 작금의 상황에서 고전을 읽는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일깨운다.자신의 유학자로서의 독서 이력과 사유를 한껏 드러낸 이 글들을 통해 우리는 그가 어떤 순간 그 책을 만났으며 어느 구절에 밑줄을 치며 성찰했고 또 어떤 깨달음과 위안을 얻었는지를 오롯이 들여다볼 수 있다.이희특 씨는 “왠지 유학, 고전, 선비 하면 고루하고 구시대적인 느낌마저 든다. 그러나 시대를 막론하고 변함없이 그 가치와 교훈을 인정받는, 그 끈질긴 생명력은 우리에게 참된 삶의 길로 인도하는 잣대가 되어 주기에 부여된다”며 “포항시 공모사업에 선정되어 지원받아 출간 된 이 책이 이 시대를 이끌어 가는 지도자들, 바른 삶을 살고자 애쓰는 이들에게 삶의 나침반이 될 수 있으면 한다”고 말한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1-04-15

리처드 도킨스 두번째 에세이집 출간 30년간 발표한 작품 41편 8부로 구성

‘리처드 도킨스의 영혼이 숨 쉬는 과학’(김영사)은 영국의 진화생물학자이자 과학 저술가인 리처드도킨스의 두번째 에세이집이다. 도킨스는 끊임없이 자연의 신비를 밝히고 잘못된 논리를 공격하는 가장 뛰어난 과학 저술가로 평가된다. 이 에세이집에는 올해 여든 살인 도킨스가 1990년대부터 30여 년 간 발표한 작품 41편이 실려 있다.진화론에서부터 과학자의 가치관, 종교, 개인적 삶까지 폭넓은 주제를 다룬 글 면면을 보면 도킨스가 ‘영혼’이라는 비과학적 용어를 선택한 배경을 짐작할 수 있다. “경이의 원천”으로서 과학에 대한 그의 오랜 외경과 감동이 책을 가득 채우고 있기 때문이다.도킨스는 서문에서 이성이 중심을 잡아야 하며 “본능적 감정은 설령 외국인혐오, 여성혐오, 또는 그 밖의 맹목적인 선입관이 도사리는 어두운 흙탕물에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하더라도 투표소에 들어오면 안 된다”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저자가 새롭게 주석을 단 글들에서 도킨스는 실증할 수 있는 근거의 중요성을 비롯한 많은 주제를 다루면서 나쁜 과학과 종교 교육, 기후변화 부정론자들을 비판한다.하지만 그의 과학이 인정사정없기만 한 것은 아니다. 제목에 들어간 ‘영혼’이라는 단어도 도킨스가 그것이 비과학적인 영역에만 한정되어 쓰여야 하는 말이 아님을 강조하기 위해 넣은 것이다.그는 우리에게도 과학에게도 유령 같은 영혼은 없지만 ‘현실을 한 단계 넘어서는 무언가’, ‘경이롭고 아름다운 것’, ‘감정적인 성질’을 표현하는 의미의 영혼은 있을 수 있으며, 그런 의미에서 과학은 종교를 비롯한 그 어떤 미신적인 것보다도 영혼을 지니고 있음을 이 책 전체를 통해 말하고자 한다.650여 쪽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의 이 에세이 선집은 ‘과학의 가치관(들)’, ‘무자비의 극치’, ‘가정법 미래’, ‘정신 지배, 화근 그리고 혼란’, ‘현실 세계에 살다’, ‘자연의 신성한 진실’, ‘살아 있는 용을 비웃다’, ‘인간은 섬이 아니다’ 등 8부로 구성돼 있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1-04-15

모든 사람을 위한 나… 아태평화교류협회 ‘평화친구’ 2호 출간

(사)아태평화교류협회(대표 안부수)가 창간한 계간 ‘평화친구’ 제2호(2021년 봄호·아시아)가 나왔다. ‘평화 메시지’와 ‘일제 강제동원 희생자 문제’라는 두 축으로 구성된 이번 호는 권두에서 시선을을 끄는 ‘평화엽신’ 두 장이 그것을 가리키고 있다. 청춘의 십여 년 동안 조국 수호를 위해 베트남 전장을 누비고 기적처럼 살아남은 전후 베트남의 대표 작가 바오닌과 반레가 한국을 방문해 기와집 전통가옥 거리를 나란히 거닐며 나누는 대화이다.바오닌, “전쟁의 가장 중요한 교훈은 전쟁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야.”반레, “내가 진실로 말하건대, 뭐가 적이고 뭐가 우리라는 거야? 단지 사람일 뿐이야.”‘평화 만들기’에는 두 편의 에세이가 초대됐다. 베트남 작가 바오닌의 ‘모든 사람을 위한 나’는 코로나 팬데믹 시대를 살아가는 동양인과 서양인의 태도를 비교하며 ‘무엇이 모두를 위한 나’인가를 일러준다. 미국잡지 ‘포브즈’ 온라인판 2020 12월 3일에 실린 쥬디 스톤의 ‘공공의 백신’을 도형기 한동대 생명과학부 교수가 번역해 실었다. 이 에세이는 모더나 백신을 만들게 되는 막대한 경비(약 1조원)가 미국 국민의 세금으로 충당됐다는 사실을 통해 그것이 ‘공공의 백신’이란 점을 일깨워주는 동시에 우리 정부와 우리 국민은 ‘국산’ 코로나 백신 개발을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생각하게 만든다.‘평화의 명작, 명작의 평화’에서 방민호 서울대 국문학과 교수는 스페인 내전을 배경으로 하는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소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를 다시 읽으며 “이념적 적대 대신에 개별자들의 사랑”을 제대로 다룬 작가의 시선을 포착해 주고, 류영재 화가는 세조와 한명회의 피범벅 집권을 ‘압구정도와 살곶이다리’에 녹여내고 있다. 또한 하종욱 음악평론가는 탱고 연재 ‘누에보 탱고의 모든 것 아스토르 피아졸라, 그의 백년(192120131992)’을 통해 그 음악에 흐르는 인간의 고뇌와 환희를 들려주며, 김동환 부엉이영화사 대표는 1939년 출판된 제임스 서버의 소설 ‘월터 미티의 은밀한 생활’을 원작으로 삼은 영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를 감상하며 평안으로 가는 길을 보여준다. ‘평화우체국‘은 한국 작가들, 베트남 작가들의 ‘평화선언’과 이대환 작가가 엮은 이용악(1914∼1971·북한에서 생을 마침)의 두만강 명시 ‘낡은 집’, ‘두만강아 너 우리의 강아’, ‘그리움’ 등 3편을 통해 오래전 헤어진 짝꿍의 이름과 같은 두만강이라는 이름을 절절히 부른다. 일제 강제동원 희생자 문제는 안부수 아태협 대표의 체험담 기획연재 ‘일제 강제동원 희생자 유골 발굴과 조국 봉환 현장을 가다’, 이경재 숭실대 국문학과 교수의 ‘기생이 되어 버린 조선-모던일본(モダン日本) 1939년 조선판을 중심으로’, 램지어 하버대 교수 논문 규탄 성명서, 서울 용산역전의 강제징용 노동사상과 성동원 소녀상을 공격하는 왜곡 문제에 대한 인터뷰 등으로 짜여 있다.또 ‘내 안의 평화’는 ‘사소한 떠뜻함’, ‘아버지의 강’ 등 김살로메 소설가의 에세이 두 편으로 꾸려졌으며, ‘평화 책읽기’는 미국에서 ‘2020 세계문학 베스트 북’에 선정된 북한 소설가 백남룡의 장편소설 ‘벗’을 소개하고 있다. 북한 사회의 이혼을 소재로 삼은 ‘벗’은 북한 드라마로 방영되기도 했다. /윤희정기자

