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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무엇 하나 건드리지 않고 세상을 건널 수 없을까?

이희정 시인 내 너무 별을 쳐다보아별들은 더럽혀지지 않았을까. 내 너무 하늘을 쳐다보아하늘은 더럽혀지지 않았을까. 별아, 어찌하랴.이 세상 무엇을 쳐다보리. 흔들리며 흔들리며 걸어가던 거리엉망으로 술에 취해 쓰러지던 골목에서 바라보면 너 눈물 같은 빛남가슴 어지러움 황홀히 헹구어 비치는이 찬란함마저 가질 수 없다면나는 무엇으로 가난하랴. -이성선 ‘시전집’(시와시학사, 2005) 중 ‘별을 보며’ 전문“과학은 배우는 사람을 위해서 존재하고, 시(詩)는 알고 있는 사람을 위해서 존재한다”는 루소의 말은 한 시인을 불러온다.이성선(1941∼2001) 시인은 별을 그리워하며 하늘을 기웃거리며 산 시인으로 하늘의 달과 별과 구름과 바람의 친구였던, 말하자면 우주의 시인이다.지상이 어두울수록 낮은 자리에서 바라보는 별빛은 더 맑고 깊은 것인가. 좁게 이어진 처마 사이 총총거리는 별들이 눈시울 붉히는 밤이 있다.“흔들리며 흔들리며 걸어가던 거리 / 엉망으로 술에 취해 쓰러지던 골목에서” 그는 별을 바라보며 눈물 흘린다. 이어 “가슴 어지러움 황홀히 헹구어 비치는 / 이 찬란함마저 가질 수 없다면 / 무엇으로 가난하랴”는 고백처럼 그는 남의 앞자리에서 서거나 자신을 내세우는 일 혹은 어딘가에 소속되어 남들이 다 보이는 단(壇)에 서는 일을 싫어했다. 그에게 시는 그 원초적 생명에 다가가는 길이며 우주와 조화로운 합일을 꿈꾸는 삶 속에서 피어난 별이다.어느 시대든 시인에게 있어서의 세상은 만족스럽지도 정의롭지도 않다. 인간들의 세속적인 욕망으로 어지러운 세태는 원망과 절망의 대상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현실에 대한 시인의 거부 정신이 이상향인 별을 꿈꾸게 한다.우주와 자연 속에서 생명의 존엄과 가치를 추구했던 시정의 소유자, “시혼이 너무 맑아 유리 보석처럼 반짝이던 설악의 시인”이라 불리는 이성선 시인의 ‘별을 보며’는 시인이 동경했던 풀과 달과 벌레와 더불어 선(仙)의 세계에 닿아 있다. 이 작품에 등장한 ‘별’과 ‘하늘’은 우주이면서 영혼이다. 한편으로 시적 자아가 전이(轉移)된 대상이다. 그렇게 하늘이나 별처럼 초연하고 자연과 합일코자 하는 시인의 선망이 두 대상을 통해 간접적으로 투영된 것으로 볼 수 있다.“얇은 시집 ‘별이 비치는 지붕’에는 별이라는 낱말이 무려 39번 나온다. 현대라는 다원화된 구조 속에서 아직 시인이 별을 헤아리고 있음은 시대착오 아닐까요?”라고 묻던 박명자 시인과의 우정어린 대화는 세속의 우리를 향한 반문이다.너무 쉽게, 너무 빠르게, 너무 가볍게 버려지는 것들이 많은 세상이다. 편리에 따라 쓰다 버린 것들이 넘쳐 그림자처럼 깔리는 시대에 하늘에 떠 있는 별을 쳐다보기조차 조심스러웠던 시인. 어느 것에도 오염됨이 없어야 별을, 하늘을 떳떳하게 바라볼 수 있을 거라고 말한다. 시를 읊을수록 무엇이든 아끼는 것이 없는 세상에 인간으로 태어난 것이 부끄러워진다. 지상에 별을 노래한 수많은 시들 중 가장 격조 높은 시정을 아름답게 투영한 시 앞에 숙연해질 수밖에. 지상이 거칠고 소란스러워 “별을 너무 쳐다보아 더럽혀지지 않았을까.” 염려했던 시인이 살기엔 세상은 너무도 상처 많고 벅찬 곳이었을까. 풍진의 8, 90년대를 건너오며 외롭고도 서럽게 별을 노래한 시인의 눈빛은 저 밤하늘의 별이 되어 찬란하게 빛나고 있다. 몸은 지상에 묶여도 마음은 하늘에 살고자 했고 바람으로 울어도 영혼은 저 하늘에 별로 피어나리라 염원했다.사람과 생명이 있는 그 모든 곳, 어디서든 별을 볼 수 있어 눈이 맑아지면 좋겠다.

2023-02-05

중대 선거구제 선거법 개정은 언제 할 것인가

배한동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 한국 정치의 고질병인 여야의 극한 대립이 계속되고 있다. 팬덤 정치와 진영정치를 넘어 상호 저주의 극한 정치로 치닫고 있다. 현행의 소선거구제는 승자 독식으로 선거의 대의성을 상실했으나 대통령 5년 단임제와 결합하여 극한 대립 정치의 온상이 된 지 오래다.이러한 정치를 극복하기 위한 최소한의 방안으로 선거구 개정문제가 제기되었다. 대통령과 국회의장단의 만찬에서 대통령이 먼저 선거구 개편과 개헌 문제를 제안하였다. 무척 환영할만한 일이다. 야당 출신 국회의장이 이에 적극 호응하면서 앞장서고 있어 다행한 일이다. 그러나 눈만 뜨면 야당의 이재명 검찰 소환과 장외 투쟁, 여당의 윤심 팔이 경쟁과 이전투구로 한 치 앞을 전망하기 어려운 정국이다. 여야 모두 승자 독식과 사표 방지를 위한 선거법 개정의 총론에는 합의하겠지만 각론에서는 수많은 장애물이 가로 놓여 그 길은 멀고도 험하다.우선 예상되는 장애물부터 살펴보자. 중대 선거구제로의 개정론자들은 국회의원 수를 늘려야 한다고 제안하고 있다. 우선 지역구 의원은 그대로 두고 비례 대표 의원 수를 20∼30명을 증원하면 된다는 주장도 있다. 이는 의원들이 적극 찬성할지 몰라도 이를 보는 국민의 여론은 싸늘하다. 싸우는 동물국회를 넘어 일하지 않는 식물국회로 국회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이 강한 결과이다.오히려 일부에서는 의원 정수를 줄여야 한다는 주장까지 대두되고 있다. 이를 피하기 위해 방편으로 의원 정수는 늘리되 국회의원의 예산 총액은 임기 중 동결하자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그러나 국회의원들의 이러한 약속이 온전히 지켜지리라고 믿는 국민은 아무도 없다.지금까지 의원 세비 인상 등 그들의 특혜 안에는 여야 구분없이 찬성했기 때문이다. 최근 지방의회 지방의원들마저 국회의원들의 관행을 본받아 수시로 의정비를 인상하고 있다. 의원 정수 증원 문제는 국민적인 저항을 피하기 어려운 첫 번째 장애물이다.중대선거구제의 구체적 선거구 확정내용은 의원들의 이해가 충돌되는 가장 큰 장애물이다. 소선거구 제하의 승자 독식 선거는 무려 48.5%의 사표로 인해 선거의 대표성과 효능 성마저 상실하였다. 1등뿐 아니라 여러 명의 당선자를 동시 선출하는 중대선구제는 이를 방지하기 위한 매우 타당한 제안이다.그러나 선거구 개정 문제는 의원들의 정치 생명이 직결된 문제로 그 해결이 결코 쉽지 않다. 현직의원들이 자기 지역구를 포기하고 선거구 조정에 선뜻 찬동하기는 더욱 어렵기 때문이다.더욱이 공천이 바로 당선으로 연결되는 영호남 의원들이 이를 수락할지는 의문이다. 일부에서 해법으로 도농 복합 선거구제를 제안하지만 이 역시 현대판 게리맨더링이 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므로 현직 의원들의 기득권 확보는 국회 정개특위마저 마비시킬 수 있다. 더 본질적인 문제는 선거구 개편만이 다당제로 직결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오히려 과거처럼 위성 정당, 사이비 정당, ‘사꾸라’ 정당의 양산을 우려하는 사람도 많다.이번 선거법 개정과 동시에 제기되는 헌법 개정안제안은 선거법 개정 자체를 무산시킬 가능성이 높다. 헌법 개정의 골자는 현행 헌법 대통령 5년 단임제를 4년 중임제로 개정하여 대통령 권한을 분산시켜야 한다는 점이다.37년 전 만든 87년 헌법은 국민 여론뿐 아니라 학계에서도 개정의 당위성은 인정한다. 특히 1986년 국민소득(GNI) 286만원 시대에 만든 헌법이 4천200만원 시대에 부합되지 않는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있다.그러나 이 역시 원론에는 찬성하지만 그 절차와 시기, 내용에는 아직도 의견이 분분하다. 역대 대통령이 개헌문제를 제기했지만 성사되지 못한 주요 이유이기도 하다. 더욱이 여야가 극한 대립된 현 상황에서 선거구 개정 하나도 어려운데 개헌문제까지 첨가하면 문제는 더욱 복잡해 질 수밖에 없다.현행 선거법 개정 시한은 4월 초이다. 앞서 본 바와 같이 소선거구 폐지라는 선거법 개정 총론에는 찬성하면서도 각론에는 수많은 장애물이 도사리고 있다.현실적으로 야당은 이재명 대표의 검찰 소환과 장외 투쟁 문제로 여당은 3대 개혁 관철 문제와 3월 8일 당대표 선출 문제로 선거구 개정 문제에는 관심이 없는 듯하다.어려운 상황이지만 여야는 우선 선거법 개정 문제를 큰 틀에서 4월 초까지 합의하고 세부안은 9월 정기 국회에서 통과하길 바란다. 선거법 개정과 개헌 문제는 대통령의 확고한 의지보다 여야 정치권의 합의가 전제되어야 한다.화해 분위기 조성을 위해 대통령과 정당 대표간의 대화의 채널부터 복원되어야 한다. 여야 정치 지도자 간의 대화가 순조로울 때 여야 정치권의 대결도 시민사회의 극한 대립도 완화될 수 있다. 선거법 개정은 여야가 국회에서 우선 합의하고, 헌법 개정문제는 내년 총선의 어젠다로 넘기는 것이 일의 순리일 것이다.

2023-02-05

봄은 온다

이원만 맏뫼골놀이마당 한터울 대표 봄은 꽃을 많이 보라고 봄이다. ‘솟아오른다’는 뜻을 가진 ‘spring‘이라는 단어처럼 사방에서 생명의 기운이 솟아오르는 것을 많이 보라고 봄이다.계곡의 얼음이 녹으면서 졸졸 소리를 내며 다시 흐르고 뭔가 지구의 보일러가 돌아가는 소리가 나면서 식물들이 싹을 틔우고 동물들이 긴 겨울잠에서 깨어나 활동을 다시 시작하는 천지의 생기 가득함을 보라고 봄이다. 그것을 보면서 사람도 그 기운으로 한 해를 시작하자고 봄이다.올 해의 봄은 우크라이나에 가장 먼저 찾아가면 좋겠다. 미사일 대신 종전이라는 소식을 물고 새들이 다시 찾아갔으면 좋겠다. 기후혼란도 감당하기 힘든데 집이 파괴되고 전기와 물이 끊겼다.최대의 밀 곡창지대인 들판은 봄을 맞을 준비가 돼 있는데 씨를 뿌리지 못하고 있다. 봄이 가장 먼저 찾아가야 할 곳이다. 새들이 다시 찾아와 둥지를 짓는 것을 보고 파괴된 집을 다시 짓고 피어나는 꽃들을 보며 웃음을 되찾고 녹아서 다시 흐르는 강처럼 수도가 전기가 그들의 평화로운 일상이 다시 봄처럼 찾아왔으면 좋겠다.에너지 가격이 치솟아 전기장판으로 겨울을 견디는 이웃들이 많다. 난방비를 제대로 보조해서 겨울의 끝자락을 견뎌내고 봄을 맞았으면 좋겠다. 한시가 급한 탄소제로라는 인류의 목표는 전쟁 앞에서 점점 사라지는 구호가 되었다.재생에너지의 강국이라는 독일이 석탄을 사용한다는 기사를 본적이 있다. ‘기후혼란’에 대응하는 ‘지구의 봄’은 영영 오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전쟁이 끝나고 그 전쟁으로 이익을 본 철면피들이 드러나 지구의 봄을 빼앗아간 그들의 탐욕에 재갈을 물렸으면 좋겠다.롱 코로나 팬데믹의 긴 터널을 벗어나 마스크를 벗는 일상이 허락되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마스크를 벗지 않고 있다. 문학평론가 신형철의 ‘인생의 역사’에서 읽은 어느 일본시인이 쓴 시 구절이 생각난다. 입을 가리고, 코를 가리고, 세상에서 나를 가리지 않을 만큼만, 간단한 자살을 하자.아이들은 코로나 펜데믹의 기간 동안 ‘간단한 자살’을 경험했다. 전쟁이 난 것도 아닌데 거리에 차가 없는 풍경을 보았고, 학교를 가지 못했고, 집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사랑의 온기가 식어버리는 것을 몸소 체험하였다. 마스크를 벗은 친구의 얼굴을 보고는 누군지 헷갈려하고 마스크를 끼면 바로 알아보는 이상한 감각의 소유자들이 되었다.어렵사리 영상으로 공부도 하고 책도 보고 그래도 시간이 남아서 친구들과 휴대폰으로 거리두기 대화를 하고 있으면 ‘휴대폰 좀 그만하고 공부하라’고 한다. ‘기, 승, 전, 공부’의 공식은 코로나에도 강력한 면역력을 가졌다는 것을 아이들은 알았다.코로나시기에 세탁하는 방법과 양말과 팬티를 제대로 개는 것을 배우고, 요리도 배우고, 산책을 하면서 동네의 골목골목도 알고, 어떤 나무들이 새들이 함께 살아가고 있는지를 배웠다는 몇몇 친구들의 이야기는 공상소설 같았고 대부분의 아이들은 무방비로 롱 코로나의 우울증에 노출되었다.가족 이외의 타자를 만날 길이 막혀 어떻게 사람들을 만나야 하는지 불안해한다. 모든 것에서 ‘거리두기’를 했으니 당연하다. 문학평론가 신형철은 ‘조심操心’이라는 단어가 ‘손으로 새를 잡은 마음’이라고 했다. 아이들이 ‘거리두기를 하지 않고 ‘마음 두기’를 했으면 한다. 조심조심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봄이 되기를 바란다.봄이 왔는데도 봄을 느낄 수 없는 이들이 있다. “이대로 가난하게 살다가 죽는 일이 삶이라면 뭐 별거 있나 나 혼자 조용히 있는 듯 없는 듯 살다가 싫증이 나면 죽는 거지”젊은이들에게는 졸업을 해도 인생의 봄은 오지 않는다. 코로나이전부터 그랬다. 세상이 봄이 아니라면 봄을 만들어야 한다. ‘절망은 왜 대량생산되어서 공급이 줄지 않는 것일까?’ 주저앉지 말고 분노를 조절하지 말고 조준해야 한다. 봄은 그렇게 만들어서라도 맞이해야 한다.춥다. 새벽에 일어나 보일러의 온도를 높이려다가도 선뜻 손이 가지 않는다. 그래서 더 춥다. 솟아오르는 것이 새싹이고 꽃이고 활기찬 새들을 바라보는 봄이었으면 좋겠는데 온통 얇은 지갑을 노리며 스프링처럼 솟아오르는 물가소식만 가득하니 세상의 봄은 오기나 할까?그래도 산길을 걸으면 여지없이 봄이 오고 있다. 여린 연두 빛의 잎을 내미는 가지들, 벌써 꽃을 내민 매화들이 있다. 왠지 모르게 날아가는 새들의 날개짓이 활기차 보인다. 새들이 활발하게 날아다닌다는 것은 다른 동물들도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증거다. 우리가 모르는 사이, 우리가 혹독한 겨울에 주눅 들어 있는 사이에도 자연은 봄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 봄기운을 찾아 세상의 봄날을 준비하는 기운으로 쓰자. 봄이다. 꽃피는 것을 보라고 우리 옛 분들이 이름 붙여준 봄이다.봄은 온다. 태양은 지구와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 우리의 삶도 그렇게 뭔가 따뜻한 것이 가까워지는 봄이었으면 좋겠다.