2021-04-15

포스트 코로나시대, 우리에게 건네는 위로와 통찰

코로나19가 인류에게 실존적 고통을 주고 있다. 이 대규모 역병으로 우울과 분노가 익숙해져버린 우리들에게 어떤 삶을 추구해야 하는 지 길을 제시하는 책이 나왔다. 진로분야 명사이자 인지심리학자인 김경일 아주대 심리학과 교수의 신간 ‘적정한 삶’(진성북스)이 그것이다.‘불안한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건네는 인지심리학의 위로와 통찰’이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에서 김경일 교수는 우리 사회를 이모션(emotion), 언택트(untact), 커뮤니티(community), 해피니스(happiness) 등 4가지 측면에서 진단하고 분석하며 대안을 제시한다. 책은 부정적인 감정 중 불안 심리의 현상과 영향력을 강조하며 성장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말한다.또 과도한 관계에 지친 현대인이 비대면을 통해 심리적 안정감을 느끼며 진정한 개인을 만날 수 있다는 의견도 제시한다.1장 ‘감정에 집중하다’에서는 결정과 판단에 중요한 영향을 끼치는 인간의 감정을 깊이 있게 바라봤다. 부정적인 감정 중에서도 특별히 불안 심리의 현상과 영향력을 강조했고 모두가 불안한 팬데믹 시대, 불안을 역이용해 성장의 기회로 삼는 방법도 제시한다.2장 ‘비대면이 우리에게 가르쳐 준 것들’에서는 팬데믹 이전부터 예고돼 왔던 비대면 커뮤니케이션과 관련된 심리학적 통찰을 서술한다. 과도한 관계에 지쳐 있던 현대인이 비대면을 통해 느낄 수 있는 심리적 안정감, 공동체와 분리된 상태에서 진정한 개인을 만나는 과정을 만날 수 있다.3장 ‘팬데믹 이후의 공동체’에서는 지나친 합리성과 가성비, 감정의 통제를 능력과 연결하는 사회를 소시오패스(sociopath·반사회적 인격장애)를 양성하는 사회라고 꼬집으며 이타성과 윤리성이 인류를 발전시킨 고도의 역량임을 여러 심리학적 근거를 통해 증명한다.4장 ‘불안의 시대에서 행복을 말하다’에서는 행복에 대한 심리학에 오랜 연구 내용을 만날 수 있다. 특히 팬데믹 이후에 다가올 사회적 혼란에서 균형 있는 삶을 유지하려면 행복의 경험이 필수적이라는 것을 강조한다. 신체적 정서적 상태, 낙관과 확신의 습관이 한 인간의 삶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다양한 연구 사례를 통해 배울 수 있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1-04-08

미국인의 눈으로 본 일본사회의 빛과 그늘

신간 ‘일본의 굴레’(글항아리)는 일본 쓰쿠바대학 국제정치경제학 교수를 지낸 태가트 머피(69)가 외부자로서의 시각과 내부자로서의 이해를 바탕으로 일본 사회를 탐색한 책이다.‘타인의 눈으로 안에서 통찰해낸 일본의 빛과 그늘’이라는 부제처럼 외부자이면서 내부자의 시선을 견지한 저자의 일본에 대한 통찰이 담겼다.국제정치경제 전문가인 저자는 서문에서 일본의 정치와 경제에 관한 생각을 역사 및 문화와 결합하는 게 목표였다고 밝힌다.저자는 일본인들의 가장 독특한 면모는 모순을 모순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점이라고 설파한다. 저자는 일본 근대사의 대부분은 비극인데, 이 비극은 내외부적 요인이 결합해 일어났다기보단 일본인들 내부의 ‘무언가’로부터 비롯됐다고 적고 있다.또한 저자는 “원인도 없고 설명할 수도 없는 이유로 이런저런 일이 발생하는 세상에서 살아간다는 의식, 그 안에서 자기 본분을 다하며 최선을 다해 적응할 수밖에 없다는 의식이 일본인들 사이에 퍼져 있다”고 짚는다.일본인 대부분은 본인들의 책임을 매우 진지하게 받아들인다. 서양에서는 할 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라면 잘해내야 한다고들 말한다. 일본에서는 할 만한 가치가 없는 일이라도 잘해내야 한다고 서술한다.이와 더불어 일본의 과거사 청산이 어려운 이유에 대해 언급하며 미군정이 태평양 전쟁 이후 처리 과정에서 일본인들 스스로 과오를 돌아볼 기회를 원천봉쇄한 데 큰 책임이 있다는 주장도 펼친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1-04-01

퇴계 마지막 귀향길… 소망과 가르침의 여정

퇴계 이황(1501~1570)은 ‘동방의 주자’로 불린 조선시대 대유학자다. 성호 이익은 퇴계를 공자, 맹자에 견주어 ‘이자(李子)’라고 하기도 했다. 하지만 오늘날 퇴계는 일반인들에게 고루하고 현학적인 인물로 각인돼 있다. 하지만 ‘퇴계의 길에서 길을 묻다’(푸른역사)를 읽고 나면 생각이 달라질 것이다.책은 도산서원 참공부모임 회원들이 2019년 봄, 퇴계의 마지막 귀향길을 그 옛날 일정대로 도보로 답사한 기록이다. 서울에서 안동까지 243킬로미터(나머지 30여 킬로미터는 배를 이용했다)를 열흘 남짓 걸었는데 이를 13인의 학자가 구간별로 나눠 썼다. 일종의 여행기라 하겠는데 이것이 기가 막히다. 주변의 풍광, 역사는 물론이고 퇴계의 가르침과 인간적 면모를 단아한 문장에 담아내어 탁월한 ‘인문학 여행서’가 탄생했다.700리 여정은 서울 광화문에서 시작해 남양주, 양평, 여주, 충주, 단양, 죽령, 영주, 안동 도산서원으로 이어진다. 봄날의 고운 꽃들과 그 곁에 반짝이며 이어지는 남한강, 밟기만 해도 포근함이 느껴지는 흙길의 정취를 느껴볼 수 있다. 그렇게 5개의 광역시, 열 곳이 훨씬 넘는 지방자치단체를 지나치는 동안 마주한 각 지역의 역사 유적과 문화 덕에 열흘이 넘는 여정 이야기가 지루할 틈 없이 이어진다. 길을 걸었을 뿐인데 자연스레 따라온 신체의 활력과 마음의 힐링, 인문 역사 공부가 필진들의 산 경험에서 전해진다.임금의 만류에도 끝내 고향으로 물러난 퇴계가 그토록 추구하던 가치는 무엇이었을까. 퇴계 생애 마지막이 된 이 귀향길에 오롯이 녹아든 그의 소망과 가르침이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퇴계의 유학세계를 보통사람이 이해하기는 힘들다. 이 책의 으뜸 미덕은 퇴계의 생애를 짚으며 퇴계 사상의 실마리를 제공한다는 점이다. “퇴계가 추구했던 것은 높은 벼슬과 그에 따른 명예나 이록이 아니었고, 내면으로 침잠해 하늘이 부여한 본성을 찾고 회복하는 군자의 길이었다. 그것을 퇴계는 위기지학(爲己之學)이라 했고”(127쪽) “경(敬)은 귀부인이 주인이나 임금을 만나러 가기 전에 몸단장하는 모습을 그린 글자로, 그 의미는 ‘공경’이 본질이다. …. 본뜻보다는 하늘 공경의 의미로 널리 쓰이다가 주나라 중엽부터 다시 인간 공경의 의미로도 널리 쓰이게 되었다”(139쪽) 같은 대목이 그렇다.이제 이기론이니 사단칠정론이니 하는 어려운 유학은 잊어도 좋다. 퇴계의 인간적 풍모를 접하면 자연 그리 될 것이다. 퇴계는 홍인우처럼 사상적 결을 달리 하는 인물과도 사귐을 마다하지 않을 정도로 열려 있었고(104쪽), 두 번째 맞은 권씨 부인이 자신이 만들었다며 흉하게 생긴 버선을 내밀어도 태연히 신고 입궐할 도량이 있었다(25쪽). 퇴계의 이런 면모는 우리가 상상하던 전형적인 유학자의 틀을 훌쩍 넘어선다.도산서원 참공부모임은 전국에서 퇴계학 연구를 오래 해온 교수와 연구원들이 퇴계의 정신을 참답게 공부하고 세상에 널리 알리자는 취지로 2015년 조직됐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1-04-01