2023-02-05

통합신공항을 ‘박정희 공항’으로

홍석봉 대구지사장 태평양 전쟁 당시 미국 해군의 전투기 조종사인 에드워드 헨리 오헤어는 여러 대의 일본 전투기를 격추시키고 항공모함을 지켜낸 영웅이다. 오헤어의 고향인 시카고 시민들은 오헤어의 뛰어난 공적을 기리기 위해 1949년 미국 중서부에서 가장 큰 국제공항인 시카고의 ‘오차드 디포트 공항’을 ‘오헤어(O’Hare)국제공항’으로 이름을 바꿨다.오헤어의 아버지 에드워드 조셉 오헤어는 악명 높았던 시카고의 마피아 두목 알 카포네의 변호사였다. 조셉 오헤어는 온갖 범죄의 온상인 알 카포네를 감옥에 가지 않도록 지켜주었다. 하지만 그는 아들에게만은 어둠과 악의 굴레에서 벗어난 깨끗한 가문과 빛나는 이름을 남겨주기로 결심했다. 알 카포네의 범죄사실을 사법당국에 고발했다. 조셉 오헤어의 증언과 증거자료에 의해 알 카포네 일당이 소탕되고 시카고는 범죄도시의 그늘에서 벗어나 안전을 되찾았다. 조셉 오헤어는 그해 말 마피아에 의해 생을 마감한다. 그는 자신의 목숨 대신 아들에게 정의감을 일깨워 주었다. 아들 오헤어는 시카고 국제공항과 함께 불멸의 이름을 남겼다.우리나라는 인천공항, 김포공항, 대구공항처럼 공항 이름은 지역 명을 따르는 게 일반적이다. 한·중·일 3국은 지명을 사용한다. 반면 외국은 대부분이 유명한 사람의 이름을 따왔다. 나라에 큰 영향을 끼친 정치인들의 이름이 많다. 화가나 음악가 등 예술인의 이름을 붙이기도 한다. 뉴욕의 존 에프 케네디 공항, 파리의 샤를 드골 공항, 베트남의 호치민 공항, 울란바토르의 징기스칸 공항, 로마의 레오나르도 다빈치 공항, 바르샤바의 쇼팽 공항 등이 대표적이다. 사람 이름을 붙이지 않은 공항을 찾기가 더 어려울 정도다.국민의힘 당권주자인 김기현 의원이 “경북·대구 통합신공항 명칭을 ‘박정희 공항’으로 만들어 박정희 전 대통령을 기억하게 해야 한다”고 주장, 통합신공항 작명에 불을 붙였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우리나라 근대화의 기틀을 세우고, 고도성장의 발판을 마련한 ‘근대화의 영웅’이란 점에서 ‘박정희 공항’으로 이름 붙이자는 것이다. 홍준표 대구시장도 같은 주장을 수차례 했다.대구경북지역의 ‘박정희 공항’은 국민을 가난에서 벗어나게 하고 세계 10대 경제대국의 토대를 만든 지도력을 기린다면 그 의미가 세계 속의 한국 브랜드와도 부합된다. 오헤어 공항의 이름을 넘어서는 국제공항이 될 수가 있다. 거기다가 통합신공항은 박 전 대통령 생가가 있는 구미 상모동과도 가깝다.대구경북 통합신공항특별법의 국회통과를 눈앞에 두고 있다. 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하면 통합신공항 건설이 본격 추진될 것이다. 이제 새 공항의 이름을 지을 때다. 기왕이면 대구경북의 자긍심이자 한국 근대화의 영웅인 박정희 전 대통령의 이름을 붙인 국제공항을 만들자. 세계 속의 주역으로 우뚝 선 한국과 그 신화의 주인공 박정희를 기념하는 것은 대구경북의 자부심을 높이는 계기가 될 것이다. 이참에 광주 공항도 ‘김대중 공항’으로 명명하면 더욱 의미가 깊을 것이다. ‘박정희 공항’의 비상을 기다린다.

2023-02-02

정월 대보름

우정구 논설위원 오는 5일은 정월 대보름날이다. 한해 첫 보름이자 보름달이 뜨는 날로 음력 1월 15일을 가리키는 날이다. 우리나라 세시풍속 중 보름달이 가지는 의미는 매우 크다.추석명절도 보름날을 기준으로 하지만 정월 대보름은 옛날부터 설날만큼이나 비중이 높은 날로 여겼다. 세시풍속기에 따르면 1년동안 우리민족이 지내는 세시풍속 행사가 대략 189건에 이른다. 그 중 정월 한달동안 지내는 세배나 설빔 등과 같은 세시풍속이 78건에 이르러 거의 절반에 가깝다. 78건 가운데는 40여 건이 보름날과 관련한 행사라고 하니 우리민족에게 대보름은 매우 친근한 의미다.정월 대보름날 치러지는 행사를 대략 손꼽아 보면 달맞이, 달집태우기, 줄다리기, 지신밟기, 쥐불놀이 등의 민속놀이와 함께 부럼깨물기, 귀밝이술 마시기, 나물먹기, 오곡밥 먹기 등등이 있다.고래로 인류에게 태양과 달이 주는 영향은 매우 컸다. 해를 보면서 하루를 시작하고 달을 보면서 하루를 끝맺기 때문이다. 태양을 남성, 달을 여성에 비유한다. 농경민족인 우리는 달을 풍요의 상징으로 여겼다. 정월 보름달은 이런 주술적 믿음이 절정에 달하는 날로 생각한 것이다.정월 대보름날 행하는 큰 행사 중 하나인 달집태우기는 보름달이 떠오를 때 시작하는 대보름 행사의 대표다. 생솔가지와 나뭇더미를 쌓아 달집을 지어놓고 보름 달빛 아래 불을 질러 제액초복(除厄招福)을 기원한다. 달집을 태우면서 그해 풍년을 기원하기도 하고 마을의 질병과 잡귀가 없기를 바랬다고도 한다.코로나 사태로 3년간 쉬었던 달집태우기 민속행사가 올해는 곳곳에서 다시 재현된다. 코로나 잡귀가 물러나고 경제적 풍요가 찾아오는 한해가 되길 간절히 바라본다. /우정구(논설위원)

2023-02-02

마스크를 벗는다

윤영대 전 포항대 교수 이제 마스크를 벗는다. 코로나19라는 뜬금없는 병균이 우리의 일상에 퍼지면서 2020년 10월 13일부터 다중이용시설을 중심으로 마스크 착용을 의무화했고 11월부터는 과태료까지 부과하며 강화했었는데, 2년 3개월 만인 1월 30일에 해제되고 권고로 전환됐다. 참 기다려왔던 반가운 조치다. 그러나 아직 버스와 지하철 등 대중교통뿐만 아니라 병원과 약국, 요양병원 등 감염 취약시설 등은 제외이다. 국립보건연구원이 밝힌 자료를 보면 우리 국민 10명 중 7명이 코로나 감염 경험이 있고 코로나 항체보유율은 99%에 육박하지만 항체는 시간이 갈수록 감소한다고 하니 재감염도 우려해야 한다.마스크 해제 이틀이 지난 2월 1일 전국확진자는 2만420명으로 증가했고 누적 확진자는 약 3천20만 명으로 심각 상태는 여전하다. 이러한 사실을 고려해서 다음 주 개학하는 각급 학교는 봄방학까지는 마스크를 쓰고 3월부터 벗자고 권고하며 학생들의 자유로움에 안전을 기하자는 움직임도 있다.사실 세계보건기구 WHO는 ‘국제적 공중보건 비상사태’를 유지한다고 발표하였기에 ‘국내 마스크 전면해제와 확진자 7일 격리의무 단축’을 한다는 우리 정부의 계획도 WHO 해제 후로 미루어질 가능성도 있다. 국제적 상황을 종합 검토한 후 마스크 전면해제가 이루어질 전망이다.경상북도는 매일 코로나 확진자 현황을 휴대전화의 안전안내 문자로 알려왔기에 내 나름으로 그 데이터를 정리하며 분석하곤 했는데 1월 19일부터는 보내온 자료가 전혀 없다. 통신시스템에 문제가 있나 하고 생각해 보니 강풍과 한파주의보는 계속 쏟아지고 있는 터라 그동안 확진자 자료를 보냈을 재난안전실에 문의를 해봤더니 행정안전부에서 재난문자를 보내지 말라고 했다고 한다. 코로나 사태의 장기화로 국민도 지쳤고 매일 보내지는 문자에 스트레스가 쌓인다는 민원이 발생한다는 이유였다. 그리고 이제는 재난이라기보다는 일상이 되어버렸다는 생각에 안전 안내도 효과가 감소했을 것이다. 그러나 자료는 코로나 관련 ‘누리집’에서 볼 수 있다는 말에 살펴보니 2월 1일 경북 1천231명에 포항 235명 경주 130명 등으로 포항의 누적 확진자는 28만2천532명이며 아직 안심할 단계는 아니라고 본다.거리를 나서보면 오랜만에 마스크를 벗은 사람들의 밝은 얼굴도 볼 수 있지만 그래도 대부분 쓰고 있고 아직 불안하고 또 벗기가 어색하다는 사람들도 많다. 이제 3년 정도 쓰다 보니 습관이 되었고 모든 장소에서 일상화로 익숙해진 탓도 있으려니….특히 요즘과 같은 겨울 한파에 감기 예방용으로 착용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쉽게 벗지 않으려 하는 듯하다. 오늘 현관문을 열고 나가다가 ‘아차!’하고 다시 들어와 마스크를 찾았고, 입구 계단에서 마스크 벗은 이웃의 얼굴들을 보며 새삼스럽게 인사를 나눈 모습이 새롭다.이제 곧 정월 대보름, 달집태우기를 하며 그동안 우리를 괴롭혔던 코로나 병마를 싹 태워 날려 보내고 싶다.

2023-02-02

도꼬마리 머리

강길수 수필가 보도(步道)의 하늘에 커다란 도꼬마리 머리들이 줄지어 안겨있다. 지나다니는 방송국 구내에는 더 큰 도꼬마리 머리들도 여기저기서 하늘을 안고 있다. 도꼬마리 모습의 저 머리들은 겨울 하늘과 이야기들을 나누고 있는 것만 같다. 그들이 무슨 말들을 주고받는지 알듯 모를듯하다.지난봄 어느 날, 영문도 모르고 사람에게 지체를 무참히 잘려버린 저 생명체들. 말하지도, 울부짖지도, 도망치지도 못한 채 오롯이 제자리에 서서 사시나무처럼 떨며 생으로 팔뚝들을 잃으며 몸부림치던 참상이 눈에 선하다. 자연에 대한 인간의 폭력이 날카로운 기계 소리를 타고 귀청을 후려치던 느낌이 지금도 따갑다. 남은 팔뚝들은 ‘의식주 재료를 자연에서 구하는 일 이외의 어떤 자연훼손도 용납될 수 없다!’라고 세상에 외치고 있다.어느 종묘장에서 사람의 의도에 따라 싹트고 자라나 어느 것은 가로수로, 어떤 것은 조경수로 운명 지워졌을 생명체 나무들. 저들은 사람이나 동물, 기후 등 만나는 환경이 자기 운명을 어떻게 쥐고 다루든 그저 묵묵히 받아들일 뿐이다. 환경에 적응하면서도 하늘의 뜻 곧, 생명 보존 유전자의 임무를 말없이 지켜낸다. 겨울 하늘과 서로 안고 살아내는 저 하늘 도꼬마리 머리들의 모습이 그러하니까.근년엔 주위에서 도꼬마리를 본 적이 없다. 도심은 물론, 가까운 야외, 들, 강가, 바닷가, 산에서도 도꼬마리를 못 만났다. 하지만, 도꼬마리가 떠오른 것은 어린 시절을 함께 했기 때문이리라. 도꼬마리는 골목 가, 들, 냇가 같은 곳에서 매일같이 만났다. 가을날 놀다가 집에 와 보면, 바지에 도꼬마리가 몰래 덕지덕지 붙어 있곤 했다. 어떨 땐 그것을 떼서 동기들을 귀찮게 하기도 하고, 어느 날은 바로 쇠죽솥 아궁이에 던지기도 했다. 아무튼, 그때의 도꼬마리는 끈질기게 성가신 존재였다.가로수나 정원수의 전지(剪枝)로 잘리고 남은 굵은 가지 끝에 성근 머리털처럼 솟아난 많은 잔가지 군집이 왜 도꼬마리같이 보였을까. 생긴 모습이 도꼬마리를 닮아서였을 테지만, 다른 이유가 클 것이다. 그것은 아마 살기 위한 나무들의 몸부림을 느꼈기 때문이리라. 식물들은 따지지 않고 환경에 적응한다. 식물의 무조건적 순응은 내가 가늠할 수 없는 생명 보존의 임무 곧, 살기 위한 몸부림이 아닐까.질리도록 바짓가랑이에 달라붙는 도꼬마리나, 잘린 팔뚝 가지 머리에 잔가지들을 도꼬마리처럼 매단 채 겨울 하늘에 안겨있는 가로수와 정원수. 그 생태(生態)가 살기 위한 몸부림이 아니고 무엇이랴. 우리 사회와 지구촌은 지금 ‘살려고 몸부림치는 도꼬마리 머리의 시대’를 사는지도 모른다. 3년이 지나도 끝나지 않는 코로나19 바이러스 사태에다, 러시아의 침공으로 벌어진 우크라이나 전쟁은 끝날 기미가 없다.하늘 높은지 모르고 오르는 물가에다 기온 1.5도 상승을 눈앞에 둔 기후변화 위기는 가뭄, 한파, 혹서, 해수면 상승, 강풍, 폭설과 폭우 등 생존환경 악화로 다가왔다. 갈수록 더해지는 지구촌의 진영대결 양상은, 살기 위한 몸부림을 더 치지 않으면 안 될 상황으로 인간을 몰아가고 있다. 도꼬마리 머리의 몸부림처럼….