로버트 그린의 ‘21세기 인간 권력’

세계적인 밀리언셀러로 유명한 ‘권력의 법칙’의 저자 로버트 그린의 신간 ‘인간 욕망의 법칙’(웅진지식하우스)이 출간됐다. ‘권력의 법칙’ 외에 ‘유혹의 기술’, ‘전쟁의 기술’ 등 3부작으로 유명한 로버트 그린은 ‘부활한 마키아벨리’라는 칭호를 얻을 만큼 권력술을 꿰뚫은 대가로 평가받는다.책은 그중 현대판 군주론으로 비견되는 ‘권력의 법칙’을 읽기 쉽게 새로 출간한 것이다.고전과 역사 속에서 수많은 레퍼런스를 끌어올려 현대사회에 걸맞은 통찰과 지혜로 분석해내는 데 탁월한 작가적 재능을 가진 로버트 그린은 이 책에서 인간의 가장 원초적 욕망이자 인간관계의 최열쇠인 ‘권력’의 본질을 발가벗긴다.강력한 중앙집권적 황제가 등장하기 시작한 고대의 집정자들부터 유혈혁명과 공포정치 속에서 정권을 획득한 근대 유럽의 실권자들, 자본주의가 만개한 현대사회에서 오직 돈이라는 욕망에 충실했던 희대의 사기꾼들 등 지난 3천 년간의 세계사에서 각 시대를 쥐락펴락한 최고 권력자들의 전략을 면밀히 분석한 뒤, 이를 ‘48가지 인간 욕망의 법칙’으로 도출해낸다.로버트 그린은 한결같이 인간의 욕망과 권력이라는 주제를 우직하게 파고드는 작가다.그는 인간은 본성적으로 권력을 좋아하는 까닭에 남을 지배하려는 욕망에서 벗어나지 못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욕망은 비즈니스 관계에서는 물론이고, 부모 자식 관계에서도, 사랑하는 연인 관계에서도 어김없이 발현되어 권력의 주종 관계를 만든다고 말한다. 심지어 선한 마음으로 대의를 위해 희생하는 ‘의인’들조차도 로버트 그린의 관점에서는 권력자다.남보다 도덕적으로 우월한 사람이라는 것을 입증해 보임으로써 심리적 우위에 서려는 욕망이 근저에 깔려 있다는 것이다. 특히 이처럼 도저히 권력을 탐할 것처럼 보이지 않는 사람일수록 그런 이미지마저 철저하게 계산한 전략가일 수 있으니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고 말한다.그는 니콜로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을 인용해 “홀로 선하고자 하는 사람은 반드시 파멸할 수밖에 없다”며 세상이 작동하는 방식과 이면의 진실을 똑바로 바라보라고 조언한다. 책은 ‘권력의 원천’, ‘권력 획득의 법칙’, ‘권력 유지의 법칙’, ‘권력 행사의 법칙’ 등 모두 4부로 구성돼 있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1-04-01

과학기술과 사회… 어떤 관계를 맺어왔는가

민간인 우주여행이 이르면 올해 말 이뤄질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는 등 과학기술이 우리 삶에 미치는 영향력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최근 전 세계적으로 유행 중인 코로나19바이러스의 정체를 밝히고 막아내는 데도 과학기술의 힘이 중요하다. 사회적 거리 두기를 하는 시민들을 비대면 경제로 연결하는 것도, 기본소득처럼 사회안전망을 둘러싼 논의를 이끄는 것도 과학기술이다. ‘강양구의 강한 과학’(문학과지성사)은 경력 20년의 과학 전문 기자 강양구씨가 오래 읽혀온 과학 고전을 새로 읽으며, 과학기술과 사회가 어떤 관계를 맺어왔는지를 되짚어보는 책이다.23권의 과학 고전을 선별해 읽은 이 책은 ‘코스모스’ ‘이기적 유전자’ 등의 과학책 베스트셀러가 과학기술과 사회를 어떻게 연결하고 있는지를 검토하는 한편, 과학기술 시대의 사회적·윤리적 쟁점들을 다룬 과학책을 조명함으로써 현재적 관점에서 읽어나간다.총 4부로 구성돼 있는 책은 과학기술과 사회가 관계를 맺는 양상을 크게 네 가지로 구분해 23권의 과학 고전을 배치했다.제1부 ‘의심의 과학―과학 역시 사람이 하는 일이다’에서는 사회로부터 영향을 받아, 혹은 과학자나 과학자 공동체의 이해관계에 따라 과학기술이 작동되는 과정을 살펴봄으로써 과학기술의 본모습을 마주한다. 제2부 ‘싸우는 과학―세상에 목소리를 낼 것’에서는 ‘침묵의 봄’을 쓴 레이철 카슨이나 ‘과학과 사회운동 사이에서’를 쓴 존 벡위드처럼, 과학기술의 힘을 인지하고 “위험한 사회적 결과들을 초래할 수 있는 주장을 공개적으로 바로잡고자” 싸웠던 과학자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제3부 ‘궁극의 과학―모든 것의 이론을 향해’는 “복잡한 사실로부터 단순한 설명을 찾는” 과학의 특성에 매료돼 복잡한 세상을 설명하려 했던 환원주의 과학자들을 소개한다. 사회생물학을 주창해 인문·사회과학과 자연과학의 통섭을 꾀한 에드워드 윌슨, 물리학으로 생명 현상을 설명하려 했던 에르빈 슈뢰딩거 등이 여기 속한다. 제4부 ‘미래의 과학―기술이 사람을 만든다’에서는 인간과 과학기술의 대안적 관계 맺기를 모색하고, 과학기술 사회의 새로운 사회적·윤리적 쟁점을 제기하는 책들을 다룬다. 그 외에 본문에서 자세히 다루지는 않았지만, 23권의 과학 고전과 함께 읽기에 좋은 책들은 ‘도서 목록―더 강한 과학을 위한 읽을거리’를 통해 소개한다. /윤희정기자