2023-02-02

돈 선거가 아닌 준법 선거

권지혜 영천시선관위 선거주무관 3월 8일은 제3회 전국동시조합장선거가 실시되는 날이다. 전국동시조합장선거는‘위탁단체 등 위탁선거에 관한 법률’에 따라 선거관리위원회가 농업협동조합, 수산업협동조합, 산림조합으로부터 선거사무를 위임받아 실시하게 된다.농협과 수협, 산림조합은 군사정권 시기 관제화돼 조합장도 임명제였으나, 1988년부터 조합원들의 선거로 조합장을 선출했다. 본질적으로 단위조합은 영리사업체인데다 폐쇄적으로 운영되는 특성상 금품제공과 조작 등 부정선거가 만연했다. 이에 2005년 산림조합을 시작으로 농협과 수협까지 선거사무를 선거관리위원회에 위탁하게 됐다.조합장 선거의 후보자(후보자가 되고자 하는 사람 포함), 후보자의 배우자, 후보자가 속한 기관·단체·시설은 기부행위 제한기간(2022년 9월 21일 ~ 2023년 3월 8일) 중 기부행위를 할 수 없으며, 누구든지 기부행위제한기간 중 위탁선거에 관하여 후보자를 위해 기부행위를 하거나 할 수 없다. 더불어 현직 조합장은 위탁선거법상 기부행위가 상시 제한되고 있다.하지만, 선거가 임박할수록 불법행위의 발생 빈도는 높게 나타나고 있다. 지난 제2회 전국동시조합장선거와 관련해 선거관리위원회는‘돈 선거’근절을 목표로 단속을 실시했다. 과열·혼탁 예상지역, ‘돈 선거’발생우려 지역 등 총 111개 구·시·군, 283개 조합을 특별관리지역으로 지정하고 광역조사팀 상주, 야간단속 등 한층 강화된 단속활동을 벌였다.집중단속의 결과 총 723건의 조치사안 중 금품·음식물 제공 등 ‘돈 선거’ 조치건수가 259건(35.8%)으로 압도적으로 많았다. 특별관리지역에서는 ‘돈 선거’조치건의 약 34%인 89건의 기부행위 건을 조치했다. 기부행위 금지·제한 규정을 위반해 금전·물품이나 그 밖의 재산상 이익을 제공받은 자는 최고 3천만 원 범위 내에서 제공받은 금액이나 가액의 10배 이상 50배 이하에 상당하는 금액의 과태료가 부과된다.민주주의 국가에서 주인은 곧 국민이듯이 조합에서의 주인은 조합원이다. 금품 등의 기부행위에 소중한 한 표가 휘둘려 조합원 개개인의 소중한 가치와 이익이 외면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 ‘깨끗한 경쟁, 현명한 선택, 희망찬 조합’이 제3회 전국동시조합장선거의 캐치프레이즈인 만큼 3월 8일에 치러지는 전국동시조합장선거가 아름답고 깨끗하게 치러져 튼튼한 조합과 당당한 조합장의 탄생을 기대해 본다.

2023-02-02

신인사 일반(神人事 一半)

오낙률시인·국악인 추수가 끝난 뒤 논바닥에 떨어진 벼알에는 아무도 관심이 없다. 그러나 그렇게 버려진 듯 보이는 벼알이 따고 남은 감나무에 몇 알 남겨진 까치밥처럼 겨울나기를 해야 하는 몇몇 생명 집단의 소중한 겨울 양식이 되고 있다면, 그것은 결코 버려진 게 아니라 또 다른 생명을 위하여 무의식중에 행해지는 농부들의 소중한 배려가 되는 셈이다.언제부턴가 겨울철이 되면 수백 수천 마리의 까마귀 떼가 겨울 들판에서 논바닥에 떨어진 벼알이며 풀씨를 쪼아 먹느라 장관을 이루고 있다. 십여 년 전만 해도 까마귀 대신 기러기 떼가 겨울 들판의 운치 있는 풍경을 그려내곤 했는데 그것도 세월 탓이지 요즘 들어서는 그 풍경이 바뀐 것이다. 논바닥에 새까맣게 내려앉은 까마귀 떼를 보며 검은색에서 느끼는 아름다움의 극치를 보는 것 같아서 그리 나쁜 현상은 아닌 것 같다.사실, 그렇게 버려진 벼알로 겨울 허기를 이겨가는 생명이 어디 까마귀뿐일까. 들풀이 모두 말라버린 탓에 황조롱이의 공격을 피해 이리저리 가시넝쿨을 옮겨 다니며 살아가는 참새떼며, 쥐구멍이 훤히 노출되어 들고양이며 맹금류의 눈을 피해 야행성으로 살아가는 들쥐 등의 설치류에게도 논바닥에 떨어진 벼알은 겨울나기를 위한 소중한 양식이 되는 것이다.가만히 보면 세상에 그냥 버려지는 것은 없다. 시골집 하수구에 떠내려가던 밥 찌꺼기조차 그냥 버려지는 게 아니라 지렁이며 각종 미생물의 소중한 먹이가 된다. 그리고 어린 시절 할머니를 따라서 산나물 채취를 나갔다가 산에서 점심 주먹밥을 먹을 때에도, 들에 나가 새참을 먹을 때에도, 첫술을 뜨기 전에 빠짐없이 행해지던 ‘고수레! 의식’ 또한 그 시작된 유례를 떠나, 자연물로 존재하는 뭇 생명들과 공생하려는 우리 조상들의 지혜가 아니었을까 싶다.오늘날 인간의 부(富)는 자연으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러나 오늘의 인간 생활을 가만히 보면 오히려 자연을 지배하려 드는 경향이 있다. 이것은 엄연히 자연을 향한 배신행위에 해당하며 인간성의 상실이라 할 수 있겠다. 인간 생활의 중심에는 언제나 자연이 존재하였으므로 자연에 의지한 인간성 회복 운동으로 얻은 부를 이용해 다시금 탈 인간성의 길로 접어들고 있는 격이다. 어쩌면 오늘날 여러 형태로 가해지는 자연을 향한 폭력이 마침내 인간에게로 그 칼날이 되돌아와 새로운 형태의 봉건적 사회로 회귀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라는 말의 의미를 생각하면 인간은 만물과 더불어 하나의 사회를 형성하고 있다는 뜻도 된다. 옛말에 신인사 일반(神人事 一半)이라는 말이 있는데 직역하자면 신의 일과 인간의 일이 같다는 뜻이다. 그래서 필자가 하고 싶은 말은, 인간들의 사회처럼 인간이 속한 자연이라는 사회도 민주 사회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라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자연이라는 사회의 구성원 속에는 우리가 미물쯤으로 생각하는 참새며 들쥐며 지렁이까지도 포함된다고 얘기하고 싶은 것이다.

2023-02-01

마스크를 벗다

최병구 경상국립대 교수 지난 1월 30일부터 실내 마스크 착용이 의무에서 권고로 바뀌었다. 2020년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우리를 덮친 이후, 마지막 남은 일상의 제약이 해제된 것이다. 여론조사에 따르면 마스크 착용이 권고로 바뀌어도 착용하겠다는 사람이 많지만, 이제 코로나19는 역사의 한 페이지로 들어가고 있다.2020년 1월 전 세계를 덮친 코로나19는 우리에게 무엇을 남겨주었을까? 우선 ‘비대면’으로 요약되는 변화는 기술혁신의 시간을 앞당겼다. 대학은 비대면 강의라는 초유의 상황에 직면했으며, 교수들은 ‘줌(ZOOM)’이라는 테크놀로지에 익숙해져야만 했다. 학술대회도 학(學)+술(酒)이 만나는 시간이 아니라 각자의 공간에서 줌을 통해 만나는 시간이 되었다.사회적 거리두기와 영업시간 단축으로 자영업자들의 고통이 심화되는 가운데, 자산 가격이 급등한 상황도 빼놓을 수 없다. 코스피는 2020년 3월 저점을 형성한 뒤 급등하여 2021년 초 3천300포인트를 넘었다. 이를 목격한 많은 사람들이 주식시장에 뛰어들어 ‘동학개미’라는 신조어가 생겨나기도 했다. 저금리 상황과 맞물리며 이른바 ‘영끌족’이 등장하고 부동산 가격은 급등했다. 이러한 국면에서 유튜브의 경제 관련 채널은 큰 인기를 얻었으며 재테크는 전 국민의 관심사가 되었다.이제, 다시 일상을 되찾았지만 역사는 거꾸로 흘러가지 않는다. 2022년 우리는 자산 가격의 급락을 경험했지만, 급등하는 물가는 현금 가치가 얼마나 빠르게 떨어질 것인지를 알려주었다. 극단적인 저출산 국면에서 연금 고갈 소식이 연일 들려오며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이는 곧 물가 상승률을 상쇄하고 노후 대비도 할 수 있는 자산 증식에 대한 관심이 꺼지지 않을 것임을 암시한다.한편 우리는 코로나 시대를 겪으며 환경에 대해 숙고하는 시간을 가졌었다. 이동이 멈추자 대기가 깨끗해지는 경험은 그간 인류의 진화가 환경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새삼 확인시켜주었다. 어느 순간 매년 경험하는 이상 기후는 인류의 미래가 지금과는 다르게 진행될 수 있음을 암시한다. 이것만인가? 단절된 삶은 누군가에게는 이득을 주었지만,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 사회적 약자들에게는 큰 고통을 주었다.코로나 국면을 벗어나고 있는 지금, 우리는 무엇을 기억하고 무엇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해야할까? 나의 자산을 관리하고 노후를 준비하는 일은 중요하지만, 보다 근본적인 일상의 구조를 질문해야 한다. 자본주의의 진화가 아니라 자본주의의 구조를 이해하고 다른 방식으로 직조할 수 있는 방법을 함께 고민해야 한다. 이를 위해 꼭 필요한 것이 눈에 보이지 않는, 일상과는 조금 거리가 있는 것처럼 보이는 현실을 인식할 수 있는 힘이다.기후위기와 사회적 약자는 눈에 잘 보이지 않는다. 아니 늘 우리 주위에 존재하지만 보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 가시화되지 않는 것이다. 코로나 국면에서 학습한 문제 중에서 무엇을 기억해야 할지 고민해보길 바란다. 코로나19 이후, 우리는 변해야 한다.

2023-02-01

우리에게 소는 다음세대다

장규열 한동대 교수 소는 누가 키우나. 농가에 소가 소중했다, 나라에 소는 무엇일까. 집안에 소가 자식들이듯이 나라의 소는 ‘다음세대’가 아닌가. 정치권은 표나 얻으려 감언이설을 늘어놓을뿐 다음세대를 진정으로 돌아보지 않는다. 마음을 모아 자라나는 어린이들을 걱정하고 그들이 만날 내일을 잘 준비해야 하겠거늘, 나라의 어른들은 오늘 싸움박질에 여념이 없다. 무엇을 가르쳐 나라와 다음세대의 미래를 탄탄하게 할 것인지 생각해 보자. 백년대계(百年大計)라면서 누구도 교육을 말하지 않는다. 험한 세상을 건너가기 위해 반드시 길러야 하는 소양은 무엇인가.상상과 창의. 그간 모방과 추격을 거듭하며 격차를 줄이는 데 성공하였다. 이제는 상상과 창의로 앞자리를 지켜야 하고 격차를 더욱 벌여야 한다. 끊임없이 새로운 무엇으로 승부해야 한다. 세상의 모든 문제를 향하여 비판적 시선을 던지며 신박한 해결책을 제시해야 한다. 누구도 밟지 않았던 새로운 지평을 열어가야 한다. 기존의 틀을 깨고 세상을 놀라게하는 도전에 나서야 한다. 아무도 생각하지 않은 결과물을 드러내야 한다. 교육은 다음세대를 상상과 창의의 바다로 이끌어야 한다.글쓰기와 말하기. 너무나 기초적인 소양이지만 우리에게 치명적으로 부실한 부분이기도 하다. 읽고 익힌 것도 나누지 못하면 배움의 의미조차 사라져 버린다. 무엇을 하든 영향력을 가지려면 글쓰기에 능해야하고 말하기에 앞서가야 한다. 자연공학계열일수록 역량을 표현하고 계획을 조리있게 설명이 가능할 때 리더로 성장해 간다. 인문사회분야에서 글과 말이 결정적인 경쟁력 요소임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교육은 글쓰기와 말하기에 더욱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글로벌과 균형감각.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 국내만 생각하면 답답하고 협소하지만 다음세대가 헤쳐갈 활동무대는 글로벌시장이다. 시선을 확장해 세상을 바라보도록 도와야 한다.교사의 업무와 경험도 글로벌시각을 가지도록 이끌어야 한다. 나라 안 경쟁에 매몰되어 낙심하지 않도록, 나라 밖 환경에 익숙할 틀을 만들어야 한다. 교육은 세상과 함께 호흡하는 글로벌 호연지기를 길러내야 한다.세상은 이미 선진 대한민국을 기대하고 기다린다. 다음세대가 대한민국뿐 아니라 세계를 바꾸어 가도록 부추겨야 한다.이념의 낡은 틀도 극복해야 한다. 건강한 보수를 충분히 이해하면서 진보의 발걸음을 자신있게 내딛도록 가르쳐야 한다. 좋은 것을 지키고 꽃피우면서도 새로운 사조를 자신있게 만나는 다음세대를 길러야 한다. 보수와 진보를 양자택일의 조건으로 여기지 않고 모두를 끌어안는 넓은 가슴을 가르쳐야 한다.21세기를 보다 자신있게 걸어가는 다음세대가 되어야 한다. 백년대계 교육은 백년 너머를 준비해야 한다. 선진국 대한민국이 길러낼 다음세대가 세상을 바꾸어 갈 터이다. 교육이 살아야 대한민국이 산다. 대한민국이 살아야 세상이 바뀐다. 정치권에게 진짜 소는 다음세대다. 민생의 핵심도 다음세대다. 교육이 바로 서야 세상이 옳게 간다.

2023-02-01

박정희 추모관

홍석봉 대구지사장 구미시 상모동 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 추모관은 대통령 재임 시절 접견실로 설치됐다. 1979년 박 전 대통령 서거 후 조문객들의 분향소로 이용돼 왔다. 2016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당시 방화로 전소돼 구미시가 2017년 2월 새로 지었다. 매년 탄신제와 추모제가 이곳에서 열린다. 해마다 20만명의 관광객들이 찾는다.구미시가 ‘박정희 대통령 숭모관’ 건립 논란으로 시끄럽다. 지역 시민단체들의 반발때문이다.구미경실련 등은 최근 성명서를 내고 “박정희 전 대통령 숭모관 건립에 1천억원을 들이는 것은 순수한 목적이 아닌 정치적 목적에 혈세만 낭비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숭모관 건립계획을 철회하고 시급한 일자리, 복지, 문화 등 민생에 매진하라”고 일갈했다.시민단체는 구미시가 생가에 있는 추모관이 협소하고 비탈길에 위치해 방문객들의 불편과 안전사고 위험이 있다는 이유로 숭모관을 새로 짓겠다는 것은 근거가 너무 빈약하다고 꼬집었다.최신 기술을 활용한 기존 추모관 전시실은 콘텐츠를 업그레이드 해주지 않고 고장난 채 다른 전시물로 대체되고 있기 일쑤고 몇 년 째 바뀌지 않아 재방문자가 드물다고 했다. 오르막길이 문제가 아니라 전시 콘텐츠 업그레이드가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또, “자신들의 정치적 입지를 위해 박정희 전 대통령의 업적인 경제개발과 민생안정 등에 매진하지 않고 오로지 기념관, 동상, 숭모관 건립 등 눈에 보이는 치적을 쌓기 위해 몰두하고 있다”고 힐난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을 진정 추모하려면, 그 정신을 본받으라고 나무랐다.굳이 추모객들의 품격 있는 추모 공간 마련을 위해 거액을 들일 필요가 있을까./홍석봉(대구지사장)

2023-02-01

인생탑 쌓기

양태순 수필가 화엄사를 찾았다. 엄청난 크기에 감탄사가 먼저 나왔다. 불이문과 절 마당에 앉은 석탑과 석등을 비롯하여 각황전과 대웅전이 주는 웅장함과 엄숙함에 저절로 손이 모아졌다. 두루 돌아보며 흔적 남기기를 열심히 하고 보제루에 앉아 땀을 식혔다. 부처의 사랑을 품은 세계, 이곳은 고결한 향내가 나는 것 같았다. 열린 문을 통해 보이는 보리수와 단풍나무, 탑과 전각들, 절 뒤로 보이는 산이 그려내는 풍경을 오래도록 눈에 담았다. 마당을 오가는 사람들의 표정도 살폈다. 모두가 편안한 얼굴이다. 경내를 휘젓는 바람과 말소리가 어우러져 경전이 되고 깨달음이 되는 공간이었다.대웅전 뒤편으로 난 길을 따라 구층암으로 향했다. 오른쪽으로 대숲이 빽빽하다. 호젓한 오르막길을 맑은 기운에 젖어 조금 걸으니 구층암이 슬며시 모습을 드러냈다. 앞서 본 화엄사와는 분위기가 달랐다. 모든 건물이 산에 안기듯이 나지막하고 수수했다. 절마당을 지나는데 삼층 석탑이 시선을 끌었다. 잘 다듬어져 예술품으로 탄생한 탑이 아니었다. 조각난 돌이 얼기설기 얹어져 손을 대면 무너질 듯 어설픈 탑이었다. 한 바퀴 돌아보니 정면은 멀쩡한데 보는 방향에 따라 누군가 소원을 얹은 산길의 돌탑 같았다.돌탑은 간절함이 쌓아올린 축적물이다. 이름 있는 산사나 신성함이 깃들었다고 소문난 산을 찾아온 이들이 자신의 애달픈 정성을 얹은 탑이다. 그것은 멋과 예술의 경지가 아닌 지극한 마음이 빚어낸 성물이며 보이지 않는 간절한 기원이 해를 거듭하며 쌓여가고 있다. 언제부턴가 나도 산을 찾을 때면 만나는 돌탑 앞에서 슬쩍 돌 하나를 얹는다.옛날부터 탑돌이 풍습이 있었다. 탑은 부처님을 모신 곳이라 정성껏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는 이야기가 있기 때문이다. 불교가 융성하던 시절에는 연례행사와 상관없이 자식 얻기, 부모님의 건강, 굶주림 벗어나기, 맺을 수 없는 사랑을 위한 탑돌이가 있었다. 아마도 소원이 이루어지는 이가 있었기에 김대성의 이야기도 나왔을 확률이 높다.구층암 석탑은 온몸으로 장구한 세월을 맞았다. 무너져 조각조각 흩어져 있던 돌들을 정성껏 쌓아서 다시 탑의 형태로 돌아왔다. 차곡차곡 각을 재듯 정제된 미는 없으나 돌탑의 구원을 고스란히 느꼈다. 어설픈 단장이지만 태풍에도 무너지지 않은 것은 돌에 깃든 비손의 힘이 아닐까.이름난 산길에서 만나는 돌탑의 매력은 자연스러움이다. 오랜 세월 간절한 이의 소원을 머금은 채 형식 없이 쌓이고 쌓인다. 누구도 제것을 위해 다른 돌을 옮기거나 무너뜨리지 않는다. 돌에 깃든 마음의 깊이를 가늠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서로의 기원이 이루어졌으면 하는 동병상련의 마음이 스며들어 서로를 붙드는 힘이 생긴다. 그 탑은 잘나고 못나고의 시각이 아닌 진정성으로 평가받는다. 삐죽빼죽 못난이지만 아픔의 결과 사랑의 결이 돌 사이를 메꾸어 부족함 없는 탑이 되었다. 장인의 탑과는 다른 매력으로 마음을 움직인다.무엇이든 쌓는 것은 노력이 필요하다. 덕을 쌓거나 복을 짓거나 인연을 만들고 사랑을 나누고 웃음을 나누는 것은 시간과 정성이 들어간 선함을 쌓는 일이고 분노나 화를 쌓거나 미움과 시기에 휘둘리고 상대에게서 권력이나 재물을 뺏어오는 것은 악을 쌓는 일에 시간을 들이는 것이다. 일생을 공들인 탑의 결과가 어떨지 짐작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나이가 들면서 좋아진 점이 있다면 생명을 좌지우지하지 않는 것들은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다는 것이다, 슬프면 슬픈 대로 아프면 아픈 대로 흘려보낸다. 견뎌내는 약간의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속에 감정 찌꺼기를 쌓지 않는다. 오늘 같은 내일이면 감사하며 살자는 마음이 크고, 주위에 따뜻한 사람들이 많았으면 싶다. 속내를 들여다보면 좋은 일이 많은 것도 아닌데 남을 돕는 것에 앞장서 손을 보태는 사람들과 자신의 것이라 고집하기보다 남을 채워주려고 퍼주는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을 닮으려 애쓰는 것이다.인생탑을 쌓는 일은 쉽지 않다. 나는 긴 길을 걸으며 만난 크고 작은 일을 겪은 뾰족하고 불퉁한 모양으로 쌓았다. 지금부터 마음을 다듬어 볼수록 매력이 있는 탑을 쌓아야겠다. 창작의 고통을 즐기면서.

2023-02-01

<2> 소위, 요지·명당의 비방을 서술하다

선돌가 당나무는 자신을 희생하여 벼락을 맞은 흔적이 수백 년을 지내 오면서 가장 힘든 상처이기도 하였다. 선돌가 당나무는 느티나무가 빙의가 된 신목이다. 김 사장이 어릴 때는 그런 것도 모르고 거기에 있는 작은 열매를 따서 대나무에 넣어 딱총 싸움을 하기도 하였다. 대부분의 당나무가 그렇듯이 선돌가 당나무에도 철이 되면 학과 두루미가 떼를 지어 날아들곤 하였다. 학과 두루미가 지금은 천년기념물로 지정되어 보호되고 있지만 먹고 살기 어려운 과거에는 포수들의 사냥 거리였다.한번은 학이 나무에 떼를 지어 앉아 있는데, 포수가 총으로 막 잡으려고 하는 순간, 번개가 치고 천둥이 치면서 벼락이 떨어져 학은 모두 무사히 날아가고, 포수와 당나무는 번개를 맞았다. 동네 사람들은 아마도 당나무가 스스로 번개를 치게 하고, 천둥을 맞았다고 믿고 있었다. 마을 주민들은 스스로 자기를 희생해서 학을 보호한 당나무를 두고, 다시 한번 마을 수호신인 당나무를 더욱 주민들은 아끼고 신앙의 대상으로 여겼다.우리나라도 삼국시대 이후부터 풍수지리설에서 좌청룡 우백호가 등장한다. 좌청룡 우백호라는 명당이 있다 하여 나라의 도읍지는 물론 집터와 묘지에 이르기까지 선조 때부터 소위 명당이라는 땅들이 비싼 값으로 거래되기도 했다. 동양의 음양오행 사상에서는 그 방위를 동서남북과 중앙으로 나누며 동서남북에는 각의 신이 있는 것으로 본다. 그러므로 각 방위는 하나의 가상의 신과 연결되어 있다. 모두가 토지의 위치에 관한 얘기다.즉, 동쪽은 청룡, 서쪽은 백호이다. 북쪽에 앉아 남쪽을 바라볼 때 왼쪽은 청룡, 오른쪽은 백호가 되므로 좌청룡 우백호가 된다. 우리가 풍수적으로 좋은 자리 즉, 명당이라고 하면 이러한 사신의 특성이 잘 반영된 배치가 되어 있느냐로 판단하는 것이다. 또한 배산임수라 하여 뒤로 산을 등지고 앞으로 물을 내려다보는 자세를 갖춘 터로서, 풍수에서 여기는 마을이나 건축 조영물이 들어설 이상적인 지형이라 할 수 있다.조선조 건국 초기에 이성계가 무학대사와 함께 고려 때 음양풍수설의 대가인 도선국사의 영향을 받아 개경에서 한양으로 천도한 것이 유명하기도 하다. 이러한 풍수지리설에 의한 명당이 현대에 이르러서는 국가의 도시 계획과 경제적 개발 여건에 따라 공단과 택지, 도로 등 인위적으로 변화되고 있다. 이른바 현대의 명당이라는 것은 경제적인 이용 측면에서 많은 사람들이 모여 활동하는데 얼마나 적합하고 효용성이 있느냐는 것으로 판단된다 할 것이다.소위 명당, 좋은 토지, 양지를 찾기 위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인류 문명사를 거슬러 고민하고 있다. 산업화 이후 토지는 인위적인 힘에 의하여 개발되면서 음지도 양지로 바뀔 수 있게 되었다. 도로가 나고, 공단이 개발되고, 택지가 조성되면서 조상을 잘 만난 후손들은 일시에 벼락부자가 되기도 했다. 일부 토지를 개발하는 사람들도 신흥 재벌이 되긴 매 일반이었다.옛날에도 흉가가 있었다. 당나무가 알고 있는 그 비밀은 용마람에 태수 대장에게 털어놓았다. 한번은 동이 막 트는 아직 어두운 새벽에 치마를 덮어쓴 젊은 여인이 당나무 앞터에 앉아 있었다. 마침 새벽에 길을 가던 낯선 나그네가 그 모양을 보고 업고 가다 며느리는 중치가 막혀 죽었다. 당나무는 그녀가 누구인지 잘 알고 있었다. 최조합 댁 며느리였다. 그 집은 동네에서도 가장 큰 기와집이었는데, 그 집에서 며느리가 자식을 낳지 못한다고 소박을 맞히었던 것이다. 그 당시만 해도 칠거죄악이라는 현실이 있었다. 시대를 거스를 수 있다면 몰라도 소크라테스는 악법도 법이라고 했다.사실은 며느리가 자식을 못 가지는 것이 아니고 아들이 음탕하여 건넛마을 용여와 눈이 맞아 거기에 자식을 두고 본처를 미워하고 소박했던 것이다. 그 해 조합장은 읍내에 나갔다 심장마비로 죽었다. 그 집은 저녁이 되면 집 기둥에서 억울한 한이 못다 하여 비웃기라도 하듯이 깔깔되는 소리가 났다. 그 후 집안은 대대로 망했다. 마을에서는 그 집터가 기가 다했다고 말했다.김 사장이 일찍이 우리나라가 막 산업화가 시작되어 각종 대형 토지 개발 사업이 진행될 때 토지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공기업에 취직해서 경험을 얻을 수 있었다는 것은 큰 행운이라 할 수 있었다. 김 사장은 주로 공기업에서 매각하는 공매 부동산과 법원에서 매각하는 경매 부동산에 관심이 더 많았다. 그 중에서도 성업공사와 토지개발 공사에서 매각하는 부동산에 더 큰 관심이 집중됐다. 서진국 작가 성업공사에서 매각하는 부동산은 주로 은행에서 채권을 확보하기 위해 담보권을 행사해 취득한 부동산을 성업공사에 위탁해 매각하는 경우로 매각을 촉진하기 위해 매수금 상환조건이 가장 좋았다. 계약금 10%정도만 있으면 중도금과 잔금은 2년 내지 최고 4년까지 분할하여 장기간 상환하면 되었다. 법원에서 매각하는 경매 재산 취득은 상당 부분 명도에 대한 문제에 어려움이 있을 수 있으나 성업공사에서 매각하는 부동산은 이미 은행 등에서 경매절차를 거쳐 취득한 후 성업공사에 매각을 의뢰한 경우이기 때문에 명도에 대한 문제는 현실적으로 거의 없었다.토지개발공사에서는 공단, 택지 등을 주로 국가로부터 위탁 받아 조성하고, 직간접적으로 원시 매각하는 것이므로 대부분 신개발지의 토지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토개공에서 매각되는 부동산은 미리 감정을 하여 최저 금액을 정하여 놓고, 그 최저 금액 이상 최고 금액을 쓴 사람에게 낙찰되는 방식이다. 소위 최고가 낙찰 방식인데 장점은 수백 필지 매각 토지 중 최고 인기 있는 토지에는 많은 경쟁자가 몰리는 반면 그렇지 않은 토지는 잘만하면 최저 감정가에 근접하는 매우 싼 가격으로 구입할 수 있다.

2023-02-01

雪白의 겨울산행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눈 덮인 겨울산을 올랐다. 해마다 연초가 되면 높은 산엘 오르면서 한 해의 계획이나 목표를 되새기고, 신령한 산의 정기(精氣)를 받아 뜻한 바들이 순조롭게 이뤄지기를 염원하며 연례적으로 산행을 하곤 했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코로나19에 발목잡히는 바람에 근 3년째 등산다운 등산을 못하다가, 마침 지난 주말에 수년 전부터 수시로 참여해 왔었던 회사 산악회의 강원도 태백시 함백산행 계획에 동참하여 실로 오랜만에 산행을 하게 된 것이다. 눈이 귀한 지역에서 눈구경(?)을 실컷하며 능선을 타는 눈길산행이라 한결 구미가 당겼다고나 할까?등산이 시작되는 만항재는 ‘명품 하늘숲길’답게 울창한 수목 밑으로는 온통 눈으로 뒤덮여 있었다. 등산화끈을 바짝 조이고 눈길산행의 필수품인 아이젠을 신발바닥에 채우고는 곧바로 산행에 돌입했다.당일 고한읍의 기온이 영하 14도인데 해발 1천300m 이상의 고산지대에 매섭게 불어오는 바람으로 체감온도는 -25도 이상으로 느껴지는 듯했다. 혹한에 삭풍을 견디며 산행하기 위해서는 말그대로 ‘눈만 내놓고’ 방한모자와 머프, 스카프, 마스크 등을 두텁게 쓰고 두르거나 칭칭 감고, 방한장갑이나 양말도 2중으로 끼거나 스키용품 등으로 중무장(?)해도 간혹 손끝이나 발끝이 시려 옴은 어쩔 수 없었다.약간의 한기가 느껴져도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뽀드득’하고 눈 밟는 소리가 맑고 정겹게만 들렸다. 그 소리에 재미삼아 발걸음을 맞추거나 완급을 조절하고, 또한 일행이 함께 지나가면서 일제히 내는 뽀드득거림은 이구동성의 어울림처럼 여겨졌다. 거기에 나목의 나뭇가지를 흔들며 스치거나, 산정으로 향하는 송전선을 훑고 지나가는 바람소리는 가슴 속을 전율케하며 울리는 비장의 산명(山鳴)처럼 들렸다.설한과 동토의 계절에도 새소리, 물소리, 풀벌레소리를 내밀하게 품으며, 어쩌면 깊은 속울음마냥 허공을 향해 웅웅거리거나 윙윙거리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걷고 들으며 오르다 보니 어느새 정상에 당도했다.함백산은 과연 다(咸)하도록 희디흰(白) 눈으로 덮여 있었다. 사방으로 트여진 올망졸망 봉우리와 산자락은 희끗희끗 눈과 점점이 나무들의 형체가 채색된 듯 일망무제 장쾌한 수묵화로 펼쳐졌다.가깝거나 멀리 이어지는 능선으로는 풍력발전기 수십 여기가 보이고, 정상을 에워싼 등성이 몇 군데의 임도는 스키장의 슬로프 마냥 흰 눈길로 구불구불 이어졌다.산행 시작과 아울러 두문동재로 하산하기까지 발목 이상 쌓인 눈과 줄곧 함께 했으니, 온통 시리도록 부시고 다채로운 순백의 환희에 젖어든 시간이었다.5시간여 산행 내내 눈길을 걸으며 휘청대다 넘어지기도 했지만, 짐짓 눈밭에 뒹굴고 눈뭉치를 공중에 뿌리거나 맞아 보면서 아련한 동심에 젖기도 하는 등 시종 설국여행을 즐긴 것 같았다. 살을 에는 추위에 칼바람을 맞으며 겨울산행을 애써 하는 이유는 결국 자신을 위한 담금질이 아닐까 싶다.눈 속에서도 복수초가 피어나듯이, 인동(忍冬)의 내성이 강할수록 맑고 진한 향기를 뿜으리라.