2021-03-25

“시인답게 사는 게 내 평생의 꿈… 독자에게 보내는 손편지 같은 시집”

박범신 작가. /은행나무 제공“시인답게 사는 게 내 평생의 꿈이었지요. 산문의 세계는 기실 잔인하기 이를 데 없어 차마 마주 보기 두려웠어요. 그래서 나는 내 혼의 체형에 맞는 비애의 안경을 만들어 쓰고 세상을 보았으며 그 안경 너머의 세계를 오직 기록하며 살아왔어요. 그게 지금은 정한으로 남는군요. 나는 왜 행복한 이들의 이야기를 쓰지 못했을까. 그들은 어디에 있는가. 존재하긴 존재하는가. ”- ‘꿈’ 중에서소설 ‘은교’의 유명 작가 박범신(75)의 신작 시집 ‘구시렁구시렁 일흔’(창이있는작가의집)이 출간됐다. ‘구시렁구시렁 일흔’은 희(喜)·노(努)·애(哀)·락(樂)·애(愛)·오(惡)·욕(欲)·그 너머·소설 등 9가지 주제에 140여 편의 시가 담겼다.박범신 작가는 ‘시인을 꿈꾸었던 작가 박범신의 두 번째 시집’이라는 표지글에서 “본래 ‘시인’인 나를 지금이라도 부디 ‘시인’으로 너그럽게 받아주세요”라 고백하고 있다.이 고백은 내적 세계와 외적 세계를 상호 연관시켜 그가 나타내려는 가치를 구현하고자 하는 발로라 할 수 있다.박범신은 오랫동안 소설 문단을 대표해온 인기 작가 중 한 명이다. 1973년 등단해 시적인 문체와 젊은 감수성으로 대한민국문학상, 김동리문학상, 만해문학상 등을 수상하며 최고 작가의 자리에 올랐지만 2016년 성추행 의혹으로 활동을 중단했다.이후 5년 만에 펴내는 작품인 이번 신작 시편들은 대부분 성추행 파문 이후 소설을 쓰지 않고 지내온 시간의 정서와 사유를 응축시킨 것으로 평가된다.박범신은 이번 시집은 독자들에게 일일이 손으로 편지를 써서 전하는 자신의 심정을 담은 것이라고 했다. 그는 “지난 5년 동안 슬픔에만 침윤해 있었던 건 아니고, 그 과정을 통해 나의 인생과 문학을 더 깊이 들여다 볼 수 있었다”고 했다.박 작가는 청년작가와 노인의 위험한 틈새, 거기에서 절로 비어져 나온 오욕칠정의 얼룩들을 나의 항아리에 담았다고 밝혔다. 그는 이번 시집을 통해 독자에 대한 고마움과 독자곁에 있고 싶은 간절함을 전했다.박범신 작가. /은행나무 제공박 작가는 “작가이름 48년, 돌아보면 매 순간이 얼마나 생생한 나날이었던가. 매일 캄캄한 추락 매일 환한 상승의 연속이었다”며 “그 생생한 경계의 먼 길을 함께 걸어준 수많은 독자에게 엎드려 고마울 뿐이다”고 밝혔다.이어 “바라노니 이제 사랑하는 당신들 곁에서 다만 ‘구시렁항아리’로서 깊고, 조용하고, 다정하고, 어여쁘게 늙어가고 싶다”라며 “사람으로서의 내 남은 꿈이 그러하다”(‘제목 이야기’)고 덧붙였다. 그는 또 “시인답게 사는 게 내 평생의 꿈”이었다며, 소설 쓰기의 두려움을 함께 드러냈다. “나는 상처받았고, 그것들은 내게 잔인하고 비루한 폭력에 지나지 않았으며, 그러므로 그것들에 저항할 수 있는 한 가지 길은 스스로 상상력의 우물을 닫아버리는 자멸적 반역이었다는 걸 이해해달라고 말하진 않겠”다며, “좀 더 시간이 필요한 일”일 거라고 속마음을 내비쳤다.박범신 작가는 충남 논산에서 출생했다. 197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여름의 잔해’가 당선된 이후 작가의 길을 걷게 됐다. 명지대 문예창작과 교수, 서울문화재단 이사장, 한국작가회의 자문위원 등을 역임했다. 고향인 논산 ‘와초재’에서 지역민들과의 교류와 창작에 전념하고 있다. 대표작은 ‘은교’, ‘겨울환상’, ‘나마스테’, ‘소금’, ‘겨울 강 하늬바람’, ‘더러운 책상’등이 있다. 등단 30주년 기념 시집이 있긴 하나 정규 시집을 내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1-03-18

법이란 무엇이며, 무엇이어야 하는가?

‘법철학’(교유서가)은 법이란 무엇이며 무엇이어야 하는지, 법은 사회에서 어떤 기능을 하고 정의나 권리, 도덕의 문제와는 어떻게 연관되는지를 간명하게 서술한 법철학 입문서다.인간의 사회적·정치적 생활의 중심에는 법이 있는데, 이 개념이 무엇을 의미하고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를 탐구하는 학문이 법철학이다.이 책은 법과 법체계가 어떤 본질을 가지고 무슨 목적을 위해 존립하는지를 조망한다. 저자 레이먼드 웍스는 이번 개정판에서 법실증주의, 법현실주의, 인권에 관한 최신 이론을 소개하고 로널드 드워킨의 최근 저작까지 조명한다.아울러 법의 본질, 정의, 법적 개념들의 의미를 명료하게 분석하고 법철학적 숙고를 철저하게 밀고 나가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러면서 법철학과 관련되는 네 갈래의 주된 질문을 던진다.첫째로 ‘법이란 무엇인가’라고 물으면서 유명한 자연법론자들과 법실증주의자들을 불러낸다. 현대 법철학의 거장 로널드 드워킨의 기여도 다룬다. 둘째로 ‘권리와 정의란 무엇인가’라고 물으면서 권리론과 정의론을 정립한 대가들을 소개한다. 셋째로는 ‘법만 들여다본다고 법을 이해할 수 있는가’라고 물으면서 사회학의 렌즈로 법을 관찰한 학자들을 소개한다. 넷째로 ‘기존의 법과 법학으로 충분한가’라고 물으면서 법 자체에 대한 비판적 음미와 함께 법과 법학이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려는 논의들을 소개한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1-03-18