2023-01-31

성장의 세대, 성숙의 세대

이상산 한동대 교수·AI융합교육원장 사람은 태어나서 청년의 시기까지 성장한다. 이 과정에서 성장통을 겪기도 한다. 마음과 생각이 몸의 성장을 따라잡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몸이 성장을 멈추는 시점이 지나서야, 비로소 성숙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삶의 선택을 통해 멋진 사람이 되기도 하고 더러는 본능에 충실한 생명체가 되기도 한다.대한민국은 한국내전 직후 세계의 최빈국이었다. 1970년대부터 ‘잘 살아보세’를 외치며 우리는 산업화의 길을 걸었다. 열심히 일했다. 하루의 삶을 깡소주 한 잔 털어 넣어야만 마칠 수 있었던 팍팍한 시간이었다. 보상은 넉넉하지 않았지만, 일할 직장이 있었고 그 회사는 성장했다. 그래서 가족과 회사를 위한 희생이 개인과 사회에 보상되었다. 1977년 1인당 국민소득 1천달러 돌파. 지금 70대 이상의 선배들이 겪었던 삶이다.1988년 올림픽도 개최하고, 세계지도에서 Korea가 어디 있는지 설명할 필요가 없어질 무렵. 1994년 우리나라 1인당 국민소득은 1만달러를 넘겼다. 열심히 선진국 제품과 기술을 배워 따라잡으며 무섭게 성장했다. 이 무렵 우리 산업계의 주제어는 ‘수입대체’였다. 이 과정을 지나며 우리나라에 세계 1위 제품과 기술이 싹트기 시작했다. 지금 50~60대가 사회의 주력으로 활동했던 시기의 모습이다.2002년 한일월드컵 개최와 4강 달성. 무슨 일을 해도 전세계에서 한 손에 꼽히는 일이 어색하지 않은 그런 나라가 되었다. 어떤 분야에서 우리나라가 세계 10위라고 하면, 아직 무언가 더 해볼 일이 있을 것 같은 분위기다. 그만큼 우리는 성장했다. 부를 생산해왔고 축적해왔다. 우리는 성장에 대해서는 집단적으로 일가견이 있다. 할 말이 많은 나라다. 이 경험을 세계에 수출하기도 한다. 전세계 개발도상국들의 롤모델이다.2023년 올해의 경제전망이 발표되었다. 기획재정부에서 내놓은 우리나라의 경제성장률 예상치가 1.6%. 1980년 오일쇼크, 1998년 외환위기, 2020년 코로나 팬데믹 이후 최저수준이라고 한다. 이러한 예측은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다. 세계 경제의 전망도 밝지 않다. 미·중간의 경쟁과 대립으로 공급망 디커플링이 일어나고 있다. 위기의 신호가 충분하다. 2017년 훌쩍 1인당 국민소득 3만달러를 넘긴 우리. 세계적으로도 이제는 중진국 아닌 선진국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우리 사회는 더 이상 성장을 지향하여 발전할 수 있는 나라가 아니다. 지난 50년 압축성장을 하면서 사회 곳곳에서 약자들이 고립되고 외면되어 왔다.경제가 성장하면서 사회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도록 변했어야 한다. 사회 변화의 과정에서 겪는 갈등을 통해 새로운 가치와 철학이 탄생했어야 한다. 이런 몸부림과 홍역을 지나며 제도가 정비되며 안정적인 삶의 형태가 나타나고, 공동체가 자연스럽게 공유하는 가치도 형성되었어야 한다.청년들에게 미안하다. 성장은 많이 보여주었는데, 성숙이 무엇인지 생각 없이 달려만 왔기에 미안하다. 그들에게 남겨줄 경험과 식견이 충분하지 못해 더욱 그렇다. 2023년, 대한민국은 성숙하고 있습니까?

2023-01-31

나잠어업

우정구 논설위원 나잠(裸潛)이란 옷을 벗고 잠수한다는 뜻이다. 여기에 어업을 붙이면 특별한 산소호흡 장치없이 바닷속에 들어가 패류와 해초류 등을 캐내는 일을 하는 업종을 말한다. 이른바 해녀(海女)의 수중 활동이 그것이다.해녀는 한국과 일본에만 분포하는 여성 특유의 어업 활동이다. 우리나라 해녀들은 과거부터 역량이 뛰어나 일제 강점기에는 물질을 잘하는 출가해녀들이 일본과 대련, 블라디보스토크까지 진출했다고도 한다.우리나라는 각 해안지방과 여러 섬 등에 아직도 이들이 흩어져 활동을 하나 그 숫자 대부분이 제주도에 몰려 있다. 전국적으로 한 때 2만명이 넘는 해녀들이 있었던 것으로 조사돼 있다. 맨몸으로 잠수하는 나잠업의 역사는 거슬러가면 매우 오래됐다. 인류의 등장과 함께 자연발생적으로 생겨났으나 삼국지 한조(韓條)에 의하면 마한시대에도 이미 잠수어업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시대에는 나잠업에 여자뿐 아니라 남자도 종사했다는 기록이 있다. 농업 웅도지만 경북은 제주도 다음으로 해녀가 많다. 경북도 조사에 의하면 1천300여 명의 해녀가 아직도 동해안 중심으로 수중활동을 하고 있다. 그러나 종사자의 64%가 40년 이상 나잠어업에 종사한 것으로 나타나 고령화 등으로 그 수는 앞으로 갈수록 줄 것이 예상된다.2016년 유네스코는 제주해녀문화를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한 바 있다. 자연발생적으로 생겨난 나잠업이 수천년의 세월이 흘러 현대에까지 이어져 온 인류문화적 가치를 유네스코가 인정한 것이다.경북의 나잠어업도 해녀 수의 감소와 더불어 쇠퇴기에 접어들었다. 노령화와 소득 감소, 시대흐름 등으로 불가피한 현상이나 아쉬움이 남는 문화유산의 퇴조라 할 것이다. /우정구(논설위원)

2023-01-31

충격적인 난방비 청구서 온다니 걱정

심충택 논설위원 역대급 겨울한파로 도시, 농촌 할 것 없이 전 국민이 난방비 충격에 휩싸여 있다. 문제는 국제적인 천연가스 수요공급이 정상적으로 복원되지 않는 한 난방비가 앞으로도 계속 오를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난방비 폭탄의 주요 원인은 도시가스 원료인 액화천연가스(LNG) 공급부족 때문이다. 지난해 2월 24일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가 유럽으로 통하는 천연가스 밸브를 잠근 이후 LNG 국제 가격은 가파르게 오르고 있다. 러시아가 밸브를 열지 않는 한 지구촌 난방비 부담은 눈덩이처럼 계속 커지게 돼 있다.그동안 유럽 각국은 전세계 천연가스 매장량의 20% 정도를 보유하고 있는 러시아로부터 LNG를 구입해 사용해 왔다. 혹독한 겨울추위를 넘기려면 그동안 러시아에서 사들였던 천연가스를 다른 나라로부터 구매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 천연가스 매장량은 한정돼 있는데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니 당연히 가격이 치솟는 것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국제시장의 천연가스 가격은 평균 5배 올랐다. 우리나라도 매월 다르긴 하지만, 지난해 평균 5배 정도 올랐다. 천연가스 가격이 35배 오른 적도 있었다고 한다.천연가스 가격이 오르니 이를 연료로 하는 난방(도시가스)요금이 오를 수밖에 없다. 지난해 유럽은 난방비가 평균 5배 올랐다. 독일 같은 경우에는 무려 8배 올랐다고 한다. 일본도 2배 정도 상승했다. 천연가스 전량을 수입하고 있는 우리나라는 지난해 유럽국가들보다는 낮지만 난방용 요금이 38% 올랐다. 문재인 정부가 선거를 의식해서 그동안 공공요금 인상을 억제해 왔기 때문에 포퓰리즘 청구서가 한꺼번에 날아든 것이다.한국가스공사가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민수용(주택용) LNG 미수금이 9조원까지 불어났다고 한다. 연내에 미수금을 해소하려면 가스요금을 현재의 약 3배까지 올려야 하는 모양이다. 설상가상 가스공사가 도시가스 요금을 동결한 올 1분기(1~3월)가 지나면 미수금이 석달동안만 5조 이상 더 늘어난다고 한다. 가스공사가 발표하는 미수금은 국가부채이며, 국민이 내야 할 돈이다. 가스공사는 현재 회사채를 발행해 LNG를 사오고 있는데, 곧 회사채 발행액도 한도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가스공사가 LNG 구입청구서를 국민에게 보내지 않으면, 조만간 가스원료를 못 사오게 될 가능성도 있다는 얘기다.결론적으로, 가스공사가 부도를 면하려면 난방비 인상은 불가피하다. 가스공사측에 따르면 도시가스 원료비 미수금을 회수하려면 오는 4월부터 현재 요금의 3배 수준인 메가줄(MJ)당 39원을 인상해야 한다. 지난해 주택용 가스요금 인상분의 약 7배다.가스공사가 물가 부담을 감안해 4~5년에 걸쳐 단계적 요금인상을 한다고 해도 연말로 갈수록 가스비 부담은 심해진다.부존 에너지 자원이 없는 우리나라의 경우 난방비를 줄이려면 에너지를 절약하며 사용하는 방법밖에 없다. 국가가 난방요금을 지원하는 것도 한계가 있다. 지금처럼 에너지를 물쓰듯하면 결국은 국민에게 감당못할 청구서가 날아오게 돼 있다.

2023-01-31

타인에 대한 환상

사실 나는 유행하는 드라마는 꼭 그 시기를 놓쳐서 보게 된다. 괜히 호들갑 떨기는 싫고, 그렇다고 재밌다는 데 안보기도 그렇다보니 꼭 시기를 한참 놓쳐서 보게 된다. 물론 프리랜서라는 직업 탓에 제 시간을 맞추는 게 어려워서 그런 탓도 있지만, 괜히 덩달아 사람들의 유행에 합류하기도 싫고, 그렇게 덩달아 보기시작하면 꼭 “이번 주 xx화 봤어?! 대박!”이라며 공감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봤어! 완전 대박!” 하면서 같이 호들갑 떨어주는 게 서툴러서 그렇기도 할 것이다.그래도 재밌는 걸 놓치긴 싫어서, 비수기 때면 나는 종종 여러 시즌짜리 드라마도 하루 종일 틀어놓곤 한다. 강의도 없고 나갈 일도 없이 집에서 일하는 날이면 그냥 하릴 없이 드라마를 켜놓고는 그 앞에 노트북이며 담요며 커피며 생강차며 과자며 사탕이며 온갖 것들을 부려놓곤 일도 하고 빨래도 개고 괜히 먼지도 닦고 하면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이번 방학엔 ‘나의 아저씨’를 하루에 한 편 정도씩 아껴가며 보고 있다. 처음엔 그냥 생각 없이 틀어놓고 있다. 보다보니 묘하게 이선균과 아이유 양쪽 모두에 공감을 하며 보게 되었다. 어렸을 적 빚쟁이에 시달려본 기억이라거나(이건 정말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모르는 중년의 아저씨, 아줌마마저도 이유도 없이 무서워하거나 증오하게 되는 경험이란), 혹은 한 가족의 아들이자 가장이 견뎌야 하는 마음의 무게라거나.이제 방영한지도 오래인 드라마라 조금 이야기를 풀어보자면, 나는 이 드라마가 생각보다 깊고 어두워 조금 놀랐었다. 다른 인물들이 각자의 사연을 철없는 척을 통해 감당하고 겪어내고, 때로는 이겨냈던 것과 달리 주인공인 두 남녀는 자신이 처한 상황을 묵묵히 감내하며 살아왔다는 점 때문에 더 그렇게 느껴졌던 것 같다. 어쩌면 다른 인물들의 철없어 보이는 모습이, 두 사람을 더 극단적인 성격으로 만들었던 것 같기도 하다. 표면적으로 보기엔 사회적으로도 가정적으로도 전혀 다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내면의 구조는 동일해 보였다고나 할까.인상적이었던 건 두 사람의 모습 뿐만은 아니었다. 두 사람을 향한 타인의 시선과 말들도 다른 의미로 무척이나 인상 깊었다. ‘너는 항상 속 깊고 타인을 위하며 잘 살아왔으니 앞으로도 그래야지’라는 타인의 무의식적인 기대도, ‘너는 원래부터 질도 안 좋고 태도도 불량하니 앞으로도 그렇겠지’라는 타인의 태도도, 겉보기엔 전혀 다른 것 같지만 사실은 ‘너는 그래왔으니 앞으로도 그래야한다’라는 압력처럼 느껴졌다. 그런 타인의 태도마저도 자신이 감당해야 할 삶의 일부라 생각하며 살아가는 두 사람이기에, 그토록 서로의 속내를 깊게 알아차리며 서로에 대해 알고자 하는 노력을 멈추지 않았던 건 아니었을까. 누군가에겐 조금 개연성이 떨어져 보일 수 있는 두 사람의 관계겠지만, 아마 나처럼 느낀 사람들도 적지 않았으리라 생각한다.하지만 조금 슬픈 건, 두 사람이 깊고 너른 행복을 맞이하지는 못하리라는 예감이 들기 때문이다. 아직 드라마를 끝까지 보지 못해 속단할 수는 없는 이야기겠지만, 왠지 두 사람이 끝내 마주하게 될 엔딩이라는 건 기껏해야 평범한 삶 정도가 아닐까 싶다. 그럼에도 두 사람의 관계가 여전히 특별하고 각별해 보이는 건, 둘 모두 타인이 자신을 구원해주리라는 환상 없이 서로를 대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우리는 종종 착각한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나의 기분을, 나의 하루를, 나의 삶의 색채를 바꿔줄 수 있으리라고. 하지만 그 생각이 서로를 향해 드러나는 순간, 기대는 압박으로 바뀌고 관계는 비틀리기 시작한다. 임지훈 2020년 문화일보, 서울신문 신춘문예 평론 부문에 당선된 문학평론가. 한양대 국문과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그러니 우리가 사람을 만날 때 정말로 필요한 건, 누군가 나의 삶을 뒤바꿔 주리라는 환상을 가로지르는 것이 아닐까.드라마를 통해 사람을, 인생을 배운다는 게 좀 허황되게 느껴지긴 하지만, 적어도 그것만으로도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는 한결 나아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종종 우리의 다툼과 불화란, 상대방 때문이 아니라 나의 너무 높은 기대 탓에 일어나기도 하는 법이니까. 누군가 보기엔 두 사람이 타인에 대한 기대 없이 메마른 삶을 살아가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그 메마름이 사람과 사람 사이의 배려를 위한 가장 첫 걸음이 아닐까 싶다.그래서 나는 아직 이 드라마의 끝을 알지 못하지만, 그런 두 사람이기에 적어도 서로를 원망하게 되거나 파국을 맞이하게 되거나 하는 일은 없으리라는 예감이 든다. 물론 이건 드라마니까, 너무 큰 기대는 금물이겠다. 작가도 사람일 테니 나도 기대를 좀 내려놔야지.

2023-01-31

‘힘내’ 보다는 ‘힘 빼’

설 연휴가 지나고 남은 건 2023년이 시작되었다는 자각이다. 이젠 꼼짝없이 새로운 해를 온몸으로 맞이해야 한다. 얼마 전까지도 해가 바뀌었다는 사실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다. 할머니의 깊어진 주름을 보면서, 취업을 준비하는 사촌 동생의 근심 어린 얼굴을 마주하면서, 비로소 시간의 흐름을 체감하고 있다.누군가가 봤을 때 나 역시도 어느 부분이 훌쩍 지나있겠고 이전과는 다른 모습으로 보일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 생각을 하면 어떤 변명도 불필요해진다. 2월의 문턱 앞에서 나는 방향감각을 상실한 사람처럼 서 있다.정말이지 작년은 바빴고 나 자신을 살피기는커녕 방치와 학대에 가까운 시간을 보냈었다. 무엇을 위해서였을까? 지난 몇 년간 나는 내가 좋아하는 일을 잘하고 싶다는 욕심에 가득 차 있었다. 동시에 삶을 제대로 운용하고 싶었다. 글을 쓰고 일을 하고 매일매일 새로운 경험을 탐닉하려는 마음으로 경주마처럼 뛰었다. 그러다 보니 작은 일에도 쉽게 지쳤고 가까운 사람들의 반가운 인사에도 다정하게 대답하지 못했다.힘들다는 핑계로 눈앞에 놓인 일을 제대로 해내지 못하는 나 자신이 못마땅했다. 다른 것보다 마감 날짜를 넘기는 일이 가장 싫었다. 소설을 쓸 시간이 도무지 나지 않아 새벽에 기상해 컴퓨터를 켰고 퇴근 이후에는 쓰러지듯 잠들고 싶다는 마음을 억누르면서 책상 앞에 앉았다. 머리카락은 늘 부스스했고 실핏줄이 다 터진 눈으로 하루를 살아냈다. 위경련 때문에 한 달에 한 번은 응급실 문을 두드리며 극심한 통증을 호소하기도 했다.그건 누구의 탓도 아니었다. 물론 무언가를 탓한다면 탓할 수야 있겠지만 그것이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아니까.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버거웠다기보다는 더 이상 감당하고 싶지 않아진 것에 가까웠다. 어떠한 압박과 일상의 굴레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판단이 들었다.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 바람이 부는 소리를 듣고 싶었다. 주변에 떠도는 무수한 언어를 곡해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만끽하고 싶었다.뻐근한 어깨를 주무르며 생각한다. 온몸이 경직되어 있다고. 불필요한 힘이 너무 많이 들어가 있다고. 그러니까 이제 본격적으로 힘을 빼는 방법을 생각해야 할 때라고.습작생 시절,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 바로 ‘힘 빼’라는 것이었다. 그때의 나는 그게 무슨 뜻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비문을 조심하라는 말이나 소설의 구성을 살펴보라는 등의 구체적인 조언이었다면 고개를 끄덕였을 것이다. 힘을 빼라는 말은 추상적이고 모호했으며 은근히 기분 나쁘기까지 했다. 오히려 최선을 다해 소설을 쓰는 나를 응원하며 ‘힘내’라고 말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그러나 그것은 정말로 실질적인 조언이었다. 뭔가를 많이 바랄수록, 어떤 일에서 잘하려고 할수록, 글에도 삶에도 계속해서 힘이 들어갔다. 참 이상한 일이었다. 억지스럽게 손을 움직이고, 있는 힘껏 세상을 정의 내리려 하면 글도 삶도 이상한 방식으로 무너지는 것이었다.어떤 것도 바라지 않고 쓸 수 있는 문장이 있을까. 아무런 의도도 갖지 않고 찍는 마침표도 존재할까. 나는 뭔가를 간절히 바랐기에 더욱 애를 썼다. 이제 그것은 작년의 나로 남겨두기로 한다. 절대 무의미한 몸짓이 아니었다. 숨이 턱까지 차도록 맘껏 달려봤으니 오히려 개운하다. 문은강 ‘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로 주목받은 소설가. 201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작가로 등단했다. 힘을 빼는 일은 쉽지 않다. 특히 수영장에서 그렇다. 발이 닿지 않는다고 느껴지면 순간적으로 힘이 들어간다. 그러면 몸은 무거워진다. 팔다리를 허우적댈수록 더욱 가라앉을 뿐이다. 온몸에 힘을 빼고 자연스럽게 숨을 쉬다 보면 신기하게도 몸은 물 위로 둥둥 뜨기 마련이다.요가 동작을 할 때도 마찬가지다. 몸을 억지로 구부리거나 힘을 주어 어떤 자세를 만들려고 하면 자칫하다 크게 다칠 수도 있다. 들숨과 날숨을 천천히 반복하면서 힘을 빼면 자연스럽게 중력의 무게가 느껴지면서 자세가 만들어지는 것이 느껴진다.‘힘내’라는 말보다 ‘힘 빼’라는 말이 듣고 싶은 새해다. 어쩌면 살아간다는 건 힘을 주고 태어나 힘을 빼는 연습을 하는 과정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초조한 마음으로 동동거리면 무자비하게 가라앉는다는 사실을 이젠 알고 있으므로. 거대한 배를 만들어야만 세상이라는 큰 바다를 항해할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맨몸으로도 얼마든지 물 위에 떠 있을 수 있다. 나만의 속도로 파도를 즐기면서 자연스럽게 유영하는 때가 오리라고 믿는다. 그것이 언제가 됐든 기쁘게 기다릴 작정이다.

2023-01-31

‘늘봄학교’

홍석봉 대구지사장 맞벌이 부부나 저소득층 가정에서 초등 저학년 아동 돌봄은 큰 부담이다. 이런 가정의 고민을 해결해주기 위해 ‘늘봄학교’가 생겼다. 경북교육청은 올해 초등학교 40여 교를 늘봄학교로 운영한다. 늘봄학교는 ‘늘 봄처럼 따뜻한 학교’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초교 1학년 입학 직후 조기 하교로 인해 생기는 돌봄 공백을 해소하고 학교 적응력을 높여주기 위한 방안에서 마련됐다. 학부모의 돌봄 부담을 줄여주고 공교육 출발 시기의 교육 격차를 해소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늘봄학교는 정규 수업 시간 이전인 아침 이른 시간부터 학교 수업이 끝난 뒤 저녁 8시까지, 그리고 필요한 시간과 주말에 초등 저학년들을 돌봐주는 것이다. 올해부터 전국적으로 200여 학교가 시범운영에 들어간다.경북교육청은 학생과 학부모의 수요를 반영해 맞춤형 교육·돌봄 서비스를 제공하고, 양질의 프로그램을 확대하는 등 지역 단위 총괄 관리 운영 체제를 구축해 단위 학교와 교원의 업무를 경감하는 방향으로 늘봄학교를 추진키로 했다.이를 위해 초등 1학년 교육돌봄 집중 지원과 미래형 맞춤형 방과후학교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저녁돌봄 단계적 확대, 석·간식 및 프로그램 제공, 안전 관리 강화, 지역사회 연계 협력 강화 등 세부 계획을 마련 중이다.늘봄학교는 공교육이 보육 공백을 메워주겠다는 취지다. 하지만 인력과 공간 등 준비가 부족하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당장 3월 시행에는 인력과 시설 확충 등 기본적인 준비가 덜 됐다. 형식은 돌봄교실이지만 사실상 방과 후 학습량이 늘어나고 교사 부담만 가중될 것이라는 우려도 적잖다. 첫 술에 배부를 수는 없다. 철저한 계획과 준비로 늘봄학교의 조기 정착을 바란다./홍석봉(대구지사장)

2023-01-30

당심·윤심·민심

변창구대구가톨릭대 교수·국제정치학 국민의힘 당대표 선출을 위한 전당대회가 한 달여 앞으로 다가왔다. 당권에 도전한 후보들이 벌이는 ‘윤심 경쟁’은 꼴불견이다.공정해야 할 선거가 당 지도부의 경선규칙 변경, 윤핵관의 편 가르기, 대통령실의 개입 등으로 매우 혼탁해졌다. ‘당심’과 ‘윤심’이 과연 ‘민심’을 얻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민주정치는 정당정치이기 때문에 정당민주주의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정당민주주의의 핵심은 자율성·객관성·공정성이다. 하지만 정부여당은 스스로 정당민주주의 원칙을 훼손했다.‘민심1위 후보’의 출마를 저지하기 위해 경선규칙을 변경하는가 하면, ‘당심1위 후보’를 조직적으로 비판·모욕·겁박함으로써 결국 출마를 포기시켰다. 이러한 반민주적 행태는 ‘윤심1위 후보’의 당선을 위한 것이고, 그 배후에는 윤핵관과 대통령실이 작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언행이 일치되지 않는 지도자를 믿을 수 있겠는가? “저는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습니다”라고 한 윤 대통령이 자신에게 충성할 당대표를 원한다면 자기모순이다. 대통령의 ‘공정과 상식’은 친윤·비윤·반윤에 관계없이 동일하게 존중되어야 한다.대통령이 당무에 개입해서 정당민주주의를 무력화시키는 것은 권위주의시대에 있었던 일이다. 당심이 윤심과 일치되어야 한다는 주장은 ‘공당의 사당화’일 뿐이다.국민의힘 청년당원 김우영은 “윤심에 의해 모든 것이 결정되고 ‘답정너’(답은 정해졌으니 너는 투표나 하라)식의 전당대회는 국민에게 실망을 줄 뿐”이라고 강력히 비판했다. ‘민심’이 돌아선다면 ‘윤심’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집권당 대표는 대통령의 부하가 아니다. 양자 관계는 정치상황에 따라 상호보완적일수도 있고 경쟁적일수도 있지만, 당대표가 대통령의 지시를 받는 수직적 관계는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당이 대통령실의 출장소로 전락하면 정당정치는 본래적 기능을 할 수 없다. 여당대표는 대통령의 국정운영을 지원하는 동시에, 민심을 대통령에게 정확히 전달하는 가교적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한다. 당대표의 독립성과 정치적 균형감이 중요한 까닭이다.국가통합의 상징인 대통령이 분열의 중심에 있어서는 안 된다. 윤심을 얻으려는 후보들이 ‘윤심 팔이’를 하더라도 대통령은 “어떤 후보에게도 윤심은 없다”고 분명히 밝혀야 한다.집권당 대표를 선출하는 전당대회는 ‘윤심 바라기’가 아니라 당과 국가의 미래비전을 놓고 경쟁하는 자리가 되어야 한다. 대통령 자신이 정당민주주의 원칙을 지키지 않으면서 대표경선과정이 민주적이라고 강변한다면 ‘지나가던 소가 웃을 일’이다. 윤심이 공정과 상식을 잃으면 민심은 외면하고 정권은 위기를 맞게 된다.윤심을 둘러싼 진흙탕 싸움으로 선출된 대표가 지휘하게 될 내년 총선은 결코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 총선의 승패는 ‘윤심이 아니라 민심’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당권에 도전한 후보들은 물론, 대통령과 당원들도 ‘민심의 엄중함’을 다시 한 번 깨닫기 바란다.

2023-01-30

영일의 태양을 기대어

바다를 물들이며 붉은 동심원이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낸다. 드넓은 영일만에 오직 태양만이 살아 움직이는 듯하다. 두 손을 모아 복을 비는 사람들. 구복을 통해 무엇을 바라며 또 무엇을 이룰 수 있을까. 구복은 비단 현재만의 일은 아니다. 옛사람들도 인지만으로 알 수 없는 자연 현상에 주술적 의미를 부여하고 기원의 대상으로 삼았다. 포항 영일 ‘연오랑세오녀(延烏郞 細烏女)’ 설화에는 태양숭배의 흔적이 남아있다. 신라 아달라왕 즉위 4년(157년) 연오와 세오가 일본으로 건너가게 되자 일월이 빛을 잃었는데, 세오의 비단으로 제사를 지내자 다시 빛을 회복하게 되었다는 내용이다. 이때 제사를 지낸 곳은 영일현이었다.옛이야기 속에는 역사적 진실을 짐작할만한 모티프가 숨겨져 있다. ‘연오랑세오녀’ 설화에서도 영일에 살며 태양을 숭배하고 철기와 방직 기술을 가진 세력이 아달라왕 시기에 일본으로 거주지를 옮겼음이 드러난다. ‘연오랑세오녀’의 오(烏)는 삼족오(三足烏)와 같이 태양신을 뜻하고, 연오는 철기 기술을 가진 집단의 제사장, 세오는 방직 기술을 가진 여성 사제자를 뜻한다. 또 영일의 지명에서도 태양숭배의 흔적은 쉽게 발견된다. 영일현은 신라의 근오지(斤烏支)현으로 해를 맞이하는 곳이란 뜻을 가진다. 신라 때 제사로 되살린 햇빛이 제일 먼저 비췄다는 광명리, 고현성터가 남아있는 옥명리, 세오녀의 비단으로 제사를 지내자 광명 가운데 위치했다는 중명리, 햇빛의 힘이 등불처럼 약해지는 곳에 위치한 등명리, 일월지가 있는 일광리, 하늘에 제사를 지내자 용이 승천했다는 용덕리, 천제당의 흔적을 찾을 수 있는 세계동(世界洞), 달이 뜨는 벌판이란 의미의 이두식 표현인 도기야(都祈野, 지금의 도구동). 이곳에서는 고분군과 지석묘, 성혈 등이 발견되었고 청동기 시대에 마을이 형성되어 군락을 이뤘음이 밝혀졌다.기원전 2~3세기는 한반도와 일본 모두 소국들이 난립해 확장되던 시기로 세력들의 이주가 빈번하게 일어났다. 한반도에서는 북에서 철기를 가진 세력이 남부로 이주하여 정착하거나 다시 해류를 타고 일본으로도 이주한다. 당시 포항은 사로국이 세력을 확장하면서 영일을 중심으로 다스리던 북방 예족의 후예인 근기국과 불화가 발생하였다. 근기국은 영일을 떠나 일본 이즈모나 쓰루가 지역으로 이주한 것으로 추정된다. 정월초에 일월신에게 제사를 지내던 의례가 점점 동해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형식으로 변화하는 기록에서 국가와 지역의 불화를 짐작할 수 있으며, 천일창이라는 신라계 왕자가 일본에 귀화한 ‘일본서기’의 기록을 통해 한반도와 일본의 교류가 활발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또한 아달라왕 4년이란 명확한 시기가 설화에 적힌 것으로 당시의 불안정한 정세를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아달라왕은 석씨에게 왕위를 넘겨주는 마지막 박씨로서 천변현상을 불길한 미래에 대한 예고로 해석했다. 왜의 침략을 방어하는 사도성을 순행하고 영일에서 제천행사를 열어 국가의 우환을 해결하고자 노력한다.영일은 태양을 맞이하는 장소이자 과거에서 현재까지 안정적인 항구로서 기능하고 있다. 일본과의 인적·물적 교류는 해류나 지류를 이용하고 계절풍의 도움을 받았다. 북방 한류가 홋카이도에서 갈라져 리만한류가 되고, 남방 난류가 올라오다 영일만과 울진에서 마주쳐 일본 쪽으로 방향을 돌린다. 남동풍이 부는 4~6월에 규슈나 대마도에서 배를 띄우면 해류를 타고 울산·포항 등 동해 남부에 쉽게 도착할 수 있다. 삼국사기의 기록에도 왜의 침략은 4~6월이 절정이었다. 반대로 겨울철 북서풍을 타면 영일에서 일본으로 갈 수 있다. 동해에서 리만해류를 타고 남하하다가 대한해류를 가로지르면 일본의 서안에 도착한다. 한반도 동해와 일본 서해 이즈모 지역은 음력 12~1월을 제외하고는 바람의 도움을 받아 쉽게 이어지는 것이다. 쉽게 도항이 가능한 동해안 항해는 영일을 떠나 일본에 이주하는 일에 도움이 되었다.포항은 ‘연오랑세오녀’의 자취가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과거에는 자연물을 주술적 해석을 통해 경의와 두려움을 이겨내고 공동체의 안녕을 기원했다면 현재는 주술적 해석을 문화로 승화시켜 지역발전과 경제적 이익을 바란다. 과거의 재림으로 현재의 영광을 바라는 마음은 고스란히 포항 곳곳에 녹아들었다. 연오랑세오녀 테마파크에서는 귀비고·일월대·쌍거북바위에서 설화를, 신라와 일본의 과거 뜰·오늘날 제철기술을 표현한 철예술뜰에서 포항을 소개한다. 일월문화공원에서도 일월문화기념관·일월지·암각화·선돌·고분 등을 조성해 일월신앙을 드러낸다. 해양레포츠·해안둘레길·일월문화제 등과 함께 대륙의 산업 및 경제가 영일로 흘러들기를 기원하는 것이다. 또한 영일만을 국제항으로 개척하여 환동해문화권에서의 성장동력과 경쟁력 강화의 발판을 마련한다. 해양공간을 입체적으로 개발하고 미래형 해양산업을 육성하여 대륙과 해양을 잇는 중심을 꿈꾸며 태양이 떠오르는 포항의 바다로 나아간다. 지금 이 순간도 포스코의 전경과 어우러진 영일정이 태양을 배경으로 환히 빛나고 있다. /최정화 스토리텔러 ◇ 최정화 스토리텔러 약력 ·2020 고양시 관광스토리텔링 대상 ·2020 낙동강 어울림스토리텔링 대상 등 수상