사람을 닮은 집… 그곳 사람들의 이야기

“잘생긴 집 앞에 서면 이 집에 누가 살까, 이 집을 누가 지었을까가 궁금해진다. 이유 없이 지어지는 집은 없고 집 안의 모든 요소는 이유 없이 존재하지 않는다. 집은 사람을 닮는다.”‘길모퉁이 오래된 집’(샘터)은 최순우 옛집과 소록도 마리안느와 마가렛의 집, 광양 정병욱 가옥 등 오랜 세월을 견뎌온 전국 31곳의 근대건축과 그곳에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찾아 기록한 에세이다.오래 전 건축가 남편과 함께 떠났던 프랑스 유학시절 백 년 넘는 건물에서 별 탈 없이 살아본 뒤 오래된 집이 불편하고 쓸모없다는 생각에 의문을 가졌던 저자 최예선씨는 이후 우리의 근대건축은 어떠했는지 직접 찾아가서 취재하고 기록하기 시작했고 근대라는 특별한 시기에 세워진 옛 건물들에서 그 이면의 이야기를 찾아내 총 320페이지 분량에 170여 장의 사진과 함께 살뜰히 담아냈다.‘길모퉁이 오래된 집’은 총 4개의 장으로 구성돼 있다.1부는 서울 성북동 최순우 옛집과 소설가 박종화의 평창동 고택, 애국지사 김구 선생의 마지막을 지켜본 경교장, 일제강점기 ‘조선의 건축왕’이라 불리던 정세권에 의해 개발된 가회동·익선동의 한옥마을 같은 서울의 근대건축물이 등장시켜 즐거운 인문 답사의 첫걸음을 인도한다. 작가에 의하면 우리가 아는 한옥의 이미지는 대부분 전통적인 조선한옥이 아니라 1920년대부터 시작된 새로운 형태의 개량한옥에서 비롯됐다. 작가는 일제강점기, 몰려드는 인구를 감당하기 위해 서울에서 더 빨리, 더 많은 집을 필요로 하던 시절로 돌아가 집 구조나 건축양식의 변화가 달라진 생활방식에서 비롯됐음을 설명한다.2부에서는 평생을 소록도 한센병 환자들을 돌보는 일에 헌신했던 두 오스트리아 간호사 마가렛과 마리안느가 머물던 집, 사위인 김지하 시인이 투옥된 후 시댁인 원주로 내려간 딸과 손주를 가까이서 돌보기 위해 이사까지 감행했던 소설가 박경리의 집, 화가의 소탈한 성품을 빼닮은 용인 장욱진 가옥, 부동산 개발논리에 밀려 안타깝게 허물어진 음악가 채동선 가옥 등 집에 깃든 시대의 희로애락이 담담하게 펼쳐진다.3부에서는 누군가의 아픈 마음을 어루만져주던 치유의 공간이 소환된다. 학병에 끌려간 윤동주의 시 원고를 몰래 숨겨두었던 광양 정병욱 가옥, 염부들의 땀과 눈물의 흔적인 인천 소래포구 소금창고, 눈 밝은 독지가의 애정으로 되살아난 인천 대화조 사무소, 식민지 청년 의사의 애환이 서린 군산 이영춘 가옥, 3대에 이어 다른 이의 손길로 재건될 수 있었던 진천 덕산양조장 등 저마다의 사연과 의미를 좇는 발걸음이 한결 가볍다.4부에서는 오래도록 마음이 머물고 싶은 집에 관한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일제강점기 고등어 떼를 찾아왔다가 구룡포에 정착해 살았던 오카야마현과 가가와현의 어민들, 한국전쟁 피난민들이 무덤 위에 지은 판잣집으로 시작됐던 부산 아미동과 감천동의 문화마을, 철도원들의 애환을 기억하는 대전 소제동의 철도관사촌, 건축가 김중업이 살았던 서울 장위동 건축문화의 집 등은 책을 덮고 난 뒤에도 진한 여운과 감동을 남긴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1-03-11

세계 여성 정치인들의 ‘세상을 바꾸기 위한 삶’

영국의 철의 여인 마거릿 대처 수상, 임신 중단 합법화를 이뤄낸 시몬 베유, 버스 승차 거부 운동으로 유명한 ‘현대 시민권 운동의 어머니’ 로자 파크스, 부패한 집권층을 정면 비판했던 케냐의 노벨평화상 수상자 왕가리 마타이, 16년간 독일을 이끈 메르켈 독일 총리…. ‘여성, 정치를 하다’(민음사)는 다양한 배경과 이력을 가진 세계의 여성 정치인 21명의 삶을 조명한 책이다.세상을 바꾸기 위해 분투해 온 여성들의 삶을 복원해내는 작업을 꾸준히 펼쳐왔던 저자 장영은씨는 그들의 성취와 좌절을 톺아보며, 남성적 권력으로 이해되던 정치를 여성적 관점에서 재구성한다.앙겔라 메르켈은 정치를 시작한 이래, 싸움을 회피한 적이 없는 것으로 유명하다. “치고받는 정치 싸움이 재미있었고 상대의 묘책을 눈치 챘을 때 기분이 좋았다.” 좋은 사람은 권력을 멀리한다는 도덕적 통념은 유독 여성에게만 더욱 강하게 작용하기도 한다. 케냐의 노벨 평화상 수상자 왕가리 마타이는 부패한 집권층을 정면 비판하며, 나무를 심는 환경 운동가에서 직업 정치인으로의 변신을 꾀한다. 타이완의 첫 여성 총통인 차이잉원은 선거 패배 후 자신을 정치인으로서 추동하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결국 책임감에서 해답을 얻는다.마거릿 대처는 카리스마와 집요함으로 직업 정치인인 여성이 거의 전무하던 시절 영국의 총리가 됐다. 영국은 말할 것도 없고 전 세계에 미친 그의 영향력은, ‘대처리즘’이라는 용어를 남겼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변화를 가져왔다. 매들린 올브라이트는 미국 건국 이래 최초의 여성 국무부 장관으로 임명되면서 그에 걸맞은 ‘자질’을 갖췄는지 끊임없이 공격받았다. 그러나 그는 공직자로서의 점수는 “가장 가혹하지만 가장 공정한 심판관인 역사가 매겨줄 것”이라는 신념으로 최선을 다했고, 북미관계를 지혜롭게 풀어낸 그의 외교는 역사에 길이 남았다.1858년 태어난 에멀린 팽크허스트와 그의 동료들은 여성에게도 똑같은 한 표를 행사할 권리가 있음을 주장하며, 유리창을 깨고 도로에 몸을 묶고 달리는 말 앞에 몸을 내던졌다. 감옥에도 여러 차례 갇혔다. 1997년 태어난 말랄라 유사프자이는 열한 살의 나이에 여성이 등교하지 못하도록 교육권을 침해하는 탈레반을 직접 비판했다가, 보복성 테러로 가해진 총격에서 살아남았다. 인간이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들을 당연하게 만들기 위한 투쟁은 현재진행형이다. 이들은 결코 멈추지 않는다. 앞선 이의 등을 보며 힘을 얻고, 곁에 선 이의 손을 잡고 일어서며, 다음 세대의 목소리에 귀 기울인다.이 책은 정치를 꼭 정당에 속한 직업 정치인으로서 활동하는 데 한정하지 않는다. 포크 가수 존 바에즈, 세계적인 어린이문학 작가,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독일의 미술가 케테 콜비츠 등 다양한 직업과 배경을 가진, 자신의 자리에서 각자의 방법으로 사회를 바꾸기 위해 노력한 이들의 삶도 훌륭한 정치의 예로 조명한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1-03-11

무례한 세상 속 나를 키우는 요령

‘더 좋은 곳으로 가자’(문학동네)는 50만 부 베스트셀러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법’의 작가 정문정의 신작 산문집이다. 전작이 상처받지 않고 관계의 안전거리를 확보하는 법을 알려주는데 초점을 뒀다면, 이번 신작에는 성장하는 데 꼭 필요한 기본적인 매뉴얼조차 접할 기회가 없어 더 나은 삶을 꿈꿔볼 시도조차 못하는 이들을 위한 일과 생활의 요령이 담겨 있다. 작가는 ‘습관적으로 불행을 선택했던’ 지난 경험을 진솔하게 털어놓으며, 자기연민의 고리를 끊고 함께 ‘더 좋은 곳으로’ 나아가자고 손을 내민다. 그리고 가능한 선에서 최대의 경험을 해볼 것을 권한다. 돈도 시간도 없고, 조언을 구할 지인도 부족하다면 책을 통해서라도 말이다. 그리하여 원망과 슬픔을 뒤로하고 원하는 곳을 향해 씩씩하게 한 발짝 떼는 사람이 되자고 말한다. ‘공정함’이 세대를 막론하고 가장 민감한 이슈가 된 사회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조건이 보잘것없다는 생각이 들 때 우리는 쉽게 세상을 탓하거나 자신의 배경을 책망하게 된다. 이 책은 지치거나 포기하지 않고, 보란듯이, 당차게 나아가기 위한 생생한 생활밀착형 매뉴얼을 담았다. 더 좋은 곳으로 ‘함께’ 가기 위해./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1-03-04

개인숭배 이끌어 권좌에 오른 독재자들

네덜란드 출신 역사학자인 프랑크 디쾨터(60) 홍콩대 인문학 석좌교수의 20세기를 대표하는 독재자 8명의 흥망성쇠를 조명한 책 ‘독재자가 되는 법’(열린책들)이 출간됐다. 디쾨터는 중화인민공화국 수립으로부터 대약진운동과 문화대혁명에 이르는 ‘인민 3부작’으로 한국에도 잘 알려진 학자다. 이번 책에서는 무솔리니, 히틀러, 스탈린, 마오쩌둥, 김일성, 뒤발리에, 차우셰스쿠, 멩기스투 등 20세기를 오싹하게 만든 독재자 8명의 역사를 돌아본다.디쾨터에 따르면, 어떤 독재자도 공포와 폭력만으로 통치할 수 없다. 일시적으로 권좌를 유지할 수는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불가능하다. 독재에도 기술과 연출이 필요하다. 국민으로 하여금 숭배를 이끌어 낸 독재자들, 곧 전제 정치가 합의된 것처럼 가장할 수 있었던 영리한 독재자들은 효과적으로 정적(政敵)을 약화시키고 장기 집권의 길을 닦을 수 있었다.이들 독재자는 세심하게 연출된 행진, 치밀하게 구축한 신비주의 장막, 지도자를 찬양하는 노래와 출판물 등으로 자신의 이미지를 포장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면서 전 국민이 자신을 찬미하도록 부추겼다.디쾨터 교수는 개인 숭배가 독재 정치의 부수물이 아니라, 독재 정치를 떠받치는 핵심 기둥이라고 강조한다. 그렇지만 어떤 독재자도 공포와 폭력만으로 통치할 순 없다. 일시적으로 권좌를 유지할 수는 있지만 장기적으론 불가능하다. 따라서 영리한 독재자들은 특유의 기술과 연출로써 정적들을 약화시키고 장기 집권의 길을 닦아나갔다.뜻밖으로 독재자는 원래 나약한 존재였다는 게 저자의 견해다. 애초부터 대중의 지지가 있었다면 굳이 폭력을 동원해 권력을 취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들이 진짜 두려워한 건 국민이 아니라 언제든 자신의 뒤통수를 치며 자리를 위협할 수 있는 정적이었다.잡은 권력을 놓치지 않기 위해 독재자는 피비린내 나는 숙청, 교묘한 속임수, 각개 격파 등으로 정적들을 제거해 나갔지만, 결국엔 개인 숭배가 가장 효과적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개인 숭배를 통해 측근과 반대파 모두를 약화시킬 수 있어서다. 개인 숭배의 목적은 혼란을 일으키고, 상식을 파괴하며, 개인을 고립시키고, 그 존엄성을 짓밟기 위함이었다. 특히 독재자 칭송을 강요함으로써 모두를 거짓말쟁이로 만들었다.저자는 독재자의 개인 숭배가 대개 비슷한 경로를 따른다고 말한다. 권력을 얻은 뒤 언론을 장악하고, 예술가들과 지식인들이 나팔수처럼 그 영웅 신화에 새로운 생명력을 불어넣도록 하며, 외국 기자 등을 끌어들여 안팎으로 이미지 제고를 꾀한다는 것이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1-03-04

대담 형식 ‘안압지’ 발굴조사 이야기

문화재청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가 경주 안압지 발굴조사 과정에서 있었던 일을 대담형식으로 담아낸 책‘못 속에서 찾은 신라 - 45년 전 발굴조사 이야기’를 최근 발간했다.안압지(雁鴨池)는 삼국통일 직후인 신라 문무왕 14년(674년)에 경주 월성 북쪽의 신라왕궁 후원에 인공적으로 만든 연못이다. 조선 시대에 폐허가 된 이곳에 기러기와 오리가 날아들어 안압지(雁鴨池)라 불렀다. 1974년 내부 준설작업 중 유물이 무더기로 드러나면서 1975년부터 문화재관리국 경주고적발굴조사단(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의 전신)이 발굴조사를 시행했다. 조사 결과 통일신라 때 조성한 인공 연못과 대형 건물터 등이 확인됐으며, 3만여점이 넘는 유물이 출토됐다.‘못 속에서 찾은 신라’는 2015년 안압지 발굴 40주년을 기념해 개최한 ‘안압지 발굴조사, 역사의 그날’ 좌담회에서 나온 이야기를 각색한 책이다. 안압지 발굴 조사과정에 대한 학술적인 내용, 당시 발굴조사자의 흥미로운 이야기와 자료를 함께 담았다.책은 ‘발굴조사의 서막’, ‘1975년 3월 25일, 첫 삽을 뜨다’, ‘물 속에 잠긴 보물들’, ‘발굴현장 일화’, ‘그들의 소망’으로 구성됐다.특히 1975년 출토된 나무배에 관한 이야기가 주목을 끈다. 통일신라의 배가 실물자료로 발굴된 것도 처음이었고 배는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 같은 상태였다. 이 배를 수습하고 해체해 운반해야 했던 어려움과 그 과정에서 생긴 사고, 언론의 관심 등을 비롯해 보존처리 과정까지 사진 자료로 공개해 당시의 현장감을 되살렸다.또 발굴조사 과정, 유구·유물에 대한 고민, 조사자들의 감정과 애환을 담은 발굴야장(조사과정, 출토자료 등을 기록한 수첩)을 원본 그대로 수록했다. 책은 문화재청(www.cha.go.kr) 및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누리집(www.nrich.go.kr/gyeongju)에서 볼 수 있다. /윤희정기자