2023-01-30

자기 자신이 비쳐 보일 만큼 선명한 문장

조지 오웰(George Orwell·1903~1950)의 글은 선명하다. 그의 문장을 읽고 있자면, 쓸데없는 감상 같은 것에 빠질 일은 절대로 없다. 문장이 짧고 간결하다는 의미와는 조금 다르다. 글쓰기를 가르칠 때, 무조건 긴 문장보다는 짧은 문장을 쓰라고 가르치지만, 그것은 길고 느려터진 사유를 다루기 어려워하는 학생들에게나 하는 소리다. 생각이 복잡해질 대로 복잡해지면 문장도 당연히 길게 늘어지게 마련이다. 길고 복잡한 사유를 짧은 문장에 담아낼 도리는 없다. 조지 오웰은 보통 짧은 문장을 쓰지만, 그것은 보통 자신의 눈에 들어온 대상을 그려낼 때다. 당연히 좀 더 고도의 복잡한 사유를 문장으로 바꿀 때는 문장도 길어진다. 그럴 때조차 그의 문장은 선명하다. 선명하기 이를 데 없다. 식민지였던 인도에서 태어난 영국인으로서 제국주의에 저항했던 사회주의자였던 그의 정치적 입장만큼이나 조지 오웰의 글쓰기는 읽는 사람을 한없이 차갑게 만든다.조지 오웰은 살아 있는 동안 끊임없이 글을 써냈다. 영국 이튼 스쿨 출신의 엘리트였던 그는 식민지 버마의 경찰, 교사, 중고서점의 주인, 반파시즘 연대의 혁명가, 잡지 편집자 등의 수많은 직업을 거치면서 자신이 경험하고 사유했던 일들과 읽었던 책들에 대해 써냈다. 소설 ‘동물농장’과 ‘1984’, 혹은 ‘버마시절’의 작가로 조지 오웰이 기억되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의 글쓰기의 본령은 그가 이렇게 숨 쉬듯 써냈던 에세이와 서평에 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이다.조지 오웰의 글을 읽고 있으면, 처음에는 그가 토해내는 경험들과 마주하게 된다. 잘 훈련된 기자의 눈으로 바라보는 듯한 생생한 세계가 눈 앞에 펼쳐진다. 도시빈민들과 부랑자들의 삶이 눈에 들어오고, 식민지에서의 부당한 차별의 목소리들이 귀에 들리고, 자신이 쏠 수밖에 없었던 코끼리의 살로 파고드는 고통이 느껴진다. 이 압도적인 경험들은 그것을 기록하는 사진이나 영상이 아니라 바로 조지 오웰의 글쓰기로 재현된다. 글쓰기에 그림을 그려내듯 쓴다는 ‘묘사’라는 방법도 있지만, 그의 글쓰기에서 일으켜지는 감각은 단순히 그가 ‘묘사’의 기술에 뛰어나기 때문은 아니다. 본래 글은 감각을 전달할 수 없는 추상화된 도구이기 때문이다.이렇게 단순하게 말해도 좋을지 모르겠지만, 회화나 영화가 감각을 앞세워 의미를 뒤로 끌고 온다면, 글쓰기는 반대로 의미를 앞세워, 감각을 그 뒤로 끌고 온다. 조지 오웰의 글쓰기에서 느껴지는 감각이란 글쓰기의 기술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작가가 가진 경험에서 비롯된 생생한 생의 감각에서 비롯된다. 그에 한정해서 만큼은 글쓰기는 사람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오웰은 자신의 경험에서 보았던 것, 들었던 것, 피부에 닿았던 것을 언어로 바꾸어 의미로 만들고, 독자로 하여금 감각하게 한다. 그렇게 그의 글쓰기를 읽는 사람은 작가와 거리를 유지하며 자기 자신을 비춰볼 공간을 얻게 되는 것이다.감각이 지나간 자리에는 감정이 남는다. 하지만, 조지 오웰의 글쓰기에서 느껴지는 감정은, 독자들이 해묵은 감정을 짜내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 감정이입이 넘쳐나는 이 시대에 우리는 어떤 매체를 통해서든 불필요한 감정을 짜낸다. 굳이 위험을 상상하고, 굳이 복수를 상상한다. 그럴 만큼의 원한이 존재해서가 아니라 모두 그렇게 자극적인 감정을 이끌어 내는 기술에 능숙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지 오웰의 글 속에서 감정은 가장 마지막 순간에, 상당히 둔탁한 소리를 내며 찾아온다. 그의 글쓰기는 이를 데 없이 선명하지만, 그 감정은 복잡해서 설명하기 어렵다. 그 감정은 바로 독자 자신의 것이기 때문이다. /홍익대 교수 송민호

2023-01-30

공천권은 지역주민에게 돌아가야

김진국 고문 국민의힘이 조금은 정리됐다. 대진표도 어느 정도 가닥을 잡았다. 3월 전당대회를 마치면 집권당다운 모습을 보여주기를 기대한다. 전당대회를 하게된 건 이준석 전 대표가 대표직을 상실해서다. 그 이후 끊임없이 점수를 까먹는 일만 해왔다. 윤석열 정부 초반을 그렇게 다 보냈다.이 전 대표가 물러난 뒤 여러 여론조사에서 유승민 전 의원이 선두를 달렸다. 당원 여론은 일반 시민과 달랐다. 친윤계 후보들을 지지했다. 유 전 의원은 한참 뒤로 처졌다. 대표 선출 방식에서 당원 투표만 남기고, 일반 여론조사는 없애버렸다. 야당 지지자의 역선택 가능성을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유 전 의원을 배제한 것이다. 여기에 두 가지 조치를 더 했다. 하나는 결선투표제 도입이다. 친윤 후보가 여러 명 나와도 표를 모을 수 있게 했다. 그러고도 친윤 후보를 단일화했다. 앞서가던 권성동 의원이 사퇴했다. ‘김-장 연대’를 내세우며 장제원 의원이 김기현 의원을 지원했다. 이 정도면 김기현 의원의 당선을 굳혔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각종 여론조사에서 나경원 전 의원이 선두를 달리기 시작했다. 관망하던 나 전 의원이 출마채비를 차렸다. 그러자 청와대가 나서 제동을 걸었다. 비서실장까지 나서서 윤석열 대통령의 불쾌감을 전달했다. ‘윤심’을 분명히 드러냈다. 결국 나 전 의원이 주저앉았다.관상용 나무처럼 가지치기를 계속했다. 이렇게 되짚어보면 윤 대통령의 분명한 의지가 보인다. 총선 승리다. 전당대회뿐 아니라 윤 대통령의 중대선거구제 제안도 같은 맥락이다. 중대선거구제는 복잡하다. 그 안에서도 많은 변형이 가능하다. 한 선거구에서 당선될 의원을 몇 명으로 할지에 따라 정치 지형이 달라진다. 농촌 지역과 대도시 지역을 어떻게 다르게 구획할지도 판세를 바꿀 수 있다.일부 소선거구를 남겨놓을 수도 있다. 같은 크기의 선거구라도 구획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당락이 갈린다. 게리멘더링이 얼마든지 가능하다. 어차피 선거법은 고쳐야 한다. 21대 총선은 위성정당이라는 부끄러운 역사를 남겼다. 그것을 반복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선거법 협상은 쉬운 일이 아니다.법을 지키려면 적어도 3월 초에는 선거법 개정을 마쳐야 한다. 국회의원 지역구를 선거일 전 1년까지 확정하게 돼 있다. 다음 총선이 내년 4월 10일이다. 한 달 만에 선거구 획정을 끝낸다 해도 3월 10일까지는 선거법을 개정해야 한다.21대 총선 때는 선거 두 달 전에 선거법을 고치고, 선거구는 선거 한 달 전 겨우 확정했다. 이번에도 법정 시한을 지키기는 어렵다. 집권당 내부 갈등만이 아니다. 국회 절대다수 의석을 가진 민주당은 이재명 대표에 대한 검찰수사로 어수선하다. 더구나 선거법은 의원마다 이해관계가 다 다르다.선거제도에 대해 윤 대통령의 구체적인 구상이 있는 것 같지도 않다. 그런데도 중대선거구제를 던진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내년 총선은 반드시 이겨야겠다는 의지다. 모든 대통령이 집권당 승리를 바라겠지만, 윤 대통령은 절박하다. 압도적인 여소야대(與小野大)로 황금 같은 시간을 낭비했다. 내년 총선에서 뒤집지 못하면 바로 레임덕 신세다.또 한 가지는 물갈이다. 이준석 사태의 트라우마가 크다. 검사 시절 정치권 수사를 하면서 기성 정치인에 대한 불신도 쌓였다. 총선을 기해 판을 바꾸려는 생각이다. 뺄셈의 정치를 밀고 가는 것도 마음이 이미 거기에 가 있기 때문이다. 선거제도 변화는 현역 의원들의 기득권을 흔들게 된다. 이때 공천권을 행사하는 것이 대표다. 그러니 포기할 수 없다.그러나 정치는 검찰조직과는 다르다. 상대는 적이 아니다. 처벌 대상도 아니다. 승패보다 협상과 협치가 먼저다. 정치는 원래 의원이 중심이다. 선택은 지역 주민이 한다. 우리도 그랬다. 그러나 5·16 이후 공화당을 조직하면서 중앙당 사무처가 중심이 됐다. 군조직처럼 일사불란하게 됐다. 지역 주민 투표보다 공천이 중요하게 됐다. 야당도 닮아갔다. 민주화는 했지만, 정치는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 그래도 중앙당이 일방적으로 휘두르는 공천권은 지역 주민에게 돌아가야 한다.김진국△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중앙SUNDAY 고문,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3-01-29

구미 오는 빈소년합창단

우정구 논설위원 코로나팬데믹 3년 만에 오스트리아 빈소년합창단의 내한공연이 시작된다. 서울과 함안, 속초, 부산에 이어 지역에서는 구미에서 2월 2일 공연을 볼 수 있게 된다.파리나무십자가 소년합창단, 퇼저합창단과 함께 세계 3대 소년합창단으로 손꼽히는 빈소년합창단의 방한공연 소식에 벌써부터 시민들의 관심도 들떠 있다 한다.‘천사들의 합창’으로 불리는 빈소년합창단은 525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1498년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왕가의 막시밀리안 1세 황제가 궁정 소년성가대로 출발시켰다. 10세부터 변성기 전 소년 약 100명을 선발해 특별한 교육 과정을 거쳐 대외 무대활동을 시켜왔다. 과거 하이든과 슈베르트도 빈소년합창단원이었다고 한다. 모차르트는 지휘자, 베토벤은 피아노 반주자로 활약한 것으로도 유명하다.1차 세계대전 이후 합스부르크 왕가가 붕괴되면서 민영체제로 운영되었으나 높은 음악성과 역사적 배경을 인정받아 유네스코 지정 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지금은 음악의 나라 오스트리아의 음악대사로 통한다.우리나라는 1969년 처음 방문해 공연한 것을 시작으로 전국 35개 도시에서 150회 공연 기록을 가지고 있다. 아직 변성기가 지나지 않은 보이소프라노의 청아한 목소리와 귀여운 외모 등으로 공연 때마다 많은 인기를 얻고 있다. 2010년 한국인으로서는 최초로 당시 10살이던 조윤상 군이 단원으로 입단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교황 비오11세는 합창단을 두고 “마치 천사의 노래를 듣는 것 같다”고 격찬한 바 있다. 빈소년합창단의 공연이 다음 달 2일 구미예술회관 대공연장 재개관을 기념해 열린다고 하니 탈마스크 이후 맞는 모처럼의 힐링 기회다./우정구(논설위원)

2023-01-29

일본은 귀감인가? 타산지석인가?