2021-03-02

맥시조문학회 동인지 40집 발간

맥시조문학회 동인지 40집 ‘허공에 치는 그물’ 표지.전통의 가치와 소중함을 시조 창작으로 이어가고 있는 맥시조문학회(회장 예병태)가 최근 동인지 40집 ‘허공에 치는 그물’을 발간했다.이번 시조집에는 조주환(명예회장), 예병태(회장), 김병래, 김제흥, 강성태, 김우연, 김일용, 김진혁, 박광훈, 서석찬, 원정호, 이경옥, 손수성, 조순호, 조영두, 황무굉 씨 등 16명의 회원 신작 시조 72편과 산문 2편, 연간 활동화보 등으로 엮었다.특히, 맥시조동인지 창간호부터 40집까지 전권 표지 사진과 발간을 자축한 회원들의 기념 휘호를 화보로 싣고, 최근 지역 일간지에 꾸준한 저널활동을 펼치고 있는 김병래, 강성태 등 2명의 회원이 쓴 ‘시조와 산문’ 칼럼을 함께 실어서 이채로움을 더했다.예병태 회장은 책머리에서 “유례없는 코로나19가 인간의 삶의 방식을 완전히 변화시켜 놓은 상황에서도 우리 회원들은 여타의 시조 동인지에 좋은 시조를 발표하고, 한국가사문학 대상 수상, 언론사 기고 등의 왕성한 활동으로 희망과 따스한 위로를 전해왔다”며 “언어의 정수이자 시의 전범인 ‘시조’를 더욱 사랑하고 보급, 발전시키기 위해 회원들 모두 끊임없이 항해할 것”이라고 강조했다.한편, 맥시조문학회는 1979년 창립 이후 매년 동인지를 내는 등 회원 모두가 치열한 시정신을 바탕으로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계승, 발전시키려는 문학적 소신을 갖고 시조 계승에 든든한 버팀목 역할을 해나가고 있는 경북지역의 대표적인 시조문학단체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1-03-01

“당신의 키워드는 무엇입니까”

외로움, 사랑, 미래, 신, 죽음, 정체성….누구나 살면서 한 번쯤은 이런 가치와 철학적인 질문에 고민해 본다. 최근 들어서는 일상적인 인생의 사실과 감정 외에도 팬데믹과 같은 현실을 두고 끊임없이 해답을 찾기도 한다.뇌과학자인 김대식 카이스트 교수는 최근 발간한 저서 ‘김대식의 키워드’(김영사)에서 그런 34개의 키워드를 중심으로 사유한 결과물을 첨단 신경과학과 고대 문헌을 넘나들며 펼쳐 내놓는다.‘키워드’는 두 가지 뜻이 있다. 1) 어떤 문장을 이해하거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가 되는 말, 2) 데이터를 검색할 때 필요한 정보를 빨리 찾아내기 위해 사용하는 단어나 기호 등이다.연구, 교육, 저술, 강연 등으로 방대한 지식과 깊이 있는 통찰을 보여온 김대식 교수는 이 책에서 ‘외로움:마음의 지하실’, ‘팬데믹: 인류의 동반자’, ‘미래: 우연과 필연, 질서와 무질서’, ‘신:신은 정말 죽었나’ 등 우리의 생각과 세상을 좌우하는 34개의 열쇳말을 제시하고 과학과 철학, 예술, 신화, 역사에서 소재를 빌려 명쾌하게 풀어내면서 이 시대의 인간과 사회의 문제에 대한 논리적이고 지혜로운 대답을 끌어낸다.각 꼭지는 대개 명화로 시작한다. 수록된 약 60점의 회화, 사진 중에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223쪽, ‘오리지널’)나 미켈란젤로의 ‘아담의 창조’(266쪽, ‘신’)처럼 유명한 것도 있고, 막스 베크만의 ‘밤’(134쪽, ‘악’)과 ‘출발’(243쪽, ‘역사’), 히에로니무스 보스의 ‘쾌락의 정원’(187쪽, ‘괴물’)처럼 불편하거나 낯선 작품도 있다. 이 시각자료들은 각 키워드를 풀어나가는 실마리나 상징으로, 때로는 부조리한 인간의 모습을 나타내는 메타포로 작동하기도 하며 보는 즐거움과 함께 찬찬히 읽을 여유까지 제공한다.코로나19 시대를 반영한 듯 ‘외로움’이란 키워드에선 “많은 사람이 자가격리에 들어간 오늘날 사랑하고 걱정하기에 역설적으로 사랑하는 사람들과 사회적 거리를 둬야 한다”고 말한다. 외로움을 표현한 미국의 화가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도 예로 들며 “홀로 남아 차를 마시며 나만의 생각에 빠져 버린다”고 고백한다.저자는 “외롭지 않기 위해 끝없이 노력하고 발전하는 게 인류”라며 “과학과 문명이 발전하면 발전할수록 더 외로워져야 하는 역설적 존재가 바로 우리 호모 사피엔스”라고 강조한다.‘팬데믹’이란 키워드에선 6세기 유스티니아누스 전염병, 스위스의 화가 아르놀트 뵈클린의 그림 ‘페스트’ 등을 설명하면서 “많은 불행과 행복은 사실 아무 이유 없이 일어난다. 인과관계와 거리가 멀다”는 의견을 전한다.책은 “감염병과 바이러스는 인류의 영원한 동반자였다”며 “이번 팬데믹도 극복할 것이지만 이데올로기와 기도를 통해서는 아니다. 과학과 기술의 발전을 통해서만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키워드 ‘미래’는 우연과 필연, 질서와 무질서의 이야기를 다룬다. 우주에 있는 모든 입장의 정확한 위치와 운동량을 알고 있는 존재가 있다면 과거와 현재, 미래까지 예측할 수 있다는 추론으로까지 나아간다. 다만 양자역학의 근본적 법칙인 불확정성의 원리 등을 제시하며 과학적으로 불가능하다는 해석도 덧붙인다.‘신’이란 키워드에선 “신은 죽었다”고 표현한 독일의 철학자 니체가 언급된다. 물리, 화학, 생물학 등 과학 분야를 거론하며 “아브라함의 신 없이도 인류는 세상을 설명하고 예측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또 “신은 불안과 공포로 가득한 나약한 우리 인간의 위안일 뿐”이라고 주장한다.물론 진화론과 양자역학, 상대성이론, 분자생물학, 뇌과학이 사람들의 불안을 없애줄 수 있는 건 아니라고 인정한다. 이런 생각을 토대로 스스로 신이 되는 방법은 어떨지 제안하기도 한다. 팔다리뼈를 초강력 탄소복합 소재로 바꾸고, 100년을 못사는 사람의 몸을 유전적으로 개선하며, 아픈 기억을 지워버리는 방법 등을 상상한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1-02-25

절망 않되 희망 없는… 저항하는 시 정신의 향연

이산하 시인‘나를 찍어라./ 그럼 난/ 네 도끼날에/ 향기를 묻혀주마.’(시 ‘나무’ 전문) 제주 4·3항쟁의 진실을 알게 된 이후 27세에 쓴 장편 서사시 ‘한라산’으로 옥고를 치렀던 이산하(61) 시인이 최근 펴낸 시집 ‘악의 평범성’(창비)에 수록된 시다.‘악의 평범성’은 99년 펴낸 자신의 두 번째 시집 ‘천둥 같은 그리움으로’ 이후 22년 만에 펴낸 신작 시집이다.시를 쓰고 발표했다는 이유로 국가보안법으로 옥고를 치러야 했던 엄혹한 시절을 통과한 시인은 어느새 노년을 맞이했다. 자신이 맞닥뜨렸던 불의와 불합리와 부정했던 세상은 이제 한결 보드랍고 온화하고 민주적인 표피를 갖췄지만, 양상과 방식이 달라졌을 뿐 여전한 불의와 불합리와 부정투성이다.‘적’의 정체가 분명했던 시절에 격렬히 저항했고, 그러면서 안팎으로 상처를 입으며 벼렸던 시인의 날 선 시선과 감성은 겉으로는 안온한 일상으로 포장됐다. 신작 시집에는 그런 그가 오늘날의 ‘적’을 만나 어떤 화학작용을 일으켜 어떻게 다시 빛을 발하는지 확인할 수 있는 시편들이 빼곡하다. 자신을 찍을 도끼날에 오히려 향기를 묻혀주겠다는 ‘나무’의 자세로 시를 쓰는 시인 이산하. “‘희망’이라는 단어가 하나도 없다”는 그의 이번 시집은 아직도 열렬하게 살아 있는, 저항하는 시 정신의 향연으로 읽힌다.광주항쟁의 피해자를 비아냥하고, 세월호 사건 피해 학생을 조롱하는 듯한 SNS의 글에 환호하는 이들이 “모두 한 번쯤 내 옷깃을 스쳤을 우리 이웃”임을 알기에 “가장 보이지 않는 범인은 내 안의 또 다른 나”(‘악의 평범성1’)라는 사실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악’은 결코 비범하지 않고 지극히 평범하기에 어쩌면 더 악랄해지고 지독해졌으리라. 이런 ‘악’을 양산하는 사회구조는 비정규직을 차별하고 노동을 천시하는 변질된 자본주의의 모순을 기반으로 한다. “자본주의는 위기 때마다 새로운 가면을 쓰며 폭주하고 있다./맑스의 자본론이 오히려 예방주사가 되었는지도 모른다”(‘엥겔스의 여우사냥’)는 시인의 통찰이 눈을 번쩍 뜨게 만든다.해설을 쓴 김수이 평론가의 말대로 이산하의 이번 시집은 “최근 시단에서 찾기 힘든, 거시 역사와 인간의 본성을 탐구하는” 시집이다. 김 평론가는 이 시집이 세 가지 유형의 바퀴를 그린다고 해석한다.첫째, 역사를 움직이는 동력으로서의 수레바퀴로 ‘자본론과 진화론’(‘엥겔스의 여우사냥’)으로 대표되는 바퀴이다. 둘째는 역사를 피로 물들여온 악의 평범성, 즉 인간을 살상하는 끊임없는 폭력의 바퀴로 “한국전쟁 때 미군 지프에 깔려 죽은/북한 인민군들 머리와 몸의 바퀴 자국이 마치 지퍼 무늬 같다고 해서”(‘지퍼헤드2’) 생긴 ‘지퍼헤드’라는 표현으로 상징된다. 셋째, 꿈과 신념이 잿더미가 된 세상에서도 인간이 두 손으로 굴리는 삶의 바퀴이다. “두 바퀴를 두 손으로 직접 굴리는 이 휠체어는/천천히 손에 힘을 주는 만큼만 바퀴 자국을 남긴다”(‘산수유 씨앗’)에서 휠체어 바퀴 자국은 앞세대와 뒷세대, 과거와 현재가 어떻게 이어져야 하며, 인간이 어떤 자세로 살아가야 하는가를 알려준다고 해석한다. 타인과 함께하는 발걸음이다.포항 출신인 이산하 시인은 경희대 국문과를 졸업한 뒤 1982년 필명 ‘이륭’으로 ‘시운동’에 연작시 ‘존재의 놀이’를 발표해 등단한 뒤 시집 ‘한라산’, ‘천둥 같은 그리움으로’, 번역시집 ‘살아남은 자의 아픔’, ‘체 게바라 시집’ 등을 펴냈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1-02-18

진정한 어른이 가져야 할 교양… 5가지 개념 ‘생각의 기술’로 풀어내

‘어른의 교양’(21세기북스)은 기술 정책학자이자 기업의 위기관리 전문가가 쓴 어른을 위한 교양서다.어른의 교양이란 나이를 벗어나 진정한 어른으로서 품위를 갖추고자 하는 사람이 쌓아야 할 최소한의 소양이다. 시시각각 변하는 세상의 평판이나 분위기 속에서도 자신의 머리로 사유하고 행동할 수 있는 ‘생각의 기술’이야말로 어른이 가져야 할 교양이다.저자 천영준 씨는 ‘어른의 교양’을 통해 철학, 예술, 역사, 정치, 경제 등 5가지 개념을 ‘생각의 기술’이라는 인문학적 관점으로 풀어 설명해준다.남과 다르게 생각하는 법(철학)부터 새로운 콘텐츠를 만드는 법(예술),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 법(역사), 사람의 마음을 얻는 법(정치), 인간의 심리로 부의 흐름을 읽는 법(경제)까지 불확실한 세상에서 흔들리지 않을 나만의 지적 무기를 찾는 여정이다. 이 여정에서는 소크라테스에서 애덤 스미스까지 희대의 사상가 30인의 삶과 생각을 만나 볼 수 있다.실패를 두려워하기보다 전략적 비관의 기술을 익히라고 외친 세네카, 자신만의 시선과 기법으로 찰나의 순간을 포착한 호크니, 유산계급 출신임에도 노동자의 현실을 외면하지 않은 마르크스, 경제 현상을 받아들이는 군중 심리의 중요성을 증명한 실러 등 이 책에서 다루는 생각의 거장들은 절대 지름길이나 편법을 허용하지 않는다.저자는 “정신의 허벅다리에 근육을 붙이고 제 길로 정상까지 오라”고 요구한다. “너 자신의 생각을 단단하게 만들어서, 그 힘으로 일어서라”고, “누군가의 위로에 의지하는 아이가 아니라 ‘진짜 어른’이 되라”고 말한다. 또 ‘현대의 고전으로 남을 만한 거장’으로 영국 실용주의 정치의 대표인 토니 블레어 전 총리,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행동경제학의 거두인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다니엘 카너먼을 꼽는다. 이들이 실생활 문제를 풀어나가며 적용한 생각의 기술에 대해 풀이한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1-0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