김규종 경북대 교수 ‘영국 방송협회(BBC)’ 동경 특파원 루퍼트 윙필드-헤이즈 기자가 일본 생활 10년을 돌아보며 쓴 기사가 흥미롭다. 이 기사의 일본어 번역을 읽은 일본인이 100만을 넘고, 공감을 표시한 사람도 1만5천명이 넘었다 한다. 루퍼트 기자가 들여다본 일본과 일본인의 명암에 관한 내용은 우리와 무관하지 않은 듯하다.1980년대 일본인은 미국인보다 잘 살았지만, 지금은 영국인보다 넉넉하지 못하다. 하지만 일본은 아직 세계 3위 경제 대국이고, 기대수명도 가장 길며, 범죄도 적고 정치적인 갈등 역시 거의 없는 나라다. 그런 일본이 장기 침체의 늪에 빠진 이유로 루퍼트는 비효율적인 관료주의와 교체되지 않는 지배층, 그리고 외국인에 대한 배척과 순혈주의를 들었다.일본은 1868년 메이지 유신 40년 만에 작은 섬나라에서 세계 유수의 강국으로 발돋움했다.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에서 일본의 승리를 예측한 사람은 없었다. 이런 배경에는 일본의 관료집단이 있었다. 이토 히로부미는 철혈재상 비스마르크가 창설한 독일 제도를 도입·강화하여 일본 국립(제국)대학 졸업생들을 기반으로 고시를 통해 관리를 선발하는 관료제를 실행했다.2차 대전 이후 일본에 상륙한 맥아더는 제국주의에 물든 일본을 변화시키려 애썼으나 관료제만은 바꾸지 못했다. 고시를 통해 관료를 뽑아온 일본에 제국대학 출신을 제외하고는 쓸 만한 인재가 없었기 때문이다. 일본을 대표하는 제국대학은 동경대학, 경도대학, 오사카대학, 북해도 대학 등이 있다. 지금도 건재한 이들의 영향력으로 일본은 관료공화국이라 불린다.루퍼트는 지배 세력이 변하지 않는 것도 일본의 활력을 저해하는 요인이라 지적했다. 예컨대 아베 신조의 외조부 기시 노부스케는 전범으로 체포됐으나 교수형을 면하고 나중에 총리가 된다. 그가 창당에 참여한 자민당은 지금도 일본을 지배한다. 루퍼트에 따르면, 메이지 유신과 2차대전 후에도 살아남은 일본 남성 지배층은 민족주의와 ‘특별한 일본’이란 확신으로 무장하여 일본이 침략자가 아니라 희생자라고 믿는다는 것이다.이른바 ‘잃어버린 30년’ 동안 일본인들의 삶이 피폐해졌는데도 자민당이 계속 집권하는 것은 콘크리트 지지층인 ‘지방 거주’ 노년층의 영향이 크다고 루퍼트는 말한다. 노년층에 권력이 있고, 저출산으로 젊은이들의 수가 적기 때문에 일본의 정치·사회적인 변화가 어렵다는 얘기다. 일본 사회의 빈약한 시민사회단체도 여기에 한몫한다. 일본인들에 내재한 외국인 혐오와 배타적인 태도 역시 일본의 아킬레스건이라고 루퍼트는 강조한다.그렇다면 한국 사회는 어떤가? 일본의 근대를 모방 답습한 한국 역시 관료공화국이다. 대통령과 국회의 지배집단은 5년이나 10년 단위로 권력을 교체하지만, 관료집단은 그야말로 철밥통에 ‘복지부동’이다.서울 강남을 필두로 한 ‘신지배층’이 빠르게 확산하고 있으며, 그것을 뒷받침하는 지방의 노년층 역시 강고한 존재감을 발휘하고 있다. 일본은 우리의 귀감이 아니라, 타산지석임을 인식하는 것이 우리가 일본의 전철(前轍)을 밟지 않는 유용한 방책이 아닐까.

2023-01-29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힘, 진화(進化)

장광일 포스코 인재창조원 교수·컨설턴트 설날은 흩어진 가족들이 모여 즐겁게 담소도 나누고, 어린시절 함께했던 친구들도 만나 회포를 푸는 즐겁고 뜻 깊은 날이다.그러나 올해는 웃고 싶지 않은 사람들도 많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작년에는 유독 경제적으로 어려움이 많은 해였다. 코로나19 팬데믹 지속은 물론 고물가와 고금리는 삶을 힘들게 하였다.산업통상자원부는 2022년 우리나라 수출액은 6천839억달러로 전년보다 6.1% 성장했지만, 수입액은 7천312억달러로 전년보다 18.9% 적자라고 공시하였다. 또한 삼성전자의 2022년 4분기 영업이익이 69%나 하락한 결과와 올해 우리나라 경제 성장률 1%대, 물가 상승률은 6%를 웃돌 것이라는 예측은 우리를 더욱 걱정하게 한다.하지만 필자는 ‘위기(危機)를 기회(機會)’로 바꾼 ‘자이언트 세콰이아’ 나무로부터 위대한 생존 전략을 배우고, 기업들도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힘을 가졌으면 한다.이 나무는 지구상 가장 큰 생물이다. 30층 정도의 건물에 맞먹을 만큼 높이 자라고 나무의 지름이 7~8m가 된다. 키는 대략 100m이다. 수명도 3천년 이상 된다. 이 오랜 기간 변함없이 성장해 온 비결은 ‘위기를 기회’로 바꿨기 때문이다.위대한 생존 전략의 첫번째는 산불속에서도 살아남는 ‘나무의 진화(進化)’이다. 이 나무는 다 성장할 때까지 보통 80여 번의 산불을 겪는다. 이 산불에 견디기 위하여 나무는 진화하고 불에 강한 나무가 되었다. 1m 두께까지 자라는 푹신푹신한 껍질은 항상 수분을 머금고 있다. 이 껍질은 몇 일간의 연속적인 산불도 견딜 수 있다고 한다.두번째는 산불을 활용하여 숲을 만드는 ‘나무의 지혜(智慧)’이다. 발아 과정이 독특하다. 산불로 주변온도가 영상 200℃ 정도 될 때 솔방울처럼 생긴 씨앗 방울이 터져 나오며 이 나무의 씨앗들이 튀어나온다. 산불이 발생할 순간을 예상하고 씨방울을 뿌려 둔 다음 산불이 일어나면 발아가 시작되도록 사전에 준비해 두었던 것이다. 산불 덕에 경쟁자 없이 홀로 씨앗을 발아(發芽)하여 ‘자이언트 세콰이아’ 숲을 이룰 수 있다.허구성이 있었지만 ‘재벌집 막내아들’ 드라마에서 보면 1997년 말, 갑자기 터진 IMF 경제 위기를 미리 알고 이 IMF위기를 자신의 기회로 만들기 위해 달러를 모아서 준비하고 이 시기에 무너지는 기업을 헐값에 사서 성장하는 스토리를 보여준다. 이처럼 미리 예측하고 미래를 대비하는 것이 중요하다.기업들도 위기에 철저히 대비해야 한다. 준비된 기업만이 살아남는다. 업(業)의 특성을 살려서 본원 경쟁력을 확고히 하는 것은 물론이고, 미래 다가올 차세대 기술 혁신에 나름 씨앗을 뿌려 두어야 한다. 예를 들어 전기차나 신재생 에너지 시장에 씨앗을 뿌려 둔 기업은 그 시점이 도달했을 때 거대한 생태계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다.기회의 신, 카이로스는 일의 옳고 그름을 정확히 판단하고 칼날로 무엇을 자르듯이 빠른 결단을 내리라고 하였다. 지혜와 민첩함을 지닌 토끼처럼 올해는 정확한 판단과 빠른 결단으로 위기를 현명하게 돌파하길 희망한다.

2023-01-29

장미는 누가 키우나?

유영희 인문글쓰기 강사·작가 최근 지인의 친구가 시로 문단에 이름을 올렸으나 시를 써서는 밥벌이가 안 되어 부동산 공부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 말을 듣고 며칠 지나지 않아 SNS에서 황인숙 시인이 해방촌 옥탑방에서 산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해방촌은 코로나19가 돌기 전, 어느 서점이 주최한 행사에 참여하느라 간 적이 있는데, 길도 좁고 꼬불꼬불한데다 가파르기까지 해서 힘들게 올랐던 기억이 난다.황인숙은 1984년 등단한 이래 큰 문학상도 여러 번 받고 작년에 내놓은 ‘내 삶의 예쁜 종아리’까지 8권의 시집과 9권의 산문집을 낸 중견 작가이다. 2010년 모 잡지사에서 인터뷰한 기사에도 해방촌 옥탑방에서 산다고 했던데, 부동산과 돈을 좇아 사는 세상에서 시인답다 싶은 숙연한 마음이 들면서도 한편으로는 마음이 무거워졌다. 몇 년 전, ‘서른, 잔치는 끝났다’로 유명한 최영미 시인이 자신의 생활고를 SNS에 알려서 뉴스에 오르내린 적이 있는데, 두 시인의 삶이 겹쳐 보였기 때문일 것이다.두 시인의 삶이 시인 모두의 삶을 대변하는 것도 아니고, 이들에게도 나름의 사정은 있겠지만, 그래도 이렇게 유명한 작가들도 생활이 어려운데, 갓 등단한 문인이 글을 써서 생계를 꾸리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그러니, 지인의 친구가 부동산 공부로 방향을 바꿨다는 결정이 현명하다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사람이 살아가는 데는 빵뿐만 아니라, 장미도 필요하다. ‘빵과 장미’라는 표현은 1908년 미국 뉴욕에서 일어난 여성 노동자의 파업 투쟁에서 시작되었다. 뒤이어 여성 참정권 운동가 헬렌 토드가 ‘집과 안식처와 안전이라는 인생의 빵과 음악과 교육과 자연과 책이라는 인생의 장미’를 모든 사람이 누리기를 소망하는 글을 잡지에 쓰고, 시인 제임스 오펜하임도 ‘빵과 장미’라는 시를 발표하면서 ‘빵과 장미’는 인간답게 살기 위한 필수 요소를 상징하는 표현이 되었다.이렇게 인생에는 빵과 장미 모두 필요하다. 그러나 빵을 위해 사는 사람은 대부분 보상을 잘 받지만, 장미를 키우는 일에는 큰 위험이 따른다. ‘시’라는 장미를 키우는 사람은 더 취약하다. 시는 그냥 감상해도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뼈를 깎는 고뇌 끝에 나온 시의 전문이 금세 인터넷에 넘쳐흐르니, 시집은 팔리지 않고 시인의 삶은 더 궁핍해진다. 예전에 어느 사이트에서 시인 이름이 가나다 순으로 배열되어 수백 편의 시 전문이 공개되어 있는 것을 보고 이렇게 해도 되나 걱정한 적이 있다.그나마 요즘에는 문인을 포함해서 문화예술인을 대상으로 정부 지원이 조금은 이루어지고 있어서 다행이다. 그러나 정부 지원도 필요하지만, 무엇보다 시인이 정당한 보상을 받도록 저작권을 보호해서 저자 허락 없이는 전문이 인터넷에 떠돌아다니지 않게 해야 한다. 더불어, ‘시’라는 장미를 즐기는 사람이 많이 늘어나 시집도 많이 팔리고 시 읽는 모임도 많아지면 좋겠다. 해방촌의 그 서점처럼 시인들과 대화하는 자리도 많아지면 좋겠다. 그러면 시인들이 작은 집이나마 월세 걱정 안 하고 장미를 키울 수 있지 않을까?

2023-01-29

물 산업 신성장동력으로 새 나래 편다

권기창 안동시장 안동시가 안동·임하댐 2개의 댐의 수자원을 활용한 물 산업으로 신성장의 새 나래를 펼 계획이다. 광역 상수도 사업으로 맑은 물을 하류에 공급하고, 상생협력 기금과 지원사업을 마중물로 새로운 도약의 발판을 마련한다는 방침이다.안동시는 그간 두 개의 댐 건설로 수만 명이 태어나고 자란 고향을 잃고, 전체 면적의 15.2%가 자연환경보전지역으로 지정돼 시민들은 재산권과 생활권을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여기에 산업단지, 관광시설도 들어서지 못하는 등 댐 건설 후 50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도시 발전의 장애를 주는 애물단지로 인식하고 있다. 반면, 하류지역 공업도시들은 그동안 풍부한 낙동강 용수를 공급받으며 공업도시로 발전, 산업화의 결실을 누릴 수 있었다.안동시는 민선 8기 들어 두 댐이 보물단지로서 역할 할 시점이 됐다는 판단, 그동안 도시 발전에 장애를 주던 두 개의 댐에서 경제적 가치를 찾아, 보물단지로 바꾸는 패러다임의 대전환을 시도한다. 바로 낙동강 광역 상수도 구축사업으로 대구에서 향후 부산까지 맑은 물을 공급한다는 계획이다.또한, 물 산업의 일환으로 상설수상공연장, 마리나리조트, 수상호텔 등을 건립해 안동의 문화 관광거점시설로 거듭날 예정이다.안동시는 특히 대구광역시와 물공급 협약을 맺으며 보폭을 넓혀나가고 있다. 지난해 11월 2일 안동시와 대구시가 안동·임하댐 맑은 물 공급과 상생발전 협력을 위한 MOU를 체결했다.권기창 안동시장과 홍준표 대구시장은 이날 협약에서 ‘물은 우리 모두의 공공재’라는 기본적인 개념에 상호 동의하고, ‘안동에선 깨끗한 물을 보존할 의무가 있고, 하류지역은 거기에 상응하는 협력을 해야 한다’는 내용으로 큰 틀에서 합의했다.협약에 따라 안동시가 대구시에 맑은 물을 공급하는 대신 대구시는 △협력기금 지원 △양 댐 주변 규제 완화와 수변 관광사업에 협력 △안동 농특산물 구매 △대구경북통합신공항 연계 산업단지 조성계획에 안동시가 포함될 수 있도록 노력 △대구-신공항-안동 간 교통 인프라 확충 상호 협력 등에 노력할 방침이다.정부에서 제공하는 용수공급계획에 의하면 안동댐 및 임하댐은 일일 평균 422만t을 방류하고 있다. 그 중 생공업용수는 186만t, 농업용수는 86만t, 하천 유지용수는 114만t이다.전체 방류수 중 이 세가지를 제외한 37만t은 여유용수로 사용계획에 포함되지 않은 용량이며, 여기에 대구에서 생공용수로 취수하고 있는 78만t을 상류지역인 안동·임하댐에서 취수하면 총 115만t이 추가로 확보되므로 수량에는 문제가 없는 상황이다.또한, 수질을 보면, 안동시에서 임하댐 하류 용상동 반변천 복류수를 취수하여 매월 8개 항목의 검사와 매 분기 38개 항목을 검사하고, 정수한 물 또한 정기적으로 59개 항목을 검사하고 있다. 검사 결과 일시적으로 나빠진 경우를 제외하고는 계속하여 1등급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권기창 시장은 “낙동강 광역상수도 사업은 물이 공공재라는 인식에서 출발했다. 안동이 상류 지역으로서 하류지역에 맑은 물을 안정적으로 공급하기 위한 도덕적 의무와 책임을 다한다면 하류지역민은 상류지역민의 아픔과 고통을 함께 나눠야 할 책임과 의무가 있는 것”이라고 전했다.이어 “물 문제는 생명과 직결되므로 안정적 물 공급으로 낙동강 상하류 지자체 간 상생의 관계를 도모하겠다”며 “우리는 50년 동안 아무런 불만 없이 물을 제공했지만 이제는 우리도 상응하는 대가를 받아야 한다. 안동시민은 맑은 물을 안정적으로 공급하고 하류지역은 그 대가로 합당한 비용를 지불하는 것이 진정한 상·하류 상생협력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그러면서 “낙동강 광역상수도 공급체계 구축사업에 따라 안동은 우리나라 최고의 물 산업 전진기지이자, 클러스터로 도약할 것”이라며 “이로써 낙동강 상하류간 미래지향적 협력의 관계를 구축해 낙동강 유역에 물 복지를 실현하고 물 산업 특화도시로 지역경제 활성화를 이뤄나가고자 한다. 중앙정부와 경북도, 낙동강 인근 도시와의 충분한 협의를 통해, 대구를 넘어 부산까지 낙동강 수계 전체를 아우르는 광역상수도 구축 사업이 국가 상수도 계획에 반영될 수 있도록 노력해 나가겠다”고 덧붙였다.

2023-01-29